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부디 바라옵니다... 제 아이가 무사히... 천수를 다 누리고 살 수 있도록 자비로우신 여신께서 돌봐 주시옵소서..." 창백한 달빛이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레 빛을 발했다. 길다 랗고 윤기 있는 흑단 같은 머리를 하나로 정갈하게 묶어 흘러 내린 여인이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무언가를 끊임없이 발원하고 있었다. 아름답게 장식된 정원의 뒤편에 세워진 조용한 누각 안이었 다. 장식이 없는 흰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연신 두 손을 비비 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놓여진 상위에 놓인 물그릇에 담긴 조 각달이 가볍게 흔들렸다. 채 물에 담기지 못한 별들의 빛을 기 대 여인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녀의 파랗게 질린 입술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벌써 수 시간째 여인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님. 또 여기에 계셨군요. 주무셔야죠..." 그녀의 뒤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 가득 안타까운 빛을 띄고 깔끔한 메이드 복장을 한 이십대 중반의 여인이 흰 옷의 여인에게로 다가와 조용히 옆에 무릎을 꿇었 다. 하녀는 감히 손을 대지 못한 채 조심스레 여인의 눈치를 살폈다. "부디 비오니..." 여인은 발원을 멈추지 않았다. 창백한 입술이 추위에 떨고 손끝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여인은 자신을 데리러 온 하 녀에게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부탁입니다. 마님. 몸이 아직 성치 않으십니다." 무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녀는 참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주인인 여인이 이 곳으로 시집오면서부터 쭈욱 그녀를 보필해왔다. 주인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아는 그녀로서는 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둔다면 분명 내일 아침해가 뜰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에... "에취!" 하녀는 일부러 입을 반쯤 열고 큰 소리로 재채기를 터트렸 다. 여인의 어깨가 움찔 했다. 하녀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 밤마다 그녀의 여주인을 찾아 헤멘지가 벌써 삼 년째였다. 어떻게 해야 그녀가 기원을 멈추고 자리에 일어 서는지, 여주인의 성품이 어떤지 하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보통 귀족가의 안주인이라면 자신의 일을 방해한 하녀를 그대 로 두지 않겠지만 멀리 동쪽 대륙에서 시집온 검은머리의 그 녀의 주인은 달랐다. "추운가?" 여인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멈추고 결국 하녀에게 고개 를 돌렸다. 한 두 번 있던 일도 아니면서 그녀의 눈에는 걱정 이 가득했다. "마, 마님. 들어가지 않으시면 제가 주인어른께 경을 맞습니 다." 하녀는 재빨리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는 몸을 약간 떨었다. 여인은 잠시 더 망설임을 보였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 었다. 찾지 말라 한다고 해서 포기할 하녀는 아니었다. 만일 그녀가 돌아가지 않으면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하녀는 내일 이른 아침부터 하녀장에게 호되게 야단맞을 지도 모른다. "후... 그래. 들어가자." 여인은 우아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앉아 있 어서인지 굳어진 다리가 조금 휘청이기는 했지만 여인은 그 몸에 베인 품위를 잃지 않았다. 작은 상과 그 위에 떠올려진 물그릇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여인은 살며시 뒷걸음질처 그 앞을 나섰다. 너무나도 공경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하녀 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먼 대륙에서 온 이 안주인은 독특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말투나 행동뿐만이 아니라 자신들 같은 아랫사람에게 대해주 는 것부터 사소한 물건 하나 하나까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대했다. 게다가... 삼년 전인가 예언가를 불러 뭔가의 예언을 들은 이후부터는 새벽 무렵이면 날마다 나와 이렇게 차가운 물을 떠놓고 여신 에게 기원했다. "마님... 아기씨를 낳으신 후 계속 몸이 좋지 않으십니다. 찬 바람을 조심하셔야지요." 하녀는 잠시 여인이 남겨놓은 물그릇을 바라보다가는 급히 여인을 따라가며 준비해 온 숄을 여인의 어깨에 올렸다. 청량 한 겨울 새벽의 공기가 그들의 체취의 흔적을 순식간에 매워 갔다. "으아아아아! 시끄러워! 시끄러워!" 갈퀴진 손가락으로 정갈히 묶어두었던 머리카락을 마구 흐 트러트리며 금발의 여신은 몸을 뒤틀었다. 손가락 사이에 껴 뽑혀나온 머리카락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여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보러 어쩌라는 거야! 이 아줌마야!!! 난 아이와 어미의 여신 아르페이나라구! 그런 건 다른 신에게 빌란 말이야!!" 몇 번을 더 뒤틀며 몸부림친 후 여신 아르페이나는 자리에 서 벌떡 일어섰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동자에 신경질적으로 구 겨진 옷자락이 그녀의 두 손에 쥐인 채 바들바들 떨렸다. 아르 페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계였다. 이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안되겠어! 어떻게든 해야지!" 까맣게 변한 눈밑을 어루만지며 아르페이나는 이를 갈았다. 벌써 삼년째였다. 이 시간마다 매일같이 한 마디도 바뀌지 않 은 똑같은 기원 소리가 들려온 것은. 아르페이나는 다시 거칠 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질리지도 않아? 질리지도? 삼년째 매일매일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면서 지겹지도 않느냐구!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쩌 렁 쩌렁 울리는 기원을 올릴 수 있는 거지? 이건 마치 우레 소리 같잖아!!" 일반적인 어미들이 자식을 위해 신전에서 기원하는 것이라 든가 신관들의 기도와는 그 힘이 달랐다. 어떻게 빌린 힘인지 는 모르겠지만 새벽의 여신의 청량한 힘과 물의 여신의 고아 함을 빌려 한 어미는 매일같이 날마다 토시도 바뀌지 않는 똑 같은 기도를 되풀이해서 아르페이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흐...으으으... 이걸 어떻게 한다?" 문제는 그 기도의 내용이 아르페이나가 들어주기 좀 어려운 내용이라는데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고통스러워서라도 일 찌감치 들어주고 끝을 냈을 터인데... 아르페이나는 깊이 한숨 을 내쉬었다. "한 일년만 더 참으면.... 그 어미의 생명도 끝나니... 조용해 질 지도 모르지만..." 이런 기세라면 영체가 되어서도 기억이 흩어지지 않고 환생 도 거부한 채 계속 끈질기게 기원을 올려보내며 매달릴 것만 같았다. 아르페이나는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쓸어 내렸다. 끈 덕진 기원만으로도 충분했다. 진드기 같은 영혼까지 붙어 다닐 지도 모른다는 건... 이미 델 데로 덴 여신에게는 공포스럽고도 남을 상상이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거의 울상이 다 된 얼굴로 아르페이나는 가슴을 두드렸다. 기도에 섞여 올려보내는 물 한 그릇의 정성은 신력을 촉촉이 적실만큼 만족스러운 것이기는 했지만 이젠 그것도 더 이상 반갑지 않은 아르페이나였다. "하아... 난 출산과 양육의 여신이란 말이야... 아이와 엄마의 행복을 지키는 여신이지 전쟁터에서 기사를 지켜줄 수 있는 투신이 아닌데..." 기사의 가문에서 독자로 태어나 일생을 전쟁터에서 살게될 지도 모르는 핏덩이를 위해 어미가 올린 기도는... 앞으로 있을 아들의 전투에서의 안녕과 무사함이었다. 그것도 평생을 건. "아니야. 내가 못한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그만큼 무시한 채 있었으면, 다른 여인이었다면 더 알아보고 다른 신 에게 빌었음직한 시간이었는데... 으으으... 이 찰거머리 같은 끈질김이란... 동대륙 출신들은 다 이런 건가?" 머리를 흔들며 좌우를 복잡하게 오가던 아르페이나의 몸이 갑자기 멎었다. "어라? 동대륙?" 여신의 눈동자가 복잡하게 굴러갔다. 입꼬리가 살짝히 볼로 당겨져 올라갔다. 미간에 접힌 주름살이 살며시 펴지며 눈매가 미묘한 곡선을 그렸다. ".............그래. 분명 동대륙 출신이었지... 내 셀 수 없는 시 간 속에 존재해 왔지만 단 한번도 이런 거머리 서대륙인을 접 한 적이 없었으니까..." 단지 그녀가 동대륙 출신이기에 이런 기원을 보낸다고 가정 한다면 아르페이나에게도 뭔가 탈출구가 있을 수 있었다. 분명 동대륙의 신들에게는 이런 기원자의 끈질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법 했다. "그래. 그럴꺼야. 그렇지 않고서야 하나로도 벅찬 기원을 수 만, 수억 받으면서도 미치지 않고 멀쩡할 리가 없어." 아르페이나의 눈동자가 밝아졌다. "그러고 보니... 그 방법도 있겠는걸?" 아르페이나의 눈동자가 조금 더 커졌다. 그녀의 기억에 분 명 그 어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만한 존재에 대한 자취 가 있었다. 그녀는 손뼉을 크게 맞췄다. "그래! 내가 못하면 남이라도 시키면 되는 거야!" 삼 년 만에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 동 대륙의 삼신할미는 정신이 없었다. "그,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자다가 달려나왔는지 엉성한 잠옷차림에 반쯤 풀어헤친 머 리를 다듬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날아와서는 다짜고짜 '당신 대 륙에서 당신이 점지해서 태어났던 아이니까 당신이 책임지라' 며 아우성치는 한 여신덕분이었다. "닥치고 본론만 이야기하지 못해!!!" 놀라고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인내력은 바닥을 향해 치달 렸다. 삼신할미의 속에서 부화가 끓어올랐다. 영업 방해도 어 지간한 방해가 아닌가! 삼신할미는 자칫 잘못 점지해 줄 뻔한 아이의 영혼을 다시 붙잡아 제 자리로 돌려놓으며 눈꼬리를 날카롭게 끌어올리며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여신의 손 을 매섭게 뿌리쳤다. 삼신할미의 변한 기세에 움찔한 산발의 여신이 눈물을 훔치며 콧물을 쿨쩍였다. "쿨쩍, 책임져요." "뭐?" "책임지란 말이예요! 삼신할미가 점지해서 태어난 아기였잖 아요! 서 대륙에는 이렇게까지 시끄럽게 기원하는 사람이 없단 말이예요! 그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해도 내가 다 들을 수 있는 데! 이젠 제가 미칠 지경이라구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다시금 목소리가 히스테릭해지며 본론을 알 수 없게 되어버 린 서대륙의 여신 아르페이나의 말에 할미의 흰 눈썹이 다시 꼭대기까지 치켜 올라갔다. 아르페이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 을 삼켰다. 짜증과 분노로 달아올랐던 이성이 삼신할미의 기세 에 서리맞은 듯 차갑게 식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한 어미가 시끄럽게 매일 기원해 대는 바람에 지금 전 삼년 째 밤잠도 못 이루고 있단 말이예요." "그래서?" "서 대륙의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시끄럽게 빌어대지 않아 요. 그 어미는 동대륙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란 말이예요." "그러니까?" 기가 막히다는 듯 삼신할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감싸쥐며 삼신할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렴풋이 이 서대륙의 여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와 닿고 있었다. 여신씩이나 되는 존재가 겨우 그런 일로 여기까지 찾 아와 타 대륙의 신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일까지 방해한단 말 인가! "그러니까... '삼신할미가 점지해서 태어난' 이 동대륙 출신 의 아이가 우리 서대륙까지 와서 신들을 괴롭히니까..." 자신도 조금은 찔리는 바가 없지 않았는지 아르페이나의 목소리가 조금 잦아 들어갔다. 삼신할미는 버럭 고함질렀다. 푸른 불길같은 노화가 할미의 두 눈동자에서 번득였다. "이, 다 자란 아이를 내가 어떻게 책임져! 게다가 아기까지 낳았다며! 그럼 이미 아이가 아니잖아!" 아르페이나의 발걸음이 주춤 반보 뒤로 밀려났다. 아르페이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기세에 지면 그녀는 또다시 셀 수 없는 시간동안 그 찰거머리 같은 기원과 영혼에게 시달려야 할 지도 몰랐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서대륙의 여신 은 이를 악물었다. "하, 하지만 전에 삼신할미가 그랬잖아요! 이 동대륙에서 태어난 아기는 영원한 할미의 아기라고!" "..................크." 삼신할미는 순간 말을 잊었다.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었건 만! 그 동안 일이 많다며 고빼기 한번 내비치지 않던 서대륙의 여신은 난데없이 찾아와 수 백년의 말을 책임지라며 억지에 가까운 떼를 피우는 중이었다. 할미는 크게 숨을 들이쉈다. 자 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무한의 시간 속에서 알아온 사이였다. 어지간한 일이었다면 이 정도의 노화를 보이면 순순히 물러날 아르페이나였다. 할미는 아르페이나의 푸른 눈동자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었다. 할미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서 나더러 어떻게 하라구." 삼신할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멀리 서대륙의 신이 이렇게까 지 날아와 극성을 부린 일은 처음이었지만 끈질긴 기원에 대 해서라면 이런 종류의 일은 간간히 있어왔던 종류였다. 사람들 이 모르고 엉뚱한 신이나 영에게 바친 기원을 듣다 못한 신이 나 영들이 찾아와 하소연하며 들어달라고 간청하는 그런 일들 이 말이다. 실제 삼신할미도 그런 방식으로 아기를 점지해 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도와주세요." 삼신할미의 이마에 작은 실핏줄이 섰다. 이름과 모양새는 다르지만 그녀와 아르페이나는 결과적으로는 하는 일이 비슷 했다. 아르페이나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미가 할 수 있을리 는 없었다. 할미는 다시금 숨을 들이쉈다. "어떻게?" 아르페이나의 입끝이 옅은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별빛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아르페이나는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어떤 상황이나, 어떤 전쟁터에서도 그녀의 아이를 지키고 보좌해 줄 수 있는..." "있는?" "최강의 하녀 하나만 찾아주세요." ".........................." 잠시의 침묵이 공간을 잠재웠다. 할미의 인상이 구겨졌다. 지금부터 아이를 태어나게 해서 시련을 주고 강해지게 만든다 해도 인간의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갔다. 만일 그런 운명의 영 혼을 찾아 점지해서 기른다 하더라도 아르페이나의 요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할미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최강의... 하녀? 왜 하필 하녀야?" "그게 제일 만만한잖아요. 어디든 따라다녀도 어색하지 않 고. 친구라든가 부하라든가 해도 떨어지게 되어있기 마련이라 구요. 게다가 어미의 수명이 짧다구요. 일년밖에 안남았어요. 아이는 이제 세 살이구요. 어미의 주문에 맞추자면 아이가 아 직 어리니까 돌봐줄 사람도 있어야 하고...." "그런가?" 삼신 할미의 고개가 갸웃했다. "뭐, 이번 일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겠군. 나도 도 움을 받아야겠어."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며 삼신할미는 굽은 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노화가 잠시 머물렀던 눈동자에는 이미 새로운 호기 심이 번득이고 있었다. "함께 가지." 몸을 돌린 할미의 입술에 미묘한 곡선이 담겨있었다. *** "그렇게 된 거야. 최강의 하녀 하나만 줘." "............................." 다짜고짜 찾아와 손을 내민 삼신할미를 보며 동대륙 최강의 무신(武神)이자 전신(傳神) 적호는 눈치껏 이맛살을 깊게 구겼 다. 할미는 시선도 흔들리지 않은 채 적호를 응시했다. 적호는 은근슬적 시선을 피했다. 분명 지금 그의 눈이 닿는 인간 세상 에는 나름대로 최강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강자 가 분명 몇몇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 꼭... 그래야 하나요?" 그런 강자가 뭐가 아쉬운 일이 있어 남의 하녀로 들어간단 말인가! 그 것도 자신의 일생을 걸고! 게다가 여인의 몸으로 강함을 얻은 만큼 그들이 지니는 자존심은 보통이 아닐텐데! 떨떠름하게 인상을 구긴 적호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삼신할미의 눈빛이 가볍게 반짝였다. 할미는 크게 고개를 끄덕 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 재미도 쏠쏠 하고." "하,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지켜준다는 건, 지키는 사 람에게도 일생이 들어가는 일이라구요. 그렇게 쉽게 할 수가... 게다가 하녀라면 여성일텐데..."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적호는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삼신할미의 눈썹조차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삼신할미 는 이미 그 뜻을 굳힌 듯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번 결정 할 때까지는 꿋꿋이 버티지만 일단 결정하고 밀기 시작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게 삼신할미의 성정임을 잘 아는 적호는 연 신 한숨만 내쉬었다. "할머니...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애절하기까지한 얼굴로 적호는 간청했다. 삼신할미라면 적 호도 무시하지 못할 신이었다. 게다가 적호는 지난 수 만년간 그 휘하의 무신들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경험치를 높여왔다. 다 삼신할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마디로 진 빚이 많았다. 삼신할미가 진심으로 부탁한다면 적호는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일생이 평생이 아닌 자를 꼽으면 되지 않는가!" 상황을 줄줄이 설명했음에도 부탁을 들어주기는커녕 미적거 리기만 하는 적호에게 화가 난 듯 삼신할미의 언성이 조금 높 아졌다. "하, 하지만..." "어허! 내가 삼백 년 전에 태어나게 해 줬던 그 무신이 있 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녀가 제격인 것 같은데!" "하, 하지만 그녀는 이미 너무나 강합니다! 누른다고 눌릴 존재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이제 신으로서도 완성체에 다가가는 그녀인데! 그 자존심에 누군가의 하녀 노릇을 하려 하겠습니 까? 이미 지상에서는 검후이자 무후라는 이름으로 거의 신격 화되어 칭송 받는 존재인데!" 아까보다 더 훨씬 더 처량하게 얼굴을 구기며 적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삼신할미가 가볍게 혀를 차며 적호에게로 다가 섰다. 할미의 입가에 걸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며 적호는 한 번 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할미의 부탁을 그는 떨칠 수 없었다. "쯪즈. 머리를 쓰면 되지 않나! 머리를!" "...머리를요?" 삼신할미가 손가락을 죽 뻣어 떨떠름한 적호의 귀를 바짝 잡아당겼다. "그 자존심을 이용하잔 말일세." *****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7 Mon 20:11:41 IP : 211.215.58.173 희야 흐트러트리며 -] 흐트러뜨리며 / 토시 -] 토씨 / 델 데로 덴 -] 델 대로 덴/ 고빼기 -] 코빼기 겠지요. 혹시 도움 될까 해서 올려봅니다. 오랫동안 매일같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창파기는 안하시는지요. 전에 창파기 연재하시던 곳은 여전히 접속이 안되더라고요. 하여튼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05/29,21:15) 순수청년 마쟈마쟈=_= 창파기는 언제 연재하시려는지.....;; (05/30,22:36)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 [[The Perfect MAID]]-prologue-비련의 주인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5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4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0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5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0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2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2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은빛 2002/05/27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귀가 가려워...' 귀 안쪽의 공기를 정화시켰지만 여전히 가려웠다. 오래 전 에 느껴봤던 불길한 감각이 살짝 신경을 스쳤다. 예지라고 할 만큼의 거창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새인가 자연스럽게 갖게 된 감각. 이럴 때면 꼭 누군가가 날 배신했었다. 씁쓸한 감정 이 되살아난다. '이런 건 사라지지 않는 건가?' 모두 시간에 뭍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날 도와주었던 이들 도, 내 믿음을 저버렸던 이들도... 용서고 뭐고 다 지난 일들이 었다. 그럼에도 그때 느꼈던 그 불쾌함은 내게 기억으로 남는 다. 그 반갑지 않은 감각... 피부가 간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은 그 이상한 느낌이 오늘 아침부터 내내 사라지지 않았 다. '오랜만이군.' 문득 그런 불쾌함과 간지러움조차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근 백년만이다. 세 번째로 허물을 벗고 세 번째로 새 몸을 얻 은 뒤로는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들이다. '아직 난 살아있는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여기고 있던 내게 감정과 감각 들은 '삶'이라는 과정이 주는 '무언가'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텐데도 새삼스런 신선함이 폐부를 씻 어내리는 것 같다. 이른 아침 특유의 상쾌한 공기가 새롭다. 매일의 아침은 같 은 것 같으면서도 단 한번도 같아본 적이 없다. 난 문득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이 허공에서 살아왔음을 느꼈다. 바닥에 내려가 보고 싶다. 풀잎의 감촉이 발바닥에 닿았다. 바삭거리는 소리 와 함께 풀잎이 눕는다. 이슬이 시원하다. 촉촉한 아침 땅의 감촉이 신선하다. "가끔씩은 땅을 밟는 게 좋은 것 같아." 소리내어 '말' 해 본다. 귀로 들리는 내 목소리가 무척이나 낯설다. 가끔 벗을 만나 말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내게 들리는 목소리들은 또 새롭다. 문득 이렇게 땅으로 내려온 일 이 꽤 오래 전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려움증과 함께 다 가왔던 왠지 모를 불길함에 가라앉았던 감정이 조금 씻겨져 나갔다. 시간이 되살아났다. 땅을 직접 밟는 건 언 십여 년만이었 다. 자유롭게 공중에 떠 있을 수 있게 된 건 백년 전의 일이었 지만 자면서도 아무런 의식 없이도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그 저 바람처럼 하늘에 '존재'하게 된 건 십오 년 밖에 되지 않는 다. 무엇이 더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시 세상에 끝이라는 건 없다. "그 때 적호님의 제안을 거절한 건 잘한 일이었어." 구십 년 전쯤 이 동대륙의 천계 최강의 무신이자 전신(傳 神)인 적호님이 나를 찾아왔었다. 세 번째로 새로운 경지를 넘고 난 후, 새로이 얻어낸 내 세 번째 육신과 내 자신에 대한 만족감에 젖어 새로운 경지를 찾 을 생각을 잠시 못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적호님은 내게 동대 륙의 천계로 함께 돌아가자며 손을 내미셨다. 더 이상 이 세계 에서 발전할 것이 없다면 돌아가자고... 그 분은 내게 말했다. 난 원래 이 지상의 존재가 아닌 신족 이라고. 망각하지 못하는 신의 한계를 넘어 더 강해지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와 수행했었노라고... 충격이었다. 그 순간 나를 막고 있던 작은 벽 하나가 무너졌다. 만족과 자만이라는... 작 지만 결코 낮지 않았던 벽이. 적호님께는 미안하지만 그 충격 은 잠시 느슨해져 있는 내 정신을 깨웠다. 신족으로서 존재했 던 시간들에서 내가 겪었었던 정체감이 되살아나며 나로 하여 금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망각이라는 힘을 쓸 수 있는 지금밖에는 이룰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더 이 루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까지 고생해서 만들고 다듬어낸 내 몸을... 두고 가고싶지 않았다. 육신을 버리고 신력으로 만 들어낼 새 몸이 얼마나 강하고... 좋더라도 말이다. 난 적호님의 손을 잡지 않았다. 신에게도 신체(神體)라는 몸 이 있는데 신족이라는 내가 육체(肉體)라는 몸을 단련시켜 그 경지까지 가는 게 왜 불가능하겠는가. "언젠가 이 육신 그대로 신이 되어 돌아가겠습니다." 적호님은 잠시 망설이다가는 이내 포기한 듯 내 어깨를 가 볍게 두드리고는 천계로 몸을 돌리셨다. 이후로 난 다시 미친 듯 수행에 매달렸다. 내 태어난 목적이 그래서였을까? 난 미친 듯이 무(武)에만 매달렸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는 것도 부모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서러움도 날 막아서지 못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아주 작은 순간들조차도 모두 접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언제 나 단 한가지뿐이었다. 그랬기에 난 내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 을 수 있었다. 모두가 포기하건 말건 간에 말이다. 쉽지 않았다. 단지 여인의 몸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부들은 내게 가르쳐주기를 꺼렸다. 난 악착같이 배워야 했다. 눈동냥, 귀동냥. 그 조차도 쉽지 않았지만 난 물러서지 않았다. 매 순 간마다 찾아오는 육신의 한계. 남들보다 뒤지는 자질. 작은 키. 주위의 편견. 쉽게 늘지 않는 경지와 실력... 포기하고 싶은 순 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힘들었다. 정말로 어려웠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 영혼의 바램이었기에. 난 늘 꼴찌였다. 열심히 가르쳐줘도 어려울 판에 버려진 특 별한 자질이나 소질도 없는 내가 강해지는 것은 하늘에 별을 따는 일 만큼이나 불가능했다. 나보다 갑절은 더 빠르게 실력 이 늘어가는 남자 동기들을 바라보며, 단지 내가 여자이기 때 문에 거부당할 때마다 내가 여인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것에 원망도 많이 했다. 남자이기를 바랬던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갈등들은 곧 사라졌다. 나 자신에 대한 승부. 무예(武藝)란 결국 거기서 결착을 보 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정신을 더 성숙시키고 강하게 함이 더 옳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바꿔 먹 었다. 내 나이 서른 즈음, 그렇게 결심하고 난 이후로는 모두 가 나를 앞질러나가더라도 흔들리지 않았다. 남자 제자들에게 는 하나씩 나누어주는 영약을 나만 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강해질 때 난 스스로 나 아가기를 힘썼다. 그 결과는 근 백여년이 걸려서야 나타났다. 그들이 제자를 기르고 문파를 키워 나가는 동안 난 내 수행 에만 힘쓸 수 있었다. 그건 필연이었다. 40줄에 넘어서서 다들 제자들을 길러나갈 때쯤, 난 그들의 제자들보다 조금 더 난 실 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형(形)이야 제대로 갖추었 지만 스승들의 보호 아래 독특한 내공(內攻) 심법(心法)을 배 우고 영약을 퍼먹는 그들과 기초적인 심법 하나에 약이라고는 내 스스로 운 좋게 찾아낸 치료용 풀뿌리 정도 주어먹는 나와 는 내공이 모이는 속도가 달랐다. 난 문파라는 틀 안에 겨우 발만 딪고 있었을 뿐, 실제로는 제자 대접을 거의 받지 못했 다. 난 천덕꾸러기였다. 그렇게 내 나이 50줄까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열심히 하는 폼 덕분에 쫒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내가 이렇게 육신을 지니고 신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큰소 리치게 된 발판이 만들어진 계기는 내 나이 55세가 되어서야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기적 같은 일이다. "꾸준하고 정확한 게 제일이지... 좋다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배우고, 약 몇 뿌리 먹어 힘 좀 좋아졌다고 기고 만장해 서는 발전할 수가 없어." 결과적으로야 그 분의 말씀이 맞았지만 그 당시... 막 서른 줄에 들어선 동기들의 제자들보다도 더 약하던 나와 그들을 비교하며 하셨던 그 분의 말씀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그 분께서 나이가 들어 노망에 드셨다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난 그 분밖에 믿을 게 없었다. 난 그분을 따라갔다. 전대의 장로이시기도 한 그 분은 우연히 다른 제자들에게 내 이야기를 듣고 어찌하나 보러 오셨다가 내가 마음에 드셨 다고 하며 날 자신의 제자로 삼으셨다. 순식간에 배분이 뒤집 어졌다. 많은 이들이 날 손가락질했다. 배분이야 뒤집어졌건만 내 실질적인 위치는 이전보다도 더 낮아졌다. 난 그분의 허름한 모옥에서 무예를 다시 배웠다. 내가 오십 여년 배운 거라고는 기초밖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남들은 기초 내공 공부를 하는 동 안 두어 달만 먹는 벽곡단과 생식을 난 평생 먹어왔어야만 했 으니까... 그 분께 난 오십여년을 배울 수 있었다. 마치 시간이라도 멎은 듯 다른 이의 참견도 없이 우린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 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미 은거한데다가 노망까지 났다는 전대의 장로와... 이미 포기한 늙은 여제자는 더 이상 문의 사람들의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사부님께서 늦장가를 들어 깨가 쏟 아지게 잘 살고 계신다는 소문이 돌았다나... 내가 남자 제자였 다면 절대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괜히 죄송스러웠던 기억이 다. 그렇게 50여년 스승의 지도를 받아 공부한 시간은 내 생애 최초의 행복한 순간이었다. 머리는 빠개질 듯 골치 아프고 몸 은 죽을 듯 힘들었지만 무언가의 성취감과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내게 일어설 힘을 주었고.... 그런 날 포기하지 않은 스 승이 있었기에... 난 내 나이 106세 때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늙고 주름진 육신이 허물 벗듯 벗어져 나가고 새로운 몸과 뼈를 얻었다. 강하고 젊은... 내 어린 시절에 바라마지않 던 그런 강함을 얻었다. 사부님은 그런 현상을 일컬어 '환골탈 태'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난 직전과 비교해 갑절은 더 강해졌 다.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환골탈태를 했다는 것 그 자체보다 그 때 까지 늙어죽지 않고 살았다는 게 더 신기하기는 하지만 말이 다. 아마도 말년이나마 사람들에게 부딛기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다음해 난 내 생예 최초로 만났던 진정한 스승을 천계로 떠나보냈다. 그 분은 조용히 앉아 좌선하셨다. 마치 명 상에 잠긴 것처럼. 난 모옥을 떠났다. 갑자기 닥쳐든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 다. 그분의 유품들을 조용히 불에 태우고 문을 단단히 잠그고 난 몸을 돌렸다. 산에 흰 눈이 가득 쌓였을 무렵이었다. 내 느낌보다도 시간은 더 냉정하게 흘러 있었다. 처음 심었 던 모옥 앞의 나무가 무성해진 것보다도 더 많은 변화가 산 아래 있었다. 50여년만에 돌아온 문에는 이미 새로운 얼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날 가르쳐주었던, 아니 날 귀찮아하던 사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모두 말이다. 내 동기들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몇몇만이 장로급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남아있었고, 그 나마 대부분은 나보다도 어린 동기들이었다. 나보다도 강하고 나보다도 더 많은 약을 먹었던 그들이었는데... 난 지금 살아있 는데 그들은 모두 떠났다. 그들은 100살도 넘기지 못하고 다 죽었다. 그리고 나보다 강했었던 그들의 제자들이 남아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있었다. 떠도는 헛소문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나를 '내 자신의 딸'로 알고 있었다. 노망난 늙은 전대의 장로가 늙은 여제자를 거둬 늦장가 가서 낳은 딸이라나 뭐라나... 황당하기도 했고 어의가 없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냥 넘어갔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부딛 끼지 않았던 터라 난 말도 잘 하지 못했고, 딱히 증명할 방법 도 없었다. 실제 난 내 사부님의 딸과도 마찬가지였으니. 과정 은 조금 이상했지만 난 그 분의 딸이 맞았다. 하지만 그 곳에도 내가 머물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복잡했 고 난 그들에게 휘말려 내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갑 자기 나타난 배분만 높은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방황했 다. 모두가 나를 이용하기에 바빴다. 아니, 더 이상 세상에 없 는 내 스승의 그림자를 이용하기에 바빴다. 내 스승의 뜻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모르는 자들이 그 분의 그림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난 불쾌했다. 그래서 떠났다. 그 이후로는 더 엉망이었다. 뭘 어쨌길래 그런지는 모르지 만 내가 가는 곳은 싸움이 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말을 오해했고 멋대로 해석했다. 게다가 한번 깨진 자들은 연거퍼 다시 덤볐다. 그 자가 다시 덤빌 수 없으면 그 친구가 와서 검 을 들이밀었고, 친구가 없으면 어린 자식이, 아내가, 같은 문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낮선 자가 내게 살기를 내뿜으며 덤벼들었 다. 줄줄이 새끼줄 엮이듯 꼬여 그들은 날 적대시했다. 도산검 림(刀山劍林)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난 실감할 수 있었다. 산 아래의 세상은 말 그대로 칼끝에 발을 딪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난 처음으로 누군가와 싸워 이겼다. 그리고 처음 으로 누군가를 죽였고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의 피도 보았고 눈물도 보았다. 고통스러웠다. 모옥의 수련시절에 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고통이 매일같이 펼쳐졌다. 난 고민했 다.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더 강해지면 된다.' 어느 누구도 날 이용할 수 없도록. 내게 덤빌 수 없도록. 날 배신할 수 없도록. 내가 강해지면 된다. 나는 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나이 160여세 때 두 번째 의 환골탈태를 경험했다. 이전보다도 더 강해진 힘과 육신, 그 리고 진보된 차원이 날 맞이했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이 날 찾아왔다. '강함의 끝은 어디일까? 무의 끝은 또 어디일까? 난 어디까 지 갈 수 있을까?' 처음의 환골탈태 때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의 경험까지, 난 두 번째의 환골탈태가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두 번째가 있었다. 그 렇다면... '세번째와 네 번째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까? 문득 스승께서 해 주셨던... 그 때는 별 의미 없이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이 세상에는 무신들이 경험을 쌓기 위해 내려오기도 한단 다...' 그렇다면 그 무신들을 만나보면 뭔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 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바로 그 무신일꺼라고는 전혀 상상 도 해 보지 못한 터였기에... 난 무작정 그런 생각으로 다시 모 옥을 떠났다. 산을 떠나며 또 한번 들려본 문은 더 많이 변해있었다. 동 기의 제자들도 다 늙었다. 그들의 제자가, 또 그들의 제자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난 굳이 그들에게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문과 나와는 아무런 인연의 끈이 남아있지 않 았다. 그 때였다. 백발이 성성한 누군가가 날 알아보며 달려나 왔다. '사숙조님을 뵙습니다!' 문득 인연이 참으로 질기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말을 통해 난 내가 무림에서 '백의검후'라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번에 내려갔을 때 죄충우돌하며 일으켰던 사 건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백의'란 말은 사부님의 좌선을 기 리며 흰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인 듯 싶다. 그들은... 아니 이미 가버린 그들의 스승들인 내 동기의 제 자들은 그제서야 내가 환골탈태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 다고 했다. 내가 나 자신의 딸이 아니라 그때의 '그 여제자'라 는 사실을 그제서야 실감했다고 했다. 내 나이 165여세라 했을 때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난 세상이 보여주는 강함이란 이 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진실로 비추게 하는 힘... 아니면... 거짓조차도 진실로 바꾸어 버리는 그런 것 같은 힘 말이다. 그들이 날 찾아내기 전에 내가 먼저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 다. 내가 살고있는 모옥은 언젠가부터 금지 비슷한 곳이 되어 감히 찾으러 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내가 그 곳에 머물 러주기를 바랬다. 나는... 허락했다. 수 십년 전처럼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힘이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난 외로웠다. 난 그들에게 적을 두고... 여행을 떠났다. 확실하게 돌아오겠 다는 약조를 남기고서 말이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그들에 게는 내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내가 속했던 '백검문'이라 는 문은 작지도 않았지만 그다지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곳 도 아니었다. 자연 이리 저리 흔들리기 일수였고 커다란 문들 의 싸움에 끼어 꽤나 억울하게 많이 죽기도 했었다. 내 관심 밖이기는 했지만 당시 무림이란 곳은 꽤 시끄러웠 다.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도 아니고... 고만고만한 것들이 문 이라고 만들어서는 허구 헌날 치고 박고 싸우기 일수였다. 난 내게 덤벼오는 자들을 깨끗이 짓밟으며 무신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몇몇 무신이라 추정되는 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 동안 난 본래의 내 별호 뒤에 '철혈냉심'이란 새로운 별 명을 달았다. 내게 밟힌 자들이 많기는 했다 보다. 그 때 즈음 난 세 번째의 환골탈태라는 것을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 문으로 돌아왔다. 이전과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날 반겼다. 난 그제서야 실 감했다. 난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아니구나... 사부님이 보고싶 어졌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내가 여인으로 태어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내 자신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난 사부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거니까. 무신을 찾기 위해 했던 여행에서 난 얼떨결에 몇몇의 벗을 사귀었다. 사실 벗이라기 보다는 선의의 경쟁자라는 표현이 더 옳겠지만... 그들 중 둘은 나처럼 두 번의 환골탈태의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우린 삼 년에 한번씩의 비무를 약속했다. 난 다시 모옥에 틀어박혔다. 어떻게 하면 내가 흡수하고 있 는 자연의 힘을 그대로 다 쓸 수 있을까가... 그 과제였다. 그러고 보면 내 스승은 환골탈태는 한번도 못해본 분이었 다. 그럼에도 가끔 날씨를 움직였다. 비를 내리게도 하고 바람 을 그치게도 했었다. 그런 힘을 그분은 선기라고 불렀다. 무예 로 인한 힘이 아니라 깨닳음으로 인한 힘이라 하셨다. 그 힘을 무예로도 불러낼 수 있지 않을까. 삼 년마다 한번씩 문답으로나마 비무를 겨루고 우린 서로의 경지를 엿봤다. 그리고 난 내가 발전하는 속도가 그들보다 월 등히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답은 가까이 있었다. 본래 모 든 생명을 품은 대지의 속성에 가까운 것이 여인이 아니었던 가! 덕분에 난 그 당시 나와 비슷한 경지에 있던 몇몇의 사람들 보다 50년은 더 빨리 다음 경지에 들 수 있었다. 뭐... 전체적 인 나이로 따진다면야 내가 그들보다 훨씬 느린 편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즈음 난 새로운 대륙도 경험했다. 서대륙이라는 곳. 내 가 태어나 살던 이 동대륙과는 문명도 문화도 심지어 신조차 도 전혀 다른 먼 대륙... 난 두 번의 환골탈태를 했던 두 사람과 함께 배를 구해 마 의 바다를 건넜다. 서로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거의 교역 이 없던 그 곳에 대한 소문이 진실인지를 알고 싶었다. 마의 바다는 거칠었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크면서도 왜 두 대륙간의 교역이 거의 없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무의 힘으로서는 다른 이들에게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칭송을 듣는 우리였건만... 항해는 참으로 버겁고 힘들었다. 우리가 수 백여일 정도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무림의 최고 실력자 셋 이 나란히 바다에서 굶어죽을 뻔했다. 아니... 목이 타 죽을 뻔 했다는 편이 더 옳겠지. 결국 물고기의 피와 수액으로 우린 연명했다. 이런 저런 큰 생명체들에게는 거의 물에 가까운 수액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얼떨결에 알아내게 되기는 했지만... 아니 그만 큼 많은 발악을 했기에 알아낸 일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도 별로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다. 우린 돌아가며 바다로 들어가 이것저것들을 잡아와 먹었기 에 살아남았다. 아.. 아니, 그 나마 우리가 독에 대한 내성이 유달리 강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뭐라던가... 한쌍의 수장을 잘 써 '수강'이라고 불리는 '그'가 바 닷속 깊숙히까지 들어가 잡아왔다는 그 배가 볼록 튀어나온 점박이 생선의 간은 사람 수 십명은 잡아죽일 수 있을 만큼 독이 많았다. 간단히 말해 별 준비도 없이 덜렁덜렁 나서서 방심하고 있 다가 바다라는 이름의 자연 아래서 수도 없이 많이 죽을 뻔했 다는 말이다. 무공을 익힌 사람보다도 더 무섭고 강한 건 역시 자연이었으니까. 고생이 심했던 만큼 새로운 대륙에 대한 희망과 호기심도 커져만 갔다. 우린 정확히 이년 반만에 서대륙이라는 곳에 닿 았다. 그 신기하고도 새로웠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새로 운 깨달음을 줄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우리와 비슷한 실력자를 찾고 그와 힘을 겨루어보려 했다. 그 렇게 몇 년을 헤맸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린 그런 존재를 만 나지 못했다. 강한 존재는 몇몇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 곳에는 '드래곤 (Dragon)'이라 불리는 괴 생명체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오 래 묵은 이무기나 그런 게 용이 되지 못하고 묵은 영물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생태를 들어본 결과 그런 종류는 아니었고, 완벽히 독립된 하나의 이종(異種)이었다. 탈피하고 변신하는 것이 아닌, 새끼를 낳고 번식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하여간 동대륙에는 그 비슷한 것이 없어서 정확히 비교하기 는 어렵지만, 생김새는 적어도 이랬다. 전체적으로는 도마뱀을 닮은 것이 두발로 서는 바람에 창자가 아래로 쏠리기라도 했 는지 배가 뽈록 튀어나왔는데, 커다랗고 조금은 뚱뚱한 몸덩어 리에 자질구래한 일 외에는 거의 쓸모 없어 보이는 짤막한 앞 발 두 개와 굵직한 뒷다리 두 개, 엉덩이 선을 타고 그대로 뻣 은 굵고 길다란 꼬리 하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박쥐 날개 비슷하게 생긴 비늘로 덮힌 날개 두 개를 달고 있는 생 명체였다. 아! 그리고 주제에 영물 계열이라고 무지막지하게 단단한 거죽과 드래곤 하트라고 불리우는 내단을 가지고 있었 고 머리에 뿔도 두어 개 달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그들은 오랜 시간을 묵어온 존재답게 말도 할 수 있었고 마법이라는 괴이한 힘을 써서 불의 기운이나 벼락 의 기운, 바람의 기운 등등을 썼다. 희한하게도 그런 힘들은 그들의 거죽 색깔에 따라 정해졌는데, 정말 지금 생각해도 신 기하기 짝이 없다. 생긴 건 꼭 미물처럼 생겨서.. 주제에 또 영물계열이라고 강 하기는 말도 못하게 강한 것들이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아는 데,...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들은 강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그런 강함은 아니었 다. 단지 종으로서 지닌 강함, 단지 타고났을 뿐인 그런 강함 은 이미 인간이라는 종을 초월하다시피 한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에게서 우린 새로운 발전의 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서대륙에서만 자생하는 '트롤'이라든가, '오크' '늑대인간' '뱀파이어'등등의 이 생명체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전혀 의미가 없던 건 아니었다. 드래곤이라는 그 신 기한 생명체에게서는, 타고난 강함으로 자만하는 자는 발전하 지 못한다는 교훈을, 숲에만 산다는 그 엘프라는 종족에게서는 자연과 동화하는데만 너무 집착해도 발전이 없다는 것을, 드워 프라는 짱딸막한 종족에게서는 '형체가 있는 물건'에 집착하면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 역시 강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그런 강함은 찾지 못했다. 우린 그 곳에서 십수여년을 어슬렁거린 후 짧은 여행을 마 치고 동대륙으로 돌아왔다. 타고 자란 고향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 곳에서 난 새로운 별호를 얻었다. 'Lord of the sword'... 동대륙의 말로는 검의 제왕이라는 낯간지러운 의미가 담겨있 었다. 우린 각자 자신의 특기 앞에 'Lord'라는 칭호를 달았다. 그렇게 돌아온 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서대륙에서 받 은 교훈에 따라 우리는 수련의 순서를 각자 정했다. 누구는 경 험을 늘리기 위해 문으로 돌아가 제자를 기르기 시작했고, 누 구는 더 뛰어난 실력을 기른다며 잠적했다. 난 후자에 속했다. 밖의 세상은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200세가 넘고 얼마 되지 않아, 난 세 번째로 허물 을 벗었다. 이상하게도 그 때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강 해지기는 강해졌고, 뭔가가 변하기는 변했지만 처음과 두 번째 의 경험에서 얻었던 것들에 비하면 뭔가 미비하기 짝이 없었 다. 그건 화려한 별호들로 서서히 만족해가던 내 자만이 만들 어낸 벽이었다. 난 내가 부족해서 큰 변화를 겪지 못함은 생각 하지 못한 채 내가 끝에 다달았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다. 그 때 적호님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깨닳았다. 무에는 끝이 없다. 배짱 크게도 신이 되어 돌아가겠다고 큰 소리를 뻥뻥친 후 수 십년동안 아무런 발전이랄 것이 없다가 난 다행히도 십오 년 전쯤 작은 경지를 새로 열었다. 난 '존재'함을 알았다. 이제 공간이란 내게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난 내 마음이 가는 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세 번째 환 골탈태를 한 무렵부터 공간은 내게 그다지 큰 장애요소가 되 지 않았으니까. "다음 경지는 뭘까?" 요즘 내게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이었다. 아직 신이 되어 하 늘로 가지 못했으니 분명 다음 경지가 남아있을 듯 했다. -삐- 뭔가 아주 작고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난 상념을 잠시 접었다. 이제는 움직여줄 때다. 내게 밟힌 풀잎이 서서히 지쳐 가는 소리다. 난 무게를 줄이고 몸을 조금 공중으로 띄웠다. 발아래 깔려있던 풀들이 살포시 고개를 든다. 사랑스럽다. 언제부터일까. 이 세상을 덮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아니...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인간은... 잘 모르겠다.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 다. 알 수도 있고 이해해 줄 수도 있다. 화내지 않고 참아줄 수도 있으며 보듬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어렵다. 가끔 별로 어렵지 않은 인간들도 있다. 때가 묻지 않은 어 린 아이와 너무 때가 타 오히려 탈속해 버린 늙은이들이다. 그 리고 그 중에서도 몇몇 중과 도사는 그 청정함에서 탁월한 면 이 있다. 요즘 들어 내가 다시 사귀기 시작한 그 역시 그런 면 을 지니고 있는 늙은 도사다. "언제나 기척도 없이 와서 늙은이를 놀라게 하는 구먼." 쓰러진 나무와 마른 풀잎으로 지어진 작은 움막의 문 앞에 걸터앉아 도사가 헛헛한 미소를 띄우며 날 반긴다. 늘 그렇듯 이 의지가 움직이면 바로 그 순간 일이 되어 있다. 그를 만나 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찾아가게 한다. "새파랗게 어린 도사놈이..." "허허허. 그걸 누가 믿겠는가?" 겉보기에는 그의 증손녀 뻘 되어 보이는 거친 내 입담도 그 는 여유롭게 받는다. 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내공이라고는 단 한톨도 없는 주제에 눈치는 어찌 그리 빠른지. 하긴 나름대로 알아주는 일류 고수라 하더라도 그들보다 더 경지가 높은 내 정체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어지간히 수양이 되었다는 자들도 내가 나서서 대뜸 반말부 터 던지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며 수염이 바르르 떨리기 마련인데 이 노도(老道)(늙은 도사)는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 다. 떨리기는커녕 늘 차분하기만 하다. "믿지도 않으면서 왜 내게 화내지 않지?" 가끔씩 이런 질문을 던지면 이 노도는 또 허허 웃는다. "믿어야만 움직이는 건 아니지." 난 이런 그가 마음에 든다. 우린 또 다른 면에서의 동지다.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는가?" 그가 뜬금 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 화두는 우리가 오랫동안... 아니 평생동안 해 온 말장난이다. 그와 함께이건 나 혼자이건 말이다. "보이지 않아." 다음 경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공간을 초 월했으니 이제 시간을 초월해야 하는데... 내가 시간에 휩쓸리 지 않는 건 이제 늙지 않는 내 육신뿐이다. 아마도 이대로 수 백년이 지나더라도 난 죽지 않겠지. "노도는 찾았어?" "...허허... 그럼 이렇게 있겠나? 나가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한판 벌였겠지." 장난스럽게 미소지으며 노도가 손을 들어 춤추는 시늉을 한 다. 난 크게 웃어줬다. "원숭이 같아!" "그럼 자네는 약장순가!" 그도 크게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외롭게 길 을 추구하며 살다 보니 별게 다 웃기고 별게 다 새로울 지경 이다. 외롭게 살다 보니 말이다.... "외롭다라..."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진다. 눈을 들 어보니 노도가 호기심 가득 담긴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다.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내가 뭔가 깨닳음을 얻 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 시익 웃었 다. "빈껍데기야." "허." "비었으면 채워야 겠군." 누군가가 뒤에 '나타났다.' 말 그대로 다가오지 않고 갑자기 나타났다. 난 싱긋 미소를 담고 뒤돌았다. 이렇게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있겠는가. "오랜만입니다. 적호님." 낯익은 붉은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 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살며시 휘어지는 따듯한 눈동자. 동대륙 최강의 무신 적호님이었다. 난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여전하군." 함께 나타난 두 존재 때문인지 조금은 어색한 몸짓을 그리 며 적호님은 빙긋 웃었다. 낯선 할머니 하나, 봉두난발(蓬頭亂 髮)이 더 이상 어울리기 힘든 산발에 입었는지 벗었는지가 구 분 안갈정도로 허술하게 몸을 가린 얼굴 모르는 여인 하나가 빙글빙글 어딘가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날 꼼꼼히 살 폈다. 기분이 살짝 가라앉았다. 아침나절 느껴지던 위화감과 불쾌감이 되살아났다. 그 감각이 뭔가의 위험신호를 내게 보내 왔다. "아... 소개하지. 이분은 자네도 들어 봤을 꺼야. 인간계에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 또 자네를 이 지상으로 내려 보내주 신 분이기도 하고..." "삼신할머니를 뵙습니다." 이름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저런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달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뿐이었다. 인사가 맞았는지 할머니의 입 가에 달린 잔주름이 살며시 곡선을 그렸다. "또, 이 분은 서대륙의 여신 아르페이나님이시고... 하시는 일은 삼신할머니와 같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어느새 표정에서 음흉함을 깨끗이 지운 산발의 여신이 살짝 고개를 굽혀 보였다. 허술하게 앞을 가리고 있던 옷자락이 아 래로 처지며 앞가슴이 드러났다. 난 당황하며 그녀보다 더 깊 이 머리를 숙였다. 나도 세속에 물들었는지도 모른다. 신의 몸 을 본다는 건 아무래도 불경스럽게 느껴졌으니까. 아무리 내가 본래는 무신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삼신 할머니와 동격의 여신 이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왜인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했다. "참, 그리고 여기는 제... 친구 '노도'입니다. 늙은 도사라 노 도라 부르고 있죠. 선도의 수행자입니다." 노도가 그들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난 노도의 진짜 이름을 모른다. 처음 만나서 노도라 부르기 시작 했고 그도 별 달리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무량수불(無量壽佛)... 풋내나는 도사 하나가 천계의 무신님 과 삼신할미를 뵙습니다." 고개를 들며 살짝 내게로 날카로운 시선을 돌리며 노도는 부드럽게 웃었다. 이 중에서 가장 젊을 그가 제일 늙은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받았으니... 아마도 불편했으리라. 그러나 그도 나 때와 같이 별다른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어쩌면 이름 같은 것은 이전에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오... 인간계의 수행은 힘들지 않은가?" 뜻밖에도 잠시 노도의 얼굴을 살피던 삼신할미가 아주 반가 운 목소리로 노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싱긋한 노도의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설마... 그도 무언가를 위해 내려온 신족이 었던 걸까? "힘들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의외로 수행차 내려온 신들이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할미께서는 여전 하시구요?" "나야 변함이 없는 존재 아닌가." "전 여전하신 모습을 보니 기쁘군요." "그럼 고맙지." 늙으수레한 노도의 목소리에 할미의 반가운 기색이 더 진해 져갔다. 얼핏보면 헤어졌던 늙은 부부가 다시 만나는 형국으로 그 둘은 연신 마주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어댔다. 공기가 부드 러워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존재들은 서로를 확인하며 기쁜 기운들을 뿜어냈고 나 또한 그에 뭍혀 불쾌했던 기분들 을 밀어냈다. 노도가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편안하고 마음이 따듯해지 는 공기. 난 어쩌면 이 공기가 마음에 들었을 지도 모른다. 선 도를 지향하는 존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편안 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자 일단은 편히 하시지요. 누추한 곳이라 엉덩이 걸칠 곳 도 없습니다만... 구애받지 않는 분들이라 알고 있습니다." 노도가 팔을 뻣어 그의 작은 움막 주위의 공간을 휘저었다. 그의 말 그대로 앉을 것이나 기물에 구애받지 않는 우리는 각 자 편할 대로 서거나 공중에 떴다. 삼신할미는 노도의 옆에 자 리를 잡았고 적호님은 내 오른편에, 아르페이나님은 왼쪽 부근 에 떠서 편한 자세를 취했다. 살짝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런데 이 지상까지 어떻게 오셨는지..." 말은 내가 먼저 꺼냈다. 적호님은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애써 조절하느라 힘겨워 하는 얼굴이었다. "아..." "적호님.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전 제 목표를 이루기 전 까지는 천계로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실 내게 적호님이 찾아올 일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이번만큼은 그 일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은 내 입장을 분명히 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 그건 아니야." 적호님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삼신할미의 눈초리가 살짝 사납게 변했다. 아주 미묘한 차이였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기 척에는 상당히 예민했다. "그럼 삼신할머니께서 제게 용건이 있으신 건가요?" 삼신할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난 말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상대는 신들이었다. 나보다도 셀 수 없는 시간을 존재 해온 존재들...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 한 번 휘말리면 어떻게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게 될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엉뚱한데 휘말리는 건 질색이었다. 공기가 살며시 얼어갔다. 삼신할미는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했고, 적호님은 힐끗 할미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용건이 있지." "어떤 용건이십니까?" 할미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자네... 한 단계 더 뛰어넘고 싶지 않은가?" 동시에 눈동자가 빛났다. 적호님의 시선과 아르페이나님의 시선이 동시에 밝아졌다. 귀가 확 열리는 듯 했다. 이건 음모 야! 하는 감각과 음모라도 상관없으니 계기가 되기만 해 주어 도 될 것 같다는 감각이 동시에 날 사로잡았다. 난 너무나 오 랜 시간을 정체했으니까. "그렇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게 화근이었다. 그 옛날 마의 바다를 건너 서대륙으로 건 너갔을 때 바다에서 먹었던 복어가 준 교훈만 기억했어도... 순 간적인 감각과 보이는 겉모습에 또다시 속는 실수는 하지 않 았으련만... "내 좋은 방법이 하나 있어서 그러는데... 한번 해 보지 않 겠나?" 삼신할미는 그녀가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자상함이 아닐까 가 의심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좋은 방법이요?" 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내, 오랜만에 서대륙의 여신이 놀러와 이야기를 좀 나누던 차였는데 말이야..." 몸을 조금 앞쪽으로 기울이며 할미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발단은 말이지, 바로 자네였어." 삼신할미는 조금은 곤란한 듯, 조금은 흥미진진한 듯한 표 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설명은 길지 않았다. 요는 내가 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삼신할미가 정해주었던 수명을 초과하면서부터 문제가 된 거라고 한다. 가끔씩 한도를 넘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할미의 말에 의하면 세 번의 환골 탈태를 거친 내 육신의 수명은 대략 천여 년 정도가 된다고... 그건 할미가 처음 날 내려보내 주면서 넉넉잡고 주었던 120년 을 아홉 배 가까이 초과하는 시간이라 했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들이 생겼다고 한다. 뭐, 신계의 문제라 내게 자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신계의 일이라면 충분히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있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천계로 돌아가 는 길이 제일 빨랐는데, 알다시피 난 적호님의 제안을 거절한 상태, 그렇다고 수행을 나간 무신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은 천계의 주인이신 '그분'의 의지를 거역하는 일이라 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어떻게 하면 날 빨리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느냐의 문제라고 말하며 삼신 할머니는 조 금 신용이 가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경험은 많은 것을 일깨워주지. 그 것도 자신이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그런 삶은 말이야." 할미는 두 손을 꼭 말아 쥐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우린 그런 삶을 찾아냈네. 자네가 여인으로 태어나면서도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종류의 삶을." "본래 삶이란 아래로 갈수록 많은 애환과 경험이 있는 법이 아닌가. 자네의 그 길고 긴 수련기간처럼 말이야." 속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저들이 나를 위해 저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무림이란 곳을 떠돌던 시절 날 이용하려 했던 자들 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과 같은 냄새를 지금 세 신들이 풍기 고 있었다. 난 몸을 조금 뒤로 뺐다. "우린 자신하네. 자네 정도라면 그 정도의 고생은 발전을 위해 기꺼이 받아 드릴 거라고!" ".............................."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이 방법이라면 자네는 분명히 새로운 경험과 삶을 얻을 수 있는 거야! 보게나! 아무런 수행도 하지 않은 늙은 할 미도 세상의 이치를 아네! 어떻게 알게 된 것이겠는가! 그건 그들의 삶이 가르쳐 준거라네!"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적호님이 두 주먹까지 불끈 쥐고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시선들이 일시에 적호님에 게 쏟아졌다. 적호님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머슥하게 주먹을 풀었다. 그러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자네라면 꼭 할 수 있을 거라 난 믿네. 제발 빨리 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날 도와주게나..." 마치 매달리는 아이 같은 눈빛. 난생 처음보는 적호님의 약 한 모습. 난 기묘한 호기심이 내 안에서 움직임을 느꼈다. 아 무런 말 없이 눈만 빛내고 있는 아르페이나라는 여신에게서 느껴지는 그 위화감을 억누르며 자존심과 호기심이 범벅된 승 부근성이 고개를 처 들고 있었다. "확신하십니까?" 어쩌면 정말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 게 무시 받았던 그 50여년의 시간은 그 이후로 이어진 고된 시간들속에서 날 기름지게 만들어주는 거름으로 변했다. 그러 고 보면... 내 300여년의 시간동안 내가 경험했던 삶은... 무척 이나 단조로웠다. 어찌 보면 말이다. 난 보통의 사람들처럼 기 쁨에 웃고 슬픔에 울며 자식을 기르고 반려를 만나보지 못했 다. 아니, 그 쪽으로는 상상도 해 본적이 없다. 하다 못해 제자 조차 기르지 않았었으니까. "확신하네. 자네는 많은 것을 얻게 될 거야." 아르페이나의 침묵이 깨졌다. "좋습니다." 다음 길을 찾지 못하던 차였다. 뭔가 움직이는 편이 더 낳 을 지도 모른다. 이대로 자연에 파묻힌 삶만을 고집할 생각도 없었다. 서대륙의 엘프들을 보며 그런 삶이 오히려 위험할 수 도 있음을 난 이미 배웠다. "해 보죠." 내게 허락된 새로운 길이 있다면 가 봐도 좋지 않겠는가. 난 적호님과 삼신할미의 손을 맞잡았다. 아르페이나의 손이 우 리의 손 위에 겹쳐졌다. 난 순간 그녀의 입가를 스치고 지나간 환희를 읽은 듯 했다. 아침나절의 불안감이 다시 등줄기를 살 짝 스치고 지나갔다. 제발 이 선택이 옳은 일이기를... 나를 위 해.. 그리고 날 충동질한 이 세분의 신들을 위해서 말이다. ".........." 내 입가에서 살폿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7 Mon 20:11:59 IP : 211.215.58.173 라지 오랫만에...정말 멋진 소설을 찾아냈네요.(생긋) 앞으로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05/29,18:05) 희야 조금 더 난: 조금 더 나은 / 주어먹는: 주워먹는 / 딪고: 딛고 / 노망에 드셨다: 노망이 드셨다 / 부딛기지: 부대끼지 / 생예: 생애 / 좌선: 좌화 / 어의: 어이 / 연거퍼: 연거푸 / 수 십년: 수십년 / 일수: 일쑤 / 깨닳음: 깨달음 / 덮힌: 덮인 / 뭍혀: 묻혀 / 받아 드릴: 받아들일 / 더 낳을: 더 나을 좋은 글이 저런 옥의 티로 인하여 전체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서요. 너무 기분 상하게 해드리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습니다. (05/29,22:00) 순수청년 호오~ 연참 장난 아니네 ㅡ.ㅡ;;; (05/30,22:50)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5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4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0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5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0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2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은빛 2002/05/27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섬짓하군요." 아르페이나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두 팔로 몸을 꼭 감싸보 지만 온 몸에 돋은 소름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간 을 이동해 천계로 돌아온 지 서너 시간이 더 흘렀지만 아직도 그 서늘한 한쌍의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력적인 강함이라는 차원에서는 전 도저히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아요." 삼신할미가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런 할미 의 손도 아직 덜 풀린 긴장과 두려움으로 차갑게 얼어있었다. 아르페이나가 어색한 미소를 할미에게 던졌다. 할미는 살짝 한 숨을 내쉈다. "아무리 아직 인간의 형체를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 는 무신이네. 무신의 눈을 정면으로 봤으니 그렇지. 게다가 그 녀가 바보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꿍꿍이가 있는 것쯤은 금방 알았을 꺼야. 아니... 우리가 만난 그 순간부터 알았을 지도 모 르지."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만일 그녀가 성공한다면 그녀는 저 보다도 훨씬 더 강한 신이 될 겁니다." 두 여신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조금 멍한 얼굴로 있던 적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예상보 다도 훨씬 더 강해진 무신의 모습에 적지 않게 자극을 받은 듯 했다. "하아.. 착잡하군요." 적호의 말에 아르페이나는 머리를 숙였다. 아무래도 그 무 신은 아르페이나가 모든 일의 원흉임을 알아챈 듯 싶었다. 아 니 모를 리가 없겠지. 그녀의 서대륙에서 유모 겸 하녀 노릇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으니 몰랐다면 더 이상할 지도 모른다. "자존심 하나는 이미 신의 경지를 넘어섰지." 적호가 피식 웃었다. "어지간한 존재라면 그렇게 몸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자존심 에 상처를 입을텐데... 이미 다른 존재의 시각은 그녀에게 아무 런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는 거야." "충분한 강함을 지닌 존재니까요." 세 신은 말을 나누면서도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아르페이 나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날카롭고도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이 마치 뒤통수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존재는. "지난 백여 년간... 더 많이 발전했더군요." 급기야 적호는 깊은 한숨을 내뿜었다. "..................안되면 어떻게 하죠?" 살짝 겁에 질린 눈으로 아르페이나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 었다. 어느새 슬그머니 모아 쥔 그녀의 고운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믿어야겠죠. 그녀의 능력에." 적호가 손사래를 쳤다. "말했잖아요. 100년 전에도 저랑 맞뜰 정도로 강했었다고... 이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세 번째의 환골탈태라는 것... 어지 간한 무신의 신체(神體)보다도 더 강해 보이더군요."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녀는 일을 수락했다. 남은 건 그녀가 정말로 그 하녀의 삶에서 발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바라는 것뿐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찾지 못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단지 절 이용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낸 거 라면... 각오해 두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세분... 모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보냈던 살벌한 눈빛이 잊 혀지지 않았다. 서로 더 이상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일의 전모를 알게된 다 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무사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어떤 이유로든 말이다. "후우........................" 처음보다도 더 깊은 암울함이 세 신의 가슴을 좀먹고 들어 갔다. "제발... 되야 되는데." 이미 그들 중 어느 누구의 머릿속에도 한 어미가 생명을 태워가며 빌었던 작은 아기에 대한 행복한 미래 같은 것은 남 아있지 않았다. 불행히도 말이다. ***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 꺼야. 노도." 노도는 히죽이 웃었다. 허름한 장포 자락으로 몸을 겹겹이 감은 그의 늙은 몸을 바닷바람이 거칠게 휘몰아댔다. 염려가 앞섰다. 바다란 녹록한 곳이 아니다. 최소한 다른 일은 없더라 도, 그 배멀미라는 건 정말 그냥 한번 겪어볼 만한 일이 아니 다. 노도는 바짝 마른 어깨를 힘껏 폈다. 오히려 더 말라보이 기만 했지만 그의 의지는 충분히 드러났다. 그는 혼자 다시 산 으로 돌아갈 뜻이 없었다. "가다가 죽을 지도 몰라." "혼자 가기는 외롭지 않겠나." 슬그머니 배로 다가가며 노도는 어깨를 추켜 보였다. 저 똥 고집. 수행자의 고집을 새삼 느낀다. 깨달음을 찾겠다는데, 더 높은 경지를 보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데 내가 어 떻게 그를 막을 수 있을까. 미친짓이라 생각했던 서대륙으로의 여행을 다시 한번 시작하려는 내가 말이다. "준비 다 되셨습니까?!"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도 웃통을 훌렁 벗어 던진 뱃사 람 하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햇볕에 그을린 구리빛의 피 부가 땀에 젖어 건강한 빛을 발했다. "네. 다 끝났습니다." "그럼 어서 타시지요. 출항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힐끔 우리를 훔쳐보더니 만 입을 헤벌쭉 벌린 채 조심스레 길을 안내했다. 배는 컸다. 그 옛날 우리가 타고 갔던 작은 쪽배와는 차원이 달랐다. 노도 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늘 순수하게 놀라고 기뻐했다. "어서 오시지요. 검후와 그의 동행께서 이렇게 함께 가 주 신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든든합니다." 꽤 나이 먹어 보이는 선장이 쌍수를 들고 달려나왔다. 그랬 다. 내가 서대륙까지 건너가서 한바탕 설치고 다녔던 일은 이 미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마의 바다라는 곳은 아무리 배에 익 숙한 사람도 두려워하는 곳, 언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 너 무나 많은 괴물이 살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바다를 무공 하나만 믿고 두 번씩이나 건너 돌아온 난 그들에게는 살아있 는 기적이자 무사한 여행의 상징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서대륙까지의 교역선이 생길 줄이 야... 놀랍군요. 마의 바다를 정기적으로 건넌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하하... 검후께서 돌아오신 후 많은 변화들이 생겼죠. 그 때 함께 돌아오셨던 수강께서 저희 뱃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건네주셨습니다. 그 덕분이었죠. 사년에 한번 정도나마 정기적인 배편이 생기게 된 것은 말입니다." 수강 그 녀석... 제자들을 기르면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세상으로 내려간 후 별의 별 짓을 다 했나 보다. 나야 그 녀석 의 무공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기에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와서 그 놈의 음덕을 입게 되다니. 공연히 빚 을 지는 느낌이다. 선장은 그 외에도 몇 마디 말을 건네고는 급히 자신을 찾는 부하들을 따라 자리를 물러났다. 뭐니뭐니해도 마의 바다라 불 리는 곳을 가로지를 참이었다. 바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 "적어도 복어간을 회쳐먹다가 중독될 일은 없겠군." 그 때 먹다가 당황했었던 그 생선의 이름이 복어라는 건 얼 마 전에 주어 들었다. 독을 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놈이라 고... 바다에 익숙한 뱃사람들과의 길이라면 맘편히 먹을 자유 정도는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날 기쁘게 한다. 사실 먹는 다는 행위 자체에 더 이상 생존의 큰 의미는 담기지 않았지만 그 또한 기나긴 삶의 낙이 아닌가. "별걸 다 먹는군." "글세. 그때는 왜 그런 것들이 먹어보고 싶었는지 몰라." "쯪." 노도는 고개를 저었다. 지루함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 니면 공연한 호승심 때문이었을지도.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었던 그들과 난 끊임없이 서로의 실력을 시험했다. 동시에 자 신의 한계를 시험했다. 바닷속에서 얼마나 오래 잠수하나를 겨 루다가 수십일 밤낮을 소금물에 온 몸을 담그고 절였던 기억, 헤엄치는 실력을 겨룬다며 멀쩡한 배를 끈으로 매어 어깨로 끌고 바다를 허우적대던 기억. 그나마 장난 삼아 골탕먹인다며 반대 방향으로 장력을 날려대며 방해하던 기억... 뱃사람들이 듣는다면 미친 짓이라 혀를 찰 괴행들을 우린 질리지도 않고 반복해서 벌였다. 서 대륙에 닿을 때까지 근 이년하고도 반년 동안이나 말이 다. 남들이 보았다면 아마 노망이라 일컬었겠지.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뭘?" 노도는 도포자락을 몸에 바짝 붙이고 어깨를 움추렸다. 조 금 전부터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태풍이나 그런 바람은 아니고 바닷가라면 흔히 있는 그런 강풍이다. 산바람도 적지는 않았지만 그 종류나 바람에 배어있는 습습함 같은 것들이 전 해주는 느낌이 달랐다. 산바람과는 전혀 다른 차가움이 바닷바 람에게는 있었다. "서대륙에 도착해서 말이야. 뭐 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난 일단 일자리를 잡고 가는 셈이잖아. 거취가 확실하지. 자네 는 어찌 할 셈이지? 그 곳의 산이라도 들어갈 셈인가?" 노도가 누런 이를 들어내며 시익 웃었다. 주름진 얼굴 위에 피어난 노도의 천진 난만하게 펼쳐진 미소는 어딘가 음흉스러 웠다. 난 맞웃음을 보냈다. "설마?" 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세가 풍기는 기운은 다르지만 산은 산이었다. 노도는 잘 알고 있었다. "난 이래뵈도 유능한 정원사가 될 수 있을 거라네." "......................." 가위하나 제대로 들까 싶은 앙상한 손을 들어 보이며 노도 는 자애로움을 얼굴 가득 담았다. "풀과 나무와... 꽃과 나비와 새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익숙 하니까 말이야. 자네에게 새로운 깨닳음을 줄 그 곳에서 나 또 한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네." "간단히 말하면 빈대 붙겠다는 말이군." "버릴텐가? 이 늙은 왕빈대를?" "....................후." 난 꽤 다정해 보이는 자세로 노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노도가 허풍스레 팔짱을 끼며 바닷쪽을 향해 가슴을 활짝 내 밀었다. "난 말일세. 마치 아이라도 된 냥 가슴이 설래인다네." 노도의 길다랗고 흰 수염이 바람에 물결치며 귓가를 스치고 흘러갔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경지가 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 다면 밤잠이 다 안올 정도라니까!" 별빛보다도 더 반짝이는 눈으로 날 돌아보며 노도는 힘껏 입가를 끌어 올리고 웃었다. "그 말을 내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네." 난 진심을 담아 내 벗의 편안한 여행길을 기원했다. *** 햇볕을 가린 조금은 어두운 방이었다. 콤콤히 풍겨오는 소 독약 냄새가 느껴지는 병실, 두꺼운 커튼 사이로 가로막힌 햇 살이 한 줄 들어와 지금이 낮임을 알게 할 뿐, 아무런 변화도, 움직임도 없이 고요히 가라 앉아있던 방안의 공기가 갑자기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마, 마님! 정신 차리세요!" 작은 쟁반에 죽그릇을 들고 들어온 하녀의 주름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녀는 떨리는 손으로 죽그릇을 침대맡의 선 반에 올려놓았다. 마른침이 하녀의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그녀의 주인마님이 아픈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지난 번에도 마치 죽은 냥 느껴져 소란을 피웠다가 오히려 마님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며 주치의에게 핀잔만 먹었던 일이 없었다 면 두 팔로 침대 위의 여인을 잡고 흔들었을 지도 모른다. ".................." 죽은 듯 감겨있던 여인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 하녀는 그녀의 앙상하게 마른 손을 살폿 잡았다. 평소보다도 훨씬 차 가운 손, 늦은 반응. 하녀는 급히 침대맡에 있는 붉은 줄을 잡 아당겼다. 그리고는 바로 연이어 파란 줄을 잡아당겼다. ".............미..... 안.... 쥬..." 반쯤 떠진 눈동자와 마른 입술사이로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느새 눈물로 흥건해진 얼굴로 하녀는 황급히 도리질 쳤다. 그녀는 느꼈다. 어쩌면 지금이 정말로 그녀의 주인의 마 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건 오랜 시간 병자를 간호해 온 사람 특유의 직감이었다. "마님! 마님!" 가까이에 대기하고 있던 주치의가 달려왔다. 그는 병자의 손목을 잡아보고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꺼냈다. 그리고는 절망 적인 표정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비록 손은 멈추지 않았 지만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연락을 띄웠습니다." 젊은 하녀 하나가 다가와 병자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귓 가에 속삭였다. 그녀가 잡아당긴 줄들은 각각 의미가 담겨있었 다. 붉은 줄은 주치의를 부르는 줄이었고, 파란 줄은 출타한 주인이 볼 수 있도록 연막을 쏘아 올리라는 줄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여인은 다시 그녀의 주인마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포 기한 듯한 병자의 시선이 그녀의 눈동자에 꽂혔다. 하녀는 목 청이 터져라 외쳤다. 마구 흘러가고 있는 병자의 시간과 생명 을 그녀의 목소리로 잡을 수 있기라도 한 냥 그녀는 강하게 소리쳤다. "마님! 저 쥬디랍니다! 사셔야죠! 사실 수 있습니다! 이제 곧 도련님과 주인어른께서 오십니다!" 환자의 눈빛이 조금 또렷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여인의 마지막 힘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뼈에 가죽만 간신히 씌워놓은 듯 마른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살짝 빛을 발 했다. 여인의 창백한 얼굴에 표정이 그려졌다. "......................아..." 마른 여인의 눈가가 살며시 휘어졌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 는 하녀, 쥬디는 그녀의 오랜 친구였다. 하녀라는 신분과 이름 이었지만 이 낯선 서대륙으로 시집와 힘겨움에 나날을 보내야 했던 그녀에게 쥬디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마님..." 침대보위로 눈물자국들을 남기며 쥬디는 여인의 마른 손에 그녀의 이마를 댔다. 여인의 손에 살며시 힘이 들어갔다. 맞잡 아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은 손이 여인의 손에 있었다. "쥬...........디....................." 여인의 마른 입술이 힘겹게 열렸다. 여인이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마, 마니이이이임...." 쥬디가 급히 여인의 머리쪽을 부축했다. 약해질 대로 약해 진 몸을 일으키는 건 무리였지만 쥬디는 여주인을 말리지 못 했다. 그녀의 오랜 경험이 알려주었다. 여인은 맘먹은 일은 반 드시 해 내는 성품이었다. 여인은 눈을 감았다. 아주 희미하지 만 이도 악물었다. 의사는 손을 놓았다. 더 이상 그에게는 역 할이 남아있지 못했다. 사람들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단지 조 용히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해야 하는 두 사람이 도착하기만을 메이는 가슴으로 빌기 시작했다. 느린 시간이 손살같이 흘러갔 다. 쥬디는 고개를 살짝 들어 창가로 향했다. 병자의 시선은 두꺼운 커튼 밖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쥬디는 다시금 이를 악 물었다. 어쩌면 이대로 닫혀진 창문 밖을 상상하며 그녀의 여 주인이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순간 쥬디의 눈이 빛을 발했다.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찰 나간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땅을 박차는 발굽소리도 좀 전 부터 들려온 듯 했다. 주위를 보니 다른 하녀들의 얼굴에 회색 이 돌았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 병실은 1층이었다. 만일 방금 울부짖은 말이 주인의 말이라면! 그렇다면! -쾅!- 거칠게 문이 열렸다. 머리가 흐트러진 중년의 남성이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소년과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오랜 시 간 몸을 다져온 듯 탄탄한 체격에 다부져 보이는 남자의 다리 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여, 여보... 하란..." 남자의 회색 빛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 고였다. 그는 떨리는 걸음으로 침대가로 다가와서는 쥬디가 비켜선 여인의 옆자리 에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여보, 내가 돌아왔소! 그대가 보고파서 말을 달려왔소!" 남자의 커다란 두 손이 여인의 앙상한 손을 폭 감쌌다. 여 인의 눈동자에 한순간 생기가 돌아왔다. 따듯한 미소와 반가운 눈빛으로 여인은 그녀를 찾아온 남편과 아들의 손을 잡았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예정대로라면 사 나흘은 더 있어야 돌아올 그들이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길을 서둘러오다가 때맞춰 저택에서 피어오른 신호를 보고는 미친 듯이 달려오는 길이었다. 깔끔한 평소 성격과는 다르게 마구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아직 채 마 르지도 않은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옷자락이 그들의 행로 를 설명했다. 아마도 마차도 버리고 지름길로 말을 달려 왔으 리라. "여보!" "어머니!" 또랑또랑한 발음으로 아이는 여인을 불렀다. 죽음의 무게를 채 알지 못할 나이 일 텐데도 그의 커다랗게 뜨여진 눈동자에 는 벌써부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인이 떨리는 손을 들어 아이의 눈물을 훔쳤다. 남편은 고개도 채 들지 못하고 그 녀의 몸에 얼굴을 묻었다. "...여...신...께...서 약속...하셨단다." 희미한 그러나 좀 전 보다 훨씬 또렷해진 목소리가 그녀의 마른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남편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하녀와 시종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약 해질 대로 약해진 몸으로 그의 부인이 무엇을 기원하고 있었 는지를.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희미한 미소만을 지었던 그의 부인이 무엇을 바라고 바랬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가 잠시 집을 비운 이후로도 그와의 약속까지 깨며 부인 이 기원을 계속하고 있었음을 그는 눈치챘다. 그는 이를 악물 었다.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았을 때 의사로부 터 채 2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 선고받은 부인이었다. 부인은 그리도 몸을 혹사시키면서도 4년의 시간을 버텼다. 행여라도 조금 더 몸을 아꼈다면 일년이나 이년쯤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자꾸만 남아 그를 괴롭혔다. 하지 만 막이라도 숨을 거둘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여인은 숨이 가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모두의 숨소 리가 잦아들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녀의 말을 놓치고 싶 지 않았다. "........곧 두........ 사람이........ 찾아올........ 겁니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여인은 곱게 미소지었다. 여인의 말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순간 되살아나기라도 할 듯 여인의 볼에 창백한 혈색이 돌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에 서 그 만큼의 핏기가 사라졌다. 지금 여인이 보이고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떠나갈........ 절 대신해서... 우리... 클레이를 보살펴주고.... 지켜줄... 여신의 사자가..." "..어, 어머니!" "여보!" 떠난다는 말이 던져준 충격 때문이었다. 아들과 남편은 여 인의 어깨를 강하게 부등켜안았다. 습한 물기가 여인을 적셔갔 다. 여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당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보내주신다... 여신께서... 약 속.. 하셨어요..." 지난 삼 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빌고 또 빌었던 그녀 의 소원이었다. 여인의 눈에는 슬픔도 미련도 없었다. "동.........대륙에서... 누군가가 올... 겁니다." "제발! 말하지마! 여보! 당신은 조금 더 쉬면 나을 꺼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흐느낌이 점점 더 커져갔다. 문득 그녀의 눈가에 한 줄기의 이슬이 흘러 내렸다. "미안... 해요...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 "괜찮아! 괜찮아! 제발!" 애절한 절규 속에서 여인의 눈꺼풀이 조용히 감겼다. 기원 이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여인의 표정은 편안했다. 그녀의 영 혼이 조용히 육신을 떠나갔다. 남겨진 사람들은 오열했다. 누 구보다도 친절하고 따사했던 그녀를 기리며... 남편은 말을 잊었고 아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쥬디는 아내 와 어머니를 잃은 두 사람을 흐느끼며 조용히 바라봤다. 장례식은 무척이나 조용히 치러졌다. 형식적인 절차나 말 뿐인 애도가 아닌 무겁고도 장중한 분위기 속에서 아르페이나 를 불면증에까지 걸리게 만들었던 한 여인은 땅에 잠들었다. -내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내, 내 아들의 존경하는 어머 니. 하란 드 페르로이 후작부인. 이 곳에 몸을 뉘이다.- 그다지 운치 없는 문구 한 자락. 그러나 후작과 아들의 마 음을 가장 잘 담은 문구 하나가 차가운 대리석에 새겨졌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벌써 작년의 일이군." 온통 새하얀 벽과 천장을 흰 국화가 장식했다. 구렛나루와 턱수염을 굵게 기른 남자의 시선이 창 밖으로 향했다. 소복한 흰 눈이 가느다란 나뭇가지위로 쌓여갔다. 꽤 오래 쌓인 듯 가 볍게 아래로 휘어진 가지를 보며 남자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당신도 그 작고 가녀린 팔로 무거운 운명들을 애써 버텨 들고 있었지." 겨울이 빠르게 다가왔다. 예년보다 보름은 더 일찍 내린 흰 눈이 마치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빈 공간을 애써 채우려 몸부림치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벽난로에 가득 들어찬 굵은 장작이 보기 좋게 활활 타올랐 다. 남자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포도주의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일년 된 포도주의 향긋한 향이 방안으로 은은하게 퍼 졌다. 남자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당신이 간 후 난... 포도주를 샀소. 그대가 이 낮선 땅 서 대륙의 술들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하던 아르드산의 포도주 지... 다행히 작년은 포도의 작황이 유달리 좋았거든..." 남자는 우아한 동작으로 잔을 가득 채웠다. 잔 아래 흰 레 이스로 떠진 테이블 보에 붉은 그림자가 보석처럼 일렁였다. "그대가 간 날이 바로 오늘이요. 그대를 기리는 날, 그대가 좋아했던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을 듯 싶었소." 남자는 또 하나의 잔을 향해 포도주 병목을 밀었다. 소리 없이 두 번째의 잔에 붉은 액체가 가득 채워졌다. "일년이 가면, 일년 산의 포도주가... 이년이 가면 이년의 포 도주가... 난 그대가 없는 세상을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마치 눈앞에 그의 아내가 앉은 것처럼 그는 테이블의 의자 를 부드럽게 꺼냈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이 년 전쯤 그녀와 함께 잔을 부딪히던 그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감각으로 그는 그 자리에 없는 그녀를 기억해냈다. "포도주는 넉넉히 준비했지. 그대의 생일도 기억하고 싶거 든. 또... 우리 아들이 다 자라면 찾을 지도 모르고." 잔을 들어 아직 풋풋한 향이 남아있는 포도주를 감미했다. 분홍빛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촛불이 켜졌다. "그대가 그랬지. 동 대륙의 사람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대 접하기 위해 음식과 술을 차린다고..." 은빛 뚜껑으로 가려져 있던 음식이 모습을 들어냈다. 향긋 한 야채와 두껍게 썰어놓은 치즈가 보기 좋게 잘 놓여있었다. "난 그대 나라의 풍습은 잘 몰라. 그래서 내 식으로 준비했 소. 기껏 준비한 것이... 술안주라... 섭섭할 지도 모르지만..." 남자는 아내를 위해 마련된 앞 접시에 치즈 몇 조각을 올려 놓고서는 자신의 앞 접시에도 몇 조각을 올렸다. "난 그대의 말을 믿소. 언젠가 신탁을 받은 우리 클레이의 보호자가 오겠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촛불이 살며시 흔들렸다. "처음에는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했소. 그러나... 시간이 지나 면 지날수록 믿어지더군. 여신이 보내 주시지 않으시더라도 당 신이 보내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거야." 남자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기댔다. 아내가 살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매너가 아니라면서 가볍게 핀잔을 줬을 지도 모른다. 남자는 문득 아내의 투정 어린 잔소리가 그리워졌다. 평소에는 그의 행동에 대해 거의 아무런 간섭도 없었지만 유달리 포도 주를 마실 때면 이것저것 말 주머니를 풀어놓고는 하던 그녀 였기에 은근히 감도는 술 한잔의 취기가 그녀를 더욱 그립게 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남자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조금 더 젖어있고 싶었지만 그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지 아 직 알지도 못하는 신의 사자를. "누군가." "저 헤리슨입니다. 후작님." 집사 헤리슨이었다. "들어오게."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헤리슨은 마른침을 살짝 삼켰다. 오늘이 가문의 반대를 무릎 서고 결혼을 감행했던 후작부인의 기일임을 알고 있었다. 주인의 회상을 방해한 것에 약간의 죄 책감을 느끼며 그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예. 새로운 일꾼들이 들어왔습니다." 소소한 집안의 일까지 후작에게 보고할 필요는 사실 없었 다. 이건 단지 후작부인이 남긴 유언 덕분에 생긴 하나의 절차 일 뿐이었다. "새로운 일꾼?" "후작님께서 신경 쓰실 만한 사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쥬 디를 대신할 하녀 한 사람과 정원사라는 노인 하나가 모집공 고를 보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쥬디는 그녀의 옛 여주인을 잊지 못했다. 그녀는 여주인의 자취가 남아있는 그 곳에 머물기가 괴롭다했다. 클레이브를 보 살피는데 그녀보다 적격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쥬디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후작은 말리지 못했다. 그녀를 막기에는 그녀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아직 어린 클레이브를 보살피기에는 그녀는 너무 늙었다. 후작은 새로운 사람을 뽑으 라 명령했다. 집안에도 사람은 많았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 었다. 어쩌면 아내의 유언 때문일 지도 모른다. 찾아올지도 모 르는 새로운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던가?" 신의 사자정도 되는 자들이 하녀 모집공고를 보고 찾아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집안에 새로 들어오게 되는 사람들은 후작이 일일이 챙겨보고는 했다. "네. 몇 가지 시험을 해 본 결과... 하녀 지망생은... 귀족가 의 자제분들을 보필하도록 훈련도 받은 것 같고... 외모도 단정 하고 아름다운 것이 도련님의 시중을 들기에 부족하지 않아 보입니다." "아름답다?" 후작이 살짝 눈가를 접었다. 불붙은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는 잘 알았다. 그는 곧 성장하게 될 어린 아들이 아 름다운 하녀에게 반하는 일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네. 하오나...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해서 괜찮을 거라 생 각합니다만..." "어느 정도 되어 보이나?" "본인 스스로는 스물 아홉이라 주장합니다만... 겉보기에는 중반 즈음 되어 보입니다." "내년이면 서른이군." "예." 집사 헤리슨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후작은 잠시 생각에 잠 긴 듯 침묵했다. "그리고... 정원사는 어떻던가?" "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것이 흠이었습니다만, 본인 스스로 나이를 오십이라 주장하기도 하고... 시험을 해 보니 풀 과 화초를 잘 가꿀 수 있을 듯 보였습니다. 특히나 동대륙의 화초에 대해 잘 아는 것이, 후작부인께서 가꾸시던 화원을 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채용하게!" "네!" 후작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의 아내는 화초를 사랑했다. 말 그대로 사랑했다. 그녀의 작은 화원은 동대륙에서 씨를 가져온 화초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 작은 공간에서 고향에 대한 그 리움을 삭혔다. 그 화원이 설설 죽어가고 있었다. 하인들이 아 무리 애써도, 서대륙에서 이름 있는 정원사를 불러 돌봐도 아 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치 자신들의 주인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양 화초들은 서서히 말라갔다. 이 런 때 동대륙의 화초를 가꿀 줄 안다는 정원사의 등장은 봄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참, 두 사람은 일행인가?" 함께 온 경우 드물지 않게 일행인 사람들이 있었다. 더구나 이렇게까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는 부녀관계일 때가 많았다. "예. 관계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행이라 합니다." "그렇군. 둘 다 채용하게." "예." 헤리슨이 조용히 뒷걸음질 쳐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후작은 물끄럼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일년 새 주름살이 부쩍 늘어있었다. 후작 자신보다 열 살 정도가 많은 집사는 그가 어 릴적에는 친우가, 자라서는 충실한 부하가 되어 주었다. "헤리슨." "예." 후작은 문득 그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다. 불안했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헤리슨은 살짝 어두워진 주인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 스럽게 대답했다. "무리하지는 말게나. 얼굴이 말이 아닐세." ".............후작님.... 전 괜찮습니다." 살짝 붉어진 볼로 헤리슨은 미소지었다. 헤리슨은 고개를 다시 한번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막 문고리에 손을 다시 올릴 즈음 뭔가 막 생각난 듯 후작이 그를 불렀다. 헤리슨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참, 신전에서는 달리 소식 같은 게 없나?" "네. 아직 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단지... 알아보면, 신탁은 이루어졌다고만 할 뿐..." 마치 자신의 잘못인 냥 미안한 얼굴로 헤리슨이 고개를 살 며시 저었다. 후작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렇군." 초가 조용히 타올랐다. 후작은 다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이 루어졌다고 하는 신탁. 찾아오지 않는 신의 사자. 어쩌면 신의 사자란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천 사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자로서는 그 편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고. 아내가 죽은 지 일년이 넘어간다. 아직까지 찾아 오지 않는다면 그 편일지도 모른다. '찾아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는 사람이 아니겠군.' 그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헤리슨은 주인의 생각에 방해 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방을 빠져나왔다. 쌉쌀한 복도의 공 기가 헤리슨의 어깨를 조금 움츠리게 했다. "그럼, 새로 온 두 하인과 하녀를 다시 교육시키는 일이 남 았군," 아무리 제 나름대로의 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후작가에는 후작가 나름대로의 가풍이 있었다. 할 일이 늘었다 고 생각하며 헤리슨은 급히 발걸음을 옮겨갔다. "분명히... 이름이... '란'과 '노도'라고 했지? 꼭 동대륙의 느 낌을 풍기는 이름이군." 후작부인이 이 곳으로 시집온 이후 급작스레 불었던 유행 중의 하나가 동대륙 풍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동대륙과 는 달리 서대륙의 사람들은 이름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경 향이 있었다. 이름은 경우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소품이었고 가 끔은 성도 그렇게 바꿨다. "후우... 신의 사자는 이렇게 영영 오지 않을 런지." 헤리슨의 입가에서 흰 안개가 흩어져 나갔다. *****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7 Mon 20:12:14 IP : 211.215.58.173 아화 돌아오신건가요+_+)♡ (05/27,20:24) M.K 라냔에올리고 여기에도 올려요 싸랑해요 드뎌 돌아오셨군요 (05/27,20:28) 은빛 ^^돌아왔습니다~ 라다의 특성상 많은 글을 올릴 수가 없어서... 나머지는 내일 올릴께요~ (05/27,20:29) M.K 여기는중국이예요 은빛님이 잠적하신후 전 중국으로 왔다지요 하지만 혹시 그전에라도 올리까봐 특히 5월이후에는 거의 매일 들어 왔어요 이제 괜찮으시간요 ? 몸은 아프지않으신가요 몸조심 하세요 (05/27,20:36) 래드아이 오오 돌아오셨네요++ (05/27,21:23) 가간티스 옷!! (05/27,22:24) dakad 아앗........환영합니다;ㅁ;/ (05/28,11:31) 희야 온 몸에: 온몸에/ 저 보다도: 저보다도/힘들 꺼야: 힘들거야/ 주어 들었다: 주워들었다/ 무릎 서고: 무릅쓰고 (05/29,22:18)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5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4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0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5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0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2002/05/28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정갈하게 잘 만들어 두었군." 자신을 집사라고 소개한 뒤, 잠시 기다리라며 방을 나선 헤 리슨이 꽤 오랜 시간동안 돌아오지 않았지만 난 지루함을 느 끼지 않았다. 저택 뒤편에 만들어진 이 하녀들이나 일하는 사 람들을 위해 만들어둔 응접실은 예상보다도 훨씬 훌륭했다. 아 니, 내 과거의 오랜 경험을 되살려봐도 이만큼 좋은 곳은 그다 지 흔치 않았다. 힘이란 작은 곳에서부터 베어 나오는 법이다. 후작가의 세도나 힘,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히 상상이 간다. 일반 서민으로서는 꿈도 못꿀 가구들과 테이블, 벽장식과 등 불, 천장의 자그마한 샹들리에까지. 이곳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지간한 재력을 지니고서 는 꿈도 못 꿀 공간이었다. "...주눅이 들고도 남겠군." 어른 키 세배는 되어 보임직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노도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대륙의 고관대작의 집들도 만만치는 않아." "내가 그런 것들을 봤어야 말이지." 순진한 미소를 담으며 노도가 가볍게 댓구했다. 평생 산속 자그마한 암자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던 그는 순수하게 이 저 택의 규모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에게는 아예 탐욕이라는 감 정이 생겨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하긴... 어지간한 신분의 귀족가 작은 대기실 같은 느낌이 야. 이 나라에서 이 가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뭐 그런 게 절대 가벼운 게 아니겠군." 난 어깨를 가볍게 으쓱여 보였다. 백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대륙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사람이야 바뀌었겠지만 그 들이 지니고 있던 '것'들은 그대로인 듯 싶었다. 하여간... 그 시절 적지 않은 귀족가와 성들을 들락였다. 처 음에는 주로 지하감옥이나 창고, 하인방으로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우리들의 힘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나와 내 일행들은 곧 제대로 된 손님대접을 받기 시작했었다. 뭐, 그때 우리의 관심이 온통 '강한 자'를 찾는데 쏠려 있었기에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것들이야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생길 안목이랄 것까지도 없었지만 적어도 이 저택 이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인들의 공간에는 주인들의 성품이 나타나는 거지." 노도가 편안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기지개를 폈다. 이 저택 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안내된 곳이 여기였다. 몇 가지의 간 단한 질문에 대답하고 몇 가지의 시중드는 예절시범을 보인 후 우린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래도 자네보다는 날 더 반기는 것 같지 않나?" 창백한 얼굴의 노도가 빙글빙글 웃었다. 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영 안어울렸다. 아직까지도 울렁이는 속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애써 잘나 보이려는 저 늙은 도사의 속을 내가 어 찌 알텐가. 서대륙까지의 배 여행은 꼬박 이년하고도 두어 달이 걸렸 다. 지난번 왔을 때보다 반년이 줄어든 셈이기는 했지만 그 때 는 정확한 해도도 없이 무식하게 방향 하나만 정해서 왔던 것 을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빠른 것도 아니었다. 그 동안 우린 배 안에서 하녀와 정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했다. 믿어도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선원 중에는 서대륙에서 하인 노릇을 했다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가 잠 시동안의 우리의 스승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검후를 만나 대 화한다는 기쁨에 젖어 그는 꼬박 이년간 그가 아는 것들을 토 해냈다. 우린 배 안에서의 실습과 반복을 통해 훌륭한 하녀와 정원 사로 거듭났다. 선장을 비롯한 전원이 경악에 경악을 거듭하 건, 졸도하건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공부에 매진했다. 뭐, 아 직 실전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선장은 우리가 하녀와 하인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입막음 하는 댓가로 약간의 무공을 가르쳐주기를 원했다. 우리에게 하 인지도(下人之道)를 가르쳐준 선원도 마찬가지였다. 귀찮기는 했지만 난 그 조건을 수락했다. 다 늙은 정원사 하나와 젊은 하녀 하나의 동행이란 그다지 흔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검후 니 뭐니 해서 떠받들어지는 건 이번 여행의 적이었다. 바다를 건너다니며 해적들과 겨뤄야 하는 그들도 완벽한 초 보자들은 아니었다. 갓 알을 깨고 걸음마를 시작한 병아리 수 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삐약거리는 폼이 가르치는 손맛 이 있었다. 그들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하녀 교육을 받기 위해 또다시 몇 달을 이 땅에서 소비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다행한 일이다. "그 울렁거림을 벗어나니 좋기는 참 좋구만... 눈도 새롭게 보이고 말이야." 손난로에 연신 손을 가져다대고 비비며 노도는 흐뭇하게 고 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나절에서야 배에서 해방된 노도는 아 직도 그의 감각을 붙잡고 있는 배멀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뭐... 어쨋거나 왔으니 됐지. 뭐." 가끔씩 내가 공중에 몸을 띄워 그의 속을 달래주지 않았더 라면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그는 한 줌의 고기밥이 되었을지 도 모른다. 뱃사람들의 장례야 수장밖에 없으니까. "그걸 그렇고... 자네는 그 깉은 회색 머리카락도 잘 어울리 는구먼." "노도의 노란 머리도 마찬가지야." 저택으로 오기 직전 선원 한사람의 조언에 따라 부둣가에서 구한 염색약이 꽤 효과가 좋았다. 노도와 내 시간의 무게를 나 타내던 흰 머리카락과 눈썹들은 어제 색깔을 입었다. 노도는 희끗희끗한 금발을, 난 검은색에 가까운 진회색을 발랐다. 늙으면 비슷해진다던가. 난 동 대륙 출신의 분위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노도는 거의 이 대륙사람 같았다. 전혀 다른 분 위기를 풍기는 길거리에 적응하는 것도 그렇고... 고향에라도 돌아온 것처럼 노도는 이 곳에 섞여 들어갔다. "...좋기는 좋군." 한동안 입을 헤 벌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노도가 고개가 아 팠는지 뒷목을 가볍게 두드리며 천장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천장에는 날개를 활짝 편 천사들 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그림들이 아래 내려서서 그 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인간들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노도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고였다. "그런데 저 날개 달린 어린 아해들은 뭐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도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난 머리를 저었다. "몰라. 뭐, 신의 사자인지 뭔지라고 하더군. 신계에 정말로 저런 존재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여기 인간들은 그 렇게 믿고 있는 듯 했어." 노도는 잠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의 침묵이 흘러갔다. "...그런데 왜 옷은 홀랑 벗고 있는 걸까?" 그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혹시 ...여기서는 이렇게 겹겹이 입고 있는 게 실례인 게 아닌가? 밖에서는 추워서 입고 있었다고 하지만... 안은 이렇게 따듯하지 않나..." "에?" "그렇잖나. 눈이 내리고 있어서인지 밖에서는 벗은 사람을 보지 못했지만... 오는 내내 본, 저택의 천장과 복도에 그려지 고 세워진 그림들과 조각들은 하나같이 옷을 홀랑 벗고 있었 지 않은가!?"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태도로 노도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 다. 잠시의 식은땀이 등줄기를 흩고 지나갔다. "에이... 설마." "설마라니.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란 서로 극한까지 달라 질 수 있는 게 아닌가." 노도의 표정은 짐짓 더 심각해져만 갔다. 그도 그럴만 했다. 일년이 조금 넘는 항해 기간동안 뱃사람들에게서 얼추나마 서 대륙의 문화를 들어오는 동안 노도는 연신 경악에 경악을 터 트렸었다. 비단 동대륙과 서대륙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평생을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자신의 수도에만 집중해왔던 그에게 복잡한 인간세상이란 처음부터 놀람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야. 허식을 즐기고 자신을 치장하지. 그건 무리를 지어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 자들의 본능 같은 거라고 생각하네." "흠... 하지만 이만큼 큰집을 지어놨으니, 조금은 더 직접적 으로 닿고 싶지 않았을까? 나도 바람을 느끼길 원할 때는 이 거추장스러운 천을 몸에서 떼어낸다네." 난 말을 잠시 잊었다. 그의 말에 눌렸다기 보다는 그의 기 세가 하도 당당해서 잠시 벙쪄 있었다는 말이 옳았다. 하긴... 지난번의 방문에서는... 난 오로지 강한 무언가를 찾는데만 열 중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뿌리내린 사람들의 삶은 거의 바라보 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들이 내게 맞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쪽에서 맞춰나가야 하는데... "게다가 아직 안으로 들어와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적이 없지? 혹시 그 집사라는 사람... 우리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 던 그 사람 말일세. 지금 옷을 벗고 오느라고 늦는 것이 아닐 까?" "............어?" 조금의 턱수염만 남긴 채 다 자른 덕분에 얼마 남지 않은 수염을 습관처럼 쓰다듬으며 노도는 인상을 구겼다. "옷이란 추위를 막는 수단이네. 물론 관습에 따른 치장도 있겠지만... 익숙하지 않다 해서 고집을 부리다가 큰 우를 범하 는 것은 옳지 않네." "자, 잠깐!" "간신히 채용될 듯한 분위기였는데... 이러다가 다시 눈내리 는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마치 자신의 추측이 맞기라도 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라도 탈의(脫衣)하겠다는 의지를 결연히 보이며 노도는 옷자락을 살 짝 건들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난 필 사적으로 기억을 헤집었다. 분명 우리에게 하인지도를 자르쳐 준 뱃사람은 옷을 벗어야 한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을 다 알고 가르쳐주었다고는 할 수 없다. 너무나 상식적인 것들은 오히려 뭍혀 잊혀지는 법이니까. "자, 잠깐만 기다려..." 백여년 전 그 때 집안에서는 옷을 벗어야 하는 관습이 있었 는가를 기억해 내기 위해. 그리고 제발 그런 것이 아니기를 바 라는 마음으로... 해야만 한다면 못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 얼마나 허전하고 휭한 감각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일이란 말인가!! 게다가 만일 아니라면! 동대륙에서 왔다는 말 한마디 로 무마시킬 수 있는 망신이 아닐터였다. 누가 미친 정원사와 하녀를 고용하겠는가 말이다! 머리 속이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리 고 문득 내 앞에 걸린 한 점의 그림에 눈이 닿았다. 누구의 초 상화인지는 모르지만 깔끔한 옷차림에 붉은색의 보석을 가슴 에 달고 있는 그림... 배경은 이 대기실이었다. 머리가 맑아졌 다. 난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전에 와봤었잖아. 벗는 예의는 아니었던 것 같아. 오히려 보석 같은 것들을 치렁치렁 걸쳤으면 걸쳤지." "그런가?"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학식과 명상으로 깊은 수양을 쌓고 수도해 왔다고 하지만 노도는 처음부터 복잡한 사람사회를 경 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의당 벗는다, 입는다에 대한 개념 도 나보다 훨씬 희박했다. 평생을 그의 늙은 스승과 단 둘이, 혹은 홀로 살아온 그에게 옷이란 추위를 조금 막는 수단일 뿐, 자연과 동화되는 데 오히려 방해되는 '것'일 뿐이었으니까. 난 필사적으로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그를 이해시키지 않는 다면 그는 정말로 탈의할 지도 몰랐으니까. 그에게 옷이나 모 자는 같은 개념이었으니까. "희미한 기억이지만, 벗은 조각이나 그림들은 아마도 신화 를 표현해 놓은 걸꺼야. 이 대륙의 인간들은 왜인지 신들을 벗 겨놓기를 좋아하더라구." "흠...." 반쯤은 산발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아무리 잘 처줘도 잠옷 을 벗어나지 못할 만큼의 얇은 옷을 홑겹으로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났던 이 서대륙의 여신 아르페이나를 떠올리며 난 기억을 꽤맞췄다. "흠... 그럼, 그날 봤던 아르페이나님의 모습도 이해가 가는 군." 노도 역시 거의 반라의 상태로 우리를 찾아왔던 그녀를 떠 올렸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렇지. 평소에 입고 다니지 않으니까 옷입는 게 어색해서 그런 모습이었을 꺼야." 아마도 이 서대륙의 여신이나 신들은 평소에는 벗고 다니다 가 동대륙에 오거나 할 일이 있을 때만 입고 다니는 지도 모 른다. 그날은 워낙에 일들이 많은데다가 노도나 나나 옷차림 같은데에는 신경쓰지 않는 자들이라 무심코 넘어갔던 일들이 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새겨보니 상당히 그럴듯한 느낌이 든 다. 그렇게 우리는 의견을 일치시켰다. 그때 즈음이었다. 나무 경칩이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울리며 문이 열렸다. 벗기는커녕 좀 전보다도 더 깔끔하게 옷을 여며맨 헤리슨이었다. 안도의 작은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축하하네.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일해주기를 바라네. 자, 자네들의 숙소를 안내해 줌세. 참, 일행이라고 해서 숙소를 조금 가까운 곳으로 뒀네. 알다시피 하인과 하녀들의 숙소는 분리되어 있으니까." "네." 헤리슨이 앞장섰다. 역시 특이한 곳이다. 보통의 귀족가라면 집사도 상당히 뻣뻣하기 마련인데. 흥미가 인다고 할까? 어쩐 지 생각보다 더 좋은 경험이 될 지도 모른다. 같은 생각을 하 는지 노도가 슬그머니 웃었다. *****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8 Tue 09:07:53 IP : 211.215.59.83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5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4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0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5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2002/05/2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새로운 날이 밝았다. 동쪽으로 나 있는 창문으로 해님이 살 포시 고개를 들었다. 주홍빛 하늘이 서서히 밝아져오며 파랗게 변해갔다. 작고 아담한 방이었다. 한 사람이 편히 몸을 기댈만 한 침대 두 개가 벽쪽으로 붙어 있었고 등받이가 없는 의자 두 개와 작은 나무 테이블이 하나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동으 로 난 창문 아래로 길다란 서랍장이 벽을 따라 놓여있었다. 난 서랍을 열었다. 어젯밤 다른 하녀를 통해 받은 짙은 회색에 흰 줄로 장식이 들어간 '하녀복'이 깨끗이 놓여있었다. 길게 흘러 내린 머리를 깨끗하게 묶어 뒤로 넘기고 옷을 단정히 입었다. 흐릿한 일반거울 뒤로 완연히 하녀티가 나는 내가 서 있었다. "이런... 팔뚝에 문장도 들어있군..." 귀족들이 하는 문장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네이루트 (Neirute) 후작가의 하녀임을 상징하는 듯한 무언가가 깔끔하 게 새겨져 있었다. "...훗. 이상한 자부심이 강한 가문이군." 몇십 년이 지나기는 했지만 분명... 귀족들에게 가문을 상징 하는 문장이란 그들의 얼굴과도 같은 의미를 지녔다. 그런 문 장의 일부를 하녀들에게 달아준다는 것은... 분명 동대륙에서 왔다는 이 집의 옛 안주인이 어떤 성격이었는지를 알게 해 준 다. 분명... 자신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무조건 아끼고 보는 여 인이었겠지. -달깍.- 어제까지만 해도 허리에 비끌어 매여 있던 검 한자루를 탁 자 위에서 집어들며 가벼운 감상에 젖었다. 삼백 년간 내 곁을 지니고 있던 '검이라는 자'를 이제 곁에서 떨어트린다. 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난 애써 미련 을 털었다. 하녀에게 필요한 건 검이 아닐테니까. 몇 번 바뀌고 부러지기도 했었지만 정이 들대로 든 검이었 다. 한 백여 년 정도는 다시 허리에 찰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하기만 했다. "검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경지는 지나지 않았나?" "그대는 내 친구가 도구로 보이나 보군." "...........검은 검일 뿐일세." "그렇지." 그도 또한 백 여년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대신 꽃삽과 길 다란 장대를 들고 서 있었다. "방을 혼자 쓰는 기분이 어떤가?" "자네와 마찬가지 심정이겠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수건을 어깨에 걸친 노도는 언제라 도 정원에 나가 흙을 다질 수 있는 복장을 한 채 서 있었다. 운좋게도 우린 각자 하나씩의 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행스 러운 일이었다. 언제 또 하나의 주인이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린 우리가 잠자는 특이한 모습에 대해 설명하지 않 을 수 있었다. 땅에 등을 대고 자지 않은지가 벌써 백여년도 더 지나갔으니까. "자, 자세나. 새로운 경지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네!"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훗! 세 분의 신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기만을 바래야 겠지." "허헛! 이 사람이!" "하하하핫!" 유쾌했다. 새로운 시작이란 건... 나 역시도 가슴이 설래였 다. 마치 처음으로 세상을 밟았을 때처럼. "벌써 나왔는가? 그럼, 나를 따라오게." 멀직이서 방문을 나선 우리를 알아본 집사 헤리슨씨가 우 리에게 손짓했다. 내 생애 최초로 보호하며 모시게 될 주인은 이제 내 허리 를 조금 올라올까 싶을 정도로 작은 꼬마, 아니 하녀보다는 유 모가 더 필요할 듯해 보이는 나이의... 어린애였다. 동 대륙인 을 떠올리게 하는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서대륙의 핏줄임을 보여주는 짙은 푸른빛의 눈동자가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처럼 그는 공기에 붕 떠 있 었다. 그런 어색함들을 귀족가 특유의 고아한 무언가가 감싸안았 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에게는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태어나고 자란 듯한 고고함 같은 무언가가 베어있었다. 기품 있는 귀족가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일까? 뭐 그런 분위기 를 살리지 못한 채 시건방지기 그지없는 철부지 얼간이들도 수두룩했지만. 내 주인이 될 자가 어딘가 특별해 보이는 건 과 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도련님. 이쪽이 어제 말씀드린 하녀입니다." 꼬마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무심한 눈동자. 가슴이 섬짓했다. 새로운 사람이 왔을 진데 적 어도 저 나이의 아이라면 설핏은 비쳐야 할 호기심이나 그런 감정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껍데기만 아이인 채 속 늙어버 린 인형 같은 눈빛... "진란(眞亂) 입니다. 란이라고 불러주세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고개가 깊숙이 숙여졌다.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일들을 실전으로 한다는 건 어려운 일 이다. 난 그 난관을 무사히 극복해냈다. 연습용으로 삼았던 뱃 사람들도 적어도 중년은 넘긴 사람들이었다. 젊은 놈들은 내 연습상대가 되기를 거부했었고... 따라서 이렇게 피도 덜 말라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 다. 어쩌면 저 아이 같지 않은 눈동자가 내 실습을 도운 걸지 도 모른다. "흠. 쥬디를 대신할 하녀인가?" "네. 오늘부터 도련님을 보필할 하녑니다." 꽤 냉정해 보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어 서 헤리슨의 대답이 이어졌다. "좋다." "그럼, 전 물러가겠습니다." 승낙이 떨어졌다. 헤리슨은 조용히 문 밖으로 나갔다. 난 살 짝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눈동자가 날 향했다. 난 재빨리 다 시 고개를 숙였다. 열심히 암기했던 '좋은 하녀가 되는 길'에는 주인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곧 가정교사가 올 꺼다." 소년은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서는 등을 돌렸다. 또박또박한 발걸음소리가 내 앞으로 울렸 다. 난 조용히 고개를 들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네 일은 쥬디가 하던 대로면 된다." 다행히도 자세한 일은 헤리슨에게 모두 설명을 들은 뒤였 다. 식사시중과, 옷시중, 그리고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돌보면 된다. 말 그대로 보모 겸 하녀랄까. 다행히도 그것에 따르는 세부적인 일들은 따로 해줄 하인과 하녀들이 있었다. 이건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하녀라고 해서 다 같은 하 녀는 아니었다. 보통 신입 하녀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하기 마련 인데. 아르페이나와 적호님들의 농간 때문일까?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난 처음부터 내가 지켜야 할 어린 소년의 옆에 서게 됐다. "우선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내 뒤를 따라와라." 소년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소년의 청색 눈동자가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채 내게로 향했다. "알겠습니다." 소년이 다시 복도를 가로질러갔다. 이 소년이 내가 지켜야 할 자로구나 싶은 감각이 현실감 있게 열렸다. 아르페이나의 권고대로 이 소년의 평생을 지켜봐 준다면 난 정말로 내가 원 하던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소년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앞을 막고 있던 문에 그의 시선이 닿았다. 난 재빨리 문고리에 손을 댔다. 두꺼운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소년은 거리낌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벽 면을 가득 차지한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아낌없이 받으며 커다란 책상 두 개와 푹신한 의자 하나, 그리고 내 어 린 주인보다는 두어살 밖에 많아 보이지 않는 표정 없는 소년 한 명과 중년의 남자가 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길다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삼십대의 남자가 어린 주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내게로 낯선 시선이 돌아왔다. "쥬디를 대신할 하녀다." "아... 그렇습니까? ..........의외로 젊군요." "곧 서른이다." "아, 네에..." 마치 물건값이라도 부르는 냥 무감각하게 나에 대한 이야 기가 짤막하게 오갔다. 신경에 거슬린다. '이봐... 난 서른이 아니라... 삼백이라구...'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불쾌감이 되살아났지만 난 가볍 게 미소지으며 감정을 삭혀 넘겼다. 이런 정도에 감정이 움직 여서야 지난 세월의 수련이 아깝다. 감정은 쉽게 훌훌 털렸다. 뱀을 연상하게 하는 눈빛이 날 흩고 지나갔다. 날카롭게 좌 우 로 찢어진 눈매가 어딘가 교활하게 보였다. "오늘은 서대륙이라고 불리는 이 펠페르 대륙의 역사에 대 해 다시 한번 크게 훑어보겠습니다." 잠시의 관찰 후 내게서 시선을 돌린 콧수염의 가정교사가 고개를 돌리고 책을 들척였다. 깃털 펜보다 무거운 건 들지 못 할 것만 같은 가는 손가락이 유연하게 그가 원하는 페이지를 찾아냈다. 손가락 마디 두 개 정도의 두께가 되어 보이는 책 여기저기에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한 작고 얇은 이물질들이 끼 워졌다. 이 서대륙의 종이는 그다지 질이 좋지 않았다. 동대륙의 종 이보다 싸기는 했지만 잘 부서졌고 거칠었다. 동대륙의 종이들 이 옷을 만들어 입어도 될 만큼 질긴 반면 서대륙의 종이들은 잘못 접기만 해도 찢겨져 나갔다. 때문에 같은 내용을 담아도 책이 더 두꺼웠고, 표지도 단단했다. 가정교사는 가는 눈초리로 글자들을 한번 훑어 내렸다. 내 어린 주인, 클레이브는 조용히 의자를 꺼내어 자리에 앉았다. 난 커다란 책상 옆쪽에 자리를 지키고 섰다. "총 복습인가?" 그를 향해 힐끗 일별을 던진 어린 클레이브가 펼쳐져 있던 책을 덮고 한켠으로 밀어 치웠다. 가정교사가 고개를 끄덕였 다. 휘어진 콧수염이 가볍게 흔들렸다. 난 놀라지 않은 척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실 놀랄 일이었다. 이 서대륙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또 모를까. 백여 년전 와서 한바탕 뒤집으며... 알게 모르게 익히고 배우게 되었던 이들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이제 대 여섯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모두 읽었다? "네. 도련님께서는 이미 이 서대륙의 국가들의 역사나 문화 에 대한 수업을 마치셨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의 미에서 크게 한번 훑어보겠습니다." "좋다." 옛날 이야기로 듣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과는 그 담긴 정 보의 양이나 내용의 질적 차원이 달랐다. 내 어린 클레이브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입주변의 근육이 씰룩이며 미소짓는 것을 간신히 말려냈다. 피보호자인 그가 뛰어나다는 건 내게도 반가운 일이다. 문화적 특성상, 이 서대륙의 하녀나 하인의 신분을 지닌 자들은 주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주 인이 유능하다면, 유능한 길을 볼 수 있고, 무능하고 욕심많다 면 그런 일들밖에 볼 수 없다. 삶이란 극히 제한된 시간속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이 똑똑한 꼬맹이가 바로 내 피보호자다. 신들의 유혹으로 이루어진 내 삶의 한 시간대의 주인. "흠!" 내가 클레이브에게 보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가정교사라 는 중년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하긴 동 대륙에서도 천재는 있었다. 내 어린 시절 함 께 백검문에 들어왔던 청아라는 소년은 일곱 살 나이에... 벌써 소학 등의 기초 책을 다 떼고 대학을 들척이고 있었다. 불행히 도 그 천재적인 자질 때문에 제 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삶을 달리하기는 했지만. 가끔 신동은 있다. "자아... 일단 서대륙의 창조신화부터 시작해 보시겠습니까? 이 서대륙의 가장 위대하신 분의 이름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역사에 대해 설명해 보십시오." 가슴을 활짝 펴고 내게 유세라도 떠는 모냥 가정교사는 장 황한 질문을 던졌다. 클레이브의 조그만 입술이 절도 있게 움 직였다. "서대륙의 창조신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는 것 을 잊었나 보군. 동대륙과 서대륙의 갈라짐의 역사. 두 대륙의 주신이 갈리게 된 선사의 신화가 있지 않은가." 가정교사의 콧수염이 가늘게 떨렸다. "아! 그랬지요. 역시 클레이브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였다. 클레이브의 눈살이 찌푸려 졌다. "수업에 집중해주게. 그녀는 하녀일세." 아이의 목소리가 더 차갑고 엄하게 가라앉았다. 가정교사의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져갔다. 클레이브는 그가 얼굴을 붉히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잠시 무언의 시선을 던지던 그는 자신 의 앞에 놓여진 책을 덮었다. "그럼, 시작하겠다."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세상의 창조와 서 대륙과 동 대륙 의 갈림, 두 절대신의 탄생 신화로부터 시작한 서대륙의 역사 가 조용히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예닐곱도 채 되지 않 는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으리만큼 내 어린 주인의 설명은 훌륭했다. 가정교사는 자신을 더 들어내고 싶은 공명심과, 클레이브에 대한 조심성 사이에서 혼자 고민하는 듯 몇 번 입술을 꿈직거 렸지만 클레이브의 말을 막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되겠나?" 클레이브의 목소리가 끝나고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가정교사에게 나직한 경멸이 담긴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던 가정교사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아, 네! 물론입니다! 훌륭하십니다!" 콧수염을 나풀거리며 가정교사가 급히 답했다. "그럼. 이만 마치게나." 클레이브가 몸을 일으켰다. 스승에 대한 예라는 것이 이 곳 에도 없지 않을텐데... 그는 그저 흔한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처 럼 가정교사를 짧게 일별하고서는 방문을 나섰다. 휭한 공기가 넓직한 공부방을 맴돌았다. '이런....' 당황한 나머지 그를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이 내가 누군가를 따라다녀 본 적이 있었어야지. 그것도 저리 어린놈을 말이다. "..........크흑! 조금 높은 귀족이라고 어린놈이 깝죽이다니... 혼혈아 주제에!" 낮게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난 문을 나서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살기 띈 가정교사의 시선이 ... 조금 전 클레이브가 서 있던 자리 뒤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나오라!" 그가 차갑게 외쳤다. 누군가가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워낙 에 존재감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하던 소년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존재에게 순간 두려움의 기운이 흘렀다. "팔을 걷어!" 잠시 머뭇거림을 보이던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깨끗하게 빨아 입었지만 낡은 옷과 낡은 신발을 신고 있는 그의 얼핏 드러난 손목과 팔뚝에 가는 혈선이 그어져 있다. 매를 맞는 소 년인가? 하지만 수업은 이미 끝났는데? "무얼 보고 있나? 하녀 주제에! 당장 나가지 못해!" 콧수염이 책상 아래서 가는 회초리를 꺼내들며 외쳤다. 난 잠시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혔다. 그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걸 까? 그는 더 이상 내게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마치 잡아먹기 라도 하려는 듯 그는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소년을 응시했다. "건방진 놈! 아무리 후작가의 아들이라도 스승 알기를 우습 게 알아!" -촥!-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어 살이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가는 혈선이 소년의 팔목을 감쌌다. 지난 상처가 터졌는지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감히 팔을 떨어? 네게 무엇 때문에 돈을 받는지를 잊었냐? 당장 팔 대지 못해?"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소년의 손이 잠시 그의 몸쪽으로 붙 가 회초리로 소년의 볼을 내리치며 콧수염이 소리질렀다. 소년 이 눈을 감아 내렸다. 소년의 마른 팔 근육들이 필사적으로 버 티며 팔을 들어올렸다. "뭐, 뭐야!" "뭐하는 건가!" 차가운 목소리.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동시에 터져 나온 두 사람의 변명. 어느새 돌아온 클레이브 의 차가운 눈빛이 우리 세 사람에게 꽂혔다. 가정교사는 붉어 진 얼굴로 급히 회초리를 치웠다. 말없이 매맞던 소년은 급히 팔뚝을 걷어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 "첫날부터 긴장을 놓다니..." 못마땅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정신을 뒤흔든다. 난 내 눈 을 의심했다. 지금 내가 본 것을 이 어린 주인도 봤을텐데! 소 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시 굳은 시선으로 우리를 돌아보 다가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간다. 다음 수업이 있다. 그리고... 내 수업시간에 따라 날 안내해야 하는 건 란, 그대의 할 일이다." 어림잡아 여섯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의 입에서 떨어진 말이라 믿을 수 있겠는가! 기억을 되집어 본다면야, 백 무문에서 길러진 나 역시 저 또래 시절부터 애늙은 말투를 써 오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느낌이 다르다. "오전에는 이론 수업, 오후에는 주로 검술수업을 한다. 저택 의 구조를 가능한 빨리 익히도록." 벙찐 나를 뒤로한 채 그는 걸음을 옮겼다. 난 급히 그의 뒤 를 따라나섰다. 난 하녀였다. "건방진...." 누가 들어야 할 소리인지 모를 가정교사와 침착하게 시선 을 정리한 소년의 그림자가 뒤통수에 꽂히는 것만 같았다. 꽉 쥐어진 두 주먹이 살며시 떨렸다. '새로운 경지를 위해서다... 난 하녀야.' 등 뒤편에서 가정교사가 흠짓 한 걸음 물러서는 기척이 느 껴졌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살기까지도 아닌 억눌릴대로 억눌린 노기에 저런 반응이라니... 어린 소년조차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건만... 강자에게 약한 전형적인 자의 모습이었다. 첫날부터 적응되지 않는다. 오후 시간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어린 주인의 뒤통수만 보며 따라다니다가 끝났다. 뭐 이래저래 심부름하고 식사시중하는 일이야 이미 이년간의 수련으로 몸 이 익혀두었으니까... 큰 문제는 없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하는 실수죠. 아무래도 많이 다르니까 요. 동대륙과 서대륙은...- 내게 하녀에 대해 설명해 주던 뱃사람의 말이다. 난 그의 말에 공감했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이 렇게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니까. 동대륙에도 신분차이는 있다. 왕족도 있고 귀족도 있고 평 민도 있고 노비라든가 종이나 시비도 있다. 사람 사는데야 비 슷비슷하다니까 여기도 그런 거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뭔가가 다르다. 더군다나 지난번에 이 곳으로 왔을 때는 한마디로 '무법자' 처럼 휩쓸고 갔을 때라 더더욱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아니, 문에 있을 때조차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그런 계급상의 격차 들이 지금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난 천덕꾸러기 일 망정... 그들의 제자였으니까... 내가 느꼈던 소외감이나 비 참함은... '같은 신분'이었기에 느낄 수 있던 그런 종류의 것들 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을 경험해 보세요. 그대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그런 삶을...- 산발의 아르페이나의 목소리가 새삼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보는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조금 부당하게 느껴졌던 일 들이 지금은 어마어마한 황당함으로 다가온다. 시건방진 가정 교사와 묵묵히 매를 맞던 소년의 눈동자가 또렷히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 쯤이야 앞으로도 수도 없이 겪을텐데... 겨우 이 정도에 충격을 받다니... 피식 쉰 웃음이 흘러나온다. "자고있나?" "들어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친 얼굴의 노도가 들어섰다. 그 는 터덜거리는 걸음새로 들어와 빈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걸 쳤다. 굵직한 주름살이 두어개는 더 늘어보이는 얼굴로... "쉽지 않군." "화초들이 말을 안듣나?" 뚱한 표정으로 노도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의 오른 쪽 눈두덩이 근처에 자리잡은 푸르딩딩한 멍자국이 시선에 잡혔 다. 평소의 나였다면 첫눈에 알아봤을 그런 푸른빛. "글세... 우리가 선택한 길이 쉽지는 않을 듯 허이." "누군데?" 굳어진 시선을 의식했는지 노도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 보다 훨씬 급한 내 성격을 알고있는 그인지라 유난히 조심스 럽다. "좋은 수행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인내력만 키운다고 신이 될 것 같으면 그렇겠지." 목소리가 자연 퉁명스러워진다. 노도가 허헛 웃었다. 우린 깊게 숨을 내쉈다. 뭔가 큰 변화들을 경험할 것은 같은데, 시 작부터가 이런 식이고 보니 이런 경험들이 우리에게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공연히 사람을 미워하 고 가리는 것만 익히게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난 자네의 어린 주인이 꽤 마음에 든다네." "봤나?" "그래. 뭔가 운동을 했는지 땀에 푹 쩔은 모습으로 잠시 화 원을 찾았더구만..." "아아... 날 심부름 보낸 후 잠시 사라졌나 싶더니만, 그 쪽 이 화원이었군." 노도의 눈초리가 조금 가늘어졌다. "천하의 무후를 심부름시키다니... 이것 참 말재주 많은 호 사가들이 알면 기절할 일이구먼..." "알면 귀찮아지지." 기지개를 쭉 펴봤다. 별 것 아닌 동작이지만 머리를 한번 식히는데는 더 없이 좋았다. 노도의 눈이 무심코 창 밖으로 향 했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했다. "아이 같지 않는 눈이 조금 슬펐네만... 좋은 눈이었네." "하긴..." 아이러니하게도 문득 무심히 매맞는 소년에게 시선을 던지 던 어린 주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주인은 무슨 생각을 하 고 있던 걸까? 겨우 세 살에 어미를 잃고 어른들에게 둘러 쌓 인 채 지금까지 살아온 내 어린 주인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세 분의 신들께서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을 우리에게 던져 주셨군." 평범하지만 결코 일상적이지 않을 삶들이 우리 앞에 펼쳐 져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선은 나부터가 평범한 하 녀는 되지 못할 것만 같으니까. "그렇구만..." 노도의 눈가에 희미한 장난기가 되살아났다. 창 밖의 가느 다란 달이 서서히 구름에 묻혀갔다. 엷은 빛은 곳 사라졌다. *****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8 Tue 09:08:07 IP : 211.215.59.83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5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4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0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2002/05/28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일곱 번의 낮과 밤을 한데 묶은 일주일이란 시간이 네 번 이나 지나갔다. 한 달은 손살같이 지나갔다. 하루하루가 신기 함의 연속이다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난 내 어 린 주인의 시간표를 외웠고 시중드는 방법을 몸에 더 익혔다. 내 어린 주인은 더 본격적인 역사공부에 들어갔다. 귀족생 활의 필수인 예의범절과 몇 가지 악기 다루는 법, 검술, 승마, 그리고 쓸모 있으려면 한 십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사교 댄스들이 그의 주 공부 시간표였다. 그 재수 없던 가정교사는 불행히도 바뀌지 않았다. 뭔가 다 가르친 듯 해서 바뀔까 기대했건만, 한 단계 더 높은 공부를 가르치겠다며 지금 의욕에 불타있다. 그리고 매 맞는 소년 역 시 그대로였다. 처음의 신선했던 충격이 사그러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일상 이란 단어의 무게 때문일까? 겨우 삼십여일 정도의 시간이 흘 러갔을 뿐인데도 처음 그리도 화가 났던 소소한 작태들이 이 젠 제법 눈에 익어갔다. 단 한가지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또... 그 자식이냐?" 채 아물지도 않은 멍자국을 지긋이 누르는 노도의 얼굴을 보며 난 분기를 삭혀 눌렀다. 노도는 비식 웃었다. "자네야 어린 주인과 늘 함께라 모르겠지만, 그 놈은 하인 들에게 악명이 높은 듯하더구만..." 벌써 세 번째 멍자국이었다. 처음에는 노도가 굳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 해 넘어갔고, 두 번째는 범인이 누구인지 짚 이는 데가 없어서 넘어갔었다. 지금이야... 범인을 알아도 달리 손쓸 방도가 없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제길." "뭐, 이 땅의 하인들이 다 그리 살고있는 듯 보이지 않나. 내 전에 화원을 함께 돌봤던 에른의 말에 의하면... 이 곳은 그 나마 하인노릇 하기가 좋은 곳이라 하더군." "웃기는 곳이야." 고관대작의 개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것이 동대륙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뭔가가 달랐다. 아무리 자신보다 높은 가문의 하인이라 하더라도 하인은 하인일 뿐이었다. 죽거나 일하지 못 할 정도로만 하지 않으면... 문제없이 넘어갔다. '겨우 하인 하 나정도야...'하고 넘어가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 혀있는 자신보다 낮은 귀족에 대한 관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확실히 동대륙보다 여기가 더 아랫사람 노릇하기가 힘든 듯 하군." "그렇지 않으면 온 보람이 없지." 노도는 털래털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듯 하네. 자네도 이제 어린 주인 에게로 돌아가 봐야지." 중천에 걸린 해가 구름에 살짝 가려져 있었다. 난 인상을 잔뜩 구겼다. 오늘 오후는 그 재수 없는 가정교사의 시간이었 다. 난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익숙해지는 것과 기분 나뿐 건 별개의 일이었다. "난 요즘 들어 내가 퇴보하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툭 던진 내 말에 노도의 어깨가 움찔했다. "하녀의 삶을 경험하는 것과... 지금까지 나라고 믿어왔던 내 모습을 버리는 것의 차이에 대해 말이야." 일종의 회의였다. "겨우 한 달만에 이런 약한 소리를 하고싶지는 않지만 말이 야..." 노도가 묵묵히 작은 꽃삽과 괭이를 집어들었다. "길이란 한번 어긋나면 되돌아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거든..." 내 스스로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내려꽂히는 듯 했다. 난 과연 지금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 공연히 시간만 백여년 소모한 채 뒷걸음질치게 되는 건 아닐까? 게다가 내게 는 흘려버릴 수도 있는 백여년이라고 하더라도 노도에게는 다 른 것을! 아무리 그가 자의로 따라왔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수명과 뒤바꾼 더 없이 소중한 순간일지도 모 르는데! "란 서둘러요. 도련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조금 멀찍이서 나와 같은 하녀복을 입은 소녀 하나가 손짓 했다. 난 몸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골치가 아픈 마당에 쓸데없 는 문제까지는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났어요. 서둘러요. 도련님께서 기다리지 않으시도록!" 제법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내게 그녀는 평소와는 조금 다 른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하긴 내 어린 주인은 주인이라 치 고 그 재수 없는 가정교사는 뭔가가 작은 꼬투리라도 그의 신 경에 걸리면 불똥을 이리저리 튀기곤 했다. 리엔은 노도와, 그 매맞는 소년과 함께 가정교사의 불똥을 가장 많이 맞는 사람 들 중 하나였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리엔." 난 은근슬쩍 가해지는 그녀의 눈치를 미안한 얼굴로 받아 넘기고는 다리에 약간의 힘을 가했다. 보통의 하녀치고는 상당 히 빠른 달리기 솜씨를 조절하며 난 자꾸만 떠오르는 상념들 을 애써 접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뭐 저딴 게 다 있어!' 기껏 접었던 잡념들을 용수철 상자 속의 도깨비모냥 튀어 오르게 만는 놈은 그 재수 없는 가정교사였다. "하녀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얼쩡거리다니!" 그 역시도 내 어린 주인을 찾아가는 길이었나 보다. 그의 방으로 향하는 복도 한 가운데서 마주친 그는 다짜고짜 날 가 로막으며 소리질렀다. 처음으로 내 어린 주인과 떨어져 혼자 있는 날 발견한 그의 눈에 묘한 살기가 맴돌았다. "죄송합니다만, 도련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쫙!- 볼에 와 닿는 무언가의 감촉에 고개를 휘청 돌렸다. 얼떨결 에 들어간 하녀 역할로 인해 충실히 매맞는 역할을 전개하기 는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순간 불꽃이 튀겨 올랐다. "감히 귀족인 내게 말대꾸를 해?" 그다지 붉어지지 않았을 내 뺨에 비해 얼핏 봐도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바닥을 다른 한 손으로 감싸쥐며 가정교사는 콧구 멍을 벌름였다. 문득 멀찍히 복도 뒤편에서 낯익은 그림자 하 나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사람의 시력이라면 잡히기 힘들만큼 의 멀직히 세워진 기둥 뒤... '리엔?' 하녀복을 입은 한 소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퍽!- 또 한번의 강한 충격이 머리 위쪽으로부터 전해져왔다. 가 정교사가 들고 있던 두꺼운 책을 양 손으로 단단히 부여잡은 채, 다시 한번 내 머리를 내리칠 기색으로 숨을 가다듬고 있었 다. 난 멍한 시선을 그에게로 던졌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행 동해야 할까? 무후인 란이 아닌 하녀 란으로서 난 어떻게 행 동해야 할까? "감히 귀족을 맞봐?! 하녀 주제에! 날 모독해? 어디 한번 그 날처럼 노려봐 보시지!" 째질 듯한 목소리가 차분했던 복도의 공기를 송두리채 휘 집었다. 그리고는 채 방향성을 정하지 못한 내 머리를 두꺼운 책으로 한번 더 후리쳤다. 높은 천장으로 소리가 공명하며 비 산했다.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격타음이 울려 퍼졌다. 무방비로 세워져만 있던 몸이 순간 가라앉았다. 무릎이 살짝 땅으로 닿 았다. 머리가 온통 혼란스러워졌다. 의식되지도 않는 기억 속 에 숨겨져 있던, 언젠가 보았었던 매맞는 하녀들의 동작을 충 실히 재현하며... 난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 어지고 있는 거지? '정말 하녀가 되시렵니까? 동대륙도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나 서대륙의 하녀들은 신분이 더 낮습니다. 주인 잘못 만나면 성적 노리개가 되기 일수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매맞 거나 죽는 경우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이런저런 경험하러 가는 거니까. 노리개야 되 줄 수 없지만, 매맞는 것 정도야 맞는 척 해주지. 뭐, 인내 력 향상에는 좋지 않겠어?' '허, 참...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요?' '시끄러! 잔말 말고 따귀나 한 대 때려봐. 실감나게 맞는 시 늉이라도 몸에 익히게.' '에엑! 싫어요! 천하의 무후님을 때리다니! 제 손뼈가 부러 질 겁니다!' '날 뭘로 보는 거야! 그 정도도 제어 못할 줄 알아? 빨리 해 보라니까?' '우에에에에에....' 내 협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내 따귀를 때려보던 그 선원 의 울쌍인 얼굴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긴 지난 이년 간 내가 그에게 들은 것들은 실제적으로 어떻게 귀족을 보좌 하는가 보다는 억울한 경우에 어떻게 비굴하게(?) 대처하는 가 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독한 년!"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긴 동안 그 두꺼운 책으로 몇 번 더 날 후려친 가정교사가 씨근덕 숨을 몰아쉈다. 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라도 더 까닥하다간 가늘 게 남아있던 이성의 끈이 조각날 것만 같았다. 난 지금 이론과 실제의 사이에 있는 두꺼운 늪을 경험하고 있었다. 두껍게 가 두어둔 내 안에서 한달 가까이 쌓이기만 하며 타오르기 시작 한 분노와 이성의 복잡한 갈등이 날 겹겹이 옭아맸다. '참아야 해. 넌 하녀잖아?' '웃기는 소리! 그깟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을 뿐인 틀에 얽 매여 너 자신을 버릴꺼야? 넌 너야!'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 했잖아! 여기서 참지 못하면 예전의 그 경지에 머물 뿐이야!' '이렇게 한다고 반드시 새로운 경지로 넘어간다는 보장이 어디있어!' "무슨 일입니까?!" 낯익은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오오, 집사 헤리슨이군." 금새 간사스럽게 목소리를 정리한 가정교사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하긴, 집사는 평범한 하인과는 그 격이 달랐다. 평민이 아닌 경우도 있었고 특히나 이런 쟁쟁한 집안의 집사는 몰락 한 하위 귀족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저희 하녀가 무슨 실수라도?" 헤리슨의 목소리가 문득 조심스럽게 변했다. "그렇지! 마침 잘 왔네! 이 버르장머리없는 하녀를 처분해 주게나!" "버르장머리없는 하녀라니요?" 의기양양한 가정교사의 목소리에 반비례해 조금 더 조심스 러워진 헤리슨이 반문했다. 신경이 식어나갔다. 다짜고짜 날 때리고 혼자 난리친 것으로도 모자라서 지금 내게 누명까지 씌우려는 건가? 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제가 언제!" "이것 보게나! 함부로 말에 끼어들기나 하는게 좋은 증거가 아닌가!" 의기양양한 가정교사의 표정이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헤리 슨이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감히 귀족을 똑바로 쳐다보지를 않나! 노려보기까지 하지 를 않나! 게다가 거친 말대꾸까지! 내가 이렇게까지 모욕당하 고 넘어가야 하겠나? 이게 후작가에서 하위 귀족들을 대접하 는 방식인가?" 조금 더 거세진 목청으로 가정교사가 헤리슨을 위협하듯 소리질렀다. 슬금슬금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택 경비대원 몇몇 과 호기심을 느낀 하녀와 하인들이 멀찍이서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문득 나와 시선을 마주친 리엔이 그녀도 느꼈는지 화 들짝 고개를 돌렸다. "그럴리가요. 남작께서 뭔가 오해를 하신 듯 합니다." 갑자기 한껏 부드러워진 어조로 헤리슨이 그를 달랬다. 난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동시에 서서히 감정이 식어갔다. '하녀에게 이로울 수가 없다.' 모든 상황은 내게 불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난 막 소리 치려던 입을 다물었다. 난 아직 결심하지 않았다. 그껏 하녀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 이년이나 배멀미에 시달리며 이 서대륙으 로 돌아왔다. 갈등이 든다고 해서 하녀의 삶을 쉽게 포기할 수 는 없었다. "무슨 일인가?" 앳되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내 등뒤에서 들려왔다. 우르르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더 이상의 말을 이어 붙이지 못한 헤리슨이 죄송스럽다는 얼굴로 어린 주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린 주인의 차가 운 눈길이 좌중을 훑었다. "수업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더군." 책망이 담긴 목소리가 남작이라는 작위를 지닌 가정교사에 게 향했다. 그가 급히 입을 열어 뭔가를 변명하려 했다. "십여분이 넘도록 혼자 기다렸다. 뭔가 더 할말이 있는가?" 한껏 기세를 떨치던 남작의 얼굴은 한순간에 구겨졌다. "일단은 돌아가도록 한다." 한번 더 주위로 시선을 던진 어린 주인이 몸을 돌렸다. 남 작은 기세가 꺽인 채 싸움에 진 강아지같은 꼬라지로 털래털 래 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돌렸다. 두고 보자는게 역력한 눈 빛을 내게로 보내면서 말이다. "다른 말들은 수업이 끝난 뒤 하도록. 란. 길을 앞장서라." "아, 네!" 기묘한 긴장감이 내 어린 주인을 사이에 두고 다시금 꼬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8 Tue 09:08:25 IP : 211.215.59.83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5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4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2002/05/28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칼날같이 따끔따끔한 수업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난 아직 도 갈등중이었다.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내 어린 주인 이야 아래 신분들이 내뿜는 불편한 공기에 미동도 하지 않았 지만, 매맞는 소년이나 나나 재수 없는 남작은 달랐다. 그는 수업시간 내내 내게 살기 어린 시선을 보냈고, 그건 그의 주 화풀이대상인 매맞는 소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커튼이 가려지지 않은 실내가 붉으스 름 물들어갔다. 누군가의 뱃속에서 허기진 울음소리가 들려왔 다. 남작의 살기가 매맞는 소년에게로 쏠렸다. 그가 노을진 얼 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천한 것..." 아니나 다를까 남작은 속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계점에 다달았는 지 내 어린 주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남작은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는 책을 접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알았다." 어린 주인이 몸을 일으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끼익 끌리 는 소리를 만들었다. 매맞는 소년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 다. 어린 주인은 잠시 시선을 그에게 돌린 뒤 조용히 방을 나 섰다. "란, 따라와라." 나지막한 주인의 목소리가 날 그 가시방석 같은 공기에서 건져냈다. 뭐, 이대로 끝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린 주인은 깨끝이 방밖으로 빠져나갔다. 난 잠시 시선을 남 작에게로 돌렸다. 그의 살기가 내 뒤통수를 잡아끌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시선이 교차했다. 난 먼저 눈을 내리깔았다. 헛수고였다. "으드드득... 천한 것들! 감히 날 무시해?" 난데없는 불똥이 우리에게로 튕겼다. 아니, 어린 매맞은 소 년에게로 튀겼다. 남작이 몸을 날리듯 책상을 건너 뛰쳐나왔 다. -촤악!- 날카로운 회초리가 소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전처 럼 나와라 들어가라 말도 없었다. 팔을 걷어라 말아라도 아니 었다. 체벌의 형식도 없었다. 그건 정말로 단순한 화풀이였다. "무슨!" "건방진 것!" 채 최초의 경악이 사라지기 전에 그의 회초리 질이 연거푸 이어졌다. 붉은 실선들이 갈라지며 핏방울들을 토해내기 시작 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요란하게 외쳤다. '그깟 새로운 경험 하나 하자고 네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네 긍지들을 모조리 시궁창에 쑤셔 박을 꺼야? 네가 원하는 새로 운 경험이란 눈 돌리고 외면하는 비겁함이었어?' "아니야. 절대." 나는 나임을 버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나임을 지켜 야 했다. 나 이기에 하녀의 경험이 필요했을 뿐, 내가 사라진 하녀노릇은 단순한 시간 버리기 용 유희일 뿐이었다. 내게는 그런 자학적인 유희를 즐기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우아악! 지금 무슨 짓이냐! 이 비천한 것!" 시뻘개진 얼굴로 남작이 소리질렀다. 내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아채고 있었다. 난 손아귀에 힘을 더 가했다. "내가 누군 줄로 알고 이딴 짓을 하는 게냐! 이러고도 감히 용서를 바랄 생각은 아니겠... 으아아악!" 차갑게 가라앉은 내 눈을 직시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 고서도 짖어대던 남작의 입은 고통으로 막혔다. "어차피 그대로 둘 예정은 조금도 없지 않습니까?" 오후에 있던 사건을 기억하며 난 비릿히 웃음지었다. 내 어 린 주인이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침착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부류들에게는 나름대로의 방법들이 있었다. 그런 대처법은 많 은 경험없이 생기지 않았다. 난 내 어린 주인이 이만큼이나 날 지켜준 것만으로도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아니, 이 매맞는 어 린소년을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크으으으으! 이 천한 것이 놓지 못해!" "네." 남작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다채롭게 변해갔다. 난 내 안 에서 내게 속삭이던 무언가가 언제부턴가 더 이상 소리내어 외치지 않음을 알았다. 시원한 감각이 머리를 감싸기 시작했 다. 내 손에 잡힌 그의 팔이 부르르 떨었다. 팔목에서 덥쳐 오 는 고통과 감히 하녀 따위에게 자신의 행동을 방해받았다는 모욕감,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와 팔을 잡아챈 나에 대한 두려움... 구겨진 자만심과 알 수 없는 자에 대한 두려움에 남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 난 귀족이다! 귀족의 긍지를... 으으으으으으!" "회풀이용으로 어린 소년이나 괴롭히는 긍지는 돼지 먹이로 나 던져 주시죠." 한풀 꺽인 목소리에 애원 비슷한 뭔가가 섞여 들어가기 시 작했다. 난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 때였다. "맞는 것이 제 일입니다. 물러나 주세요." 소년이 얼굴선을 타고 흐르는 핏자국을 닦아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방울방울 맺혔던 피가 줄기를 이루며 바닥으로 흘러떨 어졌다. 상당히 고통스러울텐데... 상처를 어루만지며 신음하기 는커녕 담담한 목소리라니? 소년은 맑은 눈동자로 날 향했다. 내 어린 주인 클레이브보 다 크다고는 했지만 그래봤자 한뼘 정도의 차이였다. 이제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 소년이 어른의 얼굴을 하고 내 손목 을 잡았다. "남작님의 손을 놔 드리세요. 이건 호의가 아닙니다. 전 도 련님 대신 매를 맞는 게 일입니다." "그 매는 수업시간에, 정당한...아니, 수업에 관련된 사항으 로 맞는 게 아닌가? 다 끝난 시간에 분풀이로 맞는 게 아니 라?" "그 때 외에는 저도 맞을 때가 없으니까요. 도련님은..." 소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매맞는 아이가 필요 없 으시죠. 하지만... 전...." "......................."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다, 다, 당장 놓지 못할까!!!" 남작이 조금 되살아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게 잡힌 손목 위쪽의 손이 빨갛게 부어 올랐다. 피가 통하지 않으니 고통스 럽기도 하겠지. 난 손목을 쥔 손아귀에 힘을 조금 더 가했다. 손바닥으로 뼈가 살짝 부서지는 감촉이 다가왔다. 금이 가기 시작했겠지. "크아아아아아아아!" 견디지 못한 남작이 주저앉아 비명을 터트렸다. 조금 전부 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던 방밖이 시끄러워지며 방문 두드 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난 듯한, 조금은 당황한 사람들이 우르르 이 방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아차차..." 힘 조절을 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이 남작의 입을 막아 버 린다던가... 아혈을 제압해 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던가, 몸 의 자유만 빼앗는다던가 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나 도 조금쯤은 분노에 이성을 잃고 있었나보다. "멈추어라!" 늦었다. 가깝게 다가온 요란한 발소리들에 이어 검을 뽑아 드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그들의 맨 앞에 턱수염 을 굵게 기른 남자가 우렁차게 외쳤다. "이런..............." 난 남작의 손을 놓았다. 딱딱하게 굳은 집사 헤리슨이 다가 와 내 볼에 손을 날렸다. 딱 달라붙는 손바닥의 감촉이 왠지 오후 때의 남작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헤리슨의 눈빛이 날 책망했다. '도련님께서 그리 도와주셨건만. 어리석게도!' 분명 그의 눈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난 살며시 고개를 숙 였다. 그는 분명 날 걱정하고 있었다. 나보다는 내 어린 주인 을 더 위하기는 했지만. "끌고 가랏!" 경비병 두 사람이 내 양팔을 잡았다. 담담함을 한순간에 무 너트린 소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길다란 눈물자국이 어느 새 볼에 그려져 있었다. "꼬마야. 네 이름은 뭐지?" 잠시 몸에 힘을 주고 자리에 바로 섰다. 두 발짜국 정도 날 끌고 가던 경비병의 몸이 한순간 멈춰 섰다. 접촉된 피부를 통 해 기를 전달해서 잠시간 굳게 만드는 것쯤 내게는 일도 아니 었으니까. 소년이 머뭇하며 눈물을 훔쳤다. "당장 끌고 가라는데 말이 들리지 않느냐!" 헤리슨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경비병의 몸이 잠 시 움찔했다. 소년은 헤리슨과 날 잠시 번갈아 바라봤다. 헤리 슨의 칼같은 눈이 내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쳤다. 헤리슨의 어 깨가 순간 움찔했다. 소년이 침을 삼켰다. "스테판... "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빙긋 웃었다. 경비병의 몸이 다시 움직였다. 난 두 사람에게 질질 끌리며 방을 벗어났다. 멀직이서 내 어린 주인의 차가운 눈빛이 날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일년도 못버티고 한달만에 말썽이냐!" "비꼬지마 노도. 넘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야 '검후'에게나 그런 상황이었겠지." 밤늦게 주먹밥 한 덩어리를 싸 들고 찾아온 노도는 간신히 다리나 뻣을 만한 조그만 감옥에 갖혀 있는 내 형색에 혀부터 차댔다. "갈등은 끝냈어. 노도. 나는 나다. 검후라는 껍데니나, 하녀 라는 껍데기에 따라 내가 바뀔 수는 없어. 난 결정했다." 하녀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작은 난동을 부려댄 나를 책망 하는 노도에게 난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내가 바라는 건 새로운 깨닮음과 경지였지, 타락과 방관이 아니었어. 난 내가 검후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을 뿐, 한자루의 검과 함께 살아왔던 내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야." 노도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퀴퀴한 공 기가 가득 찬 지하 감방에 문득 향기로운 풀과 꽃들의 내음이 풍겨 나왔다. 다 늙은 영감탱이에게서 이런 향기라니... 어딘가 불균형하면서도 잘 어울린다. 희미한 횃불이 만들어내는 빛이 노도의 얼굴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엄지손가락보다 더 두꺼운 창살이 촘촘히 처져 있는 감옥은 습습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썩은 오물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난 처음으로 후각이라는 감각을 내가 닫을 수 있음 에 감사했다. "그 와중에서도 챙길 건 다 챙기는군." 노도는 혀를 찼다. 난 빙긋 웃었다. 옷을 기의 막으로 얇고 단단히 싸고 몸을 두어치 정도 공중으로 띄운 내 모습이 그가 보기에 한심했을 지도 모른다. "옷이 더러워지면 찜찜하거든." "차라리 창살을 꺾고 나오지 그러나." "지금은 하녀의 옷을 입고 있으니까. 적어도 내 어린 주인 에게는 하녀답게 보여야 하지 않겠어?" "....말이나 못하면." 노도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난 과장스럽게 팔을 벌려 보이며 웃어줬다. 여기는 후작가 저택 지하의 사설 감옥이었다. 들어오며 잠시 봤는데, 어지간한 왕궁 감옥보다도 더 탈출하기 힘들도록 단단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뭐, 이곳은 왜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방들에 비해 지상으로 난 창문도 있고 무척이나 허술해 보이지만 말이다...아... 왕궁 감옥보다 탈출하기 쉽다는 말이 귀에 걸린다고? 뭐... 좌충우돌 아무런 상식도 없이 도착한 신대륙의 법이나 예의를 우리가 알리 없었지 않은가. 백여년 전 도착하자마자 뭔가의 시비에 휘말린 나와 내 동료들은 다짜고짜 왕궁 지하감옥에 갇힌 적 이 있었다. 항구 앞 복작거리는 시장통에서 왠놈이 버르장머리 없이 마차를 험하게 몰고 가기에 붙잡아서 몇 마디 충고해 줬 다가 시비가 붙어, 책임자인 듯 보이던 얇삭하게 생긴 놈을 늘 씬하게 패 줬던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나라의 왕자 중 하나였다나 뭐라나... 비록 후궁 소실이기는 했지만 왕족이라면 절대... 만만한 신분은 아닌지라 얼떨결에 지하감옥까지 구경한 적이 있다. 뭐, 잡혀들어갔다기 보다는 이 동네 감옥은 어찌생 겼는지 구경이나 해 보자는 어떤 빌어먹을 놈의 호기심에 동 조했던 것뿐이지만... 그 때 꽤 화려하게 탈출해 본 적이 있다. 탈출하는데 달리 화려함이 있겠는가... 다 미숙함때문이려니 싶다. 그런 장소를 어디 탈출해 본 적이 있어야지... 본의 아니 게 꽤 잘 만들어진 감옥을 가지고 있던 그 왕성을 거의 반파 시켜 버렸다. 아깝게도 말이다. 덕분에 꽤 높은 현상금을 달았 다. 뭐, 그 뒤로도 돌아다니면서 꽤 여러 곳의 감옥을 들락거 렸다. 모두 옛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스테판이라는 아이의 상처는 나도 봤네. 자네가 화를 낼만도 하더구만... 다른 하인들도 그러더군. 자네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그 형편없고 옹졸한...남작에게 덤비다니." "용기 있다가 아니라 무모하다고들 했겠지." "허허허..." 노도의 너털웃음을 한 귀로 흘리며 난 자세를 바로 했다. "어딜 가든 새로운 삶만 경험하면 되겠지. 내가 나임을 잃 지 않을 자신이 이제는 생겼어. 그런 이상 궂이 아르페이나님 의 말에만 묶여 있을 생각은 없어. 그녀가 '제안'했던 건 하나 의 의견이었지, 절대적인 명령은 아니었으니까. 여기서 하녀의 삶을 살 수 없다면, 서대륙 어딘가의 다른 나라에라도 가면 되 는 거다. 저 작은 주인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꼭 그여야만 되는 건 아니야. 난 그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적은 없으니까." "쯪. 변덕하고는..." "변덕이라니! 상황에 따라 태도를 달리 할 바에는 상황을 바꿔 버리는 편이 더 낳지 않겠나!" "자네는 어딜 가도 변하지 않을 걸세." "변덕부린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 남작이라는 자는 결국 손목아지가 부서졌더구만. 치료 사들이 몰려와서 고쳐주기는 했네만... 그러고 보니 그들은 참 이상한 방식으로 선기를 움직이더군." "신관이나 마법사를 본 것 같군." "신관...과 마법사?" "그래. 신관이란 신을 믿는 자들인데... 이 서대륙의 신들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그들의 힘을 쉽게 빌려주는 듯 했어. 신 들의 특성에 따른 치유력이나 병을 고치는 일등을 돕더군." "흠..." 노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관이라든가 마법사라든가 하는 직업은 동대륙인인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선 존재들이었다. 깨 닳음이 없이도 술법을 썼고, 단지 믿는다는 것 하나로 신들의 위대한 힘을 손쉽게 빌려다 썼다. "어떤 원리를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네만, 마법사들은 자 연의 기... 여기서는 마나라고 부르는 것 같네만, 하여간 그런 것들을 의지력으로 조절하고 배열해서 신기한 일들을 일으키 는 자들이더군.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웅얼거리면서 불덩이도 만들어내고 했어." "흠... 그거 참 신기하군." 우리는 시간을 잊었다. 장소도 잊었다. 우리에게 이 좁고 더 러운 장소나 눅눅함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했다. 벽에 꽃혀 있던 작은 횃불은 금새 타 없어졌다. 머리도 빠져나가기 힘든 조그만 구멍에 촘촘히 창살이 박힌 창문으로 동그란 달이 떠 올랐다. "그건 그렇고... 자넨 안돌아가도 되는 건가?" 문득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듯 했다. 노도는 고개를 저었 다. 그가 개구지게 웃었다. ".............법술을 너무 남용하는 건 아니야?" 그 웃음에 담긴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노도는 선력이라 부 르는 내게는 상당히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자연이나 사 물과 완전히 동화되기도 하고 그들을 움직이기도 했다. 굳이 이 서대륙 식으로 고치자면, 주문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신기 한 존재 정도 될까? "기왕 될거면 선신(善神)이 되어야지. 양심에 눈을 감은채 힘만을 추구하는 악신(惡神)이 되어서는 쓰겠나." "그건 맞는 말이네." 또다시 그런 상황이 닥친다 해도 난 남작의 손을 막겠지. 그에 뒤따르는 책임이 얼마가 되든 난 나 자신이 더 중요했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찌된 게 어린놈들이 하나같이 속늙 었는 지 몰라." "살아남기 힘들었나 보지..." "그랬을까?" 순수함을 지킬 수 없을 만큼 삭막한 삶이 그들을 조숙하게 만들을지 모른다는 노도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맞는게 자신의 일이라며 당당하게 팔을 내밀던 스테판이나 차갑게 가 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린 주인 클레이브나... "그만 가봐. 내일도 일 해야 하잖아." 노도가 긴 하품을 뿜어냈다. 그리곤 다시 잠이 막 깬 장난 꾸러기모냥 미소지었다. "뭐야?" "뒤 좀 돌아봐." 고개를 돌렸다. 분명 어디선가 봤던 눈동자 한 쌍이 비좁은 창틀 사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이 쪽으로 조심 스럽게 다가오던 발소리의 주인이었다. "무슨 일이죠?" 달빛을 등진 그림자로 어둡게 물든 소년의 표정이 조금 밝 아졌다. 머뭇거리며 살그머니 다가와 창살쪽으로 고개를 들이 민 소년이 조그맣게 말했다. "괜찮은가요?" "물론이죠. 스테판." *****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8 Tue 09:08:40 IP : 211.215.59.83 dakad 아아;ㅁ;/ 돌아오신것 축하!! (05/28,11:45) 가간티스 ^^ (05/28,12:16) 은빛 기.. 기억해주신 분들께...ㅠ^ㅠ 감사를~~~ 다녀왔습니다아아아아~ (05/28,22:27)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5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2002/05/2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닮았어.' 클레이브는 눈을 돌렸다. 경비병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당당 하기 그지없는 하녀의 모습이 왠지 눈에 박히듯 이끌렸다. "으아아아아악!" 남작은 아직도 추한 비명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클레이브 는 이맛살을 조금 구긴 채 몸을 돌렸다. 클레이브가 남작과 공 부를 시작한 건 그가 다섯 살 때였다. '허깨비.' 지난 일년간의 시간동안 그가 내린 남작의 평가였다. 남작 은 대접받기만을 즐기는 자였다. 남작과 공부를 시작한 후 그 는 처음으로 그의 눈앞에서 흐르는 매맞는 소년의 피를 봤다. 다섯 살의 나이는 공부를 즐기기에는 너무 어렸다. 열심히 하기도 했고 총기가 흐르는 클레이브였지만 남작이 자랑삼아 늘어놓는 지식들을 주어 삼키고 소화시키는 일은 무리였다. 그 가 처음으로 남작에게 공부를 배우던 날 매맞는 소년은 팔뚝 에 흰 뼈가 들어날 정도로 맞았다. 사방으로 튀는 핏방울과 견 디지 못하고 질러대는 소년의 비명, 비릿한 공기가 클레이브의 숨통을 죄어왔다. 클레이브는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렸지.' 클레이브는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어린 아이의 미소가 아닌 조소와 경멸이 가득 담긴 그런 곡선을 얼굴에 그린 채 클레이 브는 다시 과거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클레이브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매맞는 소년은 다음 날 두 팔에 흰 붕대를 감고 수업에 들어왔다. 소년의 몸에 매질이 가 해지는 게 클레이브는 싫었다. 마치 그의 얼굴에 대고 침을 뱉 는 것만 같아 모욕스러웠다. 넌 때릴 가치도 없는 자라고 누군 가가 귓가에 외치는 것만 같아 소름이 돋았다. 자랑스러운 어 머니였지만, 클레이브는 주위에서 자신을 혼혈아라 손가락질하 며 수근거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괴로웠다. 무고한 소년이 자신 때문에 죽어가는 것만 같아 클레이브 는 고통스러웠다. 그도 회초리의 아픔을 알고 있었다. 저 가학 적인 남작이 매맞는 소년에게 해 대는 것처럼 마음까지 찢어 발기는 회초리는 아니었지만... 동 대륙에서 건너온 그의 아름 다운 어머니는 그가 옳지 못한 일을 했을 때면 여지없이 그녀 의 희고 가는 팔에 회초리를 들었었다. 지금이라면 그 정도 맞 아도 아프지 않으련만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의 그는 지금보 다도 훨씬 더 어렸다.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맞는 종아 리보다 더 아픈게 마음이었다. 몸약한 어머니로 하여금 회초리 를 들게 했다는 생각에 클레이브는 부어오른 팔 다리보다 조 그만 가슴이 더 아팠었다. 그러나 남작의 회초리에는 그러한 '무언가'가 담겨있지 않았 다. 무언의 멸시와 조롱, 자기 자신에 대한 우월감만이 가득 담겨 조금은 다른 의미로서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쥬디는 남작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어린 클레이브를 따라 공부방 한켠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남작이 서 있는 쪽으로는 단 한번도 고개를 돌린 적이 없었다. '남을 깍아 내리면서 밖에 자신을 높이지 못하는 사람은 못 난 사람입니다.' 그녀는 조그만 목소리로 클레이브의 귓가에 속삭이곤 했다. 그는 쥬디를 좋아했다. 제대로 안겨보기 힘든 어머니의 품과 달리 쥬디의 품은 든든하고 따듯했다.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로 그다지 많이 안겨보지는 못했지만 그 따사로움을 그는 아직까 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쥬디가 유달리도 아끼고 가여워했던 사람이 매맞는 소 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몰래 그를 불러다가 상처도 치료해주 고 모아뒀던 돈으로 '회복초'를 사서 붙여주기도 했다. 가끔 클 레이브가 이래저래 핑계를 대곤 쥬디를 돕기도 했었다. 그는 묵묵히 매를 맞으면서도 그의 뒤를 지키는 소년의 생각이 늘 궁금했다. 그리도 가슴아픈 매를 맞으면서까지 그 일을 계속하 는 이유가 말이다. '...공부...를... 하고싶었다덥니다...' 쥬디가 눈물을 훔치며 어느날 말했다. 알아내 달라며 그녀 를 끈질기게 조른 결과였다. 클레이브의 가슴 한 구석이 움직 였다. 그 때부터 클레이브는 악을 쓰고 공부했다. 누군가에게 는 그렇게 부서져가면서까지 하고팠던 공부였기에 그는 남작 을 원망하기를 그쳤다. 존경하지도 않았지만 남작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딴청 피우는 일을 멈췄다. 열심히 공부했다. 때로는 소년을 불러 심부름을 빙자한 공 부를 시켜가며 클레이브는 책을 팠다. 결실은 곧 나타났다. 소년은 수업시간에 매를 맞는 일이 줄어갔다. 지워지지 않 는 흉터들 위로 새로운 혈선들이 그어지기는 했지만 상황은 조금씩 나아갔다. 남작의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일년이 조금 넘었을까... 그 무렵부터 소년은 수업시간에 매를 맞지 않게 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남작이 화풀이성으로 드는 매질도 서서히 약해졌다. 쥬디는 남작이 수업 후까지 회초리를 드는 일을 극도로 싫 어했다. 하지만 굳이 매맞는 소년이 필요 없다면 그를 해고하 자는 남작의 말에 아직 어렸던 클레이브는 고개를 저어야 했 다. 소년은 수업시간에 남기를 원했으니까. 단지 너무 티가 나 지 않도록 매질을 줄이는 게 그의 최선이었다. 클레이브보다 몇살 밖에 더 먹지 않은 그 작은 소년은 스 테판이라 했다. 평민이기에 성은 따로 없었다. 말 한마디 나눠 본 적 없고 한번 제대로 시선을 교환해 본 적도 없었지만 그 둘은 단단히 묶여져 갔다. 그 둘의 공통분모는 공부와 따듯한 쥬디였다. 그렇게 일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쥬디가 그만두고 새로운 하녀가 온다고 했을 때 클레이브 는 사실 화가 났었다.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새로 온 누군가 때문에 나이 먹은 쥬디가 밀려난 것만 같아 속이 상했다. 쥬디 의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이제 클레이브의 옆을 지키기 힘 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미를 잃은 그의 마음이 온통 쏠려있던 쥬디와 헤어진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멀대 같이 키만 크고 얼굴만 예쁘장해서 늙고 조금은 못생 겼던 쥬디와 닮은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새로운 하녀가 도 착했을 때 자연 눈길이 고울 수가 없었다. '닮았어...' 그런데 닮아 있었다. '제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저 남작이라는 자의 얌통머리 없 는 손을 가로챘을 겁니다!' 언젠가 나무 그늘아래서 책을 읽는 클레이브에게 쥬디가 씨근덕거리며 했던 말이었다. 왜냐며 이유를 묻는 클레이브의 질문에 쥬디는 주름진 얼굴을 붉혔었다. '일단은 늙어서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게다가 이렇게 나이 먹는 하녀라면 귀족가에서 밥 먹은 지 오래된 하녀라는 것을 다들 알텐데, 제가 그런 짓을 하면 도련님께 누가 되지 않습니까! 제가 사십년만 젊었어도 한번 저질러 보는 건데...' 클레이브를 먼저 생각하던 쥬디는 자신의 나이를 핑계삼아 그 화를 억누르곤 했었다. 클레이브는 쥬디가 정말 젊었더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으리라 생각했다. 실제 그의 어머니가 이 낮선 땅으로 시집왔을 때, 저택의 파티에 모였던 다른 귀족가 의 안주인들이 그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쥬 디는 사고를 쳤었다. 그 때는 그렇게 젊지도 않았을 텐데... 그 의 어머니가 조금 건강했을 무렵, 어린 그를 무릎에 앉히고 해 주었던 이야기들에는 쥬디가 주인공인 것들이 꽤 많았다. 그녀 는 쥬디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실제 클레이브 도 그렇게 느꼈다. 닮은 데가 없었다. 쥬디는 저렇게 남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외모나 이상한 공기를 지니지 않았었다. 저런 매혹적인 분위기보다 쥬디는 따듯한 봄날 같은 편안함을 지니고 있었다. 전혀 다른 둘에게 한순간에 닮은꼴이 생겨났다. 쥬디의 모 습과 새로 온 하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겹쳐졌다. 클레이브는 머리를 털었다. 그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뒤통수로 스테판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 다. 그녀는 평민에 하녀였다. 남작에게 함부로 손을 대다니. 비 록 그 손이 한번 잡은 것임에 불과할 지라도 그냥 봐 넘길 수 만은 없었다. "손목이 부러졌습니다." "뭐?" "뼈가 두 동강이 났더군요." 어색한 표정으로 헤리슨이 클레이브의 반문에 대답했다. "여자의 손목힘이... 그렇게 센 건가?" 클레이브가 기억하는 여인의 손 힘은 회초리 하나 휘두르 면서도 버거워하는 어머니와 어린 그를 등에 업으면서도 잘 잡지 못해 휘청이던 쥬디가 다였다. "아닙니다. 그저... 그 전부터... 남작이 알지 못하는 새 금이 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흠... 하지만 그 엄살꾼은 난리가 났겠군." "네. 하녀의 목을 베어달라며 소란입니다." 클레이브의 눈썹이 강하게 꿈틀였다. "아버님께서는 어찌 하신다던가." "아직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알았네. 나가보게." "네. 편히 쉬십시오." 헤리슨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클레이브의 방을 나갔다. 클레이브는 생각에 잠겼다. "쪼잔한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새로 온 하녀 따위 어찌 되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에게서 쥬디의 그림자를 보 고 말았다. 젊었을 때는 자신도 아름다웠었다고 공언하던 쥬디 가 마법으로 젊어져서 돌아온 모냥... 보통의 하녀라면 절대 하 지 못할 짓을 태연하게 벌이던 그녀의 모습이... 새로 온 란이 라는 이름의 하녀에게 겹쳐졌다. 클레이브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그는 등불을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고 가보고 싶 은 곳이 있었다. '분명... 하녀들이 갇히는 지하 감방은... 볼 수 있는 곳이 있 었어...' 한때 집안 곳곳을 탐색하고 놀곤 하던 그였다. 어디로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쯤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달빛이 클레이브의 길을 밝혔다. 그는 조심스럽게 저택을 빠져나왔다. 하녀들과 경비를 서던 경비병 들이 몇 번 스쳐 지나갔다. 클레이브는 더욱 조심스럽게 발걸 음을 죽였다. 왜 그녀를 만나보려 하는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단지 만나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쥬디와 같은 유형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그가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를, 클레이브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멀직히...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누군 가를 발견했다. '누구?' 어린 아이 특유의 작은 몸이 낮게 기어가듯 감옥의 창살이 있는 곳 쪽으로 가고 있었다. 클레이브는 숨을 죽였다. '스테판?' 그가 조심스럽게 지상으로 난 감옥의 창살 쪽으로 가고 있 었다. 하녀들의 감옥은 다른 감옥에 비해 그다지 철저하게 감시 되지 않았다. 하녀가 했으면 얼마나 할까 싶은 마음도 있었겠 지만 밖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일하던 하녀에 대한 작은 배려이기도 했다. 하녀들이 갇히는 감옥의 창문은 밖의 지상으 로 나 있었는데, 사람이 엎드리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 할 수 있었고, 손이나 작은 음식쪼가리 정도는 밀어 넣을 수 있을 만큼 다른 창문에 '비해서는' 그 틈이 컸다. 스테판이 몸을 엎드렸다. 그는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뭔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클레이브는 귀를 기울였다. 들을 수 없었다. 워낙에 소곤소곤 말하기도 했고, 자신이 이 곳까지 왔 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클레이브는 작 게 한숨을 내쉈다. '내가 이 밤중에 여기서 뭘하는 걸까?' 벌레우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문득 스테판의 목소리가 커졌 다. 클레이브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감사합니다!" 뭔가를 한참 이야기하던 스테판이 창살 쪽에 머리를 박으 며 엎드려 인사했다. ".....클레이브님께... 꼭... 힘이 되겠습니다." 처음의 감사합니다보다는 많이 억눌려진 목소리... 물기가 가득 베인 목소리가 마치 찌를 듯이 클레이브의 귀에 들려왔 다. 클레이브의 심장이 뛰었다. '지금... 스테판이 뭐라고 했지? 왜... 이제 온지 하루밖에 안 되는 란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스테판이 몸을 일으켰다. 클레이브는 황급히 몸을 돌려 삐죽히 내밀고 있던 머리를 숨겼다. 서둘렀기 때문 일까. 풀잎들이 바스락거리며 소리질렀다. 스테판의 몸짓이 굳 었다. 스테판이 재빠르게 몸을 낮추며 주위의 엄폐물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였다. "누구냐!"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옥 창살 근처로 저택을 돌던 횃불 하나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정도의 빠른 발걸음 소리와 함께 검을 뽑아드는 날카로운 소리가 밤의 정 적을 깨웠다. 순식간에 주위가 소란스레 변했다. 신호를 받은 경비병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테판은 당황했다. 그는 허둥대 는 몸짓으로 근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조금만 수색하면 단 번에 들어날 만큼 허술한 은신이었다. 클레이브는 작게 한숨을 내쉈다. 그는 무릎을 폈다. "누가 감히 소란스럽게 구느냐!" 경비병들의 발걸음이 순간 멎었다. 그들은 그 목소리의 주 인을 알고 있었다. "도련님!" "잠시 산책길이 길어진 것뿐이다. 쯪." 도저히 어린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투였다. 클레이브 는 커다란 목소리로 스테판이 숨어있는 장소를 향해 외쳤다. "스테판! 내가졌다. 술래잡기는 그만 하고 들어가자." 경비병들의 얼굴에 경악이 아로새겨졌다. 풀숲 한 구석이 흔들리며 벌겋게 물든 얼굴로 스테판이 비척걸음으로 걸어나 왔다. '혼자 뒤집어쓰면 억울하잖아?' 장난끼가 가득한 눈동자로 클레이브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웃었다.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미소를 본 사람은 단 하나밖 에 없었다. '오호라... 이거 의외로 더 쓸만하잖아?' "그래? 그 아이가..." 후작의 눈이 빛을 발했다. 헤리슨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차 를 따랐다. 오전의 맑은 햇살을 한 가득 받으며 후작은 찻잔을 들어올렸다. 테이블 위에 곱게 장식된 꽃에서 은은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후작은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눈꼬리가 곡선을 그리며 마치 웃는 것처럼 휘어졌다. "네. 어젯밤 늦게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셔서는... 스테판이 라는 아이와 함께 하녀가 있는 감옥 창살 앞에서 산책을 즐기 셨습니다." 조용히 후작의 말에 답하면서 헤리슨은 잘 구어진 쿠키 한 접시를 후작의 찻잔 앞쪽에 내려놓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들인 냥 헤리슨은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없이 어제 있었던 사건들 을 상당히 구체적이고 또 적나라하게 설명해 나갔다. "술래잡기라..." 후작이 빙긋 미소지었다. "그 아이가... 그런 놀이를 입에 담은지가 얼마나 됐지?" "이년 됐습니다." 아픈 어미의 속을 위하듯 재롱 부릴 틈도 없이 점점 속 늙 어 가던 아들의 모습이 영 안타깝던 후작이었다. 폐부 깊숙이 잔향을 전해주는 은은한 홍차의 향기를 만끽하며 후작은 우아 한 동작으로 찻잔에 입술을 마주했다. "죠브스 남작가와 헤일런 공작가에서 어젯밤 늦게 또다시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헤일런이?" "얼마 전 죠브스 남작가의 네째 아가씨께서 헤일런 공작님 의 일곱 번째 첩으로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아... 헤일런 그 망령. 정식 첩도 아닌 애인을 열명이나 두고 있으면서도 새로 스무살이나 어린 아가씨를 맞이했었지. 잊고 있었다." 잊었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머릿속에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후작은 설래설래 고개를 저었다. 단 하나뿐인 아내를 잃은 뒤 옆자리를 비워둔 지가 일년 째였다. 앞으로도 그 자리를 대신 할 누군가를 찾을 마음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이미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아내를 두고서도 스무살 어린 처녀를 첩으로 맞아들인 헤일런가의 주인은 그런 면에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자였다. "네. 노오 드 죠브스 남작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엄벌에 처 해 달라는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훗. 유유상종이로군." 가벼운 콧웃음과 함께 후작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동그란 파문이 찻물을 흔들었다. 후작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겨우 그런 일로 권력을 낭비하시다니... 세력의 흐름을 읽 지 못하는 분이시구먼." 힘의 흐름이란 단순히 직위에 따르지 않았다. 높은 귀족가 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방탕한 생활과 어리석음으로 그 힘을 잃어가는 가문도 있었고 그 반대로 성장해가는 가문도 있었다. 헤일런 공작가는 전자의 대표적인 가문이었다. 오랜 공작가 이기는 했지만 선선대부터 갑작스레 늘어난 사치와 방탕한 생 활로 공작가의 재정은 슬금슬금 바닥을 보여가고 있었다. 게다 가 이미 너무나 멀어진 혈통으로 인해 왕위 계승권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당장 계승권만으로 따지더라도 차라리 페르로이 후작가가 더 가까울 지경이었으니까. 선조가 물려준 가문의 이름만을 믿고 날뛰면서도 가문의 힘을 기르기 위해 진정한 노력은 게을리 했던 결과였다. 어차 피 모든 권력의 중심이 황제에게 있는 이상, 작위가 가지는 서 열보다는 황제의 총애가 강한 집안이 더 힘을 발휘하는 것이 제국의 성질이었다. 페르로이 후작가는 무장의 가문으로 대대 로 가장 많은 명장들을 배출했고 또 현 가주인 후작 역시 이 름 있는 검사이자 무관으로 국왕의 총애를 두둑이 받는 자였 다. 아무리 명분상의 작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눈밖에 난 채 반쯤은 몰락해버린 공작가는 날로 그 세력을 키워나가 고 있는 후작가에게 더 이상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처지가 사실 아니었다. 후작의 낯빛이 차갑게 굳어가자 재빨리 헤리슨이 다음 말 을 이었다. "일단은 제가 문서들을 받아두었습니다만..." "알았다." 후작이 자리를 밀고 일어섰다. 헤리슨이 급히 그가 편히 일 어설 수 있도록 의자를 뒤로 뺐다. "그 하녀를... 란이라고 했던가? 그녀를 서재로 데리고 오도 록." 후작이 방을 나섰다. 경비병은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십년도 넘게 후작가에서 일해온 그였다. 신임을 얻은 덕분에 감옥과 지하 경비를 맡았 고 그 덕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하인들과 하녀들도 여럿 봐왔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던 위화감이었다. 경비병 톰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그의 눈앞에서 담담히 걷고 있는 하녀의 뒷모습을 곁눈질했다. '어떻게 저렇게 깨끗할 수 있지?' 아무리 깔끔 떨던 하녀들이라 해도 하룻밤만 감옥에서 자 고 일어나면 다음 날은 오물과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나오곤 했다. 하룻밤새 빗질하지 못한 머리가 엉망이었고 표정을 일그 러트리게 만드는 악취는 기본이었다. 그런데 너무 깨끗했다. 밝은 아침의 햇볕아래 보는 그녀의 모습은 더더욱 그랬다. 주 름살 하나 구겨지지 않은 하녀복은 막 다린 상태 그대로였고 그 오물 속에서 뒹구는 모습을 분명 봤음에도 머리카락 한올 흩어지지 않았다. "이 길로 그대로 가면 되나요?" 문득 하녀가 입을 열었다. 경비병은 급히 고개를 끄덕여주 었다. 그녀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경비병 톰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날씨가 아주 좋군요." 그가 뿜어내는 어색한 공기를 느꼈는지 하녀가 고개를 살 짝 돌렸다. 톰은 얼떨결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말 문이 자꾸 막혔다. 그녀가 한 마디 던질 때마다 고개나 끄덕여 주는게 다행일 만큼 그날따라 톰의 몸은 평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저기..." "네?" "분명히... 어제 감옥에서 있었던 거 맞지?" 톰은 자신이 지금 엉뚱한 사람을 데려가고 있는 건지도 모 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상식이 속삭였다. 감옥에서 나온 사 람이 이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제 감옥에 들어갔던 하녀는 남작의 손목을 쥐어서 부러트린 여자라 했다. 아무리 봐도 그 의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손목에는 그럴 만큼의 괴력이 옅보이 지 않았다. "물론이죠." 하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말로... 네가... 노오 죠브스 남작 놈의... 손목을 부 러트린 거야?" 옅눈질로 힐끗거리며 톰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 어리석게 들리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하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부러졌어요?" "응." "흠... 그렇구나... 어쩐지 엄살이 대단하더라..." ".................." 톰은 말을 잊었다. 어지간한 하녀라면 자신 때문에 귀족의 손목이 부러졌다면 당장 자신의 손목이라도 부여잡고 눈물을 보여야 정상이었다. 귀족들의 쓰잘데기 없는 자부심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강했다. 자비롭다고 어지간히 소문난 귀족들이라 해도 자신의 손목이 부러졌다면 하녀의 손목을 절단하는 것쯤 은 문제로도 여기지 않았다. 톰은 이 하녀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손 목을 잘리고 목까지 잘릴 지도 모르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토 록 여유로울 수는 없었다. 은근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하녀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발걸음을 경쾌하게 놀려댔다. 톰은 하녀가 공포를 이겨내 지 못하고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는 하녀에게서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러섰다. "왔나? 후작님을 뵈야 하니, 일단 옷이라도.... 어?" 저택의 내부로 들어가는 뒷문 앞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헤리슨의 표정도 기묘하게 변했다. 하녀는 빙긋 미소지었다. "제가 좀 깔끔해서요." 성격이 좀 깔끔스럽다고 해서 유지될 것이 아니었다. 그 안 의 구조를 모른다면 또 모를까. 절대 저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 을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헤리슨은 목구멍 앞까지 기어올라오 는 감탄사와 함께 궁금증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의 주인이 지금 서재에서 이 하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하녀를 위 아 래로 훑어보던 헤리슨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몸을 돌리고 앞 장서기 시작했다. "좋네. 그대로 가도 될 것 같군. 따라오게나. 그리고 자넨 돌아가게." 하녀는 여유있는 동작으로 집사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 다. 경비병은 연신 뒤통수를 긁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눈 에는 집사를 따라가는 하녀가 꼭... 주인 같아 보였다. "거참... 이상한 하녀네..." ***** 리메 하기전의 남작의 이름은 '오노'였습니다만... 뭐, 너무 직접적이라... 뒤집었습니다. 노오.... 로. 흐흐흐...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9 Wed 13:24:41 IP : 211.215.244.138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79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2002/05/29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질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두드릴 때 맑은 소리가 난 다. 충분히 숙성된 검은 오프 나무를 잘라 소금물에 담그고 말 리기를 반복해서 단단하게 굳히면 갈라지거나 비틀어지지 않 는 튼튼한 목재가 된다. 그런 재료료 이런 문을 달 수 있는 사 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지만 나무는 늘 모자랐다. 집사 헤리슨이 두드리는 검은 문을 바라보며 난 잠시 잡생 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한치 정도 떠오른 발 아래 를 보며 급히 몸을 땅으로 가라앉혔다. 하도 오랫동안 공중에 반쯤 떠서 살다 보니 이젠 굳이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살짝 뜨곤 한다. 비행하녀가 되고픈 마음은 없었다. 첫 날부터 충분히 튀었으니 이제는 그저 땅을 밟고 평범하게 있 는 게 제일 좋다. "헤리슨입니다. 말씀하신 하녀가 왔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잠시의 시간이 흐르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 자 헤리슨이 조금 목소리 크기를 키워 외쳤다. "...........들어오게." 그로부터도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서야 후작의 것이라 추 정되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리슨이 고개를 살짝 숙이 고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아침 해를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커다란 창문 아래 한 중년의 사내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헤리슨입니다." 그의 등에 헤리슨이 다시 한번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란이라 합니다." 처음으로 보는 내 고용주였다. 난 헤리슨을 따라 조심스럽 게 인사를 전했다.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짙은 회색빛의 머리카락 아래 클레이브 보다는 훨씬 밝은 푸른빛의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반갑네." 그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난 슬그머니 올 라가는 입꼬리를 잡아내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 놓인 길다랗고 큼지막한 책상 위에 여러 통의 편지가 놓여 있 었다. 그리고 그 편지들의 맨 위에... 상당히 낯익은 편지지 하 나가 올려져 있었다. "자네를 보면... 이것저것 말을 좀 나눠볼까 했었네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 듯 하군." 허탈한 얼굴로 후작은 집사에게 편지지 한 장을 내밀었다. 헤리슨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됐다. 그가 살짝 손을 떨어 보였다. "이건..." "오늘 아침, 자네가 나가자마자 죠브스 가에서 하인을 통해 급히 전해온 편지네." 불신을 가득 담은 헤리슨의 눈동자가 후작을 살짝 스쳐 지 나갔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을 지 키던 헤리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게... 진실일까요?" "문장까지 찍어서 보낸 편지에 거짓을 새길 리는 없겠지." 유연하게 몸을 돌려 책상에 팔꿈치를 기대고 앉은 후작이 널려져 있는 몇 통의 편지들을 휘적이다가 반절로 대충 접어 한쪽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헤리슨이 그 편지들을 일일이 다 시 포개 가지런히 정리했다. "죠브스 남작가에서 편지가 왔네. 모두 자신이 잘못했으니, 이번 일은 제발 없었던 것으로 해 달라는군." 몸을 의자 깊숙이 밀어 넣으며 후작은 졸린 목소리로 읇조 리듯 말했다. "자넨 운이 좋은 편인 것 같군."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어딘가 어젯밤의 클레이브와 닮아 있었다. 가슴 한 구석이 푸근하게 덥혀졌다. 백여년을 함께 할 고용주가 마음에 들고 안들고는 일반적인 다른 경우들과 달랐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난 문득 내가 정말로 운이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굳이 이 후작가를 지명해 가며 애써 날 이 곳으로 보내려 노력하던 세 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 봉두난발에 반라의 잠옷 차림으로 날아와서 여신답지 않은 비지땀까지 흘려가며 이 서 대륙에 대해 설명하던 한 어리버리한 여신이 말이다. "모두가... 아르페이나 님의 가호랍니다." 사실이 그랬다. 난 처음으로 이런 기회에 날 밀어 넣은 그 녀에게 고맙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 때였다. 석고처럼 딱딱하 게 굳어진 두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것은. 두 사람의 눈 동자가 환희의 빛을 발했다. "............자, 잠깐! 자네 뭐라고 했나!" "네?" 하얗던 석고상에 피가 터지듯 돌면 저런 붉은 빛이 나오리 라. 한 순간에 얼굴들이 다시 새빨개진 후작과 헤리슨이 내 쪽 으로 덤벼들 듯이 다가왔다. 후작의 눈가에는 그새 마치 죽은 아내라도 살아 돌아온 듯 물기까지 고여있었다. 난 주춤 그들 에게서 물러섰다. 뭔가 감당하기 힘들 것만 같은 기대감이 내 쪽으로 한꺼번에 몰려왔다. "지금... 제가 실수라도?" 헤리슨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 년여 전의 아침, 내 등 줄기를 스쳐갔던 그 이름 모를 불안함이 되살아났다. "자, 자네! 분명 아르페이나님의 가호라고 했는가!" "아, 네!" 떨리는 목소리로 말까지 더듬으며 후작이 다가와 덥석 내 두 손을 잡았다. "신탁을 받았는가?!" 맑은 빛을 유지하던 그의 흰자위가 격동으로 붉게 충혈되 어 있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신탁이라는 말이 순간 귀에 박히듯 들어왔다. 그날 아침, 뭔가 목에 걸려있던 가시 같던 것이 형상을 갖추고 튀어나오는 것만 같다고 할까? 그런 느낌 이었다. 하지만... 알아채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난 이미 어젯밤 두 소년의 의외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아... 준비를... 철저하게도 해 두셨군요..." 씁쓸한 미소가 입가로 절로 떠올랐다. 난 이미 한 어린 주 인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조숙한 두 소 년에게 관심을 빼앗겨버렸다. 새삼 '속았으니까 무효야!'라 외 치고 다른 주인을 찾아 새로운 삶을 경험하기에... 너무 늦었 다. 내가 그들에게 뭔가 해 주고 싶어져 버렸으니까. 후회반, 안심 반이다. 적어도 신탁을 받아서 온 것으로 된 이상 쫒겨나지는 않을테니까. 뭐, 세 분의 신을 만나 직접 제 안을 받았으니 신탁은 신탁이겠지. "기다렸네! 참으로 오랬 동안 기다렸네!" 한참을 내 손을 잡고 위 아래로 정신없이 흔들어대던 후작 과 헤리슨의 눈에서는 결국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난 영문도 모 른 채 한동안 그들의 굵은 눈물방울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아르페이나... 이 어리버리한 노출증 아줌마가 도대체 뭘 어 떻게 한 거야?' "자네... 괜찮은가?" "어? 어...라... 노도...?" 문밖에 노도가 와 있었다. 체통을 잊은 채 감격한 얼굴로 눈물을 흘려대며 엉겨붙는 후작과 헤리슨을 어거지로 떼어낸 후 반쯤 나간 정신으로 열어 젖힌 문 앞에서 그는 걱정스런 얼굴로 있었다. 그가 뒷짐지고 있던 팔을 풀어 내 눈앞에 손가 락을 세웠다. "보이나?" ".............세 개." "완전히 가지는 않았군." 노도는 피식 빈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 한켠에도 살짝 젖어있는 근심어림과 믿었던 존재들에 대한 황당함은 감 추어지지 않았다. 그는 곧 감정들을 털어냈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가 얻을 것은 변하지 않지 않은가..." "말은 쉽지." 말 그대로 말은 쉬웠다. 이렇게까지 온 이상 우리가 이렇게 오게되기까지 뒷손길이 있었던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우 린 어차피 새로운 깨닳음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벌여 봐 야 하는 상황이었고 서대륙이라는 곳이 내게 전혀 낯선 곳이 아니었던 만큼 몇 년, 아니 몇백년 후라도 다시 찾아와 이런 삶을 경험해 봤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달리 바꿔 생각하면 수 도하기 좋은 상황을 미리 만들어 놔 주었다는 점에서 우린 아 르페이나에게 감사해야 할 지도 몰랐다. 완전히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어린 주인이 든 것과 세 신이 짜고서 날 이용해 먹으려 했다는 건 결코 같은 선에 둘 수가 없는 문 제였다. 본디 하나가 미워지기 시작하면 열이 마음에 안드는 법. 시선이 바뀌면 보이는 게 달라지는 법이다. "우릴... 저 속만 골아빠지게 늙은 애녀석 보호자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떠넘겨 미루기 위해... 갖은 고 생과 지독한 배멀미에 시달리며 이년이나 바다를 건너 여기까 지 오게 만들었다는 게... 말로는 이해하기 쉽겠지." "...................................." 노도가 낯빛을 굳혔다. 그도 역시 믿고있던 삼신할미에게 이용당한 듯한 감정을 쉽게 지워내지는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말이야, 노도. 이렇게 이용만 당한다는 건 나답지 않다는 것 알아?" "음?" "나도 이용 좀 해야겠다 이거야." 그의 눈에 생기가 되살아났다. "노도. 난 삶의 방식을 바꿀 꺼야." "뭐?" 노도는 걸음을 멈췄다. 우린 세로로 길다랗게 난 복도의 창 문 앞에서 아침햇살을 맞으며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난 크게 심호흡했다. 맑은 공기가 폐까지 들어오며 퍼져있던 기를 내 안에 가득 심어주는 듯 했다. "..........어차피 지금까지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그런 유형 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정한 거잖아." ".............그래서?" 머뭇거리는 노도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희열인지 두려움 인지 모르는 감정. 아마 일평생을 숲에서 살며 구도의 길을 걸 어오기만 했던 그로서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 아닐까. "타락하겠어." "............................."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노도는 고개를 휘휘 저어 보이다가 는 새끼 손가락을 들어 양 귓구멍을 후벼팠다. 그리고는 내게 다시 의문 섞인 눈빛을 보냈다. 난 굳건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노도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동서 대륙의 역사를 통털어 단 한번도 없었던 전무 후무한 하녀사를 만들어내겠어." "하녀... 사?" "아차피 새로운 것을 찾자는 거잖아. 굳이 남들이 했던 길 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가 있을까? 모두는 이미 남들과 다른데! 왜 그래야 하지?" "흠..." "도전하는 거야. 균형을 잃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악신만 면하면 되는 거야. 피냄새에 푹 빠져서 생명의 귀중함만 잃지 않으면 되는 거라구." "................................허." 난 등을 돌렸다. 뒤쪽에서 작은 노도의 탄식이 들려왔다. 뒤 통수를 길다란 끈으로 묶어 잡아당기는 것만 같은 감각에 난 옯기려던 발걸음을 다시 멈췄다. 복도 양 편에 줄줄이 난 길고 높게 뚤린 커다란 창으로 아침 햇살이 한가득 들어왔다. 난 늘 어진 그림자를 살짝 움직여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너무 산에서만 살아서 다 잊어버린 거 아니야? 노 도? 나무의 숲이 사람의 숲으로 바뀐 것 뿐이야. 틀이란 처음 부터 없었던 거야." 노도의 기척이 미약하게 움직였다. 보지 않아도 확연하게 바뀐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차피 우린 백살은 넘지 않았어? 마음가는 대로 해도... 경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자네가 어찌 이리 된 건지... 나도 모르겠네만..." 모르지는 않았다. 넓은 바다 위 좁은 배 안에서 부디낀 일 년의 생활이 무의식중에 그의 '삶의 틀'을 만들어냈을 지도 모 른다. 그는 말 그대로 산에서만 살아왔던 존재였으니까. 몇몇 사람들과의 교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 은 사람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는 종종 사람들의 틈에 섞여 서 부대껴왔던 나와 또 달랐다. "후... 무애(無 )를 내게 말해준 자가 누구였던지..." 언젠가 그의 허허로움을 부러워하는 내게 막힘이 없음을 무애라 한다며 내게 웃었던 자가 바로 노도였다. 마음 움직이 는대로 해도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는 것이 무애. 치기 어린 발광이나 자신만 아는 편협함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맛에 통하 는 그런 것이 무애라고 그는 말했었다. 난 생각에 빠져든 그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떄.. 흥미 위주로... 퍼억 기울어져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리메를 시작했습니다만... 뭐, 고치기 힘든 설정이 많더군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될련지... ㅜㅜ;;;;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9 Wed 13:24:53 IP : 211.215.244.138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2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2002/05/29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말은 거창하게 내뱉었지만 사실 나의 타락은 어제 이미 시 작됐다. 그 동기점은 어제 낮이었고... 내가 본격적인 행동으로 들어간 건 클레이브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스테판을 데리고 돌아간 직후였다. "어떻게 할 꺼지?" 팔목이 부러진 남작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짐짓 걱 정되는 표정의 노도가 말을 다시 꺼냈다. "하긴 뭘 어떻게 해.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건 하나밖에 없 지..." "그런가?" "내 대신 자리 좀 지켜 줘." "꼭 그래야 하겠나?" "이 엄동설한에 새 일자리를 찾아 넓디 넓은 서대륙을 전전 하고 싶다면 좋을 대로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함께 얽여져 들어가 줄 테니까." 노도는 잠시 빈 입맛을 다셨다. 그리곤 어쩔 수 없다는 표 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소매자락을 뒤져 흰 종이 한장을 꺼내, 벽에 낀 그을음으로 뭔가를 적어 내렸다. "좀 지키고 있거라." 그가 창살 안으로 종이를 밀어 던지자 희뿌연 형체가 생겨 나기 시작했다. 내 모습이었다. "밤이니 정신 없이 자는 모습만 연기해도 되겠지." "흠..." 난 가볍게 창살을 휘고 밖으로 나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준비는 다 해왔군." "후후후... " 털래털래 고개를 저어대며 노도는 벽 한 구석에 엉덩이를 비비고 앉았다. "기다릴텐가?" "글세... 인형이 제 역할을 하는지만 잠시 본 후 난 돌아가 려 한다네." "고마워." 노도는 별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다. 손을 휘휘 저어 파리라 도 쫒는 냥 날 몰아내고는 시선을 인형에게로 돌렸다. "그럼, 이제 그 띨띨한 남작가를 찾아가는 게 문제겠군." 차가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기분 좋게 날렸다. "아아... 난 역시 이게 더 적성에 맞단 말이야." 지난 한달간 하녀노릇 하느라 머리 숙이고 허리 굽히던 스 트레스가 일거에 씻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난 밤공기를 가 르며 가볍게 후작가의 저택을 빠져나갔다. 남작가의 저택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택 뒤 빨래터에 서 슬쩍 한 수건으로 얼굴을 둘둘 감아 가린 뒤, 마부 쿠르의 작은 방으로 스며들어가 잠든 그를 번쩍 들고 나온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저택 본가와는 달리 하인들의 숙소는 경비가 비교적 허술했다. 다행히도 남작의 저택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후작가의 가정교사일 외에도 그는 후작가와 경계를 맡대고 있는 몇몇 백작가에서도 그의 보잘 것 없는 지식을 팔고 있었다. 그 때문 이었으리라. 이렇게 엎어지면 코 닿을만한 지척에 본거지를 마 련해 둔 것은... 난 마부 쿠르를 잠재운 뒤 높다란 나무 한켠에 걸어두고는 상쾌한 걸음새로 담을 넘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쿠르는 오 늘 일을 모두 잊어버리겠지. 백여년 전 함께 바다를 건넜던 그 자식이 가르쳐준 섭혼술이 진짜라면 말이다. 아니라면... 뭐, 얼 굴을 가렸으니 어떻게 되겠지. 정 안되면 법보다 가깝다는 주 먹도 있고... 어른 키를 조금 넘는 나지막한 담벼락 안에 꼿꼿히 서 있 는 삼층의 자그마한 저택을 보며 난 회심의 미소를 떠올렸다. 남작의 저택은 이 백년 전쯤의 유행대로 지어진, 딱 봐도 어느 방이 주인의 방인지 알만큼 단촐한 구조의 저택이었다. 저택이라해서 모든 것들이 다 안에서 길이나 잃어버릴만큼 크 고 복잡한 건 아니었다. 왕궁조차도 그 안에서 길을 잃을 만큼 큰 곳은 드물었다. 일부러 꼬이게 설계하지 않은 이상은 말이 다. 그건 사람이 지닌 능력과 재물의 한계이기도 했다. 뭐, 작다고는 해도 저택은 저택인 이상 서민의 집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크르르르...." 한쌍의 노란 등불을 빛내며 경비견 두어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이를 들어냈다. 난 순간적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무도 를 닦은 고수의 시선에도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였다. 겨 우 강아지 한두 마리의 시각과 후각에 혼돈을 주는 것쯤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는 몸을 띄워 바로 남작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의 창문가로 다가갔다. 엷은 커든 뒤로 그의 침대가 보였다. 날 냄새나고 더러운 감방에 가둬놓은 주제에 놈은 비단 금침 으로 몸을 감싼 채 코까지 골아대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실수는 반복되지 않았으니까. "...........!" 아혈을 짚고, 한 대 후두려 패 깨운 다음 자근히 밟는 건 정해진 순서였다. 물론, 얼굴은 건들지 않았다. 피부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피부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서도 근육을 멍들게 하는 건 내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으니까. "........................!!!!!!"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행여나 놈이 거죽에 상처 입을까 몸 을 제압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놈의 커다랗게 떠진 눈은 경 악과 당황, 고통, 공포로 차례로 물들어갔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그 정도의 밴댕이 속을 지닌 남자가 후작에게 요구했을 일 이야 뻔했다. 내 손목을 잘라 달라든가, 노예로 신분을 강등시 켜 달라던가, 내 목을 달라던가, 뭐 그 정도의 것들이었겠지. 처음 이 놈을 만났을 때, 놈의 눈에 스쳐갔던 음흉함을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까. 자존심의 흔적이란 조금도 없었다. 마치 동네 뒷골목 어설 픈 건달 모냥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놈의 눈과 표정은 내 안 에 남아있던 미약한 갈등까지도 깨끗이 씻어주었다. 사실 이 저택으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약 간의 고민이 남아있었다. 다짜고짜 숨어 들어와 패는 것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내 정체를 들어내지 않고 어떻게 하는 것이 깔끔할까? 그런 모든 망설임 들이 곤히 자고있는 이 망할 놈을 보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일단 패고 보자. 패고 나서 생각하자.' 감정이란 때로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마음의 움직임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잡생각이 이어지는 내내 내 손과 발은 수 백년간 해온 수련대로 그를 교묘하게 죽지 않을 만큼 티나지 않게 패고 있는 중이었다. "에..!" 역한 구린내가 방을 진동했다. 공포로 치떠진 눈동자에 수 치감이 설핏 스치고 지나갔다. 뭐 아주 잠시... 아주 순간이기 는 했지만. 그의 화려한 침대가 흠뻑 젖어갔다. 누린내 나는 물과 구리 구리한 갈색 건더기와... 걸쭉한 침과 콧물로... 난 순간 손을 멈췄다. 도저히 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놈의 눈동자에 설핏 안도감이 들어났다. 난 조용히... 그때까지와 마찬가지로 손을 뻣었다. 그리곤 침상 옆에 놓여진 작은 탁자의 다리를 하나 부 러트렸다. -투둑- 그리곤 흰 이를 들어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아주 즐거운 듯 말이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지?" "아?" 차가운, 그러나 뭔가 다른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깨웠다. 내 어린 주인이 감정 없는 시선으로 날 향하고 있었다. "뭘 생각하기에 그렇게 혼자 웃고 있는 거지?" 검술 훈련이 끝났는지 모두 동작을 멈춘 채 땀을 닦고 있 었다. 어린 주인의 검술 스승인 기사 그레인경과 스테판의 시 선까지 모두 내게 몰려있었다. 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요." 어찌 어젯밤 남작이 보여주던 공포에 찬 표정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린 주인 클레이브는 살짝 찡그린 얼굴로 구름이 반쯤 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겠군..." 모두들 내 말에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넘어갔다. 하긴 남작 의 팔을 부러트리고 감옥에 갖히기까지 했다가 그대로 나와서 쫒겨나지도 않은 채 어린 주인의 시중을 그대로 들게 되었으 니 어지간한 하녀라면 그 행운에 덩실 덩실 춤이라도 한판 벌 여야 정상 아니겠는가. "오늘은 조금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주인이 몸을 돌렸다. "오후에 오기로 했던 남작이 좀 쉬고 싶다고 연락이 왔더군 요. 당분간 수업은 없을 듯 하니 새로 시간이 정해지기 전까지 는 검술 시간을 늘렸으면 합니다." 그레인경은 싱긋 미소짓고는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스테판 도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는 떨리는 팔을 움직였다. 황토빛 대 지가 세 사람의 땀으로 조금씩 얼룩져갔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삼백여년 전의 내 모습이 그들의 등 그림자로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설래임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난 기분 좋게 바닥 에 주저앉아 등을 나무에 기댔다. 조금 두꺼워진 구름이 사락거리는 작은 싸라기들을 흩뿌렸 다. 꽃잎 같은 눈을 맞으며 나는 한껏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네. 일단은 여기까지! 써서... 고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하나씩, 하나씩...ㅠㅠ 겨, 격려의 멜을....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9 Wed 13:25:08 IP : 211.215.244.138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8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은빛 2002/05/29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저어...." 등불의 빛이 잠시 흔들렸다. 난 살며시 몸을 움츠리는 스테 판을 위해 창문을 닫았다. 추위란 내게는 무의미했지만 어린 소년에게는 달랐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주저하는 소년에게 자리를 권하며 난 몸을 의자 깊숙이 기 댔다. 난 이미 소년의 내심을 짐작하고 있었다. "저어..." 소년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알고 있다. 어젯밤 감옥 까지 찾아와 했던 말을 물러달라고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어 제 그가 내게로 찾아와 했던 부탁은 하나였다. 그를 가르쳐 달 라는 것.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다가와 남작의 팔목을 가로 채고, 귀족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손목까지 분질러 놓은 내 게 그는 무언가를 배우길 바랬다. 그는 강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눈동냥질조차 하기 힘들었던 검술 수업시간에 그는 당당히 검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이름 있는 기사로부터 검을 잡는 법부터 기초를 차근히 배울 수 있는 기 회를 손에 넣었다. 이름 없는 하녀보다 훨씬 더 뛰어난 스승과 자격을 내 어린 주인으로부터 받았다. 그의 생각에 난 더 이상 그에게 필요 없는 존재였으리라. 그랬기에 그는 이 밤에 내 방 까지 찾아와 주저주저하며 힘겹게 말을 꺼내고 있겠지. "내게 배우고 싶지 않은 거구나." "아, 아... .그게..." 스테판은 좀 전보다 훨씬 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 였다. 그는 진정으로...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래. 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지. 난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서투르니까.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배우는 것보다는 도련 님 옆에서 그레인경에게 착실히 배우는게 네게 더 좋을꺼야." 난 작은 미소와 함께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작은 어깨가 더 움추러 들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기억하렴." "......." 갑자기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했었지? 네가 만에 하나라도 내가 가르치는 것을 거부한 다던가 내 수업을 포기한다면..." "아..." 작은 탄식이었다. "난 두 번 다시 널 내 제자로 받아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스테판이 내게 찾아와서 내게 힘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내가 걸었던 조건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힘을 악 용하지 말 것, 그리고... 중도포기 하지 말 것, 다른 스승을 찾 아 부나방처럼 옮겨다니지 말것. 그 조건 중 네 번째 것을 채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스테판은 어기고 있었다. 그에게 화내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그레인경의 가르침이 얼마나 큰 기회로 여겨졌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아마도 내가 내 사부를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죄... 송합니다." 소년은 말을 맺었다. "그래. 아직 시작하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이다. 비단..." "................." "내 경우가 아니라도 말이다. 스승을 바꾸면 순간적으로는 실력이 늘 듯 보여도 사실 좋지 않단다. 동대륙의 속담이 있 지.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 ".................아." "끝까지 하거라. 비록 나와는 더 이상 연이 없겠지만, 훌륭 한 검사가 되길 바란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난 그의 축 처진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뭐, 내게도 좀 아 쉬운 기회이기는 했지만 굳이 그를 잡고싶지는 않았다. 그의 삶은 그의 삶이었으니까. "쯪쯔... 아까운 기회를 버렸구나." "아깝긴 뭐가 아까워. 좋은 스승이란 본래 따로 있는 법이 야." "아, 정원사 할아버지..." 이제는 아예 내 방을 제방처럼 들낙이는 노도가 노크도 없 이 슬쩍 문을 밀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는 벌건 얼굴의 스테판을 잠시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돌 려 빈 침대 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뭔말을 하려고 그렇게 폼을 잡아?" "라, 란... 님...." 스승으로까지 모실 뻔했던 나였기에 반말은 나오지 않았나 보다. 퉁명스런 내 말투에 당황한 스테판이 슬쩍 내 옷자락을 잡았다. 얼핏 봐도 사십은 더 먹어 보이는 노도에게 내가 말을 놓았기 때문이겠지. "됐어. 그냥 란 누나라고 불러." "본래 저 녀석은 날 노도라구 불렀지. 스테판이라고 했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단다." 심경을 정리했는 지 노도가 눈을 떴다. "끝났어?" "그래." 그가 해맑게 미소지었다. "나도 타락 좀 해 볼까 하고..." 우린 몸을 일으켰다. 어제 못다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 "솔직히 불어봐. 내가 어젯밤에 가서 혼자 분풀이하고 온 게 부러웠지?" 어제와는 달리 전신을 검은 색으로 감싸고 담벼락에 들러 붙은 자세로 난 슬그머니 노도의 옆구리를 찔렀다. "허, 험..." 말투는 저랬지만 눈빛으로는 '당연하지!'라 외치는 노도를 향해 난 씨익 웃어줬다. 하긴 지난 한달간 눈두덩이에 세 번이 나 파란 멍을 그렸던 그였다. 남작은 아랫사람들에게 손버릇이 지독히도 나빴다. "저어기...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돌아가." "맞아." "혼자는 싫습니다." 내가 어거지로 감은 검은 천으로 코 주위만 슬그머니 가린 스테판이 잔뜩 긴장해 몸을 웅크렸다. "쯪." 난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밤 늦도록 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방에서 개기던 스테판은 무슨 생각인지 밤나들이를 나서는 나와 노도의 뒤를 따라나왔다. 뭐, 어린 소년하나 따돌 리기가 뭐가 어렵겠느냐만은... 왠지 그를 그렇게 버려두기가 싫었다. 그에게서는 삼백년 전의 나와 같은 냄새가 났다. "돌아가시죠. 위험합니다." 스테판이 한번 더 노도와 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차가 운 바람이 옷깃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내가? 아니면 남작이?" "무슨 소리 하십니까! 당연히 란님과 할아버지가!" "그 반대겠지." 서서히 언성이 높아지는 스테판의 입을 지긋이 눌러 막으 며 노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나에 대한 책망이 살며시 스치고 지나갔다. 난 어깨를 으쓱여 보였 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 지 나도 몰랐으니까. 바로 다음 순간의 직전까지 말이다. 내 입이 내 가려진 내심을 알려주기 전까지. "어제도 다녀갔던 곳일 뿐이야. 가만히 봐. 네가 어떤 사람 의 제자 자리를 거절했는 지." "흠..." 아아... 어쩌면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하기는 하다지만 내 발치에도 못미칠 어린 중년의 기사에게 내 첫 제자를 뿌리 채 빼앗긴 것. 이성이 잠들만큼 그게 분했는 지도 모른다. 이 백 오십여년 전... 내 모든 동기들이 제자를 기르기 시작했을 때, 나만이 제자를 갖지 못했다. 나만이... 어느 누구도 날 스승 으로 선택해 주지 않았다. 난 철저히 소외당했었다. 그런데 무심코 내뱉은 내 목소리가 내 내심을 읽게 해 줬 다. 노도가 피식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가 스테판의 어깨를 강 하게 붙잡았다. 난 몸을 일으켰다. 지금껏 스테판을 의식하며 조심스레 나답지 않게 남작가까지 온 것을 후회라도 하듯이, 당당하게. 그렇게 한 발을 내딛었다. **** "어디 두고 보자!" 그는 거칠게 술잔을 들어 입에 부었다. 붉은 액체가 물처럼 그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점심 나절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온 몸을 벌벌 떨어대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 어야 했다는 것이 더욱 그의 꼿꼿한 자존심을 찔러댔다. "제길. 도대체 그 놈의 정체가 뭐야!" 입 주위로 흘러내린 붉은 액체를 신경질 적으로 문지르며 남작은 몸을 테이블 위로 엎드렸다. 속이 울렁이고 머리가 깨 질 듯이 아파왔다. "제, 제길... 제길!" 꾸깃하게 접힌 편지 한통이 그의 시아에 잡혔다. 저녁나절 공작가로 들어간 그의 어린 누이가 그에게로 보낸 글귀였다. 한창 세도를 펼치고 있는 후작가를 상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 는 건 그녀로서도 상당히 뒷맛이 찜찜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 나뿐인 오래비의 부탁이라 힘썼는데! 그녀와는 일언 반구의 상 의도 없이 후작가로 편지를 보내 일을 무마시킨 것이 화근이 었다. 누이는 망신을 당했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남작은 할 말이 없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누구 에게 말한단 말인가! 지난 밤 있었던 그 괴한에 대해! 집히는 데가 없지는 않았다. 분명 그 건방진 하녀와 관련이 있는 작자였을 터였다. 새벽이 거의 다 되어 창밖이 희끄무레 밝아질 무렵 그자가 남작의 뒤통수에 부러진 의자다리를 갖다 대며 쓰게 했던 그 편지는 그 하녀에 대한 글귀였으니까. 하지만 그 괴한과 하녀는 어떤 관계인 걸까? 그걸 모르는 이상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적어도 그런 괴한이 더 이 상 저택으로 침입하지 않도록 경비를 강화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흐... 어디 두고 보... 자..." 남작은 흐릿한 눈빛을 갈았다. 점심무렵 신관을 불러 상처 를 치료하고, 백작가로 시집간 다른 누이에게 편지를 써 호위 병을 빌렸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그의 저택에 도착한 호위병 은 한낮 남작의 저택을 지켜야 한다는 게 불만인 듯 안색을 구기고는 있었지만 그만큼 강해 보였다. "내, 오늘은 정신이 없어 넘어갔다고 하지만... 내일은... 내 일은 반드시 널 죽여주마...!" 달과 함께 되살아나는 공포에 몸이 떨려왔다. 남작은 술병 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자신 만만하게 웃었다. "어디 다시 와 바라! 오늘 날 지켜주고 있는 놈은 강하다!" 동생의 편지에 적혀있던 한 줄의 글귀를 되뇌이며 그는 비 식 웃었다. **** "놀고 있네." 확실히 어제와는 달라져있었다. 두어마리가 오락가락하던 정원에는 어젯 놈보다 두어 배는 더 커 보이는 개떼가 진을 치고 있었으니까. 놈들은 담벼락 위에 있던 우리들을 이미 알 고 있던 듯 여유 만만하게 날 둘러쌌다. "한... 열댓명?" 그리고 보이지 않게 날 한겹 더 둘러싼 사람들의 수가 정 확히 열명이었다. 저 위쪽에서 관망하듯 바라보는 두 놈과, 여 기서 뭔 일이 있던 제 자리만을 지키겠다는 듯 움직이지 않는 놈이 세 명이었으니까. "포기하고 순순히 잡히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굵직한 목소리가 개떼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철그렁거리는 경갑옷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리고 담벼락 위편에서 스테판이 마른 침 삼키는 소리도. "훗." 평소라면 아무 말 없이 녀석들을 쓰러트렸을 지도 모른다. 노도와 어울릴 때를 제외하면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데 별 취 미가 없었으니까. 또 서툰 편이기도 했고... 내가 놓친 제자감 이 저기서 날 바라보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지금 당장 포위를 풀고 네 집으로 돌아가라. 그럼 몸만은 성히 보내주지." 난 보란 듯이 어깨 넓이로 발을 벌린 채 손을 늘어트렸다. 방금 전 목소리의 주인의 굵직한 눈썹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죽음을 자초하는 군." "그거야 능력이 될 때의 말이고." 날 둘러싼 놈들의 살기가 진하게 가라앉았다. 그 기세에 자 극 받은 개들의 으르렁거림이 심해졌다. 저택의 등불이 밝아졌 다. 발코니 앞의 창문으로 남작의 그림자가 비쳤다. "진짜 관객이 등장했군." 공포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난 한껏 미소지었다. 비록 복면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날 둘러싼 놈 들은 내 눈을 통해 알고 있으리라... "그럼, 강아지들부터 재워 보실까?" **** 개들의 으르렁이 심해질 무렵 남작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속좁고 쪼잔했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었 다. 그에게 강압적으로 편지를 쓰게는 만들었지만 문제가 해결 된건 아니었다. 어제 그를 찾아온 복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으 리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누이에게 고개를 숙이고 실력 있는 자들을 빌려왔다. 남작은 밖의 소란이 어제의 그 침입자로 인한 것일거라 추 측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크흐흐흐흐... 어제의 복수와 더불어... 그 미친 하녀년도 잡 아 죽일 수 있겠군. 아니... 그 하녀는 뭔가 더..."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움직여 등불을 더 밝게 밝혔다. 그리 곤 발코니로 향했다. 감히 간도 크게 그의 집에 두 번이나 침 입한 복면의 최후를 두 눈으로 직접 보기를 원했다. 그는 취기로 충혈된 눈을 거칠게 비볐다. 그리곤 있는 힘을 다해 창문을 열어 제꼈다. 차가운 늦가을의 바람이 방안으로 쓸려 들어왔다. 왠지 모를 공포감에 취기가 확 사라짐을 느끼 며 남작은 눈을 부릎떴다. 그리곤 다시 눈을 비볐다. **** "깨갱~ 끙... 끙..." 엄지 손가락만한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던 개들이 꼬리를 내린 건 한 순간이었다. 개들은 그들 뒤에 서 있는 주 인들의 눈치도 채 보지 못한 채 정신없이 뒷걸음질 처 내게서 물러났다. 개들은 순간적으로 바람을 타고 방출된 내 살기에 직접적으로 반응했다. 발코니 위에서 정신없이 눈을 비비고 있는 남작의 모습이 시아에 들어왔다. "아아... 오랜만이군. 아니 하루만인가?" 남작이 비척비척 뒷걸음질쳤다. "내가 많이 보고팠던 모양이군. 이런 성대한 환영식까지 준 비해 주다니!" 그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반쯤 벌어진 그의 입가에서 진득한 침이 한 가닥 흘러내렸다. "으, 으으으으으!" "건방지다!" 한가닥 날카로운 검풍이 내 쪽으로 쏠려왔다. 난 한 걸음 옆으로 딛으며 몸을 돌렸다. 달빛을 받아 시리게 빛나는 장검 한 자루가 방금 전 내가 있던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의 행동이 신호라도 되는 듯 날 둘러싸고 있던 나머지 아홉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지... 아마." 노도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그래. 본디 자 신의 한계를 모를 때 덤빌 수 있는 법이니까. -퍼억!- 합공이라고는 하지만 체계적으로 연습한 것도, 특별한 진식 을 갖춘 것도 아닌 그저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공격이었다. 개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나라는 한 개인을 공격하는데는 서로가 서로의 방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셋." 제일 먼저 검을 뽑아들고 덤볐던 놈과, 내 좌측과 후방을 노리고 덤벼들었던 놈이 바닥으로 엎어졌다. "여섯." 그 뒤를 이어 같은 방위를 점령하고 날 공격해 들어오던 세 놈이 순식간에 벽으로 튕겨져 나가 나동그라졌다. "마지막, 열." 다른 여섯이 왜 쓰러졌는 지도 모른 채 순간적인 공포에 휩쌓여 발걸음이 무거워진 나머지 넷이 순식간에 뒤로 뒤집어 졌다. 내 속도에 반응하며 내 몸과 주위를 휘감고 흐르던 바람 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늘따라 손속이 좀 맵구먼..." 노도가 스테판을 데리고 가뿐히 담에서 뛰어내렸다. 한줄기 바람이 그의 다리를 감싸며 충격을 흡수했다.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니까." 두 눈이 휘둥그래진 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스테판을 향해 힐끗 시선을 돌려보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노도가 작게 웃음 지었다. "어, 어떻게...." 쓰러진 놈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며 확인 기절을 시키는 사 이 스테판이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줘 팼지." 마지막 열 번째 놈의 발목을 붙잡고 휙 집어던져 다른 놈 들의 몸통위로 쌓으며 난 가볍게 손을 털었다. 열 사람 모두 혼혈을 짚었다. 내일 아침 닭이 울고서도 한참은 더 지나야 정 신을 차릴 수 있겠지. "하, 하지만,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런 건 안보일수록 좋은 거야." "하, 하지만..." 당혹감에 휩쌓인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난 남작의 발 코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튀었군." 방안에는 인기척이 남아있지 않았다. "밖으로 가지는 않았네. 급한 김에 옥상쪽으로 간 듯 허이." 살피고 있었는지 노도가 여유있는 걸음새로 앞장섰다. 스테 판은 좀 전처럼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는 어리버리한 얼굴로 조용히 우리를 따라나섰다. **** "헉! 헉!" 남작의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많이 달린건 아니 었다. 너무나 극심한 긴장이 그의 육체를 과도하게 혹사시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겨우 한층 더 올라온 옥탑방의 한 구석에서 거미줄이 드리워진 낡은 책상 아래 머리를 처박고 남작은 열 심히 고민중이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잘못된 거야!" 보이지도 않았다. 남작 역시 교양 삼아 검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기사가 될 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검 술을 바라볼 정도의 실력은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제, 제길! 다른 다섯 놈은 어디로 간 거야!" 분명 여동생이 보내준 건 열 다섯 명이었다. 정원에서 맥없 이 당한 열 명을 제외하고도 다섯 명이 더 그의 앞을 지켜야 했다. 남작은 이를 갈았다. 식은 땀이 방울 방울 그의 얼굴선 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남작은 숨죽였다. 그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그의 귓가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 "...나머지 다섯은 이 자리에 모인 건가?" 저택의 일층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얇은 경갑옷 위에 날개를 활짝 핀 매 한 마리를 세겨 놓은 젊 은이였다. 그 뒤로 그와 비슷한 복장을 갖춘 네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 "자네가 대장이겠군." 노도가 굽은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앞쪽으로 나서있는 금 발의 젊은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습니다." 그가 침착하게 노도의 말을 받았다. "이런 장소에 있을만한 젊은이는 아닌 것 같네만..." 젊은 기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명령을 받으면 어디든 설 수 있는 게 기사입니다." "그렇군." 노도는 한숨을 내쉈다. 내 눈에 비친 그도 남작 따위를 지 키기 위해 서 있기에는 아까운 자였다. 그는 밖에 서 있던 다 른 자들처럼 성급히 소리치지 않았다. 상대를 살피기도 전에 검을 뽑아들고 날뛰지도, 오만하게 눈을 내리깔지도 않았다. 그는 너무나도 담담하고 당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까워." "맞아." 노도가 내 쪽을 돌아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에게 힘이나 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가 쓰는 선술은 사람을 상 하게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왠지 그랬다. 그런 일은 차라 리 나와 어울렸다. 부드러운 검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젊은 기사의 손에 길고 푸른빛을 띈 날카로운 검 한자루가 들려 있었다. "좋은 검이군." "칭찬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좀 전의 열 사람은 맨손으로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만, 검 은 쓰지 않는지." 호흡을 잠시 가다듬으며 그가 말을 건넸다. 난 두 손을 탈 탈 털어 보였다. "내 무기라네." "마샬아트라니... 드문 경우군요." "검이 지닌 날의 힘에 어중간히 기대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지." 그의 뒤편에서 긴장된 눈빛을 던지는 다른 네 사람을 한번 훑으며 난 자세를 잡았다. 사실 내가 익힌 건 검술이지 맨손 격투는 아니었었다. 뭐 시작이 그랬다는 것뿐이지 지금에 와서 는 별 차이도 없지만 말이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침입자를 보는 태도가 아닌 마치 대련이라도 하는 듯한 말 투로 그는 내게 경고했다. "바라던 바." 왠지 기꺼워졌다. "조심하시길." 그의 살기가 가다듬어졌다. 검을 비끄름히 겨누고 그는 내 좌측으로 살짝 반보를 움직였다. 그리곤 조금 놀란 눈빛으로 그 자리에 다리를 굳혔다. "예민하군." "...................." 서서히 풀어가며 그에게로 집중시키는 내 살기를 느끼는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한번 질끈 깨물고는 다시 눈빛을 가다듬었다. 난 이 젊은 기사가 왠지 마음에 들어졌다. 아주 짧은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난 이 기사에게서 백여 년 전 만났던 한 풋내기를 떠올렸다. 하긴, 내 눈에서야 풋내 기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칭송 받는 기사이자 영웅이었지 만. -우우우웅- "검기!" 스테판의 입술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음을 좀 더 독하 게 먹었는지 아니면 내 살기가 자극적이었는지 그의 검이 파 르스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너무 급했어." 난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알아보는 판 단력은 뛰어났지만, 난 그가 이런 반응을 보여야 할만큼은 나 를 들어내지 않았다. 아마도 실전 경험의 부족 때문이리라. 순식간에 흥취가 깨져나갔다. "오늘은 여기까지." "헉!"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난 그의 뒷등을 차지했다. 그리곤 잘 세운 손날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짧은 순간 용하게 반 응해낸 그가 시선을 돌렸지만 그게 다였다. -챙!- 몸과 함께 그의 손이 늘어지며 검이 바닥에 부딪혔다. 그제 서야 반응한 다른 네 사람이 요란히 검을 뽑아들며 내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쯪, 쯔.... 늦어."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네 명의 기사들 뒤편으로 한심 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는 노도가 스쳐지나갔다. 난 기 껏 부축했던 젊은 기사를 땅바닥으로 내팽겨 쳤다. 설핏 다른 네 놈들의 눈가에 분노가 스쳐갔다. 첫 번째 검은 머리를, 두 번째 검은 오른쪽 어깨를, 세 번째 검은 허리를. 네 번째 검은 등쪽에 가까운 방향의 왼쪽 어깨 를. 아주 근소한 시간의 차를 두고 네 사람은 마치 한 마음인 냥 검을 찔러왔다. -채챙!- 검들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허헉!" "마, 말도 안돼!" 두 쌍의 경악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네 자루의 검이 내 가 가볍게 쓸어 올린 듯한 손동작에 휘말려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동대륙에 이런 말이 있지." 네 자루의 검이 천장을 유영하고 네 쌍의 시선이 그들을 쫒아 허공을 헤집는 동안 내 두 팔은 바쁘게 남은 일을 끝마 쳤다. "새끼 강아지 열마리가 모여도 호랑이 한 마리를 당할 수 없다고." "끄... 끄윽!"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자들이었기에 처음부터 혈을 짚어 정신을 잃게 하기보다는 한 대씩 후려쳤다. 자신이 왜 의식을 잃었는지도 모른다는 건 이런 자들에게는 수치였으니까. "삼, 사 백년 정도는 더 수련하고 와야 할 꺼야." 비록 한 순간에 끝을 보기는 했지만 처음의 열사람 보다는 훨씬 낳아 보이는 그들의 귓가에 난 작게 목소리를 남겼다. 나 역시 지금의 실력을 갖추기까지 삼백년은 걸렸으니까. "자아.... 그럼 이제 오늘의 주인공이 남았구먼." 딱딱하게 굳은 스테판의 어깨를 토닥이며 노도가 다시 앞 장서기 시작했다. "그래. 예정에도 없는 달밤의 체조를 하게 해 준 보답을 두 둑히 쳐 해줘야 할 주인이 있지." 두려움에 질린 채 각자 자신의 방에서 문을 잠그고 움직이 지 않는 하인과 하녀들의 방을 지나 저 꼭대기 옥탑에서 우리 를 기다리고 있을 남작을 생각하며 난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그럼 가세나." ***** 전투씬... 그런건 안보일 수록 좋은 거야! ....ㅠㅠ 네. 은빛의 변명이었습니다... (먼 산을 바라보며...)난 언제쯤 박력있는 전투장면을 묘사할 수 있을까아아아... (사실 읽을때도 전투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주제에 바라는 건 많습니다 그려... 쓰읍) 부... 부디 제게 겨, 격려의 멜을....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29 Wed 13:25:22 IP : 211.215.244.138 아이비 오옷..! (05/29,16:17) nero =ㅁ=//멋지다 하녀!!! 끝내준다 하녀!! 아싸라비아~~ (05/29,18:47) 라지 화이팅입니다요-.(반짝) (05/29,18:56) 옷 절대로 절대로 계속 써주십시오..ㅡㅜ (05/29,21:08) hobit 격려 한아름을 안겨드리겠습니다. 돌아오신 것을 축하~* (님의 저 인삿말을 다시 접하니 정말 기쁩니다. 훌쩍) (05/30,04:03)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3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은빛 2002/05/30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의심으로 가득한 눈초리란 바로 저런 것을 의미하리라. "오늘부터 도련님께 역사를 가르쳐주실 새 가정교사가 오실 겁니다." 점심시간 무렵 찾아와 살짝 살짝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연 헤리슨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 고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는 내가 아르페이나가 보낸 사자라 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난, 새로 고용한 하녀가 아니라 세상을 떠난 그의 여주인의 대리 자쯤 되지 않을까? "네... 알겠습니다." "죠브드 남작님은... 당분간은 가정교사일이 불가능해 지셨 다고 하더군요. 남작님을 치료한 신전에서 나온 말이지만..." 한번 더 날 힐끗 쳐다 본 헤리슨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언가 강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으셨다고 합니 다. 아주 힘든 일을 경험하신 듯 하다고.... 아주아주 두렵고 떠 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그런 일을 말입니다." "어머나! 그럴 수가! 천벌이라도 받으셨나요?" 순진해 보이는 표정으로 살짝 두 손을 들어 양 볼을 감싸 고 놀란 듯한 포즈를 취해 보이는 내 모습 때문일까? 헤리슨 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는 왼손을 가볍게 말아 입가 에 대고는 몇 번 헛기침을 터트렸다. "세 사람의 괴한이 침입해, 경호원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후 남작님께까지 위해를 가했다더군요." "어머나... 이걸 어쩌나..." 내 얼굴이 자동적으로 구겨지며 슬픈 기색을 만들었다. 내 양손이 슬그머니 움직여 귀밑까지 찢어져 올라가는 환희의 미 소를 가렸다. "흠, 흠....." 헤리슨은 조금 초조해 보였다. 연락을 받고서는 다짜고짜 날 찾아와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먼저 꺼내기 시작하는 폼이, 그 괴 사건의 용의자로 날 꼽고 있는 듯 했지만 난 순순 히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그도 가증스러웠 을까? 그의 표정이 좀 굳어졌다. "소문입니다만... 어젯밤 남작가에서 한 남자의 째진 비명소 리와 마녀로 추정되는 여자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더군요... 흠, 흠." ".........미........친... 듯...한요?" "소문입니다." 헤리슨이 재빨리 토를 달았다. 그리곤 조금은 창백해진 얼 굴로 조용히 발 뒤끔치로 바닥을 두드렸다. "신의 사자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아... 하. 하. 하." "그래도 도련님과 관련된 분의 일이었기에 이렇게..." 땀 한 방울이 헤리슨의 이마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등뒤로 열린 창문 사이로 작은 눈송이 하나가 흘러 들어왔다. "알겠습니다. 새로 오실 도련님의 가정교사 분께는... 오해받 지 않도록... 잘. 아주, 잘. 하도록 하죠." "부탁드리겠습니다." 헤리슨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을 움직였다. 그는 유 연하게 몸을 돌리며 문의 손잡이를 잡아 밀었다. 그러다가 문 득 뭐라도 생각났는지 동작을 멈추고 내게 빤히 시선을 던졌 다. "잊으신 거라도?" ".........아. 아르페이나님의 신탁은..." 그는 주저했다. 문은 다시 닫겼다. "신탁은.... 이루어진 겁니까? 도련님을 지켜주시길 바라던 마님의 청원은... 받아들여진 건가요?" "도련님을?"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진 고개를 끄덕이며 헤리슨은 공손 히 손을 앞으로 모았다. 집사가 하녀에게 보일 수 없는 태도 로. "도련님의 미래를 돌보며... 지켜... 주시는 겁니까? 어떤 난 관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도련님을 지켜? 어떤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당혹감이 몰 려왔다. 아르페이나가 내게 제안했던 건 새로운 삶이었다. 하 녀로서 몸을 낮추는 삶. 어린 주인을 만나 고생 벅벅 하면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새롭게 경험해 보는 삶. 그런데 지키다니? 하녀의 일에 그런 게 포함되는 거였던가? "................" 내 침묵이 의외였는지 헤리슨은 두 손을 꼭 줬다. 긴장으로 차갑게 식은 손이 하얗게 바랬다. 이건 예상과 조금 달랐다. 어린 주인을 지킨다라... 난 어린 주인을 바라보기만 할 예정이었다. 철저히 하녀의 입장에서. 난관이야 그가 직접 헤쳐나가야 할 바였고, 죽음이야, 수명이 거기까지라면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과연 내가 어린 주인의 죽음을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새로운 의문이 든다. 어쩔 수 없이 꽤 마음에 들어져 버린 저 속 늙은 꼬맹이가 다른 이의 검 앞에 쓰러져 피를 흘린다 라... 차갑게 식은 주검이 된다... 싫다. 그건 싫다. 어찌 되었건, 누가 맺어준 인연이었건, 저 꼬맹이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최초의 주인이자 마지막 주인이 었다. 그런 건 싫었다. "..............." 미묘하게 고개만 끄덕인 내 동작을 보았는지 헤리슨이 다 시 입을 열었다. "어제... 아르페이나님의 신전에서 신탁이 도달했습니다." "어제요?" 내가 아르페이나님을 만난 건 이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날 이쪽으로 오게 만든 그 아줌마가 아르페이나에게 빌어댄 건 그보다 더 전이고, 후작이 신탁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받은 건 그때 즈음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신탁이라니? "네. 신탁이 완성되었다며 신관이 찾아왔더군요." "그런가요?" 헤리슨의 눈가에 다시금 확신이 들어섰다. 나도 모르게 마 른침을 삼켰다. 또다시 그 익숙한 불길함이 심장을 거머줬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그 어색한 긴장과 불안한 미소를 말끔히 걷어낸 헤리슨이 빙긋 웃었다. "어떤 신탁인지 들어봐도 좋을까요?" 난 자세를 다시 고쳤다. "그 전에 한가지만 듣고 싶습니다. 란님." 하녀로 살면서 집사에게 이런 극존칭을 들을 날이 올 줄이 야. 완전 예상 밖이다. "말씀하세요." "마님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건가요?" 가벼운 한숨이 입에서 터져나갔다. 망할 마님. 기왕 이렇게 될 거 갈등할 필요 없게 조금 싸가지 없는 자식을 남겨두고 가지. 그럼 맘 편히 거절할 텐데. 그냥 어린 주인, 어린 주인하 며 하녀 노릇이나 하려던 내 인생계획을 수정할 필요도 없었 을 텐데... 난 몸을 일으켰다. 살짝 얼어붙은 창틀에 손을 올렸다. 사늘 한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전 제 어린 주인이 마음에 든답니다." 도련님이라 하지 않았다. 헤리슨은 그 말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신의 의지와 마님의 동기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제 의지 로... 신탁은 이루어질 겁니다." 헤리슨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는 경쾌한 동작으로 팔 을 풀고 내게 허리를 깊이 숙여 보였다. "여신께 감사드립니다." "제 의지입니다." "감사를....." 어찌 들으면 감히 신과 나를 동격으로 올려놓기까지 한, 광 오한 말이었지만 헤리슨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잠시 정신 을 놓고 있더니만, 곧 다시 회복해서는 당황한 얼굴로 문고리 를 급히 밀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전에 끝나있었다. "이, 이런... 제가 시간을 잊었습니다." "전 하녀입니다." "네. 하녀시죠." 경어를 쓰지 말라는 의미였는데, 내 의도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헤리슨이 모호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곤 급 히 양손을 살피고 내 방에 들어올 때 들고 왔었던 서류들을 챙겨 소중히 품에 안았다. "여신께서 신탁을 완성하셨다며 신관을 보내셨습니다." 그의 몸이 반쯤 방문을 빠져나갔다. "여신보다도 강한, 전무후무한 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 사를 보냈으니 이제 안심하라고... 그렇게 말입니다." 내 손아귀에 잡혀있던 돌로 만들어진 창문틀이 빠그작 소 리내며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 "무슨... 일이 있었나?" "네?" 어색한 표정의 어린 주인이 내 안색을 살폈다. 난 퍼득 정 신을 차렸다. 장작불이 타닥 소리내며 타올랐다. 활짝 열린 커 튼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볕에 하얗게 얼어붙은 얼굴의 새 가정교사가 뻣뻣하게 책상 앞에 서 있었고 그 못지 않게 질린 표정의 스테판이 힐끔 힐끔 내 눈치를 살피며 감히 바라 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책상에 푹 박아 넣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으면 돌아가서 쉬도록." 몸이 좋지 않다... 라는 말에 그럴 리 없다는 듯 새 가정교 사가 어이없는 표정을 잠시 짓기는 했지만, 돌아가라는 말에는 모두들 고개를 커다랗게 끄덕여 보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잠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을 뿐입 니다. 제가 잡생각을 해서 도련님의 수업을 방해했나 보군요." 사실 하녀가 잡생각을 하면 어떠리. 지키고 있으면 어떻고 물러가면 또 어떠리. 어차피 심부름시킬 때 정도가 아니면 있 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닌가. "아니야. 돌아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아." 어린 주인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애써 아닌 척 해도 어 지간히 질린 표정.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 계속해서 살기를 내뿜고 있었 나 보다. 점심시간 나절의 일이 내게는 충격이었으니까.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음에도, 이미 결정한 뒤의 일이었음 에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모르지 않았음 에도... 난 충격 받았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는 느낌. 난 그런 느낌을 싫어했다. 아주 싫어했다. 미칠 것만 같은 외로움에 젖어 이용당하는 것조차도 반가웠던 시절은 정말 과 거의 일이다. 사부를 잃고, 처음으로 만난 세상사람들에게 검 을 맞대고... 상처입고 돌아간 내 고향에서... 내 사부가 사랑했 던 백검문에서 날 '이용하려고' 했을 때 일게다. 아마도. 내가 이토록 이용당한다는 감각을 증오하게 된 것은. 그때의 그 배 신감이 유령처럼 되살아난다. 빙글빙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뒷면에 회심에 찬 승리의 사인을 취하고 있을 한 여신의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아 르페이나... 이 노출증 여신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날! 날! 어째서! 난 아무 것도 그녀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백여 년 전의 그때 역시! 단 한번도 그녀와 상관될 일 을 한 적이 없는데! "란!" 비명에 가까운 어린 주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누 군가의 배설물인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순간적으로 코를 자극 했다. 잔뜩 울상인 스테판의 얼굴과 새파래진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은 가정교사가 눈에 다시 들어왔다. "네?" 난 금새 내 실수를 알아차렸다. 작정하고 내뿜은 살기는 아 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감당하기에 결코 쉬 운 그런 힘도 아니었으리라. ".............." 너무 늦었나 싶다. 내 어린 주인은 날 불러놓고도 더 이상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하긴 아직 어린아이니까. 그 정신력 이 아무리 성장했다 하더라도 몸이 견뎌낼 수 없었겠지. 난 시선을 돌렸다. 내 눈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웠 는지 가정교사의 사타구니에서 누런 물이 조금씩 찔끔거리며 베어 나왔다. 이미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스테판도 마찬가지였 다. 내 어린 주인만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후들거리는 다리 로 용하게 버티고 서서 내게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말을 건네봤자 들리지도 않겠지만 아무 말 없이 나올 수는 없었다. 난 쓴 입맛을 다시며 꽤 공손한 태도로 그들에게 인사 하고 방을 빠져 나왔다. 어린 주인의 두려움에 찬 시선이 등짝 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제길." 복도에 길다랗게 난 창문 아래로 정원을 가꾸는 노도의 모 습이 들어왔다. 난 무작정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노도가 가볍 게 혀를 차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내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난 그의 일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는 펑 퍼짐한 정원석 하나에 엉덩이를 걸치고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추던 따듯한 햇볕은 구름에 가려졌 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노도의 목에 걸린 수건이 나풀거렸 다. 파삭하게 마른 겨울의 흙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쯪쯔... 하녀가 다 되었구만. 속만 말이야." 비료를 뭍은 구덩이를 매우던 노도가 허리를 쭈욱 피며 땀 을 훔쳤다. 그는 내 시선에 담긴 의아함을 느꼈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과거의 무후로 불렸던 자네라면 이렇게 쉽게 노기를 들어 내고 살기를 뿜지 않았을 거란 말이네." ".............." "얼마나 강하던지 이 밖에서도 느낄 수가 있겠더군." ".........노도 정도나 되니까 느끼는 거겠지." "언제부터 자네가 나 정도의 도사에게 살기를 들킬 정도의 인물이 된건가?" ".................." 노도는 털털하게 바지에 붙은 흙을 털어 내고는 내 옆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겨울의 정원이란 꽤 삭막했다. 여기저기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있었고, 몇몇의 푸른 나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앙상한 가지 와 누런 잎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보아왔던 모습인데... 정원이라는 틀 안에서의 그들은 더 황량해 보였다. "말했지. 자네라는 자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물병을 열어 목을 축이며 노도는 빙긋 웃었다. "자네는 누군가. 무후인가? 아니면 하녀인가? 그도 저도 아 니면 란이라는 사람인가?" "..................." 평생을 되뇌이던 문제였다. 그런데 노도의 늙으수레한 목소 리로 들으니 또 다르게 다가왔다. 난 잠시 멍해짐을 느꼈다. 좀 전에 그가 책망하듯 던졌던 말이 새삼 되살아났다. 하녀가 다 됐다고? 속만? 그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던 걸까? 내가 본 하녀란... 내 주위에서 하녀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 가난한 가정집에서 생계를 책임진 처녀들이나, 팔려온 사람들, 경우에 따라서는 고급 하녀로 인정받고 있는 전문가들... 철저 한 하녀 교육을 받은 사람들... 그저 평범한 집에서 자라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 서로 다른 인생을 걷고 있는 사람 들. 하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같은 울타리에 있지만 결코 같 을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나. "어렵지? 그렇게 쉽게 정의 내려지면 세상이 참 쉽겠지?" ".................." 빙글거리는 노도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공명한다. "허어.... 이 친구가..." 멍 하니 스스로의 안으로 빠져든 내 기색을 알아챘는 지 노도가 한 걸음 물러섬이 느껴졌다. 그게 다였다. 난 바깥과의 연결을 끊었다. 제각각의 삶. 삶이 만들어낸 틀. 자신이 만들어낸 틀. 겹겹 이 엉킨 고리... 그리고 나. 무후로서의 나. 하녀로서의 나. 란 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 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무후라는 틀 안에 날 묶어두고 있던 건 아닐까? 신이 되겠다는 허언으로 자신을 만족시키며... 난 이렇게 높은 목표를 지니고 있어! 라며 스스로를 위안하 며... 그저 만족하며 배부른 투정 부리듯 다음 경지를 찾을 수 없다고 말장난을 하고 있었을 뿐이 아닐까? 눈물이 한 가닥 흘러나왔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노도는 조용히 비료 푸대를 정리하 고 있었다. 다른 젊은 정원사들과 하녀들도 많았지만 노도는 이 주인마님의 정원만큼은 다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혼 자 돌봤다. 그래야 술법을 적절히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장정 서넛이 들어야 겨우 옮김직한 푸대 자루들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던지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경악스러 웠을 테니까. 하늘이 벌써 검푸르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사라진 후의 짙은 보라빛 하늘을 난 좋아했다. 팔을 쭉 뻣었다. 기지 개를 펴는 건 내 습관 중 하나였다. 분명 어제와 같은 동작이 었는데 훨씬 더 가볍게 느껴진다. 대기의 마나가 너무나도 자 연스럽게 날 환영해준다. "하녀일 하기를 잘했지?" 터벅 걸음으로 다가오며 노도가 부러운 듯 어깨를 두드렸 다. 난 슬적 친구에게로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그 노출증 여신은 용서 못해." "허허허허."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시원하게 울렸다. 난 문득 그가 없었 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떠올렸다. 아마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견디지 못한 채 바로 아르페이 나의 신전으로 처들어가 난동이나 부리지 않았을까. 뭐, 지금 이라고 해서 넘어가 줄 생각은 없지만... 그가 내게 던져준 무 언가는 커다란 갈림길의 이정표이기도 했다. 감정에 휘말려 힘 을 휘두르는 건 악신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을테니까. "고마우이." "허허." 노도라는 벗을 만난 건 내 삶에 있어 최대의 행운이 아니 었을까..... **** "난 몰라. 이 이상은 도와줄 수 없어." 곱게 틀어올린 백발이 흩어질 정도로 고개를 급격히 흔들 어대며 삼신할미는 뒤로 물러섰다. "하, 하지만! 삼신할미의 아이잖아요!" "허! 그 아이 소리는 한번이면 족하네! 말했잖나! 그녀는 무 신이라고! 이미 자신의 신분을 각성한 다음이네! 그녀는 천신 의 아이지 내 아이가 아니야!" "하, 하지만!" "그만! 그만하게! 난 지금 할 일이 산더미란 말이야! 게다가 그날 자네가 와서 정신 사납게 하는 바람에 바꿔 넣은 영혼이 두 쌍이나 있다구! 그만하게! 자네도 어였한 여신이지않나! 다 른 대륙의 나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해 보게!" "삼신할미!" "그만!" 노화 섞인 할미의 목소리와 함께 통신은 끊겼다. 아르페이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절대 용서 못해.' 살기가 가득 고인 란의 눈빛이 머릿속에 박히는 듯 했다. "하, 하지만... 그녀가 자꾸 날... 노출증 여신이라고 해서..." 투둑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에게는 최고의 행운일 수도 있던 그 날 그녀가 단 한가지 신경 쓰지 못한 게 외모였다. 머 리 헝클어진것쯤 대수랴. 옷 허술히 입은 것쯤 대수랴. 머리가 터져 나갈 것만 같았는데! 삼신할미도 적호도 그런 아르페이나의 급박함에 휘말려 그 녀의 겉모습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뒤늦게 돌아와서 바 람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 경악하기는 했었지만, 그 뒤로 누구도 그녀의 산발한 모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었 기에 잊고 있던 부끄러움이었다. "나, 난... 나도 부끄러웠는데..." 잔뜩 부풀린 옷자락들로 온 몸을 겹겹히 감싸안아도 감정 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런 상처를 연거퍼 찔러댄 것이 노도 와 란이었다.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첫날부터 '서대륙의 신들은 홀랑 벗고 사나보지?'로 시작한 그들의 대화는 여신을 자극하기에 충분했 다. 그리고 간간히 던져지는 란의 혼잣말... -노출증 여신- 그 말에 욱하는 바람에 신관들을 불러다가 신탁을 던져버 린게 화근이었다. 간만의 신탁에 신관들은 흥분했고, 아르페이 나의 말은 순식간에 후작에게로 전해졌다. "후우......." 그리고 아르페이나의 머리가 식을 때쯤 란의 귀로 신탁이 흘러 들어갔다. 아르페이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내가.... 미쳤지." 그녀는 힘없는 동작으로 그녀의 공간 한켠에 떠 있는 수정 구슬을 작동시켰다. 희뿌연 상이 점점 뚜렷해지며... -그 노출증 여신은 용서 못해.- 라며 이를 뿌드득 갈아대는 란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으으으으.... 나, 나만 잘못한 게 아니란 말이야!!" 허탈한 비명이 여신의 방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 격려성 멜과 리플을 먹습니다. 부디....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5/30 Thu 20:51:35 IP : 211.215.56.72 카무이 혹...혹시... 창조신의 파업일기의 은빛님이신가...? (05/30,21:13) 달기 카카카~재미써요~ (05/30,21:17) 하늘아이 냅~!!!맞습니다!!!^^;; 그런데...니임~오늘은 연참 안해 주시나요?@_@ 기다려요오~!!^^;; 건필하세요~!!!^^;; (05/30,21:44) 순수청년 은빛님~~~!!!!!!! 창파기는 언제 연재가 돼나요 ㅡ.ㅡ? (05/30,23:20) 은빛 오랜만입니다. 카무이님... 네.. 창파기의 은빛 맞아요.^^~ (05/31,08:28) 라지 ...헤에. 이래저래 심란항 주인공들이군요.(씨익) (05/31,17:11) *^o^*~ 오옷~ 즐겁고 즐거운 The Perfect MAID! (06/01,01:52)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7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4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은빛 2002/06/03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문제는 용서하는 게 아니었다. 받는 거였다. ".........................." 힐끔 시선이 부딪힌 스테판이 바람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안색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 내 어린 주인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그래도 주인이라고 꼿꼿하게 어깨를 펴고 앞서 걷고는 있지만 다리가 불안정하게 꼬이는 폼이 말이라도 잘못 걸었다가는 엉켜 넘어질 듯 보였다. 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힘겹게 밀어 넣었다. 그들의 숨막힐 듯한 공기는 나까지 꼼짝 못하게 얽어맸다. 벌써 일 주일째였다. 이제 슬슬 잊어버려줘도 괜찮을만 할 텐데, 팽팽히 당겨진 긴장은 도대체 놓아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꽉 잡힌 어린 주인의 분위기에 공연히 다른 가정교사들만 얼어 붙어갔다. 수업시간은 꽉 막힌 듯한 긴장감으로 조여졌 다. 햇볕은 따사롭건만... 불편하다. 그나마 배짱 좋은 편에 속하는 그레인 경이 의아한 시선을 잠시 내게 던졌다. 난 헤실 웃어 보였다. 어린 주인의 얼굴에 잠시 가증스럽다는 듯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난 공손히 고개를 푹 숙여 보이고는 종종 뒷걸음질쳤다. 아 무도 말리지 않았다. 사실, 내 주인이 아직 어린아이인 관계로 요 한달간 어린 주인의 뒤만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하녀의 할 일이란 주인 뒷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만은 아니었다. 최근 난 다른 하녀들로부터 내 어린 주인의 빨랫감 정돈과 어린 아이용 갑주 정리를 맡았다. 그 편이 더 속편했다. 연약한 옷감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가뜩이나 얇은 강철판 이 찢어지지 않도록 손에 힘을 조절해가며 난 금새 일들을 손 에 익혔다. "제길." 새 가정교사는 그 날로 그만뒀다. 후작은 다른 사람을 구하 기 위해 사람을 수소문했지만 무슨 소문이라도 났는지 좀처럼 다른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뒤에 죠브드 남작과 그 일파가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남작의 세력이야 별 볼일 없었지만 그의 누이들이 퍽이나 아름다웠던 덕분에 그는 하나의 공작가와 하나의 백작가에 질 긴 연이 닿아 있었으니까. 죠브드 남작은 그 날 이후로 병을 얻었다. 별건 아니고... 일 종의 정신병이었는데, 내 또래로 추정되는 여자의 뒷 그림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며 혼절해 버린다고... 혼사길 하나는 확실 하게 막힌 셈이겠군 싶다. 쯪쯔. 그러기에 누가 개기랬나... 후작은 나와 노도를 보호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매일같이 백작가와 공작가에서는 심부름꾼이 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날 보러왔다. 말로는 어린 도련님에게 인사라도 하겠다며 왔었지 만 그들의 살기 어린 시선은 항상 내게로 향해 있었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뭔가 잘못 됐다. 이런 가시방석에서 후작의 보호를 받아가 며 귀족들의 눈총을 가득 느껴야 하다니.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복잡한 생각들과 가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린 주인의 옷을 정리하며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난 몸을 일으켰다. 내 평생 단 한번도 이런 종류의 일로 고민했던 적이 없었다. 난 내가 그런 방면으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무지함을 잘 알고 있었 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노도의 편안한 미소가 문득 떠올랐다. **** "절 사랑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날카로운 고음의 목소리가 애절하게 외쳤다. 커다랗게 떠진 눈망울에 물기를 가득 담은 목소리의 주인은 손수건을 들어 입을 살짝 가리곤 고개를 푹 숙였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차로 커져갔다. "후... 에레이나... 내 어찌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냐!" 불룩 튀어나온 뱃살을 힘겹게 접으며 남자는 몸을 굽혀 울 부짖는 여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싫어요! 그렇다면, 왜 제 오라비의 억울함을 돌봐 주시지 않는 건가요!" "에, 에레이나! 하지만 그가 직접 편지를 써 보낸 이상은 내가 끼어들기가..." "그깟 협박에 당해 쓴 편지 따위가 무슨 효력이 있다는 말 씀이세요! 아시잖아요! 제 오라비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여인의 목소리가 앙칼져졌다. 백작은 식은땀을 닦아냈다. 말 년에 얻은 그의 두번째 부인은 그를 송두리째 휘어잡고 있었 다. 아마도 반한 게 죄이리라. 벌써 열흘 가까이 부인은 울어댔다. 날마다 자신의 친정이 작위가 낮은 남작가라 수모를 당한다며 하소연해댔다. 아무리 사랑이 깊다 하더라고 슬슬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백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페르로이 후작가와는 적대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는 해야 했다. 그는 부인과 헤어지거나 더 이상 사이가 벌어지기를 원하 지 않았다. 그는 몇 번 심부름꾼을 보냈다. 겨우 하녀 하나에 불과한 여자를 감싸는 후작이 슬슬 그도 마음에 들지 않던 차 였다. 별의 별 상상이 다 되고 있었다. 하녀는 아름답다고 했다. 어쩌면 그녀는 후작의 숨겨둔 애인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 한 상상이었다. 그 외에는 후작의 태도를 달리 이해할 길도 없 었다. 백작은 고개를 털래털래 털었다. 눈물짓는 아내를 바라 보던 백작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뒤에서 아내라 뭐라 외쳤 지만 그의 귀에 더 이상의 하소연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어... 백작님, 제 생각입니다만..." 구름낀 백작을 바라보던 집사가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목 소리를 낮췄다. 백작의 눈동자에 한순간 빛이 흘러갔다. **** 공작도 비슷한 고통을 겪는 중이었다. 아무리 반해 데려왔 다고는 하지만 그도 역시 한계상황을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신히 얻은 아름다운 아내를 내치 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놈의 하녀 하나였다. 후작이 감싸고도는 예쁘장 하게 생겼다는 하녀 하나. "그 년만 없애면 나도 면목이 설텐데..." 공작의 눈가가 가늘게 좁혔다. 사람을 없앤다에 그의 생각 의 초점이 맞춰졌다. 그의 입가에 살며시 곡선이 그려졌다. 겨 우 하녀 하나에 그런 방법까지 쓰기는 아까웠지만 그 뒤에 있 는 후작과 슬픔에 젖어있는 아내를 생각한다면 그리 큰 투자 도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이 조심스레 책상 위의 벨을 눌렀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조심스레 문이 열리며 그의 충직한 부하 하나가 모습을 들 어냈다. 공작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책상에 깍지를 끼 고 턱을 고였다. "심부름을 좀 해 줘야겠다." **** 히르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두 개의 청부가 들 어온 것도 기뻤지만, 그 두 개의 내용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한다는 점이 더 즐거웠다.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하녀 하나에 정신을 쏘옥 빼앗긴 후작과, 후작의 후광을 믿 고 천둥 벌거숭이모냥 귀족들에게 무례하게 군다는 하녀 하나. 요 일주일 사이 시내에 자자하게 퍼진 소문들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얼굴을 가렸다. '오랜만에 장난삼아 직접 나서 보는 것도 좋겠지.' 위험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청부였다. 애 써 키워놓은 부하들을 귀찮게 오라가라 하기조차 아까울 만큼 간단한 일. 후작가의 사람들에게 흔적만 남기지 않으면 되는 청부. 간단한 살인. 저택에서 어린애나 보는 하녀 하나 목을 비트는 건 아이 손목 비트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술값이나 벌어보는 것도 오랜만이군.' 대상이 일개 하녀였기에 액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두 개 가 겹치다 보니 그것도 꽤 쏠쏠했다. 그는 검을 챙겼다. 대장간에서 마구 만들어 파는 흔한 검 한자루와 날이 잘 선 단도 한 자루. 그 역시 싸구려티가 팍팍 나는 흔한 종류였다. 그는 산책이라도 가는 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길을 나섰다. 비라도 올 듯 두껍게 구름 낀 하늘이 그의 기분을 더욱 상쾌 하게 만들었다. '뭐, 하루 정도 따라다니다 보면 파악할 수 있겠지. 하녀들 의 삶이란 거기서 거기니까.' **** "쯪. 또 찢어졌네... 어쩌나..." 잠시 딴 생각을 했던 게 화근이었다. 어린아이에 맞게 얇게 펴진 갑옷은 내 우악스런 손아귀힘을 이겨내지 못한 채 종잇 장마냥 찢어졌다. "제길." 누구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난 인상을 가득 구겼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었다. 노도는 바빴다. 난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길을 돌렸다. 다른 정원사들과 함께 일하는 그를 굳이 불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 리고는 이 보관실로 와서 어린 주인의 옷가지와 갑옷, 여러 가 지 물건들을 닦고 새삼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랬는데... "후...." 벌써 열 개째였다. 딴 생각을 하다가 망가트린 갑옷과 검들 이... 뭐, 그 모든 것이 아이용이라 가볍고 약했다는 건 둘쨰로 치더라도 이젠 더 이상 헤리슨을 볼 면목이 없었다. '과, 과연... ...이시군요...' 처음 갑옷을 우그러트렸을 때 헤리슨의 얼굴에 가득 담겼 던 황당함을 잊지 못한다. 손자국이 따악 찍힌 게 누가 봐도 손으로 우그러트린 기색이 역력한 갑옷을 보며 헤리슨은 고개 를 설래설래 저었었다. 그리곤 내가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 지 조용히 옆방으로 가서는 힘껏 갑옷을 두들겼다. '고...쳐... 오겠습니다.' 통증으로 핏발선 두 눈에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힘을 가 득 준 헤리슨이 퉁퉁 부어오른 오른손을 등뒤로 가리고는 왼 손으로 갑옷을 힘들게 받쳐들었다. 그리곤 한숨을 내쉈다. 그건 시작이었다. 벌써 다섯 개 정도의 검을 닦다가 휘거나 부러트렸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노출증 여신의 모습과 겁먹은 어린 주인의 모습이 내 힘을 멋대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직접 나가서 대장장이 하나를 구어삶 아야지." 기를 조심스레 움직여 구겨진 갑옷 부분을 대강 편 난 몸 을 일으켰다. 아무리 내게 힘이 있다한들, 귀족이 갑옷처럼 섬 세한 문양이 있는 금속을 원상복귀시킬 기술은 없었다. 그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고, 난 만능이 아니었다. 난 질긴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 하나에 갑옷의 구겨진 부분 을 대강 쑤셔 넣었다. 다행히 아이용 갑주는 커다란 가방 안에 무사히 들어갔다. 난 방을 나섰다. 몇몇 하녀들이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쳇.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나..." 그들은 날 두려워했다. 이유는 모른다. 처음 오자마자 어린 주인의 전속하녀가 된 날, 그들은 질시했다. 남작에게 당당히 개기던 날 그들은 영웅시하면서도 멀리했다. 그리고... 그 오만 했던 남작이 거의 미친 이후로 내게 잘못 대했다가는 저주받 는다는 황당한 소문이 퍼진 날부터 그들은 내게 시선조차 마 주치지 못했다. 난 조금 외로웠다. "뭐... 내가 뭘 하든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서 차라리 좋긴 하지." 나 이후로도 두 명의 하녀가 새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쓰는 방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신의 사자라는 허울좋은 명목 때문에 헤리슨이 배려해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저들은 저주를 피하기 위해 날 멀리하는 듯 행동했다. 좋은 기분은 아 니었다. "일찍 들어오십시오." 헤리슨이 뭐라고 말해놨는지 모르지만 경비병들이 하녀에 게 대하는 것 같지 않은 태도로 조심스레 뒷문을 열어줬다. 엷 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 하르크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마침, 그 유명한 하녀의 얼굴 이나 한번 보자고 길을 나섰던 참이었다. 후작가로 어떻게 잠 입해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그의 앞쪽으로 검은색에 가까운 진회색의 머리카락 을 지닌 여자가 스쳐지나갔다. 그가 뒷문 가까이의 담벼락에 붙어 있었으니 분명, 후작가의 뒷문에서 나온 방향이었다. '이게 왼 횡재?' 그는 조심스럽게 땅으로 내려섰다. 목표물은 커다란 가방 하나를 가볍게 등에 걸러 맨 채 콧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방향은 얼핏 봐서 시장쪽. 아무래도 뭔 가를 사려거나 아니면 바꾸기 위해 가는 듯 했다. '하녀니까... 심부름을 가는 거겠지.' 그는 재빠르게 복면을 벗고, 걸치고 있던 검은 망토를 뒤집 었다. 평범한 잿빛으로 변한 망토를 다시 걸치고 얼굴에 발랐 던 검댕이를 대강 씻었다. 누가 봐도 허름한 시골 장사꾼의 표 정이 그의 얼굴에 새겨졌다. 하녀는 잠시 걸음을 멈칫했다. 하르크는 긴장했다. 겨우 하 녀 따위가 그의 미행을 알아챌 리는 없었다. 하지만 만전을 기 해야했다. 그의 시선이 하녀의 눈길이 닿는 곳을 향했다. "미이....." 배고파 보이는 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에 앉아 그녀 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녀는 잠시 고양이에게 손짓하다가 고 양이가 반응하지 않자 작게 툴툴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까지의 길은 멀지 않았다. 꽤 많은 귀족가가 몰려있는 곳이라 시장은 상당히 컸고, 늦게까지 열렸으며 어딘가 고급스 러운 가계들이 많이 있었다. 하녀의 눈동자가 쉴새 없이 움직였다. 연신 감탄성이 흘러 나왔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시골뜨기였다. 하르크의 심장 한 구석에 달려있던 긴장이 여지없이 흩어졌다. 역시 막 시골에서 올라와 세상 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철부지 하녀인 듯 싶었다. 그렇다면야 이해가 갔다. 맘좋기로 소문난 후작은 어 쩌면 그녀의 그런 면을 알고 감싸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면 멀리 남부에 있는 그의 영지 출신의 평민일 지도 모른다. "찾았다!" 꽤 고운 톤의 목소리가 그의 잡생각을 깨부셨다. 그는 잠시 나마 한눈을 판 자신을 질책하며 재빨리 하녀의 종적을 살폈 다. 꽤 낡아 보이는 대장간 앞에서 하녀는 의기양양한 모습으 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 있었다. "앞으로 단골을 만드는 거야!" 그것 만으로 부족했는 지 남들이 보건 말건 주먹까지 불끈 쥐어보이며 하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르크는 작게 흘러 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이거... 사전 조사한다고 따라왔던 게 부끄러워 질 정도군.' 겨우 이 정도의 상대에게 몇일씩 투자한다는 건 그의 자존 심 문제였다. 받은 돈이야 넉넉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청부업자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하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하르크는 조심스레 대장간 근처의 과일가계로 들어섰다. 탐스 러운 색색의 과일들이 자태를 뽐냈다. 이것 저것 향기를 맡아 보며, 마치 신중하게 과일을 고르는 냥 분위기를 잡아 주인의 수다를 막아내며 그는 하녀를 기다렸다. 뭔가 고칠 물건이라도 있었는지 하녀는 좀처럼 나오지 않 았다. 하르크는 과일가계를 나와 다른 가계들을 전전했다. 그 렇기를 무려 두 시간 정도 했을까? "감사합니다! 자주 올께요!" "............오지마!" 신이 난 하녀의 목소리와 돈이라도 많이 깎았는지 뾰루퉁 한 대장간지기 아저씨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하녀가 모습을 들어냈다. 하녀는 처음 대장간에 들어갔던 그 모습 그대로 가방을 들 고는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다지 두리번 거리는 모습도 없이 일직선으로 후작가로 향했다. 붉으스름했던 노을은 이미 다 사라지고 마족의 눈동자 같은 짙은 보랏빛 하늘이 세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하르크는 실소를 삼켰다. 노을이 사라진 보랏빛을 마족의 상징이라 부르며 두려워 하는 건 아주 산골 깊숙히 있는 시골마을에서나 있는 이야기 였다. 어둑어둑해지면 언제 들짐승이나 마물의 습격을 받을 지 모르는 그런 작고 깊은 산골의 마을. 그는 그의 목표가 순진하 고 어리석은 시골처녀라 확신했다. ***** ㅡㅡ;;;; 샤... 샤샤샤샤샥! 겨, 격려의 멜을....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03 Mon 16:46:20 IP : 211.215.244.33 카무이 너무 연재속도가 느려요 ㅡㅜ;; 건필하세요 ^^ (06/03,17:37) 아이비 히죽. 건필하세요^^ (06/03,17:48) 은빛 허헉... 제가 늦추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요...ㅠㅠ 능력이 딸려서... 쿨럭! (06/03,17:48) 미스티 건필하세여^^ 님의 광팬&유령독자인데ㅡㅡ;; 열심히~!!! 하세여^^ (06/03,17:59) 미스티 건필하세여^^ 님의 광팬&유령독자인데ㅡㅡ;; 열심히~!!! 하세여^^ (06/03,17:59)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0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4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은빛 2002/06/03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흠... 역시 내가 목표였군. 누가 보냈을까?' 남작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니니 누군가를 고용해 보냈을 리 가 없었다. 남은 건 그의 두 누이들. 그 날 꽤 쓸만했던 기사 를 보냈었던 백작가의 부인과, 은근슬쩍 넘어가기는 했지만 후 작가로 당당히 편지를 보냈었던 공작가의 사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지.' 귀족들이 잘 쓰는 방법이었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눈에 거슬리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대장간 주인을 괴롭혀가며 시간을 끌기도 했고, 촌 뜨기모냥 여기저기 구경하며 길을 헤매기도 했다. 착각이었다 면 벌써 어디론가 제 갈길로 갔어야 할 기척이 아직까지도 내 뒤통수에 달랑 달랑 매달려있었다. '상당히 잘 감추기는 했지만 이 서대륙 출신 특유의 살수의 향기가 폴폴 풍겨.' 동대륙의 침착하게 가라앉은 진득한 죽음의 향기가 아닌, 뭐랄까... 일종의 돈냄새랄까? 그런 향기가 이 서대륙의 암살자 들에게서는 풍겼다. 내 주관적인 관점일 뿐이기는 하지만. 난 일부러 인적이 조금 드문 지름길로 들어섰다. 보랏빛으 로 물든 하늘로 시선을 한번 돌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 다. 뒤통수에 매달린 껌딱지 같은 작자에게서 방심하는 기척이 확 흘러나왔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가벼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 곳에 온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벌써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건 씁쓸한 일이었다. 내 어린 주인의 겁에 질린 눈동자와 파르르 떨리는 스테판 의 어깨가 눈앞에 스치듯 떠올랐다. 그리고... 집사씩이나 되면 서 하녀 앞에서 가슴을 펴지 못하는 헤리슨과, 어딘가 조심스 러워 보이는 백작... 내 앞을 스쳐지나가지도 못하는 하녀들. '결국은 내 운명일지도....'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외로움으로 날 얽어맨다. 사람들과 의 인연을 끊고 무도를 핑계삼아 산 속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굳이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갔던 이유. '두려움의 대상이 될 바에는... 미움받을 바에는 차라리 혼자 가 났었지.' 아무도 없다면, 날 미워할 존재도 없을 테니까. '아직 어리구먼...' 문득 노도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갔다. 정상적인 어린시절 을 겪어 보지 못했기에 내게는 그 때 배웠어야 할 무언가가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그 시절 노도에게는 그를 아껴주는 스 승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나이 때에... 내게는... 아무도 없었다. 날 무시하고 귀찮게만 여기는 사문의 어려운 어른들만 이 있었을 뿐. 날 혹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내 존재 그 자체를 수치스러워 하는 동문들과 후학들이 있었을 뿐. 어쩌면 그 날 밤, 다시 내 제자로 들어왔을 수도 있었던 스 테판을 처음의 조건을 들어 냉정하게 거절한 건 내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제자에게마저 미움받는 다면... 난 견뎌낼 수 없을테니까. '잡생각이야.' 머리를 털었다. 괴로워한다고 해서 내 시간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난 현재의 내 자신에 만족한다. 그래야 한다. 살며시 주먹을 쥐어봤다. 기가 집중되며 은은한 흰 빛이 흘 러나왔다. 주먹을 둘러싸고 엷은 강기의 막이 생겨났다. '내겐... '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심마(心魔)일 뿐이라 생각했다. 이제 와서 내 약한 점을 부여잡고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비록 그게 괴롭고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내 뒤를 따라오던 암살자가 마음을 굳혔는지 살기가 조금 진해졌다. 그에 반응하며 축 늘어져 있던 근육 줄기 줄기에 다 시 힘이 들어갔다. '이게 '나'일지도 모르지.' 알 수 없는 희열이 나 자신을 감싸안았다. -휙!- 작은 파공음과 함께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뒷목으로 날아 왔다. 난 자연스레 손을 뒤로 뻣었다. 날카로운 날을 지닌 짧 은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빨려 들어오듯 잡혔다. 잘 제련되 지 않아 싸구려 티가 흘렀지만 날이 잘 선 단도였다. 이지러진 날에 보랏빛 하늘과 달이 비쳤다. "커헉!" 귀신이라도 본 듯한 경악성이... 내 등뒤 두 걸음 뒤에 선 그에게서 튀어나왔다. 난 서서히 몸을 돌렸다. "너냐?" 두 개의 회색 눈동자만을 내 놓은 채 복면으로 얼굴을 빼 곡이 가린 그가 서 있었다. 좀 전부터 길바닥에 눌러 붙은 껌 딱지처럼 내 뒤통수에 달라붙어 있던 놈. ".........................." 그는 경악으로 벌어진 눈동자를 수습하고는 옆구리에서 검 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한 발짜국 앞으로 딛었다. "무게중심이 뒤로 가 있군. 공격하는 척 하면서 달아나려 고?" "크." 짧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보다 조금 더 긴 갈등이 그의 눈동자에 드러났다가 금새 사라졌다. 난 그가 내 뒷목을 향해 던졌던 단검을 살짝 던졌다 받았 다. 달아난다면 언제든 그 뒤통수로 던져줄 것만 같은 살기를 살짝 흘리면서.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달아나기 쉽지 않다 면 다음을 기약하기 보다 지금 승부를 내는 편이 나을 테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눈가에는 아직도 날 경시하는 빛이 남아있었다. "...................." "훗." 실소가 흘러나왔다. 칼끝에 발을 딛는 도산검림의 삶이 내 삶일 수밖에 없다면... "거부해 봤자 소용없겠지." 어차피 난 무신이니까. "헛소리." 스믈스믈 풍겨 나오는 살기에 눌려 움직이지도 못하던 그 가 기합을 넣어 외쳤다. 겨우 하녀 하나의 살기에 눌려 어쩌지 도 못하고 있던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 그의 눈이 투기에 휩쓸려있었다. "청부생활을 너무 오래 했나보군. 타성에 젖었어." "......................무슨!" 그의 검극이 파르르 떨었다. 난 찔러 들어오는 그의 검극을 살며시 돌려 피하며 단검을 꼬나줬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감 정이 스며 들어왔다. 단검이 파르라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가에 경악이 깃들었다. "몸으로 가르쳐주지." 재빠르게 균형을 정비하고는 다시금 내 허리춤을 베어오는 놈의 검날을 반으로 쪼개며 난 빙긋이 미소지었다. "이, 이럴 수가!" 놈의 시선이 온통 내 단검으로 쏠렸다. 어느 새 자라나 그 의 장검만큼이나 길어진 흰 빛이 검날의 형상을 이루고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놈의 눈에 절망이 떠올랐다. "일단 푹 숴라." 난 반쯤 얼이 빠져나간 그의 뒤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 곤 간단한 일격으로 그의 의식을 잠재웠다. "이건.... 사기... 야." 혼몽 중에 빠져드는 그의 입에서 구멍난 풍선소리 같은 신 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이제 좀 한적한 곳으로 가서 마무리를 해야지?" 멀찍이서부터 성실하기 짝이 없는 후작가 경비병들의 규칙 적인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난 새까만 옷의 그를 한쪽 어 깨에 들러매고 가볍게 몸을 날렸다. 내 머릿속 한 구석에 언젠 가 보아두었던 한적한 공터가 이미지를 잡고 있었다. '틈틈히 검술 연습이나 하려고 보아두었던 곳인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희미한 미소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입가에 떠올라 있었다. ****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젖은 사람은 란 한사람이 아니었다. 스테판은 읽고 있던 책을 접고는 책상에 머리를 파묻었다. 창 밖의 검은 하늘이 마치 무감각해 보이는 란의 눈동자인 듯 보여 두렵기까지 했다. 스테판은 길고도 깊은 한숨을 내쉈 다. 그 날... 그가 그녀의 제자 자리를 거절하고 그녀의 실력을 알게된 날, 그는 그가 생각해도 얄팍한 행동을 했다. '다시 제자로 받아들여 주실 수 없으십니까?' 한 눈에 봐도 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던 기사를 마치 어 린아이모냥 다루며 일검에 꺽던 그녀의 모습에 스테판의 마음 은 한 순간에 쏠려갔다. 그랬기에 면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 고서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봤자 난 하녀일 뿐이다. 네가 원하는 건 줄 수 없어.' 란은 차가운 눈으로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스테판은 가슴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원하는 것...." 단지 강함만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강한 힘. 누구에게도 비 굴해지지 않을 수 있는 힘, 어느새인가 그의 마음을 차지해 버 린 어린 주인의 곁에 남을 수 있는 힘.... 하지만 그 이면에 들 어있는 건.... 양지에 대한 바람이었다. 그림자처럼 아무런 티도 나지 않게 어린 주인을 돕는 것이 아닌... '나라는 존재도 이 자리에 있다.'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 매맞는 소년이 아닌 당당 한 기사가 되고 싶은 욕구. 그건 단순히 강한 검술만으로 이루 어지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마스터의 경지까지 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난... 잘못한 걸까? 그래서... 란님이... 내게 실망한 걸까?" 실망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눈빛을 스테판은 란에게서 느꼈다. 그 다음 날... 새 가정교사가 들어온 수업시간에 그녀가 보 였던 그 강한 살기와 분노는 분명 스테판을 향한 것이었으리 라... 그는 생각했다. "잘못을... 빌어야 하는데..." 사과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로 인해 란이 상처 입었다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 차가운 눈빛과 살기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요 몇일간 많은 생각들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사람 들이 알아주는 것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자신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해서 남들 보다 잘나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알고 싶었다. 세상을 알고 싶었고 책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자신을 살펴주는 어린... 그보다 몇 살이나 어린 도련님을 지키 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는데... 단 하루 도련님과 함께 공부를 배우고 나서 마음이 변해버렸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 음이 생겨났다. 남들처럼 떳떳하게 갑옷을 입고, 기사가 되어 충성스러운 의식 앞에서 당당하게 검을... "들고 싶었어." 스테판의 눈가에 이슬이 고였다. 문득 상처 입은 듯 고개를 돌리던 란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제자 되기를 거절했을 때 그녀의 얼굴에 잠시 스치고 지나갔던 씁쓸함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단지 그가 하고픈 말에만 신경이 쓰여 상처 입었을 지도 모르는 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지 못했 다. 그도 아직 어린 아이일 뿐이었으니까. "깨있나?" 무뚝뚝한 앳된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스테판은 급 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떻게!" 그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스테판은 허둥지둥 문 쪽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이 시간에 그의 방에 절 대 찾아올 리 없는 사람이 어색한 포즈로 서 있었다. "...흠... 작은 방이군." 시선을 엇갈리게 두며 어린 주인... 클레이브가 입을 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 **** "크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간신히 잠들던 사람들의 신경을 사납게 두드리며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밤 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사람들이 하나 둘 깨어나 주위를 살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은 굳게 닫힌 창문을 한번 더 확인하고는 등불을 켰 다. 그리고 이불로 두껍게 몸을 감싸고 귀를 틀어막았다. 몇일 전 들려왔었던 그 유령소리 같은 비명 소리가 다시금 들려오 고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이런, 이런..." 노도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저택 뒷산 한켠으로부터 날카 롭게 갈린 살기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라는 뜻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없을, 그 정도 되는 능력이 있는 자라야만 느낄 수 있을만한 살기. 노도는 그 기운의 주인이 누 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말썽꾸러기로군." 그는 벗어두었던 옷을 주섬주섬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낮 무렵 찾아와서 은근히 눈치만을 살피다가 조용히 등돌린 란의 씁쓸한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무신의 숙명일지도 모르지.' 가벼운 탄식이 그의 입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 '이건 사기야!' 그 말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도저히 하녀라고는 보이 지 않는 마녀는 그에게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그저 화 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를 두들겨 팰 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는 있는 힘껏 소리질렀다. 그의 목소리가 무언가의 막에 쌓인 듯 은은하게 울려 퍼져나갔다. 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 괴물 같은 하녀는 그를 묶어놓거나 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를 이 곳으로 그를 데려온 하녀는 그가 정신이 들 때까지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고 기 다렸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온 그가 몸이 자유로움을 느끼고 달아나려 하기 시작하자마자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역시 의식이 없는 놈보다는 이쪽이 더 손맛이 있어." 몇시간이 흘렀는지, 온 몸의 뼈가 바스러졌는지 아닌지 감 각도 없을 정도로 두드려 팬 다음 처음으로 하녀가 내뱉은 말 이었다. "크, 크허허헉!" 그는, 하르크는 더 극심한 공포감에 휩쌓였다. 손맛이라니! 손맛이라니! 지금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이렇게 고문하는 이유가 배후를 캐려는 것도 아닌 단순한 손맛 때문이란 말인 가? 그의 신음성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던 하녀가 한 걸음 그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하르크는 본능적으로 땅을 밀치 고 뒤로 물러나려고 시도했다. 힘이 빠져나갈 대로 빠졌다고 생각했던 팔다리에서 새로운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는 반보 가 까이 땅을 기어나갈 수 있었다. "어쭈구리? 아직 맞을 힘이 남았어?" "크흐흐흐흑!" 새초롬히 뜬 눈가에서 빛이 발해졌다. 하르크는 무언가 따 듯한 것이 가랑이 사이에서 흘러감을 느꼈다. 쥐똥만큼 남은 자존심으로 간신히 잡고 있던 오금이... 풀려나 버렸다. 하녀의 눈빛이 또 한번 변했다. 그녀가 그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르크의 눈가에 살며시 안도감이 드러났다. "너무 좋아하지 마. 전에도 너 같은 놈이 하나 있었거든." 하녀가 살폿이 웃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 던 그의 검을 뽑아 검을 내동댕이쳤다. "나뭇가지보다야 이게 훨씬 튼튼하지." 얇게 철로 둘러싼 튼튼한 검집을 한 손으로 쥐고 다른 한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하녀가 야릇히 미소지었다. ".....................꾸르르르르륵" 하르크의 눈동자가 뒤집어졌다. 그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 았다. 그리고 그가 의식을 되찾은 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 는 지 감도 잡지 못할 정도의 순간이 흘러간 뒤였다. "너무 좋아하지 마. 십분도 안지났으니까." "쿨럭!" 정신이 들었다 싶자마자 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살피는 그의 귓가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그러지 말게나... 쯪, 쯔. 이 자도 자네처럼 운명에 휩 쓸린 중생일 뿐이 아니겠나." 늙으수레한 목소리가 그를 구원하듯 들려왔다. 하르크는 눈 동자를 굴렸다. 정원사 특유의 복장에 흰 머리카락을 지닌 꽤 나 나이 먹어 보이는 늙은이 하나가 하녀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 "운명? 맞기는 맞지. 내게 죽도록 쥐어터질 운명." "허허허허.... " 공포에 젖어 정신 없이 흔들리는 하르크의 얼굴을 본 늙은 정원사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그의 앞에 선 란은 어딘가가 달 랐다. 오랜 세월동안 보아왔던 그녀가 아니라 마치 폭풍우에 흔들리는 가랑잎 같은 분위기가 그녀에게서 풍겨 나왔다. 하르크는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억눌려져 사라졌다 고 생각했던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에 대한 공포, 아니 죽음을 넘어서는, 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부채질했다. 말해야 한다. 말해야 한다. 지난 십 수년간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던 그의 철칙이 마구 깨어져나가고 있었다. "커... 버버버버...." 침이 흘러내렸다. 깨져버린 턱 때문에 소리조차 제대로 나 오지 않았다. 뭔가를 말하려 애쓸 때마다 기절할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러나 그는 고통보다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는 하녀 복장의 마녀가 더 두려웠다.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네." 하르크의 눈이 치떠졌다. 늙은 정원사가 얼핏 인자해 보이 는, 그러나 하르크에게는 더없이 잔인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억! 어버버버버버! 버버버버버버!" 하르크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와이번 편이라고 했던가! 결국은 한 통속일지도 모른다. 아니 한 통속 임이 분명했다. 저 란이라는 하녀와 그의 기억 속에 노도라는 이름을 지닌 정원사는 분명 일행이었다. "커버버버버버! 커커커커컥!" 하르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늙은 정원사의 표정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하르크는 깊은 절망감이 하르크의 심장을 옭죄었다. 그 때였다. -빠악!- 조금 붉어진다 싶은 늙은 정원사의 얼굴이 앞을 스치며 거 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하르크는 자신의 뒤통수가 깨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는 다시 의식을 잃어버렸다. '역시... 한 통속이었어.' ***** ㅡㅡ;;;;;; 그, 그럼... 오늘은,.. 이만!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03 Mon 20:07:13 IP : 211.215.244.33 달기 카카카~한통속이양~ (06/03,21:48) unica 너무 재미있어요. 열심히! 창세신의 파업도 읽으면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정말이지 통쾌해 졌지요, 팍시의 팬입니다. 하녀님 멋지네요! ^^; 불쌍한 어린주인;;;ㅠ.ㅠ.. (06/04,22:16) 라지 한통속...(머엉) (06/05,16:06)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5-화해. ▽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8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1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4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15-화해. 은빛 2002/06/05 [[The Perfect maid]]-15-화해. 차갑게 스치는 겨울밤의 공기에도 벌겋게 달아오른 노도의 얼굴은 식을 줄 몰랐다. "험, 험험험...." 연신 어색한 헛기침을 터트리며 노도는 교묘하게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험... 나도 옮았나 보네..." 그리고서는 기껏 한다는 변명이 저거였다. "험, 험... 그게 아니라... 험, 험...턱뼈가 어긋난 상태에서 지나치게 무리하면 안 좋지 않은가!"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몇 마디 더 덧붙이고는 날카로워진 내 눈초리를 의식했는 지 노도는 몇 번 더 주춤거리며 헛기침 을 내뱉고, "미안허이. 나도 수양이 부족했나 보네." 하고는 결국 말을 맺었다. 난 아무 말 없이 어깨에 매고 있 던 암살자를 한번 더 추슬러 안았다. 우린 노도의 방으로 가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난 하녀다 보니 아무리 쓸모짝 없는 암살 자라지만 내 방에 두기에 어색했다. 뭐, 한 짓이 있는지라 노 도 역시 그의 방에 놓아두자는 내 의견을 거절하지 못했다. 노도는 연신 한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오른 손을 바라보고 는 하늘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설마하니 그도 자신의 손으로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갈겨 기절까지 시킬 줄은 몰랐겠지. 하긴, 누가 봐도 인자하기 그지없는 노도의 얼굴을 보며 이 암살자가 파랗게 질릴 때까지만 해도 난 이런 일이 벌어질 거 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으니까. 그도 인간이기는 인간이 었나 보다. "험, 험... 암살같이 험한 일을 하다니... 필히 갱생시켜야 겠 구먼. 그게 구도자의 도리가 아닌가." 역시나 익숙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반감이 남았는지 노도 는 연신 조그마한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그럼 이 놈은 노도가 계속 맡을 건가?" "으, 음?"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난 노도를 지긋이 노려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노도가 책임지고 갱생시킬거냐구." "뭐, 뭐라고?" 아직 제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는 지 노도는 연신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려댔다. 보아하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남을 때려서 기절시킨 적도 없는 듯 보인다. 무신의 영혼을 타 고난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을 테니까. "뭐, 처음부터 그에게서 뭔가 듣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단 지..." 난 내 어깨 위에서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는 듯 숨소리가 변해가는 암살자에게 슬그머니 시선을 한번 던져주고는 말을 이었다. "심란하던 차에 마음놓고 두드려 패 줄 수 있는 놈이 하나 생겨서 반가웠을 뿐이야." -움찔- 확실하게 의식이 돌아왔는지 놈의 몸이 심하게 한번 들썩 였다. 난 모른 척 시선을 노도에게로 향했다. "암살자들이 자신의 청부인에 대한 신용을 철저히 지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걸 핑계삼아 죽을 때까지 때려줄 생각 이었지." 어깨로부터 잔 진동이 느껴졌다. 놈의 몸이 사시나무모냥 떨려왔다. "새삼스럽게 살인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암살자 답게 자살 이라도 해 주면 편하고 말이야." 또 한번의 진동이 어깨로부터 느껴졌다. 놈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게 어지간히 긴장한 게 아닌 듯 싶다. 뭐,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으니, 궁금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나도 확 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이 놈이 죽기 싫은 마음에 술 술 불어 준다면야 나도 환영이니까. 내 입가에 떠오른 의미심장함을 느꼈는지 노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경우에 따라 인간에게는 육체 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 주요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쓰는 방법도 그런 종류이고. "그런데 이 놈은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지 자살도 안해준 단 말이야. 이렇게 되면 조금 더 가지고 놀다가 직접 손을 써 야... 싶은데..." "허허허허...." 노도가 질린 표정으로 설래설래 고개를 저어댔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손속에 스스로 실망하며 자책하는 투가 남아있었건만... 내 독함에 눌렸기 때문일까? 그는 다시 수도자 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뭐, 노도가 책임진다면..." 거의 다 다다른 노도의 방문 손잡이를 다른 한 손으로 잡 아 밀며 노도에게 시선을 박았다. "내가 가르쳐 줄 만한 건... 정원사일 정도 밖에 없을 텐데." 노도의 눈길이 암살자놈에게로 향했다. 난 그를 노도의 침 대 옆 땅바닥에 패대기치며 눈꼬리를 상큼 끌어올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커버버버버버!" 모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냥 하는 우리의 시선에 암살 자는 바짝 얼어 아픈 티조차 내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 을 외쳐댔다. "죽지도 못할래?" "커버러러버러러러" 그가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두 팔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부정의 표시. "얌전히 정원사가 될래?" 목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암살범을 보며 난 싱긋이 미소지어줬다. 그의 세 번째 기절을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 "잘 한 일일까?" 노도에게 그 암살자를 떼 넘기듯 맡기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의 입맛은 쓰디 썼다. 양손을 쥐었다가 펴 봤다. 좀 전까지 그 자를 두드려패던 감촉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피부가 찢기고 관절이 어 긋나던 감각... 부러트리지는 않았지만... "후........." 이로서 날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 자가 어떤 목적으로 먼저 찾아왔던지 간에... 그 정도로 협 박하고 늘씬하게 패줬으니 무서워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 겠지. "어라?" 내 방 바로 앞쪽의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있을 리 없는 일이 벌어진 그런 느낌. "...내가 방에 불을 켜 놓고 갔었었나?" 아니었다. 분명 내가 저택을 나선 건 해가 채 지기 전이었 다. 몇 번의 환골탈태로 내 시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 큼 강해졌다. 남들 보기에 어색하지 않도록 검은 밤이 올 무렵 등불을 켜기는 했지만... "초저녁에 불을 켜 본적은 단 한번도 없지." 두 사람 정도의 숨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왔다. 주인 없는 방 에 들어와 있다면 분명 좋은 의도는 아니니라. 그러나... "번 듯이 들어와서 불을 켜 놓고 이시간까지 있을 정도라면 꿀리는 사람도 아니겠군." 분명 나를 만나기 위해 온 사람이리라 싶었다. 게다가... 미 약하게 들리는 두 개의 숨결은 마치 어린아이의 것 인냥 짧고 얕았다. "이런." 이 저택에서 나를 찾아올만한 어린아이란 단 둘밖에 없었 다. 어린 주인과 스테판. 난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스테판이라면 어려울 게 없었지만 이 시간까지 어린 주인이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방에 남아있다고 한다 면... "곤란한데." 여러 가지로 골치 아팠다. **** 은청색의 빛이 달빛을 가르며 스쳐지나갔다. 투명한 땀방울 이 겨울밤의 냉기를 뚫고 흩어졌다. 하얀 입김을 연신 내뿜으 며 검을 휘두르던 기사 복장의 청년이 동작을 멈췄다. "늦었습니다." 뒤쪽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던 사람이 조금 멀찍이서 걸음 을 멈췄다. 조금은 책망하는 눈빛으로 그는 방금 전까지 검을 휘두르던 청년에게 다시 말을 던졌다. "지나치게 무리한 연습은 몸을 상하게 합니다." 청년이 조금은 미련이 남은듯한 동작으로 검을 허리춤에 밀어넣었다. 스르릉 매끄러운 소리와 함께 검날이 두터운 검집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도련님은 앞으로 더 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그럴까요?" 슬픈 미소를 떠올리며 청년은 갈구하는 듯한 눈빛을 던졌 다. 그를 데리러 온 남자가 뚜렷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도 저보다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달밤이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청년이 허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그의 말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날 그들이 남 작의 집에서 만났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는 너무나 강했기에. 사실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 침입자의 나이가 그보다 훨씬 더 많기를... 동시에... 그렇지 않기를. 청년은 몸을 돌렸다. 그가 밤마다 나와 검무를 추기 시작한 지 열흘째였다. 모두들 무리하지 말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무능하군요. 몰락 귀족이란...-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녀의 오라비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백작가의 작은 안주인이 유달리 그 들에게 냉정해진 것은. 그 전에도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작위의 백작가 출신인 그를 홀대하지는 못했었다. 아무리 몰락 해 가는 집안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몰락해가는 집안의, 실력조차 없어 재생 가능성 없 어보이는 기사를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강해져야 한다.' 가문의 이름을 다시 떨치기 위해 그는 자존심을 접고 강력 한 세력을 떨쳐가고 있는 가르암 백작가로 들어왔다. 누군가의 후원이 없이 가문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가 마스터의 실력이라도 갖추지 않는 이상 말이다. 말이 마스터지 마스터급의 힘을 지닌 자는 극히 드물었다. 서대륙을 탈탈 털어 밝혀진 사람만 열명이 채 안됐다. 세상에 드러나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 두배는 넘지 않았다. 그 정도의 경지까지 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 력이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재능과 행운이 뒤따라주어야 할 까? 청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백작가에서 자신 의 위치를 굳히기는 글렀다. 백작부인의 눈 밖으로 난 것만이 아니라, 임무를 실패함으로서 그의 실력을 입증시키는 일도 상 당히 어그러졌다. 기회란 두 번 주어지지 않으니까. 게다가 가 르암 백작가처럼 몰락귀족들이 몰려들어 각자의 재주를 뽐낼 날만을 기다리는 곳에서는 말이다. -연습 때 아무리 잘해도 실전에서 쓰지 못한다면야...- 혀를 끌끌 차대던 백작의 모습이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있 었다. 매일 밤 청년에게 스스로를 조이도록 만든 건 그의 앞에 조금이나마 열려있던 문이 삽시간에 닫힌 것 같은 절망감 때 문일런지도 모른다. "헤른." "네. 도련님." 그의 앞길을 밝히던 남자가 공손히 대답했다. 청년의 목소 리가 조금 떨렸다. "이 곳에 남아 있어야 할까?" "................도련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만..." "어디든 쉽지는 않으리라는 말이겠지?" "네." 헤른이라 불린 남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몰락귀족이 환영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왕가의 가까운 혈 통이라도 섞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하지만... 도련님께서 원하신다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청년의 기색을 잠시 살피던 헤 른은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이 백작가 보다는 좋은 곳을 찾을 수 있으실 겁니다." 하얀 입김이 연거퍼 뿜어져 나왔다.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망토를 몸에 둘렀다. 땀이 식어가면서 한기가 몸을 엄습해왔 다. 가볍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청년은 걸음을 멈췄다. "예를 들자면?" 생각해 둔 바라도 있었는지 헤른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청년의 말을 받았다. "페르로이 후작가가 있겠죠." "후작가의?" 청년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 도르릉, 작게 코까지 골아대며 내 침대에 퍼져 서로 끌어안 고 잠든 두 소년은 깨어있을 때의 그 어른스러움을 모조리 날 려버린 채 어린아이 특유의 귀여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런, 이런... 이 야심한 밤에 처녀의 방을 급습하시다니."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입을 반쯤 벌린 채 긴 속눈썹을 꼬 옥 닫은 모습들이라니! "우웅..." 좁은 침대에 둘이 엉켜 자자니 조금은 불편했는지 내 어린 주인의 입가에서 작은 잠꼬대 같은 신음소리가 점점이 흘러나 왔다. 난 잠시 망설이다가 그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자세들을 고치고, 두꺼운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줬다. 아이들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데려다 줘야 하나...." 그러기에는 당장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아쉬웠다. 어 쩌면 두고두고 놀려먹을 수 있는 약점일 지도 모르는데. 아무 리 몸은 아이라지만, 눈만 떴다 하면 중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조숙함을 발휘하는 애늙은이 들이었으니까. "죄송해요...." 잠꼬대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슬픈 꿈이라도 꾸는 지 어 느새 스테판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잘못...." 스테판의 꼭 감긴 눈가로 이슬이 맺혔다. 조금은 당황스러 운 마음으로 난 스테판의 등을 살며시 두드렸다. 그리곤 그의 주위로 조금은 혼란스러워진 기의 흐름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기의 흐름이 꿈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우연히 알게 된 일이었다. "우웅...." 스테판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 앉아갔다. '어릴 적의 꿈이라도 꾸는 걸까?... 이런....' 가슴 한 구석이 철렁 흔들렸다. 내가 나약해진 걸까? 왜 이 렇게까지 모든 일에 '감정'적이 되어 가는 걸까? 오늘에서야 알았다. 난 스테판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는 바 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한 때 제자로 삼겠다며 눈독까지 들이 던 아이에 대해 난 아는 바가 없었다. 문득 내 자신의 무심함이 느껴졌다. 난 내 어린 주인의 과 거에 대해서도, 어미를 잃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었는지에 대해 서도, 왜 이렇게까지 애늙은이 같은 태도로 자신을 무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날 이런 상황으로 밀어 넣은 아르페이나와 다른 두 신에게 조금의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을 뿐이었다. 내가 이미 만나버린 이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단 지...'이용하려고만'했다. 날 속인 그 세 신들처럼 말이다. "오늘은 쓸데없는 잡념이 너무 많이 들어." 난 머리를 힘껏 털었다. 잡념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삼백여년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 들이 한꺼번에 다가온다는 건 내게도 조금은 버거운 일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폈던 존재는 내 스승님 단 한분 뿐이었었으니까. 이렇게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 이 껑충 늘어나는 건...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야 한다는 것을 한꺼번에 깨닫는 건 역시 부담스러웠다. "우응....." 스테판이 몸을 뒤척였다. 어느새 또다시 기가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한 두 번 꾸는 악몽으로는 이 정도까지 혼탁함이 익숙 해지지 않는다. 적어도 몇 일은 계속 이어질 때야 이 정도까지 혼란스러워진다. 난 문득 어린 소년이 염려스러워졌다. 마른 듯 했던 소년의 눈가에 다시금 이슬이 맺혔다. "..... 요." 신음소리처럼 흘러나온 소리였지만 난 그가 누군가에게 잘 못을 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가슴에 얼마만큼을 담고 사는 걸까. 이 어린 소년은... "괜찮아. 스테판. 너처럼 어린 소년을 용서하지 못할 만한 일은 거의 없단다." '게다가 너처럼 순수하게 고지식한 소년을 말이지....' 뒷말을 삼키며 쓴웃음을 지어봤다. 몇 일 전의 그 일이 되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날 피했지...' 그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에게 화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굳이 풀어주고 싶지도 않은 게 사실이었다. 어찌되었 건 그는 하루만에 스승인 날 배신했으니까. 이 곳이 동대륙이 었다면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 아무리 이 곳의 풍속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요 몇 일 날 피하며 두려움을 보였던 스테판의 표 정을 떠올리니... 역시 가슴이 무거워진다. 내가 먼저 말을 걸 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녀 주제에 무가의 스승 같은 대접 을 바랬다니... 겨우 일개 하녀일 뿐인 주제에... 스테판은 몸을 뒤집었다. 옆에 어린 주인이 있어 자리가 비 좁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소년인지라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난 다시금 흘러내린 이불을 덮어주며 소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죄소...... 란... 님." 먼저 번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작은 소리였지만 비할 수 없이 날카롭게 내 귓가에 박혀왔다. 순간 난 굳어갔다. 가슴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아직 어린아이들에 불과한 스테판에게 내가 무엇을 바랬던 걸까? 제자를 바랬던 바람과, 소년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두려 움에 휘청이는 사이 이 어린 소년이 상처받고 있었는데! 문득 아무런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있지만 무척이나 불편 한 표정으로 잠든 어린 주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에 박혀있던 비수 같은 얼음 조각이 순간 녹아 내렸다. 이 어린 주인은 분명 내가 걱정되어 찾아왔으리라. 날 두려 워하는 스테판 역시 그리 왔으리라. 늦은 밤, 방에서 나와 돌 아다니면 안된다는 것까지 어길 정도로... -어차피 미움받는데는 익숙하니까. 내겐 나만의 삶의 방식 이 있으니까. 무신의 삶이란 이런 거니까....- 수도 없이 내게 반복해 들려주던 내 목소리들이 산산이 부 서져나갔다. 어쩌면 난 보지 않고 있었을 뿐인 지도 모른다. 두려움이라는 포장에 쌓인 사람들의 진심을... 알고싶어하지 않 았을 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이 진실이라면 견뎌낼 수 없었을 테니까.... "괜찮아요. 스테판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난 두 소년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 며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함을 담아 작게 속삭였다. "제 잘못이예요. 진실에서 눈돌리고 분노하기만 하던 제 잘 못..." 소년들의 작은 심장소리가 두근 두근 노랫소리처럼 속삭여 왔다. 마치... 괜찮다고 하는 듯한, 자신들은 화나지 않았다고 하는 듯한, 단지 날 걱정했을 뿐이라고 하는 듯한... 착각이라도 좋았다. 난 지금 행복했으니까. 그 감각을 음미하며 난 두 소년을 살폿이 끌어안고 그 비 좁은 침대위로 몸을 눕혔다. 잠시 후면 깨어나서 두 소년을 각 자의 방으로 찾아다 주어야 하겠지만... 지금 잠시 만큼은 누군 가의 체온 속에서 있고 싶었다. 내 심장에 박혀있던 얼음을 부 수어 준 두 소년의 심장소리 속에서 말이다. 그 모든 것이 내 착각일 지라도... 그렇다 할지라도 말이다. '뭐... 그렇다 할 지라도 그 노출증 여신만은 넘어가고 싶지 않지만 말이야.' 시원했다. **** "헐헐... 자세가 되어있지 않아. 자세가." 말투가 부드럽건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르크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 렸다. '역시 한편이었어.' 보통의 사람이라면 지금 하르크 정도의 부상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않는다. 아침나절 운동삼아 밖으로 나왔던 한 소년이 경악성을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을 정도로 퉁퉁 부어 형상을 잃은 얼굴을 한 사람을 말이다. "어디 부러진데도 없지 않나. 게다가 금간데는 다 치료했으 니 엄살 필 생각일랑은 접게." 꽤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노도는 고개를 저었다. 하르크 는 살며시 한숨을 내쉈다. 보란 듯이 크게 숨을 내쉬다가 한 대 엊어 맞은데가 아직도 쑤셨다. "고통에 대한 인내란 자기 자신과의 좋은 승부라는 말도 있 네. 암살훈련까지 받은 자가 이리 엄살이 심해서야..." 억울해 눈물까지 고일만큼 아픈 곳을 찔러대며 노도가 슬 쩍 이죽였다. 하르크는 댓발 나오는 입술을 억지로 밀어넣었 다. '부러졌을 때도, 칼에 꽤뚤렸을 때도 이 정도로 아프지는 않 았단 말이다!' 비록 하르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전신 요혈이란 요혈은 다 두드려 맞은데다가 급소란 급소에는 생채기가 나있 었다. 몸을 움직일 수는 있으련만, 그 고통이란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집요함이 있었다. "................." 하르크는 노도가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삽을 꼬나줬다. '두고 보자. 이런 대접을 하는 것도 잠시일 거야!' 오늘 새벽 무렵 그를 몰래 찾아온 부하를 통해 몇 가지 전 달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부하는 탱 탱 부은 그의 모습에 경악을 표했지만, 안전하게 후작가에 잡 입하기 위한 연극이라는 말에 그냥저냥 이해하고 넘어갔다. 말 이 잠입이지 페르로이 후작가는 수많은 귀족가문 중에서도 유 달리 숨어 들어가기 어려운 곳 중 하나였다. 암살자에게 정보 는 생명. 유사시를 대비해 겸사겸사 정보수집을 하련다는 그의 말을 부하는 의심하지 않았다. 작기는 하지만 어엿한 한 청부회사의 주인이었다. 겨우 하 녀 하나에게 죽도록 얻어 터져서 이리 잡혀있다고는 누구도 진심으로 믿지 않으리라. "허허... 꽃삽은 그리 쥐면 안된다 하지 않았나. 꽃들은 모두 살아있네. 비록 지금은 죽은 듯 잠들어 있지만 말이네." 그가 하는 냥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노도가 허리를 피고는 하르크에게로 다가왔다. "쯪쯔. 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 살기를 뿜어내는 건 가. 아무래도 자넨..." 못마땅한 듯 반쯤은 실망한 듯한 눈빛을 보내는 노도의 모 습에 하르크는 순간 기대했다. '보내주려는 걸까? 어차피 재능도 없는데!' "그 살기가 풀릴 때까지 조금 더 독하게 몸을 움직여야겠구 먼." "커헉!" "쯪쯔. 아직 젊은이가 이리 게을러서야...." "하, 하지만 전 아직 몸이...!"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눈에 눈물이 고일 만큼 고통스러웠다. 노도가 은근히 집어드는 커다란 흙삽을 보 며 하르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급히 말을 꺼냈다. "허어... 타락한 양심을 갱생시키는게 그리 쉬운 일인 줄 아 나... 이거... 란에게 다시 신세를 져야 할지도..." "하, 하겠습니다! 할께요! 해요! 할 수 있어요!" 빙글 몸을 돌리며 내뱉는 늙은 정원사의 말에 하르크의 몸 이 번갯불처럼 튕겨져 올라왔다. 행여나 발걸음을 옮길새라 급 히 노도의 손에서 흙삽을 나꿔채며 하르크는 외쳤다. -제길. 암살자씩이나 되면서 왜 자살도 안하는 거야? 이거 암살자도 되지 못한 불량청부업자 아니야? 왜 이리 삶에 대한 미련이 질겨?- 어젯밤 그를 얹어매며 툴툴거리던 하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자결할 용기조차 나지 않을 만큼 교묘하게 때려 패 놓고서는 죽지 않는다고 툴툴거린 그녀의 목소리에... 하르 크는 진저리를 쳤다. 그는 묵묵히 삽을 땅에 박았다. 통증에 저도 모르는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처 음으로 그가 이토록 삶에 대한 집착이 큰 사람이었는가에 대 해 고민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노도의 시선을 피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하르크는 이를 악 물었다. ***** 쿠오오오오오! 이겼습니다! 그것도 압승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에게서 이렇게 황홀한 플레이를 볼 수 있을 줄이야! 감동의 도가니였답니다!!! 크흐흑! 참, 프리첼에 있는 제 카페 말인데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올리려고 하면, 오류발생이라는 경고판이 뜨면서 익스플로러 창이 닫히더군요. 계속해서 글을 못올리고 있습니다. 용서를!!! (심지어는 로그인도 안된다는... 쿨럭!)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05 Wed 00:17:42 IP : 211.215.58.69 달기 카카카카~여전 재밌는 란과 노도군요. (06/05,00:55) 무무아씨 수고 수고 수고 수고 수고 수고 수고 수고 수고 수고하셔요 재미있게 잘보고 있어용 (06/05,10:58)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6-회합 ▽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4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9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1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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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하. 그렇군요. 소문이란 본래 해질녁의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지기만 하는 게 아니외까." 가느다랗게 뜬 눈꼬리를 슬쩍 후작 쪽으로 기울이며 누군 가가 웃었다. '그림자란 본래 실체가 있어만 존재할 수 있는 게지.' 후작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언 듯 지으며 그 누군가 를 살폈다. 분위기로는 그를 비호해 주는 듯 해도 실상 그 내 용은 후작이 잘못하기는 했으니 이런 저런 소문이 나는 게 아 니냐며 비꼬고 있었다. '차스크 백작인가?' 힐끔힐끔 시선을 던지며 거만스레 몸을 뒤고 기대고 말을 맺은 그는 차스크 백작가의 현 주인이었다. 길게 기른 콧수염 을 멋들어지게 휘어 얼굴 가로 늘어트리고 그는 작게 헛기침 을 뱉었다. 페르로이 후작은 가벼운 한숨을 삼켰다. 본의 아니게 적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왕궁 중앙에 위치한 고급 귀족들을 위 한 휴게실에 여느 때처럼 발을 딛은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의 례히 입궁할 때마다 들리곤 하던 곳이었기에 아침나절부터 그 를 엄습하던 불길함에 연관시키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이 날 따라 그를 적대시하던 귀족들이 모조리 모 여있을 줄이야! 헤일런 공작, 가르안 백작, 차스크 백작까지! 위의 두 귀족이야 남작과 얽히는 바람에 최근 들어 사이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중이었지만 차스크백작과는 악연이 깊었다. 십여니르전, 그가 동대륙에서 건너온 한 여인에게 마음을 송두 리채 빼앗겼을 당시, 그의 인연 한 끄트머리를 잡고 있던 가문 의 여식이 바로 차스크 백작가의 딸이었다. 정략으로 가문을 기키는 건 귀족가의 오랜 관행이었다. 현 페르로이 후작인 미르암 드 페르로이 역시 그런 관행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정혼녀를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정혼 이라는 게 반드시 지켜지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고, 상대 가문의 흥망에 따라 얼마든지 어겨지고 또 바뀌어지는 부분이 기는 했지만, 페르로이 후작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혼녀였던 여인과 차스크가의 사람들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 때부터 등돌린 사 이였다. 그래도 그 동안은 여러 가지 이해관계도 얽매인 데다 가 페르로이 후작이 그 부인에게 보인 일편단심으로 못마땅해 도 이해해주는 분위기쪽으로 관용을 베풀던 참이었는데... 겨우 하녀 따위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아무리 후작가보다 힘이 미미하다고는 하지만 명백한 귀족가인 세 가문의 요청을 노골적으로 거절하다니! 이건 뼛속까지 자만심으로 똘돌 뭉친 귀족들인 그들에게는 정말 참을 수 없는 행위였다. "호오... 하녀치고는 참 아름답다지요?" "동대륙의 미인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던데..." "크흠!" 내버려두면 어디까지 흘러갈 지 모르는 그들의 대화를 끊 기위해 후작은 조금 굳어진 표정으로 헛기침을 내뱉었다. '제길. 늦었군.' 하지만 어느새 휴게실 안에 있던 모든 귀족들의 호기심이 이 쪽으로 향해버린 뒤였다. 세 귀족들의 손발 맞는 이죽거림 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적대감이 후작을 고립시켜갔 다. 그렇지 않아도 이래저래 적이 많은 후작이었다. 후작은 지 긋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고 싶을 만 큼의 분노와 모욕감이 그를 휩쓸었다. "하긴, 당당한 실력을 갖추신 분이, 우리처럼 이름만 남아가 는 귀족가를 상대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르겠군." "폐하의 총애란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닙니까." "뭐, 전쟁도 없는 마당에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습니 다만... 하하핫." 후작의 얼굴이 사늘하게 식어갔다. 장난삼아 모여들어 이야 기를 옅듣고 수근거리던 귀족들이 그 차가워진 공기를 느낄 만큼. 사람들이 순식간에 뒤쪽으로 빠졌다. 내심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담담한, 어딘가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떠올린 세 귀족이 몸을 조금 의자 앞쪽으로 기울였다. 끊어질 듯 팽팽히 당겨진 공기가 사람들의 숨통을 얽어맸다. '이거... 도가 지나친 건가?' '설마 왕궁에서 소란을 일으킬 리가 없지 않나?' 작은 눈짓들이 세 귀족사이를 오갔다. 후작은 끓어오르는 노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왕궁에서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반역죄까지 덮어쓸 수 있다. 음모에 통 달한 귀족들이라면 충분히 그리 하고도 남았다. 그 때였다. "여기가 언제부터 하녀들의 휴게실로 변한 건가?"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장중하게 울려 퍼졌다. 아주 작게 던 진듯한 목소리가 다른 이들의 귓가에 바로 옆에서 말한 듯 선 명히 들려 왔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신비스러울 정도 로 뚜렷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왕국에 단 한사 람뿐이었다. "베이르 대공저하!" 슬슬 가라앉던 공기가 삽시간에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사람 들의 시선에 불신과 경악이 어려갔다. "언제부터 귀족이라는 분들이 입 가벼운 하녀들모냥 저잣거 리의 소문 따위에 만취해 경중을 잊게 되었냐는 말이네." 당황하는 귀족들의 시선을 오연하게 넘기며 베이르 대공이 휴게실 안으로 들어섰다. "대공저하를 뵙습니다." 모함이나 소문을 싫어하는 대쪽같은 성미의 그를 아는 귀 족들이 분분이 흩어지며 얼굴을 가렸다. 후작을 짓씹던 세 귀 족이 하얗게 질리며 급히 몸을 일으켜 각자의 예를 취하고는 뒤쪽으로 물러섰다. 왕의 총애, 총애, 말들은 많지만 베이르 대 공은 진정한 왕국의 실세 중 하나였다. 왕국의 단 둘 뿐인 마스터급의 기사 중 하나이며 감히 최 강이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기사. 오로지 그의 이름만으로도 존경받는 자. 실제 백 십 여세가 넘었음에도 삼 십대 초반의 겉모습을 간직한 그는 육체의 늙음을 초월한 진 정한 강자였다. 갈 곳이 더 이상 없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검술 에만 매진하는 덕분에 왕궁에 거의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고 행여나 오더라도 사람들을 즐겨 만나지 않기에 휴게실 같은 곳은 거의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 그가 지금 방 한 가운데로 발걸음을 딛고 있었다. "또 자네로군. 이제 자잘한 소문 따위는 그만 퍼트릴 때도 되지 않았나?" 가벼운 탄식을 울리는 대공의 목소리에 후작의 입가에 쓴 미소가 떠올랐다. **** 난 반짝이는 검날을 닦는 일을 좋아했다. 아무리 그 검이 내 팔뚝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은 어린아이용 검이라 하더라도 날카로운 날이 빛을 반사시킬 때의 아름다움을 난 사랑했다. 요즘은 그 사랑스러움이 서서히 갑옷에게도 전염되고 있었다. 하녀 일이 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그 런 자잘한 것들이었다. "후, 후!" 세정제를 발라 깨끗이 닦아낸 어린아이용 갑주를 입김으로 다시 불어 고운 수건으로 빡빡 닦아내면 아름다운 광택이 맴 돈다. 거의 매일같이 어린 주인의 훈련에 쓰이는 지라 늘 더러 워져서 내 손에 돌아왔지만 그 나름대로 닦는 보람이 있었다. "열심히 하는군. 어린 주인의 뒤는 보지 않아도 되는가?" "수업시간까지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다더군." 평소와는 반대로 노도가 날 찾아왔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왠일이지? 늘 바쁜 정원사 어르신 이 이 곳까지 오다니?" 노도가 흰 치아를 들어내며 활짝 웃었다. "어제 자네가 붙여준 신참 정원사 덕분이지. 그가 나름대로 일을 잘 해주고 있다네." 여기저기 묻은 마른 흙을 털어내며 그는 빙긋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난 풀풀 날리는 마른 흙에 잠시 눈가를 찌푸렸다. 기껏 닦아놓은 갑옷에 먼지가 타는 건 기분 좋은 일 이 아니었다. 그런 내 눈치를 알아챘는지 노도는 멋적게 웃었 다. 그리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망가려는 시도는 안하고?" "잠잠하더군." "그 놈... 믿어도 될까?" "그럼. 오늘 아침 나절에 제 부하놈이 찾아왔을 때 그러더 군. 한 몇일 이 곳에 더 남아있겠다고. 뭐... 딴에는 정보수집을 한다고 하더구먼..." "정보수집?" "뭐, 하녀로만 알려져 있는 자네에게 엊어터져서 나갈 수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제 놈도 딴에는 머리 쓴 모양이 더군. 딴 꿍꿍이도 조금은 있는 것 같고." "노도의 눈을 피해서?" "난 정원사지 않나?" "하녀에게 죽도록 맞은 놈이...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군." 은근히 주먹을 쥐어 보이며 힐끔 시선을 던지는 내게 노도 가 빙긋 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단단히 묶어 놓으시게! 만에 하나라도 농땡이 핀 흔 적이 보일 시에는 자네에게 넘기겠다고 해 뒀으니까." ".....에." "후작가에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걸세." 죄책감을 훌훌 털고 한번 더 매타작을 벌여보려는 내 심보 를 읽었는지 노도는 입빠르게 대응했다. 순간 우그러트릴 뻔 한 갑옷을 간신히 지켜내며 난 조그맣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노도가 시원하게 웃어댔다. "그래, 어린 주인님과는 잘 화해했나?" "그렇지, 뭐. 그냥 저냥 예전처럼 돌아갔어." 피곤했던 김에 깊이 잠들어버린 탓인지 난 양팔에 미래의 남정네 후보들을 안고 다음날 아침까지 골아 떨어져 버렸다. 아침의 밝은 햇살 속에 보이던 두 어린아이들의 쑥스러움 가 득한 표정들이란...! "쯪쯔... 그리 헤벌쭉 웃지 말게. 아니까 망정이지, 모르는 자가 봤다면 어린아이나 밝히는 변태로 오인할걸세!" ".............노도." "왜?"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지?" "헛허! 자네만 변할 줄 알았나? 존재하는 건 늘 변해가기 마련이네!" 내게 들어 모든 상황을 알고있는 그는 툭하면 날 놀려대기 시작했다. 변하기 위해 온 이 곳이지만 그의 변화속도는 상상 을 초월했다. 나처럼 고민하는 투도 보이지 않고, 그저 다른 정원사들과 섞여 흙을 고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는 벌써 여러겹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듯 보였다. "부럽나?" "훗."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는 법. 난 힘차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노도가 슬그머니 눈가를 접고는 물러섰다. 삐쭉 히 올라선 한쪽 입 끄트머리가 눈에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난 별다른 대구 없이 시선을 다시 갑옷으로 돌렸다. "그래, 이제 밤나들이는 하지 않을 건가?" 암살자의 배후로 추측되는 한 놈의 백작과 한 놈의 공작을 말함이었다. 난 망설였다. 겨우 하녀 하나 잡는다고 암살청부 까지 했는데... 그 정도 했으면 됐다고 손을 놓을 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했다며 더 길길이 날뛰고 나설지. 감이 잡히지 않 았다. 미련 없이 패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후작 에게 폐가 될만한 일은 하고싶지 않았다. 일개 하녀일 뿐인 내 게 사건 사고의 혐의가 가지는 않겠지만, 다른 모두에게 내 배 경으로 지적되고 있는 후작에게는 그렇지 않을테니까. "글세..."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흰 가루들이 날려 들어왔다. 방 안으 로 들어온 그 것들은 바닥에 닿자마자 한 점의 물기를 남기고 는 형체를 잃어갔다. "쌓이겠군." 요즘 들어 간간히 내리던 싸락눈과는 달리 큼지막하고 물 기가 있어 보이는 게 밤 즈음이 될 무렵에는 손가락 길이만큼 은 쌓일 듯 보였다. 정원사답게 나보다 더 빨리 계산을 끝낸 노도가 툭툭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일을 마무리해야겠어." "음.... 수고." 흰 입김이 유난스레 짙게 흩어졌다. **** 모든 수업이 끝난 뒤에 저녁시중을 들고, 후작에게 저녁 인 사를 다녀온 어린 주인을 씻기고, 아니 씻게 시중들고, 잠옷을 갈아 입히고, 침대에 눕힌 뒤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주고, 어린아이 취급을 극도로 싫어하는 어린 주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잠시 천장을 보며 앉아 있다가 불을 끄고 나오면 내 하루일과가 끝났다. 그 다음은 내 늦은 저녁을 먹고, 가끔 노도를 만나 노닥이 고, 먼저 인사해주기 시작한 몇몇 하녀들과 잠시 잡담을 나누 고 방으로 돌아와서 잠시 명상에 잠겼다가 아침해가 뜨면 자 리에서 일어서나 아침을 먹고 채비를 해서 어린 주인에게 새 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다시 시작하고... 괘씸한 남작의 두 여동생과 그 남편들을, 귀찮게도 백작과 공작이라는 휘황찬란한 직위를 지닌 그 뜨거운 감자들을 어떻 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날짜가 휙 하고 지나가 버렸다. 다행히 하르크라는 이름의 암살자 이후로 우릴 찾아와 귀찮게 하는 방해꾼도 없었고, 질기도록 후작가를 찾아와 날 내놓으라 며 행패 부리던 두 귀족가문의 심부름꾼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기에 난 서서히 그 두 기분 나쁜 존재들에 대한 인상을 지워갈 수 있었다. 괜히 나아가는 상처를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반복적인 일상들의 반복은 하루를 길게 만들면서도 일주일 은 순식간에 지나가게 한다. 사실 딱히 휴식이랄 시간이 없는 마당에 일곱 날을 묶은 일주일이라는 단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으니까. 하녀들에게 휴식일은 한 달에 한번, 이틀씩 묶어 서 주어졌다. 대부분의 하녀들의 집이 성 외곽에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들을 만나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일 뿐이겠지만, 내 또래로 추정되는 하녀들과 하인들 은 금새 내 소문을 잊어갔다. 내가 먼저 작심하고 다가가서 인 사를 건넸기 때문도 있겠지만, 쓸데없는 헛소문에 후작님의 귀 를 어지럽히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집사 헤리슨의 엄포 덕분이 었다. 하녀장 엘리스는 집사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주로 집사인 헤리슨에게 직접 일을 하달 받았기 때문에 거 의 만나본 적이 없는 하녀장 엘리스는 헤리슨처럼 대대로 이 후작가의 하녀장 역할을 맡아온 인물이었다. 헤리슨에게서 무 언가를 들었는지 그녀는 내게 유달리 조심스러웠는데, 요즘 들 어서는 노도와 친해지면서 내게 조금 더 편하게 대하고 있었 다. 편의상 노도와 나의 관계는 아저씨과 조카로 되어 있었다. 겉보기로 보이는 엘리스의 연배는 노도와 가까웠으니까. 덕분 에 난 요즘 들어 엘리스의 눈치를 보느라 거의 날마다, 노도에 게 익숙하지도 않은 존댓말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 "다 끝났나? 란." "아, 엘리스님." 하루 일과를 마치며 어린 주인의 방문을 나선 내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그렇듯이 단정한 모습의 그녀가 우아한 미소와 함께 서 있었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그녀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녀가 몸을 돌려 앞장서기 시작했다. **** "말씀하신 란을 데려왔습니다." 후작의 집무실 앞에서 엘리스가 낮고 공손히 목소리를 꺼 냈다. 문이 빼꼼히 열렸다. 헤리슨의 얼굴이 문틈 사이로 드러 났다. "수고했네. 자네는 이만 돌아가 쉬게나." "네." 내게 들어오라는 듯 눈짓을 하며 헤리슨은 엘리스를 돌려 보냈다. 그녀는 늘 그렇듯이 곱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서는 내 게 방긋 미소를 던지고는 돌아섰다. 방안에서는 곱게 낡은 책 먼지와 은은한 홍차 향기가 베어 나왔다. 후작은 문을 등진 채 창문 밖으로 시선을 향하고 서 있었고, 손님용으로 준비되어진 아담하고 곱게 장식된 테이블 에는 내 몫으로 추정되는 찻잔이 하나 더 놓여있었다. 다른 사 람이 볼 때는 예외였지만 후작은 나를 늘 귀한 손님으로 대접 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목숨을 바쳐 보내준 귀한 손님. "피곤할텐데 늦은 시간에 불러서 미안하네." 몇 번의 반복학습 후에서야 후작은 내게 말 놓는 법을 익 혔다. 그는 머뭇하며 다가와 내 의자를 편하게 꺼내주었다. "감사합니다만... 전 하녀입니다." "아, 그렇지." 후작이 멋적게 웃었다. 그리곤 잠시 숨을 들이켰다. "내, 자네가 귀한 신의 사자임을 알고서도 자네에게 좀 더 신경 써 주지 못한 점 미안하게 생각하네." 새삼스레 말을 꺼내며 후작은 손에 들고있던 찻잔을 테이 블 위에 내려놓았다. 조용한 공기 때문이었는지 딸그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아내의 소망을 들어준다면, 난 사실 자네가 어떤... 사람인 지, 어떤... 사람들과...." 거기서 한번 힐끗 내 눈치를 살피고는 "어떤...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지도 사실 난 중요 하지 않게 생각한다네." 후작은 말을 이었다. 그는 매우 날 어려워하는 듯 연신 헛 기침을 섞었다. "또, 요즘 들어 자네와 얽혀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그렇게 생각해 왔고, 그렇게 대처해 왔네만..." 요즘 들어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다. 일명 남작사건. 모든 사 건들의 중심에 나와 그가 있었으니까. "뭔가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편히 하셔도 좋습니 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뭔가를 묻고 싶어하는 기색, 그러면서도 어려워하는 게 역 력한 태도. 난 이미 그가 하고픈 말과 묻고싶은 말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내가 굳이 비밀을 만들어야만 하는 상대가 아니 었다. 이미 날 신의 사자라고 믿고 있지 않는가! 시시콜콜 나 에 대해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하 녀인척 하느라 뭔가를 꾸며댈 필요는 없었다. "흠, 그런가?" 피식 웃으며 후작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지." "말씀하십시오." 누군가의 목구멍에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후작이 몸을 살짝 앞쪽으로 기울이고 단호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남작의 집을 습격해, 그를 위협하고, 또다시 들어가 그를 호위하던 기사들까지 모조리... 쓰러트린 후... 그를... 망가트린 사람을 ...자네는 아는가?" "네." 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고 있으련만, 후작 과 헤리슨이 순간 놀란 기색으로 몸을 바로 했다. "말 해 줄 수 있는가?" "원하신다면." 공기 중에 긴장이라는 이름의 기운이 빼곡히 자리잡았다.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아리송한 표정으로 후작이 애매 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게 누구인가?" ***** 잘못하면...아니... 거의 그리 될 듯 보입니다만. 프랑스가 16강에 못들어가고 짐을 싸게 생겼네요. 흠... 프랑스. 프랑스라...ㅡㅡ;;;;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07 Fri 15:20:24 IP : 211.215.58.171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7-회합 ▽ [[The Perfect MAID]]-15-화해.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89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5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9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1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4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 9th 자유연재란 +이곳에서는 이제 '읽기'만 가능합니다. 소설은 저쪽의 새 자유 연재란에 올려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17-회합 은빛 2002/06/07 [[The Perfect maid]]-17-회합 바람에 흩날리는 말꼬리들이 발굽소리에 딱 맞춰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다. 흙먼지가 조금 날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부석에 앉아 전방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말을 그냥 탈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일까? 