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 한 이계인의 등장은 중간계 전체를 들썩였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자! 마족도 아니면서 중간계의 모든 마족을 다스리는 권한을 얻은 자! 인간으로써는 결코 넘볼 수 없는 신족과 마족을 비웃는 자! 중간계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과의 승부를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자! 어둠의 실체는 드디어 베일을 벗고 이계에서 온 방문자의 승부가 시작된다. 삶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버린 한 이계인의 전설은 우리의 가슴을 흔들 것이다. 1장. 위험한 등산 ??화창한 오후.. 그 지긋지긋한 황사도 이미 자취를 감춘 듯 보이지 않은 맑고 푸른 4월의 하늘..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래 만에 가져본 듯 하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도 지나가고, 모든 생명이 기지개를 활짝 켰는지 생동감이 넘쳐흐른 봄날이다. "으음... 정말 오래 만에 바라보는 맑은 하늘인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주변의 날씨가 좋아서인지 그 목소리에도 활기가 넘쳐흘렀다. "그렇지.. 그렇지... 이런 날은 정말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 않니?" 찬성을 하며 달려드는 음성은 내가 익히 알고있는 녀석의 목소리.. 역시나 그 음성의 주인공은 금새 모습을 드러냈다.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키지만 그나마 멋을 내려고 일부러 긴 바지를 입고 다니는 녀석.. 붉게 염색을 드린 머리카락은 얼굴까지 가릴 정도로 길었다. 뒤에서 보면 영락없이 여자라고 착각할 정도로... "현수야! 또 여행 타령이냐? 너 저번에는 황사 때문에 이 답답한 도시를 빠져나가고 싶다고 여행 가자고 했잖아! 근데 이번에는 날씨 좋다고 또 여행 타령이냐?" 내가 보아도 매혹적인 근육질의 몸매... 나도 녀석의 근육질 몸매를 한때 동경한 적이 있었다. 저런 몸매라면 여자들이 줄창 따라 붙을텐데... 물론 예외도 있지만... 예외는 물론 저 녀석이다. 한상태..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녀석이다. 저 근육질의 몸매를 어떻게 저토록 잘 유지하고 있는지 모든 이들의 궁금증이다. 물론 자기 딴에는 태어날 때부터 천성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믿지 못할 소리다. 하여간 상태의 핀잔에 현수는 삐쭉 입술을 내밀더니 한마디 쏘아붙였다. "누가 너하고 가자고 그랬냐? 왜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현수의 말에 상태는 피식 웃더니 입술을 다신다. "정말 그러냐? 너 맛있냐? 한번 잡아먹어 볼까?" 상태의 말에 현수는 기겁을 하고는 내 등뒤로 숨더니 소리를 질렀다. "야... 저거 변태 아니냐? 누굴 잡아먹겠다고... 용아! 제 좀 말려라... 저거 아무래도 사고 치겠다." 현수의 말에 나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도 상태 말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먹고 싶은데..." 내가 고개를 팩 돌려서 현수를 쳐다보자, 현수는 기겁을 하더니 화들짝 놀라서 얼른 내 등뒤에서 도망치더니 고함을 질렀다. "미친놈들... 이것들 전부 미쳤나봐... 동네 사람들! 얘네들 좀 보래여... 미쳤어여. 빨랑 신고해여... 119... 119..." 나는 현수의 호들갑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119에 신고하면 누가 오지??? 나와 상태는 현수의 끊임없는 유혹 아니 발광에 가까운 앙탈에 못 이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뭐.. 이틀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아!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안 했군. 내 이름은 현용.. 외자다. 보통 용이라고 부르는데... 이 용자가 용룡자다. 그러니까 원래 부르려면 룡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발음 구조상 룡이라고 부르면 어감이 이상해서리... 다들 용이라고 부른다. 나이는 만 스물셋... 갓 제대를 하고 복학을 준비중이다. 군대 얘기를 하면 그렇지만 나는 공수부대 출신이다. 우리 나라에서 해병대, 공수부대를 우선으로 치니 뭐 꿀릴만한 군대생활은 아니다. 하사관이 거의 주를 이루는 부대에 사병으로 나왔다고 얕보면 큰코다친다. 이래봐도 날고 긴다는 하사관들과 겨루어도 밀려 본적이 없으니... 아, 잡담은 그만하고 여행 얘기를 해야겠다. 내 일행은 예전 군대에서 훈련할 때 찜을 해두었던 용아산으로 여행지를 정했다.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는 산으로 인적이 몹시 드문 곳이다. 군대에서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잘못 들어온 산이니... 용아산이라는 이름도 길을 헤매다가 우연히 만난 심마니 아저씨에게 얻어들은 이야기다. 용의 이빨 같은 형세를 띄고 있는 산이라나? 확실히 자세한 지형 지물도 모르고 무대책으로 등산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뚜렷하게 정해진 코스는 없고..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위험천만한 일이기에 나는 반대를 했지만 이런 오지를 탐험하고 싶다는 현수의 안달에 우리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다. 물론 등산이라고 하지만 장비하나 없이 맨몸으로 오르는 것이다. 상태는 등빨이라도 있어서 걱정이 덜하지만 현수는 조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애들 장난이라며 끝까지 꼬장을 부리는 현수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난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물론 위험을 감수한다면 목숨은 하늘에 저당을 잡힐만한 곳이지만... 그렇게 위험한 경로까지 가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상태와 상의해서 제일 쉬운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물론 현수에게는 비밀이지만... 하지만 삼십분도 체 안돼서 현수는 정말 어려운 난코스를 선택했다고 투덜되고 있으니, 정말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면 아마 뒷감당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 하여간 우리는 옷 전체가 땀에 젖을 만큼 힘든 여정(아! 이것은 물론 현수의 입장에서 본??시야이다.)을 하며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이라고 하지만 용아산은 내가 보아서 대략 700미터 정도 되는 그리 높지 않은 고지의??산이다. 울창한 숲보다는 칼날 같은 암벽이 곳곳을 감싸고 있고,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기에 정말 이곳이 우리나라의 산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하여간 두시간이 조금 넘을 무렵 우리는 어느 정도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물론 이 만큼의 거리까지 온 것은 현수의 덕택이다. 느림보 굼벵이도 저만큼은 하겠다. 쩝... "헉.. 헉.. 야아..." 숨을 헐떡이며 부르는 소리가 있다. 나는 힐끗 뒤를 돌아보며 현수의 다음 대사를 듣기로 정했다. 현수는 내가 대답조차 안하고 뚫어지게 쳐다보자 멈칫 하더니 곧 빙그레 미소를 지우며.. 근데 헉헉대며 미소짓는 얼굴을 본적이 있나. 보았으면 아마 놀랐을 것이다. 거의 죽음이다. 하여간 녀석은 헉헉대는 가운데서도 미소까지 지우며 입을 열었다. "헥.. 헥... 여기... 있잖아!" "어.." "여기.. 여기 경치 무쟈게 좋다. 우리... 경치 구경 좀 하다가..." "안돼... 벌써 시간 초과야!" 나의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약간 짜증스런 상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뒤에서 들려오는 상태의 목소리에 인상이 찌그러졌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나보다는 뒤에서 현수의 궁둥이만 보고 따라 올라오는 상태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이해가 간다. 자신은 십을 가는데 앞에서 이만 하는 놈 때문에 이만큼만 이동한다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거기다가 별로 볼 것 없는 궁둥이만 보면서 따라왔으니... 저게 여자라면 또 모를까? 나는 상태의 심리가 이해가 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오해했는지 현수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았다. '허걱... 이런...' 오해는 분명히 풀어야 한다. 특히 저놈은... 녀석은 한번 토라지면 일주일은 기본이다. 그래서 녀석의 성별이 의심스러울 때도 종종 있다. 아! 그렇다고 내가 무슨 남녀 차별주위니... 그런 오해는 하지 않기 바란다. 이건 단지 상투적인 표현이다. 이것으로 여자가 어떻다고... 하면서 꼬투리를 잡는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할까.. 하고 통박을 굴리다가 나온 표현이니 제발 용서를...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지껄이느냐고... 에궁... 죄송... 나는 현수의 살기 어린 눈빛에 주눅이 들어서 상태를 토닥여서 경치 구경을 하기로 했다. 나쁜 녀석... 내가 얼마나 여린데... ??산 중턱이어서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더운 수증기가 온몸을 감싸고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사뭇 재미있다. 뭐... 딱히 경치구경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 솔직히 삐쭉삐쭉 솟아난 바위산에 이름 모를 나무가 가끔씩 보이는 곳이 무에 경치가 좋다는 말이냐? 그래도 현수는 얼마나 좋은 경치냐며 산 이곳저곳을 훑어보면서 철퍼덕 주저앉아 숨을 가다듬는 것이... 그래도 제 놈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고 자랑이다. 죽일 놈... 상태는 그런 현수의 꼬락서니를 보더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그 눈빛에는 약간의 살기가 품어져 있었다. 그런 상태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살기가 일어난다. 이거 이참에 저거 던져버려... 여기 온 것은 우리 셋밖에 모르니... 완전 범죄가 아닌가? 갑자기 살기가 치솟는다. 현수는 그런 우리의 분위기를 눈치 챘는데 벌떡 일어나더니 힘차게 소리질렀다. "자... 자... 이제 경치도 이만큼이나 구경했으니 가볼까? 우리 누가 일등하나 내기할래?" '저 주접대왕...' 나는 벌써 앞장서며 올라가는 현수를 바라보며 머리를 떨구었다. 상태도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나만큼 머리가 지끈거리나 보다. '에궁... 이놈의 친구가 뭔지...?' 산 중턱에서 쉰 지 한시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정상은 멀고 험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보아도 너무 험한 곳이었다. 깍아지듯 치솟은 정상의 봉우리는 맨손으로 올라가기에는 버거운 느낌이 든다. 나는 상태를 쳐다보고 의견을 묻는 눈짓을 했다. 상태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마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놈의 무대책 현수는 두 손바닥에 침을 뱉으며... 에구... 더러버라. 저 주접대왕에 추접한 넘... 십미터도 넘어 보이는 암벽의 틈새를 잡으며 오르려고 했다. "야.. 그만둬. 위험해... 우리 여기서 내려가자?" 동의를 구하는 나의 말에 상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무대책 현수는 나를 돌아보면서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보았다. "야... 여기까지 와서 어딜 돌아가? 이 정도는 쉬운 죽 먹기지. 이래봐도 내가 왕년에 저 에베레스트의 케이투(K2)를 등반하지 않았냐?" 허풍을 늘어놓는 현수의 말에 나와 상태는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잊었다. 에베레스트의 케이투라니...? 그거 전부 히말라야의 봉우리 이름들 아닌가? 요즘은 케이투가 에베레스트로 이사를 갔나보지? '무식한 녀석...' 나는 주접, 추접, 허풍에 무식하기까지 한 현수의 뒷모습을 보면서 지끈거리는 골치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거 친구만 아니면... 내가 이런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무렵 이미 현수는 낑낑되며 암벽을 오르고 있었다. 거의 70도 정도의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바위산은 아무리 경험이 많은 등반가라고 해도 장비가 없으면 오르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주접대왕 현수는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인지 힘든 기색을 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저자식... 그래도 잘 버티네.' 나는 현수가 낑낑되면서도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것을 쳐다보면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하는 행동은 영락없이 빈깡통 같은 녀석이 그래도 한번 내뱉은 말은 끝까지 하고야 마는 것이 신기했다.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지 오래.. 우리는 그렇게 급경사를 맨손으로 오르고 있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땀으로 젖은 온몸을 시원하게 해주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간간이 추위 마져 느껴졌다. 그때 내 눈에 신기한 것이 보였다. 주위의 배경의 조금전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군데군데 시커멓게 탄 흔적이 보이는 바위들이 보였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 보이는 모습이다. '거참 신기하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고 다시 몸을 움직였는데 더 이상한 것이 눈에 띄였다. 군데군데 시커멓게 타버린 바위 위로 이상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글도 영어도 그렇다고 한문도 아닌 이상한 기호로 새겨진 문자들인데 무슨 낙서 같지는 않았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곳에 기호를 새겼다고 하면 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하기는 이 험한 곳에 이런 쓸데없는 기호를 새길만한 미친놈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여간 이상한 문자가 새겨진 이곳은 약간 이상한 느낌 마져 들게 만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이고 있을 무렵... "어... 이게 뭐지?" 저 앞 선두에 서 있던 현수의 말에 나는 멈칫하고 현수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절벽 중간쯤에 움푹 패어져있는 곳에 현수는 온몸을 맡긴 체 늘어진 육체를 맡겨놓고 있다가 무언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현수야 원래 별로 신기한 것도 아닌 것을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놈이라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나는 묵묵하게 올라갔다. 좀 전에 보았던 이상한 문자들과 기이한 느낌은 다 털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현수도 내가 보았던 그 기이한 문자를 보고 놀라서 소리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는 뭐 이런 곳에서 그런 기이한 문자를 발견하면 신기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뒤에서 올라오는 상태는 현수의 말에 별반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기는 현수의 말에 이것저것 다 신경 쓴다는 것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현수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현수가 놀란 눈으로 관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장. 기이한 알 ??내가 도착했을 때 내 눈에 비친 것은 결코 현수의 오버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마치 붉게 타오르는 듯한 화염처럼 붉은 알. 크기는 대략 타조알 보다 두 배쯤은 커 보이는.. 솔직히 타조알이 얼마만한지 모르겠다. 하여간 보통 사람 머리 만한 큰 알이다. "이거... 혹시 공룡알 아닐까?" "쳇.." 현수의 말에 뒤에서 올라온 상태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공룡이라니... 현수도 자기 딴에는 그렇게 말했지만 상태의 콧방귀에 머리를 극적였다. 확실히 그건 어이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같이 비행기 날아가고, 우주에 로켓을 발사하는 디지털 시대에 공룡이라니... 그런 것은 어디 비디오 가게 같은 곳에서 빌려보는 영화에나 나옴직한 이야기였다. '무슨 동물의 알일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런 큰 알을 낳을만한 동물은 내 기억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가...? 상태도 나를 보면서 궁금한 표정이었다. 쩝... 저런다고 내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현수가 알을 집어 올렸다. "어... 어..." 알을 들어올리려던 현수는 놀란 목소리와 표정을 지으면서 끙끙대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 이거 상당히 무거운데. 내가 도저히 들어 올릴만한 무게가 아니야!" 그 말에 나와 상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현수를 쳐다보았다. 지금 우리 데리고 장난하냐? 아무리 크기가 어린이 머리만 하다고 해도 알은 알이다. 그런데 들어올리지 못하다니... 옆에 있는 상태는 현수를 쳐다보더니 혀를 찼다. "얌마... 그러게 내가 뭐라고 하던. 평소에 운동 좀 하라고 하지 않던." 상태는 그렇게 현수에게 한 마디 하고는 현수를 밀쳐내고 그 이상한 알을 들어 올렸다. "어..." 놀란 상태의 목소리가 들렸고, 상태는 들어올리던 알을 다시 내려놓으면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거 70, 80 킬로그램은 거뜬히 넘겠어! 상당히 무거워..." 그 말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어떻게 알 하나의 무게가 그 만큼이나 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현수와는 달리 상태는 헛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았기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상태가 들려다가 내려놓은 알을 들어 올려 보았다. "끙끙..." 역시나 마찬가지... 정말 무겁구나!!! 나는 알을 들어올리다가 포기하고 내려놓았다. "정말이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져서 이렇게 무겁지? 혹시 이거 무쇠로 만들어진거 아냐? 겉에는 칠만 해놓고..." 현수가 그렇게 말하자 그 말이 맞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생물의 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크기에 비해 무게가 너무 무겁다. "똑... 똑... 여보세요!" "지금 뭐하냐?" 현수가 알을 노크하자 어이없는 표정의 상태는 현수에게 물었다. "웅... 혹시 해서... 여기 외계인이라도..." "이게 미쳤나? 날씨도 좋은데 저기 밑으로 자유 낙하라도 하고 싶냐?" 상태의 살기 가득한 눈빛에 현수는 금방 움츠러들고는 "사사삭.." 내 옆으로 이동했다. '자식 쫄기는...' 하긴 상태의 저 눈빛은 나도 부담이 되기는 하다. 어쩌다가 장난이라도 저놈의 눈빛을 정면으로 대하면 몸에 오한이 일어나듯 떨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뒤에서 상태의 눈치를 살피던 현수가 다시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았다. 난데없이 오기라도 생겼던 것일까? 현수는 다시 한번 알을 들어올리려고 시도하는 태도였다 젖 먹던 힘까지 쓰며 알을 들어올리려는 현수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야... 임마, 그만둬! 나도 들지 못하는 무게야. 너라고 별 수 있을지 아냐?" 상태의 말에 현수는 아랑곳하지 않은체 젖 먹던 힘까지 내며 끙끙된다. "에구... 대책 없는 놈... 나 둬라! 저거 저러다 금방 포기할 꺼야!" 나는 말리는 상태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주저앉았다. 거의 기다시피 올라온 거리가 예상보다 많았기에 나의 체력도 거의 바닥이 나버린 상태였다. 상태도 포기했는지 저쪽에 자리를 잡고는 주저앉았다. 현수만 끙끙되며 누가 이기나 애를 쓰고 있다. 나는 현수를 보며 머리 나쁜 놈은 평생 고생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저놈처럼 무식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이마 위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현수의 하는 양을 쳐다보던 나는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기어이 현수놈이 그 이상하게 생긴 알을 들기는 들었는데 갑자기 갸우뚱하는 것이 아닌가? "어... 위험해!" 나는 놀라서 소리치고 얼른 일어나 현수에게로 뛰어갔다. 중심을 잃어버린 현수는 옆으로 몸이 쏠리는데 그 옆쪽은 낭떠러지였다. 손에 들고있는 알의 무게 때문에 현수는 중심을 못잡고 있었다. "그거 놔버려..." 달려가는 나의 귓가에 상태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현수에 두 손에 들려있는 알을 놓으라는 소리인 것 같은데 현수는 마냥 옆으로 비틀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에잇..." 나는 죽을힘을 다해 현수에게 뛰어 들어 현수의 팔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비틀거리는 현수의 몸이 내가 잡아주자 약간 멈칫했는데 그걸로 어느 정도 안정감이 들었다. "휴우..." 짧은 한숨이 새어 나가고 나는 현수를 끌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그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받아..." "뭐...?" 갑자기 현수가 받으라는 말에 나는 무슨 소리인가 물었고 그때 내게 무언가 날아왔다. 아니 날아 왔다는 표현보다는 건네 주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데 그것은 현수가 들고있던 알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나에게 들어서 던졌는데 나는 놀라서 얼떨결에 두 손으로 받았다. 솔직히 이런 반응은 거의 무의식적인 반응인데 어느 누구나 무언가 자신에게 던져진다면 받으려는 행동을 취할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다 미리 경고하고 받으라고 했는데 안 받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버릴 줄이야... 분명 현수 놈은 내 구원의 손길을 받아 생명의 보장받았음이 분명한데도 그런 것은 하찮은 일로 치부한 체 현재 자신의 팔에 무던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알의 무게에 고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게를 나에게 떠맡기려 다짐했을 것이다. 내가 자신을 안전 지대로 끌어올리자 현수는 다짜고짜 나에게 자신의 짐을 던진 것이다. 무식한 놈... 얼떨결에 받은 알의 무게는 아까도 말했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억..." 갑자기 내 품에 안겨버린 알의 무게를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헛바람을 내뱉고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기울어졌다. "안돼..."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졌고 있어야 할 바닥은 없었다. 어처구니없이 나는 저 벼랑 밑으로 자유낙하를 하고 있었다. 예전 군대에서 내 자유 의지로 비행기 밖으로 뛰어 내린 적은 있어도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뛰어 내린 적은 없었다. 거기에다 군대에서 낙하 할 때는 낙하산이라는 기구가 있었지만 내 등에는 지금 낙하산이 없었다. '뭣 됐다.' ??세차게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나는 의식을 끈을 놓아 버리고 싶었다. 뭐 심장이 약한 사람은 떨어지는 도중에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게 심장이 약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분명 바닥에 떨어지면 파삭 또는 와자작 하는 기괴한 음향을 들으며 산산이 부셔지는 나의 육체의 파괴음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의식이라도 놓고 싶었다. 이런 제길... 분명 떨어지는 시간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머릿속에는 많은 의식들이 충돌했다. 거기에다 마치 카메라의 빠른 영상을 지켜보듯 여러 가지 예전의 추억들이 스치며 지나가는데 마치 생생한 추억의 파노라마 같다. '이거 재미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때 무언가 붉은 빛이 번쩍이는데 그 빛은 순식간에 내 몸을 덮었다. 마치 붉은 빛 무리가 내 온몸을 감싸버린 형상이다. 그리고 나는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으음..." 3장. 불사의 힘 세커니트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냐?' 갑작스럽게 들려 오는 비명성에 나는 의식이 돌아옴을 느꼈다. 주위는 무척 어두웠는데 그 괴이한 소리가 들린 곳으로 나는 시선을 돌렸다. "억..." 나는 놀람이 가득 찬 눈으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내가 들은 그 말소리는 인간의 입에서 나옴직한 소리가 분명한데 믿을 수 없게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존재는 파리... 그렇다. 그건 대형의 파리였다. 내 몸보다 두 배쯤은 훨씬 커 보이는 파리의 양 날개에는 해골 문양이 괴이하게 새겨져 있는데 저 모습을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인간! 감히 내 계획을 방해하다니..." 정말로 저 파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 분명한가?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나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괴이한 광채가 내 몸을 감싸버렸고... 그리고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지옥이라는 말인가? 하기는 살아 생전에 좋은 일은 하지 못해서 천국은 바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조금은 억울했다. 그래도 남에게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 일은 해 본적이 없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죽자마자 지옥이라니... 불쌍한 내 운명이여... 흐흑... "인간...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감히 내가 소환한 세커니트의 정화를 도둑질하다니... 네놈 때문에 나의 천년 계획이 무너졌다. 너는 결코 나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다." 도대체 이 파리는 나에게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인가? 저 모양을 보아하니 내가 예전에 몇 번 보았던 책의 설명대로라면 마계의 최고 책임자라는 벨제뷔트 또는 베르제브브라는 파리의 제왕이 분명한데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가? 세커니트는 무엇이고 세커니트의 정화를 도둑질하다니... 마계의 최고 책임자라는 벨제뷔트의 물건을 내가 도둑질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나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나서 그 후의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용아산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그 괴이한 알... 알...? 그렇다면 혹시 그 알을 얘기하는 것인가? 나는 파리를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뭐 파리의 얼굴에서 별반 표정은 찾아낼 수 없어서 그의 지금 심정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단히 열이 받은 것은 분명한 듯 한데... 하기는 파리의 얼굴 표정에서 무슨 감정을 찾아냈다고 하는 인간이 있으면 분명 돌 맞을 일이다. "저기... 그 세커니트라는 것이 크기가 타조알보다 약간 커 보이는 알 모양의 그..." "네놈이 도둑질하고는 설마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발뺌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아... 그놈의 파리 새끼 목청도 좋네! 야... 임마! 그러다가 내 귀 떨어지겠다. 물론 함부로 입 밖으로 나올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 받는다. 아무리 마계의 마신이라고 하지만 누가 도둑질을 했다고... 말이라고 막 해도 되는 거냐? "왜 나한테 그러는 겁니까? 일단 나는 그 알이 세커니트인지 뭔지 정체를 몰랐고, 그리고 그것은 산에 버려진 상태로 있었다 이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것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단지 친구 놈이 넘겨준 것을 받았던 것뿐인데..." 이래저래 설명하고 나니 열 받네! 아씨...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인가? 죽어서 지옥에 온 것도 열 받아 죽겠는데 도둑질을 했다니... 아씨... 내가 그것을 훔쳤다면 이렇게 서럽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열변을 듣고 있던 파리 놈이 침묵을 고수한다. 아씨... 지가 무슨 마신이면 다인가? 나도 막 나간다고... 내가 한참을 그렇게 씩씩대고 있으니 벨제뷔트는 가만히 나를 지켜보더니 조금전과 다르게 아주 판이한 그러니까 화난 목소리가 아니 간절함이 가득 베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만약 그것을 도둑질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넘겨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에게 무례했던 것을 용서해 주겠다." 어?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넘겨달라... 그리고 용서해 주겠다. "잠깐... 잠깐..." 나는 손짓을 하고는 벨제뷔트의 말을 가로막고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넘겨 달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나에게는 그 세커니트라는 알이 없는데..." 확실히 나에게는 세커니트라는 그 이상한 알이 없었다. 내가 정신을 깨어나고 내 주위를 살펴보았을 때도 그 이상한 알은 내 주위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을 넘겨 달라는 말인가? "그것은 이미 너의 몸 속에 들어가 있다." 어... 도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그 큼지막한 알이 내 몸 속에 들어가 있다니... 이 조그마한 몸 어디에 그런 큼지막한 알이 들어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몸을 살폈다. 하지만 별로 특이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는지 벨제뷔트의 말이 이어졌다. "세커니트는 불사의 정화... 그것은 불사의 기운이 뭉쳐진 힘이다. 단지 무슨 동물의 알 정도로 보았다면 그것은 너의 오판이다." 벨제뷔트의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세하게 알려줘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의 물음에 벨제뷔트는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잘 들어라. 세커니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우선 이 세계에 대해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우선 이 세계는 다섯 개의 계로 이루어져 있다. 빛의 자식들이라는 신족들이 살고 있는 신계(神界), 지금 네가 있는 이곳...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우리 마족들이 살고 있는 마계(魔界), 그리고 너희 인간들이 살고있는 중간계(中間界), 정령들이 살고있는 정령계(精靈界),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영계(靈界)..."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인데... 나는 나도 모르게 벨제뷔트의 말을 듣다가 불쑥 외치고 말았다. "판타지...?" 나도 모르게 불쑥 던진 말에 설명을 멈추던 벨제뷔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하기는 이계(異界)에서 온 너는 내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판타지라... 뭐 너같이 이계에서 온 자라면 터무니없는 환상 속의 세계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지." 벨제뷔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이거 내가 많이 봤던 판타지 장르라는 책 속의 세계관과 비슷하다고요." "판타지라는 책 속의 세계관과 비슷하다고...?" "네..." 벨제뷔트는 나의 말에 약간 놀란 감정이 섞인 음성으로 물었는데 그도 약간은 당황한 모양이다. "흐음... 그렇다면 이해하기 쉽겠구나?" "끄덕 끄덕..." 아! 그런데 벨제뷔트의 설명을 들으면 판타지 속의 세계관과 약간 틀린 부분이 있는데 저 삶과 죽음의 관장하는 영계에 대한 것이다. 보통은 무슨 정신계를 내세우는데 영계라니...? 크... 잘못 받아들이면 그 영계...? 쩝... 알면서 묻지 마라! 영계가 뭐냐고 묻는다면 내가 뭐라 하리? 하여간 나는 영계라는 것이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세계라... 그것은 원래 신의 영역 아닌가? "문제는 신계와 마계의 불협화음으로 마신전쟁이 일어나고 나서였다." 벨제뷔트의 설명은 대강 이러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족하고 마족하고 열 받아 서로 전쟁을 일으켰는데 서로 실력이 엇비슷하니 쉽게 승부는 결정이 나지 않았다. 신계와 마계가 싸우니 사이에 낀 중간계나 정령계도 다툼이 확대되어 엉망이 되었고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영계는 바빠졌다. 중간급이나 하위의 신족이나 마족, 일부 정령 등은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보다 창조와 소멸의 개념만이 있기에 영계가 관장하지는 않지만, 신계와 마계의 싸움으로 혼란에 빠진 중간계는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기에 영계가 바빠진 것이다. 