번 호 : 445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0일 22: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54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장 一. 흑룡의 숲 제 1장 환(環) 꿈꾸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눕힐 수 있는 작은 공간과 휴식에 필요한 약간의 바람. 그리고 아련하게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이다. 一. 하늘을 달리는 바람은 하늘 위를 떠가는 흰 구름을 서서히 움직여 갔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풍성한 나무 그늘아래 검은 파오 차림의 한 남자가 몸 을 눕히고 있었다.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무척이나 기분 좋은 듯 남자의 얼굴에는 한 낯 의 나른함을 즐기는 여유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막 잠이라도 자려는 것인지 남자의 눈은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남자의 잠을 방해하려는 듯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싸늘한 기 운이 남자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 개문(開門) 수(水)! - 물의 힘을 근본으로 하는 중급 공격주문 ] 가늘게 눈을 뜨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마리의 수룡(水龍)을 바라보던 남자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거짓말처럼 자신을 덮쳐오던 수룡의 공격 범위 에서 벗어났다. 그저 느릿한 움직임으로 약간 비켜섰을 뿐인데도 남자는 간 단히 공격을 피한 것이다. " 이제는 암수까지 쓰는 구나. 유에린."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여전히 담담한 태도로 말하는 남자를 보며 유에 린이라 불린 날카로운 느낌의 소녀는 눈썹을 찌푸렸다. "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수 없으니 까요." 대답하는 유에린 역시 언제 공격을 했냐는 듯 처음과 마찬가지로 차갑게 가 라앉은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억양이 들어가 있지 않은 목소리 였지만 유에린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 다. 그렇게 별다른 감정이 깃들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유에린 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에게 공격을 하는 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은 유에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그 누구라도 그의 옷자락조차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은 이곳에 사는 자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 이제 돌아가라." " 싫어요." 유에린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유에린은 길게 뻗은 팔다리와 윤기가 흐르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 었다. 아직 소녀티가 물씬 풍기긴 했지만 유에린에게는 충분히 여인의 아름 다움이 느껴졌다. 다른 남자들이라면 충분히 반하고도 남았을 그녀의 외모도 남자에게는 아무 런 흥미도 주지 못했다. 한동안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에린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파오 자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그런 유에린의 정신을 일깨우듯 낮은 울림을 담은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이렇게 내게 얽매이려는 이유가 뭐지....." 유에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말씀 드렸을 텐데요." " 전에 말했던 현무를 이길 수 있는 힘 말인가?" 유에린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지금의 너로선 현무의 힘을 당해낼 수 없다. 알고 있겠지?" 한동안 유에린은 미동도 없이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무엇을 결 심했는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었다. " 부탁이에요. 제발 절 도와주세요."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심으로 자신을 지탱시켜 온 유에린에게 있어 다른 이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 이렇게까지 하면서 현무를 이기고 싶나." " 일족들은 헛된 일이라며 절 나무랐지만 제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에요." 남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로 유에린을 바라보았 다. 그 검은 눈에는 오랫동안 세상을 겪어온 자들만이 가지는 연륜이 담겨 있었다. " 좋아." 결코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 오자 유에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성인식은 치렀겠지?" " 네... 몇 년 전에..." " 힘든 나날이 될 거다." 유에린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몇번이고 남자에게 감사 의 인사를 했다. " 고마워요......." " 자.... 일어나라. 용족은 그 누구의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유에린의 눈앞에 남자의 새하얀 손이 내밀어져 있었다. " 그리고 앞으로 훼이(飛)라고 불러라." 훼이가 내민 손을 잡으며 유에린은 엷게 미소지었다. 미풍이 전해주는 아련한 봄의 향기처럼 그녀의 미소에도 향기가 담겨 있었 다. * * * 천계 최북단에 위치한 흑룡의 숲은 흑룡족의 영지중 하나로 울창하게 우거진 빽빽한 전나무 숲과 그곳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유명했다. 천년이라는 용족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조차 뛰어넘은 존재. 자연을 이루는 다섯가지의 원소 목(木), 금(金), 토(土), 수(水), 화(火)의 힘 중 수(水). 즉, 대 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흑룡 훼이가 바로 그의 이름이었다. " 청룡족이 가진 것은 모든 물을 다스리는 힘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물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 다." 유에린은 훼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 모든 용족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힘을 개방했을 때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원소의 힘을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용 족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자신이 가진 마력과 5대 원소의 힘을 결합시키 는 주문이다." 말을 마친 후 훼이는 짧게 주문을 외쳤다. [ 개문(開門) 수(水) ] 그것은 유에린도 익히 알고있는 청룡족이 사용하는 공격 주문이었다. 훼이의 말소리가 울리자 마자 유에린의 눈에 하늘로 솟아오르는 다섯 마리 수룡의 형상이 들어왔다. 다섯 이라니........ 아무리 그가 천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자라고 해도 솔직히 마음속으로 는 반신반의하고 있던 유에린에게는 충격이었다. 기본적인 공격 주문을 쓰더라도 그것을 고급의 주문과 같은 힘으로 바꾸어 버리는 능력. 그 때문에 그의 이름이 그토록 이나 유명한지도 몰랐다. ============================================================================ 안녕하세요....포키입니다... 드디어 연재할 소설을 골랐습니다...^^ 예전부터 쓰고 있던 다른 소설의 세계관과 또 배경과 일치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좀 쓰기가 수월합니다.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녔지만 이건 제대로 해야겠네요... 장르는 동양 환타지겠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 (이제 진짜 잘 해야쥐...) 번 호 : 446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0일 22: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8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장 二. 흑룡의 숲 제 1장 환(環) 二. 하늘에 떠오른 다섯 마리의 수룡은 하늘을 헤엄치듯이 유영하며 움직였다. 유에린이 감탄하며 지켜보는 사이 훼이는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다섯 마리의 용은 일직선으로 하늘 위로 솟아오르며 서로의 몸을 감쌌다. 어느새 한 마리의 거대한 수룡이 된 그것은 푸른 하늘 위를 그 장대한 몸체 를 움직이며 헤엄치다가 훼이가 작게 내뱉은 해제라는 말이 울리자 엷게 퍼 지며 하늘에 흩어져갔다. " 보통 청룡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 개문(開門)의 주문은 여러 마리 의 수룡으로 한 순간에 적을 제압하는 공격주문이지. 하지만 적의 힘이 강할 때 이런 분산공격은 쓸모가 없다. 지금 본 것처럼 수룡을 하나로 합치면 한 마리의 수룡이 가진 힘은 그 배가된다." 유에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그가 해 보인 것처럼 하늘위로 두 마리의 수 룡을 불러냈다. 그녀의 힘으로서는 두 마리를 불러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 녀는 진중하게 훼이가 보여준 일련의 과정을 반복했다. " 좋아. 소질은 있군."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훼이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앞에 공간이 열렸다. 용왕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공간을 여는 주문을 그 는 주문을 외치치도 않고 본연의 마력만으로 연 것이었다. 유에린은 놀라움을 속으로 감추며 또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그에게 힘의 사용에 관해 배우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언제나 하루에 한가지 이상의 주문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마력을 어떻게 끌어내는 것이 가장 체력의 소모를 줄여주는 가에 대해 가르쳐 주었었다. 그리고 훼이는 그 렇게 하나씩을 가르쳐주고 나면 반드시 공간을 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궁금했지만 유에린은 묻지 않았다. [ 개문(開門) 수(水)! ] 유에린은 힘있게 주문을 외치며 또 다시 수룡을 불러냈다. * * * " 형님. 언제 오셨습니까." 막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젊은 남자가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집무실 안에 놓인 휴식용 의자 위에 앉아있던 훼이는 지금까지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미소를 희미하게나마 떠올리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파 오를 걸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걸친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파오는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길이 였고 별다른 무늬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 후계자를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이나 보려고 왔다." " 형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면 저야 더 바랄게 없죠." 그렇게 말하며 젊은 남자는 싱긋 웃었다. " 요즘은 뭘 하면서 지내세요? 통 소식이 없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요. 이렇 게 가끔씩만 궁에 들르지 마시고 며칠에 한번은 와주세요." 그 말에 훼이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 잊혀진 자가 오는 것도 그 자체로 폐가 되는 일이다." "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500년 이라는 시간은 용족에게 있어서도 긴 시간이지....." 잠시였지만 훼이의 얼굴에 쓸쓸함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느낀 것은 그의 착각 이었을까. " 형님...." 훼이는 일어서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 그건 그렇고 라이엔. 네 후계자는 안 보여줄거야?" " 네. 형님. 별궁에 있어요." 훼이는 먼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라이엔은 추억에 젖어 들었다. 이제 훼이에게 있어 서 피를 나눈 형제는 자신 밖에 남지 않았다. 훼이와 나이차가 얼마 나지않는 형제들은 벌써 오래전에 그 명을 다해 세상을 떠났고 막내인 자신만이 이렇 게 남아있는 것이다. 혼자 남는다는 건 분명 외로운 일이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형을 궁으로 되돌아오게 하겠노라 고 결심하며 라이엔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형의 뒤를 따랐다. " 인사드려라. 네 백부님이시다." 라이엔을 닮은 갸름한 얼굴의 소년은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훼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 안녕하세요. 백부님. 유안입니다." 아직 성인식도 지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지만 유안의 목소리에는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이 배어 있었다. " 이 아이의 눈은......." 훼이가 묻자 라이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잊으셨어요. 형님. 제 비(妃)가 기린족이라는 것을요?" " 아.....그랬었지..." 기억을 떠올린 듯 훼이는 다시 유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충분히 강해지겠구나." " 백부님. 제 스승이 되어 주세요." 유안은 미리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거침없이 말했다. " 내가 아니라도 흑룡족에는 인재가 많다." " 형님. 이번에는 거절하시 말아 주세요. 저때도 그랬었잖아요." 라이엔 역시 부탁했다. 하지만 훼이는 고개를 저었다. " 내겐 그곳이 어울려. 더 이상 흑룡궁은 내가 설 곳이 아니다." 훼이의 말을 들으며 라이엔은 씁쓸하게 웃었다. "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 백부님...."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을 보며 훼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네 스승은 되어 줄 수 없지만 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고 도 와주마. 하지만 그건 단 한번 뿐이다." 그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유안은 활짝 미소지었다. " 고맙습니다. 백부님." 활짝 피어오른 유안의 미소를 보면서 훼이는 속으로 후회했다. 더 이상 일족 들과 관계하지 않으려 했건만 핏줄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막내동생인 라이엔과 라이엔을 꼭 닮은 유안. 두 부자(父子)의 모습을 눈 앞에 대하자 결심이 흐트러졌다. "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성인식때 다시 오마." 훼이는 그렇게 말해놓고 바로 공간을 열었다. 허공이 길다랗게 휘어지며 훼이 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의 입구가 열렸다. 훼이는 공간안에 한쪽발을 들여 놓으며 라이엔과 유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훼이의 몸이 공간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공간이 닫혔다. 공간의 입 구가 사라진 자리에는 공간이 열렸다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채 훼이의 모습만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 우.....이름짓느라 머리아파 죽겠다.... 아..그리고 파오라는 옷은요 게임중에 템페스트 있잖아요. 그 게임에서 에밀리오가 입고 있는 옷의 명칭입니다. 일본식 발음이죠. 번 호 : 461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2일 00:0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6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장 三. 흑룡의 숲 제 1장 환(環) 三. 은빛의 실과 같은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책상에 앉아 문서 꾸러미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26대 백룡왕인 파이론이었다. 용족들은 일신에 지닌 마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몸 역시 마력의 속성에 맞추 어 변화한다. 그 때문에 파이론은 백미에 백발을 하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단정한 생김새 였지만 그의 나이는 652세로 용족으로서는 중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천지자연의 질서중 바람을 다스리는 백룡족의 왕으로서 그는 변함없이 각지 에 퍼져나가 있는 백룡족들로부터 보고된 사항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하계에 내려가 있는 백룡족들은 하계의 자연의 질서를 감시하며 또 그것들이 계절에 맞게 찾아오고 가는 가를 살핀다. 또한 백룡족은 천계의 서쪽을 지키는 맹장 중 하나로서 바람과 뇌전의 힘을 사용하는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종족이었다. 대부분의 용왕들이 하는 일은 자신들의 관할 영지에서 보고된 여러 가지 일 들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리는 일과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계절의 전환 에 관한일. 그리고 천계의 방비에 관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문서의 형 태로 정리되어 왕들에게 전해지는데 그것을 읽고 확인하는데만 대부분의 시 간을 소비할 정도로 그 양이 많았다. 파이론역시 용족들의 복장인 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그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파오보다는 활동적인 중간길이의 파오를 즐겨입었다. 그것은 그가 천 계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천성이 자유분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옳았다. 벌써 세시진 이상을 문서 더미에 파묻혀 있던 파이론은 손에들고 있던 인장 을 내려놓고 딱딱하게 굳어진 허리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막 이리저리 로 몸을 돌리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간소한 흰 궁장차림의 여인이 들어섰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틀어올려 몇 개의 비녀만으로 장식하고 있는 소박한 차림이었지만 그녀의 몸에 서린 기품은 그녀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인의 손에는 술잔 두 개와 도자기로 된 술병이 담긴 소반이 들려 있었다. " 제가 제때 오긴 했나봐요." 그녀는 막 자리에서 일어선 파이론에게 시선을 던지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막 쉬려던 참이었지." 파이론 역시 그녀의 미소에 답하듯 미소를 떠올렸다. 막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여인은 챠렌이라는 이름의 백룡왕 보좌관이자 백룡 왕비라는 두 개의 신분을 가진 여인이었다. 300여년 전 파이론이 26대 황룡왕 의 위(位)에 올랐을 때 그녀는 원로들의 추천으로 보좌관이 되었다. 명망있는 백룡족의 귀족 자제인 그녀는 학문을 비롯해 언변과 훌륭한 싸움실력까지 모 든 것을 갖춘 여인이었다. 그리고 항상 파이론의 곁에서 일을 돕는 사이에 둘 은 사랑에 빠졌고 20년 후 그녀는 백룡왕비가 되었다. 그녀가 비라는 지위에 오르자 이제 보좌관의 자리에서 물러나는게 어떻겠냐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 구하고 그녀는 계속 보좌관의 자리에 있기를 원했다. 난초와도 같은 청초하고 갸냘픈 외모와 달리 전투에 임할때의 그녀는 웬만한 장수들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강인한 힘을 내곤 했다. 보좌관은 비상시에 왕을 대행해야 하는 자리 인 만큼 모든면에서 뛰어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많은 능력을 요구했는데 그녀는 여인으로서는 드물게도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 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이름은 백룡족뿐만 아니라 천계 전체에서도 유명했 다. 그같은 그녀의 모습을 동경해 다른 용족의 여인들도 그녀처럼 되기를 원 할 정도로 챠렌은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누리고 있었다. 챠렌은 집무실 중앙에 놓인 갈색의 고풍스러운 나무 탁자 위에 술병과 잔을 내려 놓고 의자에 앉았다. 물끄러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파이론 역시 그 녀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 흑룡왕님이 후계자를 선출했다고 식(式)에 와달라더군요. 들으셨나요?"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챠렌이 묻자 파이론은 고개를 끄 덕였다. " 집무실로 서신이 왔더군." " 그러보 보니 흑룡왕비는 기린족의 황녀 였지요. 그녀를 닮아 후계자가 될 아이도 눈이 푸른색이라고 하던데....." " 맞아. 유안이라는 이름이었지..." 차렌은 술병을 집어들어 파이론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술병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액체와 엷게 퍼져나가는 천화주(泉花酒)의 향기. 천계에서만 피어나는 다섯가지의 꽃잎으로 담근 천화주는 그리 독하지도 않을뿐더러 피로를 푸는 데 효험이 있어 많은이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었다. 파이론은 향기로운 술이 담긴 잔을 들고 한입에 술을 털어넣었다. " 기린족이 용족과 혼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영수족들은 자존심이 강 하니까 말이야." 챠렌역시 술잔을 집어들며 말을 받았다. " 하지만 용족중에서도 흑룡족은 영수족들 조차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잖아요. 이렇게 제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흑룡족은 강하니 까요." 입안에 화하게 퍼져나가는 천화주의 맛은 독특했다. 달콤한 듯 하면서도 어딘 지 모르게 쏘는 듯한 느낌. 파이론은 다시 한번 천화주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잔을 비웠다. " 흑룡궁에 들린 후 오랜만에 수행이라도 갈까? 하계로 말이야." " 업무는 어찌하시려구요. 왕과 보좌관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면 일이 밀릴 게 뻔하잖아요." 챠렌이 가볍게 질책하자 파이론은 걱정말라는 듯이 웃어보였다. " 당신은 보좌관이기 이전에 내 비야. 일은 장로들에게 맡기면 되겠지. 이 런일도 한두번은 아니었으니까 그들도 충분히 이해할테고 말이야." 그리고 나서 파이론은 챠렌의 가느다란 손을 잡으며 덧붙였다. " 이제 우리도 후계자를 가져야 할 때도 됐고 말이야." 페이론의 말을 듣는 순간 챠렌의 얼굴에는 새초롬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 다. * * * " 저.........훼이..." 유에린은 굵은 나무 기둥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훼이를 불렀다. 하지만 훼이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가 떠오른지 한시진 정도 지난 아침. 그다지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흑룡 의 숲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울창한 나무들에 가리워져 얼마 되지 않았다. " 훼이......" 유에린이 다시한번 훼이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훼이는 눈을 떴다. 깊은 어둠. 매일같이 보는 그의 눈이었지만 훼이의 검은 눈은 볼때마다 새롭 게 다가왔다. 새하얗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유일하게 감정의 빛을 지니고 있는 검은 눈. 과연 그는 저 두눈에 무엇을 담고 앞을 바라보는 것일까. 잠시 훼이의 두 눈을 보며 생각을 떠올리던 유에린은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 때문에 두달 동안이나 이 흑룡의 숲에 머물지 않았던가. 그를 찾고 나서도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유에린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천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훼이. 그의 도움을 얻고 자 이곳에 오는 이는 많았지만 실제로 그를 만났다거나 도움을 받았다는 자 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유에린은 훼이를 찾아냈고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이었다. " 주무시고 계셨나요?" 별 생각없이 내뱉은 질문에 훼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 나도 너와 같은 용족이다." 유에린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었는지 훼이는 그렇게 말했다. " 아...아니에요. 그냥 조금 신기해보여서...." 유에린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 오늘은 방어 주문을 가르쳐주지. 때로는 공격주문 보다 방어주문을 사용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공격이 될 때도 있다." 훼이는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떠오르지 않은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 훼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유에린은 자신의 표정에 다른 무엇이 끼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누가 이름 좀 지어줘요..... T.T 번 호 : 478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2일 22: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4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2장 一. 흑룡의 숲 제 2장 침전(沈澱) 그저 기억해 주는 것만이라도 좋아요. 제가 바라는 건 이것뿐이에요. 약속해 주실 수 있죠......? 그저 당신이 가진 기억의 한 부분에라도 자리잡을 수 있다면 죽어서도 행복할 수 있어요. 미소를 보여주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니까 하나만은 약속해 주세요. 당신이 살아갈 무수한 시간 속에 제가 존재했었다는 걸 그저...... 기억해 주세요. 一. 화연은 오늘따라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아스라 한 어둠에 잠긴 방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도 그렇다고 확연히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지도 않았다. 그렇게 희미한 이른 새벽의 방 안에서 화연은 기이할 정도로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일이지? 화연은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이불을 걷어올리고 일어나 앉았다. 그렇게 앉아있기를 수십여 분. 어느새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하얀 문풍지 사 이로 엷은 아침 햇살이 비쳐들어왔다. 아스라하게 잠겨 있던 어둠을 몰아내며 그렇게 햇살은 아침을 부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화연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기이한 울림도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화연은 검은 옻칠이 된 네모진 손거울을 꺼내들고 머리를 정돈했다. 어머니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인 그것은 어머니도 할머님께 받았다 고 하는 오래된 물건이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다시 자신에 게로 전해진 그 물건에는 손때가 묻어있어 검은빛이 바래 있었다. 낡긴 했지만 거울에는 꽤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노련한 장인의 솜씨인 듯 거울 뒷면에 새겨진 매화 문양은 무척이나 정교했다. 거울의 면 역시 화연이 매일같이 정성들여 닦았기에 먼지한점 묻지않은 투명함을 보여 주었다. 작은 손거울에 비친 화연의 얼굴은 작고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하게 자리잡은 오관은 그녀의 성품을 말해주듯 곧아 보였다. 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어내리며 화연은 손에 익은 거울에서 어머니의 온기가 느껴지 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 화연아. 어서 나가자." 밖에서 오라버니가 화연을 부르고 있었다. " 네. 지금 나가요." 밝게 대답하며 화연은 방문을 열었다. 작은 마당에서 나무 넝쿨로 엮은 바구 니를 등에매고 있는 오라버니 비영의 듬직한 얼굴이 보였다. 예전에는 항상 글을 벗삼던 오라버니의 유약했던 얼굴이 언제 이렇게 듬직하 게 변했는지 화연은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저 5년의 세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벌써 10년도 더된 일처럼 느껴졌다. 아버 님이 돌아가신 것도 남매 둘만의 생활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제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은 더 이상 비 단이 아닌 싼 포목이었지만 그것조차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집안이 몰락하지만 않았더라도 오라버니는 약혼녀와 혼인해서 벌써 한 일가 를 이루었을 나이였지만 비영은 집안이 기울어짐과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잃 고 나서도 아무런 불만없이 동생인 화연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화연은 그런 비영이 너무나 고마웠다. " 오늘은 구절초를 따도록 하자. 마침 오늘은 날도 맑고 하니 찾기가 어렵 지는 않을거다." " 네. 오라버니." 막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선 화연은 또 다시 밝게 웃어보이며 앞서가는 비영의 뒤를 따랐다. * * * " 오늘은 운이 좋군요." 벌써 반 이상이나 보라색의 꽃잎을 가진 구절초로 채워진 바구니를 보며 화 연은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바구니가 다 찰 정도로 구절초를 모으기만 하면 보름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벌 수가 있다. " 잠시 쉴까?" 비영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마에 흐른 땀 을 손으로 훔쳐내던 화연은 문득 시원한 물 생각이 간절해 졌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계곡이 있었다. " 오라버니. 저 잠시 계곡물에 손좀 담그고 올께요." " 그래라. 예상보다 시간이 덜 걸렸으니 한참 쉬다와도 괜찮겠다." 투박한 미소를 떠올린 비영을 뒤로하고 화연은 부지런히 계곡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넓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을 지나쳐 한참을 걷자 귓가에 맑은 물소리 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연의 눈에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꽤 넓직한 계곡이 들어 왔다. 화연은 커다란 돌을 넘어가며 계곡의 가장자리에 발을 딛었다. 작은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시원했다. 물속에 손을 담그 자 땀이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화연 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매끈한 종아리를 드러낸 채 물 속으로 몇걸 음 걸어들어 갔다. 발바닥에 닿는 돌의 감촉을 느끼며 화연은 물 속을 거닐었 다. 이순간 만큼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방안에 갇혀 살아야 할 규수가 아니 라는 것에 감사하며 화연은 마음껏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때였다. 화연은 갑자기 온몸을 엄습하는 위화감 때문에 움직임을 멈추고 주 위를 둘러보았다. 위험스러울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압도하는 듯 한 중우함 같은 것이 계곡안을 감싸고 있었다. 그때문이었을까. 분명 깊은 산 이라면 당연히 들려왔어야 할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화연은 볼 수 있었다. 계곡 전체에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거대한 천년 수의 기둥에 기대어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천인(天人) 이라도 하강한 것일까. 조용히 눈을 감은 하얀 얼굴에 드리워진 엷게 흔들리는 그림자와 숲에 동화된 듯이 보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 등을타고 흘러내린 윤기있는 검푸른색의 머리카락은 그의 흰 얼굴과 대조되 어 더욱 뚜렷하게 화연의 눈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의 파오는 귀족들이라도 만져보기 힘 들정도의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화연은 숨을 삼키며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전까지 느껴지던 위화감은 어느샌가 오늘 새벽에 느꼈던 설레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 화연아. 오늘은 왜 그리 서두르지? 산에 숨겨둔 보물이라도 있는 모양이 구나." 웃음띤 비영의 말에 그저 싱긋 웃는 웃음으로 답하며 화연은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요 며칠새 화연은 매일같이 계곡을 찾았다. 그녀가 계곡을 찾는 이유는 단 하 나. 언제나 그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번도 그가 깨어난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의 생활에 나타난 비영이외의 남자는 화연에게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세에 머물 것 같지 않아보이는 그의 전신에 떠도는 신 비함이. 그리고 자연과 동화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이 그녀의 발길 을 부르고 있었다. 꽤 험한 산길이었지만 화연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반시진 정 도를 걸어서 계곡에 도착한 화연은 깊게 숨을 내쉬며 천년수의 기둥으로 고 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 남자의 모습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언제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지.... 화연은 자신을 질책하며 바닥에 주저 않았다. 조금전 까지만 해도 힘든줄 모 르고 올랐던 산길이었지만 지금은 일어설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여전히 계곡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가고 있다. " 구절초에는 약재 이외의 다른 효능도 있습니다. 구절초의 잎은 귀한 약재 로 쓰이지만 꽃잎에는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낮게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화연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깊이 가라앉은 편안한 어둠이 담긴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늘 감겨있던 그 눈에는 어떤 빛이 담겨있을까 궁금해 했었지만 직접 마주대 한 그의 눈에는 말을 잊게 만드는 중우함이 있었다. "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갓 따온 구절초의 꽃잎을 뜨거운 물에 띄워 마 시면 그날 밤에는 반드시 그리운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하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떠올렸다. 분명 아주 작은 미소 에 불과했지만 그의 미소는 잔잔하게 얼굴전체에 퍼져나갔다. " 전.... 과거를 그리워 하지는 않아요." 화연은 겨우 입을 떼어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아무말 없이 화연의 옆에 앉았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그의 머리카락에 서는 옅은 백화향이 풍겨왔다. " 전 1년에 보름정도 이곳에서 머물죠. 이 근처에 살고 있나요?" 화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저..........이름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화연은 겨우 그의 이름을 물을 수 있었다. " 훼이...그게 제 이름이죠." 화연은 귓가에 울려퍼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훼이라는 이름이 작게 물결치듯 울려퍼지고 있었다. ========================================================================== 쥐도새도 모르게 1장이 끝나고 2장이 시작되었네요....^^ 흑룡의 숲은 에피소드 형식입니다. 그래서 내용은 시공을 넘나들며(?) 진행되죠. 시간의 순서와 전개도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런 동양물은 맘에 들지 않으시나요? 그치만 전 이런식의 동양물을 상당히 좋아 해서요. ^^ (뒤에가면 전투장면들도 많이 나오지만 지금은 안나와요..) 그치만 읽어주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기분이 좋네요. 단 한분이라도 좋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러면 읽어 주셔서 감사... 번 호 : 486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3일 22:16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3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2장 二. 흑룡의 숲 제 2장 침전(沈澱) 二. " 이제.... 돌아가시나요?" 화연의 음성에는 옅은 망설임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말이 되어 그에게 전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저 처연한 미소만을 떠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훼이는 그녀의 손가락에 청옥(靑玉)으로 된 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공간을 열었다. 훼이의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사라지고 나서야 화연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낼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았 기에 화연은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의 모습을 눈에 새기 듯 눈을 감았다. 말....... 안하는 편이 더 나은 일이겠죠? 당신은...... 내게 다가온 당신은 하늘에 계실 귀한 분이시니까요. 말은 안했지만 느끼고 있어요. 이제 당신이 내게 돌아올 날은 아주 먼 어느날 이라는 것을요. 전 그냥 이곳에서 살아가야 겠지요. 당신이 제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과 함께. 아이에겐 당신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요. 그 이름을 부를때마다 당신을 떠올 릴 수 있게. 비(飛)...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화연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에서는 그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 * * 하계는 많이 변해있었다. 화연이 살고 있던 인적이 드문 산 속에도 마을이 들어서 밥 짓는 연기를 하 늘로 피어 올리고 있었다. 예전의 그곳은 사냥이나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 들만이 들어오곤 했었는데 인간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변화 시켰다. 이제 또 세월이 흐르면 훼이가 즐겨 찾던 그 산도 인간의 마을을 품고 있는 작은 뒷 산정도로 여겨질 지 몰랐다. 1년만 이었다. 훼이는 이렇게 오랫동안 화연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차기 흑룡왕 후계자를 택할 때 까지는 어느 누구도 영지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렸다. 흑룡일족에게 있어 흑룡왕의 말은 곧 법. 그리고 그것은 훼이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천계에서의 1년은 하계에서의 10년. 용족에게 있어서는 극히 일순의 짧은 시 간에 불과했지만 인간들에게 있어 10년이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화연의 집에서도 저녁을 준비하는 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훼이는 오늘만큼은 공간을 열고 그녀의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 처음 그 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작고 아담한 화연의 집은 그동안 몇번의 보수를 한 듯 손이간 흔적이 엿보였 다. 곧게 세워진 나무 울타리 사이에는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자라나 있었고 황토로 덮인 작은 안마당에는 말리기 위해 늘어놓은 약초들이 놓여 있었다. 그 세월속에서도 그 정경만은 변함이 없었다. 누런 초가 지붕으로 덮힌 소박한 집은 훼이의 방 보다도 작았다. 훼이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화연의 방문 앞에 섰다. 별다른 가구하나 없던 그 녀의 방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 였지만 훼이에게는 그런 것들 조차 그녀의 일부로 그립게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는 누렇게 빛이 바랜 문풍지로 덮힌 방문을 열었 다. 분명 화연은 그 작디작은 얼굴을 환한 미소로 채우며 자신을 맞이할 것이 다. 하지만 방안 어디에도 화연은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방안에 화연의 체취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을 때 훼이는 방 한구석에 비스듬한 자세로 누워서 자고있는 어린 소년을 발견했다. 이유모를 전율이 온몸을 감싸며 피어 올랐다. 검은천을 길게 잘라 대충 동여맨 머리카락에서, 오목조목하고 작은 옆얼굴에 서 화연의 모습이 엿보였다. 그리고.....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는 바로 훼이. 자신의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훼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망연하게 소년을 응 시할 뿐. " 비야. 밥먹어라." 문을 열고 들어선 비영은 방안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를 보고 흠칫하며 놀랐 다. 아니, 그것보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이름모를 위압감에 자신도 모 르게 몸을 떨었다. 훼이의 눈이 천천히 비영에게로 향했다. 그는 비영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화연. 그녀의 하나뿐인 오라비가 아니던가. 화연은 언제나 자신 때문에 깊은 산속에서 촌부로 파묻혀 지내야하는 오라버니에게 미안함을 품고 있었다. 자 신이라는 짐이 없었다면 집안은 몰락했어도 분명 학자로 대성했을 거라며. 화연에게 이야기를 듣고 훼이는 먼 곳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때의 그에게는 확실히 기품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풍겨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세 월이라는 무게에 짓눌린 투박한 촌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한동안 훼이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몸을 떨던 비영은 천천히 몸을 굽혀 훼이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서 예의바르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비 영은 그순간만큼은 예전의 귀공자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이 느껴질만큼 기품 이 있었다. " 비의...... 아버지시군요. 범상치 않은 분일거라 생각했지만 이토록 고귀하 신 분인줄은 몰랐습니다." 훼이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 화연은 이제 없는 것이군요." " 네. 비를 낳고 바로 눈을 감았습니다. 편지 한 장과 손가락에 끼고 있던 청옥 반지를 남기고 말입니다." 훼이는 비영이 건네주는 화연의 유품을 받아들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끼워 주었던 반지는 다시 훼이의 손으로 돌아왔다. 곱게 접힌 빛바랜 화선지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흐 트러진 글자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고 바르게... 한동안 편지를 읽는 훼이를 조용히 바라보던 비영이 결심한 듯이 말을 꺼냈 다. " 비를 데려가 주십시오. 비는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훼이는 화연이 남긴 말들을 가슴속에 새기며 다시 편지를 접었다. 정성을 담 아 곱게 편지를 써 내려가고 접었을 그녀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는 흑룡의 피를 이어받은 제 아이니까요." 훼이의 말이 떨어지자 비영은 크게 놀란 듯 숨을 삼켰다. 그리고 다음날. 훼이는 비와 함께 천계의 흑룡궁으로 돌아왔다. * * * " 저... 훼이......." 귓가에 울리는 유에린의 딱딱하지만 맑은 목소리. 훼이는 일부러 눈을 뜨지 않았다. 아직 그녀를 떠올리는 시간 속에 머물고 싶었기에. 비를 데리고 흑룡궁에 들어서자 일족들 사이에서 대 소란이 일어났다. 다음 흑룡왕이 될 자가 아직 정비(正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인간의 여인에 게서 아이를 낳다니. 노성을 터트리는 흑룡왕 앞에서 훼이는 스스로 후계자의 위(位)를 버렸다. 그리고 맑은 검은 눈으로 훼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비는 어렸지만 그 소란 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피가 섞인 흑룡의 아이를 일족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용족 중 에서도 최강의 힘을 가졌다는 흑룡으로서의 자부심이 그것을 부추겼다. 훼이는 비에게 살벌한 일족들의 시선을 받게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훼이가 지금까지 일족들에게 가장 큰 신뢰를 얻고 있던 장남이었기에 더욱 여파가 큰 것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흑룡궁의 본궁에서 멀리 떨어진 별궁에 기거하며 훼이는 비와 둘 만의 생활을 시작했다. " 훼이..........." 또 다시 유에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더 이상은 자는 척 할 수도 없다. 훼이는 머릿속에서 흘러넘치는 과거의 잔상들을 지우며 눈을 떴다. 숲은 여전히 눈부시도록 푸르렀다. ==================================================================== ^0^ 와.... 추천 받았어요.... 기쁘다... 좋아해주시는 분이 계시니 더욱 힘을 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번 호 : 492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4일 23:4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3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一.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꿈에서 깨어나면 꿈꾸던 모든 것은 거품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남은 그때의 기억은 때로 자신도 모를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一. 흑룡왕비 미하의 앞에 선 유안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푸른 눈으로 어머니를 응시했다. "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전 최강의 흑룡이라구요." " 자만은 금물이다. 유안. 넌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어." 처음으로 수행을 위해 하계로 떠나는 아들을 앞에둔 미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별다른 위험 없는 하계로 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아이에 불과한 유안이 잘 해낼지 걱정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후계자의 위(位)를 받은 후에는 반드시 수행을 떠나야 했다. 라이엔과 미하는 나이에 비해 아이를 늦게 가졌기 때문에 유안은 성인식도 하기전에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라이엔이 후계자가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의 나 이는 200세를 넘긴 후였다. 하지만 유안은 100살이 되는 생일날 치르게 되는 성인식도 몇십년 후인 소년에 불과했다. " 그리고. 어머니 혼자 가는것도 아니잖아요. 청룡왕 후계자인 리린과 함께 라는 것. 잊으셨어요?" " 그녀의 나이는 확실히 250세 였지..." 유안의 말을 들으며 미하는 리린이라는 이름의 서늘한 눈을 가진 청룡족 후 계자를 떠올렸다. "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 되는구나." 미하는 여려 보이는 얼굴 가득 떠올랐던 걱정을 걷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 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몸에 걸친 황금색의 궁장이 사락 거리는 소리를 내 며 흔들렸다. 틀어올린 머리에서 몇가닥 흘러내린 금색의 머리카락이 미하의 어깨에 닿아있었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유안은 문득 검은색인 자신 의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미하는 금박이 입혀진 보석 상자를 꺼내들고 뚜껑을 열었다. " 자, 유안. 이걸 가져가거라." 그렇게 말하며 미하가 내민 것은 보기드문 빙옥(氷玉)으로 만들어진 팔찌였 다. " 이건 왜..." " 기린족의 황녀에게 전해지는 물건이다. 그걸 지니고 있으면 네가 가진 힘 을 이끌어내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유안은 기쁜 듯이 미소지었다. " 고마워요. 어머니. 소중히 간직할께요." " 아직 네가 성인식을 치루지 않았기에 주는 것이다. 네가 성인식을 치루고 보다 강한 힘을 얻게 되면 필요 없어질 테니 그때 다시 돌려주렴." " 네." 한동안 어머니 미하의 거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에 어느덧 점심 시간이 가까워졌다. " 비전하. 왕자전하. 식사시간 이옵니다." 문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나갈까. 유안?" 미하는 아직은 자신보다 작은 유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방을 나섰 다. 푸른눈을 가진 두 모자가 복도를 지나치자 주위의 시비와 병사들이 일제 히 인사를 했다. " 수고들 하게." 그들 한명 한명을 만날때마다 미하는 미소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정숙하고 아름다운 흑룡왕비 미하는 그 친절한 태도에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 는 존재였다. 아무리 큰 일이 일어나도 소리치거나 노하는 법이 없고, 모든이 에게 친절하게 전해지는 그녀의 미소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라는 백룡왕비 챠렌과 더불어 현숙한 여성의 대표로 꼽혔다. " 그저 보름이에요. 보름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이라구요." 되새기듯 말하는 유안을 보며 미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래. 유안.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모자는 비밀을 획책하는 자들이 은밀한 미소를 지어보이듯 마주보며 살짝 웃 었다. * * *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최상급 방어주문 - ] 날카롭게 외쳐진 유에린의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유에린은 엷은 푸른색의 막 에 감싸였다. [ 개문(開門) 수(水) - 물을 근본으로 하는 중급 공격주문 -] 훼이의 목소리가 낮은 소리로 공격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곧 하늘에 떠오른 다섯 마리의 수룡은 빠른 속도로 유에린을 향해 날 아갔다.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오는 수룡들을 바라보며 유에린은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엷은 막을 내려치는 수룡의 힘은 거대한 것이었다. 최상급 방어주문이었음에 도 불구하고 유에린은 엷은 막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에 중심을 잃을뻔했다. 힘이 빠져나갈 듯이 휘청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유에린은 몸을 지탱했다. " 다음 공격에 대비해라." 훼이의 말을 들은 유에린은 긴장하며 훼이의 손을 주시했다. 하지만 훼이의 손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정신을 집중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이 유에 린에게 짓쳐들었다. 유에린은 숨을 삼키며 거대한 수룡을 마주보았다. 수룡은 엷은 막에 닿자 파 앗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로 갈라졌다. [ 해제(解制) 수(水) - 공격을 비롯한 모든 주문을 해제한다 - ] " 손동작은 그저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력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다. 잊었나?" 유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몸에는 후끈한 열기가 배어 조금씩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땀이 흐 른다는 것은 체력이 약하다는 증거. 자신이 능란하게 주문을 구사하는 날은 그저 먼 미래의 일로만 느껴졌다. " 넌 집중력은 강하지만 체력이 부족하다. 느끼고 있겠지?" " 네." 훼이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공간을 열더니 그 속에 손을 집어 넣고 무언가를 꺼냈다.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가느다란 검신을 자랑하는 두 개의 장검이었다. " 오늘부터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검술을 가르쳐주겠다." " 검술을.....말인가요?" " 용족에게 검술이 필요한 일 따위는 없지만 배워서 나쁠건 없다." 훼이는 낮게 내뱉으며 유에린에게 검을 내밀었다. " 검술의 기본은 호흡이다. 그리고 이 호흡은 주문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주지.." 햇살에 비친 가느다란 검의 손잡이에는 날개를 펼친 학의 모습이 새겨져 있 었다. 그리고 손잡이 끝 부분에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성휘(星煇). 누군가의 이름임이 분명했다. 성휘라면 남자의 이름이겠지. 잠시 검의 손잡이 에 새겨진 그림과 글자를 보며 생각에 빠져든 유에린은 귓가에 들려오는 훼 이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 훼이가 취한 자세를 그 대로 따라하며 손잡이에 두었던 시선을 떼었다. " 검은 검이 가진 본연의 속성인 날카로움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힘이 센 사람들은 주로 검신이 두텁고 무거운 검을 사용하지만 힘보다 기술적인 검술 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검신이 얇은 검을 주로 사용하지. 그리고 여자들 역시 이 검과 같은 세검(細檢)을 쓴다."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나가는 훼이의 가슴 속에서는 자신에게 이 검을 맡겼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서 공간 속에 이 한쌍의 검을 넣어두었던 것인데 이런식으로 빛을 보게 될줄 은 몰랐다. 유에린이라는 이름의 까마득하게 어린 저 청룡족의 소녀는 훼이에 게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둘 이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유에린의 얼굴에 그리운 친구의 얼굴이 겹쳐 보 이고 있었다.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지만 보는 이에게 처연함을 안겨주었던 친구의 얼굴이. ======================================================================= 아아.... 이름 짓느라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아요. 이제 대충 이 소설의 구성 방식이 어떤 것인지 눈치를 채셨겠죠? ^^ 네. 바로 시간이 뒤섞여서 전개가 되고 있는데요. 머리 복잡하지는 않으시죠? 시험인데도 꿋꿋하게 소설 쓰는 나...^^ 번 호 : 494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5일 22:4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1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二.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二. " 어서 오십시오.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이여..." 막 천제의 거처인 상천궁(上天宮)에 들어선 다섯 명의 남녀는 자신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천군(千軍)들의 사이를 지나 대전으로 들어섰다. 길게 이어진 대전의 양쪽에도 화선들을 비롯한 귀족들이 길게 늘어서 그들을 맞이했다. 천제가 앉아있는 상석에 자리한 태사의 양옆에는 천상계(天上界) 최고의 두뇌라 일컬어지는 천선들 중 두명이 화려한 궁장 차림으로 서 있었 고, 그 아래로는 한사람한사람의 힘이 영수족과 맞먹을 정도로 강하다는 검선 (劍仙) 몇 명이 소박한 흰 궁장 차림으로 늘어서 있었다. 막 중년에 접어든 듯한 외모의 천제는 목례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다섯 명의 용족들을 바라보며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대들이 4계절의 용인 5대 용왕의 새 후계자가 된 것을 진심으로 경하하 오." " 감사합니다. 상제전하." 다섯 용족은 일제히 그렇게 답했다. " 저는 25대 백룡왕 후계자 론입니다." " 저는 27대 청룡왕 후계자 세류입니다." " 저는 28대 홍룡왕 후계자 화란입니다." " 저는 24대 황룡왕 후계자 서린입니다." " 저는 22대 흑룡왕 후계자 훼이입니다." 용족들의 전통 복식인 파오를 갖춰 입은 5명의 용왕 후계자들은 천제에게 각 자 자신을 소개했다. 5명중 유일한 여성인 홍룡왕 후계자 화란은 아직 후계자 신분임에도 불구하 고 머리카락의 색이 진한 붉은 빛을 띄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 그녀의 힘이 얼 마나 강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더불어 그녀는 화사하게 피 어난 꽃과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 내 그대들에게 다음 천제가 될 태자 오현을 소개하지." 천제의 말이 떨어지자 대전의 입구에서 지적이고 싸늘한 용모의 남자가 들어 섰다. 크고 마른 듯이 보이는 체격에 상대방을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눈이 인 상적인 미남이었다.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냉기 때문에 호감을 주지는 못했지 만 성격이 무척이나 꼼꼼할 듯이 보였다. " 태자 오현입니다. 제현..." 무척이나 깍듯한 태도 였지만 멀직이 서서 그를 바라보던 훼이는 그에게서 뜻모를 거부감을 느꼈다. 자신들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는 분명 천인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이 아닌 것이 꿈틀대는 것 같았다. 5대 용왕의 후계자들과 다음 천제가 될 태자 오현은 상견례를 나누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그들이니 만큼 서로가 서로를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소위 인간들이 하늘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모두 4개의 계(界)로 나뉜다. 먼저 용족들이 살고 있는 천계(天界)와 영수족들이 살고 있는 환계(幻界), 사후의 선한 영들이 환생을 기다리는 영계(靈界),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수명 을 관리하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천상계. 즉,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영지의 4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하계(下界)라 부르며 사후에 윤회를 명받지 못 한 영혼들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명계(冥界).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를 지탱하는 5대 원소의 힘을 가진 용족들은 하계를 비롯하 여 4계 전체의 5대 원소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봄의 용이라 불리는 청룡은 목(木)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동쪽을 수호한다. 여름의 용이라 불리는 홍룡은 화(火)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남쪽을 수호한다. 조화의 용이라 불리는 황룡은 토(土)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중앙을 수호한다. 가을의 용이라 불리는 백룡은 금(金)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서쪽을 수호한다. 겨울의 용이라 불리는 흑룡은 수(水)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북쪽을 수호한다. 이처럼 세상의 균형이라는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만큼 천제로서도 용 족들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용족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우 위에 서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상제였지만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용족 을 비롯한 영수족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다. 지위는 천제가 가장 높지만 그들은 주군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가진 천제라는 지위를 다른 이들이 존중해 주는 것뿐이었다. 천제로서도 그들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천제는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을 천상계로 초대한 것이었다. 천제가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을 위해 베푼 연회는 밤늦도록 계속 이어졌다. 잠시 연회장에 있던 훼이는 소란스러움에 환멸을 느끼며 연회석에서 빠져나 왔다. 훼이는 소란스러운 것이 싫었다. 연회를 즐기는 다른 용왕 후계자들 사 이에서 빠져나오자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상천궁의 정원은 천계 못지 않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 움을 가진 수풀과 나무, 꽃들은 누가 일부러 심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어울리 는 장소에서 자라나고 있었고 곳곳에 자리잡은 누각과 정자 역시 풍광을 더 욱 운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훼이는 상천궁의 정원을 거닐면서 이제 멀게 느껴지는 상천궁의 거대한 건물 을 응시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궁에는 곳곳 에 연등이 걸려있어 밤임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빛나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 다. 검게 펼쳐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커다랗게 떠오른 보름달은 상천궁에서 울려 퍼지는 비파소리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으로 훼이의 눈에 비 쳐왔다. 정원을 거닐며 미풍에 흔들리는 초목들을 바라보던 훼이는 문득 그리운 얼굴 을 떠올렸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건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하계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천계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미녀들에 비하면 빛을 발하지도 못할 그녀였지 만 훼이에게 있어 그녀는 아침이슬을 머금은 풀잎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흑룡왕의 후계자가 된 지금. 머지않아 그에겐 비를 맞아들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여인도 화연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에게 다가오는 여인은 많았지만 그가 먼저 다가선 여인은 오직 화연 뿐이 었다. 화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계속 걸음을 옮기던 훼이는 어느새 널찍한 연못가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속이 비칠 정 도로 투명한 연못 위에는 커다란 연꽃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멀리 상천궁에서 비쳐오는 빛을 받아 어렴풋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연꽃들. 연못 중앙에는 돌로 만들어진 다리가 걸려 있었는데 어떤 명공의 솜씨인지 난간에 새겨진 십장생의 무늬들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할만큼 정교하고 아 름다웠다. 그리고 다리의 끝이 닿는 곳에는 정자(亭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정자 역시 칠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 듯 밤임에도 불구하고 아스라한 달 빛 속에서 훼이의 시선을 잡아끌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훼이는 부드러운 미풍에 몸을 맡긴 채 다리 위를 걸었다. 끝부분에 닿자 정자 의 굵은 기둥에 기댄 채 밤 풍경 속에 녹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흰색의 장포를 걸치고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유약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 훼이는 말벗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자에게 다가섰다. 훼이가 바로 곁에 다가설 때까지도 남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자세도 바꾸지 않은 채 하염없 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 연회를 싫어하시나 보군요." 훼이가 말을 걸자 남자는 그때서야 조금 놀란 듯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 별로......" 남자의 얼굴을 본 훼이는 속으로 감탄했다. 장포를 걸치고 있는 것을 보고 남 자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가 가진 용모는 훼이 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 도로 실로 절세적인 것이었다. 갸름하고 섬세한 얼굴 선에 부드럽게 가라앉은 한 쌍의 눈과 한번 마주친 사람의 시선을 다시 돌리게 할만큼 깍은 듯이 단 정한 오관. 그리고 온몸을 감싼 기품.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는데 그 미소에는 왠지 모를 처연함 이 담겨 있었다. " 그 파오...... 용족이시군요." 남자는 얼굴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네. 22대 흑룡왕 후계자인 훼이입니다." " 그러셨군요. 23대 흑룡왕이 되실 분..... 오늘은 연회에 참석하시러 오셨군 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 그런데 왜 이곳에 계십니까. 보통 신분은 아닌 것 같은데...." 훼이의 물음에 남자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보니 훼이보다도 훨씬 어려보였다. 하지만 어려보이는 외모에 비해 그 가 가진 분위기는 무거웠다. " 전...... 옥황상제님의 아들인 성휘(星煇)입니다..." 성휘라고 이름을 밝히며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 .....화선 소생의...." " 아....." 이제 왜 성휘가 홀로 떨어져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는 실로 뛰어나게 일을 처리하는 천제 였지만 여성 편 력에 있어서는 모든 이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후문을 가진 그였다. 그의 여성 편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으로 상천궁에는 천군과 왕족, 귀족들을 제외 한 모든 이들이 여인이었다. 천제의 업무를 보좌하는 12명의 천선(天仙)들과, 그 수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전투 선녀인 검선(劍仙). 그리고 상천궁을 돌보는 화선(花仙)들이 상천궁의 대 부분을 차지하는 선녀들이었다. 귀족이나 왕족 출신인 천선이나 검선과 달리 화선들은 평민 중에서 선발된 선녀들이었기에 피를 무엇보다 중하게 생각하는 그들로서는 화선출생의 아이 를 왕족으로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성휘는 화선 소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자라는 지위를 받은 것을 보 니 그에게 왕자의 지위를 내릴 때 얼마나 말이 많았을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영수족이나 용족역시 피의 이어짐을 중하게 여겼지만 신분의 차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훼이는 더욱 천계인들의 사고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한가하시다면 말벗을 해드리고 싶은데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건넨 훼이의 말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성휘의 눈에 생 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날의 인연으로 천제의 유일한 왕자 성휘와 훼이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천상계의 천인들은 용족이나 영수족에 비해 수명이 짧았기에 성휘역시 훼이 보다 한참 어렸지만 나이는 그 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 와.... 오늘건 내용이 좀 길죠? 설정으로 가득 차 가지고...^^ 매일매일 한편씩을 쓰려니 힘들지만 그래도 쓰고 나면 보람을 느낍니다. 오늘도 흑룡의 숲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번 호 : 503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6일 22:4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0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三.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三. " 잊지마라. 유안. 비록 겉모습은 인간들과 별다를 것이 없지만 우리는 용 족이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족 특유의 기운을 인 간들은 은연중에 느끼기 마련이다." 유안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대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 그리고 인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만약 부득이한 사정이 생 겨 인간들과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들의 삶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꼭 명심하거 라." " 네. 아버지." " 자, 이제 가거라. 유안을 부탁하네. 리린." 라이엔은 차분한 표정을 떠올린 채 유안의 옆에 서있던 리린에게 당부했다. " 염려 마세요. 흑룡왕님." 짧게 대답하고 나서 리린은 공간을 여는 주문을 외쳤다. [ 역궁(繹窮) 개문(開門) ] 주문의 여파로 인해 미미하게 공기가 흔들렸다. 그리고 흑룡궁의 정원에 공간 이 열렸다. " 다녀오겠습니다." 기대감에 가득 찬 유안은 힘차게 인사를 하고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용족에게 있어서는 그저 편안한 휴식의 장소로 여겨질 정도로 위험성이 없는 하계로 가는 것뿐인데도 걱정이 앞서는 걸 보니 자신 역시 부모라는 것을 새 삼 깨달으며 라이엔은 몸을 돌렸다. 미하는 공간을 열고 유안이 떠나가는 모 습을 보기가 싫다며 먼저 궁안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라이엔은 치밀어 오른 걱정을 털어 버리려는 듯 걸음을 빨리 했다. 수행은 후계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수업(修業). 수행을 많이 하는 편이 유안 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어리다고 해서 언제까지 약하게 키울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 보좌관에게 집무실로 오라고 좀 전해주겠나?" 지나가던 시비 한 명을 불러 세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라이엔은 집무실로 향 했다. * * * 공간 안은 천계의 풍경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단지 주위를 감싼 공기만이 조 금 다르게 느껴졌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행을 떠나는 유안에게는 모든 것 이 신기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차분히 걸음을 옮기는 리린과 달리 유안은 이 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유안은 공간을 여는 주문을 사용할 수 없었다. 공간을 여는 주문은 고급에 속하는 것으로 보통의 용족들이 그 주문 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력과 주문을 필요로 했는데 주문을 외치지 않고도 공간을 열 수 있는 것은 각 용족의 왕들뿐이었다. " 저..... 리린. 하계는 어떤 곳이에요?" 호기심에 가득 찬 푸른 눈이 자신을 향하자 리린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 " 천계 못지 않게 아름다운 곳이지. 그 때문에 하계에서 살다시피 하는 용 족들도 있을 정도야. 그들이 인간들의 눈에 띄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런 것 들이 전해져서 전설이 되기도 했지." " 아......" 짧게 감탄성을 내뱉으며 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 이제 나가자." 공간 안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어느새 공간의 반대편. 즉, 하계로의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 해제(解制) 지문(止門) ] 리린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유안은 주위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눈앞에는 마치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유려한 풍 경이 펼쳐져 있었다. " 여긴 어디죠?" " 곤륜산(崑崙山)의 입구야. 인간들에게 선계(仙界)라고 불릴 정도로 하늘의 기운을 많이 품고있는 곳이지." 리린의 말대로 곤륜산은 맑은 정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운무에 휩싸인 장엄 하기까지 한 봉우리들은 천계에서도 보기 드문 절경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 우리가 머물 곳은 곤륜산 정상이야. 저곳이라면 인간들과 마주칠 염려도 없고 지내기도 아주 편하지. 유안도 마음에 들 거야." " 리린은 여기 와봤나 보군요." " 응. 이번이 세 번째니까." 청룡왕의 무남독녀인 리린은 붙임성 있는 유안을 보며 동생을 얻은 듯한 기 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다른 용왕들의 후계자 선정이 늦었기 때문에 지금 후 계자의 위(位)를 받은 것은 청룡족인 리린과 흑룡족인 유안 뿐이었다. 청룡왕 과 흑룡왕이 나이가 많은 것에 비해 다른 세 용왕들은 수백살이나 어렸기 때 문에 그들이 후계자 선정에 느긋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유안. 곤륜산의 경치도 감상할 겸 걸어서 가기로 할까. 아름다운 곳이 무 척이나 많으니까." " 좋아요. 리린." 유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리린을 재촉했다. * * * * " 훼이.....?" 자신의 방안에서 서책들을 뒤적이고 있던 성휘는 방안에 들어선 훼이를 보자 반가움에 휩싸였다. 훼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성휘와 달리 후계자의 신분을 가진 훼이였기에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휘에게 있어서 유일한 친구인 훼이는 지금까지 외로운 나날을 지내온 성휘 에게 있어 마음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성휘는 훼이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발견했다. 늘 밝았 던 훼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자 자신의 일처럼 걱정이 앞섰 다. " 무슨일 있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훼이의 앞에 다가선 성휘가 묻자 훼이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 화란이........ 그녀가....... 세상을 떠났어..." 그 말을 듣자 성휘는 둔기에 얻어맞은 듯한 굵은 통증을 느꼈다. "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군.......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천계와 하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을...... 그녀는 인간이었는데.....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훼이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훼이를 바라보며 성휘는 자신이 훼이에게 해줄 위로의 말이 없다는 것에 자책하고 있었다. " ...............아이는...?" 성휘는 겨우 그렇게 물었다. " 데려왔어. 하지만 아버님의 성화가 대단해서 여지껏 인사조차 시키지 못 했지....." 화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훼이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녀가 그토 록 좋냐는 성휘의 질문에 훼이는 짓궂은 미소를 떠올리며 사랑을 해보지 않 은 자는 말해도 알 수 없다는 대답을 했었다. 천계를 비롯한 환계나 천상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금기시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피는 그들의 피를 흐리게 한다. 피가 흐려진다는 것은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극히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과는 사랑을 하면 괴로움이 남을 뿐이 었다. 죽은 자는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남아있는 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기에. " 나...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날 거야." 성휘는 깜짝 놀랐다. " 대체...... 무슨 생각으로....." " 아버님이 그토록 노여워하시는 것도 내가 후계자이기 때문이지. 내가 아 니더라도 내겐 다른 형제들이 있어. 후계자의 자리보다...... 그녀가 소중하니 까......" 훼이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가 떠올라 있었다. " 네가 바라는 일이라면..... 난 뭐라고 하지 않겠어." " 고맙다. 성휘." " 아이의 이름은 뭐지?" 막 돌아서려는 훼이에게 성휘가 물었다. " 비(飛)...." " 멋진 이름이구나...... 다음에 꼭 한번 데려와.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린 훼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휘는 자신에게 다가 와 준 유일한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안녕하시온지요. ^^ 이제 내일이면 시험이 끝이 나옵니다.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방학이옵니다. 흑룡의 숲에서 가장 길어질 지도 모르는 3장 이옵니다. 너무 길어지면 다음 장으로 넘겨버리려고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면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제 절을 받으시옵소서.....^^ 번 호 : 517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7일 22:5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0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四.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四. 곤륜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름의 바다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 큼 멋진 것이었다. 깎아질 듯이 위태롭게 솟아오른 봉우리들을 허리에서 감싸 안으며 구름은 낮 게 떠 있었다. 구름이 낮은 곳에 머물 만큼 곤륜산은 높게 솟아올라 자신의 자 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었다. " 이야. 이런 곳이라면 정말 살고싶을 정도네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유안이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리린 역시 조금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이제 이곳에서 네 힘을 키우는 연습을 하는 거야. 유안." 올라오면서 수도 없이 본 곤륜산의 풍경임에도 유안은 눈앞에 펼쳐진 운해(雲 海) 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유안. 지금까지 몇 가지의 주문을 배웠지?" 재차 리린이 말하자 유안은 아쉬움을 담은 채 리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 음.... 중급주문까지는 거의 다 배웠어요. 상급 주문도 배우긴 했지만 아직 쓰진 못해요." " 역시 흑룡족이네. 성인식도 치루기전에 고급 주문까지 깨우치고 있다니 말이야." " 과찬이에요." 유안은 어색한 듯이 웃어 보였다. " 용족들이 수행장소로 하계를 택하는 것은 하계의 환경이 천계와 흡사하 기 때문이지. 그리고 오행에 속하는 원소들의 힘이 충만해 있기도 하고 말이 야. 물론 천계만은 못하지만." " 리린은 성인식 치른 지도 오래됐으니까 고급 주문도 잘 쓰겠네요." 리린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유안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후계자의 위를 받긴 했지만 유안은 아직 어렸다. 다른 이의 실력이 궁금한 것 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욱이 유안은 최강의 힘을 가진 흑룡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용족 후계자들이 힘을 얼마만큼 잘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 쓸 수 있긴 하지만 위력은 미약하지. 좀더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돼." " 음... 우리 그러면 아까 올라오다가 본 폭포 근처에서 수련을 하기로 해 요. 우리 둘다 물을 근본으로 하는 주문을 많이 쓰니까 그게 더 편할 것 같은 데 리린은 어때요?" " 좋아."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줄기에서 수룡이 고개를 쳐들었다. 마치 폭포 자 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처럼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투명하게 속 이 비쳐 보이는 은은한 물빛의 몸체가 머리를 따라 폭포에서 튀어나왔다. 수십 장은 되어 보이는 폭포의 길이 만큼이나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는 수룡은 유 연한 움직임으로 상공에 떠올라 있었다. 리린이 불러낸 수룡의 움직임을 말없이 지켜보던 유안 역시 작게 주문을 외 쳤다. 세차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 소리 때문에 유안이 주문을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주문의 여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폭포 위의 하늘이 어느 순간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먹구름 사이에서 가느다 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빗줄기 사이로 묵빛의 용의 형상이 모 습을 드러냈다. 묵룡(墨龍) 역시 수룡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몸체에 은은하게 묵빛이 떠올라 있었다. " 굉장한데?" 리린은 감탄하며 자신이 불러낸 수룡을 묵룡의 근처로 움직이게 했다. " 좋아요. 리린. 한번 붙어볼까요?" 그렇게 말하는 유안의 눈에는 기대감과 흥분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 * * * " 무슨 소리냐. 훼이." 흑룡왕은 노기를 품은 얼굴로 훼이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참는 기운이 역력하게 배어 있었다. " 다시 말씀드려야 합니까? 전 분명 후계자에서 물러나겠다고 말씀드렸습 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두손을 부르르 하고 떠는 흑룡왕을 대신해 흑룡왕비인 훼이의 어머니가 말했 다. 그녀의 음성에는 노기가 깃들어 있지 않았지만 당황이 묻어나 있었다. " 두분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아이를 흑룡족으로 인정하지 않으신 다 고 하셨습니다. 원로들도 마찬가지 이구요. 제겐 후계자의 위(位) 보다는 제 아이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어린아이를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두분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실 지 모르지만 그 아이는 엄연히 제 아들입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 폭발할 듯이 손을 떨며 화를 삭이고 있던 흑룡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좋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해라. 그 대신 다시는 이 궁안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 무슨소리에요. 당신." 흑룡왕비는 남편의 말에 당황한 듯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그의 얼굴엔 고집스러운 표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훼이 역시 고집스럽게 인사를 하고 대전에서 빠져나갔다. 둘은 너무나도 닮은 부자지간 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 고 집스러운 아버지와 아들. 흑룡왕비 만이 갑작스럽게 달라진 상황에 망연해 하며 아들이 서 있던 자리 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 아버지....." 훼이의 허리정도 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비(飛)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훼이 를 올려다보았다. " 왜그러지?" 조금 전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부드러운 얼굴로 훼이는 비를 바라보았다. " ......할아버님과는 만날 수 없는 건가요...?" " ............그래." 비는 실망한 듯 작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훼이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아들을 안아 올렸다. "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네가 분명 훌륭하게 자라면 할아버님께서 먼저 널 보자고 하실 테니까." 어린아이 답지 않게 차분한 눈으로 훼이를 마주보며 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 조금만 기다려라. 어른이 되는 건 금방 이니까." 그리고 그날 훼이는 비와 함께 별궁중 하나로 거처를 옮겼다. 한순간에 후계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날을 누리게 되었지만 훼이는 오 히려 그것이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지난 10년간을 하계에서 보낸 비는 어린아이답게 천계의 생활에 놀랍도록 쉽 게 적응했다. 혹시 라도 하계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하던 훼이였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늘 북적대는 본궁 흑룡궁에서의 생활과 별궁에서의 생활은 확연히 달랐다. 본 궁에서 생활할 때는 식사 및 의복 준비. 청소에 이르기까지 훼이의 주변에서 항시 맴도는 수십 명의 시비들과 후계자로서의 수업을 받기 위해 쉴새없이 수행과 업무처리등을 반복하는 생활로 시간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정신없는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그런 생활들에 적응하고 살아왔는지 신 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별궁에 배치된 인원은 별궁의 관리를 위해 상주하고 있는 세명의 시비와 병 사하나. 그리고 시종 한명 뿐이었다. 본궁에서 일어난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 지 별궁에 머물겠다는 훼이와 비를 그들은 따스하게 맞이했다. " 전하. 식사는 어제처럼 밖으로 가지고 나갈까요?" 애띤 얼굴의 시비가 물어왔다. " 그렇게 해주겠나. 그리고 난 이제 후계자가 아니니 전하라고 부를 필요는 없네." 훼이의 말에 시비는 웃음띤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전하는 언제까지나 전하이신 걸요. 이름은 상관없습니다." 훼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방을 빠져나가는 시비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감응을 느꼈다. 항상 앞만 보며 살아온 자신이었기에 주위에서 어떻게 자신을 생각하 고 있는지 조차 신경 쓰지 못했었다. 아니, 그보다 시비들의 존재 자체를 염 두해 두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 아버지. 오늘은 뭘하지요?" 밖에 나갔다가 막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 비가 물었다. 비의 몸에 맞게 만들어진 중간 길이의 검은 파오는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비 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훼이는 처음 비와 마주 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비 가 걸치고 있던 낡은 장포는 천계로 돌아오기 전에 화연의 집에 벗어두고 온 차였다. 언제고 비가 떠날 것을 알고있던 비영은 비를 위해 값비싼 비단 옷을 마련해 두었었다. 그랬다. 화연과 비영. 그들 두 남매는 배려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10년이 나 남자 혼자의 손으로 키운 누이의 아이를 무작정 떠나보내면서도 비영은 붙잡는 말 한번 내뱉지 않았다. " 오늘은 네게 간단한 주문 몇 가지를 가르쳐주마. 이를테면 구름을 불러 비를 내리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을 말이다." " 정말이에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비영은 눈을 크게 뜨며 훼이에게 물었다. 어린아이답게 금새 마음이 들뜬 모 양이었다. " 물론이다. 흑룡들은 태어날 때부터 비를 부르는 힘을 가지고 있단다." 훼이의 대답에 비는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훼이는 그 웃음에서 화연의 미소를 보았다. ============================================================================ 와와.....너무 기뻐요. 추천해주신 꾼2님(예전에 해주셨는데 감사도 안드려서 정말 죄송...) 그리고 ELENOA님. 감사합니다. ^0^ 흑룡의 숲의 세계관 설정을 위해 쓴 소설에서는 같은 배경이지만 스케일이 좀 작았었는데.... 이번엔 엄청 커지고 있습니다. 글 전개 속도는 느린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언니는 빨리빨리 뒷 내용 쓰라고 그러더군요. 제가 뒷 내용 말해줬거든요...^^ 그러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53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8일 22:2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五.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五. 비와 별궁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한 달이 지나갔다. 그 동안 비는 시비들 과 매우 친해져서 그녀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훼이는 별궁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비의 곁에서 시간을 보 냈다. 인간의 피가 섞여있었기 때문에 비가 가진 힘에 조금 의심을 가졌던 훼 이였지만 비는 주문을 통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흑 룡왕의 장남으로 태어난 훼이는 어릴 때부터 다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였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재능도 비에게는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비는 모든 것들을 빠르게 배워나갔다.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도 비는 무척이나 이해가 빨랐다. 단지 체력이 약하다 는 것만 제외하면 이제 비도 한 명의 훌륭한 흑룡족이었다. " 비. 오늘은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시켜주마." " 아.... 천상계의 왕자라는 분말이죠. 아버지?" " 그래. 정말 좋은 사람이지. 너도 분명 그렇게 느낄 거다." 별궁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하는 외출이었기에 비는 즐거운 것 같았 다. " 자. 이게 공간을 여는 술(術)이다." 비를 향해 미소지어 보이며 훼이는 아무런 주문도 외치지 않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저 약간의 미미한 파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비의 눈앞에 공간이 열렸다. 그것을 본 비는 깜짝 놀란 듯이 감탄성을 내뱉었다. " 너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할 수 있게 될 거다." 둘은 공간에 들어선 후 천상계의 성휘에게로 향했다. " 오랜만이군. 성휘." 언제나처럼 성휘는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은 채 서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 아..... 훼이..." 익숙한 목소리에 반가움을 표하며 성휘는 책을 덮었다. " 그쪽은....." " 소개하지. 내 아들 비야." 성휘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약간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 을 떠올리며 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 반갑다. 비." " 안녕하세요." 성휘에게 인사를 건네며 비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언제나 훼이에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미소를 보며 성휘역시 환한 미소로 답했다.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훼이가 사랑했던 인간의 여인의 모습을 성휘역시 비 를 통해 볼 수 있었기에. 왜 훼이가 그녀에게 끌렸는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 어난 자신의 아들 비를 위해 후계자의 위를 버렸는지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이 훼이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자신에게는 그토 록 소중한 존재는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훼이의 마음을. " 훼이를 많이 닮았구나." 성휘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휘는 그렇게 말하며 두 부 자에게 자리를 권했다. " 차(茶). 마셔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마셔보겠니?" 성휘가 자신에게 묻자 비는 밝게 빛나는 검은 눈으로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 였다. " 네. 마셔보고 싶어요." " 좋아. 잠시만 기다려라." 성휘는 기분 좋게 대답하며 지난번에 동생에게 받은 용정차( 精借) 잎을 꺼 냈다. 모든 차중에 가장 일품으로 여겨지는 용정차는 천상계에서도 왕족 이상 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성휘는 술보다는 차를 즐기는 편이었 기에 여러 종류의 차 잎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꺼낸 용정차 잎은 천상계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주는 여동생 가진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엷은 녹색의 찻물을 내려다보며 비는 신기한 듯 시선 을 떼지 못했다. " 차를 마실 때는 단숨에 마시지 말고 천천히 그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한 모금씩 마셔야 한단다." 훼이는 조용히 성휘가 비에게 다도에 관해 가르쳐주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포근하게 내려앉는 저녁 공기와 같은 평화로움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슬픔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훼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곤륜산에서 수행을 하면서 지낸 지 어느덧 열흘째가 되었다. 인적이 드문 곤륜산의 구석구석에서 유안과 리린은 마음껏 자신들이 배워왔 던 주문들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유안은 머지않아 흑룡궁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사실도 잊은 듯 수행의 즐거움에 한껏 빠져 있었다. " 받아요. 리린." 유안은 손에 들고 있던 복숭아 하나를 리린에게 던졌다. 리린은 유안이 던진 복숭아를 가볍게 받아들며 싱긋 웃었다. " 어때? 보름의 시간이 너무도 짧다는 걸 알겠지?" 유안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리린과 함께 라서 다행이었어요. 유사한 주문들도 많이 쓸 수 있었고." " 난 천계에 돌아가면 당장에 다른 주문들을 배워야겠어. 성인식도 아직 치 르지 않은 너한테 밀릴 정도라니. 내 체면이 말이 아니야." 뾰루퉁한 얼굴로 말하긴 했지만 리린의 어조에는 책망하는 뜻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 자, 오늘은 충분히 수련했으니까 그만 쉬도록 하자." 리린과 유안은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복숭아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곤륜은 두 용족을 품은 채 조용히 밤을 맞이했다. 검게 펼쳐진 밤 공기 속에 녹아든 곤륜의 숲은 낮의 푸르름을 모두 감추고 검은 그림자 속에 자신을 묻었다. 세차게 물이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 옆의 나무 아래에는 몸을 눕히고 깊게 잠 든 유안의 모습이 보였다. 몸에 걸친 검은색의 파오 때문에 유안의 모습은 눈 에 잘 띄지 않았다. 반면에 파란색의 파오를 걸친 리린은 유안이 몸을 눕힌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그녀가 몸에 걸친 파란 파오는 어렴풋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소리와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나무소리. 그 리고 작게 들려오는 유안과 리린의 고른 숨소리만이 밤 공기 속에서 울려 퍼 졌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몸을 뒤척이던 유안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잠 속에 빠져든 바로 그 순간. 세찬 폭포수 아래로 흐르는 널찍한 못의 맑은 물이 밤의 어둠이 간직한 빛처럼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 다.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빛도 아닌 탁하긴 하지만 속이 비치는 검은빛으로 물의 색이 변해갔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물은 여전히 흰 포말과 함께 부 서져 내리고 있는데 오직 고인 물의 빛깔만이 검은 색으로 물들어 가고있었 다. 검은빛으로 물든 물은 마치 원래의 빛깔이 검은색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오랜 숙원을 풀 때가 다가왔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들려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음산하면서도 작은 울림이 폭포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원래대로라면 폭포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어야 할 그 소리는 특별히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 이상한 현상을 느끼지 못하는지 깊이 잠든 유안과 리린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이제 저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들려온 그 목소리에는 묘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기쁨 같기도 하고 분노 같기도 한. 쏴아아. 세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마치 깊이 잠든 두 사람에 게 경고를 전하듯이. 날이 밝았다. 유안은 두 팔을 펼치며 기지개를 폈다. 나무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은 따스하게 숲을 밝혀주었다. 잠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못가로 다가간 유 안은 투명하게 흐르는 물 속에 손을 담갔다. 뼈까지 시리도록 차갑고 청명한 물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새 뇌리를 점령하고 있던 잠의 기운은 달아나 버렸다. " 어제 좀 피곤했던 모양이네." 언제 일어났는지 리린은 품안에 과실들을 안고 유안의 곁에 다가서 있었다. " 곤륜의 대지가 날 반기는 모양이죠. 놓아주기 싫었는지도." " 이제 감상적인데?" 유안은 씩 하고 웃어 보였다. " 오늘도 빨리 식사를 마치고 힘을 겨뤄봐요. 리린. 어제는 무승부 였으니 오늘은 꼭 결판을 내야겠어요." " 좋아. 아무리 네가 흑룡족이라지만 난 너보다도 엄연히 오랜 시간을 살아 왔다구. 질 수야 없지." 유안은 손을 담갔던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물에서 손을 꺼내며 몸을 일으켰 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폭포수는 변함없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제 드디어 뭔가가 시작될 것 같지요? 지금까지의 순탄한 전개와는 조금 다른 전개가 시작됩니다. 3장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군요. 다음편에서 바로 4장이 시작될지도 모르죠.. ^^ 지금 이야기는 엄청난 초반부인데 끝까지 읽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저나 열심히 쓰라구요 ^^ 알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날리며..... 전 이만 샤샤샥.... 번 호 : 54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9일 21:5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六.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六. 명진관(命鎭館). 성휘는 금빛의 힘찬 필체로 쓰여진 편액을 바라보며 잠시 숨 을 가다듬었다. 깊게 가라앉은 밤 공기는 조심스러운 성휘의 발소리도 금방 읽어낼 정도로 고요했다. 천상계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상천궁. 그리고 그보다 더 깊숙 한 곳에 있는 명진관. 명진관을 관리하는 것은 12 천선중 하나인 서빈과 구천 현녀로 그들은 천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위세또한 대단했다. 아직 해뜨기까지는 한시진도 더 넘게 남은 새벽. 성휘는 굳게 닫힌 명진관의 문에 손을 가져갔다. 감히 그곳에 들어가려고 생각하는 자는 없었기에 명진관 의 거대한 문에는 빗장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미세하게 끌리는 소리와 함께 명진관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 에 새겨져 있던 두 마리의 주작의 형상은 문이 열림과 동시에 성휘의 시야에 서 사라졌다. 명진관 안은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 원래부터 끝은 존재하지 않을지 도 몰랐다. 명진관은 바로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수명을 관리하는 곳 이었기 때문에. 이 넓은 곳에서 자신이 목적하는 것을 찾기위해서는 한시진의 시간은 너무나 빠듯했다. 성휘는 두리번 거리며 나무 책장이 일렬로 한없이 늘어서 있는 사이를 걸었다. 책장에 꽃혀있는 두루마기들에는 모든 살아있는 이들의 수명이 적혀 있었다. 그 두루마기들은 수명부(壽命簿) 라고 불렸다. 물론 그곳에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천상계 사람들의 수명부도 있었다. 하지만 성휘가 찾는 것은 자신의 수명부 따위가 아니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명진관 안을 거닐던 끝에 성휘는 이윽고 목적했던 두 루마기를 발견했다. 아직 새것인 듯 다른 수명부와는 달리 하얗고 깨끗한 그 수명부는 주위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용족들의 수명부 사이에 있었다. 비(飛). 그 이름이 적힌 수명부를 꺼내들며 성휘는 떨려오는 마음을 진정시켰 다. 그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두루마기를 펼쳤다. " 무얼 하시는 겁니까!" 망연한 얼굴의 성휘를 바라보며 상천궁 수비대장 이수는 노성을 내질렀다. 성휘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지만 명진관안에 들어선 이상 그가 누 군가의 수명부를 보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은 자명했다. " 상제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 건 염두에 두지도 않으십니까?" 이수는 다른 귀족들이나 왕족들처럼 성휘를 경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호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상천궁 수비대장으로서 그는 냉정하게 모든 것을 판단했다. 성휘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어서 나가시죠. 아무리 왕자님이라고 하셔도 이번일은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휘는 이수가 이끄는 대로 명진관 밖으로 나왔다. 명진관 밖에는 많은 수의 천군들이 도열해 있었다. " 거처로 모시고가라." 이수의 명령에 몇 명의 천군이 성휘에게로 다가섰다. 천군들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며 명진관 앞에서 떠나는 성휘의 뒷모습은 슬퍼 보였다. * * * " 유배.......?" 훼이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아직 앳띤 얼굴의 천군을 보며 되물었다. " 예. 왕자님께서 자세한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시다며 절 보내셨습니다." 훼이는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 무엇 때문에 갑자기 유배를 명받은 것이지?" 훼이가 묻자 천군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그건..... 왕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겠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 다. 유배에서 풀려나기만 하면 그때 말씀드리겠다구요." 유배. 유배라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성휘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화선 소생의 왕자라고는 하지만 천상 계의 왕자라는 신분을 가진 그를 그렇게 쉽게 유배 보내다니. " 그 이외에 전한 말은 없었나?" " 그저 미안하다는 말씀밖에는....." 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대체 천상계의 천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모두 같은 것이거늘. 어째서 그렇게 신분에 얽매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왕자라는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성휘는 언제나 자신의 방에서 거의 나 올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근신하듯이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보내왔다. 활동적인 용족의 피를 가진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성휘 는 담담하게 자신에게 던져지는 모멸의 시선을 견뎌내며 자랐다. 성휘의 인내 심은 참으로 깊은 것이었다. 그런 질식할 듯한 공기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성휘의 얼굴에 떠오른 슬픈 듯한 미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 다. 나쁜 쪽으로 성격이 변하지 않는 대신 성휘는 조용하게, 존재감조차 희미 할 정도로 자신을 감추며 지내온 것이었다. 훼이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천상계로 돌아서는 천군을 바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성휘...... 