창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격이 다른 실제감이 있다. 게다가 워낙 고급 마차여서인지, 마부석 옆자리의 승차감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어지간한 동대륙의 마차들보다도 좋은 느낌. 그러고 보니 이 곳은 지형도 동대륙과 많이 달랐다. 야트막 하지만 가파르고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험한 산들이 여기저기 퍼져있어 마차보다는 말이 훨씬 편리한 동대륙과는 달리, 이 서대륙의 산들은 높고 험한 산들이 한데 몰려있었다. 산은 산 대로, 평야는 평야대로 모여있다 보니 자연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선은 산을 기준으로 넘어가는 곳이 많았고, 사람들의 주된 이동선에 산이 걸쳐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야트막한 언덕들은 완만하고 나무가 없어 마차로 넘기에도 큰 무리가 없었으니, 자연 이 서대륙의 마차들은 동대륙의 것보다 발달되 어 있었다. 더더구나 돈 많은 귀족들의 것이야 더 할 나위 없 으리라. "이랴!" 지쳐 가는지 조금씩 발걸음이 느려지던 네 마리의 말들을 마부인 쿠르가 채찍질했다. 궁뎅이에 닿는 충격에 화들짝 놀란 말들이 다리를 재촉했다. "....................." 연신 눈을 힐끔거리며 내게 시선을 던지면서도 쿠르는 내 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워낙에 마부인 그와 내가 평소 만나 말을 할 기회도 없었으려니와, 어딘가 조심스러운 헤리슨 의 태도가 그를 주눅들게 한 듯 했다. 어쩌면 또 하나의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뭐, 그 날 그를 납치해 남작가의 집을 재촉했을 때는 복면을 둘둘 감고 있었으니 눈치챘을 리는 없다고 믿는다. 저택을 나선지 조금 시간이 지난 듯 싶다. 아마 한 시간쯤 되었을까? 복잡한 도심 한 가운데를 벗어나 왕궁을 중심으로 후작가 저택 반대편의 외곽으로 가는 길로 들어 선지 삼십 분 쯤 지났을 무렵이다. 서서히 우리의 목적지가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접니다.' '에엑!!' 어젯밤 시원하게 내뱉은 내 대답에, 후작은 귀족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절대 믿고싶지 않은 기함을 질러대며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 지금... 뭐라고?' '저라구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되묻는 후작에게 난 담담한 어조로 다시 반복해 주었다.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못믿겠다는 건 아닙니다만....' 마치 내가 '남작가를 습격한 그 누군가'를 감싸주기 위해 거 짓말이라도 한 게 아니냐는 듯한 얼굴로 그는 내 표정을 세심 히 살폈다. '아시겠지만, 후작님은 란님의 편이십니다.' 후작과 별 다를 바 없는 얼굴로 그의 뒷편에 서 있던 헤리 슨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후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 다. 난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그럼, 제 말에 의심하시는 이유를 먼저 설명해 주시면 풀어 드리겠습니다.' 집히는 곳이 없지는 않았지만, 난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먼저 질문할 기회를 돌렸다. 후작의 시선이 헤리슨에게 던져졌 다. 헤리슨이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금 주어지는 후작의 눈짓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귀족가이다 보니 남작가도 경계병이 있습니다.' '네. 있더군요.' 거짓이라도 탐색하려는지 다시금 내 표정을 살피는 헤리슨 에게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이 나갔다. '흠, 첫날이야 경비병들 숫자로 많지 않았고, 또 남작이 워 낙에 심약한 분이라 기세에 눌려 란님께 지실 수도 있다고 생 각합니다만....' '만?' 점점 차갑게 변하는 내 어조에 헤리슨은 제법 깊은 한숨을 내쉈다. 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화낼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오해할만도 했으니까. 하지만 난 무시당하는 건 질색이었다. 그것도 내가 그저 하녀이기만은 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자들 에게서 말이다. 모르는 자와 아는 자는 달랐다. '두 번째로 남작가에 괴한... 아, 죄송합니다. 침입자가 들었 을 때는, 남작도 나름대로 방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경비원도 두 배로 늘렸고, 백작가에서 도움도 받았더군요.' '그런 듯 하더군요. 겨우 그런 남작가에 있다고 보기에는 아 까운 기사였죠. 뭐, 풋내 나기는 했습니다만.' '............아, 그랬던가요?' 헤리슨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 뒤 로 물러섰다. 난 헤리슨에게로 향해있던 시선을 후작에게로 돌 렸다. 차갑게 굳어진 후작의 눈동자가 매섭게 내게로 향해 있 었다. '그는 나도 알고 있는 기사요.' 단순히 이름이나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닌 듯 했다. 후작 정도의 사람이 은근히 노기까지 들어낼 사람이라면 분명 나름 대로 인정하는 전도 유망한 기사겠지. '아직 젊고... 비록 세상의 소문에 이끌려 한때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을 잘못 찾았기는 하지만, 그는 강한 기사요.' '...................' 후작은 잠시 회상하는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침입자는 그를 단 일검에 무너트리고, 그를 따르는 다섯 기 사를 한꺼번에 무너트렸다고 하더군. 이건 얼마 전 그가 내게 직접 찾아와서 한 말이지.' '그런가요?' '물론, 내가 그대를 불러 질문을 던진 건 다른 이유도 있기 는 하지만 무인이라 불리는 나 자신과, 어이없이 패배한 한 젊 은 기사를 위하기도 함이요.' 후작이 진지하게 두 팔꿈치를 무릎에 기대고 손을 깍지꼈 다. '누구요? 그 침입자는. 아니, 침입했던 강한 자는?' 줄기줄기 투지를 내뿜으며 후작이 다시금 내게 질문했다. 난 잠시 망설였다. 그에게 과연 진실을 말해 줄 필요가 있을 까? 난 이미 그에게 사실을 밝혔다. 믿지 않은 건 그의 잘못이 다. 그를 믿게 하려면 실력을 보여야했다. 귀찮았다. 하지만 거 짓말은 거짓말을 낳았다. 권모술수나 거짓말 계열로 머리 굴리 는 일에 유달리도 서툰 내가 거짓말을 해서....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아니 뻔히 들통날텐데! 하녀의 삶을 산다 고 하던들, 난 무신인데! 그게 내 영혼의 본질이며 내 삶인데! 그게 가려진다고 가려질까? 난 고개를 저었다. 후작과 헤리슨의 눈빛이 조금 변한 듯 보였지만 난 그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생각을 마무리지어갔다. '접니다.' 무신으로서의 발전을 위해 택한 하녀의 삶이었다. 내가 스 스로를 가리지 못한다면, 날 도와 가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난 그런 역할을 맡기기에 후작과 헤리슨이 적격이라도 판단했다. '크흠!' 확실히 분노한 듯 보이는 두 사람의 반응을 씹어 삼키며 난 비어버린 찻잔을 손바닥 위에 들어올렸다. -파삭!- 내 손에서 순간적으로 빛이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찻잔 하 나가 산산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접니다.' '.........!!!' 살기가 베인 내 눈빛을 마주한 두 남자의 시선이 흩어지는 찻잔 가루로 향했다. "언제쯤 도착하나?" "십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내 상념을 깨며 헤리슨과 쿠르의 대화가 오갔다. 멀찍이서 보이던 커다란 저택이 상당히 커져 있었다. "...........춥지 않아?" 어색한 목소리에 살펴보니, 한 겨울의 찬 바람에 꽁꽁 얼어 붙은 쿠르가 의아함으로 가득 찬 눈길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두터운 모직 옷으로 몸을 겹겹히 감싸고, 꼼꼼하게 짜진 양털 장갑과 털모자로 철저하게 감쌌건만, 그의 빼꼼히 드러난 눈가 와 코는 새빨갛다 못해 파랗게 얼어 붙어있었다. "아, 별로요." "흠." 그에게 달랑 형식적인 코트 한 자락만 걸친 채 다른 생각 에 빠져있던 난 무척이나 이상해 보였나 보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음들 덕분에 생 목소 리만으로는 전달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내게로 다시 한번 고개 를 돌리며 환하게 미소지어 보였다. 우리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베이르 대공의 저택이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후작은 세 귀족에게 어지간히 쪼이고 있었나보다. 하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으니 그런 남작과 인연을 맺고 있는 자들이 어디 가겠냐만은... 문제는 그들의 그런 행동들이 나날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도를 넘어가기 시작하는 데 있었다. 후작에게 가급적 피 해주지 않으려 그리도 참았건만, 그 철모르는 것들은 까불 장 소 아닌 장소를 본능적으로도 감지하지 못하는지.... 후작은 별달리 반론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신의 사자라 는 거창한 명분으로, 겨우 후작가의 어린아이 하나 지키기 위 해 바다건너 온 날 내세우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 고민하고 있 던 모양이었다. 그 역시 귀족이니 만큼 어느 정도 처세술은 익 히고 있으련만, 그가 투박한 무관이었던 반면, 상대 가문들은 모조리 이빨과 잔머리로 먹고사는 정통 권모술수파 문관들이 었으니... 뭘 모르는 내가 생각해도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워낙에 그 세 가문이 쟁쟁한 잔머리파인데다가 잘못 찍혔 다가는 귀족사회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라 후작이 억울해 함을 알면서도 누구도 나서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그런 후작이 곤란 한 지경에서 세인들의 농담꺼리가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나서줬나 보다. 그 사람이 바로 베이르 대공이었다. 겨우 귀족들의 소소한 싸움에 대공의 지위를 지닌 자가 나 선 건 정말 의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후작과 세 귀족 사이를 중재해 주겠다고 자청했다 한다. 뛰어난 기사이며 무관인 후작 을 평소부터 아끼던 터라 그런 귀찮은 일을 자청했다고. 다행 히 작위에서 상대가 안되는 지라 다른 세 귀족도 순순히 대공 의 청에 응했다고 한다. 사실 그런 자리에 내가 꼭 갈 필요는 없었다. 후작을 제외 한 다른 네 사람이 날 동석시켜달라고 요청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안 봐도 뻔했다. 그들이 보내온 암살자를 노도가 갱생 중인 것을 모른 채, 내가 여지껏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를 '후작가의 삼엄한 경비'때문으로 돌리고, 밖으로 꺼내서 암살자 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부여해 주려는 세 귀족들의 얍삽한 계 략과, 나와는 상관없는 베이르 대공의 아주 단순한 호기심이 그 이유였으리라. "도착했습니다" 쿠르가 말을 세우고는 재빠르게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보통 은 마차 뒤쪽에 귀족들의 시중을 드는 시종이 둘 정도 따라오 는 게 관습이었지만 후작은 번거롭게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덕분에 마차를 세운 뒤 달려가 마차 문 을 여는 건 마부인 쿠르의 몫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공저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집사나 그에 준하는 하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후작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안내하게." 스무 개의 계단을 지나 성인 남자의 키 네 배는 되어 보임 직한 커다란 정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언젠가 보았던 작은 크기의 드래곤이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도 될 만큼의 홀이 문 안으로 펼쳐졌다. 마중 나왔던 그가 빙긋 미소지어 보이고는 홀 안으로 들어섰다. 길다란 계단이 높이 뻣어 있었다. ***** 미국전이 다가옵니다. 아아..왜이리 기대되는지. 48년만에 일승 올린 지 얼마나 됐다고 욕심이 생기냐만은... 미국은 정말 꼬옥 이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동계올림픽때 미국이 아주 싫어졌거든요. 흘./.....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07 Fri 15:20:34 IP : 211.215.58.171 순수청년 여전히 잼있네욧 ]_[;; 그리고 언제까지나 재미있기를^-^;;;;; (06/07,15:44) 아리스 우엉...]_[ 연참기대... (06/07,18:08) 캬캬 우와~~넘잼떠여~~연참해주심안될까요?오늘이안돼면낼이라도...낼은토욜...4연참!! (06/07,19:15) 달기 저도 동계올림픽땜시 반미감정이 생겼습니다. 오노~~미국은 집에가라~~ (06/07,20:21)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 [[The Perfect MAID]]-16-회합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7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90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5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9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1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4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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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up]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은빛 2002/06/08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그들은 조금 실망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후작이야 귀족이 라 그렇다지만 어딜 봐도 조금 예쁘장한 것 외에는 튀어 보이 는 데가 없는 하녀인 내가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저택 규모에 도 짓눌리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난 그런 하인의 눈빛을 묵살 하며 허리를 조금 더 폈다. 겨우 이 정도에 놀라기를 바라다니. 사실 초반에 감옥을 들 락여서 그렇지, 백여년 전 이 서대륙을 여행했을 때, 여행 막 바지에는 여러 나라들의 왕궁과 황궁을 정말 내 집처럼 돌아 다니며 정중한 대우를 받았었다. 대공의 저택은 장중하고 크고 화려했지만, 내가 본 중 제일 멋진 곳은 아니었다. 내 앞에 굳건히 닫힌 커다란 문 안쪽에는 네 사람의 귀족 이 모여있었다. 난 하녀였기에 처음부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 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날 무렵이나 되어야 날 부르겠지. 지루하지는 않았다. 청력이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기 때문에 특별이 많은 공력을 올리지 않아도 문안의 이야기들은 모조리 들려왔다. 게다가... 저 베이르 대공이란 자는 모든 이야기를 접고서라도 상당히 흥미가 가는 인물이었다. '강하다.' 백여 년 전에 이 대륙에도 저렇게 강한 자가 있었던가? 인 간의 몸으로서? 아니다. 그 시절 내가 만나보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만 저 정도까지 자신을 갈고 닦은 자는 없었다. 작게 흥 분이 일었다. 손이 간질거렸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강한 자와의 승부는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난 애 써 들끓어 오르려는 기운을 억눌렀다. 일단은 하녀인 척 해야 하니까. 내가 한때 이 곳에서 별스러운 별명까지 달았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버리기라도 한다면, 새롭고 낯선 삶의 경험은 물 건너가 버린다. 'Lord of the sword'라.... 언어만 바뀌었을 뿐, 결국 동대륙 에서와 같은 별호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난 결코 'Load' 정 도의 존재가 아니었다. 난 아직도 부족하고... 스스로의 모자람 조차 몰라 이렇게 흘러와야 하는 어린아이였다. 내 반 밖에 살 지 않은 노도조차도 깨달아가는 자연을 난 알지 못했다. -............................- 문 안의 귀족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갔다.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겠지. 페르로이 후작이 신의 사자라는 번듯한 날 귀족들의 자존심싸움의 제물로 줄 리가 없으니까. 다른 세 귀족들의 오만함은 그런 후작의 고집을 용납하지 못할 테고. 그 외의 문제들은 상당히 급속하게 해결된 듯 보였다. 자존 심을 긁어가며 소문을 냈던 일 하며 내가 알수 없는 곳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에 대해 대공은 재빠르게 타협점을 제시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더 뻐팅겼을 귀족들도 대공의 제안인지 라 군말없이 받아들였고... 정말로 단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네 가문이 아웅다웅 할 필요조차 없었으리라. -그 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문제가 된 하녀를 그대 로 두다니요. 게다가 그대로 쓰기까지 하겠다니요. 저희도 귀 족입니다. 그것까지 양보할 수는 없습니다.- 얼핏 들리기로 헤일런 공작이라 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우 렁차게 들려왔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들이 들 려왔다. -.........죄 없는 하녀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고지식한 후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조금은 허탈한 듯한 대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발이야 어찌된 것이든 지금은 갈라진 사이들을 회복하는 게 더 중요 하련만 미련스레 고집을 부리는 후작이 답답해 보였으리라. -하녀 하나일세.- 대공의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하긴, 하녀 하나일 지도 모른 다. 귀족들에게 하녀란 쓰고 버릴 수 있는... 체면을 위해 무더 기로도 죽여줄 수 있는 소모품일 뿐이었으니까. 난 공력을 살며시 일으켜 귀를 막아버렸다. 더 들어봤자 기 분만 상했다. 죽인다고 죽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죽은 척 하고 어디 마법사나 하나 찾아가 얼굴을 바꾸고 새로 하녀생 활을 시작해 볼까 싶은 마음도 스물스물 생겨났지만... '어딜 가도 귀족은 귀족이고, 하녀는 하녀겠지.' 말로는 후작을 탓해도 기운적으로는 후작을 편들어주는 대 공이 어딘가 믿음이 갔기 때문이리라. 난 조용히 날 부를 때를 기다렸다. 나머지는 그 때 생각해도 되리라. 창 밖으로 사락 사락 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 곳은 눈이 많군....' 문득 바람에 투명하게 흩날리는 눈발이 '그 날' 보았던 아르 페이나의 속옷자락처럼 보였다. **** "조용히들 하게!" 결국 대공은 언성을 높였다. 가진 허풍과 과장을 섞어가며 그 하녀를 죽여야 하는 이유들을 줄줄이 대던 세 사람의 귀족 들은 순간 입을 멈췄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 낮게 깔린 음성에는 그의 분노가 담겨있었다. 살기가 옅게 깔렸다. 대공이기 전에 마스터의 이름을 지닌 검사 앞에서 세 사람의 귀족은 긴장했다. 후작이 너무 고집을 피운다 생각했던 대공의 마음은 확실 하게 기울어졌다. 자신이라도 이런 자들이 수족과 같은 하인, 하녀를 죽이라 한다면 거부하고 싶어지리라. 아무리 귀족의 명예를 위해서는 한 둘쯤 죽일 수 있는 하 녀의 목숨이라고 하지만 경우가 달랐다. 하나의 목숨으로 지켜 질 만한 명예쯤은 되어야 지켜주던 말던 할 게 아닌가! "..........." 잠시의 침묵 속에서 스스로의 말들을 되집어 보던 세 귀족 은 쓴웃음을 삼켰다. 냉정을 잃은 건 아니었건만... 눈에 띄게 후작의 편을 들어주는 대공의 모습에 어딘가 욱하는 심정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들 대공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 는 그들로서는 어느 정도 말을 아껴야 했었다. 그리고 잘 해나 가고 있었다. 그 공기에 불을 붙인 건 헤일런 공작이었다. 대공이라는 이 름까지는 받지 못했지만 그는 공작이었다. 이 나라에 단 둘뿐 인 공작. 그런 그가 다른 이에게 고개 숙이는 일에 익숙할 리 가 없었다. 더구나 무능하다는 평까지 받고 있는 그가 말이다.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네." 대공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분명 그 하녀가 마녀이며, 마왕의 수족 같은 존 재일 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네. 그랬기에 반드시 죽여야 한다 고." "그, 그건...." 얼떨결에 그들이 퍼트리던 소문까지 함께 내세운 건 큰 실 수였다. "그 말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치는 것인지 아는가!" 단지 평민들이, 하인들이 소문삼아 떠드는 것과 한 나라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귀족들이 입에 담는 것과는 무게가 같 을 수 없었다. "만일 그 말이 진실이라면...." 무겁게 내리 앉은 공기가 방안을 옭죄였다. "그런 하녀를 두둔한 후작의 가문은 문을 닫아야겠지." 상반된 희비가 엇갈려갔다. 음모로 단련된 세 귀족의 눈가 에 순간 기광이 스쳐갔다. "그리고... 만일 그 말이 거짓이라면..." 대공의 눈가에 짙은 노기가 어려갔다. 아무리 술수에 약하 다 하지만 지금 세 귀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눈치채 지 못할 대공이 아니었다. "그대들은 귀족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못하고 쓸데없는 말로 세간을 소란스럽게 한 죄를 물어야 할 테고." 대공은 몸을 일으켰다. 대공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네 사람 이 의자에 앉아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그들은 긴장해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네 사람의 귀족 의 얼굴이 대공으로 향했다. "하지만 난 일을 그 정도로까지 극대화시키고 싶지 않네. 대 귀족이라는 자들이 시시한 자존심 겨루기 하나로 마왕을 운운하며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알면 폐하께서도 깊이 실망하 실테고..." "................." 대공은 몸을 돌려 창가로 향했다. 섯불리 말을 꺼냈던 헤일 런 공작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에게 휘말렸던 가르암 백작과 차스크 백작의 표정이 잔뜩 우그러졌다.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한다면...." 대공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나 역시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해 주겠네." **** "들어가라." 무뚝뚝한 표정의 기사 하나가 내게 턱짓했다. 하인 둘이 재 빨리 커다란 문을 잡아당겼다. 날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던 그 문 안에 잔뜩 구겨진 세 사람의 귀족과 대조적으로 밝은 표정 을 짓고 있는 후작, 대공으로 추정되는 젊은이가 두 눈을 호기 심으로 빛내며 서 있었다. '제법인걸?'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모습이 선천적인 종류가 아 니라는 것을. 저건 어딜 봐도 한 번은 허물을 벗은 모습이었 다. "소문의 하녀인가?" 대공의 질문에 후작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 다. 순식간에 모든 시선들이 내게로 쏠렸다. 세 쌍의 징그러운 시선이 몸을 흩고 지나갔다. '저 뚱뚱한 자가 헤일런 공작, 음침해 보이는 자가 가르암 백작.... 신경질 적인 얼굴이 차스크 백작이겠군.' 좀 전부터 들려오던 목소리로 난 대강 그들의 기도에 맞춰 정체를 추측해냈다. "소문이 날 만한 하녀로군." 대공이 피식 미소지었다. 이런 종류의 농담에 익숙하지 않 은지, 혹은 긴장이 풀려서인지 후작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 다. 난 다소곳히 고개를 숙이는 척 하며 대공의 기도를 살폈 다.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른 자라면 쉽게 늙어죽지는 않을 터!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번 겨뤄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라라라? 무척이나 낯익은 기도인데?' 비단 기도만이 아니었다. 그가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는 기 운 역시 어딘가 익숙했다. 마치 대기와 같은 기도... 내가 만들 어 아무 이름조차 짓지 않았던 '그 것'이 만들어내는 것과 같 은 기운... '그러고 보니 얼굴도 익네...' 기억을 헤집어봐도 저런 실력을 갖춘 강자 중에 저렇게까 지 나와 흡사한 기도를 지닌 자는 없었다. 난 무의식중에 고개 를 갸웃했다. "무례하다!" 대번에 노성이 터져 나왔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구나! 감히 대공저하의 얼 굴을 빤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모자라 고개까지 기울이다니!" 방의 안쪽에서 대공을 수호하듯 경비하고 있던 기사 하나 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모양 달아올라있었다. 검을 뽑아들지는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나를 찔러올 듯한 살기가 그에게서 뿜어 져 나왔다.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까의 밝은 안색은 어디로 접었는지 후작 역시 하얗게 질 린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난 내 실수를 알아챘다. 이런 경 우에 하녀 주제에 어설프게 사죄하는 건 아니하는 만 못하다. 이미 주인이 나섰으니... 난 재빠르게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 때였다. "혹시... 나를 아느냐?" 어딘가 상당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공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라." 움찔 하며 뭔가 말을 꺼내려는 다른 귀족들을 손으로 제지 하며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잘 닦여 광이 나는 바닥으로 그의 행동을 보고있던 난 조심스레 허리를 일으켰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한 얼굴인데...." 오해받을 여지가 가득한 말이었건만 눈까지 가늘게 좁힌 그의 분위기는 엄중했다. "저 또한 어디선가 뵌 것 같습니다만..." 주위의 귀족들이 '저 년 봐라!'하는 듯한 괘씸하다 못해 씹 어버릴 듯한 눈초리와 표정으로 경악을 담아냈다. 하지만 진심 이었다. 난 정말로 저 얼굴까지도 낯이 익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베이르라는 가문 이름은 낯설었다. 이 서대륙 에서는 작위가 바뀔 때마다 성까지도 바꾸는 경우가 허다했다. 비록 그의 조상이 나와 연관이 있었다 하더라도... '어라? 조상?' "떠오르는 게 있는가?" 뭔가 감이 잡힌다는 듯 눈을 빛낸 내게 대공이 반 보 다가 왔다. 난 잠시 망설였다. 내 목 끝까지 튀어나온 말은 일개 하 녀로서 대공에게 할 만한 질문이 아니었다. 하긴 뭔들 아니겠 냐만은... "죄송하지만 몇 가지... 제가 감히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대공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베이르라는 성 이전에 쓰시던 성이 어찌 되시는 지....기왕이면 한 백여 년 전쯤의 성으로..." 똥씹은 듯 구겨져 가는 주위의 시선을 싸그리 무시하며 난 질문을 던졌다. 일대에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에게 지난 작 위와 성을 묻는 건 일종의 금기였으니까. 하지만, 그 외에는 그와의 인연을 기억해 낼 방법이 없었다. 물론, 그것도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아니라면 어쩌겠는가. 얌전히 죽은 척 하고 새로운 하녀의 삶을 시작하는 수밖에. "라이렌트. 라이렌트 자작이었네. 지금부터 오십 여년 전에 대공의 작위를 받았지."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 했다. 라이렌트. 내가 아 는 이름이었다. '백여 년전'이라는 말에 뭔가 닿는 듯 조심스럽 게 대답했던 대공이 격동하는 내 모습에 살짝 몸을 떨었다. 어 느 새 그의 눈동자도 크게 치뜨여 있었다. "설마...." 반쯤 얼이 나간 모습으로 대공이 입을 벌렸다. "너....." 그 못지 않게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내 입도 벌어졌다. 순식 간에 내 목에 날카로운 검날이 들이대졌다. 감히 대공에게 '너' 라는 말까지 표현한 하녀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했겠지. 난 피 식 웃음을 터트렸다. 난 그를 알고 있었다. 난 손가락으로 검날을 잡아 슬그머니 밀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대공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당황한 기 사들이 기겁하며 검을 들이밀었지만 그 날카로운 날들은 여리 디 여린 내 손가락 살에 막혀 한치도 내 목으로 다가오지 못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노려보고 있 던 후작과 세 귀족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대공의 호위기사이 니만큼 지금 내게 검날을 들이밀고 낑낑거리고 있는 자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기 때문이겠지. "서... 설마...." 그새 눈이 그렁그렁해진 대공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게 한보 다가왔다. "금아(金兒)구나." "............하!" 연이어진 하녀의 반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대공의 눈가에 서 굵직한 빗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한 그의 변화에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굳어갔다. "하! 하하하하하!" 그의 입에서 실성한 듯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에 섞인 것이 너무나도 벅차 오르는 기쁨 때문이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했다. 내 목에 겨눠지던 검들이 순식간에 사라 졌다. 모두의 시선이 대공과 내게로 다시금 집중됐다. ".....오랜만..........이다." 내가 간신히 지어 보인 미소 앞에 그의 몸이 허물어지듯 바닥에 꿇어앉았다. 상상치도 못했던 인연에 나 역시 떨리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지 오래였다. 금 아의 모습만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 저하!" 다른 이들의 비명 같은 경악에도 대공은... 아니, 금아는 꿋 꿋이 머리를 땅에 박았다. 떨림으로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다 시금 사람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기체... 강녕... 하셨사옵니까....." 극경의 존칭. 연이어진 경악에 더 이상 놀랄 기운도 없을 사람들이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스승님... 뵙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역류했다. 처음 만나 그를 가르치기 시작한 순간부 터 헤어지던 그 날의 시절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 다. **** '제자로 삼아주세요.' '싫어. 그런 것 귀찮아. 또 자신도 없고.' '하지만, 이미 가르쳐 주시고 계시잖아요. 스승님이라고 부 르게 해 주세요.' '가르쳐 주는 것과 제자로 책임지는 건 달라. 게다가... 넌 서대륙인이고, 서대륙인은 스승을 쉽게 삼아. 난 그런 거 싫 어.' 딱 잘라 거절하는 내 모습에 금발의 소년이 울상을 지었다. 어쩌다가 연이 닿아 가르치고는 있지만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 인 스승, 제자관계란 나와 내 스승님 같은 관계였다. 하위이기 는 하지만 귀족인데다가 양친 멀쩡하고, 또 이름 있는 기사다 싶으면 집으로 불러다가 가르칠 형편까지 되는 그를 난 제자 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제자로 삼아주세요.' 그는 끈질겼다. 늘 거절당할 때마다 눈물을 삼키면서도 그 는 한번의 훈련이 끝날 때면 늘 내게 부탁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게 해 주시면, 절대 다른 사람들을 선생 삼아 배우지 않을께요.' '쓸데없는 소리. 사람은 폭넓게 배워야 하는 거야.' '근본적인 부분 이야기잖아요.' '안된다면 안되.' 소년은 고된 내 여행길을 끈질기게 따라왔다. 실제 동대륙 에서 하는 제자의 일들을 아무 군소리 없이 해내며 그는... 말 했다. 그의 바램에는 무후, 검후라 불리는 내 이름의 후광 따 위는 없었다. 단지 그는 날 스승으로 삼기를 원했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안되나요?' 난 그의 끈기에 졌다. 하지만 순순히 허락해 주고 싶지 않 았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불가능해 보일 것만 같은 조건을.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그 때, 네가 내가 가르쳐준 무술을 이해하고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가 있다면.' **** 마스터가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의 나는 다시는 이 서대륙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또 그 정도 된 사람이면 더 이상 스승에 연연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난 그를 잊었다. 그도 나를 잊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내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변 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에게 그런 존재였나 보다. "...........반갑구나. 금아.... 내........... 제...자." 그가 약속을 지키고 내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기절할 듯 한 경악의 물결과 폭포수 같은 눈물 속에서 그가 조용히 내게 아홉 번 절했다. 백여년 전에 지나가는 듯 말했었던 동대륙의 방식 그대로. 난 삼백년 만에 처음으로 스승이 되었다. ***** 왜, 왠지... 문장이 꼬인 듯... 쿨럭!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08 Sat 12:40:24 IP : 211.215.56.162 달기 호호 이런전개라니~~흥미진진 (06/08,09:44) 엘시 이 담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해여..]_[ 님..하나더 쓰실생각은?? (06/08,10:56) 래드아이 오옷 재미있어요^^ (06/08,12:12) 캬캬 너..넘잼있어요~~담편쓰실생각없으신가요?궁금해군여~~담편올려주세요~빨리빨리~~ (06/08,12:27) 아로하 허허......감동이에요...감동..... 제발 하나만 더.....ㅡ,ㅜ (06/08,12:28) 아리스 하나만 더여~~ (06/08,13:08) rupi 너무 감동적이예여 하나만 더요 (06/08,15:17) 미스티 하나만 더여~~!ㅅ~!!!!! 넘넘넘 잼떠여~ 감동먹었떠여~!!! 제발 하나만 더 부탁을..T^T (06/08,17:08) 아키 머....멋있어요!!!!! (06/08,22:58) srdang 연재중단하신건가 했더니...다시 시작하시는군요. ㅜ.ㅜ 예전연재시부터 팬이랍니다~~~^-^ 건필하시구요, 건강하세요!^^-근데...이제 매일 올리시는 건가요?(그렇기를 기대하는 말투로;;;) (06/09,03:1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 [[The Perfect MAID]]-17-회합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6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8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90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5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9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1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4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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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거 다 하고 나면 연장통 챙기고. 그리고 쉬게나." 사실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려했었는지 모른다. 몇 번이 나 노도를 노렸는지도 모른다. 단 한번도 이루어 진 적이 없었 다. 어찌된 술수인지, 달아날 길도 알아볼 겸 나선 정원 산책 에서는 길을 잃어버려 같은 곳을 몇 시간이나 뺑뺑 돌게 되고, 슬금슬금 노려보건만 노도라는 이 늙은 정원사에게는 단 한점 의 빈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도하려고 했었을 뿐. 시도조차 못해봤다. 게다가 일은 얼마나 고된지! 이 늙은 정원 사는 마치 그의 체력의 한계를 정확히 꿰차고 있는 냥 그에게 일을 시켰다. 일을 마치고 밥을 먹고... 별이 총총히 뜰 무렵마 다 시도했던 하르크의 정보수집을 위한 밤나들이는 덕분에 번 번히 무산되었다. 포크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몸이 땅바닥으로 밀착하니... 도대체 부하들 볼 면목이 도저히 서지 않았다. 뿌득 뿌득 작게 이를 갈고 있는 하르크의 머리 위로 하늘 이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물끄럼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노도가 하르크에게 눈짓했다. "밥먹으러 가세나." 들어내지도 못하고 한숨을 꿀꺽 삼킨 하르크가 털래털래 노도의 뒤를 따라나섰다. 노도는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란이 탄 마차는 아직도 돌아 오지 않았다. 분명 뭔가 다른 일이 생겼음이 분명했다. 아침나 절 란이 간 곳은 알고 있었다. 란의 실력도 알고 있었다. 믿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늦고 있었다. 사회 생활과 동떨어져서, 한번 사람들이, 그 것도 허식으로 둘둘 쌓인 귀족들이 헛소리 를 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그 는 초조했다. '설마...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밥을 입으로 쑤셔 넣는 내내 노도는 고민했다. 최악의 경우 라 해도 란이 죽는 일만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설마.. 감옥에 갇히기라도 한 건가?' 감옥 정도의 구속이 그녀를 가두어 둘 수는 없겠지만, 그 사이에 후작이 있다면 경우가 달랐다. 후작에게 폐 끼치기 싫 어하는 그녀라면 순순히 잡혀 들어가 앉았을 공산이 컸다. '흠....' 분명, 후작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둘이나 있는 곳이라 했 었다. 신분체계는 어디나 딱딱했다. 후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사실 지금까지 후작이 버텨내 온 것만으로도 노도는 그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타락한 귀족들에게는 하녀 목숨이야 파리 목숨정도 가치밖에 없었다. "저, 저어기... 돌아가서 쉬어도...." 오늘따라 잡념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노도는 평소만큼 하르 크를 고되게 굴리지 못했다. 어제보다 생생해 보이는 하르크가 빌빌거리며 말을 꺼냈다. "음?" "저어, 밤도 늦어가니 가서 쉬어도...." 비굴하기까지한 얼굴로 하르크가 손바닥을 살짝 비볐다. 노 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허허... 밤이라." "아, 네. 밤이죠." 노도의 눈가가 살짝 가늘어졌다. 하르크의 온 몸에 이유 모 를 소름이 돋았다. **** 하르크는 달렸다. 있는 힘을 다해서! 차가운 겨울 바람을 타고 그의 식은땀이 이마를 스쳐 뒤로 날아갔다.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방금 전 보았던 노도의 모습이 망막에 달라붙은 것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트, 틀림없어! 그건 유령이야! 사람이... 사람이 그럴 수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따라 노도의 행동이 영 이상했다. 늘 일에만 열중하던 사람이 오후로 들어서면서부터 영 안절부절 하며 실수를 연발했다. '분명해! 어디선가 유령으로 바꿔치기 된 거야! 아니면 처음 부터!' 후작가에서 달아나려 할 때마다 그를 붙잡던 그 꺼림직한 감각의 정체도 설명될 수 있었다. 하르크는 다시 한번 이를 악 물었다. 비릿한 냄새가 입안으로 느껴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발! 다리야! 조금만 더 움직여라! 저 골목 뒤로 한번만 더 숨자!' 공포심으로 끌어낸 힘도 이제 서서히 다해가고 있었다. 마 치 노쇠한 조랑말처럼 거친 입김을 연신 뿜어내며 하르크는 그가 목표하고 있던 담을 돌았다. 그리곤 벽에 몸을 기댔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오지는 못했겠지!' 귀족가로 향하는 커다란 길 좌우로는 번듯한 집들이 서 있 었지만 그 한 골목만 뒤로 들어가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수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자연 발생적인 미로였 다. 허름하고 방금이라도 무너질 듯한 빈민가. 귀족가에서 버 리는 쓰레기들을 얻기 위해 날마다 치열하게 다퉈야 하는 사 람들이 그 안에 몸을 숨기고 매일매일을 연명했다. 하르크가 지금 달려온 곳도 그런 미로였다. '그, 그럴꺼야. 그럴꺼야. 가르암 백작가 주위의 미로는 복잡 하기로 유명하니...' 자신이라해도 자칫 실수하면 한 참을 헤매야 할 정도로 이 동네는 유달리 미로가 복잡했다. 하르크는 오른 손을 들어 이 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냈다. 그리곤 고개를 들었다. "크아아아악!" 결코 그의 앞에 서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 하나가 뒷짐을 지고 서서는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그가 손가락을 귓바퀴로 넣어 잠시 긁어내렸다. "거, 참. 이리도 허약해서야... 귀신이라도 본 놈 같군. "...........귀, 귀...." "흠... 여기가 백작가인가?" 순식간에 하르크를 지탱해주고 있던 힘이 풀려나갔다. 하르 크의 눈동자가 복잡하게 떨려왔다. 이가 따닥 소리내며 맞부딛 혔다. 벌써 삼십 여분을 전력질주 했다. 매 순간 골목을 돌고, 최대한 비슷해 보이는 길로만 골라 달렸다. 그런데! 저 유령 같은 늙은 정원사는 아무런 발소리나 기척조차 없이 다가와서 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일단은 고맙다고 해 주지. 날 위해 이렇게 시간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으니 말이야." 반사적으로 하르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달리 살기에 예 민한 그였다. 단 한번도 그에게 직접적인 위협감을 보인 적이 없던 노도의 맑은 눈에 은은한 살기가 어려있음을 그는 놓치 지 않았다. "자네가 버리고 간 말은 내가 잘 간수해 두었네." 마른침이 하르크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노도의 눈동자 가 달빛을 반사시키며 위협스레 빛났다. 후작가의 저택에서 가르암 백작가까지의 거리는 결코 가까 운 거리가 아니었다. 포크가 떨어지기 무섭게 길 안내를 하라 며 무작정 그를 끌고 나온 노도는 하르크가 보기에 어딘가 멍 해 보였다.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하르크가 거리를 핑계삼아 말 한필을 훔쳐 노도를 기다리지도 않고 냅다 달아났다. 이제 서야 다시 암살자로서의 자유를 되찾았다고 기뻐하며! 늙은 정 원사가 말을 타봐야 얼마나 잘 타겠는가! 그리고 한 참을 달린 후 그 뒤쪽으로 다른 말의 발굽소리 가 들리지 않아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뒤를 돌아봤을 때! 하마터면 하르크는 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늙은 정원사는 달리지 않았다. 그저 산책나온 노인네인 냥, 걷고 있었다. 짤막한 턱수염을 밤바람에 흩날리면서 뒷짐을 진 채로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하르크의 바로 옆에서! 하르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사람이 달리는 말과 같은 속도 로, 그것도 걸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백작가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말을 한데 묶어둔 이후도 그 랬다. 가능하면 어떻게든 따돌려 보기 위해 하르크가 얼마나 열심히 달렸던가! 얼마나 열심히 쓸데없는 잠복과 오락가락을 반복하며 길을 헷깔리게 만들었던가!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그래, 이 가르암 백작인가 하는 작자를 먼저 만나 보는 게 란을 돕는데 도움이 될 거다... 그 말이지?" "........!!!" 또다시 하르크의 고개가 운동했다. 행여나 그가 믿지 않을 까 후환이 두려워 하르크는 입조차 뻥긋하지 못했다. 노도가 시익 웃었다. "그럼 안내를 마저 해야지?" 그가 하르크의 등을 살짝 밀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르 크가 저도 모르게 한 발을 딪었다. 목적하고 온 것은 아니었건 만 그의 발은 어느 새 가르암 백작가의 한쪽 귀퉁이 담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른 키 세배는 됨직한 높다란 담장이 을시넌 스럽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도가 다시 한번 빙긋 미소지 었다. '........헉!' 하르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얼핏 살핀 그림자로 봐서 는 분명 노도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아니, 사람이라고 믿고 싶 었다. 유령과 이렇게 밤나들이를 함께 한다니! 그의 굵은 신경 으로도 그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늙은 정원사의 몸은 인간의 것이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쉽게' 움직였다. 뭔가를 하기 위해 애쓰는 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도는 그저 발짓 한번으로 담 위로 몸을 끌어올렸다. "자아... 자네는 암살자 아닌가! 능력껏 올라와 보시게나!" 하르크는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백작가로 잠입해서 경비원들을 따돌리는 노도의 실력 또한 하르크를 초월했으면 했지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을 물 어 죽인다고까지 소문난 정원의 사냥개들도 늙은 정원사의 앞 에서는 순한 어린양처럼 곱게 꼬리를 내렸다. 침입자를 대비해 나무 한 그루 세워두지 않은 백작의 발코 니 앞에서 늙은 정원사는 가벼운 손짓 하나로 그를 발코니 위 로 집어던지고는, 그가 채 발코니로 떨어지기도 전에 올라와 마법처럼 그를 소리 없이 받아냈다. -여기가 그 천인 공노할 백작의 방이겠지?- 하르크의 세치 혀로 인해 백작은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 되어 있었다. 어딘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들린 노 도의 목소리에 하르크는 작게 긍정을 표시했다. 공포도 연속되 면 조금 희석되는 법. 더 이상 살기를 들어내지 않는 노도에 대해 하르크는 서서히 마음을 놓아갔다. 아니, 그에게서 빠져 나가 달아나기를 포기했다는 편이 더 옳은 말이리라. 하르크는 한숨을 삼켰다. 사실 맞바로 대공의 저택으로 쳐 들어가겠다는 노도를 굳이 이 가르암 백작가로 오게 한 건 그 의 계략이었다. 가르암 백작가는 하르크가 생각하기에 늙은 정원사를 떼 놓을 수 있는... 덤으로 보복도 조금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 다. 처음 대공의 저택으로 밤나들이 하자는 늙은 정원사의 말 에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마스터인 대공이 직접 나서지 않는 다 하더라고 그 곳에는 뛰어난 기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대공에게 가르침을 받기 원하는 재능 있는 기사들의 집들이 저택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음은 물론이요, 대공의 저택에서 일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뭔가에 특이한 실력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 곳으로 가자니! 뭐, 간다면야 늙은 정원사 하나 기사들의 칼밥으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만, 문제는... '그랬다가는 나도 살아나올 수 없겠지.' 였다.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사전 정보수집이나 조사없이 무작정 잡입해서 들어갔다가 나올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준비를 하더라도 승산이 없어. 그 곳만큼은...' 그런데! 그런 곳으로 안내하라니! 하르크는 필사적으로 머 리를 굴렸다. 그 때, 떠오른 곳이 가르암 백작가였다. 백작가에서 란이라는 하녀를 의뢰했을 정도니, 이 노도라는 정원사와도 사이가 나쁨이 분명했다. 하르크의 계산은 거기서 끝을 맺었다. 공작가만큼은 아니겠지만, 백작가에도 그를 대신 해서 노도를 때려 잡아줄 식객 기사들이 득시글거렸다. 게다가 기사들의 집으로 둘러쌓인 대공의 저택과는 달리 백작가 주위 를 둘러싼 빈민가의 거리들은 모조리 미로였다. 혼자 달아나기 에 그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노도를 떼 놓을 수 있다는 희망에 하르크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아니, 올랐었다. 올랐었었다. 그런데! 그 쟁쟁하다는 빠글빠글한 기사들은 하나같이 노도 와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노도의 실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 다. 그것도 훌쩍! -흠.... 그렇단 말이지.- 필사적이기까지 한 하르크의 대답에 노도의 눈동자에 은은 한 노기가 어려갔다. 처첩이 여럿이나 있는데도 권력을 앞세워 새로운 처를 얻고, 전처를 독살하기까지 했다니! 밤중이라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귀족가를 둘러싸고 줄줄이 세워진 빈민가를! 그게 다 가르암백작이라는 자의 소행 이라니! 저 혼자 잘먹고 잘살자고 그 많은 사람을 핍박하다니! -갱생의 여지가 없는 놈이군.- 노도가 굳은 얼굴로 조심스레 문에 손을 올렸다. 딸그락 소 리도 없이 문이 스르르 열렸다. '어떻게 열었지?! 마법사인가?!' 유령이라면 문을 통과해서 갔을 터! 하지만 마법사라면... '마... 마법사라면 나름대로 싫어!' 하르크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가 아는 마력사들 은 하나같이 괴팍한데다가 제멋대로에 호기심을 주체못하는 말썽꾸러기들이었다. 마법사를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하르크의 앞에서 노도는 단 한번도 주문을 외운 적이 없었 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물지만 가끔 볼 수 있 는 마력사와는 달리 깨달음으로 힘을 발현한다는 마법사(魔法 師)란 신기함 그 자체였다. 그가 알기로 마법사는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자들이었다. 흔히 수련과 연구로 힘을 얻어내는 마력(魔力師)사들과는 달리 그들은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은 힘을 타고나는 존재들이었 다. 혹자는 그들이 드래곤 같은 마법 종족들이 인간으로 변해 낳은 아이라고 했고, 혹자는 신들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진 인 간들의 피 속에 녹아있던 잠재능력의 기적적인 발현이라고도 했다. 상대가 마력사라면 하르크도 자신이 있었다. 그들에게 주문 을 외우고 마력을 일으킬 기회만 주지 않는다면 암살자인 그 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실제 몇몇 마력사들의 청부를 맡아 성공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라면... 노도가 보여주었던 그 모든 신기함이 모두 마법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가 노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 갈 가능성은 없었다. '그, 그럼... 난 이대로... 도망도 못간 채... 정원사로 늙어 죽 어야 하는 건가!!!' 청천 벽력같은 현실이 그의 앞에 뚝 떨어져 내렸다. **** 살며시 들어선 방안은 비어있었다. 사람이 누운 흔적이 없 는 이불자락에 살며시 손을 대보며 노도는 힐끔 옆문을 살폈 다. 희미한 불빛이 새나오고 있었다. "글세 죽이라고 했잖아요! 다 됐다고 하시더니만! 공작님과 의기투합했다고 했잖아요! 공작과 백작이 뭉쳐서 그 정도도 못 해욧!" 고음의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닥쳐!" "..............흑!" 짜증으로 가득 찬 남자의 고함소리가 비명처럼 터져 나왔 다. 순간 말을 잊은 여인의 침음성이 바늘처럼 공기를 찔렀다. 사늘하게 식었을 분위기가 조그만 틈 사이로도 물씬 흘러나오 고 있었다. 노도는 발코니에서 굳어진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하르크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저런 심약한 놈이 어떻게 암살 같은 험한 일에 들어섰는지 모르겠구먼. 내 반드시 갱생시켜 줘야만 하겠어...' 노도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곤 조용히 몸을 움직여 방 이곳 저곳의 기물을 조금 움직였다. 허름한 작업복 주머니에서 꺼낸 흰 종이조각을 군데군데 붙이고, 침대 밑과 테이블 밑을 포함 해 몇 군데 숨겼다. 옆방의 대화는 점점 거칠어져갔다. 여자는 깨질 듯한 목소 리로 울어대며 뭔가를 하소연했고 남자는 반쯤 섞인 고함소리 로 히스테릭하게 소리질렀다. "닥쳐! 너 때문에 내가 망하게 될 지도 모른단 말이다!" "뭐, 뭐라구요? 제, 제가 뭘!" "너 같은 년의 가문을 돌볼 필요가 어디 있다고!"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시끄럽다! 겨우 남작가의 딸인 주제에 받아들여 줬으면 고 맙게만 받아야지 어디서 감히!" ".........................."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그 재수 없는 남작 놈과 연류 된 것 자체가 재앙이었어!" 노도의 눈썹이 심하게 요동쳤다. 문틈 사이로 흘러 들어오 는 대화의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욱 그를 거슬리게 한건 스르릉 들려오는 미묘한 마찰음이었다. "다, 당신!" 공포에 질린 여인의 목소리. 진득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한 살기. 노도는 뭔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힘들게 생각할 것 없다. 네가 명예를 위해 하녀의 목을 원 했던 것처럼, 나 역시 널 통해 누군가의 명예를 지켜 줄 생각 이니까." "허, 헉!" "겨우 너 같은 것 때문에 우리 가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할 필요는 없지." 차갑게 가라앉은 흥분. 풀풀 날리는 살기. 여러 겹의 치마 자락이 마룻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도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노도는 직감적으로 백작이 그의 부인을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비열한 자들의 습성 그대로. '그럼, 일단 란은 무사한거겠군. 그나저나... 쯪쯔쯔. 저 놈 정말 못쓸 놈이구먼... 아무리 그렇다 한들 저 혼자 살아남자고 제 아내를 베려 하다니...' 어찌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요연했 다. 뭔가 란에게 이로운 일이 벌어진 것이리라. 그가 바랬던 방식 그대로 누군가에게 해 주려 하는 폼으로 보아, 란의 목숨 을 바라던 백작은 뭔가 아주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 다. '하긴, 그 녀석은 백여년 전에도 이 땅에 온 적이 있었으니 까. 뭔가의 인연을 만났을 지도 몰라.' 한 사람의 평생을 덮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어떤 사람들 과 존재들에게는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노도는 깊은 한숨을 내쉈다. 분노를 뛰어넘는 실망감이 그를 답답하게 했다. '아무래도 오기를 잘 한 것 같으이... 여기 정말로 갱생이 필 요한 중생이 있었어.' 노도가 허리를 주욱 피고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는 문의 손 잡이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흐릿한 빛 사이로 검을 뽑아든 남 자 하나와 겁에 질린 채 벽에 몸을 붙이고 있는 여인 하나가 떨고 있었다. "누, 누구냐!" "나다." ***** 아아... 부상당한 선수들이 빨리 낳아야 할텐데요... 후,...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비겼지만... 많은 가능성들을 보여준 한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포루투칼을 이길 수 있을까요? 폴란드가 제발... 비겨줘야 할 텐데! 한 골 차로 이겨주면 더 좋고....ㅡㅡ;;; 말입니다. (아님, 폴란드가 미국을 이겨주면 좋을 텐데요...)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10 Mon 18:28:33 IP : 211.215.57.243 ????????? 와~~~~ 올라왔군요. 1타인가 (06/10,19:47)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8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7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8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90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5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9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1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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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냐!" 비명처럼 울린 백작의 외침! 백작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진 것과 동시에 문 밖에서 어른어른 들려오던 인기척들이 사라졌 다. -쯪쯔... 갱생의 여지도 없어 보이는 놈.- 머릿속으로 직접 들린 듯한 낯선 음성이 그의 뇌리에 가득 울려 퍼졌다. 백작의 몸이 흠짓 굳었다. 백작의 눈동자가 삽시 간에 굴러갔다. 그의 얇삭한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침입자인가?' 백작은 소리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다. 당황하는 바람에 잠 시 기선을 빼앗겼지만 분명 문밖에는 그를 호위하기 위해 서 있는 기사가 있을 터였다. 감히 자신의 저택으로 겁도 없이 난 입한 침입자를 잡아 벌주기 위해, 잠입해서 말까지 건 주제에 칼 하나 들이밀지 않고 입조차 막지 않은 침입자의 어리숙함 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 백작은 숨을 뱃속 가득 들이 마쉈다. 그리고 외쳤다. "........!!!!!!!!!"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용써봐라. 소리가 나오나. 참, 웃기는 놈이네. 그럼, 내가 그 정도도 방비하지 않고 말을 걸었다... 생각했나?- 백작의 등줄기가 싸늘히 식어갔다. 온 몸의 소름이 돋아났 다. 식은땀이 손바닥 가득히 베어 나오는 건 한 순간이었다. 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 의 집은 사나운 사냥개들과 실력 있는 기사들이 철통같이 지 키고 있었다. '어, 어떻게?' -쯪쯔. 저 눈동자 굴리는 것 봐라. 제 놈 한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반성조차 하는 기미가 없네.- 문득 백작의 뇌리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강한 자. 그가 믿고 보냈던 다섯 기사가 손도 쓰지 못했던 자. '설마! 남작을 습격했던 놈인가?! 설마!' 백작의 얼굴이 우그러졌다. '제, 제길!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야! 하녀 차림을 한 대공의 스승에! 이런 유령 같은 작자에!' -쯪쯔... 그냥 충고로는 갱생의 여지가 없는 놈이군- 낯선 목소리가 또다시 백작의 머릿속으로 울려왔다. 그의 눈앞에 슬금 슬금 무언가가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침입자 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백작은 눈동자에 힘을 가했다. '커, 커허허허허허헉!'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얼굴이 떠올랐다. '말도 안돼! 넌 죽었어! 죽었다고!!!' 백작은 뒷걸음질쳤다. 아니, 하려했다. '이, 이럴수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팔도 다리도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 았다. 가위에 눌린 듯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가는 백작이 풀썩 주저앉았다. 생명의 위기를 넘긴 건지 아니면 새로운 위기를 맞은 건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 하는 여인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했다. -너도 같아.- 여인의 몸이 땅으로 꼬꾸라졌다. "어, 어떻게... 우, 움직일 수가..." 두 쌍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채 바르르 떨렸다. 하르크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쯪." 노도가 혀를 한번 차고는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하르크를 응시했다. 얼기설기하게 가린 복면 뒤로 하르크의 얼굴이 벌겋 게 물들었다. "와서 좀 돕게나." "네?" "대강 들어서 이 방으로 끌고 와." 마치 문밖의 하인들이나 기사들을 없는 존재로 여기는 지 노도는 태연한 걸음걸이로 먼저 그가 손을 보아두었던 백작의 침실로 몸을 돌렸다. 수치심으로 만들어진 힘이 하르크의 굳은 다리를 움직거리 게 했다. 그는 정신을 자리지 못한 채 뻣뻣히 굳어진 백작과 백작부인을 질질 끌어 문지방을 넘었다. 노도가 문을 닫고 그 문 위에 물로 무언가를 썼다. 순간 작은 빛이 생겨나며 방안을 가느다란 빛들이 거미줄처럼 엮어갔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뭐, 뭐죠?" 생전 처음 보는 현상에 세 사람은 몸이 굳었다. 더듬거리는 하르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노도는 빙긋 웃었다. "가벼운 환각술과... 진(陳)이라는 거지. 자네들 말로는 결계 (結界)라고 하고..." 노도는 아주 느릿하게 움직였다. 백작과 백작부인은 불안하 게 눈동자를 굴렸다. "어디... 밤은 길다고 하니...." 테이블 가에 놓인 멋들어지게 장식된 의자 하나를 여유 있 게 끌어당겨 노도가 등을 기대고 앉았다. 대강 돌아가는 상황 을 살피며 노도의 눈치만을 보고 있던 하르크도 노도의 고갯 짓에 따라 의자 하나를 빼 엉거주춤 엉덩이를 걸쳤다. "뭘 잘못한 건 지 알기는 아나?" 알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몸으로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 백작이 남작의 딸, 자신의 부인인 여인을 있는 힘껏 밀어 앞으로 내세웠다. "이, 이 여자가, 이, 이 여자 때문에!" 노도를 가득 둘러싼 위압감과 노여움에 백작은 혀가 꼬인 듯 그 특유의 허세 섞인 자존심도 부리지 못했다. 백작은 머리 를 흔들어대며 얼어붙은 그의 부인을 앞으로 내동댕이쳤다. "이, 이 여자가 원흉이요! 이 여자가 하녀를 죽여달라고 했 어! 이 여자가!"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모냥, 백작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모든 잘못을 전가시켰다. ".....흑!"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백작의 행동이 의 미하는 바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녀의 앞에 뚝 떨어진 저 노 인은 결코 그녀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체념한 사람처 럼 고개를 푹 숙였다. 꽉 다문 입술에서 비릿한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나, 난, 이 여자의 부탁을 들어줬던 것 뿐이야! 이 여자는 그 재수 없는 남작의 동생이다! 나, 난!" -빠악!-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백작이 정수리를 얼싸안고는 나동그라졌다. "험! 험! 나도 배웠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노도는 거칠게 숨을 몰 아쉈다. 요 몇 일간일 뿐이었지만 노도를 보아왔던 하르크조차 바닥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릴 만큼 노도의 표정이 사납게 일 그러졌다. "무, 무슨! 난 백작!" -빠아악!- 예상치 못한 구타에 잠시 얼이 빠져있던 백작이 튕기듯 몸 을 일으켰다. 거의 동시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작은 다시 한번 바닥을 굴렀다.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가 백작의 고막을 사납게 때렸다. "당장 무릎꿇고 손 올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늙은 노도에게서 풍겨져 나왔다. 있는 데로 기가 꺽인 백작과 백작 부인, 하르크까지도 얼떨결에 튕겨지듯 바닥으로 뛰어 내려와 백작의 옆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쯪즈. 사람이 먼저 되어야지! 귀족이면 뭐해! 사람이 되지 못했는걸! 자네 조상들이 지하에서 통곡하겠어!" 창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붉게 달아오른 노도의 얼굴을 타고 길다랗게 흘러내린 눈썹과 수염이 파르르르 떨렸다. "어찌 사람이 그리 할 수 있겠는가!" 두 눈에서 강한 의지의 섬광을 내뿜으며 노도의 기나 긴 설교가 시작됐다. '내, 내가 왜! 나까지 왜!' 하르크는 눈물을 삼켰다. 처음에 잘 버텼으면 노도의 옆자 리에 앉아 분위기 좋게 구경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 나... 지금에 와서는 도저히 저 옆자리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 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 방 여기저기에 노도가 붙여놓은 이상한 종잇 조가리 때문일지 도 모른다. 노도가 뿜어내고 있는 이 엄중한 공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허! 어딜 꿈직거리나!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뻐억!- 어느새인가부터 노도의 손에 들려 있던 백작의 검집이 바 람을 가르며 후려졌다. 정수리를 직격으로 얻어맞은 백작의 몸 이 순식간에 자세를 바로 했다. 시체처럼 새까맣게 변한 얼굴로 백작은 연신 한숨을 내쉈 다. 한번 한숨을 쉴 때마다 노도의 눈초리가 사나워졌지만 절 로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백작부인과 하 르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는 철사로 온 몸을 휘어 감고 있는 듯한 공기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이 갑갑하고 가슴이 답답 해와 견딜 수가 없었다. 머리 위로 쭉 뻣어 올린 팔은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였다. 아니, 거의 모든 감각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단 한가지의 감각, 통증을 제외하고 말이다. 꿇어앉은 다리 역시 그러했다. 근육 줄기 줄기가 모조리 끊어질 것만 같았다. 몸통도, 어깨도, 등줄 기도, 가슴도, 전신이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 뼈마디 마디가 조각조각 동강나 가는 것 같았다. 전신을 바늘로 찌르며 뼈를 가는 톱으로 썰어 가는 듯한 고통이 그들을 쉬지 않고 괴롭혔 다. 그럼에도 정신은 조금도 흐려지지 못했다. 노도의 잔소리 가 그들의 의식을 놓아주지 않았다. "어허! 팔 올리지 못하나!" 하르크는 주춤 주춤 내려왔던 팔을 이를 악물고 다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노도의 목소리에 그의 몸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주위를 보니 백작과 백작부인 역시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들은 신음소리 한점 내지 못했다. 신음 소리도 내 뱉을 기력이 있을 때나 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을 그들은 온 몸으로 체득해갔다. 눈물과 콧물이 쉴 세 없이 흘러내렸다. 체면이나 자존심은 그 끊어질 듯한 고통에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정신이 몽롱해 져갔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노도의 설교가 서서히 한 귀 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어김없이 노도의 검집이 정수리 위로 날아왔다. "목숨 귀한 걸 알아야지! 그깟 오만한 마음 한 조각 때문 에!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그깟 자만 때문에 천벌을 받 을 죄를 짓는 단 말인가!" '크흐흐흐흐흐흐' 두 줄기의 피눈물이 하르크의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어!"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암살자 출신인 하르크가 견뎌내지 못한 일을 허약하고 나약하게 자란 두 귀족이 버텨 냈을 리가 만무했다. 두 귀족이 스르르 바닥에 널부러졌다. "어허! 이 놈들이 이젠 꾀병까지! 내, 너희가 정신을 잃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검집이 사정없이 공기를 갈랐다. '차, 차라리 맞는 게 났다!' 다리라도 부러트리려는 지 종아리와 허벅지로 쏟아지는 매 타작을 묵묵히 맞아가며 백작과 백작부인은 피눈물을 삼켰다. **** 지쳐 의식을 잃은 두 남녀의 이마에 물로 뭔가를 그려 넣 은 노도는 하르크를 들쳐 매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노도가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는, 아직도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온 몸을 꿈 틀대는 하르크를 향해 눈을 돌렸다. 란이 무사한 이상 대공의 저택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사실 공작의 저택까지 갈 필요도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하 르크를 통해 들은 두 귀족의 행태는 노도가 용서하고 싶지 않 은 수위를 한참 넘어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재수가 없어서 그런 자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됐었더라면!!' 란만이 아니라 그 까지도 아르페이나의 멱살을 쥐어 잡아 흔들게 됐을 지도 모른다. 한켠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고, 한 켠으로는 그런 집에서 일해야 하는 정원사를 동정하며 노도는 결심을 굳혔다. 주색에 찌들어 주위를 말아먹는다는 헤일런 공 작이라는 작자 역시 갱생치료가 필요한 자일 듯 싶었다. '그래도 란에게 직접 당하는 것보다야 났지.' 한번 불길에 휩쌓이면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란을 떠올리 며 노도는 잠시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공작가까지만 들렸다가 돌아감세. 아직도 감각이 돌아 오지 않았나?" 화가 풀린 듯 자상해진 목소리에 하르크는 눈물이 핑 돌았 다. 드래곤 레어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살아나온 기분이 그럴 까? 갑작스레 다가온 안도감 때문인지 하르크의 목소리가 조 금 퉁명스러워졌다. "제, 제길! 어떻게 된 건지. 그렇게 갑갑하고 고통스러웠던 건 처음이라구요!" "허어... 그런가?" 털털하게 웃으며 노도가 하르크의 오른 손을 슬쩍 잡아당 겼다. "감각이 없어?" "없어요." "흠... 그런가? 하긴 그럴 지도 모르네. 공기의 무게와 압력 을 무겁게 해 두었었거든. 숨 한번 쉬는데도 평소의 열 배는 더 넘는 힘이 필요했을 거네. 몸도 열배는 더 조였을 거고..." '제길. 역시 마법사였어.' 하르크는 눈을 돌렸다. 노도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금 밀려 들어왔다. 노도는 늘어진 하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의 목 언저리를 강하게 후려팼다. ".............!" 통증이 없다고 하더라도 목 언저리는 급소였다. 무의식적으 로 하르크의 몸이 튕겨지며 입이 떡 벌어졌다. '소, 소리가 나오지 않아!' 하르크의 눈동자가 또다시 급격히 운동하기 시작했다. 달빛 을 등지고 흰 이를 들어낸 채 미소짓고 있는 노도의 얼굴이 마치 새겨지듯 하르크의 동공에 잡혀 들어왔다. "이거, 미안하이. 하지만 그대의 몸의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어. 좀 아프겠지만 이게 제일 좋은 방법 이니 좀 참게나. 끝나면 다시 목소리는 돌려줌세." 절대 나이처럼 앙상하지 않은 두 팔을 걷어붙이며 노도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하르크의 전신에 또 다시 소름이 돋았다. 텅 비어버린 방광은 더 이상 누린 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그는 그 이상의 땀을 흘려야 했다. 번쩍 처든 노도의 두 팔과 두 다리에 실린 강력한 힘이 하르크의 몸 위 로 쏟아져 내렸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으아아아아아! 이 늙은이가! 이 늙은이가! 날 죽이려고 작 정한 거야! 으아아아아아!' 부위를 가리지 않은 강력한 매타작이 쏟아져 내렸다. 적어 도 하르크는 그렇게 느꼈다. "금새 나아질 걸세. 이건 온 몸의 혈액순환을 돕는 동대륙 의 비술이네." '믿을 수 없어!' 하르크의 입이 찢어질 듯 크게 벌어졌다. 백작가를 침투할 때 조차, 달리는 말을 따라올 때조차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던 노도의 이마를 타고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하르크는 깊게 절망 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 다.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그의 안에서 태어났다. 하르크는 필사적으로 몸을 꿈틀거렸다. 그의 손이 그의 모든 의지를 잡 아 노도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음? 이제 움직일만 한가?" ".......!!!!!!" 아직 저린 감각이 온 몸에 남아있었지만, 지금 저린 게 문 제가 아니었다. 노도의 말대로 그가 때림으로서 확실히 저릿한 고통과 무감각함은 사라졌지만,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았다. 하르크는 그의 생존본능이 시키는 대로 착실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래? 아직 저릴텐데...." "!!!!!!"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하르크를 잠시 내려다보던 노도가 픽 웃었다. 하르크의 목 언저리에 따끔한 감각이 생김과 동시 에 하르크의 목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괜,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그래?" 노도가 하르크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 끼기라도 했는 지 노도가 하르크의 눈동자를 자세히 응시했다. 하르크의 가슴 한 구석이 또다시 철렁 가라앉았다. '이,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자네, 내가 한 충고는 기억하나?" '추, 충고?' 순간 백작가에서 겪었던 무시무시한 고문이 그의 뇌리를 독차지했다. 충고라는 단어에 대한 반발이 잠시 생겨났지만 하 르크는 그의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지금 살아남기 위해 중요 한 건 그런 반발심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 그럼요! 제가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노도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노도가 하르크의 두 어깨 를 강하게 부여잡았다. "자네! 드디어 내 가르침을 따라 갱생하려나?!" "쿨럭!" 갑작스럽게 기침을 내뱉는 하르크의 등을 강하게 두드리며 노도는 외쳤다. "좋은 일이네! 좋은 일이야! 그럼, 그럼. 자네 정도 심약한 자는 정원사가 제격이지! 그럼! 암살같이 험한 일은 어울리지 않아! 잘 결정했네!" "컥!" 노도가 급히 무너져 가는 하르크의 신형을 붙잡았다. 하르 크의 눈동자가 반쯤 뒤집혀져 있었다. 노도는 급히 그를 부여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자네! 왜 그러나! 이봐! 정신을 차려야지!" 하르크의 고개가 좌 우로 거침없이 흔들려갔다. 반쯤 벌어 진 입가로 진득한 침이 넘실거렸다. 노도의 손길이 전해주는 고통과 끈질긴 생명력과 의지로 간신히 의식의 한 가닥을 붙 잡고 있는 하르크의 목구멍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도가 급히 그를 등에 업어 올렸다. 그리고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게! 자네는 정원사에 소질이 있네! 기껏 갱생한 자네를 이대로 무너지게 둘 수는 없어!" "...............꾸르르르르" 그 날, 절망과 삶에의 집념을 모조리 맛봐야 했던 하르크는 노도의 등에서 확실하게 의식을 잃어버렸다. 란이 제자를 얻은 날, 노도도 그 비슷한 것을 하나 업었다. ***** 오오오오! 안정환 선수의 그 골 세러모니를 보셨습니까! 그건 분명!!! 쇼트트랙! 흐.... 이기지 못한 건 무척이나 아쉽지만... 그래도 비겼으니... 초반에 골만 안먹었어도... 아니, 그 많던 찬스 중 하나만 더 살렸어도...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자!~ 필승~ 코리아~ 대! 한! 민! 국!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10 Mon 18:28:47 IP : 211.215.57.243 이엘 봤습니다. 골 세레모니. 선수들 모두 정말 귀엽더군요. 아주~ 통쾌했습니다. 그게 세계 모든 나라 뉴스에 나와야 될텐데..^^ 글구 작가님 건필하세요~ 리필은 첨이지만 설은 매일 보고있답니다. *^^* (06/10,19:01) rudda 골 세레모니를 김동성선수를 위하여 했다는군여^^*이뿌지 않슴까??? 글고 히딩크양반....나이도 지긋한데 어찌 그리 귀여븐지..ㅎㅎㅎ (06/10,19:33) 집시마녀 늙은 사자의 연인... 리메 언제 줘요ㅡ.ㅜ?? (06/10,20:02) 미스티 바떠여~!! 세계 여러 나라 뉴스에 다 나와야 할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오노관련사건~!!!!! ㅋㅋ 건필을^^ (06/10,21:21) 신이찌 후후 역시 재미있어~! 은빛님 건필! 잘보고 가욥! (06/10,23:28) 달기 담편은 언제올리시는 거에요~~빨랑~ (06/12,23:38) 이름 비번 수정|삭제|답장 [setup] 4842 [[The Perfect MAID]]-20-암살자와 정원사. [6] 은빛 06/10 426 4841 [[The Perfect MAID]]-19-암살자와 정원사. [1] 은빛 06/10 439 4640 [[The Perfect MAID]]-18-백년의 인연. [10] 은빛 06/08 557 4603 [[The Perfect MAID]]-17-회합 [4] 은빛 06/07 408 4602 [[The Perfect MAID]]-16-회합 은빛 06/07 390 4410 [[The Perfect MAID]]-15-화해. [2] 은빛 06/05 445 4306 [[The Perfect MAID]]-14-하녀의 콧털 [3] 은빛 06/03 409 4289 [[The Perfect MAID]]-13-하녀의 콧털 [5] 은빛 06/03 431 3961 [[The Perfect MAID]]-12-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 [7] 은빛 05/30 488 3872 [[The Perfect MAID]]-11-두 얼굴의 하녀. [5] 은빛 05/29 494 3871 [[The Perfect MAID]]-10-두 얼굴의 하녀. 은빛 05/29 389 3870 [[The Perfect MAID]]-9-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43 3869 [[The Perfect MAID]]-8-이 하녀가 사는 법. 은빛 05/29 380 3800 [[The Perfect MAID]]-7-이 하녀가 사는 법. [3] 은빛 05/28 406 3799 [[The Perfect MAID]]-6-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15 3798 [[The Perfect MAID]]-5-하녀란 무엇인가. 은빛 05/28 321 3797 [[The Perfect MAID]]-4-정원사와 하녀. 은빛 05/28 366 3746 [[The Perfect MAID]]-3-서대륙으로. [8] 은빛 05/27 361 3745 [[The Perfect MAID]]-2-최강의 하녀를 꼬셔라. [3] 은빛 05/27 403 3744 [[The Perfect MAID]]-1-골치아픈 기원. [2] 은빛 05/27 443 선택/반전 삭제 | 다음 | 쓰기 | 목록 [1] [2]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은빛 2002/06/16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그게 끝이었다. 그 방안에 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처 음의 목적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기억해주기를 원하지 않 았다. 한 차례의 폭풍 같은 경악이 휩쓸고 지나간 뒤 오만한 세 귀족을 덥친 건 두려움이었으니까. 그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밀'을 지켜달라던 대공과 나의 '부탁'에 무작정 고개 를 끄덕이고는 정신없이 달아나 버렸다. "쯪쯔. 강자에게 약한 전형적인 인물들이군... 하지만..." 그들에게 느꼈던 분노보다, 지금까지 살아 남아있던 대공, 금아에 대한 기쁨이 컸었기에 난 굳이 그들을 잡지 않았다. 방 해꾼들이 사라진 후 금아는 손짓으로 시종들을 시켜 따끈한 차와 쿠키를 다시 준비하게 했다. "후........ 아......." 금아는 재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쌓였나보네...." "당연... 하지 않습니까!" 퉁퉁 부어오른 금아의 얼굴은 백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금아는 몇 번 더 크게 숨을 가다듬었다. 한 쪽 의자에 앉아 조용히 우리 둘을 반복해서 바라보던 후작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 내게 어떻게 류이네리아님의 제자가 되었는지 궁금하 다는 건가?" "아, 네에....에?" 친절한 금아의 목소리에 긴장을 풀어가던 후작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또다시 물들었다. "류, 류이네리아님이시라구요?" 벌떡 몸을 일으켜 커다랗게 확장된 눈으로 날 바라보는 후 작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그래. 류이네리아 칸, 란님이시지." "류, 류이네리아... 칸... 란!" 존경과 경외가 가득 담긴 시선들이 내게로 꽂혀왔다. 금아 와 후작, 세 귀족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무렵부터 이 안에서 후작을 호위하고 있던 두 기사... 특히나 내 목에 칼을 들이밀 었던 두 기사의 얼굴은 정말 흙빛이었다. 금아가 내 제자임을 안 순간부터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어리버리하게 뒤로 물러서 있던 그들은 이제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만큼 내 지난 이름은 이 대륙에서 전설이 되어 있었으니 까. 금빛의 비늘을 지닌 드래곤을 꺾고 그 이름을 빼앗은 자, 대륙 최강의 무인, 전설의 마스터... 등등. 백여년이 지난 지금 은 있던 이야기에 살까지 붙어 이제는 과히 신화로까지 불리 기에도 조금도 손색없는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잠시 얼어있던 후작이 하얗게, 파랗게, 다시 붉게 상기된 얼 굴로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 그럼... 란, 아니, 란님이.... 류이네리아 칸....." "맞네. 이 분이 바로 내 스승님이시지." 금아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당당히 고갯짓했다. 후작이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이봐?" 자리에 앉은 것치고는 꽤 불편해 보이는 자세에 금아가 조 심스럽게 후작을 불렀다. 금아는 잠시 응시하던 시선을 후작에 게서 거두고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기절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후작이... 그가 자리에 주저앉기 직전 작게 몸을 떨던 그 순간부터. **** 늘어진 뱃살이 부르르르 떨렸다. 심장이 가슴뼈를 바수고 튀쳐나올 것만 같았다. 명치끝이 저렸다. 오전 나절부터 야금 야금 먹었던 차와 쿠키들이 모조리 식도를 타고 기어올라올 것 같았다. 체기 때문인지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 뒷목이 땅겨 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마차 좀 곱게 몰라고 해라!" 헤일런 공작은 거칠게 소리질렀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가라앉은 공작의 심기를 살피던 하인 하나가 급히 마부에게 말을 전했다. 마부는 부드럽게 말고삐를 당겼다. 마차는 서서 히 속도를 줄여갔다. "제길."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헤일런 공작은 수건을 꺼내 이마 를 닦았다.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은 이마는 사늘하게 식어있었 다. 불쾌함 이전에 공포가 그를 엄습해왔다. "모포를 덮으시겠습니까?" 바들바들 몸을 떨어대는 공작에게 두꺼운 양털 모포가 밀 어졌다. 신경질적인 눈으로 끊임없이 시선을 돌리며 안절부절 못하던 헤일런 공작은 마치 화풀이 할 장소라도 찾은 듯 눈을 빛냈다. 그의 손이 내밀어진 모포를 사납게 내동댕이쳤다. "닥쳐라! 지금 네가 감히 내 일에 끼어 드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시종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끼어든 게 화근이었다. 잔뜩 흥 분했을 때의 헤일런 공작은 자신을 생각하는 부하의 심정을 알아줄 만한 도량의 사람이 아니었다. 게거품을 물어가며 고래고래 소리질러대는 공작에게 힐끗 시선을 돌려본 시종은 깊은 한숨을 눌러 참으며 바닥에 엎드 려 몸을 떨어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 "괜한 일에 꼈어." 손톱을 씹어대며 차스크 백작은 깊은 한숨을 내쉈다. 어쩌 면 하녀와의 소문은 모조리 거짓일 수도 있다. 아니 분명 거짓 이리라. 어쩌면 후작은 대공의 부탁으로 그 분의 스승이 되시 는 분을 감추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귀족들 앞에 극적으로 등장시켰을 수도 있다. 억지라도 보면 억지일 수 있겠지만, 그 스승이라는 자가 정 체를 들어내기 극도로 싫어하는 자이거나, 아니면... 정체가 들 어날 경우 곤란한 사람, 그도 아니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그 런 정체를 가지고 있기에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 "번잡한 일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그럴 수도 있어." 대공과 그 스승은 분명 차스크 백작을 비롯한 다른 두 귀 족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다. 가설은 몇 가지가 서진다. 첫 째, 대공은 자신의 스승이 하녀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한다. "그건 아니야." 차스크 백작은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숨기고 싶어한다면 그 자리에서 밝힐 리가 없다. 그럼, 그 하녀가... 대공의 스승인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싫어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정체는 '하녀'라는 신분 은 아니겠군." 방금 전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자신이 하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면 그런 행동 은 하지 못한다. 그녀의 행동이나 지금까지의 행동패턴은... 가 만 생각해 보면 하녀임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녀라 는 신분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괴짜. 아니면 미친 사람." 사실이라면 그녀는 이 둘중의 하나에는 반드시 해당되는 사람이리라. 차스크 백작은 고개를 뒤로 한껏 기댔다. 화려하 게 치장된 마차 지붕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몽 롱하게 풀었다. 뭔가 자신의 안으로 깊이 빠지고 싶을 때 하는 그의 습관이었다. '욱하는 감정에 헤일런 공작같은 자에게 휩쓸리는 게 아니 었는데...' 어떤 자인지 모르지 않았건만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른 반감 은 그를 막다른 길까지 내몰았다. 어쩌면 오년 전 그 날 우연 히 만났던 후작의 아내 될 여인이 그토록 아름답지만 않았었 다면 그의 감정도 이토록 극단적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질투. 그의 가문에 대한, 그가 만난 이국에서 온 반려 에 대한, 마치 버림이라도 받은 모냥 슬퍼하는 여동생을 바라 보며 느꼈던 질시.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감정은 조금도 희 석되지 않은 채 그의 안에 응어리져 있었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미쳤지...." 감정이란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괴물이다. 씁쓸히 웃어 봐도 슬피 울어봐도 괴물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공연히 괴물이라 불리겠는가. "대공께서는 달리 스승이라 부르실만한 분이 없으신데..." 생각의 방향을 애써 돌렸다. 과거에 매달릴수록 미래로 가 는 길은 좁아져만 간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는 대공의 스승이 되는 하녀를 죽여달라 요구했었다. 현재 중요한 건 그거였다. "스승이라....?" 순간 그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 마디의 말이 스치고 지나 갔다. -백년 쯤 전에...- 그의 몸이 튕겨졌다. 천장에 머리가 부딪힐 뻔했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몹쓸 전염병에 걸린 환자처럼 백 작은 온 몸을 떨었다. "배, 배, 배, 백.... 년!" 백년 전에 인연을 맺은 사람, 여성, 하녀임을 자처할 만한 괴짜, 검술의 대가인 대공을 가르칠 만한 존재! "LORD!!!!" 류이네리아 란 칸. ***** 아아아아... 제가... 그 저주받은 마물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으...흐흐흑. 동생의 꾀임에 넘어가... 그 마물을 손에 넣고 말았습니다... 플스2...... 파판10도 샀습니다... 데빌메이크라이도 샀습니다... 아아... 어쩌나아... 그것만은 사지 않으려고 그토록 참았건만... 우으으으으으.... 낮에는 축구보고... 새벽에는 ...겜...에 사로잡히고...ㅇㅇ;;;; 창파기도 더 써야하고... 다른 글들도 쓸게 산더미같은데... 으으으으.......... 유우나가 머릿속에서 오락가락.... ㅠㅠ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16 Sun 23:40:13 IP : 211.215.244.112 unica 그 마수에 넘어가시다니요!ㅠ.ㅠ..고백을 하자면 저도 요즘은 샤이닝 이라는 온라인의 게임의 마수에 빠져들어갔다라는..;쿨럭;여전히 멋있는 우리의 하녀시여! (06/16,23:43) 료니 샤.. 샤이닝.... 혹시 샤이닝로어를 말하시는건가?? 그거 동생컴터로 잘 굴러가길래 한동안 피튀기게 했으나,, 제 컴은 최소사양인지라 눈물을 머금었다는... 쿨럭--;; (06/16,23:59) 암흑살광 저와 같군요ㅜ.ㅜ 저는 오라버니라는 인간의 꾀임에 빠져들어 요즘엔 피파2002밖에 안한다죠.ㅜ.ㅜ (06/17,00:19) 달기 ㅋㅋㅋ..시간 잡아먹는 도구에 빠졌군요. 시간 자~알 가죠? 저도 그거 해봤느데, 재밌어요~ (06/17,00:38) 피아 나도 게임 굉장히 좋아해요..뭐 잘하는 것은 없지만 -_- (06/17,00:45) 아덴 저..저는 때지난 포립에 빠졌다는-_- (06/17,00:58) 래드아이 음냐 역시 재미있어요^^ (06/17,01:44) bloodangel 칸 란?? 란 칸?? 모가 맞는 거죠???????? 으흘~ (06/17,13:00) 미스티 ㅋㅋ 류이네리아 란 칸 아녜여?? 그나저나 님 넘 잼떠여^^ 역쉬~!! 짱 입니다~!! (06/17,18:17) 나그네X ㅡㅡ! 플스2라......살아 남기를 바라겠습니다.. 전 피로 누적으로 쓰러지기 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소설은 쓰셔야 겠지요... (06/18,00:11) 유키 쿠핫핫핫핫핫핫핫~~~ 제가 여기서 제일 정상인 겁니다~~~ 전 그런거 하나도 안 해봤거든요~~~~ !!!!!!! (아이씨, 이번에 전국 3등 안에 들어야 하는데....... 중얼중얼) (06/18,23:51)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4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1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0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2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7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0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5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6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2002/06/21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진심이십니까?" "음. 내가 언제 농담했었던가? 네 앞에서?" "차라리 농담이기를 바랬던 때가 더 많았었죠." "..................그래?" 금아는 한숨을 푹 내쉈다. 그리곤 섬세하게 늘어트린 머리 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쑤셔넣고 마구 헝클어트렸다. "비듬 떨어진다." "스승님!" "왜." 커다랗게 치뜬 눈을 껌뻑이며 금아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듯 애절하게 입만 뻐끔거렸다. "이젠 안통해. 넌 더 이상 열 두 살이 아니야. 그 표정이 통 할 나이는 예전에 지나버렸다." "하, 하지만 어떻게!" "무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빨래와 세탁과 다림질이 말입니까?!" 비명에 가까운 금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금 전 까지 만 하더라도 감히 내게 고개들어 쳐다보지 못했던 두 기사들 의 시선이 피부를 꽤 뚫을 듯이 찔러왔다. 난 슬그머니 한쪽 입가의 근육을 잡아 올렸다. 세 쌍의 시선 속에 조금의 기대감 과 긴장이 섞인 복잡함이 전해져왔다. 난 천천히 입술을 움직 였다. 누군가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소 또한 하녀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야." "류.이.네.리.아.님!" "싫으면 너희가 그만 둬. 약속이기에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난 제자 같은 것 받아들일만한 도량이 있는 놈이 아 니야. 그 것도 하는 놈이나 하는 거지... 난 아무래도 그런 쪽 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같은 말이야." "스승님...." 난 고개를 땅에 닿을 듯 숙인 채 연신 한숨만을 뿜어내고 있는 금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새로운 경지를 바란다는 건 나 같은 무인에게는 아주 중요 한 일이다. 그건 너도 알고 있을 꺼야." "...................." 반론이라도 하고픈 것을 억지로 삼키는 냥 금아는 입술을 몇번 뻐끔이다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쉈다. "방법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지. 나 정도의 시간을 살 면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너도 알 수 있게 될 거야." "........................." "네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다른 문화속에서 자라온 자였다고는 하지만, 나 역시 처음부터 선 듯 내켜하지는 않았었으니까." "그, 그렇다면!" "쉿!" 난 손가락을 들어 막 터져 나오기 시작하려던 금아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그건 처음의 감정이었을 뿐이야. 물론 날 이 곳까 지 오게 만든 여신 아르페이나를 노출증 여신이라 욕하기도 했었고, 동대륙의 무신 적호님이나 삼신할미께도 원망하는 마 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내게 이 길을 권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안 이상은 말이야." "아...." "하지만 말이다, 그건 동기였을 뿐이야. 내 목적은 처음에도 지금도 바뀐 게 없다." 금아는 설래설래 고개를 저었다. 단지 일순간의 장난끼로 시작한 일이라도 난 한번 정한 일은 바꾸려들지 않았다. 더더 구나 작정하고 정한 일이라면야... 어떨까? 그건 아마도 백여년 전의 경험으로 그도 알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지금의 주인도 꽤 귀엽고 말이야."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후작의 머리를 슬슬 쓸어주 며 난 싱긋 웃어 보였다. "너희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하녀가 될 수 있을 지는 모르 지. 별로 그리 되고 싶지도 않고. 이건 내가 한 단계 더 발전 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니까 말이야." "아.... 으.... 으으윽..... 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머리를 쥐어뜯으며 감정을 씹어 삼키던 금아는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길게 내 쉈다. "후..........................." 그리고는 내게로 다시 멍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등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의 기사가 몸을 굽혀 조금 전 떨어트린 그들의 검을 주어 들었다. 기사로서 검을 떨어트린 다는 건, 그것도 단순한 말로 인한 심리적인 충격으로 검을 손에서 놓는 다는 건 씻기 힘든 치욕일텐데도 당황한 그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스며있지 않았다. "그, 그렇지만, 겨, 겨우... 그런 이유로..." 금아의 등을 지키고 있던 자들 중 하나가 힘겹게 입을 열 었다. 가슴에 새겨진 가문의 문장을 무의식적에 자랑스럽게 내 밀고 있는 그는 아마도 이 나라의 몇 안되는 무가의 자손인 듯 싶었다. 뼈속까지 귀족으로서의 긍지를 지니고 있는 자라 면, 그 긍지가 무인으로서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자라면 그 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만 해라. 스승님께는.... 중요... 한 이유다." 금아는 조금 달랐다. "하,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조금 전까지의 그와 똑같은 표정으로 반쯤 울상을 지 은 채 안달하듯 그를 바라보는 그의 제자 겸 호위 기사에게 꽤 담담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건 우리의 관념이다. 고정관념...." 그리고는 다시 날 향해 처연히 웃어 보였다. 난 움찔 한 심 장을 애써 다잡으며 그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말로는 내 편 을 들고 있었지만 그 역시 완전히 납득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 마도 그건 내가 그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리라. 하녀의 일 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그의 제자들을 돌봐줄 수 없다는...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건 꽤 가혹한 일이었다. 백여년을 기다려준 제자에게 그 정도도 해 줄 수 없다고 했으니까. 날 다시 뜯어말리기라도 할 듯한 그의 태도에 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대공이었다. 아무리 그가 내게는 백여년 전 우연히 만났던, 그 반짝이는 금발머리에 금빛 아이라는 이 름을 지어주었던 어린아이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는 버젓한 한 나라의 요직을 차지한 어른이었다. 그가 방해한다면... 난 하녀 생활을 계속 하기 힘들었다. 그의 눈총을 받아가면서까지 날 하녀로 받아들여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건 아직 정신을 차 리지 못하고 있는 후작도 예외가 아니니라. "하긴... 스승님의 고집을 누가 막겠습니까만은..." 정말로 포기한 듯한 기색으로 금아는 고개를 저어댔다. 순 간 그의 눈동자가 살짝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거... 정말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건가요?" "음?" 몸을 살며시 앞으로 기울인 그에게서는 조금 전의 망설임 이나 애절함이 보이지 않았다. 난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뒤의 두 기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순식간에 공기가 긴장감으로 매꿔져 갔다. 두 기사는 안절부절못하며 금 아와 날 다시금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주체는 나니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난 진지해진 내 제자에게 나 나름대로의 답을 해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삶에서 무언가를 찾으셨습니까?" 눈가에 살짝 주름을 접으며 금아는 시선을 내 눈으로 고정 시켰다. 난 그에게 확실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부터 말이야." "그 생각들이 스승님을 발전시켰습니까?" "고뇌하지 않으면 답은 나오지 않는 법이다. 난 지금의 갈 등과 번뇌들을 환영한단다." "그렇군요." 금아의 고개가 확실히 끄덕여졌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 는 듯 뒤편의 두 기사는 무언가 답을 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지만 금아도 나도 그들에게 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건 말로 설명한다고 받아들여지는 차 원이 아니었으니까. "흠.................." 금아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생각에 잠겨들었다. 난 몸을 일으켜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은 사람을 발전시킨다. 가끔 부작용을 일으킬 때가 있기도 하지만... 지금 금아가 겪고 있을 고민 정도는 나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붙잡고 싶어 했던 이유가 거기 있었을 테니까. '녀석. 벽에 부딛혀 있었군.' 발전이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한계. 그건 우리와 같은 자 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두려움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막연한 기억 속에서 그를 능가했었던 내가 실체가 되어 나타났다. 그 는 아직도 그가 날 따라잡지 못했음을 한 눈에 알아봤다. 발전 없는 나날 속에서 '혹시 이게 무의 끝은 아닐까'하고 고민했었 을 그의 시간들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왠지 모를 흥분이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 올라왔다. 한 무인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건, 그가 나의 제자라는 건 내가 성장하는 것만큼이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의 순간이 지나간 무렵 금아가 밝은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축하한다." ****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니!" 정지했던 시간들이 돌아오며 내게 던져준 선물은 경악이었 다. 난 슬그머니 돌아가 앉기 위해 끌어당겼던 의자를 내동댕 이치고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창가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 에 커튼이 활짝 열리고 창문이 공기를 통과시켰다. "해가...." 뜨고 있었다. 그것도 꽤 오래 된 모냥, 벌써 밖은 희끄무레 밝아 오르고 있었다. 팔이 부르르 떨렸다. "아, 늦었네요. 피곤하실텐데, 쉬시겠습니까?" 전혀 피곤하지 않은 얼굴로 금아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난 급격히 고개를 흔들었다. 잠이야 아예 자지 않아도 난 상관 없었다. 그리 된지 벌써 수 십년은 지났다. 아니, 지금 그게 문 제가 아니었다. "아, 아니, 아니야!" "네?" "돌아가야 해. 당장 돌아가야만 해."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까지 할 내 모습에 금아가 당황하며 내 팔을 잡았다. "네?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주무시지도 않고 돌아가시게 요? 게다가... 마부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한 금아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놀라기는 한숨 푹 잔 듯 방금 전에서야 정신을 차린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금아는 재빨리 후작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도 서둘러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걱정이 야 조금 하겠지만 잠시 쉬고 오후 즈음해서 돌아간다면..." "아니야!" 고개를 흔들었다. 평소라면 후작의 말을 거스른다던지 하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긴급상황이었다. "후작님은 오후에 오세요. 난 뛰어가도 되. 그다지 멀지도 않고, 내가 달려가는 편이 마차보다는 훨씬 더 빠르니까..." "하, 하지만!" 난 고개를 팩 돌리며 금아와 눈을 맞부딛혔다. 동대륙의 문 화를 어느 정도 아는 금아는 내가 자신의 사부라는 사실을 기 억해낸 듯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난 후작에 게로 설명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돌아가지 않으면, 슬금거리며 돌아간 세 귀족, 아니, 가르 암 백작과 헤일런 공작은!!" "네? 그들은... 아무런 짓도 하지 못할 겁니다." 후작은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건 그 런 종류가 아니었다. 그 씹어도 시원찮을 두 놈을 내가 걱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조금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내게는 동료가 있어. 만일 내가 서둘러 돌아가지 않으면..." 영문모를 표정의 후작과는 달리 백여년 전 나와 함께 대륙 을 돌아다니던 두 작자를 기억해 낸 금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 를 끄덕였다. "내 몫이 남아있지 않을 지도 몰라." "네?" "노도, 요즘 들어 성질만 급해진 그 늙은 정원사가 벌써 두 귀족의 집에 쳐들어가 모조리 엎어 놨을 지도 모른다구! 그건 내 몫이란 말이야!" 네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 칼...이라니...ㅠㅠ... 자아... 우리 4강을 기원합시다! 선수들에게 부담이 아닌 힘이 될 수 있는 팬이 됩시다! 실수한 선수들에게 격려를 보낼 수 있는 진정한 팬이 됩시다! 잘했을 때만 보고, 못할 때는 등돌리는 치사한 팬이 되지 맙시다... 그리고 제게도 그리 해 주시길...ㅠㅠ (먼산을 바라봅니다.) 오오...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21 Fri 21:35:09 IP : 211.215.59.154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4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1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0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2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7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0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5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은빛 2002/06/21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후작님?" 집사 헤리슨은 관자놀이를 누른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후 작을 염려스러운 눈으로 응시했다. 이른 아침 저택으로 돌아온 후작은 아침식사도 거부한 채 연신 한숨만을 내뿜고 있었다. "피곤하시다면, 침실로..." "아니, 괜찮네. 잠으로 해결할 고민이 아니니..." "네." 후작은 혼자 쉬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헤리슨은 조용히 허 리를 굽혀 보이고는 뒷걸음질로 후작의 방을 물러났다. "아, 잠깐." "네?" 막 문을 닫으려 하는 헤리슨의 뒤를 후작의 목소리가 잡아 당겼다. "그... 새로온... 하인들은..." "네." 아침 나절 후작은 새로운 하인을 셋이나 더 데려왔다. 워낙 에 큰 저택이었기에 일손 세 사람쯤은 더 받아들일 수 있었지 만 후작이 직접 누군가 일꾼을 데려오는 경우는 없었다. 어딘 가 근심으로 가득 차 보이는 후작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헤리 슨은 그들이 궁금했었다. "아니... 아닐세. 그들을 잘..............." 연신 고개를 젓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며 후작은 고뇌했다. 헤리슨은 방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조용히 서서 후작의 다 음 말을 기다렸다. 후작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아니...." "................" "후.... 그래. 새로 온 하인들이니 자네가 직접 관리해 주게. 가급적이면 그분들을, 아니 그들을... 란....님과 노도님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네. 알겠습니다." 헤리슨은 혼란스러워 보이는 후작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 스럽게 대답하고는 빙긋 웃어보였다. 후작의 미간이 살짝 움직 였다. "내가... 어색해 보이나?" "단지 조금 피곤하셔 보일 뿐입니다."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를 간신히 지어 보이며 후작은 눈가 를 조금 떨었다. 헤리슨의 얼굴에 걸린 편안해 보이는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후작은 길게 한숨을 내쉈다. "자네니 부탁하네." "말씀하십시오." "그 세 하인을... 그 중 특히 금발 머리의 하인을..." "네." "주의해서 다뤄주기를 바라네. 아니, 특별 대우한다는 느낌 이 들면 안되고... 그 뭐랄까... 란님이나 노도님처럼 하되... 아, 말이 어렵군." 후작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헤리슨이 다가가 창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포트에서 물을 따라 후작의 앞에 내 려놓았다. "후우.... 고맙네." 헤리슨을 향해 도움을 구하는 시선을 던지는 후작에게 그 는 살며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사연을 알 수는 없었지만 대공 의 저택으로 가서 얻어온 하인들이었다. 뭔가 잘못 되었을 경 우 대공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 지도 모른다고 헤리슨은 판단 했다. 아니, 신의 사자들과 함께 얽혀 들어온 하인들이니 어쩌 면 그들도 신탁의 일부분과 연관이 있는 존재들일 지도 모른 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인과 하녀들을 다루는 일이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고 헤리슨은 생각했다. 집사로 태어나 집사로 교육받으 며 후작가의 집안을 관리해온 그였다. 다른 일도 아닌 하인과 하녀들에 대한 일이라면 그는 충분히 후작의 걱정을 덜어 줄 자신이 있었다. "자네만 믿겠네." "네." 든든한 헤리슨의 대답에 후작의 얼굴이 살며시 펴 들어갔 다. **** "왔나?" 한 숨 안 잔 듯 깨끗한 모습으로 노도는 빙긋 웃었다. 조금 도 걱정하지 않은 듯한 표정. "다... 끝낸 건가?" 어쩐지 실망한 듯 고개를 돌려 보이는 내게 노도는 시익 미소지었다. "걱정 말게. 자네 몫으로 한 놈은 남겨뒀으니까." "......정말?" "물론이네." 새하얀 이를 들어내며 노도는 활짝 웃어 보였다. 이른 겨울 아침의 투명한 햇살 아래 그는 열살 먹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 을 지었다. 난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내쉈다. 적어도 한 놈은 남겨졌다는 안도감과 응징에 있어서는 결코 나 못지 않을 노 도에게 당했을 누군가에 대한 작은 안도감이었다. '저 노도에게 당했으니... 당분간 제기는 불가능하겠군.' 때로 사람은 정신적인 공격에 더 쉽게 무너지곤 한다. 노도 의 방식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저기 뒤편에서 아직도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하르크를 잡아놓고 있는 노도 의 실력은 결코 만만히 볼게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 뒤에 서 있는 자들은 누군가? 다들 평 범해 보이지는 않는데... 특히 자네 바로 뒤에 있는 청년의 기 도는 얼핏보기에도 나보다도 그다지 어려 보이지 않는 것이..." "아, 이들 말이지..." 등에 업혀온 주제에 아직도 숨을 고르지 못한 두 사람과 지난 백여 년 놀지 않았는지, 한 사람들 들고 달려오고서도 벌 써 숨을 정리한 한 사람에게 난 부드러운 칭찬의 미소를 보냈 다. 그가 내 뒤를 이렇게까지 잘 따라 올 줄은 나도 미처 예상 하지 못했었다. "잘 됐네. 지금 인사해 두는 게 좋겠어." 노도의 가늘게 좁힌 눈동자에 장난기와 호기심이 순식간에 가득 고였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인사가 저택의 다른 하인들에 게 하는 그런 소개와는 전혀 다름을 그는 눈치챘다. "호오?" "인사해. 이 쪽은 내 벗이며 이번에 함께 하인행을 떠나온 동 대륙의 도사 '노도'라고 하네. 백년전의 '그들'은 아니지만 절대 만만한 존재는 아니지." 순간 업혀왔던 두 남자의 표정에 실망의 기색이 스쳐 지나 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그들의 표정을 알아챈 한 사람의 눈가 에 살기가 번득였다. 두 사람의 몸이 움찔 뒤로 물러섰다. 노 도는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기를 내보냈던 그가 조금 놀란 기색으로 표정을 바꿨 다. "그래, 그렇군! 그랬던 거야!" 노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뭔지 모를 혼잣말을 반복했다. 그 는 빙글빙글 웃으며 내 뒤를 따라온 그들 중 제일 앞쪽에 서 있던 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반갑네. 자네 덕분에 이번 일이 무사히 풀린 듯 하이. 자네는 란과 무척이나 비슷한 기도를 지니고 있구먼." "아, 아... 감사합니다." "백년 전에 남겨졌던 인연인가?" "..........아, 네." "그럼 자네가 금아겠구먼." "!" 순식간에 금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노도에게 금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 만 오랜 뱃길을 건너오며 우리는 서로에게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풀어놓았었다. 그 한 조각에 금아에 대한 기억이 남겨져 있 었으리라. 하지만 금아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역시 그에겐 미안 하게 된다. 그는 노도가 그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나름 대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감격에 겨운 눈 빛으로 내게 무언가의 기대를 담은 시선을 보냈다. 난 빙긋 웃 어 보였다. 양심이 쿡쿡 쑤셔왔다. "이제 정식 제자가 된 셈이겠구먼. 그래 함께 온 건가?" 더 이상 내 중계가 필요치 않았다. 노도는 금아가 마치 그 자신의 제자라도 된 냥 등을 자상하게 두드려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단 한번도 내게 그런 따듯함을 받아보지 못했던 금아는 금새 감동해갔다. "대, 대공께서...." 감탄은 뒤에서도 터져 나왔다. "음?" 하얗게 질린 두 남자가 서로의 볼을 꼬집으며 서 있었다. "에.... 그게 아니라.... 아니라...." 순간 날카로와진 금아의 눈초리를 의식한 듯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허허허, 어른 앞에서는 아이가 되는 게 맞는 거라네. 아이 앞에서는 어른이 되는 거고." 노도는 여유로웠다. 금아는 다시 벌개진 얼굴로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고 스승인 금아의 의외의 모습을 본 두 기사는 숨 죽여 웃음을 눌렀다. "그래, 자네도 수행하러 왔는가?" "맞아." 대답은 내 쪽에서 흘러나왔다. "뭐, 떨어질 수 없다나 뭐라나... 그래, 정 붙어있고 싶으면 함께 가자고 했더니 올타구나하며 따라오데?" "그런가? 하지만 자네의 복장으로 봐서는... 절대 평범한 자 리에 있던 자는 아닌 듯 싶은데... 자네의 일은 어쩌고?" 다른 귀족들을 초청해 중재하던 자리를 마련했던 그였다. 자연히 복장도 평소의 그 보다는 조금 더 화려했고 그의 가슴 께에 달린 문장도 더 선명했다. "너무 오랬동안 자리를 지켰습니다. 저도 이제 슬슬 후진을 양성해야죠." 뻘쭘히 웃으며 금아는 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대타를 세워둔 것 같더군. 밖으로는 폐관수련을 들어간다 고 해 둔 것 같고." "호오... 이 서대륙에서 그런 관습이 있는가?"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 싶지만... 당사자가 하겠다는 데 누가 말리겠어?" 시익 이를 들어내며 금아가 활짝 웃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더니... 백년의 시간도 스승과 제자의 틈을 갈라놓지 못했군... 쯪쯔." 가볍게 혀를 차며 노도는 등을 돌렸다. 어느 새 하늘 중천 까지 치솟은 해가 우리의 그림자를 쪼삣하게 좁혀갔다. "아아... 이제 일할 시간이야." ***** 일단은 이연참입니다... 아... 그리고 파판은 거의 다 깼습니다. 쿨럭!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21 Fri 21:35:21 IP : 211.215.59.154 유아르 굉장한 하인을 모시는(?) 집안이 되었군요... 상당히 대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이연참 (]_[) / 기뻐요^^ (06/21,22:18) 캬캬 넘잼있어요~~파판...거의다깼으면...빨리..글올리셔야죠~~연참...연참... (06/21,22:21) 달기 연참~맛납니다요. (06/22,00:02) 샤린 흐음.. 은빛냥이야? (06/22,01:00) 피아 재미있어질것 같네요^^ (06/22,17:02) 아리스 빨리 글을 쓰셔야져.... (06/23,11:10) 미스티 연참^^ 이라니^^ 기뻐요^^ 4강진출 기념 연참도 해주시면... 안될까요?? (06/23,11:33) srdang 앗~~저 위에 오타발견! `제기`-]`재기`인것 같은데요?^^ (06/26,11:34)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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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런가. 폐관 수련이라고?" 목소리 주인의 답답한 심경을 대변해 주듯 낮은 신음 소리 가 간헐적으로 흘러 나왔다. 화려하고 우아한 방이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방안 이곳 저곳에서 적절히 악센트를 주 는 금장식은 요란스럽지 않았고 화려하게 그려진 벽과 천장의 그림과 무늬는 천박하지 않게 우아한 미를 담고 있었다. 고풍 스러운 네 개의 의자에 둘러 쌓인 아담한 테이블에는 한 남자 가 그림처럼 앉아 있었고 그 앞에 나지막한 의자에 또 한 사 람이 무릎을 기대어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커다랗게 열린 세로 창문으로 환상인 냥 흐릿한 안개를 넘어 보스윌 해 협을 가로막은 거대한 도개교의 그림자가 비쳤다. 방의 주인인 듯 머리에 아담한 크기의 관을 쓴 남자는 쓴 미소를 지으며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좀 더 편하게 기대갔다. 그의 시선에 병장기를 꼬나 쥔 반라의 신들이 몬스터들을 밟 고 올라 승리를 환호하는 그림이 들어왔다. 오십 여년 전의 전 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새롭게 그려 넣었던 천장화였다. "그런가..." '하긴... 근 오십여 년이군. 지칠만도 하겠지.' 그는 낮게 탄식했다. 그가 알기로 '폐관 수련'이라는 단어는 동대륙에서나 쓰이는 말이었다. 이 서대륙에서 그것도 귀족들 간의 암투가 심한 이 땅에서 단지 무예를 연마하기 위해 몇 년씩이나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검만을 휘둔다는 건 자살행위 와도 같았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무릎을 꿇은 남자는 모든 잘못이 자신의 것인 냥 더 낮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새로운 무술을 익히겠다고?" "네. 지금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이겠다며 대공은 문을 걸어 잠구었습니다." "한계를 뛰어넘겠다라... 후." 관을 쓴 남자, 왕은 깊게 숨을 들이 쉈다. 그의 심장이 서서 히 오늘 그 앞에 떨어진 현실을 받아들여가고 있었다. "그래...." 이른 아침 왕궁을 찾은 사자의 소식에 왕은 대경했다. 베이 르 대공이 어떤 존재였던가! 그 이름만으로도 드높은 마스터의 경지를 이룩한 검사이자 오십여 년 전 벌어졌던 카타이르 산 맥을 둘러싼 삼국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동시에 선 선대 국왕으로부터 현대까지 시간마저 초월한 듯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삼대의 국왕을 보좌해 오며 단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든든한 충신이었다. 비록 십여 년 전 나이를 핑계로 일선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는 했지만 그는 어느 누구도 의심 할 수 없는 왕국 제 2의 귀족이자 든든한 대들보였다. 동시의 왕의 지지자였다. 상업국가 크리아는 보스윌 해협이라는 천혜의 요지를 끼고 성장한 도시 국가 중 하나였다. 동대륙과 대조적으로 통칭 '서대륙'으로 불리는 대륙은 모두 세 개가 있었다. 그 셋은 나름대로의 위치를 가지고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서방의 북대륙이라 불리는 에이람, 서방의 남대륙이라 불리는 카슬, 그리고 또 하나의 섬대륙 고드였다. 그리고 크리아가 자리 잡고 있는 땅은 에이람과 카슬의 사 이, 두 대륙을 잇는 해협 보스윌의 한 중간이었다. 하나의 도 시에 두 개의 대륙을 잇고 있는 크리아의 수도는 늘 대륙을 오가는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크리아는 그 금력을 바탕으로 250여년 전 에이람 남부와 카슬 북부의 수많은 도시국가연합 으로부터 독립한 상업국가였다. 가뜩이나 지리적인 이득권을 노린 주위 국가들의 도전이 끊일 날이 없는 소국이었다. 상권이 발달한 덕분에 타국에 비 해 귀족들도 부유했다. 작은 나라와 강한 귀족. 왕은 늘 시달 리는 존재였다. 그런 왕에게 믿을 수 있는 신하란 천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존재였다. 베이르 대공은 그런 존재들의 대명사 였다. 왕은 급히 자신의 사자를 파견했다. 대공의 사신을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런가.'하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속이 바짝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달리 그가 남긴 말은 더 없었는가?" 갑자가 믿고 있던 기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땅이 꺼지 는 감각이었다. 왕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물러나겠다며 말을 꺼냈던 던 한 두 번의 일은 아니었다. 왕은 그 때마다 갖 가지 일을 만들어 그를 왕의 곁에 묶어 두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떠나다니...' 아무런 대책이나 방편도 없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왕은 어 지러움증을 느꼈다. '건국왕 피슨님으로부터 250년... 그 중 50여년을 한 가문에 기대왔던 결과일까? 나는... 너무 안이했던 걸까? 그를 지나치 게 믿은 걸까? 그도 결국 하나의 귀족일 뿐인 것을.... 그의 힘 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는데...' 왕은 눈을 감았다. 선왕의 유언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오 갔다. '귀족을 믿지 말라 하셨지. 신하와 귀족은 다르다 하셨지. 베이르는 믿을 수 있는 자이지만... 지나치게 그 한 사람만을 의지하지 말라 하셨었지...' 순간적인 절망감이 그를 몰아쳤다. 왕의 앞에 고개 숙이고 있는 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달리 남긴 말은 없었습니다. 단지..." "단지?" 피식 빈 웃음이 흘러나왔다. "단지, 폐하께서는 지금까지처럼만 하시면 된다고... 폐하의 주위에는 이미 적지 않은 충신들이 있다고.. 힘이 될 자들이 있다는 말만을 남겼습니다." "그런가?" 그렇다 한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 발톱을 숨긴 채 조용히 몸을 숙이고 있는 자들과 진짜 고개를 숙여준 자들을 이제와서 처음부터 다시 구별하라는 건 무리였 다. 의지하는 법을 먼저 배웠던 왕은 유약했다. "그래, 언제쯤 끝내겠다고 하던가?" 대공의 속내를 짐작해야 했다. 그가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하 지 않는다면 왕으로서는 그를 대신해 왕을 지켜줄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황송하옵니다만... 그는 시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단지 벽 을 넘어 새로운 깨닳음을 얻을 때까지라고만..." 왕이 바라는 대답을 해 줄 수 없음이 무릎 꿇은자의 고개 를 더욱 수그리게 만들었다. 왕은 잠시 침음성을 삼켰다. "그런가..." "하오나..." 무릎꿇은 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왕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 했다. "대공은 폐하를 위한 준비를 마친 듯 보였사옵니다." "흠?" 그의 눈이 살며시 빛을 발했다. "폐하께서도 이미 소문을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신하의 목소리에 왕은 몸을 살며시 앞으로 굽혔다. "그, 폐하의 귀에까지 들어가기에는 조금 잡스러운 소문이 있었습니다." "흠?" 왕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늘 그렇듯이 궁중 근처에는 근 거조차 알기 힘든 소문들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대부분이 남을 모함하는 말들이었기에 왕은 귀를 닫은 지 오래였다. 그 는 유약했으니 어리석지 않았다. 그런 소문을 신하가 이 자리 에 꺼내고 있었다. 무언가 다르리라 생각했다. "불미스러운 바람의 한 조각이었습니다만, 그 풍문을 잠재 운 자가 대공이었기에 불경을 무릎서고 감히 말씀 올리옵니 다." "대공이?" 그가 직접 나섰다면 폐관수련에 대비한 '무언가'일 수도 있 었다. 왕은 귀를 활짝 열었다. "실은... 최근에 페르로이 후작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사 옵니다." **** 해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페르로이 후작가는 또다시 바람 에 휩쓸렸다. 겨울의 한 가운데를 지나 조금은 길어진 해가 뉘 엇뉘엇 저물어갈 무렵 한 대의 호화로운 마차가 정문을 박차 고 밀고 들어왔다. 국왕의 사신이었다. 저택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나를 비롯한 모든 하인과 하 녀들은 총 동원되어 사신을 영접할 준비에 손을 놀리기 시작 했다. 어린 주인은 스테판과 함께 조용히 방구석에 처박혔다. 십 수권의 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오늘 막 도착한 새 하인 셋은... 전직 대공과 그의 두 호위기사였던 그들은 임시로 내 보조 하인으로 덧붙여졌다. 그 모든 혼돈의 와중에서 홀로 유 유적적히 이전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밖에 없었다. 동대륙의 화초 전문가. 정원사 노도. 아, 그리고 노도 없이는 아무런 쓸모짝에 없는 현직 암살가 하르크. 티 안나게 한다고는 하지만 쉴 세 없이 눈동자를 굴리는 그를 복잡한 무 리 중에 던져놓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여러모로 귀찮지만 유용 해 보이고 또 노도에게는 필요한 존재였다. 일견 한가해 보이는 그들이 부럽기 그지없었지만 신세 타 령할 시간은 없었다. 만일에 대비해 사신이 묵고 갈 방을 청소 하는 일은 생각보다도 어려웠다. "거기, 커튼을 모두 갈았으면, 시트 마무리를 돕도록!" 진두지위를 맡고 있는 하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세 명의 하녀가 침대 주위로 달라붙었다. 침대시트는 왜 이렇게 겹겹이 싸 두었는지! 천장은 왜 이렇게 높게 만들어 두었는지! 칭칭 말아도 네 사람은 덤벼들어야 겨우 듬직한 커다란 커튼 덩어리들을 바라보니 한숨밖에 흘러나오지 않았다. "여기, 셋이서 이 커튼 좀 들고 세탁실로 옮겨 놔 줘. 길 안 내는... 흠. 제린이 좀 해주고." 있는데로 인상을 구기는 세 남자를 외면한 채 난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한 하녀에게로 빙긋 미소를 지어 보냈다. 제 린은 이제 막 열 아홉 살이 되는 어린 하녀였다. 이 저택에서 하녀 생활을 시작한 덕분에 이 곳의 지리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오늘따라 나와 세 신입 하인들 주위를 얼쩡거리며, 전직 백작가 차남 출신의 대 공 호위기사였던 아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네!" 제린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금아와 아쉬, 카즈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싱긋 짖궂은 표정으로 미소지어 보였다. 푸르딩딩한 자국이 아직 남아있는 금아의 떨 떠름한 표정이 종잇장마냥 구겨졌다. 셋은 말없이 팔뚝을 걷었 다. 근육이 거의 사라진 금아의 가는 팔과는 대조적으로 울룩 불룩한 두 기사의 팔에 힘줄이 돋았다. "그리고, 바로 돌아와 줘. 힘을 써야 할 일이 제법 남아있으 니까." 마스터 급의 기사와 내공을 다룰 줄 아는 자들 답지 않게 낑낑거리며 커튼 뭉치를 들어올리는 그들을 보며 난 악동처럼 눈가를 좁혔다.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는지 그들은 셋 이서 도 못을 커튼 뭉치 하나씩을 이를 악물고 들어냈다. "쯪쯔. 오기 부리다가 몸만 상할텐데." "..........." 금아가 슬쩍 살기를 피웠다. 난 그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 려줬다. -다 수련이라구. 강해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일그러져있던 그들의 표정이 똥씹은 냥 더 심하게 구겨졌 다. 난 피식 웃으며 내 앞에 곱게 놓여진 새 시트들을 침대에 맞춰갔다. 그들은 비틀거리면서도 용쾌 넘어지지 않고 짐 덩이 들을 들고 사라졌다. '귀엽긴.' 지금이야 있는 오기 없는 오기 다 피워 올리며 재롱을 부 리는 중이지만... 생각해 보면 살떨리는 순간들이었다. 날 따라 수련하겠다며 올망졸망 따라온 세 기사들은 시작부터 말썽이 었다. 숨기고 자시고 할 사이가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너무 스스 럼없이 대해줬던 게 화근이랄까? 노도의 새 제자 하르크의 정 체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현직 암살자라는 것을 안 순간부 터 그들의 말썽은 시작되었다. "이런 감히!" 대번에 검을 뽑아들며 금아와 두 말썽꾸러기가 외친 첫 마 디가 그거였다. 날카롭게 검을 뽑아드는 소리, 급작스럽게 피 워대는 살기! 마침 위층에서 창문으로 부인의 정원을 내려다보 고 있던 후작이 외마디 비명과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뛰어내 렸다. 동시에 그의 주위를 호위하던 기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졌 다. 후작이 끼었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첫 마디에 바로 이어진 "암살자 따위가 감히!" 라는 카즈의 외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기사들이 몰려 들어왔다. 미숙함 때문이리라. 그 지경으로 치닫도록 금아와 세 기사의 행동을 제압하지 못 한 채 그에 대한 황당함 같은 낭비적인 감정으로 파르르 떨고 있던 것은! 후작은 땅으로 착지하자마자 금아와 하르크의 사이를 막고 섰고, 난 금아와 두 말썽꾸러기의 검을 기운을 일으켜 저지했 다. 노도 역시 그의 갱생자를 지키기 위해 후작과 하르크의 사 이를 막고 섰다. 그리고 그 장면을 호위기사들은 보았다. 후작을 둘러싼 채 검을 뽑아든 세 사람의 낯선 하인과... 역시 새로 온 듯 보이는 정원사 하나,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늙은 정원사와 하녀 하나. "후작각하를 구하랏!" 대번에 요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린 후작을 암살하기 위해 치밀하게 침입한 악당이었으리라. 그러 나 오해를 받은 우리보다도 더 당황하고 겁에 질린 자는... "다,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금아와 우리에게 무작정 살기를 피워대며 몸을 날리는 겁 없는 자들을 본 후작이었다. 그는 실력을 갖춘 기사라는 이름 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순발력을 발휘했다. "후작님!" 그는 재빠르게 경비병들의 검을 후리쳤다. 얼떨결에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뿌린 경비병에게로 검을 찌르던 두 말썽꾸러기의 손목은 금아에 의해 사로잡혔다. 파랗게 질린 후작. 힐끔 내 눈치를 살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금아.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하르크, 무슨 생각을 하는 지 태연하기 그지없는 노도. '자네의 제자가 벌인 일이니 알아서 하게나...' '치사한 도사 같으니!' '허허허. 이 모든 게 다 자네의 수행이 아니겠는가!' 순식간에 그의 생각이 전해졌다. 난 깊은 한숨을 내리 쉬며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후작의 두 번째 개입 덕분에 상황 은 금새 가라앉았다. "이게 무슨 경거망동인가!" "하, 하오나, 암살자가..." "암살이라니! 어허! 이 분들의 어디가 암살자처럼 보인단 말인가!" 순식간에 기가 눌린 경비기사가 주춤 검을 내리고서는 조 금 의아한 기색으로 우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다리가 풀 리며 얼굴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풀썩 먼지와 함께 그의 엉 덩이가 땅에 떨어졌다. 바르르르 떨리는 몸. "대, 대, 대, 대공저하!" 그랬다. 옷조차 갈아입지 않고 노도에게 하인 신고식을 하 러 왔던 대공 금아가... 번쩍거리는 가문의 문장을 가슴에 새긴 채 말끔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스승님?" "..........." 태연히 날 스승이라 부르며... "넌 날 도우러 온 거냐? 아니면 말아먹으려고 온 거냐?" 금아가 헤죽 웃었다. 골치가 지끈 쑤셔왔다. 십 수명 우리를 향해 달려왔던 후작가의 호위기사들의 안색이 푸르딩딩하게 변해갔다. "스, 스, 스... 승....님?" "그럼, 내 스승님이시지."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그들은 똥씹은 냥 나와 금아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너무나도 태연하고 당연스럽게 날 스승 이라 부르는 기르 드 베이르 대공. 내가 금아라 부르는 백년 전의 인연. 그리고... 들어온 지 채 일년도 되지 않은 신입 하 녀 하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서, 설마...."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표정. 기사로서의 신분을 내세우며... 신입 하녀라며 내게 농짓거리를 던졌던 자들, 뻣뻣 하게 고개짓으로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먹던 자들... 그들 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난 불끈 주먹에 힘을 집어넣었 다. -빠악!- 뒤통수로부터 밀려온 힘과 압력에 금아의 몸이 휘청 앞으 로 쏠렸다. 난 뿌드득 이를 갈았다. 주위의 사물이 분노로 일 그러져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으.래... 이 망할 제자야! 스.승.의. 사.랑.을. 듬.뿍. 보.여. 주.지." ***** 후.... 아깝게 졌죠. 역시... 경기 일정이 너무 빠듯했어요. 그래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후까지 침착하게 공을 돌리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던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 투지와 정신력은 챔피언이었다고 감히 주장합니다아아아!!!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26 Wed 14:37:58 IP : 211.215.57.130 ^ㅡ^* 항상 재미있는 글...잘 보고있습니다^^ 특히 이번 퍼펙트메이드라는 작품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여^^* 자주 써주셨음 하네여^^ 항상 행복하시길...^^ (06/26,15:02) 캬캬 잼있어요~~어제경기는...님의의견에..동의함다...아까운경기였죠...휴식시간이조금만더있었더라도...하지만정말잘했어요...우리선수들...님..그런의미로연참...해주세요!! (06/26,15:09) 달기 간만이넹. 여전 재미있어요. (06/26,16:16) 미스티 이글 너무 맘에 드는데 좀 일찍 올리시지.. 이거 너무 재미있다니까요^^ 선수들 힘내라는 의미에서 연참을 부탁드려요^^ㅡㅡ;; 그런데, 오늘은 좀 짧아보이는데요ㅡㅡ-+ (06/26,22:56) *^o^*~ 전 은빛님 글이 요즘 읽은 판타지 중에 젤 재밌어요. 그중에서도 퍼펙트 메이드가요. 힘내셔서 많이많이 올려 주세요~! (06/27,00:31)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4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1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0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2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7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은빛 2002/06/27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드래곤 오크 패듯 한다는 말이 있다. 비오는 날 먼지 나듯 때린다는 말과 비슷한 뜻인데, 잘은 모르지만 동대륙에서 여름 더운 날 먹는 보양식처럼 오크도 드래곤에게는 그런 종류의 음식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곳의 사람들이 그 맛좋은 오크 를 먹지 않는 건 드래곤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때문일 지도 모 른다. 모두들 고개를 흔들며 극구 부인하기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쫀득한 보양식을 왜 썩혀 버리는 지... 약간의 독 이 함유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감칠맛은 동대륙의 가축 돼지 를 월등히 뛰어넘는다. 그러고 보니 ... 먹고 싶어진다. 아, 문제는 그게 아니었고, 하여튼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 다. 그건 마스터라는 이름의 금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녀 의 신분으로 차마 주인인 후작이나 그 경비 기사들을 쥐어 팰 수는 없는 법. 내겐 제일 만만한 존재가 내 제자와 그 제자들 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쿨럭! 스, 스승님... 제, 제자...를... 죽이... 실...." "설마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일 만큼 미숙해 보이더냐? 이 게 아직 스승을...." "쿨러러러러럭! 아, 그, 게, 아, 니... 라..." 다시 한번 드높이 치솟은 내 오른 발을 공포스러운 듯 바 라보며 금아가 있는 힘껏 고개를 휘저었다. "그러길래 곱게 맞았으면 됐잖아. 뭐가 가능성이 있어 보인 다고 바락바락 반항해서..." 나라고 백년 만에 만난 제자를 하루도 안되 이렇게 개패듯 패고 싶었을 리가 없다. 나 역시 아직은 감정을 지닌 인간이었 으니까. 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부러진 금아의 다리를 끼워 맞췄다. -드드득!-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과 함께 반대쪽으로 꺾였던 그의 다 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이건 내 실수였다. 단 일초에 제압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전추력을 잃고도 의외의 정신력으로 움 직여낸 그의 실력을 순간 난 과대평가했다. "노도, 좀 고쳐주겠어?" "헐, 그래... 제자가 다쳐 누워있는 꼴을 보니 가슴이 아프던 가?" "당연하지. 나도 아직은 인간인데." 얼어붙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다른 이들의 시선 속에서 노 도가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꽃삽을 바닥 에 곱게 내려놓고, 노도는 금아의 상처 위쪽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바닥에서 고운 연록빛이 흘러나왔다. -찰싹!- "다 끝났네!" 확인이라도 하려는 지 손바닥으로 거세게 내려치며 노도는 금아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쑤셔넣고 마구 흔들었다. 어리버 리한 표정으로 금아가 살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그의 다리 를 몇 번 두드렸다. 차갑다못해 냉랭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어느 누구도 입 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난 금아를 대강 추스러 일으켜 세우고 는 고개를 슬쩍 돌려 보였다. 나와 눈이마주친 후작이 어색하 다 못해 불쌍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금아의 두 호위기사였던 아쉬와 카즈의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었다. 이럴 때 어떤 협박 보다도 더 잘 먹히는 게 있다. 난 알고 있었다. "훗!" 난 한껏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중압감을 견뎌내 지 못한 몇몇 경비기사들의 오금이 풀렸다. 후작과 그의 경비기사들의 입을 막는 건 간단했다. 대공인 금아가 스승이라 불리는 내 위세에 그대로 압도당한 그들은 감히 내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그 위에 노도의 술법이 가해졌 다. 후작이야 그의 성격상 우리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할 테 니 넘어갔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적어도 하르크의 정체만큼 은 보호해 주어야 했다. 노도는 하르크를 위해서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정신적으로 눌린 데다가 몇 대 얻어텨져 육체적인 방어력이 급격히 저하된 경비기사들의 기억은 손쉽 게 봉인 당했다. 동시에 세 말썽꾸러기들도 그에 합당한 벌을 추가로 받았다. **** "다...., 녀 왔... 습... 니다." 독기만이 남은 눈을 파랗게 빛내며 금아가 땀으로 목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섰다. 이를 악문 듯 입가에 피가 베어있는 얼굴로 두 말썽꾸러기들이 바닥으로 푹 쓰러졌다. "호? 벌써 다녀온 거야?" "언니! 이 세 분들 정말 힘이 셌다구요! 세 사람이서도 못 들만큼 무거운 걸 혼자서 들고, 저보다도 더 빨리 걸었다니까 요!" 제린이 붉게 달아오른 볼을 양손으로 문지르며 밝게 외쳤 다. "쯪쯔. 무리하지 말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어거지로 다시 몸을 일으키는 셋을 향해 난 다시금 씨익 웃어 보였다. "몸도 이전 같지 않으면서." 순간 세 사람의 눈에 노화가 일었다. 난 그들의 시선을 정 면으로 받아치며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튀네. 아예 근력도 봉인해 줄까?- 살짝 이를 들어내고 눈을 부라렸다. 순식간에 세 신입 하인 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그랬다. 내가 그들에게 내린 벌은... 내 력의 봉인이었다. 금아는 내게 배운 내력을 다른 이들에게도 조금씩 가르쳤 다. 자세한 심법이 담긴 구결들까지는 가르치지 않은 듯 보였 지만 적어도 내기를 움직이는 방법은 몸을 통해 직접 가르친 듯 했다. 덕분에 금아를 호위하던 두 기사 역시 어느 정도의 내공을 동대륙의 방식, 아니 내 방식대로 모으고 있었다. 그랬 기에 더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내기를 움직이지 못하게 잠시 묶어두는 일은...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는 마.- "자아~ 언제까지 쉬고 있을 거지? 신입이면 신입답게 더 몸 을 움직여야 사랑 받는거야!" 완벽하게 하인의 몰골을 한 금아와 두 말썽꾸러기의 입가 에서 길고도 깊은 한숨이 처연하게 흘러 나왔다. **** "폐하께서는 후작님께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갑작스럽게 잠적을 선포한 대공을 대신해 그가 맡고 있던 국방대신의 자리를 맡긴다는 왕의 칙서를 받아 든 후작은 한 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신이시여!' 다른 상황이었다면 솔직하게 기뻐했을 지도 모른다. 왕의 신임은 그와 같은 충성파 무골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 을 테니까. 대공의 대신이라도 좋았을 지도 모른다. 대공 정도 의 인물을 대신할 수 있다고 평가받은 것만으로도 후작은 기 뻐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공저하가 저리도 정정한 눈으로 날 지켜보고 있는데... 만 에, 만에 하나라도 실수했다가는! 아아... 류이네리아님까지!' 피가 발끝으로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후작은 순 간 현기증을 느꼈다. '이, 이대로 가문의 문을 닫을 수는 없어!! 여보! 그대가 보 내준 신의 사자는... 정녕 우리 아들과 가문을 위한 것이었소? 그대가 원망스러워 지는 구료....' 하루 사이에 그의 어깨로 떨어져 내린 짐은 한 순간에 감 당해내기에 너무 컸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대놓고 기뻐하기에 체면이 걸린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는 반가운 기색을 보여야 할 후작의 얼굴이 구겨지다 못해 일그 러지자 사신은 당황한 듯 후작의 안색을 살폈다. "아, 아닙니다." 후작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자 칫 잘못하다가는 왕명을 거역한다는 오해를 받을 여지가 컸다. "대공께서... 왕국의 기둥이신 분께서 갑작스레 잠적하셨다 는 게 잠시 믿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후작님께서는 오늘 아침 대공저하의 저택에서 나오셨으니... 더더욱 그러할 지도 모르겠군요." 묘하게 비꼬는 듯한 사신의 의심 섞인 시선을 외면하며 후 작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조금 더 외교적으로 보여야 할 때다. 사신에게 좋은 잠자리와 뇌물을 안기고...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함께 왕을 지켜야 할 자였다. 그와는 조금 더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 "허허허! 이거 제가 여러모로 실례를 범한 듯 하군요! 자아! 좋은 소식을 전해 주셨으니 그냥 보내드릴 수 없죠! 실례지만, 저녁은 하셨는지..." 사신의 입가에 미소가 베어졌다. "허허허. 신임 국방대신께서 저녁을 대접해 주신다니요! 영 광입니다!" ***** 오늘은 짧습니다만.. 일단 한 쳅터가 끝나기에 올립니다. 그럼! (저 연재 그렇게까지 극악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적어도 한달에 세편은 올리지 않습니까!!! 퍼거거거걱!)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6/27 Thu 21:59:54 IP : 211.215.244.112 캬캬 한...한달에세편...극악...양도짧군여...더늘리실순없는겁니까...연참은포기단계...*.*;;;양을늘려서자..자주올려주실순...거..건필하세요~~ (06/27,22:16) unica 여전히 멋지신 하녀님! (06/27,22:25) 플라티나 ...3에다 10을 곱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만. -_- (06/27,22:52) 미스티 한달에 세편이라니.. 극악연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녔군요.. 연참은 포기하고.. 양이라도 좀 늘려 주심 안돼요?? 이렇게T^T부탁드려요.. (06/27,23:04) 순수청년 쿡..... 은빛님+_+;; 이게 극악 연재가 아님 뭡니까;;; 쩝 ㅡ.ㅡ;; 그리고 제발 창파기두 써주세요 ㅜ.ㅜ;;;; (06/27,23:26) 집시마녀 창파디는요...? (06/28,11:33) hobit 와~ 감사감사.. ^^* (연중에 비한다면야.. - 아부작전...) (06/28,17:06)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4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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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up]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2002/07/01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후작가에는 사람들이 많다. 본래도 많았지만 요즘 들어 더 많아졌다. 금아가... 공식적으로는 기르 드 베이르 대공이 자리 를 물러나고 후작이 그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후작가의 일은 더 많아졌다. 호위기사들도 늘어났고, 보강된 경비기사들과 후 작가의 위명에 이름을 기대려는 몰락귀족 손님들도 부쩍 늘어 났다. 새로 하녀들과 하인들이 들어왔고 후작의 사병이나 마찬 가지였던 경비기사의 수도 세배는 늘었다. 귀족들을 따라 온 시종들과 마부들의 수까지 생각한다면... 저택 인구는 대략 여 섯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일이란 사람의 수대로 곧이곧대로만 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사람이 여섯배니 일도 여섯배 정도 늘어났겠구나 하 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은 근 육십배 가까이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일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금아가 하인행을 시작한지 겨우 한달. 시간은 정신없이 흘 러갔다. 미처 손보지 못했던 두 귀족은 절로절로 해결되었다. 그들은 이틀이 채 지나기 전 후작가로 직접 찾아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불행히도 노도가 직접 교육한 가르암 백작이라 는 자는 오지 못했지만... 아, 불행이란 내게가 아니라 그 백작 이라는 자에게 불행이란 말이다. 아니면 내가 정신없던 사이 먼저 찾아와 선수친 두 귀족이 운이 좋았던 거겠지. 가르암 백 작과 그 부인되는 자는 매일 밤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 쩍 처든 채 발발 떨며 '잘못했습니다!'를 외치는 희한한 몽유병 에 걸렸다. 덕분에 낮에는 탈진해 움직이지 못한다고... '아직 정신 못차렸군.'하며 가볍게 혀를 차는 노도를 보며 난 그들에 게 진심으로 불쌍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 병을 빙자한 노도 의 술법은 정확히 보름동안이나 이어졌다. 아니 어쩌면 더 이 어졌는 지도 모른다. 백작은 소식이 들려올 수 없는 곳으로 떠 났다. 가르암 백작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일체의 관직을 사퇴한 채 영지로 내려가 버렸다. 사람들의 소문에 의하면 그의 당대 에 다시 이 수도로 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아무래도 호 되게 당한 듯 싶다. 후작가는 제린의 말에 의하면, 지난 십여년간 변했던 것보 다도 더 많이 변했다. 내부적으로도 그랬겠지만 외형적으로도 달라졌다. 백여년 전 왕국 융성기에 지어진 후작가는 다른 고저택들 에 비해 비교적 넓직한 땅을 차지하고 지어졌다. 왕성이나 다 른 고 귀족들의, 오래된 공작가의 저택들이 전투 요새의 형태 를 띄고 좁고 높게 지어진 반면, 후작가의 저택은 도심에서 약 간 외곽 쪽에 한 발을 걸치고 넓직한 대지에 펑퍼짐한 여백을 지니고 있었다. 손님들을 위한 방도 많았고 정원도 다른 저택 들보다 몇 배 넓었다. 그런 저택에 방이 모자라게 생겼다. 후 작은 급히 목수들을 불러 하인과 하녀들을 위한 숙소를 늘려 갔다. 이래 저래 벽돌집과 나무 집들이 만들어졌다. 새로 지은 목조건물들은 마치 요새처럼 저택을 둘러쌌다. 북쪽의 정원은 흔적조차 없어졌고 남쪽의 넓직했던 정원은 나무를 밀어내고 새 연무장으로 변했다. 연무장을 둘러싸고는 또다시 경비기사 들과 기회를 얻기 위해 후작가를 찾아온 기사들의 숙소가 둘 러쌌다. 그러나 노도를 포함한 정원사들의 일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들이 돌봐야 할 정원의 면적이 반 이하로 줄었음에 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른 정원사들과 마찬가지로 노도 역시 하르크와 함께 동 쪽의 '마님의 정원'을 지키기 위해 점점 필사적으로 변해갔다. "곤란합니다. 이 정원은 마님의 정원입니다." "에게게... 할아버지 인색하시네. 어차피 돌아가신 분의 것이 잖아요. 새 마님이 들어오시면 싸악 갈아엎어질 지도 모르는 정원인데." "어허!" 몰려든 귀족들의 성별은 굳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지 않았다. 비어버린 안주인의 자리는 퍽이나 매력적이었다. 후작가의 후 처 자리를 노린 쟁쟁한 귀족가의 여성들도 대거 몰려왔다. 문 제는 그런 자들에게 딸려온 하녀들이었다. 아니 그 뒤에 있는 철없는 아가씨들이 더 문제였기는 했겠지만... 주인의 일확천금 을 위해 따라온 하녀들은 정말 철도 없이 노도의 속과 후작의 가슴속 상처들을 벅벅 긁어댔다. 그녀들의 뒤에 버티고 있는 가문들을 적으로 만들 수 없었 기에, 동시에 아직 어린 클레이브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기에 후작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그녀들의 작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에게 재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주위 귀 족들의 시선이 잠잠하지 않은 이상은 몰려드는 그녀들의 물결 을 무작정 막을 수만도 없었다. 대공 베이르, 내 식대로 부르 자면 금아가 든든히 지키고 있었기에 후작과 같은 계열의 무 관들은 굳이 다른 문관 귀족들과 연합해 '모임'을 만들지 않았 던 모양이다. 덕분에 후작은 요즘 진땀을 빼고 있었다. 국방대신의 자리를 공식적으로 승계하고 처음으로 여귀족 들의 물결이 자신의 저택 정문을 넘어서는 것을 발견했을 때 후작은 직접 노도의 방으로 찾아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가 볼 틈도 없는 아주 짧은 인사였다. 노도는 그런 후작 의 마음을 읽지 못할 만큼 눈치 없는 영감탱이가 아니었다. 그 는 늘 그렇듯이 넉넉하게 웃어 보였다. 후작은 눈에 띄게 안도 하는 표정으로 그의 방을 나섰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부터 노도의 전쟁은 시작됐다. "글세 안됩니다!" 노도의 언성은 점차로 높아만 갔다. 처음 하녀 하나가 와서 꽃을 부탁할 때만 해도 그는 수도인다운 인내력으로 철없다기 보다 싸가지 없는 하녀의 버릇없음을 잘 삼켜 넘겼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이어 두 번째 하녀가 왔을 때, 두 번째 하녀의 등 장을 보고 첫 번째 하녀가 다시 되돌아 왔을 때, 두 하녀의 옥 신각신 속에 세 번째 하녀가 끼어들었을 때, 그날 저녁 마지막 으로 도착했던 네 번째 하녀가 노도의 빈틈을 노려 그가 가장 힘들게 피운 꽃 한송이를 '이 정도는 되어야 아가씨의 품위에 어울리지'라며 무참하게 꺽어버렸을때 노도는 폭발했다. "철이 없는 것도 정도라야지!" 공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노도의 흰 수염이 바람도 없 이 부르르르 떨렸다. 하녀들은 본능이 전해주는 공포와 자신들 의 아가씨의 권세에 기댄 허영으로 갈등했다. "당장 내려 놔!" 엄하게 가라앉은 노도의 시선이 네 번째 하녀에게로 꽃혔 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꽃을 등뒤로 감추었다. 노도 의 눈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 때였다. "그 하녀는 내가 보낸 하녀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거만하게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는 듯 노도는 그답지 않게 픽 웃었다. "아가씨의 품위에 맞지 않은 도둑을 하녀로 삼으셨군요." -딱!-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려한 레이스를 목둘래 가득 두른 귀족 여인 하나가 노기 등등한 얼굴로 노도 가 곱게 기른 나무 하나를 부러트렸다. "감히! 겨우 나무나 가꾸는 정원사 따위가 날 가르치려 드 는 게냐! 후작님! 하인 따위가 절 모욕해도 좋습니까?!" 그녀가 팩 하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편에 떨떠름한 표정 의 후작이 서 있었다. 그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여인의 눈초리가 더욱 사납게 변했다. 후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듯 보였다. 난 조용히 내 옆에 함 께 숨어 지금까지의 풍경을 훔쳐보고 있던 금아의 옆구리를 힘껏 찔렀다. 무방비상태의 금아가 내 손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쿨러럭! 왜!" 기묘한 기침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몰려들어왔다. -너무하세요!- 원망에 가득찬 시선을 힐끔 돌려 보이고는 금아가 푸슬 몸 을 일으켰다. 후작이 놀란 얼굴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금아 는 바짝 얼어붙은 후작에게 가볍게 눈을 흘겨 보이고서는 지 난 한달간 배운대로 양 손을 앞에 곱게 모아보이며 가볍게 허 리를 숙였다. "후작님 손님 오셨습니다." 후작이 반색하며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실수를 깨닳은 듯 급히 다시 몸을 돌려 여인에게 사과 를 표했다.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레이디 세레라. 그럼." 아주 짧고 간단하게. 세레라라 불린 여인은 순간 당황하면 서도 우아하게 후작의 인사를 받았다. 비록 꽉 쥐인 주먹이 가 볍게 떨렸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녀의 행동을 탓할만한 '신분' 을 지닌 자는 없었다. 공개적으로 말이다. "흥!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정원사. 가자."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지만 네 번째 시녀는 재빨리 움직였 다. 그는 노도의 굳어진 얼굴을 향해 혀를 낼름 내밀어 보이고 서는 그가 애지중지하던 꽃을 몇 송이 더 꺾어 달아나듯 여인 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때 아닌 한기에 위축되어 있던 세 하녀 가 각자 자신들 가까이에 피어난 화초들을 한 아름 꺽어들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노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네... 잠시 나와보게." 멍 하니 풀린 얼굴에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슬픔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내가 숨어있는 곳으로 향했다. 난 몸을 일으켰다. "이 곳의 귀족이라는 인간에 대해 난 잘못된 착각을 지니고 있었던 듯 하이..." 그가 허탈히 웃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 꽃 도둑이기는 하지만... 그녀들이 검을 들고 날뛴 것도 아니고..." 백여년 전에도 질리도록 보아왔던 풍경이며 동시에... 동대 륙에서도 심심치않게 보아왔던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난 노도 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니, 아니야. 차라리 보이게 검을 든 자들이라면 나도 이 토록 실망하지 않았겠지." 노도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절래절래 흔들어 보였다. 난 노 도의 옆쪽에 자리를 잡고 풀썩 주저앉았다. 내 하는 냥을 잠시 보던 노도가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귀족 출신의 금아는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와 두어 걸음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다. "이제는 자네가 수도할 차례인 듯 하이." "허허허허허허." 귀족가에서 일한다는 건 쉽지 않다. 자신만을 잘났다 생각 하며 단지 신분이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타인'을 차별하는 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상상보다도 더 어렵다. 그런 면에 서 페르로이 후작가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무대처럼 편안했 다. 후작은 자신의 신분을 내세워 타인을 핍박하는 악취미가 없었으며 어린 주인은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문제지 철없이 날 뛰지 않았다. 후작의 성품 때문인지 주위 사람들도 괜찮았고 가끔 만나는 철없는 도둑과 협잡꾼들도 신선함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했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말이다. "신분이 꽤나 중요한 것이었군... 싶네." 단 한번도 신분이라는 것에 직접적으로 얽매여 본 적이 없 는 노도였다. 그는 수도자였고, 동대륙의 특성상 수도자는 신 분에 구애받지 않았다. 게다가 복잡한 인간들의 삶에 그는 발 담궈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말이다. 그런 그에게 그 여인의 눈빛은 충격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여인은 말일세... 이 늙은 정원사를 '인간'으로 보지 않 았네." 차가운 눈빛 속에 가라앉은 감정을 읽지 못할 만큼 노도는 미숙하지도 못했다. 그저 오만함과 도도함이라고 보았으면 좋 으련만... 그는 그녀의 눈에 담긴 '완벽한 자만'을 그대로 들여 다보았다. "모르는 놈이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 그녀 역시 모르는 것 일세. 모르는 거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그녀 역시 한 인간 으로서 완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지..." "쳇. 더럽게 어렵네." 툴툴 목소리가 끼어 들어왔다. 한달새 많은 것을 포기한 하 르크가 어느 새 자리잡고 앉아 땅을 차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쭈그리고 앉는 폼이 정원사의 노련함이 베어 나온다. 암살자로 서 단련되어 꾸며낸 그런 폼이 아니라 정말로 정원사의 기도 가 풍겨져 나오는 자세. "그래?" 의외로 노도는 태연하게 하르크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 않수. 나더러 복잡한 일이 안어울린다며 함께 화초 나 가꾸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정원사면 정원사답게 화초나 가꿀 것이지. 뭐 인간이 이렇고 저렇고 잡생각이 많아." 캬악 가래를 끌어올려 화원 한 구석에 뱉으며 하르크는 힐 끔 내 눈치를 살폈다. "본래 세상은 그런 거고, 귀족들도 그런 거지. 당신들과 후 작이라는 사람이 이상한 거야." 그의 말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래? 그런 건가?" 노도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 가 남작으로 인해 겪었던 그 고민들을 지금 노도가 겪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내가 내린 답을 보았다. 게다가 일조까지 했다. "내가 하녀인 것처럼 노도 역시 정원사이지. 그들이 귀족이 건 뭐건 간에 그건 사실이고...." 난 시익 웃어 보였다. "바다가 갈라져도 내가 나 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노도 역 시 그런 존재가 아닌가." 그 웃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내 알바 아니었음으 로... 지금까지 내가 겪어야 했던 사건들이 내 수도였다면 지금 부터 벌어질 일 또한 노도의 수도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노도의 결심은 그 효력을 나 타내기 시작했다. "꺄악!"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동쪽의 정원으로 발을 딛던 하녀 하나가 기겁하며 소리질렀다. "사, 살려줘요!!!" 파랗게 질린 얼굴 공포로 풀어진 눈동자! 그녀는 아끼던 치 마에 흙이 붙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바닥을 기었다. 순식 간에 경비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각자의 검을 뽑아들고 사방 을 살피며 쉴세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뭡니까."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하녀의 앞을 살짝 가로막 으며 나지막히 외쳤다. "괴, 괴물! 괴물이! 허어어어어엉!"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의 안정을 되찾은 하녀가 얼굴을 씰룩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두 다리를 쭉 뻣고 땅바닥 에 퍼질러 앉아 얼굴에 범벅이 된 흙을 털어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펑펑 울었다. 두 줄기 흙탕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경비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의 앞에서 안절부 절 못했다. "무슨 일인가?" 경비원보다 한 급 높은 갑옷을 갖춘 경비기사가 달려왔다. 꽤 멀리서부터 달려온 듯 그의 이마에 한 줄기 땀이 흘러내렸 다. 경비원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했다. "네! 갑작스러운 비명이 들려 달려왔습니다. 보니, 이 하녀 가 괴물을 봤다고..." 그는 힐끔 하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기사의 시선역시 꾀 죄죄한 몰골로 허헝거리며 울고 있는 하녀에게 꽂혀 있었다. "괴물?" "허어어엉! 괴물이란 말이예요! 괴물!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린 들어보지도 못한 괴물!" 조금 용기를 되찾은 듯 하녀가 목청껏 소리질렀다. 기사들 은 당황한 듯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괴물이 있었을만한 흔적 은 아무데도 남아있지 않았다. 주위는 깨끗했고 화원 안으로 향하는 작은 돌길과 주위의 풀들은 한포기도 꺽이지 않았다. 검을 뽑아든 채 잠시 더 주위를 경계하던 기사와 경비원들 은 하녀가 뭔가 잘못 본 것이라 판단하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 아갔다. 이른 아침부터 비명을 질렀던 하녀 역시 '왜 이런 시 간에 마님의 화원으로 왔느냐?'는 경비기사의 말에 별 대답조 차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정원사에게 바락바락 대들던 용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내 이럴 줄 알았지." 의기 양양한 목소리로 한껏 자신을 뽐내며 노도는 그의 주 위에 처져있던 작은 진을 풀었다. 그의 기척이 들어나며 나무 위쪽에 매미처럼 들러 붙어있던 하르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 다. "그런데... 그거 어떻게 한 거유?"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하르크는 연신 노도의 눈 치를 살폈다. "내 눈에는 괴물 같은 것 안보였는데.... 아까 그 하녀도 그 렇고 그 하녀보다 먼저 왔던 하녀도 하얗게 질려서는 종종걸 음으로 달아나 버렸잖수...." "환각 마법입니까?" 내 옆에서 함께 기척을 숨기고 있던 금아가 신기한 듯 고 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보통 환각 마법은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광 범위하게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법이 아니야. 이건 환각이 아니라 진(陳)이라는 거니까. 공간의 마나를 임의로 왜곡해서 특정한 조건하에서 작용하도 록 만드는 거지." "네? 공간의 마나를 임의로 왜곡하다니요? 그것을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적용하는 건가요? 그렇게까지 정교한 건 인 간의 마법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믿을 수 없다는 듯 금아는 눈을 가늘게 좁혀보였다. 감히 내게 불신의 시선을 보내다니... 난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이며 노도에게 눈짓을 보냈다. 노도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시작했으니 내게 마무리하라는 뜻이다. "그건 동대륙의 선술이라는 건데... 이 서대륙의 말로 딱히 설명할 단어가 없네. 어떤 면에서는 마법과 비슷하지만 신성력 의 속성도 분명히 띄고 있으니까.... 아니, 그런 것들을 초월하 는 뭔가를 지니고도 있고... 흠." "........네?" 신력과 마법. 이 서대륙에서 그만큼 정 반대의 의미를 지니 고 있는 말도 드무리라. 게다가 신관들의 신성력을 초월하는 무언가라니! 이해해 달라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 쩔 수 없었다. 노도의 힘은... 선술은... 그랬으니까. 정확히. "모든 존재는 기로 되어 있는데, 그 기의 절대적 특성을 음 과 양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정 반대의 속성을 지닌 건 공존 하게 되어 있어. 동대륙의 법이니까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말 고... 에이. 노도 자네가 하게. 난 단순한 무골이니까." 말로 표현하려니까 혀가 꼬인다. 노도는 빙긋 웃고서는 간 단히 설명을 마쳤다. "그런 게 있네." 그리고서는 휙 뒤돌아 정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우린 닭쫏던 개모냥 밖에 엉거주춤 섰다. 하르크와 금아의 눈동자가 내쪽으로 굴러오는 것을 느꼈지만 난 외면했다. 숨을 쉬는 건 쉬웠지만 숨을 쉴 수 있는 원리를 설명하는 건 어려 웠다. 노도의 선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선술을 옆에서 바 라보며 받아들이는 건 쉬웠지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난 도사 가 아니었으니까. "하아아암! 어쨌든 어젯밤을 꼬박 센 보람은 있는거겠군요." "젠장. 별 희한한 게 다 있네. 달아가긴 다 텄어." 기지개를 주욱 펴대며 두 남자가 툴툴거린다. 이젠 공공연 하게 달아나기 텄다고 하소연하는 하르크는 얼마 전 그를 찾 아온 암살대 부하에게 은퇴하겠다며 공식적으로 밝혔다. 덕분 에 서너명의 추가 정원사 후보들이 노도의 방을 찾았고... 그들 은 지금 모두 서쪽 정원의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스승님도 저런 거 만들 줄 아세요?" 금아가 똘망똘망히 바라본다. "만들고 부슬 줄은 알지. 대강의 원리를 알고 있으니까." "흠...." "하지만 그 근본 원리를 가르쳐달라면 무리야. 동대륙인으 로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녀왔던 사고관과 세계관을 한 순간 에 누군가에게 요약해 이해시킬만한 능력은 내게 없어." "방법 정도는 가르쳐 주실 수 있겠네요?" 순간 하르크의 눈동자마저 빛을 발했다. 난 씨익 웃어줬다. 그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절망의 그림자가 덮혀 왔다. "원리를 모르면 방법 따위 알아 봤자야. 내게 부탁하지 말 고 노도에게 매달려 봐." "가르쳐 주실까요?" "글세.... 한 백년 들러붙어서 진심을 통하게 하면 해 줄지도 모르지." 도사들의 그들의 직전을 이을 진짜 제자를 받아들이는 방 법은 그랬으니까. 난 허탈감에 빠져 보이는 척 시간을 끌고 있 는 두 남자의 귀를 살며시 비틀어 잡아당겼다. "자, 자... 일할 시간이야." ***** 아쉬운 월드컵이 끝났습니다. 아아... 터키전... 이길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손이 부르트도록 박수 치고 있지만 미련이라는 게 한켠에 남네요. 마지막의 마지막 게임인데... 몸값 올리려는 듯 공을 가지고 끄는 모습을 보니... 훗! 뭐, 그래도 자랑스럽기만 한걸 보면, 역시 4강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가 봅니다. 아아... 이번 여름에는 K리그를 보러 가야겠어요~ 크흐흐흐흐흐....(좋은 선수 있으면 미리 찜해서 팬클럽 한번 만들어 봐야겠어요~) 후. 그리고 북한... 으으으으으으으으.... 빨간색 주기도 싫어지네요. 죽어간 장병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려옵니다. 아아...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7/01 Mon 11:29:27 IP : 211.215.58.224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4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1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0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2002/07/01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그 날 이후로 한달. 노도가 지키는 동쪽 정원은 '마의 정원' 이라는 기묘한 별명을 얻었다. 첫날밤 노도와 내가 급하게 만 들었던 환각의 진은 매일 밤 보강되었다. 화원 안에 들어간 사 람이 먹는 마음, 그 마음에 고이는 기에 다라 화원 안의 풍경 은 천차만별로 변해갔다. 끝없는 미로에서부터 시작해 본적도 없을 동대륙의 괴물들 집합소까지! 대강의 진은 나도 만들 수 있었지만 노도가 만들어 걸어놓 은 그 선술의 변화란! 어지간한 진은 힘으로 다 깨부슬 수 있 다고 장담하는 나조차! 깨기 아까울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었 다. 덕분에 첫날 이후로 동쪽 정원은 단 한 송이의 꽃도 도둑 질 당하지 않았다. 대신 노도는 후작과 어린 주인 클레이브를 위해 매일 아침 아름답게 피어난 몇 송이의 꽃을 직접 잘랐다. 저택에 뿌리박은 몇몇 귀족가의 여식들의 질투 섞인 시선 을 받으며 그 꽃들을 두 개의 침실에 장식하는 일은 내가 맡 았다. 처음 일을 맡았던 제린이 어떤 년인지는 모르지만 여주 인을 따라온 버르장머리없는 하녀 하나에게 이른 아침부터 쥐 어 터지고 꽃을 빼앗긴 이후부터 난 팔을 걷어붙였다. 지금까지 모두 여덟 명의 하녀가 응급실로 실려갔다. 꽤 두 꺼운 팔뚝을 자랑하며 내게 꽃을 내놓으라 명령했던 그녀들은 모두 내게 '아슬아슬'한 차이로 두드려 맞았다. 보는 눈들이 많 았던 덕분이다. 덕분에 난 그녀들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 다. 후작가의 왈패하녀. 난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후작가의 일하는 사람들은 크게 '본토박이 후작가 출신'과 다른 귀족과 기사들에 딸려온 자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자들 로 나뉘었다. 대부분이 잘 어울려 지냈지만 나 같은 골수파 후 작가족 시중 하인 하녀들과 안주인을 노리는 자들의 시종들은 거의 매일 매일이 전쟁상태였다. 후작은 주름살이 부쩍 늘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들 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어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탈락하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나 뭐라나 하는 기묘한 자존심 싸움까지 붙어 그녀들은 한 걸음도 저택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모두 다섯 귀족가 여식들의 신경전. 자 식도 외가 '빽'없는 혼혈아 아들 하나밖에 없으니 자신이 아이 를 낳으면 얼마든지 후작의 뒤를 잇게 할 수 있다는 근거 없 는 자신감이 그녀들을 이 저택에 발을 묶고 있었다. "천한 것! 내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되면 제일 먼저 네 목을 칠 것이다!" '능력이 되신다면 얼마든지.' 차마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을 꾹꾹 눌러 참으며 난 이를 뿌드득 갈았다. 사이들도 나쁜 주제에 하 는 짓은 어찌 그리 똑같은지! 부모 잘 만난 덕인지 원판은 꽤 예쁘장하니 괜찮게 타고 났건만 화장품은 왜 그리도 치덕치덕 발랐는지... 피부가 숨쉬 지 못해 비명을 질러대는 게 보일 정도로 그녀들은 온 몸에 처바르기에 힘썼다. 이 저택에 와서 그녀들이 갈아입은 옷만 해도... 능히 저택 한 채는 지으리라. 매일 매일 같은 옷을 입 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눈 튀어나오리만큼 화려한 것 들로 골라서. "란... 아버님은.... 아니다." 가끔 그런 여인들을 창문가에서 내려다보며 한숨짓는 어린 주인을 볼 때마다 난 가슴이 무거워졌다. 북적거리는 저택 분 위기에도 불구하고 스테판과 클레이브는 휩쓸리지 않은 채 공 부에 집중했다. 종종 귀족가의 여식들이 공부시간에 쳐들어와 가식적인 미 소를 지으며 그들을 귀찮게 만들기는 했지만 이미 세상에 없 는 어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정말로 그들 중 하나가 새 어머니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클레이브는 시종일 관 그들에게 예의를 지켰다. 아니, 어쩌면 세상에 없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일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서서히 후작이 오래지 않아 저택에 뿌리박은 다 섯 사람 중 한사람과 재혼하게 될 거라 믿기 시작했다. 정치적 인 이유가 그 중 가장 컸다. '새 어머니.'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지만... 클레이브는 나날 이 어두워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후작이 찾아왔다. **** 우리들의 새로운 방은 동대륙식이었다. 금아가 들어오고 전 체적으로 하인들이 늘어나면서 집사 헤리슨은 우리에게 새로 운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집을 짓기 시작해 보름만에 기본 벽 과 골조가 잡힌 것을 우리들이 넘겨받아 사흘만에 완성시켜 자리잡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한 보름여 정도가 더 걸린 것 으로 알고 있다. 동쪽 정원 근처에 지어진 이 자그마한 단층집 은 금아와 노도가 한 방을, 내가 한 방을, 아쉬와 카슨, 하르크 가 방 하나를 함께 썼다. 부엌은 없었지만 자그마한 거실이 하 나. 하인들을 위해 따로 내어준 공간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이었 다. 특히 이렇게 방이 부족해 계속 새 집을 지어야 할 때에 말 이다. 형식적으로 노도는 나의 아저씨, 금아와 아쉬, 카슨은 내 먼 조카로 되어 있었기에 우리 일가족을 위한 집을 새로 내 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헤리슨은 말했다.' 보나마나 우리의 또 다른 신분에 바짝 언 후작이 뭐라 언질을 주었겠지만 말이 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방식의 새 집에 금아와 다른 셋이 어느 정도 적응해 갈 무렵이었다. 반쪼가리 달이 훤한 얼굴을 자랑스럽게 내민 어느 날, 후작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딛었다. "흠?" 나란히 열을 맞춰 놓여진 신발들의 모습에 후작은 잠시 멈 칫하더니만 곧 방안의 분위기를 알아차리고서는 신발끈을 풀 렀다. "아, 그냥 들어오셔도 됩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절대 용납하지 않겠지만 그는 이 모든 곳 의 주인이었다. 몇 번 무심코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가 무지하 게 쥐어 터졌던 하르크와 아쉬가 원망스러운 시선을 힐끔 보 내왔다. 난 곱게 주먹을 쥐어 한번 들어 보였다. 보란 듯이 한 숨을 푹 내쉬며 아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 하는 냥을 보 고 있던 금아가 멋적게 웃었다. 난 그런 저들이 마음에 들었다. 기는 죽어도 비굴해지지는 않는다. 내게 보내주는 믿음과 언젠가는 자신들도 내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 각오가 그들의 안에서 늘 빛을 발하고 있다. 요즘 들어 내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점점 더 과격해 지는 이유는 내가 저들을 의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딘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람들이 내게도 조금씩 늘어 가고 있었다. "동대륙식이군요." 조심스레 신발을 한쪽 귀퉁이에 두며 후작은 꽤 정중히 말 문을 열었다. "아내 덕분에 저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 모두 하인들입니다. 말씀을 낮추십시오 후작 님.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누가 듣는다면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누굴까. 전혀 하인답 지 못한 위압감을 풍기며 금아가 자세를 바로했다. 멋적은 얼 굴로 후작이 슬며시 턱 주위를 쓰다듬었다. "허허... 그래, 주인어른께서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의자 하나를 빼내며 노도가 털털 웃었다. 후작은 깊은 한숨 을 내쉈다. "요즘 돌아가는 꼴은 여러분도 모르지 않으실 겁니다." 풀석 노도가 내어준 자리에 주저앉으며 후작은 머리카락을 움켜줬다. 찔리는 바가 없지 않았는지 금아가 뻘쭘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옅봤다. "뭐, 밖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안을 봐서는 상당히 복잡하 고 어려워지는 듯 싶더군요." 힘을 지닌 권력자의 집안은 작은 정치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가는 사람들, 그들이 흘린 말들만 봐도 얼추 알 수 있는 부 분들이 있었다. 후작은 힘겹게 고개를 흔들었다. "준비하지 못한 힘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지 알 수 있겠 더군요... 아니... 군." 금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후작이 고개를 들어 금아의 눈을 직시했다. "물론 피하거나 변명하려는 건 아닙니다. 단지, 그 권력이라 는게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의 탐욕이...." 금아는 한숨을 길게 내쉈다. "징글징글했지. 하긴... 자네는 나보다 '힘'을 갖추지는 못했 군." 마스터라는 이름이 부여하는 힘. 그게 있고 없고는 말로 표 현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일로 우리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 라 믿네. 내가 아는 자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물론입니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란님과 노도님께 서는 알아서 해 주시리라 믿고는 있습니다만..." '설마.... 소문대로 재혼 할 생각일까?' 노도의 생각이 흘러 들어왔다. 요즘 들어 하인과 하녀들이 상당히 궁금해하는 문제중의 하나가 저거였다. 난 고개를 살짝 저었다. 단지 그렇게 보기에는 후작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가 너무 컸다. "클레이브를, 그 아이를 지켜주십시오." 후작이 슬프게 웃었다. ***** 의견 감평및 추천등등등... feedback을 받을 수 있는 글을 모읍니다. 제 글이 빠른 진도를 보일 수 있도록... 많은 자극을 주시길.... 단! 폭멜! 욕멜! 비난멜! 사절합니다!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7/01 Mon 11:29:41 IP : 211.215.58.224 캬캬 잼있어요~~후작...클레이브를생각해서재혼하면안돼~~ (07/01,12:15) 순수청년 근데 어째서 재혼해야 하져 전 아직 잘 이해가 않가여 ㅡㅡㅋ 그냥 재혼않한다구 하면 도리텐데 ㅡ.ㅡ 굳이 새엄마 없어두 후작가는 잘돌아가던뎅.... (07/01,13:15) 아이크 넘재미나요..기대합니다..얼른 올리세요..^^* 다음 이야기가 정말로ㅡㅡ 궁금합니다. (07/01,19:40) 미스티 후작 재혼시키지 말아요 클레이브가 불쌍해~!! 넘 잼떠요.. 기대되요^^ 참, 그냥 그 공녀들 하녀들 밤에 몰래 노도의 술법으로 몽유병 가장한 고문을 해서 다 떠나가게 만드는 건 어떨까요?? 재혼시키지 마세요~!!! 클레이브는 어떡하라고?? (07/01,21:30) 미스티 물론 걔네들이 노도의 술법으로 몽유병을 가장한 고문을 할때 란이 죽지 않을 만큼, 급소만 공격하고 몸에 멍도 없어 보이게 죽도록 패주시던지ㅡㅡ;; 하여튼 재혼시키지 마세욧~!!! 재혼시키면 님 미워할꺼야^^ㅡㅡ;; (07/01,21:31) 목나향 리메를 알고 첨부터 다시 읽었다오. 이만큼 참신한 스토리의 소설은 없었다고 본인은 생각하는데.....리메로 구성도 탄탄해지고 근래 읽은 소설중에 제일 흡입력이 있는것 같소이다. 흠 대단하오 감탄해 마지 않소이다 연재가 느려지더라도 꾸준하게 읽어줄테이니 연중이란 말만은 하지말아주오 알겠소? (07/02,00:2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4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1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2002/07/0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고지식한 남자 같으니." 곱게 장식된 레이스 한 귀퉁이가 찢겨나갔다. 화를 삭히려 는 듯 연이어 손수건 모서리를 자근자근 씹던 여인은 신경질 적으로 찢겨진 손수건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옆에서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 후작가의 하녀 하나가 흠짓 놀라며 아 무 것도 보지 못한 냥 고개를 푹 숙였다. 분풀이 할 곳이라도 찾는 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보던 여인은 팩 고개 를 돌렸다. "이런 싸구려!" 그녀가 후작가에 들어와 머무르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 간다. 이제 몇 주만 더 있으면 날이 풀린다. 조금만 더 있으면 새 싹이 돋고 꽃이 핀다. 그 때까지는 이 후작가의 안방을 차 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네 명의 방해자는 둘째치고서라도 후 작이라는 남자가 꼼짝하지 않는다. 아내와 사별한지 몇 년. 게다가 아들 하나를 낳은 뒤로는 몸도 안좋아서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고 하는데... "...정상이 아닌 게 아닐까요?" 눈치만 살피던 그녀의 직속 하녀 하나가 냉큼 그녀의 속내 를 읽기라도 한 듯 옆에서 종알거리기 시작한다. 음모에 찌든 귀족가의 유언비어들에는 후작이 사실 남색가라는 둥, 성적인 능력이 없어 부인을 새로 맞이하지 않는 거라는 둥 별의 별 소문이 다 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이렇게 제대로 된 소문하나 없 이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게다가 아가씨처럼 아름다우 신 분을 이렇게나 오래 곁에서 보고서도 청혼하지 않다니!" "시끄럽다!" 여인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하녀는 겁먹은 듯 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럴 때의 여인은 건들어서는 안된다. 재수 없으면 분풀이 상대로 찍혀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채찍질 당해 내 쫒길 지도 모른다. 가난한 평민 출신의 하녀 하나 정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는 여인이 그녀의 주인이었다. 여인은 하녀의 겁먹은 모습이 즐거운 냥 고개를 번쩍 치켜 들고 흘낏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무시하고 깔보는 모습. 하 녀는 그녀가 그 정도로 넘어감에 안도하며 작은 한숨을 내쉈 다. 어제였다면 맞장구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또 다 르다. 여인은 거칠게 서랍을 열었다. 그녀의 본가로부터 새로 보내져 온 편지 한 장이 모습을 들어냈다. '정말로 그 꼬맹이만 없앨 수 있다면....' 붉게 칠한 입술을 자근 깨물며 여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만일 그 클레이브라는 어린아이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후 계자를 잃은 후작은 후대를 위해서라도 새로 부인을 얻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리 될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힐끔 벽 으로 향했다. 분명 그 벽 너머에는 그녀의 가장 큰 라이벌인 세리제린 후작가의 영애가 묵고 있다. 이 중 가장 신분이 높다 는 것을 시위라도 하듯, 다섯 사람 중 제일 늦게 찾아와서는 누구도 상상 못했던 빠른 시간 안에 클레이브에게까지 직접거 리며 점수를 벌고 있는 여인이다. 그 외에는 백작가라고 하지 만 거의 몰락한 집안의 여식이 하나, 모험 삼아 한번 찾아와 본 듯한 남작가의 여식이 하나... 그리고 어릴 적부터 사사껀껀 그녀의 일에 끼어 들어 온 후이 백작가의 제피리나. '아니야. 그 꼴 보기 싫은 계집이 먼저야.' 세이제린 후작가는 명문이다. 섣불리 없앴다가 불똥이라도 먼저 튀면 곤란하다. 적은 먼 곳부터 차근차근히 제거해야 한 다. 그렇다면.... "어디 두고 보자. 안주인의 자리는 내 것이야." 여인의... 셀레라 엘 하노베이의 눈가에 독기가 감돌았다. 그 날 셀레라의 하녀는 바쁘게 돌아다녔다. **** "똑바로 보고 다녀!" "..........." 한심스러운 작태다. 이 내가 저런 모습을 그냥 보고 지나가 게 될 줄이야! 제가 먼저 달려와 부딪힌 주제에 냉큼 앙칼지게 소리지르고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도도도 달려가는 저 하 녀는 하노베이가의 여식을 따라 온 무식한 근육질 하녀다. 난 가볍게 눈쌀을 한번 찌푸려 주고는 머리를 털어 버렸다. 하녀 로서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말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하녀로 남으려면 여러모로 주의를 해야겠지.' 난 들고 있던 수건 뭉치들을 조심스레 다시 품에 안았다. 이 수건들은 클레이브의 갑옷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들이니 까. 요즘 들어 밤일이 부쩍 늘었다. 겁도 없이 쑤시고 들어오는 놈도 늘었고 무엇보다도 심난해 보이는 어린 주인 클레이브를 훔쳐보느라 바빴다. 어떤 겁 없는 놈이 몰래 쑤시고 들어와 칼 질이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잠이야 원래 안자도 상관 없을 정도니까 그다지 상관은 없 지만,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일에는 집중력이 떨어졌다. 나 름대로 맛을 붙여가고는 있지만 바느질과 빨래... 다림질... 갑 옷 광내기들은 아무래도 나와는 그다지 맞지 않는 것만 같다. 최근 나는 노도의 충고대로 무인다운 방식으로 하녀일을 새롭 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촘촘한 바느질은... 문득한 바늘 끝에 내공을 불어넣어 끝을 만들며 이제껏 한번도 손에 익힌 적 없 던 암기술을 익히는 마음으로... 빨래는 순간 순간 모습을 바꾸 는 비누 거품을 세며 안력 훈련을 겸했고, 가구나 장식물에 오 래 눌러 붙은 얼룩은 검기를 최대한 얇게 펴 살짝 깎아내기까 지 했다. 다림질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떨어지는 순간을 타 내공을 열로 전환시켜 한 순간에 주름을 피는 방법으로 내 공 사용의 정밀함을 연습하고 있다. 말 그대로 생활 속의 무공 이랄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답답한 속을 풀어줄 수 없는 것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갑옷에 광택내기! 검에 기름칠 해 본적 은 있었지만 사실 갑옷에 기름 바르고 문지르는 일은 새롭게 하녀일을 하면서부터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흙먼지를 마른걸 래로 벅벅 닦고, 살짝 젖은 물걸래로 굳은 흙을 닦아내고 다시 마른걸래로 섬세하게 문질러 물기를 없애고... 몇 단계의 기름 을 발라 녹이 슬지 않게 하고 광택을 낸다. 요점은 고르게 광 택을 내는 일. 처음에는 익숙치않은 덕분에 부분 부분 땜빵처 럼 광채가 빛나게 만들었었다. 속깊은 클레이브는 그다지 날 탓하지 않았었지만 덕분에 다른 하녀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 았었다. 어린 클레이브는 그녀들의 우상이기도 했으니까. 그 때문이었을까? 많이 늘은 광내기 실력에도... 아예 수선법까지 완벽히 손에 익혀버린 지금에도 갑옷닦기만큼은 하고싶지 않 은 일 중의 하나다. 언젠가 그럴싸한 이유를 몇가지 들어 하녀 일을 때려 친다면... 차마 밝히지 못한 이유 안에는 '갑옷을 닦 기 싫다'가 분명 들어있으리라. 그러나 내가 정말로 이 일을 때려치게 된다면 날 그렇게 만든 건 갑옷 닦기가 싫다라든가, 빨래가 지겹다든가 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일은 일일뿐이니까. 사람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건 역시... 사람뿐이다. '정말 별의 별 인간이 다 있지...' 이 조그만 나라에 발을 딛은 후 많지는 않지만 각양 각색 의 사람들을 만나봤다. 분명 과거에도 이러한 사람들을 만났었 을 텐데도 마치 처음인냥 새롭고 신기했다. 툴툴거리면서도 연 거퍼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내게 갑옷 고치 는 법을 알려주던 대장간의 주인, 단지 겉보기에 예쁘장한 게 마음에 든다며 과일 하나를 더 얹어주던 상인, 각자의 사연을 안고 귀족가로 들어와 열심히 일하는 하인과 하녀들, 요리사... 그리고 가끔 뒷문으로 찾아와 구걸하는 걸인들. 사실 난 무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스쳐 지 나가듯 보이는 그런 가벼운 관심은 있을 수 있었겠지만 진심 으로 그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본 적은 없었다. 어차피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게 이번의 경험 은... 서서히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진짜' 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말로만이 아니라, 버린 시간이 아까워 어거지로 끼워 맞추는 그런 '정당성'이 아니라 말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길 을 틔워주었다. 성공 여부를 떠나 그들이 자신의 일에 쏟는 정 렬과 노력은 내게 작은 감동을 보여주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귀족'이라는 직위를 지닌 집단 과대 망상증 환자 무리다. 남작으로 시작해 한 사람의 공작과 두 사 람의 백작가의 주인을 거쳐 요즘 우리 저택에 얼쩡거리는 거 의 빌어먹을 모든 작자들이 그렇다. 하지만 귀족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다행히도 가끔 별 종은 있다. 페르로이 후작과 금아가 그런 종류고, 그를 따라 덜렁덜렁 따라온 아쉬와 카즈가 또 그런 종류다. 거기에 한 사 람을 더 추가한다면... 난 주저 없이 이 여인을 꼽겠다. 우연히 마주친 복도에서 잡아먹을 듯 두 눈을 빛내며 달려와 내 옷자 락을 힘껏 잡아쥔 채 또박또박 목소리를 높이는 이 여인을! "그러니까, 일 끝나면 내 방으로 찾아와서 한 시간씩만 가 르쳐 주면 되잖아요." 클로네 엘 세리제린. 사흘 전에 찾아와 눌러앉은 후작가의 새로운 귀족여성 중의 하나이다. "죄송합니다만... 전 고귀하신 분을 가르쳐 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나도 아무런 생각 없이 부탁하는 게 아니라 구요! 성실하기는 하지만 란양은 바느질도 서툴고, 요리도 못 하는데다가 사건을 쉬지도 않고 끌고 다닌다고 소문이 자자하 던걸요?" "네?" 이럴 때 느끼는 감정은 당황스러움이다. 대뜸 찾아와서 가 르쳐 달라고 하더니만 이젠 내 단점을 아는 데로 끄집어내며 싱긋 웃는다. 그런데 그게 전혀 얄밉지 않다. "그런 시시한거 말고... '그걸'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그거.... 라니요?" 그녀는 살짝 다가와 과장스럽게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어린아이용이기는 하기만 쇠로 만들어진 갑주를 몇 번이나 찌그러트렸다면서요? 그것도 닦다가요? 맨손으로?" "......네?" "게다가, 아침에 꽃을 도둑질하려는 버릇없는 녀석들을 단 단히 혼내 주었다면서요?" "아.... 저.... 그건..." "하노베이가의 하녀는 손이 거칠기로 소문난 아이예요. 하 노베이가의 은혜를 입은 남자의 딸이라고 하는데, 신분만 아니 었다면 여기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녀는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주인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못가리는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훗!" 그리고선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하녀의 삶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일까? 그녀에게서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말에서 호감을 느꼈기 때문 일까? 나답지 않게 순식간에 손목을 허락한 채 난 그녀가 이 끄는데로 그녀의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녀는 하녀가 채 문 을 열기도 전에 자신의 손으로 문을 열고서는 날 끌고 들어가 자신의 몸으로 문을 닫고 막아섰다. 당황한 그녀의 유모와 하 녀들이 어쩔 줄 모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후작각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란은 특별한 하녀라고." "네?" "네! 무슨 뜻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특.별.한. 하녀래 요." 노도 못지 않게 짓궂은 미소로 한 눈을 징긋 감아 보이며 그녀는 한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붉은 입술 위로 세웠다. "내가 클레이브를 지키는 일을 도와주겠어요. 그러니..." 그녀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순식간에 장난기 가 지워진 녹색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당신은 절 도와주세요." ***** 닉 바꿉니다. 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저와 같은 이름의 어떤 분이... 모종의 분야에서 저보다 훨씬 더 유명하시다는 것을! 으으으으... 애로배우라니... (그럴 몸매라도 있으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을 텐데...)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명 최종수정일 : 2002/07/09 Tue 10:34:58 IP : 211.215.59.205 래드아이 애로배우.....;;;은빛님 원래 닉이 좋았었는데 섭섭... (07/09,10:51) 파랑 은빛님 닉 저도 좋아했는데...T.T (07/09,19:08) 리테 개인적으로 은빛이라는 이름뿐 아니라 닉네임도 너무 좋아했는데..안타깝네요..그런데 은빛과 애로배우와는 무슨 상관성이 있다고 닉을 그렇게 지었을지 모르겠네요..은빛님 아니 은명님 바뀐 닉도 괜찮은것 같네요^^ 힘네세요!! (07/09,22:40) hobit 어라랏.. 그래도.. 은빛이란 아뒤를 몇년(?)을 봤는뎁..ㅜ_ㅡ (07/10,01:3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4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2002/07/09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저녁 무렵 또 다른 편지가 본가로부터 전해져 왔을 때 셀 레라는 느긋하게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래, 생각은 해 보셨나요?" 화려한 레이스로 풍성하게 장식된 분홍빛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요사스럽게 웃고 있는 여인은 셀레라 엘 하노베 이였다. 그녀는 비웃음과 여유가 가득한 얼굴로 의자에 느긋하 게 기대앉았다. "뭐, 대답이 급한 건 아니죠. 아, 차를 좀 드시겠어요? 비록 페르로이가에서 준비해 준 차이기는 하지만 '하노베이'가의 사 람인 제 방에 보내져온 차이니..." 셀레라는 살며시 눈웃음을 쳤다. "보통 손님에게 보내지는 차보다는 훨씬 고급품일 거라 생 각합니다." 그녀의 말에 그녀 앞쪽에 앉아있던 여인의 얼굴이 살짝 굳 어졌다. 그녀의 손에 쥐여있던 손수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제가 류크양에게 드린 제안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 다만..." 셀레라의 미소가 굳어졌다. 류크라 불린 여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셀레라의 눈이 순간 빛났다. 그녀는 호이룬 남작가의 여식이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호이룬 남작가가 요즘들어 힘을 들어 내기 시작한 신흥 귀족이라 할 지라도 백작가와 남작가 사이 에 있는 격차는 감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격이 있었다. '어리석은 년.' 경멸. 자신보다 힘을 지니지 못한 자에 대해 지니는 근거 없는 감정. 다른 어떤 면도 볼 필요가 없었다. 류크가 지닌 고 아함이나 소문난 영리함 선한 성품 그 어떤 면도 셀레라에게 는 가치가 없었다. 그녀는 셀레라보다 지위가 낮았다. 남작이 라고 해 봤자 조금 건드리기 불편한, 평민보다 아주 약간 귀찮 은 존재. 그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었다. 그 동안에도 류크의 심경은 복잡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녀 역시 아무런 기대도 없이 후작가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사 실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후작은 가문에 얽매이는 자가 아니 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랬기에 아무런 배경도 지니지 않은 동 대륙 출신의 여인을 반려로 맞이했었을 테니까. 가문이 지니는 지위로 모든 것이 판가름나지 않는다면 그녀에게도 기회가 있 으리라 생각했다. 다른 귀족가 여인들의 암투가 있을 테지만 그 틈바구니를 잘 헤쳐 나간다면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적어도 상대가 이렇게까지 처음부터 무식하게 위압적으로 나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후작가의 후처라고는 하지만... 본부인이신 분이 유명을 다 리한 이상 정식 안주인이 되는 자리죠." 셀레나의 목소리가 류크의 고막을 두드렸다. "설마... 남작 영애께서 진심이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 노골적인 무시. 아무리 격이 있다고는 하지만 보통 이렇게 까지 하지는 못한다. 아니 안한다. 그들이라도 뭉쳐 다른 귀족 파에 붙으면 견제하기 힘든 힘이 될 수 있기에. 만일 그녀를 지켜주는 대가로 류크가 제피리나 가문이나 세이제린 후작가 에 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못해 야 정상이다. 류크는 견디기 힘든 모욕에 이를 악물었다. "훗!" 남작가의 여식이 후작가의 안주인 자리를 노린다는 건 불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셀레라와 그녀 가문의 사람들은 적어도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셀레 라는 류크에게 그녀를 도울 것을 요청했다. 아니 명령했다. '건방진. 내가 이렇게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는데도 망설임을 보이다니!'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한 채 고개를 다시 푹 숙이고 손수건 만을 만지작거리는 류크에게 셀레라는 은근히 짜증을 느꼈다. 그녀가 셀레라에게 건 조건은 간단했다. 공연한 욕심 부리지 말고 그녀의 명령을 따라 그녀의 라이벌인 제피리나 가문의 후이를 내쫒는데 일조 할 것. 그 대가로 셀레라가 제시한 것도 간단했다. 남작가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승낙 하지 않을 경우의 대가로 제시했다. '남작가 하나 반역죄를 씌워 내쫓는 일쯤이야 간단하지.' 어차피 왕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은 귀족들, 그 몇 몇 귀족들의 입만 막으면 그 정도 날조하는 일쯤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몇몇 고지식한 귀족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남작 가의 진상을 밝혀냈을 때쯤이면 이미 남작가는 주춧돌 하나도 남겨지지 않았을 때이리라. "공기가 답답하구나." 셀레라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방금 전의 오만하지 만 어딘가 과장끼가 섞여 있던 친절이 그리울 정도로 그녀는 냉혹하게 시선을 가다듬었다. 류크의 몸이 흠짓 떨었다. "조금 차기는 하지만 시원하지 않습니까? 자칫 답답해질 뻔 했던 제 가슴도 조금은 트이는 것만 같군요." 어깨를 다 들어낸 드레스 위로 차가운 냉기가 올라앉았지 만 셀레라는 가슴을 조금 더 폈다. 그녀의 말에 담긴 협박의 의미를 모를 만큼 류크가 어리석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강해지는 압박에 견디지 못한 류크가 조그맣게 입 술을 움직였다. 셀레라의 고운 아미가 살며시 찡그려졌다. 류 크는 흠짓 다시 말을 고쳤다.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셀레라가 원했던 굴복이 담 겨있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인상을 펴고 다시 거짓된 미소를 입가에 그려 올렸다. "현명한 가문의 자제답군요. 류크양." 창백하게 바랜 류크의 손등 위로 눈물인 듯 보이는 무언가 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렸다. 물기로 가려진 눈동자에 서서히 독기가 어려갔다. **** "열명째유." 하르크 늘다못해 이젠 습관처럼 입에 달려버린 한숨을 푹 내쉬며 하르크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그의 전직이 이런데 서 다시 쓰일 줄은 몰랐겠지. "이번 놈들은 서쪽 정원 뒤편에 꾸겨져 있습디다. 어디로 튈지는 모르지만, 영감이 설치해 놓은 진이라는 환각에 걸려들 어 한참 헤매고 있수." "허허허허... 놈들, 참 바쁘기도 하다." "어쩔 수 없죠. 지들도 일이라고 하는 건데." "하긴, 누구처럼 상대도 못가리고 왔다가 손 씻은 놈들보다 는 낫겠지." "...........꼭... 말을...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인상 펴." "..............." 노도가 피식 웃었다. 주먹으로 패는 게 아닌 이상 하르크를 씹던 놀리던 그도 별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죽이지 않는 이상 이겠지. "오늘은 내가 직접 가볼까?" 별도 초롱하게 떴겠다, 분풀이감도 제 발로 기어 들어왔겠 다, 기분도 꿀꿀하겠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난 의자를 밀 치고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혼자...?" 하르크가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난 그의 머리를 꾹 눌렀다. 낑낑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난 느긋하게 그의 머리카 락을 헤집었다. 방금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다른 밤행 은 무리였다. "넌 숴." 하르크의 가벼운 안도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난 문을 나섰 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예리해진 북풍이 옷깃을 파고 들 어왔다. 겨울을 알리는 빙성 '시르'가 봄의 춘성 '쥬르'에 밀려 하늘 할 구텡이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제 곧 내가 이 땅에 다 시 돌아온 지 한 계절이 완전히 지난다. 우리의 밤일은 거의 매일같이 늘어났다. 마의 정원이라는 별칭이 붙어버린 동쪽 정원에 둘러진 결계가 매일같이 침입하 는 불청객들이 뿜어낸 무모한 기에 휩쓸려 비틀어지지 않도록 점검도 해야 했고, 여기저기에 덤으로 설치해 놓은 미로들도 손봐야 했다. 소문이야 어찌 되었든 기적처럼 지켜지고 있는 동쪽 정원의 소식을 들은 서쪽 정원사들의 부탁도 어느 정도 는 들어줘야 했고 기사들과 경비원들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들어오는 박쥐들의 감시도 조여야 했다. 사실 우리가 정말 신경 쓰고 있는 상대는 어린 주인, 클레 이브 밖에 없기는 했지만... 감시망을 조이다 보면 별의 별 놈 이 다 걸리는 법. 게다가 그들이 목적을 밝히기 전에는, 정말 로 그 놈이 클레이브를 노리고 들어왔던 놈인지, 아니면 저 쓰 레기 같은 귀족가 아가씨들을 노리고 들어온 놈인지, 그도 아 니면 뭔가 비밀을 염탐하러 들어온 놈인지 알 도리가 없었으 니... 놈들은 닥치는 데로 우리 손에 걸리는 중이었다. "겨우 사흘만에 여섯 놈이라..." 흰 입김이 공기를 타고 퍼져나간다. 좋지 않다. 정말로 좋지 않다. 후작가의 새로운 손님이 들어서고부터 밤손님의 수가 부 쩍 늘었다.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인해 바짝 긴장한 귀족 들의 입놀림이 빨라진 덕택이겠지. 어쩌면 끄떡도 하지 않는 후작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기 위해서 일 지도 모르고... 소문에 들려오는 다른 귀족들의 부자관계가 상당히 허식적이 고 형식적이라니까. 그에 비해 후작은 진심으로 클레이브를 사랑했다. 멍청한 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지만 말이다. 아들을 잃 게 된다면 후작이 어떻게 변할 지는 나도 모른다. "클레이브가 없어지면 자신들의 차례가 올 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건가?" 아니, 어쩌면 차례가 올 지도 모른다. '죽음'과 '파멸'이라는 당연한 차례가. 불행하게도... 난 내가 처음으로 맞아들인 어린 주인의 죽음을 관망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으니까. 가슴이 사늘히 식어갔다. 난 새삼 아르페이나와 세 신들이 내 가슴에 매달아 놓은 추의 무게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집착이군.' 기분 좋은 씁쓸함이 퍼져나갔다. 스승을 잃은 뒤로 단 한번 도 젖어보지 못한 감정이 날 쓸어갔다. 이후로 몇몇 벗을 사귀 기는 했지만 그들은 내 손이 필요할 정도의 존재들이 아니었 기에... 날 필요로 하는 존재, 내가 지켜주어야 하는 존재, 내가 지켜줄 수 있는 존재... 비록 나를 묶어가고는 있었지만 그건 어떤 면에서 꽤나 기분 좋은 구속감이었다. **** '제길.' 그는 몸을 낮게 숙였다. 꽤 오랫동안 미로 속을 헤매고 있 었다. 그는 이를 지긋이 악물었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시간 감각을 잃지 않았을 텐데. 예상하지도 못했던 미로에 갇혔다는 심리적 충격에서 오는 당황감 때문인지 아니면 온통 하늘을 가려버린 검은 구름들 때문인지 그는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헤매기 시작한지 벌써 몇일이라도 지난 것만 같은 탈진감이 그를 덮쳐왔다. '마법인가?' 단순한 미로라면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 길은 가도가도 같은 길만 나온다. 분명 갈림길도 바르게 선택했다. 중간중간 길에 표식도 해 두었다. 위험해 보이는 물건이나 함 정도 없다. 출구만이 없었다. 그는 일단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분명 평범한 정원이었다. 자그마한 정원석들과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 필 때를 기다리는 화초들... 분명 어느 귀족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건만... '계속해서 같은 것들만 나오니 두려워지기 시작하는군.' 긴장으로 손이 차갑게 식어왔다. '이 곳이 그 유명한 마의 정원인건가? 설마! 그 곳은 분명 동쪽에 위치한 정원이라 알고 있었는데!' 한달 전 갑작스레 유명해진 마의 정원. 사별한 부인의 정원 을 지키기 위해 후작이 남몰래 마법사를 초빙해 정원에 마법 을 걸었다는 소문은 이미 퍼질대로 퍼져 있었다. '보내는 족족 행방불명이 되어버리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었군...' 요즘 들어 밤일을 담당하는 조직들은 유래 없는 호황을 맞 이하고 있었다. 왕국의 축을 지탱하던 마스터 베이르 대공의 갑작스러운 잠적과 순식간에 이동해 버린 힘의 축, 아직 완전 하게 굳어지지 않은 그 구심점을 중심으로 음모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었다. 갖은 암살과 정보수집의 의뢰가 쏟아졌다. 후작이 갑작스럽 게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 이유로부터 시작해 그 힘의 중심에 끼어들기 위한 몸부림과 권력을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돌리기 위한 수많은 발버둥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부르는 게 값. 워낙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알려진 후작가 에 대한 탐색이기에 암살자들과 박쥐들은 어마어마한 선금을 얻고 저택 안으로 하나 둘 발을 딛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길." 단단히 단련된 인내력에 조금쯤은 금이 갔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입을 열어 조그맣게 탄식했다. 분명 자신이 직접 표시해 두었던 문장이 땅에 그려져 있었다. 그는 이 미로안에서 완전 히 길을 잃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털퍼덕 주저앉아 머리를 정 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빠져나가야 한다.' 이 정도로 교묘한 미로 안이라면 분명 침입자를 알리는 무 언가도 설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미로를 헤매이기 시작한지 이 렇게 오래되도록 아무도 오지 않은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머 지않아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쓸데없이 움직이지 말고 차라리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려야 겠군.'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자신의 기척을 지워갔다. **** 날이 갈수록 쓸만한 놈들이 걸려든다. 그제 보다 어제가 어 제보다 오늘 들어온 박쥐가 더 유능하다. 진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걸려든지 한시간이 조금 넘은 듯 하다. 미로 같은 곳에 빠지게 되면 누구든 정확한 시간 감각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그 미로가 노도와 같이... 자연의, 마나의 흐름에 정통한 늙은 도사가 만든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 제 걸려든 놈은 반시간도 못버티고 하루도 넘는 시간을 느꼈 다. 오늘 저 놈은 어떨까? 놈은 아예 나를 기다리는 듯 조용히 앉아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아직 눈빛이 살아있다.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순순히 잡 혀가는 척 하다가 몰래 빠져나갈 자신이 있어 보인다. 뭐... 어 지간한 경비기사가 나섰다면 그렇게 될 공산이 컸겠지. 하지 만... "문제는 내가 경비기사가 아니라는 거지." 난 살짝 치마 끄트머리를 잡았다. 지난번에 수직으로 낙하 했을 때, 치마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놀림감이 되었었던 악몽을 아직 기억한다. 그 때 걸렸던 놈은 내가 홧김에 하르크를 쥐잡 듯 패는 모습을 보고서는 지레 겁먹었었다. 덕분에 쉽게 잡았 었지만... 그런 식으로 박쥐 사냥을 하고픈 마음은 개미 헛방구 만큼도 없다. "................." 온통 검은 옷의 밤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갑작스레 나타난 내 존재에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그는 조심스레 몸을 일 으켰다. 그리곤 아주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 '하녀?' 그는 눈에 신경을 좀 더 집중했다. 분명 흐릿한 불빛이었지 만 그의 앞에 뚝 떨어진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은 전형적인 하 녀의 복장이다. '함정인가?' 그는 천천히 단검을 뽑아들었다. 하녀는 무슨 배짱인지 팔 장을 낀 채 오만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본래부터 난공불 락의 요새라는 별명이 있던 후작가의 저택은 요즘들어 부쩍 더 악명이 높아졌다.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온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일단 나온 사람자체가 드물었는데다가 나오더라도 본 업에 복귀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같이 정신병 증세를 호소하 다가는 달아나거나 같은 조직의 손에 의해 숙청당했다. 그는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죽음의 그림자가 실체를 지니고 그를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어서오십시오. 후작가의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순간 그는 넘어질 뻔 했다. 하녀는 너무나도 하녀다운 태도 로... 찌를 듯이 단검을 뽑아들고 있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 였다.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는 침음성을 삼켰다. 단 한번의 인사였지만 오랬동안 다 져온 감각은 그녀가 기사가 아님을 전해주고 있었다. 신분과 힘을 지닌 자는 저렇게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진짜 같은 인사. 보통 독한 자가 아니거나, 뭔가 미친자가 아 니라면... 이런 시간 이런 자리 이런 만남에서 저런 모습을 보 일 수 없다.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후작가에서는 손님을 받지 않 습니다만... 오신 용건을 남겨주신다면 아침에 보고드리겠습니 다." ".......................장난치지 마라." 백보 양보해도 이 시간에 미로의 한 가운데 하녀가 등장할 이유가 없었다. '유.... 령인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순간, 하녀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세겨졌다. "장난... 이라니요?" "넌 하녀 따위가 아니다!" 동시에 그는 달려들며 단검을 든 손을 주욱 앞으로 내밀었 다. 허전한 감각, 그는 재빨리 고개를 움직여 목표물을 찾았다. 분명 칼에 베어졌을 '하녀'가 없었다. "흠.... 그렇게 보이나요? 전 정말 하녀입니다만..." "........." 그는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본능까지 스며든 두려움 이 그에게 많은 말을 하게 하기는 했었지만 그는 침묵을 사랑 하는 자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검 한자루를 더 꺼내들었다. 빛 조차 반사시키지 않는 칙칙한 검이 불길하게 번들거렸다. 그는 슬쩍 다리를 움직였다. 처음의 일격은 분명 눈치챘음 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재빠른 몸놀림을 피해 순식간에 그의 등뒤로 돌아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후작가의 그림자일 지도 모르지.' 후작가 정도의 힘을 지닌 가문은 의례히 그림자라 불리는 암살자, 혹은 정보원들을 두고 있었다. 그의 눈가가 살기로 좁 혀졌다. '살아나갈 생각은 없다.'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더 낳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죽었 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채 숙청대상에 오르는 일도, 미쳐 자 신을 잃은 채 괴성만 지르다가 뱃가죽에 칼을 쑤셔 박는 일도 원치 않았다. 하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또다시 그의 몸이 번개같이 움직 였다. "치엣!" 마치 허상이라도 벤 듯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칼 끝의 감 각에 그는 순간적으로 뒤돌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뒤 쪽에 아무도 없었다. "저어... 절 찾으신다면 전 아까 그 자리에 있습니다만?" 곱지만 더 이상 섬득할 수 없는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 왔다. 그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분명 자신의 칼이 가르고 지 나갔던 그 자리에 하녀는 다시 서 있었다. "어, 어떻게?!"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두렵 지 않았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사람이라면 약점이 있을 터였 다. 그러나... 유령이라면 달랐다. 그렇다. 유령이다. 그렇지 않 고서야 이런 자리에 나타날 리가 없다. 그의 마음은 굳어졌다. ] "유, 유, 유.... 유령!" 그의 정신이 혼란에 휩쌓여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똑같 은 길에 나타난 하녀의 유령! 그의 이성속에서 이 곳이 후작가 의 한 정원 귀퉁이였다는 사실은 지워진지 오래였다. 그의 다 리가 풀렸다. 그리고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한 삶에 대한 본능 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유령이다아아아아아아아!" -퍼억!- **** "이 노무 시키가!" 벌써 여러번이다. 날 보며 유령이라고 외친 바보가. 그런 바 보들은 정보를 캐낼 수도 없다. 이 땅의 암살자란 것들은 왜 이렇게도 정신력이 약한지... 그 것보다도 더 억울한 건 이 놈들이 하나같이 내가 하녀 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한 밤중, 아니, 시간감각조차 사라진 그런 미로 안에 데뜸 나타나 서 말을 거는 사람이라니...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제길! 왜 노도가 나타나면 정원사라고 철썩같이 믿으면서 난 아니냔 말이야!" 문제는 그거였다. 심지어, 정원사이며 동시에 후작가의 숨겨 진 힘쯤으로 보는 자들까지도! 기본적으로 노도가 정원사라는 사실만큼은 믿었다. 믿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까 지 완벽한 하녀의 복장과 언어를 구사하는 나는 왜! "나만큼 열심히! 그것도 시간외까지 동분서주하며 일하는 하녀가 어디 있다고! 그래, 내가 조금 서툰 건 인정하지만 나 날이 발전하고 있단 말이다! 엘리스에게까지 칭찬받은 하녀 인 사법으로 정중히 인사했는데! 내 어디가 하녀로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순식간에 숨이 벅차 올랐다. 알고 있다. 집 지키는 도깨비라 든가, 귀신이라든가, 하는 생활 속의 마물과 귀들에게 익숙한 동대륙의 사람들과는 달리 이 서대륙의 인간들은 유달리도 이 런 보이지 않는... 사의 경계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공포가 컸 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노도는 되는데 나는 안되느냔 말이 다! "제.길!" 난 가볍게 푸념을 정리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어 깨에 들쳐 매고는 저택의 담벼락을 넘었다. 입을 벌리고 노도 가 만들어 준 기억을 잠시 혼란스럽게 만드는 약을 조금 부어 넣고... "이 정도면 되겠지?" 지난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용량을 조금 넘게 부었다 가 노도에게 잔소리만 들었다. 이른 아침의 거리에 갑자기 나 타난 미친놈의 소문은 정말 빨리도 퍼졌으니까. "이번에는 용량에 가깝게 부었으니... 지난번처럼 극악하게 미치지는 않겠지." 술집이 몰려있는 지저분한 거리 한 구석에 그를 눕히고 버 려진 병에 남아있던 독한 향기의 술들을 그의 몸 위에 마구 뿌렸다. 그리고 빈 명 몇 개를 주위에 늘어놓았다. "누가 봐도 주정뱅이! 이 정도면 잔소리들을 일은 없겠지." 난 내 스스로 해 놓은 작품을 잠시 감상하다가... 몸을 돌렸 다. 각종 오물과 배설물들이 바위섬의 새똥처럼 곳곳에 널려있 는 장소에서 오래 버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날을 잘 세운 검처럼 따끔한 겨울바람이 머리카락을 휘날 렸다. '클레이브...를 부탁한다...' 후작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머리에 되살아났다. 슬픈 눈, 슬 픈 목소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그는 입지에 비해 아군이 너무 없었다. 다른 가문의 귀족들이 삼처 사첩을 거느리고 사 는 건 그들이 밝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혈맹. 결혼을 통한 가문의 결속. 그 단단한 갈고리 안들 을 친분 하나로 비집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후작은 그의 유일 했던 사랑 하나 때문에 많은 것을 버티며 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도... 지칠 지도 모른다. '재혼이라니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제 마음 안에... 그녀 는 아직도 살아있으니까요.' 그리움 가득한 눈으로 빙긋 웃어 보이는 그가 유난히도 애 처로와 보였던 건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날 금아는 자신이 후작을 힘들게 만들었다고 자책이라도 하는 지 방안에 틀어박 혀 밤새도록 뒤척거렸고, 노도는 헛허 연신 웃으며 짧아진 수 염을 하염없이 쓰다듬었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기지개를 쭈욱 폈다. 소복소복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어 느 새 쌓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회색의 가죽 신발 위에 흰 점 이 생겨났다가 순식간에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가서 노도에게 따져봐야겠어! 왜 나만 하녀라고 봐 주지 않는 거냔 말이야!" 가슴을 침식해오는 찜찜함을 애써 털어내며 난 호기롭게 외쳤다. 불길함. 마치 소중한 것을 잃을 것만 같은 그런... "젠장!" 아주 싫은 예감. *****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명 최종수정일 : 2002/07/09 Tue 10:32:44 IP : 211.215.59.20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7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2002/07/09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어머니....' 클레이브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유난히도 길다. 낮에 그를 찾아왔었던 여인의 요란스러운 웃음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윙윙거렸다. -어머나! 공부에 좀 더 집중해야 좋은 귀족이 될 수 있답니 다. 그래야 더 이상 어버님의 명성에 누를 끼지치 않죠.-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한껏 치켜든 채 눈을 아래로 내리깐 그 여인은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냥 클레이브에 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었다. -그리고 매맞는 아이 따위는 함께 공부시키지 않는 법이랍 니다. 가문에 안주인이 없으시니 헤이해진 것 같습니다만... 앞 으로는 제가 주시할 겁니다.- 무슨 자격으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클레 이브의 눈에 분노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린 클레이브는 차마 그 분노를 들어내지 못했다. '더 이상'이라는 말이 그의 귀에 걸려있었다.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는다... 그 말에는 지금 그 의 존재가 후작에게 누를 끼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비록 어렸고, 후작의 보호 하에 자라왔지만 클레이브 역시 귀족 사 회의 속성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만일 어머니의 그림자 를 닮고 있는 그만 사라진다면 후작은 언제든지 다시 그들 사 회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잡음 없이. 하지만 클레이브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분노를 참을 수 있 게 만든 건 그의 어린 자제심은 아니었다. 그는 볼 수 있었다. 마지못한 듯 그녀의 뒤편에 공손하게 서 있었지만 두 눈만큼 은 절대 그렇지 못했던 하녀의 눈동자를. 그 못지않게 분노하 고 있던 그녀는 만에 하나라도 클레이브가 분노를 들어내고 그로 인해 직접적인 비난이라도 받게 된다면 절대 참지 않으 리란 의지를 결연히 보이고 있었다. 과거의 사건으로 봐도 그 녀는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자신과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 는 건 힘이 되는 법이다. 마치 모든 죄가 자신의 것인 냥 고개 숙인 스테판을 바라보며 클레이브는 다시 한번 어깨에 힘을 집어넣었다. 그는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래야 했다. 아무런 반응 없는 클레이브의 모습에 몇번을 더 이죽거린 여인은 씨근덕거리며 그녀의 하녀와 함께 돌아갔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려니 오히려 기분 나빴던 일만 떠오른다. 잠들 수 없는 불쾌감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날개 만 키운다. 후작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클레이브도 모르 지 않았다. 그도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렇기에 더 힘든지도 모 른다. -딸그락- 어둔 밤에는 소리가 선명하다. 클레이브는 침대 머리맡에 놓여진 작은 초상화를 집어들었다. 추위가 들지 않도록 두꺼운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었다. 이불 밖의 차가운 공기가 저절로 몸을 움추리게 만들었다. 클레이브는 창문을 걷었다. 어슴푸레 한 빛 속에서 초상화의 주인이 방긋 웃었다. '잘 모르겠어.' 그의 손에 들린 그림의 주인공이 정말 어머니일까? '어머니....' 후작은 어린 아들을 위해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여 기 저기 작은 초상화들이 클레이브를 위해 걸렸다. 그러면서도 정작 후작은 단 한번도 초상화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여기에 살아있기 때문이란다.- 어느 날 그가 물어보았을 때, 후작은 자상하게 웃으며 그의 가슴에 살며시 손을 얹었었다. -그림은... 사실적으로 그려졌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화가.. 라는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네 어머니란다.- 단지 너무나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은 클레이브를 위해 남 의 눈이라도 빌려 그려진 그림을 그려놓았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후작부인의 초상화는 아니었다. 그들 이 부여한 의미가 그랬기 때문에. 클레이브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정말 초상 화 속의 인물과 같은 공기를 지니고 있었던 사람인지.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 자리한 초상 화들은 왠지 살아있다는 느낌을 못했다. 어느 저택에서인가 본 화려하게 치장된 초상화와 그다지 다른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정말로 그린 사람이 잘못 했을 지도 몰라.' 가끔씩 아버지인 후작에게서 듣는 어머니의 이미지와 그림 은 전혀 달랐다. 덕분에 남아있던 기억들까지 더 희미해졌고...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오래 살았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녀들의 수근거 림에서 들은 적이 있다. 무리라는 말을 들어가며 후작부인은 그를 낳았다고 했다. "....이런 생각이나 하려고 일어난 것은 아닌데..." 클레이브는 초상화를 내려놓고 창가에서 물러섰다. 두꺼운 가운을 잠옷 위에 걸치고 그는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런 때는 찬 바람이라도 느끼며 걷는게 좋다. 다른 하녀들이 안 다면 난리가 나겠지만 그는 아이답지 않게 그런 찬 공기를 좋 아했다. -끽- 두꺼운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 '이런!' 막 문을 열려던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잠들었다고 굳 게 믿고 있던 그의 목표물이 안에서 놀란 눈으로 그를 마주보 고 있었다. "누구냐!" 그 보다도 먼저 침착함을 되찾은 건 어린 소년이었다. 소년 은 재빠르게 몸을 뒤 쪽으로 빼며 침착하게 외쳤다. 소년의 목 소리에 남자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남자의 몸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가가 소년의 복부를 가격하고 소년의 어린 몸이 꺾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입을 틀어막고 제압했다. "읍!" 소년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아직 어렸기에 망정이지 서너 살만 더 먹었어도 상대하기 힘든 아이였을 지도 모른다. 남자 는 그렇게 판단했다. 늦은 밤 검은 천으로 온 몸을 감싼 남자 가 자신의 방문앞에 서 있었음에도 침착하게 외칠 정도의 정 신력을 지닌 아이라면, 그 짧은 순간 달아나기 위해 몸을 뒤로 뺄 정도의 판단력이 있는 아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랄 수 있는 미래는 오지 않겠지.' 결행일은 아니었지만 짐에 섞여 저택 안에 숨어들어 왔을 때 이미 계획은 세워두었었다. 소년을 죽이고 그도 자결한다. 만일을 대비해 쓰일 지도 모르는 몇가지 끈과 도구 외에는 증 거가 될만한 물건은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너보다는 내 아이가 더 소중하다.' 그가 죽는다면 그의 아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을 씻고 세상으로 끼어든 그를 얇삭한 방법으로 끌어낸 자 들이 과연 약속을 지킬 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따른다면 적어도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그의 아들은 목숨만은 부지할 지도 모른다. 그를 원망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소란이 일기 전에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멀리 갈 시간이 없었다. 그는 소년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적어 도 죽을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으리라. 남자는 허리춤에 꼽 힌 단검을 뽑았다. 소년의 몸부림은 목숨을 건 남자의 굵은 팔을 풀어내지 못했다. 그는 단검의 끝을 그대로 다른 한 팔에 안긴 소년의 심장으로 겨눴다. '죽어라.' **** 심장 한 구석이 저릿저릿했다. 집과 거리와 담벼락이 한 순 간에 내 발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눈이 돌맹이처럼 딱딱하게 얼굴을 부딪히고 지나갔다. '안좋아.' 수초밖에 흐르지 않았다. 내 몸은 분명 평범한 사람들의 눈 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를 내고 있을 텐데! 왜 이리도 느리게 느껴지는지! 바람처럼 스쳐가는 가운데 어제와 다름없이 경비를 서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무능한 놈들! 욕이 절로 터져 나온다. 저 놈들의 눈을 피해 숨어 들어오는 암살자들이 얼마 나 많은 지 안다면 지금 저렇게 느긋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겠지.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다. 미움이라는 감정. 단지 하녀의 일만을 하려 했던 내 의도를 비웃듯이 운명을 날 폭풍의 한 가운데로 끌고 들어간다. 느낄 수 있다. 지금 내 몸을 때리는 바람만큼 선명하게 느껴진다. '제발!' 점차로 더 가까워지는 클레이브의 방을 바라보며 난 이 모 든 예감이 기우이기를 바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 플스는 오래전...벌써 몇주가 지났군요... 하여간 오래전에... 동생들에게 뺐겼습니다. 아.. 연장자의 슬픔이여... ㅜㅜ 글이 늦어진 이유는.... 안써지는 문장을 이어붙이다가 오타난무했기 때문! 되는데로 찾아서 고쳤는데...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 겁니다. 흐흐흐흐흐흐....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명 최종수정일 : 2002/07/09 Tue 10:32:58 IP : 211.215.59.205 목나향 하하하하하 기다렸소이다 기다렸소이다 계속 좋은글 올려주시면 좋겠소 (07/09,11:08) ^^* 어억!!!!!!!!! 안돼에~~~~~~~ +_+ 제발 늦지 않기를~ 님아 짱이에염!!!!!!!!! 정말 정말 멋진 글이에염+_+ (07/09,15:16) 캬캬 우와~~담편이넘궁금해요~~빨리빨리담편올려주세요~~수..숨넘어가요~~ (07/09,16:28) 미스티 클레이브 죽이심 안되는거 아시죠?? 수고하세요~~!!! (07/09,22:27) 리테 윽...담편!! 어리지만 영리한 클레이브가 무사히 이번 시련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클레이브 화이링!! (07/09,23:26) hobit -_-+ 정말 귀족들이란..(투덜투덜투덜) (07/10,01:43) 리에 어라.. `창조신의파업일기`작가분이신 은빛님과 뒷코멘트가 똑같군요-_- 혹시 은빛님이 익명으로 글 쓰시는거였나요? (07/10,22:11) 리에 앗 그랬군요. 처음 봐서(;;) 놀란:) (07/10,22:14)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8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7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2002/07/18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31화 뒷부분 몇 단락 수정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너보다는 내 아이가 더 소중하다.' 그가 죽는다면 그의 아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을 씻고 세상으로 끼어든 그를 얇삭한 방법으로 끌어낸 자 들이 과연 약속을 지킬 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따른다면 적어도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그의 아들은 목숨만은 부지할 지도 모른다. 그를 원망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소란이 일기 전에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멀리 갈 시간이 없었다. 그는 소년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적어 도 죽을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으리라. 남자는 허리춤에 꼽 힌 단검을 뽑았다. 소년의 몸부림은 목숨을 건 남자의 굵은 팔을 풀어내지 못했다. 그는 단검의 끝을 그대로 다른 한 팔에 안긴 소년의 심장으로 겨눴다. '죽어라.' **** '스승님....' 차갑게 식은 얼굴 위에 흐릿하게 남아있던 자애로운 미소 는 심장이 찢어질 만큼 아름다웠었다. 난 눈물조차 흘리지 못 했다. 그 분의 가시는 길을 얼룩지게 만들 수 없었다. 마지막 의 마지막까지 날 걱정해 주셨던 내 스승.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정신을 길러주셨던 분. 나의 긍지와 목숨보다도 더 소 중했던 나의 단 하나뿐인 스승님은 그렇게 내게 마지막 모습 을 남기셨었다. 스승님의 마지막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나도 모른 다. 단지 내가 지금 떠올릴 수 있는 건 그 분을 잃은 날도 오 늘과 같은 불안감으로 하루 종일 떨었었다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는 당황감에 수련을 더 할 수 없음을 알고 스승에게 이유를 묻기 위해 돌아갔었을 때, 난 그 불안함의 실체를 만나야만 했 었다. 죽음! 그 무거움이 날 덮쳐 눌렀다. 처음으로 보는 지인의 죽음은 아니었다. 특혜 받지 못한 부류에 속했던 내게는 죽음 이란 그다지 먼 관계가 아니었다. 어느 땅이나 힘없는 평민들의 삶이 다 그렇듯이 내가 속했 던 백검문도 나도 가난했었다. 힘없고 재능 없는 어린 계집아 이 하나 더 잘 먹여 보자고 문의 어른들은 그들의 희망인 어 린 기대주들을 굶길 수 없었다. 그들은 먹었고 우린 굶주렸다. 선택받은 아이들과 달리 버려진, 간신히 문지방 끄트머리에 매 달려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들에게는 솔잎과 생쌀가루로 만든 벽곡단마저도 얻어먹기 힘들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산과 들을 헤집고, 죽지 않을 만큼 간신히 연명하며 늘 굶어죽을 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떨어져 있던 아이들 중 살아남은 건 소수 였다. 대부분이 굶어 죽거나, 혹독한 수련에 견디지 못하고 죽 었다. 그리고 몇몇은 조금 더 먹어보겠다며 산을 떠돌다가 되 려 맹수의 배만 불리고 사라졌다. 원망은 없었다. 가난한 평민이란 본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치고 굶주린 아이들은 쉽게 죽어갔다. 옆자리에서 자던 작은 친구가 다음 날 얼어붙은 몸으로 일어나지 못할 때 도 있었다. 슬펐다. 그들의 죽음이 슬펐고 이렇게 스러져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처지가 슬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 가 슬펐다. 우린 슬퍼하면서도 어느 새 죽음에 적응하고 있었 다. 그 사실이 또 슬펐다. 난 슬픔이란 감정을 초월했다고 착각했었다. 차별이야 나면 서부터 받아왔으니 그렇고, 죽음쯤이야 언제 찾아와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으니 난 내가 그리도 지독한 고통을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겪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었 다. 그 담담함은 한 순간에 깨져나갔다. 나의 스승님을 잃었을 때의 괴로움은 그런 모든 고통과 슬픔을 초월했다. 그건 감히 고통이라는 말이 차지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드드드드득- 손가락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 자신도 모르게 힘 을 준 탓이리라. 어떤 밤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곰곰히 되씹게 만든다. '하필 그 때가 떠오르다니....' 악문 이가 입술을 파고 들어갔다. 찝지름한 피맛이 기분을 더욱 가라앉혔다. 동시에 현실감도 조금 돌아왔다. 머리가 조 금씩 굴러가기 시작했다. '....노도와 ...금아는 괜찮을 꺼야. 기본적으로.... 유달리도 목 숨이 질긴 놈들이니까. 그 어떤 누가 온다고 하더라도 둘을 다 치게 할 수는 없어.' 더군다나 둘은 한 집에 있었다. 게다가 전직 암살자인 하르 크와 두 수호기사도 있다.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전력이 다. 만일이라는 경우조차 없으리라. '그럼.... 뭐지?'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어왔다. 조금 전부터 계속 그 랬을 텐데도 새삼 차갑다는 감촉을 전해주는 바람을 느끼며 난 문득 내게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 렸다. 지금 내게 이 고생을 하게 만들고 있는 존재! 그 모든 혼돈의 가운데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영혼으로 온갖 고민은 혼자 다 하고 있는 어린 소년! 알 수 없었던 불안감이 형체를 들어냈다. '누가! 제길! 클레이브!' 머리가 맑아졌다. 내 스승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클레이 브는 이미 어느 날 옆에서 사라졌던 친구들과도 비교할 수 없 을 만큼 내게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 어린 주인이었다. 잃는 다 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것도.... 천수를 누리지도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요절이라니! '분명히 잘못된 예감일꺼야... 내가 틀린 걸꺼야...' 애써 되뇌였다. 심장 한 구석이 저릿저릿했다. 집과 거리와 담벼락이 한 순간에 내 발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눈이 모래알 처럼 딱딱하게 얼굴을 부딪히고 지나갔다. '안좋아.' 수초밖에 흐르지 않았다. 내 몸은 분명 평범한 사람들의 눈 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를 내고 있을 텐데! 왜 이리도 느리게 느껴지는지! 바람처럼 스쳐가는 가운데 담장 근처에 어제와 다름없이 경비를 서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이 시아에 들어온다. 무능한 놈들! 욕이 절로 터져나온다. 저 놈들의 눈을 피해 숨어 들어 오는 암살자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안다면 지금 저렇게 느긋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겠지.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다. 미움이 라는 감정. 단지 하녀의 일만을 하려 했던 내 의도를 비웃듯이 운명을 날 폭풍의 한 가운데로 끌고 들어간다. 느낄 수 있다. 지금 내 몸을 때리는 바람만큼 선명하게 느껴진다. '제발!' 점차로 더 가까워지는 클레이브의 방을 바라보며 난 이 모 든 예감이 기우이기를 바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낯익은 누군가 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희미하게 구름에 가려 유난히도 창 백하게 느껴지는 달빛을 받으며 한 늙은이가 어린 주인의 창 가 테라스에 앉아 처연하게 담배를 입에 베어 물었다. "노도!"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렸다. 난 속도를 줄었다. 그리고 조심스 럽게 늙은 정원사의 안색을 살폈다. "자네도.... 느꼈나?" 길다란 숨에 섞여 노도가 뿜어내는 희뿌연 담배 연기가 마 치 유령처럼 밤하늘로 타고 올라갔다. "늦었군." **** "..........................." 정적이 흘렀다. 식은 땀 몇 줄기가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렸다. 더 이상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남자의 오른 팔이 가늘 게 떨렸다. -핏!- 작은 마찰음과 함께 어느 새 남자의 오른 팔에서 작은 핏 방울이 뿜어져 나왔다. 남자의 몸이 굳었다. 남자는 자신의 앞 을 가로막고 선 하인 복장의 남자에게서 어둠을 핑계댈 수 없 을 정도의 빠름을 느꼈다. '언제부터... 아니, 언제 나타난 놈이지?' 단순한 정보수집 차원에서 한번 확인차 찾아왔던 목표물의 방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살아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그는 있을 지도 모르는 도주로를 찾고 있 었다. '운명이라는... 괴물의 농간인가?' 목표물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어야 하는 어린 소년이 깨어 나 문을 열던 순간부터 모든 희망과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의 감각은 모조리 깨어나 경고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 이렇게 된 바에, 결행일 을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소년을 찔러야 한다! 어차피 버릴 목 숨!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많이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분명 그의 감각은 방안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었다. 그런데! "도사란... 굉장히 신기한 일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말을 짓걸이며 한 남자가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속도로 그를 밀처내고 팔 안의 클레이브를 빼앗아갔다. 어린 소년은 살아났다는 안도감인지 밤이 주는 피로감 때 문인지 의식을 잃은 듯 축 늘어졌다. 하인 복장의 남자... 금아 의 눈썹이 잠시 꿈찔 했다. "어쨌든 나쁜 일은 하나 막았군." "......................!" 남자는 바드득 이를 갈았다. 체념과 분노가 뒤범벅이 된 눈 빛이 금아의 몸을 쓸어 내렸다. 금아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라니. 그도 답해줄 수 없었다. 그 조차도 돌아가는 영문 을 몰랐다. "운명이겠지." "..............................."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신관조차도 이렇게 정확한 예 언을 하지 못한다. 늙은 정원사는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며 나 갔다 와서는 별자리가 않좋다는 둥, 하늘에 살기가 끼고 있다 는 둥,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며 그를 클레이브의 방에 보냈 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노도의 힘에 노도에게 금아는 진심으 로 감탄하고 있었다. 금아는 피식 웃으며 침입자... 아니 이제는 클레이브의 암살 혐의자라는 정확한 정체가 밝혀진 남자의 목뒤를 내리쳤다. 혼 혈이나 수혈을 짚어 의식을 잃게 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그나마 노도의 부탁이 없었다면... "살려두는 것을 고맙게 여겨라." 죽였을 테지만... ***** 닉을 바꾸는 일에 대해,..... 홧김에 바꾼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만... 말하고 보니... 바꿀 게 하나 둘이 아니더군요. 으으으... 우짤까나... 오랫동안 써온 이름이라 바꾸기 힘들기는 한데.. 끄응... 입니다. 동생은 당장 바꾸라며 펄펄 뛰네요. 흐...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18 Thu 21:00:51 IP : 211.215.57.73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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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up]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2002/07/18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늦었... 다니?" 씁쓸해 보이는 그의 눈빛에 난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뭐야, 노도." 피가 발끝으로 쏠려갔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한번 노 도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그가 아무리 수양 깊은 도사라지 만 만일, 만에 하나 불길한 감각이 현실로 드러났다면... 조금 쯤은 동요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했다. 조금쯤은 말이다. 그가 아무리 죽음이라는 것에 초월한 자이라 하더라도... 초월한 건 '우리'에 국한되는 문제였다. 어린 소년도, 그를 사랑하는 아비 도 여전히 죽음이라는 단어에 상처받고 묶인 자였다. "허어... 자네...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구먼." 다행히도 그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빙긋 미소 지었다.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길!" "집착이란 무서운 괴물이지. 자네를 이렇게까지 당황하게 만들다니 말이야...." "하늘에 살기가 완전히 걷혀 가는군...." 구름만 더 짙어진 폼이 내 눈에는 더 나빠진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건만, 하늘을 잠시 살펴보던 노도는 안도의 미소를 띄웠다. "...도사는 도사로군." "만일을 대비했을 뿐이네. 점점 늘어만 가던 침입자의 수가 갑자기 하나로 줄어버린 게 이상했을 뿐이고..."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노도는 겸양의 말을 덧붙였다. 그 게 정말로 겸양이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난 노도의 추리보다는 노도의 도력과 점을 더 믿는 편이다. 그의 순수한 영혼에 비치는 천기는 두려울 정도로 정확하다. "다행이야." "그렇지." 노도가 어깨를 으쓱였다. 흥분이 가라앉으며 감각이 되살아 났다. 그의 뒤편에서 세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주 낯익 은 두 개와 익숙하지 않은 한 개. "금아... 가 들어갔나?" "그는 본래부터 이 세계에 속한 자이니까. 그라면..." "이미 우리도 속한 자가 되었다네." "아니야. 그것과는 조금 달라. 경험하는 것과.... 속하는 것은 다르지. 란, 우리는 여행객일 뿐이야. 조금 특별한 사정을 가진 여행객...." 노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에 난 막 발코니를 박차고 들어가려던 몸을 멈춰 세웠다. 그 안에는 뭔지 모르지만 날 막 아서는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끼익- 테라스의 커다란 유리문이 작은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어 깨에 시꺼먼 짐을 하나 짊어진 금아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모습을 들어냈다. "어라? 스승님?" "어린 주인은?"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는지가 궁금했던 지 잠시 의아함 을 담은 시선을 보내던 금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도 많이 변하셨네요. 드래곤이 날아와도 눈썹 하나 까닥 하지 않으셨었는데..." "모든 건 변하는 법이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전 스승님의 변화가... 왠지 기쁘군요." 그 날 이후 처음으로 '어른'의 얼굴을 해 보이며 금아는 의 연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 얼핏 '대공'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긴, 내가 백여년전의 어린아이 취급을 했기에 그 랬을 뿐이지 금아는 벌써 어른이었다. 그것도 한 나라를 좌지 우지하던 막대한 힘의 주인... 기르 드 베이르 대공. "클레이브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침대에 눕혀드리고 왔죠." "흠... 잃은 척 한 게 아니라?" 꼼짝 않고 누워있기는 했지만 저건 자고 있는 사람의 기척 이 아니었다. 금아는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게 그거죠." "그렇군." 그게 그거다. 억지로 의식을 잃게 하고 기억을 지우는 것보 다는 이대로 두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른다. 잠시의 기억을 한 자락의 꿈으로 돌리는 건 노도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 니었으니까. 모른 척, 못본 척 하겠다는 어린 주인의 관대함을 굳이 흙발로 밟고 어린아이 취급할 필요는 없다. 노도가 품안에서 백지 한 장을 꺼내 흙으로 뭐라 뭐라 그 리는 것을 잠시 바라보며 난 하늘을 살폈다. 조금 전이나 지금 이나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이는 하늘... 어느 새 조금 내리던 진눈개비는 굵어져 함박눈처럼 자라 있었다. 눈을 뿌리며 두껍 게 달빛마저 가린 어두운 하늘은 어딘가 비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행히 우리가 설친 흔적은 모조리 사라지겠군..." "그건 그렇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암살자가 들어오면 곤란한데... " "분명... 밖에서 뚫고 들어온 놈은 아니야." 흔적이 없었다. 발자국 같은 사소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밖 에서부터 침입해 들어왔다면 노도의 진이나 기사들의 감시망, 나와 금아의 감각을 속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자는 분명...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속이고 들어왔다. 아니 거의 완벽하게 속 여냈다. "...내통자가 있는 거겠죠." 금아는 굳어진 얼굴로 저택 한 귀퉁이를 응시했다. 남쪽 정 원 방향의 날개 건물에는 여기저기서 신세지겠다며 몰려온 귀 족들과 안주인 자리를 노리고 들어왔던 여인들이 묵고 있었다. "안쪽에 적을 품고 있으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죠." "그렇겠어..." 저 곳은 일종의 불가침 지역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저들 은 귀족이었다. 뭘 어찌 하는지 비록 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건들였다가는 후작이 곤란해질지도 몰랐다. 이 곳은 후작의 저 택이었으니까.... 몰래 잠입해 들어가서 후두려 패는 것과는 문 제가 달랐다. 가벼운 한숨이 우리 사이를 타고 흘러갔다. 이로 버티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더 경계를 세운다면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은 위험했다. 노도나 나 나 금아나... 이런 종류의 잠입이나 암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아무래도... 하르크를 낮일에서 풀어줘야 할 지도 모르겠 다." 노도가 쓰게 웃었다. **** '갔나?'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남자가 침입자를 어깨에 매고 발 코니로 나간 후 클레이브는 숨을 멈추고 그가 완전히 돌아가 기를 기다렸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클레이브에게 기척이 느껴질 만한 상대는 아니었기에 클레이브는 얌전히 누워 마음 속으로 숫자를 셌다. 천천히 길게 세며 아직 남아있을 지도 모 르는 은인의 기척을 애써 떠올렸다. '누굴까?' 얼굴은 가리지 않았지만 볼 수는 없었다. 밤의 어두움 속 에서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그의 눈은 예민 하지 못했다. '혹시... 가문의... 수호자?' 혹은 그림자라 불리는 자들일 지도 모른다. 어느 귀족가나 역사를 지닌 곳이라면 만일을 대비해 밤의 보호와 보일 수 없 는 일을 하기 위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인으로 숨어있기 도 했고 때로는 저택 근처에 사는 장사꾼이기도 했다. 클레이 브는 가슴이 세차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 암살의 공포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건만, 그런 두려움 을 앞서 어린 그의 가슴을 장악한 건 더 어릴 적에 동화처럼 들어왔던 그림자를 직접 만났다는 설래임이었다. '이야기 속의 모험자는 매일 이런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걸까?' 드래곤과 싸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잃 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떠나는 기사의 여행기, 도적 토벌 기, 유람기... 그리고 강함을 찾기 위해 떠돌았던 'Lord of the Sword'의 전설!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 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는 침대에 누워 그런 이야기들을 들 으며 두근두근 잠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언제부터?' 그런 기대감이나 설래임이 모두 지워지듯 사라진 것만 같 았다. 아마 그가 어미를 잃은 후 죽음이라는 의미가 어떤 무게 를 지니고 있는 지 조금씩 알아갈 무렵인 듯 싶다. 아니면... '혼혈아... 의 무게일 지도 모르지.'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동대륙 출신의 하녀인 란이나 노도를 꼬인 눈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혼혈'이라는 말은 여전히 귀에 거슬렸다. 동대륙 출신의 어머니를 아버지가 사랑 한 것은 죄가 아닐 진데, 사람들은 두 사람의 결과인 그를 늘 손가락질했다. '난 아버지의 뒤를 잇겠어.' 자칭 새어머니가 될 거라며 접근하는 여인들의 속내를 모 를 정도로 클레이브는 순진하지 않았다. 세상의 꼬인 시선들이 그를 그렇게 두지 못했다. 아무리 아버지인 후작이 애썼더라도 그건 이 땅에 편견이라는 족쇄가 존재하는 한 클레이브가 직 접 격어 나가야 할 숙제였다. 클레이브는 생긋 웃었다. 오랜만에 되살아난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보물 상자를 찾은 아이 모냥 그는 이불 을 한껏 뒤집어썼다. '언젠가는 그림자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아이란 꿈을 먹고 자라는 법이다. 클레이브의 얼굴이 붉으 스름 달아올랐다. '그리고... Lord처럼 여행을 해 보는 거야....' 비록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지라 도 말이다. **** "하르크. 강해지고 싶나?" 밤나들이에서 돌아오자마자 자던 것을 깨워 대뜸 던지는 내 질문에, 잠에 반쯤 젖은 하르크의 얼굴이 있는 대로 일그러 졌다. 한 순간에 정신이 돌아온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 는 대로 확장된 콧구멍에서 잠시 불길 같은 분노를 뿜더니만, 가느다란 실핏줄 하나가 이마에 삐죽 솟아올랐다. 곧 이어 그 의 안면 근육이 잠시 푸들푸들 떨렸다. 그는 팩 고개를 돌렸 다. "제, 제, 젠장할!" "이봐. 왜그래?" "왜냐구 물었소? 방금 강해지고 싶냐고 물었잖소!" "뭐야?! 강해지고 싶다고 늘 노래부른 건 너였잖아." 하르크의 어깨가 꿈찔 떨렸다. 천천히 되돌린 그의 눈동자 에 실핏줄이 섰다. 기세를 넘어선 광기. 난 슬그머니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강해지고 싶다는 늘 내게 갈굼 당할 때마다 그가 읇어대던 되돌이 노래 같은 한풀이였다. 뭐, 정말로 나를 능가할 만큼 강해지고 싶다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맞도록 힘을 기르고 싶다라던가, 그냥 맞고만 있자니 억울한 감에 그저 의미 없이 주절거리는 것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 그렇게 눈치 없는 놈 아니니 하고 싶은 대로 하슈! 뭔가 안풀린다 싶으면 꼭 날 찾아와서 갈구면서 뭘 새삼 스럽게..." ".....뭐?" "왜요! 찔리십니까? 강하게 해 준다고 꼬셔서 또 하루 종일 중노동에 반 고문 같은 훈련시키고 싶어서 말 꺼낸 거 아니냐 구요!" "허허허허허허...." 뭔가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었는지 한 구석에서 우리를 바 라보던 노도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슬그머니 창가 쪽으로 고 개를 돌렸다. "..................." 노도를 노려본다고 막힌 말문이 다시 뚤릴 리는 없다. "거 보슈! 내 자랑은 아니지만 평민으로 태어나 암살술을 익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겪은 눈치는 한 두수가 아니유! 쳇! 인생 말년에...." "허....허허허허..." 고개를 돌린 노도의 귓볼이 붉으스름 물든다. 난 이를 악물 었다. 좀 전에 물어 피가 났던 곳이 다시 터진다. 아프다. 하지 만 이런 사소한 통증은... 사실 지금부터 강해지기 위해 하르크 가 넘어야 할 산에 비하면 모래 한톨 정도의 무게밖에 지니지 못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꾸준한 수련에 시간이라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면 짧은 기간에 이루는 무언가에는 그 시간만큼에 해당하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짜란 없 다. 모든 건 겪어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하르크에게 진심이 있다고 해도, 지금부터 내가 그에게 가 할 훈련이나 고통은... 통증은 가학적인 괴롭힘으로 충분히 해 석되고, 살을 덧붙여 오석되고도 남을 정도의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자! 패유! 패!" 아주 죽을 각오라도 한 듯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이미는 저 머저리를 어떻게 설득한단 말인가! 지금와서 내가 좋은 말 로 설득한다고 들을만큼 신뢰를 쌓아놨던 것도 아니고... "아, 왜 못패! 찔리나? 찔려?" "...........................하!" 내가 말문이 막힌 것을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해석한 하르크는 이제 인상까지 팍팍 써가며 악다구니를 질러 댔다. 난 이 사태가 결코 좋은 말로 해결되지 못할 거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네가 굴러들어 온 복을 차는 구나." 가슴이 사늘히 식어갔다. 하르크가 겪을 고통스런 과정도 있기는 하겠지만 사실 내가 하르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베 풀어야 하는 것 또한 가벼운 대가는 아니었다. 다른 것은 다 접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힘은 스스로 얻어야 한다는 내 자신 의 철칙을 깨는 것이니 만큼... 말이다. "제, 제길!" 점점 변해가는 내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하르크는 어깨를 바짝 움추리고 고개를 자라처럼 파묻었다. "오냐, 그럼 화풀이 해 주마!" 순간 방금 전까지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던 선의가 싹 날아갔다. "오냐. 정 네놈이 바란다면 강해지는 건 물 건너 보내고 반 고문이나 틀어쥐어 주마!" "키엑!"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릴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선택 이란 뻔한 것이다. 난 한 걸음 더 하르크 쪽으로 다가섰다. 조 금 전의 배짱은 어디로 날려버렸는지 하르크의 몸이 파르르르 떨렸다. 그의 눈동자가 구원이라도 바라는 냥 노도를 샅샅이 흝었다. 노도의 입술에서 길고도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아, 그만! 그만. 란 그만하게. 하르크가 아직 갱생과정 중 이지 않나... 그리고 하르크.. 자네, 단 한번이라도 란이 '강함' 이라는 말로 장난치는 것 보았나?" 더 이상 피해서는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을 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그도 인식했는지 노도가 끼어 들었다. 손으로 우리 둘 사이를 막아서고 시선을 가로막은 늙은 정원사의 자상한 목소 리에 두려움을 삶아먹었는지 금새 태도를 바꾸고는 가슴을 주 욱 피며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인 하르크는 냉큼 대답하며 당 당하게 눈을 부라렸다. "보았죠." "뭐?" 이번에는 노도의 흰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아예 배 가르 라는 듯 웃옷을 저치고 군대군대 때가 낀 희멀건 배때기를 쭉 내민 하르크는 눈까지 질끈 감았다. "아니, 상식적으로 강해지려면 죽어라 검을 들고 휘둘러야 정상 아니요. 얼핏 봐도 근위병 뺨칠만큼 실력을 가지고 있으 면서도 강해지겠다며 하녀일에 죽어라 용쓰는 모습이나, 제자 라고 셋이나 끌고 와서는 한다는 짓은, 검 잡는 법 한번 가르 친 적 없이 갑옷에 광내는 법이나 가르치고!" "...................뭐?" "또 그것만으로는 말을 안해요! 뻑 하면 인내력을 길러야 검술이 는다며 제자라는 하인들 생으로 쥐어 잡는 꼬라지만 봤는데! 그럼요!" ".................................엥?" 너무나도 당연한 듯 줄줄이 늘어놓는 하르크의 말에 나와 노도는 순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그랬었나? 내가 그렇게 보였던가? "게다가, 거 뭐시라, 금아라는 자는 평민도 아니고 아주 높 은 귀족 아니요! 당신들이 쉬쉬하는 것 같아서 그다지 말은 못 했지만 내 알기로 이 나라에서 그보다 높은 사람은 단 한사람 밖에 없소. 그런 사람까지 몰려와 힘도 권력도 없는 어린애 하 나 지킨답시며 경비나 서고! 이런 구석에 집 한 채 따로 지어 놓고 밤마다 뭔짓 한다고 돌아다니고! 그럼 이게 장난이 아니 면 뭐란 말이요!" "아니 저게!" "때려유! 때려! 이젠 이골이 났소! 어차피 맞을 거 말이라도 하고 맞는 게 났지!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본 채 두드려 맞는 건 이제 싫소!" 아주 작정을 한 듯 하르크는 이제 얼굴까지 들이밀며 외치 고 있었다. 난 잠시 노도에게 시선을 보냈다. -저놈... 정말로 ... 완전히 미친 거 아니야?- -허... 허... 허... 그... 글세... 이 늙은이의... 갱생 계획에 뭔 가.. 오류가 있었던 것 같구먼...- -아주 심각한 오류인 것 같은데?- -허... 허... 허....허....- 노도의 얼굴 근육 한 자락이 푸들 떨리고 있었다. 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동안 밀렸던 속을 다 들어내고나니 한 결 시원해 졌는지 하르크의 눈에 고인 독기가 서서히 풀려갔 다. '쯪.... 벌써 악이 다 풀렸구만...' 악으로 똘똘 뭉쳤던 원한이 풀리면 남는 것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이성 밖에 없다. 저 스스로도 뜨끔했는지 연신 목울 대를 까닥이며 마른침을 삼켜대는 꼴이 한 대 툭 치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 떠올려보니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더 이상 하르크는 적이 아니다. 한 배를 탔다면 협박과 공포보 다는 설득과 이해로 대해야 한다. 금아나 다른 사람들이야 부 분이나마 날 알고 있으니 날 이해해줬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그럴만큼의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었으니까. "이봐. 두 번 다시 권하지 않아. 나도 어지간해서는 이런 제 안을 하지 않으니까 진지하게 들어." 뚱한 표정으로 하르크가 눈을 살그머니 떴다. 내가 그대로 터트리지 않고 스스로를 추스리자 어딘가 안심하는 눈치였다. "뭐, 그... 그렇다면야..." 방금 전까지의 기세는 역시 홧김에 나온 허풍이었는지 일 단 말이 공손히 나오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순식간에 쪼그러들 었다. 아니, 이제는 아예 눈치까지 힐끔 힐끔 보는 꼴이... '내가 미쳤다고 저 괴물한테 개겼지... 하지만... 저 괴물... 헛 소리는 하지 않는데... 설마...?' 뭔가 후회하면서도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 느긋하게 미소 지으며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래, 선택 해." "뭐, 뭘요..." 뻘쭘 노도의 눈치를 살피며 하르크는 엉거주춤 의자를 꺼 내 그 끝에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불행히도 종종 그를 감싸주 곤 하던 노도는... 하르크의 발작적인 반항에 충격이 컸던 지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하르크에게 더 이상 눈길 한번 주 지 않고 있었다. 난 바짝 얼어붙은 하르크의 얼굴에 환히 미소를 보냈다. "그래. 아픈 거 조금 참고 강해질래?" "아픈 거... 조금... 참고?" 눈물만 안 흘렀지 딱 울쌍인 얼굴로 하르크는 내 말을 따 라했다. 난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니면, 살아있다는 게 저주스러울 만큼 고통스러우면서도 하나도 안 강해질래?" "..................그, 그런 게..." "어허! 시간도 없는데 빨리 대답하지 못해?" 결국 하르크는 한 방울의... 아니 줄기줄기 눈물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는 길게 늘어진 콧물을 팔 소매로 훔치며 쿨쩍 숨 을 들이켰다. 그리고 작게 입을 뻐끔거렸다. "..............." "뭐라고? 안들려!" 그의 얼굴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할께요! 하면 되잖아요!" "정말?" "그래요!" 고개를 푹 숙이고 콧물을 줄줄 흘리며 하르크는 크게 고개 를 끄덕였다. "아플텐데?" "치!" 원망이 가득 담긴 중년의 눈은 그다지 보기 좋은 것은 되 지 못한다. 나이 사십이 다 되어 보이는 얼굴의 하르크는 마치 일곱 살 떼쓰는 아이처럼 징징거리며 내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조, 조금만 안아프게 해 주시면 안될까요?" "조금만?" "네, 네에!" 그의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고 보니... 노도가 보지 않는 사이 저택 여기저기에 이상한 표식을 그리며 딴짓하려는 는 그를 몇번 붙잡아 분골착근이라는 동대륙 특유의 고문을 선사해 준 적이 있다 아마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하지 만... 그에게 너무나도 불행하게도... "하지만.. 아무리 살살해도 그 때보다는 더 아플텐데?"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그... 그때보다도?" "응!" 그의 눈에 완벽한 체념이 감돌 때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는 생존의 의지를 제외하고서는 더 이상 완전할 수 없이 철저하게 자신을 포기했다. "휴우우우우우우...." 자신의 맥문을 주욱 내밀며 그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젠장할." 독창성 없는 녀석 같으니. ***** 공지는 아니지만.. 출판에 관한 작은 메모랍니다. The Perfect Maid는... 시공사와 출판 계약이 된 상태랍니다. 지난 3월에 연락이 왔었고... 6월 초에 계약했습니다. .................. 책은... 언제 나올지...(먼산을 향해... ) 뭐, 가을이 오기 전에 한권 두권 나올것 같습니다만...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18 Thu 21:01:02 IP : 211.215.57.73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3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2002/07/18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란이 하르크의 손목의 맥문을 쥐어 잡고, 그의 체질을 개선 해 주기 위해 터질 듯한 마나를 그의 몸에 퍼 붙는 동안, 한 마디라도 내뱉는다면 죽도록 아프고 죽지도 못하게 해 주겠다 는 란의 협박에 하르크가 악착같이 비명조차 삼키며 버티고 있을 그 때, 노도는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한 포로 침입 자와 간단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들어왔나?" ".........................." 암살자의 눈동자가 떼구르르 굴러갔다. 아무 곳도 묶이지 않았다. 다치지도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켠에서는 한 편인 듯한 자를 이상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있었고, 그를 잡아 온 자는 그를 묶어두지도 않은 채 집 안에 그냥 내동댕이쳐 두고 어디론가 나갔다. 난데없는 소란에 잠이 깨 밖으로 나왔 던 두 하인은 그에게 힐끔 시선 한번만 던지고는 길게 하품을 내뿜으며 그대로 잠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나이 먹을 대로 먹어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늙은 정원사 복장의 하인 하나... 암살자의 머리는 온통 혼란 그 자체였다. "허허... 그래, 많이 곤란하겠구먼. 이 늙은이가 이것 저것 물어볼 것만 같아서 말이야." "......................." 그는 눈동자를 재빨리 굴렸다. 대상에 들어있지도 않은 노 인을 죽인다는 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크레디...' 그의 아들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암살자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늙은 정원사에게 주먹을 뻣었다. 노인의 낡은 목뼈가 그의 주먹을 이겨내지 못하리라 그는 확신했다. "그래... 그다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암살자는 눈을 치떴다. 분명 그의 주 먹이 노인을 관통했다. "어, 어떻게!" 그의 입이 열렸다. "간단한 술법이라네. 아, 자네는 마법이라 해야 알아듣겠구 먼." 암살자의 눈에 체념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근거리에 약 하다는 단점을 마법으로 완전히 보완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라면... '정신마법을 쓰는 건 문제도 아니겠군...' 눈앞이 깜깜하다는 건 이런 감각을 말하는 것이리라. 암살 자는 순간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뭐!" 그리고는 다음 순간 바로 고개를 들고 머리 위에 놓여진 늙은 정원사의 손을 털어냈다. 그에게 아무런 위험감도 느끼지 못하는 지 정원사의 옷을 입은 늙은 마법사는 그의 머리를 슬 슬 쓰다듬기까지 하고 있었다. "허허허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네... 난 그저 자네에게 조 금의 도움을 얻을 생각일 뿐이었어..." 하염없이 편하고 한없이 자상한 목소리로 노도는 암살자의 눈을 지긋이 응시했다. 부드러운 눈빛이 마치 편안한 바다처럼 그를 둥둥 띄워주는 것만 같았다. '최면인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으리만큼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 끼며 암살자는 다시 한껏 긴장을 끌어올렸다. "자아.. 자네는 피에 중독된 사람이 아니야... 그대의 눈은 말이지.. 피를 이겨낸 사람의 것이네." "...................." 그의 옆쪽으로 털퍽 주저앉아 노도는 곰방대를 물었다. "도와 줄 수도 있어." 마치 오래 안 옆집 할아버지 같은 얼굴로 노도는 자상하게 미소지었다. 한켠에서는 한 사람이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눈 을 부라리며 다른 사람의 손목을 쥐어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손목이 끊어질 듯 아픈지, 비록 비명은 지르지 못하지 만 거센 부림을 치며 발광하는 가운데... 암살자는 길고도 깊은 한숨을 내쉈다. 어차피 일그러진 계획이라면... 죽기 전에 한 가닥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한번 더 잡아보고 싶었다. 노도의 말대로 한번 손을 씻기까지 했던 그에게... 아들 또 래의 클레이브에게 다시 한번 검을 들이대는 일은 죽는 것보 다도 더 싫었으니까. 무엇보다도 그의 본능이... 감각이 믿으라 고 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자상해 보이는 노인 을... 그리고 한켠에서 무슨 짓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미친 인간들을... '결국 내 운명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그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도와... 주실... 수 있습니까?" **** 잡아온 포로를 집안 거실 바닥에 내던진 금아는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날이 밝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날이 채 밝아오기도 전 예기치 못한 손님의 방문을 받은 후작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손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착잡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던 후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감싸줬다. "어렵게 됐군요. 당장 쫒아낼 수도 없는 골칫덩어리들이 한 둘이 아닌데... 이럴 수가..." 낮게 흐르는 분노. 어슴프레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창 밖으 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의 이 상황을 제공한 자가 눈앞에 있었 다. 원망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순간적인 분 노의 흐름에서 빗겨갈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미안하게 되었군..." 금아는... 기르 드 베이르 대공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 인이 아닌 대공으로서 숙이는 사과에 후작은 고개를 털었다. "아닙니다. 너무 오랫동안 대공저하 한 분께서 모든 것을 감당하셨었죠. 저하께서 불멸이 아니신 이상은... 언젠가는 벌 어지고 누군가는 감당했어야 할 일입니다. 원망할 수는 없죠.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제 잘못도 있었으니..." 후작은 몸을 일으켜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 한 뭉 텅이를 들어올렸다. 어젯밤 늦게까지 그가 살펴보고 있던 서류 들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대공께서 직접 클레이브를 지켜주시지 않으 셨습니까." 미소를 지어 보이며 후작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살피며 넘 겼다. 금아의 시선이 서류로 향했다. "그건?" "요즘 들어 문제가 부쩍 늘었죠. 마스터이신 대공께서 실제 적으로 일선에서 물러섰으니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오고 있습 니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완전히 은퇴하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쟁쟁한 대공이 앞에 서 있는 것과 한보 뒤 에서 관망하는 건 아슬아슬한 외교 줄다리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중 가장 직접적으로 나와 크리아를 압박하고 있 는 건... 얼마전 부족국가들을 통합해 힘을 기르고 크리아가 차 지한 보스윌 해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카슬 대륙의 신 제 국 프란(Fran)이었다. "제국 프란에서 인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질?" "네. 말로는 제국에서 새로 만든 아카데미에서 교역에 대해 가르칠 선생과, 전체적으로 질을 높여줄 귀족가의 학생들을 보 내달라는 말입니다만..." "빙빙 돌린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결국은 강해진 힘을 업고 협박하고 있는 거죠. 소용돌이 바다를 끼고 있는 프란과 같은 나라에게 해상교역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입니다... 선생을 보내달라는 말도 장차 자신들이 이 크리아의 영토를 차지할 지도 모르니 일찌감치 알아서 굴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을 뿐입니다." "흠...." 금아의 눈가가 살짝 접혔다. 벌써 몇일 째 고민만 하고 있 던 후작의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클레이브를... 끼워 보낼 셈인가?" "........................." 후작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다른 얌채 같은 귀족이라면 뒤에서 무슨 소리를 듣던 간에 인질 일행에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넣어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후작은 고지식했다. "... 제 자식을 감싸고돌면서... 차마 다른 귀족들에게 자식을 보내달라고는 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 아직까지도 저 몇 장의 종이를 끌어안고 고민하고 있 었던 거겠지. "보통 독자는 보내지 않네. 그러니 자네도 고민하지 말고 클레이브를 잡고 있게나."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이 크리아의 저택 안이 저 제국의 학교보다 더 안전한지 말입니 다." "............................." "게다가... 아무래도 폐하께서... 마음을 정하신 듯 합니다." "............음?" 후작의 눈동자가 슬픈 빛을 발했다. 금아는 대강 눈치챌 수 있었다. 왜 다른 귀족들이 이 문제를 후작에게 직접 승인하도 록 맡겼는지, 복잡하고 능구렁이 같은 귀족들이 왕에게 어떤 감언이설을 쏟고 있을 지... 분명 후작은 궁지에 몰려있을 터였 다. 전형적인 서대륙인이자 귀족가의 편인 왕은 그가 거느린 수많은 후궁들의 본가의 부탁과 의견을 넘길만큼 대범하지 못 했다. "그 분께서 인종적인... 편견이 있는 분이라는 건... 대공께서 도 아시지 않습니까..." 힘없이 이어진 후작의 말에 금아의 눈썹이 강하게 꺽였다. "지금 무슨 말인가!" "아무래도 폐하께서는 클레이브를... 그 아이를... 제 후대의 후작으로 인정하시지 않을 듯 보이는군요..." "흠........................" 침음성이 흘렀다. "하지만... 자신의 세습 작위를 누구에게 물려주는가는 귀족 고유의 권한일텐데..." 후작은 고요히 고개를 저었다. 금아 역시 알고 있었다. 아무 리 그렇다 한들 귀족의 작위의 인정과 취소의 권리는 왕의 고 유 권한이었다. 더군다나 클레이브처럼 사방이 적인 아이가 자 란다면... 아마도 그에게 순탄히 권력이 물려지기는 힘드리라. 금아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후작은 아예 말을 다 꺼내려는 지 가볍게 숨을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이나 모레 즈음... 늦어도 이 주가 다 가기 전에 말씀 이 있으실 듯 합니다. 아마도 그 아이를... 인질로 보내란 칙명 이... 있으실 듯..." "젠장!" 금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서! 어찌 할 텐가! 설마 그대로 앉아서 당할 생각이란 말인가!" 금아의 목소리는 점차로 굵어졌다. 후작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후작은 일그러진 미소를 애써 띄우며 금아에게 시선을 맞 췄다. "제 생명과... 가문 따위보다도 귀한 아이입니다. 잃을 수 없 습니다. 그러나 단지 목숨을 연명하게 해 주자고 모든 것을 잃 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도와줌세." 후작의 말에 담긴 부탁의 의미를 놓칠만큼 금아는 둔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에게 냉정할 수도 없었다. 후작은 아주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 아이를 학생으로 보낼 겁니다." "....................." "남들이 아무리 인질이라 뭐라 해도 전 그 아이가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가 스스로의 힘으로 서기 위해서는.... 남들의 열 배는 더 강해 야 합니다." ".........그렇겠군." 단지 동대륙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만으로 그를 비꼬인 눈 으로 보는 귀족들이 많음을 금아도 알고 있었다. 비록 그들의 그런 시선이 옳지 않은 것일 지라도, 그들은 다수였고 힘을 지 니고 있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바르게 서고, 더욱, 더욱 더 강해지고..." 이별을 준비하듯 후작의 목소리는 잠겨갔다. "그리 되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마치, 오십 여년 전 대공 께서 지금의 지위에 오르셨을 때처럼 말입니다." "약속하겠네." 금아는 분명히 말했다. "이미 난 세상을 등졌지. 새삼 버린 지위에 마음은 없네. 나 역시 더욱 높은 경지를 원할 뿐." "그럼...." 점차로 밝아오는 후작의 안색을 직시하며 금아는 다시 한 번 똑똑히 볼 수 있도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 스승께서 그 아이를 지키신다면, 난 그 아이를 가르쳐 주겠네. 오십년 전 아무도 내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것처 럼... 어느 누구도 그 아이의 정당성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될 것이야." 후작의 눈가로 작은 물줄기가 흘러 내렸다. 애써 눈물을 감 추기 위해 허헛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후작은 말을 돌렸다. "이런 똥밭에서... 어떻게 대공께서 수 십년이나 버티고 계 실 수 있었는지가 궁금할 지경입니다." "허허허....." 금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단단히 질린 모양이구먼." "네! 그렇다 뿐이겠습니까?!" 고개를 푹 숙인 후작의 머리가 쉴새 없이 흔들렸다. 후작은 힘껏 애처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한번 더 이를 시익 들어 내고 구겨지게 웃었다. "저도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파뭍히고 싶답니다..." "........오십 년은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나?" ***** 변명 한가지... 왼손을 다쳤었습니다. 지금 많이 회복되었습니다만... 왼손 약지로 시작해... 세개의 손가락을 줄줄이 뼜습니다. 흐... 처음에는 오른 손 아니라고 낙락했었는데... 워드는 열 손가락을 모조리 동원해 치는 물건이었더군요. 오타의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기어나왔습니다. 이제 정상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18 Thu 21:01:12 IP : 211.215.57.73 캬캬 왼손이젠다나으셨나요?...많이아팠을것같은...으~~ㅡㅡ;;...출판하신다구요...빨리단행본볼수있게됐으면좋겠네요~~ (07/18,21:28) 미스티 헷헷 재미있어요^^ 손 빨리 나으세요^^ (07/18,22:30) 래드아이 무지 기다렸습니다T^T 손가락 빨리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07/18,22:55) an 잼있게 읽었습니다~ ^^ 손이 다치셨다니 빨리 나으시길 바랍니닷! 글구, 31편에서 작가님 닉에 대한 언급여! 은명님으로 바꾼걸 말하는 건가여? 아님 은명님에서 딴걸루 바꾸신단 건가여? (07/18,23:25) napping 원래 은빛님이셨죠.. ^^ 은명님이 바꾸신 닉일겁니다. 이유는 보시다 시피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은명님의 왼손 손가락들에게 애도와 쾌유를 빕니다. 전 정말 연참이 너무 좋아요.. 케케케 (07/19,22:0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6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 2002/07/19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도대체 언제 된다는 거죠? 얼마 전 보내준 그 겁쟁이는 도망이라도 갔는지 나타나지 않더군요. 어렵게 하인 속에 섞어 서 들어올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그런 배짱으로 어떻게 유능한 암살자라는 이름을 얻었었는지! 오라버니의 안목이 새삼 의심 스러울 뿐입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클레이브라는 재수 없 는 애송이의 전담 하녀가 찾아와 의심스러운 건방진 눈초리를 하고서는 그 겁쟁이를 찾더군요. 술이라도 처먹고 어딘가 처 박혀 있는지! 아들도 버리고 도망가는 꼴이라니! 도대체 아버 님과 오라버님께서는 이번 일을 뭐라고 생각하시는 지 모르겠 어요. 겨우 열살도 되지 않는 꼬맹이 하나 죽여 없애는 일인데 시간만 낭비하시다니! 그것 만이라면 또 말하지 않겠어요. 요즘 들어 사정이 얼마 나 급박해 졌는데요! 제피리나 가문의 그 버르장머리없는 계집 애와, 혼자 고고한 척은 다 하고 있던 세이제린 후작가의 꼬맹 이는 얼마나 극성을 떨고 있는데요! 같은 후작가라는 이름만으 로 그 쪼그만 어린애에게 접근해서 온갖 아양은 다 떨어대는 꼬라지가 얼마나 눈꼴 신지 아세요? 계속 이렇게 되다가는 안 주인 자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를 지경이란 말이예요! 오라버니는 정말 권력을 잡고 싶으시기는 하신 건가요? 아 버님은 정말로 제 2의 권력자가 되고픈 마음이 있으신 건가 요? 이런 사소한 부탁 하나 들어주실 수 없는 두 분의 모습에 과연 두 분께 야망이 있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로군요.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다가는 어린 꼬맹이의 환심을 산 그 재수 없는 후작가 계집아이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 거예 요! 어떻게 그런 혼혈아 따위의 볼에 키스를 해 줄 수가 있는 건지! 도대체 후작가는 딸의 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이더군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말라고 배운 모양이예요. 마치 길거리에서 몸을 파 는 창녀처럼! 아, 아버님께서도 그 계집애를 보셨다면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예요. 혼자 고고한 척은 다 하면서도 얼굴에 아무 것도 바르 지 않은 채 하녀 따위와 시시덕거리며 복도를 돌아다니는 꼴 이라니! 세이제린 후작가의 안주인께서도 몸이 안좋으시다니 결국 그렇게 되어버린 모양이예요. 전 요즘 사방이 적으로 둘 러쌓인 적진 한 복판에 덩그라니 버려진 것만 같답니다. 아아, 이 후작가의 안주인이 되라고 먼저 말씀해주셨던 아버님께서 이렇게까지 무심하실 줄은 몰랐어요. 하인들은 얼마나 버릇없 고 하녀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지! 전 지금 저택의 고고한 분 위기가 그리워 향수병에 걸릴 지경이랍니다. 친애하는 아버님, 제발 부탁이예요. 저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와 란이라는 재수 없는 얼굴만 반드르르한 하녀, 하르크와 금아라는 건방진 하인 을 좀 없애주세요. 아아... 하녀와 하인 따위의 이름까지 외우 게 되다니! 이런 불행을 겪을 줄이야! 전 정말 상상도 하지 못 했어요! 아버님, 아버님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스러우면서도 연약하고 아름다운 딸 올림.- **** "사랑스러운? 연약? 아름다워? 제길. 이 세상에 인류가 멸 종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너 같은 떨거지 마귀할멈이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어디선가 슬적 해온 편지를 자랑스럽게 읽고 있던 하르크 가 인상을 벅 구기며 편지를 쥔 주먹에 힘을 가했다. 순간 희 미한 빛과 함께 종이자락이 순식간에 재로 변해 부서져 내렸 다. -빠아아아악!- "이 얼간아! 중요한 증거를 태워버리면 어떻게 해! 힘 조절 을 해야 한다고 오늘 아침부터 몇 번이나 말해야 하겠어?! 네 손모가지에 부여해 준 힘은 이런데 쓰라고 해 준 게 아니야!" 앞으로 푹 꺽어진 몸을 용수철처럼 튕겨지며 하르크의 벌 겋게 핏발선 눈이 내 정면으로 다가왔다. "쿠에에엑! 이 마귀할멈 같으니라구!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아프게 때릴 수 있는 거야!" "오호라? 어쭈구리? 감히 내게 그따위 버르장머리없는 어린 년과 같은 욕을 비유해? 네 놈이 정녕 살기를 포기하는구나..."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호?" "제, 제길! 듣자 하니 노도 영감보다도 나이도 많다면서 더 럽게 예민하게 반응하네." "허... 정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면서 주춤 주춤 달아나는 주제 에 말도 잘 한다. 그 날 이후로 말할 때 만큼은 적당히 들어둔 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하르크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렇다 한들 저렇게 막가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정말 저건 재능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난 슬그머니 주먹을 들어올려 보였다. 하 르크는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 벌써 수일이나 흘렀다. 그 날 아침 후작을 찾아갔던 금아가 풀이 팍 죽은 얼굴로 황당한 소식을 들고 온 날, 난 각오를 새 롭게 했다. 어린 클레이브를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체감했다고나 할까? Lord가 아닌 하녀의 이름으로 어린 주인을 지킨다는 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 이었다. 게다가 얼마 후면 클레이브가 이 저택을 떠나게 된다 니! 무작정 따라간다고 해서 해결될만큼 만만한 상황도 아니었 다. 하녀는 하녀일 뿐이니까. 생각 같아서는 당장 왕궁으로 처 들어가 정문을 박살내고 실력행사를 한판 질펀히 벌인 다음 뭐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그런 과 보호로는 아이의 정신건강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강한 힘에 의지하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는 조금 전의 그 편지를 썼던 그 싸가지 없는 계집아이처럼 썩어버린다. 내가 이 나이 되도 록 권력에 물들지 않고 꿋꿋이 서 있는 것도... 의지하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기본이란 그런 거 니까. 노도와 난 고민했다. 그의 직속 하녀인 내가 클레이브를 따 라가는 건 의외로 쉬울지 몰랐다. 귀족인 이상 아무리 기숙사 제의 학교로 들어간다 해도 하인이나 하녀 한 두명 정도는 따 라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이 땅의 관례였으니까. 금아 도 잘 하면 마부로 데리고 갈 수 있을 지 모른다. 오랜 동안 전장을 겪은 그의 마상술은 뛰어났다. 하지만... 빨래 주름을 펴는데 정신을 집중하면서, 말 갈기털 세는 일에 모든 안력을 기울이면서 클레이브를 지키는 일은 '불가능'했다. 모조리 함께 작살내는 것이 아닌 이상 아무리 내 가 공간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 도... 말이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그렇기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하르크였다. 그는 본디가 암살자 출신! 변장과 잠복에 능했고 존재감을 감추는데 일가견 이 있었다. 그라면... 클레이브의 그림자가 되어 그를 지킬 수 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얻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 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클레이브의 안전을 위해서라 면 그 정도의 수고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궁시렁거렸던 하르크 역시 조금씩 적극적으로 변 하고 있다. 그도 꽤나 고된 어린 시절을 보냈던지, 그가 포기 했던 힘을 기를 수 있다는데 상당히 고무된 듯 보였다. 모습을 들어내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변변한 가르침 한번 제대 로 받지 못한 채 하녀 암살이나 의뢰받는 어중간한 암살업체 를 차려 입에 풀칠하던 처지에서 어엿한 스승에게 배우며 명 문 가문의 그림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이 희한한 세상에 서는 대단한 출세중의 하나였다. 지금 하르크는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보다 적어도 네 배 는 더 강해져 있었다. 예전의 그 정도 수준을 갖춘 자 열명이 덤벼도 너끈히 처치하고 달아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면 될까? 그 시작은 그날 새벽녘 시작했던 '기본 재료 손질'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개정대법, 하르크의 표현에 의하면 '달 콤한 사탕같은 강함을 미끼로 사람을 극악하게 쥐어잡는 고문 성 육체 개조'는 아침해를 볼 때 즈음 끝났다. 오랜 시간동안 꽉 틀어 막힌 혈도과 기도를 일일이 닦아내고 마나를 다룰 수 있도록 흐름을 익히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에 술 과 담배 등으로 몸이 더러워진 데다가 기를 운용한 훈련을 해 본적이 없는 몸이라 시간도 오래 걸렸다. ...단지 하르크의 사 전에 생명을 건 위협 앞에서 강한 건 없었기에... 오랫동안 암 살자로서 단련해온 쥐꼬리보다는 다행히도 조금 긴 인내력이 있었기에 하르크가 버텼을 뿐, 만일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개정대법은 반 이상 성공 했고, '뛰어난 존재의 도움을 받은 기적 같은 환골탈태'는 아니 었지만 적어도 보통 사람 이상의 감각과 속도, 근력 등의 육체 적 능력과 더불어 약간의 마나 사용능력은 얻을 수 있었다. 마 스터 급의 기사 정도는 아니지만 금아의 호위를 맡고 있던 두 호위기사 정도는 어찌 어찌 운이 따른다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실력이다. 그 정도면 앞으로 더 벌떼처럼 덤벼올 침입자 들을 예방하고 막아내는 데 충분하겠지. 그 새로운 힘을 어떻게 해서든 써 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한 대라도 더 맞아 늘어난 맷집을 확인해 보고 싶었는지 갑자 기 생긴 힘에 자신이 무적이라도 된 냥 착각을 했는 지 그것 도 아니라면 내가 부여해 준 그 힘으로 날 이겨보겠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었는지 하여간 끊임없이 깐죽거리며 매를 벌 고 있었다. "저어...." 등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영 이별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어색한 모습이야?" 이미 그들을 알고 있었기에 난 빙긋 웃으며 그들에게로 시 선을 돌렸다. 어느 새 깨끗이 옷을 갈아입은 아쉬와 카즈가 머 뭇거리며 서 있었다. "이야... 제법 의젓한 귀족 태가 나네." "부끄럽습니다." 아쉬와 카즈는 벌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난 고개를 저 어 보였다. "사실은 알고 있었지. 아직 너희들에게는 육체적인 수련이 병행되어야 할 때야...." 아쉬와 카즈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내 목소리에 귀를 기 울였다. 지금 작별아닌 작별을 하면 당분간 이렇게 대화를 나 눌 수 없음을 그들도 나도 알고 있다. 클레이브가 떠나기 전까 지는 한 저택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이제 등 돌리면 그 순간부 터 저들은 대공의 명령을 받고 후작을 호위하기 위해 온 호위 기사로 변한다. 감히 하녀 따위가 녹록하게 접근할 수 있는 존 재들이 아니게 된다. "자만을 버리는 일은... 중요하지. 내가 금아를 따라오는 너 희를 굳이 막지 않은 이유다.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면 안돼. 정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는다면.... 날 떠올려도 좋아." "란님..." 그들의 감격한 눈빛과 '도대체 무슨 소리유?'라고 짓걸이는 듯한 하르크의 벙벙한 표정을 보며 난 시선을 파란 하늘로 돌 렸다. "검을 손에 쥔지 삼백년 하고도 수년이 더 지났다. 이젠 흘 러가는 세월을 세기도 버겁지. 그 안에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으니까..." "쿨럭! 사, 삼백?" 얼빠진 하르크의 감탄사는 아쉬와 카즈의 날카로운 눈빛에 의해 가로막혔다. 당장 닥치지 않는다면 검이라도 뽑아들 듯한 그들의 살기에 기가 눌린 하르크는 혀를 한번 주욱 빼 보인 다음 입을 삐죽히 내밀고 닫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 아쉬가 아쉬운 듯 연신 한숨을 내쉈다. "후후... 나도 아직 내 끝을 알지 못한다.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치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그렇기에 여기 서 있다." "......................." "만족한다는 건 결국 거기까지라는 뜻이다. 결코... 끝은 없 으니까." "만족한다...는 것은..." 카즈의 낮은 목소리가 내 말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듯 낮게 따라왔다. 난 가볍게 웃어 보였다. "자! 이제 가야지! 후작님을 기다리게 하지 말고!" 난 머뭇거리는 둘의 등을 툭툭 쳤다. 그들은 미련이 남은 시선을 잠시 돌리다가 곧 마음을 정리했는지 씩씩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후작가의 본관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저택 안 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배웅하며 난 잠시 여운을 즐겼다. 그들 에게서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얼핏 겹쳐 보였다. 금아는 그 날 자신의 두 호위기사를 후작에게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클레이브를 지킨다는 건 후작을 지킨다는 의미도 포 함되어 있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우르르 클레이브를 따라갈 수도 없었다. 노도와 함께 후작과의 사이를 원활히 조절하며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로 아쉬와 카즈만큼의 적격자는 없었다. 또, 대외적으로 모양새도 좋고. 그들이 정식으로 후작가의 일원이 되는데 또 몇일이 걸렸 다. 금아가 자택으로 연락해 후작에게 상당히 공식적인 편지를 보내고, 후작이 답하고, 몇 가지의 절차를 거쳐 아쉬와 카즈의 위치가 결정되고... 오늘에서야 그들은 다시 한번 '정식으로' 후 작에게 인사할 수 있었다. 대공 직속의 두 호위기사가 후작에게 보내진다는 건 단지 후작가 내의 원활한 호위활동 보다는 대외적으로 '베이르 대공 이 후작의 뒤에 있으며 비호하고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라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했다. 금아의 잠적이 길어질수록 금아의 그 림자의 힘은 약해지겠지만, 그 때 즈음이면 후작도 나름대로의 입지와 힘을 충분히 기를 수 있게 되겠지. "그런데... 이따우 편지를 보낸 놈들... 그냥 둘 작정이요? 아 무리 방비를 한다고 해도... 안에 적을 품고 있어서야..." "걱정되나?" "쳇! 다른 건 몰라도 노도 그 영감탱이가 있는데 누군가 쉽 게 들어와 후작을 어쩔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아오." 벌개진 얼굴이 그의 거짓을 들어낸다. 어느 새 그도 우리에 게 마음을 많이 열었다. "하, 하지만... 그... 벌건 놈의 인질로 잡혔다는 아들은..." 그는 힐끔 내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죽게... 내버려... 둘 거유?" "왜? 가서 구해주게?" "그, 그거야...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불쌍하 잖우. 기껏 손씻은 선배인데..." 고개를 팩 돌리며 하르크는 씹듯이 외쳤다. 귓볼까지 벌겋 게 물든 모습을 보니 언젠가 노도가 '저런 심약한 놈이 암살업 에 발을 담궜다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건지...'하고 한 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철저한 무관심으로 자신의 여린 속을 겹겹히 싸고 있던 전직 암살자는 노도의 갱생계획이 헛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많이 인간다워졌다. "잔정에만 너무 이끌리다가는 배에 칼침맞는다." "훅! 조, 좀 살살치란 말이유!" 허리를 푹 꺽으며 하르크는 투정 섞어 외쳤다. "엄살은!" 픽 웃으며 먼저 걸어가는 내 등뒤를 쫄졸 따라오며 하르크 는 연신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갈... 거유?" "당연하지. 뭐 하러 그런 건방진 침입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는데..." 그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손을 힘차게 휘 저으며 내 앞쪽으로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맞소! 어린애를 인질로 잡는 치사한 놈을 봐 주면 안되 지!" ***** 닉에 대한 의견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답장도 잘 쓰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리플 달다주시고.. 멜 보내주신 분들께도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사는 일일이 못드렸지만 정말로 힘이 된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옥의 티'들과... 오타지적과... 오류들은 잘 참고해서 책으로 나올 때는 싸아아악~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19 Fri 22:53:38 IP : 211.215.59.216 an 오늘도 올라오다닛!! ㅠ.ㅠ 정말 넘 좋습니다. 부디 내일도 올라오기를... 연참은 더 좋구여~~ ^^ 아직 닉 정하시지 못했나 보죠? 부디 좋은 닉으로 지으시길 바랍니다~ (07/19,23:10) 미스티 후훗.. 너무 기뻐요^^ 너무 좋아요^^ 올리셨어요~!! 전 님 닉이 은빛인 게 좋은데.. 예쁘잖아요^^ (07/19,23:35) 사슴이야기 ㅎㅎ.. 요새 갑자기 많이 올리셔서 당황했다는. 그래도 좋아요.. ㅠ_ㅠ 항상 이렇게만 올라와주신다면.. 닉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전 은빛 맘에 드는데.. (07/20,00:51) 캬캬 우와~~요즘...많이올리시네요~~좋은일이죠...ㅋㅋ 그리고닉은 은빛이좋은데요...건필하세요~~ (07/20,10:24)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0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7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 2002/07/20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어떻게 된 일이냐! 아무리 엄중하다고 해도 겨우 후작가의 저택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왕궁보다도 더 들어가기 어렵다 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침침하게 가라앉은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꽉 틀어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저택의 기사들의 인원! 경비원들의 인원! 수준! 이미 모두 알아봐 주지 않았던가!" 빈 방안에 홀로 서 한 남자가 소리지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마치 듣는 귀라도 있는 냥 남자의 거친 외침은 끝날 줄을 몰랐다. "내가 왕궁이라도 털라고 했나? 시해라도 사주했느냔 말이 야! 아니지 않나! 겨우, 겨우 일개 후작가의 혼혈아 꼬맹이란 말이야! 도대체!" -와르르르르르- 단단한 자양목으로 만들어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여있 던 서류들과 책들이 어지럽게 바닥으로 흩어졌다. 남자는 바닥 에 떨어진 것들을 자근히 밟으며 잠시 숨을 돌렸다. "뭐냐!" 마음 같아서는 한 참은 더 발광하고 싶었지만 밖에는 그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었다. 더 이상은 기다리게 만들기 힘들다 는 듯 차분히 움직이는 천장의 줄을 향해 잠시 시선을 던지던 남자는 옷깃을 매무새하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쉈다. 검은 그림 자 하나가 살며시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제길." 그의 손이 책장의 책 한 권을 뽑았다. 책장이 돌아가며 길 다란 길 하나가 생겨났다. 남자는 좀 전에 비할 수 없이 차분 해진 모습으로 뒤를 한번 힐끔 바라보고서는 통로로 빠져나갔 다. "어서오십시오." 마치 지금 막 저택에 도착이라도 한 냥 집사는 공손히 그 를 맞이했다. 남자는 그런 집사의 눈치가 마음에 드는 냥 눈짓 해 보였다. 집사는 그를 안내하고서는 재빠르게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호화롭게 치장된 방 중앙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는 이미 대 여섯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늦었군요." 부채로 입가를 가린 얇상하게 생긴 남자가 빙긋 웃었다. 남 자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흠... 역시... 오지 않는군요." "몇번 더 사람을 보내봤습니다만... 소용이 없더군요. 이제는 만나 주지조차 않습니다. 헤일런 공작과 가르암 백작은 포기하 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겨우 하녀 하나를 두고 벌린 싸움에서 그렇게까지 꺽이다 니... 한심스럽군요. 우리 귀족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빠지 게 된 건지..." 다른 때였다면 제일 앞에 나서서 일을 벌리며 온갖 오도방 정은 다 떨고 있을 헤일런 공작과 침착하게 뒷배를 맞는 가르 암 백작의 불참은 급조되어 뭉친 반 후작파의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손해였다. "어디 쉽게 풀리는 일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나눌 몫이 줄 어든다는 점은...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겠죠. 머지않아 이 나라를 이끌 주요 가문들은 모조리 바뀌게 될 겁니다." 자리에 모인 자들의 눈이 힐끗 번득였다. "시간도 없으니 본론부터 정리합시다." "물론입니다." 다들 의견에 동의했다. 귀족의 이름으로 데뷔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자리에서 부딪히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단 한번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의견이 이렇게까지 잘 일치한 적은 없 었으리라. 그 만큼 오늘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문제는 중요했으며, 동시에 골치 아팠다. "우선, 그 꼬맹이 문제부터." 남자가 입을 열었다. "팔아버리죠." "흠... 죽이는 게 더 깔끔하지 않을까요?" "뭐, 그렇기야 하겠지만... 다들 공동자금을 더 내놓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꼬맹이... 비천한 출생답지 않게 의외로 돈이 되게 생겼더군요." 음모를 꾸미는 일에도 돈은 들어가는 법이다. 더더구나 구 리도 어둡게 처리하고 싶은 일은 마치 굶주린 괴물처럼 돈을 먹어치운다. "값이 나올 만한 꼬맹이인가?" 음침한 눈빛이 테이블 위에서 떠올랐다. 팔자고 말을 꺼냈 던 남자가 깔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이 백작님께서 사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기꺼이 '시세대 로' 팔겠습니다." "끄응...." 공짜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어디가 예쁘다고 힘들게 납치 해 왔던 소년을 그냥 넘기겠는가. "만일을 위한 가치는 없는 거겠죠?" 조심스러운 어투로 뾰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굳이 서로의 얼굴에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용도가 끝난 물건은 가지고 있어봤자 짐밖에 안됩니다." 눈매가 가는 남자가 말을 받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페르로이 후작가의 저택에 잠입해 들어갔 다가 요행이라도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단 한사람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한 자가 없지 않습니까? 무사히 성공하더라도 자 결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소란을 일으키기까지 하고 무사히 나 올 만큼 후작가는 만만한 곳도 아니구요. 만일을 위해 데리고 있는다고 해 봤자 짐밖에 안됩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 어린 소년의 목숨과 미래를 의 논한 자리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을만큼 잔혹한 결정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시큰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손을 살며시 들고 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다른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찬 성했다. 모인 이들이 스스로 놀랄만큼 회의는 간단하게 진행되 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의견들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페르로이 후작가를 물리치고 그에게 흘러갔던 힘과 권력이 풀려날 때까지는... 아니, 그들과 후작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하나가 사라질 때까지는 분열할래야 할 수 없는 그들 의 욕심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그럴 뻔했다. "전 반대입니다." 손가락을 튕기며 못내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 던 퉁퉁한 뱃살을 지닌 남자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모두의 시 선이 그에게로 집중했다.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다릅니다. 페르로이 후작 그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자식의 안위를 넘길 자가 아니죠." "자식은 자식일 뿐입니다. 지금이야 하나 뿐이라 집착을 보 이겠지만 아름대운 여인과 재혼하고 몇이 더 생기게 된다면 바뀔 겁니다." "다른 귀족이라면 그렇지만, 여러분들과는 달리 그렇게 보 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문제죠." 퉁퉁한 사람은 뱃살을 흔들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의 연애담은 전설적일 정도로 황당하지 않았습니까? 게 다가 지금까지 재혼조차 안한 채 지켜온 아들인데... 쉽사리 넘 어갈 리도 없으려니와 새로 자식을 몇 더 본다고 해서 여러분 처럼 쉽게 이용하고 버리겠습니까?" 그가 비끄름히 입술 꼬리를 잡아 올렸다. "죽이기보다는 그냥 인질로 줘 버리죠. 그리고 나서 돌아오 지 못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하면 됩니다. 암살하는 건 그때 라도 늦지 않습니다. 그 때 즈음이면 거의 대부분의 힘은 우리 쪽으로 넘어올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후작가를 완전히 손에 넣을 수가 없 소!" 누군가가 날카롭게 외쳤다. 퉁퉁한 남자가 눈가를 살짝 접 었다. 한 순간에 그의 인상이 변했다. 여유롭고 일견 자상해까 지 보이던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닳고 닳은 늙은 이리처럼 변 해갔다. "손에 넣다니요? 후작가를요? 뭐하러?" 비웃음을 가득 담고 그는 이를 갈고 그를 노려보는 다른 귀족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정 필요 없는 꼬리를 만들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슈. 난 빠 지리라. 다른 문제야 협력하겠지만, 그건 반대하오. 대세에 어 긋나는 게 아닌 이상은 반대하는 자에게 빠질 자유를 주는 전 제로 우린 모였으니까." 퉁퉁한 남자는 두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얹고 체중을 실었 다. 삐걱하는 소리가 그의 앞쪽 테이블 다리에서 들려왔다. 그 는 멋적은 듯 볼을 살짝 붉혔다. "아무래도 요즘 들어 몸이 무거워져 말이지..." 그에게 경계와 분노의 눈초리를 던지던 귀족들의 입가에 슬그머니 비웃음이 올려졌다. '겉 밖에 볼 줄 모르는 놈들...' 퉁퉁한 남자의 붉어진 얼굴에 미묘한 감정 한 줄기가 흘러 갔다. 페르로이 후작의 일이라면 무조건 핏대를 올리던 가르암 백작도, 여색을 밝히고 체면을 지나치게 차리는 주제에 조금 어리석은 면까지 있던 헤일런 공작도 이 정도로 내면을 잃어 내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미친 놈. 너나 해라. 난 빠진다.- 투실투실한 볼을 씰룩이며 거칠게 술잔을 입에 들이붙던 헤일런 공작의 조소가 퉁퉁한 남자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올랐 다. -대공저하께서는 이미 잠적하시지 않았나. 이제 후작은 혼 자일세. 자네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놀고 있네. 내가 그깟 두려움이라는 감정만으로 몸을 사릴 존재로 보이나?- 피식 비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흔들어대는 헤일런 공작의 태도에 퉁퉁한 남자의 궁금증이 자라났다. 지난 밤,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라는 입장으로 겨우 만날 수 있었던 헤일런 공작은 과거의 광오하던 그라고는 상상조차 하 기 힘들 정도로 신중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 어떤 면으로는 철마저도 들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럼 뭐란 말인가!- 안타까운 마음에 퉁퉁한 남자의 목소리가 자라났다. -시끄러워. 승산 없는 게임에 자꾸 날 끄집어들이지 말고 알아서들 자멸하라고 해. 이인자들 될 만한 놈들이 싸그리 망 하고 나면 그 때즈음에는 내게도 한 자리가 생길 지도 모르 지.- -자네 눈에는 우리들의 계획이 그렇게까지 가망 없어 보이 는 건가?- -당장 되지지 않은 게 더 신기해 보일 정도네.- -허어....- 헤일런 공작은 축 퍼져있던 몸체를 일으켰다. 출렁이는 뱃 살이 애처로울 정도로 힘겹게 움직였다. 공작은 퉁퉁한 남자에 게로 다가와 그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자네도 그만 두게. 약속했기에 말 할 수는 없지만 후작의 뒤에는 대공저하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 버티고 있다네.- -자네...- -가르암 백작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의견일세. 그만 두게 우 린 이번에 중립을 지킬 생각이네.- -...................- -후작이라는 남자는... 고지식한 사람이지. 그냥 둬도 알아 서 스스로 희생될 남자네. 무릇 정치라는 게 다 그렇게 썩은 물이니까. 맑은 물에서밖에 살 수 없는 고기는 살아남을 수 없 는 곳이 이 곳이야.- 불과 몇 달 전의 헤일런 공작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 으리만큼 변해버린 눈빛으로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마치 후작이 살아남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 같네.- -후우... 사실 그렇다네. 후작 이후에 나설지도 모르는 그 분을 생각하면 차라리 후작이 굳건히 버텨줬으면 싶은 마음조 차 있지.- -변했어. 자네.- -시련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네. 사색은 사람을 성장시 키지.- -.... 그런가?- 씁쓸히 고개를 흔들며 헤일런 공작은 자신의 자리로 가 등 받이에 등을 완전히 기대고 앉았다. 축 늘어진 몸이 힘없이 흔 들거렸다. -많은 생각을 했네.- 조용히 공작의 목소리가 밤 공기를 타고 흘렀다. -십 수년을 헛살아 왔다는 생각이 들더구먼.- -흠.....- 퉁퉁한 남자는 공작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 다. 순간적인 변덕같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늘어진 몸과는 달리 공작의 맑게 가라앉은 눈빛은 그의 정신이 정상이며 이 전보다도 훨씬 맑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네 딸도 후작가에 보내져 있다지?- 퉁퉁한 남자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헤일런 공작은 피식 웃었다. -뭐, 보나마나 그 아이가 가고 싶다고 했겠지. 그 호기심 많은 말괄량이가 말린다고 자네 말을 듣겠나. 다른 가문들의 전략적인 문제는 머릿속에 없었겠지만...- -집사에게 듣자 하니, 그... 하녀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하더 라고 하더군...- -대단한 하녀였지. ..............여러모로 말이야...- 흠짓 몸을 떨어 보이고는 하얗게 질린 얼굴에 간신히 미소 를 띄워 보인 공작이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유달리 민감한 공작의 반응이 어색했다. 퉁퉁한 남자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 다. 하녀라는 말에조차 이 정도로 반응한다면 그 동안 공작을 생각하게 만든 힘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 알수 있다. 변하지 않 았다면 정신이 붕괴했거나 미쳤을지도 모른다. 퉁퉁한 남자는 새벽 별이 뜰 무렵 공작의 저택을 나왔다. 유달리도 찌를 듯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퉁퉁한 남자는 생각 에 잠겨들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다. 그런 기묘한 불안감은 귀족 회의에 참석하는 순간부터 더 크게 자라났다. 아직 돌아오지도 않은 이득에 눈이 멀어 벌써 부터 서로를 견제하려 드는 귀족들. 그런 자들을 묶을 만한 지 위를 지닌 자도, 지략을 지닌 자도 빠져있었다. 잠시 퉁퉁한 남자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회의 는 끝나갔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이미 이해가 일치한 것들이었 고 퉁퉁한 남자가 반대한다고 해 봤자 그들의 대세는 바뀌는 바가 없었다. 몇몇 귀족들은 흩어지고 하노베이 백작을 포함한 몇몇은 술병 하나를 땄다. 퉁퉁한 남자는 남지 않았다. 저택의 문을 나서며 퉁퉁한 남자는 몸을 부르르 털었다. 아 무래도 싫은 사람들과 함께 자리한다는 건 고역이다. 아무리 순간의 목표가 같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어리석은 놈들. 제 놈들이 직접 차지할 생각은 하나도 못하 지. 아무래도 하노베이 백작과 손을 잡는 건 그만 둬야겠어.' 후작가가 왜 후작가이겠는가! 가문 대대로 배출해온 인재도 그렇고 역사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페르로이 후작가가 시선을 받는 건 그가 힘을 쥐었기 때문이다. 그 힘을 빼앗기 위해 모 였으면서도... 그를 제외한 다른 자들은 하나같이 어떻게든 후 작가와 연을 맺거나 해서 그를 거슬리지 않은 채로 덕을 보려 한다. 기껏 세운 원대한 계획이 자신의 딸을 후처로 맞아들이 게 해 색으로 눈을 멀게 한다였다. "저런 놈들 딸년이라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겠지. 보나마나 사랑은커녕, 저택 사람들에게 원망만 잔뜩 듣고 있을걸? 골수 무인인 후작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식으로 연관될 바에는 차라 리 당당하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편이 더 빠르다는 것 을 모르는 바보들. 저런 놈들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저 정도인 줄은 몰랐어. 오랜 귀족생활에 머리마저 썩어버렸나 보군." 작게 끊임없이 툴툴거리며 퉁퉁한 남자는 그의 전용 마차 등받이에 몸을 푹신하게 기댔다. 오랬동안 결혼이라는 틀을 이 용해 혈연적 관계를 맺어온 다른 귀족들에게 후작이란 존재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이방아였다. 퉁퉁한 남자는 어느 누구보다 도 그런 자들의 속성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알지 못했다면, 난 분명 그를 가짜라고 오해했 을 거야....' 남자의 입술에서 얇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자, 그럼... 이제 어찌한다?" **** "................이 마차가 아닌가 보다." "켁! 지금 저택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왔는데!" "젊은 놈이 그 정도도 못뛴다는 말을 참 잘도 한다. 이 나 도 뛰는데..." ".......................제길! 요괴 할망구 같으니!" 시끄럽게 달리는 마차 지붕 위에서 내가 듣지 못할 것이라 고 생각했는지 그는 낮게 툴툴거렸다. "다 들린다." "..............." 이렇게까지 즉각즉각 반응하는 모습이 더 놀려주고 싶어지 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기라도 하는 냥 하르크의 몸이 움찔하 며 마차 지붕에 더 밀착해 달라붙었다. 마차가 커다란 사철 나 무 아래를 지나가며 그림자에 모습이 가려질 때를 노려 난 가 볍게 몸을 날려 마차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어 하르크도 가뿐 하게 떨어져 나와 근처 나무에 몸을 숨겼다. 지나가는 사람들 과 마부와 시종은 우리를 보지 못했다. 자칭 고상한 취미를 위 해 저택 주위에 비싸기로 소문난 푸른 사철나무들을 심는다는 게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목을 죌 줄은 몰랐겠지. 우린 다시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머니에서 노도가 슬쩍 쥐어준 축지법의 부적을 꺼내 손에 쥐었다. 달리 경공술 을 발휘하지 않아도 한 걸음 걸음 옮길 때마다 주위 나무들이 휙휙 지나갔다. 하르크가 입을 헤 벌리고 따라오고 있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이유? 나야 지금 시키는 데로 하고 있 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올 때 했던 그 엄청난 달리기도 그렇 고... 이건...!" 그에게는 경공술이 엄청난 달리기였나보다. 지난 몇일 꾸준 히 몸으로 익힌 마나의 흐름을 느끼게 하며, 한 손으로 맥문을 잡아 주도하고 이 이름 모를 저택까지 달려오는 길은 하르크 에게는 경악 그 자체였다. "쳇. 매일 같이 놀라면서 또 놀랄 일이 생기다니... 내가 정 말 뭘 하고 살면서 정보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그럴 건 없어. 축지술 같은 이런 계열의 도력이나 극도의 경공술은 내가 살던 동대륙에서도 거의 전설 속으로 잊혀진 것들이니까. 보통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지..." "그런 걸 매일같이 현실로 접하는 내 생각도 좀 해 주쇼." "배우기 싫어?" ".....................췌! 말을 해도... 꼭!" 우린 만일을 대비해 노도가 준 몇 가지 부적을 몸에 덧붙 이고는 다시금 저택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좀 전에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그 퉁퉁한 남자가 거만 한 걸음새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따라갔었지만, 방금 전의 혼 잣말로 유추한다면... 적어도 이 저택 안에는 그와 비슷한 급의 귀족이 서너명은 더 있을 듯 했다. 이건 기회일 지도 모른다. 저택은 크지 않았다. 건국 초기에 지어진 요새 성격을 띈 작은 성에 가까운 이 저택은 건국 삼백년이 넘어설 무렵부터 등장했다는 화려하고 덩치 큰 저택들과는 달리 작고 알차게 지어져 있었다. "음모를 꾸미기에 딱 알맞구먼...." 어지간한 그림자들이라면 발 한번 제대로 디뎌보지 못한 채 경비기사의 손에 걸려 이슬로 사라지겠지. 이 곳은 몸을 감 출 수 있을 듯하게 보이면서도 다른 방향에서는 훤히 들여다 보이는 그런 '매복장소'같은 덧이 곳곳에 있었다. 어중간히 숨 다가는 다른 경비기사들에게 '여기 적이 있소!'하고 외치는 격 이겠지. 다행히 우리는 그런 일반적인 침입자에 속하지 않았다. 하 르크의 실력이 의외로 쓸만했던 것도 있고... 뭐, 여차 하면... 어차피 모습도 가렸겠다, 다 때려부수고 몇 놈 족쳐 가면 되겠 지. 노도와 금아의 잔소리야 귓등으로 흘리면 되고... 끄응... "이게 왠 노가다유... 정확한 정보도 채 모으지 못하고 이렇 게 맨 바닥에 머리박기식 침입이나 하다니... 차라리 바닷가 모 래사장에서 모래알을 나누겠소." "내기할까?" "에?" "네가 가서 모래알을 세는 동안 난 소년을 찾는 거야. 누가 먼저 끝내는지 내기할까 말이냐." "........................뭔 말을 못하게 해!" 자칭 전문가인 하르크의 댓발은 튀어나온 입에서는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사실 그날 밤 의 침입자가 말해 준 몇가지 안되는 정보로 몇일만에 이 정도 까지나 알아낸 것 자체가 기적적이랄까? 마음 같아서는 버르 장머리없는 귀족가의 딸년들을 족쳐 불게 하고 싶었지만... 후 작가의 저택 내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면 그 건... 오히려 부작용만 더 키울 수 있다. 우린 '인질'을 잡아놓을 만한 장소와 그런 종류의 음모를 알 만한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늦으면 안될텐데...' 우리는 감각을 모두 세웠다. 작은 소리, 기척에 신경을 집중 하고 재빠르게 저택 곳곳을 쑤시고 누비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대부분의 방과, 저택 안의 작은 신전과 거실, 침실들과 홀을 모두 둘러본 참이었다. '벌써 다들 사라진걸까?' 차라리 그 마차 주인을 족치는 편이 더 낳았을 지도 모른 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 난 감각을 조금 더 날카롭게 세웠다. 그 때였다. "하하하하! 역시 하노베이가의 분들은 어딘가 다르시군요!" 호탕하기보다는 아부성이 철철 넘치는 웃음소리가 복도 끝 에서 조그맣게 울려나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들을 수 없으리 만큼 작은 울림. "뭐, 뭐유!" 황급히 고개를 돌린 내 움직임에 당황한 하르크가 조심스 레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난 한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살짝 대어보이고서는 소리가 울려나온 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딪었다. 복도의 끝에 뚤린 커다란 창문으로 봄기운이 돌기 시 작한 햇살이 따사로이 들어왔다. "소리가 들렸었어...." 아무리 들러봐도 그 방향의 복도에는 방문이나 사람이 들 락일만한 통로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 복도도 마찬 가지였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층의 복도인 이 곳에는 방이란 단 하나도 없었다. 단지...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한 중 간 거점일 뿐. "설마... 지붕 위에서?" "지붕 다락에 비밀방을 만들어 놓는 일은 종종 있소." 찾았다는 생각에 밝아진 표정으로 하르크는 고개를 끄덕였 다. "입구를... 찾을 수 있겠나?" "맡겨만 두쇼! 정 안되면 그 괴력으로 부셔 버리면 되는 것 아니요!" ".................." **** ".....................!"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공포와 고통으로 범벅된 신음소리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것만 같았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곧 돌아오마.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아직도 아버지의 떨리는 차가운 손길이 볼에 닿아있는 것 만 같았다. 잔뜩 긴장한 듯 미미하게 떨리기까지 했던 아비의 손은 아쉬운 듯 소년의 볼을 맴돌다가 거칠게 떨어져나갔다. 곧 이어 아비의 거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퍼붙는 욕설도 들려왔다. 소년은 나오지 않는 소리를 질러대며 두 팔 을 휘저었다. -뻐억!- 정신을 잃을만큼 격렬한 고통이 소년의 복부에 와 닿았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묵직한 쇠 문 닫히는 소리 가 들렸다. 소년의 아버지가 끌려나갔다. 소년은 남겨졌다. 몇 일이 지났는지 모른다. 소년은 조용히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흠... 그래도 그건 안되겠는걸?" 어딘가 역겨운 피냄새가 베어 있는 듯한 탁한 목소리가 소 년의 고막을 울렸다. 낯선 목소리! 소년은 훔짓 몸을 떨었다. "그런 점이 더 매력이 될 수도 있는 법이요." 침착하기에 더 기분나쁜 목소리가 탁한 목소리를 이어 흘 러나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저들은 문 밖에서 말을 나누고 있으리라. 소년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몸을 벽쪽으로 옮겼다. 부주의 하게 움직여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불 행하게도... "게다가 상황 판단력도 있소. 조심스럽기도 하고. 단점 한 두가지쯤 얼마든지 메리트로 바꿀 수 있는 게 주인된 자의 능 력 아니요?" "흠.....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보기에는 단점이 너무 큰 데.." 탁한 목소리가 망설였다. "하지만 저런 미동(美童)을 어디서 또 찾을 수 있겠소? 거 칠기로 소문난 암살자를 한 눈에 사로잡아 손씻게 만든 여인 의 핏줄이요. 자라나면 더 보기 좋아지겠지." "흠................" "게다가 쓸데없는 비밀이 셀 위험도 없고! 일부러라도 감각 한 두 개를 죽이는 판에 어디서 저만한 색노(色奴)감을 찾으시 려오?" "끌끌...."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끈적한 무언가가 피부를 흝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은 절대 좋은 게 아니었다. 소 년은 직감적으로 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상이 자신임 을 알았다. '아버지!'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버지가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와서 자신에 대해 뭐라뭐라 한다. 불길한 예 감이 스믈스믈 피어오른다. "좋소! 내 하노베이 백작가의 장담을 믿어보리다!" "하하하! 좋은 결정이시오! 하지만.... 전 귀족이 아닙니다. " 담담했던 목소리의 끝이 날카롭게 갈렸다. 자신이 속한 가 문의 이름을 밝힌 데 대한 노여움이리라. 누군가의 마른침 넘 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 하... 내 주의 하겠소이다." 묵직한 돈주머니 오가는 소리에 이어 녹슨 철문이 열리는 마찰 소리가 들렸다. 거친 사내의 발걸음 소리 두 개가 들어와 소년의 몸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아직 어리고 가벼운 소년은 한 대의 주먹에 몸부릴 칠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지난 닷새 간 소년이 갇혀있던 작은 감방은 텅 비워졌다. ***** 자아... 제 글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미.소.년.이 등장하겠군요... 쿨럭!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20 Sat 14:52:25 IP : 211.215.57.127 Elm 호, 혹시 은명이란 이름도 보류중이신가요 ㅇㅁㅇ; 여태 유령놀이만 했던 독자 하나 왔다 갑니다 (07/20,14:59) 미스티 헤헷 님 올리셨어요^^ 오늘두 열씨미 잘 봤구여 역시~!! 재미있어요^^ (07/20,14:59) napping 아앙..넘 좋아요. .드뎌.. 미소년이닷.. 근데.. 칼 미소년이 아니네요.. 칼 미소년이 좋은데.. (카리스마있는 미소년..).. 유학가면 나올까요.. 케케.. 하여튼 여행은 언제 시작하실런지.. @@ 오늘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작가님 팟팅~ (07/20,15:10) 캬캬 미소년...좋군여...란이빨리미소년을구해야할텐데... (07/20,15:5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1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1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7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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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up]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 2002/07/2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골치가 지끈거린다. 왜 이렇게 일이 꼬이고만 있는 걸까. 새 로운 경험 운운하는 것도 지친다. 초창기의 목적, 이제는 바라 지도 않는다. 제발 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아... 나도 갈 때까지 가 버린 걸 까?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한달 정도 후 면 클레이브는 프란으로 떠나야 한다. 그 때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골머리가 쑤시는 정도가 아니가 쪼개질 것 같건만! 왜 그 암살범은 진작에 자결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날 이토록 고민하게 만든단 말인가! 아니... 이런 마음을 품어 서는 안되겠지만... 짜증날 일이 연이어 생기다 보니 별별 생각 이 다 드는 게 사실이다. 저택의 일도 걱정이고... 요 몇일 뒷조사에, 침입자 소탕에 바빠 정작 내 본업인 하녀일에는 많이 소흘해졌다. 그리고 그 피해는 다른 하인, 하녀들과 내 어린 주인과 스테판이 고스란 히 뒤집어쓰고 있는 참이다. 몇몇 가정교사들도 포함되는 것 같고... 내가 자리만 비우면 기가 살아나서 귀여운 스테판과 클 레이브를 잡아먹을 듯 설치는 하노베이가의 그 계집아이와 일 당들이 오늘은 또 얼마나 날뛰고 있을까! 그 것들은 도데체 언제까지 저택에 늘러붙어 있을 셈인지! 클레이브만 떠나면 어떻게 해서든 후작을 붙잡겠다는 심산인 듯 보이는데, 내가 보기에는... 후작이 위험하다. 음모에는 영 안어울리는 사람. 그 여우같은 것들이 들러붙어 정신 빼 놓으 면 울며 겨자먹기로 결혼하는 수도 있어 보인다. 노도가 금아 와 함께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 지만... 영 꺼림직하다. 이대로는 프란으로 맘 편히 떠나지도 못할 텐데... 제길. 팔려간 그 꼬맹이는 또 언제 구하나... 머리 가 복잡하다. 쉽게 되는 일은 없고... 비밀방의 문은 결국 힘으로 열었다. 몇 시간을 꼼지락거린 하르크는, -특별히 설계된 곳인 것 같은데... 지도라도 구하기 전에는 무리요.- 하며 어깨를 한번 으쓱이는 것으로 포기를 선언했다. 물론 그런 방자함 뒤에는 응분의 대가가 뒤따랐고... 하지만 덕분에 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두부 잘려나가듯 곱게 잘린 돌벽 뒤 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시덕거리며 떠들고 있던 귀족들은 한 순간에 잘려진 두터운 돌덩어리와 시퍼렇게 치솟은 내 검 을 둘러싼 빛을 연거퍼 보고서는 바로 굳어버렸다. 이미 꽤 얼큰하게 마신 듯, 얼큰히 취해서는 헤롱거리고 있 던 그들은 별다른 반항 한번 하지 않고서 내 질문에 술술 답 했다. "딱히 비밀을 지킬만한 건 물어보지도 않았잖소. 아깝게." "뭐가 아까운지도 모르는 놈." 옆에서 깐죽거린 하르크의 말대로 난 간략히 납치된 소년 의 행방 이외에는 묻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아까운 건 시간이었으니까. 게다가 후작의 일은 후작 스스로가 풀어나 가야 한다. 그는 어른이었고 난 후작을 보호할 책임은 느끼지 않았다. 그가 무인의 길만을 걸었다면 모를까, 그는 이미 정치 가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건 모르지만 그 바닥이 똥밭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발 담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 다. 그런 일은 익숙한 '베이르 대공'이나 하면 된다.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았다. 저택 지하 감옥에 갖혀있던 소 년은 얼마 전 일명 유명한 악덕 노예상에게 '산채로' 팔려갔다. "거긴 정말로 왕궁보다 더 들어가기 힘든 곳이오." 당장 달려가자는 내 팔목을 잡은 하르크는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은 건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서 갑시다. 잘못 되면 많은 피를 보아야 할 지도 모르오." 무언가 아는 바가 있는 듯 하르크는 지금까지의 장난끼를 모조리 털어내고 진지하게 말했다. "뭔가 아는 게 있나?" "그 악덕 색골 노예상을 모르면 서 대륙인이 아니오." 피식 웃으며 하르크는 깊게 한숨을 내쉈다. "일단 어디 갖혀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할 것 같소. 그 노예 상이 가지고 있는 비밀장소가 한 두 군데라야지." "알아낼 수 있나?" "뭐, 옛날 부하들을 총 동원하면 어찌어찌 될 것 같소... 하 지만..." "뭐?" 정말로 곤란한 얼굴로 머뭇거리며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 하고 있는 하르크의 표정에 난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하르 크는 몇번 연이어 한숨을 쉬고는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놈들은 대가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이 아니오. 벌이 없이 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을 꺼내면서도 몇번씩이나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며 하르크는 말을 끊었다. 몇일 전, 소년의 행방을 찾기 위해 염 탐을 부탁했을 때도 어두운 얼굴을 보이더니만 결국은 현실적 인 어려움 때문이었나 보다. "그 때는... 내가 모아둔 것도 없지 않았고... 그 놈들도 의리 다 뭐다 해서 봐 준 것도 있었지만...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 는 거 아니요..." 내 표정이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대 놓고 인상을 팍 찌그린 하르크는 연신 커다랗게 한숨을 쉬어가며 다 죽어가는 냥 오만상을 구겼다. 아마 모아둔 재산을 야금야금 써 버리는 게 아까웠던 모양이다. 하긴, 지금 이렇게 일한다고 해서 정원 사 이상의 봉급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움직인다고 해 서 보조금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 이 문제는 차차 후작과 상의 해서 해결해 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하르크는 평범 한 정원사보다 그림자의 일을 더 해야 할 테니까. 노도의 손을 타고 이제는 완전히 정원사가 되나 싶었더니 만 다시 이렇게 되다니... 이런 게 타고난 업이라는 걸까? "걱정 마라. 금아의 성을 저당 잡혀서라도 돈은 만들어 줄 테니까." 난 내가 지어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입가에 그려보 이며 하르크의 등을 두드렸다. '마, 마녀!' "단, 모든 것을 알아내라. 어린 아이를 잡아 노예로 파는 미 친놈이나 사 가는 정신나간 놈이나 그대로 두고 떠나지는 않 을 테니까." "그럼... 하노.. 어쩌구 하는 백작...놈도 치시려구요?" "너라면 그런 놈을 그대로 두고 떠나고 싶겠어? 클레이브의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압정을 뿌릴 지도 모르는 놈인데. 후작 불쌍한 건 둘째 치고서라도." "미쳤수? 냅두게..." 하르크의 입꼬리가 비끄름 끌려 올라갔다. 하르크는 요즘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저런 정의감 넘치는 성격으로 어 떻게 엄한 사람의 명줄을 따고 다녔을까.... 노도의 말대로 참 어찌 돌아가는 지 알 수 없는 게 세상인가 보다. **** 클레이브는 머리에 손을 올렸다. 뒷골이 울려왔다. 약간의 어지러움증이 다리를 휘청이게 했다. 몇 가지 떠나지 않는 걱 정이 요즘 들어 그를 편히 쉬게 두지 않았다. "어머나! 허약한 아들이 후작가의 유일한 후계자라니! 이런 불안할 데가 어디있나요?" 듣는 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날카로운 고음의 목소리의 주인이 그 원인제공자였다. 벌써 한달이 넘었다. 이런 식으로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지가. 다른 때라면 란이 부리부리한 눈 으로 노려본다든가, 금아나 노도가 눈치빠르게 지나가며 주의 를 끌어준다든가 하며 클레이브와 스테판을 지켜주었었는데, 요 몇 일 들어서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다. 하다못해 클레이브의 전속 하녀자리까지도 란이 직접 하지 않고 제린이라는 하녀에게 대신 맡겨둘 정도였으니... '어쩌면... 백작가를 통해 뭔가 압력을 받았거나... 란, 그녀도 지긋지긋해졌을 지도 모르지.' 한달이라는 시간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절 넌덜머리가 나도 록 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공부 시간중입니다. 죄송하지만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시겠습니까?" 남작 이후로 세 번째 새로 온 가정교사는 나름대로 사리분 별을 할 수도 있고 해야 할 말을 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스 테판이 함께 앉아 공부한다는 사실에도 잠시 고개를 갸웃해 보였을 뿐 별다른 거부도 하지 않았고, 평민인 스테판이 열심 히 노력하는 모습에 칭찬까지도 할 수 있는 남자였다. 제일 문 제가 되었었던 하녀 란과의 마찰도 거의 없었고 나름대로 후 작가에서 한 자리를 튼튼히 차지하고 있었다. "흥! 감히 자작 따위가 내게 명령하는 건가?" "도련님의 공부에 방해가 되는 듯 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 일단 가정교사의 신분으로 와 있는 것이니 만큼 도련님께 서 전력을 다해 공부에 집중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 는 일도 후작님께 받은 제 권한입니다." 그도 참다 참다못해 화가 치밀었는 지 목소리가 유달리 싸 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가정교사의 태도를 이해할 리가 없다. 아침부터 찾아와 깐죽거리며 온갖 방해공작을 서슴치 않 던 귀족 영애의 손에 잡힌 부채가 무참히 비틀어졌다. "감히! 내게!" "중요한 수업중입니다." 꽉 문 입술에서 붉은 핏줄기 한 가락이 흘렀다. "흥! 어차피 써 보지도 못할 수업! 이제 곧 프란으로 떠날 게 아닙니까? 인질로서 말이죠. 뭐, 그럴만한 가치나 유지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참다참다 못한 어린 목소리 하나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 다. 스테판이 몸을 일으키고 셀레라 엘 하노베이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감히!" 히스테리컬한 새된 목소리가 바로 터져 나왔다. 가죽 찢어 지는 듯한 소리에 이어 바로 소년의 볼이 붉게 부어 올랐다. 가느다란 혈선 하나가 스테판의 볼에 그어졌다. 클레이브에게 인정받은 이후로 스테판은 이전처럼 귀족의 앞이라고 무작정 고개 숙이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 것이 클레이브를 위한 일이 라고 판단될 때는 더더욱 그랬다. 스테판의 날카로운 눈빛이 셀레라의 얼굴을 흩었다. 노여움에 질린 셀레라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손이 다시 한번 위로 올려졌다. "스테판! 하노베이 영애! 이게 무슨 짓입니까!" 찢어질 듯 두 눈을 크게 부릅뜬 클레이브가 달려왔다. 오늘 따라 자리를 비운 란 대신 클레이브의 시중을 들고 있던 하녀 제린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핏줄기를 흘린 채 멍하니 서 있는 스테판의 볼을 훔쳤다. "흥!"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오만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내리깐 여인의 입술이 미묘하게 비틀어졌다. 더 이상 그들을 말려줄 사람은 없었다. 수업 분위기는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나마 간 신히 무시하며 한달간을 버텨 온 게 더 기적이었다. "도가 지나치시군요." 냉랭하게 굳은 클레이브의 얼굴에 옅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호오? 그래,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가요?" 그렇다 한들 아직 어린아이였다. 비록 그 기세가 예사롭지 는 않았지만 셀레라의 가슴속에 있는 혼혈과 어린아이에 대한 무시와 경멸의 틈을 매울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경멸의 시선에 클레이브는 이를 악물 었다. "이곳은 하노베이 백작가가 아니라 페르로이 후작가입니 다." 아무리 그래도 클레이브는 후작가의 유일한 계승자였다. 이 렇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문제는 셀레라라는 사람이 절대 그 평범한 범주에 속하는 신경을 지 니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녀가 연이은 암살 실패와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의 반항에 독기가 오를 데로 올라 이성을 완전 히 잃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흥! 그래서요? 앞으로 안주인이 될 내가, 인질로 나가 영 원히 돌아오지 않을 혼혈아 꼬맹이 하나에게 말 한마디 조심 해야 한다고? 그런 말을 하고 싶나?" "그만!" "하노베이양!" 문이 활짝 열리고 한 사람이 등장했다. 달려왔는지 숨이 턱 까지 찬 세이제린가의 클로네의 등장에 셀레라의 눈에 고인 독기가 깊어졌다. 날카롭게 살기어린 시선을 보내며 셀레라는 이를 들어냈다. "흥! 제가 못할 말을 했던가요? 세이제린 영애?" "란이 걱정하더니만... 또 와서 이런 소동이나 벌리고 있었 군요." "란? 하! 세이제린 후작가도 끝난 모양이군요. 영애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하녀 따위의 걱정이나 신경쓰시게!" "셀레라!" "하! 제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하락을 드린 기억이 없습니 다만? 기본적인 예의까지 잊으시다니요! 역시 혼혈아 따위와 가깝게 지내..." "닥쳐라!" "그만!"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와 걱정으로 범벅된 목소리가 동시 에 터져 나왔다. 햇빛을 받은 은색의 빛 한 줄기가 천장에 비 쳤다. 날카롭게 날을 들어낸 검 한 자루가 소리도 없이 모습을 완전히 들어냈다. "꺄, 꺄악!" 곧 이어 호들갑스러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 둬! 스테판!" 클레이브의 격양된 목소리가 방안에 있던 다른 한 소년의 팔을 옭아맸다. 하노베이가의 여식을 향해 막 찔러 들어가던 검은 멈춰섰다. 허겁지겁 손을 들어 자그마한 소년을 내리치려던 손바닥을 또 하나의 가는 팔이 날아와 잡아챘다. 셀레라의 독기 어린 시 선이 살짝 세이제린가의 클로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날 위한 게 아니야." 검은 파르르 떨리며 바닥으로 날을 내렸다. 스테판은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검을 뽑아들기는 했지만 지금 그가 벌인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그도 모르지 않 았다. 감히 평민 주제에 귀족에게 검을 들이댔다. '하지만 지켜야만 할 것도 있습니다. 목숨보다도 먼저 말이 죠.' 클레이브의 긍지는 스테판의 긍지 이상이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면서까지 참고 싶지 않았다. 그가 처벌됨으로 서 클레이브의 얼굴이 선다면... 그 또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늘히 공기가 굳었다. 스테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클 레이브가 굳어진 얼굴로 한 걸음 더 앞쪽으로 나서며 스테판 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장이라도 독기어린 저주들을 쏟아부을 듯 격양된 하노베이가 셀레라의 파랗게 질린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녀가 막 입을 벌려 고함치려던 순간이었다. "자아! 그럼 우린 그만 방해하고 나가죠!" 누군가가 그녀의 한 팔을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감정을 수 습한 세이제린 후작가의 클로네였다. "지, 지금 무슨 소릴!" 셀레라는 순간 말을 삼켰다. 막 소리치려던 고함 소리가 목 구멍에 딱 걸린 듯 막혔다. 감히 함부로 외치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클로네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딘가 맹 하고 만만하게 보여 자신이 후작가의 사람인지도 잊게 만들만 큼 편안했던 그녀의 분위기가 변해 있었다. 어딘가 위압적이면 서도 그런 면이 거부감 들지 않게 하는 자연스러움. 막 반발하 려던 셀레라의 입술이 멈췄다. 넘처나던 오만에 잠시 잊고 있 었던 신분이라는 벽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보아하니 검술연습도 병행하는 전략 수업인 듯 보이네요. 쓸데없이 방해하다가 얼굴에 엄한 상처라도 입으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아니면... 하노베이 백작가의 분께서는... 제 의견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마계의 달빛처럼 냉랭한 빛을 흘렸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저도 묵과할 수 없습니다만...." 피식 비웃음이 맺혔다. 셀레라는 저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 옴을 느꼈다. 압도당하고 있었다. 마치 작은 고양이처럼 웅크 리고 있던 암 표범이 이라도 들어낸 듯 클로네의 앞에서 셀레 라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 셀레라는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어 봤자 얻을 것이 없었다. -쾅!-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문이 거칠게 닫혔다. 한 바탕의 폭 풍이 스쳐지나간 듯 썰렁한 공기가 방안을 맴돌다가 빼꼼히 열려있던 창문 한 자락으로 흘러나갔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늦었네요." 피식 멎적게 미소지으며 클로네가 고개를 조금 숙여 보였 다. 가정교사를 비롯해 클레이브와 스테판의 고개가 황급히 숙 여졌다. "어쨌든 란과의 약속은 지킨 겁니다. 그녀에게도 제게 했던 약속을 지켜 달라고 전해주세요." 길게 흘러나오는 하품을 눌러 참으며 클로네는 피식 웃어 보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잠시 의혹의 빛을 보 이던 클레이브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클로네는 셀레라 와는 대조적으로 조용히 문을 닫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어... 그럼... 한달 동안이나 막혔던 부분을 다시.. 시작해 볼까요?" 가정교사가 한짐 덜어놓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정말 오 랜만에 돌아온 면학 분위기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 클레이브 와 스테판이 연이어 자세를 바로했다. 책을 펼치고, 펜을 들며 클레이브는 힐끗 옆자리에 앉은 소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런 것까지 란을 닮을 필요는 없잖아." 작은 안도의 한숨이 클레이브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스테판의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도련님..." "고마웠다." 스테판의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붉게 물들기로는 클레 이브의 뒷목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 왼손 손가락은... 운동을 한답시고 날뛰다가 뼜었습니다. 한 일주일 쉬고 나니 움직일만 하네요. 흐흐흐 혹... 삼재란 이런 것이 아닌지. 다치고, 삐는 것이...(오토바이에도 깔렸었죠... 흐) 정말 올해는... 남은 시간이나마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을 텐데.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21 Sun 13:21:30 IP : 211.215.56.106 캬캬 삼재...저두삼재죠...하지만아직은심한일은없는듯...님..몸조심하세요...특히손!! (07/21,14:15) 마녀 오늘 새벽 이거 보느라 다섯시에 잠든... 오늘은 일요일인뎅... 지금은 낮인뎅... 하나쯤은 더 올라와두 될듯한... 기분 좋은 오후... 어떻게 생각하세요? (07/21,15:43) 미스티 후훗.. 올리셨군요?? ^^ 빨리 손가락 나으세요 그리구 절대 저 싸가지없는 공녀랑 클레이브 아빠 결혼시키지 마세요 그냥 반 죽여버려요ㅡㅡ;; (07/22,12:59) napping 도장쾅~ 오늘도 왔다 갑니다... 손 어여어여 낳으시고.. (호오~) 저 공녀 꼬옥.. 속쉬원하게 혼내주세요.. 케케케.. (07/22,13:24) hobit 크흑.. 어서 나세요..ㅠ_ㅜ (07/23,23:04)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4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2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1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7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 2002/07/22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당장 죽여버리라고 하겠어." 새된 고음이 터져 나왔다. "저런 더러운 혼혈 잡종하나와 하인 따위도 처치하지 못한 무능한 놈의 핏줄 따위 살려둘 필요 없잖아?" 잡혀있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 내겠다며 무표정한 고개를 숙이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셀레라는 기염을 토했 다. 가느다란 손에 쥐인 부채가 끼익거리는 비명을 질러대며 와드드 꺽겨졌다. 분노로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의 분노가 어려있었다. "아가씨...." 감히 그녀의 살기어린 시선을 맞받아치지 못한 하녀들이 목을 자라처럼 움추려 들었다. "감히! 감히! 앞으로 후작가의 안주인이 될 내게! 흥! 같은 후작가라고는 하지만 세이제린가와 페르로이 가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을! 겨우 이름 한 끄트머리를 잡고 명맥 만 유지한 몰락 가문 출신주제에!" 셀레라는 거칠어진 숨을 가누지 못해 연신 씩씩거렸다. "무엇하나 제대로 주도할 힘도 없어 아버님께 손이나 벌리 는 주제에!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 모르겠어!" 말은 갈수록 거칠어져갔다. 그녀의 비명 섞인 푸념은 두꺼 운 방문을 뚫고 복도까지 메아리쳤다. 그녀의 방 근처를 지나 던 기사들의 눈가가 절로 찌푸려졌다. 저런 사람이 안주인이 될 바에는 차라리 후작이 독신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가 요 즘 그들의 대세였다. 그리고 그건 비단 기사들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돌아가겠습니다." "허허허! 후작과 클레이브를 돕기 위해서는 조금의 복잡함 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한 건 자네가 아니었나?!" "하지만! 후작가의 미래를 위해 제 후손들의 앞날을 잡아먹 을 수는 없습니다!" "글세,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도 그러네." "그렇게 되지 않다니요! 대공이라는 이름에 들러붙어 온 힘 이 애들 장난감 수준일거라 생각하십니까! 한 나라의 기둥뿌리 를 쥐어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란 말입니다! 아무리 제 가 잠적한다고 하더라도 남아있는 힘을... 저런 정신머리를 지 닌 여인의 의도대로 쓰게 된다면! 만에 하나, 천만에 하나라도! 싫습니다!" 소리 죽여 악을 쓰는 금아를 달래며 노도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온갖 가능성을 제시해 살살 달래 끌고 가던 길이었다. 마음놓고 클레이브의 적대세력들을 치기 위해서는 목의 가시 같은 귀족가의 여식들을 일거에 몰아내면서 모든 귀족들의 시 선을 후작가에서 떼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잘만 하면 귀족들의 허를 찌르고... 노도와 란의 호기심과 장난끼를 충족시키는 동 시에... 티끌만큼이나마 남아있던 세상에 대한 금아의 미련을 홀가분히 날려줄 수 있는 일석 삼조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어. 세상에 베이르 대공 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가문이 잠든 건 아니라는 공표도 될 테고..." "제 자식놈들은 알아서 살아갈 겁니다. 제가 그리 했듯이 말이죠." "하지만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세." 폭풍치는 밤하늘처럼 어두워진 금아의 얼굴과는 대조적으 로 노도의 얼굴은 활짝 피어있었다. "그게 싫으면 양자를 하나 새로 들여 재빠르게 발표하던 지..." "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까?" "그렇지야 않겠지만..." "그, 그럼..." "하지만 그 편이 가장 재미있어 보이지 않나? 또, 일이 일 그러진 다음이라도 그녀들이 뻔뻔하게 안면 몰수하고 되돌아 오기도 힘들고..." "노도님...." "왜?" "페르로이 후작만 불쌍하고... 전 불쌍하지 않으신 겁니까?" 애절하다 못해 비굴에 가깝게 표정을 구겨 보이며 금아는 울상을 지었다. 노도의 고개가 단호하게 저어졌다. "어린 클레이브를 위해 그 정도도 못하나?" "하,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 된다면..." "왜? 아직도 자리에 미련이 남았어?" "그건 아니지만... 제가 남겨놓은 힘이 워낙에 크지 않습니 까? 만에 하나라도 악용된다면...." "허허허허, 걱정도 팔자일세. 그런 일일랑 걱정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되네. 내 그대 가문의 일원이 될 지도 모르는 싸가지 없는 여식을 위해 특별 갱생 계획도 세워 놓았으니..." "......................." "게다가 미련이 될 만한 싹은 일찌감치 잘라놓는 게 수련에 좋네. 언제라도 돌아가 한 나라를 뒤흔들 권력을 되찾을 수 있 다고 하는 건 발전하는데는 짐밖에 되지 않아." 빙글빙글 웃는 노도의 표정에 금아는 달리 말을 잇지 못했 다. 이젠 발전의 가능성 운운 해가며 그를 다그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한 차원을 더 넘어선 발전이야말로 그가 권력 보다도 더 절실히 원했던 것이니까. "게다가, 더 큰 힘을 지니게 된다면, 언제든지 더 큰 권력도 만들 수 있겠지. 그 때 돼서 다시 권력욕심이 생길리도 없겠지 만 말이야..." "후............." 금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게다가 아직 반려를 만나지 못한 자네의 아들들도 빨리 처 분해야 하지 않겠나? 나이가 백여세가 넘어갔는데도 아직 손 자를 안아보지 못했다니... 자식 둔 사람으로서 그 이상의 불행 도 드물지..." "하지만... 그 놈들이 순순히 제 말을 들을지... 지금까지 제 가 어떤 말로 설득을 했어도 버티며 결혼은커녕... 여인 얼굴 한번 처다보지 않은 놈들인데..." "허허허... 이런 딱한 사람을 봤나." 활짝 핀 노도의 입술 사이로 살짝 들어난 흰 이가 햇볕을 받아 요사스럽게 빛났다. "그거야 간단하게 꾀낼 방법이 있지 않나?" "네?" 의아한 듯 금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눈가를 좁혔다. 그런 방법이 있었더라면 진즉 썼을 터, 그로서는 노도의 의중이 잡 히지 않았다. 노도는 그런 금아가 한심스럽다는 듯 가볍게 탄 식을 터트리며 금아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골수까지 무인인 놈들이 침을 흘리며 반가워 할 사람이 바 로 우리 가까이에 있지 않은가!" "네? 그, 그럼 설마..." "그래. 전설의 무후이며 검후인 류이네리아 칸 란을 팔자는 이야기지." "켁!" "그녀가 직접 한수 가르쳐 준다는데 자네 아들들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 하지만 해 주실까요? 그런 면에서는 아주... 까다로우신 데..." "허허허허. 이 모든게 다 클레이브를 위해서라네!" "....................." 은근히 타오를 듯한 질투까지 느끼며 금아는 마음을 비웠 다. 진작 자신의 말을 들어 성혼했었다면 이런 불행을 겪지 않 았었을 그의 세 아들에게 동정을 금치 못하며... 그 날 후작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지원을 받았다. 크리아 의 모든 귀족가는 발칵 뒤집혔다. 한 때 모든 귀족들의 가슴을 설래이게 만들었었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 포기했 었던 기회가 갑작스레 그들에게로 떨어졌다. -베이르 대공의 며느리 찾기 무도회!- 나이 오십이 넘도록 결혼조차 하지 않고 검술에만 매진하 고 있던 아들들을 한꺼번에 모조리 결혼시켜 버리겠다는 대공 의 결정은 왕을 비롯한 크리아의 모든 귀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이 얼마나 멋진 혈맹의 기회인가! 상대자의 나이 차이가 좀 있으면 어떠랴! 얼마나 많은 재산 과 권세와 명예를 지니고 있는 상대인가! 게다가 그 아버지인 베이르 대공처럼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서면 곧 다시 젊은 몸 을 되찾을 텐데! 이 얼마나 멋진 상대들인가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혼기를 놓친 여식들과 막 혼기에 들어선 여식들의 가슴에 분홍빛 꿈이 들어선 건 당연한 결과였다. 대 공의 후계자의 정식 안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두 눈 멀뚱 히 뜨고 놓치고 싶은 귀족은 없었으리라! 겨우 보름 남짓한 무도회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온 성도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공주로부터 시작해 수많은 귀족 가 영애들의 새로운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보석상들과 옷감상 들과 재단사들은 밤새워 일하기 시작했다. 그날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후작가에 빈대 붙어있던 귀 족가의 여식들은 썰물 빠지듯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 선두에 서 있던 여인이 하노베이가의 셀레라였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었다. "흥! 겨우 혼혈아 따위의 의붓어머니가 되기 위해 이런 고 리타분하고 하인들조차 말을 듣지 않는 저택에 눌러붙어 있을 수야 없지! 어디 두고 보자! 베이르가의 안주인이 되는 날 후 작을 포함해 버르장머리 없는 하인들의 목을 처 버리리라!"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며 황급히 마차에 몸을 실었던 셀 레라의 마지막 절규였다. ***** 네. 후작의 결혼이 아니라... 금아의 등장하지도 않은 아들들의 결혼이었습니다. ^^;;; 그럼! 내일 뵙죠!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22 Mon 21:07:32 IP : 211.215.57.229 아이젤스 아하하하하.... 대공의 아들들이 불쌍해지네염...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건필 하세요~ (07/22,21:18) rem 헤에... 생글생글^-^ (07/22,21:33) 잠탱이 오옷..란을 팔아먹다니..그러나 금아네집 란의 검기로 다 날라가는 것은 아닐까요? ^-^ (07/22,21:43) 미스티 하하하.. 란을 팔다니?? 헤헷.. 저 하노베이가의 셀레라 반 죽이시죠^^ 장난이고요 저 낼부터 일주일간 캠픈데 갔다와서 많이 올라와있는걸 보게되길 빌께요^^ 노력하실꺼죠??^^* (07/22,21:54) .......... 우우우우우... 일주일...ㅡㅡ;;;열심히 써야 겠네요.. 훗~ 잘 다녀오세요~ (07/22,22:04) eri ... 너무해~~ 금아가 불쌍하잖아요... 잔인하시기도하셔라... 금아 아들들도 그렇고... (07/22,22:20) an 오! 역시나 일편단심 후작이 재혼을 할리가...... 하지만 할지도... 음..... 갱생 계획이라.. -ㅠ- ㄲㄲㄲㄲㄲㄲ (07/22,23:04) 캬캬 불쌍한...대공아들들...세명이나노총각이었습니까...갱생계획ㅋㅋㅋ기대가됩니다요... (07/23,08:32) Elm 요사스럽게 이를 빛내는 노도정원사와 질투에 붗타는 금아공작이라... =ㅅ= 환상의 콤비! (07/23,11:30)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1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5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2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1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7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 2002/07/24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클레이브의 출발 날짜가 정해지고, 금아의 며느리 찾기 무 도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날 밤 우리는 모였다. "자아.. 