중간계의 가장 독보적인 생물인 드래곤조차 신마계의 싸움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바람에 영계를 담당하는 창조주는 그 모든 책임을 신마계에 돌렸고 창조주의 권능이자 저주가 신족과 마족들 사이에 퍼졌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개념... 즉 불사의 존재인 신족이나 마족, 정령등이 소멸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 상급의 신이 아닌 이상 중간급의 신족이나 마족등은 상위의 신들에 위해 창조되고 소멸되는 순환을 거듭하는 것이 보통이고, 정령들의 존재도 정령왕의 권능으로 이렇게 순환되는 것이 보통이다. 상급의 신이나 각 정령의 정령왕은 창조와 소멸의 권능이 있는 불사의 존재이기에 신족이나 마족, 정령 등은 죽음이라는 것은 무척 생소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불사의 권능이 무시되고 상급의 신족과 마족, 정령왕이 소멸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신계와 마계, 정령계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불사의 존재인 신이나 정령왕이 죽어버린다. 결코 일어나서도 일어나지도 않을 믿을 수 없는 일이 영계의 창조주... 그의 저주로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영계를 담당하는 창조주의 권능이 신의 존재에 대한 생사까지 간섭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는 일이니 대답은 할 수 없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 뭐라고 하겠는가? 하여간 신계와 마계, 정령계는 각계의 상급의 신이나 정령왕이 죽어나가자 처음에는 영계의 창조주에게 항의하며 따졌지만 요지부동한 창조주의 고집과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결국에는 영계에 의존하기 보다 각자 타개책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불사의 정화 즉 내 몸 안에 있다는 세커니트였다. 새커니트는 원래 영계에 살고있다는 영수인 불사조를 탄생시키는 정화로 알려져 있는데 그 수가 극히 소수여서 세커니트 쟁탈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죽지 않은 불사조가 계속해서 태어난다면 아마 영계는 불사조 천지가 되겠지만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 있어서 불사조는 어느 정도 개체수가 되어버리자 더 이상 탄생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수가 극히 한정된 것을 신계, 마계, 정령계가 쟁취하려고 달려드니 단번에 그 수가 줄어 들어버리더니 어느새 씨가 말라 버렸다. "그게 마지막 세커니트였다." 벨제뷔트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얻었다는 세커니트가 이 세계에 살아남은 마지막 불사조의 정화였고 벨제뷔트는 마지막 세커니트를 이용해서 마계를 지배하려고 했다. 현재 마계는 서열 1위인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공공연히 벨제뷔트가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벨제뷔트의 세력이 사탄의 세력보다 약간 열세인 관계로 벨제뷔트가 섣불리 사탄의 자리를 노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 균형을 깰 존재가 하나 있었다. 사탄과 벨제뷔트의 세력 균형을 무너뜨릴 존재는 마계의 마족은 아니지만 마족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는 그리고 그를 따르는 마족들이 있는 특이한 존재인 영계의 사신(死神) 데쓰로드 로키였다. 영계를 담당하는 창조주가 생사를 관장한다면 그 생사중 죽음에 대한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는 존재가 사신 로키였다. 마계에서도 죽음의 왕이라 불리는 일곱 군주중 하나인 위리놈이 있지만 그들이 맡은 영역은 판이하게 다르다. 위리놈이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관장한다고 한다면 사신 로키는 모든 영적 존재의 죽음을 관장하는 것이다. 그럼 영계에 있는 사신 로키가 무엇 때문에 마계의 사탄과 벨제뷔트의 균형을 깰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조금 전에 설명했듯 그를 따르는 존재들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영계에 있는 사신 로키가 마계의 일에 간섭을 할 수 없다. 아니 간섭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간섭 자체가 불가하다. 하지만 사신 로키를 따르는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마계의 소속이고 마족이다. 영계의 존재가 아닌 마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신을 따르는 마족들은 마계의 일에 간섭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는 벨제뷔트가 침을 삼킬 만큼 대단한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 사신 로키를 따르는 자들 중 가장 무서운 존재들은 마계의 사대 신관으로 더 잘 알려진 존재들인데, 특히 그들 사대 신관의 우두머리인 어둠의 신관 가린샤 프리스트는 마계의 지배자인 사탄과 일곱 군주라 불리는??벨제뷔트, 위리놈, 몰록, 플뤼톤, 레오나르, 판과 릴리트를 제외하고 거의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능력의 마족이었다. 다른 세명의 신관들도 상급 마족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어 그들이 벨제뷔트의 편에 가세한다면 상황은 단숨에 역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사신 로키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릴 것인가? 결국 그 문제의 해결은 세커니트에 있었다. 사신의 존재... 즉 죽음을 관장하는 로키의 가장 큰 적은 불사였다. 죽음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사신에게 불사의 정화인 세커니트는 분명 눈에 거슬리는 존재인 것이다. 영계의 지배자인 창조주로 인해 각 신들이나 정령왕 등에게 죽음의 저주가 내리자 이때 슬며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바로 사신 로키였다. 눈에 가시인 세커니트의 존재를 없애려는 것이었다. 사신의 문제는 거의 해결될 뻔했다. 신계와 마계, 정령계에서 닥치는 대로 세커니트를 훔쳐갔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의 존재가 소멸된다는 것에 그들은 영계의 주인인 창조주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세커니트 쟁탈전을 벌였는데 그 때문에 거의 모든 세커니트가 사라졌다. 세커니트 쟁탈전에서 밀려 불사의 힘을 얻지 못한 고위급의 신과 마족, 정령왕들은 영계의 불사조까지 눈을 돌려 그 불사의 능력을 갈취했는데 그로 인해 영계에서는 세커니트는 고사하고 불사조까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의 세커니트... 그것은 창조주의 배려로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신족과 마족, 정령왕등에게 죽음을 내렸던 터라 창조주도 그들이 세커니트를 탐내도 뭐라고 제지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대단히 오묘해서 일정수의 개체수 때문에 창조를 하지 못했던 불사조는 마지막 남은 세커니트로 인해 다시 창조가 가능해진다. 세커니트가 하나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고 해도 이 살아남은 마지막 세커니트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일정수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불사조를 탄생시키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는 문제점만 빼놓는다면 이 마지막 남은 하나의 세커니트는 예전의 숫자만큼 늘어나고 다시 그 수만큼 불사조가 탄생되게 한다. 이것을 알고있는 사신 로키는 그 마지막 세커니트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것을 없애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그 자신이 영계의 존재이기에 영계의 주인인 창조주의 창조물을 소멸시킬 수 없었다. 그것을 마계의 이인자 벨제뷔트가 알게 된 것이다. 벨제뷔트는 그 마지막 세커니트를 이용해서 사신의 도움을 받아 마계의 주인인 사탄을 꺾고 자신의 새로운 마계의 주인이 되기 위해 세커니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벨제뷔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그 존재의 행방을 찾아내었다. 세커니트는 영계의 주인인 창조주의 배려로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잠시 공간이동을 했는데 벨제뷔트는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벨제뷔트가 세커니트를 소환한 사항에서... 그것을 내가 얻은 것이다. "잠깐만... 그렇다면 꼭 세커니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필요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벨제뷔트는 나의 말을 듣고 무슨 소리인가 물었다. "결국 사신이 원하는 것은 세커니트라는 존재의 소멸이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이미 그 존재는 저로 인해서 소멸된 것이 아닙니까?" "어...?" 벨제뷔트는 나의 말을 듣고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했다. 이미 내가 세커니트를 소유했다면... 확실히 소유인지 섭취한 것인지, 뭐 아니면 복용한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것은 지금 내 몸 속에 있다고 하니 이미 그 불사의 존재는 더 이상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얻은 이상 불사조를 탄생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크하하하... 그렇구나. 결국은 사신이 원하는 것은 세커니트의 소멸... 그렇다면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을 결국 해냈구나." 파리가 좋아서 날 뛰는 것을 보았는가? 뭐 하기는 "왱왱"거리는 소리와 날개만 퍼덕이니 좋아하는 것인지, 그냥 습관적인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하여간 소리를 들어보니 기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크하하... 네가 내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니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무례는 너그럽게 용서해 주겠다. 너의 목숨을 살려주마." 한참동안 기뻐하던 벨제뷔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꼬집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죽어서 지옥에 왔는데 또 무슨 용서를... 거기다가 목숨을 살려주다니... 잠깐 그렇다면...? "잠... 잠깐만...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 저 죽은 것 아닌가요?" "죽어...? 무슨 소리냐. 누가 죽었다는 말이냐?" "저요?" "크하하하...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설명했느냐? 세커니트... 불사의 정화... 그것을 얻는 놈이 어떻게 죽는다는 말이냐?" "엇... 하지만 저 절벽에서 떨어졌잖아요. 그래서 죽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요?" 내 말에 벨제뷔트는 한참을 웃더니 대답했다. "크흐흐... 그런 멍청한 생각을... 내가 소환할 때 아마도 네 놈이 절벽에서 떨어졌던 모양인데 그 때문에 세커니트가 불사의 힘을 발휘한 모양이다. 소유자가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으니 세커니트가 자신의 힘을 발휘한 것이고 그로 인해 네가 그 힘을 얻은 것이지. 그리고 그때 내가 또 너를 아니 세커니트를 소환한 까닭에 네가 이곳에 온 것이고..." 벨제뷔트의 긴 설명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죽지 않았구나! 하하하... 엇! 뭐야... 그렇다면 나는 멀쩡하게 살아서 이 지옥에 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지금까지 얼마나 신을 원망했던가? 아무리 내가 착한 일을 안 했다고 해도 지옥까지 보냈냐고... 에구 죄송합니다. "아 아니... 잠깐!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죽이겠다고 난리를 친 거죠? 불사의 정화를 얻은 나를..." 내 말에 내가 멍청하다고 펑펑 웃던 벨제뷔트의 입이 다물어 진다. 저것도 바보로군! 기껏 지가 세커니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더니만 자기 자신도 나를 죽이겠다고 설쳤으니... 잠깐 그러고 보니 이것 상당히 내가 손해본 느낌이다. "이봐요! 이건 당신이... 나를 용서해 주는게 아니라 나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나 때문에 당신 문제를 해결했으니..." 내 말에 벨제뷔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기는 뭐 그렇다고 저 마계의 군주라는 놈에게 무슨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달리 악마이겠는가? 괜히 뭘 바랬다가 나에게 해만 입힐 테니... "아... 뭐 바라는 것 없으니 긴장하지 말아요. 그냥 빨리 집에나 보내줘요. 당신 때문에 이 세계에 왔으니 빨리 내가있던 곳으로 보내줘요." 그런데... 4장. 마계의 힘을 얻다. ??"그건 불가능하다." "네... 네에...?" 나는 놀란 눈으로 벨제뷔트를 쳐다보았다.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불가능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불가능하다니... 나를 소환했으면 다시 돌려 보내야하는 것이 정상 아니네요?" 나는 언성을 높이며 따졌고 벨제뷔트는 그런 나를 응시하더니 한참만에 대답했다. "너를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은 세커니트가 있어서였다. 좀더 정확해 말한다면 너를 소환한 것이 아니라 세커니트를 소환한 것이지. 너는 거기에 딸려서 나온 것이고..." 내가 덤이란 말인가? 크흑... "따라서 소환물이 없어진 이상 너를 네가 살고있는 곳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 네가 살고있는 곳의 좌표를 모르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헉..." 이건 완전히 판타지 물에 나오는 전형적인 소환 후 귀환 불가의 전형적인 이유가 아닌가? 어떻게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이렇게 똑같이 반복할 수 있는가? 작가의 머리가 의심스럽다. "그럼...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나는 절망적인 어조로 물었고 벨제뷔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악..." 내 인생... 내 미래... 어머니... 아버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처절함이 베어있는 울음이 울려 퍼진다. 크흐흑...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하죠. 이곳에 살아야 하는 건가요?" 몇 시간 동안 망연자실(茫然自失)해서 주저앉아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참만에 일어선 것 같은데 두 다리가 굳어져 휘청거렸던 것을 보면 아마 한참동안 그랬나보다. 하여간 그 시간동안 벨제뷔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계의 이인자... 흑자는 파리 왕국의 대왕이라고 어쩌구 저쩌구하는 존재가 나 때문에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악마에 대한 인식이 약간 변했다. 꽤 인정이 넘치네!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깨져버렸다. "이제 떠나라." 헉... 어디로? 갑자기 나보고 떠나라고 한다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를 이런 곳에 데려 왔으면 어떻게 해서든 돌려보내든... 아니면 뭐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이..." 확실히 사람은 환경에 금방 적응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나는 벌써 귀환이 불가능해진 이상 현실적인 문제를 끄집어 낸 것이다. 기왕에 일이 이지경이 되었고 내가 살고있는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곳 세계에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신족이나 마족이 아닌 이상 나는 분명 그들이 이야기하는 중간계로 가야할 것이다. 그럼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나는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고는 아주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불사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무슨 아무리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하는 신의 육체를 내가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당연히 무슨 세계 정복이나 뭐 그런 것 아닐까? 기왕에 판타지 세계에 왔으니 그래도 뭔가 그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처럼 무진장 센 인물이 되어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푸하하하... 이제야 나의 진로를 결정했다. 아! 기대된다. 크하하하... 윽... 아무래도 내 머리가 이상해졌음이 틀림없다. 벌써 이상증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과대망상에 빠져 버렸다. "무엇을 원하느냐?" 역시 마신이라서 그런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금방 이해하는 모양이다. 뭐... 그렇다면 이야기하기 편하니... 나야 싫을 까닭이 없다. "힘을 주세요. 분명히 나를 중간계라는 곳에 보낼 것이 분명하니 그곳에서 꿀리지 않을 힘을.." 내 말을 듣고있던 벨제뷔트는 비웃음을 흘렸다. "내가 바라는 힘의 정도가 무엇이더냐? 인간들 중에 가장 강한 힘을 바라느냐?" 어라 쉽게 말하네? 쉬운 일인가? 하기는 뭐 마계의 이인자 정도이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뭐 이곳에 있는 인간들 같으면 벨제뷔트의 말을 듣고 얼씨구나 해서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문제는 내가 이곳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로 나는 그들과 무척 다르다는 말씀이야. 나는 이래봐도 판타지 매니아라고... 일단 내가 여기서 살아가는데 생각해야할 문제가 있다. 인간이 아무리 강해도 중간계 최고의 깡패인 드래곤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뭐 판타지 소설상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곳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까 벨제뷔트의 말을 빌리자면 거의 틀리지는 않는 모양으로 중간계 최고의 생물은 드래곤이었다. 판타지 물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고룡급 드래곤 정도라면 아무리 최고 수준의 인간이라도 감당하기 힘들다. 하기는 살아온 세월이 사천 년이 넘어야 고룡급 즉 에이션트 드래곤이라 불리는데 겨우 백년도 살까 말까한 인간이 어떻게 그 세월을 뛰어넘고 이기겠는가? 아니 나이를 사천 살 이상 먹은 고룡급이 아니더라도 한 이천 살 정도 짬밥을 먹은 윔급 드래곤 정도만 되어도 인간계 최고의 능력을 지녔다는 사람이 혼자 감당하기 무척 힘들다. 뭐 드래곤 슬래이어 어쩌구 하지만 솔직히 드래곤 잡았다고 떠들고 다니는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용 새끼.. 보통은 헤츨링이라 부르기는 하지만 이때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때려죽이기 힘들고 오백 살에서 천살 즉 성룡이 되기 전의 드래곤.. 우리말로 하면 간단히 미성년자를 때려잡고 드래곤 슬래이어 호칭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뭐 간혹가다 이제 막 어른 티 좀 내려고 막 애쓰던 성룡들을 때려잡은 자들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경험 없는 초짜 드래곤을 잡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기는 성룡급 정도만 되어도 적수를 찾을 수 없다는 드래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노련한 경험자가 파티만 잘 갖추고 있으면 성룡급 드래곤을 잡기도 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 이겠는가? 하여간 난 드래곤이라는 깡패에 치이기는 싫기 때문에 드래곤에게 꿀리지 않는 힘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것들이 원체 무식하고, 지들만 잘난 종족이기에 인간이라는 종족을 무슨 땅바닥에 지나가는 개미 새끼처럼 보기 때문에 저 무식하고, 잘난 놈들에게 치이기는 싫었다. 아무리 불사의 정화를 얻어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것들의 발에 밟히거나, 아니면 재수 없어 배속에라도 들어간다면... 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드래곤과 대등한 능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욕심이 많구나?"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 나를 향해 벨제뷔트가 그렇게 말했고 나의 두 눈은 동그래졌다. "인간들중에 가장 강한 힘을 준다고 했는데 망설이는 것을 보면 더 강한 힘을 얻으려는 모양인데 너의 그릇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어라? 저거 악마 맞아? 꽤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편이 가끔 사용하는 대사까지 주절대는 것 보면... 특이한 악마로군. "내 그릇이 어때서...?" 일단 내 그릇이 작다고 저쪽에서 주장을 했으니 작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해야 했다. 부인하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가 그릇이 작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지금 무슨 그릇 이야기한다고 밥그릇이 뭐가 어떻다는 거야 하면서 수준 낮은 이해력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밥그릇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 그릇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그것을 과연 소화할 수 있는지 그것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보아하니 웬만한 것에는 만족하지도 않을 듯 싶구나!" 어쭈... 이제는 소화까지... 그릇 얘기를 하더니만 먹는 걸로 계속 나가겠다는 건가? 뭐 먹는 거야 나도 좋아하는 편이니 피할 이유는 없고... 근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당연하지. 웬만한 것에 내가 만족할 이유가 없지 않아? 최소한 드래곤의 유희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말씀이야. 내가 대답을 미루고 이런 생각을 하자 벨제뷔트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너에게 내가 줄 수 있는 힘은 한계가 있다. 만약 네가 마계에 있다면 그 이상의 능력도 줄 수 있지만 네가 살아가야 할 곳은 중간계이고... 중간계에서 우리 마계가 미치는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다." 잉?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마계가 중간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니... 그런 근거 없는 이야기는 또 어디서 날조한 것인가? 내가 지금 그 이야기를 믿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너도 아까 들었던 이야기지만 신계와 마계의 다툼으로 벌어진 마신전쟁으로 신계와 마계뿐만 아니라 정령계, 영계등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 또한 이 사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중간계의 피해도 엄청났다. 그 일로 우리 마계와 신계, 정령계와 영계등은 서로간의 불가침을 협약했고 중간계에 대한 영향력도 일정 수준까지만 미치도록 한정시켜 버렸다." 헉... 이런 망할... 벨제뷔트의 말에 지금까지 내가 꿈꾸던 그 환상이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럼 도대체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면 줄 수 없다는 말이에요?" 내가 궁금한 것은 오직 이것이다. 준다는 말인가? 아니면 못 준다는 말인가?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권한은 마황의 권능... 상급 마족의 힘은 아니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은 마계에서 통하는 것... 지금 만약 네가 그 권능을 얻어 중간계로 간다면 윔급 드래곤에 버금가는 능력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에이션트??드래곤은 결코 상대하지 못한다." 벨제뷔트의 긴 설명에 나는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 괜히 조마조마 했네. 에이션트 드래곤은 상대하지 못한다고 해도 윔급 정도의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디인가? 뭐 하기는 욕심 같아서는 드래곤의 수장이라는 드래곤 로드와 맞짱을 뜰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면 하는 욕심도 나지만 과하면 체하는 법... 나는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윕급 드래곤의 능력... 마황의 권능이라... 크하하하... 내가 마황의 권능을 얻는 것인가? 마황의 권능이라! 5장. 동반자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좋아라 침까지 흘리며 난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나의 동작을 멈추게 하는 벨제뷔트의 말 한마디! 순간적으로 싸늘한 한기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꼭 결정적인 순간에 태클을 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지만 왜 이런 순간에 태클이 들어온다는 말이냐? "무슨...?" 나는 정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괜히 화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혹시라도 벨제뷔트가 마음이 바뀌어 안 줄 수도 있으니...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너에게 마황의 권능을 준다고 해도 네 몸의 능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너 스스로가 윔급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어... 도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내 스스로 윔급 드래곤을 상대할 수 없다니... 그럼 조금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은 무슨 의미인가? "너는 이계에서 온 존재... 따라서 이곳의 어떤 존재도 너에게 축복이나 저주를 주거나 걸 수 없다. 그것은 네가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도 네 몸에 직접 마황의 권능을 내려 줄 수는 없다." 벨제뷔트의 말에 나는 황당해졌다. 내 몸에 직접적으로 마황의 권능을 전할 수 없다니... 그럼 아까 아니 바로 좀 전에 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분명 윔급 드래곤 정도의 힘을 실어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방금 전에 한 말은...?" 나는 목이 매여서... 얼마나 기대하고 기뻐했는데 지금 와서 뒤통수를 치다니 얼마나 억울한가? 목이 매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방금 전에 내가 너에게 주려는 마황의 권능은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능력이 아닌 마황의 권한... 즉... 너는 중간계에 있는 모든 마족을 다스릴 마황의 권한을 얻는 것이다." 나는 벨제뷔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마황의 권능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마황의 권한이라니... 그리고 중간계에 있는 모든 마족을 다스리다니... 그렇다면 나보고 지금 중간계의 마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이 아닌가? 지금 나보고 자기의 똘마니가 되라는 말인가? 나의 불만을 알아차렸는지 벨제뷔트가 나를 이해시켰다. "너에게 마계의 지배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마계의 군주가 갖는 권능을 너에게 준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오직 중간계에서 통하는 것이다. 또한 너에게 내가 창조한 상급마족 둘을 붙여주겠다. 그들은 평생 너의 종이 되어 너를 보호할 것이다." 벨제뷔트의 말에 나는 그런대로 만족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대만족이다. 내 스스로가 강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중간계에 있는 마족을 다스리고, 상급마족 둘의 주인이 된다면 뭐 결코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아냈으니... 이계에서 왔기 때문에 이 세계의 축복이나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주로 인해서 내가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니 물리적인 힘만 잘 버틴다면 중간계에서 거의 무적이라는 이야기인데... 거기에다 중간계에 있는 마족의 수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다스릴 권한이 생긴다면 나는 중간계에 들어서지도 않고 이미 부하가 생겼다는 말이 아닌가? 또 벨제뷔트가 창조할 상급마족 둘이라면... 바이크와 아론... 벨제뷔트가 창조한 두 명의 상급마족은 그렇게 불렸다. 두 상급마족은 모두 중간계에서 활동할 내 부하답게 인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는데 바이크는 전사로 아론은 마법사로 만들어졌다. 전사의 힘을 갖고 있는 바이크는 인간계에서 말하는 소드 마스터를 뛰어 넘어 그랜드 마스터 급의 초특급 전사로 만들어졌는데 아마도 무력으로 따진다면 인간계에서 그 적수가 없으리라 생각이 든다. 마법사로 탄생된 아론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9서클 마스터을 뛰어넘어 드래곤의 마법 능력과 비슷한 마법을 발휘할 수 있다. 마법만으로 드래곤과 일대 일 승부를 한다면 결코 뒤지지 않을 마법능력을 갖고 창조된 것이다. 나는 왼쪽에 바이크, 오른쪽에 아론... 즉 왼팔과 오른팔을 하나씩 얻은 것인데 이 둘만 있으면 최소한 인간계에서 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너를 찾아 온 자가 있다." 아마도 내가 마계에 머문지 한 일주일쯤 지난 것 같다. 그동안 벨제뷔트는 바이크와 아론을 창조해서 나의 종으로 주었고, 그 나름대로 마계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한 모양인지 가끔 찾아오기는 했지만 요 며칠은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줄 것 다 주었으면 빨리 중간계로 보내주기나 하지 왜 꾸물거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괜히 여기 있다가 마계에서 사탄과 벨제뷔트의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 전쟁에 휩쓸릴 생각을 하니 괜히 머리가 아프다. 뭐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싸움에 끼어 들기야 하겠냐 만은 문제는 내가 지금 벨제뷔트의 진영에 있다는 것이다. 마계의 권력투쟁에서 벨제뷔트가 이기면 상관은 없지만 만약 지기라도 한다면 내 안위도 결코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벨제뷔트가 오랜만에 나를 찾아 왔는데 그의 등 뒤에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 파리의 모양으로 나를 만났던 벨제뷔트는 내가 조금 파리의 모습에 대해 거리낌을 보이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나를 만나는 배려까지 해 주었다. 아마도 벨제뷔트의 등뒤에 있는 자도 그런 이유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마계에 인간이 있을 까닭이 없으니... 뭐 인간 형태의 마족은 몇몇 있기는 하겠지만 분명 벨제뷔트의 등 뒤에 있는 자는 인간의 모습이 확실하다. "그는 어둠의 신관 가이가 다크프리스트... 사신 로크가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벨제뷔트가 등뒤에 있는 인물을 대해 그렇게 말하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사신 로크의 선물이라니... 어둠의 신관 가이가 다크프리스트... 내가 알기로는 마계 내의 사신 로크의 추종자중 신관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는 자는 모두 넷이다. 그중 신관들의 장인 어둠의 신관 가린샤 프리스트가 마계의 군주급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하위의 세 신관도 거의 상급 마족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벨제뷔트가 소개할 때 분명 어둠의 신관이라고 칭했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자가 그 신관들중 하나라는 이야기가 분명한데... 나는 내 볼을 꼬집었다. 꿈인가? 아니다. 무척 아프다. 그렇다면 현실이라는 이야기인데... 푸하하하... 이게 왠 떡이란 말인가? 고위급 마족에 해당하는 어둠의 신관 가이가 다크프리스트를 나에게 선물로 주다니... 거 죽음의 신이라 해서 기분이 조금 나빴지만 예의는 있군. 하하... 나는 헤벌쭉한 웃음을 흘리며 침을 닦았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가이가 다크프리스트는 검은 사제의 모습이 동일하다. 그 자체가 죽음을 숭배하는 사신의 신관이었기에 당연한 모습이다. 어... 그러고 보니 이곳 마계에서 세 명의 부하를 얻었는데 무슨 판타지물의 파티하고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전사 하나, 마법사 하나, 사제 하나, 그리고 주인공 하나... 크크크... 요기에 엘프 하나하고, 드워프 하나만 있으면 완벽한 파티인데... 하기는 마계에서 정령족인 엘프와 드워프를 찾는 것은 무리이고... 중간계에 가서 함 생각해 볼 문제 같다. 이참에 최강의 파티를 함 만들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최강의 파티라... 푸하하하.. 그런데 다 마족이라서 조금 그렇기는 하군. 순수 인간(?)인 나를 제외하고는... 아! 이것도 고민이다. 불사의 능력을 갖고 있는 내가 순수 인간은 맞는 것일까? 거기다가 마황의 권능을 가졌다는 것은 내 존재가 마황이라는 것과 일치하는데... 거기다가 수하가 전부 마계의 마족이니 어쩌면 사람들은 나를 마황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 않는가? 마황... 마황이라! 거 어떻게 생각해보니 참 매력적인 단어이기는 하지만... 한번쯤은 나쁜 놈의 대장이 되고픈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6장. 중간계로 가다 ??동서남북으로 마치 마름모 형태로 길게 뻗은 대륙은 주신 아리안을 필두로 일곱 신을 섬기는데 의외로 주신의 영향력이 크지 못했다. 