대체 무얼 한 거야........" 훼이는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반년이 넘게 지나도록 훼이는 성휘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공간을 열 고 돌아다니며 성휘가 있는 곳을 찾아볼 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이 나타나는 것 이 성휘에게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훼이는 성휘 의 유배가 풀리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 * * 하늘에 걸려있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유안은 리린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하계의 공기. 천계와는 조금 다른 향기가 맴도는 그 공기에 유안은 어느새 취해버린 것 같았다. " 빨리 성인식을 치렀으면 좋겠어요." " 그래. 얼마나 남았지?" 유안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 21년이요." " 지내다 보면 금방 이야." 노을은 어느덧 붉은 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하늘의 동쪽 끝에서부터 아스라한 어둠이 밀려와 세상을 뒤덮듯이 퍼져 나갔다. " 밤하늘을 보면 제 백부님이 생각나요." 유안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리린의 눈동자는 미미한 떨림을 보였다. " 그분은...... 어떤 분이시지..?" " 무척이나 좋은 분이세요. 누군가와 만나기를 꺼려하시긴 하지만 제겐 단 하나뿐인 백부님이시고....... 누구보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죠. 모 두들 말은 꺼내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거에요." 리린은 그래 하고 작게 대답하며 유안에게로 돌렸던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 이제 폭포로 돌아가요. 리린." 한동안 아무 말없이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던 둘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주위는 달빛에 감싸여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느낌이었다. 분명 지금은 봄 날씨였건만 유안은 온몸 을 찌를 듯한 냉기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도 없이 몸이 떨 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주위가 차갑게 식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한기는 아니었 다. 겨울을 지배하는 흑룡족인 유안이 까닭 없이 추위에 몸을 떨 일은 없었다. 유안은 눈을 뜨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꺼풀하 나 들어올리는 일인데도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귓가에서는 여전히 폭포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혹시 이건 꿈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열흘 넘게 지내온 이곳의 대지는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기에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게 대지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유안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리린..... 리린도 혹시 나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 머리 속으로 생각을 떠올리던 유안은 주위에 있을 리린의 몸에 걱정이 미쳤다. 하지만 그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 애써 몸부림 칠 필요 없다........ > 뼈끝까지 파고들 듯한 한기가 담긴 음성이 유안의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누구지....? 유안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보기 위해 다시 한번 눈에 힘을 주었다. <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흑룡족이라도 아직 제대로 된 힘을 가지지 못한 너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대체 누구야....! 하지만 유안은 자신을 내리누르는 힘을 가진 존재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유안의 몸을 감싸오던 냉기가 더욱 강해졌다. " 유안!" 리린은 유안의 몸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검은 안개를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은 리린의 힘을 그대로 흡수해 버렸다. 형체도 없이 사그러들지도 않는 그 안개는 점점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 며 유안의 몸에 달라붙었다. < 청룡족의 여인이여....... 흑룡들에게 전해라. 이 흑룡족의 아이를 심연으로 데려가겠노라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냉기 서린 음성. " 넌 누구냐!" 리린은 날카롭게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점점 더 빛을 더해 가는 검은 안개만이 리린의 시야를 가득 채울 뿐. 이제 더 이상 유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힘빠진 얼굴로 주저 앉아있는 리린의 몸에 아침의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리 린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 일족의 후계자인 자신의 힘으로도 유안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도 분했다. 한동안 주저 앉아있던 리린은 입술을 깨물며 일어섰다. [ 역궁(繹窮) 개문(開門)! ] 부서질 듯 쏟아지는 폭포 소리보다도 더 크게 리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오늘 금어울님, 마계요정님, 다루마님, 미스리드님, 다크스폰님, 천랸화니님과 만났습니다. 평소에 무척 보고싶었던 분들이었는데 만나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 모두들 멋진 분들 이었어요. 이야...이제 3장이 끝날때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힘내서 열심히 써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번 호 : 564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0일 23: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七. 흑룡의 숲 제 3장 화살(矢) 七. 햇빛에 반사된 검날의 빛은 숲 이곳저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산 발하는 빛무리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번쩍이는 빛의 수와는 반대로 숲에서 울리는 소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닐 정도로 들려오지 않았다. 검과 검이 마주칠 때 나는 소리는 얇은 천을 가를 때 나는 소리 정도밖에 들리지 않았다. 유에린은 오직 자신의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훼이의 검만을 응시했다. 온몸 의 모든 신경이 그 검으로 쏠려 있었다. 마치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이 사뿐한 몸놀림으로 유에린은 훼이의 공격을 막아내며 움직였다. 처음 검을 잡았을 때는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지던 자 신이었건만 지금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는 검의 궤적을 보며 유에린은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훼이의 공격을 막아내던 유에린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훼이 의 검날을 느끼고는 몸의 움직임을 멈췄다. 훼이는 검끝을 땅으로 향하게 한 채 진중한 얼굴로 유에린의 등 뒤쪽을 바라 보고 있었다. 훼이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유에린 역시 몸을 돌 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유에린이 시선을 돌리자마자 눈앞의 숲이 이상하게 일 그러지더니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안색을 하고있 는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라이엔." 훼이의 입에서 남자의 이름이 불리워 지자 그는 공간 안에서 빠져나와 훼이 의 앞에 섰다. " 형님.......유안이......명계로 끌려갔어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보였던 훼이의 얼굴이 라이엔과 마찬가지로 굳 어지는 것을 보며 유에린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 어떻게 된 일이지?" " 그게.... 후계자가 된 후에 떠나야 하는 보름간의 수행을 위해 유안을 보 낸 것이 얼마전의 일이었죠. 물론 유안은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아이이 기 때문에 청룡족의 후계자인 리린과 함께 하계로 떠났죠...." 라이엔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유에린은 그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 라고 판단하고 훼이와 라이엔이 서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나무기둥 에 기대어 앉았다. 멀리서 바라보니 라이엔과 훼이의 분위기는 흡사했다. 라이엔이라는 이름은 분명 현 흑룡왕의 이름이었다. 흑룡족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눈에 띄게 흰 피부와 차분히 가라앉은 검은색의 머리카락. 핏줄의 이어짐이란 그런 것이었지..... 유에린은 문득 자신이 왜 지금 이곳에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오직 허공을 수놓으며 흩 어져가던 붉은색의 혈화뿐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그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었는지. 왜 그가 그런 무모한 싸움을 시작했는지. 유에린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과연 자신이 훼이에게 주문을 배운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인가.... 하지만 그 답은 유에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흘러간 시간은 어느 누 구의 힘으로도 되돌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라도 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작은 자락을 붙잡지 않았다면 유에린은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유에린은 왕족도, 귀족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청룡족 여인에 불과했다. " 한동안 자리를 비울 것 같다." 언제 다가왔는지 훼이는 유에린의 앞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유에린이 눈을 돌려서 바라보니 라이엔은 여전히 조금 전에 서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네....." 유에린은 짧게 대답했다. 훼이는 그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훼이와 라이엔의 모습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유에린의 눈에는 여전히 그 잔상이 남아 있었다. * * * * " 오랜만에 다시 하계에 내려온 소감이 어떠하지?" 훼이는 자신의 어깨에 앉아있는 비에게 물었다. 비는 그저 맑은 검은 눈으로 주위의 풍경을 바라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훼이가 1년만에 하계에 내려왔을 때 느꼈던 그 경이로움과 생소함을 비 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두 개의 시간대를 살아가는 용족으로서는 하 계의 그 뚜렷한 변화는 언제나 신선한 놀라움으로 다가오곤 했다. 더 이상은 훼이도 아무말을 하지 않은 채 두 부자는 발길이 닿는 그곳. 화연 의 집으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였지만 하계는 이미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였다. 화연의 집이 자리잡고 있던 산 중턱의 마을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멀리서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집들이 빽빽 이 들어차 있었고 예전에는 야트막한 산지였던 자리들은 어느새 밭으로 바뀌 어 있었다. " 숙부님은...........여전히 그곳에 계실까요...." 천계에서 지내는 동안 한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비영의 일을 비는 하계에 내 려온 후에야 비로소 입밖에 내었다. 분명 비는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어쩌면 화연의 피는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미리 준비했던 화연도, 하나뿐인 혈육을 자진해서 훼이에 게 보낸 비영도, 훼이를 처음 대한 그 순간부터 훼이의 아들로서 행동한 비 도.... 모두 훼이에게 배려를 해 준 것이었다. " 좀더 일찍 내려올 걸 그랬구나." " 아니에요...." 비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 걸요."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비의 그 목소리에 훼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화연이 살았던 그리고 비와 비영이 살았던 초가(草家)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 고 서 있었다. 작은 마당에 늘어놓은 약초도 피어오르는 연기도 그날과 같았 다. 슬프도록 그립게. 훼이의 어깨에서 내려선 비는 조심스럽게 낡은 툇마루로 올라서 여러 번 손 질한 듯이 보이는 문풍지가 발린 문을 열었다.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아니, 이게 누구야......." 늙으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제 반백이 되어버린 비영이 고개를 내밀었 다. " 오셨으면 들어오시지 않고...." 여전히 마당에 서 있는 훼이를 발견하고 비영은 말을 걸었다. 훼이는 주름진 비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섰다. 묻지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영은 지금까지 홀로 살아왔다는 것을. 집안이 몰락한 이후로 둘의 힘을 합쳐 살아오다가 화연이 세상을 떠나고 그 화연이 남긴 유일한 혈육마저 떠나고 홀로 남은 비영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산에서 약초를 캐며 근근히 살아온 모양이었다. 비는 비영의 거친 손에 자신의 손을 맡긴 채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세월 의 풍상이 새겨진 비영의 얼굴은 훼이에게 묘한 감흥을 전해 주었다. 용족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간들처럼 늙는 일은 없다. 인간들처럼 주름진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세월에 녹아 없어지듯이 그렇게 나이 를 먹어 가는 것이다. 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말을 꺼냈다. " 부탁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훼이의 말에 비영과 비. 둘의 시선이 동시에 훼이에게로 향했다. " 좀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 수 있을까요." 비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 을 지었다. " 숙부님. 제게 약초에 대한걸 가르쳐주세요. 천계에는 이곳에서 나는 약초 들이 없더라구요." 그렇게 말하며 비는 웃어 보였다. " ......누추하지만 방은 한 칸 더 있으니까 마음껏 쓰세요." 비영의 주름진 눈가에 희미하게 맺힌 눈물을 훼이는 보았다. ======================================================================== 와....길었던 3장이 끝났습니다. 색다른 전개방식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4장에서는 유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 얘기만 나오는 건 아니구요. 우....앞에 틀린 부분이 넘 많아요. 제 언니가 지적해 주었는데 이름 틀린 것도 있고 띄어쓰기 틀린 건 기본에 문장이 이상한 것도 굉장히 많습니다. T.T 다음에 모음집이라도 올리게 되면 다시 다 고쳐야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57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2일 00:0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9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4장 一. 흑룡의 숲 제 4장 침묵(沈默) 태양 앞에서 모습을 감추고 달빛 아래서 어렴풋이 피어나는 조각난 시간의 파편. 별들이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一. 언제나 생기 있게 반짝이던 유안의 푸른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멍한 빛으 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유안의 몸은 희미하게 검은 안개로 휘감겨 있었다. 분명 유안 의 눈동자에서 생기를 앗아간 것은 그 안개임이 틀림없었다. 유안은 마치 버려진 목각 인형처럼 갈색의 나무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로 어 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굳어져 있었다. < 이제 더 이상의 지독한 고독은 싫다.......... > 온 몸의 피부가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을 띄고 있는 슬퍼 보이는 인상의 청년 은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마른 몸을 움직여 유안에게로 다가섰 다. 소름끼치도록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달리 청년의 눈은 맑은 빛 을 담고 있었다. 마치 그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이 눈이라고 느 껴질 정도로 그의 눈은 맑게 개어 있었다. 길게 자라나 있는 그의 진한 푸른빛이 도는 머리카락은 차분하게 등뒤로 늘어 져 있었다. 웬만한 여인들보다도 더 길어 보이는 그 머리는 땅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그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움직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 는 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미하게 흔들리는 길다란 그의 머리카락 뿐이었다. 어느새 유안의 곁에 다가선 그는 천천히 마른 손을 들어올려 유안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가 걸친 넉넉한 품의 장포는 그의 마른 체격을 더욱 잘 드러 나게 만들었다. 손을 들어올린 순간 손 아래로 길게 늘어진 장포자락은 그의 손이 열 개도 더 들어갈 정도로 보였다. 그가 지낸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검은색이었을 듯한 그의 장포는 빛이 바래 회색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의 마르고 창백한 손이 이마에 닿자 유안은 몸을 흠칫했다. 초점 없이 풀린 눈은 여전했지만 유안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에 닥친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저 날 받아들이면 돼........ > 유안의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끼고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서 유안의 이마에 올려진 그의 손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유안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의 빛과는 확연 히 다른 청명하게까지 느껴지는 푸른빛. 그 푸른빛이 이마에서부터 시작해 유안의 온몸을 뒤덮자 초점 없이 풀려있던 유안의 눈에 다시 푸른빛이 돌아왔다. 언제나 생기 있게 반짝이던 맑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 푸른색은..... 언제고 그리운 색이지....... > 유안의 푸른 눈을 대하자 그는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남아 있었다. 잠시동안 남자는 유안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눈부시도록 강해졌 다. 그때까지 죽은 듯이 굳어져 있던 유안의 입에서는 낮은 신음성이 터져나 왔다. 유안은 자신의 눈에 비친 낯선 얼굴을 보며 본능적인 위험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에게 여기에서 빠져나갈 능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마에 닿 은 남자의 손에서는 끊임없이 서늘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유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눈을 움직여 주위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쇠락한 기운이 물씬 풍겨오는 칠이 벗겨진 벽과 먼지가 쌓여있는 가구들. 그리고 그 방처럼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창백한 인상의 남자. 문득 유안은 남자의 눈이 놀랍도록 맑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찢을 듯한 격통이 온몸을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곳은 언젠가 한번 와본적이 있었다.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는 적막이 흐르는 공기. 그 적막은 이유 없는 불안을 느끼게 할만큼 이질적인 것이었다. 커다란 천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 않아도 훼이는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비유(肥遺) 라는 이름의 세 쌍의 다리와 네장의 날개를 가진 뱀이었다. 가늘게 찢어진 세모꼴의 눈으로 위협하듯 훼이의 주위를 날아다니던 이형의 뱀은 훼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 지 않자 요란한 날개 소리를 내며 다시 어딘 가로 날아갔다. 훼이는 길게 자라난 수풀 속을 헤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울창한 숲. 명계에서 자라나는 모든 식물들은 기형적으로 컸다. 훼이의 키만큼이나 길다란 풀들과 높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었다. 훼이가 머물고 있는 흑룡의 숲 보다 더 울창하게 들 어찬 나무들은 빛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길게 가지를 내뻗고 있 었다. " 위험하군...." 훼이는 낮게 중얼거리며 평소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공간을 여는 술(術)을 펼 쳤다. 앞에 있던 나무들이 기이하게 휘어지는 듯이 보이더니 눈앞에 공간의 문이 열렸다. 미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막 사실(私室) 안으로 들어선 훼이에게 고 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동작조차 힘겨워 보일 정도로 그녀는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뿐인 자신의 아들이 누군가에게 끌려갔 다는 데 멀쩡하게 있을 부모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군다나 유안은 앞으로 흑 룡일족을 이끌어 갈 왕이 될 몸이 아닌가. " 훼이....... 유안은......무사할까요....." 유안과 마찬가지로 푸르게 빛나는 두 눈으로 훼이를 바라보며 미하가 물었다. " 걱정 말아요." 짧은 한마디 였지만 미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훼이라면, 오랜 세월을 살아 온 그라면 분명 유안을 무사히 자신의 품으로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 형님. 어서 서두르죠. 한시가 급합니다." 라이엔이 그렇게 말하며 막 공간을 여는 술을 펼치려고 할 때였다. 훼이는 손 을 내밀어 라이엔을 저지했다. " 넌 여기 남아라." " 무슨소리에요, 형님." 훼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은 눈을 돌려 동생. 라이엔을 응 시했다. " 넌 왕이다. 흑룡일족의 왕인 네가 명계로 들어서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그들에게 덜미를 잡혀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 그렇지만..." " 나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 그리고 난 초행이 아니다." " 형님...." 훼이는 어느새 공간을 열고 있었다. " 기다려라." 그 한마디를 내뱉고 훼이는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뒤에 남은 라이엔과 미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걱정이 담긴 눈빛을 교 환했다. 지금 훼이가 느낀 것은 분명. 수계(水界)의 힘이었다. 흑룡들이 쓰는 힘과는 약간 다른 그것은 분명 물의 용인 청룡족들이 가진 힘과 흡사했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른다. 초행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명계의 복잡하게 얽힌 구조를 다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훼이는 무작정 그 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몸을 움 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공간에서 빠져나오자 마자 훼이의 눈에 시랑(豺狼)이 보였다. 여우와 같은 생 김새를 가진 꼬리가 희고 길다란 귀를 가진 동물이었다. 훼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시랑은 어느 순간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듯이 사라져 버렸다. 인간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불길한 동물들. 명계의 곳곳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형(異形)의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훼이는 아직까지 희미하게 물의 기운이 풍겨 나오는 낡은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본래는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지어졌을 듯한 고풍스러운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곳곳에 파손된 흔적이 보이는 낡아빠진 건물일 뿐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내린 목조건물은 금방이라도 삐그덕 소리를 내며 무너 져 내릴 것 같았다. 황폐해진 정원을 지나 예전에는 분명 아름다웠을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문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전보다 한층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서둘러야 한다. 분명 살아있는 자의 존재를 느끼고 그들이 모여들기 전에 유 안을 찾아내야 한다. 마치 자신의 집안을 거닐 듯이 훼이는 막힘 없이 길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쳐 갔다. 수십 개의 방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훼이는 그 방들에는 눈길 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분명 침소로 쓰였을. 아직까지도 가장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 하고 있는 문 앞에 멈춰선 훼이는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 누구냐...... > 훼이는 축 늘어진 유안과 어느새 창백한 기운이 사라진 얼굴을 하고 있는 청 년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던 청년은 어느새 몸에 걸친 장포에 어울리는 체격이 되어있었다. 훼이를 본 청년은 이채로움을 담은 시선으로 몸을 돌렸다. " 역시.... 교룡(交龍) 이었나." 훼이가 낮게 내뱉자 청년은 미소했다. < 당신은 분명 흑룡족의 후계자 였었지....... > 청년은 훼이를 아는 듯 했지만 훼이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의 변화조차 없었 다. " 그 아이는 내 혈육이다." < 이 아이 말인가. 내게 어울리는 기운을 가지고 있었지...... >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낮게 웃었다. 더 이상은 그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느껴 지지 않았지만 지금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광기가 배어있는 듯 했다. 잠시 청년을 응시하던 훼이는 거침없이 유안의 앞으로 다가섰다. 유안의 얼굴 은 창백하게 굳어져 있었다. 청년은 훼이가 유안의 몸을 안아 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막 생각 난 것처럼 말을 꺼냈다. < 알고 있을 텐데..... 용족의 피에 인간의 피가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 깊게 가라앉은 훼이의 눈이 청년에게로 향했다. 담담하게 훼이의 시선을 맞받 은 청년은 가볍게 얼굴을 굳혔다. " 역린(逆鱗)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그렇게 말하는 훼이의 음성에 담긴 것은 명백한 적의 였다. ======================================================================== 오늘은 보충 설명을 조금 하겠습니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차원과 차원을 이어주는 통로 같은 곳입니다.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죠. 그리고 역린(逆鱗)은 알고 계시겠지만 용의 목 아래에 존재하는 거꾸로 된 비늘입니다. 그 역린을 건드리면 살아날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고 전해질 정도죠. 약점을 뜻하는데 약점이라기 보다는 건드리면 죽어! 이런 느낌이죠..^^ 요즘 자료조사 때문에 700페이지가 넘는 책 두권을 읽고 있는데 재미는 있지 만 솔직히 너무 두꺼워요....T.T 내일 올릴(아직 다 쓰지 않았지만^^) 부분에서는 뭔가가 벌어질 듯 하네요. 앗..오늘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당... *^0^* 아이 조아.. 번 호 : 58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2일 23:1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8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4장 二. 흑룡의 숲 제 4장 침묵(沈默) 二. < 의외로군...... > 훼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깊게 가라앉은 눈에서는 조금씩 살기가 내비치고 있었다. < 분명 당신도... > " 더 이상의 것을 말한다면 내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남자는 훼이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 아무리 이곳이 명계라해도 질서에서 어긋난 자는 사라지는 것이 좋아." 남자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훼이 쪽으로 다가섰 다. 명백한 비웃음. 남자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그것이었다. < 용족들이 가진 자부심이란 게 그런 거였나? 물론 용족의 피가 대단하긴 하지.... 이렇게 내 모습을 되돌릴 수 있을 정도니까...... > 훼이는 창백하게 늘어져 있는 유안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지금 이 상태가 지 속된다면 유안은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닮진 않았지만 지금 유안의 모습에서 훼이는 지난날의 슬픈 기억을 보았다.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되찾고 싶을 만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절하게 남아 있는 기억. " 그들이 오기 전에 널 네가 있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주지." 한 손에는 유안의 몸을 그대로 안은 채 훼이는 자유로운 다른 한 손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저 서늘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 훼이는 입조차 벌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공기가 팽팽하게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방안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전히 비웃음을 띤 얼굴로 훼이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 망설임 없이 내게 힘을 뿜어낼 수 있다면..... > 남자의 말에 훼이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림을 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여 전히 방안을 가득 채운 팽팽한 공기는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터질 듯이 커져 가고 있었다. * * * * " 고맙습니다........." 흐릿한 눈으로 훼이를 보려 애쓰며 비영은 입을 열었다. 훼이는 알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았던 60여 년간의 시간들. 용족에게 있어서 는 하루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간인 비영에 게는 실로 많은 것을 겪었던 무수한 세월이었다. 이제 곧 눈을 감을 비영을 눈앞에 두고 훼이에게 떠오른 것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젖어있는 화연의 눈이었다. 비는 그저 비영의 손을 굳게 잡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갈라지고 거칠어진 비영의 손이 전해주는 온기를 기억 속에 새기려는 것처럼 비는 필사 적으로 그 손을 잡았다. "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나는 삶이 불행하다고 여겼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비영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었다. " 당신이 나타남으로 해서 화연은 행복하게 짧았던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나 역시 결코 후회하지 않을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비영은 말을 이었다. " 비록 이제 더 이상 비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 테지만 지금 이렇 게 두 눈에 당신과 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으니 여한이 없군요." 훼이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비영이 보여주는 저 미소가 왠지 모르게 훼이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 담담한 그 모습에. 비영이 한마디씩 꺼내는 차분한 목소리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제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은 비영에게 자신은 무엇을 말해 야 하는 것인지. " 숙부님........" 계속 비영의 손을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던 비가 비영을 불렀다. " 고맙다. 비. 네가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비영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를 떠올린 비영의 얼굴은 더 이상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화연과 함께 웃음 지으며 산을 오르던 젊었던 시절의 비영이 거기에 있었다. 하나뿐인 혈육인 여동생을 위해 손에 물 한번 묻혀보지 않고 살았던 그는 험 한 산중턱에 집을 지었고 발이 부르트도록 산을 타며 살았다. 처음 자신의 손 으로 캔 약초를 판 돈으로 음식이며 화연에게 줄 옷을 샀을 때 얼마나 즐거 웠던가. 그리고 하나뿐인 동생이 이름 모를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에도 비영은 그저 조카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화연은 남자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립도록 어딘가를 향해 있는 화연 의 눈에서 비영은 화연이 선택한 남자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죽음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이 화연은 훼이에게 줄 편지를 적어 비영에게 맡 겨 두었었다. 화연이 갓 태어난 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 비영은 언젠가 돌아올 비의 아버지를 기다리며 비를 키웠다. 그리고 마치 꿈과 같이 모습을 드러낸 훼이 의 모습을 본 순간. 비영은 화연이 택한 남자가 바로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어딘지 모르게 범접하지 못할 기운이 서린 고귀한 인상의 남자에게 비영 은 10년 동안 소중히 돌봐온 동생의 아이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이어져 온 삶이었다. 동생을 떠나보내고, 비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았지만 그는 여전히 화연과 함 께 살아온 집을 떠나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렸던 것일까. 아니면, 추억이 서 린 곳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였을까. 훼이는 눈을 감은 비영의 얼굴을 말없이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비영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은 바로 배려. 인간인 그가 말이 아닌 자신의 평 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진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지겠죠. 지금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온기가 빠져나가고 있는 비영의 손을 여전히 잡고 놓지 않은 채 비가 말했다. 훼이는 그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 숙부님은 어떻게 그렇게 편안하게 미소지을 수 있었죠......?" 작게 내뱉은 비의 말에 훼이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말을 꺼 냈다. " 인간은 때로 오랜 시간을 사는 자들보다 더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지도 모른다....." 둘의 시선이 닿는 가운데 마치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비영은 세월의 틀에서 벗어났다. " 이제 돌아가자." 훼이는 아직 황토로 뒤덮힌 봉긋한 무덤을 지긋이 바라보며 발을 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인간은 대지의 품으로 돌아갈 때 가장 편안한 안식을 맞이한다고 하지." " 숙부님의 기다림은...... 분명 값진 것이었죠?" 훼이는 눈물이 맺혀있는 비의 얼굴을 향해 작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 네 유년을 그와 함께 보내서 다행이다." 비 역시 훼이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비는 비영의 무덤에서 등을 돌렸다. "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을 때엔 분명 비영의 휴식터도 푸르게 변해있을 거다." 걸음을 옮기는 비의 모습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 * * * * < 내 이름은...... 천오. 청룡족의 여인과 인간 남자의 사이에서 태어났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는 방 안에서 인간의 피를 받은 교 롱(交龍) 천오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 다른 것은 몰라도 용족들은 기이하게 인간의 피를 거부하지. 아니, 경멸 하는지도 몰라.... > 우수어린 천오의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 운이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실날같이 이어지던 긴장의 끈이 풀린 것 처럼 일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사라져......." 평소의 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어조가 울렸다. 그저 바람이 스쳐지나간 것 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방안에 가득 차있던 기 운은 일시에 사라졌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인적이 없었던 훼이의 힘이었 다. 주문으로 행해지는 힘의 발휘가 아닌 순수한 힘의 움직임. < 늦었어............. > 간간히 끊어지는 듯이 미약한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천오의 것이었다. ===================================================================== 우왓.....무지 졸리다. 우웅....자고 싶어... 이번 4장도 그리 짧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좀 시시하다고 느끼셨다면 본격적인 내용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써서 대체 뭘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뒷 내용은 구상해 놨는데 왜 여기서 막히는 것일까.....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번 호 : 591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3일 23:2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7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4장 三. 흑룡의 숲 제 4장 침묵(沈默) 三. 소용돌이 치는 듯한 공기의 움직임과 함께 검은 빛을 띄는, 속이 비어있는 듯이 보이는 공간의 문이 열렸다. 그것은 용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여는 술 (術)과는 어딘지 모르게 성질이 다른 것 같았다. " 반가워요. 훼이.... 거의 500년 만에 보는 것 같군요." 눈에 띄게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공간에서 빠져나오며 훼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살아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4명의 남녀가 따라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높게 틀어올린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벽쪽에 쓰러져 있는 천오에게 시 선을 던졌다. " 그가... 당신을 화나게 했나 보군요. 하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지배를 받죠. 당신의 힘으로도 그를 죽일수는 없어요." 훼이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낮은 어조로 말했다. " 나의 혈족을 다치게 한 대가를 치르려는 것 뿐이다." 그녀는 날카롭게 웃었다. 공기를 긁는 듯 소름끼치게 울리는 웃음소리로.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그녀의 움직임 때문에 머리카락에 장식된 갖가지 보석 들이 사방에 빛을 뿌리며 흔들렸다. " 여전하군요. 혈육에 대한 당신의 집착은...." " 집착이라고 말해도 좋아...." 그녀는 요란하게 다시 한번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춘 그녀의 얼굴에서는 섬뜩한 요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명계의 모든 것들은 나의 관할. 아무리 당신이라도 손을 댈 수는 없어 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뒤쪽에 공손히 시립해 있는 남녀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두명의 남자가 천오쪽으로 다가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 당신이 안고 있는 그 아이가 현재 흑룡왕의 후계자인가 보죠?" " 내게 대답할 의무는 없지." 짧게 대답하고나서 훼이는 공간을 열었다. " 제 허락도 없이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건 아니겠죠?" 훼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 보았다. " 요희(妖姬). 그대의 힘으로 날 얽어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 지..?" " 그런 건 두고보면 알겠죠." 어느새 요희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치켜 올라간 붉은 색의 눈동자는 적의를 담은 채 훼이에게로 향했다. 소리도 없이 요희의 몸에서 강한 기운이 흘러나와 훼이를 덥쳐갔다. 하지만 그 기운은 훼이의 몸에 닿기도 전에 무형의 기운에 의해 튕겨져 나갔다. 요희가 내뿜은 기운의 여파로 인해 훼이가 열어놓은 공간이 흔들리며 약간의 비틀림을 보였다. " 이대로 돌아갈 순 없어요." 날카로운 그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훼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무심한 검은 눈동자가 요희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곧 공간의 문이 닫혔다. 요희는 날카로운 눈으로 훼이가 사라진 자리만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 각을 했는지 요란하게 웃어댔다. " 좋아. 난 당신의 약점을 알고있어."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요희는 허리를 숙인 채 힘겹게 서 있는 천오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언젠가 천오가 내뿜었던 것과 같은 투명한 검은 빛이 그 녀의 손에서 뻗어나와 천오의 몸을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힘겹게 숨을 토 하던 천오는 혈색이 돌아온 얼굴을 들어올렸다. " 천오. 그대에게 한가지 일을 맡기도록 하지." 방금전까지만 해도 요사스럽게 웃던 요희의 얼굴은 어느새 냉정한 지배자의 그것이 되어있었다. " 분부만 내리십시오." " 그대는 지금 이순간부터 어린 용족들의 힘을 빨아들여 그대의 힘을 키우 도록 해. 그리고......." 요희는 잠시 말을 끊었다. " 그가 가장 가슴아프게 간직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대를 바꾸어주지. 그 모 습을 가지기만 하면 그를 없앨 수 있어." 요희는 입술 끝을 살짝 들어올리며 웃었다. " .......두고보지. 훼이. 그대가 과연 그 모습을 눈에 대하고 이겨낼 수 있을 지......" 그녀의 붉은 눈은 피를 말릴 정도로 섬뜩하게 빛났다. * * * 안절부절 하며 사실(私室)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는 라이엔의 모습을 미하는 무감동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한 시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도 며칠은 지난 듯이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것 같이 무기력했다. 미하와 라이엔은 훼이의 모습이 사라진 그 시 간부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 말이나 꺼내기라도 하면 바로 유안 의 일을 말할 것 같았기에 아예 말 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른후. 라이엔과 미하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공간 이 열릴때의 파동을 느끼고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사실의 한 구석 에서 공간을 통해 막 걸어나오고 있는 훼이의 모습이 보였다. 미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달려가다시피 훼이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것은 라이엔도 마찬가지 였다. " 며칠간 정양을 시키면 곧 깨어날 거야. 생기를 많이 잃기는 했지만." 조금전 명계에 있을 때만 해도 눈에 띄게 창백했던 유안의 얼굴은 고르게 혈 색이 돌고 있었고 마치 잠든 듯이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이엔은 훼이의 품에 안겨있던 유안을 조심스럽게 건네 받았다. " 형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 정말 고마워요. 훼이...." 미하는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훼이에게 말을 건넸다. " 나 역시 흑룡 일족의 하나일 뿐이니까 당연한 일을 한거다. 유안은 소중 한 후계자니까." " 형님. 오늘 만큼은 궁에서 머물다 가세요. 드릴 말씀도 있고..." 라이엔의 말에 훼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 그냥 오늘은 돌아가겠다. 그리고 내일 다시한번 들르도록 하지." " 궁은 불편하신가요...." 미하가 묻자 훼이는 조금 씁쓸해보이는 표정을 떠올렸다. "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그 숲 뿐이죠." 이래서 싫었다. 일족들을 대할때마다, 궁 안에 발을 들일 때 마다 기억 저편 에서부터 떠오르는 시간의 파편들은 평정심을 유지해왔던 훼이의 마음을 휘 저어 놓았다. 이제 굳게 닫으리라고 결심한 자신의 마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궁으로 돌아올 날은 없어야 한다. 그것만이 훼이 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최선책이었다. 훼이의 가벼운 손길에 의해 다시 공간이 열렸다. " 형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훼이는 엷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훼이가 없는 숲은 너무나 텅빈 공간처럼 느 껴졌다. 유에린은 바닥에 놓인 채 은빛을 발하고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자신이 사용 하던 검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려놓은 상태였고 훼이가 쓰던 검은 그가 급 히 자리를 떠났기에 아무렇게나 바닥에 팽개쳐진 상태였다. 훼이의 세검에도 역시 손잡이 부분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비(飛)라 는 한 글자. 그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유에린으로서는 알 수 없었 지만 각각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이 검에 지난 추억이 담겨 있는 것만은 확실 했다. "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유에린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돌아선 유에린의 눈에 막 사라져가는 공간의 모습이 비쳤다. " 빨리 돌아오셨네요." " 명계는 시간이 흐르면서도 흐르지 않는 곳이니까." 훼이가 하는 말의 뜻을 잘 알수는 없었지만 훼이의 모습을 대하자 마음이 놓 였다. " 다시 한번 검을 겨루어 보도록 하지." " 네." 유에린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훼이에게 건넸다. 이름이 새겨진 손잡이 부분이 다시 한번 유에린의 눈에 들어왔다가 훼이의 손에 가리워졌다. ====================================================================== 와...오늘 또 추천을 받았네요. 제이슨님 감사 ^0^ 음...동양 환타지라는 장르를 소화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동양적인 문체를 만들었 는데요. 그게 이거에요.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말고도 저도 정통 환타지 쓰는 게 있거든요. 거기서의 문체는 흑룡의 숲이랑은 또 많이 달라요. 언젠가 흑룡의 숲이 다 끝나면 올릴 생각입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번 호 : 601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5일 00:0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8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一.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약속하자. 넘치는 이 술한잔으로 끝나지 않을 시간동안 어디에서도 너와 내가 함께일 것을. 一. " 파이론. 여기가 좋지 않겠어요?" 가벼운 흰색 경장 차림을 한 챠렌은 아무런 장식 없이 머리를 묶고 있어 무척 이나 자유분방해 보였다. 파이론은 그녀가 가리킨 넓은 초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론은 언 제나 처럼 활동적인 중간 길이의 파오를 걸치고 있었다. 궁에 있을 때 입는 옷보다는 좀 더 평범한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현재 입고 있는 파오역 시 꽤나 고급스러운 소재가 쓰인 것이었다. 푸른 들판에 선 파이론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이었다. 그가 가진 흰 색의 머리카락이 더욱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지도 몰랐지만 용족이라는 그들 이 가진 이름은 하계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 오늘로서 벌써 천계 시간으로 열흘은 지났겠어요. 파이론." " 그러니까 여기서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자는 거지." 챠렌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 혼인하기 전에는 이런 성격인 줄 몰랐었는데..." " 마찬가지야. 보좌관으로서의 당신은 질릴 정도로 완벽했으니까." 둘은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듯 잠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소탈하면서도 자로 잰 듯이 똑바른 생활을 고집하던 챠렌과 적당히 넘어가기 를 즐기던 파이론과의 만남은 분명 의외의 것이었다. 눈에 뜨일 정도의 미모 를 가졌던 챠렌은 보통의 여인들처럼 자신을 꾸미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았고, 또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 기억해요... 파이론?" " 뭘?" 푸른 초지를 쓸어 내려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챠렌은 입을 열었다. " 가끔씩 이렇게 넓은 자연을 마주 대할 때면 떠오르곤 해요...." 챠렌은 어깨에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잠시 말을 멈췄 다. " 아버지의 마음이란 거......" "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 제가 감상적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 전해들었던 흑룡족 왕 가의 이야기는 지금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했었죠." 파이론은 아무말 없이 챠렌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 가장 오래된 자.......인가....." 너른 평원의 어딘가를 바라보며 파이론은 작게 중얼거렸다. " 자, 이제 오랜만에 힘을 겨뤄봐요. 아직까지 당신이 왕에 어울리는 힘을 유지하고 있는지 시험해 봐야 겠어요." 챠렌은 기대감과 장난스러움이 배인 눈동자로 파이론을 응시하며 말했다. " 챠렌. 아무리 그 동안 변변한 싸움 한번 치르지 않았다지만 난 엄연히 백 룡일족의 왕이라고." " 강조하지 않아도 알아요." 파이론은 챠렌을 감싸 안았던 손을 풀며 피식 웃어 보였다. " 챠렌. 아무래도 당신은 싸움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군." " 당신이 백룡족 답지 않은거에요." 가벼운 어조로 대답하고 나서 챠렌은 나는 듯이 가볍게 몸을 움직여 파이론 의 반대편에 가서 섰다. " 먼저 공격하죠." [ 풍천( 遷) 회륜(回輪)! - 바람을 근본으로 하는 상위 공격주문 - ] 하늘을 뚫을 듯이 높게 회오리가 솟아올랐다. 강력한 힘의 여파에 휩쓸린 풀 들이 바람 속에 뒤섞여 하늘에 떠올랐다. 자신에게로 짓쳐들어오는 강력한 용권풍(龍卷風)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 쉰 파이론은 챠렌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 * * " 전하. 돌아오셨군요." " 비 전하께도 인사 올립니다." 막 풍천궁(風天宮-백룡궁의 정식 명칭)의 대전 안으로 들어선 파이론과 챠렌 을 맞이하며 그 동안 둘을 대신해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두명의 장로가 허리 를 숙여 인사했다. " 그 동안 별일 없었나?" " 아...예. 큰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청룡궁에서 백룡왕 전하를 모시고자 하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파오와 장포를 섞은 듯한 모양의 넉넉한 품의 의복을 걸친 두명의 장로중 선 이 굵은 생김새의 장로가 청룡왕의 인장이 찍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파이론은 장로에게서 받아든 서신을 펼쳐 들었다. 한동안 서신을 읽어 내려가 던 파이론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떠올리며 서신을 챠렌에게 건넸다. " 곤륜쪽에서 그런 일이 있었군....." " 흑룡왕비께서 상당히 놀라셨겠군요." 다 읽었는지 서신을 원래대로 접으며 챠렌이 대답했다. "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걸까요...." " 그거야. 무료하기라도 한 모양이지." 챠렌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 명계쪽이라면 섣불리 건드릴 수는 없지요." " 오랜만에 천계가 좀 활기차지는 건가?" 챠렌은 흥미로운 듯이 미소짓는 파이론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 전하. 그리고 비전하.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두 장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대전에서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넓은 대전 안에는 입구를 지키는 병사 네명과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비 몇 명만이 남았다. 거대한 나무 기둥이 곳곳에 세워져 있 는 대전은 수백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바닥에 깔려 있 는 백색의 대리석은 거울처럼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매끄럽게 손질이 되어 있 었다. " 아직 회합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사실(私室)에서 술이나 마실까?" 챠렌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 진지하게 좀 생각해봐요. 명계는 손대기 까다로운 곳인 만큼 이번 일은 심각하다구요." "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5대 용왕의 힘을 당해낼 순 없어. 그건 그렇 고 실로 오랜만의 회합이로군....." 느긋하게 말을 잇는 파이론은 위기감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태평한 얼굴이었다. " 누가 사실에다 천화주를 좀 준비해 두도록 하거라." 챠렌이 말하자 입구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비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전에 서 빠져나갔다. " 큰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니 아무말도 않 겠어요." 파이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챠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 자, 사실(私室)로 옮깁시다." 300여년의 시간을 함께 지내왔지만 파이론은 지나치게 태평한 것 같았다. 용족. 그중에서도 다음 왕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명계로 끌려간 사태가 일어났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이론은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 족이 아니기에 태평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감이 넘치는 것인지 챠렌으로서도 잘 알 수 없었다. 겉으로는 파이론에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챠렌도 속으로는 가벼운 기대 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천계는 너무나 평온했기에.. 어느 정도의 가벼운 자극은 필요한 것이다. 용족이라는 긴 수명을 가진 종족으로서는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소재 가 필요했다. 그때문에 청룡왕은 5대 용왕들에게 회합을 요청한 것인지도 모 른다. ====================================================================== 마요님이 감상을 써 주셨습니다. 아이 좋아...^0^ 저는 동양환타지에 무협적 요소가 많이 내포되어 있으면 읽는 분들이 싫어하시진 않을까 생각했었는데요. 머... 무협적이라고 느끼셨다면 그렇게 봐주세요... (사실...전 엄청난 무협 매니아 ^^) 원래 4장을 좀 길게 설정을 했었는데 지금 내용이 5장에 더 맞는 것 같아서 5장으로 넘겨버렸습니다. 어쩌면 5장은 3장 만큼이나 길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읽어주셔서 감사. 꾸벅. 번 호 : 609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5일 23:5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7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二.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二. 성휘와 훼이가 다시 만난 것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다시 만난 훼이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버릇처럼 지어보이던 슬픈듯 한 미소대신 희미하긴 했지만 행복해보이는 미소가 입가에 떠올라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훼이는 반갑게 자신을 맞이하는 성휘에게 약간의 의문을 담아 물었다. " 내게도........ 내 마음을 맡길만한 여인이 생겼거든..." 그렇게 말하며 쑥스러운 듯이 웃는 성휘는 분명 행복해 보였다. 비록 1년전의 일로 본궁에서 쫓겨나 근신생활을 하고 있긴 했지만 오히려 성 휘는 답답함을 벗은 듯이 밝아져 있었다. " 비는? 잘 있지?" 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는 연화(蓮花)라는 이름의......검선(劍仙)이야... 부끄럽지만 유배지에서 그녀의 구함을 받았지......" 1년 사이에 더 길게 자란 성휘의 머리카락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가지런하게 묶여 있었다. " 다행이군... 행복해 보여서..." 성휘의 얼굴에 떠오른 어렴풋한 미소는 훼이에게도 그가 느끼는 기분을 전해 주었다. 나무를 깎아만든 정교한 목검을 들고 성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성휘의 앞에 마주선 비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올려든 채였다. 비록 연습이었기에 진검을 쓰지는 않았지만 마치 진검승부를 할 때처럼 둘은 호흡하나 흐트리지 않고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서로 대치 상태에 접어든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비의 검 끝이 미미한 흔들림을 보이며 성휘의 손 목을 노리고 움직였다. 비가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후에도 성휘는 여전히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얇은 목검의 검날이 손목에 막 닿으려던 순간 성휘는 손목의 탄력을 이용해 자신의 목검을 움직여 비의 검을 막아냈다.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성휘의 검이 비를 향해 움직여 갔다. 비는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성휘의 검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하며 왼쪽에서 짓쳐들 어 오는 검을 막았다. '탁'하고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둘의 검 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 그러길 여러차례. 둘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 지기 시작할때쯤 비는 성휘의 눈을 마주 대하며 싱긋 웃어보였다. " 잠시 쉬도록 할까요...." 검을 마주 대하고 있던 성휘 역시 가볍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궁에 속한 별궁 정원답게 꽤 넓직한 초지에 주저 앉아서 비와 성휘는 서로 의 실력을 칭찬했다. 성휘로서는 검선인 연화와 대등해지고 싶다는 바램에서 검술을 연마하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훼이를 따라나선 비 역시 검에 흥미를 가졌다. " 나날이 실력이 늘어나는 구나. 이제 얼마 안있어 나 정도는 눈감고도 이 길 수 있을 것 같은데....?" " 아직 멀었어요. 전 검을 배우기 시작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잖아요." " 이제 내가 알고있는 검술은 거의 바닥이 났으니 네게 가르쳐 줄 것도 없 고 말이다." 훼이에게 주문을 배울때와 마찬가지로 비는 검술 또한 금방 익혀나갔다. 성휘 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별궁을 지키는 천군들에게 검술을 배우기도 하고 아 주 가끔이긴 했지만 연화에게도 검술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비에게 가르쳐 주었다. 확실히 혼자 하는 것 보다는 둘이 함께 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 이 되었다. " 오늘은 벌써 끝났나 보군." 비와 성휘는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궁 건물과 맞 닿아 있는 동쪽편에서 공간을 열고 훼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거야. 요즘은 비 혼자만 보내고 말이야." 약간의 책망이 담긴 어조로 성휘가 말을 건네자 훼이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 이거 안돼겠군...... 둘을 위해 준비해 온 것이 있었는데....." " 정말이세요. 아버지?" 비는 금새 기대감에 찬 눈빛을 훼이에게 돌렸다. " 잠시만 기다려라. 너무 조급하게 굴면 주기가 싫어지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훼이는 아직 닫지 않은 공간 안으로 왼손을 집어넣어 무 언가를 꺼냈다. 흰 천에 싸여있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길쭉 한 것이 막대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 자, 내가 주는 선물이다." 훼이는 성휘와 비에게 길다란 보퉁이를 하나씩 건네 주었다. 어리둥절한 표정 으로 그것을 건네받은 성휘는 손에쥔 그것에서 어느정도의 무게가 느껴지자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비는 감싸여 있는 흰천을 서둘러서 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길다란 검을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 와..... 검이군요......" " 손잡이를 보거라." 검신에만 정신을 팔고 있던 비는 훼이의 말에 손잡이로 시선을 돌렸다. 손잡 이에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씨체로 비(飛)라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 다. 그리고 막 흰천을 벗겨내려간 성휘의 검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기뻐하며 검집에서 검을 꺼내 이리저리 검을 휘둘러보는 비와 달리 성휘는 한동안 아 무말도 하지 못했다. " ......고마워." 훼이는 성휘 곁으로 다가선후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 맘에 드는지 모르겠는데...." " 무척.....마음에 들어..." 성휘는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휘에게는 지금까지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그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가벼운 통증이 일었다. 지금은 정말이지 행복했다. 비록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근신에 처해지긴 했지만 지금의 성휘에게는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여인 연화도 있었고, 무료하게 이어지는 자신의 시간을 함께 채워주는 비가 있었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그토록이나 원하던 친구라는 이 름이 과분할 정도로 어울리는 훼이도 있다. 정말이지 아주 사소한 일상의 행복이었지만 성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처럼 기뻤다. " 아버지. 고맙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날카로운 검날에 시선을 빼앗긴 채 비는 큰 소리로 외쳤다. " 진검을 가진만큼 좀더 책임감을 키워야 한다." " 네. 명심할께요." 밝게 미소짓는 비의 머리를 훼이는 가볍게 쓰다듬었다. * * * * 라이엔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져 있었다. 흑룡왕비 미하의 모습이 옆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 유안이 깨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유안은 괜찮습니까." 파이론은 라이엔에게 인사를 건네고 난 후 넌지시 물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라이엔은 파이론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가 온 것을 알아챘다. " 아...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 비께서 심려가 크시겠어요." 챠렌은 걱정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 예....계속 유안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 그렇겠죠... 이 일로 비께서도 몸이 상하시지는 않을지 걱정 되는군요." "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파이론과 챠렌이 라이엔에게 몇마디를 건네는 사이 다른 용왕들이 들 어섰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라이엔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청룡왕의 집무실은 깔끔했다. 벽면에 걸려있는 수묵화와 몇 개의 글귀들. 그 리고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책장에는 청룡왕이 즐겨 읽는 서책들 이 잔뜩 꽃혀 있었다. " 오늘 이렇게 자리해주신 용왕 및 용왕비들께 우선 인사를 올립니다." 먼저 인사를 건넨 29대 청룡왕 리판은 집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용왕과 용 왕비들에게 차례대로 시선을 던졌다. 리판이 앉은 자리로부터 둥글게 원을 그 리며 자리한 오대 용왕과 비들은 모두 9명이었다. 이번일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흑룡왕의 비인 미하만이 이 자리에 없었다. " 이번 회합의 목적은 명계에서 용족을 상대로 벌인 일 때문입니다. 우선 서신으로 대략적인 내용은 말씀 드렸지만 여기 계신 흑룡왕님으로 부터 직접 사정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각각 자신의 힘을 상징하는 색의 파오를 걸친 용왕들과 간소한 궁장 차림의 비들은 모두 진중한 표정으로 흑룡왕을 주시했다. ========================================================================== 앗...어제 올린 글에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백룡족의 공격주문중에 풍천 회륜이란게 있었잖아요. 거기서 풍자가 한자 지원이 안되더군요...^^ 林+風 이었는데.....(에잇..구린 컴퓨터 같으니라구) 그러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13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6일 23:2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三.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三. " 그곳. 서천(逝川)은 천상계에서 가장 험한 지역으로 소문난 곳이지. 깍아 질 듯이 높은 산들과 험하디 험한 지형. 그때문에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 아. 그리고 내가 유배를 명 받은 곳은 그 서천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서천강 부근이었어." 부드럽게 울리는 성휘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지도 않았다. " 혼자인 건 궁에서와 마찬가지 였지만 그곳은 너무도 고요한 곳이었지. 그 곳에 간 이후로 한달 동안은 인기척조차 느끼지도 못했었으니까. 나는 매일같 이 서천강의 강둑에 앉아서 건너편을 바라보고만 있었어. 그곳에는 서책들도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만한 건 하나도 없었거든. 그저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 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 훼이는 미안해졌다. 자신을 유일한 친구라고 말해주는 성휘를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를 듣는 것 뿐이었지만 마음 속에서부터 성휘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 그리고 언제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언제나처럼 강둑에 앉아 있던 어느날.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지. 그 험한 강물위에 배를 띄우고 능숙한 솜씨로 노를 저어가며 그녀는 내가 있는 쪽으로 건너왔어. 그리고 그녀는 날 보더니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쳐갔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표정이 떠오르지 않은 얼굴이었는데도 선명하게 가슴속에 남았지..." 그리고 나서 성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성휘의 입가에 희미하게 떠오른 미소 는 그때를 회상하듯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 검선이라면 어떤 자리에 있지?" 훼이는 처음으로 연화에 대해 물었다. " 검선 중에서도 천(天)의 직급을 가지고 있지.... 파란색의 허리끈으로 상징 되는... 아마도 지금 천의 직급을 가진 건 그녀뿐일거야. 천의 직급은 검선중 에서도 최고를 칭하지. 천군 대장보다도 높은 자리니까...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실력을 볼 수 있었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검날의 움직 임도 그리고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 연화라면 훼이도 단 한번이지만 본 적이 있었다. 얼굴에 표정다운 표정조차 떠올리고 있지 않아 과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무심한 얼 굴. 하지만 성휘를 대할 때 만큼은 그녀의 얼굴도 조금이지만 부드럽게 풀렸 다. 근신중인 성휘였기에 현재 천궁의 수비를 맡고 있는 그녀는 궁을 둘러본 다는 빌미로 잠시 별궁에 들르는 것이었다. " 그녀에게 구함을 받은 건 서천쪽으로 도망친 한 죄인이 날 공격한 직후 였어. 그때 난 무기라고 할 만한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데다가 설사 있었다 고 하더라도 그걸 휘두르는 방법조차 알 수 없었을 테지만. 나름대로 몸을 굴 려 피하긴 했는데 죄인이 가진 검에 팔을 스치는 상처를 입었지. 그리고 바로 그때 그녀가 나타났지." 성휘는 싱긋 웃어보였다. " 아무래도 그때 그녀의 검 휘두르는 모습에 반했나봐. 그때부터 나도 검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한쪽 벽에 걸어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검을 바라보며 성휘는 다시 말을 이 었다. " 유배지에서 7개월정도 후에 돌아오게 되기까지 난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었지. 그녀가 맡은 서천을 둘러보고 점검하는 일이 끝나면 그녀는 내게 피 리부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 그녀가 가진 검은 평소에는 길다란 옥피리의 모 양을 하고 있었는데 싸움을 할 때에만 검으로 변했지. 예전에 검선의 천의 직 급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검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 요즘 자주 피리를 분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군." 성휘는 조금 멋적은 듯이 웃었다. " 그리고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었어. 훼이가 어떤 마음으로 화연에게 말을 걸었을지." 훼이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은 무척 행복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 소중한 이가 셋씩이나 있으니 까." " 다행이군. 그렇게 느끼고 있다니..." " 이제 내게도 운이 따라주는 지도 모르지." 아직 상천궁에서는 성휘와 연화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 만 결국 그 사실은 알려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또다시 성휘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성휘의 얼굴에 떠오 른 미소를 이대로 지켜봐주고 싶었다. 피의 이어짐..... 훼이는 잠시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피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 았다. 이제 인연을 끊은 부모님과 자신의 일족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 비. 그리고 한 순간 훼이는 지금의 평화가 영원히 계속 되기를 빌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절하게. * * * 성년식.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에 치르게 되는 그 의식은 한명의 성인으로서 용족 의 일원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날이었다. 지금까지 몸 속에 잠재되어 있던 용 족이 가진 진정한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날이자 이제 앞으로의 삶을 혼자 힘 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나이와 힘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성년식은 힘을 깨우기 위한 노래와 진언이 그 주를 이룬다. 특별한 힘이 담긴 노래를 통해 몸속에 잠들어 있던 힘을 깨우고 진언으로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하는 것이다. 보통 성년식을 치를때가 되면 핏줄이 이어진 친족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주기 마련이었다. 생애에 단 한번 맞이하는 날이니 만큼 소란스럽다고 여겨질 정도 로 많은 이들이 모여드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비의 성년식에는 훼이를 제외한 단 두명의 하객들이 예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반쪽짜리 용족 아이의 성년식은 축하해주려 하지 않는 것이 었다. 초라하게 치뤄질 비의 성년식이 다가올수록 훼이는 자신을 책망하는 마 음이 더 깊어져 갔다. 적어도 아버지라면 성년식 만큼은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치뤄주고 싶었건만 아직까지도 완고한 흑룡왕은 비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놀랄 정도로 자신의 모습을 닮아있는 비의 모습을 대할때마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고요한 눈을 대할때마다 훼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곤 했다. 나이와는 맞지 않는 침착함을 가진. 단 한번도 잘 못된 일을 한 적이 없는 자신의 아들. 요즘들어 부쩍 힘이 강해진 비는 이제 혼자서 수행을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성인식을 치루기 전에 하계에 다녀오겠다며 떠난 비의 뒷모습을 훼이는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커버렸는지...... 그렇게 홀로 정자에 앉아 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던 훼이는 이곳으로 오고 있는 낯선 방문자의 존재를 깨달았다.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미미하게 느 껴지는 진동이 곧 공간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훼이의 짐작대로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붉은색의 치파오를 걸친 늘씬한 여인의 모습. 예전보다 더 강해진 듯한 기운 이 그녀의 전신에 맴돌고 있었다. " 오랜만이군요. 훼이...." 낯선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타는 듯이 붉은 머리 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그녀는 28대 홍룡왕 후계자인 화란이었다. 그녀와는 지난번에 상천궁에 초대받았을 때 이후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 다. 훼이는 갑작스런 그녀의 방문에 놀라긴 했지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 오랜만입니다. 화란." 화란은 훼이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어 기쁘다는 듯이 싱긋 웃어보였다. " 훼이답지 않네요. 이렇게 적막한 곳에서 파묻혀 지내다니...." " 무슨일로 이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바쁘실텐데...." 화란은 훼이의 반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 당신의 아들 이야기는 들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성년식을 치룬다죠? 노래를 불러줄 사람은 구했나요?" 경쾌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훼이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 그건 왜......" " 혹시 아직까지 구하지 못하셨다면 제가 그 역할을 할까 해서요." " 화란... 당신이 말입니까....?" 훼이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 물론이죠. 성년식에서 노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계시잖아요." " 그거야 그렇지요." " 제 짐작이 맞다면 아직 구하시지 못한 것 같은데.....맞나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 그럼 제게 맡겨주세요. 성년식은 하객이 많은 편이 좋으니까요." 화란의 저의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먼저 나서고 있었기 에 거절할 수는 없었다. " 그럼 부탁드립니다." 훼이는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 치파오는 여성용 중국 전통 복식의 이름입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에서 공리가 자주 입고 나오죠. 5장은 제목처럼 많은 사건이 나옵니다. 얼마나 길어질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전 무대뽀로 쓰기가 특기이기 때문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번 호 : 644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8일 00: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四.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四. 화란은 별궁의 한 방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홍룡족의 후계자인 그녀가 왜 자 신을 찾아온 것인지 훼이는 아직까지 짐작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가 밝힌 이 유는 비의 성년식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겠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훼이는 순진하지 않았다. 늘씬한 그녀의 몸을 감싼 치파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붉은 색이었다. 그리 고 옷에 새겨진 무늬는 불꽃의 새 주작이 날개짓하는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이 정교했다. " 비라는 이름은 당신이 붙인 건가요?" 한동안 멀찌감치 서서 훼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화란이 훼이에게 다가서며 물 었다. " 아니요. 제 아내가 붙인 이름입니다." " 아....." 화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멈췄다. 별궁은 다른 곳보다 조금 높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별궁에 서 보면 멀리 자리한 흑룡궁의 본궁이 눈에 들어왔다. 점처럼 작아서 겨우 윤 곽을 알아볼 수 있을만한 거리였지만 훼이에게는 그 작게 비치는 건물 하나 하나가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온 곳이었기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비에게도 내가 어릴적에 뛰어놀던 곳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비는 며칠후면 이곳 별궁에서 성년식 을 맞이하게 된다. " 당신의 마음을 빼앗은 인간 여인이라니.....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화란은 훼이가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 흑룡궁의 본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분명 자신의 의지로 궁을 나오긴 했지만 그곳은 언제고 돌아가야할 곳이었다. " 언제고 용족은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 세계 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임에도." 그제서야 훼이의 시선이 화란에게 향했다. " 무얼 말하고 싶은 겁니까....." 화란은 활짝 핀 모란꽃처럼 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히 화란에게는 다른 이의 시선을 끄는 존재감이 있었다. 다른 용족에 비해 여성 용왕이 많이 나오는 홍룡족은 모계의 혈통이 강했다. 그 때문인지 역대 용왕의 반 이상이 여성 이었다. 전투적 성향이 강한 홍룡족 답게 화란 역시 평소에도 강하고 활발한 성격을 드러냈다. 전투 상황이 되면 그녀는 지금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다. 폭발할 듯이 뿜 어져 나오는 그녀의 투기(鬪技)는 남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힘차고 강 했다. 훼이도 몇번 그녀가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그녀를 떠올리면 지금의 얌전한 모습은 동일인물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제 성격상 돌려 말하는 건 성미에 안 맞으니까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더욱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 전 당신이 좋아요. 예전에는 당신이 저와 같은 후계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말을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단도직입적인 그녀의 말에 훼이는 잠시 말을 잃었다. " 지금의 당신이라면 제 남편이 되더라도 아무런 장애가 따르지 않아요. 전 예전부터 당신을 봐왔는데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은 다른 곳이더군요." 훼이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화란... 그대에겐 미안하지만 내게 있어 유일한 아내는 화연뿐입니다." 화란은 전혀 실망하지 않은 얼굴로 여전히 미소지었다. " 괜찮아요. 곁에 있다보면 언젠가는 좋아지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우리에겐 그만큼의 시간이 있구요." " 생각하는 건 그대의 자유지만 마음이란 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 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훼이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 아니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가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는지는 모르지만 제겐 그걸 메울만한 자신이 있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화란은 몸을 돌려 별궁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마음이라......." 훼이는 낮게 중얼 거렸다. * * * * " 그 동안 명계와는 서로간에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기에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그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청룡왕 리판은 길게 치켜 올라간 눈으로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번일에 연관된 것이 교룡(交 龍)이라는 사실입니다." " 그렇다고 해서 용족 전체가 나설 정도로 일을 확대시킬 수는 없겠지요." 5대 용왕 중에서 가장 젊은 황룡왕이 차분하게 말했다. 갓 400을 넘긴 나이의 그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차분함이 몸에 배인 청년 이었다. " 그래서 이번 회합을 열게 된 것이지요. 물론 전면전으로 확대시킬 만큼 큰 사건은 아니지만 차후를 위해서는 미리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 다." 26대 황룡왕 청류(晴琉)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교룡이 연관된 만큼 용족이 나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것은 명계의 지배 자라 하더라도 감히 나서서 막을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던 흑룡왕 라이엔이 입을 열었다. " 간과하신 것이 있는데 교룡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우리 용족입니다." 라이엔의 말을 듣고 다른 용왕과 비들은 동의의 뜻을 표했다. "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입니다. 교룡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용족들의 생기 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그 교룡이 죽은자라는 사실 때문 이긴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챠렌이 말을 받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보통의 비들과는 다른 단호함이 떠올라 있었다. " 흑룡왕님의 후계자를 구하기 위해 흑룡족의 훼이님이 명계에 다녀오셨다 고 들었습니다만, 그 분은 그 교룡을 없애지 않으신 모양이더군요." " 명계에서 함부로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 까." 홍룡왕 란의 말에 라이엔이 가볍게 반박했다. 전대 홍룡왕이 일찍 자리를 물려주는 바람에 란은 5대 용왕 중에서 가장 나 이가 많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겉보기에는 전혀 그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 큼 젊어 보였다. 목덜미를 살짝 덮을 정도의 길이로 자른 붉은 머리카락은 약 간 구불거렸다. " 하지만 훼이님이라면 명계의 주인도 아무말 하지 못할텐데요. 그가..." " 그분도 생각이 있었으니 그렇게 하셨겠지요. 더 이상 그분을 들먹이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파이론이 조금은 신경질적이게 들리는 홍룡왕 란의 말을 끊었다. "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누가 어떻게 나서서 일을 처리할 것인가 겠지요." " 교룡이 감히 천계에 들어설 생각은 하지 못할테니 하계로 수행을 가는 자 들에게 주의를 시키는 것이 좋겠지요. 성년이 지난 용족은 건드리지 못한 다 는 것이 이번 일로 판명이 되었으니 어린 용족들만 잘 보호하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황룡왕 청류가 제안하자 대다수의 참석자들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간단히 끝날 문제라면 회합을 열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파이론은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 그럼, 뭔가 해결책이라도 있습니까?" 평소에 성질 사납기로 소문난 홍룡왕 란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 괜찮다면 제가 제안을 하지요." 파이론은 란을 향해 가벼운 냉소를 보내며 말을 꺼냈다. ================================================================= 허억.....이러다 정말 삼류 무협지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냥 동양 무협환타지라는 새 장르라고 우길까.....--;;; (역시 5년 동안 본 무협의 힘은 대단하다..... 무협 만세 ^^;) 헛소리 였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 번 호 : 65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9일 00:0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五.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五. " 돌아오셨어요. 비님." 막 별궁 안으로 들어선 비를 향해 별궁에 머무는 시비 중 하나가 인사를 건 넸다. 비보다 두배 정도 나이가 많은 시비들이었지만 언제나 깍듯하게 그를 대했기 때문에 비는 조금 부담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훼이와 거의 비슷하게 자란 키와 조금 마른 듯해 보이지만 균형잡힌 몸. 그리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깊이를 가진 검은 눈동자. 비는 그다지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 로 였다. 이제 성년식을 맞이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훼이에게 있어서 비 는 언제고 아이의 모습으로 비칠 것이기에. " 아버님은.....?" 비는 아직까지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망설이며 시비에게 물었다. " 훼이님께서는 내실에 계십니다. 그리고...... 손님이 계십니다." " 손님?" " 성년식을 도와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 아........" 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실로 향했다. 뒤돌아서 걸어가는 비의 뒷모습 을 보며 시비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 아버님. 비입니다." " 그래. 들어오너라."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비가 말하자 언제나처럼 차분한 훼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연한 갈색의 나무로 된 문에는 정교한 초목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오랜동안 익숙하게 잡아온 손잡이에는 희미하게 얼룩이 져 있었다. 거의 아무런 소리도 없이 미끌어 지듯이 문이 열렸고 비는 안으로 들어섰다. " 다녀왔습니다." " 그래. 수고했다." 훼이는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답했다. " 그분께서는........" 비는 들어섰을 때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 화사하게 피어난 꽃과 같은 아 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화란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 아. 소개하마. 28대 홍룡왕 후계자이신 화란님이다." " 홍룡족의 후계자시군요. 인사올립니다." 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아......" 화란은 가벼운 탄성을 내뱉으며 비의 인사를 받았다. " 정말 훼이를 많이 닮았군요. 예전에 훼이와 처음 만났을 때를 보는 듯 해 요." " 저도 비를 볼 때마다 놀라곤 하지요." 훼이와 나란히 앉은 화란의 모습을 보며 비는 조금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뭐 라고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감정이 마음 속에서부터 떠오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향기가 없음에도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모란꽃과 같이 화란은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훼이 역시 마주치면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운과도 같은 향기를 지닌 남자였 기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 이틀 후로 다가온 성년식을 위해 화란님이 와주셨단다. 몸속에 잠들어 있 는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노래가 필요하지." " 아...예. 감사합니다. 화란님." 화란은 엷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렇게 지나치게 감사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높여 부르지 말아요. 둘다..... 전 지나친 격식은 싫어하니까." " 그건...." " 비. 너도 와서 앉거라. 막 도착했으니 피곤할테지." 비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얼굴을 굳히며 자리에 앉았다. " 저는 훼이 말고 검은 파오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 각도 못했었는데...." " 그래요?" 즐거운 듯이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비는 조금전부터 느껴지던 알 수 없는 감정이 조금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 * * 비의 성년식이 열리는 것을 축하하듯이 하늘은 보통때보다 좀 더 화창하고 맑게 개여있었다. 초대를 받고 참석한 성휘와 연화는 처음 보게 될 용족의 성년식에 대한 기대 로 가득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거의 표정의 변화가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연화조차 기대감을 품고 있는 듯이 보여 훼이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성년식을 위해 참석해준 손님은 성휘와 연화. 그리고 화란 뿐이었지만, 별궁에 서 생활하는 다섯명의 식솔들 역시 비의 성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함께 자 리했다. " 자, 그러면 시작하도록 합시다." 훼이가 말을 꺼내자 별궁 정원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은색실로 용의 모습이 수놓인 파오를 입은 비가 들어섰다. 오늘의 성년식을 위해 세명의 시비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파오는 비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훼이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비는 훼이의 바로 앞까지 걸어온 후 걸음을 멈 췄다. 그러자 훼이는 비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 그대. 흑룡의 피를 이은 그대가 세상에 태어난 지 백년을 맞이한 오늘. 몸 속에 잠자고 있는 힘을 일깨워 완전한 성년으로의 탈바꿈을 명한다." 훼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화란이 노래를 시작 했다. 아무런 악기의 소리도 없이 그저 그녀의 목소리만의 울림을 담은 그 노 래는 그 노래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성휘와 화연에게 있어서 도 신비하게 느껴질만큼 특별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용족의 힘을 깨우는 노래. 그 노래가 울려퍼지 는 동안 비의 온몸은 희미한 검은 빛으로 감싸였다. 어둠처럼 가라앉을 듯이 검은 색이 아닌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투명한 검은 빛이 비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투명한 검은 빛에 감싸인 비의 머리카락은 미풍에 흔들 리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비의 눈은 잠든 것처럼 스르르 감겼다. 화란의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투명한 검은 빛에 감싸인 이후 비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 었다. 여전히 비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훼이는 비의 온몸을 감싼 검은 빛이 처 음 보다 조금 더 짙어졌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귀에 들리는 분명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떤 말이 훼이의 목소리에 실려 나왔다. 마음을 격동시키는 울림을 가진 북의 소리처럼 강하게 훼이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비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빛이 완전한 암흑의 빛처럼 검 게 변했다. 비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그제서야 검은 빛에 잠겨있던 손을 빼내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화란의 노래소리 역시 멈췄다. " 어떻게 되는 거지?" 중앙에 검은 빛에 감싸인 비만을 남겨두고 훼이와 화란이 물러서자 성휘는 그때까지 참고 있던 물음을 던졌다. " 조금만 기다리면 이제 비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게 되지." " 새로 태어난다면. 설마 모습이 바뀌기라도 한다는 건가?" 훼이는 고개를 저었다. " 용족에게 있어 새로 태어난다는 말은 새로운 힘을 얻는 다는 뜻이지. 새 로운 힘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힘을 끌어내는 것이지 만." " 위험은 없는 것입니까...." 청량한 물소리 처럼 맑게 울리는 목소리로 연화가 물었다. 훼이는 짧은 인사 가 아닌 그녀의 말은 처음 듣는 것이어서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성휘의 가장 친한 친구가 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연화는 인사 이외의 그 어떤말 도 그에게 하지 않았었다. "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아무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비의 몸에 흐르는 인간의 피가 과연 성년식을 맞이한 이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그것은 훼이로서도 걱정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고 싶었다. 비 가 무사히 성년식을 치를 것임을. ============================================================================ 아...졸려...요즘들어 괜시리 피곤하네요. 여름이라 그런가. 여름은 너무 더워서 싫어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특히 저희집은 미치도록 더워요... 여러분도 더위에 지지않는여름을 보내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6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30일 00:1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六.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六. "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모든 참석자들의 만장일치로 오랜만에 열린 회합은 끝났다. 다른 용왕과 비들이 하나 둘씩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뜨고 있을 때, 라이엔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두 손을 포갠 채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 흑룡족에게 가장 오래된 자가 있다고 해서 너무 자만하는 것 아닙니까?" 한참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라이엔이 막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을 때 홍룡 왕 란이 명백하게 감정이 섞인 어조로 말을 건넸다. 다른 용왕들은 이미 방을 빠져나간 후여서 방 안에 남아있는 것은 라이엔과 홍룡왕 부부뿐이었다. " ......무슨.." "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용족들이 암묵적으로 흑룡족에게 한발 양 보하고 있는데. 전부터 무척 기분나쁘게 생각했습니다." 라이엔은 일순 황당함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며 아무말도 내뱉지 못했다. " 그 수명을 벗어난 것이 그토록 대단한 일이라면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을 정도군요."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그의 말에 라이엔은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평 소에 차분한 태도만을 보여온 라이엔으로서는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속에 이 런 격렬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랐다. "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우둔해서 그런지 알아듣기가 힘들군요." " 하하. 이거 참 의외로군요. 천하의 흑룡왕께서 우둔하다는 말을 다 쓰시 다니..." 순간적으로 터져나올 듯이 끓어오르던 화를 라이엔은 이성으로 억눌렀다. " 란, 그만하세요. 대체 무슨 짓이에요. 홍룡족의 왕이면 왕답게 처신하세 요." 확실히 여인들은 눈치가 빨랐다. 홍룡왕비는 라이엔의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 진 분노를 알아채고 자신의 남편을 만류했다. " 사죄드립니다. 흑룡왕님. 저희 홍룡족들은 워낙 성격이 불같아서...." " 아..예. 괜찮습니다." 고개까지 숙여가며 정중히 사과하는 홍룡왕비를 보며 라이엔은 화를 누그러 뜨렸다. 부인의 말에는 꼼짝을 못하는지 란은 잔뜩 찌푸린 표정을 떠올린 채 라이엔 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라이엔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홍룡왕 부부에게서 등을 돌렸다. " 다음에는 그분도 꼭 함께이길 빌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유치한 말장난을 하듯이 란은 뒤돌아선 라이엔에게 말했다. 라이엔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 * * 글세......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가장 오래된 자' 라는 말..... 정해져 있는 시간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과 관련된 무수한 이야기를 남긴채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흑룡 훼이. 언제나 그렇듯 시간을 초월한 자는 다른 이 들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었다. 라이엔에게 있어 훼이는 형이라는 단어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 에 훼이는 이미 후계자의 자리에 있었고, 훼이가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훼이보다 이백살 정도 아래인 남동생이 후계자 위를 물려받고, 그로부터 다시 라이엔이 후계자가 되기까지 훼이는 흑룡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아니, 몇번 돌아온 적은 있었지만 라이엔은 그때 훼이를 보지 못했었다. 그만 큼 훼이는 흑룡궁으로 돌아오는 것을 꺼려했고 방문하는 일이 생겨도 무척이 나 조용히 머물다 떠나가곤 했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살아가는 용족. 다른 이들의 눈으로 보면 초월한 존재인 그들. 그 용족에게 있어서도 그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훼이라는 존재는 화 제가 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명을 뛰어넘은 이유가 하늘이 준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었기에 더더욱... 라이엔도 어렸을 적에 훼이가 머무는 별궁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자신의 가 장 가까운 혈족인 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훼이의 이야기를 다른 이를 통해서 들어야만 했으므로. 라이엔은 형이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날. 라이엔은 훼이가 머물고 있는 별궁으로 갈 결심을 하고 그것 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라이엔의 두 눈으로 확인한 형의 존재는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큰 것은 아니었다. 그저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상처받은 눈을 가진 고독한 얼굴을 가진 낯선 존재였을 뿐이다. 시기가 나빴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훼이는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깊이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였으니까. 멀리서 그런 형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이 엔은 가까이 다가가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라이엔이 24대 흑룡왕이 되던 그때. 훼이는 더 이상 깊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은 눈을 한 채 흑룡궁에 찾아왔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 과감함 을 가진 훼이는 그곳에 없었다. 그저 검고 검은 두 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 고 마음을 닫아 버린 어떤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 흑룡왕 전하. 유안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기던 라이엔을 향해 기쁨에 잠긴 목 소리로 시비가 말을 건네왔다. 생각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서 유안의 시중을 들던 시비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 얼마나 됐지?" " 반시진 정도 전에 깨어나셨습니다. 지금은 훼이님께서 가져 오신 약을 드 시고 비전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 형님이.... 아직 계신가?" " 예. 세분이 함께 계십니다." " 전해줘서 고맙구나." 