시끄러운 방해물도 모조리 빠져나갔고... 모일 정보 도 다 모였으니 슬슬 시작을 해 볼까?" 철없던 귀족가의 여식들이 모두 후작의 저택을 떠난 지 열 흘이 넘었다. 온 나라는 술렁거렸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베 이르 대공가의 무도회에 쏠려 있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 긴다 해도, 경쟁자를 의식한 상대 귀족가문의 방해라 생각할 뿐 후작에게 불똥이 튈 일은 없겠지. 게다가... -저얼대! 절대 안됩니다! 그런 것들을 가문에 들였다가는 저의 아들들만이 아니라 나라를 말아먹습니다!-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재촉하는 금아의 시선을 무시할 수 도 없었다. 그녀들이 이 곳에서 있었던 것처럼 무도회장에서도 본색을 드러내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으니까. 갖은 아양과 체면치레로 똘똘 둘러쌓인 거짓은 어지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서는 한 순간에 들어나게 만들기 힘들다. 어찌 되었던간에 겉보기에는 반반하니 보기 좋게 생겼던 것들이니 만큼, 만에 하나, 천만의 하나라도 그런 싸가지 없는 본색을 가진 여식들 이 금아의 아들들의 눈에 들게 할 수는 없다. "우선, 자네 아들이라고 했지?" 이제 완전히 우리편이 된 듯 묵묵히 우릴 돕고 있는 전직 침입자는 긴장한 듯 끊임없이 목울대를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 먼저 그 아이부터 구하도록 하지. 노예 경매장은 하 르크와 내가 가도록 한다. 신호고 뭐고 필요 없이 반드시 구해 올테니까...." 자식을 구하는 자리에 직접 가지 못하게 한다는 데 불만이 라도 있는 지 그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슬쩍 쥐어 들어올린 내 주먹을 잠시 바라보고서는 눈을 내리깔았다. 이 대륙에 와서 확실하게 느끼고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주먹의 힘이 상상외 로 강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현실이다. 난 피식 흘러나오는 웃 음을 참으며 노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 덕이고는 다음 말을 잇기 위해 잠시 헛기침을 했다. "난 평소처럼 저택을 지키지. 좀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포 기하지 못한 녀석들이 끊임없이 담장을 넘고 있으니까...." "아쉬와 카즈가 도움이 될 겁니다." 걱정을 덜어 주려는 듯 금아가 말을 덧붙였다. 노도는 빙그 레 웃었다. 확실히 아쉬와 카즈가 후작가의 공식적인 기사로 보내진 후 우리가 움직이기가 쉬워졌다. 음으로 양으로 상호 연계적인 도움도 많이 받았고... "자네는 금아의 일을 좀 도와주게. 어린 주인이 먼 길을 떠 나는 참이라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 이름을 르카인이라 밝힌 침입자에게 노도는 늘 부드럽게 대했다. 클레이브의 출발이 정해진 이후 저택은 분주히 돌아갔 다. 일단 가면 몇 년을 머무르게 될지 몰랐기에 준비는 철저해 야 했다. 우리가 직접 하지 않더라도 다른 하인과 하녀들이 많 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위험할 지도 모르는 길이니만큼 중요한 건 직접 해야 했다. 적이 많은 이상 누가 어디서 매수 라도 당해 허튼 짓을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행히도 금아는 자식들의 결혼식 일로 자신의 일도 많았 을 텐데 그다지 군소리 없이 일을 맡아 주었다. "내가 직접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 노예상을 털어주기에는 자네의 그 괄괄한 성격 이 제격이야." "욕으로 들려 노도." "허허허... 무신에게 괄괄하다는 게 칭찬이지. 어찌 욕이 되 겠는가!" "서두르지 않으면 경매가 시작될 거유. 일찌감치 들어가 자 리 잡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도 없이 느긋하게 늘어지는 우리의 잡담을 끊으며 하르 크가 초조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힐끗 시선을 던졌다. 두둥실 찐빵처럼 부풀어오른 보름달이 탐스럽게 떠 있는 폼이 오늘의 우리를 축복이라도 하듯 기분 좋게 빛나고 있었다. **** 경매라고 해서 꼭 음침한 지하에서 열리는 건 아니다. 건국 초기의 쌩쌩한 기강 아래라면 모를까. 무르익을 데로 무르익어 늘어진 실제적인 관행 앞에서는 불법이니 합법이니 하는 서류 상의 꼬리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공가의 무도회라는 세기적인 이벤트를 앞에 두고 경매시 장도 활기차게 열렸다. 노예를 사유재산의 하나로밖에 생각하 지 않는 귀족들의 오만함 속에 팔려진 사람들은 마치 물건처 럼 옷감과 보석들, 애완용 동물들 사이에 섞여 매매당했다. "휘황 찬란하군." "...삼엄한 감시라고 해야 옳은 것 아니유?" 대부분의 고객들이 귀족들이었고 또 그들의 대부분이 자신 의 신분을 정확히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이었기에 검문은 삼엄하지 않았다. 다섯 번의 관문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 었다. 그런 절차들은 들어오는 사람들을 제한한다기 보다는 '이 정도로 삼엄하게 경비하고 신경 쓰고 있으니 마음놓고 경 매에만 집중해라.'하는 일종의 고객 서비스였다. 뭐, 혹시라도 딴 맘을 먹고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위협이 되겠지 만 말이다. 뭐, 내 눈에야 나름대로 폼 잡는 모습들이 귀엽고 재미있게만 보이지만 말이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대공 저하의 무도회를 기념해 열리 는 특별 경매입니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말끝을 살짝 흘리며 요사스럽게 눈을 흘겨 보이며 두 눈구 멍만을 내 놓은 채 얼굴을 꼼꼼히 가린 한 남자가 허리를 굽 히고 과장스럽게 문을 열었다. 왁짜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 웃음소리들에 섞여 은은한 음 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왕궁의 무도회 같은 분위기를 자아 내는 홀은 돔형의 천장에 둥그렇게 뚤린 창으로 흘러 들어오 는 노랗게 빛나는 보름달빛을 주 조명으로 삼고 주위 곳곳에 타오르는 화로를 보조 조명으로 삼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신전을 본따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웅장하게 지 어진 이 곳은 노예매매로 떼돈을 벌었다는 그 악덕 색골 노예 상의 개인 경매장이었다. "미친... 왕궁 무도회장도 이렇지는 않겠다." 귀족인 냥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중앙을 가로지르며 하르 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굳게 닫혀진 입술 사이에서 낮게 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보 조사해온 놈이 너 아니야? 네가 놀라면 어떻게 해." "여자가 화장하기 전과 후가 같소? 텅 빈 홀일 때와, 치덕 치덕 잔뜩 발라 놓은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오." 여기저기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온 몸을 감싼 귀족들을 힐 끔힐끔 훔쳐보며 하르크는 비뚤어진 입술을 연신 꿈틀였다. "쯪쯔. 저 얼굴... 눈 가생이만 가린다고 가려지나..." "왜? 아는 얼굴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두 주먹 가득 들어가 있던 긴장은 어 디다 흘려 보냈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는 듯한 그의 목소 리에 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미지를 풍기는 남자 하나가 뱃살을 흔들며 옆에 선 여인에게 농짓거리를 던 지고 있었다. "저택에 난입했던 싸가지 없는 것들 중 한 년의 아비되는 놈이요. 누굴 닮아서 그리도 싹수가 노랗나 했더니만... 실제 보니 더 하구먼." "하노베이?" 은근하게 피어오르는 내 살기를 느꼈는지 하르크가 살며시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니요. 그 놈은 아니고... 그 엇비슷한 놈이요." "흠..." "오늘 귀한 보석들도 많이 경매에 나온다고 하더니만... 그 걸 노리고 온 것 같소. 아무래도 쟁쟁한 가문들 사이에서 눈에 튀려면 보통 화려해서는 안될 듯 보이니까." 살짝 살짝 눈동자를 굴려 주위 귀족들을 살펴보던 하르크 가 작게 속삭였다. "노예는 늘 그렇듯이 맨 마지막에 거래되오. 그 때까지 절 대 들키면 안되오." 어느 새 말투까지 귀족스러워진 하르크는 짐짓 엄한 표정 을 지어 보였다. "자아! 신사 숙녀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곧 시 작될 터이니 모두 준비된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간들어진 목소리가 마나의 흐름을 타고 울려퍼졌다. 삼삼오 오 짝지어 이곳 저곳을 흘러다니며 홀을 구경하던 귀족들의 눈빛이 순간 빛을 발했다. 홀의 잡음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오늘 모인 자들의 기대감을 여지없이 들어내 보여주는 장면이 었다. '금아의 아들들... 미끼치고는 꽤 컸던 모양이군.'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긴장으로 가득찬 공기를 즐기듯 하르크가 빙긋 미소지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한 손에 꽤 두꺼운 종이 뭉치를 든 가느다란 눈매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첫 장 을 넘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모이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그 어떤 말을 덧붙이더라 도 여러분의 고고함에는 미칠 수 없겠지만...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많은 인사들과 감사의 표현들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매끄럽게 가다듬어진 음성이 마법의 힘을 타고 홀 안을 부 드럽게 감싸듯 흘러갔다. "모든 것은 물건으로서 표현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반드시 드실 것이라 믿으며... 시작하겠습니다." 교묘하게 고조시키는 사회자의 말을 따라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팔을 들어 광대처럼 인사한 사회자의 손짓을 따라 어느 새 달빛 한 가운데로 끌어내어진 상자 하나 의 보자기가 벗겨졌다. 사회자의 말과 행동에 시선이 끌린 사이 마법처럼 교묘하 게 나타난 첫 번째 경매품에 사람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자아! 첫 번째 물건입니다!" 노란 달빛을 받은 금장식의 목걸이가 환상처럼 빛을 발했 다. **** "강하오?" 뜬금 없이 던져진 질문에 금아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열 흘 정도 후면 그들을 태우고 먼길을 떠날 말의 갈기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금아는 말을 던진 르카인에게로 물끄럼 시선을 돌 렸다. "그 여자... 강하냐고 물었소."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미적미적 다시 한번 흘러 나왔다. 지 금까지 꾹꾹 참고 있던 모양이었다. 치켜든 주먹에서 흘러나온 살기와 투기에 순간적으로 눌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근본적으 로 란이 누구인가를 알지 못했다. 금아에게 생포되어 노도에게 실토당한 후, 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금아와 노도의 노력 덕분 에 르카인은 아직 란의 마수에 걸려본 적이 없었다. "당신 정도의 사람이 반대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여자에게 도 뭔가 한 수가 있다고 생각은 하오만..." 한숨을 푹 쉬며 르카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저어 보 였다. "여자는 여자일 뿐이요. 근본적으로 강해질 수 없어." 두 눈 가득 란이 가도록 찬성한 금아와 노도에 대한 원망 이 가득 담겨있었다. "적어도 당신이나 내가 가야 했소." 르카인은 한 자 한 자 씹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금 아의 침묵을 긍정이라 해석했는 지 그의 음성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르카인의 안색이 더욱 더 어둡게 변했다. "적어도... 죽는 자리만큼은 함께 해 주고 싶었건만..." "후......." 길다란 한숨이 금아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근육이라고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팔 다리, 실내에서 일하는 하 녀들이나 기를만한 길다란 검은 생머리,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듯한 밝은 피부에 동그란 눈을 지닌 절색은 아니어도 예쁘장 한 얼굴. 게다가 나이도 그다지 많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아 무런 선입견 없이 볼 때, 절대로 강해 보일만한 존재가 아닌 사람이 란이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르크조차 란이 전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아니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 가까운 사실이다. 단지 나이 무지하 게 많고 무식하게 강해 보이는 젊어 보이는 여자. 실력인지 말 빨인지 모를 힘으로 금아에게 스승 소리를 듣고있으며 마법인 지 뭔지 알 수 없는 힘으로 무지하게 빠른 솜씨와 완력을 지 니고 있는 여자가 란에 대한 하르크의 평이었다. 란이 뿜어내 는 검기를 몇 차례 눈으로 본 적도 있고, 그녀에게 개정대법을 통해 힘을 부여받았으면서도 그는 란이 마스터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뻔히 두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건 아주 간단한 고정관념이 빚어낸 틀이 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검술로 성공할 수 없어. 마스터는 극소수 의 선택받은 재능을 지닌 자들만이 될 수 있는 거야.- 선천적으로 발달한 근육을 타고 나는 남자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지간한 사람들'의 범주에 속했다. 하르크는 여성의 몸을 지니고 있는 란이 그가 생각하는 '재능을 지닌 자'에 들 어간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덕분 에, 그렇게 당하고서도 어느 날 란이 '나도 마스터야.'라며 기 분 나쁜 듯 눈썹을 구겼을 때 하르크는 간이라도 튀어나올 듯 놀라야 했었다. 같은 수의 퍼즐 조각을 가지고 있어도 누구는 그림을 맞춰 내고 누구는 하지 못한다. 그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 때문이다. 그리고... 짧은 기간이나마 함께 생활하면서 금아 의 눈에 비친 르카인은 전형적인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굳게 확신하는 얼굴로 르카인은 입 을 한 일자로 꾸욱 다물었다. 금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란은 강한 분입니다." "난 이해할 수 없소. 아무리 강한 마법사라 하더라도 그 나 이에 될 수 있는 경지에는 한계가 있소." "그 분은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믿을 수 없소. 게다가... 당신은... 왜 이런 하인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무인의 향기가 풍긴다고 생 각했는데." 실망 가득한 얼굴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이며 르카인은 비 죽히 비웃음을 베어물었다. "실망이요. 난 가야겠소." "르카인!" 금아가 짐진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르카인의 마음은 굳어 있었다. "반대해도 소용없소! 자식의 일이요! 실력을 믿을 수도 없 는 자에게 손놓고 맡겨 둘 수는 없소! 나도 경매장으로 가야겠 소!" 몸을 벌떡 일으키며 내 뱉은 르카인의 말이 끝날 무렵에는 그의 몸은 벌써 마굿간을 벗어나 담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금아는 어깨를 으쓱여보이며 가볍게 탄식했다. "뭐, 그렇게 하도록 하죠. 저도..." 악동 같은 미소 한 조각이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요즘 쌓이는 게 많았거든요." 그의 몸이 한줄기 바람처럼 재빠르게 르카인의 뒤를 따라 달려나갔다. '게다가 클레이브의 시중은 란님이 직접 하고 싶다고 하시 기도 했고 말이지.' 혀를 끌끌 차며 '아직 젊군'을 반복하는 노도의 희미한 뒷 그림자를 뒤로하고 말이다. ***** 사흘째... 집안 대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창고를 다 뒤집어 업고... 재활용 쓰레기만 한 열 박스 나가는군요. 제일 큰 가정용 쓰레기 봉투가 한 댓개... 버려지고... 힘드네요. 무엇보다도... 책꽃이를 새로 짜면서 했던 중노동이.. 나아가던 손가락을 작 살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벽 두개를 가득 채운 이중의 책꽃이를 볼 떄마다...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흐믓해 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아아... 두번 다시는 못합니다. ㅠㅠ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24 Wed 22:37:19 IP : 211.215.58.198 레니 흐흑 님의 그 중노동 저도 알아염 요즙 집을 새단장해서 별별 쓰래기랑 안보는 책들을 정리하는데 아직도 책장 하나를 다 정리 못하고있어서 에혀( ``);;;; 1주일째 거의 폐인이다 싶은 이 심정 크흑 T^T (07/24,23:23) hobit 넘 무리하셨군요.. 그러나 대 청소후의 말끔함은.. 아아 저도 오랜 시간 느끼지 못했습죠.. 이번 토욜엔 대청솔 해야겠슴다. (07/25,05:46) dakad 대청소..........저도 해봤지요-_- 며칠전까지만 해도 이사했기에 청소뿐만 아니라;; 새 가구 조립에;-_-;... (07/25,06:23) 캬캬 대청소라...하긴해야할것같은데...귀찮아~~음~~누가대신해주는사람없을까... (07/25,09:10) darkwindk 으으..르카인에게 여자의 강함을 보여줘라, 란!! (07/25,14:59)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49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2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5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2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1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7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setup]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 2002/07/26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난 폭력이 싫다. 뭐가 좀 안된다고해서 벌컥 발작하며 힘부 터 휘두르는 사람은 더더욱 딱 질색이다. 그 힘이 말로 주어지 는 것이건 주먹으로 표현되는 것이건 말이다. "흥! 벼락 출세한 졸부 주제에!" 바로 내 옆에 앉은 중년의 귀족 부인처럼! 그녀는 지금 화 풀이 중이었다. 그녀의 바로 옆쪽에 앉아 그녀가 노렸던 목걸 이와 귀걸이 한 쌍을 낙찰받은 남자의 귓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런 보석 따위가 어울릴 신분이라고 착각이라도 하는 건 가? 겉모습 좀 꾸민다고 대공가의 무도회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고 꿈이라도 꾸는가 보군." 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자 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데 힘이라도 얻었는지 여인 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어차피 신분이 안되는데, 뭣하러 저리 발악을 하는 지 모 르겠어. 요즘 세상에 돈 때문에 신분을 파는 바보 귀족들도 없 는데 말이야." "대공께서 돈 때문에 며느리를 들일만큼 궁하시지도 않을 텐데. 훗." 겉으로 봐서는 누가 졸부인지 구별도 안갈 정도로 악취미 적으로 꾸미고 나와서는 연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꼴이라니... 적당한 소동이나 일으키고 악덕 상인이나 골탕 먹인 후 가급 적이면 어린애만 구해서 슬적 빠져나가려 했던 초기의 결심이 와르르 무너진다. 요즘 들어서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하나같이 화가 나는 일들뿐이다. 어린 주인이 볼모처럼 유학을 떠나야 하는 것도, 가뜩이나 바쁜 나날에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해 서 벌어지는 것도, 질질 끄는 것 모냥 흘러가지 않는 일들도... 짜증을 북돋는다. 옆에서 주절거리던 귀족 한 쌍도 듣는 쪽에서 아무런 반발 도 하지 않자 곧 수그러들었다. 경매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 었고 속임수라도 쓰는 냥 유달리도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으며 고가에 낙찰됐다. "눈들이 삐었는지..." 하르크가 옆에서 살짝 고개를 흔든다. 사실 좋은 물건들이 기는 했지만 귀족들이 열광하는 것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들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조금.... 미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모든 것이 이 달빛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홀리게 만드는 달빛. 다른 곳에서라면 반값에 살만한 보석들을 손에 넣고 희희낙락 하는 모습들이라니... 하긴, 요즘 나라 전체에 보석이 없어서 못판다고 할 정도니 저들이 근 두배의 값을 치르고서도 기뻐 할만 하겠지. 왕족들이 대부분 정략적으로 외국으로 팔려나갔 기 때문일까. 얼마 남지 않은 대귀족인 금아 아들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천장 한 가운데로 모습을 보이던 달이 서서히 넘어가기 시 작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는 반증이다. 경매는 서서히 종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대부분의 물건은 보석류와 옷감 류, 희귀한 장식품류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림과 조각도 몇점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소유주의 입찰 희망가에 못미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여기저기서 보석을 손에 넣고 기뻐하는 사 람들의 웃음소리와 지나치게 높은 낙찰가에 원했던 것을 손에 넣지 못하고 한숨짓는 사람들의 탄식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사회자의 과장된 몸짓과 함께 '오늘의 마지막'이라는 이름을 단 보석들과 그림들이 하 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나올 꺼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긴장해가는 듯 굳어진 하르크의 목소 리가 조그맣게 떨렸다. 경매가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이 흩어질 때 즈음 하르크의 부하들이 곳곳에 불을 지르기로 되어 있다. 마른 겨울의 나무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풀어진 귀족 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밀어 넣기에는 그게 제일이다. 악덕 노예상이 제 아무리 유능한 부하들을 데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왕좌왕하는 귀족들을 통솔해 대피시키는 일은 무 리다. 그들은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을만한 자들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제 각자 자신의 것이 된 물건들까지 마음에 있으 니.. 더더욱 소란을 피워 대겠지. 천방지축 날뛸 저들은 우리에 게 있어서는 든든한 아군이다. "자아! 그럼 오늘의 마지막 이벤트입니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이 몰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들 은 여기저기 날뛰는 귀족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금까지 남의 일 구경하듯 무심한 얼굴로 부채질을 해 대던 몇몇 안되던 자들의 눈까지 번쩍 빛을 발했다. 사람들의 눈이 모이는데 희열이라도 느끼는 모냥 사회자는 커다란 손짓으로 익살스럽게 인사를 반복했다. "오늘의 마지막의 마지막이죠. 아니 언제 이와 같은 물건을 다시 팔아 볼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의 물건인가?" "정확히 말해서는 물건들이죠." "물건들?" 작은 소근거림이 퍼져나갔다. 분명 그의 어린 아들은 오늘 경매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마지막 물건들이라니! 옆을 힐끗 보니 하르크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귀족들을 상대 로 초대해 벌리는 경매이니 만큼 멋대로 물건을 교체하지는 않을텐데! "오늘 마지막 물건은 저희 상회에서 정말로 자신하고 여러 분들게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각각 낱으로 구입하실 수도 있 고 한번에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낱의 구입가가 더 크 게 불린다면, 크게 부르신 분께로 낙찰시키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쌍 이라면... 하나로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그들은 큰돈을 써야 할 지도 모른다. "자! 그럼 물건을 공개하겠습니다!" 붉은 비단감의 가리개가 화려하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침묵! 요사스러운 달빛을 오히려 비웃 기라도 하듯 빛을 발하며 '물건'은 모습을 들어냈다. ".................................야. 돌아가자." 피식 쉰 웃음이 흘러나왔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귀족들의 헤 벌어진 입가에서 진득한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저기 계시는군." 못이라도 박힌 듯 시선을 눈앞의 단상에서 떼지 못하는 르 카인의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며 금아는 앞쪽에서 입을 벌린 채 정신없이 단상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 다. 얼뗘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들이란! 피식 비웃음이 흘러 나 올만도 하련만 금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란의 동의도 없이 르카인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대한 부담감 덕분이리라. '뭐... 설마 이렇게 사람들의 눈이 많은데서 날 죽이기라도 하시겠어?' 아무리 변장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골격까지 모조리 변 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평소와는 달리 화려한 귀족의 복장까 지 갖추고 있으니... 눈썰미 좋은 사람이 조금만 주의 깊게 살 펴본다면 그의 정체를 알아볼 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에게 관심을 돌릴만큼 충격에서 멀어진 사람은 없어 보였지 만 말이다. 금아가 보내는 손짓의 의미를 알았는지 르카인은 꽤 굳어 진 얼굴로 순순히 금아의 뒤를 따랐다. 하르크와 란은 막 일어 서서 회장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슬쩍 떠보듯 눈짓을 보내는 금아의 시선에 르카인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 믿기지 않는군." 복잡한 심정을 달래는 금아의 머리카락이 살며시 휘날렸다. ****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굉음처럼 들리리만치 가라앉았던 공간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탄성 소리와 박수소리로 들떠올랐 다. 최고라는 둥, 역시 마지막 상품답다는 둥, 비명처럼 질러대 는 귀족들의 감탄사들이 귀가 멍멍할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하르크. 다음부터 정보를 알아올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알아오라구. 공연히 헛수고하게 만들지 말고." "하, 하지만... 분명히... 오늘 나온다고 했었는데..." "시끄러! 그럼 네 눈에는 저기 앉아있는 저게 그 놈의 아들 로 보이나?" "그, 그건 아니지만..." 얼빠진 대답. 난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가자."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어리벙벙한 하르크의 반 쯤 풀린 눈빛이 흔들렸다. "돌아가자구! 그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아저씨의 아들이 저 렇게 생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헛다리 집지 말고 가서 다시 확인해 돌아오잔 말이다. 공연히 뒤집었다가 구해야 할 아이만 죽이면 어떻게 해." 난 몸을 일으켰다.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사람들이 조금이 라도 '상품'을 가까이 보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있던 터라 눈 에 띄지도 않을 터. 공연한 시간낭비 하는 바에는 돌아가는 편 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뒤편에서 다가왔다. "............제 아들이 맞습니다만...." 순간적으로 끌어 올려진 긴장을 낯익은 목소리가 잡아내렸 다. 아들을 인질로 빼앗겼던 그 암살자의 음성이었다. 그런데... 지금 뭐라고? "..........뭐?" 지금 내 귀에 들린 말의 뜻이... 뭐라는 거지? "..........맞는다는군요." "금아? 미적이는 태도로 뻘쭘히 다가와 피식 웃은 금아의 눈동자 는 조금 불안한 듯 흔들렸다. 불신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시선 이 부담스러웠는지 르카인의 얼굴에 미약한 홍조가 떠올랐다. "아들은.... 아내를 닮았소." "아들?" 마법과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단상 위에는 어렴풋한 달빛을 받으며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아니, 소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가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아름답다는 말이 오히려 무색할 정도의 외모를 지닌 소년은 텅 빈 눈빛을 허공에 고정시킨 채 이 공간에 있지 않은 냥 '존재하고' 있었 다. 지금 내 귓가에 누군가가 '사실 저 아이는 소년이 아니라 요정이 흘리고 간 분실물이야.'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으리라. 금아와 하르크를 포함한 우리의 시선이 다시 한번 의심스 럽게 르카인의 얼굴을 훑었다. 선이 굵고 제법 남자답다는 느 낌이 드는 얼굴. 잘 생긴 편에는 속하지만... 성별이 모호해질 만큼의 미색은 '절대로' 아니다. "정말... 이야?" "아무리... 모친만을 닮았다고 하더라도.... 이건..."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할 말은 없다. 난 다시 경매를 관찰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잠시 눈을 돌린 새 내가 앉아있던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차지했다.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값은 계속 올라가고만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르카인의 눈은 소년에 게로 다시 들러붙었다. 악문 입술과 복잡하게 흔들리는 눈빛 이... 감히 그의 심경을 추측하게 만들었다. "뭐, 걱정되겠지." 우리 입장에서야 믿기 힘든 현실이겠지만, 그의 입장에서도 그럴 게다. 어렵게 지켜왔던 가정이 한 순간에 풍비박살이 난 것도 부족해 아내는 명을 달리하고 아들은... 이렇게 끌려와 물 건처럼 경매대에 올라가 있으니 말이다. 꽉 움켜쥔 그의 주먹 에서 미세하게... 무언가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손톱 이 파고든 상처에서 핏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하지만 그는 전직 암살자답게 이성을 잃지 않았다. 날카롭고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사회자를 강하게 노려볼 뿐... "우와아아아아아아!" 처음의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감탄사가 울려 퍼졌다. 자연 히 우리의 시선도 단상으로 향했다. 모두들 미쳐버린 것만 같 았다. 잔인했다. 피 한방울 튀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벼려진 이기심의 날이 이곳 저곳을 쑤시며 비틀어대고 있었다. "자아! 소년의 값입니다! 백만 세르크 나왔습니다!" 흥분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실망한 사람들의 한탄과 아직도 더 낼 의사가 있는 사람들의 아귀다 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소년의 목에 걸린 세르네이의 목걸이 팔십만 세르크! 소년 백 이십만 세르크! 더 부르실 분 있으십니까?" 뒤편에 서 있는 악덕상인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져 있었다. 번쩍 처들고 숫자를 표시한 사람들의 손가락이 또다시 공간을 매워갔다. "미친..." 백 이십만 세르크. 인구 천명 정도의 농노를 거느린 어엿한 중간 크기의 영지의 일년 예산에 맞먹는 값이다. 그걸.... 내겠 다고? "너무 비싸지 않소!" 누군가의 항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사람들이 소리와 가진 자들의 코웃음 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 다. 모두의 시선이 말을 꺼낸 자의 얼굴로 솔려갔다. 그는 벌 겋게 물들인 얼굴로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겨, 겨우 노예 하나의 값이 백만 세르크가 넘다니! 경매에 서 가격이 올라가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최초 가 격이 오십만 세르크에 한번 올릴 때마다 십만 세르크씩 올리 게 되어 있는 건 너무한 처사 아니요!" "맞소! 세르네이의 목걸이도 오만 세르크씩 부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소년의 값이 십만이라니!" 소년을 손에 넣고 싶은 마음에 거금을 부르고는 있지만 과 중한 기본 단위가 부담스러웠던 다른 귀족들의 동조가 일어났 다. 노예상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훗!" 르카인의 굵은 눈썹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폴폴 흘러나오던 살기도 배는 더 강해졌다. 조금 전부터 느껴지고 있던 위화감 이 정체를 들어내고 있었다. "이 아이가 보통의 노예로 보이십니까?" 광대처럼 몸을 움직이며 노예상인이 마치 조각상이라도 된 냥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소년에게로 다가섰다. 자신을 노 예로 사기 위해 몸값을 부르는 사람들의 광란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만은 다른 세계에 있는 냥 반응조차 하 고 있지 않은 소년. "뭔가... 제압당한건가?" 살아있는 사람같지 않은 소년의 반응에 사람들은 더 미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잘 보십시오! 이 보석 결정과 같은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 을! 이 정도의 힌트를 드렸다면 이미 눈치채신 분도 있으시리 라 생각합니다만...." 비릿하고 잔인한 미소... 노예상이는 소년의 턱을 잡아 올렸 다. 보석처럼 투명한 푸른빛을 내는 소년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으며 노랗게 빛났다. "빌어먹을!" "르카인!" 상처입은 짐승의 포효같은 외마디 외침과 함께 르카인의 몸이 튕기듯 일으켜졌다.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파뭍힌 르카인 의 절규는 아들의 귀에 닿은 듯 했다. 소년의 얼굴에 처음으로 '인간다운' 감정이 일어났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빛이 미동조 차 하지 않고 빛을 반사시켰다. 살아있는 눈이라면... 고개가 돌려지는 쪽으로 조금이나마 움직였을 텐데! "월루석(月淚石)?" "의안(義眼)..... 인가?" 재빨리 잡은 덕분에 그가 단상으로 난입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몇몇 경비원들의 관심이 우리쪽으로 몰렸다. "비, 비, 빌어... 먹을...." 굵은 눈물방울이 르카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압도당한 듯한 좌중의 반응에 만족한 노예상인의 얼굴에... 뿌듯한 자신 감이 들어났다. "달의 눈물...이라는 말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결정이 큰데 다가 조각을 내면 볼품이 없어 귀금속으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지만... 빛을 발하면 오묘하게 변하는 성질 덕분에... 여러 가지 다른 면에서는 크게 사랑 받는 보석이죠." 노예상인의 손이 소년의 볼을 쓰다듬었다. 소년의 얼굴에 공포의 흔적이 들어났다. 사람들의 환호가 다시금 시작됐다. "정확히 크기와 색이 같은 한 쌍의 월루석은 구하기 힘듭니 다. 그 것도 사람의 눈을 대신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건 드물 죠!" 르카인의 몸이 발작적으로 튀어 올랐다. 금아의 손이 내 어 깨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최소한 저자의 손이... 아이에게서 떨어졌을 때 나서야 합 니다." 금아가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건 여러 가지로 재미있죠. 쓸 데없는 비밀을 누설시키지 않아도 좋을 뿐만 아니라... 달아날 위험도 적고 말입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그런 자들의 반응이 만족스러 웠던 지 노예상인은 소년에게서 한 걸음 멀어져 처음 자신이 서 있던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외의 장점들은 여러분께서 직접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흠이 있는 상품을 내놓지 않는다는 건 제 신용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난 금아의 손이 내 어깨에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꽉 틀 어쥐고 있던 르카인의 옷자락을 놓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나왔다. 미치광이 의 파티에 어울리는 붉은 액체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내가 잠시 멍하고 서 있는 사이... 금아가 르카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뭐하슈? 그냥 보고만 있을 거유?" 하르크의 목소리가 날 광기로 잡아끈다. "지난 삼백년간... 많이 실망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지가지 별다르게 생긴 무기들을 뽑아들고 용병들과 경비 원들이 달려나왔다. 몇몇은 노예상인과 그 일당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빙 둘러쌌고, 몇몇은 한 패로 보이는 나와 하르크 를 향해 달려왔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들에 낯익은 몇몇 사람의 모습이 섞여 들어갔다. "아직도 신선한 실망감이 남아 있었군."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까지 생각한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 었다. 아비규환을 연상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비명을 타고 창문 밖으로 불이 치솟아 올랐다. 하르크의 부하들이 움직이기 시작 했나보다. 그럼... 나도 움직여야겠지. "그래...." 검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스터다아아아아아아아!" 일순간 사람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힐끔 보니 '나 잘했수?'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르크가 옆에서 싱긋 웃고 있었다. 차갑 고 냉랭한 눈빛으로... "그래." 한 줄기 일어난 날카로운 검광이 달빛을 갈랐다. 미치광이 같은 노란 빛줄기가 무너지는 돌무더기에 가려 흐릿하게 변해 갔다. **** "재수 옴붙었군..." 낮게 으르렁거리며 남자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잘못 허둥대다가 엉뚱한 불꽃에 맞고 싶지는 않았다. 새 목걸이가 갖고 싶다는 딸의 투정을 들어줬던 게 화근이었다. 경매가 최고조에 달아오를 무렵 그도 가격을 부르고 있었 다. 저 소년이 이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날 그렇게 헐값에 팔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든다. 십 오 만 세르크의 소년이 백 이십만까지 뛰다니. 보석의 원값 이십 여만 세르크를 합해도... 사십만 세르크도 안된다. 저 노예상인 의 물건 값 올리는 수법은 보면 볼수록 새롭다. 소년은 포기하고서라도 조금만 더 부른다면 소년의 목에 걸려져 나왔던 화려한 목걸이는 그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을 텐데... 더 이상 가격이 올라가기 힘들어 질 때 즈음 물건들에 게 막 주인이 정해지기 직전 난입한 한 사람의 모습에 그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르카인?' 분명 죽었어야 하는 자다. 아니면 적어도 미쳐 자신이 누구 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어야 하는 자다. 그런 자가 멀쩡히 살 아남아 지금 검을 뽑고 단상으로 몸을 날려 올랐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고 주위를 살폈다. 르카인의 뒤 를 따라 한 사람의 남자가 몸을 날렸다. 폼을 보니 한 편인 듯. 게다가 뒤편이 소란스러워 지는 모양새를 보니... 또 다른 한편이 들어와 있는 듯 했다. '잘못 걸렸다.' 경매의 특징상 많은 수하를 데리고 들어오지 못한다. 노예 상인은 조심스러운 자였으니까. 물론 그런 자이니만큼 이 소동 도 능숙하게 제압하겠지만... 그 때까지의 짧은 시간에 자신이 희생되고 싶지는 않았다. "백작님." 누군가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몸을 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가 고용해 온 경호원이었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 불맞은 맷돼지처럼 사람들이 날뛰는 복도와 홀이 위험했지만 그와 함께라면 잘 나갈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 였다. "마스터다아아아아아아!" 누군가의 우렁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의 시선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떠돌았다. 그리고 보았다. 한 뼘이 넘 는 새파란 빛으로 검을 단단히 둘러싼 채 석상처럼 서 있는 한 사람을... '그녀'의 고개가 서서히 움직였다. 새까만 눈동자 가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과광!- 뭔가 번쩍 하는 것 같은 느낌과 거의 동시에 몸을 뒤흔드 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머리 위에서 돌가루들이 떨 어져 내렸다. "하노베이 백작님!" 떨어지는 돌들을 피해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경호원이 외 쳤다. "하노베이?" 낯선 목소리가 바로 이어지듯 떨려나왔다. 새까만... 칠흙같 은 눈동자가 백작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냐! 무례한....!" 당장 풀릴 것 같은 다리에 힘을 주며 목청을 높여봤지만 소용없었다. 베실 베어 문 미소가 잔인해 보인다고 채 생각을 끝내기도 전 그의 목은 어깨와 영원한 이별을 맞아야 했으니 까. "백작니이이이임!"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 그의 영혼은 육신을 빠져나갔다. "쯪.... 딸 잘못 기른 죄라고 생각해라...." 걸걸한 목소리 하나가 그의 뒤를 지켰다. **** "크레이!" "아.........버지?"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 대신 소년의 고개가 움직였다. "크레이! 크레이! 크레이!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 눈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몇몇을 돌아보지도 않고 베어버 리고 달려온 르카인은 아들을 잡고 오열했다. "죽어랏!" 검조차 바닥에 흘리고 눈물만을 쏟고 있는 그의 등을 향해 노예상인의 사람들이 검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푸확!- 피가 터져 나오는 섬득한 소리가 사람들을 자극했다. "르카인. 빠져나가자. 아이에게 좋은 장소는 아니야." 분노로 굳어진 금아의 목소리에 르카인의 어깨가 움찔 떨 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거칠게 눈물을 닦아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는 눈으로 얼굴로, 그를 더듬고 있는 아들을 꼭 잡아 준비해 온 끈으로 등에 묶었다. 홀 뒤편에서 '마스터다!'하는 비명소리와 무언가가 부서지는 굉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난잡하게 섞여 울려퍼졌다. 그는 바닥에 버렸던 검을 다시 단단히 쥐어 들었다. "...마, 마스터라니! 마스터라니! 어, 어떻게?" 벌떼같이 몰려들어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입술에서 두 려움에 떨리는 단어들이 더듬더듬 떨어져 나왔다. "마스터?" 르카인의 눈빛 역시 변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마스터의 힘을 지닌 사람은 단 하나 뿐이었으니까. 지금 그들의 앞을 막 고 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 '그'가 떠올라 있으리라. "대공.... 저하?" 검은 무정하게 대기를 갈랐다. ***** 아무개... 어딘가 정감이 가지 않습니까? 점점 마음에 드는... 쿨럭! 자아~ 자아~ 다음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ㅠㅠ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아무개. 최종수정일 : 2002/07/26 Fri 17:45:17 IP : 211.215.57.152 hobit 쯧.. 분명 [란]이건만.. 거기서 금아가 왜 튀어나오나... (흑흑... 아무개라니요...ㅜ_ㅡ) (07/26,18:04) 캬캬 아무개...ㅡㅡ;;...점점마음에드신다니요...삐질삐질... (07/26,18:48) 현아 음하하하,,,,,담편보고파~! (07/27,01:22) 눈자라기 세상에 너무너무 잼있어요~ (07/27,20:04) an 아무개라... 전 오래된것에 정감을 갖는 스타일이라... 아무개도 계속 작가님께서 밀구 나가신다면 아마도 10회 후쯤에는 정감이 가서 아무개로 작가님을 기억하게 될것 같습니다....^^ (07/27,21:07)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40-출발 ▽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0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50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2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5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2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1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7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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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up] [[The Perfect MAID]]-40-출발 은빛 2002/07/30 [[The Perfect MAID]]-40-출발 북쪽의 차가운 사막에서 시작된 바람이 크리아 북부의 흙 들을 부지런히 운반하고 있다. 성큼 다가온 봄날의 흙먼지는 숨쉬기조차 귀찮게 만든다. 작은 먼지 같은 흙 알갱이들이 코 를 타고 들어와 목을 깔깔하게 한다. 목이 타는 것도 문제지 만... 귀찮다. 이곳의 봄은 유난히도 매말랐다. 통통하게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들을 보면 아주 말라비틀어진 건 아닐텐 데... 꼭 야반도주라도 하는 꼴이다. 채 준비를 끝내기도 전에 등 떠밀리 듯 프란으로 가는 모습이라니... 이 짜증나는 흙먼지보 다 더 지독하게 피어오른 소문들을 뒤로하고 우린 부지런히 프란으로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커다란 사람용 마차 하나와 두 마리 의 말이 끄는 작은 짐마차 하나, 열 필이 말은 멈추지도 않고 잘도 움직였다. 후작이 붙여준 십여 명의 호위 기사들은 말을 탔고, 나는 클레이브와 스테판과 아직 채 회복되지 않은 크레 이를 보살피며 마차에 함께 탔다. 금아는 사람용 마차의 고삐 를 잡았고, 르카인은 짐마차의 고삐를 잡았다. 그림자 역을 맡 은 하르크는... 나와 클레이브가 탄 마차 밑창에 들러붙어 있 다. 불쌍한 놈. 예정보다 혹이 둘이나 늘었다. 바락바락 우릴 따라가겠다는 르카인을 우린 떼 놓지 못했다. 우리 옆이 제일 안전하다는데 어쩔까. 우리도 그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하 노베이 백작인가 뭔가 하는 그 썩을 놈의 농간에서 비롯되기 는 했지만... 르카인과 크레이는 완전히 고래 싸움에 등터진 새 우 꼴이었다. 그 북새통에서 크레이는... 낳아준 어미를 잃었다. 그리고... 두 눈을 잃었다. 가슴이 무거워진다. 차라리... 크레이가 보통 아이들처럼 몸부림치고 울부짖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름다운 보석을 빛내며 닿지 않는 시선을 허공에 흩뿌리 고 있는 크레이는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그 때문일 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강한 편인 클레이브와 스 테판이 크레이에게 유달리도 빨리 친해진 것은. 뭐, 조금 엇박 자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 잃어버린 눈동자를 다시 되살릴 수는 없는 것. 좋은 점을 생각해야지." 라며 대뜸 보석으로 된 눈이 새하얀 외모에 어울린다고 칭 찬해 버린 클레이브나... 싱긋 웃으며 '그렇죠?'라며 긍정해 버 린 애늙은이 크레이나... 미묘한 둘의 대화를 들으며 바짝 긴장 한 스테판이나... 한 놈은 아직 열살 미만, 다른 한 놈은 겨우 열살, 제일 많다는 놈이 열 한 살 밖에 안됐다는 점을 상상할 때... 징그럽다. 가끔 크레이는 아직도 자신의 눈이 바뀐 것이 믿어지지 않 는 표정으로 얼굴을 매만진다. 생으로 눈알을 빼내고 보석을 박은 덕에 아직 얼굴 감각도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으로 뒤처리나 잘 해놓았기에 망정이지 잘못했 다가는 그대로... 죽을 뻔했다. "어차피... 거의 보이지 않던 눈인데요..." 비록 선천적으로 약하게 타고난 시력 때문에 사물은 식별 하지 못했더라도 빛 정도는 구별할 수 있던 소중한 눈이었다. 그게 있고 없고는... 그리 간단히 표현될만큼 작은 차이가 아닐 텐데... 아직도 어려 보이는 크레이는 르카인을 걱정해서인지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단지... 다시는 못 만날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난 기쁨만이 있었을 뿐... 아버지와 섞여 함 께 여행할 수 있다는 설레임만을 보일 뿐이었다. "쳇! 어째서 내 주위에는 어른보다도 더 조숙한 놈들만 있 는 건지... 어린애답게 울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편이... 차라 리 더 좋을 텐데." 마차 바닥에 눌러붙은 하르크의 작은 툴툴거림이 머릿속으 로 전해졌다. 제법 전음을 보내는 솜씨가 늘었다. 나도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감정을 억누른 아이만큼 슬퍼 보이는 동물은 없다. 어쩌다가 셋이나 만난 아이가 하나같이 이 모양일까! 하 긴. 아이와 어미의 여신이라는 아르페이나가 그 꼴인데... 제대 로 지켜지고 있을 리가 없다. "다른 일행들은 언제 합류하지?" 부드러운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클레이브가 문득 시선 을 돌렸다. "내일이나 모레, 국경 관문에서 만날 예정입니다." 먼길을 가는 만큼 모여 함께 가기로 했다. 위험하지 않은 길은 없었고, 일행을 안전하게 지킬만한 여력이 있는 가문은 후작가 정도였다. 나머지는... 뭐... 다들 자식을 지킬 힘이 없어 등떠밀려지거나... 가문에서 제거하고 싶지만 차마 직접 베기는 남들 눈이 무서운 그런 자식들이다. 그런 일행이련만... 클레이브는 그 조차도 신선한 모양이다. 아직 짧아 바닥에 완전히 닿지 않는 다리가 동동 리듬 있게 흔들린다. 눈물을 보이고 만 후작에게 의연히 인사를 건넨 배 경에는 이런 기대감이 많이 숨어있던 것 같다. '후...........' 두런두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말을 모는 경호원들 이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린다. 귀에 익은 내용들이 조금씩 마 차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아직도 그 사건을 잊지 못한 사람들 이 많다. 아니... 지금이 한참 달아올라 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하긴... 채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 하노베이 백작이란 자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순간 이성 을 잃었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자 배후인 그 자를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을 줄이야! 셀레라와 판박이 같은 이목구비 에서 그 표독스러운 말썽꾸러기가 내뱉던 사나운 말들이 떠오 르는 순간 그의 오만한 눈동자가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 의 거만한 입술이 뭐라뭐라 움직였다. 그와 거의 동시였을 것이다. 르카인의 울부짖는 소리가 커 다랗게 들려온 순간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슬픔. 그 이상의 고통. 절규... 아아... 이 비극의 원흉이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 어린 소년을 잡아 노예상인에게 넘긴 자 가!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살의에 젖어있던 검은 움직였 다. 채 놀란 표정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목이 공중으로 튕겨져 올랐다. 심장 한 구석이 쩌르르 울렸다. 분수처럼 솟구친 피에 흥분한 사람들이 날뛰었다. 덩달아 흥분한 경비원들과 경호원들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앞쪽에서는 금아의 검이 시퍼런 강기를 줄기줄기 내뿜었다. 하르크의 검도 쉬지 않고 춤을 췄다. 짓이겨진 꽃잎같은 핏방 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절규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문득... 말이다. 두려웠다. 나까지도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이 날 사로잡았다. "이 천하에 썩을 나쁜 놈들!" 연신 검을 부딪히며 내지르는 하르크의 악에 받친 고함소 리!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어느새 떨어져 내리던 돌무더기가 줄었다. 돔형의 천 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등에 아들을 묶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르카인의 모습 이 눈에 들어왔다. 보석으로 박힌 커다란 눈동자가 날 담고 있 었다. 가슴속에 자그맣게 자라기 시작하던 자비가 사라졌다. 분노와 살의가 다시 박차고 일어섰다. 맑은 빛을 길다랗게 내 뿜으며 검은 사방을 갈라대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광!- 귀가 멍멍한 굉음과 놀라고 두려움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 이 잘 짜집어진 한 편의 촌극처럼 되풀이해서 열렸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해라." 내 입술을 비집고 나간 씁쓸한 변명 같은 한 마디가 날 더 괴롭혔다. **** 광기의 밤이 지나고 찾아온 낮의 도시는 후끈 달아올랐다. 하룻밤 사이 도시 한 끄트머리에 웅장히 자태를 자랑하고 있 던 건물 한 채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린 것은 둘째치고 수 많은 귀족들이 그 아래 깔려 죽고 다쳤다. 밤새 경매장으로 떠 났던 가문의 주인들이 돌아오지 않자 각 귀족 가문들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고 복잡하게 만든 건 무너진 건물과 죽은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이야... 누구든 대신 할 수 있는 그런 자들이었으니까. 남겨진 자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뭐... 몇몇 예외는 있겠지만. "마스터였데! 마스터! 검기를 뿌려 천장을 갈라 그 큰 건물 을 한번에 무너트렸다는 구먼!" "그 악덕 노예상인을 둘러싼 경호원들을 새파란 강기로 한 번에 베어버린 후에... 그 나쁜 놈을 말이지! 두 토막을 냈데!" "도대체 어디서 마스터가 둘이나 나타난 거야?" "게다가 그 중 한명은 여자였다며? 세상에나! 여성 마스터 급의 검사라니! 검후 류이네리아 이후 최초가 아닌가!" "말도 마시게! 그 뿐만이 아니라네! 이건, 그 아수라장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직접 한 말인데 말이지... 마스터들은 혼자 온 게 아니라고 하네! 그게 말이야! 쟁쟁한 어둠의 부대를 두 부 대나 이끌고 왔다는 거야!" "어둠의 부대라니?" "어허! 이 사람하고는! 거 있잖나! 거 암살이나 뭐 그런 일 을 시키기 위해 만든 그거 말일세!" "허허! 이거 문제가 커지겠는걸?" "글세 말이야! 그런 정도의 힘이라면... 개인이나, 노예상인 에게 원한이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꼭... 국가라도 개입한 것 같지 않나?" "이 사람! 말조심하게! 잘못 하다가는 우리만 피해보게 되! 하지만... 이번 사건의 뒤에는 새로 제국으로 부상한 프란이 버 티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들 하는군... 하긴, 그 나라가 아니라 면 어떤 나라가 알려지지도 않은 마스터급의 검사를 둘씩이나 가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허허, 참... 하지만... 재미는 있게 됐군. 그 쟁쟁한 귀족 가 문들이 꼼짝없이 꼬리를 말아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갖가지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사방에 퍼져나갔 다. 거기에다가... -베이르 대공가의 무도회 취소발표!- 마스터가 둘이나 나타났다는 소문에 자극 받은 금아의 아 들들이 정면으로 금아를 거역하고 나섰다. 소문의 주인공이 금 아와 나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발이 성성해진 지금의 모습으로 딸 또래의 아내를 맞느니 당당하게 마스터의 반열에 올라 결혼하겠다는 그들의 반항을 우린... 막지 못했다. "하하하!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합니다!" 뭐, 금아로서는... 어차피 초기에 목적했던 바도 모두 이룬 후였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반항이기도 했다. 귀족들은 우왕좌왕 당황했다. 그들의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 던 모든 기대들은 산산이 무너졌다. "허허... 아주 거창하게 벌이셨군요. 의심의 화살은 절 피해 갔지만... 골치 아픈 일들이 연달아 벌어질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마스터라는 데서 모든 것을 추측한 듯 후작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뭐, 란님과 노도님 덕분에... 귀찮던 귀족들도 다 떠나고... 안심하고 클레이브를 보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말이죠." 가장을 잃은 하노베이가는 힘의 구심점을 잃고 내분에 휩 쓸려갔다. 방대한 영지와 돈은 백작의 기세에 눌려있던 자들의 머리를 곳추세우게 만들었다. 귀족들은 패를 이루지 못하고 우 왕좌왕 흩어졌다. 그 틈을 노려 후작은 발빠르게 나가기 시작 했다. 처음과는 다른 의미로 귀족들은 후작가로 몰려들기 시작했 다. 그들의 진위를 파악하고 가려내기 위해 후작은 노도에게 도움을 청했다. 후작가의 늙은 정원사는 한 순간에 가려진 후 작가의 무서운 실세로 등장했다. **** "밥 안먹수?" 끼니를 놓치는 법이 없다. 몇 일 정도 마차 밑바닥 생활을 했으니 어느 정도 요령도 생기련만... 아래쪽에서 휘몰아치는 먼지를 고스란히 받아낸 얼굴로, 마차 바닥을 슬쩍 들어올리고 고개를 빼꼼히 들이민 하르크는 툴툴거렸다. "그림자가 너무 수다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도 사람인데 완벽히 사라질 수는 없지 않소. 적당히 얼 버무리는 신분이 있는 편이 더 났다는 게 요즘 그림자업계의 정설이유. 고리타분하게..." "고리... 타분?" "아, 아니유!" 시큰둥한 내 목소리에 살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느꼈는지 두더지처럼 다시 머리를 쏙 들이밀며 하르크는 조그맣게 툴툴 거렸다. "슬슬 요기를 해야 할 때입니다. 도련님." 마차와 연결된 작은 창문이 열리며 금아가 빙긋 웃었다. 클 레이브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마부석에서 부시 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말이 멈췄다. 일행들도 모두 멈췄다. 시원스럽게 자란 커다란 나무에는 벌써 여린 새싹들이 조 금씩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 사람들은 자리잡았다. 경호원들의 대장 격인 기사 루데릭의 지휘하에 사람들은 자리 를 잡고 식사준비를 시작했다. 달리 기사들의 시종들이 따라오 지 않은 덕분에 나와 금아와 르카인은 바쁘게 움직였다. 후작 가의 사람들답게 어딘가 느긋하고 관대하기는 했지만... 경호를 맡아준 기사들도 귀족이었다. 봄의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는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몇 번의 노력 끝에 금아는 작은 모닥불을 피워냈다. 나는 떠나기 전 준비해 둔 빵과 말린 고기를 꺼냈다. 저녁 무렵에는 목표했던 오디아누 관문에 도착한다. 그 곳 에서 이틀여를 푹 쉬고 귀족가에서 보내지는 나머지 일행들을 만나 다시 출발할 예정이다. 관문을 나서 오디아누 계곡을 지 나면 프란의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시작 한지도 벌써 닷새정도가 지났다. 꽤 지루하리라 생각했었는 데... 이것저것 벌린 일들이 많아 고민하다 보니 순식간에 지나 가 버렸다. 클레이브는 스테판과 크레이와 함께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앉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불편한 크레이를 귓볼을 붉힌 스테 판이 옆에서 돕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의 질투 어린 눈빛이 스 테판의 목줄기를 장난스럽게 스윽 훑었다. 가볍게 빛나는 크레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기적 같은 느낌 을 전해주고 있었다. 최고의 장인이 뽑아낸 은실 같은 가는 머 리카락이 자연스럽게 미풍에 흩날렸다. 낮의 햇살에 달의 눈물 은 약한 보랏빛을 띈 푸른색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누군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후우....." 그가 마차 밖으로 모습을 들어낼 때마다 사람들은 숨을 멎 곤 한다. 삼시 세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이니, 최소한 하루에 세 번 씩 오일은 보인 모습이다. 슬슬 적응 될 만도 하련만 사 람들의 눈동자는 날이 갈수록 더 풀려만 간다. 계속 이렇게 된 다면... 곤란한데. "어이, 마부 양반. 르카인이라고 했던가?" "네?" 경호원 중의 하나가 긴 장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 혹시 아들말고 딸 하나는 더 없는가?" 빈 입맛 다시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르카인은 어 딘가 슬퍼 보이는 눈으로 눈썹을 살짝 구겼다. "................죽었습니다." '채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말이죠.' 서늘한 바람이 사람들을 휘감았다. 말 꺼내기를 후회하듯이 기사는 멈칫 했고 옆에 앉아있던 다른 기사가 처음의 기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푹 찔렀다. "빨리 먹고 출발하도록." 어느 새인가 제 몫을 비운 대장 루데릭이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각자의 밥그릇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가 힐끔 내쪽 으로 시선을 던졌다. 난 고개를 푹 숙였다. -자네가 그 란이라는 하녀로군. 혹시....... 그분을 아는가?- 함께 떠나기로 결정 된 날 늦게 날 찾아와 그는 힘겹게 입 을 열었다. 시리도록 파란 눈동자. 이름은 듣지 못했었지만 어 느 날 달밤에 함께 검을 맞대었던 기사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분... 이라니요?' 최대한 어리숙해 보이게 고개를 갸웃여 보인 내 반응에 그 의 눈빛이 조금 흐릿해졌다. '자네를... 지켜 주시는 분이겠지?' '여신 아르페이나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노출광이 날 지켜줄 리는 없었지만 일단은... 그렇게 답 했다. 내 눈에 어떻게 보이건 그 여신은 이 땅의 여인들이 가 장 사랑하는 바보였으니까.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아니.. 그럴 수도 있겠군.' 뭘 생각했는 지 그는 머리를 몇 번 흔들다가 스스로 납득 이라도 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가호를 받은 자라면... 마스터의 힘을 쓸 수도...' 되도 못한 그의 상상력에 오한이 들 정도였지만 난 내색하 지 않았다. 그 아줌마가 무신도 아닌데 다른 누군가에게 무력 을 부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땅에 사는 사 람들은 신에 대해 이상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모든 신은... 만 능이며 무적이다... 라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루데릭 엘 란트라고 밝힌 그는 다음 날부터 내 일행이 되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뭔가를 탐색하 는 듯한 눈초리를 내게서 치우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뭐, 누가 보건 말건 큰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의 실력으로 내 수상함을 알아챌 수 있을만큼 난 요령 없고 약하지 않았고, 또 어린 클레이브와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여행이었기 에 어지간해서는 끼어들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 스스 로 일으킨 살의에 눌려 살인했다는 감각은 날 끝도 없는 나락 으로 밀어 넣기라도 할 것처럼 연이어 괴롭혔다. 사람을 베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 었었고, 죄책감도 느껴 봤었고... 하여간 남들 겪는 건 다 해봤 었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르다. 노도는 쯧쯔, 혀를 찼다. -잠시 두게. 스스로에게 진 것 같은 패배감은 다른 사람의 말로 씻어낼만한 성질이 아니니까.- 바로 그거였다. 내 자신에게 졌다는 패배감. 마치... 내가 한 순간 악신이라도 된 것만 같은 느낌! -쳇! 살인 처음 한 것도 아니라면서... 궁상떨기는... 그래, 그 스트레스 푸느라고 건물 하나 완전히 박살냈으면 됐지 또 뭘 어쩌려구....- 걱정 어린 하르크의 궁시렁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파삭...- 문득 뒤에서 낯익은 부시럭거림이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 리. 하르크의 기척이었다. -어딜가?- 조용히 나무 위쪽으로 몸을 옮겨 점심을 해결한 하르크가 전음을 보내왔다. -이상한 놈들이 이 주위를 얼쩡거리우.- 사냥꾼으로 느껴지던 그 인기척들이 점점 이 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하르크도 느꼈나보다. -사냥꾼인 듯 한데...- -그래도 확인해 봐야지. 저택에 있었을 때는 하루가 멀다하 고 몇 놈씩이나 찾아왔었는데... 조용하다니. 찜찜해.- 그의 기척이 조용히 멀어져갔다. 그러고 보니... 그가 옳다. 난 또다시 내 생각에 빠져 현실을 잊어가고 있었다. "하핫! 사람이기에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는 법이죠." "음?" "하, 란님... 이 아니라, 란!" 옆에 앉은 사람들과 뭔가를 즐겁게 이야기하던 금아가 화 들짝 놀라며 나에 대한 칭호를 갈았다. 기사들이 피식 웃었다. "자네도 어지간히 잡혀 사는구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금아가 손사래쳤다. 왠지...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아니예요! 그게 아니라! 전 결혼해서 아들도 있고!" "아들? 자네에게 아들이 있단 말이야? 누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서... 설마!" "자, 잠깐! 왜 다들 날 보는 거야!" 안돼겠다. 난 벌떡 일어섰다. 땡그랗다 못해 튀어나올 듯이 떠져있던 사람들의 눈빛이 모조리 내게 쏠리는 근 좋은 기분 이 아니다. "뭐, 하긴! 금아 정도 되는 청년이 어디가 아쉬워서." 뭔가 대단히 기분 나쁜 소리가 고막에 와 닿았다. 힘껏 눈 초리를 좁혀 떠보니 볼따구에 여드름이 나 있는 기사 하나가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다. "얼굴이야 예쁜 편이지만, 사실 란은 너무 억척스러운 감이 있잖아! 가끔씩 반말도 쉽게 하는 폼이... 그 쪽이 본성인 것 같고." "맞아! 우리 기사들 앞에서야 경어를 쓰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뒤로 돌아서서 공손한 란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아." "하하하하하하!" 왁짜지껄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내가 뭘 어쨌다구요!" "봐! 보통이라면 얼굴을 붉히고 달아나거나, 제가 라고 말 한다고! 내가가 아니라!" 교묘하게도 말꼬리를 잡는다. 그러고 보니 난 이 여행에서 홍일점이었다. 루데릭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악의 없는 농담. 내가 그들에게 많이 친숙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 다. 평소라면 나도 웃으며 농담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때 였다면.........말이다. "................................." 입꼬리 한 쪽이 자꾸만 내 의지를 반발하며 비끄름 끌려올 라갔다. 흥이 난 듯 연달아 뭐라 뭐라며 날 놀려대는 기사들과 는 달리 금아와 르카인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다. "에취!" 누군가가 커다랗게 재채기를 터트렸다. "이봐! 갑자기 추워지지 않아?" 몸을 부르르 한번 떨어 보이며 기사 하나가 과장스레 얼굴 을 일그러트려 보였다. 금아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클레이브에게로 다가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추운데 마차로 들어가시지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클레이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크레이의 한 팔을 잡아당겼다. "란. 도와라." 약삭빠른 녀석.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크레이의 몸을 가볍게 안아들었다. 크레이는 나이답지 않게 작고 가벼웠 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내 모습이 낯설었는지 사람들의 기척이 변했다. "쳇." 꽤 차갑게 식은 그의 체온에 난 서둘러 마차의 문을 열었 다. 등뒤에 어색한 시선들이 꼽혔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기지개나 한번 쭈욱 펴고 털어 버려야 할 것 같다. 이건 나 답지 않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아니다. 나도 역시 아직까지는 사람이고...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한다. 그렇게 생각 한다면... 어려울 것 없다. "금아! 마차 잘 몰지 않으면 뒤통수에 내 가녀린 주먹이 꽃 힐 줄 알아!" "아하하하하하하!" 대번에 폭소가 쏟아져 나왔다.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와갑니다!" 멀리서 관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아... 이제 도착하 겠구나... 도착하면... 클레이브 목욕부터 시키고... 옷 정리해서 갈아입히고... 으으으... 스테판은 혼자 하라고 시킨다고 해도.. 크레이는 내가 챙겨야 하는구나... 아... 잡생각만 많아진다. 이 런 것이 하녀의 상념이라는 것인가!!! '하지만... 날 비웃은 놈들은 그냥 두지 못하지! 어디 두고 보자아아아!' ***** 사실 이번회는... 쓰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다시 쓰기도 많이 하고 말이죠. 일일이 풀어서 한 회로 만들이게는 너무 늘어지는 감이 있고... (지금도 많이 늘어졌거든요) 그렇다고 몇마디 설명으로 뚝딱 하기에는... 아쉽죠. 뺄 수는 없는 내용들이고. 고민했습니다.... 몇일 전 글래디에이터 DVD를 샀습니다. 봤죠. 아아... 역시 멋지더군요. 멋진... 판타지였습니다. 마법도 드래곤도 나오지 않은... 순간 닥쳐오는 좌절감! 난 할 수 있을까...... 재미있다는 말이 늘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추구하는 건 재미이기 때문이죠. 억지로 웃기고 억지로 쥐어짜는 웃음이 아니라... 시원해 지는... 정말로 가슴 속까지 한바탕 웃고 나면 쌓여있던 스트레스들을 시원하게 씼어낼 수 있는... 그리고도 상쾌한 그런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생각없이 웃는 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 채 생각한다고 느끼기도 전에 함께 생각하고... 웃을 수 있는 글. 제 목표랍니다. 현재의 제게는 너무 높은 감이 있지만... 그렇죠. 하하하....하. 오랜만에 진지해졌네요. 본문에 올라가지 못한 이야기들은 외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금아의 노총각 세 아들들의 이야기라던가... 르카인의 잃어버린 사랑 이야기라던가... 이 이야기는 란의 이야기랍니다. 란이 하녀의 삶을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서서히 변해가는 이야기죠. 그게 성장이 될지 퇴보가 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마... 저와 함께 변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오늘따라 후기가 길어지네요. 달아주신 리플들과 멜들은 모두 읽고 있습니다. 답장을 모두 드리지 못하는 건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만... 나름대로 슬럼프라.. 하핫. 그리고... 지적해 주신 오타들도 모두 잘 참고하고 있답니다. 보통... 지적받은 다음에 원문을 고치는 형식이라... 글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모두 감사하게 잘 읽고 있답니다. 닉은 그냥 은빛 하렵니다. 고치려고 했는데... 고민꺼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바람에... 도저히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네요. 창파기 2부도 그렇고... 장군일기도 그렇고... 뜯어고치고 있는 글들이 마음에 드는 날 올리겠습니다. 아! 리메는 없습니다. 연재분 올린 것들의 이후인지라... 원고독촉이 날아올 때... 우다다다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 같네요... 하...하하하핫. ㅠㅠ 더, 더워요....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7/30 Tue 00:11:10 IP : 211.215.56.239 dakad 꺄악~ 일등이다]_[ 에헷^^ 건필!!! 재미있어요ㅇㅅㅇ!! (07/30,00:21) 눈자라기 세상에 창파기를 쓰신 은빛님이셨구낭.. 어쩐지.. 글을 내맘에 쏙 들게 넘 잘 쓰더라 햇지요~ 후훗~ 멋져요.. 님의 능력이... 근데 연참을 바라지는 않으니... 제발 성실연재 해주시구.. 분량은 딱 오늘 만큼만 ^^; 부탁드려욧... 내내 기달렸거든요.. ㅠ.ㅠ (07/30,05:48) 이름 비번 수정|삭제|답장 [setup] 소설검색법/ 새소설 연재시 참조하세요. azderica 07/09 1083 3179 [[The Perfect MAID]]-40-출발 [2] 은빛 07/30 106 2912 [[The Perfect MAID]]-39-행동개시 [5] .......... 07/26 401 2766 [[The Perfect MAID]]-38-행동개시 [5] .......... 07/24 350 2576 [[The Perfect MAID]]-37-결혼발표 [9] .......... 07/22 412 2431 [[The Perfect MAID]]-36-결혼발표 [5] .......... 07/21 415 2351 [[The Perfect MAID]]-35-골치 아픈 손님 [4] .......... 07/20 372 2312 [[The Perfect MAID]]-34-골치 아픈 손님 [4] .......... 07/19 371 2222 [[The Perfect MAID]]-3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5] 은명 07/18 387 2221 [[The Perfect MAID]]-32-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24 2220 [[The Perfect MAID]]-31-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은명 07/18 369 1581 [[The Perfect MAID]]-30-잠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 [8] 은명 07/09 428 1580 [[The Perfect MAID]]-29-후작가의 별종들. 은명 07/09 378 1579 [[The Perfect MAID]]-28-후작가의 별종들. [4] 은명 07/09 435 1147 [[The Perfect MAID]]-27-후작가의 불청객들. [6] 은빛 07/01 452 1146 [[The Perfect MAID]]-26-후작가의 불청객들. 은빛 07/01 421 969 [[The Perfect MAID]]-25-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7] 은빛 06/27 493 903 [[The Perfect MAID]]-24-후작가로 불어오는 바람. [5] 은빛 06/26 458 619 [[The Perfect MAID]]-23-모여드는 하인들. [8] 은빛 06/21 461 618 [[The Perfect MAID]]-22-살아있는 전설. 은빛 06/21 466 308 [[The Perfect MAID]]-21-살아있는 전설. [11] 은빛 06/16 687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햇볕냄새가 곱게 풍겨 나오는 시트와 깨끗한 베개. 잘 정리 된 수납장과 딱딱하지만 삐걱거리지 않는 침대가 이렇게나 대 단한 것인 줄은 몰랐다. 겨우 몇 달간의 귀족가 생활이 이렇게 나 내 몸에 베어있을 줄이야! 침대에 엎드려 마음에 드는 폭신한 베개에 얼굴을 비빌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란! 찌꺼지처럼 가슴 한 귀퉁이에 쌓여있던 불쾌감이 어느새 사라진다. "좋은 곳이야."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의 특성상, 방들은 넓을 수 없었다. 옹기종기 상상하지도 못했던 공간들이 마치 보물상자처럼 숨 겨져 제 역할들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길이 헷갈리지도 않 는 냥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요새 안의 작은 방들은 신분에 따라 편히 머무를 수 있도 록 잘 정리되어 있었다. 클레이브의 방도 그랬다. 비록 그 크 기에 있어서는... 내가 이전에 머무르던 하녀방만큼 밖에는 되 지 않았지만 그 어떤 그림도 따라잡을 수 없는 창 밖의 시원 한 산풍경과 방의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아담한 벽돌 벽난 로는 그 어떤 장식물보다도 사람의 가슴을 따듯하게 어루만져 주는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나름대로 챙겨 쉰다고는 했지만 고된 길이었다. 여행을 떠 나온 후 처음으로 맞는 제대로 된 휴식이었다. 이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 이렇게 쉴 수 있을련지... 크레이와 스테판은 금아와 르카인과 함께 마굿간 근처의 작은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어린 주인 클레이브는 이곳 지리 에 어두운 날 대신해서 이곳 요새를 담당하는 귀족이 붙여준 하녀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맞은 하루의 휴가를 난 기껍게 받아 들였다. 말들은 콩과 귀리가 골고루 섞인 사료를 양껏 먹고 푸르릉 즐거운 소리를 내며 목을 흔들었고, 긴 여행을 대비한 마차들 은 바퀴 하나 하나, 못 하나 하나 잘 점검 받았다. 경호원들은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위협을 대비해 훈련을 쉬지 않았다. 크레이는 지팡이를 하나 구했다. 스테판은 클레이브의 허락 을 받고 크레이의 눈 역활을 자청했다. 크레이가 걷는데 익숙 해지더라도 그가 스스로 설 때까지는 지금보다도 더 많은 고 통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겠지.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험한 여행을 대비한 준비들은 단단히, 치밀하게 짜여졌 고, 난 우리의 여행이 비교적 평탄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날 저녁까지는 말이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헉!" 사실 이런 가지각색의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터져나올 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단지 저녁식사를 앞두고 함께 프란으로 떠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식당의... 곱게 기름먹은 단 단한 문이 한 겹 열렸을 뿐이었으니까. "호, 혼혈아! 네가 어떻게!"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건 각자의 앞에 놓여있던 문이 사 라진 후 나타난 얼굴들이었다. "............셀.. 레... 라... 하노베이?" "맙소사!" 꿈에서라도 잊고 싶은 재수 없는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 어떻게 최고 권력자의 아... 들이 여기에 있는 거야!" 날카롭게 갈라진 목소리로 셀레라는 새되게 외쳤다. 불안과 짜증으로 범벅이 된 셀레라의 눈동자는 연이어 흔들렸다. "오래된 고대의 미덕 중에 '높이선 자는 앞서 나선다.'는 말 이 있지. 썩어빠진 귀족들과 함께 취급해서는 안돼." "너, 너까지!"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느 새 열렸는지도 모르게 문 이 다시 한번 열린 후 또 하나의 낯익은 얼굴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약속은 지키셔야죠? 하녀님?" "클로...네.... 님." 연이어진 경악으로 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게 검 지 손가락을 들어 살짝 검쓰는 동작을 해 보이며 클로네는 빙 긋 웃음을 머금었다. '그걸 가르쳐 주세요. 맨 손으로 갑옷을 우그러트리고 가는 팔로 거친 하녀아이를 꼼짝못하게 쓰러트린 그 기술을.'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내게 매달렸던 클로네는... 내게 부탁했었다. 괴자 영애. 자신은 유명한 하녀인 내가 보고 싶었 을 뿐이라며... 후처 자리를 노리고 처들어온 귀족가 영애들의 틈바구니에 태연히 끼어 들었던 소녀.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 다. 세상에나... 저녁 식사는 조용했다. 처음과 같은 비명소리도, 한탄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자신의 식 기만을 응시했다. 간간히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 리가 날 뿐, 우리를 이 자리에 초대한 요새 담당관도, 우리도 어느 누구도 입을 열어 소리내 말하지 않았다. 클레이브는 굳이 앞쪽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무표정했다. 클로네는 오직 내 쪽만을 바라보 며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냈고... 셀레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가 볍게 손을 떨며 신경질적으로 나이프를 그어댔다. 하노베이 백작의 죽음 이후로 그녀의 입지는 무척이나 약 해진 모양이었다. 대공가의 무도회도 흐지부지 사라졌고... 다 시 후작가로 들어가기도 어려우니... 아마도 유산싸움이다 뭐다 해서 밀려났겠지. 분명... 가족들에게도 그리 사랑받을만한 성 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의외였다. 자세히 뜯어보면 아직 소녀의 얼굴들을 하고 있었지만... 클로네와 셀레라는 클레이브의 양어머니 자리 를 노리고 나타났었었는데... 어떻게 지금 이런 자리에 함께 있 게 된 걸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상당히 놀라우신가 보군요." 몇 차례의 코스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올 무렵 클로네는 클 레이브에게 살짝 목례를 건네며 그의 뒤편에 서 있는 내게 힐 끗 미소 지어 보였다. "아아... 네." 그녀에게만큼은 악감정이 없었는지 클레이브는 미약한 미 소를 입가에 그렸다. "귀족가의 정략 결혼에 나이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법 이랍니다." 클로네는 짜랑짜랑하게 웃었다. "경우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베이르 대공께서도 향년 40 세가 넘으셨을 때, 겨우 열 일곱 살의 신부를 맞이하셔서 아들 을 낳으셨고... 현재 오십이 넘으신 헤일런 공작님의 세 번째 부인 역시... 저보다 겨우 다섯 살 많으신 분이시니까요." 클레이브의 얼굴이 조금 창백히 질려 보였다. "모두들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열살, 스무 살, 서른 살 넘는 터울의 결혼은 귀족가에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랍니다." "그렇다면... 클로네님?" "클로네양이라고 부르세요. 처음부터 전 클레이브님의 양어 머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다시 한번 내 쪽으로 짧은 시선을 던졌다. "흠...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보군요."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랍니다. 단지 제 개인적인 호기심 이 컸을 뿐이죠." 클레이브는 살짝 내쪽으로 고개를 젖혀 보였다. "저기 앉아 계시는 셀레라 양도 이제 열 여덟밖에 되지 않 으셨고, 전 그보다도 두어 살 어리니까요. 아카데미에 들어간 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맙소사! 이제 열 여섯이라니! 좀 어려 보인다고는 생각했지 만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들의 나이란... 아니 의도적으로 생각하기를 피해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이답지 않은 그녀 들의 눈동자 때문이리라. 어떤 면으로든 말이다. 그녀의 미소는 마치 시간을 잡아먹은 마녀처럼 마력적이었 다. 클레이브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에서 눈길을 피 했다. -챙!- 클로네에게로 몰려있던 시선이 순식간에 그 목표물을 바꿨 다. 꼭 깨문 입술에 붉은 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셀레라는 입가 가득 비웃음을 베어 물었다. "흥!"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저벅저벅 걸어 식당 문 을 밀치고 나가버렸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긴 장감이 식당 안을 감돌았다. 저녁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우린 요새에서 꼬박 사흘을 채워 휴식을 취했다. 모두는 빨 리 떠나기를 바라면서도... 은근히 요새에 더 머무를 수 있기를 원했다. 봄의 산길은 매말랐으면서도 군데군데 눈 녹은 진창을 품고 있었다. 셀레라는 방문을 꼭 걸어 잠궜다. 클로네도 굳이 그녀에게 나와 함께 식사하거나 대화하기를 청하지 않았다. 그건 물론 클레이브도 마찬가지였다. 요새에 머무른지 이틀째 되던 날 클로네는 크레이의 눈동 자를 보았다.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 한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그의 눈동자 때문이 아닐지도 모 른다. 사흘 새 크레이는 요새 안팎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인형 같은 소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소년... 이제 빛조차도 잃어버린 그는 햇볕보다도 더 밝은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같으니라구. 사흘째를 보내고,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우리는 출발했다. 하 르크는 원하던 데로 마부로 정식 데뷔했다. 하필 셀레라의 마 차를 몰아야 한다는 게 탐탁치않았는지 표정은 밝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디인가! 마차 밑바닥이 아닌, 위에 앉아 갈 수 있다 는데! 그러나 문제는 역시 하르크가 아니었다. "왜 내가 너 같은 어린애와 함께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호위의 간편함을 위해 마차 수를 줄이며 클로네와 한 마차 에 앉게 된 셀레라는 참지 못하고 결국 독설을 내뱉기 시작했 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게다가 저건 뭐지? 보석 의안의 노 예? 들은 적이 있어. 어느 노예상의 수집품 중에 저런 게 있었 다고. 흥! 그 북새통의 와중에 어떻게 저런 걸 손에 넣었는지 는 모르지만 자랑스레 달고 다니는 꼴이라니!" "........" 기가 막히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누구 때문에... 누구의 가 문 때문에 크레이가 저런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되었는데!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냥 독설을 내뿜을 수 있다니! "흥!" 잠시 우리가 말조차 잊고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셀레라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한번 더 표독스러운 눈빛을 던지고는 획 몸을 돌려 마차 안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제, 제길...." 금아는 틀어쥐고 있던 르카인의 손목을 놓았다. 어느 새 옆 구리의 검 손잡이를 틀어쥐고 있던 르카인은 붉게 충혈된 눈 동자를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귀담아듣지 마. 저 ... 영애는 본래 저런 사람이니까. 저 정 도는 늘 달고 다니는 독설의 일부일 뿐이야." 질렸다는 듯 클레이브는 한숨을 내쉈다. 창백하게 질린 채 망연자실 서 있던 크레이는 벙벙한 표정으로 클레이브에게 고 개를 돌렸다. 초점 없는 그의 의안이 마치 감정을 담고 있는 냥 풀어져있었다. 스테판이 크레이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이전에 우리 저택에 있었을 때는 더했었어... 그래도 지금 은 기가 많이 꺽인 거야." 경악에 젖은 기사들과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으며 스테판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많이... 꺽인... 거라구?" 르카인의 마른 입술에서 실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돌아본 금아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맞아. 이전에는 그 표독스럽기가 말도 못할 정도였지. 뭐 그런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아는 지 모르는지 마차 안에 서 길을 재촉하는 셀레라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신이 든 하인들과 하녀들이 황급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클로네가 진절머리 난다는 얼굴로 셀레라의 마차에 올라탔고, 우리는 네 사람이었던 관계로 처음의 일행대로 클레이브의 마 차에 몸을 실었다. 호위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한번 더 일행 과 짐을 주욱 살핀 후 루데릭의 가벼운 신호음과 함께 말들이 다각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이로군요." 앞으로 대략 한달간이나 이어질 최악의 동행길의 시작이었 다. ***** 돌아왔습니다. 염치없이 돌아왔습니다....ㅡㅡ;;; 일주일 쉬면서... 저도 노트북 한번 써 볼까 해서... 하나로를 무선 랜으로 바꿨다가... 맥킨토시까지 한번 연결해 볼까 해서... 용썼다가... 인터넷이 안돼... 무지하게 고생하고....(고집은 세서 또 피씨방 가서 올리기는 싫더라구요...ㅠㅠ) 결국 연결했습니다. 약속보다도 일주일도 더 늦었네요. ㅜㅜ 이, 이를 어쩔까나.. 하다가... 모두 합해 두주 정도 쉈으니까... 앞으로 일주일간. 삼연참 하겠습니다. (콰쾅! 난 잠은 언제 자라구!) 글 못올리는 동안 비축분은 열심히 쌓아두었으니.. 용서를. 참, 그리고 여신과 기사와.. 장군일기는...(도리도리) 용서를. 수정보는데로 올리겠습니다. (여신과 기사는 네번째 다시 쓰는 건데.. 욕심이 들어가서인지 쿨럭! 이랍니다. 으으으으)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25, Read : 2428, IP : 211.215.56.203 2002/08/23 Fri 00:40:47 피터 와! 은빛님 짱!!!!!! 일주일간 삼연참을 해주시겠다니 감격의 눈물이 ㅜ_ㅜ 역시 올라왔나 확인하러온 보람이 있네요!!!!!!!!!!!!!!!!!!!!!!!!!!!!!!!!!!!!!!!!!!!!!!!!!!!!!!!!!!!!!!!!!!!!!!!! 2002/08/23 츠네-_-/ 와우+_+은빛님 드디어 떠오르셨군요!!! 2002/08/23 혼섬 ㅎㅎㅎㅎㅎㅎㅎ 3타당 ㅎㅎㅎㅎㅎ 2002/08/23 빠나나 오오..그나마, 보람이 있군요! 역시 재밌구요..^^ 연참이라..기대됩니다-☆ 2002/08/23 dark (+.+) (ㅠ.ㅠ) (+.+) 역시나 매일 같이 들른 보람이 있어... 2002/08/23 앗싸! 앗싸~~~!1일주일간 삼연참 이랍신다~~~!!! 궁극의포션 박카스 1박스 대령하랍시는 어명이시다~~~~!!!!!!!!!!!! 2002/08/23 아르타나 으~~음 ~~클럭~~기다리다 드~디어~~오셨군여~~ 우에엥~~기븐의 눈물을~~ 2002/08/23 황형%% 맬맬들어와..자까님을 흉보구.. 일주일이..도대체...흑흑... 올라왔으니..됐습니다.. 용서해드릴께여..사랑두 드릴까여?? 2002/08/23 moya`ㅡ` ㅋㄷㅋㄷ 빨리 42두 봐야해_! 2002/08/23 아라리요 드뎌 오셨군요. 오늘도 없으면 진짜 어디서 비명행사(?)한게 아닐까 하는 확신이...(멀쩡한 사람 하나 보낼뻔 했군요.) 2002/08/23 베르디안 우왓!! 은빛님! 오셨군여!! 정말정말 감동의 도가니 입니다!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넘넘 행복해욧!! 2002/08/23 han 날조된 변명같이 들리는건 왜일까? (진짜 변명일수도...) 2002/08/23 리링포 아무 싱각없이 습관처럼 들어왔다가 세편이나 올라 잇는걸보고도 오늘도 없네 하곤 나가버렸다. 그리곤 뒤 늦게 깜짝 놀라 다시 들어왔다. 역시 습관은 무서운거여. 눈으로 보면서도 안들어왔을거라 생각하다니. 이게 다 누구탓이지? 2002/08/23 세라자드 헐....^^***일주일~ 3연참~~~~ 2002/08/23 검은포효 ㅎㅎㅎ..역시 돌아오셨어여...ㅠㅠ....연참 파이팅이요~~~ 2002/08/23 소애 +_+ 이번 편 식사 장면으로 인해 옛날에(;;) 어떤 분(;;)이 실수로 한 귀족가의 집에서 검기 써서 음식을 먹던 생각이 갑자기 드는 한 독자 였습니다.ㅡ_ㅡ;;; 2002/08/23 코로코로 사랑해요- 은빛님-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2002/08/23 나쯔히메 우훗... 3연참...일주일.. 약속은 기필코..? 우훗..지난 일주일이 은빛님에겐 한달이었으니.. 이번에도 일주일은 한달이 되시길..진심으로 빌어드릴께요~^----^ 우훗우훗.. 한달3연참... 2002/08/23 몽마 헉 무선랜... 우와 은빛님 부잔가봐요.. 제가 그쪽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무선 랜카드만 보통 소비자가 15만정도하는데.. - -; 게다가 무선통신 중계시 일명 AP 라는 장비만해도 4~50마넌 젤루 싼게.... 2002/08/23 비아락테 -_-; 은빛님, 수해에 떠 밀려 가신 건 아니었군요! 저는 정말로 죽은지 알았습니다 ㅠㅠ 2002/08/23 지옥숙녀 ..은빛님...싸랑해욧!!ㅡㅜ 2002/08/24 熱血男兒 은빛님 만세엣!!! 2002/08/25 혈향단화 꺄아아아~은빛님 어서오세요오~~~♡ 2002/08/25 SERENAIN 냐하하!~~~드뎌 오셨군여..^^ 일주일이 지나구나서 맨날 오다가 몇일 안오니까...이렇게 마니 ....연참이 되었더군여~~~^^은빛님 쪽~~옥♡ 2002/08/25 운더스 흐흐흐. 기다림 끝에 단비가 내린다~~~~ 2002/08/25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79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6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7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6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2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2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8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오디아누 관문을 나서면 북서쪽으로는 망자의 숲이, 남동쪽 으로는 졸트 산맥이 펼쳐져 있다. 관문은 한 나라의 국경 요새 로서는 정말 최적의 위치에 자리해 있다. 망자의 숲은 과거 크리아의 자리에 있던 한 고대부족의 전 설에 의해 이름지어진 숲이다. 단일 숲으로는 이 대륙에서 제 일 큰데다가 거칠고 험하고 울창하기가 이를 데 없는 곳인데, 커다란 나무들의 사이로 부는 바람이 꼭 영혼들의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망자의 숲이다. 물론, 고대인들은 실제로 그 소리가 망자의 울음소리라고 믿었다고 한다. 졸트 산맥은 꺽어질 듯한 벼랑이 유난히도 많은 산들이 모 여있는 산맥이다. 이 대륙... 서대륙에서 제일 큰 대륙이라는 카슬에서도 제일 작지만... 가장 험한 산들이 모여있다. 우린 망자의 숲과 졸트 산맥의 경계선을 따라 가야 한다. 물론 평지처럼 편안한 길은 없었지만, 그나마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부를만한 뭔가가 있는 곳은 하나 정도 있었다. 물론, 도심내로 나 있는 것들만큼 평평하게 골라져 있지도 않 고 푹푹 패인 곳들도 많아 마차길로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말 이다. 게다가 길을 따라 원치 않는 불청객들도 득시글거렸다. "열흘 정도는 민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상인들이나 여행객들이 꽤 오가는 길임에도 중간에 작은 마을 하나 서 있지 않았다. 그나마 마을이라고 하는 곳은... 관 문에서 열흘 길을 더 가서 프란의 관문에 다달았을 때 즈음 나오는 유목마을이 전부였다. "왜 산 속 작은 마을들이 없는 거죠?" "첫째는 전쟁의 위협 때문이죠. 이 오디아누 관문을 둘러싸 고 국가간의 전쟁이 벌어졌던 게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하지 만 그것을 제끼더라도 이 산과 숲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너무 깊고 어두운데다가 흉폭한 짐승들이나 마물들 의 둥지가 많죠." 클레이브의 질문에 옆에서 말을 타고 가던 루데릭이 싱긋 미소지으며 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심하셔야 한답니다. 언제 어디서 검은 마물들이 나올지 모르니까요." "검은 마물이요?" "커다란 이와 흉폭한 흉성을 지닌... 괴물들이죠." "후...." 소년들은 일제히 감탄사를 터트렸다. 루데릭은 이야기꾼의 소질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왜 이 숲의 마물들을 토벌하지 않는 거죠? 그렇 게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히 길을 오갈 수 있을 텐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클레이브는 루데릭에게로 똑바로 시 선을 맞췄다. 소년의 정의감이랄까... 그런 빛이 클레이브의 눈 동자에 어려있었다. 루데릭은 감탄했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렇게 하고 싶죠. 하지만 이 부근은 국경지대랍니다. 잘못 했다가는... 마물 토벌도 해보기 전에 전쟁이 일어나죠. 때문에 이 숲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괴물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가는 기사를 파견할 수 없습니다. 뭐, 현상금 사냥 꾼정도로 멸족될만큼 마물들이 만만한 것도 아니니까요." 소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 녀가 귀족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건 보통이 넘는... 기회포착의 눈치빨이 필요했다. "하지만 숲 속의 생명들에 대한 그 잘못된 오해 덕분에... 사람들의 손에서 잔인하게 종마저 멸종 당할 뻔했던 다른 고 귀한 생명들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랍니다." "오해?" 클레이브의 관심이 돌려졌다. 자신의 의견을 조금 무시하는 듯한 내 말이 거슬렸는지 루데릭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폴폴 묻어나왔다. "흠? 예를 들면?" "키 작은 나무둥치 엘프들과 다리가 긴 외뿔 은말이나, 통 통하게 배가 튀어나온 외뿔 난쟁이라든가... 한 쌍의 은빛 날개 를 지닌 작은 요정들... 같은 종족들 말이죠." 기가 막힌다는 표정들이란 이런 얼굴들일게다. 어린 스테판 과 클레이브, 크레이조차 어이없다는 얼굴들로 피식 웃음을 지 었다. "하핫! 그런 건 사람들이 지어낸 옛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것들이랍니다. 란." 루데릭이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눈으로 날 내려다 봤다. 이해하기 힘들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본 것 외에는 믿으려 들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그들의 손으 로... 세상에서 밀어낸 것들의 존재까지도 부정하려들까? 멀지 도 않은 시간, 겨우 백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 곳에 서 직접 만날 수 있던 종족들이었는데... 그들은. "인간은 없던 것을 창조해 낼만큼 대단하지는 못하답니다." "인간을 너무 무시하는군요. 마치 자신은 사람이 아니기라 도 한 것처럼." "사람이니까 사람의 한계를 아는 거랍니다. 한계를 인정하 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으니까요." 화가 났던 걸까? 난 삐죽거리며 루데릭의 말에 반박했다. 몇 달 전 남작의 집 정원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던 어린 풋 내기가 지금 내 앞에서 날 무시하고 서 있는 감각이란!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틀 안에서 꽉 짜인채 무조건 남의 이야기를 거짓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까 검술이 안늘지.' 루데릭은 힐끔 내 쪽으로 날카롭게 눈빛을 돌리더니 주욱 앞질러 나가버렸다. 요 몇 일 새 내게 그 때의 마스터의 정체 를 알아내느라 잘 해주더니만... 내가 영 말해줄 것 같지 않자.. 많이 토라진 형색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대화가 마음에 들 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아무리 그래도 그는 귀족이었고, 난 하 녀일 뿐이니까. "란은 가끔 무서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스테판은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몰락했다고 하기는 하지만... 루데릭 엘 란트님은 당당한 백작가의 분이시라구요. 언젠가 가문을 완전히 되살리시면... 어쩌시려구." "그건 그 때가서 할 일이고." "하긴, 그렇지 않으면 란이 아니지." "훗." 소년들의 입가에 작은 미소들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멈춰! 멈춰! 이 버르장머리없는 천한 것 같으니! 멈추라는 내 말 안들려?!"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멈추지 않고 점점 더 크게 자라나더 니만 내 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귀에조차 선명하게 들려오 기 시작했다. "그만 해! 셀레라!" 결국 클로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나보다. 출발한 이후로 계속 툴툴거리다가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 마차의 흔들림을 견뎌내지 못한 셀레라는 신 경질적으로 소리지르고 하녀의 따귀를 때려댔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스테판이 작게 중얼거렸다. 난 피식 웃어 보였다. 그렇게 말 하는 스테판의 얼굴색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 마차가 이 정 도니 셀레라와 클로네의 마차가 어느 정도일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클로네가 조금 불쌍할 뿐... 마차가 심하게 요동칠지도 모른다며 노도가 특별히 제작한 부적이 이 마차의 여기저기에 견고히 붙어있었다. 충격을 완화 시키고,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차는 특별히 만들 어지고 손질되었다. 그건 어린 클레이브를 위한 것이기도 했고 마부 역할을 할 대공 금아와 날 위한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금아는 말을 몰면서 요즘 들어 깨닫기 시작한 심득(心得)을 교 묘한데 응용하고 있었다. 그의 마나는 마차 바퀴를 부드럽게 감싸 많은 충격을 지면으로부터 흡수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였 다. -쾅!- 결국 마차의 문이 부서질 듯 제쳐 열려졌다. 하르크는 급히 고삐를 당겨 마차를 멈췄다. 셀레라의 분홍빛 드레스 자락이 산짐승처럼 튕겨져 나와 곁길로 향했다. "우웨에에에에에엑!" 속이 좋지 않을때는 게워내는 게 옳다. 그녀의 그런 소리에 자극받은 몇몇 사람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클로네가 조심 스럽게 마차에서 내려 셀레라보다는 조금 더 깊숙한 숲으로 몸을 감췄고, 그 마차에 동석하고 있던 두 하녀가 황급히 뛰어 내려 클로네가 사라진 나무 뒤편으로 달려갔다. "후... 반나절도 버티지 못한 모양이로군. 앞길이 깜깜한걸?" 대견하다는 듯 이 마차에 타고 있던 우리들에게 한 눈을 찡긋 감아보인 루데릭이 말을 몰아 사람들이 사라진 숲 쪽으 로 조금 다가갔다. "조심해라! 경계를 소흘히 하지 말고!" 이 곳은... 울퉁불퉁한 길 양옆으로 악명 높은 숲과 나무가 우거진 외딴길이었다. **** "사람들이야. 바깥 사람들이군." 옷에 풀을 잔뜩 붙인 몇몇 형체들이 나뭇가지 위에 날렵하 게 앉아 조심스레 아래쪽을 살피고 있었다. "오랜만의 대 행렬인데.... 겨울보다도 더 위험한 봄의 산길 을 저렇게 소수로 지나가려 하다니..." "저쪽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것 같아." 반대편 나뭇가지 위쪽에서도 몇몇 그림자들이 오락가락하 며 땅을 살피고 있었다. "일단 상황을 더 살펴보자." 몸을 더 조심스럽게 나뭇가지 위에 밀착시키며 그들은 눈 을 빛냈다. 침묵의 숲이 길러낸 커다란 나무와 풍성한 가지들 이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리라 그들은 믿었다. 반대편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높다란 나무 위에 바짝 엎 드려 몸을 감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저것 봐!" 졸트산맥은 험했다. 농노의 신분을 피해, 혹은 부족장의 눈 을 피해 산으로 숨어 들어왔던 사람들은 하나 둘 약탈자가 되 어갔다. 땅에 자란 나무의 키가 너무 컸다. 사람들의 눈을 피 해 만든 손바닥만한 밭고랑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다. 땅은 너 무 가팔라 물이 스미지 못하고 흘렀다. 게다가 졸트산맥의 대 부분의 산자락은 돌산이었다. 일굴 수 있는 땅은 극히 드물었 다. 사람들은 곡괭이대신 활과 검을 들었고, 보기 힘든 사냥감 들을 찾기보다는... 슬슬 관문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산적이었다. "간만의 사냥감인데..." 귀족가 특유의 화려하게 세공된 세대의 마차와 열 두 사람 의 호위기사가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좀 위험해 보이지 않아?" 누군가가 목소리를 낮춰 말을 받았다. 마차 문을 박차고 달 려나가 속을 게워내는 여자들과 하인들의 몰골로 봐서는 힘든 여행 한번 해 보지 못한 철부지들임이 틀림없다. 그것도 신분 만 높은... "지나치게 고위 귀족들을 노리면... 나중에 귀찮아진다구. 드 물기는 했지만, 두 나라가 손을 잡고... 산적토벌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 ".........대귀족이라면 그렇지." 그들은 눈가를 좁히고 신경을 집중했다. 부모와는 달리 그 들은 숲에서 태어난 사냥꾼들이었다. 표적을 자세히 봐 두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들은 몇 개의 가문 표식이 마차 옆구리에 그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두어명의 감시꾼을 남기고 나머지는 조심스럽게 그들의 마을로 몸을 돌렸다. "저런 속도라면 열흘은커녕 보름이 지나도 프란의 첫 부족 마을에는 도착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놈들..." 피식 흘러나오는 비웃음이 누군가의 귓가에 닿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듯, 그들은 여유있게 자세를 바꿔가며 마 차를 뒤따랐다. **** '죄측에 셋, 우측에 둘입니다.' 나지막한 금아의 전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신경쓸만한 놈들이 아니야. 게다가... 이건 우리의 여행도 아니고.' '어떤 말씀이신지?' '우린 단지 마부와 하녀일 뿐이라는 거지. 마스터 베이르 대 공과 류이네리아가 아니라...' 나무 위쪽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돈 많은 귀족가 임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지나가는 우리가 어리석어 보이기 때 문이겠지. 이런 험한 산길을... 고급 마차를 타고 지나가려 하 는 우리가 말이다. "길이 계속 험해지는 건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애써 감추며 클레이브가 조심스럽게 말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창문 가리개 사이로 험한 산기슭과 거 친 땅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었다. "아마 더 험해질 겁니다. 이제 막 요새의 초입을 지났을 뿐 이니까요." "마물들이 정말로 나올까요?" 소년들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큰 모양이었다. 크레이 조차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애써 고개를 돌려 내 쪽으로 관심을 들어내 보였다. "배가 고프다면... 작은 동물들조차 잡지 못했다면 최후의 방법으로 인간을 잡으려 할겁니다." "최후의 방법?" "네. 인간은 독이 있거든요." "독?" 세 소년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독이라면... 마물이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사람에게 독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그야,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으니까요." "다른 생물들에게도 효과가 없지 않나요?" 크레이는 불신을 강하게 들어냈다. 사람이 독을 가지고 있 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바깥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듣지 않지만, 이 런 숲에서 인간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인간의 독은 좋지 않습니다. 뭐, 치명적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흠..." 치명적이지 않다는데서 조금은 위안을 얻은 모양이다. 소년 들은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불투명한 유리로 된 창문은 활짝 열었다. 아직도 차가운 초봄의 바람은 고맙게도 소년들의 미식거림을 가라 앉혀주었다. "그, 그만!" 마차는 첫 번째 정지 이후로 두 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멈췄다. 어지간한 클로네조차 견디지 못하고는 비명을 질 렀다. 새파랗게 탈색된 얼굴로 축 늘어져 맨 땅에 드러누운 그 녀를 엇비슷하게 질린 얼굴의 하녀가 모포를 들고 간호하고 있었다. 셀레라는 매서운 눈빛으로 우리쪽을 노려보고 있었고, 도저히 출발할만한 상황이 아니게 되자 루데릭은 초조한 기색 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운 내시길 바랍니다. 이런 속도라면 열흘은커녕 보름이 지나도 도착할 수 없습니다." 건량과 비상식량은 넉넉히 준비했다. 잘 아껴먹으면 열 이 틀은 버틸 수 있을테고.. 지금처럼 사람들의 속이 뒤집혀 있는 상황이라면 보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분량이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 분명한 사람들의 체력이다. "마차를 버리고 말을 타면 어떨까요?" 누군가가 의견을 제시했다. "감히! 내, 내게 말을 타란 말이냐? 이런 흙탕물이 튀는 험 한 숲 속에서?" 셀레라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터져 나왔다. 셀레라는 비 틀거리는 다리를 당당하게 펴고 마차 발받이에 발을 올렸다. 휘청이는 그녀를 하녀가 급히 부축했다. 셀레라는 독기 가득 어린 눈으로 우리 마차 쪽을 힘껏 노려보더니만... "흥! 천한 것들이라 험한 일에도 익숙한가보군!" 내뱉더니 쾅 소리나게 마차 문을 닫아버렸다. 혼자만 들어 가고 닫아버린 뒤라, 남겨진 셀레라의 하녀는 울쌍을 지으며 주인을 대신해 남아있던 사람들의 거센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루데릭은 조용히 관자놀이에 손을 올렸다. 골치가 지끈거리겠 지.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 것을... "휴우우우우우우..." 길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눈앞에 활짝 열린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고생문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 "기다리라는 전갈이다." 졸트 산맥의 커다란 나무 위에서 마차를 내려다보며 입가 가득 비웃음을 담고 있는 사내에게 누군가 말했다. "나흘이면 되겠지." 아무리 일행이 느리게 움직이더라도 그 정도라면 오디아누 관문에서 꽤 멀리 떨어진 후일테다. 불을 지르거나 심한 먼지 가 피어오르더라도 군대가 도와주러 오지 못할 거리. 게다가 충분히 지쳐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다. 그보다 더 멀면 사람들 이 험한 길에 적응해 버릴 수도 있다. '하긴... 저 꼬라지를 보아서는 열흘이 아니라 백일이 지나도 적응하지 못하겠지만...' 일행은 다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에서는 뾰족 한 신경질소리가 쉬지도 않고 터져 나왔다. "젠장. 감시하는 우리들마저 짜증이 날 정도로군."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중에라도... 인질을 잡게 된다면, 귀족 의 옷을 입은 여자는 잡지 말아야겠어." "나라도 구해주고 싶지 않겠는걸?" 산적들은 작게 소근거렸다. 마차는 계속 쉼없이 움직였다. 카다랗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멈추라며 악쓰는 소리가 좀 더 들려왔지만,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기사들의 대장은 독하게 마차를 몰아갔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의 해는 유달리도 빨리 저물었다. 어둑 어둑해진다 싶더니만 금새 까만 밤이 떨어졌다. 일행은 말을 멈췄다. 비교적 넓직한 공터 비슷한 풀밭 위에 마차를 다닥다 닥 붙여 세우고 땅을 파서 불자리를 만들었다. 훈련이 잘 된 말들인 듯 말들은 굳이 묶어두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 데려왔 는지 모를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말들에 풀어놓았다. 앞발 한쪽 이 하얀 것을 보니... 다쳐서 마차에 실었던 모양이다. 간이 천막이 두 개 세워졌다. 사람이 타고 있을 것 같지도 않던 마차에서 세 소년과 한 하녀가 내렸다. 그들이 한 천막을 차지했다. 그리고 내내 소란을 피웠던 마차에서 두 귀족과 두 하녀가 내렸다. 그들이 나머지 한쪽 천막을 차지했다. 기사들 은 달리 시종을 데려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부 세 사람이 이 런저런 잡일들을 했고, 하녀 세 사람이 음식을 다듬었다. 세 사람이 경계를 섰고, 나머지 여섯 사람은 휴식을 취했다. 대장 인 듯 보이는 자는 횟불 아래 큼지막한 지도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서서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흐흐흐... 고민되겠지." "우리쪽에는 축복이긴 하지만 말이야. 귀족들이란 정말 이 상한 족속이 아니지 뭔가!" 모닥불 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쉬지 도 않고 짜증을 뿌려댔다. 파란 옷을 입은 여자는 침착하게 자 리를 지켰고, 세 소년은 파란 옷을 입은 여자 가까이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고소한 스프 냄새와 잘 구어진 육포 향기가 고픈 위장을 자극하며 감미롭게 흘렀다. 산적들은 주머니에서 말린 과일을 꺼내 입에 물었다. 시큼달큼한 맛이 오히려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제길. 이 짓을 사흘이나 더 해야 한다니..." 작게 한숨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린 늑대같은 눈을 빛내 며 졸트산맥의 맹수보다도 행인들에게 더 악명 높은 산적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세 번의 밤이 더 지나갔다. ***** 제가 잠수한 동안... 격려의 리플과 멜을 보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랴부랴 올리느라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글 올리고 나서 재빨리 읽어보겠습니다....ㅜㅜ) 우려대로 연중은 절대 아니었으니.. 이만 용서해 주심은... 쿨러럭!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15, Read : 2102, IP : 211.215.56.203 2002/08/23 Fri 00:41:04 앗싸조쿠 앗싸 일빠로구나~~. 음흐흐흐... 내생에 처음이햐~ 2002/08/23 앗싸 가 님 확실히 연참 부탁함다.... 2002/08/23 빠나나 ^^ 역시 재밌네요- 건필하세요 2002/08/23 혼섬 또 3타인것인가 ㅇ흐흐흐흐ㅡ 음 해보니 좀 재밌는...쿠~울럭 ^^ 2002/08/23 아르타나 음 5위인가~~내생애 처음~~ 2002/08/23 moya`ㅡ` 6타네..크큭.-_-;; 아_! 43으루 고고고..ㅋㅋ 2002/08/23 세라자드 흘흘흘.. 읽어 보믄.... 살벌할낀데;...... 2002/08/23 코로코로 우- 행복해 2002/08/23 눈이 은빛님 ㅠ.ㅠ 보고 싶었어요 2002/08/23 비아락테 -_- 저도 심한 말을 한 듯한.......;;; 윽! 지워버렸으며...;;; 2002/08/23 멜로막스 확실히 하루에 이렇게 많은 소설이 올라오는 경우는 너무 드믈죠.....감격~~~~~~~ 2002/08/24 새벽 은빛님 오늘 왠지 행복하내요..+_= 2002/08/24 혈향단화 ㅡㅡ셀레라 저계집애..저어어엉말 맘에 안들어요..우으...뺨한대때려줬으면... 2002/08/25 SERENAIN 음빛님 화팅~~~^ㅇ^ 건핀하셈~ 2002/08/25 아르카이 아해의 장도 빨리 써주세요. 무하가 빨리 죄책감을 버릴 수 있도록 해주시구요. 솔직히 그렇게 심한 죄책감은 비틀린 히스테리와도 같으니까요. 퍼펙트 메이드는 분위기가 다른 것이 아주 좋아요. 단편의 설정이 더 좋은 것 같지만....... 2002/08/25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79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6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7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6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2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2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3-산적 [[The Perfect MAID]]-43-산적 '슬슬 때가 된 듯 싶은데...' 처음과 달리 기사들의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끊임없이 쨍 알거리던 소리조차 한풀 꺽일 정도였으니... 일행의 몸에 쌓인 피로감의 무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뭐, 그 피로감의 대부분이 누군가의 짜증으로 비롯된 것이 기는 하지만 말이다. "마물들은 보이지 않네요." 사흘의 노숙동안 들짐승이라고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스테판은 그게 못내 섭섭한 모양이었다. 꿈 많은 소년이란! "소문보다도 안전한 길인 듯 싶군요." 크레이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마차 안에 갇 혀있는 요 몇일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소문이라니요?" 크레이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의안 주위를 매만졌다. "소문은 아니지만... 이야기 속의 모험담을 보면 늘 노숙하 는 첫째 날부터 무언가 괴물들이 나와 모험가들을 습격하잖아 요." "맞아요. 숲에 사는 오크라든가, 고블린, 심지어는 트롤까 지!" "이종족이나 마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하다 못해 간 이 부은 산적들이라도 나와야 정상 아닌가요?" 말을 해 놓고서도 찔리는 바가 없지 않았는지 스테판은 살 짝 어깨를 움추려 보였다. 가뜩이나 지처가는 일행이었다. 그 나마 우리는 편히 가고 있지만, 바람을 맞아가며 일행을 경호 하고 있는 루데릭과 기사들의 고생은 만만한 게 절대 아니었 다. 어린 소년들의 재미를 위해 산적이 등장하게 할 수는 없었 다. 뭐... 그 외의 이유라도 지금 졸래졸래 똥마련 강아지모냥 따라오고 있는 놈들은 곧 모습을 들어내겠지만.... "그건 아마도 저희가 모험가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난 스테판과 크레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 중 제일 어린 클레이브가 가장 조숙한 냥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건 이름 모를 숲의 마물들이 아니예 요. 그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람들을 습격하지 않으니까 요." "그 말은... 마물이 아니라면... 사람이라는 건가?" "네. 이야기 속의 떠벌이가 아닌 진짜 산적이 있을 겁니다." 클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시선을 다시 창문 밖 으로 돌렸다. 마치 산적을 직접 찾아보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결심을 했나보군요. 몰려들고 있습니다.' 금아의 전음이 들려왔다. 나도 느끼고 있었다. 난 지나치게 창문가로 기울어진 클레이브의 몸을 다시 세우게 했다. 그리곤 창문을 닫고 가리개를 덮었다. "이제 조심해야죠. 언제 산적들이 나타날 지도 모르니까요." "란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 클레이브는 작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만큼 감이 좋으니까..." 저택에 있을 때부터 난 감이 빠르고 운이 좋기로 소문나있 었다. 귀족들에게 그렇게 대들고서도 무사한 사람이었고, 클레 이브가 곤란할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나서는 기묘하게 상황을 풀어주고 가는 것도 나였으니까. "그 점만큼은 저도 자신이 있는 부분이랍니다." 난 생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때였다. "산적이다! 대열을 정비해라!" 루데릭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클레이브와 두 소 년이 기가 막힌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작게 한 숨을 내쉬고... 반짝이는 눈과 귀로 바깥 상황에 신경을 기울이 기 시작했다. "루데릭경이 이길 겁니다." 긴장감으로 두 주먹을 꼬옥 틀어 쥔 스테판이 강하게 말했 다. 싸움이 시작됐다. **** -탕! 투두두두두두두두!- 난 소년들을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뗀 후 마차 중앙으로 앉게 했다. 곧 뾰족한 화살촉들이 마차에 꽂히는 소리들이 들 려왔다. 다행히도 마차 안쪽까지 뚫고 들어온 놈은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히히히히힝!- 셀레라의 고음의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놀라 날뛰는 소리, 화살에라도 맞았는지 고통에 울부짖는 말 울음소리가 요란스 레 울려 퍼졌다. 개짖는 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 비명소리... 보이지 않는 막 뒤에서 연극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들은 눈으 로 보는 것보다도 더한 공포감을 소년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있 었다. "꺄아! 꺄아아아아!" 어쩌면 셀레라와 클로네가 타고 있는 마차 벽으로 화살 몇 개 정도는 뚫고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뭐해! 뭣들하는 거야! 당장 처리하지 못해!" 아닐지도 모르겠다. 겁먹은 사람의 말치고는 너무 당당하다. 몇 마디의 고함을 뒤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지절거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황하지 말아라! 상대는 겨우 산적들일 뿐이다!"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루데릭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곧 셀 레라의 높다란 목소리를 내리눌렀다. 짜증은 둘째치고 분노가 치밀만한데도 불구하고 기사들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놀란 말 들을 버리고 내려선 루데릭을 선두로 그들은 나무 줄기를 타 고 곡예사처럼 내려온 산적들을 차분하게 맞이했다. 막 땅에 내려선 산적 몇이 순식간에 루데릭의 검에 쓰러졌다.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짐승처럼 재빠른 산적들의 몸놀림에 지레 겁 먹고 당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실력이 좋은 기사들이군요.' 금아의 침착한 전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우리 마차의 말들 을 지키며 교묘하게 화살과 검을 피하고 있었다. "제길! 마부를 베어라! 마차를 차지해!" 산적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그와 거의 동시에 마차 바로 옆에서 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데릭으로 생각되는 기 를 지닌 기사가 몰려드는 산적들을 막아섰다. "제길! 수로 밀어붙여라!" 스무명 정도 되는 산적들의 수가 반으로 줄었을 때 즈음 누군가가 외쳤다. "안돼! 너무 많이 죽었어!" 다른 산적 하나가 외쳤다. 우리 쪽의 기사는 겨우... 아니, 둘이나 죽었다. 하나는 검으로 심장을 관통당했고, 다른 하나 는... 처음의 화살 공격에서 입은 상처가 안좋았던 듯 싶다. "제길! 후퇴다!" 겨우 십 오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걸걸한 목소리가 명령 했다. 마차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기사들을 뒤 로하고 산적들은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다. 겨우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재빠른 놈들이군...." 한탄 섞인 목소리로 루데릭은 작게 중얼거렸다. 잠시 침묵 이 전장으로 변해버린 숲길을 감싸 안았다. 바사삭 그들이 달 아나며 내는 나뭇잎 밟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루데릭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난 꼬옥 끌어안고 있 던 세 소년을 살짝 품에서 놓았다. 언제 안겼는지도 모르게 정 신없이 매달렸던 소년들은... 제 정신이 드는지 머슥한 표정으 로 하나 둘 고개를 들어갔다. 이야기는 스릴감을 주지만 현실 은 공포감을 안겨주는 법이니까. "이제 문을 열어도 될까?" 싸움 소리가 멎자 바짝 굳어있던 클레이브가 동의를 구하 듯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난 고개를 가로 저어 보였다. 아직 움 직이지 않고 나무 위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자가 하나 남 아있었다. "아직 숨어서 노리고 있는 자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누군 가가 도련님께 독화살이라도 쏘면 곤란해요." 해독제랍시고 알 수 없는 약이라도 하나 들고 와서 거래 운운하면 골치 아프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건 밖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잖아." "아니요. 해독제를 따로 만들어서 거래할 만한 독약은 비싸 답니다. 강하면서도 효과가 즉시 나타나야 하고, 동시에... 순차 적으로 나타나야 하니까요. 한번에 죽어 버리는 그런 약은 쓸 수 없으니까요. 몸값을 보장할 수 없는 일개 기사를 인질로 잡 기에는.... 무리랍니다." "............무리라..." "....사람의 고귀한 생명의 무게도 황금 앞에서 탁상공론으로 변해버리곤 하니까요." 아마도 클레이브라면 기사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짐을 다 내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귀족 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깝게는 저기 다른 마차에 타고 있 는 셀레라가 그런 예다. "모두들 몸을 추스려라! 일단 자리를 옮긴다!" 루데릭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우렁찼다. 그는 과장된 활기찬 몸짓으로 손바닥을 펼쳐 한 기사의 등짝을 때렸다. 짝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피식 웃었다. 그는 어리석은 지휘관이 아니었 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있던 기사들은 각자 자신의 말을 찾았다. 혼전 중에 두 마리의 말이 죽었고, 한 마리의 말이 크 게 다쳤다. 죽은 두 사람의 기사들은 짐마차 한 구석에 일단 실었다. 르카인과 하르크... 금아의 활약 덕분에 마차를 끌고 있던 말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대단하군." 루데릭이 세 마부를 향해 만족스런 칭찬을 던졌다. 일행은 다시 느릿느릿 자리를 옮겨갔다. "상처부터 치료하고 이동하면 안되는 건가요?" 스테판이 걱정스러운 듯 연신 가리게 밖으로 눈동자를 굴 렸다. 크레이는 불안한 듯 의안 주위를 매만졌다. 볼 수 없는 눈이 원망스러운 듯...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다친... 분들이 많은가요?" "걱정하지 마. 르카인은 무사할꺼야. 네 아버지의 실력은 네 가 제일 믿고 있지 않니? 또...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는 크게 다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쉈다. 마차 안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아 직 보지는 못했지만... 가깝게 여행하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죽었다는 건... 위험한 길이기에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조 차 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두렵고 슬픈 일이었다. 마차는 해가 질 무렵까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한가지 다행 한 일이라면... 그 대단한 셀레라도 겁은 났는지 몇 번 짜증스 럽게 울부짖고서는 다시 투덜거리지 않았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고 일행은 다시 걸음을 멈췄다. 어제 밤 처럼 천막을 치지는 않았다. 기사들은 언제라도 다시 싸우고 경우에 따라서는 황급히 달아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마차에 묶인 말들이 작게 푸르릉거리며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적들은 치밀했다. 나흘간 따라오며 분석한 우리의 전력이 그들의 계산과 달 랐던 게... 행운이었고 동시에 불행이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 을 테지. 이번에 다시 온다면.. 분명 처음보다도 훨씬 더 치밀 하게 준비해서 공격할 것이다. 일대 일로 검을 맞대서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그 들은 이제 절대... 다시 처음처럼 공격해오지 않을 것이다. 그 게 이 좁은 협곡에서 뿌리내리고 생존해 온 산적들의 생존법 이었다. 숲 속의 진짜 주인들의 행차를 막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며 사람들은 침묵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처는 크지 않았다. 금아와 내가 주위 숲에서 모아온 약초 조금과 비상용으로 가 져온 알콜로 치료하고 흰 면 붕대로 단단히 묶었다. "그들은 또다시 덤벼올 겁니다." 루데릭이 입을 열었다. 모닥불 그림자가 붉게 너울거리며 루데릭의 얼굴에 그려진 단호함을 더 강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마차의 수를 줄여야 합니다. 이미 한 대의 파손이 너무 크 기도 했고... 산적들이 의외로 치밀합니다. 남은 여덟명으로 세 대의 마차를 지키는 건 무리입니다." "무슨 소리지?" 셀레라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지쳐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셀레라는 그녀의 가는 눈썹을 힘껏 일그러트렸다. "마차를 줄이다니? 그럼, 짐들은? 우리는 어떻게 타라는 거 야?!" "짐을 조금 줄이도록 하죠. 그리고 사람 마차를 한 대 줄이 는 겁니다. 하인과 하녀들은... 말을 타거나 걷고, 여러분들은 모두 한 대의 마차에 타 주십시오." "싫어요!" 셀레라가 고개를 돌렸지만 그 뿐이었다. 사실 셀레라보다는 클레이브가 더 싫었으면 싫었지 좋지는 않았을텐데. 마차 안에는 클레이브와 클로네, 셀레라.. 그리고 눈이 불편 한 크레이가 타기로 했다. 차라리 마부석에 앉겠다며 크레이는 고집을 부렸지만... 보이지 않는 몸에 적응하지도 못한 그를 위 험한 바깥에 둘 수는 없었다. 스테판은 금아의 마부석 옆자리 를 차지했다. 하르크는 몰던 마차를 버리고 르카인이 모는 마 차 옆자리를 맡았고, 나와 두 하녀는, 마차에서 떼어낸 말에 각자 몸을 싣기로 했다. 여차 하면 하녀 셋은 버리겠다는 계산 이겠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이 내가 버린다고 버려질 하녀인 가 말이다. 뭐... 모든 건 내일 아침해가 밝아봐야 아는 확실해질 일이 기는 하지만... 지켜야 할 마차 하나가 준 것만으로도 우린 훨 씬 빠른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클레이브의 마차는... 아주 특 별한 것이었으니까. 불침번은 나와 금아를 비롯한 하인들이 자청했다. 하루 종 일 마차를 탔으니 견딜만 하다는 우리의 말에 루데릭은 조금 은 불안한 얼굴로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의 기사들도 낮 의 격전과 연이어진 짜증으로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그들은 땅에 등을 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하르크와 르카인도 자 둬. 불침번은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 하니까." 눈치를 살피며 꼬박꼬박 졸고 있는 하르크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날 위 아래 훑더니만 결국 알밤 한 대를 맞고서야 바닥에 드러누웠 다. "...내일 아침은 되어야 의식을 차리겠군요."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며 금아는 설래설래 고개를 저었다. "어쩔겁니까? 르카인. 하르크처럼 재워 드릴까요, 아니면 알 아서 내일 아침까지 피로를 회복시키시겠어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암살자라는 이름을 벗자마자 촐싹거리기 시작한 하르크와 는 달리 르카인은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모포를 몸에 말고, 크레이가 잠들어있는 어린 주인의 마차에 시선을 곱게 던지고는 몸을 눕혔다. 처음 몇 일간은 날마다 가위눌리며 몸부림치던 크레이도 조금씩 악몽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남몰래 짓던 혼잣말 같 은 투덜거림도 사라졌다. 표정에서도 흐린 슬픔보다 기대감과 즐거움이 떠오르는 때가 아주 조금씩이지만 서서히 늘어갔다. 이 고단한 여행덕분일지도 모른다. 프란으로의 이 길을 떠 나고부터는 크레이는 단 한번도 가위눌리지 않고 깊게 잠들었 다. 아...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셀레라 덕분일지도 모르겠 다. 그녀의 히스테리는 주위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 다른 생각 을 할 여유를 조금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화내고 울부 짖으며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고 짜증내는 게 얼마나 추해 보 이는지를... 적나라하게 온 몸으로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크레 이의 한숨이 사라져간 건 셀레라와 함께 여행하기 시작한 이 후다. 비록 그 불행의 무게와 질이 다를 지라도, 착한 크레이 의 눈에 비친 한탄의 어리석음은 같았을지도 모른다. "클레이브와 스테판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내 시선을 따라 소년들이 잠든 마차를 바라보던 금아 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두꺼운 마차 벽을 두고 그도 세 소년들 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엇비슷한 외로움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하나같이 어 미를 잃었고, 나름대로의 힘든...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들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유별나게 조숙한 점을 빼고는 상 당히 털털한 편인 클레이브의 '희박한 신분의식'도 셋 사이의 벽을 급속도로 허물고 있었다. 자신의 하인과, 마부의 눈먼 아 들과 함께 마차를 타는 귀족이라... 운이라도 내가 주인 하나는 잘 골랐다니까. "...피곤하면 쉬고." "아니요. 이거면 충분합니다. 이런 정도로 피곤함을 느낄 단 계는 오래 전에 지났습니다. 저도..." 길게 기지개를 펴며 금아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난 셀레라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던데... 별게 다 익숙해지는 군." "아, 아니요. 그냥... 마차를 모는 피로감 같은 것 말입니다. 하! 저도 그 꼬마의 깨질 것 같은 목소리는...." 금아는 짧은 머리카락이 휘휘 날리도록 머리를 저어댔다. 대체 셀레라는 어쩌려고 저리 막무가네로 나가는지... 그녀도 바보는 아닐텐데. "쯧쯔."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하노베이 백작을 베어버린 일로 인 해 그녀는 가문 내에서 입지가 무척이나 약해진 듯 보였다. 보 진 않았지만 그녀의 큰 오래비가 권력을 잡는 대가로... 그녀를 프란에 인질로 보내는데 동의했겠지. 뻔한 이야기다. 권력을 잡을 때 제일 방해되는 것 중의 하나가 피를 나눈 형제일테니 까. 저 모자란 바보들에게는 말이다. 형제라... 내게도 그런 존 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로 귀한 것을 모르는 채 뜬 신기루같은 권력만 찾는 어리석은 자들... 달빛은 조용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잠시 운기하며 피로를 씻어낸 금아는 문득 한 곳으로 물끄럼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 서 말을 멈추자마자 파고 만든 커다란... 봉분에 나무를 두 쪽 내서 만든 비석이 둘 서로 의지하며 쓸쓸히 서 있었다. 죽은 이의 집이었다. "슬프군요." "무엇이?" 한동안을 바라보던 금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함께 여행하던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가볍게 느껴진다는 게 말입니다." "아아....." "우리가 나섰다면... 저들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더 많은 산적들이 죽었을지도 모르지." "그런... 겁니까?" "아니. 아니야. 사실은 나도 몰라. 하지만 한가지는 알지. 내 가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내가 아무리 강한 무력을 지니게 되 더라도, 설사 신이 될지라도...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을 다 막 을 수는 없다는 것." 금아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난 단지 내게 주어진 새로운 운명을 살아가려고 했을 뿐이 야. 너도 그렇고. 이 세상의 죽음이 반드시 나쁜 것인지 아닌 지... 나도 너도 모르지. 신들도 모르고..." 복잡한 이야기였다. 아아... 이런 추상적인 고민은 딱 질색인 데... 하지만 금아는 나름대로 와 닿는 바가 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겨들었다. "우리 눈으로...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의 무게가 그들의 죽음에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 뿐이야. 단지... 현재를 살아가는 것." 난 몸을 일으켰다. 멀찍이서부터 가까워지고 있는 기척이 있었다. "놈들인가요?" 금아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사람의 기척은 아니었다. 조금 더 흉폭하고 조금 더 순수하고... 조금 더 굶주린 그런 기척. "피냄새를 맡은 숲의 주인들인 것 같군."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골아 떨어진 일행의 모습이 가 련하게 눈에 밟혔다. 길다란 한숨이 입술을 타고 흘러 나왔다. 금아는 피식 웃으며 르카인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흔들었다. 한참 잠에 취해있던 그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 불침번을 대신해 주지 않겠나?" 금아가 조용히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 약속대로 매일 일주일간 삼연참을 채우려면... 으으.. 인터넷이 지금처럼 돌아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ㅠㅠ. 격려를! 자아! 지금부터 은빛은 여러분이 보내주셨던 격려를 먹으러 가겠습니다! (일주일을 삼연참한다라... 거의 책 한권 분량이군요. 쿨럭!) 아! 지금 막 리플들을 읽고 돌아왔습니다만... ㅡㅡ;;;; 전 두 주가 넘게 인터넷을 거의 하지 못했답니다... 이 곳에는 아예 못들어왔었죠. 제 이름 사칭하지 말아주세요..... 꼭 제가 거짓말 한것 같아(물론 약속은 어겼지만.. 삐질!) 좋지 않습니다.. ㅡㅡ;;;;;(이런 경우는 처음이라...ㅠㅠ)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22, Read : 2162, IP : 211.215.56.203 2002/08/23 Fri 00:41:29 → 2002/08/23 Fri 01:09:28 앗싸조쿠 댓글부터 쓰고 ㅁ ㅑㅎ ㅏㅎ ㅏㅎ ㅏ~ㅡ.ㅡ;; 이런내가 싫다..ㅜㅜ 다들 미안허요.. 조회수가 빵이라는 음화화화~ 앗.. 글이 넘뜨거워.. 열이 나온다..ㅡ.ㅡ다들 즐겁게 읽고.. 달콤한 꿈꾸세요~ 2002/08/23 앗싸조쿠 좋군..음흐흐흫흐~일주일간 매일 3연참..ㅡ.ㅡ 이왕이면 소설끝날때까지 3연참을.. 므하하하하하~ㅡ.ㅡ 내가 돌맞는거 아닌지몰라.. 2002/08/23 방가 ㅎㅎㅎ 칼 맞으실 각오는 하시고 돌아 오셧져 +_+ 지난 2주간 삼용넷 올때마다 혹시나 하는 기분에 검색하며 다녓는데 이제야 돌아 오시다니 후후후 약 속 안지킴 쌍칼 날아 감니다 PS. 재밋게 보고 있습니다. 또 오랜 시간 안올림 후후 판단에 맞기져 2002/08/23 빠나나 꺄아아아아~ 역시 재밌어요^^ 건필하시고..힘내세요! 2002/08/23 아그니 하하하~~~ 잘 돌아오셨어요~~~ㅇ 2002/08/23 dark 은빛님 싸랑해여... (*.*) *0* ^0^ 2002/08/23 zinoel 살아나셨도다~~ 2002/08/23 2002/08/23 아르타나 은빛님 사랑해여~~~ 갸~~아~~악~~(기절~~!) 2002/08/23 이즈 므흐흐흣~ 은빛님~!!! 감솨리~!!!! 어제(?) 아닛 오늘 소설 업뎃란에서 이거 올라와따는 글을 보고 올라올 글이 아닌데.....하면서.....ㅋㅋㅋ순간적으로 이해를 못했다는........ㅡㅡ;;; 2002/08/23 슈레이아 꺄아아아-! 은빛님, 사랑해요! 2002/08/23 moya`ㅡ` 은빛님_! 글 재밌어요.ㅠ_ㅠ 캬캬캬~ 완결 궁금 2002/08/23 베르디안 은빛님 3연참을 기대하고 있을께요. 열시미 쓰세요~ 화팅!~^^* 2002/08/23 세라자드 ^^ 광신도는 무섭군.... 2002/08/23 검은포효 ㅎㅎㅎ.....3연참이.....진실이기를....... 2002/08/23 하루 와아~ 힘내세요, 힘~!! ^___^ 2002/08/23 소설중독 짱아아아아아앙 이다. 2002/08/23 보보냥 ㅋㅋㅋㅋ님~!! 힘내세요~~!!ㅋㅋㅋㅋ 2002/08/23 보보냥 칼정도는 갈아 드리죠~~ㅋㅋㅋ 2002/08/23 니꼬치 넘재미옵땅 싸우는게나와야되는뎅~~~ -_- 2002/08/23 비아락테 -_-;;;;;; 은빛님, 죄송 ㅠㅠ 은빛님의 사정도 모르고...;; 2002/08/23 지옥숙녀 은빛님...건필!!]_ㅜd[지금 푸면서 감격하고 있어요;] 2002/08/24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79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6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7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2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4-산적 [[The Perfect MAID]]-44-산적 금아와 난 조심스레 숲 안쪽으로 발을 딛었다. 일행에서 조 금 멀어진 후 우린 나무 위쪽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경공을 써 빠른 속도로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졸트 산맥의 숲의 주인, 긴 털 늑대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조금씩 풍겨 나오던 피 냄새가 강해졌다. "수상해." "동감입니다." 너무 진하다. 달리는 피 냄새와 이동하는 늑대떼처럼 어울 리지 않는 건 드물다. 무리지어 사냥하는 늑대들의 흥분한 날 카로운 이 앞에서 이렇게까지 흥건히 피를 흩뿌리며 달아날 수 있는 동물이 있을까? 게다가 피 냄새의 움직임은... "의도적이군요." 그랬다. 피냄새는 마치 늑대 무리들을 이끌 듯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우리가 머물고 있던 야영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다가갈수록 기척들이 뚜렷해졌다. 흥분한 늑대들의 위쪽으 로 제법 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섞여 있었다. "산적들이 제법 머리를 쓰고 있는 것 같군요." 늑대는 귀중품을 노리지 않으니까. "제 아무리 간이 부은 놈들이라도 그 정도의 기사들을 호위 로 거느린 귀족을 정면으로 털 자신은 없었을 겁니다." 잘못했다가는 뜨거운 맛을 볼 수가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살아 돌아가거나, 우리의 실종이 문제가 된다면 그들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출동한 두 개 국가의 어머어마한 토벌대 와 직면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늑대떼들에게 당 한다면...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군대의 창끝은 산적들이 아니 라 늑대떼들에게 몰려질테니까. 아니, 어쩌면 숲을 침입하는 무력 그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 람의 실수도... 문제가 될 테니까. 무고한 기사들의 가문이 풍 비박살나는 선에서 모든 일은 해결될 수도 있다. "이거, 보통 내기들이 아니군요." "상당히 영리한 놈들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겨울 내내 주린 들짐승들까지 이용해 서 사람들 죽이려드는 자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늑대들과 사람들의 기척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허리춤의 검을 살짝 뽑아 보이며 금아가 눈짓을 보냈다. 웃 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금아의 얼굴은... 분노의 그림자에 살짝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난... 무고한 피를 보기 원하지 않았다. 오늘밤은 늑대 떼가 우리 일행을 공격하지 않게만 하면 된다 고 생각했다. "늑대들을 유인하고 있는 놈들만 처리하지. 이건 인간들의 싸움이니까... 아, 그 중 한 놈은 살려두고...." 금아의 몸이 빗살처럼 퉁겨져 나갔다. ****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루데릭은 설핏 잠이 깨 왔다. 몸을 구석구석 헤집고 조이는 것 같은 살기의 움직임이 그의 본능을 자극해댔다. 지난 나흘 내내 들어왔던 늑대 울음 소리였지만 오늘 것은 왠지 특별했다. "............." 그는 잠결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의식중에 란과 금아일 거라 생각했다. 몽롱한 가운데 그는 왜 자신이 하인과 하녀들에게 불침번을 맡겼을까 생각했다. 남작사건이 떠올랐 다. 슬쩍 들어올린 눈꺼풀 위로 달이 보였다. 보면 볼수록 란 은 독특한 하녀였다. 그는 란이 어쩌면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정도의 힘과 실력을 지닌 자가... 마스터의 힘을 지닌 자가 뭐가 아쉬워 하녀가 된 단 말인가. 사람이 잠결에 하는 생각은 믿을만한 게 못된다. 그는 모포를 조금 더 몸에 말았다. 잠이 설깨서인지 더 추 위가 덮쳐왔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루 데릭은 몸을 일으켰다. '음?' 르카인이 모닥불 가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폼을 보 아하니 지금 불침번 차례는 그인 듯 했다. 루데릭은 피식 웃었 다. 불침번 중에 잔 건 괘씸하지만 그가 깼으니 됐다 싶었다. 그는 기지개를 길게 폈다. 그리고 잠든 사람들을 하나 하나 확인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두 사람이 없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뭔가 이유가 있어 자리를 떴을 지도 모르지만 이건 너무나 위험한 짓이었다. 루데릭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위해 주먹을 틀어줬다. -삐익- 하늘 저편에서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울렸다. 불길한 예감! 루데릭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몸이 호각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파샤샤샤샤- 아직 채 새순이 자라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와 덤불들이 그 의 옷깃을 거칠게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모르게 어렴풋한 피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제발!' 무엇을 기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루데릭은 허리춤의 검을 꼬옥 틀어쥐었다. **** "저 놈들이... 또 문제를 일으키려 드는 군." 혀를 차대며 가볍게 가슴까지 두드리는 작은 그림자가 나 무 꼭대기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있었다. "쯧즈... 겨울 내내 숲의 양식들을 독차지했으면 됐지. 뭐가 그리 부족하다고..." 똑바로 떤 달빛 아래, 상처 입은 채 뭔가에 취한 듯 아픔조 차 느끼지 못하는 냥 거품을 물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말 한 필의 꽁무니를 따라 누런 이를 들어내고 달려가는 늑대들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말은 곧 늑대들에게 다리를 잡혔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한 필의 말이 쓰러졌다. 몇몇 늑대들이 사냥감에게로 몸을 던졌 다. 앞선 나무 위에 기다리고 있던 몇몇의 사람들이 짐승 피가 가득 든 푸대자루를 풀러 바닥으로 주르륵 부었다. 피비가 쏟 아졌다. 아래 매어져 있던 말의 온 몸에 비릿한 피냄새가 베어 갔다. 말을 단단히 붙들고 있던 고삐가 끊어졌다. 놀란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활을 든 몇몇 사람이 말의 진로를 유도했다. 흥분한 늑대들은 새로운 사냥감을 따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열기 오른 노란 눈들이 등불처럼 빛을 발했다. 겨울 내내 굶주 렸던 늑대들에게 오늘은 놓칠 수 없는 만찬의 기회였을 테니 까. "제길. 지들끼리 죽이고 날뛰는 건 상관이 없지만,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늑대족들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가을에 열렸던 그 풍성한 식량들을 작은 새 모이 하나 남 기지 않고 싹 쓸어갔던 자들이 이제는 숲의 가족들까지 이용 해 남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모습은 '그'에게는 정말 보기 역 겨운 장면이었다. 망각의 숲에서 제일 키가 큰 나무의 리리프 나무들은 그와 같은 덩치 작은 파수꾼들이 숨어 아래의 상황을 지켜보기에 딱 알맞았다. 두 주먹에 힘을 불끈 쥐어가며 그는 분노에 파르 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도, 그의 부족도 사 납고 성질 고약한 산적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살아갈 뿐이었 다. 그들과 정면으로 맞설 힘은 지니지 못했다. 단지... 억울함 을 누르며 바라보기만 할 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어라?" 조그만한 두 주먹으로 힘차게 눈을 비볐다. "저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새라고 보기에는 너무 큰 두 개의 그림자가 빛살처럼 늑대 들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디서 저런 그림자들을 본 적이 있더라?"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은 분위기와 속도를 바라보며, 키 작은 파수꾼은 연신 고개를 모로 꼬았다. **** "나누지." 금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몸의 방향을 틀었다. 그의 앞쪽으로 붉은 게거품을 물고 헐떡이는 말 한필이 애처 롭게 달리고 있었다. 벌써 수 차례 물린 듯 말은 엉덩이와 허 리 부근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불쌍하지만 살려줄 방법 이 없었다. 금아는 차분하게 검을 뽑았다. 은빛 빛줄기가 잠시 허공을 갈랐다 싶은 순간, 육중한 소리와 함께 말의 몸뚱아리 가 땅으로 처박혔다. "컹!컹컹컹컹!" 단발마도 없었다. 굶주린 늑대들이 앞다투어 말을 덮쳤다. -삑! 삐익- 짧고 길게 휘슬소리가 울렸다. 저 멀리 우리 야영지 부근에 가까운 방향에서 혈향이 진해졌다. "짐승피를 뿌려서 늑대를 유혹하는 모양이군." 금아는 지체하지 않고 피 냄새가 흘러나오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난 기척을 억누르고 늑대들의 한 가운데로 걸어나갔 다. 먹이에 취한 늑대들은 숲의 기로 완전히 포장한 날 알아보 지 못했다. "역시." 눈가가 일그러졌다. 혹시나 했었는데... 먹이를 잡은 늑대들 이 연이서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날뛰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 하다 싶었는데, 말의 피에서 이상한 향내가 났다. 일종의 흥분 제이거나... 뭐, 그런 종류겠지. 나는 늑대들이 찢어낸 말고기 한 조각을 조심스레 싸들었 다.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누구냐!" 금아가 달려간 방향에서 누군가 외쳤다. 아무래도 금아가 모습을 들어낸 모양이다. 난 재빨리 늑대 틈을 벗어나 근처 나 무위로 몸을 올렸다. 긴털늑대는 원래 판단이 분명한 종족이 다. 적이 될만한 상대와 아닌 상대를 본능적으로 금새 구분한 다. 평소라면 감히 늑대가 날 공격하지 못하겠지만, 오늘밤의 늑대는 이상했다. "적이다!" 금아의 살기가 요동쳤다. 산적들은 금새 소란스러워졌다. 나 는 커다랗게 솟은 나무 꼭대기로 몸을 뽑았다. 잎이 자라지 않 은 가지들 사이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역시나 나무 군 데군데 활과 칼을 찬 산적들이 썩은 열매마냥 매달려 있었다. "단지 굶주린 사람들일 뿐이었다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완전히 전문적으로 훈련받고 연구한 '꾼'들이었다. 이런 산적들이라면... 용서해 주고싶지 않다. "죽여라!" 발 아래쪽에 숨어있던 산적 하나가 커다란 활을 꺼내들었 다. 금아가 있을 법한 방향으로 시위가 당겨졌다. 날카로운 화 살촉 끝이 탁한 검은빛을 띄고 있었다. 독이었다. "감히!" 내 손에도 날을 들어낸 검이 모습을 들어냈다. **** "죽어랏!" 분노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쪽으로부터 들려왔 다. 금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로 활을 겨냥한 한 사람의 모습을 확인했다. 순간 금아의 몸이 산적의 시아로부터 사라졌 다. "뭐, 뭐야!" 급작스러운 수직운동을 잡아내지 못한 산적의 눈동자가 허 공을 헤집으며 당황하는 사이, 금아는 그의 머리 위편으로 몸 을 옮겼다. 한 줄기 검광이 번득였다. 산적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투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것이 오늘 밤 그들 을 저승으로 몰고 가려 했던 존재의 것임을 아는지 늑대들이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붉게 빛내며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르르르릉! 컹! 컹!- 겨울 내내 굶주린 늑대들의 강인한 턱뼈 아래 사람의 형체 는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연이어 떨어지는 먹이들에 더욱 흥분 해 버린 늑대들이 사방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삐익- 거의 동시에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늑대를 이용한 작전 이 꽤나 익숙했는지 산적들은 또 한자루의 피와 말을 앞쪽에 서 내달리게 했다. 늑대들은 연이은 인기척에 우왕좌왕 하면서 도 새로운 목표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한 순간 땅으로 떨어진 자의 말로를 바라보며 표정을 구기 고 있던 금아의 얼굴에 냉정이 돌아왔다. 금아의 차갑게 가라 앉은 눈에 분노가 선명히 그려졌다. "큭!"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또 하나의 주검이 나무 위에 걸려졌다. 금아의 몸이 다시 한번 위쪽으로 도약했다. 겁에 질 려 달아나고 있는 산적의 모습이 달빛아래 드러났다. "괴, 괴물!" 금아의 검이 뽑히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 역시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금아는 그의 몸이 땅에 부딪히는 것을 확 인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네 번째 산적을 찾아 몸을 날렸다. "흑!" 콧물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첫 번째 동료의 죽음을 발견하 는 동시에 두 번째 동료가 호각을 부는 순간 그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세 번째 동료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 다. "마, 마물이야! 사람이 아니야!" 그는 울부짖었다. 대항할 수 없는 공포감이 혈관을 타고 흐 르며 심장을 잡아먹을 듯 두드렸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날아와 순식간에 동료들의 명줄을 따는 금아는 그에게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마물보다도 더 두려운 괴물일 뿐이었다. "으.. 으흐흐흐흐흐...." 입술 사이로 공포에 가득 찬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뒤조차 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 어떻게 의식을 잃었는지 조차 모른 채 금아의 팔에 떨어졌다. 금아의 옆쪽으로 사람 키 오십 배정도 되는 거리의 한 나 무가지에서 한 사람이 엎드린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렴풋이 보인다.' 보이지도 않게 움직이던 목표물이 갑자기 멈춰섰다. 거리가 좀 멀기는 했지만 꾸욱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마물은 무슨 마물.' 먼 달빛에서도 남자가 입은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게 보인다. 게다가 저런 식으로 사람을 생포하는 건 사람뿐이다. 그의 '옛' 동료였던 남자가 축 늘어진 채 괴물의 팔에 안겨 있었다. 그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누가 맞던 간에 그의 화살은 오늘 공을 세우리라 생각했다. 그는 눈이 밝았다. 팔힘도 좋았다. 그는 달아나는 사냥물을 쏘아 맞추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가끔은 엄한 사람을 조준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타고난 산적이라 했다. 그는 그 말이 듣기가 좋았다. 나뭇잎을 썩인 독을 골고 루 바른 화살은 그가 애용하는 물건이었다. 잡아먹기 위해서는 독을 바르면 안됐지만, 그가 요즘 들어 즐기는 건 먹기 위한 활질이 아니었다. 그는 잡기 위해 활을 쐈다. 그가 있는 힘을 다 해 당긴 시위를 막 놓으려던 순간이었다. "감히!"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난데없이 들려온 젊 은 여자의 목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들고 활시 위의 방향을 바꿨다. "유, 유령!"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휘날렸다. 여자의 검 은 눈동자가 흰자위 위에 섬처럼 떠 있었다. '서, 설마 아닐꺼야! 벌써 이 숲에서 얼마를 살았는데! 유령 따위는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다리가 떨려왔다. 그의 풀린 방광에 서 지린 물이 조금씩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마른침을 삼 켰다. 살고 싶었다. "도, 도와줘!" 옆쪽 나무에서 동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정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차갑고 감정없 는 한 쌍의 검은 눈동자가 그를 옭좨고 있었다. "제, 제기랄! 유령따위가 어디있어!" 그는 재빠르게 시위를 놓았다. 그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유 령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화살이 유령의 양 손가락 사이에 빨 려들어가 듯 끼워졌다. 그는 황급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유령이다아아아아아아아!" **** "컹! 컹! 컹! 컹!" 흥분한 늑대들이 울부짖었다. 화살이 손가락에 잡히는 것을 본 놈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비명을 질러대며 무작정 나무에 서 뛰어내렸다. -쿵! 쿠드드드드드드드... 쾅!- 놈의 육중한 몸을 견디지 못한 나무가지들이 연이어 부러 져나갔다. 놈은 땅으로 추락했다. 그 와중에 바닥에 흩어진 말 고기를 뜯고 있던 늑대 몇 마리가 운 나쁘게 깔렸다. 그의 몸 뚱아리를 적으로 간주한 늑대들이 그에게로 날카로운 이를 들 어냈다. ".............좋은 장면은 아니군." 기절한 듯 축 늘어진 산적은 금새 늑대들의 이에 갈갈이 찢겨졌다. "한 놈은 생포했습니다만..." 금아가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무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진동에 깨어난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밤의 시간에 사냥감을 찾아 헤매던 작은 동물들과 보금자리에 몸을 쉬고 있던 다람쥐, 작은 벌레들까지... 숲은 온통 소란스러웠다. 먹이를 대 주던 산적들이 사라졌음에도 사 방에서 들려오는 늑대소리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저 정도 까지 다가갔다면... 아마도 사람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곤히 잠들었던 일행들도 슬슬 잠에서 깨어 있겠지. 문제는 이미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적당히 수습될만한 문제가 아니군." 단단히 각오들을 하고 몰려왔는지 이 쪽으로 몰려드는 산 적들의 인기척도... 만만치 않았다. "후......" "상당히 치밀하고 잘 짜여진... 놈들이로군요." "하르크와 르카인이 잘 하고 있으려나 모르겠군." 난 루데릭 따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 "헉!" 비명을 질러 볼 여유조차 없었다. 갑자기 새까맣게 몰려든 늑대들의 누렇고 커다란 이 앞에서 루데릭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아 있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루데릭이 늑대들을 만난 건 야영지를 벗어나 얼마 달리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미친 듯 달리는 말 한필의 뒤를 따라 늑대 들이 미친 듯 달려오고 있었다. 루데릭은 순간 숨을 멎었다. 질주하는 맹수들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건... 아직까지 단 한번 도 실제 전장에 서 본적이 없는 젊은 기사에게는 감당하기 힘 든 충격이었다. -컹! 컹! 컹! 컹!- 늑대들은 그를 발견한 듯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말은 곧 늑 대들의 날카로운 이에 쓰러졌다. 선두를 달려오던 늑대 몇 마 리가 말의 몸뚱아리 위로 떨어져 내렸고... "으아아아아!" 그 뒤를 따라 달려오던 몇 마리가 루데릭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 거야!" 루데릭은 정신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날카롭고 커다란 이를 들어낸 긴털 늑대는 거친 숨을 내뿜으면서도 가볍게 몸을 날 려 루데릭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 인터넷이 여전히 불안정하네요... 흠. 아침에는 접속이 됐다가, 또 안됐다가... 지금 되길래 냉큼 올립니다. 으으으... PC라니... 오랫동안 맥킨토시만을 써 왔기 때문인지... windows는 어딘가 어색하네요. 하드웨어 관리도 힘들고... 한번 안될 때 마다 모든 장비를 모조리 한번씩 껏다 켜 보며... (어디가 잘못되어서 안되는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고민하는 은빛이랍니다.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8, Read : 1916, IP : 211.215.58.45 2002/08/23 Fri 16:10:57 혼섬 잼있따 ㅎㅎㅎㅎㅎㅎ 2002/08/23 청룡아 푸헤헤헷 이등이네요..넘 잼있어요 2002/08/23 희팅이 님으로 인해 제가 행복해지는거 아세요? 계속 부탁드려요 2002/08/23 세라자드 오예~ 컴터켤맛난담~~ 4타수 는 명타수쥐`~ ㅋㅋ 2002/08/23 나쯔히메 오호홋~ 연참 연참...^----------^ 2002/08/23 아르타나 6타~~오~~오~~오~~잼~~잼~~재미있어여~~ 2002/08/24 티쨩 루데릭..기억ㅇㅣ 안나....누구지..-_-;;;;으어어어;;; 2002/08/24 지옥숙녀 은빛님..힘내요!! 힘내!! 언젠가는 윈도우도 능숙하게 쓰실 수 있을 거예요!!]_[ 2002/08/24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79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6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6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5-야습 [[The Perfect MAID]]-45-야습 타닥거리는 소리가 유난히도 작게 들려왔다. 깨어버린 숲의 소란스러움이 벌써 밤의 정적을 깨뜨린 지 오래였다. 문득 잠 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보던 르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잠들었었나...' 아무래도 누적된 피로감에 덧붙여진 낮의 피로감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았나 보다. 르카인은 살짝 몸을 풀었다. 우드득 소 리가 나며 추위에 굳어졌던 근육들이 가볍게 풀렸다. 르카인은 옆에 누워있던...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절해 있던 하르크 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예상과는 달리 하르크는 르카인의 손이 닿자마자 슬쩍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일어나게." "이미 깨 있었수." 오싹오싹한 감각이 두 전직 암살자의 온 몸에 흐르고 있는 피를 깨웠다. 살기. '어마어마하군.' 마치 전쟁터를 연상하게 만드는 그런... 기운이 숲 전체를 감돌았다. "어라? 란님과... 다른 사람들은?" "낌새를 채셨겠지. 우리보다 뛰어난 분들이시니까."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세 개의 빈자리를 발견한 하르크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데릭이란 애송이도?" "글세...." 르카인은 슬쩍 어깨를 들어 보였다. "내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지. 아무래도... 긴털 늑대들이 봄 사냥을 시작한 것 같은데..." "쳇. 만에 하나라도 이 쪽으로 올 것 같으면 신호를 보내슈. 뭐, 와 보기도 전에.. 슬그머니 자리를 떠난 두 분의 손에 다 죽어나가겠지만."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말은 툴툴거리면서도 확실히 잠을 털어버린 눈빛으로 자세 를 고쳐 앉는 하르크를 향해 르카인은 엷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아들이 잠든 마차를 향해 다시 한번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어 보이고 르카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을 향해 걸음을 뗐다. 아니, 막 떼려던 순간이었다. -팍!- 가벼운 소음과 함께 무언가가 르카인의 볼을 스치고 지나 갔다. "뭐, 뭐야!" 하르크의 몸이 튕기듯 일으켜 세워졌다. 르카인의 몸이 비 틀 했다. 찢어질 듯 커다랗게 떠진 눈에 불신의 기색이 가득 담겨있었다. 르카인의 다리가 살짝 풀리며 그의 몸이 휘청였 다. 순식간에 균형 감각이 흩어지며 의식이 흐릿해져갔다. ".......독...?" 맹독이었다. '누가? 어... 어떻게?' 르카인은 몸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 다. 위험하다는 감각이 온 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무리 독에 대한 내성을 길러왔다고는 하지만... 한계는 분명 있었다.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을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줄기 붉은 핏줄이 입술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낮에 그들을 습격했던 산적들의 모습이 르카인의 머릿속을 설핏 스치고 지나갔다. 당 황한 얼굴로 검을 뽑아들고 한 르카인의 앞을 가로막은 채 서 있는 하르크의 뒷 그림자가 흐릿하게 르카인의 눈에 새겨졌다. 그리고... 감겼다. "제, 젠장! 눈떠요! 독화살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허 무하게 쓰러지면 나보러 어쩌란 말이야! 젠장! 독 훈련도 안받 고 일했수? 정신 차리라니까!" "뭐... 뭐야?" 비통하게 외치는 하르크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자라났다. 부스스스 잠이 깨는 듯 기사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켰다. -팍!- 새까맣게 칠을 해 날조차 반짝이지 않는 몇 대의 화살이 보이지도 않게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왔다. 요란한 불꽃을 흩날 리며 모닥불이 흩어졌다. 불꽃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바 짝 말라있던 초봄의 풀들과 땅에 묵어있던 낙엽들은 금새 흰 연기를 모락모락 뿜기 시작했다. "습격이닷!" 적의 공격을 본 기사들의 몸놀림이 빠릿해졌다. 그런 그들 의 앞으로... -컹! 컹! 컹! 컹! 컹!- 피와 약물에 취한 늑대들의 무리가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짝 긴장한 기사들과 선잠에서 깨어 영문을 모른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서히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 워지고 있었다. **** '어차피 저 늑대들도 눈의 가시였어.' 또 하나의 화살을 시위에 매기며 나무 위의 산적은 눈가를 살며시 좁혔다. 산적들의 작전은 치밀했다. 몇 년 전 있었던 프란의 부족 통합 전쟁에서 패한 장수 하나가 작년에 이 산의 산적으로 투신한 건 그들에게는 크나큰 횡재였다. 그는 효과적 인 독화살 만드는 법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전술, 경우에 따 른 상황 전개방법... 그리고 기척을 지우는 마법사들의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산의 다른 주인들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많 은 것들을 산적들에게 가르쳤다. 덕분에 그를 받아들인 이후로 졸트 산맥의 다른 수많은 산적들 중에서도 그들은 가장 안전 한 방법으로 누구보다도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늑대를 이용한 전법을 들킨 건 그로서도 놀랄 일이었다. 몇 번 이용해 보지는 못했지만 산적으로 태어나 산적으로 자란 그조차도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획기적인 방법이었으니 까. 그랬기에 어리버리 해 보이는 마부와 하녀가 어슬렁거리며 야영지를 벗어날 때도, 그들이 순식간에 그의 시아에서 사라졌 을 때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게 화근이었을지 모른다. 어찌어찌 해서 늑대들은 이 곳으로 예정처럼 몰려오고 있었지만... 이렇게 됐다면 이미 기습은 실패했다고 봐야 했다. '두번째 작전이라...' 이미 실패했다면 굳이 늑대들과의 혼전을 노려 저격할 필 요가 없었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 화살에 두려움을 떨게 만드 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을 세우고 싶었다. 이제 곧 산적들의 주력부대가 달려온다. 늘 커다란 공은 그 들의 차지였다. 늑대들이 한바탕 휩쓸고 난 이후에 뒤처리나 하는 그들이 늘 주역인 점이 그와 같은 기습부대를 맡은 산적 들은 늘 불만이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라!" "도련님! 나오지 마십시오! 아가씨들도 꼼짝하지 마시고!" 삐걱 열리는 마차 문을 거칠게 다시 밀어 닫으며 기사 하 나가 외쳤다. "걱정하지 마. 모두 무사할꺼야." 안절부절못하며 연신 바깥쪽으로 신경을 돌리는 크레이의 손을 잡으며 클레이브는 낮게 속삭였다. "르카인 아저씨는 강한 분이시니까." 스테판이 강하게 말했다. 세 소년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또다시 밀려오기 시작한 습격과 어둠의 공포에 저항해 나갔다. "꺄아아아아아!" 공포조차 질려 달아날 정도로 신경질적인 셀레라의 비명소 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말이다. '클로네가 무사할지 모르겠어....' **** "이 쪽은 내가 맡는다. 저 쪽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아의 신형이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우리 쪽 방향이 소란스러워짐을 그도 느낀 듯 했 다. 이미 다 깨서 준비하고 있겠지. 아니 그래야만 할텐데... 산 적들이라고 너무 얕봤다. 백여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치밀 한 산적은 없었었는데... "마치 군대같군." 검게 칠해 빛을 감춘 검들을 뽑아들고, 수 십 명의 사람들 이 달려가고 있었다. 검은 옷과 검은 망토, 그리고... 칠이라도 한 듯 검은 말들. 대장인 듯 보이는 사내와 그 뒤를 질서정연 하게 따르는 산적들의 모습은 야습을 위해 전문적으로 육성된 군대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긴, 늑대를 이용하는 방법 이라든가... 다른 면들도 그랬다. 금아를 노리던 산적의 화살촉 도 검게 칠해져있었으니까. 보통의 어리숙한 산적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치밀함이었다. 낮에 잠시 옅봤던 치밀함과는 또 차 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건 보통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일 뿐. "너희는 오늘 이 길을 지나가지 못한다."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차라리 어리숙한 산적이었다면 목숨은 건졌을 것을..." 피가 끓어올랐다. 전장의 향기가 물씬 풍겨져 오는 그들을... 모든 살인과 약탈이 정당화되는 그 어리석은 공간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그들을 난 적당히 넘길 수 없었다. 그건 내 방식 이 아니었으니까. 전쟁은 싸움이 아니었다. "멈춰랏!" 마나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우렁차게 숲의 소음들을 깨트 리며 울려 퍼졌다. "히히히히히힝!" 마나에 섞인 살기에 놀란 말들이 주인의 손길을 거부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누구냐!" 순식간에 말을 제압하고 우뚝 선 맨 앞의 남자가 거무튀튀 한 살기를 담아 외쳤다. 아직도 채 말을 진정시키지 못해 날뛰 는 부하의 말을 일 검에 베어버리고... 그는 말에서 내려 땅을 밟았다. 왠지 용병의 냄새가 나는 자였다. "나다." 난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길게 흩날리는 머리카락 때문이었 을까? 그의 눈에서 놀람의 기색이 스쳐갔다. 그리고 잠시... "뭐야? 여자 아냐?" 비웃음과 실망이 가득 담긴 그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귓가 를 스쳐갔다. "유언치고는... 유치하군." 불쾌감. 순간적으로 분노를 능가하는 무언가가 가슴에 걸려 왔다. 오십여 명의 산적들의 얼굴에 조롱이 떠올랐다. 그들은 여유 만만한 태도로 검을 한번 휘둘러 보였다. "겁나지? 당장 검을 버리고 포로가 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어." 사방으로 뻣치는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자가 덩치에 어울리게 무식한 도를 들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와 거 의 동시에 대장으로 보이던 자가 자신의 말고삐를 잡아채고 가볍게 말 등으로 몸을 날렸다. "적당히 해치우고 와라. 우린 먼저 간다."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조금 전 저들의 반응에 순간이나 마 발끈 했던 게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풋!" "웃어?" 산적들의 얼굴이 볼만하게 일그러졌다. 난 어깨를 가볍게 풀었다. 아아.. 삼백 년.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 왔던가! 만일 내게 힘이 있다면 절 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며 얼마나 많이 외쳤었던가! 오랜만의 향수 같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지금의 내게는 힘이 있었다. "멈추라고 말했지?" 몸 안에 응축되어 있던 마나가 분노의 바람을 타고 폭풍처 럼 터져 나갔다. "히 히이이이이잉!" 말들이 다시금 앞발을 높이 곧추세우고 날뛰기 시작했다. **** "맙소사!" 커다란 리리프 나무 위에 바짝 엎드린 채 상황을 주시하던 그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놀람을 참을 수 없었다. 놀랄 수 밖 에 없었다. 어딘가 익숙하게만 느껴졌던 그림자의 정체가 흐릿 한 달빛 아래 드러났을 때, 그녀가 단신으로 산적들의 앞을 가 로막았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검이 흐릿한 빛을 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순간, 산적들의 맨 앞에 서 있 던 자가 말과 함께 두 동강나며 폭발하듯 부서져 바닥에 뒹글 었을 때 그는 무릎을 쳤다. "인간 주제에 질기게도 오래 사는 놈이!" 헤벌쭉 벌어진 입이 귀 끝에 가 걸렸다. "저, 저놈이 왜 또 여기에!" 반짝이는 한 쌍의 눈망울에 두려움과 공포가 어려갔다. 그 와 동시에... 그런 감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또 하나의 빛 이 그의 얼굴에 어렸다. "다신 오지 않는다던 놈이 왠일이야!" 반가움이었다. "우아아아아아!" 나무 아래쪽은 벌써 시끄러운 비명 소리들로 가득 찼다. 벌 써 십여명의 산적이 단칼에 두 동강났다. "마, 마스터가! 마스터가! 어떻게! 여자 마스터라니!" 한계를 넘은 공포감에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산적 들의 입가에 진득한 침과 함께 경악의 비명소리가 연이어 터 져 나왔다. "으, 으아아아아악!" 나름대로 훈련을 받았다 한들 일개 산적들이 마스터급의 검을 익힌 자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들도 잘 알고 있었 다. 최초의 빛이 검에서 떠오르고, 그녀에게 비웃음을 던지며 도를 휘둘렀던 산적 하나가 검 채로 두동강이 나자 산적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벌써 검을 집어던진 채 달아나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괴, 괴물이야! 마물이닷!" 뭔가에 홀린 듯 벌벌 떨고 있던 산적 하나가 미친 듯이 검 을 휘두르며 무작정 그녀에게로 덤벼들었다. "쯧... 차라리 그냥 엎어져있지." 리리프 나무 위의 그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녀는.... 이 전 에도 그랬듯이 '검을 들고 달려드는 자'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일부러 보여주려는 듯 천천히 휘둘러진 검이 산적의 검채로 베어나갔다. "으... 으으으으으으...." 그녀의 검에서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던 빛이 멈추지 않 고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감히 검을 들 이대는 자는 없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달아나려던 자들도 그녀의 시선이 한번 스치자마자 얼어붙은 듯 자리에 주저앉았 다. "모, 목숨만... 살려주시면..."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앞쪽으로 기어 나왔다. 언제 흘렸는 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을 만든 얼굴에는 두려움과 비굴함이 한껏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흔들렸다. "....산적은 산적일 뿐이군...." 낮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는 조금의 실망감과 허탈감이 섞여 있었다. "픽!" 갑자기 그녀가 웃었다. 순식간에 닥친 공포에 검 한번 제대 로 들어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산적들의 몸이 흠짓 튕 겨졌다. "나도 노도에게 전염된 듯 하군." 알지못할 소리를 지껄이며 그녀는 검을 조용히 허리에 다 시 꽂았다. 감히 긴장을 풀지 못한 산적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활짝 웃어 보였 다. 산적들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그녀 가 검을 들고 빛줄기를 길게 뽑아낼 때보다도 더 한 공포감이 그들을 휘감고 있었다. "자아... 갱생시간이다." 주먹을 쥐어 보이며 우드득 소리를 내며 그녀는 고개를 살 짝 꺽어 보였다. 산적들의 눈가에 의심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분명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아무리 마스터라지만... 여자인데... 검을 꽂았으니.. 혹시?' "멍청한 놈들. 마나의 기술이 그렇게 한정되게만 쓰이는 거 라 믿다니..." 아예 턱까지 고인 채 느긋한 표정으로 땅을 내려다보며 리 리프 나무 위의 그는 빙긋 웃었다. 앞으로 펼쳐질 산적들의 미 래에 조금의 동정과 고소함을 곰씹으며 말이다. "꾸에에에에에엑!"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차, 차라리 죽이란 말이다!" "시끄럽다! 그 심보 뜯어고치지 못해? 착하게 살꺼야 말꺼 야!" "괴, 괴물이야아아아아아!" 보란 듯이 주위의 나무와 돌들을 퍽퍽 부숴가며 그녀는 조 그만 주먹을 참 거칠게도 휘두르고 있었다. "쩝. 패려면 인간이나 패지... 불쌍한 나무들은 왜 또 부러트 리고 지랄이야. 지랄이...." 불만에 가득한 어투로 리리프 나무 위의 그는 연신 한숨을 터트렸다. "지랄?" "헉!" 그리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귀에 익숙한 목소 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 것처럼 다가왔다. "들린... 건가?" 바로 아래에 한 손으로는 산적의 멱살을 쥐고 다른 산 손 으로는 죽지 않을 자리만 보란 듯이 차곡 차곡 패고 있는 한 여인이 고개를 반짝 들어 그를 향해 싱긋 미소지어 보이고 있 었다. "제, 젠장할... 저게 어떤 괴물인지 잊었었군." 이미 벌써 다 알고 있던 게다. 분명히... 그녀는 그런 존재였 다. 종족을 초월한 'Lord'...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는 어느 새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작게 중얼거렸 다. 그 마저도 들은 듯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체념한 듯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래, 내가 졌다." 땅 아래 오십여 명의 산적들이 차갑게 누워 있었다. 반은 죽고... 반은 살아있는 상태로. 그 위에 홀로 서 있는 여인은 허리춤에 손을 반짝 올리고 상큼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래, 앞으로 착하게 살꺼야 말꺼야?" "...................." "호오? 대답이 없다? 사람 잘못 봤어. 그렇게 개긴다고 내 가 편히 죽여줄 것 같나? 노도가 그랬지. 죄는 죽어서보다 살 아서 씻어야만 한다고. 속죄는 평생 이어지는 거라고 말이야." "............." 죽지도 못한 채 땅에 널부러진 산적들은 얼굴도 정체도 모 르는 노도라는 자를 죽도록 원망해야만 했다. "이 놈들이! 내 말이 안들려?!" "..............." 뭍매로 기력을 잃어 채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열심히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말이다.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그런데... "어라? 저건 뭐지?" 한참을 땅 구경에만 신경 쓰던 리리프 나무 위의 그에게 매캐한 나는 냄새와 함께 뭔가 희끄무레한 연기가 포착됐다. 그의 이맛살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남아있 던 장난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숲은 그들의 보물이자 그 무 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다. "........불인가? 인간들의 잠자리 근처인데?" 나무 아래 열심히 손발을 놀리던 그녀의 움직임이 딱 멎었 다. 이가 절로 부딪힐 정도의 살기가 순식간에 그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다음 순간, 그는 낯익은 뒷모습이 그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헉!" "젠장. 독랄한 놈들 같으니..." 재회를 반가워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 오늘의 두번째랍니다.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5, Read : 1947, IP : 211.215.58.45 2002/08/23 Fri 16:11:08 와~~ 열쉬미 쓰세요....... 2002/08/23 청룡아 우와 또 이등이다...열심히 쓰세요 2002/08/23 눈이 ^^* 2002/08/23 moya`ㅡ` +ㅁ+ 건필하세요_! 있다가 멜 또 보낼게요.ㅋㅋㅋ 2002/08/23 지옥숙녀 은빛님~! 힘내세요~! 오늘도 재미있었어요~!!! 2002/08/24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79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6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7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6-야습 [[The Perfect MAID]]-46-야습 '늦은 건가?'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야영지에서 검 부딪히는 소리와 늑대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금아는 입술을 악물었다. 너 무 경솔했다. 적어도 그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뭔지 모를 불길함이 그의 가슴을 옭좨였다. "막아랏! 마차를 지켜!" 기사들의 고함소리! "으아아아아아!" 그 답지 않게 광분한 하르크의 목소리가 금아의 마음에 걸 렸다. 요즘 들어 푼수끼를 유난히도 많이 들어내고 있었지만 그건 란을 비롯한 그들 앞에서의 모습일 뿐이었다. 금아도 란 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비겁한 놈들! 화살이 다 떨어졌냐! 당장 나타나지 못 해!" 하르크가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금아는 달렸다. 몇 마 리의 뒤쳐진 늑대들과, 말의 고기를 뜯고 있던 늑대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이를 들어냈지만 금아는 굳이 그들을 상대하지 않 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마차 한 대가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금아의 눈이 차갑게 빛을 발했다. 낯선 얼굴이 클레이브의 마차고삐를 잡고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공은 내 것이야!' 산적들에게 중요한 건 마차와 재물이지 기사들의 목숨이 아니었다. 본래 산적들의 일은 도둑질이지 기사와의 전투가 아 니었다. 비상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몇 대의 독화살이 다 떨어 졌다. 그 중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건 처음의 한 개 뿐. 나무 로 번저가는 불길의 와중에 제대로 표정을 맞추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무슨 생각들인지 기사들은 그의 화살로 뚫기 힘든 사 슬 갑옷들을 모조리 걸친 채 자고 있었다. 그들의 기습은 사실 상 실패했다. 처음 몇발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던 검게 칠한 화살들도 엉 뚱한데 써야 했다. 어찌 된 일행들인지... 낮에 봤을 때는 분명 마부일 뿐이었던 자의 실력은 무시무시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리석게 날뛰는 것 같으면서도 그의 모습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를 겨냥해 화살을 노렸던 동료들의 목숨은 하나씩 정확하게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기척을 지워 주는 마법 도구도 살기까지는 지워주지 못했다. 어리숙했던 마 부는 마치 암살과 잠입에 능한... 자 같았다. '말로만 듣던 귀족가의 그림자일 지도 몰라.' 그림자를 거느리고 다닐 정도의 귀족이라면 뒤처리가 귀찮 아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의 소관은 아니었다. 어차피 야습은 계획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이 실패한 야습을 되돌릴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뽑을 수 있었다. 그게 지금 그가 몰고 있는 마차였다. 그는 희미하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비켜랏!" "감히!" 누군가가 그 쪽으로 다가온다고 느꼈을 때 즈음 그의 몸은 외마디 비명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두동강 나 있었다. "멈춰라! 워! 워!" 산적을 베어버린 금아는 재빠르게 마부석으로 올라타 마차 의 고삐를 가로챘다. 말들은 그의 손놀림과 목소리를 기억했 다. 마차는 휘청거리면서도 용쾌 넘어지지 않고 자리에 멈춰섰 다. 금아가 재빨리 마부석에서 내렸다. "문은 열지 마세요. 다들 괜찮습니까?"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산적들이나 늑대들이 당장 따라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밤의 숲은 위험했다. "......금아 아저씨?" 겁에 질린 듯 간신히 쥐어 짜낸 목소리가 가늘게 금아에게 들려왔다. 열릴 듯 마차 문의 고리가 움직였다. 금아는 문고리 를 반대로 돌리며 다시 한번 문을 열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 차 안은 잠시 침묵했다. 금아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당장 이라도 싸우고 있을 자들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클레이브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곳에 버려 두고 갈 수 도... 없었다. "괜찮습니다. 이제 안전합니다." 금아는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기다린다면 란이 돌아온다. 란의 실력이라면 그 깟 산적 수 십명쯤 상대가 될 리가 없었 다. 그는 다급한 가슴을 다스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 아저씨! 우리 아버지는요? 아버지는요?" 크레이가 마부석 쪽의 창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금아는 가 슴 한 구석이 서늘해져 옴을 느꼈다. 이성을 잃고 미친 듯 날 뛰는 하르크, 겁에 질린 크레이... 뭔가 불길한 퍼즐이라도 맞 춰 가는 그런 감각이었다. "괜찮단다. 그는 뛰어난 사람이야. 쉽게 죽을 리 없는 사람 이란다." 금아는 애써 미소지었다. **** "이런! 빌어먹을!" 후회와 자책! 마치 군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정신 을 바짝 조여야 했다. 내 실수였다. 단지 방관하는 입장으로 보는 것과... 내 실책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건 전혀 다르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이리도 거추장스러울 수가 없었다. 검을 뽑아 눈앞을 가로막은 나무 가지들을 모조리 베어내며 난 몸을 길게 앞으로 뽑았다. "야! 이 망할 파괴자 같으니!" "시끄러! 넌 불이나 끌 생각하라고!" 뒤쪽에서 키 작은 수호자가 길길이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 다. 빌어먹을! "란님!" 금아의 목소리가 닿았다. 바로 아래쪽에 클레이브의 마차와 함께 서 있었다. 상황이 그려진 듯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내가 간다!" 꽉 틀어진 주먹에 미끈한 무언가가 흘러갔다. 손톱이 파고 들어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 눈앞에 바로... 불길에 사로잡혀 날뛰고 있는 늑대들과, 말들과, 엉켜 싸우고 있는 내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젠장!" **** 불길은 잘도 타올랐다. 하르크는 이를 악물었다. 나무 위에 숨어있던 열 명 정도의 산적들을 베느라고 그의 몸도 엉망이 었다. 그들의 기척을 찾아내기 이해 일부러 화살을 유인했으 니... 무사할 리가 없었다. 나뭇가지에 스친 상처들과 화살에 스친 상처들에서 줄줄이 피가 흘러나왔다. "크흑!" 하르크는 검을 다시 곧추세웠다.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 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엄습해왔다. 그는 참담한 얼굴로 마차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몸을 낮추고 이를 한껏 들어낸 늑대들 이 조용히 으르렁거리며 하르크의 빈틈을 찾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마차 안쪽에서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는 클로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들은 모조리 죽고 달아났다. 의식이 남아있는 기사는 모두 셋. 하르크를 도와 마차를 지키고 서 있었다. 마 차 안에는 클로네와 셀레라를 비롯해... 살아남은 한 명의 하녀 와 르카인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비좁게 마부 따위의 시체는 뭐하러 끌고 들어와서!" 노골적으로 투덜거리는 셀레라를 무시하고 르카인의 축 늘 어진 몸을 마차 안으로 끌고 들어오게 한 건 클로네였다. "아직 숨은 남아있습니다." "흥! 마부 따위!" "그 마부에 의해 우리가 지금 지켜지고 있는 것을 모르시겠 습니까?" 클로네의 언성이 높아졌다. 조근조근 설명하던 클로네의 목 소리에는 어느 새 차가운 서릿발같은 살기가 베어 있었다. 셀 레라는 입을 다물었다. "품위란... 인간의 도리를 아는 데서 더해지는 거랍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창문 밖을 통해 어른거리는 불길과 늑대들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클로네는 긴 한숨을 내쉈다. '제발....' **** 긴털 늑대들과 불길로 둘러싸인 마차가 보였다. 마차 밖에 서 있는 세 사람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한 놈은 하르크, 다 른 둘은... 낯익은 기사들이었다. "조금만 더!" 늑대들이 몸을 날리고 있었다. 하르크가 휘청거리며 간신히 이를 피해내며 그에게 덤벼들었던 늑대의 배에 단도를 찔러넣 었다. 그러나 나머지 기사 둘에게... 육중한 몸을 지닌 긴털 늑 대를 더 이상 막아내는 건 무리였다. 그들은 늑대들의 체중에 밀려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대항하던 적이 쓰러지자 마자 늑 대들은 동시 다발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감히!" 더 이상 늦지 않게 달려온 내 검이 뿜어낸 길다란 빛에 의 해 두 동강 나며 붉은 피를 흩뿌렸다. "란님!" 쓰러지는 잿더미와 화염을 담은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하르크가 갈라진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왜.... 왜, 왜!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할 말이 없었다. ***** .............저도...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30, Read : 2336, IP : 211.215.58.45 2002/08/23 Fri 16:11:19 와~~ 잼떠여......열쉬미 쓰세요^^ 2002/08/23 오크 연참하시길.. 2002/08/23 혼섬 아 잼있어라 ㅎㅎㅎㅎㅎ연참 계속해주세요 은빛님 홧팅~! 2002/08/23 fkd 왜이리 늦으셨나요... 기다리다 목이 빠지길 몇번인지.. 연참 기대 하겠습니다. - - + 2002/08/23 희팅이 계속 된 행복... 아이 좋아라*^^* 2002/08/23 쿠룩쿠룩 작가님 멋지십니다.. 큭큭 오래기다림뒤에오는 이 연참의 맛이란 달콤합니다. 창파기2도 올려주셤.... 성실연재작가 은빛님.. 당신의 연참을 사랑합니다. 2002/08/23 쳇~ 군데 3연참이면 하루에 몇개 올라오는거죠? 오늘, 그것도 지금까지 6편 올라왔네요...혹시 하루에 3편씩 9편 올리는 건가요? 그런건가? ㅡㅡa 2002/08/23 마야 넘 잼있떠여~~ ]_[ 아웅~~~ 님아~ 홧팅!! 아자~~~ 넘 져아여.. 연참.. *^^* 2002/08/23 휘긴교도 왜.... 왜, 왜!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할 말이 없었다. ***** .............저도... 이부분이 가장 인상적이군요 ^^;; 2002/08/23 휘긴교도 으음...칸 띄어 쓰기가...안되는군요.. 2002/08/23 lpbk 으아아. 그래도 앞쪽이네요. 일주일이라고 하셨으면서 안 돌아오셔서 얼마나 원.망.했는지.클클클...다음부턴...연.참...아시죠?(싱긋)그럼 열심히 쓰세요♡ 2002/08/23 우헤 `왜.... 왜, 왜!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저 피맺힌 외침...ㅋㅋㅋㅋㅋ 2002/08/23 Elina 연참약속을 하셧으니.. 기왕 쉬신김에 푹 쉬시라는 취지에서 보내드리려고 제작중이던약품들 그냥 창고에 박아둬야겟군요^^ 뭐 만들긴 거의다 만들었으니... 다음에도 이런일이있으면 은빛님집으로 소포하나 갈지도.... 으음 재료비만 10여만원 들인건데 박아두긴 좀아깝넹... 2002/08/23 원이 홍 아까 보고 다시 한번 보자고 들어왔는데.. 또 올라와 있다니... 은빛님 넘 무리하시는건... 아닌지... 이렇게 올려놓고 또 잠적하시려는거 아니예요^^ 건강하시고요.... 은빛님 글 또올라와있는거 보며 무지 기분이 좋네요..^^ 2002/08/23 세라자드 이정도면.. 삶의 기쁨 2002/08/23 진풍 그런데...초창기에..란의 실력이..분명 공간을 초월했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요...그거..잊어버리셨나요? 어째서....열심히 달려가서 이제야 겨우 도착하는 건지..모르겠네요...설사 달린다 하더라도...금방 도착할 정도의 속도는 될텐데요.. 2002/08/23 쌍칼 하하하하핫. 너무 기쁘네요. 별 기대안하고 들어와봤는데 6개나올라와있다니. ^-^ 정말 재밌습니다. 까악~ 다음편도 언능. 2002/08/23 -_- 멋져요 은빛니임~ ^_^ 2002/08/23 장염 ]]ㅑ~~짱짱!!!^^* 2002/08/23 나쯔히메 아..아쉬워라..그렇게 끊어버리시다니...ㅠ.ㅠ 넘 잼떠요오.....은빛님 화이튕~!! 2002/08/23 아천 꺄아~~~~!! 연참이야~!! 란님 사랑해여~♡ 2002/08/23 음흠흠. 아웅 ^_^ 정말 멋져멋져~ 핫핫핫. 다음꺼는 언제올려주실란지..... 2002/08/24 황형%% 앙~~조아라~~기대두 않하구 들어왔는데... 역쉬3연참은 행복해여~~오호옷~~ 2002/08/24 시젠 앗.드디어 란의 정체가 들어나게 되는 건가요?..쿠..쿠 2002/08/24 적화(赤 허헐.. 중요한 순간에 끊어버리시다니... 이럴수가.... 허헐... 빨리 담편을... 2002/08/24 코로코로 보고싶어요오- 2002/08/24 새벽 란 혼난다 냐하..; 2002/08/24 지옥숙녀 으흑..ㅡㅜ 아..아슬아슬한곳에서.. 2002/08/24 [- 너무 보고싶어용 -_- 얼릉얼릉얼릉~ 예~ 2002/08/24 [-_--] --_-- 2002/08/24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79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6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7-보복 [[The Perfect MAID]]-47-보복 "실패?"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튼튼하게 잘 지어진 목채 한 복판에 서 터져 나왔다. "겨울 내내 굶주린 늑대들에 바짝 마른 산불까지 질러 줬는 데 실패했다고?" 란에게 된통 걸린 후 간신히 어찌어찌해서 목숨만 건져나 온 산적들은 마치 죽을죄라도 진 냥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랬 다. 사실 죽을 죄였다. "당장 나가! 눈 앞에서 보이지 말고!" 책상 앞을 오락가락하며 정신사납게 뭔가를 중얼거리던 사 내가 소리질렀다. 머리를 박고 있던 산적들은 구사일생이라도 한 듯 기쁜 얼굴로 냉큼 꼬리를 말고 문 쪽으로 뒷걸음질로 기어나갔다. "제기랄. 재수가 없으려니까...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산적은 산적일 뿐이란 말인가?" 그는 손가락으로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흥분은 금새 가라앉았다. 사실 완전한 계획을 짜 주기는 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산적들의 실력을 믿지 않았다. 늘 공에 앞에 급급 했고 장기적인 이익보다는 눈앞의 은화 한 닢에 더 신경을 기 울였다. "게다가... 마스터 급의 검사라니! 그 것도 여자! 그 것도..." 하녀의 복장을 한 자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힘든 수련을 거친 기사도 되기 힘든 경지가 바로 마스터였다. 그도 한 때는 기사였고, 한 때는 검술에 인생을 걸었던 자였다. 그것이 얼마 나 힘들고 가능성 없는 일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빛의 속성이 걸려있는 마법검 같은 걸꺼야." 그렇다면 마치 검에서 빛이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실력이야 산적들 몇만 베어 보이면... 알아서 겁들을 먹 는 자들이니 얼마든지 뻥튀기 쳐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적의 실력은 어느 정도 가늠이 잡힌다. "우선... 숲에 숨겨놨던 자들을 찾아 처리했을 정도니..." 귀족가의 그림자들이 몇 있었을 것이다. 상상보다 높은 귀 족이 걸렸다는 게 조금 꺼림직하기는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처음부터 건들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이렇게 된 바 에는 차라리 다른 생각 못하게 아예 본때를 보여야 한다. "게다가... 하녀 복장이라..." 아마도 그녀도 그림자일 것이다. 자긍심 높은 검사가 그런 역을 맡지는 않을 테니, 그녀도 그림자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 면 적어도... 쓸 만한 그림자가 셋은 붙어있는 귀족들이다. "게다가 모조리 무사한 듯 보이고..." 산적들은 수 십 명의 목숨이 달아났다. 숲에 숨겨 두었던 열 다섯명 정도와 후발대로 갔던 습격대 스무명 남짓... 작지 않은 산채의 정예들이었다. "핀센도 죽었으니..." 후발대를 몰고 갔던 그는 꽤 쓸만한 전직 기사였다. 그런 자를 잃었다는 건 어중간한 산적들 열 댓명 잃는 것보다도 더 쓰렸다. "우리 산채만으로는 역부족이겠군." 인상을 잔뜩 구기며 그는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제기랄! 그 놈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건가?!" 복수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자신들이 가졌던 것 이 상의 힘을 지닌 자들과의 협력이... "밖에 누구 있나?" "네!" 문을 지키고 있던 산적 하나가 냉큼 대답하며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두목에게 간다." 그는 바람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아무리 산채의 모든 작전 권을 위임받은 그라 해도 타 산채와의 협력같은 중요 사항은 두목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가 아무리... 도 한자루 밖에 쓸 줄 모르는 돌머리 같은 두목이라 해도 말이다. '힘만 무식하게 센 놈 같으리라구...' 검술 한번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면서도 천부적인 감각으로 그를 압도하는 두목의 도를 떠올리며... 남자는 설래설래 고개 를 저었다. **** 결과는 참담했다. "겨우... 우리만 살아남은 건가?"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클레이브가 작게 속삭 였다. 열 명의 기사들 중 둘만이 살아남았다. 그것도 성치 못 한 몸으로... 겨우 의식만이 붙어 있을 뿐, 호위직을 이행하기 에는... 무리였다. "우리라도 살아 남은 것을 신께 감사드려야 할겁니다." "맞아요." 클레이브와 클로네는 차분했다. 어젯밤, 늑대들을 모조리 바 닥에 눕히고, 불길을 대충 때려잡은 난 우격다짐으로 마차를 끌고 클레이브의 마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왔다. 그 곳에서 클레이브의 마차에 매어져 있던 네 마리의 말들 중 두 마리를 풀러 나눠 맸다. 그리고... 아침해가 떠오를 때까지 길을 따라 무작정 달렸다. 어느 정도 피 냄새가 옅어지고 밝은 빛이 숲을 환히 비출 때 즈음 우리는 멈췄다. 피가 흐르는 상처를 대강 묶어둔 하르 크와 두 기사들에게 이 이상의 강행군은 무리였다. 그들은 제 대로 된 치료가 필요했다. 마차의 짐을 어젯밤 잠들기 전에 미리 어느 정도 추려놓은 덕분에 우린 비상용 약들과... 식량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져올 수 있었다. 우린 마차에서 내려 가벼운 식사 준비를 했다. 놀 라고 힘든 밤이었기에 그 누구도 식욕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둬야 했다. "우린 모두 죽을 꺼야." "셀레라!" 낮고 음침한 목소리로 셀레라는 속삭였다. 클로네가 대경하 며 그녀를 질책했지만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우리에게 소 리질렀다. "봐! 이제 남은 우리 꼴을! 겨우 마부 둘에 상처투성이 기 사 둘! 하녀 둘에 떨거지 꼬마가 둘이나 붙어있다고! 길은 열 흘도 더 가야 한다는데! 어떻게 무사하란 말이야!" "그만 해! 셀레라!" "봐! 기사들을! 모두 죽거나 다쳤어! 그 잘난 채 하던 루데 릭 엘 란트 경은 코빼기도 보이지 못했고! 흥! 달아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기사 하나가 오만상을 다 찡그 리며 외쳤다. "흥! 그걸 어떻게 믿지? 봐! 그는 나타나지도 않았어! 처음 에 열흘만 가면 된다던 길은 닷새나 왔는데도 아직 열흘이 더 남아있잖아! 이게 뭐지?!!" 누구 때문에 늦어진 거라고 생각해! 라는 말이 목구멍 끝에 간신히 걸렸다. 셀레라는 팩 고개를 돌렸다. 그렇잖아도 낮게 깔려있던 공기가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의 가슴을 절망 이라는 마물이 조금씩 잠식해갔다. 그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들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기사들은 낮게 한숨을 내쉈 다. 사실 우리도 루데릭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 다. 그의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뭐... 재수 없었으면 흩어진 긴털 늑대들의 내장 부스러기에 섞여 들어가 있었을 수도 있 지만... 일단 그런 상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는... 살아나실 수 있을까요?" 어젯밤부터 계속 뭔가를 고민하던 크레이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아마도... 부정적인 대답을 들을까 두려웠으리라. "그래. 괜찮으실 꺼야." 나도 그런 대답은 할 수 없었다. 크레이의 표정이 조금 밝 아졌다. 스테판과 클레이브가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한 쪽씩 크레이의 양손을 잡았다. "아저씨는 괜찮아 지실 꺼야. 크레이..." 르카인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그는 살 지도 못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몸은 차갑게 식었다. 완전히 식지는 않았지만, 정상적으로 살아있는 자의 몸은 아니었다. 그래... 마치 동면하는 개구리 같았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가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는... 나도 몰랐다. 노도가 이 자리에 있 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흥!" 차가운 콧방귀 소리가 한번 더 들려왔다. 셀레라는 잠시 고 개를 돌려 크레이를 날카롭게 노려보고서는 다시 눈을 질끈 내리 감고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처들었다. 하르크는 그 소 리를 들을 때마다 골치가 지끈거리는지 오만상을 다 구겼다. 하지만 지금의 셀레라는 나름대로 기가 꺽인 편이었다. 어 젯밤 셀레라가 잠든 사이 클로네는 내게 다가와 작게 하소연 했다. 산적들과 타협하자면서 대가로 크레이를 산적들에게 넘 겨 버리자는 그녀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며. 앞으로 행여라 도 그녀가 그런 기색을 보인다면... 내게 잘 말려달라고 부탁했 다. 다른 사람들이 크레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클로네였다. 만에 하나라도 셀레라가 우리들이 모두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 말을 꺼냈다면... 어쩌면 내 검이 그녀를 관통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입장 따위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었으니까. 그녀는 인질로서 보내지는 그녀들의 입장이 어 떤지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프란에게 약속한 것보다 인질 수가 모자란다던가 한다면... 소국인 크리 아로서는 뼈아픈 실수가 되겠지. "대충 드셨으면 다시 길을 떠나죠. 이젠 밤낮을 가리지 말 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금아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사람들은 마차 위로, 아 래로 자리를 찾아갔다.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의 무게에 지친 말이 투레질했다. 금아와 내가 내려 말고삐를 잡고 끌었다. 조 금이라도 말을 덜 힘들게 해야 했다. 그날 밤 난 커다란 리리프 나무 위로 올라갔다. 말들이 너 무 지쳐 있었기에 더 이상 길을 가는 건 무리였다. 금아가 마 차들을 지키고 있었고 다친 하르크와 기사들은... 마차 지붕에 올라 마른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눈을 붙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은 붙이지 않았다. "분명히 있을 텐데..." 리리프 나무들은 숲의 종족중 하나인 그들이 가장 좋아하 는 나무였다. 그들은 인간이 기어오를 수 없는 나무 꼭대기에 올라 숲을 관찰하기를 즐겼다. 어젯밤 날 지켜보고 있던 그를 찾은 곳도 리리프 나무 위였다. 그들은 자칭.. 숲의 수호자였 다. "류이네리아로군." 어젯밤과는 다르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빙 글 몸을 돌렸다. 내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에... 커 다란 눈, 가늘고 길쭉한 귀, 머리 한 가운데 유니콘의 것과 같 은 외뿔을 지닌 숲의 수호자가 방긋 웃고 있었다. "어젯밤 타타이타르가 널 봤다고 했어." "아...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인사하지 못했지." 그는 괜찮다는 듯 조그만 손을 저었다. "나도 알고 있어. 작은 재난이... 우리 숲의 친구들과 너의 인간 친구들에게 덮쳤다는 것을..."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아마도 그는 내가 오늘 밤 그들 을 찾을 것을 알고 온 듯 했다. "이젠 혼자가 아니구나. 란." "음...." 그는 이 곳에서 우리 일행을 지켜보고 있던 듯 했다.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친구들과 함께 있어... 뭐, 그 때 보다 못한 친구도 몇 있는 것 같지만." 순간적으로 셀레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떠오른 건 왜일 까? "아, 하하하하하하." "많이 변했구나." "백년은 인간에게는 긴 시간이니까." "너도... 인간의 범주에 아직 속하기는 하는 거야?" "아마도."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난 아직 인간이었다. 꿈만 덩그라니 큰 인간... "그게 좋은 거야. 혼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는 없어." 함께 다니면서도 마음은 꼭꼭 걸어 잠근 채 마치 세상에 혼자 떨어진 우주 알 덩어리인냥 살던 시절의 나를 그는 알고 있었다. 어딘가 내 스승님을 연상시키는 괴짜 도사 노도를 만 나기 전의 나를... "봐. 류이네리아. 신들조차도 혼자 살지 않아. 그들도..." "우리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 지." 때로는 사람을 등처 먹기도 하면서 말이야... 난 뒷말을 삼 키며 피식 웃었다. 신들을 비유하며 말을 끝내는 건 이 외뿔 엘프의 오랜 습관이었다. "도움이 필요하지?" 그가 문득 물어왔다. "응." 그들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빙빙 돌리고 꼬지 않았 다. 그들은 늘 솔직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물어왔다. "친구가 아파. 산적들이 쏜 독화살에 다쳤지." "흠... 타타이타르가 그러더군."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겨울부터였을 꺼야. 산적이라는 인간 족 마을에서 마 물이 태어났어. 아니, 인간의 껍데기를 한 마물이 하나 들어왔 지..." 거기에서 말을 잠시 끊고 그는 크게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산적들에 대한 미움이 그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이 인간들... 인간 망신을 얼마나 시켰길래 이 온순한 외뿔 엘프가 떠올리 는 것만으로도 치를 떠는 거야?!!! "그는... 기사라는 자였다고 하더군. 그는 이기기 위한 방법 을 많이 아는 자라고 했어.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린 아무 런 경계를 품지 않았었지." "흠....." "그리고 곧 산적들은 변해갔어. 숲 속의 동물들을 쉽게 죽 이기 시작했어. 산 속을 헤집으며 독을 품은 모든 생명들을 잡 아가기 시작했어. 수많은 다람쥐들과, 토끼들과, 작은 사슴들 같은 친구들이 그들이 찾아낸 독으로 목숨을 잃었지." 외뿔 엘프의 초록색 눈이 질끈 감겼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독을 실험하고 있던 거였어. 우리 숲의 주민들의 목숨으로 말이야." 외뿔 엘프들은 그들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고 했다. 전투를 싫어하는 외뿔 엘프들이 활과 화살을 들었지만, 어느 새 강해 져버린 산적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몇몇 엘프들이 사로 잡히고, 구경꺼리가 되어 밖으로 팔려나갔다. 분노한 엘프들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리고는 또 사로잡혔다. 산 적들은 '비겁하게도' 일대 일로 맞서지 않고 사로잡았던 엘프 들의 목숨을 미끼로 협박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철저히 약 한 외뿔 엘프들은... 노련한 산적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외뿔 엘프들은 눈을 막고 귀를 막은 채 숲 속 깊숙이, 나무 꼭대기 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용히 관찰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해독하는 방법을 알아?" 침통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외뿔 엘프의 눈에 자그마한 생기가 돌았다. "조금은." "조금?" 산적들의 실험에 당하고 버려진 숲 속 동물들을 살리기 위 해 외뿔 엘프들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숲에서 살아가는 자 들이기에 그들은 수 천년간 이어져온 약초에 대한 지식과 자 료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곧 산적들이 만들어낸 독물의 성 분을 알아냈다.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아. 너무나 지독한 독들이라서..." 지푸라기라도 떠 있다면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완전하지 않더라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게 어딘가! 그게 어디 란 말인가! "제발 도와줘!" "도와줄게." 외뿔 엘프의 초록빛 눈이 진지하게 반짝였다. 그와 난 조용 히 악수를 나눴다. 그의 조그마한 손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 었다. "외뿔... 엘프란 실제로 존재하는 거였군요." 내가 나무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금아는 나무 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감탄이 가득했다. 아직도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외뿔 엘프 하나가 우리 쪽으로 조그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금아는 얼떨결에 함께 손을 흔들어 보였 다. 외뿔 엘프의 얼굴에 살폿 미소가 떠올랐다. 청력을 높여 우리의 대화를 옅듣고 있었는지 금아의 표정 은 조금 밝아 보였다. "그럼, 르카인은... 살 수 있는 거군요." "일단 죽지는 않는다고 봐야겠지." 난 금아의 말을 정정했다. "마스터의 힘이... 이렇게 허무한 건 줄은 몰랐습니다." "힘이란 본래 허무한거야."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 어떤 표현을 할 수 있었을 까! 아직도 가슴 한켠이 찢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 이 내 잘못인냥... 괴로웠다. 아니, 사실 내 잘못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금아는 차분한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그는 이미 그의 길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일단 크레이와... 아이들을 설득해서 르카인을 외뿔 엘프들 에게 맡겨야겠지.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기도 하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속칭 '인질독'이라는 독에 당해 의식이 없는 그를 데리고 울퉁불퉁 한 험한 길을 간다는 건 그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였다. "그리고 나는..." "란님은?" 금아의 눈이 순간 빛을 발한 것처럼 보인 건 내 눈의 착각 이었을까?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지." 구름을 뚫고 나타난 별빛이 시리도록 밝아 보였다. 나도 모 르게 눈물이 고일 정도로 말이다. 외뿔 엘프가 약속했던 도움은 바로 나타났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놀랍게도... 타타이타르가 찾아왔다. 인간들 앞에 모 습을 들어내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던 그가! 놀랄 만한 선물까지 들고 말이다. 클레이브와 스테판, 클로네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존하는지 조차 명확하지 않던 외뿔 엘프라니! 게 다가 생사조차 불분명했던... 루데릭?! "어, 어떻게?" 타타이타르는 시익 웃으며 그의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외 뿔 엘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친구가 어제 주웠다더군. 늑대들이 지나간 자리 조금 위쪽의 나무에 걸려 있었데. 늑대들과 싸우다가 힘이 부치자 나무쪽으로 기어올라간 모양이야. 그날 밤은... 불도 났고, 무척 이나 소란스러웠으니까.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상처는 심하지 만 독에 당하거나 한 건 아니라서 말이야." 온 몸에 붕대를 감은 루데릭은 의식을 잃고 있었다. "엘프 마을에 두기가 어렵더군. 저 르카인이라는 인간과는 경우가 다르잖아." 타타이타르는 어깨를 한번 으쓱여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와 외뿔 엘프들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하도 놀라서 더 이 상은 놀랄 일이 없다던 하르크조차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 다. 그건 셀레라도 마찬가지였다. 남들과 같이 감탄하기를 싫 어하는 셀레라조차 커다랗게 벌어진 두 눈을 닫지 못했다. 단 지 볼을 조금 씰룩거렸을 뿐, 트집잡을 거리를 찾아내지 못했 다. 타타이타르는 오래 전 외뿔 엘프족이 졌던 빚을 갚는 일이 라며 르카인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다.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도와주겠다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정말... 이신가요?" 외뿔 엘프의 모습을 볼 수 없는 크레이가 두 손을 더듬거 리며 앞쪽으로 한 걸음 나섰다. 타타이타르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난 한쪽 손가락을 들어 입술을 막아 보였다. 그가 왜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크레이의... 의안의 정체를 눈치 챘기 때문이겠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크레이의 몸짓은 그가 시력을 잃어버린 지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 다. 평민의 옷을 입은 소년의 두 눈에 박힌 어울리지 않게 큰 한 쌍의 보석이 만들어내는 부조화는 그로 하여금 순식간에 많은 것을 짜 맞춰 내도록 했다. 그는 현명한 엘프 중 하나였 다. 잠시 호흡을 끊어 흥분을 가라앉힌 타타이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완전한 약을 만을 때까지 죽지 않게 할 수는 있다." 타타이타르는 크레이의 손을 자신의 볼에 닿게 했다. 그리 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크레이의 입술이 가늘게 떨 렸다. 눈물은 흘리지 못했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감사... 합니다...." 크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타타이타르가 조그만 손을 들어 크레이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렸다. 르카인은 타타이타르와 다른 외뿔 엘프들이 준비해 온 운 반용 침대에 눕혀졌다. 크레이는 마치 마지막이라도 준비하는 사람처럼 르카인의 손을 놓지 못했다. 외뿔 엘프들은 그가 마 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렸다. "나중에 네가 홀로 설 수 있게 되면 찾아오렴. 우리들은 늘 이 숲을 지키고 있으니까." 타타이타르가 조용히 속삭였다. 크레이는 활짝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기랄. ***** 으으으... 기껏 연결해서 살려 놨는데! 하나로통신! 웬수랍니다....ㅠㅠ 갑자기 뻘건 불이 번쩍 들어오면 난 어쩌라고.... 결국 처음부터 다시... 하나씩 껐다.. 켰다를 했답니다. 정말 너무 잘끊켜서 문제라구요... 그냥 데스크탑형을 쓸 땐, 다시 연결하기를 클릭하고 기다리면 됐었는데... 노트북이라... 뭘 어찌 해야할지. 흠... 뭐, 이러다가 곧 늘겠죠, 뭐!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10, Read : 1979, IP : 211.215.56.157 2002/08/24 Sat 21:08:52 검은포효 오옷~~~드뎌 올라오다니... 2002/08/24 제로스 은빛님 나이스연참~~~ 앞으로도 계속 화이팅~~~ 2002/08/24 [-_--] 아싸아~ 2002/08/24 현아 오예~! 리플달시간이 아깝네여,,,,담편읽을려니,,^^; 2002/08/24 lpbk 후후. 은빛님 화이팅입니다아!!! 연참의 신화를!!! 2002/08/24 세라자드 ^^* 은빛님의 약속이 지켜질때마다 통일한국이 가까워 지는 듯한 희열을 느낀답니다~~ 님 건필염~~ 2002/08/25 진무 음 하나호는 꼭 데스크탑으루 해야하나..ㅡㅡ;; 2002/08/25 아르타나 갸하하하 은빛님 만세~~ 만세~~ 세세토록 건필하소서~~!! 2002/08/25 지옥숙녀 은빛님 힘내세요~! 2002/08/25 코로코로 열심히 하소서- 2002/08/25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79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7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8-보복 [[The Perfect MAID]]-48-보복 큰 먹이감이 있다는 말에 산적 두목의 귀는 솔깃해졌다. 비 록 그들이 조금 강하기는 했지만 옛 말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드래곤은 잡기는 힘들지만 일단 잡고 나면... 버릴게 하나도 없다고. 게다가 야습과 이어진 긴장으로 치져 있을 먹 잇감이었다. 게다가 드래곤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흐음... 그렇게 돈이 많은 귀족들이라는 거지?" 인질로 잡아서 돈을 우려도 되고, 짐을 털어도 된다. 게다가 염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꽤 보기 좋게 생긴 꼬마들도 있다. 그런 꼬마들은 비싼 값에 팔린다. "그렇지만... 나눠 먹기에는 너무 작지 않나? 이미 우리가 본 손해도 있는데..." 두목은 전직 기사겸 모사꾼의 의견에 슬쩍 고개를 저어 보 였다. "게다가 그들도 지치고 힘이 빠져 있다고 하지 않나? 또 이 번에는 내가 직접 나설 예정이고." 누런 이를 시익 들어내며 두목은 음산하게 웃었다. 전직 기 사는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그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는 산적들 중 최고였고, 기사였던 자신조차 당하지 못했던 천 부적인 싸움꾼이었다. 하지만... 이번 먹잇감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완벽했던 그의 계획을 일그러트릴만한 무언가가 말이다. "하지만... 귀족들의 그림자들은 강합니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기사만큼 강한 자들은 아니라지 않나!" "그, 그거야 그렇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사들보다 더 유 용하게 쓰이는 자들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이럴 때를 대비해 내가 직접 훈련시킨 레 인저들이 있다!" 두목은 강경했다. 헤벌쭉 벌어진 입가에 연신 음침한 미소 가 맴돌았다. 벌써부터 약탈에 성공한 냥, 그는 이미 승리에 취해 있었다. "오늘밤이다! 오늘밤에 친다!" "하, 하지만 작전도 없어..." "네 작전으로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나! 목숨을 이어준 것만 으로도 고맙게 여기지는 못하고... 쯧!" 두목의 마음은 완전히 굳어진 듯 보였다. 전직 기사는 더 이상 그가 나설 자리가 없음을 알았다. 그는 답답해져 오는 가 슴을 달래며 몰래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욕심만 많은 오크 같으니라구.' **** 야습을 받은 후로 두 번째 밤이 시작되었다. 마차는 다시 멈췄다. 우리는 당당하게 불을 피웠다. 아직 뭘 모르는 소년들 과 소녀들은 따듯한 불을 쬘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상처 가 깊은 기사들은 펄쩍 뛰며 불을 끄라고 난리쳤지만... 하르크 는 연신 벙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대 놓고 불을 핀 이면에 가 려진... 금아와 나의 결심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오늘 불침번은 금아가 서라." "쳇." 눈을 가늘게 좁히며 금아는 낮게 툴툴거렸다. 모닥불이 타 탁 소리내며 튀어 올랐다. 잠든 사람들의 얼굴에 춤추듯 그림 자를 남기며 불꽃은 따듯한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내일은 내가 갈 겁니다." "좋지. 내일까지 네 몫이 남아있다면..." 깊이 잠든 크레이의 모포를 조금 더 여며주고는 난 몸을 일으켰다. 똑바른 자세로 잠든 클레이브는 작게 도르릉 소리내 고 있었고, 클로네와 셀레라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어 있었다. 하르크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의식을 놓고 있었고... 상처 입은 세 사람은 굳이 잠이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의식을 되찾고 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지금이 쌀쌀한 봄이었기에 망정이지... 습하고 더운 여름이었다면... 저들의 생 명도 보장해주기 힘들었으리라. "바닷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이 시대의 산에 산적이 마를 일도 없을 겁니다." 피식 웃으며 금아는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더 불꽃에 밀어 넣었다. 멀리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기를 폴폴 풍겨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어디를... 가시는 건가요?" 설잠이 깬 듯 스테판이 졸린 눈을 비볐다. 난 스테판의 머 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주위 청소를 조금 해 둬야 할 것 같아서." "... 이 늦은 밤에요?" 의아한 목소리였다. 난 소년에게 밝게 미소지어 보였다. "난 성실한 하녀거든." 멍한 스테판과 금아를 뒤로하고 난 숲 속으로 발걸음을 내 딛었다. 무슨 생각인지 살기도 채 감추지 않은 자들은 발걸음 도 당당하게 일직선으로 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난 실수를 반 복하지 않기 위해 높은 나뭇가지 위로 몸을 날렸다. 어떤 누군 가가 또 우리의 감각을 속이고 숨어 있을지 몰랐다. 속아 당하 는 건 한번이면 족했다. "...자, 이제 자거라. 많이 무서웠지? 란님은 자신의 웃는 얼 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거든." 아랫 쪽에서 스테판을 토닥거리는 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그런데... 뭐가 무서웠지라는 거야? 금아 녀석! **** "위험합니다." 딱딱하게 굳어서는 연신 불길한 소리를 주절거리는 전직 기사가 두목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잔머리나 굴리니까 실패하는 거다! 싸움은 압도적인 실력 을 보이며 하는 거야!" 버럭 소리를 지른 그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딴에는 호탕 하게, 커다랗게 웃었다. 숲이 쩌렁쩌렁 울렸다. '습격을 하러 간다는 자가!' 전직 기사는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깨물었다. 불길함이 그 의 안에서 점점 자라고 있었다. 그의 계획을 방해한 그 하녀가 죽도록 미워졌다. 그 하녀만 아니었다면... 계획만 성공했다면 산적 내에서 그의 입장은 조금 더 튼튼해졌으리라! 그랬다면 저 무식하게 덩치만 큰 바보 두목 따위 손쉽게 밀어내고 그가 산적들을 지휘할 수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프란으로 돌아가 내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산적들도 훈련시키면 꽤 쓸만한 군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흐흐흐흐... 쓸만한 계집이 넷이나 있다지?" 두목 뒤편에서 징글징글한 목소리가 조그맣게 흘러 나왔다. 오늘 밤 야습을 주도하며 두목이 부하들에게 특히 강조한 게 바로 저 대목이었다. "졸부 귀족이라는 군. 작위가 낮으니 뒤탈도 없을 거고... 그 작자들이야 쓸데없는 체면에 목숨 거는 작자들이니 절대 밝히 지도 않을 거야." 끊임없이 소근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산적 두목은 그런 부하들의 욕심 어린 모습을 자랑스러운 듯 바라봤다. "산적이라면 탐욕을 부릴 줄 알아야지!" 두목은 커다랗게 외쳤다. 와! 하며 산적들이 폭소를 터트렸 다. 어린아이 셋, 여자 넷, 상처입어 의식조차 오락가락하는 기 사가 셋에... 성한 사람이라고는 마부 둘이 고작인 초라한 일행 을 습격하러 가는 길이었다. 두려움이라든가, 몇 일 전에 그들 이 입었던 피해 따위는 그들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쓸 만한 놈들은 그 싸움에서 다 되졌을 거다." 비웃음을 흘리며 두목은 외쳤다. 전직 기사의 어깨가 조금 움추러들었다. 명백한 적대감이 그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제길. 설마 눈치 채고 있던 건 아니겠지.' 두목의 눈초리가 조금 더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오늘은 우리들의 날이다!" "그래. 내년 너희들의 제삿날이지." ***** 흠... 장군일기의 파장이 조금 있네요. 고양이에 대해 쓴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사람들이 조금은 고양이에 대해 편견을 버려줬으면... 했었는데 말입니다. 한 종이라는 테두리로 묶기에는 고양이가 지닌 개성들도 너무 다르고... 우리 사람들도 '인간'이라는 한 테두리에서 정의내리기 힘든데... 말이죠. 흠... 타격까지는 없지만... 섭섭했습니다.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12, Read : 1865, IP : 211.215.56.157 2002/08/24 Sat 21:09:02 검은포효 읔...왜이리 짧아졌어여????넘하셩...ㅠㅠ.... 2002/08/24 노아 고양이 넘 좋은데.... 우리 이쁜 다명이도 이번에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어요^^ 2002/08/24 lpbk 자신이 싫어한다면 보지 않으면 그만인것을. 저는 도도한 고 양이가 충견보다 더 좋아요. 일일이 꼬투리 잡는 덜된 사람들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2002/08/24 멜로막스 오늘 저희 학교에 야옹이가 왔었죠~ ^^ 인기만점이었었어요. 그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이 얼마나 예쁜지....야옹이가 얼마나 이쁜데요...^^ 저도 나중에 독립하게 되면 꼭 고양이를 키울거예요. 강아지랑 함께~ ^^ 그 고양이도 군이처럼 귀엽고 예쁘겠죠..^^ 2002/08/24 세라자드 음.. 왠지 저 산적두목 성격이 막가는게 누구랑.. 비슷한거 같은...,..,ㅡ,,ㅡ;; 2002/08/25 카이널 참특이해요~ 어떻게 약간의 코고는 소리가 도르릉이 되는지... 고양이 소리를 고르릉 이라고 하질 않으시나... 은빛님 참 특이한 표현이네요.. (거부감이 일정도로...) 2002/08/25 진짜ㅡ 대체... 창파기는 언제 써주실 거예요~오~ 우웅우! 으앙! 창파기 보구 싶단 말예요~오! 2002/08/25 아르타나 고양이~~좋~~아~~헤헤헤~~ 2002/08/25 지옥숙녀 은빛님 힘내요^^ 2002/08/25 지옥숙녀 그나저나 저 산적들 이제 다 죽었다...[히죽] 2002/08/25 Ensoul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긴 어려움이 많지요. 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개의 습성에 맞춰 고양이를 대하는데 고양이에겐 맞지 않는 방법이거든요. 그때문에 더더욱 많은 오해가 쌓이지요. 예를 들면...어떤 사람이 예뻐하던 고양이를 혼냈답니다. 그날 저녁 그 사람은 머리맡에서 우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지요. 그리고 본거죠...바닥에 떨구어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쥐를...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답니다. 고양이는 보복을 한다며...하지만 고양이이가 쥐를 갖다 놓은 것은 보복이 아니라 `나 미워하지 마~`라는 의미의 애교섞인 뇌물이었죠. 모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겨요. 2002/08/26 Ensoul 카이널님...원래 고양이가 갸르릉이나 고르릉으로 들릴만한 소리를 낸답니다. 특이한 표현이 아니라 일반적인 표현이죠. 고양이는 기분 좋을 때 고릉거려요. 2002/08/26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5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80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7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49-보복 [[The Perfect MAID]]-49-보복 "그래. 내년 너희들의 제삿날이지." 순간 왁자지껄하게 내던 산적들의 소음이 뚝 멎었다. 높고 또렷하게 들려온 목소리는 크지도 않게... 오십 여명의 산적들 의 귓가에 똑같이 닿았다. 뭔가 알 수 없는 스산한 감각이 그 들을 감쌌다. 산적들의 팔뚝에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다. "뭐, 뭐냐! 유령이냐!"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며 부산스럽게 땅을 차대는 말을 진정시키며 두목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를 타고 나무 들이 가늘게 떨렸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마른 나뭇잎들이 내는 소리가 마치 유령들의 외침처럼 들 려왔다. "두, 두목!" 부하 하나가 울쌍을 지었다.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되어갔다. 두목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모, 모습을 들어내랏! 넌 유령이냐! 유령이 아니라면 당당 하게 모습을 들어내란 말이다!" 그는 공포를 털어 내기 위해 과장되게 손을 흔들었다. -파삭- 그의 머리 위쪽으로 작은 가지가 하나 부러져 떨어졌다. 그 는 황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어렴풋이 달빛을 받아 모습을 들 여낸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유령이냐!"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것을 확인한 두목의 목소리에 용기 가 조금 되살아나 있었다. 가지 위의 그림자가 뚝 떨어져 내렸 다. 자신의 바로 코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그림자에 질겁한 두 목이 검을 뽑아들었다. 놀랍게도 그림자는.... "뭐, 뭐냐!" "유, 유령이야!!!!" 말의 머리 위에 서 있었다. 체중이 아예 없는 존재처럼! 그 모습을 본 산적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두목은 검을 휘둘러 말의 목을 베어갔다. 주인에 의해 뒤에서 목이 베어진 말이 단발마를 지르며 쓰러졌다. 산적 두목은 재빠르게 말에서 뛰어 내렸다. 말의 머리에 서 있던 그림자가 자신보다도 먼저 말에서 뛰어내림을 이미 확인했던 차였다. "유령이 아니야!" 달빛에 희미한 그림자가 땅에 지고 있었다. 두목은 누런 이 를 들어냈다. 눈이 점점 익숙해지며 그 그림자가 하녀 복장을 한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두목은 거칠게 다시 외쳤다. "뭐냐!" 여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녀다." 언제 뽑아들었는지도 모를 검 한자루가 이미 산적 두목의 허리를 베고 지나간 후였다. "주위 청소를 좀 하러 왔지." 그녀의 손에 들린 검에서 희고 길다란 빛이 줄기줄기 뿜어 져 나오고 있었다. 검이 움직이는 동작이 채 보이기도 전에 그 녀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산적 둘이 말과 함께 두 동강나 땅으로 떨어졌다. 너무나도 어긋나, 현실 같지 않은 상황에 넋 이 나가있던 산적들의 코에 선명한 피비린내가 닿았다. "으, 으으으으으으...." 겁에 질린 동작으로... 생존 본능에 따라 산적들은 하나 둘 검을 뽑아들고 자신의 앞을 가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눈은 자칭 하녀라는 유령같은 존재의 손에 들린 검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믿을 수 없었다. "서, 설마아아아아아아!" "마스... 터?" "도련님께 해가 될 쓰레기는 모조리 치운다!" 여인은... 자칭 하녀인 마스터는 우렁차게 외쳤다. **** "끌끌... 시작했군." 고개를 처박고 약초를 찾던 외뿔 엘프 하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숲을 부스고 산을 뭉갤 듯한 살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와 춤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르카인을 건네 받을 때 류이네리아의 또 하나의 부탁을 들 어준 건 그 때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산적들은 그들 숲의 종족들에게도 마물같은 존재로 변해 있었다. "숲에 진을 친 산적들의 위치를 모조리 알려 달라더니... 벌 써 시작한 건가?" "그렇겠죠. 일을 밀려두고 보는 성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타타이타르님의 말에 의하면... 백여 년 전과 성질이 변한 게 전혀 없다더군요." "설마...."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엘프 하나가 고개를 번쩍 처들었 다. 말을 꺼낸 엘프가 고개를 설래설래 저어댔다. "정말이래요. 전혀. 안변했다더군요. 뭐, 사람을 대하는 면이 라든가 조금 진지해진 면이라든가 한 점은 변했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런 부분이 아니니까요." 엘프들은 제각각 짧고 굵은 한숨을 토해냈다. 알려주면 죽 을 지도 모르는... 아니 반 이상은 죽을 것이 뻔한 산적들의 위 치를 알려줬다는 게 영 석연치 않게 마음에 걸려 있던 참이었 다. 아무리 밉다 한들 산적들도 살아있는 생명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산적들의 위치를 주지 않았다면, 백여 년 전과 똑 같은 짓을 저질렀을 지도 몰라." 잠시동안 머물렀던 침묵을 몰아내며 한 엘프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다시 열었다. "으으으으... 상상하기도 싫어요." 엘프들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때도 산적들 때문이었죠? 아마." "그랬지. 아예 산적질을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면서..." "숲의 커다란 나무들을 모조리 분질러 버렸었죠." "정말... 무식했었어." ".................." 입은 놀리면서도 분주히 풀숲과 나무 둥치를 뒤지던 엘프 들의 손길이 일제히 멎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뿌리를 뽑겠다며 불을 질렀었지?" 설마 하는 마음과 아차 하는 마음이 엇갈리는 순간은 짧았 다. 그들은 모두 몸을 뻘쭘히 반쯤 일으킨 상태로 굳어졌다. "..............어쩌지?" 누군가가 입술을 움직였다. 백년이었다. 그 때 망가진 숲을 다시 되살리는 데 걸린 시간이 정말 백년이었다. 얼마나 고생 했던가! 그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어야 했던가! 만일 그 때 류이네리아가 벌린 일의 동기를 엘프들 스스로가 제공하지 않 았더라면... 그 때의 류이네리아가 나름대로는 엘프들을 위해 도와준다며 일을 벌린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엘프들과 류 이네리아는 철천지원수가 되어 있었으리라. 그렇게 변하지 않 았던 건 전적으로 그들이 '외뿔 엘프'와 '류이네리아'였기 때문 이었다. 엘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은근히 누군가 가 가서 류이네리아를 말려주기를 원하는 눈치들. 그 말없는 바람의 고리를 끊은 건 그들 중 제일 나이 많은 엘프였다. "그만들 두지. 그녀가 말린다고 들을 존재도 아니고." "........." "또 그녀 스스로가 말했지 않나.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 겠다고. 우리가 얼마나 숲을 아끼는지 그녀도 알게 되었었고... 또 이 숲에는 그녀의 친구를 고치기 위한 약초들이 자라고 있 지 않은가. 절대 숲을 파괴하지는 않을 걸세." 그렇게 말하면서도 믿음은 가지 않는 얼굴로 늙은 엘프는 애써 자신을 가라앉혔다. "하긴... 그렇겠죠." 젊은 엘프 하나가 다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약초를 찾기 시작했다. 또 하나가 그의 뒤를 따랐다. 엘프들은 처음처럼 모 두 조용히 자신이 맡은 약초를 찾는데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 했다. 숲 한켠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산적들의 비명소리를 애 써 외면하면서... '젠장... 제발 적당히 해라. 류이네리아....' 그들은 모든 것을 초월한 냥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갔 다. ***** 유닉스도 써 봤습니다. 리눅스도 건들여봤습니다. 맥킨토시도 써 봤죠... 도스도 써 봤는데... 윈도우즈는 첨이랍니다.ㅠㅠ 흐흐흐흐. 오늘도 대 여섯번 껏다 켰는데... 이러다가 완전히 망가지는 것 아닌지 몰라요...ㅠㅠ 뭐, 점점 익숙해집니다. 그냥 쓰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이피 설정하고, 컴들간에 연결시키고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네요. 특히... 맥이랑 붙이려니... 잘 안붙고 있답니다. ㅡㅡ;;;; 흐음... 오늘 분량은 조금 짧았어요. 글을 끊기가 애매해지다보니 그리 됐네요. 내일 분량은 또 쳅터가 바뀌니까요... 아아아아... 일주일간의 삼연참이라... 제가 보통 올리는 한회 분량이 책으로 15페이지 정도 되거든요. 그게 세번에다, 일주일이니... 315페이지. 정확히... 책 한권 분량이군요. 으으으윽....(내가 미쳤지.. 미쳐서 그런 약속을 했던게야....) 네. 일주일간... 비축분 빼고서라도 책 반권을 쓰는 기행을 벌이게 생겼습니다. 우우우우....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34, Read : 2321, IP : 211.215.56.157 2002/08/24 Sat 21:09:20 → 2002/08/24 Sat 21:09:51 해츨링아 ]ㅁ[/ 1타인가요? 아이 좋아~ 은빛님 용기의 물약을 드릴테니 강화초록물약을 드신뒤에 드시면 3배의 효험! ]ㅁ[ 2002/08/24 아리 주...주소를 알려주셔요... 최상급 포션 박카스를... 2002/08/24 와~~ 잼따 2002/08/24 검은포효 너무 양이 적어여..ㅠㅠ.....평소 두편 분량....쩝....낼부턴 다시 많이 많이 올려주세여~~~~은빛님 화팅임돠~~~ 2002/08/24 눈이 힘내셈!! ㅡㅡ^ 2002/08/24 [-_-] 너무 짧자낭용, -_- 실오실오~ 2002/08/24 [-_-] 내일도 많이 기대하고있겠습니다 은빛님 핫핫핫~ 2002/08/24 Baal 이건 약속대로 3연참은 하긴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하나를 셋으로 자른 건가? ㅡㅡㅋ 2002/08/24 은빛 아니란 말입니다....ㅠㅠ(지금껏 까지가 딱 2권이구요... 다음부터는 어찌 되었건 3권분량 들어가는... 거랍니다.....ㅡㅡ;;;) 2002/08/24 지나다가 으헤헤! 은빛님 감사. 산적부분읽고 있는데 3개나 더...!!! 오 이런...~!!! 감사감사...*^^* 행복(*무한수) 하세요~~ 2002/08/24 현아 더 없어여~????????//으앙,,, 2002/08/24 lpbk 후후후. 은빛님 화이팅입니다. 315페이지. 연참의 신화는 계속된다. 은빛님,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쿡쿡쿡... 2002/08/24 멜로막스 믿어요. 은빛님~ ^^ 2002/08/24 희팅이 비나이다...비나이다...님의 연참이 성공하기를 비나이다.. 2002/08/24 실피리아 님~ 정말 저아여~ㅡㅡㅋㅋ 2002/08/25 비아락테 힘드시면 굳이 3연참 안 하셔도 되요;; 짧아도 좋습니다. 성실 연재만 하신다면^-^ 2002/08/25 시화랑 매일 하나씩만 올려도 괜찮아요. 굳이 연참 할 필욘 없답니다 설마 란도 양심(?)이 있는데 백년전과 똑같은 일을 벌이지는 않겠지요?[웃음] 2002/08/25 라인 신난다... 연참이다!!!! 님... 정말 기다린 보람이 있었네요.^^ 2002/08/25 원이 오늘도 역시 3편이 올라와있군요.. 넘 기뻐요.. 근데 양이 줄은듯....홍.......막바지 여름.. 건강조심하시고요.. 부디.. 약속을 지켜주시길............아님.. 성실연재라도.....^^ 2002/08/25 적화(赤 오옷..!!! 좋군요.. 므흐흐..!! 금방 방학숙제하다가 컴터가 갑자기 맛이 가서 숙제가 다 날라가버렸었거든요..ㅡㅜ.. 그래서 우울해 하고 있었는데.. 올라와 있다니.. 힘을내서 다시 해야겠지요.? 후훗. 잘읽고 갑니다~^0^ 2002/08/25 *^^* 은빛님 글은 언제나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2002/08/25 웃으며살 재밋네요 2002/08/25 유니아 `젠장... 제발 적당히 해라 . 류이네리아.....` 멋진 대사네요. 잼 있었어요. 근데 그 적당히 라는 말이 가장 안 어울리는 인물이 쥔공인데.... 모조리 없애 버려!!! .....ㅋㅋㅋㅋ 2002/08/25 앗싸조쿠 혹시 윈미라도 쓰신다면........안정패치 화일 있는데..그거 드릴까요?? 윈미 전용이라.. 330인데도.. 웬만한 펜3(500~700) 보다는 잘나오던군요..훗.. 그리고 클릭투 트윅이라는 플그램도 함써보서요.. 좋던데.. 일주일에 한번정도 레지 정리하고.. 인터넷 속도 잡아주고.. 생각있으심.. 말씀하세요 구루구루아이디(regood)이고 버디(lg7316)이고 핫메일(lg7316@hotmail.com) 입니다..한메일은 (regood@hanmail.net)... 2002/08/25 ㅇ.ㅇ 창파기는 연중이예요??!!!!!!!!!! 2002/08/25 ㅇ.ㅇ 창파기도 올려주세요!!창파기 보구시퍼여!!ㅠㅠ 2002/08/25 열혈고딩 25일분 3연참은 어디로....ㅡㅡ;; 2002/08/25 moya`ㅡ` 캬캬캬_ 작가님 수고하세요^ㅡ^ 2002/08/25 시젠 은빛님 ,요즘 들어올때마다 있어서 너무기뻐요.. 2002/08/25 유 불..불쌍하다ㅠ_ㅠ.......... ㅋㅋㅋㅋ... 외뿔엘프들 무지무지 불쌍해ㅋㄷㅋㄷ.... 2002/08/25 새벽 ㅇㅇ 열받아서 검기 뿌려서 나무 다 뽀개버리면 조켓다.+_= 2002/08/25 지옥숙녀 은빛님 수고하시네요~! 은빛님이 힘드실수록 저희는 기쁘답니다...[키히힛] 2002/08/25 -_- 음냐 -_- 오늘은 왜 없수? 2002/08/25 white `기행`이라니요??? 제가 보기엔 `선행`에 더 가까운데...^-^;;; 2002/08/25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1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6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80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7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그래! 그 성질 어디다 버리나 했다! 류이네리아! 이 말썽 꾸러기! 다시는 이 숲에 오지 마! 이 나쁜 말썽꾸러기 같으니! 백년이나 걸려 기른 나무들을 이렇게 분질러 놓다니!" "시끄러! 백년 전처럼 불지르지 않은 것만도 많이 참은 거 라고 생각해!" "이 놈이 말이라고 다 되는 줄 알아?!" "란님! 타타이타르님! 진정하세요!" 금아가 바락바락 우겨대는 우리 둘 사이에 끼어 들었다. 골 치아팠던 산적들 청소도 다 끝나고, 덤으로 골치 아파질 지도 모르는 놈들의 청소까지 끝냈을 무렵 즈음에는 우리도 이 숲 과 산맥을 따라 하는 여행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이제 한 나절만 더 가면 프란의 작은 국경마을이 나올 참이었다. "젠장! 옛 친구씩이나 되는 놈 주제에 배웅은 못해 줄 망 정!" "친구의 백년 기반을 모조리 들러 엎고 떠나는 놈이, 뭐? 친구? 옛 친구?"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해 가는, 덕분에 이제 의식이 없을 때보다는 있을 때가 더 많아진 루데릭과 두 기사들이 자신들 도 뭔가 할 수 있다며 떼를 쓰는 바람에 서서히 일이 귀찮아 질 무렵의 깊은 밤, 타타이타르는 날 찾아왔다. 그러더니만 다 짜고짜 리리프 나무 꼭대기로 끌고 올라가더니만, 바짓가랑이 를 잡아당기며 시비를 걸어댔다. "말을 바로 하라구! 내가 나무 몇 그루 부러트린 건 사실이 지만 그 때에 비하면 정말 양호한 수준 아니야!" "봐라! 이 흉칙한 모습을! 숲 전체에 부분 땜빵을 내 놓은 놈이 할 소리냐?!" "익!" 정말로 보아 하니... 가관이었다. 커다란 리리프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숲은... 마치 여기 저기 원형 탈모증 걸린 원숭이 등짝마냥... 까져 있었다. 이런... 실수한 건가? 아무래도 그는... 내가 밀어놓은 저 산적 토굴 때문에 화가 난 듯 싶었다. 그렇 다면야... 할 말은 없다. 싸울 때는 나름대로 나무를 지키기 위 해 신경을 썼었지만... 본거지로 파고 들어갔을 때는 그런 배려 를 해 본적이 없었으니까. "아아...." 그들이 나무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은 모르지만 얼추는 알 고 있었다. 그들은... 백년 전 내가 부러트린 오백년 된 리리프 나무를 안고... 내가 내 스승을 잃었을 때만큼이나 애절하게 울 부짖었다. "젠장." 내가 뭔가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짓자 타타이타르는 고개를 팩 돌렸다. 난 픽 터져나올 듯한 웃음을 애써 참았다. 타타이 타르가 한참 화를 내다가 저렇게 고개를 돌릴 때는... 화가 풀 렸을 때다. "미안해." 난 고분고분히 사과했다. 타타이타르의 귓볼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젠장. 그 나무들은, 모두 다 백년 전에 내가 직접 심은 놈 들이었단 말이다...." "......." 타타이타르의 커다란 눈에 살짝 눈물이 어렸다. "자식 같은 놈들이었는데...." "미안해, 미안해. 앞으로 이 숲의 나무들을 싸움에 휘말려 부러지게 만들지 않을게." 타타이타르의 눈에서 결국 투명한 물방울들이 떨어져 내렸 다. 난 밤새 내내 무릎에 매달려 울어대는 타타이타르를 달래 야 했다. 다음 날 날이 밝기 전, 다른 일행들이 눈을 뜨기 전에 타타 이타르는 떠났다. 그는 가기 직전에서야 잘가라는 말을 해 주 고는 주먹보다 조금 큰, 작은 뭉치 하나를 내게 건네줬다. 그 가 직접 채집한 약초로 만든 약이었다. 하아... "이걸 주려다가 괜히 심술이 났었군." 쑥스러워서였을 지도 모른다. 그건 그의 식대로 표현한 이 별의 섭섭함이었다. "오늘밤에는 마을에 닿을 겁니다." 아침을 대강 챙겨먹고, 우린 지친 말들을 천천히 끌고 길을 다시 나섰다. 오늘 마을을 만나면... 이제 프란의 수도로 들어 갈 때까지 노숙할 일은 거의 없을 참이었다. 프란은 큰 나라이 기도 했지만, 하나로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는 탓에 작은 마 을들이 부족 단위로 잘 발달되어 있는 소국 형태의 기반이 남 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주무실 수 있을 겁니다." 일행들이 얼굴에도 오랜만에 희망에 가득 찬웃음이 떠올랐 다. "난 목욕부터 해야 할 것 같아." 셀레라의 목소리도 묘한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 우리가 프란의 국경을 넘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작고 아 담한 마을이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야 아담보다는 초라에 가 까운 마을 건물들과 낮은 담장들이 애처로울 지경이었지만... 보름여간의 생고생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의 눈에 진흙으로 지어 마른 나뭇잎으로 지붕을 올린 단촐한 여관은 왕궁보다도 더 황홀해 보였다. "이... 곳인가?" 감격에 물든 목소리로 하르크가 말을 멈춰 세웠다. 삐걱거 리는 초라한 나무 간판 위에는 분명 여관을 의미하는 침대 그 림이 새겨져 있었다. "손님이신가?" 늙은 주인이 굽은 허리를 지팡이로 지탱하고 모습을 들어 냈다. 그는 꾀죄죄한 우리 일행의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한 표 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목욕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내가 먼저 하겠어!" 마차의 문이 발칵 열리며 수세미 머리의 셀레라가 모습을 들어냈다. 머리가 엉망으로 엉키고, 손질조차 하지 못하게 된 이후로 그녀는 단 한번도 마차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녀 는 누가 제낄세라 급히 여관의 문을 밀치고 노인에게로 다가 갔다. 그녀의 팔꿈치에 부딪힌 클로네가 작게 표정을 구겼지만 셀레라는 돌아 보지조차 않았다. 그녀는 노인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어디지?" "아, 네... 저 쪽에 물통이 그려진 방이랍니다." 줄기줄기 빛을 내뿜는 셀레라의 시선에 눌린 노인이 어눌 한 손짓으로 목욕실의 문을 가르쳤다. 다음 순간 셀레라의 모 습은 이 곳에 남아있지 않았다. "허, 허허허허...." 노인이 허망한 듯 웃었다. 우린 어깨를 조금 으쓱여 보였다. '본래 저런 귀족아가씨거든요...' 등등의 적지 않은 의미가 담겨 갔으리라. 오랜만에 제대로 끓이고 볶고 구운 음식들이 위장으로 들 어갔다. 재료의 좋고 나쁨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른 음식 과 생풀로 때운 보름이었다. 뭔가 보글보글 한 음식이 나왔다 는 것만으로도 우린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참아야 했다. 노인 은 다 안다는 얼굴로 음식을 날랐다. 셀레라는 음식이 다 나올 무렵에서야 모습을 들어냈다. 무려 세 시간이 넘는 목욕시간이 었다. "얼마나 오래 묵으실 예정이십니까?" 여관 주인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난 힐끗 일행들의 안색을 살폈다. 모두 딱딱히 굳어진 폼이, 조금이라도 오래 쉬고 싶다 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마을을 지나도 바로 다음 마을이 나오 기는 하는데... 하지만 클레이브의 저 애절한 표정을 외면할 만 큼 난 독하지 못했다. "이틀이요." 뒤쪽에서 누군가가 커다랗게 한숨을 쉈다. 짧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다음 마을은 조금 더 크고 깨끗하다는 것을 알 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의 불평은 대강 접게 만들어야 했다. 노 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조금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우린 식사를 마치고 다시 덥혀진 목욕물을 받아 하나 둘 목욕을 시작했다. 그 첫 순서는 클로네였고, 다음은 내 어린 주인과 두 시동들이었다.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스테판이 고개를 휙휙 소리가 날 정도로 저어댔다. "안돼요. 아직 귀 뒤까지 깨끗이 못씻잖아요." 나 역시 강경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중간에 끼인 클레이 브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다가 귀 족이었기에 당연하게 목욕 시중을 받아왔던 그였으니, 자신을 어른이라 박박 우기며 혼자 씻겠다고 주장하는 스테판과 벌개 진 얼굴로 연신 고개를 흔들어대는 크레이의 모습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듯 했다. 제길. 무신경한 귀족이었다면 당연히 혼자 시중을 받겠다 했을 텐데! 아.. 욕이 늘어간다. "그리고, 목욕 시중은 제 일 중의 하나랍니다." 모두의 시선이 클레이브에게로 꽂혀갔다. "그럼 도련님 먼저 하세요. 저희 둘은 나중에 순서에 따라 씻겠습니다." "하, 하지만...." 아직 털도 안났을 어린놈들이 뭐 그리 가리고 싶은 게 많 은지! 게다가 클레이브까지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조금 붉 어진 얼굴로 힐끔 날 훔쳐보더니만 고개를 저어댔다. "..........나도 혼자 할 수 있어." "도련님. 어른이라도 귀족은 시중을 받으시는 거예요." "아버지도 받으셔?" 대뜸 그가 물어왔다. 순간... 나도 당황했다. 후작? 페르로이 후작 말인가? 그가 목욕을 혼자 하던가? 아니면... 하녀 중의 누군가가 시중을 일일이 드는 건가? 순식간에 저택의 하녀들 이 줄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범하게 후작의 목욕시 중까지 들 여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직업인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후작께서는 어른이시잖습니까." 혼자 구석에서 웃음을 눌러 참고 있던 금아가 끼어 들었다. "나도 어른이다." 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여덟살짜기 꼬맹이가 가슴을 주욱 폈다. 순식간에 꼬맹이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막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들은 클레이브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당 당한 포즈로 허리를 펴고 서서는 고개를 흔들어댔다. "란의 도움 없이 저희들끼리도 할 수 있어요." "그런가요?" 금아가 빙긋 웃었다. "네." 크레이가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단지 목욕 때문만이 아니라도 세 사람만 있게 해 줄 수는 없어요." 금아가 무릎을 살짝 낮춰 소년들과 눈 높이를 같이했다. "왜지?" "산적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마을로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아 직 아카데미에 도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언제 어떤 위험이 닥 칠 지도 모릅니다. 아직 검을 쓸 수 없는 세 사람만 둘 수는 없어요." "............란은?" 잠시 갈등하던 클레이브가 미심쩍은 얼굴로 내 쪽을 향했 다. 하긴, 이 세 소년들 중 내 진정한 모습에 대해 제일 아는 바가 없는 자가 클레이브였다. "란도 강하답니다." "그래?" 클레이브는 답을 구하는 것처럼 잠시 날 보다가는 스테판 과 크레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스테판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 다. 그는 달밤에 남작의 집에 쳐들어갔던 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중은 필요 없어. 그러니까 금아, 자네가 차라리 지켜줬으면 좋겠어." 금아가 내 쪽으로 찡긋 한쪽 눈을 감아 보였다. 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항복을 선언했다. -걱정 마세요. 귀 뒤까지 깨끗하게 잘 씻겨 드릴 테니까.- 금아가 세 소년들과 함께 욕실로 들어가며 전음을 던졌다. 녀석, 자신도 대 귀족 출신인 주제에 언제 다른 사람의 목욕 시중을 들어 봤다고 그러는 건지... 어... 라? 대...귀족? 그러고 보니 금아도 대공이었지? "아...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네?" 막 문을 닫으려던 금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멈췄다. 난 내가 지을 수 있는 표정 중 가장 짓궂게 웃어 보였다. "베이르 대공께서도 하녀들에게 목욕 시중을 받으셨을까?" -쾅!- 한 조각의 응답도 없이 문이 닫혔다. 하지만 난 분명히 봤 다.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른 금아의 귓볼을! 헤헤. 이겼다. **** "자아! 그럼, 다음 일을 해 보실까?" 난 우드득 뼈마디를 풀었다. "뭔가 더 필요하신 일이 있으십니까?" 주인이 다가와 공손하게 질문했다. 난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만, 다음 일은 하녀로서의 제 일이라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조용히 물러갔다. 허리가 굽 은 노인치고는 아주 조용하고 단아한 발걸음이었다. "볼수록 수상한 노인네야." 음식은 맛있었고 독이나 다른 것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 건 합격. 침실도 보아하니 다른 특별한 장치 같은 것은 되어 있지 않았다. 한가지 걸린다면 벽이 좀 얇다는 것? 힘이 센 기 사급의 장정이 커다란 도끼나 거도를 들고 휘두른다면 한번에 금이 가고 세 번에 부서질 만큼 얇았다. 뭐, 가난한 동네 여관 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의심스러운 건 목욕물이었 다. 분명 셀레라가 몽창 써 댄 다음, 우리가 다시 목욕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한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런데... 그는 어떻 게 우리가 올 시간대 즈음에 미리 목욕물을 만들어 놓을 수 있었을까? 하루 종일 올 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끓이고 있었을 리도 없을텐데! 하긴, 그것도... 철저한 영업 정신의 일 부로 본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일단은 조심해야 한다. "말들은 무사한데..." 하르크가 마굿간을 휭 하니 살피고 들어왔다. "여물도 좋은 것을 준 것 같고 이상한 건 섞이지 않았소." 그런데 표정이 영 아니었다. "무슨 일 있나?" "좀 수상한 놈들이 있는 것 같아서... 여관에서 주는 것들 자체는 다 괜찮고 좋은 것들인데, 나무 뒤쪽과 위쪽에 숨어서 힐끔힐끔 보는 놈들은 영 수상쩍수다." "아아..." 나도 그게 제일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동네 건달들인가?" 귀족의 일행에 돈 될만한 것이 많다는 건 상식중의 상식이 었다. 문제는 그런 일행일수록 경비가 삼엄하고 실력이 뛰어난 경호원들이 지킨다는 것인데... 하긴, 그 험한 산맥과 숲을 끼 고 있는 관문을 지키고 있는 산적들을 우리만 만났을 리가 없 다. 아마도 이 마을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마 차들은 산적들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지치고 약해져 었으리라. 그렇다면... "좀도둑이나 산적 아류 정도 되겠군." 요행이 산적들을 막아내고 온 사람들도 이런 작은 마을에 조차 그 끄나풀들이 연결되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지. 분 명 적당히 털리고, 나름대로 친절한 여관 주인의 서비스에 기 분이 풀려 돌아갔을 게다. 저들이 우릴 덮치면 분명 주인은 '자신도 저 놈들 때문에 못살겠다.'며 하소연하겠지. "한 패일까" "한 패 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방관하고 조금의 도움과 수수료 정도는 챙기고 있겠지." 미리 준비된 목욕물과 얇은 벽이면 그 근거로 삼고 경계하 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려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하르크가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 다. "뭐, 다른 게 있나? 하녀의 본업이... 청소인데." "헤, 헤헤헤헤헤헤." 하르크는 조금 징글맞게 웃었다.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 고 조용히 여관 밖으로 나갔다. 나무 위와 나무 뒤, 지붕 위에 나름대로 잘 숨어있던 기척들이 꿈틀거렸다. 하르크의 몸이 꽤 빠른 속도로 튕겨져 올라갔다. 지붕 위에 엎드려 있던 자의 멱 살이 한번에 들어올려졌다. 하르크는 그를 냉큼 내 쪽으로 집 어던졌다. 그리고는, 앗 하는 사이 몸을 일으켜 막 달아날 준 비를 하던 두 놈을 잡아냈다. "꽤 늘었는데?" 어느 새 혈도까지 집혀져 있는 세 놈을 보며 난 흐믓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몇 번 대충 가르쳐준 것뿐인데, 상당히 잘 해 냈다. "어디 한번 이번 일은 혼자 해 보겠어?" "물론! 청소는 하녀의 본업이지만, 쥐새끼 색출은 그림자의 본업 아니유!" 하르크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피식 웃어주고는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멀찍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 리들이 희미하지만 또렷하게 연달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때리는 이유? 몰라! 일단은 그냥 무조건 맞기부터 해!" 하르크의 미친 듯한 고함 소리에 아련히 섞여서 말이다. 쯧, 놈 배우려면 좋은 것만 골라 배우지 그런 점까지 배웠냐? 하 긴, 노도도 가만 보면 의외로 미친 구석이 있기는 한데... 이 나도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저 하르크가 어디서 그런 장면 을 보고 배운 걸까? "허어어어어엉! 뭐, 뭐든 마, 말할께요! 뭐든 시키는데로 할 께요! 제발 좀 그만 때려여어어어어어어엉..." 희한한 일이다. "하아아아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들려오던 잡음 소리가 줄어들었다. 막바지에 도달했겠지. 이번 일은 하르크 혼자서도 충분할 듯 싶었다. 게다가 나도 더 이상 그 쪽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을 수도 없었다. 딱히 별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마을 안을 헤집고 다 닌다면, 누군가는 일행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난 좀도둑들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털었다. "흠! 나도 그만 엿듣고 조금 쉴까?" 몸을 뒤틀자 뼈마디에서 또다시 우드득 소리가 울렸다. 누 군가를 지킨다는 건 예상외로 많은 긴장과 힘이 들어간다. 조 금씩 쌓이던 피로감이 이제는 제법 묵직해져 가고 있었다. 방 문 안쪽에서 곤히 숨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다들 잠든 모양 이었다. 작은 여관에는 방이 둘밖에 없었다. 클로네와 셀레라가 작 은 방 하나에 몸을 쉈고 다른 방 하나에 다친 기사들과 클레 이브들이 자리잡았다. 금아와 나와 하르크는 마루바닥에 자리 잡았다. 하긴 그 편이 움직이기에는 더 편했다. 밖에서 찬바람 맞으며 노숙하는 것보다도 좋았고. 난 방문에 등을 기대고 앉 았다. 마루 한 구석에 모포를 깐 셀레라의 하녀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가씨도 나쁜 사람만은 아니라고?' 문득 그녀가 낮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날이 갈수록 표독스 러워지는 셀레라의 짜증에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입장 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들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 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그녀를... 이 낸리라는 하녀는 감쌌다.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분이거든요.' 위로 언니만 줄줄이 넷, 쌍둥이 오빠와 함께 태어난 그녀는 다섯 번째 딸이라 했다. '모든 사랑과 관심은 도련님께로 쏠려갔죠. 아가씨가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남달라야 했어요. 아가씨의 재능은 결국 너무 평범했었으니까.' 죽어라 노력해서 공부는 잘했지만 결국 중요한 재능은 발 휘하지 못했다고... 그게 인정받지 못한 서러움과 겹쳐져 지금 의 셀레라가 되었다나 뭐라나... 뭐, 내가 보기에 저 성질머리 야 말로 악마가 저주한 재능이 아닐까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낸리 같은 하녀를 만난 건 그래도 신이 셀레라에게 주신 분명 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이해해 주려고 애쓰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니까. 있어도 보는 눈이 없는 바보 에게는 아무런 쓸모 없겠지만.... 낸리를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는 셀레라의 태도는 나조차도 화가 날 지경이었지만 낸리는 단 한번도 분노나 슬픔 같은 감 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낸리는 어떤 면에서는 정말 대단한 사 람이었다. "후... 고생길이 활짝 열렸군." 세 기사들의 부상이 완치되려면 한달은 족히 걸린다. 그 것 도 타타이타르가 준 약초들을 써서 잘 요양했을 때의 이야기. 그대로 인간들의 약을 사용해 치료한다면 두 달은 걸린다. 게 다가 저 셀레라의 짜증을 참으며 가려면 석달은 족히 걸릴 터!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법이니까... 앞으로 목적지까지 걸릴 시간은 대략 잡아 한달. 이번 여행 은 기사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외형적으로나마 그들이 있어주는 편이 훨씬 편한데... 아쉽기는 하지만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루데릭이 말을 타게 할 수는 없었다. "날파리들이 꽤나 꼬이겠는걸?" 호위병도 마땅히 없는 귀족가의 화려한 마차라... 분명 먹음 직해 보이는 사냥감이 아닐 수 없었다. ***** 조..금만 쉬고.....................푹!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12, Read : 1812, IP : 211.215.56.157 2002/08/25 Sun 20:50:16 → 2002/08/25 Sun 20:55:56 lpbk 우아아!!! 첫타다!!! 감격이예요♡ 은빛님 파이팅이구요, 앞으로도 연참의 신화는 계속되지요? 믿습니다♡(싱긋) 2002/08/25 ㅇ.ㅇ ㅜㅜ 창파기도....올려주시지.. 2002/08/25 ㅇ.ㅇ 하지만~최강의 하녀도 너무 재미써여 ㅋ헌데 륜이 너무 궁금해.~~ㅠㅠ 2002/08/25 ㅇ.ㅇ 글을 지울려구 하는데 비번..물어보지도 않구.ㅡㅡ; 비번이 안맞다고 하는.. 2002/08/25 [-_-] 오아아아앗. ^_^ 재미만땅~은빛님 수고~ 2002/08/25 moya`ㅡ` 은빛님화팅_ 2002/08/25 SERENAIN 냐하~~은빛님 점점더 재밌어지는군요...^^ 2002/08/25 시젠 란,,금아 놀릴 때 넘 귀여웠어요 .훗.훗. 은빛님 열심히 써 주셔서 감사해요.힘내세요,, 2002/08/25 세라자드 호호~ 연참이 하루하루 기록을.... 은빛님 화링~~ 2002/08/26 혈향단화 ..호오...셀레라의 과거의 파편이 저 드러운 성질머리인가 보군요...;; 2002/08/26 아라리요 저...조금 쉬신다는건 얼마의 시간을 말씀하시는건지...심히 걱정이되는군요.... 2002/08/26 지옥숙녀 은빛님 힘내세요~!! 벗뜨!! 아무리 어두운 과거가 있다고 해도 셀레라의 저 고약한 성질머리는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군요; 2002/08/26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2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2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6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80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7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우린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 의외로 여관 주인과 공생하는 좀도둑들이 많았다. 처음 도착했던 그 마을의 여관도 그렇고, 그 다음 마을에서 들어갔던 조금 크고 깨끗한 여관도 그랬다. 돈이 많은 귀족이니 적당히 털린 것 가지고는 크게 날뛰어 여 관까지 피해를 입히지는 않으리라는 계산이었겠지. 또 그들은 여관에서 좀도둑과 손을 잡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 까. 그런 도둑들의 모임을 벌써 몇 마을을 돌며 몇십 군데를 찾아냈는지 모른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도적들도 의외로 많았고 노상강도들도 많았다. 게다가 크레이의 모습을 본 놈들이 미쳐 날뛰었다. 다짜고짜 다가와 크레이를 팔라며 돈주머니를 내민 정신 나간 놈부터 크레이를 납치하기 위해 숨어들어 오려다 우리 손에 잡힌 놈이 몇인지... 한 열까지는 셌는데, 지쳐 그만 둬 버렸다. 나와 금아와 하르크는 돌아가며 그들을 잡아냈다. 우리가 지나간 다음에라도 감히 따라 올 생각을 하지 못하도 록 질끈 밟아준 것도 물론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레이는 풀이 죽어 버렸다. 르카 인이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아버지까지 헤어진 슬픔을 묵묵히 다스리고 있던 소년은 연달아 그를 노예취급하 며 접근하는 사람들의 욕심에 질려버렸다. 문에 바짝 댄 마차 에서 내려 식당이나 여관의 문을 들어서자마자 그에게로 몰려 드는 취한 사람들의 지저분한 호기심의 시선들은 아무리 눈이 안보이는 그라도 피부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방향을 잃 은 셀레라의 화풀이성 독설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크레이는 아 예 마차에서조차 내리기를 꺼려하게 됐다. "크레이... 하지만 너도 숴 둬야 하잖아." "전... 괜찮아요. 이 안이 더 편해요." 창문을 온통 꼭꼭 걸어 닫은 크레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 려왔다. 문을 몇 번 더 두드려보던 금아는 작게 한숨을 내쉈 다. 앞으로 길은 열흘 정도가 더 남아있었다. 좋건 싫건 그 동 안은 계속 여행을 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마차 안에만 처박혀 있는 건 좋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도착한다 해서 뾰족한 방 법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크레이의 마음의 병은 이미 깊 어져 있었다. 가끔이나마 지어 보이던 밝은 웃음은 이미 사라 져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였다. "크레이." 여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용히 밖에서 기다려주던 클 레이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어제까지는 사람들에 뭍혀 그냥 저냥 여관 안까지는 들어왔었는데... 어젯밤 술 취한 사람들의 안주가 되어 조롱당했던 일이 결정적으로 가슴에 깊이 맺혔나 보다. "좀 더 패줘야 했는데..." 하르크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화가 치밀기는 나도 마찬가 지였다. 주위 눈이 있어 심하게는 하지 못하고 치명적이지 않 은 곳으로 골라 몇 군데 부러트린 후 이가 모조리 부러질 때 가지 짓밟아주기는 했지만... 지금 보아하니 그 위에 두어대는 더 패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의 상처는 한 두 달이면 낫지만... 어린 소년이 정신과 마음에 입은 상처는... 어쩌면 평 생 남을지도 모른다. "들어가자. 함께." "......죄송해요." 낮게 쉰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크레이는 아예 마차 의 문까지 걸어 잠궜다. "기다릴게." 클레이브의 반보 뒤에서 스테판이 작고 단단하게 말했다. 우리만이 아니었다. 그 동안 정이 들 데로 든 부상당한 기사들 과, 클로네, 셀레라의 하녀까지도 여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 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마차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레이... 네가 건강해야지. 네 아버지께서도 네가 건강하기 를 바라실게다." 크게 다친 이후로 부쩍 말이 줄어들었던 루데릭이 조심스 러운 목소리로 마차의 문을 살짝 두드렸다. 마차 안에서 부시 럭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눈이 기대로 빛났다. 그 때였다. "겨우 노예 출신 꼬맹이 하나 가지고 지금 뭣들 하는 거 야!" 그 동안 쉬고 먹은 게 다 성대로만 갔는지 쨍쨍하고 날카 로운 셀레라의 목소리가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걱정스러운 얼 굴로 마차의 문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거의 동시에 핏기가 빠져나갔다. 가슴이 철렁했다. 크레이! "내가 왜, 이런 자리에서 기다려야 하는 거지? 하인들과 하 녀들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니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온통 거꾸잖아!" 셀레라는 폭발했다. "셀레라! 말이 지나칩니다!" 결국 클레이브도 터져 버렸다. 막 입술을 움직여 한 마디 하려던 클로네가 멈칫하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우린 얼어붙었 다. 누구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셀레라는 한 때나마 새어머니 후보로 들어왔던 사람이었다. 유달리도 어른스럽고 조심스러운 클레이브는 그녀에게 늘 조심해서 대하곤 했었다. 갑작스런 클 레이브의 반응에 셀레라의 가는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 감히!" "제가 셀레라 백작 영애에게 감히라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 습니다." 딱 부러지는 말로 클레이브는 셀레라의 눈을 직시했다. 작 지만 단단하게 쥔 클레이브의 주먹이 격동으로 떨렸다. "이, 이, 이, 어린 혼혈아 주제에!" "해서는 되는 말과 안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 것을 모르겠 습니까!" "하! 그걸 네게 들을 이유는 없어! 겨우 노예 꼬맹이 하나 감싸자고 날 모욕해?" "모욕한 건 셀레라쪽입니다!" 셀레라의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한 달 넘게 여행하며 그래도 셀레라 영애를 이해할 수 있 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무리인 듯 하네요." 찌를 듯 살기 어린 눈빛으로 클레이브를 훑는 셀레라를 막 아서며 클로네는 담담하게 맞섰다. 셀레라의 손에 쥐어진 부채 가 퍽 하며 두 조각으로 부러졌다. "드높은 자긍심도 좋지만, 조금 더 주위 사람들을 배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귀족의 도리라고 전 생각합니다만." 묵묵부답 굳어진 셀레라를 조금 안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클로네는 조심스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셀레라의 목소리에 떨림이 가라앉았다. "내가 재수 없다고 생각했나?" 차라리 떨릴 때가 더 들을만 했다고 생각하는 건 나만일 까? 기묘한 울림이 그녀의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막 그녀에게 말을 퍼부으려던 사람들의 입술이 한 순간에 멎었다. 설마... 우는 걸까? "그렇게, 한 사람을, 둘러싸고, 공격하는 네깟것들에게! 너, 너, 너....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 모습 자체가 나야. 너희들이 싫으니, 너희들 마음에 들지 않으니 고치라고? 그게 얼마나 이 기적이다 못해 추악한 바램인지 아나? 내가 왜 너희들 따위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정말로 필요한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너희 같은 철부지 어린애들을 위해?" "............................" 셀레라의 물기 없는 눈동자가 풀려있었다. 말에 담긴 의미 보다도 우린 그녀의 행동이 걱정스러웠다. 저 성깔에 지 성질 을 못 이겨 덜컥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페르로이 후작의 입 장은 땅바닥으로 처박힌다. "셀레라." 클로네는 조심스럽게 그녀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순간 셀레라의 눈동자가 살아나며 독기가 확 퍼져나갔다. 그녀의 눈 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만 클로네의 몸이 확 굳었다. 보고 있던 우리들의 몸에서조차 소름이 일시에 돋을 정도의 살기였다. 이 나조차 말이다! "정나미 떨어지니? 나라고 너희들이 좋은 줄 알아?!" 셀레라가 클로네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커다랗게 확 장된 셀레라의 눈동자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절규 그 자체였다. "심한 말을 했어? 흥! 난 죄책감 같은 것 안느껴! 그런 것 안느끼기로 오래 전에 결정했지! 왜 인줄 알아? 난 그렇게 살 아남아 왔으니까! 당연히 그 자리에 있고, 네 자리가 있고, 당 당하게 존중받아온 너희 같은 철부지들은 몰라! 하! 내가 왜 너희들에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거야!" 넘치는 화를 참아낼 수 없던지 셀레라는 부러진 부채 조각 들을 사방으로 던져댔다. 한 조각의 나무토막이 크레이가 버티 고있는 마차 문에 세차게 부딪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내가 누군 줄 알아? 그래! 난 이기적이야! 너희같이 어린것들과 한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욕스러운지 알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셀레라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난 너희보다 나이가 많아! 앞으로 선배가 될 몸이란 말이 야! 조심하란 말이야!" 셀레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멎었다. 그 러나 그 자리에는 그녀 외에 더 이상 말문을 열만한 이성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가벼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 다. 그리고는 자신의 하녀, 낸리의 따귀를 후려쳤다. 쫙 소리와 함께 낸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붉은 손자국이 순식간에 부어 올랐다. "네 일이나 잘해! 건방진 눈뜨지 말고!" 셀레라는 거침없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여관의 문짝이 가 녀린 손에 의해 거칠게 열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폭주 에 당황한 우리들이 채 제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순간이었 다. 막 문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녀의 발걸음이 멎었다. "흥!" 그녀가 홱 몸을 돌렸다. 경멸과 무시가 가득 담긴 시선이 우리들을 주욱 훑었다. 클레이브의 창백하게 바랜 얼굴이 새파 랗게 얼어붙고 있었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넣다니, 정말 너희들의 인간성이 의심스러워." 연달아 겹친 충격에 정말 기절할 지경이었다. 셀레라는 다 시 바람을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천한 것들과 어울려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정말 사회성이 최악이라니까!" 셀레라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녀 는 자신의 완벽한 부활을 알리며 표표히 사라졌다. ".........................." 우리는 모두 말을 잊었다. 방금 전 일어난 일이 과연 현실 이었을까? 성질이 좀 괴팍하다 못해 독특하고, 아니 그런 범상 함을 뛰어넘는 무언가 지독하고 악랄한 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 잘못입니다." "크레... 이?" 헬슥한 얼굴의 크레이가 어느 새 문을 열고 나와있었다. "후........" 그가 더듬거리는 손짓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왔다. 멍 하니 의식을 잃고 있던 스테판이 재빨리 크레이의 팔을 맞잡 았다. "크레이의 잘못이 아니야." 어느 새 눈가에 물기가 어린 스테판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아." 부드득 이를 갈아대며 클로네는 꽉 움켜쥔 두 주먹을 파르 르 떨었다.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걸 죽일 수도 없 고... 멀쩡한 모습으로 프란에 인질로 넘겨줘야 한다니 팰 수도 없고.... 노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한숨이 꽤나 오랫동안 흘 러가야 했다. 그날 이후 셀레라의 직격을 당한 우리들은 알 수 없는 우울증에 상당히 시달려야 했다. 공통의 적을 지닌 덕분 에 쉽게 회복되기는 했지만... 저런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있 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사회성을 지닌 우리'에게는 정말 가볍 지 않은 충격이었다. 고민 끝에 클레이브가 그의 옷을 크레이에게 입혔다. 수수 한 옷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과 반짝이는 눈이 그를 노예 로 보이게 한다면, 그의 외모에 걸맞는 옷을 입히면 된다는 게 클레이브의 생각이었다. 다행히 성장이 늦은 편인 크레이의 몸 에 클레이브의 옷은 얼추 맞았다. 크레이가 옷을 바꾼 이후로 공공연히 찾아오는 매매꾼은 사라졌다. 물론, 야밤에 스며드는 납치범들은 예외였지만...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쓰레기들을 미리미리 찾아내서 정리한 덕분에 클레이브들이 있는 앞에서 나는 단 한번도 검 의 날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그들 앞에서 산적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본색을 들어내고 날뛰어버린 하르크와 금아 는 둘째 치고서라도, 어찌 되었건 간에 난 하녀이고 싶었다. 셀레라와 헤어지고 싶은 마음에 우린 발걸음을 빨리했다. 예정 대로라면 넉넉하게 하루씩 마을에 묵고 떠날 것을 어지 간한 거리라면 무리해서라도 하루 나절에 두 마을을 건너뛰고 는 했다. 그렇게 몇 일을 달린 덕분에 우리는 처음 예상보다도 프란의 수도 카트는 훨씬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날도 우린 아슬아슬하게 노숙을 피해 마을로 들어섰다. 늦은 시간임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 여관의 문을 열자 떠도는 소문에 열중하고 있던 취한 사람들의 커다란 목소리들이 들려 왔다. "이야! 옆 마을의 도둑 길드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건물 한 채가 한 밤중에 갑자기 폭발했다더군! 외벽이 통 채로 무너져 내렸어! 경비병들도 그 곳에 설마 길드가 있으리 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데!" 취객의 앞에 앉아 함께 잔을 부딪히던 남자가 조금 꼬인 발음으로 말을 받았다. 그들의 대화에 귀가 솔깃한 사람들이 하나 둘 자신의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갔다. "흥!" 취객들의 목소리가 불쾌했는지 셀레라가 인상을 벅 쓰더니 자신은 방에서 먹겠다며 방을 찾아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하 도 냉랭한 그녀의 태도에 식당은 잠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지랄 하구는... 귀족이라고... 돼에~ 개! 티내요." "죽고 싶냐? 귀족을 욕하게...." 작게 궁시렁거리는 소리들이 도란도란 들려나오기 시작했 다. 금아가 굳어진 얼굴로 시선을 한번 싹 돌렸다. 아직 우리 가 남아있음을 안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자신 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술김에라도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취객이 다시금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케헥! 도둑질을 하니까... 벌을 받은 거야." "하지만 그들이 노린 건 주로 여행객들 아닌가! 사실 우리 처럼 아예 거주해서 사는 사람들은 안전한 편이었으니..." 복잡한 감상은 싫다는 듯 취객은 두 손을 휘휘 저어 친구 의 말을 막았다. 우린 테이블을 잡고 앉아 음식을 시켰다. "그건 그렇고, 자네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누군가가, 대 귀족쯤 되는 사람이 좀도둑 길드들에 어마어 마한 현상금을 건 것 같다더군!" "뭐?" "아마 어떤 시골 마을쯤에서 된통 당한 적이 있는 자일거라 는 말이 있어. 약이 단단히 올랐었나봐! 미친 놈. 돈 쓸데가 없 어서리..." "하지만 털려 봤자였을 텐데! 그런 귀족이 뭐가 아쉬워서 번거롭게 좀도둑 길드 따위나 털라고 현상금을 걸겠나? 자신 의 호위기사들의 이름을 땅에 처박는 일일텐데! 호위 기사들의 실력을 깎아 봤자 제살 파먹기밖에 더 되나?" 앞의 사람보다는 조금 술이 깬 친구가 제법 잡힌 발음으로 반론을 제시했다. 술에 취한 증거가 손을 홰홰 저었다. "하지만 드러난 증거들이 있다구! 상황이 그렇다니까? 좀도 둑을 터는 자들은 주로 밤에 움직이지! 게다가 누구도 몰랐던 장소를 한번에 찍어내고! 바로 옆집 사람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도둑들을 쓰러트리고 길드를 무너트리지 않나!" "그렇지!" "그들은 그 현상금을 내건 귀족가의 그림자들이라는 말이 있어!" "허!" "세상에 귀족가의 그림자나 암살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그 런 일들을 은밀히 해 낼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도둑 길드만이 아니라 길가의 산도적들도 요즘 모 조리 무너지고 있잖아!" "그렇지! 그래서 도는 소문들이야. 사실 그런 소문이 한 두 개가 아니거든. 귀족이 끼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말이야. 이번에 수도로 각 국의 유학생들이 모이지?!" "그렇지." "돈 많으신 분들이 하는 생각은 알 수 없지만, 각 국의 귀 한 분들이 모이시는 만큼 길 청소를 하는 것 같다는 추측까지 돌고 있어!" "그럼 현상금 사냥꾼들도 날뛰겠는걸?" "그렇지! 정확히 누가 현상금을 주는 지 몰라 애태우고 있 다네! 하지만 그만큼 산적들도 조마조마하고 있지! 언제 그림 자나 현상금 사냥꾼들이 밀려올 지 모르는 일 아니야!" 주점을 겸하고 있는 작은 음식점은 온통 소문 이야기로 술 렁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들리는 이야기는 온통 저것뿐이군." 클레이브는 그들의 이야기에 가벼운 호기심을 보였다. 요 몇 일 째 여관에 도착해 저녁을 들 때마다 들려오던 이야기는 날이 갈수록 그 덩치를 불려가고 있었다. 클레이브는 스픈을 탁자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접시는 어느 새 비어있었다. 클레 이브는 냅킨을 들어 가볍게 입술을 훔쳤다. 그러더니만... 대뜸 뚱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요즘 들어 밤마다 바깥 청소를 다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거야?" "네?" "흐음....." 클레이브는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자신의 접시에 시선을 돌렸다. 흐음이라니? 흐음이라니!! 가슴이 뜨끔했단 말이다! 들 키지 않게 했는데! 분명 확실히 잠든 것을 확인했을 때만 나돌 아 다녔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늘 수혈까지 짚고 나갔는데! "설마 란이 그랬겠어요? 하녀치고는 유달리 강한 건 사실이 지만." 클로네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최강의 하녀라 해도 하녀는 하녀일 뿐이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강의 하녀라... 저 단어가 왜 이 리도 신경이 쓰이는 걸까? 행인지 불행인지 요 몇 일 들어 내 어린 주인과 클로네들은 셀레라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날 놀 려대며 풀고 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유달리 우리가 지나 온 마을마다 도둑 길드가 무너 지고 산적들이 줄줄이 산을 내려오는 건 저도 석연치 않네요." "맞아요. 우.리.가. 지.나.온. 마.을.마다 말이죠." 클로네와 클레이브의 시선이 각각 나와 금아, 하르크를 스 쳐갔다. 금아와 하르크의 고개가 슬그머니 각도를 돌리며 어린 귀족들의 시선을 피해갔다. "걱정이 크시겠어요." 힘든 여행길에 클로네는 클레이브들과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클레이브에게로 말을 건넸다. "작위를 받은 기사들보다도 검을 잘쓰고 노련한 마부들과 하녀라니... 나쁘지는 않았지만... 무난하고 평탄한 시종이라고 는 단 하나도 없다니!... 말이예요." "그렇죠?" 그가 생긋 웃었다. 문득 한 줄기의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장시간 운전을 하고 나니... 많이 힘드네요. 길은 왜 이리 막히는지... 내려갈 때는 꽉꽉 밟고 갔는데... 'ㅡㅡ'''' 삼연참의 세 번째 부분은... 비축분이 오래전에 떨어진 관계로... 오늘 중이나...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 (전 12시를 기점으로 날짜를 계산하지 않는답니다. 기점은.. 아침 9시.) 세번째를 올리겠습니다. 후.... 이제 사흘 더 남은거죠? (풀썩!) 아... 그리고.. 지난 회 두편이 분량이 조금 짧았습니다. 그 부분은 저도 인정했고... 사과 드린 것 같은데//// 안드렸었던가..도 싶네요. 꾸벅. 몇일째 올린 글들중.. 마지막쪽이기는 하지만. 두편이 짧았다고... 그동안의 모든 양들을 도매금으로 넘기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겨우? 라는 글... 읽으면 굉장히 가슴아프고 맥빠진답니다. 열심히 했는데... 정말 한 두개가지고 모조리 부정당하는구나. 싶어서 말이죠. 새롭게 시작되는 더위에 조금 지친... 은빛이었습니다.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38, Read : 1814, IP : 211.215.56.157 2002/08/25 Sun 20:52:58 → 2002/08/25 Sun 21:04:28 lpbk 어, 얼라아. 글 번호가 왠지...50에서 그냥 52로 건너 뛰었는데요오? 게다가..으음..내용이 똑같아요오...;; 어찌됬든!!! 연참의 신화는 계속된다!!! 은빛님 화이팅!!! 2002/08/25 네이-_- 흠 2타가 ㅋㅋ 2002/08/25 네이-_- 누를때마다 조회수가 늘어나네.. 2002/08/25 은빛 아... 글을 정리하면서 붙여넣기를 실수했네요. 고쳤습니다... 그럼.. 잠시만... 2002/08/25 열받은 부탁입니다 아무쪼록 셀레나를 박살내 주세요. 더이상 이 열받아서 이글을 못 보겠군요. 2002/08/25 새벽 오오오+_= 2주간 쉬시더니 힘이 솟아나시는 듯.+_= 2002/08/25 룬 마지막에...그꼭 은빛에게 용기를 이라고 쓰시던데..구거보면...예전에 만화영화가 생각나네여....당나귀였던가..구게 귀에서 멀쏴서..용기를 주는건뎅...기억이 가물가물.. 2002/08/25 원이 음 동감이예요.. 아예 수도에 빨리 도착해서 다시는 출연안했으면... 아님 확 물먹을 일 하나 만드는 건 어떨까요.. 음 엎어놓고.. 비오는날 먼지나도록 패주고 싶어........^^ 2002/08/25 moya`ㅡ` ㅋㅋㅋ 잼따ㄷ잼따]_[ 2002/08/25 코로코로 쌤- ㅠㅅㅠ 사랑하는거 아시죠? 2002/08/25 샤를휘나 와~우 !!!란의활약이눈부시네요! 은빛님 화이팅!! 2002/08/25 Baal 죄송합니다 은빛님 절대 나쁜 뜻은 아니었지만 제가 다시 읽어 보니 나쁜 뜻이었더군여.. ㅡㅡㅋ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젠 술을 꽤 많이 마셔서 꼬장을 부린 듯 하네여 잊어주세염 ㅡㅡㅋ 다신 이런 짓 안 할께여 맘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ㅡㅡㅋ 언제나 건필 해 주시길.. 2002/08/25 뢰운 으으..30분에 한번씩 와서 올라왔나 확인중이네여;; ㅋㅋ넘 잼이써요! 3연참..그냥 한달끌면 안될까여; 2002/08/25 금성 은빛이 넘넘 재미있게 보고있어요... 그런데... 힘드실줄알지만...창파기가 넘 보고싶어요... 언제나 올라오나요.. 2002/08/25 ㅇ.ㅇ 3연참이 끈나면 보통때보다 세배정도 되는 분량을 한편씩..ㅡㅡ;; 바라는건..안되나요? 2002/08/25 SERENAIN 우와 요번것은 길었던듯..^^ 냐하..잼습니당.~~~~~^^은빛님 화팅...~~~~~~~ 흑..창파기1부는 책으로 봐야징 2002/08/25 시젠 셀레나 성격 개선 해주세요.어떻게 다른사람을 모조리 나쁘게 만들다니 .말빨 상당히 좋네요,읽다가 딴사람들이 나쁘게 들려 순간 놀랐습니다. 글구 란을 놀리다뇨.클로네도 많이 쌓였나보네요. 2002/08/25 현아 셀레나도 불쌍하당,,ㅜㅜ 노도의 갱생작업을 함 겪어봐야할듯,,ㅎㅎ 암튼 은빛님아,,,,,,창파기1부부터 팬입사람입니다,,^^ 얘전에 독촉멜도 함 날려봤구여,,^^ 힘내세여~!! 2002/08/25 네이-_- 오늘은 3연참을 못했군여.. 2002/08/26 네이-_- 잘못썼다.... -_-;; 2002/08/26 세라자드 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습니다 가슴깊은곳에서부터 힘이 넘칩니다.용기물약을 먹었 2002/08/26 세라자드 헐.. 이렇게 길었남? 죄송.. 근데 안지워 지네염....ㅡ,,ㅡ;; 2002/08/26 라인 저희가 분량이 짧다고 한 것은 님의 글을 너!무!나! 읽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것... 은빛님께서 이해해 주시길...^^ 2002/08/26 [-_-] 휴... 학교갔다온 다음이나 볼수있겠네.. ^-^ 은빛님 수고~ 2002/08/26 납치범 꺅~ ]ㅁ[/ 은빛님, 제가 드뎌 창파기를 모두 샀어요~ 정말 또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여.. ㅡ ㅜ 암튼 이번삼연참이 끝나도...하루에 하나씩은??? 하하하하하;; 2002/08/26 미친싸이 너무나도 재미가 있어 죽고싶습니다. 2002/08/26 하운 헤헤 넘넘 재미있어여...그리고 세레나인지 제레나인지 빨리 일행이랑 해어지해주세여...크레이가 넘넘 불쌍해여... 어째 이소설에는 아그들이 넘 애 늙은이 같어..ㅜㅡ 아그들은 귀여워야 되는거라구..~~~ 2002/08/26 ㅎㅎㅎ 젬잇습니당 2002/08/26 혈향단화 ㅡ0ㅡ;;;세라자드님 저 어마어마한 글덩이는 다 무엇인지요?;;; 후훗....드디어 세렐라가 발작을~ 2002/08/26 황형%% 세렐라를... 어떻게 좀 해주세여~~ 속이울렁울렁거려서 몬살겠어여...ㅋㅋㅋ 글구 얼렁 얼렁 3연참~~ 2002/08/26 헐 저 글덩이의 3배씩만 써줘여 2002/08/26 fkd 세렐라를 밝고 싶네여.. 어쩜 그렇게도 싸가지가 없는건지.. 역시 가정교육이 중요해여... 2002/08/26 현아 셀레라 불상해요,,,ㅡㅜ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것도 있지만,, 그 사람은 환경이 영향을 주잖아여,,, 주위 환경이 셀레라를 그렇게 만들었는데,,,,,ㅡㅜ 갱생작업을,ㅡㅡ;; 2002/08/26 ^^* ㅋㅋ 슬레이어즈의 리나와 닮아뵈다는.. 란이요.. ^^;; 도적 소탕~~ 2002/08/26 루피나 ^^ㅋ 잼있어요~ 근데 산전하구 싸울때말이에요! 원래 처음에 란은 가고 싶은곳을 생각만 하면 갈수 있는거 아니었어요? 근데 왜 위기상황에서 굳이 뛰어갈까요..??궁금해요~ 2002/08/26 소냐 사랑 받지 못하고 산 사람은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데요, 그래서 어렸을때 맞고 자란 사람은 자신의 사랑표현으로 아내를 때린데요.....ㅠㅠ 너무 슬프죠? 2002/08/26 진 꺄~☆ 은빛님!!! 예뻐해드릴게요^^(부빗부빗) 2002/08/26 지옥숙녀 은빛님 잘 쓰신다구요~!! 그러니 힘내세요~]_[ 그나저나.....셀레라는 여전히 재수없는...[쿨럭] 2002/08/26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4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3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2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6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80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7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어떻게 하겠나?" 한쪽 입꼬리가 시니컬하게 끌어올려졌다. "마치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야 그렇지만... 대세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니까. 이 크리아라는 나라가... 프란과 같은 제국의 정세에 무관하게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을만큼 강한 나라도 아니지 않은가." "난 강한 자의 손을 들뿐이네."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 강한 자에게 당했던 정신적 충격이 아직도 채 아물지 않고 있었다. 통통한 몸매를 지닌 남자가 마른 체형의 남자 쪽으로 몸을 조금 더 기울였다. 탁자에서 자그마하게 삐걱이는 소리가 울렸다. "자네는... 그 세 사람의 힘이 제국의 힘을 넘어선다고 보는 가?" 마른 체형의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 다. 아무리 개개인이 강하다 한들... "설마. 그렇게까지야 되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제국에 있 어서도... 이 쪽의 몇몇 귀족들보다는 그 셋이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존재가 되리라고는 믿는 바일세." "흠........................" 그 점에 있어서는 통통한 남자 역시 동감하고 있었다. 게다 가 그 강한 자는... 단순히 힘의 유무를 떠나 지니고 있는 가치 가 달랐다. "자네라면, 만일 자네가 프란의 카느라면, 하노베이 백작가 를 포함한 몇몇 귀족가에게 정치적으로 정해진 것이 뻔한 형 식적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Lord인 류이네리아 칸 란을 적 대시할 수 있겠는가? 모든 무인들의 꿈이자 영원한 우상이었 던... 그녀를?" 이었던... 분명한 과거형으로 말을 맺으며 마른 체형의 남자 가르암 백작은 한숨을 폭 내쉈다. 통통한 체구의 헤일런 공작 의 고개가 모로 그어졌다. "아니지. 그 자신이 그녀의 숭배자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되지는 못하겠지." "그럼 우리의 선택은 이미 결정이 난 것이 아닌가." 가르암 백작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헤일런 공작은 고개 를 끄덕였다. 한동안 정치권에서 물러서 있던 그들이었다. 하 지만 더 이상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주위 귀족들 의 눈치와 압력도 적지 않았고 더 이상 은퇴하지도 않은 상태 로 중립만을 주장한다는 것도... 어딘가 충분히 수상쩍었다. "그럼... 내가 페르로이 후작에게 연락하겠네." "자네가?" "그 편이 자네도 편하지 않겠나." 헤일런 공작은 조금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동시에 감탄의 눈빛으로 가르암 백작을 향했다. 공작 자신보다도 더 후작을 대할 때 껄끄럽고 힘들 사람이 가르암백작이었다. 여동생의 일 로 시작해 얼마전 하녀의 일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먼 저 다가서기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역시 진정한 공작가라고 불리던 가르암가인가...' 선선대 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공작의 반열에 있던 가르암 백작의 집안은... 칠십 여 년 벌어졌던 내전의 책임을 지며 작 위를 몰수당했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아직 그 때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지는 못했지만 다들 가르암 공작가가 어떤 가문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백작 이상의 백작이었다. 공작이라는 명목만을 유지한 채 서서히 몰락 일도를 걷고 있 던 헤일런가와는 달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헤일런의 아미 가 구겨졌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식혔다. 어제까지 몰락의 길 을 갔었더라도 오늘부터 흥하는 길을 가면 되는 거였다. 그는 지금 가르암 백작의 배에 얻어타려 하고 있었다. "막판에 나쁘게 되기는 했지만 그는 내 선대와도 깊은 연을 맺고 있는 자였지. 아마 내가 다시 손을 내밀면 싫어하지는 않 을 걸세." "하긴... 페르로이 후작은 의외로 정에 약한 남자였어." 헤일런 공작의 목소리에 가르암 백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 였다. **** 검게 탄 피부 위로 주름진 그림자들이 깊게 패어있었다. 늙 은 정원사는 허리를 폈다. 막 화초 뿌리를 살펴본 참이었다. 손 마디마디에 낀 거름이 섞인 검은흙들을 툴툴 털어 내고 노 도는 빙긋 웃었다. "그래. 잘 자라서 고운 꽃을 피우려무나." 벌서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클레이브와 란 일행이 크리아를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겠지...." 겨우 사십여일 보지 못했을 뿐인데 무척이나 오랫동안 보 지 못한 듯 그리움이 밀려왔다. "옆에서 말썽을 피던 사람이 없으니 조금 허전하구먼." 피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계속 붙어있을 때는 골치가 아 프기까지 했었는데... 이젠 그 말썽꾼들이 다 그리워진다. 하긴, 그들이 갔다고 해서 곤란한 일들이 줄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늘었다. 줄어든 건 웃음이었다. 막 실력에 손에 붙어가던 하르크를 보낸 이후 노도는 이전 보다도 훨씬 더 바빠졌다. 페르로이 후작은 떠나보낸 클레이브 에 대한 아픔을 삼키려는 듯 정신없이 일을 벌렸다. "클레이브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 자리를 확고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란과 금아가 곁에서 지켜주고 있기는 했 지만 아비의 마음이란 무작정 믿고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 다. 반쯤은 인질로 가버린 클레이브의 안전과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후작 그 자신이 힘과 가치를 지녀야했다. 대공 의 부재로 인해 갑작스레 몰려든 것이 아닌 그가 길러낸 진정 한 힘을 말이다. 란이 떠난 날 저녁, 후작은 노도를 불렀다. 집사 헤리슨이 노도를 직접 후작의 비밀 방으로 안내했다. 그 곳에서 노도는 얼굴 가득 검버섯과 주름이 얽혀있는 낯익은 마구간지기를 만 났다. 그 날의 그는 평소와는 달리 허리가 곧게 펴져 있었다. 후작이 노도의 손을 잡아끌었다. "눈치 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도는 방긋 눈웃음을 지었다. 마굿간지기 역시 오랜 지기 를 만난 것처럼 편한 미소를 떠올렸다. "저희 페르로이 가문을 그림자에서 지켜주고 있는 피디아의 책임자 라크로이 노인입니다." "동방 출신의 늙은 정원사랍니다." 노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라크로이 노인은 누런 이를 들 어냈다. "제 일을 너무 빼앗아 가셔서 할 일이 없던 참이랍니다." 피디아는 외부적인 이름, 라크로이는 내부적인 이름이었다. 라크로이란 페르로이 가문의 그림자라는 뜻이고 노인은 그가 대장이라는 암호였다. 라크로이 노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름 을 도르라 했다. 비슷한 향기를 지닌 두 노인은 급속도로 친해 졌다. 후작은 잠시 그들이 대화나누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후작의 중요한 아군이자 기둥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헤리슨 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주의가 환기되며 두 노인은 그들을 부른 후작이 아직도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당황과 자책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도 르가 급히 허리를 숙였다. "이런, 이런... 제가 주책이 들어 후작님께서 기다리심을 잠 시 잊었습니다." 후작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도움을 받고자 불렀으니 기다리는 게 당연합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작의 낮은 목소리가 노도와 도르의 귀에 닿았다. "가르암 백작가와 헤일런 공작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후작은 잠시 노도의 표정을 살폈다.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만, 노도와 란님의 적이 되는 것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다더군요." "허어...." 노도는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의 주름진 이마가 구겨졌 다.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작정하고 후작가의 일들에 개입해 들 어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 드러났 다. 이건 정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정원사와 하녀가 무 서워 몸을 사리는 귀족이라니.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요." 도르는 사뭇 조심스러웠다. 노도가 나서기 전 까지만 해도 그의 지위는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가문에 종속된 그림 자로서 집사 정도의 대우를 받던 그가 갑작스레 후작의 조심 스러운 공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노도와 란의 등장 이후였다. 기다리던 신의 사자가, 최강의 존재라 일컬어지는 자가 선택한 신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후작은 사람을 대 하는 모든 일에 더 신중해졌다. "노도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저로서는 그들의 힘을 받아드 리고 싶습니다." 후작은 자신의 편이 될 귀족을 찾고 있었다. 구 세력층의 귀족들과 현재 연합하고 있는 하노베이가 위주의 귀족들에 대 항해 그의 세력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자들을 말이다. "그렇군요...." 도와준다면... 이라는 단어에 함축된 의미를 모르지 않기에 노도는 망설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사실... 없었다. 크리아는 작은 나라였다. 보스윌 해협을 끼고 벌어지는 무 역업등으로 부유했지만 주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 로 국토도 작았고 경작할 수 있는 면적도, 인구도 작았다. 그 러다보니 군대 역시 정규군보다 용병과의 계약도가 높았다. 그 러다 보니 크리아의 무력은 몇몇 뛰어난 무가의 고급 검술들 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외국에서 돈으로 빌리고 있었다. 빌린 것은 언젠가 돌려주어야 하는 법이다. 크리아는 그 언젠가를 피하기 위해 교묘한 외교술을 펼치고 있었다. 때로는 스스로의 수족과도 같은 귀족들을 잘라가면서까지... 그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지금 프란의 두 왕위 계승권을 지닌 우그르트들에게 펼치고 있는 이중 협약이었다. 프란은 십여년 전에 부족들을 통합한 대 부족의 이름이며 동시에 새롭게 탄생한 제국의 이름이다. 수 백개의 군소 부족이 유목생활을 하며 떠돌던 카슬 중부 에 제국이 생겨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메말라 농사짓 기에 부족한 땅과, 뭉치지 않는 힘, 가난하지만 거칠고 강한 사람들... 그 무엇하나 국가라는 틀이 생겨나기에 부족한 것뿐 이었다. 수 백년이 넘게 그 땅에서는 국가라는 이름의 것이 생 겨나지 못했다. 몇몇 나라들의 프란의 작은 부족들을 밀어내고 그 땅을 차지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타 국민에 대한 프란 부 족들의 반항은 거셌다. 작지만 오랜 시간의 전통을 지녀온 그 들의 자부심은 높고 높았다. "하나의 이름 아래서!" 이 하나의 신념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인물이 바로 프 란 최초의 카느 우쿠트였다. 그는 프란의 이름 아래 하나로 뭉 칠 민족의 힘을 찬양하며 반발하는 자들을 설득시켜나갔다. 그 는 강했고, 사람을 다스릴 줄 알았다. 뛰어난 자들이 그의 친 구되기를 자청했다. 그는 프란 모든 부족장, 우그르들의 벗이 자 주인이 되었다. 프란의 모든 부족들은 그들의 전통과 우그 르의 법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를 유일한 우그르, 카느로 추대 했다. 겨우 십하고 오, 륙년 사이에 생겨난 일이었다. 카느의 이름을 얻자마자 우쿠트가 한 일은 프란 남서쪽의 오마드 산맥 너머에 있던 풍요로운 땅 오르르의 정복사업이었 다. 오르르는 성스러운 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을 막아 프란 의 부족들로부터 돈을 받고 팔아 부를 축적하고 있던 나라였 다. 뿔뿔이 흩어져있던 프란의 부족들은 작지만 하나의 단결된 국가라는 힘을 지닌 오르르를 이겨낼 수 없었다. 프란의 강은 매말랐고, 그들은 더 황폐해졌다. 프란의 굶주린 사람들이 오 르르로 건너가 검을 잡고 용병이 되었다. 그들은 강했고 독했 다. 오르르의 용병시장은 점차 프란의 사람들이 장악해갔다. 그 때 즈음 터진 전쟁이었다. 대대로 쌓여있던 오르르의 물에 대한 원한은 한 순간에 폭발했다. 오르르는 일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유목과 사냥으로 단련된 프란의 전사들에게 쓰러졌다. 풍요로운 땅과 오르르가 막고 있던 성스러운 산의 축복 받 은 물줄기가 프란으로 흘러 들어갔다. 때 맞춰 큰비까지 내렸 다. 백여 년 넘게 말라붙었던 강줄기가 되살아나고 샘물이 올 라오는데는 채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사막은 초원으로, 초원 은 기름진 밭으로 변했다. 프란은 겨우 몇 년 새 몰라볼 정도 로 강하고 풍성해졌다.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축복받은 카느 우 쿠트를 영원한 카느로 추대했다. 그는 제국을 세웠다. 카느는 그의 아들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작위로 변했다. 프란 의 부족들은 그들에게 물과 생명을 돌려준 우쿠트의 혈통을 환영했다. '혈통을' 말이다. "우리 크리아도 용병의 의존도가 높습니다. 다행이... 우리나 라의 용병들은 프란의 부족출신보다는 위즐이나 간 출신이 많 습니다만..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영원한 우방이란 없기에..." "흠... 그렇겠군." 길게 흘러가던 후작의 설명이 잠시 멎었다. 후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프란과의 외교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프란은 유목민족들이 세운 국가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 습보다는 힘과 무력이 더 중요했던 사람들. 그들에게는 정해진 장자상속제도가 없었다. 대대로 우그르의 자리는 강한 아들이 차지했다. 그게 그들의 전통이었다. 그리고... 카느에게는 아들 이 둘 있었다. "카느의 제위식 이후 저희는 프란과의 정식적인 외교관계를 성립했습니다." 카느와의 관계는 무리가 없었다. 그는 크리아를 환영했다. 걸린 건 두 아들이었다. 채 성장하지도 않았던 어린 두 소년들 은 제각기 찾아와 당당하게 자신을 프란의 다음 주인이라 소 개했다. 첫째 아들이기에, 둘째 아들이기에 하는 건 프란의 사 람들에게는 아무런 걸림이 되지 않았다. 프란은 제국 초기부터 한바탕 피바람에 휘말릴 증조를 보였다. "그때 카느의 즉위식 축하 사신으로 간 일행이... 지금은 고 인이 되신 선대의 가르암 백작과 저와, 역시 고인이 된 전대 하노베이 백작이었습니다." "그랬군요..." 섞일 래야 섞일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하노베이가와 페 르로이가의 매듭이 보일 듯도 했다. 후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 어보였다. "선대 가르암백작의 권고에 따라 우린 길을 나눠졌습니다. 전 첫째 우그르트의 청을 받아 그를 다음대의 카느로 만드는 데 협조하기로 했고, 하노베이가의 그는..." "두번째 우그르트의 청을 받아드렸겠군." "네." 그런 식으로 크리아의 귀족들은 각 국의 왕족과 귀족들과 연을 맺었다. 만의 하나의 경우라도 크리아라는 이름의 나라만 은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마음에 들지 않는 적대가문을 무너트리고 실권을 잡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치적 함정이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 직접적인 반역을 제외하고서는 어떤 경우라 도 귀족가를 멸문시키지 않는 전통이 만들어진 것도 그런 이 유에서입니다. 아무리 나라가 성해도... 자신의 가문과 후손이 사라진다면 자신을 걸 귀족은 없을테니까요." "그렇군." 노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나라가 덩치 큰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명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간힘을 써야 했으리라. "이번 인질... 에 제 클레이브와 하노베이가의 여식이 들어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기도 합니다." 보내진 자들은 인질인 동시에 두 가문과 두 우그르트를 이 어주는 끈이기도 했다...는 것은. "만에 하나 프란의 다음 황위를 둘째 우그르트가 차지하기 라도 한다면 클레이브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말이군." 노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그렇습니다." 후작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크리아 안에 있다면야 크리아의 전통에 의해 최악의 경 우라도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겁니다. 여러 가지 상황 상 다른 귀족들보다도 어렵겠지만... 잘 하면 그 아이의 시대에 다시 페 르로이 후작가를 되세울 수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만일 프란에서 클레이브를 죽인다 하더라도 후작은...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다. 크리아에서 도와줄 리도 만무했다. 일 단은 후작도 크리아의 정계에서 밀려나야할 판이니까.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가?" 첫째 우그르트가 월등히 강하고 다음대의 카느로서 부족함 이 없다면 지금 페르로이 후작이 이렇게 애태울 리가 없었다. "만일 제게 아들이 둘 있어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면 전 둘째 우그르트를 고르겠습니다." 후작이 솔찍 담백하게 동시에 절망적으로 말했다. "흠..." "일반 우그르가 되기에는 첫째 우그르트도 부족하지는 않습 니다. 하지만 이제 프란은 작은 부족이 아니라 거대한 제국이 죠. 활달하고 강한 육체만을 중시하는 첫째 우그르트는, 영리 하고 사람을 쓸 줄 아는 둘째 우그르트를 이길 수 없습니다." 후작은 거의 단정적으로 말했다. "제가 돕는다 해도... 우그르트의 부족한 자질까지 덮어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이 크리아의 왕자들도 아닌 이 상..." 타국의 황위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그 것도 크리아같은 약소국의 후작이 프란과 같은 힘을 지닌 대 제국 의 카느에게 말이다. "어렵군... 프란의 우그르트들이라... 그래, 그들의 나이가 어 떻게 되는 건가?" "첫째 우그르트가 이제 스물 셋, 둘째 우그르트가 스물 둘 입니다." "카느의... 연세는?" "오십 오세이나... 워낙에 젊은 시절을 전장에서 보낸 데다 가 프란의 전통 전투술상 앞에 나서다보니 입은 상처가 많아, 미래를 기약하기 힘듭니다." "병이 있는가?" "잔병이 많고 나이보다도 십 오륙년은 더 늙어 보입니다." 말인 즉슨, 황위 쟁탈전이 가깝다 못해 코앞에 있다는 말이 었다. 노도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잠잠히 듣고 있던 도르 의 안색도 굳어질 대로 굳어져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우그르트간의 혈투가 벌어지기 건에 다음대 의 카느가 정해지고 무혈로 둘째 우르크트가 카느가 된다면 후작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원하는 자리를 얻은 새 카느는 분 풀이성 숙청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그가 힘으로 이복 형과 싸우려 든다면... 첫째 우그르트에 대한 본보기성 경고로 클레이브를 먼저 노릴 수도 있었다. 아니 그건 거의 확실했다. "그 모든 것들을 후작인 그대가.. 아니 후작께옵서 몰랐다고 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문득 어느새인가 스스로 말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 았다. 노도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도르와 후작은 슬그머니 미 소를 지었다. 늘 침착하고 여유 있는 노도의 안색이 달아오른 모습은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들었다. "네." 후작은 또렷이 보이도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왕명이 있었음은 저도 들었습니다만.. 후작께서도 그 아이 를 보내지 않기 위한 노력은 달리 하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 이유를 제가 물어도 좋겠습니까?" 노도는 한결같이 진지했다. 이 우직한 귀족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노도는 나름대로 후작이 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생각해나가던 중이었다. 그가 할 답은 노도의 머릿속에서도 어느 정도 나와 있었다. 그러나 확 인하고 싶었다. 앞으로 그가 지닌 힘을 발휘해 주어도 좋을 사 람인지 아닌지를.... ".... 클레이브는... 어리지만 아비인 저로서도 믿기지 않을만 큼 조숙하고 현명한 아이랍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판단하고 있겠죠." "흠." 노도의 눈에 비친 클레이브도 그랬다. "그 아이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떨어질 운명들에 당당하게 맞서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렵다고 해서 피하거나 달아나는 삶이 아닌... 맞서서 극복하 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바램으로 인해 클레이브가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과 고 난들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후작이 세상경험이 없는 철부지 도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여신께서 보내신, 아니 여신의 공 갈에 말려든 최강의 하녀와 무적의 정원사가 없었더라도 그 운명을 피하지 않았으리라. "후...................................." 노도는 길게 한숨울 내쉈다. 그의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미진함이 서서히 풀려나갔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 기가 떠올랐다. 그 날... 세 신이 그들을 찾아왔던 날 그 장면 들이 갑자기 되살아난 까닭이었다. "후우.... 세 분의 신들께서 왜 하필 란을 선택하셨는지 알 것도 같구먼... 왜 하필 그녀와 같은 강한 자를 하녀로 만들려 하셨는지 말이야." 그도 여러 가지 상황과 정황으로 후작부인의 기원과 여신 사이에 얽힌 일들을 얼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늘 가슴에 남는 미진함이 있었다. 왜 하필 란이었을까. 검후이며 무후로 칭송받고 이 먼 대륙에서조차 Lord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다니는... 그녀이어야 했을까. 게다가 왜 하필 다른 신분도 아 닌 하녀이어야 했을까. 만에 하나라도 잘못 된다면 후환이 어 마어마할 그 '란'을 신들은 왜 선택해야만 했을까. 아들의 미래 에 대해 도대체 어떤 신탁을 받았길래 죽어가는 여인이 목숨 을 단축시키면서까지 여신에게 빌어야 했을까. 그 어떤 운명이 었기에 여신은 자신이 들어주지도 못하고 타 대륙의 신들에게 까지 찾아와 부탁했어야만 했을까! 적호와 삼신할미는 아르페 이나의 부탁에서 왜 란을 떠올렸었을까. 조각난 그림들이 서서히 한 편의 운명도를 그려나가고 있 었다. "조그만 아이가 참으로 궂은 운명을 타고났군." 노도의 매마른 입술에서 가늘고도 긴 한숨이 오래도록 흘 러나왔다. "노도님?" 후작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도와 란의 도움은 클레이브가 살아남고 그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노도의 시선이 서서 히 후작의 얼굴로 향했다. 후작의 목울대가 가볍게 떨렸다. "이 늙은 정원사가 어찌 후작님의 일을 모른 척 할 수 있겠 습니까! 그 것도 이 노도가 가장 좋아하는 도련님의 일인데 요." 후작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베어 물어졌다. ***** 쓰는데로... 수정보는 대로 즉각즉각 올리고 있습니다. 어제 밀린분을 더하면... 네편...쿨럭! 일단 어제 밀린 것 한편입니다만... 오늘분 세편은...(ㅠㅠ) 열심히 써야죠... 그럼!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22, Read : 1213, IP : 211.215.58.17 2002/08/26 Mon 15:44:05 와~ 너무 재미있어요]_[! 2002/08/26 세리피스 더더더더더~ 2002/08/26 카난 빨리 나머지 3볖을..어서엇... 2002/08/26 아그니 허헛 아깐 업었는뎀~~!! 2002/08/26 아흰 써... 써야 하는 겁니까아아아아아아.....T^T;; 2002/08/26 진무 정말 대단하신군요......ㅡㅡ;;;; 화이팅!!! 2002/08/26 제세 대단한 분발입니다. 3주간의 분노가 눈녹듯이 사라지는 걸 보니, 역시 독자는 간사한가 봅니다. 고마워요 은빛님. 2002/08/26 에튜 오늘 3편입니까...금 2편이 남았군여...님아 건필~~^^ 냐하하 기대하겠슴당~~빨리빨리~~~~~ 2002/08/26 눈자라기 요즘 성실히 연재하시고 독자들을 위해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시는 은빛님의 글을 보면서 너무 행복하답니다. 2002/08/26 광천사 제발~~~ 제발 조금.. 조금만 더 올려 주세요~~~ 않 그럼 죽을것 같아요~~~ 네~~~ 은빛님~~~부탁드려요~~ 2002/08/26 와~~ 누구야. 맨위에꺼 나 아닌데........ 2002/08/26 3편더 2편 남은것이 아니라 3편남았습니다. 10시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집에 가야 하니까.. 2002/08/26 가엘 은빛님~사랑해요~~♡ 진짜 요즘은 사는 재미가 있다니깐.. 제가 보는 작가님들이 자꾸 연중에 들어가시는데 은빛님은 이렇게 성실연재..ㅜ.ㅜ(감동의 눈물,,) 힘내세요~~!!!!파이팅!ㅡㅍㅡ@ 2002/08/26 소애 은빛님 너무 대단해요 +_+ 독자와의 약속을 위해 노력하시다니 ㅜ_ㅜ 감동입니다 +_+ 2002/08/26 원이 은빛님 감격했어요...홍... 부디 무리하시지 마시고..... 한편이라도 성실연재하신다면.. 그걸로도 감사하죠..^^ 화이팅!!!! 2002/08/26 쿠오오 놀랍습니다.. 제가 플스2에 빠져들어 않보는 사이.. 이렇게 많은 글을 올려주시다니... (집에가서. 파판X을 해야하는데.. 쿨럭..) 2002/08/26 세라자드 헐. 어제 두편이었으니깐... 이거 빼고 앞으로 세편입니다. 2002/08/26 지옥숙녀 아아..은빛님 멋져요...ㅡㅜb 오랜만에 노도를 보니 너무나 반갑네요! 2002/08/26 코로코로 아앗- 노도- 멋져요 멋져 2002/08/26 땅콩 흠냐....-_- 동쪽에 중원쪽에서 지원군조금만 데려오죠... 그 뭐시냐.... 류이네리아 란 칸이 그렇게 오래 살았다면..-_- 추종자들이 생겼을 게고..-_- 문파 몇개(?) 가지고 와서...무공이나.. 암살로 싹씰어버리면..;; 아니면 돌아다니면서 드래곤 몇마리 협박하면 되잖아요. 프롤로급 보니까.. 드래곤도 몇마리 사냥(?)한 듯....-_- 그만한 괴물이면... `여기여기 모여라!`하면 꽤나 많이 모일듯....? 2002/08/27 땅콩 고급 유닛(?)들이...우루루루.....절대고수라든지... 커맨드.....:류이네리아 칸 란. 영웅:노도. 히든 영웅: 또다른 Load.... 2002/08/27 혈향단화 오호.....그냥 란이 후작가의 그림자들을 재구성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2002/08/27 Name Mail 57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3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5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3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2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6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80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7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한번의 운기가 끝나자 몸에 쌓여가던 피로감이 풀려나갔다. 붉고 노랗게 빛나는 작은 꽃들이 열기를 발하며 공기 중으로 흩어져 나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어딘가 신비롭다.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몇 일 전의 싸움에서 살 아남은 늑대들이 다시 사냥을 시작하고 있는 듯 했다. 그들의 이에 많은 동료들이 다쳤지만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그들도 ... 살아남기 위해서 이를 들어냈을 뿐이니까. 그런 생 존의 당연한 욕구를 이용한 사람들이 나쁜 거다. 정신이 조금 멍해졌다. 앞에서 클레이브와 소년들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 고 있다. 란님이 모포를 들고 다니며 소년들을 하나 하나 싸서 불가 가까운 곳에 눕혔다. 모닥불을 피면 오히려 위험하다며 기사들이 투덜거렸지만 하르크는 그들의 아우성을 어리광 받 아주듯 달래냈다. 정신이 조금 흐릿하다. 마치 그들의 모습이 멀리 담긴... 수정구슬 속의 영상을 보는 것만 같다. 한 번밖에 본 적은 없지만... 수정구슬로 보는 기억은 어딘가 흐리고 안개 낀 듯한 몽롱한 정취가 담겨 있었다. "....................님!" 멀직이서 굵직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 난 눈을 떠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목을 길게 뺐다.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서 육중한 그녀의 몸매가 드 러나고 있었다. "작은 도련님! 여기서 뭘 하시는 거예요! 정원에 모닥불을 피면 안된다고 얼마나 말씀드렸는데!"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아... 유모? 유모가 어떻게?" "작은 도련님! 또 꿈을 꾸신 건가요? 아이 참! 밖에서 주무 시면 안된다고 제가 늘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럴 수가! 이 곳에 있을 리 없는 그녀가 내게 화내고 있었 다. 퉁퉁하고 굵은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가는 눈썹을 한껏 일그러트려서 자신이 화내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그녀는.. "유모는... 구십 년 전에 죽었는데..." "작은 도련님! 제 나이가 이제 사십인데! 어떻게 구십 년 전에 죽는 단 말이예요! 아직 잠이 안깨셨나요? 어쩌나... 지금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주인어른께서 부르셨는데..." 유모는 덩치에 안맞게 앙증맞은 동작으로 발을 동동 굴렀 다. 이상하다. 난 분명 숲 속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는데... 한번 의 운기를 끝내고 명상을... 했었나? "작은 도련님, 큰 도련님도 벌써 가 계실 거예요. 빨리 서두 르세요!" 내가 왜 숲에서 노숙을 했었지? 그리고... 운기가 뭐더라? 아니 그런 단어를 내가 어떻게 알고 있지? "아이, 참! 언제까지 그렇게 멍하니 서 계실 거예요! 이제 열살도 넘으신 분이!" 날 기다리기가 답답했던지 유모는 내 손을 잡아챘다. 그녀 는 발빠르게 날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작은 도련님이 자작가의 이름을 직접 잇지 않으신 다고 하더라도 주의하셔야죠! 누가 알겠어요? 오히려 작은 도 련님이 더 큰 인물이 되실지!" "르빗은 늘 그런 말이야." 르빗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작은아들인 내게도 관심과 주 의를 끊이지 않았다. 가슴 한 구석이 훈훈하게 달아올랐다. "사람의 미래는 모르는 법이랍니다. 어떤 험한 운명이 있더 라도 주저앉지 않고 극복해 낸다면 더 큰 인물이 되는 거예 요!" 르빗은 늘 그렇듯이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리고는 날 옷 방으로 끌고가 몇 벌의 옷을 대본 후 그 중 제일 화려한 옷으 로 갈아입혔다. "오늘 손님은 중요한 분이랬어요." "싫어. 가장 화려해야 하는 건 형님이야." 난 화려한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르빗이 꺼내놓은 옷들 중 조금 수수해 보이는 것으로 골라 어깨에 대 보았다. 잘 어울렸 다. "이 옷으로 하겠어." "작은 도련님은 늘 그렇다니까!" 르빗은 한숨을 내쉈다. 그렇지만 내가 한번 세운 고집은 어 지간해서는 꺽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답게 재빨 리 내게 그 옷을 입혔다. "주인님께서 기다리셨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옷자락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핀 르빗은 어느 순간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됐어요. 어느 누구라도 도련님의 외모를 욕하지는 않을 거 예요. 도련님은 정말 의젓하고 멋진 분이시니까요." "고마워, 르빗." 르빗은 환히 웃었다. 난 그 미소가 정말 좋았다. "서두르세요." 복도를 따라 죽 걷다 보면 여러 장의 초상화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선조들의 것도, 현 자작이신 내 아버님의 것 도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미 다른 분의 아내가 되신 어 머님의 것도 있다. 힘이 없는 나라의 작은 귀족이란 어떤 것인 지 어머님은 일평생을 통해 보여주셨다. 화려한 금발과 고운 피부, 늘신한 몸매... 현명함.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아름다움 으로 이름을 날리셨던 어머니는 자작인 아버님과 힘들게 결혼 하셔서 아들 둘을 낳은 후 타국의 백작가로 팔려 가셨다. 충성 스러운 신하의 아내를 바친 대가로 우리 나라의 국왕폐하는 우리 땅을 침략해 오는 카타이르 산맥 주변의 적군을 위협하 기 위한 군대 삼만을 빌리셨다. "도련님." 어느 새 또 어머님의 초상화 옆에서 넋을 잃었나보다. 난 르빗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어머니의 충직한 하녀였던 그녀는 우리를 위해 이 곳에 남았다. 그리고 결혼해 자리잡고... 우리 를 친자식처럼 보살펴왔다. 형님과는 달리 어머니에 대한 기억 이 전혀 없는 내게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친어머니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작은 도련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하인이 조심스럽게 외쳤다. 백작가의 손님이 오셔도 이렇게까지 하인이 지키고 있지 않는데... 오늘 의 손님은 정말로 특별한 분인가 보다. 난 작게 심호흡을 가다 듬고 허리를 폈다. 자작가의 둘째라 해서 기죽어 보이거나 약 해 보이기는 싫었다. "늦었구나." 유달리도 차가운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상관없습니다." 가늘고 어딘가 연약하기까지 한 여성의 목소리가 노랫가락 처럼 잔잔히 들려왔다. 난 눈을 치떴다. 분명 우락부락한 남자 손님 아니면, 잘 차려입은 어딘가의 고위 귀족일거라 생각했었 는데... "이런! 손님께 무례하지 않느냐!"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기 직전까지도 내가 눈을 뗄 수 없던 그 손님 은 칡흙 같은 빛을 지닌 고운 머리카락을 허리 아래까지 길게 늘어트린 평범한 여행자 복장의... 여인이었다. 두근! 심장이 뛰 었다. 그녀 뒤에는 두 사람의 남자 손님이 더 있었다. 그들은 친 구로 보였다. 그들은 마치 그녀가 여성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 럼 스스럼없이 그녀를 대했다. 그녀 역시 그런 행동들이 자연 스러운 듯 허물없이 그들을 대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예의 없어 보이기까지 했는데... 범절에 까다로우신 아버님은 그들의 대화나 태도에 조금도 화내지 않으셨다. 게다가 어딘가 두려워 하는 기색까지 보이셨다. '왕족인가?' 가끔 왕족들이 신분을 감추고... 뭐, 말로는 감춘다지만 툭 하면 들어내고 영주들을 괴롭히면서 심심풀이로 여행을 다닌 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와 그들도 그런 사람일지도 모 른다. 한순간에 달아올랐던 호감이 사늘히 식었다. "호오..." 그녀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내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버님께서 황급히 내 얼굴쪽으로 눈을 돌리셨다. 난 살짝 웃어보였다. 아버님은 손짓으로 내게 한 걸음 뒤로 물 러설 것을 명령하셨다. 난 순순히, 그러나 비굴하지 않아 보이 도록 최선을 다하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거의 동시에 형님 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우리 사이는 네 걸음 벌어졌다. "장남이시군요." 그녀와 함께 왔던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어딘가 듣기 좋은 굵직한 목소리를 냈다. "네. 앞으로 저희 가문을 이어나갈 장남입니다. 여러분들께 서 보시기에는 많이 미흡하시겠지만, 검술도 뛰어나고..." 아버님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매일같이 야단만 맞는 나와 비교할 바도 없이 정말로 형님은 검을 잘썼다. 아마 이 크리아에 날 형님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르 빗 한사람뿐이리라. "저희들도 자제분들의 나이 때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풋내기들일 뿐이었답니다." 여인이 말했다. 아버님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 전..."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지금부터 소질이 보인다면 분명 뛰 어난 기사가 되겠군요." 정말로 그 뿐이었던 것 같다. 여인은 당황하는 아버님을 보 며 금방 말을 덧붙였다. 얼굴에는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자책 과 미안함이 서려있었다. 아버님은 한 시름 놓은 듯 했다. 그 외로 몇마디의 말이 더 오갔다. 난 네 걸음 뒤에서 물끄 럼히 그들을 바라봤다. 한 여인과 두 남자는 그냥 친구일 뿐인 듯 했다. 그들을 왜 아버님께서 이렇게까지 중시하시는지는 모 르겠지만... 일단 외모로 보기에는 어디가서 괄시 안받을 만큼 출중한 사람들이기는 했다. "꼬마야." 여인이 날 불렀다. 난 찌그러지는 눈썹을 간신히 붙들어맸 다. 아버님께 폐가 될 수는 없었다. 난 아무런 대답없이 허리 를 조금 더 폈다.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미안하군. 그럼, 둘째 도령." 도령? 어딘가 어색했지만 그녀는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 는 듯 했다. "이 나라의 이름들은 내가 살던 곳과 너무 달라서 발음하기 도 힘들고 기억하기도 힘들거든..." 그녀는 변명하듯 말했다. 난 미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실 귀담아 들었기에 알아 들었을 뿐, 무심히 흘려듣고 있던 아버님과의 대화는 못알아 들을 만큼 그녀의 발음은 엉망이었다. "내가 누구게?" 난 이상해지려는 표정을 간신히 잡았다. 내가 누구게? "아버님의 손님이십니다." "응!" 그녀는 밝게 웃었다. 아버님과 형님, 다른 두 손님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어쩌면 그녀의 어휘력은 저게 한계가 아 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거기까지. 날이 늦은 터라 손님들을 쉬게 해야했다. 집사의 가벼운 언 질이 있자 아버님은 아쉬움을 접고 세 손님을 손님방으로 안 내했다. 그 것도 직접. 난 그제서야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아버님은 쉬러 가 셨고 형님은 잠시 내게 우월감 섞인 미소를 보이다가는 아무 런 설명도 해 주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차남 인 내가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 난 앞으로 내 앞길을 찾 기에도 급급해야 하니까. 다른 명문가와는 달리 작은 귀족인 우리로서는 차남에게까 지 물려줄 땅과 성이 넉넉하지 않았다. 어머님의 희생으로 얼 마간의 영지를 더 얻었으니 독립하게 된다면야 어느 정도의 재산은 주시겠지만, 귀족으로서 살아가기에 넉넉할 정도는 아 니었다. 난 그 앞길을 검술에 걸었다. 형님과는 달리 늘 재능 없다며 구박만 받는 나였지만, 그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그 리고 무엇보다도 난 검을 잡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차가운 겨울 공기로 정신을 맑게 되살리며... 난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목검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아침 연 습 때는 날이 선 쇠검을 쓰지 않았다. 아침의 풍취를 깨는 것 같아 싫었다. 왠지 나무가 좋았다. "역시 일어났구나." 오늘은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밤새 한 잠도 안잔 듯 또렷 한 모습의 그녀였다. "아.... 손님께서 먼저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 곳이 제일 마음에 들었지만 중요한 손님께 자리를 달라 고 할 수는 없었다. 물려받을 것이 없는 동생이 형님을 질투해 손님께 행패를 부렸다는 소문이 나서야 곤란했다. "아, 난 널 보러 온건데..." 그녀는 느릿하게 말했다. "저를요?" "손바닥이 보고 싶어져서." 그녀는 두 손을 주욱 뻣어 내밀어 보였다. 희고 고운 손에 굳은 살 한점 박혀있지 않았다. 난 잠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해 보려 애썼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난 그녀의 동작을 따라 손을 내밀어 보였다. "굳은살이 많이 줄었구나." 그녀는 기쁜 듯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울퉁불퉁하게 생 겨났던 굳은살이 서서히 줄어들며 평범한 살처럼 변한 건 얼 마 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버님께나 스승님들께는 연습을 게을리한다며 꾸중을 들었지만... 아무리 연습을 늘려도 형님처 럼 투박한 굳은 살은 다시 생겨나지 않았다. "연습은 거르지 않았습니다." 왠지 그녀에게조차 오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될 수 없거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잠시 말을 잊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색한 공기가 날 감싸고 숨막히게 내리누 르는 것만 같았다. 문득 그녀가 내 눈을 응시했다. "난 제자는 안받는데..." 그녀도 어색해하고 있었다. "너 검술, 나한테 배워볼래?" 그녀의 손에 어느 새 내 목검이 들려 있었다. "이런 거... " 그녀의 목검이 느리게 움직이면서 순간 우리 옆쪽에 서 있던 어른 몸통만한 나무가 소리도 없이 조각났다. -와르르르르르르르- 조각난 나무들이 땅에 떨어지면서 생기는 소리들이 지금 내가 본 장면이 현실임을 알게 해 주고 있었다. "난 오늘 오후에 갈건데, 그 전 까지만." 겨우 반나절을 가르쳐 준다고?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 모가 전해준 한 자락의 소문이 있었다. 동방에서 온 마스터들! 한 사람은 그래플의 마스터이고 한 사람은 창의 마스터, 다른 한 사람은 검의 마스터인데... 마지막 한 사람은 여인이라고! 아버님께서 이들을 초청하신 이유가 손에 잡힐 듯 그려졌 다. 아마도 아버님은 형님을... 이 여인에게 배우게 하려 하셨 음이리라. 순간 미칠 것 같은 질투가 터져 나왔다. "싫어요!" 여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 아마도 내가 거절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겨우 반나절. 겉으로 보이는 강함에 현혹되면 근본을 잊게 된다. 옛 말씀이죠. 그런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 난 등을 돌렸다. 멍 한 표정으로 서 있을 그녀가 왠지 마음 에 걸렸지만... 형님을 위해 아버님께서 초대한 사람에게 손 벌 리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난 방으로 돌아 왔다. 난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해가 둥실 떠올랐을 때도, 아버님께서 부르셨을 때도 나가지 않았다. 아버님은 정 말로 날 부르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으셨는지 날 다시 부르지 않으셨다. "도련님..." 애가 타는지 르빗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내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무렵, 내 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공터에 그녀와 형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햇볕에 반짝이는 길다 란 머리카락이 가볍게 바람에 흩날렸다. 곧게 허리를 펴고 고 개를 든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떨려왔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 할 수 있을까! 그 당당함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두 시간 여 후. 형님을 가르치는 그녀의 모습에 난 정말로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벅찬 감동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마스터라는 그녀가! 이름높은 그녀가 근 두시간 동안 형님을 닥달하며 가르친 것은... 달랑 하나! 기본자세였다. 엄격한 기본자세 훈련에 이어진 구타에 형님은 쓰러졌다. 아버님은 노하셨고, 집안에 은은한 서릿발같은 기운이 감돌았 다. 아버님은 그녀와 그 일행을 가짜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제 서야 난 그녀를 믿을 수 있었다. 어제 밤의 나무는 환상이나 속임수가 아니었다. 그녀가 목검으로 나무 한 그루를 조각낸 그 동작도 오늘 보인 기본자세였었다. 그렇게 완벽한 기본자세 라니! 그녀는 진짜였다. "르빗! 내 평생 처음으로 부탁하는 거야! 내 인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줘!" 르빗은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내게 간단한 여행복과 어머님께서 남겨주셨다는 보석 몇 개를 싸주었다. 그녀가 위험 해질 지로 모르는데... 만에 하나 잘못되면 내게 덤탱이로 죄를 덧씌우겠다며 르빗은 오히려 날 달랬다. 그리고 그날 밤 난 아버님의 불호령으로 지하 감옥에 갇힌 그녀를 찾아갔다. "봐! 왔잖아!" 꼬질꼬질한 감옥 안에서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래, 졌다, 졌어. 네가 손에 넣고 싶은 것을 누가 말리니.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란! 이 말썽꾸러기!" 어젯밤 빈손으로 서 있던 남자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 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는 감옥 창살을 내리쳤다. -파삭!- 소리와 함께 쇠로 단단히 만들어진 창살이 힘없이 잘려나 갔다. 그가 그래플의 마스터였다. "그럼! 나가야지!" 그들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곤 손살같이 날 들처업고 는 아버님의 집을 빠져나갔다. "검은, 창은요? 찾지 않아도 되나요?" "원래부터 그런 것 꼼꼼하게 못챙기는 성질이라서! 옆에 대 장간에서 아무거나 하나 돈 두고 들고 나오면 돼!" 그녀가 외쳤다. 그녀는 졸지에 납치범으로 몰렸다. 아내를 공물로 바친 베 이르 자작가의 쓸모 없는 둘째 아들 납치범. 우린 크리아를 떠 났다. 그녀는 틈틈히 내게 그녀의 검술을 가르쳤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지만 난 열심히 배워나갔다. 어떤 궂은 일 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이 온 동대륙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다른 두 사람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검술만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그녀에게도 반해 있었다. 마음 한 구석으로 그녀가 날 제자라 해 주지 않 는데서 안도감을 느꼈을 정도였으니까. "네 이름은 너무 발음하기가 어려워. 넌 금빛 머리가 예쁘 니까, 금아(金兒)라고 하자. 금아. 어때?" 금아라는 말의 뜻이 금빛 아이... 라는 것을 몰랐던 난 기쁘 게 그녀가 준 이름을 받아들였다. 나중에 그 '아(兒)'라는 말의 의미가 어린아이임을 알았을 때 역시 그 이름을 버릴 수 없었 다. 마땅히 작명실력이 없다며 그럼 알아서 쉬운 것으로 하나 지으라는 그녀의 말에... 난 어쩔 수 없이 아이라는 의미를 지 닌 이름을 택했다. 그녀가 지어준 이름이었으니까. 이 백살이 넘었다는 그녀의 나이도... 갓 열 다섯이 된 내 나이도 난 문제 삼지 않았다. 그녀가 늙지 않고 내가 자란다면 언젠가 그녀의 옆에서 내가 설 수 있을 때가 올거라 난 믿었다. 그렇게 난 시 간이 흘러가고 내가 강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관계가 어느 날 깨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가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을 때, 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난 그 전까지만 해도 반 쯤은 농담으로 삼아달라고 했었던 제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란은, 그녀는 내게 너무 높은 존재였다. 난 감히 그녀를 사 랑한다고 할 수 없었다. 아니, 내 스스로도 감히 그 감정을 인 정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는 강해졌다고 하지만... 난 여전히 그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강한 존재를 찾아 떠도는 그녀의 여행은... 그녀들 정도의 실력자가 아닌 이상은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험했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까지 말하는 그녀와의 끈 을 이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녀의 제자가 되 는 것. "실질적으로는 제자나 마찬가지지. 다 배웠잖아. 앞으로는 네 스스로 익히고 단련하는 것 밖에 없다니까?" 그녀는 복잡한 관계가 싫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내겐 그 외 에 그녀의 무언가가 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난 필사적이었다. "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구!" 그녀가 반쯤 포기하듯 외쳤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 때도 네가 날 스승으로 인정하고 그 관계에 걸맞는 실력을 갖췄다 면, 그 때는 널 내 제자로 삼겠어. 물론, 그 걸맞는 실력이란 마스터의 경지를 일컷는 거고."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면서 그녀는 잔인하게도 그렇게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내어 말했다가는 눈물을 보 일 것 같았다. 그래.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마스터가 된 다음에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내 가슴에 매워지지 않을 구멍 하나 를 커다랗게 뚫어놓고. 그 다음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르빗은 내가 돌아가기 전에 죽었다. 가뭄이 돌던 때 함께 돌던 전염병에 걸렸다고 들었다. 슬펐다. 난 그녀에게 아무 것 도 해 줄 수 없었다. 나는 일찍 결혼했던 형님이 손자를 볼 때 까지도 결혼하지 않았다. 르빗에 대한 자책감과 어울어져, 어 떤 사람을 봐도 그녀의 그림자가 겹쳐 보여서 사랑할 수가 없 었다.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아버님을 보낸 후... 친구를 통해 들은 한 여인의 사정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이라는 속박을 받 아들였다. 몸이 아파 아이를 낳을 수 없던 그녀를 옆에 둔 후 로... 우린 십여 년을 친구처럼 잘 지냈다. 우린 서로에게 미안 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어떻게 했더라? 밖으로 는 쉴 세 없이 돌아다녔고, 그녀와는... 아아... 형님이 말년에 낳은 외도로 세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양자로 받아들였다. 그녀 가 정말 행복해 했었는데... 마치 자신이 낳은 아이처럼 사랑했 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난 그녀도 사랑했다. "자?" 순간 화들짝 놀랐다.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그녀... 란의 목 소리였다. 언제 현실로 돌아 온 걸까? "... 아니요." 바람이라도 피다가 들킨 남자의 심정이란 이런 걸지도 모 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와 란은 그럴 만한 관계라 고는 티끌만큼도 없기는 했지만... 란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 으로 날 살폈다. 난 시익 웃었다. "웃기는...." "그냥 흘러나옵니다." 란은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하늘을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몇일 전부터 란은 산적들을 쓸어내겠다며 벼르고 별렀었다. 난 기지개를 폈다. 온 몸의 피와 근육들이 긴 잠에서 빠져나와 되 살아나는 것 같았다. "시작인가요?" "아니. 넌 아직 아니고. 오늘 불침번은 금아가 서라." "쳇." 그녀의 표정에서는 여전히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난 일 부러 작게 툴툴거렸다. 그녀의 눈초리가 새침해졌다. 난 그녀 의 그런 표정도 좋아했다. "내일은 내가 갈 겁니다." "좋지. 내일까지 네 몫이 남아있다면..." 여전히 춤추고 있는 불꽃이 란의 모습을 비췄다. 모두들 그 녀를 믿고 깊이 잠들어있었다. 그녀는 자상한 어머니처럼 세 소년들의 모포를 여며주고 있었다. 마치 백여 년 전 내 모포를 여며주었던 것처럼... 시간이 또다시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다. "바닷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이 시대의 산에 산적이 마를 일도 없을 겁니다." 문득 싫어졌다. 저 소년들과 내가 그녀에게 같은... 보호해 주어야만 하는 존재로 비친다는 사실이.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웃었다. 나뭇가지를 불꽃에 밀 어넣으며 튀는 불똥이 내 얼굴을 더 잘 감춰주기를 바라면서. 란이 몸을 일으켰다. 멀리서부터 진해지는 살기가 점점 더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디를... 가시는 건가요?" 설잠이 깬 듯 스테판이 졸린 눈을 비볐다. 란은 스테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주위 청소를 조금 해 둬야 할 것 같아서." "... 이 늦은 밤에요?" 의아한 목소리였다. 란은 소년에게 밝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자가 아니었 다. 스스로의 생각들이 자꾸만 내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 "난 성실한 하녀거든." 그녀는 우리를 뒤로하고 그 날 처음 봤던 날처럼... 당당하 게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기척이 지워진 듯 사라 져갔다. 난 잠에 취해 멍한 얼굴의 스테판을 다시 자리에 눕혔 다. 또다시 그에게서 백여년 전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언젠가 란이 그랬다. 노란 달빛은 크기에 상관없이 사람의 아픈 모습 을 되비치게 만든다고... 저 달빛 때문일 지도 모른다. "...자, 이제 자거라. 많이 무서웠지? 란님은 자신의 웃는 얼 굴이 어떻게 보이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거든." 순간 란의 기척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나뭇가지에서 미끌어졌는 지도 모른다. 난 혼자 웃음을 삼키며 허리를 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스승님이라고 외치지 않는 거였는 데 그랬나봐....' 쓸데없는 생각이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그녀의 옆에 서 있지도 못했으리라. 난 머리를 털었다. 그래, 지금도 좋았다. 이렇게 옆에서... 목소리를 들으며... 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백여년 간 그렸던 일들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으리라. 잠 시나마 아내의 연을 맺었던 그녀를 기억해보면서... 내 마음을 되 확인해 보면서... 시간이란 더 이상 우리들을 구속하지 못할 테니까. '언젠가는....' 맑은 달빛이 있는 한은... 말이다. ***** 일단은 또 한편이랍니다.^^;;; 후... 여기까지는 있는 것들 수정인데... 쿨럭!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29, Read : 888, IP : 211.215.58.17 2002/08/26 Mon 18:45:00 → 2002/08/26 Mon 19:05:47 民間人 앗..읽는 새 올라왔다..정말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2002/08/26 나는널생 헐..일고 있는데 칭겨서 오니깐 어느새 ㅎㅎ....운도 조타니깐~~ 2002/08/26 코이 읽고있었는데...-_-;;; 여하튼 은빛님 건필하세요~^^ 2002/08/26 에튜 우옷~~~이제 한편~~^^잼따~~ 음..금아의 짝사랑인가염...쿡 기여븐넘~~~ 아 은빛님 쪽~~~옥♡ 냐하하하 건필하셈 2002/08/26 희팅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글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던지....님!힘내셔여..연참을 위하여 2002/08/26 쥬르 헉.....베이르대공이 알곡보니 꽤 무드있군여....금아라.....귀엽군.....ㅡ.ㅡ;;;;;;; 2002/08/26 쥬르 음.....이걸로 끝인가.....하나 더 올라올까.....하나 더 오려주세요......3연참..아자아자 2002/08/26 세라자드 헐... 란의 기척이 ... 미끌...!!! 쿄쿄쿄쿄쿄 건필이염~~ 용기 물약의 효과인가~ 아 끊이지 않는 연참의 신화~~~ 강속도 필요한듯~~ 2002/08/26 광천사 앙~~~~*(^ㅁ^)*// 은빛님~~~~사랑해용~~~ 아잉~~ 그런 의미에서 하나더용~~~ 2002/08/26 나 진따로 은빛님은 대단하세염...^^* 은빛님..헤..넘 조아염...웅.어케해..넘 잼나서..ㅋㅋ 은빛님..힘내세염..기둘리께염..^^~~~ 2002/08/26 지옥숙녀 금아..귀엽다..;;; ...일편단심 금아라;;; 2002/08/26 에튜 님아 오늘 확실히 하나 더 올라오는거졍?기둘릴게염..냐하하 12시까지 1시간마다 체크..ㅋㅋㅋ(난 그렇게 할일이 없는 넘임감...ㅠ.ㅠ) 2002/08/26 펠로나프 오류가 있네요. 지금 금아가 베이르 대공이긴 하지만, 그것은 대공이 되면서 받은 이름 아닌가요? 그 전에는 다른 성이었던 것 같은데.. 2002/08/26 페로나프 찾았습니다. 라이렌트 자작가.. 였다고 저 밑에 쓰여 있군요. ^^ 2002/08/26 펠로나프 금아의 어머니 일이 슬프군요.. 페르로이 후작이 클레이브를 인질로 보낸 것과 비슷한 양상을 지닌.. 저기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가 보군요. 약간의 슬픔을 포함한 분노가 일어나는 .. 그러나 어쩔 수 없음에.. 그리되는 세상에.. 2002/08/26 펠로나프 참.. 그리고 이런 말 첨으로 하네요. 은빛님 힘내세요. ^^ 2002/08/26 시젠 금아 생각외로 귀엽네요.란도 그렇고 ..할아버지 같은 분위가 보단 장난꾸러기 청년같은 느낌에..훗훗 2002/08/26 [-_-] 힘내세요. 힘내세요. 힘내세요 은빛님. ^_^ 2002/08/26 ... 2연참만하면대염..작가님..홧팅~!!!! 2002/08/26 대박타도 오오오오 베이르 귀여버 +ㅅ+;; 2002/08/26 코로코로 멋져 멋져- 우헤헤헤 2002/08/26 봉파리우 우케케케 언제나 잼따 은빛니마 이거 책으루 내봐여 2002/08/26 유니아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순애보군요. 백 여년에 가까운 짝사랑이라니....... 불쌍해서라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작가를 협박하고 싶지만......란과 사랑은 좀!!!! 안 어울리는데...^^;;;; 2002/08/26 라인 맞아요... 책으로 내셔도 충분합니다!!! 2002/08/26 비아락테 와~ 금아가 란을 짝사랑했었네~[몰랐음] 둘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_[ 클레이브는 너무 어리고 제자와 스승이 연인이라....쿡 2002/08/27 으음... 금아... 무지 미남일거 같은데(금발 미남이라...) 어쨌든 금아야, 힘내라! 사제간의 사랑을 기필코 이루는 거얏!! 2002/08/27 dark 연참이라니... 은빛님 싸~~~랑해여... *.* 2002/08/27 소냐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끼리밖에 못만날꺼 가타요.. 한쪽이 죽으면 ... 아쉬우니깐... 서로 비슷하세 살아있어야.. 하니깐.. 2002/08/27 artist 멋있다......^_^ 2002/08/27 Name Mail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29] 은빛 2002/08/26 888 56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2] 은빛 2002/08/26 1214 55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38] 은빛 2002/08/25 1815 54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12] 은빛 2002/08/25 1813 53 [[The Perfect MAID]]-49-보복 [34] 은빛 2002/08/24 2322 52 [[The Perfect MAID]]-48-보복 [12] 은빛 2002/08/24 1866 51 [[The Perfect MAID]]-47-보복 [10] 은빛 2002/08/24 1980 50 [공지]-링크 연결하는 부분에 대해. [11] 은빛 2002/08/23 826 49 [[The Perfect MAID]]-46-야습 [30] 은빛 2002/08/23 2337 48 [[The Perfect MAID]]-45-야습 [5] 은빛 2002/08/23 1948 47 [[The Perfect MAID]]-44-산적 [8] 은빛 2002/08/23 1917 46 [[The Perfect MAID]]-43-산적 [22] 은빛 2002/08/23 2163 45 [[The Perfect MAID]]-42-지독한 악연 [15] 은빛 2002/08/23 2103 44 [[The Perfect MAID]]-41-지독한 악연 [25] 은빛 2002/08/23 2429 43 [공지][[The Perfect MAID]]-일주일의 휴가를... [289] 은빛 2002/07/30 4685 1 [2] [3] [4] skin ZINA/ Ezeon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은빛 2002/08/27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나는 왜 살아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갑작스럽게 이런 질문을 받는 다면 뭐라 대답 할 수 있을까? 새파랗게 젊은 여자의 입에서, 그 것도 처음 본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말이다. "도사잖아.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답을 내리는 게 도사들의 일 중 하나 아닌가?" 대뜸 그렇게 따지기까지 하면서. "허허허....." 나는 일단 웃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나 는 내 길게 자라난 수염과 흘러내린 눈썹이 어떤 인상을 지니 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얼버무리지 마. 나도 적지 않게 먹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상을 구겼다. 문득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평범하다 못해 무색한 분위기가 어딘가 낯익다고 느꼈다.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지닐 수 없는 그런 묘한 평범함. 수도를 오래 한 도사들이나 스님들 에게서나 풍겨 나오는 분위기였다. "이봐. 이름이 뭐지? 뭐, 도명 같은 게 있지 않아?" 그녀는 대뜸 질문을 바꿨다. 어느 날 내가 묵고 있는 초라 한 암자 앞에 나타나 멍한 얼굴로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던 여 인은 보름 여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연이어 저 따위 질문이나 던지고 있었다. "없으면 대충 부르지, 뭐. 노도. 어때?"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노도... 늙은 도사라. "과분하군요." 저런 공기는 정말로 젊은이는 절대 지닐 수 없다. 게다가 문득 떠오른 건데... 이 여인은 내가 명상을 방해받지 않기 위 해 깔아두었던 수많은 진(陳)들과 술(術)들을 없는 것 모냥 헤 치고 들어왔다. 너무나도 깨끗하게 파훼했기에 뚫고 들어왔다 는 인식조차 들지 않았다. 도인이나 수도를 한 사람 같지는 않 고, 살기는 아니라도 어딘가 모르게 무기가 베어 나오는 것을 보면 무예를 닦은 사람 같다. 무예를 닦아 저 경지에 올라갔다 면... 저 여인은 어쩌면, 아니 확실히 나보다 나이가 많다. 난 단정했다. "난 란이라고 해." "네." 난 가볍게 목례했다. 란이라... 속세에 발을 끊은 나조차 귀 에 익은 이름이었다. 백검문 소속이었다는 것 외에는 자세한 내력이나 성은 알리워지지 않았지만 검후이자 무후라고 불리 우는... 존재. 가장 강하다고 칭해지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최고 라고 불리 우는 자. 근 이십 여 년 전에 서대륙 탐험에 나선다 면서 이 땅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긴 노도의 영역인 것 같은데...." "허허허..." 그녀가 말하는 억양은 꼭 들고양이가 영역을 나누는 것 같 은 그런 야성적인 느낌을 풍겼다. "나도 이 대지의 기운이 마음에 들거든."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딘가 많이 지치고 피폐해진 듯 했다. "싫지 않다면... 나도 저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도 좋을까?" "이 땅에 내 것 네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난 도매금으로 들고양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대답 한 건 그녀의 묘한 분위기에 대한 충동적인 반항심이기도 했 다. 그녀는 잠시 몽롱한 시선을 내게 던졌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주억이며 뭔가를 혼자 중얼거렸다. "돌팔이." "네?" "너 도사 맞아?" 순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시끄럽잖아. 들고양이라니!" "네?"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들고양이? 내가 그녀에게서 들고 양이 같은 야성을 느꼈다는 말을 했던가? "너도 도사니까 노자를 알지?" "아, 네...." 알기는 알았다. 그녀가 말하는 의미로 알고 있는지는 자신 이 없었지만. 그녀는 눈을 더 가늘게 좁히고는 나를 째렸다. "노자의 일화가 있어. 내, 참... 먹물 짧은 내가 어쩌다가 늙 은 도사를 가르치고 있을까?" 누가 가르쳐달라고 했습니까! 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 만 난 참았다. 어쩌면 똑 같은 말을 가지고도 저렇게 은근히 사람의 속을 긁을 수 있을까! 간간이 내려가는 속세에서 주정 뱅이도 만나봤고 공연히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만났었다. 