각 국가마다 신봉하는 신이 틀려, 종교가 다른 관계로 대륙은 여러 종교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칙 같아서는 주신인 아리안을 신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생각되어지는데 이에 반하여 현 대륙의 인간 국가들은 각 제국이 자국의 특성에 맞게 황제가 신을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국가는 자국의 주신을 정하고 신봉하기 때문에 국가가 정한 국교에 따라 백성들이 신을 섬기기 때문에 백성들의 종교는 국가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오히려 주신 아리안을 신봉하는 사람들보다 대제국 바빌론의 국교인 전쟁의 신 베르샤를 신봉하는 인간의 수가 많았다. 대제국 바빌론..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이 대제국은 네 개의 머리와 여덟 개의 팔, 천 개의 눈과 열두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괴물로 지칭된다. 대륙에 살고있는 모든 인가들과, 유사인종들이 알고 있는 바빌론은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무한 괴물... 대륙의 중앙을 지배하고 있는 바빌로은 대륙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려는 괴물이었다. 대제국 바빌론.. 황제 조르젠 보 바빌론 3세를 필두로 네 개의 머리와 여덟 개의 팔, 천 개의 눈과 열두 개의 다리로 만들어진 이 괴물은 모든 인간을 비롯해서 유사 종족이나 몬스터 들에게도 두려움을 안겨주는 세력이다. 네 개의 머리. 대제국 바빌론을 이루는 네 명이 브레인을 뜻하는 말로 이들이야말로 제국을 이루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제국의 중추인 네 개의 머리를 열거하면 대략 이렇다. 국무총리이자 제국의 모든 정치와 행정,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파울 라 칼슈타인 공작. 국방장관으로 백만에 다다르는 제국의 군대를 막후에서 조종하는 라센 마슈크 공작. 외무장관이자 제국의 전권대신으로 잘 알려진 슈마르 J 라르틴 후작. 대륙 곳곳에 일천 개의 눈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제국의 눈 클래이어버전스(clairvoyance)의 실질적인 마스터 카르고 다마스코 백작. 여덟 개의 팔. 대륙 역사상 한 명 이상의 소드마스터를 보유한 국가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다고 알려 져있다. 그 일례로 수천 년을 이어온 대륙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륙의 소드마스터는 불과 일백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소드마스터라는 경지는 인간으로서는 넘기 힘든 지고의 경지였다. 그런데 현 대륙에는 그런 역사의 흐름을 거슬리고 전쟁의 신전에 등록된 소드마스터만 무려 열두 명이나 되었다. 거기에다 그 중에 현 바빌론 제국에 무려 여덟 명의 소드마스터가 등록되어 있었다. 한 국가에서 한 명의 소드마스터만 보유해도 그 국가를 감히 넘보지 못한다고 알려져 하는데 무려 여덟 명의 소드마스터를 보유한 제국이다 보니 제국의 힘은 감히 넘어설 수 없는 벽으로 다른 이들에게 다가온다. 제국의 팔대 소드마스터로 알려진 여덟 명의 인물들은 제국의 여덟 개의 팔로 다른 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을 소개하면 대략 이러하다. 군부의 막후 지배자이자 황제 조르젠 보 바빌론 3세의 동생으로 또한 제국 제일의 실력자로도 잘 알려진 사내! 인간으로 태어나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경지인 그랜드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루시온 R 바빌론 대공이 그 첫 번째 주인공이다. 제국을 받치는 열두 개의 공국중 하나인 루시온 대공국의 공왕이기도 한 루시온 R 바빌론 대공은 서열이나 권력, 실력 면으로 황제를 제외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인물이다. 제국 최대의 무가로 알려진 어둠의 검가 다크니스의 계승자 슈온 드 다크니스 공작. 현존하는 대륙의 오대 무가중 가장 세력이 크고, 가장 막강한 검객들을 보유한 어둠의 검가의 가주로 그는 제국의 수많은 기사들의 스승이자, 우상이기도 하다. 제국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기사단장도 모두 소드마스터이면서 여덟 개의 팔의 한 축을 담당한다. 골드 기사단의 단장인 자르곤 라파엘로 후작. 실버 기사단의 단장인 슈트라겐 막시우스 후작. 레드 기사단의 단장인 자크나스 욤 메르센 백작. 블루 기사단의 단장인 카쟌드라 루 칼슈타인 백작. 블랙 기사단의 단장인 바르하마 라울 샤벡 백작. 황제의 모든 신변 안전을 책임지는 제국의 근위 기사단장이자 어둠의 검가 다크니스의 가주 슈온 드 다크니스의 배다른 형제이기도 한 로그 젠 다크니스 백작. 그도 제국을 이루는 여덟 개의 팔 중에 하나이다. 천 개의 눈. 제국의 정보망인 클래이어버전스를 뜻하는 말로 대륙 전체를 감시한다는 첩보, 암살 전문의 비밀 조직이다. 대륙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노츠, 어쌔신 길드를 막후에서 조정한다고 알려질 정도로 무서운 조직으로 그 숫자가 몇인지, 본부가 어디인지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는 신비조직이다. 단지 마스터가 제국의 머리라는 네 명의 브레인중 한 명인 카르고 다마스코 백작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 열두 개의 다리. 제국을 받치는 열두 개의 공국을 지칭하는 말로 제국의 외곽에 위치하며 제국 정복전쟁의 실질적인 무력세력이다. 바빌론 제국은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무력을 바탕으로 대륙을 일통 하려는 정복전쟁을 펼치는데 중앙의 군대가 아닌 열두 곳에 공국을 세우고 그들에게 정복전쟁을 일임했다. 말하자면 제국의 전력은 그대로 두고 열두 곳의 하수인들을 시켜 제국의 영토를 늘리는 것이다. 바빌론 제국은 대륙의 정 중앙에 위치하며 대륙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넓은 영토와 일년에 두 번의 수확을 할 수 있는 기름진 넓은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다. 무려 2억에 육박하는 인구수를 갖고 있는 대제국이다. 하지만 제국의 황제 조르젠 보 바빌론 3세는 이런 대제국에 만족하지 않고 전 대륙을 일통 하려는 야심으로 제국의 변방 열두 곳에 공국을 세우고 공왕들로 하여금 제국의 정복전쟁을 수행하게 한 것이다. 공왕들은 자신들이 정복한 영토는 본인들의 영토로 인정해 준다는 황제의 말에 눈에 불을 켜고 정복전쟁을 벌였는데 무려 삼 년 동안 제국의 주위에 있는 수많은 군소 국가들이 제국의 공국들에게 멸망당하고 사라졌다. 그 중에서 제국의 2인자인 루시온 R 바빌론 대공의 루시온 대공국은 남부지방을 공략하며 그 세력을 넓혔는데 그 전력은 이미 제국을 제외한 최대 세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열 두 개의 공국은 대략 이러하다. 남부지방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루시온 대공국을 중심으로, 서쪽의 탈라스, 리온, 베루스, 딜마 공국이, 북쪽의 세덴, 로크, 젤마 공국, 동쪽의 라다, 엘마, 세리온, 쿠루스 공국등이 있다. ??"으으... 추워! 하필이면 보내도 이런 곳으로 보내다니..." 나는 덜덜 떨면서 이곳으로 나를 차원 이동시킨 벨제뷔트를 원망했다. 좋은 곳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대륙의 북쪽 끝이며, 빙하의 땅이라 불려진 아이슬란드인가? 온통 얼음 천지이고 하얀 눈발은 눈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시야가 안보여 한동안 고생했다. 다행히 아론이 마법으로 실드를 치는 통에 눈발과 강한 추위는 막았지만 그래도 사람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아 한동안 긴장했다. 혹시 인간계라는 곳이 이런 오지밖에 없나해서 두리번 거렸던 것이 한참이다. 다행한 것은 이곳이 북쪽의 끝이고 빙하의 땅이라는 아이슬란드라는 것을 아론에게 듣고는 긴장을 풀었지만 욕이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기왕 보내주려면 좀 그럴듯한 곳으로 보내주지 이런 북쪽 오지에 덜렁 보내버리다니 얼마나 야속한가?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는데 내 눈에 신기한 것들이 보였다. 생긴 것은 고릴라 비슷하게 생겼는데 털이 온통 눈처럼 새하얗다. 거기다가 신장은 자그마치 3-4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고 대단히 큰놈은 족히 5미터도 훨씬 넘어 보였다. 아론에게 물어보니 이것들은 설인이라 불리는 스노우맨들 이란다. 옛날에 히말리야에서 보았다는 설도 있고, 영화에서 잠깐 보았던 놈들처럼 생겼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니 매우 신기하다. 뭐 하지만 예전에 내가 이 녀석들을 보았다면 해외 토픽이라고 입에 거품 물고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애쓰겠지만, 이곳이 원체 신기한 것이 많은 판타지 세계이니 그런 흥미도 반감이 되어 그냥 "저런 놈도 있군!"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의외로 이 녀석들은 우리 그러니까 나와 바이크, 아론, 그리고 사신 로크가 나에게 준 가이가 다크프리스트 줄여서 가이가라고 하겠다. 하여간 인간처럼 생긴 흑 나까지 인간의 범주에 들지 못하다니 억울하다. 뭐 불사신이라고 하니 인간이라고 하면 약간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인간을 보아도 별반 놀라지 않고 적대적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곳을 찾는 인간이 없었던??모양이다. 만약 이곳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왔었다면, 아니 그런 존재를 보았다면 이 스노우맨들은 분명 도망을 치거나 적대적인 감정으로 달려들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은 모든 종족에게 공포이자 적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 녀석들은 호기심이 왕성한 듯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는 다가오는데 그 큰 덩치들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놀라서 잠깐 뒷걸음질을 치자 바이크는 물러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호위하려고 한다. 크크... 그래도 이놈들이 충성심은 있단 말이야! 바이크는 1미터 90센티의 거구로 온통 근육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예전에 내가 그를 보았다면 무슨 프로 레슬링 선수가 분명하다고 생각할 만큼 큰 덩치를 자랑한다. 나이는 삼십대 초반쯤 보이고 얼굴은 약간 덥수룩한 수염이 있어서 그렇지 꽤 잘생긴 편이다. 내가 살짝 보니까 가슴에도 털이 한가득 있는 것이 전형적인 전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바이크가 그 큰 덩치로 내 앞을 가로막자 나는 시야가 가렸다. 바이크가 그 큰 덩치로 앞을 막아서는 통에 진정이 된 나는 뒷걸음질 쳤다는 쪽팔림을 뒤로하고 앞에 있는 바이크를 방패삼아 스노우맨을 자세하게 관찰하였다. 영락없이 고릴라가 분명하기는 한데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흰색의 털을 가졌다는 것과 덩치가 산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놈들의 크기는 거의 나의 두 배 내지 세배에 가까워서 나는 이놈들은 관찰하려면 올려다보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목이 뻐근함을 느꼈다. 그래도 마냥 신기할 따름이라 뭐 아픈 것도 잊었다. "근데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문득 나는 이 스노우맨들과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순박해 보이는 놈들의 인상에 반했다고 해야 정확할까? 나는 내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아론에게 물었다. 아론은 누가 보아도 나 마법사요 하는 표시를 하는 로브를 입고 있는데 서양인으로서는 중간쯤 정도의 키로 사십대 초반의 사내처럼 보이고 전형적인 학자풍의 사내이다. 생김새는 정말 차분하면서 학교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하는데 나는 궁금한 일이 있으면 언제나 아론을 찾았다. 마법사는 역시 머리가 매우 좋은지 아니면 그 스스로가 그렇게 창조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론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궁금한 일이 있으면 아론에게 물었다. 나의 물음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나는 아론을 쳐다보며 물었고 아론은 무언가 주문을 외웠다. 아론이 펼치는 것은 통역마법이었고 요상스럽게 효과가 있는지 멀뚱하게 우리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스노우맨은 나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이봐... 우리처럼 생긴 인간 처음 보는 거야?" 나의 첫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극한의 추위가 존재하는 오지라고 해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어딘가를 탐험하기 좋아하는 족속이라 어쩌면 한번쯤은 이곳을 탐험했던 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나온 질문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던졌던 나의 질문에 스노우맨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뻗어 동쪽 방향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너 인간 있다. 우리 마을 있다." "억..." 나는 스노우맨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이런 극한의 추위로 둘러싼 오지에 인간이 살고 있었다니 그리고 이 스노우맨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들의 마을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곳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과 어쩌면 이곳에서 처음으로 인간을 만난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이봐... 우리를 너희 마을로 안내할 수 있냐? 우리 너희 마을의 인간을 만나고 싶다." 나의 부탁에 스노우맨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장을 섰다. 마을에 있는 인간들은 이들 스노우맨들과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 보는 우리들을 자신들의 마을로 안내하는 스노우맨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온통 새하얀 눈으로 둘러 쌓인 거대한 분지 위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꼭 내 자신이 어디 북극의 에스키모 마을을 방문하는 착각을 하였다. 아! 물론 내가 북극에 가본 적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런 느낌이 들어서 하는 이야기다. 대략 40-50채는 충분히 넘어 보이는 집들이 모여있는데 그 크기가 대단히 커 보였다. 형태는 반구형(半球形)의 에스키모 인들의 이글루와 흡사했는데 눈을 블록 모양으로 잘라내어 이것을 쌓아올려 눈 벽돌집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흡사 눈을 진흙처럼 빚어서 쌓아 올린 듯 보였다. 지붕은 돔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하나같이 남쪽 방향에 출입구를 내었는데 길쭉하게 튀어나온 입구는 사람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커서 내가 TV에서 보았던 에스키모 인들의 이글루와는 약간 다른 방식의 얼음집이었다. "저기 내 친구 있다. 내가 인사한다." "잉..." 앞의 말은 이해를 하겠지만 뒤의 말은 조금 이상했다. 표현이 약간 이상한 탓에 나는 아론의 통역마법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론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론... 그 통역마법이라는 것. 의사표현이 정확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의 말에 아론은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주인님! 저 스노우맨에게는 통역마법을 펼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은 그 자신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입니다." "엥..." 나는 아론의 말을 듣고는 굳어버렸다. 그럼 지금까지 이 스노우맨이 했던 이야기들은 아론의 통역마법에 의한 현상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인간의 언어를 구사했다는 것이 아닌가? "어? 그런데 왜 통역마법을 펼친 거야?" 당연한 물음이 이어졌고 그 물음에 대한 아론의 답변은 이러했다. 나 때문이란다. 컥...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말하는 언어가 이곳 중간계에 살고있는 인간의 언어와 틀리다는 것 때문에 통역마법을 했다는 말이다. 결국 나는 스노우맨을 위해 통역마법을 펼칠 것을 주문했던 것인데 실제로는 내가 그 통역마법의 혜택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곳 인간의 언어를 배울 때까지 통역마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으윽... 뭐 다행히 동화(同化)라는 것이 있어서 나 같은 이계에서 온 존재는 금방 이곳 환경에 적응하면서 언어와 문자 등을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소환술사들이 다른 세계에서 지식 있는 생물을 소환할 경우에 그 생물들이 소환자와 금방 말이 통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라고 한다. 물론 그 동화라는 것은 매우 불규칙해서 어느 기간이 되어야 이루어진다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또한 동화라는 것이 학설로 입증된 사실도 아니어서 인간들의 학계에서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뭐 물론 아론의 경우에는 마계의 마족이고 또한 고위급 마법사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었고 나의 경우에도 분명 동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기는 내가 마계에 있을 때 벨제뷔트와 대화를 한 것을 보면 나는 동화가 무척 빠른 편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은 동화가 되지 않은 듯 아론의 통역마법이 필요했다. "따라와라. 인사한다." 스노우맨은 우리를 한 가옥으로 인도했는데 그곳은 다른 가옥보다 약간 더 커 보이는데 입구는 거의 일반 주택의 문과 비슷한 크기였다. 입구는 가죽을 여러 겹을 이어서 만들어 주위의 거센 바람과 눈발을 막는 모양이다. 마치 창의 빛을 가리는 커튼처럼 두터운 가죽으로 입구를 막은 것이다. 우리를 안내한 스노우맨은 거침없이 그 가죽을 제치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그 녀석은 몸집이 우리의 두 배가 넘는 터라 들어갈 때 엉금엉금 기어서 들어갔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무리 없이 걸어서 들어갔다. 내가 막 스노우맨을 따라 들어갔을 때 내 눈에 비친 것은 우리를 두려운 눈으로 보는 몇몇의 아이들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 혹은 붉은 머리에 초록 눈, 검은머리에 갈색 눈 등등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여러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이런 혹독한 환경 속에 이렇게 연약한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인가? 그리고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자가 내 눈에 보였다. 대략 사십대를 훌쩍 넘긴 것 같은 사내인데 거친 수염에 입구를 막았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투박해 보이는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사내는 우리 일행을 약간 경계하는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몹스... 이들은 누구지?" 사내는 우리의 정체가 궁금한지 우리를 안내한 스노우맨에게 물었고 스노우맨은 우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보고싶다. 나 인사한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이야기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 사내는 스노우맨의 그런 언어 구사능력을 잘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향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찾은 것입니까?" 아무래도 우리 일행 중 아론이 제일 연장자처럼 보였고 그래서 그를 우리 일행의 리더로 알았는지 사내는 아론을 향해 대답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그의 그런 행동에 아론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앞에 나서며 그 사내의 의문점을 해결해 주었다. "이런 오지에 사람이 살고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에게 당신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나의 대답에 그 사내는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결되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 어떤 위험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어느 정도 경계가 풀린 모양이다. 물론 내가 우리 일행의 리더라는 사실이 약간 놀라운 모양인지 내가 나설 때 잠깐 놀란 빛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는 누가 보아도 내가 리더라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내의 이름은 커셀이라고 했다. 커셀은 올해 마흔 일곱의 사내로 예전에는 작지만 그래도 수백 명의 농노들을 부리는 영지를 갖고있는 영주였다고 한다. 그는 이곳 오지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미르 왕국의 변방 영지 중 하나의 영주로 작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평화로운 생활을 했는데 제국군의 침입으로 영지를 잃고 이렇게 쫓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도 나름대로 영지를 잃었다고 하지만 왕국의 귀족이라 나라를 지키며 싸우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지만 그는 왕국을 위해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나름대로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규합에서 이곳에서 그들에게 안전한 삶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을 좋아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끝까지 전쟁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커셀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뭐 하기는 전쟁이 좋아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하겠지 만은 말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곳에서 커셀을 통해 이곳 중간계에 대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내가 그에게 이곳 대륙의 상황을 물어 보았을 때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내가 임시 방편으로 우리들이 다른 대륙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통해서 우리가 왔다는 대륙으로 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대륙이 있을 까닭이 없었기에 뭐 하기는 나도 지금 이곳 중간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다른 대륙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내가 그를 안내할 대륙을 알 수 없으니 나는 우리가 수년의 여행 끝에 일행은 모두 죽고 우리만 살아 남아 이곳에 왔다는 핑계에 되었고 커셀은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가 풀이 죽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이틀을 지내면서 커셀을 통해서 대륙을 상황을 이모저모 알게되었고 나는 우리 일행은 다음 여행지를 커셀의 조국 미르 왕국으로 정했다. 7장. 오크보고 놀란 가슴 수련을 하게 만들다 ??빙하의 땅이라고 불리며 천연의 오지인 아이슬란드의 추위를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커셀의 조국 미르 왕국을 향해 길을 떠났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북쪽의 추운 날씨는 어느새 종적을 감추어 마치 그런 날씨가 있었나하는 의심을 갖게 할만큼 따뜻한 봄의 기운이 우리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길옆으로 나있는 온갖 신기한 꽃들의 화려함과 코를 후비는 향에 취해서 나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느긋하게 미르 왕국을 향해 발을 놀리고 있었다. "우아함... 햇살이 따사로 와서 좋기는 좋지만 좀 따분하기는 하네. 이런 인적이 드문 곳이라면 몬스터라는 괴물들도 나올 만 한데 말이야." 헉... 하지만 이 한마디의 말 때문에 내가 엄청난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죽도록 고생을 했다면 정말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냥 조용히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감상하면서 유유자적 걸어서 미르 왕국을 갔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한마디 말을 통해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일에 나는 한동안 정말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푸념을 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앞장을 서고있던 바이크가 뒤를 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몬스터 같습니다. 숫자가 대략 20-30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나는 바이크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설마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몬스터가 나타나다니... 나에게 무슨 초능력이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하여간 바이크의 말에 나는 바이크가 주시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바이크가 말하는 몬스터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멀뚱히 앞을 계속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 바이크가 말하던 그 몬스터라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본 그놈들은 일단 키가 작았다. 생긴 것은 마치 돼지 머리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였는데 아무래도 판타지 세계에서 말하는 오크(Orc)가 분명했다. 짧은 팔, 다리에 허접하게 보이는 창이나 도끼를 들고 있는데 나는 오크를 보고는 별로 무서움을 느끼지 못했다. 뭐 하기는 나 혼자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내 옆에는 그랜드 마스터 수준의 전사인 바이크와 9서클 마스터를 뛰어 넘은 마법사 아론, 거기에 어둠의 신관 가이가가 있었으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거기다가 불사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말이다. "쿠륵... 인간 죽인다. 쿠륵..." 녀석들은 우리 일행을 발견했는지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서더니 저마다 들고 있는 창과 도끼를 앞으로 내밀며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중 두목으로 보이는 오크 한 마리가 뒤뚱거리면서 나오더니 그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동화가 되기 전까지 아론을 통해 통역마법을 계속해서 걸려있는 상태라 그놈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웃긴 놈들이네. 겨우 그 숫자로 우리에게 덤비다니... 너희들 오크 순대라도 되려고 그러냐?" 뭐 하기는 돼지 머리를 하고 있으니 저놈들의 내장을 꺼내서 삶으면 순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생각(?) 때문에 나온 발언이다. 순대라는 말이 뭔지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내가 한 말이 결코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지 오크 대장은 화를 내며 "크르륵" 소리를 냈다. 자식 오크 주제에 화를 내면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무시하는 마음으로 비웃음을 흘렸고 나의 그런 모습에 그 오크는 열이 받았는지 덤벼들기 시작했다. "막아!" 나는 달려드는 오크를 보고는 슬쩍 뒤로 물러섰고 어느새 캐스팅을 했는지 아론이 3서클 마법중 하나인 파이어 볼을 날렸다. 손가락 끝을 통해서 날아가는 붉은 화염은 앞장을 서서 나에게 달려드는 오크 대장을 정통으로 맞추었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 오크 대장은 4-5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리만큼 날아갔고 아마 죽은 듯 미동도 없다. 다른 오크들은 아론의 파이어 볼의 위력이 놀랐는지 잠시 멀뚱하다가 자신들의 대장이 죽었다는 생각에 호전적 종족답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바이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등뒤에 매어져 있는 검 집에서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를 꺼내들었다. 내가 본 검 중에서 그 크기가 대단히 긴 것으로 길이가 140cm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 긴 대검을 양손에 잡고 오크 무리를 향해 달려드는 바이크를 보면서 나는 탄성을 질렀다. 역시 전사라서 그런지 달려드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바이크였다. 바이크가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크들의 비명이 터졌다. 단 한번의 베기에 싹둑 잘려나가는 오크들의 몸통이나 머리를 보면서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생각보다 무척 잔인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강심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인을 한번이라도 목격해 본적이 없는 상태이니 구역질을 한다든지 눈을 감는 것보다는 그래도 적응력이 좋은 편이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감탄을 터뜨렸는데 바이크는 움직임은 마치 오크들과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단조로운 움직임 속에서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한번의 공격에 하나의 오크를 사냥하고 있었다. 전투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사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크는 한번도 바이크의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하고 속속 죽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거 너무 쉬운 것 아냐? 오크라는 종족이 저렇게 약했나?"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 옆에서 나를 호위하던 아론에게 물었고 아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들이 약한 것이 아니라 바이크가 너무 강한 것입니다. 오크는 키가 작고 힘은 보통이지만 전형적인 전투 종족입니다. 인간보다 오히려 더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종족이지요. 그들은 후퇴라는 것을 모르는 몬스터입니다." 아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오크에 대해 약한 종족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은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아까 달려들었던 오크 때문에 약간 두려움이 나서 물러섰다가 바이크에 의해서 거의 대부분의 오크가 죽어나가자 앞으로 슬쩍 나서며 그들을 살펴볼 요량으로 바이크와 오크들의 싸움터로 한 발짝 다가섰다. 나의 그런 행동에 아론과 뒤에 조용히 있던 가이가도 내 뒤를 따랐는데 그때 갑작스럽게 처음 아론의 파이어 볼에 맞아서 죽었다고 생각되었던 오크가 꿈틀거렸다. 그 오크는 아론의 파이어 볼에 맞았지만 재수 없게도 체력이 무척 좋았는지 3서클의 파이어 볼에 죽지 않은 모양이다. 뒤늦게 그놈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놈이 나를 향해서 도끼를 던졌기 때문이다. "으아악"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고 그와 함께 "퍽" 하는 소리와 죽을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악..." 나는 무언가 나의 몸에 박히는 소리와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질렸고 나의 그런 비명소리는 아론에 몸에서 엄청난 위력의 9서클 마법인 헬 파이어(Hell fire)가 시전 되는 모습을 연출하게 만들었다. 도끼가 몸에 박힌 고통 때문에 나는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기절도 하지 못하고 그 아픔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그 흉측하게 생긴 도끼가 정확하게 내 복부에 박혀 시뻘건 핏물을 흘리게 만드는데 그 아픔??만큼이나 내 몸 안에서 흘러내리는 내 피를 보면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 가이가가 쓰러진 나에게 다가와서 무릎을 꿇더니 박혀있는 도끼를 빼어 내더니 손을 상처부위에 올려놓았다. 하얀 광채가 가이가의 손에서 일어나더니 어느새 그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사라지고 붉을 핏물을 콸콸 쏟아내던 상처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신관이라서 그런 것인가? 어둠의 신관, 죽음의 신관이라고 해도 치유 능력은 존재했던 모양이다. 언제 상처를 입었냐는 듯 나는 말끔하게 치료된 나의 복부를 쓰다듬으며 신기한 눈초리로 가이가를 쳐다보았다. 깊게 눌러쓴 망토 속으로 가이가의 얼굴 부분은 어둠에 둘러 쌓여 쉽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한번은 내가 그에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해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가이가 다크프리스트는 얼굴을 감추고 있는 것 때문에 흉측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놀랍게도 얼굴을 감춘 망토를 벗으면 매우 잘생긴 이십대 후반의 사내의 모습이다. 