라이엔은 시비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회합이 열리지만 않 았어도 자신 역시 미하처럼 유안이 깨어날 때 까지 옆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 이었다. 핏줄이란 말로도 설명하지 못할 강한 끈과도 같이 연결 된 것이었다. " 유안......."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며 라이엔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 돌아오셨군요." 미하가 가볍게 미소를 띄운 얼굴로 라이엔을 맞이했다. "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아버지." " 몸은 괜찮으냐?" " 네. 백부님이 주신 약 덕분에 이젠 완전히 나았어요." 라이엔이 듣기에도 유안의 목소리는 보통때와 다름없이 힘찬 울림을 담고 있 었고 혈색 역시 보통때와 같았다. 라이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안이 누운 침상옆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유안의 머리맡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던 훼이는 아무말도 없이 두 부 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형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이엔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훼이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 그런 감사는 필요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 백부님은 약초에 관한 것도 잘 알고 계셔서 놀랐어요." 유안은 언제나 처럼 방긋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사람을 향해 밝게 말했다. 그러자 훼이는 손을 내밀어 유안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담담하게 웃었다. " 괜히 나이만 먹은 게 아니니까 말이다..." " 훼이. 오늘도 그냥 돌아가시지는 않겠지요?" 미하는 훼이가 돌아가려 할 때 미소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훼이는 대답없이 또다시 가볍게 웃었다. " 형님. 하루쯤은 머물다 가세요. 유안이 형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백부님. 부탁이에요."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셋은 훼이가 돌아가려는 것을 만류했다. " 솔직히 이야기 해서 난 이곳에 떠도는 과거의 기억들이 싫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난 강한 자가 아니야." " 형님....." 자신을 향한 세쌍의 시선을 느끼며 훼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훼이. 주제넘게 들리더라도 전 이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망각은 남겨진 자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자유라는 것을요......" " 다음에 또 들르도록 하지요." 등을 돌린 훼이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세사람은 볼 수 없었다. ======================================================================== 우웃.....머리 뽀사진다...아..이 얽히고 ?힌 시간들이여.... 난 숫자계산하는 게 젤 싫은데 어쩌다 이런 내용이 된 것인가.....T.T 나도 비축분 있었으면 좋겠다....매일 한편씩 쓰려니 언제 머리가 터질지 조마 조마.....(웃..동시연재는 힘들어... 빨리 완결내자... 완결....) 읽어주셔서 감사.....모기 조심하세요~~~ 번 호 : 666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1일 01:41 등록자 : ZPFANTS4 이 름 : 포럼운영 조 회 : 19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七.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七.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비의 눈에 비친 세상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 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이 정해진 어느 높이의 세상을 보아왔다고 한다면 지금 보이는 세상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 처럼 넓고 작았다. " 축하한다. 한 사람의 어엿한 흑룡족이 된 것을." 언제나 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린 얼굴의 성휘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 축하드려요." 그리고 성휘의 곁에 선 검선 연화 역시 짧은 축하의 말을 전했다. 훼이가 그 렇듯이 비 역시 연화가 길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비는 자신에게 축하를 전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같은 용족인 훼이와 화란. 그리고 별궁의 식솔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엷은 미소는 이제껏 지켜봐온 비의 성장을 누구보 다 기뻐해주고 있었다. " 우린 이만 돌아가야겠어." 모든 이들이 막 별궁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을 때 성휘가 말을 꺼냈다. " 벌써 돌아가시는 거에요?" " 아직 근신중이니까...." 성휘의 처지를 알고 있는 훼이와 비는 돌아가려는 성휘를 만류하지 않았다. " 그럼 다음에 뵙지요." 인사를 건네는 용족들을 뒤로 한채 성휘와 연화는 돌아섰다. " 언제 봐도 천계는 아름다운 곳이야. 천상계에서 느껴지는 중압감 같은 것 이 없으니까..." 혼잣말처럼 작게 성휘가 말하자 연화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성휘를 응시했다. " 하루빨리 말을 꺼내고 싶은데...기회가 생기질 않는군..." " 전 괜찮아요." " 하지만........"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 지금은 이대로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 연화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괜찮지만.... 그래도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 용족들이 공간을 여는 술(術)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인들 역시 각 계(界) 를 이동할 때는 특별한 힘을 쓰곤 했다. 용족들의 경우 아무 곳에서나 공간을 열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천인들은 각 계(界)를 잇는 문을 미리 만들어 두고 그곳을 통해 이동했다. 그것은 용족들이 오행의 힘에 가장 밀접한 영향력을 가지고 마력을 끌어내서 쓰는 것과 달리 천인들은 순수한 수련의 힘을 통해 그것을 길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제의 피를 이은 자들은 용족들이 태 어날 때부터 가지는 특유의 힘과 같은 피를 통해 전해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닌 자는 극히 일부로 보통의 천인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서만이 그 힘을 기를 수가 있었다. " 시간은 가장 큰 해약이 될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요. 지금까지 기다려 왔 잖아요." " 기다림이라..... 어떻게 보면 내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채운 감정이 바로 그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연화는 막 천상계로 통하는 공간의 입구를 열었다. "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수명부에 적혀있는 것 만이 전부는 아닐거라 믿 었는데......" " 갑자기 감상에 빠진건가요?" 연화의 말에 성휘는 피식 웃으며 공간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 어쩌면 그럴지도...... 훼이의 아들 비가 벌써 성년을 맞이했고, 나 자신이 그것을 지켜봤다는 사실이 그런 감상을 자아내게 한 걸거야." 연화는 간단한 도술로 공간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성휘의 곁에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아직까지 훼이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못했어...." " 하지 않는게 좋을 거에요." " ........그럴까....?" 연화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 그럴지도 모르지.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욱 행복할 수 있으니까. 다가올 날을 근심으로 채우며 기다리는 것 보다... 주어진 시간들을 즐겁게 보내는 것 이 더 나을 때도 있겠지..." 그 말을 끝으로 성휘도 연화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걸음만을 옮겼다. * * * 검은 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별들사이로 크게 얼굴을 내민 달빛을 바라보며 비는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성년이 되었다는 것. 언제고 다가올 일이었지만 막상 성년식을 치루고 나자 다시 예전의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자신이 오늘따라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원래 어른이란 건 이런 것일까. 그저 그동안 잠들어 있던 힘을 끌어냈을 뿐인 데 어제까지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생물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비는 두손에 힘을 주고 손바닥을 활짝폈다. 길게 뻗은 하얀 손가락과 손바닥 에 새겨진 가느다란 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이 두손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 성년이란 그런거야. 이제 스스로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 어느새 기척도 없이 비의 옆으로 다가선 화란이 말을 걸었다. 그녀의 몸을 감 싸고 있는 붉은색의 치파오는 검은 밤 하늘 아래서도 선명하게 그 빛깔을 드 러내고 있었다. " 아직 안 주무시고 계셨나요?" " 응. 난 이런 밝은 달빛을 좋아하지. 비 역시 그런 것 같은데?" " 그래요." 비는 선선한 밤 공기 아래에 혼자 앉아있는 것을 좋아했다. 온몸을 파고드는 희미한 냉기는 피부의 감각 하나하나를 일깨워 주곤 했다. " 난 이제 얼마후면 29대 홍룡왕이 될거야." 커다란 나무에 기댄 채 앉아있는 비의 옆에서서 화란은 모두가 알고 있는 당 연한 말을 꺼냈다. " 홍룡족은 전투 성향이 강한 일족이지. 무척이나 활동적이라서 한 곳에 머 무르는 걸 무엇보다 싫어해. 나도 과연 왕이 된 이후에 여러 가지 업무들을 참을성 있게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비는 화란을 빤히 쳐다보았다. " 내가 만약 홍룡족이 아닌 다른 용족으로 태어났다면 난 누군가의 비가 되 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홍룡족의 여인으로 태어났고 당연히 왕이 될 거 야." 화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비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 그리고 내겐 스스로 원하는 남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지. 지금까지 내게 다가온 남자는 많았지만 내가 원하는 남자는 단 한명 뿐이지." " 제게 허락을 구하시려는 건가요...." 비의 물음에 화란은 고개를 저으며 웃어보였다. "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원하는 남자가 바로 훼이라는 것을. 너 는 그의 아들이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의 영혼을 가진 존재니까." " 아버지는 알고 계신가요....?" " 훼이는 네 어머니 이외의 여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어. 자신의 마음 을 차지한 것은 그녀 뿐이라고 말했지. 하지만 내 마음을 차지한 것도 훼이 뿐이야." 어머니.......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 화란의 말을 통해 비는 문득 아득히 먼 기억속을 더듬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속에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처음부 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을 사랑한 아버지. 용족을 사랑한 어머니. 그리고 다시 아버지를 사랑하 는 차기 홍룡왕이 될 여인 화란. 비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화란은 너무나도 당당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생기있게 피어난 꽃과도 같은 그녀. 아버지의 말을 통해 그리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숙부 비영을 통해 전해들은 자신의 어머니 화연은 조용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직접 대하고 느껴보지 않고 서는 누군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누군가의 품. 그것이 어머니라고 하지만 비는 훼이가 비 의 미소에 담긴 화연을 보듯이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라는 막연한 단어만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을 뿐. " 난 훼이 이상의 남자가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그리고 훼이 이상의 남자는 어디에도 없어." 자신의 선택에 대한 그 어떤 의문도 품지않은 흔들림없는 당당한 목소리. 비가 지금까지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감정을 화란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화란과 비의 시선이 마주쳤다. ===================================================================== 우웃....오늘은 늦어졌군요. 만화 동아리 회원들이랑 놀다가....^^ 그래도 오늘분은 써야죠... 아아....졸렸었는데 지금은 졸음도 다 달아났습니다. 5장은 진짜로 길어지겠군요. 아직 하고 싶었던 얘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어요. 흑룡의 숲은 감정적인 내용이 많은데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하려는 시도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흑룡의 숲의 주제는 심리에 관련된 것이 거든요... 그래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72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2일 01:0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八.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八. " 아버지. 지금도 어머니를 기억하세요?" 방에 들어선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비가 입 을 열고 물은 것은 조금 의외의 내용이었다. " 아니, 화연은 언제고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는 한은..." " 네......." 비는 훼이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처음처럼 다시 입을 다물었다. " 뭐가 알고 싶은거냐. 비." " 아니에요. 단지.... 제 기억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겐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비의 말을 듣고서야 훼이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금까 지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꺼낸 적이 없던 비가 화연의 이야기를 물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언제나 어른스러웠기에 비가 무엇을 생각하고 또, 바라고 있는지 훼이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비에게 해줄수 있는 최상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 는 것 밖에는. 비를. 아니, 화연을 만나기 전 까지는 자신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으므로. " 내가 화연과 함께 보낸 시간은 하계의 시간으로 3년 동안이었다. 천계에 서 지내다보면 우스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난 결코 그 시간이 짧았다고 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말 없이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있으니 까." 하지만 비는 훼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이 어리기 때문일까. 비에게는 기억한다는 말보다 잊는다는 말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훼이의 말에 3년의 시간이 천년을 감싸안을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면 비 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 * * 찾아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화란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아니, 인사 대신 훼이에게 편지를 남기고서. 성년이 되었지만 비의 일상은 바뀐 것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훼이와 함 께 식사를 하고 그 후에는 여러 가지 주문에 관한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나 면 이후의 시간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가끔은 외출을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거의 별궁 밖으로 나가지 않는 생활이었다. 숨막히는 적막. 그것이 지금 비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무심코 멀리에 자리한 흑룡궁 본궁 을 바라보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땅에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있는데도 비는 저곳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훼이를 따라 처음 천계로 왔던 그날 이후로 비는 흑룡궁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저 스쳐지나가듯이 한 번 본 자신의 혈족들. 그 눈에 떠올랐던 명백한 거부.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 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 아버지. 저 천상계에 다녀올께요." 수련이 끝난 직후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비는 답답 해져 오는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도피처로 성휘가 있는 곳을 택했다. " 아버지는 가실 생각 없으세요?" " 한 이틀 후에 가마. 지금은 하던 일이 좀 남아있어서." " 네. 그럼 먼저 가 있을께요." 비는 몸을 일으키고는 별다른 준비없이 바로 천상계로 통하는 공간을 열었다. [ 역궁(逆窮) 개문(開門) ] 아직은 주문을 필요로 하긴 했지만 비는 나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힘을 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가 훼이의 피를 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과도 같았다. 비의 모습이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난 후 훼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된 자신의 친구와 아들. 그 두 존재를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훼이의 마음 속에서 이제는 화연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비와 성휘. 걸음을 옮기는 훼이의 뒤로는 언제나 처럼 작게 보이는 흑룡궁의 본궁이 자 리하고 있었다. 시간. 사계절을 지배하는 자인 용족에게도 공평하게 다가오는 시간은 어느면 에서 보면 잔혹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일상의 평화를 시간이라는 이름의 화살은 가볍 게 꿰뚫어 버렸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비의 성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왔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성휘는 잠들어 있었다. 천인들에게 주어진 수명을 반도 채우지 못한 채 성휘에게 주어진 유 일한 공간이었던 그 별궁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단 세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 ...........대체......" 고요하게 잠든 성휘를 보면서 훼이가 꺼낸 말은 그것 뿐이었다. "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 그렇게나 많은 피가 흘렀는데 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요......." 비는 자신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고개를 숙 인 채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훼이는 연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화의 얼굴은 보통때처럼 표정없이 굳어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창백한 색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 뿐. " 그는 언제나 예상하고 있었어요..........." 훼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연화가 입을 열었다. "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주세요." 두 눈을 가득 채운 창백하게 식어버린 친구의 얼굴은 슬픔보다는 분노를 느 끼게 했다. " 상제의 명령이었습니까?" 연화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그러면, 그 태자의 짓입니까?" " .......그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어요." 잠겨서 갈라진 목소리로 비가 대답했다. " 전 이해할 수 없어요.... 자신의 혈육에게.....친 동생에게 칼을 꽂을 수 있 다니......도저히........도저히.........." 훼이의 귓가에 파고드는 것은 숨을 죽인채 오열하는 비의 목소리. 머리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현실........? 피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나.....?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놓아줄 수는 없었던 것인가. 대체 그 피라는 게 뭐길래...... 목숨 하나를 무참히 꺽어버릴 수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연한 미소만을 지어야 했던 친구의 아픔을.... 그리고 겨우 찾은 밝은 미소를 자신은 지켜주지 못했다. 수십년이라는 시간동안 몸을 눕혔던 별궁의 침상 위에서 성휘는 그렇게 마지 막 잠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형처럼 미동조차 없이 성휘의 곁을 지키고 있는 연화는 눈물 한방울 보이 지 않았다. 하지만 훼이는 알 수 있었다. 가장 슬플때는 눈물 조차 흐르지 않는 다는 것을. 친구라는 이름보다 더 깊었을....... 성휘가 가진 아픔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 었을 연화는 그렇게 굳어진 인형처럼 성휘의 얼굴만을 내려다 보았다. 한동안 그런 연화와 성휘를 바라보던 훼이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 .......아버지?" 훼이의 얼굴에 떠오른 싸늘한 미소를 본 비는 놀라서 입을 열었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지만 분명 마지막 말은 비와 연화 에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 이름하여 왕언니와 떨거지들...^^;;; 구성원은 너희가 판타리아를 아느냐를 쓰 시는 뱀파이어님이 왕언니. 그리고 파색 쓰시는 숟가락님이 둘째언니. 그리고 제가 막내입니다. ^^ 오늘 내용도 시간을 막 섞어 놨는데요. 핫..머 맨날 그러니까...이해해 주세 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81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3일 00:4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九. 흑룡의 숲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九.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폭우는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쉴새없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굵은 나무 뿌리까지 한번에 뽑힐 듯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굵은 빗방울들. 격심한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천상계의 날씨로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자 천상계에 사는 사람들은 이변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때아닌 폭우로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을 정 도로 천상계는 거센 빗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에 감싸여 있었다. "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정도의 폭우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냐! 그러고도 너 희들이 천상계의 수문장(守門將) 이라고 말할 수 있나!" 싸늘한 노기를 가득 담은 오현의 외침이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 태자전하. 그...그것이 이 폭우는 자연현상이 아닌지라 저희들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습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명색이 천상계의 수문장인 너희들이 가진 힘으로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냐? 단지 한 사람의 힘일 뿐인데도?" 보통사람의 머리 두 개는 더 되어 보이는 키와 단단한 체구를 한 사방(四方) 의 수문장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 한사람이라고는 해도 그는 용족 중에서도 최강의 힘을 가진 흑룡족입니 다. 게다가 흑룡족 중에서도 근래에 보기 드문 힘을 가진 자라는 소문이 파다 합니다." " 감히 내 앞에서 변명을 하는 것인가?" 노기가 담긴 오현의 목소리를 듣고 수문장들은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 당장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자를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의 목을 치겠다." 낮게 울려 퍼진 오현의 말에 수문장들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졌다. " 지금까지의 일은 눈감아 줄 수도 있으니 당장 폭우를 멈추게 해. 알았 나?" 아직 극소수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자신의 친동생을 직접 죽였을 정도로 태자 오현은 냉혹한 성품을 가진 자였다. 어떤 사실일 지라도 그는 입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켰다. "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움직여라!" " 예. 전하." 수문장들은 입을 맞추어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 하. 우스운 우정 놀이인 모양이지. 성휘? 죽어서까지 널 위해 슬퍼해 주 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군 그래. 어디까지 계속되나 보자 구......." 텅빈 대전 안에서 태사의에 몸을 기댄 채 오현은 싸늘한 비웃음을 떠올리며 내뱉었다. 몇 달 전부터 천상계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업무처리는 오현이 맡아하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다음 상제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라며 상제가 그에게 일 을 맡긴 것이다. 천상계의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이 훼이의 힘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도. 성휘가 오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도 상제는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는 그저 상천궁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자신의 방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가리워진 궁의 심처에서 상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그 자신밖에는 모를 것이었다. * * *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은 폭우는 거세게 지면에 떨어지며 빗방울들을 사방 에 뿌려댔다. 반쯤 열린 창 밖으로 거세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침묵. 방안에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단지 그들의 안색이 성휘처럼 새하얗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며칠전과 마찬가지로 연화는 성휘가 누워있는 침상 곁에 앉은 채 미동도 보 이지 않고 있었고 붓기가 빠지지 않은 눈을 한 비는 멍한 얼굴로 창밖을 내 다보고 있었다. 그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성휘의 감시역으로 배치되었던 천군들이 누군가가 들어서려는 것을 만류하는 소리와 강압적인 몇 마디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닥이 쿵쿵거 리고 울릴 정도로 커다란 발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방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 고 방안으로 들어선 것은 조금 전 대전 안에서 오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방의 수문장들이었다. " 지금 당장 빗줄기를 멈춰 주십시오."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듯이 위험스럽게 보 였다. 분명히 그들이 들어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방안에 있는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서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네 명의 수문장 중 길게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 내가 다시 말을 꺼냈다. 관복 겉에 갑옷까지 걸치고 있기 때문인지 몸집이 더 욱 크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 이 폭우만 멈춰 주신다면 상천궁의 일부를 파괴하신 것은 눈감아 드리겠 다고 합니다. 큰 일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함부로 처신하시지는 않으시리 라 믿습니다." 수문장의 말이 끝나고 난 후에도 훼이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눈 조차 깜빡이지 않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인형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 그렇게 거부하시면 저희들도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훼이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네명의 수문장은 어깨에 메고 있던 말이라도 한번에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칼을 뽑아들었다. 스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울리자 그때까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던 연화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 당장 나가라. 여기는 너희같이 피에 물든 자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그저 나직한 목소리 였지만 연화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 검선님의 명령이라고 하셔도 따를 수 없습니다. 저희는 태자전하의 명령 을 받고 온 것입니다." 대답을 들은 연화는 입술 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다. " 내 앞에서 검을 꺼내드는 자는 누구라도 상관없이 베어 버리겠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연화는 허리에 끼워두었던 옥소를 빼내들었다. 그리고 그 옥소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황금색의 용이 휘감겨 있는 손잡이가 달린 투 명한 검신을 가진 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연화의 손에 들린 검을 본 수문장들은 몸집에 맞지 않게 흠칫하고 몸을 떨었 다. 그들이 막 공격을 해야할지 어떨지 망설이고 있던 사이. [ 개문(開門) 풍(風) 수(水) 운(雲) - 폭풍을 부르는 주문 - ] 훼이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폭우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세어 졌다. 열려진 창문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삐걱거리며 흔들렸고 창밖으로 보이 는 정원의 나무들은 금세 뿌리가 뽑혀 날아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 고 실제로 작은 나무들은 뿌리가 뽑힌 채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광경을 목도한 수문장들은 손에 든 검을 휘두르며 훼이를 향해 몸을 움직 였다. 몸집만 보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수 문장들이 막 훼이에게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챙하는 가벼운 검성(劍聲)이 울 리며 연화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 내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오게 하지 마라." 반대편이 비춰질 정도로 투명한 연화의 검신이 푸른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느 꼈을 때 그녀의 검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며 수문장들 의 목을 향해 움직여갔다.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최상급 방어주문 - ] 그리고 비가 방어주문을 외치며 연화의 옆으로 뛰어들었다. 언젠가 훼이에게 서 받았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검을 손에 든 채. 수문장들이 휘두르는 대검의 영향으로 인해 나무로 지어진 건물의 벽이 조금 씩 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가 외친 방어주문 덕택에 잠든 것처럼 조용히 누워있는 성휘의 주위는 흔들림 하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검과 검이 마주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윙윙거리며 울리는 바람소리.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찢어질 듯이 거센 바람소리와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가 서로 섞여서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그리고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선 천군 몇 명도 싸움에 가세해 수문장들을 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파랗게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연화의 검은 정확하게 수문장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느다랗게 뿜어져 나오는 붉은 색의 핏줄기가 막 문 밖으로 밀려 나가면서 비춰졌다. 이제 여러 가지 뒤섞인 소리 속에 낮은 침음성이 섞여 들 었다. 그리고 훼이는 그 모든 장면들을 그저 검고 깊은 두 눈에 담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 와...오늘은 날씨가 그나마 시원해서 좋았어요...^0^ 그래서 그런지 글이 어제보다 잘 써지네요. 요즘은 선배한테 빌린 우타다 히카루 CD를 듣고 있는데 노래 정말 잘 부르더군요. 600만장이나 팔린 이유를 알겠어요. 혼혈이라서 그런지 영어 발음도 정말 좋구 가창력도 좋고 16살 짜리 목소리가 아니에요. 정말 대단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번 호 : 688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3일 23: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6장 一. 흑룡의 숲 제 6장 환영(幻影) 잠시 눈을 감았다. 한 동안의 침묵 속에 지겹도록 이어질 어둠과 아스라한 여명이 공존한다. 一. " 오라버니가 현무족과 다투게 된 것은 순전히 젊은 혈기 때문이었어요." 유에린은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응시하듯이 고개를 돌린 채 입을 열었다. " 둘중의 하나라도 양보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 일은 그저 스쳐지나가듯이 넘겨버릴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으니까요." 훼이는 잠시 고개를 들어 유에린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젊은 현무족과 젊은 용족의 다툼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것 처럼 지나가 버렸죠. 아무도... 심지어 그 싸움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오라버니의 가 족들 조차 아무렇지 않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유에린은 낮게 시를 읊조리듯이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 다른이들에겐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제겐 단 하나뿐인 혈육 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죠.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나보군." 유에린은 보이지 않게 살짝 미소를 떠올렸다. " 그랬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이에게 이끌리 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오라버니는 일찍 돌아가신 제 부모님을 대신해서 절 돌봐주셨으니까요. 친 가족이라해도 거짓은 아닐 정도로." " 그 현무족은 어떤 자였지?" " 글쎄요. 전 그저 먼 곳에서 얼핏 보았을 뿐이니까요. 오라버니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자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환계로 찾아갔 었지만 당당하게 그의 앞에 나설 수는 없었어요. 제겐 어떤 명분도 없으니까 요." 훼이에게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유에린은 얼굴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돌렸다. " 세상엔 명분보다 중요한 게 많이 있지..." " 하지만 적어도 그자의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는 대등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 그래서 무턱대고 내게 와서 현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건가?" 유에린은 무안한 듯이 훼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 용족들에게. 아니 모든 이들에게 경이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당신이라면 제게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 해답이라.....그래서 그 해답은 찾았나?" 유에린은 고개를 저었다. "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분명." 그것은 유에린이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지를 알려주는 말이었다. 성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 청룡족 유에린이 어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 고 있는지 훼이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결심한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거겠지. 그 누구와 닮았군. 요즘들어 과거의 일들이 마치 얼마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일이 많았다. 오랜 세월동안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해 왔기 때문일까. 일상에 자신 이외의 존재가 끼어들었다는 사실은 훼이의 심경에 많은 변화를 안겨주 었다. 마치 작은 돌 하나가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이 유에린의 존재 는 훼이에게 과거로의 회귀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천년을 훨씬 뛰어넘는 세월 동안 훼이는 세상이 변해가는 것 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반복되고 언제나 또 반복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 을 살아가는 자들은 언제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유에린이라는 갓 성년을 넘긴 여인이 던져주는 파문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 했지만 요지 부동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던 나무를 흔드는 것도 시작은 작은 바람에 불과한 것이다. " 늦었지만 감사드려요. 당신의 안식의 시간을 방해한 저를 받아주신 것을." 훼이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유에린의 모습은 처음과는 달리 부드럽지만 강인 한 여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 * * " 전하. 이상이 이번에 수행을 위해 하계로 내려간 총 인원입니다." 라이엔은 보좌관이 내민 문서를 책상 위에 내려 놓고 잠시 내용을 훑어 보았 다. " 예년에 비하면 적은 숫자군." " 그렇습니다. 요즘은 혼인을 하는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들도 늦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 하긴.." 라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서에 인장을 찍고 나서 쌓여있는 문서들 위로 그것을 올려놓았다. " 이제 하계의 계절이 가을로 넘어올 때이니 백룡들이 바빠지겠군." " 그리고 그 후에는 저희들이 바빠지는 때가 오는 것이구요." " 그나마 올 여름에는 가뭄이 든 지역이 적어서 일이 덜한 편이었지. 마음 같아서는 매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적당히 비를 뿌려주고 싶지만 가뭄 역시 천기의 일부이니 어쩔 수 없지." 아침부터 거의 쉬지 않고 문서들을 처리한 탓인지 한낯이 될 무렵에는 거의 모든 일이 끝이 났다. " 오늘은 이걸로 끝인가... 수고했네. 보좌관." " 아닙니다. 전하께서야 말로 늘 문서를 처리하시느라 유안님이나 비 전하 와 함께 하실 시간이 적으신데요." 라이엔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짧고 깔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있는 보좌관은 엷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흑룡족 장로중의 한명을 아버지로 둔 그는 라이엔이 후계자가 되기 전부터 보좌관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혼인은 일찍 한 편으로 같은 귀족인 흑룡족의 여인과 200살 정도에 혼인을 해서 지금은 두명의 자식을 가진 아버지 였다. " 그렇군. 오늘은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봐야겠군. 보좌관. 그러면 나는 나가 볼테니 뒷 정리를 부탁하네." " 네. 전하. 편히 쉬십시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보좌관의 인사를 받으며 라이엔은 집무실을 빠져나 왔다. 막 미하의 방으로 들어서려던 라이엔에게 미하의 전속 시비 하나가 말을 걸 어왔다. " 전하. 조금 전에 비전하께서 유안님과 함께 산책하러 나가셨습니다." " 아. 그런가... 어디로 간다고 했지?" " 오랜만에 궁 밖으로 나가신다며 수행원 셋을 데리고 황룡족의 영지에 있 는 초지로 나가셨습니다." 라이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흑룡왕비가 된 이후로 미하는 거의 궁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기린족의 황녀였을 당시의 그녀는 혼자서 여러곳을 다니기를 즐겨했었는데 시간은 그 녀의 그러한 성격마저 바꿔버린 모양이었다. 영수족인 기린족에 비하여 용족들은 맡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하루 의 삼분지 일의 시간 정도에도 못 미치는 짧은 동안만이 라이엔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낯설다면 낯설다고 말할 수 있는 용족들의 틈에서 미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라이엔도 깊숙이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조 용한 여인이자 흑룡왕의 비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백룡왕 파이론의 비인 챠렌과 같은 활발한 여성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랄때도 있었다. 하지만 라이엔에게는 미하만이 가장 편안한 기분이 되게 만 들어주는 여인이었다. 자신의 검은 눈과는 전혀 다른. 심해와도 같은 미하의 푸른눈을 마주할 때면 일로 지친 몸이 저절로 풀어질 정도로 기분이 편해지곤 했다. 그때 환계에 가지 않았다면 미하는 만날 수 없었겠지.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기린족의 여인을 자신의 비로 맞 이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그녀와 만나기 전까지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가장 깊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든 유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하는 부드러운 눈을 들어 라이엔을 응시했다. " 오늘은 오랜만에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낼까 해서." " 유안은 조금 피곤했던 모양이에요. 그 동안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해야 한 다며 수련에만 전념하더니..." " 어린녀석 같으니라구...." 라이엔 역시 미하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푸른색의 초지와 등 뒤로 늘어선 나무숲. 황룡족의 영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이곳은 미하가 천계에 온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한 곳이었다. " 이곳에 오니 문득 당신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르는군." " 전 그날 당신을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진정한 인연 은 자신도 모르는 때에 찾아오는 것인가봐요." 미하의 입가에 떠오른 엷은 미소를 보며 라이엔 역시 미소지었다. ============================================================== 오랜만에 나온 현실 장면이군요....^^ 부드러운 분위기 연출입니다. 6장은 보통 길이정도(어느 정도지? ^^) 구요. 평이한 전개가 될 것 같습니다. 더운 나날이지만 힘내세요 ^0^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번 호 : 712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5일 01: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6장 二. 흑룡의 숲 제 6장 환영(幻影) 二. 지리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나날들. 남겨진 자는 남겨진 대로 떠나간 자는 떠나간 대로 시간은 흘러갔다. 성휘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처리되고 천상계에서 몇날 며칠 폭풍을 부른 훼이에게 천계의 흑룡궁으로 항의가 오고나서 훼이에게는 금족령이 떨 어졌다. 하지만 금족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훼이는 더 이상 움직일 생 각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침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의 비와 함께 훼이는 별궁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다. 천상계에서의 소란으로 인해 훼이와 비가 머물고 있는 별궁에는 많은 수의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흑룡왕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자 중하고 조용히 지내라는 무언의 암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죽음이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비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물론 숙부인 비영 의 죽음을 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수명을 다한 자가 맞이하는 편안한 안식이었기에 슬픔 이외의 것은 없었다. 그에 반해 성휘의 죽음은 예정된 것 이 아닌 죽음이었기에. 게다가 그 죽음을 목도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비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 것 처럼 보였다. 다른이의 앞에서라면 별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던 비였지만 언제나 훼이의 앞에서만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들을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훼이에 게 조차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멍한 시선으 로 자리에 앉아 있을 뿐. 비는 하루아침에 변모해 버린 것 같았다. " 전하. 차라도 내어 올까요" 숨막힐 정도로 가라앉은 별궁안의 공기를 깨뜨리며 시비 한명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자신의 방에 틀어 박힌 채 며칠째 서책들을 읽고 있던 훼이는 오늘도 변함없 이 몇권째인가의 서책을 읽고 있었다. " 차라......" 겨우 책에서 시선을 뗀 훼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시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 용정차를 두잔 준비해 주겠나? 비에게도 한잔 가져다 주도록 하고.." " 네. 전하." 훼이의 대답을 듣고난 후 시비의 얼굴에는 안도가 떠올랐다. 각자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채. 식사 때 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는 두 부자는 어떻게보면 지독히도 닮아 있었다. 훼이에게는 친구이자 비에게는 편안한 대화 상대였던 성휘의 죽음이 가져다 준 여파는 그토록 큰 것이었다. " 들어가겠습니다. 비님." 시비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나서 비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시비의 눈에 비친 비는 지금까지의 단정했던 모습과는 달리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옷차림이나 외관이 아닌 풍겨나오는 분위기가 그랬다. 마치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활짝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들중 무엇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비는 줄곧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차를 가져왔으니 드시지요. 아무일도 하지 않고 계시는 건 비님답지 않습 니다." 시비의 말에도 비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시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탁 자 위에 찻잔을 내려 놓았다. " 용정차입니다. 기분을 맑게 해주는 차이니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드십시 오."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시비는 공손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막 방을 나서려는 시비의 눈에 찻잔으로 손을 가져가는 비의 모습이 들어왔다. " ........고맙다....." 작은 소리였지만 시비는 비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 * * " 이래서 남자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날카롭게 울려퍼진 화란의 목소리가 방안을 맴돌았다. "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죠? 그러고 있으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 오기라도 한 대요? 남겨진 자가 가진 최대의 축복은 망각이라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죠?" 훼이는 가볍게 눈만을 돌려 화란을 바라보았다. " 누가 부자(父子) 아니랄까봐 그렇게 똑같이 하고 있는거에요. 대체." " 무슨일로 이곳에...." 화란은 훼이의 말을 막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 갑작스레 찾아오긴 했지만 정말 이런 모습으로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당장 일어나서 산책이라도 하세요. 당신과 비는 가뜩이나 얼굴색도 흰데 지금은 마치 송장같아요. 어서." 쏘아대듯이 빠르게 말을 뱉어내는 화란의 손에 이끌려 훼이는 정원으로 나섰 다. 화란은 훼이를 정원으로 몰아내고는 비의 방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끌어 내다시피 해서 비를 데리고 나왔다. 여전히 굳어진 표정을 하고 있는 비를 보자 훼이는 지금까지의 자신이 한심 하게 느껴졌다. 그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얼마만에 보는 정원인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것은 분명했다. 막 파릇한 새싹이 나무가지를 뒤덮고 있던 정원은 어느새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풍성한 푸른빛을 머금고 햇살아래 피어난 초목들은 어제와는 또 다른 오늘을 맞이하여 피어나 있는 것이었다. " 비야....." 훼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비를 불렀다. 그러자 비는 힘없는 시선을 훼이에게로 향했다. " .....미안하구나..." 무엇을 위한 사과인지는 훼이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초췌한 슬픔을 담은 비의 얼굴을 마주 대하자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 었다. " 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거에요. 그 이상의 것은 없다고 전 생각하니까. 자,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정원을 걸 어 다니는 건 어때요? 이렇게나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 는건가요?" 가만히 자리에 서 있던 훼이와 비는 말 잘듣는 어린아이 처럼 천천히 정원을 거닐었다. 묵묵히 입을 다문채 걸음을 옮기는 두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란은 고 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던 화란은 몸을 돌려 별궁 건물 안 으로 들어섰다. " .........아버지." 얼마만에 들어보는 비의 목소리인지 훼이는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어제의 일인 것 같기도 했다. " 정말 그럴까요........ 남겨진 자는 떠나간 자를 위해서 남아있는 자신의 삶 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찌감치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병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흑룡왕의 명을 받아 감시자로 붙여진 그들. 정원을 거닐고 있 는 훼이와 비를 향한 그들의 시선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 너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긴 했지만 나역시 무엇이 정해진 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구나....... 그저 우리에겐 앞으로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다는 것 이외 에는." 비 역시 훼이가 보고있는 병사들을 응시했다. " 그렇겠죠.....시간은 언제고 변함없이 흘러가니까. 그리고........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까." 훼이는 대답없이 그저 시선을 한곳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 아버지. 제게 그분의 검을 주시겠어요?" " 검을.....말이냐?" 비와 훼이의 검은 눈이 서로 마주쳤다. 진실함과 의지가 담긴 비의 눈빛에 담 긴 뜻을 훼이는 읽을 수 있었다. " 그래.... 그러면 한번 천상계에 다녀와야 겠구나. 연화에게서 그 검을 건네 받아야겠지." " 그분과 함께 검을 겨루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요." " 그래....." 초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별궁 정원의 나무들 사이를 훼이와 비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낸 나무들이 새싹을 피우고 푸르름으로 뒤덮히는 것처럼 그 들을 둘러싼 시간은 멈춤없이 움직였다. =========================================================================== 음...숟가락 언니의 감상으로 저의 소설 형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봤습 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원적 전개를 하고 싶었는데 역시 실력이 딸리다 보니 잘 안되는군요. 그러니까 이원적 전개란 현재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가 동 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일부는 회상의 형식을 빌어 쓴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은 또 다른 하나의 전개로 쓰고 싶었거든요. (우..역시 실력이 딸려..--) 그리고 숟가락 언니의 감상.....너무 어려웠어요....감상이 글케 어려운 내용이라 니...^^ (제가 이해력 불능인가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쓸께요. 번 호 : 718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6일 00:0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6장 三. 흑룡의 숲 제 6장 환영(幻影) 三. " 제 계승식 날짜가 정해졌어요." 화란은 훼이와 비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훼이와 비는 동시에 눈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 아....그렇군요.." " 뭐에요. 그 표정은? 화란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부자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 앞으로 꼭 한달후 군요." " 계승식이 코 앞인데 이렇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어도 되는건가요?" 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물론 안돼지. 금방 돌아가야 해." " 그러면..." " 멀리서도 훼이 당신과 비가 일으킨 소란에 대해서 듣고 있었죠. 그리고 둘의 성격상 어떻게 하고 있는지 뻔했기 때문에 이렇게 온거에요. 그리고 하 고 싶은 말도 있었고." 훼이는 덧붙인 그녀의 말에 음식을 먹던 손을 내려놓았다. " 비와 함께 홍룡궁으로 가지 않을래요. 훼이?" 화란의 말을 듣고 비 역시 굳어진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 남자 둘이서 언제까지 이렇게 틀어박혀 살 생각이에요? 용족은 활동적인 걸 가장 큰 장점으로 가지는 종족인데..." " 말은 고맙지만..." 화란은 싱글 거리는 얼굴로 훼이의 말을 끊었다. " 아무도 제 결정에 불만을 표할 수 없어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지 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비도 절 받아들일 날이 올거라고 믿으니까요. 전 자신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화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인간의 여인과 사랑을 하고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은 훼이를. 그리고 긍지 높은 용족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인간의 피가 섞인 아이를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비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화란과 같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 비. 넌 어떻게 생각하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에게 화란이 물어왔다. 비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버지 훼이와 화란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 전.......아버지가 하시는 결정에 따르겠어요. 제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 도 아버지 덕분이니까요." 훼이는 물끄러미 비를 바라보았다. 화연이 그랬듯이.... 그리고 비영이 그랬듯 이. 비의 몸속에 흐르는 그 피는 훼이에게 또 다시 배려라는 형태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었다. " 지금의 제가 바라는건요. 훼이. 예전의 당신이 가지고 있던 밝음을 보는 거에요. 후계자 시절의 당신은 모든 일에 대해 의욕이 넘칠 정도였잖아요. 전 당신의 그런 모습이 좋았던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당신이 싫은 건 아 니지만." 화란은 식탁위에 놓여있던 물이 담긴 도자기 잔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 이제 넓은 곳으로 나와요. 아직 당신과 비에게 남은 무수한 시간들을 생 각해봐요. 함께 갈 수 있죠......?" 화란의 저 자신에 찬 당당한 표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용족중에서도 이단(異端)이라고 할 수 있는 훼이에게 저토록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화란을 보며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화연 이외의 여인을 마음에 담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과 비를 향해 보여준 화란의 배려를 가볍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인이란 종족을 초월해서 강인함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훼이는 처음으로 깨 달았다. 귀족에서 몰락해버린 인간의 여인 화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있게 받아들이며 살아갔다. 훼이로서는 평생을 가도 깨달을 수 없었을지도 모를 누 군가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화연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그리고 그녀 가 남기고 떠난 비를 통해 훼이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외관의 아름다움이 전부 가 아니라는 것을 훼이는 화연과의 짧았던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3년의 시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훼이를 밝은 곳으로. 보다 넓은 곳으로 끌어내려는 화란 역시 훼 이에게 어떠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은 그녀를 받아들 이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도 훼이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화연이 남겼던 편지 의 글귀들이 지워지지 않을 각인처럼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화란." 화란의 얼굴에는 환하게 핀 꽃처럼 밝고 아름다운 미소가 떠올랐다. * * * * 파이론은 집무실 책상에 가득 쌓인 문서들을 검토하느라 분주하게 손과 눈을 놀리고 있었다. 파이론의 옆에 나란히 앉은 챠렌 역시 문서를 정리하고 분류 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보통때처럼 간소한 궁장차림을 하고 자리에 앉아 일을 처리하던 챠렌이 목소 리에 의아함을 담은 채 물었다. " 뭐가 말이지?" " 요즘들어 수행을 떠난 어린 일족들의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아....." 챠렌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문서들 틈에는 수행을 나간 일족들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그들이 어디로 수 행을 떠났으며 얼마간 수행을 할 것인지. 그리고 돌아온 후에도 수행의 성과 를 기록하여 왕에게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 이번에 하계로 떠난 일족들은 몇 명이었지?" " 성년식 이전의 일족이 셋. 성년을 갓 치른 일족이 하나. 그리고 임무 때 문에 내려간 일족이 다섯이에요. 그중에 예정보다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건 어린 일족들의 경우이고." " 흐음... 의심이 가는군. 지난번의 회합때 나왔던 말도 있고 해서." 챠렌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그렇죠? 저도 의심이 가요. 끈질긴 그들이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물러날 리가 없어요." " 맞는 말이야. 아무래도 조사를 위해 몇 명정도를 보내야겠군." " 새로 몇 명을 보내는 것 보다는 지난번에 임무 때문에 내려간 이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겠군요." 챠렌의 말에 동감하며 파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말이 나온김에 당장 하지." [ 천개(天開) 경(鏡) - 이공간(異空間) 연결 주문 - ] 가볍게 울려퍼진 파이론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앞의 허 공에 일그러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백색의 기류에 휩싸여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팔 하나 정도의 높이를 가진 투명한 거울로 변했 다. 거울 가장자리에는 은은한 안개와 같은 희뿌연 기운이 서려 있었다. - 전하. 인사올립니다. 투명하던 거울에 어느새 하계의 풍경과 누군가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구를 가진 젊어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파오가 아닌 경장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문인지 특별히 인간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 원류(洹流) 쪽의 일은 대충 끝마쳤나?" - 네. 오늘 안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잘 됐군. 특별한 임무를 맡기려고 하는데 그쪽의 일이 끝나는 대로 다른 일족과 협력해서 조사해주길 바라네." - 시급을 요하는 일입니까? " 명계쪽의 동향을 감시하는 일이네. 그리고 어린 일족들의 귀환이 늦어지 고 있으니 혹시라도 명계에서 손을 대지는 않았나 살펴봐주게." - 네. 전하. 그리고 제가 있는 사막에서 벗어난 지역에 다른 일족 두명이 일을 하고 있으니 함께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하도록 하게." 거울에 비친 경장 차림의 남자는 정중하게 파이론에게 인사를 건넸다. [ 해제(解制) ] 파이론의 목소리가 울리자 눈 앞에 떠올라 있던 거울은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 그러면 당분간 지켜보도록 하지." " 그래요. 이제 좀 쉴까요. 아까부터 계속 일만했으니까." 파이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장을 내려놓았다. " 그럼, 제가 차를 내올께요." 챠렌은 가볍게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닫기 전 에 파이론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음...흑룡의 숲의 시간 전개에 관해서 너무 갑작스럽다는 분들이 많아서요.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사실은 저도 머리아파요..^^) 같은 글 내에서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경우에는 *표 4개로 구분을 했구요.^^ 같은 시간 배경내에서 장면이 바뀌는 경우에는 *표 3개입니다. 좀 우습게 구분을 했지만요. 제가 생각하는 전개 방식이 회상이 아니라 그게 액자식 구성인가요? 암튼 그런식으로 두 개의 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 으로 쓰려고 하는 거랍니다. 현실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가 섞여 있지만 두 이야기. 현실과 과거역시 마구잡이의 시간전개는 아닙니다. 현실은 현실대 로 과거는 과거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그 두 개의 시간대가 섞여 있어 서 무지하게 헷갈리는 겁니다. 저도 잘 알고 있는데 그걸 이해하기 쉽게 쓰지 못하는 건 제 실력이 딸리기 때문이지요. ^^ 죄송합니다. 그리고 설정을 가르쳐 달라는 분도 계셔서 조금씩 여기에다 붙일께요. < 5대 용족 설정 - 힘 > 용족의 설정은 음양오행에 근거해서 설정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약간 변형된 음양 5행이지요. 木 봄 청룡 동쪽 물 火 여름 홍룡 남쪽 불 土 土用 황룡 중앙 흙(대지와 관련된 모든 것) 金 가을 백룡 서쪽 바람 水 겨울 흑룡 북쪽 날씨 조정(물의 힘을 쓰는 것은 흑룡의 속성에 雨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 그리구요. 제 소설의 용족들은 직접 용으로 변신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니까 약간 색다르게 느끼셨을 거에요. 힘의 형체가 용의 형상을 띄고 있을 뿐이거 든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73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7일 02:4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2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一.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둥글게 퍼져나가는 파문속에 잊혀지지 않을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홀로남은 자에게 주는 마지막 위안 처럼. 一. 한 일족의 왕이 되기 위한 계승식은 실로 성대하고도 질서있게 진행되었다. 모든 홍룡족들은 화천궁(火天宮)에 모여 새로운 왕의 탄생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흑룡족인 훼이와 비도 있었다. 물론 계승식에 참석한 것은 홍룡족들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용왕의 탄생을 축 하하기 위해 다른 용족의 왕족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지만 분명 훼이와 비 는 그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모두들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지만 훼이와 비를 보는 다른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 지금부터 29대 홍룡왕의 위를 계승하는 식을 거행하도록 하겠다." 성격이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 현 홍룡왕이 큰 소리로 입을 열자 주위에 은은 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비파 소리 같기도 하고 가느다란 적(笛) 소리 같기도 한 아련한 음률이 주위를 가득 채워갔다. " 잘 봐둬라. 비. 이것이 용왕의 계승식이다." 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두 눈에 가득 담았다. 화천궁의 넓은 정원에 마련된 계승식을 위한 장소는 자단목으로 세워진 높은 단이었다. 수십명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단 위에는 온통 홍룡을 상징 하는 붉은색의 천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위에 선 것은 다음 홍룡왕이 될 화 란과 현 홍룡왕. 홍룡왕의 가족들과 장로들. 그리고 축하를 위해 함께 자리 한 다른 용왕족들이었다. 다른 용왕족들은 용왕과 비, 그리고 후계자들로 용 족의 정식 복장인 파오를 갖추어 입고 단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단 주위에는 모든 홍룡일족들이 둘러선 채 수많은 이들이 모여있다고는 생각 하기 힘들정도로 조용하고 진지한 자세로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홍룡왕의 입에서는 의미를 알기가 힘든 어떤 말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 었다. 그리고 홍룡왕의 앞에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서있는 화란은 어느때 보다 아름답고 위엄있어 보였다. 몸을 감싸고 있는 화려한 붉은 색의 파오와 틀어올린 붉은 머리카락이 멀리서도 시선을 끌어당겼다. " 저건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비는 작은 소리로 훼이에게 물었다. " 광명진언(光明眞言)이다. 힘을 계승하기위한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지." " 힘을 계승하고나면 전대 홍룡왕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 힘을 계승했다고 해서 완전히 모든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다. 성년을 갓 치 룬 상태 정도의 힘은 남는거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식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새 광명진언을 외우고 있던 홍룡왕 대신 청룡왕의 후계자와 황룡왕의 후 계자가 나란히 앞으로 나서 노래를 시작했다. 성년식때도 그렇지만 용족에게 있어서 힘을 깨우기 위한 의식에 노래는 상당 히 큰 작용을 한다. 노래에는 부르는 자의 힘이 담겨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 요하게 여겨졌다. 함께 단 위에서 의식을 지켜봐 달라던 화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훼이와 비 는 홍룡 일족들에게서도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계승식을 지켜보았다. " 할아버님도..........오셨네요..." 비는 조금 쓸쓸한 빛이 담긴 눈으로 단위에 선 흑룡왕을 응시하며 말을 꺼냈 다. 언제나 비가 할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는 거리는 이정도 인 것 같았다. 처음에 도 그저 먼 발치에서. 그리고 별궁에서는 흑룡궁 본궁을 바라보며, 지금도 이 렇게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아버지의 아버지. 자신의 몸 속에도 흐르고 있을 진한 혈육의 피를 가진 할아버지를 비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훼이 역시 자신의 아버지 흑룡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곁에 서 있는 얼마전 후계자가 된 자신의 나이어린 동생의 모습도 들어왔다. 훼이만의 작은 욕심일지 몰랐지만 훼이는 후계자로서가 아니더라도 비를 저 옆에 세우고 싶었다. 그저 작은 바램. 흑룡왕에게서 진정한 흑룡족으로 인정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비에게 자신이 어린시절 지내왔던 흑룡궁의 곳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손자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하지 만 지금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흑룡왕은 더 이상 비를 받아들일 생각을 품고 있지 않았고, 훼이 역시 흑룡궁 으로 돌아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지금의 훼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아들 의 곁에서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 뿐이었다. 식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화란의 몸에서는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비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용족 본연의 순 수한 마력의 기운. 그것도 차기 왕이될 자가 가진 강력한 마력. 그리고 잠시 후. 조용하던 화천궁의 정원에 감탄의 탄성이 울려퍼졌다. 하늘위에 떠오른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룡의 형상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큼 멋진 것이었다. 보통 주문을 사용해서 불러내는 화룡과는 그 모양과 크기부터 다른 장엄하기 까지한 거대한 용은 바로 현 홍룡왕의 힘의 결정체 였다. " 저게 바로 왕에게서 전해지는 힘의 계승이다." 훼이의 말을 귀에 담으며 비는 화란의 몸을 감싸안는 거대한 화룡의 모습을 보았다. * * * " 뭐하세요?" 훼이와 비가 머물고 있는 화천궁의 한 사실(私室) 안으로 들어서며 화란은 경 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 홍룡왕님... 이렇게 막 나오셔도 돼요?" " 뭐야. 비.... 그냥 보통때처럼 불러." 화란은 조금 서운한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앉으시죠." 훼이는 화란에게 자리를 권했다. 훼이와 비는 함께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화란이 자리에 앉자 비가 찻잔 하나 를 더 꺼내어 화란 몫의 차를 따랐다. 화란의 앞에 차가 놓이자 훼이는 그녀 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 무슨일로..?" " 이번 수행에 함께 가자는 말을 하려구요." " 수행이요?" 화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 왕이 된 후에도 수행은 계속 해야하지. 힘이 무디어지면 안돼니까. 그리고 하계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말이야." " 그렇군요..." " 짧지는 않은 수행이 될거야. 하계의 곳곳을 돌아보게 될 테니까." " 얼마나 걸리는데요...?" " 음...하계의 시간으로 세달 정도일까..."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위에 조용히 내려놓으며 훼이는 비에게 시선을 던졌다. " 함께 가고 싶으냐. 비?" 훼이의 물음에 비는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 제가 결정하라구요?" " 물론이다. 난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고 싶으니까. 자, 네가 원 하는 걸 말해라." 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 네... 가고 싶어요. 홍룡족과 함께하는 수행은 처음이고... 아버지와 함께가 는 수행도 오랜만이니까요." " 그래. 좋다. 나도 오랜만에 네 실력을 알아보고 싶고 말이다." " 다행이네요. 둘다 함께한다고 해주다니." 화란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전 집무실로 가봐야 하니까 이만 일어나겠어요." " 네... 그럼 안녕히.." " 오늘 말씀 고마워요." 둘의 인사에 화사한 미소로 답하고 나서 화란은 즐거운 듯이 가벼운 발걸음 으로 돌아서 방을 빠져나갔다. ========================================================================= 오늘 소설 못 올리는 줄 알았네...(오타가 있을 것 같지만 제눈엔 안보이네요) 우와....지금이 몇시인가...-- 이제 학원은 다 갔군... 오늘 스타워즈를 봤어요....담주엔 미이라 보러가야지. 오늘의 간단한 설정 탐색은 천계의 궁에 관한 것. 궁은 어제 올린 자료와 마찬가지로 각 용족이 다스리는 방향에 있습니다. 그리고 궁의 이름은 두가지로 불리죠. 홍룡궁(화천궁), 백룡궁(풍천궁), 황룡궁(지천궁), 청룡궁(수천궁), 흑룡궁(宇천 궁) 이렇습니다. 힘의 속성에 따른 이름이구요. 천계의 크기는 지상과 거의 같 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계(界)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용족의 평균수명은 1000년. 천상인들은 500-600년, 영수족들은 1000년 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746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8일 01:2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3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二.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二. 조금전부터 온몸에 엄습하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부인하며 백룡족의 소년 류 는 온몸을 긴장시켰다. 여럿이 함께 몰려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평소에도 혼자 수행을 다니던 류였지만, 오늘 만큼은 자신의 그런 성격이 원 망스러웠다. 아직 성년식을 치루지 않은 어린 용족인 류였지만 그래도 수행만 큼은 다른 동년배의 용족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날 정도로 많이 해온 자신이 었다. 이렇게 몸이 굳어질 정도의 힘을 느낀 것은 성년을 맞이한 자신의 형과 힘을 겨루던 때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사실 그때는 단순한 대련의 차원이었기 때문 에 이렇게 온몸이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섬뜩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을 긴장시키고 있는 그 기운은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이곳 하 게에서 용족인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만한 존재는 없다. 그렇다면 분명 이 느 낌은 하계에 존재하는 자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사라락. 조금 거센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그리고 류가 바람소리 에 잠시 귀를 기울인 그 순간.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힘이 류의 몸을 감쌌다. 그것은 실로 한순간의 일이었다. [ 어린 용족들은 너무나 약하군..... 최강 이라고 자만하는 용족이라도 어린 아이는 별 수 없다는 건가.......? ]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그 어조에 류는 두눈에 힘을 주고 상대방을 노려보았 다.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그 강력한 힘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자신 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류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눈뿐. 천천히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창백 한 인상의 남자를 바라보며 류는 눈을 부릅떴다. [ 가장 오래된 자를 없애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라..... ] 낮고 차갑게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류의 미간에 섬뜩한 기운이 맞닿 았다. * * * * " 홍룡왕 전하...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 내 결정입니다. 보좌관." 화란은 단정하게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그 둘은 용족의 피를 더럽힌 자입니다." 중년에 접어든 듯한 외모를 보니 홍룡왕 화란의 보좌관은 700살을 넘긴 듯 했다. 아직 새 보좌관을 뽑지 않았기 때문에 전대 홍룡왕의 보좌관이었던 그 가 계속해서 그 일을 맡고 있는 것이었다. " 피를 더럽혔다라..... 그건 누가 정한 기준이죠?" 화란은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 하지만 전하..... 용족의 피는 용족의 피와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용족들이 있어온 먼 옛날부터 당연시 되어오던 것입니다. 인간의 피는 우리에겐 약함을 줄 뿐입니다."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전하. 그들과 함께 다니시는 것은 전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낳 을 뿐입니다. 왜 모르십니까. 지금도 그들을 궁에 머물게 하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자들이 꽤 있습니다." " 그래요?" 화란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 불만이 있는 자는 직접 내게 와서 말하라고 하세요. 난 내 생각을 청회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전하... 전하께서는 이제 한 일족의 왕이라는 사실을 항상 숙지하셔야 합 니다. 왕이란 것은 항상 일족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자입니다." 화란은 냉정하게 굳어진 붉은 눈동자로 보좌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 전하....." " 나가주세요. 보좌관. 지금은 당신과 말이 통할 것 같지 않군요." 화란의 축객령에 막 다른 말을 꺼내려던 보좌관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 다. "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홍룡왕 전하. 그러면 저는 이만 나가보겠 습니다." 화란은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올리는 보좌관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 였다. 막 닫혀진 집무실의 문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화란은 피식하고 웃었다. 용족의 피를 더럽힌 자라....... 정말 마음에 안들어. 우리와 같이 영겁의 시간의 귀퉁이를 걸어가는 그들 인 간들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가..... 그리고 훼이의 마음을 빼앗은....아니, 지금도 차지하고 있는 그 여인. 화연이라는 그 여인이 만약 인간이 아니었다면 훼이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 겠지.... 지금의 그는 오직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해는 되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어. 인간의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지. " 하지만......" 화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 지나간 기억은 언젠가는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화란은 자신의 두손을 맞잡아 포갠채 힘을 주었다. 그녀가 훼이를 처음 본 것은 훼이가 막 흑룡왕의 후계자가 되었던 때였다. 그 때의 그녀는 성년식을 1년 앞둔 때였고 훼이는 이미 300살을 바라보는 나이 였다. 그때의 화란은 그저 훼이에게 막연한 호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녀가 훼이에 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들을 얻어서 돌아온 그의 소식을 접하고 난 후였다. 호기심 반으로 다가섰던 그때 화란은 자신의 지위를 버리면서까지 인간의 피 를 이은 자신의 혈육과 그 여인을 선택한 훼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화란이 가지고 있던 상식의 틀을 깬 행동이었다. 용족으로서의 자부심과 한 일족의 후계자라는 자리를 훼이는 자신의 신념으 로 맞바꾼 것이었다. " 전하. 훼이님께서 뵙기를 청하고 계십니다." 막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고 있던 화란은 시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 답했다. " 들어오시게 해라." 화란의 대답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훼이가 들어 섰다. 언제나 처럼 무늬없는 깔끔한 검은색의 파오를 걸친 훼이는 가볍게 고 개를 숙여 화란에게 인사를 건넸다. " 무슨일로 먼저 절 찾으셨나요. 기쁘게 받아들여도 될 일인가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훼이는 입을 열었다. " 하계에 내려가면 당신과 꼭 같이 갔으면 하는 곳이 있소." " 함께 갔으면 하는 곳이요....? 어디죠?" 화란은 약간의 기대를 품고 물었다. " 당신에게 화연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훼이를 바라보며 화란이 할 수 있는 것은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화천궁의 입구에 선 화란과 훼이, 비. 그리고 두명의 청년을 앞에두고 보좌관 과 장로들은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수행을 마치시고 돌아오실 날을 기다겠습니다. 홍룡왕 전하." " 내가 없는 동안 일을 맡기겠습니다." 보좌관은 고개를 들어올린 후 훼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훼이님. 홍룡왕께서 아직 미숙한 점이 많으시니 옆에서 도와주시기 바랍 니다." 무척이나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 보좌관을 보며 화란은 조금 놀란 듯한 표정 을 떠올렸다. " 명심 하겠습니다." 훼이 역시 정중하게 답했다. " 그럼 이만 길을 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훼이는 손을 가볍게 휘둘러 공간을 열었다. 29대 홍룡왕 화란의 수행에 함께하는 네명은 차례로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여름의 용이자 불꽃의 용인 홍룡일족의 새 왕인 화란의 수행은 보통의 왕들 의 수행과는 달리 무척 적은 인원으로 움직였다. ========================================================================== 우웃...졸려....잠자고 싶어...잠.... 음... 오늘은 어떤 설정에 대해서 말해야 할까요... 아...이 소설에 나온 이름과 지명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죠. 등장인물의 이름은 중국식으로 짓기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구요. 하계의 지명은 중국의 신 화 서적에 나오는 지명들을 활용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작은 소품들... 예를들어 옷이나 차등등은 중국 문화 서적에서 참고 했구요. 음양오행에 관한 것들은 창룡전 가이드북이랑 백과사전 그리고 몇몇의 참고 서적을 이용했습 니다. 그리고 동물이나 풀이름 같은 것도 신화서적과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르내리면서 배웠던 풀들을 활용 했습니다. ^^ 음...그리고 훼이의 나이는요... 나중에 본문에서 나올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번 호 : 760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9일 01:2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三.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三. 막 가을에 접어든 하계의 숲들은 푸른색의 잎 대신 붉고 노란색의 잎들로 자 신을 치장하고 가을을 맞이했다. 군데군데 솟아나 있는 푸른 잎의 침엽수와 더불어 숲의 빛깔은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하계에서도 가장 커다란 대지를 가진 동방의 대륙에는 고신국이라는 나라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수행을 위해 내려온 화란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곳은 고신 국의 북쪽에 자리한 조산(肇山) 이었다. 그곳은 험한 지형은 아니었지만 산 자체가 워낙 높아서 웬만한 체력을 가지 지 않고서는 오르기 힘든 곳이었다. 평소에도 정상으로 향하는 인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문 곳이었 지만 이틀전부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노을보다도 진한 붉은 빛 때문 에 인간들은 조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 홍룡족의 힘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에요." 화란과 힘을 겨루고 있는 두명의 젊은 홍룡족과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관망하듯이 그들을 바라보며 비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배어 있는 엷은 감탄 을 읽으며 훼이는 대답했다. " 우리가 가진 힘과는 상반된 성질을 가졌기에 더욱 생소하고 신비하게 느 껴질 것이다." " 정말 그래요. 계승식때 본 화룡과는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하구요." 화란이 내뿜는 가히 압도적이기 까지한 힘을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며 두 부자 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두명의 홍룡족 청 년이 힘이 부쳐 숨을 헐떡이고 있자 화란은 손을 흔들며 훼이와 비를 불렀다. " 나와 힘을 겨뤄보지 않겠어요?" 화란은 둘 모두에게 물은 것이었지만 훼이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화란은 비에게 물었다. " 비. 나와 한번 힘을 겨뤄보겠니?" 순간 고개를 돌려 훼이에게 허락을 구하려는 비에게 훼이는 비가 묻기도 전 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 나는 여기서 보고있을 테니 한번 네 실력을 발휘해 보거라." " 네. 아버지." 비는 힘차게 대답하고는 먼저 방어주문을 외쳤다. 하늘 끝에서부터 검푸른 물결이 퍼져나와 서서히 온 하늘을 자신의 빛으로 물들여 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물끄러미 검은 색으로 뒤덮여 가는 하늘 과 그 검은 빛 사이로 촘촘히 솟아오른 별들을 바라보던 훼이는 바닥을 스치 는 가벼운 발소리를 들었다. 약하긴 하지만 경쾌한 울림을 담고 있는 비의 발소리가 아닌 것으로 보아 그 발소리의 주인공은 화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훼이는 여전히 하늘에 시선을 둔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비는 잠들었어요." 화란은 흰색의 길다란 끈으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훑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 역시 당신 아들 답더군요. 제 힘을 어느 정도라지만 막아내고 반격까지 할 정도라니...... 하지만 마지막엔 약하게 힘을 보냈을 뿐인데 쓰러져 버려서 놀랐어요." " 비는 체력이 약합니다." 밤 하늘 아래에 자리한 훼이는 그 속에 녹아들길 바라는 듯이 미세한 움직임 조차 보이지 않았다. " 그것도 인간의 피 때문이겠죠.....?" 그렇게 말하며 화란은 훼이가 보고 있을 하늘의 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 용족들은 자존심이 너무나도 강한 것 같아요. 그건 우리가 가진 힘이 세 상의 질서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단지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일까요..." " 글세..... 나는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와 그 들은 별개의 존재이니까..." 화란은 다시 훼이를 바라보았다. 훼이는 여전히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깊게 잠겨든 밤의 장막 안에서 검은 파오에 감싸인 훼이의 모습은 눈 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눈에는 똑똑히 보였지만 화란은 훼이의 모습이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 난 그저 비가 내 곁에 함께 있어주어서 기쁠 뿐입니다. 비와....그녀의 가 족들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 비는 착한 아이에요." 화란은 훼이의 말에 짧게 덧붙였다. " 내일 또 다른 곳으로 다니려면 지금 눈을 붙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괜찮아요. 지금은 별로 잠도 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며칠 자지 않는다고 해도 피곤하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 내일은 비가 태어난 곳으로 가볼까해요. 안내해 주시겠죠?" 담담하게 이어진 화란의 말에 훼이는 그때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화란을 응 시했다. " 무엇이 그토록이나 당신의 마음을 끌었는지 알고 싶어요. 하계는 그저 아 름다운 곳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는데 내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 아요." 잠시 화란의 눈만을 바라보던 훼이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짧은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 각이 들기도 합니다. 긴 시간은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 것 같군요." 훼이는 약간이지만 허무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 * * * " 전하는?" " 비 전하와 함께 정원의 누각에 계십니다." 백룡왕 파이론의 명령을 받아 하계에서 명계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 았던 312세의 젊은 용족은 막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한시라도 빨리 백룡왕에 게 전하기 위해서 서둘러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전하. 우려하시던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하여 파이론의 앞에 선 청년은 인사를 하는 것도 잊은 채 말을 내뱉었다. 막 식사를 끝마치고 챠렌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파이론은 고개를 돌 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말해보게." " 네. 전하. 저를 비롯한 세명이 조사에 임했고 지금도 다른 두명은 하계에 남아서 명계에서 온 자로 짐작되는 자의 움직임을 뒤쫓고 있습니다." " 그래서 그 자의 움직임은?" 청년은 난감한 듯이 얼굴을 살짝 굳히며 말을 이었다. " 아무래도 우리 일족의 아이가 희생당한 듯 합니다. 아직 확인은 하지 못 했지만 소형산 근처에서 수행을 하던 성년전의 일족 하나가 행방불명입니다." " 흐음..... 사라진 것은 언제지?" 그렇게 질문을 던지며 파이론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중하 게 굳어진 표정으로 보아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했다. " 하계 시간으로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곳에 있다면 마땅히 느껴져야할 마 력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걸 보아 위험한 상황에 처한 듯 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둘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고 있던 챠렌이 처음으로 입을 열 었다. " 제가 가죠." " 당신이 직접.....? 아직 그렇게 큰 일은 아닌 듯 한데..." 챠렌은 강경하게 고개를 저었다. " 일족의 생명이 걸린 일이에요. 백룡왕의 비로서 그리고 보좌관으로서 가 만히 두고 볼 일은 아니에요." 파이론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말린다고 해서 들을 당신이 아니지. 그럼 부탁하겠소." " 제가 직접 가는 것이니 만큼 확실하게 백룡족의 힘을 보여주고 오도록 하죠." 자신감에 가득찬 미소를 떠올리며 챠렌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누각의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 안내해 주겠나?" " 네. 비전하." 챠렌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파이론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면서 바로 공간 의 문을 열고 하계로 떠났다. ============================================================== 와.... 오늘 분으로 딱 30회입니다. 놀라워라... 30회다...30회. 아이 조아.. ^-^ 훗...그리고 어제 올린 부분에 오타가 있더군요...오늘 봤다...-- 이제 며칠 후면 매일연재의 기록이 깨질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저희 만화 동 아리 편집이 다음주 거든요... 친구네 집에서 밤샘해야 하는데....비축분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매일 쓰는게 버릇이 돼서 미리 안 써지더라구요... 오늘은 설정 쓸 것이 없네요.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혹시 궁금한게 있으시 면 말씀해 주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름엔 잠이 최고!! 번 호 : 78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0일 01:5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四.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四.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간의 시간은 그토록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비가 성년을 맞이하고도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였기에 하계는 벌써 몇 개 의 나라가 들어서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망연함도 아무것도 아닌 그저 텅빈 시선으로 훼이는 화연이 살았던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때의 흔적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저 평평한 밭 으로 변해버린 그곳. 빽빽한 숲과 경사진 산길이 나 있던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한창 번성하고 있었던 마을의 모습도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몇채의 집들과 피어오르는 밥짓는 연기만이 예전과 같았다. " 보지 않아도 알 것 같군요....... 어떤 곳이었을지." 화란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 .....그때도 전 잊었었죠..... 아마도 그것은 내가 용족이기 때문이겠지만 인 간들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화란은 훼이의 입가에 스쳐지나가는 쓸쓸함을 보았다. 화란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평평한 밭길 사이를 걸었다. 이제 얼마후면 인 간의 손에 의해 거두어 들여질 푸른 빛깔의 채소들은 싱싱한 빛을 간직하고 자라나 있었다. " 안녕하세요. 화연. 늦었지만 먼저 인사할께요. 난 화란이라고 해요. 29대 홍룡왕이죠. 훼이와는 당신이 그를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그 의 마음을 먼저 가져간 것은 당신이군요." 마치 바로 앞에 화연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화란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꺼냈 다. " 어쩌면 가장 오래 사는 것은 인간일 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떠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이곳에는 당신을 기억하는 자들이 남아있잖아요. 당신이 남긴 핏줄도. 당신이 마음을 주었던 사람도 그리고 한번도 보진 못했 지만 저역시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마음 속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 그런 거겠죠?" 화란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에 담긴 것은 엷은 애닯음이었다. " 이제 돌아갈까요.... 그저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 니까..." 훼이는 뒤돌아서서 공간을 열었다. 아직 어슴푸레하게 옅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작은 마을의 어귀에서 훼이가 찾은 것은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흔들림 없는 화 연의 얼굴이었다. " 분명 이곳은 당신이 왔던 예전의 그곳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언제고 변하지 않을 그 풍경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겠군요..... 돌아가요." 이곳까지 와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잊혀진 자는 그저 잊혀진 자로 족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자신이었 건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았다. 화연이라는 인간 여인이 가졌던 것이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 난 후에도 여전히 훼이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일까. 천계에서의 백년이라는 시간은 하계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어마어마한 세월이 다. 천년의 세월을 보장받은 용족에게 있어서도 결코 짧은 않은 그 시간. 과연 지금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신감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 을까. 훼이의 눈 속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화연이 살았던 천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의 대지일 뿐인데..... 그 오래고 오랜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어서 그의 눈에 는 예전의 그가 기억했던 모습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각자가 품고 있는 사랑은 그토록이나 달랐다. "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군..." 막 햇살이 눈부시게 빛을 뿜어낼 무렵 훼이와 화란은 수행기간 동안 머무르 고 있는 얕은 평지에 다다랐다. 평소라면 벌써 일어나 있을 비가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훼이와 화란이 나가기 전까지 곁에서 잠들 어 있던 홍룡족의 수행원 둘은 어딜 갔는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 오늘은 일족들과 수행을 다녀오도록 하겠어요. 당신은 비와 함께 있는 편 이 좋겠죠?" 그렇게 말을 던지고 나서 화란은 몸을 돌려 일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양이 서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화란과 홍룡족의 청년 두명은 돌아왔다. " 아직 깨어나지 않았나요?" 훼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무슨.......문제라도 생긴건가요?" " 아무래도 몸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동안은 체력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힘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죠."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훼이는 잠든 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 게다가 말은 안했지만 비는 흑룡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지요. 그래서 몸이 힘들어도 내색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 비는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깊은 눈을 가지고 있어요." 화란은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비의 모습이 언제까지고 과거의 기 억속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훼이의 고집스러움을 그대로 닮았다고 생각했 다. * * * * 오늘따라 훼이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항상 훼이의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과 별다른 표정을 떠올리 지 않는 얼굴을 대해 오던 유에린으로서는 그러한 훼이는 조금 의외로 여겨 졌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숲에서 한참 떨어진 흑룡궁 이었다. 그곳을 바라보 며 훼이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보통때와 달리 훼이의 얼굴에는 짙은 감정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 왜 궁으로 돌아가지 않으세요. 이런 곳에서 혼자 지내기 보다는 동생이신 흑룡왕님과 함께 궁에 머무르는 편이 더 낳지 않나요?" 별다른 생각없이 꺼낸 유에린의 말에 훼이는 입가에 고소(苦笑)를 머금으며 유에린에게 말했다. " 내겐 저 곳으로 다시 돌아갈 자격 같은 건 없으니까. 그리고 비록 살아있 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은 천상계의 수명부에도 기록되어 있 지 않지... 한마디로 난 존재하지 않는 자야..." 그 말을 듣고 유에린은 문득 일족의 어른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던 훼이가 용 족의 수명을 뛰어넘게 된 까닭을 떠올렸다. 갓 성년을 넘긴 자신으로서는 천년이라는 세월보다도 더 길게 살아온 훼이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두 눈에 담긴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깊이와 굳어진 얼굴에서. 유에린은 그저 가라앉은 애 상을 보았을 뿐이었다. " 오늘은 그동안 익힌 것을 혼자서 연습해 보도록 할께요. 지켜보다가 틀리 는 곳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에린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막 하늘 위로 네 마리의 수룡을 띄우며 진중하게 표정을 굳히는 유에린의 모 습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의 꺾이지 않는 의지 가 담겨 있었다. 