그들도 비슷한말을 던져가며 내게 추태를 부렸다. 하지만 이토록 감정 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수양이야. 수양...을 수도 없이 가슴속으로 되뇌었다. 불가에 자주 나오는 부처의 시험 중에도 이런 경우들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부처나 보살께서 불량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수도 자들의 경지를 시험한다는! 저 유명한 여인이 그럴 리는 없겠 지만... 내 수양이 시험 당한다는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노자는 아침 산책을 즐기는 자였다고 해. 늘 아침에 숲을 거닐며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하나 되는 일을 즐겼다고 하지."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그것을 모르는 도사가 어디 있을까! "시끄러워. 알면서 실천이나 하면 말을 않지!" "헉!" 또다시 그녀가 내 마음을 읽어낸 듯 짚었다. "하여간 일단 끝까지 들어. 그 노자라는 작자가 아침 산책 을 하는데, 옆집 사는 농부가 보니 참 좋아 보였나봐." 작자라니... 작자라니! 가슴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순간 타 올랐다. 난 참았다. 수도려니... 수도려니. 난 내 자신이 수도인 임을 잊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야 했다. "그 옆집 사람은 노자에게 부탁을 했지. 함께 산책길에 나 서게 해 달라고. 노자는 그자를 물끄럼 보더니 허락했데. 그래 서 함께 다녔다지..." 그녀의 시선은 줄곳 초점없이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그 옆집의 옆집 살던 친구도 아침마다 산책을 다 니는 친구와 노자가 부러웠나봐.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했데. 자신도 끼면 안되겠냐며. 노자는 어떻게 했을까?" "고민 끝에 조용히 한다면 함께 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아네." 그녀는 묘한 시선을 했다. 난 이미 그녀가 말을 꺼낸 의미 를 눈치챘다. 하지만... 조용히 들었다. "허락을 받은 사람은 따라갔지. 아침 햇살이 아름다웠고, 숲 의 공기는 청량했어. 따라간 친구는 가슴이 부풀어올랐어. 아! 뭔가 한 마디 하고 싶었지. 하지만 이미 한 약속이 있었거든. 조용히 하겠다고..." 그녀는 허리를 주욱 피고는 몸에 생기를 돌게 했다. 보름 넘게 굳어져 있던 몸이 우드득 소리가 나며 되돌아갔다. "결국 마지막에 한 마디 했어. 참 좋은 산책이었다고. 하지 만 노자는 다 듣고 있었지. 그자가 산책 내내 가슴속으로 떠든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는 결국 동화되지 못한 채 눈으로 자연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요..." 나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란은 멍 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내 이야기야. 나도 그런 년이거든."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돌팔이라고 한 거 사과하지. 그리고 이미 허락했으니까 옆 쪽에 대충 자리잡고 살게." 란은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휘적휘적 사라져 버렸다. 난 한동안 내게 일어난 이 작은 사건이 현실처럼 와 닿지 않았다. 그 후로 난 가끔씩 란을 보았다. 그녀는 멍 하니 숲 속에 앉아 있었다. 움막도 짓지 않았다. 난 굳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 았다. 그녀도 그 날 이후로 날 찾아오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내 작은 움막 지붕이 꺼질 만큼 눈이 높이 쌓였다. 난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움 막이라도 짓고 눈을 피하고 있는 걸까? "안돼겠군."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다 해도 피와 살로 만들어진 인간이 었다. 사흘째 내린 폭설로 한 걸음도 걷기 힘들었지만 난 내가 아는 생명 하나가 허무하게 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 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난 지팡이를 짚고 눈길을 나섰다. 한 걸음 떼기가 고통스러웠다. 난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잘 앉아있던 숲길과 나무 위, 바위 아래 등을 힘겹게 찾아 나서며 주위 어디에서 집 같은 것을 지은 흔적이 없음을 발견했다. '난 왜 살아있는 걸까?' 보름만에 입을 연 그녀가 했던 첫 마디였다. 그 말은 곧 살 희망이나 의욕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 던 그녀였지만... 널리 알려진 그녀의 당참과 그래도 꼬박꼬박 살아나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드문드문 봤기에 잊고 있던 걱 정이 가슴을 푹 치고 고개를 디밀었다. '설마!' 죽었을까? 그렇게 명상하는 것 같은 자세로 앉아 막연히 좌선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닐까? 난 걸음을 더 재촉했다. 늙은 뼈마디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난 멈출 수 없었다. 허리 아래가 눈으로 모조리 젖었다. 하체 에 감각이 사라졌다. 숨이 목까지 차고, 가슴뼈가 바스라질 듯 고통스러웠다. 움직이려고 하고는 있었지만 내가 정말로 움직 이고 있는지 도무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살았군." "어?" 그녀가 내 앞에 있었다. 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 집?" 내 작은 움막이었다. 불을 얼마나 땠는지 방안이 온통 여름 처럼 더웠다. "언제... 정신을...?" 정신을 잃은 기억이 없었다. 그저 좀 견디기 힘든 육신의 고통에 괴로워했을 뿐. 난 내가 정신을 잃은 줄조차 모르게 쓰 러져 있었나보다. 누렇게 얼룩진 황토 벽에 춧불이 일렁였다. 그녀는 내 쪽으로 시선을 두기가 겸연쩍은 듯 움직이는 초 그 림자를 잡으려는 듯 눈길로 초 심지를 쉬지 않고 쫓았다. "저어기..." 그녀가 주저주저하며 입술을 뗐다. 그녀의 통통한 귓볼이 발그레히 물들어 있었다. "고마워." 그녀를 처음 본 후 반년만에 처음으로 본 미소였다. 아름다 웠다. 그래.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선녀 같았다. "허허허허...." 그 겨울을 우린 한 움막에서 보냈다. 그녀도 나도 땅에 등 을 대고 자는 습관은 없었다. 좌선이 몸에 베일대로 베인 우리 에게 등을 땅에 댄다는 건 죽을 정도로 아프거나 의식을 잃은 후에 뉘어졌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백살도 넘은 늙은 도사와 이백 살도 넘은 무인사이에 별 다를 일은 없었다. 그저 남들 보기에는 사연이 있어 산 속으로 숨어든 증조부와 어린 손녀 딸쯤으로 보였으리라. 란은 종종 숲으로 들어가 남아있는 열매와 땔감으로 쓸 나 무 가지들을 주어왔다. 발이 푹푹 패이는 날 대신해 그녀는 날 듯이 눈 위를 뛰어다녔다. 그녀는 가끔 서 대륙에서 만났던 친구들에 대해서도 혼자 중얼거리듯 말해 주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금아 라는 어린 친구와 타타이타르라는 이름을 지닌 숲의 수호자였 다. 그녀와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기에 더 기억에 남았다. "살아있는 나무를 다치게 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어. 타타이 타르는..." 바짝 마른나무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눈 속을 헤쳐가며 떨 어진 나무 가지들을 줍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눈이 뭍어 눅 눅해진 나무들을 주르르 늘어놓고 햇볕에 말리면서 그녀는 이 전에 친구가 아끼던 나무들을 너무 많이 부러트렸다며 아쉬워 했다. 문득 난 그 친구가 부러워졌다. 나도 그런 친구였다면. 하지만 난 나도 모르는 새 그녀에게 그런 친구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 역시도 내게 그런 존재였다. 어느 날, 난 움막 앞의 뜰에서 명상을 하던 도중 그녀의 모 습을 보았다.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 그냥 보였다. 명상으로 자연스레 이끌어 낸 최초의 육신의 초월이었다. 내 자신이 더 이상 육신의 눈과 감각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는 의미였지만 난 그보다도 그 순간에 보았던 장면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늘 모자라는 땔감과, 늙어 잔기침이 많아지는 친구 사이에 서 고민하던 미련한 무후 란은... 어디서인가 구한 삼류 열양 장법을 개조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내가 비운 방 구들장 에 내공을 밀어 넣고 있던 것이다! 감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난 마음 구석에서 늙은 육신을 포기하던 생각을 접었다. 아니 벅벅 찢어서 불쏘시개로 썼다. 난 두 번 다시 내 늙은 몸을 탓하고 병듦을 당연하게 받 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아프면 내 친구가... 가슴아파했다. 그건 고독을 벗삼아 혼자 수도하고 있던 내겐 대 개벽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녀가 약이라며 따 온 지독히도 맛없는 나무 열매들과 뿌리들을 넙죽 넙죽 받아먹었다. 그런 소소한 일들 외에는 정말 지독히도 할 일이 없는 겨 울이었다. 우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이심전심으로 가까 워졌다. "노도, 왜 난 살아있는 걸까?" 봄이 될 무렵 란은 다시 한번 내게 뜬금 없는 질문을 던졌 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그 날처럼 공허하지만은 않았다. 난 웃었다. 하지만 얼버무리지는 않았다. "허허허... 이 늙은 도사의 친구가 되 주기 위해서지!" "능청맞기는! 더 돌팔이가 됐어!" 그녀는 밝게 웃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그날의 그런 절망감 은 남아있지 않았다. 난 그런 그녀의 모습에 홀로 축하를 보냈 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그녀의 눈이 따듯하게 빛나고 있 었다. 그렇게 시작한 인연이 질기게도 이어졌다. 그녀가 왜 그 날 그런 우울함으로 날 찾아왔는지 사실 난 모른다. 알려고도 하 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한 고비 고비 넘을 때마다 찾아오는 심마의 한 종류 겠거니 한다. 그 때 이후 란의 기도는 한 차원 더 성숙했다. 나도 진짜 수양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찾아온 뒤 몇 년 정도 뒤에 날 찾아왔던 도우들은 날 보며 놀라워했다. 그래서 알았다. 란 은 정말로 선계에서 날 돕기 위해 보내 준 선녀가 아닐까 싶 다. 란이 안다면 펄쩍 뛰며 아니라 하겠지만 그녀는 내게 그런 벗이며 동시에 스승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를 따라 선 듯 이 서 대륙 카슬까지 따라올 수 있었다. "스승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그녀의 제자라는 한 젊어 보이는 늙은이의 모습에서 난 문 득 처음 만났을 때의 란을 떠올렸다. "허어... 글세요." 어떻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노도님." 금아는 조금 더 눈을 빛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난 문득 이 젊어 보이는 늙은이의 가슴에 맺힐지 모르는 오해를 막아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둔한 란은 모르겠지만 금아를 조금만 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스승에 대 한 관념이 희박한 이 서 대륙인이 한 여인을 백년이나 기다렸 을 때의 심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단지 옆에 있기 위해 단지 곁에 머물기 위해 모든 지위와 권력을 버리고 그렇게 다시 만 나서도 품고 있는 가슴을 밝히지 못하고 시간을 벗삼아 기다 리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 프란으로 떠나면 노도님께 이런 이야기를 조를 새도 없어지겠죠." 금아는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이 야기만큼 그녀와 나의 만남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은 없 을 듯 했다. "만일 자네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초면부터 '나는 왜 살 아 있는 걸까?'라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하겠나?" "네?"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금아는 말을 되짚었다. 난 싱긋 웃었 다. "그 것도 새파랗게 젊은 여인의 얼굴을 한 사람에게서 말이 네." **** 본편이 더 좋으신 분께는 용서를.... 빕니다. 쿨럭! 하지만.. 글이 안나갈 때는 잠시.. 이런 외도라도... ㅠㅠ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8/27 Tue 19:52:44 IP : 211.215.58.17 하늘아이 외도의 글도 너무나 좋은 님은..역시 존경입니다~!!!ㅠ_ㅠ 다음 글도 많이 많이 기대하죠^^ 오늘도 좋은글 감사하게 읽고 갑니다^^ (08/27,20:26) hoibt 외전도 좋아요.. 은빛님이 쓰시는 건 다 좋아요..-_-* (08/27,22:43) a 노도와 란이 어떻게 만났을지 궁금했는데 +_+ 건필이요~ 즐필이요~ ♡ (08/28,11:38) 미스티 본편도 좋지만 역시~ 외전도^^* 은빛님이 쓰시는 거라면 여신과기사나 장군일기 등등 다 좋아요^^* (08/28,16:50) 이플리타 캬아~~~~~~~~~!! 님 소설 최고!!!!!!!!!!!^^ (08/28,18:36)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3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3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6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4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1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6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5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은빛 2002/08/28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어느 새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성큼 다가온 여름이 제법 따가운 햇살을 흩뿌리던 날, 우린 목적지인 프란 제 일의 아카 데미, 카트 아르카이아에 도착했다. "크군요." 스테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프란의 땅에 들어 서고부 터 우린 조금씩 압도당해갔다. 처음의 작고 초라한, 그러나 넓 게 땅을 차지하고 길게 누워있던 그 마을로 시작한 프란의 건 축적 스케일은 한 마을 한 마을 걸칠 때마다 커졌고 높아졌다. 크리아의 옹기종기 모인 작은 도시와 아담한 마을 크기에 익 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이 곳의 거대한 스케일은 일종의 충격 이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크리아와 달리 건조하지만 평야가 많고 높은 산이 없는 프란의 건축물들은 대지를 달리듯 넓게, 하늘을 찌르듯 높고 뾰족하게 서 있었다. 그 정점의 하나가 지 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아르카이아의 정문이었다. 크리아 의 왕궁 정문보다도 더 큰 세 쌍의 대문이 아르카이아의 정면 을 지키고 우뚝 서 있었다. "흥!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마차가 정문을 지나 멈춰 서자마자 마차에서 퉁겨지듯 뛰 어내린 셀레라는 차갑다못해 살 떨리는 냉기를 내뿜으며 몸을 돌렸다. 풍성한 분홍색 드레스 자락이 세차게 몸에 휘감기며 돌아갔다. "아, 아가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낸리가 고개를 푹 숙여 보이고 그 녀 덩치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커다란 옷 트렁크를 힘겹게 끌 며 셀레라의 뒤를 따랐다. 깊고 가는 두 줄기의 트렁크 바퀴 자국이 낸리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처럼 패어갔다. "...셀레라 답군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 던 금아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거겠 죠. 정신 건강에 해로울테니까." 클로네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후......." 누구의 입이랄 것도 없이 길다란 한숨들이 연이어 흘러나 왔다. 힘들고 길었던 여행이 끝남을 채 자축해보기도 전이었 다. 카트에 도착하고, 안내인을 만나 이 덩치 큰 건물에 도착 하자마자 셀레라는 마차에서 튀어 내렸다. 그녀는 손살같이 눈 앞에 커다랗게 세워진 목조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저, 저어기, 그 건물이 아닙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정문 안내인중 한 사람이 그녀의 뒤를 따라 황급히 달려갔다. 남은 또 하나의 사람이 얼떨떨한 표정 으로 우리 쪽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프란의 수도 카트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로 루데릭이 그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온 몸에 붕대 자 국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인사 치레가 아니라 정말로 고생하셨군요." 그는 셀레라와 우리의 반목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공손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갔다. 그는 루데릭이 건넨 몇 가지의 서신을 공손히 받아 그 중 정문의 그림이 그려진 봉투를 그 자리에서 열었다. "이 곳이 이제부터 제피리나 후작 영애와 페르로이 가문의 클레이브님께서 공부하실 카트 아르카이야입니다. 기사분들께 서는 저 앞의 건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 주십시오." 그가 손짓하자 루데릭들을 안내할 사람 몇과, 건물 뒤편에 서 단아한 문장의 마차 두 대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크레이와 클로네에게 허리를 숙여 보이며 마차 문을 열었다. 순간 어색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로 흘러갔다. 앞이 보이지 않 는 크레이 대신 클로네가 살짝 얼굴을 붉혀 보였다. "그럼, 클레이브님, 제가 먼저 타겠습니다." 클로네는 정확히 클레이브에게로 살짝 목례를 해 보였다. 인사할 상대를 잘못 짚은 안내인의 목 뒤가 새빨갛게 달아올 랐다. 클레이브는 괜찮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긴 클레이브의 옷을 나눠 입은 크레이는 평민처럼 보기 힘들었다. 그 믿어지지 않는 외모는 물론인데다가 이제 제법 잘 어울려 보이기까지 하는 한 쌍의 커다란 보석은 의안이라는 것을 모 르는 사람조차 감탄할 만큼 영롱하게 빛을 발했다. 착각한 것 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느낀 듯 크레 이의 볼아 달아올랐다. 크레이는 아주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뒷걸음질쳤다. 클로네와 클레이브가 마차에 올라탄 후 안내인은 조심스럽 게 동승했다. 마차의 문이 닫혔다. 우린 그 뒤의 조금 작은 마 차에 짐을 실었다. 대부분 숲에서 버리고 온 덕분에 옮길 것들 은 많지 않았다. 큼지막한 네 개의 가방은 작은 마차의 지붕 위에 실렸다. 크레이의 눈 역할을 이제 제법 해내는 스테판이 조심스럽게 크레이의 발을 인도했다. 기대임과 불안함이 범벅 이 된 두 소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클레이브가 탄 마차는 우리가 채 타기도 전에 천천히 출발 했다. 우리의 작은 마차도 소년들과 금아와 나, 하르크가 타는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앞의 마부석에 앉은 마부의 더듬거리 는 크리아어가 들려왔다. "이... 곳부터는 영내의 마차만이 다닐 수 있다. 사설 마차는 안돼. 위험할지도 모르거든. 이제 앞 마차를 따라 이 곳을 한 바퀴 돌 꺼야. 당신들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시중을 들겠지." 카트 아르카이야는 넓었다. 아카데미라기보다는 커다란 숲 이 달린 하나의 독립된 영지처럼 보였다. 여기저기에 거대한 목조건물들과 이제 세워지고 있는 석조건물들이 보였다. 기둥 하나의 두께가 어마어마한 폼이 다 지어진다면 족히 천년은 버틸만 해 보였다. "돌은 다듬기 힘들어서 짓는 게 느리지. 나무 건물로 쓰다 가 저 것들이 완성되면 다 옮길꺼야." 프란 제국이 통일된지 겨우 십여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이 정도라니. 놀랍기만 했다. "백년 정도 지나면 다 완성될꺼야." 마부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난 크리아어를 용병에서 배웠어." 오랫동안 배운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는 조금은 서툰 크리 아어로 이것저것 설명해 나갔다. "지금은 이곳 경비와 안내 등을 하지." 그는 잠시 말을 멎었다. 앞쪽의 마차가 멈춰 섰다. 앞 마차 에 탔던 안내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여기서 보이는 건물들이 앞으로 두 분께서 주로 공부하실 곳입니다. 귀족과 왕족분들은 이 곳을 사용하실 겁니다." "그럼, 이 곳에는 평민들도 공부할 수 있나?" 클레이브의 목소리였다. "귀족분들께 봉사하기 위한 과정들을 가르치는 과정이 있습 니다만, 이 곳은 아닙니다. 조금 더 뒤편에 있는 작은 건물들 에서 공부하게 됩니다만, 두 분께서 보실만한 곳은 아닙니다." "흠....." "평민이라 해도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후견 을 맡으신 귀족분들의 특별한 허가가 있어야만 들어올 수 있 죠." 귀족과 연관되지 않은 평민은 입학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데리고 온 시동 둘을 넣고 싶은데." "시동이라면... 좀 전의?" 안내인의 목소리가 조금 어색했다. 방금 전 그가 저질렀던 실수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안내인은 잠시 생각에 빠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자 신의 앞에 서 있는 귀족이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안내인의 목 소리가 밝아졌다. "물론입니다. 크리아의 제 일 가문이나 마찬가지인 페르로 이 후작가의 허가라면, 분명 될 겁니다." "좋다." 클레이브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두 분이 머무실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앞쪽의 마차 문이 다시 닫혔다. 우리의 마차도 출발했다. 클 레이브의 숙소까지는 마차로 십여 분이 걸렸다. 클레이브와 클로네가 앞으로 지낼 방은 가깝게 붙어있었다. 귀족의 방답게 큼지막한 침실과 아담한 개인 서재, 두 개의 조 그마한 하인방으로 구성된 그들의 방은, 각각이 독립된 작은 집과 같았다. "멀리 갈 것 없잖아요. 저도 란에게 볼일이 있고... 또 금아 나 하르크도 멀리 떨어지지 않는 편이 더 좋을 텐데요. 또 제 게 할당된 숙소를 합한다면 방도 남는 지금 굳이 하르크나 금 아가 마부들의 숙소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만."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내가 클레이브의 하인 방에 자리잡고 금아나 하르크 둘 중의 하나는 따로 마련되어 있는 마부들의 숙소로 가야 했지만 클로네는 이번 여행길에서 그녀를 돕던 하녀를 잃었다. 클로네의 방에 딸린 두 개의 하인 방은 기약 없이 비워졌다. "제 방으로 란이 들어오면 되요. 클레이브도 란 보다는 금 아가 보살펴 주는 게 더 편한 듯 보이고." 클로네는 방긋 웃었다. 클레이브는... 뭘 떠올렸는지 조금 붉 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판과 크레이도 따로 숙소가 정해질 때까지는 제 방에 남는 하인방 하나를 나눠 쓰면 될 듯 합니다만." 난 잠시 금아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내 짐들 함께 들어준 다면 나도 조금은 안심하고 클로네의 방으로 건너갈 수 있다. 금아는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모두 결정된 듯 하네요." 클로네는 방긋 웃었다. 우린 짐들을 옮겼다. 그 날 밤 우리 는 정말 원 없이 휴식을 취했다. 아직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는 두 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풀지 못한 짐들과 진로가 정 확히 정해지지 않은 크레이와 스테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 만 그 날 하루만큼은 우리 모두 쉬고 싶었다. 정말로 힘든 여 행이었다. ***** 일단은... 쓴 부분까지. 그럼, 저녁때 또.... 뵙죠.... ㅡㅡ;;;;;; 그리고... 베이르 대공의 옛 성은 라이렌트 자작이었습니다. 지적해 주신...게다가 찾아주시기까지 한 펠로나프님~ 감사! 보내주신 오타 지적들도 잘 받아먹고 있습니다. (으으.. 바르게 반영해야 하는데... 원문을 고치는데서 만족 하고 있다니...ㅡㅡ;;;;) 넵. 그리고... 저도 글은 짜내고 있답니다. ㅡㅡ;;; 꾸욱 꾸욱 짜서... 쥐어 짜서 .... 흘. 하지만.. 단골 메뉴라. 제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아이템들이라. 짜더라도 제 식대로 짜고 싶네요. 무투대회라든가.... 괴짜 산적.... 뭐... 어떻게 해석해서 넣는 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은... 그건 안나올 거라 봅니다. 무엇보다도... 전투씬에 약한 은빛에게... 무투대회 같은 집단 다발적 싸움씬은.... 우우우우욱..... ㅡㅡ;;;;; 거의 불가능이죠. 불가능... 훗. 더, 더워요....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8/28 Wed 12:04:57 IP : 211.215.57.36 hobit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그리고 건필하시길..^^;;) (08/28,14:16) 미스티 헤헷^^* 역시 님의 글 보면^^* 어쨌건 재미있어요^^* 건필~!! (08/28,17:26)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3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3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6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4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1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6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은빛 2002/08/28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저는....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소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 그래?" 하녀는 담담했다. 그러나... "자, 잠깐! 그래라니요! 란님!" 이제는 아예 남들 보는 데서도 공공연히 내게 존칭을 붙여 대고 있는 금아가 아침 댓바람부터 인상을 벅벅 긁으며 목청 을 높여댔다. "그건... 저도 무리라고 봅니다만." 옆에서 잠잠히 듣고 있던 클로네도 조심스럽게 끼어 들었 다. 크레이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평범한 생활도 힘들 텐데, 검사라니요." 가벼운 한숨에는 질책마저 섞여 있었다. 얼굴근육들을 잔뜩 긴장시킨 크레이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절대 꺾이지 않을 고 집이 소년의 입가에 가득 달라붙었다. "전... 그다지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란은 몰라서 하는 말이예요!" 클로네는 뾰족하게 외쳤다. "하녀로서 조금 쓸만한 기술을 몸에 익히고 있는 것과 검을 들고 살아가야 하는 건 덩치 큰 와이번과 진짜 드래곤만큼이 나 다른 겁니다!" 셀레라는 숨을 거칠게 몰아쉈다. "게다가... 미안한 말이지만 몸이 성한 것도 아니고..." 난 말을 멎었다. 크레이의 보이지 않는 한 쌍의 보석이 빛 을 정오에 다다른 아침 햇살을 받아 푸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크레이의 지나치게 튀는 외모도 불안합니다. 게다가 저 눈 이 의안이라는 것은.... 금새 밝혀질 겁니다. 크레이의 눈에 있 는 한 쌍의 보석의 값어치는 일반 평민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값일테고요. 너무 위험합니다." 금아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아예 크레이의 학교 입학 자체 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크레이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맞아. 란." 클레이브조차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말에 동조해갔다. 난 수셔 오는 골치를 꾹꾹 누르며 상전들의 말을 조용히 기다렸 다. 발단은 아침 일찍 찾아온 아르카이아의 관리가 던진 한 마 디의 말이었다. "크리아의 페르로이 후작가의 분께서 신청하신 평민 두 사 람의 입학이 허가가 났습니다. 두 주 후에 학기가 시작되기 전 까지 두 사람이 공부할 분야를 정해서 보내주십시오." 아주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한 마디였다. 문제는 그 다음 이 어진 두 소년의 말. "전... 집사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도 검술에 열정을 품고 있어 보였던 스테판이 난 데없이 선언했다. 예상 밖이기는 했지만 사실 여기까지는 별 문제랄 것이 없었다. "검술 역시 배우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클레이브님을 계 속 옆에서 돕기 위해서는 집사학을 공부하는 편이 더 낳으리 라 생각했습니다." 긴긴 여행길에서 내내 고민한 듯 스테판의 결심은 굳어져 있었다. "게다가 이미... 최고의 기회는 한번 버렸으니까요." 스테판은 내게 힐끔 웃어 보였다. 그랬다. 그는 이미 한번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난 두 번 다시 그를 받아들여주지 는 않았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 찔리는 마음으로 난 스테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방긋 웃었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일이 검을 들고 몸을 움직이는 일보다 제게는 더 즐겁기도 하니까요." "그래." 클레이브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스테판의 성격이 나 결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듯 싶었다. 다들 그의 결정에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우린 그가 어떤 결정을 내 리건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문제는... 크레이였다. "...전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소년의 입술이 열렸다. "위험합니다." 하르크는 클레이브에게 말했다. 그는 강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나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날이 선 검을 드는 일은 성한 사람에게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란! 뭐라고 해 봐요!" 묵묵히 침묵을 지키다가도 한 편으로는 꽤 황당한 말로 오 히려 크레이의 결심을 부채질하는 듯한 내 태도에 화가 난 듯 하르크의 목소리는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크레이. 왜 검을 들고 싶지?" 난 크레이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보이지 않는 눈과 눈 높 이를 맞췄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그랬다. 그 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전..." 크레이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 고 있었다. "아, 아버지를... 지키고... 싶었어요." **** "이 곳이 하노베이가의 분께서 머무르실 방입니다." 마차로 한참을 돌아온 곳은 클레이브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귀족의 방이었다. "그분들은...?" 마치 오랫동안 정이 든 친구라도 떠나 보낸 것처럼 셀레라 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그녀의 일행 들에서 떨어져 나왔는지를 아직 잊지 않고 있던 안내인조차 한 순간 헷갈릴만큼 셀레라의 표정은 애처로웠다. "그 분들은 옆 건물의 방에 배정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되물을 뻔했던 혓바닥을 간신히 잡아내며 안내인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군요." 셀레라는 고개를 주억였다. 안내인은 몇 가지 필요한 사항 들을 그녀에게 설명하고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커다란 방들 안에는 셀레라와 낸리만이 남았다. "짐을 풀어라. 이런 먼지 탄 옷을 계속 입고 있을 수는 없 지. 이 프란의 고위 귀족들이 모조리 몰려있을 이 곳에서." 언제 아쉬운 표정을 지었냐는 듯 도도한 곡선을 그리며 셀 레라의 입술이 나풀거렸다. 낸리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 리고는 재빠르게 가방을 풀러 짐을 정리해 나갔다. "프란이라... 제국 프란이라..." 셀레라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직 역사가 짧아 촌티가 덜 벗어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크 고 부유한 티가 나는군." 방 한 벽을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셀레라는 자신의 모습을 이리 저리 돌려보았다. 굵직한 붉은 빛을 띈 보 석 하나가 거울 윗면의 중앙을 장식한 주위를 몇 개의 자잘한 보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귀여운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거울 안쪽에 비친 방의 곳곳에도 투박한 보석들이 달려 있었다. 깨 끗이 연마되지 않은 것을 보니 그다지 비싼 것들은 아니겠지 만 보석을 방안에 장식하다니! 그 것도 수백 명이나 되는 귀족 들에게 주어지는 기숙사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조그만 크리아와는 상대도 안되는 힘과 미래가 이 안에 있겠지. 후훗." 낸리는 조그맣게 흘러나오던 한숨을 꾹꾹 내리눌렀다. 당장 내일부터 떨어질 옷 타박과 산더미 같을 빨래감이 눈앞에 보 이는 것만 같았다. "오호호호호홋!" 셀레라는 방으로 들어서기 직전, 아르카이아의 시종으로부 터 건네 받은 편지를 다시 펼쳤다. 눈에 익은 필체. 이제 후작 가의 주인이 된 그녀의 오라비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셀레라. 미안하다. 우리 가문에 너 외에는 이런 중요한 역 할을 맡길 사람이 없었다.' "그럼! 나 외에 누가 있었겠어?" 셀레라는 연신 웃음을 흘렸다. 몇 번을 읽어봐도 기분 좋은 서론이었다. '프란은 현재 우리 크리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대국이다. 아직까지는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너 도 보았다시피 그 넓은 영토로부터 흘러나오는 힘은 결코 무 시 못할 잠재력이다.' "그럼... 그랬지." 지금 당장만도 느낄 수 있었다. 저택에 있던 그녀의 방보다 는 작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주어진 이 기숙사는 몇 백명이나 될 귀족들에게 하나 하나 주어지기에 무시 못할 정도로 넓은 면적을 차지했다. 크리아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셀레라는 편지를 가볍게 건너 뛰어 읽어갔다. 몇몇 미사여구를 제외한다 면 다시 읽어볼만한 중요한 부분들은 아니었다. '우린 아버님의 선견지명으로 인해 유리한 외교 파트너를 잡을 수 있었다. 너도 알겠지만 프란에는 두 우그르트가 있다. 그들은 장자 상속제가 없다. 그들 중 강하고 뛰어난 자가 다음 대의 카느에 앉게 된다. 아버님은 그 둘 중 둘째 우그르트의 손을 잡으셨다.' "둘째라... 둘째." 셀레라는 작게 흥얼거렸다. '그들이 어렸을 적에는 몰랐다. 어느 누가 다음대의 카느로 서 어울리는 자가 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분명해진 셈이다. 난 확신한다. 우리의 둘째 우그르트가 다음 대의 카느가 될 자라는 것을!' 그 동안 묵어있던 열등감과 분노가 일 순간에 식어가고 있 었다. 그럼 그렇지! 그녀는 기뻐했다. 그녀 정도의 뛰어난 존재 가 겨우 그런 혼혈아와 하녀 따위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 '첫번째 우그르트의 손을 잡고 페르로이 후작은 기뻐했을 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아버님이 옳으셨던 게지. 그가 비록 국 방장관의 자리를 얻고 희희낙락하고 있지만 결국 그 자리도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오호호호호호!"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온 몸의 피가 춤을 추는 것만 같았 다. 셀레라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낸리의 시선을 느꼈 다. 날이 벼른 검날 같은 셀레라의 살기에 낸리는 재빨리 고개 를 돌렸다. 셀레라는 편지의 다음 장을 넘겼다. 몇 가지 당부 와 소식이 더 들어있기는 했지만 이미 아는 내용들이었다. 그 녀는 두 번째 장의 맨 마지막 구절에 눈길을 돌렸다. 사실 그 녀가 이 편지를 재차 꺼내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 곳에 있었다. '셀레라. 아름답고 영리한 너라면 둘째 우그르트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오래비는 프란의 다음 대 카느의 반려, 제국 프란의 카느린이 될 자는 너 외에 없다 고 생각한단다. 부디 내가 네게 선물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 다오. 난 너만을 믿고 있단다. 내 사랑하는 동생 셀레라.' "그럼! 그렇지! 나 외에 그 누가 자격을 갖추고 있겠어?" 편지를 곱게 접어 봉투에 다시 넣으며 셀레라는 쾌활하게 외쳤다. 이 제국 프란의 여주인 카느린이라! 카느린! 이제 곧 멸망할 페르로이 후작가의 후처 따위에 미련을 두었던 자신이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겨우 인질 따위로 끌려온 클로네나 그 혼혈아 따위와는 다 를 거라고 생각했어. 역시!" 낸리가 채 정리하지 못하고 침대 위쪽에 펼쳐 놓은 드레스 들을 하나 하나 몸에 대어보며 셀레라는 춤추듯 방안을 빙글 빙글 돌았다. "오호호호홋! 이 셀레라. 그런 모욕을 받고도 그대로 물러 날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마." 화려한 장식이 가득 달린 붉은 드레스의 레이스자락이 마 치 핏방울처럼 방안에 흩날리고 있었다. **** "왔나?" 소식을 전해온 시종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한 쪽 무릎을 단아하게 꿇은 그는 마치 돌로 만들어진 석상처럼 듬직한 공 기를 품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찾아갔던 자가 페르로이 후작이었으면 더 좋았 을 텐데." 작열하는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스물 두 살의 청년은 고개 를 하늘로 향했다. 한때 사막으로까지 변했던 프란의 햇살이 전해주는 따끔거리는 익숙한 감촉이 그에게는 기분 좋았다. "세이제린가는 페르로이 후작가와 행동을 함께 하는 건가?" "본국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세이제린가의 영양은 페르로이가의 자제 분에게 관심이 많은 듯 했습니다." "흠....." 청년은 작게 한숨을 내쉈다. "아까운 일이군. 적어도 하노베이가의 그녀보다는 훨씬 더 낳은 소녀라 들었었는데." "...소신이 보기에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종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단단한 턱과 잘 선 콧날이 거친 사막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생김새의 남자는 놀랍게도 셀레라를 그녀의 방까지 안내한 그였다. "완벽할 정도로 이중적인 표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소문대로인가 보군." 젊은 남자는 픽 웃었다. 그는 눈멀고 귀먼 벙어리 장님이 아니었다. 제국 안팎의 소식들은 그가 깔아놓은 세작들과 그에 게 잘 보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있는 눈과 귀들에 의해 속 속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스무 살의 차이가 나는 남자의 후실로 들어가겠다며 집으 로 쳐들어갔을 배짱이라면 보통 내긴 아니겠지." 그가 목을 비틀었다. 우드득 소리가 울리며 오랫동안 하늘 을 바라보며 굳었던 목 근육이 부드럽게 풀려나갔다. 기묘한 실망감과 기대감이 그의 안을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하긴, 순진한 철모르는 여인보다는 그런 요부가 카느린이 되기에는 더 어울릴 지도 모르지. 권력이 있는 곳이란 다 그런 법이니까." 어딘가 떨떠름한 얼굴로 젊은이는 말을 맺었다. 시종은 다 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젊은이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의 발걸음에 따라 멀찍이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시종들이 다가와 커다란 양산을 펼쳐 그의 머리를 가렸다. "좋은 것도 너무 찾으면 안 되는 법이다." 가려지는 뜨거움을 아쉬운 듯 잠시 음미하던 젊은이는 아 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종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겠지?" "네." 태양 아래 남아있던 시종은 몸을 폈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젊은이의 시아에서 사라졌다. "진정한 카느란 가리는 것이 있어서는 안되는 법이야. 선택 당하는 건 딱 질색이라서 말이지..." 픽 웃음을 던지며 젊은이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 것 도 듣지 못한 것처럼 시종들은 그림자가 되어 젊은이의 뒤를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 아직은 좀 전에 말했던 오늘이랍니다. 흐흐흐흐.... ㅡㅡ;;;;;;;; 제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시지는... 말아... 주우... 쿨럭! 세요......ㅡㅡ;;;;; 오... 호호호호홋! 왜 이렇게 더운 겁니까! 더, 더워요....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8/28 Wed 23:53:06 IP : 211.215.58.111 Psyce 돌이킬수 없는 선택인가요? 흠냐~ 그래도, 셀레라가 잘되는 꼴은 정말 못보겠네요. 셀레라가 둘째 왕자랑 결혼하던 말던~ 클레이브랑 일행들이 무사했으면 좋겠어요. (08/29,02:07) vivi 언제나 잼있게 보구있답니다..아~~본편두 좋지만..전 외전두 맘에 들었었는데~^^ -금아가 좋아요!- 그럼 오.늘.두 기대할께여~~은빛님 화이팅!! (08/29,02:10) 미스티 저 젊은이는 둘째 우구르트?? 근데.. 전 셀레라가 죽도록 깨지는 게ㅡㅡ;; 더 낫다고 봐요^^* (08/29,10:4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3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3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6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4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1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은빛 2002/08/29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정적이 감돌았다. 얼어 붙어버린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 신이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어야 하는 지조차 잊어버렸다. 있 는데로 크게 치떠진 눈동자를 한 소년에게로 집중하고, 충격이 밀어 넣은 수습하기 힘든 감정의 움직임을 애써 잡아 누르며 사람들은 조용히 서 있었다. 딸그락 소리가 들려왔다. 빗 감겨있던 창문이 바람에 열렸 다. 커튼이 바람을 타고 잠시 흔들렸다. 사람들의 눈동자는 움 직이지 않았다.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들은 해 봤을 텐데.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삭막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텐 데. 무엇인가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이의 마음이 되어보는 방 법을 잊게라도 한 걸까? "그랬었구나." 난 크레이의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이제 스스로 서려 하는 소년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건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소년의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가 마치 날 향하고 있는 것만 같 았다. "저.... 전....." 크레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물기 없이 빡빡하던 의안 에 잠시 습기가 맺혔다. 눈물샘의 자리를 잘못 눌린 소년의 눈 물은 밖으로는 흘러나오지 못했다. 아니... 아예 흘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 순간적으로 복받쳐온 감정에 소년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 했다. 소년은 머리를 흔들었다. 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빛 줄기에 섞여 허공을 수놓았다. 현실 같지 않은 시간들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노력한 후에야 소년은 다시 말 을 꺼낼 수 있었다. "... 아무런... 도움도..." 소년의 꽉 쥔 두 주먹에서 눈물인냥 한 방울의 피가 떨어 져 내렸다. 가녀린 작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될 수 없는 무력한 제가 싫었습니다." 금아는 고개를 돌렸다. 움추린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린 클로 네의 커다랗게 떠진 눈에 가득 고인 물기가 그렁그렁하게 방 울져갔다. 애써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는 내 어린 주인의 입술이 앙다물어졌다. "... 스테판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는 걷 는 일 하나 할 수 없는 제가 죽도록 미웠습니다." 소년의 떨림이 조금씩 가라 앉아갔다. 크레이는 작게 심호 흡을 조절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자신을 원망하고... 원망을 세상으로... 넓혀가며..." 고집이 아니었다. 그건 결의였다.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후...." 길다란 한숨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못 한 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소년의 눈이 이토록 슬퍼 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쓸모 없이... 누군가의 도움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크레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손상되지 않은 길다란 속눈 썹이 옅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리 앉았다. "...지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두를... 저도 지키고 싶었습니 다." 소년은 조금 담담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도 없이 되뇌였습니다. 제가 조금만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문득 크레이의 입가에 시익 미소가 떠올랐다. 믿기지 않으 리만큼 환하고... 그렇기에 더 슬프고 가슴이 메이는 그런 미소 였다. "적어도 짐이라도 되지 않았을 텐데." "아, 난, 난...." 차라리 울어버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크레이는 웃었다. 눈 물이 마른 그 대신 두 눈에 가득 고인 물기를 한 방울 두 방 울 떨어트리기 시작한 클로네가 더듬 더듬 입술을 움직였다. 심하게 떨리는 턱이 그녀의 발음을 뭉게고 있었다. "크레이를... 짐... 이라... 생... 각.... 은...." "알고 있습니다." 소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큭!" 하르크의 목에서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콧물까지 줄줄 흘린 그림자는 노도의 말마따나 어찌 암살자의 길을 택 했는지가 이해 가지 않는 얼굴로 크레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저 혼자만의 자격지심일 지도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문득 악을 박박 쓰며 몸이 불편한 크레이를 괴롭히던 한 소녀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남은 평생을 이렇게.. 보호받으면서만 살수는 없 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술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겨있던 금아가 어렵사리 다 시 말을 꺼냈다. 단지 동정이나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는 정말로 크레이가 겪을... 눈이 보이더라도 쉽게 넘어가지 못할 험한 산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제겐 똑같습니다." 크레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 금아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금아님도 제 눈이 있던 자리에 있는 물건이... 어떤 값어치 를 지니고 있는 지 아실텐데요..." 금아는 입을 다물었다. "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전 살아남을 수도 없고, 홀 로 설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 크레이가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보호 없이 홀로 거리를 걷고 홀로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만 했다. "네가 좋다면 내가 네 후견인이 되어 주겠어. 우린 나이도 비슷하고..." "아닙니다. 클레이브님." 크레이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전... 눈으로만 보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바라고 있는 거랍니다. 그래서 검술을 배우려는 거예요." "....................!" 다른 세상. 그 말이 덜컹 심장에 와 박혔다. 그 말이 어린 소년의 지나간 운명들을 떠올리게 만든 건 나뿐이었을까? 가 슴이 사 하니 가라앉았다. 난 지금까지 크레이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크레이를 바라 보고 있는 사람들만큼도 난 크레이에 대해 배려하지 않았던 걸까? 순간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세상... 이라." 클레이브는 작게 중얼거렸다. 난 이를 악물었다. 난 알고 있 었다. 그가 어떻게 눈을 잃어버렸는지를... 그의 저 보이지 않 는 눈동자 뒤편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를 잊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란님?- 일순간 평정을 잃어버린 내 모습에 당황한 금아와 하르크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괜... 찮아.- 내가 흔들릴 수는 없었다. 난 굳건히 다리를 버텼다. 처음 경매장에서 만났던 크레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르카 인에게 들어야 했던 그의 가족의 비극을 떠올렸다. 어린 아들 은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가 눈앞에서 능욕 당하고 죽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끌려가 눈을 잃었다. 제기랄. 이번 여행은 도대체 뭐가 이런 거지? 왜 하나같이 이런 사연들만 내 주위로 모이는 거야! 이건 도대체 누구의 운 명이 길래! 누구의....? "....................그런가." 클레이브? -잠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금아가 살며시 다가와 팔을 잡아당겼다. 난 조용히 뒤로 물 러섰다. 클레이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난 조용히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후....." 크레이의 결심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 다. 그의 결심은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래." 클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 마침 불어온 바람이 사람 들의 가슴에 시원한 공기를 한 아름씩 담아주었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걸린 돌덩이들은 쉽사리 들어질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 었다. 금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클레이브님, 클로네님. 그리고 여러분." 시선이 금아에게로 돌아갔다. 크레이의 어딘가 희망 섞인 표정,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 생각이 역력히 들어난 하 르크의 얼굴. 무표정해 보이기 위해 애쓰는 두 어린 귀족들. 그리고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나. "제가 한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금아와 시선이 마주친 클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검으로 맞대는 일과, 검을 손으로 맞대는 일.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요?" "뭐?" 하르크의 비비꼬인 목소리가 말끝을 장식했다. "그건 어떤 의미지?" 클레이브는 신중했다. 그는 갑작스레 마음을 바꾼 금아의 태도에서 무언가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듯 연신 눈 동자를 움직였다. "말 그대로랍니다. 손으로 검을 막아야 하는 그래플과, 검으 로 검을 막아야 하는 검술 중, 앞이 보이지 않는 크레이에게 어떤 것이 더 익히기 쉬울까요?" "....................................." 일행은 말문을 닫았다. "그래플보다는 낫다는 말인가? 그래플을 하겠다고 하지 않 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말인가?" 클레이브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롭게 서 있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난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아니요.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무기를 쓰지 않 는다면, 다르겠지만 지금 세상은 무기 없이 살아남기 힘든 곳 이죠. 무기는... 있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죠." 소년들은 조용히 금아를 응시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 속에 서 의미를 찾아냈다. 그는 그들보다 단지 오래 산 것만은 아니 었다. 그는 그 길다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과 진실들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이야 기에 담긴 건 그의 추억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나의 시간도 들어 있었다. 지금은 내 추억의 한 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벗에 대한 비밀 아닌 비밀도 그 하나의 보물이었다. "전설의 한 자락을 이루고 있는 세 마스터들이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어." 나도 알고 있었다. 그가 유달리도 즐겨 읽는 한 권의 책이 나와 내 두 친구들의 모험담을 꾸며 넣은 여행기였다는 사실 을. 그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를 읽는 것을 왜 인지 모르게 부끄러워했다. 아직 어른도 아닌 주제에 그런 모습을 아이 같 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가 아닌, 이야기 속에 나오는.... 잘 덧붙여진 세 마스터들의 전설들을 얼마나 믿고 또 좋아하는 지 꼬질꼬질하게 손때가 뭍은 책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네 그 전설의 한 자락을 이루고 있는 그래플의 마스터 수 강은..." 금아는 조용히 크레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의 목 울대가 한번 움직였다. "이 크레이처럼 영롱한, 그러나 결코 빛을 볼 수 없는 그런 보석을..." 금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으리라. 사람들의 눈동 자가 커졌다. 금아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기억하고 있던 걸 까? 어렸던 그를 유달리도 귀여워하던 수강의 푸른빛을 발하 던 한 쌍의 청옥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답니다." 금아는 몸을 일으켰다. "진실인가?" "물론이랍니다. 제가 전에 몸담았던 베이르 대공가의 사람 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설이랍니다. 그래플의 마스터인 수강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눈을 잃었다는 사실은..." 유일하게 전설과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고도 아직 살아있는 대공가의 이야기라면 내가 드래곤으로 불고기 파티를 해 먹었 다고 하더라도 믿으리라. "힘들어도 해 내겠지?" "물론입니다." 크레이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클레이브에게 천천히, 그러나 딱 부러지는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성급하게 긍정하는 말보다도 그런 그의 행동에 더 큰 결의가 담겨 있었 다. "클레이브님, 제 생각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클로네도 찬성을 표했다. 갈등 어린 눈 빛으로 클레이브는 날 잠시 응시했다. 난 그에게 최대한 가볍 게 웃어 보였다. 어린 주인은 망설였다. 하지만... 이제 속마음 까지 털어 놓아버린 친구의 뜻을 막을 만큼 그는 모질지 못했 다. "... 검술과로 서류를 넣겠어." "흠......................." 하르크의 길다란 침음성이 흘렸다. 모두들 상상치 못했던 크레이의 결의와 수강의 전설에 한 보씩 물러섰지만 그 안의 걱정까지는 놓지 못했다. 난 조용히 내 의견을 꺼냈다. 더 이 상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그에게 잘못한 일 이 있다면 그 만큼 더 도와야 하리라. "이 곳은 어차피 후견인이 없는 평민은 들어올 수 없는 곳 이랍니다. 귀족이 후견인을 취소하면... 바로 쫓겨날 수밖에 없 죠." 저도 모르게 질리는 지 서서히 풀어졌던 크레이와 스테판 의 표정이 조금 다시 굳어졌다.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그다지 걱정하시지는 않으셔도 좋 을 것 같습니다." "귀족의 후견과 무슨 상관이 있나?" 클레이브는 영리했다. "네. 작지만 크리아는 카슬 대륙 제일의 부유한 국가랍니다. 강한 무력을 지닌 프란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도 크 리아의 부와... 귀족들 때문이죠." "그래?" 클레이브와 클로네의 눈에 잠시 이채가 감돌았다. 하녀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느냐... 란 거겠지만, 팔자에 없는 애늙 은이 넷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지쳐 있었다. 그런 소 소한 변명들까지 해 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현재 크리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시는 분은 클레 이브님의 아버님이신 페르로이 후작님이십니다. 모르게 일어나 는 작은 다툼들까지 통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공공연 히 클레이브님께서 직접 추천하신 크레이를 해꼬지 할 수 있 는 사람은 감히 없을 겁니다." 클레이브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각각 후견을 맞고 있는 귀족가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 되는 이 곳에서, 후견을 받는 평민은 곳 귀족의 이름을 대신하 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모든 귀족이 페르로이 후작 부자 같은 건 아니었다. 그 같 은 자들은 오히려 극히 드물었다. 후견을 한다 해도 귀족이 일 일이 알아 챙겨주 게 아니었다. 대부분은 집사 선에서 적당히 이루어졌고, 마지막에 도장 정도나 작위를 지닌 귀족이 직접 하는 일이었다. 그런 평민을 위해... 크리아의 제 일 가문이라 고까지 공공연하게 불리기 시작한 페르로이 가문과 불편한 관 계를 맺고 싶은 귀족은 없으리라. "알았다." 클레이브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똑바른 걸음으로 크레 이에게로 걸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크레이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힘내라." 순간 클레이브는 크레이를 꼭 끌어 앉았다. 채 다 자라지도 않은 조그마한 손바닥이 크레이의 등을 토닥였다. "감... 사... 합니다."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크레이의 입술에서 작게 흘러나왔 다. 이제 모두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를 축복할 수 있으리라. 난 만족스럽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 소... 손가락이... 고장이... 쿨럭! 목 디스크가 조금씩 재발하는 군요. (신경이 눌려서 오른 팔이 마비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조금씩 증상이 나타나더니...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안움직이네요. 그 것도... 이전에는 오른손만 그렇더니... 양 손이 모조리 망가졌습니다. 좀 주무르고... 움직이면 굽혀는 집니다만... 지금도 뻑뻑하고... 분당 백타는 나오려나...ㅡㅡ;;;;; 지금 열심히 스트레칭겸 재활 체조를 배우고 있습니다. 크으흐흐흐흐흐흐..... 따악... 두달 안했더니만... 운동 싫어하는 은빛에게는 정말... 괴로운 시간이랍니다. 스트레칭시간... 말이죠. 물리치료요? 흐. 이젠 안받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도리도리도리.) 여러분... 책상 앞에만 너무 앉지 마시고.. 맨손체조라도 하세요. 으... 이십대 중반 까지만 해도 팔팔했는데... 역시.. 삼십대를 바라보니.. 몸이 안따라 주는 군요. 믿거나 말거나...ㅡㅡ;;;; 더, 더워요.... 겨, 격려의 멜과 리플을 부탁.......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8/29 Thu 18:53:21 IP : 211.215.58.111 a 오오..그런 비밀이 있었는줄은..+_+ 크레이가 힘내길 바래요 (08/29,20:12) 닐케 크레이... 스테판... 얘네들이 어떻게 크게 될지는 몰라도....... 클레이브는 어떻게 크게 될지... 눈에 보이는 군요... 흐어억..;; 프롤로그에 나와 있어... 클레이브 불쌍~ㅠ,ㅠ 근데, 란이 왜 그렇게 야단스러워진거죠? (08/29,22:33) 미스티 란이 크레이 가르쳐 주면 안돼요?? 참, 님 이렇게 올리시니까 행복한데.. 님 몸 생각도 하세요^^* 몸 빨리 나으시라고요^^* (08/29,23:00) hobit 은빛님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08/30,14:11) 스칼 우윽..너무 재밌어요~~~ 지금 새벽 4시 반...저녁부터 보기 시작해서 날밤 새버렸어요... 넘 잼나요~~ 건필하세요!!! (08/31,04:44)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6-편지. ▽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3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3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6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4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2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56-편지. 은빛 2002/08/31 [[The Perfect MAID]]-56-편지. 클레이브는 서류를 아르카이아에 접수시켰다. 크레이의 불 편한 눈에 대한 잡음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지만 크리아의 페 르로이 후작의 후계자가 직접 추천한 평민 입학이 거절될 가 능성은 전무했다. 서류가 접수 된 다음 날, 크레이는 스테판과 함께 평민 기숙사로 짐을 옮겼다. 아르카이아의 배려로 그 둘 은 클레이브를 따라 이 프란을 떠날 때까지 함께 머물 수 있 게 되었다. 난 노도로부터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서명 날일을 보아하 니 이 곳에 도착한지 꽤 된 듯 보였다. 어쩌면 이 곳에도 이미 누군가의 입김이 닿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노도의 편지는 꽤 구체적이었다. 현재 크리아의 돌아가는 전반적인 상황들과 하노베이 백작가를 중심으로 한 귀족 연합 들의 움직임, 페르로이 후작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한 귀족 들에 대한 동태가 동대륙의 방언으로 문법도 없이 꽤 복잡하 게 꼬여 있었다. "이런, 이런... 늦게 도착한 이유를 알 것도 같군." 분명 중간에 누군가가 뜯어보았을 테지. 비록 정원사가 하 녀에게 보낸 것일 뿐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정치적인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에서 편지가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란 다는 건 무리일 것이다. 노도가 부러 동대륙의 복잡한 글자들 을 이리저리 해석하기 어렵게 늘어놓은 것도 그런 까닭일 테 고. 정말로 글자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늙은 정원사가 쓴 것 만 같은 빼뚤빼뚤한 글씨하나까지 노도의 편지에는 신경 쓴 기색이 역력했다. "그아모... 그녀를 아는 자들의 모임이라..." 페르로이 후작과 가르암 백작, 헤일런 공작들이 맺은 비밀 모임의 속칭은 그렇게 정해졌다. 싱겁기는... 얼핏 들어서는 어 느 연극배우의 후원자 모임 같기도 하고 듣기에 따라 참 묘한 어감이 많이도 풍기는 이름을... 떡 하니 붙였다니... 철이 없는 건지 용감한 건지... 내가 어디가 어떻다고 저런 명칭을 달아버 린 걸까. 이름은 둘째치고, 그들은 꽤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헤일런 공작은 그저 그랬다 쳐도 가르암 백작은 그를 따 르는 군소 영지의 귀족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프란과의 외교 전선 상 불리함을 잘 알면서도 그들이 별다른 이해관계 없이 가르암을 따라 페르로이 후작가를 따랐다는 건... 가르암 백작이 상상외로 유능한 자이거나 페르로이 후작이 그 새 기반을 든든히 잡아놨다는 뜻이다. 금아의 남겨진 세 아 들들의 입김도 없지는 않았을 테고. 어찌되건 간에 믿을만한 구성이다. 하지만... 내 쪽은 그렇지 못했다. 전혀. "골치 아프네. 성질을 눌러 달리는 부탁까지 붙어있다니." 설마 설마 했던 일도 현실로 드러나면 괴로운 법이다. 연이 어 꼬여만 가는 사건들과 주변의 운명들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껴가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상황이 악화되었을 줄은 몰랐다. "운명을 망가트리지는 말아 달라라...." 타인의 운명을 함부로 개입해서 망가트리면 안된다는 것을 모를 만큼 난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 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씩 잘라 낼 끄트머리는 잘라내는 것이 상식이련만.. 노도의 당부에 따르면 지금 이 상황은... 얽 힐 대로 얽힌 실타래를 끊지 말고 풀라는 말인데... 앞으로 더 심각하게 얽히지 말라는 법이 없는 이 실들을 어떻게 해야 하 는 건지. 암담할 뿐이다. 클레이브의 나이 이제 여덟. 동대륙에서는 한 인간이 태어 나 자신의 운명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간이 일곱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의 운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때가 스 물. 아직 여덟인데 이 정도라면... 이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또 얼마나 꼬여 있을까? "후... 하도 암담해서 말도 안나온다." 아예 모조리 부수어 버리고 새로 짜 달라면 해 보겠지만 이건 지나친 감이 있다. 한 제국의 카느가 노릴지 모르는 목숨 을 티 안나 게 잘 보좌하며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해서... '무사히', '성장'하게 해 달라니! 얼떨결에 찾아와 덜컥 맡았던 클레이브의 운명은... 과연 그 어미가 잠 못들만 했다. "내 완성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새로운 삶과 새로운 경험, 단지 그 뿐이었던 여행은 주객이 전도되고도 남을 커다란 혹을 달았다. 아니, 조그만 혹 정도로 생각했던 어린 주인은... 이 내가 주저앉고 싶을 만큼 어마어마 한 운명으로 변해버렸다. "미운 혹이면 퍽 하니 떼버리고 달아날텐데..." 그럴 수도 없다. 저 애늙은이들을 버리고 사라진다면 난 두 고두고 후회하겠지. 아무리 새로운 경험을 한다 해도 난 내 양 심에 얹어진 짐을 영원히 덜지 못할 것이다. "젠장." 엎질러진 물이다. 난 편지를 고이 접어 품안에 넣었다. "이렇게 된 바에는... 독한 수를 써서라도 세 애늙은이들을 강하게 만드는 수밖에는 없겠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수밖에. "우선은... 주위 정리부터 시작해 볼까?" 믿을 수 있는 벗이 있다면 운명은 가벼워지는 법이니까. **** "그래?" 셀레라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애써 문서를 해독했던 남자는 볼을 살짝 붉혔다. 자신이 가져온 내용이 시시했기 때 문만은 아니었다. 도저히 뜻을 알 수 없는 글자들의 나열을 나 름대로 짜 맞추고 해석해서 그럴 듯한 내용을 만들었을 뿐, 사 실 그는 그 삐뚤거리는 글자들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고 있 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가 보도록." 셀레라의 손등이 가볍게 들렸다. 남자는 그녀의 손등에 가 볍게 입을 맞췄다. 그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셀레라의 서재 를 빠져나갔다. "동 대륙 언어 전공자라더니..." 셀레라는 입술을 쌜쭉였다. 그녀의 손에서 두 장의 종이가 팔락였다. 한켠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낸리가 재빨리 다가 와 종이들을 곱게 접어 서랍에 넣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하녀였는데...." 셀레라는 아미를 구겼다. 하노베이 백작가에서 심어놓은 세 력들이 그녀를 찾아온 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들은 페르로이 가문에서 보내져온 편지를 그녀에게로 가져 왔다. "하긴, 하녀는 하녀일 뿐이지. 정원사는 정원사일 뿐이고." 보면 볼수록 수상쩍어 보이는 자들이었지만 그 뿐이었다. 시시한 평민 따위들에게 신경 쓰고 있기에 그녀의 머리는 너 무 바빴다. "어차피 후작의 하수인일 뿐." 앞으로 그녀가 사로잡게 될 사람들의 힘과 세력에 비하면 그 정도는 무시해도 되리라. 그 정도는 본국에 있는 현 하노베 이 백작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견제되리라 셀레라는 생각했다. "낸리! 그 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네?" 셀레라가 벌려놓은 물건들을 열심히 치우고 있던 낸리가 고개를 들었다. 셀레라는 짜증이 베어나오는 목소리로 그녀에 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지금 조용히 있습니다. 시종이었던 두 소년이 아르 카이아 평민부로 들어간 것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일이랄 것 이 없습니다." "평민부?" "네." 가소롭다는 기색이 역력한 웃음을 지으며 셀레라는 의자 뒤 깊숙이 몸을 기댔다. "호!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와 눈 먼 병신을 받아줄 만큼 이 곳이 녹록했었나? 낸리, 설마 너 같은 것도 공부하고 싶다 고 날뛰는 건 아니겠지?" 한 쪽 입꼬리를 비끌어 올린 셀레라의 반응에 낸리의 안색 이 조금 굳어졌다. 낸리는 순간적으로 치밀려 올라오는 노여움 과 서러움을 꾹꾹 내리눌렀다. 차라리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세상의 모든 귀족은 이렇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버텨나갈 수 있었을 텐데. 오직 셀레라만이 있을 뿐이라고 자신을 속여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녀와는 너무나도 다른 두 귀족을 지나치게 잘 알고 말았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 하긴, 주인부터가 철모르는 혼혈 꼬맹 이니 아랫것들이라고 오죽 하겠어? 그래, 그 둘은 어떤 전공으 로 들어갔지?" ".................네." 낸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흔들려서는 곤란했 다. 그녀는 이미 주인을 택했다. 셀레라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가 다시 한번 낸리를 질타했다. "스테판은 집사과에, 크레이는 검술과에 들었습니다." "낸리! 지금 내게 그런 하찮은 것들의 이름까지 기억하라는 거야? 누가 뭐고, 뭔지는 알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눈이 안보이는 소년이 크레이랍니다." "낸리!" 자존심이 상한 듯 셀레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낸리 는 바짝 긴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 다. 셀레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낸리는 마른침을 넘겼다. "지금 내게 반항하는 거냐?" "아가씨..." 낸리는 셀레라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서럽기 그지없었지 만 일단은 이 자리를 모면해야 했다. "제가 감히 그런 마음을 어떻게 품겠어요. 제 가족의 은인 이신 아가씨를..." 셀레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나운 눈동자 로 연신 낸리를 훑었다. 가뜩이나 둘째 우그르트로부터 마땅히 연락이 오지 않아 답답하던 참이었다. 그와 직접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하노베이가의 사람인 자신이 왔으면 의당 시종 하 나라도 보내 인사를 전해 오는 것이 순서련만! 무시당하는 것 만 같은 굴욕감이 그녀의 가슴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셀레 라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셀레라의 눈치를 살피던 낸리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 "눈이 안보이는 쪽이 검술을 택했답니다." "하!" 셀레라의 관심과 분노는 금새 그 쪽으로 쏠려갔다. 셀레라 역시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 낸리를 내치고 벌을 내린다면 앞으로 그녀가 매우 불편해 질 거라는 것 정도는 알 고 있었다. 그 정도였지만 말이다. "주제도 모르는 것." 비틀린 주인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낸리는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 짧더라도 일단 올립니다. 그럼... 오늘은 조금 무리일 듯 하고요.. 내일 올리겠습니다. 으으으.. 결국 연참은 지켜내지 못했군요. 하지만... 꾸준히 올리도록 할께요. 용서를. 그리고...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8/31 Sat 21:47:14 IP : 211.215.58.111 kouai 너무너무 잘 읽고 있어요~!! 태풍에두 끄떡없이 열씨미~!! 건필하셔여~ (08/31,22:17) 미루 운명을 바꾸지 말라~ 고 했는데... 프롤로그에선 란 때문에 클레이브의 운명이 거의 뒤집혔다고 봐도 되는거 아닌가요? 프롤로그는 정말 황당했었어요. (08/31,23:33) 미스티 낸리 불쌍해ㅠㅠ 셀레라를 반 죽이세요~!! (09/02,21:48)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7-편지. ▽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3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3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6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5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2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57-편지. 은빛 2002/09/02 [[The Perfect MAID]]-57-편지. 청년은 조용히 깍지 낀 손을 풀었다. 근육이 붙지 않아 가 느다란 몸을 앞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테이블에 가까이 내민 청년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의 앞에 앉은 남자의 시선을 마주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백작님.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훗." 그의 앞에 앉은 남자, '백작님'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청년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붉은 기가 감도는 얇은 입술. 지금 입 고 있는 파란 감의 비단 정장이 아니라 레이스가 가득 달린 드레스를 갈아입는다면, 셀레라라고 착각하리만큼 닮은 얼굴의 청년은 떨리는 얼굴 근육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실만한 일은 모두 아실 가르암 백작님께서 페르로이 후 작가의 진영에 가담하시겠다니요. 게다가 그 가문에는 밀린 빛 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청년은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남자, 가르암 백작은 그의 말 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 이렇게 하노베이가까지 찾아온 것만으로도 그는 선 대의 하노베이 백작에 대한 예를 모두 지켰다. 청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거라네." 가르암 백작은 이제 슬슬 말을 끝맺을 때임을 느꼈다. 시간 이 너무 지체되고 있었다. 선대의 하노베이 백작이라면 이렇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선대가 있었을 때의 청년도 이렇게까지 어리게 보이지는 않았었는데... '갑자기 맡게 된 가주의 짐이 버거웠는지도 모르지.' "가르암 백작님께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실 줄이야!" 가르암 백작의 짙은 눈썹이 잠시 꿈틀였다. 하노베이가의 어린 주인은 분노를 조금씩 나타내고 있었다. 말뿐이 아니라 전신으로 그렇게 표현했다. 아직 어린 소년의 티를 채 벗지 못 한 하노베이가의 어린 주인은 꼬옥 움켜쥔 주먹을 보란 듯이 가볍게 떨었다. 파란 실핏줄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하얗게 질린 하노베이 백작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가르암 백작은 그의 오만함에 서서히 질려갔다. '어린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차라리 그의 반 밖에는 되지 않는 페르로이가의 어린 아들 이 훨씬 더 의젓하고 가주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가르 암 백작의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하노베이 백작의 분노는 감추어질 줄을 몰랐다. "어의가 없습니다. 헤일런 공작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워낙에 즉흥적인 면으로 유명하니까요. 하지만... 가르암 공.. 아니, 백작께서 이런 악수(惡手)를 두실 줄은..." "악수라... 악수를 나누긴 했습니다. 몇몇 지인들과."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습니까!" 어린 하노베이 백작은 아직 짧은 그의 수양을 벌컥 들어냈 다. 가르암 백작은 엷게 미소지었다. 그 외에 어떻게 할 수 있 었을까? 기가 막히는 건 가르암 백작이었다. '허, 아무리 몰락을 걷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공작가는 공작 가인 것을... 하노베이의 어린 주인은 지나치게 광오하군.' 그리 될 가능성이 높기야 하겠지만 프란의 둘째 우그르트 가 권력을 잡고 카느의 자리에 올라 그 협력자인 하노베이 백 작가의 입지가 올라가게 된다 손치더라도 그는 백작이었다. 그 런 정치적인 공작이 작위를 올려주지는 않았다. 크리아는 그런 면에서는 더더욱 엄격한 나라였다. 하긴 충격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하녀 사건 이후로 직접적 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후작의 반려자 선택 이후로 가르암가 가 페르로이 가와 사이가 나빴다는 건 모든 귀족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류이네리아와의 충돌 이전까지 그는 정말로 단 한 번도 페르로이 후작의 편을 들지 않았다. 그랬으니... 하노베이 백작의 충격도 조금은 상상은 갔다. 당연히 함께 손을 잡으리 라 생각했던 강력한 아군의 이탈이 아무렇지 않지는 못했으리 라. 그와 뜻을 함께 하기로 결의한 귀족들의 반응도 거기서 거 기였으니까. 몇몇은 떠났고 몇몇은 남았다. 거야 당연할 지 모 르지만 지금까지 가르암 백작이 해 온 사람관리의 측면으로 볼 때 귀족들의 이번 반응은 이례적이었다. "프란은 무시하지 못할 제국으로 자라났습니다! 게다가 얼 마 전 프란의 카느의 병세가 점점 더 깊어져간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왔죠. 두 우그르트는 서로를 견제하고 있고." 가르암 백작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여유와 미소가 하노베이 백작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십년도 지나지 않아 모든 건 변합니다! 서시히 제국의 손 길이 뻗어 오기 시작한 지금은 페르로이 후작이 막 국방장관 으로 임명받았을 때와는 정세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모를 백작이 아니실 줄로 알았습니다만!" 청년의 목소리가 조금 더 히스테릭해졌다. "난 자네의 아랫사람이 아니네." 어느 새인가 부드럽게 떠 있었던 가르암 백작의 미소가 완 전히 굳어져 있었다. 아차 하는 표정이 하노베이 백작의 얼굴 에 떠올랐다. 가르암 백작은 무거운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꽉 움켜쥔 의자 손잡이가 부서질 듯 삐걱였다. "실수를 사과 드립니다." 청년은 금새 몸을 일으켜 가르암 백작의 손을 잡았다. 가르 암 백작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놓게." "백작께서는 지금 실수하시는 겁니다!" "설마 자네의 그것만 하겠는가." 냉소적인 대답이 하노베이 백작의 귀에 꽂혔다. "설마, 제가 못미더워 페르로이 후작가에 가담하신 겁니까? 그 원수처럼 여기시던 가문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한 걸음 한 걸음 또박또박 문으로 향 해가던 가르암 백작의 발걸음이 멎었다. 은은하게 풍겨 나오던 가르암 백작의 공기가 짙어졌다. 어린 하노베이 백작은 숨을 멎었다. 시간이 안겨 준 위압감과 관록이 가르암 백작의 전신 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자네를?" "아니신겁니까?" 마치 아버지에게 떼를 쓰는 듯한 하노베이 백작의 목소리 에 가르암 백작은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아무리 젊다못해 어 리다고는 하더라도 이제는 한 가문의 주인이 되는 자가 이렇 게 아이처럼 행동하다니! 페르로이 후작의 손을 잡기를 잘했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페르로이 후작의 손을 잡지 않았다 하던들, 내가 왜 자네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그 반대라면 모르 겠지만... 후." "가르암 백작!" 차갑게 가라앉은 가르암 백작의 눈과 활화산같이 타오르는 하노베이 후작의 눈길이 잠시 마주쳤다. 먼저 눈을 돌린 건 아 직 젊은 하노베이 백작이었다. "자넨 아직 젊어." 가르암 백작은 직접 문을 밀었다. 응접실을 나누고 있던 커 다란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가르암 백작은 당황한 하인들과 집사의 사이를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가르암 백작! 오늘의 일은 잊지 않겠소!" 열려진 문 사이로 하노베이 백작의 괴성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르암 백작은 피식 웃음 지었다. "잊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잊는 거겠지." 현관을 나선 그의 모습에 하인들이 달려가고 멀직히 마굿 간 근처에 매어주었던 그의 마차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모습을 바라 보며 백작은 잠시 회상에 잠겨갔다. '내가 그 날 대공저하의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던 것처럼 말 이야.' 그저 버르장머리없다고만 생각했던 후작가의 하녀가 대공 의 스승일 줄이야. 그저 늙기만 한 정원사라고 밝힌 후작가의 노인이 그런 실력을 지닌 술사일 줄이야. '벌써 두 번째, 그럼 세 번째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 이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백여 년 전의 Lord에게 는 두 사람의 일행도 있었다. 그녀 못지 않게 강한. 어쩌면 그 녀보다도 더 강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나와도 가르암 백작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정말 그렇게 된다면 놀랄 지는 모르지만... 이젠 적어도 조금은 예상하고 각오할 수 있었다. '마스터가 둘만 있어도 한 나라의 국력 수준이다. 그런 마스 터 급의 힘을 지닌 사람이... 넷, 다섯이 그의 편을 든다면.' 그 어느 누구라도 페르로이 후작을 다치게 할 수 없으리라. 그게 가르암 백작 그의 생각이었다. "타십시오." 멍 하니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가르암 백작의 앞에 어 느새 마차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말을 꺼낸 시종의 목덜미가 붉으스름 물들었다. 백작은 별다른 말 없이 마차에 발을 딛었다. 마차 문이 닫혔다. "백작님! 주인님께서 다시 청하셨습니다!" 문 밖으로 하노베이가 집사의 낮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르암 백작은 냉정하게 마부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차는 달그 락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련을 둘 가치가 없어.' 저런 남자가 주인이라면 아무리 좋은 동맹자를 선택했더라 도 소용이 없다. 한 때 감정에 눈멀어 그와 손을 잡으려 했던 자신의 선택에 가벼운 한숨을 흘리며 백작은 차분히 머리를 정리했다. "헤일런 공작가로 가자." 우선은 그를 만나야 했다. **** 헤일런 공작은 가르암 백작을 반갑게 맞이했다. "일은 잘 돼었는가?" "그렇지요." 가르암 백작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헤일런 공작의 통통하 게 부풀어오른 볼이 꿈틀 움직였다. "쯧. 한 눈에 봐도 아비의 반쪽 만큼밖에 안되는 놈이었어. 차라리 그나마 똑똑한 둘째 딸로 데릴사위를 들일 것이지... 뭘 굳이 아들을 직접 보겠다고." 그는 그렇게 했다. 세 딸 중 가장 현명하고 똑똑한 딸을 내 세워 출신은 조금 낮았지만 그의 이후에 공작가를 세울 만한 남자를 사위로 삼았다. 여색을 밝히고 재산 개념이 없어 물려 받은 영지와 재물들을 갉아먹기 밖에 못하는 그였지만 적어도 자신의 부족한 점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보나마나입니다. 분명 뒷공작을 시작하겠지요." 모기라도 쫓는 듯 가벼운 손동작을 해 보이며 가르암 백작 은 피식 웃었다. "그가 유능한 우그르트의 손을 잡은 건 사실이니 그 것을 빌미로 왕세자님께 접근할 겁니다. 마침 왕세자님의 첫째 공주 님께서 이제 열 살이 되었으니... 정실 부인으로 달라고 조를 지도 모르지요." "외척의 힘을 지녀보겠다?" "프란과는 달리 우리 크리아는 장자 상속제가 완벽에 가깝 게 정착된 나라니까요." 크리아의 시조는 왕위 다툼으로 자손들이 죽어나가기를 원 하지 않았다. 그는 장자를 제외한 모든 다른 아들들을 다른 가 문에 양자로 보내거나 외국의 데릴사위로 보낼 것을 후손들에 게 강요했다. 크리아의 왕가에는 오직 장자만이 남았다. 아들 이 없을 경우는 양자로 갔던 전대 핏줄의 왕자의 아들들 중에 하나를 양자로 돌려 받거나 데릴사위를 들였다. 왕위 계승자가 불시에 죽음을 맞았을 경우, 왕자의 형제들이 아닌, 전대의 핏 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를 왕으로 추대했다. 뭐, 이상처럼 잘 되지만은 않았지만 건국 이후 300년, 그럭저럭 크리아는 나 름대로의 왕위제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 만큼 외척이 된다면 그 권력도 막강했다. 베이르 대공의 힘이 강력한 이유는 현 왕비가 베이르 대공의 조카딸인 까닭 도 있었다. "될까?" "될 지도 모르죠." 꽤 무책임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헤일런 공작은 편한 자세 로 자리에 앉았다. "곤란한데?" "아마도 그렇게 될 겁니다. 하노베이 백작이 노리는 바도 그런 점일 테고." 남의 나라 이야기라도 하듯 가르암 백작이나 헤일런 공작 의 태도에는 여유가 넘쳤다. "참, 세이제린 후작가에서 연락이 왔더군." "이 쪽과 함께 하겠답니까?" "말썽꾸러기 딸이 그래도 현명한 면은 있다던데?" "그렇군요." 고집만 센 무남독녀 외동딸이 페르로이 가의 아들을 따라 인질로 자청했으니 그 아비의 속은 무던히도 탔으리라. 가슴을 치고 앉아 딸을 말려보려 가진 애를 썼을 것이 분명한 세이제 린 가의 통통한 가주를 떠올리며 가르암 백작은 슬그머니 미 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하노베이가는 어떻게 할 셈이지?" "당장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가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프 란과의 관계도 얽혀있고... 또 딱히 밀어낼 만큼 잘못한 일도 아직 없는데다가, 누명을 뒤집어씌우기에는 지니고 있는 힘이 너무 크니까요." "그대로 둘 셈인가?" "일단은 평행 관계만 유지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스 스로 무덤을 파 줄 테니까요." '게다가 대공 저하께서 남겨두신 세 분들이 그대로 앉아만 있을 리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림자들의 세계에서는 그 대공가의 남겨진 힘들이 마스터 의 경지에 다달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그 쪽에서 일부러 흘러나가게끔 두고 있음이리라. 마스터의 이목 을 속일 실력의 그림자는 정말 흔치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곧 움직이시겠다는 의미.. 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정치가이기보다는 골수 무인인 그 대공의 세 후예들이 어 떤 선택을 할 지는 그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허나 적어도 그 가 사람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조카 손녀딸인 왕세자의 공주가 하노베이가의 그 같은 청년에게 넘겨지게끔 두고 보기 만 하지는 않겠지. 유약하고 성마른 그런 젊은이라면 전형적인 무가인 대공가의 이상형과는 담을 쌓은 모습일 테니까. **** 꼬여만가는 내 머리 속과는 달리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이 짧 은 평화로움이 무엇보다도 고마운 한때였다. 난 가끔 스테판과 크레이가 묵고 있는 기숙사를 찾아갔다. 평민용으로 지어져서인지 클레이브의 방보다 훨씬 작은 그들 의 방은 두 사람이 함께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귀 족가와 연결된 평민들에 대한 배려였을까? 꽤 넓직한 각각의 침대와 책상, 책꽃이, 길다란 옷들도 불편 없이 보관할 수 있 는 커다란 개인 옷장에 작은 휴식용 테이블이 아담하게 놓여 진 방은 어지간한 크기의 여관방보다도 컸다. 정말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평민이 봤다면 입이 떡 벌어질만 했다. 어지간한 평 민이라면 귀족의 방이라 여겨 발조차 딛지 못하리라. 공부하게 됐다는 흥분과 클레이브에 대한 감격에 잔뜩 들 떠 있기는 했지만 그 둘은 평화로와 보였다. 새 책들은 책꽂이 가득가득 꽃혔고, 새로 받은 반듯한 아르카이아의 제복들도 옷 장에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몇 일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방안 의 구조에는 완전히 익숙해져 스테판의 도움 없이도 혼자 불 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크레이의 말은 정말 행복하게 들려왔다. 난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돌아왔다. 처음으로 보이는 앳띤 모습들이었다. 그 둘은 정말 열살 안 팎의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그들이 선택한 주인 이 어려운 지경에 처할 지도 모르니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 다면? 열에 아홉, 아니 백의 백 그들은 간신히 비집고 흘러나 온 자신들의 어린 모습을 다시 꾹꾹 쑤셔 우겨 넣으리라. 그리 곤 무표정한 애늙은이들로 돌아가리라.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차마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오랜 고통의 중간에 아주 잠시 찾아온 두 소년의 미소를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저 둘이 귀족의 세력권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일들일지라 하더라도. 내 입으로는 말 할 수 없 었다. "그 때 시작해도 늦지는 않을 거야. 분명." "저들 스스로가 진정으로 힘을 필요로 하게 되면 란님을 찾 아 올 겁니다." "금아?" 금아가 길 중간에 높게 자란 나무 둥치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날 마중이라도 나온 듯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귀족들의 정치적인 상황들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은 퇴한지 오래 된 것도 아니고... 페르로이 후작이 지금 겪고 있 을 줄타기 같은 위험과 힘도 모르지 않죠. 하지만..." 살며시 불어온 바람이 금아의 앞머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아직도 소년과 같은 파란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잘 해 낼 겁니다. 그리고 클레이브도... 두 아이들도 말입니다." "그럴까?" 그의 말이라면 왠지 모르게 믿음이 더 갔다. "네. 그리고 힘이 절실해 지면 스테판과 크레이가 먼저 란 님을 찾아올 겁니다. 노도님이 그러시더군요. 스테판은 란님의 힘의 일부나마 알고 있다고요. 그들이 정말로 힘이 필요해 진 다면... 분명." 그는 밝게 웃었다. "스스로 움직일 겁니다. 스테판과 크레이는 그런 아이들이 니까요." **** 하늘이 뚤린 듯한 비에.. 가슴이 뚤린 분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후... 힘내시라는 말 외에는'' 그릴 말이 없네요. 기운내세요. ..... 조금씩, 꾸준히.. 꾸준히... 그리고... 은빛에게 용기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9/02 Mon 15:14:54 IP : 211.215.58.111 닐케 오랫만이네요~ (09/02,15:35) 아리스 처음 글을 올리네요. 프롤로그부터 쭈욱 읽어 봤습니다만,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클레이브랑 스테판이랑, 크로이... 얘네들... 다 란의 제자가 되는건가요? (09/02,15:48) 미루 아앗~ 왕세자의 첫째딸이.. 클레이브랑 동갑이네요? 궁금하다... 클레이브도 나중에 짝(?)이 생기는 건가요? +_+(빤딱빤딱한 눈빛) (09/02,15:49) 이나카엘튼 라안~힘내!! 은빛님도 힘내세요~! (09/02,17:17) hobit 조금씩,꾸준히... 씨익..^___________^ (건강하시길..) (09/03,02:16) 미스티 은빛님두 힘내시구요 꾸준히라도 더 써 주시지^^* (09/03,18:21)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 [[The Perfect MAID]]-56-편지.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3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3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7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5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2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은빛 2002/09/04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슬렁슬렁 시간이 흘러가는가 싶더니만 덜컹 아르카이아의 학기가 시작됐다. 조금쯤은 새로움에 설래일만도 하련만, 이런 커다란 교육기관을 단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던 클레이브와 클로네는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각자 선택한 분야에 따라 주 어진 과목과 선택한 과목들의 수업 일정을 짜 나갔다. "과목을 선정해서 가정교사를 부르던 것과 결국 같은 형식 이랍니다. 제가 부르는 것과 직접 가는 것 정도의 차이죠." 어리둥절하는 내게 클로네는 간단히 설명했다. 다행스럽게 도 수업은 크리아어로 이루어졌다. 프란의 언어는 각기 부족마 다 조금 씩 달랐다. 같은 뿌리의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서로 다른 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냈던 그들의 말은 많이 변해있었다. 덕분에 수업은 고대 카슬 대륙 의 공용 언어였던 아리아어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크 리아어로 선택되었다. 그건 이 세계에서 크리아라는 작지만 부 강한 나라가 지닌 힘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리 제국 이라도 이제 갓 뼈대를 세운 프란으로서는 크리아와 같은 나 라의 협조가 없어서는 안될 터였다. 그 외에 프란어, 아리아어 가 동시에 쓰였다. 두 언어는 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 아 르카이아에 입학한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교양으로 강요 됐다. 클로네와 클레이브 둘 다 어느 정도 노력을 뒷밭침 해 줄 만한 언어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굳이 새로 언어를 배우지 않 아도 두 종류의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던 그 둘은 무 사히 언어능력 시험에 합격했다. 둘은 기본적인 언어연수과정 없이 바로 수업에 참석할 수 있었다. "세상에. 크리아어에, 동대륙의 언어에, 프란어... 게다가 귀 족들이나 익히는 아리아어까지 하다니.. 란은 도대체 정체가 뭐죠?" 무심코 내게 책 심부름을 시켰던 클로네는 내가 바르게 찾 아온 책제목들을 한동안 바라보더니만 감탄을 터트렸다. "하녀랍니다." "정말... 란은 신기한 하녀예요. 그거 아세요?" 한동안 넋을 잃고 날 바라보던 클로네는 결국 감탄을 터트 렸다. 난 피식 웃어줬다. 하녀의 그런 태도에도 화내지 않고 그녀는 함께 웃음 지었다. 남 말 할 필요 없이 클로네야말로 정말 이상한 귀족이었다. 남의 가문 하녀에게 자연스럽게 경어 를 쓰는 귀족이라... 그녀는 약속대로 요즘 들어 내게 간단한 호신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으리만큼 열정적이었다. 한번 겪 고 나면 자연 농땡이 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엄한 훈련이었 건만... 곱게 자란 귀족가의 영양은 진흙바닥을 뒹구는 험한 훈 련과정에 우는소리 한 마디 없었다. 신기했다. 그녀의 눈빛은 더 빛을 발했고 그녀의 열의는 더 타올랐다. 겨우 몇 일 동안 의 일이었지만... 그녀는 귀족이었고, 난 하녀였다. 그 차이는 겨우 몇 마디의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는 그녀는... 그녀의 안목만을 믿고 남들이라면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일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기 고 있었다. 같은 사람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하녀의 말에 몸을 날리고 바닥의 진흙에 코를 박으며 화 한번 내지 않는 귀족이 라니! 이건 정말 감히 상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난 점차 그녀를 가르치는 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제 슬 슬 혹 떼기 식의 고문성 훈련들을 접고 본격적으로 가르쳐야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열흘 남짓 내게 체술을 배 우던 클로네는 문득 말을 꺼냈다. "기본적인 체력이 마련된다면, 검술도 배우고 싶어요."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클로네는 방긋 웃었다. 사실 조금 더 당황했다. 셀레라라면 첫 말 한 마디에 화를 벌컥 내며 때 려치고 달아났을 텐데! 기본 체력과 감각을 쌓는다는 미명하에 그저 정신력 단련 하나를 위해 실행되던 이 고문성 훈련을 묵 묵히 참아낸 소녀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 "좋은 스승님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클로네님이시라면." 그녀라면 정말로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이라면... 아마도 즐거우리라. "아뇨. 전 란에게 배우고 싶은 걸요?" "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아직 숨이 거칠어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클로네의 말은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내게 클로네는 또박또박 이유를 설명해 나갔다. "란은 절 귀족이라고 특별 대접하고 눈치보지 않았어요." 클로네는 흐트러짐 없는 차분한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혹독한 훈련에,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빨리 손 떼로 달 아나라는 듯한 동작들..." 누가 생각해도 그 정도 담긴 의미는 추측할 수 있으리만큼 내 훈련은 고문성이 짙었다. "사실 아버님께 부탁해 몇 번 기사들을 초빙해 검술과 체술 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클로네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가쁜 숨을 조절하며 그녀 는 말이 끊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그녀의 머리 위쪽으로 불그 스름 물들어 가는 저녁의 하늘이 넓은 평원을 물들이며 끝없 이 펼쳐져 있었다. "이 곳의 하늘은 잊고 있던 것들을 되살리게 만듭니다. 포 기했던 꿈들을 되돌리고 싶게 하죠." 사방이 올록볼록한 산과 건물들로 둘러싸여 지평선을 볼 수 없었던 크리아에서 보던 것과 이 곳에서 보는 하늘은 마치 전혀 다른 것인 냥 다른 빛을 발했다. 바다 저편에도 멀직이 보스윌 해협의 건너편이 보이던 크리아의 왕도는 어딘가 복잡 하고 좁은 세상의 단편 같은 느낌을 주던 곳이었다. "답답하게 막혀있던 가슴이 뚤리는 것 같은 느낌이죠. 이 땅에서 제국이란 것이 세워진 이유도... 이런 하늘과 땅이 있었 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네는 방긋 웃었다. "사실, 전 여기사가 되고 싶었답니다." 과거형으로 맺기에는 아직도 선명한 떨림과 희망을 담으며 클로네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었죠." 클로네의 어머니는 그녀가 일곱 살 때 클로네의 동생을 낳 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독한 난산을 몸이 약했던 그녀의 어머 니는 이겨내지 못했다. 그녀의 동생과 어머니는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그녀는 그 때부터 강함을 동경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강했다면 살수 있었다. 살 수 있었다면 어린 자신이 어미잃은 고통을 겪어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랬다면 새 어미를 맞아 눈치 보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 어린 클로네는 그렇게 생각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술과 힘... 그 자체가 지닌 매력에 반해 버렸거든요." 그녀는 체력을 만들고 강해지는데 유달리도 관심을 기울이 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 몇몇 기사들을 초빙해 검술을 배워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어린 소녀를 가르쳐야 한 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며 그대로 돌아가 벼렸다. 몇몇 기 사들만이 그녀의 아버지와의 친분을 생각해 건성건성 가르쳐 주다가 떠났다. "힘들어하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러니까 여자는 안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나 역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클로네 는 그 때의 아팠던 심장이 저려왔는지 가슴을 살짝 두드렸다. "결국 그들은 제게 가르쳐 주기보다는... 제 꿈을 꺾기 위해 서 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바램대로... 말이죠." 그녀의 노력은 어느 날 새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문 에 먹칠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체면에 언제까지 누만 끼칠 거 냐는 그녀의 말에 클로네는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의 그녀라면 당당하게 한 마디 정도는 했을 텐데... 그 때의 그녀는 반복되 는 기사들의 핀잔과 구박에 정신이 지칠대로 지치고 멍들어 있었다. "그만 뒀습니다." 낳아준 어미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은 죽어도 듣기 싫었다. 클로네는 이를 악물고 귀족 영양가들의 대열에 끼어 들었다. 악기, 노래, 춤, 자수... 교양들. 그 무엇하나 뒤질 수는 없었다. "여러 나라의 언어들도 그 때 배워두었던 것들이랍니다. 새 어머니는 절 외국으로 시집보내고 싶어하셨어요." 지금은 그 새어머니조차 없다고 하며 클로네는 피식 웃었 다.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클로네의 아버지와 헤어져 다른 귀 족과 재혼했다. "그 때는 여기사의 꿈을 다시 꾸기에... 너무 늦어있었어요." 그녀는 다른 힘을 찾기 시작했다. 정치, 외교... 경제. 역사. 그녀는 미친 듯이 책을 파고들었다고 했다. "이제 열 여섯이니 그래봤자 얼마나 했겠어요? 하지만.. 열 심히 했으니까." 열 여섯의 나이라고 보기에 그녀는 많은 것을 알고 생각하 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란의 소문을 들었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내 소문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고 했다. 겨우 하녀의 신분 을 지니고 있던 내가 그런 힘과 배짱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에 그녀는 그 동안 당했던 구박들이 모두 부정되는 것만 같았다 고 했다.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유를 알 수 없는 희망이 그녀 안에 끓어 넘쳤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서고 후작가로 달려 들어왔다. 후 작가의 이십 년도 더 차이가 나는 후처로 들어가려 한다는 비 아냥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 소문의 하녀를 직접 만나 고 싶었다고만 했다. "그리고 만났죠. 너무나 많은 운명을 지닌 사람들을!" 흙투성이의 클로네는 아름답게 빛을 발했다. "전 란에게 배우고 싶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한 바램이 들어 있었다. "절 귀족이나 약한 소녀로 보지 않는, 그저 무언가를 배우 고 싶어하는 한 사람으로, 한 학생으로만 보아주는 란에게 전 배우고 싶답니다." "전...." "전 여자니까, 소녀니까 하는 말에 절망한 적은 없어요. 그 런 벽은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고비일 뿐이니까. 마치 귀족들 의 허가가 없는 사람이 이 곳에 발을 딛지 못하는 것처럼 말 이죠." 망설임이 남아있는 내게 그녀는 강하게 다가왔다. "그런 핑계로 제 배우려는 소망을 들어주지 않던 현실에 실 망했었을 뿐. 그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는 제가 싫었을 뿐이었 습니다. 그러나 이제 희망을 만난 거랍니다." 두근, 떨림이 있었다. 뭔가를 하려 하는 사람들... 강하게 열 망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발해지는 빛이 그녀에게 있었다. "열심히 할께요. 여기사의 꿈은 접었지만, 전 그래도 배우고 싶어요. 그래도 강해지고 싶어요.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그 런 강함이 아니라..."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부풀리며 클로네는 외쳤다. "저, 클로네라는 이름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으로서 스스로 에게 떳떳하기 위해 강해지고 싶은 겁니다!" "들어주지 그래?" "클레이브님!" 조금 전부터 다가와 나무 뒤편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머뭇 거리던 클레이브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뗐다. "엿본다거나 이렇게 불쑥 끼어 들 생각은 아니었지만..." 실례했다는 생각에 통통한 귓볼까지 붉게 물든 클레이브는 잠시 내게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나도 배우고 싶어." ****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클레이브가 쓸 수업용 갑옷에 광택제를 발라 조심스럽게 문지르며 금아는 말을 꺼냈다. 클레이브와 클로네가 수업시간 에 쓸 말들을 돌봐야 한다는 미명 하에 하르크는 바쁘게 밖으 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은 조금 생각해 본다고 했어. 내게 있어서 검술이란 순간적인 충동으로 대강대강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되는 데로 시작했다가 흐지부지 끝내는 것도 질색이었다. 두 사람에게 난 사흘의 여유를 얻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은 게다가 검술을 가르치는 일은 하녀의 본분에는 없는 일이 었다. 순식간에 이런 저런 핑계들을 떠올랐다. 난 많이 망설이 고 있었다. 아니 클레이브는 언젠가라도 내가 가르쳐야만 할 때가 올 지도 모르겠지만... 곧 그렇게 되겠지만... 클로네는... 그녀는... 내가 공연히 검술까지 가르쳤다가 클레이브의 복잡한 운명에 만 휘말리게 만드는 건 아닐까? 평범한 소녀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주었던 안목 과 기국과 배짱으로만 봐도 절대 평범하게 살아갈 소녀는 아 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살아가는 것과 누군가 남의 운 명에 휘말려 타고났던 운명이 바뀌어 가는 건 전혀 다른 이야 기다. 원래의 둘의 운명이 어떻게 생긴 건지나 알 수 있다면 이렇게 골치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나로 인해 그녀가 클레이브에게 말려든 것만 같은 이 찜찜 함만 아니었다면 홀가분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니었다면, 내가 별난 하녀로 소문나지만 않았다면 클로네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텐데. 그녀가 마음에 드는 것과 본격적 으로 연관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지금이라면 달리 개인적인 힘이 없는 그녀는 정치권이나 다른 세력다툼에서 빠져나가게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 녀는 찬성하지 않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흠... 스승님. 죄송하지만 스승님께서 지금 이날 이 때까지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구요?" 한참 깊게 파고들었던 생각을 뚝 끊으며 퉁명스러운 금아 의 목소리가 끼어 들었다. 말과는 달리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담겨있지 않은 표정으로. 귀에 거슬릴 정도로 '스 승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빡빡 넣어가며. "......................뭐?" "사실이 그렇잖아요. 비록 함께 여행했던 시간은 짧았지만 칠 년이란 그다지 짧기만 한 시간도 아닌데... 란님께서 절 포 함해 다른 누군가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르치시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끊긴 생각은 둘째로 쳐도 왠지 빈정대는 기미가 섞인 금아 의 말투에 난 눈초리를 가늘게 좁혔다. 처음 만났을 때의 깍듯 한 태도는 다 어디로 팔아 넘겼는지 요즘 들어 금아는 점점 더 만만해진 태도로 날 대했다. 얼핏 화 난 듯 보이는 내 얼굴 찡그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금아는 장난기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빙글빙글 웃으며 자기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설마... 절 가르치셨을 때 썼던 그런 황당무계한 방법밖에 는 아는 게 없는 거 아닌가.. 하고 전 걱정하는 거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데!" 자연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그런 내 태도가 어이없다는 듯 금아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세요?" "뭘." 뭔가 불길한 것이 기억 저 밑바닥으로부터 스믈스믈 기어 올라오는 듯 했다. 뭔가 내게 아주 불리하고 일단 기억나면 괴 로울 것 같은 그런 일들에 대한 예감. "헤... 전 죽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란님은 잊어버리 셨나 보군요." 꽤 놀란 듯한 금아의 얼굴 표정 움직임에 내 불안감과 긴 장은 진해졌다. 왠지 자리를 피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도망 치는 것 같은 감각이 싫다는 내 외고집만 아니었다면 이 뒤의 말은 듣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살기를 느끼는 법을 알려준다며, 보름달이 뜨는 밤, 험한 산 중턱의 굵직한 나무 위에 절 꽁꽁 묶어서 매달아 놓은 뒤 산토끼의 피를 뿌리고 달아났던 일..." 결국 금아는 하나 하나 기억의 보따리들을 풀어 헤치기 시 작했다. ".........에?" "몰려드는 늑대들의 커다란 송곳니들의 앞에서 갖은 몸부림 을 쳐가며 아슬아슬하게 물어뜯기는 걸 피하고 있던 제게, 능 력껏 피해 보라며 외치며... 정작 자신은 높은 꼭대기에서 느긋 하게 토끼고기 뜯던 일..." "어라?" "결국 달아나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 물려 피투성이가 된 제 게... 내일부터는 아까운 토끼 피 안뿌려도 알아서 늑대들이 몰 리겠다며..." "자, 잠깐!" "뭐, 그랬었던 일이라든가,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친숙해 저 야 한다며 이상한 혈을 짚어 겨울 개구리처럼 만든 뒤 얼음 물 속에 푹 담가뒀던 일이라든가..." 연거푸 터지는 깊은 한숨에 게슴치레 뜬 눈동자를 연신 복 잡하게 굴리며 금아는 줄줄이 흘러간 옛 일을 되살려냈다. "검기를 익히려면 일단 베여봐야 한다며 검기를 뿌려댔던 일이나... 후."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래절래 흔들어대는 금아의 머리카락 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난 잠시 말을 잊었다. "수강님이 때마침 다시 합류하지 않으셨다면 전 죽었을 겁 니다. 정말로... 란님은 기억 하나도 안나시죠?" 저 말이 결정타였다. 묵직하게 내려앉던 죄책감을 집어삼키 며 점점 오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흐릿한 안개 속으로 흩어 지듯 형체를 잃고 있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내가 왜 하 필 금아에게 이런 추궁을 당해야 하는 걸까. 어거지든 뭐든 과 거의 난 금아에게 져 본 적이 없었다. 내 스스로 이런 말 할 수는 없겠지만 무식한 놈이 강하다고... 근거 없는 똥고집에는 이성도 뭣도 이겨낼 수 없는 법이다. 특히 '강력한 폭력이 동 반되는' 똥고집에는 말이다. "그 잠깐 새를 못 참고 사고를 쳤느냐며 수강님께서 난리 난리를 치셨었죠. 란님은...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제게 엄살피우지 말라고 발끝으로 툭툭 치시며 죽지 않 았으니 됐지 않느냐며 딴청이나 피우셨고... " "그런 네가 훈련을 너무 쉽게만 생각해서 했던 일이잖아!" "제가 뭘요!" "배우겠다는 놈이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나 하고! 지금 클 로네의 반만큼이라도 네가 열심히 했다면 나도 그런 꽁수는 쓰지 않았을 거야." "일말의 상식적인 면이라도 있었다면 제가 그렇게 했겠습니 까? 게다가 그게... 꽁수였다구요? 그런 게 꽁수면, 세상 모든 제자들은 다 검 한번 잡아보기 전에 죽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옳다구나 긍정하는 내 말에 금아의 눈이 동그랗게 치떠졌 다. 난 어깨를 으쓱 추려 보였다. 내 기억이 불러준 건 내게 불리한 일들만은 아니었으니까. "세상의 모든 스승이 모두 나는 아니었을 테니까." "세상의 모든 제자들이 제가 아닌 것처럼 말입니까?" 백여년 전과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금아는 시익 웃었다. 반 항기 가득 어린 금아의 눈동자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백년 전의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확실히 백년 전의 어린 소년은 아니었다. 그 때의 소년은 적어도 두려움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나 역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살기 넘칠 만큼 진해진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우며... "나도 백년 전의 그 어중간한 검사가 아니란다." 창틀을 털기 위해 쥐고 있었던 총채에서 색을 띄지 않는 빛이 가볍게 뿜어져 나왔다. 공기는 순식간에 굳어졌다. **** "흐음..." 급작스런 침음성을 터트린 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아르 카이아의 한 중간에서 갑작스럽게 치솟기 시작한 살기는 아무 리 둔한 사람이라도 소름이 바짝 돋을 만큼 거세게 휘몰아쳤 다. 갓 푸른 잎을 돋기 시작한 새 순들이 고개를 꺾고, 살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혼절해 쓰러져갔다. "뭐, 뭐야! 성스러운 산의 초록 드래곤이라도 내려온 건가?" 땅이라도 무너트릴 법한 떨림에 '강한 자'의 이름을 받은 사 람들은 바짝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는 점점 더 강해지는 살기의 흐름에 투지를 잃고 몸을 떨었다. -파앙!- 순간 또 하나의 투기가 터져 나왔다. 투지는 살기와 어울려 한바탕 휘몰아치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유리창을 깨트렸다. "뭐, 뭐... 뭐, 뭐야!" 투지의 저항을 받은 살기가 더욱 거세졌다. 아르카이아의 검술 교관들의 우두머리이며 남쪽 프란의 커다란 마을 '프푸 르'의 우그르인 무트는 자신의 머리를 감사며 재빨리 몸을 숙 였다. 살기는 투기보다도 강했다. 투기는 곧 삼켜진다. 저항이 사라진 살기는 더욱 날뛸 테고, 이대로 나간다면 이 커다란 기 운은 폭발이라도 할 것 같았다. "으.... 으으...."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성을 뛰어넘는 공포감이 그 를 잡아먹었다. 눈물이 스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엇에 대해 느끼는 공포인지도 몰랐다. 그저...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그마저 그럴 진데,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 학생들은 죽을 지도 모른다. 귀한 인질들과 귀 한 손님들이 이렇게 죽는다면 프란은 다시 회복하기 힘든 타 격을 받으리라. '머, 멈춰야만 하는데.....' 막 그렇게 생각한 참이었다. **** "금아! 멈춰어어어엇!" 살기와 투기의 폭풍이 순식간에 멎었다. 예상치 못한 제자 의 반항에... 현실을 잊고 과거로 돌아가 한판 벌여볼까 했던 마음은... 금아의 손아귀에 쥐어져... 움푹 패인 내 어린 주인님 의 갑옷을 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에... 네에?" 너무나도 다급하고 너무나도 애절한 내 외침에 금아는 당 황이라도 했는지 발산하던 투기를 뚝 끊었다. 그리곤 가뿐 기 침을 조금 토했다. 있는 힘을 다해 발하던 기운이 준비과정도 없이 멎었으니 기운이 역류했으리라.... 하지만! "그, 그걸 구기면 어떻게 해! 바로 다음 수업이 클레이브의 기사 기마술 훈련시간이란 말이야!" "쿨럭! 네.... 네엣?!" 하얗게 바래있던 금아의 안색이 파랗게 변해갔다. 그는 그 의 주먹 아래 꽉 쥐어져 우그러져 있는 한 장의 정교한 강철 갑옷을 살피며 자책의 빛을 떠올렸다. "큰일났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정교한 무늬까지 다시 수리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단 말이야!" 아르카이아에는 정해진 갑옷이 없었다. 각자의 가문과 지위 를 상징하는 무구들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그런 소품들은 귀 족 개개인의 힘과 권력만이 아니라 그들이 온 나라의 위치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했다. "어, 어쩌죠?" 방금 전까지의 버르장머리 없음은 깨끗이 날려버린 듯 이 제 하인 노릇이 제법 몸에 잘 베인 금아는.... "이런...." 발까지 동동 굴러대며 연신 한숨을 터트렸다. "그러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참을 것을!" "후...................." 우리 둘은 우리가 막 터트리려던 과거의 잔유물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을 지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몸에 익 은 하인과 하녀의 습성대로... 갑옷만을 걱정했을 뿐. **** 멜과 리플을 먹고사는 은빛입니다. 휴우... 이번에 태풍때문에 정말 난리도 아니네요. 올해는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는데.. 몇년째 비켜만 가던 태풍이 이렇게 직격하고 가다니... 모두 힘내세요.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9/04 Wed 13:24:38 IP : 211.215.57.202 Psyche 푸하하하핫~ 넘 재밌네요. 흐음... 결국, 클레이브는 란에게 검술을 배우는 건가요? (09/04,14:02) Psyche 클로네는 나중에 제국 프란의 황후(?)의 위치에 서게 되는거 아닐까요? 뭐 두고보면 알겠죠~ (09/04,14:20) 닐케 클레이브가 란의 제자?? 역시... 그렇게 흘러가는구만..; (09/04,14:47) 이나카엘튼 흠...란..금아를 혼내줘! 반항은 않되! 은빛님 전 천안에 사는 데 성.정.중.학.교.가 휴교를 했다지 뭐에요? 닐리리야~! 동면들어가야지.. (09/04,16:39) kkll 연참을.............. (09/04,17:16) 카얀 ㅋㅋㅋㅋ 클레이브랑 클로네도 비슷한 방법으로 수련을 할수는 없겠지만..... 기대되네여~~~^^ 하하..불쌍한 금아..... (09/05,00:55) a ...우당탕타탕-!!(뒹굴면서 우느라 정신없음) (09/05,08:37) a 우느라 -] 웃느라(;; 뻘쭘..) (09/05,08:48) hobit 그,금아마저...(캬캬캬캬~~~~~~~~~~~~~~~) (09/05,20:56)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 [[The Perfect MAID]]-57-편지.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3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4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7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5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2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은빛 2002/09/05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뭐, 뭐야!" 한참 뒤에서야 흘러나온 감탄사들이 이곳 저곳에 도미노 무너지듯이 전염되어 갔다. 마치 백일몽처럼 살기가 휩쓸고 지 나간 아르카이아에 서서히 제 정신을 되찾아가는 사람들은 방 금 전 자신들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현실인지를 믿지 못해 당 황했다. "자네도?" 그리고는 비등비등하게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옆 사람 을 바라보고, 뭔가의 의미가 담긴 눈짓을 보내고, 도리도리 고 갯짓을 하며 자신이 겪었던 경험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상이다!" 붉은 깃발이 걸렸다. 전쟁이나 대지진과 같은 비상시가 아 니라면 걸리지 않는 깃발이 건물 이곳 저곳에 걸려졌다. "부상자와 의식을 잃은 자들을 급히 이동시키도록!" 아르카이아의 경비원들과 교관들이 이곳 저곳을 달렸다. 아 르카이아는 뒤늦게 대 혼돈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원인! 원인을 분석해라! 성직에 계신 분들을 불러!" 급한 연락을 받고 지하 연구실에서 빠져나온 마법 계열의 강사들에게 외치며 무트는 자신이 느꼈던 살기의 중심을 향해 급히 몸을 날렸다. "학생들과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켜라! 언제 다시 공격이 있 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살기만 폭발하지 않을 지도 몰라! 준비 를 단단히 해라!" 되풀이되어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무트의 마나가 가득 담 긴 목소리가 전 학교에 널리 퍼져나갔다. **** "됐다!" "다행이다!" 온통 소란스런 창 밖의 목소리들과 마나가 가득 담긴 채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소리에 우린 덜컥 손을 맞잡았다. 방금 전까지의 시름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란님, 이거 수리하시려면 어느 정도 걸리십니까?" "한 반나절 정도?" "이 정도의 소란이면... 반나절이 아니라 하루 정도는 꼬박 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언제 바랬냐는 듯 화색이 도는 얼굴로 금아는 즐겁게 외쳤 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걸 전화위복(轉禍爲福) 이라고 하지." 난 찌그러진 갑옷을 소중히 품에 감싸안으며 연신 벙글거 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제 싸웠냐는 듯, 투철한 직업의식 이라는 공동분모로 묶인 우리들은 희희낙락하며 화해했다. 한나절이라! 아마 그 정도도 모자라겠지. 설마 하인과 하녀 가 가볍게 말다툼했다고 저들이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원인 을 안다면 모르지만 이렇게 고위급의 인질들이 가득 모인 곳 에서 이유불명의 살기 폭주사건이 벌어졌다면.. 잘 하면 폐교 도...? 어라? "란님?" 갑작스레 다시 탈색작용을 시작한 내 안색에 금아는 의아 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건이 그대로 감춰질까?" "네?" "이렇게까지 소란스러워졌던 사건이,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묻힐 수 있을까? 또 지겹게 추궁당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들도 바보가 아닐텐데... 이 부근의 근원지라는 것도 모르지만은 않을테고." 그 실례로 목소리 가득 외치고 있는 남자는 이 방향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작정하고 죽이려 뿜어낸 살 기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라면 대강의 중심 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자라면...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의외로 금아는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편안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아마 문제되지 않을 겁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금아는 어깨를 한번 으쓱여 보이고 는 자세한 설명들을 덧붙였다. "프란의 명예와 관련되는 부분이니까요. 그냥 지진이나 그 런 자연재해였다. 그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갈 겁니다." "그럴까?" "네. 이제 막 세워서 각국에서 학생을 청했는데 그대로 문 을 닫을 리도 없구요. 조금 조사해보다가 그냥 넘어갈 겁니다. 마나의 흔적을 탐색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의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란님의 살기를 이겨낼 마법사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갑자기 조금 샐쭉해진 얼굴로 날 힐끔 쳐다본 금아는 창 밖으로 멀직히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저까지도 견디기 힘들만큼의 살기가 폭 주했는데 그 범인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누가..." 난 또다시 폭발하려는 살기를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야 했다. "아, 이제 슬슬 도착하는군요.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전속력을 다해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한 사람의 방해가 아니었다면 난 또다시 금아와 한바탕 드잡이질을 하려 했을지도 모르리라. 난 상념을 털었다. 지금은 백년 전이 아니 다. 나 혼자 벌리고 나 혼자 책임지는 상황이 아니다. "뭘 어떻게 해. 알아서 혼혈이라도 막고, 기절한 척이라도 하라구." 난 바닥에 쭉 드러누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긴, 그런 지독한 상황 속에서 하인과 하녀가 멀쩡히 의 식을 지니고 있었다면 의심스럽겠죠?" 하얀 이를 들어내며 얄밉게 시익 웃어 보인 금아가 깨진 유리조각을 피해 요령 있게 바닥에 등을 댔다. "후우...." 순식간에 의식을 막아버리는 그의 기척을 느끼며... 난 애써 한숨을 눌러 참았다. 백년간 보지 못했던 금발의 소년은 부쩍 자라 당당하게 내 앞에서 맞설 만큼 성장해 버렸다. 진심이 아 니라는 것 뻔히 알면서도 장난스레 뿜어낸 내 살기에 눌려 꼼 짝하지 못하던 소년은 이미 없었다. 난 지금껏 금아의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너무나 변해버린 그의 모습이 현실로 부딪히며 난 잠시 혼란스러움에 빠졌다. 그것도 잠시. 이제 정말로 가까워진 남자의 기척에 난 서서히 의식을 막았다. '아니야. 아직 멀었다고... 그 정도 살기에도 밀리다니...' 애써 마음 속으로 웅얼거려보며 말이다. **** 단지 올릴 뿐이랍니다. 그리고... 카페... 다시 돌보기 시작했으니... 가입하셨던 분들..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ㅡㅡ;;;; 가끔 글이나 올려 주시길. 하루에 한번 이상 꼭... 접속하겠습니다. 헤헷.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9/05 Thu 02:06:08 IP : 211.215.57.202 이나카엘튼 아앗.. 일타였는데에..흑..놓쳤어요..잘밨습니다. (09/05,02:13) 닐케 아앗... 둘이 기절한 척을?? 역시.... 연기력(?)도 일품이네요. (09/05,09:20) Psyche 의식을 막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대단한 란, 대단한 금아...입니닷!!! 이건 무협에서도 보지 못한...(쿨럭) (09/05,09:21) 미스티 카페 어디예요?? 당장 가입해야지.. 님.. 역시나~ 너무재밌어요^^* 앞으로도 정말 이렇게만 쓰신다면 원이 없겠죠.. 란, 금아 너무 대단해요~ (09/05,10:59) hobit 무협지에도 나오지요.. 귀식대법이었든가요.. 아마도.(잠깐.. 그건 죽은척하기던가?-_-a) (09/05,20:59) 마황녀 란이랑 금아랑 .......나중에 어케어케 연결이 되는건가요? 궁금해 지는군요. 란..... 너 좀전에 흔들렸어~ (09/06,15:44) 의심女 스승과 제자(?)의 금단의 사랑이라도 연출하시는 건지...... ㅡ,ㅡa (09/06,15:45)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3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4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4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7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5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2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2002/09/09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금아의 말대로 사건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흘러갔 다. 워낙에 폭풍의 중심부에 있던 터라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 을 받기는 했지만... 살기를 이겨내지 못한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하인과 하녀는 그다지 큰 무리 없이 자신을 무트라고 밝 힌 남자의 수사망에서 벗어났다. 금아의 예측대로 프란의 아르 카이아는 이 사건을 덮고 싶어했고, 두 번 다시 살기는 폭주하 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일들은 흐지부지 흘러갔다. 아르카이아는 사건 후 이틀만에 정 상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클레이브의 갑 옷이 깨끗하게 고쳐진 전 두 말할 나위 없다. 어린 학생들의 관심은 얼마 전 겪었던 특이한 지진에서 곧 주위로 흘러갔다. 그 희생물 중의 하나가 내 어린 주인이었다. 사람은 눈으로 먹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다지 직접적인 실 감이 나지 않는 말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앞쪽으로 펼쳐지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부정하지 못할 일이기도 했다. "후...................." 클레이브는 한숨이 늘고 깊어졌다. 비정상적이기까지한 주 위의 시선과 관심이 부담스러웠겠지. 애써 내색하지 않고 있었 지만 안색이 많이 안좋아졌다. 페르로이가의 후계자라는 것만으로도 클레이브의 인기도는 급상승했다. 거기에 사람의 눈을 홀릴 듯한 빼어난 미남은 아 니었지만 혼혈아 특유의 미묘한 분위기, 호감을 주는 반듯한 이목구비에 매끄럽게 잘 빠진 눈썹, 길다랗게 그림자지는 속눈 썹에 어린아이의 붉으스름한 입술까지! 나이를 초월한 과식과 운동부족으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똥배가 뽈록 튀어나온 또래의 다른 작위의 귀족들 틈에서 그가 빛을 발하는 건 당연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가 페르로이가의 '그'래!" 페르로이가의 사람이 왔다는 소문에 끌려왔던 사람들은 하 나 둘 클레이브에게 빠져 들어갔다. 그 정도의 인파가 자신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면 기가 죽 을 만도 하련만... 당당한 클레이브의 태도는 그에 대한 사람들 의 반응에 불을 질렀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말이다. "우와아아아아...." 개교한지 한달 만에 치러진 시험에서 클로네와 클레이브는 높은 성적을 받았다. 외국에서 보내진 학생들의 과반수가 아직 까지 언어시험을 합격하지 못한 채 기본 연수과정을 받고 있 는 와중에서 단번에 시험을 통과한 뒤 공개등수 안에 성적을 올린 두 아이들은 아르카이아의 인기인으로서의 자리를 확정 지었다. "흥!" 입술 끄트머리에 오만함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셀레라가 옆구리 가득 책을 끼고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성적 공개장소에 왔다가, 한참 앞쪽에서 발표된 두 아이의 성적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갑게 돌아선 건 방금 전의 일이다. "셀레라는 아직인 듯 하더군요." 오늘따라 심플한 면 재질의 분홍빛 레이스가 차분하게 달 린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나왔던 클로네는 고개를 깊이 숙 여 보이고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깊게 한숨을 내쉈다. "네?" "그녀는 아직 기초 언어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나 보더군요. 책은 나름대로 열심히 읽는 것 같던데..." "그럼, 수업은..." "...아직이랍니다." 조금 어색한 미소로 클로네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그 잘난 척으로 똘똘 뭉친 셀레라가... 클레이브들보다 상급생이 될 거라며 큰 소리 탕탕 치던 그녀가... 기초 시험조차 통과하 지 못해 아직... 수업조차 듣지 못한 채 시험 볼 자격을 얻지 못했다라? "자존심이 상했겠죠." 가끔 마주치는 셀레라의 옆구리에서는 늘 두꺼운 책이 끼 워져 있었다. 그걸 다 읽고 있는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그 녀가 모범생의 범주에 들만한 표현력을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아...." 그래서 왔었는지도 모르겠다. 클레이브나 클로네는 책만 드 립다 파대는 유형은 아니니까. 시험은 요행히 통과했지만 너희 성적이 되 봤자 얼마나 되겠어. 하는 억하심정으로 구경왔다가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에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노력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클로네는 조금 안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만에 하나라도 셀레라님이 클로네님의 표정을 본다면 더 약올라 할겁니다." "훗." 옆에 서 있던 클레이브가 피식 웃었다. 클로네도 고개를 끄 덕였다. "굳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주위에 깨끗하 지 못한 소문들이 돌고 있어요. 셀레라가 아무래도 저희들 뒤 를 캐고 다니는 것 같은데..." "뭐, 거기서 거기겠죠. 버르장머리없는 어린것들이라든가, 본래 저런 것들이라든가..." 난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지닌 영향력이나 힘 일텐데... 셀레라는 그런 면에서는 조금... 병적인 존재이기는 했다. "그 정도라면 다행일 겁니다." 좋은 성적에도 클레이브의 안색은 밝지 않았다. 우린 잠시 셀레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모르지 만 하노베이가의 움직임이나 힘에 대해 소년과 소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 아르카이아의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입니 다. 이 곳은... 정치회장의 축소판이니까요." "소문의 근원지라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고." 요즘 들어 셀레라의 주위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귀족들이니까. 당장 눈앞의 사람 이 좋은 사람인지 싫은 사람인지를 떠나, 자신의 나라와 가문 에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겠지. 다들 그렇게 교 육받고 자랐을 테니까. "현재 상황으로는 페르로이가에 하노베이가가 미치지 못하 겠지만... 멀지 않은 미래라면 또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들 의 입장이겠죠." 하노베이가의 미래가 더 밝다고 믿는 사람, 페르로이가가 단지 타국의 카느가 누구인가에 따라 순순히 물러날 거라고는 믿지 않는 사람. 그 분열이 지금 우리 주위에 모이고 있는 사 람들의 갈림이었다. 애늙은이 애늙은이하고 한탄했었는데... 이 곳에는 정말 애늙은이들밖에 없다. "문제는 이 곳이 크리아가 아닌 프란이라는 겁니다." 씁쓸한 얼굴의 클로네는 살짝 내게 목례를 보내고 뒤돌아 섰다. 그 뒤를 따라 클레이브가 걸음을 옮겼다. 난 그 둘에게 서 받아든 전 과목의 책들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이 곳의 책 들은 부피가 커 하녀나 하인이 매 시간마다 찾아가 바꿔들어 주어야 했다. 두껍고 단단한 표지 덕분에 무게만 잔뜩 늘어난 책들을 가볍게 추스려 들며 난 밀려오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채 다음 해가 뜨기도 전에 드러났다. **** "란님.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머리를 땅에 박은 스테판과 크레이가 미동도 하지 않고 엎 드려 애원했다. "자, 잠깐! 대뜸 그렇게 말하면..." 귀족들이 그리 뒤숭숭하게 패를 가르기 시작했다면 그 영 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평민들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클 로네가 말한 소문들과 유달리 적대적인 셀레라의 행동에 난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스테판과 크레이를 찾았는데... "란님. 제가 잘못했던 일들은... 부디 용서해 주시고..." 가벼운 노크 후 문을 연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무릎을 굽히 고 땅에 엎드린 소년들의 모습이었다. "스테판. 왜 그러는 거지? 난 영문을 모르겠어." 난 스테판과 크레이의 앞쪽으로 다가가 소년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역시 뭔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스테판의 어 깨가 꿈틀 했다. "스테판. 크레이. 일단 일어나 앉아. 몇 일만에 얼굴이라도 보자고 찾아왔는데... 뒤꼭지만 보여줄 꺼야?" "그, 그건..." "먼저 차분히 이야기를 좀 해봐. 무엇이 너희들을 이렇게 하도록 만든 거지?" "란님. 스테판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날..." 밤의 흐린 빛에 노랗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 눈동자를 들고 크레이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 날... 절 구하러 와 주셨던 분들 중의 한 분이 란님이 라는 것도 이미 아버지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건...." 기억하기조차 싫었을 텐데. 크레이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날 누군가가 마스터라고 외쳤던 일도 기억합니다." "남작의 집에 데려가 주셨을 때의 란님도 기억합니다." 다시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두 소년은 또박또박하게 발음 했다. "제발 저희가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란님 외의 그 어떤 누구에게도 검을 배우지 않겠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 에게도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제발..." 난 잠시 말을 잊었다. 스승이라... 이 두 소년은 그 말의 의 미를 알고 있는 걸까? "아르카이아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제가 원하던 바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들떠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될 수 있도록... 가난한 평민으로 태어나 어찌 책 한자 라도 보기 위해서는 매라도 맞을 수밖에 없는 고아로 태어난 절 도와주신 분들을..." 스테판은 울먹이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희망이 보인다고 전 잊어버렸던 겁니다. 바로 멀지도 않은 일년 전의 일이었는데!" "아... 버지를 도와주시고... 절... 도와주신 분들을... 제가 당 장... 처한 현실에 눈멀어서 잊었던 겁니다. 몸의 눈만이 아니 라 마음의 눈까지도 멀어버린 겁니다. 전... 전...." 두 소년은 서로서로 울음을 삼켜가며 힘겹게 말을 이어나 갔다. 근 한 달간 그 둘이 겪었던 이 곳의 생활과 사람들에 대 해...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갔다. 발단은... 예상했었던 데로 크레이의 눈에 띄는, 아니 눈을 매혹시키는 외모였다. 귀족들의 그것에 비하면 간단하기 짝이 없는 입학식을 마 친 소년들과 소녀들은 입학하기 전 제출했던 각자의 선택전공 에 따라 수업에 대한 기초 교육을 받고 반을 배정 받았다. 그 와중에 크레이의 모습이 전교생의 눈에 들어간 게 문제였다. 볕에 그을리지 않은 새하얀 피부, 잘 선 콧날과 붉은 빛이 감도는 볼과 입술, 찰랑찰랑 빛을 반사시키며 보기 좋게 흘러 내린 가느다란 백금발. 거기에 하나 더해 사람의 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눈동자... 무심코 스쳐 지나가던 사람이 라도 한번쯤은 당연히 돌아볼만한 외모를 지닌 소년이 자신들 이 속한 무리에 껴 있다고 한다면... 이제 한참 감수성이 예민 해질 나이의 아이들에게 자극이 컸으리라. 처음에는 적막이 그 다음에는 길다란 한숨과 감탄이 그리 고... 그 이후에는 눈에서 놓고 싶지 않은 집착, 혹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막연한 질투. 가뜩이나 흥분하고 기대감에 차 있던 아이들에게 귀족을 연상시키는 크레이의 등장은 충격 이상의 파동을 몰고 왔다. 처음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크레이의 눈이 보이지 않음은 감춰질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고 크레이와는 다르지만 사내 답게 잘 생긴 스테판이 그의 옆에 있었기에 아이들은 두 소년 에게 쉬이 접근하지 못했다. 아슬아슬한 경계막 같은 선이 두 소년과 아이들 사이에 생겨났다. 그 경계는 일주일 정도 지속 됐다. 아이들은 각자의 뒤 배경들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평민인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대한 귀족을 등에 업은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말아야 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 게 아이들은 각자의 후원자를 알아나갔다. 그다지 비밀이랄 것 도 없었기에 소문들은 물에 잉크가 퍼져 나가듯 아이들 틈으 로 스며들어갔다. 하나 둘 스테판에게, 크레이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이 생겨 났다. 화려한 간판에 의외로 친절하고 잘 미소짓는 두 소년에 게 아이들은 흠뻑 빠져갔다. 그리고 첫 능력시험이 있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이 아르카이아는 평민부에도 귀족부와 엇 비슷한 규율을 적용하고 있었다. 프란어와 크리아어... 아리아 어에 대한 기초적인 능력 시험이 이루어졌다. 그 합격 기준은 귀족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았지만 지금까지 교육다운 교육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아온 평민 아이들에게 그건 쉽사리 넘어갈 만한 벽이 아니었다. 그 시험에서 스테판은 프란어 시 험에 합격했다. 은근히 그가 매혹적인 크레이와 함께 있는 것 을 시기하던 아이들도 그를 인정했다. 크레이는 두 시험 모두 통과하지 못했다. "수업은 갈리지 않았어?" 문득 궁금해졌다. 두 소년은 분명 다른 전공을 선택했었는 데... 조금 이야기가 풀려 나가며 분위기는 자연스러워졌다. 난 슬쩍 소년들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소년들은 꿇어앉은 무 릎을 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힘으로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스테판은 잠시 머뭇 해 보이고는 입술을 움직였다. "프란어 시험과 아리아어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 전까지는... 의무적으로 두 언어만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랬군. 그럼 지금까지 주욱 함께 지냈던 거네?" "네...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크레이의 안색을 힐끗 살피며 스테판은 침착하게 말했다. 가슴 한 쪽이 조금 아려왔다. 클레이브는 두 언어시험을 한번 에 합격했다. 지금까지 클레이브와 주욱 함께 공부해온 스테판 이 귀족부의 시험보다도 훨씬 쉬운 아리아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리는 없는데... "아리아어는 상상 외로 어려웠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통 과 할 수 있을지..." 밝지 못한 크레이를 한번 더 힐끗 바라보고서는 풀 죽은 목소리로 스테판은 가볍게 투덜거렸다. 난 소년들의 머리를 쓰 다듬었다. 눈이 안보이는 크레이를 두고서 혼자 앞으로 나갈 수는 없었겠지.... "그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아니 없었다고 생 각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만...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똑. 눈물 한 방울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졌다. 두 주째 접어들면서 소년들은 패가 갈렸다. 숫적으로 적은 소녀들은 나름대로 뭉치며 하나의 세를 구성했다. 소녀들을 위 한 과목은 '하녀장'하나 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프란과... 크리아의 소문들이 하나 둘 귀로 들어오기 시작 했습니다." 셀레라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소문들도 그 중 섞여 있었으 리라. 소년들의 귀에 본격적인 진실들이 흘러 들어갔다. 아르 카이아의 세력도는 제 일 우그르트와 제 이 우그르트를 지지 하는 카느의 대귀족들을 중심으로 각각의 우그르트를 지지하 는 타국의 귀족들이 뭉쳐있는 형국이었다. 그건 평민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도가 말했던 데로 둘째 우그르트는 사람관리를 잘 하는 자였다. 당장에 이 곳에 갈린 패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위 귀족이야 비슷비슷하다고 해도 압도적인 머릿수를 지닌 중위 귀족이나 하위 귀족들은 둘째 우그르트의 편을 드는 자가 압 도적으로 많았다. 크리아나 다른 왕국이라면 큰 문제되지 않는 형국이다. 대 귀족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나라라면... 하지만 여긴 클레이 브의 말대로 프란이었다. 강한 전사를 숭상하고 힘을 존중하는 이 곳의 귀족들은 개개인이 지닌 능력이 작위에 우선하는 경 향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크리아라면 남작의 위를 지닌 사람 이 백작에게 함부로 말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면, 이 곳에 서는 개개의 남작이나 백작이 지닌 실력에 따라 그게 얼마든 지 가능했다. 심지어 당당하게 결투로 작위를 뺏는 경우까지 벌어진다고 하니... 막 세워진 제국에 기초가 잡히지 않은 이 땅의 귀족들의 서열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어느 누구도 모 르는 상황이었다. 머릿수는 힘이었다. 아직 전쟁이나 그 비슷한... 상황이 벌어 지지 않아 공을 들어내지 못한 자들이 앞으로 어떤 힘을 발휘 할지는 미지수였다. 다른 누구의 판단이 없더라도 현 상황은 둘째 우그르트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렇게 만든 건 두 우 그르트 자신의 능력이겠지만... 말이다. 아아... 그랬기에 이 평민부에서도 둘째 우그르트의 편을 드 는 귀족가에서 보내진 평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의 눈 에서 보기에 크리아에서 파견된 첫째 우그르트의 지지자는 적 군의 괴수 같은 것이었으리라. **** 십여분 사이에 하루가 건너갔군요. 어제 못올린 만큼 두편 올라갑니다.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9/09 Mon 00:52:26 IP : 211.215.244.160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8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4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4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4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7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5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2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은빛 2002/09/09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후....." 사실 그런 중요한 외교적 사안들은 평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질만한 일들이 절대 아니었다. 해당 귀족들과 몇몇 귀족들이 나 쉬쉬하고 알고 있다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때 '짠!' 하고 꺼내보이는게 상식이었다. "지독히도 몰상식적인...." 셀레라. 아주 떠들고 다니더니만... 정말 가관이다.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갔는지 두 소년이 눈을 동그랗 게 떴다. 난 슬쩍 웃음으로 때웠다. 그 누군가의 입소문이 날개를 타고 퍼져가며 내 어린 두 소년은 곤란한 지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은 둘째 우그르트에게 충성하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 두 소년을 괴롭 혀야만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에까지 불타올랐다. 그 때... "크레이의 의안에 대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노예라는 손가락질이 시작됐다. 평민과 귀족의 격차만큼이 나 노예와 평민간의 격차도 컸다. 선망과 부러움의 눈길은 한 순간에 멸시와 증오로 변했다. "젠장...." 가슴이 묵직했다. 얇게 저미는 듯한 고통이 아릿하게 느껴 졌다. 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괜찮습니다. 견딜만 했습니다. 셀레라님께... 혹독하게 단련 받았으니까요." 크레이는 피식 웃었다. 몇몇은 남아 둘의 편을 들었다. 첫째 우그르트와 크리아의 페르로이가의 입장에 선 가문 소속의 아 이들은 똘똘 뭉쳤다. 역효과였다. 오히려 집단적인 비난만 받 았다. 그 와중에... "누군가 그러더군요." "너희가 믿고 있는 그 잘난 혼혈아 꼬맹이도 살아서 돌아가 지는 못할 거라고...."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소년의 눈에 독기가 맴돌았다. 크레이의 얼굴에 살기가 떠올라 있었다. "어차피 둘째 우그르트가 카느의 자리에 오를 거라고. 겨우 인질 따위로 온 혼혈아를 구하기 위해 크리아의 국왕폐하께서 손을 내밀 것 같냐고..." 평민들 사이에서 저런 이야기까지 나오다니! 내가... 이 곳 을 과소평가 한 걸까? "살아 남아봤자 노예만도 못한 신세라며... 호, 혼... 혈.. 아 는.. 보기.. 드무..니.. 큭!" 스테판은 말을 잇지 못했다.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희를 욕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참 을 수 있었습니다. 이 눈 때문에 노예라 비난하는 것도 얼마든 지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를 토할 듯한 목소리로 크레이는 외쳤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소년들의 숨이 가빠졌다. 소년들은 격분했다. 두 주먹을 움 켜쥐고 달려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무조건 휘둘렀다. 맞 아가면서도 쉬지 않았다. 지쳐 쓰러지고, 그 모습에 놀란 교관 들이 달려와 스테판과 크레이를 짓밟는 소년들을 떼어내고 치 료국으로 보낼 때까지 두 소년은 저항했다. 난데없는 싸움에 평민부의 아르카이아는 발칵 뒤집혔다. 미 래가 이렇다 저렇다 말은 하지만 페르로이 가문은 당당한 크 리아의 제 일 가문의 하나였다. 그 가문의 후계자가 직접 입학 시킨 두 소년이 벌건 대낮에 구둣발에 짓밟혔다는 사실에 아 르카이아의 사람들은 대경했다... 고 했다. 물론 귀족들이 귀에 까지 흘러가지 않았다. 마침 살기 섞인 지진도 있었고... 흠, 흠... 크레이와 스테판은 내가 이 곳에 들리지 않은 두 주를 치 료국에서 보냈다. 감쪽같이 몰랐다. 그리고 오늘이 소년들이 돌아온 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클레이브님을 혼혈아라고 비웃은 그 놈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현실을!" "절대... 돌아가시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싸늘한 시체로...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신세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후......................." 갑갑했다.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기회를 기다리고는 있었다. 뭔가 소년들이 직접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를. 하지만 이 건... 이건... 운명이라는 괴물의 농간인가? 클레이브의? 이 아 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아니면....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란님.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스승님이라 부르겠습니다. 란님..."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두 소년은 다시 얼굴을 바닥에 박았다. 저런 인사법은 어떻게 알았을까... "스승님이라....." 이 땅에서 스승이라는 말은 없다. 대신 비슷한 의미로 '가르 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 식으로 옮길 정확한 의미가 없기에 그저 스승이나 선생이라는 말로 생각하고 있을 뿐... 이 땅에는 스승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가르치는 일은 일종의 직업일 뿐이었다. 경우에 따라 직위 가 높은 귀족의 명에 따라 하급 귀족이 와서 가정교사를 할 때도 있고, 검술 교사를 할 때도 있다. 돈을 주고 고용하면 누 구든 제자가 될 수 있고 가르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만 큼 관계도 엷었다. 내가 살던 곳처럼... 부모나 다름없는, 왕과 다름없는 스승은 없었다. 그저 어린 시절에 불러다 배우다가 다 자라면 다시 부하로 부려먹는... 경우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 지 바뀔 수 있는 고용관계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독히도 폐쇠 적인 마법사들의 관계에서나 비슷한 개념이 있을까? 아니 그 조차도 어딘가 달랐다. 완전히 다른 땅, 다른 문화, 다른 사람 들이 살고 있는 곳이 여기였다. 그리도 끈질기게 따라붙어 인 정 받아놓고, 말로는 스승님이라고 하면서도 기회만 보이면 기 어오르려 드는 금아처럼... 말이다.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일일 뿐, 그 이상의 의 미가 부여되지 못하는 곳, 제자라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가르 쳐준 사람에 대한 도전이 용납되는 곳... 내가 태어난 동대륙과 는 전혀 다른 곳.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얘들아." 칠 년을 떠돌았을 때보다 일곱 달의 하녀 생활에서 난 이 땅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 난 소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알려줄게.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 려주지 않는다고만 약속한다면..." "란님!" "하겠습니다!" 난 소년들의 몸을 일으켰다. 좀 전과는 달리 그들은 반항하 지 않고 순순히 일어났다. 난 그들에게 내 힘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질히도 말 안듣는 누군가에게와는 다르니까. "이 약속만큼은 너희가 죽는다 해도 지켜야 한다." 모든 형식을 파괴하더라도 내가 스승님께 했던 약속까지 져버릴 수는 없었다. 소년들은 결연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주어서는 안돼. 내가 가르쳐주는 내 용들을. 무심코 친구나... 동료에게 알려주어서도 안됀다." 이번에는 조금 난감해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스테판은 자신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어느 정도의 세상을 겪어 본 그로서는 이 약속이 지키기 힘든 것임을 알고 있으리라. 이 곳 에서 명문 가문의 상승 검술이 아닌 이상은 검술이란 그다지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니었다. 힘께 연습하고 수업 받게 될 친구들이 그에게 도와달라며 부탁하게 된다면... 알려주지 않는다면 스테판은 곤란해 질 지 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알려준 부분에서 너희 스스로 깨달은 부분들로 다른 사람에게 가벼운 조언을 해 주는 것까지는 막지 않겠어. 하지 만. 스테판..." 눈이 정확히 마주친 그는 움찔 했다. "어설픈 실력으로 조언해 주는 건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 다. 앞으로 너희 손에 들린 건 나무 막대기가 아닐 꺼야." "네?" "앞으로 수업을 들어가며... 또는 가문으로 돌아가서 검술을 배우게 된다면 반드시 누군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생기게 된 다. 홀로 숲 속으로 파고들지 않는 이상은..." "아, 네...." "누군가가 검을 배울 때는 여러 가지 단계가 생기기 마련이 야. 조언은 그 상태를 정확하게 꿰뚫고, 그 상황에 있어서 가 장 중요하고 정확한 것을 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소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검술 자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어. 쓸데없는 욕심이나 자만 이 들어가기 시작한다면... 상급 검술로는 죽어도 넘어갈 수 없 게 되니까." 난 가급적 엄하게 보이기 위해 허리를 곧게 폈다. 이 부분 만큼은 절대 어설피 넘어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알겠니? 어설픈 가르침은 받지도 말고 하는 건 더더욱 하 지 말아라. 적어도 너희가 마스터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 전 까 지는 함부로 남을 가르치거나..." "하지 않겠어요." "절대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서도 마찬가지다." 소년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너희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지도 몰라. 하 지만 난 동대륙인이란다. 당연히 내 검술도 동대륙에서 건너왔 고." "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크레이가 조금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두 소 년을 의자에 앉게 했다.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지금 두 소년에게 앞으로 내게 검술을 배우면서 지켜야만 할 규칙들을 바르게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동대륙에서는 절대 검술을 함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특히 비전이나 자신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고유 무술은 더더욱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가문의 힘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아니 실제로는 그런 목적으로 그리 하는 곳들이 적지 않지만 그 근 본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비인부전(非人不傳), 비례부전(非禮不傳)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전하지 말고, 예를 모른다면 전하지 말 라는 의미지." 난 목을 가다듬었다. 소년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전승 이라 함은 힘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 힘이 올바르지 않은 곳에 쓰인다면 세상이 얼마나 어지럽고 험할까? 제자를 가려 받고 전승인을 늘이지 않는데는 그런 뜻이 숨겨져 있었다. "강한 힘이 옳지 못한 곳에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야. 그 리고 그 강함을 제대로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서고."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진정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많은 제자를 받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일단 가르치기 시작했다면 책임을 진다." 소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은연중 새나가는 살기를 난 막 지 않았다. "너희가 옳지 못한 일을 한다면... 내가 죽인다." "란님?" "그게 내가 너희에게 질 수 있는 책임이다. 그건 너희가 내 약속을 가볍게 여겨 어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엄했으리라. 단단히 각오했을 소년 들의 안색도 편안하지 못했다. 조금은 겁에 질린 기색으로 소 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얻는데는 그 대가가 반드시 따른다." 난 굳어진 크레이와 스테판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당겨 품 에 안았다. 아직 채 자라지 않은 두 소년은 가볍게 안겼다. 난 아이들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바르게 써라. 바르게 살아라. 생명을 귀하게 여겨라... 남의 아픔을 지나치지 말아라." 크레이가 머뭇머뭇 팔을 뻣어 둘러 안았다. "내 스승님께서 날 그 분의 유일한 제자로 받아들여 주시면 서 제일 처음 해 주셨던 말씀이시다." 스테판의 팔이 어색하게 움직였다. 어미를 일찍 잃은 그는 이런 포옹이 많이 어색했나보다. "내 평생 내 부모님으로 여겼다. 내 몸을 낳아주신 분은 내 부모님이셨지만 날 한 인간으로 설 수 있게 길러주신 분은 그 분이셨지. 그 분은 내 또 다른 아버님이셨다." 소년들의 숨소리가 가라앉았다. "내가 살던 곳에서.. 스승이란 또 다른 부모를 의미한단다. 아이들아. 너희가 내 제자가 되겠다고 했다면, 내 아이들이 되 겠다고 한 것과도 같단다."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이 아이들에게 내가 지니고 있는 이상형의 스승과 제자 관계를 설명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비 유는 없었다. "라, 란... 님은 결혼하지 않으셨잖아요." 더듬 더듬 스테판이 웅얼거렸다. "낳은 부모가 아니라... 기르고 가르친...." 스테판과 크레이의 그 어색한 음절 음절 사이에 눈물기가 섞여 있었다. 난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그래, 그래... 울 때는 울어라. 자주 울면 곤란하겠지만 가 슴 속에 응어리를 남기지는 말아라." 내 말대로 울지는 않았다. 자존심이겠지. 하지만 그 말에 좀 전의 설움까지 함께 터졌는지 소년들은 끅끅거리며 영 숨을 다시 고르지 못했다. 난 조용히 소년들을 토닥였다. "미리미리 울어 놔. 내일부터는 눈물 쏙 빠지게 훈련시켜 줄 테니까. 그 때는 울면 피 눈물 나게 야단칠 테니까. 미리 울어두라고." 프드득, 울음소린지 웃음소린지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어깨 넘어로 들려왔다. 날밤이 새고 있었다. **** "그랬군요." 그 날 이후로 죄책감 반, 협박 반에 갑옷손질을 완전히 떠 맡은 금아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리 부어있어?" "그럼 제가 안붓게 생겼습니까?" 나이답지 않게 입술을 삐죽삐죽 내밀어가며 금아는 샐쭉였 다. "누군 칠 년을 따라다니며 빌어도 백년을 더 기다리게 만들 고 나서야 제자로 받아주더니... 누군 한 시간만에 받아주고." "상황이 다르잖아." 그다지 날 스승으로 보는 것 같지도 않은 주제에 묘한 질 투심을 불태우는 금아를 보며 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게다가 넌 날 스승이라고 생각이나 하니?" "제, 제가 뭘...." "너 하는 것 보면 말이지... 꼭 날 만만한 친구 정도로 생각 하는 것 같단 말이야. 엄격한 스승님이 아니라... 백년 만에 다 시 만난 오랜 친구. 말만 란님이고 스승님이지..." 백년이나 살고 실력도 갈 때까지 갔으니 세상일이 심심해 질 무렵 나타난 반가운 옛 기억. 자유분방한 성격이 대공이라 는 높은 지위라는 족쇄에 얽혀 있었으니 갑갑도 했겠지. 터질 만도 했을 때였다. 동 대륙의 높은 경지의 무예가나 고승들이 일정 때에 이르기 시작하면 갑자기 세상을 버린 듯 희한한 짓 거리들을 하고 다니며 떠도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엑!" 호들갑스레 손을 저어대는 그의 모습에 고개가 절로 저어 졌다. 속상한 이야기들로 밤을 샌 덕분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클레이브의 입장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밀리다니. 그 가 아닌 다른 귀족이었더라도 이렇게 황당하게 일이 벌어졌을 까? 아닐꺼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만 하자. 성질 누르느라고 어제 피곤했거든." "헤에... 잘못했으면 이차 지진이 날 뻔 했었네요." "......................." "왜요?" 역시 내 추측이 맞았을거라 생각이 든다. 너 같이 깐죽이는 놈 없이 그냥 폭발할 만큼 내가 헐거워 보이냐... 는 말이 목구 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지금 저 놈의 뺀돌거림을 본다면 난 한바탕 벌이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저 놈 정도라면 일격에 내 손에 죽지도 않을 텐데. 노도는 어딘가 건들이기 껄끄럽고 저 놈 정도라면... "란님?" "아니야." 미련은 빨리 버려야 한다. 난 휙 몸을 돌렸다. 단 한 시간이 라도 눈을 붙이며 심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클레이브의 아침 식사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한 시간 반. 한 시간 쉬고 삼 십분 서두른다면 딱 알맞다. "쉴 필요 없으면 그 갑옷이랑, 오늘 도련님과 아가씨 수업 준비 물품들 좀 미리 챙겨두고." "아, 그렇게 하죠." "고마워." 길게 하품을 한번 뽑고, 클로네의 방에 딸린 내 방으로 돌 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바로 옆방이기는 했지만 중앙 현 관이 반대편으로 나 있는 덕분에 밖으로 복도를 빙 돌아서 가 거나 창문 발코니로 건너가야 했다. 창문을 벌컥 열었다. 훈훈 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참! 그럼 이제 제자만 넷이 되는 건가요?" 몸을 반쯤 내민 내게 금아가 말을 던져왔다. "넷?" "네. 클레이브님과 클로네님도 어차피 허락하실 거잖아요." 이젠 제법 자연스럽게 님짜를 붙이며 전직 대공 금아는 천 연덕스럽게 웃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 혼자 뼈빠지 게 고생하며 제자를 넷이나 기를 생각은 없었다. "아니." "네?" 어리벙벙한 얼굴. 난 저런 표정이 보고 싶었다. "전직 대공전하께서 계신데 내가 뭘 끼겠어. 나중에 스승이 누구냐, 말이 나와도 그게 보기 좋고." "네?" 금아의 한쪽 볼이 가볍게 떨렸다. 뭔가 닿는 게 있었겠지. 귀족 사회라는 게 훌륭한 검술을 배운다고 해서 그냥 통용되 는 건 아니다. 금아처럼 전쟁이라도 터져서 실력을 만천하에 들어낼 수 있다면 말이 다르겠지만... 그 외의 경우 누구에게 배웠는가가 또 중요한 관건이었다. 스승을 부하로도 삼을 수 있는 사회가 이 곳이기는 했지만 누구에게 뭘 배웠는가는 귀 족들 나름대로 관계를 쌓고 유지해 나가는데 중요한 키이기도 했다. "너 둘, 나 둘이란 말이다." "너 둘... 나... 둘?" "기본적인 훈련만 마치면 클로네님이랑 묶어서 넘길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 두라고. 가르치는 것도 좋은 수련의 하나니 까." "네에?" "스승으로서의 명령이야." "네에에에에에?" 쭉 벌어진 턱이 땅에 닿을 지도 모른다. 난 그대로 창문을 넘었다. 정말로 피곤했다. "너무하세요!" 귓등으로 금아의 절규 비스므레끼 한 소리가 흘러갔다. **** 이틀에 한편 공지 내립니다. 가능한 자주 올리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09/09 Mon 00:52:38 IP : 211.215.244.160 아름드리 우와아아아~+_+기다렸어요~~ 연참!연참!방가워요~****자지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낼도 연!참!이죠???+_+ (09/09,01:28) a 와아아앗-!! 기다렸습니다! 건필! (09/09,07:37) 이름 비번 수정|삭제|답장 [setup] 라다가스트에서 소설 연재시 참고 사항 azderica 08/25 609 688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2] 은빛 09/09 53 687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은빛 09/09 59 502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7] 은빛 09/05 404 470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9] 은빛 09/04 314 385 [[The Perfect MAID]]-57-편지. [6] 은빛 09/02 314 309 [[The Perfect MAID]]-56-편지. [3] 은빛 08/31 297 193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 은빛 08/29 285 164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 은빛 08/28 282 131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8 297 101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5] 은빛 08/27 246 55 [[The Perfect MAID]]-외전1-달빛이 불러준 꿈. [4] 은빛 08/26 280 54 [[The Perfect MAID]]-52-왜 하필 란이었을까. [2] 은빛 08/26 265 53 [[The Perfect MAID]]-51-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19 52 [[The Perfect MAID]]-50-란식 하녀의 길 청소. 은빛 08/26 25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쓰기 | 목록 [1] Skin by Rovinia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 오류가 하나 있었습니다. 1권이 끝나고 2권 시작할 무렵부터 있던 오류인데... 제가 실수하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네요. 몇화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금아가 란을 만난 이후로부터 가르암 백작은 ->>차스크 백작. 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용서를... 그럼.... 글을.... **** '부러운가?' 노도의 네 번째 편지는 그렇게 시작했다. 스테판과 크레이 를 가르쳐주기로 결정한 지 열흘 남짓 지났을 무렵이었다. "너덜너덜 해 지기 직전이군." 애써 티 안나게 한다고 노력했겠지만 질 나쁜 종이는 금새 망가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평민들이 글자를 모르는 판에 하 인이나 하녀가 되어 편지를 주고받는 것부터가 의심하자면 충 분히 의심스러운 상황. 좋은 고급지를 쓸 형편은 아니다. 두어 번만 다시 접었다가 펴도 접힌 자리가 찢어질 듯 너덜거린다. 그 또한 노도의 안배이긴 하겠지만... "셀레라. 또 속 타겠네." 분명 그녀였으리라. 클레이브에게 직접 전해지는 편지가 없 으니 하녀들의 편지라도 훔쳐봤어야 했겠지. 직접 해석할 엄두 는 감히 내지 못했을 테고 또 불쌍한 어딘가의 서생 하나만 그 날카로운 독설에 쥐어 터졌겠지. '이 늙은이는 승진을 했다네. 허허허.' 노도는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외총관의 자리에 올랐다. 형 식상으로는 공동 집사. 내총관이나 다름없는 집사 헤리슨이 그 본연의 임무를 계속 맡게 되고, 노도는 후작을 도와 새롭게 벌 어지는 밖의 일을 돕게 됐다. "승진이라..." 기쁨을 들어내다니. 그는 나보다도 훨씬 더 순수하게 이 곳 에 적응해버린 듯 하다. "일이 복잡해져 가는 건가?" 지금까지처럼 그늘에서 돕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후작 이 그를 표면으로 끌어냈다면 그건 그 만큼 상황이 좋지 못하 다는 의미다. 대강은 짐작이 가고 있지만 후작가에도 대대로 내려져오는 진짜 그림자도 있었고... 노도를 내세우고 그림자를 본격적으로 움직여 뭔가를 획책하고 있겠지. 노도의 편지는 그 간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떠난 후 하노베이 가의 어린 새 백작은 발빠르게 한 편을 모 으기 시작했다. 선대의 죽음과 차스크 백작가의 페르로이가 진 영 참가 선언으로 가늘게 이어지던 다른 가문들과의 관계가 엷어지자 그는 프란과의 외교 전선까지 앞세워 귀족들을 유혹 해 나갔다. 원칙적으로라면 그 또한 국왕과 해당 귀족, 그리고 몇몇 고위 관료들만이 알고 조용히 처리했어야 하는 일. 그래 야만 만일의 경우라도 패를 잘못 고른 귀족가의 명맥을 유지 시켜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확실히 들어내며 패를 모 은다는 건.. '확신, 혹은 무모함.' 이런 식으로 계속 공공연하게 떠들어댄다면 어쩌면 크리아 의 전통을 깨고.... 패를 잘못 고른 가문의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이건..." 원수지간이다.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 아니면 반드시 널 죽 이고 난 잘 살아남아 보겠다. "어린애." 딱 그 정도 수준의 발상이다. 내 손에 가기는 했지만... 새삼 선대의 하노베이 백작에게 동정심이 들 정도. 자신만 아는 꼴 이 딱 부전자전이지만... 넘어가자. 화만 난다. 노도는 후작을 따라 고급 시종의 자격으로 귀족들의 모임 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헤일런 공작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며 다리가 조금 떨린 점, 때마침 차스크 백작의 권유를 받고 왕도 로 올라왔던 가르암 백작이 노도의 얼굴을 보고 놀라 기절했 던 것 외에는 큰 사건 없이 일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묵언을 깨고 공개적으로 외교 협상카드들을 펼쳐 보인 하노베이가에 은근한 분노를 들어냈다. 크리아 같은 작은 소국이 살아남기 위해 삼백여년을 지켜 았던 룰을 이제 막 백 작의 지위를 계승받은 어린애가 깨다니. '늙은이는 왕궁에도 들어갔었네.' 귀족들의 방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노도는 후작의 그림 자처럼 어디든 따라다녔다. 왕궁에서 후작이 왕세자를 만나는 동안 늙은 정원사는 왕세자의 궁 앞쪽으로 아담하게 꾸며진 정원을 노다니다가 어린 소녀를 만났다. **** "넌 뭐지?"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녀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말을 놓 았다. 시원하게 발목을 드러내고, 무릎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 는 길이의 심플한 흰 레이스가 가지런히 달려있는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어딘가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했다. "이 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길을 잃었다 면 저 쪽으로 가도록." 손가락을 들어 출구 방향을 가르치며 소녀는 오연하게, 그 러나 그런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어딘가 친절한 공기를 풍기며 말했다. 늙은 정원사는 미소지었다. "예, 예. 이 늙은 것이 정원사의 일을 한 적이 있다 보니 이 아름다운 정원에 눈을 빼앗겼던 모양입니다." 소녀의 눈이 빛났다. "정원사? 그렇게 늙었는데?" 얼굴 가득 주름이 새겨진 노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 며 소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 "나무를 심고 가지를 치는 일은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들 다. 그런데 할 수 있나? 아, 아니..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지." 소녀는 총명했다. 곧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소녀는 고개 를 끄덕였다. "하긴, 왕궁의 정원은 특별히 꾸며져 있으니까." 어느 새 늙으수레한 침입자에 대한 일은 새까맣게 잊은 듯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소녀는 웃었다. "그런데, 정원사가 어떻게 이 곳에 들어왔지? 혹시 귀족의 정원사였나?" 그러다가는 또 궁금한 점을 찾아낸 듯 소녀는 눈빛을 날카 롭게 했다. "허허허. 네, 주인님을 따라 왔다가 아가씨 말씀 데로 길을 잃었답니다." "그랬군. 길을 잃은 거였어. 역시." 자신의 추리가 맞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몸짓으로 소녀 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떤 가문의 정원사였지?" 노도는 무릎을 굽히고 소녀와 시선을 엇비슷하게 맞췄다. 소녀가 누구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이런 왕궁에서 저런 옷을 입고 다닐 신분이라면 뻔하리라.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화를 낼지도 모르고 신분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었지만 노도가 시선을 맞춘 건 너무나 자연스러워, 어린 소녀 조차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페르로이 가문에서 동쪽의 정원을 지키는 정원사였답니 다." 소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럼, 마법의 정원을 가꾼 사람이란 말이야!" 소녀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볍게 끄덕인 노도의 고갯 짓에 소녀는 정원사의 주름진 양 손을 덥석 붙잡고 마구 흔들 어댔다. "이야! 정말 만나고 싶었어!" 노도의 마의 정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법의 정원'으로 이 름을 달리하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바라보기 위 한 사람들, 화초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화초를 해치지 않고 단지 지나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밝게 길을 내주며 해치지 않지 만, 나쁜 마음을 지닌 사람, 꽃을 꺽으려는 사람, 화단을 짓밟 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어둠이 밀어닥치고 괴물이 나타나 혼을 내준다는 정원. 본래 소문이란 과장이 덧붙는 법이다. 게다가 마법이니 뭐니 하는 건 보통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신기하게 느껴진다. "당신은 마법사인건가? 마법사가 정원사 일을 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야." "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법사들이나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왕족보다 도 더 고개가 높거나 아니면 아주 비굴하다고 알고 있거든." 소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도는 소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잠시 소녀와 정원에 대 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언젠가 노도의 동쪽 정원을 소녀에게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노도와 소녀는 다른 사 람들이 그들을 보기 전에 정원을 빠져나왔다. 노도는 조용히 왕세자 궁의 하인 대기실로 돌아가 후작을 기다렸다. "기다리셨습니다. 노도님."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게 쏠리건 후작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조용히 차를 나르던 하녀의 발걸음이 멎고 몇몇 사람들 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저도 모르게 힘이 풀린 손에서 누군가 의 찻잔이 떨어졌다. 깨지지는 않았지만 잔은 안에 머금고 있 던 액체를 바닥으로 모두 흘려보내고 몇 바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크리아 제 일 가문이라고까지 불리기 시작한 페 르로이가의 주인은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냥 공손히 늙은 하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허허... 분에 넘칩니다. 후작님." 은은히 풍기는 분위기가 절대 하인 같지 않은, 차라리 어딘 가의 높은 신관 같은 하인은 털털하게 웃었다. 그게 노도의 첫 왕궁방문이었다. 노도는 그 이후로 제법 자주 왕세자궁을 드나들었다.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조숙한 꼬마 공주님과도 꽤 친해졌다. "난 하노베이 백작은 싫어." 언젠가 왕궁 복도에서 하노베이가의 어린 새 주인을 만났 던 날 정원에서 마주친 어린 공주는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 사람은 어딘가 잔인한걸." 그녀답지 않게 꽃 한 송이를 비틀어 꺾으며 소녀는 마음을 달랬다. 노도는 그 특유의 털털한 웃음으로 공주를 달랬다. "그 사람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봐. 싫어." 인상을 잔뜩 구기고 상상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공주는 몸을 부르르 한번 떨었다. "하긴, 정원사에게 이런 말 해 봤자 아무런 소용없겠지만. 그러니까 하는 거야. 아버님께 심려 끼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신가요?" "음. 작은 왕국의 공주란 본래..." 어린아이답지 못한 눈빛을 해 보이며 공주는 작게 중얼거 렸다. "그렇게 팔려가야 하는 거랬거든." 아주 슬픈 눈동자를 떠 보이며.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래. 그게...." 작은 한숨이 공주의 입가에서 오래도록 맴돌았다. 그 모습 을 지켜보던 노도도 가슴이 조금 메었다고... 했다. "난 지켜지기보다는... 모두를 지키고 싶거든. 그게 멋있잖 아." 애써 활짝 피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맺은 그 말이 심장 에 푹 패인 듯 꽂혔다고 했다. 노도의 네 번째 편지는 그렇게 글을 맺었다. "서대륙은 애늙은이들의 땅이 분명해." 이 곳의 지기(地氣) 때문이리라. 난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 다. 노도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질일 듯 싶다. 상황을 보아 하니 하노베이가의 어린놈은 그의 힘을 기르기 위해 왕세자와 접촉하고 있는 듯 하고... 페르로이 후작 역시 그래 보인다. 하 노베이 백작이 노리는 건 어린 공주일 지도 모르고. 프란의 힘 을 업을 하노베이가와의 정략이란 아직 자신만의 힘을 기르지 못한 왕세자로서는 상당히 솔깃한 이야기겠지. "에이. 문파 간의 소소한 머릿싸움조차 골치 아파 단 한번 도 껴 본적이 없는 내가 왜 이 먼 땅 까지 와서 이래야 하는 지...." 정말 나답지 않은 짓이다. "젠장. 나 하녀 맞는 거야?" 세상에 이런 일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하녀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을까! 새삼스럽게 아르페이나가 떠오른다. 눈 앞에 있다면 한바탕 따지며 머리끄뎅이라도 쥐어 잡고 싶을 지경이다. "노도님의 편지입니까?" 요즘 들어 혈색이 핀 금아가 싱글벙글 다가왔다. 이 놈은 가르치라고 붙여준 두 아이들을 제 놈 분풀이용으로 굴리기라 도 하는지 웃음이 부쩍 늘었다. "음." "나쁜 내용인가요?" "별로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골치 아프지 뭐. 나야 워낙 이 런 쪽에 무관심했었으니까." "하긴 그렇죠. 저도 처음에는 적응하기 무척 힘들었었습니 다." 입술을 우스꽝스럽게 삐죽 내밀고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금아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참, 네 아들들은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시달리고 있는가 보더라. 그 때 무도회 선언의 여파가 컸나보던데?" 몇줄 아니었지만 금아의 세 아들들의 소식도 담겨 있었다. "지금쯤이면 구석에 박혀서 수련만 죽어라 한다고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실전 경험이 없지는 않을텐데?" "뭐, 없지는 않았지만... 그 상대라는 게 저 아니면 그 아이 들보다 훨씬 약한 젊은 기사들이었으니까요. 셋끼라야 허구헌 날 검을 맞대니 서로 알 속 다 아는 처지가 되었을 테고, 이제 식상할 데로 식상했으니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밖을 기웃거릴 때가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끼어든 건 아니었지만 실제 그의 세 아들들은 서서히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귀족가들은 그들 의 미동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연 초의 무도회 발표건과 맞물 려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뭐, 노도님께서 특별 갱생 계획을 미리 짜 두셨다고 하니, 누가 며느리로 와도 전 별 반대 없답니다. 그 때야... 셀레라 같은 것이 걸릴까봐 노심초사했었지만, 또 누가 압니까. 클로 네 같은 아이가 들어올지." 그녀가 아주 마음에 들었나 보다. "훈련이 잘 되고 있나본데?" "네. 제 또다른 신분에 대해 전혀 언급해주거나 하지 않았 습니다만 아주 열심히 따라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뭐 아직 몇 일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싹이 있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퉁퉁 불어 나와 말조차 하지 않으려 들더니만 이 제 재미를 꽤 붙였나 보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금아는 잠시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서는 클로네와 클레이브의 책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잠시 후면 종이 치고 귀 족들의 수업이 하나 끝난다. 하인들이 가져온 책으로 바꿔 들 고 다시 수업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금아는 또 어떤 황당한 수련법을 그들에게 제안할까? 설마 벌써부터 투 명의자 수련법을 시키는 건 아니겠지. 체력이 되지 않는 상황 에서 의자에 엉덩이를 띄우고 앉으면 밀려드는 고통에 수업 내용에서 귀가 점점 멀어질 터. 내 도련님의 성적만큼은 떨어 지지 않았으면 하는 게 또 하녀의 소박한 소망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제법 적응했어." 스승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는 이 곳에 사숙이나 사제의 개념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일년 전의 나라면 굳이 동대륙의 예법을 끌어다가 어린 주인과 시 종들의 배분까지 신경 써가며 복잡하게 따졌을 지도 모른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것들. 그들에게는 단지 가르쳐 주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있을 뿐. 사실 그래서 말로는 제자라고 했었어도 스테판이나 크레이에게 동대륙식의 사제관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제자라기보다는 귀여운 양자 둘 들였다고 생 각하는 참이다. 또 그 편이 편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만 늘 뿐 이다. "그럼... 금아가 내 몫까지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난 좀 늘어 져 볼까?" 제법 후덥지근해진 날씨에는 농땡이가 최고다. 난 의자에 길게 늘어져 다리를 쭉 뻗었다. "후아....아?" **** ^^. 달아주신 리플들 잘 읽어봤습니다. 연발하는 오타는... 나름대로 거르는 것만으로는 안잡힌다는 죄송스런 말씀 올립니다. 지적해 주신 부분은 열심히.. 원본에 반영하고 있답니다. ^^;;;; 그리고... 지난 회에서 란이 자신에게 배우면 무조건 강해진다는 것 같다 고 고쳐달라고 하신 부분에 대한 약간의 변명입니다. 강해진다는 상대적 의미로서의 강함입니다. 절대적인 강함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설정한 란이 지니고 있는 재능에 대한 관점도 일반적인 부분들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그렇다 해도 평범성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그건 란의 과거 설정과 맞물린 부분이기에... 몇화 뒤에 나올 예정입니다. 그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86, Read : 4225, IP : 211.215.58.156 2002/09/12 Thu 03:12:25 → 2002/09/12 Thu 03:16:27 zinoel ......하녀 농땡이 치다 2002/09/12 zinoel ...설마 노도랑 공주와의 러브러브 썸씽이 맞아...도주? 2002/09/12 lina 2타당 2002/09/12 lina 찐짜 설마여^^ 리메전의 오프닝이 넘 맘에 들었는데.....그대목이 나올까 모르겠네엽^^ 2002/09/12 Baal 사랑엔 국경도 없는데 그 정도(?) 나이 차야.. 노도 할아범 화이팅!! 2002/09/12 소냐 아무래도 노도가.. 크레이브랑 이어주거나.. 스테판 아님... 크레이랑.. 이어질꺼 가타.. ^^;; 2002/09/12 han 노도와 공주와 러브러브가 이루어진다면 완전 초초초 원조교제네요 2002/09/12 쿠오오 셋끼라야 -] 셋끼리야 로 수정. 그리고 윗분에 대한 추가의견으로.. 혹시 금아의 바램이 이루어져두 초초 원조교제 2002/09/12 쿠오오 으흠.. 다시 위의 리플들 다 읽어보니.. 다들 생각이 좀... 퇴폐적인듯한.. -_-;; 2002/09/12 쿠오오 오늘은 집에 일찍가서.. 파판X 랩업 노가다나.... 칠요의무기봉인을 다 풀어야하는데.... -_-;; 2002/09/12 은빛 오오..그런 노가다를..ㅡㅡ;;전 그냥 종족재패에 지역재패만 하고 끝냈습니다. 사원에서 변종 에온들을 무찌르니 리미트 브레이커 마구 주던데...그냥 그걸로 연명을. 하핫.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서 한 캐릭으로 동생과 나눠서 했었죠. 둘이서 한 게임을....ㅡㅡ;;;; 99999가 보고 싶은 마음에. 2002/09/12 박여울 아쏴.. 상위(?)권..쿨럭..-_- 2002/09/12 호기심 공주가 조금 불쌍하네요. .....그런데, 대화를 들어보니 금아가 가르치는 제자는 클레이브랑 클로네 인가 보네요? 2002/09/12 박여울 게..게임..쿨럭..으으..이..이봐요..하고 싶어 지잖아앗~!! (떨어지는 성적.. 날아오는 사랑의 작대기.. 쿠어억..날아가는 여울이..T^T) 2002/09/12 항아 음.. 항상 틀리는 게 하나.. 있어요. `들어내다:물건을 들어서 밖으로 내놓다,있던 곳에서 쫓아내다` `드러나다:속에 가려져 있던 것이 겉으로 나타나다,감춘것이 밝혀지다` `드러내다:드러나게하다` 입니다. 그리고 `몇 일`이란 말도.. `며칠`이 맞을거예요. 자꾸 거슬려서 툴툴거려버렸었네요^^; 죄송~ 2002/09/12 아르타나 음~~ 플스라~~하지메 일보하고시포~~ㅜㅜ 2002/09/12 ruzen `항아`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그에 대해 리플을 남기려고 했는데, 이미 남기셨네요. 은빛님, `들어내다`..라는 뜻의 의미는.. `창자를 들어내다(수술로;)`에 사용됩니다. `드러내다`는 모습이나 기운을 드러낸다.. 뭐 이런 경우에 사용되지요. 아마, 프롤부터 이 오타는 계속 존재해왔던 것으로 압니다;;; 2002/09/12 운랑(雲 잘봤어요^-^ 서대륙은 애늙은이들의 땅이 분명해-_-ㅋ 이거보고 웃겨 쥭는쥴 아라써욬 ㅋㅋㅋ ㅇ ㅏ 너무재미쎀ㅋ 언제한번 연참좀 해쥬셔요ㅠ_ㅠ 그럼 건필하세여 2002/09/12 케케 +용기물약을 너무 드신것 같해서 마련했습니다+ 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못합니다.상실물약을 먹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연참을 ?/p> 2002/09/12 Nadesico 케케라는님 정말 짜증나는 분이군요..왜 이런걸 도배하는건지..ㅡ.,ㅡ; 2002/09/12 냥클레이 두 귀족 아이들과 두 평민 아이들의 배분문제는 간단하지냥. 란이 네명의 사부 노릇을 하고 금아가 대사형하면 되자냥~. 란이 귀찮은 것 싫어하는 성격 상 + 금아의 정치적 배경 때문에 귀족 아이들이 금아에게 배우고 있는 참인데, 두 아이들이 사숙이니 뭐니 따질 것 없이 대사형에게 기초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히 냥냥이 생선 물어가면서 담 넘어가듯이 설명할 수 있네냥~. 2002/09/12 세이 아참... 이런거 도배좀 하지 마여 짜증나자나여!!! 2002/09/12 사악1004 은빛님..서대륙에 애들이 애늙은이가 아니라... 은빛님이 쓰신 글에..유독 애늙은이들이 많이 나오는 듯..ㅋㄷㅋㄷ.. 2002/09/12 베르디안 후후~ 란은 요즘따라 농땡이를 부리는것 같네염~ ^ㅁ^* 어째든 힘네세여! 2002/09/12 카이널 ㅡㅡ 도배 따위를 하다니... 사악함의 근원같으니라구... 흠.. 몇화뒤에 뭐가 나올지... 기대~ 2002/09/12 라인 후후... 란이 때아닌 정치판때문에 골치썩이는 군요. 님.. 건필하세요~~! 2002/09/12 지옥숙녀 건필!! 2002/09/12 1 으음... 이렇게 했는데 어떻게 프롤로그에 나오는 그 불쌍한(?) 클레이브라 됬는지...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만 새삼 궁금해 지는군요 2002/09/13 아르타나 케케님~ 업드려 비나이다 제발 도배좀 하지 마세여~~~ㅠㅠ 2002/09/13 으라차 근데 이거 창파기와 연결 되는 겁니까? 2002/09/14 으라차 왠지 모르게 란이 쪼잔해 진것같아 2002/09/14 키너스 아하핫~!! 애늙은이의 땅이라니... 표현이 참 대단하십니다.. 하하.... 2002/09/14 은시하 제발제발제발..ㅜㅡㅜ 창파기 연재를!! 2002/09/14 armi 왠지 창파기와 연결될것 같지 않아요? 생각해 봤는데요, 일단, 륜이랑 란이랑 성격이 비슷하잖아요,거기다가 현재의 륜은 자아를 찾는중... 왜 신이 되고 싶어했는지 찾는중이잖아요, 전생이 아니었을까요? 쨘...하고 그렇게 결론 지으면 어떨까요? .....................그냥 생각만........ 2002/09/15 DNGNT 후후후... 결국은 하루가 지나가는 군요... ...이틀에 한번은 올린다면 서요;ㅁ;!! 2002/09/15 흑영 음ㅡㅡ/ 건필부탁하면서염... 맥하고 아이비앰 같이쓰기가 짜증나지않나염 ㅡ.,ㅡ; 제가 일러작업을 함니다만 맥에서 씨디를구우면은 아이비앰에서 아에 않뜨더군염... 음 성공하실 빌며 한마디 써본니다. 2002/09/15 눈이 글 안쓰시나여? ㅠ.ㅠ 2002/09/15 베르디안 은빛님~~ 왜 올려주시지 않는거에요!~ ㅠㅁㅜ 2002/09/15 베르디안 으앗! 아,..아직.. 없네여.. ㅡ_ㅜ 이제 좀만 있으면 4일째인디.. 그때 올리시려나.. 이휴~ 2002/09/15 수기 보고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2002/09/16 티아 은빛님의 글에 울곳 웃는 사람들이 많아요,.. 생각해주세여.. 2002/09/16 아라리요 전생은 될수 업을것 같숩니다. 창파기에서 적호는 륜이 만든(?)아이중 하나 아니었던가요? 움..맞는지 몰겠넹. 2002/09/16 쿠오오 배고픕니다... 마음의 양식이 먹고 싶습니다. 2002/09/16 베르디안 크억!! 아..아직더.. ㅠㅁㅠ 나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염. (어디가?) 은빛님 어서 올려주세요.. 2002/09/16 만두 허허허. -_- 16일인데 2002/09/16 ㅠ.ㅠ 우웟~빨뤼 울 금아랑~~~, 란이랑 연결시켜줘욤........ㅜ.ㅜ 2002/09/16 DNGNT 훗,... 5분후면 17일 이군...-_- 2002/09/16 seoli 예 이제 17일 이예요...ㅠㅠ 2002/09/17 쿠오오 17일 하고도 9시가넘어서 이제 10시가 다되어 가는데.. 글은.. 소식이 없다는.... T_T 글을 올려주세요.. 은빛님... 혹시 또다시 플스2의 마수에.. -_-;; 2002/09/17 이런..` 왜 안 올라오지..ㅡㅡ;;; 2002/09/17 레이스터 아마 한방에 몰아서 올리시려나봐요 ~_~; 2002/09/17 아흰 꿈이었나 봅니다.... 간밤에 글이 올라와 있어 읽었던 것 같은 기분이........ 꿈이었나 봅니다.......... 2002/09/17 ....... 왜 안올라올까나... 이틀에 한편은 물건너 같고 또 잠수인가.... 2002/09/17 소애 또 아프신건 아니시죠? 건강하세여 ㅠ_ㅠ 2002/09/17 베르디안 ㅠㅅㅠ 오늘은 올리실거죠? 꼭 올리셔야 해요 은빛님.. 2002/09/17 탐라 17일 저녁 8시하고도.. 25분이 지났네여.. 설마 오늘도 넘기실려낭?? 2002/09/17 DNGNT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미쳐가고 있음-_-;) 올려요!! 올리란 말이야아아아-!!!!!!!!!! 2002/09/17 눈이 은빛님... 미오할꼬야. 만날 약속은 안지키구... 툭하면 잠수드러가구... 폐활량은 마니 늘었겠군여 ㅡㅡ 2002/09/17 만두 몇일째이신건가요0_0 어서 오셔야지요. 2002/09/17 나쯔히메 헉뜨.. 간만에 와서 `아..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와있을까..^----^ 오늘 다 볼수나 있을까....` 했던 생각이 어찌나 허망해지는지.. 17일이 다 가고 있습니다.. 5일째죠.. 으흐흑.. 접때처럼 또 보름을 넘기는 건 아니겠지요.....ㅠ.ㅠ 2002/09/17 DNGNT 아하하하하.! 18일이 되기 18분 남았네요;ㅁ;+ 어서 오셔요. 2002/09/17 클리핑 앗. 18일입니다.. 기다리고있습니다. 2002/09/18 탐라 18일이네요.. 벌써 29분이 지났습니다.. 설마 오늘도??안올리시는건...ㅡㅡ;; 2002/09/18 환상유희 저기 이글 퍼가두 되나여? 허락하신다면 멜 부탁드려여 2002/09/18 검은포효 서...설마 나중에 나타나셔서 저 아폴로 걸렸었어여~~~라고...구라라도 치시려는건..............어여 돌아오세여~~~ 2002/09/18 쿠오오 으흠.. 저위의 케케 라는 것이 짖은 것에 상처입으셨나.. -_-? 언제쯤 글이.. 그리고 저런 글은 지워버리세요.. -_-;; 2002/09/18 베르디안 우엉.. 아직도 안 올리셨잖아.. 머에요.. ㅠㅁㅜ 이럴수가 있어여??! 이럴수는 없어요!! 없다구요!! 없어!!! 으악!!!~~~~~(미쳐가고 있음.) 2002/09/18 Baal 작가님이 올해 안에 마무리를 하신다구 했는데 이런 페이스면 아마 계속 안 쓰시다 12월달에 몇편 허접 날림으루 때우고 완결인가? 2002/09/18 탐라 이제 19일이 2시간 남았습니다..ㅡㅡㆀ 2002/09/18 나쯔히메 시간이 지나 1시간 40분이 남았군뇨... 2002/09/18 만두 19일. 1시 17분. 2002/09/19 뉴그뉴 .....다시 배신당한 꿈이여.... 이틀이면 만날 수 있다던 란이... 금아가... 클레이브가... 스테판이... 클로네가... 클로이가... 우와아앙앙앙.... 은빛님 COME BACK~!!! 이틀 지났는데....이틀이 가고... 사흘이 지나며.... 나흘도 흐르고... 닷새가 밝았으며... 엿새가 저물고... 이레째가 시작되었건만... 라아안~~ 그으음아아아~~ T^T 2002/09/19 어너~ 헉 아직두 안올라왔네요.. ㅜㅜ 빨리 보고 싶은데. 2002/09/19 쿠오오 휴우..... 2002/09/19 V.F.S.M. 그....글이 보고싶다.... 그...글.....글을........ 쿨럭..... 정확히 17시간 27분만에 연재속도를 따라잡았다... 다음내용이.... 쿨럭... 무....무엇인지.......... 커헉....... 2002/09/19 dark 위에 파판x렙업 노가다 하신분 있던데 그거 노가다 할필요 없던데 ㅡㅡ;; 어떤 동굴에서 매직 무슨 항아리에서 오버드라이브를 ap로 해놓고 오버드라이브를 대기로 놓은담에 계속 세모만 누르면 알아서 렙업이 ㅋㅋㅋ 이걸로 전 한번에 90까지 올려 봤져 ㅋㅋㅋ 2002/09/19 아르타나 쩝~~ㅠㅠ 혹시 케케님의 저주라도 걸렸나?ㅠㅠ 그럼 안되는데~~흑흑~~ 2002/09/19 박여울 커헉.. 아르타나 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무섭게 하셈.. T^T 만약 그럼 케케 님(도 붙일 필요 없을거얏!! ]_[) 혼낼꺼야욧!! 어떠케..어떠케.. ㅠ_ㅜ 자, 이제 우리는 오직 장군이의 덩치만을 믿어야 합니다.. 장군아!! 배치기!! 눈꺼풀 깨물기!! 손 깨물기!! 꺄오옷-- -_-;; 음.. 어쨌든.. 은빛 님.. +_+ 크흐흐.. 만약, 추석이라고 `추석 연휴~~` 하면서 놀러가면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런데.. V.F.S.M. 님.. -_- 무섭심늬다.. 저는 몇 번에 걸쳐서 봤눈데.. ^^; 2002/09/19 베르디안 ...이제 미쳐도 소리지를 힘도 없군여.. 하아~ 은빛님 분명히 추석은 추석이라고 땡땡이 치실거죠? 크윽.. 은빛님 나뻐!!! (다다다다..!) 2002/09/19 DNGNT 음훗. 제 손에 들린 반짝이며 아리-따운 사시미양 [어쩌면 군일수도;]의 자태가 안 보이십니까? 만약 보이지 않으신다면... ...상당한 경지에 오르셨군요;ㅁ;! 2002/09/19 쿠오오 dark님.. 매직포트로 하는거는 일본 오리지널에서만 되구여.. 저는 인터네셔널 버젼이랍니다.. 그래서 매직포트 대안으로 하는것이 캑터킹(이름이 정확하진 않은거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여튼.. 사보텐더 종류의 몹으로서 몬스터 훈련장에서나오는것)과 돈 톤베리(역시 몬스터 훈련장에서 나오는 것으로 카르마 데미지가 99999 까지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위에 글을 쓸 당시에는 돈톤베리나 캑터킹을 불러 이길만한 능력이 않되서였구여.. 지금은 되서리.. 돈톤베리로 어제 성공적으로 랩업했습니다.. 한번전투에 스피어 레벨 2~30대 까지 무난히 오르더군여.. 한번에 90까지는 아니더라두.. 대신 3명이 동시에 오르니깐 그것두 괜찬더군여.. ^^ 2002/09/19 쿠오오 뇌평원 지역제패해야 캑터 킹이 나오는데... 뇌평원에 한종류를 잡질못해서... (사보텐더인가 싶은데..) 2002/09/19 쿠오오 근데.. 글은.. 글은... 언제쯤이나. T_T 은빛사마... 힘을 내 주세여..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2002/09/19 수기 현재시각 9/19 11:01 왔다갑니다.흑흑... 2002/09/19 seoli 현재시각 9/19 11:15... 저두 왔다 갑니당...ㅠㅠ 2002/09/19 보로 으음... 노도가 다시 환골탈태, 반노환동 한 다음 공주를 데리고 날라버리는 스토리는 어떨까요 ^^;; 아님 그냥 제자나 하나 들이고 마나? 2002/09/22 Name Mail 72 [푸념]써 놓은 글이 날아간다는건... [30] 은빛 2002/09/27 1464 71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37] 은빛 2002/09/23 2980 70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24] 은빛 2002/09/22 2488 69 [공지]가벼운 알림 [38] 은빛 2002/09/19 2386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86] 은빛 2002/09/12 4225 67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44] 은빛 2002/09/09 3506 66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12] 은빛 2002/09/09 3225 65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42] 은빛 2002/09/05 4063 64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37] 은빛 2002/09/04 3784 63 [[The Perfect MAID]]-57-편지. [31] 은빛 2002/09/02 3610 62 [[The Perfect MAID]]-56-편지. [37] 은빛 2002/08/31 3671 61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49] 은빛 2002/08/29 3977 60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4] 은빛 2002/08/28 3846 59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5] 은빛 2002/08/28 3595 58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43] 은빛 2002/08/27 2923 1 [2] [3] [4] [5]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아직 어린아이일 뿐일텐데?" 주인의 미간이 접혔다. 고개를 숙인 남자는 자그마하게 한 숨을 삼켰다. 형보다는 더 융통성이 있는 편인 주인이었지만 그 역시 사막의 전사임을 자처하는 강한 자였다. "아직 뛰어 놀고 몸을 기를 어린 나이다." 주인의 눈동자에 언 듯 연민까지 스쳐 지나갔다. 남자는 이 래서는 안된다 마음먹었다. 주인은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사람 이었다. 서글서글하고 막힘이 없는 성격과 자애로움까지 주인 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의 주인의 성격은 남자의 보물 이었다. 그런 점에 반해 스스럼없이 부하가 되기를 자청했었 다. 그러나 경우가 달랐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그 아 이는 사막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었다. 육체적인 힘 이전에 권모술수부터 배워야 하는 그런 땅에서 태어난 아이. 어린아이 라는 것만으로도 경계심을 풀어 버리는 주인의 태도가 남자는 불안했다. "아무리 정치라 하더라도 내키지 않는군." 사막에서 태어난 자들 중 정치감각이 가장 잘 살아있는 자 중 하나였다. 사람을 만나 자신의 사람을 만들고 키워나가는데 천부적이랄 수 있는 소질을 지닌 둘째 우그르트였다. 계책을 꾸미더라도 음모는 꾸미지 않는 그의 당당한 성격은 거칠고 직선적인 면이 강한 프란의 우그르들에게 그가 첫째 우그르트 에 비해 부족한 육체적인 강함이라는 약점을 감싸주는 좋은 방패이자 무기였지만... 프란은 더 이상 옛날의 소수 부족국가 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이제 당당한 제국의 모습으로 우뚝 서 주위의 나라들과 서로 얽히고 연계되고 함께 나아가야 했다. 감시와 음모 또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었다. "아직 어리다. 이제 막 검을 들기 시작한 어린 전사일 텐데. 그런 어린아이에게까지 감시의 눈길을 뻗어야 한다는 건가? 이 우그르트 우트트가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자라는 말이냐!" "그는 어린아이이기 이전에 첫째 우그르트 움크님의 도움자 인 페르로이 가문의 후계자입니다." "이런..." 그의 주인 우트트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강함과 힘을 숭 상하는 그들에게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했다. 세상이 변했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옵니다. 보시옵소서. 각 국에서 아 르카이아에 모인 자들이 벌이는 짓거리를. 그들 모두가 어린 자들이옵니다. 하오나 그들의 짓거리는 나이 먹은 승냥이와 같 사옵니다. 그들에게는 호흡을 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옵 니다. 주인님의 성품을 모르는 것은 아니옵니다. 하오나..." 열정과 충성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부하의 눈동자를 바라본 우트트는 살짝 시선을 돌렸다. 충직한 벗이자 신하인 그의 심 경을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강한 프란의 전사인데. "주인이시여. 그들은 사막의 아이들이 아님을 기억하여 주 시옵소서. 그들은 단련된 힘의 위대함을 모르고 그저 한 주먹 만한 머릿속에서 나오는 귀계들로 상대방을 얽어매는 것만이 최고라 생각하는 자들의 피를 이었습니다." 순간 우아한 몸짓으로 교소를 터뜨리던 셀레라의 모습이 우트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적에 게는 가차없이 날카로운 이와 독설을 들어 내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에게는 봄날의 꽃송이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소녀. 지나가다가 힐끗 스쳐보았던, 독사보다도 더 독 한 눈빛으로 정적을 노려보던 그녀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알고 있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상반된 모습을 한 순간에 보여주었던 여인. 그녀 역시 스무살을 넘지 못한 소녀였다. "알겠다. 내 잠시 잊었다. 그들이 프란의 전사들이 아님을. 그들이 어린전사가 아님을." 우트트는 쓴 미소를 지었다. "주인이시여."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단, 그들은 아직 중요한 손님이다. 앞으로 어떤 변수를 탈지 모르는..." 골치아픈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우그르트 우트트는 천천 히 몸을 돌려 의자를 끌어당겼다. 푸른빛 윤기가 도는 대나무 의자가 살짝 휘어졌다. 길다란 팔걸이에 팔꿈치를 여유있게 기 대며 우트트는 눈썹을 내리 감았다. 가는 한숨이 흘러나갔다. "그만 가 봐도 좋다." 그의 충복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주인의 방을 빠져나왔다. 길다란 복도 앞을 기키고 서 있던 자 들이 우트트의 충신에게 잠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는 궁정 외곽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따가운 햇살이 머리 한 가운데를 내리쬈다. 오늘 같은 날은 터번을 두껍게 쓰고 말을 달리면 기분이 좋을텐데. 생각이 스 치고 지나갔다. 점차로 부강해지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힘의 대가라도 치루는 것처럼 변해가는 모습들이 달콤 씁쓸하게 섞 여 흘러간다. 남자는 잠시 눈가를 좁히고 하늘을 바라봤다. 어 릴적 보던 것과 같은 하늘일텐데 많이 달라 보였다. '내가 변한 거겠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남자는 곧 잡생각을 털었다. 다행히 우트트를 설득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약속 을 미리 잡아놓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는 나름대로 표정을 풀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궁정 후문 밖 커다랗게 자란 나무 아래 남자가 발걸음을 멎자마자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덥수룩한 구렛나루를 보기 좋게 정리한 거한이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입가 한 가 득 띄운 거한은 하늘빛을 띈 푸른 눈동자를 재치있게 빛냈다. "음." 남자는 작게 신음성을 흘렸다. 그가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거한의 모습이 조금은 놀라웠다. "흰 옷인가?" "네?" 잠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어보인 거한은 피식 웃음을 흘 렸다. 남자는 다시 한번 거한의 외모를 꼼꼼히 살폈다. 시원해 보이는 터번으로 머리를 꼼꼼하게 싼 거한은 엷은 노란빛을 띄는 얇고 시원한 천으로 온 몸을 경쾌하게 감싸고 있었다. 살 짝 불어온 바람에 그의 등뒤에 늘어져 있던 흰 망토가 가볍게 흔들렸다. 유람이라도 나온 귀족 같은 모양새. 어둠의 일을 하 는 자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맡기실 일이란?" 거한의 몸짓에 어떤 위협감도 담겨있지 않았다. 시종은 고 개를 약간 갸웃해 보였다. 남자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 다. "여기 있다." 미소가 서늘했다. 분위기가 확 변했다. 좀 전의 평화로움은 말짱 거짓인냥 순식간에 식었다. 시종은 빨리 자리를 뜨고 싶 어졌다. 그는 자신이 동요하고 있음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 도록 표정을 지켰다. 작게 접은 종이 한 장이 남자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남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종이 는 사라졌다. "어떻게?" 마법처럼 사라진 종이를 눈으로 찾으며 시종은 잠시 당황 했다. 남자는 하얀 이를 씨익 들어내며 웃었다. "마법이랍니다." **** 무지 짧죠? 하지만...오늘 쓴 분량이 이것 뿐이라... ㅡㅡ;;;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더니 글이.. 막히는 군요. 하핫... ㅡㅡ;;;; 밤새 내내 써 보고, 내일 아침이나 저녁쯤 다음편 올리겠습니다. 그럼!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24, Read : 2488, IP : 211.215.59.15 2002/09/22 Sun 21:51:22 1등? 설마??? 1등??? 2002/09/22 1등? 우하하~ 첨으로 해보는 1등! 은빛님 화이팅~~~ ^^* 2002/09/22 베르디안 와핫!! 내가!!내가 2등이닷!!! 우하하하하!!! 어째든 은빛님 감사히 읽겠습니다!! ^ㅁ^* 2002/09/22 베르디안 3등이었네요.. ㅡ_ㅡ;; 2002/09/22 @@ 4타당~^^ 2002/09/22 @@ 3타였네요~^^1등님하고 베르디안님이 두번씩 쓰셨으니깐~ 건필하세요~! 2002/09/22 에반젤린 운이 좋아서 첫타네요 수도없이 들린 결과일라나... 명절 후유증 잘 갈무리 하시구요 몸 챙기고 글쓰세요~ 2002/09/22 베르디안 아.2등이 맞았구나.. -////- 쑥스.. 2002/09/22 sue 드디어 돌아오셨군용^^ 2002/09/22 JE 짜..짧군요!! 그래도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행복하답니다. 헤실헤실^^ 2002/09/22 애국동맹 음냐.... 2002/09/22 DNGNT 아아... 드디어;ㅁ; 2002/09/22 낭만고양 억수로 오래 기다렸심다... 매일 연재 성실연재 해주십숑~~ 2002/09/22 asran 명절...별탈없이 잘 보내셨는지?? 전 배고픈명절이었슴댜..ㅠㅠ 건필하세요.... 2002/09/22 러브판타 정말 오랜만이에요..좀 짧지만 ... 2002/09/23 멜로막스 별 기대 안하고...들어왔는데....정말 정말 반갑네요.^^ 간밤에 도둑도 들구 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는데...이제 다시 즐겁게 시작해야겠네요.^^ 2002/09/23 아르타나 ㅠㅠ~~ 은빛님~~화이~~팅~~!!!건필하옵소서~~!! 2002/09/23 이란 짧군요~. 짧아요 2002/09/23 아리 저도 은빛님 남자인줄 알았다는...;; 자자 이제 다들 열심히 본업에 충실히...;;; 2002/09/23 사악1004 올만이네요..추석은 잘보내셨어요?? 그럼..앞으로 글 기대할께요..^^ 2002/09/23 코로코로 오랜만이에요- 행복한거 아시죠? 2002/09/23 ez 저...딱 한 마디만 할게요... `들어내다`가 아니라 `드러내다` 아닌가요? 2002/09/23 지옥숙녀 은빛님..사랑해요!-ㅁ-!! 2002/09/23 박여울 쿨럭.. -_- 1박2일로 수련회 갔다가 막 돌아왔습니다. T^T 좀 늦게 봤군요. 근데 2편!! +_+ 얼른 갈무리하게쑴다. 2002/09/24 Name Mail 72 [푸념]써 놓은 글이 날아간다는건... [30] 은빛 2002/09/27 1464 71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37] 은빛 2002/09/23 2980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24] 은빛 2002/09/22 2488 69 [공지]가벼운 알림 [38] 은빛 2002/09/19 2386 68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86] 은빛 2002/09/12 4226 67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44] 은빛 2002/09/09 3506 66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12] 은빛 2002/09/09 3225 65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42] 은빛 2002/09/05 4063 64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37] 은빛 2002/09/04 3784 63 [[The Perfect MAID]]-57-편지. [31] 은빛 2002/09/02 3610 62 [[The Perfect MAID]]-56-편지. [37] 은빛 2002/08/31 3671 61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49] 은빛 2002/08/29 3977 60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4] 은빛 2002/08/28 3846 59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5] 은빛 2002/08/28 3595 58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43] 은빛 2002/08/27 2923 1 [2] [3] [4] [5]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후아....아?" 한껏 벌리던 턱이 순식간에 동작을 멎었다. 아주 익숙한 감 각 하나가 신경을 한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뭐야 이건?' 불길함 예감에 대한 감각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삼백여년 가까이 잘 갈고 닦아온 내 감각은 완벽 에 가깝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냄새도 없었다. 잡할 정도로 살기가 뻣친 것도 아니다. 기척도 없었다. 주위에는 평범한 작 은 새나 쥐 한 마리 정도가 움직이고 있을 정도의 감각만이 부잡하게 오가고 있었다. '노련한데?' 그러나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이 곳으로 침입했다. 이 서대륙의 마법이라고 부르는 문명은 꽤나 특이하고 골 치 아프다. 스크롤이라고 부르는 마법의 힘이 담긴 종이 몇 장 이면 어지간한 마스터에게도 기척을 숨길 수 있다. 뭐,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자들에게 통하는 일이겠지만... '아깝군. 막 쉬려던 참이었는데.' 가볍게 잠이 들려던 찰라. 방해받은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런 찜찜함을 일거에 내리누르는 호기심과 설래임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툭- 문이 열렸다.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정도의 소리. 없는 것 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들린 소리였다. 나름대로 전문가라며 날 뛰던 하르크에 비교할 수 없는 솜씨. '수면향인가?' 바람에 날리듯 수건 한 장이 입가를 스쳐갔다. 익숙한 감각 을 전해주는 냄새가 잠시 느껴졌다. 난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공기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온 누군가가 내 머리를 받쳐들었다. 눈꺼풀을 들어보고 볼을 톡톡 두드려보며 잠이 들었는지를 아 주 신중하게 살펴본다. '이거 재미있게 됐는데?' 아무리 나름대로의 미모가 받쳐 준다지만 신분이 낮은 내 게 첫 눈에 반해 업어 가는 것도 아닐텐데 일개 하녀일 뿐인 나를 왜 납치하려 하는 걸까? 이 정도의 전문가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리는 없다. 분명 뒤에서 사주한 자가 있을 텐데 누구의 소행일까? 잠시 후 죽은 듯 깊이 잠든 척 늘어져 있는 내 반응에 안 심했는지 침입자는 날 조심스럽게 업어들었다. 두 팔을 어깨 쪽에 걸치게 하고 엉덩이를 받쳐 든 자연스러운 자세. 또 한번 의 호기심이 인다. 납치라면 보통 커다란 상자나 자루에 넣어 짐짝처럼 옮기는 게 일반적인 상식일 텐데. 어떤 놈이길래 이 렇게 대담하고 자연스러운 걸까? -탁- 놈은 몇 번 날 추슬러 본 다음 조심스럽게 문을 나섰다. 시 원한 복도의 공기가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탁탁 문 열 리는 소리 몇 번이 들린 후 등짝으로 뜨듯한 햇살이 느껴졌다. '벌써 밖으로 나온 건가?' 뭔가 비밀통로가 있는 게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빨리 나 올 수 없다. 난 감각을 조금 더 쪼삣하게 세웠다.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단련 되 쓸만한 내 방향감 각이 대강의 위치를 머릿속에 그려냈다. '벽 사이에 비밀 문이 있던 게야. 그 뒤로 비밀 통로와 계단 이 있었을 테고.' 아마도 지금 위치는 기숙사 뒤편일테다. 지금 이 시간이라 면 대부분의 하인 하녀들은 각기 주인의 책을 들고 교사로 찾 아갔을 테니 인적도 뜸할 테고. 아, 그 뜸한 인적 사이로 익숙 한 기척 하나가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다. '란님!' 머릿속으로 다급함 목소리가 들려왔다. 겁이라도 먹은 냥 외마디 비명같은 전음성. 난 날 납치하는 자가 느끼지 않도록 조심하며 몸 속의 기운을 가다듬었다. '쉿! 조용히 해.' 대강의 방향을 잡은 후 난 금아에게로 차분히 전음을 보냈 다. 빛살처럼 가까워지던 그의 기척이 딱 멎었다.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전음이 떨려왔다. 화가 났던 모양이다. 당장이라도 날아와 날 들쳐업고 있는 자를 죽이기라도 할 듯한 그의 기세에 납치 범의 몸이 슬쩍 굳었다.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살피는 기색 이 살기의 근원지를 찾는 모양이다. 그는 업고 있던 날 내려 놓았다. 등으로 용수철처럼 탱탱한 풀잎 느낌이 새겨졌다. '뭐, 심심했던 건 사실이지만 장난은 아니야.' 내 옆에 살짝 주저앉으며 그는 농땡이라도 치는 하인처럼 다리를 주욱 뻗었다. 그 어느 누가 보더라도 주인들의 눈을 피 해 시간을 즐기는 한 쌍의 하인들로 보이리라. '라, 란님!' 금아의 목소리가 조금 더 거칠어졌다. '흥분 가라앉혀. 금아. 자칫하다가는 일 망치겠다. 이 곳에서 누가 날 해칠 수 있겠어.' 금아의 살기가 줄어 들어갔다. 나는 내심 한숨을 삼켰다. 납 치범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위험합니다. 란님. 물론 란님을 어찌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는 없겠지만 그건 정면으로 부딪혔을 때의 일입니다. 등뒤를 노리는 그런 술수들은 란님이 상상하시 는 것보다도 훨씬 악랄한 법입니다.' 날 어찌 보는지 금아는 걱정이 한 가득이다. 내가 삼백년 묵은 인간이라는 것을 정말 아는지... "크흠흠!" 납치범의 헛기침은 정말 평범했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금아. 살기 지워. 이러다가 이 놈 날 버리고 달아나겠다.' '란님.' '이 놈이 설마 날 노리고 이러는 거겠어? 남들 보기에 평범 한 하녀인 나를? 아니야. 정말로 노리는 건 클레이브지. 적이 그림자를 들어낼 때 잡아야 하는 건 상식이야.' 잠시 더 주위를 살피던 그는 망설임을 접고, 남들 들으라는 듯 뭐라뭐라 궁시렁대며 날 다시 들쳐업었다. '그래서요 란님.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납치범이 느끼지 못하도록 극도로 기척을 감추고 조심스럽 게 다가오는 금아의 느낌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배후를 캐내야지.' '위험합니다.' '뭔들 위험하지 않은 게 있었나.' 납치범은 결국 날 업어가기로 한 모양이다. 그는 훨씬 더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란님!' '따라오지 마. 내가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 그리고... 두 분 시중은 당분간 네가 도맡도록 해.' 안절부절못하는 금아와는 달리 지금 이 상황에 한껏 만족 감을 드러내며 난 흘러나오는 웃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애 써야 했다. '어떤 놈일까?' 힐끗 실눈을 뜨고 바라본 뒤편에 화를 삭이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러대는 금아의 모습이 조그맣게 들어왔다. '미안! 갑옷 손질 좀 부탁할게!' 납치범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게 눈을 찡긋여 보이며 난 나름대로 친절한 미소를 띄워 보냈다. 운명이라는 악동의 장난 에 휘말려 고생 쫄쫄이하고 있는... 전 대공 금아에게. **** "젠장! 자신이 여성이란 자각이 조금도 없으신 거야!" 명치끝이 저릿했다.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란과 납치범의 모 습을 바라보며 금아는 안타깝게 발을 굴렀다.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서 뒤라도 밟고 싶지만... "그렇다고 오랜만에 저렇게 희희낙락 좋아하는데 방해 할 수도 없고." 그게 문제였다. 잠시 나눈 전음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 대감과 흥분감을 란은 감추지 않았다. "얼치기 같으면 걱정이나마 덜 할텐데."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란이 미미하게 뿜어내고 있 는 기운이 아니었다면 아예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분명 마법사이거나 그런 존재들의 도움, 혹은 힘을 보조받은 자이 다. 단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만으로 그의 안목을 속일 수 는 없다. "제기랄." 그래서 걱정은 더 무겁다. 어지간한 자가 아니면 그런 힘을 동원하지 못한다. "크레이를 돌보시더니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 어진 거야. 분명히." 크레이 앞에 감히 미인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란이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로 뭔가 미묘하게 바뀐 분위 기 때문인지 요즘들어 더욱 인기가 높아진 그였다. 오죽하면 귀족들의 거처인 이곳에까지 크레이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자 자할까. 늘 클레이브의 곁을 지키는 클로네가 아니었다면 클레 이브는 크레이의 후원을 자청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분명 벗 기 힘든 오해를 사고 있으리라. 뭐, 안타깝게도 늘 붙어다닌 덕분에 그 오해의 구렁텅이에 깊을 데로 깊이 발을 딛어버린 스테판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니면... 내 탓인가?" 사람을 매혹시키는 건 단지 외모만은 아니다. 은은하게 베 어나오는 분위기 또한 사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단 말이다." 금아는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찼다. 학기 초반에 복도에서 우연히 스친 란에게 한눈에 반했다며 추파를 던져 오던 옆 복 도의 하인 두어명을 굶주린 드래곤 오크 패듯 두들긴 건 순수 하게... 그들을 위한 일이었다. 상상을 해 보라. 만일 그들이 그 대로 란에게 집적거렸다가는 어찌 될지. 아마 얻어터진 오크가 부러워질 지경이리라. 금아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달 랬다. "후." 란의 시간을 잊어버린 듯한 분위기는 사람을 끌어당겼다. 이국적인 외모도 그랬고 객관적인 기준을 끌어 당겨봐도 분명 미인에 속하는 이목구비도 그랬지만... "모르겠다." 이미 반해 버린 사람에 대해 제 삼자적인 시점을 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금아는 솔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 다. 란이 지랄같은 일면을 알고서도 이렇게 끌려 다니는 사람 도 있는데, 모른다면 더 그런 놈이 몇이나 있을지 모른다. "뭐, 다들 알아서 떨어지겠지만." 심심하면 화풀이성으로 검기를 뿜어내고 검강을 날려대는 그 히스테리를 누가 받아낼까.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금아는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얼추 봐도 비욘드 마스터(Beyond Master)급이던데, 누 가 어찌 하겠어?" 알고 덤빈다면 모를까. 저렇게 능청스럽게 나오는데 들킬리 없다. 그리 생각하며 금아는 길게 몸을 눕혔다. "에라! 나도 농땡이나 쳐보자!" 말과는 달리 명치끝은 막힌 듯 묵직했다. 금아는 길다란 속 눈썹을 내리감으며 길게 숨을 내쉈다. "젠장. 갑옷이나 다 손질해 놓고 납치당할 것이지." **** -탁- 뚜껑이 닫혔다. 능청스럽게 날 들쳐업고 기숙사를 빠져 나 온 납치범은 부엌으로 추정되는 곳 즈음해서 날 상자에 넣었 다. 어거지로 접힌 팔다리가 불편했지만 자세를 고칠 수 없었 다 . 싱싱하면서도 시큼한 야채 냄새들이 베어 나오는 상자에 서 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성기게 짜인 짚 사이로 빛살들이 흘러들어왔다. 등에 매지는 않았고 수레에 실은 모양이다. 투레질 소리가 몇 번나고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수레가 움 직였다. 놈은 이렇게 아르카이아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모양이 다. 잔잔한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대담한 놈.' 영락없는 야채 배달부다. 본업이 뭔지 몰라도 놈을 아는 척 하는 목소리들도 몇 들려온다. 오늘은 어떤 야채를 들고 왔지? 시장을 들릴 건가? 하는 등등의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가까운 대화들. 이 놈이 진짜 야채 장수인지 아니면 그의 신분을 빌린 가짜인지, 그 것도 아니라면... '여기 인사말을 건네는 놈들이 모두 다 한 세트일 지도 모 르지.' 내가 상상하는 자가 배후 인물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 는다. 난 조심스럽게 관절을 정리했다. 불편하게 접혀 있던 몸 이 조금 편하게 자리잡았다. 완전히 자세를 바꾸는 건 불가능 하더라도 마차의 진동에 기대 이 정도 하는 것쯤은 괜찮겠지. "흠...." 하품을 억눌러 참았다. 슬슬 진짜 졸음이 다시 밀려오기 시 작한다. 납치 당한다는 스릴감도 잠시. 풍경은커녕 바람 한점 들어오지 않는 답답한 바구니 안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정 말 오늘처럼 아르카이아의 넓이를 체감한 날이 또 있을까. 돌 아가는 느낌이 없는데도 가도가도 끝이 없다. '잠시 정도는 잠들어도 되지 않을까.' 지루함을 달래는데 잠 이상 좋은 건 없다. 이런 내 속을 안 다면 금아는 따라가야 했을 걸 그랬다며 길길이 날뛰겠지만... '어쩌겠어. 지금 내 성격이 이 모냥인 걸.' 엷은 잠이 내 눈꺼풀을 내리눌렀다.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 "도르릉." 작아도 연속적으로 울리는 소리는 귀에 닿는다. 수레를 몰 고 가던 베트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약효가 지나치게 좋았던 걸까?' 아니면 머나먼 땅에서의 하녀살이가 고달펐으리라. 입에 풀 칠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평민들 살이 보다는 나은 편이었지 만 귀족들 까다로운 취향 맞추는 하녀들의 삶도 그다지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막의 나라이건 상업의 나라이건 힘없는 평 민들의 삶이란 거기서 거기였다. 한 귀족 아래서 전문적으로 길러진 유형이 아니라 이런 저런 기술을 배운답시고 떠돌아다 닌 덕분에 베트는 그런 쪽의 세상에 밝았다. 아르카이아를 벗어나는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예정 대로라 면 이 주위를 몇 바퀴 더 돌고 의뢰인과의 약속장소로 갈 예 정이었지만 처음에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평범한 하녀 하나였는데 너무 긴장했다.' 겉보기에는 분명 농땡이나 치는 하녀였다. 윗선에서 전해 준 정보에도 분명 그랬고 실제도로 그랬다. 그런데도 어딘가 알 수 없는 위험이 느껴졌다. 결국 하녀 하나 납치하는데 귀한 마법 스크롤을 세 장이나 썼다. 시간도 배나 걸렸다. 더 이상 늦는다면 조직에서의 그의 평가에 지장이 있으리라. 커다란 야채 바구니를 슬쩍 열어 곤히 잠든 인질을 확인하 고서 그는 자물쇠를 단단히 잠궜다. **** "란은 어디 갔죠?" 이제 금아에게까지 말을 높이게 된 클로네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여느 때라면 호들갑스레 나와 맞이하며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지던 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산책을 나갔습니다. 뭔가 알아볼게 있다고 하더군요." "아." 클레이브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뭔가 알아서 하겠지. 그 리 생각하는 투였다. "하르크는 요즘 이 쪽으로 돌아오지 않는 군요." 문득 클로네가 말을 꺼냈다. 마부의 안부까지 염려하는 귀 족이라니 문득 웃음이 흘러나옴을 느끼며 금아는 부드럽게 고 개를 끄덕였다. "말들의 상태와 마차를 살피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가 봅니 다. 아무래도 이 곳은 정치적인 생각이 다른 여러 귀족들이 섞 여있으니까요." 클레이브나 클로네가 탈 말의 발굽에서 이상한 쇠붙이를 발견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르크가 발견하지 못했더라 면 아마 큰 사고가 났으리라. 하르크는 요즘 그런저런 이유들 로 마부들의 숙소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평범한 마부는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했었지.' 열에 아홉은 그림자 출신이고 나머지 하나는 암살자 출신 같다는 하르크의 말을 떠올리며 금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런 곳에 인질로 잡힐지도 모르는 자제를 보내면서 그 정도 도 챙기지 않는 귀족은 드물겠지. 아예 그 정도 능력도 안되는 사람들은 마부까지 보내지도 못했겠고. 아니 이 곳까지 오는 길에 평범한 마부가 살아남기는 힘들었으리라. "다른 또래의 사람들과 평범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을 했던 제가 바보같군요." 클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클레이브가 어깨를 으쓱였다. "늘 있는 그런 일이죠. 의자 위에 부러진 검날 조각들이 놓 여 있었습니다." "네?" 인상을 푹 쓰는 금아의 얼굴에 클레이브는 엷은 미소를 지 어보였다. "그 정도로 조심성 없는 우리는 아니니까요." "집단 공격 심리가 드러나는 건 아닌가요?" 금아는 신중했다. 클레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대수롭지 않다 는 반응. 클레이브는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불편한 정장 겉옷 을 벗어 의자에 걸치고 그는 책상에 가볍게 팔꿈치를 기대고 앉았다. "저녁때 수련을 시작하기 전 까지는 오늘 배운 부분들을 되 짚고 싶습니다. 책을... 주시겠습니까?" 자신이 여덟살 적에는 절대 저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 리며 금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클레이브에게 두꺼운 책을 건 넸다. 그 시절의 금아는 집사와 하인들의 아이들과 어울려 뛰 놀았었다. 형님이 뭐라고 하던, 근엄한 아버님이 뭐라고 하던 간에 그는 마냥 즐거운 쪽을 택했었다. 유일하게 말을 들었을 때가 검술을 배울 때 정도였을까. "아, 네." 금아가 건네는 종이 뭉텅이들을 무거운 듯 두 손으로 받아 들며 클레이브는 생긋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그런 표정 지으실 것 없습니다. 전...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아본 적이 아예 없으니까요." 아이다움이란 것을 아예 처음부터 배워보지 못한 애늙은이 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금아와 클로네의 입가가 묘하게 일그러 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얼굴들이었다. **** 아이다움이란 것도 환경이나 학습에 의해 길러지는게 아닐까... 가 요즘 제 생각이랍니다. 그리고... 제가 여자라는데 충격(?)을 받으시다니요. 은빛이 어디 남자 이름입니까! ㅡㅡ;;;; 제 어디가 어디가...ㅠㅠ.... 넵. 나름대로 충격이었습니다. 후훗. 참, 그리고 카페는... www.freechal.com/silverlit 두 곳이 있습니다.^^. 착하게 답장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멜이라고는 몇통 받지도 못하는 주제에 답장도 안쓰다니...ㅡㅡ;;;;)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37, Read : 2980, IP : 211.215.59.15 2002/09/23 Mon 12:23:48 → 2002/09/23 Mon 13:12:12 루피나 ^-^오늘 학교가 쉬어서 참 좋네요~!! 덕분에 이렇게 빨리 글도 보구요..^^ 란이 납치된다라...납치한 사람이 불쌍해지네요^^;; 2002/09/23 보로 음냐. 2002/09/23 에반젤린 잘봤습니다 수고하세요~~ 환절기 들어오는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2002/09/23 pota 은빛님~! 화팅요`~! 넘 잼있어요~! 2002/09/23 민성 우훗.....정말로 좋네염..^_^ 납친된 란이 어떤 소란을 일으킬지 기대됩니다... 2002/09/23 아류엔 오옷 +__+ 잼납니다. 다편은 언제쯤? 하두 안올라오 오길래 마니 아프신줄 알았습니다 ㅜ0ㅜ 아푸지 마세욤~ 2002/09/23 sue 납치하신분.. 삼가 명복을 빕니다.-0-;;; 2002/09/23 魔女 아이다움이라...... 또래 집단과 어울리면서 습득하게 되는 2차적인 성정중 하나라죠. 그렇게 따진다면, 클레이브는 어느면에선 영재(?)인지도..쿨럭; 2002/09/23 %황형% 아아~~전 한눈에 알았는데여... 은빛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오오~~저 글자 하나하나에서도 묻어나는 여성 스러움이란...ㅋㅋㅋ 2002/09/23 음냐 오옷! 은빛사마 ][ 10타닷 2002/09/23 수하 오옷.. 은빛님 어제 오늘 성실 연재를 하시다니.. 기쁠 따름 입니다... 란이 언제 금아의 마음을 알아줄까요,,, 알아도 모른척 하는거겠지만.... ㅋㅋ 란이 이제 무료한 하녀생활에서 잠 시 벗어나는 거네요 2002/09/23 DNGNT 까아;ㅁ;!!! 란! 당신 정말 멋져! 2002/09/23 Goul 나도 남잔줄 알았는데..;;;;; 크흠..그래서 지난번 닉네임 사건때 이름에대해 심각히 고민한거군요... 이해가 간다는;;; 2002/09/23 진무 으음.... 차파기보면 앞에 사진으로 나와있단ㄴ....ㅡㅡ;; 2002/09/23 룬 충격받은 사람이 전데...^^;;; 비평은 아니지만...여자분들글은...대부분 여자들의 특유의 머라고해야할까..그런느낌이 나거든요...내용두 글쿠..군대 은빛님은 그런게 별루 없으신거같네여 2002/09/23 대박타도 륜은 죽언나요? 소식이엄네; ㅡㅡ;;;;;;; 2002/09/23 사악1004 앗~!! 다음에도 카페가 있었군요..;; ㅡㅡ;;~사악인 바부인가..;; 에궁..지금은 안되고..나중에 얼른 가서 갑할께요~♡ 에..근데..은빛님의 어디가 남자란 건쥐... ..;; 아디에서부터 여자란 느낌이 팍팍 나던데...;; 2002/09/23 베르디안 우앗!! 학교 갔다오니깐 이렇게 글이 올려져 있다닛!! 넘넘 기뻐요!! ^ㅁ^* 2002/09/23 쿠오오 하품... 하품.... 글을 읽고 나니 편안하군여... ^o^ 2002/09/23 흐흐 환경에 의해 길러진다면 그 만큼 순수하기 힘들죠, 또 그 만큼 잔혹하기도 힘들고... 이성에 의해 지배되기전 순수한 욕망대로 행동하는게 아이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2002/09/23 검은포효 오오옷~~~~잼떠여~~~~~다음글은 언제???? 2002/09/23 지옥숙녀 은빛님...추석에 힘드셨을텐데 이렇게 빨리 올리시다니...감사해요!!]_[ 은빛님 멋져어~♡ 더불어 란! 그대는 너무 멋져어~♥ 2002/09/23 코로코로 흑, , , 행복감에 들뜨는 기분이란- 아 행복해요 행복해- 란 사랑해-. 2002/09/23 론 저..저기.. 창파기2부는.. 연중입니까아~ 훌쩍.. 2002/09/23 나쯔히메 은빛님 실명이시잖아요..^-^ 어디가 남자같은지..다들 이해가 안되네요.. 창파기 껍데기 본사람들은 다 알텐데.. 그쵸? 2002/09/24 가즈야키 간만에 들어와 봤더니 글이 올라와 있군요. 란이 납치가 되다니, 어느 간 큰놈인지 궁금하군요. 2002/09/24 키너스 으흐흠... 재미있어요... 항상 보고나서 아쉽다는... ;;;; 건필하세요... 누구누구처럼 글 잘쓰다 다치지 마시고... 왜 작가들 중에는 글쓰다 다치는 사람이 그리 많은가 몰라... -_-;; 2002/09/24 박여울 `아무리 나름대로의 미모가 받쳐 준다지만` 이 부분에서 참..-_- 부정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고.. 쿨러러러러럭.. 근데.. 금아.. +_+ 이뿌게 생긴 모양이군여.. `긴 속눈썹` 이라니!! ]_[ (여울이의 미소년 밝힘증, 도짐.) 2002/09/24 killer10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잃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런 재미있는 여흥을 주신 은빛님에게 감사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좋은 글 부탁드리며, 환절기 건강조심하시길... 2002/09/24 티이르 금아는 미소년이 아니라 `미노년`아닌가 ㅡㅡ;; 비록 겉모습은 청년이지만. 그러면 `꽃미남`이 되는건가? 2002/09/25 나쯔히메 미노년......이라..;; 새로운 말이군뇨.. 반로환동한 모든 노인들에게 써먹을 수 있겠군...ㅡㅡ^ 쿠헤헤~~근데.. 이틀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네요...뭐하시나... 2002/09/25 linaru 아이다움이라.........;먹고 자고 놀고, 이세박자만 만족 돼면 없는 존재에여.....;제 동생이 어릴때 제가 돌봤는데 위에 세가지만 챙겨 주니까 완존히 천사에여 천사, 사랑스러워서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밉죠 땡강 부릴땐 정말.....두뇌에 있는 시냅스란 기관은 대략 생후 2개월에서 성장을 시작해서 한두달 사이에 대부분의 성장을 마칩니다.그리고 보통 만 20세 정도에 시냅스들은 굳어 버리고 3,40대에 이르면 이 기관은 퇴화하기 시작하죠 ^^ 노인성 치매 예방에 활동을 권유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많이 움직일수록 뇌에 자극이 가서 이 기관들의 퇴화를 막아주거던요,아이다움이란 무지에서 오는 순진한 행동이죠^^모르니까....타인의 아픔을 모르니까,타인의 고품을 모르니까,타인의 생각을 모르니까,생명이란걸 인식하지 못하니까 작은 곤충을 아무렀지 않게 분해하며 웃을수 있는거죠,몸의 성장에 따라 정신도 성장하면서 이해란걸 하게 됀다더군요....물론 예외는 항상 있어요,요즘은 정신은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많이 봐서 슬퍼더라구요....에구 헛소리였습니다 건필 하세요^^은빛님!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2002/09/26 世一明光 납치범에게도 갱생의 기회를...(근데 납치범 귀업네요..].[) 2002/09/26 베르디안 은빛님~ 머하세요오~? 빨리빨리 돌아오세요오~~!! 2002/09/26 혈향단화 ㄴ마치범이 불쌍해ㅣ는 것은 왜 일까요?ㅡㅡ; 2002/09/26 만두 9월 27일 2002/09/27 게마게마 녀석, 쓸데없이 감이 좋군....... 하지만 역시 운은 없는듯..... 감히 란을 납치하는 일에 손을 대다니........;; 2002/09/29 Name Mail 72 [푸념]써 놓은 글이 날아간다는건... [30] 은빛 2002/09/27 1464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37] 은빛 2002/09/23 2980 70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24] 은빛 2002/09/22 2489 69 [공지]가벼운 알림 [38] 은빛 2002/09/19 2386 68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86] 은빛 2002/09/12 4226 67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44] 은빛 2002/09/09 3506 66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12] 은빛 2002/09/09 3225 65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42] 은빛 2002/09/05 4063 64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37] 은빛 2002/09/04 3784 63 [[The Perfect MAID]]-57-편지. [31] 은빛 2002/09/02 3610 62 [[The Perfect MAID]]-56-편지. [37] 은빛 2002/08/31 3671 61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49] 은빛 2002/08/29 3977 60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4] 은빛 2002/08/28 3846 59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5] 은빛 2002/08/28 3595 58 [[The Perfect MAID]]-외전2-늙은 도사와 검후 [43] 은빛 2002/08/27 2923 1 [2] [3] [4] [5]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65-납치된 하녀. [[The Perfect MAID]]-65-납치된 하녀. "물건은?" 베트는 성긴 짚으로 짜인 커다란 상자를 침착하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풀석 소리가 울리며 뽀얀 먼지가 일었다. 베트의 등 뒤로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 사이로 먼지 알갱이 들이 갈곳 없이 공중을 떠돌았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텁텁한 먼지가 콧구멍을 타고 들어와 목을 틀어막아 버릴 것 같았다. 베트는 살짝 기침을 내뱉었다. 허름한 야채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말을 꺼냈던 남자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수면제를 얼마나 쓴 거야?" 베트에게 질문을 던졌던 구렛나루 수염의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베트는 신출내기도 아니었는데. 다른 때라면 슬슬 약효도 떨어져 비몽사몽해야 할 인질이 코까지 골며 편히 잠 들어 있었다. 베트는 당황한 듯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일이 고됐던 모양입니다." 베크는 묵묵히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구렛나루를 멋들 어지게 기른 남자는 힐끗 종이에 시선을 던지고서는 턱으로 한쪽 벽의 상자를 가르쳤다. "넣어두도록." 베트는 자신의 퇴장할 차례임을 알았다. 그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상자 안에 종이를 밀어 넣었다. 구렛나루의 남 자가 턱짓으로 문을 가르쳤다. 베트의 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 졌다. 구렛나루의 남자는 가볍게 손뼉을 두드렸다. 베트가 나간 반대편의 벽이 옆으로 움직이며 사람 한명 드나들만한 통로가 생겨났다. 검은 옷으로 온 몸을 감싼 장정 둘이 나타나 바구니 양끝을 들어올렸다. "안으로 옮겨라." 어디에 숨겨두었었는지 모를 장부 하나를 꺼내 뭔가를 적 으며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검은 옷의 장정들이 바구 니를 가뿐히 들고 통로로 걸어갔다. "그럼.. 이제 다 정리되어 가는 건가?" 문을 지키는 남자의 말을 듣지 못한 냥 검은 장정들은 숨 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통로는 길고 구불거렸다. 몇 번의 갈림길이 나오고 따듯한 차 한잔이 완전히 식을 무렵이 되어 서야 그들은 상자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지막인가?" 좁고 탁한 공기가 가득 찬 방이었다. 희뿌연 연기가 묘한 향기를 풍기며 이리저리 흘러다녔고 짜증이 가득 베인 목소리 가 들려왔다. 성마른 골격의 여인이 소매가 없는 옷 안에 몸을 꽁꽁 가리고 툴툴거렸다. "어쩐지 벌이가 좋은 일이라 생각했어. 이렇게까지 사람을 연달아 부려먹을 줄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은 멈출 생각이 없었나 보다. 여인 은 턱 끝으로 장정들을 부렸다. "홉스! 후스! 그렇게 내려놓으면 내가 불편하잖아! 끄집어내 서 의자에 묶어!" 본명인지 별명인지 모를 호칭들로 불러대는 여인의 목소리 는 작게 갈라져 있었다. "...................." "뭐야? 불만이야?" "우린 그런 우스꽝스런 이름이 아니다. 주술사." "어차피 본명을 말할 생각도 없잖아. 아니면 장정 일호. 이 호, 그렇게 하던가. 너희도 그렇겠지만 내게도 너희들 이름 따 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피식 빈정대는 여인의 말에 홉스 후스라 불린 남자들은 더 이상 대구하지 않았다. 상자가 열렸다. 세상 모른 채 잠들어 있는 하녀 하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두 남자는 하녀 를 꺼내 의자에 앉히고 두 팔과 다리를 의자에 묶었다. "수면향을 지독히도 쓴 모양이군." 희뿌연 향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작은 항아리를 하녀의 코 아래 갖다대며 주술사는 입술을 삐죽였다. "너무 깊이 잠들어 있으면 최면향이 잘 먹히지 않는데..." 주술사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하녀가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게다. 열흘 동안 백여명 가까운 하녀들이 이 곳으로 잡혀왔다가 나갔다. 한 사람에게 티나지 않도록 꼼꼼히 최면을 거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아무리 잘 건 최면이라도 한 달을 넘기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겨우 보름 남짓 지나면 이 짓을 또 시작해야겠군."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번처럼 서둘러 급급히 하지 않으려면 보름 정도는 넉넉히 지니고 시작해야 했다. 주술사는 턱을 고 였다. 자신의 처지를 아는 지 모르는지 하녀는 잠을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되겠다. 홉스. 이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한 대 때려. 패 서라도 깨워야지.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비릿한 미소가 주술사의 입가에 베어 있었다. -빠악- 뼈라도 바수어버릴 듯한 소리가 홉스의 주먹 끝에서 울려 나왔다. "야! 죽일 생각이야?!" 신경질적인 주술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통로 가 웅웅 울려왔다. 통로의 밖을 지키고 있언 구렛나루의 남자 는 깊숙이 한숨을 내쉈다. 주술사의 짜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 지고 있었다. "하긴, 유능한 주술사일수록 까다로운 법이라니까." 주술이란, 그것도 사람의 의식을 조정하는 주술이란 분명 어렵고 심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리라. 아직까지 그녀가 건 주술이 잘못 된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녀의 주술을 받고 나온 하녀들은 완전히 그들의 편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또 실제로 도 그랬다. 구렛나루의 남자는 짤막한 파이프에 담뱃가루를 쑤 셔 넣었다.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왔나?" 오른 쪽 눈두덩이에 새파란 멍이 부어오른 하녀 하나가 무 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젠장. 하필 얼굴을 때리다니." 구렛나루의 남자는 낮게 투덜거렸다. "주인이 질문하거든, 시장에 나갔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돌 에라도 맞았다고 둘러대도록." "네." 하녀가 짧게 대답했다. 구렛나루 남자가 길다랗고 검은 천 하나를 하녀에게 건넸다. "눈을 가려라."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운 기색 한번 쯤은 보이련만 하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눈을 가렸다. 구렛나루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라." 하녀의 한쪽 손을 잡아끌며 남자가 말했다. 구르릉 돌 울리 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가볍게 떨렸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 지 벽 하나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남자는 하녀를 이끌고 컴컴 한 벽 안으로 사라졌다. **** "탐탁치않다는 표정은 그만 지워줬으면 좋겠는데." 우트트는 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넓은 정원도 아니고, 웃고 떠들어도 갑갑할 만큼 좁은 방안이었다. 아무리 무시한다고 해 도 그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자가 옆에 서서 온갖 상을 다 구 기고 있는데 편할 수가 없었다. "어린 소년을 감시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고는 하 지만 존귀하신 분께서 세뇌된 하녀 따위를 직접 보고 싶으시 다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우트트의 심복은 화가 나면 날수록 그 앞에서는 말이 늘었 다.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말수가 줄고 냉랭하게 굳어진다면 그 또한 문제기는 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잔소리를 듣는 일도 편 하지는 못했다. 우트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여 보 였다. "하녀 따위가 아니야. 소문의 그 최강의 하녀라구." "아무리 괴짜라도 하녀는 하녀일 뿐입니다. 게다가 세뇌된 하녀는..." 단지 인형처럼 명령에 복종한다. 아무리 잘 세뇌가 되어 있 어도 그 사람 본연이 가지고 있는 끼라든가 매력은 발산하지 못했다. 그것도 우트트 정도의 사람의 눈에 들 정도의 것이라 면... 제 정신이라도 하기 힘드리라. "알고는 있어. 센." 장난끼 가득 담은 눈빛으로 우트트는 살짝 웃어 보였다. 심 복, 센의 투덜거림이 한 순간에 멎었다. "하녀는 하녀일 뿐이지. 하지만 그 하녀 하나가 일으킨 파 장이 적지 않잖아? 첩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저 베이르 대공이 은퇴한 이면에도 이 하녀가 개입되어 있는 것 같다던데. 센. 자네가 모르지는 않을거라 생각해." "음...." 센은 낮게 신음성을 흘렸다. 우트트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 는 화해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갈등의 여지가 없었다. "자네가 올려준 보고서에 있던 일이었으니만큼 잊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 부분은 분명 가능성 희박한 추측이라고 말씀드 렸습니다." 하녀의 행보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양육의 여신 인 아르페이나가 보낸 신의 사자라는 말로 시작해, 어린 소년 의 수호자라는 둥, 하녀의 신분으로 가정교사인 남작을 몰아내 고, 남작의 뒷배를 맡고 있던 공작가와 백작가의 입을 다물게 했다. 게다가 하녀가 찾아간 다음 날, 대륙 최고의 마스터라고 불려지던 베이르 대공이 돌연 잠적을 선언했으며, 그의 호위기 사 둘이 후작가에 하인으로 보내졌다. 두어달 후 그들은 정식 호위기사로 후작가에 다시 발을 딛기는 했지만... "어째서 대공은 그의 호위기사를 후작가의 일개 하인으로 보냈을까? 어디나 기사들의 자존심은 대단 할 텐데. 그들은 어 떻게 대공의 명을 순순히 받아드릴 수 있었을까?" "하녀 본인보다는 그녀의 뒤에 있는 배후의 힘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그 것도 하녀 본인이 그 힘을 알고 있는지 조차 확 실하지 않구요. 그녀는 어디까지나 하녀의 신분을 벗어날만한 뭔가를 보인 적이 없습니다." "뭔가 있는 건 분명하지. 보통의 하녀라면, 처음 남작과 갈 등이 생겼을 때, 추방당하거나 죽임당하는 게 보통일 텐데." "하지만 세뇌 당한 하녀일 뿐입니다." 우트트는 어깨를 늘어트린 센에게 힐끗 눈길을 던졌다. 풀 이 꺽인 폼이 화는 풀린 듯 했다. "그래. 하지만 뭔가 걸려." 우트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딘가가 말이지... 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톡톡 작게 문고리 두드리는 소리가 벽 안으로 들려왔다. 센 과 우트트의 눈길이 잠시 부딪혔다. "들어오도록." 센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벽이 두터운 마찰음을 내며 움 직였다. 일렁이는 횟볼 하나에 의지해 비밀 통로를 건너온 구 렛나루의 남자가 하녀 복장의 여인 하나와 함께 모습을 들어 냈다. "왔습니다." "그래." 센이 고개를 까닥였다. 우트트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구렛 나루의 남자가 하녀의 눈가리개를 풀렀다. 희고 작은 얼굴에 어울리는 새까만 눈동자가 들어났다. 얼굴 한쪽의 부어오르기 시작한 푸르른 멍과 텅 빈 눈빛이 조금 거슬렸지만 그건 술사 의 술법에 당한 자들의 전형적인 증상들 중 일부였다. 진실을 밝히는 자리 앞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인형처럼 멎은 하녀의 얼굴이 눈에 박히 듯 우트트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소문이란 믿을 게 못되겠군." 센의 표정이 굳었다. 우트트는 몸을 일으켜 센에게로 다가 갔다. 검술로 군살이 박힌 우트트의 손이 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런 미인이라는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었잖아?" 센의 입가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 베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비밀 장소로부터 안전하게 빠져나 와 시장으로 들어선 직후부터였다. 왠지 모르게 뒤통수를 찌들 듯한 시선이 그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았다. 베트의 눈초리가 영민하게 움직였다. "여어!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나 보군!"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그에게로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지나 갔다. 그가 지닌 몇 개의 신분 중 하나가 시장의 배달부였다. 주로 야채를 날랐고 경우에 따라 무거운 곡식도 배달했다. 어 디든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의심받지 않을 수 있는 일 중의 하 나였기에 베트는 그 직업을 특별히 더 잘 지키고 있었다. 베트 는 주위를 몇 번 더 살핀 후 보이지 않게 그에게로 살기를 뿜 어내고 있는 자를 따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베트 역시 만만한 실력을 지닌 자는 아니었건만. 그런 그에게 실마리조차주지 않 은 채 이런 살기를 느끼게 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아마도 일부러 느끼게 하는 거겠지.' 분명 베트보다 윗선의 실력을 지닌 자일 터, 그렇다면 되건 안되건 무조건 빼고 보는 게 상책이다. 그는 우선 사람들 속으 로 섞여 들어갔다. 그 다음 늘 가는 가게에 들러 뒷문으로 빠 져나온 후 몸을 감춰 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살기를 보낸 자 는 그런 종류의 치고 빠짐에 익숙하지 않았는지 금새 떨어져 나갔다. '어느 기사 정도 됐나 보군.' 기사들이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법이니까. 하지만 이 런식으로 누군가에게 표적이 됐다는 건 반갑지 않은 일이다. '꽤 마음에 드는 신분이었는데....' 아쉬움을 삼키며 베트는 조용히 몸을 감췄다. "란님만 돌아오셨다면 한 달음에 잡아가는 건데..." 아쉬움을 삼킨 이는 그만이 아니었다. 멀직히 사라져가는 베트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주먹을 틀어쥐는 자도 있었다. 넘치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또다시 클레이브의 갑옷을 우그러트린 금아였다. "제길, 갑옷을 편다고 나왔다가 또다시 이렇게 망가트리다 니..." 손바닥 자국이 뚜렷히 찍힌 갑옷을 바라보며 금아는 빈 입 맛을 다셨다. 괜한 짜증이었다. "제길." 납치해 간 란은 어떻게 했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시 장을 돌아다니는 베트의 모습에 금아의 가슴에 가라앉은 돌덩 이의 무게가 더해졌다.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희희낙락하며 재미삼아 잡혀갔다지만... "말렸어야 했어." 자책과 후회가 그를 괴롭혔다.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베트를 잡아 갈기갈기 찢어버리 고 싶은 욕구가 손끝으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런 고통을 느끼려고 지난 백년을 기다린 건 아니었는 데...." 금아는 벽에 등을 기댔다. 몸이 스르르 주저앉았다. 눈가가 뜨거웠다. 이마를 감싼 손이 머리카락을 잡아뜯었다. 금아는 잠시 그렇게 머물렀다. **** 우트트와의 만남은 짧았다. 처음의 그 작은 방으로 돌아오 자마자 구렛나루 남자는 식은땀을 훔쳤다. 잠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남자는 문득 하녀가 아직도 그의 곁에 있음을 발견했다. 남자는 짜증이 일었다. 가뜩이나 바쁘고 힘든 상황 에 겨우 하녀 하나 때문에 바짝 긴장했던 일을 생각하면 어이 가 없을 지경이었다. 설마 그들의 주인이 세뇌당한 하녀 따위 를 보려 할 줄이야. 목소리가 자연 퉁명스러워졌다. "주인에게로 돌아가서 평소처럼 행동해라. 그리고 오 일에 한번씩 이 쪽으로 주인 모르게 오면 돼. 저 쪽으로 나가면 사 람이 있을 거다. 아르카이아로 데려다 달라고 하면 알꺼야." 서류 읽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구렛나루의 남자는 손등으로 파리 쫓듯 하녀에게 손짓했다. 하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소리나지 않게 문이 열리고 하 녀는 또박또박한 발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문은 열릴 때처럼 고요히 닫혔다. 문 밖에서는 볼이 통통한 전형적인 장사꾼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하녀를 보자마자 반갑게 아는 체하며 눈웃음을 건넸다. 바로 앞쪽에 깔끔하게 정돈된 지붕 없는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마부석에 가볍게 올라타며 남자는 힐끗 뒤를 돌아 봤다. 하녀는 그를 한번 바라보고서는 마차 뒷좌석에 기어올랐 다. 남자는 가볍게 말고삐를 당겼다. 마차가 삐걱 움직이기 시 작했다. "어디로 갈 거지?" "아르카이아." "호오, 그렇군. 아르카이아 귀족 숙사까지 데려다주지. 참, 그런데 밖에 나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면 어색하지 않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침이라도 뱉어주면 참 희극적이리만 큼 가식적이었다. 하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생각을 했 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주술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걸렸군. 주술사의 실력이 나날 이 늘어나기라도 하는 모양이야." 커다란 짚으로 엮은 가방에 이런 저런 과일과 야채들을 가 득 담아 하녀에게 건네주며 그는 또다시 활짝 웃었다. "시장에서 막 구한 것들이라 싱싱하지. 주인도 좋아할 꺼야. 뭐, 그건 네 요리솜씨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아아." 그렇다면 그녀의 주인은 절대 좋아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 다고 생각하며 하녀는 활짝 미소지었다. 햇살이 하늘 한 가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똑- 그와는 반대로 침침한 어둠이 가득 고여있던 작은 방 안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커다랗게 파문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또도독- 최초의 한 방울을 시작으로 주르륵 물방울이 쏟아져 내렸 다. 구렛나루를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는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 다. 천장은 단 한번도 비가 샌 적이 없었고, 그 좁은 방안은 늘 건조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피던 남자는 어느 순간 그 물방울이 바로 자신의 코 아래서 시작했음을 알았다. 뜨거운 핏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라?" 뭔가 이상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구렛나루 남자의 몸이 무 너져 내렸다. 한 순간에 다리가 풀리며 몸이 바닥으로 부딪혔 다. 쿵 소리와 함께 남자는 널부러졌다. "피로가... 쌓였... 나?" 이상했다. 온 몸이 나른하고 아파왔다. 마치... 잘 숙련된 누 군가에게 짓밟히기라도 한 듯한 감각이 그를 옭죄어왔다. "그럴.. 리.." 그럴 수는 없다. 그는 누군가에게 맞은 적이 없었다. 요즘들 어 이 장소를 지키느라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다. 얻어맞을 실력도 아니지만 싸움이라곤 한달 가까이 해 보지도 못했다. "제, 제기... 랄." 이유없는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순식간에 의식이 멀어 져갔다. 견디기 힘든 아픔에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몸부림 치던 구렛나루 남자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무사하셨군요?"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더니만 곧 눈에 띄게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반나절만에 돌아온 날 환영하던 금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럭저럭." 난 탱탱하게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살짝 만지며 멋쩍게 웃 었다. 금아의 시선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치료를 했다면 처음, 주술사의 기억을 손 볼 때부터 했어야 했는데... 화풀이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는 바람 에 문득 기회를 놓쳐 여지껏 치료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찌 어찌 둘째 우그르틀 추청되는 인물까지 만나버렸는데... 내 눈 탱이가 밤탱이 된 사실을 그들이 뻔히 아는데 스삭 치료했다 가는 어떤 의심을 사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감히 어떤 놈이..." "됐어." 금아의 눈빛이 굳었다.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난 애써 곱게 웃어 보이며 손대면 베일 듯한 금아의 어깨를 툭툭 내리 쳤다. 오늘따라 유달리 그의 어깨가 높이 있었다. 난 문득 평 소 그가 내가 그의 어깨를 치기 좋도록 조금 다리를 굽혀주던 일을 떠올렸다. 뭔가 덜컹 움직였다. 금아가 움찔 어깨를 떨었 다. 막 폭발하려던 그의 살기가 고요히 가라앉았다. 금아는 두 어번 호흡을 정돈했다. "....................무슨 일 이었습니까?" 냉랭하게 식은 표정의 금아는 내가 알던 푼수와는 전혀 달 랐다. 처음에 날 납치해갔던 놈들에 대한 노여움에다 안 생겨 도 될 상처를 단 채 뻘쭘히 돌아 온 내게 대한 걱정이 더해져 한 순간에... 나에 대한 화로 변해버린 모양이다. 그게 왜 그렇 게 돌아가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빙글거리는 얼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놈이 안겨 준 과일과 야채 묶음을 창고 한 귀퉁이에 내려놓았다. 금아가 조용히 등뒤를 따라왔다.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제 스스로 산 걱정을 한 것뿐이었다고 생각했다. 절대 내 잘못은 없다고 믿 고 있었지만... 어딘가 미안했다.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별건 아니었고, 스파이를 심으려 했었던 것 같아. 새로 인 물을 심으려면 인력도 많이 들어가고 의심도 사기 쉬우니까." "흠." 금아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빙빙 돌아 잡혀갔었는데, 주술사 한 놈과 몇 놈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군. 주술사는 꽤 유능한 놈 같았어." "최면술 같은 겁니까?" "맞아. 그런 것 같아." "란님은 괜찮으신거구요?"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빛을 보이며 금아는 살짝 몸을 경직 시켰다. 만에 하나 내가 세뇌라도 당해 날뛴다면 당해낼 자신 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부는 것 자체가 멀쩡하다는 증거겠 지. 동 대륙 말에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읇는다는 말이 있 어." "풍월?" "시 비슷한거야." 피식 금아가 웃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 다. 금아는 풀썩 의자에 기대앉았다. 한결 풀어진 공기에 나 역시 안도하며 의자를 잡아당겼다. 내가 왜 그의 눈치를 살펴 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하여간. 내가 아무리 돌팔이 돌팔이 하면서 농을 걸었다고 해도 노도라는 희대의 도사 옆에서 먹은 눈칫밥만 백여년이야. 아무리 노닥인 것 뿐이라지만 보고 배운 게 아무 것도 없지는 않지. 게다가 만일을 대비해 노도가 준 부적들도 좀 있고..." 노도를 만나기 전의 나였다면 도사가 준 부적 따위 가지고 다니지 않겠지만, 이미 그를 만난 뒤였다. 도사라는 힘을 지닌 자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무예가 아니더라도 신의 영역 을 목표로 수도해 온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지 난 잘 알고 있었다. "가서 세뇌 당한 척 해 주고... 틈틈이 눈에 안보이게 몇 대 씩 패주고... 둘째 우그르트로 추정되는 놈 면상 구경하고 왔 지. 뭐. 닷새에 한번씩 오라더라. 정보를 빼고 싶은 거겠지." "둘째... 우그르트를 ... 만나셨습니까?" 금아의 안색이 확 변했다. "음." "별다른 일은 없으셨구요?" 하긴 겨우 세뇌당한 하녀 하나를 우그르트 정도 되는 자가 보자고 한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기는 하지만 내가 어디 보통 하녀였던가. 본의였건 아니었건 간에 온갖 소문과 기행은 다 달고 다니지 않았던가. "소문의 그 하녀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겠지. 뭐, 이전의 클 로네양처럼 말이야." "다른 일이 없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잠시 내 눈을 들여다보던 금아는 감정을 수습한 듯 차분히 말했다. 화냈다가 걱정했다가 참 바쁘기도 한 모습을 보니 상 당히 미안해진다. 귀엽기도 했고. 난 문득 이번 납치사건에서 한가지 재미있었던 사건 하나를 기억해냈다. 내 평생 나를 모 르던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아, 참. 미인이라고 하더라." "네?" 막 일어서서 나서려던 금아의 동작이 멎었다. 그의 표정에 의아함이 어려갔다. 난 희귀한 장난감이라도 얻은 아이처럼 그 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 둘째 우그르트 말이야. 내게 미인이라고 하더라구." 금아의 얼굴이 한 순간에 일그러졌다. 팍 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금아의 발치에 깔려있던 바닥돌에 거미줄처럼 금이 새겨 졌다. 왜 저 금아의 구둣발에 금간 바닥돌이 짓밟힌 내 자존심 처럼 보이는 걸까. ".........미..........인...........이...........요?" 세상에 이렇게 황당한 말이 또 있을까. 눈꼬리까지 버들버 들 떨며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냥 마구 얼굴을 구기는 사람 앞에서 기분 잡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난 벌떡 일어섰다. "아, 그래. 크레이에 익숙해져 있는 네게는 절대 아니겠지." 뭔가 말을 덧붙이고 싶은 듯 금아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난 휙 몸을 돌렸다. 갑작스레 감정이 변해간다. 화는 나지 않 았다. 그 정도로 감정이 움직일 나이는 지났다. 그랬었는데... 갑자기 아이처럼 유치하게 행동해보고 싶어진다. 젠장. 어린 주인을 선두로 주위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하나같이 애늙은이 다 보니 되려 내가 '반로환동'하는가 보다. 전혀 필요없는 영역 으로 말이다. "자, 잠깐만요! 란님!" "필요없어." 화가 난 척 팩 한마디 쏘아주고 난 클로네의 방으로 발걸 음을 돌렸다. 뒤에서 따라오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굳어진 금아 의 기척이 느껴졌다. 피식피식 삐져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며 난 금아가 보지 못하도록 급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유치하게 구는 것. 의외로 재미있었다. '휴. 내 주위의 애늙은이들은 이런 재미를 왜 일찍부터 포기 하는지 몰라.'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 유구무언일 따름...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82, Read : 2492, IP : 211.204.2.21 2002/10/16 Wed 13:52:25 야~~ 야~~~ 인터넷 소설 읽은뒤로 첫타는 첨인데~~ ㅋㅋ 기분 좋당~~^^* 2002/10/16 야~~ 그리고 은빛님 다시 돌아와서 기뻐용~~^^ 지금까지 님 욕한거 다 잊어버리세요~~^^;;; 2002/10/16 %황형% 와아~~ 이게 얼마만에 올라오는 글인지..글구 조회수가 6이라니..이런일이.. 맬맬 조회수가 몇천일때 읽었는데.. 오늘은 행복한 날~~~!! 2002/10/16 타락천샤 재..재미있어요~~~~~~~~~~~~!!죽어도 여안이 없어요(퍼억) 쿨럭...누구야!!!!!!!!!!!!! 2002/10/16 조폭 나..ㅡ.ㅡ 2002/10/16 아리 흑... 기뻐요~ 2002/10/16 쿠오오 흠흠.... 은빛님. 반갑습니다. 그간 무고하셨군요. 다행입니다. 2002/10/16 neo1004 오10위안에 들엇네..근데 잠수 시간이 넘 길엇던것같당... 이젠 성실연재를 기대하며...얼마전처럼 2-3일에 한편정도라도..그럼 2002/10/16 린 반가워요............ 2002/10/16 color 잠수가 넘 길었던거 아시져.. --+ 그래도 다시 돌아오셔서 반갑네요~~~ *^^* 2002/10/16 아르타나 아~~(감동~)아~~(감동~~!)아~!(감동~~~!!!!!!) 은빛님 그리웠어염~~~!!!!!!♡♥ㅠㅠ 2002/10/16 유 므흐흐흣...... 몇주간의 잠수였더라........??? 뭐 이번 편은 평소보다 아.주. 조.금. 길었으니까 용서해 드리죠.... 2002/10/16 sharyde 와~~ 넘 좋아요. 드디어 돌아 오셨네요~~ㅠㅠ 2002/10/16 엘라임 허헐....며칠만이지?? 암튼....감덩...기대치 않은..감덩......... 2002/10/16 니플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ㅠㅠ 내 마음과 여유가 이제야 돌아왔심니다. ㅡㅡ 미어여 겨우 한편이라니 ㅡㅡ 2002/10/16 딕 아하하하 전 하루가 이리 긴줄 예전부터 알고 있었죠 ㅡㅡ;; 그래도 너무 길었습니다 은빛님 변명은 못하시겠죠? 성실한 연재로 이제껏 쌓아놓으신 이야기 봇따리를 풀어놓으시길 2002/10/16 박여울 으하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타앙!] T^T 이럴 줄 알았음 좀 더 빨리 켤 걸요~~ 은빛 님~ 도끼와 사시미는 저 멀리 던져놓겠슴돠!! 움화화홧!! ]_[ 너무 감사해요!! 2002/10/16 로라 드.. 드디어 올리셨군요... 이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흑흑 은빛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넘 기쁘답니다.. 2002/10/16 ucary 님 이제서야 돌아 오셨군요 ㅜㅜ 정말이지 넘 오래기다렸어욧! 다신 이런일 생기면 정말 사시미 던저 버릴 겁니다 2002/10/16 박여울 +_+ 은빛 님..하..한편 더..쿨럭..[탕! 방금 다 읽고 뭘?!] T^T 연참은 모든 독자들의 간절한 소망~~ 2002/10/16 진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ㅜㅜ 기쁩니다 오래쉬셨으니 연참하세욧~~~~!!!!!!!!!!!!! 2002/10/16 초코.. 유달리 양이 많아 보이는 느낌은 그동안 기다려 온 것 때문일까..우엥;; 2002/10/16 DNGNT 자- 연참... 뱉으실 거죠+ㅁ+?! 어서 뱉으세요!! 2002/10/16 아라리요 이론..리플 500을 목표로 했었눈데...나름대로의 아쉬움이...라곤 절대 말못하져.-.- 2002/10/16 yisrael 드뎌...ㅠㅠ 설마하면서 클릭했는데... 고달픔이 다 사라지는군요ㅋㅋㅋ 역시 은빛님의 글은 삶의 활력소!! 2002/10/16 카엘 돌아오셨군요......드디어 돌아오셨으니....훗훗훗.... 이제 남은것은 연참일뿐!! 오셔서 기뻐요오~~~^0^+ 2002/10/16 티쟈레 꺄아아악-♡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정말 이렇게 고마울 수가.]ㅁ[ 정말정말 고마워요요요요-으웃!! 원하신다면 제 문어문어 춤이라도-!![앗, 던지시려면 다음 편을!!+ㅁ+] 2002/10/16 휘긴교도 오오 귀염모드의 란인가..........이것도 조은데???? 2002/10/16 카마엘 은빛님.. 창파기는... 창파기는... 벌써 4달가량 지났는데.ㅠ.ㅡ 좀 써주세요... 2002/10/16 호랑이에 크읔...어..얼마만이냐...대신 분량이 쪼매 많네....이거 다시 잠수하시지는 않겠지요...;; 근데 창파기2부는...?_? 2002/10/16 아르카이 정말 재미있네요. 그런데 빨리 올려주세요. 그리고 창파기 2부도 빨리... 2002/10/16 샤를휘나 허걱!!!저보다도 빠른님덜 대단합니다... 헌데 요상하게되네요...우구르트랑... 은빛님!!!몸은괜찮으신가여??? 연참부탁!!!!!! 2002/10/16 베르디안 우..우앗!! ㅇ///ㅇ 으..은빛님 돌아오신 거죠? 그죠? ]ㅁ[ 꺄악!!! 신난다 신나.. 은빛님 잘 돌아 오셨어요~~ 이왕이면 창파기도 써주시지.ㅋ 2002/10/16 laila 돌... 돌아오셨군요!!!! 아 기뻐!! 이제 다음 타는 창.파.기. 겠죠?+.+ 상당히 오.랫.동.안. 연재를 안하신거 같은데에?! 2002/10/16 원이 ㅎㅎ 올라 왔군요.. 다시 돌아 오셨군요.. 정말 정말 방가워요..흑... 오늘도 여전히 안올라왔겠지라 생각하며 리플을 보겠다고.. 밑으로 쫙 내렸는데. .뭔거 이상하게 글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지요..ㅎㅎ 인제 또 잠수 안하실꺼죠.. 2002/10/16 검은포효 은빛님 연참신공을 전개해주시면 지금까지의 잠수를 덥어 드리죠... 2002/10/16 지옥숙녀 으어어어어~!! 은빛님이다아~~~-_ㅠ 어서 오세요오~~!!! 제가 카페에 갈 때마다 얼마나 찔렸는지 아시나요오오!!! 특히 제게 메일 주셨던 `사라`님!! 절 볼때마다 물어보신다구요!! 올라왔냐고!! 은빛님!! 어서어서 써 주세요오...-_ㅠ 2002/10/16 무해해 부드러운 문장... 여성적인 세심함두 보이고.. 고생 하셧습니다 .ㅋ 지다린 보람이 있군요 2002/10/16 무해해 그래도 기다린 사람도 있는대 배짱이 플레이는 너무 하셧슴둥 ㅋ 2002/10/16 냥~ 드뎌 .....오랜 기다림이 끝났군요 ...ㅡ.ㅜ 양도 많은것 같구..성실히연재 해주세여~ 2002/10/16 때쟁이 근데. 왜이렇게 늦으신걸까앙 `_`? 2002/10/16 쿠오오 은빛님의 복귀에 기뻐하는 독자들.... 은빛님 어깨가 무겁습니다. 2002/10/16 리민 란님, -_- 은근히 개구진 면이 있는것 같아요 ; 그래도 멋져요!!! 아무튼, 열심히 써주세요, 2002/10/16 천하잡승 글 기다리다 망부석될 뻔 했슴다. 작가님은 책임을 통감하시어 연참신공을 보여주시구려... 2002/10/16 朽 오오오옷!!! 올라왔다!!!+_+ 후후훗.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눈물이 앞을...ㅜ,ㅡ 2002/10/16 asd 이야 도대체 얼마만인가 아아아(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중) 작가님 연참! 연참! 연참! 2002/10/16 타락천샤 아까pc방 달려가서 후다닥 봤던...조폭이란아디는 친구라죠..쿨럭..집에와서 라덴오라버니께 이제 필요없다고 연락했습니다..사시미역시 치웠구요;; 2002/10/16 맨날오네 이제야 올라오네요.. 정말 넘하심.. 작가님 힘내시고.. 담엔 좀더 빨리... 2002/10/17 루시퍼 음냐 소설 잘일었습니다 분량이 많아서 정말루 행복했다는 다음에도 많이 올려 주세요 2002/10/17 으음... 우트트 VS 금아 .. 붙어랏!! ㅋㅋㅋ 2002/10/17 아류엔 헉 +_+ 은빛님 기다린 보림이 ㅇ]_[ㅇ 행복행복 이제부턴 성실연재??? 히히히~ ^^ 은빛님 홧팅~!! 2002/10/17 우울증 드뎌.. 올라왔구뇽... 에궁.. 담편은 언제오려나... 2002/10/17 달 크흑... 님! 딱하루! 매일 매일 확인하다가 딱하루 컴터 안켰는데 그때 몰래 들어오셔서 올려 놓고 가시다니. 좀 늦게 봤어도 글이 올라왔다는게 기쁨이네요*^^* 게다가 좀 길기두 하구.... 간만에 읽었더니 온몸에 짜르르르 전율이 ... 역시 님의 글 덕분에 산답니다. 이제부터 메일밤 컴터를 안키면 매일밤 글이 올라 올까요?? 기대... +_+ 2002/10/17 seoli 돌아오셔서 기뻐요...*********^^*********** 2002/10/17 다인 기뻐요 ㅜ.ㅜ 근데.. 장군인...ㅠ.ㅠ 2002/10/17 hobit 어서 오세요..^_^* 2002/10/17 -ㅁ- 크윽... 살아 돌아오셨군요-_ㅠ 기쁩니다~!! 건필하세욧 2002/10/17 아르티스 내가 왜 어제 안 왔을까?ㅠ_ㅠ 그래도 역시 재미있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뭘 하셨길래+ㅁ+ 2002/10/17 이즈 오호 ]_[ 드이오~!! 재미쪄욤 ^^* 연참 부탁욤 ^-^)/) 2002/10/17 이슬이 오옷!!!!!혹시하고 와봤더니 올라왔네여^^내용도 꽤 기니 읽는데 행복했습니당..다음 편은 언제 올리시는지... 2002/10/17 아르타나 아르티스님 (?)아니요 별뜻없습니다 .~단지 닉네임이 비슷해서~~왠지 의식이 돼네여~~ 아~~악~~다음편~~~!!빨리 올려주세여~~ 이젠 하루라도 늦으면 불안해져요~~ㅠㅠ 2002/10/17 朽 헉..담편....담편!!!!!!!!!! 크어~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본다. 이미 중독 되었음. 금단증상을 일으킨다.) 은빛님~ 담편을 주세요오오~~~~~~~~~``ㅜ,.ㅠ 2002/10/17 세리피스 대단한 인기군; 2002/10/17 아까징끼 님 넘해써요..이제야 올려주다니.. ㅜㅜ 이 감격..삼룡이네 올때마다 행여나 올라왔을까 하는 맘에 보고 또보고 했건만 ....... 이제야 올려 주시다니.. 넘 잼있으니까 쉬지말고 견마지로???를 다해서.글쓰시길.. 하하 2002/10/17 DNGNT 크하하하-!! 연참을 뱉으시오오오-!!!+ㅁ+!!!어서!! 2002/10/17 마녀 우하하 드디어 한편올라왔네요 너무너무 기뻐요^^ 2002/10/18 아르타나 ㅠㅠ 다음편~~~다음편~~~나도 금단현상인가봐여~~ 우에엥~~책임져여~~책임쟈여~~~ㅜㅜ 2002/10/18 소냐 웅~~ 금아는.. 이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텐데~ 웅~ 귀여운 금아~ 2002/10/18 쿠오오 은빛님... 연참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2002/10/18 서호련 넘 재밌어요~ 얼릉얼릉 돌아오셔요~ 2002/10/18 키리엔 허걱~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고 들어와 봤는데 올라와 있군요! 은빛님, 잘 돌아오셨어요. 아아~~ 행복*^^* 2002/10/18 디그 금아... 질투하는군. 귀엽기도 하지...-///- 에이, 둔한 란. 2002/10/18 라인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있었습니다. 돌아오셔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 글 여전히 재미있네요.^^ 2002/10/18 방울s™ 드..드디어 나왔다! 나왔다! 아아아아 기이~쁘다아]▽[ 2002/10/18 FeeL 크아악 이사람들 모야!!! 난또 글인줄 알았더니... 댓글이었자나!! 2002/10/18 쿠오오 은빛님.. 글.... 글........ 글........... 글을 던저 주시오!!! 2002/10/19 무해해 무해해 ㅡㅡ 5일에 한편 지금의 분량 10배를 던져 주시와요 ㅡㅡ 2002/10/19 아르타나 엥~~우아앙~~ㅠㅠ 다음편~~!!! 2002/10/19 개구리 한동안 안 올리시길레 뜸하게 확인했더니 그새 올리셨군요 넘좋아요^^ 2002/10/19 박여울 생존신고 하신 은빛 님.. -_-;; 다시 와서 한번 더 읽고, 갈무리 하고 갑니다.. ^^ 이제~ 다음 편 올리실 때두 됐죠? ^^ 컴백의 휴유증(?)이 조금 커서 `벌써?` 이런 말 나오심 돌 날아 갑니다..ㅡㅡ^ 2002/10/19 휘긴교도 란♡금아 의 관계는 안될듯;; 란도 눈치없지만...금아의 숫기도 부족한거 같고..무엇보다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것!!! 와하하하~~~ 2002/10/19 윽.. ..금아란 이름을 처음들었을때 어디서 많이 들었다고생각했습니다-_-......알고보니 저희 경주 쪽의 관광회사가 금.아.관.광!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잇던 것이였슴다~~~~ㅜ.ㅡ 커헉!!! 2002/10/19 Name Mail [[The Perfect MAID]]-65-납치된 하녀. [82] 은빛 2002/10/16 2492 72 [푸념]써 놓은 글이 날아간다는건... [235] 은빛 2002/09/27 4272 71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48] 은빛 2002/09/23 4187 70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25] 은빛 2002/09/22 3323 69 [공지]가벼운 알림 [39] 은빛 2002/09/19 2713 68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87] 은빛 2002/09/12 4883 67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45] 은빛 2002/09/09 4051 66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13] 은빛 2002/09/09 3768 65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43] 은빛 2002/09/05 4597 64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39] 은빛 2002/09/04 4352 63 [[The Perfect MAID]]-57-편지. [34] 은빛 2002/09/02 4093 62 [[The Perfect MAID]]-56-편지. [38] 은빛 2002/08/31 4160 61 [[The Perfect MAID]]-55-소년의 결심 [53] 은빛 2002/08/29 4468 60 [[The Perfect MAID]]-54-소년의 결심 [36] 은빛 2002/08/28 4362 59 [[The Perfect MAID]]-53-왜 하필 란이었을까. [26] 은빛 2002/08/28 4177 1 [2] [3] [4] [5]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66-란을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 [[The Perfect MAID]]-66-란을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 "호오... 세 명이나? 흠.. 확실히 길러서 잡아먹는 건 인간들 세계의 로망이라고도 한다지만, 그건 수컷에게나 해당하는 말 이라고 생각했는데?" 햇살이 아주 뜨거운 날이었다. 우린 숲 속의 커다란 나무 아래서 우리처럼 그늘을 찾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던 한 존 재를 만났다. 그는 잠시 놀란 듯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가는 천천히 커다란 턱을 움직였다. "음?" 마치 아주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 운 만남이었다. "그렇지 않나. 인간이란 종족의 대부분은 극소수를 제외하 고는 일부 다처에 더 익숙하지 않은가. 물론 일처 다부제를 유 지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고는 하지만..." 내 키의 세 배는 더 될 만큼 커다란 눈동자를 잽사게 굴리 며 고개를 갸웃거려 본 초록색의 괴물은 눈꼬리를 살짝 잡아 끌어 올렸다. 황금색 눈동자가 기울어진 달처럼 살짝 모습을 가렸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흠, 아닌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에 내가 조금 목소리를 높여 보였 을 때 그의 눈빛이 상당히 장난스러워 보임을 알아챘다. 그는 힐끗 내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면 그 새 인간들의 풍습이 바뀐 걸지도 모르겠군. 남 성 위주의 일처 다부제로..." "뭐?" "하지만 말이야, 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맨 끝에 서 굳어있는 소년은 지나치게 어린 것 아닌가? 자네와 적어도 이 백살은 차이가 날 듯 보이는데..." 그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곁눈질로 우리 일행을 내려다보 며 고개를 주욱 뽑아들었다. 윤이나는 진록의 비늘이 강렬한 여름 오후의 햇살을 받아 보석보다도 더 영롱하게 반짝였다. "그런 농담 란은 죽기 직전까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일 정 영역에 대한 경험치는 어린아이만도 못한 사람이니까요." 내 뒤쪽에 서 있던 수강이 실실 웃으며 한 발 앞으로 나섰 다. 어린 금아의 어깨를 살짝 잡으며 광검자는 고개를 살짝 끄 덕였다. 나 모르는 뭔가가 둘 사이를 흘렀다.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말을 너무 스스럼없이 하 는 인간들이군." "어쩔 수 없잖습니까. 그래도 저희의 선택이었는데요." 뭔가를 아는 듯한 광검자와 수강의 분위기에 난 입을 다물 었다. 지금 나서서 뭔가를 질문했다가는 정말 어린아이만큼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하나 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를 아나? 아니 우리를 아는 듯 싶은데." 커다란 몸과 반짝이는 비늘을 지닌 종족을 모르지는 않았 다. 이 낯선 대륙을 떠돌아 다닌지 십년. 이미 알 만큼은 겪어 본 상태였다. 괴물의 입가가 살며시 움직였다. 어지간한 삼층 건물의 기둥만한 하얀 송곳니가 살짝 빛을 반사시켰다. 그 분 위기가 어쩐지 낯익었다. "............................." 어디서 만났더라? 저런 눈빛을 가진 존재를 내가 어디서... "란님!" 누군가가 세차게 몸을 흔들었다. "란님!" "...............어라?" 이제 막 열 다섯이 되었을 소년이 어른의 얼굴을 하고 날 흔들고 있었다. "란님! 괜찮으세요? 이렇게 깊이 잠드신 적이 없었는데..." 걱정스러운 음성.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던 걸까. 혼란스러 운 와중에도 현실은 차분히 내게 와 닿고 있었다. "아, 아. 괜찮아." 그 날에서 벌써 백년도 더 지났다. 강렬한 햇살 때문일까. 정말 오랜만에 잊고 있던 벗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어딘가가 안좋으신 거라면, 노도님 께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금아가 눈높이를 맞추며 살짝 무릎을 굽혔다. "아니야. 옛 꿈을 좀 꾼 것 뿐이야." 어쩌면 정말로 최면에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도가 안다 하더라도 그는 올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후 작가의 동맹 세력의 보이지 않는 중심이었다. 후작이라면 그를 어떻게 해서든 빼 내 보내주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 자존 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때 그 놈을 좀 더 패주는 건데..."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금아의 어금니부근에서 들렸다. 내 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인한 그 날 새벽 금아는 살며시 아 르카이아를 빠져나갔다. 술 한병을 사 온 몸에 뿌리고서는 날 직접 납치해 갔었다는 베트란 작자를 우연히 시장통에서 맞부 딪힌 척 해 드래곤 오크 잡듯 패 주고 왔다고... 다음 날 시장 에 나섰다가 소문을 들었다. 원래 시장이란 하녀에게 가까운 정보통이 되는 곳이니까. "지나치게 실력을 발휘해서는 곤란하잖아." 남들 보기에는 짓밟듯 패 줬다고는 하지만 그 놈이 교묘하 게 몸을 뒤트는 바람에 정작 급소는 한 대도 못때렸다고 금아 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패려면야 못 팰 이유가 없었지만,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암살자를 일개 하인이 농락할 수는 없는 법이다. 힘겹게 납치까지 당하고 돌아온 내 노고 덕분에 금아는 교묘히 몸을 비트는 놈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뻔히 보면서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납치자로 일했던 자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죽거나 사고를 당한다면 그 의심이 사방으로 뻣칠 것은 분명한 일일 테니까. "그건 그렇고, 나갔던 것 아니었나?" 얼마나 오래 잠들었던 걸까. 간만에 수업이 없는 날, 클로네 와 클레이브를 훈련시킨다며 단란하게 셋이 방을 나선 적이 방금 전의 일 같은데... 해가 길어져서인지 시간이 금방 잡히지 않는다. "아, 네. 나갔다가 두 분 훈련 양을 정해드리고 잠시 내일 일을 준비하러 들어왔습니다." 아주 경어까지 입에 딱딱 베였다. 이 놈을 누가 그 베이르 대공이라 볼 것인가... "아, 그래..." "스테판과 크레이는 요즘 잘 하고 있나요?" 마음이 놓였는지 내게서 떨어져 분주하게 책을 찾아가던 금아가 문득 그들을 떠올렸다. "재능은 있는 편이야." "............." 잠시 금아의 손놀림이 멎었다. "왜?" "아, 란님의 기준에서 보는 재능의 형태가 어떤 것일지 잠 시 상상해봤을 뿐입니다." 뭘 떠올렸을지 상상이 가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금아는 힐 끗 내 눈치를 살폈다. 자칭 내 첫 제자라는 놈은 요즘들어 장 난인지 애교인지 구분 못할 방자함이 많이 늘었다. 평소라면 발끈 했을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에 아직도 옛 친구의 커다란 황금빛 눈동자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그 때는 금아도 아직 어 린 소년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도록도록 굴리며 내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던, 그러나 단 한번도 기가 꺾여 본 적이 없었던 특이한 소년... 시간이 교차한다. "재능이란 뭘까." "네?" 의아스러움이 금아의 표정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 개를 가르쳐주면 바로 열 개를 알아채는 것?" "흠..."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좋은 흙에 물 붓듯 이 바로 흡수 되며 찰져지는 것? 눈치가 빨라 시키지 않은 훈련도 잘 하는 것? 그런 것들...일까? 단 한번 보여줬던 초식을 순식간에 이해 하고 한번 보여준 동작을 단 한번에 따라할 수 있는 눈썰미와 운동력?" "보통 그런 것들을 재능이라고 하죠." 장난끼를 씻어낸 눈빛으로 금아는 좀 진지하게 고개를 끄 덕였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 다. 유달리 밝아 보이는 금아의 파란 눈동자가 이질적으로 보 였다. 문득 고향 땅의 검은 눈동자가 보고 싶어졌다. 노도라도 곁에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게 재능이라면, 스테판과 크레이는 검을 잡아서는안 되는 아이들일지도 모르지." 픽 웃음이 나왔다. 한 놈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일일이 몸으로 알려줘야 했고, 다른 한 놈은 운동신경이 영 받혀주지 않아 원하는 데로 몸이 따라가지 않았다. 전에야 직접 가르치 는 것도 아닌데다가, 워낙에 스승이라는 검사들 자체가 눈에 안찼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속속들이 파고 들어온 다. "흠. 전에 지나가다가 기초 수업 과정에 있는 검술 훈련시 간을 보기는 했습니다만." "그 정도는 어찌어찌 따라할 수 있을 꺼야." 날이면 날마다 그 중노동을 하고 있는데 그 정도도 따라가 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기초훈련의 핵심은 기초 체력 형성 과 집중력이 향상이 대부분이니까. "눈이 살아있던데요?" 툭 던진 한마디가 살아 있었다. 난 물끄럼히 금아의 표정을 살폈다.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목덜미를 긁어댔다. "거, 참. 사람 무안하시게..." "그래. 많이 무안 '하셔라'. 이 높은 제자놈아." "아, 어디 가시게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옷자락을 털어 보이는 내 모습에 금아 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였다. 난 두 팔을 쭉 뻗었다. "너만 일이 있냐? 나도 있어." "그러시겠죠." 요즘들어 시중 드는 일을 하르크와 금아에게 모조리 넘긴 덕분에 난 아주 한가했다. 조금 심심할 정도. 코빼기도 보이지 못한 채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일을 해내고 있는 하르크가 안 다면 길길이 뛰며 난리칠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내 운 명이겠거니. 할 뿐. "란님!" 피식거리는 금아를 뒤로 하고 방문을 나서자마자 부딪힌 하녀 하나가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기다렸다는 듯 달려 온 하녀 하나가. "이런, 란님이 아니랍니다. 저도 하녀일 뿐이예요." 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는 볼을 조금 붉혔 다. "하지만, 란님은 보통 하녀들과는 어딘가 다르시니까요. 또 제 은인이시기도 하시고..." "이런, 이런...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나요. 그런 일에 부담 가지실 필요 없으시다니까요." "그런 일일뿐이라니요."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 올 린 갈색 머리카락이 조금 흩어졌다. 그녀는 같은 복도에 숙소 를 배정받은 귀족가의 하녀였다. 복도에서 몇 번 얼굴을 부딪 힌 적은 있었지만 각자 주인의 입장이란 헤괴한 사슬에 묶여 서로 말조차 하지 않고 지냈었는데. "그 날, 란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전 살아있지 못했을 겁니다." 어느 늦은 저녁 또다시 망가진 클레이브의 갑옷을 고칠 재 료를 사러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그녀는 시장으로 들어서 는 골목 한 귀퉁이에서 서너명의 우락부락한 깡패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갑자기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희롱하는데, 전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답니다." 모른 척 지나갈까 하다가 낯익은 얼굴이길래 부득불 끼어 들었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다가 그녀가 죽기라도 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기분 더러울까. 뭐 그정도의 생각 이었다. "란님께서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구요. 후훗." 깡패 셋은 내 가녀린 팔에 걸죽하게 늘어졌다.제법 하녀답 게 보이기 위해 난 아픔을 무릎서고 클레이브의 갑옷까지 휘 둘러 댔으니까. 얇아도 쇠는 쇠고, 약해도 갑옷에 깔린 마나는 마나다. 모르긴 몰라도 두터운 쇠 몽둥이보다 열배는 더 아팠 으리라. 뭐, 깡패들은 두어대 맞고는 뻣었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빡빡 빌고 나서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감히 두고 보자는 둥의 상습적인 말재간 따위 부리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고. "전 몸을 움직이는데는 영 소질이 없거든요." 혀를 살짝 빼 물어 보이며 볼을 부풀린 그녀는 애교스럽게 웃었다. "소문을 퍼트리는데는 남다른 소질이 있던데요. 뭐." 가벼운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녀의 볼이 조금 더 부풀어올 랐다. 그 날 이후 내가 더 한가해 진 이면에는 그녀의 발빠른 소문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요." 슬쩍 시선을 돌리며 그녀는 아이처럼 발끝을 빙빙 돌렸다. 그녀 덕분에 난 지금 내 어린 주인보다도 더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특이한 주인에 평범과는 담을 쌓은 하녀. "최강의 하녀라니요. 전 아주 평범한 하녀일 뿐이랍니다. 이 정도의 호신술은 동대륙에서는 귀족가의 하녀라면 누구나 하 는 거라구요." 애써 답답하다는 표정을 해 보이며 난 가볍게 가슴을 두드 렸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와 내 친구들의 전설 덕분에 이 곳에 는 동대륙에 대한 환상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 달아나던 깡패 들이 두고 보자며 뒤 한번 돌아보지 못한 이유에는 분명 염색 물이 다 빠져 다시 새까맣게 변한 내 머리카락도 들어있겠지. "그래도 제겐 대단해 보이거든요. 또 이 아르카이아에 동 대륙에서부터 건너온 하녀라고는 란 하나 뿐인걸요." 그녀는 손사래까지 처가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헤헤헤, 어디 가시는 건가요?" "아, 주인님께서 거두신 학생들을 좀..." 난 말을 멎었다. 그녀의 눈이 초롱이는 모습이 또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져 나가면 곤란했다. "클레이브님은 정말 신비하신 분인 것 같아요." 다행히도 그녀는 관심의 화살을 내게서 돌렸다. "란님 같은 하녀에, 신비한 외모의 소년까지 거느리시다니. 또, 금아님도 잘 생기셨잖아요." 등 뒤쪽에서 그녀와 같은 주인을 모시는 하녀 하나가 나타 나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면 난 그 자리를 빠져나가지 못했 을 지도 모른다. 그녀와 비슷한 눈빛으로 내게 고개를 숙여 보 인 그녀의 친구는, 서둘러 복도를 빠져나갔다. 아아, 그녀 덕분 에 난 정말 유명해져 가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말이다. "란님을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이라는... 희한한 모임 생긴 거 혹시 아세요?" 사흘만에 찾은 날 한동안 힐끗거리던 스테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끙 신음소리가 흘러나갔다. "뭐, 아르카이아의 삶이라고 편한 건 아니겠죠. 하녀들의 삶 이라는게 다 그렇고 그러니까." 내 인생 삼백년에 세 손가락에 꼽힌 애늙은이다운 말투로 스테판은 말을 꺼냈다. "란님 같은 하녀가 있다는 건, 어쩌면 상당히 유쾌한 일일 지도 몰라요." "호, 시장 바닥에서 건달 서넛 패준 일이?" "누군가가 구해 주지 않는 이상 패면 맞을 수밖에 없는 삶 을 살아가고 있는 게 하녀들이니까요." "젠장." "아주 작은 일 하나라도 그녀들에게는 희망이 되어주는 거 겠죠." 부쩍 어두워진 표정의 스테판이 쓸쓸히 미소지었다. **** 은빛입니다. 카페... 프리첼에 있던 카페를 옮기려 합니다. 웹 호스팅을 후원해 주시겠다는 분은 만났구요. 대신 광고 베너 한두개 달고... ㅎㅎ (예쁜 걸로 달겁니다. 분홍빛으로) 문제는 만드는 건데. 제가 제 홈을 만들어본 적은 없어서. 도와주실 분 찾습니다. 다들 글이나 올리지 이사는 왠 이사냐.. 하시는데요. 저도...ㅠㅠ 제 방이 갖고 싶단 말입니다. (이게 왠 뻘소리인가)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은~ 이 아래에 메일로 연락 주시면 되구요 지역은 상관없습니다. 단, 만나서 밥 한끼 하려면, 서울분이 좋겠죠. 그 외... 도와주신 분. 1권 나오면 드립니다. (세분 정도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에치티엠엘 정도만 짜고... 이지보드나, 제로보드...에서 무료 게시판 얻어와서 깔고... 하면 될듯 한데. 도와 주실 수 있는 분... 자원해 주시면... 카페 운영자 권한도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ㅎㅎㅎㅎㅎㅎ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41, Read : 3542, IP : 218.48.34.23 2002/10/22 Tue 23:52:55 → 2002/10/24 Thu 00:30:06 흑요 오오+_+!!올라오시다니-ㅁ-!!감격이에요-_-!!!!! 아, 참-_-;;안녕하세요].[!! 흑요라고 합니다(꾸벅) 은빛님 소설 정말 재밌게 보고 있는 사람이지요 헤헤;; 한동안 안 올라와 맘 졸이다가 와보니 올라와있고 게다가 첫타인지라 기쁨을 못 이기고 이렇게 발자국 남기네요 하하하;; 은빛님 소설 정말 좋아합니다^^!! 건필하세요^^!! ...가끔 이리 찾아와도 모르는 척 하지 않으시기에요ㅜㅡ 자 그럼 이만-ㅁ-;; 좋은 하루 되시길 2002/10/23 키너스 우효효효~~ 남들은 이걸 보고 1타라 그러죠... +_╋ㅋ 2002/10/23 검은포효 오옷~~~드뎌 올라오다니...연참해주세여.... 2002/10/23 키너스 허~억... 글쓰고 있는사이에 하나가 더 올라올 줄이야... ㅠ_ㅠ;; 2타가 돼는건가??? -_-ㅋ 2002/10/23 洪 ... 분홍빛 므흣한것인가 . . 2002/10/23 진 오오 공지만 올라온줄알앗는데 어느새 크으 기쁘다ㅜㅜ 2002/10/23 무해해 천계의 전광 날라오다 ㅡㅡ다시 돌아가다 !!!! 2002/10/23 무해해 죽음의 바다 넷필에 떠도는 유령선 뉴올 8인치 함포를 조준하다 다시 돌아가다 ㅡㅡ 덤으로 플래쳐의 4연장 근접신관 어뢰도 준비 되어있었음 ㅡㅡ 2002/10/23 키리엔 오오~ 올라왔어요, 올라왔어어어~~~].[ 이리 기쁠 수가. 이젠 란추모 발족? 글구 금아.. 그동안 근육이 사라진 가는 팔이라던가 길다란 속눈썹이라고 부분적으로만 감질나게 묘사하시더니 오늘은 확인사살이. 역시 금아는 꽃돌이였어요!! 2002/10/23 lina 네이비.....잼나여^^작가님두 해봐여,시간이 언제 이렀게....란 생각이 드실겁니다.건필 연참 마니마니 기대 만빵, 내일 기다릴께요^^ 2002/10/23 아르타나 ㅜㅜ 감동~~감동~~~감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2002/10/23 유니아 ㅋㄷㅋㄷ 정말 란 주위의 남자들은 불쌍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네요. 란의 옛 친구들도 보아하니 란을 좋아하는데 말 못하고 같이 돌아다녔던 것 같고 금아도 현제 붙어다니고 있지만 아무 진전 없는 사이고.......란만 모르게 하렘(?)을 형성하고 있었네요. 또 얼마나 더 늘어날지 기대를...^^ 2002/10/23 항아 란추모-0-;; 2002/10/23 초코.. 이제 잠수 걱정은 안해도 되려나..음....길러서 잡아 먹는다.;;심오막측해라;;.. 2002/10/23 으음... 후훗~ 란, 드디어 하녀계의 아이돌로 등장하는 것인가.^^ 2002/10/23 으음... 그런데 수강이랑 광검자, 백년 전의 그들과 란은 어떻게 헤어진걸까요. 보아하니 죽었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쉽사리 떨어졌을리 없을텐데... 란은 크레이를 가르치면서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2002/10/23 쿠오오 으흠.. 여기의 드레곤은 엄청 크게 설정되어 있나 보군여.. 눈동자가 성인의키의 세배정도는 크다... 라는.. 음음.. 일단 설정을 미루어 짐작컨데.. 그 드래곤이 에이션트 급의 고룡인가 보군여.. 그래두 넘 눈이 크당.. (왕눈이 드래곤...) 비례로 보자면 눈이 얼굴에서 차지하는 크기 비율이 1:7 정도는 될듯 하고.. 얼굴과 몸통크기의 비율이 1:8 정도(꼬리길이 까지 포함,으흠.. 8등신 드레곤.. -_-;)라고 가정한다면 그 드래곤의 몸길이는 란의 키의 60배 가량의 크기... 그러면 란의 키를 대략 1미터 60 정도(옛날 여자치고는 좀 큰편이라고 저혼자만의 짐작으로 된 설정)로 봤을때 그 드래곤의 전체 몸길이는 약 100미터 가량.. 으흠... 좀 크군여... 드래곤 라자에 나오는 용들이 좀 크다고 생각하고 있는편이었는데 그정도 급의 크기로 상상이 됩니다. 에에.... 글 다보고 나서 심심해서리 주저리 주저리 써 봤습니다. 2002/10/23 쿠오오 음음..추가적으로 3층건물 크기의 송곳니 라면 아무리 작게잡아두.. 10미터 크기.. 게다가 동양의 옛날 건물을 생각한다면.. 대체적으로 천장이 높은편이었고 그러니깐.. 더 클수도 있고..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지는군여.. 2002/10/23 아류엔 ㅇ]_[ㅇ 드디어 기다린 보람이 있군요~!! 히히히~!! 건필하세요~ 홧팅~! 2002/10/23 타락천샤 행...행복합니다...(연참은 안되려나??) 쿨럭..카페를 옮긴다라..기대 하겟습니다^^* 2002/10/23 베르디안 아아..몇일만에 왔더니 이런 기분 좋게 글이 올라와져 있군요. 하핫! ^ㅁ^ 또 올려주세욤!! 2002/10/23 우헤헤 ㅎㅎ 즐독했습니다~은빛님..!담변을~햐햐;; 2002/10/23 지옥숙녀 오오오...최강의 하녀..라..! 드디어 란의 진가가..![캬캬캿;] 은빛님. 힘내세요! 건필! 글도 열심히 쓰시고 이사도 잘 하세요~]_[ 2002/10/23 딸기 드뎌! ㅠ.ㅜ 건필하세여, 글구 이사도 잘가시구여 2002/10/23 항아 아 이런, 글 제목이 `추총하는`이라고 되어었군요, 다른 오타는 빼놓고라도 제목 틀린 건 지적해야겠죠^^; 2002/10/24 DNGNT 으히히히히히+ㅁ+ 올리셨군요! 500연참은 안바라고 한 50연참 정도만...^ ^(생긋?) 2002/10/24 은빛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하지만 다른 곳은 수정 안했다는...ㅠㅠ 죄송) 2002/10/24 kazis 아앗]_[ 글이 올라왔다ㅠ_ㅠ.. 2002/10/24 그리고 오옷.. 넘 좋댜~!!!! 간만에 보니 넘 좋아효.. !! 자쥬 올리세효!! 2002/10/24 에바디엔 ....수강...... 마음에 든다는.......]ㅅ[/// 2002/10/24 키리엔 쿠오오님, 님의 계산법에 따르자면 저 용의 머리 길이는 란 키의 21배이고, 몸의 길이는 란 키의 168배가 됩니다;; 그렇담 거의 300미터에 가깝겠지요? 그리구 드라의 용들은 큰 편 아니에요. 소설에 따라 3~40m의 길이를 가진 용들이 등장하는 소설이 있는가하면 3~400m의 몸길이를 자랑하는 용들이 나오는 소설도 있죠. 제가 본 소설 중 젤 크게 나온 용은 무려 70km(오타 아님, 정말 킬로미터)의 길이를 자랑하는 용이랍니다. 그게 어떤 소설이더라...?`ㅅ`a;; 2002/10/24 무해해 쩝 디엔디룰에서 웜(5000살 정도?)이 아마 이빨하나 크기가 성인남성 크기 만할껄료 .... 판타지소설에서 나오는 용들이 작은거야요 ㅡㅡ;; 무해해 2002/10/24 무해해 자세히는 모름 저두 들은거라서 무해해 2002/10/24 무해해 중요한건 동양의 용이고 서양의 드래곤이고 다들 상상의 동물? 이라 크기는 별루 안중요 할듯 얼마나 강력하나에 따라서~ 2002/10/24 무해해 에픽급 드래곤들은 어마어마 하던디 ... ㅋ 2002/10/24 박여울 에헤헤.. ^^ +_+ 어..어제 분명히 리플 달았었는데엣! ]_[ 어쨌든, 은빛 님.. 재밌게 봤습니다. ^^ 2002/10/24 은빛 70km의 용이라면 한마리 뿐이죠. 내이름은 요...타(쿨럭! 갑자기 잊어버렸습니다... 죄송해요...)의.. 쿨럭. 또다시 이름을 잊어버린 거대룡.(전 제 글 주인공들의 이름도 옆에 안적어 두면 잊어버린답니다. 용서를....) 2002/10/24 무해해 ㅋㅋ 바하무트도 좀크고 그리고 티아멧도 .... 이두분(원체 나이가 많음 ㅡㅡ;; 그레이트 웜) 은 플레인 키퍼로 활약중 2002/10/25 무해해 움해해 그리고 참고로 디엔디 룰에는 드래곤이 살아봐도2500살 정도라내요 ... 음.. 그렇다고 똑같은건 아니니... 하여튼 드래곤은 영생이 아뉘지요 용은 음 신으로 취급하니 아마도 영생?? 이모탈? 2002/10/25 아르티스 저 드래곤은 어떤 드래곤인지... 2002/10/25 코로코로 난 너무 행복해요 2002/10/26 Name Mail 78 [[The Perfect MAID]]-68-크레이 [26] 은빛 2002/10/31 2199 77 [[The Perfect MAID]]-67-란을 추총하는 하녀들의 모임 [61] 은빛 2002/10/25 3272 76 [공지해제] [15] 은빛 2002/10/24 1545 [[The Perfect MAID]]-66-란을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 [41] 은빛 2002/10/22 3542 74 [공지]카페 이사에 대해. [23] 은빛 2002/10/22 1216 73 [[The Perfect MAID]]-65-납치된 하녀. [111] 은빛 2002/10/16 4184 72 [푸념]써 놓은 글이 날아간다는건... [235] 은빛 2002/09/27 4397 71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49] 은빛 2002/09/23 4608 70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25] 은빛 2002/09/22 3672 69 [공지]가벼운 알림 [39] 은빛 2002/09/19 2803 68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87] 은빛 2002/09/12 5233 67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45] 은빛 2002/09/09 4358 66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13] 은빛 2002/09/09 4087 65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43] 은빛 2002/09/05 4907 64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39] 은빛 2002/09/04 4672 1 [2] [3] [4] [5] [6]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67-란을 추총하는 하녀들의 모임 [[The Perfect MAID]]-67-란을 추총하는 하녀들의 모임 "호? 최강의... 하녀?" 호기심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빈틈없이 잘 다져진 구리 빛 근육이 꿈틀 움직였다. "일개 하녀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최강이라는 칭호를 받다니, 전설의 로드 이후로 여성으로서는 처음 아닌가." "하녀라는 전제 하에서라면 그럴 겁니다. 로드 이후로 최강 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을 뿐이죠. 이전이라면 감히 하녀 따위에게 그런 호칭을 붙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겁니다." 어디서인가 하녀들의 소문을 듣고 와 볼을 상기시키는 주 인을 달래며 세자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강한 무력이라면 물 불을 못가리는 주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조금 버르장머 리 없을 정도로 냉정해야 했다. "하지만 부러운 건 사실이야." 마른침을 굵게 넘기며 움크는 고개를 한번 움직였다. 우드 득 근육 풀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세자트는 조금 더 큰 동작으로 고개를 저었다. "겨우 하녀 따위를 직접 만나보실 생각이라면 그만 두십시 오. 이미 라트를 시켜 만나게 해 보았습니다." "호?" 라트라면 움크가 인정하는 친위 전사중의 하나였다. "어떻게 깡패들을 이겼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 지지 않는 하녀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특이한 점이라면 알려진 바와 같이 동대륙 출신이라는 점." "흠... 그랬단 말이지." 다른 누구도 아닌 라트의 눈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직 접 말을 건네보거나 하지 않아도 라트 정도의 힘을 기른 전사 라면 한 눈에 상대방의 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상대 방이 라트를 부쩍 상회하는 실력의 소유자라면 다르겠지만... 일개 하녀에게 그런 힘이 있을리 없었다. "동대륙에서 하녀 생활을 하면서 주인집에서 가르치는 호신 무예를 조금 익힌 듯 하더군요. 그 뿐입니다. 깡패들은 아마도 그녀가 동대륙 출신이라는 점에 놀라 당했을 뿐일 겁니다." "흠, 괜히 좋아했군." "네." 포기한 듯 툭 뱉는 주인의 말에 세자트가 막 안심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왜 우트트는 그 하녀를 직접 만나 본 걸까?" 입가를 살짝 끌어올리며 움크는 흰 치아를 들어냈다. "세자트. 자네가 걱정하는 바는 모르지 않아. 난 지나칠 정 도로 강한 무력에 관심이 많지. 사막의 피가 유난히 진해." 세자트의 얼굴이 굳었다. 우트트의 측근들이 움크 진영의 귀족들을 수행하는 하녀나 하인들을 잡아다가 묘한 최면을 걸 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겨우 몇 일 전의 일이었다. 정신 없이 급보를 전하는 와중에서도 세자트는 전할 소식을 가렸다. 우트트가 그 최강의 하녀라고 소문난 하녀를 직접 만나본 사 실만큼은 알리지 않으려 했었는데. "아무리 약한 존재이더라도, 한 영역에서 이름을 날리기 위 해서는 작은 발톱 하나 정도는 숨기고 있어야 하겠지." "후, 저하께서는 그리 한가하신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 아, 난 바쁜 사람이야. 하지만, 세자트. 비록 그녀가 강 한 무예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하지만 말이야. 동 대륙의 무 예라네. 무기를 따로 들지 않고 손발을 주로 쓰는 마샬아트는 우리에게는 정말 신비로운 무술이야." 움크의 볼이 고집스럽게 굳어졌다. "그 무술을 보고 싶지 않은가? 비록 쓰는 사람의 실력이 낮 다고 해고, 겨우 하녀가 발휘하는 힘이 그 정도라면, 본래의 힘은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해 보고 싶지 않은가?" 온 몸의 근육이 시원스레 풀린 것을 확인하며 움크는 허리 춤에 걸린 검을 툭툭 두드렸다. "잠시라도 몸을 쓰지 않으면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는군." 활짝 열린 문을 밖으로 햇볕에 따갑게 달구어진 흙땅이 펼 쳐져 있었다. 얼마나 밟았는지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잘 다져 진 땅은 움크가 직접 짓이긴 그만의 연습장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주인은 나의 맹약자의 가문의 다음 주인이 기도 하지. 페르로이 가의 어린 혼혈아를..." 신발을 훌훌 벗어 던지고 그는 밖으로 나섰다. "움크님. 신발만큼은 신으심이..." 행여 독이라도 뿌려져 있을까 두려운 부하의 염려에 움크 는 털털히 웃었다. "카느를 꿈꾼다는 자가 그 정도 담량도 되지 못하면 두려움 에 짓눌려 죽어 버릴걸세." 거대한 도가 그의 허리춤에서 모습을 들어냈다. 가볍게 휘 두른 한번의 동작에 휭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얼핏 봐도 어린아이 키 만한 길이에 손가락 한 마듸는 넘어 보이는 두께 를 지닌 쇳덩이를 움크는 가벼운 나무 막대기처럼 다루고 있 었다. "이번 여름 중앙절은 축제를 한다지?" "아, 네. 카느의 병세도 좋아지셨고, 지난 해 중앙절을 소흘 히 넘긴 일로 말도 많았으니까... 아마도 이번 중앙절은 크게 벌어질 겁니다." "그래, 사막의 부족에게 중앙절을 넘긴다는 건 있을 수 없 는 일이야." 쉴세없이 춤추는 도에서 반사되는 빛이 세자트의 눈을 어 지럽게 했다. 세자트는 손으로 살짝 눈앞을 가렸다. 빛 때문만 은 아니리라. 움크의 검무는 사막인의 영혼을 울리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대국이 된다 해도 사막의 부족은 사막의 부족.' 그 뿌리를 잊는다면, 천년 전의 전설로 사라진 사막제국처 럼 하루 아침에 신기루 흩어지듯 제국도 사라질지 모른다. 세 자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중앙절 축제에 그들을 초대해라." 문득 검무가 멎었다. **** 귀족들의 숙소 전체가 작게 술렁이고 있었다. 아르카이아의 꽉 짜인 수업과 자존심을 가차없이 짓밟는 시험점수 공개, 보 내진 나라와 가문과 스스로에 대한 근거 없는 자존심을 양어 깨에 가득 짊어진 귀족가의 어린 철부지들에게 그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서로가 정치적인 적이 될 수 있는 장소, 아 무리 뭘 모른다지만 섯불리 적을 만들 수 없는 그 곳에서 어 린 귀족들의 분노는 아래로 흘러갔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뜨 거운 열사의 땅에서 하녀들은 주인들의 화풀이 아래 힘겹게 하루 하루를 이겨내고 있었다. 소문은 낸리의 귀에도 들어갔다. 최강이라는 호칭을 은밀히 달고 나타난 하녀의 이야기. 이제 제법 하녀들 사이에서는 공 공연히 최강의 하녀라며 말해지는 여인. 그만하면 귀족들의 귀 에조차 들어갔을 법 한데, 그 뒤에 있는 가문의 힘인지, 아니 면 그녀가 지닌 미묘한 공기 덕분인지 사라지거나 쥐도새도 모르게 죽임 당하지 않고 잘 서 있는... 신기한 사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한 기사 보다더 더 강하고 뛰 어난 하녀를 떠올리며 낸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딸그락- 깨진 화병 조각이 발에 걸렸다. 꼼꼼히 치운다고 했는데 언 제 이렇게 커다란 덩어리가 남겨진 걸까. 그녀의 여주인의 신 경질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다, 너 때문이야! 넌 어떻게 그리 아무런 쓸모짝이 없을 수 있지? 책 하나 제대로 들고 오지 못하는 주제에!" 낸리는 글을 읽지 못했다. 몇몇 단어는 눈대중으로 읽을 수 있었지만 그건 크리아의 언어에 국한된 범주였다. 낯선 땅, 프 란의 언어는 낸리에게 아직 채 익숙해지지 못한 외국어일 따 름이었다. 낸리는 몇 번 셀레라의 책을 잘못 챙겨들고 갔다. 전날 셀레라가 잘못 둔 까닭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모든 잘못 은 낸리에게 있어야 했다. "흠." 손가락 끝에서 붉은 핏방울이 고였다. 잡념이 많았던 까닭 이다. 잘 하지 않던 실수를 했다. "이런, 이러니까 아가씨께 타박받는 거야." 작게 중얼거려봤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 되뇌였다. 그렇지 않다면... 만일 자신이 잘못한 바가 없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 았다. 셀레라 같은 귀족만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셀레라 와 너무나도 다른 두 귀족과의 만남은 그만큼 많은 영향을 남 겼다. "나도... 란... 님처럼 그렇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면 얼마 나...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셀레라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온갖 물건을 집어던졌다. 팔뚝과 얼굴에 든 새파란 멍은 채 풀려 보기도 전 에 거무죽죽하게 다시 자리잡았다. 프란의 여름제는 일종의 분기점이다. 태양이 가장 뜨거워지 는 그 날을 시작으로 프란의 아르카이아는 잠시 휴교에 들어 간다. 태양이 조금 식을 때까지 대략 한달 정도의 시간이 비워 지게 된다. 그 때를 기점으로 모든 제도가 변한다. 그 전에 기 초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정식으로 "학년"을 부여받는다. 셀 레라는 엊그제 치우러진 시험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불합격했다. 자신만의 특권이라 불릴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다른 귀족 들보다 두 번이나 더 시험을 본 결과가 그거였다. "너! 너 때문이야! 내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네가 무능해서야!" 셀레라는 외쳤다. 낸리는 땅으로 꺼져 버리고 싶었다. 자신 이 존재할 이유가 푹 사라지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따위 혼혈아와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아이보다 내가 못할 리가 없잖아! 이건 다, 네가 보좌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매번 들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팠다. 똑 물방울이 하나 손등 위로 떨어졌다. 낸리는 물끄럼 손등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 다. 마치 물방울이 저절로 손등에서 솟아오른 듯한 느낌이 들 었다. 똑, 또 한방울이 떨어졌다. "낸...리?" 조심스러운 목소리. 낸리는 흠짓 눈물을 훔쳤다. "아, 놀라지 마. 나야, 나. 옆방의... 주아." 낸리의 앞에서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 녀는 셀레라와 조금은 가깝게 지내고 있는 프란의 페렌가문의 딸을 모시고 있는 하녀였다. "우리 주인님도 합격 못하셨거든." 새까맣게 물든 눈두덩이로 싱긋 웃어보이며 주아는 낸리의 옆에 쭈구리고 앉았다. "너희 주인님이랑, 우리 주인님 함께 나가셨어. 아마... 기분 전환겸 승마라도 나가신 것 같더라." 한숨을 폭 쉬며 주아는 낸리가 놓친 커다란 화병 조각을 조심스럽게 주었다. "조심해야지." 핏방울을 발견한 듯 눈가를 조금 접은 주아는 화병 조각을 쓰레기를 모아둔 통에 조심스럽게 버렸다. "하아... 뭐, 앞으로 열흘은 바깥으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 을 들었으니... 혼자 있기 심심하잖아. 망신살 뻣치니까, 물 길 러도 가지 말래. 다른 하인 사서 시킨다구." 피식 웃으며 하는 말치고는 살벌했다. "이러다가 소리소문 없이 죽거나, 버려질까봐 좀 무섭기는 하지만, 이렇게 사느니, 어디 가서든 못살까. 그런 생각도 들 고. 하여간. 너도 비슷하겠지만." 두 하녀는 잠시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먼저 시작한 건 주아였다. "참, 너도 들래?" "음?" 진정이 된 듯 낸리가 제법 멀쩡하게 웃어 보였다. "옆 동은 벌써 다 만들어졌데. 우리 동도 조금씩 들어가는 거 같고." "뭐가?" "쉿!" 낸리의 반응에 주아는 고개를 한껏 낮추고 조심스러운 표 정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갖대 대 보였다. 꿀꺽 마른침이 낸리 의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이건 널 믿으니까 하는 말이야. 절대 주인님들 귀에 들어 가면 안되." 방금전까지의 장난스러움을 다 버린 듯 극도로 조심하는 친구의 모습에 낸리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주아가 조 심스럽게 낸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모임이 만들어졌나봐." 낸리의 눈동자가 또그르르 굴러갔다. 주아의 속삭임이 이어 졌다. "최강의 하녀, 란님을..." 주아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갔다. "닮아가는 모임, 사모하는 모임이라고." "응?!" 자신도 모르게 크게 반문하는 친구의 입을 어디서 났는지 모를 강한 손아귀로 틀어막으며 주아는 급히 주위를 살폈다. "야! 그렇게 튀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해! 어디에 주인님들 의 그림자가 숨어 있는 줄 알고." "그래봤자, 하녀들 모임일 뿐이잖아." "야! 야! 때리려고 핑계 잡기 시작하면 별게 다 걸린다는 거 몰라? 낸리! 너 하녀생활 얼마나 했어!" 낸리의 어깨가 화들짝 굳었다. 심장이 두근 뛰었다. 기대감. 뭔가 움직일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낸리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 있잖아. 지난번에 란님이 깡패들 손에서 구해줬다는 하 녀. 페테루가의 휴아리라는 그녀. 그녀가 시작한 모임인데," "응,"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여가며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친구의 반응이 기분 좋은 듯 주아는 밝게 속삭였다. "그녀가 그 때 란님에게 배웠던 호신술을 가르쳐 주나봐." "호신.. 술?" 낸리는 알고 있었다. 란의 강함의 조각을. "그래, 란님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간단한 격투 술을 가르쳐 줬데. 비록 기사님들처럼 강해질 수는 없지만."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열심히 연습하면 시장을 어슬렁거리는 건달 하나 둘은 거 뜬히 팰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라고 하면서!" 두 사람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힘! 비록 주인의 손 에서까지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늘 쉴세 없이 그녀들의 삶을 위협하는 그림자 한 가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 ".........정... 말?" "음." 주아가 또렷히 고개를 끄덕였다.끈질기게 달라붙어오는 휴 아리를 떼 내기 위해 간단히 가르쳐줬던 몇 가지의 호신술을 타고... 그렇게 모임은 란이 모르는 사이 점점 더 덩치를 더해 가고 있었다. **** 헉헉헉헉~! 아직 오늘 맞죠? ㅠㅠ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61, Read : 3272, IP : 211.204.2.190 2002/10/25 Fri 23:03:57 무해해 음 태극권 가르쳐 주나? 아님 영총권 ㅋ 둘다 유로 강을 제압하는 강력한 법이니... 움해해 2002/10/25 무해해 음 아님 택견 ㅋ 이라도~ 2002/10/25 일타^^ 언제나 재밌게 보고 있어요. 은빛님. 건필을...^^ 2002/10/25 땅콩 뭣하면...-ㅅ) 가벼운 무공이겠지요...클클클... 2002/10/25 멜로막스 아무리 가벼운 무공이라도 란이 가르쳐줬다면.... 그나저나..셀레나는 언제쯤이나 합격할까???^^;; 2002/10/26 ..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_╋ 2002/10/26 라이시안 이야앙 잼땅...저 모임이 어떻게 변할지 참 기대되내요...+_+ 그냥 잠시 빛나다 사라질지 아님 크게 사건을 일으킬지...넘넘 궁금해욥~! 은빛님 건필을...^^ 2002/10/26 눈이 쿨럭.. 혹시 했는데.. 2002/10/26 키너스 우움,,, 재미있네요.. 이제야 연재가 본 궤도에 오르는건가... -_-ㅋ 2002/10/26 으음... 아아~ 역시 란은 인기가 좋구나... 우트트에 움트에.. 다른 의미로긴 하지만 말이야~ 2002/10/26 무해해 음 태극권보다는 팔극권이 마음에 드는데 ㅜㅡ 2002/10/26 무해해 팔극권은 너무 강맹해서 여성이 쓰기엔 별룰꺼 같어 2002/10/26 무해해 아는건 팔극권 태극권 당랑권 형의권 등등 뿐이 모르니 ㅜㅡ 이런이런 ㅜㅡ 2002/10/26 무해해 앗 영총권도 .... 택견 태권도 무하무로 (이건 나도 말만 들은거 무하무로 인지도 잘모름 ㅡㅡ;; 조금 많이 과격) 2002/10/26 무해해 그리고 가라데 또.... 음 모르겟당 누구 잘 아쉬는분 없낭? 2002/10/26 키리엔 란추모(란사몬가?)가 서서히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는군요; 은빛님, 성실연재 넘 기뻐요~~^^ 이러다가 또 덜커덕 잠수하시는 건 아니겠지요오? 2002/10/26 아르타나 크~윽 팔극권~신창이서문이중극 근대화때 황비홍과 함깨 중국 최고의 무술가 란 칭호을 얻은 권법이죠.동중무적의 최고의 권법~영춘권은 쿵후스타 이소룡의 절권도의 모태가 된 권법으로 작은 힘으로 강한 상대을 제압하기로 유명하죠 경쾌무비한 움직임도 특징~음 여성들이 익히기엔 먼저 각법(봉황퇴)으로 하체 체력과 몸의 균형을 그리고 내공을 샇고 팔괘장이나 태극권으로 수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2002/10/26 쿠오오 저는 행복합니다.. T_T 2002/10/26 쿠오오 란이 휴아리라는 하녀에게 가르쳐 줬다는 권법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달자면.. 특별히 무슨 무슨 권법이라기 보다는 기초적인 유술과 관절기 정도일꺼라 생각이 듭니다. 때를 쓰는 사람에게 간단히 가르쳐 주기에는 이름 있는 권법이나 내공을 가르치기에는 무리가 있으리라 판단되며, 그러한 이유로 바로 실용적으로 쓰일만한 것(간단한 유술,관절기)등이 아닐까.... 라는 짐작을 해 봅니다. 2002/10/26 서호련 넘 재밌답니다. 란을 추총하는 모임이 만들어지다니...우하하하~^^;; 넘 좋아요 아 오타인지 모르겠는데 마디를 마듸로 고냥하셨나요? 이 부분이요(얼핏 봐도 어린아이 키 만한 길이에 손가락 한 마듸는 넘어 보이는 두께를 지닌 쇳덩이를)으음~ 오타가 아니면 괜한 트집을 잡은것 같아 미안합니다. 건필하셔용~^^ 2002/10/26 항아 추총이 아니라 추종...인데요.... 2002/10/26 ez 꺄하하하하하하! 너무 재밌어요! 2002/10/26 아류엔 ㅇ]_[ㅇ 꺄~!! 란사모 홧팅~!~~!~!!~!!!! 2002/10/26 고미 나두 란사모에 들까나~~~^ㅡ^ 님아 건필~~~냐핫 2002/10/26 얌탱구리 설마 북두신권을... -_-;;; 2002/10/26 valkaiz ㅋㅋㅋ 그러다가 란이 문주가 되는 건 아닌가?? 그리고 무술예를 닥는다기 보다는 무술을 익힌다고 봐야 겠지요 예와 술은 차이가 엄청나니깐요 ^^ 그럼 즐독 2002/10/26 아르티스 어떤 호신술을 가르쳐주는것인지. 저도 란사모에 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2002/10/26 DNGNT 나도! 나도 란사모 들래요;ㅁ;!! 란사모 화이팅`ㅡ`*! 2002/10/26 무해해 북두신권은 강인디요 그힘을 적절이 조절하는 그러한 권법??일껄료 음 유술이라 ... 유술도 좋을시구나~ 2002/10/26 무해해 신창이서문도 죽이지만은 일격필살 이서문도 쥑인다는 우쩨 손길한번으로 사람을 죽일수 있는지 ㅡ ㅡ 2002/10/26 코로코로 유후- 행복해라- 2002/10/26 율리어스 오늘은 언제 일까요?^^ 2002/10/26 이나카엘 우와~드디어 연재가 들쑥날쑥하지 않고 제 자리로...은빛님~ 장군일기와 창파기2부는요~!! 2002/10/26 박여울 냐아아!! ]_[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2002/10/26 빈이 너무 재미있어요!!! 연참하시면 좋을텐데...(이건 무리란가?) 님 글은 양도 많고 질도 좋아서 좋아요.(-0-_) 내일도 올리실 꺼죠? ^-^* 좋은 하루 되세요 . 건.필!! 2002/10/26 지옥숙녀 싸랑해요, 은빛님!!! 건필! 2002/10/26 베르디안 우아앗!! 은빛님이 올리셨닷! ^ㅁ^ 으히힛! 란은 정말정말 멋져욤~♡ 란을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이 많이 번창되기를 빌게욤! 2002/10/26 타락천샤 우에...저희집컴터가 맛가서 제대루 접속이 안되서 오늘에서야..보네요..은빛님...(/+ㅍ+)/..한편더....... 2002/10/26 실버 은빛님... 넘 재밌어요~~ 요즘 자주 올려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 2002/10/26 present3 나는 항상 읽고 싶어 눈만 깜빡이는 독자처럼 쉽게 읽은 모든 것 쉽게 잊어 버린채 가끔 올린 것만으론 숨도 쉴 수 없을거라 울며 인터넷 속의 게시판 찾아 쉬지 않고 클릭하네 난 원해 더 많은 글을 더 많이 내게 더 자주 글을 더 길게 내게 나의 웃는 리플 뒤엔 부드러운 혀가 침흘리고 작가가 올린 모든 것 읽은거라 여긴채 아직 찾아 읽지 못한 이름 모를 소설들을 보면 살찐 열 손가락이 나른하게 떨려와 이제는 읽지 않는 소설에는 클릭 한번 않고 올리지 않는 게시판에는 보이지 않는 리플만이 떠돌고 믿지 않을 작가와 읽지 않을 공지 지치지 않는 독자처럼 독촉 글을 올려 나는 가장 슬픈 글로 작가의 멜을 두드리며 가 그에게 빌어 내게 좀 더 많은 글를 줘, 조금만 더, 더 내게 좀 더 많은 글를 줘, 조금만 더, 더 더 많은 글을 더 많이 내게 더 자주 글을 더 길게 내게 더... 더... 더... 더... -페닉의 더를 개작하여 2002/10/27 무해해 음 ... 더더 독촉할수록 글이 맛이 없어지지 안을까하는게 제생각인데?? 음 낚시하다보면 끈임 없이 기다리다 딸려오는 대물의 손맛은 각별하게 느껴지는것도 기다림의 미 이지 안나요? 2002/10/27 유정이 ㅋ ㅑ~~~~~~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여~ 님~ 빨리좀 글을 올려 주세여~엉엉.. 안그럼.. ..................................님을 납치해버릴지도 몰라여!!!!!!!!! 2002/10/27 赤兒 님아~이번엔 얼마나 기달려야 되나요? 얼릉 올려주세요... 2002/10/27 우울증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속타 죽을것 같아요.. 제발.. 언능 올주시죠. --+++ 2002/10/28 타락천샤 쿨럭..이번에도 생존신고만 하시구 도망간건가??에잇..역시..기대한 내가 바보......(퍼어억~)지......@ㅁ@.........-_#........누구얏~~!!! 2002/10/28 박여울 ]_[ 꺄아!! 하..항상 생존신고시군요..진짜..T^T 근데, 무해해 님.. 이거 아시나요? ㅡㅡ^ 은빛 님께서는 안면철판신공을 극도로 연마하신 분이시라는 걸..T^T우엥.. 2002/10/28 딸기 최강의 하녀.. 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은빛님 건필하세여!!^-^ 2002/10/28 으음... 빅장을 가르쳐달라는...^^ 썰렁한 농담이었습니다. 헉!!(푸슉~) 2002/10/29 쿠오오 간만에 창파기의 마지막글을 클릭해서 봤습니다. 물런 은빛님의 글은 오래전에 올라온 것이라 본지 오래인것이고, 창파기만 보는 분들의 리플을 보러 갔었지요.. 참으로 애가 타는 독자들의 리플이 가득하더군여.. 마음이 모두 타 버려 시커먼 재가 되어버린.... 은빛님 힘내시구여..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당신의 글이 우리에게는 자그마한 삶의 위안처가 됩니다. 2002/10/29 리나 은빛니마~근데 최강의 하녀는 언제 책 나와여?첨부터 쭈~욱 보구시픈데에~어여어여 책으로 내주세여~~~ 2002/10/29 타락천샤 쿨럭..처음부터 긑까지 또 다봤습니다...이제 더이상 못살아요.은빛님 돌아와요~~쿨러억...언니한테 한대 맞았습니다..하루종일 컴터앞에 않아있다구..ㅜ_-글..글이 필요해~~ 2002/10/29 DNGNT 훗...... 또 다시 잠수 타시는가?! 어서 돌아오지 못하시겠소!! 2002/10/30 han 어린아이 한 마디 정도의 두깨라.... 한 2~3cm되려나 그 정도는 나도 마음대로 다룰수 있겠는데 2002/10/30 으음... 하루에도 4,5번은 들어와 확인하고 있습니다. 은빛님, 얼른 돌아오세요.ㅠㅠ 2002/10/30 베르디안 으억!!! 왜..왜 안 올라와 있는거죠? ㅡ_ㅜ+(원망) 은빛님...제발 올려주세욤..ㅜㅅㅜ 아주아주!! 자주자주!! 많이많이! 2002/10/30 혈향단화 호오..란의 팬클럽이 점점 확산되고 있네요 2002/10/30 타락천샤 라..란을불러서 다 부셔버릴꺼야~~(미쳐가고 있다..-_-;) 2002/10/30 비아락ㅔ 아주 넌절머리가 난다. 차라리 연재중단하세요. 참기 힘들어 2002/10/31 ...angel 재미있게 잘읽고 있오요~`^^ 정말 재밌어요!~~ 담것도 빨리 올려주세요..^^ 2002/10/31 타락천샤 후....후.....후.....후...........음회회회~~드뎌..사시미세트를 구입했습니다!!(제가아니라 아버지께서요;;)흠흠..아무튼 이제 슬슬 올려주실때가 됐는데..+_+은빛님이 안올려주시니까..사람들이 안들어...아..아니다....아무든 리플을 안올리잖아요 그러니까..저라도 도배를..쿨럭..아니 매일같이들어와서 리플한개씩달아서..백개가 채워지나 보겠습니다..+_+ (채워지면 죽습니다..-_-++) 2002/10/31 우헤헤 ㅎㅎ 담변두있자나!! 크하하하! 2002/10/31 Name Mail 78 [[The Perfect MAID]]-68-크레이 [26] 은빛 2002/10/31 2199 [[The Perfect MAID]]-67-란을 추총하는 하녀들의 모임 [61] 은빛 2002/10/25 3272 76 [공지해제] [15] 은빛 2002/10/24 1545 75 [[The Perfect MAID]]-66-란을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 [41] 은빛 2002/10/22 3543 74 [공지]카페 이사에 대해. [23] 은빛 2002/10/22 1216 73 [[The Perfect MAID]]-65-납치된 하녀. [111] 은빛 2002/10/16 4184 72 [푸념]써 놓은 글이 날아간다는건... [235] 은빛 2002/09/27 4397 71 [[The Perfect MAID]]-64-납치된 하녀. [49] 은빛 2002/09/23 4608 70 [[The Perfect MAID]]-63-공주와 정원사. [25] 은빛 2002/09/22 3672 69 [공지]가벼운 알림 [39] 은빛 2002/09/19 2803 68 [[The Perfect MAID]]-62-공주와 정원사. [87] 은빛 2002/09/12 5233 67 [[The Perfect MAID]]-61-너 둘, 나 둘. [45] 은빛 2002/09/09 4358 66 [[The Perfect MAID]]-60-너 둘, 나 둘. [13] 은빛 2002/09/09 4087 65 [[The Perfect MAID]]-59-힘의 여파는? [43] 은빛 2002/09/05 4907 64 [[The Perfect MAID]]-58-힘의 여파는? [39] 은빛 2002/09/04 4672 1 [2] [3] [4] [5] [6] skin ZINA/ Ezeon 3dragon.net // 은빛의 다른 소설들 : [창파기/여신과기사], [장군일기] ///은빛의 카페로 돌아가기 은빛 [[The Perfect MAID]]-68-크레이 [[The Perfect MAID]]-68-크레이 '네 감각을 믿어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과 훈련이 반 드시 미래의 네게 힘이 될 것을 믿어라. 땀방울이 헛되이 흩어 지지 않음을 믿어라. 네 삶의 본능을 믿어라. 앞으로 나가라. 네 의지를 믿어라.' 눈을 떠도 머릿속에 울리는 말이었다. 크레이는 가볍게 숨 을 가다듬었다. 신경을 천천히 집중해 란이 가르쳐 주었던 자 세를 만들어냈다. 눈이 보이는 자라면, 물에 비치는 모습이라 도 보며 생각해 낼 수 있을 자세를, 크레이는 오직 전신에 남 아있는 감각 하나로 재현해야 했다. '난 남들이 가졌다는 재능은 하나도 갖지 못했다. 어쩌면 막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난 너희보다도 훨씬 뒤떨어지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허튼 소리로 남을 위안해주기 위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 다. 가끔 밉살스러울만큼 바른 소리만 골라 해 곤란한 사람이 었을 지언정, 단지 위로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내는 사람은 아 니었다. '날 마스터로 만든 건, 무예란 남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라 고 믿어왔던 내 희망이었다.' 스승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조차 불가능했을지 모른다고 조금 부끄러워 하기는 했지만, 만일 그녀가 중도 포기했다면 스승을 만나 보기도 전에 죽었을거라며 그녀는 말했다. "큭!" 순간 숨이 끊어졌다. 호흡을 잘 잇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의식하지 않을 때는 무의식중에 행동했던 일이 의식 하고 조절하려 하니 이토록 어려울 수 없었다.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희에게 중요한 건,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과, 그 것들이 내 경험을 통해 충분히 실현 가능한 형태로 가꾸어져 있다는 것. 그 뿐이다. 내가 평범한 하녀이건 아니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야.' 언젠가 란과 같은 사람이 왜 하녀 일을 하고 있느냐는 스 테판의 질문에 란은 엄하게 말했다. 크레이는 고개를 털었다. 잡념이 끊임없이 방향을 갈아타고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정신을 다시 가다듬기 위해 란의 목소리를 떠올렸던 것뿐인데, 이제 그 목소리가 또 다른 잡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왜 검을 배우려고 하는지를 잊지 말아라.' 왜 배우려고 했을까. '한 순간에 강해진다는 착각은 버려. 정말로 강해져야 하는 건 두 팔의 힘이 아니라...'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네 자신이다.' 무엇이 바른 자세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무거워만 지는 팔 이 바르게 올라갔는지, 검의 끝이 기울어졌는지 조차 구분가지 않았다. 볼을 타고 땀방울이 연신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빠드 득 이가 부딪혔다. '잡념을 버려야 한다.' 몸이 무거워질수록 잡념은 비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는 그랬다. '제길....' 스테판을 먼저 들여보낸 건 약한 모습을 더 이상 보이기 싫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가 가 버린 시간이 크레이에게 더 무거운 밤이 되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머리가 알려준 밤이라는 시간대는... 그에게 견디기 힘든 시간 이었다. 눈에조차 비치지 않는 노란, 샛노란 달이 머리에 그려 진다. -끼이이이이- 동물 울음소리들이 멀리서 작게 울렸다. 저런 소리는 사람 의 가슴을 섬득하게 만든다. 유달리도 크게 떠 있던 샛노란 달 이 자꾸만 머리에 그려진다. 한 순간 솟아난 듯 달빛을 가로막 으며 서서 싯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던 누군가의 비웃음. 불길 함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던 그 날이 또다시 되풀이된다. "큭!" 힘이 빠져나간 손아귀에서 목검이 제 멋대로 춤춘다. 잘못 내리쳐진 목검이 크레이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순간 몸이 푹 꺾였다. 다리가 부르르르 떨렸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몸을 뒹그르게 했다. "하아, 하아." 숨을 고르고, 통증을 견뎌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마음 을 괴롭히던 기억들은 육신의 고통에 밀려 잠시 그 흔적을 지 웠다. 크레이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싱긋 미소지었다. 이 편이 훨씬 견디기 쉬웠다. 잠시 몸을 추스린 크레이는 다시 목검을 들었다. 다리까지 부르르 떨려 자세를 찾기가 힘들었 다. 이제 연습을 마쳐야 하는가를 생각하던 참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구나." 낯익은 목소리에 크레이의 동작이 멎었다. "..........하르크씨?" "이봐, 이봐, 동작을 멎으면 안돼잖아. 나중에 란님에게 나 맞아 죽는 꼴보고 싶어?" 창백한 달빛 아래 익살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검은 그림 자 하나가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파삭이는 소리조차 내 지 않고 조용히 떨어져 내린 그림자는 허리를 주욱 피며 떨어 지던 순간과 달리 우드득 소리를 내 보였다. "에구, 에구... 지난번에 말발굽 손질 잘못해서 도련님이 승 마 시합에서 이등을 했다며... 얼마나 날 잡던지..." "풋!" "이봐! 웃을 일이 아니라구! 난 정말 죽지도 못하고 얼마나 뒤지게 맞아야 했는데!" "마침 란님께서 숙제로 주신 숫자도 채웠고, 이제 들어가려 던 참입니다." 제법 거친 숨을 고르며 크레이는 목검을 늘어트렸다. "그럼, 다행이고." 크레이에게로 다가가지 않고 조용히 선 자리에 주저앉으며 하르크는 작게 한숨을 내쉈다. 제법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파 고들었다. 태양이 사라지자마자 무섭게 식어 버리는 공기는 이 곳이 그가 태어나고 자란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되새기게 만들었다. 얼떨결에 주인으로 정해진 클레이브의 상황에 따라 서는 뼈를 묻고 돌아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래, 검술은 배울만 하냐?" 크레이의 눈가가 조급 좁혀졌다. "무언가 해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죠." 눈이먼 자가 배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강하지 않 으면 살아남을 수조차 없는 세상. 악착같이 살아남고 발버둥치 지 않으면 한 끼 베 채우기도 힘든 세상이 바로 담장 하나를 두고 펼쳐진 곳이 이 세상이었다. 크레이의 말에 담긴 뜻을 모 를 하르크는 아니었다. "넌 행복한 녀석일지도 모른다." "네. 정말로 그럴 지도 모릅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요즘 많이 바쁘신 것 같더군요." "아아... 게으른 하녀를 만난 덕분에 어지간한 일은 다 하고 있지 않겠어?" 고개를 털래털래 흔들며 하르크는 낮게 한숨을 내쉈다. "마부 일이란 것도 쉬운 게 아니야. 말 조련도 그렇고. 여기 저기에서 몰려든 귀족가의 하인들 사이에 치여서 우리 말을 지켜내는 일도 만만치가 않은 노동인데... 요즘 들어 하녀일이 시들해지기라도 했는지 툭 하면 불러다가 심부름이나 시키 고..." 피곤이 가득 쩌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하르크는 엎어 질 듯 땅에 몸을 기댔다. "금아님은 금아님대로 뭐가 걸려있는지 요즘 계속 퉁퉁 부 어 있는 상태고, 클레이브님과 클로네님은 눈코뜰 새 없이 바 쁘지. 그 빌어먹을 셀레란가 하는 여자는 쉬지도 않고 헛소문 을 퍼트리고... 흐." "헛소문요?" "몰라. 란의 클레이브의 친모라는 둥, 뭐라는 둥 별의 별 기 괴한 헛소문이 다 돌고 있다구. 젠장. 딱 보면 모르나. 저런 왈 가닥이 어떻게 애를 낳았겠어?"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게다가 그림자랍시고 정말 없는 사람 취급하는데, 미칠 지 경이라구. 제길."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크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몄다.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차갑게 식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운 여름의 중간으로 들어가는 계절이었다. 헌데, 이런 오한 이라니? "이건 완전히 노처녀 히스테리라구. 히스테리." 파삭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부러진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울린 소리. 그러나 크레이는 어깨를 움추렸 다. 연이어 낮게 들려오는 뿌드득 소리가 하르크의 목소리에 겹쳐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저어기...." "휴우... 그것 뿐인 줄 알아? 이건, 사람을 뭘로 보는지, 동 대륙인들은 다 그런건가? 도사라면 일종의 신관인데, 그렇게 괴팍하면서도 어떻게 신을 모신다는 건지 알 수 없고, 하녀면 하녀답게 걸래질이나 할 것이지, 주먹을 쥐고 설치는 꼴이라 니, 내, 지금은 힘이 없어서 맞고 있는다지만..." 하르크의 말이 문득 멎었다. 크레이의 관심이 이미 자신에 게서 벗어나 있음을 문득 느꼈다. "어라? 크레이? 너 지금...." 부정확하게 크레이가 고개를 돌리고 관심을 기울이던 방향 으로 하르크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리고... "케엑!"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비행했다. 한 순간에 나무 위로 뛰어올라 마치 날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크레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해 줬던 말을 기억하니?" 그녀는 대답을 굳이 원하지는 않았다. 하르크가 몸을 돌려 날아간 곳을 형형한 눈으로 쏘아보며 그녀는 가볍게 주먹을 움켜줬다. "살다보면 별별 인간을 다 만나게 된다고 했었지." "아..................." 크레이는 조금 말 끝을 흐렸다. 그 말의 뒤에 있던 란의 이 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인간을 다루는 법 중 하나를..." 순간 란의 모습이 사라졌다. 바람 소리도 도약하는 소리도 없었다. "오늘 실습시켜주마." 크레이의 귓가로 바로 옆에서 말한 듯한 목소리가 와 닿았 다. 란이 몸을 날린 줄도 모른 채, 손을 더듬어 말리려는 듯 뻣은 크레이의 팔이 빈 공간을 스치고 지나갔다. "케에에엑! 한번만 봐주세요!" 거친 하르크의 목소리를 바람결에 스쳐 들으며.. "휴. 오늘도 제몫까지는 절대 안 돌아오겠군요."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냥, 크레이는 목검을 챙겨들었다. 늘 그를 짓누르고 있던 밤의 무게가 어느 새 날아간 듯 가볍게 변해 있었다. "앞으로 사나흘은 아저씨를 만날 수 없겠는걸?" 피식 웃음을 짓는 크레이의 모습이 흰 달빛에 환상처럼 아 롱지고 있었다. **** 짧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참! 홈피 협력해 주시기로 했던 분들~ 제가 제 MSN 메일로 보내드렸을 겁니다. 금요일~! 한번 만나요~ 인터넷상에서도 좋고... 서울팀은 오프로 한번 뵙죠. 메일도 보내드릴께요~ 그럼~!! ㅠㅠ 아...그리고... 독감에 호되게 걸렸습니다. 머리가 핑글핑글 도네요. 휴우ㅜㅜㅜㅜㅜㅜ 참, 그리고 책은... 1, 2권이 동시에 나올 예정입니다. 11월중에는 나올듯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구요. 지금 최종 교정중이랍니다. 뭐, 저야 틈틈히 잠수타곤 합니다만... 지금은 정말로... 책 쓰느라고... 열쉼히...ㅡㅡ;;;;;;; 넵. 책, 곧 나옵니다...ㅠㅠ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Comment : 26, Read : 2199, IP : 218.48.37.56 2002/10/31 Thu 22:18:14 → 2002/10/31 Thu 22:25:22 으음... 우와 ~ 첫타에요~ ^^ 돌아와서 감격스러워요~ 2002/10/31 으음... 독감에 걸렸지만 좀 더 길게~~~~~~~~~~~ 길게~~~~~~ ^^ 2002/10/31 ucary ^^ 조심하셨어야죠. 근데 홈피 제작은 성곡적으로 마치셨나요? 2002/10/31 지옥숙녀 풋. 재밌어요^^; 하르크, 란에게 쌓인것이 꽤나 많았나보네요^^ 2002/10/31 우헤헤 건강조심하세요~ 저도 감기걸렸는데..머리가 띵..;; 모두 감기조심하시길~..은빛님 재밌게 읽었습니다..ㅎㅎ 2002/10/31 JE 6타! 만세에~!! 2002/10/31 그리고 옷.. 일주일만이댜.. 캬.. 보고싶었습니다!!! 하하.. 다음편 얼른 부탁드려효!!! 2002/10/31 딸기 더뎌 봤당~~ 2002/10/31 키너스 에에... 건필하시어요... +_╋ㅋ 2002/10/31 키너스 오타같은데요.... `란의 클레이브의 친모....` 이게 `란이 클레이브의 친모...` 로 바뀌어야 할것 같아서... -_-;;; 2002/10/31 sinsia 감동입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요. 늘 지금처럼만 ....부탁해욧!!][ 2002/11/01 이나카엘 에엑...저도 감기몸살...그것도 종.합.감기에 걸려서 열이 39까지 올라가서 정신이 오락가락 했었답니다..지금 생각하면 재미..있었나???(넌 뭐야 대체?!)어쨌든 아프긴 아팠으니까요..엄마가 많이 걱정하셨죠.. 머리가 재일 아팠답니다 *^^* 2002/11/01 나쁜마녀 책이름도 최강의하녀인가요? 영어로?? 나온다면 당장 살께여. 근데 독감 예방주사를 안맞은건가여? ㅋㅋㅋㅋ 주사는 모름지기 저처럼 미리미리 맞아두는게 좋답니다^^* 아프셔서 좀 쉬시라고 말 씀드리고 싶지만... 글은..꼭! 쓰여야합니다. 아셨죠? 연참..정도는 아니라도 꼬박꼬박...^^ 펀필! 하세엽~ 2002/11/01 키리엔 올라왔군요, 올라왔어요오~ 언제 다시 은빛님이 사라지실지 몰라 불안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키리엔입니다. 책 나오면- 에헤, 사야겠죠? 2002/11/01 향나무 우웃..최고에요ㅡ.ㅜ 새삼 했습니다 은빛님!!! 장군일기도 창파기도 잼있었지만 최강의 하녀라니..힘내세요!! 은빛님의 글들은 제 활력소입니다 2002/11/01 아르타나 음 과연 올해안에 연재 끝날수 있을지~?. 오호 통재라~!. 2002/11/01 유정이 은빛님~~~~~~~~~~~~ 넘넘 잼있지만.......................그치만..................창파기는.....여..? 님............... 힘드시겠지만.. 좀더 힘을 내시고.. 화이팅!!......창파기좀 써주세염...T^T 2002/11/01 아류엔 엇.. +_+ 드디어 책이 힘내시구요~ ^^ 몸 항상 건강하세요~!! 홈피가 빨랑 제작되어서 가봤으면 좋겠어요 ㅇ]_[ㅇ 홧팅~!! 2002/11/01 illiya 책 표지그림은 공개안해주세여? 궁금궁금궁금궁금 2002/11/01 ㄴ 와 빨리 보구시퍼여 빨랑빨랑 헤헤 2002/11/01 검은포효 좀.....양이...잛은듯.....................담엔 언제나 올려주시려나... 감기조심하세여...요세 날이 춥네여...... 2002/11/01 라뮤엘 저는 그뒤로 이야기가 없으셔서 저몰래 뚝딱 만드셨나 했네요^^; 금요일이면 오늘인가 저녁에 메세지나 보내드릴께요^^ 2002/11/01 사악1004 ㅠ_ㅜ~드뎌~!! 올만입니다. ^^;;~돌아오셨으니 기쁘네요... .. ㅠ_ㅜ~제가 컴터 실력이 좀만 더 좋았으면... ..;; 솔직히 은빛님 홈페이지 만드는거 돕고 싶었어요..;; 징징~..;; 2002/11/01 서호련 우와~ 축하드려요~ 책 표지는 어떻게 하시나요? 넘 넘 궁금해요~ 오늘 내용도 넘 재미있구요~감기도 얼릉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넘 추웠거든요~ 2002/11/01 베르디안 캭!!!!! 드디어 올리셨군요!!! +ㅅ+b 나이스!ㅋㅋ(-_-;;) 어째든 독감에 걸리시다니....감기 빨리 나아서 건강해졌으면 해욤! 그리고 책으로 내는거 추카 드릴께욤..! ^ㅁ^ 은빛님 이제 글 꾸준히 올려주실거죠? ^^* 2002/11/01 DNGNT 우잉;ㅁ; 빨리 올려줘요오오오;ㅁ;! 2002/11/02 Name Mail [[The Perfect MAID]]-68-크레이 [26] 은빛 2002/10/31 2199 77 [[The Perfect MAID]]-67-란을 추총하는 하녀들의 모임 [61] 은빛 2002/10/25 3273 76 [공지해제] [15] 은빛 2002/10/24 1545 75 [[The Perfect MAID]]-66-란을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 [41] 은빛 2002/10/22 3543 74 [공지]카페 이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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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69-중앙절 은빛 2002/11/30 [[The Perfect MAID]]-69-중앙절 축제란 신나게 노는 날이라 생각했었다. 이 하녀 생활을 시 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확실히 그랬다. 보자니 한숨 밖에 나오 지 않는 이 어마어마한 세탁감과 일꺼리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분명 그랬겠지. 아르카이아는 끓어올랐다. 시름시름 앓던 카느의 건강이 눈 에 띄게 좋아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귀족들의 얼굴도 조금 밝 았고, 클레이브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이번 중앙절은 그들의 카느이자 건국 대제가 무사함을 알 리기 위해 대대적인 축제를 벌인다 한다. 이 프란 사막의 부족 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은 따가운 햇살이 머리 한 가운데로 쏟 아지는 중앙일. 모두가 무사하게 이 여름을 넘기고 풍요로운 가을을 맞기를 바라는 기대와 바람이 가득 담겨있는 중요한 날이다. 오랜만에 노도에게서 또 한통의 편지가 왔다. 대략 한달 전 에 열린 크리아의 왕궁 무도회에서 후작이 세기 힘들 정도의 귀족 영애들에게 구애를 받았다고. 눈에 가시 같던 어린 혼혈 아 아들이 인질로 떠나 생사가 불분명해 진 지금, 후작은 아마 잘 익은 과실처럼 단물이 많을 사람으로 비쳐지겠지. 그 독하 던 셀레라가 여기와서 기승을 떨고 있는데, 얼마나 홀가분하고 좋았을까. 그 뿐만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후작은 이제 그만 재혼을 함이 어떠한가. 국방 장관의 안 자리가 이렇게 비어있음은 보기에도 좋지 않아." 떡 한마디 던진 크리아 국왕의 말에는 다른 어떤 사람도 흉내내지 못할 무게가 실려 있었다. 확실히 그랬다. 어떤 자리 이든 국가의 중대사를 맡았다면 살롱을 관리하고, 손님들을 조 절할 안주인이 필요했다. 헤리슨이 유능한 집사이고 노도가 또 뛰어나기는 했지만 안주인이란 있다는 그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하는 자리였다. "골치 아프게 됬군." 상황이 안좋았다. 재혼을 피하기 힘든 상황. 그렇다고 관직 을 내 버리고 낙향할 수도 없고... 이 서대륙에 그런 개념이 있 는 지는 모르겠지만. 후. 이대로라면 후작은 정말 안주인을 맞 이해야 한다. "어쩔 수 없습니다. 후작이 은퇴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겁 니다." 다른 방법이 없겠냐는 내 말에 금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 다. 하인도 아닌, 내 제자도 아닌 그런 낯선 얼굴이었다. "후작도 각오하고 있던 상황일겁니다. 이제 문제는 어떤 여 인이 들어오는가이겠지만... 노도님이 계시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멀리 크리아의 하늘로 시선을 돌린 금아는 조금 걱정 섞인 목소리로 낮게 말끝을 흐렸다. "이 곳의 귀족들이란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보군." 작게 한숨 섞인 내 목소리에 금아는 피식 웃었다. "어디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란님은 동 대륙에서도 무예 뿐인 삶을 사시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 "후작은 현명한 남자입니다. 세력이 있는 가문의 아가씨와 클레이브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의 균형을 조절할 수 있는 사 람이죠. 더더구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한 줄기 들어왔다. 염색도 다 바래고 이제 금발이 완연히 드러난 금아의 앞머리가 살짝 바람에 휘 날렸다. "클레이브에게는 란님과 제가 있으니까요." "하르크도 있지." 금아는 싱긋 웃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어린 두 소년도 있죠." 멀리서 어린 주인의 기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 났을까? 클로네와 함께 식당 쪽으로 가는 듯 했다. "후작은 언제 쯤이면 결혼할 것 같지?" 그 충직한 무골이 국왕의 언질까지 받고 버틸 리가 만무했 다. 금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가에 주름을 접었다. "올해는 넘기지 않을 겁니다. 대대적인 무도회를 연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도 어느 정도는 생각해 둔 바가 있을 겁니 다." "그런가?" 어쩐지 허탈했다. 이 프란으로 떠나기 전, 셀레라를 쫒아내 기 위해 그리도 애쓰지 않았던가. "넌 뭔가 짚히는 바가 있는가보군." 문득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놀랍게도 금아는 고 개를 끄덕였다. "네." "누구지?" 금아는 잠시 망설였다. 그건 대답에 자신이 없다기 보다는 말을 해도 좋은가에 대한 조심스러움이었다. "아마도...." 말끝을 살짝 흘리며 금아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나도 모르 게 꽉 쥐어진 주먹이 살짝 떨리는 냥을 본 모양이다. "차스크 백작의 막내 여동생이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때의 그?" 차스크 백작이라면 하녀 사건때 헤일런, 가르암과 함께 날 잡아 죽이려던 놈들 중 하나다. "원래 후작의 약혼녀는 차스크 백작가의 아가씨이기도 했고 이번에 새로 손도 잡았으니까요. 본 약혼녀였던 아이는 이미 타국으로 시집간 뒤지만, 아직 막내가 남아있으니까. 분명 정 치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후작에게는 다른 선택이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 "오랜 시간을 되돌아서 결국 같은 방향으로 일이 매듭지어 진 것 뿐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금아가 내 끄덕거림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른다. 금아는 매우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저 한마디가 왜 이렇게 신경이 거슬리는 걸까? "아아, 알았어. 후작이 알아서 잘 하겠지. 어린아이도 아니 고. 클레이브에 대한 가려진 팔불출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 으니까." 빠른 속도로 이 방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에 신경을 보내며 난 몸을 돌렸다. 또박이는 발걸음까지 선명하게 울리며. 두 번 의 노크 소리가 당당하게 울렸다. "누구시죠? 도련님과 아가씨는 지금 수업 가셨습니다만?"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루데릭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상기된 볼,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징그러울 정도로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신지?" 루데릭의 짙게 자라난 눈썹이 잠시 꿈틀 움직였다. 이 프란 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었다. 얼굴 오른쪽에 남 은 길다란 늑대 송곳니 자국이 그 날 그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었나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잘도... 속이고 있었군." 부리부리 치떠진 파란 눈동자에 푸르딩딩한 살기가 얼핏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르크에게... 다... 들었다." 금속성의 날카로운 빛이 살며시 그의 허리춤에서 일렁였다. "죽어라. 하녀." **** "딱!" 순간 고개가 돌려졌다. 오른쪽 이마 언저리에 화끈한 고통 이 스치고 지나간 뒤에 얼얼함이 남았다. 뭔가 따듯한 것이 흘 렀다. '피인가?' 아프지는 않았다. 조금 지나면 통증이 밀려오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피를 직접 봤다면 당황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볼 수 없었다. 눈에 들어갈까 두려워 피를 닦아낼 필요조차 그에 게는 없었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누굴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팔이 조금 떨려왔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크레이는 애써 목검의 손잡 이를 다시 꼬나잡았다. 전신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른침이 자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병신주제에." 등 뒤였다. 남을 한껏 내려다보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에 크 레이는 긴장을 한껏 조였다. 이런 상대는 약하게 보일수록 깔 본다. 더더욱 잔인해진다. 잡아먹힌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크레이는 두 귀에 온 신경을 집 중했다. 신경질적으로 땅을 짓뭉게는 발소리가 두 군데서 들려 오고 있었다. 하나는 정면, 하나는 후면. "괜찮을까?" 오히려 정면의 목소리가 조금 조심스러웠다. "바보녀석! 이런 병신이 뭘 할 수 있겠어? 아무리 높은 귀 족의 비호를 받고 있다 해도 눈도 보이지 않는 놈이 우리가 누군지 알 리가 없잖아?" 후면의 목소리는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크레이는 숨을 가 다듬었다. 목검의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뜨거운 땅의 전 통에 따라 점심을 끝낸 후 갖는 두 시간의 휴식시간이었다. 모 두들 그늘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작열하는 태양이 지나 가 주기를 기다리는 사이 크레이는 자신의 목검을 들고 그늘 진 숲가를 찾아 나섰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새, 평소보다도 훨씬 멀리 나온 걸지도 모른다. -핑!- 얼굴가를 스치며 뭔가가 또 날아왔다. 크레이의 몸이 순간 적으로 굳었다. 크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몸이 두려워하고 있 었다. 주체할 수 없이 온 몸이 떨려왔다. 보이지 않는 다는 공 포가 무겁게 다시 크레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병신. 그것도 못 맞춰?" 등뒤의 목소리가 씨근거렸다. "그럼 네가 던져보라구!" 정면의 소년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확! 패버리라구. 눈도 안보이는 주제에 높은 귀족의 마음 에 들었다고 알랑이는 놈. 이런 놈은 평민의 적이야! 혹시 알 아? 보석이라도 박고 싶어서 제 눈을 뽑아 버렸는지." "................................" 크레이를 감싸고 서 있었던 두 소년의 몸이 꿈틀했다. 오싹 한 감각. 무섭게 일그러진 미소년의 얼굴이 그들은 문득 무서 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으아아아아!" 충격과 통증과 공포로 굳어 움직이지 못하던 크레이의 몸 이 튕겨진 스프링처럼 앞쪽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의 정면을 막고 서 있던 소년의 몸이 순식간에 달려들어온 크레이의 온 몸에 부딪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선 괴성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온 크레이의 비명 같은 목소리에 두 소년의 몸은 굳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무작정 덤빈 기세 로 정면에 있던 소년을 깔고 앉은 크레이는 악착스럽게 쥐고 있던 목검을 마구 휘둘렀다. 깔린 소년은 발작적으로 목검을 막기 위해 두 팔을 휘둘렀다. 자신을 깔고 앉은 크레이의 노란 보석에 광기가 흘렀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생한 공포감. "으, 으아아아아아아아!"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크레이의 목검은 지난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꽤 강한 힘들이 실려있었다. 크레이의 아래로 깔려 있던 소년의 얼굴에는 공포와 고통이 뒤엉켜 기묘한 증오와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크레이의 기세에 눌려 엉거주춤 서 있던 소년의 얼굴에 광기가 피어 올 랐다. "아아아아아! 야! 이자식 죽여!" "으아아아아아아!" 주위의 나뭇가지들과 작은 돌맹이들이 두 주먹에 가득 쥐 어졌다. 소년은 미친 듯이 크레이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악!" 뒤통수로 내리쳐진 뭇매에 크레이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푸학! 붉은 피가 솟구쳤다. 시퍼렇게 든 멍보다, 코와 입줄기에 서 나는 핏방울보다 더 무서운 피가 튀어나왔다. "개자식!" 커다란 어른의 발이 크레이의 머리를 내려친 소년의 등을 세차게 걷어찼다. "안보인다 했더니만! 여기서!" 잔뜩 흥분한 기색을 조금도 감추지 않은 목소리. 큼직한 손 이 어른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소년들을 제치고 크레이의 몸 을 번쩍 안아들었다. ".............................." 잠시 어른과 두 소년의 눈이 부딪혔다. 소년들은 이를 악물 었다. 자신들의 얼굴을 본 이 어른이 크레이라는 저 소년과 관 계가 있다면, 분명 그들의 뒤를 감싸고 있는 귀족과도 연관이 있을 터였다. 순식간에 탈색된 얼굴이 가느다랗게 떨려왔다. "........................" 어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휙 등을 돌려 커다란 나무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더니만 마치 그 자리에 없던 존재인냥 한 순간에 사라졌다. "헉!" 크레이의 머리에서 흘러 나왔음직한 붉은 핏방울이 없었더 라면, 그들의 몸에 남은 푸릇푸릇한 자국이 없었더라면 조금 전 까지의 모든 일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만큼 빠른 동작이 었다. "그, 그림자...."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두 소년의 눈동자에 짙은 절 망감이 어려갔다. 그림자.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모를 바보 들은 아니었다. 