창백한 피부와 무표정한 모습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그래도 미남이라 금방 그 어두운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다 나는 가이가의 치유 능력으로 그 망할 놈의 오크가 던진 도끼에 맞아 죽을 뻔한 경험을 해서 그런지 오크에 대해서 멸시했던 마음을 싹 잊어 버렸다. 하지만 그 원한은 남아서 이 망할 놈의 오크들을 발견하는 즉시 모조리 죽이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의 결심을 또 했는데 그것은 그 오크 놈이 나에게 안겨준 원한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크의 도끼에 맞아 죽을 뻔한 나는 가이가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죽지는 않겠지만 뭐 불사의 능력을 가졌다고 하니 내가 죽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빌어먹을 아픔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한가지 결심을 더 했다. 바로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것이다. 벨제뷔트가 나에게 어떤 능력을 심어주었다면 처음 내가 원했던 것은 쉽사리 얻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이계의 인물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다고 하니 힘들더라도 내가 직접 해야지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렇다고 언제나 바이크와 아론이 내 곁에서 쭉 같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솔직히 동반해서 가지 못하는 곳... 그러니까 화장실이나 침실 같은데 말이다. 그런 데에도 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여간 나는 그것 때문에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수련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훌륭한 스승은 내 곁에 있었다. 대륙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 바이크와 인간으로서는 넘기 힘들다는 9서클 마스터를 뛰어 넘은 마법사 아론, 거기에 어둠의 신관 가이가 까지...?? "마나(mana)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론이 나에게 먼저 가르친 것은 마나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 그거 무슨 뜻인지 알아." 나는 내가 알고있는 판타지 세계의 마나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흔히들 말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세상의 근원적인 힘이라 할 수 있는 마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이러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몸 속에 마나를 갖고 있다. 동양에서 말하는 기(氣)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면 편한데 그 마나라는 것을 통해 능숙한 검사는 많은 마나를 몸 속에 축적하고 있고, 또 마법사는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주변의 마나를 흡수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알려 주었다. 나의 설명에 아론은 만족스런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마나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고 계십니까?" "물론 모르지." 삐질... 아무리 판타지 소설을 살펴보아도 마나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상세하게 표현된 것이 없다. 흡사 표현을 했더라도 뭐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사실 아닌가? 내가 모르겠다고 하자 아론은 나에게 우선 마나를 느끼게 해주겠다고 했다. 흡사 도형을 그리듯 바닥에 원형의 도형과 룬 문자로 알려진 도형을 그린 아론은 그 원형의 마법진 중앙에 나를 앉히고는 나에게 가부좌를 할 것을 요구했다. 뭐 이런 형태의 자세가 가장 마나를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나? 하여간 나는 가부좌의 어려운 자세를 취하고는 아론의 요구대로 눈을 감고는 심호흡을 가볍고 또 길게 하면서 마나를 느끼도록 집중했다. 아론을 말을 따르자면 마법을 배우려면 일단 마나에 친숙해야 된다고 하는데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다고 해도 마나에 친숙하지 못한 인물은 마법을 배울 수 없다고 한다. 다행스럽게 나는 아론이 새겨놓은 마법진 안에서 두 시간의 고생 끝에 마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몸 안에 무언가 희미한 기운이 일렁이는 느낌은 약간 따끔거리면서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내 혈맥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통로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몸 안 주변을 거침없이 다니는 작은 기운 때문에 나는 놀라서 소리쳤고 어느새 몸 안에??있던 마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마나를 느꼈다는 사실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격적으로 마법에 대한 지식을 나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뭐 내가 대단히 뛰어난 마법 자질을 갖고 있을 턱이 없으니 많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뭐 판타지 세계의 주인공이면 한번에 팍팍 실력이 부쩍부쩍 늘겠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소설이 아니란 말이다. 아론에게 마나에 대해 깨달으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바이크에게 육체의 담금질을 받게 되었다. 일단 이곳 세계에서는 판타지 세계와 마찬가지로 육체의 담금질을 주로 한다. 바이크의 몸처럼 온통 근육질로 둘러 쌓인 체력과 힘을 바탕으로 기초를 다지는 것이 이곳 세계의 법칙인데 바이크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체력을 요구할 뿐 자신과 같은 근육질로 만들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그 빌어먹을 오크 때문에 처음 목적지였던 미르 왕국을 향했던 발걸음을 멈춘 체 오크의 습격을 받았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처를 잡고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을 때까지 수련을 하게 되었다. 그 진전이라는 것이 얼마인지는 나도 몰랐다. 뭐 죽지 않은 육체에 거기다가 늙지도 않는 다는 것을 알고 부터는 나는 영생불사(永生不死)의 힘을 믿고 세월에 대해서는 그렇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여간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수련을 한지도 어느덧 일년은 훌쩍 넘은 듯 보였다. 8장. 죽음을 통한 진전 ??"으아악..."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주저앉아 울고싶은 심정으로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 하면은 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아론을 통해 마나라는 것을 느꼈을 때는 금방이라도 아론이나 바이크처럼 강해지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오산이었는지 일년동안 그나마 진전이 있다가 언제부턴가 정체되어 버렸다. 아론에게 배우는 마법은 처음에는 일단 진전이 무척 빠른 편이었다. 1서클을 마법을 마스터하는데 대략 3년에서 5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1년만에 1서클 마법을 마스터했다. 우쭐해진 나는 1년이면 2서클 마법도 마스터하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인간계의 마법은 마나를 바탕으로 많은 수식의 조합과 주문, 그리고 시동어를 통한 손동작으로 마법이 이루어진다. 내가 만약 인간 스승 밑에서 마법을 배웠다면 1년 안에 1서클을 마스터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 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나는 룬어를 몰랐고 머리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멍청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인간 마법사는 엄청난 천재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때문에 나는 천재가 아닌 고로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그 어려운 수식의 조합을 통해서 펼치는 마법은 정말 배우면 배울수록 머리가 빠개지는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론의 경우는 마계에서 창조된 마법사이고 마법이라는 것은 사실 마계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해도 하등 틀릴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 처음 대륙에서 마법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는 마법사들을 악의 종자 또는 악의 씨앗이라고 매도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이 흑마법이 주를 이루었던 것에서 백마법이라는 것이 탄생되면서 마법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하여간 마법의 처음은 마계에서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고 나는 그런 마계의 스승 아론이 있는 것이다. 복잡한 수식의 조합이 아닌 순수한 마나를 바탕으로 한 마나의 흐름을 유지하고 가속화시키다가 일순간에 응축해서 폭발시키는 단순한 원리의 조합을 통해 나는 마법을 시전 했다. 무슨 인간 마법사들처럼 마나를 매개체로 해서 룬어를 외우고 서서히 캐스팅 하였다가 여러 가지 손동작을 통해서 틀에 꽉 짜 맞추어진 형식의 마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의 처음 진전은 매우 빨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내가 익숙하게 여겼던 마나의 조합에서 내 육체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이크에게 검술을 배우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는데 처음 체력을 단련할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 마나를 몸 안에 축적하면서 내 몸이 몹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깨달았다. 마나를 채우거나 매개체로 만들기에는 내 몸은 이곳 사람들보다 매우 불안정했다. 일단 이곳 중간계는 마나가 매우 풍부한 곳이고 이곳에서 태어난 자들은 그 환경을 바탕으로 마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이곳 태생이 아니었던 내 육체는 마나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는 이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고 내 한계를 자책하는 이유는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내 신세를 한탄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숲 속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내 한계에 부딪쳐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아론이나 바이트, 가이가도 나를 내버려둔다. 혼자 있고 싶을 때 누군가 옆에 있으면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 때문에 내가 힘들고 지칠 때는 나는 그들에게 접근을 금지하고 나 혼자 나만의 세계에 빠져 들어간다. 뭐 이곳 거처는 우리들만이 있으니 위험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다가 하급의 몬스터가 나오기는 하지만 나도 그 정도의 몬스터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어서 그들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얼마만큼 숲 속을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숲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온 모양이다. 울창한 산림은 북쪽이라고 하지만 평평하고 넓은 잎을 자랑하는 활엽수가 주를 이루고 있고 그 크기가 예전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무들보다 두 배내지 세 배는 커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울창한 산림에 막혀 해 빛이 거의 차단된 나무 밑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숲 속을 정처 없이 헤매다가 지쳐서 쓰러 졌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나무에 등을 기대고 정면을 주시하다가 무언가 "크르릉" 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길..."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는 것은 나에게 무척 안 좋은 상황이 닥쳤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오우거(OGRE)를 만나다니 재수도 더럽게 없다. 오크 정도라면 한, 두 마리 덤벼도 별로 당황하지 않겠지만 그 상대가 오우거라면 말이 틀려진다. 사람을 잡아먹는 흉측한 몬스터로 알려진 오우거는 사람보다 몸집이 반 배 이상 크고 거인과 달리 머리에 뿔이 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거기에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 무기와 방어도구를 비교적 익숙하게 사용한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무식한 힘으로 따진다면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가 이놈은 보통의 오우거보다 더 커 보이는데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세 마리였다.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한 마리면 그 느린 동작 때문에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을 텐데 그 나마 내가 앉아 있는 곳을 포위하듯 조여오는 오우거 때문에 나는 도망도 칠 수 없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두터운 가죽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한 손에 보기만 해도 겁에 질리게 하는 곤봉과 배틀 엑스를 들고 있는 놈들을 보면서 나는 저 것에 맞으면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겠다 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뭐 불사의 육체이니 죽지는 않겠지만 그 고통을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싸우는 것뿐이었다. 달리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나타나지 않아서 나를 찾을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가 이곳에 빨리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이토록 절실하게 그들이 보고싶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죽을 위험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들이 꼭 필요한... 아니 말하자면 그들은 나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부모와 같은 역할을 그들이 하고 있다고 하면 맞을까? 하여간 그들이 몹시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지금은 일단 접어 두어야 한다. 지금 나에게는 이들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일단 1서클의 파이어 볼을 시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마 내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데미지 높은 마법이 파이어 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주문이나 수식의 조합 없이 빠르게 시동어만 외치면 펼쳐지는 마법의 이점은 그 신속성과 연속성이다. "파이어 볼" 나는 연속적으로 파이어 볼을 외치면서 다가오는 오우거의 몸을 향해 빠른 속돌의 파이어 볼을 날렸다. "펑... 크에엑..." 1서클의 파이어 볼이라고 해도 보통의 인간이 맞는 다면 화상을 입기 적당한 데미지를 주는 마법이다. 하지만 이 오우거라는 놈은 파이어 볼을 맞고 약간의 고통에 젖어 비명만 지르다가 더 독기가 올랐는지 성큼 성큼 다가온다. 나는 몇 번 더 파이어 볼을 날렸다가 그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다른 마법을 날렸다.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화살 모양의 파이어 애로우는 내가 조금 전에 날렸던 파이어 볼보다는 위력이 큰 것이 특징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인간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고 오우거는 그 피해가 조금 전보다는 컸지만은 죽지는 않았다. 파이어 애로우를 정통으로 맞은 정면의 오우거는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노린내를 내며 타 들어가는 자신의 몸을 그 무식한 손바닥으로 탁탁 짓눌러 멈추게 하더니 괴성을 지른다. 열이 무척 받았다는 표시인 듯 오른손에 움켜쥔 곤봉을 한 번 휘두르더니 빠르게 나에게 달려 들었다. 나는 다시 그놈에게 파이어 애로우를 날리려다가 그 놈이 속도를 내서 달려오자 마법을 멈추고 허리춤에 있는 검을 꺼내 들었다. 내 검은 롱 스워드(Long Sword) 흔히 판타지에서 말하는 장검으로 가장 보편적인 검이다. 하지만 보통의 롱 스워드 보다 내 것은 약간 길이가 더 짧고 폭이 더 좁았다. 뭐 말하자면 동양적인 검보다는 더 크고 넓지만 서양적인 검보다는 작고 폭이 좁다는 말로 약간 어정쩡한 모습의 기형적인 장검이다. 나는 오른손에 장검을 움켜쥐고는 달려드는 오우거의 오른손을 주시했다. 오우거의 공격은 저 무시무시한 육체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한 곤봉 공격이다. 그 곤봉의 공격을 한순간 막아낼 수 있다면 나에게 공격 기회가 오는 것이다. 나는 정면에서 무섭게 달려드는 오우거의 오른손을 주시하다가 그 놈이 나를 향해 휘두르는 동작을 읽고는 빠르게 몸을 굴려 오우거의 좌측으로 비껴나면서 놈의 다리를 베어나갔다. 갑작스럽게 내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당황했던 오우거는 내가 자신의 다리를 베자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서너 걸음 더 달려나갔다. 일단은 피하고 보자는 심사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놈의 반응 때문에 나는 어느 정도 놈과 간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때 갑작스럽게 내 등뒤에서 바람이 이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다. "휘잉" 하는 소리와 함께 귓가를 울리는 그 바람 소리는 나를 경직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느새 다가 왔는지 내 옆에서 다가왔던 한 오우거가 내가 정면의 오우거를 주시하는 동안 내 등뒤에 있다가 곤봉을 휘두른 것이다. 만약 그 곤봉에 뒤통수를 맞았다면 아마도 내 머리는 수박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나는 것처럼 온통 뇌수를 쏟으며 터져 버렸을 것이고 어쩌면 육체와 머리가 분리되어 저만큼 떨어져서 머리 없는 내 몸을 보고 놀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순간 온 몸에 한기가 돌았다. 내 등뒤에서 비겁하게 나를 노린 오우거는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지 괴성을 지르더니 나에게 달려들었다. 내 검에 다리를 베인 놈도 어느새 고통을 잊었는지 그 뒤를 따라 오른쪽에서 달려들었다. 다른 한 놈도 어느새 네 등 뒤쪽에서 "크르르" 괴성을 지르면서 다가왔다. 완전히 오우거에 쌓인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순간이었다. "휘이익..." 그 무시무시한 오우거의 곤봉은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바람 소리를 동반하며 내 어깨를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방향을 틀면서 녀석의 곤봉을 피했는데 그 때를 놓치고 않고 한 놈이 곤봉을 휘둘렀다. 방향을 틀고 있는 상태라 다시 트는 것은 무리가 있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의 장검을 들이밀며 내려치는 오우거의 곤봉을 막았다. "터엉..." 곤봉과 장검이 부딪치는 굉음과 함께 나는 일순간 장검을 놓칠 뻔했다.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놈의 곤봉은 무지막지한 힘을 담고 있어서 곤봉을 막은 팔이 충격으로 저려오면서 손아귀의 힘이 빠졌다. 그때 다시 뒤쪽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나는 왼쪽으로 뒹굴었다. 한순간의 판단이었지만 그 판단은 정확했다. 내가 있던 자리에는 내 몸통만큼이나 커다랗고 날카로운 배틀 엑스가 땅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저 무시무시한 배틀 엑스에 찍혔다면 그 고통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배틀 엑스를 피했다는 것보다도 내가 굴러간 자리가 하필이면 나한테 다리를 베인 놈의 발 밑이라는 것이다. 그놈은 내가 배틀 엑스를 피해 굴러서 자신의 다리 밑으로 다가서자 조금 전의 내 공격을 의식했는지 한쪽 다리를 쳐들더니 그 커다란 발로 내 몸통을 밟았다. "커억..." 일순간에 숨이 턱하니 막히는 고통에 나의 온 몸 세포는 곤두서 있었다. 그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우거의 하체가 실은 힘은 엄청난 고통을 주기에 충분했다. 거기다가 운이 없게도 나는 잡고있던 검마져 놓쳐 버렸다. "크르릉..." 나를 밟은 오우거는 복수라도 할 모양으로 괴성을 지르더니 그 곤봉을 내려찍었다. "헉..." 나는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도 나에게 떨어지는 곤봉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몸을 굴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우거의 체중이 실려 있는 발에서 내 몸을 빼기에는 나의 힘이 부족했다. "퍼억..." 곤봉은 나의 어깨를 찔렀고 그 고통은 눈알이 빠질 정도로 커다란 아픔이었다. "으으윽..." 이를 악무는 나의 입술 사이로 진뜩한 액체가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 너무 고통스러운 아픔에 나는 정말로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 살갗을 찌르는 고통에 정신은 오히려 말짱하다. "크르르" 하면서 웃고 있는 놈들의 미소에 나는 전신 털이 곤두섰고 모여드는 놈들의 모습에서 절망을 느꼈다. 어느새 내가 죽지 않는 불사의 육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퍼억..." 무언가 커다란 그림자가 나의 머리를 덮쳤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온통 어둠만이 내 시야를 가린다. 어둠만이... ??어둠 속에 한줄기 서광이 비추며 나는 조금씩 밝아지는 밝은 빛에 눈을 가렸다. 죽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불사의 육체라는 사실도 잊고 내가 죽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갖았다. 그때 내 눈앞에 나타난 이들은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였다. "으음..." 나는 느끼고 있었다. 분명 그 오우거의 커다란 곤봉이 내 머리를 덮친 것을... 그런데 지금 이들이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은 내가 죽지 않았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어둠은 무엇이고, 그 밝음은 무엇인가?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켰고 내 주위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두 구의 오우거 시체와 정확하게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한 구의 오우거 시체가 보였다. 아마도 두 구의 통구이는 아론의 작품이고 상하가 분리된 오우거는 바이크의 작품이 틀림없다. 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문득 내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상처와 고통이야 가이가의 치유 능력이면 금새 사라지지만 무언가 내 몸이 가뿐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가이가의 치료 후와는 약간 다른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한 내 몸 안에 이질적으로 돌아다니는 이 기운은 무엇인가? 이것은 분명 마나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예전 내 몸 안에 있던 마나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이 마나는 터무니없이 강하고 많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 안에 일어난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늘어난 마나의 질과 양에 놀라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않는가? 죽었다 살아났는데... 죽었다 살아나? 잠깐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죽었다 살아났다니... 나는 불사의 육체를 갖고 있다고 벨제뷔트가 이야기했지 않는가? 내 몸 안에 녹아있는 세커니트의 불사 능력으로 나는 죽지 않는 육체를 소유하게 되었지 않은가? 그런데 분명 이것이 죽음이라고는 단정하기 힘들지만 나는 죽음을 경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론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 죽었던 거야?" 내 물음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릎을 꿇었다. "저희의 잘못입니다. 벌하여 주십시오." 아론이 이렇게 말하자 바이크와 가이가도 똑같이 무릎을 꿇더니 동시에 입을 열었다. "벌하여 주십시오." 나는 그들의 뒤에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단지 앞의 말... 죽었다 라는... "죽지 않는 것 아니었어? 불사의 육체라고..." 나의 질문에 아론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불사의 육체라고 해서 육체 자체가 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인님은 죽으셨고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새로운 육체를 재구성하면서..." 아론의 말은 이러했다. 나의 육체는 세커니트의 영향으로 불사의 몸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것은 육체 자체가 불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불사가 된다는 것이다. 세커니트 자체가 영계의 생물이라 중간계의 육체 자체를 불사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단지 내 경우에는 이계에서 왔고 죽어서 영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중간계에 계속 머물러야 하고 중간계에 있으려면 육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세커니티의 불사 능력이 다시 내 몸을 재구성해서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내 몸은 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영향으로 이 세계에 적응하도록 육체가 적응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조금씩 그 능력치가 향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조금씩 더 강해진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죽음을 통해 내 능력이 진전된다는 말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이곳 중간계는 우습게도 내가 있던 세계와 날짜 체계가 비슷한데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한 달이 30일로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1년은 12달, 한 달은 30일, 하루는 24시간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론을 통해서 내가 살아나는 과정에 대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내가 세 번째 죽음을 겪고 난 후였다. 이 무지막지한 부하들은 내가 죽음을 통해서 내 몸이 재구성되면서 조금씩 강해지자 이제 아주 불사의 재생 능력을 믿고 나를 몬스터 무리 속으로 억지로 집어넣었다. 빠른 능력 향상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나? 물론 거부도 할 수 있었지만 조금씩 강해진다는 달콤한 매력 때문에 나도 동조하듯 그 일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의 고통만은 정말로 겪고 싶지 않았다. 물론 아론이나 바이크, 가이가를 통해서 아무런 고통 없이 일순간에 죽어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편법도 있지만 마치 자살하는 것 같아서 그것만은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몬스터 무리 속에 뛰어들어 내 실력을 쌓으면서 죽음까지 겪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하는 역할도 하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나는지 아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단 나의 육체가 죽으면 나는 한시간 후에 다시 육체를 재구성하면서 살아난다. 살아날 때는 하얀 광채를 내면서 온 몸이 하얀빛을 내는 구체에 둘러 쌓여 있다가 육체가 다시 재구성되면서 그 재생 과정을 거치면 그 전의 육체보다 더 강한 육체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한시간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내 육체가 없어도 나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한번은 내 육체가 몬스터의 배속으로 이미 소화된 적이 있었다. 아무런 육체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버린 것인데 결국에는 한시간이 흐르고 내가 죽었던 자리에서 하얀 구체가 생기더니 다시 내가 살아난 것이다. 육체는 새롭게 재구성되고... 일년하고도 반년이 넘게 훌쩍 지나면서 나는 내가 생각해도 무척 강해졌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미 나는 아론을 통해 배운 마법 지식과 육체의 재구성 과정에서 얻은 최상의 육체를 통해 5서클의 유저가 되었다. 일년 반만에 1서클 마스터에서 5서클 유저가 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게 된다면 입에 개 거품을 물고 자살할 일이다. 거기다가 나는 새로운 육체에 무수하게 축적된 마나를 통해 바이크의 검술에 대해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는데 이미 내 수준은 로얄 나이트 수준을 뛰어 넘어 팔라딘 수준에 근접했다고 한다. 검사는 그랜드 마스터를 필두로 해서 로얄, 골드, 실버의 소드마스터, 로얄, 골드, 실버의 팔라딘, 그리고 로얄, 골드, 실버, 블랙 나이트로 이루어져 있다. 그랜드 마스터, 소드마스터, 팔라딘, 나이트등의 명칭을 얻으려면 일단 어느 정도 검술에 능해야 함은 당연하다. 일반 검사에서 기사를 상징하는 최하위의 블랙 나이트 명칭을 얻기 위해서는 피나는 수련이 필요하고 한가지 검술 이상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일반의 경우는 기사 작위를 얻은 자들에게 나이트의 명칭을 부여하는데 기사가 아닌 용병이나 전사, 검투사의 경우에도 마나를 다루는 자들이 상당히 많아서 나이트의 명칭은 기사뿐만 아니라 마나를 다루는 검사들에게 모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이다. 나이트를 뛰어 넘어 팔라딘의 경지에 들어서면 검에 검기가 일어 나는 것이 눈에 보이다. 마치 성기사(聖騎士)가 신의 권능(權能)을 담아 성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상징인 오러 소드(aura sword)와 비슷하게 검에 영롱한 푸른 불꽃을 일렁이게 하는데 그 광채의 빛깔에 따라 로얄, 골드, 실버의 등급이 매겨진다. 팔라딘의 경지를 뛰어 넘는 소드마스터의 경우 오러 블레이드(aura blade)를 보여야 하는데 검에 푸른 불꽃이 일어나는 것보다 검이 길이가 늘어나 검강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계를 말한다. 그 늘어나는 길이를 통해 다시 로얄, 골드, 실버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단계의 격차는 무지하게 크다. 그리고 소드마스터를 뛰어넘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가 되면 검이 없어도 마음만으로 검을 대신한다고 전하는데 아직까지 그랜드 마스터 경지에 들어선 자가 없어서 과연 그랜드 마스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이크의 경우 그랜드 마스터급에 이르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진정한 그랜드 마스터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도 검이 없어도 마음만으로 심검(心劍)이라는 것을 펼칠 수 있다고 하니 그 위력은 엄청난 것이다. 나는 팔라딘에 근접한 수준의 검술과 5서클 유저의 마법 실력을 바탕으로 내 수련을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몇십 년을 넘게 수련해서 인간으로 뛰어넘기 힘들다는 그랜드 마스터나 9서클 마스터가 되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려면 정말 어느 정도 죽고, 어느 정도 수련을 해야할지 암담해서 수련을 끝내기로 했다. 물론 사실을 말하자면 이제는 정말 죽기 전의 고통이 죽기 보다 싫었다는 것이 진정한 이유이다. 9장.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soul sword) ??처음 오크에게 죽을 뻔했던 장소에서 근 삼 년 가까이 지냈다가 다시 원래 목적지인 미르 왕국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뭐 원래대로 이야기하자면 내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는 말이다. 나는 근 삼 년 동안 많은 것을 얻었다. 물론 피나는 고통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 세월이 아깝지 않게 나는 무척 강해졌다. 