훼이는 언제나 유에린을 볼때마다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다시 과거를 떠올리 게 만드는 것은 바로 유에린이 가진 앞을 바라보는 강인한 눈동자 때문이라 는 것을. =================================================================== 흑...너무 졸리다....다행히 낼은 학원에 안가는 날이라서 늦잠을 조금 잘 수 있지만. 오늘은 글이 너무 짧네요. 졸려서 쓰는데 평소의 두배나 걸렸어요. 역시 사람은 잠을 자야 합니다. 자..그러면 안녕히 주무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번 호 : 80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1일 01:5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五.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五. 온 몸을 뒤덮는 나른한 기운. 비는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하게 비쳐 들어오는 햇살을 보니 정오가 된 듯했다. 분명 오랫동안 잠을 잔 것 같았다. 말로 내뱉진 않았지만 화란의 힘을 막아내 기 위해 비는 내색 없이 힘을 끌어내어 사용했다. 그때문인지 이른 저녁이 되 었을 무렵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천계의 고요함과는 다른 정적. 하계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려왔었다. 비가 태어난 곳도 바 로 하계 였고, 그의 몸의 반을 타고 흐르는 피는 바로 하계에서 살아간 인간 의 것이었기에 비는 하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른 용족들이 하계에 대해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비는 무척이나 친숙한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정적은 비도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주위가 고요한 것은 언제나와 같았지만 피부에 와닿는 약간의 생소함과도 같 은 정적은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제 29대 홍룡왕이 된 화란의 수행. 그리고 그 수행을 함께 하고 있는 자신과 아버지 훼이. 그리고 홍룡족의 수행원인 두 청년은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왕의 수행이라는 것은 힘을 기르기 위한 수행이라기 보다 앞으로 자 신이 관리해야할 하계의 모습을 익히는데 더욱 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천계의 시간으로도 500년이 훨씬 넘는 긴 시간 동안 하계의 여름과 화(火)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에 대한 관리는 홍룡족이. 그리고 왕인 화란이 해야하는 것이었기에 하계의 시간으로 세달 동안 하계의 곳곳을 둘러보는 것이다. 몸에 힘이 돌아오자 비는 공터에서 벗어나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오 래 잠을 자서인지 몸이 전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지난번에 보아둔 얕은 못에 몸이라도 담글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왕으로서의 화란은 보통때와는 조금 달랐다. 평소에도 곧은 태도를 보이던 그 녀였지만 왕으로서의 그녀에게는 위엄이 있었다. 일족을 이끄는 자라면 누구 나 가지고 있을 그런 위엄. 비는 문득 자신의 아버지. 훼이를 떠올렸다. 분명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훼이는 이미 흑룡왕이 되었을지 도 몰랐다. 아직 훼이의 아버지인 22대 흑룡왕이 정정하긴 했지만 그가 훼이 에게 일찍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아버지가 가끔 흑룡궁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는 일 은 없었겠지......? 비는 피식 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훼이가 무엇을 위해 후계자의 위를 버렸는지는 잘 알고 있는데.... 훼이가 얼 마나 자신을 생각해주는지 비는 알고 있었고,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는 비를 위해 훼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다. 비에게는 오히려 별궁에서의 조용한 삶이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비와 훼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시비들을 통해 비는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배웠고 이제는 먼 기억 속의 한 자락으로 자리잡 은 비영의 모습 또한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인간과 용족의 경계에 선 자. 그것은 언제나 비를 따라 다니는 해답 없는 물음이었다. " ......뭐지..?" 막 못에서 빠져나와 옷을 걸치고 자리를 뜨려던 비는 못에 맞닿아 있는 반대 편 수풀 속에서 무언가 일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공간이 열릴 때 생기는 일그러짐 같이 휘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희미한 빛깔의 안개에 푸 른색이 더해진 것 같기도 했다. 비는 그 일렁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곳으로 향 했다. 그리고 그 일렁임을 두 눈으로 보게 된 비는 신선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그 일렁임은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과 같았다. 보통 용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여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지만 분명 그 일렁임에서는 하계가 아닌 다른 곳의 기운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비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일렁이는 한사람 정도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원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가 느낀 것은 생소함.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이계(異界)의 공기 가 주는 생소함 이었다. * * * " 어디 좋은 곳이라도 있나요? 계속 다른 곳에만 가계시는군요. 저와 함께 여러 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않으신가요?" 막 공터로 들어서는 훼이에게 화란은 방금전에 따온 과실 하나를 내밀며 말 했다. " 그저 발길 닿는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혼자서 생각할 것 이 좀 있어서." " 그렇군요...." 화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라난지 수십년은 되어보이는 굵직한 나무 기 둥에 몸을 기대고 섰다. " 아..그리고보니 비는 어디론가 나간 모양이군요. 오후쯤에 깨어난 듯 한 데...." 화란의 말을 듣고 둘러보니 보니 비의 모습은 근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산에라도 오른 것 같군요." 훼이는 짧게 대답하고는 이제는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붉은 색의 노을을 바 라 보았다. 인위적인 색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자연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붉은 빛의 움직임. 그것은 언제고 훼이가 하늘을 바라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 하지만 조금 늦는군요." 훼이가 덧붙여 말하자 화란은 빠른 어조로 말했다. " 제가 찾으러 갈께요. 이제 날이 저물어 오니까요." " 그렇게 하십시오. 지금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또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훼이를 한번 바라본 후 화란은 나무 기둥에서 몸을 떼고 발 걸음을 옮겼다. " 홍룡왕 전하께서는 아무래도 훼이님을 마음에 두시고 있는 것 같은데... 알고 계십니까?" 화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공터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젊은 홍룡족 청년 중 한명이 훼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대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한명의 홍룡족 청년 역시 훼이에게 물어왔다. 지금까지 화란의 명령 에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던 그들을 보아왔기에 훼 이는 조금 의외라고 느꼈다. 마치 친 형제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닮아 있는 두 청년은 완곡한 얼굴로 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화란은 홍룡왕. 그리고 난 그저 한명의 흑룡족일 뿐이지. 그 이상 다른 무엇이 더 있다고 생각하나?" " 하지만 홍룡왕 전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옆 에서 지켜보고 있는 저희들도 느낄 정도인데 당사자이신 훼이님께서 그것을 모르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훼이는 화란에게서 받은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과즙이 훼이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인간의 여인을 사랑했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했던 선택이기에 지금도 난 그걸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인생에 여인은 한명 으로 족하다고 여기는데..... 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희도 더 이상 무어라 드릴 말씀 은 없습니다." 두 홍룡족 청년은 무척이나 정중한 어조로 훼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지금의 난 내 아들의 일만을 생각하고 싶으니 더 이상은 아무말 말아주 게. 누군가가 날 마음에 담는 것은 바라지 않으니까..." 그것은 무척이나 미묘한 흐름이었다. 화란은 언제나 한발 물러선 거리에서 훼이를 보고 있었다. 항상 말은 확실하 게 내뱉곤 하는 그녀지만 말 이상의 것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과연 훼이가 생각하는 그것과 동일한 것일까. 언제나 확연하게 거절의 뜻을 전하는 훼이를 대하면서도 화란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훼이를 대했다. 화란.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과 직시하는 시선으로. 그 한결같음으로 그녀는 훼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던 세사람의 눈앞에 갑작스레 공간이 열리며 조 금 당황스런 모습의 화란이 나타났다. " 큰일이에요. 어디에서도 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훼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화란의 눈에 비춰진 것은 굳어진 얼굴로 공간을 여는 훼이의 모습이 었다. ======================================================================= 우...제 소설 문장력이 너무 딸리는 것 같아요. 괴로워....괴로워... 읽어주시는 분들... 이런 졸작 소설을 읽어주시느라 주고가 많으십니다. 조금씩 자신이 없어지고 있네요. 주위에 뛰어난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보잘 것 없는 제 자신이 너무 작아보여요. 에잇...그치만 열심히 써야죠. 제 장점은 열심히 쓴다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지만... ^-^ 오늘도 잠이 모자르는 저는 눈을 반쯤 감고 자판을 두드립니다. 번 호 : 82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2일 01:0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六.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六. 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생소한 이질감에 호기심을 느껴 들어선 이계(異界)의 땅은 무척이나 신비한 것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곳곳에 돋아난 풀들과 나무들. 그리고 가끔가다 눈에 띄는 동물들은 보통 천 계나 하계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끼릿. 공기를 날카로운 칼로 베는 듯한 높고 가느다란 울림에 비는 한쪽 귀를 손으 로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분명 그것은 학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가 달랐다. 온 몸의 깃 이 흰색이 아닌 푸른빛을 띄고 있는데다가 부리는 흰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 다 그 동물의 다리는 한 개였다. 어떻게 한 개의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움직 이는지 비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막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그 동물은 비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흔들림 없이 재빠르게 한 발로 움직였다. 그 새 가 목표로 삼은 것은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기어 올라가던 작은 벌레였다. 나뭇 가지와 같은 빛깔을 띄고 있어서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그 새는 하늘에 서 지상에 있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움직임처럼 날렵하게 그 벌레를 부리로 낚아챘다. " 필방(畢方)." " .........?" 비는 갑작스레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하며 놀랐다. 분명히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주위에는 그 이상한 생김새의 푸른새 밖에 없었건만 비에게 말을 건네온 그 목소리는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 웠다. " 저 새의 이름은 필방이지. 화재를 불러오는 재난의 새." 고개를 돌린 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떠올린 비 또 래의 청년이었다. 아랫쪽을 향해 쳐져 있는 눈꼬리와 금빛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밝은 갈색의 눈이 인상적이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의복은 비로서는 처음보는 형태의 것이 었는데 상의와 하의의 폭이 무척이나 넓은 데다가 여밈이 많은 옷이었다. " .........누구지.....?" " 그것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이곳은 생명을 가진 자가 올 곳이 아닌 데." 비는 자신의 앞에 선 침울한 인상의 청년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을 가진 자가 올 곳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지금 말을 거는 그 자신은 죽 어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하니 용족인 모양이군......아니야, 용족과는 조금 다른데?" 어깨까지 닿는 검은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청년은 주의깊게 비를 바라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비는 청년이 자신의 정체를 한번에 꿰뚫어 보는 것에 놀라며 조심스럽게 물 었다. " 여긴......어디지?" 청년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비를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 버림받은 자들의 땅. 명계(冥界).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이름이지........" 비는 놀란 눈으로 청년을 쳐다본 후 다시 자신이 서 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비에게 익숙한 풍경은 없었다. * * * * " 저쪽이다." 챠렌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두명의 젊은 백룡족은 재빠른 동작으로 풀 숲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후. 침음성을 삼키며 한 남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찾았습니다. 비 전하......하오나 이미 사체입니다." 차분한 얼굴로 풀숲을 응시하고 있던 챠렌의 눈에 수풀을 헤치며 걸어나온 일족에게 들려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도 이미 목숨이 끊어졌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푸르게 굳어진 피부와 축 늘어진 몸. 소년의 사 체를 대한 챠렌의 눈은 순간 싸늘하고 예리한 빛을 발했다. "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느냐?" 챠렌의 질문에 소년의 사체를 안고 있던 일족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뒤 를 따라 나온 다른 일족이 말을 꺼냈다. " 제가 알고 있습니다... 분명 류라는 이름이었습니다." " 어떤 아이지?" " 평소에 무척이나 수행을 즐기는 아이로 아직 성년은 맞이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경험이 풍부한 아이였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체격의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시 소년의 얼 굴을 내려다 보았다. " 기억하기로는 좀 젊은 부부의 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챠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 죽음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아무래도 몸을 제압당한 상태에서 생명력 자체를 빼앗긴 것 같습니다. 명 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지요." 그의 말을 듣지 않고서도 챠렌은 소년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 지 알 수 있 었지만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소년의 사체를 응시 했다. " 그대는 류를 데리고 천계로 돌아가서 부모에게 알려주도록 하게." " 네. 비전하." 소년의 사체를 안고 있던 일족은 깍듯이 고개를 숙여 챠렌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공간을 여는 주문을 외쳤다. 챠렌이 여는 것에 비해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공간의 문이 열렸다. 젊은 일 족의 청년은 다시 한번 챠렌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나서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 그대는 나와 함께 이 주위를 더 살펴보도록 하지." 막 공간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챠렌은 남아있는 한 명의 일족에게 말 을 건넸다. " 비전하. 류라는 소년이 쓰러져 있던 곳 주위의 풀들은 아무런 손상을 입 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소년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이곳이 아닌 듯 합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청년이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지자 챠렌은 손을 들어 방금 전 소년의 사체를 발견했던 풀숲을 가리켰다. " 분명 어떤 흔적이 남아있을거야. 명계의 자들이 가진 특별한 기운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나서 챠렌은 걸음을 옮겼다. " 죽은자들이 산 자의 땅에 들어서면 반드시 그 주위엔 죽음의 기운이 남 기 마련이지." 활동에 편한 흰색의 치파오를 걸친 챠렌은 서슴없이 풀 숲에 발을 들여 놓았 다. - 다행이군. 역시 챠렌 답다고 해야 하나?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이공간(異空間) 연결 주문을 통해 챠렌은 파이론에게 자신이 오늘 찾아낸 것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 작은 증거를 찾기는 했지만 조금 힘들지 몰라요. 명계에서 온 자가 남긴 것은 아주 미세한 것에 불과하니까.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 당신의 직감은 언제나 틀리는 적이 없었지. " 죽은 아이의 부모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하도록 하세요. 어린 일족의 죽음 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 왕의 책임이에요." - 아아. 잘 알고있어. 이럴 때 만큼은 정말 보좌관답다니까.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는 파이론의 모습을 보며 챠렌은 빙긋이 미소지었다. " 돌아가는게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군요. 발견된 것은 한명 뿐이지만 또 다른 희생자가 있을지 몰라요. 백룡족이 아니더라도 다른 용족들도 하계에 많 이 내려와 있을테니." 거울에 비친 파이론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다른 용왕들에게도 소식을 알려야겠군. "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그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네며 챠렌이 막 해제의 주문을 내뱉으려 하 자 파이론은 손을 내저어 잠시 그녀의 움직임을 만류했다. - 그대의 빠른 귀환을 위해 다른 용족들의 도움을 구하도록 하지. " 제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요?" - 그럴 리가.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그대는 보좌관이기 이전에 나의 비니 까. 부드럽게 미소짓는 파이론의 모습은 해제의 주문이 외쳐짐과 동시에 사라져 갔다. =================================================================== 오랜만에 새벽까지 안 썼습니다. 하지만 12시는 넘었네요. 아직까지 동아리 밤샘작업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제 곧이네요. 하루종일 작 업하는 곳에 있다보니 글 쓸 시간도 없고...아...비축분. 비축분이 필요해.. 이제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듯한 조짐이 보이는 것 같지요? ^^ 흑룡의 숲에 등장하는 다른 계(界)들도 가벼운 위치는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명계나 천상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다른 곳들도 나온답니다. 이게 의외로 스케일이 좀 커서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를 맞이하시길 빌어요. 번 호 : 84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3일 00:3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七.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七. " 그쪽은 어떻지?" 조급한 화란의 음성에 두명의 홍룡족 수행원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어디에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세한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예상한 대답이긴 했지만 화란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서 힘이 빠져버려 바닥에 주저않고 싶은 듯한 기분이었다. 훼이는 공간을 열고 비를 찾으러 떠난 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굳어진 훼이의 얼굴은 처음 대하는 것이었기에 화란은 조금전 의 훼이의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비는 말없이 사라질 아이가 아닌데......분명 무슨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강한 힘을 가졌지만 비의 몸에 흐르는 인간의 피는 언제 어디서 어 떤 일이 생길지 모르게 만들고 있으니..... 설마...... 화란은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생각을 지우듯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 다. " 전하. 다른 곳을 더 둘러볼까요?" " 아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는 건 우리 힘으로는 찾 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니까. 여기서 훼이를 기다리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난후 화란은 턱에 한 손을 가져다 댄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두명의 홍룡족 청년들 역시 자세를 풀고 바닥 에 주저 앉았다. * * *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의깊게 주위를 둘러보 았다.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훼이는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안은 그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훼이는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작은 기운 하나라도 느껴지면 재빨 리 공간을 열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번번히 실패할 때 마다 훼이의 얼 굴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분명 며칠전에 지나치게 힘을 썼기 때문에 아직까 지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그 상태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비는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본연의 마력만으로도 평생 손끝하나 다칠 일 없는 용족인 훼이가 자신의 아 들 비에게는 친구를 통해 검을 가르친 것도 바로 그때문 이었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걱정. 반쪽짜리 용이라는 비 난 속에 비를 내던지지 않기 위해 훼이는 후계자의 위까지도 버린 것이다. 비가 자라는 동안 하계의 모든 것들은 변해버리고 비가 훼이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자신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화연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 역시 훼 이의 가슴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아직 훼이의 방 한쪽에 귀중하게 보관 되어 있는 화연이 남긴 편지와 반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훼이가 화연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매개가 되어 주는 것은 자신과 떠나간 그녀가 남긴 유일한 혈육. 비 뿐이었다. 혹자는 지나가 버린 추억 속에서 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말하기 도 한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웠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강물에 흘려 보내듯 이 잊는다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망각이 주는 것은 안식이지만 안식이란 또 다른 슬픔의 이름이기도 한 것이 다. 훼이의 온몸의 감각은 끊임없이 자신과 같은 기운을 가진 비를 찾는데 집중 되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넓은 조산 전체를 다 뒤지고 나서 조 산이 자리잡고 있는 한 지역 전체를 다 돌아다녔지만 어디에도 비는 없었다. 훼이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훼이의 눈 앞에 작은 공간의 일그러짐이 보였다. 누군가가 들어설 수 있을 정도의 넓이가 아닌 팔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 도의 아주 작은 공간. 그리고 그 일그러진 공간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훼이 도 익히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은자들을 부르는 곳. 영혼의 안식 없이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자들이 가지는 깊고도 깊게 가라 앉은 빨려들어갈 듯한 어둠의 향기. 음울한 회색빛으로 가라 앉은 버림받은 영혼들의 땅 명계의 기운이었다. 소리없이 그 일그러진 공간을 주시하고 있던 훼이는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일으켜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희미하긴 하지만 그곳에서 훼이는 익숙한 비의 기운을 느꼈다. 망설일 필요 같은 건 없었다. 훼이는 곧바로 일그러진 공간을 통해 보여지는 명계를 향해 다시 한번 공간을 여는 술(術)을 행했다. 그리고 나서 크게 열려 진 공간 사이로 훼이는 발을 들여 놓았다. * * * "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못 볼 것 이라도 본 듯한 표정 이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눈 앞의 청년을 보면서 비는 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 인지 궁금해졌다. 주위에서 들은 바로는 사후의 심판 이후 윤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악 업을 쌓은 자들이 세상이 끝날때까지 영원토록 그 삶을 이어가는 곳이 바로 명계라고 했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영겁의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것 만큼 큰 형벌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 대체........ 누구지.......?" 비는 조심스럽게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자 무심한 시선으로 비에게 시선을 돌 리며 청년은 손을 내밀었다. " 이 손이 보이나? 시간의 그림자에 감싸인 이 손이..... 알고 있을텐데. 명 계에는 어떤 존재가 살고 있는지." " 그럼... 죽은....자....?" 비는 마치 금기시된 말을 꺼내는 것 처럼 기분이 이상해졌다. 분명 지금도 자 신의 눈 앞에 형체를 가지고 서 있는 청년이 죽은 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 다. " 나도 한때는 용족이었지......." 청년이 내뱉은 말에 놀라 비는 눈을 크게 떴다. " 왜? 놀랍나... 어떤 죄를 지었길래 이곳에서 영겁의 형벌을 받고 있는지?" 청년의 어조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 분명 이곳에서도 죽음은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영원히 반복되는 죽음 이지. 육신의 죽음을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거다. 지 금 이 몸도 몇번째 다시 태어난 몸인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비는 청년의 눈에 떠오른 싸늘함을 대하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마치 보이 지 않는 주박에라도 걸린 것처럼 비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대가 가진 것은 용족과 인간의 피. 그리고 내가 가진 것 역시 그대와 같은 것이지........ 우습지 않나? 내 부모 이외에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 자 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 바보같은 짓.............?" 비는 자신의 속에 그런 격렬한 감정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방금전에 청년이 내뱉은 것은 그의 정체를 말해줌과 동시에 비의 존재 자체 를 부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직 그리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는 한번도 자신의 존 재 가치를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 당연히 우스운 일이지. 인간과 용족의 사이에서 무엇이 남기라도 할 거라 고 믿었단 말인가? 아니지. 남는 게 있다면 단 하나 뿐이야. 하계에도 천계에 도 속할 수 없는 괴리(乖離). 그대는 그렇지 않은가?" 비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살을 찌르는 감촉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 " 적어도 내게는 날 인정해주는 이들이 있어. 당신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 군." 청년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 과연 그럴까.....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가 무엇을 알겠나. 처음엔 나도 그렇게 여겼었지. 하지만 지금의 나를 봐. 내게 흐르고 있던 용족의 피가 준 것은 지겹도록 이어지는 삶의 반복 뿐이야." 비는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청년의 얼굴에 떠오른 싸늘함과 우울함의 정체를 이제서야 깨달았기에. 그것은 바로 자신의 눈 앞의 것 이외에는 보지 도 되돌아 보지도 않는 광기였다. 비는 천천히 몸을 돌려세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몇걸음 걸어나가던 비의 귀에 신음성과도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오 래된 문이 삐걱거리는 듯이 음산한 웃음소리가. " 잊은 모양인데 이 곳은 명계다. 살아있는 자가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비는 뒤돌아 보고 싶은 것을 참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 오옷.... 분위기 죽인다!! ^^;;; 저는 제 소설 설정이 이해가 잘 안갑니다. 바보라서... 제가 대체 먼 말을 하 고 싶은 걸까요...^^ 7장은 좀 긴데요. 10편이 넘어갈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한편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한시간 30분인 것 같군요. 그치만 막히면 3시까지도 씁니다. 음... 명계... 복잡한 곳이구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쾌하고 즐거운 하루를... 번 호 : 86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4일 00:3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八.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八. 며칠째 훼이는 유에린에게 지금까지 가르쳐 준 것 이상의 것은 가르쳐 주지 않고 있었다. 그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 훼이는 움직임 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유에린은 훼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생각에 열중하고 있는 훼 이를 보자 쉽사리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벌써 한달이라는 시간을 훼이와 함께 보내고 있었지만 유에린은 훼이가 무엇 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의 얼굴에 떠오른 그저 가라앉은 침묵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자 신이 살아온 시간의 열배도 넘는 시간을 살아온 훼이가 겪었을 무수한 일들 은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유에린에게 자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오라버니는 언제나 훼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자신이 훼이가 된 듯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 들어봐라. 유에린. 그가 가진 힘은 같은 용족들도 당해내지 못할 만큼 강 한 것이다. 현재 천계의 각 일족들의 장인 용왕들이라해도 쉽사리 그를 당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천상계 조차 상대도 되지 않을 정 도다." 그때의 유에린은 오라버니가 왜 그토록이나 훼이라는 인물에게 호감을 가지 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유에린에게는 먼 곳에 있는 훼이라는 인물 보다는 바 로 자신의 곁에 있는 오라버니 쪽이 훨씬 더 강하고 현실감이 있었기 때문이 었다. " 그렇게나 강하다면 그는 왜 왕이 되지 않았죠?" 유에린의 질문에 그는 피식 하고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 그가 흑룡족 후계자의 지위를 버린 후에도 그리고 오랜 수명을 얻은 후 에도 그를 왕으로 앉히려는 노력은 있어왔다. 하지만 그는 모든 걸 거부했지. 그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살았어. 그가 숲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도 더 이상 다른이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다. 오래된 자들은 항상 해가 지날 수록 고독해지기 마련이니까. 언젠가는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생소 한 것으로 변할테니까 말이다." 그때 오라버니가 했던 말의 의미를 유에린은 이제서야 조금씩이나마 알 것 같았다. 오라버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싸늘한 표정을 가지게 된 자신과 달리 훼이에게 서 표정의 변화를 보기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끈질기게 매달린 자신에게 손 을 내밀었던 훼이는 분명 엷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유에린은 단 한번도 훼이의 미소를 본 적이 없었다. 유에린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오라버니의 생명을 앗아간 현무족과 당당히 힘을 겨루고 싶었기에 오라버니가 입이 닿도록 이야기했던 훼이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힘을 겨루고 난 후의 일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것을 복 수라고 불러야 할 것일까.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유에린은 그 현무족을 증오하지는 않았다. 다만 오라버니가 어째서 그자와의 싸움에서 졌는지 자신 이 직접 마주 대해보고 싶었다. 모든 용족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어온 훼이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대하 기 전까지 유에린은 훼이가 대단한 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마주대한 훼이의 모습은 확실히 보통의 용족들과는 어딘가가 달랐다. 외관상 으로는 겨우 600살을 넘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훼이의 눈에 담긴 잴 수 없는 깊이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세월들이 머물다 갔는지를 말해 주었다. 말 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내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훼이의 검은 눈은 깊고도 깊었다. " 유에린. 난 언젠가 그를 만나서 그가 지내온 세월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 다. 그가 강한 힘을 가져서도 아니고, 수명을 초월한 자라서도 아니다. 물론 그 두가지 이유가 크지 않다면 그건 거짓이겠지. 하지만 난 천년이상이나 이 세상에 살아오면서 그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 전 잘 모르겠어요...." " 그래. 그럴거다. 하지만 유에린. 너도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할거 다." 그렇게 말했던 오라버니의 얼굴에는 자신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에린이 오라버니가 그토록이나 이야기 하길 원했던 훼이와 함 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오라버니가 그토록이나 허망 하게 목숨을 잃을 거라는 사실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시간이란 정녕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군요........." 유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입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유에린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훼이는 천천히 유에린에게 고개를 돌렸 다. " 지나가기 전에는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 품고 있는 운명이 지." 운명이라..... 유에린은 고개를 저었다. " 저는 운명을 믿지 않아요. 아무리 천상계의 수명부에 제 수명이 정해진 채 적혀있다고 해도. 전 단지 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을 뿐이에요." 훼이는 유에린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갓 성년을 넘긴 저 어린 용족 소녀가 가진 당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반복. 어쩌면 그 이름이 가져다주는 것은 기억과 망각의 교차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모든 것들이 한조각도 남기지 않고 산산히 부서져 흩어질 것이다. 기억. 언제고 훼이의 마음 속을 채우고 있는 그 말 역시 그렇게 먼지가 되어 부서질 것이었다. * * * " 그게 사실인가?" " 그렇습니다. 전하. 며칠전 백룡족의 보좌관이자 비인 차렌님께서 직접 내 려가셔서 확인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30대 홍룡왕 란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 그대도 다녀오도록 하게. 아직까지 홍룡족에서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지 만 이렇게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백룡족과 황룡족 이외에는 아직까지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겠지?" " 그렇습니다. 전하." 란은 타오르는 불꽃의 색처럼 선명하게 물든 붉은 색의 머리카락에 손을 가 져다 대며 다시 보좌관에게 말을 건넸다. " 아니야. 괜히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 하계로 내려간 일족들에게 어린 일족들을 보호하라고 전하게." " 알겠습니다. 전하." 란보다 200살은 젊어보이는 보좌관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보좌관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란은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주문을 외쳤다. [ 천개(遷開) 경(鏡) ] 그리고 눈 앞에 떠오른 붉게 감싸인 매끈한 평면에 비친 것은 차분한 얼굴로 문서를 들여다 보고 있는 라이엔의 모습이었다. " 오랜만입니다. 흑룡왕." 이공간 매개 주문을 통해 얼굴을 드러낸 것이 란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는지 라이엔은 가벼운 놀라움을 나타냈다. - 네. 오랜만이군요. 홍룡왕. 그런데 무슨일로.... "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요즘 명계의 교룡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어 린 용족들이 습격을 받고 있소." - 네. 그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답은 하고 있었지만 라이엔의 얼굴에는 명백한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훼이님의 힘을 빌어 그 교룡을 없애는 것이 어떻겠소?" 잠시 라이엔은 침묵했다. - 형님은 더 이상 천계의 일에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우리 용왕들이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데 그대께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으시는 모양이군요. " 그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줄은 몰랐군요. 그 정도도 해결하지 못한대서 야 어디 오래된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란의 눈에 담긴 빈정거림을 읽고 라이엔은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혔다. 예전부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란은 훼이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을 드러내곤 했다. - 아... 잊고 계신 모양인데,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영원한 죽음이란 없습니다. 아직까지 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니 굳이 형님의 힘을 빌리지 않 아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아니면, 그대는 자신의 힘에 자신이 없으신 겁니까? 라이엔으로서는 무척이나 드물게도 약간의 감정을 담은 말투였다. 라이엔은 란의 얼굴이 조금이긴 하지만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이만 인사를 건네도록 하지요. 뭔가 할말이 더 남아있는 듯한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큰일이당....외전도 같이 진행시켜야 얘기 진행이 맞아 떨어지는데... 후.... 본편 쓰기도 벅차니 외전은 언제쓰나..... 오늘은 친구네 집에 묻혀있던 초류향 전기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들고 나 왔습니다. 전 고룡 작품 중에선 절대쌍교랑 초류향 전기가 좋아요. 어느덧 오늘 올리는 것이 35편 이군요. 자, 50편을 채우는 그날까지 잘 써야 지. (50편에서 끝은 아녜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를.... 번 호 : 88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5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九.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九. 훼이로서도 명계에 들어선 것은 처음이었다. 그 존재만 알고 있을 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기에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의 훼이가 느끼는 것은 무척이나 생소하다는 느낌이었다. 주위에 자라나 있는 초목들 역시 색과 그 모양이 기이했고 가끔씩 지나 다니는 동물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던져 주는 것들 뿐이었다. 명계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천계를 비롯한 다른 곳들과는 완전히 달랐 다. 무색무취여야 할 공기가 가지고 있는 희뿌연 느낌과 웬지 모르게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듯한 기분나쁜 향. 그 향은 확연하게 맡을 수 있는 강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은근하게 몸 속을 타고 퍼져나가며 신경을 거스르는 것이 었다. 죽은자의 땅이라더니 과히 기분 나쁜 곳이군..... 훼이는 속으로 낮게 읊조리며 걸음을 옮겼다. 온 몸의 신경은 오직 비가 내뿜 는 희미한 기운을 느끼는데 기울여져 있었다. 그리고 두눈으로는 한시도 쉬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적하나 없는 적막으로 가득찬 숲속을 거닐던 훼이는 어느 순간 비의 기운 을 감지하고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제까지와 같이 너무나 희미해서 어느 곳에 있는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고도 선명하게 비의 기 운이 느껴졌다. 분명 비는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서 훼이는 거의 달리다 시피 하여 비 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길고도 넓은 잎을 가진 작은 나무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비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직도 등 뒤에서 음산하게 깔린 남자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 남자는 이곳 명계의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비는 인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용족은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훼이도 태어나기 전인 더 오랜 과거에도 훼이처럼 인간과 사랑에 빠져 피가 섞인 아이를 낳았던 모양 이었다. 하지만 그는 왜 그토록이나 심한 광기에 휩싸여 있는가. 비로서는 알 수 없었 다. 버림받은 영혼들이 살아가는 땅이 이곳 명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과 연 그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고 세상이 끝날때까지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그 남자의 말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영혼조차 구제 받지 못할정도의 죄라는 것은 무엇인지. 조금 전의 남자가 들려준 말은 비에게 혼 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훼이조차도 그런 말은 들려주지 않았었다. 영원한 반복.........? 과연 그것은 고통스러운 형벌인 것인가. 비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더욱 발걸음을 빨리했다. " 용족이군......" 비는 갑작스레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흠칫하고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비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좌우에 그림자와도 같은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두명을 데리고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높게 틀어올린 짙은 푸른빛의 머리카락과 붉은색을 띄고 있는 눈동자. 그리고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화려한 의복.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세명을 보자 비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비가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은 입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 다. " 그대 역시 교룡이군..." " 교룡.......?" 비는 자신을 향해 던져진 여인의 말에 가슴 가득 의문을 느끼며 되물었다. " 모르고 있었나? 인간과 용족 사이에서 태어난 자를 교룡이라고 부르지. 용족도 아니며 인간도 아닌 자. 하지만 동시에 두 종족이기도 한 자." 비는 아무말 없이 날카롭게 치켜져 올라간 여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 결국 교룡이 갈 곳은 이곳 뿐이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를 받아 들여주는 유일한 곳이니까." " 난 우연히 이곳으로 들어서게 된 것 뿐입니다. 제겐 돌아갈 곳이 있어요." 비는 눈 앞의 여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여인은 소름끼치도록 날카롭게 미소지었다. 어떻게 입술을 살짝 움직 인 것 만으로 그런 표정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여인의 미소는 섬뜩하면 서도 놀라웠다. " 그대는 이곳에 들어선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해. 나는 이곳에 들어선 자를 되돌려 보낸 적이 없으니까." 비는 붉은색을 띄는 여인의 눈이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 당신은......" 비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이제 이곳에 속하게 될 테니 알려주어도 무방하겠지. 나는 명계의 주인인 요희다. 이곳 명계가 생겨났을 때부터 이곳에 존재해 왔지." 그렇게 말하며 요희는 돌려 자신의 양 옆에 선 검은 의복을 걸친 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도 떠올리지 않은 두 사 람은 비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서는 안개와도 같은 검은 빛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며 비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순간 적으로 위험을 느낀 비는 재빨리 방어주문을 외쳤다.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방어주문을 펼치자 비의 주위에 몰려들던 검은 빛은 접근해 오지 못했다. 하 지만 요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 네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두고 보도록 하지. 보통의 용족이라도 견 디기 힘든 이곳 명계의 공기에 교룡인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말이 야......" 요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는 자신의 마음이 점점 무거워 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 * * 자신의 손바닥을 통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따듯한 생명의 기운. 그것이 온 몸에 퍼져나갈 때의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이나 기분 좋은 것이었 다. 자신의 몸이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해 가고 있는 것과 반대로 손바닥 아래 에 놓인 소녀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탈색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반항할 여력을 상실한 듯 소녀의 얼굴은 평안해 보이기 까지 했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살아가야 할 어린 용족의 소녀는 그렇게 자신의 생명력이 다른이에게 넘어가는 것을 무감동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생 명력이 남자에게로 넘어가자 소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두 눈에 세상의 모습을 담기라도 하듯이 천천히. 그리고 남자의 손이 이마에서 떨어지 자 소녀의 몸은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그리고 남자의 손은 다시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다른 소년에게로 향했다. 무슨 주문에라도 걸 린 듯 소년은 굳어진 그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는 무감각한 표정을 떠올린 채 소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또 다시 손바 닥을 통해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은 기분좋은 울림처럼 그렇게 퍼져나갔다. 어느새 남자의 얼굴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검은 눈을 들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제 막 생명이 사라진 두명의 어 린 용족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자신의 두손을 들어올렸다. < 난 누구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텅빈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자신이 몸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갸름한 얼굴 선과 우수에 찬 검은 눈동자. 남자의 모든 것은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몸에서 풍겨오는 분위기 까지. 모든 것이 한 남자를 쏙 뺀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 다. < 훼이......... > 한동안 자신의 두 손을 응시하던 남자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이름 하나를 내뱉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강하게 자신을 이끄는 이름. 남자의 머리 속에 잠 시 지금의 자신과 닮아있는 훼이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 드뎌 내일부터 편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일 것 까지 두편을 올립니다. 펑크 안 내려는 저의 발악입니다. ^^ 우... 역시 시간을 뒤섞어 버렸더니 시간대를 맞추기가 힘들군요. 내가 왜 이 랬을까나... 지금까지의 제 스타일은 사건 위주의 전개 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어 버렸군요. 서정적 환타지라고 해야 하나요.. 이걸? (저희 언니는 그러던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번 호 : 890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5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 " 희생자는?" " 한명은 청룡족. 그리고 한명은 홍룡족입니다." 챠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창백하게 굳어진 소년과 소녀의 사체를 응시 했다. 벌써 몇번째인지 몰랐다. 오늘로 하계로 수행을 내려온 대부분의 어린 용족들 이 생명을 잃었다.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사체가 있는 곳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 명계에서 온 교룡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림자 조차 볼 수가 없으니 너무나 답답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어린 용족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일까. 물론 들은 적은 있었다. 인간의 피를 이은 교룡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족의 생명력을 얻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그렇게 한다면 인간의 피가 섞였기에 가지 는 체력의 한계도,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소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챠렌은 잠시 지금 천계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망설였다. " 아직까지 하계에 남아있는 어린 용족들이 있나?" 챠렌의 질문에 지금까지 챠렌을 도와온 청년이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 없습니다. 오늘의 희생자가 마지막으로 하계에 남아있던 어린 용족이었습 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신이 직접 하계에 내려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용족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적이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국은 천계로 되돌아가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최선책일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강한 힘을 가 진 백룡족 이라고 해도 명계만큼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상대해 보지 못했다. 명계라는 곳은 천상계의 상제라 해도 손댈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 결국 그의 힘을 빌려야 하나......" 챠렌은 다른이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 천계로 돌아간다. 사체는 청룡족과 홍룡족에게 전하도록." " 네. 비전하." 챠렌의 앞에 서 있던 두명의 백룡족 청년들은 두 소년소녀의 사체를 수습하 여 흰 천으로 덮어 씌운 후 안아 들었다. [ 역궁(逆窮) 개문(開門) ] 낭랑하게 울려퍼진 챠렌의 목소리와 함께 공간이 열렸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되돌아 가야 하는 챠렌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챠렌은 공간 안으로 들어서기 전 다시 한번 사체를 발견했던 작은 나무 숲으 로 시선을 던졌다. " .........?" 순간 챠렌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까지 나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그곳에 희미하게 푸른빛에 감싸인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인 것이다. " 비전하?" 챠렌이 공간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있자 두명의 백룡족 청년들은 의아함을 담 은 목소리로 챠렌을 불렀다. " 그대들은 먼저 돌아가게." " 갑자기 무슨...." " 둘러봐야 할 것이 생각났어. 그대들은 어서 돌아가서 사체를 부모에게 전 해주고 백룡왕께 연락을 취하도록 하게." 그렇게 말을 전하는 순간에도 챠렌은 숲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푸른 그 림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비전하.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그제서야 챠렌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두 명의 백룡족 청년은 들고 있던 사체를 바닥에 내려 놓으며 말을 꺼냈다. 하지 만 챠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그대들은 돌아가게. 그리고 어서 연락을 취하도록 해. 그게 날 돕는 길이 니. 알겠나?" 강경한 챠렌의 어조에 두 청년은 다시 사체를 안아 들고 공간안으로 들어섰 다. " 그러면 비전하. 속히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챠렌은 순식간에 닫혀버린 공간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푸른 그림자가 자 리하고 있는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불안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불안했다. 화란은 두손을 꽉 쥔채 훼이가 떠나간 그 자리를 응시했다. 벌써 두 시진이 흘러갔건만 사라져버린 비도. 그리고 비를 찾기 위해 떠난 훼이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둘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아까부터 안절부절 하고 있는 자신을 타일러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화란과 함께 자리를 지고 있던 두명의 홍룡족 청년 역시 화란이 느끼고 있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전염 된 듯 침중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저물어 가는 숲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늘을 온통 별빛이 수놓을 정도로 밤이 깊 어졌다. 하지만 화란과 두 홍룡족 청년은 미동도 없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 었다. 무슨 이유때문 인지는 몰랐지만 그들의 시선은 자연히 산 정상으로 통하는 길로 향해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움 직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화란은 그 길을 통해 훼이가 모습을 드러내기 만을 기다렸다. " 물을 좀 준비해 주겠습니까...." 거짓말처럼 들려온 훼이의 목소리에 화란은 놀라는 한편 안도했다. 오랜 긴장속에 서 있어서 인지 화란은 훼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작고 낮 게 울려 퍼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비는... 비는 무사한가요?" 한명의 홍룡족 청년이 물을 가지러 샘 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화 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란의 눈에 비친 훼이의 품에 비가 안겨 있었기에. 검은 밤 공기에 녹아 들 듯이 검은색의 파오를 걸치고 있는 훼이와 비의 모 습은 화란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훼이의 모습이 화란의 눈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나서야 화란은 훼 이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 무슨 일이........ 생겼나요?" 공터에 다다른 훼이는 아무말 없이 품에 안겨있던 비를 바닥에 눕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비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화란은 깜짝 놀라 비의 얼굴 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비의 숨소리는 무척이나 미약했다. 그리고 얼굴색 또한 창백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 명계에 다녀왔습니다....." " 명계요? 명계에 다녀오다니..... 대체 무슨 말이세요?" 하지만 훼이는 아무 말 없이 홍룡족 청년이 떠온 물을 받아 비의 입가에 흘 려 넣었다. 바싹 마른 비의 입술에 물이 닿자 일순 비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비의 얼굴은 다시 창백해져 있었다. "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천계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화란은 평상시처럼 담담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훼이를 바라보면서 그가 지 금 느끼고 있을 슬픔을 읽었다. 얼굴 표정은 담담할지 몰라도 훼이의 목소리에는 엷은 침음성이 배어 있었다. " 그렇게 하세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가볍게 화란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네고 나서 훼이는 소리없이 공간을 열었다. 어둠과 같은 색을 가진 훼이의 파오가 공간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화란은 조용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던 불안은 이것이었나...... 훼이는 화란에게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화란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화란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훼이에게 소중한 이를 잃는 슬픔이 찾아오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 뿐이었다. 훼이의 친구였던 성휘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훼이가 보였던 반응을 화란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발.......... 화란은 또 다시 두손을 꼭 맞잡은 채 훼이가 사라져간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 흑흑....감격했어요. 제가 하루에 두편이나 쓰다니. 역시....결심하면 할 수 있구나... 이번 제 7장의 이야기는 아직 몇편 더 남아 있습니다. 명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차차 나온답니다. 자, 뒷 얘기는 낼 모레 올릴께요. 랄랄라...이제 낼 밤새로 가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날씨에 지지 마세요. ^-^ 번 호 : 942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7일 01:2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一.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一. 온 몸에서 푸른 기운을 내뿜고 있는 자를 대한 순간 챠렌은 일순 자신의 눈 을 의심했다. 분명 그가 여기 있을 리도 없고. 또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자신이 생각하 는 그와는 다른 것이었지만 챠렌의 눈은 지금 그 사고를 부정하고 있었다. 챠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엷은 푸른빛에 감싸인 남자는 미동도 없이 어느 한 곳을 보고 있었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특이한 기운이 아 니었다면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치 못할 정도로 남자는 그렇게 굳어진 듯이 자리에 서 있었다. " 그대는 명계에서 온 교룡인가?" 남자의 바로 근처까지 다가선 챠렌은 온 몸에 긴장을 떠올린 채 남자에게 물 었다. 남자는 마치 챠렌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챠렌이 입을 열려던 찰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교룡..........교룡이라......... 한때는 그렇게 불렸던 것 같기도 하군......." 그 말에 담긴 것은 명백한 시인. 챠렌은 곧 마력으로 남자에게 공격을 할 준 비를 했다. " 어린 용족들의 생명을 빼앗은 것도 당연히 그대겠군." 챠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숨죽인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기묘한 울 림을 담은 그 목소리를 듣자 챠렌은 온 몸에 섬뜩한 감정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 그대는 백룡족이군....... 나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신의 힘 을 과신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남자는 천천히 챠렌을 향해 몸을 돌렸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짐작을 하기는 했지만 남자의 모습은 놀랍도록 훼이와 닮아있었다. 온 몸을 감싸고 있는 푸른 기운만 아니라면 그가 훼이라고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 대체......... 훼이와 무슨 관계지..........?" " 훼이........ 훼이라........" 남자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훼이의 이름을 되뇌었다. 가만히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챠렌은 문득 기억속에 묻혀있던 어떤 말을 생각해냈다. 오래전에 들은 적이있는 그 말. 분명 훼이에게도 교룡이었던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과연 저 교룡이 훼이의 아들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훼이의 태도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가 명계를 적대시 하 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지나친 생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 얼굴은..... 너무나도 훼이를 닮았다. 직접 남자에게 물을까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자신의 짐작일 뿐이다. 섣불리 행 동했다가 나쁜 결과라도 부른다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큰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침착해야해. 분명 저자는 명계에서 온 교룡이다. 지금까지 열명에 가까운 어린 용족들의 생명을 흡수했기에 분명 그의 힘은 나로서도 당해내기 벅찰만큼 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정체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저자와 훼이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 침착하게 대처하는 거야. 그렇게 속으로 자신에게 되뇌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챠렌의 눈에 남자의 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 기운이 조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챠렌은 소리없이 방어주문을 펼쳐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다른 이들이 올때까지 우선 자신의 힘으로 그를 붙잡아 두어야 했다. 없애지 는 못하더라도 붙잡아두는 것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터였다. 적어도 그녀가 가진 힘은 백룡족에서는 두 번째에 꼽힐만큼 강한 것이었기에. 그녀는 과신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예리하게 상대방을 주시하던 챠렌은 자신에게 짓쳐들어오는 용족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힘을 느끼며 공격 주문을 외칠 준비를 했다. * * * 갑작스레 허공에 소용돌이 치는 검은 물결과도 같은 움직임이 피어났다. 그리 고 그 자리에 거짓말처럼 아련한 검은 빛에 휩싸인 거울이 떠올랐다. 혹시..... 저것이 왕들만이 쓸 수 있다는 이공간 연결 주문인가...... 유에린은 훼이가 그 거울 앞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보지 는 못했지만 들은 사실에 의하면 맞는 것 같았다. 유에린이 예상했던 대로 그 거울에 비친 것은 왕의 힘을 가진 자. 그중에서도 훼이의 친동생인 현 흑룡왕 라이엔 이었다. " 무슨일이지. 라이엔? 천개(遷開)의 주문까지 써 가면서." 부드러운 얼굴을 한 훼이와는 반대로 거울속의 라이엔은 무척이나 곤란한 표 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 형님..... 하계쪽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 곤란한 일인 모양이지? 그렇게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을 보니." - 그게.... 그 일이 명계와 연관된 일이라서.... 주저함을 담은 목소리로 라이엔은 말을 이어갔다. - 명계의 교룡이 성년식을 치루지 않은 어린 용족들을 해치고 생기를 빼앗 아 갔습니다. 이번에 하계로 수행을 떠났던 대부분의 어린 용족들이 그 교룡 에게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교룡이라는 말을 듣자 훼이의 머리속에는 섬뜩할 정도로 빛을 발하던 명계의 주인 요희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다른 곳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 원래는 나가는 일 자체가 허용되지 않지만 - 그녀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리고 교룡이 하계로 나 왔다는 것은 분명 훼이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요희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 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악감정을 품어야 할 것은 본래 그녀가 아니라 훼이여야 하 는 것인데 그녀. 요희는 마치 훼이로 인해 자신의 터전이 위협받기라도 한 것 처럼 훼이를 증오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훼이가 명계를 공격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명계의 반 이상을 초 토화 시켰던 그때의 일은 천계뿐만 아니라 천상계와 환계에 까지도 알려져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금까지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 그래서 백룡족의 보좌관인 챠렌이 하계로 내려가 조사를 시작했고 지금 막 그 교룡과 마주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분명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금 그 교룡은 여러 생명력을 흡수했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 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른 용왕들은 명계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은 형님이니 형님이 대처해 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라이엔은 계속해서 훼이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라이엔의 눈빛을 읽으며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고 있었 다. 그랬다. 자신의 어린 동생. 라이엔은 언제나 훼이가 궁으로 돌아와 자신과 함 께 살길 바랬고 또 누군가가 훼이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 다. 그런 라이엔이 지금 직접 훼이에게 일을 부탁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곤란 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훼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다른 용왕들의 힘만으로 그 교룡을 없앨수는 있 겠지만 그들은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명계의 힘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훼이라는 그럴듯한 핑계까지 붙여 가면서. 그런 그들의 속셈을 알고 있으면서도 훼이는 속아주기로 했다. 가끔은 이런식 으로 움직이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 좋다. 내가 가도록 하지. 현재 교룡이 나타난 장소는 어디지?" - 교산(驕山)의 조양지곡(朝陽之谷) 부근입니다. " 그러면 지금 곧 그리로 가도록 하지." 라이엔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나서 훼이는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유에린은 그런 훼이를 조용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함께 가겠느냐. 유에린." 유에린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조금 까다로운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니 봐 두면 도움이 될거다." 그렇게 말하고나서 훼이는 유에린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공간을 열 었다. 그리고 공간안에 들어선 채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훼이를 바라보며 유에린 은 빠른 걸음으로 공간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약간의 일그러짐과 함께 공간이 닫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유에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 자... 오늘도 이틀치 한꺼번에 갑니다. ^^ 토욜은 아시다시피 오프구요. 또 아직 동아리 편집이 안 끝났기 때문에 또 밤 을 새야 하거든요. 우....가능하면 세편을 올리고 싶지만 능력이 되면요... 이번 장은 굉장히 길죠? 어디까지 더 길어질지....써봐야 알겠지만요. 아마 몇편안에 8장으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지금 이야기를 인물에게만 한정시켜 진행시킬 것인지. 아니면 범위를 확대시 켜 초장편으로 만들지 고민하고 있는데요. 아마 8장까지 이야기가 전개된 후 에 결정할 것 같아요. <잠깐 설정> 자주 등장하는 이공간 연결, 매개 주문인 [천개(遷開) 경(鏡)]은요. 서로 다른 계(界)만을 연결시켜주는 주문이 아니라 같은 계 안에서도 쓸 수 있는 주문입 니다. 일종의 전화와 비슷한 것이죠...^^ 주로 서로 다른 시간대를 연결해 주는 주문이므로 왕 이상의 힘을 가진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고난위 주문입니다. 가 장 자주나오는 공간을 여는 주문은 수련만 한다면 보통의 용족들도 가볍게 쓸 수 있는 주문이지만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은 주문없이도 본연의 마력만을 가지고 공간을 열 수 있지요. 흑룡의 숲에서 강한 힘을 가진자는 주문을 외치 지 않는 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랄랄라 즐거운 오프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번 호 : 943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7일 01:2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9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二.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二.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사고 자체가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결국 이렇게 되었어야 한단 말인가.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비가 살아온 시간들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빨리 끝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 었다. 순간 창백하게 굳어진 채 잠든 듯이 누워있던 성휘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 다. 그리고 방금전에 비가 보였던 엷게 떠오른 미소가 훼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비가 보인 미소에는 훼이를 향한 많 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떠나가더라도 부디 슬퍼하지 말라는. 그리고 먼저 떠나가 서 죄송하다는 의미가 담긴 그 엷은 미소가 머물러 있던 비의 얼굴을 훼이는 머리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훼이는 마치 지금도 눈 앞에서 비가 엷게 미소짓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거짓말이다.... 이건 거짓말이야....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까. 오래전의 그 만남부터가 모든 것이 뒤틀릴 거라는 것을 말해주는 전조였나? 그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비는 지금 눈을 감고 있는 거지..... 왜 다시는 눈을 뜨지 않는거지....... 마음속으로 절규하듯 외쳤지만 훼이의 그 물음에 답해줄 이는 이 세상 어디 에도 없었다. 현실은 그렇게 다가왔다. " ..........전하....... 전하.........." 아무런 움직임 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훼이를 시비는 안타까운 음성으로 볼렀 다. 물조차 입에 대지 않는 훼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그녀는 지금의 훼이가 어 떤 심정일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싸늘하게 식어버린 비의 모습을 보 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하지만 훼이는 눈물 조차 내비치지 않은 채 그저 계속 침상위에 누워있는 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단 한순간이라도 눈길을 떼면 비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기 라도 할 것처럼 훼이는 그렇게 비의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 전하. 조금이라도 음식을 드셔야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시비의 음성을 듣지 못한 듯 훼이는 여전히 비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또다시 입을 열려던 시비의 손을 누군가가 잡으며 제지했 다. 갑작스레 자신의 손을 잡은자가 있다는 것에 놀라며 고개를 돌린 시비의 눈에는 뭐라고 할 수없을 만한 놀라움이 담겼다. " 저......전.." 막 말을 내뱉으려던 시비를 또 다시 만류하며 그는 천천히 훼이쪽을 돌아보 았다. 최강의 흑룡족으로서 그리고 그 흑룡족의 왕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연스 러운 위엄이 담긴 태도로 그는 몸을 움직여 훼이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훼이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 이제 만족하십니까. 인간의 피가 섞인 자는 당연히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 하셨습니까........" 훼이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훼이는 말 했다. 그리고 훼이는 자신의 아버지. 흑룡왕이 방 안에 들어선 것을 알고 있 었던 듯 아무런 동요조차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 단 한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보지 못했던 제 아들이 이렇게 삶을 마감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러 오셨습니까." 별다른 흔들림없이 울리는 목소리였지만 흑룡왕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다른이를 원망해 본적 없던 훼이가 이토록이나 괴롭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 고 하지 않은 담담한 어조였음에도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흑룡왕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흑룡왕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인해 보였던 그의 어깨도 그때만큼은 외소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그는 이제 까지 다른이에게 명령을 내려오던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 그저 훼이의 아버지이자 비의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비록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 훼이........" 흑룡왕은 안타까움이 담긴 음성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훼이가 스스로 흑 룡왕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거의 200년만에 부자는 서로를 마주대 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은 그리 오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마치 그보다 몇배는 더 긴 세월이 놓여있는 듯이 멀게만 느껴졌다. " 훼이..... 네게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구나......." 훼이를 바라보는 흑룡왕의 눈에는 진한 아픔이 배어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물러섰더라도 지금의 결과는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는 깊은 자책과 함께. 너무나도 다른 듯 하면서 너무나도 닮은 두 부자는 오래전 처음으로 비를 데 려온 훼이가 흑룡궁에 들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 다. 어쩌면 흑룡왕은 처음부터 훼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돌아가주세요......" 흑룡왕은 여전히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깨 에 올렸던 손을 내려 놓았다. 흑룡왕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흑룡왕 자신 또한 자식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 그때의 절망감은 세상의 그 어 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이다. 흑룡왕은 성년식조차 지켜봐 주지 못했던 자신의 손자가 영원한 안식의 땅으 로 떠나버린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단 한번도 자신의 손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훼이의 아들. 인간의 피가 섞여있긴 했지만 아이의 얼굴은 훼이와 흡사했다. 마치 어린 시 절의 훼이를 보는 것 처럼. 자신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소중한 혈육을 잃은 자신의 아들에게 무슨말을 전해야 옳은가. 분명 훼이의 아들을. 자신의 손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자신이었다. 그것 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리고 이미 결과는 이렇게 바뀌어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갑작스럽게. 흑룡왕은 아직도 놀란 눈으로 자신과 훼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시비의 곁을 지나쳐 방을 빠져나갔다. " 훼이를 부탁한다...." 그리고 시비는 막 자신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흑룡왕의 음성이 왠지 슬프 다고 느꼈다. 훼이는 의자에 앉은자세 그대로 멍한 얼굴로 눈감은 비의 모습을 응시했다. 하지만 훼이의 그 눈에는 더 이상 비의 모습이 비치고 있지 않았다. 거의 이백년만에 자신을 찾은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속에서 되살리며 그렇게 훼이는 온몸에 엄습해오는 무너질 듯한 절망감과 싸웠다. 용족에게 주어진 수명의 반 이상이나 살아온 자신이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마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한 괴로움은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용족으로서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들도. 자신이 해온 경험도 이런 종류의 감 정의 지배하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래전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여인 화연이 떠났고, 항상 입가에 슬픈 미소 를 떠올린 채 자신과 비를 맞이해주던 성휘도 떠났다. 그리고 이제는 유일한 자신의 핏줄. 화연과 자신이 서로 사랑했다는 증거였던 비도 세상을 떠났다. "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거냐..... 비......." 자신이 무슨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른 채 훼이는 허물어져가는 자신의 마음 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냥 이대로 부서져 버려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부서져 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바엔 차라리..... 산산히 부서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두 번다시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을 아들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훼이는 그저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 하핫... 전 나쁜 사람이에요. 주인공은 슬픔에 빠져 있는데 전 웃으면서 언니랑 사촌 동생이랑 잡담을 나 누며 이걸 쓰고 있으니...^^ 미안해요. 훼이.. 우엥....비가 죽어버렸군요. 흑... (죽인 주제에 말이 많습니다) 오늘 이야기에는 감정에 관한 것만 나왔죠? 그래서 대사도 별로 없구요. (저는 성격이 음침한 지도 몰라요....) 그리고 잠시 다음편 예고를 드리져. 제 언니의 바램대로 다음편 (그 다음편 일수도)에서는 때려 부수는 장면을 넣기로 했답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상실과 시간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끝나고 나면 무엇을 표현하려 했었는지 자세히 쓸테니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 셨는지 판단해 주세요. 그리고 아니라면 가차없이 돌을 던져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용 ^-^ PS> 오프에 오시는 분 계시면 인사해 주세용. 번 호 : 998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0일 01: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0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三. 흑룡의 숲 제 7장 역린(逆鱗) 十三. 언제나와 같이 밤은 노을이 지기전까지의 밝음과 따스함을 자신의 검은 몸으 로 뒤덮어 휴식으로 잠겨들게 만들었다. 모든 사물들이 한낯의 밝은 빛깔을 잃은 채 어슴프레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 내고 있는 깊은 밤. 훼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저 한없이 가라앉을 것 만 같은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주위의 사물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끈질길 정도로 훼이를 따라다니며 식사를 하라고 권하던 시비들도 모두 잠들 고 별궁을 지키는 병사 역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밤의 장막아 래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한 정원.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훼 이는 깊은 밤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굳어져 있는 듯한 표정을 제외하면 훼이는 이제까지와 아무것 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슬픔조차 잊은 듯이. 주위를 감싼 적막 속에서 훼이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의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복잡한 생각을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몇날 며칠을 생각해도 도무지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입가에 맴돌고 있는 명계라는 단어....... 용족인 자신으로서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천상계에서의 소란은 어느 정도의 처벌을 각오하고 한 것이었지만 명계는 다 르다. 명계에 사는 자들이 어떤 안하무인 격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막 을 명분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철저하게 서로간에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니 만큼 명계를 상대할 때 만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훼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분노가 용솟음 치려 하고 있었다. 명계가 아무리 손댈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이라고 하여도. 자신이 명계에 손 을 댐으로 해서 훗날 무슨일이 생긴다고 해도 훼이의 곁에서 비를 데려간 것 은 명계에 사는 자였다. 명계에서 훼이가 비의 기운을 느끼고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훼이가 본 것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비와 날카롭고 소름끼치는 느낌을 가진 여인. 그리고 기분나쁜 검은 그림자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성별조차 모 호한 두명의 모습이었다. " 누구냐! 누가 내 아들에게 손을 댔지?" 분노에 찬 훼이의 음성을 듣자 여인은 그저 차가운 미소를 떠올리며 모습을 감췄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뒤를 쫓고 싶었지만 비의 상태는 너무나도 위 험해 보였다. 자신의 품에 안긴 비가 그토록이나 작아 보였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리고 확실하게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지금까지의 막연 한 아버지라는 말과는 다른 자신의 피가 흐르는 혈육을 향한 뜨거운 애정. 맹목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혈육에 대한 정은 누구에게나 가장 진한 것이 분 명했으므로. " 비야........ 난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제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아들에게 훼이는 자신의 귀에도 거의 들리 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음을 뒤덮고 있는 막막함.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진 것일까. 비가 흑룡왕인 할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해서? 아니면 자신이 후계자의 위를 내던졌기에? 화란의 호의를 받아들인 것이 잘못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계로 수행을 떠난 자체가, 비를 홀로 내버려둔 것 자체가 잘 못인가. 그 어떤 질문에도 확실한 대답은 없다. 그저 더욱더 깊이 얽혀가는 마음속의 의문들만이 꼬리를 물고 피어오를 뿐. 터질 듯이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단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데 훼이는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뒷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얽어매고 있는 깊 은 올가미를 털어낼 수 있다면. 훼이는 눈빛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자.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훼이는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 었다. * * * 두 번째로 내딛는 명계의 땅은 처음보다 더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무미건조한 죽음의 향기가 그런 생소함을 자아내는지도 몰랐다. 명계에 사는 자들은 모두 영원한 반복이라는 벌을 받는 자들이었기에. 끝없이 이어질 듯한 숲속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며 훼이는 예전에 느낀 적이 있는 싸늘한 미소를 가진 여인의 기척을 찾으려 애썼다. 잊을 수 없는 그 냉소적인 표정과 온 몸에 떠도는 소름끼칠 정도로 싸늘한 분위기. 저건...... 훼이는 숲이 끝나는 자리에 들어서 있는 쇄락한 집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오직 숲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던 명계에도 사람이 살만한 집들이 들어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놀라웠다. 비록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처럼 낡 고 쇄락하긴 했지만 그곳에서는 분명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나의 마을이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인 수십채의 집들. 하계의 집 들과도 천계의 집들과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지붕이 기와로 덮힌 그 집들은 길게 늘어선 채 그 안으로 들어서는 훼이를 맞이했다. < 살아있는 자다.... 살아있는자....> < 용족이로군..... 저 흘러넘치는 강인한 기운은 분명 용족의 것이야.... > 웅얼거리는 것처럼 엷게 퍼지는 목소리들이 훼이의 귓가에 파고들어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확연하게 살아잇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기없는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자들이 쇄락한 집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의 길에서 훼이를 지 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살아있는 생명을 지닌자에 대한 강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 생기......... 저자가 가진 생기만 있다면.......... > 누군가의 외침이 시발점이 되었다. 멀찌감치에서 훼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훼이의 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회색빛의 암울한 얼굴을 가진 그들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렇게 훼이의 곁으로 몰려왔다. [ 경환(鏡幻) - 의식에 작용하는 고급주문 ] 훼이의 입에서 주문 하나가 터져 나오자 훼이에게로 다가서던 사람들은 거짓 말처럼 동작을 멈췄다. " 이곳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훼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 요희...... 붉은 눈동자를 가진 요희다..... > 쉬고 갈라진 듯한 목소리가 답했다. 훼이는 놀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훼이의 주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 그대는?" 메마른 웃음을 터트리며 상대가 훼이의 앞으로 나섰다. " 나는 당신의 아들과 같은 교룡이지. 저주스러운 인간과 용족의 혼혈..." " 날 아나........?" 상대의 말에 의문을 가지며 훼이가 묻자 눈 앞에 있는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 지 처럼 마른 남자는 또 다시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 모를 리가 없지..... 아무리 다른 계(界)와 다른 이곳 명계라해도 당신이 누구인지.....그리고 다른 곳이 어떻게 변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알 고 있어." 처음듣는 사실이었다.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니......... " 경고하나 하지... 이곳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 아. 그리고 명계의 지배자인 요희는 강한자에게 흥미를 느끼지. 분명 당신도 그럴거야. 훼이......"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사실보다도 지난번에 비에게 죽음을 안겨준 여인이 바로 명계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훼이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마지막으로 창백한 미소를 떠올린 채 눈을 감은 비의 모습이 또 다시 선연하 게 떠올랐다. 그때였다. " 천오..... 네가 함부로 나설 자리는 아닐텐데.....?" 기분 나쁘다는 듯한 어조의 귀를 긁는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퍼졌다. 훼이는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요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일전에 봤던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는 오만하게 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옷의 모습이 있었다. 그 수는 모두 네명. 지난번의 두명과 처음 대 하는 두명. 그들은 모두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 해제(解制) ] 훼이의 음성이 울려퍼지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요희의 모습을 보고 슬금 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들이 보인 반응으로 훼이는 요희의 성격이 어떤가를 알 수 있었다. " 환영한다고 말하는 게 좋을까요. 훼이......?" 그녀의 입가에 엷게 피어오른 웃음은 소름끼치도록 기분나쁘게 보였다. " 말은 필요 없겠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대가 가장 잘 알테니까." 싸늘하게 굳어진 훼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요희는 크게 웃었다. " 고맙다고 해야하나? 당신의 아들 덕분에 난 지금 너무나도 충만한 기운 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훼이의 눈에는 일렁거리는 기운이 피어올랐다. " 시작해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요희는 자신의 뒤에선 네명에게 손짓했다. [ 개문(開門) 람(嵐) - 폭풍의 힘을 빌어 공격하는 상위 공격주문 - ] 훼이 역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훼이가 부른 주문에 의해 명계의 하늘 가득 검은 먹구름이 들어차며 거센 비 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 < 오늘의 잡설은 꼭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오 ^-^ 이번이 7장의 마지막편입니다.(그러고 보니 40회!!) 13편이라..... 길군요. 아. 그리구요 이번주 동안은 잠시 연재를 쉬게될 것 같아 요. 스토리 전개가 생각대로 잘 안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해야할지도 잘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재 재개를 하면 하루에 두편 정도씩 올리겠습니다.(쉬면서 비축분 만들어야지 ^^) 음.... 고정독자이신 40여분(이정도 인 것 같은데....) 정말로 감사해요 ^0^ 전 제 소설을 이렇게 까지나 읽어주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여러분 덕에 벌써 40편이나 쓰게 된 거에요. 잠시 쉰다고 안 읽어주셔도 할 수 없지만 ^^ 혹시 앞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생각하 는 것과 독자님들이 생각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7장에서 명계와의 이야기를 (현실에서) 끝내지 않은 것은 이야기의 전 개 방향이 현재는 일직선으로 계속해서 전개되기 때문이지요. 과거역시 처음 의 시간대에서 점점 더 세월이 변해가지만 섞일 수도 있으니까요. 8장에서도 현재의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니까 사건의 해결은 8장 정 도에서 보실 수 있을겁니다. 또 하나 ^^ 통쾌한 전투장면을 원하셨던 분들....죄송합니다. ^^ 막상 쓰려니 안되네요... 8장 쯤에서 해볼까 생각해요.(과연 잘 될까...나도 내 맘을 알 수 없어...--) (오늘 봉신연의 소설책을 샀어요. 만화랑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재밌어 ^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너무 고마워요 ^0^ --- 넵! 드뎌 포키가 제 구박에 지쳐버렸나봅니다. 맨날 이상해∼를 연발하 며 포키를 다그친 결과 일주일이라는 공백을 만들고 말았군요. 흑흑흑...저를 주겨주셔요...ㅠ.ㅠ 쉬는 동안 제정비의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그동안은 구박하지 말아야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고정독자 여러분! 글고 그 외 여러분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필하세요. 꾸벅∼ 퇴고 담당 화란이었슴당∼ --- 번 호 : 111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6일 00:0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一.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그것이 너의 선택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걸로 네가 느낀 슬픔이 채워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구나. ..........미안하다. 一. 비록 하계에 있었던 화란이었지만 그녀는 간접적으로나마 비의 죽음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가진 홍룡왕이라는 이름은 그녀에게 비의 장례에 참석할 시간조차 할애해 주지 않았다. 보좌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온 흑룡궁 별궁의 입구에서 화란은 들어서야 할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더 이상 훼이에게 가까이 다 가 간다면 홍룡왕인 그녀의 이름에 누가 된다는 보좌관의 설명도 화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잃어버린 훼 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아무리 강인한 자라고 해도 아들의 죽음앞에서 무너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떨려오기까지 했다. 훼이는 과연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할 지.... " 어서오십시오. 홍룡왕 전하." 결심을 굳히고 별궁의 입구로 발을 들여놓자 낯익은 병사가 화란에게 인사를 건넸다. 화란과 동년배로 보이는 흑룡족의 청년. 변두리에 위치한 별궁의 병사인 자신의 직분에 무척이나 충실한 예의바른 청 년. 그것이 화란이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었다. 화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병사의 인사에 답하며 정원을 지나쳐 궁 안으 로 들어섰다. 익숙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궁 내부는 생소한 느낌이 들었 다. 언제나 보아왔던 자신의 화천궁과 다르지 않은 구조였음에도 오늘따라 엷은 갈색의 나무판이 깔린 바닥이 생소했다. 얼마간을 익숙한 걸음으로 더 걸어 들어가자 훼이가 기거하고 있는 방의 문이 보였다. 별다른 장식조차 붙어있지 않은 수수한 문. 화란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문에 손을 가져갔다. " 훼이..........." 방안에 앉아있을 훼이를 보기 전에 자신의 마음에 다짐이라도 하듯이 화란은 훼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 헉....." 화란은 짧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발목까지 길게 내려와 훼 이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깔끔한 검은 파오를 걸친 차림새도. 어깨를 타고 흘 러내린 검은 머리카락도.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까지도 예전과 조금도 달 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훼이의 눈빛만은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 그 저 검게 빛나고 있었다. " 훼이........?" 화란은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음성으로 훼이의 이름을 불렀다. " 괜찮아요. 훼이?" 계속 이어지는 화란의 말에 훼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깊은 빛을 간직하고 있던 훼이의 눈동자에는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 는 그 어떤 빛깔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무감각하게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듯이 그렇게 훼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 * * * 하계로 통하는 공간의 문이 열리자 마자 유에린은 온몸에 느껴지는 예리한 칼날과도 같은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 이건......." " 교룡의 기운이다. 용족의 생기를 빨아들인 교룡의 기운." 유에린의 질문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훼이는 빠르게 대답했다. 훼이의 눈은 이미 푸르고 흰 빛이 난무하는 숲을 향해 있었다. " 강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백룡족의 비도 고전하는 모양이군." 유에린의 눈에는 난무하는 두가지 힘의 충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만 훼이는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일어난 싸움의 상황이 보이는 듯 했다.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매단채 훼이는 빠르게 숲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 봐두면 도움이 될거다. 