그들 또한 귀족의 힘을 입어 이 아르카이아에 들어올 수 있었던 존재들이었으니까. "제, 제, 젠장!" 눈앞이 노랬다. 제법 높다란 가지까지 안전하게 올라왔다 싶자마자 하르크는 크레이를 조심스럽게 굵은 가지에 걸쳤다. 의식을 잃은 크레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어린 소년 하나는 거 뜬히 누울 수 있을 만큼 굵은 나뭇가지는 금새 피에 젖어갔다. 란에게 배운 데로 머리를 지혈시키고 조심스럽게 맥을 짚 고, 호흡을 관찰하고 이리저리 살핀 하르크는 크레이의 머리 상처가 외상 정도로 끝난 것에 안심하며 잠시 한숨을 내쉈다. "이게 잘 된건지 못된건지 모르겠다." 크레이를 조심스럽게 다시 등에 업어매며 하르크는 조심스 럽게 크레이의 몸을 자신의 몸에 동여맸다. "잘 되면, 난 사는 거고...." 행여나 잘못 될까 휙 뛰어내리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 로 나무를 타고 내려오며 하르크는 불안한 가슴을 달래며 끊 임없이 중얼거렸다. "못되면, 널 잘 지켜보지 못하고 다치게 한 죄로 두 번 죽 게 되겠지..." "으음....." 의식이 조금은 있는지 작은 신음소리가 크레이에게서 흘러 나왔다. "제기랄. 술이 원수야. 원수. 왜 하필...." 하르크의 이가 빠드득 갈렸다. "그. 날. 그 놈의... 루데릭. 그 찰거머리랑 술은 마신거지?" 바로 전날인데도 마치 오래 전의 일인냥 흐릿한 기억들이 하르크의 머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별 일은 아니었다. 큰 부상을 입었던 루데릭은 아르카이아 에 도착하자마자 부상병들을 위한 병동으로 실려갔다. 란이 숲 속의 엘프들에게서 받은 약은 그를 험한 여행에서 죽지 않고 그럭저럭 버티게끔 만들어 주었지만, 애시당초 부상자에게 그 런 여행은 무리였다. 여행 내내 긴장하며 쌓아온 피로감이 한 꺼번에 터져나오자 루데릭과 그의 기사들은 완전히 쓰러졌다. 그리고 두어달 넘도록 그들은 병동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전신의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겨우 산적들 따위에게 당해 마부 와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왔다는게 그들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혔다. 나으려는 의지도, 살겠다는 의지도 일지 않 았다. 그저 하인만도 못한 적응력과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자 괴감에 그들은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두어달 후 밖으로 나온 건 순전히 아르카이아 병동의 의술 덕분이었다. 그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클레이브와 클로네는 반색했 다. 어찌되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기사들이었다. 일정 이 바빠 한번 밖에 찾아가지도 못했다. 셀레라가 단 한번도 관 심을 보이지 않은 것에 비한다면 그도 대단한 일이라 하겠지 만. 세상이 다 그녀처럼 돌아가지는 않는 법. 클레이브는 하르크를 불렀다. 어딘가 대하기 힘든 란이나 금아보다는 하르크가 여러모로 지친 기사들을 위로하는 역할 의 심부름으로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아니 좀 지나친 감이 있었다. 전직 암살자에 현역 그림자라는 신분을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천연덕스럽고 너스레를 잘 떠는 하르크의 재롱 아닌 재롱 앞에서 기사들의 마음은 조금씩 풀 려갔다. 아니, 그 동안의 험한 길에서 겪었던 고생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왜곡되어 가고 있었다. '하인만도 못했다니!' 하던 탄식은... '내가 이런 하인만도 못했을 리가 없어.' 라는 확신으로 교묘하게 변해갔다. 높디높은 기사들의 자존 심이 지난 두 달 간 끊임없이 해 왔던 자기 세뇌의 마지막이 하르크의 푼수로 확정지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꽤 풀린 루데릭을 포함한 기사들은 주인의 심부름 을 온 하르크를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술대접을 시작했고, 마침 란의 눈치에 찌들려 있는데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바쁜 일정에 시달려야 했던 하르크는 따듯한 기사들의 환대에 그만 마음이 푹 풀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뭐라해도 그들은 함께 죽을 고비 를 넘겨가며 여행해 온 동지가 아니었던가. 그 와중에 술안주 삼아 하기 시작했던 란의 험담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 흐흐흐흐. 저 맞습니다. ^^오랜만에 한편 올립니다. 당분간은 성실연재 모드로~ 참, 저 홈피 문열었어요. 이전처럼 카페가 아니라, 드나들기 쉬운^^~ 홈피랍니다아~ 지금 들어올 수 있는 도메인~ 이건 내일 이후로 들어오실 수 있는 도메인이랍니다. 카페처럼 관리하기 은근히 힘든 건... 그만뒀어요. 오가기 힘들고 로그인하기 귀찮고.^^//// 이번에는 프리첼처럼 무너트리지 않을 겁니다.으쌰! 많이 놀러와주세요~~~^^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11/30 Sat 01:58:21 IP : 218.48.36.80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70-중앙절 ▽ [Nobody`s perfect]-마스터를 찾아라-part3 수정|삭제|답장 [setup] [공지] 글 실종 사태 및 작가님들께 드리는 사과와 당부(11-25up) azderica 11/02 885 3652 [[The Perfect MAID]]-73-축제가 시작된다. [2] 은빛 12/03 121 3623 [[The Perfect MAID]]-72-축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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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빛 09/05 50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다음 | 쓰기 | 목록 [1][2]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70-중앙절 은빛 2002/11/30 [[The Perfect MAID]]-70-중앙절 "자, 잠시만요. 루데릭경. 갑자기 검을 뽑으시다니..." 지체없는 동작으로 금아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루데릭의 입가에서 뿌드득 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막지마라! 저 여자는 첩자다!" "네?" 난데없는 루데릭의 외침. 반쯤 뽑힌 검이 마지막 모습을 막 드려내려는듯 가볍게 빛을 반사시켰다. 루데릭의 목소리가 낮 의 정적을 깼기 때문일까. 문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오햅니다." 금아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비켜라. 지금 당장 비키지 않는다면 너 역시 첩자라고 밖 에 볼 수 없다." "저희는 첩자도 아니고 루데릭경의 검에 베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클로네님이 돌아오실 시간이 되어갑니다. 돌아가 주 십시오." "어리석은! 네 주인은 누구인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루데릭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클러이브님께 클로네님의 존재가 힘이 된다는 사실 정도는 루데릭경께서도 아시는 바라고 생각합니다만." 잘못하다가는 칼부림이 난다. 난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뭔 가 말을 해야했다. 하르크가 뭐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는지는 모 르지만 하르크의 그 허풍 반, 수다 반의 말에 혹해서 넘어갔다 면 루데릭은 의외로 귀가 엷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순 간적인 감정이 폭발해서 달려왔더라도... "최소한 이 곳이 클레이브님의 숙사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분보다는 의지가 되시는 분이죠." "흠!" 금새 혼란스러워한다. "숙사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은 퇴학입니다. 함부로 검을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한 사람은 치욕스러운 추방을 당합니다. 그 사실을 모르시지는 않을텐데요." 루데릭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검대를 말아쥔 그의 오른손 손등의 핏줄이 서서히 작아졌다. "진상은 밝히면 됩니다. 그러나..." 난 조용한 동작으로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몸을 꿈틀 거렸지만 루데릭은 감히 발작하지 못했다. 결코 하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금아의 신중한 기도, 숲을 통과하면서 봤던 힘, 어 딘가 평민답지 않은 우리의 공기와 그의 머릿속 혼란들은 그 를 묶어두기에 충분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루데릭이 닫지 않고 달려 들어온, 활짝 열린 문 밖으로 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있었다. 칼부림이 날지 모르는 곳에 감히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복도를 마주보고 있는 방문들 이 하나같이 빼꼼히 열려 색색의 눈동자들에게 길을 마련해주 고 있었다. "큰 일은 아닌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들짝 몸을 감추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보내며 난 살짝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두 눈에 힘을 가했다. "루.데.릭.경." "아, 아...."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의 패기는 다 삶아먹기라도 했는 지 잔뜩 얼어붙은 루데릭의 어깨가 움찔했다. 반쯤이나마 모습 을 보였던 검은 자취를 감춘 지오래. "클레이브님의 이름에 누를 가해도 정도가 있겠죠?" "아, 그게..." 정체가 까밝혀진 첩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당당한 내 목소 리에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설령, 제가 정말 첩자라고 합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초의 당황으로 차갑게 식었던 이성이 서서히 고개를 내 리면서 '세상에 이럴 수가!' 싶은 배신감과 분노가 조금씩 끓어 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타 귀족가의 분이셨던 신분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엄연한 클레이브님의 기사님이신 분이!" 완전히 뒤집힌 입장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루데릭 은 내가 한 걸음 다가설 때 마다 반보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 다. 긴장을 끌어올린 채 우리를 바라보던 금아의 입가에 작은 미소와 미묘한 곡선이 생겨났다. "이러실 수 있는 건가요?" "아, 아... 전 그게 아니라..." 손사래를 치며 애써 변명의 말을 꺼내려드는 루데릭은 정 말로 당황하고 있었다. "잘못 하셨죠?" 두 팔을 당당히 허리에 얹고. 난 고개를 한껏 쳐들었다. 금 아에게서는 작은 한숨이, 상상해 보지도 못한 경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루데릭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굴렀다. 다른 하녀였 다면 아무리 잘못이 그녀에게 없었더라도 감히 해 볼 시도조 차 해 보지 못했을 그런 일들을 난 벌이는 셈이었다. "아, 그게..." 귀족이나 되는 사람이, 아무리 몰락했다지만 백작가의 사람 이었던 사람이 하녀에게 잘못을 시인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신 분이란 결코 넘을 수 없는 끈끈하고 바닥 없는 늪 같은 괴물 이니까. "최소한 이런 일이 두 번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약 속해 주실 수 있으시겠죠?" 지나치게 궁지로 모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 보 물러선 내 태도에 루데릭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설명해주세요. 하르크, 그 수다장이가 뭐라고 했 길래 이렇게 이성을 잃고 달려 온 거죠?" 고용인들을 위해 준비된 작은 탁자의 의자를 꺼내 루데릭 을 앉히고 금아가 작은 찻잔 세 개를 꺼내오는 동안 난 조용 히 입을 열었다. ".........하녀와 한 테이블에 앉기는 처음이군." 포기한 건지 적응한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루데릭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번 중앙절 축제 시작일 중앙광장에서 하실 연설문 초안 입니다."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진 종이뭉치는 꽤 두꺼웠다. 검을 매 만지던 우트트의 손이 잠시 멈췄다. 힐끔 시선이 돌려졌다. "십 분의 일로 줄여라." "하, 하지만..." "말만하는 지도자는 믿음직하지 못한 법. 언제부터 사막의 민족인 우리가 종이놀음이나 했던가." 종이를 내밀었던 시종은 고개를 깊숙이 한번 숙여 보이고 는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날렵하게 굽어진 도신을 가볍게 한번 쓰다듬으며 우트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저러니 형님의 측근들이 날 유약하다고 깍아내리는 거야." 신경질적인 음성이었다. 그렇잖아도 근래들어 첫째 우그르 트 움크에게 힘이 몰리는 형국이었다. 어쩌면 중앙절이라는 그 들에게는 특별한 날이 가져다주는 힘인지도 모른다. 과거 소수 의 부족국가였을 때처럼 자유롭고 싶은 바람들이 모여 지혜보 다는 무를 더 숭상하고 한 자루의 도를 누구보다도 더 잘 쓰 는 움크에게 마음들이 흘러가는 것은. 우트트에게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그다지 잘 매만지지 않던 도를 매일 같이 꺼내 매만지는 건 주위의 그런 시선들을 의식하기 때문 이다. 그런데 이렇게 긴 연설문이라니. "다들 잠들어버리겠지." 당장 밖으로 달려나가 피리를 불고 몸과 검을 부딛히고 축 제의 향연을 벌이고 싶은 자들이 가만히 서서 연설문이나 들 으며 기꺼울 리가 없다. 연설문은 짧을수록 좋다. "물러가라." 커다란 창문이 시원스레 열린 방에 흰 커든이 가볍게 흔들 렸다. 바람이 드문 여름에 물줄기가 돌아오고서부터는 조금씩 바람이 분다. 자유분방한 사막의 사람들이 현 카느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바람이다. 사람들은 이 바람을 카 느가 불러온 것이라 믿었다. "아, 녀석은 어디있지?" 우트트의 손짓에 물러가던 시종 하나가 멈칫 발을 멈췄다. 그의 고개가 조금 더 깊이 숙여졌다. "중요한 일이 있다하여 잠시 물러갔사옵니다." 우트트가 친근하게 부르며 찾을만한 인물은 하나 뿐이다. 우트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시종은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흰 커튼을 뚫고 떨어지는 강렬한 태양빛이 하 루 하루 더 강해져가는 게 보였다. 몇 일 남지 않았다. 곧 중 앙절이다. "누가 먼저 연설하는가가 관건이겠군." 다음대의 카느를 결정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누가 카느의 바로 뒤를 이어 연설하는가는 카느가 다음대의 카느로 누구를 가슴에 품고 있는가를 조금은 반영하는 자리였다. 프란 의 전통상, 연설은 누가 나와서 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중요 한 사람은 처음의 단 한 사람일 뿐. 하지만. "더 이상 자그마한 마을이 아니니까. 문제군." 사람들은 분명 계산할테지. 움크인가 우트트인가를 그들은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이번 중앙절이 지나가면 더욱 더 본격 적인 줄서기가 일어난다. 중앙절을 넘긴 노인들은 쉽게 약해진 다. 더더구나 이렇게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면... 선선한 바람이 불 때 즈음에는 체력이 약해진 노인들이 푹푹 쓰러진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약해진 카느가 올 가을을 버티리라는 법 도 없다. "하루하루 이렇게 피 말리며 살아야 하는 건 딱 질색이다." 그렇다고 아비를 칠 수는 없는 법. 타락한 다른 제국들과 달리 프란은 아직 그런 패륜이 용납될 수 있을 정도로 타락하 지 못했다. 그건 그 우그르트 형제들 자신의 도덕관이기도 했 다. "저도 동감입니다." 막 들어왔는지 어깨에 모래 먼지를 단 센이 빙긋 웃으며 무릎을 굽혔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다녀왔습니다." "어딜 다녀왔는지 정도는 말 해 주겠지?" 우트트의 입가에 커다란 곡선이 그려졌다. 센이 조금은 미 묘한 미소를 그리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간 일은 딱딱한 일이었습니다만, 재미있는 장면을 하나 보 았습니다." "그래?" 어지간한 일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 센의 말이었기에 우 트트는 더욱 호기심을 느꼈다. 주인의 몸이 앞으로 길게 기울 어지는 모습을 보며 센은 살짝 목을 가다듬었다. "실은, '헛간'을 다녀오다가 페르로이가의 그림자라고 판단 되는 자와 그 일행을 만났습니다." "호오." 헛간이라면 하녀들을 세뇌하고 정보를 뽑아내는 곳의 은어 다. 보름 정도에 한번씩 하녀들을 불러 세뇌를 유지시키고 그 녀들을 통해 캐내진 정보는 센을 통해 정리되어 바로 우트트 에게로 올라갔다. 페르로이가라는 단어에 어쩐지 평범해서 실 망했었던 하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트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 였다. "제 실력이 보잘 것 없었기에 제 심복인 룬을 붙였습니다 만, 상상외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뜸을 들일 정도라니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군. 이 정도면 충분히 집중해서 들을 마음이 생겼으니 어서 말 해주지 않겠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말을 끄는 심복의 태도에 우트트는 문득 유쾌함을 느꼈다. 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로이가의 그림자임이 거의 확실시되는 자가 그 하녀를 '란님'이라고 부르더군요." 헛간은 한군데가 아니었다. 하녀들의 주인들의 신분이 다 달랐고 신분이 높은 자의 하녀들일수록 그 행동반경에도 한계 가 있었다. 같은 장소를 여러 명의 하녀들이 들락인다면 위험 도도 커지리라. 아무리 본국의 땅이고 자신의 세력권 안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위험한 장소를 한 군데에 집중시켜 둘 수는 없 다. 헛간은 몇 군데의 지역을 두고 흩어져 있었으며 주기적으 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센이 다녀온 곳은 그 중에서도 아르카 이아 평민부에 가깝게 위치한 곳이었다. 아르카이아에 입학시킬 평민을 데려온 자는 클레이브만이 아니었다.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귀족들은 몇 명의 평민을 데려왔다. 높은 귀족의 하녀들은 시장을 나가 는 횟수만큼이나 아르카이아의 평민부에 심부름을 가는 때가 많았다. 목적이야 어떻든 말이다. 헛간에 들려 목적을 마치고 돌아가던 센의 눈에 은으로 세 공한듯한 아름다운 머리카락에 색색으로 빛을 발하는 아름다 운 보석을 눈으로 지닌 소년이 잡힌 건 우연이었다. "놀랐습니다. 정말로 소문이 날 만 하더군요. 아니, 이 정도 로밖에 소문이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년이 었습니다." "호오..." 우트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조, 목소리, 톤, 살짝 띈 홍조까지 지금 센의 표현은 장난스레 해 본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 반하기라도 한 듯 센은 진지해져 있었다. "소년이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 다. 마차 창문을 통해 멀직히서 바라봤을 뿐이지만, 정말 한 눈에 알아보겠더군요." 마침 소년은 늘 붙어다닌다는 소문의 친구와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홀로 숲 쪽으로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었다. 센은 호기 심이 일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진다면 잠시라도 더 이 아름다운 존재를 바라보고 싶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쉬움을 접고 마차를 출발시키려 했었죠." 그 때였다. 센은 크레이를 몰래 뒤따라가는 두 덩치 큰 소 년들을 발견했다. 살금살금 조심스레 따라가는 폼이 설핏 봐도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센은 마차를 출발시키지 못했다. 끼어들 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 만 뭔가가 그를 잡았다. "덕분에 페르로이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죠. 돌이 날아가 고, 피가 튀고, 소년들이 뒹그르고 싸우기 시작했을 무렵 룬이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매우 빠른 속도로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다고." 그게 하르크였다. 크레이의 피에 매우 당황한 듯 그는 근처 의 숲 뒤에 좀 전부터 서 있었을 마차를 신경쓰지 못했다. "정말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나타났을 때 그림자일 거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종적을 잃어 버릴 정도더군요." 센과 룬을 도와준 건 심하게 부상당한 크레이였다. 심하게 부상당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멀리 갈 수는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르크의 뒤를 밟기 시작한 룬은 크레이의 핏자국을 발견했고 멀지 않은 나무 위에서 잔뜩 흥분하고 당황한 하르 크와 피투성이의 크레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릴 수 없었기에 바로 귀환시켰습니다만,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그림자인 자가 '란'이라는 하녀를 '란님'이 라 공경하며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호오....." "그림자가 두려워할 만한 하녀라면, 그녀 역시 그림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기에 뒤를 잡아볼 수는 있었지만 그대 로 미행하기에 룬 정도의 자가 위험을 감지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사내입니다." "호.... 그렇다면..." 우트트의 표정은 수시로 변해갔다. "네. 그 정도 실력의 주인이 어설픈 납치자에게 당해 잡혀 왔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 "일부러 잡혀왔었겠군." "네. 저희의 허실을 역으로 추적할 생각이었을 겁니다." "가능한가?" 우트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센 역시 마 찬가지였다. "그 정도 실력의 그림자라면 최면이나 기타 술법에 대한 저 항훈련도 받았을 겁니다. 아마도..." "자신이 있으니까 잡혀왔다는 거로군." "네. 그 최면도 거짓이었을 겁니다." "흠...." 우트트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오른 손의 검지 손가락 이 규칙적으로 의자 손잡이를 두드렸다. 깊이 생각에 잠길 때 의 습관이었다. 센은 조용히 우트트의 생각이 끝나기를 기다렸 다. 오랜 경험으로 그는 이미 그의 주인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고 있었다. "재미있어지는군." 우트트의 입꼬리가 커다란 곡선을 그렸다. 가지런히 정리된 흰 치아가 모습을 들어내며 그 사이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네." 모른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 속사정을 이 쪽에서 알았다면 다시 역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뭐든 한 수위인 자가 이 기는 법이니까. "그래, 그럼 그 하르크... 라는 그림자가 왜 겁을 먹었는지는 모르겠군. 그 크레이라는 소년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센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우트트의 눈가에 다시 호기심 이 피어났다. "우트트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일을 놓칠 리가 없지 않습니 까. 룬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발했습니다." 작은 바람이 불어왔다. 하나로 단정하게 묶어 길게 흘러내 린 센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초롱초롱 아이처럼 빛나 는 우트트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휘었다. "역시 자넨 내 마음에 들어." "과찬이십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의 일이었다. **** 제 기준에 이만하면 성실연재에 들어가지 않을지... 성실연재란 말이 안믿기시는 분들이 생길만큼... 허무히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넵... 이번에...12월 첫주로... The perfect maid 1권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벤트를 합니다! 인기투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 왜 좋아하는지 제일 싫어하는 인물은? -> 왜 싫어하는지 등장인물 중에, 애인으로 적합할 것 같은 인물은? ->왜? 등장인물 중에, 이런사람과 사귀면 인생 망칠 것 같은 인물은? ->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사는? 가장 재미있었던 사건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이상~ 7가지 질문입니다.^^. 로 들어오셔서~ 설문조사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silverlit@orgio.net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최종수정일 : 2002/11/30 Sat 01:58:38 IP : 218.48.36.80 이뉴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뒤늦은 인사지만 출판 축하드립니다^^; (11/30,13:34) ikart2002 와 흥미진진... 성실연재는 아니지만 한편 한편이 너무 좋군요. 어서 다음편을 부탁드려요 (11/30,21:34) 하엘니르 오오오옷~~~~!!!! 드뎌 일권이 나오는 군요 축하드려요~ (12/02,20:43)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71-중앙절 ▽ [[The Perfect MAID]]-69-중앙절 수정|삭제|답장 [setup] [공지] 글 실종 사태 및 작가님들께 드리는 사과와 당부(11-25up) azderica 11/02 885 3652 [[The Perfect MAID]]-73-축제가 시작된다. [2] 은빛 12/03 121 3623 [[The Perfect MAID]]-72-축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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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빛 09/05 50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다음 | 쓰기 | 목록 [1][2] Skin by Rovinia 판타지 장편 소설 자유 연재란라다에 오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든 소설을 올리고 읽으실 수 있으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은 사양합니다. 또한, 소설은 하루에 4편까지만 올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 올리면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6월 13일 이전에 연재된 소설들을 보시려면 [지난연재] 메뉴를 클릭해주세요. [對 판타지 소설 와레즈 사이트] 작가여러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 아크 [setup] [[The Perfect MAID]]-71-중앙절 은빛 2002/12/02 [[The Perfect MAID]]-70-04-중앙절 꼬리가 달린 것도 모르는 하르크는 안절부절이었다. 크레이의 피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제길! 제길!" 그는 제일 가고 싶지 않은 곳을 향해 달려야 했다. 의무실로 데리고 가기에는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았고, 다시 돌아가자니 크레이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놀란 김에 란을 향해 달려가 기 시작한 게 또 하나의 화근이었다. 루데릭의 사건만 아니었 다면 란은 하르크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었을 테니까. 평소의 습관이 그대로 드러나버린 지금 하르크는 피눈물을 머금고 란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란님이 제발 크레이에게만 신경쓰셔야 할텐데." 겨우 하루 사이의 일들이었다. 쓸데없는 일을 불어 루데릭을 자극했고, 게다가 평상심을 놓치는 바람에 크레이의 움직임을 놓쳐 그가 크게 상처 입도록 놓아두었다. 하르크의 임무는 사 실 그림자 본연의 임무와 멀리 떨어져있었다. 란이나 금아가 그림자의 도움을 필요로 할 만큼 실력이 없지도 않은데다가, 아르카이아 자체의 경비가 워낙 철통같아 그림자를 잘못 움직 이다가는 퇴학당하기 딱 좋았다. 자연히 하르크의 일은 원래 르카인이 맡기로 했던 마부일과 예정에 없게 평민부로 들어간 크레이의 뒤를 돌보는 일로 기울어져갔다. ".... 젠장. 죽지 말아라. 르카인이 널 기다리고 있잖아." 크레이의 팔이 꿈틀 움직였다. 외뿔엘프들의 마을에서 그를 기 다리고 있을 아버지의 모습이라도 떠올린걸까. 르카인은 있는 힘을 다해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점점히 핏방울이 바 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피냄새.' 익숙해질 수 없는 향기는 바람을 타고 날았다. 평범한 사람들 에게야 느껴지지 않을 냄새였건만, 오랜 시간 전장을 뒹굴러 온 사람들에게는 달랐다. 딱히 코로 느껴지는 게 아니었건만 후각과 육감이 뒤섞인 그런 '후감'이랄까. "또 누군가가 사고라도 친 건가?" 날이 선 검으로 훈련하는 검술 시간에는 종종 사고가 나기도 했다. 옆 사람의 잘못 휘둔 검이 날아가 다치기도 했고, 맨손 격투 시간에 코피가 터져나오는 건 평민부에는 비일비재한 일 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르다.' 뭔가가 달랐다. 얼마 전 아르카이아를 뒤흔든 정체모를 살기의 정체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무트는 이맛살을 한껏찌푸 렸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다른 검술교관들이 그의 언짢아 보이 는 기색에 조금 어깨를 움추렸다. 평상시 자상한 모습만을 보 이는 것과는 달리 일단 전투본능이 일깨워 진 이후의 무트는 상당히 엄하고 과격한 면을 보였다. '그 때의 사건은 유야무야 뭍히기는 했지만....' 잊어버린 사람은 없었다. 특히 그처럼 힘의 척도에 자신의 가 치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날의 격렬한 살기의 움 직임은 다시 맛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 은 그런 우연이기도 했다. "교관님?" "아, 난 잠시 다른 볼일이 생긴 듯 하다." 문득 몸을 돌려버린 무트의 등 뒤로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 었다. 교관들의 보고 자리이기도 하고 이번 중앙절을 맞아 아 르카이아 치안과 행사 문제로 모였던 회의였다. "곤란합니다. 중앙절이 코앞입니다. 지금 모두 정해지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후트." 아후트는 무트와 함께 아르카이아의 검술 교관으로 올라온 부 족 출신의 동료였다. 강직한 성격에 어지간해서 꺽이지 않는 고집으로 유명한 그가 무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뭔가가 흘러가는 듯한 미묘한 공기는 저희도 느끼고 있습니 다. 하지만 무트님. 그렇기에 지금의 회의는 마무리지어져야만 합니다." 막 떼기 시작한 무트의 발걸음이 멎었다. 아후트의 말이 맞았 다. 순간적으로 움직인 본능만을 따르기에 그가 지금 책임져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무트는 고개를 한번 저어보이고는 자 리에 앉았다. 안심한 듯한 교관들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왔 다. "그럼 빨리 끝내지." 이 미묘한 감이 그 때 까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무트는 자신의 자리 앞쪽에 놓여진 종이뭉치들을 열었다. **** 시종들의 작은 응접실을 향해 열린 조그만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짝 움직였다. 흐릿한 혈향은 점점 더 진해졌다. 차갑 게 가라앉던 금아의 눈동자가 조금 움직였다. "............란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금아가 무겁게 입을 열기 전부터 내 관 심은 온통 다른 곳으로 쏠려 있었다. 빠르게 이 곳으로 다가오 고 있는 세 개의 기척. 신경이 쓰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 다. "아." 길게 이어지던 루데릭의 말은 끊겼다. "...........무례하군." 루데릭의 진한 눈썹이 확 일그러졌다. 갑작스레 말을 끊고 신 경을 다른 곳으로 돌린 우리가 괘씸했겠지. 이미 자신의 실수 로 인한 죄책감은 싹 녹여버렸는지, 아니면 하인과 하녀 앞에 서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아야 했던 지금의 상황이 그의 자존 심을 심하게 건들였는지 루데릭은 처음의 기세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의 눈 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실례를 용서해 주시길." 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마침 그의 지루한 이야기도 거의 끝 나가던 참이었다. 빙빙 돌려 말하는 귀족 특유의 화법과, 어찌 되었건 자신의 잘못은 쏘옥 빼고 전가하려는 얄팍한 책임전가. 슬슬 짜증나던 참이다. 귀족의 자존심이 뭐 그리 대단한 건지. 대공이라는 지위마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날 따라온 금아 가 새삼 대단해 보일 지경이다. "하르크의 실수로 루데릭경께서 이렇게 힘든 걸음을 하시게 만든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테이블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이자 화가 조금 누그러진 듯 가 볍게 한숨을 내쉰 루데릭이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세뇌당하지 않은 게 확실한 건가?" 초장부터 잡혀갔었다는 사실을 순순히 시인한 점이 그래도 꽤 믿겨왔나보다. 말을 꺼내면서 다시 화가 치솟는지 첩자 보는 듯한 눈빛을 연신 던지던 그의 태도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난 빙긋 웃어보였다. "저도 그림자랍니다. 최면이나 각종 술법에 대한 훈련은 충분 히 받았습니다." "흠..... 그랬군." 내가 정말 그림자인가 아닌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루데릭 에게 내가 쉽게 당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클 레이브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려주면 되 는 일이니까. "네. 말씀드린데로, 저는 동 대륙에서 마님의 가문의 청을 받아 그림자가 되었으며, 훈련을 마친 후 페르로이 가문으로 들어와 도련님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루데릭경께서 도련님의 호위기사 이심을 믿고 지금 말씀드리는 사실입니다만... 비밀은 지켜주시 길." "알겠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그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잠시 눈빛을 흘리고 생각에 잠겨 들었다. "루데릭경?" "내 한가지 물어보지." 짧은 생각을 마친 그가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자네가 그림자라면 분명 평범한 하녀는 아니었겠지. 그럼, 작 년 가을... 노오남작의 저택에 침입한 그 소드 마스터는...." 불신과 기대감과 호기심이 이러저리 뒤섞인 시선으로 루데릭 은 연신 내 얼굴을 훑었다. 옆에서 금아의 헛기침 소리가 조그 맣게 들려왔다. "글세요. 루데릭경. 지금은 그게 중요할 것 같지 않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난 담담 하게 몸을 일으켰다. 창문 밖, 클레이브의 침실 발코니 밖에 두 개의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미에 혈관이 튀 어나올 듯한 감각과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치솟은 살기를 꾹꾹 억누르며 난 한껏 부드럽게 미소지어 보였다. "명년 오늘이 제삿날이 될 놈이 하나 있어서요." 기묘하게 굳은 루데릭의 얼굴에 다시 한번 미소를 띄워보내며 난 클레이브의 방 발코니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나쁠 정도로 진한 이 피냄새와 하르크와 함께 있는 그 누군가의 기척, 그리 고 좀 뒤편 하르크들의 뒤를 따라온 듯 몸을 숨기고 있는 자 의 동태를 살피며... "란님. 일도 많은데 시체까지 치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텁텁한 표정의 금아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쾅 소리 나도록 거칠게 발코니의 문을 활짝 열었다. 커튼에 가려지던 강한 광선들이 쏟아지듯 방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뭐야!"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듯한 하르크의 얼굴과 그 품에서 차 갑게 식어가는 소년? "크레이?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라, 란님! 크레이를!"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하르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은발의 머 리를 가득 적신 질퍽한 피가 바닥에 투둑 흐르며 굳어가고 있 었다. "이 어찌된 일인가!" 뜻밖의 상황에 잔뜩 놀란 루데릭과 금아의 시선이 크레이에게 로 쏟아져갔다. 중앙절이 몇 일 남지 않은 어느 날의 일이었 다. ***중앙절의 마지막입니다.^^. 인기투표~ 해주세요~~ 인기투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 왜 좋아하는지 제일 싫어하는 인물은? -> 왜 싫어하는지 등장인물 중에, 애인으로 적합할 것 같은 인물은? ->왜? 등장인물 중에, 이런사람과 사귀면 인생 망칠 것 같은 인물은? ->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사는? 가장 재미있었던 사건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이상~ 7가지 질문입니다.^^. 로 들어오셔서~ 설문조사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최종수정일 : 2002/12/02 Mon 02:05:06 IP : 218.48.36.80 NightSaver 흐음...너무 오랜만이에요.. 잊어먹겠어요..-_ㅠ (12/02,05:34) 미스티 에엑... 진짜 오랜만이세요.. 그런데, 꼭 거기다 남겨야 하나요오..ㅠㅠ^^***** (12/02,20:41) 이름 비번 △ [[The Perfect MAID]]-72-축제가 시작된다. ▽ [[The Perfect MAID]]-70-중앙절 수정|삭제|답장 [setup] [공지] 글 실종 사태 및 작가님들께 드리는 사과와 당부(11-25up) azderica 11/02 885 3652 [[The Perfect MAID]]-73-축제가 시작된다. [2] 은빛 12/03 121 3623 [[The Perfect MAID]]-72-축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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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빛 09/05 501 선택/반전 삭제 제목 내용 이름 | 다음 | 쓰기 | 목록 [1][2] Skin by Rovinia[[The Perfect MAID]]-72-축제가 시작된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솔리네아님." 흰 머리가 성성한 늙은 하인의 인사를 받으며 솔리네아 차 스크 백작영애는 마차에서 내려섰다. 흰 대리석 기둥이 아담하 게 받치고 있는 페르로이 후작가를 방문한 것 처음은 아니었 다. 챙이 넓은 모자를 뚫고 떨어지는 햇살에 눈을 살짝 찌푸린 솔리네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있 지만 늘어선 하인과 하녀들의 시선과 관심이 온통 자신에게로 몰려있다는 사실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안내하도록." 페르로이 후작이 그녀의 언니와의 혼담을 거절한 후 처음 으로 방문하는 저택은 옛날의 그 모습 그대로인 듯 했다. "헤리슨은?" 문득 그녀는 지금 그녀를 마중나온 늙은 하인이 그 때의 그 집사가 아님을 생각했다. 안주인으로 내정된 사람의 방문에 집사가 마중 나오지 않는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헤리슨은 내집사로서 지금 후작님을 모시고 외출중입니 다." "자네는 누군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참 바쁠 후작에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해대는 건 차스크 백 작가와 페르로이 후작가 사이의 연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솔리네아는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다. "전 외집사 노도입니다. 편하게 분부내려 주십시오." "그렇군." 종종 있는 일이다. 일이 갑자기 늘어난 가문에 내집사와 외 집사가 따로 생기는 일은. 솔리네아는 적어도 자신에 대한 대 접이 소흘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높다란 천장 아래의 공간은 시원했다. 솔리네아는 노도의 안내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면서 그녀가 안내되는 공간이 안주 인의 응접실임을 알았다. 언제인가 그녀의 언니가 후작의 약혼 자이던 시절에 한번 따라가 본 적이 있었기에 기억해 낼 수가 있었다. 유난히도 아늑하고 기분좋은 느낌을 주던 공간이라 인 상깊었기 때문이리라. "후작님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가." 은은한 레이스로 예쁘게 장식된 쇼파에 몸을 기대앉으며 솔리네아는 막 인사를 마치고 나서는 외집사의 걸음을 멈췄다. 노도라는 늙은 하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 저녁식사 전에는 돌아오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알았네." 솔리네아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 늙은 하인의 침착함에 는 단련된 집사로서의 예의와는 다른 뭔가 특이한 점이 있었 다. 꼭 짚어서 말 할 수는 없지만, 다른 가문의 집사와 이야기 한다기 보다는 어딘가... 산속 깊은 곳의 사원이라도 방문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이 집사는 꼭 수련이 깊은 신관 같은 공기 를 품고 있었다. "아, 자네." "네. 솔리네아님." 솔리네아는 잠시 눈가를 좁혔다. 솔리네아님이라. 이름을 불 러도 좋다고 허락한 기억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 저택에 들 어서면서부터 이 늙은 하인은 그녀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언짢지 않았다. "이상한 집사로군. 나가도 좋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음에 든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어차피 많은 것을 바라고 온 자리도 아니다. 다른 귀족들이라 면 모르겠지만 그녀는 후작을 오래 전부터 보아왔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후작이 전 후작부인에 대한 사랑을 두 눈으로 봐 왔던 사람이다.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 결혼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품어버 리게 되어버린 건....' 그렇게 본다면 그녀가 이 날까지 결혼조차 하지 않은 채 남겨져 있던 건 후작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녀의 책임이다. 그 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임으로 인해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사이였음에도 친구가 되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리게 한 책임. "내가 당신 아들의 어미가 될 지도 모르게 생겼어요." 응접실 한켠에 걸린 단아한 여인의 초상화로 시선을 돌리 며 솔리네아는 가볍게 웃었다. "내가 차스크 가문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린 좋은 친구가 되었을 지도 몰랐는데." 아니,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이 방으로 들어오지도 못했 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나로 내정된 듯 하군요. 클레이브의 새엄마로 는. 앞으로 잘 부탁할께요." 솔리네아는 팔꿈치까지 올라온 목 긴 장갑을 벗었다. 햇볕 을 보지 않아 새 햐얀 손을 뻣으며 밝게 웃고 있는 초상화로 악수를 청해 보이는 그녀는 왠지 그 방에 꼭 어울려 보였다. 문 밖을 나서 복도를 걸어가던 노도의 주름살이 어쩐지 웃 고 있는 듯 곱게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 "설명을 좀 듣고 싶군." 하얗게 질린 안색이 돌아오지 않은 클레이브의 입술이 무 겁게 열렸다. 클레이브의 흰 시트는 굳어가는 마른 피로 검게 얼룩져있었다. 크레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옮기지 않던 잠시 사이 수업을 일찍 마친 클레이브와 클로네가 돌아왔다. 깨진 뒤통수에서 흘러나온 피를 급히 지열하고 급한데로 상처 부위의 머리카락을 밀어내고 소독한 바늘로 상처를 꽤맸 다. 약을 바르고 흰 붕대로 상처가 벌어지거나 덧나지 않도록 잘 고정했다. 출혈이 심한 편이었지만 나름대로 하르크가 혈도 를 짚어왔던 덕분에 생명에 지장은 없을 정도. 밖으로 상처가 터진 덕분에 내출혈은 거의 없는 듯 싶다. 하지만... "머리에... 그 것도 뒤통수에 이렇게 심한 상처가 두 군데씩 이나 나다니. 평민부의 훈련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건가?" 뒤에서 습격하거나 돌이라도 던지지 않는 이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꽉 쥐어진 작은 주먹이 새하얗게 질려있 다. 클레이브의 사나운 눈빛이라니. "일단은 크레이를 쉬게 두는게 좋겠군요. 클레이브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이대로... 잠시 둬야 할 것 같아보이는데요." 우리들 중 제일 침착한 모습을 보인 건 놀랍게도 클로네였 다. 그녀는 거칠게 나와 하르크를 노려보는 클레이브를 다독이 며 방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화가 난 듯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의 루데릭이 날카롭게 나 를 노려보며 클레이브에게로 말을 던졌다. "아아..." 클레이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루데릭은 다시 한번 나와 금아와 하르크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클레이브를 따라 방을 나 섰다. "스스로의 신분을 자각하는 게 좋아." 꽤 맺힌 듯 한 마디를 남기면서.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클 레이브와 클로네는 확실히 별종이다. "주인을 잘 만났군. 크레이는..." 닦아내지 못한 피로 딱딱하게 굳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금 아가 낮게 속삭였다. 하인을 자신의 침대에서 쉬게 내버려두는 귀족이라니. 그것도 피투성이로 시트를 더럽히면서. 이 서대륙 을 모두 뒤져도 두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 둘이 나 내 앞에 있다. 이건 아르페이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일일지 도 모르지. "저어기... 전...." 클레이브를 따라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어디 내빼지도 못한 하르크가 어깨를 잔뜩 움추린채 엉거주춤 서서 내 눈치 만을 살피고 있었다. 허탈했다. 방금 전 까지는 반쯤 죽여놓겠 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크레이의 피를 본 순간 머리가 싸늘히 식어서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크레이 간호를 부탁한다. 나중에 이 시트나 책임지고 빨아 둬라." 해벌쭉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는 그를 뒤로 하고 금아 와 난 클레이브가 나선 방문으로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좀 차분히 설명을 듣고 싶은데." 피곤한 얼굴의 클레이브가 어린아이답지 않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꼭 내가 뭔가를 잘못하기라도 한 듯한 기분으로 난 어린 주인에게 내가 아는 바까지의 상황들을 설명해야 했다. **** 금아는 평민부의 아르카이아로 뻣은 길 앞에서 잠시 망설 였다. 란을 두고 그대로 나온 게 찜찜했다. 지금이야 크레이가 다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도 된 냥 눌려 기가 죽었지만 그게 오래갈 리가 없다. 분명 불사조처럼 부활해 '감히 날 두고 너 혼자 빠져나가?'소리지를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란이 아 니다. 분명 평민부의 아르카이아는 휴식시간에 갑자기 사라진 학 생으로 인해 꽤 소란스러우리라. 페르로이가문의 시종이니만큼 더 신경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 클로네가 아니었다면 금아도 평민부를 찾아가 크레이가 다쳐 수업을 참석할 수 없다는 사 실을 알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리라. 타국이니만큼 신경쓸 일이 더 많다. "덥겠군." 추위나 더위에 민감하게 반응할 시기는 오래전에 지났다. 지금의 금아는 추위도 더위도 타지 않았다. 단지 그렇겠군. 생 각하며 땀을 뻘뻘 흘리던 시절을 잠시 되세겨보는 정도. 이런 강한 햇살이 하루 종일 작열하는 더위는 바다와 인접해 안개 가 자주 일어나는 크리아에서는 경험해보기 힘들었다. "아저씨!" 땀을 뚝뚝 흘리며 달려오는 소년은 스테판이었다. 멀리서 금아를 알아봤는지 허겁지겁 달려온 스테판의 안색은 창백했 다. 금아가 스테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 함께 가서 크레이가 수업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말해줘 야 겠다." "아, 알고 계시나요? 크레이에게 뭔가 나쁜 일이라도?" 당황한 소년의 입에서 두서없는 말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 다. 금아는 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스테판은 눈에 띄게 안심 해갔다. "아, 걱정했었어요. 눈도 보이지 않는데. 가뜩이나 요즘은 여러 가지 신경쓰이는 일도 많고..." "알고 있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업혀왔을 정 도라면 평소 분위기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검술은 좀 늘었니?" 조금씩 굳어가는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금아는 말을 돌렸 다. 란에게 배우고 있다면... 글세. 자신이 배웠을 당시의 시절 을 되세기고 싶지는 않은 금아였지만 상식적인 수련이란 것 자체를 거의 받아본 적이 없는 스테판과 크레이라면 잘 적응 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아직 칭찬은 받아본 적 없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습 니다. 정규 수업시간에서 뒤떨어지지는 않으니까요." 밝아진 표정으로 스테판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규 수 업시간이라면 지금은 검술을 전공으로 하는 소년들과도 섞여 있을 터, 그들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면 조금쯤은 자신 있어 해도 좋으리라. "잘 하고 있구나."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감촉이 그다지 싫지는 않은지 스테판은 머리를 피하지 않았다. 아무리 내색하지 않고 있어도 금아는 뼈대부터가 무인이었다. 어딘가가 보통의 하인과는 공 기부터 달랐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가볍게 금아에 게로 고개를 굽혔다. 동그란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던 스테판은 피식 소리내어 웃었다. "금아 아저씨는 어딘가 귀족 같아요. 그것도 아주 높은 귀 족." "하핫. 그럴 지도 모르지." "헤. 하인 일을 하는 높은 귀족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작은 주인님은 조금 특이하신 분이지만, 귀족과 평민은 출신부터가 다른걸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럴 지도 모르지." 금아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평민부의 교관실이 가까워지 고 있었다. 시끌거리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폼이 벌써 문제가 되고 있는 듯 싶었다. 금아는 살짝 어깨를 더 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란 말이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크게 터트린 고함소리보다 더 많은 살기를 품고 있다. 아르카이아 평민부의 교관들은 모두 얼어붙은 듯 자세를 바로했다. "핏자국만 남겨져 있다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이 아르 카이아에 사람을 습격하는 맹수라도 기르고 있다는 건가." 기묘한 공기를 의식한 회의를 일찍 끝낸 무트에게로 날아 온 건 한 학생의 실종사건이었다. 겨우 평민부의 일. 무트에게 까지 날아올만한 무게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실종된 사람의 정 체였다. 그렇잖아도 온갖 소문을 몰고 다니는 페르로이가의 눈 먼 소년. 당장 거론될 페르로이가와의 불편한 일들을 둘째치고 서라도 아르카이아 내에서 실종문제같은 사건이 터졌다는 소 문이라도 크게 나면 곤란했다. "마지막 목격자는?" "없습니다."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교관 하나가 작게 대답했다. 휴 식시간이 끝나고 돌아오지 않는 소년을 직접 찾으러 나섰던 교관이었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 학생을 방치하다니." 공기는 무거웠다. 그 때였다. 구원인지 절망인지 모를 노크 소리가 두꺼운 나무문을 타고 정중하게 울렸다. 더 이상 찾아 올 사람이 없는 곳의 방문객은 소식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문 가에 서 있던 교관 하나가 무트의 눈짓을 받고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대부분의 교관들에게 낯이 익은 작은 소년 스테판을 옆에 세운 금발의 남자 하나가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서 있었다. "도련님의 심부름으로 크레이 학생에 대한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 룬은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미행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어쩌면 란이라는 하녀는 그들이 생각했던 만큼 대단한 하녀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르크는 지닌 실력에 비해 덜렁였고 어딘가 꽉 찬 느낌이 없었다. 그건 그림자로서 실격당할만한 단점이기 도 했다. 센의 옆을 너무 오래 비워둘 수도 없었다. 그에게는 정적이 많았으니까. "그래?" 돌아온 룬의 보고를 받으며 우트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란이라는 하녀의 조직적 수하라기 보다는 그림자의 신 분상 하녀들에게조차 정체를 밝힐 수 없기에..." "단지 한 사람의 마부로서 주인의 전속인, 그 대가 센 하녀 의 기세에 잡혀 있다." "네. 그렇게 보입니다." 란이 문을 연 발코니 근처에서 룬은 일부러 기척을 내비쳤 다. 당황한 하르크는 온 정신이 크레이에게로 쏠려 모르는 듯 했다. 만일 하녀가 그의 상관격인 그림자라면 상처입은 소년과 그를 안고 달려오는 부하의 뒤를 몰래 뒤따른 자신에 대해 뭔 가의 반응이라도 보여야 했다. "어느 정도의 수련을 쌓은 그림자라면 다른 그림자의 기척 을 어렴풋이나마 눈치챌 수 있습니다." 경지의 차이가 난다면 더더욱 그렇다. 순수한 실력으로만 본다면 하르크가 자신보다 조금 우위에 설 지도 모른다고 룬 은 판단했다. 그런 하르크가 겁을 집어먹을 정도의 힘의 소유 자라면 룬의 인기척을 당연히 눈치채야 했다. 자신의 앞을 가 로막고 질문 한 마듸 정도는 던졌으리라. "흠... 예상이 또다시 뒤집어지는군." 우트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그림 자가 우트트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골치아픈 하녀야." 룬은 조용히 우트트의 명령을 기다렸다. 우트트는 의자의 팔걸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노을을 온 몸을 받으며 우트트 는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계태세를 풀지 말도록." 뭔가가 있는 듯 하면 없고 없는 듯 하면 또 있었다. 판단을 내리기 쉬운 존재가 세상에 있으려냐만은 이렇게 복잡한 존재 치고 정말 단순하고 깨끗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동 대륙의 속담에 '모 아니면 도'라는 말이 있다지." 룬의 고개가 깊이 숙여졌다. "지극히 평범해서 아무런 특징도 없는 하녀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네 계산을 꿰뚤어볼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하 녀인지도 모른다." 몇 달 전 크리아의 황도에 나타나 노예상인의 경매장을 일 거에 무너트렸다는 여자 마스터 검사의 일도 마음에 걸렸다. 작고 약한 힘에 비해 유난히도 검술에 소질이 많은 존재들이 많은 땅이 크리아였다. 그 크리아의 오랜 시간동안 명맥을 유 지해 온 후작가. 그것도 유명한 무가. 그 무가의 주인을 지켜 온 그림자라면... "우리의 상상보다 뛰어난 존재일 지도 모르지. 조심해서 나 쁠 일은 없으니까." 그림자가 길게 떨어지고 있었다. 우트트는 발코니에 몸을 기대듯 세웠다. 우트트는 문득 그런 후작가에게 손을 내민 움 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 머리가 우트트의 발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길게 기른 머리를 장 식이 많게 틀어올린 여성. "셀레라 아가씨가 오셨습니다." 시종장의 목소리가 귀에 와 닿기도 전에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당당하게 방을 들어선 한 귀족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더 더욱... 그렇게 말이다. "안녕하셨사옵니까. 미래의 카느시여." "난 우그르트입니다." 오늘 따라 그녀의 미묘한 어감을 전해주는 목소리에 짜증 이 일었다.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페르로이가의 소년이나 세이 제린가의 여식과 비교되는 여인이었다. 날이 갈수록 품었던 처 음의 호감이 식어가는 존재라고 할까.... "그러하오니 미래가 아니옵니까." "미래를 정하는 건 하노베이가가 아니니까요." 목소리는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감정으로 아 군을 잃을 수는 없다. 우트트는 그 정도로 균형없는 존재는 아 니었다. 셀레라의 얼굴이 막 굳어가려 할 때, 우트트가 손을 내밀었다. "이번 중앙절 축제에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겠소." 오늘따라 붉어 보이는 셀레라의 입술이 활짝 좌 우로 치켜 올라갔다. "영광이옵니다." 우트트는 그런 셀레라의 모습이 마녀같다는 생각을 털어내 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야 했다. '지금은 참는 거야...' ****성실연재의 은빛입니다. 사실 오늘... 원고를 날려먹었습니다....ㅠㅠ 오늘 하루 종일 쓴 분량을! 원고지로 백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단축키 설정을 누가 바꿨더군요. 장군이 아니면 멍군이가 밟고 지나가면서 바꿨으리라 추측됩니다만... 열쉼히 저장해가면서 썼던 원고들이 사실은 하나도 저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하늘이 노랗던지!!!!! 허겁지겁 썼읍니다. 슬럼프 한번 빠지면 장기...잠적될것 같아서 흑륵... 그런 은빛에게 힘들! [[The Perfect MAID]]-73-축제가 시작된다. 원인모를 사고로 크게 다친 크레이가 지금 클레이브의 숙 사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교관들의 안색은 파리했다. 이름 을 금아라 밝힌 하인은 경악한 교관들의 기세와 질문공세에도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주인의 뜻을 전했다.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침 작은 주인님 의 명령으로 평민부를 찾은 저희 시종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크레이는 죽었을 겁니다." 금아의 옆에 서 있던 스테판의 안색도 책임감으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모든 것이 잠시 물을 마시 느라 크레이의 모습을 놓친 자신의 잘못인 냥 스테판은 얼어 붙었다. '그깟 물 좀 늦게 마셔도 상관없었는데.' 견디기 힘든 불볕더위와 갈증에 정신이 팔려 자신에게 뭐 라 건넸던 크레이의 말을 건성으로 넘겼었다. 금아는 살짝 손을 뻣어 스테판의 어깨를 잡았다. 교관들이 눈치채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내공이 일었다. 금아의 손으로 전달되는 약한 기의 흐름에 스테판의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한 순간 무트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럼, 전언을 마쳤으니 전 이만." 절도있는 동작으로 금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침착한 공 기에 압도된 교관 몇몇이 자신도 모르게 함께 고개를 숙이고 는 얼굴을 붉혔다. 무트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자네. 나와 면식이 있는가?" 막 등을 돌리려던 금아에게로 한 걸음 다가서며 무트가 말 문을 열었다. 잠시 멈칫했던 금아가 뭔가를 떠올린 듯 밝게 미 소지으며 무트에게로 가볍게 고개를 다시 숙여보였다. "그 무시무시한 바람이 일던 날 절 구해주신 분이시군요. 인사를 미쳐 못드렸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그 원인 모를 살기가 날뛰던 날 그 중심부 부 근에서 기절해 있던 하인이었다. 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 아는 스테판의 손을 이끌며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왔다. 그렇 게 일을 마치고 스테판과 헤어진 후 막 평민부를 빠져나오는 길의 초입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그 외에도 난 자네를 만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군." 금아보다 먼저 길을 가로막고 선 사람이 있었다. 귀족부와 평민부를 나누는 경계, 저녁무렵이면 더더욱 인기척이 뜸해지 는 골목에서 무트는 나지막한 담장을 깔고 앉아 금아를 기다 리고 있었다. "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금아는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무트 의 샅샅이 따지는 듯한 눈빛을 받고싶지 않았다. 아니 받으면 곤란했다. 무트가 담장에서 뛰어내렸다. 아무런 소리도 먼지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자네의 반응도 마음에 걸려. 보통의 하인이라면 크게 놀랐을 텐데 말이지." 뛰어 내릴 때 보인 한 수만으로도 놀랄만도 했을텐데 금아 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자네는 지나치게 침착해. 뭐, 고위 가문의 교육 잘 받은 하 인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교육을 잘 받은 하인들은 어딘가 귀족스러운 면이 있는 것 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금아에게서 느껴지는 뭔 가는 달랐다. 무트의 어깨에 달린 금실이 반짝 빛을 발했다. 아무리 침착하다 한들 주인을 대신해 말을 전달하는 것과 이 렇게 갑자기 고위층의 사람과 맞닥트리는 일은 그 성격부터가 다르다. 일반 교관들의 복장도 그러했지만 총교관의 복장은 한 눈에 띄게 달랐다. 금실로 장식된 문장이 어깨에 큼직하게 걸 려있어 누가 봐도 높은 지위의 사람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그것도 자신이 분명 인사하고 나왔던 사람이 자 신보다 먼저 자신의 길로 와서 막고 서 있다면 보통의 하인이 라면 아무리 감추려 들어도 겁먹어 크게 놀라기 마련이다. "이상하군. 크리아인인 자네를 내가 봤을 리도 없는데, 왠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만 같은 감각이 드는 거야." 팔짱을 끼고 있던 두 팔을 가볍게 풀어 허리 근처에 늘어 트리고 무트는 금아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내가 크리아를 그리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죄송스런 말씀입니다만,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 습니다." 식은땀이 흘렀다. 금아는 무트의 기억을 찾아냈다. 먼저 말 이 나오지 않았다면 결코 되살아나지 않았을 작은 기억의 조 각이 지금 금아에게 선명히 떠오르고 있었다. "아니, 그런 단순한 외형이 아니야. 내가 자네에게 익숙하게 느끼는 건, 생김새가 아니라... 그 독특한 분위기니까." 무트의 오른 손이 가볍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뽑힌 검이 금 아의 목줄기로 뻣었다. "피할 겨를이 없던 건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멈출 줄을 알 았던 건가." 피부 한 장 두께 앞에서 검을 멈춘 무트의 입술에서 냉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크리아를 방문했던 적은 단 한번뿐이지." 검이 금아의 목에서 치워졌다. "단 한번이야. 갓 스물이 넘었을 무렵, 난 사막의 검술에 한 계를 느끼고 마스터인 베이르 대공의 저택을 찾았었지. 그 때 단 한번이다. 내가 크리아의 땅을 밟았던 적은." 거침없이 정면을 응시하던 한 사막민족의 소년을 금아는 기억하고 있었다. 마른 모래가 물을 흡수하듯 막힘없이 금아의 가르침을 흡수하던 한 소년을 금아는 기억했다. 아주 짧은 몇 일의 만남뿐이었지만, 민족이 갈리지 않았다면, 그가 크리아에 남을 수 없는 우그르의 핏줄만 아니었다면 금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잡아 제자로 길렀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만났던 산적 중에는 이렇게 밝은 금발이 없었는데..." 한 순간이었다. 금발이라는 단어와 함께 무트의 머릿속에 뭔가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 것은. ".....................금아?" 흐릿한 기억 속에서 떠오른 두 글자의 낯익은 이름이었다. 온 몸에 경악과 소름이 달려지나갔다. 황당과 경악이 드러찬 두 눈동자가 있는대로 커다랗게 치떠졌다. "휴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나 많은 한숨을 내 쉰 날이 없 었을거라 생각하며 금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깊은 바다색 눈동자, 밝은 금실로 뽑아낸 듯한 머리카락. 숯이 많은 짙은 눈썹... 그리고 그 독특한 공기. 부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우그르의 핏줄만 아니었다면 거친 사막땅의 운명이라도 버리고 남고 싶을만큼 그를 강하게 매혹시켰던 검술을 지닌 스승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인가 훈련을 마치고 해 주었던 짧은 이야기의 한 토막. 금아라는 또 하나의 이름. 비록 제자로 삼아 가르칠 수는 없지만 그를 한 사람의 검술가로서 인정하기에 말해 준다던 짧은 이름에 얽힌 이야기.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그 날과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금아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 는 서 있었다. "서, 서, 설마?" 비명같은 한 자락의 목소리가 저녁 노을을 찢어갔다. 순식 간에 바랜 얼굴에 노을을 받아 보랏빛으로 보이는 눈동자가 선명하게 새겨들었다. "베이...." "쉿."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입을 가로막으며 싱긋 웃는 표정까 지 그 날의 그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비밀은 지켜 주겠지?" 무트에게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하인의 옷을 입은 일 국의 대공저하의 모습이라니! "하, 하지만 왜! 어째서!" 그가 그리도 존경했던 검사가 왜 이런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비천한 하인의 옷을 입고! 한낱 무술교관 들 따위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왜! **** 클로네는 다른 가문의 일에 자신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며 금아를 내보내고는 슬적 자리를 피했다. 난 말을 간략하게 얼 버무렸다. 클레이브가 굳어있건 루데릭이 눈을 치뜨고 노려보 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럼 루데릭경은 퇴원 인사를 하러 왔던 것뿐이고, 마침 동급생들에게 몰매를 맞아 크게 다친 크레이를 하르크가 업고 달려온 거로군." "네." 낮게 한숨을 내쉰 클레이브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럼 루데릭이 들어오자마자 검을 뽑아들며 난리를 친 것도 내가 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흥분했던 것뿐인가?" "네?" 클레이브의 눈가가 조금 더 가늘게 좁혔다. 제길. 이 어린 주인은 쓸데없는데서 가끔씩 소름끼칠 정돌 예민한 모습을 보 인다. 누가 애늙은이 아니랄까봐... "기사의 목소리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크지. 온 복도가 울렸 다고 하더군. 옆방의 하인들 하녀들부터 온통 지금 그 이야기 들로 소란스러운데 설마 나만 모르리라고 생각했나." "아, 그게..." 그렇게 된거로군. 루데릭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림자의 정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대부 분의 경우 가문의 주인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가문 의 누가 그림자인지 아닌지 모르는게 정상이다. 따라서 내가 정말 그림자라고 하더라도 클레이브는 모르는 게 좋다. "몰라주셨으면 합니다." ".......................!" 단호하게 끊은 말에 클레이브의 시선이 내게 똑바로 꽂혔 다. 순간 공기가 사늘하게 가라앉았다. 루데릭의 커다랗게 치 떠진 눈동자에 살짝 살기가 머금어졌다. "공부에 방해되는 일들뿐입니다. 클레이브님께서 아셔야 할 만한 중요한 일들은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 외의 일들은..." "방해된다?" "최소한 클레이브님의 공부와 검술에는 방해되는 것이 확실 합니다." 치떠진 눈에 분노가 어려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에서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겠지. 하지만 맞다. 난 그를 밀 어내고 있었다. 아니 확실하게 밀어낼 참이었다. "클레이브님은 이제 아홉 살입니다." 고개를 바짝 들이밀고. 마치 아이를 야단치는 어미처럼. 시 선을 맞추면서. 하녀라면 결코 하지 못할 말들을 서슴없이 내 뱉으리라. "아홉 살의 나이에 인간이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은 아홉 살의 덕목입니다." "난 평민이 아니다." 반항으로 얼룩진 클레이브의 목소리를 난 가차없이 잘랐다. "하지만 인간이시죠." 잠시 말의 흐름이 멎었다. "마치... 란 너는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말투로군." 의심과 두려움이 마구 뒤섞인 시선들이 내게로 몰려왔다. 하긴 내가 보통 의뭉스러운 존재였던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숲속의 외뿔 엘프들과 자연스럽 게 인사하고 기사들조차 이겨내지 못했던 늑대들과 맞선 하녀 라니. 평범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저 역시 인간입니다." 클레이브의 말이 멎었다. 난 조용히 그의 앞에서 한쪽 무릎 을 꿇었다. "그리고 지금은 클레이브님을 보좌하는 하녀이죠." "평범한 하녀라면 이렇게 할 수 없겠지." 자존심이 강한 아이일수록 아이취급 당하는 일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아이였고 난 그에게 그 스스로가 아직 아 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를 원했다. "여신 아르페이나님은 아이와 어미의 여신이시죠." 시끌벅적한 사건들에 휘말려 잊혀져 가던 기억들이 되살아 난다. 클레이브의 눈동자가 파란빛을 머금고 날 다시 향했다. 분명 같은 빛깔의 눈동자이건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빛은 달 랐다. "아르페이나님께 약속했습니다. 클레이브님을 지키겠다고. 사실 하녀라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파란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난 살며시 아직 어린 주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어린 주인의 몸이 굳었다. "난 그대가 아홉 살의 나이에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기 를 원합니다. 난 내 아홉 살에 얻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큰 것들이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홉 살에 얻을 수 있는 것들?" 눈물이라도 쏟을 듯 일그러진 클레이브의 표정이 가볍게 떨렸다. "당신이 앞으로도 영원히 아홉 살의 소년들을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을 막아야죠. 전 하녀니까요." 어린 시절에 아이가 경험하고 겪는 감정과 모든 일들이 한 사람을 껍데기만이 아니라 그 내면까지 튼튼하게 가꾸는 일이 라는 사실 정도는 노도의 잔소리가 아니더라도 알고 있다. 마 치 사철 열매에게 겨울이 없으면 씨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내 매마른 아홉 살에 얻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까지도 영원히 잃 어버린채 살아가는 고통을 그는 모르겠지. "목숨을 건 한 어미의 염원을 이어 난 세상에서 단 하나 뿐 인 하녀가 될 겁니다. 어린 주인이여." 클레이브의 자그만 머리가 내 어깨에 닿았다. 뜨겁고 촉촉 한 눈물이 얇은 여름옷을 적시고 피부에 스며들었다. 난 클레 이브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품에 안긴 어린 주인의 아 홉 살의 몸은 정말 조그맣고 여렸다. "당신은 그 빌어먹을 노출증 여신이 내게 이어준 단 하나의 기적이랍니다." 그의 귀에 닿지 않을만큼 작게 속삭이면서. 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아르페이나를 반쯤 용서했다. 딱 반절만큼만. -끼익- 어린 소년을 두껍게 감싸고 있던 껍질을 깨는 것만 같던 눈물은 곧 멈췄다. 닫혀있던 문이 빼꼼이 열리는 소리가 그의 긴장 순식간에 일깨웠다. 화들짝 고개를 치켜든 클레이브의 얼 굴에는 이미 눈물이 말라있었다. "뭐지?" 클레이브의 침실 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그 문 뒤로 눈동자 만 삐죽히 내민 하르크가 전에 없이 공손해진 말투로 머뭇머 뭇 말문을 열었다. "크레이가...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뭐?" [[The Perfect MAID]]-74-축제가 시작된다. 클레이브의 침실 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그 문 뒤로 눈동자 만 삐죽히 내민 하르크가 전에 없이 공손해진 말투로 머뭇머 뭇 말문을 열었다. "크레이가...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뭐?" 아홉 살 소년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피어났다. 클레이브는 박차듯 그의 침실로 달려나갔다. 피와 식은땀으로 얼룩진 창백 한 소년의 얼굴에 조금씩 핏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크레이! 정신이 드나?" 축 늘어진 크레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클레이브는 조 심스럽게 크레이의 얼굴을 살폈다. 흘러나온 피딱지가 엉겨붙 어 눈도 뜨기 힘들만큼 엉망이었다. 크레이의 눈꺼풀이 몇 번 움직였다. 하르크가 재빨리 젖은 수건으로 눈가의 굳은 피를 훔쳤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을 뜬다는 건... 자신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희미한 불빛을 받은 월루석의 짙 은 바다색 눈동자가 살며시 모습을 들어냈다. "아, 클레이브... 님?" "그래, 하르크가 상처입은 널 업고 돌아왔지." "여긴?" 몸을 움직거리기도 괴로운 듯 팔을 움직여 몸을 조금 일으 켜 세워보려던 크레이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몸을 떨어트렸 다. 클레이브가 크레이의 어깨를 살며시 눌렀다. "내방이다. 내가 허락했으니까, 부담갖지 말고 쉬어." "하, 하지만..." 귀족이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자에게 자신의 방을, 그것도 침실을 내주는 일은 없다. 거의라는 말도 드물다는 말도 필요 없다. 크레이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친구니까." 아주 낮은, 그러나 선명한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와 닿았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의 루데릭과 나름대로 감동한 표정의 하르 크의 시선들이 모두 클레이브에게로 꽂혀갔다. 하긴 그 모든 놀라움을 합해도 크레이의 감격에는 미치지 못하겠지. "클레이브님..." "자아, 크레이는 더 쉬어야 해요." 난 애써 몸을 꿈틀거리는 크레이를 다독였다. "맞아. 피를 많이 흘렸어. 푹 자야 해." "하르크 아저씨... 고마워요." 크레이의 고개가 힘겹게 돌아갔다. 보이지 않는 눈이었지만 이 작은 아이는 자신을 향해 말을 던져주는 사람들에게 정확 히 표정을 맞추고 있었다. 창백했던 얼굴에 홍조가 많이 돌아 와 있었다. 난 크레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식은땀으로 축축 해진 이마가 제법 뜨끈했다. "열이 나는구나." 상대적으로 차갑게 와 닿은 손바닥의 감촉이 좋았는지 크 레이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난 아이의 얼굴을 곱게 쓰다듬었 다.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 듯 크레이는 입술을 움직였다. "정말로 푹 쉬어야겠다. 크레이. 아르카이아에는 금아 아저 씨가 알리러 갔으니 스테판이나 수업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그래. 푹 쉬어." 시원하게 말하는 클레이브의 목소리에 크레이는 그대로 반 응했다. 그는 잠시 클레이브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뭔가를 살 피려는 듯 잠시 보이지 않는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푹 베개 로 기댔다. "다행...입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가 크레이에게서 흘러갔다. 클레이브가 어 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더니 먼저 등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자신이 남아있으면 크레이가 쉬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겠지. 루 데릭이 클레이브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고 잠시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던 하르크가 발끔치를 들고 살금살금 방문을 빠져나갔다. "클레이브님은 괜찮으시단다." 크레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난 낮게 속삭였다. 크레이는 살짝 볼 끝을 당겨 미소지었다. 애늙은이 같으니. 분명 클레이 브를 걱정하고 있었으리라. 더구나 클레이브와 같은 귀족부에 는 셀레라까지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퍼트린 유언비어와 독설로 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는 크레이들로서는 클레이브의 안위가 걱정일 수밖에 없겠지. "란님..은..." 고통이 몰려오는지 크레이의 호흡은 뚝뚝 끊어지고 있었다. 난 소년의 손에 살며시 기를 불어넣었다. "신기한 분이세요." 고통을 완전히 지워줄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었다. 크레이의 표정이 다시 흐릿한 미소를 그려 냈다. "자, 이제는 자거라. 금아 아저씨가 곧 네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약을 가지고 돌아 올꺼야." 소년에 이마에 입을 맞춰주면서 난 흐트러진 이불을 크레 이의 목까지 단정하게 끌어올렸다. 사막의 밤은 제법 쌀쌀했 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방의 창문을 조금 열고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몸에 열이 많이 날테지. 이런 날은 따듯하게 자는 게 좋을테다. "란님...." 잠이 드는 듯 아주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크레이의 마른 입술을 타고 새어나왔다. 마치 생명이 흘러나오는 듯 해 마음 이 아팠다. 난 크레이의 볼을 살며시 감싸고 볼에 입을 맞췄 다. 이제 열 살이 겨우 넘은 소년의 표정에 환한 미소가 피어 났다. "왜?" "밀가루랑....... 비누냄새가....... 나요." 밀가루와 비누냄새는 하녀들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이기도 했지만 이 서대륙의 평민 아이들에게는 어미의 향기이기도 했 다. 가슴 한 구석이 찡 울려왔다. "...좋아하지?" ".........네." 살며시 다독이는 감각이 잠을 부채질했을지도 모른다. 크레 이는 곤한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난 만일을 대비해 크레이의 수혈을 짚었다. 중간에 통증으로 깨어나기라도 하면 힘들 테니까. 난 잠시 크레이의 침대 곁을 지켰다. 크레이는 어미를 잃은 지 이제 일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보다도 더 어릴 적에 어미 와 헤어진 스테판, 클레이브를 살피느라 어미를 잃은 슬픔을 소리내어 울어보지도 못한 아이. 굳은 피로 여기저기 뭉쳐 떡 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보며 이런 삶도 나쁘지는 않았겠구 나 하는 감상에 잠시 젖어본다. "이거 정말 아르페이나에게 감사하는 일이 생기는 거 아 냐?" 내가 만일 무신이 아니었다면, 그래 검을 들지 않고 아이를 나아 이렇게 기를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 이렇게 살아서 이 애늙은이들을 쓰다듬어주지 못했겠지." **** 망신살도 이런 망신살이 없었다. 루데릭은 클레이브의 숙사 를 빠져나오면서 클레이브가 말했던 그 "모두가 아는 사실"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빼꼼히 문을 열고 자신을 바라보는 색색의 눈동자라니! 그것도 당당하게 나와 바라보는 것도 아니 고 마치 더러운 깡패라도 보는 냥 몸을 숨기고 훔쳐보는 시선 이란! "노려볼 것 없잖소." 더구나 저 하인은 제 잘못을 정말로 모르는지 기사의 눈빛 에도 얼어붙는 기색 하나 없다. "쳇. 꼭 모든 잘못이 내게만 있는 것 같은 눈초리로군." 하르크라고 속이 좋을 리가 없었다. 쪼르르르 달려가 종알 종알 짓걸인 루데릭 덕분에 란에게 단단히 찍힌 상태. 술김에 몇마디 분 것을 가지고 상황과 장소도 판단하지 못한 채 고자 질하는 어린아이모냥 달려가더니만, 그 란의 기세에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잡혀 미주알 고주알 떠든 루데릭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자연히 말투도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뭐라?" 속에서 열불이 나기는 루데릭도 마찬가지. 클레이브 앞에서 당한 망신이었기에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진 참이었다. 말 이 아르카이아의 숙사이지 그 곳은 각 국의 고위급 귀족들이 이런 저런 이유들로 모조리 다 몰려와 있는 곳이 아니던가. 완 전히 국제적 망신이었다. "누가 그렇게 쪼르르 달려가 불라고 했나? 마치 혼이라도 낼 듯 달려가더니만. 하녀의 한 마디에 꼼짝도 못하고 얼어붙 어서 빌빌대는 모습이라니." 이렇게 해가 지는 밤일수록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더 잘 들리는 법이다. "뭐야?!" 신경이 날카로와질 대로 날카로와진 루데릭의 언성이 조금 씩 높아져갔다. "감히, 지금 뭐라고 했는가!" 귀족과 평민이란 나라가 하나 망하고 새로 생기지 않는 이 상은 변하지 않는 계급이었다. 페르로이 후작가의 자유로운 분 위기에 젖어 조금은 느슨해졌다고는 하더라도 루데릭은 엄격 한 백작가의 장자였다. 당장이야 가문이 기울어져 이렇게 타 가문의 힘을 빌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크리아라는 나라의 특성상 앞으로 두 세대가 채 지나기 전에 다시 당당한 가문으 로 일어설 엄연한 귀족이었다. 그런 귀족에게 아무리 나름대로 의 실력을 인정받는 자라 한다지만 평민 따위가. 그것도 이름 을 들어낼 수 없는 그림자 따위가. "아, 네. 네. 귀족 나으리께 제가 못할 말씀을 드렸군요." 루데릭의 고개가 돌아가며 하르크에게로 시선이 고정됐다. 화살처럼 꽂히는 기사의 살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스레를 부리는 모습이 루데릭에게는 더욱 밉살스러웠다. 뿌드득 이가 갈렸다. 걸음이 멎었다. 허리 춤에 걸린 검이 스르릉 움직였다. "한 자루의 검만으로는 모자라서 귀족이신 분께 제가 뭐라 고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네, 네, 네, 제 잘못이죠." 막 모습을 들어내 방향을 정하려던 검신이 딱 멎었다. 노란 빛을 발하기 시작한 달빛이 잠시 은빛의 검신에 머물렀다. "무슨 뜻이지?" 당장 치밀어오른 분노보다 그의 긍지가 중요했다. 귀족임에 지니는 자부심보다 기사로서 검을 든 자로서의 자부심이 더 컸던 루데릭이었다. 비웃음을 담은 하르크의 눈빛에는 지난 몇 달 간 그와 그의 기사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은 고통을 고스 한히 되살리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명치끝이 저릿해졌다. "흥!" 평소라면 이 정도에서 꼬리를 내렸을 법도 한데, 지금의 하 르크에게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이 루데릭이라는 자 때문에 자신이 란에게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성을 마비 시킨지 오래였으니까. "진짜 자존심과 쓰잘데기 없는 자만심도 구분 못하는 바보 에게 해 줄 말은 없소." 지금 그에게 이를 벅벅 갈며 살기를 보내고 있는 진짜 주 인공은 루데릭같은 얼치기 귀족이 아니라 드래곤보다도 맞닥 트리기 싫은 괴팍한 마스터였으니까. 클레이브만 아니었다면 눈앞에서 걸그적 거리는 이 자를 당장이라도 뒤에서 베어 버 리고 싶은 건, 루데릭이 아니라 하르크였다. "진짜 검을 쓰는 자들은 신분 같은데 기대지 않지." "뭐?" "멀리 찾지 않아도 당신 주변에도 몇몇 있지. 진짜 검만을 사랑하는 검사라는 미친 작자들이." "내 주위?" 하르크를 향해 날을 세웠던 검이 옆으로 누웠다. 루데릭은 검을 늘어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구지?" 짚이는 바가 없었다. 하르크의 입에서 길다란 한숨이 흘러 나갔다. "됐수. 제길." 풀석 땅에 주저앉으며 하르크가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렸다. "아흐흐흐흐! 젠장! 나보러 어쩌라구!" 한바탕의 발광이었다. "젠장. 그거 아오? 내게 검이란걸 본격적으로 가르쳐 준답 시고 날 무지막지하게 고문했던 놈이 했던 말이지." 자신을 향해 검을 뽑았던 자에게 완전히 등을 내보인 하르 크는 힐끗 루데릭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루데릭의 몸이 흠짓 떨렸다. '크다.' 주저앉은 모습이었다. 서 있는 자신보다 클래야 클 수가 없 는 형태였다. 그런데도 커 보였다. 루데릭은 문득 자신이 긴장 하고 있음을 느꼈다. '좋지 않아.' 겨우 평민 그림자따위에게 위축됐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루데릭은 이를 악물었다. 검의 날을 세웠다. 그러다 문득 자신 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등을 노리고 있는 건가?' 허탈했다. 싸움이란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 마치 찌를 테면 찔러 보라는 듯 등을 훤히 보이고 앉은 하르크를 보며 루데릭 은 잠시 갈등해야 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루데릭의 검은 검집으로 들어갔다. 그에게는 기사로서의 검사로서의 자존심과 열망이 더 중요했다. "뭐라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루데릭의 엉덩이가 털석 모래밭위로 떨어졌다. 차갑고 축축한 모래의 감촉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 았다. 하르크가 조금 동그래진 눈으로 루데릭을 살폈다. "잊어버렸수." "뭐?" "놀라서 잊어버렸다구." "하... 하...." 볼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폼을 잡더니만 잊어버렸다고? "그럼, 등뒤에 검을 든 놈이 있는데 신경쓰이지 않았겠소? 나름대로 정신 집중하다가 잊어버렸지." 싱겁고 털털한 게 분명 어제의 그 마부였다. 루데릭은 자신 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앉아있으면서도 그 보다 크게 보였던 자였었는데. "호, 그럼 내가 찌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겠군. 그런 데 왜 등을 보이고 있었지?" 하르크는 주섬주섬 옆구리를 더듬었다. 어디에 숨겨 두었었 는지 허리띠 부근의 작은 주머니에서 담배잎 한 장이 나타났 다. 하르크는 담배잎을 정성스럽게 돌돌 말았다. "진짜 등뒤에서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놈의 살기는 그렇게 뭉특하지 않으니까." 담배 잎의 끝을 태우며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난 당신의 살기가 날카로워질 것인가 아닌가만 봤을 뿐이 야." 루데릭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바닥을 흩은 두 주먹 가득 히 축축하게 습기를 먹은 모래가 잡혔다. 하르크가 시익 웃었다. 순간 루데릭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 다. 살기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를 관 통하고 지나갔다. 마치 지금 한번 죽은 것만 같은 감각이 그를 휘감았다. 하르크의 입에서 길다란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 다. 하르크가 손을 휘휘 저었다. "바람이 없으니 연기도 흩어지지 않는군." "연기?" 순간 위화감의 정체가 모습을 들어냈다. 하르크는 불을 붙 이지 않았다. 부싯돌 부딪히는 소리가 없었다. 바닥의 돌들은 모두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렇다고 마법을 구사한 듯 보이지 도 않았다. 담뱃불을 교묘하게 붙일 수 있는 마법사란 이런 그 림자 일 따위를 할만큼 넘쳐나지 않으니까. 그럼 뭘까. "아, 기억났다." 루데릭의 복잡함을 아는 지 모르는지 하르크는 태연히 말 을 이었다. "쓰잘데기 없는 지 자존심을 생각할 겨를이 있으면 그딴 놈 의 손아귀에서 춤이나 춰야 하는 검의 자존심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었지? 아마?" "흠." 푹 찔리는 듯한 말이었다. 루데릭은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지독한 피로감이 그를 덥쳐오고 있었다. '검의 자존심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는 자라....' 문득 한 여인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클레이브에게 세 상에서 유일한 단 하나뿐인 하녀가 되어주겠다고 했던, 여신의 명을 받들었다고 했던... "설마." "음"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낯빛을 굳히는 루데릭의 표정에 하 르크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란? 란이라는 그 하녀인가? 자네가 말했던 그 자는?" "에엑?" 심중을 굳힌 듯 루데릭은 진지했다. "단순히 하녀라고만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지. 기사를 압 도하는 당당함. 외뿔엘프들과의 만남, 늑대들과 산적들을 만났 을 때의 의연함이라든가. 하녀라고 보기보다는 여기사가 더 어 울리는 존재였어." "무슨 소릴! 그 여자는 단지 하녀일 뿐이오!" 하르크는 언성을 높혔다. 하녀라는 틀에 대해 란이 얼마나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이미 수 차례에 걸쳐 경험한 바가 있는 그였다. 루데릭의 눈썹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럼 그런 여자가 평범한 하녀라는 말이오! 세뇌도 통하지 않는 체질에다가 귀족도 안중에 없지! 아무리 주인이 승낙했다 고 하더라도 일개 시종일 뿐인 아이를 주인의 침대에 눕히는 그런 상식 없는 하녀가! 제정신! 헙!" "이, 이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점점 더 우렁차게 벌판을 울려퍼져 나가는 루데릭의 목청 을 막기 위해 하르크는 몸을 날렸다. 두 손으로 루데릭의 입을 꼭 틀어막은 하르크의 눈에는 단순한 위협을 넘어선 살기가 비릿하게 담겨 있었다. 숨이 막힌 루데릭의 두 손이 하르크를 떼어내기 위해 거칠게 움직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초점을 정지 하지 못하고 사방을 향해 눈동자를 굴리며 하르크는 루데릭의 귓가로 작게 속삭였다. "너, 너, 미쳤지. 그렇지? 미친 게 틀림없어!" 갑자기 당한 무례에 루데릭의 불꽃도 폭발했다. "움! 움!" "시끄러! 너 때문에 나만 그 마녀한테 죽게 생겼단 말이야! 난 가늘더라도 오래 살고싶은 사람이야. 자꾸 헛소리할래?" "마녀?" "그래! 그 하녀가 얼마나 무서운....?" 순간 하르크의 말이 멎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르크 의 동작이 멎으며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순간 루데릭이 그 의 손을 뿌리쳤다. 답답했던 숨통이 일시에 트이며 거친 기침 이 흘러나왔다. "젠장! 너도 그 하녀도 다 미쳤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르크의 몸이 굴렀다. 루데릭은 하르 크를 밀쳐낸 자신의 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힘을 조금 가하 기는 했지만 저만치 굴러갈만큼 세게 치지는 않았다. "...음?" 위화감. 갑자기 벌어질 리가 없는 일이 생겼을 때 조여오는 두려움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루데릭은 조심스럽게 하르크를 향해 달려갔다. "이봐?" "자, 자, 자, 잘못했어요! 란님! 제가 그런 게 아니라요!" 하르크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져 올랐다. 두 손을 삭삭 빌 며 방금전까지의 당당했던 모습이 모두 거짓이기라도 한 냥 그는 애처롭게 허공을 향해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루데릭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살기와 위압감이 정확히 그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하르크게 손을 비벼 대고 있는 그 방향에서. 마른침이 목 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하르크의 너스레와 배짱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쉽게 이렇 게 빌 자는 아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반응하고 있다면... "헉!" 아주 천천히 시선을 돌리던 루데릭의 몸이 굳었다. 흰 조각. 하얀 뭔가가 바람도 없는 공간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유령?" 털석,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호오.... 마녀에 이제는 유령까지? 내 오늘은 이러저러 일들 이 많아...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었다." 흰 조각 뒤로 검정색과 곤색의 단정하게 주름이 들어간 하 녀복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반성하는 기미만 보여도 넘어가려고 했어." 곤색의 제복 위에 두른 새하얀 앞치마가 거친 폭풍이라도 만난 듯 거세게 흩날렸다. "정말로 그러려고 했지." 여인의 발이 땅에 닿았다. 여인의 몸을 둘러싸고 조용한 바 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느껴지는 바람은 미풍 한점 없는 그 공간에 가득 부불어올라 사나운 야생마처럼 움직이는 하녀 의 옷자락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제 완전히 한 눈에 모습이 보일 정도로 다가온 하녀가 시익 웃었다 루데릭은 오금이 풀린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를 확인했다. "명년 오늘이 늬들 제삿날인 줄 알아라." 하녀의 흰 치아가 마치 드래곤의 어금니인냥 끔찍스럽게 눈동자 가득 들어왔다. 그 말이 '죽도록 맞아라'라는 뜻의 동대 륙어의 직역임을 루데릭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곧... 온 몸으로 확인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끄러! 아직! 아직 멀었다고!" 노도가 전수해 준 한 줄의 얄팍한 무음(無音)진 안에서 그 둘은 밤이 새도록 소리지르며 모래밭을 뒹굴러야 했다. "란니임! 제발! 제발!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모레 중앙절 축제 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구요!" 일찌감치 떴던 아침해가 중천을 가로지를 무렵, 사방을 달 리며 란을 찾아다니다가 진을 발견한 금아가 참다못해 난입해 들어오기 직전까지 말이다. "클로네님 드레스 준비 아직 하나도 안하셨잖아요! 전 클레 이브님 의장갑옷에 광내기도 바쁘단 말입니다아아아!" ****성실연재의 은빛입니다. 내일은 못올릴 것 같고, 모레 올립니다.^^;;; 내일은 건강종합검진을 받는 날이라... 건강검진받고 와서... 일하다보면, 글은 쓰기 어려울듯.^^;; 또다시 외칩니당~ 인기투표~ 해주세요~~ 인기투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 왜 좋아하는지 제일 싫어하는 인물은? -> 왜 싫어하는지 등장인물 중에, 애인으로 적합할 것 같은 인물은? ->왜? 등장인물 중에, 이런사람과 사귀면 인생 망칠 것 같은 인물은? ->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사는? 가장 재미있었던 사건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이상~ 7가지 질문입니다.^^. 로 들어오셔서~ 설문조사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그리고~ 잡담도 좀 남셔주시면~ 감사~ 날아간 원고들을 끄적이며... 적어주신 리플을 먹고... 남셔주신 인기투표와 잡담들을 읽으며 힘을 얻고 있답니다. ㅠㅠ 부탁을... [[The Perfect MAID]]-75-란의 축제. 일곱 벌의 드레스가 눈앞에 쌓여 있다. 그것도 술이 잔뜩 달리고 곱게 손질해야 할 레이스들로 뒤덮인 드레스들의 산은 하녀를 기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 하녀의 귀에 들리는... ".............란............님." 잔뜩 기죽은 목소리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든다. 더더구나 내가 뭐 괴물이라도 되는 듯 겁에 잔뜩 질린 저 구질함이란! "왜요." 눈가에 남은 푸르딩딩한 멍자국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커 보 였다. 이제 붓기가 제법 빠져 인간의 몰골이 돌아오기는 했지 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어 보였다. 하긴 겁 먹 을만도 했겠지. "클레이브님의 갑옷손질은.... " 삐죽거리며 내민 그의 손에는 잘 닦여 윤기가 반들거리는 어린아이용 의장 갑주가 안겨있었다. 손이 닿을 자리를 정성스 럽게 헝겊으로 말아 쥐고 온 갑주는 한 눈에 봐도 잘 손질되 어 있었다. "아, 고마워요. 거기 내려놓으세요." 눈에 띄게 안도하는 표정으로 그는 갑주를 내려놓았다. 딸 그락 소리조차 내지 않고 안전하게 눕혀진 갑주에 어린아이 같은 그의 표정이 비쳤다. "다음은..." 아직 통증이 많이 남았는지 몸을 일으키면서 얼굴을 찌푸리 는 그의 표정에는 이미 몇 일 전의 도도함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치 내가 못할 짓이라도 한 듯한 이상한 감각. 하녀의 눈치를 살피는... "이미 충분합니다. 루데릭경께서도 준비하실 일들이 많으실 텐데..." 그래. 호위기사라니! 저 눈치도 자존심도 버린 인간은 오늘 도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내게 허리까지 굽혀가며 인사해 보임으로서 내 괴상한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겁을 잔뜩 집어먹어 보이는 표정으로 하녀에게 인사하는 기사 라니!! 이게 어인 재앙이란 말인가! "마스터급의 검사와 겨루다가 입은 상처는 기사에게 영광입 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비웃던 타 가문의 기사들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외치지만 았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땅이 힘 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사막의 프란이 아니었다면, 오로지 계 급이라는 신분 하나만으로 그냥 모든 사건이 넘어가는 그런 빌어먹을 땅이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덕분에 난 오늘 하루 종일 바깥출입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방구석에 앉아 클로네의 드레스나 손질하고 있던 참이었다. '영광 좋아하시네.' 기왕 팰 것, 이번 축제 내내 누워나 있게 확실하게 두드릴 것을! 하고 얼마나 후회했던가! 그 격렬한 감정의 움직임에 도 데채 몇 번이나 애꿎은 레이스 자락만 찢어 먹었던가! "아, 란님. 이번 축제는 정말 참가하지 않으실 겁니까?" 이틀 사이 제법 바느질이 능숙해진 금아가 찌푸린 얼굴로 머리를 흔들었다. 또다시 바늘을 휘어버린 모양이다. 그래봤자 그 무식한 힘으로 바로 펴서 날까지 세워 사용하기는 하지만 조금만 힘을 가해도 뚝 부러지거나 휘어져 이상한 모양이 되 어버리는 가는 바늘이라는 도구는 영 사용하기 껄끄럽다. "그래. 어차피 일도 넘치고, 엉뚱한데 가서 휘말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이미 휘말릴 데로 휘말린 건 아니시구요?" 말은 농담처럼 건네고 있었지만 금아의 목소리에도 피곤과 짜증이 슬적슬적 내비치고 있었다. 자리를 벗어날 타이밍을 놓 치고 멍하니 서 있던 루데릭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까도 나갔다 오는 길에 기사들이 떼를 지어 란님과 겨뤄 보겠다며 몰려가던 모습을 봤습니다만..." 오일간 벌어지는 중앙절 축제에는 각종 행사들이 떼지어 열 린다. 대부분의 축제가 귀족들을 위한 것인 반면 중앙절은 하 녀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위한 잔치였다. 소소하게는 곳곳의 광장마다 열리는 무도회와 거리축제부터, 평민들은 좀처럼 보 기 힘든 마법사들의 마법시연과 검사들의 토너먼트식 시합까 지. 특이한 하녀와 함께 무도회장을 가보고 싶다는 정신나간 놈부터 시합장에서 힘을 겨루어보고싶다며 결투신청을 해 오 는 얼빠진 놈들 덕분에 난 골치가 지끈거렸다. "너나 상대해." "싫습니다. 그런 피라미들. 데리고 놀아봤자 손맛도 안나고, 피곤하고 귀찮습니다."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금아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모든 사 건의 원흉인 루데릭은 좌불안석이었다. "나라면 하녀에게 두드려맞다가 하인에게 구출당했다고... 부끄러워서라도 말못하겠다." "글세 말이죠."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하얗게 식었다가. 기사가 저리도 입이 가벼워서야 어찌 쓸까. 처음 노오 남작의 집에서 보았던 그 당 당함과 무게감은 어디다 팔아버렸는지, 내가 그 날의 그 마스 터였다는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완전히 풀려 버렸다. "........................" 자존심이 꽤나 상했겠지. 루데릭은 입술에 피가 고일 정도 로 이를 악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스스로도 후회하고 있으리라. -마스터를 만난다는 건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입니 다. 란님.- 루데릭이 안되 보였는지 금아가 슬그머니 옆구리를 찔렀다. -게다가 손을 겨룬다는 건. 비록 그 결과가 일방적으로 비 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얻어맞은 게 다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실력을 다해 덤벼볼 수 있었다는 건 루데릭의 경지에 이른 기 사에게는 큰 경험이기도 하죠. 들뜰 만도 했습니다.- 나도 무인인데 그 심정을 어찌 모를까. 비록 반쯤 죽다가 살아났지만 그에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고 대충 풀어주면. 만에 하나라도 나중에 나나 네 정체가 들어났을 때 어쩔 셈이지? 우리 정체가 끝까지 완벽히 가려지라는 법도 없는데.- 벌써 하나 둘 구멍난 것처럼 드러나고 있었다. 잘만 살펴보 면 주위에도 꽤나 쓸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잘 감추 고 편하게 잘만 살아가는 놈들도 깔리고 깔렸는데. 왜 우리에 게만 이런 일들이 굴비처럼 엮여 다닐까. "루데릭경." "아, 네." 토라졌다가 자존심 상해 어두워져 있다가... 결국은 야단맞 은 아이처럼 풀죽어있던 루데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전 단지 아르페이나님의 신탁으로 페르로이가를 찾아왔던 성기사출신의 하녀일 뿐입니다." 따지고 본다면 신탁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신전에서의 신분 이 만만치 않음을 의미하는 데다가 전쟁과는 담을 쌓은 출산 과 양육의 여신 아르페이나의 성기사라는 자체가 모순이었지 만, 내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제 수양을 위해 여신께서 정하신 기한 동안은 클레이브님 을 하녀로서 모실겁니다. 루데릭경." "아, 네..." 그 말 밖에 모르는 냥, 루데릭은 고개를 푹 숙였다. "신탁의 실행을 방해하심은 여신께 거역함과도 같습니다. 비록 루데릭경께서 아르페이나님의 신자는 아니시지만 신의 신탁의 위엄은 이 서대륙 안의 어디에서나 유효한 것." "알고있습니다." 새삼 굳어진 표정으로 루데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신관의 체계가 확실한데다가 아르페이나처럼 철이 좀 덜 든 신들이 인간들 앞에 불쑥불쑥 모습을 들어내기까지 하는지라 이 서대 륙의 사람들은 신의 존재와 영향력에 대한 현실감이 동대륙인 보다 강했다. "그렇다면 하녀로서의 제 신분을 인정해주세요." "전, 단지...." "아아, 저도 모르지는 않습니다. 성기사라는 신분으로 검을 들었던 저도 강한자에 대한 동경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 습니다. 그러나." 성기사였다는 말에 수긍이라도 한 걸까. 루데릭은 사실 힘 을 지닌 내가 하녀로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은 것처 럼 보였다. "이건 신을 받드는 자로서의 제 수행입니다. 신관의 수행은 세상의 악이 되지 않는 한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건 이 서대륙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문율이었다. 루데릭 의 고개가 천천히, 힘없는 동작으로... 그러나 뚜렷하게 끄덕여 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꽤나 몸이 쑤실텐데도 더 이상 얼굴에 티를 내지 않았다. "수행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틀 간의 푼수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지경이었으니까. "수행이라...." 절도있는 동작으로 허리를 곧게 펴고 방을 나서는 루데릭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금아가 피식 웃었다. "저런 고집쟁이들에게 그 이상의 힘을 지닌 말은 없을 겁니 다. 아마." 아련히 뭔가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금아는 잠시 루데릭이 나간 문을 응시했다. "란님도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언젠가 같은 경지에서 만날 수 있다면..." "즐거울 겁니다." 천장 높을 줄 모르고 쌓여있던 드레스들의 레이스 덩어리들 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후우........ 루데릭이 바느질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부려먹고 보내는 건데..." "글세 말입니다." 루데릭은 결정적으로 쓸모의 한계가 너무 적었던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날 하르크를 조금 덜 패주는 거였는데." [[The Perfect MAID]]-76-란의 축제. "흠................" "싫으셔도 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아, 싫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손도 대지 않은 찻잔이 미지근하게 식어있었다. 뜨거운 여 름날 시원한 냉수도 아닌 차를 마시기 거북했던 건 아니었다. 프란처럼 뜨거운 땅의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일수록 몸 속은 점점 더 차가워져 오히려 더운 음식이 좋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니까. 그들의 입맛을 떨어트린 건 찻잔 옆에 놓 여진 몇 장의 편지였다. "우선은 란이나 금아가 돌아오기 전에...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축제 물품이 필요하다며 나가기 싫어하는 금아와 란을 어거 지로 밀어낸 사람은 클로네였다. 따로 클레이브와 논의하고 싶 은 문제들도 있었지만 그녀들이 실제 밖을 나섰을 때의 파장 이나 여파를 확실히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무사히 돌아오더라도 일찍 오지는 못할 겁니다." "아, 네..." 실력을 사용한다면, 소문을 인정하는 꼴일테니까. 사실 이제 와서 뺀다고 빼질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란이 정말로 성 기사라면, 신탁을 수행하기 위해 온 자라면 하녀라는 지위 아 닌 지위를 사수해야 한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창 밖으로 힐 끔 시선을 돌려본 클로네는 낮게 한숨을 내쉈다. "지금의 저로서는 움크님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답니다." "알고있습니다. 그 정도는..." 클레이브는 잠시 머리를 흔들었다. 란은 자신에게 아홉 살 의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홉 살 아이는 냉정 한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아무리 유능한 성기사가 하 녀로 와 주었다고 하더라도... 살아남는 일은, 그리고 귀족으로 서 주위를 지키는 일은 변하지 않는 그의 몫이었다. "오일의 축제가 고비로군요." 앞으로 바짝 다가운 축제는 귀족들에게 있어서 발을 넓히고 입지를 강화할 절호의 기회였다. 금아와 란이 일곱 벌의 드레 스를 부여잡고 씨름을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이름 있는 가문의 귀족이 같은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나선다는 건 일 종의 체면문제였다. 시간과 장소만 달랐지 어차피 모이는 사람 들이야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으니까. "란은 축제기간 동안 숙사를 지키겠다고 하더군요." "축제의 열기에 뒤섞여 후끈 달아올랐으니... 아마 별 다른 방법이 없을 겁니다." 상상만으로도 골치가 지끈거리는지 클로네는 살며시 관자놀 이를 눌렀다. "실은, 두 우그르트로부터 조금 독특한 초정장을 받았습니 다." 미묘하게 남아있던 아홉 살의 표정을 지운 클레이브는 진지 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클레이브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자신의 장식장 서랍을 열었다. 단정한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진 봉투 한 장. "란을... 파트너로 데리고 오라는군요." 소리를 쥐어짜듯 짧게 내뱉은 클레이브의 미간은 가늘게 주 름져있었다. **** "움크님!" "귀 안먹었다." 시근덕거리는 숨을 가누지 못하는 부하를 잠시 뚱한 눈으로 바라보던 움크는 시큰둥히 고개를 돌렸다. 잠시 멈칫했던 시종 들이 다시 부지런히 예복들을 들고 와 움크의 앞에 보였다. "아, 너덜거리는 것들은 다 치워라." 벌써 아침나절부터 내내 이렇게 앉아 있었다. 움크는 몸을 살짝 뒤틀었다. 뼈마디가 우드득 소리내며 울렸다. 바람에 휩 쓸린 모래알처럼 짜증이 겹겹이 쌓여왔다. 무도회나 축제 즈음 이면 늘 거쳐야 하는 절차였지만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시종들은 별 말 없이 레이스가 달린 예복들을 치웠다. 치렁 치렁한 종류들을 치우고 선과 보석으로만 장식된 예복들이 줄 줄이 늘어세워졌다. 저 중에서 일곱 벌의 정장을 골라야 한다. 마음같아서는 대강 아무거나 한 벌 골라 입고 허리에 이번에 새로 구한 애도를 차고 싶었지만 보나마나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올, 겉보기 번지르르하게 생긴 우트트와 비교 당할 수도 없 고 병중인 카느의 앞에서 도를 찰 수도 없었다. "움크님.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주인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 보는 부하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롭게 변해갔다. 움크의 시선 이 순간 휙 꽂혔다. 맹수의 살기. 부하의 온 몸이 순식간에 얼 어붙었다. "사막의 땅에서 언제부터 신분 운운하며 전사를 가렸는가." "그, 그러하오나 입증된 실력도 없는 자. 게다가 소국인 크 리아의 귀족을 따라온 하녀에 불과한 자이옵니다." 덜덜 떨며 뚝뚝 끊기는 목소리로 자신의 뜻을 다시 한번 밝 히는 부하의 모습에 역팔자로 꺽어졌던 움크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 움크는 크게 어깨를 들썩였다. 반대하리라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는 했다. 사실 그 자신도 스스로 왜 그런 편지를 보내 초청했는지 알 수 없었다. 겨우 하녀일 뿐. 그녀에게 당했다는 기사도 산적떼들에게 심하게 상처입고 실려와 갓 회복된 자다. 부상의 후유증으로 생긴 착란일 수도 있다. "마스터라는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릴 기사는 없다." 그건 확신이었다. 아무리 정신이 흔들렸다 한들, 기사의 긍 지를 지니고 있는 자가 마스터라는 세 자를 함부로 입에 올렸 을 리가 없었다. 움크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마스터라는 하 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 던 기억의 정보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갔다. 처음 클레이브의 도착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낀 기묘한 위화 감. 기사들이 모조리 죽거나 다친 상황에서 무사히 그 험한 길 들을 헤치고 프란의 중심부까지 왔다. 전사의 피 덕분에 이리 저리 돌아다녔던 움크는 알고 있었다. 프란 곳곳에 스며들어있 는 산적들의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귀족가의 문 장이 버젓이 새겨진 마차에 호위해주는 기사나 용병 하나 없 이 하는 여행이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그런 모험을 그들은 해냈다. 무엇 하나 잃지 않은 채. 처음에는 운이 좋다 생각했 다. 얼마 후 기사들이 다친 위치가 아르카이아에 다 도착해서 가 아닌 오디아누 관문을 지난 숲속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은 놀랐지만 '몇 년 돌아다니지 않은 사이 프란 곳곳의 치 안이 많이 좋아졌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었다. 크리아 의 수도에서 보내진 편지에서 등장한 여자 마스터의 소식에도 조금의 흥미를 느꼈을 뿐, 정말로 진지하게는 생각하지 않았 다. 노예경매장에서 사라진 노예가 두 눈에 보석을 박은 비싼 상품이었다는 소식에도 '썩은 귀족들의 악취미란 이해할 수 없 어.'라며 피식 웃어 넘겼다. 페르로이가의 어린 귀족이 데려온 소년 중 하나가 두 눈에 보석의안을 박은 미소년이라는 보고 를 스쳐 들었을 때도 '곳곳에 보석 박은 노예에 평민 투성이라 니. 크리아도 많이 썩었군.' 느꼈을 뿐이었다. 조금씩 흩어져서 기억 여기저기에 뭍혀 있던 정보들은 마스터라는 자극에 한 순간 일깨워졌다. "그 하녀가 정말로 마스터라면..." 크리아의 수도에 나타났던 마스터와 운좋게도 무사히 아르 카이아로 도착한 클레이브 일행의 비결. 값비싼 월루석을 두 눈에 박은 소년. 그 모든 퍼즐이 맞춰져간다. 그 날 왜 페르로 이가의 하녀가 노예시장을 난입해 소년을 구해갔는가. 페르로 이 후작 자신도 아직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가려면 한참은 더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른 자가 하녀노릇 따위를 하고 있 는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움크와 눈이 부딪힌 부하가 급히 고개를 낮췄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하녀가 마스터일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막 퍼진 참인데 벌 써 그 내막까지 나왔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만일을 대비해 정보를 모으고 있사오니 곧 소식이 오리라 생각됩니다." "곧 이라면 언제를 의미하지?" 움크의 눈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시종들의 손이 멎었다. 싸늘한 공기과 함께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갔다. 시 종장의 눈동자가 힐끔 뒤를 향했다. 줄줄이 늘어선 옷의 행렬 이 끝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성정을 알았다. 시종장이 조용히 눈짓했다. 몇몇 시종이 알아서 옷을 골라내 빠져나갔 다. 움크의 눈을 기다리고 있는 옷은 순식간에 반 이하로 줄었 다. 움크의 시선을 받은 부하도 이번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움 크가 바라는 대답이 한달 후, 내지는 두어달 후가 아님을 그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직접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대답을 듣지 못한다 면 그 때 뒤를 파고들어도 좋다." "하, 하지만..." 쉽게 대답해줄 상대라면 이렇게까지 몸을 낮추고 있었겠습 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에 턱 걸렸다. 분량이 줄어든 옷에 관 심이 조금씩 가는지 움크는 검정색과 흰색의 원단으로 짜여진 예복 한 벌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움크 우그르트님의 관심을 끌어 기회를 노리는 암살범이라면..." 움크의 입술을 타고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또한 살아있기에 느끼는 재미가 아니겠나." 흑백의 또렷한 눈동자가 생기있게 빛을 발했다. 부하는 입 을 다물었다. 그의 주인의 마음은 이미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 다. ****성실연재의 은빛입니다. 비축분이 전무한 관계로... 글들이 좀 짧습니다. 용서해 주시옵고. 일요일 내내 쓴 분량이 이거라니.. 좀 허무하기는 합니다만. ㅡㅡ;;;;; 흐흣...... 책이 나왔다는구요. 주중에는 배포될듯 보이고... 사 주시면 좋고, 어려우시다면 책방 아주머니의 옆구리라도 찔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세와 더불어.... 리플을 먹고사는 은빛을 가엾게 여기어. 리플과 인기투표를 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흐흣 www.woodcat.net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77-01-란의 축제. "백년을 기다려 봐라. 내가 나타나나..." "나타나시던데요?" 뜬금 없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획 돌려보니 금아 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재미있어?" "천만에요." 뚱한 표정이 조금 더 일그러지는 폼이 그도 결코 지금의 이 상황이 즐겁지만은 않은 듯 싶다. 어찌 본다면 내 탓이기도 하 니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르크라는 어리버리한 놈이 엮 이게 된 운명은 나로 그 꼬임이 시작되었으니까. 문 앞을 꽉 틀어 메우고 늘어선 사람들의 무리라니. 저 인 간들이 다 나와 겨뤄보고 싶다고 몰려온 작자들이라는 건 상 상하고 싶지도 않다. 뭐, 한꺼번에 겨룬다면 한번 생각 해 볼 만도 하겠지만. 겨우 그런 식으로 내 조용한 하녀생활에 종지 부를 찍고 싶지는 않았다. 덕분에 클레이브와 클로네는 본의아닌 등교거부를 하고 말 았다. 벌떼처럼 몰려드는 사람들 덕분에 아르카이아는 이미 정 상적인 기능을 잃은 상태. 클레이브와 클로네가 우리를 밖으로 내몰 듯이 내보낸 이면에는 '직접 한번 겪어 봐라.'라는 보복심 리가 깔려있을만도 했다. 확인은 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쉽게 잠잠해지지는 않을 겁니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 무리를 응시하던 금아는 낮게 탄식했 다. 터지기 직전의 중앙절 열기와 뒤섞인 사람들의 흥분이 기 묘한 기운을 뿜어내며 뭉실뭉실 자라나는 형상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멀직히 아르카이아 본관의 지붕에서 내려다보이는 사 람들의 움직임은 정말 가관이었으니까. "흠...." 얼핏 보이는 얼굴들에는 무트라는 그 검술 교관들의 우두머 리도 있었다. 거리상으로 저들은 우리를 보지 못하겠지만... "우선 아르카이아의 무예 관련 사람은 모두 다 몰려든 듯 하군요." 귀족의 숙사 앞이니 아르카이아와 상관없는 사람들은 정문 도 통과하지 못했다. 저 많은 사람들의 정체는 아르카이아 무 술관련 교관 및 근무자들과 경비기사, 호위기사로 따라온 자들 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다. 극히 제안된 신분만이 들어올 수 있는 이 곳이 이 정도이니 밖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정문 밖보다는 났지만.... 그냥 들어가시겠습니까?" 도망치듯 빠져나가서 본 정문 밖의 인파는 더했다. 시장통 은 더 심했고. 축제 때문이리라. 가게 주인들은 아예 문을 일 찍 닫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중앙절은 벌써 시작된 듯 했다. "우선은 들어가봐야겠지. 잠적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들어간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없었다. 지금 눈앞을 가로막 고 몰려든 인파쯤 들키지 않게 숨어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 지만... 클레이브를 보좌하면서까지 하녀가 투명해지기는 힘들 다. 하녀는 그림자가 아니니까. 마나를 한껏 일으켜 갈무리하 며 난 몸을 일으켰다. "밟고 뛰어 넘어가실 겁니까?"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금아가 힐끔 시선을 던진다. "아아. 정수리 한 가운데로 골라 밟아줄 예정이야." 밟혀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 "자네가 그 꼬맹이를 두둔하다니 의외로군." 얼핏 봐도 중량감있어 보이는 관을 쓴 남자가 살며시 고개 를 돌렸다. 어깨에 걸려진 길다란 망토가 살짝 끌렸다. 시종 두 사람이 발소리없이 다가와 남자의 어깨에 무겁게 끌리는 망토를 벗겨냈다. 어깨가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었다. "그것도 예식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달려와서까지 말이야." 챠스크 백작은 고개를 조금 더 깊숙이 숙였다. "내 결정은 자네에게도 더 이로운 것이 될텐데." 어깨를 잠시 들썩여 보이며 남자는 시원해 보이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가벼운 바람이 곱슬거리는 남자의 앞머리칼을 조 금 움직였다. "황송하오나 전 그런 것을 바라지 않사옵니다." 백작은 흘러나올 뻔한 한숨을 꾹꾹 눌러참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 앞에 있는 자는 이 크리아의 절대군주였다. 비록 작고 상업에 의존하는 바람에 그 절대권이 타 제국에 비 해 융통성있게 움직여지기는 했지만 그는 왕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왕은 가볍게 팔을 들어 턱을 괴었다. 팔꿈치 아래까지 흘러 내려간 얇은 옷감은 땀에 축축히 젖어있었다. "자네가 이렇게 날 찾아온 것부터..." 더위 때문인지 왕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점점이 베어 나왔 다. 차스크 백작의 이마를 타고 땀 한 방울이 돌바닥으로 떨어 졌다. "그런 하잘 데 없는 일을 언급한다는 것까지..." 왕의 눈꺼풀이 닫혔다. 더 이상 대화를 원치 않을 때의 습 관이었다. 백작은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는 다시 허리를 굽혀 정중히 예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왔다. "완고하실걸?" 방문을 빠져나와 몇 걸음 가지 않은 곳에 헤일런 공작이 서 있었다. 퉁퉁 부은 목소리가 그도 왕께 다가갔다가 거절당한 듯 보였다. "자네도... 인가?" 헤일런 공작의 퉁실한 배가 가볍게 출렁였다. "흥. 하노베이가의 그 부실한 꼬맹이가 나름대로는 재능 비 슷한 것도 가지고 있는 듯 하더군." 넓은 이마에 패인 주름살이 조금 더 깊어졌다. 차스크 백작 은 잠시 닫힌 방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오늘은 더 소용없을 걸세. 정면돌파도 소용없을 거고." 차스크 백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비축분이 전무한 관계로... 글이 짧습니다. 몸살감기에 직격당한 후, 이런저런 충격이 겹쳐 한동안 몸져 누워있었습니다. 멍군이가... 멍군이가...ㅠㅠ 체중이 1Kg이나 늘었어요..... 이노무 자식이 장군이꼴 날라고 하나...ㅠㅠ 인기투표는 곧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짧아도 일단 올리고... 늘려서 이어 올리겠습니다. 골치가 지끈지끈이랍니다. 글은... 꾸준히 올릴만한 마물이.. 역쉬.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근근히... 올리며... ㅠㅠ 용서를 빌어보는 은빛입니다. 제발..격려의 리플좀 주세용... 더불어 제 책도 사랑해주시면... 더 감사드리겠습니다~ 흐흣//// [[The Perfect MAID]]-78-란이라는 하녀. "정원사와 이렇게 차를 마시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허허로이 웃음짓는 늙은 정원사의 얼굴은 평온했다. 왕세자 인 자신의 앞에서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대는 내가 두렵지 않는가." 처음 왕세자를 만나는 자들은 대부분 두 부류 안에 든다. 긴장하고 겁먹어 잘 보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 기죽지 않기 위해 어깨에 힘을 가득 집어넣고 무리하는 사람. 열외란 거의 없었다. 그의 신분을 모르는 게 아닌 이상은... "정원사 따위가 무엇을 알아 두려워하겠습니까. 아무 것도 모르니 두려워 할 줄도 모르는 것뿐입니다." 왕세자의 눈에는 그런 늙은 정원사의 모습이 더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을 두터운 신분과 격식의 벽이 그 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태도. 그 건 어지간해서 몸에 베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마치 신관같은 말을 하는군." 살며시 고개를 돌려 보이는 정원사의 푸근한 미소를 보며 몇 년 전 만났던 어느 대신전의 노신관을 떠올리는 왕세자의 입가가 조금 더 선명한 곡선을 그렸다. 나뭇잎 사이로 산산히 흩어진 햇살 줄기들이 어지럽게 빛을 발했다. 유난히도 길어진 해가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더위를 피해 몸을 숨긴 사람 들에게 보금자리를 키워주고 있었다. 후작가의 동의 정원, 일명 마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을 손질 한 정원사의 소문을 들었던 건 일년 전의 일이었다. 신기하다 는 듯 시종들이 재잘거리는 소문을 흘려 들었었을 뿐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손에 넣은 동대륙의 난초 한 뿌리가 오래된 기 억을 되살렸다. "그래, 이 난은 살 것 같은가?" 축 늘어진 난의 이파리가 안쓰럽게 바람에 흔들렸다. 왕세 자는 숨을 들이쉈다. 미묘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몇 일 전인가 우연히 바람결에 맡아봤던 향기였다. 잊혀지지 않을 정 도로 향긋하고 맑았던 난향. "뿌리가 생명을 지니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신경써서 관리해 주면 곧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햇볕도 들지 않는 구석진 장소 돌무더기 위에 뿌리듯 얹어 놓은 난의 자태가 장인의 손으로 빛어 구운 도자기 안에 심어 져 있었을 때보다도 더 아름답게 빛났다. "신기한 일이야." 왕세자는 팔꿈치를 괴고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난을 응시했 다. 코를 대고 맡아보려 노력했었을 때도 전혀 느껴지지 않던 그 아름다운 향기가 활짝 트인 이 곳에서 더욱 선명하게 느껴 지고 있었다. 늙은 정원사는 말없이 물 한 국자를 떠 난 주위의 바위에 뿌렸다. 솨아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흩어지며 옅은 무지개 한 자락이 피어났다 사라졌다. "이제 들어가셔야죠." 한 여름낮의 선 꿈이 깨져 나가고 있었다. 동대륙에서 흘러 온 신선도의 한 자락인 냥 앉아 고개를 숙인 정원사의 모습만 이 현실인 듯 왕세자의 눈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아, 그렇군. 벌써 날이 져 가는군." 붉으스름한 땅거미가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 머뭇머뭇 작은 입술이 달싹였다. 가벼운 한숨이 몇 차례나 뿜어져 나왔을까. 축 늘어진 조그만 어깨에 무리라도 하는 냥 힘을 집어넣은 클레이브가 다시 내게 시선을 맞춰왔다. "란, 그렇게까지 얼굴을 구길 필요는 없잖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는 어린 주인에게 난 표정을 펼 수가 없었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벌써 몇 번째일까. 체념하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어린 주인 에게서 흘러나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짜증과 피곤함이 한꺼번 에 몰려오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이 날 옭죄었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내 소중한 어린 주인 클레이브를 힘들게 하려던 건 아 니었다. 원하지 않는 상황의 반복에 나도 모르게 잠시 울컥 했 던 것 뿐. ".....................휴우." 살그머니 눈치를 살피듯 클레이브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난 무릎 높이를 낮춰 어린 주인과 키를 맞췄다. 그리고 조금 고개 를 숙였다. 두근 기대로 물든 어린 심장소리가 들렸다. ".....갈께요. 가면 되잖아요." 천하의 이 란이 이렇게 맥없이 넘어갈 줄이야. 해맑게 활짝 피어난 어린 주인이 미소에 난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 다. 제길. 내가 입어야 할 드레스들은 어느 세월에 다 손질한 단 말인가! 축제일의 해는 이미 떠 있는걸! 클로네가 한 뼘만 더 컸어도 그녀의 드레스를 잠시 빌려 보는 건데! ".........저는 더 못합니다." 열 손가락에 붉게 물든 붕대를 보란듯이 동여맨 금아가 두 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마스터의 몸이 어지간한 것에 다치 겠느냐만은, 그의 손가락을 꿰뚫은 범인들이 모조리 그의 마나 를 타고 뻗어 나간 강기류의 바늘 촉이다 보니 금아도 어쩔 수 없었나보다. 마지막 드레스를 손질하는 폼까지는 그럴싸해 보이더니만. 속으로 그런 상처들을 억누르고 있었다니 더 시켜 먹을 의욕도 생겨나지 않는다. 하긴 왜인지 퉁퉁 볼까지 부풀 려 올린 꼴이 더시킨다고 고분고분히 '예'할 듯 보이지도 않았 지만 말이다. "뭐, 란님은 그 눈 높기로 소문난 둘째 우그르트이신 우트 트님의 눈에마저 아름답게 비치셨던 분이니 뭔들 안 어울리시 겠습니까." 팽 하니 고개를 모로 돌리고 삐죽거리는 꼴로 봐서는 얼마 전 축제의 하인들과 하녀들을 위한 무도회에 함께 가자는 걸 거절한 후유증일 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는 다들 알다시피 마 스터니 뭐니 소문이 뻗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숙사 에 쿡 처박히기를 선택했었고. 이렇게 어린 주인과 함께 귀족 들의 무도회에 참석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마음 같아서는 한바탕 멱살을 쥐어흔들고도 싶지만 일국의 대공으로서 떵떵거리고 살다가 어거지 스승 잘못 찍어 이렇게 처량맞게 창가에 걸터앉아 타향살이 하인살이 하는 꼴을 보니 그럴 의욕도 피어나지 않는다. 다 내 수양이거니 하고 바늘이 나 드는 수밖에. 그나저나 어쩐다. 클로네의 경우는 기본적으 로 손질할만한 드레스라도 있었지만 내 경우는... 짙은 남색의 하녀복 두어 벌 외에는 치마라고 입을만한 것이 단 한 벌도 없으니... "란님. 저희들의 선물이랍니다." 이 심각했던 문제는 뜻밖의 방문에서 해결점을 찾았다. "네?" 중앙절 축제 첫날에 드레스 가게가 문을 열었을 리는 없겠 지만 시장이라도 한 바퀴 뒤져보고 와야겠다 싶어, 터덜터덜 방문을 나선 내가 복도에서 마주친 세 명의 손님들은 환호성 을 지르며 내게 커다란 상자 세 개를 내밀었다. "낸리양? 그리고..." 낯익은 그녀들은 고집불통 셀레라의 구박 덩어리 하녀 낸리 와 어디선가 본 듯한 하녀 하나, 언젠가 내가 무뢰배의 손에서 구해주었던 옆방의 하녀였다. "대단해요! 란님! 귀족들의 무도회에 정식으로 초대받으시 다니! 그런 하녀는 란님 한 분 뿐일거예요!" 붉게 달아오른 볼을 부풀리며 하녀 하나가 깡충깡충 뛰었 다. 어디를 가느냐는 질문에 시장을 둘러봐야 한다는 내 말을 들은 그녀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날 밀어 자그마한 내 하녀 방으로 몰려 들어왔다. "란님이라면 그러실 줄 알았어요." 자그마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낸리였다. 그녀는 작게 기침을 내뱉고는 가슴을 조금 폈다. "그 때, 산적들에게 습격당해 짐을 버려야 했을 때도, 란님 은 란님의 짐을 제일 먼저 버리셨잖아요. 달랑 하녀복 두 벌만 빼고서." "...아, 그랬던가요?" 다른 두 하녀의 눈빛이 낸리에게로 쏠렸다. 마치 부러움이 라도 담긴 냥 묘한 빛을 발하는 눈초리들. 그 눈빛들이 장난감 을 조르는 아이처럼 변하며 내게 돌아왔다. 부담스럽다는 건 이런 감정이겠지. 목이 조금 탔다. "아, 저. 기억은 잘 안납니다만 그랬던 것도 같아요." "쳇. 셀레라 아가씨는 란님과 란님네 주인님들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데..." 아주 작게 툴툴거리는 목소리. 낸리의 어깨가 흠짓 했다. 질 투라도 하는 걸까? 나와 낸리 사이를? 왜? 우리는 잠시 함께 여행했던 것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는데. 그러나 맹목적인 질투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뒤늦게 떠오른 거지만 그녀들은 하녀들을 모아 날 추종하는 하녀들의 모임이라는 기괴한 단체 까지 만들었다니까. 허, 참. 동대륙에서도 따로 만들지 않았던 문파를 여기서 이렇게 이상한 형태로 갖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 호신술은 많이 늘었나요?" 문파라고 보기에는 무리인 부분이 많았지만 내가 그녀에게 가르쳐 준 호신술은 내가 독창적으로 개발한 독문 무공의 일 부였다. 그러니 문파 아류정도로는 봐도 좋겠지. "아, 많이 늘었어요!" 표독스럽던 눈빛들이 한 순간에 풀렸다. "다행이군요." 이럴 때는 더 말이 길어지기 전에 자르는 게 좋다. 신이나 서 의기 양양하게 시연이라도 보일 듯 탁자를 짚은 그녀의 몸 이 순간 균형을 잃고 잠시 기우뚱했다. 나는 재빠르게 다시 화 제를 바꿨다. 사실 그녀들의 방문도 방문이었지만 난 해질 무 렵 시작될 파티에 입고 갈 수 있는 드레스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 상자들은..." 세 하녀의 눈망울이 빛났다. **** "제길." 둔한 란이야 모르겠지만 축제 하루 전날 이미 소문이 쫙 깔 려 있었다. 마스터 소문의 주인공인 란이 우그르트들의 도장이 찍힌 무도회 초대장을 받았다는 소문은 두 우그르트들의 부하 들의 불평불만에서 터져나와 각 가문의 그림자들과 입빠른 하 녀들 사이로 다 퍼져 있었다. "이런 실수나 하고..." 심난했던 마음은 손가락을 찌르는 바늘이 되어 나타났다. 재빨리 손을 빼 드레스에는 물들이지 않았지만, 손가락 끝마다 제법 깊은 구멍이 뚫렸다. 어린 클레이브의 파트너로 가는 거야 별 불만은 없었다. 클 레이브와 란은 마치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이기까지 했었으니 까. 문제는 다른 자들이었다. "확... 나도 가 버릴까?" 찾아가기만 한다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달고 달려올 무트 의 얼굴이 선명하게 머리에 그려졌다. 가려고만 한다면 갈 수 있다. 베이르 대공의 얼굴로 돌아가 란에게 정식으로 춤을 신 청할 수도 있다. "그랬다가는 끝장이겠지." 두 번 다시 따라오지 못하게 하겠지. 아니 그 자리에서 사 생결단을 낼 지도 모른다. 어거지로 스승님이라고 달라붙어 백년의 시간을 기다렸다. 처음 한동안은 완전한 제자 취급이나마 해 주더니만 요즘은 서대륙의 문화에 완전히 익숙해져 가기라도 했는지 동료 하인 취급 이외에는 없다. "잘 된건지, 아닌건지." 스승이 하나의 직업일 뿐인 이 곳의 사고방식에 란이 완전 히 익숙해진 거라면 반가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300년 넘게 굳 어진 사고방식이 한 순간에 변한다는 건 믿기 힘들다. "그렇게는 믿기 힘들지." 그건 당장 금아에게 란을 스승으로만 봐야 한다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말일 테니까. 턱을 고이고 있던 손이 스르르 미끌 어져 내려간다. 삼복 더위에 늘어진 개처럼 맨바닥에 턱을 대 고 업드려서 주욱 뻣은 자세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차 가운 돌바닥의 냉기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휴우. 란님은 낸리들이 가져온 그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참석하시겠군." 어젯밤 일찌감치 일을 마친 하녀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 작했다. 그녀들은 긴 축제날 내내 자신들이 입기 위해 만들어 놨던 여분의 드레스들을 모았다. 덥디 더운 중앙절이었던 만큼 보통 서 너벌씩은 준비하는 게 상식이었던 덕분이었다. 숙련된 귀족가의 하녀들 답게 그녀들은 순식간에 귀족가의 파티에 크 게 부끄럽지 않을 세 벌의 드레스를 만들어냈다. "보석은 달지 못했지만...." 란의 닫힌 문 사이로 낸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아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최대한 화려하게 장식했어요." 다른 하녀의 목소리가 자신있게 들려왔다. 한바탕 웃음소리 가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그러기를 잠시, 하녀들은 아쉬운 듯 미적거리며 자리를 일어섰다. "휴우, 이제 셀레라님의 머리 손질을 해 드려야 하는 시간 이랍니다. 이 정도라도 빠져나온 게 기적이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눅이 드는지 낸리가 가라 앉은 얼굴로 기운 없이 몸을 돌렸다. 그 뒤로 비슷한 처치인 듯 추측되는 두 하녀가 잔뜩 표정을 구기며 따라나섰다. 그 뒤 를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드레스 상자를 품에 끌어안은 란이 배웅했다. 세 손님이 잠시 란을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란은 진 심으로 기뻐 웃고 있었다. '이전에 내가 선물했던 드레스들은 짐짝들과 함께 숲속에 집어던져 버리더니...' 프란으로 도착하면 분명 하인과 하녀들이라도 쓸데가 있으 리라 생각해 정성껏 챙겨줬던 드레스 두 벌이 불타는 숲에 버 려졌을 때, 속이 쓰렸었던 금아로서는 지금의 란의 모습이 곱 게 보여질 리가 없었다. 그 속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란은 드레 스 한 벌을 꺼내 어깨에 걸치고는 거실의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 보이기까지 하며 기분을 내고 있 었다. "한 벌이 얼마나 끔찍했는데! 운 좋게 시장에서 쓸만한 물 건을 구하더라도 손질하려면 얼마나 손이 갈까 눈앞이 깜깜했 던 참인데!" 사실 의무감은 강해져만 가고 있었지만, 너무 익숙해진 탓 일까. 란은 슬슬 지금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하녀 일이라 는 게 생각처럼 단순한 잡일만도 아니었고 신경쓸 일은 너무 나도 많은데다가 자신의 문제까지! 조용히 단절된 사고만을 고 집하던 그녀에게 지금의 몰아닥친 변화들은 평생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심리적인 변화들과 적응을 강요하고 있었다. "인간은 정말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야. 전에는 미쳐 몰랐다니까." 금아도 알고는 있었다. 하녀의 일로서 변화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짐작은 하지 못했지만 란이 변할 거라 는 사실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악착같이 따라와 변화의 공간 한 끄트머리를 악착스럽게 차지하고 있었 지만, 오늘 같은 날은 회의가 든다. '젠장. 그 산처럼 쌓인 드레스의 반 가까이 손질해 준 사람 이 누군데...' 그녀만이 아니라 금아 자신도 변화하고 있었다. 대공을 벗 어던지면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열 살의 금아가 자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만 같은 감각. 어리고 유치한 듯한 감정들. "후후후훗! 사람은 역시 인덕이 있어야 해! 그녀들이 이렇 게 은혜를 갚을 줄 어떻게 상상이나 했었겠느냔 말이야!" 저렇게 좋을까. '내가 눈에 뭐가 씌웠지. 저런 사람을 어쩌자고 백년이나 기 다렸던가.' 드레스 세 벌에 신이 나 의기 양양해진 란의 모습을 바라보 는 금아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한 참을 남모르게 한숨짓던 금아의 표정이 시원하게 펴진건 한 순간이었다.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금아의 입꼬리가 비끄름하게 끌어올려졌다. "하긴, 사람은 겉모습이 다는 아니었죠." "음? 금아? 방금 뭐라고 했지?" "아, 아닙니다. 겉모습이 잘 어울리실 거라구요." 거울에 정신이 팔린 란의 눈썹이 잠시 갈등하듯 흔들렸다. 금아는 애써 란의 시선을 외면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다르게 들은 것 같았는데 말이야." "아니예요. 분명,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란의 정말로 잘못 들었기를 바라며, 오늘 같은 날 투닥여 일꺼리를 늘리기를 원하지 않는 란의 하 녀본능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졌기를 바라며 말이다.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어요? ^^///// 저, 전...집에서... 원고정리를...ㅠㅠ 쿨럭. 이, 인기투표는...아직도 정리중이랍니다. 흑. [[The Perfect MAID]]-79-란이라는 하녀. "기왕이면 편히 올 수 있도록 호위를 보내는 게 좋겠지." "우그르트께서는 하녀 따위가 무도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도 충분히 모험을 하셨습니다." 가시까지 돋힌 심복의 목소리에 움크의 표정이 개구지게 구 겨졌다. 투박하게 군살이 박힌 손가락이 딱 테이블을 두드렸 다. 두껍게 단련된 손톱이 테이블 위의 종이에 찍히며 작은 흠 집을 만들었다. 페르로이 후작이라는 글자 아래 줄을 긋듯 찍 힌 자국을 톡톡 두드리며 우트트는 한심한 눈길로 심복을 훑 었다. "누가 겨우 하녀를 호위하랬나. 페르로이가의 어린 후계자 를 호위하라고 했지." "우그르트시여!" 프란의 첩보활동은 꽤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크리아의 귀족들 사이에서 시작된 클레이브 측출 계획은 이미 왕의 허 가까지 받아놓은 상태라는 사실을 모를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후계자의 선정권은 귀족의 고유한 권한일세. 그 후계자가 정식으로 가문을 계승할 때 왕이 작위를 인정하는 가 아닌가 는 다른 문제겠지만,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미래의 페르 로이가의 힘만이 아니라 현재의 페르로이가의 힘이지." 피식 웃는 우트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비록 후계자로 잡음이 생기고는 있지만 베이르 대공이 잠적한 지금 그는 지 금 분명한 크리아의 제 2 권력자였다. "더더구나 그 페르로이 후작 자신은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 해 혈안이 되어 있다지 않은가. 클레이브였던가? 의외로 능력 이 있는가보더군. 차스크 백작가에서조차 두둔하는 모습을 보 면." "그 부분은 확실히 의외이기는 합니다만..." 쌍수를 들고 환영해도 부족할 차스크 백작가와 헤일런 공작 가에서 대세에 거역하면서까지 인질로 보내진 어린아이를 보 호하려 든다는 건 어딘가 미심적은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난 더더욱 그 하녀를 보고 싶은 게다."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고 줄줄이 들어와 우트트 앞에 꽤 화 려한 흰색과 검정색의 정장을 펼친 시종들이 옷을 갈아입히기 편하도록 몸을 일으키며 우트트는 부하에게 작게 눈짓했다. "만일 그 하녀가 정말로 마스터라면..." 주인이 옷을 편히 갈아입을 수 있도록 서류를 들고 조심스 레 물러나는 심복의 뒤로 우트트의 목소리가 쐐기처럼 박혀왔 다.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게 아닌가." 그렇기만 한다면야 모든 의문이 풀린다. 스르르 닫히는 문 을 바라보며 우트트의 심복은 복잡한 머리를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휴우... 여러 가지 꼬임들이 풀리기야 하겠지만, 더 복잡해 짐을 모르시지 않으실 텐데..." 마스터의 힘을 하녀로 둔 자라... 아니 그 보다도 마스터의 힘을 지닌 자가 겨우 하녀 따위라... "진실이라면 카슬 대륙 최초가 되겠군." 정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 "소문이라... 정말 빠르군요. 란이 프란에 도착하는 데만도 근 두 달이나 걸렸는데." 길다란 담배대를 정원석에 툭툭 두드리는 노도의 폼은 어딘 가 불만스러웠다. "빠른 편지도 족히 한 달은 걸리는 이 곳에서 마스터 하녀 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말이 벌써 이 곳까지 왔다니. 믿기지 않 을 지경이랍니다." 어딘가 뻣뻣한 노도의 앞에 자리잡은 두 귀족은 갑갑한 위 화감을 느꼈다. 겨우 집사 겸 정원사 하나를 만나기 위해 백작 가와 공작가의 주인은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만으로도 충 분하련만, 두 귀족은 허름한 복장의 노인 앞에서 하염없이 작 아지고 있었다. "마법사의 전송이 있으니까요." 은근히 온 몸을 눌러대는 기묘한 압박감에 저항하며 애써 몸을 편 차스크 백작이 쥐어짜는 듯 목소리를 꺼냈다. 페르로 이 후작 앞에서는 하염없이 착한 심복이건만, 그만 사라지면 태도가 돌변하는 이 노도라는 존재는 모호한 정체만큼이나 종 잡기가 힘들었다. "아, 길다란 말로서 그 마나를 움직인다는 자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며 노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서대륙에 발을 딛은 지 십여개월, 두 어 달은 더 지나야 완전한 일년이 된다. 짧다면 짧았던 시간, 마법사라는 존재는 말로만 들었을 뿐인 신기한 자들이었다. "고집불통에 한 줌 지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런 자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요?" 지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노도의 표정이 미묘하게 부 드러워져 있었다. 차스크 백작은 크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그럼, 그 마법사의 전송이라는 건 뭡니까." "네?" 순간 두 귀족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마법사가 길 가의 돌맹이처럼 흔한 존재는 물론 아니었다. 저 밖의 거리를 뛰어다니는 평민 아이들조차 마법사의 전송마법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많이 알려진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존재는 이 페르로이 후작가의 외집사. 집 사 정도 되는 자가 마법사의 전송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건 어불상설이었다. "허허, 이 정원사는 이제 동대륙에서 건너온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답니다. 모르는 것들이 많고 많으니 양해해 주세요." 노도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형식적으로 숙이는 딱딱한 인사가 아니라 부드럽게 진정으로 부탁하는 자세였다. "허허...." 차스크 백작은 가볍게 혀를 찼다. 마법사가 무엇인지를 모 르니 마법사는 아닐텐데, 알고 싶은 바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뻣뻣하게 굴던 사람에게라도 쉽게 머리를 숙여 보이는 모습이 어딘가 마법사를 꼭 닮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동 대륙의 도사라는 자들은 마법사와 신관을 반반 섞어 갈라놓은 듯한 자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 그런 자라면 빚을 조금 만들어 놓아도 나쁘지 않으리라. 이 전에 페르로이 후작에게서 이 노도라는 외집사 겸 정원사가 여신의 신탁을 받은 사자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신탁 을 받을 정도로 신의 은총이 깊은 자라면 쉽게 은혜를 잊지 않는다. 믿고 비는대로 힘을 준다고는 하지만 신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호락호락 아무에게나 능력을 허락하는 건 아니었으 니까. 게다가 그는 그 전설의 무후 류이네리아의 벗이 아니었 던가. "그 마법사의 전송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 다만, 말이 쓰이는 경우로 봐서는 아주 빠른 전서구를 부리는 방법이라든가, 편지를 보내는 특별한 방법인 듯 하더군요." 맞다면 맞고 틀리다면 틀릴 해석을 내리며 노도는 눈을 빛 냈다. 시선을 마주한 헤일런 공작이 슬그머니 반보 뒤로 물러 서며 차스크 백작의 옆구리를 찔렀다. 움찔한 차스크 백작이 가볍게 기침을 내뱉었다. "흠, 흠. 간단히 설명을 드리려면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마법사가 아니니 노도께서 궁금해 하시는만큼은 대답해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아주 자연스러워진 경어가 물 흐르듯 차스크 백작의 입술을 타고 나왔다. 이런 일로 오늘 왕의 앞에서 맥없이 물러 나야 했던 일이 무마된다면야 무엇인들 못해주겠는가. "차라리 마법사를 직접 만나보심은 어떻겠습니까?" "호!" 번쩍이는 안광에 눈이 부셨다고 한다면 거짓일까. 가르암 백작과 헤일런 공작은 순간 눈을 가늘게 좁혔다. 믿기지 않는 섬광은 순식간에 그들을 치고 지나가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두 귀족은 서로의 표정에서 방금 전의 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이 노도라는 존재도 마스터일지 모르겠군...' "가능하겠습니까?" 다급하게 말을 던지는 노도의 목소리에 두 귀족의 시선 교 환이 흠짓 끊어졌다. 한 차례 호흡을 정리한 차스크 백작이 빙 긋 미소지었다. 노도정도의 인물이라면 어떤 마법사라도 마다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럼 이 노도라는 존재 외에 또 한 존재에게 은혜를 만들 수 있다.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왕궁 마법사라도 소개시켜 드리겠 습니다." 노도의 머릿속에 마스터라는 정체가 발각 나기 직전의 벗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뭐, 제 놈이 벌린 일인데 알아서 수습하겠지. 무후 씩이나 되는 존재가 설마 다칠 리도 없고. 한 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닌 것을...' 아마도 믿음이 지나쳤던 탓이리라.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짜, 짧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ㅠㅠ 빠, 빨리 써야죠... www.woodcat.net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The Perfect MAID]]-80-처음이 아닌 황궁 감시인지 경호인지 모를 삼엄한 기사들의 호위 속에 란과 클레이브가 몸을 실은 마차가 황궁에 도착했다. 몰려드는 사람 들의 시선 속에서 애써 당당하게 허리를 편 하르크가 발자국 소리 없이 깔끔하게 마부석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순간 공기 가 살짝 바뀌었다. 미묘한 긴장감. 겨우 마부 따위의 실력이 아님을 온 몸으로 보이며 하르크는 작은 시위중이었다. '너희 따위가 거만하게 경호해 주지 않아도 충분해.' 서커스 광대 보듯 몰려오는 군중들을 두터운 검집으로 위협 하며, 오는 내내 마차로 쏟아지던 경멸감 섞인 시선들에 하르 크는 충분히 화가 나 있었다. 란의 도움으로 쓸데없지는 않았 지만, 이럴 때는 반갑지 않게 좋아진 청력은, 말발굽과 축제의 소란스러움에 섞인 주위 기사들의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멀리 뒤쪽에서 따라오는 기사들의 작은 속닥거림까지도 여과 없이 그의 귀로 전달했다. 클레이브의 입장이 요즘들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 정 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크리아라는 작은 나라의 조그만 땅덩이는 그 크기에 비해 가진 값어치가 너무 컸다. 셀레라, 클로네와 더불어 클레이브는 이 곳에 모인 모든 귀족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쳇! 란님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평범한 하녀 따위였 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빌빌거리고 있지도 않아.' 목구멍에 턱 걸린 외침. 겨우 하녀 따위가 기사인 자신들도 참석하지 못하는 어전 무도회에 참석하는 것에 대한 반발과, 타국의 왕족이 시키는데로 자신의 파트너를 하녀 따위로 달고 가는 어린 페르로이가의 떨거지에 대한 비난이 하르크의 속을 사정없이 긁고 있었다. 그 하녀의 실력이 아무리 과장되게 소 문났다고 하던들 말이다. "쳇. 크리아에는 무가가 넘쳐나나 보군. 하녀에는 마스터를 쓰고 마부에는 하이 나이트 급을 쓰다니 말이지." 작게 소곤소곤 빈정거리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도 착은 했으나 먼저 대기실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할만한 신분이 되지 않는 하위 귀족들이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대어 놓은 마차 안의 차양을 살짝 걷어내고 힐끔힐끔 기분 나쁜 눈 길들을 보내고 있었다. "뭐, 돈만 많은 나라 아니겠어. 페르로이가야 워낙에 유명한 가문이니 하인들에게도 마법 부츠를 나눠주는 지도 모르지." "아니면, 어차피 축출될 놈 재산이라도 떼어 주자는 마음에 바리바리 싸서보냈는지 또 알아?" 마차 안에서 가늘게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르크는 크게 기침을 내뱉었다. "도착했습니다." 마차의 문이 가볍게 열렸다. **** ".........의외로 잘 어울리는군." 말을 잊은 듯 잠시 멎어있던 여신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녀 의 앞에 떠 있는 수정구슬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지상의 영상 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아르페이나의 희고 긴 손가락이 황금빛 머리카락을 돌돌 말 아 꼬았다. 마른침이 꼴깍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저 여자 정말 하녀야?- 황궁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마차에서 작게 속삭였다. "맞아. 하녀." 무의식적으로 아르페이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르페이나는 고집스럽게 입을 앙다물었다. 삼단같은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틀어올리고 머리 위에서 한바퀴 돌린 나머지를 어깨 아래로 부드럽게 흘려내린 란의 흰 목덜미에는 누구의 것이었는지 모 를 우아한 다이아 목걸이가 하나 걸려있었다. "하녀이기는 하녀인데..." 자잘한 장식이 없는 저 드레스가 저렇게 우아해 보일 줄은 미처 예상해보지도 못했다. 옷에 지배당하지 않는 고고함. 하 녀와 귀족의 가장 큰 차이는 기품이다. 은은하게 베어나오는 자신감과 우아함. 당당함. 그건 태어나면서부터 단련되지 않으 면 생겨나지 않는다. 후천적으로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어지간 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길러내지 못한다. 먼저 내린 클레이브가 건넨 자그마한 손에 손을 올리고 부 드러운 동작으로 발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땅으로 내려온 검 은 머리의 여인은 하녀이되 하녀가 아니었다. "...황제 알기를 뉘집 개처럼 아는 무적하녀지." 가벼운 한숨이 흘러 나간다. "적어도 오만상은 다 구기고 나올 거라 생각했었는데..." 경멸과 모멸이 반반 뒤섞인 불쾌한 눈길들과 신기한 동물 보듯하는 눈빛들. 더해서 군데군데 섞인 선망과 호승심이 얽힌 투기까지. 란에게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제 멋대로 폭주하려는 살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참고 억눌렀는지 모른다. 아르페이나의 수정구로 란이 일으키는 살기가 검붉고 푸른 오오라의 형체를 띄며 수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건 오는 길 내내 이어졌었다. 그 갈등은 마차 문이 열리는 동시에 얼굴에서 지워졌다. "완전히는 아니군."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란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 다. 눈가 근육도 상당히 경직된 폼이, 내리기 직전 클레이브가 보냈던 애처로운 눈빛이 적중했던 모양이다. "후훗. 이건 정말 의외인걸?" 맑은 수정 구슬 속으로 미소지은 상태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란의 얼굴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그와 비례해서 아르페이나 의 미소는 밝아졌다. 눈에 띄지 않을만큼이기는 하지만 얼굴 전체에 잔 경련이 끊이지 않는 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묘한 쾌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르페이나의 입꼬리도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나더라 노출증 아줌마라고 했겠다? 호홋." 깨끗하게 손질된 하녀 복장도 나름대로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 모습이야 스스로 마음에 들어하니 딴지를 걸 이유가 없었 다. 문제는 잘 어울리는가 아닌가가 아니었다. "살다 보면, 싫어하는 일도 억지로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 랍니다. 호호호홋." 공포와 같은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석되는 법이다. 굳이 시간탓이 아니더라도 바느질 한 땀에 목숨을 걸고, 어린 주인의 갑옷 한 장에 모든 살기를 누그러트리는 모습은 아르 페이나가 두려워하던 무신이 아니었다. 일년 가까이 하녀노릇 을 하며 어린 꼬맹이에게 절절매는 모습을 보아와서일까.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그 숨막히는 공포감은 아르페이나의 머릿 속에서 거의 사라져있었다. -들어가죠.- 어깨를 펴고 클레이브가 경직된 미소를 지어보였다. 란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드레스 한 자 락을 가볍게 잡아 올렸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하녀는 주인의 길안내를 따라 황궁으로 들어섰다. -풋. 역시 란이예요.- 클레이브가 낮게 속삭였다. -뭐가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정면을 응시 하며 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황궁 무도회라면, 어지간한 귀족들도 긴장해서 허리를 펴 지 못한다고 들었거든요. 어쩐지 란은 익숙한 것 같아서...- -그렇군요.- "익숙하기야 익숙하겠지. 저 무후가 백년 전에 이 땅에서 밟아보지 않은 황궁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저 프란의 것 뿐일테니까." 온갖 사고는 다 쳤다. 황궁이란 황궁은 다 다녔고 감옥이란 감옥도 다 구경했으리라. 얼마전 뒤져본 란의 서대륙 기행을 떠올리며 아르페이나는 쓴미소를 지었다. 원래대로라면 황궁무 도회에 참석해서 감격할 쪽은 하녀 란이 아니라 그녀가 참가 를 허가한 황국의 황제일 테니까. 란이 압도당할 리가 없다. 아르페이나는 수정 구슬을 공중으로 띄워 영상을 키웠다. 방안이 마치 지상의 홀처럼 실체감 있는 빛을 발했다. 란의 눈 가의 잔경련이 조금 더 크게 잡혔다. 멀리서 셀레라의 분홍빛 드레스 자락이 보였다. "천적 등장하시고..." 몇 번 봐왔기에 셀레라라면 아르페이나도 알고 있었다. 독 기로 똘똘 뭉친 콤플렉스 덩어리가 그대로 넘어갈 리가 없다. 분명 뭔가를 트집잡으며 란과, 하녀 따위를 데리고 참석한 클 레이브와 함께 그녀를 초대하라 이른 우그르트를 비난하겠지. 아마도 움크가 그 비꼬임의 대상이 될 터였다. 아르페이나는 기왕이면 조금 더 현장감있게 란의 곤경을 감상하고 싶었다. "오오, 온 몸에서 질투와 분노의 오오라가 뻣쳐 나오는 걸? 저 정도면 무신해도 되겠어."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따라 셀레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빠드득 이를 갈아붙이는 셀레라의 손에 쥐인 드레스가 마구 구겨지고 있었다. "흠. 안봤으면 후회할 뻔 했어." 언제 돌려질지 모르는 란의 원망에서 벗어나고 싶어 귀를 막고 있던 지상에서 란의 소문이 아르페이나의 귀에 들려온 건 바로 인간의 시간으로 겨우 하루 전이었다. 그녀의 신전을 청소하던 어린 시종 하나가 푸념결에 내뱉은 말. -아아, 다들 그 여자 마스터 하녀를 구경하러 갔는데, 난 여기서 뭐 하는 거람.- 여자. 마스터. 하녀. 이 세가지 단어의 조건을 끼워맞출 수 있는 존재가 결코 흔하지 않으리라. 아르페이나의 귀가 번쩍 열렸다. 처음에는 불안감이었다. 이 막무가내 무신이 또 불똥 을 어디로 튀기려나. 반쯤은 용서했다지만 아직 반은 용서받지 못했다. 행여라도 모든 일이 아르페이나 잘못이라며 날뛰기라 도 한다면, 재수 없이 이번에 새로 헌납 받은 희고 아름다운 프란의 신전이 그 표적이 되기라도 한다면, 이제 막 문을 열고 다른 신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한 그 신전에 무슨 일이 생기기 라도 한다면.... 하루아침에 저 무식한 무신의 화풀이용으로 폭 싹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체면은 더 이상 회복되기 힘 들 정도로 구겨지리라. 아르페이나는 부랴부랴 수정구를 열었 다. 환한 빛이 켜지며 바늘과 실을 든 채 댓발은 튀어나온 입 술을 한 채 바느질을 하고 있는 란과, 그 옆에서 사정없이 손 가락을 찔러대고 있는 베이르 대공의 모습이 잡혔다. "푸후후후후훗!" 긴장감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 "젠장." 입밖으로는 흘러나가지 못한 푸념이 목 언저리를 잠시 감돌 다가 삼켜졌다. "............괜찮을꺼야." 어린 주인의 긴장감도 순간 최대치를 향해 달려갔다. 멀어 도 알 수 있었으리라. 셀레라. 희미하게 옷자락만 봐도 알 수 있을 그녀의 공기를 클레이브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네. 둘째 우그르트님과 동행했으니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 을 겁니다." 악의와 독기만큼 내숭도 수준급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셀레 라다. 자신의 흠을 들어낼 리 없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게 하 리라 판단했다. 그녀는 붉은 휘장이 걸린 커다란 문 앞에서 가 볍게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흠!" 클레이브와 내 쪽을 향해 다가온 궁정시종 하나가 곤란스러 운 듯 잠시 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서는 위압적인 눈으로 날 잠시 바라보던 시종은 곧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잠시의 머뭇 거림이 흘러갔다. 하긴 한 쪽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무도회에 참석하지 않을 어린 나이의 소년이고 다른 한쪽은 초대는 받았지만 본래 신 분으로는 절대 참석할 수 없는 하녀인데다가 방금 전의 기싸 움에서는 그 하녀에게 무참하게 꺾였으니 뭐라 말을 붙이기가 힘들었으리라. "말하라." 클레이브가 반 보 앞으로 나섰다. "아, 저... 페르로이가의 분께서는 청색 휘장이 걸린 휴게실 에서 휴식을 취하시면 됩니다만..."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다. 이 프란도 보편적인 서대 륙의 풍습에 따라 무도회에서는 상위 귀족일수록 늦게 등장했 다. 은박 초대장을 지닌 귀족들이 홀에서 기다릴 동안 은박이 붙지 않은 초대장을 지닌 귀족들은 밖에서 기다렸고, 페르로이 가와 같은 금박 초대장을 지닌 귀족들은 각자의 지위에 걸맞 는 휴게실이 주어졌다. 그렇게 지위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입장하면서 최후로 두 우그르트와 황제가 입장하면 무도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되어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그런데...." 힐끔힐끔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시종은 흰 수건을 꺼내 땀 을 훔쳤다. 원칙대로 하자면 난 하녀들의 휴게실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난 오늘 하녀로서 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후 작가 정도의 귀족들이 모이는 휴게실로 들어가기도, 들어가지 않기도 어렵다. "풋." 작고 끊어지듯 비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하녀 따위가 들어갈 수 있는 대기실이 있을까?" 억지로 가다듬어낸 듯한 고음의 목소리들이 대소동이한 내 용을 담고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터져 나왔다. 부채로 가려진 입술들에서 흘러나오는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홀 안을 시끌벅 적하게 매웠다.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이질적인 존재에 대 한 끊임없는 배척감이 이 갑작스러운 조용함의 정체였다. 말 그대로 사방이 적이었다. 사방이 검으로 뒤덮혔을 때보다도 더 갑갑하고 견디기 힘들 것만 같은 고독과 고립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난 혼자가 아니었다. "클레이브님은 휴게실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만..." 덩달아 내 옆에서 고립되어 가는 소년의 손을 난 살며시 밀 었다. 당황한 듯 클레이브가 안색을 굳혔다. "등장하실 차례가 되면 제가 문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무도회 참석이 처음도 아니고." 순식간에 주위가 가라앉았다. ".............이런 무도회?" 미묘하게 굳은 클레이브를 대신이라도 하려는 듯 부채로 반 쯤 가려진 낯선 얼굴 하나가 다가왔다. "네." 난 고개를 조금 들었다. 상대방의 눈가에 분노가 짙게 피어 났다. 감히 하녀 주제에. 라고 또 생각하고 있겠지. "황궁 무도회 말입니다." 난 한껏 입꼬리를 잡아당겨 미소지었다. 어차피 평탄하지 못한 하녀지도라면 이런 작자들에게 기죽어 눌리고싶지 않았 다. 겨우 일년 하녀생활을 했을 뿐이다. 내 본래의 기질이 변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뭐야?" 새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부채를 든 손을 번쩍 쳐든 그녀 의 손이 내 볼을 겨냥하고 형편없는 속도로, 나름대로는 꽤 빠 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철퍽!" 어느 누구의 귀에도 이 소리가 따귀 소리로는 들리지 않으 리라. 반보 슬쩍 비켜난 내 볼이 있었어야 했을 공간을 휘청이 며 지나간 그녀의 손은 힘차게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녀의 몸 을 기울였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난 보이지 않게 슬그머니 밀어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누가 보더라도 목표물을 잃 은 그녀가 혼자 바닥에 널부러진 형상. "이, 이, 이...!" 넘어지는 충격으로 곱게 틀어올려 고정했던 그녀의 머리핀 이 떨어져 내렸다.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매 달았던 가발이 풀썩 떨어져 내렸다. ".................................." 하녀의 응징장면을 보기위해 몰려들었던 눈동자들은 엄한 귀족의 무너짐을 보았다. "푸하하하하하하핫!" 아주 짧은 침묵을 깨고 거침없는 폭소가 쏟아져 나왔다. 순 시간에 목 뒷덜미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가발을 주어들고는 비틀거리며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잊지 않겠어!" 아주 상투적인 말 한마디를 남기고서 말이다. 몸가짐을 내 팽개친 거친 발걸음 소리를 이어 사납게 마차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바로 말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도망치듯 달아나 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됐는가 하면, 시종들과 기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날 빙 둘러싸고 다른 귀 족들과 격리한 채 어디론가 안내했다. 클레이브는 처음 그 시 종의 안내를 따라 남성 고위 귀족들을 위한 방으로 갔다. "보기를 원하는 분이 계신다." 고압적인 설명 한 문구가 내가 만나러 가는 사람의 정체를 밝히는 전부였다. "우그르트시겠군요." 앞장선 기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길이만...원상복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말부터 연초까지... 그놈의 감기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기침을 하도 했더니만... 뱃가죽과 등가죽이 아직도 당겨요. 흘흘흘..... [[The Perfect MAID]]-81-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자네 대륙 출신들에는 유난히도 강한 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으이." "음?" 한참 신경을 눈앞의 서대륙식 체스판에 집중하던 참이었다. 은은한 빛을 반사하는 반투명한 체스말을 막 집어들던 적호의 고개가 들렸다. 빙글빙글 미소짓는 서대륙의 무신 아르의 표정 에 적호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지상에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기에 봤더니만 자네 대 륙 출신의 아이가 또 하나 돌아다니고 있더군." ".................." 텁텁한 표정으로 적호는 체스말을 내려놓았다. 슬슬 판이 불리해져가니 이런 저런 말을 꺼내는 아르의 마음을 모를바는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적호는 정말로 찔리는 바가 있었다. 조 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리며 적호는 머뭇머뭇 확인을 구하듯 그 의 앞에 존재하는 한 존재의 표정을 살폈다. 호기심과 짖궂음 으로 똘똘 뭉친 오랜 벗의 입가가 조금 더 휘어졌다. '...이 인간들이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란과 노도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치고 달 려나갔다. "하하핫. 뭘 또 그렇게 긴장하는가." 툭 한마디를 던져놓고서는 힐끔힐끔 적호의 반응을 살피던 아르의 얼굴이 활짝 폈다. 전전긍긍하던 방금 전까지의 그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르 는 체스판을 옆으로 살짝 밀었다. 방금 전 내려놓은 적호의 체 스말이 스르르 미끌어지며 선을 스쳐 옆 칸으로 반쯤 밀려나 갔다. 단순히 옆으로 밀어서는 저렇게 변하지 않는다. "음?" 붉은 적호의 눈썹이 살짝 휘었다. 시선을 살짝 모로 돌리고 아르는 험험, 헛기침을 가다듬은 아르는 금새 뻔뻔함으로 중무 장시킨 얼굴을 바짝 적호에게로 들이밀었다. "마스터급의 힘을 지닌 자씩이나 돼서 하녀 노릇을 자청하 고 있는 괴짜가 있다면서?" "쿨럭!" "어허! 이 친구가 지저분하게!" 실제적으로 지상의 생명체처럼 입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신 의 입에서 침이 튀길리는 없었다. 종종 마시는 차가 있기는 했 지만 그거야 말로 형식. 그러나 얼굴에 대고 기침을 해대는데 기분적으로 깔끔할리도 없었다. "그게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 좋은 기분도 깨지는 건 한순간이다. 갑작스러운 아르의 공 격에 적호는 휘익 옷자락을 털었다. "뭐, 자네는 가끔 삼신할미의 도움을 받아 자네 휘하의 무 신들을 인간계에서 단련시키지 않았는가." "자네도 하면 될 것 아닌가." "허허,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쪽 여신 아르페이나는 좀 까 다로운 면이 있어서..." 까다롭기보다는 '게으르다'에 더 가까우리라. 어깨를 으쓱 추스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뭐, 자네도 오늘은 승부를 마감하고 싶지는 않은 듯 하니 난 몸을 일으킬까 하네만." 지난번 란이 서대륙으로 건너갔을 때 때려잡은 드래곤과 이 종족들의 문제로 아르에게 호되게 들볶인 적이 있는 적호로서 는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휘익 손을 저으며 체스판을 사 라지게 하고 거침없이 몸을 일으키는 적호의 옷자락을 아르가 잡아챘다. "허허, 내가 체스판을 밀어서 화가 났는가." ".............그런 건 아니네." 차라리 속 좁게 보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역시 찔리는 곳이 있는가 보군." "............................" 무엇을 떠올렸는지 아르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벌 떡 몸을 일으키고 손가락으로 적호를 가르치는 아르의 입에서 놀람섞인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 서, 서, 설마... 이 하녀가 그 때의 그?" 막 떼려던 적호의 발이 멈췄다. 아르가 적호를 접대하기 위 해 만들어냈던 아늑한 공간의 경계가 부르르 떨렸다. 투지, 혹 은 차가운 분노어린 살기. 따듯하게 그들을 감싸안고 있던 공 기들이 밖으로 밀려나듯 물러났다. 적호는 몸을 비스듬히 세웠 다. 어느새인가 나타난 검 한자루가 그의 허리춤에 모습을 드 러내고 은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망할 무신은 아니겠지? 내가 근 만여 년 가까이 애써서 길러놓은 귀한 드래곤들을 다섯 마리씩이나 때려잡은 그 천하 게 둘도 없을 무식한!" 볼의 살까지 푸르르르르 떨어대는 아르의 외침에는 경악을 넘어서서 분노가 베어있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적호의 등 줄기를 훑었다. "......................" 적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마, 설마! 두 번 다시 이 땅으로 오지 않을거라 자네도 말했지 않은가!" 말문을 열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적호의 태도에 아르는 속이 바짝 말라왔다. "그럼 설마 지금 저 프란 제국의 카트에서 하녀 노릇을 하 고 있다는 그 괴짜 하녀가 그녀란 말인가!" 불이라도 뿜을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짝 다가와 멱 살이라도 막 휘어잡을 듯 아르의 눈동자가 착잡하게 떨렸다. "............제기랄! 지금 프란은 이 서대륙에서 중요하게 성장 하고 있는 국가란 말일세!" 전투와 힘을 숭상하는 프란의 민족들은 전투의 신으로 불리 우는 아르에게는 자식과도 같았다. 수 많은 신들을 제치고 그 가 프란의 수호신 자리를 차지한 건 그런 그의 특별한 관심이 빛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하나의 제국을 일으키기 위해 아르가 얼마나 공에 공을 들여야 했던가! 오늘 벗 적호를 초대해 오랜 만에 즐거움을 함께 나누려 했던 이면에는 이제 튼튼하게 자 리잡기 시작한 프란에 대한 은근한 자랑과 자부심이 섞여있기 도 했다. 그런 프란일진데. "적호! 대답해 보게! 정말로 그녀인가? 단 하루만에! 대제국 이라 불리던 피티아의 황궁을 잿더미로 만들고, 도전하는 기사 들의 다리몽둥이를 모조리 부러트려 결국 나라마저 말아먹게 만든 그 악마보다 더한 괴물이 지금 서 대륙에 다시 나타났단 말인가!" 란이 직접 나라를 붕괴시킨 건 아니었다. 그녀가 붕괴시킨 건 제국을 상징하던 황궁과 몇몇 건물, 그 잔해에 깔려죽거나 실종된 대다수의 황족과... 충성심에 분기탱천해 그녀에게 검을 뽑아들었던... 제국의 기둥격의 몇몇 기사들이었다. 문제는 그 들이 제국을 지켜나가던 실세였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프란 만큼은 아니지만 꽤 큰 땅덩어리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기사 들과 귀족들을 부리고 있던 피티아는 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쓰러지자마자 조각조각 갈라졌다. 직통이라 할만한 황위 계승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계승권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황족들이 수도없이 나타났다. 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잇권에 따 라 이리저리 몰려다녔고, 내분이 시작되었다. 성스러운 산의 남단에 뿌리내렸던 거대했던 제국은 그 이후로 채 삼십 년을 버티지 못하고 조각조각 무너져 내렸다. "그, 그녀가 직접 무너트린 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그 나 라가 붕괴한 건... 란이 이 서대륙을 떠난 다음이었고..." 악마보다 더한 괴물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미우나 고 우나 란은 본디 적호가 아끼는 무신이 아닌가. "허어! 그게 그거 아닌가 말일세!" "........................." 적호는 또다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르는 잠시 적호의 멱 살을 잡았다가 뿌리치고는 초조하게 적호 주위를 뱅글뱅글 돌 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프란만큼은, 프란만큼은 지금 허무하게 무너트릴 수 없단 말일세! 그건 주신께서 생각하시고 계시는 일들에도 필요한 계획이었고... 자네!" 딱 발걸음을 멈춘 아르가 신경질적으로 적호에게 외쳤다. ".............." 적호의 어깨가 움찔했다. "정말... 이럴 수 있는가?" 배신감과 원망이 뒤섞인 음성이 적호의 귀에 닿았다. 길고 참 긴 한숨이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고 개를 숙인 적호는 잠시 망설이듯 눈을 감았다. "........뭐라 변명이라도 해 줄 수는 없는 건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적호의 붉은 눈동자 가 느릿하게 모습을 들어냈다. "...........아르페이나에게 물어보게. 제기랄." **** 길다란 복도를 굽이굽이 돌아 커다란 문 앞에서 발걸음은 멎었다. 앞에 서 있는 기사의 키 두 배는 거뜬히 넘겨 보이는 높다란 문 양 옆으로 각각 기사 한사람과 시종 한 사람씩이 지키고 서서 내 쪽으로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왔다. "왔군요." 오른 쪽에 서 있던 시종이 문 옆에 달린 붉은 술을 잡아당 겼다. 작은 방울소리가 들렸다. 문 안쪽에서 두런두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두 남자의 목소리.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극경체를 쓰는 것으로 봐서는 어린아이 모냥 조금 들 뜬 목소리 쪽이 우그르트이고 조금 화가 난 듯한 쪽이 심복이 겠지. 정말로 하녀 따위를 이렇게 불러서 만나기까지 해야 하 겠느냐는 심복의 투덜거림과, 무도회가 시작되면 하녀 따위에 게 말걸기가 더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그르트의 말이 몇 번 반 복된 후 문은 천천히 열렸다. "고개를 숙여라." 채 다 열리지도 않은 문 쪽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며 뒤 편에 서 있는 기사가 굵고 거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후." 불끈 치솟는 불쾌감을 꾹꾹 내리누르며 난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소리없이 서서히 올리는 문 중앙으로 커다란 의자에 걸터앉아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린 채 짖궂은 표정으로 눈을 빛내고 있는 우그르트 우트트의 표정이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 닥에 비쳤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역시 재미있는 하녀야." 우트트의 왼 손이 작게 움직였다. 등 뒤에서 기사들의 철그 럭거리는 갑옷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물러났다. 문이 다시 닫 혔고, 난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 동안 얌전히 고개를 기 다린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페르로이 드 클레이브는?" 문득 그가 시선을 돌려 그의 옆에 단정히 서 있는 짙은 갈 색 머리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주인의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코에 걸려진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는 그의 눈 이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시종에게 파란 방의 휴게실로 안내하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없겠지?" "네. 만에 하나라도 귀찮은 소동이 없도록 근위 기사들과 궁정 기사들이 빈틈없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나를 훑어 내렸다. 기분 나쁜 감각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 했지만 난 이를 악물었다. "페르로이 후작가의 어린 후계자는 휴게실로 무사히 들어간 듯 하더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담대해." 빙글빙글 웃는 얼굴을 대리석 바닥에 여과 없이 비추며 그 는 돌바닥을 통해 다시 한번 나와 눈을 맞췄다. 짧은 순간이었 지만 그의 눈동자에 베어 있는 은근한 살기와 결의가 내게 전 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른 마음을 먹거나 난동이라도 부린다면 뿌려놓은 기사들 을 움직여 내 어린 주인을 언제든지 위협할 수 있다는 협박일 뿐이었지만, 내가 조금만 더 참는다면 내 어린 주인 클레이브 는 안전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무리 셀레라가 벼르고 별렀 더라도 황제를 기다리는 귀족의 입장에서 근위 기사들 앞에서 추태를 부려가며 클레이브를 걸고넘어지지는 않겠지. 의외로 약삭빠르며 자신이 손해보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고개를 들어도 좋다." 난 적당히 예법에 맞춰 우그르트와 눈이 마주치지 않을 정 도의 높이로 조금 허리를 폈다. 우그르트 옆의 시종이 살짝 허 리를 굽혀 우그르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팡파레와 함께 호명할 수 있는 직위를 가진 귀족들 이 서서히 입장하고 있었다. 백작가의 직위를 지닌 '오름 (orum)의 귀족이 하나 입장했다. 대강의 기억을 훑자면 오름은 아마 크리아에서 한참 떨어진 북서부에 위치한 산악지형에 자 리잡은 나라의 이름이다. 백작 작위의 첫 입장국을 오름으로 정한 것을 보면 북서부의 국가들부터 입장할 모양인데, 그럼 그리아스(Grias)와 아데(Ade)를 거쳐야 크리아의 차례가 온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이 파티에 참석할 타국 백작가의 인원수 는 많지 않다. 거기다 새롭게 기틀이 잡힌 이 프란의 백작 이 상 작위를 지닌 귀족 수도 많지 못했다. 아니 머릿수로만 따진 다면 많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이 부족장인 우그르를 겸임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이 넓은 제국에 서 그들은 자신의 부족을 지켜야 했다. 한 해를 거른 중앙절이 기에 참석자는 평년보다 많다고 하지만 타 국의 귀족들이 중 앙의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것과는 달리 이 곳의 귀 족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왕 노릇하기를 더 즐겼다. 각설하고 요점만 정리하자면 클레이브의 차례가 멀지 않았다. 우트트는 잠시 날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 벼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일개 하녀인 나를 이런 곳까지 부른 게 어색했는지 얼굴이 살짝 상 기되어 있었다. "......항간의 소문이 파다하더군." 우트트가 느릿하게 입을 뗐다. "처음에는 헛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만나보 니 평범한 일개 하녀라고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군." 난 조용히 그가 그의 말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하녀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토록 침착을 유지할 수 있을 수 없지. 난 요 몇일 시험삼아 하녀를 불러 본 적이 있으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우그르트 우트트는 알려진 소문과 달리 못 말릴 호기심 덩어리다.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시종의 입안에서 한숨과 마른침이 삼켜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어쩌면 세간에 알려진 우직하니 검만을 추구하며 정도가 아 니면 타협하지 않는 우트트의 성격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호기심에 위험을 감수하고, 무술과 무예에 대한 자신 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정도쯤은 얼마든지 비켜 나갈 수 있는 그런... 무공광 덩어리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개 우그르라면 모르지만 황제로서는 더더욱 실격이다. "묻겠다." 우트트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내 아래서 나를 위해 일할 생각은 없는가." 머릿속이 쾅 소리내어 울렸다. 그들과 나 사이를 통과하던 기류의 흐름이 순간 멎었다. 찢어질 듯 치떠진 우트트의 심복 의 시선이 심하게 요동쳤다. "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힘은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힘과 실력을 지니고 하녀로 살아감은 너무 아깝지 않은 가." 우트트는 목소리를 조금 부드럽게 조절하며 몸을 살짝 앞쪽 으로 기울였다. "단 한번뿐인 삶을 겨우 하녀노릇이나 하며 사는 것은 비참 하지 않은가." 난 살짝 고개를 들었다. 불을 뿜을 듯 열기를 지닌 우트트 의 시선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내 눈에 와 닿고 있었다. "이 프란은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한다. 그대가 비록 평민으 로 태어나 크리아에서 하녀 밖에 되지 못했을지라도 이 제국 은 다르다." 자신의 조국에 강한 긍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우트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크리아의 하녀와 프란의 전사.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멀리 홀에서 오늘의 무도회에 참석한 프란의 마지막 백작의 등장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제 곧 후작가의 차 례가 온다. "죄송하지만 저희 주인님의 등장순서가 다가오는 듯 하군 요. 전 물러나야 옳을 듯 싶습니다." 난 싱긋 미소지어 보였다. 그 크리아의 하녀노릇을 하기 위 해 산을 내려와 근 이년 동안이나 배멀미에 시달리며 하녀 특 훈까지 쌓지 않았던가! 그런데 겨우 프란의 검사 노릇이나 하 란 말인가?!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충격적인 비추글을 하나 봤습니다. 비추하는 이유가 너무 짧아서 당황했던.... 뭐, 근거없는 비난에 슬슬 면역이 되어갑니다만. www.woodcat.net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2-그러고 보니. ***81편 앞부분의 일부가 잘못 올라갔습니다. 파일을 저장할 때 백업파일을 만드는데... 퇴고가 되지 않은 백업본이.. 뒷부분에 붙어갔어요.^^; 수정본 일부 이어 붙 였습니다.^^ 그럼, 즐독하시길~! "크리아의 하녀와 프란의 전사.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멀리 홀에서 오늘의 무도회에 참석한 프란의 마지막 백작의 등장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제 곧 후작가의 차 례가 온다. 난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우그르트를 향해 시선을 맞췄다. 희미한 기대의 빛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가벼운 한 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보일 수 있도록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선택하기 힘든가 보군." 우트트의 오른편에 서 있던 심복이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방금 전 내가 고개를 가로저은 행동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 그 의 표정에 떠올라 있었다. 난 그들이 다시 한번 볼 수 있도록 확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활짝 미소지었다. 사실 그들은 내게 진정으로 위협이 될만한 존재들 은 아니었다. 오름의 첫 번째 후작가가 입장했다. "죄송하지만 저희 주인님의 등장순서가 다가오는 듯 하군 요. 전 물러나야 옳을 듯 싶습니다." "뭐?" 당황한 우트트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난 그들에게 비교적 예법에 맞도록, 비록 그 예법이 하녀가 일국의 황족에 게 하는 것이 아니었더라도 나름대로의 예를 갖추어 다시 고 개를 숙여 보였다. "감히 거절하는 건가?" 우트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를 악문 그의 심복이 슬그머니 허리춤을 매만졌다. "전 하녀일 뿐이니까요." 그 크리아의 하녀노릇을 하기 위해 산을 내려와 근 이년 동 안이나 배멀미에 시달리며 하녀 특훈까지 쌓지 않았던가! 그런 데 겨우 프란의 검사 노릇이나 하란 말인가?! **** "저, 저런!" 아르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을 바랬다. 어느 세월에 아르페 이나를 찾아가 사정을 듣는단 말인가. 체면을 접어둔 채 멱살 까지 쥐어 마구 흔들어낸 후 적호에게서 뜯어낸 짧은 진실은 그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큰일이군. 수행을 위해서 왔다고는 하니 참기야 참겠지만, 근본은 수행자가 아닌 무신이 아니었던가!" 커다란 충격은 흥분조차 날려버린다. 의외로 침착함을 쉽게 되찾은 아르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턱을 매만졌다. "흠, 자네는 모르겠군."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못하는 적호에게 조금 안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 아르는 길고도 긴 한숨을 깊게 내 쉈다. "하긴, 아르페이나 그 고집 센 말썽꾸러기 여신에게 휘말렸 으니 자네 맘 고생도 심했겠군. 아끼던 무신을 타 대륙에 하녀 로 보내달라는 부탁이 자네라고 마음에 찼을까만은..." "말하지 못한 건 미안할 뿐이네." "아닐세. 나라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 꺼야." 아르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고개를 저어 보이며 강하게 적호의 말을 부정해 준 아르는 조금은 기운없어 보이 는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건 그렇고 일단은 준비를 해야겠군." 맥빠진 동작으로 그려진 아르의 손짓을 따라 공간이 열리며 동그란 구슬 하나가 맑을 빛을 내며 떠올랐다. "지상의 신관들이 구경꺼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면서 시끌벅 적 했었으니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걸세." 구슬에서 퍼져나온 빛이 공간을 채워가면서 아르와 적호가 서 있는 공간의 색상이 서서히 변해갔다. "일단은 보세나." 흔들리는 연기같은 색상들이 한 줄기 두 줄기 뭉쳐가면서 뚜렷한 형체를 만들어냈다. 그들을 둘러 싼 공간은 어느새 지 상의 한 방처럼 변해갔다. "제길." 그 방의 한 가운데 분기탱천한 우트트와 그의 심복을 마주 보며 란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르의 표정이 다시 형편없이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벌떡 일어서서 문가를 향해는 란을 향해 우그르트의 옆자리에 서 있던 자가 뭐라 말을 던졌다. 란의 발걸음이 잠시 멎었다. 상 의 움직임이 굳어지면서 흐릿했던 말소리가 또렷하게 전달되 기 시작했다. "클레이브님은 제 주인이시기 이전에 크리아의 페르로이가 문의 장자이심을 모르실 분들이 아닌데, 일개 하녀인 제가 무 엇하러 걱정하겠습니까." 살며시 떠오른 미소는 비웃음에 가까웠다. 꽉 움켜쥔 우그 르트의 주먹이 분노에 경련을 일으켰다. 입술에 피가 맺힐 정 도로 이를 악문 우트트의 심복이 란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란의 차가운 눈빛이 그를 훑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의 몸 이 굳어갔다. "살기." 적호의 침음성이 지상에서 보내지는 소리들에 이질적으로 섞여 들어갔다. 잠시 그들을 노려보던 란이 몸을 완전히 돌렸 다.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다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문이 열 렸다. 그녀가 잠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두 남자의 몸이 순간 움찔 움직였다. 란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늦었군." 거대한 홀의 문 앞에서 초조하게 굳어진 얼굴로 서 있던 클 레이브가 반가운 듯 다가왔다. "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우리를 중앙에 두고 귀족들의 무리가 스르르르 갈라졌다. 희귀한 동물이라도 보는 냥 호기심어린 시선들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내가 등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냥 그들은 클레 이브 주위에서 얼쩡이고 있었다. 클레이브는 낮게 한숨을 내쉈 다. 이런 어린 소년을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이라니... 보기 좋을 리가 없을텐데, 저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전혀 모 르는 모양이다. "이제 곧 입장하실 차례가 오는군요." "음..." 차례로 호명과 함께 입장하는 귀족들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클레이브는 살짝 어깨를 떨었다. "긴장되십니까?" 파란 소년의 눈동자게 내게 꽃힌다.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 었다. 희게 질린 얼굴이 그의 내심을 그대로 내비춰주고 있었 지만, 어린 클레이브는 애써 가슴을 폈다. 평범한 소년이었다 면 이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거나 울상을 지었을 텐 데. 난 그가 자랑스러웠다. "란은 너무 자연스럽군." "말씀드렸잖습니까. 황궁 무도회 정도는 익숙하다구요." 우리의 대화에만 귀를 열어두고 있었던 모양인가 보다. 사 방에서 순식간에 비난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내게로 쏟아지 던 살기어린 눈빛들이 순식간에 그의 배는 강해졌다고 할까. "역시 란이군요." 익숙한 목소리가 열기를 띄어가는 비난을 뚫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옅은 분홍빛 드레스가 유난히도 잘 어울리는 소녀. 클로네였다.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평범한 하녀가 아닐거라고 생 각했었으니까요." 생긋 웃으며 그녀는 우리와 다른 귀족들의 사이를 갈라놓듯 시선을 가로막고 섰다. 우아한 귀족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동작 과 자연스러움에 압도당한 듯 귀족들의 웅성거림이 조금 줄어 들었다. 클로네는 부채를 살며시 움직여 사람들의 서선을 끌어 모았다. "크리아의 귀족을 동반한 자로서 당당하게 입장하시기를 부 탁드릴께요."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그녀는 더 당당하게 빛을 발 하고 있었다. 위엄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주위의 공기를 가르며 귀족들의 귀에 닿았으리라.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크리아의 귀족이라는 말에 힘을 실어 넣은 클로네는 살며시 몸을 돌렸다. "그럼, 전 우그르트께서 기다리시기에." 클로네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던 귀족들에게는 치명적인 한 마디였다. 그녀와 클레이브가 친 오누이처럼 허물없이 가깝다 는 사실을 모르는 귀족들은 없었으니까. 첫째 우그르트 우트트 와 둘째 움크의 힘대결은 사실상 움크의 승리 쪽으로 많이 기 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 결과는 나지 않았다. 우트트가 다 음대의 카느가 될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있었다. 그런 우그르트 가 제국 최대의 축제 중앙절에 동반자로 선택한 여인의 심기 를 거스르고 싶은 어리석은 자는 없었으리라. "크리아 페르로이 후작가의 클레이브님 입장이십니다!" 입장 안내를 알리는 시종의 우렁찬 목소리가 홀 안으로 울 려퍼졌다. "가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애써 미소를 그려 보이며 클레이브가 먼저 한 발을 내딪었다. 화려한 금빛 수가 놓여진 휘장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이 눈동자가 한번에 몰리고 있었다. "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젠장." 하인복장을 잘 차려입은 금아의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온 사방이 소란스러웠다. 단지 한해 걸러 열린 축제에 대한 열기와 흥분일 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럽지는 않으련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잡스러운 웅성거림들은 하나같이 란과 클레이브에 대한 비난과 험담이었다. 대공이 아닌 금아로 서는 그들의 입을 막아버릴 수도 없었다. 듣고 싶지 않아 일부 러 하인들의 대기실로도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마차 마부석에 앉아 별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애써 귀를 닫으려 해도 멀직이 서 속삭이는 란에 대한 비난들은 쏙쏙 빠져나와 그의 머릿속 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똥물에 마차 바퀴가 빠져도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는 않으리라. "휴우, 어쩔 수 없잖소. 란님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이 아 는 것도 아니고." 옆의 마차 마부석에서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있던 하르크가 힐끔힐끔 금아의 안색을 살폈다. 잘못 개기다가는 맞는다는 공 포에 참견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애써 달래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만일의 사태라도 벌어진다면 빨리 움직 여야 한다며 다른 데로 가지도 못하게 잡아두고 있으면서 말 한마디 걸지 않고 연신 혼잣말로 투덜투덜. 보는 쪽이 오히려 답답했다. ".... 사실 금아님도 들어가려고만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 어갈 수 있는 거 아니요?" 사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금아의 본래 신분이 어떨 거라 는 것 정도는 그 동안 먹은 눈칫밥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 었다. 마스터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닐터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하인의 옷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의 선입견에 걸려들지 않고 있을 뿐이지 지금 당장이라도 귀족의 옷을 차려입고 머 리색만 바꾼다면, 아마 벌떼처럼 귀족들이 몰려들거라 하르크 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정체 밝히고 들어가면 저 란이 가만히 있을 거 라고 생각하나?" "아니요." 쌈박하게 고개를 저어 보이는 하르크의 태도에 인상을 잔뜩 구기며 금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에서야 마음을 접고 조 용히 기다린다지만 그도 처음에는 반발이 일었었다. 란이 클레 이브의 파트너로 들어가고 하르크가 클레이브의 마차를 몬다 면, 클로네의 마차를 몰 마부겸 시종이 없었다. 본래는 르카인 이 하기로 되어 있지만 그는 지금 외뿔 엘프들의 숲에서 생사 도 불분명한 상태로 누워있지 않던가. '할 꺼지?' 무트의 얼굴까지 떠올리며 갈등하던 금아의 마음에 찬 물을 퍼부운 건 란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란에게 차마 못한 다고는 할 수 없었다. 가고 싶다고 해 봤자, 그런 게 그렇게도 참석하고 싶으면 당장 크리아로 돌아가 대공 노릇이나 하라는 말 밖에 더 나오겠는가. '그렇게 가고 싶으면 사흘째 날의 가면 무도회나 비집고 들 어오던지. 난 가고 싶지 않더구만...' 사실 그 말이 결정타였다. 금아의 고개는 또렷히 끄덕여졌 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으리라. 스스로 생각하며 금아는 실없이 웃었다. 사실 그도 그다지 무 도회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긋지긋했으면 했 지 결코 즐기지는 않았다. '마음이란 쉽게 움직이는 것이라...' 누군가가 참석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바뀐다. 새삼 젊 은 시절 그가 참석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벌떼처럼 몰려오던 소 녀들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그 때는 도저히 이해 못할 존재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사람의 마음이 그 렇게도 움직이는 것이로구나 생각마저 들었다. "흠!" 몇시간만에 금아의 팔꿈치가 펴졌다. 기지개라도 펴듯 몸을 길게 뻣으며 뒤로 기대는 그를 바라보는 하르크의 안색도 조 금 밝아졌다. 프란의 황제가 등장하는 요란한 나팔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 듯 음악이 울려나왔다. 박수소리, 탄 성소리가 마차까지 우렁차게 퍼졌다. "시작인 것 같군." 아예 몸을 돌려 누워 버리며 금아는 낮게 웅얼거렸다. 그러 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채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그들은 몸 을 일으켜야 했다. "한가지만 물어보죠." 딱딱하게 굳은 하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몸을 일으켜 마부석 위에 서서 황궁쪽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기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휴우............." 쓴 미소로 얼룩진 금아의 입가에서도 길고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이 축제...." 시선을 돌리지 못하며 서있는 하르크의 목소리는 어딘가 건 조했다. "사흘까지 이어지겠소?" "젠장." 익숙하다 못해 정겨운 살기가 황궁 쪽에서 서서히 피어오르 고 있었다. "마차 바꾸자. 너도 마차 빼둬." 일이란 어떻게 번질지 모르는 거니까. 하르크보다는 직접 마차를 모는 게 더 안전하리라. **** "호홋,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몇 번을 힐끔거리며 셀레라 쪽을 바라본 연후에 제비처럼 몸을 날려 부딪힌 쪽은 내가 아니었다. ".............................아." 설마설마 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일을 벌린다. 지금 내 앞에 서 표독스럽게 눈을 모로 뜨고 입술을 나풀거리고 있는 여인 은 저기서 눈동자 가득 살기를 담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셀레라의 일명 귀족시녀 중 하나였다. "실례했습니다." 난 한숨을 참으며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이 중 신분이 제일 낮은 자리를 자처하고 있는 건 내 쪽이었으니까. 사실 이런 상 대에게는 약하게 나가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 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하녀였으니까. "...용서를." 일반적으로 평민이 귀족에게 매달리듯이 할 수는 없었지만 난 이 무도회 안에서 귀족과 귀족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예의는 최대한으로 갖췄다. 얼굴이 따가울 정도의 시선들이 내 게로 꽂혔다. 조금 멀리서 단상 위에 앉은 프란의 황제가 이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어린, 그러나 조금은 못마 땅한 눈빛이었다. "실례? 미천한 것이 그 말의 뜻이나 아는 건가?" 고개를 오만하게 치켜들고 부채로 턱 아래를 살짝 부치며 그녀는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나 내 약한 태도를 보 고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녀의 투지가 조금 더 치솟았다. 그녀 의 뒤편에 선 셀레라의 눈가에 곡선이 짙어졌다. "................................." 뭐라 말을 해야 좋을까. 옆에 서 있던 클레이브는 이미 누 군가의 손에 끌려 내 옆을 벗어나 버렸다. 덩치 큰 어른들에게 가려져 나를 둘러싼 원 언저리로 밀려나 버린 클레이브가 안 타까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와 끼기도 힘 들고 그렇다고 바라만 보기도 힘들겠지. 그가 다섯 살만 더 먹 었어도 힘을 발휘하련만. "작위도 인정받지 못할 혼혈아 하나에게 총애라도 받으니 스스로 귀족이라도 된 듯 착각하고 있다고 하던데." 비웃음. 셀레라의 수족답게 흥! 하는 콧소리와 섞여 소름끼 치게 재수 없는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셀레라 등쌀에 허리 한번 펴 보지 못했는지 한껏 가슴을 편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광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걸 알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모르겠지. 그러나 이대로 말이 마구 넘어가도록 놓아 둘 수 만은 없었다. 파장이 커지기는 하겠지만 이런 준 공식적인 자 리에서 클레이브에 대한 저런 모욕적인 말이 나오도록 두는 건 곤란함을 앞서 감정적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난 굽혔 던 허리를 폈다. "뭐야?" 조용했던 주위가 순식간에 웅성거림으로 덮혀갔다. "감히, 자격은커녕 신분도 되지 않는 미천한 것이 뭐라고?" 히스테릭한 그녀의 목소리가 홀안의 웅성거림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 때였다. "무례한 쪽은 누구인가요." 얼음이 뚝뚝 떨어질듯한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게 소 리를 지르던 여인의 얼굴이 백짓장모냥 창백해졌다. 겁에 질린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심하게 모독당했다고 착각이라도 한 것 일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두터운 사람의 벽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생겨난 길 너머로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의 팔을 꽉 틀어쥐고 딱딱 구두굽 소리를 울리며 다가온 여인은 살짝 남자의 팔을 놓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 섰다. 내가 밤새워 손질했던 풍성한 분홍빛 레이스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우아한 여인. 클로네였다. "지금 감히 두 분의 우그르트님께 황가 무도회의 참석 자격 을 부여할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두 분이라는 말에 강세를 가득 넣으며 클로네는 차가운 미 소를 그렸다. 무례한 여인의 뒤를 이어 비슷한 소리를 웅성거 리듯 속닥이던 귀족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동시에 빠져나갔다. 그들을 질책이라도 하듯 클로네는 당당하게 주위로 시선을 돌 렸다.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 눈빛 하나로 주위를 평정한 클로네는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 들었다. 주저앉은 여인의 손에 가득 잡힌 드레스 자락이 마구 구겨졌다. 목덜미에는 이미 식은땀이 가득 솟아 주르륵 흘러내 리고 있었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마치 자신의 크리아의 저하라도 되는 냥 귀족 임명권을 언 급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전..." 말을 잊은 여인의 목소리가 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커 다랗게 치떠진 두 눈에 어느새 고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 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았다. 아, 저런 동 작을 내게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와 셀레라는. "지금 하신 말이 어디까지 파장을 미치는 건지 단 한번이라 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클로네는 그런 몸에 베인 듯한 사죄에 마음을 풀 생 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무엇 때문에 흘리는 눈물인지 모르겠군요." 더욱 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의 어깨가 흠짓 떨렸다. "저, 전.... 잘못을...." 미적미적 말을 끌며 힐끗 셀레라가 서 있던 방향으로 끝내 시선을 한번 돌려 보이고 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찬 바 람이 일 정도로 강경하게 클로네는 여인의 시선이 향했던 방 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안색에 입술을 깨문 셀레라가 우그르트 움크의 곁에서 클로네를 노려보고 있었다. "잘못을 빌 상대를 잘못 찾으셨군요." 셀레라의 발걸음이 한 보 클로네를 향해 다가왔다. 세상이 라도 끝난 듯 울상을 짓는 여인에게 클로네는 조금도 흔들리 지 않았다. 그 때였다. "지금 추궁하실 상대를 잘못 찾으신 건 아니신가요?" 빈정거림을 압축해서 털어넣은 듯한 셀레라의 목소리가 가 위로 오려낸 듯이 또렷하게 귓가에 와 충돌했다. 또각 구두 소 리가 울렸다. 두 여인에 의해 등 떠밀리듯 충돌하게 된 두 우 그르트의 표정이 마치 떪은 감이라도 삼킨 듯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최악이군." 거의 동시에 움크와 우트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의견만 큼은 나도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바였다. 그러나 사건은 이미 벌어졌다. 무도회의 시작이 알려지자마자 애써 그 커다란 홀의 양끝으로 흩어져 서로 맞부딛히기를 피하던 두 우그르트의 암 묵적 노력은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무슨 의미이신가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살포시 웃어 보이는 클로네의 눈에는 분노와 전의가 가득 차 있었다. "추궁하실 존재가 그 쪽이 아니지 않는가 말입니다." "......................." 셀레라의 독기어린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클로네의 눈가가 살짝 좁혀졌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는 했지만 당하고 있자니 역시... 좋지는 않았다. 셀라라의 입가가 움직였다. "무도회에 참석할 자격은 두 우구르트께서 주셨지만 감히 귀족에게 함부로 대할 권리는 누가 주셨는지 누가 말씀해 주 실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클로네는 지긋이 아랫입술을 깨물었 다. 난 새삼 치솟는 셀레라에 대한 살기를 억누르기 위해 으스 러지도록 주먹을 쥐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화를 낸다면 어 떻게 될까.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포석 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단지 내가 바라던 목적만을 생각하며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흘러가면 된다고 생 각했던 내게 이건 너무나 큰 변화였다. 난 고개를 숙인 채 피 식 웃고 말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 자신의 꼴이 너무 우스웠 다. 오로지 내 표정만을 응시하던 셀레라의 기가 변했다. 분노 와 살기가 폭발하듯 치솟았다. "저 버르장머리 없이 서서 비웃음이나 흘리는 하녀를 당장 끌어내지 않고 뭣 하는 겁니까!" "지금 벌을 받아야 하는 자가 누군데 함부로 기사들에게 호 령하시는 건가요!" 발작적인 셀레라의 외침에 맞서듯 클로네의 목소리가 높아 졌다. 우렁찬 호령소리에 순간 움찔했던 기사들의 몸놀림이 다 시 한번 굳어졌다. 두 여인의 시선이 사납게 충돌했다. "하노베이 양께서 잊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저희는 손님입니 다. 그리고 비록 경비를 서 주시고 계시지만 저 분들은 프란 황제폐하의 기사들이구요." 클로네의 미소가 조금 더 피어났다. 셀레라의 핏기가 조금 더 빠져나갔다. 그리고... 축제의 흥은 완전히 깨져 있었다. 두 우그르트의 입가에서 누가 더 길다고 할 것도 없이 깊고 깊은 한숨이 흘러 나갔다. 움크가 가볍게 관자놀이를 눌렀다. 우트 트가 낮게 헛기침했다. 우트트와 시선이 마주친 움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멀직이서 황제가 의자 팔걸이를 힘차게 움켜 쥔 채 무감정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자, 비록 그렇다 한들 기사들에 대해 언급할 자격은 클 로네양께도 없죠." 클로네와 셀레라 사이를 가로막으며 우트트가 클로네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움크가 앞으로 나섰다. "셀레라양도 오늘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독살스럽게 클로네를 노려보며 셀레라 역시 움크가 내민 손 을 잡았다. 우트트가 가볍게 한 손을 들어보였다. 가까운 곳에 서 있던 근위 기사 하나가 절도있는 동작으로 다가와 정중하 게 예를 표했다. 힐끔 날 바라보는 우트트의 시선이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분명히 삐진거야. 저건... "둘 다 끌어내라." 우트트의 명령에 따라 기사들이 넷이 다가왔다. 나와 땅바 닥에 널부러져서 미친 듯 울부짖어대는 여인의 한 팔씩을 끌 고 그들은 우리를... 아니, 나와 그녀를 끌어냈다. "가자." 난 순순히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울부짖으며 매달 리는 다른 쪽과 대조되기 때문일까. 그들은 내게 적어도 다른 귀족들처럼 함부로 하지는 않았다. 황궁 감옥 따위 탈출하는 거야 어렵지도 않은 일이니 이 기회에 신설 감옥 구경을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애써 그렇게 나 자신을 타 이르던 참이었다. 그리고 거의 성공하던 찰라였다. "한 사람이 더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재수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날 멈춰 세웠다. 비열한 승자 특 유의 오만함을 얼굴 가득 담고, 셀레라는 손을 들어 내 오른 편 쪽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옛부터 하녀나 아랫것들의 잘못은 주인이 죄를 비는 법." 누구의 편인지 보지 않아도 확실할만큼 낯이 익은 사람들에 게 어깨를 붙잡혀 내게로 다가오지도 못했던 어린 소년. 악문 입술에서 가느다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클레이브와 셀레 라의 눈이 잠시 마주친 듯 느껴졌을 때, 셀레라의 새빨간 얇은 입술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당분간 성실모드 연재^^...랍니다~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다 잊어버렸다는.. 쿨럭! 글은 주로 새벽에 많이 올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전...불면증 증상이 조금 있어서...ㅡㅡ; 후훗 www.woodcat.net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3-카느와 검후 "아르페이나!" 외마디 비명과 같은 외침소리와 함께 적호의 붉은 거도가 둔중한 모습을 들어냈다. 문득한 날에 적호의 힘이 어리며 순 식간에 날카로운 예기가 맺혔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신의 결계를 향해 사나운 눈빛을 보내며 적호는 잠시 호흡 을 가다듬었다. "듣지는 못하겠지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무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아르페이나가 만들어 놓은 공간은 밖에서는 정상적으로 대화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결계까지 만들어 놓았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비록 태어날 아이의 영혼이 몇 뒤바뀌는 불행한 사 고가 벌어지더라도 그는 지금 아르페이나를 만나야 했다. 그렇 지 못한다면 그보다 수 백배는 더 불행한 사고가 벌어질 터였 다. 적호의 도 끝이 공간을 가로막은 결계로 향했다. -파앙!- 힘과 힘이 충돌하며 아르페이나의 결계가 바람 찬 풍선 터 지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빌어먹을." 아르가 낮게 중얼거렸다. 일격에 깨질 듯 싶었던 결계는 겉 보기와 달리 조금 질겼다. -짜악!- 적호는 갈라진 틈새로 도를 밀어넣고 아래로 힘껏 내리그었 다. 비단이 찢어지는 듯한 예리한 소리와 함께 공간 저 편에서 창백한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들어났다. 갈라진 결계의 틈으로 가느다란 연기 같은 영상들이 가닥가닥 흘러나왔다. "다행히 공간이 깨진 충격으로 기절하거나 하지는 않았군." 아르가 잔뜩 굳어진 얼굴에 자연스럽지 못한 곡선을 그리며 아르가 애써 웃음 지었다. 적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차라리 충격이라도 받기를 바래. 나는." 갈라진 공간을 벌려 한 발을 안으로 들이민 적호와 아르에 게로 찢어질 듯한 여신의 비명소리가 덮쳐들었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악!"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가가 풀리며 터져 나온 비명소리는 길 고도 우렁찼다. 형형한 안광에 불길같은 분노를 내뿜으며 결계 를 강제로 침입당한 여신은 이성을 잃었다. 두 손에 가득 잡힌 치맛자락은 심하게 구겨져 찢겨졌다. 어떻게 해야 그 분노를 모두 표현할 수 있을까! 무신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적으로 그 녀의 손을 막았을 뿐, 그녀는 온 몸으로 날뛰며 그녀의 폭발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천하에 망나니 같은 무신들아!" 목청이 터져라 외친 목소리에 이를 악물고 결계 안으로 몸 을 쑤셔 넣은 두 무신의 동작이 딱 멎었다. 이런 충격을 바랬 던 건 아니었는데... 적호의 입술이 뻐끔 움직였다. "................................" 커다랗게 떠진 두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여신의 모 습에, 결계를 가르기 직전까지 불태우던 분노가 민망함과 무안 함으로 돌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있어! 여신의 결계를 이렇게 막무 가네로 찢고 들어오다니! 만에 하나라도 잘못 되었다면 어떻게 할꺼야!" 적호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결계가 파손된 충격이 안 으로 터졌는지 길다란 머리가 풀어헤처져 사방으로 흩날린 아 르페이나의 얇은 옷차림은 군데군데 찢어지고 형편없이 손상 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거지꼴에 노출증 여신의 이미지 그대로라고 할까. "아, 저 그게...." 아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기가 힘 들었다. 분명 결계를 깨기 전까지는 반드시 지금 깨서라도 그 녀를 만나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었는데... "시끄러워! 이 무식한 무신들 같으니! 함부로 남의 사적인 공간에 침입한 주제에 지금 무슨 헛소리들인 거야! 단지 공간 에 선만 그어놨던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크게 다칠 뻔했잖아! 그것도 몰라!" 아르페이나의 주위를 빛이 감싸안았다. 순식간에 여신의 복 장이 나타났다. 불똥이 튈듯한 분노가 여신의 눈동자에 눈이 마주친 아르가 반 보 물러섰다. 이렇게 분개한 아르페이나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만에 하나라도 소멸당하거나 존재에 어려움이 생길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라도 한다면 지상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정말 몰라서 그래?!" 최소한 그녀를 대신할 출산과 양육의 여신이 정해지기 전까 지 지상의 아이들은 태어나지 못한다. 그건 단지 '더 이상의 태아가 생겨나지 못한다'의 의미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아 이와 어미가 죽어야 할지 모르는 커다란 변고였다. "..........아, 미안. 하지만 급한 일이 있었어." 그런 일이 정말로 생겨나기라도 한다면 책임질 방법조차 없 다. 지상의 무신 하나의 소동이 정말로 이렇게까지 무례했어야 했던 일이었나. "정말로 미안해." 뒤늦은 죄책감에 무안한 기색을 띄운 아르가 고개를 푹 숙 였다. 온갖 상을 구긴 아르페이나의 입가에 길고 긴 한숨이 머 물렀다. 빠드득 이를 갈아대며 그녀는 팩 고개를 돌렸다. "요즘 왜 이런지 몰라. 수난이라고. 수난." 몇 년 전 그 어미가 끈질기게 빌어대기 시작한 이후로 마음 놓을 순간이 없었다. 처음에는 시끄럽기 짝이 없더니만 그 이 후로는 이렇게 조마조마하지 않은가. 뭐 방금 전처럼 흥미진진 하고 즐거운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아,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어서 그랬어." 안쓰럽게 다시 말을 꺼내는 아르에게 아르페이나는 손을 저 어보였다. 무엇보다도 이 둘은 신력을 휘둘러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고, 저 옆에 고개를 푹 숙인 적호에게는 어 쨌거나 지고 있는 빚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란 건 사 실이었지만 정말로 화를 터트리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 다. 또 뭣하면 오늘 일을 꼬투리 삼아 두고두고 약점을 쥘 수 도 있다. 한참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던 지상의 일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유래없이 두 무신이 날뛰었다면 그 나름대로의 급한 사정이 있을거라 그녀는 마음을 다스렸다. "아아, 알았어. 알았어. 이렇게까지 할 때는 이유라는 것도 있었겠지. 이렇게까지 할 만한 이유였어야만 하고." 눈물을 슥슥 닦아내고 휘휘 고개를 저어 급히 머리를 식히 며 여신은 작게 툴툴거렸다. "일단은 듣고 생각할께." 당황했던 아르페이나가 진정함에 따라 그녀의 공간도 서서 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조각조각 흩어졌던 상의 자락들 이 한 줄기 두 줄기 모여 다시 뚜렷한 색상과 형체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고마워."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여신이시여." 도대체 왜 두 무신은 난입까지 해야 했을까. 자신들의 경솔 함에 한탄하고, 여신의 관대함에 감사하며 아르와 적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야 했다. 뭔가 이게 아닌데 싶은 찜찜함이 남 아있기는 했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실은...." 밑진 듯한 불쾌함보다는 지금 아르페이나가 그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과 지금쯤은 폭발했을 지도 모르는 지상의 말썽꾸러기가 더 중요했으니까. 아르는 조심스 럽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라?" 둘 곳 없는 시선을 흩어놓았던 적호의 눈동자가 순간 멈췄 다. 치떠진 눈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 커다랗게 벌어진 아르의 동공이 적호에게로 휙 돌려졌다. 불신과 경악. 지금 내 눈에 비친 장면이 맞는가 동의를 구하는 간절함이 아르의 눈동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뿌드득 이 갈리 는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기껏 다시 생겨난 영상을 접기가 아쉬운 듯 잠시 멍 하니 공간을 바라보던 여신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살을 에일 듯한 냉기과 열기. "무, 무슨 일들인데!" 심장을 얼릴듯한 두려움과 여신으로서 그런 두려움을 느끼 는 자신에 대한 짜증. 그리고 그 두려움과 짜증의 두 근원들. 아르페이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그건 아르와 적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분노의 불 길이 타올랐다. 벼락같은 호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노출증 여신이 지금 이걸 보기 위해 공간을 차단시키 기까지 하고 있었단 말이야!" 상황은 다시 뒤집어졌다.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르페이나가 펼친 영상 안에서 달려든 두 기사들의 당김에 도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땅에 뿌리내리듯 버틴 란의 눈동자 에 점점이 살기가 번져가고 있었다. **** "이, 무례한!"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기사들은 시근덕거렸 다. 아무리 밀어도 꿈쩍조차 하지 않는 내게 대한 원망과 그럴 리 없다는 자신에 대한 불신이 반반씩 얽힌 그들의 모습은 지 금 내게 이 순간이 마치 현실이 아닌 듯한 몽롱함을 더해 줄 뿐이었다. 귓가로 윙윙 소리가 들렸다. 클레이브에게 손가락질 을 하고 있는 저 가느다란 손가락을 부러트릴 수만 있다면! "저 건방진 하녀를 당장 끌어내지 않고 무엇하시는 겁니 까!" 순간적으로 쏘아진 살기에 더 이상 내게 시선조차 보내지 못하고 창백해진 셀레라는 고개를 돌린 채 연신 기사들에게 소리질러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맞춰 드레스자락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시선의 한쪽에서 이를 악문 클레이브의 모습이 잡혔 다. 뿌드득 이가 갈렸다. 아직은 가느다랗게 이성이 남아있었 다. 아니 지난 일년간 날 단련시켰던 하녀본능이랄까.... "아무리 평민이라 하더라도 황족의 권위로 초대되었을 때는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들만이 잘난 줄 아는 귀족들에게 심정적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겠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단 하루일 뿐이지만 가장 낮 은 귀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황족의 초청이었으니까. 비록... 선례는 극히 드물었지만 말이다. "마, 맞습니다." 재빨리 정신을 수습한 클로네가 앞장서 나섰다. 돌출적인 셀레라의 행동에 당황해 있던 우그르트 움크가 힐끗 클로네를 향해 고개를 움직였다. 순간 눈이라도 마주쳤을까. 움크는 작 게 고개를 끄덕였다. 농도 짙은 한숨이 길다랗게 흘러나왔다. "페르로이 후작가는 귀한 손님이다. 함부로 할 수 없지." 휙, 셀레라의 몸이 돌았다. 광기어린 눈동자를 마주하기 힘 들었는지 움크는 흠짓 시선을 피했다. 순간 자존심이 구겨진 움크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움크의 몸이 셀레레라로부 터 반 보 멀어졌다. "자 하녀의 무례함을 보시고서도 그들을 두둔하시는 건가 요?" 악에 받친 셀레라의 목소리는 이미 공포심을 넘어서 있었 다. 죽기 직전에 뻣는 발길질 같은 발악. 식은땀에 훔뻑 젖은 드레스자락을 놓치 못한 채 그녀는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라면 전 돌아가겠습니다." 아직 가느다란 미성을 벗어나지 못한 목소리가 말했다. 사 람들의 눈동자가 어린 클레이브에게로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클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우트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딪었다. 난 내 팔에 매달려드는 두 기사들을 던져 버리기 위해 각오를 다시했다. 이 자리에서 덤벼드는 작자들을 모조리 던져 버리고 우린 돌아가리라. 그 뒤가 어떻게 되든 이제 행사할 방법이 힘 밖에 없다면 난 더 이상 아끼지 않으리라. 눈앞의 저 여인을 사라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 라. 내 300평생 처음으로 인간을 증오하고 저주하게 만든 저 존재를 없앨 수 있다면.... "조용히 하라!" 거인의 힘을 간직한 굵은 목소리가 우렁차게 홀 안을 울렸 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소음이 가라앉았다. 난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단상에 서 있다고만 생각했던 존재의 자리가 어느새 비워져 있었다. "이 무슨 작태들인가!" 누구보다도 무거운 분노를 담고, 늙은 목소리가 홀 중앙을 가로지르며 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물결처럼 퍼져 나가 며 날 중심으로 사람들을 옭아매던 살기가 순간 멈췄다. 묵직 한 존재감. 그가 입은 옷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극히 드문 존재들 중 하나. "카, 카느시여...." 머리의 관이 무겁게만 보이는 늙은 노인이 나를 똑바로 바 라보고 있었다. 한 때는 강한 전사였겠지만 이제는 아무런 힘 도 남아있지 않아 보이는 육신을 지닌 자. 그러나 그 안에 담 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감히 내 살기를 마주볼 수 있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비록 크게 내뿜은 살기가 아닐지라도 그건 평범한 자가 마주볼 수 있을 만큼 녹록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요, 용서를....." 그가 스쳐가는 길을 만들며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내 살 기에 눌려 바닥에 엎어져 있던 자들이 황급히 몸을 수습하고 그에게로 머리를 숙였다. 그건 단지 카느라는 이름이 주는 무 게감은 아니었으리라. 그는 카느의 이름을 이어받은 자가 아니 었으니까. "................................." "어리석은 자들." 그가 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를 위해 한껏 누그러트린 살기 안에서 간신히 의식을 차린 주제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내 모습에 당황한 자들의 숨 넘어가는 소리들만이 요란하게 울리는 속에서 카느는 의연한 모습으로 내 눈빛을 마주했다. 탁한 노안 속에 어린 맑은 빛이 일렁였다. "헛소문만은 아니었겠군." 그가 나지막하게 -었다. '동감이다.' 내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바로 이 제국 프란에 카느 의 이름을 만든 자였다.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당분간 성실모드 연재^^...랍니다~ 흠.... 뒤집어 엎는다라. 그렇게 될지도, 안될지도 모릅니다. ^^;;;;;;;;;;;;;;;;;;;;;;;;;;;;;; 란도 변화하는 존재이니까.... 넵. 그리고...극악의 끊기라... 그랬군요. 단지 거기까지 퇴고보고 쓰러져 잤다는 죄밖에...ㅠㅠ 토요일 밤은 좀 쉬었고....(감기가 재발해서...ㅡㅡ*) 오늘은 친척 결혼식 구경을 좀 다녀왔답니다.^^; www.woodcat.net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리플을 달아주세요~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4-카느와 검후 "한가지만 질문하겠습니다." 분노가 지나치면 식어 버린다. 냉랭하게 굳은 적호의 분노 가 아르페이나를 옴짝 못하게 옭아맸다. 딱딱딱 굳은 동작으로 여신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 철렁 가슴이 가라앉는 듯한 불길함은 가장 불길하다고 생각 되는 와중에서도 또 한번 아르페이나를 엄습했다.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란의 곤란을 즐겨서 아르페이나님께 도움이 되는 게 무엇 입니까." "........................." 단지 즐겁기 때문이라면 안되는 걸까. 그녀 때문에 졸이던 마음이 잠시 풀어짐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라면 안되는 걸까. 억울함이 왈칵 밀려왔다. 대체 그녀가 무엇이길래 여신인 자신 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려야 하는 것일까! "아르페이나.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주기 를 바래." 옆에서 거드는 아르가 더 꼴보기 싫었다. 이르페이나는 눈 물을 떨쳤다. 그리고 적호의 눈을 도전적으로 응시했다. 무단 침입에 여신을 죄인취급까지 하고 있었다. 용납할 수 없었다. "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천천히 적호의 고개가 움직였다. 답답한 듯 미간을 구기며 적호는 온 몸으로 한숨을 내쉈다. 분노 이전의 답답함이 가슴 을 짓눌렀다. 적호가 씹듯이 한자 한자 뱉어낸 작은 절규들이 아르페이나의 귓가에 못처럼 박혀왔다. 한 순간 고개를 들이밀 었던 자존심은 적호의 무언의 기백에 압도당해 다시 꼬리를 내렸다. "여신께서는 란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고 계시는 겁 니까." "거야..." 툭 하면 불경스럽게 노출증 어쩌구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겁 없는 무신이며, 신계로 올라오라며 부르고 불러도 혼자 힘으로 올라오겠다며 벅벅 우기는 버르장머리 없는 무신의 환생체...? "잊지는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움찔 몸을 떠는 아르페이나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올리며 적호가 눈 높이를 맞췄다. 아무런 감정 없이 가라앉은 붉은 눈 동자가 섬짓하리만큼 두려웠다.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는 여신을 강하게 잡아당기고 적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이 벌린 모든 일들이 신계로 되돌아온 란의 귀에 들어갔을 때..." 쩡. 여신은 굳었다.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르의 목울대가 커다랗게 움직였다. 아르페이나의 겁에 질 린 커다란 눈동자가 데구르르 움직였다. "아르페이나님 혹시 란이 영원히 저 지상세계에 머물러 있 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녀가 신의 힘을 찾아 올라오지 못하더라도 제가 데려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설마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잊고 있었다. "잠시의 즐거움의 대가가 반드시 존재할 거라는 사실을 생 각하지 않으셨던 건 아니시겠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란의 분노가 아르페이나님께만은 절대 영향을 미치지 않으 리라고 착각하고 계셨던 건 아니시겠죠?" 착.각.하.고 있었다. 분명하게 말이다. "끄응..........." **** "하지만 겉모습이나 순간적인 호기만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는 없는 법." 카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쇠한 몸이 그의 정신을 뒷 받침하지 못하고 작게 흔들렸다. 이 모습이 진정한 모습일까. 아니면 이 뒤에 다른 모습을 감추고 있는 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난 망설임을 접었다. 내 앞에서 존재를 완전히 감출 수 있는 자는 없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백여 년 전에 마주쳤던 드래곤이라는 종 족들도 그렇지 못했고, 무신이시며 내 상급 신이셨던 적호님도 완벽하게 자신의 기운을 숨기지는 못하셨다. 그건 삐질삐질 삐 져 나오는 기운의 탓이 아니라 무의식에서부터 베어 나오는 무인 특유의 기질 탓이다. 아무리 완화되고 유화되어서 무뎌져 도 숨겨지지 않는 주머니 속의 바늘처럼. "쿨럭." 매마른 기침소리 역시 영락없는 노인의 것이었다. 문득 날 구슬리던 적호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간은 경험하면서 성장하지. 보게나. 아무런 수행도 하지 않은 듯한 늙은 할미가 세상의 이치를 더 잘 알지 않던가.' 이 남자의 무엇이 대 제국을 이루게 만들었을까. 강했으나 마스터와 같은 극강함은 없었다. 그런데 이 무너져 가는 육신 안에 버틴 저 강함은 무엇일까. "이 무도회에 초대받은 이유를 스스로도 잘 알 터." 내게 없는 무언가를 이 카느는 지니고 있었다. 낯익은 공기 과 낯익은 눈빛이 그의 얼굴안에 자리잡았다. 난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분노는 그에 대한 호기심과 내게 없는 것에 대한 갈증으로 희석되어가고 있었다. 이 갈증을 풀기 위해 난 하녀의 길을 택했다. 아니, 택하기 전까지는 이런 갈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부딪기면서 배 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것일까. "증명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지." "물론입니다." 발단이 나였다면, 내가 증명함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 이 있다면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좋군." 카느가 미소지었다. 아직까지도 끙끙거리며 내 팔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던 두 기사에게 잠시 한심한 듯한 눈길을 보내 고 카느는 가볍게 기침했다. "이 황궁을 지으면서..."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내 특별히 신경썼던 곳 중 하나가 지하 감옥이지." 번쩍 고개를 든 셀레라의 눈가에 기광이 스쳤다. 지하 감옥 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일까. 꿋꿋하게 표정을 지키고 있던 클레이브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클로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두 우그르트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난 미소를 그렸다. "내일 아침까지 내 앞에 다시 설 수 있다면..." 카느의 뒤를 따라 조용히 따라왔던 그의 비 중 하나가 카느 의 팔을 부축했다. "오늘의 무례함은 모두 없던 것으로 해 두지." 카느의 느릿한 발걸음이 잠시 멎었다. 아주 천천히 시간이 라도 멈출 듯 느리게 고개를 돌린 그의 입가에 아주 여린 곡 선이 그려졌다. "못다한 말들은 내일 아침에..." 내 탈출을 당연하다는 듯 규정하며 카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늙은 너구리 같으니. 체면은 체면대로 세우면서 결 국은 날 몰아넣는 군. "그럼, 내일 오전에 뵙겠습니다." 물러설 나도 아니지만 말이다. **** "다녀오셨습니까?" 창백하게 질린 클레이브와 클로네가 거의 동시에 무도회장 을 빠져나왔다. 언제라도 황궁을 벗어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 비를 마친 금아와 하르크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클로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보통은 즐거우셨습니까. 라고 묻지 않나요?" "그렇습니까?" 진하게 미소지어 보이는 금아의 얼굴에 굳어져있던 클레이 브의 안색이 조금 펴졌다. 진이 다 빠진 듯 힘겹게 마차에 기 어오르며 클로네와 클레이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차 좌석에 늘어지며 길다란 한숨을 뿜어냈다. "그랬을 리가 없죠." 평소와는 다르게 완전히 무너진 모습으로 클로네는 길게 올 린 머리의 고정핀을 뽑았다. 촤르륵 머리가 흘러 내렸다. "이 머리가 이렇게까지 무거울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마차 안이 보이지 않도록 차양을 내리고 구두까지 벗어서 내팽겨친 클로네는 탈진 직전이었다. 힐끗 고개를 돌린 금아의 귀에 낮게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클로네의 반대편으로 쓰러 져 의식을 잃은 클레이브는 벌써 꿈나라로 떠난 후였다. '-. 얼마나 고단했으면..." 밖에서 청력을 키워 대강 주워 들었을 뿐이지만 그 자리의 살벌함에는 상상이 갔다. 더더구나 그 살기의 주인이 란이었으 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비슷한 정도의 살기라도 란의 것은 그 질이 달랐다. 피부만이 아니라 내장까지 오싹하게 얼려 버리는 그 독특한 냉기. "하르크, 먼저 출발하게." 두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금아의 마차에 쓰러지듯 실려 들어오자 잠시 어쩔 줄 모르게 서성이던 하르크가 재빨리 마 부석으로 올라탔다. 낮게 투래질하며 말이 또각또각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휴우우우우. 내일 아침에 이 황궁을 다시 볼 수 있으려나."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친구라도 보내는 듯 아련히 시선을 고정시키던 금아의 손이 힘차게 움직였다. 클로네와 클레이브 를 실은 마차는 낮게 지면을 구르며 아르카이아로 향했다. 곳 곳에 횟불이 타올라 더위를 부채질하면서도 웅장하게 빛을 발 하는 흰 사막의 황궁이 붉으스름 물들어 있었다. "......................." 독기로 똘똘 뭉친 한 쌍의 눈빛이 서둘러 사라지는 마차의 뒷 그림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황제가 들어가고 우트트와 움 크가 무도회에 모인 귀족들에게 인사하고 사라진 직후 바로 황궁을 빠져나온 클레이브와 클로네를 따라 구르듯 빠져나온 셀레라였다. 무도회 내내 폭발할듯한 감정을 꾹꾹 억눌렀던 그 녀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채 사라지기 전에, 아직 사람들의 관심이 자리에서 빠져나간 움크와 우트트에게 쏠려 있을 때 따라나가 따귀라도 한 대 때려줘야 속이 풀릴 듯 했다. 셀레라 는 급히 발걸음을 옮겨 그들을 따라나섰었다. 그러나... "천한 것들이 걸음만 빨라서는!" 멀찌감치 놓쳐 버렸다. "천하에 뻔뻔한 것들." 중간에 사죄하며 빠져나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파티의 마지 막까지 버티고 떠나간 클레이브만 떠올리면 심장이 쿵쾅거렸 다. 시선조차 피하지 않고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던 어린 소 년의 눈빛. "부끄러움도 모르는 재수 없는 것들. 사교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당장 때려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존재들이었다. 좀 전부 터 잘근잘근 씹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재수가 없는 것들과 엮이려니!" 딱지라도 지면 얼마나 보기 흉한가! 셀레라는 급히 손수건 을 찾아 입술의 피를 닦아냈다. 오늘 무도회는 정말로 최악이 었다. 되던 안되던 그 버르장머리 없는 하녀를 보기 좋게 끌어 낼 수 있었는데! -닥쳐라.- 한 여름의 열기를 한 순간에 날려버릴 듯한 차가움이 홀 안 에 내려앉았을 때,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일으키며 머리 가 득 들려온 기묘한 소리가 있었다. 지독한 적의가 가득 담긴 낯 익은 소리. 셀레라는 몸을 떨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 지게 두려웠다. "재수가...."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한 듯 했다. 오로지 그녀에게만 들린 듯 했던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음성. "설마 그럴 리가 없어." 하녀 따위에게 그런 재주가 있을 리가 없었다. 환청이었으 리라. 오랫동안 계획에 계획을 거듭하다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클로네..." 그 것 때문이다. 클로네만 방해하지 않았다면 더 멋지게 자 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겨우 허울좋은 인질 따위로 보내진 크리아의 귀족이 아니라, 다음대의 카느로 유력한 우그 르트 움크의 힘을 업은 셀레라. 그녀로서 다른 귀족들의 우위 에 설 수 있었다. "흥! 클로네 따위를 선택하다니 우트트도 별 볼일 없는거 야." 셀레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히 황궁을 우수이 여겨도 분수가 있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그 재수없는 눈빛은 생 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치 머릿속에 도장이라도 찍힌 것처럼 멈추지 않고 떠올랐다. -저도 마침 한번 보고 싶던 참이었으니까요.- 카느가 그의 자리로 돌아간 후, 란을 지하감옥으로 끌고 가 기 위해 우르르 몰려온 기사들을 향해 여유 있는 미소까지 지 어 보인 하녀는 감히 그렇게 말했다. 또각또각 들으라는 듯 구두소리를 울리며 허리를 꼿꼿이 펴 고 마치 호위라도 받는 냥 기사들을 거느리고 그 하녀는 무도 회장을 벗어났다. 움크와 우트트가 악사들에게 음악을 다시 연주시켰고, 우트 트가 클로네의 손을 잡고 홀 중앙으로 나섰다. 길고 긴 한 곡 동안 두 사람은 아름답게 춤을 선보였다. 그리고 셀레라는... "... 혼혈아 꼬맹이 주제에. 절대 용서 못해." 내버려졌다. 그녀의 손을 잡았어야 했던 움크는 잠시 클로 네를 노려보는 사이 셀레라의 옆을 빠져나가 어린 클레이브에 게로 다가갔다. 이유모를 살기와 위압감으로 범벅된 그 혼란스 러웠던 와중에서도 의연히 버티고 있던 소년에게 움크는 호감 을 느꼈다. 그는 클레이브를 인정했다. 셀레라는 그 것을 더더 욱 용납할 수 없었다. "절대로." 눈물이 한 줄 흘러내렸다. 분홍빛으로 덧칠한 볼을 스치며 연한 붉은 빛을 띈 눈물방울이 마치 핏방울처럼 얼룩져있었다. **** "후!" 깊었다. 어쩐지 황궁이 웅장한 것치고는 납작하더라니만, 높 이 쌓을 시간에 아래로 들입다 파기만 했나 보다. "감히 내일 아침을 장담 한 짓거리를 후회하게 될 거다."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였다. 내게 시선조차 던지지 않은 자 세로 옆을 지키며 기사 하나가 낮게 속삭였다. 피식 흘러나오 려는 웃음을 밀어 넣으며 난 다시 눈길을 앞으로 돌렸다. 확실 히 카느가 자랑할 만큼 대단했다. 백여 년 전 구경했던 그 어떤 감옥도 이렇게 깊이 파고 내 려오지는 않았다. 그 당시 수강이 제일 마음에 들어했었던 피 티아의 지하 감옥도 이보다는 얕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렇게 깊은 감옥은 처음이군요." 지하로 삼층 정도 내려온 이후로 가파른 비탈길 식의 무작 위적 땅굴로 이어진 이 지하 감옥은 엄밀히 말하면 황궁의 지 하는 아니었다. 황궁에서 이어지기는 했지만... 꽤 멀리까지 내 려와 뻣어 있는 폼이 보통 신경써서 만든 것 같지가 않았다. "감옥에 익숙하기라도 한가?" 좌측에서 걷던 기사 하나가 픽 웃었다. 웅성웅성 몇몇이 비 웃음을 흘렸다. "구경은 많이 해봤으니까요." 황궁 안을 통과할 때보다도 더 흥미진진해 보이는 내 모습 이 신기하기도 했겠지. 지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즐거워하 는 내 반응에 무뚝뚝했던 기사들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 다. 뭐,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흥! 구경 따위를 할 수 있는 곳을 떠올리고 그 따위 허언 이나 했나 보군." 내 우측에 서서 연이어 빈정거리고 있는 기사는 좀 전에 홀 에서 날 잡아 끌어내려고 애만 쓰고 내 팔에 매달려 추태를 빚어냈던 그 자였다. 난 굳이 그들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새로운 구경꺼리가 내 눈을 잡고 있었고, 새로운 갈증과 의문 덩어리들이 내 가슴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일 카느를 만난다면 무엇을 질문할까. 그는 평범한 몸을 지닌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그런... 존재감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 하나의 존재로 인해 이 프란의 거대한 땅덩어리가 변했다. 수 백년간 단 한번도 통일된 적 없던 배타적인 부족들이 하나 로 뭉쳤다. 그의 무엇이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했을까. 만일 내가 그였다면, 그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런 일들이 가 능했을까. 답은 아니었다. 힘으로 쥐어박고 공포로 억눌러 잠 시 말을 따르게 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 석해도 그가 해낸 일은 내게 불가능했다. '강한 존재다.' 검기 한 가닥 빚어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검 한자루 들 수 있는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더라도. 그는 강했다. '지난 이백년 간, 난 허깨비만을 찾았던 걸지도 모르겠군.' 오로지 강한 무력만을 찾아 헤매였던 내 지난 모습에 난 문 득 허탈함과... 알 수 없는 희열감을 느꼈다. '난 이제 다르다.' 나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 "무슨 신관들이 이렇게 잠만 처 자는 거야!" "아르페이나! 진정해! 지금은 새벽이야!" 상태파악이 끝나자마자 아르페이나는 달렸다. 공간을 열고 얼마전 프란에 세워진 그녀의 신전을 찾아 냅다 뛰어내린 그 녀는 다짜고짜 신탁을 집어 던져댔다. "몇년전인가 갑자기 새벽은 기도 받는 것도 귀찮다며 다들 자라고 한 건 너였잖아! 아르페이나!" 모두들 잠들어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신탁은 공허하게 아르 페이나에게로 돌아왔다. 평일도 아니고 중앙절 첫째 날이었다. 모두들 전날의 축제에 지치고 늘어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 넓은 신전에 깨 있는 놈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상하잖 아!" 깨어있는 놈이 중앙절 첫날 신전 안에 있을 리가 없었다. 모든 신관들은 여기저기 축복을 내리느라 바삐 돌아다녔고, 축 복의 자격이 없는 존재들은 일년에 단 한번뿐인 휴가에 광분 하고 있었다. "일단 진정부터 해. 아르페이나. 프란인들에게 중앙절이 어 떤 의미인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길길이 날뛰는 아르페이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아르는 복잡한 속을 삼켰다. 그가 알고 있는 출산과 양육의 아르페이 나는 이런 여신이 아니었었는데.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여신은 아니었었는데! "차라리 현신하면 안될까?" "겨우 성기사 하나 때문에 현신까지 한다면 란의 입장이 더 곤란해지겠지. 게다가 현신한다는 건 뒤처리가 곤란해서..." 답답한 나머지 의견을 내어보는 아르에게 적호가 단호히 고 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하녀 생활하는데 거치적거리는 것들이 많아 화가 났을 터. 신들까지 나서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고 한다면... 뒤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적호의 입꼬리가 시니 컬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신분이 아르페이나의 신탁을 받은 신 의 사자였으니까. 아르페이나의 신탁으로 정리하는 게 훨씬 나 을꺼야." '무엇보다도 나 역시 후환이 두려운 존재 중 하나거든.' 적당한 신탁과 위협 정도면 해결의 고리를 만들어 줄 수 있 다. 힘으로 해결할 일들이야 놔둬도 란이 혼자 다 해 낼 지경 에 몰렸으니 참견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란 이 원하는대로 하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약간의 기회를 부 여하는 것 뿐. "이 잠벌래들아! 일어나란 말이다!" 갈등하는 적호와 아르를 내팽겨치고, 인간의 귀에는 들릴 리 만무한 외침을 공허히 내지르며 아르페이나는 여전히 달리 고 있었다. '화악! 현신해서 다 두들겨 깨웠으면 속이 시원하련만!' 그랬다가는 란은 둘째치고 온 서대륙의 신들이 모두 속사정 을 알게 된다. 겨우 영혼 하나의 기원을 이겨내지 못해 동대륙 까지 처들어가 폐를 끼치면서까지 일을 벌린데다가, 하필 데려 온 존재가 피티아를 말아먹은 그 검후에, 하나하나 따져보면 온통 비웃음거리들이었다. '절대로 안돼!' 적호와 아르에게는 어쩔 수 없이 알려졌다고 해도 다른 신 들에게만큼은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으리라! 아르페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재수가 없다는 둥, 어 떻다는 둥을 떠올리는 건 지금의 그녀에게는 사치에 가까웠다. "내 맹세한다! 오늘 제일 먼저 일어나 내 신탁을 받는 놈이 오늘부터 이 신전의 대신관이다!" 아르페이나가 유령처럼 온 신전을 헤집으며 잠에서 깨어난 신관을 찾아 헤매는 동안 멀리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제기랄. 빌어먹을 태양의 신은 오늘따라 왜 이리 부지런을 떠느냔 말이야!' 그 해가 하늘의 중앙을 가를 때 란과 카느의 약속의 시간은 끝을 맺는다. **** "슬슬 해가 뜰 시간이겠군." 횃불을 갈아 끼우며 누군가가 이죽였다. "동이 틀 무렵 즈음은 되었겠지." 날 감시하기 위해 남았던 기사는 모두 열명이었다. 겨우 하 녀 하나를 지키기에는 과분한 인원이었지만 마스터라는 대단 한 누명이 씌워진 하녀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불평보다는 호기 심을 그 눈에 더 담고 있었다. 뭐, 그것도 이미 다 지워져 한 심함과 비웃음밖에 남지는 않았지만. "그럼 정말로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되었겠군요. 의외로 지하 가 꽤 깊었으니까."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당분간 성실모드 연재^^...랍니다~ 카느는...드래곤이 아니랍니다..^^;;;;;;;;; 3권이 곧 나온답니다.^^ 3권은 표지가 바뀌더군요. 중세 하녀복을 입은...흐흣. 뭐, 아시는 분은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중세의 하녀는 요즘 나오는 메이드물처럼 옷을 입지는 않았답니다. [[The Perfect MAID]]-85-카느와 검후 "슬슬 해가 뜰 시간이겠군." 횃불을 갈아 끼우며 누군가가 이죽였다. 불이 옮겨붙으며 피어난 매캐한 냄새가 복도 안을 맴돌았다. 다 타버린 세 번째 횟불이 바닥에 버려졌다. 하나 당 두 시간은 탄다고 했으니 이 제 여섯 시간. 날 감시하기 위해 남았던 기사는 모두 열명이었 다. 겨우 하녀 하나를 지키기에는 과분한 인원이었지만 마스터 라는 대단한 누명이 씌워진 하녀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불평보 다는 호기심을 그 눈에 더 담고 있었다. 뭐, 그것도 이미 다 지워져 한심함과 비웃음밖에 남지는 않 았지만 말이다. 곱게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 자락이 구겨질까 퍼질러 눕지도 못하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하녀에게 위협을 느낄 정도로 그들은 안목 있지 못했다. "흐음.... 동이 틀 무렵 즈음은 되었겠지." 벽에 기대서 있던 기사 하나가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길게 하품했다. 이제 조금만 더 날 감시하면 그들의 임무는 끝난다. 동이 튼다는 말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몇몇의 눈이 잠시 반짝 였다. 사실이다. 그 결과가 그들이 예상하는 것과 내가 만들어 낼 것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잠이 들 수가 없겠지." 개중 가장 근면하게 날 지키고 있었던 기사 하나가 눈을 가 늘게 좁혔다. 건방지고 무례한 하녀에 대한 분노가 그 안에 가 득 차 넘실댔다. "카느를 농락한 죄는 죽어서도 씻기 힘들다." "전 농락한 적이 없습니다." 비웃음과 조롱. 그는 피식 웃었다. "아아,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가 보군." 내가 크리아 출신의 하녀이기 때문에 프란어에 서투르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긴 내 출신 정도야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난 유명해져 있었으니까. 날 잠시 노려보던 기사는 휙 눈을 돌 렸다. "삶의 마지막 순간인줄도 모르겠군." 이 곳으로 들어오는 데만도 한 시간여가 넘게 걸렸다. 지금 이 동틀 무렵이라면 정오가 될 때까지 남은 시간은 길어봤자, 여섯 시간. 안내자가 없이 빠져나갈 수 없는 빙빙 꼬인 미로와 오늘 하루 날 위해 특별히 지키고 섰을, 중앙절까지 일해야 했 던 수 많은 기사와 경비원들의 악에 받친 저항을 뚫고 나가기 에 불가능할 시간이다. 단, 그들의 시점으로 봤을 때만의 이야 기이기는 하겠지만. 날 지키고 있는 자들, 카느가 신임하는 황 궁 기사들이 이 정도로 풀어졌을 터라면, 길목 길목의 관문에 서 드레스 자락이 구겨질까 곱게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던 내 모습에 기막힌 표정을 지어 보였던 다른 자들의 긴장상태 야 보지 않아도 훤하다. "아닐 것 같은데요?" 시익 미소짓는 내가 가당치도 않았는지 기사는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나와 정면으로 부딛혔다. 기사는 조금 놀란듯한 표정으로 표정을 바꿨다. 훈련을 쌓은 기사라면, 최 소한 내 지금의 말이 겁에 질려 해 보는 허풍인지, 비록 근거 는 없을지라도 당당한 자신감에서 할 수 있었던 말인지 정도 는 구분할 수 있으리라. "그럼 정말로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되었겠군요. 의외로 지하 가 꽤 깊었으니까." 주욱 팔을 폈다. 가볍게 관절 풀리는 소리와 함께 피가 활 발하게 돌기 시작했다. "허튼 수작." 검은 뽑지 않았지만 내가 갇힌 감옥의 정면을 지키고 서 있 던 그 기사의 온 몸에 긴장이 감돌았다. 그의 목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여기저기 기대어 졸고 있던 기사들이 부스스 눈을 비볐다. "무기도 없는 주제에 네 팔뚝보다 더 굵은 철창을 뚫겠다 고? 이 중의 누군가가 네 허튼 미인계에 걸려 열쇠라도 줄거 라 착각했나? 하녀여." 방금 전까지 가장 많이 졸던 주제에 어디서 용기가 샘솟는 지.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훔치며 기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호오? 미인계라니요. 제게 반하셨습니까?" 두 손을 탈탈 털며 어깨를 살며시 움직였다. 마나가 온 몸 의 경락과 혈을 돌며 상쾌한 기분을 전달했다. 난 정말로 기분 이 좋았다. 이번의 하녀행에서 이렇게 재미있어 보이는 감옥 탈출기를 만들어 보다니! 수강이 알았다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난 정말로... 즐거웠다. "따라오고 싶으시다면 따라오셔도 좋습니다." 기막혀하는 시선들마저 유쾌했다. "막을 능력이 있으시다면 막으셔도 상관없고요." 난 철창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중으로 겹겹이 만들어진 두꺼운 쇠창살이 반보 앞으로 다가왔다. 성질 급해 보이는 기 사 하나가 검을 뽑아들었다. "물러서라!" 창살 사이로 검이 삐쭉 들이밀어졌다. 난 슬그머니 손을 뻣 어 검의 끝을 잡았다. 흠칫 놀란 표정의 기사가 황급히 검을 회수했다. 아니, 회수하려 들었다. "큭!" "검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랍니다." 검 끝이 서서히 감옥 안쪽으로 끌려들어왔다. 검을 빼앗기 지 않기 위해 악을 쓰는 기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라투트! 지금 뭐 하는 건가!" 냉정하던 기사들이 순간 흔들렸다. 이를 악문 라투트라는 기사가 구원의 기색을 눈에 떠올리는 그 찰라. 우드득 소리가 섬짓하게 울렸다. 순간적인 침묵이 가라앉았다. "이제 검이 생겼습니다."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순간적으로 비틀린 손목의 통증을 견디지 못한 라투트의 검이 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건방진!" 말과는 달리 잔뜩 긴장한 기사들의 시선이 흔들렸다. 흰 뼈 가 드러난 손목을 움켜쥐고 라투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난 검을 가볍게 흔들었 다. "요사한 술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뽑아든 검을 더 이상 안쪽으로 쑤셔 넣지 못하고 기사들은 창살 앞쪽을 빙 돌아 포위하듯 막아섰다. "술수인지 아닌지는..." 내가 애용하던 동방의 검보다 검신이 조금 길고 투박했다. 이 땅의 사람들은 기술보다는 중량감 있는 무기를 선호했다. 어리석게도. 무기에 의존하면 실력은 늘지 못하는 법인 것을. "직접 확인하시죠." 손을 타고 흘러 나간 마나가 검을 감싸안으며 투명한 흰 빛 을 뿜어냈다. 숨 넘어가는 듯한 경악 소리들이 반주처럼 복도 안을 윙윙 울려나갔다. 빛이 모여 형체를 이루고 검에 새로운 날과 길이가 생겨났다. 용감하게 서 있던 몇몇 기사들의 다리 가 후들 떨렸다. "시작하겠습니다." **** **버그 자수합니다. 우트트와 움크의 이름이 언제부터인가 바뀌었습니다. 첫째 우그르트가 움크, 둘째가 우트트였습니다. 용서를...** "주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자트는 의복조차 갈아입지 않고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생각에 잠긴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몽롱하니 정면으 로 풀어진 우트트의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았다. "아아, 잠을 잘 수가 없군." 세자트는 조용히 우트트의 옆으로 다가왔다. "하녀의 일이 마음에 걸리십니까?"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앞으로 기대였던 몸을 뒤로 기대며 우트트는 작은 신음성을 흘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세로 있었을까. 등에서 우드득 근육 풀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창 밖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이 뿜어내는 빛이 창문을 타고 실내를 밝히기 시작했다. 우트트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올까?" 세자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트트 역시 대답을 기 다리지는 않았던 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소문들이 분분했지. 마스터다, 아니다. 겨우 하녀 하나로 인해 이렇게 많은 잡음들이 생겨나고 귀족들이 움직인 적은 없었어." 심지를 다 드러내고 녹아버린 촛불이 꺼졌다. 실내가 아주 조금 어두워졌다. 몸을 돌리는 세자트에게 우트트는 손을 저었 다. "해가 뜨고 있다." "네." 세자트의 시선도 창 밖이 태양에 고정되어 있었다. 황궁의 지하감옥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위용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라도 쉽게 빠져나 올 수 없다. 더구나 그녀가 갇힌 지하감옥은... "피티아의 지하 감옥보다 세 배는 더 철저하다고 그가 자신 했었지?" 황궁 설계자이자 감옥의 고안자였던 건축가는 눈을 감는 순 간까지 지하 감옥을 자랑스러워했었다. 각각의 방과 방의 입구 를 가로막는 창살의 고안은 물론이거니와 무너트릴 수 없는 두터운 돌 벽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는 마법의 힘으로 보강되어 그 자체가 커다란 지옥으로 변했다. 아무리 마스터라 했더라도 겨우 세 명의 손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걸었어야 했던 전설의 제국 피티아. 수 없이 많은 사막의 전사들을 끌어안으 며 프란의 카느는 그런 돌출적인 개인의 힘을 막고싶어했다. "마스터라도 나오지 못할거라고 그가 장담했다는 기록은 있 습니다만.... 세자트는 말꼬리를 줄였다. 건축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 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황궁의 감옥은 아직까지 단 한번 도 마스터의 힘을 지닌 자에 의해 검증 받은 적이 없다. "마스터와 마스터에 근접한 자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니까." 우트트는 갈등했다. 좀 전부터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아직 지하 감옥은 조용했다. 얼마 전에 올라왔던 보고에서도 하녀는 아직 조용하게 갇혀 있다고 했다. "그 알 수 없는 여유가 마음에 걸립니다." 마음이라도 읽은 듯 세자트는 눈가를 찌푸렸다. 평범한 하 녀는 아니리라. 카느의 앞에서 당당한 하녀라니, 말도 되지 않 는다. 그렇다고 정말 마스터라 보기에는 그의 상식이 가로막았 다. 게다가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보여줬던 그 여유라니! "정말로 마스터라고 생각한다면, 그 날 네 그림자가 접근했 었을 때 오히려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았던 일 까지 말씀하 게 풀리는 셈이겠지." 마스터에게 룬 정도의 그림자가 위협이 될 리가 없었을테니 까. 그렇게만 해석한다면 지금까지 걸렸던 모든 의문은 해결이 다. "네.........." 대신 더 큰 의문이 남겨질 뿐. 세자트는 점차로 길어지는 실내의 햇살로 눈길을 돌렸다. 맑은 창문으로 펼쳐진 바깥 세 상이 오늘따라 색다르게 보였다. "날씨는 맑군요." 우트트 역시 하룻밤의 긴장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때 였을까. -우르르르르르르르르- 뼛속까지 공명될 듯한 지독한 울림과 함께 창문이 틀을 바 수기라도 할 듯 심하게 흔들렸다. 단 한번도 지진이 난 적이 없는 사막의 땅에 울린 진동에 우트트의 몸이 튕겨지듯 일으 켜 세워졌다. "흠.........................." ".....................지진인가?" 마주친 두 사람의 눈에서 문득 공포가 흘러갔다. 살을 에일 듯한 살기. 이건 지진이 아니었다. ****성실과 불성실을 마구 오가는 은빛입니다. 당분간 성실모드 연재^^...랍니다~ 18일은 푹 쉬고~ 19일 열쉼히 썼습니다만, 의외로.. 어렵군요. 앞으로는 약속 안하렵니다. 긁적.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6-카느와 검후 "그만둬." 중압감이 베인 목소리에 무트의 발걸음이 멎었다. 난데없이 치솟은 살기에 겁에 질린 사람들이 그의 곁을 스쳐 달려나갔 다. 무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머리 위쪽, 높다랗게 뻗은 나 뭇가지 위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글세." 딱딱하게 얼어붙은 무트의 눈동자에 금아의 파란 눈이 마주 쳤다. 담담함. 모두가 질려있는 지금 금아의 담담함은 오히려 두려움을 전해주고 있었다. "크, 허허허허헛!"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달아나던 사람 하나가 그에게 부 딪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성을 압박하는 본능적인 떨림. 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정신도 없었다. 그는 떨리는 팔다리로 기고 뛰며 무트에게로부터 다시 멀어져갔다. 금아가 훌쩍 뛰어 내려, 그에게 시선의 높이를 맞췄다. 무트의 다리가 저도 모르 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살기도 투기도 없었음에도 온 몸을 압 박하는 또 다른 위압감. "네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우르르르르르- 땅울림이 전해져왔다. 점점 더 가깝게 울려오는 진동. 금아 는 씁쓸히 미소지었다. 겉이야 어쨌건 속으로는 적지 않게 흥 분했을 란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졌다. 또다시 기운이 요동쳤다. 무트는 자신도 모르게 두 팔로 스스로를 끌 어안았다. 부르르르 몸이 떨려왔다. 살기. 투기. 언젠가의 그 날 느꼈던 것만큼 절절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의 감각을 능가 하는 위엄과 위압감이 가득 베어 있는 견디기 힘든 감각. "................." 낮고도 긴 한숨이 금아로부터 흘러나왔다. 긴장감으로 똘똘 뭉친 클레이브와 클로네는 지독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새벽 나절 잠에서 깨어났다. 당장이라도 황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간청이라도 해서 란을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날뛰는 어린 주 인의 혼혈을 짚어 침대에 뉘이고 금아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 다. 뭔가 말을 꺼내려던 하르크는 가벼운 목례로 그를 배웅했 다. 희끄무리 해가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사방이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문득 불안해졌다. 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 까. 무슨 생각을 하기에 이 시간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 666는 것일까. 아니, 침묵을 지키는 게 아니라... 만에 하나라도 그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란의 힘으로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프란의 황궁이 지어질 당시 지하감옥에 대한 소문이 분 분이 나돌았었다. 황궁 건축의 백미가 지하 감옥이라니. 여느 나라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지난 백여 년 간 사람들의 뇌리에 마스터라는 존재들의 힘이 얼마나 강렬하게 자리잡았 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프란과 같은 조그마한 사 막 부족을 모아 제국을 건설한 카느가 수 없이 많은 사막 전 사들의 정신을 휘어잡을 뭔가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제국의 힘 앞에서는 아무리 마스터의 힘이라도 무의미함을 주 장하고 싶었겠지. 사실, 거칠고 자신의 힘만을 숭상하는 수 많 은 전사들의 기를 휘어잡는데 저 지하감옥은 이미 상징적인 위력을 놀라울 정도로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랬었는데, 땅속을 휘저으며 난데없이 폭발하는 이 투기라니... "휴우우우우." 한숨만 내쉬는 금아의 모습에 무트는 선득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사위는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처음의 충격에서 슬 슬 풀려나기 시작한 사람들까지 밖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전 날의 중앙절 분위기에서 덜 깬 취객들의 놀란 아우성과 비명. 시끄러웠다. 난데없는 기운의 폭풍에 놀란 말들이 날뛰고, 새 들이 날아올랐다. 작은 들짐승들과 곤충들이 선잠에서 깨어나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마치 멸망이라도 다가오는 듯한 두 려움이 모두를 둘러싸고 조여왔다. -우르르르르르- 둔중한 진동이 다시 울려왔다. 발 아래서부터 또다시 전해 지는 공포감에 무트는 자신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음을 보았 다. 이를 악물었다. 피맛이 비릿했지만 자존심이 구겨져 견디 기 힘들었다. 지금 누가 옆에 있었던가!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무인인 금아가 아니던가. "어, 어디로 가십니까!" 물끄럼히 바라보던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고, 달려가는 사람 들과 달아나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금아 의 발걸음이 내딛어졌다. "보기 위해서." "네?" 미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미소가 금아의 얼굴에 걸렸다. "내 평생의 목표이자 넘을 수 없었던 존재의..." 문득 금아의 모습이 무척이나 슬퍼 보인다고 무트는 생각했 다. 꿀꺽 마른침이 무트의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금아는 피 식 소리내 웃었다. 무트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 섰다. 살기도 아니고 지금 느껴지는 듯한 투기도 아닌 미묘한 기운. 그러나 결코 쉽게 넘겨지지 않는 무언가가 그를 자꾸만 조이고 있었다. 무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두 다리에 다시 한번 힘을 가하고 어깨를 폈다. "그래. 아직은 힘들겠군." 금아가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순간 숨쉬기가 훨씬 나아졌다. 창백하게 질렸던 무트의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금 아는 무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진동이 울려오는 쪽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금아님은 괜찮으십니까?" 조금 붉어진 얼굴과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 전사이기를 원 하는 사람의 자존심 구겨진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사실은 나도 아닐세." 무트의 어깨에 돌린 손을 확 조이며 어린 동생의 목을 조이 듯 장난스럽게 머리를 맏댄 금아가 킬킬 웃었다. 익숙하지 않 은 행동에 당황해 발버둥치는 무트의 반응이 무척이나 유쾌했 다. '아아, 이 맛에 란님이 그리도 날 갈구시는 거였어...' 질질 잡아 끌 듯 옮겨지는 금아와 무트의 걸음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자아, 자, 이제 슬슬 정말로 그 무적의 하녀가 얼마나 뻔뻔 하길래 이런 짓까지 벌렸는지... 한번 보러나 가볼까?" 매캐한 돌먼지가 자욱했다. 육안으로 한치 앞도 보이기 힘 들 정도로 꽉찬 돌가루들을 불리며, 와르르르 또 하나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엷게 나를 둘러싼 기의 막 뒤편으로 기사들의 기침소리가 멎지 않았다. 철그렁 철그렁 쇳소리들을 음산스럽 게 울리며 그들은 악착같이 날 뒤따라오고 있었다. 하긴 능력 이 되면 따라와도 좋다고 말 한건 나였지만... "잠깐." 신기할 정도로 한 순간에 소음이 멎었다. 바짝 얼어있는 그 들의 신경이 바스락 소리내어 부서질 듯 가늘게 내 뒤통수를 향해 있었다. 골치가 지끈 쑤셔왔다. "휴우..." 내 한숨소리에 맞춰 마른침 삼키는 소리들이 산발적으로 터 져나왔다. 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기의 막을 넓힘에 따라 그 들과 나 사이를 꽉 틀어막고 있던 돌가루들이 밀려났다. 깔끔 하게 밀려나는 먼지들을 바라보며, 기사들의 눈이 화등잔만해 졌다. "마, 마법....!" 떡 벌어진 입에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한 기사가 중얼거렸 다. 풀려버린 눈동자 속에는 그들이 막아서야 할 '하녀'의 존재 를 막을 투지나 기백은 터럭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법은 아닙니다." 이전에도 느꼈던 바이지만, 툭 하면 마법이다. 이 서대륙에 만연한 마법이라는 그 신기한 힘에 대한 두려움은 무인의 상 상력을 아주 쉽게, 그리고 잔혹하게 틀어막는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반박은커녕 대구도 하지 못했다. "제가 왜 멈춰섰는지 아십니까?" 황급히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기사들은 잠시 웅성였다. "제게 덤비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지금 상대해 드리겠습니 다." 바닥에 널부러진 커다란 돌덩이를 보란 듯이 발로 툭툭 찼 다. 기사들의 어깨가 모두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꿈틀 했 다. 옛 피디아의 기사들은 겁은 먹었을지언정 덤비기라도 했었 는데... 국가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아직 각자의 부족에서 몸에 베인 '강자에 대한 경의'가 강했기 때문일까. 처음 날 가로막고 있던 쇠창살을 마른 수수깡 자르듯 베어 넘기고 앞으로 나와, '이쪽 방향이었죠?'를 시작으로 최초의 벽을 일검에 무너트린 이후로 이 자들은 말을 잃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와서 새삼스 럽게 내게 덤빌 마음을 품을 리가 없으리라. 다만... "싸울 의향이 없으시다면, 그 검들은 어떻게 좀 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자꾸만 뒤통수가 따끔따끔한 게, 손을 붙잡아두 기가 힘들어지는 걸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검을 보란듯이 뽑아든 작자들이 줄 줄이 날 뒤따라온다는 점이. 내 동지도 뭣도 아닌 자들이 말이 다. 흠짓 기사들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얼굴을 있는데로 구긴 폼들이 아주 반항적이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큭." 내 웃음을 뭐라 해석했는지 순식간에 철거덩 철거덩 여덟 자루의 검이 추락하는 쇳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들 이 울렸다. "음?" 내 손에 있는 한자루를 제외하면 그들의 손에 있을 검은 모 두 아홉. 난 나머지 한 자루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크흑!" 주춤 뒤로 물러서면서도 꿋꿋이 검을 쥐고 있는 자. 그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집어넣었다. "겨, 겨눌 생각은... 없소." 핏기없이 질린 입술이 가느다랗게 움직였다. 아주 느린 동 작으로 두 팔을 들어 보이며 그는 내 눈을 응시했다. "네." 아주 천천히 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난 검을 버리라는 말 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아는 검사란 검을 쉽게 버리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충분합니다. 기사여." 당신들이라는 말로 싸잡았던 그들 중 유일하게 기사라 불린 자의 볼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자아, 이제 막판 작업을 들어가 볼까요?" 머리 위쪽으로 지상으로 나가는 한 층의 두께만이 남아있었 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차곡차곡 한 구멍씩 무너트리며 차 분하게 이동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화려한 눈요기꺼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빌어먹을 힘만이 증명하는 세상에, 이런 하녀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흰 옷으로 둘러싸여 있던 검에서 눈부시게 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하기 힘든 강렬한 빛, 그리고 검신 그 자체를 능가하는 길다란 형체. "크, 큭!" 동대륙의 언어로 검강이라 불리는 것. 말을 잊고 눈이 빠져라 검만을 바라보는 저들이 듣기를 원한 건 아니었다. 이건 내 자신의 바램이었다. "황궁을 부실하게 지으시진 않았겠죠." 내 나름대로 얼마나 세심하게 벽을 바수어가며 올라왔던가! 굵직한 기둥 비슷한 벽들을 피해가며, 건축에는 문외한이기는 했지만 내 나름대로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벽과 천장을 뚫어가며 여기까지 일직선으로 달려왔던가! "게다가 그 백미인 지하감옥일진데! 마스터를 가두기 위해 만 들었다는 기막힌 곳 일진데!" 내 검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더 이상 빠질 핏기조차 남아있지 않던 기사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얼마만의 힘의 분출인가! 온 몸의 세맥 하나 하나가 살아 숨쉬는 듯한 해방감에 난 몸을 떨었다. 웅장한 힘의 흐름이 내 손을 타고 검으로 뻗어 나가며 공간을 가로질렀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형용하기조차 힘든 굉음이 뼛속까지 진동시키며 울려 퍼졌다.... 동대륙의 용과 같은 형상의 기운이 뚜렷한 형체를 이루며 눈앞의 모든 것을 바수어 날아갔다. 당분간 성실모드 연재^^...랍니다~ 내내 컴 앞을 지켰습니다만... 글이 안써지네요, 이런, 이런...마감 지났는데...ㅡㅡ;;;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7-카느와 검후 "화, 황궁으로 달려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가요?" 황궁이 코앞에 있음에도 더 이상 발걸음을 딛지 않고 정문 언저리에서 굳건히 멈춰선 금아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무 트는 속이 바짝 탔다. 튼튼한 강철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형상 의 문이, 마치 폐가의 그것인 냥 삐걱삐걱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요란스레 울어댔다. 한 무리의 새들이 햇빛에 가려 검게 어두워진 날개를 퍼덕이며 머리 위를 스쳐 날아갔다. "아니." 금아는 오히려 여유로웠다. 점점 더 강해지는 땅의 진동과 요동치는 살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는 미소짓고 있었 다. "자네, 란님의 살기가 설마 이 정도가 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자신마저도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던 그 날에 비 한다면 이 정도쯤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아직 서대륙 특 유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이 어린 검사는 이해할 수 없겠지 만, 인간이란 존재가 검을 듦으로서, 혹은 자신을 갈고닦으면 서 갈 수 있는 경지란 그 한계를 지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금아도 백년이나 걸려서 깨달아야 했다. 다시 만난 란을 만나 기 전까지, 그녀의 하녀행을 보기 전까지 은연중 스스로 더 이 상의 경지는 없을 거라고, 그가 이제 최강자라고 믿어왔던 스 스로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 젊은이는 언제쯤 알게 될까.' 눈이 생기기 전까지는 보아도 모른다. 란의 압도적인 힘이 라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보아서 알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경지가 필요하다. 무트의 나이 역시 녹록치는 않아 이제 마흔 을 바라보건만, 금아의 눈에는 아직, 자신 스스로의 경지조차 정확하게 가늠치 못한, 처음 만났을 때의 어린 청년일 따름이 었다. 금아의 손이 무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자아, 너무 걱정은 말게나." 염려 반, 우려 반의 무트의 얼굴을 바라보며 금아는 한껏 미소지었다. "황궁을 무너트리고 위협을 가하고자 했으면 지금껏 저렇게 황궁이 서 있지도 못할 걸세." "네에?" 어딘가 공포스러운 흰 이를 드러내며 시익 미소짓는 금아의 손가락이 황궁의 앞뜰을 향해 뻣어 있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머리가 터져버릴 듯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아무리 담대했던 자라도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르게끔 만 드는 거대한 굉음! 무트의 몸이 순식간에 내리 앉았다. 머리를 감싸안고 바닥으로 몸을 바짝 낮췄다.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 던 폭발! 그 어떤 마법사라도 한번에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가꾸어졌다는 화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세찬 압력에 뿜어져 나온 돌과 흙들이 돌개바람을 타고 날아 올랐다. 폭풍에 휘말려 곱게 심어져 있던 정원수와 화초들이 뿌리채 뽑혀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그 중앙으로... "커, 허허허허헉!" 흰 빛을 뿜어내는 커다란 무언가가 길다란 동체를 들어내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순식간에 새벽 구름을 뚫고 사라져 버렸 다. 순간적으로 정신과 온 몸을 마비시켰던 굉음의 충격에서 일찍 벗어나 황궁을 지키기 위해, 혹은 황궁에서 달아나기 위 해 밖으로 쏟아져 나왔던 몇몇 사람들의 고개가 하늘로 향했 다. 희뿌연 돌 먼지를 뚫고 그들의 눈에 잠시 모습을 들어낸 흰 것. "드, 드래곤이다아아아아!" 대지를 파괴하고, 저 드넓은 황궁 정원을 단숨에 폭발시키 며, 이 거대한 바람을 조절해 하늘로 치솟을 수 있는 존재! "으아아아아악!" 거대한 굉음도, 머리 꼭대기까지 날아올라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모래바람과 땅으로 떨어지지 않은 돌과 나무도 그들의 관심을 잡아두지 못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서, 설마?" 잔 경련이 가시지 않았다. 무트는 버들버들 떨리는 손으로 하늘을 가르쳤다. 믿을 수 없었다. 드래곤이란 전설에나 등장 하는 존재였다. 몇몇이 실존하고, 간혹 이야기 전집에서 인간 으로 등장한 그들의 이야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 나 이야기일 뿐이었으니까. "그, 하, 하녀...가?" 입 끄트머리가 푸르르르 떨렸다. 무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듣고싶지 않은 게 솔직한 그의 심정 이었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느릿한 동작으로 고개 를 다시 돌린 금아의 파란 눈빛이 무트에게로 향했다. 낮은 한 숨, 무트의 온 몸에 소름이 연이어 돋았다. "후우....."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돌덩이들과 나무들이 위협적 인 소음들을 만들어내며 땅으로 추락했다. "으, 으아아아악!" 겁먹은 사람들의 달아나는 소리, 지독히 불행하게도 그 아 래 깔린 사람들의 단발마의 비명! 놀란 사람들의 비명! 아우 성! 황궁 정원이었던 곳을 둘러싼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소리 질렀다. 잠시 굳어졌던 금아의 입가가 가볍게 떨렸다. 금아를 둘러싼 투명한 막이 조금씩 자라나 무트를 감싸안았다. 무트의 놀란 눈이 금아에게로 또다시 향했다. 나지막한 금아의 목소리 가 또렷히 무트의 귓가에 닿았다. "...듣고싶나?" 무트와 금아만이 정적에 쌓여 있었다. 다시 몸을 돌린 금아 의 시선이 향해져 있는 곳에는 어른 열명 정도의 키를 합해놓 은 만큼의 지름이 뚫린 거대한, 흩어진 돌과 나무들의 파편으 로 입구를 장식한, 마치 지옥의 대문 같은 구덩이가 패여 있었 다. "........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구덩이 안에서 어울리지 않는 흰 빛이 솟아 나왔다. 아침의 붉으스름한 해를 가를 듯 일직선으 로 창공을 향해 세워진 길다란 빛. 호기심이 잠시 밀어냈던 두 려움이 또다시 무트의 심장을 점령했다. 몇 번이나 악물었는지 너덜너덜해진 입술에서 물컹 피가 베어 나왔다. "그녀는 드래곤이 아니라네." "그, 그럼!" 조금 화색이 도는 무트의 어깨를 금아가 지긋이 눌렀다. 무 트의 한쪽 볼 살이 바들 떨렸다. 금아는 작게, 그러나 너무나 도 단호한 몸짓으로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 천하의 란이 겨우 그 정도라고 생각한 건 아니 겠지? 그렇겠지? 무트?" "....................." 겨우 저 정도라니! 겨우 저 정도라니! 삼십 년을 가꾼 정원 과, 삼십년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낸 프란의 자랑스 러운 지하 감옥을 저렇게 무저갱처럼 뻥 뚫어낸 것이 겨우란 말인가! 힘만 된다면 당장 때려 죽이고싶은 무트의 마음을 아 는지 모르는지 금아는 태연자약했다. 그가 구덩이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채 가라앉지 않은 먼지들 뒤로 처참한, 더 이상은 정원이라 불릴 수조차 없는 황궁의 앞뜰이 희미하게 보였다. "보게나. 어찌 되었건 간에 황궁의 본관 그 자체는 무사하 지 않은가." 무트의 입이 벌어졌다. 넋을 잃고 앞에 벌어진 참혹함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는 무트에게 금아의 말은 허무하기 짝이 없 었다. 그런 무트의 몸은 또다시 굳어야 했다. "그녀는 늘 당당한 것을 좋아했지." '다, 당...당?' 금아의 시선에 무트에게서부터 떠나갔다. "그래. 당당한 정문을 두고..." 무트의 고개가 아주 느리게 금아의 시선을 따라 돌려졌다. "뭣 하러 뒷구멍을 만들어 들어가는가 말일세." 무트의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럼 지금 이 난리가! 지금 황궁의 앞마당을 모조리 박살내고 지하로부터의 이 어마어마한 구멍을 뚫은 이 유가 단지! 단지! "그렇지요? 란님?" 온 몸이 파르르르 떨었다. 무트는 자신이 어떻게 고개를 돌 렸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공포스러운 하 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금아에게로 고정되어 있던 하녀의 시큰둥한 눈빛이 무트에게로 돌려졌다. "당연하지. 내가 뭐 죄지은 게 있다고 구린 간신배처럼 뒷 구멍으로 숨어 들어간단 말이야!" 표현할 수 없는 압력!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무트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부여잡았다. "대 프란 제국의 카느께서 초대하셨으니 당당하게... 정문으 로 들어가 줘야 하는 게 예의 아니겠어?" 고개를 잔뜩 처든 하녀의 웃음이 진하게 피어났다. 흐릿한 시아. 때 한점 없는 분홍빛 드레스가 악마의 저주처럼 무트의 눈가를 어른거렸다. "커....억..." 그게 그 날 무트가 본 마지막 영상이었다. "어라라라라?" 금아가 왠 일로 낯익은 누군가를 정겹게 데리고 서 있나 싶 었더니만 재대로 말 좀 걸어볼까 하는 순간 풀썩 쓰러져 버렸 다. 금아가 나름대로 기운을 갈무리해 주고 있었다고 생각했는 데... 아직 수련이 부족했던 탓일까. 얼굴 골격이 눈에 매우 익 숙했다. 가끔 금아를 찾아오던 아르카이아 무술 교관이라던 그 였다. 무트. "뭐야. 무인이듯 싶었는데 이렇게 쉽게 기절하다니." 심약한 자가 검을 드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나름 대로는 강한 축에 드는 자라고 상상하고 있었는데... 근육질 덩 어리 무트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곱게 눕힌 금아가 힐끔 고개 를 들었다. "아, 아... 아직 어려서 말입니다." 무트의 옆으로 엎어진 귀밑머리로 희끗한 새치가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었다. 아는 지 모르는지 금아의 발끝이 슬쩍 흙을 날라 무트의 흰머리를 가렸다. 약삭빠른 놈. "늘 그렇듯 깔끔하시군요." 어울리지 않게 생긋 웃는 금아의 눈이 주름살 한 점 구겨지 지 않은 내 분홍빛 드레스로 향했다. "네가 손질해 줄 것도 아니잖아." 먼지 한 올 타지 않게 하기 위해 난 평범한 하녀인척 하는 그 순간에도 드레스 자락을 바닥에 놓지 않았다. 하긴 신설 감 옥인데다 아직 그런 지하감방에 갇힐만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 인지 내가 갇혀있던 곳은 감옥치고는 굉장히 깨끗했다. 그 때 문이기도 하겠지. "휴우, 그러실 줄 알았어요. 굳이 사람들 부딛히지 않고 벽 을 뚫고 나오신 이유도 그러시겠지만." 움직이지 않는 벽이 움직이는 사람보다 편한 건 당연한 이 치다. 물론 그 벽을 두부 으깨듯 부수어 버릴 힘이 있을 경우 에 한해서... 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미 다들 난리가 났습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된 듯 한데... 계속해서 그렇게 투기를 내뿜으실 예정 인가요?" "상관없잖아. 아직 카느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금아는 우려 섞인 얼굴이었다. "카느는 노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강함을 초월한 또다른 강함을 지닌 자 이지." 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라는 개인이 아무리 강한 무력 을 지녔던 들 꺾일 자가 아니다. 그런 자였다면 이 강인하고 도전적인 사막의 부족들을 묶을 수 없다. 동대륙의 역사에서도 수도 없이 보아왔다. 무인과 제왕은 다르다. 무인이 검을 든 자라면 제왕은 검을 든 자의 마음을 든 자이다. 충(忠)이라는 한 글자로 모든 이의 심장을 지배하는 자. 내 세상에 대해 관 심도 없었기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카느를 보고 떠올렸다. 그런 존재가 황제이며 제왕이다. "하지만... 병석에서 오랜 세월 고생하던 자이기도 한데..." 금아는 여전히 밝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철그렁, 철그렁, 내 뒤쪽으로 감옥에서부터 따라온 기사들이 줄줄이 섰다. 금아의 말에 공감이라도 하듯 그들은 애처로운 기운을 내 뒤통수로 쏘아보냈다. "너무나도 모르는군." 난 뚜렷히 보이도록 크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자신들의 카느가, 그 오랜 시간동안 지켜봐 온 존재가, 어 떤 자인지를 말이야." 피식. 문득 카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힘 으로 주춧돌이 되어 이 거대한 땅을 재패하고 물을 끌어들여 제국을 건설했건만, 그의 성(姓)이었던 이름 '카느'를 황제와 동의의 단어로까지 만들어 낸 거인이었건만, 그가 이루어낸 땅 에서 사는 자들은 그를 오직 늙은 자로만 생각했다. 알아주는 이 없음이 얼마나 건조하며 견디기 힘든 삶이었던가. 나 역시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광검자를 만나고 수강을 만났으며 노도를 찾아가지 않았던가. "그는 진정으로 강한 존재다." 알아주는 이 없는 외로운 이인 동시에 말이다. "카느 납시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웅장한 목소리가 마나의 울림을 빌어타고 터져 나왔다. 음성을 크게 만드는 마법. 조금씩 조금 씩 준비라도 해 둔 듯 정렬한 기사들의 중앙에 어젯밤의 그 늙은 존재가 활짝 떠오른 아침의 밝은 빛을 받으며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서 있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군." 가슴이 설랬다. 당분간 성실모드 연재^^...랍니다~ 요즘 연재량이 조금 짧네요... 알기는 하지만...ㅡㅡ;; 글이... 정말로... 정말로... 잘 안나오는군요. 쿨럭! 퇴고도 안거친 글을 올릴 수도 없고...ㅠㅠ 지금도 오타난무인데, 그나마 퇴고도 안했다가는...ㅡㅡ; 쿨럭. 아, 그리고 전편의 666에 대한 해명입니다. 우리 멍군이...가... 안놀아주고 글만 쓰는 제게... 항의했던 흔적이랍니다. 언제 밟고 썼는지... 까맣게 몰랐다니까요,. 고치고는 싶었지만... 그 시간에 차라리 새 글을 쓰자~ 쿨럭! 용서를! 그건 그렇고, 그 많은 키보드 판중에 하필 6을 골라 세번 누른 우리 멍군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쿠헤헤헤~!!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8-두 존재의 만남 "올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옆 사람에게조차 간신히 닿을만한 작은 목소리가 카느의 칼 칼한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쿨럭. 가래낀 낮은 기침소리. 해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간밤의 찬 공기가 대기를 떠돌고 있 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피워 올린, 아직도 채 가라앉지 못하 고 시아를 희뿌옇게 막고 있는 먼지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 괴로운 울림의 기침소리들은... 카느는 그런 먼지들은 개의치 않는 듯 힐끔 구덩이를 바라본 후 내 쪽으로 빙긋 미소지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왔군." 그의 뒤로 움크와 우트트가 나란히 서 있었다. 딱딱하게 굳 은 얼굴 근육에 잔 경련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두 우그르트의 눈이 황궁 정원을 온통 파헤친 커다란 구덩이로 향해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기사들의 철그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은은 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 "이런, 이런... 상상외로 안목 없는 자들이 많군요." 그들의 기색을 면면히 살피던 금아가 낮게 혀를 찼다. 그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 자들의 눈에는 나와 내가 벌린 일들이 어떻게 비쳤던 것일까? "그, 흰... 커다란 것은 무엇이었는지요." 뒤편에 서 있던 기사들 중... 유일하게 기사다웠던 그가 구 덩이를 빠져나온 후 처음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무어라 생각하지?" 난 카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되물었다. 노쇠한 자의 눈 빛이라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큼 강한 의지와 반가움을 담은 그는 마치 노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모르겠습니다. 어떤 존재인지. 검에서 뿜어져 나가 땅을 폭발시킬 수 있는 존재란.... 정령?" "글세." 난 대답하지 않았다. 난 이미 모든 것을 증명했다. 보고 순 수히 받아들이는가 아닌가는 더 이상 내 몫이 아니었다. "무릎을 꿇어라!" 가까이 다가온 카느 일행의 발걸음이 멎었다. 상황파악에 여전히 어두운 기사 하나가 목청껏 외쳤다. 힐끔 바라본 금아 의 눈에 삐딱한 미소가 걸렸다. 푹 패인 구덩이 너머로 카느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하긴, 가겠다고 한 건 나였지 카느가 아니었으니까." 몸이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한 발 한발 허공을 딛고, 난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마법사처럼 카느의 앞에 섰다. "헉!" "검사... 가 아니라 마법사였던가?" 불신과 경악, 그리고 아직도 무지에 물든 눈동자들이 폐허 를 가로질러 그들에게로 다가가는 내게로 쏠려왔다. 나는 아주 느릿한 걸음으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약속대로 정오가 되기 전에 찾아왔습니다." "그렇군." 울그락 불그락 기사들의 면면에 신경쓰지 않는 듯 카느는 주름진 얼굴에 한껏 미소를 그려냈다. "그래, 내 감옥은 어땠나?" "새 감옥이라 그런지 의외로 쾌적했습니다." 카느의 노안에 살짝 실망의 빛이 흘러갔다. "건축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건 아니었네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가 장담했던 이 서대륙의 마스터라면 충분히 그 앞길을 막아둘만 해 보였습니다." 검을 대 보고서야 알았지만 감옥의 문을 막고 있던 쇠는 아 주 특별한 강도를 지니고 있는 놈이었다. 검이 처음 맞닿는 순 간 나도 놀라야 했으니까. 첫 검부터 체면을 구길 수 없어 황 급히 기를 쏟아부어 어렵지 않은 듯 베어냈지만, 상상외로 그 지하감옥은 쓸만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한 때 난공불락의 감옥 이라 불렸던 피티아의 그것과도 차원이 달랐다고나 할까. 최소 한 금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라면 반나절을 넘어 몇 일, 잘 쓸 경우 몇 주 정도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헤매 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뭐, 노도의 손길이 닿기라도 한다면, 나 역시 몇 일, 몇 달 정도는 헤매야 할지도 모르지만... "후우....." 진위를 살피려는 듯 카느는 잠시 내 표정을 살폈다. "내 심혈을 기울였던 이 황궁이..." 아쉬운 듯 무너진 정원으로 힐끔 시선을 다시 한번 던져보 며 카느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더 망가지기를 원치 않았지." 직접 밖으로 나선 늙고 초라한 육신의 거인이 말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말 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내 존재를, 내가 벌린 일들 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몰랐다. 단, 그는 약속을 지 킬 자였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아." 무너진 황궁 정원에 서 있던 존재는 란과 카느만이 아니었 다. 모습을 가린 세 신 역시 떡 벌어진 입을 가누지 못한 채 휭 하니 풀린 눈동자로 란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휴우. 그래도 피티아의 교훈은 나름대로 기억하고 있었나 보군..." 관자놀이에서 손을 떼며 적호는 입맛을 다셨다. 옆쪽에 서 있던 아르의 눈초리에 살기가 맴돌았다. "지금... 저 꼴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그럼, 백여 년 전의 그 날처럼 저 황궁의 주춧돌까지 무너 지고 카느 이하 모든 황족들과 무인들이 굴비 꾀듯 줄줄이 죽 어 나자빠져야 되는 거였나?" 이래저래 란을 향한 관찰의 눈을 뜨고 있던 적호였다. 오디 아누 관문의 숲에서, 외뿔 엘프들의 숲을 이번만큼은 지킨다며 날뛰던 란이 결국 해 놓았던 짓을 적호는 알고 있었다. 아주 조금의 진전일 뿐이겠지만, 주위를 보지 않는 것과 보기 시작 한 것은 그 차이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컸다. "그렇지는 않지만..." 입맛을 텁텁 다시며 아르는 인상을 잔뜩 구겼다. 우려했던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나온 건 더더 욱 아니었다. "아르페이나. 어떻게 할거지?"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신관들은 란의 살기가 대지를 뒤흔들 고서야 눈을 부비고 깨어났다. 아르페이나가 반색하고 신탁을 내릴 틈도 없었다. 공포에 질린 자의 마음이 열릴 리가 없었 다. 막연하게 아르페이나의 이름을 외치면서도 오직 자신의 안 위에 온 마음이 쏟아진 자들은 아르페이나의 신탁을 고스란히 튕겨내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우성과 비명소리. 사람들이 뿜 어내는 혼돈의 감정이 온 대기를 혼탁하게 물들였다. "글세." 이 프란이 아르페이나의 본 영역이 아닌 탓도 있었다. 전쟁 의 신 아르와는 달리 아르페이나는, 강력한 힘만을 숭상하는 프란인들에게 그다지 의지하고픈 동기를 주는 신은 아니었다. 타고난 환경에서 길러진 기질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 "일단은 보고. 그에 맞는 신탁을 내려줘야겠지." "사후 약방문인 격이기는 하겠지만..." 빈정거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망은 분명히 담겨 있었다. 아르페이나의 귀 끝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명치 언저리에 묵 직한 돌덩이가 틀어박힌 것 같았다. 가슴을 몇 번 크게 두드리 며 아르페이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화를 낼 기운조차 그녀에 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제가 ... 순간 지나쳤습니다. 용서를." 힘없이 미소지은 적호가 머뭇머뭇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역시 잘 한 일은 없었으니까. 최초의 결정에 동의했던 이상, 지금 와서 상황이 조금 불리하게 꼬인다고 혼자 벗어나 보자 며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무신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더더 구나 지금은 아르페이나의 도움이 각별했다. 아르페이나의 길 게 흩트러진 머리칼이 털래털래 흔들렸다.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젠장할... 저 모자란 놈들이..." 정적을 깨트린 건 빠드득 이갈리는 소리였다. 기다렸다는 듯 돌려진 아르페이나와 적호의 시선에 비친 아르는 오만상을 구긴 채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떨어대며 분노를 터트리던 참이었다. 반가워야 할까? 적호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삼켰 다. "뭐지? 아르?" "제기랄! 기껏 정리되나 싶었더니만! 저 어리석은 인간들의 작태를 보라고!" 빠드드득. 눈썹이 역팔자로 꺽인 적호의 입가에서도 이 부 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컥 막혔다. 어이없는 일도 정도 가 있는 법인데! "카느시여! 저런 미천한 자의 말을 믿으시나이까!" 혈기왕성하다 못해 일찍 죽고싶기라도 한 건지 은빛 갑옷 을 잘 닦아 입은 기사 하나가 카느의 옆에서 고래고래 나름대 로의 충언을 쏟아 붓고 있었다. "저, 저 인간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저리 무덤을 파고 있 는 것인가!" "젠장할! 내 말이 그 말이란 말일세!" "..........." 떡 벌어진 아르페이나의 입에서는 그나마 한탄도 흘러나오 지 못했다. 스르르르 기울어지는 여신을 붙잡으며 적호와 아르 는 세상이 꺼져버리는 듯한 절망감을 맛봐야 했다. 쥐가 궁지에 몰려 고양이를 물어뜯을 때의 감정이란 저런 폭발들일까. 비난받아 마땅했을 내가 이렇게 용서받는 듯 넘어 가는 게 그리도 분개할 일이었을까? 지금 내가 은근히 뿜어내 는 투기를 잊을 만큼? "거대한 빛을 발하는 동체가 저 구덩이로부터 날아올라 구 름을 뚫고 사라졌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서 들어왔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라는 말로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날 놓 아주려던 카느의 말에 정면으로 반발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개판이군.' 아무리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카느이다. 부족 적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프란인의 성격상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주더라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바른 소리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충언도 역언이어서는 옳지 않다. 그건 최악의 선택이며 어쩔 수 없을 때의 선택이다. 충언도 좋 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하녀 하나를 용서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극단적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카느는 제국을 말아먹을 만한 실수를 하지 않았다. 카느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었다. 이리할 수는 없다. 최소한 나와 같은 이방인이 있는 자리에서 저리 방종하게 굴 어서는 안된다. 말리려면 날 용서하기 전이었어야 했다. 이미 떨어진 말을 주어 담으라고 카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얼마전의 알 수 없는, 드래곤과 같은 존재의 것이라 추정 되는 살기가 아르카이아를 엄습한 적도 있사옵니다. 그 모든 것이 오늘 지하를 뚫고 날아간 그 존재의 것, 즉 드래곤의 것 이라고 한다면!" 게거품을 물고 소리지르며 그 자는 카느의 앞에 나와 무릎 을 꿇었다. 잘못 보면 대단한 충신이라도 되는 듯, 그는 너무 나도 당당하게 그의 주인을 무시했다. 그런 작태에 고무되기라 도 한 듯 또 한 놈이 나와 철거덕 무릎을 꿇었다. "사막 전사의 이름을 걸로 말씀을 올리나이다! 카느시여! 속지 마소서! 방금 전의 소란에는 드래곤이 있었다 하옵나이 다! 저 발칙한 하녀는 감히 우연을 틈타 빠져나온 후 카느를 속이려는 것이옵니다!" "보소서! 그녀를 막으라 보냈던 저들이 어찌 무사한 것입니 까!" 힐끗 돌아본 내 뒤의 기사들의 표정이 똥 씹은 듯 일그러졌 다. 내 표정은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잠시 눈이 마주친 금아 가 질린 얼굴로 머리를 설래설래 저어댔다. "공교로운 우연이라 할 지라도 좋지. 때마침 드래곤의 난동 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 또한 운명일세." 뒤쪽에서 보다못한 우그르트 우트트가 앞을 가로막고 나섰 다. 비록 자신을 따를 자들이라 하더라도 과잉 충성의 기사들 에 의해 카느의 입장이 구겨지는 건 막아야 했다. 카느의 입술 은 굳게 닫혔다.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어리석은 자들. "드래곤의 흔적이라면 그 또한 영광이지. 하룻밤만에 부서 지기는 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를 짧은 시간이나마 이 곳이 전설의 종족을 잡아둘 수 있었다면... 기분 삼아 하녀 하나쯤 놓아주어도 되는 경사겠지." 오만상을 다 구기고 나만을 노려보는 움크와는 달리 우트트 는 분위기를 정돈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기운의 근원지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라니! 감당하기 힘 든 기운에 머리가 얼어 버렸는지도 모르겠군요.- 머릿속으로 울려온 금아의 말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다들 이성이 마비된 듯 보였으니까. -침착한 둘째 우그르트마저 저렇게 말 할 정도라면, 카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아, 저 란님을 따라온 사람들 은 예외이겠습니다만, 오늘의 일이 란님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방금의 소동이 저 하녀의 것이 분명하다면, 그런 정도의 자가 자신을 모독하고 지하감옥에 가둔 저들을 왜 그대로 두 었겠습니까!" 움크 뒤편에서 나온 호화스러운 비단옷을 걸친 자가 손가락 을 번쩍 들어 우트트의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던 자를 비 웃었다. 파직. 소리라도 들린다면 참 어울릴 텐데. 두 패로 갈 라진 귀족들 사이에 전류라도 흐르는 듯한 적대감이 순식간에 자라났다. "그들은 증인이니까요." 짜증이 올랐다. 가장 중요한 카느는 실망감에 젖어 입을 다 물었고, 보고싶지 않는 자들이 날뛴다.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놈들이겠지만 몇 번을 보아도 유쾌해지지 않는 존재들... 카느 의 저린 심정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하긴, 이 정도에서 물러 날 정도의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그가 되지도 못했겠지만... 사 람은 지치는 법이다. 육신의 한계가 다다른 지금... 그가 진정 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무었일까. "건방지다!" 잠시의 상념마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또 하나의 목소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저 계집이..." "미천한 혼혈아의 하녀 주제에!" 소곤소곤 소리들은 웅성웅성 자라났다. "저와 제 주인이 당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전.혀. 모르겠습 니다만..." 모락모락 오기가 피어났다. 저 오만한 면상들이 잔뜩 구겨 지게 만들어주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치솟았다.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에게 함부로 하도록 감독하지 못한 죄다! 게다가, 용서를 빌고 꿇어도 용납되기 힘든 처지에 그 교만함이라니!" "누가 누구에게 미천하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들으라는 듯 크게 외치며 난 살짝이나마 카느를 위해 숙이 고 있었던 허리와 고개를 빳빳히 폈다. 분노의 한탄과 씨근거 리는 숨소리가 순식간에 두 배는 더 커졌다. 피식 웃음이 나왔 다. 동대륙 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런 법이었던가. "닥쳐라! 감히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움크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힐끗 고개를 돌려본 그의 얼 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게로 향한 분노를 여과 없 이 나타내며 그는 살기를 뿜어냈다. "강한 자의 이름을 사칭해 함부로 날뛰는 가짜. 넌 결국 하 녀일 뿐이다." "맞습니다. 전 하녀일 뿐입니다." 겨우 하녀 따위에게 거절당한 분노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들 었겠지만, 내 신경도 이미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져 있었다. 냉 소.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웃음이 저들에게 어떻게 보여 질 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의 강함과 진정한 실력 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풋내기들 주제에 지금 뭐라고들 하는 것일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사라져 가던 이성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기며 흙먼지들이 엷어졌다. 가볍게 느껴지는 신력들. 아 아 두 번 다시 이 서대륙의 제국을 박살냈다가는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않고 내 수련을 훼방치겠다던 아르님의 기운이다. 백여 년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걱정꾼에 잔소리꾼이겠지. "....................." 쏘아보는 듯한 눈들에 많은 감정들을 쏟아내며 잠시 저들은 침묵했다. 본디 화가 극도로 치미면 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니 까. "공중부양 마법이라. 쉽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짧은 거리라 면 어중간한 마법사라도 할 수 있는 거리. 더더구나 마법 아이 템이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 우트트의 조용히 -조리는 목소리가 선명히도 들려왔다. 움 찔 사람들이 기세가 흔들렸다. 분노에 물들어 두려움조차 잊고 있던 사람들의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소리였다. "아무리 초급 마법사라 하더라도 마법사씩이나 된 자가 단 순한 하녀라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 귀족 앞에서의 당당함이라 든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내 앞으로 다가온 우트트는 내게서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발을 멈췄다. "하지만, 아무리... 네가 후작가의 그림자라 하더라도, 평범 한 하녀가 아니더라도, 넌 실수했다." "죄송하지만 전 하녀입니다.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카느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최근 들어 몸이 좋지 않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그다. 난 이제 슬슬 정리해야 할 때라고 판단 했다.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나갔다. 카느는 입 을 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저 어 리석은 무리들에게 그의 눈에 비친 날 직접 증명해주기를 원 하고 있었다. "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가 당신들 앞에서 비굴해야 하는 미천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보지 못해서 모른다면 보여줄 수밖에 없겠지. 느끼지 못해 서 감을 잡지 못한다면 느끼게 해 줄 수밖에 없겠지. 견문이 짧아 해석할 수 없다면, 풀어 보여줄 수밖에 없겠지. "지금까지 유효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슬슬 검을 쓰다듬는 내게서 금아가 날 따라왔던 기사들을 끌고 몇 걸음 멀어져갔다. "제가 하녀임은 분명합니다만..." 꿀꺽 누군가의 목에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제가 평민이라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 하셨으면 합니다." 눈이 마주친 우트트가 움찍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발작적 으로 튀쳐나와 날 가로막던 기사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그럼 귀족가의 하녀가, 천민이란 말이냐!" 상상력이 빈약해도 저렇게 빈약할 수 있을까. "아니요." 그건 알 수 없었다. 삼백년 전 내가 태어났을 때는 천민이 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시간동안 내가 천민이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이래뵈도 아직 유효할 작위도 몇 개 지니고 있답니다." 두 발을 가볍게 벌리고, 손을 늘어트리고 옆쪽에 둔중히 자 리를 잡고 있던 무릎 높이의 정원석에 '푹' 검을 꽂아 넣었다. 몇몇의 눈은 휘둥그래졌고 몇몇은 인식조차 하지 못한 듯 티 꺼운 시선으로 날 위 아래로 훑었다. "작위?" 비웃음이 역력한 목소리로 기사 하나가 앞을 다시 가로막았 다. 철렁철렁 떨리는 다리에 맞춰 잔 금속음들이 멎지 않았지 만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까. "그 것들 중 어떤 것이라도 최소한 당신보다는 높았다는 것 은 미리 말씀드리고 싶군요." 시뻘겋게 달아오른 기사가 몸을 숙이고 허리춤의 검을 반쯤 뽑아냈다. 난 몸을 비스듬히 돌렸다. 목을 조금 더 고자세로 들고, 눈을 내리깔았다. "건방진!" 더 이상 벌개질 수 없이 달아오른 기사의 모습이 참... 유쾌 했다고 할까. 언젠가 수강이 말했었다. 원치 않는 싸움을 벌릴 때는 최대한... 완벽하게... "덤벼. 애송이." 염장을 질러주라고. -------------------------------------------------------++++ 쾅! 란의 힘이 폭발했다. 황궁은 와르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이걸 어쩌지?" 란이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튀자!" 금아가 말했다. "좋아!" 란과 금아는 꼬맹이들을 양 옆구리에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같이가요오오!" 하르크가 필사적으로 구르듯 달려와 매달렸다. "저, 저 놈들을 막아라아아아!" 겁을 상실한 기사들이 우르르르 따라왔다. "잡을 테면 잡아봐라!" 휙! 날듯이 속도를 높이며 금아와 란은 순식간에 기사들을 뿌리 치고 달려갔다. 관문이고 뭐고 필요없었다. 천하의 두 마스터가 뭉쳤으니 그 무 엇이 그들을 막을소냐! 다 때려부셨다. 그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곳곳마다 폐허와 부상자 들이 나뒹굴렀다. "흑흑. 어머니. 원망스럽습니다." 클레이브의 굳건했던 심지는 날로 망가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프란을 벗어나... 서대륙을 떠돌기 시작했다. "젠장. 적호님이 날 죽이려고 드실꺼야." 하염없는 란의 투덜거림과 함께... --------------------끝. 아아... 이렇게 전개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요. 흐흣. 대신 몰아치는 짱똘 투척에 전 이름을 지우고 사라져야 할 지도 모릅니다만....ㅠㅠ 클클클. 넵. 짧은 패러디였습니다. -----------------------------------------------------+++++ 당분간 성실모드 연재^^...랍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win 2000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얼떨결에 손에 넣었습니다. win2000 server형을... 램도 늘리고 하드도 늘리고. 별짓을 다해서 컴을 키웠습니다. 아래아 한글만 돌아가면 뭐가 돌아가든 신경도 안썼지만. 그렇습니다. 전 컴을 늘리는데 폭 빠진... ㅜㅜ 흑흑. 그렇게 마련해 놓고서도... 전 전천후 서버형 컴을.... 오로지! 오로지! 워드형으로만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아아아! 풀썩. 웜 미워어어어어! 바이러스도 미워어어어어!! 지 멋대로 켜졌다가 꺼지는 방화벽은 더더더 미워어어어어!!!! silverlit@hanmail.net 고양이 숲의 미친 나무고양이가... 은빛의 또 하나의 ... 쿨럭... ㅠㅠ 그럼~!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8-란의 주인이 되는 것. **88화분량부터 다시 올립니다. 이전 수정분량은 수정된 곳보 다 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데다가 대부분이 내용을 편집하는 선에서 정리되었습니다. 한 챕터 분량씩 올립니다.** **저작권이란 글을 쓴 사람의 고유한 권리입니다. 불펌및 허가 하지 않은 돌림은, 그 어떤 경우라도 저작권을 위배한 불법행위 입니다. 제 글은 링크를 제외한 어떠한 펌도 허가하지 않고 있 으며, 그 점 양지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정 부분에서 클레이브는 파티가 끝나고 쓰러졌습니다.** “막을 셈인가?” 열에 들떠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눈동자만큼은 흔들림이 없 었다. 하르크는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란이 보듬고 있는 어 린애라고만 생각했던 애늙은이는 마치 껍데기를 벗어 던진 듯 한 순간에 변해 있었다. “금아... 님께서 클레이브님을 부탁한다고 하셨소. 그건 란님 의 의지이기도 하고.” 머뭇머뭇 하르크는 입을 열었다. 난감했다. 곤히 잠들었다 싶 더니만 채 몇 시간도 자지 않고 일어난 어린 주인은 일어나자 마자 다짜고짜 란에게로 가겠다며 막무가내였다. 오늘의 클레 이브는 어딘가가 많이 달랐다. “..........................” 열정이라고 해야 할까. 분노라고 해야 할까. 정체를 알 수 없 는 열기가 소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르크는 마른침만 삼켜댔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생명을 불태우는 듯한 그 기백을 버틸 수가 없었다. “............비켜라.” 문을 향해 클레이브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미열로 들뜬 몸에 서 땀이 후둑 후둑 떨어졌다. 평소의 그와 말투도 행동도 달랐 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설 때마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 해 가는 것 같았다. “비켜.” 낮게 그리고 단단하게. 목소리에 담긴 힘이 강해졌다. 아이의 생떼 같기도 하고 어른의 위엄 같기도 했다. 단단한 제방이 무 너지듯 작은 몸에 갇혀 있었던 수많은 생각들과 생각들이 한 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하르크가 다급히 외쳤다. 변해 가는 클 레이브의 모습이 어딘가 두려웠다. “걱정 할 필요 없다니까요! 그 마녀가 얼마나 강한데! 게다가 금아님도!” “믿지 않아!” 똑.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헉, 하르크의 말이 멎었다. “안 믿어! 늘 그래! 당장 안심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거짓말로 둘러싸지!” 절규였다. 하르크는 몸이 굳었다. 이런 클레이브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몰랐었어! 죽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 지도 몰랐다고! 사람들이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고 말 했었을 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단 말이야!” 소년은 발악하듯 소리질렀다. 커다랗게 치떠진 눈동자에 초점 이 없었다. 펑펑 물방울들을 쏟아내며 어린 소년은 이를 악물 었다. 거친 호흡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채워갔다. “아버지가 눈물을 보이셨기에 울었었어. 아버지가 눈물을 거 두셨기에 참았었지.” “.....................” “그 뿐이었어. 정말로 난 하나도 모르고 있었어.” 어느새 빼꼼히 열린 창문으로 바람 한 줄기가 들어왔다. 소년 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천장까지 길게 뚫린 창문 밖으로 사막의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완연한 아침을 빛내며 밝아진 하늘에는 더 이상 별도 달도 남지 않았다. “그 의미를 알았을 때는 더 이상 내겐 아무런 기회도 남아있 지 않았어.” 이에 짓이겨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르크는 조용히 무 릎을 낮춰 어린 소년과 눈높이를 맞췄다. “나, 난....” 얼굴을 일그러트린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쏟아냈다. 하 르크는 조용히 기다렸다. “태어나서는... 안되는... 존재였을 지도 몰라.” 끊어지는 호흡 사이로 격한 울부짖음이 흘러나왔다. 하르크의 숨이 잠시 멎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 내가... 족쇄가 되어...” 클레이브는 머리를 흔들었다. 하르크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 해 이를 악물고 눈을 치떴다. 클레이브는 단 한번도 그런 일로 고뇌하는 티를 낸 적이 없었다. ‘짐작하기는 했었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르카이아에 퍼진 잡 소문들에 늘 의연히 대처했기에 다들 이렇게 깊게 상처 입었 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왕께서... 아니, 폐하의 결정에 불복하면 안돼.”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 클레이브는 쏟아내듯 말했다. “내가 있으면 아버지는...” 분명히 왕의 명령이라도 불복하고 나설 것이다. 하르크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아는 페르로이 후작이라는 남자는 지위를 위해 자식을 버리는 여타 귀족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아주 조그맣게 소년의 말이 이어졌다. 하르크는 길다랗게 한숨 을 내쉈다. 그의 어린 주인은 이제 열 살이었다. “꼭 가셔야 하십니까?” 말릴 수 없음을 알았다. 아니 말려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그를 더 강하게 지배했다. 어차피 란에게 맞는 거야 이골이 나고 있 었다. 금아까지 가세한다면 야 이번에야 말로 죽을지도 모르지 만 한 순간 이 어린 주인을 위해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이브는 거칠게 눈물을 닦았다. 호흡도 어느새 조금 가다듬어졌고 눈빛도 맑게 돌아왔다. “가야만 해. 어제 분명히 알았어. 난 더 이상 아버님의 아들 이 될 수 없어. 나를 이루고 있던 그 모든 것에 내가 폐 밖에 될 수 없다면 내가 놓아야 해.” 고집스럽게 눈을 빛내며 클레이브는 작은 주먹을 들어 보였다. 새하얗게 바랜 주먹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이제 내게 남는 건 하나 뿐이야.” 싱긋 웃음 짓는 얼굴이 무엇보다도 슬퍼 보였다. “란의 주인이 되는 것.” 클레이브는 크게 숨을 가다듬었다. “...날 선택해준 란을 위해 주인이 되는 것.” 휘청 클레이브의 몸이 순간 휘청했다. 하르크의 손이 급히 클 레이브의 어깨를 잡았다. 잔뜩 흥분해서 외칙 덕분에 중간에 먹은 약기운이 다시 도는지 클레이브는 점점 목소리가 잦아들 고 있었다. “...날 위해 기도해주신, 날 위해 기다려주신 두 분을 담고 내 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잠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고개를 애써 흔들며, 클레이브는 하르 크의 어깨에 매달렸다. “...그러니까 ...난 란에게로 ...가야해.” “............................” “...죽게 ....둘 수 ...없어.” “자, 잠깐! 제발 저도 죽게 두지 말아주십시오!” 클레이브의 귓가에 눈물 섞인 하르크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떨 려갔다. 풀석. 클레이브의 고개가 힘을 잃고 하르크의 팔로 떨 어졌다. “....................캑.” 하르크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대로 침대에 눕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데리고 가야 하는가. 갈피가 서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본다면야 침대로 다시 눕히는 게 옳았다. 열에 들떠 한 소리 일일이 귀담아들어 줄 필요는 없다.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못했다. 이 아르카이아의 삶이 길 지 못하리라는 것쯤 하르크도 알고 있었다. 값어치가 없는 인 질만큼 비참하고 허무해지는 것은 없으니까. 이런 때 눈을 뜬 소년의 진심을 열이라는 말로 짓뭉개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상황을 란이 알게 된다면... “젠장! 젠장! 간만에 운이 트여 제대로 취업했나 했더니만 또 이 모양이야!” 가지 않아도 죽을 목숨이었다. 요즘 들어 날이 가면 갈수록 클 레이브라면 눈에 콩깍지가 씌여 보이는 게 없어지고 있는 참 이었으니까. 체온이 식지 않도록 이불에 둘둘 만 클레이브를 등에 동여매며 하르크는 절규했다. “왜 난 허구 헌 날 내 무덤만 파야 하느냔 말이야!” 죽을 짓인 줄은 아는 하르크의 비참한 외침이었다. “올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옆 사람에게조차 간신히 닿을만한 작은 목소리가 카느의 칼칼 한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쿨럭. 가래낀 낮은 기침소리. 해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간밤의 찬 공기가 대기를 떠돌고 있 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피워 올린, 아직도 채 가라앉지 못하 고 시아를 희뿌옇게 막고 있는 먼지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 괴로운 울림의 기침소리들은... 카느는 그런 먼지들은 개의치 않는 듯 힐끔 구덩이를 바라본 후 내 쪽으로 빙긋 미소지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왔군.” 그의 뒤로 움크와 우트트가 나란히 서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근육에 잔 경련이 멈추지 않았다. 두 우그르트의 눈이 황 궁 정원을 온통 파헤친 커다란 구덩이로 향해있었다. “조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서둘렀습니다.” “흠, 그런가?” 노골적으로 적의와 분노를 들어내는 기사들과는 달리 카느는 바다처럼 침착했다. 그래, 바다. 그 안으로는 모든 것을 품고 있어 폭풍 속에서도 생명을 기르며 조용한 중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괴물... 그런 바다의 냄새가 사막인인 그에게도 희미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나와의 약속마저 서둘러야 할 일이라니...” 그는 가볍게 기침했다. “서운하군.” “죄송합니다. 제 본업이 하녀인지라.” 그는 정말로 섭섭해 보였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지나치게 분 노하지도 당황해 하지도 않았다. 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 다. 감옥을 나올 무렵의 궁금증도 분노도 어느덧 사라져 갔다. 노쇠한 자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강한 의지와 영혼이... 마 치 노도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고요한 눈동자가 날 반갑게 했 다. “하지만... 그 전에 약속대로 정오가 되기 전에 찾아왔습니 다.” “그렇군.” 울그락 불그락 기사들의 면면에 신경쓰지 않는 듯 카느는 주 름진 얼굴에 한껏 미소를 그려냈다. “그래, 내 감옥은 어땠나?” “새 감옥이라 그런지 의외로 쾌적했습니다.” 카느의 노안에 살짝 실망의 빛이 흘러갔다. “건축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건 아니었네 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가 장담했던 대로 이 서대륙의 마스터라면 충분히 그 앞길을 막아 둘만 해 보였습니다.” 검을 대 보고서야 알았지만 감옥의 문을 막고 있던 쇠는 아주 특별한 강도를 지니고 있는 놈이었다. 검이 처음 맞닿는 순간 나도 놀라야 했으니까. 첫 검부터 체면을 구길 수 없어 황급히 기를 쏟아 부어 어렵지 않은 듯 베어냈지만, 상상외로 그 지하 감옥은 쓸만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한 때 난공불락의 감옥이라 불렸던 피티아의 그것과도 차원이 달랐다고나 할까. 최소한 금 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라면 반나절을 넘어 몇 일, 잘 쓸 경 우 몇 주 정도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헤매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뭐, 노도의 손길이 닿기라도 한다면, 나 역 시 몇 일, 몇 달 정도는 헤매야 할지도 모르지만... “단지 절 막기에 역부족이었을 뿐이죠.” “후우.....” 진위를 살피려는 듯 카느는 잠시 내 표정을 살폈다. “내 심혈을 기울였던 이 황궁이...” 아쉬운 듯 무너진 정원으로 힐끔 시선을 다시 한번 던져보며 카느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더 망가지기를 원치 않았지.” 직접 밖으로 나선 늙고 초라한 육신의 거인이 말했다. 짧은 침 묵이 흘렀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내 존재를, 내가 벌린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몰랐다. 단, 그는 약속을 지킬 자였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날 위해서 일하겠냐고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아까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난 순간 도마위의 생선이라도 된 듯한 묘한 감각을 받았다. 그러나 우그르트 움크가 그 말을 했을 때처럼 불쾌하거나 어이없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아우르는 묘한 힘이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제 주인은 이미 선택했으니까요.” “그런가... 어쩐지 많이 아깝군.” “하녀의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도 훨씬...” 카느는 뚫어져라 내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유쾌했다. 그의 호기심은 정말로 순수했다. 그의 말은 나를 얕보고 깔보 는 마음에서의 질문이 아니었다. “훨씬?” “수양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카느의 입가가 움찔움찔 움직였다. “푸 하하하하하하하!” 고개를 완전히 뒤로 기대로 그는 힘차게 웃음을 터트렸다. 깜 짝 놀란 듯 기사들과 우그르트의 시선들이 카느의 얼굴로 박 혔다. 그는 잠시동안 그 자세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좋지, 정말 좋은 말이야. 아무래도 내가 포기해야 겠군.” “네.” 짧은 대답에 그의 눈초리가 또다시 묘하게 변했다. 장난끼 가 득한 눈초리에 담긴 묘한 위압감. 이제 조금 알 듯도 했다. 그 의 힘이 무엇인가를. 지금까지 내가 외면하고 있던 힘의 정체 가 무엇이었는가를. “약속을 기억하는가?” “물론입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내 약속은 지키겠네. 자네와 자네의 어린 주인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해 주지. 단....” “단?” 내 입가에서도 미소가 피어났다. 살기를 풀풀 날리는 기사들 의, 눈으로는 날 잡아먹을 듯 노려보면서도 단 한마디도 내뱉 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에서 난 그의 속내를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내 약속도 한가지만 지켜주게.” “흐음.....” 보란 듯 말꼬리를 흐리는 내 도발에 걸려들 듯 기사 몇몇이 검을 반쯤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카느를 한번 바라보고 다시 살짝 검집으로 밀어 넣었다. 스르릉 밀리는 소리가 들으라는 듯 낮게 울렸다. “내, 약속을 지켜주는 만큼, 나도 자네가 이 약속을 지켜만 준다면 자네의 앞으로 할 짓들을 용서해준다고 약속하지.” “좋습니다. 단.”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희극이라도 보는 것처럼 기사들의 몸 이 동시에 움찔 흔들렸다. “단?” 카느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의 흰 눈썹이 꿈틀 움직 였다. 하긴 카느라는 존재로서 이 정도의 관용을 보인 것만으 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왜일까. 이렇게 평범한 반응을 섞어 보이는 그가 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제 주인께 위해를 가하는 놈들을 처단하는 바에 대해서는 카느의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흐음...” 난 카느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앞으로 나름대로는 공손히 모았던 팔을 양옆으로 늘어트리고 옆쪽에 내려놓았던 검을 발 로 퉁겨 올려 손으로 잡아챈 다음. -푹!- 옆쪽에 굴러다니던 정원석에 그대로 꽂았다. “그 외의 약속에 대해서는 카느께서 염려하실 바가 없으시리 라 맹세 드리죠.” “좋군.” 신기한 듯 정원석과 검을 교차로 바라보던 카느의 주름진 입 가에 활짝 미소가 피어났다. 몇몇 기사들의 눈에는 감탄이, 몇 몇의 눈에는 시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몇몇의 눈에는 그 의 미조차 보이지 못했다. 하녀 따위가 감히 정원석을 망치다니. 라고 말하는 자들이 황 궁에서 검을 차고 있다니! 문득 저 늙은 거물이 왜 내게 이런 약속을 하게 하려는지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수 많은 부족을 아우르자니 어쩔 수 없기도 했겠지. “단, 저 금강석에 꽂힌 검은 그대로 두고 가 주게. 좋은 기념 이 될 듯 하군.” “....................” 내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기라도 했는지 카느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그리곤 금새, “쓸만한 무기는 내 따로 줌세.” 하며 쿡쿡쿡 나쁜 작전을 짜는 장난꾸러기처럼 낮게 웃었다. 그의 뒤편에 서 있던 기사 하나가 똥씹은 얼굴로 그의 허리에 찬 검을 풀러 내게로 내밀었다. “후우... 이제 슬슬 난 들어가 봐야 겠군. 카느의 일이라는 게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말이지.” 카느는 느릿하게 등을 돌렸다. 눈에 불을 켜고 날 노려보던 기 사들이 뿌연 먼지를 더해가며 달려와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 았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겁니까?” 확인하듯 외친 내 말에 카느의 발이 뚝 멎었다. 그는 상당히 겸연쩍은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그게 말일세. 자네를 죽이려 덤비는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라 는 말을 나도 참 하기는 힘드네만....” 거칠게 난 수염들을 스윽스윽 매만지며 카느는 꽤 미안해 보 이는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가급적이면 병신도 만들지 말아주게. 이래 뵈도 중요한 인재 들이라 말일세. 내가 아무리 말해도 믿지를 못하더구먼. 방금 그건 날아가 버린 드래곤의 힘이지 자네의 것이 아니라고 말 이야...” 꽤 길게 설명하는 그의 이마에 슬적 진땀이 흘렀다. “카느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구요?” “이거, 참 묘한 질문이군.”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흘렸다. “하지만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지 않은가? 중요한 건...” 그가 다시 등을 돌렸다. “약속이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짧았지만 카느와의 만남은 유쾌했다. 가 능하다면 이 시간이 길어지기를 바랬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욕심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난 문득 그런 그에게 나름대로의 보답을 하고싶다고 느꼈다. 그가 카느의 이름으로 내게 약속을 지켰으므로... “카느께서 하신 약속처럼 제 약속도 지켜질 것입니다.” 카느의 발걸음이 잠시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기사들의 살기 가 폭발하듯 강해졌다. 카느에 대한 미묘한 호승심이 내 안에 서 끓어올랐다. 난 말을 덧붙였다. “동대륙의 검후 루이네리아의 이름을 걸고... 약속합니다.” 술렁, 공기가 멎었다. 난 느린 동작으로 카느가 준 검의 검집 을 허리에 묶었다. 분홍빛 드레스에 검이라 어울리지는 않았지 만... “어떻게 해석하실 까는... 자유에 따르겠습니다만.” 마음에는 들었다. 멈춰선 카느의 양옆에서 휙 돌아선 움크와 우트트의 눈빛이 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후,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 어지간히도 카느가 마음에 들었나보군 싶었다. 금아는 파헤쳐 져 굴러다니는 정원수 한 그루에 엉덩이를 얹었다. 보아하니 이대로 끝날 성싶지가 않았다. 약속을 지킨다며 의연히 등을 돌렸던 카느마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그럴 진 데 다른 이들이야 보지 않아도 훤했다. 철컹철컹 여기저기서 검 뽑아드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흠... 기사님들 까지도 해 보실 생각이십니까?” 금아의 미간이 조금 접혔다. 탈출하는 지하감옥을 따라나온 열 명의 기사들조차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금아의 시선을 느낀 몇몇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그녀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못 믿는 건 아닐세. Lord를 언급 한 건 과히 좋지 않지만 강하다는 건 알아. 단지...” “죽지도 않고 불구가 되어 영원히 검을 다시 들게 되지도 않 으리라는 보장이 있는데, 어찌 그 힘에 도전 한번 해 보지 않 고 물러서겠나.” 시익 미소짓는 얼굴이 카느의 그것과 겹쳐져 갔다. 금아는 쓴 미소를 지었다. ‘이거 톡톡히 부리려 드는 군.’ 눈이 뒤집혀 마스터이건 아니건 당장이라도 덤빌 듯 이를 갈 던 놈들은 제하고서라도, 그 약속은 굳이 란에게 덤빌 마음까 지는 없던 자들까지 모조리 부추긴 듯 했다. 진실이건 아니건 한 기사의 입에서 마스터라는 인정까지 받았던 존재. 그 존재 와 안전하게 검을 겨룰 수 있다. 목이 떨어지고 팔 하나가 날 아가도 덤빌 판에 카느는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란님, 당하신 것 같은데요?-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건 이런 의미이기도 했다. -괜찮아. 어느 쪽이 이용한 건지는 지금부터 알게 될 테니까.- 쾌활하다 못해 생기 넘치는 란의 전음이었다. 금아는 팔에 머 리를 파묻었다. ‘제길. 저 란을 붙잡아 지금 클레이브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고 말을 한다면...’ 한 순간에 눈이 뒤집혀 약속이고 뭐고 없이 막는 것들은 모조 리 다 떨치고 죽여 없앨지도 모른다. 아니 왜 진작 말하지 않 았느냐며 금아 자신부터 짓밟으려 들지 모른다. 그 어마어마한 폭발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어린 주인의 안위를 잊은 건 사실 이었으니까. ‘차라리 하르크의 말대로 내가 한번 덤벼봐?’ 금아의 눈동자가 또르륵 굴렀다. 일단 한번 덤벼나 보고 설명 하는 편이 훨씬 나을 듯 싶었다. 한번의 심호흡과 또 한번의 각오. 막 결심을 굳히려던 찰나였다. “콜록!” 어린아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온 몸의 감각이 얼어붙는 듯 한 충격이 금아의 몸을 휩쓸었다. “흠?” 살기 등등한 수 많은 사람들의 기척들 속에 너무나도 익숙해 서 믿어지지 않는 사람 둘이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하, 하르크? 너 지금 무슨 짓을 벌린 거야!” 찢어질 듯한 란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뻑뻑하게 고개를 돌린 금아의 눈동자에도 당장 쓰러질 듯한 창백한 얼굴의 소 년과 당장 칼을 맞고 피를 토하며 죽어도 상관없을 것처럼 뻔 뻔한 얼굴의 하르크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아, 아, 그게.... 말이죠....”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며 하르크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주 르륵 넓직한 이마를 타고 땀줄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입 꼬 리가 바들바들 경련하고 있었다. “란. 란을, 제 하녀를 데리러 왔습니다.” 등에 업혀 있던 클레이브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내려섰다. 창백 한 얼굴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들의 가운데서 소년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란...을 ...요.”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하, 하하하... 격려글 보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구요... 어제 넘어져서 삔 제 발가락과... 깨진 발톱이 빨리 자라기를. 잡설하며. 오늘 올립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89-주인의 자격 **저작권이란 글을 쓴 사람의 고유한 권리입니다. 불펌및 허가 하지 않은 돌림은, 그 어떤 경우라도 저작권을 위배한 불법행위 입니다. 제 글은 링크를 제외한 어떠한 펌도 허가하지 않고 있 으며, 그 점 양지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힌 얼굴은 누가 봐도 아 픈 병자의 모습이었다. 가느다란 소년의 몸에 땀으로 달라붙은 옷자락은 그를 더 마르고 병약하게 보이게 했다. “클레이...브...님?” 툭 빠지듯 떨어진 입가에서 부정확한 발음이 새어나갔다. 지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지금 저 초췌한 모습은 어찌 된 거란 말인가! 간밤에 내가없는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란 말인가! “왜....? 어떻게...?” 혼란스러웠다. 감기 들지 않으려면 어서 저 홀랑 젖은 옷을 갈 아 입혀야 할텐데부터 조금 쉰 듯한 목소리를 낫게 하는데는 푹 고은 지렁이 탕이 좋은데... 까지 오만 잡생각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며 달려갔다. 힐끔 내 쪽을 바라본 소년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짧게 그렸다 지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슴을 펴고 허리를 폈다. “클레이브..라?” 놀라 멈춰서 버린 내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어느 새 등을 돌리고 다가오고 있는 자. 카느였다. “...이 연약한 아이가 그대가 선택한 주인인가?” 딱딱하게 굳은 카느의 노안에 담긴 감정은 놀라움과 희미한 분노였다. 그에게서 미묘하게 풍겨 나오는 적의에 난 그의 앞 을 가로막았다. 기사들의 놀란 분노의 탄성이 또다시 요란스레 터져 나왔다. “네. 아직 어린 제 주인입니다.” “하, 인형놀이를 할 나이는 지난 듯 싶었는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툭 튀어나왔다. 철그렁, 카느의 옆을 지키는 내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잔뜩 구기고 유 별나게도 날 노려보던 그가 허리의 검을 살짝 흔들었다. 그가 카느의 옆쪽에서 한 걸음 나왔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하녀 따위 용서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카느께서는 이미 약속을 지키셨으니 지금은 용서하지 마시옵 소서!” 은근슬쩍 앞쪽으로 나오며 그 기사의 정면을 비스듬히 막고 선 금아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하르크보다 더 겁없이 날뛰는 미친놈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 니다.- 은은한 분노를 내뿜는 금아의 전음이 닿았다. 하르크의 몸이 슬그머니 움직였다. 어린 주인의 뒤편서 한 걸음 정도 떨어져 내 쪽을 등지고 기사들을 향해 몸을 조금 낮췄다. 살벌한 기사 들의 중앙에 클레이브를 중심으로 나와 그들의 작은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카느의 굵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잠시 호흡을 가 다듬던 클레이브가 입을 열었다. “프란 제국의 위대하신 카느시여.” 카느와 클레이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클레이브가 조심스럽 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크리아의 페르로이 드 클레이브라 하옵니다.” 카느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클레이브는 내 뒤편에서 나와 카 느의 앞에 섰다. 그리고 느릿하지만 분명한 동작으로 예를 취 했다. “흐음.....” 주위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신경이 바짝 일어섰다. 금아의 기 세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클레이브가 흔들리 거나 아파 보인다면 다 집어치우고서라도 클레이브를 잡아 채 달릴 생각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레이브는 의연하게 자신의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인가?” 망설임이 남아있는 목소리로 카느는 입을 열었다. “제 하녀를 데리러 왔습니다.” “호오? ... 직접 하녀를 데리러 왔다?” “네.” 그 안에 담긴 모든 질문들을 일축하고 클레이브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잠시의 감탄이 카느의 눈가를 스쳐갔다. -두 우그르트의 기색이 좋지 않습니다.- 금아의 전음이 들려왔다.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질투와 욕심이 미묘하게 섞인 눈빛으로 그들은 나와 클레이브에게서 눈을 돌 리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검후니 뭐니 이름을 팔지 않 았을 것을! 잠시의 기분에 유쾌함에 움직인 내가 죽도록 미워 졌다. 이름을 팔고 한번 날뛰면 두 번 다시 건들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건 내 경험부족에서 나오는 자만이었다. 내게 이미 이 어린 주인이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그럼, 이렇게 하지.” 카느의 눈에 탐욕이 빛났다.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자네의 오늘 있었던 무례는 없던 것으로 접어둘 터이니 자 네의 하녀를 내게 주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휙 고개가 움직였다. 바로 뒤에 서 있는 어린 주인의 파란 눈동자가 내게로 곧게 향했다. 그가 작게 미 소지었다. 알까. 그게 더 내게 충격이었음을? “제겐 자격이 없습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다. 클레이브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 가 놀랄 정도로 단호하며 망설임 없는 동작이었다. 또 한번의 경악이 사람들을 파고 들어갔다. “그녀는 자네의 하녀가 아닌가?” “네.” “그럼 자네는 그녀의 주인이 아닌가?” 장난이라 보기에 너무나도 진지했다. 카느의 목소리는 기복 없 이 잔잔했다. 마치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 해서 더욱 불길했 다. 어딘가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 ...그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왔습니다.” “되기 위해?” 뜻밖의 말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돌아본 눈에 나와 똑같을 표정을 짓고 있는 금아의 어리버리한 얼굴이 비쳤다. 하르크가 슬그머니 나를 외면했다. “네.”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클레이브의 말이 이어졌다. “절 주인으로 선택해준 란에게 진짜 주인이 되어주기 위해 왔습니다.” 살며시 그의 고개가 내 쪽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기 대감에 가슴이 설레었다. “란이 절 주인으로 선택한 이유는 모릅니다만.” 조금의 실망감과 조금의 기대감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갔다. 웅 성웅성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에 두 우그르트의 목소리들이 섞 여있었다. 각자의 심복들로 추정되는 자들과 그들은 어떻게 하 면 날 가로채 부하로 삼을까에 대해 나름대로의 토론 중이었 다. ‘미안하지만 당신들 같은 작자들을 주인으로 삼아줄 생각은 개미 똥구멍만큼도 없어.’ 신탁이니 수양이니를 다 내던져 버리더라도 그들은 이 어린 주인의 반의 반 만큼도 내게 강함의 의미를 주지 못했다. “최소한 제가 페르로이가의 장자였기 때문이라든가, 혼혈아이 기 때문이 아님은 알고 있습니다.” “흐음.....” 카느는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자네에게서는 그녀와 같은 강자가 끌릴만한 독특한 향기가 없네 만...” “....란이 절 선택해준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클레이브의 몸이 잠시 휘청였다. 바로 뒤에 서 있던 금아가 바 로 클레이브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클레이브는 금아에게 기대 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 고개를 돌려 가볍게 인사하고 그는 다시 자신의 다리로 섰다. “어찌되었건 하녀의 주인으로서 자네는 오늘 이 프란의 카느 인 내 청을 거절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클레이브의 커다란 파란 눈동자가 카느에게로 닿았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흠....” “크리아의 귀족이며 많은 상황들에 흔들리는 제 자신을 포함 해 많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소년의 주위에 시간이 멎은 것 같았다. “오늘의 제 행동이 크리아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제 물러나야 했습니다.” 열 살 소년의 뒷모습이 스무 살 청년처럼 자라 보였다. “지금은 누가 되어도 좋다?” 가늘게 뜬 카느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궤변이라고 보기에 열 살 소년의 눈은 너무나 깨끗했다. 클레이브는 살며시 미소지으 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제 누가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뭐라?” “크리아 국왕폐하의 뜻을 따라...” 바람이 멎었다. “전 페르로이가의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겠습니다.” 웅성,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라났다. “그리고 절 선택해준 한 하녀와 두 하인의....” 클레이브의 미소가 오늘처럼 해맑은 적이 없었다. “...주인이 ...되겠습니다.” 딱 열 살의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클레이브는... “주인님!” 내 품으로 쓰려졌다. 좋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미묘한 감각이 파고 들어왔다. 이로서 난 완벽하게 족쇄를 차고 말았다. 힐끔 들어온 금아의 표정에도 나와 비슷한 종류의 애매 모호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이 날이 내 생애 처음으로 이 어린 주인에게 진심을 담아 주 인님이라고 부를 첫 날이었다. 두고두고 쑥스러움을 담아 잊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런 기억을 만든 날. “...................아.” 무너진 황궁 정원에 서 있던 존재는 인간들만이 아니었다. 신 탁을 내리지 못해 우왕좌왕 하던 신들도 란이 터트린 폭발에 놀라 달려오던 참이었다. 희뿌연 먼지 속으로 황폐해진 황궁 정원을 바라보며 세 신의 눈초리도 란의 뒤통수에 단단히 박 혀갔다. 나지막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우. 그래도 말이지... 피티아의 교훈은 나름대로 기억하고 있었나 보군...” 주위를 살피며 적호는 입맛을 다셨다. 옆쪽에 서 있던 아르의 눈초리에 살기가 맴돌았다. “지금... 저 꼴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그럼, 저 정도면 많이 변한 거지. 백여 년 전의 그 날처럼 저 황궁의 주춧돌까지 무너지고 카느 이하 모든 황족들과 무 인들이 굴비 꾀듯 줄줄이 죽어 나자빠져야 되는 거였나?” 오디아누 관문의 숲에서, 외뿔 엘프들의 숲을 이번만큼은 지킨 다며 날뛰던 란이 결국 해 놓았던 짓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주 조금의 진전일 뿐이겠지만, 주위를 보지 않는 것과 보기 시작한 것은 그 차이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컸다. “그렇지는 않지만...” 입맛을 텁텁 다시며 아르는 인상을 잔뜩 구겼다. 우려했던 최 악의 경우는 아니었다. “게다가 저 어린 소년에게 대하는 것만 봐도 많이 변하지 않 았는가. 지난날 저 금아라는 청년 굴려먹던 거에 비하면야 득 도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지!” “뭐어. 카느도 내가 선택한 자 답게 잘 처신했고, 어찌되었건 어떻게든 해결 될 듯은 보이니 잘 되기는 했군.” 아르는 미련을 접었다. 적호의 말이 영 틀리지는 않았다. 백년 전의 그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후는 변해있었다. “아르페이나. 어떻게 할거지?” 아르는 슬쩍 옆에 서 있는 아르페이나의 안색을 살폈다. 이렇 게 해결될 줄 알았다면, 성급히 결계까지 박살내고 쳐들어가 여신을 죄인취급 하면서 끌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은근한 미 안함에 아르의 시선이 미묘하게 깔렸다. “신탁이 꼭 필요하지는 않게 됐지만 그래도 있어줬으면 하는 데....” 적호가 말끝을 흐렸다. 아르페이나의 양미간이 질끈 구겨졌다. 여신의 얇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줘도 안 받는 신탁 따위!”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신관들은 란의 살기가 대지를 뒤흔들고 서야 눈을 비비고 깨어났다. 그러나 아르페이나가 반색하고 신 탁을 내릴 틈이 없었다. 공포에 질린 자의 마음이 열릴 리가 없었다. 막연하게 아르페이나의 이름을 외치면서도 오직 자신 의 안위에 온 마음이 쏟아진 자들은 아르페이나의 신탁을 고 스란히 튕겨내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우성과 비명소리. 사람 들이 뿜어내는 혼돈의 감정이 온 대기를 혼탁하게 물들였다. “..........................” 이 프란이 아르페이나의 본 영역이 아닌 탓도 있었다지만 혼 자 당했어도 기절할 판에 그 꼬라지를 다른 무신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보여야 했던 아르페이나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겨 져 있었다. “뭐, 일단은 보고 정 필요하면 하나 내려주지.” 지치고 허탈한 아르페이나의 입가가 살짝 비틀려 올라갔다. 적 호와 아르는 섬뜩한 기운에 잠시 몸을 움츠렸다. ‘당분간 이 땅에서 신생아 구경하기는 힘들겠구먼.’ ‘설마 그럴까...’ 서서히 독기가 고여 가는 아르페이나의 옆모습을 힐끔힐끔 훔 치며 적호와 아르는 고개를 저어댔다.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흘 렀다. “헛!” 미안한 마음에 눈 둘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적호의 입가에 서 미묘한 신음소리가 흘러나갔다. “이, 이런... 어찌되건 잘 해결된다 싶었더니만!” 잔뜩 울상을 지어버린 아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인간들은 왜! 저런 무덤을 파고 있는 건가!” 아르페이나의 치떠진 눈망울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해결됐다 싶었던 사건은 점점 더 꼬여가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내가 왜 저런 놈들을 태어나게 축복해서 이 생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이야!” “정녕 이러셔야 하겠습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분노를 일으키기가.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화가 나 본 적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머리가 끓어올랐다. 텅 비어갔다. “..........................” 품에 안긴 클레이브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급히 살기를 가라 앉혔다. 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축 늘어진 클레이브의 가느다란 팔이 가볍게 흔들렸다. 소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 다. “...................으음.” 미풍 한 줄기가 클레이브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사라져 가던 이성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기며 흙먼지들이 엷어졌다. 가볍게 느껴지는 신력들. 아아 두 번 다시 이 서대륙의 제국을 박살냈 다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수련을 훼방 치겠다던 아르님의 기운이었다. 백여 년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걱정 꾼에 잔소리꾼이겠지. 이를 악물었다. 카느의 등이 점점 멀어 져갔다. -어린 주인의 안위가 걸린다면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겠다고 전 분명히 말했습니다.- 황궁 안으로 사라지던 카느의 등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다 시 뒤돌지 않았다. 그는 몇몇 기사들만을 거느리고 그대로 안 으로 모습을 감췄다. 남겨진 기사들의 투기가 한 순간에 끓어 올랐다. “주인이 걱정된다면 내가 맡아주지.” 우트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소름이 쫙 돋았다. “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드래곤에게 오크를 얹어주겠 습니다.”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금아가 그 앞으로 나섰다. 우트트의 좌 우를 지키던 기사들의 검이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미천한 평민 따위가!” 공기가 거칠어졌다. 문득 사람들이 멀어져 보였다. 희뿌옇게 아른아른... 현실이 아닌 냥 지독한 쓰라림이 가슴을 점령했다. 카느는 말했다. 문제삼지 않겠다. 라고... 그건 무사히 보내주겠 다라는 말과는 다른 말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 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는 말이다. “하르크.” “...에, 에에.” 화들짝 놀라며 하르크가 내 쪽을 돌아봤다. “알고 있었나?” 어린 주인의 의지를 몰랐다면 그가 클레이브를 이 곳으로 데 리고 왔을 리가 없었다. “체, 쳇. 오기 직전 들었을 뿐이오.” 잔뜩 경계하는 기색이 만면한 얼굴로 하르크가 빼쭘히 내 쪽 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금아, 알지? 방금 전 클레이브가 내린 결심이 가져올 결과 를.” “.........물론.”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금아의 등이 유난히도 넓어 보였다. “아,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클레이브님의 안위는 저희 쪽에서 지켜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센였나? 우트트의 그림자처럼 함께 하는 자의 이름이. 그였다. 우트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프란에서 그를 위협할 자는 없을 거라 약속할 수 있다.” “대신 절 비롯한 클레이브님의 하인들은 우그르트 우트트를 따라야 하겠군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웃음을 무어라 해석했는지 우트트 의 얼굴에 걸린 곡선이 진해졌다. “그래봤자 하녀와 하인들. 평민과 혼혈아다. 자신의 입으로 포기하건 아니건 간에 곧 그렇게 되었을 존재. 이제 평민과 다 름없는 존재다. 귀족으로서 그만큼 비참한 건 없지.” “..................” “내 휘하로 오면 이 프란제국에서의 출세를 약속해 줄 수 있 다. 지금의 그에게 이 만한 조건이 또 있을까?” “아니요.” 힐끔 우트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흥분한 움크가 뭐라 소리지르 려는 듯 반 보 앞으로 나섰다가 그를 만류하는 눈치 빠른 심 복의 손에 팔 소매를 붙잡혔다. 난 느린 동작으로 하르크에게 로 다가갔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리고 팔을 가로막아 맞을 준비를 하는 그에게 깊게 한숨을 내쉬어주고, 어리버리해 하는 틈을 타 그의 품에 클레이브를 안겨놓았다. 하르크의 눈이 빛 났다. 마치 목숨 줄이라도 챙기듯 그가 클레이브를 끌어안았 다. 그리고 가져왔던 이불과 커튼을 찢어 만든 듯한 끈으로 자 신의 몸에 꽁꽁 동여 묶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우트트와 기사들의 눈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난 우트트를 바라보고 다시 한 걸음을 딛었다. “물론 아닙니다.” “그럼,” 센의 입술이 열렸다. 난 빙긋 미소를 보냈다. “그런 최악의 조건은 정말 처음 들어보는군요.” 짧은 침묵이 가라앉았다. 살기를 드높이고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들기 위해 준비된 아주 짧디 짧은 고요함. “보자보자 하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기사들의 원이 점점 더 조여왔다. 모든 관심이 내게로 몰린 사 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한 하르크의 기척이 한 순간에 탁 튀었다. “달아난다! 쫓아라!” 누군가가 외쳤다. “....제가 막겠습니다.”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금아의 몸이 곁에서 사라졌다. 뒤늦게 우 르르르 한 무리의 기사들이 달려갔다. 기사들의 고함소리에 병 사들과 아르카이아 소속의 무인들이 겹겹이 몰려왔다. “왜인가.” 사나운 눈길로 센이 날 잡아먹을 듯 노렸다. “당신들의 가치관이 바뀔 리가 없죠. 겨우 하인과 하녀를 위 해 인질로 잡힌 주인이라니... 그 조건을 믿을 수도 없을 거니 와.” “.............” 빠드득 이 갈리는 소리. “그런 비참함을 안겨드릴 수는 없잖습니까?” 낮은 바람이 불어왔다. “이 하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던 어린 주인에게 말입니다.” 말소리가 멎었다. 나를 둘러싼 포위망을 굳히고 기사들의 검극 이 내게로 몰렸다. 눈빛으로 살인을 할 수 있다면 난 골백번 죽었으리라. 그 감각들을 묘한 쾌감과 함께 받아드리며 난 느 릿하게 허리의 검을 뽑아들었다. “게다가 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가 당신들 앞에서 비굴해 야 하는 미천한 존재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답 니다.” 손에 들린 검에 휘감기는 바람의 느낌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 다. 내 어린 주인이 이미 저들과의 인연을 끊었다. “지금까지 유효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내가 저들에게 얽혀 고개를 숙여야 할 이유는 아무데도 없었다. “이래봬도 제법 쓸만한 작위도 몇 개 있는 몸이라서 말이 죠.” “허튼 소리!”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로 기사 하나가 튀어나왔다. 너무나 정직하게 정수리 위로 들어올린 검을 내게로 내리치며 그는 달려나왔다. 휭 몽둥이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검의 면이 내 어 깨를 향해 내려오다가 팔을 따라 흘러왔다. 속임수치고는 너무 정직하고... “아아, 사실이랍니다. 그리고 최소한 당신보다는 높았다는 것 은 미리 말씀드리고 싶군요.” 느렸다. -챙!- 그의 검이 하늘 높이 치솟아 날아갔다. 믿어지지 않는 듯 그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후배로 보이는 기사의 검 하 나를 억지로 뺏어들고 다시금 내게로 질주해 들어왔다. “때문에....” 정직한 돌진은 보이지 않아 피할 수 없거나 알아도 피할 수 없을 정도의 힘과 속도가 실려있을 때가 아니면 그다지 효과 가 없다. 그는 슬쩍 돌린 내 옆을 스쳐 지나가 동료 기사들의 코앞까지 달려나갔다. 여기저기서 킥킥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 왔다. 더 이상 붉어질 수 없는 얼굴로 그는 외쳤다. “젠장! 그 꼬맹이부터 죽여버리겠어!” 난 말을 멎었다. 살기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그건 능력이 될 때나 하는 말이야.” 냉랭히 변해버린 내 말투와 공기 때문일까. 그가 꿈찔 어깨를 떨었다. 기분이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 에게 강한 자. 언젠가 수강이 말했었다. 언젠가 그런 자를 만 나서 원치 않는 싸움을 벌리게 될 때는 최대한... 확실하게... “덤벼. 애송이.” 염장을 질러주라고. “신경이 쓰이십니까?” 팔꿈치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던 카느의 눈꺼풀이 열렸다. 길다란 숨을 내쉬며 카느는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판단이었는가를 모르겠군.” 등을 돌린 순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완전히 믿지 않 았다. 드래곤이랄까 뭐랄까 그녀가 아닌 다른 힘의 개입이 있 었으리라 판단했다. 지하로부터 솟구쳐 오른 그 파괴력은 인간 의 힘이라 보기에 너무나도 크고 두려웠다. 그러나 믿지 않기 도 힘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 힘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랬기에 용서한다는 약속을 했다. 죽이거나 병신을 만 들지만 않는다면... 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카느로서 예측할 수 있는 결과는 네 가지였다. 그녀가 기사들 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거나 죽여 약속의 조건을 지키지 못 하고 달아난다. 둘, 약속의 조건도 지키지 못하고 달아나지도 못한다. 약속의 조건을 지키지 못하고 달아난다와 지키고 달아 난다. 그렇다 한들 최악은 아니었다. 감히 자격도 없는 자로서 황궁 앞뜰에서 칼부림을 한 죄. 책임을 물어 클레이브라는 소 년까지 처형시키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본국에 서도 버려지는 말 같은 존재였으니까. 부담스러울 것은 없었 다. “그 어린 소년이 자꾸 떠올라서 말이지...” 너무나도 연약한 소년이었다. 동시에 그런 강한 영혼은 카느 조차도 그다지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죄책감이었다. 기사들이 하녀 일행을 제압해 버린다면 소년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족 히 상상할 수 있었기에. 이미 신분을 버린 소년. 평민이라 보 아도 무방한 그 소년에게 성난 기사들이 어떻게 대할까. “나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버려지더라도 매달려 보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후작가의 작위와 재산. 후계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혜. 그 모든 것을 하 녀 하나의 주인이 되기 위해 버린다고 했었다. “그 하녀는 Lord의 무엇이었을까?” 사실상 카느는 기사들이 그녀들을 무사히 제압해 데려오리라 믿고 있었다. 검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건 확신이었다. 그 믿음을 흔든 건 단 한마디의 단어였다. ‘Lord’. 그 하녀가 Lord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리는 절대 없었 다. 전무후무한 괴짜였다는 소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지만 그 위대한 자가 남의 하녀노릇이나 한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 었다. 그러나... 여인으로서 그런 강함을 지닌다는 것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땅을 폭발시킨 그 힘이 그 하 녀의 것이라도 믿지 않더라도 그 당당함은 근거 없는 자만에 서 뿜어져 나올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제자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했는 데...” 