지금 같으면 우리 일행이 없다고 해도 내 스스로가 어느 누구와 상대해도 부담이 없다고 여길 정도였다. 물론 이 세계에 나보다 강한 자들이 무수하게 많겠지만 뭐 그런 것이 지금의 내 기분을 움츠러들게 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한창 푸른 새싹들이 만발할 봄의 4월이다. 예전에는 무척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과 나무의 풍요로움에 넋을 잃었지만 지금은 이 세계의 숨어있는 생명력에 감탄하며 주위의 마나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바이크의 도움으로 나는 걸어 다니거나 일반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마나를 내 몸 안으로 축적하는 기술을 습득했는데 그것은 흔히들 무협지에서 말하는 내가기공과 같은 종류의 무공이었다. 서서히 호흡하며 생명력이 철철 넘치는 마나를 온 몸으로 갈무리하는 나는 내 몸 곳곳을 누비고 있는 마나의 자극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자극을 한참 즐기고 있을 때 아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을이 보입니다. 아마도 미르 왕국의 최 후방 북쪽 변경 도시인 라센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나는 아론의 말을 듣고는 서서히 눈을 떴고 앞에 펼쳐진 도시를 보았다. 물론 이곳 미르의 도시라는 것은 인구가 수백만 하는 그런 대규모의 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곳 라센은 미르 왕국의 가장 북쪽 지역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북쪽 지역과 인접한 관계로 많은 몬스터와 충돌이 잦은 곳이다. 그래서 이 라센의 경우에는 길다랗게 성벽을 쌓아올려 몬스터의 침입을 막는 형편이다. 그 성벽 안쪽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일행이 유일하게 내어져 있는 성문이 있는 곳에 다다를 무렵 그곳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병사는 놀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하기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오지에서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놀란 만하다. "누... 누구냐?" 그들은 약간 긴장했는지 우리의 앞을 막으며 정체를 물었고 나는 그들의 의문을 해소시키려 답을 말했다. "우리는 여행자요. 북쪽 오지에 있다가 오늘에서야 이곳에 도착했군요." 나의 대답에 병사는 놀란 눈으로 우리를 살펴보았다. "북쪽 오지를 탐험했다고... 그곳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말이오?" 그는 결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그곳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었고 그들은 우리의 행색을 면밀하게 검사했다. 두 명의 전사에 한 명의 마법사, 한 명의 신관으로 보이는 사내. 여행자 파티로는 약간 부족한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갖출 것은 다 갖춘 상태이다. "대단하군. 저런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오다니..." 그 병사는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더니 우리에게 특별히 의심나는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듯 길을 열어 주었다. 드디어 미르 왕국의 국경 도시인 라센에 처음으로 입성한 것이다. ??"아... 일단은 정말 어디 숙소라도 찾아가서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싶을 따름이야." 나는 도시로 들어서자 아론에게 그렇게 말했고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숙소를 찾았다. '여행자의 집' 이라 불리는 작은 여관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의 일이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이곳 라센은 보기보다 매우 작은 변경 도시로 규모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많아봐야 한 2,000-3,000명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일까? 그러다 보니 여관은 달랑 두 개였는데 그 중에 한곳은 이미 손님이 가득찬 관계로 우리는 이곳 여행자의 집이라는 작은 여관을 찾은 것이다. "어서 오세요!" 우리를 맞은 것은 여관 주인으로 보기에는 매우 젊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금발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이 여성은 보기에도 남자가 꽤 따를 것 같은 미모를 소유하고 있어서 이곳 변경 지방에서 많은 남자를 울렸을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를 맞이하고는 생긋 웃더니 물었다. "식사, 목욕, 수면 어떤 것을 원하세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우선 목욕을 하고 싶은 심정에서 목욕을 외쳤고 우리 일행을 위해서 숙소를 부탁했다. 뭐 우리 일행 중에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인물은 솔직히 아무도 없다. 예전에는 나도 보통의 인간처럼 식사가 꼭 필요했지만 지금은 부활로 인해 몸이 재구성되면서 식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식사를 하지 않으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무미건조하게 식사를 한다.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먹는 것인데 나의 경우에는 그나마 맛이라도 느껴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많이는 먹지 않았다. 나는 주인 여자의 안내를 받으며 흥얼거리며 목욕을 하러 갔고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등은 숙소로 들어갔다. 뭐 그들이 숙면을 취하는 일도 없지만 일단 나와 함께 목욕을 같이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고 또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목욕을 마치고 나는 우리 일행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2인 2실을 준비했지만 한 방은 나 혼자 독방을 쓰기로 했다. 나머지 세 명은 2인 실에서 함께 쓰지만 뭐 잠을 자는 이가 없기 때문에 침대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그런 불편한 점은 없다. 내가 목욕을 마치고 들어가자 침대 곁에 앉아있던 바이크, 아론, 가이가가 일어섰다. "됐어. 그냥 앉아있어. 아참 그리고 생각해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이목도 있으니 호칭을 바꾸어야겠어. 주인님 하면은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니 그냥 내 이름을 불러. 아참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을 소개하지 않았네. 내 이름은 용이야. 현용..." 나는 정말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저들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들에게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저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주인이 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료우..." 바이크가 어려운 발음을 하는데 료우란다. 료우... 그것도 괜찮은데... 하기는 한글식 이름이니 이들이 발음하기에는 약간 어려울 수도 있다. 해서 나는 그냥 료우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료우! 어쩌면 감이 무척 좋은 이름이기도 하다. ??새벽이 밝아 오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매우 이상한 하루가 시작되리라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언가 나를 강하게 부르는 듯 한 느낌에 정신적으로 혼란이 온다. 이런 이상한 느낌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이어졌다. 아니 꿈속에서도 이런 느낌이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부른다. 누군가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그런 느낌이 든다. 부른다는 것은 분명 귀를 통해서 들려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는 그런 느낌! 참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누가 왜 나를 부르는가? 나는 침대에서 있었던 그 이상한 느낌을 일단 지워버리고 이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일행을 대동하고 나섰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는 그런 느낌 때문에 그 누군가를 찾으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혼자 나서서 했지만 나도 이곳 중간계가 처음이지만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바이크와 아론은 벨제뷔트에 의해 바로 창조된 따끈따끈한 상급마족이라 인간의 도시를 구경했을 턱이 없고, 가이가의 경우에도 마계에만 있었던 탓에 인간 도시를 구경한 적이 없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나와 함께 평생 이곳 중간계에 살아야 할 터이기 때문에 빠른 적응이 필요해서 나는 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왁자지껄한 시장 바닥은 내가 인간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실감을 하게 만들어 주었고 어느새 나도 그들과 동화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자자... 하나 사면 하나는 덤으로 드립니다." "거기 아가씨! 이거 한번 발라 보세요." "아저씨... 그거 그냥 드시면 어떡해요?"?? 확실히 시장이라 그런지 여기 저기서 떠드는 상인들과 손님들의 실랑이가 한창이다. 내 앞에서 이상하게 생긴 꼬치를 먹고는 얌체처럼 그냥 가려다가 주인 여자에게 붙들린 사내는 된통 혼나고 있었다. "쯧쯧..." 나는 그 사내가 주인 여자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는 혀를 차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저런 얌체 같은 짓을 할 수 있을까? 하기는 뭐 그런 거야 넘어 갈 수도 있을지 몰라도 일단 걸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저게 무슨 쪽팔림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들을 지나치다가 무언가 이상한 음성이 나를 부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매우 강하게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바이크나 아론, 가이가가 나를 부르나 해서 쳐다보았는데 그들은 묵묵히 나를 따를 뿐이었다. 하기야 이들은 내가 질문하지 않는 이상 침묵을 고수하는 이들이다. 다른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고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중요하지 않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나를 부를 때는 매우 중요한 일 또는 위험한 일이 발생했을 때 나에게 알려주려고 부르는 이유가 전부이다. 나는 나를 부르는 것이 이들이 아님을 깨닫고는 그 음성의 주인공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분명 나지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소리가 여겼던 것이 조금씩 그 소리를 향해 다가서자 그것은 울음소리로 들려졌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는 그런 울음소리... 아니 그러다가 그 소리는 "웅웅..." 거리는 이상한 괴음으로 바뀌었다. "웅웅웅..." 그리고 나는 일행을 이끌고 그 소리가 나는 진원지로 빠르게 다가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여러 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었다. 오래된 물건들도 보이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물상 비슷한 모양이었다. 우리 일행이 그곳 입구를 떡하고 진을 치고있자 안에서 한 노인이 나왔다. 대략 60세는 가뿐하게 넘어 보이는 노인인데 나이보다는 매우 활동적인 노인으로 보인다. 하얀 백발에, 하얀 눈썹을 갖고 있는 노인의 얼굴에는 저승꽃이라 불리는 버짐이 눈에 띄게 많았다. 노회(老獪)한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인의 인생 역정을 조금은 엿보게 만드는 그런 얼굴이다. "어서 오십시오. 터커의 만물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노인은 나이에 비해 무척 활달해 보이며 노회한 얼굴에도 웃음꽃을 피우는데 나는 노인의 웃음에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노인은 내가 미소를 짓는 것을 느꼈지만 웃음을 보이다가 내 뒤에 멀뚱하게 서 있는 일행을 보고는 약간 의문스런 표정을 짓는다. 내가 노인의 시선을 따라 뒤에 있는 우리 일행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노인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기는 처음 보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을 보면 아마도 노인과 같은 표정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이렇게 인생의 경험이 많은 노인들의 경우는 젊은 사람보다 더 할 것이다. 아론이나 바이크는 분명 인간처럼 생겼지만 언제나 무표정이고, 가이가의 경우에는 로브를 눌러써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 데다 입은 옷은 검은 사제복이다. 그것은 자신이 마치 대륙에서 가장 천대받는 어둠의 신 다크로드의 사제라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그나마 다행한 것은 다크로드의 사제복과 가이가가 입고 있는 사제복은 약간 다른 것이 위안이다. 하지만 가이가가 악신으로 알려진 다크로드의 사제가 아닌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 로크의 사제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더 놀랄 것이다. 사신 로크를 섬기는 사제들은 인간계에 없으니 말이다. 터커의 만물상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노인의 이름은 터커인 모양이다. 노인의 뒤를 따라 우리는 노인의 만물상으로 들어왔다. 만물상이라는 이름처럼 안에는 갖가지의 물건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어떤 것은 골동품이라 여길 만큼 오래된 것도 보였고, 어떤 것은 이것을 과연 파는 물건으로 여겨야 할지 의심스러운 고물들도 보인다. 하지만 내 눈을 자극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 나를 부르는 것처럼 내 마음을 움직였던 그 울음소리의 주인공! 그리고 나는 그 주인공을 드디어 발견하였다. 한 자루 검... 보기에는 잔뜩 녹슨 검인데 투박해 보이는 것이 왠지 볼품없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 검에 다가서자 터커라는 노인의 움찔거리는 것을 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인가? 나는 손을 뻗어 그 녹슨 검을 잡아갔고 그리고 무언가 내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웅웅웅..." 그것은 마치 이제야 주인을 만난 명검이 자신의 주인을 찾아 우는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무협지나 판타지에서 나와는 명검을 주인을 찾는다 뭐 그런 느낌 말이다.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검의 떨림을 감미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얼마입니까?"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나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노인에게 물었다. "손님! 정말 그 검을 사시겠습니까?" 나는 노인의 질문에 대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가격을 물었으면 사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굳이 그것을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저주가 걸린 검입니다." "저주가 걸린 검...?" 나는 노인의 말에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나의 그런 표정을 읽었는지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게 아마도 40년 전일까요?" 노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노인이 운영하는 이 만물상의 역사는 무척 오래된 것이라는 것이다. 노인의 조부 때부터 계속해서 이 만물상은 이어져 왔는데 40년 전 노인이 처음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 만물상을 물려받고 나서 처음 손님이 보기만 해도 범상치 않은 검을 가슴에 품고 와서는 팔려고 내놨다는 것이다. 노인의 만물상은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값어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을 사는 것도 하는 터라 노인은 사내가 가져온 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고 한다. 만물상 일은 이제 처음이라 경험이 미천한 그였지만 그가 보아도 그 사내가 가져온 것은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노인은 값을 쳐주고 검을 샀는데 검을 판 그 사내의 얼굴이 약간 두려운 표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워낙 좋은 물건을 싸게 샀다는 것 때문에 노인은 그것을 괴이치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노인은 처음 어느 기사에게 그 검을 팔았다고 한다. 처음 사내에게 샀던 금액보다 무려 다섯 배나 넘는 가격에 검을 넘겼기에 노인은 횡재했다고 좋아했는데 얼마 후 그 검을 샀던 기사가 대련 중에 사고로 상대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노인에게 그 검이 돌아왔다. 죽은 기사의 가족들이 검 때문에 죽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싼 가격에 노인에게 다시 판 것이다. 노인은 기사에게 팔았던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다시 그 검을 샀기에 좋아라했다고 한다. 그후 그 검은 많은 사람들에게 팔렸다가 노인에게 돌아왔다는데 그 검을 사간 사람들은 이상하게 하나같이 요절하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어떤 때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불행이 겹쳐 집안이 몰락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검은 저주받은 검이라 칭해졌고 노인은 그 검을 없애려고도 했지만 그럴 때면 무언가 자신을 짓누르는 힘이 있어서 그것도 뜻대로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그후 한 20년 동안은 그 검을 찾는 자가 없었고 저렇게 방치된 상태로 녹슨 검이 되었다고 한다. 노인의 긴 설명을 듣고는 나는 약간 긴장된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이유 때문에 피식 웃었다. 그것은 바로 현재 나의 상태 때문이다. 다른 자들은 죽음이 두려울지 몰라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물론 죽음 전에 겪는 그 고통이 두려울 뿐이지만... "얼마면 되겠습니까?" 노인은 내가 자신의 설명을 듣고도 그 검을 사려한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더니 내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원래 이 검을 최종적으로 제가 다시 구입할 때 15실버를 받았지만 손님에게는 10실버만 받겠소." 그래도 상인인지라 그 저주받은 검을 공짜로 주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화폐는 가장 기본 단위의 동전이 루나이고 1, 5, 10, 50, 100, 500 루나가 있고 1,000 루나가 1실버가 된다. 실버도 루나와 마찬가지로 1, 5, 10, 50, 100, 500 실버 단위가 있고 1,000 실버가 1 골드가 된다. 거의 판타지물의 화폐 단위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10실버를 지불하고 그 녹슨 저주받은 검을 구입했다. "웅웅" 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기는 했지만 아침부터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검이라 구입한 뒤 기분은 좋았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가 어디에서 돈이 나서 검을 샀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군. 그것은 어제 저녁 우리가 한동안 수련했던 그곳에서 그 동안 잡았던 몬스터들의 여러 가지 신체 부위를 팔아 벌은 돈이다. 그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이 트롤의 피였는데 그 무지막지한 재생력 때문에 신전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포션을 만드는 주재료가 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무려 50골드가 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50 골드를 벌려면 그 피의 양이 얼마나 많아야 되는데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론이 달리 마법사인가? 충분히 아공간이라는 것을 갖고 있고 그곳에 물건들을 모아둔 것이니 의문을 갖지 말아라! 뭐 그것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아공간을 갖을 정도의 마법사면 최소한 6서클이 넘는 마법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우리 일행을 다시 보았지만 말이다. 하여간 나는 그 만물상에서 검을 사고는 일행을 데리고 우리 숙소로 향해 걸어갔다. 그때 내 뒤에 있는 아론이 나에게 한마디 말을 던졌다. "료우... 영혼의 검입니다." "응...?" 나는 갑자기 아론이 나에게 영혼의 검이라는 소리에 무슨 소리인가 물었다. "그 검... 아마 이 중간계에서는 저주받은 세 개의 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영혼을 파괴하는 소울 스워드...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태어난 검 데몰레이션 스워드와 영원한 안식처로 살아있는 생명을 인도한다는 영면의 검 리포즈 스워드와 함께 저주받았다고 알려진 검입니다." 나는 아론의 말에 아론이 이 검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있는 것 같아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아론의 설명은 이러했다.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 중간계에서는 저주를 받았다는 세 개의 검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이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라고 한다. 중간계의 모든 생명체는 영혼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영계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중간계의 모든 인간들은 신을 신봉하고 믿음을 갖고 있다. 정작 그들은 자신들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생명을 만든 창조주나 자신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신 로크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다는 것이다. 죽은 영혼은 다시 영계로 갔다가 창조주의 손에 의해 다시 탄생되어진다. 그것은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回)와 마찬가지인데 만약 영혼이 파괴되면 윤회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검...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는 그 영혼에게 상처를 입히는 무서운 것이다. 육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검 소울 스워드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이 검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영혼에 타격을 입어 의문 모를 병이나 사고사처럼 죽는 것이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영혼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부가적으로 파괴의 검으로 알려진 데몰레이션 스워드는 물리적인 파괴력을 갖고있는 검으로 어떤 대단한 존재도 이 검에 타격을 받으면 파괴가 되어버린다. 흡사 중간계 최고의 존재라는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데몰레이션 스워드에 베이면 회복하지 못하는 상처를 받고는 급기야 죽어버린다. 이 데몰레이션 스워드에 죽은 드래곤의 숫자가 무려 100이 넘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드래곤??슬레이어라 칭할만한 검이기도 하다. 영면의 검 리포즈 스워드는 "영원한 안식처로 살아있는 생명을 인도한다." 라는 고상한 말과는 다르게 신족이나 마족, 혹은 정령들을 소멸시키는 무서운 검이다. 고위급의 신족이나 마족, 혹은 상위 정령이라고 해도 이 리포즈 스워드에 베이면 소멸이라는 것을 당하고 만다. 그래서 리포즈 스워드는 어쩌면 인간계에서 신족이나 마족, 정령등을 상대하는 최고의 무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천년 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고 하니 그 행방은 아무도 몰랐다. 하기는 데몰레이션 스워드도 마지막 행방이 대륙의 동쪽에서 사라졌다는 소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연찮게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가 나에게 온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나는 아론의 말을 듣고는 이 검의 진면목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검에 마나를 실었다. 내 마나를 받아서 녀석의 진면목을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나의 의도는 성공했는지 검을 뒤덮은 녹이 조금씩 균열이 가더니 그 균열 사이로 하얀 광채가 선명하게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오랜 잠 속에서 깨어나 세상에 처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처럼 검에서 발산되는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검을 뒤덮은 녹들은 땅바닥에 떨어졌고 검은 자신의 실체를 세상에 보여주었다.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 10장. 욕심이 부른 화 ??이 일이 일어난 근본적인 까닭은 물론 내 실수 때문이다. 내 실수가 뭐냐하면 영혼의 검을 얻고 너무 좋아서 무심결에 검에 마나를 실었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이런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울 스워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경외감 가득한 시선으로 한참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 광채가 너무 강한 것을 보고는 문득 주위를 살피는 조심성을 보였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주변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일행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우리 일행을 지켜본다고 하는 것 보다 내 손에 들려있는 소울 스워드를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소울 스워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그들은 무슨 보물을 보듯이 신기한 눈으로 지켜보는데 개중에는 부러움에 가득 차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언제나 인간이라는 족속이 그렇듯이 몇몇 자들은 자신의 분수도 잊은 체 탐욕이 가득 찬 눈으로 검을 훔쳐보는 자들도 있다. 뭐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내 검에 욕심이 난다고 해도 단지 "야! 저거 어떻게 얻을 수 없을까?" 하는 정도의 푸념이 대부분이고 섣불리 우리에게 덤벼들어 뺏으려 하는 자가 나올 리 만무했다. 특이나 내 등뒤에 있는 바이크의 그 거대한 몸짓과 등뒤에 있는 바스타드 소드의 매서움을 안다면 일반인들은 욕심이 난다고 해도 섣불리 덤비지 못한다. 거기다가 아론의 모습을 보면 마법사임을 깨닫고 우리를 모험가 파티 정도로 여기며 함부로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그들이 섣불리 달려들지 못할 것을 깨닫고는 검을 거두었다. 일단 검에 주입했던 마나를 거두자 소울 스워드는 하얀 광택의 일반의 검 모습으로 바뀌었다. 단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검의 손잡이에 두 마리 드래곤이 서로를 노리며 싸우는 모습이 양각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 웬 원구의 구슬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참 특이한 그림이군' 하고는 별반 반응 없이 검을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유심하게 관찰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우리 앞에 나타났다. 웬 기사 한 명과 병사 서너 명이 우리의 앞길을 막은 것이다. 나는 갑자기 기사와 병사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자 무슨 일이냐는 듯 그들을 쳐다보았고 그들은 순순히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기사 복장을 한 사내가 우리 앞으로 나서더니 명령하는 투로 말했다. "라센의 영주님이신 사르센 백작 각하께서 너희들을 찾으신다. 나를 따라와라." 마치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투로 말하는 그 병사의 말에 나는 어이없어 할말을 잊었다. 내가 무슨 일 때문에 저들의 꽁무니를 쫓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라센의 영주라니... 그자가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는 말인가? 내가 멀뚱하게 있자 기사는 우리가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붉히더니 소리를 질렀다. "좋은 말로 할 때 나를 따라와라. 만약 반항하거나 불응한다면 내 검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사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기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적게 보아도 대략 삼십대 중반쯤 보이는데 그 정도면 어느 정도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을 것인데 아무리 기사라는 권위 의식이 있다고 해도 이리 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 말인가? 척 보면 상대가 섣불리 건드릴 인물들이 아님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 자가 몹시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저 자는 저렇게 행동하다가는 몇 년 못 가서 차디찬 대지에 뼈를 묻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그것이 그자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감히 내 말을 무시하고 그따위 행동을 보이다니..." 그 기사는 성을 버럭 내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롱 스워드로 보이는 장검을 뽑아 든 기사의 행동에 다른 병사들도 저마다 검을 뽑아 들었는데 그들의 그런 행동에 바이크가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바스타드 소드를 등뒤에서 뽑았다. 확실히 바이크가 그 긴 바스타드 소드를 뽑고 자세를 잡으면 내편에서 보면 그렇게 듬직해 보일 수 없지만 상대편이 입장에서는 그 중압감에 함부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1미터 90센티가 넘는 그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압감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자만심이 똘똘 뭉친 그 기사나 병사들도 바이크가 앞으로 나서자 그 전까지의 기세와는 다르게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감히 우리에게 반항을 하다니 네놈들이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기사는 조금 전 까지는 우리를 죽일 듯이 달려들려 하더니만 바이크가 앞을 가로막자 이제 대화를 하고 싶은 용의가 있는 모양이다. 하기는 나 같아도 바이크와 싸우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저 무시무시한 덩치와 싸워서 누가 이기리라 장담을 하겠느냐 말이다. "뎀벼..." 윽... 이게 아닌데... 나는 바이크의 덩치를 믿고는 그 우월감에 빠져있는 기사의 헛소리에 욱하고는 싸움을 걸고 말았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원초적으로 싸움을 건 쪽은 저 기사 쪽이니 내가 싸움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감히 이 마을 저 마을 떠도는 부랑자 주제에 대 미르 왕국의 기사를 모독하다니 네 놈들의 뼛가루를 잘근잘근 부셔버리고 말겠다." 후와... 무지 무서운 발언이다. 근데 뼛가루를 잘근잘근 부셔버린다는 표현은 또 무슨 헛소리인가? 이미 가루가 되었는데 뭘 또 부셔? 쯧쯧... 나는 그 기사의 얼토당토도 하지 않은 발언에 혀를 찼고 저 자가 아무래도 정신이 오락가락 하다든지 아니면 평소에 국어 공부를 하지 않아 표현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보았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이미 전투는 시작되고 있었다. 기사는 나보다는 큰 키였지만 바이크와 비교하면 한 뼘 정도 작은 편이다. 그의 롱 스워드 또한 바이크의 바스타드 소드와 비교하면 50센티 이상 짧은 편이니 어쩌면 어른과 어린아이의 대결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죽이지는 말아! 