그리고 네 몸은 네가 지켜라." 비록 유에린을 돌아보며 한 말은 아니었지만 유에린은 등을 돌린 훼이에게 대답을 건네고는 말없이 훼이를 따랐다. 숲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설수록 공기를 찢는듯한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안개 처럼 끈적하게 몸을 덮어오는 푸른 기운이 기분나쁘도록 강하게 느껴졌다. 머 리보다 먼저 몸이 두가지 기운에 대항하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훼이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푸른 기운에 덮힌 교 룡의 사내를 응시했다. 그리고 미세하게 훼이의 몸이 멈칫했다. 비록 그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훼이의 가슴 속 은 크게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훼이 혼자만의 착각 인지도 모른다. 이미 그 때로부터 두배도 넘는 시간이 흐른 후였지만 그때의 기억은 바로 조 금전에 일어난 일 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창백하게 미소짓던 비의 얼굴이....... 바로 눈 앞에서 푸른 기운을 흩뿌리고 있 었다. 얼굴가득 굳어진 슬픔과도 같은 표정을 떠올린 채. 훼이는 아예 동작을 멈춰 버렸다. 뒤에서 말없이 훼이를 따라오고 있던 유에린은 석상처럼 굳어진 훼이의 모습 에 깜짝 놀랐다.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 그것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도 유연하게 대 처해가던 훼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 훼이...." 유에린은 조심스럽게 훼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훼이는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흔들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걸음은 유에린이 느 끼기에도 아까와는 달리 힘이 빠진 것이었다. 유에린은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훼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고개를 쳐들어 질문을 속으로 삼켰 다. [ 광환(光環) - 시각을 마비시키는 주문 - ] 낮게 울린 훼이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태양의 빛보다 더 강한 밝은 빛이 숲 전체를 가득 메웠다. 방금전에 훼이가 외친 주문은 모든 용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주문 의 하나로 강한 빛으로 시각을 마비시키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훼이가 가진 마력의 크기 때문인지 보통의 광환 주문도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다. 숲을 가득 메우고 있던 날카로운 기운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희미하게 지친 기색을 떠올리고 있는 백룡왕비 챠렌과 훼이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얼굴 이 동시에 훼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 직접 와주셨군요." 지금까지 격렬한 싸움을 하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차분 하게 챠렌이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유에린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소문으로만 들어온 보좌 관이자 비인 백룡족의 챠렌. 처음으로 직접 그녀의 얼굴을 마주대한 유에린은 소문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에린이 그토록이나 떨쳐버리기를 원하는 나약함과 망설임은 애초부터 그녀 에겐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다. 환하게 빛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챠렌은 당당했다. " 아닙니다. 명계와의 일은 제가 나서는 편이 훨씬 더 금방 처리되리란 건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보통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유에린은 훼 이의 목소리에 섞인 미세한 흔들림을 읽었다. " 저를 잊고 계신 것 같습니다. 두분은.........." 엷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들은 훼이의 몸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꿈틀거렸 다. 그 목소리는 잊혀지지 않을 만큼 깊게 자리한 그리움을 훼이의 가슴 속에서 끄집어 내려 하고 있었다. " 아직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훼이......" 훼이는 아무말 없이 무너져 내릴 듯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눈 앞에 선 교룡을 응시했다. ======================================================================= 8장의 제목에는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한자의 뜻 그대로의 의미 와 동음이의어인 또 다른 단어. 읽다보면 깨닫게 되실 거에요. ^^ 아마도 8장에서 그동안 가장 궁금하게 여기셨던 의문 하나가 풀릴겁니다. 그리고 미리 덧붙여서 숫자 계산은 사양입니다! 그리고 7장의 제목이었던 역린(逆鱗). 어때요? 7장 전체의 내용이나 분위기와 잘 어울렸나요? 최대의 약점. 훼이에게 있어서는 혈육에 대한 사랑이었겠지 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끼고 있을 주변인에 대한 사랑. 흑룡의 숲에서 표현하고 싶은 하나의 주제입니다. 더운 여름 여러분께 홈매트 하나씩 드립니다. ^-^ 오늘도 감사해요. 번 호 : 1115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6일 00:0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二.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二. " 이젠 당신에게 질렸어요. 훼이!!" 그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화란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라도 외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과연 저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그가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채 빼앗아간 바로 그 남자와 동일하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 어서요. 어서 두눈을 움직여 날 봐요. 텅빈 시선이 아닌 당신만의 색이 담긴 시선으로 날 봐요! 훼이라는 남자가 이렇게 약했던가요? 현실에서 도피 할 만큼 그렇게 약했던가요?" 화란의 음성이 고요한 방안에 메아리 치듯 울렸다. 분명 밖에서도 그녀의 목 소리를 들었으리라. 하지만 화란은 개의치 않았다. 분명 입으로는 거칠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뿌옇 게 가로 막았다. " 바보..... 당신은 바보에요........" 이제 흐느낌으로 변한 그 목소리로 화란은 계속해서 되뇌었다.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곁에 있었음에도 소중한 훼이의 아들인 비를 도울 수 없었다는 사실과 훼이에게 자신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 실이 안겨주는 뼈아픈 절망감이 뒤섞인 때문이었다. 훼이가 조금이라도 털끝만큼이라도 화란을 생각했다면 지금 이처럼 멍한 눈 동자로 자신을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은 훼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 제발........부탁이에요.... 아무말이라도 좋으니까... 돌아가라는 말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입을 열어봐요......" 속삭이듯 작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화란은 훼이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하지만 훼이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 그토록이나...... 그토록이나 슬픈가요......? 당신의 아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혈육을 잃은 아픔이 어떤 건지 나는 잘 몰라요. 명을 다한 죽음 이외의 것은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훼이........ 당신의 곁엔 아 직도 소중한 이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왜 모르나요....... 당신에게 있어선 비 만이 전부였나요.....? 이제 먼지로 화해 흩어져 버린 인간 여인과의 사랑이 그 토록 소중한가요..... 그런가요?" 화란은 절망했다. 그 어떤 말로도 훼이를 현실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 확실하게 자신은 훼이의 곁에서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화란은 한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몸을 꼿꼿하게 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이기 이전에 그녀는 홍룡족이라는 한 일족의 왕이었다. 왕은 언 제 어디서고 냐약한 모습이어서는 안된다. 슬픔은 이곳에서 모두 떨쳐버리고 다시 홍룡궁으로 들어설 때 그녀는 왕의 모습이어야 했다. " 마지막으로 하나만 이야기 할께요. 비록.....지금의 내게는 당신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맹세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화란 의 마음을 가져갈 수 있는건 당신 뿐이라는 것을요. 비록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고 하여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홍룡왕 화란이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에 난 당신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니까요." 그토록 절망하고 절망했지만 화란은 강인한 여인이었다. 그렇게 말을 내뱉고 난 후의 화란은 언제 눈물을 흘렸었나는 듯이 말끔한 얼굴로 별궁을 나섰다.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비들과 병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는 표정 하나 흐트리지 않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비록 마음 한구석은 무너져 내렸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눈물이 흐를 것 같았 지만 화란은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냥 기억하겠어요. 고고한 어둠에 녹아들던 당신의 모습을. 냉정한 얼굴 속에 담긴 따스함을. 가끔씩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미소를. 검은 눈동자에 담겨 있던 깊은 이해를. 애타게 바라보았던 파오자락에 감싸여 있던 당신의 모습을. 당신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굳어진 듯 하면서도 배려가 담겨있던 당신의 음성을....... 나는 그냥 기억하겠어요. 어느날엔가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날 찾는다고 해도 난 당신의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겠어요. 지금이 마지막입니다. 이렇게 당신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것도. 지금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영원히 추억속에 묻힐거에요. 안녕....... 훼이........ * * * * " ..........?" 챠렌과 유에린은 훼이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 다. 그저 두 눈으로 상대방을 응시하기만 한 채 훼이도 교룡도 마치 굳어진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두 여인도 눈 앞에 선 교룡의 모습이 놀랄만큼 훼이와 닮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교룡이 훼이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 다. 훼이의 아들이었던 비라는 이름의 교룡은 오래전 영계에서 안식의 잠을 누리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누가......네게 그 모습을 허락했지?" 한동안의 침묵 끝에 얼음처럼 날카로운 음성으로 훼이가 입을 열었다. 흔들리는 듯이 보이던 훼이의 얼굴도 어느순간 본래의 냉막하고 차분한 표정 으로 돌아가 있었다. " 생기....... 교룡에게 있어서 생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을텐데...." 훼이의 말투와 마찬가지로 교룡의 말투역시 어느새 날카로운 반어가 되어있 었다. " 과거는 과거다......" 훼이의 말에 교룡은 냉소지었다. " 과연 그럴까......" 말을 마침과 동시에 교룡의 몸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로 강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챠렌과 유에린은 저절로 싸움의 범위 밖에서 물러난 자신들의 몸을 보며 의 아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푸른 기운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 저 숲속의 훼이가 자신들 을 밀어낸 것이다. "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에요." " ...........?" 유에린은 잠시 말의 의미를 되씹었다. 하지만 챠렌의 시선은 분명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훼이와 교룡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뿐. 챠렌의 말은 분명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다. 조금 의외였다. 챠렌은 자신과는 다른, 힘을 가진 높은 곳에 있는 여인. 한 일족의 비와 보좌관이라는 신분을 가진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자 신에게 말을 건 것은 의외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 신에게 존대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용감하고 당당한 여 인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 방금 전의 교룡의 모습은 비라는 이름이 가졌던 모습이겠죠?" 유에린의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잠시 유에린을 향하고 있던 그 녀의 시선은 어느새 푸른 기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을 향하고 있 었으니까. " 훼이는 약하지 않아요." " 그걸 모르는 자도 있을까요?" 그리고 두 여인은 아무말 없이 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두 여인중 어느 누구도 훼이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계속 이겨왔으며 어느 누구도 그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천상계도, 명계도, 천계도 그를 속박할 수는 없었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수명을 넘어서 오랜 시간을 영유해오며.... 훼이는 존재했다. ======================================================================= 웃....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두글자 제목을 또 썼군....-- 흑룡 이전에 쓰던 같은 배경의 소설은 각 장의 제목이 전부다 두글자 였죠.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듯.... 흐음....제목이야 아무렴 어때....-- 8장을 끝낸 이후에는 좀 밝은 에피소드로 진행시켜볼까 해요. 지금까지의 분 위기가 너무 칙칙한 것 같아서..... 난 음침한 아이인걸까..... 헤헷...글구요. 화란의 모델은 제 언니에요(딱 한명한테만 말했었는데 ^^) 아...제 구린 문체를 좀 어떻게 뜯어 고치고 싶군요... 날씨도 더운데 문체는 늘어지고.....미치겠다. 이럴때는 먼가 화끈하고 때려부수는 이야기가 쓰고 싶어 집니다. < 잠깐 설정 > 영계 ------------------ ┕ ┕ ┕ 천상계--- 천계 --- 환계 ┕ ┕ ┕ ------------------ ┕ 하계 ┕ 명계 위에 있는 이상한 도식이 머냐구요? ^^ 각 계간의 연결모식도 입니다.(에잉 구려라~~) 그니까 연결 관계대로 각 계간의 이동이 가능한 거랍니다. 어느 위치가 더 높고 이런건 없어요. (이해 못하시는 분은 없겠죠?) 읽어주셔서 감샤~~ 번 호 : 1143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7일 00: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9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三.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三. 훼이는 아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그의 마음에 망설임이 남은 까닭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 선 채 온 몸에서 푸른 기운. 즉,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해도. 이미 기억 속에서 조차 지우 려고 했어도 사라지지 않은 혈육에 대한 이끌림은 훼이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분명 비는 죽었다. 그리고 눈앞에 선 교룡은 비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작은 바램은 현실을 거부하려 했다. 비록 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교룡이 비가 아닐지라도 훼이는 다시 시작하고 싶었 다. 다시한번 아들의 이름을 내뱉고 싶었다. " 망설이는 건가? 당신답지 않군......" 아직까지 공격할 의사를 가지지 않은 듯 자욱한 안개처럼 주변을 가득 메운 푸른 기운만을 풀어놓은 상태로 교룡은 입을 열었다. 훼이에게 주어진 두갈래의 길. 하나는 마음속의 바램대로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눈 앞의 현실에 분노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훼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요희의 짓이군......" 묻지 않아도 당연히 그녀가 일을 벌였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명계에서 살아 가는 자들이 다른 곳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녀의 힘이 필요하다. 살 아있는 자들이 죽음의 땅인 명계에 들어서기를 꺼리듯 죽은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 들어서길 꺼려한다. 명계의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요희라는 이름의 여인은 명계가 생겨났을 때부 터 그곳을 관리해온 자였다. 그녀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지내왔는지 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 명계가 언제 생겨났는지 확실하게 아는 자가 없기 때 문이었다. 물론 모든 것들의 수명을 관리하는 천상계의 천제라면 알지도 모른 다. 하지만 천제로서도 명계는 관리 밖의 영역. 각 계의 일은 계에서 해결해 야 하는 것이다. " 요희라..... 확실히 명계의 모든 것은 그녀의 지배하에 있지...." 교룡의 목소리는 낮게 잦아들고 있었다. " 하계로 나온 건 날 불러내기 위함이겠지?" 마찬가지로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훼이의 물음에 교룡은 어딘지 모르게 멍한 기색을 담은 눈동자로 가만히 훼 이를 응시했을 뿐이었다. " 너는......" 훼이가 막 말을 꺼내려 하자 교룡은 손을 들어 그것을 제지했다. " 알고 있으면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진실이든 아니든 현 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말을 내뱉은 후 교룡의 눈에 날카로움이 돌아왔다. " 죽음을 방치한 것은 당신이야. 떠나간 후에 헛되이 모든 걸 파괴해봤자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알고 있잖아? 그래서 그토록이나 자신의 마 음을 묻어둔 거잖아. 나를 보면서 착각에 빠져있겠지? 다른 용족들에겐 외경 (畏敬)의 대상일지 몰라도 내게 당신은 현실에서 도피한 낙오자일 뿐이야." 훼이는 약간 굳어진 안색으로 교룡을 바라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자, 어디 한번 해보시지? 다시 한번 그 손으로 날 죽여봐. 언제까지고 이 모습으로 되살아나줄테니....."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훼이는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마음을 정하자 자신 도 모르게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훼이의 손을 중심으로 검은 기운이 뭉쳐지고 있었다. 아무런 주문도 없이 눈 을 몇번 깜빡일 정도로 짧은 순간에 훼이의 손에서는 날카로운 기운을 품은 예기가 형태를 갖추어갔다. 싸늘한 칼날이 전해주는 섬뜩함과도 같은 기운을 품은채 의지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검은 기운은 주위를 가득 메운 푸른 안개를 헤치고 교 룡을 향해 날아갔다. 숲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서 줄곧 싸움의 경과를 기다리고 있던 두 여인. 챠렌과 유에린은 일순간 푸른 안개를 헤치고 뻗어나간 검은 기운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확인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멀리서도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강력한 힘. 저것이 바로 훼이가 가진 마력이 었던가. 유에린은 훼이가 직접적으로 그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언제 나 훼이가 유에린에게 가르쳐 주던 것들은 청룡족이 사용하는 힘이었지 흑룡 족 본연의 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행 상생의 위치에 놓인 힘이기 때문에 훼이가 그토록이나 물의 힘을 잘 다루는지는 몰랐지만 늘 그런 훼이의 모습 만을 봐왔던 유에린에게는 강한 충격이었다. 흑룡의 힘....... 아니, 훼이의 힘...... 문득 유에린은 자신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현무족과 겨루기 위해 힘을 기 르고 있다는 사실이 무의미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 역시 대단하군요. 난 지금까지 저런 형태의 공격주문은 본 적이 없어요." 강한 자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담은 눈빛으로 챠렌이 말을 꺼냈다. " 그는 훼이니까요......." 유에린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조금전에 방출한 마력의 기운이 채 교룡에게 닿기도 전에 훼이는 또 하나의 주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더 이상 훼이에겐 주문이라는 형태로 마력을 방출 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는 그저 힘을 내보내기 쉽도록 손 끝에 자신의 힘을 집중시켰을 뿐이었다. 반대편에 있는 교룡도 물론 훼이의 공격에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훼이의 공격주문이 자신을 향한 그 순간 교룡 역시 훼이에게 공격을 가했다. 주위를 감싸고 있던 푸른 안개가 소용돌이 처럼 하나의 거대한 줄기가 되어 훼이를 향해 내쏘아진 것이다. 훼이가 두 번째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 푸른 소용돌이는 눈 앞에 와닿아 있 었다. 하지만 훼이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 고 완전한 어둠의 빛깔을 띤 한 마리의 묵룡(墨龍)을 교룡에게로 쏘아 보냈 다. 그와 동시에 훼이를 향해 짓쳐들어온 푸른 소용돌이가 훼이의 온몸을 감 쌌다. 그리고 잠시후. 훼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교룡의 공격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옷자락 하나도 찢겨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대편에 선 교룡은 연달아 퍼부어진 훼이의 공격을 다 막아내지 못했는지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얼굴색이 조금 창백해지기는 했지만 여러 용족의 생 기를 흡수한 것 때문인지 금새 다시 몸을 추스렸다. " 내 몸속에는 어린 용족들의 생기이외에도 오래전에 받아들인 당신의 소중 한 아들의 생기도 있지..." 무슨 생각인지 교룡은 훼이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훼이의 대답은 말이 아니었다. 언제 힘을 집중시켰는지 느끼지도 못할 만큼 짧은 시간에 훼이는 힘을 모았고 교룡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것을 쏘아보냈다. 아까의 묵룡보다 두배는 더 큰 백년된 아름드리 나무의 키만한 다섯 마리의 묵룡들이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교룡에게 짓쳐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훼이는 교룡의 몸이 바닥에 무 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 * * * 시비들의 눈에도 훼이가 달라졌다는 것은 확연하게 보였다.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훼이의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예전의 그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훼이의 얼굴에는 더 이상 예전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말수 또한 눈에 띄게 줄었다. 더 이상 그의 모습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지위를 내던진 흑룡왕의 후계자 였 던 훼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화란이 떠나간 이후로 더 이상의 방문자도 없는 조용한 별궁에서 훼 이는 세월에 묻혀가길 바라는 듯이 조용히 잠겨 있었다. - 진정으로 이것이 내가 원하는 일인가? 훼이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친 듯이 고개 를 숙이고 앉아 있는 모습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자신이 아닌 듯 했다. - 언제고 일어날 일이 아니었던가. 나 역시 때가되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당 연한 이치인 것을. 하지만 비는 수명을 다 누리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200년의 시간도 살지 못한채 그렇게 스러져가야했다. 교룡인 비가 보통의 용족들에 비 해 짧은 수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 언제고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왜 고이 보내지 않고 이렇게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인가. 산자의 집착은 죽은자의 안식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도..... 그렇게 끝나지 않을 문답을 훼이는 계속해서 반복했다. 자신의 방 안에 틀어박힌 채 어떤 움직임도 없이 훼이는 끊임없이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언젠가는 잊어야 할 아들의 모습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 8장은 길이가 짧은 편에 속하겠네요. 7장이 너무 길어서 그런지 긴 이야기 다 음에는 짧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져요. 너무 길어지면 지루하잖아요. ^^ 흐음... 오늘 등장한 것은 개떡같은 전투장면 이었습니다. 생동감 없음. 묘사능 력 제로의 구린 장면--;;; 자, 돌 던지셔도 안 피할께요... < 잠깐 설정 > 교룡이란 무엇인가? 본문 내용에도 예전에 언급 된 적이 있듯이 교룡은 인간과 용족 사이의 혼혈 로 태어난 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강인한 용족과 짧은 수명을 사는 인간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교룡들은 일찍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피는 용족 본연의 강인한 마력이 담긴 피를 흐리게 하기 때문에 용족들은 인간과 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 즉, 교룡을 탄생시키는 것을 금기시 해 왔습니다. 비 이전에도 교룡의 존재는 있긴 했지만 그것은 한손에도 다 꼽히지 못할 정 도로 작은 숫자이고 그들의 생은 무척 짧았거나 아니면 천계에도 하계에도 속하지 못한채 포악해 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뒤에 등장할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에 다른 교룡의 이야기도 나올 겁니 다. 그리고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 '교룡에게는 용족의 생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교룡이 용족의 생기(생명의 기운)를 흡수하게 되면 인간의 피가 섞임으로 인해 생겼던 마력의 불균형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수명을 늘릴 수는 없지만 용족의 생기는 교룡에게 강한 힘을 내게 해 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른 이의 생명을 뺏는 일이니 당연히 금기시 되겠죠. 그 때문에 교룡의 존재가 용족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인 지도 모릅니다.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저는 이만 휘리릭. 번 호 : 1176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8일 00:1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四.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四. "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고 작은 목소리로 교룡은 입을 열었다. " 아무리 그녀.... 요희가 강하다고 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오랜 시간 을 살아왔다고 해도 그녀는 당신을 이기지 못해. 그녀는 명계의 땅을 떠나서 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그리고 나역시 용족의 생기를 흡수했지만 당신의 상대는 되지 못하지....." 어느 누구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룡은 말을 이어나갔다. 힘 없이 바닥에 쓰러진 그의 얼굴에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싸늘하게 웃음을 던지 던 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한 표정이 떠올라 있 었다. " 내가 교룡으로 태어난 건 내가 원해서가 아니야......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해서 태어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지금도 살아서 존재하고 있 는 날...... 날 낳아준 부모는 내팽개쳤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 만......... 그건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야....." 싸움이 끝남과 동시에 곁으로 다가선 챠렌과 유에린은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묵을 지키며 교룡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곧 생명의 불이 꺼질 것처럼 교룡의 모습은 위태롭게 보였지만 얼굴에 떠오 른 온화한 미소는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 그래서 세상이 끝날때까지 부모를 원망할 셈이었나......?" 나직한 훼이의 물음에 교룡은 작게 웃었다. " 원망......? 원망이라고.......?" " 그렇게 생각하는한 넌 영원히 요희에게서 그리고 명계에서도 해방될 수 없어." " 지금의 당신이라면 우리를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것.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자신이 죽던 날로부터의 모 든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자신을 잊을만 큼 그토록 시간속을 헤메여야 한다는 사실이 피를 말릴 정도로 끔찍한지...." 훼이는 고개를 저었다. " 어떤 것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지. 물론 나 역 시 오랜 시간을 살아오긴 했지만 그건 명계를 떠도는 자들과 비교하면 턱없 이 짧은 시간이지. 그렇지 않나?" 교룡은 훼이의 물음에 대답없이 웃기만했다. 어딘지 모르게 공허해 보이는 그 웃음 속에서 훼이는 세월에 지친자의 눈을 보았다. 천년을 뛰어넘은 세월을 살아온 훼이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교룡. 그 역시 지금의 자신이 느끼 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주는 무게를 느끼고 있을까. 그런 교룡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훼이는 문득 비는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 각을 떠올렸다. 비록 오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비에게는 죽음이라는 형태의 안식이 주어졌기 때문에. 훼이의 눈 앞에서 지나간 세월의 무게에 짓 눌린 채 고통스러운 어조로 말을 내뱉는 교룡은 언제까지고 안식을 얻지 못 할 것이었다. " 돌아가라...." 훼이가 내뱉은 말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교룡도 곁으로 다가선 두 여인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언가를 물으려는 듯 교룡은 입술을 움직였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 다. "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은 초대에 응대해 주지 않겠다고 전해주 겠나. 알고 있을게 뻔한데 왜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군." 그 말을 하고 나서 훼이는 여전히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유에린에게로 시선 을 돌렸다. 말은 없었지만 유에린은 훼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채고는 곧 챠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 만나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 저도 마찬가지에요." 유에린의 인사에 답한 챠렌은 훼이에게 말을 던졌다. " 저 교룡은 이대로 돌려보내도 될까요. 지금 당신에게 패했다고 해도 저자 는 8명이나 되는 어린 용족들을 죽였습니다. 다른 용왕들은 납득하지 않을지 도 모릅니다." " 납득하지 못한다해도 어쩔수 없습니다.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죽음 이란 없으니까요." 챠렌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훼이의 말대로 명계에 속한 자들은 육체의 죽음은 있을지 몰라도 계속해서 다시 태어난다. 지금 저 교룡 을 죽인다고 해도 얼마후에 교룡은 새로운 몸을 가지고 태어나 있을 것이다. 어린 용족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않은 왕들의 잘 못이었다. " 알겠습니다." 챠렌은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잠시 여전히 바닥에 앉아있는 교룡에게 시선을 던진 후 세명의 용족은 가벼 운 목례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가 가야할 곳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룡은 공허한 미소를 떠올리며 몸 을 일으켰다. 분명 명계로 돌아가면 요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 다. 하지만 그것은 그뿐이었다. 요희역시 그에게 죽음을 주지는 못한다. 명계란 그런 곳이다. 영원이라는 시간의 굴레를 짊어진 자들이 살아가는 곳. * * * * 그것은 분명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마력을 통해서 방출되는 힘의 덩어리가 아닌 장엄한 아름다움을 가진 위대한 생명체. 하계의 인간들에게는 신(神)이라 불리는 그것. 밤하늘을 뒤덮는 검은 빛보다 더 어둡고 아름다운 검은빛을 품은 용(龍) 이라 는 이름의 생명체는 그 장대하고 아름다운 몸체를 움직여 가며 하늘을 가로 질러 어느 한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많은 용족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그 흑룡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으로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보아도 선연한 아름다움을 뿌리는 피빛 저녁노을에 시선을 던지고 있던 훼이는 갑작스럽게 온몸에 일어나는 전율에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심장의 밑바닥에서부터 느껴지는 떨림.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한 느낌이었다. 훼이는 놀랄만큼 빠른 움직임으로 방에서 나서 정원을 향 해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훼이 역시 하늘을 가로지르며 다가오는 거대한 흑룡의 모습을 보았다. 머리위에 솟아난 두 개의 뿔과 반짝이는 검은 비늘로 둘러싸인 몸체. 그리고 깊게 잠긴 검은 눈동자. 흑룡은 분명 훼이를 향해 오고 있었다. 어느 순간 훼이는 흑룡의 커다란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영혼을 사로잡을 듯 한 커다란 울림이 훼이의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훼이의 몸은 어느새 하늘위 에 멈춰선 흑룡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훼이는 한동안 흑룡의 앞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대로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아버지............" 거대한 흑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한없이 깊은 빛을 담은 눈동 자로 훼이를 응시했다. 훼이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없이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일으킨 것이었다. 한동안 훼이를 지긋이 바라보던 흑룡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갔다. 훼이는 흑 룡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멍한 상태로 몸을 떨고 있는 훼이의 몸 속으로 흑룡의 몸은 빨려들어 갔다.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존재가 작은 훼이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그것은 정말 환상처럼 느껴졌다. - 이것이 내가 네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죄다..... 훼이는 온 몸에 피어오르는 기이한 열기 속에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흑룡이 완전히 훼이의 몸 속으로 사라진 후 훼이는 눈을 감고 몸을 가득 채운 열기 속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온몸에 퍼져있는 혈관 하나하나 머리카락 하나하나에도 그 열기가 퍼져나가 는 듯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흑룡의 기운을 완전히 몸안에 받아들인 훼이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 섰을 때 흑룡궁 별궁앞에는 많은 수의 용족들이 모여들어 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외감과 불신 그리고 혼란이 담겨 있었다. " 대체 아까 그건 뭐였지?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 누군가의 말소리가 웅성거림 속에서도 선명하게 피어올라 훼이의 귓가에 파 고들어왔다. 사실이다. 웅성거리는 용족들의 짐작대로 훼이가 아버지라고 부른 그 흑룡은 훼이의 아버지인 현 흑룡왕의 생명의 형태였다. 마력이 아닌 용족의 생명의 기운이 뭉쳐진 형태. 이체 용족에게 주어진 천수 에 다다르고 있던 흑룡왕의 생명. 그것이 용이라는 생명체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훼이는 지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지금 무엇을 했는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조차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심한 충격이 훼이의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훼이는 검은 눈으로 웅성거리는 용족들을 바라보고 나서 아무말 없이 별궁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런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웅성거 리며 모여있는 용족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병사와 시비들이 곤욕을 치루고 있 을 때 훼이는 고개를 숙인채 침상에 걸터 앉아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몸에 흘러넘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버지. 흑룡왕의 생명의 기운. 이것으로 흑룡왕이 세상을 떠났나는 것은 누가 말로 전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남긴 한마디의 말이 떠올랐다. 이것이 내가 네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죄다..... 사죄....... 과연 무엇에 대한 사죄인가....... 훼이는 혼란스러워진 머리속을 털쳐버리려는 듯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것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었다. 단 한번도....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준 적이 없던 모습. 지금까지 970여년의 세월동안 흑룡왕은 한결같이 흑룡왕이었다. 훼이가 막 세 상에 태어나 자신의 두 발로 걷고 마력을 키우고 후계자의 자리에 오를때까 지도 그리고 후계자의 위를 버리고 비와 함께 별궁에 거처하기 시작했을 때 도, 성휘의 죽음으로 인해 천상계에서 힘을 썼을때도, 명계의 반 이상을 힘으 로 날려버렸을 때도. 흑룡왕은 언제나 흑룡왕의 모습으로 훼이의 앞에 서 있 었다. 단 한번도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훼이의 앞에 선 적은 없었다. 아버지.......대체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습니까..... 제게...... 훼이는 자신의 두 손을 굳게 쥐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 교룡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내용도 너무 미흡하죠 ^^) 명계와 의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랍니다. 요희는 좀 끈질긴 여자거든요 ^^ 그리고 9장부터는 분위기를 좀 바꿔보기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 른 에피소드를 전개하려고 합니다. 어차피 지금까지의 분위기가 어디 가진 않겠지만...^^ 아...그리고 8장 아직 안 끝났어용...^-^ 요새 무지하게 덥죠? 더위 조심하시구요. 오늘도 감사드려용 ^0^ 번 호 : 119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9일 00:1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9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五. 흑룡의 숲 제 8장 부정(不貞) 五. 그때는 몰랐었다. 아버지가 넘겨준 생명력이 어떤 작용을 하게 되는지.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용족도 그런 일을 한 전례는 없었기 때문이었 다. 아무리 부모라해도 어느 누가 자신의 생명력을 다른 이에게 전해 주겠는 가. 아무도 그런 생각조차 떠올린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훼이는 천년이라는 용족에게 주어진 수명의 시간을 지나서도 자신이 살아있음에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의혹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계의 인간들과는 다르지만 분명 용족들에게도 노화(老化)는 있었다. 하지만 훼이는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은 생명력이 몸에 자리한 그 순간부터 겉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약간의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수명을 거스르는 자가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 훼이는 깨달았다. 더 이상 자신은 용족이면서도 용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아버지가 왜 자신에게 생명력을 넘겼는지를..... 아버지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마음 속 깊이 깨달았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큰 무게와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라는 자애로움이 주는 사랑과는 다른 아버지만이 줄 수 있는 그 깊이 있는 사랑을 훼이는 천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 당신은 제게 이것을 말해주고 싶으셨습니까? 훼이는 하늘을 향해 마음속으로 외쳤다.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아버지를 향해. 그리고 훼이는 그동안 머물던 별궁에서 나와 천계 최북단이자 흑룡족의 영토 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한 숲에 자리를 잡았다. 분명 이전에도 그 숲에는 이름 이 있었다. 하지만 훼이가 그 숲에 자리를 잡은 이래로 그 숲은 흑룡의 숲이 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어느 누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자연스럽게 용족들 은 훼이라는 이름에 경외심을 품으며 훼이가 머물고 있는 숲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 * * * "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 아닙니까?" 다른 용왕들의 표정이 차분한데 비해 홍룡왕 란은 화를 참지 못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어차피 그라고 하더라도 명계에 사는 자를 완전히 소멸시킬 힘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예상했던 일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쓸데없는 희생을 막기 위해서 였습니다." 파이론이 담담한 어조로 말하자 란은 눈썹을 치켜뜨며 고개를 돌렸다. " 그렇다면 죽은 용족들의 목숨은 누가 보상합니까." " 홍룡왕께서 책임지시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의 처사가 최선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직접 교룡과의 싸움까지 겪었고 어린 용족들의 죽음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조사를 했던 챠렌의 말이었기에 홍룡왕 란은 얼굴을 더욱 찌푸렸을 뿐 더 이 상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회합에서 논의되는 사항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라 이엔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설마설마 하고 있었지만 홍룡왕 란의 태도는 오늘로써 더욱 명백해졌다. 그는 흑룡족에게 적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 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훼이에게. 현 용왕들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이 홍룡왕 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거칠었고 여전히 직설적이었다. 란이 훼이에게 적의를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란의 어머니이자 전대 홍룡왕 이었던 여인이 바로 화란이었기 때문이다. * * * " 흐음....그도 들려오는 말처럼 천계를 등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당대 청룡왕 리판은 마주앉은 후계자 리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 다. 지난번에 유안에게 생긴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리린은 수천궁 밖으로 나 가지도 않고 수련을 하는데 전념해왔다.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리는 없었지 만 교룡하나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 분명 했다. " 솔직히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그는 숲으로 찾아간 어느 누 구도 받아들여주지 않았잖아요. 유에린이 그만큼이나 절실한 이유를 가졌던 걸까요." 리린은 얼마전에 전해들은 유에린에 관한 소식에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훼이가 누구인가. 감히 용왕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자가 아 니던가. 그가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경외심은 수명을 벗어나 오랜 세월을 살 아왔다는 것에 있었고 그에게 경외심을 품게 만드는 그 세월속에는 보통의 아니, 용왕족이라고 해도 경험하지 못했을 많은 일들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 다.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명계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내온 천상계도. 그리고 환계에서조차도 훼이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훼이는 천년이 넘는 시간을 그저 살아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여러 곳에 자 신의 흔적을 남겼다. 이제는 용족이라는 이름에서도 벗어난 듯이 보이는 훼 이. 그 때문에, 그가 가진 자유로움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경외의 대상으 로 여겼다. 언제나 그렇듯이 보통을 초월한 자는 더 이상 자신들과 동류로 보 이지 않는 법이다. " 훼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했던 간에 그가 한일 덕에 천상계와 의 사이가 소원해진 것은 우리 용족으로서는 달가운 일이니까 말이다. 나는 그가 그때 이후로는 영영 천계의 일에 대해 관심을 잃어버린 줄 알았다." 아버지의 말에 리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완전한 이해의 빛을 보이지는 않 았다. " 사실 그의 삶은 개인으로 놓고 보자면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지 모른다. 그는 바로 이 천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잃었으니 까." "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많은 것을 잃고도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는 것은 천 계에 대한 정이 남아있기 때문일 거에요. 그가 숲에 들어가 버린것도 그때문 이 아닐까요. 지난번 유안과의 수행때 흑룡왕님을 만나 뵙고 조금은 알게 되 었거든요." 리판의 얼굴에는 약간의 호기심이 떠올랐다. " 무엇을 말이냐." 리린은 라이엔과 유안. 그리고 미하의 모습을 보고나서 그리고 유안에게 훼이 에 대한 말을 듣고나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훼이는 그저 먼 하늘의 별처럼 닿을 수 없는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존재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도 분명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곳 천계에서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한명의 용족이었다. 그리고 훼이는 남아있는 자신의 혈육들을 위해 그들의 곁 으로 다가서지 않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혼자만의 추측일 뿐이었지만 리린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 지 않았다. " 적어도 그의 존재가 있는 한은 우리 용족들에겐 언제고 기댈 수 있는 의 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번일도 그래요. 그는 아무말 없이 하계로 내려가서 교룡을 돌려보냈어요. 어쩌면 유에린이라는 어린 소녀가 그의 마음을 다시 돌 리고 있는지도 모르죠." 청룡왕 리판의 얼굴에는 엷지만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 그런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느냐. 역시 너는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구나." 아버지의 흐뭇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리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 전 아직 어려요. 그리고 너무나도 부족하죠. 후계자이긴 하지만 백룡왕비 인 챠렌보다도 터무니 없이 약해요. 전 다른이들의 도움 없이도 혼자 설 수 있는 왕이 되길 원해요." 리린은 청룡족 중에서 왕으로서 이름을 남긴 여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용족들에 비해 왕이된 여인들의 수가 적기도 했지만 그녀 들은 그저 보통이었을뿐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린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그저 자신의 의무만 다 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왔지만 지난번에 겪은 교룡과의 일 이후로. 그리 고 지금 훼이의 곁에서 마력의 운용을 배우고 있는 유에린이라는 이름밖에 모르는 동족의 소녀를 떠올리며 리린은 찾아냈다. 자신이 목표로 삼을 그 무 엇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열망을. ========================================================================= 비교적 짧은 8장도 끝났습니다. 8장에서는 훼이가 어떻게 해서 용족의 수명을 초월하게 되었나를 보여드렸습 니다. 제가 생각했던 의도대로 표현을 못해서 무지 아쉽습니다. 그치만 능력 이 딸리는 건 저도 어쩔 수가 없군요. 점점 시시해지고 있는 느낌...^^;;; 하지만 원래 제가 이런걸요.... 흑룡의 숲은 100편 이내로 써서 가을 쯤까지 완결을 낼 생각입니다. 매일 연재 길드를 만든 것도 저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싶어서죠 ^^ 음..아무튼 완결의 그 날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쓰겠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몇 개의 에피소드들과 조금 얽힌 이야기들이 전개될 것 입니다. 음...무심코 그동안 쓴 글들을 살펴보니 220페이지 정도가 되는군요. 오...놀라워라...언제 이렇게 썼지... 용량도 이제 곧 300kbyte를 넘어갈 것 같아요. 오오..기뽀.. ^///^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용. 감사합니당. ^-^ 번 호 : 1221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30일 00:5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9장 一. 흑룡의 숲 제 9장 미풍(微風) 모든 파랑(波浪)을 잠재우며 어둠이 찾아왔다. 낮게 흔들리는 갈대숲 사이로 선명히 떠오른 그것은 잊혀지지 않을 기억. 一. 그것은 맹수의 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푸른색의 인광을 발한다는 그 두 눈에는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적막만이 떠돌고 있었다. 다른이들의 말을 빌자면 오금이 저려서 손끝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고 하는데 지금의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 빨려들어갈 듯한 고요함에 잠시 놀랐을뿐. 몸은 굳어지기는커녕 보통때와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의 두배는 더 되어보이는 몸집을 가 진 백호를 보며 그는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만일 자신이 저 맹수를 잡는다면 분명 그는 이 나라에서도 제일가는 사냥꾼 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아무리 만금을 가지고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라해도 저 고귀하고 용맹스러운 동물의 가죽을 가져간다면 크게 자신을 환영할 것이 틀 림없었다. 하지만 잠시나마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떠올린 자신을 꾸짖으며 고개를 저 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저음과 동시에 자신과 눈을 마주대했던 맹수의 제 왕역시 고개를 돌렸다. 맹수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채 몸을 움 직이지 않았다. 사냥꾼으로서 20년 이상을 살아왔지만 두 눈으로 숲의 제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보통의 호랑이라면 그도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지 금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은 그런 호랑이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고 귀하고 당당한 위엄을 가진 동물. 그야말로 왕이라는 단어 이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든 동물의 지배자. 겨울에 쏟아져 내리는 하얀 눈빛과도 같은 털을 온몸에 두르고 그 흰 색의 설원에 새겨진 길다란 검은 자욱을 가진 전설의 영수. 바로 백호(白虎)였던 것이다. 한참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던 그는 문득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은 아무것도 잡지 못해서 조급한 심정이었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백호를 만나 게 해 주려는 하늘의 안배였던 모양이다. " 좋아. 오늘 하루 굶는다고 죽는건 아니니까. 누가 또 백호를 볼 수 있겠 어. 천운(天運)이지.... 암... 천운이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그는 발을 움직여 산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해가 지 고 날이 어두워질 것이다. 산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그는 사냥꾼으로 지내온 오랜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붉고 노란빛깔로 물든 가을의 산은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냥꾼인 한(瀚) 역시 온 산을 가득 메운 단풍의 고운 빛깔에 잠시 넋을 잃었 다. 매일 같이 질리도록 보아온 산이었건만 오늘은 유달리 아름다워 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조금 전에 잊혀지지 않을 경험을 한 탓이라 생각하며 한은 곧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를 걸었을까. 어느던 그는 산의 중턱을 지나선 것을 알아채 고 잠시 숨을 돌렸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날은 더웠다. 아침 저녁으로 야 쌀쌀한 바람이 불긴 하지만 한낮의 열기는 아직도 땀을 흘리게 할 만큼 따가웠다. 휴..... 목이라도 축이고 갈까.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한은 자주 찾아가는 근처의 옹달샘으로 나 있는 소 로에 접어들었다. 한의 팔길이 정도 만한 작은 폭의 샘에서는 언제나 몸을 얼릴 듯한 차가운 물이 솟아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는 샘이었기에 샘을 찾는 것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동물들을 비롯해서 커다란 동물들 이 그곳을 찾았다. 개중에는 맹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동물적인 날카로운 감 각을 가진 그들은 인간의 기척이 느껴지면 곧 몸을 피하곤 했다. 한은 두 손가득 옹달샘의 물을 담아 목을 축였다. 가슴이 저며올 정도로 시원 한 그 감각에 한은 온몸에서 흘러나오던 땀이 다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목을 축이고 나자 다시 몸에 힘이 돌아오는 듯 기분이 상쾌해졌기에 그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막 소로에 접어든 그때. 한은 전율과도 같은 기이한 감각을 느끼며 걸음을 멈췄다. 과연 그의 감각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울려퍼지던 산새 소리가 죽은 듯이 멈췄다. 한은 주위를 세 심하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 요......용...?" 구름한점 없이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그것은 분명 용이었다. 확실 하게 형체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듯이 보이는 길 고 장대한 몸체는 바로 전설 속에서나 들어온 용의 생김새와 흡사했다. 한은 정신없이 자신의 두 눈을 비볐다. 하지만 하늘에 떠올라 있는 그것은 여 전히 존재했고 점점 산 정상을 향해 몸을 낮춰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 검은 용의 모습은 꺼지듯이 사라졌다. " ........!" 분명 용은 산 정상에 내려선 것이 틀림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다시 산새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지만 호기심에 사로잡힌 한 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 * * " 그대인가..... 날 부른 것이." 묻기는 했지만 훼이는 자신을 부른 것이 눈앞에 있는 백호의 모습을 한 청년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확인을 위해 한 질문일 뿐이었다. " 오랜만이로군. 백호족을 보는 것도." 훼이의 말이 떨어지자 그때까지 흰 호랑이의 모습으로 물끄러미 훼이를 바라 보던 그는 곧 자신의 몸을 변화시켰다. 엷은 흰색의 빛무리에 싸인채 백호는 청년의 모습으로 화했다. 훼이보다 더 희게 느껴지는 피부와 살짝 귀를 덥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청 년은 도저히 아까의 백호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약해 보였다. " 흑룡족인 훼이님 이시겠지요?" 훼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무슨 이유로 날 불렀지?" " 동족들에게 당신이 하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잠시 방해했습니다." 너무나 깍듯하고 예의바른 청년의 태도에 훼이는 잠시 의문을 떠올렸다. 그가 알고 있는 백호족들은 호전적이거나 다른이와 대면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 만 이 백호족의 청년은 달랐다. 도전적이지도 그렇다고 어둡게 가라앉은 것도 아닌 그저 심유한 눈빛. " 그렇다면 이유를 들어볼까." 청년의 심유한 눈빛과 훼이의 공허함이 담긴 눈빛이 잠시 소리없이 마주쳤다. " 제게 당신의 힘을 시험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담담하게 말을 꺼낸 청년을 보며 훼이는 속으로 웃음지었다. 역시 백호족은 백호족. 청년은 지금 훼이와 싸우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훼이는 자신이 놀랄 정도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장소는?" " 이곳에서 바로 시작해도 괜찮겠습니까." 여전히 예의바른 태도로 백호족의 청년이 물었다. 하지만 더 이상 청년의 눈 빛은 심유하지만은 않았다. 엷긴 했지만 청년의 눈에는 투지가 차오르고 있었 다. " 그럼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한 청년은 다시 백호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백호의 모습으로 변 화한 청년의 눈은 검은 색이 아니었다. 백호의 두 눈은 타오르는 투기(鬪氣) 때문인지 흰색의 털과 대조되어 선명한 푸른색으로 보였다. 모든 짐승을 호령하는 짐승의 왕답게 우렁찬 소리로 한번 울부짖은 후 백호 는 하늘을 날 듯이 높이 도약해서 훼이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백호족인 청년 이 그냥 발톱을 세우로 공격을 퍼부었을리는 없었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발톱 에서 공기를 찢어버릴 듯이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훼이는 가만히 서 있다가 백호의 몸이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순간 두 손을 들어올려 한 마리의 묵룡을 쏘아보냈다. 콰광. 힘과 힘이 맞부딪히며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놀란 산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금의 상황과 관계없이 하늘을 향해 날개짓하는 새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훼이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잠시 지면에 가볍게 착지했던 백호는 훼이의 모습을 탐색하듯 조용히 바라보다가 어느순간 번개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다 시 훼이에게 달려들었다. 용족을 포함한 봉황, 기린, 현무, 백호의 영수족 가운데 유일하게 동물의 모습 을 진신(眞身)으로 가진 것이 바로 백호족이었다. 다른 영수족들이 그들이 사 용하는 힘의 형태를 동물의 형상으로 내보내는 반면 백호족은 백호의 모습으 로 있을때야 비로소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동물의 모습을 진신으로 가진 만큼 어느 영수족 보다도 호전적이었다. 용족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라고 여겨지는 홍룡족 조차도 백호족에게는 한수 접어줄 정도 로 그들이 가진 투기는 대단했다. 얕봐서는 안되겠군.... 훼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백호족의 청년을 바라보며 보다 강한 주문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런 훼이의 눈에서는 어느새 공허함이 사라져 있었다. ======================================================================= 음... 제 글이 왜 무협적인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마도 문체상에 드러나는 무협의 냄새와 배경이나 구성 방식 자체가 무협의 느낌을 많이 전해주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 딴에는 무협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는 배제하고 쓴다고 썼는데 그래도 분위기에서 무협의 냄새가 팍 팍 풍기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희 아버지는 저한테 무협지 쓰라고 하시더군 요^^) 뭐....무협적이면 어때요...^^ 8장까지의 전개가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에다가 지루하게 늘어지고 너무 시시해지는 것 같아서 9장부터는 조금 다르게 써 나가고 있습니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구요? (그럼 돌 던지세요....제가 그렇죠...뭐...흑..) 모두들 더위 조심하시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번 호 : 125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31일 00:4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6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9장 二. 흑룡의 숲 제 9장 미풍(微風) 二. 숨이 턱에 차 오를 정도로 빠르게 산 정상을 향해 달려온 한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숨을 가다듬었다. 산을 타는데 이력이 난 한이 숨에 차 헐 떡거릴 정도라는 것은 그가 얼마나 급하게 정상까지 달려왔는지를 말해주었 다. 어느정도 숨쉬기가 편해지자 한은 달려오면서 보았던 검고 흰 빛들이 난무하 던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명 무슨일이 있는 것이다. 한은 가슴을 가득 메운 호기심을 살짝 억누르며 주위에 있던 높게 뻗은 나무위로 올라갔다. 자 신의 짐작이 맞다면 분명 이곳에는 용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문에 한은 일부러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곳에 멈춰선 것이다. 익숙한 솜씨로 나무위에 오른 한은 산 꼭대기에 자리한 분지- 사실, 분지라고 말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주위의 다른 곳에 비해 나무가 적고 길게 자 라난 풀들로 가득 메워진 곳이었기에 분지라 부르고 있었다-를 바라보았다. 한이 나무위에 오르기 전부터 조금전까지 보이던 검고 흰 빛들이 사라졌기에 한은 용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았다. 처음 분지위에 서 있던 검은 옷을 걸친 한 남자와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백 호가 대치하고 있는 것을 봤을때만 해도 그는 왜 인간이 백호와 마주서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특이한 복색의 남자의 손에서 뭉쳐진 검은 기운이 어느새 거대한 용의 형상 으로 변한 것을 보며 한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설마...... 저 남자가 용......? 그에게 대답을 전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한은 남자가 용이라는 것을 확 신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나는 정말 엄청난 사실을 안 거야. 용들도 사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다니! 그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도 백호와 남자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으로 백호가 남자의 손에서 뻗어나온 검은 용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을 보며 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전설의 영물이라 다르군. 용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다니.... 한은 자신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하늘에 감사하며 계속되는 둘의 싸움 을 주시했다. * * * 역시..... 왠만한 공격주문으로는 안되는군..... 이토록이나 간단하게 훼이의 힘을 막아내는 상대를 만난 것은 실로 오랜만이 었다. 훼이의 짐작으로 백호족의 청년의 나이는 고작해야 300을 넘겼을 것으 로 보였다. 백호족 청년의 나이가 그정도라면 그가 가진 힘은 정말 놀라운 것 이었다. 다른 영수족들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을 유지시키기 위해 필요한 오대 원소의 힘을 가진 용족들은 결코 그들이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기에 훼이의 놀라움은 더 컷다. 그리고 그 용족중에서도 훼이는 흑룡족이 아니었던가. 푸른 빛을 발하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며 공격에 대비하고 있는 백호를 본 순간 훼이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투지를 느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것으로 여겼던 투지가 그토록이나 맹렬하게 자신의 가슴속에서 끓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 려울 정도로 신선한 감각이었다. 훼이는 그때서야 비로소 진심으로 백호와 대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금 까지는 그저 자신에게 도전해온 젊은 백호족의 청년이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 에는 별다른 관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청년이 도전해 왔기에 받아들인 것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훼이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탐색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백호를 향해 엷 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두 팔을 들어올리며 주문을 외쳤다. [ 개문(開門) 람(嵐) 전(電) - 폭풍의 힘을 끌어내어 공격하는 주문 - ]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광경이었다. 언제 생겨났는지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메웠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먹구름이 몰려든 것은 훼이와 백호가 대치하고 있는 구릉지대 바로 위의 하늘일 뿐 다 른 곳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푸른색이었다. 이제 서서히 노을지는 태양의 빛을 받아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처럼 검은 먹구름 사이에서 일순 주위를 밝게 비 추며 천둥이 쳤다. 하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백호는 이번 훼이의 공격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임을 느꼈는지 온몸에서 흰 기운을 뿜어내며 훼이의 공격에 대비했다. 훼이는 백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강한 기운을 느끼며 한손을 들어올렸다. 그 러자 먹구름 사이에서 묵룡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까지 훼이가 쓴 공격주문들은 대부분 힘이 뭉쳐진 용의 형상. 즉, 묵룡을 통한 것이었지만 이 번은 조금 달랐다. 그다지 커다란 크기의 묵룡은 아니었지만 지금 훼이가 불 러들인 묵룡은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것이 아닌 암흑처럼 어두운 빛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훼이의 손에서는 묵룡의 빛깔과 같은 짙은 빛깔 의 덩어리가 뭉쳐지고 있었다. [ 개(開)! ] 짧은 외침과 함께 묵룡은 섬전 보다도 빠르게 땅위에 있는 백호를 향해 쏘아 졌다. 그리고 묵룡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백호역시 온몸에 흰 빛을 두른채 몸을 띄워올렸다. * * * 백호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내려선 후 어느순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한은 또 다시 놀라움 때문에 거세게 뛰고 있는 가슴을 부여 잡았다. 그 런다고 해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지는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 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조금 전에 검은 먹구름 사이에서 빠져나온 검은 용과 정면으로 맞부딪힌 백 호는 처음에는 우세한 힘을 자랑하며 검은 용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방해 했다. 하지만 그 용을 조정하는 것이 분명한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뭐라고 외치며 손을 휘두르자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덩어리에 의해 백호는 순식 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내심 백호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던 한으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이제 백 호가 졌으니 분명 남자가 백호를 죽일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그것은 그의 괜한 걱정이었다. 백호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데다 용이 분명한 검은 옷의 남자는 손을 내밀어 쓰러져 있던 백호 - 이제는 청년의 모습이 된 - 를 일으켜세운 것이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노릇이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한이 있는 곳에서는 둘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움직임만으로 모든 것을 짐작해야 할 뿐. 무슨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는지 두 남자는 계속해서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 었다.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서 엿들어 볼까..... 하지만 한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나무에서 내려가는 사이에 두 남자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호였던 청년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백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빠르게 숲 속으 로 몸을 감춰버렸다. 검은 옷을 걸친 남자는 아직도 하늘에 엷게 깔려있는 검은 구름을 한번 올려 다 보았다. 그러자 무슨 조화인지 하늘에 걸려있던 먹구름들은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먹구름이 사라진 하늘은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빛을 받아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는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남자가 손을 휘두른 자리가 뒤틀리며 구멍같은 것이 생겨났다. 한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꿈이면 어떤가. 지금 자신이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진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는 사실은 분명했으니까. 막 구멍 안으로 들어서려던 남자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정 확하게 나무 위에 있는 한에게 향해있었다. 한은 화살맞은 토끼처럼 깜짝놀라 나무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을 뻔했다. 어느새 남자는 구멍안으로 들어서 있었다. 마치 조금전에 자신을 향한 시선은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남자의 얼굴에 언뜻 미소가 비친 것도 같았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분지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서녁 하늘로 저문 붉은 햇살대신 주위를 가득 채운 것은 어슴푸레한 어둠과 시원 한 바람이었다. 한은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와 기둥을 잡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짧은 시간동안 산은 완연한 어둠에 감싸여 고요히 잠 들고 있었다. 산에서 밤을 맞이한 것이 얼마만인가. 한낯의 열기에서 빠져나와 부드러운 밤 바람을 쐬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 이제 돌아가야겠군..... 오늘은 확실히 배고픈 밤이 되겠구나..." 한은 낮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음...이번 9장의 내용은 본 내용과 크게 관련이 있는 건 아니구요. 잠시 쉬어 가자는 차원에서 가볍게 써 봤습니다. 시간적 배경은 훼이가 아버지에게서 생명력을 넘겨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때부터 훼이는 오랜시간을 하계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후훗....그리고 이번 9장은요. 제가 전투장면을 너무 못쓰기 때문에 연습 차원 에서 한번 써본 것이랍니다. 여전히 구리죠? ^^ 요즘 저는 슬럼프 인가봐요. 글을 쓰는데 전혀 흥이 나질 않아요...흑... 마음도 무겁고..... 그치만 계속 써야죠... 점점 이상해 지는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 번 호 : 1278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01일 00:5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0장 一. 흑룡의 숲 제 10장 범람(氾濫)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초유의 질서 시간은 어김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의 파도에 휩쓸린자에게 작은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되돌릴 수는 없지만 되돌아 볼 수는 있는 것. 그것은 시간이 베푸는 유일한 자비. 一. 실로 오랜만에 홍룡왕 란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공간 연결주문인 천개의 주문을 써서 허공에 띄워놓은 붉은 빛을 간직한 평평한 거울 안에는 란과 마찬가지로 타오를 듯이 붉은 색의 머리카락을 늘 어뜨린 한 여인의 모습이 비춰져있었다. 여인은 특이한 외모의 소유자 였다. 그리 흔하지 않은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 이 그랬고 기이할 정도로 날카로운 빛을 내뿜는 금빛의 눈동자가 그랬다. 피 부색은 너무 희지도 그렇다고 적당히 그을린 갈색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특출나게 아름답지도 청순하지도 않았지만 보통의 여인들이 가지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특이한 매력이 있었다. -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묘하게 다른 이의 시선을 끄는 독특한 외모의 소유자 치고는 무척이나 평범 한 목소리로 여인이 말했다. " 물론입니다. 영수족의 일원인 봉황족의 도움을 얻는 입장이니 그것만으로 도 감사를 금치 못할 따름입니다." 란의 목소리에서는 정중함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그의 본의 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홍룡족이 가진 불같이 급한 성격 외에도 800년에 가까운 세 월을 지내오면서 쌓아온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에서 연유한 지식 이건간에 란은 세월이 안겨준 연륜을 가진 자인 것이다. 미소짓는 란의 얼굴을 금빛 눈동자로 가만히 주시하던 여인은 아주 잠깐 동 안이지만 의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곧 그것을 지우고 란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 그럼 그때 뵙도록 하지요. "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란은 얼굴 전체에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린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 넸다. [ 해제(解制) ] 그리고 나서 란은 허공에 떠올랐던 이공간 연결 주문을 해제 시켰다. 그러자 거울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잠시 거울이 떠올라 있던 자리를 응시하던 란은 곧 책상에 가득 쌓여있는 문 서들로 시선을 돌렸다. 몇 개의 문서들을 읽고 인장을 찍는 절차를 반복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하. 하계의 분화에 관계된 일로 조사를 나갔던 수행원이 돌아왔습니 다." " 들여보내라."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중간 길이의 파오를 걸친 청년이 들어섰다. " 인사 드립니다. 전하." 란은 고개를 숙인 청년을 말없이 응시하며 문서에 올려놓았던 손을 떼었다. 일족의 청년을 대하는 란의 얼굴은 방금전까지 봉황족의 여인에게 보이던 미 소가 담긴 얼굴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홍룡일족의 왕이 가져야 할 위엄이 담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 * * [ 역궁(逆窮) 개문(開門) ] 심해와도 같이 깊은 푸른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 유안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자신이 외친 주문은 공간을 여는 주문으로 아무리 왕 의 피가 흐르는 자신이라지만 성공할 확률이 극히 적은 것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안은 조금이라도 힘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온힘을 다해 주문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 성공이다!" 희미하고 작긴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간이 열릴 때 생기는 일그러짐이었다. 유안은 기쁜 마음에 당장이라도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주문은 아 직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기에는 아 직 많이 모자랐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완벽히 공간을 열기 위해 소비한 끝에 유안은 겨우 공간을 여는 주문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모 습을 드러낸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을 바라보며 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 었다. " 유안." 막 공간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려던 유안은 갑작스레 들려온 아버지 라이 엔의 음성에 흠칫하고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간신히 공을 들여 연 공간은 금새 닫혀 버리고 말았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유안으로서는 공간을 여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많은 마력을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흑룡왕의 후계자인 유안이라고 해도 채 100살도 넘기지 않은 나이에 공간을 여는 주문을 성공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라이엔은 아들의 능 력에 감탄하면서도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 지금 어디에 가려던 것이냐." 라이엔의 질문에 잠시 우물거리던 유안은 곧 낮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백부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려고 했어요......." " 갑자기 그곳에는 왜...?"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던 유안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이 배 어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안심했다. 라이엔은 무척이나 자상한 아버지 였지 만 화를 내게 되면 누구보다 엄하고 무섭다는 사실을 유안은 잘 알고 있었다. " 백부님이 명계에서 온 자와 싸웠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한 게 많아서 직 접 여쭤보려구요..... 그리고 백부님께 힘을 이끌어 내는 방법도 배우고 싶구 요." 라이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유안의 존재는 훼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지 모른다. 라이엔이 흑 룡왕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훼이가 다시 흑룡궁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고 있었다. 다른이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 되는 훼이인지 몰라도 라이엔에게 있어서 훼 이는 그저 피를 나눈 형일 뿐이었다. 친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간을 공 유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날들이 극히 적다는 사실은 라이엔의 마음 한구석 에 언제나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훼이가 겪어온 지난 세월들이 가볍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 일 뿐이라고 라이엔은 훼이의 앞에서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언제나 그의 바 램으로 남아있긴 했지만. 그리고 요즘의 훼이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유에린이라는 청룡족의 소녀 를 받아들인 것도, 라이엔의 부탁이기는 했지만 천계의 일들을 해결하는데 도 움을 준 것도 그러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흑룡궁으로 돌아오라는 요구만은 받 아들이지 않았지만. " 그래.... 좋다. 가보거라." 라이엔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안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기뻐했다. " 단, 백부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된다." " 네. 아버지." 라이엔은 환한 얼굴로 방을 나서는 유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떠 올렸다. * * * *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일까. 훼이는 수십번의 계절이 교차하는 동안 계속 하계에 머물러 있었다. 시간의 경과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것들만을 마음에 담으며 그 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훼이는 주로 하계에 있는 산들을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한 계절동안을 머물렀 다. 벌써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산들을 돌아다녔지만 하계에는 아직도 많은 산들이 남아 있었다. 눈(雪)..... 주위를 가득 채운 것은 눈부실 정도로 깨끗한 빛을 간직한 눈이었다. 겨울을 다스리는 흑룡족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의 색을 덮어버리며 쌓인 눈때문인지 모르지만 겨울은 보통때보다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계절이다. 훼이는 굵은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는 어느 이름모를 산 정상에 선 채로 세상 의 모든 것들이 새하얀 눈으로 감싸여 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자유인가..... 훼이는 시야를 가득 채운 순백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모든 것이 떠나고 홀로 남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과연 자유인가. 아니 면 지나간 시간들을 되새김질 해야하는 기억의 잔재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 뿐인가. 이제는 어렴풋이 희미한 윤곽만이 떠오르는 화연과 비영. 그리고 성휘. 그리고 애닯프게 남아있는 비의 모습도. 자신의 생명력을 넘겨주고 떠난 아버 지의 모습도 그저 기억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굳어진 조각상이라도 된 것처럼 훼이는 몇시진 동안 눈을 맞으며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던 훼이의 눈에 붉은 빛깔 하나가 들어왔다. 모든 것이 흰색의 눈으로 뒤덮여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선명한 붉은 빛을 발 하는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이 훼이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훼이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이 그 붉은 빛을 향해 다가갔다. 동백인가...... 그것은 눈을 맞으며 피어오르는 겨울의 상징인 붉은 동백꽃이었다. 조금전까 지만해도 눈에 띄지 않던 그것이 어째서 선명한 빛을 발하며 훼이의 시야를 가득 채웠는지는 모르지만 훼이는 선연한 피빛과도 같은 꽃잎에 손을 가져갔 다. 그 순백의 설원에 피어난 붉은 동백의 꽃잎을 보고 한 여인의 모습을 떠올린 것은 훼이 자신조차 짐작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도 벌써 수백년이 흘렀다. 언제나 불쑥하고 얼굴을 내밀던 그녀는 어느순간 부터인가 훼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의 모습이 이런 먼 곳에서, 수백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떠 오른 것일까. 훼이는 조용히 시선을 옮겨 동백나무 가지에 매달린 봉오리 중에서 홀로 꽃 을 피운 붉은빛의 꽃을 매만졌다. 그리고 그럴리는 없었지만 그 꽃에서는 희 미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 또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10장 입니다...아...어느덧 10장이... 음..여전히 제 소설의 시간관념은 이상한 모양입니다. 이번 10장 부터는 좀 제 대로 깔끔하게 전개를 해 볼까요...^^ (그치만 지금까지 그래왔는데...에이 멀 라) 으음...여하튼 좀 정돈된 느낌의 전개를 해야겠습니다. 8장까지에서 제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감정의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끝났거든요. 이제 부터는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위주로 전개를 하겠습니다. 저도 이젠 시간 섞이 는 거 너무 싫어요. ^^ (저도 머리 아팠는데 읽는 분들은 얼마나 머리 아프셨 을까요... 죄송합니다.) 이번 10장의 一편은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기 위한 서막 정도로 봐주세요. 별다른 이야기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암튼 10장부터는 뭔가 정돈된 느낌으로 써보겠습니다. (우...머리 아퍼....--) 감사해용....^-^ 즐거운 하루 되세용. 번 호 : 1296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02일 00:0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6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0장 二. 흑룡의 숲 제 10장 범람(氾濫) 二. " 천제(天帝)의 사자(使者)......?" 라이엔은 보좌관이 전한 말을 듣고 의문을 떠올렸다. 훼이의 친우였던 성휘의 죽음에 얽힌 소란 이후로 천계와 천상계의 관계는 서먹서먹해져 있었다. 그리 고 그때 이후로 용왕들은 그런 훼이의 행동에 동조를 한 것인지, 후계자들을 천제에게 보내 인사를 시키는 일은 없어졌다. 아무리 천제가 모든 계(界)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자리에 있 다고는 해도 세상을 구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5대원소의 힘을 가진 용족들 에게 있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과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바라고 있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라이엔에게 더 큰 의문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금까지의 천제들은 다른 곳으로 사자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때문인지 모르지만 라 이엔은 자꾸만 피어오르는 의문들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 사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 가장 가까운 사실(私室)로 모셨습니다." 라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좌관의 뒤를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라이엔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 다. " 사자가 무엇 때문에 왔다고 하던가?" " 저...그것이 천제로부터의 서신을 가져왔다고 하옵니다." 서신...서신이라.... 그렇다면 개인적인 일인가.... 라이엔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천제는 왜 하필이면 흑룡왕인 자신에게 사자를 보냈을까. 훼이를 형으로 가진 라이엔으로서는 마음속으로부터 걱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비록 지금의 천제가 그 일이 일어났던 당시에 황태자였던 오현의 아들이긴 했지만 라이엔은 혹시라도 훼이가 문제에 얽혀 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본궁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실은 궁안에 있는 여러개의 사 실중 하나였지만 다른 곳에 비해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훨씬 화려하고 넓은 곳이었다. 라이엔은 문을 열고 한쪽으로 비켜선 보좌관을 스쳐지나 사실 안으로 들어섰 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정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숙 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인사드립니다. 흑룡왕 전하." 무척이나 예의바른 태도를 갖춘 남자의 인사에 라이엔은 가벼운 목례로 답하 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예상과는 달리 사신은 흰색의 간소한 무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복장을 보아 하니 그는 상천궁 소속의 천군(天軍)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천제의 사자로 올 정도라면 보통의 천군이 아닌 대장 정도의 지위를 가진 자일 것이었다. 천제의 사자는 청년이라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그렇다고 중년이라기엔 젊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용족을 비롯한 영수족과 천상인과는 수명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 그나저나 이곳엔 무슨일로....." 라이엔은 사자가 온 목적을 알고 있었지만 사자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마 치 모르는 것 처럼 넌지시 물었다. " 천제께서 흑룡왕님께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자는 품안에서 붉은 비단에 감싸인 두루마기를 꺼냈다. 라이 엔은 아무말 없이 사자가 내민 두루마기를 건네 받았다. " 서신을 읽어보시고 확답을 해주시길 바라신다고 천제께서 말씀하셨습니 다." 대체 이 서신안에 무슨 말이 담겨 있을지 생각을 해 보며 라이엔은 천천히 두루마기를 펼쳐 들었다. * * * 훼이는 유에린에게 설명을 하다말고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훼이의 시선이 향 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기 때문에 유에린은 잠시 의아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공간의 일그러짐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또다시 훼 이의 능력에 감탄했다. 훼이도 유에린도 어느 순간 부터인가 동작을 멈추고 공간을 열고 나타날 자 를 기다렸다. 대개 숲에 누군가가 들어서면 훼이가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거 의 대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유에린은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이 숲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생 각해 보아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공간을 열고 가쁜 숨을 내쉬며 나타난 것은 유에린으로서는 처음 대하는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이었다. " 백부님!" 소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훼이를 보자마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떠 올리며 곁으로 달려갔다. 그 소년을 보자마자 훼이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머 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에린은 그들의 몸에 같은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재 차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년의 입에서 백부라는 말이 나온 것을 듣고 조금은 어색하다고 느꼈던 유에린도 그 놀랍도록 닮아있는 둘의 미소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훼이에게 인사를 하고 몇마디를 건넨 후 소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에린에 게로 옮겨졌다. " 안녕하세요. 유에린 맞죠?" 소년은 붙임성 있는 태도로 유에린에게 인사했다. " 전 유안이라고 해요." 맑고 투명하게 느껴지는 유안의 푸른 눈을 직접 마주대하고 나서야 유에린은 겨우 유안이 누구였는지 떠올렸다. 기린족의 황녀를 비로 맞이한 흑룡왕과 그 두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푸른 눈을 가진 후계자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어린 소년은 용족들에게 있어서는 경외의 대상이 되어 온 훼이의 혈연이기도 했다. " 안녕. 만나서 반갑구나."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상대와 대화를 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 에 유에린에게는 인사를 건네는 자신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어색하게 들려왔 다.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유안을 향해 어떤 말을 해야할지 난감해 하고 있던 유에린에게는 막 울려퍼진 훼이의 목소리가 구원 처럼 느껴졌다. " 유안. 갑자기 혼자 찾아올 생각을 다 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느냐?" 훼이의 물음에 유안은 생글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 소년의 그것이었기에 무척이나 천진하게 느껴졌다. " 백부님께서는 저와의 약속은 잊으신 건가요? 분명 제게 힘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 그것 때문에 홀로 이곳까지 왔다는 건 아니겠지?" " 걱정마세요. 아버지 허락은 얻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유안의 표정에는 허락을 얻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 다는 의지가 배어 있었다. 유에린이 그런 표정을 읽었다는 것은 훼이 역시 그 렇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훼이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진 유에린이 고개를 돌렸을 때 훼이의 얼굴에서는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숙연한 기색이 막 사라진 후였다. 훼이는 잠시 유안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 그래. 배운다는 의지는 좋지만 넌 지금도 충분히 강한 힘을 사용하고 있 다. 아무리 왕족이라지만 성년식도 치르기 전에 공간을 여는 주문을 사용하다 니 솔직히 감탄스럽구나." 훼이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유안은 얼굴에 떠올렸던 환한 표 정을 지웠다. " 하지만 백부님은 훨씬 강하잖아요. 어떤 주문 없이도 힘을 쓸 수 있는건 백부님 뿐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 유안...." 훼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지만 유안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 왜 유에린에게는 힘의 운용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제 부탁은 거절하려 고 하세요?" 훼이는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에린은 난감한 표정의 훼이를 보며 훼이도 그런 표정을 지을때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왠지 요즘의 훼이는 말로만 전해듣던 저 높은 곳의 존 재가 아닌 언제나 곁에서 유에린을 돌보아 주었던 오라버니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훼이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훼이를 유안은 푸른 눈동자로 가만히 응시했다. " .......좋다." 조금은 무거운 어조로 말을 내뱉은 훼이를 보면서도 유안은 그 대답이 나온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어떨때는 나이 또래의 어린 치기를 드러내면서도 또 어떤때는 심해와도 같은 푸른 눈동자에 깊이 있는 표정을 떠올리는 것이 바로 다음 흑룡왕의 위(位)를 이을 유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었다. =========================================================================== 우흑.....피곤하고 괴로워라... 어제 소설파일을 날려먹은 데다가 이틀 내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르바이트 를 했더니만 지금은 마구마구 눈이 감깁니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도 모르겠어 요. 우흑...그래도 어제 파일 날려먹기 전에 썼을때는 괜찮은 내용이었던 것 같 았는데.....흑.... 괴로워.. 그런데.... 읽어주시는 여러분... 알고 계세요? 이번 편이 49회라는 것을요. ^^ 으음.....아직 쓰진 않았지만 쓴다면 내일 올릴 것이 50편이 되는 겁니다.. 감회가 새롭군요.(아,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아야지....) 그럼, 폭우에 쓸려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번 호 : 1317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03일 00:3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0장 三. 흑룡의 숲 제 10장 범람(氾濫) 三. ........꿈? 유안과 함께했던 소란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나서 언제나 처럼 조용한 휴식을 맞이한 훼이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영상을 떠올리며 속으로 되뇌었다. 아직 자신에게 다가올 시간의 강에 휘둘리기 이전. 아니, 그 속에 던져졌음에도 깨 닫지 못했던 그 시절에 항상 자신의 곁에 머물던 그녀. 이미 오래전에 삶을 마감한 그녀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떠올라 훼이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에 게는 단 한번도 변변히 감사의 인사를 한 적이 없었기에. 하지만 그동안 기억의 깊은 곳에 잠겨있던 그녀의 모습이 왜 갑자기 떠올랐 을까. 그것도 꿈이라는 형태로.....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희미한 어둠이 깔린 숲은 여느때와는 다르게 무척 이나 적막했다. 한낮에는 푸르게 잠겨있던 숲의 나무들도 새벽이 되자 회색의 그림자가 되어 주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 분명 그녀는........" 훼이는 낮게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서 떠나야 하나......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훼이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이 숲에서 지낸지도 벌써 300여년. 반생을 지내온 북별궁에서의 시간들이 슬픈 추억으로 점철되었다면 이 숲에서의 시간은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자신의 삶을 마감할 곳이라 고 훼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지만 아직도 세상은 알 기 힘든 곳이니까. 벌써 몇 달째 함께 지내온 유에린 조차도 넓은 숲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다 알지 못했다. 아마도 완벽하게 숲을 꿰뚫고 있는 것은 훼이 뿐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훼이가 밤에 머무는 곳은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과거를 되새기는 일도 잦았지만 훼이는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것은 300여년을 홀로 지내왔기에 굳어진 습관 인지도 몰랐지만 하루중의 반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동안 아무 생각없이 옅은 어둠에 잠긴 숲을 응시하고 있던 훼이는 자리 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을 붙인 것은 두시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몸은 더 이상의 잠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훼이는 이제는 눈을 감고서도 익숙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숲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얇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 을 통해 전해져 오는 땅의 감촉은 놀랄만큼 포근했다. 물론 실제로 손을 대어 본다해도 온기가 느껴질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느낌은 그랬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훼이는 유에린과 유안이 머물고 있는 방 다섯 개 의 작은 모옥(茅屋) 앞에 도착해 있었다. 모옥이라고는 하지만 보잘 것 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천계에서 나는 나무를 비롯한 재료들로 지 었기에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모옥은 지어진 지 아직 10년 도 채 되지 않은 곳이었다. 모옥의 구조는 천계의 건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계의 집들과 비슷했다. 넓게 이어진 정원을 통과하고 나서도 커다란 문과 길게 이 어진 복도를 지나쳐야 하는 천계의 궁과 같은 구조가 아니라 오래전 화연이 머물고 있었던 집과 비슷했다. 어쩌면 집을 지으면서 훼이는 무심결에 그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을 숲에서 보내온 훼이였지만 특별히 몸을 눕힐 공간을 마련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옥 역시 가끔가다 숲을 찾아오는 라이엔을 위해 지은 것이었다. 모옥 앞에 멈춰선 훼이는 그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을 라이엔을 빼어 박은 유안과 별달리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유에린을 떠올렸다. 짧은 시간동안 이토 록 자신의 삶에 깊이 파고들어온 이는 숲에서 살아온 시간들동안 단 한명도 없었기에 지금 자신의 공간에서 함께 머물고 있는 둘의 존재는 무척이나 생 경하긴했지만 거북하지는 않았다. 스륵. 그때 나무와 나무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더니 문을 열고 유안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 피곤할텐데 왜 벌써 일어났지?" " 어...... 백부님이세요....?" 