단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도가 아니라 제자라는 존재 자체를 무척이나 귀찮아하고 싫어했다고 했다. 수 많은 왕들과 기사들 이 제자로 들기를, 혹은 그들의 자제를 들이기를 원했지만 길 어봤자 하루. 슬쩍 지나가면서 몇 마디 던진 정도가 다였다. 심지어 제자라는 단어조차 듣기 싫어했다는데, 그런 그녀가 새 삼스럽게 제자를 길러 내보냈을 리가 없었다. “제 좁은 소견이옵니다만....” 조용히 카느의 말에 귀 기울이던 목소리가 조용히 움직였다. 카느의 고개가 조금 움직였다. 길다란 창문 아래 아침의 빛을 그대로 받으며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여인이 조금 고개를 갸웃 했다. 길게 틀어 올린 머리에 꽂혀있던 머리장식이 반짝 빛을 반사했다. 찌푸려져 있던 카느의 눈가가 조금 편안한 곡선을 그렸다. “하찮은 하녀일지라도 그 이름이 몰고 올 파장을 상상치 못 했을 리는 없을 겁니다. 그 이름을 사칭했던 수 많은 거짓말쟁 이들의 말로를 모르는 자는 없을 테니까요.” “..............흠.” 옛날 이야기에는 공포보다는 호기심과 신기함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전설의 힘을 확인해 보려는, 전설이 남긴 흔적을 넘어 서 보려는 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갑 자기 사라진 후 그녀의 제자임을, 혹은 그녀임을 사칭했던 자 들은 그런 도전자들의 홍수에 몰려 처참하게 스려졌다. “그러하면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카느의 고개가 차분히 끄덕끄덕 흔들렸다. “백년 전의 전설을 보았을 때, 그녀의 곁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사오니....” “흠?” 가늘게 좁혀진 카느의 눈이 반짝 움직였다. “제자도 아니고 본인도 아닌 자로서 그 이름을 내세워 약속 할 수 있는 자라면...” 여인이 수줍게 말끝을 흐렸다. 카느의 몸이 벌써 반쯤 일으켜 세워졌다. “...피를 이은 자!” 카느의 몸이 벌써 방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며 여인은 살포시 미소지 었다. “...그쯤 되는 여인이 아니올 지요.” 열린 틈 하나 없는 밀폐된 방안의 공기가 살짝 움직였다. 작은 그림자 하나가 미세한 문틈 사이로 살며시 빠져나갔다. “일어나세요.” 전날의 축제로 새벽까지 들떠있었던 크레이와 스테판의 몸이 좌우로 가볍게 흔들렸다. “어서 일어나야 해요.” 우웅 신음소리와 함께 이불을 다시 말아뒤고 배개를 끌어안는 스테판의 어깨를 두드리는 목소리는 조금 다급했다. “스테판! 크레이!” “헉!”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귀에 익은 여인의 것임을 깨닿는 순간 두 사람의 몸이 튕겨지듯 일으켜세워졌다. “크, 클로네님!” “쉿!” 드레스 차림이 아닌 평범한 하늘색 셔츠 위에 낯선 짙은 회색 의 망토를 걸친 클로네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생긋 미소지었다. “정신이 드나요?” “어, 여기는 어떻게!” 평민들의, 그것도 남자들의 숙사였다. 귀족이며 여성인 클로네 가 쉽게 드나들만한, 그것도 찾아와 아침을 깨워줄만한 곳은 절대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에 눈을 비비며 스테판이 조심스럽 게 침대에서 나왔다. “선택할 기회를 주겠어요.” “네?” 클로네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남겠습니까? 떠나가겠습니까?” 깊게 가라앉아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이 침착한 눈빛으로 클 로네는 말을 꺼냈다. “클레이브님을 따라 이 곳을 떠나겠습니까? 아니면 남아 공 부를 계속하겠습니까.” “가, 갑자기...” 두 소년은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클로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클레이브의 근간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조금은 알고 있 었다. 그러나 떠나야 한다니? 그것도 이렇게 불시에 질문을 받 아야 할 만큼 뜬금 없이?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클레이브님이 스스로 자신 의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자,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겠다면 그 후견인으로는 제가 서 줄 수 있습니다.” “클레이브님께서 결정하셨다구요?” 스테판이 조용히 옷장을 열었다. 이미 마음이 굳은 듯 그는 손 을 더듬어 가방을 꺼내 옷가지를 쑤셔 넣었다. “후... 네. 시간상 직접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후.” 스테판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저로서는 두 사람 모두 남기를 원합니다만.” 스테판을 고요히 내려다보며 클로네는 성글게 미소지었다. 스 테판의 손이 문득 멎었다. 두 눈에 갈등이 짙게 남아있었다. “왜 떠나시는 건가요?” 클로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울 것 같은 기묘한 미소 를 애써 입가에 그리며 그녀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훗.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죠.” ‘페르로이 가문의 후계자도 아닌 혼혈아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다리로 이 세상에 서기 위해서...’ 스테판의 몸이 튕겨지듯 쏘아져 나갔다. 스테판의 손이 번개처 럼 옷장 문을 열어 젖혔다. 크레이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스테판의 옷가지와 짐들이 보따리에 구겨 넣어져갔다. 클로네 는 작게 한숨을 내쉈다. 정이 많이 들었었는데, 각오도 하지 못한 채 모두와 헤어져, 이 제국에 혼자 덩그라니 남겨져야 한 다고 생각하니... 왠지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안돼, 안돼.’ 클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어젯밤 하르크에게로 울부짖던 클레 이브의 목소리가 귀가에 선명했다. 이들을 잡을 수 없었다. 그 리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했다. 그녀에게 는 아직 이 프란 땅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함께 가도 좋 다는 금아의 제안을 냉정히 거절한 건 그런 이유였다. 단지 지 금이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셀레라 따위에게 밀려나 줄 수는 없지.’ 떠나가는 클레이브를 보며 즐거워 할 그녀를 떠올리며 클로네 는 독기를 끌어올렸다. 음모와 질투로 물들어진 제국. 살아남 기 위해서는 독을 품어야 했다. 이제부터서라도.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죠?” 어느덧 준비를 마치고 가방과 짐을 단단히 동여맨 스테판과 클레이브가 눈을 빛냈다. “아르카이아의 정문.” 클로네의 손가락이 창문 너머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웅장한 건물 하나를 짚었다. 그 곳이 금아와 약속된 그들의 약 속장소였다. “서둘러야 해요.” 이별의 미련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세 사람은 문을 열고 축제 로 인해 허술해진 현관을 통과해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헤어졌다. “안부 전해주기를.” 클레네의 입가에 떠오른 엷은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 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0-탈출 “허, 허, 허허허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로 몰아친 것은 새까만 절망감이었다. 카느는 연신 거친 수염 을 매만졌다. 주름진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그건 단지 노쇠한 육신의 약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숨구멍 하나 하나가 다 조여 지는 압박감을 애써 떨치며 카느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허허...” 상상을 초월해도 유분수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카느는 메마른 입술을 축였다. 입안이 바짝바짝 조여왔다. 최 초의 진동과 이어진 파괴와 폭발 모두가 그녀로 인한 것이었 음을 이제는 믿을 수 있었다. ‘완전히 잘못 패를 짚었군....’ 달아나지도 않고 보란 듯이 황궁 폐허의 앞뜰에 버티고 서서 기사들을 개 패듯 몰아치고 있는 하녀는 검후의 딸이 아니라 그 재림이라 해도 믿을 수 있으리만큼 황당스러웠고 강했다. “크어어어어어....” 여기저기서 신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빗발쳤다. 겁에 질린 아우 성 소리. 가뜩이나 뻥 뚫려 이전의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었 던 황궁 앞뜰은 사방 군데에 뻗은 부상자와 기절한 자들로 뒤 덮였다. 전쟁터도 이런 전쟁터가 없었다. “카, 카느시여...” 옆을 지키고 서 있던 시종장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 다. 카느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힘이 욕심이 났던 게 사실이 었다. 모른 척 뒤돌아 가면 흥분한 기사들이 날뛸 터이고 그 와중에 머리가 있는 놈들이라면 최소한, 클레이브라는 그 꼬마 정도는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강하다고 해 봤 자 겨우 세 사람이 아니었던가. 수십이 넘는, 아니 수백이 넘 게 몰린 기사들과 병사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이야! 그것도 단 세 사람에게! “크으....” 카느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견디기 힘든 두통이 그를 조여왔 다. 최악이었다. 망가진 정원이야 지진이나 드래곤의 소행으로 밀어붙이면 됐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니 그럴 듯한 해석 하나만 붙이면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 싸운 둘은 별개라 칠 수도 있었다. 잡아와 무릎을 꿇리면 더 좋고, 설혹 못 잡았더라도 미리 언질을 주었으니 일부러 풀 어준 냥 내세워서, 제국답게 크게 관용을 베푼 듯 처리해, 크 게 체면을 구기지 않으며 이래저래 얼버무릴 수 있었다. 그게 카느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바로 이 앞에 펼쳐진 진풍경 이었다. 제국의 황궁이 겨우 한 사람에게 농락당하다니! 그것 도 각 국의 외교사절들과 세력들이 득시글 모여있는 이 중앙 절 한 가운데! 아니 그것도 참을 만 했다. 프란보다 강한 힘을 지닌 나라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대외적인 체면 문제가 아니었다. 불행히도 프란은 아직 그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신생제국이었다. 수로 전쟁에서 외부 의 적에 대항할 때는 똘똘 뭉칠 수 있음은 스스로 증명했건만 거칠고 힘과 무력을 숭상하는데다가 부족 단위의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프란의 사막인들에게, 이런 사건은 자칫 잘못했 다가는 실망과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는 뼈아픈 실책이었다. 겨우 두세 사람의 힘으로 흔들릴 수 있는 제국이라니. 그 얼마 나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겠는가! ‘후, 어쩔 수 없구먼....’ 프란 제국을 피티아의 전철을 밟도록 할 수는 없었다. 감았다 뜬 카느의 눈매에 옅은 살기가 맴돌았다. 지긋이 악문 입술 틈 으로 가느다란 핏물이 흘러내렸다. 자책과 후회 그리고 미련이 순서대로 그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결의가 남았다. “마음에 드는 적에 대한 형식적인 관용보다는 내 나라와 내 신하가 더 중요한 법.” 시종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카느의 손이 느릿하게 들렸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간다.- 잠시 나무 위에서 몸을 숨기고 시간을 보내기를 수 십여 분, 머릿속을 울리는 전음에 힐끗 뒤돌아보던 하르크가 빈 입맛을 다시며 전력을 다해 질주해 나갔다. “젠장 빠르기는.....” 빛살처럼 다가오는 무표정한 금아의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담 겨있지 않았다. 금아로부터 칙칙한 전장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 다. 하르크는 오금이 달달 떨려왔다. 이런 금아는 처음이었다. 늘 란에게 구박 당하면서도 한번 화내지도 않고 멋쩍은 미소 를 짓던, 클레이브에게 늘 사람 좋게 웃음을 띄우며 하인노릇 을 자청하던 금아에게서 이런 공포감을 느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르크의 똥줄이 타는 듯 바짝바짝 조여왔다. 지 금 두려운 건 따라올 지도 모르는 기사들이 아니었다. 하르크 는 마치 설질 더러운 드래곤에게 쫓기는 오크라도 된 듯한 심 정이었다. ‘.... 전장의 사신이라는 별명이 있기는 했지만... 진짜 사신이 라도 저렇지는 않을 꺼야.’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오늘 확신했다. 베이르 대공의 전적을 떠올려 버린 하르크는 찔끔 지린 물을 저렸다. 암살자 생활로 잔뼈가 굵어 어지간한 것조차 눈살찌푸리지 않을 자신 이었지만 지금의 금아와 같은 자를 적으로 만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어떻게 저 꼴을 하고서도 발소리가 없는 거야!’ 하르크는 애써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추격자들을 모조리 떼어 낸 후 아르카이아의 숲에서 헤어져 숙사에 들려 이것저것 모 조리 챙겨온 금아의 등은 어른 덩치 두엇 만한 짐덩이가 매달 려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쉴새없이 파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 는 자신의 발치를 힐끗 내려다보며 하르크는 신경을 잔뜩 집 중했다. 말 없이 노려보는 금아의 눈이 마치 ‘자꾸 시끄럽게 발 소리내면 다리를 부러트려 버리겠다’고 협박치는 것만 같 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더니... 누가 스승 제자사이 아니랄까 봐... 독하기는!’ 기사들을 떨궈내던 금아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며 하르크는 몸 서리쳤다. ‘란님 만큼이나 지독한 놈.’ 황궁 정문에서 조금 빗겨나 옆쪽으로 넓게 펼쳐진 사냥터로 들어서면서 금아의 손속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럭저럭 하르크가 아는 금아다웠다. “돌아가시오. 겨우 질투심 때문에 어린아이를 괴롭히려들다니 부끄럽지 않은가!” 하인다운 공손함은 깨끗이 접었지만 숲 속 공터 한 가운데 모 습을 들어내고 검집을 비스듬히 느린 금아의 풍모는 어딘가 귀족스러우면서도 범접하기 힘든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게 따라와 그를 둘러 싼 기사들의 움직임이 움찔했 다. “건방진! 감히!”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른 기사들이 폭발하듯 들끓어 오른 건 한 순간이었다. 작은 동물들마저 일찌감치 달아나 버린 텅 빈 숲속은 기사들의 흥분한 숨소리로 어지럽혀졌다. “너 같은 놈에게는 예법을 지켜 줄 필요가 없다!” 폼 좋게 검을 뽑아든 기사 하나가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금아의 검집이 느릿한 곡선을 그렸다. 기사의 몸이 마치 자살 이라도 하려는 듯 금아의 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여지없 는 비명을 질러대며 멀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그 자가 시작이 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검집을 집어던진 기사들이 금아에게로 돌격해 들어갔다. “........!” 뒤통수를 노리는 공격은 다반사였다. 아니 아주 작정한 듯 뒤 만 노려댔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 한 그루에 몸을 숨기고 클레 이브를 조금 편안한 자세로 안아든 하르크가 숨을 죽였다. 금 아의 살기가 점점 더 거칠어져갔다. 하르크는 몸을 움츠렸다. “기사라... 기사라....” 낮게 이가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려왔다. 그러나 광분해 이 성을 잃은 기사들에게는 그 조차도 도발로 들려왔다. 여기저기 씨근덕거리는 욕설들이 높아졌다. “비천한 놈! 기사란 기사에 대해 예를 지키는 법. 너 따위가 바랄 것이 아니다.” 동료들이 얻어 터져 가는 가운데 뒤편을 지키고 있던 기사 하 나가 검을 들어 얼굴 정면으로 멋스럽게 세웠다. 하르크는 분 명히 보았다. 금아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바 람 없는 숲 속의 나뭇잎들이 파스스스 울어댔다. “...감히 기사다움을 입에 올리는가?” 낮게 깔린 금아의 목소리가 장중하게 숲에 울려 퍼졌다. 순간 나무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하르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나 무기둥을 끌어안았다. 한 팔에 끌어안긴 매달린 클레이브의 팔 다리가 휘청휘청 공중에 흔들렸다. 소름이 돋았다. “여인 하나를 둘러싸고 협공을 해대며...” 자박. 한 보의 걸음이 기사들 앞으로 딛어졌다. “주인 없는 들개처럼 날뛰어대는 너희가?” 자박 두 보의 걸음이 이어졌다. 움찔 움찔 기사들의 몸이 뒤로 물러섰다. “너희들은 자격이 없다.” 한 줄기의 섬광이 검집을 박차고 달려나왔다. 흐릿한 잔상이 흩어지는 가운데 금아의 몸이 사라졌다. 하르크의 동공이 커다 랗게 열렸다.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모르는 기사들의 눈이 두리번두리번 금아를 찾고 있었다. -가자.- 반사적으로 하르크의 다리가 움직였다. 뒤따라올 비명에서 한 순간이라도 먼저 달아나고 싶었다. “아, 아, 아, 내 팔! 내 팔! 내 팔이!”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성을 잃은 비명소리들이 폭발해 나왔다. “내 오른팔! 오른팔!” 하나같이 오른 팔을 잃어버린 자들의 절망적인 신음소리와 절 규가 숲으로 퍼져나갔다. 파로 곁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듯 하 르크는 코를 쥐어 잡았다. “기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머리를 남겨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라.” 스윽 금아의 몸이 하르크를 스치고 날아갔다. 심장이 벌컥 날 뛰었다. 일순간 소름이 쫙 돋아 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하르크 는 다리에 기를 쏟아 부었다. 밤이면 밤마다 란에게 쥐어터지 며 단련한 필살의 도주가 그의 다리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금아의 몸이 휙 뒤로 젖혀졌다. 금아의 눈에서 잠시 이채가 반 짝였다. 금아의 속도가 조금 떨어지며 하르크의 등뒤를 지키듯 자리잡았다. ‘제, 젠장! 난 언제쯤 맘 편히 살아볼 수 있는 거야!’ 식은땀이 방울방울 바람을 타고 흩어져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금아의 눈이 멀어져 가는 황궁으로 막연하게 향하고 있었다. 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덤벼 들던 기사들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약속을 깨실 생각입니까?” 내기가 충분히 실린 목소리는 카느의 귀에 닿았으리라. 그의 어깨가 잠시 떨렸다. 아주 짧디 짧은 갈등이 그의 얼굴에 나타 났다 사라졌다. “황궁을 더럽히고 제국을 모함하려한 자와 내 무슨 약속을 했는가!” 뱃속 깊숙히서부터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나뿐만이 아니 라 기사들의 고막에까지 닿아 울렸다. 카느의 명을 거역하는 듯 해 쉬이 덤비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던 기사들의 눈빛이 변 했다.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자들까지도 이야기 속의 좀비처럼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크리아에 사신을 보내리라! 모두 전열을 가다듬어라! 개인적 인 싸움을 멈춰라! 제국의 전사로서 그에 맞는 모습을 갖춰 라!” 순간 이해하지 못한 듯 기사들의 고개가 카느에게로 돌려졌다. 공간을 격하고 눈이 마주친 그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 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순간 발작하듯 덤벼들던 기사들의 뒤통수로 또다시 카느의 호통소리가 울려왔다. “이 황궁을 전장으로 더럽힐 작정인가! 그대들은 망해버린 제 국의 교훈을 얻지 못했는가!”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하는 기사들을 헤치고 난 몸을 날렸다. 금아와 하르크가 준비를 마칠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더 이상 이 제국에 미련은 없었다. 어차피 클레이브의 운명의 한 귀퉁이를 보았을 때부터 편안한 아르카 이아 생활이 이어질 거라고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식으로 추격대를 구성해라! 그리고 감히 이 프란의 황궁 을 어지럽힌 간악한 자들을 주살해라!” 전투에 미친 사람들의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제국의 힘을 보여라!” 더 이상 그 어떤 눈동자도 날 쫓지 않았다. 흥미 있는 사냥감 을 풀어주듯 기사들은 내게서 멀어져갔다. 희미해져 가는 카느 의 입가에서 문득 한숨이 흘러나오는 듯 보였다. ‘하긴 하녀 하나 쫓으면서 제국의 힘 운운해야 하는 제왕의 심정이 어떠랴 만은....’ 지금 내 속처럼 막연하고 답답하지는 않으리라. 고집스럽게 하녀복으로 다시 옷을 갈아입은 나를 염려인지 뭔 지 알 수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금아는 희미 한 미소와 한숨을 내뿜었다. “...실수하신 겁니다.” “알고 있어.” 다시 만난 아르카이아의 정문은 한산했다. 바람에 흐르듯 신음 소리들이 조금씩 흐느적거리며 들려왔다. 말 등에 올라타며 금 아는 황궁 방향으로 고개를 잠시 돌렸다. “개개인의 집단이라면 무력시위가 통하지만, 국가라는 덩치에 개인의 무력시위는...” “아, 아....” 개인의 체면과 국가의 체면이 그 무게에 있어서 같을 수는 없 었다. 너무 뒤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시간을 끌기 위해 기사들 을 몰아칠 생각만 했었지 제국 전체의 입장은 순간 머릿속에 서 지워졌었다. 그나마 떠오른 건 다시 돌아 나온 카느의 얼굴 을 보았을 때였으니까. “후... 하긴 피티아의 재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만도 충분히 수고하신 거기는 합니다만...” “여하튼 서둘러서 빠져나가야 해. 정식으로 추격대를 구성한 다는 둥 어쩐다는 둥 시간을 끌어 우리가 프란을 벗어날 때까 지 기다릴 속셈이기는 하겠지만....” “타실 거요? 아님 말을 따로 모실 거요?” 턱 하니 마부석에 자리잡은 하르크가 힐끔 내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언제 준비했는지 사두 마차에 말 두 필까지 깔끔하게 준비를 마친 그는 헤벌쭉 웃음기까지 얼굴 가득 띄우고 있었 다. 연신 헤죽데는 모습이 미친 거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손 을 대고 싶어도 당분간은 댈 수 없다. “따로 가야겠지.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말울음 소리를 시작으로 조금씩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 곤에 지치고 잔뜩 긴장한 세 소년의 숨소리가 불규칙하게 들 려왔다. “괜찮습니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밝게 떠오른 태양아래 새벽의 충격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다시 축제의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로 통하는 문은 반드시 열어드리겠습니다.” 아침나절 황궁에서 벌어졌던 그 모든 소란이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인냥 흥겨운 음악소리와 좋은 음식의 향기가 퍼 져 나왔다. “자아... 이제 본격적인 방랑을 시작해 볼 까요?”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1-한편.... “대 지급일세!” 평소와 다름없던 날이 밝자마자 날아온 한 편의 소식은 페르 로이 후작가를 발칵 뒤집었다. “................!” 후작의 손이 파르르르 떨렸다.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투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치떠진 후작의 눈에 비친 차스크 백작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네. 하지만 사실일세.” 후작이 고개를 들어 눈물을 말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가슴을 찢고 밖으로 퉁겨져 나올 것만 같았다. 목이 메였다. 세상이 노랗게 빛이 바랬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지 앉아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몸의 감각이 사라져갔다. 후작의 몸이 휘청 흔들 렸다. “주인님!” 해리슨의 축축한 손이 급히 그를 부축했다. 그 역시도 식은땀 에 몸이 잔뜩 젖어있었다. 후작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몸을 일 으켰다. “괜찮네... 괜찮아.”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후작은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았다. 휘청 또다시 다리가 풀렸다. “미안하군. 앉지.” 뽑아낸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지 못했다. 차스크 백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슨의 도움을 받아 후작의 몸이 의자에 기대어졌다. 목을 뒤로 기댄 후작의 눈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딸그락 하녀 하나가 찻잔을 가져왔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누르 는 찻잔의 표면에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혔다. “...노도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 해리슨의 고개가 조용히 저어졌다. “정원사와 이렇게 차를 마시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허허로이 웃음 짓는 늙은 정원사의 얼굴은 평온했다. 왕세자의 표정도 덩달아 부드러워졌다. 소국이기는 하나 일국의 대를 이 을 자신의 앞에서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대는 내가 두렵지 않는가.” 처음 왕세자를 만나는 자들은 대부분 두 부류 안에 든다. 긴장 하고 겁먹어 잘 보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 기죽지 않기 위해 어깨에 힘을 가득 집어넣고 무리하는 사람. 열외란 거의 없었다. 그의 신분을 모르는 게 아닌 이상은... ‘신기한 사람이야....’ 더욱 더 신기한 사실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거슬리거나 건방져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정원사는 거 만하지도 자신감 넘치지도 않았다. 겸손했지만 비굴하지도 않 았다. 딱 알맞은 균형감. 아무나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 다. “정원사 따위가 무엇을 알아 두려워하겠습니까. 아무 것도 모 르니 두려워 할 줄도 모르는 것뿐입니다.” 왕세자의 눈에는 그런 늙은 정원사의 모습이 더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을 두터운 신분과 격식의 벽이 그 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태도... 그 의 앞에서 저절로 겸손해진 자신이 보일 정도였다. “...그대는 마치 초월한 신관 같은 말을 하는군.” 살며시 고개를 돌려 보이는 정원사의 푸근한 미소를 보며 몇 년 전 만났던 어느 대신전의 노신관을 떠올린 왕세자의 눈은 즐거운 듯 빛을 발했다. “이제 더위도 절정에 달했군.” 나뭇잎 사이로 산산이 흩어진 햇살 줄기들이 어지럽게 빛을 발했다. 유난히도 길어진 해가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더위 를 피해 몸을 숨긴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키워주고 있었다. 후작가의 동의 정원, 일명 마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을 손질한 정원사의 소문을 들었던 건 일년 전의 일이었다. 신기하다는 듯 시종들이 재잘거리는 소문을 흘려 들었었을 뿐이었는데. 우 연한 기회에 손에 넣은 동대륙의 난초 한 뿌리가 오래된 기억 을 되살렸다. “그래, 이 난은 살 것 같은가?” 축 늘어진 난의 이파리가 안쓰럽게 바람에 흔들렸다. 왕세자는 숨을 들이쉈다. 미묘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몇 일 전인 가 우연히 바람결에 맡아봤던 향기였다.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향긋하고 맑았던 난향. “뿌리가 생명을 지니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관리 해 주면 곧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햇볕도 들지 않는 구석진 장소 돌무더기 위에 뿌리듯 얹어놓 은 난의 자태가 장인의 손으로 빚어 구운 도자기 안에 심어져 있었을 때보다도 더 아름답게 빛났다. “신기한 일이야.” 왕세자는 팔꿈치를 괴고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난을 응시했다. 코를 대고 맡아보려 노력했었을 때도 전혀 느껴지지 않던 그 아름다운 향기가 활짝 트인 이 곳에서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 고 있었다. 늙은 정원사는 말없이 물 한 국자를 떠 난 주위의 바위에 뿌 렸다. 솨아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흩어지며 옅은 무지개 한 자 락이 피어났다 사라졌다. “이제 들어가셔야죠.” 한 여름 낮의 선 꿈이 깨져 나가고 있었다. 동대륙에서 흘러온 신선도의 한 자락인 냥 앉아 고개를 숙인 정원사의 모습만이 현실인 듯 왕세자의 눈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아, 그렇군.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군.”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아쉬운 듯 한번 난과 늙은 정원사를 바 라보던 그의 눈가에 문득 이채가 서렸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후작가의 집사이기도 했지.” 공유될 수 없는 두 개의 신분이 그 존재만큼이나 이색적이었 다. 살짝 가늘어진 눈가에 미묘한 장난끼가 어렸다. “...차라리 여기 그대로 남는 게 어떤가?” 몇 일 째 돌려보내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 잡아두던 이유는 달리 있지 않았다. 그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이 노도가 마음에 들었다. 노도의 눈가가 가볍게 휘어졌다. 꿀꺽 왕세자의 목에 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저야 나쁘지 않습니다만....” 노도의 시선이 왕세자의 등 뒤로 살짝 넘어갔다. 그의 흐름을 따라 왕세자의 고개가 힐끔 돌려졌다. “전하의 스승이신 분께서는 싫어하실 것입니다.” 아직도 한쪽 눈에 푸르딩딩한 멍자국을 담은 궁정 마법사 로 웬이 당장이라도 창백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온 몸 을 부르르르 떨고 있었다. “저, 전하... 늦으시기에 모시러 왔사옵니다만....” 살기 가득한 그의 눈빛이 노도의 전신을 휩쓸었다. 헤벌쭉 멋 쩍은 듯 웃음 짓는 노도와 로웬의 사이 영문을 모르는 왕세자 가 어색한 얼굴로 끼여있었다. “저, 저... 무례하고 발칙한 자가 왜 여기 있사옵니까!” 외마디 비명성이 흘러나왔다. “노도님은 어디로?” 차스크 백작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요 몇 일 올 때마다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 노도님은....” 이제 제법 님짜까지 붙여 능숙하게 대하는 차스크 백작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담아 해리슨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노도라 면 해리슨이나 후작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귀한 여신님의 사자이기는 했지만 대외적으로 보자면 엄연히 후작가의 하인 이었다. 그런 그에게 공대하는 백작가의 주인의 모습이란 볼 때마다 어색하고 죄송한 감정뿐이었다. “노도님은 사흘 전 왕세자님의 부름을 받아 왕궁으로 갔습니 다만...” “...왕...궁?” 차스크 백작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갑작스레 입꼬리를 파르르르 떨어대는 그의 반응에 해일런이 조심스럽게 응대했 다. “네. 그렇습니다만, 무언가 잘못된 일이라도...?” 멍한 눈빛의 고개가 후작에게로 돌려졌다. 지독한 낭패감에 젖 어있던 후작의 눈꺼풀이 슬그머니 되올려졌다. 불길했다. 그가 아는 차스크 백작은 어지간한 일로 이런 반응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 “왕세자...께서... 부르심이... 분명한가?” 재차 확인하듯 그가 중얼였다. 다시금 선명하게 긍정하는 해리 슨의 눈빛이 불길함에 흔들렸다. 차스크 백작이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감싸쥐었다. 손가락 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마구 구겨지며 쥐 흔들렸다. “크으으으. 어찌 일들은 이렇게 꼬인단 말인가!” “무, 무슨 일인가!” 최악이라 할 수 있는 클레이브의 소식을 들고 와서도 일말의 침착함을 지키고 있던 그였다. 페르로이 후작의 몸이 벌떡 일 으켜졌다. “미안하네. 내 차마 자네에게는 말 하지 못한 사건이 하나 있 었다네!” 애처로운 얼굴로 차스크 백작의 고개가 들려졌다. 해리슨은 저 도 모르게 팔뚝을 쓰다듬었다. 오싹오싹 소름이 온 몸 가득 일 어났다. 로웬은 두 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미묘하게 반짝인 노도의 눈빛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 른 한편으로는 끓어오르는 울화를 억눌렀다. ‘제 얼굴을 이렇게 만들고 제 실험실을 난장판으로 뒤엎은 무례한 자입니다! 어찌 이런 자와 상종하십니까!’ 자칫 이렇게 말이 터져 나올 뻔했다. 로웬은 크게 심호흡했다. 그런 재난을 또다시 겪을 수는 없었다. ‘우, 웃어야 한다. 웃어야 해.’ 입가를 올리고 눈을 한껏 휘었다. 입꼬리와 볼이 조금 푸들푸 들 떨리기는 했지만 지금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호오? 자네는 이 정원사를 아는가?” 왕세자의 질문이 로웬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무것도 모르는 냥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딴청을 피고 있는 저 노도라는 정원 사가 때려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아, 아니요.. 한낮 미천한 정원사 아니옵니까...” 스스로 느끼기에도 목소리가 이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그게 아닌 듯 싶은데?” 왕세자의 고개가 갸웃했다. 로웬은 열화를 억누르기 위해 안간 힘을 써야 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날의 그 개망신이 재현 될 수도 있었다. ‘안돼! 안돼! 절대 저하께만은 알려서는 안돼!’ 부르르르 치가 떨렸다. “절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얼마전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난입해서 난동을 부렸던 괴한과 이미지가 비슷해 잠시 착각한 것뿐입니다.” “그래?” “네,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 졌기 때문에... 아주 잠시...” 로웬은 고개를 푹 숙였다. 빠드득 갈리려는 이를 간신히 옭아 매고 있었다. 도저히 더 웃을 수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치 가 떨리고 온 몸이 쑤셔왔다. 그 날도 오늘처럼 아주 평범했던 하루였었다. “설명을 하자면 깁니다만...” 차 한잔에 속을 좀 다스린 차스크 백작이 주저주저 말문을 열 었다. “발단은 마법 전송이었습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프란의 중앙절이 다가오고 란이 이래저래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갈 무렵 차스크 백작과 헤일런 공작은 마법사들의 조직을 이용해 몇 조각의 소식을 노도에게로 전해 줄 수 있었다. “호오? 어떻게 이렇게 빠른?” 노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신기한 듯 차스크 백작 이 들고 온 수정구를 연신 만지작거렸다. 서대륙 곳곳에 자리 잡은 마법사들의 모임이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서비스 중 하나가 바로 정보전달이었다. 마법이라는 신기한 힘으로 하루 도 채 걸리지 않아, 겨우 몇 분만에 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동안 란에게 인편의 편지를 부쳐왔던 노도에게는 놀랍다 못해 신기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발견이었다. 마법사의 전송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귀족가의 집사라니 어 이없기도 했지만 차스크 백작과 헤일런 공작은 그러려니 여겼 다. 워낙에 특이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문제는 연이어 이어진 노도의 호기심과 관심이었다. “그는 마법의 전송과, 마법에 대해 알고 싶어했었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만류하는 두 귀족을 설득시 키며 노도는 몇 수의 도술을 선보였다. 두 귀족은 노도에게 마 법사 하나를 소개시켜 줄 것을 결심했다. 벌써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 자라면 소개해서 욕먹을 리도 없을 뿐 아니라, 노 도가 지닌 그 신기한 동대륙의 힘이 마법과 같은 성질의 것이 라면 크리아의 마법사가 익혀서 나쁠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서로 지식을 교환할 것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지 만 방금 보여준 노도의 실력이라면 그 어떤 마법사라도 그 호 기심을 빛낼 만 하다고 그들은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러시다면 직접 만나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자리를 마련했다. “헉!” 그 대가는 처절했었다. “노도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선득 시간을 내겠다고 약속한 마법사는 궁정마법사 로웬이라 는 자였다. 본래 몸이 약한 남작의 차남으로 태어나 별 기대 없이 마법사의 제자로 들어갔던 그는 의외의 재능을 발휘해 이른 나이에 한 사람의 마법사로 독립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뛰어난 정치감각을 발휘해 궁정 마법사로 들어와 지금 백작의 작위까지 받아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었 다. 그 때문인지 그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호기심이 왕성했고 또 자존심이 강했다. 그런 그가 선 듯 시간을 냈었 다. 차스크 백작은 만족했었다. “왜, 왜, 이런!” 더위먹은 개구리처럼 바닥에 납작 널부러진 로웬을 바라보며 차스크 백작은 말을 잃었다. 로웬의 얼굴에 움푹 주먹자국이 난 눈두덩이가 조금씩 부어 올랐다. “음?” 주먹을 만지작거리며 노도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 지금 뭘 하신 겁니까! 마, 마법사는 손으로 하는 싸움에 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사가 아니니까요.” 차스크 백작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쓰러져 있는 로웬의 몸이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재빨리 로웬의 몸을 안아들 었다.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도는 머슥한 얼굴로 뒤통수를 매만졌다. “만나자마자 대뜸 주먹부터 휘두르시다니요! 그럴 분이 아닐 텐데, 왜...!” 그 한방에 고개가 꺽어저 뒤로 날아갈 정도로 눈두덩이를 얻 어맞고 컥 쓰러진 로웬은 그대로 졸도했다. 차스크 백작은 울 고싶었다. 정말로 울고 싶었다. 가끔 얄밉기도 하고 가끔은 두 렵기도 했지만 노도라는 존재가 이토록 미워 보였던 적은 없 었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냥 경계하는 듯한 눈 길로 바라보는 로웬을 내려다 볼 뿐, 노도는 일말의 사과도 하 지 않았다. “지금 하신 일의 심각성을 모르시는 겁니까.” 바드득 차스크 백작의 이가 갈렸다. 노도가 머슥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아, 난 원래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네.” “네?” 순간 말이 딱 막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황당한 사건을 일으킨 노도에게 몇 마디는 해 주리라 먹었던 마음이 순식간 에 부서져 내렸다. 차스크 백작의 눈이 멀뚱히 노도의 얼굴로 향했다.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노도는 주억주억 말을 이었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하기에...” “아무리 마법사들이 오만한 존재들이라고 해도, 그럼 인사도 하지 않겠습니까!” 차스크 백작과 헤일런 공작은 가슴을 내리쳤다. 노도의 입가에 서 가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마법사란 존재들은... 입만 떼면 재 앙이라며...” 그러면서도 힐끔힐끔 경계 서린 눈을 로웬에게 보내며... “만에 하나 만난다면 주둥이를 뻥끗 하기 전에 먼저 패서 제 압해 버려야 한다고...” 헤일런공작과 차스크 백작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일단은 무조건 패고 보라면서...” “도, 도대체 누가 그런 무시한 소리를 한 겁니까!” 붉어질 대로 붉어진 차스크 백작의 입에서 결국 고함이 터져 나왔다. 머뭇머뭇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긁어대며 힐끔힐끔 노도 는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곤 아주 곤란스러운 듯한 얼굴로... “무후 란이.” 그렇게 말했다. “..........................” “페르로이 가의 분이시라면 많이 바쁘실 텐데 돌아가시지 않 아도 되겠습니까?” 딱딱 끊기는 목소리로 로웬은 절대 두 번 다시 대화하고 싶지 않은 존재에게 말을 건넸다. 식은땀이 두둑 떨어졌다. 미친놈 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그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에 그런 게 아닌가. 단지 입술을 뻐끔였다고 그를 개 패듯 팼던 인간이 노도였다. 정원사 주제에 공작가와 백작가의 주인의 눈 을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보아하니 왕세자조차 두려 워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것보다도 그 정도의 인물이 왜 정원 사 노릇이나 하고 있을까. ‘스승님을 능가하는 괴짜 아니면 미친놈이 분명해!’ 소름이 쫙 돋았다. “흠,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중재라도 하듯 왕세자가 끼어 들었다. 헤벌쭉 미소가 미친놈처 럼 로웬의 얼굴에 피어났다. “아니요. 여러 가지 국제 정세들도 있지만 새 안주인을 맞이 하느라 바쁠 터인데. 하고 한번 생각해 봤을 뿐입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클레이브의 일을 입에 담을 뻔했다. 저 무식 하고 힘만 세며, 동시에 알 수 없는 마법력을 지닌 인간 같지 않은 존재라면 왕세자의 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에게 로 또다시 덤벼들 것이 분명했다. 왕세자 앞에서 멱살을 쥐이 고 흔들리다니! 패대기쳐져서 얻어맞다니! 그 날의 고 꼬라지 를 보일 지도 모른다니! 궁정 마법사로서 지금까지 쌓아온 신 용이 모두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미칠 맛 이었다. 로웬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흠, 하기는 그렇겠군.” 로웬에게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노 도의 눈을 속이기에 그는 너무나 미숙했다. 노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 늦었군. 그럼 자네도 돌아가도 좋네. 가끔 들려 난을 살 피는 건 잊지 말아주게나.” 하늘을 바라보며 왕세자는 급히 몸을 돌렸다. 정수리 위로 치 솟았던 태양이 어느 새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황송하옵니다.” 묘하게 어색한 인사를 보내며 노도는 허리를 깊숙이 굽혔다. 왕세자의 모습이 조금씩 멀어져갔다. 로웬은 그런 왕세자의 뒤 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치며 재빠르게 노도에게서 멀어져갔다. “허허허... 하늘 자리가 심상치 않더라니만...” 후륵, 미풍과 함께 노도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그 이후로 별 일은 없었습니까?” 페르로이 후작이 식은땀을 훔쳤다. 로웬이라면 고집과 자존심 으로 똘똘 뭉친 괴짜 중의 괴짜였다. 그와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무가이던 남작가에서 버려지듯이 마법사로 길러진 자이기 때문인지 기사나 무인들에 대한 반감이 은근히 강한 사람이었다. “후.....” 차스크 백작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로웬은 곳 의식을 되 찾았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주문을 외워 불덩이 하나를 만들어 냈다. “거 봐. 란의 말이 맞다니까.” 불덩이 앞에서 어느 새 의기양양해진 노도가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로웬경! 로웬경, 잠시만 진정하고...” 독기가 잔뜩 오른 로웬의 귓가에는 더 이상 아무 말이 들리 지 않았다. 한 순으로 눈두덩이를 슬쩍 어루만지고 오만상을 다 찌푸린 그는 다짜고짜 노도에게로 불의 공을 던졌다. “어이쿠!” -쾅!- 불의 공이 노도를 스쳐 뒤쪽의 쇼파 하나를 박살내며 불태웠 다. 노도의 눈가가 조금 험해졌다. “허허, 다짜고짜 살수를 날리다니!” “흥! 너 같은 자는 죽어도 싸다!” 힐끔 노도의 위아래를 훑은 로웬은 노도의 하인 복에 더욱 광분한 상태였다. 노도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허허, 너라니! 자네는 위아래도 없는가! 아무리 신분이 갈렸 다지만 구도하는 자로서 말을 함부로 하다니!” “하찮은 하인 주제에!” 차스크 백작은 더 이상 끼어들 수가 없었다. 두 마법사와 도인 의 손에는 벌써 각각 만들어낸 불의 공과 희미한 무언가로 만 들어진 공 하나가 들려 있었다. “허허허허.....” 노도의 눈가에서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투기도 살기도 아니었지만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무형의 기운. “자네도 역시 갱생이 필요하겠구먼.” 평온한 그 한마디가 차스크 백작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공포스 럽게 들려왔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언젠가의 모임에서 노도를 보고 사색이 되어 짐을 싸서 영지로 내려갔던 가르암 백작가 주인의 한 마디가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차라리 영지를 몰수하고 날 죽이게나!- 손을 뿌리치고 울먹이는 가르암 백작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 날 헤일런 공작과 차스크 백작은 노도의 갱생작업 을 목도해야 했다. 그리고 가슴 깊숙이로부터 페르로이가의 주 인에게 먼저 손 내밀기를 잘 했다고 진심으로 행복해 해야 했 다. “차스크 백작?” “아, 아... 아, 네.” 퍼득 차스크 백작은 고개를 들었다. 잠시 자신이 자신만의 생 각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저로 인해 많은 신경을 써 주신 점 어떻게 감사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니요...” 얼마나 신경을 썼으면 대 낮에 눈을 뜨고 졸겠는가. 차스크 백 작은 얼굴을 붉혔다. 양심이 콕콕 찔렸다. “제가 어디까지 말했었던가요?” “아, 부담스러우시다면 중단하셔도 좋습니다만... 우선은 노도 님과 로웬경 사이에... 후, 싸움이 났다는 부분까지...” “아, 그렇군요.” 걱정스러운 후작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차스크 백작은 머리를 털었다. 끔찍했던 기억을 오래 잡아두어 봤자 좋은 일 은 없었다. “상상하시겠지만, 로웬경의 완패였습니다. 실력으로나 정신적 으로나 두 번 다시 덤빌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당했죠.” “흠.....” 후작의 고개가 가라앉았다. “다시 싸움이 나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만나서 좋을 건 없을 상태였습니다. 아시겠지만 마법사라는 자들이 힘으로 깨 졌다고 해서 순순히 마음으로 굴복할 자들은 아니니까요.” “그렇죠.” 불그스름한 땅거미가 창가를 물들이고 있었다. 두 귀족은 잠시 말을 잊었다.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터져서일까. 무엇 부터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해리슨이 따끈하게 덥혀 진 차로 빈 찻잔을 채웠다. 쪼르르 물소리에 후작의 눈에 조금 초점이 돌아왔다. “후우.....” “클레이브는 무사할 겁니다.” 나지막히 차스크 백작이 -조렸다. 후작의 볼에 생기가 돌아왔 다. “그래요. 그 아이의 곁에는 여신께서 보내주신 최강의 존재가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늘 꿈속에 그려봤던 전설의 주인. 단 한번도 그 무력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전설 속의 란은 알 수 없는 희 망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후작의 옅은 미소가 진해 졌다. 가슴 한 구석에서부터 훈훈히 피가 돌아갔다. “노도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해리슨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2-이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가차없이 떨어진 질타와 꾸중, 그리 고 함구령에 자리에 모인 기사들은 죽은 듯 고개를 숙였다. 당 시야 분노에 붕붕 떠 움직였지만 카느의 말을 듣지 않고 하녀 의 힘을 굳이 시험해 봤던 결과는 처참했다. “강함이란, 자신의 힘을 알고 타인의 힘을 알아보는 것이라 하거늘.” 쯧쯧 낮게 속삭이듯 내뱉은 말 한 마디마디가 바늘처럼 귓가 에 꽂혀 왔다. 왁자지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 왔다. 커다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이 갈린 모냥 그들은 긴장해야 했다. 카느는 중앙절 마지막 행사 때 쓰려 두었던 꽃들을 모조리 정 원의 폐허에 뿌렸다. 사막의 기운이 드래곤이 되어 날아갔으니 앞으로 제국이 번창할 징조라. 날조된 진실은 백성들에게로 퍼 져나갔고, 페르로이가의 하녀와 어린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문 안에 갇혔다. 지금 당장 이야 얼마나 믿어 줄지는 모르지만 십 여 년 정도 지나면 완전히 전설로 굳어지리라. “이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축제가 끝날 때까지 어젯밤과 오 늘 새벽의 일은 잊어라.” “...축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오면 늦습니다.” 곱게 침묵을 지키는 우트트와 달리 움크는 격정을 감추지 못 했다. “전혀 손을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느니.”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은 카느의 얼굴로 햇살이 쏟아졌다. 수염 그림자의 깊숙한 굴곡이 그의 가슴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카느 는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들을 놓아주다시피 보내 준 이후 당장 따라 달려가려는 기사들을 잡아 설득하는 일은 지치는 일이었다. 앞에서야 네, 라고 대답하겠지만 돌아가서 기사단을 탈퇴하고 광분해 쫓아 달려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 하겠는가.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들이 기사들을 목숨만이라도 보장해서 놓아준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쫓아간다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카느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앞마당에서 자신의 눈앞에서조차 이성을 잃고 날뛰며 형편없이 무너진 자들이 무턱대고 따라간 다고 잡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녀들을 정말 추격한 다면 최소한 군대 급의 체계를 갖춰야 했고 또 지금 그런 조 직까지 갖춰서 겨우 하인 셋과 어린아이를 쫓는다는 건 제국 의 이름에 똥칠을 하는 격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일부러 놓아준 꼴입니다.” 움크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고 싶 은 듯 붉게 달아오른 몸의 근육이 꿈틀댔다. 부르르 움켜쥔 주 먹이 떨렸다. “몇몇을 추려 추격을 시작하고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는 하지만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들로는 그녀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가!” “그만 두라 하지 않았느냐!” 벌컥 노호성이 터졌다. 붉게 달아오른 카느의 볼이 부르르 떨 렸다. “카느시여!” “어리석은 놈! 이 년만에 열린 중앙절 축제를 겨우 하녀 하나 때문에 멈추란 말이냐!” “..............” “전 나라들에 소문내란 말이냐! 이 제국의 기사들이 겨우 하 인 셋을 막지 못하고 모조리 나가 떨어졌다고?” 치떠진 카느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카느의 손가에 있던 나 무 팔걸이가 우드득 작은 선을 그으며 비틀어졌다. 움크의 말 이 멎었다.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트트가 조심 스레 한 걸음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카느의 판단이 옳으십니다. 지금은 그들의 행방만을 뚜렷이 하고 본격적인 추격은 중앙절이 끝난 이후로 조용히 처리하심 이 좋습니다.” 중요한 축제까지 멈추고 우그르트까지 나서서 추격을 설쳐댄 다면 이 제국의 황궁이 겨우 그 몇몇 일행에 휘둘렸다고 사방 에 나불대는 꼴이었다. “크흠....” 카느의 입이 닫혔다. 우트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쳤다. 움 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게다가, 아들의 잘못은 아비가 지는 법.” 술렁 사람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후계 권과 혈연과는 또 무관한 법 아니옵니까.” 카느의 가라앉은 눈에 잠시 빛이 머물렀다. 우트트는 과장되게 허리를 굽혀 카느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조용히 카느의 홀을 빠져나왔다. 몇몇 기사들이 그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센이 빙긋 웃었다. “아아, 어쨌든 크리아에는 좋은 빌미가 하나 생긴 셈이야. 벌 써 삼십 년 가까이 전쟁이 없었으니...” 늘 전쟁과 전쟁의 연속이던 사막의 피를 이은 전사들은 공을 세울 자리를 찾지 못해 좀이 쑤셔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야 제국의 건설을 위해 외부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지만, 이 제는 달랐다. 아르카이아의 건설 자체가 이미 여력이 생겼다는 증거였다. “추격은 없어서는 안되지만 과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트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감히 황궁 예법을 무시한 꼬맹이와 하녀를 추궁하는 정도면 되. 어느 나라에서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만.” “네.” “쓸데없이 피만 봐야 하는 희생은 형님께 맡기면 충분할 테 니까.” 낮게 속삭이며 우트트는 힐끔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육중하 게 닫힌 문안에서 움크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어리석기는. Lord의 이름을 거론할만한 실력을 이미 보인 자 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실제 존재감이야 어떻든 대외적으로는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일 뿐인 하녀 하나. 꼬맹이 하나. 겁먹고 달아났다고 비웃 어주고 적당히 추격해 어디에도 발붙이지만 못하게 하면 그만 인 존재. 아깝다고 억지를 부려봤자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깨 끗이 손을 털고 이용할 수 있을 만큼만 이용하면 된다. ‘아깝기는 그지없지만...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면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해가 저물어가며 축제의 열기는 더 강해졌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땀내음이 거리에 가득했 다. “아직까지 추격은 없는 모양인데요?” 슬렁슬렁 축제 인파에 묻혀 마차를 몰아가던 하르크가 조심스 럽게 입을 열었다. 거리가 온통 마차와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 다. 도시 어디에도 긴장된 공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당했으니 또 덤빌 맘이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 겠수다만은....” 힐끔힐끔 금아를 돌아보며 하르크가 조심스럽게 말미를 흐렸 다. 금아와 눈이 짧게 마주친 듯 하더니 하르크의 목이 자라처 럼 짧아졌다. “하르크. 아직 이 기척들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 “에?” 금아의 눈동자가 힐끗 옆 쪽 건물들의 붉은 지붕으로 향했다. 검은 그림자 몇 개가 휘릭 사라졌다. “고개 크게 돌리지 마.” 하르크의 어깨가 움찔, 그는 조심스럽게 기를 집중해갔다. 짧 은 탄성이 그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금아가 한 손가락을 들 어 입술 앞에 세웠다. -말로는 하지 말아라.- 마차 안은 긴장 때문인지 조용했다. 스테판과 크레이는 축제를 많이 기다렸었는데, 이 밖의 소요에도 하루 종일 미동조차 하 지 않았다. 가슴이 짠하니 아려왔다. -살의는 없어. 단지 미행만 하는 듯 한데...- -기회를 노리는 걸까요?- 나름대로는 머리를 굴리려는지 데구루루 하르크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잡아올까요?- -일단은 두고 보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은 없겠지.- 거리를 상당히 두고 유지하는 폼이 직접적인 충돌은 바라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그거야 말로 지금 내가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열이 좀 가라앉기는 했다지만 아직 미열이 남아있는 클 레이브에게 더 이상의 무리는 시킬 수 없었다. -어떤 것 같아? 금아?-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말안장만을 응시하는 금아는 조금 망 연자실해 보였다. “아, 아...” 바쁘게 달려가던 아이 둘이 말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놀란 말 이 잠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요란한 사람들의 모임이 두려웠는 지 말은 조그마한 일에도 흠칫 흠칫 놀랐다. “아니요. 별건 아닙니다.” 착잡한 얼굴을 애써 피며 금아는 가볍게 말했다. 작열하는 햇 볕을 받아 금발이 밝게 반짝였다. 지나가던 사람 몇몇이 금아 를 바라보며 가벼운 탄성을 흘렸다. 우린 느릿한 걸음으로 도 심 중앙과 외곽을 나누는 작은 관문으로 향했다. “축제가 한창인데 벌써 나가려고요?” 열 댓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주근깨 투성이 경비병 하나가 아쉬운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근무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저 인파에 휩쓸려 버릴 듯한 눈을 한 그에게 하르크가 너스레를 떨었다. “나라고 나가고 싶겠나?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춤을 추고 싶 다고. 하지만 숙소도 못 잡았는데 마냥 떠돌 수만은 없잖아.” “귀족...분이시라면 황궁의 외궁에서도 머물 수 있으실 텐데 요.” “그만큼 높은 작위가 있으셨다면 그렇게 했겠지.” 한 눈을 찡긋 감는 하르크에게 경비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하르크의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동전 몇 개가 경비병의 손으로 건네졌다. “헤헤, 제가 괜한 말을 했군요.” 귀족의 작위를 인정받지 못한 작은 부족마을의 족장은 프란에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족장은 족장. 나름대로 잘 꾸며 진 마차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그는 입맛을 다셨다. “외곽 쪽이라도 좋으니 깨끗하고 묵을만한 곳을 좀 추천해 줬으면 좋겠어.” 힐끔 동전을 확인한 경비병의 입가가 환히 빛났다. “물론이죠!” 머리 꼭대기를 지나친 해의 꼬리가 조금씩 길어져가고 있었다. 즐거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인 꿈처럼 귓가를 스쳐 달려갔다. 생각을 정리한 듯 조금 개운해 진 눈으로 금아가 다시 말문을 연 건 해가 완전히 지고 우리가 어느 여관인가에 겨우 발을 붙인 다음이었다. 뒤따라온 그림자들의 동태를 확인하고 들어 온 나를 기다렸다는 듯 금아가 맞았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달그락. 물을 마시던 클레이브의 손이 멎었다. 낯선 표정이 클 레이브의 얼굴에 자리잡았다. 불안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고민했습니다만, 란님이시라면 클레이브와 함께 듣는 쪽을 선택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깔끔히 옷을 갈아입은 그는 더 이상 하인이 아니었다. 낯선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중앙을 가로질러 다가오 며... 컵을 내려놓은 클레이브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금아 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기도가 변해있었다. 나와 함께 드레스를 꿰매며 툴툴거렸던 하 인 금아의 모습은 지워진 듯 사라져있었다. 스테판과 크레이의 표정이 어리둥절했다. 퍼진 듯 바닥에 누워있던 하르크가 비스 듬히 몸을 돌려 탁자 위에 턱을 괴고 앉았다. 짧은 휴식과 오 랜만에 모인 자리로 피어났던, 작은 방 안의 조그만 활기는 한 순간에 낯선 공기로 식어버렸다. “...가려우?” 퉁명스러웠다. 하르크는 팔을 벅벅 긁었다. 침대에 발을 걸치 고 앉아 물끄럼이 금아를 바라보던 클레이브는 시선을 내리고 가볍게 다리를 흔들었다. 톡톡톡 나무침대 부딪히는 소리가 규 칙적으로 정적을 깨트렸다. “...그래. 그러리라 생각했어.” 고민하는 금아를 보는 순간부터 예측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굳 이 밖으로 나돌며 그림자들의 동태를 일일이 확인한 것도 이 순간을 미루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슴 한쪽이 비워진 듯 소리가 울렸다. “아저...씨?” 스테판이 살며시 금아의 팔을 소매 끝을 잡아당겼다. 목소리에 작은 울먹거림이 스며있었다. 금아가 스테판의 양 옆구리에 손 을 끼워 넣었다. “너희를 버리고 가는 건 아니다.” 번쩍 들어 정말로 열 살 아이 다루듯 금아는 스테판을 오른 쪽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스테판의 귀밑이 새빨갛게 달아올랐 다. 금아는 느리게 스테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크레 이의 손을 잡아끌어 다른 한 무릎에 올려 앉혔다. “어른스러운 너희들이기에 더 안타깝단다. 차라리 평범한 아 이들처럼 떼쓰고 울어준다면 더 달래기 쉬울텐데.” 울먹했던 스테판이 눈가를 슥슥 닦았다. 금아는 부드럽게 웃었 다. “클레이브...” 촉촉한 파란 눈동자가 금에게로 들려졌다. “..................” 조그만 입술이 달싹 움직였다. 그리곤 이내 머리를 흔들고 다 시 고개를 숙였다. “조금 더 너의 하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면 즐거웠을 텐데...” “아뇨. 아저씨는....” 어렴풋이 뭔가는 눈치채고 있었던 듯 클레이브는 금아가 갑자 기 말을 놓기 시작한 것에 대해 아무런 반감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곳에 오기 전에... 아버지께서 아주 조심스럽게 대하는 모 습을 본 적이 있어요....” 톡톡톡 나무 두드리는 소리. “란도 아버지는 란님이라고 부르셨었고....” 헤죽 밝게 미소지었다. 아주 갑자기 터져 나온 미소. “제가 뭔가 특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여 신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했었지만....” 순식간에 파란 눈이 젖어갔다. 주륵 한 방울을 시작으로 클레 이브는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이를 악물고 투둑 투둑 눈물을 떨어트렸다. 나무바닥에 짙은 자국이 그려졌다. “클레이브....” 그에게로 다가가는 날 한 손으로 만류하고 금아가 조용히 몸 을 일으켰다. 클레이브의 정면에서 살짝 몸을 낮췄다. 금아의 굵은 손을 타고 눈물이 훔쳐졌다. “나, 난, 여신님이 아니라... 금아님과 란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후.....” 두터운 두 손으로 클레이브의 볼이 감싸졌다. “네가 밉거나 버거워서 떠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건 알지?” 커다란 눈이 흔들림 없이 금아의 입가를 응시했다. “네 선택이 잘못되었다거나 탓하기 위해 떠나는 게 절대 아 니야. 넌 용감한 선택을 했어. 그리고...” 금아는 클레이브의 얼굴을 살짝 끌어당겼다. 조그만 이마가 금 아의 금발에 닿았다. 이마와 이마를 맞대고 금아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세상 무엇보다도 더 크고 강한 자를 얻었지.” 문득 금아의 등이 작아 보였다. “백년 전의 나는 절대 하지 못했던 그런 선택이었단다.” 멍하니 듣고 있던 클레이브의 어깨가 흠짓 떨렸다. “백년...이요?” 금아가 클레이브의 얼굴을 놓았다. 그리고 번쩍 들어 어깨 위 에 앉혔다. 클레이브의 몸이 잠시 휘청였다. 클레이브의 손이 금아의 머리를 붙잡았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가까워진 클 레이브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래, 백년.” 어린 아들을 달래듯 잠시 몸을 한 바퀴 돌린 금아는 그 자세 그대로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너와 비슷한 소년이었을 때, 내 삶의 처음으로 스, 아 니 존경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났었지.” 클레이브를 번쩍 안아내려 내게로 들이밀며 금아는 싱겁게 웃 었다. 그가 삼킨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이상한 느낌이었다. 스 승이라는 말을 삼켜버린 금아라니...! “자아, 떠나는 대신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실을 알려주마.”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날 똑바로 응시하며 그는 작게 고개 를 끄덕였다. “....................후.” 내가 어떤 속성을 지닌 존재인지, 더 이상 감추거나 숨길 이유 가 없었다. 그는 그 사실을 내게 인식시키고 있었다. 평범한 하녀의 삶은 오래 전에 끝나 있었다. 빌어먹을 무신의 운명. 그리고 지독히도 꼬인 꼬맹이의 실타래. “아, 저어...전...” 금아가 준 자세 그대로 내 품에 꼭 안긴 클레이브가 잔뜩 달 아올라 작게 꼼지락 거렸다. 난 소년의 등에 부드럽게 팔을 감 았다. 색색 숨소리가 목 언저리에 닿았다. 아기처럼 높은 체 열... 한 순간에 둑이 무너져 버린 걸까. 클레이브는 지금까지 건너뛰고 왔던 그 모든 나이의 흔적들을 되밟고 있는 것 같았 다. 애늙은이 특유의 담담함과 순식간에 달아올라 눈물을 글썽 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순간 순간 오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많이 힘들었었겠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괜찮아. 내 주인은 꼭 귀족일 필요도 그 무엇일 필요도 없으 니까. 넌 이제 열 살의 아이일 뿐이야.” 힘껏 끌어안으며 난 클레이브의 등을 토닥였다. 클레이브의 몸 이 떨려왔다. “후.....” 금아는 살며시 무릎을 굽혔다. 밝은 금발머리가 내려다 보였 다. 클레이브의 볼을 가볍게 쓰다듬는 금아는 어딘가 굉장히 부러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녀석, 백년 전만 해도 내 가 이렇게 안고 키웠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품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자라버렸다. “그래. 란님의 주인이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 지.” 클레이브가 얼굴을 파묻은 옷깃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란님이 허락하고 선택하셨다면 네가 주인이야.” 그렇게 말하며 금아는 휙 몸을 일으켰다. “저런 괴물 같은 하녀는 세상에 하나 뿐이거든.” -하긴, 천하의 ‘The Lord of the Sword', 류이네리아 칸 란 님의 주인으로서 그 외에 어떤 자격이 존재하겠어?- 입과 전음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바로 머릿속으 로 울려오듯 전달된 의지... “.........................” 아주 잠시 공기가 얼어붙었다. 퍽, 뒤로 나동그라질 듯한 기세 로 클레이브가 내 몸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크레이와 스테판이 스르르 바닥으로 미끄러졌고, 그 새를 못 참아 내게 개길 준비 라도 하듯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있던 하르크가 마시던 물을 모조리 내뿜더니... 스르르 눈꺼풀을 뒤집었다. 남아있는 눈빛 들이 모조리 금아의 입술로 몰려들었다. 금아는 아주 낯선 얼 굴로 웃고 있었다. ‘더 강해졌나....’ 처음 단 두방에 쓰러졌던 그의 기량으로는 해 낼 수 없는 일 이었기에 난 조금 놀라야 했다. 일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또 무섭게 성장했다. “여신 아르페이나 님께서 클레이브 널 위해 특별히 보내주신 성기사니까! 마음놓고 기대라고!” -그 외의 누가 나 기르 드 베이르를 금아란 이름으로 불러대 며 하인 노릇을 시킬 수 있지?- 홀가분하기 그지없는 경쾌한 웃음이 금아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는 뻣뻣하게 굳은 클레이브를 다시 번쩍 안아들어 볼을 부 볐다. 감히 반항하지도 못하는 클레이브의 표정은 엉망으로 일 그러졌다. 과장스러울 정도로 흰 이를 들어내며 금아는 상쾌하 게 웃었다. “어린 아이는 귀여운 게 딱 어울려.” -어느 누구도 크리아의 풀 한 포기 짓밟지 못하게 하겠다. 너 의 아버지와... 크리아를 지키는 사람들을... 내가 반드시 지켜 주겠다.- 커다란 클레이브의 눈이 더 크게 열렸다. 잠시 눈을 마주친 클 레이브에게 금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금아.....................” 퍽이나 감동적인 장면이기는 했지만... 한 편의 연극을 하는 듯 한 그의 행동은 그를 아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소름이 돋는 이질적인 것들이었다. 한숨쉬듯 내뱉은 내 목소리에 금아가 빙 글 몸을 돌렸다. “뭐 좋잖아요. 란님. 어차피 정체를 밝힐 참에는 이 정도는 해야 창 밖에 귀를 대고 있는 저 얼간이들도 충격을 좀 받을 테고!” 창문 밖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기척들이 토토토독 벼룩 튀듯이 사라졌다. 금아의 표정이 가면을 바꾸듯 계속해서 변해갔다. 너무나 많은 변화와 충격적인 사건들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소년들을 끌어안으며 금아는 얼굴을 비볐다. 어리버리 멍 해졌던 눈망울들이 다시금 붉어졌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손자를 어르는 할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그의 모습이 삽시간에 늙어 보였다. 수 많은 삶을 격정으로 살아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공기 앞에서 난 조용히 숨을 죽였다. “너희들이 내 가족이었단다. 란님 말씀 잘 듣고...” 살짝 고개를 든 그와 내 눈이 마주쳤다. “....강해지려무나.” “흠.......” 노도의 손이 느릿하게 수염을 매만졌다. 사건은 꼬여만 갔다. 일이 좀 정리되면 그도 이 크리아를 떠나 란을 만나러 가 볼 생각이었었는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떠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 았다. ‘못 만나볼 수도 있겠구먼.’ 단순한 예감만은 아니었다. 노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지 난 백년의 인연에 불만이 없었으니 만나도 그만 못 만나도 그 만이었다. 인간계에서 못만나면 선계에서 만나고 게서도 못 만 나면 또 그만이었다. 노도는 잡념을 털었다. “...대공께서는 곧 돌아오시겠군요.” 간단하게 상황을 전해들은 노도는 곧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또 한번의 선택이 백년을 기다린 자에게 던져진 것이 안타까 웠지만 지금 크리아를 위해서 그 이상의 존재는 없었다. ‘그 때도 그토록 사모했었던 란보다는 이 크리아에 남는 것 을 선택했었던 자였으니...’ 조금이나마 노도가 들어 알고 있는 금아라면 두 번 다시 란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 크리아를 위해 돌아올 자 였다. 그는 이 땅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한 점 정붙일 곳조차 없는 상태에서도 그는 란을 선택하지 못했었다. ‘속이 쓰리겠군.’ 노도의 한숨이 문득 진해졌다. 끝내지 못할 갈등의 덩어리들을 잔뜩 짊어지고 올 대공이 풀어낼 프란을 향할 분노가 머릿속 에 선명하게 그려질 듯 느껴졌다. 란을 선택한 클레이브로부터 그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폐관수련인지 뭔지를 들어가시지 않으셨던가요?” 기다리듯 침묵을 지키던 차스크 백작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 다. 노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폐관수련을 위해 걸어 잠그는 문은 꼭 만져지는 것만이 아 니랍니다.” 선문답 같은 말에 잠시 눈가를 좁히던 차스크 백작은 이맛살 을 구겼다. ‘하긴 동대륙의 방식이니 뭔가 다른 수단이 있을 지도 모르 지. 중요한 건 그분이 돌아오신다는 것이니...’ “그렇군요.”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들의 영역에서 해결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이 꼬여있었다. 하노베이 백작가의 어린 애송이는 귀족들을 선동하며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고 있었고 대공이 사라진 후 귀족들을 미묘하게 불신하기 시작한 왕은 귀족들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페르로이 후작을 괴롭히 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더 큰 일이 터진다면 그 때는 수습조 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돌아와 주신다면 분명 큰 힘이 되실 분이시죠.” 후작도 옅은 미소를 띄웠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노도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사막의 땅을 하나로 묶은 카느 정도의 자라면, 소소한 손익 하나를 따지고자 란 일행을 쫓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흠...” 침음성을 흘리며 두 귀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느 정도의 인 물이 그런 명령을 내리리라 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러나 들은 바대로라면 첫째 우그르트는 란을 쫓을지도 모 르죠.” “후.” “스스로 사막의 전사임에 긍지를 지닌 자가... 아무리 그 강함 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하녀 한사람에게 농락 당했다는 자존 심의 상처를 쉽게 털고 일어서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래저래 난감하군요.” 차스크 백작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페 르로이 후작이 턱을 괸 채 길게 한숨을 내쉈다. 잠시 두 귀족 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픽 웃었다. “하긴 란님을 추격해 봤자 남는 게 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차스크 백작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스치듯 부딪힌 눈빛만으로 도 자신은 드래곤을 만난 오크처럼 몸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 다. 그런 존재를 적으로 삼다니... “우그르트 움크도 불쌍하게 되었군요.” “첫째 우그르트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실각할 겁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죠.” 비릿하게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두 귀족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한 배를 탔다고 싶었던 움크와의 사이가 한 순간에 벌어져 버 렸다. 내일부터 당장 더 기고만장해 질 하노베이 백작을 떠올 리며 차스크 백작은 관자놀이를 힘껏 눌렀다.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이로군요.” “맞습니다.” 움크가 권력을 잡아도 문제요, 이대로 쫓겨나도 문제였다. 그 무엇 하나 후작가 진영에는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좋을 바가 없었다. “그러나 카느와 우트트라면...” “반드시 쳐들어 올 겁니다. 이 땅으로....” “그렇겠지요.” 후작과 백작의 말에 노도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 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그도 알고 있었다. 크리아의 보스윌해 협은 천혜의 보고이며 동시에 무역의 노른자위였다. 작은 나라 크리아를 아무도 얕보지 못하게 하는 저력들은 대부분이 보스 윌해협이 벌어주는 부로부터 h나오고 있었다. 크리아의 땅을 노리는 나라는 한 둘이 아니었다. 크리아는 작지만 군사적으로 나 외교적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능한 빨리 먼저 움직여야겠군요.” 프란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 서둘러 주위 국가들에 교섭을 들 어가야 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은 남이 갖는 것도 싫은 법 니다. 그런 심리들을 교묘하게 움직여야 했다. 실제로 카슬의 수 많은 국가들은 프란 제국이 날로 강해져 가고 있는 것들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막 의 민족들을 통합하고 경제력을 쥔 크리아를 손에 넣게 된다 면... 전투를 사랑하는 프란인들이 선택할 다음 패는 보지 않아 도 훤했다. 다음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크리아를 현 상태로 유지시켜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모두가 그렇 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우리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프란이 움 직이기 힘들게 해야 합니다.” 이맛살을 구긴 차스크 백작이 당장이라도 달려가 서류를 뒤질 듯 급히 말했다. 그러나 반쯤 몸을 일으키던 백작의 몸은 다 펴지지 못했다. 중간에 걸려버리기라도 한 듯 후작의 눈과 마 주친 백작은 그대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그런데....” 아직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어린 도련님의 일이라면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부드러운 노도의 공기가 두 사람을 보듬었다. “아, 네.” 금새 다시 어두워진 후작이 표정을 펴고 작게 미소지었다. 그 리고 차스크 백작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가문의 혈맹이 결정되자마자 이렇게 되어 미안할 뿐이군 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차스크 백작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페르로이 후작이 어깨를 펴며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꼿꼿히 펴진 그의 전신에서 무인의 기백이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후작이 분명하게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대공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전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서 겠습니다.” 노도의 눈에 후작은 어쩐지 국방장관이라는 무거운 감투를 썼 을 때 보다 더 후련하고 기뻐 보였다. “전쟁이 터진다면 분명히 알려주어야겠죠.” 후작과 백작이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이 크리아가 단순히 줄타기로서만 지켜져 온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밤새 사람들과 뒤섞여 술을 마셨다. 갖은 푼수를 다 떨어 아이 들의 혼을 빼 놓은 금아는 술을 마시는 동안은 오히려 내내 침묵을 지켰다. 하긴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지도 정확히 모 른 채 갓 적응해 가던 아르카이아를 떠나 도망자 신세로 전락 한 된 아이들에겐 그 정도의 충격이 약이었으리라. 낮 동안 내내 죽은 듯 침묵을 지키며 숨소리마저 조심하던 아 이들은 금아와 내가 방을 비운 후 오히려 신이 나서 떠들고 소란을 피우다가 하르크의 구박을 받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축제 참가를 못한 게 그렇게 불만이야?” -전쟁인가?- 술잔으로 고정되어 있던 금아의 고개가 잠시 들렸다. 그런 정 도로 전쟁까지 나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금아 가 이렇게 반응할 때는 그의 조국이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 했을 때다. 꼬맹이 주제에 조국만큼은 지독히도 사랑했던 얼간 이가 그대로 자라버린 이니까. “당연하죠.” -올해는 아니더라도 조만간...- 픽 웃으며 금아는 들던 술잔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렇잖아도 핑계를 찾아 눈을 벌겋게 뜨던 놈들이니까요. 페 르로이 후작이 클레이브를 저렇게 순순히 내 놓은 것도 그런 자들의 트집이 두려워서이기도 했고....- 술 취한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점점 더 흥을 타고 높아졌다. 이 쪽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몇몇 이들의 눈가가 심하게 일그러졌다. -정말 서투른 자들이군요.- -너와 내 눈을 속일 수 있을만한 자들이 있다면... 오히려 곤란 하겠지.- 의외였던지 금아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혼자였다면, 대 환영이었겠지만...- 지켜야 할 자가 있다는 건 사람의 행동을 제한한다.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그렇기에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이 더 강해지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렇군요...- “이봐! 이것들 보라구! 이렇게 흥겨운 축제에 무슨 궁상이 야!” 툭! 누군가가 쓰러지듯 금아의 등을 밀고 들어왔다. 애가 여 섯 달은 넘음 직할 정도로 부풀어오른 남자의 배가 출렁였다. 금아의 등에 배를 기대고, 남자는 누렇고 커다란 이를 들어내 며 연신 헤죽였다. “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주먹만한 커다란 코는 검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 손에 높게 들어올린 술잔에 갈색 거품이 올라온 검 은 빛의 술이 가득 담겨 찰랑이고 있었다. “이봐, 이봐, 아가씨. 오늘 같은 날은 화를 풀라고! 즐거운 중 앙절이 아닌가!” 목젖을 들어내고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는 손을 흔들었 다. 출렁 출렁 술방울이 퉁겨져 나왔다. 금아의 눈가가 살짝 접혔다. “어라라라! 미안하다구! 하하하하!“ 금빛 머리카락위로 방울지니 술들을 거친 손으로 우악스럽게 털어 내며 남자는 출렁출렁 흔들렸다. 인상을 구기는 듯 하던 금아가 금새 입꼬리를 잡아 올리며 툴툴댔다. “후, 그 새 하인지도가 몸에 단단히 벴나보군요.” “그런가?” 빙긋 웃으며 금아가 자신의 술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잔 뜩 취한 거한이 기다렸다는 듯 금아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 혔다. 잔을 박차고 나온 술들이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금아가 커다랗게 외쳤다. “자아! 이렇게 좋은 날 우울해져서는 안되지!” 호응하듯 사람들의 우렁찬 웃음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함성소리들과 함께 귀 끝까지 입이 벌어진 술집 주인장이 바 쁘게 술병을 들고 날아다녔다. “그렇죠! 좋은 날이죠!” 함께 날 듯이 술을 들이키며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들썩 이는 금아의 눈가가 어쩐지 젖어있었다. 조용히 바라보는 날 뒤로하고 그는 그렇게 사람들에로 섞여갔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려 떠들던 금아는 아침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조용히 말을 끌고 우리에게서 떠나 그의 삶으로 돌아갔다.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3-기막힌 도주. 하늘이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밝아지는 하늘은 이런 때는 보기 싫게 얄밉다. “자, 그럼 우린 모험을 떠나 볼까?” 쫓기는 도망자의 기색은 없었다. 세 소년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잔뜩 상기되어 달아올랐다. 아침 일찍 밥을 챙겨먹고, 우린 준 비를 마쳤다. 그 경황 중에서도 금아와 하르크는 기적이랄 정 도로 여행 장비들을 꼼꼼하게 잘 챙겨서 나왔다. 금아녀석. 이 상한 소문이 돌 때부터 뭘 예감 했었는 지는 모르지만... 운으 로 대공의 지위까지 간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갔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에는 다시 그늘을 찾아야 하니까... 서두르자.” 모래사막이 아니더라도 사막의 기후를 지닌 땅은 방심할 수 없었다. 마차 안의 사람이야 그늘로 어찌어찌 견딘다고 하더라 도 말은 견디지 못한다. “아, 그럼...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거죠?” 하룻밤새 말이 바뀐 클레이브는 경어가 조금 어색한지 말끝을 조금 얼버무렸다. “지금까지처럼 하세요.” “그건 싫어요.” 딱 자른 거절은 오늘만도 다섯 번째다. “란님도 말을 놓으세요. 아니시면, 계속 란님이라고 부르겠어 요.” “제게 주인이 되어 주신다면서요?” 얼굴이 달아오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클레이브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건, 란님이 Lord시라는 걸 몰랐을 때죠....” “그거 건 뭐 건 전 란일 뿐입니다.” “그... 그럼, 전.....” 엷은 반 팔 아래로 들어난 팔까지 새빨갛게 물들 때 즈음 클 레이브는 주저주저 말을 이었다. “여, 열 살의 아이는... Lord님을 함부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아...” 그리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함부로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말의 뒤는 무엇이었을까. “하, 하여간, 말을 놓지 않으신다면, 전 계속 란님이라고 부르 겠어요. 란님이 그냥 하녀였을 때 아버지도 란님을 란님이라고 하셨잖아요.” 두 눈 가득 고집을 담고 그는 마차 앞에 버티고 섰다. “모든 주인과 하녀가 같으리라고는 할 수 없잖아요. 같은 사 람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 세상에 같은 관계도 없다고... 어, 어쨌든 그냥 싫어요. 절대로 안되요.” 미운 일곱 살로 돌아간 듯한 생떼. 마치 이 어린 주인의 엄마 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내 단순한 착각일까. 마부석 에 움츠리고 앉은 하르크의 어깨가 규칙적으로 요동치고 있었 다. 킥킥 작은 웃음소리에는 기분 나쁠 정도의 유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늘의 해가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며 떠오르고 있었다. 결국 손을 든 건 내 쪽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주인님. 하지만 이 칭호는 네가 내 주인으로 남는 이상은 버리지 못할 꺼야.” “좋아요!” 활짝 웃는 소년의 얼굴이 깨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이런, 이런... 나도 슬슬 타락하는 걸까? 언제였었나, 뒤늦게 얻은 아 들이 낳은 손자의 늦둥이 딸이라며 갓 돌을 지났을 까 싶은 핏덩이 하나를 들고 나타나 물고 빨고... 귀여워 어쩔 줄 몰라 갖은 주책을 다 떨던 광검자의 모습이 기억에서 떠오른다. 아, 그 꼴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스친 다. “란님! 어서 가요!” 마차 밖으로 스테판이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내 삶에 두 번 다시 못만 날 애늙은이라고 점찍어 놓았던 세 명중 하나인 스 테판이 저렇게 귀엽게 변할 줄이야... -호오... 세 명이나? 흠.. 확실히 길러서 잡아먹는 건 인간들 세 계의 로망이라고도 한다지만, 그건 수컷에게나 해당하는 말이 라고 생각했는데?- 그 날도 이렇게 햇살만 뜨거운 날이었다. 언젠가의 늙은 초록 드래곤이 해 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별 연관성은 없는 말이겠 지만... 그래도 자꾸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란님! 어느 쪽으로 갈 꺼요!” 사막의 중앙절답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하르 크가 애써 웃음을 참고 내게로 물어왔다. 눈가 근육이 아직도 버들버들 떨리고 있었다. 문득 유쾌했다. 그래. 그를 만나러 가 자. “남쪽! 모험이면 모험답게 해야겠지!” 흰 햇볕 가리개를 머리에 눌러 발치까지 늘어트리고 난 말에 올라탔다. “성스러운 산으로 간다!” “엑!” 딩그래진 눈, 난 하르크에게 이를 들어내고 웃어주었다. 딱딱 끊어지는 동작으로 그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이 우와 웃었 다. 마차 바퀴가 따각 따각 돌아갔다. 아직도 그는 그 나무숲에서 잠자고 있을까. 묘하게 가슴이 두 근거렸다. 그에게 이 세 아이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 는 이번에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의문을 내게 던져줄까... 그리 고 저 놈의 그림자들은 언제쯤 그 구리구리한 속내를 내게 보 여줄까. “안됩니다.” “말릴 셈인가! 이런 모욕을 끌어안고 참고 삭히라는 말인 가!” “그러다 하더라도 안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모욕 따위 얼마든지 참으실 수 있어셔야 합니다!” “세자트!” 비명이었다. 세자트는 입을 다물었다. 핏발선 움크의 두 눈에 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살기가 가득 고여있었다. 움크는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혈관 하나 하나가 분노로 터질 것 같았다. “...겁쟁이 우트트와 같은 선택을 하라는 말이라면...” 떨림이 가라앉았다. 불길을 삽시간에 가라앉히고 그 자리를 차 가운 열화가 차지했다. 세자트의 몸이 움찔 했다. “난 차라리 한 사람의 전사로 남기를 택하겠다.” “...................” “겁쟁이를 따를 만큼 사막의 전사들은 썩지 않았다.” ‘그건 겁이 아니라 기회를 노리는 맹수의 인내력입니다!’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세자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목울대가 움직였다. 우트트는 등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기사 몇몇이 급히 고 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허울좋은 형식보다 사막의 전통을 사랑하는 자는 진정한 사 막인이라면 나를 따르라.” 쿵, 검집이 바닥을 두드렸다. 바닥이 낮은 진동음을 내며 떨렸 다. 움크의 입가로 작은 곡선이 그려졌다. 그는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얇은 가죽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사막의 전사다.” 우와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파티를 즐기러 황궁으로 들어섰 던 사람들의 고개가 그들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들을 만족스럽 게 즐기듯 허리를 펴고 움크와 기사들은 유유히 황궁 밖으로 빠져나갔다. “갔군요.” 카느의 집무실 창문에서 움크를 내려다보던 우트트는 작게 한 숨을 내쉈다. “...................” 카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트트는 골치가 지끈거렸다. 미리 손을 쓴 덕분에 다른 귀족 들에게는 조만간에 움크가 몇몇 기사들만을 동행하고 특별한 사냥을 나설거라고 해 둘 수 있었다. 그 사냥의 대상이 사람이 건 동물이건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움크 형님이 움직인 일이 외교적으로 크게 의미를 두지는 못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이 일이 얼마나 크게 자신의 입지를 깍 아 먹을지 움크는 몰랐다. ‘지금이야 분노에 눈이 멀어 따르겠지만... 사막인들이 진정 기다리는 것은 승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잡으면 그만, 못 잡으 면 개망신인 하녀잡기 사냥이 아닌 것을....’ 어리석은 움크가 승산 없는 사냥에 눈이 멀어 자신의 명예를 깍아 먹고있을 동안, 앞으로 일어날 전쟁과 화려한 승리의 성 과가 그를 카느로 이끌어줄 것이다. 우트트는 치밀어 오르는 대소를 참기 위해 숨을 멈췄다. 저 카느의 권좌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후, 크리아에 보낼 사신은 준비했느냐.” “..........” 사신은 누구로 해라. 가 아니었다. 준비했느냐는 말은 우트트 에게 사신을 정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였다. 카느가 그를 바라 보고 있었다. 우트트의 가슴은 희열로 복받쳤다. “아, 네! 적합한 자가 있사옵니다!” 우트트의 눈동자가 영민하게 빛을 발했다. “움크님께서 결국 움직이셨습니다.” 흰옷으로 온 몸을 감싼 평범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아저씨 같 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작은 종이쪽지 하 나가 주트의 손으로 넘겨졌다. 쥬트는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종 이를 받아 보고는 구겼다. “젠장.” 명령만을 받아 움직이는 몸이었지만 주트는, 프란의 황실 그림 자들의 수장답게 나름대로 정세를 파악하는 눈이 밝은 자 중 의 하나였다. “사자는 누가 가지?” 중앙절이 끝나자마자 크리아로 파견된다는 사자의 신분과 정 체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 중 하나였다. 그건 우트트로 급 격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한 카느의 눈에 띄는 관심의 표현 때 문이기도 했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우트트님의 선택이시라면 의 외의 인물이 선정될 듯 합니다.” “흠.... 그럼 세자트인가?” “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쥬트는 태연했다. “하긴, 우그르트 우트트답군.” 세자트이라면 타고난 부족의 혈족 탓에 주인을 잘못 만나기는 했지만 그 능력이나 프란에 대한 충성심 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는 인물이 아니었다. 우트트와 움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움크의 편에 서겠지만 프란과 크리아의 일이라면 움크를 제치 고서라도 프란의 이익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칠 수 있는 사람이 었다. “허락했나?” “아직은 아닙니다만...”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뻔히 안다고 해도 세자트가 허락하지 않 을 리가 없었다. 움크의 진영인 자신의 입장에서 그런 기회라 도 잡아 공을 세워놓지 못한다면 추후 소란만 일으키고 하녀 사냥에 나선 움크의 뒤를 돌볼 수가 없었다. “뭐, 중앙절이 끝나고서도 움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바로 하 겠지.” 보이는 속일지라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우트트는 그런 면에 서 강한 자였다. 움크의 제 일 심복인 세자트를 쓰겠다는 것 은... 비록 움크의 편에 서 있었다 하더라도 실력이 있다면 과 감히 쓰겠다는 표현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했 다. 동시에 뛰어난 계략이었다. 카느의 계승을 잇자마자 패를 갈라 피를 봐야 한다면 잠잠히 가라앉은 듯 보였던 부족주의 가 되살아나는 건 한 순간이리라. 그건 이 계승의 시기에 외부 와의 전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걸 우트트는 알아챘 고, 움크는 하지 못했다. ‘거기서 갈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흥분한 움크가 세자트를 먼 저 버릴 지도 모르지.’ 어쩌면 이 또한 세자트가 움크에게로 보내는 마지막 기회일지 도 모른다. 쥬트는 빙글빙글 웃었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들과 속보들을 누 구보다도 먼저 찾아 이런저런 생각들로 타인의 음모를 유추하 는 일이 그는 무엇보다도 즐거웠다. 마치 그가 세상을 움직이 기라도 하는 듯한 쾌감이 늘 그를 만족시켰다. -딸그랑- 작은 벨 소리가 그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책상 오른쪽으로 난 작은 틈 하나가 열리며 종이 한 장이 밀려 들어왔다. 쥬트는 재빨리 종이를 받았다. 흰옷을 입은 남자가 조용히 자리를 피 했다. 쥬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 하녀 일행인가?” 종이에 적힌 지명과 자세한 위치를 주트는 꼼꼼히 살펴본 다 음 정리함 속에 집어넣었다.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하녀 의 일행은 상당히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트는 턱을 고 였다. “젠장 이게 뭐야! 하인 하나의 행적을 두눈 뻔히 뜨고도 놓쳐 버리더니만...” 무능한 그림자들에게 화는 나지만 하인의 행방이야 보지 않아 도 알 수 있었다. 분명 크리아로 돌아갔을 테니까. 어차피 사 신도 보내질 예정이었고 중앙절에 초대되었던 고위 귀족들이 야 뭐니뭐니해도 페르로이가의 꼬맹이에 대해서 다 아는 바니 걱정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쥬트가 관심을 지니는 존재는 그런 하인 하나가 아니라 소란의 원인이었던 그 하녀와 후작 가의 버려진 꼬맹이였다. “남하하다니... 남하라... 남하....” 프란에서 크리아로 돌아가려면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북부 카타르 산맥으로 들어가 오디아누 관문으로 들어야 크리아의 영토가 시작된다.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군.” 크리아로 돌아가 봤자 있을 곳이 없을 처지들이었다. 재수 없 으면 프란과의 협상 카드가 되기 위해 목이 베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뭐, 벤다고 베일 놈들은 아닌 듯 싶었지만....’ 주트는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책상 좌측 방향으로 나 있던 작은 쪽문이 삐걱 열리면서 더벅머리에 눈이 작은 노인 하나 가 삐죽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디 지도?” “제국도와, 카슬 대륙도.” “큰 거, 작은 거?” “책상크기 만한 중간 것으로.” “알았어.” 머리가 삐죽 들어가고 쪽문 위로 뚫린 공간을 타고 지도 두 장이 빠져나왔다. 지도를 펼치는 주트의 눈가가 가볍게 접혔 다. “남쪽이라....” ‘설마 침묵의 숲이나 성스러운 산(Holly Mountain)...으로 가 려는 건 아니겠지?’ 진한 녹색으로 그려진 커다란 산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쥬트는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성스러운 산은 녹색 드래곤이 지키고 있다는 곳인데...’ 들어가서 돌아온 사람조차 거의 없는 곳이었다. 예로부터 성스 러운 정신이 머물며 지상에 있는 신들의 쉼터라는 전설 덕분 에 성스러운 산이라고 거창하게 불리고는 있자만 그 산을 아 는 자들에게 그 곳은 가면 살아서는 돌아 나올 수 없는 저주 받은 곳일 뿐이었다. 그 곳에 드래곤이 있다는 것도 백여 년 전쯤에 Lord일행이 탐 험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알게 된 것일 뿐, 그 어떤 기록에도 성스러운 산에 대한 정보는 남아있지 않았다. 성스러운 산이 단 한의 봉우리가 아닌 나름대로 꽤 커다란 숲과 산맥으로 이 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뭉뚱그려서 한 덩어리의 산으 로 그려진 것도 그 정보의 부족 때문이었다. ‘산은 높았고 물은 맑았으며 갖은 기화요초들과 아름다운 동 물들이 어우러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되, 적으로 추정되는 자 들에게는 가차없이 공격이 퍼 부어대던 재미있었던 곳. 그리고 말을 할 줄 알고 도술을 부릴 줄 아는 커다란 녹색 날개 달린 용과의 동물이 하나 살고 있었다.’ 정도가 그 당시 그들이 남긴 기록의 전부였다. 무술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머리에 없다는 전설적인 무인들답게, 그들은 쥬트 같은 자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했다. ‘그렇기로는 침묵의 숲도 마찬가지지만...’ 이백여 년 전 까지는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하고 마을을 지어 살기도 했던 숲은 언제인가부터 마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이상 한 곳으로 변했다.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정보도 없다. 근 이백 년 사이 유일하게 침묵의 숲을 가로지르고도 멀쩡히 돌아온 동대륙의 마스터들은 ‘보기보다 별거 아니었다.’란 간단한 말로 침묵의 숲에 대한 모든 설명을 끝냈다. 예사 놈들이라면 잡아다 족을 쳐 보기라도 했을텐데, 그 대단 하다는 마스터 떼거리니, 수 많은 정보길드의 장들과 그림자의 장들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 다. 미치고 펄쩍 뛰며 환장할 노릇이다. “후우.....” 골치가 지끈 쑤셨다. 북쪽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알만도 했 지만, 하필 그 산으로 가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눈을 속이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일까. “그 하녀의 정체도 그렇고....” 아르페이나의 성기사라니 지나가던 고블린이 춤을 출 일이다. 아르페이나의 신전에 성기사가 없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 는 사실일진데 성기사도 하필 아르페이나의 성기사라니. ‘신탁을 받았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들을 확인 조사도 없이 손쉽게 일반적인 상황으로 대치시킬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일단 내일 신전에 문의를 하고 조사를 해 봐야겠군.’ 그녀가 성기사라면 그녀는 현 시대에 단 하나 존재하는 아르 페이나 여신의 힘의 대행자가 되는 셈이다. 쥬트는 몸서리쳤 다. 그건 더 골치 아팠다. 아르페이나 여신은 수 백년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도 어쩌다가 수틀리면 이상한 저주 아닌 저주 에 분풀이를 내리기도로 이름 있는 여신이었다. 때문에 이 프 란의 수도를 정하면서도 제일 먼저 아르의 신전과 함께 아르 페이나 여신의 신전을 건립하지 않았던가! 원래 없던 성기사를 정했을 정도라면 분명 꿍꿍이가 있을 텐데, 만에 하나라도 자 신의 성기사를 건드렸다면서 십여 년 정도 아이를 태어나지 않게 한다든가, 모 나라처럼 여아나 남아를 찍어서 태어나지 않게 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골머리가 쑤셔왔다. “도대체 누구 길래 아르페이나의 성기사라는 말까지 엮여서 도는 건지! 엥?!” 쥬트의 궁시렁이 뚝 멎었다. 그의 손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 기 시작했다. 서랍을 열고 상자를 꺼내 날짜를 확인하고 서류 를 꺼냈다. ‘어쩌면.... 정말로 성스러운 산으로 갈지도 모른다.’ 순간 쥬트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그녀들을 잘 이용한다면!’ 값으로 환산하기도 어려운 귀중한 정보가 손 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전사 출신의 기사들이야 무식하게 덤비는 것을 제일로 여기지만 그는 아니었다. 아직 어리고 약해 보이기 짝이 없는 소년들을 떠올리며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추정대 로 늦둥이 딸 정도라면 이래저래 괴물 같은 Lord 본인보다야 훨씬 만만할 터! ‘성스러운 산과 침묵의 숲의 지도를 만들 정보를 캐낼 수 있 다면! 게다가 잘만 하면 Lord의 무술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 도!’ 주르륵 침 한줄기가 흘러 지도를 적셔갔다. ‘살기가 움직인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가슴을 펴기 위해 고개를 들다, 문득 하늘 을 돌아본 금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새까만 밤에 달빛을 받 아 흰 바위들이 푸른빛을 발했다. 금아의 다리가 멈췄다. 더 이상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내공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금 아의 몸이 휘청였다. 금아는 자리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아랫 입술을 지긋이 물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다시 달릴 수 없었 다. ‘...그 때의 그 숲이 바로 앞이로군.’ 르카인을 두고 와야 했던 외뿔 엘프들의 숲이 검게 별들을 가 리고 서 있었다. 금아는 다시 이를 악물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 다. 잠시 쉴 시간도 아까웠다. 한 달이 넘게 걸렸던 길이 채 몇 일도 되지 않아 끝나가고 있 었다. 하루만에 서너 개의 마을을 넘어 달리고, 거품을 물고 나자빠진 말을 팔아버린 금아는 밤의 사막을 가로질러 질주했 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란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백년전의 선택을 되물리고 싶어.’ 그 마음을 억누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카느의 앞에 나서, 자 신을 선택해 준 란에게 주인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 고 했던 클레이브가 부럽고 사랑스럽고 미웠다. 그러나 그 무 엇보다도 또다시 크리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이 증오스 러웠다. 또 얼마만큼의 시간을 후회와 자책으로 보내야 할까. “하, 하하하...” 실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없는 소리.” 죽고 싶을 만큼, 가슴이 터질 듯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주화 입마 직전까지 달려볼까 했던 마음조차 한 순간에 접어 버린 자신이었다. 그런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칠만큼 금아는 무르지 못했다. 그리고.... “동대륙인에게 한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일 뿐인 것을.” 늘 되세기며 자신을 몰아친 주문. 천근 만근 무거워진 다리보 다도 더 무겁고 버거운 약속. “후.....” 뜨거웠던 숨이 냉랭하게 가라앉았다. 금아는 잠시 고개를 털었 다. “이틀 내로 돌아간다.” 화살처럼 그의 몸이 다시 앞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제기라아아아알!” “호.....” 어른 머리통 만한 반투명한 수정구에 밤을 낮 삼아 메마른 대 지를 박차고 달리는 금아의 모습이 비쳤다. “이거 상당히 재미있구먼.” 휘둥글, 떠진 눈이 요리조리 구르며 수정구슬 안을 샅샅이 살 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형체는 알아 볼만한 영상은 흐려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며 금아의 모습을 연이어 보내왔다. “...............커헉.” 로웬의 전신이 풍 맞은 냥 푸들푸들 떨렸다. 느리게 손을 들어 자신의 양 볼 따귀를 잡아당겼다. 눈물이 핑돌게 고통스러웠 다. 꿈은 아니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었다. “호... 그래, 이제 좀 요령을 알겠어. 선기를 움직이는 것과 비 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군. 이 땅의 지기에 딱 어울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연신 구슬을 만지작거리는 저 늙 은 정원사가 정말로 마법사가 아니라는 걸까. 로웬은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아닌 밤에 날벼락이랄까. 곤히 자던 그를 찾아와 다짜고짜 밟 아버린 자가 있었으니 바로 저 때려도 시원치 않을 늙은 정원 사였다. 마법의 전송을 알려달라나 뭐라나. 싫다고 하면 당장 이라도 휘두를 듯 지팡이까지 하나 들고 온 폼이, 그 날의 악 몽의 재현일 것 같아 로웬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직 낫지 않은 뼈마디와 근육이 욱신욱신 쑤셨지만 피눈물을 삼키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연구실로 왔다. 그리곤 이것저것을 뒤져 반쯤 탁해진 수정구슬을 꺼냈다. 그리고 들으란 듯이 주문을 외웠다. 희미 한 상이 구슬 위로 나타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해 보여줬으니 직접 하라고 퉁명스럽게 던져준 구슬을 가뿐히 받아들더니 이 정체불명의 마법사도 아닌 정원사도 아닌 노인 은 딱 두 번만에 구슬에 상을 띄웠다. 맑은 구슬도 아닌 반투 명해진 탁한 구슬에! 로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든 사람의 마나는 조금씩 달랐다. 아무리 같은 주문이라 해 도 쓰는 방법도 달랐고, 종류도 조금씩 달랐다. 아무의 마나도 받아들이지 않은 투명한 구슬이라면 모를까, 이미 한 사람의 마나에 익숙해진 반투명한 구슬이 다른 이의 마나를 받아들여 반응할 확률은.... “컥.” 없었다. 최소한 그가 알기로는 대마도사쯤 되지 않는 사람에게 는 절대 불가능했다. “마법이란 게, 의외로 재미있는 듯 허이.” “...........................” 드래곤 주둥이에 물려 하늘을 날아올라도 이렇게 황당하지는 않으리라! ‘....................드래...곤?’ 로웬의 눈초리가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노도는 이미 그가 아 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 그랬다. 그가 경비병을 불러 볼 생각도 못하고 질질 끌려온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았다. 갑 자기 말이 안나오게 만드는 그 따끔한 힘과, 주문을 외우지 않 고도 발휘하는 요상스런 능력! 마법이 얼마나 배우기 힘들고 다루기 힘든 영역인지 로웬은 잘 알고 있었다. 저 영상주문 하 나를 익히기까지 기초의 기초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 고 노력했어야 했었던가! ‘역시.....’ 그런데 저 인간 같지 않은 존재는 말로는 마법이란 것을 처음 본다고 하면서도 저렇게 쉽게 적응하며 단번에 쓰고 있다. ‘서, 설마 드래곤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은 아님이 분명해.’ 희박한 신분정신도, 저 기묘한 힘도, 자신을 압도하는 기분 나 쁜 위압감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꼴깍. 로웬의 목울대가 꿈 틀댔다. 주르륵 폭포수 같은 식은땀이 등줄기로 흘러내렸다. “의외로 편리하구먼, 좋지 좋아....” 연신 히쭉 이며 만족스럽게 웃던 노도는 수정구슬에서 손을 뗐다. 희미한 상이 사그러들며 구슬이 발하던 빛이 꺼졌다. 곱 게 휜 노도의 눈이 로웬을 향했다. 화들짝 로웬의 몸이 정 자 세를 취했다. “자네 이런 거 하나 더 없나?” 탐욕도 무엇도 아닌 우유를 원하는 아이 같은 순수한 욕심이 랄까.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저런 눈이, 인간같지 않 아 로웬에게는 더 무서웠다. “무, 물론입니다! 기왕이면 여기 맑고 잘 되는 놈으로!” 표정이 바꿨다. 목소리가 변했다. 로웬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공손함을 얼굴 가득 그려내며 가장 최근에 구입한 수정구 중 하나를 두 손으로 곱게 노도에게로 내밀었다. “................응?” 노도의 표정이 아주 조금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로웬이 방긋 웃었다. 머뭇머뭇 수정구를 받아들고 노도는 처음 들어왔을 때 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로웬과 작별하고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힐끔 뒤돌아보는 노도의 표정이 어딘가 불안했다. 몇 번 뒤돌 아보고 혀를 차며 노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쉈다. ‘역시 마법사들이란 하나같이 반쯤은 미친놈들이라는 란의 말이 맞는지도.... 이런, 이런... 편하기는 한데... 부작용이 저렇 다면... 이거 마법이라는 놈을 배워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구 먼....’ 노도와는 달리 연구실에 남아 자신도 모르게 더 후두려 맞은 데는 없는지 여기저기 몸을 확인하는 로웬의 표정은 환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이거야! 역시 알아서 기는 게 최고라구!’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4-작은 충돌 “아르페이나... 신탁은 다시 안 내릴 건가?” 입이 댓 발은 튀어나온 여신을 달래는 일은 상상보다도 훨씬 더 어려웠다. “알아서 잘 달아났잖아. 게다가 그림자인지 뭔지 첩자들 선동 해서 내 성기사라고 이름도 팔아먹었고.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탱탱 부은 여신에게 더 말도 걸지 못한 아르는 연신 한숨만을 푹푹 내쉈다. “내 성기사는 성기산데 고생시켜서 득도시키려고 찍은 놈이 라 상관없다고? 오죽 했으면 하녀로 보냈겠냐고? 죽이건 살리 건 알아서 하라니! 아르페이나 지금 제정신인가?” 반쯤은 울상인 적호 역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봐, 아르페이나,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기원들과 청원들 에 심기가 불편한 건 알지만, 어쩔 텐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니던가!” 울그락 불그락 하는 적호를 한 손으로 만류하며 아르는 조용 조용 아르페이나를 달랬다. 공간 한 구석에 몸을 동그랗게 말 고 앉은 아르페이나는 매서운 얼굴로 뒤를 한번 노려봐 준 다 음 다시는 듣지 않겠다는 냥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공간을 차 단시켰다. “허 이런, 나중에 알면 란이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이렇게 원수 질 일을 해서 어쩌자는 건지.” 찌뿌둥한 듯 온 몸을 펴며 아르는 툴툴댔다. 긴장으로 온 몸이 굳어져 있었다. “우리가 정녕 신인지 아닌지가 헷갈릴 정도로군.” “그녀가 본디 인간이 아닌 것을 어쩌란 말인가” 두 신은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지금 아르페이나의 분노에 뭐 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들도 견디기 힘들었다. 밀어닥치는 이 청원과 아우성이란! 어떻게 알아내서 조사했는지 란이 클레 이브의 모친의 기원으로 인해 특별히 선정된 아르페이나의 성 기사라는 소문이 온 서대륙의 귀족가에 주르륵 돌았다. 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아이를 훌륭하게 지켜내고 길러 줄 그런 여신 의 사자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게 돌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하녀를 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귀족가의 사람들이 하나같 이 신전에 돈을 뿌려대며 난리를 떨기 시작했다. “나라면 이 기회에 성기사단을 만들어서 적당히 뿌려대고 공 물이나 챙기겠건만...” 자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아르는 툴툴댔 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픽 웃음이 비 집고 나왔다. 적호의 어깨가 으쓱 했다. “가끔 뒤집어지면 크게 뒤집어서 그렇지 아르페이나가 그럴 성격은 전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문제일세. 너무 깨끗하게 남으려고 하니 문제지.”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자가 타락해 타협하기 시작하면 어떻 게 하려고.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시게.” 잘못하다가는 선악과는 관계없이 돈으로 신에게서 자식을 사 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 말에는 긍정한다는 듯 아르는 입을 다물었다. 적호의 오른 손이 공간을 갈랐다. 투명한 빛을 내뿜으며 갈라 진 저편으로 녹음이 우지진 동대륙의 산하가 굽이굽이 드러났 다. “이제 사실 우리가 끼어 들 일은 모두 끝난 셈이지. 란이야 알아서 잘 하겠지. 상대를 알아보는 눈도 없이 덤볐다가 멸망 한다고 해도 더 이상은 우리가 참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세. 언제 인간들이 우리 신들의 뜻과 배려대로 움직여 준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 아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평온하게 눈이 가라앉았다. 적 호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도 동대륙으로 돌아가야겠네. 인간의 일은 인간의 손 에 맡겨야지.” “그 란이라는 무신출신의 존재는 인간이라 보기에 무리가 있 지 않았나....” “어거지로 현신한 것도 아닌, 인간계에서 육신을 받은 몸으로 인간계에 머무른 것이니 더 뭐라 하겠는가...”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적호의 한 발이 고향 으로 딛어졌다. 아르가 가볍게 인사를 보냈다. 적호가 건너간 공간의 문이 스르르르 사라졌다. 잊은 물건이라도 건내주듯 아 르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르페이나도 자신의 임무의 중요성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여신이니 곧 화를 풀 걸세.” 싱긋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적호는 완전히 건너갔다. ‘내 희망사항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아쉬운 듯 아르페이나의 결계를 다시금 바라보던 아르의 몸도 아르페이나의 영역에서 조용히 사라져갔다. 살며시 여신의 공 간이 움직였다. “조금 쉬었다 갈까요?” “아니. 좋지 않아. 최소한 저 마을까지는 가자.” “마을요?” “조금 더 가면 네 눈에도 보이겠지.” 한 십여 분만 더 달리면 보일 듯 싶은 거리에 희미한 마을이 하나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애늙은이의 탈을 벗기 시작 한 세 놈들에게는 긴장하지 않도록 모험이나 즐기는 냥 달랬 지만 우릴 추격하는 놈들은 우리를 즐거운 모험자로 놓아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싶었다. “하르크. 가면 마차를 팔고 말을 산다.” “알았소.” 하르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제쯤부터 바짝 다가오기 시작한 황궁의 그림자들은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를 피부로 느 낄 수 있을 정도로 미묘하게 위협을 가해가며 우리를 뒤쫓았 다. 이런 때 간소하다지만 마차를 끌고 달아난다는 건 무리다. 세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말을 탈 수 있으니 차라리 고되더라 도 말로 달아나는 게 좋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흙이 찰져지고 있었다. 숨쉬기조차 귀찮 게 머리 꼭대기 위로 피어오르던 먼지들은 조금씩 줄어 들어 갔다. 돌밭 사막은 이미 끝났다. 이제 곧 구부정한 숲길과 산 길이 나온다. 그리고 그 녹지대를 지나고 나면 다시 한번 작은 사막이 나오고, 그 사막을 지나면 친구의 숲이 나온다. ‘젠장, 정리하자니 무지 가까운 것 같기는 한데....’ 달려간다면 한 달음에 갈 수 있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그 곳 은 이런 마차로 달려간다면 석 달, 말로 재촉해 달려가도 두 달 보름은 미친 듯 질주해야 나오는 먼 거리였다. ‘작은 사막을 가로지르면서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으 려나....’ -란님, 성스러운 산으로 가면 그 다음은 어찌할 거요?- 아이들의 귀를 염려해서인지 하르크가 전음을 보내왔다. -글세. 일단은 옛 친구를 만나야겠지.- -친구?- -있어.- 친구의 종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서대륙의 사람들은 용을 지독히도 두려워했다. 사악하며 마법을 쓰는 존 재이며, 신과 마의 명으로 사람을 납치하고 마법으로 산 하나 는 날려버리는 그런... 뭐랄까. 두려운 존재. 동대륙인 들이 용 을 보면서 신성시하고 친근하면서도 존경스럽게 느끼는 것과 는 사뭇 다른 감정들... ‘쳇. 전설들이란 게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이 엄하게 당한 과 대포장 소문들이 번져나가서는....’ 자신들이 먼저 덤비고 개긴 건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당한 것만 꼼꼼히 되새기는 어리석은 허풍쟁이들다운 관점이 라고는 생각하지만, 사실 그 용이나 이 드래곤이나 근본적인 면으로서는 크게 다르지도 않다. 특별히 선한 존재나 특별히 악한 존재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친구를 만난 다음은 어찌 할 거요?- -글세.- 어떻게 할까. 사실 그 이후는 나도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성 스러운 산으로 가는 자체조차 얼떨결에 정한 감이 많았으니까. 분명한 건 그 곳이 지금 이 세 아이들에게는 세상 어느 곳보 다 안전하리라는 사실이다. -............................난..- -음?- 머뭇머뭇 하르크가 전음을 보내다 말았다. 그도 고민하기 시작 했을까? -나, 난, 성스러운 산으로 간 다음... 크리아로 돌아갈까 고민중 이요.- 목을 거북이새끼처럼 꽉 집어넣고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며 하르크는 무슨 폭탄선언이라도 하는 듯 툭 전음을 던졌다. 재 미있는 녀석. -가.- “엥?” 이제는 밤 고양이처럼 눈이 댕그랗게 커져서 날 돌아본다. 피 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도 고민 중이었어. 친구를 만나면, 클레이브들은 일단 안전 할 테니까. 만에 하나라도 크리아가 프란에 휩쓸려 멸망이라도 당한다면 나도 곤란해지고.- 그렇게 된다면 내 어린 소년들은 정말 천애 고아로 변하고 만 다. 그리고 영원히 인간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저렇게 떠돌거 나 힘겹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그건 아니었다. 난 저 아이 들이 자라 사람들의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래, 금아처럼! “헤헤헤헤!” 비실비실 하르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란님! 저희들도 듣고 싶어요!” 창문의 흰 휘장을 들추고 세 소년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차 바퀴에서 피어난 먼지들을 고스란히 얼굴로 받으며 스테판이 길게 소리쳤다. 콜록 콜록 크레이와 클레이브의 기침소리가 들 렸다. “성스러운 산에는 정말로 드래곤이 있나요?” 기대감과 미묘한 흥분이 그들을 조여오는 두려움을 눌러주는 듯 했다. 그게 나았다. 세상 갈 곳 없는 떠돌이와 미지의 숲으 로 떠나는 모험가. 얼핏 듣기에도 얼마나 다른가. 뭐, 배고픈 현실의 비참함이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당연하지!” 아르카이아를 떠난 지 몇 일만에 고생으로 꾀죄죄해진 아이들 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들이 담뿍 담겨있었다. “너희들도 만날 수 있을 거야.” 뒤따라오던 그림자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쪽으로 새로운 기척들이 몸을 숨기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말 을 몰아 마차 옆으로 바짝 붙였다. 난 아이들의 머리를 창안으 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조금 웃어준 뒤 휘장을 단단히 내렸 다. -고개를 숙여 마차 바닥에 몸을 붙이고 의자를 꽉 끌어안아서 몸을 고정시켜라.- 말발굽에 퉁겨져 올라온 작은 돌멩이 하나를 잡아챘다. 그리고 죽지 않을 만큼만 힘을 조절해 유달리도 우리 가까운 곳으로 살기를 내뿜던 놈을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빡!- 신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잘 훈련된 놈들이다. 주위에 막아줄 것 하나 없는 이런 벌판에서 함께 뒹굴면서 지키기는 힘들다. 마차 안의 기척들이 바짝 얼어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하르크가 치떠진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 를 끄덕 했다. “하르크 일단 저 마을까지 냅다 달려! 거기서 만나자! 할 일 은 알겠지?” “물론이요! 이랴!” 채찍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바람을 갈랐다. 마차가 질주하 기 시작했다. 아주 잠시 놈들이 주춤했다. 목소리에 내공을 담 아 외쳤다. “거기 까지!” 주위의 키 작은 나뭇가지들이 푸르르르 떨었다. 고삐를 잡아 채인 말이 앞발을 들고 길게 울부짖으며 자리에 멈춰섰다. 작 은 기척들이 슬쩍슬쩍 움직였다. 내 눈을 피해 벗어나 클레이 브의 마차를 습격하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여기서 놈들이 저 마을까지 따라오게 만들 수는 없었다. “거기 셋. 그 덩치에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다닌다고 해서 눈 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았나?” 살기를 끌어올렸다. 놈들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때가 탄 듯한 누런 옷으로 몸을 감싼 사람들의 고개가 들렸다. 회색의 눈동 자에 공포가 비쳤다. 견디기 힘들었는지 타고 있는 말의 다리 가 부르르 떨렸다. 난 말을 몇 발자국 더 걷게 했다. 길다란 목덜미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 검을 뽑아들었다. 바람이 몸을 휘감고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 날의 아침처럼 봐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말아라. 너희 들의 카느는 이미 나와의 약속을 깼다.” 지킬 것이 있는 싸움을 할 때는, 절대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된 다. “귀찮으니까... 죽고 싶은 놈은...” 폭발한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새와 작은 동물들이 정신을 잃 고 떨어졌다. 죄책감은 접었다. 아르님이 어쩌건 난 더 이상 이들을 봐 줄 생각이 없었다. 난 이미 최선 이상의 것들을 했 다. “빨리 움직여라.” “...놈들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부족장은 누구지?” “원체 작은 마을이라 따로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출신귀족도 없을 테니... 아마 촌장이 부족장을 겸임하고 있을 겁니다.” “흠...............” 부족장 급의 귀족이 세워지지 않았을 정도의 마을이라면 인구 수가 너무 적던가 아니면 전사의 수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 렇다면 체계적인 협조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공을 세운답시 고 이놈 저놈 나선다면 방해만 받을 뿐이다. 단순히 몰아서 잡 아죽이는 정도가 아닌 이상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편 했다. “부상 정도는?” 대답하는 누런 눈에 희번득 살기가 스쳤다. 룬은 가볍게 한숨 을 내쉈다. 그림자의 삶 주제에 아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더 우습기는 하지만, 최초로 그 하녀가 던진 돌에 맞은 젊은이는 이 사내에게 아들 같은 자였다. “하나같이 오른쪽 다리 정강이가 정확히 부러졌습니다.” “...빼야겠군.” 다리가 부러졌으니 확실히 추격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 그렇 게 빠진 사람이 여섯. 모두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부상을 입었 다. 우연히 맞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노리고 던졌다고 생각하 기에는 거부감이 일 정도로 두려웠다. “강한 존재야.” 감쪽같을 정도로 몸을 은신해 낸 그림자들의 움직임을 너무나 정확히 짚어냈다. 마차 옆에서 말을 달리며 소년들과 잡담을 나누며 따라오는 자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처음부터 몸을 숨긴 채 은신하던 자들까지! 게다가 그 게 다가 아니었다. 마차가 먼지를 일으킨 뒤에 남은 그녀는 돌풍 같은 살기를 뿜 어냈다. 수련 정도가 낮은 그림자 몇몇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추태를 보였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고 버틴 자라해서 무사한 건 아니었다. “후..............”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마나 강하게 쥐고 있었던지 손이 아직도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손바닥이 뻐근했다. 자신을 바라 보는 부하들의 눈을 의식해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을 뿐, 온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허언은 아니었어.” 최악의 경우 그녀가 전설의 주인공 일 수도 있다고 센은 말했 었다. 룬은 등줄기가 오싹했다. 뒤 돌아서서 등을 보인 그녀를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뒤돌아 느릿하게 가면서도 움직이지 말 라는 경고를 어긴 자들을 여지없이 찾아내 손톱만한 돌맹이 하나로 다리를 부러트렸다. 그들은 그녀가 마을 안으로 들어설 때 가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먼지만큼이라도 승산이 있어 보여야 덤비는 건데...” 일찌감치 개죽음 할 수는 없었다. ‘움크님이 출발하셨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직접 맞부딪히지 는 말라고 하셨었지만....’ 그렇게만 하기도 힘들었다. 룬은 쥬트로부터 온 메시지를 떠올 렸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성스러운 산, 그녀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무궁한 정보의 값어치. 거기에 전설의 주인 Lord of the sword의 무술을 얻을 수만 있다면! 부르르르... 격동이었다. 전설의 주인이 아님에도 자신을 한 순 간에 경직시킬 수 있는 살기를 뿜어내게 할 수 있었다면 그 무술이 그들의 손에 들어왔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지 상 상만 해도 대단했다. 카슬을 통일하겠다는 우트트의 계획을 그만큼 현실적으로 만 들어줄 것이 또 있을까. 그 힘이 손으로 들어온다면, 카슬을 통일하고 보스윌해협으로 이어진 에이람을 통합한 이후 서대 륙에서도 미지의 서대륙인 바다의 결계 저편의 고드로 갈 수 있다. 그 다음은 동대륙. 세상의 모든 대륙으로 사막인의 발이 지나간다. 그 조그만 가능성만으로도 룬은 조용히 물러서 있을 수 없었다. ‘움크님은 실패하실 것이다.’ 예감만은 아니었다. 이미 그 날 황궁의 앞뜰에서 그의 눈으로 도 확인했다. 게다가 움크와 그를 따라나선 자들은 하나같이 정면으로만 부딪히는 것을 좋아하는 직선적인 자들이었다. 암 살자 출신으로 페르로이가로 들어간 하르크와 같이 닳고닳은 자나, 강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달아날 때를 아는 란과 같은 자와 맞서는 방법을 그들은 모르리라. “후.... 하지만 포위만 해 보고 그대로 물러선 건 아무래도 걸 리는군.” 룬은 애써 미련을 털어냈다. 그녀와 마부, 소년들과 혼자 그림 자들을 다 제치고 사라진 하인에 대한 정보를 더 모아야 했다. 피상적인 것들 외에 어떤 습관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약점을 지니고 있는지 더 자세히 알아야 했다. 더구나 지금 손해를 볼 수는 없었다. 손해는 움크 일행이 됫박 깨진 다음이라도 충분 했다. ‘자아, 지금 생겨난 경각심을 움크님께로 풀어 달라고.' “우그르트 움크께서 오셨습니다!” 작은 아지트 밖으로 묵직한 발걸음소리들이 규칙적으로 울려 왔다. 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삐걱 나무문이 열리고 작은 나 무창틀로 흘러 들어온 빛을 얼굴에 받아 눈살을 찌푸리며 움 크가 입을 열었다. “시시하게 물러섰더군.” “저희는 추격과 암살밖에 할 줄 모르는 그림자들 아니온지 요.” 푹 숙인 룬의 뒤통수로 맹수 같은 움크의 살기가 꽂혔다. 피식 소리 없이 룬이 미소지었다. 중앙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도 를 떠나왔을 때부터 움크의 실각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 다. 흙과 돌과 누런 천막으로 지어진 조그마한 집들 중에 음식점 을 찾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작지만 축제 분위기가 물 신 풍기는 사람들의 틈 사이... 낯익은 말 두 필이 날 보고 푸 르릉거리는 곳 뒤편 천막에 아이들과 하르크가 있었다. 휘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날 본 아이들과 하르크의 얼굴에 생기 가 돌아왔다. “.....란님!” 허리가 묵직했다. “자아, 자... 다들 무사했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을 한 두 소년이 날 보자마자 달려들어 허리에 들러붙었다. 제법 무게가 나가기 시작한 열 살 어름의 소년 둘은 아무 말 없이 잠시 내게 붙어 있다가 조용히 떨어 졌다. “울지는 않았지?” “물론이죠.” 꼬질꼬질한 눈물자국 한 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테판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클레이브는 목까지 새 빨갛게 달아올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크레이도 잘 있었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검을 지팡이 삼아 조용히 서 있던 크레 이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자리에 앉으며 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마차는 팔았고, 짐을 따로 실을 말을 한 필 사두었소. 필수 적인 건 각자 말을 정해서 싣고 부수적인 것은 란님이 타고 온 말에 실으려고 여기 두었고...” “아, 잘했어. 그럼 다시 출발하자.” “아, 벌써? 이 마을에 머물지는 않으시려구요?” 깜짝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한번 바라보더니, 피곤한 듯 폭 한숨을 내쉬며 하르크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툭툭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힘을 내라고. 그깟 피로 잠시 운기만 잘 하면 나중에 다 풀리는 거야.” “.............!” 뭉친 목 근육 위쪽으로 은근슬쩍 밀어 넣은 내공에 반응하듯 비명도 지르지 못한 하르크의 누런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눈꼬리를 파르르르 떨며 하르크는 내게 필사적으로 시선을 맞 췄다. 난 그에게서 손을 뗐다. -그림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 추격대가 가까이 와 있다는 의미야. 이런 곳에서 다수를 맞아 싸운다는 건 무리 다.- -무후님께서 그러시기요?- -나 혼자가 아니잖아.- 하르크가 테이블 위로 얼굴을 처박았다. 지친 세 아이들의 얼 굴에도 설핏 실망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녀석들 은 금새 표정을 수습했다.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처음 아르카이아로 갈 때와는 비 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생과 역경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 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땀과 피로에 절어 지칠 대로 지쳤지만 아이들은 스스로가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다 먹었어요.” 클레이브의 숟가락이 경쾌하게 내려놓아졌다. 스테판이 살그머 니, 크레이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시와 숟가락을 테이블 위 에 내려놓았다. 허리에 매달린 검집을 확인하고 아이들은 의자 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흰 출발할 수 있어요.” “애들은 된다는데?” 번쩍 든 하르크의 땟국물 낀 얼굴이 더 이상 뭐라 표현해 주 기 힘들 정도로 애처롭게 망가져 있었다. “알았어요! 알았다니까요!”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5-후작가의 정원사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국왕의 분노는 거세게 들끓었다. “겨우 하녀 하나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나라도 가문도 버리겠 다? 이 무슨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인가!” 소문은 빠르게 전해졌다. 최초의 소식이 왕궁으로 전해진 뒤 하루도 채 되지 않아 클레이브와 란은 사람들의 구설수에 떠 올랐다. 크리아는 발칵 뒤집혀졌다. 하노베이 백작이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며 문제를 일으키고 달아난 클레이브와 하녀들 을 성토했고, 차스크 백작과 헤일런 공작을 제외한 나머지 귀 족들은 하나 둘 페르로이 후작가의 진영에서 이탈해 나갔다. “그렇게 감싸고 돌아줬건만, 근본도 없는 혼혈아 따위 결국 그렇게 체통도 없이 구는 거라니까요?” 소문은 순식간에 부풀려졌고 여기저기 만나는 사람들마다 클 레이브의 도주 이야기로 꽃을 피워댔다. “하녀의 주인이라니 그게 무슨 의미겠어요? 세상에나, 겨우 첩실 하나 들이자고 그 난리를 떨다니! 세상에 그런 바보가 또 있을까요?” “그러게 말이죠. 얌전히 버티고 있다가 후작가는 안 되더라도 남작가 작위라도 하나 받으면 감지덕지 하고 조용히 살면 되 는 거지.” “비천한 혈통이 섞인 게 틀림없다니까요!” 나쁜 소문만큼 빨리 퍼지는 것은 없으리라. 후덥지근한 무더위 와 짜증에 절어있던 사람들에게 클레이브와 란 일행의 이야기 는 더할 나위 없는 안주거리였다. 소문은 순식간에 덩치를 부 풀리며 무한정 굴러나가기 시작했다. “허허허허...” 너털웃음이 흘러나왔다. 노도는 조용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얇 은 벽 저편에서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들은 정말 웃지 않고서 는 듣기 힘든 추태들이었다. “마님이 많이 힘드시겠구먼...” 결혼이 내정된 이후, 후작 가에서 살롱과 안주인의 자리를 미 리 채우고 있던 솔리네아를 둘러싼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수다 는 멈추지도 않고 이어졌다. “그래서 하녀는 너무 예쁘장한 것을 쓰면 문제가 생긴다니 까요!” “여신님께서 저주하셨는지도 모르죠! 고생 좀 시키려고 성기 사로 만들었다잖아요! 여신님의 성기사들 중에 죽여도 상관없 다는 말을 들은 존재가 이전에라도 있었던가요! 세상에! 혼혈 아라니! 축복이나 제대로 받고 태어났는지 몰라!” “잘 된 일이지 뭐예요! 그러잖아도 귀족사회에 받아주기에는 눈에 가시 같던 혼혈아인데! 이렇게 알아서 떨어져 나가주다 니!” “어머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기왕 떨어질 거면 조용 히 혼자 죽지, 엄한 우리들까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프란 제국의 카느께서 그런 모욕을 당하시고 조용히 넘어 가시겠어 요?” “설마 전쟁이야 벌어지려고요.” “그건 아니더라도 분명 뭔가가 있을 거예요. 우리 크리아의 주 고객 중 하나가 프란 황실 아니었나요.” 이 정도면 그나마 수준 높은 편이었다. 노도는 조용히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한 가운데 끼여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포기한 듯 웃으며 앉아있는 솔리네아의 어깨가 축 쳐 져 있었다. “후작님께서 찾으십니다. 솔리네아님.” 천사를 만나도 이렇게 밝아지지는 못하리라. 한 순간에 솔리네 아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자신들의 수다에만 정신이 파묻혀 누가 나가는지 들어오는지도 관심 없는 귀족들을 뒤로 하고 솔리네아는 조금 빠른 동작으로 양해를 구하고 걸어나왔다. 한 겹의 문을 사이로 공간이 나뉘어지자 마자 솔리네아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까닥하면 화를 낼 뻔했답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까지 저어대는 그녀는 두 팔로 스스로를 끌어안고 온 몸을 부르르르 떨었다. “제 이야기 같은 건 듣고싶은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죠. 그저 지금 비련의 여인처럼 몰락한 가문으로 가게 생긴 절 보며 자 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자랑하고 싶을 뿐인 바보들이예 요.”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솔리네아님.” “천만에요.” 길다랗게 흘러내린 진주 귀걸이가 솔리네아의 고갯짓을 따라 가볍게 찰랑였다. “제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우아하게 몸을 돌려 노도의 앞쪽으로 걸어나가며 솔리네아는 허리를 조금 더 꼿꼿하게 폈다. “언젠가 저들은 저렇게 타인을 험담한 일에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가 더 어울릴 단호한 목소리였다. 힐끔 뒤를 돌아본 노도의 소매 춤에서 흰 종이장 하나가 나풀 빠져 나갔다. 여주인이 빠져나간 줄 도 모르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 던 귀족들의 잡음이 잘리듯 끊어져 나갔다. 덜그렁,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들도 들려왔다.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드는 냥 노도의 입가에 주름이 깊게 휘어졌다. “푹 들 주무시게. 나쁜 꿈꾸고....” ‘이거 마법사의 마법을 부적에 응용해 둔 것들도 상당히 잘 먹히는구먼!’ “하, 하하하하하...” 경쾌하게 끊어지는 웃음소리와 달리 대공의 인상은 최악이었 다. 꿀꺽 페르로이 후작과 차스크 백작의 눈이 마주쳤다. 차스 크 백작이 뭔가 아느냐는 듯 눈짓했다. 후작은 살짝 고개를 끄 덕이고는 손가락 하나를 살며시 입가에 세웠다. 헤일런 공작은 아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하... 하.... 하.” 이른 새벽 거지꼴로 나타나 후작가의 정문을 넘은 베이르 대 공은 노도와 후작으로부터 이 크리아의 그간 움직임과 동향, 그리고 지금 떠돌기 시작한 소문들을 들은 이후로 계속 저 상 태였다. “하... 젠장. 멸망을 자초하고 싶은 건가!” 웃음이 끝나고 길고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성긴 나무로 짠 나무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로 쓰러지듯이 누워 앉은 대공 은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깨질 듯한 침묵. 똑똑 정갈 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솔리네아님을 모셔왔습니다.” 후작이 문가를 지키던 해리슨에게 눈짓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문에 달린 작은 창을 열고 작게 속삭였다. “아, 미안하지만 잠시 기다리게.” “대공께서 아직도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가요?” “그런 듯 하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러선 노도에게 솔리네아가 괜찮다는 듯 먼저 고개를 저어주었다. “인사라면 조금 늦게 드려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일은 일어날 것이 분명해진 프란과의 전쟁일 테니까요.” 가볍게 한번 더 웃음을 터트리고 솔리네아는 힐끔 문으로 시 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런 소문들에 어떤 진노를 보이실지 모르는 ‘그 분’일 거구요.” 많은 것을 아는 듯한 얼굴이었다. 솔리네아는 활짝 열린 복도 의 창가에 몸을 가볍게 기댔다. 바다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그 녀의 잔 머리카락들을 살며시 띄웠다. 강렬한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그녀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지금 저 자리에는 저보다 노도님이 더 필요하답니다.” 솔리네아의 등 뒤편으로 멀리 해협의 진록 바다가 펼쳐져 있 었다. 흰 새들이 고양이 같은 목소리로 울며 창가를 스치고 날 아갔다. ‘우리 후작님은 처복도 많은 사람이구먼...’ 정말 많다고 해야 할지를 잠시 고민해 보며 노도는 그녀에게 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허허... 전 늙은 정원사 일 뿐입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솔리네아는 ‘풋’ 웃었다. “전 그렇게 눈치가 없지 않답니다. 방금 전에도 노도님의 소 매에서 스크롤 한 장이 날아가 응접실 문에 붙는 것을 보았는 걸요.” “허허허허허.” “궁정의 대바법사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법을 쓰지는 못 할 겁니다. 노도님.” 빙그르르 솔리네아는 몸을 돌렸다. 가벼운 소재로 성글게 엮여 진 여름 드레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는 후작의 집무실 옆쪽에 준비된 대기실의 손잡이를 잡았다. “들어가 보세요. 전 이 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란이 무신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고 평범한 여인이 되었다면 아마도 저렇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노도는 빙긋 미소지었다. “후, 마님께서도 저리 말씀하시니 나도 가볼까?” 쥐 죽은 듯 조용한 집무실에서는 밖에서 느끼기에도 묵직한 긴장감이 가득 차 있었다. 노도는 통이 넓은 팔 소매를 다시 짧게 걷어 부쳤다. “저 노도입니다. 들어가도 좋겠습니까?” “후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핫!” 연신 즐거운 웃음을 터트리는 이는 하노베이 백작가의 젊은 주인이었다. 시원하게 열어붙인 셔츠 자락이 바닷바람에 펄럭 였다. 저녁을 먹은 후 짧은 틈을 내어 성의 탑을 올라온 것은 잘 한 일이었다. 백작은 창틀에 몸을 기댔다. 그의 앞쪽으로 석양에 물들기 시작한 아름다운 보스윌 해협을 바라보고 서 있는 페르로이 후작가의 저택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저 저택을 지킬 수 있을까?” 소문이 이미 쫙 돌아있었다. 아마도 페르로이 후작은 이 크리 아의 사상 가장 짧은 임기를 지내고 쫓겨난 국방장관이 되리 라. 그 자리에 자신이 직접 올라가기는 힘들더라도 자신의 입 김이 닿는 자를 올리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쳇, 내가 열 살만 더 많았더라면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소년에게 그런 막중한 일은 무리였 다. 스스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이 어떤 눈 으로 사람을 보는지 모를 만큼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셀레라는 잘 떨어져 나갔고.” 너 밖에 없다는 둥 둘째 우그르트를 반드시 사로잡으라는 둥 바람은 잔뜩 불어넣어 활발하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의 막내 누이의 성격을 모르 지 않았다. 아무리 하노베이가가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 람을 정식 카느린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정 식 카느린은 아마도 프란의 거대 부족, 귀족출신의 누군가중의 하나가 되겠지. 그 후궁의 자리 중 아무거나 하나라도 셀레라 가 들어가만 준다면, 그렇게 아들이라도 하나 낳아준다면 그로 서는 만족이었다. “하하하. 그 허영덩어리 사고뭉치가 이렇게 좋은 카드가 되어 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 곳은 정말로 마음에 드는 장소 중 하나였다. 바닷바람이 왕궁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거세 게 감고 돌아가는 이 탑은 유난히도 큰 바람소리 때문에 그 어떤 소리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 도 옷깃을 여밀 만큼 추웠기 때문에 탑의 꼭대기에서 근무를 서는 보초병 몇몇 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 았고, 게다가 탑을 도는 바람소리라는 것이 상당히 날카롭고 세됐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후후, 그 혼혈아 꼬맹이가 이렇게 날 도와줄 줄은 몰랐어. 정말로.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렇기에 이 곳은 그가 가슴에 담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풀어 놓는 몇 안 되는 장소들 중 하나였다. 해가 점점 더 저물어갔 다. 항구를 밝히는 횟불 들과 등대의 불이 어둠을 가르고 힘차 게 타올랐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갖고싶다. 저 아름다운 것들을...” 탐욕.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포기할 수 없는 욕심이었다. 왕가에 반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 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귀족들의 비호 하에 의지하는 것에 익 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왕가를 주무르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아직 어린 자신의 말에 귀가 엷어져서는 우직한 페르로이 후 작을 외면하기 시작한 왕과 왕세자가 그 좋은 예였다. “이제 슬슬 내려가야 할 시간이군.” 몸을 부르르 떨며 하노베이 백작은 아쉬운 듯 몸을 돌렸다. 내 려가서 다시 정장을 갖추고 왕을 찾아가야 했다. 페르로이 후 작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오늘로 분명하게 물러날 수밖 에 없도록 만들어 주리라. 비록 셀레라에게는 아무런 측은함도 느끼지 않았지만 그녀가 당한 모욕은 하노베이 백작가가, 그가 당한 모욕이기도 했다. 비록 후작가의 서열이 그 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젊고 겁이 없 는 그에게는 이빨 없는 늙은 사자의 힘없는 거만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공의 갑작스러운 은거로 굴러 떨어진 자리를 주책없이 날름 삼켜버린 운만 좋은 자. 무인으로서는 뛰어난 면도 없지 않았 지만 어차피 크리아는 군사력으로 지켜지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 자에게 실권이 기울어진다는 건 불쾌한 일이야.” 낮게 이를 갈며 백작은 느리게 계단에 발을 딪었다. 아래쪽에 서 그를 부르는 하인들의 횃불이 아른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풀려있던 금아의 눈에 살며시 초점이 돌아왔다. “안 들면 한 대 더 쳐줘?” 자글자글 주름진 앙상한 팔을 들며 노도가 빙긋 웃었다. 금아 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직도 머리가 울리는 걸요.” 황급히 뒤통수를 매만지며 금아는 몸을 옆으로 뺐다. 그런 그 들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툭 떨어진 턱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정신이 나갈 듯 하면 언제든 신호를 보내게. 늙은 손을 몇 번 더 수고롭게 만드는 일쯤이야 어렵지 않으니까.” 가벼운 노크로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노도는 한숨만을 푹 푹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미묘한 살기만을 연신 내뿜는 금 아를 보자마자 다가가 냅다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뻐억. 그 가 는 손으로 때린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금아의 살기도 멎었다. “아, 아닙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남들이 자신을 어찌 보건 말건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노도는 특유의 너털한 웃음을 흘리며 후작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네!” 화들짝 두 손을 저어대며 페르로이 후작과 차스크 백작은 벌 어진 입을 다듬고 표정을 바로 했다. 습습한 입가로 침이 흐른 자국을 슬그머니 닦아내며 차스크 백작이 슬쩍 농을 걸었다. “노도님은 볼 때마다 절 놀라게 하시는 군요.” 그들의 앞쪽에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물잔 받침에 손바닥 반 만한 종이 한 장씩을 깔며 노도는 싱긋 이를 들어냈다. ‘쩌 적’ 노도가 손을 떼자마자 컵의 표면이 얼어붙으며 물에서 흰 김이 올라왔다. “얼음이 살짝 녹기 시작하면 드시면 됩니다.” “.......................” 귀족들의 입이 또 한번 떡 벌어졌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잠시 뻐끔뻐끔 하던 그들의 입은 처음과는 달리 곧 닫혔다. 그 리고 낮고 긴 한숨들을 뿜어냈다. “....차별이시군요.” 미지근한 찻잔을 손에 들어 빙글 돌리면서 금아가 쓰게 웃었 다. “아니지. 자네는 란의 제자가 아닌가.” “뭐, 페르로이 후작이 주인님이고 전 친구의 제자임은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만...” 쩝 입맛을 다시며 금아는 뒤통수를 매만졌다. “내 손이 좀 맵다고 란이 하기는 하더군. 뭐, 무후 쯤 되는 사람을 패야 할 일들이 생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손에 도력 이 모이기 시작했지. 허허허허허.” “...하, 하, 하...” 노도가 허리를 폈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낮 동안 퀴퀴하게 묵은 공기가 바닷바람에 섞여 날아 갔다. “란은 마스터의 경지로 들어선 이후로 더위나 추위를 타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 난 자네를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마스터 라는 종족으로 봤을 뿐일세.” 일년 새 다시 자란 긴 은빛의 수염이 흩어지며 노도의 목으로 감겼다. 손으로 수염들을 잡아 옆으로 비켜내며 노도는 눈을 창 밖으로 고정시켰다. “스스로를 란의 제자라고 태연하게 말하면서도 란을 믿지 않 는구먼. 자네는.” “.....................” 금아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무릎에 팔꿈치를 기댔다. 새로운 긴장으로 인해 달아났던 몇 일간의 피로감이 그의 등을 무겁 게 짓눌렀다. “그런가요.” 깍지 낀 손에 이마를 기대는 금아의 목소리가 침울하게 가라 앉았다. 창 밖으로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노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는 이 크리아를 선택한 것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 하기라도 하는 것 같아.” 깍지 낀 손이 잠시 흔들렸다. 후작의 눈에는 그가 고개를 끄덕 인 것처럼 보였다. 노도는 창 밖으로 비스듬 몸을 기울였다. “자네가 오지 않았다면 란이 자네를 보냈을 걸세. 이 땅이 그 녀가 선택한 어린 주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금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 그녀가 존재해 온 삼 백여 년의 평생에 단 한번 밖에 만 나지 못했던 제자인 자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을 잇는 노도의 옆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아마도 자네는 모를 걸세.” “그럴 지도 모르죠.” 금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말이지. 하찮은 몇몇 사람들의 입방아에 분개해 자네 가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조국을 짓밟을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네 사람의 시선이 노도의 등으로 몰려들었다. “.............짓밟을... 지도...” 헤일런 공작의 통통한 얼굴이 새하얗게 바랬다. “정말로... 그럴까요?” 의심스러운 표정. 금아는 쉬 맘을 놓지 못했다. 노도는 가볍게 혀를 찼다. 몇몇 귀족가의 기둥뿌리가 뽑혀나가고 건물 몇 채 쯤 덤으로 망가질 지는 모르지만, 금아가 피땀흘려 기틀을 다 지고 클레이브가 나고 자란 이 나라까지 멸망시킬 란은 아니 었다. “어이가 없군.” 실망이 조금씩 묻어 나왔다. 금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저런 목소리를 한 노도는 전에 본 적이 없었다. 조금 화가 난 기색 으로 노도는 힐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무리 제 것이 소중하다지만 부모와도 같은 스승의 불명예 보다 더 중한가?” “................!” “난 서대륙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네. 그러나 이런 일들을 앞 두고 스승의 불명예보다 그 불명예로 인해 분노할 스승이 자 신의 것들을 망가트릴까 봐 더 걱정하는 그런 모습이라니!” 챙, 금아의 손에 들려있던 컵이 바닥을 굴렀다. 투명한 물방울 들이 주어 담을 수 없는 형체로 바닥에 흩어져갔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르겠군. 하지만...” 느릿하게 다시 창가로 기대는 노도의 등이 한 순간 커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바람이 노도의 등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한가지는 알겠군.” 창 밖에서 작은 불이 반짝였다. 고개를 내민 노도의 눈에 낯익 은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창문 아래 후작가의 그림자들을 총 괄한 라크로이 노인이 손을 흔들었다. 곽이 맞는 작은 나무상 자 하나를 노도에게로 날려보냈다. 노도의 손에 빨려들 듯 상 자가 잡혔다. 상자 안에 두 장의 종이가 들어있었다. 힐끗 본 노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바람이 습습한 것을 보니 곧 비가 올 지도 모르겠군요.” 방안이 어느 정도 환기된 것을 확인한 노도가 창을 어스름 닫 고 커튼을 살짝 닫았다. 후작과 노도의 눈이 짧게 교차했다. 노도가 정중하게 네 귀족들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대공저하께 전해 져야 할 소식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정중한 외집사로의 자세. 금아의, 베이르 대공의 안색이 급격 히 어두워졌다. 그는 머뭇머뭇 노도의 손에서 두 장의 편지를 건네 받았다. 펼쳐진 종이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표정은 미묘 하게 꼬여갔다. “이 녀석들이!” “흠... 그라면....” 왕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노베이 백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 다. 그로부터는 이미 모든 허락을 다 받아 둔 뒤였다. 이 기회 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의 시간을 투자해 왔던가! 모든 세상 이 페르로이 후작가에게로 다 기울어졌을 듯 보였을 때도, 두 번 다시 기회가 돌아오지 않으리라 보였을 때도 그는 포기하 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밖으로 나선 적이 없지 않았던가. 이런 막중한 일을 맡아 무사히 처리할 수 있겠는 가?” 왕은 염려스러워 보였다. “아니요. 다른 형제들과 달리 그는 적당한 무예와 정치력을 모두 갖춘 자이옵니다. 지금 국난을 맞이해 그보다 더 폐하를 잘 보필할 수 있는 자는 없을 듯 하오니...” “흠..............” 대공이 잠적한 지금 그를 제외하면 마땅한 인물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몇몇 마음에 드는 다른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 지만 왕이 아는 그들은 결코 이런 자리를 받아들일 인물이 아 니었다. 전쟁의 제일 선두에 나가달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지 만. “후작은 책임을 져야 하옵니다. 프란이라는 강대국의 속셈을 능히 짐작하실 수 있으시지 않으시옵니까.” 왕은 갈등했다. 젊은 하노베이 백작은 이미 선대를 넘어선 듯 보일 정도로 능력 있고 뛰어나 보였다. ‘중히 쓰기에는 아직 젊지만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이니 만 큼...’ 왕의 눈빛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하노베이 백작은 회심의 미 소를 지었다. 저런 눈을 했을 때는 왕의 가슴이 굳어졌을 때. 왕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폐하! 폐하!” 복도를 달려오는 호들갑스러운 시종의 목소리가 왕의 집무실 안까지 쩌렁 울렸다. “베, 베, 베이르 대공께서!”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6-대공가의 비밀 “아버님께서 돌아오신다면 널 용서할 듯 싶은가!” “물론이요. 재능도 없는 무예를 닦는답시며 가문조차 돌보지 않고 이렇게 썩힌 형님보다야 낫지 않겠소?” 습습한 공기에 말소리들이 웅웅 울렸다. 길다랗고 천장이 낮은 굴의 끝에 두꺼운 철창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 보고 있었다. “아버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녕....” “닥치시오! 아버님! 아버님! 그래, 그리 부르고 불렀다고 그 자가 형님이나 나의 친아버님이라도 된단 말이요!” “창아!” “부르지 마시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시오!” 격하게 쇠창살을 흔들며 창은 소리질렀다. 철그렁 철그렁 창살 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맡의 작은 돌들을 후드득 떨어트렸다. “내 친어머니로 알고 자랐던 그 분을 슬프게 한 그 자가 지 어준 이름 따위 부르지 말란 말이오!” 요동이 뚝 끊겼다. 식식거리는 숨소리가 잠시 굴 안을 유령처 럼 맴돌다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형님이 먹은 ‘산공독’이라는 독은 저 멀리 동대륙에서 특 별히 가져온 것이오.” 갇힌 자는 몸을 떨었다. 실제 본 적은 없었지만 여러 가지 자 료로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체내에 마나를 모아 무술을 익힌 자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내공을 흩는 독. “..................” 다른 사람 같았다. 차갑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창 은 한 걸음 창살에서 떨어졌다. “난 밖으로 나가겠소. 남들이 말하는 마스터라는 완벽한 몸은 되지 못했지만 난 이걸로 만족하오.” 아무렇지도 않게 휙 흔든 손짓에 사방을 막고 있던 바위 덩어 리가 갈라졌다. 쿠궁. 한 무더기의 흙이 쏟아져 내렸다. “형님과 작은 형님은 아버지처럼 길을 떠났다고 했소.” “...........혁아는 어찌 했느냐.” “훗.” 피식 웃는 옆모습이 물기에 젖었다. 악문 잇몸 사이로 흐른 피 가 입술 밖으로 새 나왔다. “여기 갇힌 사람이 혼자인데 뭘 더 바라려오?” “이 놈! 아무리 욕심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친형제를!” “닥치시오! 버린 건 내가 아니라 형님들이란 말이요! 당신들 이 날 버렸어!” 치뜬 눈에는 광기가 돌았다. 창살 사이로 머리를 부스기라도 할 뜻 끼워넣으며 창은 눈을 부라렸다. “그럼 형님이 말해 보시오.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랑 형님이 말해 보시오. 뭐가 무예의 끝이요. 결국 그 마 음에 남겨져 있던 여자를 따라 떠난 것 뿐 아니요.” 랑은 눈을 내리 감았다.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창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창을 죽이고 창의 거죽만 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그러나... 저 자는 창이었다. 가슴 깊 은 곳에서 피비가 흘렀다. 지금 자신이 이렇게 갇힌 것보다도 두 번 다시 살아서 볕을 보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보 다도 일그러진 형제의 운명이 더 가슴아팠다. “젠장! 왜 그리 어른이시오! 왜 그따위 어른이냐고! 선택하 지도 못한 여자나 그리워하면서 지 자식들도 아닌 우리 이름 들이나 이 따위로 지어놓은 인간이 뭐가 그리워서!” “창아!”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창의 몸부림이 다시 그쳤다. 그는 벽에 걸린 횃불을 뽑아들고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 무런 말 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뚜벅뚜벅 들으란 듯 정확히 한 발 한 발을 찍으며 그는 창살로부터 천천히 멀어졌다. “창아, 그래도 아버님은 널 사랑하셨다.” 발걸음이 멎었다. 창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 하하.... 난... 이미 친형을 죽였소.” 창은 두 번 다시 멈추지 않았다. 불빛이 흐릿하게 멀어졌다. 새까만 동굴에 한 사람만이 남았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랑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토록 착하고 성실하던 동생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쯤 부터였다. ‘하노베이 백작... 이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그 가는 턱수염을 같잖게 기른 어린놈이 출입하면서부터 창은 조금씩 변해갔다. “오오, 폐관수련을 들었다더니?” 만면에 웃음을 띈 왕의 환영을 받으며 아담한 집무실로 들어 선 베이르 대공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폐하의 지극하신 은총으로 작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사옵니 다.” “성과?” “예.” 한 쪽에 서서 고개를 숙인 하노베이 백작의 표정이 똥 씹은 냥 시커멓게 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왕의 얼굴이 두 배는 더 밝게 변했다. 왕이 몸을 일으켜 베이르 대공의 두 손을 잡았 다. 한 때 원망했던 마음이 어디로 씻겨져 나갔는지도 몰랐다. 왕은 자신이 충신으로 꼽던 자가 이 위기에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이 기뻤다. “나라에 위험이 닥쳤는데 어찌 제 수련만 하고 있겠사옵니까. 수련의 성과는 엉뚱한 트집을 잡아 폐하를 심려케 한 무례한 무리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오오, 대공이 그리 말해주니 든든하기 그지없구료. 그렇잖아 도 신임 국방장관의 자리에 어떤 인물을 앉혀야 할지 여기 하 노베이 백작의 충언을 듣던 중이요.” 왕이 고개를 돌려 아직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순서를 기다 리고 있는 백작을 바라봤다. 베이르 대공의 시선이 왕의 눈을 따라 움직였다. ‘윽.’ 시선을 느낀 하노베이 백작의 어깨가 살짝 움직였다.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을 덮어씌우는 듯한 무게감이 어깨를 내리눌렀 다. 다리가 후들 떨렸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베어 나왔다. “호, 새롭게 하노베이가를 이어받은 백작의 이야기는 들었습 니다만,” “맞소. 나이에 비해 뛰어난 젊은이지.” 새로 손에 넣은 보석을 자랑하는 상인처럼 왕은 눈을 빛냈다. 눌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하노베이 백작이 반쯤 몸 을 더 일으키고 베이르 대공에게로 정중하게 인사를 보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새롭게 하노베이가의 주인이 되었습니 다.”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한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 다. 피식 금아의 표정 한 귀퉁이가 일그러졌다. 식은 땀을 흘 리면서도 가식적으로 지어낸 웃음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얼굴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분위기도 공기도 그랬 다. 베이르 대공은 하노베이 백작에게로 가해지던 압력을 줄이 지 않았다. 후들, 백작의 다리가 눈에 보이게 떨렸다. 백작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역시 한 핏줄이군.’ 스스로 통제하기도 전에 베이르 대공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 아... 셀레라 양께는 신세를 많이 졌었지.” “네?”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 가시 돋힌 목소리였다. 하노베이 백작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호오? 사교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자네가 어찌 어린 영양의 이름을 아는가?” 떨떠름한 미소가 대공에게 그려졌다. 고개를 살며시 흔들며 대 공은 낮게 웃었다. “후에 폐하께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의 눈이 하노베이 후작에게로 향했다. 쓴 미소를 지으며 고 개를 숙이고 물러서는 하노베이 백작의 뒷모습을 보는 베이르 대공의 속내는 편하지 못했다. ‘분명 그대로 물러서지는 않겠지.’ 페르로이 후작가에서 받아보았던 두 통의 편지가 자꾸만 머릿 속에 아른거렸다. 둘째 아들 혁에게서 보내진 편지와 그 편지 를 찾아낸 라크로이 노인이 덧붙인 한 장의 정보였다. 베이르 대공은 떨리는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래, 자네에게 무슨 일이었었던 것인가?” 아직 왕이 그의 앞에 있었다. “우선 가슴을 가라앉혀 주시고 들어주십시오.” 농담의 기미는 없었다. 변해버린 분위기에 조금 의외라는 얼굴 로 왕은 자리에 앉았다. 금아는 사방에 귀를 기울였다. 천장 쪽과 창 밖으로 인기척들이 잡혔다. 가깝지는 않았지만 이 곳 에 마법 도청장치가 있다면 저 거리에서 얼마든지 훔쳐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금아는 입을 다물었다. 우선은 왕 외에 다 른 자가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폐하. 익숙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이대로 들어만 주시옵소서.- 머릿속으로 직접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왕은 눈이 커다랗게 치떴다. 자신을 바라보는 왕에게 베이르 대공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를 제외한 다른 어느 누구도 지금은 알아서는 안되는 일 이옵기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왕의 의연히 허리를 폈다. 대공이 새 롭게 경지를 이룰 때마다 마치 마법사의 영역까지 흡수하는 듯한 느낌이 왕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대공은 믿을 수 있는 그 의 힘이었다. 어릴적부터 그랬고 단 한번도... 왕의 등을 노린 적이 없었다. -우선 이번 일의 진상과 그 소문의 하녀의 진정한 정체에 대 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음?” 뭐라 말을 꺼낼 듯 했던 왕은 금아의 눈을 한번 더 확인하듯 바라보고서는 목소리를 닫았다. 그리고 입으로 뻐끔 말했다. ‘일의 진상이라고? 자네는 지금까지 저택에서만 머물렀던 게 아닌가! 어찌 그런 일들을...’ 베이르 대공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 폐관은 저택에서 사색에 잠긴 것이 아니라 관직을 잠시 잠그고 밖의 세상을 보고 다녀온 형식의 폐관이었사옵니 다.- ‘형식의.....’ 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알 듯도 하면서도 영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넘어갔다. 베이르 대공은 무인이었고 왕은 왕이었다. 왕이 무인의 모든 일을 알 필요는 없었다. -폐관 수련동안, 전 그 하녀와 함께 페르로이가의 어린 소년을 따라 프란 제국들 둘러보고 왔습니다.- “..................!” 왕의 몸이 퉁기듯 일어섰다. ‘서, 설마 그 달아났다는 하인이!’ 금아라는 이름을 누군가가 설핏 지나가면서 말했을 때 어쩐지 귀에 익다는 생각을 했었던 왕이었다. 그가 어린 왕세자 시절, 잠시 짬을 내어 검술을 가르쳐주러 왔던 대공은 검을 가르쳐 주는 시간 동안은 자신을 금아라 부르라고 했었다.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대공의 행동이 마치 거짓처럼 왕 의 눈에 다가왔다. 믿을 수 없었다. ‘왜, 어째서인가! 무엇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발전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난 이해할 수가 없네! 어찌 그런 일이 검술을 발전시킨단 말 인가!’ 붉게 달아오른 왕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감히 한 나라의 대공 을 자신의 아들의 하인으로 딸려보낸 페르로이 후작을 불러 당장이라도 따지고 목을 베고 싶을 지경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보다 더 뛰어 난 분이 행하고 있는 일이었기에 따라했었을 뿐입니다. 또 원 하는 성과도 있었고요.- “뛰어난 사람?” 참지 못한 왕의 말이 소리가 되어 튀어나왔다. -그 사람의 존재와 정체는 지금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 는 진정한 비밀이옵니다. 폐하.- 실수를 알아챈 왕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의자 깊이 등을 기 대고 잠시 등받이에 목을 눕혔다.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 요했다. 대공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니! 대공 스스로가 저렇게 쉽게 인정할 만큼 뛰어난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 었다. 이 서대륙에 마스터의 이름을 얻은 검사가 그 만은 아니 었지만 그보다 뛰어나다고 감히 자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 다. 그건 크리아의 사람만이 아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고 지금의 크리아를 지켜주는 힘 중의 하나였다. 왕의 눈이 서늘 히 변했다.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야만 했다. ‘그게 누군가?’ 대공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하녀이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 하녀는 누구인가?’ 팽팽한 긴장감이 왕의 전신을 옭아맸다. 주르륵 왕관의 틀을 타고 땀방울이 눈가로 흘러내렸다. -제 유일한 스승이시자 전설의 주인이신 분입니다.- “...........................” 왕이 신경질적으로 왕관을 내리고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의자 를 부서트리듯 뒤로 밀치고 벌떡 일어나 다시 외쳤다. “뭐라고?!” -Lord of The Sword, 그분이십니다.- 기우뚱 왕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래, 대공께서는 어떤 반응이신가.” 라크로이 노인은 조심스러웠다. 진짜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살펴보고 필적을 뒤져봤는지 몰랐다. 그러나 정좌채도 아니고 저렇게 쥐어짜듯 흘려 쓴 글씨를 타인의 필 체로 보이게끔 필사하는 건 그라도 불가능했다. “글세. 아직은 생각중이시겠지. 직접 확인하실 것들도 있으실 테고. 나도 믿어지지 않으니까.” 길고 깊은 한숨이었다. 노도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소식이 전 해질 줄 알았더라면 금아에게 실망감을 표시하지 않았어야 했 다는 후회감이 자꾸만 그를 괴롭혔다. ‘일단 속세의 땅을 밟으면 그 순간부터 후회의 길로 들어선 다는 선사의 말씀이 그르지 않았어.’ 그도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노도는 어쩔 수 없다 스스로를 위안했다. 알려주지 않고 넘어가도 좋 을 만큼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의 그런 미적거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후회의 미몽을 던져주었는지를 이미 확인하 지 않았던가. “살아있을 확률은 없겠군.” 노도의 말에 라크로이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오늘 베이르 대공가의 셋째가 공식적으로 발표했네. 첫째와 둘째 공자가 완전한 마스터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베이르 대 공을 따라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베이르 대공께서 나오신 건 아직 모르는구먼.” “이제쯤이면 소식이 들어갔겠지.” 크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후작가로 온데다가 라크로이 노 인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기까지 한 발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고민을 거듭했던 터였다. 그리고 뒤늦게 달려나간 곳도 대공가 가 아닌 왕궁이었으니 지금쯤 소식을 들은 대공가는 발칵 뒤 집어 졌으리라. “증거를 잡아야 하네.” 라크로이 노인의 눈이 빛났다. 드물게 보이는 분노. “그런 금서를 들여온 것도 모자라 친구의 손자들과 같은 아 이들을 버려 놨으니, 나 역시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 양자라도 금아의 아들들이니 동대륙 식으로 따진다면 란의 손 자뻘이었다. 골치가 쑤셔왔다. 뒤통수가 띵하니 울렸다. 노도는 잠시 눈을 감고 머리를 식혔다. 이런 고통이 존재할 줄은 평생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 책이 동대륙에서도 금지된 것이 맞는가?” “맞네. 익히는 사람의 심성을 타락하게 하고 악하게 한다고 해서 금서로 되어있지. 마공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이네.”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건 동대륙에서 건너온 책 한 권이었다. 빠른 시간에 검술을 증진시킬 수 있는 동대륙의 비서라는 말 에 귀가 혹해지지 않을 수 있는 무인은 드물었다. 특히 백년 전의 전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전설을 동경하는 사 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노베이 백작이 어떻게 밀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동대륙에 서도 오래 전에 마공으로 찍혀 불살라졌던 책을 손에 넣은 그 가 대공이 자리를 비운 대공가의 세 아들에게로 접근했다. 그 의 목표는 다른 두 형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했던 세 번째 아들 창이었다. “아마 그도 그 무공이 그런 것이라는 사실은 잘 몰랐을 것이 네...” 알고서도 했다면 인간의 허울을 쓴 악마이리라 생각하며 노도 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후, 유난히도 마음이 여린 아이였던 게 문제였겠지.” 아이라고 보기에는 나이가 많았지만 아이는 아이였다. 검술 외 에 세상 경험이 전혀 없다시피 했던 창은 하노베이 백작의 감 언이설에 홀딱 반해버렸다. 아무런 의심 없이 마공을 익히며 그 빠른 속도에 감탄했다. 그리고 서서히 빠져들어 갔다. 비급 의 한쪽에 적힌 주안술이라는 동대륙의 비술로 한 순간에 젊 어진 모습을 되찾은 그는 그 것이 마스터의 경지라 믿기 시작 했다. 그릇된 믿음은 오만을 낳았다. 창은 마성에 젖어 들어갔 다. 때마침 건네 받은 양모의 일기장이 그 마성을 증폭시켰다. 어릴 적부터 남아있던 대공에 대한 원망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사람들의 눈이 밖으로 쏠린 사이 피를 나눈 두 형을 제거하고 대공가를 갈아엎었다. “그보다도 하노베이가의 어린 주인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 은 탓이겠지.” 하노베이 백작은 책을 건넴으로서 창의 대폭적인 지지를 얻었 다. 왕세자의 어린 큰딸을 약속 받고, 또 하나의 물건을 건넴 으로서 창을 대공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편으로 구워삶는데 성공했다. “이제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나?” 그림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선은 오래 전에 넘어 있었다. 그렇 다고 이런 시기에 공개적으로 들춰내고 뜯어낼 수 있는 문제 도 아니었다. 노도는 털털 고개를 털었다. “대공께서 돌아오셨으니 어느 정도 해결되겠지.” ‘이 때 그냥 란이 있었으면 밤중에라도 몰래 쑤시고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들러 엎을 수 있었겠구먼...’ 그렇다 해도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었다. 빈 입맛을 다시며 노도는 미련을 털었다. 란도 란대로 있는 골머리를 썩히고 있 을 터였다. ‘차라리 내가 할까?’ 한달 밀린 연참 올라갑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The Perfect MAID]]-97-공격준비 “내일 마을을 벗어난 다음 공격하겠다.” 바삐 각자의 짐을 챙기던 기사들의 손이 잠시 멎었다. 저벅 저 벅 발소리를 울리며 움크가 기사들의 막사를 가로질러갔다. 곳 곳에 딸려온 시종들이 급히 저녁을 준비하고 말들을 먹였다. “드디어 재 결전이군!”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뒤따르는 룬의 눈짓을 무시하고 움크 는 공격시간을 다음 날 해가 뜬 후의 시간으로 정했다. “처음 따라잡은 이후로 벌써 사흘이나 더 추격했다. 소문대로 하인이라는 겁쟁이도 달아났다더군. 속임수로 기사 몇몇을 쓰 러트리고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해가 지며 공기가 선선해졌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그 림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움크는 가슴을 폈다. 지루했던 추 격이 끝나고 드디어 전투가 코앞에 있었다. “그 하녀 역시 마찬가지야. 강하다지만 겨우 하녀 하나와 마 부 하나에 어린아이 셋이다.” 작전이나 계획은 없었다. 매복도 화살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 저 달아나지 못하도록 말로 빙 둘러싸 세운 다음 항복을 받아 묶던가 아니면 그대로 공격해 베어버린다는 게 움크가 내린 명령의 전부였다. 룬은 답답했다. “그 하녀가 평범한 하녀가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성기사가 그렇게 강한 존재일까? 그것도 아르페이나의 성기 사? 여자가?” 성기사란 기사보다는 신관에 가까웠다. 기도하는 기사. 신전이 전쟁을 할 일은 없었다. 가끔 사람들을 습격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것 정도. 국가 간의 전쟁에도 직접 동원되는 일은 드 물었고, 아르와 같은 전쟁의 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의 성기 사들은 일반 신관보다는 조금 강한 검을 찬 기도자 정도였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힘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인정할 수 없다!” 움크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까맣게 변한 얼굴이 험상궂게 일 그러졌다. 그에게 그 날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 몽이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전사인 자신이 두려움에 다리가 얼어붙었었다니! 기사들의 몸을 던지는 광기에 정신이 들어 간 신히 한번 검을 맞대 보았지만 시익 비웃음과 함께 우그르트 는 봐준다는 말로 모욕당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바로 카느의 중지명령이 떨어졌다. “난 아직 겨뤄보지 않았다.” 한자 한자 씹히는 소리에 우그르트 움크의 열화가 가득 차 있 었다. 룬은 입을 다물었다. 그 어떤 소리도 지금 움크의 귀에 는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룬에게는 그 이상 움크에게 조언할 의무도 없었다. 카느의 자리를 둔 우트트의 적에게 우그르트의 예우로서 조언하는 일은 한번이면 족했다. “전 물러가겠습니다.” 성난 황소처럼 좁은 막사 안을 오락가락하는 움크의 등에 인 사하며 룬은 물러났다. ‘움크가 실패하면 그 다음은 우리가 본격적으로 나서야 되는 차례인가....’ 서서히 조여주리라. 쉬지도 가지도 못하게 조여 아는 진실들을 모조리 말하게 만들어 주리라. 스스로에게 다짐을 반복하며 활 짝 웃는 룬의 미소를 본 하인들이 몸을 설핏 떨며 휙 고개를 돌렸다. ‘마치 망자들 같군.’ 내일이 훤히 보이는 듯 했다. ‘저들 중 몇이나 제 발로 걸어 이 곳까지 돌아올 수 있을 까.’ 다가올 전쟁을 생각하면 한 사람의 전사가 아깝기는 하지만 오히려 짐이 될 바보라면 없느니만 못했다. 룬의 눈에 전투를 준비하며 흥분하는 프란의 기사들은 꺼지기 직전의 촛불과 같 았다. 아니 물을 기름이라 생각하고 불을 지르러 뛰어드는 가 련한 자살자들. “모두 단단히 준비해라! 요사스런 속임수에 속지 말아라! 명 예를 되찾아야 한다!” 곳곳에서 기사들이 검을 함성을 질렀다. 마치 비명 같았다. 룬 은 귀를 틀어막았다. ‘어리석은 자들!’ 가슴이 답답했다. 네! 여기까지가 4권의 분량입니다. ^^ 이제 다음 연재분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겠죠. 후훗. 여기까지 올린 분량이... 원고지로 약 600매, 책으로 약 200 페이지 분량입니다. 깔끔한 한권은 아닙니다만, 이미 올려진 한권 포함해주세요.^^. 삭제공지는 멀지 않아 올릴 예정입니다만. 이틀후에 삭제해주세요. 하는 식은 아닐겁니다.^^;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동안 올려져 있을 예정이구요. 출판일정이 잡히는 대로 공지 올리겠습니다. 그럼! 제 글을 기다려주셨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잔의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행복하세요. 늘. 언제나... 따듯한 한 조각의 마음과 여유가 함께 하시길......은빛. Subject: [[The Perfect MAID]]-98-어리석은 현실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다.’ 똥 씹은 얼굴이 따로 없었다. 붉으락푸르락, 젊은 하노베이 백 작의 안색이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갔다. 스쳐가던 하인과 하녀 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급히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쿵쾅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서재의 문을 거세게 잡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백작은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뒤 쪽으로 밀어 던졌다. 쾅!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닫혔다. “시익, 시익, 시익...”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하노베이 백작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 다. 이대로 풀썩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기를 가라앉혀야 했다. “빌어먹을. 늙어빠진 대공의 등장이라니!” 겉보기에 자신과 별 차이도 나 보이지 않는, 죽지도 않은 몬스 터 같은 대공의 얼굴이 빙글빙글 눈가에서 맴돌았다. 그 나이 되도록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한 얼굴이라니! 징그럽지도 않은 가! “죽을 때도 오래 전에 지난 비틀어진 망령 주제에 왜 또 기 어 돌아온 거냔 말이다!” 아예 돌아오지 못하기를 바랬었다. 나이도 백 살이 넘었으니 이제 슬슬 꼴까닥 되져 줘도 좋을 때였다. 내심 그러기를 기대 하고 있었건만, 그 동안 남몰래 드렸던 기도가 모조리 저 보스 윌 해협이라도 빠져 가라앉았는지, 오랜만에 만난 대공은 건강 이 뻗치다 못해 넘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젠장. 겨우 일년 남짓 만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빠드득 이가 갈렸다. 대공의 복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조금 일렀다. 그가 조사해 온 동대륙의 무술가들의 패턴을 분석해 볼 때 폐관수련이라 이름을 붙인 잠적은 짧게는 삼년에서 길게는 수 십 년까지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최소 이년은 보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돌아온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실무에 뛰 어들지는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지난 수 십 년간 떠날 기회만을 찾아 발뺌하던 베이르 대공이 아니었던가. “위험해. 위험해.” 아직 모든 일이 정리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반을 든든히 쌓고 그의 힘을 퍼트려야 했다. ‘페르로이 후작만 밀어내면 되는 거였는데!’ 최소한 후작을 밀어내고 대공가의 창에게 국방장관의 자리를 맡긴 다음, 그의 약점을 교묘히 조정해 그를 자신의 발판으로 만들어 올라설 때 까지 대공은 돌아와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제기랄! 제기랄!” 적의로 가득 찬 대공의 새파란 눈동자가 뇌리에 박힌 듯 지워 지지 않았다. “셀레라! 이 쓸데없는 것!”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경멸과 분 노는 분명 셀레라와 관련이 있었다. 그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 으니까. -쾅!- 있는 힘껏 책상을 내리쳤다. 어지럽게 쌓여있던 서류더미가 후 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먹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 통증을 타고 분노가 더 부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죽이고 싶 었다. 불쑥 나타난 그 대공이라는 작자부터 구석구석에서 그의 일을 그르치고 있는 쓸모없는 셀레라까지! “안돼. 안돼. 안돼.”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하노베이 백작은 반복해 뇌까렸다. 성질대로 움직이다가는 큰 일을 망친다. 단 한사람이라도 그 의 편을 들어줄 존재가 필요했다. 대공이 돌아온 이상, 그가 페르로이 백작의 손을 들어준 이상 지금처럼 일이 쉽게 풀려 나갈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줏대 없는 놈들.” 보지 않아도 훤했다. 우르르르 강한 자의 흐름을 따라 태도를 바꿔갈 귀족들의 움직임이란. 그런 자들이었기에 마음껏 농락 하는 기분으로 그들을 조정해 왔었지만 지금처럼 그런 자들의 속물적 근성이 증오스러워지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노베이 백작은 잠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절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패를 되돌리고 왔던 길을 되돌 아 몸을 숨기기에 그는 이미 너무 돌출되어 있었다. “창, 그를 만나야 해.” 한 배를 탄 동지는 지금 그 뿐이었다. 비록 미끼였을 뿐일 지 라도 말이다. “하노베이 백작이 찾아왔습니다.” 정중하지만 두려움이 가득 베인 몸짓이었다. 창은 힐끔 시선을 던지고는 손을 휘저어 하인을 내보냈다. 방금 전 홧김에 집사 를 날려 버린 일이 화근이었다. 대공의 귀환 소식을 전하며 기 쁨을 감추지 못하던 충직한 집사는 열화를 누르지 못하고 풀 풀 마기를 흘려대기 시작한 창의 신경을 결국 거슬리고야 말 았다. 마지막에나마 힘을 뺐으니 죽지야 않겠지만 당분간 의식 도 되찾기 힘들게 됐다. ‘의식을 되찾는다 해도 이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입안이 씁쓸했다. 겉보기에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차이가 나 버 렸지만 집사는 어릴 적부터 창에게 자상한 형과 같은 존재였 다. 욱신, 남아있던 양심의 한 귀퉁이가 아려왔다. 무표정하니 굳어있던 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웃기는 일이군.” 친형제로 알고 지냈던 형제들까지 자신의 손으로 제거했다. 양 심이니 뭐니 이렇게 아려올 구석 따위는 예전에 모두 죽어버 렸다고 생각했었던 창에게 이런 느낌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악세사리를 걸친 듯한 거추장스러움뿐이었지만... 뭔가가 꿈틀 움직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창 의 안색이 확연히 어두워졌다. “점점... 더 힘들어 지는 군.” 힘을 얻게 되더라도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된다면, 그 건 얻는 게 아니다. 울컥 울컥 배신감이 치솟아 올랐다. 그가 자신을 이용하려던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또한 하노베이 백 작을 이용하려 했었으니까. 그런데 뭔가 달랐다. 이건 아니었 다. 문득문득 마음이 흔들려왔다. 지금 두 형제를 짓밟고 올라 가 아버지로 알고 자랐던 남자의 목을 노리는 자신이 정말로 자신인지, 아니면 그의 심장 깊이 베어들기 시작한 이 검고 혼 탁한 마나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제기랄.” 분노, 분노. 심장 깊은 곳으로부터 알 수 없는 세상에의 분노 와 자신에의 화기가 치솟아 올랐다. 속된 말로 꼭지가 돈다고 하던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 이 깔끔한 방의 사방 에 핏물을 흐르게 만들어 보고 싶은 위험한 욕망. 창은 으스러 지게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하노베이 백작이 전해 준 한권의 비급은 그를 확실히 강하게 는 만들었지만 서서히 그를 좀먹어가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거 내가 너무 손해 보는 느낌이야.’ 자칫 잘못하면 마공에 먹힐 수도 있다는 것 쯤 들어 알고 있 었다. 망설임도 많았지만 자신도 넘쳤었다. 결국 무술의 일종, 다루는 사람의 실력과 능력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했던 건 창의 실수였다. 그는 마공이라 불리는 동대륙의 금지된 비 서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다.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의 손짓에 따라 두터운 문이 천천 히 열렸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어린 하인 하나가 고개를 숙 이고 있다가 창의 눈길이 닿는다 싶자마자 황급하게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창의 입술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자신을 두 려워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다니. “재미있군.” 좀 전의 쓰림은 거짓인 냥 유쾌함이 샘솟아 올랐다. 하노베이 백작이 정중한 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섰다. 창의 손짓에 따라 문이 조용히 닫혔다. “오랜만이군요. 대공저하.” 침 바른 거짓말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창은 흰 이를 들어내 고 비릿이 미소 지었다. 아직은 아니라며 겉모양으로나마 겸손 을 떨던 창은 이미 없었다. 하노베이 백작의 어깨가 순간 눈에 보일 정도로 움찔 했다. 가면처럼 덮어쓴 표정이 잠시 흔들렸 다. 아주 잠시. “불쑥 찾아온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노베이 백작은 바로 활짝 얼굴을 폈다. 사랑하는 친구를 만 난 것처럼 그는 팔을 넓게 벌리고 창에게로 다가와 유연하게 몸을 굽혔다. “앉지.” 검게 물들어 가라앉은 깊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창의 맞은편에 있던 의자 하나가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하노베이 백작의 입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마공이라는 것이 사람을 망친 다는 것 쯤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힘겹게 구한 마공을 스스로 익히지 않고 이 창이라는 남자에게 넘긴 것 아니었던가. 그러 나 이런 힘을 보면 질투가 생기는 법이다. “감사합니다.” 하노베이 백작은 무럭무럭 피어나오는 생각을 접었다. 이미 주 사위는 던졌다. 이제 와서 고민해 봤자 독이 되었으면 독이 되 었지 득이 되지는 못한다. 한결 맑아진 표정으로 미소짓는 하 노베이 백작에게 창은 마력 깊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도 직입적의로 상의드릴 것이 있습니다.” 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까지는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 음흉한 젊은이가 오늘 따라 마음에 쏙 담길 정도로 기껍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차피 한 배를 탄 운명이니 이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대공의 폐관 출도에 대해 어떻게 하실 의향이신지요?” 징그러울 정도의 음흉함이 가득 담긴 두 쌍의 눈동자가 정면 으로 부딪혔다. 스르르 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글세. 어떻게 할까?” 흡, 하노베이 백작의 숨이 멎었다. 허리를 펴고 앉아있기 조차 힘들 정도의 압박이 창으로부터 밀어닥쳐왔다. “난 아직 아버님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니...” 뭔가가 변해 있었다. 대공에게 등을 돌리기로 한 이후 단 한번 도 하노베이 백작과 단 둘이 있었을 때 베이르 대공을 아버님 이라 불러본 적이 없었다. ‘이미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하노베이 백작은 애써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지금 눌리면 잡 아먹힌다. 식은땀이 등을 축축하게 적셨지만 티내지 않았다. 충분히 대비하고 준비했다지만 맞상 이런 순간이 오니 반갑지 만은 않았다. 그러나 결코 질 수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보다 도 더 오만한 미소를 입가에 새겨넣었다. 창의 눈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모두 네가 꾸민 짓이니 난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할까?” 농담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진지했다. “어째서 그런 존재가 하녀일 따위나 하고 있었던 겐가? 당장 이라도 왕궁을 찾아온다면 그녀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었을 것을.” 당황과 경악으로 얼룩진 왕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못했다. 답답한 듯 인상을 구긴 왕은 연신 가쁜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왕궁에는 없는 것들이었을 따름입니 다.” 쉽게 믿지 못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왕을 위해 베이르 대공은 담담하게 설명을 이었다. “그녀에게 이미 인간들이 정한 신분이나 계급은 아무런 의미 도 없는 허울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사람들 사이에 서의 군림에 없었으니까요,” “사람들 사이의 군림에 없다?” 왕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자신의 완성 이었습니다. 과거 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죠.” “후, 무인들의 생각은 역시 알 수 없군.” 왕은 포기한 듯 손을 내저었다. 이전부터 ‘늙지 않는 무인’ 베이르 대공이라는 사람을 알아온 그였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납득할 수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 무에 미친 무인이란 마치 드 래곤처럼 인간과 완전히 다른 생명체였으니까. 일단 받아들이 면 끝이었다. 무인이라는 종족이 그렇다는 데 별 다른 토를 달 필요가 왕에게는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골치가 아파오는군.” 활짝 열린 창문을 타고 왁자지껄한 귀족들의 잡담소리가 들려 왔다. 클레이브의 소식이 전해져 온 후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 긴 냥 몰려들어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문에 집중하고 있 는 귀족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바보들이 아니었다. “저들을 나름대로 납득시켜야 움직일 터인데 말이네.” 어쨌거나 각 국에 줄을 대고 크리아의 위태한 독립성을 지키 기 위해 몸을 바치고 있는 건 저 귀족들이었다. 그 헌신이 자 신의 이득과 직결될 경우에만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선 이 곳의 돌아가던 정세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다고 봐도 좋겠지.” “네.” 왕은 창가로 다가가 뒷짐을 졌다. 베이르 대공이 호위하듯 그 뒤를 지켰다. “자네가 도착하기 직전 찾아왔던 하노베이 백작에 대해 알고 있나?” “잘은 모릅니다만, 야망이 넘치는 젊은이더군요.” 야망이 넘치다 못해 스스로를 잡아먹고 있는 미친놈이었지만 베이르 대공은 마지막 말을 삼켰다. “그대가 들어오기 직전, 하노베이 백작은 그대의 셋째 아들을 그대의 후계자로 추대하던 중이었네.” 베이르 대공이 하루만 늦게 도착했었다면 창은 긴급 임명장을 받고 왕의 옆에 서 있었을 지도 몰랐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베이르 대공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울컥 감정이 솟아올랐다. 대공이라는 두터운 껍데기 안에 조용히 들어가 있던 ‘금아’ 가 불쑥 고개를 내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노도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주저주저 하며 건네준 노도의 소식은 그에게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비극이었다. 그 어리디 어린, 착하디 착한 창이 위 의 두 형을 죽였을 지도 모른다니. 하노베이가의 어린 주인의 말에 넘어가 사악한 마공을 익혔을 지도 모른다니. 아니 이미 그 마공에 먹혀 남아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니.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내몰았을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베이르 대공 의 이가 질끈 앙다물어졌다. 가슴이 에이는 듯 했다. ‘왜! 왜! 왜 그런 것에 손을 덴 거냐! 그게 설마 모두 진실인 게냐!’ 노도가 빈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받아들였다. 진실일 것이 분명한 현실 을. 그랬기에 저택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창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신으로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용기가 없었다. “음?” 아무런 말도 없이 기척을 죽인 대공에게 왕이 고개를 돌렸다. 한 순간에 자세를 되찾은 대공이 넉넉한 웃음기 있는 표정으 로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고민이 있는 얼굴이군.” “전하의 고민이 제 고민일 따름입니다.” “흐음.” 왕에게서 침음성이 길게 흘러나갔다. 마법의 등이 곳곳을 밝힌 정원에 희고 아름다운 밤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한참을 시 글벅적 꽃구경에 열을 올리던 귀족들도 밤이 깊어지자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나 역시 귀 먹은 벙어리는 아니네.” 왕은 나지막히 목소리를 죽였다. 천천히 창문으로 한 걸음 떨 어져 직접 창문을 닫았다. 베이르 대공이 서서히 마나의 막을 펼쳤다. “페르로이 가문의 그 특이한 정원사의 소식 정도는 알고 있 으니까...”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며 왕은 옆에 있던 테이블의 책을 집어 들었다. 두꺼운 책 사이에 껴 있던 종이 한 장이 베이르 대공 의 눈 앞으로 내밀어졌다. “아마도 자네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하겠지.” 대공의 눈이 커다랗게 확장했다. “미안한 소식일세. 역시.” 가느다란 한숨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왕은 문득 요즘들어 한숨 이 부쩍 늘었음을 알았다. 다른 때라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 도 될 사소한 것들이 툭툭 튀어나와 사안들을 어지럽혔다. 사 실 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계승권 혈투는 드문 일이 아니었 다. 독살과 귀계가 넘치는 건 일상이었고 갖은 잔머리와 음모 가 넘실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 당사자가 원하 는 권력을 손에 넣을 때까지의 이야기였다. 어떻게 손에 넣은 작위이건 간에 그가 왕에게 충성한다면 왕으로서는 그다지 신 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공가의 힘을 휘 두르며 대공에 필적하는 무예를 선보이는 존재가, 어느 날 갑 자기 이성을 잃고 광기에 물들어 자신에게 검을 들이밀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절대 즐거운 종류의 놀음이 아니었다. “대공가는 저로서 마지막이오니, 이후로는 작위와 모든 것을 왕께서 거두오소서.”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베이르 대공이 조용히 말했다. 흠 칫 왕의 눈이 떨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부딪혔다. 베이 르 대공의 따듯한 눈동자를 보는 왕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 다. “자네만은 변하지 않는군.” “변하기에는 너무 굳어버렸죠.” 대공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왕이 모른다면, 그가 직접 확인하 지도 못한 정보들을 떠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왕이 안다면, 그도 말해야 했다. “하노베이 백작은 아직 젊지만 위험한 자이옵니다. 이미 많은 귀족들을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제가 돌아왔으니 이전부터 저의 편에 서 있던 자들은 경거망동 하지 않고 몸을 사릴 것 이오나, 하노베이 백작과 함께 선을 넘었던 귀족들은 그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필 이런 시기라니...” 허탈했다. 막 제국이 자리를 잡고 뻗어오기 시작할 때 내분의 소지가 발생하다니.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왕은 팔걸이에 팔꿈치를 괴고 머리를 기댔다. 뒷골이 팽팽하게 당겨왔다. “정확한 조사가 끝나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것을 해 결해 두어야 합니다.” “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전쟁은 뒤로 끌어야 했다. “곧 프란에서 사신이 도착할 것이옵니다. 그가 어떤 요청을 할지는 모르겠사오나, 폐하께서는 우선 아무런 답도 내려주지 마시오소서.”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후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지.”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랬다가는 자네까지 적으로 삼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폐, 폐하....” 왕이 몸을 일으켜 대공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그가 아는 세상에 그녀를 동경하지 않는 무인은 없었다. 막연한 꿈 과 기대의 대상. 왕 또한 소년 시절, 그녀를 직접 만나 무예를 사사받는 꿈을 꾸어 본적이 있었으니까. “단순한 전절만이 아니라 그 지닌 힘을 이미 백년전에 증명 했지.” 적으로 한번 돌려볼 만큼 만만한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소국 크리아로서도, 프란으로서도 말이다. “후...” 눈을 힘껏 내리감고 숨을 고르며 왕은 낮게 읊조렸다. “내일부터는 정말로 골치가 욱신거리겠군.” “네.” 두 사람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피어났다. 상상만 해도 끔 찍할 내일이 다가올지라도 함께 할 믿을 수 있는 ‘편’이 있 다는 건 듬직하고 기쁜 일이었다. “모르기는 모르지만 무후께서는 저희의 편이 되어 주실 것입 니다.” “그렇기를 바랄 뿐이네.” 승부는 시작된 셈이다. 은빛입니다. 한권 이어 올리기 신공(?)은... 하루 한두편씩 이어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열편 동시 올리기는 너무 버거워서리...; 네엡! 앞으로 열흘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ㅡㅡ;;;; 못올린 이유는.....; 글이 꼬여서..였습니다. 도저히 안써지더군요. 후...;;;;; 리메에 리메를 거듭해서.. 드디어 다시 올립니다. ^^즐독해주시고. 불펌은 근절해주시길...;; Subject: [[The Perfect MAID]]-99-깊어지는 오해 창문 밖으로 사라지는 하노베이 백작의 뒷 그림자가 보였다. 창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마공과 같은 비급을 건네 줬 을 때는 그에 해당하는 금제를 걸어 두었으리라. 모르고 받지 도 않았다. 귀엽다고나 할까. 기껏 생각해서 걸어 두었다는 게 독약이다. 힘을 쓰면 쓸 수록 몸을 파고 드는 독약. 그 독약이 ‘순진해 빠졌던 창’을 죽이고 지금의 그를 길러냈다는 사실 을 알까? ‘카드를 쉽게 내보이지는 않았지만 속을 읽힌 이상 그것도 소용없는 법이지.’ 속으로 바득 바득 이를 갈아대면서도 하노베이 백작은 그를 협박하지 않았다.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드는 악당이다. -바라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너만 떼넘기고 난 살겠다. 라는 극단적인 말에도 하노베이 백 작은 옅게 미소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곱게 대해온 하노베 이 백작에게 창은 손을 내밀었다. -내놔.- -네? 무엇을 말입니까?- -해독제.- 흠짓, 백작의 안색이 변했다. -해독제라니요? 어떤 독에 대한 것인지 알아야 구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식은 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버 티고 있었다. 창은 유쾌한 기분을 감추기 힘들었다. 갈갈이 찢 어 피를 사방에 흩뿌린다면 더 즐겁겠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으까. 창은 치밀어오르는 쾌감을 꾹 꾹 눌러담았다. -난 자네가 산공독과 같은 위험한 독을 해독제도 없이 구해두 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네만.- -산공독...의?- 그것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백작의 표정이 미묘하게 돌변 했다. 히쭉 웃는 창의 미소가 기괴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 슬프게도 하노베이 백작의 감정 변화는 거기까지였다. 창에게 먹인 독약의 해독제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는 지 하노 베이 백작은 담담하게 표정을 지웠다. -어디다 쓸지는 뭍지 않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산공독도 한 사 람분 정도는 더 보내드리죠.- 한 사람분이라면 분명 베이르 대공의 몫이다. 창은 길게 웃었 다. -좋지.- “하, 하하하하하하!” 즐거웠다.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즐거웠던 날이 또 있었을까. 창은 장난감을 약속받은 아이처럼 즐겁게 고개를 흔들었다. 쾅! 창문이 닫혔다. 창은 몸을 돌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뻔히 보일 지라도 조금 더 착한 아들인 냥 행동해야겠지.’ 좀 전까지 그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감정은 어디로 갔는 지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하노베이 같은 어린애야 문제가 아니겠지만.’ 불길함이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때가 너무 절묘했다. 어쩌면 대공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두근 창의 심장이 달렸다. 지긋이 악문 입술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눈치를 챘다 하더라도 분명 현실을 인정하고 결단을 내리기 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 그는 대공을 잘 알았다. 그가 평생을 아버지라 불러왔던 남자 는 지독히 이기적인 반면, 어이없을 정도로 여려터진 면을 동 시에 지니고 있었다. 지금 이 저택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왕궁 에 머무르는 이면에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으리라. ‘만에 하나 정말로 눈치를 챘다면 말이야.’ 창은 조심스럽게 책꽂이 뒤편의 문을 열었다. 아무런 마찰음도 없이 지하로 통하는 시커먼 계단의 입구가 을씨년스러운 모습 을 드러냈다. “방법이 없겠지.” 복잡한 떨림을 보이던 그의 눈동자가 새까맣게 가라앉았다. 예 상보다도 훨씬 빨리 다가온 ‘그 날’이 그를 거세게 몰아붙 이고 있었다. “후, 후훗. 본격적이라면 하노베이 애송이를 기다려야 하겠지 만...” 그 때는 정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한다. 그 깊은 통 로의 끝에 갇혀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그의 마지막 형제과 낭패로 일그러질 베이르 대공의 얼굴을 떠올리는 창의 얼굴에 비릿한 광기로 일그러진 미소가 그려졌다. “슬슬 마지막 길을 건널 준비를 해야겠지.” 유쾌했다. “휴우. 글씨들은 뭐 이리 하나같이 깨알만한 건지!” 자리에 풀썩 앉자마자 돋보기를 집어 들며 노도가 낮게 투덜 거렸다. 라크로이 노인의 주름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물렸 다. “늙은 거겠지. 자네나 나나.” 라크로이 노인의 손에도 마법이 걸린 큼지막한 돋보기가 들려 있었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피곤해진 눈이 욱신거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돋보기를 움직여가며 잠시 애쓰던 노도는 꽤 긴 한숨과 함께 집어 들었던 종이들을 내려놓았다. “비료도 다 못 뿌렸는데...” 하룻밤이 꼬박 지나가고 동이 트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화단이 좀 시들시들 하더군.” “자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 노도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순식간에 나이 먹어버린 얼굴의 굴곡들이 그를 더 지쳐보이게 만들었다. “그건 그렇고 갔던 일은 잘 마무리 지어졌나?” 저녁노을이 창문을 타고 실내로 흘러들어올 때 즈음 갑자기 발코니로 튀어나가서는 홀린 듯이 하늘을 바라보던 노도는 갑 자기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면서 방을 나섰다. 온 몸에 넘치는 생기를 두르고, 눈을 빛내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희망을 품게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라크로이 노인은 평소보다 시간이 늦었음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노도를 기다리 던 참이었다. “글세. 마무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노도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가느다란 실마리 정도는 잡은 듯 하네.” “어떤?” 진지하고 진득한 기운, 이전까지의 장난으로 반쯤은 희석된 공 기는 이미 없었다. 말을 잇는 노도의 눈은 불확실한 갈등으로 미묘하게 굳어있었다. “대공가의 큰 아들은 아직 살아있을 지도 모르겠네.” “뭐?” “어쩌면, 어쩌면 말이네...” “아들아... 무사히 잘 있느냐...” 작은 초상화는 대답이 없었다. 페르로이 후작은 픽,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내던졌다. 지쳤다. 너무나도 힘겨워서 이런 때 는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망자 생활이라는 것 이 어떻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어쩌면 클레이브는 두 번 다 시 이 저택으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죽을 지도 모른 다. 무사할 거라 말했다. 믿고 있었다. 란을, 노도를, 하르크를 믿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과 별개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불안 감과 그리움은 별개였다. 하루종일 시끌거리는 귀족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몇몇 우호 관계가 뚜렷한 귀족들을 찾아가 자신이 곧 자리에서 사임하고 자리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갈 것임을 밝혔다. 뭉쳐야 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전투에 목말라 있을 프란에게 이길 수 없다. “후,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당신이 그립구료.” 이제 새로 이 저택으로 들어와 줄 솔리네아에게는 미안한 노 릇이지만 정말로 그랬다. 차스크 백작과의 합의 끝에 결혼식은 몇몇 지인들만이 모여 간소하게 치루기로 했다. 상황이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는 터라 미룰 수도 없었으니까. “이제 곧 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되어 들어오게 되었 소.” 오랫 동안 비워졌던 방은 새로운 주인을 위해 단장을 시작했 다. 촛불하나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방은 온기 없이 싸늘히 식 어 있었다. 페르로이 후작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런 날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움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보고 싶소.” 베이르 대공의 복귀는 크리아의 사교계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 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전쟁의 앞에서 기적처럼 돌아온, 지난 50년의 영웅 베이르 대공은 이전보다도 더 강해졌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미 전쟁이 끝난 듯 들떠 흥분했다. 어느 누 구도 대공의 패배를 상상하지 않았다. 그 들뜬 분위기를 타 페 르로이 후작이 담담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와 그의 혼혈아 아들에 대한 비난으로 잔뜩 부불어올랐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 냐는 듯 그의 편에서 격려의 인사를 보냈다. 그와 반대로 하노베이 파에 가담했던 귀족들은 당황하기 시작 했다. 베이르 대공은 다른 귀족들에게는 너무나 큰 기둥이었 다. 왕과는 다른 또 하나의 절대 권력. 겨우 사라졌나 싶었던 그런 존재가 턱 다시 떨어져 내린다는 건 이제 막 고지를 향 해 달려나가기 시작한 귀족들에게는 거대한 방해물일 따름이 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노베이 백작에게 가담했던 귀족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몇몇 귀족들이 하룻밤만에 마음을 바꿔 왕궁으로 달려갔다. 남은 귀 족들 역시 잠잠하지 않았다. 시기를 보고 있을 뿐, 어떻게 옮 겨가야 자신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를 재고 있 었을 뿐 그 내심은 발빠른 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진정한 크리아의 미래를 위해 대공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궁지로 몰리던 소수의 사람들이 뭉쳤다. 이전부터 있어 왔던 대공 반대파의 사람들과 하노베이 백작을 포함한 자들이 었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조금씩 음지에서 움직이던 자들이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드리만큼 그들은 도전 적으로 기치를 내걸고 앞으로 모습을 들어냈다. 그 중앙에 창 이 있었다. “미래를 위해서 아버님은 물러나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아버 님 혼자 이 크리아를 지탱해 나가실 수는 없습니다.” 목소리를 높인 대공가의 차기 후계자. 그건 이전까지 음지에서 몇몇 사람들이 외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발휘했다. 민 심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맡겨 주셔야 합니다. 보십 시오. 귀족들의 나태함을. 기사들의 나태함을. 강한 자의 그늘 에 숨어 안전하게 보전만 해 오던 습관이 뼛속 깊이 박혀버린 크리아의 약함을!” 이전의 소극적인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간 무 도회 한번 참석하지 않고 검만 휘두르던 자라고는 상상도 하 지 못할 모습이었다. “젊은 귀족들이여! 각성하시오! 언제까지 한 사람에게만 의지 하며 무거운 짐들을 올려놓을 생각입니까! 언제까지만 아래의 자리에만 만족하며 머무를 것입니까!” 당당하게 나와 가슴을 펴고 의견을 밝히는 창의 모습이 하노 베이 백작과 대공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귀족들의 마음을 강하 게 잡아끌었다. 우왕좌왕 흔들리는 귀족들이 격류를 탄 조각배 처럼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짧은 몇 일동안에 벌어진 작은 폭풍의 여파는 몇 년 보다 더 많은 변화를 크리아에 강요하고 있었다.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대공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아니, 나 때문이었겠지.” 혼란스러웠던 낮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 은 대공은 몸을 굽히고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너무나 도 당당하게 지금의 나약함이 그의 탓이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 이전의 그였다면 결코 흔들리지 않았을 소리들이 선명하 게 머리에 새겨지고 있었다. 사실 신분과 권력의 절대성에 대 한 믿음이 깨져버린 건 최근이었다. 란이 돌아와 하필 하녀의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그러하리라. “생각이 깊어지면 잡생각도 느는 법이라네.” 노도의 목소리가 불쑥 그의 생각을 방해하고 들어왔다. 활짝 열려진 발코니 창문을 통해 허공을 딛고 들어오는 노도에게 금아는 힘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노도는 중요한 일이 생길 때면 가끔 이런 식으로 그를 찾아오곤 했다. 그래봤자 이번이 세 번째 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금아의 입가가 미묘하게 일그 러졌다. “...건강해 보여서 기뻤다면 웃으시겠습니까?” 반가웠다. 당당하게 대중 앞에 모습을 들어낸 창의 당당한 모 습이 못내 가슴이 메일 정도로 대견스러웠다. 노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찾아가 주지도 못했습니다.” 툭, 투둑, 바닥의 카펫을 적시며 물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두렵다고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목소리가 작은 떨림으로 뭉개지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금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되풀이했다. “정말입니까. 그 아이는 변해 버린 겁니까?”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는 창의 눈동자가 깊은 심 연의 암흑을 머금고 있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한 살의 가 한 순간 그에게로 꽂혀 왔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살의가 진실이었을까요?” 금빛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금아는 낮의 의연하고 담담했던 베 이르 대공이 아니었다. 이번 위기를 마지막으로 영원히 은퇴하 겠다고 공언한 베이르 대공은 자신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온 창 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타고 차디 찬 냉기 가 올라왔다. 창의 얼음장같은 눈동자. 입가와 달리 웃음기 한 점 없는 검은 어둠. 알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여리 디 여린 아들이 아니었다. “제가...” 그리고 다음 순간 왕으로부터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베이르 대 공가의 작위를 대공 한 사람에 국한하고 세습시키지 않겠다는 선언. 그 순간의 창의 표정을 금아는 잊을 수가 없었다. “제가 잘못 한 걸지도 모르죠.” 진심이다. 금아는 정말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책임지 지도 않았으면서 그 아이들을 내동댕이 친 셈이니까. 자책으로 범벅된 목소리가 자꾸 끊겨 흘러나왔다. 금아의 커다랬던 폐는 돌덩어리들로 가득 차 버린것만 같았다. 한 걸음 다가서며 노 도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자네는 최선을 다했네.” “아니요...” 다했다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으리라. 그가 어떤 마음 으로 자식들을, 가족들과 살아왔는지는 금아 자신이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요...다 하지 못했습니다.” 왕의 선언이 떨어지고 대공 자신이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마 주친 창의 얼굴은... “상처 입은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리디 여린 아이의 눈빛을 담고 있었다. 욱신, 통증과 함께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해야만 했었다. 대공이라는 작위의 힘은 이성을 잃은 아들에게 물려주기에는 너무나도 컸다. 그러 나 그 마공의 안에서, 먹혀버린 마성의 안에서 저항하고 있던 어린 소년을, 착한 아들을 그 순간 스스로의 손으로 베어버린 것과 같은 느낌은 떨쳐낼 수 없었다. “검은 눈동자에 깃든 심연은 구성을 넘었을 때야 생기는 증 상이지. 이미 늦은 뒤였네. 그나마 맑은 심성의 조각 하나를 자네가 발견했다면, 그 아이를 자네가 아꼈기 때문일게야.” “노도님.” 금아는 이를 악물었다. 으스러지도록 쥔 주먹을 부르르르 떨렸 다. 온 몸이 떨려왔다. 도저히 삭힐 수 없었다. 가슴 안에 파묻 고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만에 하나.. 아니 분명한 현실이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진 실이라 하더라도...” “................” “그 아이의 손에 지울 수 없는 피가 뭍어버렸다고 하더라도. ..” 한자 한자 씹듯이 금아의 입에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상실 의 고통은 익숙해 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수 많은 것들을 잃고 살아왔지만 고통은 조금도 줄어 들지 않았다. 잃어버린 것들은 늘 너무나도 크고 밝고 아름다 웠다. “영원히 이전의 그 착한 아들로 돌아올 수 없다고 하더라도. ..” “자네...” “하나 남은 그 아이라도 지키고 싶다면, 제가 어리석은 것일 까요.” “후....” 노도의 주름진 손이 금아의 등을 쓸어내렸다. 금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그 둘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 다. 노도가 왜 찾아왔는지 금아는 알고 있었고 금아가 알고 있 다는 것을 노도도 알고 있었다. 위로만이 목적이었다면 이 늦 은 시간에 몰래 유령처럼 날아 들어오지는 않았으리라. 그 담 긴 내용이 서로가 추측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이미 늦었군요.” “글세...” “그렇군요.” 금아는 고개를 들고 깊게 숨을 가다듬었다.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아 올랐던 피가 조용히 온 몸으로 흘러 내려갔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팔이 떨리고 있었다. 그 안에 더 깊이 가려진 격정을 끌어안고 그는 베이르 대공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다. 조용히 모래가 흘러내렸다. 후, 작은 숨을 내뱉으 며 베이르 대공이 눈을 떴다. “감사합니다. 노도님.” “천만에요.” 채 마르지 않은 눈가에 엷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전 그 아이를 더 이상 돌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제 손으로 그 아이의 마지막을 맞이해줘야 할지도 모르죠. 아니...” 처연히 내뿜은 한숨은 길고 길었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겁니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폈다. 고개를 들고 눈을 들었다. “그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일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말이다. 아버지로서, 스승으로서의 마지막. 은빛입니다. 한권 이어 올리기 신공(?)은... 하루 한두편씩 이어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열편 동시 올리기는 너무 버거워서리...; 네엡! 앞으로 열흘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ㅡㅡ;;;; [[The Perfect MAID]]-100-깊어지는 오해 “역시 가겠지?” 일찌감치 쉬어야 겠다며 노도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노도 의 살짝 굽어진 등을 물끄럼 바라보던 라크로이 노인이 슬그 머니 입을 열었다. 동요도 망설임도 없었다. 노도는 빙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디를?” “내가 속아주기를 바라나?” 매일 밤이면 밤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줄불나게 드나 들던 노도의 뒷모습이 오늘 따라 유난히도 힘에 차 있다는 것 쯤 라크로이 노인에게는 알아채기 힘든 일이 아니었다. 노도의 흰 눈썹이 미묘하게 휘어졌다. 잠시 두 사람의 눈이 부딪혔다. 고집이 꺽인 건 노도였다. “휴, 어쩔 수 없지. 이미 정이 들어 버렸으니까.” “늙은 몸을 지니고 괜찮겠나?” 요즘 들어 부쩍 쇠약해져 있었다. 도사라는 노도의 특이한 힘 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날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아 온 라크로 이 노인은 불길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마지막 기회가 될 듯 허이. 하노베이 백작도 마음을 정한 모 양이야.” 창이 강한 모습을 보인 이면에는 하노베이 백작의 갈등이 숨 겨져 있었다. 창은 대공에게 정면으로 맞섬으로서 망설이고 있 는 백작에게 지금 그와 함께 대공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것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오늘 그들의 정보망 에 작은 정보가 걸렸다. “맡겨두었던 중요한 물건을 되찾아갔다고 하더군. 동대륙에서 들여왔던 독초들인 듯 했네.” 본격적으로 움직일 심산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그는 대공과 같은 배를 타기에는 너무 멀리 나와 버렸 을 테니까.” 노도는 벽에 걸려있던 외투를 집어 들었다. 가볍게 외투를 매 만지는 동작에는 왠지 모를 결연함이 베어 있었다. “그가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확인을 해야 하네.” 라크로이 노인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몇 가지의 길죽 길죽한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중 몇 가지를 들어 작은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노도의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라크로 이 노인이 시원하게 이를 들어내고 미소 지었다. “함께 가지.” “자네...” “소용없을 거네. 난 이래 뵈도 고집쟁이니까.” “허허.” 그는 노도조차도 이겨낸 적이 있는 쇠심줄 똥고집의 라크로이 노인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노도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 다. 라크로이 노인은 어느새 노도에게는 마음 깊은 벗이 되어 있었다. “대공가의 담은 처음이라지?” 불쑥 라크로이 노인이 입을 열었다. 대공가의 거대한 저택이 담 넘어로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의 가느다란 별빛을 의지해 두 노인이 정겹게 담에 매달렸다. 새 까만 옷으로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 꽁꽁 동여맨 두 노인이 눈을 마주치고 시익 미소 지었다. “이전에 한번 넘을 뻔 하기는 했었지.” 으쓱, 자랑스럽게 말을 꺼낸 라크로이 노인에게 노도가 담담하 게 대구했다. 언젠가였던가. 노오라는 버르장머리 없는 남작 하나가 덤벼들었을 때, 대공가로 잡혀가듯 끌려간 간 란을 되 찾기 위해 그는 길을 나선 적이 있었다. “하르크 녀석, 대공가로 가쟀더니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는 가 르암 백작가로 안내하더군.” “호오. 이야기는 들었었네.” 소곤소곤 담벼락에 머리를 기대고 두 노인은 긴장을 풀어냈다. 경비를 도는 기사 몇몇이 담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두 노인은 고개를 푹 아래로 밀어 넣었다. 짖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처럼 개구진 표정, 마치 오랜 친구와 수박서리라도 하는 듯 노도의 가슴이 뛰었다. ‘선사께 맡겨진 이후로는 처음이군.’ 새로운 삶의 경험이라는 건 이래서 좋은 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누려보지도 못하고 잃어야 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되 살아난다. 그리고 귀중한 만큼 되찾은 것들의 고마움도 함께 배우게 만들어준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짤막한 대화를 나누 며 상태를 확인한 경비병들이 서로 엇갈려 걸어나갔다. 그들의 손에 들린 횃불이 어둠 속에 지워질 무렵 라크로이 노인이 담 장 위로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자, 우리 살아서 돌아가세나.” 라크로이 노인이 담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사사삭 밤그림자에 섞여 검은 옷의 라크로이 노인의 모습이 사라져 갔다. 그를 따 라 훌쩍 노도의 모습도 담장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살아서....” 노도의 눈가가 조금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옅게 드리워진 구름이 별빛들을 흐릿히 가로막고 있었다. 솔직히 좋지 않았 다. 피와 오물로 범벅된 돌바닥에 사람의 형체를 한 고깃덩이가 널부러져 있었다. 윙, 파리가 날아올랐다. 꿈틀 손가락 부위가 움직였다. 뼈만 남아 앙상해진 그 손가락이 사력을 다해 바닥 을 긁었다. 빠드득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뎌지지 않은 통증이 강렬하게 랑의 전신을 울려 깨웠다. “.......................” 간신히 몰아쉬는 숨소리에 미세한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죽을 수 없다.’ 그는 살아 있었다. ‘죽을 수 없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존재에 대한 미움 때문이 아니었다. 미움 은 있었다. 원망도 있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세 상을 모조리 부셔버리고 싶은 증오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 러나 지금은 단지 살고 싶었다. ‘마나가 돌아오고 있다.’ 희망 때문이었다. 방금 전부터 미약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단 전으로부터의 흐름이 그의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고 있었다. ‘일어설 수 있다.’ 불안함도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모를 그의 육신은 이미 감각이 죽어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소변이 줄줄 흘러나왔다. 특히 허리 아래 다리 쪽으로는 잘려나간 것 처럼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마나가 돌아온다고 해서 다시 걸 을 수는 있을까. 검을 들 수는 있을까. 환골탈태라는 것이 대 단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면 그 는 이전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그러한 경지까지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뿌드득, 돌바닥을 다시 한번 긁어 정신을 되잡았다. 자꾸 만 의식이 흐릿하게 잠겨오고 있었다. 좀 전에는 가까스로 되 찾았지만 지금 잠에 빠져들면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왜.’ 희망이 안겨주는 불안함과 의심 때문에 잠이 들 수 없었다. 그 의 되돌아오는 마나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몇 일 전인지도 모를 시간의 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 했던 그의 형제가 돌아왔다. ‘왜’ 헤어지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얼핏 얼핏 보였었던 어린 동생의 자취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왜.’ 다짜고짜 그를 제압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허리를 뭉개버린 창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랑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두 덩어리 의 쓴 약을 밀어 넣었다. -아직 죽어서는 곤란하지.- 악마. 악마도 그처럼 잔인한 미소는 짓지 못하리라. 죽음의 위 기를 한두 번 건너온 게 아니었다. 랑 역시 대공가의 장남으로 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자신의 경지를 높이고 쌓기 위해 수 많은 사지를 경험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공포를 느낀 건 처 음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를 생각하 게 만드는 공포. ‘왜.’ 그리고 조금 전, 그가 다시 찾아와 무언가를 또다시 랑의 입 속에 밀어 넣었다. 등으로부터 강력한 마나가 억지로 랑의 몸 을 깨워가며 날뛰었다.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이 랑을 잠으로 부터 깨웠다. 그 순간이 랑에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불어넣 었다. ‘어째서 마나를 돌려준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죽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이런 식으 로 마나를 되살려주고 있다. 랑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이제와서 그를 살려두어야 할 이유를 찾 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서 돌아오셨을까?’ 한가지의 가능성이었다. 만일 베이르 대공이 돌아와 그를 찾고 있다면 랑을 미끼로 삼으려 들지도 모른다. ‘아니야.’ 랑은 생각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머리가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 다. 랑은 돌바닥을 다시 한번 긁어내렸다. ‘그럴 존재가 아니야.’ 창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창이 아닌 그 존재는 그 런 행동은 하지 않을 듯싶었다. 단순한 느낌일 뿐이었지만 랑 은 자신이 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오랜 시간동안 무 인이라는 종족들을 보아 온 랑의 판단이었다. ‘왜!’ 창은 그렇게까지 변해 버린 걸까. 베이르 대공에 대한 것이라 면 이미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어머니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갔을 때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아니었던가. 이미 그때 겪고 넘어섰던 고통들이 아니었던가. 그 과거들이 왜 지금 망령처럼 되살아나 창을 변하게 만들어버린 것일까. 무엇이 창으로 하여금 그토록 끝없는 절망감과 실망을 안게 만들었을까. ‘이대로는 죽을 수 없어.’ 죽을 수 없었다. 랑은 다시 한번 돌바닥을 긁어내렸다. “뭔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앞장서 기어가던 노도의 움직임이 멎었다. 라크로이 노인이 벽 에 귀를 대고 잠시 신경을 집중했다. 노도가 라크로이 노인이 귀를 댄 쪽으로 작은 부적 하나를 붙였다. “확실히 그런 것도 같구먼.” 저택 안으로 숨어들어간 후 금아가 알려준 비밀 장소에서 지 하통로의 열쇄를 찾아낸 두 사람은 다시 담을 넘어 밖으로 나 왔다. 저택 밖, 작은 동산을 끼고 아래쪽에 반쯤 허물어진 상 태로 남아있는 우물 하나. 녹슨 쇠사슬과 자물쇠로 단단하게 봉인된 우물은 대공가에서 꺼내온 비밀 열쇄로 말끔하게 열렸 다. 그 우물 안의 물이 쏠려나간 벽에서 노도와 라크로이 노인 은 또 하나의 비밀 공간을 발견했다. 모두 금아가 알려준 대로 였다. “설마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용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 겠지.” 대공가에 정보를 찾으러 드나든다는 말을 들은 금아는 만에 하나라도 위험에 처할 경우 탈출할 때 사용하라면서 대공가의 비밀 출구 몇 군데를 알려주었다. 가능하면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는 철저한 당부와 함께.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 이렇게 거꾸로 들어가는 데 사용하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 으리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도는 가늘게 한숨을 내쉈다. “그래, 무슨 소리 같은가?” “글세.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긁는 소리 같더구먼. 너무 작아 서 잘 모르기는 하겠지만...” 긁적 귓가를 긁으며 라크로이 노인은 얼굴을 붉혔다. 노도가 특별히 준비해 온 부적들과 궁정마법사 로웬을 반쯤은 협박해 서 긁어낸 마법 아이템들로 늙어버린 육신을 보강하고 나오기 까지 했는데, 이런 소리 하나 구별 못한 게 못내 아쉬운 얼굴 이었다. “시간이 무섭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겠구먼.” 젊을 때의 그였다면 이 정도의 장비를 지니고서도 소리 하나 구분 못하지는 않았으리라. 못내 한마디 말을 덧붙이는 라크로 이 노인에게 노도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건 아닐 걸세. 좀 전부터 꽤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으니, 조금 더 다가가면 알 수 있겠지.” 노도는 다시 앞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라크로이 노인이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우물에서부터 시작된 통로는 사실 꽤 넓었었다. 서너 사람 정도가 있는 힘을 다해 달려도 될 만큼 넓은 통로는, 달려 나오는 방향에서는 일직선 모양이 되지만, 역으로 들어갈 때는 수많은 갈림길을 선택하도록 교묘 하게 꼬여 있었다. 그 많은 통로들 중 하필 이렇게 기어가도 빡빡한 토굴을 선택하게 된 두 노인네의 추측이 일치했기 때 문이었다. “시간도 없는데 제일 젊은 길로 가지.” 척 봐도 제일 느려 보이는 길은 다른 통로들과 달리 만든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았다. 돌로 잘 포장되어 있지도 않았고 넓 게 다듬어져 있지도 않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했지만 저절로 생긴 구멍은 절대 아니었다. “이전에도 명상을 핑계대고 빠져나와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고 했으니까, 이 쪽이 제일 중심지에 가까울 것이네.” 모든 정보를 다 추려나온 건 아니었다. 감이 반, 정보가 반이 었다. 이토록 급하지만 않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시도였다. 무모한 추측이라는 건 노도도 라크로이 노인도 잘 알고 있었 다. “그럴지도 모르지.” 금아의 말에 의하면 저택 지하 쪽에는 금아와 세 아들이 폐관 수련이라는 명목 하에 수련을 빙자한 감금과 명상을 해 나가 던 작은 공간이 있었다. 지하감옥과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사람들이 모르는 세 부자만의 비밀장소는 서재나 침실등의 어 느 곳에서도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그가 가끔씩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잠적하곤 하던 장소라고 했었다. ‘하인 시절 술안주 삼아 떠들어준 이야기가 이렇게 쓰이는 군.’ 생각을 정리해 나가며 노도는 쓴 웃음을 지었다. “다른 곳은 모두 뒤져봤네. 이제 남은 곳은 그 곳 뿐이지.” 가장 유력한 곳도 그 곳이었다. 폐관수련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이나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았다. 라크로 이 노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부디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어야 할 텐데...” “쉿!” 노도가 순간 움직임을 멎었다. 라크로이 노인이 다시 재빠르게 벽에 머리를 기댔다. 좀 전의 그 소리였다. “가까워졌군.” “사람의 목소리 같은 소리도 섞여서 들렸네.” “신음소리인 듯 했는데.” 어둠 속에서 두 노인의 시선이 다시 한번 마주쳤다. “서두르세!”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믿고 있었다. 그 소리는 분명 랑, 아니면 혁이 내는 소리이리라.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내심 확실하게 유해라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었 다. 노도와 라크로이 노인의 눈가에 희망이 내리 앉았다. 누군 가가 살아 있었다.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아니 그래야 했다. “제발...” “흠?” 불쾌했다. 아주 징그러운 느낌. 짜증이 폭발할 정도로 맑고 깨 끗한 무언가가 방금 그의 신경을 거스르고 지나갔다. 창은 푸 스스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의 마기가 만들 어내는 감각의 영역을 밟고 지나갔다. 이런 종류의 예감은 보 통 틀리지 않는다. “이상하군.” 저택을 도는 경비병들의 실력은 낮지 않았다. 대공과의 본격적 인 힘겨루기가 시작된 이후, 새로 추린 기사들은 실력이나 기 백 면에서 이전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헛돌지 않았다. 대공에게 의지하지 말고 대공이 의지할만한 기사가 되자는 창의 말은 의외로 강한 기사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갔다. 전쟁이라는 위 험한 바람의 앞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뼈져리게 느껴야 했던 그들이었으니까.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것만큼 빠른 것이 없었다. “이상해.” 창은 몸을 일으켰다. 걸어놓았던 옷들을 몸에 걸치며 창은 잠 으로 살짝 가라앉았던 감각을 활발하게 되살렸다. “신경이 너무 예민한 건가?” 예민해져 있는 건 사실이었다. 요 사이 갑자기 뚝 떨어져 내린 문제들은 그의 힘으로도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뿐 이었 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어린 창의 마음 이 불쑥불쑥 들어나며 그를 괴롭혀왔다. “제기랄.” 문득 밉살스러운 대공의 얼굴이 떠올랐다. 증오스러우리만큼 여유 있는 모습.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과 그 사이에 있던 마지막 끈을 끊어버렸다. 친자식이 아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모두의 앞에서 거절당할 줄이야. 그는 창 이나 그의 형제들이 자신의 자식이 아님을, 자신의 의지를 계 승할만한 자격이 없는 떨거지임을 만 천하에 떠벌렸다. “어차피 친자식도 아닌데 작위 따위 물려줄 필요는 없었겠 지.”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백년 만에 만난 옛 사랑을 쫓아갔다가 되돌아오자마자 자신들 과의 연을 정리하는 대공의 모습은 저주스러움 그 자체였다. 창의 몸을 감싸고 있던 마기가 한층 더 깊게 가라앉았다. 그의 안에 먼지처럼 남아 있던 어린 창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 다. “잘된 거야. 차라리 잘 된 일이야.” 빠드득 이를 갈며 창은 검집을 허리에 단단히 동여맸다. “어차피 전쟁이 벌어질 테니까.” 피는 영웅을 부른다. 사람들에게는 늘 새로운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베이르 대공이 지금의 그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 것도 오십여 년 전의 전쟁이었다. 그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 는 법은 없었다. “그 죽지도 않는 노친네만 죽어 준다면.” 훨씬 쉬우리라. 그럼 창은 물려받은 것만이 아니라 더 큰 영광 을 얻을 수 있다. 그가 대공가의 셋째 아들로서 교육과 혜택을 받고 자라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가 성공 을 이루어낸다면 그는 물려받은 것 이상의 것들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아.” 복도에서 마주친 경비기사들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창은 가볍 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으득, 이가 갈렸다. 이전이라 면 ‘마땅한 호칭’역시 함께 불렸을 텐데. 낮의 소문은 참 빨 리도 퍼져 나가서, 지금 그가 대공가의 지위를 물려받을 수 없 게 되었음을 모르는 자가 없어졌다. ‘죽이겠어.’ 한층 더 깊어진 증오를 품고 창은 복도 아래로 뛰어내렸다. 몇 몇 사람들의 헛바람 삼키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창은 느긋이 바닥에 다리를 딛고 일어섰다. 삼층 정도의 높이는 그에게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이 쪽인가?” 하얗고 느믈느믈한 맑은 기운의 흔적이 희미하게 잡힐 정도로 남아 있었다. 흔적을 되밟아 살피며 창은 이어지는 장소를 따 라 발걸음을 옮겼다. “제기랄.” 창의 시선이 정원 한 가운데의 나무 아래 놓인 작은 정원석에 꽃혔다. 휙, 그의 몸이 날아올랐다. 작은 정원석이 한 순간에 뒤집어졌다. 속이 패인 정원석의 아래, 무언가 담겨있을 법한 작은 공간이 하나 나타났다. “비었군.” 창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대공에 대한 배신감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살의가 형상이 되어 갑옷처럼 그를 감싸고 굳어졌다. “당신이 이렇게 나온다면...”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일련의 기사들이 몰려왔다. 창은 몸을 일으켰다. 무후의 일행이라던 노인의 얼굴이 하나 머리를 스치 고 지나갔다. 지금은 역겨울 뿐이지만... 너무나도 맑아 끌리기 까지 했었던 노도라는 도사. “모두 들어라! 침입자다!” 살려둘 수 없었다. 검후의 벗이 아니라 검후 자신일 지라도 말 이다. [[The Perfect MAID]]-101-깊어지는 오해 “험하게도 당했군.” 어지간한 산전수전은 다 겪은 라크로이 노인조차도 눈살을 찌 푸렸다. 들고 온 짐 속에서 약을 꺼내는 노도의 손이 분노와 어이없음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피고름과 오물로 얼룩진 랑은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한 구의 시체’였다. ‘아무리 미워도 친 혈육인 것을!’ 너무나도 악의가 분명한 상처였다. 살아 이런 꼴을 옆에서 보 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거늘, 촉촉한 눈으로 랑을 내려 다보는 노도의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깊은 한숨에 노도의 흰 수염이 가볍게 나부꼈다. 가슴 속 깊이 매달린 돌이 하루하루 그 무게를 늘려가고만 있었다. 속세의 무게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무거웠다. ‘고이 신선이 되고 싶다면 속세의 땅을 바라보지도 말라 하 셨었지.’ 친구 하나 잘못 사귀는 바람에 줄래줄래 따라 나오기는 했지 만 나와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름대로 좋은 일도 많았지만 그 또한 ‘청정해야 할 도사’에게는 어울리지 못했다. 한순간에 늙어버린, 유달리 무거워진 육신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법이니 뭐니 손을 대가며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야 했다. 익 히면 쓰게 되기 마련이니까. 자신의 생각을 위해, 욕심을 위해 인간의 절대적일 수 없는 ‘편’에 서서 힘을 발휘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지.’ 해 온 행동에는 후회가 남지 않았다. 이리 될지도 모른다는 건 미처 몰랐었지만, 알았더라도 그 때는 그렇게 했었으리라. 노 도는 사실 그런 변화들이 싫지는 않았었다. ‘이럴 때는 아니겠지만.’ “제길.” 침침한 눈이 흐릿해졌다. 노도는 눈을 비볐다. 도력의 차이가 생겼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숲 속에서 노루와 토끼들을 돌봐 주었을 때의 그 힘은 어찌된 일인지 사람에게는, 특히 세속의 때가 깊은 사람에게는 전혀 듣지 않았다. 두근, 심장이 울렸다. 자신이 아주 하잘 것 없어진 듯한 억울한 감정이 노도에게로 스며들었다. 속세에서 말하는 비참함이었다. 빠드득 이를 갈아 대며 노도는 연거푸 한숨을 뿜어냈다. 부쩍 늘어버린 잡념이 그의 집중을 쉴 새 없이 방해했다. “내기가 남아 있어 간신히 생명은 유지했구먼.” 잠시 랑을 살펴보던 라크로이 노인은 안심한 듯 몸을 뒤로 뺐 다. 그리곤 연거푸 한숨만을 내뿜고 있는 노도의 어깨를 슬그 머니 두드렸다. 피곤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의 노도 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노도, 자네답지 않게 안색이 기묘하구먼.” “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 라크로이 노인을 마주 본 노도의 눈에 의아함이 또다시 스쳐갔다. ‘허,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일.’ 부쩍 는 게 사실이기는 했지만 이런 순간까지 다른 생각을 이 어나갈 만큼 노도는 번잡한 성품이 아니었다. 문득 문득 옛 기 억이 떠오르는 것도 무척이나 생소했다. 노도는 퍼득 고개를 털었다. 지금 그에게는 급히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미안허이. 좀 돕게나.” 라크로이 노인의 도움을 받아 랑의 몸을 고정한 노도는 어긋 난 랑의 허리뼈를 끌어 맞췄다. 두드득 섬뜩한 굉음이 울리며 의식을 잃고 있었던 랑의 몸이 펄떡 경련을 일으켰다. 주룩, 식은땀이 노도의 굴곡진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꿈틀, 랑의 몸이 움직였다. “걱정 말게나. 이제 다 잘 될 걸세.” 확률은 반반이었다. 아니, 죽었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경우는 반반이었다. 죽었다, 살아있다. 살아있다면 무사하지 못 할 터, 급한 데로 약이란 약은 모조리 챙겨온 게 그나마 다행 이었다. 랑의 눈동자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살며시 스치고 흘러갔다. 갑 자기 벽이 들썩이며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을 때 사실 랑은 모 든 것을 포기했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통 으로 정신을 유지하는 것뿐인 그가 사지 멀쩡한 자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 “아플 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더 참게나.” 그런 그를 찾아온 것은 희망이었다. 흐릿한 눈에 잡힌 백발의 수염을 본 순간 랑은 이 곳에 있을 리 없을 누군가를 떠올렸 다. 그가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였다. 노도. 란의 친우 이자 그의 아버지인 대공마저 고개를 숙이는 동대륙의 도사. 창은 몸을 일으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온 몸에 힘을 불어넣었 다. 꿈틀, 상반신이 움직였다. 누군가의 손이 그를 지그시 눌 렀다. “괜찮네.” “억지로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아.” 손톱의 자취조차 남아있지 않은 랑의 손을 준비해온 천으로 꽁꽁 동여매는 라크로이 노인의 목소리는 조금 젖어 있었다. 약을 충분히 뿌리고, 먹일 수 있는 것은 먹인 후 두 노인은 랑 을 끌고나갈 수 있도록 팔 다리를 고정시켰다. “그래, 이제 업고 나갈 사람만 정하면 되는 거로군.” 시익, 미소 지으며 노도가 라크로이 노인에게 한 장의 부적을 들이밀었다. 라크로이 노인의 얼굴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노도의 입가에 고인 짓궂음이 한층 더 진해졌다. 이번에 먼저 한숨을 내쉰 건 라크로이 노인이었다. “후,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내가 매야지 어쩌겠나.” 쩡. 순식간에 얼어붙은 노도의 손에서 부적을 빼앗듯이 낚아챈 라크로이 노인이 자신의 허리춤에 부적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는 랑을 등짐에 단단히 동여맸다. 노도가 확인하듯 랑과 라크 로이 노인을 챙겼고, 마지막으로 랑의 등에 몇 가지 약품을 더 쏟아 부었다. “살아남아야 하네.” 라크로이 노인이었다. 픽, 웃음 짓는 노도의 얼굴이 좀 전과 달리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걱정 마시게. 내 저런 어린아이 하나 다루지 못할 것 같은 가.” 그들이 쑤시고 들어왔던 동굴과 라크로이 노인들의 앞쪽으로 한 보를 내딛으며 노도는 소매 춤을 털털 털었다. 자박, 노도 의 정면, 복도와 이 감옥을 갈라놓은 철창 밖으로 발걸음이 울 렸다. “호오? 알고 있었다는 건가?” 나타난 사람의 온 몸에는 검은 기류가 두텁게 쌓여 있었다. 노 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이전에 스치듯 보았던 모습 은커녕, 낮에 보았던 모습에서도 또 변해있었다. 숨쉬기 힘들 정도의 마기가 창의 몸에서 풀풀 풍겨왔다. ‘저 마기 때문이었구먼.’ 자신도 모르게 짜증과 불안감이 일었다. 노도는 애써 감정을 털어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 기가 한층 더 독해졌다. 노도의 미간에 접힌 주름이 굵어졌다. “이미 늦었구먼. “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한탄과 슬픔이 가득 베어 있었다. “아니, 충분히 만회할 시간이 있다고 보는데?” 소리 없이 검이 뽑혀 나왔다. 후두두둑, 살기에 진동하며 복도 벽의 잔 흙들이 떨어져 내렸다. 욱, 신음소리를 흘리며 라크로 이 노인이 뒷걸음질쳤다. 이를 악문 노도의 얼굴에 근심이 깊 어졌다. 지독한 마기가 노도의 맑은 기운과 부딪히며 자잘한 섬광을 내고 있었다. 아찔한 현기증이 노도를 덮쳤다. ‘밀리고 있는 겐가?’ 노도는 이를 악물었다. 힐끔 상태를 살피는 라크로이 노인을 슬그머니 몸을 가리며 노도는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가게.” 노도의 예상보다도 그는 강했다. 이전에 스치듯 보았던 미숙한 무인은 이미 없었다. 그는 미숙한 무인도, 타인에게 상처 입히 기를 주저하던 선한 청년도 아니었다. 그에게 보여 지는 것은 순수한 적의와 증오, 미쳐버린 이성뿐이었다. 험악한 공기가 팽팽히 부풀어 올랐다. ‘길보다 흉이 더 많겠구먼.’ 직감했다. 수 없이 란과 토닥였었지만 말 그대로 그건 토닥임 일 뿐이었다. 란은 단 한번도 노도에게 진정한 살의를 들어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노도라는 사람은 단 한번도 남과 진 심으로 살의를 들어내고 싸워본 적이 없는 도사였다. 피를 밟 고 사는 무인이라는 존재의 두려움이 새삼스럽게 노도에게 밀 려오기 시작했다.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자의 무서움은 익히 들 어 알고 있었다. 란 역시 수많은 목숨을 베어 그 자리로 올라 갔으니까. “자네...” 라크로이 노인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접었다. 이제 와서 랑을 묶은 끈을 풀고 노도에게 넘길 수도, 노도 대신 그가 남 아 두 사람을 지킬 수도 없었다. 아주 조금의 차이였다. 노도 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 귀가 자네보다 조금 더 좋았던 게지.” 창에게서 뿜어지는 마기가 점점 더 크게 자라났다. 노도가 힐 끔 뒤돌았다. 창의 눈에 순간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가게.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주게.” “진정한 절망이란 희망이 사라질 때 전해지는 법이지.” “갈!” 노도의 말을 끊으며 창의 검이 공간을 가르고 날아왔다. 챙! 거대한 반구가 노도와 라크로이 노인들을 감싸듯 나타났다. 창 의 검이 반구에 걸쳐졌다. 반구가 윙윙 울며 찢어질 듯한 비명 을 토해냈다. 양 손으로 마법 도구를 받쳐 들고 반구를 유지해 내는 노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도력과 마력이 뒤엉 켜 노도의 손을 검붉게 물들였다. “가, 가게!” “하, 하하하하!” 힘에 밀려나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괴로움이 노도의 온 몸 을 찌르고 들어왔다. 창의 광소가 터져 나왔다. 라크로이 노인 이 몸을 토굴 안으로 던져 넣었다. 노도의 눈에 붉은 핏발이 섰다. 창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크흑!” 압도적 힘의 차이. 울컥 피를 토해낸 노도의 몸이 천천히 뒤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빠직, 노도가 밀려나면서 함께 밀려진 반 원이 동굴 벽에 처박혔다. 소름이 온 몸을 달렸다. 노도는 이 를 악물었다. 채 익숙하지 않은 마법의 응용으로 뼛속까지 저 려왔지만 버텨야 했다. 이 벽이 무너지면 막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라크로이 노인과 랑의 목숨을 보장해 줄 수가 없었다. ‘안돼! 적어도, 적어도 그 갈림길까지만이라도!’ 버텨야 했다. “하하하하하하!” “제기랄! 이 노친네들이 뭔 배짱이야!” 거침없는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팡이와 꽃삽이 날아오련만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그들 은 나타나지 않았다. 거칠게 말에 박차를 가하며 올슨은 소리 질렀다. “망령 난 영감탱이들 같으니!” 올슨을 따라 말을 달리던 그림자들의 입에서 차례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랬다. 정말로 망령난 영감탱이였다. 그렇지 않 고서야 맨 정신에 이런 일을 벌리겠는가! “늦지 말아야 하는데! 제길!” 히필이면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이었다. 올슨은 자꾸만 젖어오는 눈가를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라크로이 노인은 올슨에게 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올슨은 이를 악물었다. 늦을 수는 없 었다. 라크로이 노인과 노도가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지하에 흩뿌려지게는 할 수 없었다. 올슨이 이 일을 알게 된 건, 뒤늦 게 떠오른 한 가지의 일 때문이었다. 텅 빈 라크로이 노인의 방이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진 순간 올슨은 신경을 긴장시켰다. 그림자로서 훈련받은 반 본능이기 도 했지만 요 몇 일간 라크로이 노인에게서 풍겨오던 기묘한 예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마치 죽을 사람모냥 올슨에게 모 든 것을 물려줄 때가 지났다며 그를 재촉했다. 올슨은 실례이 리라 생각하면서도 빈 방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그러기를 잠 시, 올슨의 눈에 낯선 흰 편지 한 장이 들어왔다. 손때 뭍은 작은 책상위에 곱게 접힌 한 장의 종이. “떠그럴. 유언장이나 써 놓고 나가다니 이 노친네들을!!” 그림자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는 건 알았다. 그러나 견딜 수 없었다. 올슨은 후작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을 빌렸다. 최악 의 경우에도 후작을 연류시키지 않기 위해 기사들 없이 몇몇 그림자들로만 사람들을 구성했다. “영감탱이! 죽기만 해봐라!” 그림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싶었다. “죽어버리겠어!” 대공가의 저택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낭패다.’ 좁은 통로가 넓어질수록 시끌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졌 다. 창이 나타났을 때부터 짐작하고는 있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눈치를 채고 내려왔다면 비밀통로의 출구도 감시당하고 있으 리라. 요란한 발소리들이 복잡하게 미로를 타고 달렸다. 곳곳 에 설치된 함정에 당해 질러대는 비명소리, 소요하는 기사들을 다그치는 호통소리. 등에 업힌 랑이 작게 신음성을 흘렸다. ‘괜찮은가?’ 낮게 던진 질문에 랑이 힙겹게 고개를 움직였다. 라크로이 노 인의 등은 긴장으로 흘린 식은땀에 흠뻑 젖어갔다. 통로에 대 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기사들과 술래잡기를 해도 좋 을 정도는 아니었다. 라크로이 노인은 챙겨왔던 작은 가방을 열었다. 몇 개의 마법 폭발물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피를 부르겠구먼.’ 살아서 돌아가야만 했다. 살아 돌아가 노도의 말을 전해야 했 다. ‘부디 살아있기를!’ 수많은 사람을 죽일 물건을 손에 들고서 또 다른 누군가가 살 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어리석었지만 그게 라크로이 노인의 진 심이었다. 라크로이 노인은 이를 악물었다. 마법 폭발물의 봉 인을 뜯고 한 무리의 기사들이 몰려 들어간 입구를 무서운 눈 으로 응시했다. ‘지금이다!’ -콰콰콰쾅!- 안쪽으로 집어던진 두 개의 마법 폭발물들이 요란한 화염을 내뿜으며 통로 안쪽으로 짓쳐들어갔다. “우아아아악! 함정이다!” 비명과 혼란을 틈타 라크로이 노인이 숨어있던 통로에서 튀어 나와 바깥쪽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안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몇 개의 갈림길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차례로 마법 폭발물 의 봉인이 뜯어졌다. 통로마다마다 거침없이 폭발을 일으키며 불길이 터져 나왔다. “함정이다!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라!” 혼란에 빠진 기사들을 독려하며 불길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들 이 흘러나왔다. 라크로이 노인의 흰 눈썹이 일그러졌다. 조금 더 시간을 끌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기사들은 지나칠 정도로 잘 훈련되어 있었다. “통로의 함정에 함부로 걸려들어서는 안된다! 어떠한 것도 손 대지 말아라!”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그들이 이 폭발을 라크로이 노인의 것 이라기보다는 본래의 내재되어 있던 통로의 함정이라고 생각 한다는 점. 그 순간을 놓쳐서는 곤란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가면 우물의 입구가 나온다. 그리고 그 입구의 옆 쪽에 다른 출구로 향하는 또 하나의 비상 출구가 있다. 어쩌면 그 쪽도 기사들이 쫙 깔려 있을지 몰랐지만 지금으로서는 다 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조금만!’ 바닥에 몸을 밀착시키듯 낮추고 달려나가는 라크로이 노인의 모습은 유관으로 잡기도 힘들만큼 은밀하고 빨랐다. 휙, 그의 옆으로 불을 붙인 화살 한 자루가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그의 모습이 빛 아래 선명히 들어났다. “찾았다! 침입자다!” “제길!”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Subject: [[The Perfect MAID]]-102-불길한 꿈 [[The Perfect MAID]]-불길한 꿈 “올슨!” “나도 봤어!” 대공가를 둘러싸고 펼쳐진 숲 부군에서 횃불들이 일렁였다. 올 슨과 무리들은 말의 속도를 낮추고 몸을 숙였다. 검게 칠한 말 과 망토는 그들을 어둠 속으로 부드럽게 녹여들게 만들었다. “침입자다! 잡아라!” 외치고 있었다. 올슨의 눈에 희열이 스쳤다. ‘아직 무사하시군.’ 잡히지 않고 달아나고 있다는 건 아직 움직일 힘이 있다는 의 미였다. 올슨은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말을 숲가 로 숨겼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을 최대로 활용 하는 편이 나았다. 그들은 그림자였지 기사가 아니었으니까. 검게 칠한 검을 조심스럽게 뽑아들고 올슨은 턱짓으로 방향을 가르켰다. 낡은 우물가 옆쪽으로 한 무리의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안쪽에 다른 통로가 있다! 샅샅이 뒤져라! “상처를 입고 있다! 핏자국을 찾아내라!” “개들은 어떻게 하는 건가! 다그치지 못할까!” 올슨이 암살용 대롱을 입에 물었다. 독침은 한 무더기 들고 왔 다. 힐끔 동료에게 눈짓을 보내고 그는 지체 없이 대롱에 숨을 불어넣었다. “커헉!” 대장급으로 보이던 사내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 졌다. 거머쥔 목 주위가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있었다. “독이다!” “한 패다! 한 패가 있다!” 소리 지르던 사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연달아 서너 명이 푹푹 바닥으로 쓰려졌다. 싸늘한 죽음의 공포가 기사들을 감쌌 다. 검 한번 맞대보지도 못하고 쓰러지다니! 어디의 누구에게 죽음을 받는지도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건 기사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공포와 수치였다. “모두 경계해라! 적이 숨어있다!” 누군가의 외침에 따라 기사들이 흩어져 나무와 돌들 사이로 모습을 숨겼다. 그 짧은 틈의 사이로 휙, 검은 그림자가 우물 안에서 솟구쳐 올랐다. “헉!” 다리에 날개라도 단 듯 날아오른 그림자는 보석 같은 붉은 핏 방울을 흘리며 풀숲 안쪽으로 날아 들어갔다. 몇몇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그림자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콰광!- 낯익은 폭발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그들을 짓쳐 들어갔다. “제, 제길! 이 화염은!” 그들이 미로의 안쪽에서 질리도록 험하게 당해야 했던 그 불 길이었다. “잡아라! 반드시 잡아서 죽여라!” 살려서 데려와야 한다는 창의 명령은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 다. 기사들은 흉흉한 모습으로 검을 뽑아들고 풀숲으로 몸을 날렸다. 숲 속에 녹은 듯 숨어있던 몇몇의 사람들이 번개처럼 튀어나오며 그들을 막아섰다. 챙! 검 부딪히는 소리들이 요란 히 울리기 시작했다. “접니다!” 그림자가 튀어나오는 순간 올슨은 알 수 있었다. 익숙한 그 인 기척, 라크로이 노인이었다. 올슨은 자신도 모르게 라크로이 노인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갔다. 올슨의 목소리가 외쳐지자마자 그림자는 다리를 멎었다. 경악에 물든 눈동자는 믿을 수 없다 는 듯 올슨의 위아래를 끊임없이 훑어 내렸다. “이, 이, 이....” “얼간이 소리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올슨이 라크로이 노인의 상처를 급히 찾았다. 팔 부근에 난 상 처는 무언가에 스친 냥 찢어져 있었다. 여분으로 지니고 왔던 검은 천으로 상처 부위를 묶고, 그의 등에 얹혀있던 시체 같은 병자를 대신 짊어졌다. 그리고 허공으로 작은 동물 울음소리를 흘려보냈다. “돌아가겠습니다.” 악에 받쳐 짓쳐들어오는 기사들을 따돌리기란 쉽지는 않겠지 만, 이제는 돌아가야 했다. 라크로이 노인의 입가에서 길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숲을 둘러싼 강한 살기가 온 감각을 자극 해왔다. 올슨은 라크로이 노인을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편 에서 몇 동료들이 남아 기사들을 막고는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 기사의 강함은 쉽게 넘어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죽는 순 간까지 막아주더라도 그다지 오랜 시간을 버텨주지는 못한다. 올슨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갔다. “서둘러 주십시오!” -쾅! 콰광!- 등 뒤에서 연이어 폭음이 들려왔다. 올슨은 이를 악물었다. 다 섯 번째의 폭음이 들려왔을 때 라크로이 노인이 발을 멎었다. “먼저 가게.” “!” “저 폭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내가 모를거라 생각하지 않 겠지. 자네가 와서 다행이네. 자네의 등에 있는 사람은 노도, 그 못 말릴 영감탱이가 목숨과 바꿔서 구해오려 했던 사람이 네.”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임무를 나설 때 그림자들은 스스로의 목 숨을 맺어줄만한 물건 한가지 씩은 가슴에 품고 떠난다. 라크 로이 노인의 품 안에 하나 남겨진 마법폭발물 역시 그 순간을 위해 남겨져 있었으니까. 다섯 번의 폭발음의 의미를 모를 만 큼 라크로이 노인은 어리석지 않았다. “누군가가 막아야 한다면 그건 자네가 아니라 나일세.” “마, 말도 안됩니다!” 올슨의 눈시울이 붉게 타올랐다. 라크로이 노인이 올슨의 어깨 를 가볍게 두드렸다. 주름진 노안에 미안함과 대견함, 그리고 아쉬움이 범벅이 되어 담겨 있었다. “가게. 이제부터는 자네가 라크로이 노인 올슨이네." “노, 노인이라는 칭호는 제게 버겁습니다!” ‘노인’은 단순히 나이 먹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라크로이의 최고 책임자라는 뜻이었다. “그럼 그냥 라크로이 올슨이라 하면 되겠지.”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이는 라크로이 노인의 눈은 이미 각오로 굳어있었다. 올슨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올슨이 고개를 숙였 다. 더 이상은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라크로이 노인의 그의 어깨를 살며시 뒤로 밀었다. “..................” “대공저하와 란님을 만나 노도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더라 고 전해주게.” 수차례 터진 폭발로 불궈진 거대한 화염이 숲을 집어삼킬 듯 불타오르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나도 돌아갈 수 있겠지.” 아무런 말없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미친 듯 달려가는 올슨 의 등 그림자를 바라보며 라크로이 노인은, 아니 이제는 평범 한 그림자로 돌아간 ‘도르’는 나지막히 중얼였다. 순식간에 자라나버린 제자를 바라보는 눈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도 이렇 게 자신을 길러주었던 라크로이 노인을 떠나보냈었다. ‘역시 그림자의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건가 보군.’ 불에 놀란 사람들과 동물들의 아우성이 뾰족한 살기에 뒤엉켜 마구 혼잡스럽게 퍼져나갔다. -콰과과과과광!- 연이은 폭발음이 숲을 뒤흔들고 있었다. “무후는 잠꾸러기로군.” 한적한 숲 속 허름한 모옥 앞마루에 걸터앉은 늙은 도사는 한 폭의 그림인 냥 운치를 발했다. 흔들, 나무가 흔들렸다. 바람에 나붓긴 것이 아니라 그 형상 자체가 흔들렸다? 순간 깨닳았다. 그는 이전에 내가 보던 그 도사 노도가 아니었다. “갑자기 늙어버린 건가?” 낯선 주름살들이 얼굴 이곳저곳에 깊게 계곡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숲 속의 노도가 아니었다. “외집사 생활이 버겁기는 했나보군.” 가슴이 아렸다. 나로 인해 풀썩 늙어버린 어린 친구를 보는 건 낙낙한 일이 절대 아니다. 노도가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배우고 있다네.” “사람의 삶?”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강 인함이지.” 어딘가 그 답지 않았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그래, 클레이브는 잘 있고?” “물론이지. 누가 보살피고 있는데.” “가엾은 아이야. 요즘 후작이 아이 걱정에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다네.” 흐릿한 미소를 지은 노도의 모습이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순간 사라졌다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 이 처음보다 많이 흐릿해져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또 새로운 경지인가? 꿈속으로 찾아오다 니, 나날이 발전하는군.”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헤벌쭉 웃는 노도는 어딘가 자랑스러워 보였다. “진작 좀 오지 그랬나. 그 너덜너덜한 편지만 보내지 말고.” “허허, 그럴 경황이 전혀 없었다니까.” 밤새도록 뛰어다니는 게 일이었다며 노도는 작게 투덜거렸다. 기껏 되살려 놓았던 정원까지 시들시들해서 못내 마음이 아플 지경이라며 노도는 한숨을 푹 내쉈다. 그리곤 싱긋 웃었다. “클레이브와 운명에 휩쓸린 아이들을 잘 돌봐주게나.” “당연하지.” “신들의 농간 때문이 아니라 자네의 순수한 의지로 돌봐주기 를 바라네.” “물론이야, 노도. 그 아이들은 이미 내 아이나 마찬가지니 까.” 가슴 깊은 따듯함을 느끼게 해 준 아이들이었다. 자라나는 의 지와 가능성들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아이들이었다. 순간순간 자라나면서 내게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어준 아이들이었다. 노 도의 시선이 잠시 내게 고정됐다. 난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 다. 너무나도 마르고 수척해진 내 벗은 어깨라도 두드려주지 않으면 힘없이 풀석 넘어질 것만 같아 보였다. “미안허이.” 그의 말은 어딘가 뜬금없었다. 노도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며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뭐가?” “좀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네만, 마중을 나와 주신 분께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해서 말이네.”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상했다. 뼛속까지 공포가 밀려왔 다. 이 내게 공포라니! 알 수 없는 위화감으로부터 퍼져 나오 는 두려움. 코앞까지 다가온 노도가 빙글 특유의 미소를 지었 다. “노도!” 난 그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도는 내 손과 몸을 그대로 투과해 뒤로 지나가 버렸다. 쭈뼛, 온 몸의 소름이 돋았다. 마 치 유령 같았다. 난 그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 했다. “..........!”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슬에라도 묶인 듯 손끝 하나 내 마음대 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를 불러야 하는데 소리조차 나오지 않 았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젖어갔다. “란아, 부탁한다.” 벼락을 맞은 듯 했다. 악을 써도 돌려지지 않던 몸이 휙 돌아 갔다. 그 목소리는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스승...님?” 내 스승님, 그 옆에서 노도가 방긋 미소짓고 사라졌다. 스승님 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잡아야 했다. 잡아야만 했다. ‘잠시만요 스승님!’ 또다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난 스승님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흔들, 내 몸이 흔들렸다. 사슬이 풀리며 몸이 앞 으로 튀어나갔다. “케에에에에엑!” “으, 으아아아아아악!” 벌떡! 심장이 튀어 올랐다. “뭐, 뭐야아아아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순식간에 털들이란 털들이 다 기립 했다. 난 두 팔을 휘저으며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으, 으으...아악!” 거친 침을 튀겨가며 하르크가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코앞까지 들이닥쳐 있던 넓적한 얼굴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펄쩍 뛰어 한 보 뒤쪽으로 물러서 조그만 클레이브의 등 뒤로 그 덩치를 숨기며 하르크는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뭐, 뭐요!” 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활활 불이 타오르는 모닥불 위에 걸린 냄비에서 좋은 냄새가 풍겨왔다. 스테판의 입에 물 려있던 마른 빵 조각이 툭 떨어졌다. “왜, 왜, 왜, 왜 그러시오! 겁먹은 듯 눈을 치뜨며 하르크는 부들 떨었다. 놀란 아이들이 눈동자가 내게로 쏠려왔다. 퍼득 정신이 들었다. ‘현실인가?’ 꿈의 연장인 냥 일그러져 보이던 잔상들이 조금씩 뚜렷한 현 실감을 지니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까끌한 모래바람의 감촉이 볼가를 두드렸다. “흐, 흐, 흐으으으으.” 난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온 몸이 부르르르 떨렸다. 세상에 만상에. 하르크 저 괴물단지의 얼굴을 한 스승님이라니! 가슴 이 덜컥 했다. ‘설마... 우화등선 하신 이후로도 이 제자가 걱정 되서 다시 이 서대륙의 인간으로 환생하거나 하신 건 아니겠지?’ 꿈 때문이리라 생각하면서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이어졌다. 난 머리를 휘휘 저었다. 그런 끔찍하다 못해 별스런 잡생각 따 위는 일각이라도 빨리 잊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눌렀다. “괜찮으세요?” 톡, 무언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걱정스러운 얼굴의 클레이브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하르크더러 깨우라고 했습니다만...” 지나치게 놀라며 당황한 내게 미안한 얼굴로 클레이브는 스리 슬쩍 웃음 지었다. 난 잠시 고개를 흔들었다. 꿈은 깨어났지만 머리가 조금 멍했다. 심장이 미친 듯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도 불길한 미몽의 잔재가 머리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걸까. “아, 아... 응.” 클레이브는 머뭇거리며 조금 고질 고질한 손수건 하나를 내밀 었다. “땀을....” 손바닥이 흥건히 젖어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툭 얼굴어름 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난 느리게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희 미한 기억 속에 하르크와 얼굴이 겹쳐지기 직전의 스승님이 떠올랐다. ‘고개를 저으셨나?’ 가슴이 서늘했다. 노도의 뒷모습도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워 낙에 경지 높은 도사인데다가 생사의 경계를 반쯤은 초월해 존재하는 그이니만큼 어지간한 일로는 끄떡도 없겠지만, 덜컥 걱정이 되었다. 그 또한 연약한 육신을 지닌 지상의 존재였으 니까. 그것도 나처럼 육신을 단련시킨 무인도 아닌 도사. 전운 이 감도는 곳에 누구보다도 안 어울리는 존재.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서둘러야 할 것 같아.” 불길했다. 무엇이든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설마 크리아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쿵쾅쿵쾅 심장이 울렸다. 예감이 맞지 않는 나도 늘 불길한 종 류의 것들만은 잘 맞곤 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뭉글뭉글 자라나기 시작했다. “란님.” 하르크가 몸을 낮추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움찔 하르크 의 기도가 변했다. 긴장으로 팽팽히 당겨진 근육이 팔꿈치를 타고 꿈틀 움직였다. 빠른 투기가 바람을 타고 이 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난 잡념을 접었다. “제기랄! 모두 무기를 잡아!” 한 무리의 흙먼지가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 다. 하르크가 음식을 재빨리 치운 후 모래를 일으켜 모닥불을 껐다.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던 말들이 푸르르 고개를 들었다. “클레이브! 스테판은 각자 말을 나눠 타고! 크레이가 하르크 와 함께 말을 타도록!” 온 몸의 피가 휭휭 소리가 날 정도로 급박하게 돌고 있었다. ‘어쩐지 꿈자리가 사납더니!’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의 꿈을 꾼 건 정말 오랜만이 다. 그것도 이렇게 살기가 저릿저릿하게 느껴질 만큼 가깝게 다가올 때 까지 아무런 의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니! 있을 수 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을! “란님.” “자, 걱정하지 마라. 오크가 돌도끼를 들었다고 드래곤을 위 협할 수는 없어.” 하르크가 넉살좋게 아이들을 달래며 말에 짐을 실었다. 잠시 스치듯 지나간 클레이브의 눈동자가 어두운 빛을 담고 있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하르크 가 부러 내 쪽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여긴 우리의 란님이 알아서 막아 주실테니까.” 빙글빙글 웃는 표정 안에 질책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얼굴 에 드리워진 그늘이 천근의 짐이 되어 날 짓눌러왔다. 안된다 고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된다. 판단은 클레이브가 했지만 이 들을 이끌어나가는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이 여행 을 가능하게 만들어 나가는 존재는 나였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난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껏 미소 지었다. “켁!” “뭐야, 그 반응은.” 방금 전까지의 넉살은 어디다 버렸는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하르크가 입 꼬리를 바들바들 떨어댔다. 난 휙 고개를 돌렸다. 아침의 차가웠던 바람이 서서히 덥혀지고 있었다. 시간감각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군.’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새 정오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쩌다가 이렇게 까지 풀어 져 있었을까. 난 지켜야 할 존재가 있는데. “가랏!” 힘차게 내뱉은 목소리에 맞춰 등 뒤로 네 필의 말이 힘차게 발을 굴렀다. “란님!” 클레이브가 외쳤다. 난 뒤 돌아보지 않았다. 어중간한 이별은 우리의 시간만 갉아먹을 뿐이었다. 말발굽소리가 순식간에 멀 어져갔다. “무사하셔야 해요!” 등 뒤로 돌아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난 엄지 손가락을 세운 오른 손을 높이 들어 보였다. “당연하지.” Subject: [[The Perfect MAID]]-103-불길한 꿈 ‘제기랄.’ 멀찍이서 손을 늘어트리고 서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하녀의 모 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뿌득 이가 갈렸다. 저 여유 만만한 작 태라니! 론은 힐끔 고개를 돌려 움크의 옆모습을 훔쳤다. 억센 턱의 근육이 악물어진 폼이 어지간히 벼르고 별렀던 모양이다. 그러나 론으로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모양새일 뿐이었다. ‘제길. 보고서도 작성하지 못했단 말이다!’ 그림자 부대는 모두 남을 예정이었었다. 그런데 무슨 변덕인지 움크는 갑작스레 론을 부르더니 황궁 소속의 그림자들을 모조 리 불러 모아 부대로 합류시켰다. 움크의 부대가 떠난 이후로 남은 자료들을 마저 정리해서 황궁으로 소식을 보내려던 론의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그나마 대강이라도 추려 빼돌릴 수 있 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자!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진짜 전장으로 향한다!” 거친 움크의 목소리가 온갖 소음을 뚫고 전사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진정한 전사라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법!” 왁자지껄 나름대로의 소음을 뽑아내던 기사들의 입이 일순간 에 닫혔다. 움크의 목소리에 공명하며 꽈악 조여진 살기와 투 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두근, 론의 심장까지 도 꿈틀 움직였다.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시력이 높아졌다. 흙 먼지를 넘어 희뿌옇게 스쳐가던 사방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 했다. 힐끔 옆을 바라본 움크와 문득 시선이 부딪혔다. ‘웃었나?’ 한순간에 적의를 누그러트리고 함께 전의에 불타오르게 하는 듯한 미소. 론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 피 끓는 감각은 안전한 황궁 구석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지.” 움크의 낮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론의 귓가에 닿았다. 순간 고 개를 끄덕일 뻔 했다. 그 역시 사막인 이었다. 론은 ‘시대를 읽을 줄 모르는 어리석은 움크’에게 낯선 두려움을 느꼈다. 이성과 달리 가슴에서부터 움직이는 것. 우트트가 사람들의 머 리를 통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과는 반대로 움크는 무모할 지 라도 가슴에 직접 말하고 있었다. ‘알 수 있을 것 같군.’ 중앙절 축제 중간에 뛰쳐나온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서 도 이 많은 전사들이 그를 따라 황궁을 박차고 나온 이유를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모두 검을 들어라!” 움크의 웅장한 외침에 따라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높이 쳐들 었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 다. 말들이 울부짖었다. 하녀와의 거리는 한순간에 좁혀졌다. “쳐라!” 움크의 말이 선두에서 돌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휙, 하녀의 몸이 날았다. 허리에 둘러진 새하얀 에이프런이 바람에 펄럭였 다. “어딜 감히.” 나지막한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론의 전신에 소 름이 돋았다. 순식간에 앞으로 다가온 하녀의 입가에 얕은 곡 선이 그려졌다. 론의 눈이 치떠졌다. 한 순간 하녀가 그를 바 라보고 미소 지은 듯한 착각이 눈동자를 스쳤다. 전의로 불타 올랐던 온 몸의 열이 한 순간에 식어 내렸다. 느릿한 동작으로 검을 들어 그녀를 맞는 움크의 모습이 론의 눈에 들어왔다. -쾅!- 검과 검이 맞부딪힌 소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굉음 이 터져 나왔다. 공기가 폭발하는 듯한 압력이 론을 모래바닥 으로 내동댕이쳤다. “으아아아아아!” 움크의 기합소리가 우렁차게 퍼져나갔다. 기사들이 말을 몰아 재빠르게 그녀를 감싸는 한편 멀리 뒤편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도주한 그녀의 잔당들을 -아 말을 몰았다. “어림없다!” 한 마디의 기합 소리와 함께 말채로 체중을 실어 그녀와 검을 맞겨루고 있던 움크의 몸이 뒤쪽으로 내동댕이쳐져 날아갔다. 네 발이 모두 바닥에서 떨어져 붕 뜬 말이 뒤편으로 쓰러져 데구르르 굴러갔다. “갈!” 폭발한 살기에 휘말린 모래알갱이들이 폭풍처럼 치솟아 올랐 다. 순간적으로 밀어닥친 살기에 휘말린 기사들의 몸이 석상처 럼 굳어갔다. 멀리서 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이브는 이를 악물었다. 배를 힘껏 걷어차인 말의 다리가 조금 더 빨라졌다. 말의 머리 높이로 자라난 잡목의 잔가지들이 거칠게 얼굴을 긁고 지나갔 다. “클레이브님! 이 쪽으로 함께 타십시오!” 하르크가 옆쪽으로 말을 달려왔다. “어째서?” “추격대를 막아야 합니다. 물론 란님이 잘 막아주시기는 하겠 습니다만, 발굽 자국을 보고 놈들이 따라오는 것은 막아야 하 니까요.” 힐끔힐끔 뒤를 바라보며 하르크는 말 등 위에 실린 짐들을 재 빠르게 바꿔 실었다. “어떻게 타지?” 뒤편을 바라보며 클레이브는 이를 악물었다. 따라오는 추격자 는 없었지만 오싹한 한기는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말을 멈춰 세울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르크가 손을 뻗었다. “이를 악무십시오!” 그리고는 휙, 클레이브를 낚아채 자신의 뒷자리로 집어던지듯 올려놓았다. 텅, 울리는 충격에 말이 잠시 비명을 질렀다. “윽!”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균형을 되잡으며 하르크의 앞뒤로 앉은 두 소년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식은땀으로 순식간에 옷이 젖 어갔다. 한순간 다가온 공포감에 온 몸의 신경들이 활짝 열렸 다. “급한 사항이니 잘 따라주셔야 합니다.” 클레이브에게로 말고삐를 건네주며 말을 달려오며 하르크가 외쳤다. 순식간에 하르크의 몸이 클레이브가 타고 있던 말로 이동했다. 크레이가 클레이브가 말을 몰기 쉽도록 몸을 낮췄 다. 꽉 쥐어진 두 주먹에 말갈기가 가득 잡혔다. “지금부터는 저도 장담드릴 수 없습니다.” 평소의 푼수기를 깨끗이 씻은 하르크는 전에 없이 진지했다. 말고삐를 잡은 클레이브의 주먹이 으득 쥐어졌다. “상관없어. 우리도 우리 몸은 지켜낼 수 있다.” 또렷한 눈동자는 의지로 뭉쳐 있었다. 하르크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이죠. 이 하르크와 란의 주인님이 아니십니까.” 클레이브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스테판이 속력을 맞춰 클레이브의 옆쪽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클레이브의 말에 매달려 있던 짐들의 상당수가 스테판의 말로 옮겨져 있었다. “정면으로 달리세요. 가야 할 길에 대한 것들은 이미 들어서 아실 겁니다.” 하르크가 검을 뽑아 주위의 나뭇가지들을 베어내며 낚아챘다. 하르크의 손에서 나뭇가지들이 모여 커다란 빗자루로 만들어 졌다. “발자국을 지울 셈인가?” 클레이브는 눈을 가늘게 떴다. 땅은 건조했고 바람은 적당했 다. 깊은 자국만 지워준다면 말발굽 정도는 금세 지울 수 있으 리라. “그것만은 아니겠죠. 제가 뒤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란님과 달리 곧 따라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겁니다.” 쉴 세 없이 주위의 잡목들을 꺾어가며 하르크는 빙글빙글 웃 고 있었다. “가십시오.” 웃음기가 지워졌다. 움크의 일행에서 분리된 한 덩어리의 살기 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시 하르크와 시선을 교환한 클레이브의 이가 악물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박차를 가했 다. 말이 길게 울며 다리의 속도를 높였다. 두 줄기의 흙먼지 를 피워 올리며 클레이브와 스테판이 탄 말이 순식간에 언덕 을 넘어 뒤편으로 사라졌다. 하르크는 말의 속도를 낮췄다. 푸 르르 고개를 터는 말이 하르크의 전의를 느낀 듯 가볍게 땅을 차며 기세를 가다듬었다. “네 마리... 인가?” 우득, 관절이 울렸다. 가볍게 몸을 풀고 기운을 갈무리하며 하 르크는 숨을 내뿜었다. 냉정한 눈빛에 갈무리 되었던 암살자의 살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시간이 멎었다. 사방을 둘러싼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말 들조차 푸르릉대지 못했다. 모두 마법에라도 걸린 듯 꼼짝하지 못했다. 꿈틀, 바닥에 쓰러져있던 움크의 몸이 움직였다. 희미 한 빛을 뿜고 있는 검을 지팡이 삼아 움크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 모양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하녀가 입을 열었 다. “마법이 걸린 검이군.”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움찔, 반사적으로 단검을 뽑아 던지려던 론의 손이 멎었다. 아주 이상한 의문이 그의 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저 하녀의 본래 목소리가 저랬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평범한 여행자 복장위에 고집스럽 게 에이프런을 걸치고 서 있어도 그녀는 조금도 하녀처럼 보 이지 않았다. 정말로 생소해서 자신들이 쫓던 그 하녀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불만이라면 다른 검을 뽑지.” 철겅, 검을 집어넣은 움크가 뒤편에 서 있던 기사에게 불쑥 손 을 들이밀었다. 얼떨결에 놀라 검을 내려치던 기사의 손이 멎 은 건 아주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놀랄만한 투기를 뿜어내어 그를 제압한 움크는 가벼운 동작으로 그 기사의 손에서 검을 받아냈다. 하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네 명... 인가?” 문득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런 것 같군.” 움크가 비릿이 미소 지었다. 순간적으로 폭발한 그녀의 살기에 놀라 멈춰 서지 못하고 달아나듯 소년을 따라간 기사의 수는 넷이었다.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닐 텐데?” 말을 탄 기사들이 두 사람을 빙 둘러쌌다. “기세에 질려 달아난 놈들 쯤이야. 마부 하나도 이기지 못할 걸?” 가벼운 비웃음, 분노한 기사들의 투지가 눈에 보일 듯 자라났 다. 방관하듯 물러 서 있던 기사들이 또 한 겹의 원을 그리며 그녀와 움크를 에워쌌다. “승부를 피해 달아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누군가가 말했다. 마치 결투라도 참관하는 자들의 형상이었다. 퍼득 론의 근성이 눈을 뜨며 몸부림쳤다. 저 하녀는 평범한 하 녀가 아니었다. 승부욕에 눈이 먼 기사들은 잊었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움크시여! 저 하녀는 도망자일 뿐이옵니다! 전사의 예를 갖 추어 줄 존재가 아닙니다!” “전사의 승부를 방해하지 말라!” 버럭 소리 질렀다. 움크의 기세에 눌린 론이 흠짓 뒷걸음질쳤 다. “윽!” 그러나 물러설 수는 없었다. 무언가 본능적인 두려움이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아무리 지금 움크가 다음대의 카느가 될 수 없 게 된다 하더라도 이런 자리에서 죽어도 되는 인물은 아니었 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누명이 우트트에게로 몰리게 된다. 누 가 믿겠는가! 친위 기사를 모조리 대동하고 나간 움크의 일행 이 겨우 하녀 하나의 손에 전멸 당했다고! “죄인은 죄인일 뿐!” 론은 소리 질렀다. 그 날의 악몽이 론에게는 아직도 생생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하녀는 그 날과 달랐다. 아무런 투기도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게 더 두려웠다. 덜덜덜 이가 떨 렸다. “겁쟁이는 끼어들지 말라!” 왁자지껄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느린 동작으로 하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색도 느껴지지 않는 투명한 눈빛. 마치 발가벗 겨진 듯한 공포가 론을 사로잡았다. 주춤, 자신도 모르게 다리 가 뒷걸음질 쳤다. “쓸만한 놈이 딱 하나 있기는 있었군.” 그녀가 낮게 웅얼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그대가 정녕 Lord의 이름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 자라면 정정 당당하게 검을 들어라! 그 날의 속임수는 두 번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움크의 투기가 잔뜩 끌어올려졌다.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녀가 검을 들어 올렸다. 말들이 겁을 먹고 푸르릉거리며 주 춤 주춤 뒷걸음질치고 몸부림쳤다. 자박, 그녀가 한 걸음 앞으 로 나섰다. 움크는 자신도 모르게 받아든 검을 버리고 마법검 을 다시 뽑아들었다. “한꺼번에 덤벼라.” 씨익, 하녀가 이를 들어내며 미소 지었다. 후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왔다. 론은 이를 악물었다. 가늘게 떠진 하녀의 눈 동자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 안돼! 이대로는, 이대로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Subject: [[The Perfect MAID]]-104-원치 않는 사과 “마법의 탑으로부터 급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쿵쾅쿵쾅 발걸음을 울리며 헐래 벌떡 달려온 마법사의 옷은 땀으로 완벽하게 젖어 있었다. 우트트는 발걸음을 멈췄다. 복 도 중간에 멈춰서 보고를 받는 일이 예의에 맞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비상시였다. 일일이 따지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뭐지?” 자신의 무례를 아는 듯 얼굴을 살짝 붉히고 마법사는 거친 숨 을 내뿜으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리고 손에 들고 온 축축 한 두루마리 하나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사막의 폭풍에 대한 소식이옵니다.” “폭풍?” 우트트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건 조했던 사막에 물줄기가 끌려 들어오면서부터 여름은 습습하 게 변해갔다. 짜증이 불현듯 치솟았다. 아직은 폭풍의 계절이 아니었다. “무슨 폭풍이란 말인가. 시기적으로 두어 달은 더 있어야 불 어오는 바람이 아닌가.” “그, 그러하오나...” 마법사는 식은땀을 훔쳤다. 잠시 그를 노려보던 우트트는 건네 받은 두루마리를 휘리릭 펼쳐들었다. 프란 남부의 간략한 지도 에는 폭풍이 처음으로 발견된 장소와 현재 올라왔을 것 즈음 으로 파악된 장소가 붉은 점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투위리?” 우트트의 이맛살이 심하게 구겨졌다. 성스러운 숲을 둘러싸고 있는 열의 사막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트위리는 실질적으로 열의 사막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오아시스의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중요한 요지 중 하나였다. “트위리는 무사한가?” 붉은 점선이 트위리를 무자비하게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흠짓 놀라 어깨를 떤 마법사가 화들짝 고개를 저어댔다. 우트트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트위리에 파견되어 있던 마법사의 마지막 전송에 의하면 모 래 폭풍이 마을을 덮쳐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래폭풍이 처 음은 아니니 모두들 대피했으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만, 트 위리는 당분간 마을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리라 생각됩니 다.” 차분한 목소리가 마법사와 우트트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느 새 다가온 센이 두꺼운 두르마리들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서 서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후두둑 땀방울이 떨 어졌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센이 목소리를 낮췄다. 우트트가 손을 들어 주위의 시종들을 물렸다. 넓은 창가에서는 그나마 나무 그늘에 식은 쓸만한 바 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트트와 센은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뭐지?” 침묵 같은 것은 흐르지 않았다. 센은 바로 입을 열었다. “확실시되고 있는 모래바람의 경로에 추격중인 하녀와 움크 님이 있습니다.” “제기랄!" 쾅! 창틀을 내리치며 우트트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아직 죽어서는 곤란하단 말이다!” 그건 움크도, 움크가 몰고 간 수많은 전사들과 그림자들의 목 숨도 마찬가지였다. 센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 죽으 러 나간 길이지만 움크는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 것은 비단 지금 전쟁이 코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만은 아니 었다. 그의 오랜 숙원대로 우트트가 차기의 카느로 확실시 되 고 있는 지금 움크의 죽음이라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피의 무게가 어디로 쏠릴지 센은 알고 있었다. ‘우트트님에게 살인의 누명이 씌어져서는 안 된다.’ 우트트는 아직 살아 주어야 하는 존재였다. 비록 스스로의 성 급함과 무능함으로 인해 모든 힘을 잃은 떨거지가 되더라도 말이다. “네, 곤란합니다.” 뿌드득 이를 갈며 센이 한자 한자 힘주어 되씹었다. 절대 그렇 게 만들 수는 없었다. ‘적당히 상대하며 시간을 끌어주어야 한다.’ 여기서 숫자를 나눠 클레이브의 뒤를 쫓겠다는 괘씸한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가 딱 알맞았다. 공연히 심리적 여유를 만들어 줘서 몰래 빠져나가 추격을 시도하게 만든다든가, 겁을 먹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무엇들 하는가! 숫자를 갈라서 추격해라!” 움크의 휘하 기사들 중 나름대로 높아 보이는 놈 하나가 소리 질렀다. 꼼짝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던 기사들의 공기가 한순 간 전환되는 듯싶었다. 난 서둘러 발가락을 움직였다. “크악!” 차 올린 돌멩이에 팔꿈치를 직격당한 놈이 몸부림쳤다. 주인의 갑작스러운 비명에 말이 발버둥치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적에게 등을 돌리는 겁쟁이인가? 너희들은? 나에게 도전하 기 위해 달려온 것이 아닌가?” 작은 소요에 뒤흔들리는 그들에게 오만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하르크의 살기가 치솟았다. 빠져나간 네 놈 과 맞부딪히고 있는 중이겠지. 아주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 다. 그가 네 놈을 쓰러트리고 아이들에게로 돌아갈 시간. 아무 리 나라고 해도 싸워대며 여기서 한 놈도 흘리지 않고 잡아둔 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조리 죽이지 않는 이상은... 말 이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잡아두는 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놈들은 겁쟁이도 바보도 아니었다. ‘조금은 도발시켜야겠지.’ 보란 듯이 유연하게 검을 휘두르며 난 놈들의 중앙으로 한걸 음 더 나섰다. “로드의 이름으로 약속한 내게 자격을 묻고자 함이 아니었던 가?” 놈들의 눈에 어려 있던 살기와 투지의 종류가 순식간에 변해 갔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난 느릿하게 땅에 검을 꽂았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오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 아래로 내려 다보이는 시선만큼 자존심 강한 자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은 드물다. “이미 말 했을 텐데? 내 어린 주인의 입장만 아니었다면 너 희들 따위에게 꿀릴 이유 따위는 조금도 없다고.”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놈들의 눈이 분노와 광기로 붉게 충 혈 되어갔다. “애송이들 주제에 입장 가릴 때가 아닐 텐데?” 한 손을 들어 손바닥을 주욱 펼쳐 내민 다음, 검지를 세워 가 볍게 까닥였다. 뭐래더라 개를 부르는 방법이라고 했던가? 뿌 드득 이 가는 소리와 동시에 신음성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 왔다. 팽팽히 당겨진 살기는 더 이상 뭐라 표현할 수 없으리만 큼 부풀어 올랐다. 모든 놈들의 살의가 내게로 집중되어 쏟아 졌다. ‘이런 좋은 방법이 있었는데 공연히 고민했었군.’ 수강 놈, 나보러 무치라면서 무예를 제외하고는 머리 굴리는 방법은 하나도 모른다며 무시했었지. 이제 날 살려둔 채로 떠 나가 클레이브를 괴롭히리라는 발칙한 상상은 한 놈도 하지 않으리라. 난 뿌듯한 느낌에 가슴을 활짝 폈다. 스승님께서 아 신다면 타락이라 하실 지도 모르지만 난 이런 내 변화가 상당 히 마음에 들었다. 얼굴 근육이 꿈틀 꿈틀 미소가 절로 흘러나 왔다. 의외로 내 잔머리도 쓸만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 었건 말이다. “오호호호호호호호!” 멀리서 굉소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언덕 저편에서 하늘을 찌 를 듯 치솟았던 기사들의 살의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 었다. 하르크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바짝 움츠렸다. ‘불쌍한 놈들.’ 지금 저 마소 앞에서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까를 상상하니 도 리어 란에게 가로막힌 움크의 기사들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그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잠시 멈칫 몸을 움츠리고 시선을 뒤로 돌린 네 명의 전사가 미묘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자아, 자. 너희들도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지.” 뒤로 달려가 동료를 도와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인 네 사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르크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 다. 대뜸 쏟아진 반말에 기사들의 아미가 험하게 일그러졌다. “마부 따위가!” 검을 다시 꼬나 쥐며 네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 질렀다. 쯧쯔, 가볍게 혀를 차며 하르크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까닥까 닥 흔들었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손가락은 네 사람의 얼굴을 분노와 수치로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감히! 너 따위가!” 들었던 경고는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그림자의 훈련을 받은 자 이니 어떤 함정을 준비할 지도 모른다던 론의 당부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저런 천한 자의 함정 따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고 그의 자만심이 목청 좋게 외치고 있었다. “죽어랏!” 검을 종으로 가로지르며 한 기사가 돌진해 들어왔다. 하르크는 재빠르게 품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기사의 눈이 휘둥글 커졌 다. 검을 길게 늘이고 있어 정면으로 맞부딪히리라 상상하고 있던 기사에게 빙글빙글 웃으며 장난스레 단검들을 던져 보이 는 하르크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하르크의 손을 타고 단 검이 빠르게 날아갔다. 챙, 소리와 함께 한 자루의 단검을 쳐 낸 기사가 자리에 멈춰 섰다. 한줄기 식은땀이 주르륵 기사의 널찍한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비겁한!” “넷이서 덤비는 건 정정당당하고?” 하르크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던 네 자루의 단검이 한 순간에 뿌려졌다. 기사는 몸을 재빨리 낮추고 검면을 옆으로 돌려 두 자루의 단검을 밀어 쳐냈다.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려... -땅!- 정신을 잃고 말에서 추락했다. “알윈!” 관전하듯 바라보던 세 사람의 기사가 재빠르게 달려와 하르크 의 앞을 가로막고 말에서 추락한 기사의 주위를 감쌌다. 분노 로 물들었던 얼굴에 어느새 경멸의 기운을 깨끗이 씻어버린 세 사람은 처음과 달리 사뭇 침착하게 검을 들고 있었다. ‘봤나?’ 한 기사의 질문에 옆을 지킨 자가 고개를 저었다. 식은땀이 손 바닥을 가득 적셨다. 보지 못했다. 그들이 본 것은 단검을 던 진 뒤 알윈의 말 등 뒤에 마법처럼 나타나 그의 뒤통수를 거 세게 걷어차는 동작뿐이었다. 언제 그의 말 등 위로 올라갔는 지, 어떻게 균형을 잡고 발길질을 했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 다. 그리고 바로 연기처럼 사라져 자신의 말 등 위로 돌아갔 다. “제길.” 론이 해주었던 경고가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클레이브라는 후 계자를 지키기 위해 후작은 마법물품과 인재를 아끼지 않았을 거라 했다. 지금 저 하인의 옷을 입고 있는 그림자가 신고 있 는 부츠는 귀하다는 마법 부츠인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보이지도 않는 공격을 막을 만큼의 실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등짝이 식은땀으로 젖어갔다. 죽어도 저 런 식으로 당해 죽고 싶지는 않았다. 등을 노려 뒤통수를 노린 치사한 수법, 그러나 분명 정면으로 다가왔을 동작. 쉽게 뒤를 빼앗겨 발로 채여...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죽다니. 상상 만으로도 끔찍했다. 그것도 하필 마부의 구둣발에 채여서 말이 다. “정체가 뭐지?” 빙글, 하르크가 미소 지었다. 그의 정면으로 펼쳐진 낮은 언덕 하나 뒤편으로 본격적인 투기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 람이 전해주는 검날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아니더라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늦장을 부린다면... “미안.” 미소가 식었다. 활짝 편 망토에서 한 무더기의 단검을 뽑아 무 작위로 집어던진 하르크가 기사들에게로 몸을 날렸다. “늦으면 내가 죽을 지도 몰라.” 잠시의 즐거움을 위해 영원한 고통을 감내할 수는 없었다. 네 명의 기사들은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맞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대로 말 등위로 엎어졌다. “크헉!” 그 중 그나마 나았던 자가 뒤통수를 한대 맞고서도 몸을 꿈틀 거렸지만 그게 다였다. 하르크의 꽉 쥐어진 주먹이 다시한번 그들의 뒤통수를 습격했다. -꽝!- 하르크는 낮게 투덜거렸다. 이유모를 초조함이 그를 사로잡았 다. 그는 네 명의 기사들의 망토를 모두 벗기고 주머니를 턴 다음, 안장에 있던 밧줄로 기사들의 몸을 그들의 말에 꽁꽁 동 여맸다. “교습비는 챙겼고...” 하르크는 말들을 끌고 클레이브가 달려간 길의 반대 방향으로 몰아 채찍질했다. 요란한 발자국을 남기며 네 필의 말들이 갈 림길 저편으로 달려갔다. “왜지?” 이유는 몰랐다. 불길한 바람의 냄새가 하르크의 후각을 자극했 다. 갑자기 똥줄이 타는 듯한 불안감이 그를 습격했다. 생사의 경계에 서서 살아가던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묘한 경계본능. 하르크는 자신의 예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 란의 암살 의뢰를 받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르 크는 자신의 말 엉덩이 아래로 나뭇가지들을 엮어 만든 빗자 루를 동여맸다. 세세히 발자국들을 지울 여유 따위는 없었다. 급히 말을 몰아 달리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제길. 무사해야 하는데.” 불길했다.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말의 목에 매달려 한참을 달려가던 크레이가 낮게 속삭였다. 움찔 클레이브의 어깨가 움직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클 레이브에게는 벼락 치는 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클 레이브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뭐가?” 애써 담담하게 목소리를 가라앉혔지만 클레이브의 목소리도 자책과 분노로 붕 떠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울컥 치밀어 오른 짜증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클레이브는 이를 악물었다. “눈도 보이지 않는... 제가 짐이 되어...” 한자 한자 씹는 목소리. 갈기의 고통에 말의 발걸음이 순간 흩 어졌다. 클레이브가 급히 고삐를 잡아당겼다. 히잉, 높게 울부 짖으며 말이 앞다리를 들어올렸다. 몸을 일으킨 말의 동작에 따라 클레이브의 시아가 커다랗게 움직였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미칠 듯한 푸른빛을 띄고 온 머리 위를 뒤덮고 있었다. 사람이야 쫓기건, 죽건 말건 그저 남 몰라라 하는 듯 혼자 고 고하게 빛을 발하는 하늘. 그의 안에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클레이브님!” 뒤따라오던 스테판이 놀라 급히 말을 따라 세웠다. 푸르르르, 급작하게 걸음을 멈춘 말들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따각따각 제 자리 걸음질을 치는 동안 클레이브는 휙! 말의 고삐를 내던졌 다. 자신의 앞쪽으로 툭 떨어진 고삐의 감촉에 크레이는 의아 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몰아.” “클레이브님!” 난데없는 클레이브의 말에 두 소년은 경악했다. 스테판이 클레 이브의 옆으로 다가왔다. 휙, 클레이브가 고개를 돌렸다. 뭔가 가 이상했다. 그가 아는 클레이브는 이런 식으로 급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부리는 소년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가 놀랄 정 도로 냉정하고 침착한 어린 주인, 그런 존재였다. 이런 상황에 서 갑작스레 투정을 부리듯 말을 멈춰 세우고 시선까지 피하 다니! 스테판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클레이브님답지 않으세요. 지금은 이렇게 길에서 시간을 버 릴 때가 아니라구요!” 란과 하르크가 뒤를 막아주고 있는 지금 최대한 멀리 달아나 는 일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 것을 위해 그 들은 뒤에 남았다. 그 마음을 무시한 채 이렇게 버티고 서서 말고삐를 던지는 건 그가 아는 클레이브가 아니었다. “나 다운 게 뭔데!” 버럭 지른 소리가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빠드득 이를 갈아붙 인 클레이브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까지 감아버렸다. 스테 판은 당황했다. 지금이라도 막 저 언덕을 넘어 추격대들이 따 라올 지도 몰랐다. “크레이, 뭔가 일이 있었니?”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크레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클레이브님!” “....................” 클레이브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스테판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가 쌓일 데로 쌓인 건 알고 있었다. 그들이 단 지 클레이브를 따라 떠난 것과 달리 실제적으로 모두의 방향 을 결정해버린 존재인 클레이브 본인이 받은 부담이 결코 적 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갑자기 폭발했을 수도 있 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어야 했다. “클레이브님, 힘드시겠지만, 지금 말을 몰 수 있는 사람은 저 와 클레이브님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이라도 멀리 추격 대에서 멀어져야 하고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풀죽은 목소리로 크레이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클레이브의 고 개가 휙 돌아왔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동자에 습기가 어려 있었다. 흠칫, 스테판이 숨을 삼켰다. 불길이었다. 사막을 달구 는 열기보다도 더 이글거리는 분노가 클레이브의 눈에 선명하 게 떠올라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격정적인 열기가 클레이브의 전신을 휘감아 타오르고 있었다. “무엇을?” 차가웠다. 이 목소리가 클레이브의 것이 맞을까. 스테판은 갈 피를 잡을 수 없었다. 크레이의 고개가 더 푹 수그려졌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시렸다. 크레이의 말을 가로막는 클레이브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크레이는 말을 멎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한 슬픔의 냄새가 클레이브로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 욱신, 스테판의 심장이 조여왔다. ‘말 한건가?’ 가끔 크레이가 슬픈 얼굴을 해 보일 때가 있다. 뚜렷하게 말하 지는 않았지만 그 심정은 시리게 알고 있었다. 내가 힘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그 무력감. 이렇게 도주할 때마저 짐이 되어 버리는 심정. 짧지만 함께 숙사 생활을 해 왔던 스테판은 미미 하게 사라진 크레이의 표정 안에서 그런 괴로움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또한 똑같이 느끼고 있는 종류의 것들이었으니까. 쉽게 알 수 있었다. “눈이 안 보이는 것? 그게 사과해야 하는 일인건가?” “클레이브님!” 말이 과했다 생각했다. 스테판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순 간 눈이 마주친 클레이브의 시선이 닿은 순간 스테판은 다음 말을 잊었다. 빈정이나 비아냥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감정 은 순수한 슬픔... “그럼 나는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 거지?” 일그러진 미소. 툭, 한 방울의 투명한 비가 사막에 떨어졌다. “존재해서 미안하다고....”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태어나 짐만 되어 미안하다고!” 버럭 지른 소리에는 지난 수년간 억눌러왔던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다. 부르르, 쥔 빈주먹이 경련을 일으켰다. 터져버린 눈 물을 억누르기 위해 고개를 쳐들고 클레이브는 낮게 속삭였다. “난 그럼 누구에게....” 십여 년을 버텨온 강건해 보였던 소년의 성이 와르르르 소리 내어 무너지고 있었다. “사과해야 하는 거지?” Subject: [[The Perfect MAID]]-105-모래바람 “끝났군.” 하르크의 싸움이 끝났다. 그의 기척이 소년들로 추정되는 기척 을 따라 맹렬하게 달려갔다. 나만을 찢어져라 바라보던 기사들 의 눈에 의혹이 어렸다. “달아난 네 놈의 얼간이가 마부의 손에 작살났다는 말이다.” “뭐야!” 말의 뜻이야 어떻건 내 말투 자체에 흥분한 놈들이 벌컥 화를 내며 검을 휘둘렀다. 붕, 공기를 가르며 몽둥이처럼 검이 소리 내어 울었다. “흠...” 움크와 그림자처럼 보이는 제법 똘똘한 놈의 입가에서 동시에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중 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은 놈은 단 둘 뿐인가. 움크의 눈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림자와 움크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그림자의 얼굴이 뭐 씹은 냥 구 겨졌다. “이제는 상대해 줘도 되겠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아깝지만 이 이상 질질 끌며 쫓겨 다니는 것은 사양이었다. 충 분히 느껴 알고 있었다. 기사들의 체면이라는 허울, 이들은 내 힘을 알더라도 날 포기하지 못한다. 처참하게 깨진 그 상처를 매우기 위해 검을 들어야 하고 피를 흘려야 하는 자들. 그렇다 면 여기서 끝을 보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 럽게 불살을 따르기는 했지만 나 역시 철혈의 검후라는 이름 으로 수많은 피를 흩뿌리고 다녔던 존재 아니었던가. -우우우우우웅- 내 뜻을 알았는지 쥐어진 검이 나지막히 울부짖는다. “어차피 포기하지 않겠지.” 겁을 집어먹은 몇몇의 손이 부르르르 떨렸다. 움크는 이를 악 물고 내 정면을 가로막았다. “내가 아르님께 약속한 건 피티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다 는 것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리가 없겠지만, 난 어디선가 날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들을 위해 설명해야 했다. 신성마 저 포기하고 날 따라다니며 수양을 방해하겠다던 자들이 한 둘은 아니었었으니까. “다행히도 카느에게는 너 말고도 아들이 하나 있는 것 같더 군.” 차분히 기운이 가라앉았다. 기의 폭발로 인한 충돌도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들이 이미 나의 기와 같았으니 새삼 움직일 이 유가 없었으니까.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 검에 투명한 날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한자, 두자, 흰 빛을 발 하는 검기. 확실히 이 곳으로 건너오기 전보다도 강해졌다. 지 킬 것이 있는 자의 강함이라.. 영원히 내 것이 아닐 듯 했던 그 힘이 포근히 날 감싸고 있었다. 그 지켜야 할 것을 위해 난 각오를 다졌다. “굳이 살려둬 후환을 자초할 이유 따위는 남아있지 않겠지.” 움크가 갑자기 마법 검을 옆의 모래땅에 박았다. 그리고는 온 몸을 두껍게 감싸고 있던 갑옷들을 떼어 바닥에 내팽겨쳤다. “갑옷 따위로 승부할 차원은 아닌 듯 하군.” 다시 검을 뽑아들고 움크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활짝 열려진 셔츠자락 사이로 잘 단련된 구리 빛 근육이 꿈틀거렸 다. “난 당신 같은 검기는 일으키지 못하니까. 조금 가까이서 시 작해도 되겠지. 게다가 당신의 경지는 우리들이 떼거리로 덤비 는 정도로는 맞먹을 수 없어 보이니까.” 쿵, 쿵, 기사들이 하나 둘 말에서 뛰어 내렸다. 철그렁, 갑옷들 을 벗어던지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들의 기세가 한 순간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의 공포는 깨끗이 잊어 버린 듯, 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 이들은 타고 왔던 말 들을 내쫓아 버렸다. 순간적인 당황이 내게 틈을 만들었다. ‘이런 놈들을 봤나!’ “강한 무인과 겨루는 것은 전사의 명예!” 마법검을 휘두르며 움크가 짓쳐들어왔다. 그를 선두로 기사들 이 우와아 함성을 울리며 덤벼들었다. ‘제기랄!’ 죽이고 싶지 않아졌다. 그러나... “편히 보내주마!” 내 순간적인 감상으로 더 이상 클레이브를 위험해 처하게 만 들 수는 없었다. 검신을 타고 뻗어나간 강력한 힘의 줄기가 길 게 그어지며 붉은 피보라를 뿜어냈다. 움크의 마법 검이 밝은 빛을 뿜어내며 엷은 방어 막을 만들어냈다. 핑, 스치는 소리와 함께 검이 통째로 잘려나가 빙그르르 허공으로 치솟았다. “허억!” “의외로 잘 만들어진 검이군.” 검이 막아줬기에 몸까지 두 동강나지는 않았지만 검기가 스친 자리에 서 있던 몇몇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잠시 검을 늘어트린 사이 움크가 자신의 옆에 쓰러진 기사의 검을 주어 들었다. 단 한번의 휘두름에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명을 달 리한 기사들을 훑어보는 움크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휙, 그가 내게 눈을 돌렸다. “물러서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봐주지 않는다.” 그것이 검을 든 자에 대한 예이니까. “이런 제기랄!” 언덕을 직선으로 달려 올라간 하르크의 눈이 찢어질 듯 치떠 졌다. 하늘을 관통하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클레이브들이 있 는 곳, 이곳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깜깜하게 물들어 있었다. “어, 어째서 모른 거야!” 생각해 보니 바람이 달랐다. 모래가 유난히 많이 불어온다고 생각했다. 지나다니는 여행자도 없었고, 어쩌다 발견한 집도 텅 비어 있었다. 그 동안 지녀왔던 위화감들이 실체가 되어 한 순간에 몰려들었다. “란니이이임! 내 목소리 들리면 당장 달려오시오!” 괴물 같은 청력이면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하르크는 마 나를 집중시켜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그리고 클레이브를 향 해 미친 듯이 말을 내달렸다. “하르크?”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하르크의 목소리에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은 스테판이었다. 하르크가 말을 질주해 달려오며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위험하다고 연신 소리 지르고 있었다. 휙, 고개를 든 스테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거친 바람과 하 늘에 겁먹은 말이 끊임없이 투레질하며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 었다. “크, 클레이브님!” 휙, 클레이브의 고개가 들렸다. 정면으로 굴곡진 언덕 위로 뻗 어 오른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이, 이런!” 클레이브의 동공이 커다랗게 열렸다. 팔이 부르르 떨렸다. 방 금 전까지의 갈등과 괴로움은 당장 코앞에 닥친 너무나도 큰 사건으로 인해 깡그리 파묻혀 버렸다. 클레이브가 손을 더듬어 크레이 앞쪽으로 집어던졌던 말의 고삐를 잡아들었다. “크레이, 단단히 붙잡고 있어.”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놀란 크레이가 몸을 다시 굽히 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눈에 대한 갑갑함이 또 다시 밀려들어왔다. “괜찮아.” 어느 새 침착함을 되찾은 클레이브의 어깨가 강하게 크레이를 짓눌러왔다. 온 몸으로 감싸 안은 듯 크레이를 덮으며 클레이 브는 말에 박차를 더했다. 바람소리가 점점 더 높고 강하게 울 려왔다. 크레이는 질문을 접었다. 지금의 그가 클레이브를 도 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용히 그가 말을 몰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세차게 몸을 밀어붙이는 바람을 피해 몸을 말 등 위 로 더 밀착시키며 크레이는 입을 꼭 다물었다. “모두 날 따라와아!” 찢어지는 바람의 중간을 끊고 하르크의 비명 같은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이브와 스테판이 반사적으로 박차를 가했다. 거 품을 물고 말이 땅을 박찼다. 거대한 모래기둥이 순식간에 언 덕을 넘어, 없애버렸다. 바람에 휩쓸린 작은 산들과 돌들과 나 무들이 모조리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모래먼지와 어둠으로 시 아가 흐릿했다. 그들을 인도하듯 하르크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쪽이야!” 우선은 모여야 했다. 하르크의 힘이 아직은 부족해 저런 폭풍 안에서 소년들을 보호할 정도가 아니더라도 그는 그들을 지켜 야만 했다. ‘제길! 란님이라면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지간해서는 날아가지 않을 듯 보이는 커다란 바위! 그 아래 패인 조그만 틈새 아래서, 날듯이 달려 품에 안겨온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빌어먹을 이 아줌마야아아아아! 빨리 오란 말이다!” 하르크가 절규하고 있었다. “우, 우그르트시여어어어!” 하르크가 내지르는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에 이어 한 기사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내 검에 양단될 때도 숨소리 한번 내지 않았던 기사들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낮은 비명들을 질러댔다. “제기랄!” 하늘을 관통하는 검은 그림자가 벌써 앞의 언덕까지 모두 집 어삼키고 이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던 잠시의 사이 하늘은 벌써 모래로 덮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말들이 비 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고참 기사들로 보이는 자 들이 넋이 나간 자들에게 소리치며 그들을 움크의 주위로 긁 어모았다. “피하십시오!” 주위는 온통 모래 투성이였다. 바람에 날려 산이 되고 새로운 땅으로 변해버릴 모래들. 순간 깨달았다. 지금 저 모래기둥이 불어오고 있는 방향이 어떤 방향이었는지를! 내 어린주인이 나 를 떠나 먼저 나아가기로 했던 작은 마을은! “클레이브으으으!” 모래폭풍이 우리를 덮쳐왔다. “죄송합니다.” 의식을 되찾은 랑이 처음으로 꺼낸 말은 짤막한 사과였다. 길 던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 올슨의 등에 업혀 후작가로 들어온 랑은 이틀 밤 이틀 낮 동안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올슨은 조용히 라크로이의 이름과 책임을 물 려받았다. 이틀의 시간동안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이 속속 기사 들의 검극을 피해 돌아왔지만 일곱 명의 그림자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 중에 라크로이 노인과 노도가 있었다. “...................” 망연자실 넋이 빠진 후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올슨도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라크로이 노인 이었던 ‘도르’를 만나 랑의 신변을 부탁받았을 뿐, 그 역시 아는 바가 없었다. 어떻게 랑을 찾은 것인지 또 함께 길을 나 섰다는 노도는 어떻게 된 것인지. 머리를 굴려 볼수록 나오는 건 가슴 섬뜩한 불길한 예측일 뿐, 무엇 하나 명쾌하게 그들의 마음을 씻어줄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돌아오겠지.” “돌아 올 겁니다.” 후작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해리슨은 노도와 도르의 방을 그 대로 유지시켰다.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 았다. 랑은 후작가의 가장 아늑한 곳에 자리 잡았다. 상처가 완전히 회복될 때 까지는 랑의 존재는 비밀에 붙이기로 했다. 후작은 대공에게조차 굳이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페르로이 후작에게 도 시간이 필요했다. 사흘째의 날이 밝았다. 노도와 도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은근 슬쩍 풀어 내보냈던 사람들도 아무런 소득 없이 빈손으로 돌 아왔다. 간신히 물어온 소식은 그 날 퍼졌던 산불로 인해 창의 기사들이 많이 다쳤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새까맣게 타 주검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정말로... 정말로... 돌아올 수 없는 건가?’ 차마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었다. “후...” 후작의 한숨은 깊고 길어져만 갔다. 후작가의 공기느 푹 가라 앉았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죽은 이의 가족들에게 뭐라고 말 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지 만, 각오하는 삶이었다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죽었는지 알 면서도 티 한번 내지 못하는 그림자의 가족들을 보며 후작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건 돌아오지 않는 노 도가 그에게 던져준 영역이었다. “후작님. 대공께서 보내신 소식입니다.” 부쩍 수척해진 해리슨이 다가와 편지 한 통을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후작이 침울한 얼굴로 편지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모든 것을 말해야 할까.’ 가뜩이나 금아는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대 고 그의 사랑하던 큰 아들이 막내아들의 손에 의해 만신창이 불구가 되어 지금 누워 있다고 전해야 할까. 그를 구하기 위해 그가 믿고 의지하던 노도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을 해야 할까. 아버지 같던 그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고 어떻게 말을 할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해리슨을 불렀다. 그가 가져와 주 기를 원하는 소식을 늘 기다렸다. 누구도 노도의 마지막을 보 지 못했다. 어쩌면 도르도 살아 있을지 모른다. 그 사실을 확 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금아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의논할 것이 있소.- 편지는 그렇게 시작했다. 페르로이 후작의 굵직한 눈썹이 일그 러졌다. 끄응, 신음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일그러진 눈가로 축축한 습기가 고였다. “해리슨, 오늘 대공께서 오신다.” 지난 사흘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붙잡고 있었던 진실들을 오 늘은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투둑,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 다. 고개를 숙이고 책상에 앉아 팔에 머리를 기댔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이 이제 더 이상은 피할 수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뭐라고 해야 하는 건가.’ 슬퍼할 대공에게, 절망할 란에게 말이다. 자욱한 안개 속에 홀 로 던져진 것만 같은 고독감과 절망감이 후작의 정신을 꽁꽁 옭아맸다. ‘제발, 제발...’ 살아있기를. Subject: [[The Perfect MAID]]-106-모래바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투성이였다. 창은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했 다. 애써 얼굴을 가린 손이 형편없이 떨려왔다. 고개를 푹 숙 인 기사들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예상 밖으로 영리했던 라 크로이 노인의 발버둥과, 약삭빠른 그림자들로 인한 피해는 상 상외로 컸다. 거기에 산불까지. 몇 주 째 비가 내리지 않고 햇 볕이 강해지면서 바짝 말라있던 나무들은 폭발을 타고 솟구쳐 오른 불길에 쉽게 휘말려들었다. 번져나간 불은 저택을 둘러싼 숲에 커다랗게 퍼져나갔다. 지금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기사들의 반은 그 산불을 막다가 희생당했다. “약삭빠른 놈들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매달려 불을 끄는 사이 잡을 수 있었던 침입자들까 지 놓쳐 버렸다. 기사들은 얼굴을 붉혔다. 저택이 통째로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가 없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비밀 통로까지 헤집고 들어와 설쳤던 자들을 놓친 건 누가 뭐 라지 않아도 씻기 힘든 실책이었다. “잘 단련된 그림자 부대였습니다.” “그랬지.” 창은 이를 악물었다. 어중간한 자들이 대공가를 짓쳐들어온다 는 건 상상도 불가능했다. 철옹성으로 알려져 있어 그림자는커 녕 어지간한 정보길드조차 알 수 없는 곳으로 유명한 이 곳에, 그 어떤 놈이 배짱을 부리고 들어온단 말인가! ‘노도!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늙은이!’ 페르로이가의 집사 중 한 사람이며 Lord 란의 절친한 친구, 그 리고 대공의 특별한 친구 같은 존재. 분명 그를 따라 왔던 자 들은 모두 페르로이가문 소속의 그림자들일 터였다. 심증도, 물증도 확실했다. 그러나 창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제길! 다 익은 빵이었는데!’ 자신의 손으로 랑을 감금하고 있었다고 어찌 밝히겠는가. 으스 러지게 쥐어진 주먹에서 뼈 부딪히는 소리들이 까드득 울렸다. 울컥 치솟은 마나가 온 몸을 헤집으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댔다. “큭!” 한 움큼의 시뻘건 핏물이 창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헉!” 죄인인 냥 서 있던 기사들이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하인들 이 달려 나오며 한 바탕의 작은 소란이 일었다. 창은 속에 고 여 있던 검은 피를 모조리 토해냈다. 그리고 나지막히 손을 들 어 당황하는 사람들을 제지했다. “괜찮다.” 토해내고 나니 한결 시원했다. 동시에 억울함이 밀려들어왔다. ‘그 마나만 흡수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자잘한 문제로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미련. 잘 차려놓은 밥상을 통째로 강탈당했다. 흡수하기 좋도록 생명력 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놓은 다음, 기껏 해독약까지 먹여 산공 독을 풀어 놓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기다니. ‘그 마나만 있었다면!’ 대공 정도의 적을 앞에 두고 이렇게 전전긍긍하지는 않았으리 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화가 치솟았다. 랑 정도로 ‘잘 차 려진 밥상’같은 상대는 창에게는 없었다. 같은 혈통의 같은 기질을 지니고 있었던 데다가 같은 무공을 익혀 쌓아왔던 내 기까지도 섞여서 무리되지 않을 만큼 닮아있었다. 그건 창이 익힌 마공을 성장시키기에는 최선의 제물이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혁을 그렇게 쉽게 죽이지는 않았으리라. “빌어먹을!” 목소리가 찢어져 울렸다. 흠짓, 기사들과 시종들의 몸이 굳었 다. 피를 타고 마기가 솟구쳐 올라갔다. 눈앞이 붉게 타올랐다. 아직도 눈에 생생한 붉은 피의 바다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나, 나가라.” 창은 이성을 쥐어짰다. 붉은 피를 가득 담은 몇 대의 통들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조심스럽게 사라졌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지경.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폭주할 수는 없었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해서는 더 큰 욕망을 채울 수 없다. 이제 곧 전쟁이다. 피에 대한 갈망은 그 때 풀어도 늦지 않는 다. 스스로를 애써 납득시키고 타이르며 창은 필사적으로 마기 를 가라앉히기 위해 몸부림쳤다. -툭- 몸 안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명치 아래로 저릿한 통증이 울 렸다.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렸다. 무릎이 땅에 닿았다. 머리가 진득하게 가라앉았다. 뇌 속에 진흙이 가득 차 버린 것만 같았 다. 빙글빙글 세상이 돌아갔다. 윙윙 울리는 귀청에 누군가가 소리 지르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도사 놈 같으니!’ 등 뒤는 절벽이었다. 더 이상은 물러날 곳도 남아있을 곳도 없 었다. 지독한 절망감과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견디지 못하고 창은 순간 의식의 끈을 놓쳐 버렸다. 풀썩, 창의 몸이 바닥으 로 쓰러졌다. 시종들과 기사들의 당황한 외침 소리들이 소란하 게 울려 퍼졌다. 급히 병문안을 달려온 하노베이 백작의 눈은 표정과는 달리 밝게 빛나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르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다면 곤란한 상대였다. 꼭두각 시란 자고로 매달린 실에 의존해 착실히 움직여 주는 것이 제 일이다. 망가져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면야 곤란하겠지만 조절 하는 실을 거역할 정도로 강해져서는 안 된다. 대공가에 잠입한 그림자들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들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하노베이 백작은 옅은 미소를 그렸다. 겉으로 듣기 좋게 둘러대는 그 이야기들 속에 가려진 속내들을 지금 하노 베이 백작만큼 선명하게 해석할 수 있는 존재는 없으리라. 같 잖은 도사 하나에 내상까지 입어 쓰러진 창이 안된 건 사실이 지만 그건 개인적인 동정심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줄어들지 도 모르는 반 대공파의 힘에 대한 염려였다. “어차피 전쟁이 코앞이니까.” 전쟁을 통해 힘을 기르면 된다. 베이르 대공이 페르로이 후작 을 놓지 않는 이상 그들은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비록 그 것이 의도하고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동기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직 승산이 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금아는 말을 잊었다. ‘죄송합니다라...’ 그 말 앞에서 소리 지를 수 없었다. 후작이 잘못한 게 무엇 이 길래 그가 사과해야 하는가. 대공은 말을 잊었다. 셋 뿐인 자 식 교육을 엉망으로 시킨 것도, 노도를 사지로 내몬 것도 그였 다. 후작이 한 일이란 몰래 빠져나간 노도의 행방을 뒤늦게나 마 찾아내 추격하게 만든 것. 그것도 힘들게 길러온 그림자부 대를 희생시켜가며, 자칫 잘못하면 옴팡 뒤집어쓸 수도 있는 잠입까지 시도해 가며 노력한 것뿐이다. 고개를 깊숙이 숙인 후작의 발치 아래 카펫에 떨어진 몇 방울 의 옅은 물기를 발견한 건 순간이었다. 대공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감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때문이다.’ 나눠야 했던 문제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프란의 사신 이 출발했다는 소식은 이미 그에게는 더 이상 중요한 화두가 되지 못했다. 왕궁으로 돌아오는 마차 속에서도 그는 감정을 정리할 수 없었다. “돌아오셨습니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시종들이 무채색으로 옆을 흘러 지나갔다.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빈 것은 가슴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지른 장에 대 리석의 벽에 손바닥 자국이 찍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소스라 치게 놀라며 흩어졌다가는 곧 다시 모여 그의 힘을 칭송한다. ‘왜일까.’ 힘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멍청하게 있는 사이 살 수 있었던 큰아들은 죽을 뻔 했고,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원리원칙을 따져가며 서류들을 잔뜩 집어 들고 펜 놀음을 하는 사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들은 모조리 흘러가 버 렸다. -툭- 들고 있던 서류들이 모조리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느끼지 못 했다. “대, 대공저하...” “아, 아?” 금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 신 시종이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또 다른 시종이 조용히 허 리를 굽혀 떨어진 서류들을 주어 들었다. 사르락 종이 포개지 는 소리에 금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서류들을 빼앗아 들 고 창 밖으로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순간 그를 사로잡았다.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아, 피로가 쌓였던 듯싶군.” 금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 밀리는 소리까지도 슬픈 울음 소리처럼 들려왔다. 손가락으로 눈 주위를 누르며 금아는 조용 히 숨을 가다듬었다. 아직 보아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단 한 장의 서류도 더 들어다보고 있을 수 없 었다. 휘청,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시종이 부축을 하기 위해 한 걸음 다가왔다. 대공은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멈칫, 시종 들의 발걸음이 멎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시작하겠네.” 하늘이 노랗게 흘러갔다. 어떻게 걷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지금 어느 곳을 어떻게 가는 지는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문득 파란 나무가 자라있는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는 사이 대공의 발걸음이 정원으로 향했다. 눈에 익은 장소가 펼쳐지고 있었 다. 대공으로서 찾아왔을 때 익은 장소가 아니라 하인의 옷을 입은 금아로서 노도를 돕기 위해 찾아왔었을 때 보았던 풍경 들. 정원 외딴 곳 한 구석에 금아의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왕 세자의 부탁으로 노도가 밖에 옮겨 심었다는 난초 한 뿌리가 청량한 향기를 내뿜으며 정원석 위에 고아하게 앉아 있었다. 저녁노을에 세상이 붉게 물들어갔다. “으, 읔...” 투두두둑 비가 흘러내렸다. 난초의 잎사귀에 튕겨진 투명한 물 방울들이 바닥으로 산개해 흩어졌다. 금아의 무릎이 천천히 굽 혀졌다. 욱씬 머리가 울려왔다. 백치라도 된 냥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장을 관통당한 듯한 고통이 그를 휩쓸었 다. 백여 년 간 쌓여왔던 눈물들이 모조리 터져버린 것 같았 다. -미안하다고, 대공께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온 한 하인이 말했다. -저 역시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자라 더 이상은 알지 못합니 다만.-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에 슬프게 눈가를 일그러트린 그 하인은 처음보다 더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바로 금아의 앞 에서 사라지듯 물러갔다. “왜, 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가슴 한 구석에서 노도는 죽지 않았다 고 미친 듯 소리 지르고 있었다. “하, 하하하하하하.” 꿈이리라, 꿈이리라. 현실이 아니리라. 현실이 아니니 기막힌 환상이며 연극일 따름이리라.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란님이 날뛰신다면 한 몫 거들어야 겠군.” 란이 이 크리아를 멸망시키겠다고 날뛰더라도 더 이상은 말릴 힘이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그가 먼저 모든 것을 끝내자고 날 뛸지도 모른다. “하,하.” 어린 자식에 대한 미련 따위는 남지 않았다. 정신이 확 돌아왔 다가 나간 이후 랑의 허리를 꺽은 자가 창이라는 것 정도 알 아내는 대는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으니까.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그 놈 하나라도 죽이고 죽는다면, 그 뒤 크리 아가 어찌 되더라도,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친 놈. 할 자신도 없는 주제에.” 너무나도 사랑했던 이 나라가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는 걸 알 기에 지금도 이렇게 돌덩이나 끌어안고 매달려 앉은 게 아니 었던가.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분노가 차갑게 가라앉아 딱딱한 결정을 만들어갔다. ‘할 수도 없는 주제에.’ 자박, 사람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있는 익숙한 인기 척이었다. 눈가에 흥건했던 물기가 순식간에 말라갔다. 허리를 펴고 금아는 느릿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다가오던 발소리 가 자리에 멎었다. 일그러졌던 금아의 표정이 굳어갔다. 흐트 러진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또 일이란 말인가!’ 울컥 또 다른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잠시 소중한 이를 위해 슬퍼할 시간조차 얻을 수 없단 말인가. 목소리가 냉랭히 얼어 붙었다. “무슨 일이지?” “대공저하.” 밝은 남빛의 옷을 정중히 차려입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예 를 표해왔다. 얼굴을 살피거나 하는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았 다. 사실 그도 따라올 생각은 아니었다. 검사들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자들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정도는 알 고 있었으니까. “전에 말씀하셨던 사항들 중 지체 말고 전하라 하셨던 종류 의 정보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정보?” 시종은 잠시 말을 꺼내야 할지 머뭇거렸다. 꼭 전해야 한다고 했기에 왔지만, 금아의 모습은 정말로 좋지 않아 보였다. 어딘 가 불안정해 보이는 창백한 얼굴에는 식은땀마저 고여 있었다. “괜찮다.” 금아는 고개를 조금 끄덕여주며 손을 내밀었다. 시종이 들고 왔던 한 장의 두루마리를 살짝 올려놓았다. 금아가 중간의 묶 인 끈을 풀러 두루마리를 펼치는 동안 시종은 의례적으로 그 가 알고 있는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프란에서 온 급보입니다.” 활짝 열린 두루마리에 시선을 돌린 금아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갔다. “모래폭풍이 두 달이나 먼저 불어 닥쳤습니다.” -쫘악!- 두루마리가 금아의 악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두 조각으로 찢어 졌다. 흠칫 놀란 시종이 말을 멈췄다. 금아의 파랗게 빛나는 눈이 시종에게로 꽂혔다. 사나운 살기, 시종의 발걸음이 뒤로 주춤 물러섰다. “말하라.” 서리가 내린 듯 목소리는 차가웠다. 시종은 죽음의 공포를 느 꼈다. 말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 손이 날아와 자신을 두 동 강낼 듯했다. “그, 그...” 목소리가 떨려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뿌드득, 금아의 입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빠득, 쥐어진 주먹이 기괴한 소리 를 내며 울어댔다. 주륵, 시종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누런 물이 흘러나왔다. 온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적셔졌다. “우, 우그르트 움크의 일행과 하, 하, 하녀를 포함한 페르로이 가의 추방아 일행이 모두 모래폭풍에 휘말려 행방물명이 되었 다고 합니다!” -쾅!- 쥐어짜듯 내지른 시종의 말이 끝나자마자 금아의 주먹이 정원 석을 내리쳤다. 파악, 돌이 폭발하듯 깨져나가며 사방으로 파 편이 튀었다. 마나와 뒤엉킨 거대한 비명소리가 금아의 입에서 터져 나갔다. “제기라아아아알!” 더 이상 슬퍼할 가슴조차 남지 않았다. Subject: [[The Perfect MAID]] - 108- 생환 “...걱정하겠지.” “아무렴.” “그래도 당장은 돌아가기 힘들겠어.” “아, 아. 기왕 늦은 거라면 느긋하게 가지.” 두 노인이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장난삼아 말을 걸어 본 이국 의 젊은이는 어딘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프란인을 만나보지 못한 노도조차도 그에게서 강한 햇살과 살 아가는 민족 특유의 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하루 종일 시장을 돌아다니며 세자트를 휘둘러 본 지금 그들의 느낌과 예측은 거의 일치했다. “높은 놈이었지?” 툭 던진 노도의 눈은 깊은 빛을 담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저런 분위기를 담지 못하지.” 저래서는 시장 상인들의 눈도 속이지 못한다. 딱 봐도 난 프란 의 귀족이요, 하는 자에게 쉽게 속내를 열어보여 줄 만큼 크리 아인들은 무르지 않았다. 좁은 땅에서 쉴 세 없는 침략을 받아 가며 살아남은 상인들의 근성이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척 용 한번 써본다고 열릴 마음이 아니다. “세이트라. 내가 아는 이름 하나와 무지하게도 닮았구먼.” “우그르트 움크의 심복이라는 자 말인가?” “아.”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도르의 눈동자가 부지런히 굴러가고 있 었다. 꽉 조여진 침착함이 전신을 감돌았다. 픽, 노도가 웃음을 터트렸다. “-. 은퇴는 무슨 은퇴.” “뭐, 알아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도르가 헐렁한 이를 드러내고 싱긋 웃었다. 기지개를 주욱 피 며 도르는 늘어지게 하품을 내뿜었다. “후, 나중에 돌아갈 때 사과의 선물 하나 들고 간다 치면 되 겠지.” “훗.” “그래도 걱정시켰을 테니까 말일세.” 나른한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대는 도르는 행복해 보였다. 바닥 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이렇게 사람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 본 게 얼마만의 일일까. 라크로이 노인의 이름을 벗어던진 도 르는 이전과 달리 여유가 넘쳤다. 노도가 도르의 옆에 자리 잡 았다. 어쩐지 그 넉넉함이 옮아오는 것 같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구먼.” 잠시 혼자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다며 약속장소를 정하고 사 라진 세자트는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 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오락가락 걸으며 시간을 때우던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잠시 멎 었다. “내일도 있으니 따라가 보는 건 관두자고. 선불로 옷까지 사 줬는데 설마 그냥 포기하고 사라지겠나.”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느긋하게 생각하자고 장례식 전에만 돌아가면 되겠지.” 씨익 웃으며 어깨까지 두드려오는 도르의 말에 노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라도 보기 전에는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한달도 기다려주지 않고 성급하게 무덤까지 파 주지는 않으리라. ‘며칠 더 걱정하는 동안 큰일이야 벌어지지 않겠지.’ 말 그대로 생사를 건 탈출의 뒤였다. 잠시 이렇게 휴식을 취하 며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도르의 말 그대로 이미 늦었다. 그 리고 그 이면에는 ‘그 동안 내 속 썩인 만큼 고생이나 해 봐 라’라는 식의 투정도 섞여 있었다. 시간 감각마저 잃어버린 채, 불빛 한점 없는 좁다란 통로를 기 고 기어 탈출하는 동안 얼마나 햇볕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벌 레라도 된 것처럼 몸을 바짝 낮추고 배를 땅에 대듯이 기면서 얼마나 많은 한숨을 내뿜어야 했었던가. 지금처럼 삶이 기쁘게 다가온 건 노도의 긴 삶에서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어 다니 는 내내 등에 맞았던 물방울의 감촉이 아직도 등을 간지럽혔 다. 당분간은 음지에 발을 딛고 싶지도 않았다. 오려낸 듯 양 지만 골라 밟으며 두 노인은 끊임없이 실실거렸다. “자네의 똥 가죽피리는 정말 압권이었지.” “자네야 말로. 지난번에는 코가 썩어버리는 줄 알았어.” 지금도 악취가 코끝을 맴도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어느 순간 후각 자체가 마비되어 주기는 했지만 피 냄새에 오물 냄새까 지, 온갖 잡스러운 구리구리함 안에서 버텨야 했던 며칠은 또 하나의 악몽이었다. 힐끔 뒤를 돌아 눈을 맞부딪힌 도르가 대 뜸 툴툴거렸다. 두 노인의 발걸음이 동시에 멎었다. “제기랄. 걱정이 되서 돌아가 줬었건만...” “동대륙 말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네. 아무리 지쳐 있었 어도 설마 그 정도에 홀랑 당했겠나.” “딴 건 몰라도 저 입은 죽었어야 했는데.” 도르가 낮게 이를 갈았다. 힐끔 바라 본 노도의 입가가 기묘하 게 굽어졌다. “-. 나이를 생각해야지. 얼마 안 남은 치아까지 그렇게 혹사 시키고 죽만 먹을 생각인가?”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쿨럭, 잔기침을 뱉으며 도르가 몸을 굽혔다. 노도의 눈에 설핏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입담은 좋게 씹고 있었지만 지금 도 르와 노도의 몸 상태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휴, 내 잘못이 크네.” “아니야.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걸세.” 자책하는 듯한 노도의 말에 도르가 고개를 저었다. 노도의 입 가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갔다. 자책감. 아무리 아니라고 해 도 그 무거운 자책만은 벗을 수가 없었다. 처음 기 싸움에서 밀린 게 가장 큰 실수였다. 걱정하는 마음과 동정심이 뒤얽힌 노도의 기세는, 모든 것을 걸고 덤벼오는 창 의 기세를 꺽지 못했다. 딸랑 혼자였다면 뾰족한 다른 수라도 써 보았을 터인데, 그 정도의 힘을 지닌 자를 꼼짝 못하게 잡 아두는 일은, 무예라고는 도력을 불어넣은 주먹으로 란의 뒤통 수치는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 노도에게는 조금 버거운 일이 었다. 물론, 그것도 란이 알고서 맞아주었을 때의 일이다. “그렇게 밖에는 할 수가 없었지.” “휴, 아닐세. 자네가 잘 판단한거야. 내 눈으로 보기에도 그는 스스로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네.” “휴우.” 일종의 도박이었다. 노도가 창을 잡아둘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도 도르가 랑을 업고 달아나는 통로를 지키면서 잡아둘 수 있 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 자세 그대로 버티는 것. 그게 성공 했다는 건 일종의 기적이었다. 무너질 듯 무너질 듯 휘청거리는 노도의 머리 위에 멈춰진 검 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면서 방어막을 찢어냈다. 힐끔, 힐끔 눈을 돌려 달아난 자들의 구멍을 바라보면서도 창은 검의 방 향을 돌리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두 동강 날 듯 보였으니 까. 그 정도까지 밀어붙여놓은 상대를 풀어주고 뭔가 다른 공 세를 취함으로서 탈출의 빌미 따위는 내어주고 싶지 않았으리 라. 노도의 계산은 얼추 맞아떨어졌다. “내가 지닌 선기가 오히려 놈의 마기를 자극해 버린 듯 싶더 구먼.” 그런 이유도 있었을 거라 추측했다. 창의 관심은 이상하리만큼 노도 하나에게로만 쏠려 있었다. “가엾은 놈.” “내 도력이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더 좋았을 터인데.” “허, 그런 게 아니라니까. 타인의 힘으로 되는 일이란 무릇 한계가 뚜렷한 법이야. 그 놈 스스로가 깨달아야지. 자네가 억 지로 정화시켜준다고 해서 될 일인가!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 오지 못하면 똑같은 일에 또 넘어가는 법이네.” 조그마한 굴을 통해 여러 폭발음들이 울리면서 기사들의 왁자 한 소란소리들이 전해져 온 순간 노도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통로를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어진 노도는 도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순간 노도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잡념이 깨끗이 날아갔다. 맑은 선기가 순식간에 창의 기 운을 밀어내며 풍선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 력으로는 도저히 창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그러 나 그는 도사였다. 창이 이를 악물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두 종류의 반대되는 기가 부딪히며 거센 충돌을 일으켰다. -크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는 창의 몸을 타고 마기가 폭발하듯 분출해 올라 갔다. 쾅, 콰광! 주위의 벽들이 본격적으로 깨져 무너지기 시작 했다. 노도의 등 뒤로 나있던 작은 통로 역시 순식간에 무너져 갔다. 머리 위에서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우우우웅, 땅이 울렸다. 왈칵 피를 토하는 창의 눈이 살짝 맑은 푸른빛을 띄었다가 다시 검게 돌아갔다. 순간 노도의 가슴이 두근거렸 다. -마지막 희망이 있을지 확인을 좀 해 봐야겠네!- 그는 몸을 날려 창의 공간을 밀쳐 들어갔다. 점점 더 푸른빛을 발하는 창의 눈동자가 선량한 빛을 담고 노도를 바라보고 있 었다. 노도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드럽게 풀려버렸 다. 어린 손자를 보는 듯한 안타까움. 어쩌면 창은 마공의 영 역에서 돌아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만 돌아오게나!- 노도는 손을 뻗어 창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피육!- 이질적인 감촉이 복부에서 느껴졌다. 헉, 노도의 몸이 순간적 으로 구부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땅으로 몸이 주저앉았 다. 팽팽하게 공기를 부풀리던 노도의 선기가 순식간에 조그라 들었다. --쯔. 도사 나부랭이란 역시 그게 한계였군.- 새까만 눈동자의 창이 입가의 피를 닦으며 몸을 일으키고 있 었다. -나도 연극을 좀 한 것뿐이네.- 잔인한 미소를 얼굴 가득 그리며 창은 느릿한 동작으로 검을 들었다. 와르르르 천장의 흙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힐끔 노도 의 상태를 쳐다본 그의 얼굴은 승리감으로 차 있었다. 노도의 정신은 흐릿하게 잠겨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 본 건 도르의 수심에 찬 얼굴이었다. “제길. 내가 그 때 돌아가지 않았다면 한 구의 시체로 식어있 었을 걸세. 생명의 은인도 모르고. 그 때 다 살려놔도 저 늙은 입만은 꾀매버렸어야 했는데..” “허어...” 산불로 기사들이 정신이 몰린 틈을 타 몰래 다시 통로로 기어 들어오던 도르는 중간쯤에 막혀버린 입구를 보고 순간 주저앉 을 뻔 했다. 그 와중에 옆쪽으로 난 작은 통로 하나를 더 찾은 건 기적이었다. 게다가 그 통로의 끝에서 사방이 튼튼한 돌과 쇠로 잘 만들어진 진짜 연공실을 찾은 건... 그것만으로도 모자 라 그 방에 작게 연결된 통로 하나의 끝에서 널부러진 노도를 발견한 것은 기적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하기 힘든 기막힌 연 이었다. “다 내 명이 남아서일세.” “뻔뻔함도 그 정도면 극악일세 그려. 겨우 그 정도의 속임수 도 간파하지 못하고 뱃가죽을 뚫린 사람다운 말일세.” “허허.” 연신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노도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운도 천명이라니까.” 대공가의 진짜 연공실로 보이는 곳에는 잘 마른 비상식량들과 비상약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한켠에는 지하수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하긴 흙으로 허술하게 만들어진 그런 곳에서 정말 거친 무 예를 다듬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네만, 금아도 꽤 꼼꼼한 구석 이 있었어.” “기적이었지. 정말.” 아무리 약이 좋았다지만 배를 뚫린 노도가 되살아난 건 정말 기적이었다. 아니 하나같이 기적 아닌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휴.” 노도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어느 새 기울어진 태양빛이 가로막혀 노도의 머리 위쪽에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 남은 햇볕을 찾아 조심스레 엉덩이를 걸치고 앉 은 노도가 느긋하게 등을 벽에 기댔다. “그건 그렇고 그 놈이 어떻게 우리가 들어왔다는 걸 알았을 까?” “아마도 내 선기 때문이었겠지.” 게슴츠레 눈을 깔며 노도는 뜨끈한 열기가 남은 돌 벽에 등을 비볐다. “호? 하지만 아주 우물 바깥까지 기사들을 쫙 깔아두었던 데?” 느꼈다고 해서 그렇게 정확하게 기사들을 깔기는 힘들었다. 무 언가 꺼림직한 벌레 같은 감각이 도르를 자극했다. 설마 하는 의심. 도르의 미간에 굵직한 주름이 잡혔다. “아, 아무래도 내가 만든 스크롤과 부적에 깃들었던 선기가 튀었던 모양이야. 어지간해서는 마법 탐지에도 잡히지 않는 거 라 안심하고 있었네만.” 빠직, 도르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그게 놈이 익힌 마기와는 상극이라서 말이지.” 새액 웃는 노도의 표정에는 순진무구함과 겸연쩍음이 고루 섞 여 있었다. 부들, 꽉 쥐어진 도르의 빈주먹이 가볍게 울렸다. “여러모로 흔적을 많이 남겨버린 것 같아.” “크윽! 그럼 그 생고생이 바로! 자네가 자신만만하게 붙여준 부적 때문이란 말인가!” 버럭, 지른 도르의 고함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몰려들었 지만 두 사람은 신경 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노도가 슬그 머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정답이었다. 우르르르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잠시 프란의 소식을 듣기 위해 노인들과 떨어졌던 세자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크 리아에 와서 몇 번 구경한 싸움들은 하나같이 말싸움에 해 봤 자 주먹싸움이었다. 툭 하면 검을 뽑아드는 프란과는 그런 점 부터가 달랐다. ‘특이하게 싸우는 사람들이야.’ 구경하기 위해 다가가도 위험할 게 없었다. 느긋한 기분으로 세자트는 사람들의 무리로 다가섰다. 문득, 세자트의 귀가 열 렸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뭐라도 더 가져가자며 챙긴 놈이 누군데!” “허.”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세자트는 자신도 모르게 끌리듯, 사람 들의 원을 헤치고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얼굴까지도 낯익은 두 노인이 서로의 수염을 거머쥔 채 악을 박박 쓰며 침을 튀기고 있었다. 