문제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바이크에게 저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솔직히 바이크의 실력이라면 저들은 이미 저승행 특급열차를 예약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뭐 시비가 붙었다고 해도 섣불리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면 세상에 사람들은 아마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 덤벼오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경우 아무 거리낌없이 사람을 죽일지는 몰라도 내가 그들과 똑같지 않은 이상 저들과 똑같이 행동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내가 살던 세계에서 살인이란 가장 큰 죄악이며 내가 정말로 죽음의 위협에 봉착하여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정도의 크나큰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굳이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바이크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검을 든 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고는 발을 이용해서 상대의 복부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휘이익... 깡..." 기사는 내가 보아도 실력은 제법 되어 보였는데 블랙 나이트는 넘어서서 실버 나이트 수준으로 보였다. 그 정도면 이런 지방 영주의 기사치고는 대단하다고 불러줘도 무방할 듯 싶었다. 그자는 자신의 일 검을 바이크가 간단히 막아내더니 오른발을 들어 자신의 정강이를 차자 "윽" 하는 소리를 내고는 앞으로 꼬꾸라져 한 네 다섯 걸음 전진하고는 겨우 자세를 잡았다. 씩씩거리는 폼이 지금 몹시 열이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기사를 간단하게 막은 바이크는 한방에 하나씩 병사들을 꼬꾸라트리고 있었다. 기사의 뒤에서 달려들던 네 명의 병사들은 제대로 공격도 못해보고 바이크의 발에 한방씩 맞고는 저만치 굴러가서 복부 또는 정강이를 부여잡고는 고통을 호소했다. 하기는 바이크의 발 공격에 복부를 맞았다면 숨쉬기가 약간 곤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발 공격이라면 그 충격만으로 충분히 호흡 곤란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기사는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방에 하나씩 나가떨어지자 이를 악물더니 자세를 바로 잡고는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마치 투핸드 스워드를 잡는 방식으로 검을 쥐었는데 오른쪽 손이 위로, 왼쪽 손이 아래로 내려가게 하여 검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검의 끝을 왼쪽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검을 누이더니 수평으로 검을 유지했다. 약간 특이한 방식의 기수식으로 보인다. 저런 방식의 기수식이면 왼쪽의 공격은 거의 불가능하고 검을 치켜들어 상단으로 향하게 하면서 큰 반원을 그려 검을 회전시켜서 검 끝을 뒤로 향하게 하였다가 오른쪽에서 전면을 베어나가는 공격만이 유일할 듯 보였다. 약점이 많은 공격처럼 보이는데 저런 무모하다고 생갈 할만큼 눈에 보이는 공격 루트를 갖고 있는 기수식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나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용서하지 못한다. 받아랏..." 왜 저런 말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에게 최면이라도 거는 듯 아니면 바이크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기사는 소리를 지르더니 바이크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가면서 예상했던 방식의 공격을 펼친다. 발걸음을 신속하게 움직이면서 검을 상단에서 오른쪽으로 큰 반원을 그리면서 그 회전을 통한 가속력에 자신의 힘까지 실어 바이크의 왼쪽 허리 쪽을 베어갔다. 내가 보아도 뻔한 한가지 루트의 공격 방식이라면 방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물론 검을 회전시키면서 얻어지는 가속력과 본래 자신의 체중을 실어 보태지는 힘이 평상시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수들에게나 통하는 일격 필살의 공격 방식이다. 바이크는 이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바이크는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듯 비껴 서더니 간단히 기사의 베기를 피하고는 왼발을 이용해서 상대의 발을 걸었다. "아쿠..." 기사는 자신만만하게 펼쳤던 공격이 너무도 어이없게 무너지면서 거기에 더해서 바이크가 살짝 내민 왼발에 걸려 중심을 잃고는 볼썽사납게 앞으로 꼬꾸라졌다. 두 번째 꼬꾸라지는 것인데 이번에는 혼신을 다해서 달려들었던 힘 때문에 자세를 잡지도 못하고 "붕" 하니 긴 체공시간을 갖고는 정확하게 바닥과 키스하는 자세로 엎어졌다. 기사는 오늘 몹시 운이 나빴던 모양이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바이크의 발에 걸려서 공중을 자유 낙하해 떨어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체중이 실린 몸에 깔린 것은 검을 들고 있던 자신의 양손이었다. 거기다가 기사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고 입은 그 두터운 체인 메일(Chain Mail)이 자신에게 해가 되리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두터운 체일 메일과 자신의 체중이 실린 무게가 모두 합치면 얼마나 될까? "크아악..." 체중과 체인 메일의 무게까지 더한 몸통에 깔린 두 팔은 아무래도 자근자근 부러진 듯 보였다. 기사는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사방으로 퍼뜨리더니 아픔 때문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쪽에서 그 모습을 보고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달려와 기사를 일으켜 세우는데 불쌍하게도 떨어지면서 얼굴도 충격이 컸는지 코피가 주르르 흘러내렸고 입술도 터져 있었다. "으으윽..." 기사는 병사들이 간신히 일으켜 세웠지만 엄청난 고통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그러면서도 부들부들 떠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두 팔의 뼈 조각은 여러 조각이 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신이 우리에게 얘기했던 뼈를 잘근잘근 부셔버리겠다는 것을 자신이 직접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체험한 것이다. "그러게 말을 조심해야지! 쯧쯧..."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혀를 찼다. 내가 경험한 것 중 중요했던 것이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여러 번 죽는 경험까지 한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이다. 나는 그 기사에게 정말로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 싶었다. 뭐 하기는 저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다면 더 열이 받겠지만 말이다. 병사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시비를 붙일 힘이 없던 탓에 고통에 몸을 떠는 기사를 데리고 장내를 빠져나갔다. 뭐 나 또한 더 이상의 시비를 바라지 않는 터라 그들이 물러서자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주위 사람들은 바이크 혼자 기사와 병사들을 간단하게 막아내자 놀란 눈으로 바이크를 살피면서도 약간은 두려움이 가득 찬 눈으로 접근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최상위의 권력을 움켜쥐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자신들이 원했던 것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가져왔던 귀족들이라는 족속들이라면 그 폐해는 더 심할 것이다. 라센의 영주이자 미르 왕국의 귀족인 사르센 백작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자신의 신분으로 이런 조그마한 영지를 다스리는 처지 때문에 더 그런 욕심이 무척 많았다. "당해? 겨우 모험가 정도로 보이는 놈들한테 그것도 겨우 한 놈한테 너희들이 이런 꼴로 당했다는 말이냐? 거기다가 저 놈의 꼬락서니는 또 무엇이냐?" 사십대 후반에 양옆으로 웨이브를 그리며 꼬여 있는 수염이 멋들어지게 보이기는 했지만 기름 끼가 자르르 흐르는 피부와 보기만 해도 욕심이 잔뜩 묻어있는 얼굴 표정을 보면 지금 호통을 지르는 사내는 그리 호감이 가는 얼굴이 아니다. 거기다가 살짝 엿보아도 배가 볼록 나온 것이 영락없이 운동이라고는 담을 쌓고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놈들의 실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 사내의 오른쪽에서 머리를 숙이며 서있는 체인 메일을 입고 있는 사내가 고개를 살짝 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데 대략 삼십대 후반쯤 보이는 사내이다. 슬쩍 보기에도 듬직하게 보이는 사각형의 얼굴인데 자신의 부하를 변호하려는 상사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흥... 저 놈이 평소에 수련을 게을리 한 결과이다. 저놈의 월급을 반으로 깎아라." 욕심 많은 사내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렇게 기사의 월급을 깎더니 옆에 그 사내에게 말했다. "감히 나 미르의 백작인 사르센 모티카프 조르의 명을 거부한 놈들을 당장 잡아들이도록 해라. 아... 아니 잡아 올 필요도 없다. 내가 직접 가겠다. 감히 내 명을 거역한 놈들이니 만큼 내 친히 놈들에게 벌을 내리리라." 이 자가 아마도 이곳 라센의 영주인 사르센 백작인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백작 정도의 지위이면 이보다 큰 영지가 하사되었을 것이 분명한데 이 자의 영지는 너무 작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 욕심 많은 영주를 만난 것은 숙소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하던 때였다. 기사와 병사들 일행이 우리에게 당하고 물러간 후라 약간 뒤탈을 걱정할 필요는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그 기사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당하고 말도 못하고 끙끙되고 있을지 알았는데 갑자기 여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여관의 여주인은 밖을 살짝 엿보더니 사색이 되어서 말했다. "기사들이... 거기다가 영주님까지 오셨어요. 왜 이곳에..." 그녀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체 단지 영주와 그의 기사들이 몰려오자 놀란 눈으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거기다가 분위기가 싸움터로 향하는 모습의 기사들의 모습이어서 그런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나는 그녀의 놀란 외침을 듣고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오는지 짐작했다. 그 기사와 병사들과의 소란이 있은 후 바로 떠났으면 이런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데 괜한 짐작으로 이곳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 나의 오판이었다. "쳇... 식사 후에나 나타날 것이지..." 솔직히 소란스러운 것보다는 식사를 놓친 것이 아까웠다. 이곳 여관의 여주인 음식 솜씨는 상당히 뛰어나서 나는 음식을 탐하는 일이 없지만 그녀의 음식은 가끔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매콤한 맛의 고기라던가 새콤달콤하고 입안을 가득 메운 그녀의 파이는 디저트로 먹기에 그만이다. 그런 즐거움을 늦추게 되었으니 내가 이렇게 투덜되는 것도 당연하다. 여관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여행자로 보이는 자들도 몇몇 보였는데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란과 여관 여주인의 말 때문에 모두 사색이 되어서 저마다 탁자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다. "나가자." 나는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를 불러서 여관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괜히 저들이 이곳 여관 안까지 들여놓아 난장판을 만들어 여관 여주인의 울상인 얼굴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묵은 시간은 하루밖에 안되었지만은 나는 여관 여주인의 음식에 반했고 그녀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여관을 나선 우리 앞에는 보기만 해도 꽤 값어치가 나가는 갑옷을 입은 팔자 수염의 사내와 그 뒤로 삼십여명이 넘는 기사들이 보였다. 선두에는 두 사내가 서 있는데 한 명은 두목인 듯 거만한 표정으로 문밖을 나서는 우리를 쳐다보는데 척 보아도 귀족 나부랭이 정도로 치부될 만큼 기름이 자르르 한 것이 볼썽사납게 생겨먹었다. 다른 한 사내는 번쩍이는 체인 메일을 걸치고 한 손에는 롱 스워드를 땅에 박아놓고 서 있는데 옆의 거만한 사내와는 다르게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겁을 먹었다든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가 여관 밖으로 나서자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나는 이곳 라센의 근위 기사장 후암 라미탈로이다. 그리고 여기 계신 이 분은 이곳 라센을 다스리시는 영주님이인 사르센 모티카프 조르 백작님이시다. 영주님께서는 너희들이 감히 무엄하게도 영주님의 명을 받은 기사와 병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몸소 어려운 걸음을 하셨다. 너희들은 어서 빨리 죄를 청하고 무릎을 꿇어라!" 마치 자신들의 인원을 보고 우리가 겁을 집어먹어 용서를 구할 것이라 오판한 모양인지 라센의 근위 기사장이라는 후암 라미탈로의 말을 들은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했다. 뭐 생각 같아서는 열이던 스물이던 다 때려잡아서 버릇을 고쳐놓고 싶은 심정도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나중에 미르 왕국 전체에 수배령이라도 내려질지 몰랐다. 그 왕국의 수배령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귀찮기는 하다. 어차피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데 왕국의 수배령이 떨어지게 된다면 엄청 귀찮을 것 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간혹 가다 충성심에 미쳐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기사들이나 수배금에 현혹되어 달려드는 현상금 사냥꾼 등과 치고 박고 싸운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내가 이렇게 차후의 일 때문에 고심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우리가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특이나 그 영주라는 자는 그런 오판을 아주 심하게 한 모양인지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네놈들의 행동이 괘씸해서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려 했지만 그래도 이곳 영지에 온 자들이니 이번 한번만 목숨은 살려주겠다. 대신 지금 네 몸에 있는 그 검을 나에게 바치도록 해라!" 갑자기 들려오는 영주의 오만한 말에 나는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저 영주라는 놈이 내가 만물상에서 산 소울 스워드를 노리고 찾아왔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었다. 결국은 그것이 목적이었던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영주라는 자의 낯짝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탐욕에 물든 모습을 지켜보자니 울화가 치민다. 지금 하는 짓을 보아하니 아마도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은 이렇게 무력으로 빼앗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힘이 없었다면 아마도 내 물건을 저 영주라는 자에게 억울하게 강탈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저 돼지 같은 영주의 낯짝에 침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약한 자는 언제나 강한 자에게 눌리며 밟히는 것이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냉혹한 자연의 법칙이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살았던 세계와 하등의 틀린 점도 없이 너무도 판박이다. 인간 세계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영주라는 자는 우리가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마치 응낙을 받았다고 착각을 했는지 뒤에 있는 한 기사에게서 나에게 검을 받아 오라고 시킨다. 나는 그의 하는 꼬락서니를 지켜보고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어찌 저리도 분수를 모른다는 것인가? 아무리 자신이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저렇게 오만 무도하게 행동한다면 언젠가는 된통 당하는 것이 인간사의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저자는 아무래도 오늘 그 꼴을 당하고 말 것이다. 영주에게 명령을 받았던 기사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검을 가져가려 하였다. 나는 그가 다가오자 정말 할말을 잊었다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검 집채 뽑아들고는 외쳤다. "능력이 있으면 가져가라. 하지만 너는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선전포고이다. 내 물건을 다른 자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단 오늘 나는 저 영주라는 자를 혼내주기로 결심했다. 뭐 그렇다고 무슨 영화나 소설처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인을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내가 무슨 살인을 좋아하는 살인자도 아닌데 섣불리 사람을 죽이겠는가? 물론 바이크나 아론, 가이가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일단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해 그들에게 함부로 해하지 못하게 명령했으니 그들도 내가 다른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해하지 못하리라! 우리 일행은 그렇게 영주의 기사단들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솔직히 아론의 마법 한방이면 저들을 모조리 날려 버릴 수도 있다. 9서클 마스터가 달리 대 마법사라는 칭호를 받겠는가? 하지만 아론과 가이가는 뒤로 물러서고 바이크가 앞에 서서 몸빵을 한다. 뭐 하기는 그래드 마스터이니 누가 바이크와 대적하여 이길 수 있겠는가? 나도 한 걸음 물러서서 아론과 가이가의 앞에 서있었다.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물론 나도 싸움이라는 것을 하고는 싶지만... 솔직히 내 실력이 어느 정도 늘었는지 저들을 상대로 시험을 하고는 싶었지만 괜히 그랬다가 상처라도 입던지 아니면 잘못 손을 휘둘러서 상대를 죽이는 불상사가 생길지 몰라서 자제했다. 그리고 5분도 안돼서 영주의 기사단은 반수 이상이 땅바닥에 엎어져 끙끙거렸다. 영주와 기사 단장이라 불리던 자들은 저 만치서 자신들의 기사와 바이크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데 영주와 기사 단장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아서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하기는 말이 대결이지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기사들을 보는 심정이 어떻겠는가? 나야 바이크가 기사들을 한방에 하나씩 때려눕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지만 상대는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고 있음이 분명했다. 열 다섯 번째 기사가 바이크의 왼발에 엉덩이를 걷어 채여 고꾸라지자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기사 단장이라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까 전에 자신을 후암 라미탈로라고 소개했던 자이다. "대단한 실력이구나! 하지만 아무리 실력으로 뛰어나다고 해도 우리 모두를 상대해서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이미 골드 나이트를 뛰어 넘어 로얄 나이트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 그대와 한판 화끈한 싸움을 하겠다." 후암이라는 기사 단장의 말을 듣고는 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골드 나이트를 뛰어 넘어 로얄 나이트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니 바이크와 한판 멋지게 싸우자는 말인데 나는 그자가 무슨 소드 마스터라도 되는 줄 알았다. 최상급의 로얄 소드 마스터도 바이크와 일대 일 대결에서 상대하기 힘들 터인데 겨우 로얄 나이트도 아니고 골드 나이트 주제에 일대 일 대결이라니 무슨 가당치도 않는 헛소리인가? 뭐 그렇다고 내가 로얄 나이트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겨우 로얄 나이트를 벗어난 수준이니 그 경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고 있다. 내가 그를 비웃는 이유는 그의 수준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한 상대가 강해도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세 살 먹은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서른 살 어른에게 "울 한판 뜨자!" 라고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바이크는 후암이라는 자의 말에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더니 그냥 쓰윽 하고 접근해서 팔꿈치를 이용해 녀석의 왼쪽 얼굴을 가격했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후암이라는 자는 바이크의 단순해 보이는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얻어 터졌다. 생각해도 끔찍해 보인다. 아마도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 솔직히 바이크가 저런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해 보지도 못했지만 하여간 후암이라는 자는 옥수수 알갱이를 내뱉듯 입안에서 한 움큼 빠져버린 이빨들을 피와 함께 뱉었다. 흐미... 저 기사 단장의 앞날이 매우 불쌍해 보인다. 자신의 기사 단장이 그런 꼴을 당했으니 영주의 심정이 어떠할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사르센 백작이라는 자는 조금 전까지의 거만한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자신의 기사 단장이 바이크의 팔꿈치에 안면을 가격 당하고 절반 정도의 이빨을 뱉어내는 상황을 목격하고는 뒤를 힐끗 훔쳐보더니 한 두 걸음 뒤로 물러서고는 주춤주춤 장내를 빠져나가려는 포즈를 취했다. 흐흐... 내가 또 저런 얍삽한 상황을 보고 가만히 놓아 둘 인간이 아니지! 나의 이런 태도가 놈에게는 악운이라고 하면 악운이었다. "결계" 내가 손에 약간의 수인을 맺고는 시동어를 외치자 주춤주춤 물러서는 사르센 백작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었다. 땅에 결계를 걸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것이다. 그냥 순순히 도망가기에는 그 자의 행동이 내 비위를 건드렸다. 자신들의 대장이 바이크의 일격에 틀니를 해야하는 상황까지 이르자 아직까지 바이크의 발이나 손에 얻어맞지 않은 나머지 기사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기는 조금 전까지도 반수 이상이 바이크의 옷깃하나 건들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을 때부터 섣불리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심했다. 아니 덤벼들기는커녕 뒤로 차츰 물러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바이크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물러서자 이때다 싶어 내가 나섰다. 나는 오도가도 못하고 바닥에 붙어서 눈치만 살피는 사르만 백작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른 기사들은 내가 자신들의 영주에게 다가서자 보호하려고 움직였다가 바이크가 한 걸음 나서자 굳어버렸다. "감히 나에게 손 하나라도 까딱한다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어서 나에게 용서를 빌고 네놈의 검을 받쳐라!" 아직까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지 다가서는 나에게 큰소리를 치는 사르만 백작을 보고는 나는 조금 전까지의 자비로운 생각을 지워버렸다. 솔직히 결말이 좋게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 놈이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조용히 물러나기를 바랬다. 그런데 저 백작이라는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기세 등등하게 큰소리를 뻥뻥 치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무슨 생각과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지 머리 속을 뒤져보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백작의 호통을 듣고 고개를 살짝 돌려 "피식" 웃고는 오른 주먹을 불끈 쥐어 놈의 복부를 가격하며 말했다. "까불지마!" 11장. 피의 서곡 ??화려한 궁전은 온통 찬란한 황금으로 도배를 하듯 지어져 황금을 유독 좋아하는 드래곤이 그것을 보았다면 제 집 삼으려고 달려들 만큼 호화로웠다. 그곳은 대 제국 바빌론의 수도 카스타트시의 정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황궁이다. 그 넓이만 따져도 거의 일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머무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화려한 황궁의 가장 은밀한 대전에 한 사내가 무언가 고심하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는 황금빛 채색에 보기만 해도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는데 사십대 후반의 중년 나이의 사나이로 최소한 귀족 이상의 신분을 소유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높은 고귀한 신분의 소유자일지도 몰랐다. "황제폐하... 국무총리 파울 라 칼슈타인 공작이 폐하 뵙기를 간절히 청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자의 목소리이다. 약간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보아하니 환관이라는 존재가 분명하다. 그 존재 자체를 황궁에서만 찾아야하는 환관의 목소리에 고심하던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황제였던가? "어서 들어오라고 해라!" 사내의 굵은 음성이 들리고 사내가 있는 곳으로 한 노인이 걸어 들어오더니 부복했다. 대략 예순 정도로 보이는 인물인데 겉보기에는 약간 학자풍 타입의 인물이다. 하지만 60대로는 전혀 보이지 않은 힘찬 발걸음과 그에 더해서 현기가 가득 찬 눈망울을 보면은 그가 단지 세월의 노쇠함만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님을 엿 볼 수 있다. "신 파울...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존안을 뵙습니다." 그의 인사는 전혀 가식이나 아부가 곁들어 있지 않았다. 정말로 충성이 가득 베어있는 음성인데 아무리 나쁘게 보려고 해도 그의 말과 행동은 충성심이 묻어있는 것이다. 이 노인이 바로 대제국 바빌론의 사대 브레인 중 우두머리로 칭해지며 제국에 존재하는 세 명의 공작 중 한 명이자, 타고난 지략가로 또한 학자로, 정치가로 유명한 파울 라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현재 나이 예순이 훌쩍 넘은 노인이지만 나이게 걸맞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파울 공작은 왕성한 학구열을 갖고 있는 학자이자 정치가이고, 또한 전쟁터에서는 그 뛰어난 머리를 바탕으로 제국을 움직이는 지략가이기도 하다. "허허... 그만 일어나구려. 총리의 나이도 생각을 해야지." 손수 일으켜 세우는 황제의 손길에 파울 공작은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자상한 손길을 보내는 이는 바빌론 제국의 황제인 조르젠 보 바빌론 3세였다. 현재 나이 마흔 일곱이라는 중년 나이의 이 황제는 특별히 뛰어난 자질을 내 보이지는 않지만 제국을 이끌기에는 아무런 문제점도 없었다. 하기는 밑에 뛰어난 두뇌들이 많이 있어서 그가 특별히 신경을 쓸 부분이 없는 탓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가 뛰어난 자질을 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제국 내에서는 그는 가장 위대한 황제로 불려진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신료들에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신료들을 적재적소에 등용하고 그들을 신뢰하며 모든 일을 들어주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밑의 신하들은 그를 충성으로 따르는 것이다. 자신들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황제가 있다면 어느 누가 충성을 맹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바빌론 제국에 살고있는 자들의 생각이고 바빌론 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국민들은 그를 두려운 인물로, 그리고 저주스러운 인물로 표현한다. 그것은 그가 대륙을 통일해야 한다는 과대망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 그의 아버지 조르젠 보 바빌론 2세는 젊은 나이로 제국의 확장을 꿈꾸다가 제국과 대립하는 남부 대륙동맹이 보낸 암살자에게 암살을 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남부 대륙동맹으로서는 적의 수장을 암살하여 전쟁의 씨앗을 거두었다는 영광스러운 날이지만 황제 조르젠 보 바빌론 3세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피를 흘리며 죽어간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한 조르젠 보 바빌론 3세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이루려했던 대륙 통일을 자기 자신이 꼭 이루리라 결심하고 전쟁을 부축이는 전쟁광으로 변해갔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무턱대고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이라면 어쩌면 대륙은 한동안 시끄럽다가 조용해졌을지 모르겠지만 황제는 그렇게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황제 조르젠 보 바빌론 3세는 차츰 차츰 세력을 넓히면서 제국의 변방에 12 공국을 세우고는 그들에게 영토 확장을 꾀하도록 명령했다. 그로 인해 대륙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제국의 꼭두각시인 12 공국과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황제는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아버지의 꿈을 자신이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죽어서라도 받아야 한다는 심리적인 애정 결핍증까지 갖고 있는 정신 이상자 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학자들이 평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출지 모르는 일이다. 다른 국가의 학자들이 황제를 정신 이상자 또는 미친놈으로 평가를 하던지 그것은 제국 내에서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제는 제국 내에서 신료들이나 백성들에게 신뢰를 받는 인물이자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래 그 일은 어떻게 하기로 했소?" 황제는 대뜸 파울 공작이 일어서자 그렇게 물었고 파울 공작은 고개를 숙이더니 대답했다. "폐하의 명은 곧 제국의 법입니다. 처음에는 신료들이 폐하의 뜻을 모르고 반대를 했지만 폐하의 뜻이 확고한 이상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파울 공작의 말에 황제의 눈이 빛났다. "피가 대지를 흠뻑 적실 것이고 남편과 자식을 잃은 아내와 어미의 통곡이 하늘을 울릴 것이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그 끝을 보아야 할 일... 내가 대륙에서 악마라 불리어진다고 해도 이 일은 꼭 해내야 할 것이오." 황제의 음성은 결연한 의지가 실린 것이었고 그의 음성을 듣고 있는 파울 공작의 눈에는 꼭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묻어 났다. 평생을 바친 제국이고 죽음으로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황제이다. 그의 선택이 비록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는 끝까지 충성을 다할 인물이다. ??"이미 세덴 공국에서는 미르의 침공을 계획중입니다." 어둠이 실내를 가득 메운 방안에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등잔 하나만이 좁은 공간을 그나마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 한 사내가 깊숙이 몸을 묻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어둠 때문인지 등잔의 희미한 불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사내가 앉은자리의 전면에는 다른 한 사내가 부복하고 머리를 숙이며 보고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결정을 내리신 것인가?" "예... 방금 전에 황궁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결정하신 일... 아무런 반대도 없었다고 합니다." 부복한 사내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야겠지. 이미 예정된 일이니... 황제의 명령을 누가 거부하겠는가?" 그는 마치 전쟁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투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대륙에 불고 있는 이 피바람의 서곡은 우리가 그 처음을 장식해야 할 테니.." 사내의 음성에서 살기라는 것이 잔뜩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음성을 들었는지 부복한 사내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목표가 미르인가?" "예... 세덴의 공왕이신 알칸스우스 님께서 폐하께 간청하여 선전을 치루겠다고 자청했다고 합니다." "명예욕만 넘치는 어리석은 자..." 