아직 잠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닌 듯 유안의 목소리에는 몽롱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았으니 좀더 자두거라." 몇차례 눈을 비비더니 유안은 문을 활짝 열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 아니에요. 이제 잠도 다 달아났으니 백부님과 이야기를 나눌래요." 안면을 익힌지 얼마 되지도 않은 유안은 마치 오랜 시간동안 훼이를 알아온 것처럼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그런 유안의 어딘가에서 오래전에 안식의 땅으 로 떠난 비의 모습이 연상되었기에 훼이 역시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 다. " 그래.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 어떤 것이라도 좋아요. 백부님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훼이는 모옥의 앞에 울타리처럼 둥글게 둘러져 있는 돌 위에 유안과 나란히 않으며 말을 꺼냈다. * * * 언제나 처럼 많은 문서들이 눈 앞에 놓여있었지만 라이엔은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하셨습니다. 흑룡왕 전하." " 음....미안하네. 방금 뭐라고 했지?" 자신에게 막 한 장의 문서를 내밀며 말을 건넨 보좌관이 방금 무엇이라고 했 는지 놓쳐버린 라이엔은 자신을 질책하며 되물었다. " 점심을 함께 하시고 싶다며 백룡왕 전하께서 찾아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곧 시간이니 일어 서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아..... 그랬나...." 분명 어제 전해들은 사실이건만 보좌관의 입을 통해 나오는 그 말은 무척이 나 생소했다. 라이엔은 가볍게 고개를 털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 그러면 오늘은 이만 하는 게 좋겠군. 뒷정리를 부탁하네." " 네. 전하." 아직까지 조금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라이엔은 집무실의 문 에 손을 가져갔다. " 오랜만에 뵙는군요. 미하님." 간단한 치파오 차림을 한 챠렌은 밝은 얼굴로 미하에게 인사를 건넸다. " 네. 오랜만이군요..." " 미하님에게서는 언제봐도 기품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파이론 역시 목례로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넸다. " 별말씀을...." 미하는 언제나 처럼 온몸을 덮는 연한 복숭아 색의 궁장을 걸치고 있었다. 피 부가 하얗기로 소문난 흑룡족 만큼이나 새하얀 피부와 서늘한 푸른눈을 가진 미하는 이지적이면서도 가냘프게 느껴졌다. 당당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가진 챠렌과는 무척 대조적이었기에 파이론은 더욱 세심하게 미하를 바라보았다. " 아니, 벌써 오셨습니까?" 미하와 백룡왕 부부가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엔이 들어섰다. 집무실을 나서자 마자 급하게 달려온 시비 한명이 백룡왕 내외가 도착해서 사실에 있다는 것을 알렸기에 라이엔 역시 빠른 걸음으로 온 것이었다. " 오랜만에 주위 풍경 감상도 할겸 천천히 걸어서 왔는데 예상보다 빨리 도 착했습니다." " 그러셨군요." 라이엔은 백룡왕비 챠렌에게 인사를 건넨 후 미하의 옆에 앉았다. " 그런데 어린 후계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군요." " 유안은 지금 형님께 가 있습니다. 힘을 쓰는 법을 배운다며 이틀전에 숲 으로 갔지요." 라이엔의 말을 들은 파이론과 챠렌의 얼굴에는 잠시 놀랍다는 표정이 떠올랐 다. " 훼이님이 직접..... 말입니까?" " 네.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 그러셨군요." 파이론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이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시비들이 음식을 날라오기 시작하자 대화는 잠시 끊겼다. 그리고 수 십가지는 되어보이는 음식을 먹으며 그들은 가벼운 화제의 이야기를 나누었 다. 식사가 끝난후 천계의 용족들이 즐겨마시는 천화주를 따라 나누어 마시고 있을 때 라이엔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틀간 깊이 생각을 해 보았지만 혼자서는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혹시 천제가 보낸 사자가 오지 않았습니까?" " 천제의 사자.... 말입니까?" 되묻는 것을 보니 예상대로 천제가 사사를 보낸 것은 자신 뿐인 듯 해서 라 이엔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가라앉은 미하의 시선을 받으며 챠렌이 물었다. 천제에게서 온 서신을 미하도 읽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그건 무리한 요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언제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미하로서는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깊이 생각한 뒤가 아니면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라 이엔 이었기에 그는 다음에 이어질 미하의 말을 기다렸다. " 지금의 천제는 자신이 6계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수백년 만에 서신을 보내와서는 한다는 말이..... 수명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는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파이론과 챠렌의 얼굴에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 용족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겠지요. 그것도 무척이나 돌려서." 신중하기로 소문난 미하로서는 드물게도 감정이 담긴 어조였다. " 천제 답다고 말해야 할까요...." 챠렌의 입가에는 어느새 조소가 떠올라 있었다. " 이건.... 명백한 도전이군요."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리는 챠렌이었다. ===================================================================== ☆ T.T 눈물의 50회입니다.☆ 신이시여!!! 제가 50편을 썼단 말입니까? 음...10장 부터의 전개는 지금까지 계속 되어온 과거 회상 위주의 전개에서 벗 어나고자 사건과 현실 위주의 전개로 쓰려 하고 있습니다. 음..갑자기 바꾸려 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용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제가 너무나 어설프기 때문이겠지요...^^ (저도 인정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꾸준하고 성실하게 글을 쓴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음...동아리 행사가 끝나고 나서 흑룡의 숲 모음집을 올릴 생각입니다. 이제 전 체 용량이 300kbyte 넘었거든요. 잡담빼면 좀 줄겠지만요...^^ 모음집에서는 문 장과 구성을 조금 고쳐볼 생각입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 리메이크는 제 성격상 무리구요. 암튼 심혈을 기울여 고쳐봐야죠. 50회가 되기까지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소녀의 절을 받으시옵소서. ^-^ 번 호 : 1343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04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0장 四. 흑룡의 숲 제 10장 범람(氾濫) 四. 홍룡왕의 영지에서도 몇마리 밖에 보이지 않는 불꽃의 새 주작은 무척이나 드물게도 그 모습을 천계 최북단에 위치한 흑룡의 숲에 나타냈다. 살아 움직 이는 불꽃과도 같이 선명한 붉은 깃을 펄럭이며 날개짓하는 그 모습은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저 그 붉은 아름다움에 취한 유에린은 불꽃의 새 주작이 왜 자신과 상극이 되는 성질로 가득찬 흑룡족의 영지내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생각할 여력이 없 었다. " 유에린! 빨리 이리로 와봐요." 하늘이라는 푸른색 천에 붉은 실로 수를 놓듯이 움직이는 다섯 마리나 되는 주작의 움직임에 흠뻑 빠져있던 유에린을 유안의 목소리가 현실로 되돌렸다. 유안의 아버지인 현 흑룡왕 라이엔의 요청으로 흑룡궁으로 잠시 떠나면서 훼 이는 유에린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유안을 돌보아 줄 것을 부탁했다. " 뭔가 발견했나요. 유안?" 유에린은 빠른 걸음으로 수풀을 헤치고 유안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유안 은 소년다운 호기심이 가득 배인 얼굴로 덤불숲에 가리워진 무언가를 뚫어지 게 응시하고 있었다. " 쉿! 큰 소리를 내면 안돼요." 그렇게 말하며 유안은 가볍게 손짓했다. 그리고 유에린이 가까이 다가오자 손 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 새끼 새에요. 유에린." 유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부모 새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붉은 깃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손바닥 만한 작은 새였다. 온몸에 덮여있는 것은 아직 솜털에 불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 아타오르는 불꽃의 빛깔을 내뿜는 깃털로 변화할 것이었다. 조금전까지만 해 도 유에린의 시선을 빼앗고 있던 커다란 주작과 마찬가지로. " 무슨 새인지 알고 있나요. 유안?" 유안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직 눈도 뜨지 못한채 작은 움직임으로 보이고 있는 새끼새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붉은 깃을 가진걸 보니 주작인 것 같은데요?" " 맞아요. 주작이에요. 잘알고 있네요." " 정말 이 새가 주작이에요? 본건 처음인데....." 유에린은 순수한 유안의 행동을 보며 이 나이어린 흑룡족의 왕자님은 무척이 나 대하기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까이에서 왕족들을 접해볼 기회를 가진 것은 훼이 밑에서 힘의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였기 때문에 그녀가 가 까이에서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왕족이라고는 훼이를 제외하고 챠렌이라 는 백룡왕비와 유안의 아버지인 흑룡왕 라이엔 뿐이었다. 왕족들은 자신과는 무척이나 다를 것이라고 은연중에 여겨왔던 유에린은 요즘들어 그 생각이 틀 렸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왕족이지만 숲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훼이와 평민 인 자신에게도 경어를 사용하며 스스럼없이 대해준 백룡왕비 챠렌. 그리고 지 금 이 소년 유안. 다음 세대의 흑룡족을 이끌어 갈 흑룡왕 후계자라는 어마어 마한 신분을 가진 이 소년도 지금은 그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새와 같이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 주작은 어미새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몸을 가지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리고 그 2년이 지나면 지금 하늘에 떠있는 저 주작들과 마찬가지 로 불꽃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요." " 와. 많이 알고 있네요." 커다란 목소리로 감탄성을 내뱉는 유안을 보며 유에린은 엷게 미소지었다. 어린시절의 날 보며 오라버니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밝게 웃는 유안을 보며 유에린은 문득 오라버니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떠 올렸다. 자신은 언제나 묻고 오라버니는 언제나 웃으며 답을 해 주곤 했던 그 때를. " 저도 제 오라버니에게 어린시절에 들었던 말이에요." 유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 그런데 유에린. 새끼 주작을 한 마리만 데려다 기르면 안될까요?" 갑작스런 유안의 말에 유에린은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숲속에 있 는 무언가를 가져오는 것은 유안의 자유이지만 과연 훼이가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할런지는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유에린은 유안 에게 말을 건넸다. " 그건 백부님께 여쭤보고 결정하도록 하세요. 이곳은 그분의 땅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도 유안은 작은 주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느낌을 전해주는 뾰족한 턱을 가진 남자는 책상위에 펼 쳐져 있던 길다란 두루마리를 접으며 입가에 보일 듯 말듯한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 그래. 흑룡왕의 반응은 어떻던가...." 남자의 눈에는 흥미롭다는 감정이 여실히 떠올라 있었지만 그것을 얼굴 전체 에 나타내지 않는 신중함도 가지고 있었다. 남자의 앞에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것은 얼마전 천제의 사자 로 흑룡궁에 서신을 가져갔던 천군 소속의 궁내 부대장이라는 지위를 가진 자였다. " 별다른 동요는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곤란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 과연.....그랬겠지......."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완전히 다 말린 두루마리의 겉은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도록 특수한 유 약을 칠해놓은 상태였기에 반들거리며 윤이났다. 그리고 그 겉에는 수명부라 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 성질급한 누군가라면 당장에 천상계를 공격했을지도 모르지만 흑룡왕이 라면 지금쯤 내가 그 서신을 보낸 의도를 생각하느라 골머리를 썩히고 있겠 지." 지금의 그 말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부대장을 향해 한 말은 아니었다. 누군 가를 향해 말했다기 보다 자신에게 들려준다고 하는 편이 더 옳았다. " 혹시라도 용족들이 과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까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있던 부대장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용족들이 가진 힘은 전혀 만만히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천제는 얼굴에 싸늘해 보이는 미소를 떠올렸다. "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던간에 내가 보낸 서신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 에는 변함이 없지. 안그런가? 분명 훼이라는 흑룡족은 여기 있는 수명부에도 기록되지 않은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난 천제는 책상위에 놓여있던 빈 종이 하나를 펼쳐놓고 붓 을 들어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써 내려가던 천제는 붓을 내려놓고는 마지막으로 천제를 상징하는 인장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아 직 채 마르지도 않은 서신을 부대장에게 내밀었다. " 이 서신을 명계로 보내주겠나?"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부대장으로서도 이번만큼은 놀람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 .........명계에 말입니까.....?" 천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출발하도록 하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천제는 고개를 들어 부대장을 직시했다. " 그럼 이만 나가보게. 아, 그리고 명계가 다른 곳에 비해 불가침의 영역으 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천제인 나를 거스를 행동을 하지는 않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하게." " 네. 상제 폐하...." 부대장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부대장이 방에서 빠져나가고 나서 천제는 얼굴에 비웃음을 떠올렸다. " 천상계도 썩었군. 명색이 천군의 부대장이라는 자가 명계에 가는 것을 두 려워 하다니. 차라리 검선 중에서 하나를 뽑아서 보낼 걸 그랬나." 적어도 천상계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검선들은 소수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신변에 닥칠 위험 따위는 우습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에게 패배라 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제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머리속에서 흘러넘치는 생각을 정리했다. " 이번일을 성공시키고 나면 아무도 천상계를 우습게 보지는 못하겠지......" 어느 누구도 들어줄 리 없는 말을 천제는 계속해서 내뱉고 있었다. ====================================================================== 50회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천상계의 천제 > 오늘 잠깐 언급하고 넘어갈 것은 천상계를 다스리는 천제. 즉, 옥황상제입니 다. 보통 천제(天帝), 혹은 상제(上帝)라고도 불리는 천상계의 최고 지위를 가 진 그는 6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수명에 관계된 책임을 가지고 있는 만 큼 천제의 지위는 높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상제가 가진 지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높게 여겨지는 지위이지 실 제로는 6계의 어느 누구도 서열을 매기기가 힘들지요. 천제의 역할은 단지 수명의 관리자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해용.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번 호 : 1391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05일 23:5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0장 五. 흑룡의 숲 제 10장 범람(氾濫) 五. 자신의 일이 화제로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훼이는 마치 다른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담담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의연함에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라이엔 쪽이었다. " 형님....." 훼이는 조용히 시선만을 돌렸을 뿐 별다른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 천제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라이엔과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움이 배어있는 어조로 미하는 조심스럽게 물었 다. 조금전에 돌아간 백룡왕부부 앞에서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훼이는 그 화제의 당사자였다. 게다 가 너무나도 조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훼이를 보며 미하는 뜻모를 불안 감을 느끼고 있었다. " 형님.... 이건 천제의 명백한 도발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묻어두었던 화제 를 이제와서 꺼낸데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으니까 말 입니다." "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을 거다." 라이엔은 잠시 훼이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멍한 표정을 떠올 렸다. " 그게 무슨......" " 말 그대로지." 훼이의 차분한 얼굴에 떠오른 작은 감정의 조각이라도 찾기 위해 애쓰던 미 하는 여전히 아무것도 읽을 수 없음을 알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것은 천제에게 그럴 힘이 없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그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일부러 그것을 끄집어 냈다는 것인가요..." " 천제가 내게 악감정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훼이는 탁자 위에 내려 놓았던 천제의 서신을 다시 한번 펼쳐 들었다. 내용은 여전히 액면 그대로 훼이의 존재의 부당성을 알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현 천제는 분명 오현의 피를 이어받은 자. 그렇게 간단한 생각으로 라이엔에 게 이런 내용의 서신을 보냈을 리는 없었다. 훼이는 더 이상의 말을 꺼내 동생 라이엔과 미하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싶지 는 않았다. 만약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더욱 그러했다. 자신의 친 동생의 목숨까지 가차없이 빼앗은 남자의 아들인데 그가 아무생각 없는 행동을 할 리는 없었다. 수백년이나 지난 지금 자신의 문제를 들먹인다 는 것은 그의 마음 속에 어떤 저의가 담겨있다고 보는 것이 지당한 일이었다. " 이 일에대해 말한 것은 백룡왕부부 뿐이겠지?" " 네. 형님." 훼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루마리를 말아올렸다. " 아직 천제의 의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5대 용왕의 회합을 열거나 하지는 말아라.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천제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 르니까." " 그렇게 하지요." 여전히 무거운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라이엔은 어느정도 납득한 듯 했다. " 그렇다면 형님께서는....." " 이 문제에 얽힌 것은 나 혼자니까 내게 맡겨라." 지금까지 언제나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는 훼이를 봐온 라이엔이었기에 이번만은 자신도 어떤 도움이 되길 바랬었다. 하지만 훼이는 여전히 자신이 끼어들 틈을 남기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했던 훼이의 모습은 여전히 한단계의 거리를 유지하고 이었다. 자신의 아들 유안을 받아들임으로서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고 생각 했지만 훼이는 여전히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라이엔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형님은 언제쯤이나 되어야 흑룡궁으로 돌아와주실 겁니까.... 아무리 홀로 지내시는 것이 편하다고 해도 결국 형님은 흑룡족입니다. 훼이에게 직접 말을 건넬 수는 없었기에 라이엔은 마음속으로 그 말을 내뱉 을 수밖에 없었다. " 이제 숲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아직 자리에서 일어서지는 않았지만 훼이의 얼굴에서 곧 떠나려 한다는 기색 을 읽고 라이엔은 그렇게 물었다. " 다음에 다시 오마." 그 말 한마디를 건네고 훼이는 몸을 일으켰다. " 다음에 한번 숲으로 찾아가겠습니다." 훼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비들이 훼이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잠깐 보이더니 곧 문이 닫혔다. 언제나 처럼 훼이는 궁에서 한시진 정도를 머물렀을 뿐이었다. 라이엔은 훼이 가 궁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를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긴 했지만 납득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라이엔의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읽었는지 미하역시 작은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 언제쯤이 되어야 훼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까 요..." " 언젠가는......" 한번 고개를 내저은 후 라이엔은 짧게 덧붙였다. " 우리 유안이 그것을 돕는다면 좋겠지만....." 하지만 그 말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바램이라는 것은 말을 꺼낸 라이엔 본인 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유안이 숲으로 갈때부터 마음 속으로 품어왔 던 작은 바램일 뿐이라는 것을. * * * 백호족, 기린족, 봉황족, 현무족의 네 영수족이 살아가는 환계는 천계에서 느 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공기를 품은 곳이었다. 용족들이 각각 다섯 방위에 해당되는 곳에 자신들의 터를 잡고 살 듯이 환계 의 영수족들 역시 동서남북 사방(四方)에 각각 일족의 궁을 중심으로 모여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 남쪽의 땅에서 살아가는 봉황족은 일족중의 반수 이상이 여인들로 구성 된 종족으로 대대로 왕이 되는 것 역시 여인인 경우가 많았다. 다른 영수족들 이 피와 계승식을 통해 힘을 전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봉황족 역시 계승식 을 통해 다음 왕이 될 자에게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힘. 즉, 마력을 전승했다. 봉황족을 이끌어온 역대의 왕들 중에서 남자는 단 세명으로 후손중에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봉황족이 사용하는 불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남자 보다는 여자가 월등히 많았고 일족 모두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봉황족은 왕이 된지 10년 정도 된 320세의 여인이 이끌고 있 었다. 홍룡과 마찬가지로 불의 힘을 가진 봉황족들은 여름이 되면 홍룡들의 일을 돕거나 6계 전체에서 불의 기운이 적절하게 흐를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했다. " 전하께서 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없었나?" 하지만 돌아 온 것은 여전히 보지 못했다는 대답 뿐이었다. 붉은색이 도는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르고 있던 여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봉황족의 왕을 곁에서 보필하는 보좌관의 지위를 가진 여인은 궁의 어느곳에 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자신들의 왕을 찾아 본궁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 고 있었다. 벌써 찾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궁안을 둘러보았지만 어느곳에도 봉 황족의 왕 레이샤의 모습은 없었다. 낙담하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보좌관의 모습이 안스러워 보였는지 레이샤의 수발을 드는 시비 하나가 말을 건네왔다. " 혹시 천계에 가신 것은 아닐까요. 홍룡족과 혼인을 하신 시엔님께 가끔 찾아가시곤 하셨잖아요." " 하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나가신 적은 없었지...." 보좌관은 거의 궁에서 떠나지 않던 레이샤가 왜 갑자기 모습을 감췄는지에 대해서 의아해 하고 있었다. 벌써 레이샤의 모습이 사라진지 두시진이 훨씬 지난 후였는데 아직도 자신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기에 의문 과 더불어 조급함도 커져만 갔다. " 급한일이라도 생긴 거라면 다른 시비들을 동원해서 찾아보시는 것이 어떨 까요?" 시비의 제안에 보좌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 괜히 궁을 소란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다. 혹시라도 전하를 봤다는 자가 있으면 내게 전하도록." " 네." 보좌관은 레이샤의 침소가 있는 궁 내부에서 벗어나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살펴볼만한 곳은 다 살펴보았으니 이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레이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보좌관은 끊임없 이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 대체 이건 뭐지......?" 막 집무실의 문을 열자마자 보좌관의 귓가에는 레이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무어라고 묻기도 전에 싸늘한 레이샤의 목소리가 먼저 답을 요 구하고 있었다. " 그게.....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뒤 바로 도착한 것이라..." 레이샤의 목소리가 굳어진 것도 당연했다. 당사자가 아닌 자신 역시 너무나도 갑작스럽다고 여겼기에 두시진 동안이나 궁에서 자리를 비운 레이샤를 찾아다 닌 것이었다. " 당장 서신을 쓸 준비를 하게." 보좌관이 대답을 하고 준비를 하는 동안 레이샤는 홍룡왕의 동생으로부터 온 서신을 차가운 눈으로 훑어내려갔다. ============================================================== 먼저 안내말씀..^^ 잠시 쉬겠습니다. (우..매일 연재 길드인 주제에...--) 다음주에 동아리 행사가 있다보니 아직 준비가 반도 안끝난 관계로 잡일꾼 회장인 저는 죽어라고 일을 해야합니다. 일을 못 끝냈더니 마음이 조급해서 소설도 안써지는군요. 그리고 이번 수해때 피해를 입은 파주사는 동아리 회원 의 집에 자원봉사도 해주러 가야 한답니다. 암튼 그래서 다음주까지 쉬게 될 것 같아요. 이번달 들어 휴식을 두 번이나 하다니....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대충 쓰는 것 보 다는 조금 쉬더라도 그나마 괜찮은 글을 올리는 것이 좋겠지요? 흑룡의 숲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다시 더워졌으니 이제 더위 조심하세요. ^-^ 번 호 : 1686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18일 00:3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4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一. 흑룡의 숲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잊으세요. 저의 바램은 단 하나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그저 스쳐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바람처럼 흘러간 후에는 되돌릴 수 없는 물줄기처럼 시간속에 띄워 보내세요. 망각은 당신이 가진 단 하나의 자유입니다. 一. 꿈꾸듯 평안하게 생전에 간직했던 그 모습 그대로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러한 그녀의 죽음은 세상에 태어난 자라면 누구나 맞이해야 할 당연한 것 이었다. 모든 살아있는 자라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그녀 의 자세 또한 담담했다. 슬픔은 없었다.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그녀의 죽음이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찾아오긴 했지만. 그래서 그가 앞으로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시간들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그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담담함은 결코 그녀를 이해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 * * " 잠시 자리를 피해 주겠나?" 보좌관은 집무실의 안쪽에 느껴지는 희미한 다른 기운을 느끼며 당혹감이 서 린 얼굴로 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자신의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천계에 속한 기운은 아니었기에. 하지만 자신의 기우가 분명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 살짝 고개를 저으며 보좌관은 집무실에서 빠져나갔다. [ 천개(遷開) 경(鏡) ] 보좌관을 비롯해 주위에 다른 일족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을 확 인한 후 란은 주문을 외쳤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은은한 붉은 기운에 감싸인 거울이 허공에 떠오르며 거울 안쪽에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웃 고 있는 요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 홍룡왕. 란. 당신의 말에는 찬성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인사를 생략하고 바로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요희는 무척이나 예의바른 태도 로 란에게 말을 건넸다. 평소에 보여왔던 그녀의 모습을 알고 있는 자라면 누 구나 혀를 내두를 만큼 그녀의 모습은 보통의 여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 다. 하지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간에 요희. 그녀가 명계의 주인이라는 것 에는 변함이 없었다. " 이유라.....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행하는데 꼭 이유가 필요합니까?" 대답대신 란은 피식 웃으며 요희에게 되물었다. - 후훗. 아무리 당신이라도 쉽게 이유를 밝혀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 는 것을 보니 아직 양심은 남아있는 모양이군요. 날카로운 요희의 지적에 란은 속으로 숨을 삼키며 여유로운 미소를 떠올렸다. 요희가 가진 붉은 눈동자에는 다른 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칼날과도 같은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 대할때마다 란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헤아릴 수 없을만큼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고는 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자는 없으 니.....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란은 요희의 눈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을 아무렇지 않 게 넘겨버리려 애썼다. - 당신이 원하는 건 알고 있으니 그대로 해드리죠. 그리고 한가지를 더 전 하고 싶은데....... 요희는 잠시 말을 끊었다. -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천상계의 천제에게서도 서신을 받았지요. 그 것도 당신과 같은 목적으로....... 아니, 조금 다르지만... 란은 얼굴에 떠오른 놀람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천제의 그러한 행동은 예상 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란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우스운 일이군...." 요희는 란의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 * * 확실히 훼이가 보기에도 유에린. 그녀의 힘은 눈에 띄게 자라나 있었다. 아직 성년식을 치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왕족의 강한 피가 흐르는 유안의 공격에 서 저만큼이나 버티고 있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렇다고 그녀의 힘이 현무족을 상대로 배겨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유연한 몸놀림으로 유에린은 유안의 손에 서 뻗어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힘의 덩어리들을 피해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힘을 쏟아부으려 하지 않던 유안도 자신보다 단지 몇살 많을 뿐인 유에린이 계속해서 공격을 피해내자 조금씩이긴 하지만 전력을 기울이려 하 고 있었다. 그 증거로 유안의 손에서 나오는 힘의 덩어리들은 점점 더 짙고 투명한 빛깔 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쫓고 쫓기는 유안과 유에린의 모습은 마치 꽃 주위를 쉴새없이 맴도는 벌과 나비를 보는 듯 했다. 언젠가 그녀는 그런말을 했었지..... 막 용족의 수명에서 벗어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던 그때... 언제나처럼 붉은 꽃잎의 잔영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스치듯이 머리속에 떠올 랐다 사라졌다. 훼이는 고개를 저으며 막 과거의 잔상속으로 떨어지려는 정신을 추스렸다. 요 즘에는 이상하게도 현실을 직시하는 시간 보다는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많았 기에 더 이상은 그렇게 감상적인 자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 ......제가 졌습니다....."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유에린은 동작을 멈췄다. 그러자 유안의 손에 맺혀있던 검은 덩어리들도 마치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안에게서 힘의 기운 이 사라짐과 동시에 유안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진지함도 사자져 버렸다. 그 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아직은 어린 치기어린 미소를 떠올린 흑룡족의 소 년의 모습 이었다. " 힘들죠. 유에린?" " .......네. 역시 대단하시군요. 전 당해내질 못하겠어요...." 그리고 둘은 몇마디의 이야기를 더 나누었지만 훼이는 더 이상 그들의 대화 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유에린은 마치 누이와 같 은 얼굴을 하고 유안과 나란히 개울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채 변해간다. 하늘에 떠오른 구 름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듯이 쉴새없이 물줄기가 강을 향해 흘러가듯이 모든 것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고 또 늙어간다. 예전에는 어린줄로만 알 았던 동생 라이엔 역시 지금은 누구보다 사려깊은 흑룡족의 왕이 되지 않았 던가. 언제나 잊고 있는 일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언제나 정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 뿐이었다. 대체....왜....... 용족의 수명을 벗어난 이후로 언제나 품어왔던 의문. 아버지는 어째서 자신에게 생명력을 넘겨 주었는가. 그것이 아버지 나름대로 의 오랜동안 내버려 두었던 아들에게 전하는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훼이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자신의 문제를 끄집어낸 천제.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과거의 영상들. 자신을 찾아온 청룡족의 소녀 유에린과 그녀를 받아들인 자신. 분명 그것은 혼란이었다. 막혀있던 둑이 터져 한순간에 갇혀있던 물이 넘쳐 흐르는 것처럼 잠들어있던 여러 가지 일들이 한번에 얽히려 하고 있었다. " 왜 피하려고만 하죠? 결국엔 당신의 손으로 풀어가야할 문제잖아요." 분명히 그녀라면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을 왜 고민하냐는 듯이. " 그 숲이 언제까지나 당신의 은신처가 될 수는 없어요." 또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후훗... 제 스타일이 어디 가겠어요. 바꾸려다보니 또 이상해 지네요 ^^ 그냥 쓰던대로 하죠. 뭐... 흑룡의 숲은 제가 처음으로 제대로 시도하는 중편이니까. 습작이 되겠네요 ^^ 글 쓰는건 언제나 습작 이겠지만요. 별 계획도 없이 무대 포로 글을 쓰다보니 원.... 그냥 배째라가 되는군요. 여하튼 완결의 그날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열씨미 쓰겠습니당. ^-^ 그리고 설정 자료집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쓴 걸 찬찬히 읽어보고 있는데요... 과연 이걸 내가 썼단 말인가...-- 왜 이렇게 새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전 바보였어요.. 마지막 잡담.... 오늘은 장장 10시간 동안 컴퓨터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우욱.. 목이 빠져 버릴 것 같아.... (원래 두편 올리려고 했는에 소설 읽다가..헤헷..) 간만에 글을 들고 나왔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 ^-^ 번 호 : 1738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19일 00:0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二. 흑룡의 숲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二. 엷게 피어오른 희미한 안개가 흑룡궁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아니, 흑룡궁 뿐 만이 아니라 흑룡족들이 살아가는 북쪽의 영토 전체가 점점 짙어져 가는 안 개속에 잠겨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가 아닌 그저 희뿌연 안개. 동이 터오면 햇살에 사그러질 안개였지만 안개에 감싸인 숲은 왠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 를 풍기고 있었다. 훼이는 음습한 안개가 차오르기 전부터 깨어나 있었다. 온몸에 피어오르는 이 상한 느낌 때문이기도 했지만 원래 그는 많은 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갈색의 매끌거리는 나무 바닥에 손을 올려 놓은 채 훼이는 희뿌연 새벽과 그 새벽을 감싸안은 안개를 응시했다. 어쩌면...... 언젠가 일어나야만 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묻어 두었는지 모르 지... 훼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유안과 유에린이 잠들어 있는 건물에서 벗어났다. 소로를 따라 항상 유에린에게 힘의 운용을 가르치던 얕은 풀숲까지. 예감.... 그것은 예감이었다.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피부를 파고드는 예감. 풀숲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서 있기를 반시진 정도. 동이 터오기 시작했 다. 붉고 찬란한 기운을 머금은 태양이 사방에 빛을 뿌리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동이 터오는 모습을 바라보던 훼이는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작게 중 얼거렸다. " 시작인가........" * * * " 잘 알고 있겠지만 용족은 강하다. 특히 흑룡족은 더더욱." 특유의 뒤틀린 어조로 말을 꺼내며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얼마 지나 지 않아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감추려 해도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목숨을 잃을 일까지는 없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지. 그들이 어떻게 나올 지 모르니까." " .....정말로 실행하실 생각이십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내긴 했지만 돌아온 눈초리는 예상보다 훨씬 불쾌 한 기운이 짙게 배어있었다. "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야. 언제나 그래왔듯이 자연스러운 일인거지." 선대의 천제를 그대로 빼어 닮은 날카로운 눈꼬리에는 엷은 흥분이 배어 있 었다. " 하지만..... 무모한 일이라 생각지 않으십니까?" 천군 대장인 지인(智寅)은 무슨일이 있어도 명령에 따라야 할 천제에게 반발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인만큼 마음이 불편하기 도 했지만 지금 천제가 행하려고 하는 일은 결코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 " 무모하다라...." 낮게 읊조리던 천제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 이래서 천군들은 안된다니까. 정 내 뜻에 따르지 않겠다면 모든 일은 검 선에게만 맡기도록 하지. 언제나 큰 일을 수행해 온 것은 그녀들이었으니까." " 상제폐하. 제 뜻은 그것이 아니옵고...." " 됐다." 천제는 손을 내저어 지인의 말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했다. " 가화." " 네." 천제는 지인에게서 고개를 돌려 현 검선의 장인 가화를 응시했다. " 그대는 내 뜻에 따르겠지?" " 분부대로..." 얼굴에 별다른 표정을 떠올리지 않은 채 가화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 그의 발을 묶어두는 것은 명계에서 온 자들이 할테니까 너희들은 그가 마력을 사용할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 알겠습니다." 맹목적인 충성. 검선들의 천제에 대한 충성은 그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주인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그림자 인형처럼 그녀들은 천제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들었다. 단 한명. 벌써 수백년전의 인물 이 된 전전대 검선의 장이었던 한명의 여인을 제외하고는. 천상계의 역대의 천제들 중에서도 가장 냉혹한 자로 통하는 전대 천제 오현. 비록 반밖에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친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자. 일 처리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오현의 아버지가 여 성 편력이 심한 자였듯이 오현 또한 냉혹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천 상계의 황족들은 대대로 한가지씩의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지도 몰랐다. 지금의 천제가 뒤틀린 성품을 가졌듯이. " 천군들은 이 일에서 손을 떼도록." 천제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다. 지인은 대답 을 하려 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고 고개를 숙였다. 천제는 한번 꺼낸 말은 번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 었기 때문에. 그의 그런 태도는 바로 절대자가 가지는 여유였다. " 알겠습니다. 상제 폐하." 지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천제의 집무실에서 나섰다. 분 명 자신이 나선 후에도 상제는 가화에게 이번일의 진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건넬 것이 분명했다. 오래된 자. 숙명에서 벗어난 자의 말살이라..... 과연 천제라고 해서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단지 수명의 관조자일 뿐인 천상인들의 왕인 그가. " 하지만 그렇다고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말이 되어 나왔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저 지인. 자신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천상계에 속한 모든 천군들을 지 휘하며 천상계의 방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지인은 걸음을 옮기며 피식 하고 웃었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흩날리는 짙은 푸른색의 길다란 무복자락은 자신의 지위를 다시 한번 되새겨 주었다. * * * " 직접 가시겠습니까?" 레이샤는 옷차림을 정돈하다 말고 자신에게 말을 건넨 보좌관 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알고 있잖아. 내가 어떤 성격인지." " 하지만 전하." 레이샤는 단호한 목소리로 셴의 말을 끊었다. "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테니까." 셴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정 그렇게 하신다고 해도 호위병 정도는 데려가십시오. 자신의 몸을 소중 히 하는 것은 왕으로서 가져야할 당연한 마음가짐입니다." " 알았어."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긴 했지만 레이샤는 셴의 말에 따랐다. 이번일은 어쩐지 그냥 끝날일은 아닐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친 언니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발을 내딛 는 것이기에. 하지만 이대로 농락 당할 수는 없다. 그자는 믿을 수 없어. 봉황족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 지금 당장 호위들을 집합시켜. 난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질색이니까." " 알겠습니다. 전하." 셴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방을 나섰다. ============================================================== 요새는 맨날 남의 소설 읽느라고 제 소설엔 손도 안대고 있군요...-- 오늘은 창연란에서 찾아낸 보석같은 소설들을 읽었습니자. ^-^ 창연란 담당자 이면서 맨날 감시(?)만 하다니....그래서 요즘엔 15편 이상 되는 것 중에 골라서 읽고 있답니다. 요즘들어 흑룡의 분위기가 맘에 안들어서 계속 피튀기는 이야기가 쓰고 싶습 니다. 하지만 동시 다작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에만 매달 릴래요. 자...완결까지 스파트닷!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오늘 추천 해주신 dae012님 감사드려요 ^-^* 맘에 안드는 게 뭔지는 저도 대충 짐작이 갑니다. ^^; 번 호 : 1781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0일 00: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三. 흑룡의 숲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三. 왠지 온몸이 축 늘어진 듯이 무거운 느낌에 유안은 짜증이 피어올랐다. 훼이 와 함께 숲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언제나 상쾌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해 왔었기 때문에 오늘의 기분은 무척이나 기분나쁜 것이었다. 마치 끈적거리며 감겨드는 늪에 빠진 것처럼 피부에 느껴지는 끈끈한 감촉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 착각이 아닌가....? 계속해서 피부에 파고드는 느낌이 강해지자 유안은 잠이 확하고 달아나 버렸 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아직은 막연한 예감에 불과했지만 문을 여는 순간 그것은 어떻게든 유안의 눈앞에 진실을 드러낼 것이었다. 유안은 마치 실제로 누군가와 대결을 할 때처럼 온몸을 긴장감으로 가득 채 운 채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 백부님!!" 그리고 유안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유안의 외침 소리를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훼이는 흔들림 없는 당당한 자 세로 검은 안개속으로 사라져갔다. 훼이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파오자락은 마치 그 안개속에 동화된 듯이 금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대체....무슨일이..." 유안은 작게 중얼거리며 작은 모옥 전체를 둘러싼 강한 기운을 느꼈다. 훼이 의 힘일 것이 분명한 최상급 방어주문의 여파. 유안은 가만히 손을 들어 희미 하게 둘러쳐진 막에 손을 가져갔다. 부드러운 물의 감촉. 단지 그것 뿐이었지만 모옥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막은 결코 유안의 손을 통 과시키려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기에 유안은 무척이나 불안했다. 훼이와 직접 마주대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훼이가 다른 이들을 위해 직접 방어주 문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맞닥드린 일은 없었다고 알고 있었 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이었다. 주문의 해제를 할 수 있는 것은 주문의 시전자 뿐. 백부님....... 온몸을 엄습하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유안은 훼이가 사라져간 저편의 검 은 안개를 응시했다. " 괜찮을 거에요. 유안." 언제 곁으로 다가왔는지 유에린이 유안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며 말 을 꺼냈다. " 훼이님은 강하잖아요." " 하지만...." 유안과는 불과 몇살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유에린 이었지만 지금 이순간 만 큼은 어른으로 느껴졌다. 유에린은 유안을 다독여 주려는 듯 엷게 미소지었다. 완전히 안심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유안은 어느정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숨이 막힐 정도의 탁한 공기는 아니었지만 시야를 방해하는 검은 안개는 그 색만으로도 보통의 안개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분나쁜 검은 안개에서 풍겨나오는 느낌은 훼이에게 있어서는 익 숙한 것이었다. 명계로군..... 여전히 끈질겨... 훼이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무엇이 요희라는 여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녀는 훼이의 삶의 반 이상 동안 끈질기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서 이제는 잊혀지지 않는 자리 를 만들었다. 자..... 이제 무얼 바라지? 훼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안개의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 다. 태풍의 눈이 고요하듯이 안개의 중심은 보통때의 숲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 었다.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싼 검은 안개도 없었고, 천계의 것이 아닌 이질감 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고요는 방심을 부르는 법. 그것을 잘 알고있는 훼 이는 온몸의 감각을 집중시켜 앞으로 닥쳐올 무언가에 대비했다. 스르륵. 마치 얇은 천이 바닥에 끌리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퍼지며 검은 안개를 헤치 고 훼이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붉은 눈동자의 여인. 요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그녀의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네명의 호위 역시 소리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가에 맺힌 날카롭게 치켜올라간 미소는 변함이 없었지만 요희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 긴말은 필요 없겠죠? 알고 있을테니..." 그녀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경쾌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 지금까지 날 이렇게 즐겁게 한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 영광이군...." 훼이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 오늘은 힘든 싸움이 될거에요. 기대해도 좋아요." 요희의 웃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즐거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 " 시작하지." 훼이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물러서지도 않았 지만. 이 싸움은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훼이의 곁에서 비가 떠 나간 그날부터. 그리고 훼이의 힘으로 명계의 반 이상을 초토화 시켰던 그날 부터..... 얽힌 인연. 훼이는 처음으로 요희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물러설 필요는 없다. 요희도 그리고 자신도 그것을 바라지 않으니까. 시간이라고 할 수 조차 없는 찰나의 순간에 훼이의 손에는 그가 가진 마력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에는 주문을 외울 시간이 없다. 이 미 훼이에게 주문은 필요치 않았지만 힘을 정제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요희 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훼이는 막 손에서 힘을 내뿜기 전에 아직 젊은 동생 라이엔을 떠올렸다. 분명 숲에서 일어난 소란을 알고 당장에라도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다. 이곳에 는 훼이 자신을 비롯해서 라이엔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아들 유안이 머물 고 있었기에. " 공격해라!" 생각은 짧았다. 요희의 명령을 받자마자 바람처럼 움직인 검은 옷차림을 한 자들이 훼이의 주위를 둘러쌌기 때문에. 훼이는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잡념을 지우고 둥근 구슬처럼 뭉쳐진 순수한 마력의 덩어리를 내던졌다. * * * 가화를 선두로 천계에 내려선 15명의 검선들은 발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몸 을 이동시켰다. 거의 달려가는 듯이 빠른 그녀들의 몸놀림을 말해주는 것은 오직 바람에 펄 럭이는 흰색의 옷자락들 뿐이었다. 마치 한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절제된 동작으로 열다섯명의 천선들은 흑룡 족의 영토를 지나 천계 최북단에 위치한 숲으로 향했다. 자신들의 주군인 천 제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천선들이 막 숲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숲 중앙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검은색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누구의 힘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것은 분명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 서두르자." 가희의 입에서 처음으로 말이 터져나왔다. 빽빽히 들어찬 나무숲 사이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지나쳐 가며 가희는 소매 속에 숨겨진 옥소를 오른손으로 세게 쥐었다. 천선들의 장에게 주어지는 특수한 무기. 가늘고 투명한 검신을 자랑하는 아름 다운 검이 챙하는 맑은 울림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 모두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지만 가화는 긴장을 되살리기 위해 일부러 말을 꺼 냈다. 6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 중에 가장 강한 힘을 가졌을 거라고 여겨지는 자와의 싸움을 눈앞에 둔 지금. 긴장을 하지 않는다면 검끝은 날카로워지지 않을 것이다. 일대 다수의 싸움이었지만 그가 가진 힘은 그렇게라도 상대하지 않으면 배겨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가화는 검을 쥔 오른손에 더욱 세게 힘을 가했다. 강한 자와의 싸움을 앞두고 흥분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무인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오늘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온몸에 달라붙어오는 검은 안개를 지나쳐 숲의 정 중앙으로 들어선 가화의 눈에 흔들림 없는 자세로 힘을 뿜어내고 있는 흑룡족의 오래된 자. 훼이의 모 습이 비쳤다. ============================================================== 흐음... 11장은 여자들의 독무대로군요 ^^ 길게 쓰려고 했는데 왜 자꾸 길이가 짧아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 제 실력 탓이지요. -- 오늘도 컴 앞에서 소설을 읽고 아는 언니네 놀러가서 일본어 원본 만화책을 잔뜩 빌려왔습니다. (아이 조아 밤새워서 읽어야지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 번 호 : 1820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1일 00:0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四. 흑룡의 숲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四. " 알고 있어요. 당신이 날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신은 그런 남자니까요. 뒷말은 이어지지 않고 그녀 혼자만의 마음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알면서도 이렇게 잊지 못하는 저는..... 화란의 입가에는 씀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참을성이 부족했던 것일까?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난 더 기다리지 못했던 것일까. 300여년을 한결같이 기다려 왔었는데.... 왜 단 한순간의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지금 이렇게 괴로워 하고 있지? 난 이렇게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어. 마음속을 휘젓는 기억 때문에 화란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생겨나 있었다. 다른때에는 아무리 깊이 생각에 잠겨도 이런 표정을 떠올리지 않던 그녀였지 만 훼이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때 마다 주름이 지는 것은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 어머니... 무얼 생각하고 계세요..?" 얼굴 가득 걱정스러운 표정을 떠올린 채 다가선 아들 란을 보며 화란은 희미 하게 미소지었다. " 아무것도 아니란다...." 화란은 애써 마음의 혼란을 수습하며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훼이의 곁에서 그렇게 떠난 이후 화란은 바로 장로들의 권유에 따라 한 귀족 청년과 혼인을 했다. 그리고 란을 낳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아들의 얼굴을 볼때마다 화란은 가슴이 아 파왔다.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그리고 어머니가 된 자신이 마음 속에 진정 으로 품고 있는 상대는 지금의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말로 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아들에게 만큼은 너무나 미안했다. " 후계자 수업은 재미있니?" " 네. 어머니.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언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었냐는 듯 란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 아버지를 따라 하계 시찰이라도 나가지 그랬니... 궁에서만 지내면 답답할 텐데...." 란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 아니에요. 하루빨리 후계자 수업을 끝마치고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화란의 섬세한 얼굴선에 남편의 모습을 합쳐놓은 듯한 외모를 가진 란은 주 어진 재능보다 노력을 더욱 중요시 하는 아이였다. 아직 성년식도 치루지 않은 상태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없이 모든 일을 하곤했던 성실한 아이. 란은 그런 아이였다. " 어머니는 언제나 힘들어보여요." 란의 말을 듣고 화란은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이 어린 아이의 눈에 내가 그렇게 비쳤나...? 그럴 정도로 나는 고심하고 있었나....? " 그래서 저는 빨리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화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삼켰다. * * * * " 날 무척이나 높이 평가해 주는군."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훼이는 지금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은 다수의 사람들 이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풍기는 느낌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것도. 하지만 상관 없는 일이다.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예상했다고 해도 이번만은 확실히 그냥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마력만을 사용한 싸움이라면 훼이에게 승산이 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천상계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로 불려지는 검선들의 날카로운 검끝이 훼이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기에. 천제는 아예 자신의 정체를 감추지 않을 모양이었 다. 감춘다고 해서 알아보지 못할 훼이도 아니었지만. 험한 산속을 뛰어 다니는 노루의 날렵한 움직임처럼 소리조차 내지 않은채 숲의 중앙으로 들어선 검선들은 오래된 자에 대한 예의로 검을 휘두르기 전 에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온자들에게 인사를 받는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 만 그것은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였을 것이다. 검선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드는 광경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아름다웠 다. 가느다란 칼날이 빛에 반사되어 뿌리는 은빛 광채는 춤사위의 시작을 알 리는 것 처럼 보였다. 훼이는 방어주문을 풀기전에 공간을 열고 이제는 눈을 감고도 생김새를 떠올 릴 수 있을 정도가 된 검을 꺼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 아들에게 주었던 검. 검을 잡을때마다 둘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감 상에 빠져있어서는 안된다. 훼이는 손안에 차가운 감촉을 전하는 검의 손잡이를 굳게 쥐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검선들의 등장과 동시에 요희와 그녀의 호위는 검은 안개 속으로 사 라져버렸다. 그리고 훼이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검선들의 표정에는 하나같 이 감정이 배재되어 있었다. 공간이 닫힘과 동시에 은은한 검은 빛으로 훼이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방어 주문도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 요희의 공격이 날아올지 알 수 없었지만 검선들을 상대로 자신 의 마력을 쓸 수는 없었다. 방어주문이 사라지자 검선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검을 움직여 훼이의 몸을 공격했다. 그녀들의 움직임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아름다웠지만 칼은 날카로웠다. 쌔액. 날카로운 검의 파공성과함께 훼이의 옷자락이 베어졌다. 하지만 옷자락을 베인 훼이도 그것을 벤 검선들도 얼굴 표정에는 변함이 없 었다. 어쩌면 닮았다고 까지 여겨질 수 있는 굳어진 냉막함이 그들의 얼굴을 채우고 있었다. 칼의 움직임으로 인해 불어오는 인공적인 바람때문에 훼이를 비롯한 검선들 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심하게 흔들렸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르는 열 다섯 개의 칼날을 막아내기에 훼이가 들고 있는 두 개의 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훼이는 아직까지 검선들을 상대 로도 밀리지 않는 검술 실력을 보여 주었다. 훼이가 몸을 움직이는 열다섯개 의 방향에서 날카로운 검날이 쉬지않고 파고들어왔다. 마치 잘 짜여진 옷감을 보는 것처럼 그녀들의 공격은 매끄럽고 완벽했다.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검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파공음 뿐이었다. 하 지만 어느 순간인가 훼이는 소리로는 감지할 수 없는 꿈틀거리는 무형의 기 운을 느꼈다. 그것은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마력의 파 동이었다. 훼이는 그답지 않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처음 생각했던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것은 어쩌면 마음속에 남아있는 오랜 친구의 잔영 때문인지도 몰랐다. 공격은 의외의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요희가 사라진 검은 안개속에서가 아닌 숲의 입구 부근과 연결된 소로에서. [ 폭염장벽(暴炎障壁) 전(展) ] 숲을 태워버릴 듯이 거대한 붉은색의 기둥이 훼이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피어올랐다. 기둥이라기 보다는 얇은 벽과 같이 사방을 태우는 붉은 빛의 파 동. 재빨리 펼친 방어주문에도 불구하고 훼이의 몸은 중심을 잃고 약간이지만 흔 들렸다. 그리고 그틈을 넘기지않고 훼이의 방어주문 안에 있던 검선들의 칼날 이 파고들어왔다.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훼이는 수백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피를 보았다. 어깨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 붉은 색의 핏방울은 무척이나 선명한 빛깔을 띄 고 있었다. 통증에도 불구하고 훼이는 웃음이 나왔다. "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거에요." 언제 모습을 드러냈는지 훼이가 펼친 방어주문의 공간 밖에서 요희가 미소짓 고 있었다. 퉁퉁. 듣기 거북한 둔탁한 마찰음이 방어주문으로 인해 생성된 투명한 검은 막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훼이는 더욱 더 날카롭게 파고드는 검선들의 칼날을 피해 움직이며 또 다시 방어주문을 썼다. 검선들과 자신을 감싸고 있던 커다란 방어주문 사이에 훼이 만을 감싼 작은 막이 생겨났다. 이번에 만들어진 작은 막은 만져보면 그 감촉 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딱딱했다. 그 때문에 검선들의 칼날은 더 이상 훼이의 근처로 다가서지 못했다. [ 강뇌파탄(鋼雷破彈) 전(展) ] 조금아까 훼이의 몸을 흔들리게 만들었던 강력한 마력의 주인공이 또 다시 공격을 가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붉은 덩어리들이 훼이의 방어주문 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검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주문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훼이는 아예 자신의 몸 주위에 쳐져있던 방어주문을 제외하고 다른 방어주문 을 거두어 들였다. 이정도로 강력한 주문을 쓸 수 있는 것은 몇되지 않는다. 훼이는 또다시 웃었다. 자신에게 이토록이나 적이 많았었는지 생각하며. 또 다시 공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쯧쯧. 어릴때의 란은 저다지도 착한 녀석이었는데... 역시 성격 파탄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가...^^ 오옷...드뎌 훼이와 세가지 세력간의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과연 주인공 훼이는 모든 적을 물리치고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우웃...무슨 3류 영화 광고하냐...--) 하핫..그리고 전 여전히 전투장면이 형편 없군요... (자랑이 아니얏!) 오늘도 즐거운 하루 맞이하시길.... ^-^ 번 호 : 1866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2일 01:06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4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五. 흑룡의 숲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五. " 전하...." " 나도 알고 있어." 천계 최북단에 위치한 흑룡의 숲. 지금 그곳은 엄청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 다. 아무리 마력이 약한 자라도 한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기운들이 얽히고 ?혀 거대한 덩어리를 형성한채 숲을 감싸고 있었다. " 잠시 두고 보도록 하지. 저곳은 형님이 머무르고 계신 곳이니까 함부로 나서선 안돼."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다섯 용족들이 모여사는 천계에 이런 큰 소란이 일어 난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용족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용족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 다. 더군다나 천계는 혼자 있어도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용족들이 모여서 살 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일은 간과할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전하. 재 차 고려하여 주십시오." " 이건 오래전에 형님과 직접했던 약속이기도 하다. 그걸 어길 수는 없어..." 보좌관의 말이 아니더라도 라이엔 역시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숲으로 향하고 싶었다. 하지만 훼이는 말했었다. 만약 훼이 자신과 얽힌 어떤 문제가 생겼을때는 결코 숲에 발을 들여놓지 말 라고. " 전하. 잊으셨습니까. 지금 숲에 계신 것은 훼이님 혼자만이 아닙니다. 유 안님 께서도 그곳에 계시질 않습니까." 그렇다. 유안의 문제를 잊고 있었다. 이번에는 라이엔도 단호하게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형님과의 약속과 아들의 안위. 훼이가 옆에 있다는 것은 유안이 안전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불안한 것이다. " 좋아. 지금...." " 유안은 허약하기만 한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막 꺼낸 라이엔의 말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선 미하에 의해 가로 막혔다. 언제나 처럼 연한 황금색의 머리카락을 곱게 틀어올리고 흰색의 궁장을 걸친 채 우아한 자태로 집무실에 들어선 그녀는 무척이나 강한 어조로 말을 꺼냈 다. " 유안은 흑룡왕의 후계자입니다. 지금의 상황도 수련이라면 수련이 될 수 있어요. 전 유안이 강한 아이가 되길 바래요." 항상 유안의 안전을 염려하던 미하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이었기에 라이엔은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 괜찮겠소?" " 물론이에요."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단호한 어조로 미하는 답했다. " 좋아. 당신의 뜻이 그러하다면." 흑룡왕과 비의 말이 그러했기에 보좌관도 더 이상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 * * 불을 근본으로 하는 마력을 쓰는 자가 나타난 것을 보고 짐작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대하자 조금은 마음이 흐트러 졌다. 단 한번도 실제로 대한 적이 없었던 화란의 아들. " 아직까지 여유로운 걸 보니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 군요." 잠시의 여유도 용남할 수 없다는 듯이 요희의 공격이 이어졌다. 아직까지 그 녀 자신은 공격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훼이는 그녀의 여유가 어디에서 기인 하는지 알고 있었다. " 당신의 방어주문이 얼마나 강력한지 두고 보기로 하죠." 요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공격을 감행했다. 퉁퉁퉁. 방어주문을 와해 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짓쳐들어오는 검선들의 칼날과 명계 에서 온 자들의 공격. 그리고 홍룡일족의 왕인 란의 공격. 훼이는 여전히 방어주문만을 펼친채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상대를 응시했다. 방어주문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칼날이 스 치는 소리와 지면까지 흔들며 진동하는 공격 속에서도 훼이는 담담한 눈으로 밖을 응시할 뿐이었다. 손끝을 타고 떨어지는 핏방울도 그리고 칼날에 스쳐 생겨난 상처의 통증도 잊혀진 기억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 기억해주세요.... - 망각의 강에 흘려 보내세요.... 두 개의 목소리. 잊혀지지 않을.... 마음속의 깊은 곳에 자리매김한 두 개의 목소리. 맑고 투명한 물과도 같은 검은 눈동자와 흔들림 없이 강인한 옅은 붉은색의 눈동자. 찰나의 순간과도 같았던 짧은 행복과 파문처럼 넓게 퍼져나갔던 추억 의 시간들. 내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거지?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다. 하지만 묻지 않고는 참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억해 달라고.....잊으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은 내 마음속에 각인처럼 새겨져 있잖아... 귓가에 울려퍼지는 소리는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아무리 자신의 마력이 강하다해도 방어주문은 풀려 버릴 것이다. - 전 과거를 그리워 하지는 않아요. 작은 얼굴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에는 설레임이 담겨 있었다. - 남은자가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거에요. 언제나 처럼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자신에 찬 미소는 눈부실만큼 아름답게 느껴졌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서 벗어나 훼이는 눈을 감았다. 과거.... 지금까지 그의 반생 이상을 점령해온 지나간 시간의 파편들. 과연 무엇을 위한 회상의 시간들이었나. 대답을 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세상과 유리(遊離)된 숲에 묻혀 지내온 것은 자신이었 다. 그렇다. 언제고 선택은 자신이 한 것이다. 인간의 여인을 사랑하고 교룡인 아이를 낳고, 후계자의 위(位)를 버리고, 소중 한 친구를 잃고, 아들을 잃고....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시간의 잔혹함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 한 것은 훼이 자신이다. '오래된 자' 라는 무거운 이름에 휩쓸려 본래의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을 뿐. 어느 누구도 강요는 하지 않았다. 정해진 수명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래로 뻗어있는 길을 걷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 누군가가 대신 할 수도 뒤돌아 나갈 수도 없는 오로지 앞을 향한 수천갈래의 길. - 몰랐나요? 선택은 언제나 스스로 하는 거에요. 질책하는 기운이 담긴 밝은 목소리. 마치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목소 리는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그랬나. 몰랐던 건 나 혼자였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간단한 사실조차 모른채 오랜 시간을 괴로워 했던 건 나 자신이었나? 그저 혼자만의 아집일 뿐이었나.... 그것을 깨달았을 때 훼이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무엇으로도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었기에. 그래...무척이나 간단한 거였어. 그저... 현실을 직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대체 무엇을 해온 거지? 어둠을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것 뿐이었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훼이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파편처럼 방어주문 이 사라졌다. ============================================================== 우엥...졸리다...-_- 매일 집에서 구르다가 간만에 알바를 나갔더니 괜시리 졸립니다. 집에 돌아오 니 아버지가 감자탕을 끓여주셨습니다. 지금 배가 터질 것 같아요..^-^ 매일같이 글을 쓰면서 혼자 괴로워 발악을 합니다. 하루한편 쓰기가 확실히 보통일은 아닌가봐요. 저 같이 고뇌파에게는..^^ 늘 말없이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감사합니당. 번 호 : 1902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3일 00:5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六. 흑룡의 숲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六. 그토록이나 갑자기 어머니가 눈을 감을 줄은 몰랐다. 왜 그토록 급히 계승식을 하냐는 나의 물음에도 그냥 빙긋이 웃음을 지을 뿐 이었던 어머니. 어쩌면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훼이..." 하지만 어머니가 최후의 순간에 부른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도, 나의 이름도 그렇다고 어린 동생들의 이름도 아닌 다른 이의 이름. 용족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그 이름.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란은 차갑게 식어버린 눈동자로 눈앞을 직시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수의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 의 태도로 오만하게 주위를 보는 훼이의 눈은 놀랄만치 차분한 빛을 띄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언제나 그의 눈에 떠올라 있던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가라앉은 빛은 여전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었다. 란은 두눈으로 직접 훼이를 대하자 그동안 쌓여왔던 많은 말중 어느것 하나 도 내뱉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이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여겼던 어머 니.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기억이 아름답게 여겨 지지만은 않았다. 훼이라는 저 남자는 어째서 자신의 어머니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어리다고 해도 좋았다. 자신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단지 훼이에게 묻고 싶었을 뿐이다. 왜 어머니에게 그토록이나 슬픈 미소를 짓게 만들었는지. 왜 단 한번도 환하게 피어오르는 꽃과 같았다던 예전의 그 미소를 보여주지 않게 했는지. " 지금부터 시작인가요?" 란이 두손을 들어올리며 주문을 외울 준비를 시작하자 요희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고요한 침묵속에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때보다 더 날카롭고 음산하게 울려퍼졌다. " 이번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거라고 말해두지....." 그렇게 말하며 훼이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을 집어 들었다. 방어주문이 해제됨과 동시에 검을 멈추었던 검선들은 다시 유려한 몸놀림으 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온 검선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만큼 능숙하고 안정 된 움직임을 보이며 훼이는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향한 은빛 검날들을 막아 갔다. 그리고 어느샌가 투명한 푸른빛깔을 자랑하던 하늘에 검은 구름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 염궁(炎弓) 시(矢)! ] 하늘을 뒤덮어가는 구름은 폭풍우를 부르는 구름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란이 었기에 그는 재빨리 훼이를 향해 강하고도 빠른 주문을 외쳐 공격을 감행했 다. 굵은 빗줄기와도 같은 모양의 가느다란 불꽃들 수십개가 훼이를 향해 빠 르게 날아갔다. 그것은 마치 선연하고 아름다운 붉은 빛무리가 한곳을 향해 모여드는 것 같았다. 수십개에 달하는 불꽃의 화살들이 훼이와 검선들의 지척에 다다른 짧은 순간 갑자기 가느다란 물기둥 수십개가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물기둥은 아주 적절한 순간에 훼이의 주위에 다가선 불꽃의 화살 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었다. 재빠른 훼이의 대응에 란은 그다지 놀란 기색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별다른 반응 없이 재빨리 다음 공격을 준비했을 뿐이었다. 하늘을 짙은 검은 색으로 덮어버린 구름들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잔 뜩 흐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금 강해진 바람만이 불어올뿐 빗방울은 떨어져 내리지 않고 있었다. [ 강뇌파탄(鋼雷破彈) 전(展) 륜(輪) ] [ 폭염장벽(暴炎障壁) 전(展)! ]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불의 힘을 근본으로 하는 홍룡의 힘은 반감되기 마련 이었기 때문에 란은 속전속결을 결심하고 동시에 두 개의 주문을 외쳤다. 확실히 한 일족의 왕이 가진 힘은 그 크기 부터가 달랐다. 조금전 훼이의 방어주문을 와해 시키기 위해 썼던 주문과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머리만한 붉은 불꽃의 덩어리 들과 하늘을 뚫을 듯이 거대하게 치솟은 불꽃의 장벽이 훼이에게 퍼부어졌다. 그리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그동안 아무런 공격도 하지않고 있던 요희의 손 에서도 끈적한 느낌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란과 요희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훼이의 움직임을 묶어두고 있던 화선들 은 공격이 시작되자 마자 일순간에 훼이의 곁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훼이는 붉고 푸르스름한 기운에 둘러싸여 모습을 감췄다. 훼이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훼 이가 그대로 당했다고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툭툭. 경쾌하게 지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며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훼이를 감싸고 있던 두 개의 기운들은 하늘까지 치솟은 회오리 치는 물기둥에 의해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끔 하게. " 과연...... 날 무척이나 즐겁게 하는군요....훼이." 언제나처럼 날카로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입술과는 달리 요희의 눈은 차갑 게 식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두 눈에 가득차 있던 흥분감은 훼이의 반격으 로 인해 씻은 듯이 사라진 후였다. 하늘에 솟은 물기둥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며 소용돌이 쳤다. 그리고 곧 눈부시도록 투명한 수룡의 형상으로 화했 다. "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돼겠지... 벌써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으니.." 훼이는 실로 오랜만에 진심으로 싸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몸속에 웅크리고 있는 마력을 한껏 발산하고 싶은 욕 구. 그것은 마치 밀려오는 파도처럼 격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투명한 수룡은 폭우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훼이에게 적의를 품은 자들을 공격했다. 휘몰아 치는 돌풍에 휘말린 듯이 훼 이를 제외한 모든이들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특히 용족과 같은 마력을 가지지 못한 화선들은 대부분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훼이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던 수룡은 순식간에 하늘로 떠올랐고 이번에는 열 개로 나뉘어져 하늘을 떠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고 가느다란 모습을 하고 있던 그것들은 폭풍우 속을 떠돌면서 점차로 처음의 수룡과 같은 크기를 갖 추어 갔다. 요희는 훼이가 주문을 운용하기 위해 잠시 방어에 소흘한 틈을 타서 푸르스 름한 안개를 뿜어냈다. 요희에게서 퍼져나온 안개는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속 에서도 그 형태를 잃지 않고 빠르게 훼이의 몸을 덮쳐갔다. 촤락. 물살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하늘을 빠르게 유영하던 수룡 들이 일제히 하강했다. 하지만 수룡들의 하강속도보다 요희의 안개가 도달하 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피부에 달라붙는 듯한 끈적한 느낌의 안개는 일순 훼이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요희 답군... 작은 실수가 패배로 직결되는 싸움 속에서도 훼이는 생각을 떠올리며 득의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요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빗줄기에 몸을 실은 수룡들은 순식간에 요희와 그녀의 호위들을 덥쳤 다. 훼이의 눈에는 그들이 거대한 압력에 눌려 바닥에 주저않는 모습이 비쳐 들어왔다. 푸른 안개의 효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날카롭게 살아있던 훼이의 감각을 방해했다. 그때 '팟' 하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죠. 아무리 강한 당신이라도." 숨이 막혀왔다. 가슴이 타버릴듯한 화끈한 통증. 훼이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오늘의 대결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자신을 이토록이나 벼랑 으로 몰고간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구름은 점점 더 굵은 빗방울을 퍼붓고 있었다. 훼이는 오른손을 들었다. 소용돌이치며 뭉쳐진 투명한 빗방울들은 훼이의 손 바닥 안에서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막 방어주문을 펼치고 있는 란을 향해. 그리고 수십개의 물줄기는 란이 펼친 방어주문을 뚫고 들어가 란의 몸에 적 중했다. 핏방울은 흩어지지 않았지만 란은 창백하게 표정을 굳힌채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쌔액. 또 다시 퍼져가는 날카로운 통증. 그렇다. 아직 그녀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훼이의 손에서 또다시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뻗어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 도의 빠르기로. 훼이는 다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몸에 감각은 돌아왔지만 몸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훼이가 자리에 서 일어서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훼이 자신을 포함해서 아직까지 몸을 세우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훼이 는 요희와 그녀의 호위를 억누르고 있는 수룡들 쪽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압 력속에서도 요희는 여전히 날카롭게 웃고 있었다. [ 역궁(逆窮) 개문(開門) ] 수룡들로 인해 얽힌 막힌 공간에서 검게 일렁이는 빛무리가 일어나며 공간의 문이 열렸다. 훼이의 힘에 의해 열린 공간으로 요희와 함께 명계에서 온 자들은 사라졌다. 여러개의 주문을 겹쳐서 사용해서인지 몰라도 호흡이 더 가빠져왔다. 확실히 공간이 닫힌 것을 확인한 후 훼이는 다른 모든 주문을 해제시켰다. " 이건 대체...." 막 구름이 걷히고 개어가는 숲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서고 있었다. ============================================================== 오늘도 여전히 졸립니다.. 밤이라서 그런거겠죠... 졸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자니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자책감이....^^ 오늘은 어쩌다보니 많이 썼군요.... 오옷... 갑자기 왜 이랬지... 이제 11장도 끝나갑니다... 모두들 즐거운 하루를 시작하세요~~ 번 호 : 1943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4일 00:1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七. 흑룡의 숲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七. 훼이가 펼쳐놓은 방어주문 안에서 유안과 유에린은 불안을 억누르며 밖의 상 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끊이지 않고 비쳐드는 은빛 의 광채와 붉은 화염의 덩어리들. 그리고 푸른 안개는 둘에게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 "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요...." 유에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유안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불안감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기에. " 기다리죠. 유안..... 백부님을 믿고 있잖아요." 그것은 유안을 향해 말했다기 보다 자신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한 말이라 고 하는 편이 옳았다.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모든이에게 경외감의 대상이 되어 있는 훼이에게. 유에린은 뚜렷한 어떤 형체도 내비치고 있지 않은 숲의 저편을. 훼이가 있을 건너편의 공간을 가만히 응시했다. 질 리가 없다. 설사 무슨일이 생겨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해도 훼이는 질 리가 없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훼이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생겨난 그의 힘 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아직 자신이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가 강하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분명 이길거야... 자신의 마음속에만 울리도록 유에린은 속으로 되뇌었다. " 유에린!"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깬 것은 유안의 날카로운 외침 이었다. 깊이 생각에 골몰해 있던 유에린은 유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말로 전해듣지 않아도 왜 유안이 소리를 쳤 는지 알 수 있었다. 방어주문이 해제되어 있었다. " 어서 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유안과 유에린은 훼이가 떠난 건너편의 공간. 숲의 중 앙부를 향해 나아갔다. * * * " 당신의 요구는 거절합니다." " 후..." 레이샤의 눈에는 경멸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눈에 띄게 지친 모습으로 아직까지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란을 향해 레 이샤는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 한 일족의 왕이라는 자가 개인적인 사소한 일 때문에 혼란을 불러오다니 요. 그것도 다른자들까지 끌어들여서." " 그대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희미하게 고통이 배어 있었지만 란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 고집스러운 건 여전하군요." 레이샤는 낮은 어조로 말을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레이샤가 숲에 들어섰을 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흰색의 특이한 무복차 림의 여인들은 그녀가 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힘겹게 몸을 일으켜 자리 를 떠났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식의 무복을 입는 곳은 오직 천상계 뿐이었다. 설마 천제까지...? 그녀들의 정체에 생각이 미치자 레이샤는 그녀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인물인 천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날 경멸하나?" 막 나무기둥에 몸을 기댄채 눈을 감고 있는 훼이에게로 시선을 돌리던 레이 샤는 란의 물음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글쎄요. 이 감정을 경멸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 분명 타렌에게서 들었을테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레이샤의 눈빛은 긍정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 타렌은 나와는 생각 자체가 다르니까...." 그말 한마디를 하고나서 란은 가슴을 누르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레이사는 란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 다. 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후천적으로 맺어진 인연중 가장 큰 것으로. 레이샤보다 150년 먼저 태어난 언니 시엔은 홍룡왕의 동생인 타렌과 혼인한 사이였다. 그런 시엔을 만나기 위해 천계에 자주 오곤하던 레이샤였지만 홍룡 궁에 발은 들여놓은 것은 혼인식을 거행했을 때 뿐이었다. " 왜 내게 그런말을 했던거죠? 타렌은 당신이 무모한 행동을 하려 한다고 했어요." " 누가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어. 저자는...." " 화란님은 자신의 선택에 따랐던 것 뿐이에요. 당신이 나설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 하지만 난 저자가 거슬려." 레이샤가 란이 건넨 말의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란은 또다시 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출렁이는 가느다란 불꽃의 기둥은 지친몸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훼이 를 향했다. " 백부님!!" 막 숲 중앙의 공터로 들어선 유안은 군데군데 뽑히고 쓰러진 나무들의 잔해 를 보고 놀라는 한편 막 훼이를 향해 쏘아져 나가는 불꽃의 기둥을 보며 경 악성을 내질렀다. 유안의 뒤를 따라 들어선 유에린도 숲의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그보 다 더 놀라운 것은 군데군데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더욱 검게 물든 파오를 입은 훼이의 모습이었다. 저토록이나 상처입고 지친 모습의 훼이는 처음 대하 는 것이었기에. 유안은 훼이를 향해 날아가는 불기둥을 막아내기 위해 있는 힘껏 몸을 날렸 다. 하지만 날아가는 강력한 주문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안돼...!" 유안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치며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의 두 눈으로 훼이가 상처입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팟. " .........?" 귓가에 울려퍼지는 희미한 타격음을 들으며 유안은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의 경험대로라면 공격주문이 다른이에게 적중했을때의 소리는 좀더 컷던 것 같 았지만 지금은 별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유안은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너울대는 붉은색의 화염이 사라진 자리에는 은은한 검은빛의 장막이 빛을 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조금전과 같은 자세를 하고 앉아있는 훼이의 모 습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 백부님!" 유안은 다시 다리에 힘을 가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깊이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훼이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유에린은 막 사라져가는 방어주문의 희미한 검은빛 사이로 유안이 뛰어들어 가 훼이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에 봉황족으로 보이는 여인이 붉은 파오를 입은 누군가를 부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지금은 단지 기쁠 뿐이다. 비록 다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훼이의 모습을 확인하며. " 우스운 모습을 보였구나..." 맑게 잠긴 푸른 눈동자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유안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 다행이에요." 유에린은 그 말 한마디를 건네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비록 지금까지의 훼이가 가지고 있던 다가서기 어려운 위엄은 사라져 있었지 만 유에린에게는 지금의 훼이가 보여주는 모습이 본래의 그인것 처럼 느껴졌 다. " 돌아가자." 훼이는 유안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왠지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는 그 의 모습은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표정은 어느때 보다도 밝았다. 항상 얼굴을 뒤덮고 있던 표정없는 냉막함을 벗어버린 훼이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던 가장 순수했던 그 때의 자신 으로. " 망가진 숲을 되돌리려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훼이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며 말을 건넸다. ============================================================== 음... 저는 무적의 주인공을 싫어합니다... 세상에 무적은 없잖아요. 훼이가 설마 무적으로 보였던건....-_-;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저의 작명센스는 형편없는 듯... 비슷한 이름이 하도 많 아서 쓰다가 헷갈리는 바보가 저입니다...-- 후훗...11장 끝났습니다. 간만에 난무한 전투장면. 어떠셨는지요..^^ 음..낮에는 뜨겁고 밤엔 좀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건강에 유의하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번 호 : 1979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5일 00:3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一. 흑룡의 숲 제 12장 바램... 마음속 깊은 곳에 잠겨있던 기억의 파편이 녹아든 자리에서 엷은 빛깔의 무지개가 떠오른다. 물안개를 헤치고 피어오른 수선화의 향기와 함께..... 一. " 형님. 벌써 움직이시면 어떻합니까." 흑룡궁의 정원을 거닐며 신선하게 폐부에 와닿는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던 훼 이는 걱정이 가득 담긴 라이엔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 괜찮아." 실로 오랜만에 흑룡궁에서 머물고 있는 요즘은 마치 수백년전의 후계자시절 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정도로 편안했다. 형님의 표정이 달라졌어.... 게다가 지금까지 어떤 이유로도 오랜동안 머무르지 않던 궁에서 며칠째 시간 을 보내고 계시다니.. 대체 무엇이 형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라이엔의 마음속을 가득 채운 의문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 요즘이 가장 바쁜 시기일텐데 이렇게 나와있어도 괜찮은지 모르겠구나." 이제 계절은 막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겨울은 흑룡족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바빠지는 계절. 그리고 그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것은 왕인 라이엔의 몫이었다. " 지금은 그것보다 형님의 몸이 회복되는 걸 보는게 더 중요해요. 제게는." 훼이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라이엔에게 가끔씩 보여왔던 부드러운 미소가 계 속 떠올라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가 가진 표정이었던 것 처럼. 훼이는 며칠전의 싸움으로 인해 입은 상처가 반도 낫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통때처럼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담담한 태도 때문인지 훼이의 모 습을 바라보던 라이엔에게는 훼이가 다쳤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두눈으로 직접 그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은 믿지 못할 터였다 " 형님. 그런데 정말 그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계속 미뤄오던 그 질문을 라이엔은 겨우 오늘에서야 꺼냈다. " 그다지 마음이 내키질 않아서..." " 하지만 그들은 암묵적인 협의를 깨트린 것과 다를바 없는 일을 했습니 다." 훼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라이엔이 서 있는 정원의 입구쪽으로 향했다.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길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돌로 뒤덮힌 소로를 지나치면 서 훼이는 예전에 이 길을 걸었을때를 잠시 회상해 보았다. "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을테니까." 수백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흑룡궁의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깔끔 하게 정돈되어 있는 정원의 모습과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 는 건물들의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벌인 일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훼이는 피식하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 라이엔. 넌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구나." " 형님!" 이제 자신을 아이 취급까지 해버리는 훼이를 바라보던 라이엔은 한숨을 내쉬 며 고개를 저었다. " 요희와 란은 그렇다고 해도 천제와는 담판을 지어두지 않으면 곤란하겠 지." 라이엔의 바로 옆으로 다가선 후 훼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 이상하게도 천제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뒤틀려 있으니까 말로 해서는 끝 나지 않을거야." 훼이는 라이엔의 어깨를 툭하고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 집무실로 가자." * * * 유에린은 처음으로 기린족을 보았다. 유안을 통해 기린족이 가지고 있는 푸른 눈동자를 대했기에 물처럼 맑고 투 명한 빛을 간직한 미하의 두눈을 대했을 때에도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 만 햇살같이 밝게 빛나는 그녀의 황금색 머리카락은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 도로 유에린을 잡아 끌었다. " 흑룡궁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편안한가요?" 차분하면서도 맑은 미하의 목소리는 듣는이의 귀를 즐겁게하는 울림을 가지 고 있었다. " 네...." 기린족의 황녀라는 신분과 흑룡왕비라는 두 개의 신분을 가진 미하는 왕족이 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랬다. 유에린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말로 해주지 않았 지만 유에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훼이를 찾아왔던 본래의 목적. 현무족의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제 는 움직여야 한다. 오라버니가 눈을 감는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봤던 그날부터 유에린이 줄곧 바래왔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 훼이에게 찾아갔던 것이 힘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었죠?" " 네. 전 너무나 약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으니까. " 싸워서 이기면 그 후엔 어떻게 할 거죠?" 유에린은 미하에게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현무 족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알리고 싶지는 않 았기에. " 솔직히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요." 미하는 잠시 아무말 없이 유에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런가요..." 유에린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미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 다. 여인으로 태어난 자라면 누구나 바랄 아름다움과 최상의 지위를 가진 이 를 직접 대하자 저절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 자신은 자신. 아무리 바래도 다른 누군가가 될 수는 없다. " 훼이의 가르침을 받은 당신이라면 분명 자신이 가진 최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거에요." 유에린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무작정 그를 찾아가 막무가내로 조르기는 했지만 그가 받아들여 줄지는 미지 수 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훼이의 곁에서 많은 일들을 보고 겪었다. 몇 달에 불과한 짧은 인연이었지만 훼이와 함께 했던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그냥 빨리 떠나는 편이 좋겠지요?" 유에린은 미하에게 물었다. 더 이상은 훼이라 할지라도 유에린의 능력을 더 나아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 다. 훼이는 유에린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의 한도내에서 최대한의 실력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기 때문에. " 그건 당신의 자유에요. 선택을 한 것 또한 유에린. 당신의 몫이었으니까." 유에린은 마음을 굳혔다. " 말씀 감사했습니다. 비전하." 유에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 당신의 바램이 이루어지길 바래요." 