순간 세자트의 다리가 뻣뻣이 굳었다. “이 노무 영감탱이! 생명의 은인에게!” “은인은 무슨!” 두 노인의 눈에서 불똥이 튀고 있었다. “먼저 놔!” “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자네가 먼저 놓아야지!” “한살이라도 더 먹은 자네가 어른스럽게 양보해야 하는 것 아냐!” “젊은 쪽이 몸을 자제해야지! 어이고! 늙은이 잡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가 더 위라고 할 수 없으리만큼 똑같이 닮 은 누 노인은 얼마 남지 않은 이를 빠드득 부딪혀가며 신경전 을 벌리고 있었다. 세자트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쓸어내렸 다. “어이! 이봐!” 슬그머니 등을 돌리려는데, 운도 없었다. 누 노인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 그를 불러 세웠다. “거기, 젊은이!” “세이트!” 움찔, 잠시 어깨를 떤 것뿐인데 사람들의 원이 순식간에 넓어 졌다. 그와 두 노인을 둘러싼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눈동자로 새로 등장한 세자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자트의 얼굴이 귀밑 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구경꺼리로 세워진 노예라도 된 느낌이었다. “자네 말이야! 신의 없이 그게 무슨 짓인가!” “지금까지 자네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힐끔 힐끔 서로를 노려봐 가며 노인들이 외쳤다. 고개를 푹 숙 이고 이마를 감싸 쥔 세자트의 입가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흘 러나왔다. 가뜩이나 좋은 소식도 없고 심란한데 이런 시장 통 시비에까지 휘말리다니! “빨리 와서 말리지 못해!” “수염이 다 뽑혀져야 와서 말릴 겐가!” “그냥 잘 놓으면 될 걸 가지고 왜!” “지금 그냥 놓을 상황이냔 말이네!” 버럭 지른 소리가 도르라는 노인의 고함소리에 뭍혀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기가 막힌 세자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전사로서, 사막의 고귀한 혈통의 주인으로서, 우그르트 움크의 심복으로 서, 말허리를 잘려가며 윽박질러지는 모욕을 당해 본 적이 있 었던가! “귀라도 먹은 겐가!” “어서 와서 말리지 못해!” 휙, 세자트는 등을 돌렸다. 옷값만큼 정보를 듣지는 못했지만 반나절 시장을 함께 돌아다니면서 들은 이야기들만으로도 혼 자서는 쉽게 눈치 채기 힘든 것들이었다. 물론, 프란의 사절로 서의 그에게는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한 개인 으로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크리아라는 작은 나라에 관심을 갖기에는 충분한 정도였으니. ‘차라리 적선했다고 하는 게 낫겠지.’ 여기서 뒤엉켜 개망신을 당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척 떠나는 게 훨씬 나으리라. 등짝이 시선들로 따끔거렸지만 세자트는 애 써 표정을 굳혔다. “사람을 잘못 보신 듯 하군요.” 냉랭하게 뒤 돌아 원을 나서는 세자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노인의 목소리였다. “이상하다? 세자트라는 놈은 예의 있는 젊은이라고 했었는 데.” “그러게 말일세. 무작정 검부터 뽑아드는 프란인 답지 않게 똑 소리 나는 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 헛말이었나 보군.” “!” 싱글 싱글, 수염을 거머쥐고 웃고 있는 두 노인들의 눈이 차갑 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자트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눈이 마주친 노인이 시익, 입꼬리를 잡아 올렸다. “중재 안할 껀가?” silverlit@hanmail.net 은빛의 정체 덩어리들입니다.^^. 오타난무...ㅡㅡ; 알고 있습니다. 지금 행간 조절하면서도 몇개 잡았습니다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 것 같군요. 오타는 나중에 한꺼번에 고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 정리해서 올리는 게 예의에 맞겠습니다만. 그거 따지다가는..ㅡㅡ; 막판에 한 사흘 올려놓고, 긴급삭제 공지나 올리게 될 것 같아... 이렇게 올리고 있답니다. (마감에 쫓기고 있는 터라..ㅡㅡ;) 휴, 손가락에 습관이 생겨서인지, 몇번 틀렸던 글자는 또 .... 오타를 찍는군요... 묻다..를 뭍다..로 잘못 치는 형식이 제일 많은 것 같은데. 손가락 움직임은 거의 무의식중에 찍는거라... (손가락은 의식없이찍죠. 습관붙은데로...ㅠㅠ) 눈으로 보는데도 그게 잘 안걸리는 군요. 머리로는 분명 묻다...라고하고 있으니까..ㅡㅡ;;;;요. 흑. Subject: [[The Perfect MAID]] - 109 - 생환 “휘유!” 온통 모래 투성이였다. 간간히 보이던 키 작은 나무도, 파릇한 풀들도 깨끗이 자취를 감췄다. “깨끗하네.” 모래를 파고 동굴 밖으로 기어 나온 하르크의 첫 소감이었다. 며칠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위를 긁던 바람소리가 그친 건 오 래지 않았다. “우선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작정 파고 들어간 바위 아래가 안 쪽으로 움푹 패여 있었던 건 일종의 기적이었다. “뭐, 아르페이나의 가호를 받는 아이들이니까.” 으쓱 어깨를 움직이며 하르크는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폈다. 바 람이 불기 전에 있었던 산과 골짜기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 다. “물이 문제네.” 하르크의 얼굴빛이 어둡게 변했다. 비상용으로 들고 다녔던, 그 와중에 모든 것을 다 버리면서도 꿋꿋하게 챙겼었던 물들 이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살아도 아직 산 게 아니구먼.” 말도 사라진 와중에 오직 방향 하나 믿고 길을 떠나가야 했다. 자신이야 호되게 단련된 데다가 소진되기는 했어도 기본 마나 가 남아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셋을 남겨둔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입을 딱 다물 어버린 것이, 영 상대하기 뻑뻑했다. “지나간 거군요.” 푸스스 머리를 내밀며 클레이브가 밖으로 따라 나왔다. 아홉 살의 표정을 잠시 되찾았나 싶었던 소년은 한 순간에 어른의 얼굴로 돌변했다. “사막.” 깊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가 주위를 둘렀다. 차분히 서서 옅 게 흐르는 바람을 느끼며 소년은 잠시 침묵했다. “란님은 무사하겠죠.” “물론이죠. 이런 바위 따위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버티고 남을 괴물이니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당당하게 말을 꺼냈던 하르크의 말끝이 흐릿하게 먹혔다. 힐끔 뒤 돌아보는 하르크의 눈에 집채보다도 더 큰 바위가 들어왔 다. 이 바위까지도 바람에 흔들 흔들 했었다. 말로는 괜찮다며 소년들을 달랬지만 얼마나 많이 심장이 펄떡였었던가! “뭐, 백 년 전 전설에서도 깡다구 하나로 사막을 가로질렀었 다고 하지 않았소. 폭풍 따위가 란님을 어찌 할 거라고는 상상 도 않소.” “그래. 그럴 꺼야.” 흐릿한 미소를 떠올리며 클레이브는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 침 대에 누워 펼쳐들었던 동화책의 한 자락에서 느꼈던 사막은 모험과 낭만으로 가슴 설레이는 대지였었다. 그랬었는데. “건조하군요.” 공기부터 턱턱 막혀왔다.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은 옅게 퍼져있 던 습기마저도 모두 가져가 버렸다. 사막은 꿈도 무엇도 아닌 괴팍한 현실이었다. “괜찮은가요?” 파스락, 모래를 헤치며 스테판과 크레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새파란 하늘에 구름한점 없었다. 작열하는 뙤약볕이 정수리를 따갑게 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나지막히 크레이가 입을 열었다. 짧은 침묵이 그들 사이로 내 리 앉았다. 말도 물도 식량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요?” 마을조차도 말이다. 바로 앞에 조금만 더 달리면 만날 수 있을 듯 했던 작은 마을은 모래 아래 파묻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 고 사라져 있었다. “휴.” 암담했다. “목이 칼칼하니 술 생각이 절로 나는구먼.” 그 많던 음식들이 다 어디로 쑤셔 박혔는지 모를 정도로 꽉꽉 먹어치운 도르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술타령이었다. 울그락 불그락 안절부절 못하며 식탁 앞을 지키고 있던 세자트의 안 색은 보기 처참할 정도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음, 돈이 없는 건가?” “설마, 프란의 그 유수한 가문들 중에서도...” “여기! 술 제일 좋은 걸로 한 병 가져와요!” 세자트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씨근덕, 숨을 몰아쉬고 손가락 을 번쩍 들어 종업원을 부른 세자트는 식당 안 사람들의 시선 이 모조리 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나운 눈으로 두 노인을 노려봤다. ‘젠장 할! 빌어먹을! 재수가 없으려니!’ 몰래 뒤로 빼돌려 자분히 밟아준 후,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 아낸 건지를 물어보려던 시도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어쩐지 오라는 대로 졸졸졸 잘도 오더니만...’ 급한 데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으슥한 골목으로 두 노인을 끌 어들인 것 까지는 좋았다. 자신이 누구인 줄 알면서도 겁 없이 불러댄 건 단순한 겁대가리 상실 때문이 아니었다. 노인들은 새 하나 잡을 힘도 없어 보이는 비루먹은 팔목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제기랄! 단 한 놈도 버티지 못하다니!’ 순식간이었다. 말 그대로 한순간. 프란에서부터 그를 따라와 호휘 했던 다섯 사람의 그림자들이 바닥에 뻗어버린 건 말 그 대로 찰라였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공중에 떠올랐는지도 모른 채 패대기 당한 그림자들은 두 눈을 뻐끔 뻐끔 뜬 채 입을 열 지도 못했다. 그 중 움직일만했던 몇 사람이 몸을 일으켜 다시 덤벼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 더 비참했다. 두 노인 중 어떤 놈의 손에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모르게 그들은 다시 맨 바닥을 뒹굴렀다. ‘운동을 하고 나니 배가 고파지는 구먼.’ 보란 듯이 손을 탈탈 털며, 쓰러진 그림자들을 하나 하나 일으 켜 세운 도르라는 노인이 빙글 웃음 지었다. 세자트의 등골이 오싹하게 저려왔다. 뱀의 눈을 마주친 개구리가 된 심정이 그 런 걸까. 사지를 옴쭉달싹 할 수가 없었다. 발걸음 소리도 없 이 도르라는 노인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세자트는 처음으로 알았다. 지금껏 반나절을 함께 다녔지만 단 한번도 두 노인의 인기척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시장 속이라 혼잡해서 그러리라 생각했었건만. 그건 착오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두 노인 은 그나 그가 동행해 온 무력으로는 상대도 할 수 없는 최강 의 존재들이었다. ‘크리아의 그림자는 카슬 최고의 수준이라더니!’ 빠드득 이나 가는 수밖에. “이봐! 이런 젊은 사람이 정신이 없어서는!” 툭, 어깨를 두드리는 감촉에 보니 노도라는 늙은이가 징그러울 정도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까득 까득 일어서는 이마 의 혈관을 억누르며 세자트는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는 볼을 간신히 움직여 미소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아, 네..에.” “아무리 지쳐 정신이 없었기로서니, 이 늙은이들만 하겠는가! 게다가 저녁나절에 손을 쓴 것도.” “아, 네. 제가 따르죠.” 술병을 손에 들고 휘휘 돌리며 보란 듯이 툴툴거리는 도르의 손에서 병을 나꿔챘다.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병목을 들고 기울였다가는, 살벌한 눈빛에 저절로 두 손을 받쳤다. 쪼르륵 술 흘러가는 소리가 어찌 자신의 눈물소리처럼 들리는 걸까. ‘제길, 움크님을 위해서는 단 한순간도 낭비할 수 없건만!’ 세자트는 감히 두 노인에게서 반항할 수가 없었다. 찡긋, 서로 마주친 두 노인의 눈빛이 짓궂게 빛을 발했다. ‘의외로 쓸만한 놈인 걸?’ “크리아로 돌아가겠습니다.” 망연자실 서 있던 일행들에게 말을 꺼낸 건 클레이브였다. “네?” 하르크의 인상이 구겨졌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라도 생겨 서로 헤어졌을 때는 열의 사막 부근의 마을 트위리에서 만나기로 란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제 와서 방향을 바꾼다면... “아, 그렇지만...” 막 입을 열어 뭔가를 항의하려던 하르크는 문득 클레이브가 바라보는 방향을 알아챘다. 그들이 가려고 했던 방향. 아직 다 떠오르지 않은 태양을 기준삼아 하르크는 방향을 가늠했다. 그 쪽은 분명 란과 만나기로 했던 작은 마을이 있던 곳이었다. 하 르크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 것도 없는 모래벌판에 지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악명 높은 열의 사막이 한꺼번에 늘어나 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젠장. 그 쪽도 모래바람에 깡그리 묻혔겠구먼.’ 기다리고 비빌 언덕이라도 있어야 기댈 수 있다. 지금 상황으 로서는 억지로 트위리까지 억지로 갔다가는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다들 말라 죽어야 할 형편이었다. 망설이는 하르크의 앞으로 클레이브가 지나갔다. “머리가 맑아진 기분입니다.” 자박, 모래 밟히는 소리. 햇볕 아래로 걸음을 딛는 클레이브의 머리카락이 햇볕을 받아 후광처럼 빛을 발했다. “네?” “왠지 계속해서 도망만 치는 것 같아서 굉장히 비참했었거든 요.” “..................” 하르크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클레이브가 느끼고 있었을 그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그 또한 현실을 피해 달아나는 자신을 경멸해 본 과거가 있었 지 않았던가. 작은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치고 흘러갔다. 클레 이브의 목소리가 유달리 맑게 들려왔다. “달아나 봤자 운명에서 피할 수는 없다고 누군가 말했었죠. 운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깨고 부딪혀서 이겨내는 것.” “네. 그것뿐입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망설이는 것 자체가 여유 있는 자의 사치 일 뿐이었으니까. 하르크는 재빠르게 짐을 챙겼다. 그리고 한 낮의 태양을 피해 모두 바위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마른 나무 하나 없는 모래사막의 낮을 횡단하는 것만큼 미친 짓은 없었 으니까. 네 사람은 조용히 해가 중앙을 지나기를 기다렸다. “..크리아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생각이죠?” 차가운 돌 벽에 기대앉아 체온을 식히며 스테판이 조그만 목 소리로 말했다. 동굴 안이 작게 윙윙 울렸다. 바깥을 물끄럼 바라보고 있던 클레이브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흠칫 스테판 이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만져서는 안 될 상처라도 건들인 느낌이었다. “글쎄.” 클레이브는 낮게 한숨을 내쉈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하르크는 소년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침묵을 지켰 다. 바닥에 누워있던 크레이가 부스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 다. “돌아가는 것이 옳은 건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일그러진 얼굴에는 각오가 서려 있었다. “란님의 여행을 따라 드래곤을 만나러 가는 게 내 여행이 아 님을 알아. 그건 란님의 여행이지, 내 것이 아니야.” “클레이브님...” “이 모래폭풍은 어쩌면 그것을 내게 알려주기 위해서 불어온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 이렇게 폭풍을 만나 란님과 헤어진 것 자체가 내 본래의 운명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일 지도 몰라.” 기죽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크레이에게 싱긋 웃음을 지어 보인 클레이브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몸을 일으켜 크레이 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크레이의 어깨를 두드 린 클레이브의 귓불이 붉으스름 달아올라 있었다. “좀 전에는 미안했어. 나도 흥분했으니까.” “아, 아뇨. 저야말로 괸한 소리를 꺼내는 바람에.” “사과는 제게도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생글거리며 스테판이 끼어들었다.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앉아 양 팔로 두 사람의 목을 힘껏 끌어안은 그가 머리를 맞댄 두 사람에게 작게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화날 일, 짜증날 일, 힘든 일들이 더 많아질 겁니 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라고 들었거든요.” 뜨끈한 체온이 불쾌하지 않았다. 어느 새 세 소년은 서로의 목 을 끌어안고 동그란 원을 만들고 있었다. “아.” “이렇게 함께 만나 길을 걸어가게 된 건 운명의 여신께서 주 신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아마 체념하 고 매 맞는 소년으로 그냥 살아갔을 거예요. 아무런 희망도 없 이.” “그렇지 않아. 스테판은...” “아뇨. 제가 꿈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클레이브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클레이브님 같은 주인님이 있었기에 저도 꿈을 꿀 수 있었어요.” “그건 저도마찬가지입니다.” “크레이.. 난.” 울컥, 클레이브의 목소리에 물기가 베어갔다. 크레이의 눈이 어떻게 사라진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클레이브의 존재를 증오 한 한 인물의 사주에 의해 그는 빛과 어머니를 빼앗겼다. 크레 이의 눈에 대한 말이 나올 때 마자 클레이브의 심장에 일어나 는 비수가 박히는 듯한 통증은 동정심 같은 감정 때문이 아니 었다. 그건 지독한 죄책감이었다. 클레이브의 목에 걸려있던 크레이의 팔이 단단하게 감겼다. 정수리가 아플 정도로 세게 맞닿았다. “아버지는 암살자셨죠. 알고 있습니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매마른 눈동자는 따스했다. 잠시 고개를 떼고 부드럽게 웃음지은 크레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보이지 않는다며 미안해하던 무너진 소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도 모르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눈이 사라지게 됐던 그 날이 왜 다가왔었는지를 모르지 않았기에... “원망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크레이...” “티 낼 수는 없었지만, 솔직히 원망했었습니다. 클레이브님을 원망했었고, 죽어버렸다는 그 귀족을, 노예상인을, 그리고 아버 지를...” 격정도 떨림도 없었다. 크레이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담담하고 차분했다. 스테판의 귀에는 그게 더 슬프게 들려왔다. 얼마나 삭혔기야 저만큼 승화시킬 수 있을까. 투둑, 스테판의 악물린 입가를 타고 눈물이 떨어졌다. “원망했었습니다.” 억눌려 있던 진심이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흘러나왔다.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망스러웠죠. 아버지가 그렇 게 잠이 들고, 혼자 버려지듯 남겨졌을 때도 원망했었습니 다.” 아무도 더 이상 말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순간의 감정일 뿐이죠.” 길고도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오래 가슴속에 묵히기만 했던 이야기일까. 클레이브와 스테판을 좋아하면서도, 란과 하 르크를 좋아하면서도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그 괴로운 감정 들과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싸워야 했었을까. “그래도 늘 좋아하는 마음들이 먼저였으니까요.” “크레이...” 고개를 저었다. 클레이브의 말을 가볍게 막은 크레이는 다시금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어차피 겪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하 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알기 시작했죠. 자신 밖에 모 르는 사람들이 타인을 얼마나 쉽게 짓밟는지...” 피식, 누군가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 한 건 처음이네 요.” “그렇네.” “그런걸요? 의외로 후련하고 개운한 일이었군요.” 자잘한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소년들은 서로의 목에 걸치고 있던 팔을 풀었다. 더 이상 억지로 묶어두지 않아도 됐으니까. 더 이상 상처입지 않을까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작은 믿음, 어느 순간인가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했던 그 든든함은 어느덧 자라 기대앉을 만한 두께를 지닌 나무가 되어 있었다. ‘애늙은이들 같으니.’ 킥킥, 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잠 든 척 눈을 내리감고 있던 하르크의 눈시울이 시큰하게 젖었 다. 끄응 몸을 뒤척이며 하르크는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 록 눈물을 닦아 내렸다. 얼핏 보인 모래의 색상이 점점 황토 빛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하르크는 동굴을 빠져나왔다. 중천을 지나간 태양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다. 개면적은 얼굴로 뒤통수를 벅벅 긁어 내린 하르크가 퉁명스레 뒤돌아 외쳤다. “자아! 충분히 들 쉬었으면 이제는 정말 출발해야 합니다!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징그러운 모래알들이 다 사랑스럽게 보이는 오후였다. 팔 다리 를 힘차게 쭉 뻗으며 하르크는 힘차게 등에 짐을 짊어졌다. ‘짐이 이렇게 가벼웠었나?’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었다. Subject: [[The Perfect MAID]]-110-란과 움크 “왜 나를, 우리를 구해준건가?”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의미까지 같지는 않았다. 내려다보던 오만한 시선은 깨끗이 사라졌다. 한 발 물 러나 조용히 답을 기다리고 있는 움크는 마치 어린 제자 같았 다. “글쎄.” 굳이 이유는 없었다. 삼백여년의 삶, 처음 백년은 아무 생각 없이 검만 휘두르고 살았고, 다음 백년은 역시 마찬가지도 아 무 것도 모른 채 피를 흩뿌리고 살았다. 얼마나 많이 죽였을 까. 덤비면 덤비는 족족 베어 넘겼으니 그 피가 흐르고 흘러 내 명호에 피를 상징하는 혈이 붙었을 때, 그때서야 난 검을 멈췄다. 그리고 이 땅을 찾아왔었다. 두 놈의 친구들과. 그 이 후로 사람을 죽인 기억은 거의 없다. 부러 자제하기도 했고, 죽이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내게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 다. 그러나. 파괴에 익숙해진 내 몸은 사방을 헤집고 짓밟으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지칠 대로 지쳐 돌아간 동대륙 내 고향에 서 노도를 만났다. “난 당신을 죽이기 위해 따라왔었다.” 침울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 움크의 어깨는 조금 아래로 처져 있었다. 저런 모습과 행동들이 귀엽게 보인다고 한다면, 저 놈 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움크와 기사들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난 진심으로 저놈들에게 위협감을 느낀 적은 없었으니까. 단지 귀찮고... 성가신 존재들 정도? 아, 추가하자면 내 귀여운 주인 에게 위험이 될 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 이었던 자들. “아, 아.” 처음 몇 놈을 벤 순간 깨달았다. 피의 분수가 터져 나오고 동 료의 죽음에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내는 놈들의 눈을 본 순 간 정신이 들었다. 피에 손을 다시 담근다는 일이 얼마나 덧없 을지를. 적당히 후려패고, 적당히 깨부수고, 적당히. 적당히. 그 동안 내 손에서 살의가 빠져나갔던 건 단지 아르님의 잔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난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왜지?” 꼭 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 움크는 고집스럽게 질문을 되풀 이했다.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이제 백년도 묵지 않은 어린 놈에게 이런 시선이나 받고 있다니. 나도 참 너글해졌다. “글쎄. 딱히 이유는 없겠지만.” “없겠지만?”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난 자신도 모르게 움크의 머리에 손 을 올렸다. 흠칫, 놀라는 듯 했던 움크가 자세를 바로하고 도 전적으로 날 쏘아봤다. 스윽, 손이 움직였다. “뭐, 요즘 들어 투절해진 보모 정신이 움직였다고 정도 해두 지.” 움크와 몇몇 기사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난 움크의 머리를 슬 슬 쓸어내리며 빙글 웃음 지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숨어있 던 모래들이 후두두둑 쓸려 내려갔다. “마스터의 경지도 오르지 못한, 어린아이들을 두고 진심으로 화를 낼 뻔 했었으니까. 그 사과라고 해도 상관없고.” 쩡, 얼음 얼어가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처지도 잊은 채 또다시 검을 반쯤 뽑아내던 자들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잠시 멍청하게 서 있던 움크는 내가 머리 쓰다듬기를 그치자마자 뻐끔 입을 움직였다. “자, 잠깐만요. 마스터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 창백한 안색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건 지난 며칠간의 모래폭풍 동안 내 기의 막 안에서 목숨을 유지했던 다른 기사 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아직 채 백년도 살지 못했으니, 어린아이라는 소리 들어 도 괜찮을 듯싶은데?” “흠!” 한숨을 터트리건 경악을 터트리건 상관없었다. 비밀일 것도 없 고 밝혀서 안될 이유도 없다. 클레이브가 죽었다면 나 또한 하 녀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될 대로 되라’라는 식의 기분이 날 지배하고 있었다. “하긴, 그 것도 못산 애늙은이들도 있지만.” 지난 며칠간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다. 한 편으로는 내공을 일으켜 막을 쌓고, 한 편으로는 놈들 채 통째로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지 않도록 발악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헝클어진 약 장처럼 뒤엉켜 있었다. 처음에는 걱정으로 미칠 것 같았다. 어 차피 죽이려 했던 놈들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두고 나가 클레 이브들을 찾아 헤매고 싶었다. 벌떡 몸을 일으켜 기의 막을 거 두고 날아가고 싶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이 밀어닥쳤었던가. ‘살인.’ 노도의 목소리가 날 막았다. 나가려면야 얼마든지 버리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정면으로 맞부딪혀 베는 대결이 아닌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내가 버린다면 틀림없이 그들은 죽어버 릴 테니까. 순간적인 감정으로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을 버린다 면... 노도와 클레이브를 만났을 때 들 낯이 없으리라. 그걸 깨 달은 순간 마음이 비워졌다.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는 거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할 수 있 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이건 틀림없이 보모로서의 직업정신이 뼈 속까지 박혀버린 걸 꺼야.’ “뭐, 하르크가 잘 했겠지.” 그렇지 못하다면 죽도록 욕먹어가며 환골탈태까지 시켜 그림 자로 삼은 보람이 없다. 나처럼 십수 명의 기사들을 무더기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었을 테고, 한 품에 품으면 쏙 들어올 아이 셋 지키는 일이었으니까. “살아 있을 꺼야.”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움크의 얼굴이 어두웠다 “물론이지. 하르크 역시 강한 자이니까.” “그렇습니까.” 알 수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움크가 낮게 반복해서 읊조 렸다. 그건 그렇고 경어를 쓴 걸까? 어느새 보니 기사들이 모 조리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뭐지?” 느리게 움크의 무릎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가장 존경하는 존재에 대한 예의를 갖춥니다. 동시에, 저희들의 생명을 구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 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Lord 시여.” 그의 말을 뒤따르듯 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릎을 사람들의 몸이 흠칫 했다. 굳이 삼켰던 말을 확인하듯 되짚은 목소리가 거슬렸었을 지도 모르지. 난 목소리가 흘러나왔던 방 향으로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을 감 추지도 않은 채 날 응시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었다. 아마 ‘론’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출신이었던 것 같다. “왜 날 Lord라고 생각하지?” 론은 주저하지 않았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사는 흔하지 않으 니까요. 그것도 백년이라는 시간을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존 재는 더더욱 말입니다.” “그렇군.” 부인하고 싶지 않았다. 갑갑했다. 로드면 로드고 란이면 란이 다. 신분을 감춰야 하녀노릇을 하기 쉽네, 어쩌네. 이제 와서는 다 족쇄로 변해 날 귀찮게 옭아매는 방해물들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런 거겠지. 내가 변덕이 나서 지금 하녀 노릇을 좀 하려고 한다. 어쩔래. 막을 래? 누가? 네가? 말 그대로 웃기는 일이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Lord라는 호칭도 너희들 마음대로 붙여 부르던 과거의 토막일 뿐이니까.” “무례를 용서하신다면 한 가지만 더 질문해도 괜찮겠습니 까.” 론이라는 자의 행동에 용기라도 얻은 것처럼 움크가 입을 열 었다. 싱긋 웃는 폼이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기사들 을 타고 작은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작고, 밝고 명랑한 술렁임. 저들의 눈에 비친 난 황궁 앞뜰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속임수 를 써 달아난 무례한 하녀가 더 이상 아니었다. “마지막이야.” 말과는 달리 목소리가 차가워지지 않았다. 짧은 시간, 내가 돌 봐주지 않으면 안됐었던 그 환경 속에서 정이라도 담뿍 들어 버린 걸까. “왜 그 소년을 주인으로 선택하신 거죠?” 쫘악 관심들이 쏠려왔다.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푹 숙인 놈들 의 기세조차 활활 타올랐다. 꼴깍 마른침을 삼킨 움크의 눈이 전에 없이 진지하게 굳어져 있었다. “글쎄.” 어깨를 으쓱 털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 줘야 좋을까. “살다 살다 할 짓이 없어서.” 난 왜 그 어린 아이를 주인으로 선택하게 되었을까. “하녀 노릇이나 한번 해 볼까 하고 왔었는데.” 와그작, 움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겨우 그런 시시한 이유였냐...라는 말이 목구멍에 턱 걸려있는 표정이었다. 간신히 웃는 얼굴은 만들어 보였지만 한계를 넘는 충격으로 인해 안면근육이 제어를 거부할 때 일어나는 그런 기묘함일까. “그런 얼굴 할 것 까지는 없어. 운명이었으니까.” 그래, 운명이었다.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흘러 가 버렸다. 내가 이 정도까지 클레이브라는 애늙은이를 아끼게 될 줄은 아르페이나나 다른 신들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자네는 이미 나 같은 하녀를 필요로 할 나이가 아니 고.” “저, 전!” 쉿, 난 손가락을 들어 입술을 막았다. 내 무력을 아는 존재치 고, 타인을 지배하는 야망을 지닌 존재치고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던 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건 그 뿐이었다. 내가 지닌 무 력은 내 삶의 목적이지 그들 삶의 도구가 아니었으니까. “대 프란 제국의 우그르트 움크가 아직도 보모 노릇이나 겸 하는 하녀를 필요로 한다면 그것도 수치겠지.” “.....................” “지금의 난 유모 겸, 보모를 겸하는 하녀일 뿐이라네.” “그, 그런...” “열다섯 살 이후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 휙, 남아있던 바람이 불어왔다. 난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들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렸다. 이제는 슬슬 내 어린 주인을 찾아 나 서야 할 때였다. 저들은 어른이고, 사막인이다. 이 정도라면 죽 지 않고 살아 돌아갈 길쯤은 스스로 찾을 수 있겠지. 이 대지 는 강한 존재들만을 길러내는 땅이었으니까. 망설임은 없었다. 딱 다물어진 굳은 얼굴은 각오와 오기로 단 단히 뭉쳐 있었다. “돌아올 생각은 말아라.”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다. 그림자와 전사는 달랐다. 맞서 싸우 는 것은 전사들이 하겠지만 그 외의 것들이라면 모두 그림자 의 몫이었다. “사막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시체를, 이라는 말을 생략하기는 했지만 모두들 알고 있었다. 움크는 절대 살아 돌아와서는 안 된다. 사막의 모래폭풍에서 살아 돌아온 건 백여 년 전의 Lord일행 뿐이다. 그리고 몇몇 전설 속의 주인공들. 그들이 다였다. 실제 로 살아 돌아온 사람 따위는 본 적도 없었다. 마침 잘 기회를 타서 우그르트 우트트에게 대세가 기울어져 가고 있는데 이런 때에 운 좋게 폭풍이라도 피한 움크가 덜컥 나타난다면 다 끓 인 스튜에 재를 뿌리는 꼴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경우에 따라서, 움크가 운 좋게 모래바람을 피해 살아오는 것 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다면, 정면으로 부딪혀 죽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들이 나서야 했다. 수단과 방법이란 암살 과 독살. 그리고 죄를 덮어씌울 올가미였다. 만의 하나를 대비 한 각본들은 모두 짜여져 있었다. 한 장의 천막 밖에서는 기사들이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대화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움크가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 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의 주 흐름은, 이제 카느로의 계승이 확실시 된 우트트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서는 어떤 승리와 전리품이 기다리고 있을까였다. ‘머저리들.’ 보이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들은 아니다. 알고 있다. 저런 자들 이 능수능란하게 정치를 해 나가며 그림자인 자신들을 움직여 적을 손쉽게 해치운다. 어리버리한 가면들을 뒤집어쓰고 허울 좋게 웃고 있는 저 모습들은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진 실이다. ‘늘 한 발을 빼고 있는 놈들.’ 우트트의 심복들이라지만 진정한 심복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 수였다. 그림자들처럼 철저히 훈려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이익 관계에 따라 달려와서 충성을 맹세한 자들일 뿐, 그 충성 역시 강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그런 약한 맹세일 따름이었다. 추격대 그림자들의 수장을 맡은 이는 그림자들 중에서도 론과 더불어 우트트를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심복중의 심복 출신 이었다. “마법사들의 모임에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음.” 나갔던 그림자들 중 하나가 조용히 천막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트위리는 모래더미 속으로 완전히 파묻혔습니다.” “생존자는?” “일찌감치 마법으로 달아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전멸했습니 다. 오아시스 자체가 완전히 파묻혔습니다.” “흐음.... 마법의 장벽은?” 오아시스의 샘은 모래에 묻혀도 다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마 법력으로 철저히 보호되고 있었다. 보고를 해 온 부하가 침울 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 왔다. 트위리는 열화의 사막 남쪽으로 건너가기위한 중요한 거 점 중 하나였다. “그 어떤 모래 바람에도 단 한번도 이렇게 무너진 적이 없었 건만.” 계절이 다른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부족한 분의 힘을 아 르가 불어넣은 게 원인이었다. 완전히 섞이지 않은 신력이 돌 출되며, 마법의 진을 부수어 버렸다. 아르 자신도 예측하지 못 했으니 다른 인간들이 알 리는 없었지만 지금 대륙 전체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는 그들에게 잘못 하면 허리가 끊길 수도 있 다는 말은 꽤나 골치 아픈 위협이었다. “남쪽의 부족들이 반발하면 문제가 심각한데.” 그렇잖아도 수도가 북쪽으로 결정되면서 열의 사막 이남의 부 족들은 은근히 반발했었다. 이렇게 나뉘어 질 바에는 차라리 자신들은 프란제국의 이름 하에 묶이지 않겠다며 화를 내는 우그르들이 고개를 숙여준 건 현 카느에 대한 존경 때문이었 다. ‘뭐, 내가 지금 염려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것은 없겠지.’ 카느가 바뀌고 열화의 사막을 건너기 더 힘들어진다면 반발이 본격화 되겠지만 그는 우트트를 믿고 있었다. 그는 현명한 카 느가 될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휴우.” 머리를 털어내기 위해 그는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움크님의 행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 한다. 그것도 세자트님의 남겨진 그림자들 보다 빨리!” 중요한 건 그거였다. silverlit@hanmail.net 은빛의 정체 덩어리들입니다.^^. 일일연재를 한지... 일주일이 훌쩍 넘었군요.ㅡㅡ; 보름에 책 한권이 나오는 분량이라아... 만들었던 비축분을 모조리 쓸어넣었습니다만. ㅡㅡ; 5권 분량이 끝나면 잠시 쉬기는 해야 할것 같습니다. (지치는군요...ㅠㅠ) 뭐... ^^;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말이예요.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드림워커에도 답글 남겨주심 감사...ㅠㅠ 꾸벅. 모두 행복하시기를. 은빛 Subject: [[The Perfect MAID]]-111-란과 움크 “돌아간다.” 개운한 얼굴이었다.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 움크의 미소 에 공명하듯 하나 둘 살아남은 기사들이 하나 둘 웃음을 터트 렸다. “하하하하하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또 유쾌했다. “정말, 전설을 직접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로드에게 검을 뽑아들고 발악을 했었다니!” 각자 한숨을 내지르며 내 뱉은 소리에 문득 공기가 가라앉았 다. 얼핏 봐도 처음 함께 출발했던 인원의 반도 남지 않았다. 몇몇은 란의 최초의 일격으로 죽었고, 몇몇은 모래바람에 쓸려 날아갔다. “아, 아. 검을 든 이상 죽을 각오는 되어있으니까.” 모래땅을 툭툭 차며 누군가 말했다. 어깨를 으쓱, 흔들었다. 죽 은 동료가 안타까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 또한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로드를 맞아 검을 뽑고 죽었다. 전사로서 그런 죽음은 영광이기도 했다. ‘개죽음에 가까운 발악이기도 했지만...’ “하녀와 아이 둘은 이 모래사막에서 죽은 걸로 한다.” “네, 그래야겠죠.” “로드를 만났다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겁니다.” 움크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습관처럼 한 마디씩 말들이 흘러 나왔다. 시익 웃는 움크의 표정도 이전과 달리 넉넉했다. “당연하지.” 란이 아무리 널찍하게 힘을 풀어 품어 줬다지만 열명이 넘는 인원들이 편히 있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처럼 옹기종기 붙어 사흘씩이나 있다 보니 정이 들 데로 들어버렸다. “휴, 밖이 좋기는 좋군요.” 기지개를 있는 데로 펴며 한 사람이 말했다. 픽 웃으면서도 전 염되듯이 팔 다리를 뻗는 기사들이 나른한 아우성소리들을 질 렀다. “하녀 마스터라는 말이 돌 때부터 정말 특이하다고는 생각했 었지만.” “맞아. 겨우 건달 몇 손봐 준 걸로 그런 소문까지 나다니 그 때는 당황했었지.” “루데릭이었나? 그 겉으로는 총명한데 좀 어리버리 했던 기 사 녀석. 허풍장이에 겁쟁이로만 생각했었는데. 미안한데” “정말로 로드씩이나 되는 존재가 하녀 노릇이나 하고 있다고 누가 믿겠어. 마찬가지지. 우리야 직접 겪어 봤으니 믿는 거지 만.” 모래폭풍에 맞서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지 않았다면 절대 믿 지 않았다. 몰살을 당해 한 구의 시체가 되었더라도 믿지 않았 으리라. Lord라는 이름은 그만큼의 무게와 힘을 지니고 있었 다. “뭐 그만큼 특이하니까, 그 경지까지 갈 수 있었던 건 아닐 까?” “흠, 그럴지도 몰라. 일반적인 상식대로 사는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열다섯 살 이상은 상대 안한다니!” “오해하기 딱 좋지 뭐야.” 절래절래 흔드는 고갯짓을 따라 모래가 풀풀 날렸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움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이봐. 거기까지 하자구.” “맞습니다.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죠. 명예가 달린 일 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론이 기다렸다는 듯 가볍게 찬성하고 나섰다. 기사들의 입이 꽉 닫혔다. 힐끔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다. 경지에 이른 자들의 감각이 어떻다는 건 지난 사흘간 모래구덩이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그 거친 바람소리와 귀가 울리는 거대한 굉 음들 속에서도 란은 아주 작은 투덜거림 하나를 놓친 적이 없 었다. “자아, 우리를 지켜주던 차양은 사라졌으니 이제 슬슬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들을 생각해야지.” “흠, 꼭 열의 사막이 통째로 들려온 것 같군요.” “맞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뿐이었다.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에 어 딘가 쉴 그늘을 찾아야 했다. 몇몇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리에 두르고 있던 갑옷을 벗어 삽처럼 들었다. 팍, 땅에 박힌 모래 들이 자잘한 울음소리를 냈다. “뭐, 완전한 백사는 아니군요. 돌 섞인 모래니까, 파면 누울 공간은 나오겠는데요?” “...........이봐, 누울 공간이라니.” 말을 꺼낸 기사가 씩 웃었다. “그것도 못 만들면 하루 나절도 안돼 저 태양 볕 아래서 말 라 죽을 꺼야. 정말로 죽으면 파주지도 못하니 서두르라고 들.” “슬슬 돌아가야 할 때도 된 것 같아.” “휴, 짧은 자유가 끝나다니. 정말로 슬프네 그려.” “허허, 이사람 슬픈 얼굴이 전혀 아닌데.” 주거니 받거니 잔을 건네는 노도와 도르의 입은 한 순간도 쉬 지 않았다. 묵묵히 앉아 빈 잔에 술을 채우는 세자트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뭔가 꼬투리를 잡힌 듯도 하고,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것도 있어 심상치 않은 신분의 사람이라 싶었는데, 가뜩이나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지금과 같은 비상시에 붙잡혀서 술이나 따르고 있는 상황이라니! 아무리 곱게 보고 좋게 생각하려 해도 답답 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공 측에 접근해야 할 지, 하노베이 백작 측에 접근해야 할 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건만!’ 본디라면 움크의 편을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페르로 이 후작이었다. 그러나 그가 반쯤 실각한 이상 세자트는 다른 사람을 찾아야 했다. 프란의 명예와 이익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움크를 위해 외교력을 발휘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사실 그 를 위해 먼저 온 셈이었다. 신발에 불꽃이 튀기도록 달리고 달 리며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접촉을 시도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지금처럼 이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일 은... ‘미칠 지경이야.’ 말 그대로 할 짓이 아니었다.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정체를 모를 노괴들의 실력은 어지간한 게 아니라서, 그의 특별한 그림자들조차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검술보다는 학문 을 익혀왔던 세자트가 몰래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녹록하지 가 못했다. “여보게나! 젊은 사람이 뭘 그리 안절부절이야! 사람이란 자 고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라네! 여유! 자네가 자네 주인을 잘 보필하려면 제일 필요한 게 바로 그거잖나!” “으윽...” 한쪽 눈까지 찡긋 감아가며 농을 걸어오는 노도라는 노인은 가끔씩 정곡을 찌른다. 성질 급한 움크를 말리기 위해 나름대 로 인내심을 무던하게 길러 두었었지만, 그 역시 본래는 불같 은 기질의 소유자다. 세자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술잔으로 시 선을 기울였다. ‘역시 정체를 알 수 없어...’ “그건 그렇고, 역시 힘은 베이르 대공 저하께 실려 있겠군.” “그럼 그렇지. 아무리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힘을 운운 하더 라도 프란과 같은 대국과의 전쟁에서 그들이 손을 들어줄 만 한 여유가 있을 리 없지. 아무래도 크리아는 군사도 수적으로 적고...” “그럼. 용병을 부린다 해도 그렇겠지. 용병은 돈으로 사기는 하지만 정말로 좋은 용병들은 돈만으로는 움직여주지 않으니 까.” ‘으윽, 또다.’ 세자트의 귀가 활짝 열렸다. 눈이 마주친 도르라는 노인의 눈 가가 살짝 휘어진다. 세자트는 빈 입맛을 다셨다. 정말 귀찮고 정말 지쳐서, 품위 없더라도 앉은 자리에서라도 졸아볼까 하고 있으면 느닷없이 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뭐, 이래저래 분열되는 듯 보이더라도 전쟁이 터지면 결국 한 덩어리로 뭉치고 말 테니까. 나라가 있어야 영지도 있고 부 와 명예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있지만 아마 장사속도 있을 게네. 이 크리아만큼 국 왕으로부터 모든 귀족과 사람들이 장사에 대해 훤한 나라가 어디 있겠나. 프란이 이 땅을 점령한다면 틀림없이 함대를 만 들어 윗 대륙으로 넘어갈 발판 정도로나 사용하겠지.” “흠.” “그렇게 된다면 이 땅의 이점들을 이용해 해 먹던 장사꾼들 은 무수한 손해를 볼 걸세. 해적이야 없어지겠지만, 그런 살벌 한 분위기 속에서 어디 물건을 살 마음이 들겠는가.” 세자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땅을 손에 넣는 다면 확실히 군사 교두보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지리적 위치 자체가 상업하기 좋다고 하니 그대로 둬도 장사는 흥하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건 아마 프란의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리 라. ‘장사꾼 따위는 그냥 둬도 알아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했건 만.’ 사막의 전사적 사고방식에 물든 그로서는 잘 알지 못할 무언 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긴 그의 사고로 본다면 제대로 된 군대 하나 두지 못하고 용병들에 의지하는 나라가 여태껏 망 하지 않고 잘 산다는 것 차제가 기적이었다. “저어... 세이트님.” “음?” 세자트의 등 뒤로 허름한 옷의 중년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저녁 나절에 도르의 손에 패대기쳐진 세자트의 그림자 중 하나였다. 조심스럽게 두 노인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 고개를 숙인 그는 세자트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음?” 힐끔 두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그림자는 말을 맺었다. 세이트 의 눈에 잠시 망설임이 스쳐갔다. 두 노인은 나타난 그림자 따 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는 냥 술잔을 기울이며 또 자신들 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세자트가 프란어로 낮게 속삭였다. “말하라.” 잠시 머뭇거리던 그림자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자 트의 귓가에 무어라 작게 속삭였다. -딱- 세자트의 손에 들려있던 술잔이 테이블로 떨어지듯 내려졌다. 취기로 붉게 달아올라있던 얼굴의 핏기가 한순간에 빠졌다. 백 짓장보다 더창백해진 얼굴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베어 올랐다. “그럼, 전 이만....” 그림자가 평범한 중년으로 변해 주점의 문을 나섰다. 세자트의 빈주먹이 부르르르 떨렸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세상이 핑그르르 돌았다. 눈앞에서 커 다랗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노도와 도르의 모습이 희미하게 휘어 보였다. ‘지금 내가 무엇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그래. 사실일 리가 없어. 확인해야 해.’ 믿을 수 있는 소식통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어쩌면 그와 움크의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으려는 우트트의 질 나쁜 장난일 지도 모른다. “왜, 돈이 떨어진 건가?” 도르의 손이 세자트의 어깨에 닿았다. 휙, 돌려진 세자트의 얼 굴에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얼큰한 눈에 벌겋게 오 른 취기, 술 냄새. 울컥 세자트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노인들만 아니었다면!’ 이미 달려 사실을 확인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디서?’ 세자트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확인을 해야 좋을 까. 사신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프란으로 달려가서? 그거야말로 움크의 목에 쐐기를 박는 짓일지도 모른다. 다리에 힘이 풀렸 다. 반쯤 일어났던 세자트의 몸이 풀석, 의자위로 주저앉았다. “얼굴이 창백하군 그래. 술이 체했을 지도 몰라.” “얹힐 만큼 마시지도 않았잖아?” “어허! 이 사람, 꼭 많이 마셔야 얹히는 건가?” 드륵, 의자를 돌려 세자트의 정면에 앉은 노도의 눈동자가 침 착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지니기 힘든 깊은 눈 빛. 꿀꺽 마른침이 세자트의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하긴, 그런 소식을 들었으니 체할 만도 했지.” 세자트의 전신에 소름이 일었다. 뒤통수를 엊어 맞은 듯한 충 격, 머리에 불이 확 들어오는 듯 했다. 침침하게 잠겨있던 세 상이 갑자기 시끄럽게 마구 돌아가기 시작했다. ‘프란어를 알아들었단 말인가? 이렇게 시끄러운 와중에? 그 렇게 속삭인 말을? 아니면?’ 눈이 마주친 노도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속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 나도 비슷한 쪽지를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으니까.” “하긴 그렇군.” 도르가 세자트의 어깨를 툭툭 털며 몸을 일으켰다. 얼떨결에 시선을 부딪힌 도르의 눈이 자상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얼큰히 마시기도 했으니 일어나 볼까?” “그래, 걱정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능청떠는 일은 더 못하겠 구먼.” 자리에서 일어선 노도가 세자트의 한쪽 팔을 잡아끌었다. 어딜 또 끌고 가려고, 하는 생각과 짜증이 불현듯 치솟았다.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노인들의 모습은 자존 심 강한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대접이었다. “모시던 주인이 죽었다는 말에 정신 못 차리는 건 알겠지 만.” 막 도르의 팔을 뿌리치려던 세자트의 행동이 멎었다. “흐읍!” 숨이 멎을 뻔 했다. 채 눈치채기 전에 나머지 다른 한 팔에 노 도의 팔이 끼워졌다. 연이어진 충격에 머릿속이 새 하얗게 비 워진 세자트를 질질 잡아끌며 노도와 도르가 주점의 문을 나 섰다. “계산은 저기 앉은 자네 부하에게 좀 하라고 하게나!” 싸늘하게 식은 밤공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골목 안을 가득 흐 르고 있었다. 후, 크게 호흡을 들이마신 노도가 개운한 표정으 로 웃었다. “자네 정도의 인물이 허둥 될 만한 일이 흔하지는 않겠지.” “우그르트 움크의 실종.” 백지가 검게 뒤집어졌다. 찬바람을 맞은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 갔다. 충격도 두려움도 슬픔도 남지 않았다. 그를 사로잡은 것 은 공포에 가까운 경악이었다. 발끝으로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 는 것만 같았다. 세자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목소리가 딱딱 끊겨 나왔다. 호위하듯 양 옆에서 팔짱을 낀 노 인이 싱긋 웃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그로부터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말했지 않았나?” “정원사와 마굿간지기라고.” “..............” Subject: [[The Perfect MAID]]-112-세자트의 수난 “잘 죽은 거죠. 얼마나 수치스러웠습니까?” 금아는 잠시 고민했다. 요즘 들어 신경이 날카로워져서인지 얇 은 벽 정도는 없느니만 못했다. “모래바람이라니! 시기에도 없는 바람 이었다더군요!” “글쎄 말입니다.” 일을 하러 왔으면 열심히 일이나 할 것이지, 뭐 그리 하고 싶 은 험담들이 많은지 옆방에 모인 귀족들은 열심히 클레이브와 움크의 행방불명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순식간에 맞이해 버린 페르로이 후작가의 몰락에 대해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 때부터 페르로이가의 가주는 무 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신분도 알 수 없는 천한 여인을 맞아들 이더니만, 혼혈아 따위를 두둔하다니! 우그르트 움크가 죽은 이 마당에 그가 지닐 수 있는 외교적 패는 거의 다 죽은 셈인 데...” “무슨 생각으로 지금 대공저하의 옆에 딱 붙어있는 건지.” “모르는 거겠죠. 잊어버린 겁니다. 귀족으로서의 긍지를.” 까드득 주먹이 울었다. 금아는 당장이라도 책상을 뒤엎어 저 벽에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제길.” 심호흡을 길게 하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 고민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노골 적으로 적의를 보이는 창에 대한 것들도 정해야 했다. 랑은 빠른 속도로 회복을 시작했다. 도르와 노도가 해 주었던 응급처치는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했다. 신관들의 치유와 마법 사들의 약의 힘을 빌어 랑의 허리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갔 다. 걸을 수는 있겠지만 평생 검을 들지 못하게 될 거라는 의 사들의 말은 두 부자에게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랑은 이미 검을 들고 휘둘러야만 실력이 느는 경지를 넘어서 있었 다. 더 이상 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랑은 더 높은 곳 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금아는 그렇게 믿었다. 창은 그 날 이후로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그 대신 하노베이 백작이 뻔질나게 대공가를 드나들었다. ‘노도님이 창을 막았다면...’ 창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으리라. 노도를 떠올린 금아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노도님.’ 강한 도사였다. 그래도 노도는 무인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힘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싸우지 않고 친하게 잘 지내고 싶 다.’라는 기분이 절로 들게 하는 그 푸근함과 선함이었지, 상 대방을 공포로서 제압시킬 수 있는 강대한 무력이 아니었다. 노도의 도력은 그 사용 방식에 있어서 무력과 완전히 달랐다. ‘포기해야 하는가.’ 창에게서 반발하고 나온 금아의 사람들이 아직도 저택 주위를 찾고 있었다. 노도의 생존과 연결지을만한 흔적은 아무것도 없 었다. 인질로 잡혔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금아가 아는 노도라면 잡혀 있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정면으로 부딪히는 데에는 약해도 세상 어느 것에도 막히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그 아니었던가. “대공저하. 프란에서 출발한 사신이 오디아누 관문에 도착했 다는 소식입니다.” 끝없이 부정적인 생각에 말려들어가던 금아의 표정이 살짝 펴 졌다. 시종 한 사람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들고 왔던 두 르마리들과 서류들을 책상 한 귀퉁이에 위태위태하게 쌓아두 고 물러났다. “흠, 역시 전쟁을 벌이고 싶다는 건가?” 맨 위의 서류를 집어 드는 금아의 표정은 미묘하게 신랄했다. “전쟁? 웃기는 군. 우리 크리아가 그리 만만해 보였다니, 이 거 미안할 지경이야.” 독이 잔뜩 오른 독사의 모습이 저럴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 도로 서류를 넘겨가며 바삐 사인을 해 대는 금아의 모습은 한 자루의 잘 벼려진 검 같았다. “거기 옆방 좀 조용히 해 달라고 전하도록.” 시종 하나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방을 빠져나갔다. 잡음이 살짝 가라앉았다. 굳어있던 금아의 입가가 조금 느슨히 풀렸 다. “새 소식이군.” 쌓아둔 두루마리 중 하나의 매듭이 특이하게 연달아 묶여 있 었다. 이전부터 대공가에서 일해오던 금아의 직속 그림자들이 보내온 소식이었다. 촤라락 종이가 열렸다. “얼마 전에 시장에서 발견했다는 그 프란인의 정보인가?” 프란의 귀족으로 보이는 사내가 시장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크 리아의 상황에 대해 묻고 다닌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 었다. 로웬을 포함한 몇몇 마법사들과 그림자들에게 특별한 감 시를 명령해 놓은 것은 며칠 전이었다. “네. 그리고 후작가로부터 온 소식이 있습니다.” “페르로이 후작가?” “네.” 까르르르륵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막 두루마리를 펼 치려던 금아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짜증을 꾹꾹 눌러 막은 듯한 눈동자가 벽을 부슬 듯 노렸다. 금아의 곁에서 서류 시중을 들던 늙은 시종하나가 나지막이 한숨을 삼켰다. “말로는 소용이 없는 건가?” 쾅! 소리 나게 서류들을 내려놓으며 금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 리고 막 문을 박차고나가려는 듯 보이더니만 다시 걸음을 멈 추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지. 어차피 머릿수도 모자랐으니까.” “네?” 살벌한 분위기에 눈치만 살피던 시종 하나가 얼떨결에 대답했 다. 씨익 웃는 금아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꽂혔다. “자네는 가서 옆방의 인원들을 알아오게. 저기서 떠드는 사람 이 누군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아, 네.”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금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죽고 싶다는데 소원은 들어줘야지. 저 놈들은 무조건 제 1선 이다. 조용히 해 달라는 충고 따위 귓등으로 흘려듣는 용감함 을 프란 인들에게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흠칫, 막 문을 나서려던 시종의 몸이 굳었다. “죄송합니다만, 저 방에 게신 분들의 반은 귀부인입니다만?” 금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류시중을 들고 있던 시종장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한숨이 섞여 있었다. “어차피 다치면 간호해 줄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까. 모조리 전방 간호부로 보내 버려. 귀족들이니 귀족들을 간호하게 만들 면 되겠지.” “일선에서 부담스러워 할 텐데요.” “군법은 빵 구워 먹으라고 있는 법이 아니잖나! 군법에 항명 하면 모조리 작위 박탈하고 모가지까지 밀어내 버려!” 홧김에 마나까지 섞인 목소리였다. 얇디얇은 벽 하나 투과하지 못할 리가 없다. 남은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사위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한 가지.” 훅, 숨을 몰아쉰 금아의 얼굴은 아직도 붉은 노기로 물들어 있 었다. 저벅, 저벅, 카펫을 짓밟아 뭉개며 금아는 방을 가로질러 의자로 걸어갔다. 털썩, 기대앉는 금아가 속삭이듯 말했다. 미 묘한 음산함을 담은 목소리는 살기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목숨을 건 결투 신청이라면 언제 어느 때건 받아준다고 전 하게.” 문가에서 굳어있던 시종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 게 여닫는 문소리가 끼익 들려왔다. 풀벌레 우는 소리 한점 들 리지 않았다. 금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곁의 늙은 시종에 게 시익 웃음 지었다. “이 정도라면, 당분간은 편안히 집중할 수 있겠군.” “네.” 금아가 받아들다 말았던 페르로이가의 소식을 다시 전달하며 시종은 곱게 웃음 지었다. 뒷말이야 많겠지만 지금 걱정해야 할 것들은 코 앞에 닥친 전쟁이었다. “휴, 뭔가 좋은 소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두루마리의 매듭을 풀며 내뱉은 금아의 말에는 마디마디 진심 이 가득 베어 있었다. 시종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불행의 신이 크리아에 또아리라도 틀고 앉았는지 매일 매일 들어오는 소식이라고는 하나같이 골치 아픈 사건들뿐이었다. “정말...” 휙, 펼쳐진 두루마리를 읽어 내리며 무의식중에 중얼거리던 금 아의 말이 딱 멎었다. 파르르르 두루마리를 쥔 손이 떨렸다. ‘또 나쁜 소식인가.’ 시종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요 근래 망가지고 있는 금아의 모습은 오랫동안 왕궁에서 그를 보필해 일해오던 시종장에게 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안쓰러운 것들이었다. 벌떡 금아가 몸 을 일으켰다. 몸을 돌린 그의 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시 종장은 호흡을 들이마셨다. “세상에!” 휙, 몸을 돌린 금아가 다짜고짜 시종장을 끌어안았다. 으스러 지도록 안긴 시종장의 입이 턱 벌어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 다. “쿨럭!” “아하하하하하!”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동안 시종장을 끌어안고 빙 글빙글 집무실 안을 돌던 금아가 환호성을 지르며 쥐고 있던 두루마리를 다시 펼쳤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네? 네?” 영문을 모른 채 휘둘리는 시종장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갔다. 이 대공의 밝은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부정적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 영감탱이가 살아 있었다고! 아하하하하하!” 커다랗게 외치는 금아의 표정은 전에 없이 활짝 펴 있었다. “........................” “똥줄이 타겠지.” “꽉 막힌 놈이기는 해도 충성심 하나는 있던 바보 아니었 나.” 대뜸 내뱉는 도르의 말에 힐끔 옆을 바라 본 노도가 훅, 한숨 을 내쉬었다. 세자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딱딱한 걸음걸이로 두 노인을 따라오고 있었다. 짙은 어둠에 내린 그림자들이 흐 릿하게 발치를 따라 흔들렸다. “자네 본래 이러했던가?” “글쎄. 처음부터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네만, 한 사십년 억눌려 보게. 이 꼴 안 되는지.” 어깨를 으쓱 하고 도르는 다시 앞장서 길을 나섰다. “어쨌거나 이렇게 진심으로 취할 때 까지 마셔본 건 처음일 세, 그려.” “뭐, 나쁘지는 않겠지.” 노도는 털털하게 웃었다. 외집사라는 생활을 겪어보면서 라크 로이 노인을 알게 된 이후로 노도의 삶은 일의 연속으로 짓눌 려 갔다. 오랜 수양과 도력으로 지탱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 만, 가끔 새로운 경험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깊은 산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건 그렇고 저 젊은이는 완전히 말문을 닫았구먼.” “뭐, 모시던 주인이 죽었다는데, 뾰족이 확인할 길도 없고, 고 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다가 이런 괴물 같은 늙은이 둘에 잡혀 옴쭉 달싹하지 못하니 오죽 하겠나.” “................” 휙 치떠진 세자트의 눈이 살기를 발했다. ‘제길. 내가 왜 따라가고 있는 거지?’ 비상이건 범상이건 다 때려 치고 돌아가고 싶었다. 확실히 뭔 가 있는 노인들이기는 했지만 지금 그가 이런 모욕까지 참아 가며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 도 부정적이었다. 세자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힐끔 본 도르 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걸렸다. “그건 그렇고 안 죽은 게 확실한가?” “누구? 란, 움크?” “둘, 다.” 진동하던 세자트의 주먹이 딱 멎었다. 닫혀있던 귀와 마음이 한순간에 활짝 열렸다. 움크가 살아 있을 거라니! 그게 확실할 거라니! 세자트는 한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도 모르 게 발걸음이 멎었다. “들리나 보군.” 씨익 흰 치아를 들어내고 도르가 웃었다. 세자트의 얼굴이 귀 밑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또다.’ 도대체 가지고 노는 느낌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약을 살살 올 리며 사람을 폭발 직전까지 밀어붙였다가는 선심 쓰듯 무언가 를 텅, 내준다. “자네도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물론입니다.” 지체할 필요가 있을까. 냉큼 대답하는 세자트에게 노도가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곤 슥,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은 의외로 쉽게 죽지만, 그렇다고 그렇게들 허무하게만 죽지는 않지.” 흠칫, 굳었던 세자트의 표정이 풀어졌다. 자칭 정원사. 하인이 라기보다는 어딘가의 높은 신관 같은 분위기를 퐁퐁 뿜어내고 있는 이 노도라는 자는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다. “휴, 하지만 운은 확실히 좋은 인물이군 그래. 모래 폭풍에서 도 살아남았다니 말이야.” “란을 따라갔지 않았나.” 픽, 웃는 노도의 손이 세자트의 머리에서 내려갔다. 여름이라 도 밤의 바닷바람은 찼다. 취기로 달아올랐던 몸이 부르르 떨 렸다. 도르는 두 팔을 들어 몸을 안 듯 감싸고 어서 가자는 듯 턱짓으로 길 앞쪽을 향했다. 발걸음이 다시 움직였다. “란 이라면...?” “아, 자네의 주인이 추격한 하녀이지.” “하녀?” 세자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하녀를 따라간 것과 살아남은 것 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 하녀를 따라나섰기에 때 아닌 모래폭풍까지 만난 게 아닌가! ‘아니 성기사였나?’ 분명 그 하녀는 아르페이나 여신의 성기사이기도 했다. 끄덕, 세자트의 고개가 움직였다. 여신의 특별한 가호를 받는 성기사 였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턱, 도르의 등에 세자 트의 가슴이 부딪혔다. 앞을 가던 사람의 걸음이 멎는 줄도 모 르고 가다니. 또다시 달아오른 세자트의 얼굴은 식을 겨를조차 없는 듯 했다. “이야, 벌써 다 왔군.” 몇 걸음 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의 앞에 거대한 저택이 환 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집으로.” 턱, 또다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도르가 웃었다. 푹, 한숨이 흘 러나왔다. 아무래도 모든 것을 듣기 위해서는 끝까지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두 노인은 저택의 하인용 입구로 보이는 작은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열쇄를 잃어버렸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르라는 노인의 몸이 눈앞에서 사라 졌다. 세자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사막의 신기루에 홀린 게 아닐까, 혹은 어딘가의 장난기만 많은 요정에게 속고 있는 건 아닐까. 덜컹,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도르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서 오시게. 이 정원사와 마구간 지기가 머무는 곳에.” “잘못해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혼자서는 찾지 못할 테니 조 심해서 따라와야만 하네.” 먼저 문 안으로 들어서며 노도가 싱긋 웃었다.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손이 내밀어졌다. 왜였을까. 그 손을 잡아야 한다는 느 낌이 든 것은. 세자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붙잡았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작은 문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Subject: [[The Perfect MAID]]-113-세자트의 수난 ‘당했군.’ 의식이 돌아오면서 눈앞에 있는 얼굴이 징그러운 미소의 하노 베이 백작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창에게 떠오른 것은 지독한 당혹감이었다. 그리고 패배감. “아직 대 회복된 것은 아니라고 하는군요.” 친절한 척 웃는 그 얼굴 아래 숨겨진 승리에의 환호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창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런가.” “네. 침입자들의 힘이 예상 밖으로 강했나 봅니다. 이 아름다 운 저택이 저렇게 변하다니.” 말은 ‘안됐다’인데, 표정은 ‘쌤통이다’였다. “흠!” 창은 몸을 뒤척였다. 하노베이 백작의 얼굴이 싫어 고개를 돌 린 창 밖으로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얼마 전의 습격자 사건으로 일어난 산불은 저택을 둘러싼 숲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너만 아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어.’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분했다. 랑의 그 마나만 흡 수했다면 흡수한 마나로 마공에 따라 잘 증폭하고 유도했다면 그는 이미 변해있을 지도 몰랐다. 대공이 경험했던 그런 환골 탈태는 아닐지라도, 창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손에 넣 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기회였었다. ‘그 독만 아니었다면!’ 있는 힘을 다해 퍼 불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랑을 업고 간 그 도둑이 달아나지 못했을 텐데! 아니 그들만 잡을 수 있었더 라면, 조금만 더 일찍 랑의 목숨을 흡수했었다면, 지금처럼 침 대에나 누워 멍하지 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랬다면 이 정도 독쯤은.’ 간단히 몸에서 몰아내거나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쿨럭!” 생각이 격해지면서 다시금 혈류가 빨라졌다. 기침을 내뱉는 창 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하노베이 백작이 옅게 미소 지었다. “아, 아직은 움직이시는 게 무리입니다. 누워서 휴식을 취하 셔야죠.”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창의 시선을 흘려 피하며 하노베이 백 작은 재빠르게 침대 가에서 몸을 피했다. “큭!” 몸을 일으키려던 창의 목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나로 막아두었던 독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면서 미친 여파는 적지 않 았다. 몸이 몸 같지가 않았다. “며칠 지나면, 이전처럼 움직이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전쟁 터에도 무리 없이 나가실 수 있으실 거구요.” “며칠이라는 말이지?” “그거야 제가 의사가 아니니, 어찌 정확히 알겠습니까만은, 이번 전쟁을 놓쳐서는 곤란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답니다. 베이르 자작님.” “!” 창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굶주린 맹수의 것처럼 빛나는 눈에는 살기가 담뿍 베어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하노베이 백 작의 얼굴이 헬슥하게 바랬다. 반말보다도 더 역겨운 경어였 다. 빠드득 이가 부딪혔다. 하노베이 백작의 볼 근육이 잔 경 련을 일으켰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야겠습니다. 자작님이 없으신 자리를 매워야 하다 보니...” 그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창의 시아에서 사라졌다. 창은 반쯤 일으켰던 몸을 침대로 내동댕이쳤다. 꽉 쥐어진 침대보가 축축 이 젖어 있었다. ‘자작이라.’ 아직 정식 작위를 잇지 않은 가문의 자제들에게 붙여지는 작 위였다. 하노베이 백작의 경우 채 성년식을 정식으로 맞기도 전에 가문을 이으면서, 우여곡절로 백작의 작위까지 이어받았 지만, 크리아와 같은 소국에서 백작 이상의 작위를 받기란 쉬 운 일이 아니었다. ‘자작이라.’ 실제 그의 작위는 자작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를 자작 이라 부르지 않았다. 수십 년 전, 그가 아직 젊은이였을 때, 성 년식을 맞으며 받았던 작위가 자작이었다. 그 이후 뚜렷이 두 각을 보일만한 전투가 거의 없었고, 또한 아직 미숙했던 무예 에 정진하기에 바빠 더 이상의 작위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 는 대공가의 세 아들 중 하나였고, 또한 크리아에서 다섯 손가 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어느 누구도 그를 자작이라 부르지 않 았다. ‘자작이라.’ 그는 자작 이상의 자작이었고, 백작이나 후작들조차 함부로 하 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어느 누구도 그 점에 의심을 품지 않았으며, 거스르지 않았다. 그 특별함이 한 순간에 날아갔다. 대공가의 유지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지금 창은 ‘베이르 대공 의 남은 후광을 빌어 깝죽거리는’ 자작일 뿐이었다. 어느 누 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지만, 그게 다가오고 있는 현실이 었다. “전쟁이 있다. 내겐 전쟁이 있어.” 오디아누 관문 밖으로 영토를 넓히고, 프란으로부터 오아시스 를 점령하고, 그들의 대군을 무찔러야 한다. 더 높은 작위를 수여받고, 대공을 능가해야만 한다. “언제든 병이 도지면 절 부르시기를.” 현관을 나서며 깔끔히 인사를 전하는 하노베이 백작은 승자만 의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 부근에서 작은 팬던트가 찰랑였다. 인사를 받은 하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킥킥킥.” 마차를 타면서 긴장이 풀려서인지 자꾸 웃음이 흘러나왔다. 대 공가의 정문을 떠날 때 까지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억누르던 하노베이 백작의 인내력은 멀리 저택이 흐릿해지면서 바닥을 들어냈다. “푸하하하하하!” 갑작스레 터져 나온 웃음에 마차를 몰던 마부가 힐끔 뒤를 향 했다. “하하하! 이렇게 즐거울 데가! 이렇게!” 자신을 경멸하듯 내려다보던 대공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눈으로 내가 당신의 아들들을 내려다보고 있지.’ 약점이란 절대 없을 듯 했던 대공의 약점들은 의외로 찾기 쉽 게 도드라져 있었다. ‘이제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당신의 마지막 아들은 곧 죽을 꺼야.“ 목에 매달린 펜던트를 손으로 감아쥐며 하노베이 백작은 의자 뒤쪽으로 머리를 기댔다. 창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만 들어주는 소중한 해독제였다. “승리란 별개 아니지. 당신이 죽었을 때 내가 살아남으면 되 는 거야.” 뿌듯한 승리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휴, 의외로 길군요.” “조심하는 게 좋아. 겉보기와는 달리 이 곳은 미로니까.”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도르는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답 했다. 세자트의 눈이 휘휘 사방을 둘렀다. 생각보다 좀 깊고 긴 길이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갈림길 하나 없는 외길이 미 로라니. “제 눈에는 아무리 봐도 외길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눈이란 의외로 많은 것을 속이지.” 도르가 죽 손을 뻗어 세자트의 옆에 서 있는 나무로 향했다. “흠!”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도르의 손은 굵은 나무기둥을 그대로 통 과해 나무 반대편으로 삐집고 나왔다. 까닥까닥 휘는 손가락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채 세자트가 놀람을 정리하기도 전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구멍 같은 건 남아있지 않지.” 세자트가 조심스럽게 도르가 손을 통과시켰던 나무에 손을 댔 다. 턱, 까칠한 나무껍데기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어?” 힘껏 밀었다. 나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세자트는 믿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도르가 손을 통과시킨 나무가 아니었던 가! 손을 떼지 못하는 세타트의 옆으로 도르가 다시 손을 통과 시켜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세자트의 손이 도르의 어깨를 짚 었다. 실체가 있었다. 분명히. 도르도 그 나무도! 쿵쾅쿵쾅 심 장이 뛰었다. 어느 새 다 기립해있는 팔뚝의 털들은 이제는 쓰 다듬어도 제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냥 뻣뻣하게 버텨댔 다. ‘더 이상 놀랄 가슴이 있었나?’ 움크가 죽다 살아난 그 순간부터 더 이상 놀랄일은 없었다. 없 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세자트의 심장은 또다시 발견한 놀라움 과 두려움으로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지금 갈 길이 급한데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겐가?” 그 모양을 보고 있던 노도가 걸음을 멈췄다. “미안허이, 이 친구 하는 냥이 마치 환각진을 처음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만...” “이게 환각진?” 믿을 수 없었다. 벙 찐 얼굴로 돌아보는 세자트에게 노도는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본디 환각이란, 있다 하면 있는 거고, 없다 하면 없는 걸세. 그리고 자네에게 중요한 건 이 곳의 환각이 아니지 않은가.” “아, 물론입니다.”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던 두 노인에 대한 반감은 어느새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머리를 굴려봤자 이해할 수 없었고 몸부림을 쳐 봤자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깨끗이 포기하는 게 낫 다. 어차피 두 노인에게서는 단 한번도 그에 대한 적의나 살기 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느낀다고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연히 연연하면서 피로만 가중되는 것은 사양이다. 게다가 이 제 슬슬 두 노인의 정체도 알만하던 참이었다. 마의 미로라는 이름에 걸맞는 환각진을 지닌 정원이 있는 저택은 넓은 카슬 대륙 안에서도 한 곳 밖에 없다. ‘페르로이 후작가.’ 갑작스러울 정도로 화려히 등장했다가 한 순간에 빛이 꺼져버 린 듯 했던 가문, 그러나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타 쟁쟁한 가 문들의 비호를 받으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곳. ‘정원사라.’ 정원사와 집사를 겸한 이상한 노인이 있다는 소문은 그도 들 어본 적이 있었다. 란이라는 하녀로 인해 프란이 시끌벅적하게 달아올랐을 때 그녀와 함께 아르페이나의 신탁을 받고 왔다는 노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고 넘겼었는데. 지금 보니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 가 아니었다. 한참을 걸은 듯 했다. 생각에 잠긴 채로도 오래 지났고,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세자트 의 모습에 노도가 걸음을 멈췄다. “환각진 때문에 시간개념이 사라져서 힘이 들 테지만, 힘내 게. 바로 저기가 우리 집이라네.” 따듯한 불이 켜진 한 채의 아담한 집이 정원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아, 아.” 마치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숲 속 마법사의 작은 집 같은 공기가 그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땀을 훔치며 세자트는 고개 를 끄덕였다. “저기까지는 금새 지. 불도 켜진 것을 보니, 만날 사람은 다 모인 듯 하군.” “아아, 욕 좀 먹어야 할지도 몰라.” “허허, 동대륙 속담에 이런 말이 있네. 욕 많이 먹으면 장수 한다고.” “허허허.” 치솟은 감정으로 벌써부터 붉으스름 달아오른 눈두덩이를 가 리며 도르는 슬쩍 몸을 떨었다. 노도의 입가에 떠오른 푸근한 미소도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노도는 세자트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저 곳에는 자네가 만나려고 했던 분들도 기다리고 있다네.” “제가 만나려고 했던 분들이라면?” 집 안쪽에서 왁짜한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덜그럭 인기척이 심하게 움직이며 쾅!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노도님!” “허허, 급하기는.” 어둠 속에 흐릿하게 봐도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금발을 휘날리며 문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뒤로 몇 사람이 더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반응 역시 젊은 금발의 남자와 다르 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 며 세자트가 비실, 이상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남의 감동적인 재회에 엄하게 끼어든 어색함도 어색함이었지만, 다가오는 사 람들의 박력에 압도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달려오는 사람들이 연이어 두 노인의 이름을 불러댔다. “도르님!” “노도님!” “저 사람들이 자네가 만나야 할 존재들이라네.” 빙긋, 미소 지으며 노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날 듯 달려 온 금발의 남자가 부딪히듯 노도를 끌어안았다. 텅, 살과 거죽 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쿨럭, 노도의 입에서 가쁜 기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살아계셨군요! 살아계셨어요!” 연거푸 외치는 목소리가 축축히 젖어 있었다. “걱정했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과 대조적으로 담백하게 미소 지은 중년의 남 자가 도노에게로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도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도르의 어깨를 두드리며 중년 의 남자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하, 하하하하하.” 그저 웃음소리만이 흘러나왔다. “미안허이, 미안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청년이 얼굴을 소매로 훔치며 가볍 게 기침했다. 청년의 등을 살갑게 토닥이며 노도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마치 정이 깊은 아비와 자식을 보는 듯 했다. “자, 자. 이제 진정들 해야지.” 그렁그렁한 눈으로 덤벼든 젊은이들을 토닥토닥 달랜 두 노인 의 시선이 슬쩍 맞부딪히며 세자트에게로 옮겨갔다. 머슥한 얼 굴로 사람들이 노인들에게서 떨어져나갔다. “그러고 보니 손님이 계셨군요.” 웃음과 울음이 뒤엉켜 기묘하게 일그러진 표정들을 문지르며 사람들은 작게 얼굴을 두드렸다. “그래. 이 쪽은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프란의 손님이지.” 자신에게로 몰려든 시선에 당황하며 세자트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젊은 청년이나 중년의 남자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얼핏 관찰한 그들의 의복만으로도 그들이 범상치 않은 존재라 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아, 세자트입니다.” 그런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젊은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어 느새 표정을 정리한 그는 어딘가 엄격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베이르 드 기르라고 하오. 금아라고도 하고.” “네?” 얼떨결에 손을 맞잡은 세자트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베 이르 드 기르, 베이르 드 기르. 분명 그의 머릿속에 있는 이름 이었다. ‘설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자리에 노도가 있었다. 천천히, 그 러나 뚜렷하게 노도의 고개가 끄덕였다. 모공 하나 하나가 조 여지는 듯한 긴장감. 꼴깍 마른침을 삼킨 세자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 나왔다. “베, 베, 베이르... 대공?” “맞네.” 쩡, 세자트의 의식이 새 하얗게 날아갔다. Subject: [[The Perfect MAID]]-114-카느의 기도 “당신이 선택하신 자는 누구였습니까.” 아르의 신전 깊숙한 곳, 귀한 존재만을 위해 만들어진 자그마 한 제단 앞이었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정갈하게 무릎을 꿇 고 몸을 엎드린 카느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사막의 전사들의 수호자이시자 전쟁의 신이신 아르시여.” 움크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카느는 아르의 신전으로 발걸음 을 옮겼다. 나라의 흘러가는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을 맡겨두고 는 있었지만, 내심 우트트보다는 움크를 사막의 왕에 더 적합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트트는 카느 자신보다는 두 번째 카느린인 텟샤리아를 더 많이 닮았다. 넘치는 야심을 현명하게 가리고 조절할 줄 아는 정치적 기질과 필요할 때 원하는 카드를 선택할 줄 아는 재치 는 카느보다는 그녀의 것이었다. ‘사막의 왕의 기질이란 어떤 것일까.’ 카느가 된 건 그였다. 텟샤리아에게는 그녀를 빼닮은 남동생이 있었다. 그 역시 사막의 왕이 되고자 했지만, 사막의 전사들은 카느를 선택했다. 카느는 고민하고 있었다. 분명 프란의 땅을 하나로 묶은 것은 그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 떤 존재가 뒤를 이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정치적 이해타산에 의해 되어진 결단으로는 사람의 진심을 이 끌어내지 못한다. 이해보다는 가슴의 열혈을 더 중시하는 사막 인들은 특히 더 그랬다. 머리로 다스리면 사막인들에게 오랜 사랑을 이끌어낼 수 없다. “사막인은 지배될 수 없는 민족이다.” 존경과 경의로서 그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우트트는 분명 사람들의 호감과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이 그 에게 끌리고 그와 함께 있으면 이익을 볼 거라 생각한다. 우트 트의 영리함은 사람들에게 ‘적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 게 만든다. 그러나 움크처럼 ‘죽더라도 함께 가고 싶다.’라 는 열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카느란 언제나 옳은 일만 할 수 없다.’ 남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우트트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일로서 자신에 대한 신망을 떨어 트리는 바에는 차라리 미래의 손해를 감수해 버린다. “당신이 선택하신 자는 움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기다란 한숨이 카느의 입술을 타고 오래도록 흘러나갔다. “살아 있었나?!” “죽기라도 바랬던 것 같은 얼굴이군.” 소스라치게 놀라는 옛 친구의 얼굴을 보는 건 그다지 유쾌하 지만은 못했다. 론은 날카롭게 삐죽였다. 창백하게 질렸던 친 구의 얼굴이 순식간에 원상태로 복귀했다. “쉿! 몸을 낮추게.” “음?” 얼떨결에 따라 몸을 낮춘 론의 머리를 꾹 누르고 그의 친구는 재빠르게 사방을 살폈다. 불길한 감각이 론을 감쌌다. “무슨 일이 있었나?” 친구의 눈이 복잡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쟁이라도 벌써 터진 거야? 아니면 카느께 무슨 일이라 도?” “그게 아니라 자네들에게 일이 터졌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폭폭 쉬어대며 론의 친구는 조심스럽게 그 간의 사정을 하나 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모래바람이 부는 며칠동안 움크의 행적이 묘연해 진 틈을 타 이상한 소문이 돌 기 시작했다. 전쟁의 신 아르가 다음대의 카느를 선택하기 위 해 움크를 날려 보냈다. 다음대의 카느는 우트트이다. “흠.” “자네도 우트트님의 그림자이니 알겠지만...” “움크님의 주살령이 떨어졌겠군.”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친구는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고개 를 끄덕였다. 론은 옅게 한숨을 내쉈다. “그럼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겠군.” 살아남은 움크의 흔적이 남아있어서는 안되는 거니까. 친구의 눈에 설핏 무언가가 스쳐갔다. 론의 팔이 조용히 움직였다. 그 의 턱 아래까지 치솟아 올랐던 짧은 단검이 론의 왼 팔에 걸 려 멎었다. 그리고. “큭!” 친구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론의 오른손에 들려있 던 단검이 어느 새 친구의 목을 긋고 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 다. “미안하네 친구.” 마지막의 마지막에 부딪힌 친구의 눈에 엷은 온기가 남아 있 었다. 파르르르 론의 얼굴이 떨렸다. 세상에 남은 미련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친구의 손에 죽어 주어도 된다고 마음먹었 다. 그러나 차가운 금속의 빛을 본 순간 손이 움직였다. ‘움크님은?’ 아직 남은 미몽이 있었다. 그에게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무언 가가 남아 있었다. 론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피로 얼룩진 흰 웃옷을 벗어 친구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벽에 걸려있던 친구의 옷을 걸쳤다. ‘언젠가 길동무로 함께 가 주겠네.’ 그가 죽는 순간까지 지켜야 할 ‘그림자의 주인’이 아직 정 해지지 못했다. 론은 이를 악물었다. 모래바람이 너무나 많은 것을 흐트려 놓았다. 이전의 론이었다면 스스로의 목숨을 버려 서라도 움크를 제거했다. 우트트가, 그의 상급 그림자들이 명 령할 필요조차도 없었으리라. 단지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것만 으로도 모든 것을 감수하고 움크의 심장에 단도를 박아 넣었 으리라. “어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망각한 채 싱글벙글한 얼굴로 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움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민이 있는 얼굴이야.” 싱글싱글,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모든 경 계심을 풀고 자신을 살갑게 대하는 움크는 어리석을 정도로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막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러 나 황궁에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존재. ‘프란의 카느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 걸까?’ “자아, 물이 맑다. 마실 수 있을 때 실컷 마셔두는 게 좋아.” 커다란 물통에 넘실거리게 따라주는 물은 가슴 속에 묵혀있던 갈증까지도 쓸어 넘겨버리는 것만 같았다. 귀찮은 이해타산, 계산들. 그런 것이 없이도 사람과 사람은 가까워 질 수 있다. ‘잊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움크의 목을 따서 우트트에게로 달려가야 했다. 그 리고 물러나 조용히 삶을 마감한다. 우트트의 앞길에 쓸데없는 증인 따위는 남길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사내가 눈에 밟 혔다. 아무리 바보 같은 길이라도 따라 가고 싶다는 느낌. 우 트트에게서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리석은 충동. “움크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묻고 싶었다. 이 사람의 미래는 어디로 열려 있을지. 그림자로 서 감히 할 수 없는 질문이겠지만 어쩐지 움크라면 답해줄 것 만 같았다. “글쎄.” 어깨를 으쓱 하며 움크는 털털하게 웃었다. 뭔가 쑥스럽거나 할 말이 마땅치 않을 때 하는 동작. 론의 미간에 잔주름이 접 혔다. 며칠 되지도 않았다. 함께 움직인 지가. 그런데도 벌써 눈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외우고 있었다. 십여 년을 따라 다 녀온 우트트보다 저 얼빵한 움크가 그의 마음을 더 강하게 사 로잡고 있었다. “하늘을 봤으니 조금 더 기어 올라가야겠지.” “네?” 픽 웃으며 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움크가 쑥스러운 듯 볼을 붉혔다. “뭐, 이래저래 우그르트다 뭐다 해서 무인으로서의 삶만을 살 수는 없겠지만, Lord를 봤으니까. 에, 또 미인이었잖아. 그만하 면.” “.......네에?”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 까. 그 압도적이고 공포스러웠던 힘을 직접 경험하기까지 한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뭐, 그렇게까지 놀란 표정을 지을 건 없어. 나도 어떻게 해 야 할지는 잘 모르니까. 카느가 된다 해서 그녀가 달리 봐 줄 것 같지도 않고, 이제 와서 열다섯 어린나이로 돌아갈 수도 없 지.” 열다섯 살 이후는 돌보지 않는다는 란의 말에 어지간히도 신 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론은 눈을 비볐다. 이 사람이 진정 자신의 마음을 끌었던 그 무인이란 말인가. “훗, 나도 될 거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무엇을 떠올리는 지 귓불이 다 벌겋다. “그,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만.” 훗, 한숨이 흘러나왔다. 왠지 방금 전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가 다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괜찮잖아. 어차피 현실은 한번 뿐이니까. 매순간 할 수 있는 선택이란 것도 한번 뿐이고.” “후, 그런가요?” “그런 거야. 게다가 난 사막인이니까.” “사막인?” “그래. 안된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것. 그게 사막인이지. 사막의 전사이고. 그게 나인데...” 순간 론의 머리가 맑게 개어가는 것만 같았다. ‘사막! 상업이 발달했다는 크리아와도, 외교정책이 발달한 다 른 도시국가들과도 전혀 다른 사막의 제국.’ “일단 포기하면 두 번 다시 오아시스는 찾을 수 없게 되어버 리니까.” 포기하고 주저앉으면 작열하는 태양에게서 쏟아지는 죽음의 심판만이 기다린다. 오아시스를 찾기를 포기한 사막인은 살아 남을 수 없다. 비록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불가능해 보일지 라도 찾아야만 하는 것. 그걸 그들은 숙명이라고 불렀다. “그렇군요.” 론의 고개가 끄덕였다. 프란의 ‘카느로서 어떻게 되어보겠 다’, ‘카느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기대하기는 했었지만 어 쩐지 그것 보다 더 큰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다. ‘뭐, Lord께 반했다는 말이나, 세계최강이 되겠다는 말이나 같은 소리겠지만서도.’ 흰 치아를 드러내고 시익 웃으며 움크는 우물가 옆 그늘에 주 저앉았다. 그리고 팔을 뻗어 론의 소매춤을 잡아당기며 자신의 옆을 툭툭 두드렸다. 서늘한 그늘은 제법 폭이 넓었다. “우선, 내 옆에 고민하는 친구의 마음부터 좀 풀어줘야겠 지.” “네?” 잠시 망설이다가 움크의 손힘에 못이긴 론이 그늘 가에 엉덩 이를 걸쳤다. 움크답지 않은 망설임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욱씬, 불길한 예감이 론의 뇌리를 스쳤다. 순수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움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황궁생활 을 누구보다도 잘 적응해 나가던 두 우그르트 중 하나였다. 씩, 새하얗게 웃음 지으며 움크가 론의 어깨에 툭, 팔을 던져 올렸다. “우트트가 날 죽이라고 했겠지?” 덜컹! 론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움크의 팔이 론의 어깨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드득, 어깨에서 근육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전율하며 발끝까지 내려갔던 론 의 긴장이 멎었다. “안죽일꺼지?” “..............” 시험 삼아 단도를 꺼내 한번 푹 찔러보고 싶을 만큼 자신만만 한 미소였다. 힐끔 옆모습을 바라본 론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돌렸다. 표정과는 달리 그의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휘청, 한순 간에 온 몸의 긴장이 빠져나가며 몸이 비틀거렸다. ‘이, 이런 사람이었나.’ 머리가 핑 돌았다. 만에 하나 자신이 죽일 마음만 있다면 바로 단도를 꺼내 심장에 박아 넣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움크는 시선까지도 론에게서 돌려 하늘로 옮겼다. “생각 좀 해 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나 역시 아직은 죽어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꿈을 꾸는 소년 같은 표정이었다. 론은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손잡이 근처까지 움직였던 손이 축 늘어졌다. “...그러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음?” 포기는 빨랐다.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론은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움크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반해버린 분이 생겼기 때문이겠죠.” “아, 하하하하! 그런 셈인가?” 커다랗게 터진 웃음소리에 주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기사들과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몰려왔다. 작은 미소들을 띈 표정들, 론이 자신들의 주인을 노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우트트님이라면 이렇게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으시겠 지.’ 그리고 그를 지키는 기사들 역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 다. 문득 유쾌해졌다. 이 어리석어보이기까지 한 대담한 사막 인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해갈 것인지, 어떤 카느가 되어줄 것 인지를... 론은 보고 싶어졌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움크님은 대단한 분이시군요.” 론은 어깨에 올려진 움크의 팔을 시원스레 치웠다. 그리고 몸 을 일으켜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움크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곧 그 안에 서려있던 장난스러움이 지워졌다. 자 세를 바로 한 움크에게는 맹수의 위엄이 은은하게 베어 나왔 다. “제가 처음으로 하는 충성의 맹세입니다.” 론의 고개가 땅에 닿도록 굽혀졌다. 우트트에게조차 해 준 적 이 없었다. 그저 길러준 스승의 길을 따라 모시고 있었을 뿐. “고맙게 받겠어.” 씨익 웃는 미소가 사막의 태양처럼 눈이 부셨다. “론.” 그리고 그렇게 이름을 불러 주었다. silverlit@hanmail.net 은빛의 정체 덩어리들입니다.^^. ................{은빛의 고양이 숲으로 이동}// {링크 신청란>>} The Perfect Maid Subject: [[The Perfect MAID]]-115-각오 [[The Perfect MAID]]-115-각오 “제길. 겨우 하루거리라니.” “후, 하르크, 이럴 때는 솔직히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 연신 얼굴에 물을 붓고, 벌컥벌컥 들이키면서도 하르크는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힐끗 바라 본 스테판이 고개를 설래설래 저 으며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르크의 얼굴은 말과는 달리, 귀 밑까지 입꼬리가 끌려 올라간 헤벌쭉한 표정이었다. “맞아요. 전 란님이 우릴 부르는 것 같은 환청까지 들었었다 구요.” “그거라면 저도 잠결에 들은 것 같아요. 하르크 얼간이! 라 고...” “이, 이봐! 무슨 말들을 그렇게!” 벌컥, 외치는 하르크의 앞으로 크레이가 슥 지나갔다. “우린 운이 좋은 거였습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방향을 잃고 몇 날 며칠을 헤매다가 그대로 말라 죽었어도 별 수 없 었을 겁니다.” “제길, 크레이. 난 종종 네가 몇 살인지가 의심스럽다. 어째 넌 이십여 년을 더 산 나보다도 세상에 통달해 있냐?” 대뜸 삐죽이는 하르크에게 크레이는 넉넉히 웃음 지었다. 가득 찬 물통을 내려놓고 비어있는 새 통의 뚜껑을 열며 스테판이 작게 중얼거리듯 말을 던졌다. “글쎄요. 하르크님도 제 나이 또래는 저처럼 행동하셨을 것 같은데요?” “크레이나 클레이브님도 그렇겠지만, 저도 진짜 어른이 되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진다면 하르크님이나, 란님처럼 여유를 지니고 싶어요.” “이, 이런.” 새빨개진 얼굴로 하르크는 고개를 돌렸다. 이 애늙은이들은 한 번 된탕 싸우고 화해한 이후로는 정말 풀 발라 놓은 것처럼 떡 붙어버렸다. 한 마디 마디에 죽이 떡떡 맞는데, 어른을 가 지고 노는 솜씨 또한 일절이라 하르크는 가끔 자신이 어린애 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까지도 들었다. “후후. 뭐, 이렇게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었다는 건 고마운 일 이예요.” “고마운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니까. 하필 소멸 직전의 폭 풍에 휘말려서 이게 뭔 꼴인지.” 폭풍은 화가 날 정도로 깔끔히 모습을 감췄다. 딱 그들까지만 덮친 다음에 말이다. 딱 하루거리에 있던 마을은 모래 한 톨 더 튀지도 않고 안전하게 남아있었다. “이 마을까지 모래에 휩쓸렸다면, 아마 우리들은 바짝 말라 사막을 헤매고 있어야 했을 거라구요.” 남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며 크레이가 작게 키득였다. 이제 보이지 않는데도 제법 익숙해진 듯, 그는 자신의 몸이 그리는 동작의 반경을 훌륭할 정도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정말로 많아요.” 모래 폭풍을 피해, 혹은 바람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아직도 이 작은 마을에 바글거리고 있었다. 폭풍은 잠들었다고 해도, 워 낙에 때 아니게 불어왔던 재앙이었던지라 사람들은 쉽게 안심 하고 다시 길을 떠나지 못했다. “이 중에 란님도 있으면 좋을 텐데.” “글세, 란님이라면 굳이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지 않고도 얼마 는 더 버틸 수 있을 꺼야.” “그거야 그렇겠지만 빨리 만났으면 하니까요.” 흰 옷을 입은 사막인들이 이방인에게 힐끔 시선을 돌리며 스 쳐 지나갔다. 어딜 둘러봐도 펑버짐한 흰 옷에 머리 꼭대기까 지 두른 모자들 뿐, 어딜 봐도 흰 에이프런을 허리에 두른 여 인의 모습은 없었다. 두리번 두리번 고개를 돌려가며 사람을 구경하던 클레이브의 얼굴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음 순 간 창백하게 굳어버렸다. “크흑!” 옅은 신음소리. 물통을 든 클레이브의 팔이 가늘게 떨렸다. “이봐, 왜 그래?” 꽉 이를 악문 클레이브의 눈빛이 한 곳에서 떨어지지를 못했 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하르크가 검의 손잡이에 슬그머니 손을 댔다.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에 스테판과 크레이가 조심스 럽게 짐을 챙기고 검을 챙겨들었다. “우그르트 움크.” 강건한 구리 빛 근육을 흰 옷 아래로 들어낸 움크가 나무 아 래 걸터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길. 피하자.” “늦었어요.” 휙, 움크의 고개가 돌려졌다. 짧은 순간 클레이브와 그의 시선 이 교차했다. 손바닥 가득 진땀이 베어왔다. 멀리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이를 드러내고 씩 웃는 움크의 모습이 선 명하게 잡혀왔다. “빌어먹을. 혼자도 아니군.” 그의 옆쪽과 등 뒤쪽에서 오락가락하던 자들이 움크의 목소리 와 손짓에 따라 짐을 챙겨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세 아이들 의 앞쪽을 막아선 하르크의 내심은 곤혹스러웠다. ‘오아시스에서는 맹수들도 싸움을 금한다는데... 난 왜 이리도 지질히 운이 안 따라 주는 거야!’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람들의 허리춤에 걸린 기다란 검 과 잘 휘어진 도들이 언제라도 뽑혀 나올 수 있는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르크는 빠드득 주먹을 풀었다. 달아날 수 없다면, 달아날 수 있는 순간을 만들면 된다. 팽팽한 긴장감으 로 온 몸의 근육이 당겨졌다. 하르크는 힐끔 소년들에게로 눈 을 돌렸다. 세 아이들이 아무리 아이답지 않게 침착하고 강하 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일 따름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 도 세 아이들을 모두 지킬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 서는 누군가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르크님도 혼자는 아닙니다.” 스르릉, 차가운 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전투준비에 들어간 아 이들이 검대를 단단히 말아 쥐고 눈빛을 굳혔다. “제길.” 낮게 욕설을 씹으며 하르크가 휙 고개를 돌렸다. 조금만 더 강 했더라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란을 만나기 전의 그가, 오디 아누 숲에서의 그가, 되살아나며 울부짖었다. “그래.” ‘되든 안 되든 부딪혀 본 다음에 생각하자.’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얄미울 정도로 여유 있는 동작으로 움 크가 몸을 일으켰다. 그를 둘러싸고 몇 사람의 기사가 보호하 듯 자리 잡았다. 움크가 손을 들어 그들을 한 걸음 뒤로 물러 서게 했다. “역시 살아있었군.” 목소리가 닿는 거리. 흠칫 몸을 긴장시키는 하르크에게 손을 들어 슬슬 저어보이며 움크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렇게 경계할 것은 없어.” 허리춤의 검을 뽑지 않은 상태로 툭툭 치며 움크는 몇 보 떨 어진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움찔, 그의 동작에 따라 하르 크의 몸이 반응했다. 어느 새 뒤 쪽으로 다가온 ‘그림자’출 신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낮게 말했다. “발견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뽑혀든 도가 눈부신 빛을 발했다. 움크가 손을 살짝 들어올렸 다. 막이라도 덤벼들 듯 몸을 압축했던 남자가 살짝 긴장을 누 그러트렸다. “싸움이라면 그만.” “무슨 속셈이신지요?” “감히!” 툭 뱉은 하르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낮게 이가는 소리들이 울려왔다. 주륵, 진땀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흘러내렸다. 움크의 눈이 하르크에게로 꽂혔다. ‘적의는 없다,’ 꽉 쥐어졌던 하르크의 주먹이 조금 풀렸다. 긴장을 푼 건 아니 었지만 적의가 없는 사람을 자극해서 굳이 싸움을 벌릴 이유 는 없었다. 하르크의 변화를 찬찬히 지켜보던 움크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우린 더 이상 너희들을 쫓지 않을 것이다.” “그건 무슨 뜻이십니까?” 한 걸음 클레이브가 앞쪽으로 발을 내밀었다. “말 그대로. 카느께서나 우트트가 어떤 일을 벌일지, 그것까 지 모두 책임져 줄 수는 없지만, 나 움크의 이름으로는 약속해 줄 수 있다.” “흠!” 뜻밖의 대답에 애늙은이 클레이브까지도 작은 동요를 보였다. 쉽게 다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믿어도 될까에 대한 의심이 완 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갈등은 짧았다. ‘뭐, 저런 속임수까지 써가며 공격할 인물이 아니었지.’ “이유를 물어봐도 좋겠습니까?” 순간 공기가 변했다. 움크와 전사들을 둘러싼 긴장감이 순식간 에 확 풀어지며 화기애애한 무언가가 피어나는 듯 했다. 허물 없는 미소들이 한 순간에 피어나는 모습에 클레이브들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움크가 저벅, 다가와 클레이브의 눈과 높이를 맞췄다. “너의 하녀를 자청하신 란님께 약속했으니까. 너희들을 두 번 다시 공격하지 않겠다고.” “!” “란님!” 소년들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터져 나왔다. 꾀죄죄한 몰골의 세 아이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며 움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 다. “살아 계신 거로군요!” “그분 덕분에 우리도 목숨을 건졌지.” “역시! 그 정도의 모래바람에 휩쓸려갈 괴물이 아니었다니 까!” 활짝 펴진 모습들이었다. 세 소년과 하르크는 움크의 존재조차 잊은 냥 기쁨에 부불어 올랐다. “뭐라 뭐라 해도 Lord란 이름은 함부로 붙여지는 게 아니니 까.” 끼어들 듯 내민 움크의 말에 클레이브가 커다란 동작으로 고 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움크의 눈가가 가늘게 휘어졌다. “찾았습니다.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반투명한 구슬이 조심스럽게 깜빡였다. 프란 황궁 그림자의 수 장 쥬트의 미간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누가?” “우그르트 움크님과 그 일행들, 그리고 추방자 일행들 모두입 니다.” 쾅! 쥬트의 주먹이 책상을 내리쳤다. 수정 구슬이 고정대에서 흔들, 움직였다. 구슬 건너편의 상이 거칠게 요동쳤다. “젠장. 개나 소나 다 영웅이고 사막의 용자로군.” 훅, 내리쉰 숨결 뒤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진득한 살기가 베어 있었다. 까드득 주먹을 움켜쥐며 쥬트는 잠시 침묵했다. “.............” 수정구슬 저편에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자신도 처음 정보를 접했을 때 쥬트와 별반 다름없는 반응 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모래폭풍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들 었을 때 한 순간 가슴이 흔들리기까지 했었으니까. 그 정도 되 는 자가 말이다. 신의 시험에서 살아나왔다는 말에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살아 돌아왔다’만이 아니라 그가 신으로부터 인정받고 선택되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손을 잘못 잡은 게 아닐까.’ 라는 의문이 지금 쥬트의 안에서 스쳐 지나갔다고 해도 뭐라 고 할 수가 없었다. 오랜 사막의 고정관념이란 쉽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것도 신이 지배하는 땅에서 만들어진 암묵적인 규율 이란 더더욱 그랬다. “모래폭풍에 휘말렸던 건 확실한가? 그냥 어긋난 정도인데 연락두절이 되었던 정도가 아니고?” 확인하듯 쥬트가 하나 하나 캐기 시작했다. “네. 확실합니다. 시간적으로도 경로적으로도 그렇습니다만, 움크를 따라 함께 행방불명되었던 론이라는 그림자를 통해 확 인했습니다.” “그래?” 톡톡,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생각에 빠진 듯 미간을 꿈틀 거리며 쥬트는 연신 짧은 한숨을 내뿜었다. “그 론은 지금 연락이 되는가?”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론은 배신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배신?” 론은 텟샤리아의 가장 충성스러운 그림자였던 롬무무의 제자 중 하나였다. 스승의 뒤를 이어 우트트를 따르는 그림자의 진 영에 선 론은, 비록 맹세는 하지 않았지만 스승의 뒤를 이어 단 한번도 우트트에게 거역하거나, 그에게 위해가 될 만한 실 수를 저지른 적이 없는 충성스러운 심복이었다. ‘스스로 맹세를 정할 상대를 선택한 건가?’ “확인은 했는가?” “네. 폭풍 소멸지점에서 낙타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작은 마 을에서 그들의 존재를 확인했던 그림자 하나가 깔끔하게 사체 로 발견되었습니다.” “정보의 진위성은?” “확실합니다. 그 그림자는 죽기 전, 론을 발견하자마자 마법 의 장치를 켜 두었습니다. 론이 나타났을 때의 영상과 대화내 용, 그 모든 것들을 이미 확인을 마쳤습니다.” “그렇군. 뭐, 어쨌거나 이 프란의 주인이 될 지도 모르는 사 람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일 뿐이니까 배신이라고 하기는 그렇 지만.” 구슬 저편의 남자는 조용히 쥬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실 움크를 선택하건 우트트를 선택하건 프란의 우그르트를 선택 한다는 데 있어서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 황 궁 그림자들의 입장과 쥬트의 결정이었다. 쥬트는 우트트의 손 을 잡았다. ‘신의 시험을 통과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한다면 그런 선 택도 무리는 아니었겠지.’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해까지 할 수 없는 일은 아 니다. 직접 봤다면 그 또한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 니, 이미 선택을 해 버리기 전이었다면 말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마을 자체가 워낙 작아서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게 다가 모래폭풍 덕분에 여행이나 움직임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기 때문에.” “당장 소문이 퍼져나갈 위험은 없다는 거로군.” “네. 그렇습니다.” 쥬트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바라보는 구슬 안의 그 역시 비 슷한 생각을 떠올린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방법이 없군.” “네.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꿀꺽, 책상위에 놓여진 컵의 물을 마셨다. 잘 접혀진 손수건을 들어 입가를 꾹꾹 눌러 닦은 쥬트의 눈에는 이미 망설임도, 갈 등도 남아있지 않았다. “선택은 신께서 하시지만 결정하는 몫은 인간들의 것이었 지.” “네.” 전쟁의 신 아르가 그들에게 수호신의 자리를 허락하면서 했던 신탁의 한 구절이다. “마을을 봉쇄해라. 전염병이 돌았다고 해도 좋고, 풍토병이 돌아 앞으로의 전진을 금지한다고 해도 좋다. 나오는 놈들만 잘 갈무리해 가둬두면 되는 거고.” “네. 상황에 따라 기억을 지우거나 제거하겠습니다.” “그래. 주력부대가 갈 때 까지 부탁하겠다.” “네.”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모두 없애버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핏, 구슬의 영상이 끊어 졌다. 쥬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일은 혼자서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손발이 잘 맞아줘야 한다. “센. 그라면 더 확실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겠지.” 타닥, 잔가지 타는 소리가 평화롭게 들려왔다. 날아온 모래로 살짝 묻히기는 했지만 그 주변은 작은 잡목들이 건강하게 자 라던 땅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쪽이야 말로 살아남았군.” 춤추는 불꽃을 잠시 내려다보던 움크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아?” “란님께서 하르크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런 바람쯤은 어떻게 견딜 거라... 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사실 난 믿지 못했거 든.” 해질녁의 사막은 추웠다.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 람들에게는 더 이상 목숨을 노리던 자와 쫓기던 자 특유의 긴 장감이 남아있지 않았다. 푸르르, 새로 마련한 말들과 낙타들 이 사료를 씹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열 사람의 장정과 세 명의 아이는 멀리 장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 한 가족처럼 보였다. “과찬이십니다.” 하르크가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굽히고 정중하게 꾸벅 고개 를 숙였다. 몇몇 전사들의 눈에서 감탄의 기색이 어렸다. 전사 들인 그들이 둘러쌌을 때 미동조차 하지 않던 당당함과, 언젠 가부터 슬쩍 슬쩍 보이던 실력은 이미 입증된 바였다. “부럽군. 당당히 바람에 맞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아니요. 운 좋게 몸을 의지할 만한 바위를 만났을 뿐입니 다.” 풋, 움크는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후의 예상치 못했던 만남 이후로 그들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생각보다도 훨씬 친절한 움 크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였다. 란이라는 공통의 화 제를 지닌 그들은 전설에라도 빠져들 듯이 순식간에 가까워졌 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실력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하르크님 은 저와 같은 그림자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네. 본디는 페르로이 가문의 그림자 중 하나입니다.” 그 전에는 암살자 출신이었지만. 뒷말을 꿀꺽 삼키고 하르크는 너털하게 웃었다. 잠시 감탄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론이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기사를 정면으로 압도하는 그림자라니!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림자들은 정식 검술을 배우지 않지 않습니까? 그건 크리 아의 그림자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네. 정면으로 맞서는 검술은 익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식 검술을 익히지 않고서는 마나를 다루는 법을 터득하기는 힘들지 않던가요? 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론의 말에 하르크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그, 그건... 따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배우다니요? 기사처럼 마나를 다루는 법만을 따로 익히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요? 어떻게 하면!” 론만이 아니었다. 대화를 훔쳐듣고 있던 모든 자들의 관심이 일거에 쏟아졌다. “그, 그게... 말하자면.” 마나를 익히는 법. 뿌드득, 하르크의 이가 갈려 왔다. 그 달콤 한, 아니 달콤함을 가장한 독약 같은 말에 당해야 했던 갈굼이 란! “마, 마나를 따로...” 다루는 법을 ‘터득당하기 위해’ 걸어왔던 가시밭길이란! 눈 앞에서 두 주먹을 치켜들고 보란 듯이 흔들어대며 란이 새액 웃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벌근세 수’인지 ‘벌집세수’인지 차라리도 아니고 그냥 죽고만 싶 었던 그 고문!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고 분이 치미며, 두 주먹 이 버르르르 떨려오는 괴로움과 치욕과...! “아, 저어... 하르크님?” “크, 크에에에에엑!” 찢어질 듯한 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위가 싸늘히 가라앉았 다. 새파랗게 질린 론의 몸이 어느새 하르크에게서 두 걸음은 더 멀어져 있었다. 슬슬 엉덩이 걸음질로 계속해서 원을 넓히 며 움크의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옆구리의 검을 더듬었다. “헉!” 뒷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하르크가 재빠르게 두 손을 들어 입을 감쌌다. 옆에서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소년들이 ‘그럼 그렇지.’란 표정을 담고 고개를 슬슬 저었다. 하르크 를 존경하듯 바라보던 기사들의 고개가 슬그머니 돌아갔다. “아, 저, 저... 그런 걸 쉽게 말해줄 수 있을 리가 없죠.” 뻘쭘히 돌린 하르크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론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미친놈을 봐도 저리 하지는 않으리라. “휴, 양해하세요. 저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 앉아 조용히 빵을 뜯던 크레이가 슬 슬 손을 털어보였다. 마치 물지 않는 개를 어르는 듯한 동작. 벙찐 하르크의 고개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코와 입만을 남겨둔 채 얼굴을 꼼꼼하게 흰 천으로 가린 크레 이가 부드럽게 입가를 휘었다. 고운 입술이 불빛을 타고 붉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 두근,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울린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크레이에게서 눈을 돌렸다. 뭔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밟은 것 만 같은 기묘한 이질감이 그들을 급습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 는지 크레이는 몸을 조금 더 불가 쪽으로 밀었다. 흰 천에 너 무나도 잘 어울리는 얼굴은 차분함과 엷은 분노가 뒤엉킨 기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르크님이 무례했다면 용서하세요. 란님께 훈련받으면서 하 도 당하다 보니, 놀라면 저런 소리를 내지르게 되어 버린 것 같군요. 그건 훈련과정을 가장 오랜 시간을 곁에서 느껴온 제 가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푹, 숨을 내쉬며 크레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란의 훈련이라는 말에 눈망울이 또렷해진 기사들이 귀를 활짝 열었다. 크레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란님이 하르크님을 가르치면서 늘 하던 말씀은.” “...말씀은?” “죽도록 맞고 그냥 죽을래, 죽도록 맞는 대신 쪼금 더 강해질 래.” “..................” “였었으니까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다. 픽, 미소 짓는 크레이의 얼굴은 너무 나도 잔인하게 아름다웠다. “혹시 여러분들께서 란님께 무언가를 가르쳐달라고 하고 싶 은 생각이 있으시다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툭, 바닥의 돌맹이를 하나 들어 불 꽃으로 던지며 크레이는 담담하게 말을 마쳤다. “방금 전의 하르크 정도는 될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막의 폭풍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낸 전 사가 순간적인 감정 하나를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놈처럼 몸부 림치며 소리질러댈 정도라는 말이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던 움크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넘어가지.” 그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silverlit@hanmail.net 은빛의 정체 덩어리들입니다.^^. 두편으로 만들기에는 짧고, 한편으로는 좀 긴 분량이더군요. 그냥 한편으로 올라갑니다.^^/ 훗. 두려우시죠? 므흐흐흐..;;;;; (땀이 뻘뻘 나고 있다) 후, 늘 글을 쓰면서는 후기로 어떤 말을 써야지,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올리기 직전만 되면...깨끗이 머리에서 날아가 버리는군요...ㅠㅠ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드림워커에도 답글 남겨주심 감사...ㅠㅠ 꾸벅. 비오는 날의 각별한 다향처럼 모두 행복하시기를. 은빛 호독호독 {x} 2003/04/30 잠깐 동안의 휴식만을 주고 저들이 다시 무지 피곤한 시간을 보내게 될것 같다는-_-;;; 아아~~란 오디있어요오 아그들이 기다려요~ 하늘천사 {x} 2003/04/30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성실연재 바래요... 매일 와서 기다리고 찾는데, 안 올리시면 ㅠ_ㅜ 미워할 자격은 없지만요... ㅠ_ㅜ 샤혜르 {x} 2003/04/30 역시 란입니다~ 너무 좋아요~^^ 그런데, 만약 란에게 배워야 한다면 그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겠는-ㅁ-;; sue {x} 2003/04/30 성실연재 절대절대 연중은 안되요^^ 고미 {x} 2003/04/30 .....시험망쳐서나쁜기분이 이곳에오니 풀어지는군요^ㅁ^근데문제는아직시험이끝나지않았다는것 ㅠ.ㅠ 사악1004 {x} 2003/04/30 은빛님... ..굉장한 성실연재 입니다. T^T~내일이 시험인데... ..혹시 또 올라 올까봐 나가기가 싫어지는 군요... ..;;;;; ㅡㅡ;;~그런데 크레이 이미지가 참... ..많이 변했네요... ..쿨럭..;; maid {x} 2003/04/30 우리는 드...드....드디어 시험이 끝났어요.........ㅠㅠ......그동안 참아 왔던 컴터를 켜고.... 아지 {x} 2003/04/30 왜 란만 사라졌을까요??? ㅇ.ㅇa 그것이 궁금하다!! 실버 {x} 2003/04/30 으하하하하하~ 마지막 하르크의 처절한 비명소리.. ㅋㅋㅋㅋ 너무 재밌어요... ^^ yisrael {x} 2003/04/30 ㅋㅋㅋ 움크의 한마디 "넘어가지" 넘 잼났어요~ 뮤에 {x} 2003/04/30 역시 란입니다...하르크..정말 많이 시달렸구먼..쯔..쯔..쯔..하르크 파이팅!! 그리고 움크의 마지막 말..인상이 깊군요,..왠지 모르지만.. 이슬같은 {x} 2003/04/30 아 정말 재미있다....... ㅠㅠ 기청향 {x} 2003/05/01 란!란!란! 란을 보여줘~~~~~!!!! 란은 어디여??????????????????? yuri {x} 2003/05/01 I'm sending Big chearing to eunbit!! (From Australia) 고냥이 {x} 2003/05/01 크하하하하~역쉬..사막의 전사들이라도 로드한테 죽도록 맞는 건 싫을테지요...훗..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리고..두렵다니요...절대 아닙니다! 전 은빛님을 믿으니깐요~~믿씁니닷!! 퀴니 {x} 2003/05/01 하르크 넘 불쌍해~~>_< 금아 노도 란 다 빨리 보여주세요~~~님 싸랑훼요~~>_< 소녀 {x} 2003/05/01 왜.. 전 배우고 싶을까욤.. ㅠ_ㅠ; 란님~~~ 란님 팬클럽이라도 생길듯한..^-^; 다향 {x} 2003/05/01 정말....무섭다는......ㅠ_ㅠ 이러다 또 잠수타시면 ㅠㅠ Name: n.t {[공지]불펌방지태그 다시 붙였습니다.} crazycat 2002/12/09 1375 n.t {[공지]감상은 리플로만 남겨주세요.} crazycat 2002/12/30 983 22 {[[The Perfect MAID]] -116- 사막의 란} ♪3 은빛 2003/05/01 58 21 [[The Perfect MAID]]-115-각오 ♪18 은빛 2003/04/30 986 20 {[[The Perfect MAID]]-114-카느의 기도} ♪22 은빛 2003/04/29 1320 19 {[[The Perfect MAID]]-113-세자트의 수난} ♪8 은빛 2003/04/29 1089 18 {[[The Perfect MAID]]-112-세자트의 수난} ♪15 은빛 2003/04/28 1314 17 {[[The Perfect MAID]]-111-란과 움크} ♪9 은빛 2003/04/28 1157 16 {[[The Perfect MAID]]-110-란과 움크} ♪12 은빛 2003/04/27 1546 15 {[[The Perfect MAID]] - 109 - 생환} ♪16 은빛 2003/04/26 1473 14 {[[The Perfect MAID]] - 108- 생환} ♪22 crazycat 2003/04/25 1650 13 {[[The Perfect MAID]]-107-뒤탈은 누가 책임지는데?} ♪31 crazycat 2003/04/24 1656 12 {[[The Perfect MAID]]-106-모래바람} ♪15 crazycat 2003/04/23 1522 11 {[[The Perfect MAID]]-105-모래바람} ♪13 crazycat 2003/04/22 1605 10 {[[The Perfect MAID]]-104-원치 않는 사과} ♪18 crazycat 2003/04/21 1682 9 {[[The Perfect MAID]]-103-불길한 꿈} ♪9 crazycat 2003/04/21 1403 8 {[[The Perfect MAID]]-102-불길한 꿈} ♪19 crazycat 2003/04/20 1723 1 { 2 } {List} {Write} {EZBoard by EZNE.net}{은빛의 고양이 숲으로 이동}// {링크 신청란>>} The Perfect Maid Subject: [[The Perfect MAID]] -116- 사막의 란 [[The Perfect MAID]] -116- 사막의 란 없다. 아무 것도 없었다. 정수리 높이 솟은 태양을 무시하고 꼬박 하루를 달렸다. 분명 이 부근에서 헤어진 것 같은데... 흔 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제길.” 새하얗다. 머리위로 덮어쓴 흰 수건은 당장이라도 불탈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벌써 모래폭풍이 끝나고 맞는 두 번째 낮 이다. “야! 하르크! 이 쫌생이 전직 암살자 얼간이!” 마나를 담아 있는 힘껏 외쳤다. 공기가 웅웅 울렸다. 목이 잠 겨온다. 그러고 보니 움크와 헤어진 이후로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며 달리고 다녔다. ‘이 목소리가 어디까지 울려 퍼져 주는 거지?’ 문득 의심이 든다. “듣지 못할 리가 없는데.” 환골탈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할 정도로 만들어 놨다. 이 사막 안에 있다면 내 마나를 느끼지 못할 리도, 내 목소리 를 듣지 못할 리도 없다. 있다면 말이다. 살아 있다면. “제기랄.”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분명 헤어지기 전의 거 리는 멀지 않았다. 시간으로 따져도 아주 짧은 순간들, 그 이 후 바로 모래폭풍이 덮쳐왔다. 아무리 벼텼다지만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떠다녔으니 조금은 멀어질 수도 있었다. 그 생각으로 지금껏 달렸다. “근처에 있다면, 듣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설마, 설마하는 불안감이 안에서 점점 더 크게 자라났다. 이 정도로 살피고 소리 지르며 돌아다녔다면 뭔가 단서가 되어줄 작은 티끌이라도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있는 건, 열의 사막에 서부터 날아온 흰 모래 뿐이다. -그 아이들을 잘 부탁하네.- 늙은 노도의 꿈이 떠올랐다. 그는 이런 사태를 예견하기라도 했던 걸까? “빌어먹을.” 목이 탔다. -란님, 드래곤은 정말로 있는 거죠?- 힘겨운 도망길에서조차 미소를 잃지 않았던 아이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젠장.. 할.” -휘유우우. 란님, 좀 봐주쇼. 헤헤헤헤헤.- 툭하면 손사래를 치며 넉살좋게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던 하르 크.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고집스러운 의지를 당당히 보여주던 크레이. -받은 만큼의 은혜라도 갚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주욱 클레이 브님께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아직은 힘이 되지 못하지만, 이라고 덧붙이며 쑥스럽게 웃던 스테판. 모두의 모습과 목소리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 나갔다. “내가, 내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던 걸까.”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내 안의 한 구석에서는 그들이 이 하 얀 모래 안에 영원히 잠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찾 아오면서 꾹꾹 눌렀던 그 절망들이 봇물 터지듯 폭발하려 하 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걸까.” 난 이 삶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잘난 척, 난 강 해. 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원하면 그 어느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고, 살릴 수 있다고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난.” 내 힘을 무기삼아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을 뿐은 아니었을까. 난 이 삶을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내 무예를 익히던 시절의 그 하루하루의 충족감은... 어디로 날아간 걸까. 그저 강해지겠다는 막연함만이 남아 지상에 엉겨 붙어 시간만 낭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시절처럼 나 자신을 불사르며...” 살 수는 없어진 걸까. “하, 하, 하.” 클레이브를, 스테판을, 크레이를 그 작은 생명들을, 그리고 하 르크를 내가 진정으로 지키려고 했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럼, 하르크에게 일을 맞기지 않은 채, 그냥 검을 휘둘렀어야 하는 걸까. 움크도, 그 어떤 자도 내게 덤비는, 내 어린 주인에 게 덤비는 그 어떤 자도 망설이지 말고 모두 죽였어야 하는 걸까. “여신 아르페이나여. 내게 너무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었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하녀라는 굴레는 날 옭좨였 다. 하녀라는 이름은 나를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 는’ 존재로 만들었다. 이제 실감하고 있었다. 나 자신보다도, 내 자존심과 내 목적보 다도, 무신으로서 완성되겠다는 내 삶의 목표보다도 더 중요한 무엇을 지닐 수 없었기에 난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을 각오한 자만이 자식을 길러낼 수 있음을... 보모 도, 어린 아이를 돌보는 하녀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었다. “난 주인을 잃어서 고민하는 게 아니야.” 단어 한자 한자의 뜻이 뼛속깊이 패여 들어왔다. 말로는 주인 이라 했지만 난 그 아이가 내 주인이었기에 찾고 있는 게 아 니었다. “하, 하, 하....” 깊은 절망감이 내 발목을 잡아끌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투두 둑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면 아이들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애써 참고 참고 또 눌러왔던 눈물들이 한꺼번에 쏟아 져 나왔다. “하, 하....” 심장이 죄여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풀썩 무릎이 꿇렸다. 뜨거 운 모래가 이마에 닿았다. “후.” 한 참을 그렇게 눌러 앉았다. 등으로 서늘한 기운이 내려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한점 없는 하 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문득, 저 보랏빛 하늘을 아이들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런데서 절망해 죽어줄 필요는 없지.” 그거야말로 아르페이나가 비웃을 일이다. 난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휘청했지만 이를 악물고 몸을 세웠다. “죽지는 않았을 꺼야.” 절망이 차고 넘친 빈 자리에 서서히 희망이 채워지기 시작하 고 있었다. 약속 장소가 있었으니, 그 쪽으로 갔을지도 몰라. 그래. 트위리 에 있을 꺼야.”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믈 스믈 심장을 잠식해 오던 불길함이 희망에 밀려 한 구석으로 처박혔다. “트위리!” 나는 마나를 있는 데로 끌어올렸다. 거대한 폭풍과 맞서 싸운 뒤 바로 달린 터라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기는 했지만, 운기 따위 할 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지금 운기라도 한답시고 기를 끌어 돌리면 주화입마라도 덜컥 걸려버릴 것 같았다. “살아만 있어 다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후들거리던 다리의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 아갔다. 그 순간 난 모래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 아이들아.’ “센님” 센은 걸음을 멈췄다. 텅빈 복도에는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길다란 회랑형 복도를 받치고 있는 커다란 기둥들 사이로 들 어온 햇살이 복도의 공기마저 후끈하게 가열했다. 센은 자연스 럽게 몸을 돌려, 더위에 취한 냥 커다란 기둥의 그림자진 부분 에 이마를 댔다. “무슨 일이지?” 기둥 근처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쪽으로부터의 전갈입니다.” 센은 잠시 이마를 떼고 주위를 살폈다. 적막한 복도는 끝에서 끝까지 텅 비어 있었다. 자신을 제외하고 보이는 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센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보고를 하려들다니.” “죄송합니다. 그만큼 급한 일이었던지라.” “말하라.” 짧게 대화를 끊으며 센은 복도 밖의 정원을 구경하는 사람처 럼 기둥에 기대섰다. “남쪽의 마을 렌티아, 폭풍이 끝난 지점 바로 위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움크님의 행적이 발견된 듯 합니다.” “행적?” 센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네.” “행적이라면, 그들이 살아있다는 말인가?” 목소리가 딱딱 끊겼다. 온 몸에 흐르던 피가 발치로 다 빠져나 가버린 것만 같았다. 툭, 센의 몸이 기둥에 닿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쥬트는 뭐라고 했는가?” 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꽉 깨문 잇새로 피가 흘렀다. 기 둥에 기대듯 서 있기를 잘했다. 약한 모습 따위 짐 밖에 되지 않는다. 좀 전과는 다른 방향에서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 다. “일단은 그 마을을 고립시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전사들의 통 제는 센님께 상의를 청했습니다.” “알았다.” 조용히 옷매무새를 한번 다듬고, 몸을 똑바로 일으킨 센이 기 둥에서 떨어져 나왔다. “누구보다도 비정한 전사들을 준비하지.” 얼어붙은 살기가 걸음걸음 베어 나왔다. “이번 소득은 짭짤한데?” 너무나 급작스러운 바람에 도망조차 가보지 못한 시체들이 모 래더미 안에 널려 있었다. 모래 위로 들어난 건 건물의 지붕들 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정도가 최고의 표식이었다. “이 집도 꽤 들어있을 것 같아.” 열의 사막 부근에 위치한 마을들의 집 구조는 거기서 거기였 다. 바람도 매년 불어오는데다가 오아시스의 수맥이나 유사의 흐름들도 종종 바뀌기 때문에 커다란 이층 삼층의 건물을 짓 지 않았다. 단층의 자그마한 집에 주위에 천막을 치고 옮겨 다 니는 것이 다였다. “게다가 강력하게 불어왔던 것 치고 이 부근은 그다지 많이 묻히지도 않았어.” 살아있는 것들은 다 죽은 듯 싶었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노예가 얼마 없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이번 시 장에서는 한 몫 단단히 벌겠어.” 턱수염이 거친 남자 하나가 누런 이를 들어내고 커다랗게 웃 었다. 주위에서 모래를 파헤치던 남자들이 왁짜하게 따라 웃었 다. “맞아! 때 아닌 폭풍에 우리 같은 자들만 살맛이 났다니까!” “설마 설마하니 트위리를 털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구! 두목 만세!” “우와아아아! 이 금 좀 봐!” 한 사람이 지붕 아래로 파고 들어가서 큼지막한 목걸이 하나 를 꺼냈다. “이거 상인의 집 이었나 본데! 금화에 은화에! 와하!” 갈라진 목소리에 환희가 가득했다. “이봐! 나도 있다구!” 그에 응하듯 또 다른 사람이 금으로 된 잔을 들쳐 들었다. 흰 모래 위에 번쩍번쩍하는 누런 금덩어리들이 하나 둘 쌓여갔다. 비단과, 보석 그리고 귀중품들. 열의 사막을 건너온 제품들과 막 열의 사막을 건너 시장으로 가려던 물건들이 그들의 손길 에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거 역시 보고 트위리라니까!” “아하하! 폭풍의 열단이라는 우리가 정말 폭풍의 덕을 볼 줄 은 몰랐어!” 폭풍의 열단은 그들 도적단의 이름이었다. 두목쯤 되어 보이는 자가 금덩이들을 헤아려보며 슥, 침을 닦았다. “크흐. 그 귀찮던 마법진까지 사라졌다는 말에 반신반의 했었 지만, 이건 정말!” “맞아. 털보네 다른 놈들이 안다면 뒤집어지고 환장을 할 꺼 야!” 등에 짊어지고 왔던 비단들을 한짐 쏟아놓으며 구렛나루를 길 게 긴 남자가 모래 위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휴, 좀 숨이라도 돌려야지.” “젠장. 게집년 하나쯤 살아있어 줘도 좋았을껄.” 간혹 사람이다 싶어서 들춰보며 하나같이 시체였다. 아무리 반 반해도 소용없다. 죽은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난 시체들이다. 사 간이고 뭐고 안 가린다던 지랄스럽던 놈들도 잠시를 견디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며 뒤로 돌아섰다. “지랄하네. 차라리 이 돈으로 가서 번듯한 걸 사.” “돈 쓸 줄도 모르는 새끼.” 어디서 캐냈는지 모를 돈무더기를 한 짐 들고 와 모래바닥에 내려놓는 동료의 말에 구렛나루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두목 의 날카로운 눈이 그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쯤 쉽게 알 수가 있었다. 퍼 온 만큼, 찾아낸 만큼 몫으로 돌아간다. 두목의 몫 을 좀 빼고, 정보비나 뭐 그런 것들을 내고 남은 만큼이 온전 한 몫이다. 두목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의 목소리로 작게 툴툴거리며 남자 는 아직 동료가 손을 데지 않아 보이는 지붕으로 발걸음을 옮 겼다. “어라? 사람인가?” 언덕의 조금 아래쪽으로 무언가가 서 있었다. 역광 때문에 정 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길다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것 같 은... 무언가가 그의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휘유! 여자다!” 그의 옆쪽 멀지 않은 곳에서 도굴에 열중하던 또 한 놈의 도 적이 외쳤다. 구렛나루 남자는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으르렁거 렸다. “내가 먼저 발견했어! 이 빌어먹을 놈!” “헤! 놀고 있네.” 빈정, 말을 던지며 그 남자가 앞쪽으로 나섰다. 여자가 멈췄다. 빛을 마주선 방향이 바뀌며 여인의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길게 기른 머리를 허리 아래쪽으로도 한참 더 흘려보냈다. “생존자인가?” “곱게 길러졌겠군.” 쩝, 빈 입맛을 다시며 누군가가 말했다. 어느새 대부분의 도적 들의 도굴을 중단하고 그의 주변으로 몰려 있었다. 대부분의 사막의 여자들은 머리가 짧았다. 채 다 기르기 전에 잘라 파는 게 대부분이었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저렇게 바람에 나풀거리 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꾸지 못했다. 강한 태양 볕은 머리카 락을 거칠고 상하게 만들었다. “휘유! 이번에는 팔 노예가 없어서 좀 걱정이었는데, 마침 제 발로 찾아와 주는군.” “크헤헤헤헤!” 음흉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산적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낮게 낄낄거렸다. 자박, 두목이 그들의 중앙에서 한 걸음 앞쪽 으로 나섰다. 움찔 긴장한 도적들이 굳은 얼굴로 표정을 지었 다. 살기가 풀풀 흘러나오는 이럴 때의 두목은 절대 건들어서 는 안 되는 존재였다. “얼간이. 비싸게 팔 수 있는 년이다. 건들지 말도록.” 피비린내를 풍기며 두목이 흐흐, 웃었다. 구렛나루는 소름이 바짝 끼쳤다. 주위 도적들도 마찬가지 심정인 듯 슬금 몸을 사 렸다. “.................에.” 두목은 사막의 도적들 치고는 부하들을 꽤 챙겨주는 편이지만 일단 정한 일에 반발하거나 상품을 훼손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잔인함을 발휘했다. 운 좋게 보물을 손에 만진 날, 껍데기가 벗겨진 채로 사막을 끌려 다니고 싶은 바보는 없었 다. “체, 알았수다.” 두목이 몇몇 도적을 찍었다. 그들은 조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 로 자신들의 낙타를 끌어다 올라탔다. 나머지 도적들은 하던 데로 삽을 들었다. “흡집 없이 잡아와라.” 두목의 도가 빛을 반사시켰다. 낙타에 올라탄 도적들이 각자 자신이 쥐고 있는 도를 꺼내들었다. “알았소. 두목.” 눈부시게 흰 빛이 도신을 타고 유연하게 흘러내렸다. 두목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물렸다. silverlit@hanmail.net 은빛의 정체 덩어리들입니다.^^. 자아, 도적들이 발견한 여자는 누구일까요?...;;;;; 편하게 만나게 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만...ㅡㅡ;;; 므흐흐흐흐.... (잠수할 때는 공지하겠습니다. 안심하시길.)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드림워커에도 답글 남겨주심 감사...ㅠㅠ 꾸벅. 비오는 날의 각별한 다향처럼 모두 행복하시기를. 은빛 lianfhei {x} 2003/05/01 허거거...1탄넹....은빛님 홧팅~>.< 야휘 {x} 2003/05/01 란 아닌가요? 아무리 봐도 란.....;;;; 사악1004 {x} 2003/05/01 -_-;;~쯧쯧... ..불쌍한 도적들...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 Name: n.t {[공지]불펌방지태그 다시 붙였습니다.} crazycat 2002/12/09 1375 n.t {[공지]감상은 리플로만 남겨주세요.} crazycat 2002/12/30 983 22 [[The Perfect MAID]] -116- 사막의 란 ♪3 은빛 2003/05/01 60 21 {[[The Perfect MAID]]-115-각오} ♪18 은빛 2003/04/30 988 20 {[[The Perfect MAID]]-114-카느의 기도} ♪22 은빛 2003/04/29 1320 19 {[[The Perfect MAID]]-113-세자트의 수난} ♪8 은빛 2003/04/29 1089 18 {[[The Perfect MAID]]-112-세자트의 수난} ♪15 은빛 2003/04/28 1314 17 {[[The Perfect MAID]]-111-란과 움크} ♪9 은빛 2003/04/28 1157 16 {[[The Perfect MAID]]-110-란과 움크} ♪12 은빛 2003/04/27 1546 15 {[[The Perfect MAID]] - 109 - 생환} ♪16 은빛 2003/04/26 1473 14 {[[The Perfect MAID]] - 108- 생환} ♪22 crazycat 2003/04/25 1650 13 {[[The Perfect MAID]]-107-뒤탈은 누가 책임지는데?} ♪31 crazycat 2003/04/24 1656 12 {[[The Perfect MAID]]-106-모래바람} ♪15 crazycat 2003/04/23 1522 11 {[[The Perfect MAID]]-105-모래바람} ♪13 crazycat 2003/04/22 1605 10 {[[The Perfect MAID]]-104-원치 않는 사과} ♪18 crazycat 2003/04/21 1682 9 {[[The Perfect MAID]]-103-불길한 꿈} ♪9 crazycat 2003/04/21 1403 8 {[[The Perfect MAID]]-102-불길한 꿈} ♪19 crazycat 2003/04/20 1723 1 { 2 } {List} {Write} {EZBoard by EZNE.net} Subject: [[The Perfect MAID]] -117- 사막의 란 반짝, 눈 앞쪽에 뭔가가 보였다. 사람? 마을인가? 트위리를 향 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바위 같기도 하고, 뭔가 디딤 대 같기도 한 것들 위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난 걸음을 멈췄 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가볍게 기를 순환시켰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봤을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하는 건 오랜 세월을 통해 무의식중에 베인 습관이었다. “적의.” 모락모락 적의가 피어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저들은 날 환영해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적의에 반응해서 몽롱히 잠겨 있던 정신이 또렷하게 깨어났다. 찬물이라도 덮어쓴 듯 전신의 신경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내공이 순 식간에 가속을 타고 부풀어 오르며 내 몸을 회복시켰다. “트위리에 가까워진 건가?” 살아남은 여행자가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저들이 트위리가 어디인지를 알려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뭐, 듣는 거야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멀리서부터 적의를 뿜어내는 자들이 좋은 태도로 내게 뭘 설 명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아!” 조금 높은 곳에서 날 쳐다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간다 싶자마자 일련의 사람들이 낙타를 타고 내게로 질주해 달려왔 다. 새하얀 옷, 새하얀 모자, 그리고 눈부신 흰 빛을 반사하는 도신. 그리고 그 안에 갈무리된 지저분한 탐욕. “도적이군.” 나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져 나왔다. “마침 잘 만났지 뭐야.” 도적이 아니라 강도라도 반가울 만큼 난 사람에 굶주려 있었 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찾아 트위리에 가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 르는 갈 곳 없는 분노들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멈춰라!” 침이라도 줄줄 흘리면 딱 알맞을 듯한 표정을 한 얼간이 넷이 탄 낙타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날 죽 둘러쌌다. “휘유! 이거 보기보다 상등품이겠는데?” 그 중 하나가 말했다. 난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입가에 걸린 의기양양한 표정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내가 벌써 그 들의 노예라도 된 듯한 자신만만함들 이라니! 픽, 웃음이 새 나왔다. “웃어? 어쭈? 모래 폭풍에 미친년 아니야?” 나름대로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다른 한 놈이 말했다. “하긴, 마을이 저 꼴이 됐는데, 정상적인 년이 있기는 힘들 지.” 낙타 뒷좌석에서 로프를 꺼내며 또 한 놈이 말했다. “마을?” “헤! 말은 할 줄 아나보네?” 터벅, 등 뒤 가까운 간격 안까지 낙타가 다가왔다. 불쾌했다. 본능적으로 다져진 간격 안, 내 검이 한번에 그어낼 수 있고, 날 그어낼 수 있는 그 검의 길이. 그 안에 누군가가 들어와 있 다는 사실이 내 스스로가 놀랄만큼이나 기분 나쁘고 혐오스러 웠다. “마을이라면 어떤 마을이지?” 자연 목소리도 퉁명스러웠다. 밧줄로 올가미를 꼬아 휙휙 공중 에 돌리며 도적 하나가 말했다. “제가 살던 마을도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 “하긴, 그 철썩 같이 믿던 마법진까지 망가져 저 꼬라지가 됐 는데 제 정신이겠어?” 날 둘러싼 원이 점점 좁아졌다. “마을의 이름이 뭐지?” 자글자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분노와 짜증이점점 차고 올라와 머리끝까지 채워가고 있었다. 난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눈앞 으로 보이는 폐허는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살아있을 만한 마을 이 아니었다. 저 마을은 트위리가 아니다. 저 마을은 트위리가 아니야. 트위리 일 리가 없다. 새하얀 모래 아래로 죽음과 약 탈의 향기가 풍겨오는 저 망자의 폐허가 그 마을일 리가 없다. “뭐지?” 간신히 억눌러 놓았던 분노와 절망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 폭발을 짓누르며 난 간신히 질문을 되씹었다. “하! 정말 미쳤군. 트위리다. 트위리.” 방금 전과는 또 다른 놈이 말했다. 빈정대는 미소, 어이없는 목소리.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 몸이 굳었다. 그 사이 올가미가 내 몸에 씌워졌다. 팽팽히 줄 을 잡아당기며 줄 끝에 있는 도적이 비열하게 웃었다. “하긴 마을에 살아 놈은 놈이 없는데 안미치면 섭하지.” 바닥이 살짝 내게로 다가왔다가 멀어졌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 가는 것처럼 눈앞이 희뿌옇게 보였다. 몸이 휘청휘청 흔들리고 있었다. “살아.. 남은... 사람이.. 없어?” 아니야, 아니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모래폭풍은 순식간에 덮 쳐왔다. 폭풍이 불어올 당시 아이들은 이 곳에 없었다. 트위리 의 사람들이 모두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 아이들과는 상관없다. “미친바람 덕분에 우리만 부자가 됐지.” “가까스로 살아남아 굴러왔던 놈들까지 바짝 말라죽었으니 까!” “말라죽어?” 눈앞에 불꽃이 튀지는 것 같았다. 뒤통수로 머리를 후려 맞은 느낌. 놈들의 비릿한 눈이 내 쪽으로 몰렸다. 윙윙, 머릿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난 쥐어짜듯 목소리를 냈다. 숨이 턱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호, 혹시, 어린아이 셋과 어른 하나의 일행은?” 휙, 몸이 잡아끌려졌다. 놈들은 날 묶은 끈을 낙타 뒤쪽에 묵 고 낙타를 몰기 시작했다. 마치 남의 장면처럼 무감각하게 보 여 지고 있던 일들이 그때서야 내 일이라는 자각이 되어 돌아 왔다. 난 다리를 멈췄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던 절망과 분노 가 이제 차 넘쳐흐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핑!- 끈이 팽팽히 당겨지며 높은 소리가 울렸다. 낙타가 멎었다. “어쭈? 이것 봐라?” 남자가 채찍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사납게 날 한번 노려본 다 음 자신이 탄 낙타를 후려쳤다. 애닯은 비명을 지르며 낙타가 울었다. 목이 앞쪽으로 기울어지고 낙타가 힘을 다해 앞 쪽으 로 나가기 위해 모래를 딛었다. 파앗! 낙타의 발에 긁힌 모래 들이 움푹하게 패였다. “어른 하나와 아이 셋의 일행이 살아있느냐고 물었다.” “이 년이!” 툭, 날 묵고 있던 끈이 끊어졌다. 날 끌고 가려던 낙타가 그 반동으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커다란 모래 먼지를 휘날렸다. 막 채찍을 꺼내 날 후려갈기려던 도덕 하나가 손을 멎었다. 짧은 순간 그의 눈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살았는가.” 죽었는가라는 말은 내 입으로 할 수 없었다. “죽어랏!”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던 한 도적이 도를 휘두르며 날 내리치 기 위해 몸을 아래로 기울였다. 눈부신 흰 곡선이 비스름이 휘 어지며 내 목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리석은 놈.” 턱, 손가락 사이에 잡힌 도신이 파르르 가늘게 떨었다.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놈이 펄떡 놀라 도를 놓고 낙타에서 떨어 졌다. 주륵, 누린 물이 놈의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모래로 스며 들었다. 기세에 눌린 다른 두 도적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사이 먼저 낙타에서 떨어졌던 도적이 네발로 기듯 달려가 자신들의 무리에게로 뛰어들었다. “살았는가. 라고 물었다.” 뺏은 도를 바로 들었다. 도를 다뤄본 적은 많지 않았지만 그 역시 베이는 물건. 가늘게 기를 흘려보내자 도의 문특한 뒷면 에 날카로운 날이 자라났다. “흐, 흐에에엑! 마스터!” 얼음이 녹은 듯 나머지 두 도적이 외쳤다. 내 도신이 유연한 곡선을 그렸다. “크, 크아아아아악!” 뼈가 잘리고 근육이 토막 나는 섬뜩하고도 익숙한 느낌이 도 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흰 모래를 물들이며 붉은 피보라 가 터져 나왔다. “주, 죽었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단 말이다!” 도신이 춤을 춘다. “젠장! 저건 뭐야!” 두목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들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커다 란 비명소리였다. 전사 셋이 한순간에 낙타 채로 두 동강이 났 다. 섬뜩한 살기가 사막을 압도하고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 다. “두, 두, 두목!” 벌써부터 그 가공할 공포에 전염 되었는지 옆에 서 있던 도적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한마디 해 주기 위해 고 개를 돌린 두목의 입이 떡 멎었다. “제, 젠장 할!” 꽤 먼 거리에 있던 여인이 어느새 바로 코앞까지 닥쳐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여인은 그를 스쳐 그의 뒤편에 널려져 있는 사람들의 시체로 다가갔다. 코를 마비시킬 것 같은 피 냄 새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 죽어!” 몇몇 도적이 공포에 이성을 상실하고 몸을 날렸다. 가는 빛이 잠시 반짝인 듯싶었다. 후두둑, 피비가 흘러내렸다. 언제 어떻 게 베었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걸어 나갔을 뿐 인데, 부하들이 마치 저절로 분해되고 몸통이 갈려 바닥으로 추락한 것만 같았다. 뒤를 이어 덤벼들려 했던 몇의 다리가 모 래에 딱 박혔다. “너희들도 인가?”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스윽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는 데, 뒤를 돌아 그녀를 쫓으려던 세 도적이 허리와 다리가 동강 나며 모래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작은 소리도 없었다. “크, 끼아아아아아악!” 뒤늦게 공포에 미친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도를 내던지고 모 래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다. “죽고 싶나.” 어떻게 들렸는지도 모를 작은 목소리였다. 그랬는데도 비명소 리들이 딱 멎었다. “크큭!”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을 벌려 무언가를 소리 지르고 싶음에 도 입이 벌어지지가 않았다. 후두두두 다리가 떨렸다 팔이 떨 렸다. 마치 지독한 악몽에 가위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멀리 풍경처럼 보이는 그의 부하들이 툭, 툭 들고 있 던 삽과 검을 떨어트렸다. 두목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지간한 공포에서도, 심지어 카느의 토벌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덤벼 살아남은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단시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 로도 제압되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이 악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유, 유령일 지도 몰라.’ 이를 악물고 다시 부릎 뜬 눈에 여인의 긴 흑발이 보였다. “아니야. 이들은.” 시체 하나 하나를 면밀히 살펴보던 여인이 툭 말을 뱉었다. 순 간 그 여인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삶으로의 지독한 갈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여인이 시체를 가로 질러 그 앞쪽에서 떨고 있는 구렛나루의 도적에게로 다가갔다. “이 근처는 너희 같은 것들이 많나?” “크, 크흑!” 한점 흔들림도 없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맹세코, 또 맹세컨대 단 한번도 그는 저런 살벌함을 본 적이 없었다. 눈빛이 가늘어 졌다. 구렛나루는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황급히 고 개를 끄덕였다. 턱, 목에 찬 무언가가 닿았다. 어느새 휘둘러졌 던 도신이 목 머리카락 한끝 앞에서 멎어 있었다. 식은땀이 촤 악! 솟아났다. “도적떼들이 많다라.” 힐끗 둘러보며 자신들이 캐낸 금은보화를 잠시 바라보던 여인 이 다시 무채색 눈동자를 움직였다. “사람도 파나?” 구렛나루의 머리가 텅 비워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별 잡스러운 것들이 되살아나며 황당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좀 전에 군침을 흘렸던 것을 눈치 챈 것이 아닌가부터, 피를 좋아하니 베는 감촉이 좋은 노예나 시체를 찾고 있는 걸지도 몰라 까지. 그러나 그는 그 생각들을 소리 내 말하지 못했다. “파나?” “네, 네네넵! 물론입니다! 마, 많은 노예들이 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휘청휘청 몸을 움직일 대 마다 목 가까이에서 멎은 도 신을 타고 핏방울이 튀었지만 그딴 것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 다. “그렇군.” 여인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장소는?” “저, 저, 이 마을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있는 작은 마을입니 다!” “이름은?” “에, 엥가트.” 휙, 여인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 순간에 마치 신기루처럼 그들의 앞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뜨듯한 바람이 그들을 스 치고 달려 나갔다. 사라락 모래가 움직였다.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태양이 기울어졌다. 이제 정말로 아무 도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무렵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꾸, 꿈인가.” 다리에 힘이 없었다. 도적들은 하나 둘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 다. 머리가 어찔했다. 온 몸이 땀과 지린 오줌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구렛나루의 손이 자신의 목덜미를 쓸었다. 통증도 느 낌도 없었다. 단시 손바닥을 흠뻑 적신 피만이 그의 목에 도면 이 닿아있었던 증거처럼 남아 있었다. 힐끔 힐끔 돌려 마주친 동료들의 시선에 마찬가지의 경악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언제 사라졌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제, 제길. 있는 것들만 다 챙겨 떠나가자.” 부스스 두목이 몸을 일으켰다. “두, 두목! 그 여자 유령이었으면 어떻하구요! “재, 재수 없어요!” “닥쳐! 반이나 죽었다! 지금 저것마저 없으면 너희나 난 다 이 사막에서 말라죽게 된단 말이다!” 겁에 질린 눈으로, 언제 그 여자가 다시 돌아올지 몰라! 사방 을 두리번 거리며 도적들이 급히 꺼낸 금덩이들을 살아남은 낙타에 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불안감을 느낀 낙타들이 고개를 흔들며 뒷걸음질 쳤다. “제, 제길. 다른 건 두고, 급히 돈으로 쓸만한 것만 챙겨라. 우린 엥가트로는 가지 않을 거니까.”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들을 끄덕이고 있었다. “빨리 달아나자.”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silverlit@hanmail.net 은빛의 정체 덩어리들입니다.^^. ^^/ 넵. 그리고.. 가끔씩 리플에 언급되는 것 같아서 덧붙입니다만, 퍼펙트 메이드는 창조신의 파업일기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독립적인 글입니다. 초기 설정을 잡을 때,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여주인공이라는 점에서도 그랬죠) 란이 창파기의 륜이 아니냐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만, 두 글은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두 인물의 성격 설정이 매우 비슷하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습 니다만...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창조신의 파업일기는 1부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완성된 글입니다 엔딩이 좀 약한 감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그 뒤의 이야기는 독자분들께 맡기려고 합니다. 잠들어버린 이루미오나 이후의 이야기는 현재로서는 쓸 계획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폭풍의 기사는, 아루미오나 이전의 세게관을 지니고 이어가는 글입 니다. 공지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글이라고 생각하고 봐 주셨으면 합니다. 창조신의 파업일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폭풍의 기사에는, 륜도 로델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여신의 기사를 쓰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 터라. (글을 도저히 이어나갈 수가 없더군요) 가능하다면 저도 이어 써 보고 싶었습니다만, 현실 비현실을 다 떠나 더 이상 그 이야기가 이어지지가 않더군요. 저 역시 궁금한 상태로.. 남겨둘까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완결된 스토리의 인물들은 추억과 사랑으로만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앞으로도 이어질 제 글들에... [[The Perfect MAID]] -118- 사막의 란 -기왕 끼어들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왓!- 쨍쨍한 아르페이나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귓가를 울렸다. “휴우.... 이런.” 요 근래 들어 습관처럼 붙은 한숨이 연거푸 쏟아져 나왔다. 화 가 거의 풀려갈 판이었는데. 그래도 잘 마무리 된 거 아니냐 며, 열었던 지상의 화면에 ‘반쯤 정신 나간 란이 피보라를 일 으키며 도를 휘두르는’ 모습이 잡혀 버린 건... 지독한 불운이 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정도나 되는 무인이. 저런 자제도 못한단 말인가!- 홧김에 내뱉은 그 말이 불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펑! 아르페 이나의 머리 위로 뭔가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는, -이, 이, 이 천하에 무식한 사고뭉치 전투광 같으니!- 빼액! 괴성과 함께 아르페이나의 가녀린 손에 아르의 멱살이 쥐어진 다음이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흉흉했던지 무신인 그가 한 순간 압도당할 정도였다. 두 눈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아르페이나는 존재 이후 최초의 광기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그런 눈밖에 달고 있지 못하니까 이 땅에 네놈이 좋아하는 그놈의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거다!- -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살기도 아닌, 투기도 아닌 진득한 무언가 가 아르페이나의 전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잃어서는 안 될 것을 잃어버린 고통을 모르지 않을 텐데.- 끝없이 치솟았던 아르페이나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착 가라앉 았다. 냉냉한 얼굴, 툭, 멱살을 놓은 아르페이나의 옆모습은 묘 하게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끈, 아르의 가슴 언저리가 아 파왔다. -아무리 어울리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재수가 없는 무신 이라 하더라도! 벗어버릴 수 없는 모성의 본능을 타고난 존재 에게 보살피던 아이가 사라진 고통을 모르는 게냐.- 푼수와 주책으로 점철된 아르페이나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할 모습이었다. 멱살을 잡혔던 모욕도, 귓가에 대고 바로 질러 진 괴성에 대한 분노도 한 순간에 잊혀져갔다. -지상의 균형을 위해 네가 해야 하는 일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 그렇기 위해서는 내가 지닌 영역 따위는 넌 영원히 몰라야겠지. 그렇지 못한다면 너도 버티기 힘들 테니 까.- 처음 보는 듯한 여신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외에는 비워져야 하는 존재들이 우리들이지. 그 때문 에 우리에게는 주신께서 계신 것이고.- 아르페이나의 손짓에 따라 바닥에 떨어졌던 상들이 하나 둘 떠올라 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수 없이 많은 지상의 모 습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밝은 빛을 형성시켜갔다. -아르, 잊지 말아라. 결정의 몫이 인간에게로 남겨진 이유는 우리가 불완전한 완전체이기 때문이다.- 문득 그녀가 아르 자신보다도 훨씬 오래 전에 창조되었던 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창조의 신은 한번에 모든 신 을 만들어내지 않고 인간과 지상의 성장에 맞춰 많은 신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뒤책임까지 깔끔하게 지고 오란 말이닷!- 그리고 잠시 그녀가 아닌 듯 했던 아르페이나는 아르가 익숙 해져 있던 아르페이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광 무신아!- 묘한 반가움이 아르를 사로잡았다. 저 버럭 지르는 쇳소리에 벌써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고개를 갸웃 해 봤자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휴. 앞으로 두고두고 약점 잡히게 생겼군.” 투덜투덜 연신 입을 놀리면서도 아르의 표정은 묘하게 밝았 다. 애초에 ‘화근의 씨앗을 불러드린 존재가 누구냐’라고 말 할 수 있는 기회는 다 지나갔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런 존 재를 불러다가 가뜩이나 꼬여있는 클레이브라는 소년의 삶 한 가운데에 턱 박아 넣은 아르페이나의 ‘순간 모면하기식 땜 질’이 지금의 상황들을 만든 거였지만, 이미 보였듯이 기회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모습을 보일만도 한데.” 아르가 떨어진 곳은 열의 사막 건너편에 자리 잡은 성스러운 산이었다. 폭주하는 란을 말려 아이들의 곁으로 돌려보내기 위 해서는 무언가의 조취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있 는 존재 하나를 아르는 알고 있었다. 굽이굽이 휘어진 작은 산 등성이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아르는 그 산의 한 봉우리 앞에서 다리를 멈춰섰다. “성스러운 숲의 수호자, 초록빛 비늘을 지닌 드래곤이여.” 꿈틀, 산의 모습이 흔들렸다. 풀과 나무가 우거진 무성한 숲의 영상이 흔들, 움직이며 그 안으로 거대한 초록의 비늘이 보였 다. 숲의 일부분처럼 묻혀져 있던 거대한 황금빛의 눈동자가 서서히 열렸다. 아주 오랫동안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눈꺼풀 위로 자라난 잡풀들과 돌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무엇을 찾으시는가요. 위대하신 분이여.” 아르의 입가가 살짝 휘었다. “자네를 찾고 있었네.” 황금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는 기지개를 펴듯 거대한 목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백여 년 만이로군요.” 반가웠다. 아르는 드래곤들의 창조자이자 수호신이기도 했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드래곤은 우아하게 송곳니를 들어내고 입꼬리를 잡아올렸다. ‘이 전쟁에서 이겨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없다.’ 재수 없으면 간신히 이루어낸 프란의 통일까지도 깨질 수 있 다. 프란의 기반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카느와 무력이다. 그 힘이 깨져 버린다면. 지금도 은근히 반발하고 있는 남부 외 일부 우그르들은 확실하게 떨어져 나간다. ‘우트트님이 바라시는 게 카슬의 통일이라는 건 알지만...’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우선 열의 사막으로 통하는 교두보 인 트위리가 무너졌다. 당분간 사막 아래의 남부는 제국의 힘 이 닿지 않는다. ‘게다가, 그 하녀가 정녕 Lord라면...’ 몸속에 맹독을 품고 있는 셈이다. 그녀와 아이들을 따라간 움 크는 어떻게 됐을까. 목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그녀가 움크를 지켜줬을 거라고 노도는 말하지만 세자트로서는 믿기 힘들었 다. 아무리 그녀가 특별한 존재라지만 죽이겠다고 그 외진 곳 까지 따라간 상대를 고이 살려 지켜주기까지 할까. 살아 있다 고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해주니 뭐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믿으 면서도, 믿기를 원하면서도 불안해 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네에게 있는 권한이 절대적이지는 않겠지. 무엇보다도 자 네는 우그르트 움크의 오른팔이니까.” “네.” 현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우트트인 이상 그건 변하기가 힘들 다. 세자트가 움크를 버리고 우트트의 심복으로 돌아선다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전 선전포고를 위해 보내진 사신에 가깝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며 세자트는 힐끔 금아의 얼굴을 살폈다. 백여 세가 넘은 전설적인 무인. 소국의 대공이기 전에 금아는 전사 인 세자트에게는 존경하는 대상이었다. 공적인 자리라면 이렇 게 편안히 말을 붙일 수도, 받을 수도 없었으리라. 그런 면에 서 두 노인들이 만들어준 기회는 옷 두벌과 한끼의 식사 값은 이미 넘치게 돌려받은 셈이었다. “우트트는 야심이 넘치는 젊은이더군.” 게다가 엄한 정치모략까지도 익히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을 결 투로 해결하던 사람들에게 그의 지략이 발휘하는 힘은 신선하 고 충격적이었다. 그건 세자트도 인정하는 바였다. 타국, 자신 들과는 상관없는 어느 나라에서나 이루어지던 그런 힘의 구조 가 자신의 코앞에서 일어난다는 건, 그 영향으로 인해 자신의 힘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근본적인 체제에 대한 불안감을 낳았다. 지금까지 한 자루의 도와 검에 의지해 힘을 세워왔던 사람들에게 몇 마 디 말과 글이 대세를 바꿔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사막의 유사 에 휩쓸린 듯한 절망감을 불러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움크 를 따르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가 그랬다. 우트트의 손을 거절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런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사막인의 기질을 만들어준 것은 그 척박한 땅이다. 그 사막은 그런 기질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이전까지는 드물었던 지도자 타입입니다.” “사막에는 맞지 않지.”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단호한 금아의 눈을 마주보는 세 자트의 속이 내심 서렸다. 가슴을 펴고, 허리를 펴고, 금아의 눈에 맞서는 세자트를 잠시 바라보던 금아가 먼저 양보하듯 표정을 누그러트렸다. 가쁜 숨이 세자트의 입에서 터져 나왔 다. “..................” “나라가 튼튼해지려면 백년은 걸린다네. 사람들이 자신이 살 고 있는 나라를 하나로 인식할 때까지는 적어도 세 번의 흐름 은 변해야 해.” 세자트는 반박할 말을 찾지 않았다.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 었다. 말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닌 이상 자존심을 위해 의미 없 는 논쟁을 펼치는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 ‘게다가 지금은 정식 사신의 자격으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정식 사신이 오디아누 관문을 거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 이 이 곳으로 들어오려면 며칠은 더 걸린다. 똑똑, 문이 울렸 다. “방해가 되었습니까?”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흰 머리와 수염을 늘어트린 노도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니요. 노도님.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움크님의 소식은?” 반가운 기색으로 몸을 일으키는 두 사람에게 노도는 부드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곧 확인할 수 있게 될 거네. 내일만 지나면...” 활짝 웃는 미소 속에 뭔가 알 수 없는 짓궂음이 숨어 있었다. 세자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지난 며칠간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저 노인은 누군가를 골탕 먹일 때면 저 런, ‘특별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인자한’표정을 짓는다. 팔뚝 에 일어난 소름을 쓰다듬으며 세자트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제길.” 같은 시간 소름이 점령한 몸을 떨고 있는 건 세자트 만이 아 니었다. -쾅!- 바닥으로 떨어진 수정구 하나에 쩍 금이 갔다. 비싼 거였는지 아닌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성을 잃고 있는 힘껏 구슬을 밀 어내 버린 로웬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제길! 제길! 제길! 왜, 내가 저런 늙은이의 말을 따라야 한단 말이야!” 알아서 기는 것도 한 두 번이었다. 수정구슬 이후로 툭하면 나 타나 자잘한 것들을 움큼움큼 집어가더니만 이제는 아예 궁정 마법사 자리까지 내 놓고 나가라고 한다. 요 근래 소식이 없어 죽기라도 했나 즐거워했던 악몽이 너무나도 뻔뻔한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친필로 서명이 된 것이 분명한 대공 의 명령서까지 고이 만들어 들고! “제기랄...” 투툭, 눈물이 떨어졌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눈물이라도 흘려보내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묵직한 명치가 욱씬 욱씬 아려왔다. 차가워진 손발이 부르르 떨리며, 아랫배 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울렸다. “제기라알...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그딴 추방자 소년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가야 한단 말이야.” 대뜸 찾아온 노도가 준 소식은 프란의 사막지대 어귀에 있는 클레이브를 찾아가라는 전갈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마법에 익숙해질 것 같지 않으니, 잘 하는 네가 가서 좀 도와라... 말 은 좋았다. “궁정의 자리를 어떻게 얻은 건데!” 궁정마법사라는 이름만 있다고 해서 궁정에서 자리 잡고 마법 의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과 숨 막히는 시험을 통과하고 실력을 입증 받아 이 자리까지 왔건만, 지금 사교계의 공적이나 마찬가지인 클레이브가의, 이제 작위도 인 정받기 힘든, 평민이나 다름없는 꼬맹이를 찾아가라니! 미치고 펄쩍 뛰다 못해 뒤집어져 죽을 맛이었다. -안 가면 알지? 꿈속에서라도 날 보고 싶걸랑 알아서 하게.- 꿈틀 경련을 일으킨 로웬이 웅크리고 있던 자세를 푸르고 두 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폈다. 얼마나 살벌하게 들렸었는지 떠올 리기만 해도 그 늙은 정원사가 꽃삽을 들고 옆에서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크흑!” 로웬은 피눈물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먼 여행에 가져갈 수 있는 마법 물품과 도구들은 정해져 있었다. 가볍게 만드는 마 법이 걸려 있는 큼지막한 배낭에, 잘 말린 스크롤들과 마법 시 약들을 밀어 넣었다. 눈물이 멎지 않아 뭐가 뭔지 헷깔릴 지경 이었지만, 차분해지고 싶은 마음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저, 저, 저 비싼걸...” 바닥에 뿌려진 파편이 눈에 보인 건 모든 짐을 다 챙기고 옷 까지 갈아입은 무렵이었다. 뒷골이 띵했다. “악연이야, 정말 이건 저주라구.” 아무런 생각도 이어지지 못했다. 빙글빙글 웃는 노도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제기랄! 내 돌아오기만 해 봐라! 그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버르장머리 없는 돌팔이 마법사를 응 징해야 한다. 지금이야 대공의 명령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 르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도 유능한 마법사의 재능이지.” 왕궁을 벗어나 돌아다니면서 각국의 마법사들과 길드의 마법 사들을 자유롭게 만나보는 것도 좋다. 한낮 정원사에게 마법대 련에서 밀려 쥐어 터졌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무력을 익힌 그 림자 출신의 반쪽 마법사가 횡포를 부리고 다닌다는 소문 정 도는 가볍게 낼 수 있었다. ‘두고보자.’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머리 희끗희끗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철렁 철렁 심장이 내리 앉았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줄 수는 없다. 프란까지 한번에 갈 수 있는 마법사 길드의 이동 마법진 위에 올라서며 로웬은 다시금 이를 갈았다. “두고 보자 이 늙다리 정원사야아아아아아!” 그날 크리아 왕궁 남서쪽에 위치한 마법사의 길드는 때 아닌 괴성으로 인해 실험을 방해받은 수많은 주변 마법사들이 항의 에 시달려야 했다. [[The Perfect MAID]] -119- 사막의 란 -크아아아아! 크레이!-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아, 그래. 그였다. 르카인. 한 순간에 아내를 잃고 아들을 납치당한 남자. 그가 크레이 의 눈에 박힌 보석을 보고 울부짖었었다. 잔인한 노예상인 은 크기에 비해 그다지 가격이 나가지 않는 월루석을 비싸 게 붙이기 위해 어린 소년의 눈동자를 파냈다. 모진 채찍질에 살가죽이 터져나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에 고름이 앉는다. 반항을 없애고 마음을 죽여 그 저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할 뿐인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들 은 잔인한 짓을 서슴치 않는다. 정신이 파괴된 인간은 더 없이 무기력하다. “후.”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을 가득 차지하고 앉은 미몽들을 떨쳐내야 한다. 아직 아이들이 노예로 잡혀갔다는 확증은 없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어딘가 다른 오아시스를 찾았을 지도 모른다. 하르크야 워낙에 엉뚱한 존재인데다가 클레이 브가 뭔가를 주장하면 대들어보지도 못하고 그 기세에 밀려 줄줄이 끌려가는 성격이었으니까. “후.” 사막에서 방향잡기는 쉽지 않다. 길도 수시로 변하고 바람 도 수시로 불어온다. 그래, 트위리로 가는 길을 잘못 찾아 도착한 엉뚱한 오아시스에서 지금 그들은 편히 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길을 잃고 사막에서 미라가 됐으면 어떻게 하지?’ “제길!” 불길한 생각은 끝이 나지 않는다. 한번 모래를 찰 때마다 몸이 길게 앞으로 나른다. 한번에 모래구릉 하나씩을 뛰어 넘으면서도 발걸음이 더디게만 느껴진다. 엥가트, 분명 기억 에 있는 장소이다. 백여 년 전 찾아갔던 엥가트는 프란에서 는 꽤 활발한 장이 서는 마을이었다. 열의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을이 트위리라면, 엥가트는 거기서 남은 물건들을 팔아 없애며 여독을 푸는 유흥가... 적인 성격이 강한 마을이다. ‘노예시장까지 서 버린 건가?’ 도적들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장물 매매나 노예매매를 하 는 그림자진 장터로 변해버린 듯 했지만. 지금 내가 서둘러 가야 하는 장소가 내가 아는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난 감사 하고 있었다. “부디!” 살아있기를. 무사하기를. 멀리서 마을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 작했다. 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소 진되었던 기를 보다듬었다. 오랫동안 물조차 마시지 않아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지만.” 우선은 보아야 한다. 자칫 소동을 잘못 일으켰다가는 엄한 칼바람에 휘말려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다. 마을 입구 언저 리에 사람들이 분주하고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당신도 모래폭풍을 피해 길을 돌았나 보군요.” 어느덧 도착한 입구에서 흰 옷으로 온 몸을 칭칭 감은 남자 가 웃음 지었다. 가슴에 늘어트린 기다란 숄에는 전쟁의 신 아르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시험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자들에게 축복을.” “살아 돌아온....” 그 말이 가슴 속 깊이 박히는 듯 했다. 길을 가로막은 덤불이 생겼다. “젠장 할! 모래폭풍 다음은 전염병이라니!” 덤불 앞에서 도를 들고 경비를 서던 남자가 투덜거렸다. 옆 에서 함께 길을 막고 서 있던 자가 푹, 한숨을 내쉈다. “신께서 뭔가 계시를 내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구.” “그럴까?”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부정한 일들이 자꾸만 연달아 생 겨났겠어!” 그럴 듯 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원래 우그르를 따라 자유롭게 사는 게 훨씬 좋았었다구. 물길을 끌어와 준 카느께는 감사드리지만, 그 물길이 우리 마을까지 닿는 것도 아니고.” 카느가 끌어온 물길에 혜택이 이르는 곳은 주로 프란 북부 의 지역이었다. 남부로까지 물길이 퍼져 나가고 대지를 찰 지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 십년에서 백년의 시간은 더 걸리리라. “하긴. 제국이니 뭐니 말은 좋아도 우리에게는 좋을 게 없 지. 사실.” 마을이라는 단위제도가 박히면서 이전처럼 자유롭게 떠돌아 다닐 수도 없게 변했다. 일정한 영역 안에서만, 일정한 규칙 을 따라 움직인다는 건 듣기에는 그럴싸했지만 그들의 실제 사정과는 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좋아 질 걸세.” 늙그스름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 영감님.” 노인은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가볍게 세웠다.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두 사람의 어깨가 축 쳐졌다. 함 부로 할 말이 아니었다는 건 사실 알고 있었다. 더위에 나 른해진 정신이 풀렸기 때문이리라. “경을 칠지도 모르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지.” 노인이 가벼이 혀를 찼다. “휴.” 어깨를 늘어트린 젊은이가 한숨을 푹 뿜었다. 노인의 주름 진 손이 젊은이의 단단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닐세. 허나, 지금 자네들이 맡은 임무 는 우리 마을의 모두의 목숨과도 연관된 일이야.” “하지만, 정말 저 곳에 전염병이 퍼졌을까요?” “글세. 그건 모르지.” 옆 마을에 사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 마을이 차단당 해야 할 만큼의 병에 걸렸다는 건, 그들도 모르는 일을 중 앙에서 일만 하던 귀족이 먼저 알고 경고를 내렸다는 건, 아무리 그가 세상물정에 어두운 자라 해도 의심 가는 일이 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길로 오는 자는 무조건 죽이라고 한 다는 건, 만일 그 여행자가 이번 모래폭풍에서 길을 잃고 이 마을을 찾아오는 여행자라면 어떻게!” “모르지. 단지 지금은 위의 명령을 따라야 해.” 울컥! 목소리를 높이는 젊은이들을 달래며 노인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마을 안쪽에서도 불평이 막 터져 나오는 것 을 달래고 나오는 길이었다. 중앙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높 은 귀족이랍시고 와서 자신들의 가장 높은 어른인 우그르를 무시하듯 대하고 이것저것 명령을 내리는 꼴은 거친 땅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기질에는 영 용납해주기 힘든 작태였다. ‘지금 우트트의 군대가 이 마을을 향해 오고 있다.’ 모든 추태를 용납하는 우그르에게 노인이 따지기 위해 갔을 때 들은 말이었다. 우트트의 군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 쳤다. 사막의 정예들 중에서도 정예로만 만들어졌다는 두 우그르트의 군대 중 하나라면 이 작은 마을 하나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짓밟을 수 있다. “명심하게. 흔들려서는 안돼.” “..................” 엄한 눈빛으로 두 청년을 호통친 노인이 나지막히 말을 맺 었다. “지금 이 마을을 지킬 수 있는 건 자네들뿐일세. 저 길을 건너오는 자는 어느 누구도 살려두어서는 안돼.” 마을은 활기찼다. 높다랗게 자라난 나무들은 이 마을의 수 원이 얼마나 풍족한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문 앞에서 여 행자들을 마중하던 신관이 말했다. 저 앞쪽에 흐르는 샘이 있는 곳에 지친 여행자들이 모여 쉬고 있는 장소가 있다. 라고. “하하하하하!” 새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이 어른들이 덮어씌우는 흰 천을 벗 어던지고 물을 튀기며 달려갔다. 활기가 여기저기 넘쳐흘렀 다. 도적들의 말이 ‘진실이었을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 마을은 밝았다. ‘이 곳이라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봐!” 사람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번 남자의 목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반사적 으로 귀가 열리고 걸음이 멎었다. 일행을 만난 사람들이 기 쁨에 겨워 웃는다. 화기애애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점점 더 자라났다. 얼어붙었던 심 장의 한 토막이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었다. 난 오아시스의 한 구석에 앉아 오랜만에 먹꺼리를 손에 들었다. 별다른 이 유는 없었다. 배가 고팠다. 몇 아이들이 내 앞을 달려가 그 들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에게로 매달렸다. ‘부럽군.’ 해가 뉘엿뉘엿 졌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며 모인 사람 들을 모두 뒤지듯 살폈지만 하르크와 세 꼬맹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던 불길함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봐! 위험하니까 이제는 여관을 잡으라고!” 누군가가 외쳤다. 하르크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 말에 내 옆쪽에 있던 사람이 반응했다. 작은 천을 깔아놓고 이것저 것 늘어놓은 남자는 물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작은 장난 감들을 팔던 중이었다. “그런가?” “허, 해가 져서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오지 않을 꺼야. 게 다가 이 엥가트는 해가 지면 위험한 마을이라는 말 못 들었 어? 지금 빨리 들어와서 내일 아침까지는 쉬는 게 좋아.” 내 옆쪽에 서서 이것저것 물건을 챙기던 남자의 손길이 빨 라졌다. 그가 힐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고 싶은 게 있소?” 남자아이들을 위한 작은 목검과, 흙과 나무로 만든 인형, 자 그마한 장신구들이 그의 손에서 휘릭 펼쳐졌다. “아니요. 지금은 돈이 없어서.” 무심결에 대답했지만 그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남자가 잠 시 실망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짐을 챙겼다. 그를 부르던 남자가 내 쪽으로 외쳤다. “이봐! 당신도 뭘 모르는 모양인데, 빨리 들어가라고! 보아 하니 막 자란 사람 같지도 않은데, 일행들이 걱정할 꺼야.” 그의 얼굴에는 미미한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도적들의 목 소리가 머리에서 되살아난다. 밤과 낮이 분리된 사회는 가 끔 있다. 낮이 이렇게 활발하고 티 없을수록 밤은 혼탁하고 살기로 가득 찬다. 내게 충고를 던진 남자가 힐끔 주위를 살펴보더니 집 안으로 몸을 감췄다. 본격적으로 가게와 작 은 집들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밤의 세상이 두려운 거겠지.’ 당연한 일이다. 주위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난 근처 집의 처마 아래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기척을 지 웠다.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시간이 얼마 나 흘렀을까. 기름에 불이 붙을 때의 특유의 소리가 잠겨있던 정신을 깨 웠다. 어디선가 시끌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 작했다. “이야! 이번에는 꽤 짭짤하다던데!” “빌어먹을 모래 때문에 창고가 파묻혀 버렸어!” 거친 목소리에 은은하게 베인 건 살기와 투기, 그리고 탐욕 이었다. 말과 낙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한 냥 그들은 한 순간에 몰려들었다. 난 기척 을 지운 채 몸을 일으켰다. “의외로 살아남은 것들이 많다던데? 죽은 건 깡그리 죽었 다지만.” “말마. 열풍단인지 뭔지는 여파에 휩쓸려 반이나 죽었다던 데.” “트위리의 빈 마을을 털다가 여자 유령을 만났다나 뭐라 나.” “으흐흐흐!” “헤! 그래서 몸 사리는 건가?” 가식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어대면서도 남자들은 주위 사람 들의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정보를 늘어놓았다. 그들이 몰 려드는 중앙으로 이 오아시스의 나무를 통째로 태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커다란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을 중심으로 커다란 마차들이 빙 둘러 둥근 공간을 만들어냈 다. “이번에는 노예가 적어. 아마 고가에 매매될 껄?” 도적이 분명한 남자 하나가, 상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히 죽되며 손가락을 꼽아보였다. 상인이 고개를 젓고, 두 사람 은 가벼운 매매 흥정에 들어갔다. 마차는 철창으로 가려져 있었다. 힐끗 들여다 본 안쪽에는 반라의 여자 세 명 정도 가 공포에 질린 채 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클레이브가 먼저다.’ 어느 누구도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치밀어오를 분노 와 살의를 가슴 깊은 곳에 꾹꾹 눌러 갈무리하고, 나는 마 차 하나 하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차마다마다 약탈물들 이 실려 있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손가락을 꼽짝이며 은 밀하게 흥정을 붙이고 있었다. 거친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모두 사막에서의 흉흉한 모험담을 내뱉는 바람 꾼들이었다. ‘이전에 크리아에서 본 것과는 다르군.’ 아마도 대부분이 장물과 약탈물이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없 는 듯 숨어 있어도 저 집 안쪽에는 낮의 사람들이 가득 있 었다. 그들에게 들려주어 좋을 일도 없을 테지. “그건 그렇고, 앞으로는 시체들도 잘 뒤져봐야겠어.” 스쳐 지나가는 도적중 하나가 음산하게 웃었다. “뭐, 시체 변태라도 있어? 잘 말려 미라로 만들면 높은 값 에 쳐준데?” “그게 아니라! 시체 중에서도 보석 박힌 시체가 있다, 이 거지!” 보석이라는 말에 귀가 활짝 열렸다. 아름다운 크레이의 눈 에 박혀있던 한 쌍의 커다란 월루석이 떠오른 것은 우연일 까. “뭐?” “그래! 보석 박힌 시체! 그것도 눈에 말이야!” 딱 발걸음이 멎었다. 텅, 누군가가 어깨에 부딪혔다. “뭐야!” 누군가가 거친 목소리로 외치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자잖아!” 주위의 웅성거림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경계심과 음흉한 탐욕과 지저분한 감정들이 얼기설기 엮인 눈빛들이 한꺼번 에 몰려왔다. ‘실수 했을 지도.’ 어쩌면 의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The Perfect MAID]] -120- 사막의 란 “그대로 잠든 척 했었어야 했는데...” 아르가 사라진 뒤의 그는 착잡함을 못내 떨쳐내지 못했다. 지 금이야 좋은 친구로, 벗으로 기억이 남아 있지만 그 악몽 같은 첫 만남은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다. -드래곤의 비늘이 그렇게 튼튼하다면서?- 였던가. 다짜고짜 검에 줄기줄기 빛을 뿜어내며 덤벼들었던 세 놈의 인간들은. 지금 떠올려도 식은땀이 흠뻑 흘러나올 정도로 비상식적이었고, 인간답지 않았다. “휴.” 아르의 반 협박 가까운 부탁들 받아들인 건 본의가 아니었다. ‘부디 란을 따라가서 한번 말려 봐라’라니. 저 괴물 같은 인 간을 어찌 말린단 말인가. 지난 백 년 전에도 간신히 상대했었 던 란은 얼핏 봐도 그 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저 인간들이 무덤을 파는 군.” 조용히 기척을 감추고 사람들의 사이를 유령처럼 돌아다니던 란이 기척이 뛰었다. 녹색 비늘의 그는 조용히 바람 사이로 몸 을 감췄다. 사람들 사이로 숨기에는 인간형으로 변하는 게 제 일 좋겠지만, 아르의 부탁대로 저 란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니 달랜답시고 나섰다가 단칼에 두 토막 나지 않기 위해 서겠지.’ 지금의 그의 모습이 훨씬 더 안전했다. 그는 조금 더 높이 몸 을 솟구쳤다. 란을 돌려보내주기 위해서는 돌아가야 할 곳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 짧은 사이 몇몇의 인간이 더 죽겠지 만 그의 알바는 아니었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그녀가 이 땅 을 모조리 바스러트리는 것만 막으면 된다. 탐욕에 물든 도적 떼 몇몇까지 신경 써 줄 수 없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그녀에게 덤벼들 수도 없는 법이니까.’ 초록빛의 그의 날개가 조용히 움직였다. 마력을 실은 바람이 일어나 그의 거대한 몸을 그의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부드럽 게 밀어냈다. ‘우선 클레이브가 있는 곳을 확인해야겠지.’ 하늘 높이서 자신들을 지켜보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을 느낀 존재는 단 하나 뿐이었다. 툭 튀어나온 여인은 사람들의 시선 이 그녀에게로 몰리건 말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태 도로 빙글 몸을 돌렸다. “흐흐흐흐흐. 가뜩이나 팔만한 계집이 부족했는데.” 평소라면 적어도 열명, 스무 명은 나올 노예가 세 명밖에 나오 지 않았다. 노예상인들의 입에 진득한 침이 흘러내렸다. ‘상등품이야.’ 언제 어떻게 무슨 간덩이로 이런 자리에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양새로 보나 뭘로 보나 낮의 인간이었다. “불문율을 깼으니 그 대가를 받아야겠지.”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탐욕이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증폭되어 나갔다. 사람들의 원이 커지며 그녀를 둘러쌌다. “너.” 갑자기 여인이 손가락을 들어 누군가를 짚었다. 지적당한 도적 의 입가가 헤벌쭉 벌어졌다. “하! 내 노예가 되기를 원한다는 건가?” 우우, 야유와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뜻밖의 부수입에 도적들이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여인이 지적한 남자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눈에 보석을 박은 시체는 아이였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인은 조금도 주눅 들거나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울컥, 상 처 입은 자존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겨우 이런 비리비리한 여 자 따위에게 무시당하다니! 주위의 동료들이 모두 자신을 비웃 는 것만 같았다. 휘유, 비웃음 섞인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갈갈이 찢겨 죽고 싶은가 보군.” 음산하게 목소리를 깔고, 도적은 허리의 검을 뽑아들었다. 휙,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회색의 감정. 흠칫, 몸이 떨렸다. “와하하하하! 너 설마 반한 거냐!” 옆에 서 있던 누군가가 폭소를 터트렸다. 왁짜한 웃음소리들이 펴져나갔다. 여인이 또 한걸음 자신에게로 다가섰다. 온 몸에 진땀이 흘러내렸다. 오금이 저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속 의 혈관 하나하나가 모두 공포에 질려 오그라든 것만 같았다. 마른침조차 삼킬 수 없었다. “이, 이놈 봐! 다리까지 떠는데! 잘못하다가는 오줌 싸겠어!” “여자구경 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꼴이야!” 비웃음 소리들조차 몽롱하게 들려왔다. 회색의 감정을 담은 검 은 눈동자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도적은 덜 덜 떨리는 턱을 간신히 움직였다. “야! 너 미쳤어?” 옆에 서 있던 동료가 쿡 옆구리를 찔렀다. 쿨럭, 숨이 막혔다. 도적은 뭔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석이 눈에 박혀있던 아이는 소년이었나?” 냉랭한 목소리였다. 술렁, 도적들의 공기가 움직였다. 살갗이 오그라들 것 같은 무언가가 우물 속에 퍼트려진 독처럼 서서 히 번져나가고 있었다. “미, 미친년 아니야!” 도적의 옆에 있던 자가 도를 뽑아들었다. 휙, 여인의 고개가 돌려졌다. 챙! 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 한순간의 살기였다. 술렁, 눈빛을 달리한 도적들이 하나 둘 도를 뽑아들었다. 잘 차려진 먹잇감 같던 여인은 어쩌면 길 잃은 맹수일 지도 모른 다. “말하라. 남자아이였나? 소년이었나?” 여인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뚜벅, 또 한걸음 그녀 가 가르켰던 도적에게로 다가섰다.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숨이 턱턱 메일 듯한 살기가 이미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 건 미친 자의 겁 없음이나 만용은 아니었다. 도 끝에 목숨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은 알고 있었다. 강한 자를 만났을 때 달아 나는 것 또한 도적들에게는 미덕이었으니까. 문제는 지금 그들 의 촉각에 ‘강한 자’로 나타난 무언가가 여자였다는 사실이 었다. ‘여자 따위가 강해 봤자.’ 아마도 저 여자는 아이를 잃은 걸지도 모른다. 종종 그런 정신 나간 부류의 사람들은 인간 같지 않은 괴력과 살기를 뿜어내 지만. 느껴지는 것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물론, 보 통 여자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몇몇 두목급 도적들과 상인들 이 은밀히 시선을 교환했다. 끄덕이는 고갯짓 이 물결처럼 퍼 져갔다. 간만에 나타난 상품이 아깝기는 했지만 그들이 우선적 으로 지켜야 할 것은 엥가트의 밤의 질서였다. “말하라. 그 사람은 소년이었나? 소녀였나? 그 시체는 한구 만 있었나? 그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었나?” 두목들의 눈짓에 따라 얼어붙었던 도적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 아갔다. 여인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듯, 연이어 처음의 그 도 적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도적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이건 자존심 싸움도 뭣도 아니었다. “그래! 셋이라고 들었다! 세 놈! 나도 직접 본 게 아니라서 모른단 말이야! 여기로 오던 노예상인의 마차에서 세 명의 새 끼들이 죽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툭, 여인의 눈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톡, 한 방울의 피가 도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나가?” 도적의 눈이 치떠졌다. 그는 뭔가 어색한 듯한 몸짓으로 자신 의 손을 바라보았다. 도가 없었다. 분명 뽑아들었던 자신의 도 가 없었다. 그는 경악이 어린 눈으로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 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를 감쌌다. 툭,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허리가 갈라진 남자가 두 동강나 모래바닥으로 쏟아졌다. 잠시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둑이 무너지듯 피와 내장이 모래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흐, 흐아아아아아아악!” 산발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동료의 손 에 들린 도가 언제 그녀의 손으로 넘어갔는지, 그녀의 손에 들 린 도가 어떻게 휘둘러졌는지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항해 볼 겨를도 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허리가 두 동강 나 있을 지도 모른다! “닥쳐라!” 제법 용기 있어 보이던 도적 하나가 도를 크게 휘두르며 여인 에게로 달려 들어갔다. 힐끔, 여인의 눈이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양도된 남자의 몸이 달리던 그 속력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새빨간 피가 붉은 불꽃의 그림자 를 타고 넘실거렸다. “죽어라.” 여인이 작게 속삭였다. 푹풍 같은 살기가 휘몰아치며 모래 소 용돌이가 하늘로 뿜어져 올라갔다. “어서 오십시오!” 맨발로 달려 나간 사신이 맞이한 건 우락부락한 근육의 전사 들이었다. 척 봐도 일천은 넘어 보이는 전사들의 행렬은 작은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뭐라 표현할 수 없 는 장관이었다. 그 전사들의 뒤를 따라 수십의 그림자 부대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시간이 없다. 현황을 보고해라.” 말에서 조차내리지 않고 전사들의 장이 말했다. 흰 모자와 흰 옷들 안쪽으로 가죽으로 튼튼히 무두질 된 갑옷이 고풍스런 무늬로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아, 네. 일단 풍토병이 돈 렌티아로 향하는 길은 모두 막았 습니다. 지금까지 그 곳에서 나온 상인들과 사람들이 몇몇 있 었습니다만, 분부하신대로 모두 사살했습니다.” “살아서 다시 렌티아로 돌아간 자는 없는가?” 만에 하나 돌아간 자가 있다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었다. 사신 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단 하나도 없습니다.” “좋다.” 그제서야 전사 대 대장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툭, 몸을 말에서 내리며 그가 부하들에게 잠시의 휴식을 명령 했다. 이른 새벽부터 길을 박차고 달려온 터라 모두들 지칠 대 로 지쳐 있었다. “정오가 지날 때 까지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바로 공격이다. [[The Perfect MAID]] -121- 사막의 란 눈이 따가워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질 무렵 사람들은 하나 둘 몸을 일으켰다. 모래바닥에서 교대로 치밀고 올라오는 열기, 냉기와 싸우느라 온 몸이 뻐근했지만 소년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또박또박 움직였다. 잠시 감탄의 시선들이 소년들에게로 향했다. 꺼지던 모닥불을 다시 지피고, 늦은 아침을 준비했다. 하르크 와 론은 그 새 친해져 버린 듯 붙어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 다. 기사들은 기사들 나름대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 년들은 갑작스레 밝아진 듯한 미래에 나름대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추방자의 오명도 거의 벗겨진 셈인데 어떻게 할 건 가?” 식사를 마친 무렵 움크가 불쑥 말을 꺼냈다. “네?” “아아, 잠시 잊고 있었네만, 사막에서의 모래바람은 매우 특 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거든. 황궁 앞뜰에서의 무례가 잊혀지지 는 못하겠지만 자네들이 그 바람 앞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이 퍼져나간다면, 어떤 사막인도 자네들에게 검을 겨누지 않을 걸 세.” “흠.” 하르크의 얼굴이 무겁게 굳었다. “왜 그러는가?” 펄쩍 뛰는 환호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좋아하리라 생각했던 그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어두웠다. 뭔가 할 말이라 도 있는 듯한 하르크의 표정에 움크가 자세를 조금 고쳤다. “그 말이 정말 그대로 퍼져나갈까요? 소문이란 의외로 쉽게 조작되는 법인데.” “하지만 지금 이렇게 상황이 뒤집어진 것처럼. 뒤바뀌지 않겠 나?” “그럴까요?” “그 모든 소문의 뒤에는 결국 란님이 나타날 테니까. 그 분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도, 의지도 지니고 계신 분이었으니까.” “저, 제가 한 말씀 드려도 좋겠습니까만은.”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클레이브가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호기심 가득한 움크의 눈이 장난기로 반짝였다. “란님의 주인에게 발언권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겠지.” 큼, 작은 기침소리가 울렸다. 클레이브는 가슴을 폈다. “글쎄요. 진정한 의미에서 전 주인이 아닙니다만, 한 가지 여 러분들께서 잊으신 게 있지 않나 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 다.” “진정한 주인이 아니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주인은 선택하는 자이지, 선택당하는 자 는 아니니까요. 전 란님을 지배할 수도 가둬둘 수도 없습니다. 다른 주인들이 하녀에게 하는 것처럼 명령할 수도 없구요. 그 녀가 떠나겠다고 한다면...” “잡을 수는 없겠군.” “네. 그녀에게 구속되는 건 오히려 제 쪽이니까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이브의 공기가 가볍게 퍼져나갔 다. 조금은 시샘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자, 그래. 문제는 그게 아니었었지.” “네.” 클레이브는 천천히 움크와 그를 둘러싼 기사들을 돌아보았다. 그림자 출신이라고 했던 론의 고개가 인사하듯 살짝 끄덕여졌 다. 클레이브는 숨을 들이쉈다. 아무리 편해 보여도 상대는 제 국의 우그르트, 긴장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며칠간은 몸을 쉬는데 급급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 습니다만, 사실 전 꺼림직하게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걸리는 것?” 반쯤 누워있던 움크의 자세가 바로잡혔다. 그 또한 요 근래 꺼 림직하면서도 머릿속에 잡히지 않던 무언가를 느끼던 참이었 다. “네. 방금 전의 움크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했습니다만, 사막 의 폭풍에서 저흰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그 사실이 저희에게는 강한 힘이 되어 줄 거구요.” “음” 움크의 미간에 굵직한 주름들이 접히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꾸물꾸물 자라던 불안이 확실한 형체를 들어내며 올라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럼 그만큼, 저희의 힘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되겠군요. 그 소문이라는 것은.” “확실히 그렇겠지.” 뿌득, 이를 드러내는 움크의 눈에는 벌써 어느 정도의 추리와 확신이 서 있었다. 클레이브는 쿨럭, 목을 가다듬었다. “소문이 퍼져나간다면 곤란한 사람들이 분명 움직일 겁니다. 움크님, 혹시 지금 동행하신 기사들 이외에 움크님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일만한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흠!” 움크의 얼굴이 굳었다. 세자트라는 뛰어난 심복이 있기는 하지 만 그는 지금 사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 크리아로 떠난 후였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어떤 건지는 움크님을 보고 더 자세히 알았습니다. 아마도 움크님께서 돌아가신다면, 신이 선택한 우 그르트라는 명예를 입게 되실 겁니다.” “잠깐, 난 내 힘으로 살아 돌아온 게 아니라네!” “마찬가지 입니다. 그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만난 사람이 하 필 전설의 주인이었다고 한다면.” 움크의 입이 한 일자로 닫혔다. 들떠있던 기사들의 공기도 딱 딱하게 굳었다. 오직 론만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가 늘게 뽑아내고 있었다. “아직 어린 저희들끼리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 습니다만, 제가 우트트님의 입장이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움 크님을 황도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아마도...” “입을 막기 위해서 피를 뿌려대겠지.” “네.” 론이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제 생각도 일치합니다. 사실 잠시 여러분 곁을 떠난 사이 우 트트님 측의 그림자 하나를 제거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요 며칠간 이 오아시스로 새로운 여행객은 단 한사람도 찾아오지 않았군요.” “흠!” “나간 사람은 있었습니다만...” 기사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론이 차분히 고개 를 저었다. “저라면 이 오아시스부터 봉쇄시키겠습니다.”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거군요.” 깍지를 낀 손에 턱을 기대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하르크가 입을 열었다. 냉정하게 식은 눈에 베인 옅은 살기가 보는 사람 을 섬짓하게 만들었다. 잠시 눈이 부딪힌 몇몇 기사들이 자신 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제일 쉬운 방법은 풍토병이 돌았다고 하는 거겠죠.” “오는 사람을 막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나오는 사람을 격 리시키기도 제일 좋은 방법이지.” “맞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 있던 사람들을 깨끗이 몰살시키기 에도 제일 걸맞는 변명이죠.” “움크님.” 기사들이 자리를 털고 몸을 일으켰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장소 를 떠나야 한다면 지금 당장 출발하는 편이 더 나았다. 비록 이미 포위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앉아 당할 수만은 없 었다. “한 배를 탄 형국이 된 것 같은데. 함께 가겠나?” 움크는 꽤 빠른 동작으로 짐을 허리와 어깨에 동여맸다. 소년 들과 하르크의 눈이 잠시 교차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을 가득 채운 물통을 새로 구한 낙타에 가득 올리고 뜨거운 모래에 견딜 수 있는 가죽신 을 꽉 비끌어 묶었다. “기왕 갈 거라면 서두르세.” 막 낙타를 몰아 마을 중앙의 오아시스에서 벗어나려던 참이었 다.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그들의 바로 옆에서 터져 나왔다. 흠 칫, 모두의 발이 멎었다. 작은 소년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 운 듯 사지를 떨고 있었다. 그의 가슴을 붙들어 흔들며 한 여 인이 소리 질렀다. “꺄아아아아아! 아가야!” “크, 컥!” 그들의 바로 앞쪽에서 짧은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물가에서 물 을 마시던 사내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부르르르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거칠게 땅바닥을 뒹구르던 남자는 수초를 버 티지 못하고 사지에 힘이 풀리며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죽음, 혀를 쭉 빼고 쓰러진 형태, 새까맣게 물들어버린 사람의 몸은 그가 독에 당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론과 하르크의 시선이 짧게 교차했 다.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듯 했다. 설마 설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급하게, 이런 잔인한 방법으로 마을에 손을 쓸 줄이야! 우득, 고삐를 움켜쥔 움크의 주먹이 사납게 격동하고 있었다. “으억!” 그의 옆쪽에서 목을 축이던 또 한사람이 쓰러졌다. 문득 돌아 본 사방에서 목을, 팔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소리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 왔다. “독!” 우왕좌왕 놀라며 쓰러진 자를 보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 뒤 로 남겨진 일행들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마을 외곽 쪽으로부터 거친 전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삽 시간에 오아시스는 아비규환으로 변해갔다. “이런!” 하늘의 푸른빛에 몸을 가리고 유유히 렌티아를 찾아왔던 녹색 의 주인은 하마터면 지상으로 몸을 박아 넣을 뻔 했다. 그저 있는 곳이나 확인해 란에게 알려주면 알아서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곳에는 검고 날카로운 살기가 충천하며 주위의 생명들을 갈기갈기 찢어먹고 있었다. ‘이를 어쩐다?’ 백여 년의 잠이 너무 길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란에게 클레이 브가 있는 장소만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는 순간 혼돈 상태로 빠져 버렸다. ‘인간 세상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 종족의 불문율이었다. 지금까지의 카슬의 역사에서 단 한번도 드래곤은 인간에 개입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야기삼아 인 간으로 변한 드래곤의 이야기라든가, 전설들을 만들어내곤 했 지만 그건 이야기일 뿐이었다. ‘어떻게?’ 만일 저대로 꼬맹이들이나 하르크라는 피보호자가 죽는다면 란은 미쳐 날뛸 지도 모른다. 방금 전 보고 왔던 그 살기와 힘. 직접 맞서고 싶지 않았기에 쉬운 방법을 찾아 여기까지 왔 다. 게다가 움크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르가 특별히 아끼는 사막의 전사. 그가 죽도록 그대로 둔다면, 아니 잠들어 몰랐던 상황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내버려 두게 된다면, 그 사실을 아르가 알게 된다면...! ‘미치겠군.’ 최악이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번뜩,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이독제독!” 언젠가 들었던 동대륙의 속담이었다. 헤벌쭉 벌어진 입가에 얼 핏 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미묘한 미소가 걸터앉았다. “란!”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렌티아의 상공에서 사라져갔다. [[The Perfect MAID]] - 122-화려한 등장 “방향을 가르지 않는 모든 존재의 주인이시여.” 삼신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이토록 깊게 숙이게 하는 존재는 흔치 않았다. 굽이굽이 굴곡진 할미의 입가 주름이 곱게 곡선 을 그렸다. “늘 수고가 많습니다.” 자애롭고 온화한 공기가 퍼져 나갔다. “별말씀을요. 황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요. 신계의 최고참답게 삼신할미께서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신할미의 허리가 한 번 더 숙여졌다. 그리고 가벼운 침묵이 흘렀다. 조금씩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한 공기가 어색하게 굳는 건 한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과 예상치 못했던 인사치례, 그 다음에 올 것이 결코 좋은 떡만은 아니리라는 것 쯤 심신 할미로서는 예상하기 힘든 일이 아니었다. 분명 저런 서두 없 이 꺼내기는 껄끄러운 무언가가 남아 있으리라. 그 예상은 틀 리지 않았다. “삼신할미께서 하시는 일에 큰 흠이 없으리라는 것 쯤 알고 있습니다만.” 돌려 말해도 그 뜻은 변하지 않는다. ‘큰 흠은 아니라도 작은 흠이 있다는 말이렷다.’ 삼신할머니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큰일은 아니더라도 자잘 하게 찔리는 일들이라면 셀 수도 없을 정도였으니까. 가장 가 깝게는 란의 일부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신의 의지가 이 어져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지상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머무르는 신 족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요.” 온화한 시선 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 늘 함께 있었다. 노회한 미소로 넘기고는 있었지만 삼신할미의 가슴은 서늘하 게 식어 있었다. “신으로서의 존재를 각성하고 인간의 천수를 넘어서서도 돌 아오지 않고 머무르는 자들이 많다 들었습니다.” “발전하는 존재들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란과 노도, 그리고 몇몇 무신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 치고 지나갔다. 삼신할미는 가볍게 이를 악물었다. 발전의 속 도가 남다른 무신들은 이전에도 있어왔고, 그렇게 변한 무신들 은 신계로 돌아온 이후 큰 역할들을 수행해 냈다. 그렇기에 신 들의 인간계 경험은 나름대로 독려되는 수행 중 하나가 아니 었던가. “삼신할미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분명, 그렇게 돌아온 자들에 대한 기특함은 누구나 다 느끼고 있을 테니까요.” “휴.”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긴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 리 대비를 해 놓고 떠났다고는 하더라도 신들이 비워진 자리 가 오래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지끈 골치가 쑤셔왔다. 최악의 경우,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 에 지상 곳곳에 퍼져 활동하고 있는 각성된 신족들은 싸그리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신들이 지상에서 맡고 있 는 영역과 힘의 정도였다. 그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단지 와야 할 곳으로 돌아오는 정도의 파장은 아니니라. 대부분의 마스터들로 시작해 전설로 회자되는 마법사, 도사, 수행인, 현 자들이 하루 밤 사이에 떼거지로 죽는다면... 누가 납득하겠는 가. 아무리 그들이 이미 인간으로서의 천수를 넘긴 자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신으로서의 존재를 이미 자각한 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수명 에 연연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만.” “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게 사실이었다. 끄덕이는 삼신할미 의 고개를 잠시 바라보고 있던 존재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럼, 돌아오지 않는 뚜렷한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당장 불러와라. 라고 말할 것만 같은 눈이었다. ‘장소를 잘못 찾은 건가?’ 화창한 엥가트의 오후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까 르르 아이들이 오아시스 주변을 뛰어다니고, 물건을 파는 사람 들과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 다녔다. ‘이럴 수가...!’ 분명 간밤, 그가 엥가트의 상공을 떠나기 직전의 란의 모습은 어딘가 비정상적이었다. 그가 아는 ‘무신경한 폭주 란’이라 면 마을 하나는 깡그리 부숴 없앴어야 했다. 백여 년전 성스러 운 숲을 박살냈을 때도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던’ 힘이 넘 쳐나는 바람에 생겨난 폭풍으로 ‘귀하게 기른’ 나무들이 동 강 부러져 버렸었으니까.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해도, 오디아누 관문을 지나면서 외뿔 엘프들이 자식처럼 기른 숲을 ‘신경성 원형 탈모’를 겪은 원숭이 등짝처럼 밀어 버렸었다고 했다. 제 성질 어디다 버리 겠나. 떠날 때야 ‘벼룩처럼 귀찮게 톡톡 튀며 모래를 돌아다 니는 도적 몇몇쯤이야.’라며 아무 생각 없이 떠났었지만 돌아 오면서 은근히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말끔한 마을의 모습이라니! 혼란스러웠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잘못 찾았을 리가 없다. 이 부근은 그의 앞발바닥보다도 더 자 세히 알고 있다. ‘피 냄새.’ 분명 남아 있었다. 그는 조용히 몸을 변화시켰다. 마을의 다박 다박 들어선 건물의 한 뒤편에서 초록빛 머리카락을 지닌 남 자 하나가 슬그머니 햇볕 아래ㄴ로 발을 내밀었다. “이봐! 당신! 낯선 여행객인 듯한데 그 쪽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요!” 흰 수염에 모래알을 줄줄이 단 남자가 외쳤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대뜸 떨어진 반말에 남자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잠 시 녹색머리의 남자가 걸친 흰 색의 고운 옷을 살펴보고는 고 개를 숙였다. ‘떠그럴. 또 귀족이야.’ “밤의 엥가트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작은 소동?” “늘 있는 일입죠. 어제는 특히 심하기는 했지만, 돈에 눈먼 자들끼리 칼부림을 내며 피를 흘리는 일이야, 뭐...” “그랬군.” 말 하는 중간에도 부르르 몸을 떨어대며 진저리를 치는 폼이 단순히 심했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은 아닌 듯싶었다. 분명 란이 해 놓은 짓을 보았으리라. 분명 그 밤의 그 살기는 거짓이 아 니었다. ‘그럼 낮의 사람들이라는 이 자들이 치운 건가.’ 늘 있는 일이었다라는 말은 지금 태양아래 엥가트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었다. 초록의 그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도양 단, 살기를 피워 올리기는 했지만 낮의 인간들까지 손대지 않 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많이 변했군.’ 더 이상 무신경하게 주위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에게도 뭔가 소중한 것이 생겨났다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녹색의 주 인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젠장할.” 당장 찾아야 한다. 당장 찾지 못한다면.... ‘동족의 불문율이고 뭐고....’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최악!’ 녹색의 비늘이 찬란하게 빛을 반사시켰다. 인간형의 모습이 순 식간에 사라지며 하늘 높은 곳에서 몸체를 드러내고 그는 힘 차게 날개짓 했다. 마력이 부풀어 오르며 바람을 만들었다. 그 는 더 높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제길. 아르님! 기왕 도와달라고 할 셈이었으면, 란이나 애들 이나 어디 있는지도 함께 알려줬으면 좋았을 거 아닌가!’ 순간순간이 아까웠다. 입술 밖으로 희게 드러난 커다란 송곳니 가 짜증과 분노로 슬그머니 비틀어져 있었다. “숨어라.” 등을 미는 힘에 클레이브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움크가 자상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전한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는 아직 어리다.” 얕보는 것도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진지한 걱정이 스며 있었다. 잠시 흔들리던 클레이브의 눈동자가 굳어 졌다. ‘안전한 곳이라...’ 주위의 치솟은 살기로 살같이 따끔거렸다. 탁 트인 사막을 둘 러싼 무거운 공기, 이미 독을 풀기 시작했다면, 달아나거나 숨 을 곳은 없다. 그러나... ‘움크님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지.’ 그는 순수한 호의였겠지만 ‘음모의 구렁텅이에서 단련된’ 클레이브는 순수할 수만은 없었다. 우그르트 움크, 그가 아무 리 프란에서 제거하고자 정한 자라 할 지라도 엄연한 제국의 우그르트이다. 재수 없으면 모든 누명이 그와 크리아의 후작에 게로 덮혀진다. 더 이상 누를 끼칠 수는 없었다. 클레이브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이브님!” 스테판이 검대를 강하게 쥐며 외쳤다. 친구의 항의하는 눈을 외면하며 글레이브는 낮게 한숨을 내쉈다. “아니야. 스테판. 지금 우리는 피하는 게 좋아.” 단호하게 말을 맺는 클레이브의 머리를 움크가 거칠게 쓸어내 렸다. 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음지은 그가 낙타의 고삐를 잡 아당겼다. 타박, 걸음을 딛으며 그를 기다리는 전사들에게로 다가서는 움크에게 론이 접근했다. “마을 전체가 포위당했습니다.” 표정이 굳었다. 독을 풀었을 때는 이미 달아날 구멍 따위 남겨 두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었지만, 론 정도의 그림자가 없다고 한 말은 단순한 예측과는 무게가 달랐다. “오아시스는 괜찮은 건가?” 한동안 오아시스의 물을 가지고 이래저래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르크가 시익 이를 들어냈다. “독특한 냄새가 꽤 유명한 독인 것 같더군요.” “흠?” 오아시스 주변에서 시작되었던 비명소리가 벌써 멀리서도 터 져 나오고 있었다. 피어오르는 모래먼지, 비릿한 혈향, 위험의 감각이 그들을 바짝바짝 조여 오고 있었다. “사막의 생명 줄에 감히 풀어볼 수 있는 독이란 많지 않으니 까요.” “그렇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효력을 잃는 독입니다. 해독 하기도 어렵지 않고... 하지만 즉효성을 지닌 독이죠.” 움크의 표정 한 구석이 부드럽게 풀렸다. 내심 습격해 온 자들 에 대한 분노보다는 오아시스의 독이 더 적정되던 참이었다. “그랬군.” “물의 소중함을 모르는 개자식은 사막인도 아니야.” 흥분으로 눈이 붉어진 기사들이 씩씩거렸다. 정말 간발의 차이 였다. 어쩌면 그들의 수통에 채워진 물도 마실 수 없는 물일 지도 모른다. 물을 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지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니까. “자, 자. 우선은 살아남아야 물도 마실 수 있는 게다.” “무사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짧은 시선이 흘러갔다. 움크가 낙타의 배를 걷어찼다. 기사들 이 그의 뒤를 따라 힘차게 달려 나갔다. “자! 길을 열어라! 오아시스를 타락시킨 자들에게 응징을!” “독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마을을 둘러싸고 공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을 안 은 요란한 비명소리들로 아비규환 이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밀어닥친 불행에 이성을 잃었다. 날뛰고 울부짖었다. “마을 자체 경비대의 움직임은 없는가?” “급히 뭔가를 해 보려고 하는 것도 같지만, 이미 늦었습니 다.” 뒤늦게 사태를 직감한 몇몇 사람들이 비상종을 두드리며 젊은 이들과 전사들을 불러 모았지만 그 때는 이미 군대의 공격이 시작된 뒤였다. 마을의 입구까지 밀어닥친 자들이 거도를 휘두 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람들은 미쳐 도 한번 부딪혀보지 못 하고 피를 뿌렸다. “독의 효과는 얼마정도 가겠나?” “늦어도 사흘 정도면 다 사라지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오아시스 하나를 포기할 각오까지 하고 온 길이 다. 사막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번의 일은 그의 남아있던 긍지보다도 더 중요했다. 우그르트 움크는 사막의 모래폭풍에서 죽은 자여야만 했다. “우그르트 움크를 사칭한 반역자를 잡는 일이다. 실수 없이 시행하도록.” 사칭한 반역자. 문득 쉰 웃음이 흘러나왔다. silverlit@hanmail.net 은빛의 정체 덩어리들입니다.^^. 6권 분량의 시작입니다.^^/// 이전 화에서는, 드래곤이 란을 찾아가며"이독제독!"을 외쳤던 장면이죠...;;; ^^; 비축분이 전무한 관계로, (마감은 코앞입니다. 또다시..ㅡㅡ;;;) 최대한 성실연재 모드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만, 매일연재는 힘들 것 같네요. 격일이나, 2~3일에 한편, 올라갈 듯 싶습니다.^^/// 5권은 5월 말경에 나올 예정이구요, 많은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장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지만, 책방 주인장님 옆구리라도 찔러 주심, 감사.. ㅠㅠ;;;;;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드림워커에도 답글 남겨주심 감사...ㅠㅠ 꾸벅. 비오는 날의 각별한 다향처럼 모두 행복하시기를. [[The Perfect MAID]] - 122 - 독 ‘장소를 잘못 찾은 건가?’ 황금빛 눈동자가 휘둥글 열렸다. 화창한 엥가트의 오후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까르르 아이들이 길게 그림자를 늘이며 오아시스 주변을 뛰어다니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저 녁을 맞아 다시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이럴 수가...!’ 분명 간밤, 그가 엥가트의 상공을 떠나기 직전의 란의 모습은 어딘가 비정상적이었다. 그가 아는 ‘무신경한 폭주 란’이라 면 마을 하나는 깡그리 부숴 없앴어야 했다. 백여 년전 성스러 운 숲을 박살냈을 때도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던’ 힘이 넘 쳐나는 바람에 생겨난 폭풍으로 ‘귀하게 기른’ 나무들이 동 강 부러져 버렸었으니까.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해도, 오디아누 관문을 지나면서 외뿔 엘프들이 자식처럼 기른 숲을 ‘신경성 원형 탈모’를 겪은 원숭이 등짝처럼 밀어 버렸었다고 했다. 제 성질 어디다 버리 겠나. 떠날 때야 ‘벼룩처럼 귀찮게 톡톡 튀며 모래를 돌아다 니는 도적 몇몇쯤이야.’라며 아무 생각 없이 떠났었지만 돌아 오면서 은근히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말끔한 마을의 모습이라니! 혼란스러웠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잘못 찾았을 리가 없다. 이 부근은 그의 앞발바닥보다도 더 자 세히 알고 있다. ‘피 냄새.’ 분명 남아 있었다. 그는 조용히 몸을 변화시켰다. 마을의 다박 다박 들어선 건물의 한 뒤편에서 초록빛 머리카락을 지닌 남 자 하나가 슬그머니 햇볕 아래ㄴ로 발을 내밀었다. “이봐! 당신! 낯선 여행객인 듯한데 그 쪽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요!” 흰 수염에 모래알을 줄줄이 단 남자가 외쳤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대뜸 떨어진 반말에 남자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잠 시 녹색머리의 남자가 걸친 흰 색의 고운 옷을 살펴보고는 고 개를 숙였다. ‘떠그럴. 또 귀족이야.’ “밤의 엥가트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작은 소동?” “늘 있는 일입죠. 어제는 특히 심하기는 했지만, 돈에 눈먼 자들끼리 칼부림을 내며 피를 흘리는 일이야, 뭐...” “그랬군.” 말 하는 중간에도 부르르 몸을 떨어대며 진저리를 치는 폼이 단순히 심했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은 아닌 듯싶었다. 분명 란이 해 놓은 짓을 보았으리라. 분명 그 밤의 그 살기는 거짓이 아 니었다. ‘그럼 낮의 사람들이라는 이 자들이 치운 건가.’ 늘 있는 일이었다라는 말은 지금 태양아래 엥가트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었다. 초록의 그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도양 단, 살기를 피워 올리기는 했지만 낮의 인간들까지 손대지 않 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많이 변했군.’ 더 이상 무신경하게 주위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에게도 뭔가 소중한 것이 생겨났다는 반증일 지도 모른다. 녹색의 주 인의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삼 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그녀를 변화시킬 정도의 무게를 지닌 사람이 그녀에게 나타났다면, 그리고 순간의 실수로 지켜 주지 못해 죽게 만들었다면...! “젠장할.” 당장 찾아야 한다. 당장 찾지 못한다면.... ‘동족의 불문율이고 뭐고....’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최악!’ 녹색의 비늘이 찬란하게 빛을 반사시켰다. 인간형의 모습이 순 식간에 사라지며 하늘 높은 곳에서 몸체를 드러내고 그는 힘 차게 날개짓 했다. 마력이 부풀어 오르며 바람을 만들었다. 그 는 더 높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제길. 아르님! 기왕 도와달라고 할 셈이었으면, 란이나 애들 이나 어디 있는지도 함께 알려줬으면 좋았을 거 아닌가!’ 순간순간이 아까웠다. 입술 밖으로 희게 드러난 커다란 송곳니 가 짜증과 분노로 슬그머니 비틀어져 있었다. 온 사막에서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 “숨어라.” 등을 미는 커다란 손의 감촉에 클레이브는 흠칫 고개를 돌렸 다. 갈색으로 그을린 뜨겁고 커다란 손. 눈이 마주친 움크가 자상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전쟁터에 안전한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는 아직 어리다.” 얕보는 것도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진지한 걱정이 스며 있었다. 잠시 흔들리던 클레이브의 눈동자가 굳어 졌다. ‘안전한 곳이라...’ 사방을 촘촘하게 휘감은 살기에 살같이 따끔거렸다. 탁 트인 사막을 짓누르고 가라앉은 무거운 공기. 사막에서 태어난 사람 이 오아시스에까지 독을 풀기 시작했다면, 볼 장은 다 본 셈이 다. 달아나거나 숨을 곳은 없다. 그러나... ‘움크님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지.’ 그는 순수한 호의였겠지만 ‘애늙은이’ 클레이브는 순수할 수만은 없었다. 우그르트 움크, 그가 아무리 정치 세력에서 밀 려 궁지에 몰린 처지라 할지라도 엄연한 제국의 우그르트이다. 재수 없으면 모든 누명과 오명이 그와 크리아의 후작에게로 튀길 수 있다. 아버지에게 더 이상 누를 끼칠 수는 없었다. 클 레이브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 듯 움크의 미소가 밝 아졌다. “클레이브님!” 스테판이 검대를 강하게 쥐며 외쳤다. 친구의 항의하는 눈을 외면하며 클레이브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스테판. 지금 우리는 피하는 게 좋아.” 단호하게 말을 맺는 클레이브의 머리를 움크가 거칠게 쓸어내 렸다. 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움크는 낙타에 올라탔다.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던 낙타는 움크의 손짓에 따라 차분 하게 숨을 내뱉었다. 움크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지워져갔 다. “이런.” 조금 더 높이서 바라보이는 마을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마을 전체가 포위당했습니다.” 론의 표정 역시 밝지 못했다. 움크의 눈가가 미묘히 경련했다. 독을 풀었을 때는 이미 달아날 구멍 따위 남겨두지 않았으리 라 생각했었지만, 론 정도의 그림자가 없다고 한 말은 단순한 예측과는 무게가 달랐다. “이 오아시스는 가망이 없는 건가?” 한동안 오아시스의 물을 가지고 이래저래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르크가 시익 누런 이를 들어냈다. “독특한 냄새가 꽤 유명한 독인 것 같더군요.” “흠?” 오아시스 주변에서 시작되었던 비명소리가 벌써 멀리서도 터 져 나오고 있었다. 피어오르는 모래먼지, 비릿한 혈향, 위험의 감각이 그들을 바짝바짝 조여 오고 있었다. “사막의 생명 줄에 감히 풀어볼 수 있는 독이란 많지 않으니 까요.” “그렇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효력을 잃는 독입니다. 해독 하기도 어렵지 않고... 하지만 풀어지기 전까지는 꽤 강한 독성 을 발휘합니다.” 움크의 표정 한 구석이 부드럽게 풀렸다. 내심 습격해 온 자들 에 대한 분노보다는 오아시스의 독이 더 적정되던 참이었다. “그랬군.” “상대는 필사적입니다.” 론의 목소리가 조금 낮게 가라앉았다. 움크의 짙은 눈썹이 꿈 틀 움직였다. “뚫고 나가셔야 합니다.” “............” 한자 한자 씹듯 뱉는 론의 말에는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달라 는 부탁이 숨겨져 있었다. 의미를 되집으려는 듯 잠시 흔들리 던 움크의 눈동자가 딱 멎었다. 굵은 턱선이 각지게 잡히며 고 개가 느리게 저어졌다. “안돼.” “움크님! 이런 곳에서 목숨을 거신다면 살아 돌아온 보람이 없습니다!” “살아 돌아오기를 위해 떠났던 길이 아니다.” “움크님!” 움크의 눈이 멀리 피어오르는 먼지들로 향했다. “어차피 날 따라 올 놈들이다.” 아릿아릿하게 피어오른 살기와 투기들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 고 있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 우그르트 우트트의 카느에 의 열망이 그대로 축약되어 나타난 것만 같았다. 친형제를 암 살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자리. 그 자리에 대한 감출 수 없 는 탐욕. 문득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느라는 자리는 확실 히 좋았다. 검 외에는 관심도 없다던 움크의 심장마저도 쥐어 버린 힘의 자리였다. 그러나 사막이 전사로서의 긍지까지 버리 며, 한 존재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덕마저 저버리며 탐을 내야 하는 자리일까. “싸운다. 여기서 달아나면 난 우트트와, 아니 이 학살을 명령 한 개자식과 다를 바가 없다.” “움크님! 때로는 이유 있는 후퇴도 필요한 법입니다!” 론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만 같은 절박함이 묻 어 있었다. 몇몇 전사들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끄덕여졌다. “아니.” “움크님!” “아니다. 론. 이 프란은 아직 신이 지배하는 땅이다.” 담담히 시선을 부딪혀오는 움크의 눈에는 한 점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흠칫 론의 몸이 떨려왔다. 조금은 슬퍼 보이는 미소를 희미하게 담고 있는 움크의 눈에는 한 점의 공포도, 자 포자기의 광기도 없었다. “그 언제이든 난 나로서 싸울 뿐이다.” “싸움에는 장소가 있는 법입니다.” “전사가 나서는 건 때가 있을 뿐이다.” “지금은 그 때가 아닙니다.” “아니, 지금이다.” 단호했다. 너무나도 단호했다. “달아난 자의 말을 믿어줄 사막인은 없다.” 달아난 자! 막 입을 열어 항의하려던 론의 턱이 굳었다. 달아 난 자라 불리는 사막인이 받는 불명예와 치욕이란 감히 상상 할 수도 없는 타락이었다. 그랬다. “알지 않는가. 폭풍이 선택한 자의 의미를. 그 의미가 내가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면, 난 더더욱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폭풍에서까지 살아 돌아온 전사가 겨우 마을 하나를 둘러싼 부대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달아났다면, 어느 누구도 그가 폭풍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믿어주지 않으리라. 폭풍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말은 프란의 사막을 가로질러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이상의 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의미라...” 누군가가 읊조렸다. 아우성치는 주위의 비명소리는 더 이상 그 들의 머리까지 와 닿지 않았다. 움크를 둘러싼 전사들과 막 작 별인사를 하려던 클레이브들까지 모두 모래기둥이 된 냥 서 있을 뿐이었다.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소년들은 입술을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등을 돌려버리고 싶은 현실들이 언제부터 이어져 온 것일까. 끊임없는 절망과 포기의 유혹에서 한 자락 희망을 품고 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혼자 가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 스테판의 손이 클레이브와 크레이 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폭풍에서 살아 돌아올 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는지에 대한 답은 이제부터 내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저들에 게...” 식, 웃는 움크의 미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담담했다. “증명시켜 줘야 하겠지.” 자신감이 전사들에게로 서서히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물론입니다.” “물의 소중함을 모르는 개자식은 사막인도 아니야.” 누군가가 말했다. 흥분으로 눈이 붉어진 한 기사가 씩씩거렸 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어쩌면 그들의 수통에 채워진 물도 마실 수 없는 물일 지도 모른다. 물을 채우고 얼마 지나지 않 아 쓰러지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니까. “자, 자. 우선은 살아남아야 물도 마실 수 있는 게다.” “무사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짧은 시선이 흘러갔다. 움크가 낙타의 배를 걷어찼다. 기사들 이 그의 뒤를 따라 힘차게 달려 나갔다. “자! 길을 열어라! 오아시스를 타락시킨 자들에게 응징을!” “폭풍의 시련을 견뎌낸 전사들에게 또 한번의 기적을!” **** “죽었으면 편한데.” 평범한 목소리였다. 물 한잔 가져왔느냐고 묻는 듯 너무나 자 연스러워서 고개를 숙인 쪽이 오히려 서늘함을 느낄 정도였다. 흰 터번으로 머리를 꽁꽁 동여맨 남자가 흠칫 턱을 당겨 얼굴 을 숙였다. “독은 이미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은 군대로 촘촘히 둘러싸여 있었다. 아침 일찍 마을을 떠 나려다가 잡혀 죽은 자들부터 시작, 선두로 밀고 들어간 전사 들의 칼부림에 겁먹은 자들의 비명소리가 꽤 멀리 떨어진 막 사까지도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오아시스를 지키던 경비 대는 이미 그 기능을 잃었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몇몇 사람들이 비상종을 두드리며 젊은 이들과 전사들을 불러 모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마을 의 입구를 부수고 안쪽까지 밀어닥친 자들이 길게 휘두르는 도의 광채에 당황한 마을 사람들은 미쳐 무기 한번 부딪혀보 지 못하고 모래바닥에 피를 뿌렸다. 날뛰고 울부짖는 소리들은 피를 흩뿌리는 자들의 정신을 몽롱하게 잠식해 들어갔다. “효과라....” 턱을 고인 손에 금으로 장식된 두꺼운 반지가 작은 빛을 반사 했다. 우르흐는 피식 쉰 웃음을 지었다. “반역자들의 동태는?” 반역자. 그 한 마디의 느낌이 귀에 걸릴 듯 까칠했다. 고개를 숙인 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진실을 아는 소수에 게 그 단어는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죄책감을 일으켰다. “그, 그건 아직까지...” 머뭇 머뭇 말을 삼키는 수하의 태도에 우르흐는 쯧쯔 혀를 찼 다. 어차피 뽑힌 칼이라면 휘두를 수밖에 없다. 하긴 저런 담 력이니 우그르의 혈통을 타고 나서도 겨우 저런 지위까지 밖 에 오를 수 없었겠지. 우르흐는 말을 돌렸다. “독의 효과는 얼마정도 가겠나?” “늦어도 사흘 정도면 다 사라지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흐음...” 우르흐는 눈살을 찌푸렸다. 최악의 경우 오아시스 하나를 포기 할 각오까지 하고 온 길이다. 아니 어쩌면 주위의 몇몇 오아시 스까지도 함께 버려야 할지 모른다. 사막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의 일은 그의 남아있던 긍 지보다도 더 중요했다. 그의 주인을 위해, 그의 일족의 부와 보장된 미래를 위해. 우그르트 움크는 사막의 모래폭풍에서 죽 은 자여야만 했다. “우그르트 움크를 사칭한 반역자를 잡는 일이다. 실수 없이 시행하도록.” 사칭한 반역자. 우르후의 입에서 문득 쉰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우그르트 움크는 없다’며 강력히 말하던 센의 눈빛이 머릿속에서 박혀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 강렬한 살의! 우트트 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피라도 손에 묻힐 각오가 이미 끝나 있다고 여겼건만... 우르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적으로 삼으면 명줄이 따끔거리지만, 일단은 아군이다.’ “이 해가 기울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낸다.” 모든 이들을 다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폭풍에서 살아 돌아온 자를 벨만큼 우트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깊은 자는 많지 않았다. 반 이상이 진상을 모른 채 이 곳 까지 왔다. 시간을 끌어서는 안됐다. 모든 일은 끝나야 했다. 다른 이들이 그가 ‘사막에서 살아 돌아온 진정한 우그르트 움크’라는 것을 믿 어버리기 전에 말이다.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던 해는 어느 덧 붉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진실은 늘 모래 아래 흘러가는 법이니까.” 잠시 흔들리던 우르후의 눈동자가 억센 고집을 띄웠다. 선택의 여지 따위는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직접 나가겠다. 낙타를 준비해라.” 우르후의 억센 턱 아래로 짓눌린 발음이 흘러나갔다. 그의 널 찍한 등 밖으로 시뻘겋게 물든 모래벌판이 입을 벌리고 펼쳐 져 있었다. “반역자의 최후는 직접 이끌어내겠다.” 진득한 살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 돌아온 은빛입니다. 꾸벅. 퍼펙트 메이드의 완결이 멀지 않았네요.^^; 퍼펙트 메이드는 6권을 완결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 올린 건...2002년 1월이었지만...리메이크부터 다시 올린 일이 작년 10월이었으니까. 근 1년만에 완결이 되는 거로군요. 불성실연재로 애태워드려...후훗. 죄송하고. 완결편까지 성실히 나가겠습니다. 덧. 에필로그 부분은 민생고 해결을 위해 온라인 상에 올리지 않겠습니다.^^/ 책으로 봐 주세요.] 그럼! 올라갑니다.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퍼펙트 메이드::장은빛 TITLE ▶30 :: [[The Perfect MAID]] - 123 - 독 [[The Perfect MAID]] - 123 - 독 “흥. 그렇게 쉽게 죽을 여자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겠지.” 창의 앞에 놓여진 종이가 가볍게 흔들렸다. 하녀의 실종과 흔들리는 대공의 요즘 행적이 빼곡히 면을 매우고 있었다. “흐름을 잡아야 한다.” 폭풍 정도에 휩쓸려 죽을 사람이라면 곤란하다. 그 오랜 시 간동안 품어온 분노와 증오는 어떻게 삭히란 말인가. 감정 에 눈이 먼 대공이야 지금 그녀의 실종소식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창은 아니었다. “일찌감치 죽어 줬다면 좋았겠지만....” 듣기로는 백여 년 전 더 심하게 불어왔던 폭풍 속을 뚫고 서도 얼굴 한점 찌푸리지 않고 담담히 걸어 나왔던 괴물이 다. 창은 의자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고분고분히 이용 당해줘도 시원찮을 어린 백작은 적 무서 운 줄도 모르고 날뛰고 있었고, 대공의 눈에는 더 이상 온 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죽지는 않더라도 치명적인 상처 하나쯤은 기대했던 늙은 도사는, 무후의 친구답게 멀 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쿨럭!” 한번 골수까지 파고들었던 독기는 시도·때도 없이 치고 올 라와 창을 고통스럽게 했다. “크흐흐흐흐흐.” 살의가 치솟았다. “전쟁이라도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군.” 창의 눈동자가 진득히 가라앉았다. 문 밖으로 익숙한 기척 이 다가오고 있었다. 창의 입가가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비 틀어졌다. 그의 고통을 증폭시킨 증오스러운 벗이 나무 한 장 밖에 서 있었다. 창은 의자를 거머쥐었다. 푸스스, 손잡 이가 부스러져나가며 흰 가루가 흩날렸다. 긴 한숨과 함께 치솟았던 살의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창은 잠시 목을 뒤로 기댔다. ‘젠장.’ 하노베이 백작은 발걸음을 멎었다. 검술이나 무관에 대해서 는 잘 알지 못했지만 피부를 따갑게 하는 그 감각의 정체 는 알 수 있었다.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하노베이 백작 은 떨리는 손을 거머쥐었다. 저 문 너머의 그는 가장 가까 운 동지인 동시에 결코 꺽여서는 안 되는 적이었다. ‘날이 갈수록 더 미쳐가는 군.’ 순간적인 힘에 눈이 멀어 그 마공이라는 것을 직접 익히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기쁨과, 저런 미친 강자를 조절해서 앞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절망감이 동시에 그를 덮쳐들어왔다. 아직까지는 해독약을 빌미삼아 균형을 조절하고 있지만, 조 금만 더 미친다면 책에 있던 부작용 그대로 생명을 도외시 하고 피에 미쳐 날뛰게 될 지도 모른다. ‘제거해야 할지도.’ 그 때가 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칼 노릇을 해 줄 존재는 다행히 있으니, 버티다 못하면 차선책을 써야 하리라. 처신 하기가 조금 복잡하겠지만 그 정도는 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는 유서 깊은 하노베이가의 주인이 아니었던가. 하노베이 백작은 애써 웃음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들고 있던 손을 가 볍게 움직였다. 똑, 똑. 나무문이 울렸다. “오셨소이까.” 스르르,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흰 이를 보이며 창이 해맑 게 미소 지었다. 하노베이 백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우리의 앞날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해 볼까요?” 문이 가볍게 닫혔다. 그리고 하녀 한 사람이 조심스레 찻잔 을 들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 음질 쳐 나왔다. 냉랭한 공기가 문을 뚫고 온 저택을 휘감 았다. 반쯤 불탄 흔적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저택은 당장 이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크흑.” 그 문을 다시 하노베이 백작이 나선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하노베이 백작은 딱딱하게 굳은 발걸 음으로 달리듯 저택을 빠져나왔다. “날 우습게 알다니. 후회하게 해 주겠어.” 하노베이 백작은 이를 갈았다. 마부가 조심스레 마차 문을 닫았다. 늘 그렇지만 그의 주인은 이 곳을 들릴 때 마다 평 소와는 다른 이상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미친 듯이 웃어대 지 않으면 이를 북북 갈며 살기를 흘린다. 주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숨을 내뿜고, 그는 마부석에 엉덩이를 올렸다. “돌아간다.” 마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노베이 백작의 보좌관이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부는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가 덜컹 움 직이기 시작했다. “제길.” 하노베이 백작은 잠시 몸을 떨었다. 창의 차가운 비웃음이 아직도 등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손에 잡히는 듯 했던 창은 어느 새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발굽을 높이 쳐들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세자트라는 프란의 사신은 실제적 다음 대 카느인 우트트의 맹약자인 자신을 무시하 고 페르로이 후작에게로 갔다. 바로 대공에게로 갔다면 차 라리 자존심이 덜 상하련만. “감히 나를 무시했다.” 살이 떨려왔다. -그 정도 가지고 흥분하다니. 아직 멀었군. 난 적진 한 가 운데서도 ‘유일한 아군인 자’에게 날을 들이미는 바보도 보 았건만.- 흥분하는 그에게 창은 냉정히 내뱉었다. 잠시 백작과 창의 시선이 충돌했다. 시익, 창이 웃었다.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내뱉었다. 공포감이 사라지자 견디기 힘든 모욕감와 모멸감이 밀려왔다. 백작은 시선을 비스듬히 돌렸다. 더 이 상은 감정을 내색할 수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속을 보이 면 보일수록 손해 볼 뿐이다. -뭐, 곤란하다면 곤란하군. 프란의 그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 않겠지만... 우리 쪽의 힘이 더 기울기 시 작한 건 사실이니까.- 이리저리 균형을 재며 눈치를 보던 자들이 우르르 움직이 기 시작했다. 아직 채 힘을 잡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던 신 흥 세력들은 창에게로 쉽게 다가왔지만, 기존의, 정말로 힘 을 빌리고 싶었던 굵직굵직한 귀족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 고 페르로이가로 몰려갔다. -좋은 핑계거리고 있었겠지.- 페르로이 후작은 가르암가의 솔리네아와 재혼했다. 귀족가 의 그것치고는 소박한 결혼식이었지만, 몰려든 귀족들로 인 해 마치 왕족의 결혼식을 연상시켰다. 후작의 힘. 그 자체 가 들어난 자리였다. 얼떨결에 참석했던 한 무리의 귀족들 이 그 힘에 반해 후작가의 진영으로 또다시 넘어갔다. -뭐, 이제는 전쟁이 터지는 수밖에 없어. 대공도 이전처럼 무르게 반응하지만은 않을 테고, 자네의 그 여동생 또한 카 느린이 될만한 야심은 있어도, 머리는 없는 듯 하니.- 하노베이 백작은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셀레라! 이 무능한 것!’ 혈육이라는 사실이 혐오스러웠다. 애초에 그녀만 아니었다 면 지금처럼 대공에게 적대시 당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 다. 그랬다면 일은 훨씬 더 쉬웠으리라. -이런 쪽으로는 자네가 나보다 더 재능이 있어 보이더군.- 창은 창가로 몸을 돌렸다. 커다란 등판이 그를 비웃는 듯 텅 비어 있었다.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매달린 검 의 손잡이를 한번 쓰다듬었다. 섬짓한 살의가 순식간에 그 에게로 몰려들어왔다. 백작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확실하게 전쟁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마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창의 웃음에는 광기가 베어 나왔다. -기왕이면 정적 하나도 확실하게 제거하면서 말이야.-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쾅!- 주먹이 마차 벽에 처박혔다. 옆에 앉아있던 시종이 흠칫 놀 라며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 따위 놈에게!” 아무런 대구도 하지 못했다. 그가 늘어놓는 의견에 그저 고 개를 끄덕였을 뿐. 반론도, 추가할 의견도 내밀지 못했다. 머릿속이 얼어붙은 듯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끈을 쥐고 있는 건 나이어야 한단 말이다.“ 매달린 꼭두각시 같은 기분은 원하지 않았다. 백작은 지긋 이 어금니를 물었다. 아직도 다리가 미묘하게 떨려오는 것 만 같았다. “어리석은 놈.” 창가를 지키던 창의 입술이 비틀렸다. 자존심인지 자만심인 지 모를 감정의 한 끄트머리만을 쥐고 펄펄뛰는 어린 백작 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차는 주인의 성질머리처럼 뿌연 먼지를 날리며 저택에서 멀어져갔다. 잠시 그 뒷모습 을 바라보던 창은 자신의 의자로 돌아왔다.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시작되어야 한다.” 죽지는 않겠지만 고생은 좀 해야 돌아올 수 있으리라. 그녀 의 성품이라면 대공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녀 라면 분명 모래폭풍을 뚫고 나오자 마자 폭주해 버리리라. 지금처럼 얌전히 몸을 낮추고 있지는 않으리라. 그 귀찮은 짓을 다시 반복하지는 못하리라.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 은 건 없어.” 그렇잖아도 죽이려던 하녀라며 희희낙락하던 하노베이 백 작의 철없는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더럽히고 있었다. 창은 짜증스럽게 찻잔을 거머줬다. 잔은 소리도 내지 못하 고 흰 가루로 부서졌다. “그 하녀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까무러치겠지.” 픽,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꼬맹이가 죽는다면 참 볼만 할 텐데....’ 알 수 없는 흥분감에 몸이 떨려왔다. 파멸의 장에 끼어든다 는 건 전쟁보다도 더 희열이 넘치는 일이었으니까. 창의 눈 동자가 점점 더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우린 크리아로 살아 돌아가야 합니다.” 스테판은 낮게 숨죽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를 악문 목소 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후두득, 식은땀이 흘렀다. 클레 이브의 안색이 조금 흐릿해졌다. 아릿한 통증이 속을 자극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독?’ 긴장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속 이 아렸다. 덜컥 두려움이 일었다. 일행들 중 가장 마지막 으로 물을 마셨던 사람이 클레이브였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클레이브는 이를 악물었다.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치달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진땀에 섞여 이마를 흠뻑 적셨 다. 두려웠다. “클레이브님?” 피와 노을이 뒤섞인 모래 언덕에 몸을 낮추고 클레이브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스테판에게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돌아가야만 했다. -쉿!- 하르크의 전음이 귓가를 때렸다. 소년들은 숨을 삼켰다. 날 뛰는 적들과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기 서 날뛰고 있는 사신들이 달려와 자신들에게로 도를 들이밀 것만 같았다. “끄으으윽!” 울먹이는 목소리들과 신음소리들, 살을 베고 뼈를 가르는 섬칫한 소리들이 온 사방을 에워쌌다. 끔찍했다. 클레이브 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바스락, 모래알이 굴러 갔다. “생존자?” 막 시체를 뒤집어보던 병사 하나가 행동을 멈췄다. 예리한 눈빛이 소년들이 숨어있는 구릉을 흝었다. 소년들은 숨을 멈췄다. 찰라가 영원 같았다. -움직이지 마시오.- 잔뜩 긴장한 하르크의 전음이 들려왔다. 하르크는 눈을 찌 푸렸다. 사방의 적이 너무 많았다. 우그르트 움크를 제거하 기 위해 보낸 자들이니만큼 그들의 실력도 만만치만은 안았 다. 어리고 지치고 겁까지 먹은 세 소년을 무사히 데리고 빠져나간다는 건 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움크는 그 들에게 달아나라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소년들이 채 우 물가를 벗어나기도 전에 저들은 이 곳으로 덮쳐 들어왔다. “흐음.” 사박, 병사가 구릉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 클레이브는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애써 배웠던 검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도적 들에게 습격당했을 때도, 움크의 전사들에게 쫓겼을 때도 느끼지 못했었던 생생한 공포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병 사의 모래 밟히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쿵쾅쿵쾅 심장이 갑자기 내달리기 시작했다. 꽉 말아 쥔 검의 손잡이 에서 느껴지던 단단한 감촉조차 와 닿지 않고 있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동시에 이 모래를 파고 바닥으로 숨어들어가고 싶었다. “가짜다! 가짜를 찾았다!” 그 때, 마을 외곽 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클 레이브들을 향해 다가오던 사내들의 걸음이 멎었다. 몇몇 사람들이 눈짓을 교환했다. “확인은 거의 다 끝났지?”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손짓에 따라 두 사람이 오아 시스에 남았다. 그리고 나머지들이 우르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려갔다. 조심스럽게 눈짓을 교환하며 남은 두 사 람이 클레이브들이 숨어 있던 모래언덕으로 한 걸음 한 걸 음 접근했다. “고맙군.” 하르크의 형체가 흐릿하게 그들의 뒤편에서 떠올랐다. 가는 혈선이 그어지며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얼어있을 시간은 없소. 여기서 죽으면 란님께 욕이나 뒤지 게 먹을 테니까.” 퉤, 침을 뱉는 하르크의 안색은 밝지 못했다. 낯선 비틀린 미소를 가득 그린 하르크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 다. “.............” 소년들은 딱 다물린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질려 있었다. 하르크 는 잠시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갑갑했다. 이런 맹목적인 광기로 버무려진 살기는 그조차도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후 둑, 진땀이 떨어졌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얼마 나 뛰어다닌 걸까. “젠장할.” 휙, 하르크의 고개가 돌아갔다. 마을 한켠에서, 와! 하는 함 성소리와 함께 찢어지는 비명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 다. “가짜를 죽여라!” 광기로 버무려진 피의 고함소리들이 멀리서도 선명히 들려 오고 있었다. 소년들의 눈동자가 불안과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지끈, 가슴 언저리가 아려왔다. 질끈 하르크는 입술 을 베어 물었다. “피합시다.” 딱딱하게 굳은 하르크의 얼굴로 소년들의 시선이 달라붙어 있었다. 아주 잠시의 침묵,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문득 클 레이브의 눈길이 하르크의 등을 넘어 비명소리들이 터져 나 오는 곳으로 향했다. 하르크는 고개를 저었다. “자살일 뿐, 저쪽으로 가 봤자 도움은 되지 않소! 지금 저 쪽으로 달아나야 합니다.” 사신들이 달려간 반대편을 가르치며 하르크는 낮게 소리 질 렀다. 부르르, 탈진한 소년들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작은 오아시스는 이미 진득한 공포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크흑.” 클레이브의 고개가 움직였다. “제길. 이렇게 위급할 때 란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 건 지!” 하르크의 나지막한 불평소리가 아프게 들려왔다. “란.” 클레이브의 얼굴이 창백히 굳었다. **** 돌아온 은빛입니다. 꾸벅. 성실연재라... 저도 한 때는 정말 성실연재의 대표주자였었 답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먼 산을 바라보며 옛기억을 뒤져본다)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드림워커에서 만나요....;;;; TITLE ▶31 :: [[The Perfect MAID]] - 124 - 고조 [[The Perfect MAID]] - 124 - 고조 -크리아에서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하녀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클로 네는 하녀의 앞쪽을 몸으로 가리고 하녀가 정리하던 드레스를 한 벌 들어올렸다. 촘촘히 박은 레이스 자락 밑으로 어딘가 질 감이 다른 레이스 한 조각이 붙어 있었다. 문득 눈이 마주친 하녀가 살짝 눈웃음쳤다. “전쟁이라는 소문이 들리니, 참석할 무도회는 없지만...” 활짝 열린 옷장에는 철 지난 드레스들과 몇 번 입지 않은 드 레스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미리미리 손질해두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삼엄했던 경비가 조금 느슨해진 틈을 타 클로네는 옷장정리를 시작했다. 간단한 자수 외에 드레스같은 옷을 손질해 본 적은 없었지만,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그 움직임이 뜻밖의 기회를 그녀에게 제공해 주었다. “하녀를 쓰도록.” 어느 날 불쑥 찾아와 클로네의 하는 냥을 보더니 인상을 푹 구긴 우트트가 감시중인 기사에게 말했다. 그 날부터 매일 다 른 하녀가 그녀에게로 찾아왔다. 그리고 한 명의 하녀에게서 작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이후로 클로네를 돕는 하녀들이 한번씩 끼어들어왔으며, 그때마다 클로네는 귀중한 정보를 얻 어낼 수 있었다. “잠시, 안쪽 옷장도 정리할까 합니다만?” “빨리 끝내도록.” 방안을 지키고 있던 기사를 내쫓는 방법도 쉽게 발견했다. 처 음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들의 하는 행동을 바라보던 기사들은, 클로네가 늘어놓은 속옷더미에 고개를 돌렸고, 그 이후로 안쪽 옷장이라는 말이 나오면 기사들은 선선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크리아에서 온 사신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느 냐?” “네. 가르암가의 백작님이라고 들었답니다.” “그래. 그 분은 어디에 묵고 계시지?” “외곽의 고급 여관이라고 들었어요.” “여관?” 크리아와 마찬가지로 프란에도 사신들을 위한 숙소가 있었다. 클로네는 인상을 찌푸렸다. 우트트의 기색에서도 감을 잡고 있 기는 했지만 프란은 이번 전쟁을 마치 오래전부터 바라고 있 던 것처럼 급박하게 진행시키려 하고 있었다. ‘너무 급한 걸?’ 사신이 두어 번은 오가고, 밀고 당기면서 원하는 것들을 교환 하다가 정 안되면 드는 최후의 수단이 전쟁이었다. 병사는 땅 에서 솟아나고 무기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농사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래야 했다. ‘벼르고 별러왔군.’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은 우그르트 움크와, 어떻게해서든 지금 잡은 권한을 카느까지 이어가려는 우트트. 크리아가 그 사이에 낀 희생물이었다. “휴.” 클로네의 얼굴은 어두워져만 갔다. 프란의 대국으로서의 힘은 밖에서 상상하던 것보다 강했다.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이 곳에서 살펴본 바로만 해도 크리아 정도의 소국이 쉽게 이겨낼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아가씨.” 하녀가 조심스럽게 클로네의 안색을 살폈다. 클로네는 머리가 복잡했다. 비록 지금 하녀들이 클로네를 도와주고는 있었지만, 그녀들은 그저 하녀들일 뿐이었다. ‘지금은 비록 날 도와주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른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지 하녀는 조신스런 동작으로 드레스를 손질했다. ‘최악의 경우 이조차도 우트트의 계략일지 모른다.’ 이렇게 그릇된 정보들을 보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사신을 통해 크리아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모든 것이 불길했다. 클로네는 바짝 마 른 입술을 적셨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럼 전 이만...” 하녀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녀의 앞에는 정돈된 드레스가 한 가득 접혀 있었다. “수고했다.” 하녀가 문을 나서자마자 감시원이 안으로 들어섰다. 클로네는 발코니의 문을 열었다. ‘셀레라는 어떻게 됐을까?’ 걱정해줄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 밤인가에 이 방에 클로 네를 혼자 남겨두고 기사들에게 끌려 나간 셀레라는 두 번 다 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로는 다른 곳에 유폐되었다고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었다. 하녀들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는 안전한 곳이라니. 거짓말이다. ‘뭐, 어쩌면 나보다 더 좋은 곳에 있을 지도 모르지. 하노베 이가는 우트트의 지지가문이기도 하고.’ 그런 게 아직도 소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뭐, 죽여도 죽을 여자는 아닌 듯 싶으니까.’ 셀레라는 묘한 박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성질을 가리지 않고 긁어대는 바람에, 아무 데도 쓸모없을 듯 보이면 서도 어딘가에 쓰일 듯 느껴지게 하는 그 미묘한 균형감이 그 녀에게는 있었다. 클로네는 발코니의 문을 열었다. 후끈한 열 기가 문 안쪽으로 스며들어왔다. 살며시 얼굴을 찌푸리며 클로 네는 늘 그대로인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허리를 폈다. ‘움크는 반드시 살아있어. 내가 아는 란님이라면, 그렇게 하 실 거야.’ 말로는 이래저래 위협해도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모습을 두 고 볼 성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또, 그녀와 하르크가 함께라 면 그들은 모두 무사하리라. 위풍당당했던 추격대의 모습이 눈 에 걸리기는 했지만, 클로네는 란을 믿고 있었다. ‘분명 그 분이실꺼야.’ 평범한 하녀를 꿈꾸던 란이었다. 광오하게 남의 이름을 빌려 자신을 치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의 이름을 내세웠다면, 그리고 그만한 실력을 내보였다면, 그건 그녀 자 신이리라. ‘류이네리아 칸 란.’ 누구라도 동경하는 ‘로드’의 호칭. 그 이름을 하녀라는 이 름을 달았다는 전제 하에서라지만 너무나도 담담하게 받아들 였던 란의 미소를 떠올리며, 클로네는 숨을 들이마셨다. ‘비록 인질일 뿐이지만, 내가 크리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꺼야. 최소한... 이 곳에서 머물렀던 시간만큼은...’ 살짝 내리감은 클로네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을 발했다. ‘믿자. 란님의 남겨주신 사람들을 믿어야 해. 그 외에는 없어. 하녀들만큼 귀족들의 속사정에 대해 잘 아는 존재는 없으니 까.’ 그 것이 지금 클로네의 힘이었다. ‘이 프란의 속사정을 알려야 한다.’ 쓸데없는 피만을 흘려야 하는 전쟁은 없어야 했다. “부디 무사하길....” 문득 떠오른 클레이브의 해맑은 웃음이 눈앞에 선했다. 클로네 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 “전염병? 염병할 소리 하고 있네.” “로웬!” 툭 내뱉은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가재미처럼 쭉 찢어진 눈으로 친구를 사납게 노려본 로웬이 로브에 달라붙은 모래들 을 툭툭 털며 시큰둥이 말했다. “그럼 넌 그런 걸 믿냐? 그 대가리로 마법사 참 잘도 됐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왜! 이 찢어진 게 내 주둥인데! 그럼! 내 입으로 네가 재잘 거릴테냐?” 크리아의 궁중 마법사로 잘 나가고 있다던 친구가 갑자기 사 막 한 가운데로 뚝 떨어져 내린 것만으로도 황당한 일이건만, 오래된 친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절대 바뀌지 않는 성질 머리가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 연신 제 멋대로의 싸가지 없음만 들어내고 있었다. 아크투는 부르르 떨리는 주먹 을 곱게 접었다. ‘제길. 덤벼봤자 나만 깨진다.’ 성질머리로도, 그 성깔을 받쳐주는 폭력성으로도 그는 로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 풍족한 크리아를 등지고 이 낯설고 거친 사막의 땅 까지 피하듯 이주해 오지 않았던가. ‘이 천하에 썩을 미친놈은 뭐가 부족해서 궁정 마법사 자리 까지 내 팽개치고 달려 온 거야?’ 크리아의 궁정 마법사 자리는 대우가 좋은 만큼 자리다툼이 치열하기로도 유명했다. 잠시라고는 해도 자리를 비운다는 것 은 밀려날 지도 모른다는 의미일 터. ‘설마 저 성질머리 때문에 쫓겨난 건 아니겠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안에서 새는 술통, 밖에서야 멀쩡할까. 아크투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거라도 해야 했다. 속이 터 져 죽지 않으려면 말이다. 하지만 이 로웬이라는 괴물은 크리 아에서 남 갈구는 법만 터득해 왔는지... “왜! 주댕이에 염증이라도 생겼냐? 왜 자꾸 삐죽삐죽 내밀 어?! 내 실험용으로 만든 약이라도 먹여주랴?” 라며 시퍼런, 얼핏 봐도 독약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물병을 흔 들어댄다. 잔쯕 눈썹을 구긴 폼이 어디서 호되게 당하고 크리 아에서 쫓겨난 건지는 모르지만 아크투로서는 정말 억울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피, 필요 없어!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이런 놈은 그저 빨리 보내는 게 상책이다. 괜시리 붙들고 앉아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을 겪을 필요가 없다. “말 했지? 그 염병인지 뭔지 도는 마을로 가야 한다고.” “제길, 넌 말을 해도!” 가급적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아크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수련 마법사 시절 당하고 당해 몸에 완전히 베였던 습관은 완 전히 지워지지 못했다. 그리곤 번개같은 손동작으로 책상 위의 서류들을 날려 버리고 이동마법 관련 자료들을 찾아 온 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젠장. 나 돌아가기 전까지 그 망할 정원사 영감탱이는 되졌 으면 좋겠는데.” 털퍼덕, 도울 생각은 없는지 의자에 주저앉은 로웬은 작게 중 얼거렸다. 이 곳까지 오면서 머리털이 흰털 되도록 머리를 굴 렸다. 다른 마법사들의 도움을 구해 볼까, 아니면 귀족들의 힘 을 빌려 볼까. ‘어림 반푼어치 없지.’ 베이르 대공이란 괴물은 단지 소국 크리아에만 힘을 지닌 존 재가 아니다. 카슬 최고의 검사라는 이름은 껍데기만으로 이루 어지지 않는다. 그런 그가 늙은 정원사의 뒤를 봐주고 있다. 아니 뒤를 봐 주는 정도가 아니다. 요 근래 관찰하고 모은 정 보들로 유추해 본다면 거의 친 부모자식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살갑기까지 했다. 대공과 맞서야 한다고 한다면... ‘어떤 미친놈이 힘을 빌려주겠어.’ 우선 스스로부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실 력으로 겨뤄 보자니 결과가 보이는 듯 했고, 뭐 팔리게 다른 마법사들에게 ‘정원사에게 두들겨 맞았다’라고 동내 방내 떠들며 동정을 구할 만큼 자존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법 사 체면에 똥칠을 하고 길드에서조차 쫓겨날 일 있는가! ‘젠장.’ 그렇다면 유일한 희망이, 수명 다 된 늙은 정원사가 알아서 꼴 깍 죽어주는 일인데, 그 또한 녹록치가 않았다. 좀 비실비실하 고 허약한 기미라도 보여야 꿈을 꿔 볼 것 아닌가! 정정하기로 만 따진다면야 대공을 압도하고도 남으니 이제 비빌 희망이 참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디로 가겠 는가! 다 못된 성질머리가 되어 여기저기 활화산처럼 펑펑 폭 발하던 참이었다. “휴.” 신세가 처량하지만 힘이 없는 걸 어떻하겠는가! 그저 꾹꾹 눌 러 미래를 기약하는 수밖에. 이를 뿌득뿌득 갈아대며 로웬은 스스로를 추스렸다. “야! 빨리 못찾아!” 버럭, 엉뚱한 곳에 화풀이나 해 대면서, ‘저 자식을 그냥! 엉뚱한 곳으로 날려 버려?’ 우드득, 이를 가는 아크투의 신음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말 이다. ‘젠장. 힘만 안딸렸어도 그렇게 하는 건데....’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아크투의 메마른 실험실에 공허하게 흘 러나갔다. “젠장. 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장의 지도와 함께 고이고이 모셔 두었던 값비싼, 공간이동 마법약이 허탈하게 아크투의 손에서 떠나갔다. 순간, 발광이라도 할 듯 유리병들을 몽창 손에 쥐어 들고 흔들어대던 로웬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젠장. 고맙다는 말도 못하냐!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야!” **** 은빛입니다. 네, 란은 언제 등장하냐구요? ^^곧 등장할거랍니다. 다음편즈음은 아닐지....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ITLE ▶32 :: [[The Perfect MAID]] - 125 - 고조 [[The Perfect MAID]] - 125 - 고조 “론!” 챙! 등 쪽으로 휘둘러오던 반월의 도를 힘겹게 밀어 친 론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몸이 비틀거렸다. 그림자라는 직업의 특성 상 이렇게 뻥 뚫린 곳에 서서 적을 맞는 건 익숙하지 않 았다. 그러나 지금은 싸울 장소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지독한 놈들!”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닿았다. 론의 고개가 흐릿히 돌려졌 다. 챙! 누군가의 도를 또 한번 막아냈다. 지금 자신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에 박혀진 대로 휘둘 러 막고 그어 베고 있을 뿐, 머릿속은 이미 새하얗게 날아가 기력 한 줌 남아있지 않았다. 살기 흉흉한 자들의 눈빛이 온통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이 진정한 사막의 선택을 받은 움크 일행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머릿수로는 달아날 수 없다.” 멀찍이서 낙타 위에 걸터앉아 재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 한 남자가 외쳤다. 흐릿한 형체가 론의 눈에 익었다. 센의 심복부 하 중 하나인 우르후였다.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들어내지 않지 만 일단 낙타를 몰기 시작하면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는다는 비정한 우그르 우르후. 철렁, 론의 심장이 다시 한번 내리 앉 았다. ‘젠장. 어쩐지. 귀중한 오아시스에 독을 풀만한 놈이 두 명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론의 눈가가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우르후가 움직였다면 이미 달아날 곳은 없다고 봐도 옳았다. 옆을 스쳐간 누군가의 입가 에서 피식 쉰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그냥 달아났어야 한다는 거였어.’ 론의 초점을 잃은 눈빛에 또 한 자루의 도가 스치고 들어왔다. 흐느적 움직인 팔이 기적처럼 도의 궤적을 막아냈다. 푸헉! “쿨럭!” 등 한 중앙을 꿰뚫으며 뜨거운 감촉이 몸을 파고 들어왔다. “론!” 거칠게 갈라져 낯익은 흔적조차 거의 남지 않은 목소리가 들 려왔다. “잡았다! 커헉!” 희희낙락한 얼굴로 웃음 짓던 남자의 목이 허공으로 튀어 올 랐다. 동시에 론의 몸이 붉은 모래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제기랄! 로온!” 누구의 도인지 모를 문득한 도를 집어던지고 새 도를 채어들 며 움크는 거칠게 소리 질렀다. 무모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 었다. 저들이 자신을 죽이러 왔을 때 어떤 각오로 왔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미쳤지. 기적 따위를 믿었다니!’ 그 때는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건 본능이었고 육감이었다.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하 지 않으면 자신의 심장을 배신하는 것만 같은... 자살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짧으면 짧은 이십 몇 년의 삶 동안 그는 그 런 그의 감각을 따라 움직인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죽어랏!” 쓰러진 론의 목을 향해 칙칙한 붉은 빛의 도가 떨어져 내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붉은 도신을 보았다. 움크의 눈이 찢어지듯 치떠졌다. 움크는 도를 들어 그를 쳐내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팔은 그의 마음처럼 빠른 속도로 들어올려지지 않았 다. “죽어라! 가짜!” 귓가로 윙윙 살의어린 함성소리들이 들려왔다. ‘끝인가?’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러갔다. 움크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론의 목으로 떨어지던 도까지 천천히 움직이는 듯 보였다. 론 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저 살의만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아주 잠시의 죽음을 미루는 것일 뿐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 았다. ‘제발.’ 움크의 손이 그의 도를 놓았다. 도가 서서히 날아가며 론의 목 을 노리던 자의 등판으로 향했다. 순간 마주친 론의 눈에 경악 이 담겨 있었다. 피와 땀으로 새까맣게 변한 움크의 얼굴에 흰 미소가 피어났다. ‘용서를.’ 자신을 믿고 따랐기에,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모든 자들에게 용서를, 그리고... ‘란님.’ 폭풍을 꺾고 자신을 살려준 한 사람에게 용서를. 움크는 눈을 감았다. 피육! 살과 거죽을 뚫는 피륙음과 함께 피 분수가 터 져 나왔다. 움크의 얼굴로 뜨거운 핏물이 쏟아졌다. “젠자아아아아앙! 제기랄! 도우란 말이요! 언제까지 눈을 감 고 있을 거요!” “하르크?”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움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앞과 옆을 가로막고 있던 자는 어느 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삽시 간에 움크를 포위하고 있던 전사들의 혼백을 허공으로 흩으며 하르크는 십수명의 뼈를 통으로 베어냈다. 순간적인 공포에 눌 린 사람들의 포위망이 한 순간 풀렸다. “받으세요.” 조그마한 손이 피 묻은 도를 건넸다. 움크의 입이 떡 벌어졌 다. 짧은 전율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설마! 클레이브!” 그를 둘러싼 자그마한 세 소년의 눈에는 더 이상 공포는 남아 있지 않았다. 클레이브가 엷게 미소 지었다. “다시 만났군요.” “젠장! 젠장! 제기랄! 내가 왜 다시 돌아와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냔 말이다아아아! 란님이 아시면 날 죽이려 들꺼야아아 아!” 하르크의 고함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오는 전장의 한 복판이었 다. “제길! 란님! 귓구녕이 있다면 제발 듣고 오란 말이오! 사막 에서 뒤졌소? 이 뻗치는 살기도 못느끼냔말이요오오오! ****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만을 응시하던 란의 어깨가 움찔 움직였 다. “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듯한 투명한 눈빛 안에 넘실거리 는 광기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그 눈길을 받는 순간 녹색 비늘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뿜어 나올 뻔 했던 브레스를 꿀꺽 삼켜야 했다. ‘살의.’ 자신도 모르게 화염을 토할 뻔 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사막의 복판에서 란의 기운을 발견하기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살기 란 살기를 있는 데로 모두 끌어올린 란은 도적단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시체들 사이에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심마인가? 제길. 저 경지까지 가도록 이 정도 단련도 되어 있지 않았어?’ 약점이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고는 한다. 단조롭다면 단조로 운 삶이었다. 이 대륙, 저 대륙을 돌아다니며 남들의 눈에는 파란만장하게 살아왔지만, 그녀 자신은 변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왔었다. 막는 것이 있으면 부수어 넘어섰고, 강력한 그 힘 으로 모든 고민을 해결해 왔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 가는 처음부터 그녀의 몫이었던 적이 없었다. 자식을 가져보지 않았고 제자도 길러보지 않았다. 란의 삶 안에서 의미 있는 것 은 오직 자신의 무예였을 뿐, 그 이상 그녀를 좌우할만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켜야 할 것’은 스승이나 친구와는 전 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쾅!- 거대한 동체를 울리는 충격이 온 몸으로 밀어닥쳤다. 무의식적 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보호막을 쳤음에도 비늘 곳곳에 자잘한 금이 갔다. 익숙하지 않은 통증에 드래곤의 커다란 송곳니가 비스듬 기울어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분노가 터져 올랐다. 공중에 둥실 떠오른 인간 같지 않은 괴물 하나가 불꽃을 삼킨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부 르르, 전투를 느낀 온 몸의 비늘이 일어섰다. 비늘 틈새 틈새 를 마나가 감싸고 채웠다. 순식간에 덩치가 한배 반은 부풀어 올랐다. 펄럭이는 날개를 바짝 몸통에 붙여 감은 녹색 비늘의 그의 발톱들이 길게 뻗어져 나왔다. “이런...” 커다란 황금빛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스스로 인식할 틈도 없이 몸이 변화했다. 그 만큼 그가 눈앞에 떠오른 여인에게 공포감 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말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건가?’ 이길 자신은 없었지만,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오랜 시간을 존재해 온 신의 권속으로서, 아직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정신 을 잃은 무신 하나를 견뎌내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쓸데없는 다툼 따위로 낭비할 만큼 시간이 넉 넉하지 않았다. -콰광!- 이성을 잃은 란은 무차별적으로 공격적인 마나를 뿜어내며 그 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스스로 일어난 마법과 마나들이 초록의 그를 감싸 안고 붉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크헉! 란! 정신을 차려!” 인간인 주제에 이미 땅을 벗어난 존재는 드래곤이라도 된 냥 날개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가로지르며 그에게로 쇄도해 들어 왔다. -쾅!- 서로가 뿜어낸 공격의 마나가 충돌하며 커다란 굉음을 터트렸 다. “젠장!” 조금씩 싸움이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길게 찢어진 입가 사이 로 푸른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드래곤의 황금빛 눈동자가 서서히 녹색으로, 그리고 다시 붉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연이 어진 충격이 주는 고통에서 그 역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었 다. 통증, 그리고 분노. 붉게 물들어가는 그의 눈동자가 점차 회색빛 란의 것과 비슷하게 불꽃을 통째로 삼켜버리기 시작했 다. 길게 날아오는 빛의 무리를, 붉은 화염으로 감싼 그의 발 톱이 갈기갈기 찢어냈다. 그리고 연이어! -콰아아아아아아!- 한 줄기의 붉은 화염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 “날 무얼로 보고 이런 대접을 하는 게냐!” 고래고래 소리질러봤자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였다. “꺄아아아악!” 스스로의 화를 이겨내지 못한 셀레라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온 통로를 울리며 퍼져나갔다. 막 지하 감옥으로 걸어들어 가 려던 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더 가둬둘까?’ 마음 같아서는 죽건 말건 냅두고 싶었다. 아니, 지금 그녀가 있는 귀족 전용의 호화감옥에서 빼내, 아주 밑창의 시궁창 같 은 감옥에 집어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중한 인질 이었다. ‘하노베이 백작가라.’ 전쟁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반드시 이겨야 하기도 했지만, 크 리아를 짓밟아 손에 넣는다고 해도 다스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력들을 흡수해야 했다. 그 대상이 하노베이 백작가였다. ‘대공가는 반드시 꺽어야 하고... 페르로이 가문도 그렇지.’ 그 둘이 살아남는다면 분명 잔당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것 이 틀림없었다. 왕족이나 그 혈족들을 살려둘 생각은 없다. 하 지만 모든 일에는 만일이라는 것이 있다. 그 때를 대비해, 하 노베이가는 삼켜야 하고, 다른 가문들은 짓밟아야 했다. “기가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군.” 어떤 면에서는 클로네라는 여인만큼 대단한 여인이다. 보통의 여인이라면 감옥이라는 것만으로도 겁을 집어먹고 순순해 지 련만, 조금도 그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카느린이 될 지도 모르는 내게 이런 대접을 하다니! 용서하 지 않겠다!” 저 전혀 현실감 없이 들리는 꿈까지도 말이다. 센은 지하 감옥 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렸다.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저 정도의 고집이라면, 자신만의 몸을 아끼는 집착이라면, 가문과 나라를 배신하고서라도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 저런 사람일수록 이용하기는 더 쉬운 법이다. ‘후궁 정도는 될 지도 모르겠군.’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센 은 몸을 돌렸다. 차가운 쇠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찌되었건 저 곳은 안전했다. 끝까지 살려두어야 하는 귀중한 인질이니 섯불리 밖에 내놓았다가 엉뚱한 눈먼 칼에 목숨이 잃게 할 수는 없었다. 인질이란 그 본래가 지니고 있는 성품이 나 기품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아깝기는 하지만.’ 클로네는 장소를 보아 목을 내놓아야 한다.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 ‘버릴 카드는 버려야 겠지.’ 두 목숨이면 명분은 충분했다. 센은 얼마 전 크리아로 파견한 심복을 떠올리며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옥신각신 머 리를 겨뤄오던 자의 죽음이란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 라면 확실한 전쟁의 명분을 만들어 주리라. 사신을 베는 무례 를 보아 넘길 만큼 프란은 물렁하지 않으니. ‘세자트. 자네 곁으로 곧 주인도 보내주겠네.’ “자, 크리아의 사신을 요리하러 가 볼까?” 가르암 백작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외교실력도 나 라에 힘이 있을 때나 유용하게 휘두를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떤 정당성을 내세우더라도 힘이 없는 나라의 사신 은 칼자루를 쥘 수 없었다. “그런 법이지.” 마을 하나를 몰살시킬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을 받은 지가 만 하루. 이제 슬슬 전투가 끝나갈 무렵이다. 아니 평범한 작은 오아시스일 뿐이니, 모든 것은 벌써 다 끝났을 지도 모른다. “우트트님의 미래를 위해.” 벌써부터 서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 은빛입니다. 일단, 광기로 물든 란. 등장입니다. 언제 제정신 차리냐구요? 곧~ ^^이랍니다! 모두 즐거운 꿈 꾸시길!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ITLE ▶33 :: [[The Perfect MAID]] - 126 - 만나야 할 자는 만난다. [[The Perfect MAID]] - 126 - 만나야 할 자는 만난다. 센의 예상과는 달리 우르후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괴물인가?” 어쩌면 미친 자일 지도 모른다. 다 지어놓은 빵에 모래를 흩뿌 리듯 나타난 한 명의 사내는 전사들로 빼곡한 오아시스가를 텅 빈 모래벌판처럼 날아다니며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등에 날개라도 달린 건 아닐까. “젠장! 날 잡아도 좋으니 빨랑 돌아오란 말이요오오오!” 알 수 없는 괴성을 연달아 질러대며, 허름한 하인 복을 입은 남자는 연달아 도광을 번득였다. 그 자의 날 앞에 벌써 얼마나 많은 병사가 쓰러졌는지 모른다. “제길! 저 놈은 지치지도 않나!” 하루 밤낮을 다투어도 그는 여전히 팔팔해 보였다. 우르후가 끌고 온 대부분의 전사들은 이제 일어설 기력도 없는 처지였 다. 황급히 주문을 날리다가 아군만 잡아 막은 마법사들 역시 탈진해 후방에 뻗어 있었다. 그리 많지 않게 준비해 온 화살은 바닥났고, 잔여인력은 없었다. 우르후는 눈가를 좁혔다. 움크의 전사들은 거의 다 쓰러졌다. 움크를 포함해 이제 살아있는 자 는 둘이다. 겨우 둘. “겨우 세 사람을 쓰러트리지 못해 이 모양인가.” “아니요. 다섯입니다.” “뭐?” “이 곳에서는 보이지 않으시겠지만, 어린 꼬마 셋이 저들 사 이에 껴 살아 있습니다.” “아이!” 우르후의 귀가 번쩍 열렸다. 부하의 말에 의하면 움크와 론의 사이에서 열심히 살아있는 아이 셋이 있었다. 어른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키 때문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제법 날카롭게 검을 쓰고 있어 쉽지는 않다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의 하면 그 세 아이는 저기 괴물처럼 날뛰고 있는 자와 함께 나 타났다. “그렇군.” 우르후의 눈이 움크와 론에게로 꽃혔다. 그 사이 보이지는 않 아도 세 명의 고마운 약점들이 살아 있었다. 우르후는 잠시 고 민했다. 아직 전사의 이름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를 전사들이 협공해 죽이는 건 큰 불명예였다. 어쩌면 그들이 우르후의 명 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저기 날뛰는 괴 물이 그의 계획을 눈치 챌 수도 있다.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 은 것보다야 낫겠지만 주어진 기회를 망가트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크아아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신음 소리는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진해져만 갔다. 우르후는 고개를 들었다. “...움크가 아닌 꼬마들을 잡아라.” 우르후의 손가락이 클레이브들을 향했다. 그 모습이 스쳐가는 하르크의 시아에 잡혔다. 덜컹, 불길함이 그를 엄습했다. 하르 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제길.’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움크와 론이 보였다. 하 르크는 다시 한번 마나를 뽑아 올렸다. 배꼽 아래가 텅 빈지 오래였지만, 지체할 수가 없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삼키며 하르크는 도를 휘둘렀다. “비켜라!” 저들의 등 뒤에 어린 주인이 있었다. 처음부터 끼어들지 않았 다면 모르지만, 이제 움크와 론은 어린 주인을 지켜주는 방패 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비티쇼. 그 살기라면 미치게도 예민한... 산 건너 서도 눈을 희번득일 란님이 날아 오실지도 모르니까.’ 이를 악물고 서 있는 세 소년의 모습이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 었다. 흐릿하게 풀린 눈이 언제 감길지 몰랐다. 살기에 대한 긴장이 조금 쌓여있던 기운마저 송두리째 흔들었다. 클레이브 는 손에 힘을 줬다. ‘미안.’ 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가까스로 삼켰다. 스르르 미끌어 떨어질 뻔 한 검을 가까스로 고처 잡았다. 지금은 사과할 때가 아니 다. 아직 살아있다. 죽을 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태어나지 않았으면.’하고 후회하는 것은 그만 두기로 하지 않았는가. 스테판과 크레이도 묵묵히 버티고 있었다. 힐끗 돌아본 크레이 의 얼굴에는 그 날 사막에서 보았던 자책은 드리워있지 않았 다. 저들도 저렇게 버텨주는데, 주인인 그가 무너질 수는 없었 다. ‘난 란의 주인이야.’ 언젠가 그녀가 말했다. 그를 만나서 기쁘다고. 그러니까 그녀 에 대한 미안함도 접기로 했다. 자신을 선택했을 때의 란의 눈 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녀는 강한 존재이니까. “클레이브님!” 옆구리에 닿는 둔탁한 느낌에 클레이브는 번쩍 눈을 떴다. 거 무튀튀한 도신이 엎어진 클레이브의 머리 위를 휭 흘려 지나 갔다. 클레이브는 머리를 털었다. 지금은 전장이었다. 이를 악 물고 있었는데 어느새 정신을 놓고 있었다. 몽롱해져오는 의식 사이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흡!” “조심하거라!” 움크의 지친 목소리에 긴장이 가득 베어있었다. 클레이브는 머 리를 털었다. 어쩐지 조금 전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싼 것 같았다. “비켜라!” 하르크의 목소리가 조금씩 가깝게 다가왔다. 흐릿한 눈에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보였다. ‘뭐지?’ 조금 전만 하더라도 움크를 노려보던 시선들이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움크와 론도 그 눈을 느꼈는지 아이들을 몸으로 가려 왔다. 그러나 그들도 한계였다. “꼬맹이들을 잡아라!” 누군가가 외쳤다. 우악스러운 날들이 소년들에게로 쏟아져 내 렸다. “이 미친 놈들이이이! 늬들이 정녕 다 죽으려 작정을 했구나 아!” 호들갑스러운 하르크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여유가 묻어 나오 지 않았다. 움크가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돌려 클레이브의 정수 리로 떨어져 내리던 도를 비켜냈다. 탕, 탕, 부딪히는 소리들이 점점 더 빠르게 울리기 시작했다. 후득, 움크의 몸의 상처들이 벌어졌다. 새로운 상처들이 베어지며 붉은 핏물이 클레이브의 얼굴로 튀었다. ‘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따듯한 미소를 보내주었던 사 람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 죽어가고 있었다. “...살아 ...돌아가야 합니다.” 스테판의 갈라질 대로 갈라진 쉰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 었다. 온 사방에서 검붉은 도신이 밀려들어왔다. 아찔한 현기 증이 클레이브를 덮쳐왔다. 갑자기 속이 뒤집어질 듯 저려왔 다. ‘움크님의 말대로 피했어야 했다. 그 모래언덕에 하르크가 몸 을 숨겨줬을 때 그대로 잠자코 숨어 있었어야 했다. 언덕 너머 에서 누군가가 움크를 사칭한 반역자를 찾았다고 외쳤을 때 그대로 못들은 척 했어야 했다.’ 짧은 찰라의 시간에 밀려오는 자책감. ‘난 란의 주인이야!’ 그 최소한의 긍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라도 다 시 사지로 뛰어들 수 있다. 고통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클 레이브는 이를 악물었다. 식은땀이 진땀에 섞여 이마를 흠뻑 적셨다. 시아가 점점 더 흐릿해져갔다. “위험해요!” 쿵! 온 몸이 휘청이는 충격이 클레이브를 쓸어갔다. 핑그르르 르 하늘이 돌았다. 클레이브의 작은 몸이 휘청였다. -푹!- 무언가가 몸을 밀어내며 깊이 꽃혀 들어왔다. 커다랗게 치떠진 스테판의 눈동자가 느리게 보였다. 땅이 벌떡 일어났다. 털썩, 붉은 핏물이 튀었다.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크, 클레이브니임!” “내가 잡았다!” 누군가의 환호성이 들렸다. 흐릿한 클레이브의 눈동자에 옆구 리에 박힌 검붉은 쇳조각이 보였다. 세상이 점점 어둡게 가라 앉고 있었다. 흐릿한 의식 사이로 강한 바람이 볼을 때리고 흘 러갔다. ‘모래?’ 몸이 붕 뜨는 듯한 괴리감. 클레이브는 눈을 감았다. 새파랗게 질린 스테판이 비명을 터트렸다. “아, 아아악!” 클레이브의 작은 옆구리에서 핏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당황한 스테판이 손으로 상처 주위를 눌렀지만, 박혀있는 쇳조각 틈새 로 붉은 피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스테판은 이를 악물었 다. 눈물이 터져 나와 클레이브의 상처를 볼 수가 없었다. 그 들의 머리 위로 기다란 사람 그림자가 생겨났다. “크흑!” 손에서 떨어져 나간 도를 다시 주어들 새 없이 그들을 감싼 움크의 커다란 등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피와 땀으로 범벅된 움크의 얼굴을 타고 점점이 핏방울이 떨 어져 내렸다. “꼬마고 뭐고 함께 베어버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기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르후가 옅 게 미소 지었다. 전사들의 자존심이고 뭐고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 ‘어린아이를 노릴 수 없다며 말하던 놈들도 더는 버틸 수 없 었나보군. 뭐, 움크를 잡았으니... 이 정도 피해쯤은.’ “몰살시켜라!” 우르후의 늘씬한 곡도가 그들을 향했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전 사들의 검붉은 도신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다가가기 위해 손 을 내민 하르크의 옆구리로 거무튀튀한 쇳조각이 처박혔다. “크아아악!” 하르크의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옆구리에 쑤셔 넣은 칼날을 뽑지 않고 동강내며 하르크는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야 하는데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뽑아내고 뽑 아낸 마나는 방금 전의 일격이 마지막이였던 냥, 이미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충혈된 눈에 절망이 길게 가라앉았다. “안돼에에에에에에에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날들이 소년들의 몸으로 떨어져 내리려 하 고 있었다. “란니이이이이임!” 하르크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는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쿵, 충격이 온 몸을 휩쓸었다. 악몽에 짓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곧 그의 목 으로도 도가 떨어져 내리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르크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 눈꺼풀을 들었다. 깜깜했다. 분명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노을이 물들어 가던 저녁나절 이었는데! 의식을 잃었던 것도 아니건만 사방은 벌써 칠흑처럼 감겨 있었다. 그가 암살자 출신이 아니 었다면 얼룩얼룩한 사람의 그림자마저 구분하지 못했으리라. -휘이이이이이이이이- 길다랗게 바람이 울었다. 떨어지던 핏물보다도 섬칫한 두려움 이 그를 엄습해왔다. “서, 서, 서, 설마!” 하르크는 그 바람을 알고 있었다. 온 세상을 검게 물들이고 가 늘게 울며 다가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불어오는 바 람. 몇 날 며칠을 모래를 헤집으며 마지막 생명체 하나까지도 앗아가려 발악하는 잔인한 괴물! “모래 폭풍이다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새까맣게 변한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휘 몰아쳐 내려오고 있었다. “사막의 절망이다아아아아!!” 폭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하르크의 텅빈 눈동자가 하늘로 향했 다. 지나간 폭풍의 아찔함이 되살아났다. 그에게는 더 이상 어 린 주인들을 지켜줄 힘이 없었다. “제엔자앙! 란니이이이이임!” 틀어쥔 주먹에서 가는 핏물이 흩날렸다. 하르크는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렀다. 그 가 해 볼 수 있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이 늦장꾸러기 아줌마야! 나도 이젠 더는 못해먹겠단 말이다 아아!” **** “대공저하.” 금아는 고개를 들었다. 페르로이 후작이었다. “일은 잘 진행되어 가고 계십니까?” “글세요. 고민하고 있소이다.” 대공의 얼굴을 나날이 수척하게 만드는 문제는 많았지만 그중 에서도 가장 속을 썩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창과 하노베이 백작가의 일이었다. 젊은 세력을 규합해 새로운 주류가 되겠다 는 발상은 좋았다. 문제는 그 속이였다. 창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마나는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동시에 하노베이 백작에게서 들려오는 각종 소문은 하루하루 더 복잡해져갔다. 젊은 혈기로 그들에게 가세했던 귀족들은 하 나 둘 떨어져나갔다. 대신 대공가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던 몇 몇 구신들이 그들에게 붙었다.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크리아 의 내부는 완전히 분리되어갔다. “겉으로야 전쟁도 있고... 하니 별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수북하게 쌓인 서류는 하나같이 항명하는 소리들이었다. 어떤 가문이 더 공을 세우기 좋은 자리에 배치되었다는 둥, 어느 파 가 전공을 독점하려 한다는 등의 소문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 고, 귀족들의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찌 하면 좋을 것 같소?” 한탄처럼 흘러나온 금아의 말에 페르로이 후작은 아무런 대답 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적이 창이 아니라 하노베 이 백작일 뿐이었다면, 전장을 빌어 제거하는 수도 있었고, 다 른 모함을 덮어씌우는 방법들도 있었다. 그들의 세력이 적지 않으니 반발이 있기야 하겠지만, 이쪽에는 대공과 그를 절대적 으로 지지하는 국왕이 있었다. “창은, 그 아이들은 내 아들인 동시에 내 조카들이기도 했 소.” 문득 대공이 입을 열었다. “친자식을 갖고 싶지 않았던 나는... 자식을 원하는 아내에게 형님께서 시골의 하급 귀족에게 낳게 한 아이들을 데려다 주 었지.”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턱을 기댄 금아는 답답한 듯 길게 한숨 을 토해냈다. “그녀는 그 아이들이 어딘가의 고아들일 거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그 애들은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내 혈육들이 었다네.” 페르로이 후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아 역시 대답을 원 하지는 않았다. 그는 조용히 탄식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 세 아이들은 친형제였네. 아이들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지.” 창의 손에 죽은 혁을 떠올리는 듯 금아의 눈시위는 붉게 물들 었다. “죽은 아이를 위해 산 아이를 죽이는 게 옳을 지... 난 아직도 고민스럽네. 아, 물론 죽은 아이가 누구의 손에 그리되었는지 를 모르는 건 아니야. 각오도 했었네. 그러나...” 금아는 잠시 숨을 들이셨다. “순수한 내 힘으로... 내 손으로 직접 겨뤄 끊어줄 생각이었을 뿐이네. 정치의 칼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 전쟁만 아니었다면... 말일세.” 전쟁만 아니었다면, 찾아가 정면대결을 펼칠 셈이었다. 그 칼 끝에 죽는다 해도 무인들간의 대련이니 뭐라 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지금은 전시였고 못난 아들은 그를 적대시하는 세력의 머리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지금 그가 나선다면 그건 단순히 무인들간의, 가족들의 이야기로 맺어지지 못한다. “이 나라에 혼돈만을 안겨줄 수는 없네.” “대공저하시라면, 혼돈 없이 모든 것을 해내실 수도 있습니 다.” “노도인가?” 백발의 정원사가 어느 새 들어와 있었다. 금아는 얼굴을 일그 러트렸다. “나라면...” “시간의 한계를 벗어난 대공저하시라면, 그 모든 것을 힘으로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영원한 존재가 아닐세. 란님은 삼백여년을 존재해 오셨지만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몰라. 난 두렵 네. 이 세상은 현실을 사는 자들의 것이어야 해.” 노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도 현실을 사는 존재랍니다.’ 금아는 무언가를 찾듯이 잠시 노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노 도의 노안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금아는 고개를 돌렸 다. 그리고는 길게 숨을 내뿜었다. “역시 그런 게로군.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세상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하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도르 자네인가?” 노도의 옆에 또 한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도르는 들고 온 작 은 쪽지들을 금아의 앞에 펼쳤다. 그리고 한 발 물러나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꿇어앉았다. “내부에 적을 품고 갈 수는 없습니다. 창은 둘째치고서라도 하노베이 백작은, 그 어린 귀족이라면 자신만의 영달을 위해 나라도 팔 수 있는 인물입니다.” 도르의 작은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금아에게 꽃혔다. 금아의 입술이 앙다물렸다. 그리고. “그 뿐이라는 거로군.” 깊게 가라앉았다. “프란의 첩자들이 움직임을 개시했답니다.” 도르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 은빛입니다. 쳅터의 이름 그대로... 곧 이루어지겠죠.^^ 휴. 폭풍의 기사는 퍼펙트 메이드가 끝나야 다시 손을 볼 수 있을 듯 하네요. 이전에도 공지드렸습니다만... 창조신의 파업 일기와는 같은 세계관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랍니다...-_-; 다르게 봐주세요~~~ 그럼, 내일...또다시. 모두 즐거운 꿈 꾸시길!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ITLE ▶34 :: [[The Perfect MAID]] - 127 - 얼룩드래곤 [[The Perfect MAID]] - 127 - 얼룩드래곤 ‘젠장할!’ 로웬은 있는 힘을 다해 스테프를 움켜쥐었다. 아찔한 절망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온 몸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아크투! 이 빌어먹을 녀석! 염병이 아니라 모래폭 풍 한 가운데잖아!’ 공간 이동이 되는 순간 그의 몸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무언 가를 어찌 해 볼 틈도 없었다. 피부를 파고드는 듯한 잔 고통 들이 정신없이 그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사방이 윙윙거렸다. 마치 말벌 떼의 한 가운데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하르크는 정 신없이 로브의 모자를 붙잡았다. 튼튼히 마법이 걸린 물건이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산 사람이 아니었으리라. ‘입도 열수가 없잖아아!’ 입은커녕 숨도 쉬기 힘들었다. 사방에서 정신없이 모래와 다른 무언가들이 그의 몸을 때렸다. 희끗한 모래에 뒤섞여 위협스런 쇳조각과 커다란 돌덩어리도 보였다. 온 몸에 돋은 소름이 부 르르르 떨어댔다. 사막출신은 아니었지만 사막의 절망이라고까 지 불리는 폭풍에 대해서는 눈이 아리도록 읽어보았다. 아니, 그런 것 하나도 모르더라도 지금 이 상황이 쉽게 살아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존재는 없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두 껍고 튼튼한 비늘로 온 몸을 감쌌다는 드래곤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쿠엑!” 날카로운 무언가가 로웬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을 타고 핏물이 실처럼 뻗어나갔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베어 나오며 온 몸이 움츠려들었다. 로웬은 이를 악물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덜덜 떨리는 턱에 혀를 물고 죽을 지도 몰랐다. ‘이런 줄 알았으면 패 죽여도 안 왔을 텐데! 제기랄. 그 정원 사 영감탱이한테 복수도 못해보고 죽는구나!’ 확실한 죽음의 예감. 로웬은 눈을 감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기는 싫었단 말이다!’ 사정없이 울려오던 로웬의 떨림이 움찔, 멎었다. ‘허무?’ 죽기보다 더 싫은 게 그거였다. 로웬의 눈이 고집스럽게 뜨여 졌다. 발악해 볼 여지도 없는 죽음이라면, 차라리 마지막 호기 심 하나 정도는 보고 가야 스스로에 대한 체면이라도 서리라. 이 세상에 폭풍의 속을 이렇게 생생히 본 마법사가 또 어디 있을까! 속을 뒤집는 구토감을 꾹꾹 누르며 로웬은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 그의 머리 위로 알록달록한 녹색과 적색의 하늘이 떠 있었다. “엥?” 로웬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순간 그의 감각에 엄 청난 압박감을 주는 마나가 잡혔다. 너무나 커서 오히려 느끼 지 못했던 마나! 없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큼의 강한 마나 가 바람을 타고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자연적인 바람에서 이런 마나가 느껴진다는 말은 들어본 적 이 없어.’ 그렇다면 마나를 사용한 무언가가 폭풍을 일으켰다는 의미. 로 웬은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바람에 쓸려 날아다니면서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바람은 안정적이었다. 아무리 마법 로브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방팔방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불었다면, 그의 몸은 벌써 전에 갈갈이 찢겨져 나갔으리라. 로 웬은 조심스럽게 바람을 살폈다. 역시나 바람은 일정한 방향으 로 질서 정연히 돌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섬세하게 조정하 고 있는 것처럼! “설마!” 그의 머릿속에 거대한 마나를 움직이는 사막의 생명체 하나가 떠올랐다. “하, 하지만 알록달록!” 머리가 온통 혼란스러웠다. 잔뜩 치뜬 로웬의 눈에 핏발이 일 어섰다. 그 순간 문득, 알록달록한 하늘에서 황금빛의 커다란 구슬 두개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로웬의 머리에 벼 락이 내리쳤다. “어, 얼룩 드래곤이라니! 폭풍을 일으키는 얼룩 드래곤이라니! 이건 희대의 발견이야!” 살아 돌아가야만 했다. 생존에의 열방이 폭발했다. “사, 살려줘어어어어!” 로웬은 마나를 집중하며 있는 힘을 다해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그 순간 바람이 멎었다. “!”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았던 몸이 한 순간에 땅으로 추락했다. 아득하면서도 길게 느껴지던 시간, 서서히 멀어져 가는 의식 안에서 로웬은 짓궂게 비틀어진 황 금빛 눈동자를 보았다. ‘어, 얼룩 드래... 고....’ **** 바람은 불어왔을 때보다 더 빨리 지나갔다. 한 순간이었다. 모 래 한 알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움크의 눈이 커다랗게 치떠졌다. 온 몸을 뒤덮은 모래알들과 날아가 버린 지붕, 흐트 러진 풍경이 아니었다면 바람이 불었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었으리라. 아무도 소리 내지 못했다. 사방은 고요히 가라앉았 다. 새까맣게 물들었던 세상은 저녁노을로 붉게 타들어갔다. 움크에게로 도를 치켜들었던 남자가 털썩 주저앉으며 웅얼거 렸다. 그의 온 몸에 쌓여있던 모래가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미, 미, 믿을 수 없어...!” 우르후의 입도 딱 벌어져 있었다. 커다랗게 치뜨인 그의 눈이 천천히 굴러 움크로 향했다. 움크의 입도 떡 벌어져 있었다. 움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들을 둘러쌌던 자들의 걸음 이 주춤 주춤 떨어져갔다. 새파랗게 뜬 얼굴로 사람들이 하나 둘 도를 떨어트렸다. “포, 폭풍이...” 믿기지가 않았다. 거친 바람은 마치 움크와 아이들을 지키기라 도 하는 듯 불어왔다가 순식간에 멎었다. 움크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까칠한 모래 감촉이 매마른 혓바닥을 괴롭혔다. 이미 의식을 잃고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온 몸을 찌르는 고통이 아 니었다면 믿을 수 없으리라. “으음...” 움크의 품안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움크는 황급히 품속의 아이들을 살폈다. 피와 모래로 안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툭, 무언가가 옆구리에 닿았 다. 언제 쓰러졌는지 바닥을 나뒹굴던 론이 움크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의 눈짓이 조용히 밖으로 향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움크와 눈이 마주친 자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서, 설마... 저 사람이...’ 작은 소곤거림이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낙타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에 엎드린 우르후의 눈이 움크와 마주쳤다. 우르후의 얼굴 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르후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모래 에 고개를 푹 박았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는 얼마 되지 않은 자였다. 두근두근, 죄책감과 두려움, 공포와 신기함, 그리고 폭 풍이 지켜주는 자를 눈앞에서 보았다는 희열이 우르후의 안에 서 마구 뒤섞였다. ‘제, 제길.’ 미칠 듯한 후회감이 밀려들어왔다. 잠시 본 움크의 얼굴이 마 치 카느처럼 보였다. 엉겨붙은 핏자국도,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러붙은 모래알도 그를 퇴색시키지 못했다. 우르 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작은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에 쌓인 모래를 흘려보냈다. “헤, 헤헤헤헤헤헤!” 그의 옆쪽에 작은 산처럼 쌓여있던 모래더미가 불쑥 움직였다. 옆구리를 틀어막은 하르크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기묘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움크는 자신 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움크의 몸이 부르 르 떨렸다. ‘설마?’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폭풍처럼 가늘게 울지는 않았지만, 위압감이 가득 담긴 바람. 움크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 으켰다. 부서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 다. “서, 설마!” 지난 몇 년간 단 한번도 내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핑그르르 고 였다. 이 믿어지지 않는 기적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어 디서인가 많이 보던 실루엣. 흔치 않은 긴 흑발이 바람을 타고 나붓기고 있었다. ‘그, 그랬던가....’ 두근두근 움크의 가슴이 뛰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설래임 이 그를 점령했다. 주륵,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내렸 다. -자박.- 선명하게 모래 밟는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때렸다. 모래에 남 은 발자국 보다 더 뚜렷한 존재감이 넋을 놓고 있던 사람들의 눈을 움직이게 했다.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온 몸의 털 들이 일어서고 심장이 멎을 듯한 압박감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헤, 헤헤. 늦었수.” 하르크는 몸을 꿈틀거리며 낮게 웃었다. “조,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한대... 패주고 싶었는데.” “...다음에 기회를 주지.” 그녀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크, 큭. 약속..했소?” “물론.” 가는 선, 티 한점 묻지 않은 감청색의 하녀 복. 오만한 듯 하 면서도 자연스러운 미소. 폭풍이 불어간 사막의 시간을 움직이 며, 그녀는 가볍게 숨을 토해냈다. “아아.” 나지막한 목소리.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듯한, 아니 어찌 들으면 무척이나 다정스러운 목소리에 우르후는 온 몸의 소름 이 돋았다. “그래. 늦었어. 아주 늦을 뻔 했지만,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늦었지.” 목소리는 잠겨 있는 듯도 했고, 가늘게 떨리는 듯도 했다. 그 녀는 하르크의 앞을 스쳐 지나가 움크를 향해 다가갔다. 몇몇 이 꿈틀, 도를 들어올려 그녀 앞을 가로막아보려 했지만, 반 보도 움직이지 못하고 바닥으로 뒤엎어졌다. -자박- 그녀의 발아래 모래가 바스러졌다. 형편없이 찢긴 하르크의 옆 을 지나며 치떠진 눈은 움크의 상처를 담으며 더 이상 벌어질 데 없이 열렸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론의 품 안에 안긴 세 아이에게 향하며. -툭- 눈물을 떨궜다. “하.” 그녀는 고개를 들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비틀, 바닥으로 쓰러지듯 무릎을 꿇는 움크의 입에서 작은 목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고 작은 상처들로 범벅된 그의 등에서 핏물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아, 아니. 아니. 아니. 나 때문이겠지.”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자들의 머 리는 혼란스러웠다. 폭풍이 보호하는 자라면 분명 우그르트 움 크여야 했다. 그런데 대 제국의 우그르트가 겨우 하녀에게 무 릎을 꿇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복잡한 눈동자들이 굴렀 다. 우르후에게 부하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러나 우르후는 더 이상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서, 서, 설마!’ 벼락같은 직감이 그의 뇌를 관통했다. 우르후의 온 몸이 떨려 왔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옷이 쇠사슬처럼 몸을 옭아맸다. “그리고...” 여인이 몸을 돌렸다. 기묘한 광기와 분노가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우르후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피부가 따끔거 리는 살기는 방금 전에 불어왔던 모래바람보다 더 거칠었다. “거짓된 자들의 탓이겠지.” 공허한 눈동자에 살기가 가득했다. 바람이 변하기 시작했다. 폭풍이 날라왔던 모래를 덜어주듯 불어왔던 부드러운 바람은 더 이상 없었다. 날카롭게 이를 들어 낸 살의가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 하나하나에 베어 있었다. “......어떤 개자식이 내 새끼들을 건들었나...?” 숨 멎는 위압감과 살을 에일 듯한 살기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너냐??”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작은 단도에서 뻗어 나온 흰 빛의 기둥 이 사람 키만큼 자라 있었다. 우르후의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후두득, 병사들의 몸이 땅으로 엎드려졌다. 펄럭, 허리에 곱게 메어져 있던 흰 에이프런이 갈기갈기 찢겨져 날아갔다. “응?” **** 은빛입니다. 드디어 만났습니다...^^/ 후훗. 모두 즐거운 꿈 꾸시길!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ITLE ▶35 :: [[The Perfect MAID]] - 128- 반전 [[The Perfect MAID]] - 128- 반전 “소식은?” “아직입니다.” 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우트트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새로운 소식들은 연거푸 날아오는데 가장 기다리는 ‘그 일’ 에 대해서만 아무런 보고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군.” 우트트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째이던가. 벌써 보고가 올라왔어도 한참 전에 올라왔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우 트트는 초조함을 식히기 위해 물을 들이마셨다. 미지근했다. 불쑥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다들 죽기라도 한건가?” 목소리에는 냉랭한 분노가 빼곡히 차 있었다. 센은 허리를 깊 숙이 숙였다. “용서하십시오.” “널 용서해서 보고가 들어온다면 하겠다.” “마법사들이 모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부근의 부족들은 소규모일 뿐이라서 파견나간 마법사 외에 마을에 거주하는 마 법사가 없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동원되 었고...” “그래. 그 다들 동원된 마법사들에게 왜 연락이 없느냐는 거 다.” “론이라는 자는 아까울만큼 유능한 그림자였습니다.” 센은 얼굴 가득 들어난 유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까이 두고 부 렸던 만큼 그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마법사들부터 노렸을 겁니다. 그 는 전투를 아는 그림자이니까요.” “전투를 아는 그림자라.” “네.” “아깝군.” 우트트는 입을 다물었다. 이 정도 내심을 보였을 때 센이 어떻 게 할 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제 조금 더 빨리 올라 올 보고만 기다리면 된다. 사실 작전이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쓸만한 마법사도, 전사도 없는 조그마한 마을 하나. 게 다가 움크에게는 살아남은 전사도 별로 없었다. 모래폭풍에 쓸 려갔는지 아니면 하녀에게 맞아죽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를 뒷 받침할만한 힘이 없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카느께서는?” “아직 환궁하지 않으셨습니다.” 우트트는 아무런 말도 덧달지 않았다. 센은 숨을 조금 들이마 셨다. 며칠 째 카느가 아르의 신전에 머무르고 있었다. 대외적 으로 프란의 승리를 위해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우트트를 믿고 은퇴할 준비를 하는 것일 테지만,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배제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그가 정말로 폭풍을 이겨낸 신의 축복을 받았다 면...!’ 전쟁의 신 아르가 우트트를 허락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센은 아랫입술을 씹었다.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긴장과 두려움을 억 눌러야 했다. “움크에게 아르님의 기적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센도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우트트는 확신을 지녀야 하는 자였다. 우트트는 작지만 뚜렷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고 가슴을 폈다. “그럼,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센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우트트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정중한 인사와 달리 센의 마음은 조급했다. 자신도 모르게 발 걸음이 점차 빨라져만 갔다. 연이어 들볶았지만 정보원들은 신 통한 답을 물고오지 못했다. 그의 집무실 가득 쌓인 서류들이 모조리 쓰레기처럼 보였다. 정보라고는 쌓여있겠지만, 오늘이 라고 뾰족하지는 못하리라. 그도 조금은 지쳐 있었다. ‘그는 추격을 포기했고, 요행히 살아남은 거야.’ 셈이 있는 자라면, 스스로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도 깨 달았으리라. 그랬다면 추격을 중단하고 수도로 돌아오는 길이 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폭풍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리라. 그리고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제길. 정말로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쯤은 센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움크는 그런 식으로 몸을 움직일 자가 아니었다. ‘시간이 느리군.’ 오아시스에 독을 푸는 것까지 허락했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괴멸시키는 일은 센이라고 해도 결정하기 쉬운 사안이 아니었 다. 시체의 독이 잘못 지하수맥을 더럽히기라도 하면 그 근방 의 오아시스가 줄줄이 오염되어 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된다 면... 애써 우트트가 카느의 자리를 차지해도 ‘형을 배신한 하 늘의 재앙.’운운 소문 따위가 돌기 쉽다. “서둘러야 한다.” 놓치면 곤란했다. 경쟁하듯 으르렁거리기는 해왔지만 지금처럼 대 놓고 암살을 시도한 건 처음이었다. 만에 하나, 천만의 하 나라도 움크가 살아서 황궁으로 돌아온다면, 사막의 폭풍을 뚫 고 살아왔음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한다면! ‘이대로 눈 뜨고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은 모래기둥처럼 흩어지고, 카느의 자리는 움크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센은 불안했다. 할 수 있는 조취를 모두 취했다. 그 짧은 시간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일들 을 해냈다. 외교권을 포함한 내정권을 거머쥐었다. 다음 대의 카느의 자리를 당장 잇더라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우트트는 맡겨진 모든 일들을 실수 없이 해 내고 있었다. 크리아와의 전 쟁도 승리를 자신 할 수 있었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 고 있었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 터 꿈틀거렸다. ‘풀리는 듯 하면서도 풀리는 일이 없군.’ 세자트를 암살하기 위해 크리아로 보낸 자들에게서도 차례로 연락이 끊겨갔다. 그를 보호하고 있는 페르로이가문의 그림자 들은 상상외로 유능했다. 책상 위의 서류들을 힐끗 일별하고 집어던진 센은 의자에 거칠게 몸을 던졌다. “제기랄. 정말로 다들 죽기라도 한건가!” 우트트에게는 잘 돌려 말했지만 이건 센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하나 살아남았다면 뭔가의 연락을 취했어야 했다. 센은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저기....” 서류뭉치를 잔뜩 들고 들어온 부하 하나가 주저하며 입을 열 었다. 휙 돌려진 센의 시선이 거북스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다 가, 날카로워지는 센의 표정에 그는 황급히 말을 쏟아냈다. “소관의 생각으로는 감히 우그르트를 사칭한 반역자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리라 보입니다.” “어째서이지?” 예상치 못한 반문에 부하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조심 스럽게 뒷말을 이었다. “감히 사막의 후계자 ‘우그르트의 이름’을 사칭한 죄를 위 대한 전쟁의 신 아르께서 용서하실 리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센은 쓴 웃음을 삼켰다. **** “...애를 잡아라. 잡아.” 기척은 느끼고 있었지만 방어할 수가 없었다. 란은 뒤통수로 쏟아진 충격을 고스란히 덮어썼다.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을 말 려주길 원했을 지도 모른다. 란은 질끈 이를 악물었다. -쾅!- 주먹과 사람의 머리가 부딪혔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굉음이 터 져 나왔다. 란의 상체가 가볍게 흔들렸다. “죽고 나서 후회 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게 인간이라는 생명 체야.” 벼락같이 뚝 나타나 난데없이 그녀의 뒤통수를 후려친 녹색 머리의 남자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고 손목을 매만졌다. 툭, 그 의 한쪽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사람 형체의 무언가가 바닥으 로 굴러 떨어졌다. 팔랑, 벗겨진 모자 즈음에 수염이 성성한 남자의 얼굴이 들어났다. 란은 잠시 눈가를 찌푸렸다.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얼룩 드래곤이니 뭐니, 그다지 살려두고 싶지는 않지만 쓸만 해서 데려왔다.” “...마법사?” 다 헤지고 모래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내동댕이쳐진 남자가 몸에 걸치고 있는 건 최고급 로브였다. “아직 채 이성이 돌아오지 않은 듯해서 하는 말인데.” 녹색 머리의 남자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세 아이들에게로 시 선을 돌렸다. “네 살기를 받고 멀쩡할 사람은 드물어. 게다가 네가 그리도 안달하는 세 아이들은...” 란이 황급히 아이들 쪽으로 다가섰다. 셋 모두 의식이 없었다. 스테판과 크레이는 상처보다는 탈진처럼 보였지만 클레이브의 경우는 심각했다. 온 몸은 차가웠고 얼굴은 파르스름했다. 그 시체 같은 몸에 아직 맥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저 아이들은 아직 죽지 않았지만, 당장 치료해 주지 않으면 확실히 죽어.” 녹색 머리의 남자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살기 따위를 뿌리며 난동부릴 시간이 있다고 착각하는 거 야? 지각생 주제에?” “크흑!” 란은 이를 악물었다. 아직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지 못한 사람 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도를 들고 있었다. 란은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르후를 바라보며 한 걸음을 딛었다. 모래 와 땀으로 더렵혀져 있었지만, 그의 몸에 걸쳐진 귀족스러운 의복과 매달린 귀금속들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를 눈에 띄게 했다. “좋아. 치료가 급하니 한번에 마무리 해 주지.” 한자 한자 씹힌 억눌린 음성. 피부를 베는 듯한 살기는 없었 다. 그러나 그 이상의 위엄이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주위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뒤통수를 맞으며 사라졌던 흰 빛이 어느 새 자라나 있었다. 란은 차분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올렸 다. 우르후는 마른 침을 삼켰다. 어쩐지 무표정한 란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라 있는 것만 같았다. 살기 띈 얼굴보다도 더 두 려워 보이는 미소. 우르후는 덜컹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우르후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미끄러졌다. 그 때. “..............” 휙, 손을 내린 란의 단도에서 거대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쾅!- 깨끗하고 커다란 폭음. 폭음치고는 너무나 맑고 선명해서 커다 란 종이 친 것만 같았다. 조금씩 흘러나오던 잡음들은 그 순간 깔끔히 사라졌다. 찢어질 듯 치뜨인 사람들의 눈동자에 말끔히 사라져버린 모래언덕이 들어왔다. “만에 하나라도 아이들에게 또다시 위해를 가한다거나... 쓸데 없는 짓을 하거나 달아나는 녀석들은 각오하도록.” 란은 몸을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거친 동작으로 팔에 붙 어 있던 하녀의 문장을 뜯어냈다. “그 때는 크리아의 하녀 란이 아니라...” 뜯겨진 천 조각이 활짝 펼쳐져 바람 한점 없는 모래구릉을 넘 어 사막 저편으로 날아갔다. “너희들이 부르는 검후 류이네리아가 상대해 주겠다.” 쾅! 벼락이 떨어지는 듯 했다. 우르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의 귓가에 방금 전의 폭음과 함께 검후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요동쳤다. 그 날 황궁에는 그도 있었다. 방금 전 흰 섬광이 옆 을 스쳐갔을 때보다도 더 진한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압도적이었다. 반발할 여지란 눈꼽만큼도 없었다. ‘여, 역시. 설마! 정말로!’ 증명하지 않았는가. 폭풍을 수족처럼 몰고 와 한순간에 흩어지 게 한 기적으로. 전쟁의 신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자만이 폭 풍 속에서 안전하다는 사막의 전설을! “...멸망당하고 싶다면 덤벼라.” 어느 누구도 대항할 수 없었다. ‘이제 어느 누구도 내 아끼는 자를 해하게 두지 않겠다.’ **** 은빛입니다. 란도 저도 막가기 시작했습니다. =ㅗ=;;; 절단마공이라 하신 분... 휴. 아직 마공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군요. 음. 네. 이 무공이 신공이 되는 날까지... 열쉼히! 노력하겠습니다. 묘효효효효효효효효! 덧. 가우님. 연참해주세요. =h=; 밤새워 글을 쓰셔야 하는 가우님만 빼고... 모두 즐거운 꿈꾸시길!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ITLE ▶36 :: [[The Perfect MAID]] - 129 - 더 꼬여만 가는 실타래 [[The Perfect MAID]] - 129 - 더 꼬여만 가는 실타래 “젠장. 진작 좀 그렇게 하지.” 하르크는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한 손으로는 옆구리의 상처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스테판과 크레이를 다독이면서도 입은 멈추지 않았다. 하르크의 양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쳇. 오히려 내 손이 더 아프네.” 붕대를 감고 몸이 일어설만 해지자마자 하르크는 란에게로 걸 어왔다. 그리고 거침없이 손을 휘둘렀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텅 빈 단전에서는 아무런 힘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지만, 그 두 번의 손짓에는 하르크가 졸여왔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소!- 힘겹게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다가와 외친 그의 절규에 란 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눈이 찢어 질 듯 열렸다. 란의 볼이 붉으스름 부어올랐다. -나를 믿으라고! 클레이브님을 지킨다고 하지 않았었소!- 가벼운 모포 한 장으로 배를 가리고 쓰러져있는 클레이브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모포 밖으로 검게 변한 클레이브의 피가 넓게 퍼져 있었다. 하르크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 란의 얼 굴에서 다시 핏기가 빠져나갔다. 서늘한 한기가 사막의 열기를 밀어내고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르크의 얼 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덥석 란 의 허리에 매달렸다. -란니이이임! 내가 미쳤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패 죽여도 좋다고 한 건 진실이 아니오! 이 하르크는 맹세코 란님을 욕한 적도 없고, 아줌마라 부른 적도 없소! 단지 클레이브님을 지키 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을 뿐이라우! 클레이브님이 저렇게 된 건 건 내 탓이 아니란 말이요오!- “휴, 치료하는 데 방해하지 좀 말고 비켜서 있어.” 하르크의 생각을 깨며 녹색 머리의 남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 “에.” 하르크는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밝은 황금빛 눈동자가 그를 부드럽게 내려보고 있었다. 하르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개겨봤자 손해만 볼 것 같았다. 자신을 숲지기 칸이라 고 밝힌 그는 강했다. “뭐, 그럼.” 하르크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 때 그 순간, 칸이 불쑥 끼어들 지 않았다면 란은 다시 날뛰기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란의 머리를 쇳소리 나게 패고서 도 멀쩡한 손을 지니고 있다면 분명 평범한 숲지기는 아니었 다. 하르크는 꿈틀 꿈틀 몸을 움직여 사람 둘 지나다닐 만큼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킁.” 하르크는 옅게 숨을 내쉬며 땅에 드러누웠다. 갑자기 움직여서 인지 온 몸에 고통이 밀려왔다. 근육과 뼈가 상하기는 했지만 천만 다행스럽게도 내장이 토막 나는 건 면할 수 있었다. 아직 제대로 ‘운기조식’을 할 수는 없었지만 하루정도 더 지난다 면 정좌하고 앉을 수도 있으리라. ‘란이 손을 본 녀석인가?’ 칸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움크의 요모조모를 훑었다. 어딘가 란과 비슷한 기운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자넨 죽을 만큼은 아니야. 좀 참아.” “듣던 중 다행이오.” 피식, 하르크가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어딘가 호의가 느껴 지는 남자였다. “보통사람이라면 애 저녁에 죽었겠지만, 자넨 의식까지 멀쩡 하니 죽지는 않을 꺼야. 게다가 저 란의 따귀를 두 대나 치고 도 살아남은 유일한 자일 텐데, 죽는다면 섭섭하겠지.” 종종 저렇게 섬득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만 제외 한다면 말이다. 하르크는 움찔 어깨를 추스렸다. 쌓인 게 많다 보니 이성을 잃고 후르륵 풀기는 했지만, 방금 전에는 정말로 죽음을 감지했었다. 그러고 보니 다시 만난 란은 어딘가 불안 정해 보였다. ‘많이 헤맸었나 보군.’ 하긴, 그 성격에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과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남쪽의 숲으로 간다고 해 놓고 북쪽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으니...! ‘그, 그러고 보니 그랬지... 중간에 방향을...’ 바꿨었다. 란과의 약속장소를 향해 가지 않았다. 비록 클레이 브가 결정한 것이기는 했지만. 하르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란이 칸과 하르크를 향 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꼴깍, 마른 침이 넘어갔다. “그건, 그렇고. 의외로 더 쓸만하군.” 클레이브와 아이들이 있는 방향을 물끄럼 바라보던 칸이 낮게 감탄했다 “겉멋이 반은 넘을 줄 알았는데, 상상외로 뛰어난 걸?” “에?” “저 마법사 말일세.” 그러고 보니 하르크의 붕대를 감아준 사람도 저 마법사였다. 하르크는 상처를 덮은 붕대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잘 매여 있었다. 탑 안에서 연구만 하던 마법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솜씨. “그건 그렇고, 저 마법사는 낯이 익은데요.” “그래? 아는 자인가?” 칸의 눈에 작은 호기심이 맴돌았다. 하르크는 누운 자세로 손 을 들어올려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분명 어디서인가 봤던 자였 다. 게다가 다 헤지긴 했어도 그가 걸치고 있는 로브는 크리아 가 아니면 보기 힘든 북대륙산 수입품이었다. “아, 맞다. 그였지.” “음?” “맞아. 분명히 크리아의 궁정마법사 로웬경이었어.” 하르크는 몸을 일으켰다. 목을 주욱 빼고 요리조리 마법사를 살폈다. 땟국물과 핏물로 얼룩덜룩 해졌지만 분명 그였다. “호? 궁정마법사라니?” 궁정마법사라면 인간 마법사들 중에서는 최고의 명예직이었다. 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 되는 자가, 그것도 멀고 먼 크 리아 출신의 로웬이 어째서 그의 모래폭풍 한 가운데로 날아 들어왔던 것일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란이 자박 다 가오며 하르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르크는 고개를 끄덕였 다. “분명. 로웬경이야. 저 실력을 보면 확실해요. 타고난 성깔로 는 공격마법이 ‘딱’인데, 불가사이하게도 회복계열에 조예가 깊다는 괴짜 마법사.” “호오. 괴짜?” “딱 보면 티 나잖아요. 아, 얼마 전에 꿈에서 노도 그 영감탱 이가 나타나 쓸만한 놈을 한 보냈다고 하시더니만... 저 놈이었 었나?” “쿨럭!” 사래 들린 고통스러운 기침소리가 로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강렬한 살의가 하르크의 감각을 찔러왔다. 칸의 눈살이 구겨졌 다. 하르크는 움찔 몸을 사렸다. 듣던 바에 의하면 로웬은 한 번 토라지면 왕이 나서도 달래기 힘들만큼 막무가네의 고집쟁 이라 했다. 저 마법사가 목숨을 건 땡깡이라도 피우면서 더 이 상 클레이브들을 돌보지 못하겠다고 반항이라도 한다면! ‘나, 나만 죽는 거잖아!’ 그러나 마법사는 하르크의 예상과 달리 뒤돌아보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가볍게 빠드득, 이를 갈았을 뿐. 길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로웬은 다시 조용히 손을 움직여갔다. 칸의 황금빛 눈동자가 가늘게 휘어졌다. ‘아, 폭발 안하나?’ 하르크는 남몰래 한숨을 내쉈다. 로웬의 옆쪽에 앉아있던 란의 눈동자가 어쩐지 사나워 진 듯 보였다. 로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어쨌건 사지 멀쩡히 남겨두기도 확실히 잘했군.” 칸이 빙그르르 웃었다. 로웬의 몸이 흠칫 떨렸다. 툭, 그의 몸 이 굳으며 주문이 끊겼다. 그들을 바라보던 란이 길게 한숨을 내쉈다. 하르크는 하얗게 바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 는 터덜터덜 걸어와 로웬과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의식은 아직 되찾지 못했지만 아이들과 클레이브 의 안색에는 핏기가 돌아와 있었다. “둘 다, 직접 치료해 줄 것 아니면, 치료 하는데 방해하지 마.”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해 주는 건 아니잖아. 이게 다 누구 때 문인데.” 칸이 낮게 툴툴거렸다. 란의 입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갔다. 겉으로는 멀정히 앉아 있지만 칸의 몸 상태도 엉망이었다. 누 군가를 치료해준다고 움찍거렸다가는 그가 먼저 죽을 지도 몰 랐다. 여기까지 그녀를 데리고 날아와서 싸움을 멈추게 하기 위해 폭풍을 일으켜준 것만 해도 그는 벌써 한계를 넘나들었 다. “그래.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그래. 사실 이렇게 앉아는 있지만 나도 죽을 맛이라고. 세상 에. 이름을 준 자를 그렇게까지 개 패듯 하는 놈이 어디 있 어?” “브래스까지 뿜어댄 놈에게 듣고 싶지 않아.” “어라? 정신이 있었냐? 그런 놈이 그 꼬라지를 하고 덤볐 어?” “그건 아니고. 희미하게 기억은 있다는 거지.” “기억?” “그래. 희미하기는 하지만 꽤 믿을만한 기억이지.” 순간 차갑게 가라앉은 란의 눈동자를 본 칸이 슬그머니 고개 를 돌렸다. 뿜어져 나오는 살기도 무섭지만 저렇게 원독처럼 쌓인 살의는 더 무섭다. ‘기억이라.’ 칸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저 소년이 죽었더라면 정말로 큰 일이 날 뻔 했겠군.’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척 의뭉을 떨다가 결국 한대 맞고서야 벌 떡 일어난 로웬은 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뻣뻣하게 굳더니, 정신없이 달려가 마법 가방을 풀어헤치고 클레이브와 아이들 에게로 마법약들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얼룩 드래곤이라니!’ 그는 칸이 무엇인지를 아는 듯 했다. 모욕이라면 모욕이지만, 의외로 재미도 있었다. 인간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가. 스 스로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싫어하지도 않았다. 온 몸이 붉어질 만큼 전의를 불태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휴, 그건 그렇고 문제로군.” 란의 입으로 꽤 믿을만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칸은 조용히 생 각에 잠겨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서로 큰 공격이 먹힐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칸과 란은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지상을 초토화시켜갔다. 이성을 잃은 칸 의 머릿속에는 더 이상 클레이브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되살린 존재에 대한 자욱한 적의는 붉게 물 든 그의 비늘을 검게 참식해 들어갔다. 그 때 즈음이었다. 무 신 아르가 나타난 것은. -멈춰라!- 가능하다면 멈추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칸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란은 잠시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아르도 보이지 않았다. -멈추어라!- 아르의 신력이 조금 더 올라갔다. 신계의 규율 상 완전한 현신 은 할 수가 없었기에 그는 그의 존재감의 일부를 보이는 것만 으로 란과 칸을 제어해야 했다. 그러나 이성이 풀려버린 란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압도적인 힘의 강림뿐이었다. -날 무시하는 겐가!- 아르의 기운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부풀어 올랐 다. -아르페............속아.............. 때부터 알아봤어!!!- 거침없는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함께 아르의 손에 가득 응축 되었던 힘이 란과 아르를 향해 막 터져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휴... 전쟁의 신다우신 성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때 적호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정말로 난장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지상의 존재들은 신의 힘을 감당할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 힘이 폭발했다면, 열의 사 막 자체가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클레이브들의 목숨 도 사라졌으리라. -자네 클레이브를 죽게 놓아둘 생각인가! 그 아이가 지금 자네 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이런 곳에서 무엇하는 겐가!- 적호의 호통소리는 란의 귀를 관통했다. 모든 공격이 일순 정 지했다. 오히려 넘어가려던 칸이 허둥지둥 마나를 회수해야 했 다. 란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진실입니까? 그 아이는 아직 살아있습니까?- -아직은 살아있네만, 자네가 서두르지 않으면 어찌 될지는 모 른다네.- 란의 눈에 희망이 돌아왔다. 아르가 정신을 찾은 란을 위해 하 녀 복을 건넸다. 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아르의 속셈이 손에 잡힐 듯 했지만 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신도 정확히 듣지 못한 말인데다가, 란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 을 굳이 끄집어내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르페이나에게 속아 넘어갔을 때부터 알아 봤다...라?’ 그런 말이었다. 아르의 그 노호성을 란은 기억하고 있는 듯 보 였다. 란과 신들에 얽힌 계약은 얼추 들어 알고 있었다. 그게 속임수였다면, 란은... 철저하게 이용당한 꼴이다. 이미 아이에 게는 마음을 준 듯, 클레이브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에 마치 듣지 못한 척 넘어간 듯하기는 하지만... ‘저 란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에 모든 것을 걸지.’ 지금은 아이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기뻐 저렇게 헤벌쭉거리지 만 분명 다시 폭발하리라. 칸은 그 날을 상상하며 짓궂게 웃음 지었다. ‘하긴, 편하게 쉬고 있던 나를 이런 고생시킨 대가는 치러 주 셔야겠지. 아르님. 아, 참. 기왕 고생하실 거라면...’ 개구쟁이 악동처럼 칸은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작게 숨죽여 웃음을 터트렸다. **** “방향을 가르지 않는 모든 존재의 주인이시여.” 삼신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이토록 깊게 숙이게 하는 존재는 흔치 않았다. 굽이굽이 굴곡진 할미의 입가 주름이 곱게 곡선 을 그렸다. “늘 수고가 많습니다.” 자애롭고 온화한 공기가 퍼져 나갔다. “별말씀을요. 황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요. 신계의 최고참답게 삼신할미께서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신할미의 허리가 한 번 더 숙여졌다. 그리고 가벼운 침묵이 흘렀다. 조금씩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한 공기가 어색하게 굳는 건 한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과 예상치 못했던 인사치례, 그 다음에 올 것이 결코 좋은 떡만은 아니리라는 것 쯤 심신 할미로서는 예상하기 힘든 일이 아니었다. 분명 저런 서두 없 이 꺼내기는 껄끄러운 무언가가 남아 있으리라. 그 예상은 틀 리지 않았다. “삼신할미께서 하시는 일에 큰 흠이 없으리라는 것 쯤 알고 있습니다만.” 돌려 말해도 그 뜻은 변하지 않는다. ‘큰 흠은 아니라도 작은 흠이 있다는 말이렷다.’ 삼신할머니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큰일은 아니더라도 자잘 하게 찔리는 일들이라면 셀 수도 없을 정도였으니까. 가장 가 깝게는 란의 일부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신의 의지가 이 어져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지상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머무르는 신 족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요. 게다가 신들도 시대를 잊었는지 함부로 돌아다닌다 들었습니다.” 온화한 시선 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 늘 함께 있었다. 노회한 미소로 넘기고는 있었지만 삼신할미의 가슴은 서늘하 게 식어 있었다. “신으로서의 존재를 각성하고 인간의 천수를 넘어서서도 돌 아오지 않고 머무르는 자들이 많다던데.” “발전하는 존재들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란과 노도, 그리고 몇몇 무신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 치고 지나갔다. 삼신할미는 가볍게 이를 악물었다. 발전의 속 도가 남다른 무신들은 이전에도 있어왔고, 그렇게 변한 무신들 은 신계로 돌아온 이후 큰 역할들을 수행해 냈다. 그렇기에 신 들의 인간계 경험은 나름대로 독려되는 수행 중 하나가 아니 었던가. “삼신할미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분명, 그렇게 돌아온 자들에 대한 기특함은 누구나 다 느끼고 있을 테니까요.” “휴.”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긴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 리 대비를 해 놓고 떠났다고는 하더라도 신들이 비워진 자리 가 오래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지끈 골치가 쑤셔왔다. 최악의 경우,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 에 지상 곳곳에 퍼져 활동하고 있는 각성된 신족들은 싸그리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신들이 지상에서 맡고 있 는 영역과 힘의 정도였다. 그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단지 와야 할 곳으로 돌아오는 정도의 파장은 아니니라. 대부분의 마스터들로 시작해 전설로 회자되는 마법사, 도사, 수행인, 현 자들이 하루 밤 사이에 떼거지로 죽는다면... 누가 납득하겠는 가. 아무리 그들이 이미 인간으로서의 천수를 넘긴 자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신으로서의 존재를 이미 자각한 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수명 에 연연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만.” “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게 사실이었다. 끄덕이는 삼신할미 의 고개를 잠시 바라보고 있던 존재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럼, 돌아오지 않는 뚜렷한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당장 불러와라. 라고 말할 것만 같은 눈이었다. **** 은빛입니다.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ITLE ▶37 :: [[The Perfect MAID]] - 130 - 더 꼬여만 가는 실타래 [[The Perfect MAID]] - 130 - 더 꼬여만 가는 실타래 “위험합니다. 세자트님.” “네?” 번잡한 시장 거리를 가로지르던 그에게 도르가 다가왔다. 새파 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햇살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 었다. 세자트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머리꼭지가 따끔거렸다. 도르는 가벼운 몸짓으로 세자트의 옆에 섰다. “항구란 그다지 안전한 곳만은 아니죠.” 도르는 얼굴 가득 들어난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세자트는 갑 갑한 듯 기지개를 폈다. 크리아에 도착하고 왕궁을 들린 후 지 금까지 세자트는 반쯤 유폐당해 있었다. 오늘은 작정하고 시작 한 아침 나들이였다. “이 곳은 아직 전쟁의 느낌이 들지 않는군요.” “시장은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가 없답니다.” 해산물과 각종 물품들이 아직도 배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활기찬 사람들의 목소리가 와글와글 했다. 오히려 시장은 이전 보다도 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이란 상인들에게는 전부 아니면 전무를 걸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이 기회를 잘 살리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 도 생겨나겠죠.” 그 시선을 따라가며 도르는 말했다.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힐 끔힐끔 그들을 더듬고 지나갔다. “사신을 예우로 대접하는 건 군인과 귀족들뿐입니다. 일반 시 민들에게 적국인은 적국인일 뿐이니까요.” “그런가요? 이 곳에서는 그런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만.” “이 시장의 크리아인은 뼛속 깊은 상인들이랍니다.” 언젠가는 고객이 될 지도 모르고, 당장 그래 줄지도 모르는 사 람을 향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들어 낼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러나 지금 크리아를 위협하는 나라가 프란이고, 세자트가 눈에 띄는 프란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 리를 두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평민들의 이야기이 죠.” “평민들의...”