의자의 사내는 알칸스우스라는 세덴의 공왕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그의 말투를 이미 여러번 보아왔는지 부복한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알카스우스 공왕께서 세 명의 목숨을 요구하셨습니다." 부복한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자에 앉아있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르의 삼각 받침대라 불리는 그들 말인가?" "예..." "흥... 그들 세 명만 없으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손쉽게 해치울 일이다. 이건 마치 고기를 잡아서 입안에 넣어 달라는 요구하고 똑같군!" 사내의 말에 부복한 사내는 아무런 반응 없이 머리를 숙인다. "하기는 그런 자에게는 그런 아량쯤은 충분히 베풀어 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자들은 언젠가는 도태되기 마련이지. 알카시우스... 그자가 얼마나 제국에서 그 허명을 유지하면서 버틸지 궁금하군. 후후후.." 사내의 비웃음이 흘러 나왔고 어두운 실내에는 사내의 낮은 웃음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참만에 다시 사내의 음성이 들린다. "하지만 제국의 2차 정복전쟁을 알리는 서전치고는 그 시작을 알리는 자가 너무 못 마땅한 것도 사실이야. 이런 중요한 일은 루시온 대공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 옳을 텐데..." 그는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으로 서서히 묻혀갔다. 전쟁을 알리는 황제와 공작의 대화. 그리고 어둠 속에서 미르 왕국을 첫 번째 목표로 정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내. 대륙을 피바람으로 몰고 가는 전쟁은 이렇게 그 시작을 알렸다. 12장. 검은 눈을 가진 아이 ??내 이름은 라미셀. 사람들은 나에게 다크 아이(Dark Eye)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내 검은 눈이 흑진주를 연상하게 한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 만큼 내 성격이 어두웠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렇게 비추어 졌을지 몰랐다. 나의 아버지는 엄연한 인간이지만 나의 어머니는 어둠의 종족으로 불려지는 다크 엘프이다. 그래서 나는 엄연한 인간이기도 하지만 다크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하프 엘프 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인간과 다크 엘프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는지 어렸을 적은 부모님을 저주했던 기억도 생생하지만 지금은 그런 부모님이라도 살아있으면 하면서 그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용병으로 전장을 떠돌다가 만나 위험한 순간을 같이 하면서 종족을 뛰어넘는 사랑을 했다고 한다. 어둠의 종족이라는 어머니를 아버지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두 분은 전쟁이라는 그 위험한 환경 속에서 나를 낳았고 나를 키우셨다. 하지만 전쟁은 그분들이나 나에게 참혹한 대가를 요구했고 부모님은 내가 열 살이 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다크 엘프의 피를 이어받는 나는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인간들은 내 피부가 검은 색이고 뾰족한 귀를 가졌다는 이유로 나를 하프 엘프라고 무시했고 검은 피부를 문제삼아 저주받은 아이라고 욕했다. 나는 반쪽의 인간에 반쪽의 다크 엘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나에게 웃음을 보이지 않았고 다들 나를 보면 욕을 하거나 도망쳤다. 나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없는 외지로 찾아 들게 되었고 고독에 몸부림 쳤으며 어둠이 되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나는 어둠과 익숙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선택받게 할 수 없는 막다른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어둠이 되어 버렸다.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어둠의 인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능력으로 이 곳 세계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엘프의 빠른 몸놀림과 정확한 눈이다. 그 두 가지는 나에게 궁사로서의 타고난 재능을 갖게 만들었고 나는 그렇게 해서 어둠에서 활동하는 어세씬(assassin)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내 나이 열 다섯 때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내가 어세씬으로 처음 활동했던 그때였다고 기억된다. 처음 나와 함께 한 이는 나와 동향이자 지금도 나의 파트너인 파갈로이다. 파갈로와 나는 파미르 왕국의 북쪽 도시인 하르 출신이다. 파갈로의 경우에는 나처럼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것이 아니라 오크 무리들에게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정처 없이 떠돌다가 흘러 들어온 케이스였다. 나와 파갈로는 완전 초짜의 암살자로 경험 많은 라루크의 보조로 암살이라는 그 끔찍한 살인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자 끔찍한 경험이었다.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그때 일어났다. "라미셀... 그자는 실버 나이트 수준의 기사이다. 정면 승부로는 절대 그자를 죽이지 못한다. 너는 저쪽에서 기회를 노리고 놈을 겨냥해라. 파갈로 너는 녀석의 주의를 딴 곳으로 유도시켜야 한다. 너희 둘이 그렇게 녀석의 이목을 혼란시켰을 때 내가 나선다." 나와 파갈로는 라루크의 말을 듣고는 아무 것도 모른 체 시키는 대로했다. 나는 우거진 나무 위로 올라가 석궁에 쿼렐을 장전시켰다. 대략 25센티 정도의 작은 살이지만 그 위력만큼은 끔찍하다. 웬만한 체인 메일(Chain Mail)이나 플레이트 메일(Plate Mail) 가까운 거리라면 충분히 뚫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트 수준의 기사라 할지라도 눈먼 화살에 죽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 눈먼 화살에 죽어버린 상대 때문에 결코 원하지 않았던 살인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살인이다. 처음의 의도는 파갈로가 그 기사의 이목을 혼란시킨 후 내가 석궁을 이용해 그 자에게 원거리에 적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신경을 집중시켰을 때 숨어있던 라루크가 그의 특기인 단검을 이용해서 기사를 해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파갈로는 그 기사의 이목을 혼란시키지 못했다. 경험이 미천한 초짜의 암살자에 나이도 겨우 열 일곱의 어린 소년에게 무엇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라루크나 어세씬 길드의 오판이었다. 파갈로는 어린 나이로 그 기사가 뿜어내는 기세에 눌려 공포 때문에 벌벌 떨었고 그의 앞을 막아서자 마자 도망을 쳤다. 파갈로가 도망가자 일이 틀어진 것을 깨달은 나는 이대로 일이 실패하면 나나 파갈로는 실패의 책임을 물어 어세씬 길드로부터 좋지 않은 결과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고 이를 악물고는 쿼렐의 살의 날렸다. 엘프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궁사들이다. 그리고 나는 반쪽이지만 엘프보다 공격력이 더 강한 다크 엘프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나의 궁술은 다른 인간의 그것보다 뛰어났고 내가 날린 화살은 파갈로가 도망치는 모습에서 무언가 안좋은 상황을 인식한 기사의 예민한 감각을 무시한 체 그의 체인 메일을 뚫어 버렸다. 복부에 꽃인 활을 움켜쥐면서 고꾸라지는 기사와 고통 때문에 웅크린 체 부들부들 떠는 기사의 모습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원치 않은 살인이었고 그때 나는 너무도 어리고 나약한 소녀였다. 내 소중했던 어린 시절은 그렇게 피로 물들었다. ??"미르의 귀족을 죽이는 일에 왜 우리가 나서야 하는 거지? 그런 일이라면 그쪽 길드에서 행하는 것이 당연한 거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주문이었다. 타국의 귀족을 암살하는 일에 왜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그녀가 이런 의문을 제시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일 상대는 이웃 나라인 미르 왕국의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귀족들과 같은 존재는 우리 같은 암살자들에게 별반 환영을 받지 못하지. 물론 청부를 하는 자라면 몰라도 청부를 당하는 자들이라면 얼씨구나 달려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미르와 같이 조그마한 나라에 그것도 그 곳 백성의 신뢰를 듬뿍 받는 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무슨 말이지? 설마 미르의 암살 길드에서 스스로 청부를 거부했다는 이야기야?" "아니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다고 보아야겠지. 그들이 스스로 정한 암살 불가 인물 중에 그 자가 끼어있으니 말이야." 연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사나이는 보기에도 매우 호리호리한 체구 때문에 무척이나 약해보였다. 대략 20대 후반쯤 보이는 사나이는 얼굴에서 약간 음침한 구석이 엿보이는데 그것은 그의 첫 인상을 매우 나쁘게 만들었다. 그 음침한 얼굴 때문인지 그는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 사내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는 맞은편 여인에게 대답을 하고 있는데 여자의 모습은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20대 중반쯤 보이는 처녀로 키는 1미터 65센티 정도의 아담한 키에 가냘픈 몸매를 갖고 있는 보통의 여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는 보통의 여인들과 약간 다른 점이 찾을 수 있는데 우선 그녀의 귀가 일반 사람보다 약간 길고 뾰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매우 아름다움을 간직한 미녀이지만 머리는 회색 계통의 빛깔에 피부는 어두운 것이 특징이었다. 거기다가 대륙에서 잘 찾아보지 못하는 검은 눈동자를 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숲의 종족이라는 엘프를 연상하게 하고, 그 피부로 볼 때는 악마의 꼬임에 넘어갔다는 어둠의 종족 다크 엘프가 분명했다. 거기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는 순수한 다크 엘프도 아니고 인간과 엘프의 혼혈인 하프 엘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쳇... 할 수 없군. 그럼 누가 가는 거지? 미르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우리 길드 내에서도 별로 없을 텐데..." 그녀의 물음에 사내는 그녀를 주시하더니 약간 음흉한 미소를 보인다. "뭐야... 설마 그 일을 나에게 맡기려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우리 길드에서 실력 좋고 미르에 대해 그래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라미셀 너뿐이잖아." 그의 대답에 라미셀은 "흥" 하며 코웃음을 친다. "로더... 내가 직접 가면 되잖아. 나보다도 미르에 대해 더 자세히 아는 것은 너잖아. 그리고 이번 청부도 너한테 직접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라미셀의 물음에 로더는 표정에 별반 변화 없이 대답했다. "이것 말고도 청부받은 일들이 산적해 있다고. 그리고 길드 마스터가 이번 일에 너를 추천했어. 그 자가 미르에서 영향력이 무척 강한 인물이라 깨끗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너 말고도 외부에서 실력 좋은 자들을 두 명이나 더 포함시켰단 말이야. 그밖에도 파갈로, 로라, 마리언이 이번 일을 함께 할 꺼야." 라미셀은 로더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인원이 너무 많은 것 아니야? 무슨 잔치 집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인원이 미르를 넘는다면 마치 "우리 암살하러 왔소!" 라고 미르의 암살 길드에게 소문 내는 거잖아." 라미셀의 물음에 로더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아. 아무도 모르게 미르의 국경을 넘는 방법과 너희들이 일을 치룰 동안 기거할 은신처는 준비가 되었으니 말이야. 미르의 암살 길드라고 해도 너희들이 일을 마치고 다시 국경을 넘을 때까지 아무 것도 모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로더의 말에 라미셀은 평상시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왠지 마음 한곳에 흐르는 불안감은 떨치기 힘들었다. 마치 사지로 내 몰리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 이곳 암살 길드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했지만 오늘처럼 불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13장. 내가 본 그는 쑥스러운 아이와 같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죽음의 강을 막 건너고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검은머리에 나와 같은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던 사내는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나의 외모를 보고도 결코 놀라지 않았고 다른 자들과 같이 비웃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불안한 표정을 짓자 한 걸음 물러서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 보는 나에게 몹시 쑥스러운 모습으로 머리를 극적이며 물었다. "저기 제가 도와 줄 일이 없을까요?" 어느 누구도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다. 오직 나의 능력을 이용하려고 하는 자들이 전부였다. 그의 손길은 내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도움의 손길이었다. 그의 손길은 무척 따뜻해 보였다. -- 라미셀의 일기 중에서 -- "우리 소개를 하지. 나는 세렌에서 온 라미비아 그리고 내 옆의 친구는 후커라고 하지. 우리는 이번 일을 돕기 위해 너희 길드장의 부탁을 받고 왔다." 차가운 이미지의 사제복을 입은 여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라미셀 일행을 쳐다보며 자신들의 소개를 하였다. 라미셀은 자신을 라미비아라고 소개한 회색의 사제복을 입은 여인을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직시했다. 또한 그녀의 옆에 있는 후커라는 오우거 같은 사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도대체 너희들이 무엇 때문에 이번 일에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마스터의 부탁이니 따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우리 일을 방해한다거나 허튼 짓을 한다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꺼야." 라미셀의 으름장에 라미비아라는 사제는 가당치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웃음까지 내보이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너희들이나 우리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군. 특히 거기 못생긴 아저씨... 암살자 치고는 너무 약해 보이는데..."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이십대 중반의 사내가 있는데 그는 약간 창백한 안색을 보여서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병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드는 인물이다. "파갈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그 오우거나 잘 챙기는 것이 좋을 텐데." 라미셀의 독설에 오우거라는 비웃음을 당한 후커라는 자가 씨익 웃음을 보였다. 누런 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드는 풍경은 아니지만 하여간 2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사내는 의외로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의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의 대사는 아니었다. "검둥아... 함부로 짖어대면 내 발 밑에서 허우적거릴지 모르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꺼다." 후커라는 자는 라미셀의 전신을 소름끼치게 훑어보더니 그렇게 말했고 그의 욕정 어린 눈빛에 라미셀이 발끈한다. "오우거... 터진 주둥아리라고 함부로 놀리면 언젠가 피를 보고야 말 것이다. 정 아랫도리를 놀리고 싶으면 네 옆에 있는 년한테 부탁하는 것이 좋을 듯 싶은데..." 라미셀의 독설에 후커는 씨익 웃더니 대뜸 옆의 라미비아에게 물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어때 생각 있어?" 후커의 말에 라미비아는 하얀 미소를 짓더니 응답한다. "사내의 거기는 무척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무척 궁금했어. 내가 듣기로는 약간의 충격만 주어도 제 기능을 못한다고 하던데..." 라미비아의 시선은 후커의 중요 부위로 향했고 그녀의 시선을 느낀 후커는 슬쩍 뒤로 물러선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던지는데 그의 시선은 어느새 라미셀의 전신을 훑어보고 있었다. "흐흐... 하기는 너 같이 차가운 계집보다야 저 검둥이가 더 먹음직스럽기는 하지. 언젠가 기회만 된다면 말이야!" 그의 탐욕스런 눈빛에 라미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후커라는 자의 행동에 라미셀의 변호를 받았던 그 창백한 피부의 사내 파갈로는 후커를 노려보며 말했다. "등뒤를 조심하는게 좋을 꺼야. 나는 뒤를 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거든. 특히 너같이 머리는 비어있고 헛소리를 무척 잘하는 덩치는 말이야." 파갈로의 말에 후커는 깊은 살의(殺意)를 드러냈다. 그러다가 금새 언제 그런 살의를 보였냐는 듯 감쪽같이 감추더니 한마디 던졌다. "기대되는군. 네놈이 어떤 방식으로 이 후커님의 뒤를 노릴지... 하지만 실패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겠지. 크크... 아주 기대가 되는 일이야. 이번 여행은 정말 재미있겠어." 후커의 웃음과 함께 라미셀 일행과 길드 마스터가 붙여준 두 명의 외부인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결코 뭉쳐질 수 없는 이상한 관계의 이 두 무리는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파미르 왕국에서 미르 왕국으로 국경을 넘었다. ??그들의 목표는 미르의 삼각 받침대라 불리는 세 명의 인물중 하나인 주엘 샤미르라는 인물이었다. 국왕보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더욱 추앙 받는 세 명의 인물은 미르를 떠받치고 있는 삼각 받침대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그들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제국의 사대 브레인중 한 명이자 국무총리라는 직위를 갖고 있는 파울 라 칼슈타인 공작과 비견되는 미르의 재상 로울 헤밀턴 공작. 미르에서 유일하게 소드마스터에 근접했다고 평가되는 미르 왕국의 제 2 기사단장 카슈 호그와트 백작. 귀족의 지위를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혼자 힘으로 페잔 상단이라는 대규모의 상단을 소유하고 있는 주엘 샤미르. 라미셀 일행의 암살 길드가 목표로 정한 인물은 페잔 상단의 주인인 주엘 샤미르였다. 현재 나이 오십대 중반의 주엘 샤미르는 귀족이라는 특권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상단을 미르 왕국에서 가장 큰 상단으로 키운 대단히 뛰어난 수완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는 사내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미르 왕국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가난한 나라에 많은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조국이 살아야 자신 또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는 평민으로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미르의 귀족 내부에서도 존경을 받고 있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특이한 인물을 라미셀 일행은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는...?" 라미셀 일행과 라미비아 일행은 이틀 전에 미르의 국경을 넘어 미르의 수도 근처인 페잔 지방에 도착했다. 페잔은 작은 도시임에도 미르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이곳 페잔에 미르의 가장 큰 상단인 페잔 상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업도시라고 말해도 결코 틀리지 않는 이곳은 각국의 많은 상인들이 모여있는 곳이어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또한 유동 인구가 무척 많은 관계로 주류와 숙박 업체가 눈에 띄게 많은 곳이기도 하다. 라미셀 일행은 그 중에서 그나마 사람의 모습이 덜 눈에 띄는 약간 외진 곳에 숙소를 잡았는데 이미 먼저 이곳에 파견되어 정보를 모으고 있던 로라와 마리언에게 그간의 소식을 듣고 있다. 로라와 마리언은 본래부터 이곳 미르에서 활동하는 길드의 정보원이라 이곳 미르에 대해 길드내에서 가장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번 암살에 포함된 이유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보 수집 능력과 도피할 때 확실한 루트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로라는 서른이 훌쩍 넘은 중년의 여인으로 마리언이라는 사내와 서로 부부 사이이다. 그것은 원래 길드에서 첩보를 목적으로 그들을 미르에 파견하면서 위장 신분으로 준 것인데 같이 이 년이 넘게 그 신분을 유지하다보니 급기야는 서로 가까워지고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이 되더니 위장이 아닌 정식으로 혼인을 하게 되면서 얻은 신분이다. 로라라는 여인은 금발에 세파에 시달인 흔적이 역력에 보이는 피부로 보아 매우 힘든 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그녀의 미소만은 무척 밝았고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모양인지 옆에 있는 마리언이라 사내도 로라의 미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일 저녁 보우만 이라는 자의 저택에서 파티가 있어요. 그때 그 자도 참석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어요. 그의 경호를 맡은 자는 모두 다섯... 그 중에서 팔라딘 급의 검사도 둘이나 포함되었다는 정보에요." 로라의 말에 라미셀은 얼굴을 찡그리며 무척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상단의 주인을 호위하는 인물 중에 기사급 그것도 웬만한 규모의 영지 내에서는 거의 기사 단장급을 능가하는 실력의 팔라딘 급의 검사가 둘이나 호위를 한다니... 그녀 자신이나 또는 그녀의 일행에게는 매우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난처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말로 팔라딘 급의 검사가 확실 한가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라미셀의 물음에 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로는 로얄 나이트를 뛰어 넘어 실버 팔라딘 급이라고 알고 있어요. 원래는 용병으로 이름이 높았던 자들인데 주엘 샤미르가 거금을 들여서 고용했다고 하더군요. 다른 세 명의 인물들도 팔라딘은 아니지만 골드 나이트 이상의 검사들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로라의 말에 라미셀은 머리를 흔들더니 자신의 옆에 있는 라미비아를 쳐다보았다. "후후... 왜 어려운 일인가? 물론 그 정도의 방비까지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다고 이미 예상하고 시작한 일 아니었던가?" 라미비아의 비웃음에 라미셀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녀의 말이 맞기는 맞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어려움은 예상을 하고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상당히 곤혹스럽다는 것은 그녀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까지 걱정스런 표정을 보일 필요는 없잖아.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늙은이 하나뿐이란 말이야. 다른 자들이 팔라딘 급의 검사이든 나이트 급의 검사이든 상관이 없다는 말이야." "상관이 없다고... 그 호위 망을 도대체 어떻게 뚫을 생각이지?" 라미셀의 말에 라미비아는 피식 웃음을 보여 주었다. "왜 뚫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그들 다섯이 아무리 뛰어나도 설마 아무런 빈틈도 없을 것 같아. 허점은 언제나 반드시 존재한다고... 정말 최고의 프로라면 그런 것쯤은 모르지 않을텐데..." 라미비아의 말에 라미셀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물론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야. 그를 보호하는 가디언들의 허점을 찾아내고 파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면 우리가 암살하기로 예정된 시간을 초과해 버린다고... 또한 그를 암살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란 말이야. 어쩌면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수 있다라는 말이야." 라미셀의 말에 라미비아는 묘한 웃음을 보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우리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되겠군. 후... 저들에게 허점이 없으면 우리가 직접 허점을 만들면 그만이야. 설마 그런 것까지 걱정하면서 암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빈틈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빈틈을 만들어 놓으면 되는 거야. 결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팔라딘급 검사를 상대로 빈틈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야?" 라미셀은 라미비아가 말을 너무도 쉽게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트급의 기사도 아니고 팔라딘급의 기사이다. 검에 검기라는 것을 실어서 싸움을 하는 자들은 라미셀 같은 일류의 암살자들도 결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이들인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일류의 암살자라고 해도 팔라딘을 상대로 암살을 벌이는 것은 흡사 짚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동일하다. 물론 길드 내에서도 특급 또는 초특급으로 분류되는 암살자들은 팔라딘급 기사도 암살한다는 소문도 떠돌았지만 라미셀이나 파갈로는 그런 특급 수준의 암살자가 아닌 이상 그것은 단지 소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후후... 겁먹을 필요 없다고. 정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저기 저쪽에 멍청하게 있는 하프 오우거 후커가 나설 테니까. 생긴 것은 오우거지만 실력은 팔라딘 급 그것도 실버 팔라딘을 뛰어넘어 골드에 근접한 사내라는 말이야." 라미비아의 놀라운 말에 라미셀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저쪽에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라미셀과 라미비아의 대화에는 관심도 없는 듯 오직 색심(色心)이 동한 눈길로 로라의 몸매를 감상하는 오우거를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저 변태 오우거는 그 짓을 하는 것 말고는 하등의 쓸모도 없을 듯 보였는데 그런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니 뜻밖의 일이다. 그런데 암살자로 차출된 인물이 보통의 기사급을 뛰어넘는 팔라딘 급 검사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 혼자서 팔라딘 검사 두 명과 나이트급 검사 세 명을 어떻게 감당을 한다는 말인가? 라미비아는 온통 의문점만 라미셀에게 풀어놓은 것이다. 라미셀은 일단은 마스터가 데리고 온 저 두 명의 정체가 가장 궁금했다. 팔라딘급 실력을 갖고 있는 암살자라면 그는 아마도 특급 아니 초특급의 암살자가 분명하리라. 아니면 암살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그런 자이거나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일단 후퍼를 어세씬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섣불리 짐작할 수 없는 실력을 갖고 일행에 합류한 라미비아와 후퍼... 결코 라미셀 자신과 동일한 어세씬으로 보기 힘든 그들 두 남녀를 보는 라미셀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더욱 불안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라미셀은 안 좋은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저들 전직이 정말 용병이 맞기는 맞는 거야? 저건 완전히 숙련된 가디언(Guardian)들의 모습과 동일하잖아!" 커다란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일반 주택과는 모습이 다른 건물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무슨 신전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일반 건물보다 두 배는 높아 보이는 첨탑이 있었는데 그 소리는 그 첨탑에서 들려왔다. 어느 대저택을 주시하면서 푸념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것은 파미르에서 암살을 목적으로 미르로 온 창백한 얼굴의 병자 같은 라미셀의 동료 파갈로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하프 엘프 라미셀이 그와 거의 비슷한 표정으로 똑같이 그가 주시하는 곳을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정말로 어이가 없어. 저들의 호위를 뚫고 어떻게 빈틈을 만들겠다는 건지..." 라미셀의 말에 파갈로 또한 자신도 매우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라미셀을 쳐다보며 말했다. "낸들 알겠어. 저 저택에 들어서기 전에 빈틈을 만들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으니 우리야 기다리면 되는 거라고. 거의 도착을 했으니 지금쯤이면 무언가 수를 내겠지." 파갈로의 말에 라미셀은 자신의 석궁에 쿼렐을 매기며 파갈로의 말처럼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어떻게 저 철벽의 호위망을 뚫고 기회를 만들겠다는 건지 무척 궁금하기는 하다. 그들이 그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다섯 명의 사내들에게 전후좌우(前後左右) 경호를 받으며 그곳 주택가에서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대저택으로 향하는 인물은 미르에서 가장 큰 상단인 테란 상단의 주인 주엘 샤미르였다. 반백의 희끗희끗한 새치에 깊이 패인 주름은 그의 나이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나이에 비해 생기가 가득 찬 두 눈동자는 그가 아직도 왕성한 정력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테란 상단의 창시자이자 주인인 주엘 샤미르는 평민 출신으로 드물게 수많은 귀족들의 상단을 물리치고 자신의 상단을 최고로 만들만큼 대단한 수완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오늘 자신의 오른팔과 같은 보우만의 생일 잔치에 초대를 받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는 길이다. 부하의 생일 잔치에 바쁜 시간까지 쪼개서 온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의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이런 것에서 오는 것이다. 자신의 일보다 부리는 수하에 대해 세심하게 챙겨주는 세심한 마음이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올려놓은 가장 큰 이유이다. 걸어가는 주엘 샤미르는 모습에서 그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상인의 직감이라고 해야되나? 신상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이상한 예감 때문이지 그는 평상시와 다르게 호위 다섯 명을 모두 데려왔다. 부하의 생일 잔치에 이런 세심한 경호를 한다는 것이 무척 안 좋게 보였지만 요즘 대륙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고 또 이상한 소문이 그를 약간 불안하게 만들었다. 미르의 어세씬 길드에서 흘러나온 소문은 파미르 왕국에서 어세씬이 대거 잠입하여 미르에서 비중이 큰 인물을 노린다는 것이다. 주엘 샤미르는 뒷골목에서 나온 헛소문일지 모르는 소문에 자신도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직감이 자신의 신상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육감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보우만의 저택 정문에 거의 다가설 즈음 앞에서 웬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쓰러지는 모습이 주엘 샤미르의 눈에 보였다. 흰색의 신관 복으로 미루어 볼 때 대지의 여신 라르샤를 섬기는 여사제로 보였다. 대지의 여신이자 풍요의 여신 라르샤를 충실하게 섬기는 열렬한 신자 주엘 샤미르는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신의 여사제가 쓰러지자 자신도 모르게 기겁하여 달려가 일으키려 하였다. 주엘 샤미르의 앞쪽에 있던 두 경호원은 갑작스럽게 주엘 샤미르가 앞으로 쫓아 나가자 돌발 상황에 순간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외부에서 일어난 변괴가 아니라 자신들이 호위를 맡은 그 고용자가 갑작스럽게 대열에서 이탈하여 앞으로 달려나갔기 때문에 그들이 제대로 방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변괴에 경호대는 순간 적으로 당황했다가 곧바로 작금을 사태를 깨닫고 몸을 움직였는데 그 약간의 빈틈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저것이었던가? 대단한 여우로군." 첨탑 위에서 기회만 노리던 라미셀은 주엘 샤미르가 앞으로 달려나가 일순간 흐트러지는 호위대를 보면서 한순간의 작은 빈틈을 발견하고 감탄을 터뜨렸다. 