뒤돌아선 유에린을 향해 미하는 엷은 미소를 던지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가는거야. 하지만 처음의 무기력했던 나 자신이 아니야. 난 내 바램을 이룰 수 있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유에린은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걸음 을 옮겼다. 이제는 인사를 건넬 시간이다. 또 다른 자신을 일깨워준 훼이에게. ============================================================== 오늘로서 60편째군요. 처음 생각보다 길이가 짧아 진 것 같기도. 으음...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이제 완결의 그날도 얼마 남지 않았 는데요. 암튼 열씨미 쓸께요. 그리고 모음집은 완결과 동시에 올리겠습니다. 혹시 끝나기 전에 본 내용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길. ### 완결맞이 특별 이벤트 ^-^ ### 독자분들이라면 이제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으시겠 죠. 그래서 작은 이벤트를 하나 준비하려 합니다. 그게 뭐냐면 과연 몇편에서 완결이 될까요...^^ 오늘이 60편이니까 이 이후로 한번 계산해 보세요. 상품은 예쁜 만화 캐릭터 열쇠고리와 애니메이션 비디오 테잎을 하나 드려요. 맞추시는 분이 없으시면 가장 근접한 분께 드리죠...^^ 음...참여 하시는 분이 딱 한분일 듯...^^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 번 호 : 2033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7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4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二. 흑룡의 숲 제 12장 바램... 二. " 자신을 가져라." 떠나가는 유에린에게 훼이가 건넨 것은 단지 그말 한마디였다. 입가에 걸린 부드러운 미소로 유에린을 배웅하는 훼이의 모습은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버지 같았다. " ....그동안 감사했어요.." 처음의 막무가내였던 태도도 굳어진 표정도 사라진 유에린은 어느새 소녀에 서 여인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 꼭 이겨야 해요. 유에린." 훼이의 곁에 나란히 서 있던 유안은 큰 소리로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몇쌍의 시선을 뒤로 한채 유에린은 걸음을 내딛었다. 오라버니..... 저를 지켜봐 주세요... 발걸음을 한걸음씩 옮길때마다 마음을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몇 달동안 지내왔던 특별한 시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본래의 자신이 속해야 할 시간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부터 해야할 싸움이 어떻게 될런지는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유에린은 최선을 다해 그와 싸울 것이다. " 고마워요...." 막 흑룡족의 영지에서 벗어났을 때 유에린은 작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 상으로의 회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 * * " 형님. 내일 5대 용왕의 회합이 흑룡궁에서 열립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방안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훼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 회합이라...." " 이번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어야 하고 천제의 행동에 대해 용왕들 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습니다." " 그래... 참여 하도록 하지. 이번일에 가장 깊게 관련된 것은 바로 나니까 말이야." 훼이는 흔쾌히 참석을 약속했다. 라이엔은 달라진 훼이의 모습을 반기는 한편 회합이 열린 후에 다른 용왕들 이 보일 반응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 형님. 형님의 모습을 보고 다른 이들이 얼마나 놀랄지 생각하면 내일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웃음을 머금고 말하는 라이엔의 모습에 훼이는 진 한 향수를 느꼈다. 이상하게도 지난번의 전투 이후로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눈 앞에서 스러져간 비의 모습을 떠올려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내가 변한 것일까..... 다른이들은 그것을 반기지만 나 자신은? 나 역시 그런가.....? " 언젠가는 이런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 네? 뭐라고 하셨어요?" 훼이의 낮은 중얼거림을 듣고 라이엔이 되물었다. " 아니야. 아무것도." " 그리고 형님. 이대로 계속 궁에 머무실 생각이 계시다면 형님이 머무실 곳을 따로 꾸미려고 하는데요." " 그건 아직 조금더 생각해 봐야겠다." 조금 섭섭하기는 했지만 라이엔은 미소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요즘은 형님이 제 일을 도와주셔서 업무도 밀린 것이 없으니 저도 여유 로워서 좋아요." " 그냥 네가 힘들어 보였을 뿐이다." 라이엔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하는 훼이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내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을지도... " 형님. 이제 식사하러 가셔야죠. 어제 저녁도 거르셨잖아요." " 그래...." 두 형제는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죄송합니다. 상제폐하..." 지난번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겨우 거동할 수 있게 되자 가화는 먼저 상제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상제는 여전히 그녀가 들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 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화의 마음은 무척이나 불안했다. 무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을때의 상제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도 같았다. " 분명 그자도 상처를 입었다고 했었지....." " 네. 저희 검선들의 검에 의해 입은 상처와 홍룡왕의 힘을 직격당해 입은 상처. 그리고 명계의 여인 때문에 입은 상처까지 합하면 아무리 그가 잴 수 없는 힘을 가진자라 해도 아직 거동에 무리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 그런가......" 상제는 손으로 턱을 괴고 낮게 중얼거렸다. " 좋다. 그러면 무슨 수를 써서든 지금 그자의 동향을 파악해 오도록 해라."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추가로 검선들을 더 선발하도록." 가화는 잠시 망설였다. 상제의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에 대해. 하지만 얼 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조금전과 같은 대답을 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상제의 명령이 내려진 이상 그녀는 그것을 수 행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해야할 일이 었다. "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가화는 천제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 상제께서는 아직 포기하시지 않으신겁니까?" 집무실로 들어선 가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천군대장 지인은 집무실로 통하 는 복도가 끝나는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알고계실텐데요. 그분의 성격을....." " 하지만 이번일 만큼은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화는 잠시 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멈추었다. " ......저도 알고있어요." " 그런데 어째서..." " 잊으셨나요? 천군들과 달리 저희 선녀들은 상제께 메인 몸이라는 것을?" 지인의 얼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두워졌다. 그랬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지만 천군을 제외한 천상궁의 모든 인원들이 선녀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천제를 모시는 선녀들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무를 담 당하는 선녀에서 전투. 그리고 세세한 잡일 까지 모든 것을 선녀들이 담당한 다. 천상궁에 머물고 있는 선녀들의 수가 많을수록 그녀들을 선발하는데 강제 력이 동원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귀족과 왕족으로 구성된 검선과 천선도 마찬가지였다. " 상제께서 내리시는 어떤 명령이라도 수행해야 하는 것이 검선이구요." 지인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그녀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을 권리조차 없다는 것 을 깨달았기 때문에. " 그럼....." 상처가 다 낫지 않아 창백한 얼굴을 한채로 검선의 장인 가화는 천제의 명령 을 수행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대체 어떻게 되려는지.......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의 천상계는 바로 그 고인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계의 인간들과 같으면 같았지 다를 것이 없는 지금의 천상계는 더 이상 질 서를 관리하는 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 죄송합니다...어제 너무 졸려서 그냥자는 바람에 글을 못 올렸어요.. 대신 오늘 두편 올라가니까 용서해 주세요...^^ 음...그리구요.... 이벤트에 지금까지 세분이 응모해 주셨는데요. 다른분들도 응모해 주세요. 상품이 맘에 안드시는건가... ^^; 우흑...그리고 오늘 추천해주신 guntoo님..감사합니다...아이디 꼭 외울께요... 흑.. ### 흑룡의 숲 완결맞이 이벤트 ^-^ ### 흑룡의 숲이 몇편에서 완결이 될지 맞춰주세요. 기간은 이번주 이내로 제 아이디에 메모나 메일로 응모해 주시면 됩니다. 맞추시는 분께는 예쁜 만화 캐릭터 열쇠고리와(직접 제작한 ^^) 환타지 애니 메이션 비디오 테이프를 드려요. 번 호 : 2034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7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4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三. 흑룡의 숲 제 12장 바램... 三. 흑룡왕의 집무실에 들어선 후 다른 용왕과 용왕비들이 보인 행동은 한결같았 다. 라이엔의 곁에 자리하고 있는 훼이를 보고 하나같이 얼굴에 자신도 모르 게 놀라움의 표정을 떠올린 것이다. " 안녕하십니까...." 평소의 침착하던 태도와 다르게 백룡왕 파이론이 머뭇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그에 반해 백룡왕비 챠렌은 여유로운 태도로 미소까지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 지난번에 뵙고 처음이군요." 훼이는 별다른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챠렌의 인사에 답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열리는 5대 용왕의 회합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은 특별한. " 명계와의 관계는 이번일이 아니더라도 전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어떠한 형태로든 담판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천상계와의 관계는 용족들에 대한 천제의 명백한 의도가 드러난 이상 가만히 참고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일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관한 라이엔의 설명이 끝나자 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회합에 참여한 란은 보통때와 는 달리 한풀꺾인 눈빛으로 다른 용왕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채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 하지만....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곳이 또 천상계이기도 합니다." 청룡왕 리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적인 용모와 그에 어울리는 조용하면서도 현명한 성격의 그는 어떤 문제에 관해서든 주의깊게 생각하는 자였다. " 천제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자 는 것이겠지요. 관계로는 동등하지만 위치로는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고 싶 다는 것." 계속 이어진 리판의 말에 다른 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표시를 했 다. " 인간보다 조금 더 오랜 수명을 가지고 있고 더 강한 육체를 가졌다는 사 실만 제외하면 그들은 인간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권력을 두고 투쟁하는 것 과 끔찍히도 혈연을 중요시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 황룡왕님의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그들에겐 쉽게 그것을 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다르지요." 챠렌은 황룡왕의 말을 받아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 그리고 이번일에 있어서 천제가 훼이님을 들먹인 것은 단지 구실에 불과 합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천제들의 의중은 파악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대 체 그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건지....." " 다들 생각하시는 것이 있겠지만 이대로 천제의 의도가 이루어지게 내버 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수명을 관리하는 일 이외에는 별다른 일조차 하 지 않고 있는 천제에게 우리 용족들이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조금도 없지 않 습니까. 지금까지 잘 지켜져 오던 묵계를 깨뜨리려 하는 것은 천제 쪽이고 말 입니다." 회합 내내 훼이는 아무말 없이 그저 용왕과 용왕비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 다. 처음에는 훼이의 존재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내던 그들은 시간이 지 나자 곧 평소처럼 활기를 띈 논쟁을 이어갔다. 내게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왕으로서 저 자리에 앉아있거 나 벌써 세상을 떠난 후였겠지.... 그 생각을 떠올리자 훼이는 씁쓸함 보다는 시간의 무게를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지나간 후이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는 것 뿐이지.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분명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있는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며칠전까지의 자신은 그런 생각을 떠올릴 마음의 여유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저 마음속을 가득 체우고 있던 기 억이라는 이름의 과거의 잔상들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을 뿐이 다. 모두 시간의 강물속으로 흘러지나가 버린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훼이 에게는 언제나 바로 조금전에 벌어졌던 일처럼 생생하고 뚜렸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치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그것은 말 그대로 기억. 먼 과거에 사라 져간 기억의 단편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 .........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는 훼이님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만.." 훼이는 귓가에 흘러들어온 파이론의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돌렸다. " 천제를 우호적으로 대할 것인지 아니면 적대관계로 돌릴 것인지 둘중에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훼이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답했다. * * * " 왜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홍룡왕 란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채로 훼이에게 물었다. " 그럼 밝혀주기를 바랬나? 왕의 신분을 가진 자가 직접 그러한 행동을 했 다고 말이야." " 그건 날 위한 배려입니까." 신경질 적으로 들렸지만 딱딱하게 굳어진 목소리로 란은 다시 물었다. " 배려라....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난 그저 더 이상 복 잡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니까."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란을 잠시 바라보던 훼이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란은 눈으로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훼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 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막 훼이가 사실(私室)에서 벗어나려던 순간. 작게 울리는 목소리로 란 은 훼이의 발길을 붙잡았다. " ........한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당신도 제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 어머니의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까..." 그것은 무척이나 의외의 질문이었다. " 아니." 훼이의 대답은 무척이나 단호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란의 표정은 눈에 띄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그녀는 자신을 잊어주길 바랬지. 기억속에서 살아숨쉬는 건 원치 않는다 고 했었어." 란은 숨을 멈추고 훼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알고 있지 않나? 그녀의 성격이 어떠한지. 그녀는 구속되는 것을 싫어해." 하.... 헛웃음이 나왔다. 그랬었지..... 어머니는 누구보다 자유분방했어... 그리고 분명 아버지도 알고 있었을 거야. 어머니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도. 우습군......... " 그리고 어떻게 살았던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그녀의 삶이지." 란에게 마지막으로 그말을 건네고 훼이는 사실에서 나가버렸다. 홀로 사실안에 남은 란은 미친사람처럼 피식거리고 웃었다. 왜 나만이 몰랐지.........? 그 어린 동생들도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의 내가 훼이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지나간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데... 왜 나만이 그걸 모르고 있었지...... 이제는 허탈하게 들려오는 자신의 웃음소리를 망연한 표정으로 흘려들으며 란은 눈을 감았다. 어머니....... 그런 삶이었어도 행복하셨습니까. 제가 본 당신은 항상 그늘진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구요... 제가 그릇된 행동을 한겁니까...? 이제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할 어머니를 향해 란은 묻고 또 물었다. ================================================================== 음... 오랜만에 낮에 글을 쓰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방금전에 뭘 좀 먹었더니 졸리군요... 다음주부터는 수업도 들어야 하고 해서 바빠질텐데... 역시 사람은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합니다...^^ 전 사람의 기본 수명인 78년(맞나....)을 다 살라고 하면 살기 싫을 것 같습니 다. 하지만 훼이처럼 천년 넘게 살라고 하면 살고 싶어요 ^^ 제 두눈으로 세 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리고 제 소원인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을 읽는 것을 이루고 싶거든요... (허무맹랑한 소원이죠 ^^) 늘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아... 그리구요. 저희 만화 동아리 다음 회지에 흑룡의 숲의 만화 원고가 실릴 예정입니다. 혹시 그때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제게 말씀해 주세요. 그리구 또 한가지. 나중에 돈모아서 흑룡의 숲 제본해볼까 생각중이에요..^^ 제가 쓴 글중에서 기억에 남는 글이 될 것 같아서요. 제본해서 애독자 분들한 테 선물로 드려야지. ^^ (이왕이면 만화 원고도 같이...)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번 호 : 2070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8일 00:2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四. 흑룡의 숲 제 12장 바램... 四. " 이렇게 강물에 작은 돌을 하나 던지면 작은 파문이 일어나지. 하지만 그 작은 파문은 강물 전체로 퍼져 나가게 된다." 유안은 미동조차 없이 강물을 바라보며 훼이의 말을 들었다. "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유기적인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지. 자신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더라도 작은 움직임 하나가 많은 것을 바꿀 수도 있다." " 그게 바로 질서라는 것인가요?" 훼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용족으로 태어난 이상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용족에게 주어진 책임 은 그 조화의 틀 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이니까. 그리고 유안. 너는 앞으로 라 이엔의 뒤를 이어 흑룡족을 이끌어가야할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 저....." 유안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멈췄다. 몇번이고 이 말을 해야할지 망설였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전히 강물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겨우 주저함을 버리고 유안은 입을 열 었다. " 제가 왕이 된 후에도 함께 궁에 머물러 주세요. 아무것도 해주시지 않아 도 좋아요. 그저 백부님이 곁에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제겐.... 큰 위안이 될테 니까요." 훼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지금 대답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언제든지 백부님의 마음이 허락하 는 그날. 제게 답을 주세요. 제게 주어진 그 시간동안 이라면 기다릴 수 있어 요." " 그래......." 낮게 한숨을 내뱉듯이 훼이는 대답했다. 조금 전 훼이가 던졌던 작은 돌은 금새 강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린 후였다. 그 돌이 던져진 후에 생겨난 작은 파문도 금새 사라져 버린 후. 강은 아무 일 도 없었다는 듯이 보통때와 마찬가지로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자신의 커다란 줄기에 모든 것을 품고서. " 어쩌면....... 모든 것은 한순간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안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훼이의 눈동자에서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무겁지 않은 깊은 빛을 보았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지. 과거는 과거인채로 그대로 흘려버리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훼이의 말은 유안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틀안 에 묶여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던 훼이 자신에 대한 책망도 담겨 있는 것이었 다. "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그래... 하지만 너무 지나친 것은 좋지 않은 것이지. 지나치게 하나에 얽 매이면 눈앞에 있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는 법이니까." " 전 아직 모르겠어요." 어리둥절함을 담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안을 보며 훼이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자신의 피가 흐르고 있는 어린 조카. 출렁이는 푸른 물살과도 같은 유안의 푸른 눈을 볼때마다 훼이의 마음속에서 는 지금까지 품어오지 못했던 감정의 자락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맑은 눈동자에 항상 밝은 빛을 담아주고 싶다. 그것이 지금 훼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 이제 돌아가도록 하자." 유안은 훼이가 내민 손을 잡고 강둑에서 일어섰다. " 백부님. 상처에 찬바람은 좋지 않다고 들었어요. 제가 괜히 이곳으로 나 오자고 한 것은 아닌지...." " 걱정 말거라. 오랜만에 좋은 경치를 구경했으니까." 훼이는 유안의 손을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실로 오랜만에 훼이는 자신 이외의 다른이의 온기를 피부로 느끼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손바닥을 타고 퍼져나가는 유안의 온기는 기분좋게 훼이의 마음을 감싸고 있 었다. * * * " 이번일은 우리 용족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모두들 최선을 다하도록." " 네. 전하." 라이엔은 본궁의 입구에 정렬해 있는 20여명의 청년들을 바라보며 진중한 얼 굴로 말을 이었다. " 최대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을 잊지마라." " 염려마십시오. 전하." 마치 한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청년들의 목소리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울려 퍼졌다. " 그리고 이번일을 선두에서 이끄실 분이다." 라이엔의 말과 함께 훼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무 늬도 없는 검은 색의 긴 파오를 걸친 채 나타난 훼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 금고 있었다. " 아....." 도열해 있던 흑룡족의 청년들 사이에서 가벼운 탄성이 일었다. 누군가가 나서 서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귀에 못이박히도록 들어온 훼이의 모습은 바로 지 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와 일치했다. 고개를 끄덕여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 훼이는 말을 꺼냈다. " 나는 길게 끄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번 결정을 내린 이상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훼이의 목소리는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똑똑히 전달 되었다. " 그럼 내일 이 자리에 다시 모이도록. 그리고 내일을 위해 오늘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게." " 네." 절제된 대답 소리가 흑룡궁 안에 울려퍼졌다. " 용족과의 전면전인가........" 흑룡궁의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나무 기둥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가화는 자신 에게만 들릴만큼 작은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설마 용족들이 이렇게까지 강경한 반응을 보일줄이야.... 그리고 훼이까지 직접 움직일 결심을 할 줄은..... 이번일은 확실히 불리했다. 지난번의 싸움으로 상처를 입은 대부분의 검선들 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멀쩡한 얼굴로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훼이의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데에는 변 함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천군들의 수가 많긴 하지만 그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천군 대장 인 지인부터가 천제의 태도에 회의적이지 않은가. 이 사실을 전한다면 천제는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막아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용족들의 힘은 자신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강하다. 더군다나 하나도 아닌 많은 수의 용족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천군이 나 검선들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다시 그들의 힘을 빌려야하나.... 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이다. 아무리 위험한 경우라고는 하지만 천상계에 몸을 담고 있는 천인으로서의 자 존심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 후......." 신경을 써서 인지 아물지 않은 상처가 아파왔다. 결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우리들 검선이 모인 것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해야할 일..... 생각은 길었다. 하지만 행동은 신속했다. 결국 마음이 내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화는 또 다시 몸을 움직이고 있었 다. ================================================================== 하핫... 오늘 이승환의 '당부'라는 노래의 뮤직 비디오를 봤는데요. 보는 순간 바로 저건 화란의 이미지 테마야! 라고 느꼈습니다. 정말 멋진 뮤직 비디오 였어요.... 한순간 눈물이 나올 듯.... 기회가 된다면 꼭 보시길. 정말 감탄하실 거에요. 이번주 일요일까지 이벤트 모집하니까요. 참여해 주시구요. 오늘 저는 무지하게 기분나쁜 일이 있었습니다. 그치만 제 힘으로 해결할 수 도 없는 일이어서 괴로웠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요. 환절기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2108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9일 01: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4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五. 흑룡의 숲 제 12장 바램... 五. 유에린은 패했다. 하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직접 현무족의 청년과 대결을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유에린은 그때의 오라 버니가 어떤 심정으로 그 싸움에 임했을지를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니가 늘 열망하던 강한자에 대한 동경. 그것이 그때의 싸움을 부른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유에린 역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강한자와의 대결을 통 한 즐거움을 알았다. 그것은 훼이와의 대련 때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한 감각이었다. 훼이와의 대련에서 그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어쩌면 힘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멋진 대결이었습니다." 현무족의 청년은 강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신념 을 가진 그런 눈을. 유에린은 대답없이 고개를 숙였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자신을 얽매이게 만들 었던 집착을 벗어던질 수 있었기에 무척이나 홀가분했다. 유에린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나갔다. " 저...." 현무족의 청년은 싸움에 임했을때의 무서울 정도로 진지했던 태도와는 반대 로 머뭇거리는 기색을 애써 감추며 유에린을 불러세웠다. " 무슨 일이시죠?" 걸음을 멈춘 유에린은 고개를 돌려 현무족의 청년을 응시했다. "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유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떠올렸다. " 청룡족 유에린이에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유에린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현무족 청 년은 작게 중얼거렸다. " 유에린....." * * * " 앞을 방해하는 자는 신속히 물리치고 천제의 집무실을 점거하도록." 천상계에 도착하자마자 흑룡족의 청년들에게 훼이가 내린 명령은 그것이었 다. 예전부터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신 속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부상을 입은 몸이기는 했지만 훼이가 직접 공간을 여는 술을 써서 천제의 집 무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훨씬 수월한 길이었다. 하지만 훼이는 그것을 택하지 않았다. 천제의 의도는 모든 영수족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서는 것. 인간들이 그렇듯 이 그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었다. 그리고 그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은 훼이 바 로 자신이었기에. 더 이상은 물러서지 않아.... 언제까지고 내가 가진 이름은 용족이라는 두글자다. 용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그 이름이 가지는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것은 용족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푸른 물의 용인 청룡족들도, 흘러가는 자유를 품고 살 아가는 바람의 용인 백룡족도, 산개하는 불꽃처럼 격렬한 불의 용인 홍룡족 도, 중용의 자세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지의 용인 황룡족들도. 그리고 고요 하고도 격렬한 태풍과도 같은 대기의 용인 흑룡족들도 그러했다. 각기 다른 이 다섯 용족들을 묶는 단 하나의 단어는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다섯가지 질 서를 다스리는 자인 용족이라는 말이었다. 흑룡족의 청년들은 훼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민첩하고도 신중한 움직임 을 보였다. 공간에서 빠져나가자 마자 천상궁 안으로 하나둘씩 숨어들어갔다. 해질 무렵 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기 때문에 흑룡족들이 걸치고 있는 검은 색의 파오는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것 때문이라도 그들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재빨리 행동해야 했다. 훼이는 20여명의 흑룡족 청년들이 천상궁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난 후에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의 시간.... 현재의 시간을 직시하기로 한 이상 그 시간을 영유하는데 방 해가 되는 것은 없애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훼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흑룡족의 누군가가 공격주문을 사용한 듯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공격 주문의 여파는 금새 사라지기는 했지만 훼이는 그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서둘러야겠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훼이는 움직였다. 언젠가 들어선 적이 있던 거대한 상 천궁의 문을 지나치고, 수풀처럼 우거진 넓은 정원을 지나쳐 상천궁의 중심 부에 자리한 천제의 집무실이 있는 그곳으로.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훼이가 본궁에 도착함과 거의 동시에 방어주문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엷은 검은 색의 막이 둘러쳐졌다. 그리고 싸늘한 빛을 토하는 은색의 칼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선들인가..... 과연 빠르군... 훼이는 어느정도의 거리를 둔채 싸움의 양상을 지켜보았다. 이미 훼이와의 대결을 통해 용족들의 방어주문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알고 있는 검선 들은 주문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체력을 바닥나게 하기위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칼을 휘둘렀다. 방어주문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흑룡족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상대는 바로 검선들이었다. 천상계의 지배자인 천제의 직속 호 위로 불리는 검선들이 가진 것은 단지 검술만은 아니었다. 영수족들과는 다른 약한 몸으로 싸워나가기 위해 천인들이 선택한 것은 오랜 수련을 통해 갈고 닦은 도술(道術) 이었다. 훼이와의 싸움때에는 쓰지 않았던 그 힘을 검선들은 다수의 흑룡족들을 상대 하기 위해 쓰고 있었다. 그녀들의 특기인 검술에 그동안 길러온 그 힘을 실 어 검을 휘둘렀다. 탁.탁. 많은 수의 인원들이 싸움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방어주 문의 막에 검선들의 검날이 부딪히며 울려퍼지는 소리. 단지 그것 뿐이었다. 눈에 띄게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검선들은 얼굴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훼이의 힘에 의해 얻은 상처는 그리 간단히 나을 정도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싸움을 지켜보던 훼이는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검선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었다. 검선들의 괴로움은 익히 알고 있으니까..... 훼이는 속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바로 지난번의 싸움에서 보았던 대로 훼이의 두 손안에는 검은 기운이 둥글 게 뭉쳐들기 시작했다. " 화선들은 평민 중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을 골라서 뽑는 자리지만 검선은 달라. 그녀들은 천제의 명에 거역할 수가 없지. 귀족의 신분이긴 하지만 그녀 들의 삶은 화선보다 나을 것이 없어. 검선으로 발탁되는 그 순간 검선의 가족 들은 천제의 볼모가 되는거야. 그리고 가족들중에 여인들은 모두 천제의 여자 가 되는 거지. 항상 그래왔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야." 그것은 언젠가 수백년도 더 된 과거에 친우인 성휘로부터 들은 사실이었다. 성휘의 연인이었던 연화라는 이름의 여인이 바로 그 검선이었기에. 다른이들 에게는 여인으로서 올라설 수 있는 최상의 지위로 여겨지는 그 자리에 있으 면서도 다른 누구보다 냉정하고 감정없는 여인들이 되어야했던. 그리고 결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음미하면서 살아갈 수 없었던 그녀들에게 검선이라는 이 름을 안겨준 천제. 자신을 핑계로 용족들을 자신의 아래에 두려고 하는 천제의 태도보다도 그릇 된 지배로 천상계의 모든 이들에게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빼앗아가버린 천제 에 대한 분노가 지금의 훼이에게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친우의 죽음 앞에서도 그리고 그런 친우의 연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계로 내려가 버렸을 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슬픔으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을.... 끓어 넘치는 그 분노를 천상계에 폭 풍을 부르는 것으로 대신하는 수 밖에는. 지금까지의 검선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여겨졌던 전전대 천선의 장. 천의 직급을 가졌던 연화. 화선소생의 왕자 성휘와 볼모로 잡힌 가족을 위해 어릴때부터 검 이외의 것 에는 눈길조차 주지않고 자라왔던 연화와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훼이 자신이 알 수 없는 인연의 힘에 이끌려 화연을 만나고... 또 화 란을 만났듯이. " 천상계는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곳이야.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어도 떠날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 누구나 그렇듯 자신을 낳아준 땅은 소중한 법이 니까." 오랜만에 천상계로 되돌아와 익숙한 풍경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을 보아서 일까. 지금의 검선들을 보며 이야기 한번 제대로 나누어 보지 못했던 그녀의 기억 이 떠오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오늘은 노트북으로 통신을 했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자판이 작은데다가 모 여 있어서 치기가 힘들었어요. 독수리 타법인 저는 더더욱...-- 지금까지 다섯분이 응모해 주셨는데요. 과연 이중에 맞추시는 분이 계실 것인 가....음... 아직 하루 더 남았으니 이벤트에 참여하실 분들은 참여해 주시길... 오늘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아는 언니가 자기 소설을 멋지게 제본해서 가 지고 온 것을 보고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우웃...나도 빨리 돈모으자! (우흑.......나도 제본하고싶어...할꺼야! 해야지....) 우오옷....오늘 또 추천을 두 개나 받다니...감개가 무량 하옵니다....흑... 썰렁한 결말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사옵니다... 그리구요. 외전을 써야 묻힌 이야기가 연결이 되는 것인데 지금 본편 쓰느라 정신이 없으니...원.. 외전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쓰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 번 호 : 2153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30일 01: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六. 흑룡의 숲 제 12장 바램... 六. 가화는 이를 악물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집어 넣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자꾸만 아래로 향하는 손은 이미 그녀의 체력에 한계가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은 아직 검을 쥘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결국 오른손을 스치고 지나간 검고 날카로운 기운에 의해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졌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난 것은 바로 그말이었다. 검선들은 손에 검을 지니고 있을 때 최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반 대로 검을 떨어뜨리는 순간 그녀들은 보통의 여인들보다 강인하고 냉정한 사 고를 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이 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녀들을 보통의 무기력한 여인으로 되돌려 놓을 만큼. 그들의 도움을 얻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아니야..... 가화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치긴 했지만. 그리고 자신이 검을 놓음으로 해서 그녀의 주군인 천제는 더 이상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긴 했지만. 그녀는 지금 안도하고 있었다. 그들..... 죽은자들. 더 이상의 안식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삶의 굴레에 묶여 시 간속을 떠도는 자들. 그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신들의 힘 만으로 지금까지 버텨냈다는 생각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적어도 난 천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지켰어...... 자신의 선택이 비록 지금 천제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긴 했지만 가화의 마음 은 가벼웠다. 패배보다 더 싫은 것은 자존심을 꺾이는 것이기에. 가화의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그 순간 다른 검선들 역시 손에서 검을 떨어뜨 렸다.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절묘하게 그녀들의 손목을 쳐서 검을 떨어 뜨리게 만든 검은 기운은 그저 시큰거리는 통증만을 전했을뿐 지난번의 싸움 에서와 같이 몸을 부술듯한 고통을 주지는 않았다. " 아....." 그녀들은 자신들을 스쳐 지나가 천제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용족들을 보 며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전의 공격은 더 이상의 피해를 내지 않게 하기위한 훼이의 배려였다는 것 을. 덕분에 검선들은 피로가 누적되는 고통을 견뎌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흑룡족 청년들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고마워요.... 가화는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마음속에 우상처럼 자리잡은 그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연화님처럼 검선이라는 이 굴레를 벗어던져버리고 싶지만 내게는 그런 용기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무는 것 뿐.... 오래전의 그녀는 그랬었다. 천제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음을 한탄하며 천상계를 떠났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동안 한겨울의 얼음처럼 굳어져 있던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녀는 모든 것을 벗어던졌다. 비록 그 얼음을 녹 인 것이 슬픔이라는 이름의 이별이긴 했지만. 연화라는 전전대 검선의 장이 천제로부터 받았던 최후의 명령. 그녀가 천상계 를 등지기 전에 받았던 최후의 명령은 바로 조금 전 자신의 눈앞을 지나쳐간 훼이를 없애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신 품속에서 검선의 장이라는 지위를 나타내는 검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당한 태도로 상천궁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단 한마디의 말도 내뱉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 에는 말로 하는 것 보다도 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천상계를 떠나 하계로 내려간 그녀는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 다. 사랑하는 이의 친우였던 훼이의 앞에도. 그리고 가족들의 앞에도. * * * 천제는 작은 동요조차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분명 훼이를 비롯한 흑룡족들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텐데도 그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천제의 모습을 바라보는 훼이 역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저 조용히 관망하는 시선으로 천제의 모습을 응시할 뿐이었다. 훼이와 함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흑룡족의 청년들은 곧 훼이의 손짓에 의해 세명을 제외 하고 모두 밖으로 빠져나갔다. 비록 검선들이 물러나기는 했지만 천제를 호위 하는 것은 그녀들 뿐이 아니었다. 싸움을 할 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 던 천군들도 분명 천제의 안위를 위해 나설것이 분명했다. 한동안 적막만이 방 안을 떠돌았다. " 충분한 방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군." 여전히 바삐 손을 움직이면서 천제가 입을 열었다. 중후함도 그렇다고 깊은 위엄이 담긴 것도 아닌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아버지를 닮았군." 훼이의 그 말에 천제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차가우면서도 단정해 보이는 천제의 외관은 분명 전 천제 였던 오현의 모습과 흡사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그 두눈에 떠오른 빛이었다. 지금 천 제의 눈에는 낮게 억제된 욕망이 내제되어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잔혹함이 라는 색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여성편력의 소유자였던 것처럼 그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는 권력이 라는 이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고 있었다. " 훗..... 나는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하지....." 설사 그것이 아버지라고 해도. 천제의 다음말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혼자 되새겼을 뿐. 피식거리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천제는 말을 꺼냈다. 눈 앞에 선 것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흑룡족의 오래된 자. 훼이를 똑바로 응시하 며. " 그대는 이미 죽었어야 할 자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왔지? 설마 내게 직접 죽음을 전해달라고 온 것은 아니겠지?" " 수명부에는 내 죽음이 언제라고 명시되어 있지?" 훼이는 대답대신 질문을 던졌다. " 그걸 꼭 밝혀야 하나? 잊고 있나본데 모든 살아있는 자들의 수명을 볼 수 있고 또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지.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 가 눈앞에 있다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어." " 대답을 회피하는 것을 보니 그대의 말은 거짓인가보군." 훼이는 깊은 빛을 담은 검은 눈으로 천제를 응시했다. " 내가 거짓을 가지고 그대의 죽음의 정당성을 따졌을 것 같은가? 직접 확 인해 보는 게 어떨는지..." 그렇게 말하며 천제는 책상위에 놓여있던 몇 개의 두루마리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냈다. 하지만 그는 집어든 그것을 바로 훼이에게 건네주지는 않았다. "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지 약조 하는 것이 어때..." " 약조라....." 훼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 훼이. 그대의 수명이 수명부에 적힌 수명을 초과한 것이라면 그대는 순순 히 생명을 내놓아야 할거야. 그렇지 않으면 가장 오랫동안 천계의 땅에서 살 아온 그대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되겠지." 그렇게 말하는 천계의 표정은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마 치 어린아이가 곤충을 가지고 장난을 칠때와 같은 순수한 잔혹함이었다. " 내가 왜 그런 약조를 해야하지? 천제라는 이름이 그토록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훼이가 당연히 동의한다는 대답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천제로 서는 그 예상과 어긋난 그의 대답에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 그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평정심은 조금씩 흔들렸다. " 그리고 나는 이름 때문에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 아니야." 대답을 건네는 훼이의 얼굴에는 작은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았다. " 하지만 그대는 살아있음으로 해서 정해진 질서를 어기고 있다." " 질서? 그 질서는 누가 정한 것이지. 그대가 정했나?" 날카롭게 반박해오는 훼이의 모습에 천제는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이자는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인가.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생 긴 자긍심 때문인가?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다. 용족이 계절이라는 자연 순환의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자신은 수명이 라는 살아있는 자들의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을거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를." 천제는 천천히 손을 뻗어 훼이에게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 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래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 미색의 종이는 매끄러운 촉감을 전하며 훼이의 손으로 넘어갔다. 수명부(壽命簿). 살아있는 모든 자들의 수명이 적혀있는 생과 사의 집합서. 자신의 수명부를 받아든 훼이의 손은 무슨 이유때문인지 조금씩 미미한 흔들 림을 보이고 있었다. =============================================================== 우엥...오늘은 아르바이트 예정시간보다 한시간이나 초과하는 바람에 밥도 못 먹고 괴로웠어요. 역시 만화 이벤트 회사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그런다고 돈 더 받는 것도 아닌데...우흑.. 음...이벤트 마지막날이었는데 전부 8명이 응모해 주셨습니다. (예상보다는 많 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지만....) 음.. 그중에 맞추실 분이 계신 듯...^^ 발표때까 지 기다려 주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번 호 : 2178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31일 00:3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3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七. 흑룡의 숲 제 12장 바램... 七. 훼이는 자신의 수명이 적힌 두루마기를 받아들고 한동안 그 무게를 느꼈다. 천상계의 천제들이 관리하는 일명 수명부(壽命簿)라고 불리는 그것. 그저 종이에 불과한 그것이 모든 살아있는 자들에게 구속을 안겨준다는 사 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 왜 펼쳐보지 않지? 진실을 아는 것이 겁나나?" 천제는 노골적인 비난이 담긴 목소리로 훼이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훼이는 천제 쪽은 돌아보지 않은채 여전히 두루마기를 조용히 응시했 다. 용족에게 주어진 천년이라 시간은 이미 아버지로 인해 깨어졌다. 그리고 자신 은 더 이상 얽매인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것. 종이에 불과한 수명부가 지금 자신을 다시 얽 어매려 하고 있었다. " 나는 더 이상 과거속에서 살아가지 않아......" 나지막하게 울려퍼진 훼이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 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직 그 말을 내뱉은 훼이 이외에는. 훼이는 천천히 들고 있던 오른손 위의 수명부에 왼손을 올렸다. 미끄러질 듯 한 매끄러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칠지도 않은 마치 비단과 포목을 섞어 놓은 듯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일은 미처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훼이가 내뱉은 말 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훼이의 손에 들려있던 두루마기가 날카로운 칼날에 잘린 것 처럼 조각조각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것이 무슨일인지 알 수 없었다. 눈꽃처럼 잘게 부서진 종이조각만이 바닥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무...무슨 짓인가!" 한참이 지나서야 상황을 파악한 천제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극도의 당혹감에 휩싸인 천제의 모습을 바라보며 훼이는 지금의 상황에 어울 리지 않게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 보시다 시피... 수명부를 없앴을 뿐이지. 당신이 원했듯이 이제 난 세상에 서 사라진 존재가 되었어. 그렇지 않나?" 지독히 역설적 이었지만 훼이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 대체....대체....." 천제는 무슨말인가를 하고 싶은 듯 했지만 결국 한 단어만을 반복할 뿐이었 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그 순간부터 나는 이렇게 하고 싶었는지 모르 지... 훼이의 시선이 닿은 집무실의 바닥에는 잘게 찢겨진 종이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제는 그 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무척이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갇혀있던 자신의 마음이 진정한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 왔다 고 해야할까. " 수명부를 없애다니........" 훼이의 행동이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는지 천제는 넋나간 사람처럼 텅빈 눈을 하고 있었다. " 하고 싶은 대로 행한다. 그것이 이제 부터의 내가 걸어갈 삶이지." 천제는 훼이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최대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던 수명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없 애는 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실로 거대한 충격이었다. " 어째서지? 어째서......" " 이유를 묻나?" 수전증에 걸린 환자처럼 손을 떠는 천제를 바라보며 훼이는 나지막한 목소리 로 물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수명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 그 속에 는 한 사람이 살아가야할 삶의 길이가 정해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내용까 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 결국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 아니었던가?" " 그건 괘변이야!" 천제는 집무실 전체가 울리도록 크게 소리질렀다. " 물론 궤변이지. 하지만 난 딱딱한 질서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표현할 수 있는 궤변쪽에 더 마음이 끌리는데." 천제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바닥에 흩어져 있는 수명부의 조각 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정신나간듯한 행동을 모고 자리에 있던 세명의 흑룡족 청년들은 눈쌀을 찌푸렸다. 저런 행동이 과연 천상계라는 곳을 다스리는 천제가 할 행동인가.... 분명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그 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훼이는 흔들림없는 조용한 시선으로 그런 상제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 아무리 당신이 천제라 해도 사라진 것을 되돌릴 수는 없어. 설마 그걸 모 르는 건 아니겠지?" " 그대는 죽어야 할 자다! 이렇게.... 이렇게 허망하게 그 증거를 놓칠 수는 없지." 분명 천제에게 누군가를 공격할 만한 힘이 있었다면. 아니 용족인 훼이를 이 길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훼이를 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힘을 가지지 못했고 다만 광기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그 것은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볼썽사나운 것이었지만 천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다른 이의 우위에서 명령을 내려오던 오만함 뿐 이었다. " 나가지." 훼이의 말에 천제와 훼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세명의 흑룡족 청년들은 자세를 바로 하며 훼이의 뒤를 따랐다. 뒤에서는 계속 천제의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어느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 다. 훼이가 문을 열고 천제의 집무실에서 빠져 나왔을 때 밖은 흑룡족 청년들과 천군들과의 팽팽한 대치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공격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천군들은 검선들조차 무릎을 꿇게 만든 용족. 그중에서도 흑룡족들을 상대해 야 한다는 중압감에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하지만 훼이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건넨 한 남자에 의해 그 상황 은 금새 깨져버리고 말았다. 보통의 천군들과는 다른 무복을 입고 있는 것으 로 보아 그가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 그건 무엇에 대한 감사지?" 훼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남자. 천군대장 지인은 고개를 들고 훼이를 응시 했다. " 상제께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신 것..... 그리고 검선들에게 배려를 해주신 것을...." 분명 집무실 안에서 일어났던 일을 직접 봤을리는 없었지만 지인은 마치 그 상황을 겪었던 것처럼 말했다. " 이제 천상계는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 될지 나쁜 방향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과는 달라지겠죠." " 이제 두 번다시 천상계에 발을 들이는 일은 없을테지..." 그냥 흘려버리는 말처럼 훼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오늘로 나와 천상계를 이어주던 모든 인연은 사라졌으니까...." 그리고 나서 훼이는 흑룡족의 청년들과 함께 상천궁을 걸어나갔다. 스무명이 넘는 흑룡족들이 동시에 걸어 나가는 모습은 정해진 질서는 없었지만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인은 다시 훼이의 뒷모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조금전의 인사는 감사의 인사였지만 지금의 것은 오래된 자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담은 것 이었다. ============================================================== 음...멋지게 표현하려고 했는데 잘 안돼네요... 헤헷..^^ 글발만 받쳐준다면 진짜 감동의 물결이 우러나게 쓰는 건데. 왠지 시시해 졌 습니다. 잠깐잠깐. 오늘이 끝은 아닙니다. 아직 13장이 아직 남아있어요 ^^ 근데 이벤트 정확히 맞추실 분은 안계시네요. 대충 비슷한 분께 상품을 드려 야죠. 암튼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ps) 생각해 보니 제 독자분들은 20대 이상이신 듯 합니다. 우웃. 기분좋아 ^^ 번 호 : 2201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01일 01: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3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3장 一. 흑룡의 숲 제 13장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순리대로 시간이라는 이름의 강물속에 녹아든다. 그 강물은 결코 멈추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을 향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통과해 흘러간다. 一. 환계의 땅은 천계와 그다지 다른 느낌을 전해주지는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의 고향인 환계의 기린족의 영토를 방문한 기억을 가 지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희미한 기억일 뿐이었다. 유안에게는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기억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환계의 땅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 나도 집에 돌아가는 것은 오랜만이라....." 유안을 안내해주고 있는 것은 유안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은회색 머리카락 을 가진 청년이었다. 흰색의 깔끔한 무복차림을 하고 있는 그 청년은 눈에 띄게 활기찬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 어때? 천계와 다를게 거의 없지?" " 으....응."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유안은 청년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 그런데 세인. 30년만에 집으로 돌아간다는게 사실이야?" 세인이라 불린 청년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 백호족들은 원래 그래. 집이라 해도 오래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 그래..... 듣긴 했지만 사실이라니 신기한데?" 걸음을 옮길때마다 유안이 걸치고 있는 긴 파오의 소매가 흔들렸다. 유안은 흔들리는 파오 자락을 바라보며 엷게 미소지었다. 백부님이 직접 성년식의 노래를 불러주실 줄은 몰랐었지.... 물론 끈질기게 졸라대긴 했지만. " 그렇다해도 넌 기린족의 피가 섞여 있으니까 환계에 오는게 처음은 아닐 텐데..." " 아... 그게.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계자가 되어 버렸거든. 그래서 거의 흑룡궁 안에서 지냈어. 기린족의 영토에 가본 것도 딱 한번 뿐이야." 세인은 알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 그건 그렇고 흑룡족에게 푸른 눈이 어울릴 줄은 몰랐어." 세인의 말에 유안은 대답없이 웃어보였을 뿐이었다. " 나도 다음에 용족 여인하고 혼인할까? 그럼 내 아이는 무적이 될텐데...." " 그럴지도 모르지." 무척이나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세인에게 맞장구쳐 주면서 유안은 생각에 잠 겼다. 유에린은 잘 지내겠지.... 성년식때 보고 그 이후로는 보지 못했는데... 벌써 12년이나 시간이 지났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유에린은 오직 현무족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마음만을 가지 고 끈질기게 힘의 운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녀의 끈기는 실로 감탄할 만 했지만 결국 그녀는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패배가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을 준 듯했다. 유에린의 얼굴에는 더 이상 굳어진 긴장 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안은 유에린과 함께 지냈던 숲에서의 시간을 마음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보통의 일족들과는 다른 특별한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천계에 돌아가면 유에린의 소식을 물어야겠다고 유안은 결심하고 있었다. " 여기야." 세인은 대나무 숲 사이로 길게 나있는 오솔길을 가리켰다. 성년을 맞이한 이후. 유안은 하계로 내려가 수행을 계속했다. 틈틈히 후계자 로서의 공부를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1년의 대부분을 하계에서 보 낸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유안은 하계의 매력에 듬뿍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마찬가지로 같은 곳에서 수행중이었던 20살 위의 백룡족 청년 세 인을 만났다. 1년전의 그 만남 이후로 둘은 항상 같이 수행을 다녔다. 그리고 혼자 수행을 다니던 때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둘은 짧은 동안 금새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유안의 나이 112세. 지금의 유안은 애띤 소년의 티를 벗어버린 어엿한 청년 이었다. 엉덩이 까지 길게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과 흑룡족 특유의 흰 피부. 눈에 띄는 푸른색의 눈동자. 그리고 흑룡족의 후계자로서 가진 강한 힘. 지금의 유안에게는 자신의 몸 하나만큼은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과거에는 반항도 하지 못한채 쓰러져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명계에 끌려갔었던 그리 좋지만은 않은 과거의 기억은 유안에게 더욱 강한 힘 을 구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유안을 바뀌게 했다. " 가자." 생각에 빠진탓에 걸음이 느려진 유안을 재촉하며 세인은 손을 내밀었다. * * * " 함께 갈까?"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망설임의 기색이 배어 있었다. " 지금까지 늘 혼자 갔었던건 아직 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 야 하는건가....." 한숨섞인 남자의 말을 듣고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 아니에요.... 전 단지..." " 후.... 그래.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테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 리겠어." 그녀는 곧 자신이 방금전에 보인 태도를 후회했다. 왜 자신이 다른이에게 그 의 모습을 보여주길 꺼려하 하는가. " 미안해요. 조금전에 한 말은...."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떠올렸다. 처음의 그녀에게선 볼 수 없었던 향기가 느껴지는 미소. " 같이가요. 당신을 소개해주고 싶어요." 그녀는 남자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망설일 필요같은 건 없잖아. 그때도 지금도 내 선택이었는 걸.... " 오랜만에 돌아가는 거라 많이 달라져 있을거에요. 하지만 그곳은 지금까 지의 날 품어준 곳이에요. 꼭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비로소 남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야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을 받아주었다는 생각에. 처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신의 무모함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만약 그때 도를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녀와의 만남은 좀 더 따뜻한 것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후회를 하기 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보여줄 것을 결심하 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의 그녀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그녀의 곁을 맴돈 끝에 지금은 그녀에게 남자로서. 그녀의 마음 깊숙이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내가 그녀의 슬픔을 만든 장본인이긴 하지만 난 내 행동을 옳지 않다고 여기지 않아. 오히려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그 일에 감사하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이 것은 그녀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지...... 조용히 그녀의 곁에서 나란히 걸음을 옮기던 남자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 는 그 생각을 지우며 여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 빨리 가는 편이 좋겠지? 당신이 내게 보여줄 것들이 너무나 기대가 되어 서 견딜 수가 없어." 여인은 자신에게 전해지는 남자의 체온을 느끼며 엷게 미소지었다. " 그렇다면 천계로 가는 공간을 열어줘요. 할 수 있잖아요." 남자는 잠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리 간단히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그녀에게서 손을 풀고 공간을 여는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계에 갈때마다 사용해 오긴 했지만 그녀의 앞에서 직접 주문을 사용해야하는 기분은 왠지 보통때와는 달랐다. ============================================================== 눈치 있으신 분들이라면 위의 남녀가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이제 진짜 결말이 다가옵니다.. 이번 13장 안에서 끝이 날거에요. 끝남과 동시에 모음집을 올리려고 지금 준비중입니다. 그리고 소장판 제본용 편집도 진행중입니다. 아마 9월 안에 제본을 할 듯. 제가 제본해서 드리고 싶 은 분들 아이디를 적어 놓았거든요. 다음에 메일을 보낼테니까 주소좀 알려주 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상쾌한 하루 되시길... 번 호 : 2202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01일 01: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3장 二. < 終 > 흑룡의 숲 제 13장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二. " 용족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풍겨오는 기운부터가 다른데?" 세인은 감탄했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꺼냈다. " 무슨일로 네가 그렇게 감탄을 다 하지?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건 백호족 이라면서?" " 그때는 천계에 대해 잘 몰랐으니까 그런 것이고.... 지금은 아니야." 유안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 역시 네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 게 아니었어...." 세인은 유안이 한숨을 쉬던지 말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 어나갔다. " 세인. 길도 모르면서 그렇게 나아가지 말라구." " 그냥 거대한 궁 찾으면 되는거 아니야?" 유안은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백호족과는 함부로 사귀는 게 아니었어... 내 사고가 다 혼란스러워 지 는 것 같군... 속으로 낮은 한탄을 하면서도 유안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걸음을 옮겼 다. 환계에 있는 세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백호족들이 한곳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넓은 집에 단 한명도 머물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안은 경악하고 말았다. 언제나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온 유안으로서는 아무도 없는 텅빈 집이 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것이었다. 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후. 이번에는 유안이 세인을 천계의 흑룡궁으로 데려가기로 하고 늦은 아침 길을 나선 것이었다. 공간을 열고 바로 흑룡궁으 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세인에게 용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 던 유안은 천계의 변두리 지역에 공간을 열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곳 저곳 을 안내해 주었다. 환계가 한적한 산속에 묻혀있는 듯한 곳이라면 천계는 그와는 반대로 활기차 고 많은이들로 가득차 있는 곳이었다. 많은 수의 용족들이 각자의 소임을 위 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모습과 곳곳에서 느껴지는 공간을 여는 파동. 처 음 천계에 발을 디디자 마자 세인이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영수족들도 각각 정해져있는 특유의 의복이 있었지만 용족들의 파오는 정말 용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에게 잘 어 울리는 옷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는 용족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나 할까. 유안이 걸치고 있는 파오와 세인이 걸치고 있는 무복이 다른 것처럼 같은 영수족에 속해 있긴 했지만 용족들과 백호족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풍기는 기운이 달랐다. " 진신(眞身)을 드러내고 뛰어다니고 싶은 느낌이 드는 곳이야. 하계에서만 느껴지는 것인줄 알았었는데." "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구. 하계에 있을 때 처럼 말 이야." 환계로 갈 무렵에는 항상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세인이었지만 하계에 있 을때는 거의 진신을 드러냈다. 그 때문에 누군가의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유 안은 백호를 데리고 다니는 존재로서 화제에 오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항 상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그런 유안과 달리 세인은 마음 내 키는 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인간들의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때 마다 곤욕을 치룬 것은 물론 유안이었다. 세인은 백호의 모습 그대로 있으면 그만이었지만 유안은 아니었다. 한번은 세인이 하계에 있는 나라중에서 꽤 큰 한 나라의 왕이 사냥을 하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바람에 유안이 크게 고생한 경험이 있었다. 인간들의 앞에서 함부로 용족의 힘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잠시 당황하다가 결국엔 세 인의 등에 올라타고 왕의 사냥터에서 빠져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 억거리지만 그때의 유안은 용족의 이름을 가진 자신이 한낱 인간 앞에서 등 을 돌리고 달아났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괴로워 했었다. 그리고 그런 유안을 보며 세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댔다. 후..... 이런저런걸 따진다면 항상 내가 손해지... 유안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 저게 흑룡궁이야. 유안?" 회상에 빠져있던 유안은 기대감에 가득 찬 세인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 렸다. 아직 점처럼 작게 보이긴 했지만 분명 세인이 가리킨 그것은 웅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흑룡궁의 모습이었다. " 맞아.." 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 " 이건...." 담소를 나누며 흑룡궁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둘은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주문을 감지하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몸을 움직인 순간 푸르고 투명한 빛깔의 수룡이 유안과 세인이 서 있던 자리 를 스치고 지나갔다. 수룡....? 누가 감히 천계에서 주문으로 동족을 공격하지? 유안은 엷은 당혹감을 얼굴에 떠올린 채 공격주문이 내뿜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낯익은 얼굴을 본 순간 유안의 얼굴에 떠 올라 있던 당혹감은 순식간에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몰라 어색한 미소를 떠올린 유안에게 그녀는 부 드럽게 미소지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 오랜만이에요. 유안." " 유에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유에린을 바라보며 유안은 그제서야 본래의 밝 은 웃음을 떠올렸다. " 친구분과 하도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길래 한번 장난을 좀 쳐봤어 요. 놀란 건 아니죠?" 예전의 유에린이라면 장난으로라도 자신에게 공격주문을 사용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에린은 가볍게 손을 들어올리는 움직임과 내뱉는 말 하나하나까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물론 예전의 그녀가 부자연스럽게 행동했 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유에린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전해 주었다. " 그런데 그분은....." 유안은 말끝을 흐리며 유에린의 곁에 서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의 진한 갈색머리를 늘어뜨리고 검은색의 소매가 긴 무복을 걸치고 있는 남자는 무척이나 단아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 얼마전에 저와 혼인한 현무족...... 류하에요." " ........혹시 그분이 바로......?" 유에린은 엷은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이란 정녕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유안은 지금 이 자리에서 재차 확인 할 수 있었다. 처음 대하는 자신이 보기에도 류하라는 남자의 눈에는 유에린에 대한 깊은 배려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배려보다 더 깊은 따스함도. " 축하해요. 유에린..." " 이봐. 유안. 난 소개도 안 시켜 주는건가?" 조용히 유안이 인사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인은 세차게 유안의 팔을 잡아 당기며 말을 걸었다. " 아.. 미안. 유에린. 이쪽은 백호족인 세인이에요. 저랑 하계에서 같이 수행 을 다녔죠." " 안녕하세요. 청룡족 유에린이에요." 듣기좋게 울려퍼지는 유에린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 흑룡궁으로 가는 길이죠?" 유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 12년만에 찾아가는 거라서 조금 설레이는 기분이에요. 너무 오랫동안 찾 아오지 못했던 것 같아서...." 유에린의 눈에는 지난 추억을 되새기는 듯한 옅은 설레임이 떠올랐다. " 함께 갈까요." 나란히 선 유에린과 류하에게 말을 건네고 나서 넷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유안의 성년식 이후로는 유안도 유에린도 거의 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 았다. 유안은 수행으로, 유에린은 류하와의 인연으로 인해 그동안 지내왔던 공간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유안은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고 나서 숲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에린도 마찬가지였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 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만큼은 더 이상 다가설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닌 그를 만나기 위해서. * * * 은은하고 엷은 향기가 피어오르는 복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정성 스레 손질되어 있는 장식물들과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수십개의 나무문들 을 지나쳐 유안과 유에린. 그리고 세인과 류하는 흑룡왕의 집무실 앞에 다다 랐다. 궁에 들어서자 마자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맞이한 궁내의 식솔들은 하나같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평소에도 밝은 그들이기 는 했지만 지금의 표정은 보통때와는 어딘가가 달랐다. 하지만 유안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똑똑. 평상시에는 하지 않았었지만 오늘만큼은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이기에 유안 은 예의바른 태도로 문을 두드렸다. " 들어오게." 안쪽에서 위엄있는. 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안은 앞장서서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유안의 뒤를 따 라 다른 이들도 걸음을 옮겼다. " 가져온 문서들은 우선 내려놓고 이쪽에 처리된 문서들을 좀 정리해 주겠 나? 아직 인장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말이야." 책상에 가득 놓여있는 문서들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기다렸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지..... 보좌관이 아닌가? 그는 문서를 들여다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올려 발소리가 난 쪽을 향해 돌렸 다. 그리고. " 백부님!" " 훼이......" 유안과 유에린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터져나왔다. " 어서와라. 유안. 그리고.... 유에린." 훼이는 담담하게 퍼져나가는 미소를 떠올리며 그들을 맞이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유안도 유에린도 입을 열지 못했다. 훼이가 이곳에 있을줄은. 그것도 왕의 집무실에. 예전에도 가끔씩 바쁜 라이엔을 도와주곤 했지만 훼이는 여전히 궁에 오랜동안 머물지 않았다. 그나마 그것도 많이 나 아진 것이라 여겼었는데 지금은.... 분명 훼이는 흑룡궁에서 생활하는 것이 틀 림없었다. 라이엔이 바래왔듯이... 그리고 유안이 바래왔듯이. 훼이가 원래 있었어야 할 곳. 흑룡족의 가장 오래된 자이자 왕의 피를 가진 훼이는 흑룡궁의 심처에 머물고 있는 것이었다. " 형님. 식사는 하시고....." 집무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훼이에게 말을 건네며 들어서던 라이엔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집무실안에 있는 반가운 얼굴과 낯익은 얼굴. 그리고 생소한 얼굴들. 하지만 라이엔은 금새 상황을 알아차렸다. " 언제까지 그렇게들 서있기만 할건가?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 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라이엔은 먼저 몸을 돌렸다. 집무실을 빠져나간 다른이들의 뒤를 따라 훼이역시 몸을 일으켰다. 복도에서 는 유안과 유안의 곁에 서 있던 백호족 청년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훼이는 그 소리를 들으며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까지 손에 들 고 있던 인장을 내려놓으며 잠시 집무실을 바라보았다. 후계자의 위를 버리고 난 후. 다시는 들어서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왕의 집무 실. 그리고 두 번다시 만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왕의 인장. 비록 지금의 자신은 현 흑룡왕인 동생을 도와주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다시 발을 들여놓은 이 집무실은 지금은 익숙한 장 소가 되어있었다. 훼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집무실의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리고 익숙한 몸짓으로 문을 닫고 복도에 발을 내딛었다. 자신이 그토록이나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그러나 그만큼 그리워했던 그 모습 들이 이제는 현재라는 이름으로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흑룡의 숲 終. ============================================================== 음...... 끝났습니다... ^^;;;; 이야기는 끝이 났으니 결론은 여러분이 내려 주세요. 아아... 돌 맞을 것 같아. ### 이벤트 발표입니다.... ### 정확히 맞추신 분은 없었지만 가장 근접해서 요춰주신 것은.... KOCE 후마 양입니다. ^^ 후마양... 축하합니다. 저한테 주소 보내주세요. 그리고 흑룡의 숲 자료사전에 보면 후기도 있는데요. 흑룡의 숲 소장판에 대 한자세한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보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사기 오라버니, 갈남자94님, CYPARK12님, 꾼2님, ELENOA님, 제이슨리님, IS4159님, GUNTOO님, KENKLEE님, 휘언니, 뱀파언니 께서는 제 아이디로 주소 보내 주시길... 인쇄작업이 끝나면 책 우송해 드릴께요 ^^ 지금까지 흑룡의 숲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_______________^ 번 호 : 2203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01일 01:3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30 건 제 목 : ? 흑룡의 숲 자료집 & 흑룡의 숲을 마치며 ? 흑룡의 숲 자료 사전 +++ 등장인물 설정 +++ <흑룡> 훼이 - 흑룡족. 나이 1394살. 용족에게 주어진 천년이라는 수명을 아버지인 전대 흑룡왕의 생명의 전승으로 인해 뛰어넘은 인물로 아직까지 자신의 모든 실력을 보인 적은 없다. 현재 친동생인 라이엔을 제외한 친 혈육은 모두 수명을 다해 죽 음을 맞이했다. 정해진 수명을 뛰어넘은데다 자신을 제외한 소중한 이들이 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폐쇠적인 성격으로 변해가지만 유에린의 등장으로 인해 과거를 하나둘씩 되새기면서 흔들리고 있다. 흑룡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새하얀 피부와 허리정도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 리를 가지고 있으며 외모는 600여세 정도로 보인다. 라이엔 - 훼이의 막내동생. 610세. 어린 시절부터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 훼이와 닮은 얼굴 윤곽을 가지고 있지만 분위기는 좀더 부드럽다. 유안 - 라이엔의 아들. 흑룡왕 후계자. 80세. 어머니의 영향으로 푸른눈을 가지고 있지만 외모는 라이엔과 흡사하며 훼이와도 닮아있다. 나이에 비해 강한 힘을 지 녔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미하 - 흑룡왕비. 기린족의 황녀 출신. 기린족의 특징대로 푸른 눈을 가지고 있 으며 고고하고 차분한 자태가 특징. 금발에 푸른 눈동자. <하계> 화연 - 훼이의 부인. 인간. 20대 초반에 훼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비를 낳고 세상을 떠난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용모는 아니지만 난초와 같이 청초하고 다부진 느낌을 주는 여인. 비(飛) - 훼이의 아들. 인간과 용족사이에서 태어난 교룡의 신분으로 두 개의 상반된 피가 섞이면서 생긴 부작용. 즉, 체력의 한계 때문에 명계에서 요희의 공 격을 받은 것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음. 비영 - 화연의 오라버니이자 비의 숙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몰락한 집안에서 동생인 화연과 둘만의 생활을 시작한 후 인생의 중반기에는 동생인 화 연을 위해, 그리고 후반기에는 조카인 비를 위해 삶을 산다. 평생 홀로 살았지 만 결코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 강인한 마음을 가진 인물. 60여세 후반에 세상을 떠남. <백룡> 파이론(白龍) - 제 26대 백룡왕. 625세. 언변이 뛰어난 인물로 중재자 역할을 많 이 한다. 애처가인지 공처가인지는 모름.. 챠렌 - 백룡왕비. 보좌관.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도 다른이들의 부러움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치장하 기를 즐기지는 않는다. 론 - 25대 백룡왕. <홍룡> 화란 - 제 29대 홍룡왕. 훼이가 후계자 시절부터 마음을 두고 있었으나 결국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같은 홍룡족의 남자와 혼인하여 두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을 낳는다. 700여세 정도에 목숨을 잃음. 훼이와의 나이차이는 200여년 정도. 붉은 머리카락에 연한 붉은빛을 띈 눈동자. 란 - 제 30대 홍룡왕. 화란의 아들. 759세. 어머니인 화란의 마음속을 죽을때까 지 차지하고 있던 것이 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짧은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있다. <청룡> 리판 - 제 29대 청룡왕. 리린 - 여. 청룡왕 후계자. 세류 - 제 28대 청룡왕. 유에린 - 청룡족 소녀. 137세. 고아소녀로 가까운 친척의 집에 맡겨져서 자라난 다. 그중 백여살의 나이차이를 가진 오라버니를 무척 따랐다. 그가 현무족과의 비무에서 목숨을 잃은 후 상대자였던 현무족과 자신이 직접 대결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훼이를 찾아와 힘의 사용법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고 그것이 받아들여 져 훼이의 곁에 머물고 있다. <황룡> 청류 - 제 26대 황룡왕. 403세. 서린 - 제 25대 황룡왕. <명계> 요희 - 명계의 지배자. 나이 불명. 성격이 무척이나 괴팍(사실은 지랄맞다^^) 자 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자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괴롭히려 한다. 남의 약점을 파 고드는 것을 좋아하며 어느 누구의 시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천오 - 청룡족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교룡. 나이 불명. 몇번이고 되살아나는 명계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방황하고 있다. 요희의 명령으로 비의 모습을 한 채 훼이의 앞에 나타난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기억에 많은 혼란을 보인다. 한마디로 약간 맛이 갔다고 할 수 있음. <천상계> 오현 - 황태자. 성휘 - 왕자. 연화 - 검선. 가진 - 오현과 성휘의 누이. 오현과 혼인. 이름미정 - 현재 천상계의 천제. 오현의 아들로 수명을 벗어나서 살고 있는 훼 이를 빌미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 <환계> 레이샤 - 320세. 봉황족 왕. 겉보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원래 성격은 변화무쌍. 셴 - 봉황족의 보좌관으로 차분한 성격을 가졌지만 레이샤에게는 엄한 면도 보인다. < 5대 용족 설정 - 힘 > 木 봄 청룡 동쪽 물 火 여름 홍룡 남쪽 불 土 土用 황룡 중앙 흙(대지와 관련된 모든 것) 金 가을 백룡 서쪽 바람 水 겨울 흑룡 북쪽 날씨 조정(물의 힘을 쓰는 것은 흑룡의 속성에 雨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 힘의 형태는 각 용족들이 가진 5대 원소의 속성대로 용의 형상을 한 채 발휘된다. 그리고 인간들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천신(天神)인 용의 형상은 생명력의 근본 형태 이다. <천계의 궁> 궁은 각 용족이 다스리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별궁은 그 영지에서도 동서남북의 사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궁의 이름은 두가지로 불린다. 홍룡궁(화천궁), 백룡궁(풍천궁), 황룡궁(지천궁), 청룡궁(수천궁), 흑룡궁(宇천궁)으로 힘의 속성에 따른 이름이다. 천계의 크기는 지상. 즉 하계와 거의 같다. 다른 계(界)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용족의 평균수명은 1000년. 천상인들은 500-600년, 영수족들은 1000년이다. <주문-천개 경> 자주 등장하는 이공간 연결, 매개 주문인 [천개(遷開) 경(鏡)]은요. 서로 다른 계(界)만을 연결시켜주는 주문이 아니라 같은 계 안에서도 쓸 수 있는 주문입 니다. 일종의 전화와 비슷한 것이죠...^^ 주로 서로 다른 시간대를 연결해 주는 주문이므로 왕 이상의 힘을 가진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고난위 주문입니다. 가 장 자주나오는 공간을 여는 주문은 수련만 한다면 보통의 용족들도 가볍게 쓸 수 있는 주문이지만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은 주문없이도 본연의 마력만을 가지고 공간을 열 수 있지요. 흑룡의 숲에서 강한 힘을 가진자는 주문을 외치 지 않는 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계 ------------------ ┕ ┕ ┕ 천상계--- 천계 --- 환계 ┕ ┕ ┕ ------------------ ┕ 하계 ┕ 명계 위에 있는 이상한 도식이 머냐구요? ^^ 각 계간의 연결모식도 입니다.(에잉 구려라~~) 그니까 연결 관계대로 각 계간의 이동이 가능한 거랍니다. 어느 위치가 더 높고 이런건 없어요. (이해 못하시는 분은 없겠죠?) <교룡이란 무엇인가?> 본문 내용에도 예전에 언급 된 적이 있듯이 교룡은 인간과 용족 사이의 혼혈 로 태어난 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강인한 용족과 짧은 수명을 사는 인간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교룡들은 일찍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피는 용족 본연의 강인한 마력이 담긴 피를 흐리게 하기 때문에 용족들은 인간과 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 즉, 교룡을 탄생시키는 것을 금기시 해 왔습니다. 비 이전에도 교룡의 존재는 있긴 했지만 그것은 한손에도 다 꼽히지 못할 정 도로 작은 숫자이고 그들의 생은 무척 짧았거나 아니면 천계에도 하계에도 속하지 못한채 포악해 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뒤에 등장할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에 다른 교룡의 이야기도 나올 겁니 다. 그리고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 '교룡에게는 용족의 생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교룡이 용족의 생기(생명의 기운)를 흡수하게 되면 인간의 피가 섞임으로 인해 생겼던 마력의 불균형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수명을 늘릴 수는 없지만 용족의 생기는 교룡에게 강한 힘을 내게 해 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른 이의 생명을 뺏는 일이니 당연히 금기시 되겠죠. 그 때문에 교룡의 존재가 용족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인 지도 모릅니다. << 흑룡의 숲을 맺으며....>> 음....한마디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우웃..독자 여러분!! 너무 고마워요. 흑룡의 숲은 제가 쓴 13번째 소설이자 세 번째로 완결을 낸 글이기도 합니다. 뭔가 굉장히 많이 써왔지만 제대로 된 걸 쓴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듭니 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3학년 때였거든요. 공책에다가 맨날 써서 친구들을 보여줬었죠..^^ 그리고 흑룡의 숲은 제가 시도한 두 번째 동양 환타지입니다. 첫 번째로 썼던 것 역시 흑룡의 숲과 같은 배경이었지만 그 소설은 전체적인 설정 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두고 썼었고 이번 흑룡의 숲은 감정을 주제로 썼습니다. 삶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자가 자신의 소중한 것들이 주위에서 하나둘씩 떠나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감정의 붕괴를 겪지만 결국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살아가 는 것이 과거를 되새기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과연 잘 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기획할때는 100편 미만의 글로 쓰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길이가 20여편 정 도 줄어들었습니다. 뭐..쓰다보니 그렇게 됐지요 ^^ 여하튼 흑룡의 숲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제대로 쓴 기념작이 될 것 같습니다. 끝내고 나니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두달 조금 넘는 동안 글을 썼는데요. 매일연재라는 자신과의 힘든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매일매일 꾸준히 글 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독자님들을 위해 정말 뼈빠지게 썼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괴로웠지만 나중에는 정말 즐겁게 써 내려갔습니다. 고뇌하긴 했지만 결국 매일 같이 한편씩의 글을 쓴다는 것이 정말 즐거운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요. 여하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매일같이 퇴고하기 싫어하는 저를 위해 대신 퇴고를 감행해준 언니 화란과 매일 글을 읽고 장단점을 지적해주신 바사기 오라버니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립 니다. ^-^ 지금 흑룡의 숲 소장판 인쇄작업 편집 중입니다. 9월달 안으로 책이 나올 것 같 거든요. 혹시 가지고 싶으신 분들은 메일로 신청 바랍니다. 통신 분들께는 우편 요금만 받고 드릴 생각입니다. (음...난 가난한데...--) 통신 연재분과는 조금 다른 편집을 했구요. 시간의 흐름이라던가에서... 그리고 칼라표지와 안에 일러스트가 10여장 들어갑니다. 아마도 조금 더 찍어서 11월달에 열리는 만화 판매전에 동아리 회지랑 같이 들 고 나갈 것 같습니다. 흑룡의 숲 만화 원고도 진행 예정입니다. (우웃..만화 동아 리는 이래서 좋아 ^^) 다시한번 흑룡의 숲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저는 이 만 물러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너와 나 사이에 물이 흐르고 있구나 은하수도 같고 피안의 강물도 같이 옛날 노랫소리 물줄기에 쓸려간다 너의 목소린지 내 목소린지도 모르게 오흐라. 햇님아 붉은 별들을 헛디뎌 버려라 시려운 강으로 몸을 담궈 물을 태우렴 오흐라. 바람아 치마를 흔들며 춤을 추어라 햇님이 태운 물먼지를 훌훌 날리렴 그러나 바람은 잠들고 해는 지네. 서산으로 하루가 흐르고 강 저편이 어둑어둑 물소리에 잠기누나.... 내가 나로 있으니 네가 없느니 강물로 뛰어들어 모두 잊겠네 네가 나로 있으니 네가 없느니 물고기가 되어져 바다로 가리 귀가 멍하니 물이 흐르고 있구나 웃고있는 건지 울고 있는건지 모르게 오흐라. 햇님아 붉은 별들을 헛디뎌 버려라 서러운 강으로 몸을 담궈 물을 태우렴 오흐라. 바람아 노래를 불러라 네 님도 불러라 머나먼 땅에서 흙을 실어 강을 메우렴 초록 풀이 자라는 대지야 생겨나라 꽃을 밟으며 뛰어들리 너와 내가 만나면 비도 참 달다 내가 나로 있으니 네가 없으니 강물로 뛰어들어 모두 잊겠네 내가 나로 있으니 네가 없으니 물고기가 되어 바다로 가리 一. 방 창문으로 보이는 누각에는 화려하게 옷을 걸친 귀족 몇 명이 술상을 차 려놓고 즐거운 듯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한두 명은 성휘도 아는 얼굴이었지만 다른 몇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성휘는 창틀에 몸을 기댄 채 힘없는 시선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 저쪽에 계신 건 왕자전하가 아니신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 저 왕자는 용모 이외엔 볼게 없지. 모친이 화선이라니 알만한 일이 아닌 가."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남자가 말을 마치자 또 다른 남자가 말을 받는다. " 전에는 명진관에 허락 없이 들어가서 유배도 당했었지. 그리고 유배가 풀린 후에는 별궁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말라는 상제폐하의 엄명이 있었고."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약한자에 대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자신에 관한 얘기가 오고가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성휘는 밖을 한번 둘러보고 는 창문을 닫고 방안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은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묶지 않고 자연스럽게 풀고 있었다. 즐겨 입는 흰색의 평상복에는 등부분에 은색실 로 난초 모양이 수놓여 있었다. 방안을 왔다갔다하던 성휘는 한숨을 내쉬며 비단 금침이 깔린 침상에 걸터앉 았다. 나보고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라는 건지..... 벌써 한달 이상 바깥구경을 못하고 있으니..... " 답답하다." 성휘는 한숨과 함께 마음 속에 가득찬 한 단어를 내뱉었다. 문 밖에는 네명의 천군이 지켜서 있어 나갈 수 없었다. 식사는 시간이되면 화 선 몇 명이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성휘가 머물고 있는 방은 꽤 아늑하게 꾸며진 곳이었지만 성휘의 얼굴은 편 해보이지만은 않았다. 상제는 성휘를 본궁쪽에는 들여놓고 싶지 않은지 본궁에서 가장 먼 북쪽 별궁 으로 보내고 근신을 명했다. 지난번 일로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신임까 지 완전히 잃어버린 후였기에 성휘는 언제나처럼 빨리 체념해버렸다. 상제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멸시 당하고, 힘도 가지지 못한 그에게는 아첨 하려는 귀족들도 왕족들도 다가오지 않았다. 화선들은 궁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볼을 살며시 붉히곤 했지만 그것은 마음 만으로 남아야할 감정이었다. 그녀들도 상제가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모친 이 화선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성휘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그 에게 더 이상 곤란을 안겨줄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천상계의 선녀들은 세계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선녀중의 선녀라 불리는 천 선, 선녀의 꽃이라 불리는 검선, 그리고 소선녀라 불리는 화선이 그것이다. 천선(天仙)은 천계의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선녀들로 용모가 아름답고 학식을 갖춘, 왕족이나 고위 귀족 출신의 여인들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로 여자들이 바라는 최고의 지위였다. 물론 황후라는 최고의 자리가 있긴 했지만 그 자리 는 상제와 혈연이 깊은 왕족이 아니면 오를 수 없었다. 천선은 그 숫자도 열 두명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희소가치가 있었다. 선녀의 꽃이라 불리는 검선(劍仙)은 귀족 출신 여자들 가운데 검술과 도술을 비롯한 전투력이 뛰어나고, 예의바른 여인을 뽑는데 이 자리는 천선 보다 오 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뽑히기는 힘들었지만 검선이 되면 존경과 선망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다. 그 숫자는 정확하게 알려져있지 않으며 검선 특유 의 흰 복장과 능력별로 주어지는 허리띠의 색으로 유명했다. 가장 뛰어난 능 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색은 파란색. 그 아래로 검정색, 빨강색, 갈색이 있다. 소선녀(小仙女) 화선(花仙)은 평민들 중 용모가 빼어난 여자들을 해마다 궁에 서 뽑았다. 주로 왕족과 천궁을 방문해 오는 손님들의 시중드는 일과 청소와 요리 등의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성휘의 모친은 바로 이 화선 출신이었는데 화선이라는 것은 출신 성분이 평 민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상제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대우가 좋진 않았다. 어쩌면 성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것이 그녀 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아들이 차별 받는 것을 보고 매일을 눈물로 지샜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왕자로 불리긴 했지만 사람들은 성휘에게 왕족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았 다. 원래는 태자나 왕자나 복장의 색만 다르게 정해져있을 뿐 복장 자체가 다 르진 않았는데 성휘가 태어나고 부터는 아예 복장 자체가 바뀌었고 성휘에 게는 상제나 태자를 대할 때 철저히 군신관계의 예를 취하도록 가르쳤다. 사 적인 자리에서라도 그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버님이나 형님이라고도 부를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상제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에게 이어지는 특별한 힘 이 미약했기 때문에 귀족들에게까지 업신여김을 받을 정도로 성휘는 철저히 무시되고 고립되어 자라났다. 그나마 볼만한 건 얼굴뿐이라며 수근거리는 소 리를 들으면서도 성휘는 삐뚤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바르게 행동 하지 않으면 더 비참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그의 방 주위엔 성휘의 행동을 감시 하기 위해 배치된 천군들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자 성휘는 유배지에서 연화에게 배운 피리라도 연습해 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랍장에서 대나무 피리를 꺼냈다. 