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그게 저희 크리아에도, 세자트님의 움크님에게도 이롭답니다.” “하지만 이미... 도화선은 불이 붙은 셈이 아닐까요?” “중간에 자르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게 또 폭약 이죠.” “흠?” 문득 도르가 세자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허 리춤의 단검자루에 손을 기댔다. 순수한 눈동자의 상인들 사이 로 언듯언듯 살기가 비치고 있었다. 도르는 낮게 숨을 가라앉 혔다. 희미한 피 냄새가 생선냄새에 뒤섞여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의 도화선은 세자트님, 당신이랍니다.” “네?” 세자트의 얼굴이 의문으로 일그러졌다. “이 대륙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죠. 크리아와 프란의 전쟁을 원하는 사람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 도르는 목에 걸려있던 작은 대롱을 입에 대고 힘껏 불었다. 소 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언가의 신호임은 세자트도 알 수 있었다. 의아스러운 듯 바라보는 세자트에게 도르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손에 검 한 자루를 쥐어주고 는 그와 등을 맞대고 섰다. 어느 새 길은 한적한 곳으로 접어 들어 있었다. 상점가의 뒤편은 이른 아침에는 수레들이 지나다 니는 길이지만, 이렇게 장이 서고 나면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텅 비는 길이었다. “그리고 세자트님을 죽어야 하는 사람과 살려야 하는 사람.” 도르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당분간은 이렇게 좀 버텨야 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야 살기 위해서죠.” 생글 웃는 도르의 모습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 거 리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세자트는 한숨을 내쉈다. 처음부터 그가 이겨볼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의문은 남겠지만, 지금은 따라주세요.” 그들이 완전히 눈치 챈 것을 알았는지 스믈스믈한 사람의 그 림자들이 지붕과 벽 뒤편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 했다. “눈치가 빠르군. 그러나 잘못 판단했어.” 쉬어터진 목소리가 느릿하게 울렸다. 세자트는 온 몸에 소름이 솟아올랐다.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은 쇳소리, 그의 눈동자가 힐끔, 뒤편에 서 있는 도르에게로 굴렀다. 맞닿은 도르의 등이 갑자기 넓게 느껴졌다. “솜씨 좋은 그림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낙낙한 목소리로 도르는 입을 열었다. “실력 없는 그림자나 목소리를 바꿔가며 발악하는 거야.” 어느 새 그의 손에는 짤막한 단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단 검에 비친 햇살이 반짝반짝 움직였다. “큭!” 단검의 빛에 눈을 당한 자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흘렀다. 그와 동시에 도르의 손에 들려있던 단검이 날았다. 핏방울이 비산하며, 싸늘한 살기가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 참. 노도 그 영감탱이가 세자트님께 전해달라더군요.” “네?” “미래란,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고.” 도르의 주름진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 “움직였습니다. 대공저하.” 페르로이 후작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금아의 눈빛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보이지 않 았다. “기사들을 파견하도록. 그리고 귀족들에게 호출령을 보내 라.” “네.” 대공의 명령을 받은 기사 하나가 바쁜 걸음으로 그의 집무실 을 빠져나갔다. 금아는 빠른 손동작으로 서류 몇 장을 챙겼다. 그의 전신에서 팽팽한 투지가 뿜어져 나왔다. “손은 충분히 써 두었겠죠?” “물론입니다. 라크로이 올슨과 황궁 소속의 그림자들이 그 주 위를 이미 완벽히 포위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체포는 반드시 정규 기사단의 손에 의해 되어야 하오.” “관전하되, 달아나거나 자살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으라 명 을 내려두었습니다.” “음.” 금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국의 사신인 세자트를 미끼 삼아 적을 불러낸다는 것이 좀 거리껴지기는 했지만, 그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노도님이 충분한 설명을 하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셨으니 그 다지 문제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렇겠죠.” 이용당한다는 것이 기분 좋을 리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설명해 준다면 그 불쾌감은 확연히 줄어들 수 있다. 어차피 프란에서도 세자트는 버려진 말이었다.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그를 노리는 자는 하노베이 후작파의 사람만이 아니었다. 간간히 사막의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 후작가를 맴돌 며 기회를 옅보다가 마의 동쪽 정원에 걸려 잡혀들곤 했다. ‘우트트가 직접 명령하지는 않았더라도 센이라면 충분히 그 럴 수 있지.’ 공식적으로 보내진 사신의 죽음이란, 본격적인 전쟁선포 이상 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상대방의 체면을 짓밟는 행동 이었다. 그런 모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나라는 없었다. ‘사신을 죽였다는 핑계로 더더욱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었겠 지.’ 어린아이 하나로 인한 핑계는 크리아의 영토를 완전히 짓밟기 에 너무나 빈약했다. 하긴, 힘으로 지배되는 국가간의 세력도 에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만은,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이 라는 것은 자국내의 병사들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반 드시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건 크리아의 힘을 한 데로 휘어잡으려 하는 금아에게도 마 찬가지였다. 아무리 대공이라는 지위가 있고 왕의 절대적인 지 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대립하고 있는 하나의 귀족집단을 잡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을 만한 명분이 필요했 다. ‘우선 프란의 첩자들을 체포한 이후에 하노베이가가 프란과 내통했다는 증거를 잡아야 한다.’ 함께 공모한 짓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국 같은 짓을 하고 있 었다. 그것이야 말로 분명한 증거. 비상시에 적과 내통해 전쟁 을 일으키려 한 죄.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중죄였다. ‘그 전쟁의 대가로 하노베이가가 얻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인질로 보내진 셀레라가 카느의 후궁 중 하나가 된다던가, 무언가의 혈맹을 통해 지속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 어야 한다. 어쩌면 프란이 점령한 이후의 크리아를 지배하겠다 며, 총독을 자청했을 수도 있다. ‘그 철없는 어린놈이라면 충분히 할 수도 있겠지.’ 오로지 오만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철부지 였다. 그 철부지가 너무 강한 힘을 손에 쥐었다. 아니, 나름대 로 재능은 있었다. 문제라면 그 재능들이 바른 방향으로 꽃피 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라와 가문을 위해 올바르게 썼었더라면 미래의 재상도 될 수 있었을 텐데.’ 전무하던 상황에서 창을 끌어들이고, 그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 였으며,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가문들을 엮어냈다. 한 사람 이 아쉬운 금아는 그의 그런 면들이 아까웠다. “이미 업질러진 물이지.” “네?” “아니다.” 금아는 싱긋 미소 지었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결정지어진 일 이었다. 되돌아보는 건 혈로를 선택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 다. 란과 클레이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더더욱 전쟁은 막아 야 했다. 금아는 몸을 일으켰다. 챙겨둔 서류를 두꺼운 판에 넣어 옆구리에 꼈다. “내부에 적을 안고 언제까지 갈 수는 없는 법이오. 국왕폐하 께 이미 모든 허가를 받아두었소.” 집무실을 나서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의 발걸음에는 어떠한 망 설임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금아의 당당한 목소리가 복도 안을 울렸다. “이번 전쟁을 준비하며, 뼛속깊이 느꼈소. 뭉치지 않은 힘이 얼마나 부질없는 모래알 같은지!” 프란과 같은 대국과의 전쟁이 코앞에 다가왔건만, 하노베이 백 작과 창에게 휘말린 귀족들은 의미 없는 설전들을 멈추려 하 지 않았다. 어떤 가문을 편애한다는 둥, 누구에게만 너무 많은 전공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둥, 대공에 대한 편애가 지나치다는 등등등. 전부를 걸어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 전쟁을 그렇게 시작할 수는 없었다. 금아는 숨을 들이마셨다. “감히 나라를 팔아먹으려 든 매국노들을.” 복도에서 마주친 시종과 귀족들이 금아의 기운을 받아내지 못 하고 땅에 널브러졌다. 전장의 사신으로 수십 년을 휘몰아쳤던 그의 기도가 다시 열리고 있었다. “내 용서치 않을 셈이오.” 쾅! 금아의 손으로 직접 연 문 밖에 일련의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금아는 챙겨왔던 서류 중의 한 장을 펼쳐 높게 들어올 렸다. “국왕폐하의 명령이시다!” 눈부신 햇살 아래 열을 맞춰 서 있는 기사들의 은빛 갑옷이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비상시에 적과 내통해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 반역자들의 명 단이다! 지금 당장 잡아오도록!” 촤르륵 길게 바닥까지 떨어진 종이 가득, 빼곡하게 귀족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 은빛입니다. =h=; 한동안 안하덧 짓을 하려니.. 좀 힘드네요. 후후후훗.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1 - 더 꼬여만 가는 실타래 “후후. 우유부단한 아버님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조취로군.” 소식은 한발 먼저 창과 하노베이 백작에게로 전해졌다. 사 태의 심각함과는 대조적으로 창의 목소리나 걸음걸이에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한 낮임에도 어둑한 분위기를 내뿜는 어두운 복도를 가로지르며 창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킥킥거 렸다. 그 뒤를 따라 달려가던 하노베이 백작이 창백한 얼굴 로 입술을 깨물었다. 창은 백작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냥 무시무시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이제 당하기만 하는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죠.” “자, 잠깐!” 숨이 턱에 찬 하노베이 백작이 결국 소리 질렀다. 핑그르르 어지러움 증이 올라왔다. 그는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앞서 나가던 창의 발걸음이 멎었다. 분노와 열기로 붉게 타 오르는 하노베이 백작의 사나운 눈길이 창의 얼굴을 훑었 다. 슬쩍, 창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하노베이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노로 입술을 비틀며, 백 작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미 기사단이 출동했다는 소식이 왔소. 이 잘난 대공가로 도 밀려들어오겠지.” “호오. 그렇군요.” 창은 조금 놀란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하노베이 백작의 입에서 잘게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치밀어 오르는 분 노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거칠게 벽을 내리쳤 다. “그렇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우리를 잡으러 근위기 사단이 출발했다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있냔 말이 오!” 하노베이 백작의 말은 흥분으로 딱딱 끊겼다. “물론이오.” “................” 떡, 백작의 입이 벌어졌다. 창의 태도는 그가 이해할 수 있 는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 침착한 정도가 아니었다. ‘이 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근위기사단을 모조리 이길 수 있 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마공을 손에 넣어 이전보다도 더 강해졌다고는 해도 그는 아직 몸에 독을 품고 있다. 게다가 마스터도 아니었 다. 하노베이 백작의 가슴에 뭉클 불길한 의혹이 자라났다. ‘설마, 나를 판 건가? 이 놈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 다. 프란에 있는 셀레라 역시 잘 지켜지고 있었고, 첩자를 보내 떠 본 센의 의향도 그다지 하노베이 백작에게 불리하 지는 않았다. 이제 전투에 참여해 상황을 보다가 유리한 쪽 에 붙으면 그만이었는데. 갑자기 근위대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창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빌어먹을!” 하노베이 백작은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쿵, 벽이 잘게 울렸다. 그의 하는 냥을 구경하고 있던 창의 눈동자가 가늘게 휘었다. “호오. 그렇게 해서 금이라도 가겠소?”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온 것이 아니잖소!” “앙앙거리자고 온 것도 아니겠지. 그렇지?” 달아올랐던 하노베이 백작의 안색이 한 순간에 새파랗게 가라앉았다. 문득, 불안감이 밀려왔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자는 이미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미친놈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심지어 자신의 죽음마저도 도외시한 채 피와 파 괴만을 쫓게 된다는데. 하노베이 백작은 살며시 뒷걸음질 쳤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더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말 그대로 잡아먹힌다.’ 그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어떻게 하잔 말이오! 지금 당장이라도 이 곳을 빠져나가!” “모든 죄를 덮어쓰고 쫓기다가 죽자는 말이군.” “무슨 말을!” 순식간에 손을 뻗어 하노베이 백작의 멱살을 잡아끈 창이 낮게 으르렁 거렸다. 맞닿은 숨결이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냥 차갑기만 했다. 하노베이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 을 삼켰다. 창의 눈가가 가늘게 휘었다. “넌 아직도 네 적을 모르는가본데. 저 베이르 대공은 겉보 기처럼 풋내기가 아니야.” 새까만 눈동자가 바닥없는 나락처럼 깊게 가라앉아있었다. “네 영지에서 군대가 보내질 거라고 생각하나? 이 크리아 에서 태어나 빵을 먹고 자란 어떤 얼간이가 그 전설의 대 공을 향해 검을 겨눌 거라고 생각하나? 아, 그래. 넌 그랬 지. 하지만 일반 병사들은 아니야.” 하노베이 백작의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게다가 왕에게 거역하고 프란과 손을 잡으려 했다면 더더 욱 그렇겠지. 침략자에게 지배당하길 원하는 얼간이는 많지 않을 테니까.” 하노베이 백작의 손이 옆구리에 걸린 검을 매만졌다. 풋, 작은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창이 입꼬리를 떨었다. “그러니까 넌 아직 어린애라는 거다.” “....크흑” “어른인 척 밖에 하지 못하는 어린애.” 잠시 하노베이 백작이 말을 잊은 사이 창이 거칠게 그의 멱살을 집어던졌다. 쿵, 하노베이 백작의 몸이 날아가 반대 편의 벽에 처박힌 후, 튕겨져 나와 바닥을 뒹굴렀다. 그 앞 을 지나가며 창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내가 원했던 건 이미 모두 얻었다. 뒷문에 마차가 있다. 빠져나가면 왕도 밖까지는 나갈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거기 서 군대를 모아오던 뭘 하던 마음대로 해봐. 물론,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말이야.” “..........”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다랗게 치뜨인 눈동자에 분노와 증오, 배신감이 넘실거렸다. 창의 새까만 눈동자가 잠시 그 빛을 반사시켰다. 백작은 빠득, 이를 갈았다. 그리 고 바로 몸을 돌려 저택 밖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단 말이야. 뭐, 더 갈 길도 없겠지만.” 하노베이 백작의 등을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젓던 창은 다 시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순순히 잡혀가 줄 생 각도, 지금 당장 어설픈 기사들이나 잡으며 난동을 부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모든 증오와 힘은 한 순간을 위해 모 아두어야 했다. ‘내 적은 언제나 하나였지.’ 창문의 커튼을 열고, 의자에 앉아 애검을 무릎 위에 올려놓 았다. 창의 흰 손이 섬세하게 검집을 쓰다듬었다. 길이 든 가죽이 햇볕을 반사시키며 반짝였다. 창의 입가에 작은 미 소가 피어났다. ‘진짜 피의 제전은 그 때부터 시작한다.’ 창문 밖으로 그의 희생물이 될 기사들이 종종히 몰려드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창의 입가에 진한 살소가 피어났 다. 멀지 않은 길가에 낯익은 기사단장이 서 있었다. “대로와 비상로를 모두 막고 저택을 포위해라.” 웅장했던 베이르 대공가는 이미 없었다. 불타고 그을린 저 택을 바라보며 기사단장 하드레크는 옅은 한숨을 내쉈다. 베이르 대공이 건재하기는 하지만 이미 가문으로서의 베이 르가는 죽었다. ‘연락이 갈 때 까지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게. 그 리고 하노베이 백작이 탈출하려 한다면, 조용히 보내주도 록.’ 아리송한 명령이었다. 반란군을 섬멸할 때는 탈출의 여지를 주지 않고 한꺼번에 포위해 잡는 것이 제일이거늘, 오늘 그 들은 두 눈을 말똥히 뜨고서 하노베이 백작이 대공가를 드 나드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역시, 군대를 몰고 오게 하려는 셈이신가?’ 하드레크는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소문대로 하노베이 백작 이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군대를 멀리 두었을 리가 없다. 가까이 진군해 있는 병사들에게 갑작스럽게 주 인이 죽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되어서는 지금의 크리아에 좋을 것이 없었다. 차라 리 잘 모아서 왕궁 밖까지 데리고 와 주는 편이 이모저모 로 편할 지도 모른다. ‘그것도 대공 저하께서 직접 나서시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압도적인 힘을 지닌 전설과, 막강한 대의명분이 그들의 무 기였다. 병사라 해도 무기를 놓으면 평민들이었다. 일개 영 주가 사병들과 백성들에게 얼마나 잘 해 마음을 사로잡았 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보에 의하면 하노베이 백작은 수탈 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자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공 저하께서 직접 오실 때 까지 단단히 경계하도록!” 어디선가 찔러오는 날카로운 살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하드 레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저택의 창문가에서 누군가가 자 신을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 은빛입니다. 간신히 올리고 사라집니다. 후후후훗.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2 - 귀환 “하, 함정이었구나!” “모두 결박하라.”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원망에 가득한 눈빛들을 가볍게 흘리며 도르는 싱긋 웃었다. 수적으로도 밀렸지만 실력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올슨이 지휘하는 그림자 부대들은 몰려온 근위기 사들의 틈에 잘 섞여 암살자들의 행동을 교묘하게 방해했다. “거기, 손 부분이 헐렁하다! 엄지손가락부터 꽁꽁 동여매야 지!” “...........!” 무기와 자살수단마저 깡그리 빼앗긴 암살자들은 몸부림치다 꽁꽁 묶여갔다. 손과 발에 이어 입까지 꼼꼼하게 재갈이 물린 암살자들은 울그락 불그락 인상만 써 댈 뿐 낑낑거리는 소리 조차 내지 못했다. “쯪쯔. 위에서 내리 찍으니 마음이 급하기는 했겠지만, 잘 보 았어야지.” 쉰 목소리의 대장인 듯 보였던 암살자의 앞에 도르가 쪼그리 고 앉아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암살자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한 모금의 숨결에 섞여 독한 연기가 퍼져 나가자 암살자는 인 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도르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리고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우리 귀한 손님을 호위하면서 이 정도 준비도 하지 않 았을 듯싶었나?” “호위?” 아직도 도를 뽑아들고 서 있던 세자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 렸다. 도르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투명한 연기가 그 의 콧구멍을 타고 흘러나갔다. “네. 세자트님의 목숨을 노리던 놈이 워낙에 많아서 말입니 다. 갑갑하다고 바람은 쐬시겠다고 벅벅 우기시지, 신경 쓰실 일도 가뜩이나 많은데 별 떨거지들이 다 목숨을 노려보겠다고 덤빈다는 말을 하기도 참 그렇고...” 실실 웃으며 뒤통수를 긁는 도르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자트는 잔뜩 부풀어 올랐던 긴장이 맥없이 풀려감을 느꼈다. ‘이, 이 영감님들은!’ 그를 귀족이라 저어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무언가 대단한 신분인가 했더니 정원사와 하인이었고, 만만한가 싶었 더니 일국의 대공이며 모든 무인들에게 존경받는 마스터인 베 이르 대공마저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냥 하 다가도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젓가락 하나 들 힘없는 늙은이 인 냥 굴다가도 어느 누구보다도 강했다. ‘...내가 그냥 포기 해야지.’ 화를 내 봤자 소용없는 상대라는 건 두 노인을 뜻하는 말이었 다. 세자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이 두 노인의 머릿속에는 그가 프란의 대단한 귀족이라는 둥, 나름대로 권위 의식을 지닌 우그르라는 둥의 계산은 들어있지도 않았으리라. “날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건 이 뜻이었군.” “네. 세자트 님이 오신 이후로 수도 없는 자객과 암살자들이 후작가의 담장을 넘다가 잡혀들어왔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소란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그걸 느끼시게 할 정도로 서툴렀다면, 망설임 없이 세이트님 께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외출을 금지시켰을 겁니다.” 도르의 누런이가 활짝 들어났다. 그는 개구지게 웃으며 세이트 의 옷자락을 다시 잡아당겼다. “자아, 자. 아직도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산책 을 원하신다면 노도 그 영감에게 동쪽 정원을 안내해 드리라 고 하겠습니다.” 자신을 습격한 자들에게서 아직도 눈을 떼지 못하는 세이트가 그의 손길에 밀려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르는 담뱃대를 질근 씹으며 세이트의 귓가에 다시금 속삭였다. “뭐, 그간의 자세한 상황들은 노도, 그 영감탱이가 직접 설명 한다고 했으니 돌아가신 후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슬쩍 몸을 돌려 어느 새 노출되었던 세이트의 몸을 암 살자들의 시선에서 가렸다. 도르의 눈이 순간 예리하게 빛을 발했다. 세이트는 아쉬운 듯 꽁꽁 묶인 암살자들을 잠시 바라 보고는 몸을 돌렸다. 도르는 게슴치레 눈을 감으며 길게 연기 를 내뿜었다. “그건 그렇고 담배 맛이 참 좋습니다. 그려.” “호, 그러고 보니 담배피우는 모습은 처음 봤소이다만.” “그야 은퇴하기 전까지는 피울 수 없었으니까요. 다시 익숙해 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죠. 한 사십년 못 피우고 참았을 겁 니다.” 맛있다는 듯 쪽쪽 연거푸 빨아대며 도르는 고개를 까닥였다. 세이트의 눈이 커다랗게 열렸다. “사십년?” 사십년 정도라면 아예 끊었다고 보는 게 더 어울리는 시간이 었다. 도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개구지게 웃었다. “냄새나는 그림자라니,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힐끔 돌아선 도르와 눈이 맞부딪힌, 옭아매어있던 암살자 하나 의 얼굴이 있는 데로 일그러졌다. 그의 몸에서 희미한 담뱃진 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도르의 눈이 섬 득한 빛을 발했다. “자신의 일은 소중히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흐음...” 의미를 아는 지 세자트의 고개가 진중하게 끄덕였다. 도르가 활짝 웃었다. “자아, 자. 이제는 정말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세자트님께서 건강하셔야 우그르트 움크님께서 돌아오셨을 때 힘이 되어주 실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눈이 시리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사막의 하늘을 연상시키는군.” 세자트의 눈은 한참동안이나 하늘을 떠나지 못했다. “움크님은... 어디 쯤 계실까?” **** “아직도 인가?” 며칠이 지났지만 클레이브와 아이들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겉으로 난 상처들이 거의 다 아물고 혈색이 돌아왔어도 그의 눈꺼풀은 열리지 않았다. 초조한 듯 그의 천막 앞을 오락가락 하던 란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원인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그냥 자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음?” 그 옆쪽의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던 칸이 툭 말을 던 졌다. “듣자 하니 요 근래 들어 제대로 먹고 씻고 자 본 적이 손에 꼽힌다면서. 그 피로감이 어디 간 것도 아닐 테고, 아직 어린 아이들일 뿐인데. 늘어진 걸 꺼야. 로웬도 자신하고 있고. 내가 봐도 그래.” “흐음....” 란은 길게 신음소리를 끌었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멀게 예를 들지 않아도, 해충보다 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던 하 르크조차 이 마을에 도착해서 땅에 널부러진 후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않은 채 연신 코를 골아대고 있지 않던가. “아, 저기... 특히 클레이브... 님은 출혈도 심했고 상처도 깊었 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 컸을 겁니다.” ‘님’이라는 말을 어렵게 붙이며 로웬은 머뭇머뭇 입을 열었 다. 며칠간 쉴 세 없이 마법을 쓰며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피눈물을 흘리는 군.’ 칸이 피식 웃었다. 하르크에게 듣자니 로웬은 그의 나라에서 클레이브의 아버지와 동격에 가까운 사람이라 했다. 그런 사람 이, 어떻게 보면 까마득한 아들 뻘에 ‘혼혈아’라고 경시되던 클레이브에게 ‘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것이 오죽 어려 웠을까. ‘생존 본능이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그는 클레이브에게 경칭을 쓰고 있 었다. 아니 그만이 아니었다. 우그르트 움크만이 습관처럼 아 이들에게 하대하고 있을 뿐, 새로이 만난 그 어떤 누구도 클레 이브와 아이들에게 쉽사리 말을 놓지 못했다. “흠.” 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 뜨겁군.” 칸은 목을 길게 빼 낮은 담에 기댔다. 패배를 인정한 우르후는 그들이 마을 밖에 펼쳐두었던 막사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 곳 에서 밤을 보내고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있는 작은 마을까지 이동했다. 저장해 둔 물은 많지 않 았고 사람들은 깨끗한 물이 필요했다. 그 하루의 시간 동안 중 상을 입고 있던 사람들 중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란은 그저 클레이브가 죽지 않 도록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스테판과 크레이도 탈진상태였고, 하르크 역시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주 둥이와는 달리 몸의 힘은 탈진 된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란 자 신이 성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들이 도착한 마을의 사람들은 조금 놀라고, 조금은 경계하며 란과 우르후의 일행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의 속삭임 사이로 전 염병이 어쩌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후가 진땀을 흘리며 해명했고, 촌장을 비롯한 사막인들은 나름대로 납득하는 듯 했 다. 마을에 도착하고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그건 그렇고. 자네의 몸은 괜찮아진 건지 모르겠군.” “아, 거의 다 나았지.” “숲으로 돌아갈 건가?” “글세.” “글세?” “호기심이 생겨났다고 해야 하나?” “호기심?” “그래. 어떤 아이이길래 천하의 무후 란이 그렇게까지 아끼고 지키려 하는지 말이야.” 황금빛 눈동자가 거짓 없는 호의로 가득 차 있었다. 란의 표정 이 부드럽게 풀렸다. “평범한 애늙은이야.” “설마, 애늙은이가 평범한 존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뭐, 나름대로 귀여운 데가 많은 아이지.” “주인에게 할 말은 아닌 듯한데?” “뭐, 내 멋대로 하녀인데 누가 뭐래겠어? 게다가 이번 하녀 일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많지.” 픽, 웃는 란의 입가에 묘한 살기가 섞여 있었다. “하긴, 누가 네게 감히 명령하겠어?” 팔을 움직거리며 칸이 작게 미소 지었다. 전투가 길었다면 틀 림없이 더 큰 치명상을 입었을 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그렇게 되기 전에 신들이 난입했다. 그는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클레이브가 의식을 되찾을 때 까지 기다릴 건가? 저들은 움직일 듯 싶은데 말이야.” 멀찍이서 움크가 우르후와 론을 대동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란 의 시선을 느낀 우르후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속도 좋은 움크 는 넙죽 엎드려 아르님의 신탁을 받들겠다고 맹세한 우르후를 받아들였다. 자신도 죽을 뻔 했던 주제에 말이다. ‘뭐, 카느의 기국이려나.’ 클레이브를 저 지경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 면 지금 당장 후드려 패도 시원치 않을 지경이었지만, 움크가 저리 나오면 란도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우르후를 노려보던 란 은 획 고개를 돌렸다. “란님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발걸음 하나 앞까지 다가온 움크는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너희는 곧 떠날 사람처럼 보이는군.” “어쩔 수 없죠. 집을 비운 지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돌아가 볼 때도 지난 듯 하고....” “그래? 언제 출발할 예정인데?” 움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식 웃었다. “오늘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바로.” “가다가 죽을 지도 모르는데?” 란은 무표정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못된 동생이 사고치기 직전이라. ..” 움크는 소풍이라도 떠나는 냥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한참을 바 라보던 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댔다. 지금의 움크는 사막을 가로질러 무작정 란을 추격해 오던 그 혈기만 왕성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무언가 껍데기를 벗은 듯한 눈빛. 발전하 면서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자는 드물다. 걱정으로 꽉 차 있 던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하여간. 여전하군.” “뭐, 그렇죠.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돌아가 볼 생각입니다. 사 막의 폭풍에서 두 번이나 살아남았으니 운을 믿어도 될 것 같 아서 말이죠.” “훗. 언제는 믿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는데.” 픽, 웃으며 란이 설래설래 고개를 저었다. 무후의 이름을 듣고 서도 사막의 이름을 더럽혔네 어쩌내 하며 악착같이 따라오던 놈이 움크였다. 고집도 그런 쇠고집이 없었다. 움크의 볼이 발 그레 물들었다. “그랬었나요?” 그는 잠시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아, 하며 클레이브가 자고 있는 막사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얼굴로 한숨 을 내쉈다. “사실 클레이브가 의식을 되찾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인사라 도 하고 떠날까 했었습니다만, 우르후를 통해 들어보니 상황이 좀 심각한 듯싶습니다.” “흠?” 움크가 우르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망설이던 우르후는 란을 한번 힐끔 바라보고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차분한 목소리 로 말문을 열었다. “에, 우그르트 우트트님은 이 기회에 카느의 등극기반을 잡으 려 하십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황도에는 우그르트 움크님의 사망이 기정사실처럼 퍼져 있으니까요.” 우트트와 센은 움크가 살아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결 과가 지금 란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우르후였다. 클로 네와 셀레라는 인질로 감금당했고,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 태에, 크리아로 보낸 사신은 어쩌면 암살당할지 모른다. 그리 고 그건 프란을 찾은 크리아의 사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전 쟁에서 우트트는 자신의 힘을 기를 생각이었다. 남의 칼을 빌 려 적을 제거한다고 해야 할까. 크리아가, 그것도 베이르대공이 버티고 있는 크리아가 그렇게 만만한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은 우트트도 센도 알고 있었다. 크리아를 짓밟고 보스윌 해협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희생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트트에게는 그런 희생을 감수 하고서라도 제거하고 싶은 인물들이 있었다. 움크를 따르던 자들의 대부분은 전형적인 사막인 기질과 무인 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손익보다는 명분을 더 중시하고, 말 보다는 행동을 우선시했다. 그런 그들은 전쟁의 희생물로 삼기 에 딱 좋은 대상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크리아를 완전히 짓밟을 예정이죠.” 최소한 우르후가 아는 바는 그랬다. 센은 제거하고 싶은 자들 을 모두 제거하고 프란의 중심세력을 우트트의 지지자들로 모 조리 갈아 넣을 때 까지 전쟁을 지속시킬 계획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란의 얼굴은 피곤과 짜증이 스며 있었다. “기가 막히군.”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하녀고 뭐고 다 때려쳐도 변하는 건 없겠군. 오히려 귀찮아 지지만 않았으면 좋을 텐데....’ 그저 하녀로서의 삶만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던 란에게 ‘아 르페이나의 속임수’는 상상을 초월한 짐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러쿵, 저러쿵 피해 다녀봤자 소용없다는 의미로군.”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그 중에서 어떤 것 은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만큼 소중하기도 하다. 그런 것을 발 견할 때, 사람은 목숨을 걸었다. 소중한 것을 많이 지니지 못 했던 사람일수록,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서야 뒤늦게 소중한 것 을 발견한 사람일수록 그런 욕구는 강했다. 란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꼭 크리아를 정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크리아는 소국 이죠. 전쟁의 승기만 잡아 휴전을 하더라도, 그 전에 원하는 것들만 얻어내면 됩니다.” 우트트에게 전쟁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다 주는 마법 의 지팡이였다. “제길. 히히 낙낙하며 노도를 끌고 들어오는 게 아니었는 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란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꽉 움켜쥔 모래가 밀가루보다 부드럽게 바스러져 흩어졌다. “전쟁이라. 금아라면 모를까. 그 나무나 키우던 도사가 전장 에서 뭘 한단 말이야!” 란은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짜증과 후회로 머리가 멍했다. “어쩔 수 없지. 깨어날 때 까지 꼼짝 않고 있으려고 했는데. 죽을 지경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면 무리를 좀 하는 수밖에.” “그럼?” 움크와 론의 표정이 활짝 폈다. 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니, 우리도 함께 간다. 칸 너도 간다고 했지?” 칸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란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후회는 한번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해가 꼭대기를 넘어가며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 했다. 란은 클레이브가 있는 천막의 가리개를 들췄다. 아이들 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린 주인도 널 구하는 것을 이미 선택했고, 아마도 혼자 보 냈다가 중간에 비명횡사라도 한다면 내가 원망을 들어야 할 테니까. 그런 건 질색이란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움크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런 골치 아픈 원망을 듣는 바에는 차라리 네 손으로 죽이 는 편이 편하겠다고 생각했겠지?- -시끄러워.- 실실 웃음 짓는 칸에게 가볍게 살기어린 눈치를 찌르며, 란은 고개를 털었다. 극한까지 일으켰던 살의가 혼탁한 기운에 뒤엉 켜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윙윙거리고 있었다. ‘눈치만 늘어가지고서....’ “기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그렇지?” 란의 눈가가 음흉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섬칫한 오한이 칸의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 은빛입니다. 오늘도 간신히 올리고 사라집니다. 오타는 잡아도 잡아도 사라지지 않으니... 잠시 애교로 봐주시길....-_-;;;; 후후후훗.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3 - 귀환 “주신께서 움직이셨네.” 삼신할미는 조금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유달리 침 착해서 어지간한 일에도 동요를 보이지 않는 삼신할미의 떨리 는 목소리는 다른 세 신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영문도 모 른 채 삼신할미의 손에 잡혀왔던 적호의 목울대가 꿈틀 움직 였다. ‘설마.’ 얼마 전의 일들이 해일처럼 머릿속을 침범해 들어왔다. “시대를 잊었는지, 신들이 함부로 움직인다 하시면서, 인화한 신족들마저 지상에 머무르는 것이 탐탁치 않으시다고 하시더 구먼.” “흐음...” 아르페이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깍지 낀 두 손에 살며시 힘 이 들어갔다. 요 근래 들어 지상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여하고 나선 신이라면, 몇 없었다. 그중에서도 주신께서 정확히 삼신 할미를 찍어 찾아오셨다면 분명 그들 네 신에게 보내는 경고 였다. “하긴, 조금 유난스러울 정도로 움직인 건 사실입니다만...” “따지고 보면 맡은 영역이 다른 저희들이 동서대륙을 가로질 러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옳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죠.” 수백 년 만에 한번 만날 까 말까하던 신들이 요 근래 들어 하 루가 멀다하고 서로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신들의 왕래가 잦아 지면 인간들의 왕래 또한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얼마 전 ‘새로운 해로가 발견되었다.’하며 동서대륙간의 교역로가 또 하나 열린 것도 그들의 움직임과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 다. “문제는 이제 끝났다고 딱, 우리들의 움직임을 정리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세.” 삼신할미는 깊은 한숨을 내쉈다. 듣고 있던 아르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란은 새로운 경지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경지는커녕, 거꾸로 주화입마의 문턱에 한 발을 걸치 고 있는 실정이죠. 잘 되면 그녀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란은 새로운 경지를 찾지 못했답니다. 강제로 불러들인다면...” “반발하겠지.” 삼신할머니의 목소리가 단정적으로 끊어졌다. 모두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끄덕여졌다. “흐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적호의 안색은 새까맣게 가라앉았다. 아르 역시 좌불안석이었 다. 삼신할미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고, 아르페이나는 연이어 깊은 한숨만을 토했다. ‘이렇게 될 줄이야!’ 따지고 보자면 모든 일의 시작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으 니, 더 복잡하게 상황을 망가트린 죄는 따로 묻는다고 하더라 도 다른 세 신들에게 나름대로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 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말게. 딱 짚어서 말씀하신 건 아니니, 쉬운 것부터 손을 대기로 하세나.” “가능하겠습니까? 삼신할머님.” “안될 건 또 없겠지. 의외로 당장 돌아올 수 있는 신족들도 많으네. 게다가 대부분은 인간계의 고행에 진저리를 내고 있으 니, 기쁘게 돌아오겠지. 반발하는 자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담 당하는 신들이 달래면 순응할꺼야.“ “하지만 란과 노도가 걸리는군요.” 아르페이나가 조용히 말을 끊었다. “노도라면 내가 부른다면 돌아오겠지.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도 충분히 신계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란에게 노도는 특별한 벗입니다. 괜찮을까요? 모두 들 모르실지는 모르지만, 일전의 주화입마에서 란을 끌어올린 존재가 노도입니다. 지금도 란은 정상이라고는 보기 힘든 상황 인데...” 적호가 말꼬리를 흘렸다. 삼신할미의 고개가 끄덕였다. 삼신할 미 역시 그 부분이 걸리던 참이었다. 찔끔, 놀란 듯 아르의 고 개가 푹 떨어졌다. 적호의 얼굴이 똥 씹은 냥 일그러졌다. 잠 시 생각에 잠겨있던 아르페이나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입술을 열었다. “일단 한 가지에 대해서라면... 클레이브는 살아날 겁니다. 노 도의 안배도 있지만, 저 역시 좌시하지만은 않을테니까요. 전 쟁터에서의 수호능력은 없어도 그 아이는 제 특별한 가호를 받는 아이랍니다. 전장에서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부상으로 죽지는 않습니다.” “그건 듣던 중 다행스런 일이로군요.” “이번에는 정말 아슬아슬 했습니다. 칸이 적극적으로 협력했 기에 그나마 수습될 수 있었습니다만.” 여차하면 클레이브는 죽고 란은 그대로 날뛸 뻔 했다. 피티아 의 재림 정도가 아니라 자칫하면 카슬 전체를 말아먹을 수도 있었다. “클레이브가 무사하다면, 란의 분노도 조금은 진정되겠군 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적호가 힐끔 아르의 안색을 살폈다.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은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겠 죠.” “흠, 그렇다면 란이 원하던 경지를 얻느냐가 관건이겠군요.” 새로운 경지에 대한 란의 집념은 가벼이 볼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네 신은 입을 다물었다. 최악의 경우라면 그들이 직 접 지상으로 내려가 란을 데려와야 했다. 그러나 그 때도 역시 주신의 엄명이 걸렸다. ‘시대를 잊고 지상을 나돌아 다닌 다.’는 말은 단순한 경고 차원의 언급이 아니었다. 시대란 신 들이 존재하는데 있어 반드시 시켜야 할 순리의 원칙이었다. 따라서, 함부로 내려가 경거망동을 하다가 주신께 걸리는 날 은. ‘어떤 벌을 받게 되지 알 수 없지.’ 그럼, 란이 제 발로 주신의 명에 따르게 해야 했다. 그러나 란 은 아직 지상의 존재, 그녀에게는 반드시 주신의 명에 따라야 만 하는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 자율성은 창조부터 주신 이 지상의 생명들에게 부여한 발전의 가능성. 신족으로서의 힘 과 지상의 자유로움을 모두 쥐고 있는 란을 통제할 방법은 이 미 네 신들에게는 없었다. 그랬기에 처음 그녀를 찾아갔을 때 도 속임수를 써야 하지 않았던가. “막연히 그녀가 발전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강제로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니...” 아르페이나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세 신의 시 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짧은 침묵 속에 신들의 시선이 부딪 혔다. 아르가 제일 먼저 새까만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적호가 그 다음을 이어 눈을 외면했다. 삼신할미가 가볍게 고개를 저 었다. “뾰족한 해법들이 다들 없으니, 저희들의 의견만으로는 좋은 결말을 찾기 힘들군요.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녀를 가장 잘 안다고 볼 수 있는 존재를 찾아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어떨까 요?” “가장 잘 아는 존재?” “네. 도사 노도 말입니다.” 아르페이나가 곱게 미소 지었다. 삼신할미의 고개가 가볍게 끄 덕여졌다. “그래야 하겠군. 함께 가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두 여신의 모습이 빛의 가루로 흩어지며 조용히 사라졌다. 남 겨진 아르와 적호의 눈이 느릿하게 부딪혔다. “제기랄.” 그 둘은 이미 공범자였다. **** “면회 시간은 3시간입니다.” 완벽한 죄수 취급이었다. 찰가닥, 등 뒤로 차가운 자물쇠소리 가 들렸다. 오는 길 내내 그녀에게로 쏟아졌던 냉랭한 기사들 의 눈초리보다 그 한번의 쇳소리가 더 섬짓했다. 클로네는 자 신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움추렸다.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 다. ‘호위하는 자들의 분위기...’ 심상치 않았다. 그다지 호의적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이번처럼 차가웠던 적도 없었다. 잔인한 예감이 클로네의 가슴에 내리 앉았다. ‘설마.’ 인질과 사신의 살해만큼 확실한 선전포고도 없다. 클로네의 머 리가 급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 드문드문 하녀들에게 들어왔던 소식들과 정보들이 퍼즐이 꽤어 맞춰지듯 순식간에 맞아갔다. ‘드디어 마음을 굳힌 걸까?’ 듣기로는 크리아에 보낸 세자트를 죽이는 일은 녹록치 않은 듯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최선이 없을 때는 차선이 있는 법이다. 저 쪽에서 전의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 쪽에서 보여 주면 된다. 소름이 돗았다. “사신은 저 쪽에.” 창백한 얼굴의 소년이 말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클로네의 얼굴 이 새하얗게 바랬다. 발소리도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이전의 영양이었던 클로네라면 모를까, 란에게 훈련을 받기 시작한 이 후 클로네의 감각은 어지간한 기사를 능가할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다. ‘역시 뭔가 수상해.’ 창문이 없는 좁다란 복도 와 단단한 벽돌 벽. 계절에 맞지 않 는 푹신한 카페트에서는 어딘가 기름냄새가 났다. 두근, 심장 이 뛰었다. 어딘가 겁먹은듯한 클로네의 기척을 알았는지 소년 이 신경질적으로 등을 찔렀다. “빨리 들어가.” 불길한 예감이 클로네를 사로잡았다. ‘가르암 아저씨.’ 클로네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따각따각. 소년이 가르친 문이 가까워졌다. 그 앞에 서 있던 감시원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클로네는 방문 앞에 다가서자마자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밀었 다. -쾅!- 사막의 따가운 햇살이 엷은 커튼을 투과해 방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창문을 등지고 서 있던 남자가 조금 놀란 얼굴 로 몸을 돌렸다. “클로네!” “백작님!”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며 클로네의 몸이 휘청, 흔들렸다. “반갑구나. 오늘 손님이 오신다기에 어떤 사람일까 했더니. ..”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가르암 백작의 얼굴이 수척 했다. 쾅, 클로네의 등 뒤로 문이 닫혔다. 그리고 처음의 문처 럼 찰각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르암 백작이 낮게 고개를 저 었다. “정말 철저하군. 이거 정말 사신으로 왔는지, 팔려온 건지 구 분을 못할 지경이라니까.” “아, 가르암 백작님.” “여하튼,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란다.” 가르암 백작이 조용히 다가와 클로네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렸 다. 클로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가르암 백작의 수 척한 얼굴에도 오랜만의 화사함이 맴돌았다. 오랜 벗의 딸이 무사하다는 것은 그에게도 기쁜 소식이었다. 비록, 그 안전함 이 지속되기 힘든 것일 지라도 말이다. “그 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니요. 나름대로 편안하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었답니다.”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클로네는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가볍게 펴 치마 위에 올려놓았다. 가르암 백작의 표정이 살며시 굳었 다. -감시있음. 움크생존, 내부분열- 왼쪽 손바닥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가르암 백작의 눈이 클로 네의 손을 채 떠나기 전에, 클로네는 손수건을 꺼내 손에 움켜 쥐며 손바닥을 비볐다. 그리고 오른손 손바닥을 폈다. -분홍리본의 하녀를 믿으세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가르암 백작의 눈은 그녀의 손 위에 적힌 글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엊그제 찾아왔던 하녀 하 나가 떠올랐다. 아무 말 없이 들어와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녀 는 ‘걱정할 건 없다. 클로네는 무사하다.’며 작게 속삭였었 다. 난데없는 말이라 그게 어떤 의미인지 받아들이는 데 시간 이 조금 걸렸지만, 가르암 백작은 그 ‘사실’ 자체의 의미를 곧 파악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머나 먼 타국에서 클로네는 벌써 나름대로의 기반을 구축했다. “전쟁소식에 크리아는 분주하겠군요.” “그래. 간간히 소식은 듣고 있었겠구나.” “네. 자세한 것은 듣지 못한 지 오래됐습니다만, 몇 가지 추 측은 하고 있었답니다.” “그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대화가 잠시 오갔다. 클로네는 가볍게 한숨을 내뿜었다. 감시하기가 지루했던지 문 밖의 인기척이 갈 수록 커져갔다. “그건, 그렇고, 클레이브 그 아이와 함께 왔던 하녀님은... 아 니 하녀는.” “아, 란님 말이시군요.” 급히 말을 고치느라 얼굴이 붉어진 백작에게 물을 건네며 클 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경어에 백작이 조 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도 알고 있었느냐?” “눈치가 있는 자라면 모르기 힘들만큼 티를 내셨으니까요. 란 님은... 진실에 눈을 돌린 자들은 아직도 믿지 않고 있긴 합니 다만.” “그렇구나.” “네. 함께 와 주셨던 금아 아저씨에 대한 것도 알고 있답니 다.” “그래.” 빙그레 미소가 퍼져나갔다. “전쟁은...” 잠시 침묵을 지키던 가르암 백작이 말문을 열었다. “일어날 지도,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실 그 전쟁을 막기 위해 왔지만 공연한 빌미만 제공한 게 아닌지... 염려스러 웠단다. 이런 말까지 네게 해서 무슨 득이 있겠냐만은...” 가진 끈은 모두 사용했다. 이전부터의 친분, 뇌물과 선물. 그러 나 최소한의 기회조차 가르암 백작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크리아를 손에 넣게 된다면.’이라는 전제로 귀족들을 휘어 잡은 센의 입김에 단단히 중독 된 자들의 눈에는 이미 두꺼운 황금이 씌어 있었다. “휴, 사실 그들이 무슨 변덕으로 널 만나게 해줬는지 난 모르 겠구나.” 어두운 얼굴에 드리워진 근심은 무거웠다. “아저씨.” 클로네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가르암 백작이 지금 염려하는 것을 그녀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가르암 백작은 몸을 일으 켜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커튼을 활짝 열었다. 두껍지 않은 나무격자 사이에 껴진 반투명한 유리로 햇살이 강하게 뚫고 들어왔다. “보기보다 단단하더구나. 열리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는단 다.” 이 곳에 도착하기 전 까지는 그래도 자유로웠다. 접속을 위해 심부름을 보내고, 약속을 잡았다. 그 모든 것들은 이 여관이라 는 이름의 감옥에 갇히는 순간 부서져 내렸다. 가르암 백작은 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네가 나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듯해서. 널 만난다면 몇가지 부탁을 하려고 했었단다.” 새파랗게 질린 클로네의 손이 부르르르 떨렸다.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걸어갔다. 꽉 잠긴 문틈 사이로 칼칼 한 탄내가 풍겨왔다. “문 열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문 위쪽에 붙은 작은 창이 열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면회는 세 시간입니다. 그리고 면회시간 내에는 방문해주신 분들의 체면을 위해 내부에 그 어떤 사람도 남아있지 않게 되 어진 것이 규정이죠.” “무슨 소리야! 문 열어!” “사실 저도 남아있어서는 안되는 몸입니다만, 명령을 수행할 겸... 마지막 확인을 위해 남아있었을 뿐이랍니다.” “문 열라고 했다!” 변성기가 덜 끝난 가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 었다. 클로네의 머릿속에, 소리 없이 다가와 자신의 등 뒤를 잡았던 한 소년이 떠올랐다. 그 눈에 가득 베어있던 살기. 아 찔한 위험감. 클로네는 마른침을 삼켰다. 조그만 틈 사이로 그 녀를 내려다보는 소년의 파란 눈빛이 보였다. “아,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제가 왜 이런 일을 자청해서 마지막 확인까지 하려고 했는지!” 클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베어 있었 다. “그지 오래된 일도 아니니 잊으셨다고는 하지 않으시겠죠.” 열려진 틈 사이로 더욱 매캐한 연기가 흘러들어왔다. 클로네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남자는 말을 이었다. “오디아누 숲에서 제 형제들을 베었던 일을. 사막의 자들은 원한을 잊지 않는답니다.” 쾅! 작은 창이 닫혔다. 뜨거운 열기가 문을 타고 몰려들어오고 있었다. **** 은빛입니다. 감기바이러스에 침입을 받았습니다. 열혈전투중이오나... 아직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 일단 올리고 사라집니다. 그럼, 내일... (다들 시험은 잘 봤나요?)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4 - 귀환 “우, 우, 우, 우그르트 움크님이 살아계십니다!” 쾅쾅쾅, 황궁에서 용납되기 힘든 요란한 발걸음 소리에 이어 터져 나온 것은 비명 같은 외침이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싸 늘히 식어갔다. 시끄러운 방해자에 대한 분노는 순식간에 날아 갔다. “뭐라?” 우트트가 신경질 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곤 곧 표정을 수습 하고 밝게 미소 지었다. “형님께서 살아계셨단 말인가!” “그건 믿을 만한 소식인가?” 우트트의 뒤편에 서 있던 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사람들 의 눈이 순간 센에게로 쏠렸다. 우트트의 말을 가로챈 그에게 막 비난을 쏟으려던 사람들의 몸이 그의 살기 띈 눈동자에 압 도당했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채 말을 꺼내보지 도 못하고 주섬주섬 자리에 앉았다. 잠시 말을 잊고 굳어있던 전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추적대가 마지막으로 보고를 보내왔었던 ‘뜨거운 마 을’에서 마법사의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마법사?” “네. 분명 마법사의 전송이었습니다. 우그르트 움크님께서 살 아계시며, 지금 황궁으로 귀환하시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센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사막 한가운데서 황궁까지 전 언을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라면 고위 마법 사 중 하나였다. ‘배신?’ 까득, 이가 갈렸다. 그 정도 지위에 있는 자들을, 그것도 마법 사처럼 머리 리는데 천재적인 자들을 속이지는 않았다. 그들 은 모든 것을 예측하고서도 우트트의 편에 선 자들이었다. “마법사의 이름을 확인하도록. 우그르트 움크님을 사칭하는 가짜가 사막을 돌아다닌다는 보고를 이미 받은 적이 있다. 진 실로 움크님께서 돌아오신 거라면 아르님께 감사드려야 옳지 만, 만에 하나라도 사기꾼에게 농락당할 수는 없는 법.” 소근, 속삭임이 퍼져 나갔다. 미심적은 의혹의 시선이 센의 얼 굴로 꽃혔다. 센은 고개를 더 치켜들었다. 지금 꼬리를 내릴 수는 없었다. 센도 알고 있었다. 사기꾼 따위가 황궁에 전언을 던질 수는 없었다. “이미 한번 사망소식을 들었던 터, 확인하고 정말 움크님이라 면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 맞아야 하겠죠.” 웅성웅성 귀족들의 소곤거림이 잔물결처럼 퍼져나가며 자라났 다. 우트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쟁준비를 위한 회의는 자 연스럽게 끝났다. 뜻밖의 소식에 온 황궁이 들썩였다. 그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카느가 아르의 신전에서 돌아왔다. 우트트의 줄에 곱게 서 있던 귀족들이 흔들렸다. 입 소문이 퍼져나가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사막의 폭 풍에서 살아 돌아왔다면 분명 아르의 선택을 받은 자. 그게 사 실이라면, 망설임 따위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게 진정한 사실이라면 말이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센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아직 움크가 걸어 돌아오지는 않았다. 든든한 준비란 만반의 준비를 의미했다. 이미 추격대 를 한번 보냈다. 또 한번 수색대를 보낸다 해서 이상할 건 없 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이미 상황은 복잡하게 꼬였다. 우르흐 정도 의 실력가가 실패했다면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는 좀 더 쓸만한 마법사들을 준비해야 겠군.’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해 두어 야 한다. 그러나 센의 예상보다도 그를 가로막고 튀어나온 장 애물은 컸다. “너희가 신관 따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 았는데.” 마법사의 탑을 방문한 센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의 앞으로 마중 나온 흰 수염의 마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외면했다. “폭풍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텐데? 모래폭풍에 휘말려 서 살아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의 은총이라는 기적이 아무 렇게나 일어나는 현상이었던가! 그는 모래폭풍을 피해 숨어 있 다가 이제야 나온 게지. 그건 비겁자나 할 일이 아닌가!”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 경우의 대부분은 마법사들이 만든 ‘진실의 보석’에서 덜미가 잡히 거나, 운 좋게 그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아르의 신전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 자들은 감히 신의 축복을 사칭한 죄로 목이 떨어져나갔다. 센은 움크 역시 그런 전례를 뒤따를 것이 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금 불안한 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도 더 이상은 움직이기 힘듭니다.” 한 참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던 마법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친!” “말씀이 과하십니다만,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센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점차 높이 올라갔다. “마나의 결정입니다.” 차갑게 식은 마법사의 목소리가 센의 말을 끊었다. 분노로 새 빨갛게 달아오른 센의 얼굴을 늙은 마법사는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세자트는 손을 뻗 었다. “자, 잠깐!” “우그르트의 힘을 겨루는 장소 중 하나가 사라진 것뿐입니다. 센. 그대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른 결전장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대는 그런 자이니까.” 나지막한 마법사의 목소리가 예언처럼 흘러왔다. 그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마법사는 어딘가가 변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센에게 익숙해진 탐욕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선택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결정하는 자는 인간이니까요.” 스르르, 벽을 투과하며 마법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센은 들었 던 손을 내리며 주먹을 움켜줬다. “제기랄!”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듯 그가 쌓아왔던 것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센은 이를 악물고 마법사의 탑을 나왔다. 이전과 달리 아무도 그를 배웅 나오지 않았다. 아니, 마법사들과 견습 보조 사들로 북적이던 탑 전체가 조용했다.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분노를 내리누르며 묘한 의문이 떠올랐다. 늙은 마법사는 마나 의 뜻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숙하는 듯한 탑의 분위기. 단지 낙타를 갈아탄 것일 뿐이라면 이정도로까지 가라앉을 필요는 없었다. “젠장! 알 수 없는 뭔가라니!” 그처럼 불쾌하고 기분 나쁜 것은 없다. 쾅! 세차게 벽을 내리 친 주먹에서 가는 핏물이 베어 나왔다. “어디서 어긋나기 시작한거지?” 무리수는 없었다. 조금 빨리 나간 건 사실이지만, 프란에는 장 자계승의 원칙도 없었다. 형제들 중 가장 강하고 뛰어난 자가 우그르의 뒤를 잇는 것처럼 카느의 뒤를 잇는 것도 가능했다. 제국의 틀이 갖춰진 이상 타국처럼 장자계승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말도 분분했지만, 실제 장자계승을 하는 나라도 거의 없었다. 정치 교란이나 공방은 힘이 모인 곳에서는 의례 일어 나는 일들이다. 전쟁도 프란을 위해 필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무엇하나 잘못 한 것이 없었건만, 어디서인가 일은 어긋나 있 었다. ‘어디일까?’ 센은 눈을 감았다. 습관처럼 차가운 돌 벽에 이마를 대고 머리 의 열을 식혔다. 꿈틀꿈틀 무언가 불길했던 기억이 한 가닥 두 가닥 그의 무의식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센은 그 무언가를 잡기 위해 생각을 집중했다. 그의 집중이 막 한 가닥으로 모이 려던 찬라였다. “불이다! 불이야!” 놀란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센의 귓가를 때렸다. 왁자지껄한 목 소리와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온 거리를 매우고 있었다. 양동 이를 들고 달려가는 사람의 입에서 다급한 고함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큰일이다! 여관에 불이 났어!” 문득 잊고 있던 명령 하나가 센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이, 이, 이런!” 파르란 하늘 높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센의 얼굴이 창 백하게 질려갔다. 한 명의 전령이 가져온 소식은 모든 상황을 뒤바꿔 버렸다. “아, 안돼! 아직은 안된단 말이다!” 지금 그들이 죽는다면 우트트의 체면은 땅으로 처박힌다. 그가 유일한 계승자일 때와, 유력한 경쟁자가 있을 때의 상황은 사 막과 오아시스만큼이나 달랐다. 전쟁에 눈이 뒤집혀 사신과 인 질을 불태워 죽였다는 건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그 불명 예를 감수하고서도 얻을 수 있었던 달콤한 왕관이 지금 신기 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는 신기루를 얻기 위해 타고 있던 낙타의 등에 도를 찌를 수는 없다. ‘젠장! 어째서 모든 게 하루가 멀다 하고 꼬이는 건지!’ 그들을 죽여 전쟁을 당겨도 좋았던 때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전쟁만 벌려놓고, 전공도 무엇도 다 움크에게 빼앗겨 버릴 바에는 차라리!’ “불을, 불을 잡아라!” 센은 어느 새 몰려나와 거리를 가득 매운 사람들을 헤치며 여 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걸음만큼의 거리가 마치 사막 건너 같았다. **** “콜록!” “몸을 더 낮추거라!” 테이블 위에 있던 물을 손수건에 흠뻑 적셔 입과 코를 막았다. 숨쉬기가 훨씬 편해지기는 했지만 사방이 막힌 공간에 꾸역꾸 역 밀려들어오는 연기와 열기는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사방이 찜통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 마다 가슴이 타는 듯 했다. 밖을 지키고 있던 자는 역할을 마치고 탈출했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이제는 손이 뜨거워 문을 두드릴 수도 없었다. 클로네 는 밀려오는 공포심을 밀어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가득 몰려와 앞을 희뿌옇게 흐렸다. ‘안 죽어! 죽지 않을 꺼야!’ 클로네는 움직이기 쉽게 치마를 찢었다. 창문이 부서지지 않는 이상, 저 벽이 무너지는 순간이라도 노려야 했다. 빠져나가보 지도 못하고 타 죽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엎드려 의식을 잃 은 채 불길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직 불길이 안까지 오지는 않았다만...” 문 밖은 분명 불길이리라. 도주방지를 위해 문을 튼튼히 만들 어 두었기에 두 사람이 여지껏 버틸 수 있었을 뿐, 벌겋게 달 아올라 당장이라도 불이 붙을 듯한 벽과 문은 언제 터져나갈 지 몰랐다. “창, 창문은...” 클로네가 안타까운 얼굴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단단한 건 다 던졌다. 실내에 있던 의자 네 개를 다 부셨다. 심지어 테이블 까지 내던져 보았지만,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지 반투명한 유리 는 금하나 가지 않았다. 그건 가늘게만 보던 창틀 역시 마찬가 지였다. ‘검이라도 한 자루 있다면 좋았으련만...’ 마법이 걸린 물품들은 물론이고 무기류와 사소한 쇠붙이, 단검 까지 모조리 압수당했다. 가르암 백작의 얼굴도 침통히 일그러 져 있었다. ‘이렇게 불씨만 만들고 죽을 수는 없다!’ 교섭을 위해 보내진 사신을 죽인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선전포 고가 아니었다. 비록 그게 사고였던 고의였던 간에 충돌은 피 할 수 없다. 아직 크리아는 전쟁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막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벌어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오히려 앞당 기게 생겼다. 백작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제길!’ 이렇게 죽는다면 화해를 해도 문제다. 사고니 뭐니 포장해도 사신관이 아닌 황도 안의 여관에서 타죽는 셈. 사건에 담긴 고 의성을 추측하지 못할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수모까지 당하고서도 순순히 프란이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고 전쟁을 미 룬다거나, 막는다 해도 한번 얕잡아 보인 나라는 끊임없이 짓 밟히기 마련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침략자는 금새 나타난다. 그 때마다 고개를 숙여줄 수는 없다. 한번쯤은 전쟁으로 승부 를 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짓밟혀진 체면이 되살아날 때 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할까. 그런 것을 용납할 베이르 대공 이 아니었다. ‘죽어서라도 싸우겠다.’ 가르암 백작의 눈에서 독기가 피어올랐다. 경각에 달린 목숨이 억울하고 원통하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무시 받다 니! 조국의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견딜 수 없이 쓰라렸다. “아저씨. 포기하는 순간 죽는 다고 들었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스윽 문지르며 클로네는 입술을 악물 었다. 그들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조국을 위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옷이 식은땀인지 진땀인지 모를 땀으로 흠뻑 젖 었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클로네가 벌떡 일어나 꽃병을 들 고 왔다. 거꾸로 들린 커다란 꽃병에서 조금 시큼한 물이 쏟아 지며 백작과 클로네의 옷을 완전히 적셨다. 시아가 흔들거리며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또렷했다. “그래. 끝까지 해봐야겠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문을 바라보며 가르암 백작도 이를 악물었 다. 얼마나 두꺼웠으면 뒤편이 타는 데도 불구하고 안쪽으로까 지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고급여관 답기는 하네요. 문이 튼튼하기 짝이 없는 것이.” 초조한 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클로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두터운 문이 그들을 가두고 살아 볼 기회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갇힌 공간에 있을 때는 종종 불길이 폭발하기도 한다 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가르암 백작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창으로 던지지 못했던 커다란 쇼파를 뒤집어엎었다. 그 뒤로 손짓해 클로네를 부르며 가르암 백작은 낮게 잔기침을 내뱉었 다. 쇼파의 뒤편은 두 사람 정도가 몸을 가리기에는 충분했다. “이전에 마법사들의 실험을 본 적이 있다. 불길이 폭발한다 면, 한번의 기회는 있을 지도 모르지. 이게 맞을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시도는 해보자꾸나.” “네.” 클로네는 머리에 있던 보석 장식을 모조리 뽑아 주머니에 넣 었다. 그리고 치마단을 찢어 머리를 하나로 단단히 동여맸다. 힐끔 그녀를 바라본 백작이 피식 미소 지었다. “좋은 생각이로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봐야죠.” “허어... 울며 당황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담담하구나.” 클로네는 눈가에 고여 있던 자국을 북북 문질러 닦으며 생긋 웃었다. “경험이 사람을 기른다고 하죠. 게다가 란님과 지낸걸요.” 시선은 앞으로, 몸은 낮게. 쇼파 안에 몸을 가렸다. 그리고 언 제든 불길로 달려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클로네는 잠시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문이 막 터질 것 처럼 안쪽으로 둥글게 휘어지고 있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달렸 다. 마주잡은 두 손이 떨렸다. 클로네는 고개를 파묻었다. ‘부디 무사하기를.’ -콰광!-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아찔한 열기와 함 께 딱딱한 파편들이 비산했다. 쇼파가 다시 뒤집어질 듯 요동 쳤다. 뜨거운 무언가가 쇼파를 넘어 그녀에게로 덮쳐들었다. 지진 같은 진동이 클로네의 온 몸을 덮쳤다. “꺄아아아악!” 형용하기 힘든 엄청난 고통과 공포가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터진 비명소리가 공포스레 들려왔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릿하게 사방이 보이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눈앞이 희뿌옇게 흐려져 갔 다. 그리고 문득. 기억이 완전히 끊기기 전 그 짧은 시간에 치 뜨인 클로네의 눈동자에 하염없이 넓은 녹색의 하늘이 비쳤다. ‘...아?’ **** “이 어찌된 일인가!” 우트트는 책상을 내리쳤다. 쌓여있던 서류들과 잡기들이 사방 으로 튕겨져 나갔다. 몸을 벌떡 일으킨 우트트는 잰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바삐 움직이던 시종들과 사무관들이 황급히 길을 비키며 몸을 숙였다. “센은! 센은 어디 있는가!” 길게 갈라진 우트트의 쉰 목소리가 회랑 안을 쩌렁쩌렁 울렸 다. “그, 그게...” “아니다! 당장 간다! 직접 가야겠다! 당장 불을 끄라고 해! 센에게 바로 올라갔어야 했던 화재 보고서는 한참을 돌고 돌 아서야 우트트에게로 올라갔다. 서류를 말아 쥔 우트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말을, 말을 준비해라!” 마굿간을 향해 날 듯 달려가며 우트트가 고함쳤다. 놀란 시종 들이 벼락 맞은 새처럼 날아다녔다. ‘제기랄! 왜!’ 눈앞이 흐릿했다. 오전부터 연이어 밀어닥치고 있는 급보들은 막 카느의 자리를 향해 도약하려던 그의 발목을 잡아 부러트 리려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센의 보고를 흘려들었던 기억이 났 다. 분명 의도한 화재이리라. 우트트는 알 수 있었다.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조금의 차이일 뿐, 어차피 죽여야 한다면 일지감치 죽이고 군 사들을 진격시키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었다. 그 때는 말이다. “준비되었습니다!” 서둘러 안장을 맸기 때문인지 말은 흥분해 있었다. 우트트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날렸다. 옆구리를 채인 말이 신경질적으로 울부짖으며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미칠 것처럼.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는 검은 연기가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며 조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 은빛입니다. 감기바이러스와 아직 열혈전투중입니다. 비몽사몽하고 있으나.. 비타민제와 감기약의 도움을 받아 헤롱 헤롱까지는 회복된 상태...(진정 회복이란 말인가) 열심히 올립니다. 눈에 거슬리더라도..오타를 좀 양해해 주시고, 발견하시면 좀 알려주세요... =_=;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시험 끝나려면 멀었는지?) -_-; 휴...장군이가 아프답니다. 피부병인데... 걱정되서 못견디겠어요. 정말... 에고고고고... 돌아가며 탈이 나니... ㅠㅜ...... 종교 있으신 분들은 기도 좀...쿨럭!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5 - 귀환 *134편에서의 마지막 단락은 수정되었습니다.^^; 몇 줄 겹치지는 않습니다만, 다시 봐주세요. 따로 나누지 않고 이어서 붙여 올립니다. “이 어찌된 일인가!” 우트트는 책상을 내리쳤다. 쌓여있던 서류들과 잡기들이 사방 으로 튕겨져 나갔다. 몸을 벌떡 일으킨 우트트는 잰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바삐 움직이던 시종들과 사무관들이 황급히 길을 비키며 몸을 숙였다. “센은! 센은 어디 있는가!” 길게 갈라진 우트트의 쉰 목소리가 회랑 안을 쩌렁쩌렁 울렸 다. 그의 목소리에 시종장이 달려왔다. 쾅! 발을 딛으며 멈춰선 우트트의 전신에서 기묘한 오오라가 뻗치고 있었다. “그, 그게...” “아니다! 당장 간다! 직접 가야겠다! 당장 불을 끄라고 해! 센에게 바로 올라갔어야 했던 화재 보고서는 한참을 돌고 돌 아서야 우트트에게로 올라갔다. 서류를 구겨 쥔 우트트의 주먹 이 부르르 떨렸다. 핏발이 선 눈동자에 살의가 번득였다. 시종 장의 목에 딸꾹질이 걸렸다. “말을, 말을 준비해라!” 다시 몸을 돌려 마굿간을 향해 날 듯 달려가며 우트트가 고함 쳤다. 때 아닌 소란에 놀라 달려 나왔던 시종들이 벼락 맞은 새처럼 흩어졌다. ‘제기랄! 왜!’ 우트트는 이를 갈았다. 뒤통수가 저리고 눈앞이 흐릿했다. 스 믈스믈 올라오던 불안감이 형체를 들어내고 괴물처럼 그를 향 해 발톱을 들어내고 있었다. 오전부터 연이어 밀어닥치고 있는 급보들은 막 카느의 자리를 향해 도약하려던 그의 발목을 잡 아 부러트리려 하고 있었다. ‘왜 하필 지금!’ 얼마 전 센의 보고를 흘려들었던 기억이 났다. 분명 의도한 화 재이리라. 우트트는 알 수 있었다.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조금의 차이일 뿐, 어차피 죽여야 한다면 일지감치 죽이고 군 사들을 진격시키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었다. 그 때는 말이다. “준비되었습니다!” 서둘러 안장을 맸기 때문인지 말은 흥분해 있었다. 우트트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날렸다. 옆구리를 채인 말이 신경질적으로 울부짖으며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미칠 것처럼.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는 검은 연기가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며 조기처럼 펄럭이며 흩어지고 있었다. 아찔한 현기증이 몰려왔 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하고 싶었다. “길을 비켜라!” 그러나 그런 그의 바램과는 정 반대로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불을 끄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 사이사이로 구경나 온 인파가 꽉 매여 있었다. 말은 달리지 못하고 결국 멈춰섰 다. “당장 길을 비켜라!” 우트트를 뒤따라 나온 기사들과 보좌들이 목청껏 소리 질렀지 만, 웅성이는 사람들의 소리에 파묻혀 멀리 퍼지지 못했다. 그 나마 소리를 들은 사람들도 피할 장소가 없어 엉거주춤 고개 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우트트는 울화가 치밀었다. 주위의 온갖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 을 들이쉬며, 우트트는 잠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음?” 하늘이 갈라지고 있었다. “저, 저, 저게 뭐지?” 무언가 이상한 기미를 느낀 것은 우트트만이 아니었다. 한 쪽 에서 정신없이 귀한 물을 퍼 나르는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 서 하늘을 물들인 검은 연기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에 무언 가 이질적인 것이 잡혔다. 싸늘한 감각이 퍼져 나갔다. “뭐, 뭐야!” 갈라진 틈이 점점 더 벌어지며 녹색의 거대한 무언가가 생겨 나고 있었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까지도 온 몸이 떨려 올 만큼의 무언가가 대기에서 퍼져나가며 도시를 울렸다. 물통 을 막 나르던 사람의 손이 멎으며, 툭, 귀한 물이 땅바닥으로 엎어졌다. 파랗게 질린 표정에는 형용하기 힘든 두려움이 베어 있었다. “저, 저, 저길 봐봐!” 웅성웅성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가던 한 마법사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오며 ‘경악’은 불구경을 하러 나왔던 모든 사람들 사이로 순식간에 번져갔다. “드, 드래곤이다아아아아아!” 처음에는 작은 점 같았던 그림자가 어느 덧 집채만큼 하늘에 서 자라 있었다. 길다란 꼬리와 육중한 몸체, 그리고 그 몸을 뒷받침하기에는 조금 작은 듯한 날개. 온 몸을 감싸고 빛을 반 사시키는 선명한 녹색! 그림으로만 보던 익숙한 형체가 바로 그들의 눈앞에 떠 있었다. “드, 드래곤이라니!”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보는 전설속의 생명체에 경악했다. “사, 살려줘어어어!” 어떤 이들은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구경하길 원했고, 어떤 이들 은 무작정 살기 위해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불구경으로 꽉 막혔던 거리는 패닉에 휩쓸린 사람들로 인해 전쟁터로 변했다. 그 위에 그들이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그건 우트트를 따라 나섰던 기사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말 은 놀라 날뛰었고, 넋을 놓은 기사들은 땅바닥에 패대기쳐졌 다. 볼쌍사납게 내팽겨쳐 지는 것만은 간신히 면한 우트트가 말고삐를 단단히 옭아줬다. “모, 모두 진정해라!” 덩치에 비해 작다지만, 역시 거대하기만 한 날개를 느릿하게 움직이며 드래곤의 동체가 점점 하강하고 있었다. 커다란 비늘 한 장 한 장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대기가 낮은 소리로 울었다. 존재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박력. 마구 소 리를 지르며 달아나던 자들까지도 얼어붙었다. 절대적인 놀람 은 소란마저도 잠재웠다. “어떻게 할까?” 일그러진 황금빛 눈동자는 심각했다. 그는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커다란 저택을 노려보며 빈 입맛을 다셨다. 이리저리 밟 고 밟히며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동을 멈추고 반쯤 풀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밟아. 불부터 꺼야지” 그의 옆에 떠 있는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이런, 그렇게 하다가는 네 소중한 제자가 다치지 않겠어?” “명이 긴 아이랬어. 노도가. 안 죽을 테니 걱정 말고 밟아.” 대화는 짧았다. 잠시 지상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칸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쉈다. 일단 결정했으니, 란은 그를 공격해 서라도 그가 저 커다란 여관에 발을 딛도록 만들 셈이었다. 그 속이 빤히 보였다. -어쩔 수 없지. 다들 단단히 붙들고 있도록.- 칸의 날개가 접혔다. 그 거대한 동체가 하강하며 쿠구구구 대 기를 울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을 세로로 세운 그의 육중한 뒷다리가, -쾅!- 불타는 여관의 뒷부분을 밟아 뭉갰다. 여관 뒤편에 비워져 있 던 정원이 한 발에 모조리 밟히며 움푹 패어 들어갔다. 콰과과 광! 저택 중간에서 폭음이 터져나왔다. 거대한 화염이 마지막 발악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클로네!” 그리고 그 무너지는 여관의 틈새로 작은 여인의 인형이 튀어 들어갔다. 커다란 드래곤의 입이 살며시 열리며 백색의 송곳니 가 햇살을 반사시켰다. -아쿠아!- 머리를 울리는 듯한 진동이 퍼져 나갔다. 작고 투명한 물방울 들이 대기 안에서 태어나 드래곤의 작은 앞발에 뭉쳤다. 그리 고 아직도 잔 연기와 화염을 내뿜고 있는 여관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자아, 식어라!- 촤아아, 흰 수중기가 말로만 듣던 바다안개처럼 희뿌옇게 피어 났다. 퍼져나가는 뜨거운 김의 열기에 사람들이 몸을 웅크렸 다. 김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화끈히 달아올랐다. “끼아아아아악!”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엎드렸다. 그 사이에 센도 있었다. 악착같이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와 여관 앞까지 다가온 것은 좋았다. 연기나 불꽃을 보아서는 아직 두 사람은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희망을 품고 막 사람들을 진두지휘하려던 참이었 다. 그런데! “이, 이, 이, 이런...!” 난데없이 사람들의 손동작이 멎었다. 소리를 질러도 재촉을 해 도 소용없었다. 문득 사방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의 행동이 이 상했다. 그리고 문득, 조금 전부터 들리던 기묘한 단어들에 신 경이 닿았다. 분명 드래곤이라는 말이 연거푸 외쳐지고 있었 다. 그 순간 거대한 진동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쾅! 소리 와 함께 몸이 땅에서 튕겨져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의식이 끊 겼다. ‘꿈인가? 아니면?’ 구분이 가지 않았다. 온 몸을 조이는 듯한 저릿한 통증만이 현 실 같았을 뿐, 눈을 비벼도 흐릿하기만 했다. 아직도 올라오고 있는 거뭇거뭇한 연기와, 믿기지 않을 만큼 커다란 드래곤의 발바닥이 아련히 보였다. 그의 몸도 마음도 두려움에 굳어 있 었다. 뒤늦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 뭐, 뭐, 뭐야아아아아!” 한참 후인 지금에서야 그는 그의 눈에 비쳤던 것들이 무엇인 지를 알기 시작했다. 그의 귀에 환청처럼 들렸던 여인의 날카 로운 목소리와, 목소리가 부른 이름, ‘클로네’가 무엇이었는 지를 이해했다. -쾅!- 또 한번의 폭음이 여관을 갈랐다. 불타고, 폭발해 거의 무너졌 던 여관의 나머지가 형편없이 부서져 나갔다. 사방으로 두터운 유리파편이 튀어 날랐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냐!” 사람들을 헤치고 악착스레 다가온 우트트가 센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쓰고 소리 질렀다. 멍하니 고개를 돌린 센의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저, 저, 저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든 센의 손가락이 힘없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우트트의 시선이 그의 손끝으로 향했다. “큭!” 짧은 신음성. 우트트의 손아귀에서 말고삐가 툭 떨어졌다. “저, 저건!” 거대한 드래곤의 다리 아래, 꿈에도 잊지 못할 낯익은 검은 흑 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한 품에 소녀를 안고, 어깨에 남자를 걸치고, 무게감도 없이 가볍게 걸어 나오는 모습은 언 젠가 보았던 그 모습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한 순간 드래곤 을 잊을 만큼 그녀의 공기는 강렬했다. -무사하군.- “아, 아....” 가볍게 웃는 그녀의 손에서 두 사람의 몸이 둥실 떠올라 드래 곤에게로 올라갔다. 동시에 드래곤의 등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 졌다. “늦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귀에 익은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선명했다. 구리 빛 피부, 온 몸에 발달된 갑옷 같은 근육. “미, 믿을 수 없어!” 센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나왔다. 센의 전신이 부르르 르 떨려왔다. 이건 악몽이었다. 지금까지 꾸어왔던 그 모든 것 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끔찍한 악몽! 그 악몽이 입을 열어 말하 고 있었다. “휴, 이거... 칸님의 발자국, 몇 십 년은 지워지지 않겠는걸 요?” “기왕 찍을 거라면 화려한 편이 좋겠지.” 센의 머릿속이 윙윙 돌아갔다. 언젠가부터 느꼈던 위화감. 어 색한 불안감. 그 모든 것들의 근원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 다. 설마하고 생각하며 애써 믿지 않고 머리 한 귀퉁이로 미루 어 두었던 천만의 하나의 가설. ‘류이네리아 칸 란.’ 검기로 드래곤과 같은 바람을 만들어 내고, 녹색 비늘의 드래 곤과 함께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사막의 폭풍을 가로지 를 수 있는 존재. 언제 어떻게 그녀를 추격해 간 움크와 그녀 가 가까워 질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그 존 재’라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래. 널 따라 나서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 했어. 움크.” 그녀가 온화한 표정으로 움크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센의 눈 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발아래가 꺼지는 듯한 아찔한 추락 감.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제, 제기랄!’ “로드....” 센과 같은 결론에 도착했는지, 우트트의 입도 떡 벌어졌다. 믿 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던 최악의 가정이 현실이 되어 그들 앞에 주욱 펼쳐져 버렸다! “이거 마중 나온 사람이 있군요.” 란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천천히 몸을 돌린 움크의 얼굴이 우 트트의 정면을 향했다. 눈이 마주친 움크가 가볍게 한쪽 눈을 찡긋였다. 자신만만한 전사의 표정. 우트트의 얼굴이 일그러졌 다. “오랜만이구나. 아우여.” 두 달여만의 귀환이었다. **** 은빛입니다. 코가 맹맹하니 머리가 징징거리네요. =_=; 한 고비가 이제 넘어가는 듯.... 어제 그제는 아찔~ 하더니만 이제 좀 살만 합니다. (그 때 그건 주사빨이었을 뿐이더군요. 훗...=_=;) 열심히 올립니다. 눈에 거슬리더라도..오타를 좀 양해해 주시고, 발견하시면 좀 알려주세요... =_=;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뵙기를 희망하며... (시험 다들 잘 치루셨나요?)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6 - 도사 노도. “세자트님, 좋은 소식이랍니다.” 노도의 주름살이 환히 펴져 있었다. 세자트는 갸웃 고개를 기 울였다. 연이은 암살 시도로 인해 문밖출입을 하지 않은 지 며 칠 째, 센의 속셈을 엿보기 시작한 후 부쩍 우울함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그렇습니까? 지금의 제게도 좋은 소식이 있을 줄은 몰랐군 요.” 피식, 쉰 웃음을 흘리며 세자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 사형 날짜라도 정해졌습니까?” 프란으로 보내진 크리아의 사신과 인질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암살자를 보내 자신 을 죽이려드는 센이 그들을 무사히 둘 리가 없다. 공기가 심상 치 않은 것이 언제 그들을 죽이려들지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 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죽는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 지는 예측 하기 어렵지 않았다. 피에는 피가 따르는 법이 아니던가. 그랬 기에 자신도 지금 왕성의 사신관에 적을 두지 못하고 이렇게 후작가로 완전히 나온 게 아니었던가. 어차피 이래저래 문제들로 인해 실제적으로 후작가에서 머물 도록 정했더라도, 적을 어느 곳에 두고 잠자리를 정하는가의 외교적 의미는 차이가 컸다. “이런, 심기가 많이 상해계셨군요.” 노도의 목소리에는 안쓰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세자트는 설 래설래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노도는 다시 구 수한 웃음을 띄웠다. 그러나 연이어 한숨을 푹푹 내쉬는 세자 트의 안색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뭐, 즐거워 노래를 부를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노래를 부르셔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움크님이 황궁으로 생환하셨으니까요.” “...............네?!” 너무나 기뻐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세자트의 눈이 활짝 열 렸다. “지금 막, 움크님이 란과 함께 황궁으로 생환하셨다는 소식이 들어왔답니다..” 부드럽게 말을 이으며 노도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주 륵,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색한 감촉에 세자트는 급히 팔을 들어 얼굴을 닦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고여 있었다. 팔뚝 가득 돋아있던 소름이 까칠하게 얼굴을 긁고 지나갔다.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랍니다.” “휴, 일단은 다행이군요. 무사히 돌아가셨으니, 당분간은 아무 도 움크님을 노리지 않을 겝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당분간이 아니라 영원히 그럴 겁니다. 아마도요.” “하지만, 우트트님을 둘째 치고서라도 센은...” 세자트는 다시 가벼운 한숨을 내쉈다. 그가 아는 센은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는 잔인함과 추진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머리와 재능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그 모든 힘이 우트트 의 카느 계승을 위해 맹목적으로 퍼부어졌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뿜다가, 눈물까지 흘렸다가, 다시 풀이 죽었다가를 반복하는 세자트를 물끄럼 바라보던 노도는 가볍 게 혀를 찼다. 식자가 우환이라더니 잠시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금 새 다음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손자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군.’ 노도는 다정하게 세자트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세자트님. 센이 아니라 누구라도 당분간은 움크님 을 위해하거나 소란을 일으키기 힘들 겁니다. 란이 단단히 각 오를 굳혔는지, 꽤나 화려하게 등장한 모양이더군요.” “...화려하게라니요?” 세자트는 란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춰야 했다.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근래 들어 워낙에 충격적인 일을 많이 격어서인지 쉽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곧 그 이름이 클레이브를 따라나섰던 성기사 출신의 하녀를 지칭함을 깨달 았다. 그러나 화려하게라니. 성기사 하나가 화려해 봤자 얼마 나 하겠는가! “어떻게 구슬렸는지는 모르지만, 아니, 뭐, 대강 상상이 가기 는 하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노도는 싱긋 웃었다. “성스러운 숲의 녹색 드래곤을 타고 등장한 모양이더군요. 아 주 화려하게요.” “드, 드래곤?” 툭, 세자트의 턱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세자트님.” 노도의 입가에 또다시 희미한 짓궂음이 서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의미의 섬뜩함이 세자트의 전신을 긴장시켰다. “움크님의 일은 그만 걱정하시고, 이 쪽 일도 좀 신경을 써 주셔야죠. 언제까지 넋을 빼고 계실 겁니까.” 초롱초롱 빛을 발하는 노도의 눈이 가깝게 다가왔다. 꼴깍, 마 른침을 삼키며 세자트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언젠가 주점에 서 술을 시키며 짓던 그런 눈빛이었다. “그, 그야. 뭐. 뭐가 어찌된 건지 모르지만 움크님이 안전하시 다면야 저야...” 하녀에 드래곤이라니.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더 넋이 빠질 지경 이었지만 티를 낼 틈도 없었다. 점점 더 다가오는 노도의 고개 를 피해, 움찔움찔 뒷걸음질을 치며 세자트는 가볍게 손을 흔 들었다. “네에, 뭐니뭐니해도 언제까지나 이 늙은 몸이 세자트님의 일 까지 해드릴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자트님은 프란의 엄연한 사신이시고, 전 이 크리아의 후작가 일개 집사일 뿐이 니까요.” “그, 그거야...”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세자트는 말을 얼버무렸다. 어쩌다 보 니 그리 되어 있었다. 모아오는 정보나 분석력, 그리고 판단력. 그 무엇 하나 세자트는 노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워낙에 불리한 궁지로 몰리다보니 어찌할 무언가를 잡을 수도 없어서 요 얼마간은 노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참이었 다. “뭐, 특히 지난 며칠간 정신이 없으셨던 건 저도 잘 알고 있 습니다. 그러니 도와드린거죠. 그러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헉!” 어디서 나왔는지 두 팔 가득 안아도 다 못들만큼의 서류와 책 더미들이 불쑥 세자트의 코 밑에 들이 밀어졌다. 살며시 감겼 다 뜨인 노도의 눈이 새파란 빛을 발했다. “자아, 그 동안 제가 감히 손댈 수 없었던 세자트님의 일이랍 니다.” “네, 네? 네!” 찡긋, 윙크를 보내는 노도의 눈에는 장난기가 남아있지 않았 다. 세자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화평이 될지, 전쟁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신없이 내민 손에 묵직하다 못해 몸이 휘청일 정도의 무게 가 내려앉았다. 토닥토닥 서류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다듬으며 노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밥값은 해주셔야죠.” 시익, 누런 이를 들어내고 노도는 활짝 웃었다. 센의 몸이 가 볍게 흔들렸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 어지러웠다. ‘여, 역시 이 노인들은!’ 단 한번도 그의 예상 안에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런 그의 심 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도는 옆에 두었던 챙 넓은 모자를 주 어 쓰며 지나가듯 말을 던졌다. “프란의 일은 로드 류이네리아 칸 란이 알아서 해결하고 있 을 겁니다.” “!” 와르르르르. 힘겹게 받아들었던 서류들이 모조리 카펫 위로 쏟 아져 내렸다. 세자트의 창백히 질린 얼굴을 바라보며 노도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주름진 웃음이 이처럼 능글맞았던 적은 없었다. “로, 로드요?” “아,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 머리가 하얗게 날아가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 ‘이제 하나는 정리 된 셈인가...’ 멍한 얼굴로 굳어진 세자트를 두고 나오며 노도는 정원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손질하지 못한 태가 나는 정원은 조금 시들 어 있었다. 정원석 한 귀퉁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노도의 얼굴에는 세자트와 함께 있을 때와 같은 생기가 남아있지 않 았다. “휴우, 이제 곧 이 곳을 떠나야 하는 구나.” 새로운 정원사들을 가르쳤지만 그가 화초들의 마음을 알 듯 보살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건 불가능한 경지이리라. 그러 나 이대로 조금씩 시들어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게 자 연의 섭리라면 따르는 것도 좋다. 맞지 않는 토양과 기후에서 억지로 자라게 하는 건 어쩐지 인간의 이기심인 듯 해 화초들 에게 미안하던 참이었다. “그래. 때가 되면 가는 게 섭리지.” 정이 많이 들었다. 산속 깊은 암자와 달리 세속의 삶이란 사람 의 마음을 옭아매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노도는 가볍게 눈을 내리감았다. 간밤에 찾아왔던 삼신할미와 아르페이나와의 대화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늘 그랬듯이 두 여신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막 몸을 뉘이고 피곤했던 하루를 정리하려던 노도는 싫은 기색 없이 몸을 다시 일으켰다. 두 여신의 눈가에 미안함이 잠시 스치고 흘러갔다. “그래. 오랜만이구먼. 세속의 삶은 경험할 만 한가?” 하르크와 란들이 떠난 뒤 크게만 느껴지던 작은 오두막이 부 드러운 빛으로 휩싸였다. 오랫동안 주인이 찾지 않던 의자에 몸을 기대며 삼신할미는 자애로운 눈빛을 보냈다. 아르페이나 가 조용히 삼신할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여유로워 보이는 삼 신할미와는 달리 그녀는 조금 불안해 보였다. 노도는 내색하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두 분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이죠.” “아니지. 자네의 경지가 버텨주기 때문이라네.” “그리 보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두 여신에게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힘이 피로감을 몰아냈다. 삼신할미는 잠시 고개를 주억였다. “이 곳은 처음이군.” 삼신할미는 노도의 창 밖으로 트인 정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들시들 해지긴 했지만, 곳곳에 노도의 손길이 닿은 정원은 생기만이 아니라 기묘한 선기를 품고 있었다. 여신의 표정에 살며시 놀람이 스쳐갔다. “선기를 품은 진법을 펼쳐 두었구먼. 속세에는 강한 힘일 텐 데.” “초청받지 않은 손님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가?” “엄한 목숨을 해하려 들어오는 밤손님들을 둘 수도, 일일이 란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피식, 빈 웃음이 흘러나왔다. 남의 생명을 앗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는 자들은 노도에게는 아직도 어색한 존재들이었다. 살리려 애를 써도 하나를 살리기 힘든 것을, 왜 앗으려고만 할 까. “인간의 삶이 다 그러하지. 우리도 회의를 느낀 적이 한두 번 이 아니니까.” “그렇지. 힘들게 점지해 애써 태어줬더니만, 제풀에 자빠져 죽지를 않나, 다른 엄한 목숨들만 취하고 자멸하지를 않나....” 깊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힘들게 태어나게 해 준 인간들은 그 삶이 얼마나 기다리던 것인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쉽게 타 락의 길을 걷곤 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다. 어차피 허망하게 죽을 존재 왜 태어나게 해야 하 는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 절대의 명령을 내렸던 주신의 존재 가 아니었다면, 그들 역시 한번쯤은 흔들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더군. 인간이란.” “그러게 말일세. 나락의 나락까지 빠져들었다가도, 한 가지 희망으로 되 기어 올라오는 존재가 또 인간이더군.” 잔잔히 미소 짓는 표정에는 방금 전의 실망이 남아있지 않았 다. 조금의 안타까움과 약간의 기대감이 두 여신의 눈에 담겨 있었다. 삼신할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한번의 극복으로 발전하기 위해, 인간은 무수한 실수를 번복하는 건지도 모르지. 그려.” “그래서 신족의 인간계 수련이 있었던 게고.” 아르페이나는 설래설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 인간계의 수련 때 문에 지금 그녀가 곤란에 처하지 않았던가. 아니, 원인으로 따 진다면야 문제는 더 근본적인 다른 곳에 있었었지만 지금은 그걸 가려 해결할 수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네 역시 더 많은 발전을 본 듯 하구먼.” “그렇게 보아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너스레 웃는 노도의 표정이 유난히도 편안했다. 창문 밖으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좋구먼.” 조용히 눈을 감으며 삼신할미는 낮게 속삭였다. 아르페이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노도는 조용히 물을 끓였다. 은은한 차 향기가 작은 통나무집을 채우고, 다시 식어갔다. 작은 창 밖으로 여름의 이른 해가 빛을 드리기 시작 했을 무렵이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편히 하시오소서.” 노도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어느 새 삼 신할미의 손가락이 치맛자락을 말아 쥐고 있었다. 가벼운 긴장 감이 흘렀다. “제가 비록 아직 인간이오나, 천기의 흐름은 조금 볼 줄 아오 니...” 얼마 전 보았던 하늘의 변화를 노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날마 다 란과 클레이브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바라보았던 별들은 그 날만큼은 그들의 운명을 보여주지 않았다.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도 해석하기 힘들었던 그 새로운 변화는 어쩌면 두 여신의 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삼신할미가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후. 그렇구먼.” 삼신할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삼신할미의 눈에 더 이 상 웃음은 남아있지 않았다. “자네, 이제 슬슬 돌아와야 할 듯 허이.” 작은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길게 비쳐 들어왔다. “그래. 그렇군.” 생각을 정리하며 노도는 몸을 일으켰다. 어느 새 해가 하늘 가 운데 걸려 있었다. 시들 때 시들더라도 화단에 비료는 뿌려야 했다. “그래. 지금쯤이면 대공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셨겠구먼.” 빨리 화단 일을 마치고 가봐야 했다. 그에게 남겨진 시간은 이 제 길지 않았다. 노도의 손이 조금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 다. **** “발전하는 존재란 이리도 두려운 거였군요.” 아르페이나의 목소리에는 진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게 생기지 않았나?” 삼신할미와 아르페이나는 차원의 중간에 서 있었다. 동대륙의 신계와 서대륙의 신계가 갈라지는 갈림점에서 두 신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해결방법이 있었을 줄 은.” 지금까지 걱정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보일 정도였다. “노도였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생각이었지.” “그렇군요.” 노도는 길게 질문하지 않았다. 때가 흘러가고 있다. 주신께서 명하셨다는 말에 그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인간계 에서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이 있으니 며칠 정도만 말미를 달라 는 건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최소한 그가 들어주기로 한 다 른 부탁에 비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럼, 란을 찾아가는 건...” “그가 신계로 돌아온 다음에 해야겠지.” 란을 직접 설득해 달라는 말에 노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별일 아닌데 무에 걱정하느냐는 눈으로. 머뭇머뭇 눈 치를 살피던 아르페이나가 쌓아두었던 긴 이야기들을 풀었을 때도 그의 여유는 변하지 않았다. -무얼 걱정하십니까? 그녀 역시 창조된 존재이거늘.- -자네에게는 묘수가 있는가?- -묘수랄 것도 없지요. 그저 섭리에 따르는 것 뿐 아닙니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란의 그 고집을 꺽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며 염려하는 여신에게 그리 말하며 노도는 가볍게 웃었다.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해 이 곳까지 왔습니다. 길을 가릴 이 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세속에 시달리며 깊어진 주름살이 온화한 곡선을 빚었다. 문 득, 부러움이 밀려왔다. 아르페이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단 한번도 지상의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삼 신할미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을 담당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어 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완성된 존재라 해도 가끔은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럴 때 치밀어 오르는 갈증은 가 슴을 턱 막히게 했다. “이제 정말로 한 시대가 끝나는구먼.” 어딘가 허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느 덧 시간이 그렇게 흘러 버렸군요.” “그래. 그 시간의 마지막에까지... 난 발전하지 못한 듯한 느 낌이 드는구먼. 그게 제일 아쉽다네.” “또다시 노도라는 도사에게만 험한 일을 시킨 꼴이로군요.”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그러고 보면, 그야말로 이번 우리 일로 가장 큰 손해 를 본 존재 아니겠는가.” 어쩌면 가장 큰 이익을 본 존재일지도 모른다. 신들과 무후 사 이에 껴서 겪은 마음고생이라니, 인간의 삶 정도로 쉽게 경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럴 지도 모르죠. 어쩌면 그 반대 일 지도 모르구요.” 잠시 마주친 아르페이나의 눈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삼신할 미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날 까지 동대륙에서 자신의 일 을 하며 기다리면 된다. 갈림점에서 투명한 빛살이 흘러나오며 동대륙 신계로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 은빛입니다. 가우님.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내일 퀸즈하트를 올리는 거... 잊지마세요~ 므하하하하하하하하! 쿨럭! (감기중에도 열혈을 보였습니다) 열심히 올립니다. 눈에 거슬리더라도..오타를 좀 양해해 주시고, 발견하시면 좀 알려주세요... =_=;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뵙기를 희망하며... (시험 다들 잘 치루셨나요?)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7 - 금아의 결정 “전군 전진하라!” 철거덩, 군례를 갖춘 창대가 갑옷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때 아닌 군대의 가도 행렬에 겁먹은 사람들이 사방으 로 흩어졌다. 하노베이 백작은 가슴을 폈다. ‘어리석은 자들.’ 저택을 거의 다 포위하고서도 그를 잡지 못한 근위대나, 지례 겁먹고 저택에 처박힌 창, 모두 경멸의 대상이었다. 겨우 하루 거리에 군대를 두기를 잘 했다. 조금 모험이다 싶기는 했지만 이토록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전쟁준비를 위해 이래저래 귀족들의 군대가 몰려들고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아직 그처럼 빠르게 병사들을 준비해 놓은 귀족은 없었다. 전쟁에서 공을 독차지하기 위해 벌렸던 충성시위가 베이르 대공의 농간에 의 해 반란군으로 덮여 씌워지긴 했지만, 그것 말도고 워낙에 혐 의가 많이 되잡혔기 때문에 군대를 준비해 두지 않았다면 반 항 한번 못해보고 잡혀 죽을 뻔 했다. ‘이 기회에 왕을 사로잡는다.’ 늘 한발을 빼고 있던 대공이 직접 움직였다. 그 속은 뻔했다. 순순히 잡혀 들어가서 자신이 무고하다고 외치는 건 아무런 소용도 없으리라. 본디, 없는 죄도 덮어씌우면 사형감이 되곤 하는 게 귀족사회의 생리였다. ‘어떻게 알았을까?’ 게다가 베이르 대공은 자신이 한 짓을 낱낱이 알고 있는 듯 했다. 엊그제 그가 왕궁에서 발표한 체포문을 첩자가 보고해 왔다. 등줄기로 소름과 함께 전율이 스치고 지나갔다. 센이 보 낸 암살자들과 손잡고 세자트를 죽이려 했던 것 까지 그들은 낱낱이 알고 있었다. 창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대공은 겉보기 처럼 풋내기가 아니라던 말.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일 뿐이지.’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고, 역사란 꾸며지기 마련이다. 마스 터니 뭐니 해도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늙지 않는 겉모습이 좀 유별나긴 하지만, 그거야 고위 신관들이나 마법사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야 강하겠지만, 수도에 얼마 있지 않은 근위병들과 방위군으로 자신의 군대를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동대륙의 비술이란 의외로 쓸만해서 말이야.’ 키득, 웃음이 흘러나왔다. 원본을 주었다고 해서 복사본까지 준 건 아니다. 하노베이 백작은 힐끔 뒤돌아보았다. 마공을 익 힌 이후로 거무튀튀한 피부색을 띄기 시작한 그의 기사들이 섬뜩한 눈빛으로 왕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마법사의 최면까지 단단히 걸어 두었다. 시간이 없어 모든 기 사들에게 다 시술하지 못하고 겨우 다섯을 만들어낸 것이 아 쉬웠지만, 이만하면 쓸만했다. 더군다나 저 마공은 창이 베이르 대공을 상대하기 위해 익혔 던 것들이 아닌가! 검술이란 완성도에 지배받는다고는 하지만, 시험해 본 결과로는 저들의 발전은 놀라운 지경이었다. 오대 일이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저 다섯이 베이르 대 공을 해치우는 동안, 마공까지는 주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길러 둔 기사들이 근위대를 막는다. 그리고 용병들과 병사들로 밀어 붙인다. 그들에게는 그럴 듯 하게 이미 말을 해 두었다. 계약 과 다르다며 몇몇이 툴툴거렸지만, 은화 몇 입에 입을 다물었 다. 사실 그런 배려까지 해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아니었 지만, 지금은 손 하나가 더 아쉬운 때 아닌가. “백작님!” 앞서 보냈던 견습 기사 하나가 말을 달려 돌아왔다. “성문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뭐?” “이상합니다. 분명 반란군이 성을 장악했을 텐데… 성 앞은 이전과 다름없이 열려 있습니다. 상인들도 오가고 있고…” “허!” 한대 맞은 것 같았다. 하노베이 백작은 급히 다시 머리를 굴렸 다. 이 대군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이 정도는 자신이 있다는 걸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성문을 열어두다니! 이건 무시도 이만저만한 무시가 아니지 않은가! “반란이 일어났다는 게 맞을까요?”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감히 견습 기사 따위가 질문을 해오다 니! 그러나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았다. 그의 주위에서 함께 보 고를 들었던 자들의 눈빛에는 그와 같은 의문이 담겨 있었다. “분명하다! 프란의 사신을 감싸고돌던 페르로이가문에서 반란 을 일으켰다. 왕궁을 장악하는 것 까지 내, 확인하고 탈출했던 만!” 하노베이 백작의 목소리에는 비통함이 담겨 있었다. 잠시마나 의아한 눈빛을 보냈던 기사들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백 작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힘차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든 말에 병사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백작은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경계해라! 함정일 지도 모른다!” 명령이 빠른 속도로 전달되어 갔다. “전열을 지키며 전군 전진!” 마지막 기회였다. **** “각하.” “알고 있다.” 감겼던 눈을 떴다. 보지 않아도 손에 잡힐 듯 했다. 왕성의 앞 을 가로막고 도개교 앞쪽으로 빼곡히 몰려온 병사들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군열이 서 있지만,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잘 훈련된 근위대 몇몇만 나가 휩쓸어 도 모조리 무너질 기운들이다. 본격적으로 훈련받지 않은 농민 병이란 정예 앞에서는 별 힘을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머 릿수로 밀어붙여 이길 수 있을 만큼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물론, 하나의 영지에서 모아온 것 치고는 많은 수였지만. ‘용병을 샀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 한들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쓸만한 자는 다섯 정도나 될까. 그러나 그들 역시 뭔가 수상쩍 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금아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검고 탁한 기운.’ 마치 창의 그것과 같았다. 금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차가 운 분노가 혈관을 타고 온 몸에 퍼져 나갔다. 그 저주받을 마 공을 창에게만 건넨 게 아니었다. 까드득, 주먹이 울었다. ‘마왕의 군대라도 만들 셈이었나?’ 보고를 위해 다가왔던 병사가 흠칫 굳었다. 금아는 살기를 풀 었다. 작은 한숨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뭔가?” “네. 각하. 지금 반란군이 성문 바로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반응은?” “일단은 정지했습니다. 병사들이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 니다만.” “좋다.” 금아는 몸을 일으켰다. 문 밖으로 근위대 제 1 기사단과 3 기 사단의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제 2 기사단과 임무를 교대하 고 도착한 하드레크가 조금 굳은 얼굴로 한 발 나섰다. “집 쪽은 어떤가?” 대공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아무런 소요도 없습니다.” “그래? 기사들은?” 대공 가에 소속된 기사단 뿐 아니라, 저택에는 대공 가에서 숙 식하며 그에게서 검술을 배우던 자들이 꽤 많았다.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런가?” 금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일전에 노도에게서 들었던 바가 있 었다. 아마도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을까. 금아는 애써 가슴을 폈다. 더 일찍 움직였어야 했다는 후회와 죄책감이 그를 사로잡게 둘 수는 없다. 지금의 한 판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모두들 들어라.” 빠릿한 기사들의 눈동자가 금아에게로 몰려왔다. 두 개의 기사 단에서 차출 된 쉰 명의 기사들의 가슴에 크리아 왕실의 문장 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금아는 숨을 들이마셨다. “모두에게 미리 설명해 둔다.” 책상 위에 펼쳐진 작은 지도는 왕성의 문과 길목들이 표시되 어 있었다. 하노베이 백작에게 시간이 없었던 건 일종의 행운 이다. 그가 끌고 온 병력은 왕성을 포위하기에는 너무 적고, 그렇다고 뭉쳐두기에는 조금 컸다. 하노베이 백작은 자신의 힘 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전략을 짜 볼 시간조차 얻지 못했다. “정신 바짝 차리도록. 급조되어 몰려들어온 병사들이라 하더 라도 저 쪽은 천여 명이다.” 누군가가 낮게 숨을 내쉈다. 아무리 좁은 성문을 끼고 하는 전 투라고 하더라도, 오십대 천. 산술적으로는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숫자이다. “다들 알겠지만, 우린 제국 프란과의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 다. 다행히 상황이 잘 풀려가고 있어… 잘 하면 전쟁 없이 이 난국을 타계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 정확한 첩보를 접하지 못한 기사들의 눈에 의아함이 스 쳐갔지만 아무도 입을 열어 질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전쟁을 막아내는 것도 힘이다.” 탁, 금아의 손가락이 성문의 앞을 찍었다. “지금 이 주변에는 모르기는 몰라도, 각 국에서 몰려든 첩자 들로 북적거릴 테지.” 막사 뒤편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부스럭였다. 금아는 엷게 미소 를 뗬다. “이 단 한번의 전투는 우리 크리아가 지닌 힘, 진정한 힘이 어떤 힘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남의 나라 전쟁에 섣불리 끼어들 나라는 없다. 최소한 그 나라 가 자신들이 동맹을 맺을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 승산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계산이 끝나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크리아는 강하고 부유했지만, 작은 나라였다. 얕보인다 면, 선전포고를 앞둔 프란이 아니라 당장 옆쪽의 어느 다른 국 가에서 침입을 받아도 어색하지 않은 지리적 위치를 지니고 있었다. “기회란 잡았을 때 진가를 발휘해 주는 법이다.” 가뜩이나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카슬 북대 륙의 용병국 위즐마저도 선 듯 지원을 약속하지 않고 있던 지 금, 하노베이 백작의 반란과 같은 사건은 치명적이었다. 똘똘 뭉쳐도 이기기 힘든 판에, 분열이라니! 그 모든 불리함을 뒤집 어야 했다. 그것도 이 단 한번의 전투로. “굳이 병사들을 징집하지 않고, 정예만을 모은 이유를 모두 짐작할 수 있겠지. 이 전투에서.” 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스치는 금아의 눈빛은 강렬했 다. “어느 누구도 상처입거나 죽어서는 안 된다.” 천명의 적을 앞에 둔 지휘관이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는 상황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야만 한다. 크리아의 정예가, 이 베이르 드 기르의 제자들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기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 중 금아의 지도를 받지 않은 자 는 없었다. 그러나 감히 제자라고 스스로를 부를 수 있는 자도 없었다. 대공은 평생 제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누구나 재능이 있고 크리아에 충성을 바칠 수 있다면 받아들여 가르쳤다. 저 택에 방을 내주었고, 자식처럼 보살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 가 자신의 입으로 먼저 그들을 ‘제자’라고 불러 준적은 없 었다. “사막의 전사들 정도는 상대가 되지 않는 강함을 지니고 있 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저릿한 투지가 피어올랐다. “성문 앞에서. 시작한다.” 먼저 말에 몸을 날린 금아의 등이 기사들의 앞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구, 군대다아!” 군대가 몰려오자 놀란 상인과 시민들은 거미 떼처럼 흩어졌다. 성문지기로 보이는 몇몇 병사들이 놀라 달려 나왔다가 새파랗 게 질린 얼굴로 되돌아 달려갔다. 그리고 바로 몇몇 병사들이 나와, 우왕좌왕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을 토닥이며 성문 안쪽으 로 들여보냈다. “성문 입니다. 진군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은 닫히지 않았다. 문 뒤에 몸을 숨기고, 빠끔히 쳐다보는 병사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하 노베이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여 명의 병사들이다. 기 사들은 모두 합해 서른, 아니, 철저히 추리자면 열명 정도일 뿐이지만, 결코 만만한 군대가 아니었다. 하노베이 백작은 잠 시 망설였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엎어진 물이고,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위화감 따위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그럼 돌아가겠는가?” 하노베이 백작이 날카롭게 응답했다. 심기가 편할 수가 없었 다. 벌써부터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하다니! 왕성 안으로 쳐 들어가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뜻 밖의 사태들이 주는 불안감은 그 조차도 막을 수 없었다. 하노 베이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전군 성 안으로 진격하라! 목표는 왕궁이다! 왕궁을 점거한 반란군의 퇴치를 서둘러야 한다!” 하노베이 백작이 손을 들었다. 그의 구령에 맞춰 기사들이 창 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와아아아아아아!” 바짝 긴장한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몸을 숙여 그들 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 때였다. “나옵니다!” 곁에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하노베이 백작의 입가가 일그러졌 다. 눈처럼 흰 백마 위에 낯익은 얼굴 하나.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가벼운 복장의 베이르 대공이었다. 그의 뒤편으로 오십 여명의 기사들이 열을 맞춰 성문 앞을 가로막았다. “날 무시하는 겐가!” 천명이다. 그런데 달랑 기사들로만 오십 여명을 끌고 나왔다. 쉽다, 잘됐다. 빨리 해치우고 왕을 사로잡자. 그 마음보다도 먼 저 가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백작은 쳐들었던 손을 내리며 힘차게 외쳤다. “저 자들이 반란군이다! 전군 진격!” ‘기사전’ 따위로 병사들이 기를 죽일 수는 없었다. 기사도 인간이다. 일반 병사보다는 강하지만, 무적은 아니다. 더군다나 귀족 출신의 기사들은 기사들의 기마전에만 치중해 훈련을 해 왔기 때문에, 혼전에 약했다. 그런 점들을 하노베이 백작은 배 워 알고 있었다.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나!’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 대공에게 비릿한 비웃음을 보내 며 하노베이 백작은 외쳤다. “진격하라!” “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이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갔다. 쿵, 쿵, 천여 명이 내달리는 발자국 소리가 땅을 들썩였다. 억눌린 두려움이 투지로 변해갔다. 한 걸음 걸음이 이어지며 주체 할 수 없는 열기와 흥분이 피어났다. 적을 앞에 둔 병사들의 눈에서 서서 히 살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죽어라아아!” 적의 수는 적었다. 저들만 빨리 해치운다면 살아서 집에 돌아 갈 수 있으리라! 이백여 보 남아있던 성문까지의 거리는 한 순 간에 사라져갔다. 뿌옇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성문 위쪽까지 치 솟아 올랐다. 병사들의 뒤편에서 검을 뽑은 하노베이 백작의 가슴이 설랬다. 대공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말 위에 앉아 달려오는 기사와 병사들을 물끄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 건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마치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승리는 우리의 편이다!” 벅찬 흥분이 북받쳐 올라왔다. “죽어라. 늙지도 않는 괴물.” 그는 겉만 번지르르 한 대공이 곧 병사들의 발에 짓밟혀 죽을 것이라 확신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니까. “적을 베어라!” 그러나 그런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갈! 멈추지 못할까!” 벼락같은 호통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공의 손에 들려있던 창 의 끝이 땅으로 돌진했다. -쾅!- 땅이 꿰뚫리는 듯한 굉음에 지축을 울리던 발소리들이 한번에 잡아먹혔다. 시간이 끊어졌다.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던 그 동 작 그대로 굳었다. 순식간에 소름이 일며, 쇠로 만든 갑옷과 창끝이 징징 울렸다. 전격 마법에라도 모조리 두드려 맞은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이 저릿저릿 울려왔다. 벌렁벌렁 놀란 심장이 뛰었다. 떼구르르 눈동자를 굴려 서로의 얼굴을 살피는 병사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 곳이 어디라고 감히 군사들을 몰고 들어오는가!”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과 투기가 그들을 휩쓸어갔다. 대공의 흰 말이 병사들의 앞쪽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마치 산이 다가 오는 것만 같았다. “흐허어어어어어억!” 그건 성 안에서 불안한 눈으로 밖을 쳐다보던 병사들에게는 기적이었고, 난데없는 호통소리에 발이 접질려 넘어져버린 병 사들에게는 두 번 다시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의 시작이 었다. **** “히, 히이이이잉!” 하드레크는 정신없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잘 훈련되었던 군 마가 아니었다면 진정시키지 못하고 낙마했으리라. 바로 귓가 에서 천둥이 친 것 같았다. 다행히 근위 기사단들 중에는 단 한명도 낙마한 자가 없었다. ‘저하께서 추리고 추려 데려오신 이유가 있었군.’ 여기서 저 자들처럼 말에서 떨어졌다면, 기껏 분위기를 잡은 보람이 없었으리라.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하드레크는 대공의 등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인간의 힘이란 걸까.’ 그로서는 상상할 수도, 그리고 감히 시도할 수도 없는 전술이 었다. 아니, 이건 전술도 아니었다. 이건 단순한 밀어붙이기였 다. 압도적인 힘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짓. 저 하노베이가 천 명을 모아 밀어닥친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힘겨루기였다. 떼쟁 이 어린아이들을 뜯어말리는 어른이라도 된 듯한 느낌. “너희는 반란이라도 일으킬 작정인가!” 마나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구석구석까지 울려 펴졌다. 육중한 위압감이 퍼져나가며 점점 더 크게 자라났다. 병사들이 술렁거 리기 시작했다. 반역이라니, 분명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특히 뒤편에 서 있던 자들의 동요가 컸다. 병사들이 조금씩 뒷걸음 질치며 전열이 흩어졌다. “무, 물러서지 마라!” 뒤편에 서 있던 기사 하나가 외쳤다. 그런 목소리에도 숨길 수 없는 동요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앞쪽으로는 겨우 십여 보 앞에서 멈춰 선 병사들이 단 한 걸음도 더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따각, 대공의 흰 말이 한 걸음 다가설 때 마다 병사들 이 우르르르 뒤로 밀려들어갔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오다가 멈춰서며 엎어진 자들과 같은 편에 깔려 다친 자들의 신음소 리가 끙끙 들려왔다. “말하라!” 거역하기 힘든 위엄 앞에서 농민 출신의 병사들이 입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천천히 둘러보는 대공의 시선에, 반사적으 로 고개를 푹푹 숙이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달려 나갈 힘이 남아있지 못했다. 그건 병사들의 조금 뒤편에 남아있던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차게 말을 몰아 앞쪽으로 나오려던 기사 하나가 힐끔 뒤돌아 하노베이 백작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얼 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반란군과 싸우기 위해 가는 것 아니었나?” “글시말이여.” “우, 우리가 반란군이라니. 무슨 소리야!” 당황한 병사들의 열이 또다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 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병사들이라고 하지만, 이번 진격은 처 음부터 이상했다. 어느 나라건 반란은 사형이었다. 그게 비록 주인을 잘못 만나 얼떨결에 따른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수도까지 와서 성문 앞에서 난리를 쳤다면! 용서받기는 힘들었 다. “열을 맞춰라! 감히 누가 뒤돌아서라고 했나!” 몇몇 노련한 기사들과 십인장인지 백인장인지 모를 자들이 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리 핏발선 눈으로 노려보고 주먹을 휘둘러도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외치고 있는 자신 의 발걸음도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병사들의 동요는 퍼 져만 갔다. “반란은 너희들이 일으키지 않았는가!” 히스테릭한 고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 새 하노베이 백작이 마 법 증폭기를 들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백 작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는 자네가 나서야 겠군.- 갑작스레 들려온 베이르 대공의 목소리에 하드레크는 흠칫 몸 을 떨었다. 마나를 조절해서 마법사처럼 말을 전하는 방법은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하드레크는 조심스레 말 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대공저하께서 질문하신다! 너희들은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온 자들인가!” 쩌렁, 목소리가 퍼졌다. “대, 대공저하?” 누군가가 되물었다. “말하라! 너희들은 반란군인가? 아니면 크리아의 병사인가!” 하드레크가 홀로 돌출되어 있던 금아의 옆으로 다가섰다. 대공 을 빙 둘러싸듯 서 있던 하노베이 백작의 병사들이 우르르르 물러섰다. 그들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자신 들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과 하드레크의 얼굴을 연신 번갈아 살피며 방황했다. 기사들 역시 물러서는 자들을 찌르지 못했 다. “그대 기사는 누구에게 충성을 맹세했는가! 반역자인가! 아니 면 이 크리아의 국왕폐하이신가!” “흔들리지 마라! 저 자는 프란에서 보낸 가짜다!” 온 몸을 새까만 갑옷으로 감싼 다섯 명의 기사를 거느리고, 하 노베이 백작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등장에 따라 병사들 사이 로 흩어져 있던 기사들이 병사들을 헤치고 그에게로 몰려들었 다. 병사들의 동요가 다시 한번 피어났다. “가짜?” 힐끔, 힐끔 시선들이 금아의 얼굴로 몰려왔다. 일반 병사들이 나 기사들이 대공과 같은 신분을 지닌 사람의 얼굴을 알 리가 없다. 왕궁에서야 제법 유명인사에 속했지만, 일반 백성들에게 알려진 대공은 그저 말로만 듣던 전설 속의 마스터이자, 수대 에 걸쳐 왕을 보필해 온, 백 살이 넘은 노인이었다. “하긴, 너무 젊어 보이네.” 누군가가 말했다. 술렁, 병사들이 다시 창을 꼬나 쥐기 시작했 다. 백발이 아니라 짧은 금발을 휘날리는 젊은 검사는 그들의 눈에는 대공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빌린 풋내기 바보일 뿐이 었다. “저 자는 가짜다!” 그들 사이를 십인장과 백인장 급의 병사들과 용병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병사들을 바라보던 금아의 눈에 잠시 이채가 맴돌 았다. “훗!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내야지!”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런 부하들을 바라보는 하노베이 백작의 안색은 편치 못했다. 돈을 발라 넣은 몇몇이 움직이고 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다시 되살리기 힘들 만큼 푹 가라앉았다. 가짜이건 뭐건 대공이라는 이름이 지는 무게감은 상상외로 컸다. 그건, 최초 병사들의 기세를 무참히 꺾어 버린 대공의 실력 공세 때문이기도 했다. ‘그대로 짓밟아 버리려고 했었는데.’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편이 어느 쪽인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속셈인건가!’ 가짜 취급을 해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를 따라온 기사 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어도 한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 을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대공의 여유가 말 할 수 없이 불길했다. ‘차라리 그대로 달아났어야 했을 지도.’ 함정에 걸려든 것만 같았다. 저들의 선택에 휘말려든 듯한 불 쾌감이 그를 괴롭혀왔다. “제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아직 풋내를 덜 벗은 기사 하나가 자신 있게 긴 창을 들고 앞 으로 나섰다. 병사들의 동요가 채 다 가라앉지 않은 지금, 다 시 진격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사들이 움직여야 했다. “저 자가 가짜임을 제가 증명해 보겠습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왔다. 하노베이 백작의 붉은 입술을 타고 가늘게 피가 맺혔다. ‘제기랄. 그래도 내겐 아직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다.’ 허락을 기다리지도 않고 멋대로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 나가 는 기사의 등판을 노려보며,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다섯 명의 검은 기사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길로 그의 명령만 을 기다리고 있었다. ****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구요!”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리 대하는가! 당장 기사단장을 불러 라!” 귀족들은 목청 좋게 소리질러댔다. 집무실까지 울려오는 소란 에 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짜고짜 끌려와 연회장에 감금당한 귀족들의 고함소리가 하루 종일 왕성 안을 뱅뱅 맴돌았다. “휴, 그가 아니었다면 당장 끌어내다가 교수형이라도 시켰으 면 좋겠군.” 아무리 떠들더라도 잠시만 참아달라는 충신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코앞에 닥쳐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리 했을지도 모른다. 왕과 왕국의 수호자이기도 한 베이르 대공이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이상, 왕 은 두려운 것이 없었다. 산발적인 반란과 반항이 두려워 목소 리를 들어주던 시간은 이미 끝나 있었다. “감히, 위기를 틈타 나라를 팔다니!”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그런 자들이 귀족임을 자처하며 이 왕궁을 드나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불쾌했다. 어 린 하노베이 백작의 미소가 떠올랐다. 크리아 최고 충신을 자 처하며, 대공의 빈 자리에 창을 추천하던 그 날 대공이 돌아오 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용서하지 않겠다.” 왕의 결심은 확고히 굳어져 있었다. 이제 문제는 프란과의 전 쟁이 아니었다. 감히 왕성 코앞까지 군대를 몰고 와 협박하려 들다니! 그건 용서할 수도, 용서해서도 안 되는 대죄였다. “혐의가 밝혀지는 데로 형을 집행한다. 반역죄이니만큼 가문 유지의 특혜도 더 이상 내려줄 수 없다. 여지를 남기지 말도 록.” 내부의 적을 안고 외부의 적과 싸울 수는 없었다. 페르로이 후 작이 들고 온 작전 계획서에 마지막 도장을 찍으며, 왕은 재차 다짐했다. “반드시 그 뿌리를 뽑도록.” “예.” 페르로이 후작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방안을 가득 채운 햇살 이 유달리도 덥고 갑갑해 보였다. 왕의 분노는 그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화를 합한 것 보다 더 더 컸다. 차마 마지막 말 을 꺼내지 못하고 뒤돌아선 페르로이 후작의 가슴은 무겁기만 했다. “걱정되십니까?” “아? 아, 노도님.”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후작은 잠시 당황했다. 후작의 팔에 가 득 들려있던 서류를 슬그머니 받아들며 노도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휴.” 어느 새 왕의 집무실을 나와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생각 에 빠져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잠시 잊고 있었다. 후작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겪어보지 못했다면 걱정하지 않았겠지만…….” 걱정하고, 눈물 흘리고, 땀 흘리며 기뻐하던 금아로서의 모습 을 보지 않았다면 그도 염려하지 않았으리라. 그가 본 대공은 겉으로 알려진 것처럼 검에만 미친 외골수의 무인만은 아니었 다. 그 강함이 한 모습이자, 한 축임은 분명하더라도 그의 또 다른 한 축은 아직 채 첫사랑의 그림자도 벗어나지 못한 어린 청년이었다. 겉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처럼. “너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금아는, 아니 대공저하께서는 강한 분 이시니까요.” “너무 강하시기에 걱정하는 게죠.” 후작의 눈에는 염려와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허허, 노도는 너 털웃음을 터트렸다. 후작의 따스한 염려가 그대로 닿았다. “감히 비교는 안 되겠지만, 제게도 아들이 있습니다. 비록 무 사하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나 걱정이 되고 보고 싶건 만…” 금아는 그 아들의 숨통을 직접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일어선 이상 그래야 하리라. 하노베이 백작을 본격적인 반란군으로 몰아붙인 이상, 그의 협조자이자 모든 일의 공조자 였던 창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만큼 왕의 분노는 대단했 다. 하지만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대공께서 진심이시라는 거겠지요. 분노가 지나치셔서 보이지 않으시는 겁니다. 소중한 아들이….” 만일 대공이 간청한다면 창의 목숨만큼은 건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페르로이 후작은 잠시 갈등했다. 만일 자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모든 작위를 내놓고서라도 클레이브를 구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대공께서는 그리 하실 분이 아니시지요.” 노도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후작의 마음 씀씀이가 곱기는 했 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노도는 짐짓 냉정한 눈으로 후작을 나무랬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는 후회만이 남게 되는 법입니 다. 그리하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마도… 이번 사건 을 들춰내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후작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쩐지 노도가 낯설어 보였다. **** “명예를 안다면 당당하게 나서라!” 딱 봐도 철이 덜 든 젊은 기사 하나가 탈탈거리며 달려 나오 고 있었다. 하드레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전형적인 일 대 일 기사전이다. 이렇게 된다면, 불리할 것이 없다. “쯧쯔. 명예란 아무 때나 들먹이는 장난감이 아닐 텐데.” 아직 병사들의 동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베이르 대공을 불신의 눈빛으로 힐끔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어쩌면 자신들의 주인이 반란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들의 창을 무디게 만들었다. “제가 놀아줘도 괜찮겠습니까?” 좀이 쑤시는 지, 제 2 기사단의 로투웰이 앞으로 나섰다. 하드 레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격에 끝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살짝 고개를 돌려 대공에게 인사한 로투웰이 힘차게 말을 달 려 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 나오던 젊은 기사의 창을 빗겨낸 후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반란군에 휩쓸린 풋내기!” 퍽, 젊은 기사의 상체가 붕 뜨며 말에서 날려 떨어졌다. 말이 요동치며 한숨 들이키는 소리가 병사들 사이로 요란하게 퍼져 갔다. “견습 기사 하나 쓰러트렸다고 우쭐대지 마라!” 하노베이 백작의 진영에서 또 하나의 기사가 달려 나왔다. 조 금 전의 젊은 기사와 달리 조금 늙으수레한 자는 전형적인 랜 스가 아니라 조금 짧고, 휘두를 수 있게 생긴 창을 들고 있었 다. “기사전에서 겨우 견습 따위를 내보낼 정도로 인재가 부족했 나 보군.” 로투웰이 싱긋 웃었다. “뭐, 견습이나 아니나, 결국은 그게 그거겠지만 말이야.” “방심은 금물이네.” “알고 있습니다. 대장님.” 싱글거리는 표정과는 달리 로투웰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 역시 무언가를 느끼는 듯 했다. 하드레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의 시선이 언제인가부터 하노베이 백작의 곁을 지키는 다 섯 명의 기사에게 박혀 있었다. 하드레크가 보기에도 그들은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강해 보인다의 차원이 아니었 다. 그들은 어쩐지 ‘사악해’ 보였다. “크리아의 정규 기사단의 실력을 보여주마!” 로투웰의 말이 힘차게 앞발을 들며 울부짖었다. 그의 시선에, 하노베이 백작의 곁을 지키던 다섯 명의 검은 갑옷의 기사들 이 앞으로 달려 나오는 모습이 잡혔다. “여섯이라도 상관없다!” 로투웰이 든 창의 끝에서 희미한 흰 기운이 아롱지고 있었다. “넌 나 하나로도 족하다!” 늙은 기사가 커다랗게 외쳤다. 그의 말이 속력을 붙여 로투웰 에게로 부딪혀왔다. 그리고 그 사이, 다섯 명의 검은 기사는 로투웰을 지나쳐 대공에게로 짓쳐들어 갔다. 스릉, 검을 뽑는 소리가 뒤늦게서야 들려왔다. “위, 위험!” 하드레크가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러나, 그들이 공격한 존재는 베이르 드 기르였다. 크리아 최강의 검사이며, 서대륙 카슬 출 신 마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힘과 실력을 자랑하는 크 리아의 수호자. “호오, 내가 목표였던가?” 싱긋이 웃음 짓는 대공은 어딘가 즐거운 낯빛이었다. “그래. 원한다면...” 어느새 뽑힌 검에서 흰 빛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서릿발 같은 분노를 담은 대공의 검이 느릿하게 춤을 췄다. “죽여주지.” **** 은빛입니다. 마감열혈! .............; 가우님. 오늘만큼은 용량에서도 제가 뒤지지 않을 듯. 므흐흐흐흐. 내기는 제가 이긴 듯 하옵니다만? 가우님과의 내기는 간단합니다. 한 사람이 올리면, 담날 다른 쪽이 이어서 올리기. 핑퐁식이죠. ^^ 리플로 문의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글 남깁니다. 몇 번 말씀드렸고, 공지에도 올렸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으로 해드리는 답변이 될 듯 합니다. 창조신의 파업일기는 전 6권으로 완결된 글이며, 폭풍의 기사 는 같은 세계관을 사용하고는 있으나, 창조신의 파업일기와 내 용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별개의 독립된 글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제 능력부족으로 연중상태에 들어갔으며, 언젠 가는 이어 쓸 계획이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당분간은 힘들 듯 합니다. 여러분께 보여드릴 때는 완결을 마친 뒤, 연재를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글이고, 힘들 게 풀어나가다 보니, 제 안에서 딜레마가 생기는 바람에...=_=;; 써지지 않고 있답니다. (글이라는 게 시놉이 정해졌다고 해서 써지는 건 아니더군요.) 때문에... 지금 연재중인 게시판은 없답 니다. 폭풍의 기사는 언젠가, 완결된 상태로 찾아뵙겠습니다. 제 자신에게도 미결로 남은 글이라,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제 글을 기억해주신 점에 감사 드리며... 현재 연재중인 퍼펙트 메 이드와, 새롭게 연재하게 될 글들에 더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뵙기를 희망하며... 모두 건강한 가을 보내세요.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8 - 등장 “우그르트 움크님이, 움크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여관의 화재에 이어, 드래곤의 등장을 알리는 전령이 달려 들 어왔고, 채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뛰어 들어온 전령은 쌓인 피 로로 막 누웠던 카느를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황궁은 왈칵 뒤집혔다. “뭐라?” 카느의 귀가 번쩍 열렸다. “지, 지금 우그르트 우트트와 함께 황궁으로 들어오시고 계십 니다!” “도착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 않았는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받은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폭풍 이 일어났던 사막에서 황궁까지 오려면, 아무리 잘 달리는 말 로 갈아타고 밤낮으로 달려도 열흘은 더 달려야 하는 거리였 다. “그, 그, 그게!” 전령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카느는 몸을 완전히 일으키 고 앉았다. 카느의 손짓에 따라 시종들이 갈아입을 옷들을 분 주히 준비했다. 전령은 한 참을 더 말을 더듬고서야 카느가 원 하던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게, 드래곤을 타고 오셨습니다!” “뭐라?” 막 윗도리를 갈아입던 카느가 벌떡 일어섰다. 좌우에서 코트를 잡고 있던 하녀들이 내동댕이쳐졌다. 자신도 모르게 놀라 고개 를 들었던 전령이 다시 푹, 머리를 숙였다. 그의 코앞에 카느 의 구둣발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 지금 무어라 했는가!” 놀란 건 카느만이 아니었다. 소식은 황궁 곳곳으로 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훔쳐듣던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렸고, 하 녀들과 시종들의 입은 더 빠르게 소문을 날랐다. 모래 폭풍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드래곤을 타고 나타난 움크의 영웅담이 두 배로 튀겨지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움크님 만세에!” “아르신의 축복 만세!” 시민들이 몰려나왔다. 불구경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던 자리에 숨었던 자들까지 모조리 기어 나온 길가는 한 걸음도 앞으로 전진하기 힘들 정도로 꽉 메워졌다. 어디서 나왔는지, 길 가득 그를 환영하는 꽃과 물이 뿌려졌다. 뒤늦게 소식을 받고 달려 나온 기사단과 호위병들이 길을 만들 때 까지 움크와 일행들 은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맑은 하늘의 햇살이 발치에 선 명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잘 있었느냐.” 먼저 말문을 연 쪽은 움크였다. 가벼운 첫 인사 후, 움크와 우 트트는 서로 더 이상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에 무겁게 걸려 있었다. “형님은 어떠셨습니까?” 우트트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두 형제는 자신들을 찾아 묵 묵히 다가오고 있는 기사단들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카느께서는 건강 하시고?” “조금 편찮으셨었습니다만, 여전하십니다.” 기사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우트트는 순간, 오싹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휙, 고개를 돌려보 니, 움크의 턱이 악물려 있었다. 굵은 턱의 주름이 마치 타오 르는 불길처럼 꿈틀거렸다. 움크는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대 신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랬구나. 아우여.” 방금 전까지의 화기애애하던 그는 없었다. 움크의 구리 빛 근 육이 가늘게 떨었다. 꽉 움켜쥔 주먹은 당장이라도 우트트를 향해 날아올 것만 같았다. 우트트는 자신도 모르게 반 보 물러 섰다. 마른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움크의 각진 턱이 가늘게 경련했다. 그는 느릿하게 한 자 한 자를 씹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억해라. 난 사막의 전사라는 사실을.” 환호하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기사들을 향해 먼저 한 발을 딛으며 움크는 낮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건 너 역시도 달아날 수 없는 숙명이다.” **** “축제를 열어라!” 카느의 선언에 따라 황도의 온갖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 작했다. 전쟁의 칙칙한 예감에 눌려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분 위기가 한껏 살아났다. 창고가 열리고 술들이 꺼내졌다. 한동 안 열리지 않았던 무도회의 초대장이 사방으로 발송되었다. “프란을 축복하신 아르님께 경배를!” 아르의 신전에 커다란 흰 소와 재물들이 바쳐졌다. 신전의 앞 을 밝히는 화로에 커다란 불이 붙었다. 전사들이 술렁였다. 누 가 뭐라 해도 아르는 전쟁의 신이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만나 는 곳곳마다 모여 움크와 아르신에 대해 떠들었다. “이번 전쟁은 프란의 승리가 확실해!” “그럼! 폭풍의 가호만으로도 확실했었는데!” “드래곤이라니! 아르님의 성실한 봉족이 아니던가!” 움크가 드래곤을 타고 날아왔다는 소문은 어느 새, 모래 폭풍 속에서 전쟁의 신 아르를 만나 축복을 받은 움크가 드래곤의 충성을 받아냈다고까지 부풀어 올랐다. 그들은 움크가 드래곤 을 타고 전장의 선두에 나서서, 감히 프란을 모욕한 항구의 조 무래기들을 쓸어버릴 거라 환호했다. “정말?” 시큰둥한 목소리. 창문 밖으로 환호하며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바로보는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란은 창문을 닫았다. 그 녀의 등 뒤로 긴 흑발이 단정하게 묶여 있었다. 나지막히 한숨 을 내뿜는 란의 기운이 가늘게 떨렸다. “설마. 내가 미쳤다고 그 짓을?” 말을 받는 목소리도 퉁명스러웠다. 밖의 인간들이 즐거워 날뛰 는 것과 달리 그들의 심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칸의 황금빛 눈동자는 일그러진 채 펴질 줄 몰랐다. “인간들이 과장을 즐김은 알고 있었지만.” 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아침과 같은 유쾌함이 남아있지 않 았다. 듣지 않으려 해도 창문 밖에서 계속 떠들어대는 데 신경 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함부로 자신의 존재를 입에 올리 며, 누구에게 충성을 맹세했느니, 아니니 떠드는 자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계속 이 곳에 남아있을 생각인가?” 창가에 기대 꼼짝 않고 서 있는 란은 기묘한 공기를 품고 있 었다. 칸의 미간이 살짝 접혔다. 요 며칠 동안의 란은 무슨 생 각을 하는 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의외로 단순한 성정이라 생각하던 바를 그대로 들어내곤 하던 그녀였건만.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것도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당 겨졌다. “...클로네와 아이들이 깨어날 때 까지는 좀 어렵겠지.” 잠시 침묵을 지키던 란이 툭, 말을 던졌다. 그녀의 검은 눈동 자가 바닥없이 내려앉았다. 칸은 나지막히 숨을 내쉬었다. 순 간, 그녀가 덤벼들 듯 보였었다. “아아.” 움크와 론을 비롯한 일행들을 내려준 이후, 칸과 란은 아이들 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오랜 친구의 제자를 위해 본체를 들어 내고 발길질을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몰려드는 인간들의 호기 심과 공포어린 시선을 받아내는 데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끈적끈적한 이물질들이 비늘에 엉겨 붙는 것 같은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로웬이 수고하는 군.” “듣자 하니 노도라는 자네의 친구한테 내몰려 왔다고 하던 데.” 옆방에서는 로웬이 클로네와 가르암 백작을 돌보고 있었다. 론 이 그들을 따라와 숙소를 잡고 약을 구해왔다. 죽이려 시도했 던 인질들이지만 지금은 소중한 손님으로 변했다. 신병을 인도 받으며 몇몇 기사들이 황궁에서 파견 나와 경호를 시작했다. “아아.” 란은 길게 한숨을 내쉈다. 마음 같아서는 클로네의 옆을 지키 고 싶었지만, 그들이 있으면 로웬이 마음 놓고 치유에 전념할 수 없었다. 칸의 눈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그는 몸을 벌벌 떨었 다. “로웬이라는 놈도 사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경악과 공포, 그 이면에 감춰지지 않는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 이 늘 눈에 번들거렸다. 대신 따라 붙어 다니면서 치료해 줄 것도 아닌 이상 손을 델 수도 없으니. 칸에게 있어 로웬은 뜨 거운 감자 같은 존재였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란이 작게 키 득였다. 칸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쳇. 치유 능력은 정말 상상외로 쓸만하더군.” 그럭저럭 실력이 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은 그도 조 금 놀랐다. 로웬의 시약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클로네의 얼굴을 순식간에 진정시켰다. “다행이었지.” 클로네의 상태는 상상 외로 좋지 않았다. 가르암 백작이 몸으 로 덮듯이 감싸준 덕분에 얼굴 외의 다른 외상은 심하지 않았 지만,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폐와 내장이 심하게 상했다. 겉의 상처는 시약과 마법으로 쉽게 아물어갔지만, 안으로 입은 상처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로웬은 클로네가 죽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그게 란을 지금 이 자리에 잡아두고 있었다. 천수가 긴 아이니 걱정할 것 없다던 노도의 말을 믿었다고 하 더라도, 처음 불구덩이에서 그녀들을 발견했을 때, 심장이 철 렁 했던 기억은 아직도 섬뜩했다. 란은 벽에 기대 눈을 내리감 았다. 채 가라앉지 않고 묵혀두었던 살의가 스믈스믈 기어오를 것만 같았다. ‘안된다.’ 지금 난동을 피우면, 아이들이 위험했다. 란은 애써 생각을 돌 렸다. 행인지 불행인지 백작의 상처는 클로네만큼 심하지 않았 다. 백작은 온 몸을 던져 클로네를 감싸 안은 덕분에, 일찍 의 식을 잃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질식사 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 히 그 전에 구출되었다. 그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호흡을 일찍 멈췄기 때문에 가르암 백작의 내상은 심하지 않았다. 외상은 약으로 쉽게 치료가 가능했고, 외상이 어느 정도 아물자마자 백작은 의식을 되찾았다. 같은 내상이라 해도 로웬의 치료법은 부상자가 의식이 있는 편이 더 치료하기 쉬웠다. 덕택에 그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된 상태였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문 밖에서 가르암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란은 문을 열었다. 팔과 머리에 붕대를 감은 가르암 백작이 희고 창백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서 있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란님.” “그렇군요.” 가볍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인사였다. 란 역시 반가운 미소를 띄웠다. 이렇게 직접 만나기로는 그 날, 대공가의 응접실 이후 로는 처음이었다. ‘그 때는 날 죽이라고 했었었지. 아마?’ 피식, 란은 작게 웃었다.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파란만장하던 가.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 때의 그 일이 마치 백년 쯤 전의 일 같았다. “살려주신 데 감사를 먼저 드립니다.” 가르암 백작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 “크리아의 사신을 초대하란 말인가요?” 귀족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침부터 내내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충격이 밀어닥쳤다. 한참 축제 준비가 분주한 와 중에 받은 갑작스러운 호출령은 그들에게는 황당함의 연속이 었다. “아니요. 이미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오늘 저녁의 제 귀환 파 티에는 그들도 참석할 겁니다.” “그, 그런!” 단호하게 말을 맺는 움크의 대답에, 귀족들은 술렁였다. 움크 의 옆자리를 지키고 앉은 우트트의 표정이 똥 씹은 냥 일그러 졌다. 지금 그의 말은 지금까지 우트트가 실행해 왔던 모든 정 책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잠시 황궁을 비우셨기 때문에 현재의 흐름을 모르신다고 생 각해 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원로 귀족 하나가 가볍게 기침했다. “움크님이 그 날 황궁을 비우신 후, 크리아와의 관계는 급속 히 나빠졌습니다. 그들은 제국에 충분한 예의를 갖추지 않았 고, 저희가 보낸 사신을 푸대접했습니다.” 주름진 노안에는 분노가 일렁였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가?’ 움크는 시큰둥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며 열변을 토하던 원로 귀족의 얼굴이 잿빛으로 바랬다. “휴.” 움크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는 그가 더 궁금할 지경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들이 이토록 타국의 힘을 가볍게 경시하기만 하게 되었을까. “프란은 아직 신생제국입니다. 소국이지만 강한 힘과 역사를 지닌 크리아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죠. 따지고 본다 면, 그들이 보낸 사신을 일개 여관에 묵 하고 불을 지른 이 쪽 의 책임도 가볍지만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움크는 낮게 기침했다. 이들에게는 조금 더 강하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더 반발이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경험했으니, 분명 있을 터였다. “불을 지르다니요! 그건 사고였습니다!” “그걸 누가 믿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움크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귀족들의 눈 이 우트트로 향했다. 그러나 우트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 다. 화재는 분명한 실책이었다. 그리고 그 실책을 책망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건 재앙이었다. 힐끔 우트트를 노려본 움크가 말을 이었다. “사고라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알아보니, 그가 도착한 이후 수 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 고 있더군요. 엄연히 평화를 위해 보내진 사신을 그리 대접하 다니요. 누가 봐도 그건 실수였습니다.” 누구의 실수인지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움크의 분노가 정확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다. 차가 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는 계절이지 만 지금 더위를 느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움크의 사나운 눈 길이 향하는 곳마다 귀족들이 시선을 피했다. ‘빌어먹을!’ 이를 악문 우트트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귀족들의 술렁임이 작은 파문처럼 이어졌다. “실수라니요. 제국의 실수는 함부로 거론하는 것이 아닙니 다.” 어디나 노회한 인물은 하나 둘 있는 법이다. 조용히 움크의 말 을 경청하던 늙은 귀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그르 쿠칸님이시군요.” 카느와 함께 프란의 건국에 일조한 공신이며, 공작의 직위를 지닌 우그르 쿠칸은 우그르트의 신분을 지닌 움크나 우트트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움크는 자세를 조금 바로 했다.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만, 갑작스럽게 내려진 소집령 에 늙은이의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렇게 껴 폭풍의 용 자님에게 간섭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은 정중했지만 그의 눈빛은 매서웠다. “일이 흘러갈 때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늘 존재하는 법입니다. 우그르트 움크시여. 전쟁의 신이신 아 르님의 뜻이 움직였기에, 움크께서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셨습 니다만.” 몇몇 귀족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국가의 중요한 축제를 내팽개치신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음 을 먼저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쿠칸의 말에 담긴 의미들 은 가볍지 않았다. 움크의 사나운 눈빛을 바로 받으면서도 쿠 칸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한 참을 노려보던 움크의 눈가 가 먼저 일그러졌다. “움크님께서 아르님의 축복을 받으신 일은 마땅히 경하해야 만 하는 일입니다만, 지금 화재의 책임을 저희들에게 돌리시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시기, 우그르트로서의 책임을 팽개치고 황궁을 떠난 책임 역시.” 뜨끔, 움크의 가슴이 아렸다. 그의 말은 움크가 듣기에도 사막 의 이치에 맞았다. “피해서는 아니 되실 것입니다.” 쿠칸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늙은 몸을 곧게 펴갔다. 카느와 함께 사막을 질타하던 전사의 그림자가 그에게 서 피어나고 있었다. 움크는 갑자기 자신이 작아지는 듯한 느 낌을 받았다. 그건, 그만이 아니라 쿠칸을 늙은 노인으로만 보 고 있던 그 자리의 모든 귀족들이 받은 공통된 느낌이었다. “오늘은 움크님을 위한 축제입니다. 이미 움크님의 이름으로 초대를 하셨으니, 그 부분에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 할 수 없겠 죠.” 초대를 하지 않았다면 모르나, 이제 와서 초대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쿠칸의 노란 눈이 움크의 눈에 정면으로 꼿혔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듣고 싶습니다.” 쿠칸에게로 몰려있던 시선들이 모조리 움크에게로 쏠려갔다. 갑작스런 선언에 당황하고 있던 모든 귀족들이 알기 원했던 진짜 질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왜, 갑자기 크리아의 입장을 살피게 되신 것인지요. 그것도 피를 나눈 형제와 저희 모두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시면서 말 입니다.” 쿠칸의 목소리에는 꾸지람이 섞여 있었다. “어째서 그들을 초대하신 것입니까?” **** “나와라.” 철겅, 문이 열렸다. 경비병들의 손에 들린 횃불의 희미한 빛이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셀레라는 신경질 적으 로 눈을 비볐다. 조그만 철창으로 들던 해가 가라앉은 지 한참 지난 시각이었다. 막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던 셀레라가 짜증 스럽게 외쳤다. “흥! 열어 달랄 때는 없더니? 지금은 왜지?” “흥!” 경비병 하나가 험하게 콧방귀 꼈다. 짜증이 나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수시로 질러대는 날카로운 비명에, 욕설까지. 그들의 귀는 시달릴 데로 시달린 후였다. 나머지 경비병 하나가 까드 득 이를 갈았다. 고급 귀족인지 인질인지는 모르지만 명령만 아니었다면 고문을 가하던가 아니면 몰래 죽여 버렸을지도 모 른다. “영원히 나가기 싫다면 할 수 없지. 황족의 무도회를 감히 거 절한 것도 나름대로의 중죄이니까.” “무, 무도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셀레라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 다. 흐릿한 불빛에서도 그녀의 헤 벌어진 입이 선명하게 보였 다. 경비병의 인상이 조금 더 심하게 구겨졌다. 잠시 몽롱한 얼굴로 주저앉아있던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비 틀린 붉은 입가에 잔 경련이 일고 있었다. “무도회가 열린단 말이냐?” “죽지 않고 초대받은 것을 영광으로 여겨라.” 툭, 말을 뱉고 두 경비병은 몸을 돌렸다. 그들 뒤로 서 있던 두 명의 하녀가 옷상자와 화장품 상자를 들고 셀레라의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갈아입고 나오도록. 하녀들이 도와줄 것이다.” “......................” 두 사람이 들어오며, 램프에 불을 붙였다. 감방 안은 순식간에 밝은 빛으로 감싸였다. 셀레라의 입이 점점 더 크게 벌어 졌 다. 하녀들이 연 옷상자 속의 드레스는 얼핏 봐도 최고급의 비 단으로 만든 화려한 옷이었다. 맞춘 듯 어울리는 목걸이와, 부 채까지. 세심하게 준비된 물건들이 그녀의 눈에 박혀 떨어지지 가 않았다. 그녀의 입가가 서서히 찢어지듯 휘어져갔다. “준비하시겠습니까?” 움직이지 않고 굳어진 그녀에게 하녀 한 사람이 조심스레 말 문을 열었다. 느릿하게 셀레라의 고개가 움직였다. “후, 후후후후후후후후!”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하녀의 몸 이 흠칫 떨렸다. 두 하녀의 눈이 짧은 순간 부딪혔다. ‘미, 미쳤다는 말은 없었는데?’ 아르카이아에서 일을 했었던 하녀라면 누구든 그녀의 악명을 알고 있었다. 딸랑 하나 있던 하녀를 죽어라 부려먹고,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관심 같지 않는 냉혈한 주인. 함께 유학 왔 던 클로네와 클레이브와는 같은 국가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속이 잔혹했던 크리아의 귀족. 미모를 위해 하 녀들의 피를 빼 목욕을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녀에 대한 하녀들의 평판은 최악이었다. “역시, 역시 그랬어.” 셀레라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조금씩 자라났다. 빈 공간 과, 밖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울린 그녀의 목소리가 기괴한 공 명을 내며 웅웅웅 울렸다. 두 하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 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환희와 광 기로 뒤범벅이 된 그녀의 눈은 옛날이야기 속의 흡혈귀를 연 상시켰다. “후, 후후후후후후후.” 하녀들이 슬그머니 셀레라의 몸에서 손을 떼고 물러섰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살아남기 힘들 듯한 공포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 때, 셀레라의 눈이 사납게 빛을 발했다. 셀레라의 명령이 태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지금 무엇하느냐! 어딜 감히 노닥여! 당장 옷을 준비하고 무 도회 준비를 하지 못할까! 아니, 그 전에 목욕부터 준비해야겠 지!” 벌떡, 몸을 일으키고 선 셀레라는 방금 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도도하게 고개를 쳐들고, 허리에 양 손을 얹은 그녀는 턱 끝으 로 하녀들을 지적했다. “너! 당장 나가서 목욕물을 준비하도록 시켜라.” “모, 목욕!” 지적당한 하녀의 입에서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너!” “아, 네, 네!” 화들짝 놀라는 하녀를 꽤 만족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보며 셀레 라는 미소를 지었다. 하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당장 내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하도록. 아, 그리고. 너!” 감방 문을 나서던 하녀가 깜짝 놀라며 멈춰섰다. “목욕준비를 하러 가는 김에, 향유도 구해오도록. 이 몸이 향 유도 없이 목욕을 할 수는 없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오만하게 방을 둘러보는 셀레라는 하녀 들이 들어오던 전설의 악덕주인이었다. “아아, 이 구질구질한 곳도 이제는 안녕이겠군. 하긴, 나 정도 의 재능과 가문을 지닌 여인이 이런 곳에 오래 머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당당함과, 예상 밖의 명령들에 어리둥절한 하 녀들을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셀레라는 한껏 우아 한 동작으로 화장대로 살며시 앉았다. “오호호호! 드디어 내 진가를 알아주는 구나! 센 이 빌어먹을 녀석! 내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겠다!” 셀레라의 부활이었다. “나 외에 감히 누가 카느린이 될 수 있단 말이냐!” 감방을 빠져나가며 하녀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쉈다. 카느 린이라니! 프란의 쟁쟁한 귀족가의 여식들도 줄을 서 황궁을 서 너번은 두를 만큼 순서가 길고 길건만 카느린이라니! ‘역시 괴롭힘을 당해 죽은 하녀들의 저주로 미쳐버린 거야.’ “오호호호호호호홋!” 날카로운 고음의 웃음소리가 온 감옥으로 메아리치며 펴져나 갔다. **** 은빛입니다. 마감열혈2! .............;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뵙기를 희망하며... 모두 건강한 가을 보내세요.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39 - 등장 “믿을 수가 있습니까?” “글쎄요. 일단 우트트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 저희로서는 뭐라 말을 하기가 매우 어렵군요.” 일찌감치 자리에 나타난 귀족들의 안색은 애매모호했다. 움크 가 황궁을 박차고 나간 후, 우트트가 실세를 장악했다. 그리고 국정은 그의 뜻데로 흘러갔다. 카느도 그의 그런 독주를 승인 했고, 다음대의 카느로 우트트가 책봉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듯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움크의 소식이 전해져 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가 살아서 신의 축복까지 받았다는 소 문이 퍼져왔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귀족들의 흔들림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런 소문 정도는 가볍게 누를 수 있었다. 실례 로 지난 수백년동안 신의 축복을 받았음을 자청했던 자들 중 에 신탁으로 인정받은 자가 하나도 없지 않았던가. 움크가 돌 아와도 신탁을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그건 그냥 귀환소식에 딸려 들어온 일종의 이벤트로 끝나리라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것도 황도에 있던 사람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드래곤이, 대낮에 나타나 발자 국까지 찍었다. 그리고 움크가 다른 곳도 아닌 드래곤의 등에 서 뛰어 내렸다. “휴, 이거. 다음 대의 카느가 어떤 분이 될지 정말로 예측하 기가 힘들어 졌군요.” 사막의 관습대로라면 움크가 다음 대의 카느였다. 아니, 신성 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트트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쌓아 놓은 실무력 역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우트트님이 아니시면, 일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인데,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걱정이군요. 우그르트님의 말인데 안 믿을 수도 없고, 또 그 렇다고 덥석 믿기에는 너무…” “네. 좀 어렵습니다.” 귀족들은 문 쪽으로 힐끔 힐끔 시선을 보내며 연거푸 한숨을 내쉈다. 초대장을 보냈으니 올 지도 모른다는 무책임한 말만 듣고 이렇게 기다리는 모습이 영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긴 올까요?” “글쎄요. 뭐라고 단언하기가 힘들군요. 움크님의 말씀대로라 면, 거절한다고 해도 우리가 뭐라고 입장을 내세울 수 있는 상 황이 아닌 존재들인지라.” 문제는 또 복잡해진다. 귀족들의 미간에 주름살이 하나씩 더 접혔다. 그 때였다. 문 바깥쪽을 힐끔거리며 연신 오락가락하 던 하위 귀족들과 시종들의 발걸음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작 은 속삭임과 소곤거림이 물결처럼 문가로부터 펴져 나왔다. “왔데요, 왔데!” 커다란 웃음소리들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귀족들은 숨을 죽 였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축제와 무도회에서 카느를 맞아들 일 때보다도 무도회장은 더 긴장되어 있었다. “크리아에서 오신 가르암 백작님과 그 일행분이 도착하셨습 니다!” 시종장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펴졌다. 홀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려갔다. 커튼이 열리며 한쪽 팔에 흰 붕대를 감아 몸에 고정시킨 반백의 남자 귀족이 진한 감색 의 드레스를 심플하게 차려입은 여인과 함께 등장하고 있었다. “저 분들인가요?” “그래요. 저 분이 가르암 백작이로군요. 그럼 저 여자 분 이?” “거, 겉보기에는 도저히…” 작은 소곤거림이 이어졌다. 프란의 대부분의 귀족들에게 가르 암 백작은 눈에 익은 인물이었다. 비록 아직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초최한 모습이었지만, 그 특유의 위엄과 여유가 그의 발 걸음 한 보 한 보에서 베어 나오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홀의 입구를 지나, 중앙으로 걸어 나오며 백작이 몇몇 안면 있 는 귀족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몇몇은 반갑게 인사를 받았고, 몇몇은 급히 인사만 받은 뒤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고개를 돌린 자들의 귀밑머리가 붉게 달아올랐다. 백 작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시선들이 몰려 있었다. 그 시선들이 반갑지 않은 지, 란은 살짝 인상을 구겼다. “휴.” 가르암 백작을 방패삼아 인사를 건네 오는 귀족들을 싸그리 무시하며 란은 연달아 한숨을 내쉈다. 온 몸을 휘감는 호기심 어린 시선에 전신이 다 근질거릴 지경이었다. 란은 폭발하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작게 속삭이며 떠들던 것도 한 순간이었다. ‘신이 났군.’ 이제는 기세 좋게 외쳐가며 란에 대한 궁금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귀족들은 자칫 잘못하면 몸이라도 부딪혀올 기세였 다. “말을 걸어보고 싶어도 이거 참.” “먼저 걸어보시면 어떨까요?” “이거, 참. 신분이 모호하니 먼저 걸기도, 걸 때 까지 기다리 기도 애매하군요.” 서로 옆구리를 찌르는 귀족들의 속삭임은 란의 귀로도 고스란 히 들려오고 있었다. 간단히 저런 내용들뿐이라면 이렇게까지 골치 아프지는 않으리라. 머리카락이 정말로 검은 색이네, 허 리 아래까지 오는 머리를 어째서 틀어 올리지 않았을까, 장신 구를 단다면 뭐가 어울리겠느니, 어째서 무도회에 저렇게 수수 하게 나타난 걸까라느니. 별의 별 잡담들이 다 흘러나오고 있 었다. “그, 그런데….” 그러던 와중이었다. 유달리 튀는 고음의 목소리가 홀의 중앙에 서 튀어나왔다. 한 참 동안 란의 이모저모에 대해 따져가며 대 화를 주도해 나가던 귀부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어머나?” 사람들의 눈이 그 부인에게로 쏠렸다. 부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손가락이 정확히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들의 안색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갔다. “이, 이것 봐요. 세상에, 무례하게.” “하, 하지만, 저걸 보시라고요! 저 옷은!” 눈에 익은 진한 감청색 원피스. 좋은 감으로 만들어져 무도회 장에서도 손색이 없기는 했지만, 한 동안 보다보니 그 모양새 가 너무나도 눈에 익었다. 커다랗게 치뜨인 눈동자에 불신이 점점 더 강하게 자리잡아갔다. 몇몇 눈치 빠른 귀부인들의 입 이 떡 벌어졌다. “서, 설마! 저, 저, 저 옷은!” 또 다른 귀부인이 부채를 번쩍 들어 란을 가르쳤다. “하, 하, 하녀복 아닌가요!”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랬다. 비록 흰 레이스 가 나풀거리는 앞치마는 걸치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한 하녀복 의 디자인이었다. “전설의 로드라던 류이네리아 칸 란이라는 사람이 겨우 하녀 따위란 말인가요?” 외마디 경악에는 경멸이 가득 차 있었다. **** “괜찮을까 몰라. 그 똥고집.” “아아, 모르지. 나름대로의 각오라고 하니까.” “뭐, 내 성질 같아서도 무도회고 뭐고 싹 쓸어버리고 싶은 지 경이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만서도…” 매고 가겠다던 흰 에이프런을 회수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리라. 콧등을 매만지며 하르크는 연신 투덜거렸다. “정말 남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다니까.” 키득, 칸이 웃음을 삼켰다. 누군가를 욕하고 싶을 때 장단을 맞춰줄 상대가 있다는 건 무척 재미난 일이다. 그것도 함께 나 눌 수 있는 공통된 경험들을 지니고 있는 상대와 함께 씹을 수 있다는 건, 홀로 숲에서만 지냈던 칸에게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그건 그렇고. 고생이 많았었네. 정말. 친구인지 뭔지 하나 잘 못 둔 턱에.” “휴, 사실이지.” 깨어나자마자 몸을 추릴 새도 없이 이래저래 부림당하는 하르 크에게 칸이 동정의 눈빛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공통의 적 을 둔 자들의 심정이라고 할까. 칸과 하르크는 금세 가까워졌 다. “하녀 노릇은 이제 하기 싫다고 하더니만. 쳇.” 그 날 이후로 란은 사실상 하녀노릇을 때려 쳤다. 아니, 명목 상의 클레이브의 하녀 자리는 지키고 있었지만, 그대로의 신분 으로 움직이기를 완벽히 포기했다. 이번 무도회의 ‘로드’에 게로 보내진 초대장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그 반증이었다. “말 그대로의 로드로 간다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를 수 없 을 테니까 그런 거겠지.” 이 일이 아니더라도 단단히 열이 받아있는 상태였다. 활짝 열 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옆의 침대에 누워있 던 클레이브와 소년들이 작게 꿈틀거렸다. 하르크는 구겨진 이 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아이들을 덮어주었다. 그도 일어난 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들은 하루나절은 더 있 어야 의식을 되찾으리라. 걱정하는 하르크에게 그렇게 말하고 로웬은 풀썩 쓰러져 잠들었다. “화 많이 났었지?”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던 칸이 입을 열었다. “아아. 지금껏 따라다니면서 폭발하는 지랄도 많이 봤지만 이 번처럼 진지하게 화내는 건 처음 봤어.” 하르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는 란은 한번 펑! 폭발하고 나면 뒤끝이 없는 성격이었다. 무언가를 마음에 담아두는 스타 일도 아니었고,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용서하고 끝을 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란이었기에, 하르크는 그 구박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서 붙어있을 수 있었다. 그런 란이 조금 변했다. 아니 낯설 만큼 변했다. 어디가 얼만큼 변한 건지는 몰랐다. 그러나…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 같은 느낌이랄까. “휴, 가서 엉뚱한 짓이나 안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칸의 눈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움크가 보내 준 수 많은 드레스 들을 외면한 채, 하녀복이나 하나 만들어내라고 하며 지금 자 신이 왜 이 서대륙에서 고생을 해야 하는지 라도 기억하지 않 으면 신경이 끊어질 것 같다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피티아의 재림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었지만… 지 금 그 말을 기억하고나 있을 런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클레이브의 곁을 지키고 앉아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아이들만큼은 살려야 했다. 그래야 폭주하는 그녀를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란이 날뛰면 막을 수 있을라나? 할 수 있겠지? 그… 드래곤 이니까.” 하르크는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이 칸의 맑은 황 금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칸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글쎄. 사막에서 한 판 붙어보기 전이었다면, ‘어쩌면 할 수 있을 지고 모른다.’라고 대답했겠지만….” 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포 기한 듯 고개를 돌린 하르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쉈다. “휴, 예의고 뭐고, 차라리 에이프런이라도 한 겹 더 매줄 껄 그랬나?” “글세말이야.” 칸의 눈동자에도 희미한 후회가 스치고 지나갔다. **** “우그르트께서 드십니다!” 때마침 움크와 우트트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소란은 한참 더 지속되었을 지도 모른다. 귀부인들의 경악성에 이어 귀족들의 인상이 험하게 구겨지기 시작했을 무렵, 시종장이 나팔을 불었 다. 우그르트 움크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홀로 들어섰다. 그의 반보 뒤를 우트트가 조용히 따랐다. 그들이 홀 끝에 있는 단상 에 도착할 무렵 시종장의 나팔이 다시 한번 울렸고, 카느가 그 노쇠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카느의 모습과, 그의 입가에 걸린 환한 미소에 귀족들은 감격하며 허리를 숙 였다. “눈빛만은 여전하군.” 란은 작게 중얼거렸다. 헉, 작은 탄성소리가 주변에서 터져 나 왔다. 허리는커녕, 고개도 숙이지 않은 그녀에게 짧은 비난의 눈초리가 몰려들었다. 란은 고개를 조금 더 치켜들고 눈을 내 리깔았다. 문득 서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카느의 눈이 란 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다시 보게 될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만.” 카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느릿한 그의 경칭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귀족들이 눈가를 찌푸렸다. 아직 공개적으로 로드라도 증 명된 존재도 아니었거늘. 황궁의 무도회에 참석하면서 정장도 갖추지 않은 무례를 저지른 자에게 카느가 예를 표현한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대가 만나길 원했던 건, 내가 아니라 내 목이었겠지.” 피식, 란이 웃었다. 카느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카느의 앞쪽에 몸을 숙인 귀족들의 등이 부르르 떨렸다. 칸의 뒤편에 수호하 듯 서 있던 자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검에 닿았다. 란은 가볍 게 고개를 저었다. “경거망동 하지 말아라.” 카느가 낮게 꾸짖었다. 기사들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는 잠시 란을 응시했다. “하녀가 아닌 무후를 초대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표정들을 보아하니 실망들을 많이 한 듯 하더군.” 여전한 반말. 란의 목소리는 어딘가 도발하는 것처럼 들렸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가르암 백작이 살짝 란의 옷소매 를 잡아당겼다. 힐끔 그의 뒤통수로 눈을 돌린 란이 가볍게 한 숨을 내쉬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하튼, 건강한 모습은 기쁘군요. 아드님의 무사한 귀환도 축하드립니다.” 빠드득, 이 가는 소리는 흘러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무도회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카느가 그들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 내려앉았던 무도회장 의 싸늘한 냉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카느가 자리에 앉고, 그 의 대변인이 오늘 무도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리고 움크가 일어섰다. “저를 이끌어주신 전쟁의 신 아르님과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악기의 연주가 시작되고, 흥겨운 음악이 회장을 가득 매웠다. 움크가 먼저 경쾌한 걸음걸이로 내려와 앞쪽에 서 있던 어느 귀족가의 여식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를 시작으로 쌍쌍이 춤을 추기 시작하며 회장은 금세 축제의 분위기로 물들었다. 시종들 이 바쁘게 술과 간식을 날랐고, 곳곳에서 아름답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멋을 뽐냈다. “폭풍의 용자께서 귀환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만세!” 한 바퀴 춤을 마친 움크에게 귀족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우트트는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그런 귀족들의 모습을 씁쓸 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술이 쓰군.” “너무 심려하실 건 없습니다.” “아아.” 센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둘 사이에 잠시 서먹한 기류가 흘렀 다. 우트트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흘러나갔다. “그래. 일시적인 현상이지. 아무리 사막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정치와 통치는 현실이다. 형님에게 정치는 무리야.” 귀족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본다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충분히 휩쓸릴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귀 족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자신 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지금 움크에게 붙어 떨어질 줄 모 르는 자들은 이전부터 움크의 줄에 서 있었던 골수 귀족들 내 지는 어디에도 낄 힘이 없는 하위 귀족들이었다. 우트트에게 포섭되었던 자들은 아직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중립적인 입 장을 고수하던 자들 역시 비슷했다. 입장 때문에 다가가 움크 에게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그들은 금새 자신들의 자리로 돌 아갔다. 그런 자들이 중요한 자들이었다. “아직 한 고비는 남았지만, 조금 전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그 다지 움크님에게도 유리하게 돌아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 움크의 이름으로 초대된 란은 카느와 프란에 대한 분노와 적 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로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센마저도 한 순간 분노했을 정도로 란의 태 도는 무례했다. 한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퍼져나간 지금도 란 이나 가르암 백작에게 다가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귀족들이 지금 그녀를 어떻게 보고 있는 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전설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요.” 까득, 센의 주먹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아직 아무 것도 발표 되지 않았다. 아직 다음대의 카느는 정해지지 않았다. 단지 이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조금 흔들린 것뿐이다. 센의 독기 찬 눈동자가 란에게로 향했다. “헷깔리는군.” 조용히 잔을 비우던 란이 불쑥 말했다. “네?” 허탈한 얼굴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가르암 백작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잘 풀릴 듯 했더니만, 란이 카느에게 직접적으로 개긴 것이 문제였다. 가르암 백작은 길고 긴 한숨을 내쉈다. 축제 분위기를 타고 몇몇 귀족들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아무도 들은 척 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꼴불견이다. 그래서 아주 포기하고 란 옆을 지키며 간식을 축 내던 중이었다. “저 눈빛에 칼들이 달려있다면, 난 지금쯤 꽤 바쁘게 움직였 어야 했을 꺼야.” 자신을 노려보는 귀족들을 향해 턱짓으로 가리키며 란이 시큰 둥히 말했다. 란에게로 몰려오던 살기가 한 순간에 두 배는 더 강해졌다. “아, 아. 란님. 화가 많이 나 계셨던 건 이해하지만, 지금은 좋은 자리에 초대된 손님입니다. 저희는.” “알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자제하고 있잖아.” 좀 전부터 그녀의 눈길은 센과 우트트의 뒤통수를 훑고 있었 다. 직접적으로 죽이겠다고 따라왔던 움크는 용서할 수 있어 도, 뒤에서 흉계를 꾸미고 오아시스에 독을 푼 자들은 넘길 수 가 없었다. 클레이브는 그 때문에 정말로 죽을 뻔 했다. 게다 가 저들은 클로네마저. ‘죽이려 들었었지.’ 그들을 둘러싼 주변에서 작게 키득이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부채로 입가를 가린 귀족들의 가는 눈빛이 그들을 맴돌았다. 가르암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주 노골적으로 비아냥까지 보 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움크나 카느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실 이 더 클 듯 했다. “뭐, 갇혀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던 때보다는 낫군요. 그래 도.” “그런 셈인가?” 말하는 중간 중간 상처가 욱신거리는지 백작은 인상을 일그러 트렸다. 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그가 기대기 쉽도록 창가 자리를 비켰다. 백작이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창틀에 몸을 기 댔다. “아직 일어나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 “로웬님이 난리난리 치시긴 했습니다만, 초대장을 받고 누워 있을 수 가 있어야죠.” “휴, 다쳤다는 사실을 뻔히 알았을 텐데, 하필 오늘 무도회의 초대장을 보낸 심보는 뭔지.” “아마 생각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분이 라고들 하더군요.” “맞아.” “말들을 들어보니, 다들 실망들이라도 한 모양이더군요. 란님 께 상당히 기대들을 하고 모인듯 싶습니다만.” “그럼 내가, 이런 자리에 검을 차고 나타나 줄기줄기 검광이 라도 흩뿌려 줄 거라고 생각했나?” 란의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그도 나쁘지 않죠.” “자네도 성격을 버렸군.” “입장 바꿔서 당해 보십시오. 이가 안갈리나. 게다가 오기 전 에 노도님께도 좀 당하던 차라.” “후후후후후.” 친구의 이름이 나오자 란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냉랭히 굳 어있던 눈빛이 조금 풀리며 란은 빈 잔을 내려놓았다. 가르암 백작의 입장을 전혀 모르는 것도,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 편이 클레이브에게 조금 더 이익이 될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 그건 그렇지. 뭐, 움크가 온다면 나도 화내지는 않겠 어. 그는 여우 천 마리는 생으로 삼킨 것 같은 늙은 호랑이가 아니니까.” 란이 자세를 고쳤다. 백작의 눈에 잠시 의문이 스쳐갔다. 란은 빙긋이 웃었다. 이런 자리가 질색인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 그 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자는 어찌되었건 어린 클레이브를 지 켜주었던 자이며 동시에 사막의 그 고생을 함께 나누었던 자 였으니까. “란님. 이렇게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멀찍이서 움크가 다가오며 크게 외쳤다. 정말로 반가운 듯 그 는 활짝 웃고 있었다. 작은 소곤거림이 딱 멎었다. 순식간에 귀족들이 갈라지며 널따란 길이 생겼다. 그 중앙을 움크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걸어왔다. “초대해줘서 고맙군.” “란님이 아니면 누굴 초대하겠습니까.” 습관적인 반말과, 습관적인 존칭에 또 한번 귀족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피어났다. 움크가 반갑게 란의 앞에 멈춰섰다. 란이 여자만 아니었다면 끌어안고 난리라도 칠 듯 한 분위기. 싸한 질시의 시선들이 움크의 뒤편에서 피어났다. 란은 길게 이어져 나오는 한숨을 꾹꾹 눌러 참아야 했다. 싱긋, 움크가 짓궂게 웃었다. “이 분이 폭풍 속에서 제 생명을 구해주신 분인 동시에, 전설 의 주인이신 분이십니다.” 그가 그의 뒤편에 서 있던 희끗희끗한 노인에게 란을 소개했 다. 란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프란의 우그르 쿠칸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녀가 가장 질색하던 여우를 삼킨 늙은 사자의 눈을 하 고 있었다. ‘이거, 카느와 동급이겠는걸?’ 멀지 않은 단상 위에서 카느가 몸을 기울이고 그들을 바라보 고 있었다. 란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황궁 앞뜰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조용히 환영받기는 텄군.’ **** 은빛입니다. 마감열혈.........크르릉 .............; 가우님 더블 스트라이크. 저도 날리겠습니다. 흥~!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뵙기를 희망하며... 모두 건강한 가을 보내세요.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40 - 금아와 대공 그가 ‘진짜 대공’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매끈한 검을 타고 나온 흰 빛의 검이 찔러오는 어두운 검들을 튕겨내고 위압적인 폭발을 일으킨 순간, 병사들 의 오금은 풀렸다. “히, 히에에에에엑!” 대공의 얼굴을 모르는 자라도,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빛의 기둥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이 야기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꽤 하는군.” 금아의 눈에 광채가 돌았다. 보통의 기사들이라면 검을 놓치거 나 부러트리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 풋내기다.” 금아의 얼굴에 노골적인 경멸이 떠올랐다. 표정 없는 검은 기 사들이 창을 내던지고 검을 뽑아들었다. 그들의 검신을 타고 거무튀튀한 날이 세워졌다. 금아는 입을 다물었다. 경멸의 표 정 위에 진한 살의가 들어났다. “……………….”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잘 길이 든 사냥개처럼 그들은 조용히 금 아를 감싸도 맴돌기 시작했다. 금아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접 혔다. 검은 기운이 한 가락씩 뿜어져 나올 때 마다 참을 수 없 는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쳇!” 하노베이 백작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대공인지 아닌 지 병사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이야기 속에나 어울릴 듯한 압도적인 힘이다. ‘오히려 짝만 맞춰 준 꼴인가?’ 하노베이 백작의 눈이 힐끔 뒤를 향했다. 죽을 때 까지 싸우라 고 명령을 내려 두었으니 저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잘 하면 달아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피땀 흘려 길렀던 병사 들이 아깝기는 했지만, 목숨과 복사본이 있다면 저들 정도는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따각, 백작의 말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제 1 기사단은 대공저하의 뒤를 받치고, 제 2기사단은 후방 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운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를 주시하고 있 던 하드레크는 하노베이 백작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병사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이도록.” 그의 명령에 따라 제 2 기사단의 기사들이 차분히 움직였다. 성문 앞쪽으로 서 있는 백작의 병사들의 옆을 돌아 그들은 조 용히 움직였다. 대공가 다섯 기사들의 일방적인 전투에 눈을 빼앗긴 병사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 치 산책이라도 하듯 하노베이 백작에게로 다가왔다. 스물다섯 쌍의 살의 어린 시선이 한 몸에 꽂혀왔다. “젠장맞을!” 아찔한 절망감이 그를 덮쳐왔다. 어린 백작은 울쌍을 지었다. 힐끔 마주친 하드레크의 눈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선명했다. 진땀과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은 옷이 몸에 감겼다. 갑옷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무겁게 그를 짓눌러왔다. 그가 도 움을 청하듯 검은 기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들이 자신 의 뒤를 막아준다면! -콰앙!-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폭발음에 휩쓸려 비산하는 붉 은 핏덩이였다. “악마에게 혼을 판 자들에게 자비는 없다!” 거친 노호성과 함께 금아의 손에 들린 검이 커다란 원을 그렸 다. 믿고 믿었던 다섯 기사들은 채 몇 분도 버텨보지 못하고 타고 있던 말 채로 날아가 성벽에 처박혔다. “크헉!” 짧은 외마디 비명이 그들이 내뱉은 말의 전부였다. 싸늘한 냉 기가 금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의 눈이 하노베이 백 작을 향해 꽂혔다. 후들, 몸을 떠는 하노베이 백작이 순식간에 몸을 돌려 말에 채찍질했다. 그의 뒤편에 서 있던 병사들이 짓 밟히며 구슬픈 비명을 질러댔다. “도, 도망간다! 백작이 달아난다!” 병사들의 외침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으로 밀려나왔던 병사들 의 안색이 헬슥해졌다.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젊은 기사가 진짜 대공이라는 생각과 함께 설마 설마하고 피어오르던 의심 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웅성웅성거림이 피어나며 어쩔 줄 모르 는 병사들의 눈동자가 아직 살아남아있는 기사들에게로 향했 다. 그러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제 2 기사단이 하노베이 백작을 따라 추격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은 멍한 얼굴로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자. 어찌 할 텐가? 너희들은?” 금아의 눈이 남아있는 기사들에게로 향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자들마다 고개를 푹푹 숙여갔다. 그러나 아직 모든 자들의 기 가 꺽인 건 아니었다. “거, 거, 거짓말이다!” 뾰족한 외침소리에 금아의 눈썹이 꿈틀했다. “거짓말! 악마라니!” 검은 갑옷의 기사들 중 하나와 얼굴이 판에 박힌 듯 닮은 기 사가 금아에게로 손가락을 들며 비명 섞인 고함을 질렀다. 얼 어붙은 듯 전투를 바라보던 몇몇이 정신이 든 듯, 분개한 얼굴 로 금아를 향해 달려왔다. “우리는, 우리 형님은 악마에게 혼을 판 적이 없다!” 금아의 몸이 느릿하게 회전했다. 비정할 때는 철저히 비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너희들은 신의 축복이라도 받아서 반역이라는 짓거리 를 벌렸단 말이냐!” -콰앙!- 검에서 뿜어져 나온 흰 빛이 폭사된 자리에 굉음과 함께 커다 란 구덩이가 패였다. 비산하는 돌파편들이 달려오던 기사를 향 해 기세 좋게 날았다. 탕탕, 몇 개의 돌덩이가 갑옷을 명중했 다. “크아아악!”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맞은 자리를 파고 들어왔다. 그 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고삐를 거세게 잡아당겼다. -히, 히이이이이잉!- 굉음에 놀라고, 스치고 지나간 파편에 다시 한번 놀랐던 말은 정신없이 앞발을 치켜들며 몸부림쳤다. 기사는 정신없이 말의 갈기를 붙들었다. 온 몸을 갑옷으로 둘러싼 지금, 날뛰는 말에 서 떨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다. -챙!- 말이 쓰러질 듯 몸부림쳤다. 손에서 떨어져나간 랜스가 바닥을 뒹굴렀다. 기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감히 검을 뽑아들지는 못했다. 그의 시선이 눈앞의 흙무더기로 향했 다. 그리고 그 앞에 산산히 조각난 동료들의 시신에 꽂혔다. “크, 흐흐흑!” 간신히 진정된 말이 거칠게 투레질했다. 입이 찢어지도록 고삐 를 잡아당긴 주인이 원망스러운 듯 앞발을 따각거렸지만, 감히 다시 앞을 향해 달리지 못했다. 기사의 손에 거머잡힌 목의 갈 기를 타고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오지 않을 겐가?” 감정 한 조각 실리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 금아의 눈이 흔들림 없이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 “크, 크흑!” 덜컹, 심장이 떨어질 듯 죄여왔다. 복수심에 눈이 뒤집히는 것 도 한 순간이다. 불꽃같은 분노가 다 타버리면 그 남은 잿더미 를 장악하는 것은 사늘히 식은 죽음과 공포뿐이다. -우우우우우웅- 길게 광채를 뿜어내는 금아의 검이 낮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창백한 기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 낮은 진동이 마 치 장송곡처럼 들려왔다. 두 손이 떨려왔다. 온 몸이 떨려왔다. 어질어질 머리가 흔들리며, 뉘울뉘울 속이 요동쳤다. 마치 처 음으로 말을 탔을 때처럼 온통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그의 앞 에 패인 구덩이가 마치 자신의 무덤처럼 보였다. 더 이상 전진 할 수가 없었다. 털석, 쓰러지듯 그의 몸이 말에서 떨어졌다. “크, 크흐으으으윽!” 꽉 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멈추지 않는 몸의 떨림에 따라, 갑옷이 쉬지 않고 찰랑찰랑 울어댔다. “진정한 주인을 고르는 것도 기사의 책임이다.” 차가운 눈길로 기사를 흝으며 금아는 냉랭이 말을 이었다. 금 아의 손에 들린 검에서 누가 봐도 뚜렷한 검기가 길게 자라났 다. 기사의 시선이 검에 들러붙었다. 떡 벌어진 입에서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지금 다시 한번 묻겠다! 너희는 반역자인가?” “……………”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커다랗게 열린 동공에는 금아 의 검이 가득 차 있었다.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 다. 혼자 살겠다고 달아났던 하노베이 백작이 달려갔던 기사들 에 의해 붙잡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저 모습이 반역 자를 치기 위해 왕성까지 들어가겠다던 자의 모습이었단 말인 가! “저, 정말로!” 기사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겁은 먹었을 지언정, 아직 전투를 포기하지 않고 있던 몇몇 어린 기사들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내렸다. 기사들의 손에서 무기가 떨어지며, 병사들에게 로 전염되듯 퍼져갔다. “저, 저희는!” “반역자가 아니라면, 폐하의 충성스런 군대겠지.” 말을 잇지 못하고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병사들의 말을 가로막 으며 금아는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쩌렁이는 목소리가 미몽을 떨쳐내듯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묻겠다. 너희는 반역자인가? 아니면 폐하의 충성스러운 병사 인가?” “저, 저희는!” 털석, 무기를 놓은 자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 말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누군가가 외쳤다. “저, 저희는 국왕폐하의 병사입니다!” 술렁, 죽음처럼 가라앉았던 병사들의 기세가 변했다. “저, 저희는 국왕폐하의 충성스러운 병사입니다!”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 작은 목소리를 믿으라는 말인가? 말하라! 진심인가?” “저, 저, 저희는 국왕폐하의 충성스러운 병사입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는 자도, 용병이라는 명목으로 빼려는 자도 없었다. 병사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자라났다. “저희는 국왕폐하의 충성스러운 병사입니다!” 금아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 가 땅을 울리고 성벽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자라났을 때, “좋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금아가 검을 꽂아 넣었다. “이제 그 사실을 증명하도록.” 크지는 않았지만 마나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병사 하나하나의 귓가에 선명히 닿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국왕 폐하 만세!” 병사들의 함성이 거세게 이어졌다. 금아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의 뒤를 따라 근위대의 기사들이 남겨진 병사들의 빈 지휘 관 자리를 찾아 그들을 정비해 나갔다. ‘이제 시작이다.’ 성벽 뒤편에 숨어있던 기척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들이 기 척을 확인한 금아의 얼굴에 피곤함 섞인 작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 “반란군이 제압되었습니다!” 소식은 빠르게 전달되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온 전령은 무릎을 굽힐 틈도 없이 입을 열었다. 구겨진 얼굴로 의자에 기 대 앉아 서류를 들척이던 왕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루 종일 귀족들의 쟁쟁거림에 시달리던 피로가 한 순간에 씻겨져 나가 는 것만 같았다. “그래? 피해는 없는가?” “네. 기사단의 피해는 전혀 없습니다. 대공께서도 무사하십니 다.” “하하하하하하!” 호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 밖에서 울리는 병사들의 목소 리는 왕궁 안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천여 명의 직속 병사들이 생긴 셈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때에 기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대공저하께서 드십니다.” 때맞춘 대공의 귀환은 왕을 더욱 즐겁게 했다. 왕은 직접 나가 금아를 맞았다. “명을 받들어 다녀왔습니다.” 평소에 꿇지 않았던 무릎까지 접은 대공은 정중하게 왕에게 허리를 굽혔다. 왕이 황급히 그의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켜 세웠 다. 왕의 얼굴 가득 뿌듯함이 베어 있었다. “힘든 결정을 내려주셨소.” “크리아와 폐하를 위한 일인데 어찌 망설이겠습니까.” 금아는 씁쓸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오갔다. 더 이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시종이 들어와 하노베이 백작이 체포되어 압송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할 때 까지 두 사 람은 침묵을 지켰다. “함께 가시겠소?” 왕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장 문 열어! 감히 내가 누구라고 내 앞길을 막는 것이 냐!” 왕의 집무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연회장에서부터 올라 오는 소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왕의 얼굴이 피곤과 짜 증이 올라왔다. 금아의 미소가 비틀렸다. 대세를 모르지 않을 텐데, 저들은 자신의 힘이 아직도 있는 냥 소리 지르는 것을 무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수고했다.” 금아는 얼굴 가득 살기가 치밀어 오른 기사들을 토닥이던 근 위대장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금아와 왕의 등장을 본 자들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쉈다. 피식, 금아 의 얼굴에 웃음이 흘러갔다. “자, 폐하께서 드신다! 문을 열어라!” 그의 목소리가 마나를 타고 선명하게 흘러갔다. 순간적인 정적 이 홀 안을 덮쳤다. 끼익, 문이 열렸다. “모두 예의를 갖추지 않는가!” 강렬한 호통소리가 터져나갔다. 한바탕의 전투로 아직 풀리지 않은 투기가 연약한 귀족들을 뒤흔들었다. 멍한 얼굴로 서 있 던 귀족들이 금아와 왕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황급히 몸을 숙였다. 방금 전까지의 생떼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었 다. 그들의 중앙을 가로질러 왕은 천천히 자신의 의자로 걸어 갔다. “모두들 수고가 많으셨소.” 왕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쩡, 하면 부서질 것 같은 날카로운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꼴깍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들이 사방에 서 어지럽게 울렸다. “죄인을 들이라!”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쾅!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중앙에 쇠사슬로 꽁꽁 동여매진 하노베이 백작이 꿇려 앉혀 있었다. 헉, 하는 놀람과 탄식소리가 귀족들의 사이로 요란하게 퍼져 나왔다. 기사들이 사슬의 끝을 잡고 그의 몸을 잡아당겼다. 철 그렁, 소리를 끌며 하노베이 백작이 느린 걸음으로 왕의 앞까 지 끌려나왔다. “반역자 하노베이를 대령하였습니다!” 하드레크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렸다. 그리고 열려있던 문을 통해 열을 갖춘 기사들과 병사들이 우르르르 달려 들어왔다. 순식간에 창끝에 둘러싸인 귀족들의 안색이 하얗게 바랬다. “저, 저희가 뭘 어쨌기에!” “저, 저자가 무어라 했는지는 모르겠사오나 저희는…….” 반항하는 목소리도 더 이상은 당당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이 끊임없이 하노베이의 얼굴을 훑었다. 하노베이는 두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살려줄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살고 싶었 다. 아직 더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이 자리만 빠져나 갈 수 있다면...! “시끄럽다!” 왕의 옆을 지키고 서 있던 금아가 한 걸음 앞쪽으로 나섰다. 왕은 조용히 자신의 검을 금아에게 건넸고, 금아는 정중히 받 아들었다. 그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검의 날이 모습을 드러냈 다. “반역자 하노베이와 결탁했던 자들을 지금 당장 체포하라.” 순식간에 귀족들이 반 정도가 기사들의 검에 의해 무릎 꿇려 졌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한 구석으로 몰렸다. 대공의 검에 맺힌 흰 빛을 보는 순간 귀족들은 반항할 기력을 잃었다.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그들은 종종 있던 검술시현을 통해, 기사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무릎 꿇려진 자들도, 저 쪽에 서게 되신 분들도,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라면 왜 자신에게 검이 겨눠졌는지를 아실 거 요.” 금아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귀족들은 눈동자만 굴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반역은 처형일 뿐. 여기 끌려나온 하노베이 백작은, 아니 반 역자 하노베이는 오늘 감히 군사를 끌고 와 왕성을 전복하려 했소.” 허억, 하는 신음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노골적인 경멸과 원망 의 시선들이 그에게로 꽂혔다. 금아의 눈가 주름이 선명하게 접혔다.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뻔히 아는 판에 혼자 살겠다고 지금 저러는 건가?’ 마음 같아서는 지금 그냥 하노베이와 함께 동여 묶어서 처형 시키고 싶었다. 금아는 이를 악물었다. 독재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막무가내의 선례를 크리아에 남기는 일 따위는 절대 해 서는 안됐다. “여러분들은 모두 그 혐의자 선상에 올라 있소. 더 자세한 조 사가 이루어질 때 까지 감옥에서 조용히 기다려주시길 바라오. 다만!” 다만, 이라는 강한 목소리에 고개를 푹 처박았던 귀족들의 얼 굴이 순식간에 들어올려졌다. “사람의 마음은 읽기 힘든 것. 자애로우신 국왕폐하께서는 만 에 하나라도 저 간악한 반역자에게 속아 이용당한 자들이 있 을 경우 관대하게 용서해 주신다 말씀하셨소.” 정말로 반역까지 갔었다면야 사형이 아니라 온 친척들까지 처 형해버렸겠지만, 실제적으로 저들이 반란에 직접적인 참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금아도 왕도 잘 알고 있었다. 피의 행렬 은 가능한 짧을수록 좋다. 특히 크리아처럼 상업과 교역에 의 지하는 빈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그런 분위기는 중요했다. “아, 아아!” 작은 환호성들이 퍼져나갔다.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을 정중히 조사할 것이요. 반역자가 있었다면 처단하고, 진심으로 국왕폐하께 충성하는 자라면 풀 어줄 것이요.” 눈치 빠른 몇몇 귀족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아의 목소리에 특히 강조된 진심이라는 한 단어가 목에 탁 걸렸다. 마음이란 표현되지 않으면 들어나지 않는 법이다. 그 충성을 증명하고, 반역죄라는 험한 누명을 벗기 위해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대 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닐 터였 다. ‘제기랄. 단단히 준비했군.’ 그러나 목숨보다 귀중한 건 없다. 여기서 반항한다면, 목숨은 커녕 포기할 건더기도 남겨지지 않고 모조리 빼앗기리라. 잠시 의 갈등이 지나 한숨과 포기가 흘러갔다. 그들의 변화를 면면 히 관찰하던 금아의 표정에 회심의 미소가 스쳤다. “그럼, 기사단은 혐의자들을 끌어내도록!” 당장 처형당하지는 않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반역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귀족들은 순순히 기사들에게 끌려 나갔다. 그 리고 하노베이가 남겨졌다. “그래. 날 이용해서 권력을 독차지하겠다?” 힐끔 치뜬 하노베이의 눈에 독기가 피어났다. 어차피 살 수 없 다면 발악이라도 하는 게 속편하다. 하노베이의 목소리는 앙칼 졌다. “반역죄를 저지른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텐데?” “반역은 아니었다!” “그런 걸 반역이라고 하는 게다. 왕궁으로 군대를 몰아 난입 해 들어오는 것.” “나, 난 폐하를 칠 생각은!” 쯧쯧. 혀를 차며 금아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당당해지는 듯 하더니만 다시 어린애로 돌아가는군.” “뭐, 뭐야?” “널 따르던 기사들의 발바닥의 때만큼이라도 네가 당당했었 다면, 나는 널 조금쯤은 존중했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노베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끝까지 저항하던 기사 들을 버리고 먼저 달아났던 수치심이 뒤늦게 살아나고 있었다. 금아의 눈이 끝없이 가라앉았다. 섬뜩한 살기가 하노베이의 목 에 걸린 것처럼 조여 왔다. “크흑!” 하노베이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누런 물이 흘러나왔다. 금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욱한 피비린내가 그에게서 풍겨 나왔 다. 숨이 턱 막혔다. 하노베이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몸을 움직였다. 옭아맨 쇠사슬이 찰랑찰랑 소리 냈다. 코앞까 지 다가온 금아의 파란 눈빛이 잘 벼려진 칼날처럼 빛을 발했 다. “넌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건 지독한 살의였다. **** 은빛입니다. 마감열혈.........크르릉 .............; 가우님 ... 결코지지 않습니다. 킁! 24시간 후를. 기대하죠.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뵙기를 희망하며... 모두 건강한 가을 보내세요. -_-;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41 - 금아와 대공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왕은 창문 밖으로 왕궁을 나서는 대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불그스름한 빛이 흰 돌 바닥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너로 인해 난 내 자식들을 잃었다.’ 나지막이 속삭이던 대공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연했다. 정신을 반쯤 잃고 끌려가면서 ‘왜 자신의 공모자인 창은 죽 이지 않는 거냐’며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던 하노베이의 모 습은 섬뜩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건, 그 말을 들은 대공이었다. ‘내 아들은 이미 죽었다.’ 핏발선 눈동자는 한 순간에 습습히 달아올랐다. 하노베이는 그 런 대공의 모습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는 끌려 나갔다. “휴.” 왕은 책상 위에 놓여진 서류를 집어 들었다. 심란했다. 대공이 그에게 준 서류들 중에 가장 가볍고 가장 짧게 쓰여진 그 종 이에는 결코 가볍기 못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사퇴라.” -반역자의 집안은 몰살시키는 것이 원칙이옵니다. 자식교육을 바르게 하지 못해 반역자로 길렀으니 죽어 마땅하지만, 폐하의 은혜로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 까.- 일반 귀족들이라면 공을 내세워 뻔뻔하게 공신노릇을 할 참이 었다. 왕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대륙의 영 향 때문인지 그의 스승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인지 대공은 그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나서고 있었다. “사퇴라...” 모든 작위와 영토를 반납하고 평민으로 돌아가겠다는 짧은 글. 이제 귀족들이 솎아지면 왕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칠 터이니 자신은 필요 없으리라는 그 글은 왕을 괴롭혔다. 잡고 싶었다. 명령으로라도 잡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는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대공이었기에 그가 짊어져야 했던 고통을 알면서도 차 마 그를 잡을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죄를 진 걸지도 모르겠군.” 왕의 한숨이 길게 흘러나갔다. “내가 무언가 그에게 해 줄 것이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느릿느릿 걸어가는 대공의 등 뒤로 저녁 그림자가 길게 드리 고 있었다. 왕은 커튼을 내렸다. 더 이상 그를 바라보고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뭔가 좋은 방법은 없나?” 왕궁을 벗어날 무렵 금아의 뒤로는 어느새 두 사람의 그림자 가 덧붙어 있었다. 털래털래 길을 걸으며 도르는 툭, 말을 던 졌다. “음?” 도로의 어깨는 힘없이 쳐져 있었다. 요 며칠 후작가의 사람들 은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해야 할 일과 할 수가 없 을 듯한 일들은 너무나 교묘하게 붙어 있어서 사람을 괴롭혔 다. “자네라면 뭔가 좋은 수가 있을 듯도 해서 말일세.” “글쎄. 뭔가 있을까.” 노도의 표정 역시 밝지는 않았다. 도르가 푹, 한숨을 내쉬며 노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함께 늙어가는 나이 많은 그의 친구 는 요즘 들어 부쩍 말이 줄고 부쩍 생각이 늘어갔다. “일단 따라가는 데 허락받은 것만 해도 다행이니. 뭐.” 말을 타고 간다면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금아는 굳이 걷고 있었다. 금아를 대공이 아닌 금아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시 장거리에서 반가운 인사를 보내왔다. “그래, 그 하녀와는 잘 되가는가?” “하하하. 그랬다면 오죽 좋았겠습니까만은....” 이전의 털털한 하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금아는 웃고 떠들었 다. 오랜만에 나타난 후작가의 성격 좋은 하인을 만난 상인들 은 기꺼이 말을 받았고, 금아는 시강거리를 벗어날 때 까지 그 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그 길이 끝난 건, 해가 다 지고 별이 초롱초롱해질 무렵이었다. “오늘은 말려나?” “아니지. 이제 겨우 마음을 굳혔을 텐데, 내일로 미루지는 않 을 걸세.” 노도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금아가 걸음을 멈췄다. 후작 가와 대공가로 접어드는 길이 갈리는 지점, 그 지점에 서서 금 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젠장!” 눈으로도 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빛살처럼 대공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쾅, 공기가 흔들리며 바람이 불어왔다. 노도가 급히 품 을 뒤져 붉은 글이 쓰여진 두어 장의 종이를 꺼냈다. “부적을! 부적을 쓰게나!” 두 노인의 모습이 금아를 따라 사라졌다. **** “하루 종일 미적거리다가 이제야 왔군.” 차가운 냉소. 별빛 아래 황폐한 저택은 기사단이 펴 놓은 횃불 로 환하게 밝혀졌다. 저택 안에서 죽은 듯 있던 창은 금아의 기운이 저택의 정문을 넘어서자마자 대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노베이 그 얼간이를 처치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모양이 지?” 피식, 웃는 얼굴은 검은 사기로 넘실거렸다. 금아의 눈에 짙은 슬픔이 짧게 스쳐갔다. “이미 먹혀버린 모양이군.” “그래. 이미 먹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은 가?” 창의 차가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왔다. 그는 느긋한 동작으 로 머리카락을 들춰내고 자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검게 칠한 갑옷 밖으로 들어난 흰 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창의 입 가에 비틀린 미소가 매달렸다. “중요한 건 이 어깨 위의 물건이지. 한 때 이 물건이 네 아들 로 불리던 것이라던 게 아니라 말이야.” “넌!” “아아, 난 이미 네 아들이 아니니까 그렇게 흥분할 건 없 어.” 잔인한 빈정거림이 이어졌다. “난 네 아들이었던 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니기도 하니까 말이야. 뭐, 상관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친 아들도 아니지 않 았나?” 까득, 문 잇몸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말을 삼가라!” 대공의 곁을 지키고 섰던 기사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금아는 조용히 손을 들어 기사들을 물렸다. 그의 손바닥에서는 이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금아는 숨을 들이마셨다. “너희들은 이 싸움의 증인일 뿐이다.” “하? 그래? 증인! 증인. 그거 중요하지. 나라의 충신인 대공이 아들이랍시고 죄인을 꿍쳐 풀어주지 않고,” 창이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앞을 그었다. 붉 게 일어난 피부 틈으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확실하게 죽였다는 증인! 필요하고말고!” “마공이란, 마족의 기운을 부르는 무술이지. 흑마법 중에서도 금지된 마법과도 같은 것.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검은 피를 본 금아의 안색은 창백했다. 금아의 커다란 호통소 리가 마치 울부짖는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두 부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기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외면했다. “얼어 죽을! 어차피 검도 살인도구다! 무예도 살인기술! 그 기술을 좀 더 예리한 걸로 익혔다고 죄라는 건가?” 창이 소리 질렀다. 쩌렁, 까맣게 불타고 재만 남은 뒤편의 숲 으로 그의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검은 눈동자에 파란 불 꽃이 이글거렸다. 까득, 이를 갈며 창은 손가락을 들어 금아를 향했다. “말하라. 내가 더 많은 생명을 앗았나, 아니면 그 잘난 무공 을 바르게 익혔다는 네가 더 많은 이를 죽였나!” 부르르르, 목소리가 떨렸다. 수십 년을 담아두었던 절규, 창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 말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말을 해야 했 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다른 비난들도 많았는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잔혹한 혈향이 미치도록 그리 워졌다. “크, 흐흐흐흐흐흐.” 손이 떨려왔다. 창의 미소가 비릿했다. 이제는 더 참지 않아도 좋다. 그가 누구보다도 싸워 이겨보고 싶던 존재, 그의 힘을 다해도 상관없는 존재가 지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창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잠시나마 들어났던 분노와 냉소의 그림자는 어 둠에 묻혔다. 그의 손이 느리게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쇠 울리는 소리가 가늘게 울려 퍼졌다. 상처 입었던 창은 이미 없 었다. 살을 에일 듯한 살기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들을 둘러싸고 서 있던 기사들이 주춤 주춤 물러섰다. “문제는. 도구를 올바른 곳에 쓰지 못하고 휘둘리게 되는 거 겠지.” 침묵을 깨고 금아가 입을 열었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메어 텁텁하게 울렸다. 금아의 손이 등에 묶여있던 검에 닿았 다. 왕이 내려주었던 검. 잠시 흔들릴 뻔 했던 마음이 다잡혔 다. “마기는 도구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래. 그의 어린 아들은 이미 죽었다. 저 앞에 서 있는 것은 그의 몸을 통해 나타난 광인일 뿐이다. 반역죄를 저지른. ‘제기랄.’ 알고 있었다. 그가 순수히 원했던 건 반역이 아니었다는 것쯤 은. 그러나 베어야 했다. “하긴. 대화 따위를 나누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지.” 이어지는 금아의 목소리에 창의 이가 빠득 갈렸다. “죽어라.” 팡, 두 종류의 기운이 부딪히며 바람이 불어왔다. 금아의 손에 뽑힌 검이 작게 울부짖었다. 눈부시게 흰 빛과 뚜렷하게 검은 기운이 검을 타고 길게 자라나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 거렸다. “모두 물러서라!” 한발 앞서 저택으로 돌아와 있던 하드레크가 기사들에게 명령 했다. 넋이 빠져있던 자들이 고개를 돌려 하드레크를 확인했 다. 주춤 주춤 눈치를 살피던 기사들이 재빠르게 검을 꽂아 넣 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대공저하의 싸움을 방해하지 않도록 모두 물러서라!” 마스터급의 싸움에 휘말려봤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드레크 는 기사들을 모두 저택 밖으로 철수시켰다. 몇몇이 안에 남아 결투를 지켜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마스터의 싸움을 보는 건 훌륭한 기회일 수도 있지만, 오늘 은 아니다. 증인도 살아남아야 될 수 있는 법.”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상반된 투기와 살기가 어울어져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공기가 점점 더 팽팽히 당겨졌다. 하드 레크는 기사들을 재촉했다. 저 당겨진 활시위가 놓여지기 전에 최소 담장 바깥까지는 물러서야 한다. 본격적인 위협감을 느낀 기사들이 망설이지 않고 그를 따라 저택을 벗어났다. 그건 옳 은 판단이었다. -콰과과과광!- 그들이 담을 벗어나 불탄 숲의 외곽 즈음에 다달했을 때 즈음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광!- 검과 검이 부딪힌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담장 안쪽에 서 검고 흰 빛줄기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폭발하고 있었다. 숲 의 높다란 언덕 위쪽으로 달려 올라가며 하드레크와 기사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쾅!- 검은 하늘로 화염을 머금은 흙먼지가 노랗게 피어올랐다. 한번 부딪힐 때 마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재만 남아있던 숲의 나무 들이 진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푹푹 쓰러졌다. “젠장. 사람인가.”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저택을 내려다보던 기사의 입에서 긴 탄식이 새나왔다. 눈을 치떠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푹푹 패이는 땅과 폭발로 그들이 검을 맞대고 있다는 것을 확 인할 수 있을 뿐, 언제 어떻게 베어가고 질러갔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난 언제쯤에야 저런 경지를 밟아보는 거야....” 그렇잖아도 흉가 같던 저택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며 푹푹 패였고,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정원은 나무 한 그루 남 겨지지 못하고 모조리 파헤쳐졌다. 엎어진 화톳불에서 불이 쏟 아져 나와 곁의 폐허더미에 옮아붙었다. 화염이 치솟으며 하늘 이 붉게 물들었다. “크, 흐흐흐흐흐.” 창은 검을 지팡이삼아 몸을 일으켰다. 주르륵 진득한 피가 입 에 매달렸다. 내장이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간신히 힘을 뽑 아내 부딛히기는 했지만, 한번 한번 충돌할 때 마다 밀려오는 마나의 압력은 몸을 터트릴 것처럼 짓쳐들어왔다. “새빨갛군. 마음에 들어.” 키득, 웃음이 흘러나왔다. 불붙은 저택이 화려하게 빛을 발했 다. “이전부터 한번 이렇게 하고 싶었었지.” 다 태워버리고 싶었다. 다 부수어 버리고 싶었었다. 창은 만족 스러운 얼굴로 무너져가는 저택을 바라봤다. 태어난 줄로 알고 자랐었던 저택. 자신의 모든 삶을 함께 했었던 그 족쇄 같은 집이 무너져 내렸다. “크, 흐흐흐흐흐.” 가슴속에 묵어있던 무언가가 후련히 씻겨져 내려가는 것만 같 았다. “그렇지 않은가?” 주륵, 코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창은 연이어 키득거렸다. 딱 딱하게 굳은 금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왜, 아직도 잔정이 남았나?” 창은 비틀거리며 몸을 세웠다. 마공을 익혀 마나를 늘리고, 기 사들을 잡아 마나를 뽑아가며 목숨을 취했건만 묵고 묵은 대 공의 힘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초의 충격이 불러온 절망감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커져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대공은 손속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이토 록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저리 깨끗한 모습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마공이라는 것을 알고 받지는 않았을 터.” “알고 받았다.” 피식, 창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게 손속에 여유를 둔 이유 였던가. 금아의 얼굴에 참담함이 떠올랐다. 창은 고개를 털었 다. 아직도 충성을 버리지 않은 바보 같은 부하들이 낮에 왕궁 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왔다. 주모자는 하노베이 한 사람이니 이용당한 것을 인정하고 반란을 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증 명하면 왕께 충성을 다하는 귀족으로 다시 받아들여 질 것이 라고 했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었지.’ 미련 따위를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성격이었기에 백년 이나 되는 짝사랑을 지켜오지 않았던가. 검은 피가 빠져나가면서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것도 같았다. 창은 검을 다시 들었다. 몸이 휘청였지만 마지막 힘을 다 한다 면 한번 정도는 더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온 몸의 상처가 울부짖고,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이해할 수 없는 건,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들어오기 시작한 묘한 즐거움이었다. “그만 둬라. 넌 이미.” 금아의 목소리는 반 쯤 잠겨 있었다. 비틀거리며 발을 내딛는 창의 복부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피에 섞인 내장 부 스러기들이 투둑 떨어졌다. 창의 일그러졌던 얼굴이 조금 펴졌 다. 강렬했던 통증이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크, 크흑, 그, 그게 검을 든 자에게 할 말인가?” 마치, 어린 시절 처음으로 검을 들었을 때와 같은 그런 흥분 감. 가슴이 설랬다. 창은 이를 악물고 검을 고쳐줬다. 눈앞이 흐릿했지만 그 정도는 견딜 만 했다. “....................” 금아는 말을 잊었다. 탁하게만 보았던 창의 검은 눈이 어느 새 맑은 빛을 띄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비쳤던 증오도, 분노도 보 이지 않는 순수한 무인의 눈. “그런가.” 금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검을 든 적 앞에서의 망설임이기 전 에, 순수한 각오를 받아들이는 무인이 되기 위해. “그런가.” 금아가 눈을 떴을 때, 창은 이미 자세를 바로잡았다. 두 손에 단단히 잡힌 검은 빛깔을 알 수 없는 강기가 흐릿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렇군.” 금아는 자세를 바로 했다. 창의 눈동자에 희미한 미소가 흘러 갔다. 금아의 검 끝에서 폭사되어 나오는 빛은 지금까지 창이 보아왔던 것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간다.” 창의 검이 먼저 뻗어왔다. 느릿하지만 빈틈없는 검로가 금아의 눈앞에 펼쳐졌다. 더 이상 분노도, 슬픔도 남아있지 않은 순수 한 검의 기운이 그에게 밀려왔다. 그리고 금아의 검이 느릿하 게 움직였다. -콰과과과광!- 압도적인 힘. 폭사하는 빛이 폭발하며 거대한 굉음을 뿜어냈 다. 빛줄기에 닿은 창의 검이 파스스 부스러지며 흩어졌다. 빛 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뻗어나가 창의 등 뒤로 남아있던 저 택의 중앙을 꽤뚫었다. -콰광!- 이미 부서질 대로 부서져 있던 저택이 주저앉았다. 흙먼지와 폭음이 저택 뒤편의 숲을 넘어 언덕까지 짓쳐들어갔다. 완벽한 폐허. 사람이 살았었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끄, 끝인가?” 벌어져 있던 하드레크의 턱이 움직였다. 소름 돋던 살기와 투 기의 소용돌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 도 모르게 땅에 엎드렸던 기사들이 하나 둘, 붉어진 얼굴로 갑 옷을 털며 일어섰다. 화염과 먼지 너머 서 있는 대공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모, 모두 대공저하를 모셔라!” 기사들이 서둘러 저택으로 달려갔다. 저택이 파괴되며 튀어나 온 돌과 불꽃으로 길은 엉망이었다. “헉!” 멀리서 볼 때 보다 현장은 더 엉망이었다. 저택자리에 도착한 기사들의 입이 또다시 벌어졌다. “...............” 아무도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다. 기사들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 하드레크가 조용히 기사들을 가로질러 나아가 금아에 게 고개를 숙일 때 까지, 금아는 망연자실 한 얼굴로 폐허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나셨습니까?” 그제서야 금아가 고개를 돌렸다. 진지한 하드레크의 눈에는 다 른 기사들에게서 비치는 것처럼의 놀람도, 동정도 담겨있지 않 았다. 금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검을 꽂았 다. “...수급을 수습하도록.”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스토리 진행 상 한 화로 끊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용량전을 위해 편의상 한 편으로 이었습니다. (그, 그렇다 하더라도...52k는....-_-;;;; 가우님 괴물!!!!) **** [[The Perfect MAID]] - 141-2 - 증명과 약속 “하지만, 저희도 무작정 믿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쿠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기세를 타고 그의 뒤를 우르르 따라왔던 귀족들의 눈초리도 험악해졌다. 불신과 경멸이 담긴 시선들이 오락가락 란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 옆에 서 있던 움 크의 얼굴이 다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참다못한 움크가 슬그머 니 그들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실례이지 않은가.” “어느 쪽이 먼저 실례를 범했는지는 이미 우그르트께서도 보 지 않으셨습니까?” 쿠칸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움크가 난감한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첫 인사를 하자마자 난데없이, 쿠칸은 칼날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말로만 듣던 로드이냐. 그게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공손한 말투도 아니었다. 다분히 적의어 린 질문에 움크는 당황해야 했다. 문제는 란의 반응이었다. 그 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첫 인사를 나눈 후,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서서 투명한 눈동자로 물끄럼히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움크는 그게 더 두려웠다. “로드이건 아니건, 초대를 받았다면 받은 자로서의 예의는 지 켜야 할 터, 저자가 오늘 보인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했습니다. 움크님께서 직접 초대하시고, 로드라는 심증이 완전히 무너지 지 않았기에 지금 끌어내지 않고 있을 뿐!” 꼬장꼬장한 쿠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움크의 얼굴이 참담 하게 구겨졌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지난번에도 이렇게 대하다가 황궁 앞뜰이 완전히 날아가지 않았던가. 어느 새 지 켜보고 있던 카느의 손도 의자의 손잡이를 부서질 듯 붙잡고 있었다. “휴.” 무시 섞인 호기심과 조금은 두려움 섞인 사람들의 시선 가운 데, 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실례라.” 작지만 뚜렷한 목소리. 쿠칸의 눈이 란의 얼굴을 훑었다. 쿠칸 의 주름진 눈가가 구겨졌다. 란이 가늘게 한숨을 내쉈다. “누가 누구에게 먼저 실례를 범했는지는 확실하게 따져보고 싶지만, 움크. 네 입장을 봐서 이번만은 내가 숙이고 들어간다. 넌 아이들을 위해 상처 입었었으니까.”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아이들을 감싸기 위해 등으로 도를 막은 움크를 보지 않았었다면 이미 날뛰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란의 눈빛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움크의 뒤를 따라 줄줄이 들어왔던 기사들이 험상궂은 살기를 띄고 란을 내려보고 있었다. “내가 로드임을 증명하고 싶다면, 저들을 쓰러트리라 했었지? 아마?”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로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감청색 치마 의 한 끝을 살짝 말아 쥔 란이 다른 한 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밀었다. “와라. 애송이들.” 기사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안와? 그럼 내가 가지.” 란은 기다리지 않았다. 나른한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기사 들이 움크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의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맨주먹과 강철의 갑옷이 부딪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 주 먹도 아닌 손바닥 모양으로 갑옷이 움푹 패이며 기사의 몸이 붕 떠 날아갔다. 쿠칸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열렸다. “너희들도 서 있기만 할 텐가?” 시큰둥한 얼굴로 란이 고개를 돌렸다. 기사들의 눈빛이 질렸 다. “무서워 할 건 없다. 특별히 이 한 손만 써 줄테니까.” 자박, 검정색 구두코가 치마 밖으로 살짝 들어났다. 란은 보란 듯이 왼손을 들어 나머지 네 기사들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너희들의 주인이 황궁 앞뜰로는 부족하다 하시니 어떻게 하 겠나. 이렇게라도 힘을 보여야지.” 권태롭게까지 들리는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 들어왔다. 기묘한 압박감이 온 몸을 옭아맸다. 기사는 손가락 까닥 할 수가 없었 다. 까맣게 가라앉은 란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으읔, 낮 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검을 들어야 한다, 들어야만 한다 고 외쳤다. 그러나 손을 움직이기는 커녕, 목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빠악!- 투구위로 따귀가 작렬했다. 강철 투구가 찌그러지며 날아가 벽 에 처박혔다. 기사의 몸이 반바퀴 회전하며 날아가 바닥으로 짓처박혔다. “자, 그리고 누구 차례였더라?” 무덤덤한 얼굴에는 약간의 짜증이 올라와 있었다. “그 날 살아난 것을 후회하는 놈들이 꽤 되는 것 같은데 말 이야.” 란은 살포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쿠칸의 앞으로 다가왔다. 쿠 칸의 뒤편에 우르르 서 있던 귀족들이 후다닥 물러가며 둥근 원을 비웠다. 란에게 덤비기 위해 따라왔던 기사들만이 굳어진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란의 목에서 뚜득, 근육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염려할 거 없어. 이번에는 아무와도 약속하지 않았으니까. 확실하게 끝을 내 주지.” 움찔, 쿠칸의 몸이 경련했다. 회장 곳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검을 뽑아들었다. “이봐. 애송이.” “큭!”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쿠칸의 얼굴에 붉은 노화가 치밀어 올 라왔다. 란은 피식 웃었다. “내가 로드라면, 넌 정말로 애송이겠지. 이제 백살도 채 먹지 못한 어린 놈.” 묘한 박력감과 실제감이 그녀에게는 존재하고 있었다. 란이 고 개를 쿠칸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뭘 원하지? 어떤 증명을 원하는데?” 이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귀족들을 제치고 단상 위의 카 느의 눈길이 따갑도록 꽂혀왔다. 란은 느릿하게 쿠칸에게서 얼 굴을 치웠다. 그리고 카느를 향해 몸을 돌렸다. “미안하지만, 피티아의 재림은 하지 못한다. 아르님과 약속했 으니까. 두 번 다시 그의 축복을 받은 나라를 멸망시키지는 않 겠다고 말이야.” 카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약속이 아니었다면 너희는 진작에 멸망당했을 지도 모른다라는 협박과 무엇이 다를까. 그 라나 카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담긴 힘 이,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하는 그 광오함이 거짓이나 허 풍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너희들이 굳이 증명을 원한다면, 나 또한 같은 것을 요구하 겠다.” 란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귀족 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외면했다. “너희들이 감히 나에게 존재를 증명하라고 할 만한 자들인지 를.” 냉기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건 엄격함. 마치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죽음이 공평히 찾아오는 것과 같은 엄격함이 그녀 에게 있었다. 마른침 삼킬 여유조차 없었다. 심약한 자의 몸이 푹푹 쓰러졌다. 용감하게 검을 뽑아들었던 기사들조차 들린 검 을 주체하지 못하고 팔을 떨었다. “너희는 증명할 수 있겠는가?” 낮은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벼락처럼 울려 퍼졌다. **** -이 땅에서 불리는 내 이름은 류이네리아 칸 란이 맞다. 그러 나 로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백여 년 전 너희들이 멋대로 붙였던 별호일 뿐이니, 달라면 얼마든지 돌려주겠다.- 무도회는 지속되지 못했다. 더 이상 진짜이냐고 물어볼 수조차 없게 된 란은 휭 하니 자리를 빠져나갔고, 움크가 황망히 그녀 를 따라나섰다. 쿠칸은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카느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건넸고, 창백해진 두 노인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무도회장을 빠져나갔다. “강렬하군요.” 한 참 만에서야 입을 연 센이 나지막히 속삭였다. 음악도 연주 되지 못했다. 한 참 동안이나 회장은 적막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최초의 소리는 웃음소리도 소곤거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작 은 흐느낌과 울음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며 분위기는 완 벽하게 죽었다. “예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 텐데.” 우트트의 얼굴 역시 멍했다. 카느에게 적대적으로 나올 때부터 뭔가 심상치는 않아 보이기는 했지만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자신의 힘을 흩뿌릴 줄은 몰랐다. ‘피티아의 재림이라.’ 백여 년 전 로드의 손에 의해 직접 멸망당한 나라였다. 그녀는 그 이름을 꺼냄으로서 자신이 전설 속의 그녀임을 분명히 했 다. 거기다 무슨 증명을 더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당백이 라는 전사 둘을 한 손으로 어린아이 다루듯 내던져 버린 그 손앞에서. “확실 한 건, 그녀는 프란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거겠 죠.” “음?” 센의 얼굴에는 작은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프란에 관심이 있고, 또 움크님을 지지할 의사가 있었다면 오늘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움크가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나 저 분노를 자신의 편으로 이 용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는 그런 자가 아니었다. 게 다가 지금 그의 곁에는 세자트도 없었다. “그녀가 분노하는 이유는, 그녀가 보살피던 아이들이 상처 입 었다는 것, 그리고 클로네... 그녀가 죽을 뻔 했다는 것뿐입니 다.” 말을 맺는 센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들을 다치게 했던 자들이 누구였는지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우트트의 입술에서 억눌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센은 이를 악물었다. “그 점을 살린다면, 저울을 다시 기울게 할 수 있을 겁니 다.” “음.” 우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란이 보여준 상상치 못했던 냉랭함 에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흔들리던 귀족들은 얼어붙었다. 그 녀는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비록 움크가 가깝게 지내고 있는 듯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친분으로 밖에 보 이지 않았다. 그것을 위해 복잡하기 짝이 없는 타국의 왕위 계 승에 간섭하거나 끼어들지는 않을 정도의 가벼운, 그저 아는 것뿐인 사이. “그나마 다행이로군요.” 센은 복잡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사늘히 식은 축제의 장소에 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귀족들이 하 나 둘 우트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아, 아직 축제가 끝난 건 아닙니다. 가볍게 담소를 즐기 죠.” 우트트가 가볍게 잔을 들어올렸다. 오갈 데 없이 방황하던 귀 족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악사들이 다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은은한 곡이 퍼져나가며 머뭇거리던 자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형님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주신 분들께 형님을 대신 해서 감사를 표합니다.” 우트트가 잔을 비웠다. 여기저기서 그를 따라 잔을 비우며 왁 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춤 출 상대를 찾기 위해 홀 안 을 기웃거리던 몇몇 귀족가의 여인들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순간, 우트트의 얼굴이 똥 씹은 냥 일그러졌다. “호호호호호.” 온 몸에 소름이 돋을 듯한 요란한 고음의 목소리. 현란한 부채 짓, 먼 걸음에서 단 한번을 보더라도 잊혀지지 않을 강렬한 인 상. 분명 어딘가의 지하 감옥에서 갇혀 있어야 하는 여인. 그 여자가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주륵, 우트트의 이 마에 식은땀이 베어났다. “이, 이건 어떻게 된 일이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센의 당황한 눈동자 역시 그에게 같은 질문을 보내오고 있었다. 우트트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초대 받지 않으면 오지 못하는 무도회에 그녀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를 어렵지 않게 상상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형님께서는... 저 시끄러운 여자는 왜 초대한거 야?” “...그냥 무시 하시죠.” 센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 히 고통스러웠다. 센의 눈이 셀죽히 가늘어졌다. 낮게 숨죽인 목소리가 우트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중에 몰래 다시 잡아 가두면 됩니다.” “음!” 이신전심이었다. ****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가?” 살얼음이 인 얼굴로 돌아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홀로 방에 처 박힌 란에게 칸이 다가섰다. 당황한 움크의 기척이 방 밖에서 서성이다가 론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갔다. “음?” 칸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눈을 감은 채 누구의 말에도 반 응하지 않던 란의 눈꺼풀이 조용히 열렸다. 검은 눈동자에 온 갖 감정의 색들이 엉키고 꼬여 혼탁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휴.” 잠시 란의 눈을 들여다보던 칸이 다가와 의자를 끌어내 앉았 다. 란의 무심한 표정이 그를 스쳐 다시 창 밖으로 돌아갔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누워있는 아이들에 대한 생 각, 자신을 따라온 하르크들에 대한 생각, 뭘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프란인들에 대한 생각, 크리아에 남겨둔 사람들에 대 한 생각, 그리고 자신을 속인 신들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 스스 로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 “...............” 란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허탈함과 분 노가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지독한 탈진감과 무기력감에 생 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무사할 걸세. 로웬이 말했고, 내가 증명하지. 또, 이 땅의 우그르트인 움크가 보장하고 있네.” 칸은 란의 앞쪽으로 의자를 끌고 왔다. 의자를 거꾸로 뒤집어 등받이에 턱을 괸 칸의 황금빛 눈동자가 란의 눈을 정면으로 향했다. 란이 고개를 숙여 또다시 시선을 피했다. “무엇이 자네를 가로막는가?” 숨 가쁘게 돌아가던 상황들이 채 감정을 정돈하기도 전에, 너 무 한순간에 끝나 버렸다. 정확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 지 조금은 란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아이들은 원한다면, 크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 테지. 자네가 로드라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는 자는 없을 테고, 움크는 아르 님의 신전에서의 신탁을 무사히 통과할 걸세.” 칸은 낮게 기침했다. 란이 칸의 시선을 피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듣자하니 자네 제자라는 금아가 날뛰고 있다더군. 이래저래 움직이는 기세로 봐서는 전쟁은 흐지부지 될 테고.” 깊게 내려앉은 밤하늘의 달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란의 옆 모습을 비췄다. 미동조차 없는 란의 옆모습은 조각상 같았다. 잠시 말을 멈춘 채 그녀를 바라보던 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아이의 운명이 순탄치는 않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더 벌 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저 아이를 위협하는 일이 나 타나지는 않을 듯 하더군.” 굵으면서도 섬세한 칸의 목소리가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낮게 낮게 이어졌다. 란은 길게 숨을 내쉈다. “자네가 원한다면 평범한 하녀로 돌아갈 수도.” 칸은 잠시 말을 끊었다. “아니라면, 로드로서 살아갈 수도 있겠지.” 란의 미간에 잔주름이 잡혔다. 란은 늘어트렸던 두 손을 깍지 끼고 이마를 기댔다. “더 높은 경지로 가는 길은 나도 모르지만.” 칸은 의자를 끌어당겨 란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 자네가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아네.” 인간의 것과 확연히 다른 황금빛의 눈동자가 란의 앞에 거울 처럼 드리워졌다. “자네는 어떻게 하길 원하는가?” **** 은빛입니다. 용량전이라.... .............; 용량전이라... (먼산을 볼 뿐.) 그러나! 연재전은지지 않습니다! 가우님! 크르릉! 지적해주신 리플은 피와 살처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럼, 내일 뵙기를 희망하며... 모두 건강한 가을 보내세요. -_-; 덧. 그러고보니... 극악절단마공을 연성할 수가 없다는...쿨럭!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42 - 도사 노도 “이제 다 끝났는가.” 딸그락, 노도는 붓을 내려놓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깔끔한 두 통의 서찰이 올려졌다. 노도의 부드러운 눈가에 아련한 무언가 가 흘러갔다. 노도는 몸을 일으켰다. 끼익,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 노도는 잠시 의자를 응시했다. 통나무집을 만들면서 힘쓰는 일을 도맡아 했던 하르크가 투덜 거리며 만든 의자였다. 노도의 키에 맞지 않는다며, 란이 얼마 나 잔소리를 퍼부어 댔던 지 앉으면 몸에 맞은 듯 편안했다. 주름진 손바닥이 곱게 길이든 나뭇결을 스쳤다. 책상 하나 의 자 하나 침대 하나인 단촐한 방에 그가 즐겨 입던 작업복이 걸려 있었다. “오랜만에 입으니 내 옷 같지가 않구먼.” 마른 몸에 낡은 도복이 헐렁하게 걸쳐 있었다. 노도는 남은 물 건들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이 도사였지 만, 들어버린 정은 어떻게 뗄 수가 없었다. “때가 되었으면 떠나야지. 그것이 섭리인 것을.” 피식, 웃으며 노도가 중얼였다. 손과 발에서는 벌써부터 뻣뻣 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노도는 조용히 침대 위에 앉아 가부좌 를 틀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완전한 우화등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스쳐갔다. ‘이 마음 때문에 란이 수백여 년을 떠돌았구먼.’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비워지는 것이 또 도사다. 노도는 차분 히 눈을 감았다. 발끝으로부터 기운이 벗어나며, 백여 년을 함 께 해 왔던 육신이 그로부터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이제 마음을 비웠으니.’ 그의 심장이 마지막 움직임을 멈췄다. 온기가 텅 비워진 방에 사늘한 냉기가 가라앉았다. 후작가 본관 한 구석의 작은 구석방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 었다. 작은 등불 하나에 의지해 앉아 있는 금아의 등은 작고 쓸쓸했다. “술은 좋은 벗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파멸로 이끄는 악우가 되기도 한다네.” “후, 후후후.” 잔잔히 들려오는 노도의 목소리에 금아의 어깨가 꿈틀했다. 언 제나 기척 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금아 도 허를 찔렸다.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금아가 고개를 숙였 다. 허름한 하인 복에서 코가 아릴 정도의 술 냄새가 풍겼다. “악우라.” 술잔을 빙글빙글 손에 돌리는 금아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노도의 목소리에 애써 짓눌러 놓았던 감정이 고개를 치들고 있었다.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까. “좋죠. 악해도 벗이 있다는 건.” 갑자기 취기가 올라왔다. 머리가 어질해지며 문득 어리광이 부 리고 싶어졌다. 금아는 들고 있던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갑자 기 몸이 노곤하게 풀려왔다. “흐, 흐흐흐흐.” 금아는 눈을 비볐다. 취기 때문에 부어올랐는지, 어쩐지 노도 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크흐흐흐.”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슬픈 건지 기쁜 건지 알 수 없는 감 정이 휘몰아쳤다. 스스로 지위를 박탈시켰다. 왕이 받아들여줄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전쟁만 해결된다면 그는 누가 뭐래도 평범한 하인으로 돌아갈 셈이었다. 대공이라는 지위는 그를 지 탱해주던 기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옭아매고 있던 족쇄이기 도 했다. “하루정도는 취해도 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갑작스럽게 다가온 해방감과 허탈감이 이리저리 뒤엉켰다. “하루, 딱 하루 정도만....” 키득, 상 위에 몸을 엎드리고 기대 누운 금아의 몸이 꿈틀거렸 다. 숨 쉬는 것보다는 느리고 술 딸국질보다는 빠른 움직임. 간간히 새 나오는 흐느낌소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가 왜 얼 굴을 보이지 않는 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노도는 조용히 금 아의 등을 쓸었다. “후, 후후. 차마 반역자라는 말을 못하겠더군요.” 잠시 호흡을 고르던 금아가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냥, 수급을 수습하라고 하고 도망쳤습니다.” 또 한 잔에 술을 채우며 금아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건 제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니지, 아니죠. 지 형제들과 자신들을 따르던 기사들을 모두 죽였군요.” 금아는 빈 병을 치우고 새 병을 열었다.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그의 옆에는 아직 따지 않은 새 술병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저도 그 만큼 피를 밟고 살아왔었습니다. 죄라면 죄죠. 아니, 말릴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관심 있게 보았었다면! 체!” 잔도 필요 없었다. 금아는 잔을 거칠게 밀어버리고 술병 채 목 에 들이부었다. 진한 독취가 온 방안에 넘실거렸다. 노도의 미 간이 살짝 접혔다. 금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법 독하다길래 준비해 두었었는데, 오늘 보니 맹물이로군 요.” 노도가 조용히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그래. 맹물이로군.” 한번에 들이키며 노도는 씁쓸히 말했다. 금아의 눈이 조금 커 졌다. “이런, 노도님께는 안좋습니다.” “맹물이지 않은가.” 뚱한 노도의 말에 금아는 술병을 치웠다. 더는 취해지지도 않 던 참이었다. 이미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만난 것으로도 충 분했다. 노도는 조용히 금아의 잔을 들어 술을 바닥에 부었다. 그리고 맑은 물을 한잔 가득 부어 내밀었다. “자네는 왜 취하려 하는 겐가.” “아시지 않습니까?” 킥, 웃는 얼굴에 또 한 줄기의 물줄기가 생겨났다. 금아는 숨 을 크게 들이마셨다. 격한 감정 때문인지 숨이 턱턱 막혔다. 노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상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친아들을 보는 듯한 따듯함이 그에게서 풍겨 나왔다. “그런가....”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 참을 망설이던 노도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구먼.” 그리고 주섬주섬 소매춤을 헤집었다. 난데없는 행동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금아에게 노도는 작은 인형 하나를 내밀었다. 금아가 인상을 쓰며 눈에 힘을 줬다. “음?” 취기 때문인지 눈이 흔들려서 노도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 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그가 알고 있는 누 군가와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믿기지가 않았다. “잘 안보이나보구먼. 자 그럼, 이렇게 보세나.” 노도가 인형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인형의 배 부분에 붙 은 작은 조각을 떼어냈다. 순식간에 인형이 자라나, 사람의 크 기로 변했다. “헉!” 외마디 비명! 금아는 몸을 튕기듯 일으켰다. 쾅! 밤의 정적을 깨고 의자가 뒤로 날아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금아의 몸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 이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에 경악과 불신이 뒤섞였다. 금아는 그와 노도를 번갈아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건!” 기쁨도 아니고 놀람도 아닌 어중간한 감정이 그를 휩쓸었다. 노도가 손짓으로 그를 조용히 불렀다. “보게나. 숨도 쉬고 있고, 아직 맥도 있다네.” 금아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에게로 다가갔다. 다리가 휘청 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부서지는 듯한 두통이 밀려왔 다. “이, 이건 꿈입니까?” 한 줄기 두 줄기가 아닌 폭포수처럼 터진 눈물이 쏟아져 내렸 다.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던 창의 가슴게가 비 맞은 냥 젖어들 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어, 어떻게!” 금아는 창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도가 부드럽게 그 의 어깨를 쓸었다. “내가 도사라는 사실을 잊었구먼. 미안허이. 내 술수를 좀 썼 네.” 노도는 허리를 굽혀 창의 배꼽게에 다시 조그만 조각을 붙였 다. 창의 몸이 흐릿한 빛을 뿜으며 다시 손바닥만하게 줄어들 었다. 그의 모습이 노도의 소매춤 속으로 사라질 때 까지 금아 는 창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질끈 눈을 감은 금아의 볼로 굵은 눈물이 또다시 떨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이 아이는 자네의 곁에서는 살 수 없 네.” 노도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아무리 신분을 버린다 해도 자네는 이 땅의 대공이었던 사 람이고, 자네에게는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아들 하나가 더 남 아있지. 게다가 이 아이의 정신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뼛속 깊 이 박힌 마기는 나로서도 제거할 수가 없다네.” 노도는 자상한 얼굴로 소매자락을 쓰다듬었다. 금아는 조용히 노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말에 얼 굴이 잠시 흐려지기는 했지만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 다. 금아는 팔뚝으로 얼굴의 눈물자국을 닦았다. “내 아시는 분께 부탁을 드렸다네. 이 땅에서 정원사로 길러 주지는 못하겠지만.” 등불이 가볍게 흔들렸다. 금아는 바닥에 앉은 채로 조용히 고 개를 숙였다. 깊이 숙인 허리께가 땅에 닿을 듯 굽혀졌다. 가 는 눈물이 또다시 흘러나와 볼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감 정의 고삐가 완전히 끊어진 것 같았다. 등 위로 자애로운 목소 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다른 곳에서 마기를 벗겨내며 도사의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도사의 삶입니까...” 금아에게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이 노도 같은 삶 말일세...” “하, 하하. 감사... 합니다.”” 나지막한 금아의 웃음소리에는 더 이상 자조와 회한이 없었다.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기쁨이 마디마디 베어 있었다. 노도가 가볍게 금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긴장이 풀린 금아의 몸이 풀썩, 옆으로 쓰러졌다. 갑자기 의식 이 흐릿해져갔다. 금아는 눈을 깜빡였다. 이상했다. 몸이 자신 의 몸 같지가 않았다. “내게도 손자 같은 아이라네. 염려하지 말게나.” 귓가에 노도의 목소리가 빙빙 울렸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금아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편안했다. 저항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한번쯤 이런 식으로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것도 노도의 앞이 아닌가. 마음이 푹 놓였 다. 금아는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잘 부탁한다네.” 잔잔한 숨소리를 내며 완전히 잠든 금아를 바라보며, 노도는 빙긋 웃었다. “이제 모든 정리가 끝났는가?” 어느 새 나타난 삼신할미가 금아의 잠든 모습을 자애롭게 바 라보며 부드러운 의지를 발하고 있었다. 노도가 빙긋 미소 지 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삼신할미가 금아의 얼굴을 쓸었 다. 눈물로 헬쓱해진 금아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한 조각 떠 올랐다. 노도는 손을 모으고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삼신할미께서 힘을 빌려주신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 니다.” “그래, 부탁하고 싶다던 아이는?” “네.” 노도가 소매춤을 열었다. 작은 인형이 둥근 구슬의 형체로 변 하면서 삼신할미의 손 위로 올라갔다. 군데군데 검게 얼룩진 영혼의 구슬을 바라보며 삼신할미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가능하다면 수도할 수 있는 존재로 기르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망가졌구나.” 가벼운 탄식과 한숨이 흘러 나왔다. 창의 혼은 일반적인 영혼 이 내뿜는 빛의 반만큼도 빛나지 못했다. 이리저리 혼을 살펴 보던 삼신할미는 설래설래 고개를 저어댔다. “선인이 되기에는 너무 많이 탁기가 범했구나. 이대로라면 선 계보다는 마계에 더 어울리는 존재가 될 지도....” “하지만, 검은 부분과는 대조적으로 밝은 부분은 선인에 가깝 습니다.” “그런게냐.” “그랬기에 삼신할미께 부탁드린 것이 아니옵니까.” 시익, 이를 들어내며 웃는 노도의 표정은 누군가와 닮아 있었 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삼신할미의 얼굴에 놀람과 당황이 스 쳐 지나갔다. “이런, 친구를 닮는다더니.” “닮을 만한 벗이었으니까요.” 어느새 협박만이 아니라 너글너글한 배짱까지 닮아 있었다. 해 주지 않는다면 란을 설득해주지 않겠다. 라는 무언의 시위가 그의 얼굴 가득 떠올라 있었다. 한 참을 바라보던 삼신할미의 입에서 피식, 가벼운 웃음이 새 나왔다. 무엇을 배우던, 누구를 닮아가던 노도는 노도였다. 삼신할미는 기꺼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반드시 들어주마.” 빙그르르 웃는 노도의 존재가 기쁨으로 빛을 발했다. “그럼, 돌아가시죠.” 차원을 가르는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 “후, 후작님! 노, 노도님, 노도님이!” 후작가의 아침이 발칵 뒤집혔다. 싸늘히 식은 노도의 시신은 오후가 되기 전에 발견되었다. 이른 새벽, 정원에 나오지 않는 노도를 염려한 정원사 하나가 기다리다 못해 아침나절에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을 때는 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 어 있었다. “노도님이, 노도님이!” 놀란 하인들과 하녀들이 새파랗게 질려 뛰어다녔다. 뒤늦게 잠 들었던 후작이 잠옷 바람으로 복도를 달렸고, 만취한 채로 쓰 러져 자던 금아가 벌떡 일어나 빛살처럼 날아갔다. “.................” 금아는 말을 잊었다. 간밤에 보았던 인자한 얼굴 그대로 단정 하게 앉아있는 노도는 마치 산 사람 같았다. 심부름을 위해 왕 궁으로 나가있던 도르가 조용히 돌아와 노도의 손을 한번 쓰 다듬었다. 후작가에 머무르던 세자트와 아직 병실을 지키고 있 던 랑이 오후 무렵 찾아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노도의 방문을 지키고 섰다. 노도의 책상 위에 있던 두 통의 편지는 각각의 주인에게로 건 네졌다. 한 통은 후작에게, 한 통은 금아에게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금아의 편지 안에 클레이브에게로 보내는 작은 편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후작은 노도의 유언에 따라 그를 화장하기로 했다. 그가 쓰던 개인 연무장 한 가운데가 깨끗이 비워졌다. 그리고 높다란 나 무가 쌓였다. 노도는 관에 넣어지지 않았다. 앉은 자세 그대로 나무 제단 위에 올려졌고, 불살라졌다. 꼬박 한 나절을 산화한 그의 자리에,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구슬들이 굴러다녔다. 후작은 동대륙의 관습에 따라, 뼈는 보스윌 해협에 뿌리고 구 슬들은 돌로 만들어진 함에 담아 금아와 자신이 직접 깎은 작 은 탑에 넣었다. 그리고 탑은 노도가 가꾸었던 동쪽 정원의 중 앙에 세워졌다. 검기로 돌을 깎아 만든 작고 투박한 탑은 아무 런 무늬도 없이 세워졌지만, 한 구석에 금아가 직접 세긴 글자 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석탑의 한 가운데 자리는 혹시라도 찾 아올지 모르는 란을 위해 비워졌다. 노도의 장례를 진행하면서도 금아는 바쁘게 돌아다녔다. 작위 를 반납했지만, 왕이 승인해 주기 전에는 일이 끝난 게 아니었 다. 감옥에 갇혔던 자들은 순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놓았다. 자 식까지 직접 베어 효수한 금아의 퍼런 서슬 앞에 그들은 감히 흥정하지 못했다. 하노베이 백작이 소유하던 수많은 재산과 영 지가 몰수되면서, 그와 동조했던 자들의 재산들이 국고로 몰려 들어왔다. 그 재산들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나가지 않도록 막 고, 그 틈에 껴서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을 솎아내는 일은 결 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겠지.” 차라리 일이 많은 것이 편할 때가 있다. 후작과 금아는 딱 그 런 상황이었다. 노도의 빈자리가 유달리 크게 다가오기는 했지 만, 무슨 생각인지 이를 악물고 일에 달려드는 도르와 해리슨 덕분에 두 사람은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두 손과 머리는 멀쩡하니까요.” 여전히 다리는 쓰지 못했지만 혼자 움직거릴만큼 회복된 랑이 일어나 금아를 도왔다. 그가 나서면서부터 금아의 표정은 부쩍 더 밝아졌다. 그는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자상한 아버지 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랑은 그런 금아를 보며, 노도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며 웃었다. “내게도 아버님 같은 분이셨으니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금아는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 도 노도를 떠올리면 슬픔보다는 따듯한 느낌이 먼저 떠오르곤 했다. 그를 불태웠던 연무장의 재가 다 식지도 않은 것 같은데 도 말이다. “프란의 상황이 기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첩보가 날아왔다. 움크의 귀환 과 란의 등장이 프란에서 뜨거운 감자처럼 여기저기 튀고 있 었다. 전쟁은 일어날 듯도, 일어나지 않을 듯도 하며 기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제가 가야할 것 같습니다.” 세자트가 짐을 꾸렸다. 어차피 사신으로서의 역할이랄 건 처음 부터 없었다. 크리아가 결코 먼저 전쟁을 일으킬 뜻이 없으며, 만에 하나라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순순히 굽힐 나라가 아니라 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나름대로의 소득이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그는 움크를 도와야 했다. 우트트를 보좌하는 센이 어 떤 인물인지는 세자트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작위고 뭐고 다 내팽개친 금아가 따라나섰다. 헬슥해진 왕의 곁에 후작과 랑을 박아버리고, 금아는 옷을 벗어 던졌다. “이제 모든 귀족은 폐하의 뜻대로 움직일 겁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폐하의 새로운 검이 되어줄 것입니다.” 자신이 남아 있으면, 권력은 왕에게로 가지 못하고 또다시 금 아에게로 몰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의 힘이 또 다른 귀족들에게로 퍼져나가게 될 뿐이다. 궁극적이 왕에게로 귀속 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고생의 반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금아는 그렇게 왕을 설득시켰다. 얼떨결에 박혀버린 페르로이 후작과 랑은 끝도 없이 밀려오는 업무에 치여 금아를 말려 볼 틈도 갖지 못했다. “전 언제까지나 폐하의 검입니다. 절 부디 충신으로 남겨 주 십시오.” 그리고, 충신으로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임무를 달라 요청했 다. 대공이라는 직위는 너무나 무거우니, 대신 자작이나 남작 과 같은 가벼운 작위를 달라 청했다. “저, 정녕... 그렇게 해야만 하겠소?” 왕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금아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전 이미 오래전에 은퇴했던 몸입니다.” 시익, 웃는 금아의 표정에는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왕이 포기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가서 가르암 백작을 돕겠습니 다.” 금아는 후작과 랑의 원독어린 배웅을 받으며 세자트와 함께 프란으로 출발했다. 노도가 세상을 떠난 지 칠일만의 일이었 다. **** 은빛입니다. 용량전이라.... .............; 풀석. 오늘 추월합니다. =ㅅ= (후훗...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라...) 가우님은 드림워커 작가연재란에서 "Queen's Heart"를 연재하 고 계십니다. ^^/ 요즘 덕분에(???) 저도 즐겁게 독서를...ㅠㅠ 하고 있답니다. (삼룡과 라니안에서 문의해주시는 분들께 답해드렸습니다.^^)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43 - 한달의 말미 “노도가 돌아왔다는군.” 삼신할미에게서 연락을 받은 적호와 아르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 여신의 앞에서는 뛸 듯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아직 확인할 것이 남은 두 신으로서는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 을 무조건 환영할 수가 없었다. “이제 어쩌지?” 적호의 목소리에는 그 특유의 패기도 활기도 없었다. 만일 란 이 모든 것을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야 존재하는 차원이 달라 굳이 만나러 가지 않는다면 부딪힐 일이 없다. 그 러나 란이 돌아오게 된다면 말이 달랐다. “낸들 아나…” 아르의 어깨가 축 처졌다. 아무리 처음부터 음모에 가담했다고 는 하더라도, 적호는 같은 동대륙의 신이고 무신으로서의 란의 직속 상관급이기도 했다. 어찌어찌 잘만 하면 넘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르는 입장이 달랐다. 게다가 모르고 지나 갈 수도 있는 일을 홧김에 불어버림으로서 불난데 기름을 들 이부은 건 아르 자신이 아니었던가. ‘젠장. 다른 건 다 제껴도,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아르페이나 가 알면 날 잡으려 들 텐데…’ 게다가 이번에는 적이 하나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두 여신은 물론이고 무겁게 움직이기 시작한 주신에게조차 잘못 을 책망 당한다. 란 하나로도 버거워 골머리를 썩이지 않았던 가. “휴, 란을 붙잡고, 그 날 아르의 말을 기억하느냐고 다그칠 수도 없고.” 다그치려면 무슨 말을 했었기에 이런 질문을 하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란이 다른 인간들처럼 ‘신’ 이라는 존재성 앞에서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복종하는 유형도 아니었다. “뭔가 확인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던 두 신의 시선이 한 순간 부딪 혔다. “칸!” 그가 있었다. 아르의 몸이 튕기듯 일으켜졌다. 얼굴 가득 기쁨 을 내뿜으며 적호가 손을 들어 지상으로 통하는 공간을 열었 다. 그러나. “어찌된 일이십니까.” 칸은 이미 여신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무언가 조금 걸리는 바가 있어서 말일세.” 란이 묵고 있는 여관의 상공에 아르페이나와 칸이 있었다. 난 데없는 소환이었지만 칸은 침착했다. 잠시 그를 살피듯 바라보 던 아르페이나가 사뭇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떤 일이신지요.” “그래. 내가 지금 자네를 찾아온 건 다른 존재들에게는 비밀 로 붙여주었으면 하네. 가능하다면 자네의 주신 아르에게도 말 이야.” 그녀에게는 칸의 목소리가 잘 닿지 않는 듯 했다. 말을 끊다시 피 가로챈 아르페이나의 말에 칸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녀는 복잡한 심사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아니, 가릴 여유가 아예 없어 보였다. 혼란스러운 얼굴에 그녀를 감싸고 있는 여 신의 빛이 온갖 색으로 흔들렸다. “그래, 어렵겠지만. 좀 부탁하지.” “네.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들이 알아내려 한다면야 굳이 그의 입을 통하지 않고서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칸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의 말에 아르페 이나의 표정이 풀렸다. 희미하지만 뚜렷한 안도감. 그녀는 인 간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눈빛을 굳혔다. “혹시, 아르와 적호가 혹시 내게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네는 알고 있나?” “감추다니요?” “말 그대로 일세. 감추고 있는 것.” 칸은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요즘 들어 기색이 너무 이상해. 두 신 모두.” 따지고 보면 서로의 영역이 너무 다른 신이었기에 서로에게 감출 것도 굳이 알려 들 것도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보여 왔던 아르의 기묘한 행동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삼신할미가 보내왔던 소식을 받은 두 신의 태도는 그 렇게 넘기기에 너무나도 어색했다. 마지못해 웃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못된 장난을 하다가 걸린 아이들의 흠칫거림이랄까. 그 런 것이 섞여 있었다. “두 신이 만일 내게 속이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무얼까 생각 했었지. 아니,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네.” 딱 하나 뿐이다. 그들과 아르페이나가 관련되고, 숨겨야 할만 한 것이란. 란에 관한 것 하나. 생각이 미치는 순간 아르페이 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급히 시간의 방으로 들 어갔다. 그리고 란을 둘러싼 시간들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칸과 혈투를 벌이던 란의 장면을. “자네와 란이 만나 한참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아르가 나타 났지. 그 다음 잠시 동안의 시간이 봉인되어 있더군. 교묘히 봉인되었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겠지 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란과 칸이 충돌하고 있을 무렵, 아르 가 나타나 그들을 말리기 위해 외쳤다. 그리고 무시당하고, 아 르의 얼굴이 조금 벌겋게 달아올랐다 싶을 무렵 적호가 나타 나 갑자기 호통을 쳤다. 그 사이의 시간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 었다. “그 자리에 분명 자네가 있었네. 비록 전투에 물들어 비늘이 붉게 변해있었지만, 자네의 종족은 이지적인 존재. 감정에 젖 는다 해도 이성을 잃는 법이 없도록 창조된 종족이니.” “휴.” 칸의 눈빛이 복잡하게 움직였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때의 그 일 이외에 여신인 아르페이나가 드래곤인 칸을 찾을 일이 무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어올 줄은 몰랐다. 그만큼 아르페이나는 심리적 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곤란하군. 아르님도 아르님이지만, 란도 제정신이 아닌데.’ 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만일 모든 사실을 여신이 알게 된다 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 그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칸은 갈등했다. 그런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페이나는 계속해 서 말을 이어갔다. “제발 부탁이네. 난 알아야만 하네. 자네도 란을 알지 않는 가.” 아르페이나는 절실했다. 뭔지 모를 예감이 그녀를 애타게 만들 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채 날벼락을 맞 을 수는 없었다. 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어떻 게 하는 것이 그의 오랜 친구와 신들에게 좋을 것인가. “휴, 제가 말해서 되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참의 갈등 끝에 칸의 입이 열렸다. 란에게는 무언가 계기가 필요했다. 다시 정신을 차릴 계기. “실은, 그날....” 망설임이 남아있는 칸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려나오기 시 작했다. 칸의 결심에 아르페이나의 얼굴이 활짝 피어올랐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얗게, 파랗게, 까맣게, 그리고 검 붉게 변해갔다. “..........................” 떡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못했다. 의지 도, 권능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산산이 부서져 소멸 된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르페이나가 받은 충 격은 컸다. 순간, 아르페이나의 모습이 흐릿하게 흩어졌다. 예 상보다도 더 타격을 받은 모습에 칸은 이마를 쓸었다. “역시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아, 아닐세, 아니야.” 아르페이나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그, 그래. 그랬군. 그랬어. 그래서 그런 태도를 보였던 거 야.” 미간의 주름들이 깊게 계곡을 그렸다. 지그시 깨문 잇새로 짓 눌린 의지가 흘러나왔다. 이마를 감싼 손이 머리카락을 쥐어뜯 을 듯 움켜쥐었다. 아르페이나의 온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그게 다인가?” “네. 그게 다입니다. 아,” 아르페이나의 눈빛이 다시 모이며 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칸 의 황금빛 눈동자에 작은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참. 잊을 뻔 했습니다만.” 아르페이나의 동공이 커다랗게 열렸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서늘한 예감이 그녀를 스쳤다. 칸이 살짝 어깨를 으쓱 였다. “란이 기억하고 있더군요.” “뭐?” 꽉 잠겨 막혀있던 아르페이나의 목이 한 순간 트이며 의지가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울려나갔다. 우르르릉, 대기가 울며 바람이 퍼져 나왔다. 여신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자 신도 모르게 압도당한 칸이 흠짓 어깨를 움추렸다. “아, 저, 그게, 아르님의 말을 란이 기억하고 있는 듯 했습니 다.” “컥!” 쩡, 산산히 아르페이나의 모습이 흩어졌다. “아, 아르페이나님?” 지나친 충격에 잠시 의식이 흩어지는 바람에 인간계에서 유지 하고 있던 분신이 깨져 버렸다. 신계로 자동소환 된 아르페이 나는 망연자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 다. 순간, 아르페이나의 몸이 벼락 맞은 듯 퉁겨 올랐다. “크, 큰일이다!” 아르페이나가 황급히 수정 구슬을 만들어 공중에 띄웠다. “이, 이런 삼신할미! 우선은 삼신할미를 말려야!” 그러나 늦은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컥!” 막 차원의 문을 열고 지상으로 나서려다가 그대로 굳어졌던 아르와 적호의 몸이 파스스스 무너졌다. ‘주, 죽었다.’ 닫히다 만 공간 저편으로 노도와 함께 란의 앞에 서 있는 삼 신할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 “아?” 칸의 기척이 사라졌다. 란은 다시 멍한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 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돌아다녔다. 창 밖 으로 보이는 시장거리는 세 배는 더 복잡한 크리아의 거리와 도 한적한 아르카이아의 길가와도 달랐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수 일이 훌쩍 지났다. 클레이브와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클로네도 일어나진 못했지만 의식 을 되찾았고, 가르암 백작은 거의 다 회복되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란과 가르암 백작은 건강을 핑계 삼아 움크가 황궁의 사신관 으로 들어오라는 것을 거절했다. 가 봤자 가시방석일 뿐이었 다. 차라리 이 고급 여관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그로 인해 프란의 귀족들이 또 한번 들썩인 것 같기는 하지만, 란은 신경 두지 않았다. 엊그제 쿠칸이라는 늙은 사자가 몇몇 혈기방장한 젊은 귀족들 을 데리고 찾아왔다. “저희를 적으로 돌리실 셈이십니까.” 라는 말에 란은 뚱한 얼굴로 답했다. “글쎄. 돌리면 안 될 이유를 지금부터 한번 찾아보지.” 귀찮았다. “내가 보살피는 아이들을 인질로 잡아다가 굴릴 데로 굴리다 가, 필요 없어지면 죽이려들었고, 건방진 하녀네 뭐네 하며 나 역시 너희들의 황궁 앞뜰에서 공격당했었지.” “그, 그건.” 줄줄이 늘어놓는 그녀의 말에 쿠칸과 귀족들의 얼굴이 뭐 씹 은 냥 구겨졌다. “게다가 너흰 아직 답을 내놓지 못했다.” 란의 목소리는 어딘가 졸린 듯 하면서도 섬뜩했다. “날 시험할만한 자들이었는가에 대한 증명.” 꿀꺽, 쿠칸의 목젖이 움직였다. “그게 먼저여야겠지. 그 다음에 내 생각이 정해질 거야.” 란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생각해 보니, 피티아가 멸망했었던 건, 황족이라는 자들을 모조리 떼죽음시켰기 때문이었어.” 딸그락, 쿠칸을 따라왔던 귀족 중 하나의 손에서 티스픈이 떨 어져 내렸다. “요는, 황위를 계승할 놈만 살려두면.” 나른한 눈동자에 살기도 무엇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당연한 일을 하겠다는 듯한 눈이었 다. 쿠칸의 몸이 뻣뻣히 굳었다.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왔지만, 이건 생각보다도 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 접근해서 좋을 건 없겠군.’ 더구나 상대는 자신들에게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었다. 쿠칸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분노와 같은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희 석되는 법이다. 상대가 한참 화가 나 있을 때 반복해서 자극하 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너희들 같은 자들은 얼마든지 베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등 뒤로 란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베어도 상관없어.” 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베어왔다. 셀 수 없는 피를 뭍혀왔다. 의도한 적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근래 들어서 누군가의 영향으로 살생을 극도로 자제하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본질이나 과거가 바뀌는 건 아니었다. “휴.” 란은 생각을 끊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독한 피로감이 몰 려왔다. 다행히 이틀 째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한번 더 귀 찮게 굴었다면 폭발했을 지도 모른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 란의 표정이 변했다. 익숙한 기척이 그녀의 앞에 공간을 가르 고 나타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넉넉한 미소의 삼신할미가 시원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청 량한 공기가 삼신할미로부터 풍겨왔다. 란은 잠시 눈을 감았 다. 익숙한 벗의 향기가 그녀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솟 아 올랐던 화기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란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네.” 삼신할미의 부드러운 의지가 산들바람처럼 불어와 방 안을 가 득 채웠다. 계절의 열기와 란의 화기가 뒤섞여 범벅이 되었던 방 안의 화기가 조금씩 식어갔다. 란이 그녀에게 작은 의자를 권했다. “도구에 구애받지는 않으시겠지만.” “고맙군.” “별 말씀을요.” 란은 몸을 조금 앞쪽으로 기대로 팔에 깍지를 꼈다. 잠시 서먹 한 시간이 지났다. 문득, 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런데, 아직 더 오실 분이 계신지요?” 다른 때와는 달리 삼신할미가 열고 나왔던 차원계의 문이 닫 히지 않은 채 그대로 열려 있었다. 삼신할미가 살짝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다네. 오늘은 자네의 벗이 함께 왔다네.” “벗?” 할미의 손이 아직 채 닫히지 않은 공간 안을 뻗었다. 그리고 그 공간을 타고 눈에 익은 주름진 손이 나타났다. “!” 란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그녀를 옭아매 고 있던 귀찮음과 나른함이 한꺼번에 벗겨져 나가는 듯한 충 격이 란의 정신을 휩쓸었다. “오랜만이네.” “노도!”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 얼굴과 목을 감싼 붕대가 걸그적 거렸다. 클로네는 붕대 위를 살며시 매만졌다. 가끔씩 상처 부위가 견디기 힘들만큼 가려웠 다. 몇 번 붕대 위를 문지르던 클로네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 쉬고 손을 내렸다. “란님은 어떻게 하시려는 걸까요?” 얇은 벽 넘어 란이 있었다. 각자의 침대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도 클로네와 소년들의 눈은 옆방을 떠나지 못했다. “글쎄요.” 잠시 클로네를 바라보던 클레이브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책 장을 넘겼다. 그리고 잠시 바라보다가는 책을 덮었다.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애써 무덤덤해 보려 해 봤지만 걱정 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강한 분이시니까. 알아서 하시겠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정신을 다시 되찾은 후 본 란에게서는 그녀 특유의 여유와 너글너글함이 없었다. 클레이브는 책을 머리맡 에 내려놓고는 풀썩 누웠다. “휴.” 클로네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몸을 기댔다. 아직까지도 조금 만 오래 앉아있으면 피로가 몰려오며 머리가 멍해왔다. 소년들 의 눈에 걱정이 스쳐갔다. 스테판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클로 네가 살짝 고개를 저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란님은 조금 변하신 것 같아요.” “전 그런 모습도 좋던데요.” “휴, 어련 하겠어요.” 설래설래 고개를 저어대는 클로네의 몸짓에 클레이브가 낮게 소리 내 웃었다. “전 지금의 란님의 모습이 차라리 좋습니다. 억지로 자신을 제어하며 하녀노릇을 하려던 모습 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보이 니까요. 물론, 지금은 좀 힘들어하시는 듯 보입니다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란은 하녀라기보다는 어머니나 스승의 느 낌이 더 강했다. 어머니나 스승을 ‘하녀로 부리고 있는’ 그 불편함이란, 경험해보지 않으면 느끼기 힘들다. “로드이시건, 하녀로 남건, 란님은 란님이죠.” 클레이브의 곁에서 책을 보고 있던 스테판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흰 그저 란님이 좋을 뿐입니다.” “하녀라도 로드라도 상관없어요. 사실.” 한켠에서 점자를 만지작거리던 크레이가 한 목소리를 더했다. “네?” 클로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전부터 좀 조숙하다 싶었던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몰라도 순식간에 십년은 더 자 란 듯 보였다. “단지, 저희가 란님을 만나서 즐겁고 행복했었던 것처럼.” 사실 고생 밖에 한 건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늘 즐거웠다. 누 군가가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켜준다는 건 늘 쫓기게 살았던 세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변화였었다. “란님도 자신의 일만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행복은 자신의 안에 있는 거라고 하니까요.” **** “자네는...” 마지막에 보았을 때 보다 어딘가 젊어 보이는 노도의 모습이 란의 눈에는 낯설었다. 란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접혔다. 그의 몸에서 풍겨나 오는 기운이 묘하게 삼신할미와 겹쳐졌다. 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쉈다. “먼저 돌아왔네.” 노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벌린 채 잠시 말을 잊고 있던 란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자네는 원하던 경지에는 도달했는가.” “아니. 내게 주어진 천수에 도달했지.” 확, 란의 고개가 쳐들렸다. 란의 눈가가 살며시 떨렸다. 진한 위화감이 덮쳐왔다. 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아는 노도는 더 이상 천수에 연연하지 않는 도사였다. 그 가 천수를 논해야 하는 존재라면 이미 옛날 옛적에 관에 들어 갔어야 하지 않았던가! “천수?” “그래.” 란은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레 삼신할미와 함께 나타난 노도의 방문이 역시 심상치 않았다. “하늘에서 내게 주었던 시간 말일세.” 노도의 눈에는 아직도 해야 할 말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삼신 할미가 두 존재가 이야기하기 쉽도록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자 리에 앉았다. “그리고 난 자네에게도 천수가 다 했음을 알리기 위해 왔 네.” “내겐 천수가 없네.” “아니. 있네.” 노도가 말을 끊었다. 란의 눈동자가 커졌다. 란은 막 하려던 말을 삼켰다. 노도가 의미 없이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어 느 누구보다도 그녀에 대해 잘 아는 존재가 노도였다. 그녀는 조용히 노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네에게는 구속되는 시간이 없더라도.” 노도의 시선이 란을 벗어나 창 밖으로 펼쳐져 있는 하늘로 향 했다. “하늘에게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네.” “하늘의?” 버락 같은 충격이 란의 뇌리를 관통해 지나갔다. “주신의 뜻이 계셨네. 창조된 모든 자들이 지켜야 하는 시간 이 법이 흘러가고 있었지.” “난 아직 원하는 경지를 보지 못했네.” 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노도가 빙글 시선을 돌려 란의 눈으로 향했다. 짙은 갈색의 편안한 눈동자는 그가 마치 살아 있는 존재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린아이의 생떼는 더 통하지 않아.” “생떼라니!” “자네는 이미 자네의 시간을 알려준 적호님의 제안을 거절하 지 않았던가. 그리해서 백여 년을 더 벌었으면 됐지. 뭘 더 바 라는 게야.” “.............!” “무작정 시간만 주어진다고 일이 되는 건 아니네. 자네가 누 구보다 더 잘 알지 않는가. 지금의 자네는 어떠한가. 새로운 경지에 대한 막연한 집착만이 남아 있을 뿐. 진정으로 이루고 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도가 던진 질문이 그녀의 고민들과 충돌하며 그녀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장을 던지고 있었다. “자네, 무예를 배울 때도 그리 했을 터.” 잔잔한 노도의 목소리가 끊임없는 물결을 이루며 란에게로 퍼 져왔다. “하나의 과제를 수행할 때는 반드시 그에 맞는 시간을 주는 법이네. 마치, 수명이 다하기 전에 환골탈태를 하지 못하면 늙 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네.” 노도는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긴 한숨을 내쉈다. 힘겨웠던 외집사생활이 준 뿌리 깊은 습관이었다. 문득, 자신의 행동을 깨닳은 노도가 빙그르르 웃었다. “너무 오래 집착하면, 나처럼 몸에 베이기 마련이네. 이제 털 건 털 때도 되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란의 눈이 똑바로 노도를 향했다. “시간이 끝났네. 주어진 시험기간 내에 끝내지 못하면 실패한 거야. 자네의 생떼로 여러 신들을 곤란하게 한 것도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주신께서 부르실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게 야.” “................” “시대가 변한다고 했네. 이제 신계와 인간계 사이를 드나들 수 있는 때가 지나가고 있는 거겠지.” “시대가...” 란의 입술이 열렸다. 보고만 있던 삼신할미의 고개가 끄덕거렸 다. “만일 내가 남아있고, 시대가 닫히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 지?” 란은 복잡한 심사를 감추지 못했다. 그 대답은 노도가 아닌 삼 신할미로부터 흘러나왔다. “만일 시대가 닫히게 된다면, 신들도 지상에 완전히 강림하지 못하게 되네. 지금처럼 지상의 균형을 위해 하지 않는 것이 아 니라, 할 수 있는 길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거지.” “그렇게 된다면, 자네가 그리도 원하는 신체를 완성시킨다 해 도 두 번 다시 신계로 돌아올 수가 없어지네.” 노도가 삼신할미의 말을 이었다. 눈앞의 문제에만 급급해 잊고 있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예상했던 것 보 다 훨씬 더 급하게 밀어닥쳤다. 란의 눈이 까맣게 가라앉았다. “두 번 다시.” “그래. 그리고 남겨지게 되겠지. 이 지상에.” 노도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완전한 신체의 힘을 이겨낼 수 있는 지상의 땅은 드무니, 자 네가 있는 곳은 열화의 사막처럼 변해버릴 테지. 자네는 영원 히 존재하게 될 꺼야. 자네의 속성은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었 으니까.” 란의 머리가 새 하얗게 날아갔다. “자네는 그 고독을 원하는가? 적수도, 친구도 없이 이 세상을 홀로만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가? 죽지도 변화하지도 못하는 신의 존재를 가지고? 마음 편히 힘 한번 발현해보지도 못하고 그리 존재해 갈 텐가?” “그,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란의 목소리가 덜덜덜 떨렸다. 꽉 쥔 주먹에 식은땀이 가득 찼 다. 갑자기 터진 충격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 가지가 있네.” 삼신할미가 노도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란의 목소리는 다급하 기까지 했다. “무엇이죠?” “무신으로서의, 무인으로서의 힘과 존재를 완전히 버리고, 평 범한 인간으로서만 살아가는 것.” “!” 쾅! 벼락같은 소리였다. 란의 안색이 창백히 바랬다. 그거야 말 로 그녀가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일이 아니었던가. “하, 하하.” 삼신할미와 노도의 목소리가 귓가를 윙윙 울렸다. 믿을 수 없 었다. 란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갔다. 삼신할미와 아르페이나 들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노도가 그녀를 속일 리는 없었다. 아니, 그게 속임수라 할지다로 노도의 말이 라면 믿어야 했다. “그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일세. 만일 주신께서 직접 허락해 주신다면 다른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겠나.” 삼신할미의 목소리에도 체념이 어려 있었다. 란은 눈을 감았 다. 길고도 긴 한숨이 흘러나갔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다. 창 밖의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칸의 기척이 다시 문 밖에 들 어날 무렵에서야 란은 눈을 떴다. “그 정확한 때는 언제입니까?” “그건 우리도 확신할 수가 없네. 그러나 이미 주신께서는 움 직이셨어.” 란의 눈에 간절함이 들어났다. “그럼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하는 건가요?” 노도의 눈이 삼신할미에게로 향했다. 삼신할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노도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얼마의 말미를 얻을 수 있었네. 자네에게도 시간이 닿 는다면 말미를 주었으면 좋겠구먼.” 란과 눈이 부딪힌 삼신할미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란의 얼굴에 약간의 혈색이 돌아왔다. “그럼, 한달만 주십시오. 그 한달동안 새로운 경지를 얻지 못 할 때는 미련 없이 따르겠습니다.” “그러게나. 한달일세.” 삼신할미의 입가에 고운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그 때 보세나.” 노도와 삼신할미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란은 꽉 쥐고 있던 손 바닥을 폈다. 어느 새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흐르고 있었 다. 란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 달이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란은 남겨진 한달의 의미를 곰씹기 시작했다. ‘훗, 일단은 아이들이 걱정이로군. 언제까지나 지켜줄 수 있 을 줄 알았는데.’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 “하, 한달!” 구슬을 통해 삼신할미와 노도를 훔쳐보던 아르페이나는 정신 이 아득해져왔다. 사형 선고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이 멍청한!” 아르에 대한 분노가 새삼 치밀어 올랐다. 멍하니 쓰러져 있는 모습을 찾아, 짤짤 흔들었건만! 그 무신들은 일을 벌려놓고서 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지 아무런 대책조차 마련해 두고 있지 않았다. “정말 적호님까지 그럴 줄이야...” 배신감에 가슴이 저렸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더듬거리던 아르의 얼굴이 짓밟고 싶을 만큼 얄미웠다. 지금 중요한 건 아르페이나가 그들을 용서하는가 아닌가가 아 니지않았던가! ‘내, 내가 만일....’ 란과 맞붙는다면, 과연 아르페이나는 견뎌낼 수 있을 까. 상상 만으로도 머리가 저어졌다. 불가능하다. 인간이었을 때의 그 눈빛만으로도 존재가 다 떨려왔다. 그게 아무리 완벽한 현신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무신과 양육의 여신은 근본 적인 창조의 속성 자체가 달랐다. ‘마, 막아야 해!’ 더 이상 란이 돌아온다고 기뻐할 수 있을 게 아니었다. 차라리 영원의 시간을 인간계에서 헤매게 하고, 주신께 벌 받을 지언 정 그 편이 란에게 직접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차, 차라리!’ 신계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그냥 힘으로 막는 방법은 있었다. 그러나 ‘어, 어떻게!’ 돌아온다고 했다. 그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그걸 주신께서 모 를 리가 없었다. 자신조차도 아르가 교묘하게 봉인해 놓은 시 간의 틈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지 않았던가! 만일 뒤늦게 알려 진다면, 주신께서는 분명 시간의 틈을 벌려서라도 란을 데려올 것이 분명했다.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한달 후에 그냥 데려오는 게 훨씬 낫지!’ 란에게 당하고 주신께 당하고, 다른 모든 신들에게 비난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에게 맞는 게 나으리라. 그러나. ‘싫어!’ 소멸의 위협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무작정 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르페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 주신께서 직접 만류해 주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텐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지?” 미칠 수 있다면 미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뭐가 어떻게든 뭔가는 반드시 해야 했다. “제기랄!” 아르페이나의 눈에서 불똥이 튀겼다. **** 은빛입니다. ^^ 화이팅! 아자! 승부는 끝나간다! 덧. 가우님. 내일 밤 12시 전까지 올리시면 연재전은 동점처리해드립니다.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he Perfect MAID]] - 144 - 기한의 끝자락 “세자트! 그대가 돌아왔는가!” 세자트와 금아가 속한 사신의 일행이 프란에 도착한 건 늦은 오후였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갈 무렵, 소식을 들은 움크가 반 가운 얼굴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크리아의...” “라이덴트 남작입니다.” 금빛 머리의 청년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세자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움크가 반갑게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환영 했다. “어서 오게나.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란님과 가르암 백작도 기다리고 있었다네.” 움크의 몇 보 뒤에서 란이 손을 들어 환영했다. 라이덴트 남작 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란님!” “금아, 어서와!” 그리고 그리던 해후였다. 금아가 달려가 란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금아의 눈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한달여의 일정이 이토록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세자트의 안전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혼자 달려오고 싶었던 충동을 억누르느라 얼마나 고 생했었던지, 애간장이 다 녹을 지경이었다. 금아의 눈가가 붉 게 달아올랐다. “역시 무사하시군요. 걱정했었습니다.” “하하하.” 란이 낮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가르암 백작이 한 걸음 떨 어져 그들의 만남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모두 기다리고 있었어.” 황궁에 속한 사신관으로 들어오자마자 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클레이브와 클로네를 비롯한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모여 있었 다. “뵙고 싶었습니다.” 클레이브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금아에게로 다가갔다. 얼굴 에서 붕대를 뗀 클로네가 방긋 웃었다. 혼자 잡일은 다 도맡아 하고 있던 하르크도 그의 소식에 벌떡 일어나 만사를 제치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웬 남작이 온다는 소식에 시큰둥하게 쇼파 에 걸터 누워있던 로웬이 화들짝 일어섰다. 그리고 맨 마지막 으로 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그 날의 그 꼬마가 이렇게나 컸군.” “아?” 짧은 의아함이 씻겨나가며 금아가 활짝 웃었다. “아저씨셨군요.” “아저씨?” “네.” 호칭이 어색한지 칸이 고개를 갸웃 했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금아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옛 맹세를 지킴을 우선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뇌었던 금아의 맹세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란의 눈가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렸다. 그녀와 눈이 마 주친 금아의 귓가가 살짝 달아올랐다. 칸이 손을 뻗어 금아의 금발머리를 어지럽게 헝클어트렸다. 금아는 소년처럼 웃고 있 었다. 응접실 안의 공기는 따듯하고 화목했다. “참, 그리고, 노도가 클레이브에게 주라고 맡긴 거 있었지?” 문득, 란이 말을 꺼냈다. 금아의 얼굴이 잠시 어둡게 가라앉았 다. 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도사이며 ‘수도자’야. 육신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존 재가 처음부터 아니었어. 너희들의 눈에 그는 죽은 자이겠지 만, 그는 자신의 수도를 한 겹 벗어난 것뿐이야.” 란을 통해 노도의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클레이브와 아 이들도 눈물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어련 하실까요.” 잠시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금아가 픽, 웃으며 품에서 작은 편지를 꺼내 클레이브에게로 건넸다. 클레이브가 조심스 럽게 쪽지를 받아 그 자리에서 펼쳤다. “아.” 쪽지를 읽어 내리는 클레이브의 볼이 가늘게 떨렸다. “뭐라고 말을 남겼지?” 란이 궁금한 듯 물어왔다. “아, 어, 어머니...” 클레이브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으며 클레이브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 그게 어머니의...” 몰려든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클레이브의 목덜미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란이 다가가 클레이브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래. 어머니의?” 클레이브의 입가에 활짝 미소가 피어났다. “어머니의 가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런.” 힐끔 쪽지를 훔쳐 본 란이 고개를 흔들었다. 노도가 클레이브 에게 남겨준 종이에는 동대륙 출신의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 야기가 적혀 있었다. 혹시 몰라 알아본 소식에 의하면 그의 어 머니의 가문은 동대륙에서도 이름 있는 가문이라고. 혹시나 기 회가 되어 동대륙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어머니의 유품인 팬 던트를 가지고 찾아가 보라고. 그리 쓰여 있었다. “그래.” 란이 부드럽게 클레이브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금아와 사람들 이 다가와 클레이브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한참 만에서야 클레이브의 눈이 젖어들었다.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는 몰랐지 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친어머니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 을지도 모른다는 건 대단한 기회였다. “네.” 클레이브가 눈가를 닦았다. 그리고 란에게로 초롱초롱한 눈빛 을 던졌다. “그 때는 함께 가 주실 수 있는 거죠?” 순간 란의 표정이 굳었다. “아...” 란은 가늘게 한숨을 내쉈다. 클레이브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다시 만난 후부터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요 근래 들어서서의 란의 모습은 걱정스러우리만큼 불안해 보였었다. 클레이브는 입술을 축였다. “네?” 다시 되묻는 클레이브의 목소리는 조금 불안했다. 아무런 대답 도 하지 않는 란의 입술을 바라보며 클레이브는 살며시 란의 옷자락을 잡았다. 순식간에 서먹한 공기가 맴돌았다. 뭔가 석 연찮은 란의 태도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불길한 예감, 금 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미안하다.” 란이 씁쓸히 미소 지었다. “난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여행을 해 줄 수가 없어.” 칸이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고는 등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란은 긴장으로 뻣뻣이 굳어있는 금아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 다. “그 때는 네게 부탁해도 좋을까?” **** “십년은 지난 듯 하군.” 센은 눈을 감았다. 귓가에 희끗희끗한 새치가 자라나는 데 걸 린 시간은 겨우 한 달이었다. 그 짧은 시간 너무나 많은 일들 이 벌어졌다. “결국은 그 수밖에 없는 건가.” 목 뒤가 뻣뻣하게 굳어왔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쉬지 않고 밀 려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끝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숨을 쉴 때 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센은 길게 숨을 가다듬었다. ‘제기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래도 저래도 시큰둥, 관심 없기만 하던 란의 태도가 한 순간에 변했다. 그리고 그녀의 변 화는 쿠칸을 비롯한 원로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나름대 로의 해석을 통해 란이 자신들을 인정한 것이라 믿기 시작했 다. 설상가상으로 움크는 당당하게 아르의 신전에 폭풍을 이겨낸 자로서의 검증을 신청해서 당당하게 신탁을 받아냈다. 그건 로 드 이후에 내려진 최초의 신탁이었다. 순식간에 움크의 인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지. 지금의 카느께서도 젊은 시절 에는 혈기왕성하지 않으셨던가.” 쿠칸의 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카느의 오른팔로서 사막을 누볐던 전사의 말 속에는 카느의 뜻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의지 가 존재했다. 우왕좌왕하던 자들이 모조리 움크 쪽으로 넘어졌 다. “로드가 분노했던 건 그의 제자들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더군 요. 게다가 그녀의 제자가 크리아의 대공이지 않습니까!” 전쟁을 주장하던 자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전형적인 사막의 전사라던 움크조차 전쟁을 반대하고 나섰다. 명예가 없는 전쟁 은 오히려 아르신의 이름에 먹칠을 할 뿐이라며 외치는 그의 말에 아무도 반발하지 못했다. “인질로 잡혀 있다가 여관에서 불에 타 죽을 뻔 했던 아이가 글쎄 자식처럼 아끼던 아이라면서요?” “몰래 지켜주기 위해 하녀처럼 위장하고 있었던 거라더군요. 세상에, 오죽 아꼈으면, 그런 위장까지 했을까요?” 설상가상으로 소문이 퍼졌다. 모래기둥처럼 오락가락하던 자들 이 변심하며 심증으로만 남아있던 여러 가지 소문들이 부풀어 오르며 사방으로 폭발했다. “자칫 잘못하면 피티아의 전철을 밟을 뻔 했지 뭔가. 이게 다....” 탓이라는 말까지 나와야만 아는 건 아니다. 그 비난이 지금 어 디로 몰려들고 있는지는 센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우트트의 궁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었 다. 애써 티내지 않으며 움크의 영광을 칭찬하는 역을 해 내고 있었지만 우트트의 안색은 날이 갈수록 초최해져만 갔다.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센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던 길드들도 변했다. 그림자의 장이 암살당하며 그와의 일이 끊겼다. “명예를 잃은 자와는 일 할 수 없소.” 심지어 만만히 봤던 자들까지도 저런 소리를 짓걸였다. 센은 뒷목을 주물렀다. 혈압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은 우트트님을 위해서였건만.’ 오늘 오전에는 크리아로 보냈던 세자트가 무사히 귀국할 예정 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센은 이를 악물었다. 전쟁도발은 실패했더라도 최소한 그는 제거했어야 했다. 그는 움크에게 정 치력이라는 힘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휴우.”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뒤집히며 눈 먼 화살촉이 되어 그들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제 그를 따르는 자는 많지 않았다. 한 낙타의 줄에 서있기에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이 묶여있는 몇 몇이 다였다. “이제 마지막 방법 밖에 남지 않은 건가.” 마지막의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남겨두어야 하는 건 명예였다. 우트트의 명예에 튄 모래가루를 털어내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영광은 노릴 수 없었다. ‘마지막.’ 센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털컹.-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그의 도가 서랍 안에서 모습을 들어냈 다. “마지막... 방법인가.” 은은한 살의가 그의 전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일!’ **** 아침부터 황궁이 소란스러웠다. 정식 무도회는 아니었지만, 움 크가 귀환한 세자트와 크리아의 사신들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연 환영회의 준비로 사람들이 바삐 돌아다녔다. “조심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물건을 한 가득 안고 달려가던 사람이 멍하니 서 있던 금아를 나무랬다. 금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복도 중앙을 벗어났 다. -어째서입니까.- 클레이브를 지키는 일은 란의 몫이었다. 난데없는 란의 말에 금아는 반발하듯 외쳤다.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란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나 역시 노도와 다르지 않은 수도자이니까.- 쾅!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휘청, 금아의 몸이 흔들렸다. 클로네의 몸이 비틀했다. 막 쿠키를 집어 들었던 스테판과 크 레이의 손에서 툭, 과자가 떨어졌다. 차를 입에 댔던 로웬의 입은 분수를 뿜어냈다. 모두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열렸다. 노 도와 같은 수도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지, 지금 그 말은!- 옆에 서 있던 클레이브가 란에게로 매달렸다. -미안하구나. 클레이브. 네 평생을 지켜주겠다 약속했었는데.- 란이 무릎을 굽히고 클레이브와 눈높이를 맞췄다. -내게 주어진 천수가 다 끝나가는구나.-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그녀는 불 멸에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던가. 후들, 클레이브의 다리가 떨 렸다. 란은 클레이브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살짝 몸을 들어 올렸다. 까맣게 열린 눈동자를 감싸고 습습한 눈물이 솟아올랐 다. 코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클레이브는 머리를 흔들었다. 클로네가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하, 하하하.- 금아는 웃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녀만큼은 영원하다고 생 각하고 있었는데! 세상 모든 존재가 죽음을 향해 가더라도 그 녀만큼은 살아남으리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제 겨우 모든 짐을 벗어던지고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이제야 간신히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이어 질 수 없는 완벽한 이별을. -그, 그럼 그 천수가 언제까지입니까!- 금아는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그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담 긴 마나가 쩌렁 유리창을 울렸다. 란이 조금 고통스런 얼굴로 몸을 일으켜 금아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섰다. -네게 너무 무거운 짐을 남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입니까!- 금아가 외쳤다. -이틀 후.- -!- -이미 힘이 흩어지기 시작했어. 아무래도 오랜 시간 머물렀던 육신이니, 분리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 더군.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갑자기 폭 삭 늙어버리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말이야.- 씁쓸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란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동의하고 정한 기일이건만. 자신의 몸이 정해진 죽음을 향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건 그다지 기분 좋은 감 각은 아니었다. -모레 새벽이면 내 천수는 끝난다.- 아찔한 현기증이 금아를 덮쳐왔다. 발끝으로 피가 모조리 흘러 나가는 것 같았다. 휘청, 그의 몸이 흔들렸다. 란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바닥을 뒹굴렀으리라. 란은 조금 미안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하루 남은 셈인가.” 머리가 멍했다. 클레이브들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클로네 역시 체면을 차리지 않고 란의 허리에 매달렸다. 란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금아 에게 말했다. -내 짐을 나눠 져 줄 수 있겠니?- “젠장.” 금아는 발악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햇살이 너무 강해 눈이 시렸다. 해는 금아가 아무리 노려보고 살기를 뿜어도 조금씩 움직여 하늘의 중앙으로 향해갔다. “제길. 그럼 어떻게 못하겠냐고 한단 말이야.” 못한다고 우긴다면, 란의 천수가 늘어날까. 퉁, 누가 등 뒤를 밀었다. 또다시 나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길에서 비틀거리지 말라구요! 가뜩이나 바쁜데!” 금아가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 은 사람들이 그의 견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전 남겨져야 하는 겁니까.’ 차마 그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란을 위해 금아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에 피멍이 맺혔다. **** “어떤가?” 차가운 눈빛이 흰 마스크 사이로 빛났다. “다들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다.” 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앞에 모여 있던 다섯 명의 인형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센은 손바닥에 베어 나온 땀을 옷에 문질러 닦았다. 이번 일은 성공여부를 떠난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 실패해도 죽지만, 성공해도 죽어야 한다. 센은 각오 를 다졌다. ‘이 행운을 놓쳐서는 안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란을 포함한 크리아의 사람들은 오늘따라 뭔가가 풀려 있었다. 세자트와 함께 나타난 뛰어난 실력의 남 작 역시 상태가 비슷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내내 멍하니 생각 에 잠겨 있기도 하고, 멀쩡히 길을 가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당겨온 긴장이 풀려서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센에게 는 절호의 기회였다. “움크를 찌른다.” 영웅이라도 몸에 흐르는 건 평범한 피다. 그 피를 모두 쏟으면 죽는다. 센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우트트님. 부디 카느로서의 지위에 오르시기를.’ 뒷정리는 끝났다.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를 생각해, 자신과 우 트트와의 연관성을 모두 끊어두었다. 마지막 길은 혼자 가야 했다. “로드를 모욕한 것도, 전쟁을 앞당기기 위해 사신을 죽이려 했던 것도, 우트트님의 뜻을 거스르고 홀로 일을 벌인 것도 모 두 이 센 하나의 일이니. 그리 만들어 주시기를.” 우트트가 슬퍼할지 화를 낼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앉아 우트트 의 몰락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센은 가슴에 품은 도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연회의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작은 종소리들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센은 몸을 일으켰다. “이런, 다들 왜 이렇게 힘들이 없으신지!” 연회의 시작시간보다 조금 일찍 움크의 사재로 초대된 사람들 의 표정은 침울하다 못해 암울했다. 세자트와 론이 나름대로 분위기를 살려보기 위해 이런저런 화재를 꺼냈지만 아무런 소 용이 없었다. 칸과 하르크는 이런 자리는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훌쩍 달아났고, 클로네는 란의 곁에 딱 붙어 앉았다. 금아와 로웬이 나름대로 대화를 이끌고 있었지만, 금아는 금아 대로 란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고, 로웬은 로웬데로 금아의 안색을 살피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하하하하.” 문 밖에서는 각양각색의 웃음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일지감치 모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이전의 움크의 귀환 축제 때보 다도 훨씬 밝고 명랑했다. “다들 긴장이 풀려서 피곤한 거겠죠.” 란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낮게 중얼거렸다. 몸이 노곤하고 자 꾸만 잠이 밀려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네. 그럴 지도 모르죠.” 친절하게 대구하는 세자트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자 꾸만 의식이 멀어져왔다. 란은 의식적으로 기지개를 폈다. 지 난 삼백년의 피로가 모조리 몰려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전 바람을 좀 쐬고 와야 할 것 같군요. 아직 연회 가 시작한 건 아니니까.” 금아는 몸을 일으켰다. 차와 다과를 들고 시종들이 방으로 들 어섰다. 툭, 무언가 길죽한 것이 금아의 종아리 부근에 부딪혔 다. 과일을 들고 있던 시종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괜찮습니다.” 금아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당장이 라도 죽을 것처럼 사그러 들어가는 란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건 금아의 최대 실수였다. -콰광!- 울리는 폭음과 함께 침입자를 알리는 경종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침입자다! 자객이다! 움크님을 노린 자객이다!” **** 은빛입니다. 이제 마지막 한화를 남겨두고 있군요. 두근두근 가슴이 떨립니다.^^;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 TITLE ▶53 :: [[The Perfect MAID]] - 145 - 최종화 [[The Perfect MAID]] - 145 - 최종화 “엥? 그런데 차에서 왠 독초냄새?” 약초 향에 유달리 민감한 로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움크 의 궁 곳곳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음식과 차를 들고 왔던 시종들은 한 순간에 자객으로 돌변했다. 창 밖으로 치솟 아 오르는 화염에 놀라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무 기가 쏟아져 날아왔다. “뭐, 뭐야!” 새파란 도에 칙칙한 검은 빛의 날이 사람들을 향해 갈라져왔 다. “제기랄!” 로웬의 스테프가 멋들어지게 곡선을 그리며 암살자를 빗나갔 다. 그와 가깝게 있던 란이 그의 스테프를 빼앗아 앞을 가로막 고 찔러 들어오는 도를 튕겨냈다. 휘청, 란의 몸이 가볍게 흔 들렸다. “제길! 하필 오늘!” 클로네와 클레이브는 스테판과 크레이와 함께 의자 아래로 몸 을 낮췄다. 세자트와 론은 각자 숨기고 있던 짧은 무기로 적을 맞았다. 움크가 벽에 장식되어 있던 자신의 애도를 뽑아들고 힘차게 휘둘렀다. 그러나 수적으로 역부족이었다. 방은 외부에 서 들어올 수 없도록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다. ‘각오한 놈들인가!’ 살아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쉽게 누를 수 없 다는 판단이 들자 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 중 하나가 바로 바닥에 불을 질렀다. 음식에 섞여 들어온 독초가 타오르 며 매캐한 연기를 내뿜었다. “꺄아아악!” 가르암 백작의 얼굴이 창백히 변하며, 쇼파 뒤편에서 클로네의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이런!” 쇼파의 앞쪽에서 도를 휘두르던 움크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움크의 옆쪽에서 가르암 백작을 공격하던 자가 재빠르 게 주머니에서 검은 가루를 쥐어 가르암 백작과 움크에게로 뿌렸다. “커헉!” 갑작스럽게 가루가 얼굴에 흩뿌려진 백작과 움크는 얼굴을 감 싸고 쓰러졌다. 움크를 공격하던 자와 가르암 백작을 노리던 자가 동시에 움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센!” 세자트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 만 그는 분명 센이었다. 세자트와 론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당황한 로웬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란은 자꾸만 멀어져가는 의식을 되잡으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복면인을 밀쳐냈 다. “밀어먹을!” 눈을 찔러오는 고통에 움크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안돼!” 쇼파 아래 몸을 숨기고 있던 클레이브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두 팔을 펼쳤다. 이를 악문 클레이브와 센의 눈이 부딪혔다. 짧은 순간 센의 눈에 갈등과 독기가 교차했다. 쿵쾅, 란의 심 장이 뛰었다. 혼몽함이 한 순간에 달아났다. 칼날은 클레이브 를 뚫고 움크까지 꽤 뚫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새파란 날이 바 로 클레이브의 심장 앞까지 다가왔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이를 꼭 악물고 눈을 뜬 클레이브의 모습이 또렷하게 눈에 들 어왔다. 순간, 란의 몸이 클레이브를 밀치고 그의 앞으로 나타 났다. -퓨훅!- 거무튀튀한 기다란 날이 란의 가슴을 관통하고 등 뒤로 튀어 나왔다.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세자트와 론의 목소 리가 터졌다. “라, 란니이이임!” “헉!” 찌른 센조차도 믿지 못했다. 란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뜨였다. 자신의 몸을 저런 힘없는 검이 관통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꺄아아아악! 란니임!” 란의 바로 옆에서 클로네의 비명이 들려왔다. 란은 고개를 돌 렸다. 뜨거운 피를 타고 힘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흐릿한 란의 시아에 창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와 미친 듯이 검을 휘두 르는 금아의 모습이 잡혔다. 줄기줄기 섬광이 뻗어 나와 센과 그의 부하들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온 몸에 란의 피를 뒤 집어쓰고 앉아있던 클레이브가 더듬더듬 란에게로 기어왔다. “금...아.. 그만...” 란은 마지막 힘을 집중했다.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거짓말처럼 금아의 검이 멎었다. 금아가 토막내던 암살자들의 시신을 내팽겨치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란의 눈이 느리게 감 겼다. “라, 란님!” 클레이브의 목소리가 란의 귓가에 바짝 붙어 울렸다. 란은 눈 을 떠 보려 애썼다. 그러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건가.’ 며칠 전서부터 느껴지던 흐릿한 그림자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 러냈다.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육신이라는 것 이 이렇게 간단히 별리될 수도 있는 물건이었구나. ‘내가 어리석었던 걸지도.’ 사방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멀 어졌다. 삼백 여년, 육신을 단련해오면서 쌓아왔던 애착과 집 착이 하나 둘 벗겨지는 것만 같았다. ‘그 때 적호님을 따라 갔었더라면.’ 란은 미소를 떠올렸다. 언제인가 노도가 집착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란이 굳이 신으로서의 몸을 부여받지 않고 지금의 육신을 단련시켜 가져가겠다는 건, 다 자란 어린애가 어린시절 에 쓰던 낡은 요를 버리지 못해 움켜쥐고 있는 것과 같다고. ‘모든 이별을 끝낸 지금에서야 의미를....’ 란의 의식이 새까맣게 가라앉았다. 란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 어졌다. 금아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부르르 떨리는 그의 전신에서 검은 살기가 막 치솟아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란의 몸 안으로부터 터질 듯한 밝은 빛이 폭사해 나왔다. -우우우우우우웅- 귀로는 들리지 않았지만 머리 속으로 커다랗게 소리가 울려왔 다. 동시에 눈부신 빛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 린 빛이 란의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러기를 잠시, 란의 내부로부터 강렬한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두 빛은 서로 어울리듯 뒤섞이며 란을 다시 감쌌다. “크, 크흑!” 빛과 대기가 내뿜는 강렬한 위압감에 사람들은 고개를 뜨지 못했다. 눈을 감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음에도 눈동자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금아는 있는 힘껏 기운을 끌 어올렸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 잡아야…’ 란의 몸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완전히 감겨졌던 란의 눈꺼풀이 조용히 미끄러지듯 열렸다. ‘자, 잡아야…’ 잡아야 했다. 란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금아의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저 빛이 그와 란의 사이를 죽음보다도 더 깊게 갈라놓을 거라는 사실쯤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 제길!’ 지금의 란이 어떤 상태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꿈에도 그려왔던 그런 경지. 그러나 금아에게는, 남겨지는 사 람들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건 한 순간이어도 좋았다. ‘아, 아직!’ 아직 란의 천수는 반나절이 더 남아 있었다. 그 나절의 시간이 천금보다도 더 소중했는데! 금아는 애써 고개를 들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서질 듯한 고통에 눈이 멀 것 같았지만 이대로 땅에 머리를 박은 채 란을 보낼 수는 없었다. “라, 란니임!” 소리 질렀지만 목소리가 퍼져나가지 않았다. 울컥 핏물이 올라 왔다. 그 동안에도 란은 변화하고 있었다. 검게 물들었던 흑빛 머리칼이 긴 은빛으로 변했다. 주름 한점 없던 피부가 새롭게 태어나며 먼지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피투성이로 얼룩진 몸이 깨끗이 정화되었다. 은은한 향이 그녀를 타고 사방으로 흩어졌 다. 그리고 한 순간, 빛이 사라졌다. -아.- 란이되 더 이상 란이 아닌 존재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성대 에서 흘러나오던 고운 목소리가 아닌 은은한 울림이 그녀를 타고 흘러나갔다. 란은 조금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 보 았다. 가슴의 상처는 오간데 없었다. 란은 가볍게 손을 쥐었다. 희고 연약해 보이면서도 이전의 손보다 더 강해 보이는 무언 가가 있었다. 분명 손의 형상이었음에도, 그건 손이 아니었다. 스륵, 옷감과 같은 감촉이 손을 감싸고 흘러내렸다. 그녀를 보 듬어 안았던 빛이 그대로 변화한 것처럼 옷은 빛을 발했다. ‘큭!’ 금아는 눈을 비볐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온 세상이 하 얗게 변해 더 이상 란이 있던 곳이 보이지 않았다. -존재는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와라.- 은은한, 그러나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담긴 의지가 란의 머릿속으로 울려왔다. 란의 검은 눈동자가 빛을 뿜는 별처럼 변했다. 또다시 빛이 폭발하며 란의 몸이 빛 안으로 빨려 들어 가 사라졌다. “란님!” 약속했던 한달에서 하루가 부족한 날이었다. 털석 주저앉은 금 아의 주위에 클레이브와 사람들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한발 늦게 도착한 하르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칸이 말없이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갔군.’ **** “란이 왔습니다.” “그녀가 왔군요. 마지막 무신!” 신들이 술렁였다. 기한의 마지막까지 인간계에서의 수련을 고 집한 괴짜. 그리고 세웠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온 유일한 무 신. 그녀가 차원의 문을 여는 순간 퍼진 기운은 모든 신계로 알려졌다. “그나저나 그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있다던데, 아르 페이나님과 아르님들은 어떻게 할 셈인지 모르겠더군요.” “일전에 아르페이나님께서 주신을 찾아가 무언가를 상의 드 렸다고는 들었습니다만.” “호오, 그렇습니까.” 인간계에서 한 순간에 란의 몸이 사라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존재는 느린 속도로 신계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렇게나 시간이 걸리다니. 소문대로 정말 강한 무신인가보 군요.” 신들이 감탄이 이어졌다. ‘신계?’ 란의 의식은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지상의 모습이 서서히 멀어져가며 감각이 열렸다. 인간으로서 완성되어가며 감히 인 간으로는 상상치 못할 힘을 얻고 한계를 넘어선 감각을 얻었 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지금 란이 느끼고 있는 해방감과 광 각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살던 사람이 한 순간 빛을 보고 소리를 듣는 느낌이 그러할까. ‘이런 것이었나.’ 존재 자체로 다가오는 수많은 정보들과 느낌들에 란은 깊은 환희를 느꼈다. 이 순간을 위해 삼백여년의 시간을 지상에서 뒹굴렀다. 주마등처럼 지상에서의 일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아아.’ 미련이나 아쉬움이 아니었다. 지상은 멀어졌지만, 멀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건 신으로서 지니는 지극한 자연스러움이었다. 란 은 작게 의지를 발현시켰다. 존재가 울리는 느낌이 새로웠다. 그녀 자신의 존재가 점점 더 신계로 가깝게 전이해가는 감각 은 쇠사슬로 얽힌 채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가 홀가분한 모습으로 달려 나가는 것과 같은 시원함이었다. ‘이것을 등지고 인간계에 머물렀단 말인가.’ 지상을 고집했던 자신이 어리석게만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문득 눈을 뜬 그녀의 앞에 낯익은 갑옷차림의 여신이 서 있었 다. 봉인되었던 무신으로서의 기억들이 란의 안에서 떠올랐다. 익숙한 기운과 익숙한 대기. 란의 눈이 부드럽게 웃었다. “삼백년 만입니다.” 신계의 시간으로는 아주 짧은, 그러나 인간의 시간으로는 아주 긴 시간만의 만남이었다. “주신께서 기다리십니다.” 여신이 빙긋 웃었다. 그녀의 주위로 모여든 신들이 밝은 얼굴 로 란의 귀환을 축하해왔다. 그랬다. 그건 귀환이었다. 존재하 고 신으로서의 삶을 보내왔던 진정한 집으로의. 멀찍히 앞쪽에 서 노도가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란이 손을 들어 그를 환영했 다. 노도가 덥석 란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가세나!” 그들의 앞쪽으로 존재를 떨리는 거대한 울림이 퍼져 나왔다. 주신의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거대한 주신의 광 체가 공간의 틈으로 떨쳐 나왔다. 자상한 의지가 란을 감싸왔 다. “아아.” 란의 볼을 타고 맑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란이여, 무신 주란이여. 그대는 약속과 맹세를 모두 지켜냈 구나.” 주신의 의지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란은 조용히 무릎을 꿇 고 고개를 숙였다. “주신의 명을 받들어 돌아왔습니다.” 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가슴이 벅찼다. 다시 무신으로 서 움직일 생각에 솟아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주 신의 곁으로 그를 보좌하는 신들이 빛을 더했다. 주신의 의지 가 이어졌다. “내 수 많은 신들로부터 자네의 이야기를 들었다.” 란을 둘러싸고 흰 빛의 원이 그려졌다. “많은 신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여. 무신이라 하더라도, 이 신 계에 속한 어떤 존재도 자네처럼 동서와 고금을 넘은 신들에 게 관심 받는 존재는 없었느니라.” 주신의 의지에는 기쁨과 대견함이 있었다. “자네는 지금까지 지상으로 내려가 수행한 그 모든 신족 중 에서 가장 뛰어난 발전을 이루었다.” 란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루 말 할 수 없이 뿌듯했다. “그 상으로. 나는 ‘특별히’ 자네에게 자네의 또 다른 맹세 를 지킬 수 있도록 해 주겠네.” “네?” 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특별히’라는 단어에 몰려있던 의 지의 균형이 형언할 수 없이 불길했다. 문득, 주신의 곁에 서 있는 신들 중 네 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놈들이!” 아르페이나와 아르들의 얼굴을 확인한 란의 눈동자가 벌어지 며, 얼굴이 하염없이 일그러졌다. “이전에 쓰던 힘 정도만을 남기고 존재를 봉인해 줄 터이 니.” “보, 봉인!” 청천벽력이 떨어져 내렸다. 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쾅!- 주신의 손이 잠시 움직인 듯 보였다. 란은 입을 떡 벌렸다. 그 게 마지막이었다. 신을 볼 수 있는 눈이 닫히며, 눈앞은 새까 맣게 물들었다. 의지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닫히며 머리가 멍하 니 울려왔다. 주위에 들려오던 수많은 신들의 의지가 사라졌 다. 밝게 빛을 발하던 은빛의 머리카락이 칠흙처럼 검게 가라 앉았다. “이, 이건!” 신으로 각성하면서부터 되찾았던 모든 자유로움이 순식간에 그녀에게서 지워지고 있었다. 란은 당황했다. 주신의 의지로부 터 생겨난 사실이 그녀를 옭아매왔다. 반항 할 수조차 없었다. “지상은 신이 존재하기에 너무나 약하고 여린 곳이기에.” 주신의 의지만이 또렷하게 그녀의 머리로 와 닿고 있었다. “어, 어째서!” 란의 외침은 주신에게까지 닿지 않는 듯 했다. 란은 몸부림쳤 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 순간 그녀의 발밑이 꺼 졌다. “자네의 아이들의 천수가 다 할 때까지 지상에 머물며 그들 을 지킬 것을 허락하겠네.” 그녀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째서어어어어!” 길고 긴 란의 비명이 공간을 통해 웅웅 울려왔다. 신들은 잠시 침묵했다. 신들의 줄 한켠에서 란을 바라보고 있던 노도의 입 이 떡 벌어졌다. 휙, 돌린 노도의 시선을 받은 삼신할미가 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면했다. 적호가 낮게 기침하며 몸을 돌렸고, 아르와 아르페이나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자아, 그녀의 일은 그녀가 알아서 하겠지요.” 신들의 주위를 환기시키는 주신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짖 궂음이 가득 차 있었다. 황당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노도 에게 살짝 눈을 찡긋해 주고, 주신은 여유낙낙한 미소를 지었 다. “시대가 닫혔는데도 괜찮을까요?” 주신의 곁에 있던 여신이 조금 어두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손 을 들어 란이 떨어져나갔던 공간을 닫으며 주신은 가볍게 미 소 지었다. “닫힌 공간을 오갈 수 있을 만큼 힘과 존재를 봉인해 주었으 니, 좀 심하게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럭저럭 존재할 수는 있 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봉인을 거쳤다고 하던 들, 그녀가 지키러 간 그 아이는 겪어야 하는 시련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너무 강한 수호자를 붙인 건 아닌가요?” “본디 시련이란 예기치 못하는 곳에서 다가오는 법입니다.” 시익, 웃는 주신의 미소가 의미심장했다. “때로는 수호자를 통해서도 말입니다.” 주신은 몸을 일으켰다. “기왕 당하는 시련이라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로부터 당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겝니다.” 주신을 바라보고 있던 노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을 위한 누구의 수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아이들과 금아가 고생 좀 하겠구먼.’ **** -쾅! 쾅! 쾅! 쾅! 쾅! 쾅!- 움크의 궁전 꼭대기에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층층이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축제의 북소리처럼 둥둥둥 울 렸다. 온 건물이 충격의 여파로 들썩였다. “헉, 이, 이번에는 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아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들 의 반응은 더 기민했다. 딱딱하게 굳은 움크의 경비병들이 도 를 뽑아들었다. 세자트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은 충격이 퍼져 나온 곳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해갔다. 그 때였다. “크, 크, 크, 크하, 캬하하하하하.” 낮은 음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헉?!” 금아는 귀를 문질렀다. 환청을 들은 듯 했다. 휙,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그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하르크와 클레이브의 얼굴이 잡혔다. 믿기지 않은 경악으로 범벅이 된 표정! 저 목 소리라니, 저 목소리라니! 어딘가 광기가 베어 나오는 것이 평 소라면 두말 안고 뒤돌아 달아났을 듯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 지만, 지금의 금아에게는 그런 이성을 판단할 무언가가 남겨있 지 않았다. “서, 설마!” 벌떡 몸을 일으킨 클레이브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비슷한 희망이 떠올라 있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을 틈도 없이 사람들은 굉소가 터져 나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라, 란님? 란님인 건가?” 말을 꺼내는 목소리들이 마구 떨렸다. 쾅, 문을 발로 차 열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놀라 몸이 굳어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을 뛰어 넘어 창문을 건너뛰었다. 그 앞쪽에 홀로 서 있는 여인이 있었다. “크, 아하하하하하하하!” 뽀얀 돌가루가 휘날리는 폐허의 한 가운데, 검은 머리를 사방 으로 풀러 헤친 란이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갔 던 사람들의 몸이 흠칫 굳었다. 섬뜩한 소름이 온 몸에 돋았 다. 꿀꺽, 누군가의 목에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크, 크흐흐흐흐, 저, 저놈이 죽을 때 까지… 죽을 때 까지라 고?” 기이하게 빛을 발하며 란의 눈동자가 클레이브를 훑었다. 딸 꾹, 놀란 클레이브가 숨을 들이마셨다. “저놈의 천수가... 저절로 끝날 때 까지?” 빠드득, 이를 갈았다. 클레이브와 아이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움찔움찔 뒷걸음질치며 하르크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데구르 르르, 눈동자들이 굴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저 목소리 와 얼굴은 란이 분명히 맞는데,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모 든 분위기는 그들이 아는 란이 아니었다. “내 삼백년 꿈이... 그래서 이렇게 뽀작났어?” 흐릿하게 풀린 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녀의 몸이 가늘게 흔들렸다. 허무했다. 콱, 죽고 싶을 만큼 허무했다. 란 은 고개를 숙였다. “크, 흐흐흐흐흐.” 악물린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온 몸이 갑갑했다. 아니, 모 든 존재 자체가 조여 왔다. 한 순간 풀려났었던 신으로서의 힘 과 감각이 모조리 봉인된 자신이 견딜 수 없으리만큼 고통스 러웠다. “꿈이...” 란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 이건 꿈이야!’ “…………………커헉.” 숨이 턱 막혀왔다. 란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풀 썩 몸이 쓰러졌다. 뾰얀 돌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작은 바람이 불어와 먼지를 날 려 보냈다. “지, 지금 란님이 뭐라고 한거요?” 온 몸을 있는 데로 움츠리고 앉아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던 하 르크가 빼꼼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클레이브가 죽을 때 까지라니요?” 얼떨결에 따라왔다가 함께 굳어있던 움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글쎄요.” 쓰러진 란에게로 조심스레 다가가며 금아가 고개를 저었다. 죽 는다고 했다가, 죽는 듯 했다가, 난데없이 경지를 꿰뚫고 하늘 로 날아가더니만, 벼락처럼 땅으로 떨어져서는 난데없는 살기 를 내뿜으며 미친 듯이 웃다가 쓰러졌다. “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잘.”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쓰러진 란을 신중하게 살펴보 는 금아의 눈에는 작은 이채가 맴돌고 있었다. ‘변했다.’ 란은 무언가가 변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순간 금아의 머릿속에 광채가 스쳤다. ‘잠깐. 분명 클레이브의 천수가 다 할 때 까지라고 했었지? 그럼 만일... 클레이브가 죽지 않는다면?’ 휙, 금아의 고개가 돌아갔다. 하르크의 품에서 아직 나오지 않 은 클레이브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 클레이브의 몸이 다시금 굳어갔다. ‘만일 저 아이가 아주, 아주 오래, 란님만큼 살게 된다면?’ 그 말만으로 모든 걸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방금 한 란의 말 이 모두 사실이라면 란은 지상을 떠날 수 없다. 금아의 얼굴에 는 음흉한 미소가 피어났다. “크흐흐흐흐흐흐흐.” 나지막한 굉소가 전염이라도 된 듯 금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헉!” 놀란 아이들과 하르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슬금슬금 금아 와 란에게서 멀어져갔다. **** 삼신할미와 아르페이나의 눈이 잠시 교차했다. 아르와 적호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결국은 또 무덤을 판셈인가.’ 아르페이나는 길게 한숨을 내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움직이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감과, 아니야 어찌될지 모르는 거 기왕 이렇게 하기를 잘했어. 라는 자족감이 번갈아 그녀를 덮쳤다. “이번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정말로 가만있지 않을 텐데 걱정이군요.” 신계로 올라오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상상하던 것보다도 더 발전해 돌아왔다. 그랬기에 주신께서도 만족해하 지 않았던가. 그게 오히려 란에게는 독이 되어 돌아가기는 했 지만 말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쏟아진 우유입니다.” 의외로 적호는 담담했다. “그렇지.” 삼신할미 역시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 리에는 기묘한 박력이 있었다. “정 안되면 그녀가 다시 올 때 즈음에는 우리가 내려가면 되 는 거라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인간행을 해 보지 못했으니, 한번의 예외 정도라면 주신께서도 허락하시겠지.” “하, 하지만 인간의 몸이라니. 오히려 더 불리하지는 않을까 요?” 아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런 걸 무에 걱정하는가. 정 뭐하면, 클레이브의 아들이나 손자로 태어나면 되겠구먼.” “오오. 그거 좋은 방법인데요!” 짝, 손바닥이 마주쳤다. **** 은빛입니다. 작년 3월에 첫 글을 올린 후, 오랜 시간 독자분들을 기다리게 하고, 10월에 재연재, 그리고 딱 일년만에 최종화를 올립니다. 지난 1년 반동안 제 글을 기다려주시고, 호흡을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제 두번째 장편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같은 기간 내의 다른 분들만큼 많은 책을 내지는 못했습니다만, 많이 뿌듯하네요. ^^ 잠시 휴식을 취하고, 새 글로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세번째 글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울러, 6권중 최강의 두께(?)를 자랑할 퍼펙트 메이드 6권 역시,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글쟁이는 인세를 받아야 입에 풀칠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다....ㅠ^ㅠ) 많은 관심과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드릴 말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마지막회를 딱 정리하고 나니, 머리가 멍~ 하니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후기도 미리 써놔야 하는건지.. 후훗. 잠시 고민해봤습니다만. 글쓰기도 벅찬것을! 후기까지는 도저히 무리더군요. ㅠㅠ 지난 시간 퍼펙트 메이드 란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10월... 마지막에서 은빛 배상 silverlit@hanmail.net www.drw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