윤기가 흐르는 소박한 그 피리는 연화가 가진 것을 본따 성휘가 만든 것이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 곡의 연주를 끝냈을 때 문 밖에서 천군들이 외치는 소리 가 들려왔다. " 공주마마께서 드십니다." 성휘의 얼굴에 오랜만에 밝은 빛이 돌아왔다. 문이 열리고 좌우로 화선들의 시중을 받으며 성휘의 동생이자 공주인 가진(嘉 眞)이 들어섰다. 소녀다움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가녀린 얼굴과 한번 보면 시 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몸은 고급 비단으로 만들어진 궁장으로 감싸 여 있었다. 연분홍과 붉은색이 적절히 배합된 옷차림에, 긴머리는 틀어올리고 내려뜨려 갖가지 귀금속과 보석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어있었다. "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가진은 화사하게 웃으며 성휘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의 미소를 보자 성휘도 그 미소에 전염된 듯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 너는 변함없이 아름답구나. 오늘은 무슨일로 왔지?" " 일은요. 오라버니가 보고 싶어서 왔죠. 그동안 더 야윈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며 안타까운 듯이 가진은 손을 뻗어 성휘의 볼에 가져갔다. "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으렴." 가진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성휘의 얼굴에 가져갔던 손을 떼고는 의자에 나 란히 앉았다. " 그런데 좀전의 피리소리는 오라버니의 솜씨인가요? 참 아름다운 곡이었 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성휘를 보고 가진은 눈을 빛냈다. " 그럼 오라버니. 저를 위해서 한곡 연주해 주실순 없나요?" " 그래. 그러면 어떤 곡이 좋을까...." 잠시 생각하던 성휘는 고개를 몇번 끄덕이더니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수면에 부는 잔잔한 바람과 같이 부드러운 음률. 가진은 마음이 편안해 지 는 것을 느꼈다. 그런 마음을 느낀 것은 비단 그녀 뿐이 아니었다. 가진의 시 중을 드는 화선들도 경비를 서던 천군들도 그 곡이 연주되는 동안은 천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성휘의 연주가 끝나자 가진은 볼에 홍조를 띄우며 웃었다. " 멋져요. 오라버니. 언제 이렇게 멋진 연주를 하게 되셨나요. 오라버니가 악기를 다루는 재주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그동안 피리에는 손대지 않으셨잖아요." " 유배지에 있을 때.... 그냥 재미삼아 연습했던 거란다...." 성휘의 입에서 유배지라는 말이 나오자 가진의 눈에는 슬픔의 빛이 차올랐다. " 아버님은 왜 그렇게 오라버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걸까요. 저로선 도 저히 모르겠어요." " 난 괜찮아. 이렇게 가진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것 만으로 기쁘니까." 눈동자에 떠오른 쓸쓸한 빛을 감추며 성휘는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그리 고 그때 맞추기라도 한듯이 문이 열렸다. " 태자전하께서 드십니다." 그 소리에 깜짝놀란 성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바로 그의 눈앞 에 검정색과 남색이 섞인 관복의 하의가 보였다. 숙였던 허리를 들면서 성휘 는 눈앞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 태자전하. 어인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 널 보러온 것이 아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상제의 첫째 아들이자 태자인 오현(晤眩)은 20대 중반 정도로 상당히 냉정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올려서 금색의 태자용 관모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성휘의 부드러운 얼굴과 달 리 오현은 깔끔한 느낌의 용모로 두 눈에는 냉철함이 번뜩이고 있었다. 날카로운 오현의 눈초리에 성휘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오현의 시 선이 자신에게로 옮겨오자 가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 여기서 뭐하는거지? 가진. 넌 이곳에서 네 품위를 깎을 작정이냐?" " 아니에요. 그저 전....." " 이제 됐다. 어서 돌아가자. 널 찾기 위해서 라지만 나까지 이곳으로 오게 만들다니..." 조용히 대답하며 가진은 몸을 돌려 성휘를 바라보았다. " 넌 나와 혼약할 몸이다. 쓸데 없는 건 보지 않도록 해." 태자가 가진에게 건네는 말을 한쪽에 서서 듣고 있던 성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혼약이라니.... 자기 동생과...... 가능한 일이라곤 하지만... 성휘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오현은 가진과 함께 몸을 돌렸다. 문이 닫히 고 밖에서 천군에게 명령하는 오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앞으로는 허락없이 이곳에 사람을 들이지 마라. 알겠느냐." 천군의 대답소리와 함께 오현과 가진의 발소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 그래. 혼약이라....." 성휘는 중얼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태자는 다음 상제가 될 인물이기 때문에 그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황족과 결혼을 해야한다. 그런데 그 상대가 하필이면 동생이라니. 동생이라도 가진은 여자들 중에서는 가장 정통한 혈통에 가까운 황족이다. 현 재 황족으로 불리는 것은 상제와 황후, 그리고 태자 오현과 공주 가진 뿐이다. 상제의 형제들이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은 모두 왕족이라 불리고 그보다 피가 옅은 자들은 귀족이 된다. 오현은 황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고귀한 혈통의 황족. 그리고 가진 또한 천 선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인정받은 혈통인 것이다. 오직 성휘만이 평민의 피 를 이어받은 이른바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 생각해 보니 오현에게 어울릴 만한 혈통을 가진 것은 이 천계에서 가진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진이 오현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성휘는 자신을 생각해 주던 단 한명의 비호자마저 그렇게 빼앗겨 버 린다고 생각하자 허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다시 혼자인가..... 상관없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뿐이니까.... 망연하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성휘는 문득 유배지에서 만났던 조용한 느낌의 선녀를 떠올렸다.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배지에서 보낸 몇 달간 그녀는 성휘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연화(蓮花). 그 이름은 어느샌가 성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서야 그걸 깨달은 성휘는 가만히 벽에 머리를 기댔다. 서쪽 변경의 수비를 자원했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녀가 가진 천(天)의 직급에게 주어지는 무기라는 그 옥소도.... 바람에 흩날리던 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선명하게 성휘의 눈 앞에 떠 올랐다. ========================================================================== 이 외전은 흑룡의 숲 본편과는 문체가 좀 다르죠? 묘사가 지겨울 정도로 깁니다. 한번쯤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흑룡의 숲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바로 성휘입니다. 원래 이 천상지가 부분은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구상해 온 천상계만이 나오는 이야기 였는데 이번에 흑룡의 숲을 쓰면서 두 세계를 연결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전도 그리 짧은 이야기는 아니랍니다. 외전에서의 주인공은 성휘이기 때문에 본편의 내용과 많이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치만 5장과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죠. 그래서 동시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맨 위에 나온 글귀는 <이상은의 삼도천> 이라는 노래입니다. 분위기에 맞아서 차용해 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0^ 번 호 : 651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29일 00:0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3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천상지가>> 二.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二. " 연화...." 망루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던 연화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언니. 어떻게 여기까지..." 연화에게 언니라 불린 여인은 같은 여자가 봐도 탄복할 만한 미녀로 연화보 다는 두세살 많아 보였다. 몸을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우아함과 절제가 배어나왔고, 화려한 궁장이 오히려 빛을 잃을 정도로 왠만한 왕족들보다 훨씬 귀족적인 여인이었다. " 언니, 일은 어쩌시고 여기까지 오신거에요. 천선이 이렇게 함부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은가요?" " 걱정마. 허락은 얻었으니까." 연화와 닮은 그러나 훨씬 부드러운 표정을 떠올린 얼굴이 연화를 향해 미소 를 건넸다. 天上之歌 天上之歌 天上之歌 " 상제께서는 너무 무른게 아닌가. 화선 교연에게서 태어난 아이만을 왕자 로 삼다니... 다른 선녀로부터 얻은 자식들은 평민으로 내버려두지 않았나. 왜 그 성휘만을 왕자로 세웠지? 천선도 검선도 아닌 화선의 아이를!" " 상제님의 뜻입니다. 그 이상은 말씀하시지 말아주세요. 상제님의 곁에 있 을 수 있는 것은 선녀 뿐입니다. 아무리 귀족이라해도 선녀가 아닌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계실 텐데요." " 그런 녀석을 왕자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성휘님은 왕자입니 다. 상제님의 세 자제분 중의 한명이신." " 그대는 천선이 아닌가. 그런 부조리를 보고도 화가나지 않는건가?" " 부조리 라니요.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지요. 성휘님은 왕자. 태어났을 때부터 신분이 다릅니다. 제가 노여워할 이유가 없 지 않습니까? 당신같은 사람들 때문에 왕자님은 왕자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 고 계신거에요." " 뭐라고!" " 그렇지 않습니까. 확실히 왕자님의 피에는 화선.... 즉, 평민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상제님의 피라는 걸 잊고 계신건가요? 이 이 상 왕자님에 관해 험담을 하신다면 그것은 황제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 서빈! 결국 넌 내게 협력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냐?" " 저는 천선 서빈(栖彬)입니다. 상제폐하께 반(反)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 니다. 진정해 주세요. 아버님." " 너는 변했구나." " 변한 것은 제가 아니라 아버님 이십니다. 대체 언제까지 왕자님을 홀대하 시려는 겁니까. 아버님의 바램대로 그분은 지금 혼자입니다. 형제는 물론 낮 은 신분의 사람들에게까지 무시 당하는 왕자님이 가엾지도 않으십니까." 결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서빈으로서는 드물게 어조가 높아져 있었다. " 이것만은 알아둬라. 서빈. 왕자를 싫어하는 건 나 뿐이 아니다. 이건 좀 더 깊은 문제와 얽혀있는 거야. 네 생각보다 훨씬." " 알겠습니다. 하지만 협력을 바라지는 말아주세요. 설령 아버님이 적이 된 다해도 저는 제 생각대로 하겠습니다." " 그래. 몸 조심하거라." 서빈은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선 아버지의 등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 아버님도....... 안녕히." 天上之歌 天上之歌 天上之歌 " 언니.... 어떻게 된 거에요." 연화는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는 서빈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 다.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연화, 나에게 한가지만 약속해 줄래?" 회상에서 깨어난 서빈은 진중한 얼굴로 연화의 눈을 마주보았다. " 네. 말씀하세요. 언니." " 연화. 왕자님을 늘 곁에서 지켜드려라." 표정없던 연화의 얼굴에 조금 놀란듯한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떠올랐다. " 왕자님의 주변에서 무슨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너는 왕자님과 함께 반년 이나 지내왔지. 지금 왕자님이 어떤 처지인지 알고있니?" " 아니요.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 유배에서 풀려난 후로는 북별궁에서 계속 근신중이셔. 방을 나가는 것 조 차 금지되어 있지. 그분에겐 이곳이 더 편했을지도 몰라." 잠시 서빈의 얼굴을 살피던 연화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 언니. 아버님과 무슨일이 있었군요." 서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 역시 알고 있었구나. 넌 예전부터 눈치가 빨랐지. 아버님은 상제님을 거 스르는 일을 하려고 하셔. 이제 예전의 아버님이 아니야." 연화는 서빈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며 망루의 나무기둥에 손을 가져갔다. " 아버님은 천궁....아니, 상제페하께 모든 걸 빼앗겼으니까." " 그래. 어머님도.... 그리고 우리들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님을 도울 수는 없어. 그리고 천선인 내겐 지위는 있을지 몰라도 아무런 힘도 없잖니. 그러니까 네가 왕자님을 지켜드려.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연화." " 네..... 저라도 도움이 된다면 할께요." 연화의 시선은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을 향해 있었다. 서빈은 그런 동생을 정이 가득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 잘 생각해 줬어. 연화. 이미 얘긴 해 두었으니까 너는 돌아가기만 하면 돼." " 네. 언니." 연화의 대답은 언제나 처럼 짧았다. ====================================================================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않은 선녀 선발에 관한 이야기>> 거의 시녀라고 말할 수 있는 화선의 경우 한 해에 한두번 정도 천궁에서 선 녀를 선발한다. 화선을 선발할 때에는 강제력이 동원되며 본인과 가족의 의사 는 무시된다. 물론 화선이 되면 가족들에게 화선으로 선발된 소녀들이 일한 것 만큼의 돈은 주어지지만 화선이 되면 언제 집으로 돌아오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평민들은 딸을 화선으로 보내길 꺼려한다. 운이 좋아 황족의 아 이를 출산한 경우가 아니면 죽을 때 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 다. 신분이 높고 특수한 선녀인 천선과 화선의 선발에서 조차도 알게 모르게 압력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스스로 지원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상제의 절대적인 명령으로 선녀가 된 귀족 자제들도 상당수 있는 것 으로 추정된다. (웃...상제 놈.. 재수없어...--+) 번 호 : 673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2일 01:1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천상지가>> 三.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三. 알현실에서 나온 연화는 오랜만에 돌아온 천궁을 둘러보기위해서 누각들이 잔뜩 늘어서있는 천궁 정원으로 나갔다. " 검선님이시다. 어서들 와봐." 이곳 저곳에 흩어져서 정원의 나무들과 꽃을 손질하던 화선들이 금새 연화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화선인 그들로서는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하늘의 별과 같 은 귀한 존재인 검선을 실제로 봤다는 게 기뻤는지 그들은 얼굴에 홍조를 떠 올린 채 웃음짓고 있었다. "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비켜주겠니?" 평소의 연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따뜻한 목소리다. " 네... 죄송합니다." 합창하듯이 외치며 연화를 둘러싸고 있던 화선들은 재빠르게 다시 자신의 일 로 돌아갔다. 연화는 조용해진 정원으로 시선을 던지며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 오랜만이군. 연화." 막 천궁 본궁(本宮)에서 빠져나가려던 연화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옥으로된 장신구 소리와 함께 연화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황 태자 오현(晤眩)이었다. " 태자전하. 검선(劍仙) 연화. 인사올립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연화는 한쪽 무릎을 꿇고 우아한 동작으로 절을 하 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나서 태자에 대한 예의로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이제부터 천궁 근무로 돌아온다고?" " 네." " 그동안 지냈던 서쪽 변경지역은 어땠나?" " 지금까지는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후임으로 천군 검부(劍府)대장 이수님이 가셨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실 것입니다." " 그런가.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겠지." 그렇게 말하며 오현은 늘 황태자로서 보여오던 위엄있는 표정에서 차갑게 비 웃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 황가의 수치.....아니지. 왕자 성휘를 만나 본 소감은 어떤가. 반년 동안 한 번도 못보진 않았겠지?" " 매우 조용하신분 같았습니다." " 그래?" 오현이 질문을 한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연화는 성휘에게 해가 되지않도 록 그 이상의 말은 하지않았다. 냉막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던 오현은 연화에 게 앞으로 천궁의 안전을 부탁한다고 하면서 몇마디 던지고는 천궁 건물안으 로 들어가 버렸다. ' 가엾은 분...'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성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화 는 조금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성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피리를 꺼내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활짝 열린 창 문으로 내다보이는 정원에 시선을 두며 성휘는 연주를 시작했다. 한참 동안을 연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시야속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음을 옮기는 아름다운 검선. 연화의 모습이. 성휘는 그녀를 보자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와 헤어진지 오늘로 두달하고도 열흘이 지나있었다. 성휘는 연화의 시선을 끌기 위해 유배지에서 그녀가 가르쳐주었던 회상곡(回想曲)을 연주했다. 피리소리가 울려퍼지자 연 화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성휘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성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피리를 내려놓고 연화를 향해 미소지었다. 연화는 잠시 표정없는 얼굴로 성휘를 응시하다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렸다. " 당신을 천궁에서 만날줄은 몰랐는데? 이제 변경 근무는 끝났소?" " 예. 전하. 이제부터는 천궁수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정말 우연이군. 별궁까지 오다니." 성휘는 자신을 향한 연화의 얼굴이 눈부시다고 느꼈다. "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겠소? 지금 내려갈테니." " 하지만 근신중이 아니신가요?" " 괜찮소." 그렇게 대답하며 성휘는 3층 정도 높이의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가볍게 뛰어내리긴 했지만 착지할 때 무리를 했는지 살짝 찡그린 얼굴을 했다. " 괜찮으세요?" " 그런 것 같소." " 보초를 서는 천군들이 눈치채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 잠시만 여기에서 이 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소." 그렇게 말하며 성휘는 건물 오른편으로 돌아가 길게 뻗은 나뭇가지 아래에 섰다. 연화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방에서 뛰어내리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연 화를 마주대하자 무슨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어색함을 알기라도 하듯 연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전하.." " 전하라고 부르지 마시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왕자자리 따윈... 그보다 성휘라고 부르시오. 난 그게 더 맘에 드니까." 반박을 하려던 연화는 성휘의 강하지만 쓸쓸해 보이는 눈빛에 흔들려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근신은 언제까지 인가요. 성휘님." " 글세.... 모르겠소. 아마도 아버님의 마음이 풀리실 때 까지겠지. 그보다 구 석진 이곳까지 무슨일로 왔소?" " 천궁 전체를 둘러보는 중이었어요. 얼마후면 태자전하의 약혼식도 있고 해서." 성희는 물끄러미 연화를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 연화..... 가능하다면.." 그리고 막 성휘가 말을 꺼낸 순간, " 왕자 전하. 여기 계셨습니까. 함부로 방을 나가시면 안됩니다." 성휘가 사라진 것을 금새 눈치챈 천군들이 금새 성휘를 데리러 내려왔다. 그 들은 뒤늦게 성휘 옆에 서 있던 연화를 발견하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 천군이 검선님을 뵙습니다." 연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 왕자 전하. 이제 가시지요. 태자전하나 상제폐하께 발각 되기라도 하는 날엔 그냥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 알겠다." 성휘는 연화에게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킨채 말없이 천군과 함께 별궁 안으 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연화는 조용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 었다. * * * " 왜 바로 혼약을 하지 않으신 걸까." " 허. 이 사람아. 공주마마가 아직 어리시지 않나." " 그건 그렇군." " 두분이 즐거워 하신다면 그걸로 된 게지." 약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성휘는 멀리 떨어진 구석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근신 중이었지만 천궁의 경사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에 왕족인 성휘도 약혼식 자리 에 참석해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외진곳에 서 있긴 했지만. " 저..... 왕자님." ' 응?' 성휘는 자신을 부르는 작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멍한 정신을 일깨웠다. " 저... 목마르신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이거라도 드세요." 수줍게 고개를 들어올리며 성휘에게 흰 도자기 잔을 내민 것은 아직 어려보 이는 소화선 이었다. 긴장했는지 작은 손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성휘는 그런 화선을 바라보다가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잔을 잡았다. 성휘가 잔을 들자 그제서야 소화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 그래. 이름이 뭐지?" " 서희에요." " 아직 새앙머리를 하지 않은 걸 보니 들어온 지 얼마 안된 모양이구나." " 네." " 출생이 천하니 어쩔 수 없군. 끼리끼리 모인다 이건가." " 오죽하겠나. 그 눈에 화선 말고 다른 여자는 들어오지도 않을테지." " 하하하. 뻔하지 않나." 성휘가 화선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자마자 연회를 즐기던 한 무리의 귀족들이 일제히 성휘의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성휘를 비웃 고 깔보는 목소리는 그의 귓가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그 소리를 듣자 화연 은 어쩔줄을 올라했다. " 괜찮다. 늘 있는 일이니까." 성휘는 씁쓸한 미소를 떠올리며 잔에 담긴 술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 서희. 왕자님 방해하지 말고 이리오거라." 화선 한명이 서희를 불렀다. " 죄송해요. 왕자님. 전 이만 가볼께요." 서희는 미안함이 가득담긴 얼굴을 숙이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줄곧 서희를 지켜보던 화선이 서희를 앞에 세워두고 말했다. " 서희. 이번이 처음이라 몰랐겠지만 다시는 함부로 왕자님께 접근해선 안 된다. 안그래도 힘드신 분을 우리 때문에 더 괴롭게 만들어선 안되지 않겠니? 너도 알고 있겠지만 왕자님의 몸엔 우리같은 화선의 피가 흐르고 있어. 이 황 궁에서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겠지?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들 화 선은 그분께 다가가선 안돼. 그게 그분을 위하는 최선의 길이란다." 서희는 두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서희를 바라보는 화 선의 눈에도 처연한 슬픔이 떠올라있었다. ' 그래. 별궁으로 돌아가자. 여긴 내 자리가 아니야.' 성휘는 얼굴에서 떨어지지않는 씁쓸함을 지우려 애쓰며 빈 잔을 내려놓고 몸 을 돌렸다. 그의 등뒤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마치 축객령처럼 느 껴졌다. 북별궁. 성휘의 방 안. 성휘는 태자와 가진의 약혼식 때문에 보초를 서던 천군들마저 사라진 텅빈 방안에 앉아 몇 병째인지도 모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외로움이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동생이 손이 닿지않는 곳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소엔 달콤하 기만 하던 천도주(天桃酒)가 쓰디쓰게 입안을 적셨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갈대숲. 그리고 투명한 강물. .............어디선가 본 듯한 곳이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포근한 느낌. 그리고 그 속에서 움직이는 하얀 그림자. 그 그림자는 곧 익숙한 얼굴이 되어 성휘의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따뜻한 미소를 가득 띄운 아름다운 얼굴이 되어..... " ..............연화." 성휘는 눈을 감고 작게 중얼거렸다. ============================================================================= 훗..사실 외전 부분은 고등학교 때 써놓은 게 좀 있었는데...이게 마지막이네요. 우..이제 연재가 배로 불어난 셈인가......-- 바닥에 바닥을 달리는 이야기를 한번 써 봐야지...(먼 말일까...^^) 번 호 : 2358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09일 00:0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9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四.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四. 언제나 잘 맞는 옷처럼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무기력함이었다. 자신이 가 지지 못한 능력으로 인한.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연유한 그것은 마 치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신을 따라 다니는 멸시에 가득찬 시선과 비웃음 서린 말들. 그런 현실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하지만 성휘는 현실 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겨우 이름 하나 만을 가지고 궁 안에서 버텨오던 자신은 더 이상 설 곳이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때문인지도 모른다. 성휘의 미소에 쓸쓸함이 담기게 된 것은. 그리고 자연 스럽게 굳어져 버린 처연함이 얼굴에 떠도는 것은. ' 행복이라..... 과연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말일까. 내게는 훼이와 같은 자 신감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성휘는 또 다시 버릇처엄 굳어진 쓸쓸한 미소를 떠올렸다. 보는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수려한 얼굴에 떠오른 그림자는 미소에서 빛을 사라지게 했다. 그리 고 쓸쓸한 미소의 뒤에는 언제나 낮은 한숨이 뒤따른다. 천계의 용족. 그중에서도 최강의 힘을 자랑하는 흑룡족의 현 후계자인 훼이와 친구가 된 것은 지금까지 성휘에게 다가온 최상의 인연인지도 모른다. 용왕의 후계자들을 초대해 베풀어진 연회장의 불빛을 바라보며 성휘는 자신 에게 주어진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한탄했다. 언제나 방관자로 있 어온.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한발 물러선 거리에서 그저 바라모듯이 대 처해 온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결코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한탄. 그리고 그때 기적처럼 짙은 그림자를 헤치고 다가온 흑룡왕의 후계자 훼이. 몸 전체에 배어있는 당당함과 자신에 찬 시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말투 와 기품. 훼이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뻗어나오는 자신감이 있었 다. 똑똑. " 왕자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언제나와 같이 별다른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병사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문 이 열렸다. 그리고 화선 한명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섰다. 약간의 소채와 밥. 그리고 과일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모두 맛깔스럽게 접시위에 놓여있 었다. " 고맙다." 탁자위에 음식을 내려놓고 조용히 고개를 숙여보이는 화선에게 인사말을 전 하며 성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화선은 눈에 띄지 않게 살짝 얼굴을 붉히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식욕은 없었지만 성휘는 음식이 놓인 탁자 앞에 앉았다. 자신을 위해 매일같이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해오는 이름모를 화선을 위해서 라도 성휘는 억지로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 * * * " 이름뿐인 왕자를 빌미로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보십니까?" 어느정도의 연륜을 가진 듯한 중년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난후 방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 그 정도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겠지요. 적어도 당 신이라면." 중년 남자의 눈앞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젊은 남자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떠올렸다. " 이름뿐인 왕자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자리라면 더욱 좋겠지요." 무척이나 기품있는 어조로 말을 잇는 젊은 남자의 얼굴에는 작은 표정의 변 화조차 없었다. 방금전에 떠올렸던 미소는 마치 거짓말 처럼 사라지고 그 자 리에 남은 것은 딱딱하게 굳어진 권위를 담은 얼굴이었다. " 천제가 무슨 의도로 보살피지도 않을 왕자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것은 우리에게 있어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뿐입니다. 오히려 천제에게 감사 해야 할지도 모르지요." 중년의 남자는 젊은 남자의 말을 들으며 서서히 표정을 굳혀갔다. 자의로 그 남자와 뜻을 합치기로 결정했지만 여전히 그에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도 더 이상의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예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면 또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얽어매고 있는 것은 상제라는 단 두글 자 였으므로. " 예전에 이야기 했듯이 당신께서는 왕자에게로 주의를 집중시켜 우리의 일을 탄로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다른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 라고 해도 그는 엄연히 왕자니까요." " 좋습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요." 중년 남자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의 빛이 떠올랐다. 아무 힘없는 왕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약간 꺼림직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의를 위한 사소한 일일 뿐이다. 왕자라는 이름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좋았다. 자신을 이렇게 벼랑까지 몰아간 것은 상제다. 이것 이외의 어떤 선택도 남아 있지 않은 구석으로 밀고간 것은 상제인 것이다. 이건 옳은 일이다. 남자는 두손에 힘을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요." 중년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몸을 돌렸다. 젊은 남자가 머물고 있는 화려한 방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중년남자는 나지막 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 조금만 기다려라... 곧 너희들을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주마...' 오직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속의 언어로 남자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제는 신앙처럼 자신의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음...외전 천상지가 부분은 본래 독립된 이야기 였던 만큼 약간의 설정이 흑룡 의 숲 본편과는 다릅니다. 읽으시다가 뭐야. 본편이랑 다르잖아? 라고 생각 하시게 되면 이것을 떠올려주세요. ^^ 길이는 흑룡의 숲의 1/3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라앉은 분위기로 나갑니다. 외전이 끝나면 아마도 서양 환 타지를 올리지 않을까요. (컴퓨터 앞의 죽순이 신세입니다 ^^;) 음..좀 오래 쉰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외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무척 죄송했습니다. ^^; 그치만 본편때처럼 비축분 전혀 없이 시작하는 거라서 좀 위험하군요. 그래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흑룡의 숲 소장판 인쇄는 다음주 주말 정도에 들어갑니다. ^^ 조금 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번 호 : 2383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0일 00:1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8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五.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五. 챙. 언제들어도 질리지 않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미끈한 검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소유물. 검을 손에 쥘때마다 느껴지는 작은 뿌듯함은 성휘를 지루한 체념의 바다에서 건져내주는 탈출구였다. 보물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지만 검을 이루고 있는 것은 상 품(上品)의 한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에 새겨져 있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이름이라는데 있었다. 성휘는 손잡이에 곧은 필체로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 검술을 배울 수 있을까?" 갑작스런 성휘의 말에 감시역으로 배치된 천군들은 얼굴에 떠오른 놀람의 빛 을 지우지 못했다. " 검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희들에게 배우시겠다는...?" 성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보잘 것 없는 실력이지만 부탁하고 싶은데..... 안돼겠나?" 천군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평민의 피가 흐른다고는 하지만 왕족의 이름을 가진 성휘가 자신들에게 부탁을 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놀랄만 한 것이었다. " 그렇지만 왕자님께서는 근신중이 아니십니까. 이곳에서 함부로 나가시거 나 하시면.." " 꼭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지 않겠나. 기본 동작이라면 이곳에서도 연습 할 수 있을 듯 한데..." 성휘는 검을 다시 검집에 끼웠다. 꺼낼때와 마찬가지로 맑은 소리를 내며 검 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 정 그렇게 배우길 원하신다면 가르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의 자신이 가진 것은 너무나도 미약하다. 왕족이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 라는 뜻에서 어린 시절 배웠던 검술도 지금에 와서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당연하 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말썽의 싹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성휘에게 가르치던 모든 것을 중단했을 때에도 그는 그저 받아들였다. 어느순간부터는 왜 자신에 게 주어진 것들은 극히 제한된 일부 뿐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숨쉬듯 자연스럽게 시간에. 자신을 감싸고 있는 환경에 순응해갔을 뿐이 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검술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휘가 원하는 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면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그보다 앞을 바라보고 나 아가야만할 목표가 생긴 것이다. 성휘는 천군 중 한명이 취한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군더 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동작이긴 했지만 성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힌 환영과도 같은 움직임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성휘 는 정신을 집중하고 주의깊게 천군의 동작을 살폈다. ' 그녀의 마음속에도 내가 자리잡고 있다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건 나만 의 바램일 뿐이겠지....?' 자신이 이토록이나 그녀를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있는지 그녀는 분명 알지 못할 것이다. 반년이 넘도록 함께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하는 것을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간혹가다 엷게 떠오르는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제외하면 그녀의 얼굴 에서 별다른 표정을 찾아보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 그녀의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피어오르게 할 수 있다면......' 눈으로는 계속해서 검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지만 성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 고 있는 것은 언제나 인형처럼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검선 연화의 모습이 었다. "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배우기 보다는 한 동작에 익숙해 질때까지 꾸 준히 연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달아 이어지는 세 개의 동작을 되풀이 하던 성휘와 동년배로 보이는 천군 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 지금까지 보여드린 것을 그대로 펼치실 수 있겠는지요." 성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군이 보여준 동작을 느릿하게 펼쳤다.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런대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이었다. ' 언젠가 검에 자신이 생긴다면........' 공기를 가르는 검의 소리는 날카롭게 귓가에 파고 들었다. '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겠지......' 성휘는 연달아 몇번이나 검을 휘둘렀다. ' 분명....' 검을 휘두르던 성휘의 동작이 멈추고나자 천군들은 방에서 빠져나가 다시 본 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문이 닫힌후의 방은 여전히 적막이 감돌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 적막이 성휘의 마음을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 * * * " 비전하... 태자비 전하...." 자신을 부르는 화선의 음성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기던 가진은 미미하게 얼 굴을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 나는 아직 태자비가 아니야....." 자신도 모르게 배어나오려던 짜증을 애써 삼키며 가진은 나직한 어조로 말했 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저 어리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은 어느덧 한 남 자를 위한 가지런한 몸가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 화선에게 무슨 죄가 있겠어. 그저 주어진 일을 하려는 것 뿐일텐데.....' " 하오나...." " 그건 그렇고 무슨일로 내 뒤를 따르는 것이지?" 하지만 아무리 그녀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해도 보통때보다 더 자신의 움직임을 구속하려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 혹시 지금 향하시는 곳이 왕자전하의 처소라면...." " 태자께서 네게 그런 명령을 내리셨느냐. 내가 그곳에 가려하면 막으라 고..?" 화선은 고개를 숙인채 우물쭈물하면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태도는 긍정을 뜻했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누구보다 관대 한 태도를 보이는 오현이었지만 성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만은 용납하 지 않았다. ' 성휘 오라버니의 얼굴을 본 것도 몇 달째인지 알 수가 없구나. 지난번 약 혼식 때에도 일찍 자리를 뜨는 바람에 말조차 나누지 못했었는데...' 가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방으로 돌아가자꾸나."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휘를 만나고 싶긴 했지만 가진은 오현의 뜻을 거 스르는 일만은 할 수 없었다. ' 죄송해요. 오라버니........' 안도의 숨을 내쉬는 화선의 얼굴을 흘깃 바라본 후 가진은 가던 방향을 거슬 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락거리며 바닥을 스치는 풍성한 궁장이 오늘따 라 무겁게 느껴졌다. ============================================================== 음..요즘 번역 공부를 하면서 느낀건데요. 제 문장 자체가 일어적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피동과 사역이 많은데다가 문장 안에서 단어의 배열 이라던지 표현같은 것이 일본어 식으로 되어 가더군요. (앗..지금도 또 그렇 군..) 왜 이렇게 됐지.... 역시 하나에 매달리면 이렇게 되는건가... 그리고 저는 비축분 만들면서 쓰면 게을러 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숙제 하듯 이 한편씩 쓰는게 나은 것 같아요. 좀 힘들고 조바심 나긴 하지만..^^ 음... 외전은 줄 수가 짧네요. 짧다고 구박하시진 않겠죠? *^-^*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번 호 : 2406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1일 00: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8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六.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六. " 오늘 죽음을 맞이해야 할 자들은 모두 수명부에 적힌대로 정확히 숨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아직 죽음을 맞이해야 할 때가 아닌데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들도 몇 있습니다. 이 문제의 처리는 지금까지 처럼 하도록 할까요." 화사한 미모의 구천현녀와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서빈은 천제와 태자를 제 외하고 최고의 위치라 불려지는 천선에 속한 여인들이었다. 천상계의 모든 일 들의 전반을 관리하는 천선. 그중에서도 천상계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수명부의 관리를 맡고 있는 이 두 천선은 세세한 관리를 필요로 하 는 명진관의 일을 능숙하게 처리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천제의 입에서 그 녀들을 질책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천상계에서 그녀들을 보는 눈은 남다른 것일 수밖에 없었다. "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명진관의 일은 지금까지 처럼 둘이 알아서 처리하 도록 하게." " 명심하겠사옵니다." 상제의 얼굴에는 언제나와 같은 무심함이 배어 있었다. 간혹가다 그 얼굴을 직시할때면 서빈은 희미한 전율을 느끼곤 했다. ' 상제님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는 자가 과연 존재할 까... 상제비께서도 알지 못할거야....' 일상의 한부분인 수명부 관리의 보고를 마치고 나서 서빈과 구천현녀는 나란 히 상제에게 인사하며 허리를 숙였다. 천선을 상징하는 백옥으로 만들어진 패(佩)가 그녀들의 움직임을 따라 미끌어 져 내려왔다. 붉은색의 풍성한 궁장을 걸친 구천현녀와 짙은 푸른색의 궁장을 걸친 서빈은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발하며 우아한 동작으로 숙였던 허리를 들 어올렸다. "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바닥으로 눈을 내리깔며 구천현녀가 말을 꺼내자 천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 여 대답을 대신했다. " .....서빈." 막 몸을 돌리고 문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나지막하게 울린 상제의 음성이 서 빈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 상제의 목소리에 같이 움직임을 멈췄던 구천현녀는 곧 서빈에게 눈인사를 건 네며 다시 발을 내딛었다. " 지난번에 말했던 것은 찾아냈느냐." 중년을 맞이했기 때문인지 많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상제의 얼굴에 떠도는 냉 랭함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딱딱해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상제의 몸에서 풍기는 냉랭함은 싸늘할 정도의 차가움이 아닌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는 벽 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태자 오현에게서 느껴지는 날카로움은 분명 상제에게서 물려받은 것 이리라.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한 성격은 상제가 가진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 는 것이었지만 어떤면에서 보면 둘은 지독히도 닮은 부자였다. 어머니가 다르 다고는 하지만 성휘가 가진 유약함이 거짓으로 느껴질정도로. " 찾아내긴 하였사온데 확신은 할 수 없사옵니다." 서빈은 시선을 책상위에 올려놓은 상제의 손에 맞춘채 정중하게 답했다. "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이라고 여겼나." 짧은 순간. 서빈은 사실을 말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 제 소견으로는 친구분이신 흑룡족 훼이님의 아들에 관한 일인 것으로 사 료되옵니다." " 과연........." 상제는 낮은 어조로 읊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교룡의 수명이라면 뻔하군...." 특정한 누군가를 향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 것은 상제의 버릇중 하나였다. 서빈은 성휘가 무슨 마음으로 명진관에 들어서, 천제의 신뢰를 바닥에 떨어뜨 리면서 까지 다른이의 수명부를 찾았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오직 소외 속에서 보내온 성휘가 얻은 최초의 친구에게 무엇이라도 하나 해주고 싶다는 작은 바램에서. 그리고 친구의 하나뿐인 혈육 을 위해서 성휘는 그나마 남아있던 얕은 신뢰를 깨버렸던 것이다. " 그것은 그저 제 소견일 뿐이옵니다." 서빈은 짧게 덧붙였다. 하지만 더 이상 상제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 지 않았다. 다른 생각에라도 빠져 있는 듯 상제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 았다. 저토록 소외받는 존재가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상제는 왜 성휘에게 굳이 왕자라는 지위를 준 것일까. 그것은 서빈을 비롯한 천상계의 모든 이들이 품 고 있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천제가 입을 열지 않는한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사옵니다." 이번에는 상제의 음성이 서빈의 발길을 붙잡지 않았다. 그저 무얼 떠올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는 얼굴로 자신만의 생각속에 빠져있을 뿐. * * * * 천궁 전체를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길에 연화는 잠시 성휘가 머물고 있는 북 별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유배지에서 보던 얼굴과 마찬가지로 밝은 표정을 떠올리고 있긴 했지만 별궁 에서의 생활은 성휘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들었다. 성휘 자신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성휘의 얼굴을 마주대한 연화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 ............." 연화는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울려퍼지는 익숙한 음율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 를 돌렸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가장 즐겨 부는 곡중의 하나였다. 직접 다가가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엷은 피리 소리의 주인은 성휘일 것 이다. ' 갇혀 지낸다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겠지.....' 연화는 한숨을 내쉬며 별궁을 빠져나갔다. '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지켜보는 것 조차도...' 왜 이런 마음이 드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가슴 한쪽이 무거워 지는 듯한 이 감각이 왜 자꾸 자신을 지배하는지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아름다운 천궁의 정원과 누각들도 연화의 눈에 는 그저 보통의 사물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는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면서 마음을 풀어놓는 일 따위는 지워버린지 오래였다. 곳곳에 자리한 누각과 정자에는 할 일없이 다른이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는 귀족들로 어김없이 들어차 있었다. 귀족이라는 단 두글자의 이름 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들. 그들은 그것 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호화찬란한 비단옷을 두 른 그들에게 연화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존 재들. 몇몇 귀족들이 지나쳐가는 연화를 보고 인사를 건네왔지만 연화는 그들 의 인사에 일일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자신역시 귀족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연화는 오히려 검선이 된 자신의 처지 를 다행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지 않은가. 저들처 럼 하릴없이 넘쳐흐르는 시간을 흘려보내지 못해서 안달하지 않아도 되는 자 신의 이 자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손에 익은 검의 손잡이처럼 편안하게 느 껴졌다. ============================================================== 우우...저 극 존칭어... 쓰기 화난다....-- 오늘도 하루종일 일하고 왔더니 무지하게 졸립니다.. 우흑.. 그치만 일하면서 돈을 번다는 느낌은 왠지 나쁘지 않아요..후훗...^^ (이제 돈 독이 올라버린 것일까...) 글이 짧지만 어쩔 수 없사옵니다. 노동후에 글을 쓰려니 눈꺼풀의 무게를 이 기지 못하고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옵니다. ^^;;; 음...무거우면서도 분위기 있고 내용구성이 거의 완벽하며 흥미를 강하게 잡아 당기는 글이 보고 싶으신분들께 신월의 도시를 추천합니다. 하이텔 쓰시는 분 들은 아실 듯 한데.... 19세기 영국의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한 끝내주는 소설 입니다. ^^ 제가 출판되기를 가장 소망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옵나이다. ^-^ 번 호 : 2467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3일 00:16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7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七.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七. 길게 내려온 붉은 빛깔의 주렴 안쪽에서 여인은 낮은 소리로 웃었다. " 진정으로 바라시는 겁니까. 상제?" 여인의 목소리에 가득 찬 오만과 싸늘함은 변함없는 것이었기에 상제는 그 저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응수했다. "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 저 그대의 자리에서 굽어보면 되지 않겠나." 권유하는 듯이 들렸지만 그것은 거부를 배제한채 꺼내는 명령과도 같은 말 이었다. 붉은색의 주렴때문인지 몰라도 여인의 얼굴을 확실하게 볼 수는 없었다. 그 저 주렴을 통해 내비치는 희미한 윤곽만으로 고귀한 신분의 여인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주렴 속에서도 그 흔들림을 확인할 수 있는 화려한 머리장식 과 풍성한 옷자락. " 여인의 투기만큼 저급한 감정은 없지........" 상제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떠올린 채 희미하게 말을 흘렸다. 그의 말을 들 은 주렴속의 여인은 화를 참는 듯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았던 손을 세게 움 켜 쥐었다. 상제는 주렴의 바깥에 비친 그녀의 격한 떨림을 보며 또다시 소 리없이 웃었다. "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 오늘도 평안하시기를 기원하옵니다. 상제..." 마치 조금전의 격정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배어있지 않았다. 노여움도 싸늘함도 없는 그저 메마른 목소리로 여인은 상 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 항시 그대의 신분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거요." 막 방을 빠져나가기 전, 등을 돌린자세로 상제는 또다시 말을 건넸다. 하지 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주렴안의 여인과 등을 돌린 상제는 서로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의 화려함으로 치장된 방 안에서 여인은 숨막히는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원해왔던 자리에 있는 지금이지만 변한 것은 오직 외관 뿐이었다. 눈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은 자신이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 하지만........ 나의 선택은 변하지 않았을거야.....' 여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신이었지만 그 자리가 가진 이름값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은 많 은 것들을 인내하고 또 외면해야만 했다. 지금도 그러했다. 그녀는 상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또 그 일이 또 다른 희생을 불러올 것 이라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장 높은 이름 을 거머쥔 대신 그녀가 얻은 것은 인내심과 기다림. 그리고 식어가는 마음 뿐이었다. " 교연.... 난 그대가 부러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한 여인의 이름이었다. 보 는 이로 하여금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가냘픈 아름다움을 가졌 던 여인. 그리고 그런 그녀를 얻은 것은 천상계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 상 제였다. 종잡기 힘들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상제를 자신이 가진 온화함으로 감싸안았던 그녀. 상제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수년간은 천제 의 여성편력도 잠잠해졌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오 직 그녀를 닮은 처연한 미소를 가진 아들 하나만을 남기고. ' 하지만......그대의 핏줄을 남긴 것은 잘못이었어. 상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없으니까. 당신의 아이를 왕자로 내세운 것 역시....' 교연이 세상을 떠나기 전. 창백한 얼굴로 침상에 누워있을 때 상제는 그녀 의 흰 손을 붙잡은 채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그녀가 눈을 감을때까지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 후의 상제는 보 란 듯이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버렸다. 그때까지의 생활이 거짓이라고 여겨 질 정도로. 만약, 그녀 교연이 살아있었더라면 그녀는 자신에게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을 건넸을 것이다. 상제께서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성격을 가졌을 뿐 이에요...라고. 하지만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녀는 상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오직 교연만이 상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화선의 아이........" 주렴안에서 여전히 곧은 자세를 유지하며 앉아있던 여인은 또다시 작게 중 얼거렸다. * * * * " 제발, 천군님들.... 이 늙은것의 소망을 들어주시기를..... 이 아이만은 제 발..." 이미 오래전에 중년을 넘겼을 듯한 반백의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긴 늙은 여인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거의 매달리다시피 사정하고 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소박한 흰색의 궁장으로보아 그녀의 신분은 평민임이 분 명했다. " 곤란하네. 그대도 잘 알지 않는가. 천제께서 내리신 명령을 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 천상인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 하지만 저 아이는 제 하나뿐인 딸입니다. 그리고 다음달에는 혼약을 할 몸이란 말입니다." 약간 난처한 얼굴이긴 했지만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 천군 궁내부 소속의 현유는 딱 잘라 말했다. " 이 순간부터 그 사실은 잊으시오. 그것이 그대에게도 그리고 그대의 딸 에게도 득이 될 터이니. 이렇게 살기 보다는 궁에서 나오는 돈으로 먹고 사 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소?" 늙은 여인은 다시 간곡한 어조로 현유에게 매달렸다. " 이 늙은 것의 하나뿐인 소원입니다. 천군님... 제발 저 아이만은..." " 아니되네." 한참을 더 매달리던 늙은 여인은 눈물을 삼키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다면 저 아이가 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도 보게 해 주십사합니다. 그것만은 거절하지 말아 주시길....... 제발 부탁드립니다." 현유도 그것만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10년넘게 해온 일이기는 하지만 언 제나 이런일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곤 했다. 반년에 한번씩 각 마을을 돌면 서 빼어난 소녀들을 화선으로 뽑아가는 것이 궁내부에 소속된 현유의 일이 었다. 물론 그만이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항상 남모를 자책감 을 느끼고 있었다. 천군들에게 둘러싸인채 자신의 늙은 어머니가 애원하는 것을 보며 눈물짓던 소녀는 현유의 허락에 겨우 안심한 듯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수십여년간 지내왔던 작지만 아늑했던 자신의 집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소 녀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제 다시는 궁에서 나올 일은 없을테지만 적어도 남겨질 어머니를 위해서 밝은 모습을 보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천궁처럼 고급스럽고 화려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하계의 건물들에 비하면 눈 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질 좋은 재료들로 지어진 기와집들이 늘어서있는 평 민들의 마을. 다시는 두눈에 담을 수 없을 마을의 광경을 눈한반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며 소녀는 막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천군들의 뒤를 따랐다. 연화가 자리한 작은 정자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매일같이 소란스럽게 정 원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기를 반복하던 귀족들의 모습도 오늘은 보이지 않 았다. 하지만 상관 없는 일이었다. 검선이 되니 이후로 그녀는 자신이 귀족 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 어서 들어가도록 하시오." 정자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천궁의 입구에는 많은 수의 천군들이 모여 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머뭇거리며 발걸음을 떼는 소 녀들의 모습이 있었다. 연화는 새로 뽑힌 화선들이 궁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십수명은 되는 듯했다. 대체 궁안을 선녀들로 채워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평민들 중에서 姑고 아름다운 소 녀들은 씨가 마를 것이 분명했다. 단지 몇 명의 새로운 화선들을 맞이하는 것 뿐인데 궁 밖의 광경은 마치 전 쟁터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궁밖까지 따라온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차마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 는 모습, 어머니와 헤어지기 싫어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목놓아 우는 소녀의 모습. 검선이 된 이후로 수도없이 봐 왔던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볼때마다 연화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쌓여가는 것 같았다. ' 상제의 여자들이라........' 천궁 밖에서 선녀들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 그것은 화선에게만 국한 된 말이었지만 천상계의 두뇌라 일컬어지는 천선들도, 상제의 명령을 수행하며 천궁을 방비하는 검선들도 상제의 손아래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단지 화선과의 차이는 그녀들의 신분이 높다는 것. 그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 도 다를 것이 없었다. 탁. 연화는 소매에서 꺼낸 피리를 소리나게 손바닥으로 맞잡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지금까지 바라보던 곳에서 등을 돌린 채 눈을 감고 피 리를 입에 가져다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느다란 피리의 음색이 정자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소리는 궁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천군들과 소녀들의 귓가에도 희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웅... 어제는 눈꺼풀과의 싸움에서 졌습니다...-- 오늘은 애써 싸워가며 쓰고 있답니다...^^ 음... 천상지가는 본편이랑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그렇게 느껴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안 다르다 면 제 글실력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겠지요...^^;; 앗..그리고 오늘 흑룡의 숲을 추천해 주신분이 계셨습니다. 끝나고 난 후에도 추천을 해 주시다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꾸벅.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번 호 : 2505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4일 00:2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8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八.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八. - 화우(花雨)가 내리는 밤.... 숙취 때문에 오후 늦게서야 눈을 뜬 성휘는 나른한 몸을 침상위에 내맡긴 채 검은 눈만을 천천히 깜빡이고 있었다. 축하객들로 붐비던 천궁은 여느때와 같은 차분함을 되찾아가고 있었지만 성 휘가 머무는 별궁에는 그 사그러드는 소란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소란을 느끼 기에 별궁은 너무나 한적하고 외진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휘는 소박한 느낌의 방에서 힘없이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직 삶의 무게에 눌려 지칠 나이는 아니건만 성휘는 너무나 피곤했다. 질식할 것 같은 시선. 그 속에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간들. 익숙해질 법은 하건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멸시의 말들. 모든 것들이 지금 성휘의 몸을, 정신을. 천근만근의 무게로 짓누르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이름도, 그녀와 두 손을 맞잡은 채 했던 약속의 말들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수긍한다고 해 서 모든 것이 뒤바뀌지 않는다. 그토록 녹록한 삶이었다면 지금까지 고뇌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화선의 피를 이은 왕자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검선이라는 이름에 얽매인 존재가 아니었다면. 성휘는 자신을 강하게 옭아매고 있는 천궁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그녀와의 삶을 누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금도 그들은 처음 만났던때와 마찬가지로 애태우는 마음을 속으로 애써 감춘 채 별궁을 벗어나지 못하는 왕자의 신분으로, 천제 직속의 전투선녀 검선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갑자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된 것은 오랜만에 잔뜩 마셔버린 술의 영향 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괴로워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낸 적이 없 었던 자신이었건만 오늘은 무슨이유 때문인지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 가진을......떠나보냈기 때문인가......?' 성휘는 자문(自問)했다. 정식으로 황자비의 자리에 오른 가진은 더 이상 성휘의 여동생이 아니다. 이 제 그녀는 정식으로 현존하는 단 네명의 황족이 된 것이다. 같은 상제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해도 황족과 왕족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얼마전까지 성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매달리곤했던 가진에게 황족을 대 하는 예우로서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건넸던 성휘의 기분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착찹한 것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 가진과 눈을 마주대하며 이 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성휘가 황태자인 오현을 대해왔던 것처럼 가 진에게도 그렇게 깊이 허리를 숙인채 최고의 예우로 대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천상계를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자 가장 강력한 원칙인 것이다. " ...........님.....성휘님."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을 침상에 의지한 채 잠의 끝자락에서 헤메이고 있던 성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낮익은 목소리에 정신을 일깨웠다. 아직까 지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리속이 몽롱하긴 했지만 성휘의 시야에는 방의 정경 이 비쳐들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휘를 깨우던 것은 성휘의 시중을 드는 화선중의 한명이 었다. " ..........무슨 일이지?" 화선은 성휘의 목소리를 듣자 겨우 안도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 냈다. " 그게....저....상제폐하께서 지금 곧 장생전으로 드시라는 명을 내리셨습니 다." 화선의 말을 듣는순간 성휘의 정신은 맑게 깨었다. ' 아버님이......나를...?' 차마 아버지라는 말을 입밖에 낼 수는 없었기에 성휘는 놀란 마음을 속으로 삭히며 몸을 일으켰다. " 내가 별궁에 돌아온지 얼마나 되었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방안에 희미한 붉은 기운이 드리워지고 있는 것으 로 보아 해질녘이 된 듯했다. " 두시진 정도인 듯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상제의 업무가 끝나고 저녁을 할 시간이다. ' 설마 나와 함께 석식을 들기위해 부르는 건 아닐테고...' 성휘는 속으로 생각을 떠올리며 피어오르는 의문을 풀기위해 애썼다. 지금까지 성휘는 상제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더욱 이상한 일인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 천제의 부름이 왔다는 것은. 지난 시간동안 행한적이 없던 일을 갑자기 행할 이유는 없다. 성휘는 침상에서 일어나 거울앞에 가서 섰다. 흐트러진 의관을 정제하고 자신 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살피며 성휘는 버릇처럼 굳어진 한숨을 토해냈다. " 왕자님. 새 의관을 준비할까요?" " 아니다. 그만 나가보거라." 화선은 가벼운 동작으로 고개를 숙이며 성휘에게 인사를 건넸다. 언제나 처럼 그녀의 표정은 옅은 수줍음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성휘의 눈에 그녀의 표정이 들어찰 여유는 없었다. ' 가까이서 만나뵙는 것은 유배를 명하실 때 이후 처음인가....?' 성휘는 얼핏보면 온화해 보이는 인상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리는 천제의 냉랭 한 시선을 떠올렸다. 성휘에게 있어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 의 힘을 가진 상제의 눈빛은 아버지의 그것이 아니라 권위를 가진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내보이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 이제 제게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그저 어찌할 수도 없 는 시간을 보는 눈 뿐이니까요.' 문의 손잡이를 잡아가던 손을 잠시 멈추며 성휘는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 * * * " 상제폐하. 왕자님께서 드십니다." 장생전은 천제의 집무실을 포함하여 천상계를 관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업무 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장생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천제의 업무를 분담하 여 처리하는 천선들과 궁의 방비를 위해 늘어서있는 천군과 검선. 그리고 일 부 허락받은 귀족과 왕족들 뿐이었다. 성휘는 화려하게 조각된 십장생이 새겨진 장생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장생전에서의 기억은 성휘에게 있어서 괴로운 것들 뿐 이었다. 지난번 서천으로의 유배를 명받았을 때에도 많은 왕족과 귀족들 앞에 서 고개를 숙인채 천제의 명령에 수긍해야 했던 곳. 성휘에게 있어 장생전의 의미는 들어설 때마다 천제에게서 신뢰를 잃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 앞에 서 있는 천군들을 제외하고 장생전의 대전안에 자리 하고 있는 것은 상제와 성휘. 단 둘뿐이었다. " 그동안 식사를 게을리 했던 모양이구나. 얼굴빛이 창백한 것을 보니." 천제는 성휘를 보자마자 그 말부터 건넸다. 언제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상제의 면류관과 천제의 정식 관복인 남색의 비단옷은 변함없는 그의 눈빛처럼 익숙한 것이었다. 성휘는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 천상계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신 천제께 인사 올립니다." 인사를 올리고 나서도 성휘는 고개를 살짝 숙인채 태사의에 앉아있는 천제의 발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 오늘 제게 부르심을 주신 까닭을 듣고 싶습니다." 한동안 천제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 별궁에서 근신한지 2년여가 흐른 것 같구나. 이제는 어느정도 잘못을 뉘 우쳤을테니 네 궁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처음 성휘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 .........근신을....풀어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상제의 대답소리가 들려왔지만 성휘는 마음속을 가득채운 놀라움 때문에 그 대답소리를 듣지 못했다. 2년이었다. 2년만에 성휘의 죄가 사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 상 제는 성휘를 용서한 것이다. 오직 상제만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명진관 에 발을 들인 죄를. ============================================================== 음...오늘 것부터 시간이 약간 흐른 후의 이야기입니다. 언제까지 그 시간대에서 미적거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우..그나저나 오 늘은 한편쓰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져서 글이 안 써지더군요...제가 원래 감정의 기복이 심 한 편이라서...후...세상이란 제 맘대로는 안되는 거잖아요..(무슨소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를 맞이하시길... 번 호 : 2545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6일 00:3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73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九.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九. ' 이걸로 아버님이 나에 대한 모든 감정을 버리신 것일까?' 성휘는 단 한번도 아버지의 얼굴로 자신을 대한 적이 없는 상제를 올려다보 며 생각했다. 상제의 허락을 얻지 않은 자는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다는 것 이 천상계의 모든이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 였지만 지금의 성휘는 그 사실조차 잊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 그만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결국 묻고 싶은 것은 마우것도 묻지 못한채 성휘는 대전안을 빠져나가려했다. "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 " ............?" 성휘는 또 다시 의아함을 담은 얼굴로 상제의 얼굴을 마주보는 우(愚)를 범하 고 말았다. 하지만 평소라면 성휘의 작은 잘못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상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성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 상제께서 하시고 싶은 말이란 무엇입니까. 귀를 씻고 경청하겠나이다." 상제는 잠시 그답지 않은 쓸쓸함이 깃든 눈으로 평소보다 창백한 안색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휘를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상제와 성휘의 거리는 너무 떨어져 있었기에 성휘로서는 상제의 눈에 떠오른 감정의 빛까지 읽을 수는 없었다. " 마음에 품고 있는 여인이 있느냐?" 성휘는 잠시 당황했다. 지금 자신이 들은 것이 진정으로 상제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의심이 간 까닭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성휘를 괴롭힌 것은 상제가 자 신에게 그것을 물은 저의였다. 과연 연화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꺼내야 할 것 인지... '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 ....있다면....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있다는 것도 그렇다고 없다는 것도 아닌 성휘의 대답아닌 되물음에 상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 네게 여인이 생겼다면 경하할 만할 일이지. 그렇지 않느냐?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여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입에 담지조차 않았던 너인데." ' 제게 그럴 시간을 주신 적이 있습니까.....' 상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성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 오현도 혼례를 올렸고 하니 혼기가 찬 너도 머지않아 혼인을 해야 할 것 이기에 말을 꺼낸 것이다.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 상제..." " 그만 가보도록 해라. 이제 석식을 들어야 할 시간이니.." 상제는 성휘의 말을 가로막은 채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휘는 급히 허 리를 숙이며 천제를 대하는 예를 올렸다. 그리고 대전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천제의 발걸음 소리가 엷어지는 것을 들 으며 성휘는 몸을 들어올렸다. '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대답은 얻을 수 없었다. * * * * " 정말 이 방법이 가능한 것입니까? 저는 아직도 의문이 듭니다. 과연 당신 의 짐작이 옳은 것인지." 지긋한 나이를 머금은 중년의 목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분명 제 짐작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 실텐데요. 그때 그 자리에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때 상제의 얼굴을 보고 도 느끼는 바가 없으셨다는 것입니까?" " 하지만...나는...." 젊은 남자는 미소띤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천상계에서 누구보 다 계급체제의 유지에 힘을 기울인 자가 있다면 누구겠습니까." " 그야물론....상제..." " 맞습니다. 누구보다도 당연하게 그 계급체제를 이끌어온 자가 어째서 자 신의 행동에 반(反)하는 일까지 하면서 그 여인을 비의 자리에 않혔겠습니까. 그리고 다른 화선의 아이는 모두 궁 밖으로 내보냈으면서 유독 그 하나만을 왕자의 자리에 올렸을까요." " 그건...." 중년의 남자는 우물거릴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기 이를데 없는 상제지만 그 속은 알수 없는 법입니다. 그의 모든 행동의 의도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겠지요." " 그렇다면 그 허울뿐인 왕자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무엇때문이었습니까." " 이런...이런.. 아직도 깨닫지 못하십니까? 그가 가진 힘이 크면 클수록 우 리가 손을 대기는 힘들어 집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힘이 극히 미약하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무리 상제라 해도 책임을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 요." " 그런...." 겨우 알았다는 듯이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굴에 떠오른 미심쩍다는 표정은 여전히 엷게 남아있는 채였다. 갑자기 얼마 되지 않는 시 간동안 알아낸 사실이라며 이야기 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랫동 안 곁에서 상제의 모습을 봐 왔던 자신이기에 더더욱. 그 때문에 몇 달간 세워왔던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들은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방법으로 보다 철저하게 그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상제에게도 자신이 느낀 아픔을 철저하게 되돌려 주고 싶었다. " 머지않아 그 순간이 다가오면 알게 될 것입니다. 상제의 모든 것을 무너 뜨리는 데 이보다 더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요." ' 상제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중년 남자의 뇌리에는 그 말만이 깊게 남았다.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만 이 중요한 것이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은 잡을 수 없다. ' 그자가 무너지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중년 남자의 가슴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증오는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 물론 상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바로 우리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우리가 의도한 대로 바뀔 겁니다. 태자 오현에게는 현 재의 상제만한 통찰력이 없습니다." " 좋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의심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중년남자의 결의에 찬 얼굴을 바라보며 젊은 남자는 빙긋이 웃었다. ' 시간이 주는 승리는 나의 것이다......' 어느 누구도 들을 리 없는 마음속의 맹세.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는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었다. ============================================================== 빨리 끝내려고 발악하는 저입니다...^^; 오늘은 집에서 계속 남의 소설 읽느라 시간이 후딱 다 가버렸습니다. 다들 왜 이리 글을 잘 쓰는지 좌절의 나날들입니다.. 하핫...오늘 것은 좀 짧지요. 그냥 내용상으로 끊느라고... 음 그런데 다른 분들 은 글을 쓸 때 한꺼번에 한챕터 별로 다 쓰는 분이 많은가봐요. 우와...신기해 라...0.o ^^;; 즐거운 하루를 맞이하시길 바라며....저는 이만..샤라락. 번 호 : 2546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6일 00:3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69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十.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十. " 연화.....?" 근신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서지 않던 성휘는 자신의 방으로 찾아온 연화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제가 찾아온 것이 그리도 놀라운 일이셨나요?" " 아니.. 그것이 아니라." " 근신이 풀린 후에도 계속 방에만 계시다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건가 요? 그러니 그토록 얼굴색이 창백한 것이 아닌가요." 평소의 딱딱하기만한 연화라고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염려의 말들. 성휘는 마음이 꽉 찬듯한 느낌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연화를 감싸 안았다. " 연화...보고 싶었어... 갑자기 아버님이 혼사 이야기를 꺼내시길래 걱정도 되었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의 얼굴을 마주대하자마자 모든 근심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군.." " 혼사요?" 연화의 물음에 성휘는 손을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갑자기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는가를 물으셨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물으신 적이 없었 는데 말이야." 성휘의 말을 듣고 연화역시 마음속에 의문을 품었다. 물론 왕자의 신분을 가진 성휘가 혼인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어 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보통의 왕족이었다면 아무런 문제조차 일어나지 않 았겠지만 성휘는 그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 어쩌면........허락이 내려질 지도 모르겠어." " 그럴까요...." 성휘는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연화는 과 연 상제가 자신을 놓아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컸다. 다른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검선이라는 자리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 자 리에 머물게 된 이후로 자신 때문에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을 아버지를 생각 하면 연화는 마음이 깊은 곳으로 가라 앉는 것만 같았다. 상제는 잔인하게도 모든 것을 빼앗은 후에도 그의 자리를 그대로 두었다. 가 까이에서 바라보면서도 다가설 수 없는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어쩌면 연화 자신이 마음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것 때문인지 몰랐다. " 아직은 좀더 두고보기로 해요....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까요." 성휘는 따뜻해진 눈빛으로 연화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하나뿐인 자신의 소중한 여인.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만은 놓치지 않을거라 다짐하며 성휘는 연화를 탁자 앞으로 이끌었다. * * * * " 안녕하세요." 비는 활발하게 웃음띤 얼굴로 공간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찾아온 천상계. 그리고 성휘의 방이라 그런지 생소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반가운 얼 굴을 만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비는 들뜬 기분이었다. " 이런... 비가 아니냐." 연화가 돌아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공간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비를 보며 성 휘는 반가움을 담은 얼굴로 비를 맞이했다. 아무런 가식없이 있는 그대로의 성휘를 봐주고 친구가 되어준 훼이. 그리고 훼이의 하나뿐인 아들 비. " 여기가 원래 성휘의 방이에요?" 훼이를 축소해 놓은 듯한 외모의 비는 별궁과는 확연히 다른 성휘의 방을 둘 러보며 감탄한 듯이 물었다. 성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비. 넌 어떻게 알고 이곳으로 왔지?" " 성휘가 있는 곳으로 공간을 열었으니까 그렇죠. 정확한 위치를 몰라도 제 가 성휘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한 바로 그 장소로 갈 수 있어요." " 그것 참 편리하구나." 성휘는 비를 의자에 앉으라고 권한 후 시비를 불러내 차를 준비시켰다. " 그나저나 훼이는?" 늘 비와 함께 움직이던 훼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성휘는 궁금함을 느 끼며 물었다. 다른 것에는 무척이나 엄한 훼이였지만 비에 대해서 만큼은 아 버지라는 이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훼이를 볼때마다 성휘는 새삼스럽게 아버 지와 아들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 아버지는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며칠 후에 오시겠대요. 요즘들어 하고 싶 은 것이 많으신가봐요." 성휘는 비를 볼ㄸ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통증 때문에 제대 로 비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보기가 힘들었다. 그 맑은 눈을 볼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 다. 이토록이나 순수하고 착한 아이가 맞이할 결말이 그런 것이라니. 만약 자 신에게 다른 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당장에 그렇게 했을텐 데 자신에게는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무런 힘이 없었다. ' 훼이.... 네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나는 그저 네 아이에게 다가오는 죽 음의 그림자를 지켜볼 수밖에 없어. 네게 이야기 해 주지도 못한채. 연화의 말 처럼 모르는 것이 더 나은 일이겠지?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남아있 는 나날들 조차 지금까지 처럼 보낼 수 없을 테니까. 난 너희 부자의 평화로 운 일상을 깨는 것 따윈 할 수 없어.....' " 성휘. 왜 그래요? 차 안마셔요?" 성휘에게 올때마다 마시는 용정차의 맛에 어느새 길들여져 버린 비는 아직 뜨거운 찻잔을 손에 쥐고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 그래. 마셔야지. 잠시 생각 좀 하느라고..." " 무슨 생각했는지 다 알아요." 성휘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알 리가 없는데도 비의 말을 듣자마자 조금전까지 떠올리고 있던 생각을 들켜 버린 것 같아 불 안했다. " 연화라는 이름을 가진 검선을 생각하고 있던 거죠...? 차가워 보이기는 하 지만 아름다운 분이요." 성휘는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지었다. " 어떻게 알았지?" " 당연하잖아요. 요즘의 성휘는 오직 그녀 생각만 한다는 걸 누가 모를 것 같아요? 아버지도 요새 그얘기 뿐이신데요." 성휘는 이제 뜨거운 기운이 어느 정도 가신 찻잔에 입을 댔다. " 오늘은 그동안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나도 알아볼겸 검술 대련을 해보지 않겠니? 나도 좀 달라졌단다. 연화에게 직접 배웠으니까." " 진짜에요?" 비는 눈을 크게 뜨며 성휘는 바라보았다. " 그래도 안질거에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성휘는 마음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미래에 대한 불안함 을 겨우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직은 그 시간이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 우욱..왠 닭살? 난 이런애가 아니야.....도리도리... 음...외전도 처음 생각보다 짧아질 듯 하군요. 역시 저는 분량을 잘 못맞추는 듯....^^; 다음 소설 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난 바보탱이야..--) 음...이건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결말을 예상하는 즐거움 같은건 없을 것 같군요.(다른 건 즐거웠나 뭐...--;) 나도 하루에 두편씩 팍팍 쓰고 싶다. 내일부터 한번 그렇게 해 볼까...할 수 있으려나...과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2570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7일 00:50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6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十一.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十一. " 주위를 물려라." 위압적인 어조로 내뱉은 오현의 말에 성휘의 방을 이제는 감시자로서가 아닌 호위병으로서 지키고 있던 네명의 천군은 얼굴 가득 의문을 떠올렸다. 천군의 신분으로 감히 태자인 오현을 올려다 볼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갑작 스레 찾아온 오현을 맞이하며 깊은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자 신들에게 어느 누구의 방문도 허용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던 오현이 아니었 던가. 그런 그가 무슨이유로 성휘의 방을 찾았단 말인가. " 내말을 어길 셈이냐?" 잠시 우물거리고 있던 천군들은 불호령 같은 오현의 말에 흠칫하고 놀라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 사죄 드립니다. 태자전하.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채 자리에서 물러나는 천군들을 바라보며 오현은 자신에게밖에 들리지 않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언제나 처럼 날 원망해라. 이유같은 건 알려고 하지마....' 오현은 다시한번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 었다. 연화의 투명하면서도 날카로운 검과도 성휘의 가느다랗고 가벼운 세검 과도 다른 보통의 것 보다 넓은 검신을 가진 오현의 검에서는 날카로운 예기 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검이 날카롭 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현은 검을 든 오른손대신 왼손을 내밀어 문을 열었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태자의 관복에 검이 내뿜는 은색의 빛깔은 어울리지 않았다. - 상제가 왕자라는 예전에 없던 자리를 만든 것은 바로 그의 마음속에 그 화선이 얼마만큼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태자시 절부터 그의 여성편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교연 이라는 화선을 만난 후. 그녀가 죽기 전까지 상제는 단 한명의 선녀들도 뽑지 않았습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요? 오현이 그날 그 자리를 지나친 것은 우연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천상계의 심처에 자리한 상천궁의 내부 깊숙한 곳. 그날 오현이 서 고로 가려는 생각을 품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을 것이 었다. - 확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왕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상제가 깊은 나락으 로 빠져들 것이라고? - 물론입니다. 겉으로는 증오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왕자에게 메몰찬 태도를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다를 겁니다. 그의 그런 태도는 또다른 애정의 표현이지요. 더없이 소중한 아들이기에 다른이들에게 멸시당하더라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상제라고 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다르 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좋아요....좋아... 상제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왕자를 이 손으로 없앤 다면.... 그 이상의 복수는 없겠지요. 그가 내 딸과 아내를 빼앗아 갔듯이 나도 그에게 복수할 겁니다. 소중한 이를 잃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뼈져리게 느끼 게 만들어줄 겁니다. 오현은 격양된 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도록 조용 히 멈춰서 있었다. ' 하하... 네 삶은 고작 이것밖에는 되지 않았느냐...성휘? 다른이들에게 이용 당하면서 끝낼 삶이 네 것이었더냐?' - 지금까지 잘해주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성과가 나타나겠지요. 그것의 효력은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으니까요.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겁니다. 자신조차 왜 그렇게 쓰러져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채 말입니다. ' 우습구나. 네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녀석... 단 한번이라도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했더라면 내가 그토록이나 네게 모질게 대했을 것 같으냐?' - 처음 생각했던 대로 거친 방법을 썼더라면 상제가 받을 충격은 덜해지겠 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그는 분명....분명 후회할 겁니다. - 이제는 그도 알게 되겠지요? 자식을 빼앗기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 멍청한 소릴 하는군. 자기 자식을 멀쩡히 두눈뜨고 빼앗긴 것은 자신의 무 력함 때문이 아닌가? 아버님이 무력을 행사한 것도 아닌데 무릎을 굽힌 것은 자신이 아니냔 말이다.' 오현은 두 주먹을 세게 쥐며 소리가 퍼져나오는 방을 가만히 응시했다. 싸늘 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결코 그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울려퍼질 정도로 큰 것은 아니었다. 상제의 핏 줄에게만 이어지는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일뿐. 상제의 반대세력이 모습 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은 바로 알려지지 않은 그의 힘에 있었다. 시간을 읽는 힘. 대다수의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 하지만 아버님이라면 알고 있겠지....... 아직 나조차 보지 못하는 수명부를 손에 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버님 뿐이니까...... 성휘....... 그 바보같은 녀석의 운명도....' - 상제가 무너지고 나면 그 뒤를 잇는 것은 태자이고, 태자가 가진 얕은 통 찰력으로는 결코 우리의 정체를 밝힐 수 없을 것입니다. 오현은 입술끝을 살짝 들어올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 지켜보지. 너희들이 말하는 그 통찰력이란게 무엇인지... 그리고 보여주지... 너희들의 뜻대로는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성휘는 더 이상 밀담을 나누는 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발걸음 을 옮겼다. 이미 그의 마음은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후였다. ' 아무것도 변하진 않아..... 이것이 성휘. 그 녀석의 운명이라면 내가..... 바꿀 테니까.' 보통때와는 다르게 거칠게 문이 열리며 들어선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 던 자의 모습이었다. " 태자전하를 뵙습니다." 오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창백해진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는 성휘의 모습을 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성휘의 곁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던 어린 용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현은 그 답지 않게 잠시 망설였다. 성휘는 분명 긴 소매에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옷의 색과는 확연히 다른 검을 발견했을 것이다. 용족의 소년과 달리 성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까. " 황족의 피를 더럽힌 주제에...." 경멸이 담긴 오현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어린 용족은 사태가 이상하다는 것 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아차렸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바꿀 시간은 주 어지지 않는다. 오현의 손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하핫..원래 20편 넘게 길게 쓰려다가 너무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대폭 잘라 버리고 반으로 팍 줄여버렸습니다. ^^; 어차피 외전이란 작은 에피소드 하나만 보여주는 거니까요. 음... 한 얘기 너무 오래 잡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구요 ^^;; 외전에서 쓰려던 얘기를 본편에서 해버렸기 때문에 중복되는 것도 그렇구요. 결국은 저의 게으름 때문입니다만...^^; 그리고 본편과 약간 다른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설정이 좀 다르기 때문 입니다. ^^;(변명 퍼레이드 --;) 결말은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었지만요 ^^; 돌 던지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요새 너무 쓰기 싫었거든요. 반성합니다.--) 번 호 : 2571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17일 00:5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67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외전 << 천상지가 >> 十二. << 흑룡의 숲 외전(外傳) >> 천상지가(天上之歌) 十二. 왜....? 성휘는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검날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보다도 자신 을 바라보는 오현의 눈에 서린 깊은 슬픔을 보며 의혹을 느꼈다. '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것입니까.....' 물을 수 있다면 묻고 싶었다. 하지만 성휘는 몸을 관통했던 칼이 뽑혀나가는 순간 터져나온 붉은색의 핏줄기와 온몸을 찢는듯한 숨막히는 통증이 그것을 방해했다. 자신이 눈앞에 피어오른 붉은 색의 혈화를 보면서 성휘는 우습게도 잠시 피 는 너무나도 붉다는 생각을 했다. " 성휘!!!!" 날카로운 비의 비명이 들려왔다. " 이걸로 천상계의 황족의 피를 더럽힐 자는 사라지겠군....." ' 다시는 이런 곳에 태어나지 말아라. 이왕이면 연화와 함께 살 수 있는 하 계에 태어나서 이런 곳 따윈 잊어버리고..... 조용하게... 평화롭게 살아라.' " ...........형님...." 끊어질 듯이 힘겹게 성휘는 입술을 움직였다. " 감히 더러운 입으로 날 부르지 마라. 내가 언제 네게 형이라 부르는 것을 허락했지?" ' 고통은 잠깐이다. 이게 널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배려니 까. 꼭 다시 태어나서 네가 원하는 자유를 찾아라. 따뜻하게 널 감싸주는 가 족이 있는 곳에서....' " 안돼....!!!" 울음섞인 비의 외침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성휘의 몸은 허물어 지듯이 바닥으 로 주저 앉았다. " 무슨일이에요?!" 절규하는 비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침착한 얼굴의 연 화였다. 하지만 언제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연화의 얼굴은 방안의 정경 을 눈에 담은 순간 창백하게 부서져 내렸다. " 왜 하필 검선을 택했을까? 검선이 상제 직속의 영구한 자리라는 것을 몰 랐던 것은 아닐텐데....역시 우둔하기 짝이없군...." ' 연화.... 그대에게는 죄를 짓는군.' 오현은 조용히 가라앉은 시선으로 성휘의 몸을 바닥에 눕히고 두손을 마주잡 는 연화의 모습과 쉴새없이 눈물을 떨구는 용족 소년의 모습을 응시했다. " 당장 이 자리에서 사라져요. 당신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어요." 연화는 오현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냉랭하게 말했다. " 지금의 무례에 대한 대가는 차후에 치르게 해주지. 천의 직급을 가진 검 선의 장이 태자에게 그런 태도를 취하다니 실망이 크군." 오현은 이죽거리는 말투로 말을 건네고는 소리나게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 지금 아버님의 곁에 있는 여인은 누구지요? - 화선인 교연입니다. 태자전하. - 아름다운 분이네요. - 그렇습니다. 하지만.... - 왜 그런얼굴을 하지요? - 상제께서 화선이 낳을 아이를 왕자에 봉하신다 하옵니다. 이금까지 있었 던 적이 없는 이례적인 일이라.... - 괜찮아요. 동생이 생기는 거라면. - 하오나 태자 전하. 귀족들과 왕족들의 반발이 심할 것이옵니다. 평민의 피가 흐르는 아이를 왕자에 봉하신다니요. - 하지만 나머지 반은 아버님이 것이 잖아요. - 아니되옵니다. 태자전하. 태자전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황족의 피는 다른 무엇과도 섞여서는 안됩니다. [ 하지만 난 동생을 가지고 싶어...... 분명 교연을 닮아 예쁜 아기일테지... 내 동생은....] 자신의 방에 들어서자 마자 오현은 피묻은 칼을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바닥 의 바닥으로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온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모든 건 지금까지와 같아.....' 오현은 자신의 두손을 조용히 펼쳤다. 그리고 두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펼쳐진 검은 빛은 소리없이 오현을 감싸 고 있었다. < 흑룡의 숲 외전 천상지가 終 > ============================================================== 끝나긴 했는데요. 무지하게 찔립니다. 반성합니다... 모음집 올리면 리메이크 해야지요...^^;;; 우우..다음부터는 나도 꼭 플롯이란걸 짜야지... 꼭..꼭..꼭. 처음과 끝은 원래 의도대로 인데 중간이....오오...중간이....-- 흑흑....다음글도 동양환타지 비스무레한거 쓴답니다... 담번엔 제대로 할께요.. 읽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 드리오며.... 되도록 외전은 깊이 생각하고 읽지 말 아주시어요...^^ (짱돌도...부엌칼도 다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