저 정도의 작은 빈틈이면 암살은 거의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석궁에서 자그마한 화살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 한 사내의 뒷등을 꿰뚫었다. "커억..." 쓰러진 사제를 일으키다 등뒤를 꿰뚫은 활에 비명을 지르며 눈앞이 깜깜해지는 주엘 샤미르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앞에 쓰러져있던 여사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차츰 흐려지고 급기야 그는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암살자다. 빨리..." 순식간에 벌어진 암살에 가디언들은 놀라서 주엘 샤미르를 에워싸며 다음에 쏟아질 2차의 공격을 대비했지만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암살자는 아마도 첫 번째 공격으로 자신들이 목표했던 목표물이 죽었음을 확신하는 눈치이다. 주엘 샤미르의 호위의 책임을 맡고있는 빅터는 사제를 덮은 형식으로 쓰러져있는 고용인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작은 화살은 주엘 샤미르의 등 한복판을 관통하여 복부 사이로 삐죽하니 그 조그마한 화살촉을 보여주었고 주엘 샤미르의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주엘 사미르 밑에서 바르르 떨고있는 여사제의 모습이 보였다. '함정 이었던가?' 빅터는 떨고 있는 여사제의 모습을 보면서 이 여사제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리라 깨달았다. 그녀는 20대 후반의 매우 아름다운 모습의 여사제로 그녀의 얼굴은 고통이 가득했다. 무언가 자책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누구냐? 누가 너에게 사주를 하였느냐?" 자신이 보호하던 고용자가 자신의 호위 속에서 암살을 당했다는 분노 때문에 치를 떠는 빅터는 땅바닥에 누워 떨고있는 여사제가 신을 섬기는 사제임에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녀를 흉수와 한패로 생각하며 다그쳤다. 여사제는 빅터의 신문에 울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들이... 그들이 신전에 신관들을 모두 감금하고 협박했습니다. 단지 그분의 앞에서 쓰러지는 척만 한다면 된다고... 저는... 저는..." 울먹이는 여사제의 제대로 말을 끝내지는 못했지만 빅터는 여사제의 말을 빌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암살자들은 신전에 침입하여 신관들을 가두어두고 이 여사제에게 독실한 신자인 고용주앞에 쓰러지기를 강요했을 것이다. 응하지 않으면 신관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신앙을 이용하여 빈틈을 만들었고 그 짧은 빈틈을 이용해서 살인을 성공한 것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빅터는 입을 악물고는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범인들은 저기 저 신전에 있을 것이다. 빨리 놈들을 추격하여 원한을 갚자." 소리치며 달려가는 빅터를 따라 다른 호위들이 쫓아갔다.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 때문에 달려나온 저택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에 차디찬 시신이 되어 버린 주엘 샤미르를 보고는 통곡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이번 생일의 주인공인 바이만도 있었다. 호위대들이 범인들이 있는 곳을 아는 듯 달려가자 바이만도 자신 휘하의 무사들을 보내 범인들을 추격하여 반드시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결코 이 원한을 용서하지 못해 보는 즉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싶지만 배후를 알아야 했다. 자신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마스터의 암살을 지시한 자를... 그래서 마스터의 원혼을 달래 주어야 했다. 신전으로 뛰어가는 일대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쓰러져 있던 여사제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나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누군가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면 그녀를 결코 여사제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방금 그녀가 보여주었던 미소는 악마적인 미소였다. ??빅터 일행이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쫓아오는 것을 모른 체 살인에 성공한 라미셀은 첨탑에서 파갈로와 막 나오려고 하였다. 그들이 이곳을 파악하는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라미셀이다. 하지만 '살인 장소에는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라는 신조가 있는 라미셀은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신속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 라미셀의 시야에 급하게 신전으로 몰려오는 자들이 보였고 이내 라미셀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아무리 팔라딘급 검사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자신들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자신이 미리 예상했던 팔라딘급의 수준이 그녀의 예상보다 더 높았던 모양이다. "빨리 빨리..." 라미셀은 뒤늦게 첨탑을 내려오는 파갈로를 재촉하여 첨탑을 빠져 나와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내달렸다. 그들은 일이 끝난 후 모이기로 한 약속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테란 상단의 마스터 주엘 샤미르의 죽음이 알려지면 테란으로 통하는 모든 통로는 순식간에 포위망을 갖출 것이 분명하다. 또한 미르 왕국에 소식이 전해지면 미르 전체의 국경이 봉쇄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빠른 시간 내에 미르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신전으로 급하게 들어온 빅터 일행을 기다리는 것은 신전 안 한쪽 구석에 줄줄이 묶여서 반항도 못하고 죽어버린 참혹한 시체가 전부였다. 살인자의 흔적은 아무 곳에도 남아있지 않고 온통 피로 얼룩진 시체가 전부였다. 그들은 대략 십 여명쯤 되는데 복장으로 미루어 보아 신전을 지키는 사제들이 분명했다. "우욱..." 머리가 흡사 수박이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린 듯 터져서 뇌수를 쏟은 시체라든지 두 눈이 쇠꼬챙이로 뚫린 듯 두개골 뒤쪽까지 구멍이 나버린 시체 등은 용병 출신의 사내들까지 점심에 먹었던 것을 게워 내게 만들었다. 결코 인간이 행했다고 생각되지 않은 참혹한 시신 때문인지 피와 살점이 난무하고 수많은 시체가 뒹구는 전쟁터에서도 멀쩡히 밥을 먹었던 비위좋은 빅터조차 한동안은 미동도 하지 못한 체 그 모습에 경직되어 있었다. "잔혹한 놈들..." 도저히 인간이 살인을 했다고 상상하기 싫은 사제들의 참혹한 모습에 빅터는 눈을 부릅떴다. 사제들을 죽인 자들은 결코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만행을 신전 안에서 버젓이 저지르고 도망쳤다. 대륙에서 어떤 신이라 할지라도 그 신을 믿고 따르는 사제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한발 양보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이나 대지의 여신 라르샤나 사랑의 여신 다이아나를 섬기는 사제들은 언제나 자비와 박애를 기본으로 하는 이들이라 그들에 대한 인간들의 감정은 존경이었다. 전쟁의 신 베르샤만을 섬기는 대제국 바빌론의 국민이라고 할지라도 타 신을 섬기는 사제들은 배척하지만 대지의 여신 라르샤와 사랑의 여신 다이아나의 사제만큼은 한발 양보한다. 그만큼 대지의 여신 라르샤를 따르는 사제들은 살인이 난무하는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살아남을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제들을 이들은 이토록 참혹하게 죽인 것이다. 결코 인간의 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이 분명했다.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내 지옥 끝까지 쫓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놈들을 꼭 내 손으로 기필코 잡아 심판하고 말리라." 부르르 떨리는 두 손을 꽉 움켜쥐는 빅터의 손에는 붉은 피가 맺혀 났고 그 피만큼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런데 정말로 라미셀이 이들 사제들을 그렇게 잔혹하게 죽였을까? 그녀가 암살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잔혹한 살인을 버젓이 행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신관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들을 죽인 자들은 또 누구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놈들은... 놈들은 잡았는가?" 힘없이 돌아오는 빅터 일행을 보면서 바우만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소리쳤고 빅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빅터의 반응에 바우만은 푹하니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 그놈들을 꼭 잡아야 하네. 마스터의 원한을 꼭..." 바우만의 행동을 보면서 빅터는 고개를 돌렸고 그는 그 여사제를 다시 찾았다.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듯 보이는 여사제는 약간 공포에 질린 얼굴이다. 그녀도 어쩌면 이 사건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었다. 암살자들에게 자신의 동료 신관들이 붙잡힌 상황에서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협박을 당해 마지못해 동조했던 그녀도 자신이 의도했던 동료 신관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체 도저히 인간의 손길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동료들이 모두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것이다. 빅터는 안쓰러운 얼굴로 여사제에게 다가가 말했다. "신전에 있던 사제들은 모두 죽었더군요. 그들은 결코 자비로운 자들이 아닙니다." 빅터의 말에 여사제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얼마 후 그 진위를 깨달았는지 충격 때문인지 쓰러지고 말았다. 어느 정도 그녀의 다음 행동을 예상했는지 빅터는 쓰러지는 여사제를 부축했고 여사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을 꼭 잡아야 합니다. 그런 흉악한 자들을 살려두면 또다시 같은 피해자가 생기고 말 것입니다. 당신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충격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의식을 겨우 붙잡고 참회의 기도를 올리는 여사제의 곁에서 빅터는 그녀에게 범인을 잡기 위해 협조를 요청했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후 빅터는 그녀로부터 범인의 인상 착의를 들었다.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 여자가 그 참혹한 현장에 끼여 있었다는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여사제의 다음 설명에 그는 그 참혹한 시체가 생겨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다크 엘프... 여사제는 자신을 협박한 여인이 엘프라고 설명했다. 그것도 어둠의 종족이라는 다크 엘프와 인간의 혼혈아 같은 하프 엘프와 비슷하다고 했다. 여사제의 증언에 따라 영락없이 라미셀이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찾아라. 범인인 다크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하프 엘프이다. 그들은 아직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세씬 길드를 찾아 그들의 신상을 파악해라. 그 정도의 특이한 용모라면 분명히 그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빅터는 여사제로부터 들은 정보를 알리고 그들을 현상수배 하면서 미르의 어세씬 길드를 찾아가 범인에 대한 정보를 알아오도록 시켰다. 어세씬으로 활약하는 하프 엘프 그것도 특이한 외모의 다크 엘프라면 분명히 누군가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이든다. 그러면서도 그런 특이한 외모의 살인자가 자신의 용모가 알려질 것이 분명한데 이 여사제에 대한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살려 두었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자신들의 정보가 누출 되도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신전에서 도망쳐 나온 라미셀과 파갈로는 숨을 헐떡이며 겨우 그들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로라와 마리언은 자신들이 빠져나갈 탈주로를 이미 확보했을 것이다. 라미비아와 후커는 그들끼리 따로 움직여 암살할 수 있는 틈을 만들었고 아마 얼마 후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비록 지금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암살은 성공했고 그들은 지금 모두 모여서 탈주로를 통해 도망만 치면 되었다. 어려운 일은 모두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미셀은 숨을 가다듬고는 약속 장소인 여관으로 들어섰다. 그때 먼저 들어간 파갈로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라미셀은 깜짝 놀라 여관 안으로 뛰어 들었고 그녀의 결코 보고싶지 않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여관은 온통 피바다라고 표현해야 틀리지 않을 만큼 바닥이며 벽은 붉은 피로 가득했고 바닥에는 온전한 시신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시체가 즐비했다. 그리고 어느 한 시신 앞에서 자신의 두 손에 묻은 붉은 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파갈로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의복이 온통 찢겨져 버린 나체의 여인이 복부가 파헤쳐 있는 상태로 죽어있었는데 그녀는 강간을 당한 듯 하체가 피투성이였다. 죽은 여인이 충격을 받은 듯 얼이 빠진 상태로 입에 피를 흘리고 죽어 있었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라미셀은 순간적으로 숨이 멈추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들의 동료이자 자신들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에 남아있던 로라였다. 라미셀은 파갈로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슬피 우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파갈로의 동료이기 이전에 첫사랑이었고 그녀가 마리언과 결혼해서 유부녀가 되었을 때에도 파갈로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오죽하면 자신들의 이번 일에 그녀가 끼어있다는 소식에 얼마나 반가워했던가? 라미셀은 시신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파갈로를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다른 시체를 살폈다. 로라가 저런 참혹한 시체가 되었다면 마리언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금방 마리언이라 생각되는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시체는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았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버린 시체는 로라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머리는 밟아 뭉그러진 듯 용모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다. 머리를 잃은 시체의 의복을 보고는 그가 마리언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라미셀이었다. "누가...?" 라미셀은 도대체 어느 누가 이들을 이렇게 참혹하게 죽였는지 궁금했다. 만약 자신들을 쫓는 자들이 이들을 죽였다면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상황이다. 그들은 살인을 하고 신전에서 빠져 나와 신속하게 이동하여 이곳으로 달려왔기에 어느 누구도 행방을 미리 알고 이곳에 먼저 들이 닥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후후... 누구 했는지 궁금하냐? 검둥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진득한 음성에 라미셀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시선에 잡힌 것은 온몸에 피 칠을 하고 있는 변태 오우거 후커였다. 라미셀은 뒤로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이 살인의 전말을 어느 정도 깨닫기 시작했다. "네놈이 그랬느냐? 그녀와 그를 이렇게..." 라미셀은 이를 악물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는 못했지만 후커는 그 뜻을 이미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흐흐... 결혼한 계집이라 그런지 그런 대로 즐길만하더군. 거기다가 제 남편을 죽인 나에게 강간을 당하는 상태로 아주 미쳐버리는 것이 나름대로 제법 별미였어." 도저히 듣고 싶지 않은 추잡한 발언이었고 그 소리에 라미셀의 눈을 핏발로 곤두섰다. 어느새 일어섰는지 파갈로는 피로 물든 두 손에 단검을 쥐고 있었다. "죽이겠다." 두 눈이 피로 물든 파갈로의 얼굴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악귀 같은 모습이다. 사랑하던 여자가 참혹하게 죽어버렸기에 그 충격 때문에 그는 이미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모습으로 원한만이 가득 차 있었다. "흐흐...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기다리고 있었지. 나를 어떻게 죽이려고 하는지 무척 궁금했거든. 나는 사람의 몸에서 목을 뽑아 내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 저쪽에 죽은 그 계집의 남편도 내가 목을 뽑아 냈거든. 피가 콸콸 솟아나는 것이 무척 짜릿하거든."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발언이었고 음성이었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앞에 두고 어떻게 갖고 놀면 재미있을까 하는 표정의 후커였다. "으아아..." 파갈로는 고함을 지르며 후커에게 달려들었고 그의 양손에 들려있는 두 개의 단검은 빠른 속도로 후커의 양 옆구리를 베었다. "너무 느리군." 그 엄청난 체구가 어떻게 그런 빠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후커는 빠른 속도로 달려오면서 양손을 교차하여 단검을 휘두르는 파갈로의 공격을 가뿐하게 피했다. 마치 탄력을 받은 고무공이 "퉁" 하며 벽을 맞고 튀기는 것처럼 그는 엉덩이를 살짝 빼어 양 옆구리를 공격한 파갈로의 날카로운 칼날을 피하더니 그 무지막지한 오른 손으로 파갈로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억..." 인간의 손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털로 뒤덮인 손아귀에 목을 잡힌 파갈로는 숨쉬기가 곤란했다. 오른 팔을 쭉 뻗어 마치 어린아이를 들어올리듯 파갈로를 한 손으로 들어올린 후커는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나?" 그의 음성은 소름을 돋을 만큼 잔혹함이 베어있었다. "휘익..." 그때 허공을 휘젓는 소음과 함께 후커의 몸이 잠깐 흔들렸다. 그는 얼굴은 잔혹한 미소에서 약간 고통스런 얼굴로 바뀌었는데 그는 순간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화살촉이 툭하니 튀어 나와 그 깜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후커는 고개를 들더니 시선을 돌렸는데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석궁을 들고 믿어지지 않은 표정으로 멈추어 있는 라미셀을 볼 수 있다. "흐흐... 그런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이 후커님에게 이런 상처를 입히다니, 검둥아! 내가 아주 죽고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조그만 기다려라... 이놈을 처리하고 너와 놀아줄 테니까..." 후커의 말에 라미셀은 다시 화살을 재었다. 등뒤를 뚫고 복부를 관통한 자신의 쿼렐을 맞고도 잠깐 인상만 찡그리고 그대로 서있는 저 괴물 같은 놈에게 라미셀은 공포심을 느꼈지만 자신이 그냥 이대로 있으면 파갈로는 분명 후커의 손에 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라미셀이 다시 석궁에 쿼렐을 재자 후커는 인상을 일그러트리더니 오른손에 들려있는 파갈로를 벽으로 던져버렸다. 마치 장난감이라도 던져 버린 듯 가볍게 파갈로를 던져버린 후커의 괴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라미셀이었다. "쿵..." 파갈로는 빠르게 날아가 벽에 부딪치고는 미동도 없다. 그정도로 빠르게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면 아마도 살아있다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라미셀은 이를 악물고는 떨리는 두 손을 부여잡고 자신을 향해서 잔혹한 미소를 흘리는 후커를 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흉악한 미소를 베어 물고 천천히 다가오는 후커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라센에서 사르센 백작을 혼내준 나는 라센 지방을 급하게 떠났다. 솔직히 그 오만 무도한 백작이라는 놈을 어디 가두어놓고 두고두고 괴롭히고 싶은 심정도 있었지만 그런 자에게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나에게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아마도 그자는 우리가 떠난 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현상금이라도 걸지 몰랐다. 하지만 내가 바이크의 얼굴을 빌려 우리 얼굴을 전국에 배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면 다시 찾아와서 아주 온전하게 밥을 먹지 못하게 만들어 놓겠다고 협박을 했으니 아마 현상 수배라든지 하는 그런 멍청한 짓은 못하리라. 그도 어느 정도 우리들의 실력을 깨닫고 있어서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알지 못하게 소문나지 않은 비밀스러운 곳... 뭐 무슨 어세씬 길드나 용병 길드 같은 곳에 의뢰해서 우리를 암살하려고 드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암살자나 용병이 두려운 것도 아니고 그런 위험도 약간 있어야 여행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굳이 그런 것까지 제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라센을 지나 미르에서 가장 큰 상업 도시라는 테란에 도착했다. 미르 왕국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라고 할 만큼 테란이라는 곳은 무척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웅성대는 떼거지 사람들을 피해 조금 인적이 드문 여관을 찾았다. 원체 우리 일행이 조금 유별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경우가 많았기에 귀찮음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다. 나는 외진 여관을 찾았고 우리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으윽..." 코끝은 찌르는 혈향(血香)에 숨이 턱 막힌 나는 여관 안으로 들어서다 말고 참혹한 광경에 속이 울렁거려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머리가 없는 시체와 나체로 강간을 당한 듯한 여인의 시체, 거기다가 무엇에 밟혔는지 두개골이 깨져버려 뇌수를 토하고 죽은 시체들은 정말로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런 광경은 정말 꿈에서도 상상하기 싫은 악몽이었다. 물론 바이크의 손에 반쪽으로 갈라진 오크라던지 오우거, 트롤... 그리고 수련을 목적으로 내가 손수 죽여버린 몬스터의 시신을 많이 보아 나도 어느 정도 시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몬스터였고 이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몬스터의 시체나 사람의 시체나 생명을 갖고 있는 생명체가 죽었는데 왜 차별하느냐 하면은 나야 할말은 없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나는 몬스터의 시체와 나와 같은 사람의 시체를 구별한다. 내가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웃어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그 생각이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그러했다. 나는 처참하게 죽어버린 시신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자가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분노가 치솟았다. 저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자라면 아마도 심성이 별로 좋지 않은 자가 분명했다.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아론은 시체들의 한복판에서 리멤버런스 오브 더 어스(remembrance of the earth : 대지의 기억)의 마법을 시전 했다. 마치 동영상을 보여주듯 나는 아론의 대지의 기억 마법에서 대지가 갖고 있는 기억들을 이미지로 보면서 이 살인 사건의 전말을 보았다. 특히 마지막 그 오우거 같이 생긴 거구의 사내가 엘프 여인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오우거의 손에 던져져 벽에 부딪쳐 정신을 잃었던 사내가 힘겨운 모습으로 일어나 자신의 동료인 듯한 여인을 구하기 위해 그 사내의 다리를 붙잡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나는 애처로움을 느꼈다. 분명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있는 사내의 마지막 행동은 오우거 사내의 다리를 부여잡고 그의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이었고 그 여인은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달아났다. 여인을 구하기 마지막 불꽃을 태운 그 위해한 사내는 그 오우거 사내의 발에 밟혀 뇌수가 터졌고 생명의 끈을 놓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그 사내가 구하려던 저 여인을 꼭 구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를 죽인 살인자에 대해 강한 분노가 일어났다. ??"헉헉..." 숨이 턱턱 막히는 라미셀은 마지막 울부짖는 파갈로의 외침을 잊지 못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그자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부짖던 소리들... 어서 도망가라고 소리치던 그의 마지막 핏빛 탁음이 귓가를 울린다. 삶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그 살인마 놈은 꼭 죽이고 싶었다. 후커에게 당한 상처 때문에 옆구리를 통해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라미셀은 정신이 몽롱했다. 급하게 지혈했지만 빠르게 달리는 통해 다시 피가 터졌고, 포션을 바르기는 했지만 상처가 깊고 출혈이 심해 정신이 어지러웠다. 아무 곳이나 쓰러져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자신을 쫓고있는 살인자와 죽어가며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외쳤던 파갈로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헉헉..." 턱턱 막히는 숨 때문에 호흡도 곤란했지만 라미셀은 마지막 기운까지 쥐어짜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녀가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갑자기 그녀의 앞을 막는 불꽃에 라미셀은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뒹굴어 그 불꽃을 피했다. "쾅..." 불꽃에 충돌한 대지는 선명한 비명을 질렀고 마른 풀밭에 확하니 불꽃이 일어난다. "호호... 그래도 피할 정신은 있나보군." 여인의 차디찬 음성이 터지고 라미셀의 앞에는 회색의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라미비아..." 라미셀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았다. 바로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후커와 한패였다. "아주 질긴 목숨이구나. 후커의 손아귀를 빠져 나오다니... 호호...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이상 너의 목숨은 나의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먹이를 놓쳐본 기억이 없거든." 그녀의 말소리는 어느새 진득한 살기가 묻어 났고 그녀의 미소는 후커의 잔혹한 미소와 마찬가지로 살인의 의지가 강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죽이고 말겠어." 라미셀은 이 자리를 피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는 그녀만이라도 죽이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자신의 뒤를 쫓는 후커가 어느 정도까지 따라왔는지 모르지만 지금 그녀는 후커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금 눈앞에서 자신을 노리는 라미비아를 처리해야만 했다. 조금 전의 공격을 통해서 라미셀은 그녀가 마법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관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위장이었다. 그녀는 마법사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능숙한 연기자이기도 했다. 라미셀이 살인의 의지를 불태우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라미비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호호... 나를 어떻게 죽이는지 무척 궁금한걸. 내 곁에 다가서지도 못할 것이 분명하고 지금 네 손에는 네가 자랑하는 그 귀여운 장난감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그녀의 말처럼 라미셀의 손에는 그녀가 애용하던 석궁이 없었다. 그것은 파갈로등이 죽었던 그 여관에서 후커를 피하면서 떨어뜨리고 줍지 못했던 결과이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그녀를 해할 아무런 무기도 없었던 것이다. 맨손으로 마법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똑같이 무모한 일이었다. "죽어랏... 파이어 볼" 라미비아는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우고는 라미셀에게 파이어 볼을 날렸다. 붉은 불꽃의 둥근 공은 빠른 속도로 라미셀을 향해 날아갔다. "카샤... 카샤..." 라미비아의 파이어 볼이 날아오자 라미셀은 순간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하더니 카샤라는 이름을 불렀다. 그와 함께 라미셀의 앞에 작은 독수리의 모양의 불꽃이 나타났다. "불의 정령..." 파이어 볼을 날린 라미비아는 라미셀이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다시 파이얼 볼을 날리려고 하다가 갑자기 들리는 라미셀의 외침과 그녀의 앞에 나타난 불꽃을 보고는 그렇게 외쳤다. 불의 하위정령 카샤... 세상을 이루는 4대 기본 원소는 물, 불, 바람, 땅이며 그들은 제각기 정령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 정령들이 모여있는 세계를 정령계라고 한다. 각 정령들은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정령왕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정령왕은 하위의 정령들을 다스린다. 정령들은 정령사 혹은 정령술사라는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이들을 통해서 정령계에서 중간계로 소환되는데 각 정령들은 각각 자신의 속성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정령사는 마법사와 다르게 선천적으로 정령과 친화력이 강한 인물이 정령어를 통해 정령을 부른 후 맹약(盟約)을 맺어 서로 계약을 한다. 그러면 맹약을 맺은 정령은 맹약자가 자시을 부르면 시간과 공간의 암흑을 뚫고 나타나는데 그 친화력에 따라 하급에서 최고의 정령왕까지 맹약을 맺어 소환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라미셀이 맹약을 맺어 소환한 정령은 불의 하급정령인 카샤였다. 붉은 화염의 독수리는 라미세의 주위를 선회하며 그녀의 명령을 기다렸다. 두 마리의 카샤는 매우 작아 보였지만 그 힘은 어떨지 미지수이다. "불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정령사였다니... 우리를 속이고 있었군." 라미비아는 라미셀이 설마 정령을 불러내는 정령사일줄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니 그녀가 아무리 정령과 친화력이 강한 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순수한 엘프가 아닌 인간의 피가 반절이나 섞인 하프 엘프였다. 그것도 악마의 씨앗 아니 악마의 꾐에 빠진 어둠의 종족이라 불리는 다크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의 몸에 정령술사의 피가 흐리고 있다니 누가 상상인들 했겠는가? 또한 그녀가 들었던 그녀에 대한 정보에서 그녀가 정령술사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이 정령을 부리는 정령술사라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야기이다. "불의 하급정령으로 오서클 유저인 나를 상대하지 못한다." 라미비아는 그녀가 소환한 정령이 겨우 불의 하급정령인 카샤임에 놀라움을 진정시키고 그렇게 외쳤다. 정령술사가 흔한 존재가 아니어서 그녀는 정령술사와 한번도 대적해 보지는 않았지만 겨우 하급의 불의 정령이라면 충분히 상대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카샤... 그녀를 공격해라." 라미셀은 그녀의 외침에 자신의 주변에서 날고있던 카샤에게 라미비아를 공격하도록 주문했고 두 마리 카샤는 빠른 속도로 라미비아의 좌우를 향해 날아갔다. "워터 실드(Water Shield)... 아이스 애로우(Ice Arrow)..." 그녀는 라미셀이 소환한 카샤가 자신에게 날아오자 물의 속성을 갖고 있는 방어벽을 치고는 자신의 몸을 방어하면서 카샤를 노려서 아이스 애로우를 발사했다. 얼음의 속성을 갖고 있는 화살은 순식간에 라미비아의 왼쪽을 노리는 카샤의 몸통을 격중했다. "캬아악..." 라미비아의 왼쪽 어깨 쪽을 노리던 카샤는 라미비아가 날린 아이스 앨로우를 맞고는 울부짖더니 소멸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소환한 한 마리 카샤가 소멸되자 라미셀은 이를 악물고는 외쳤다. "샐러맨더" 라미셀의 외침과 더불어 한 마리 도마뱀 모양의 정령이 소환되었는데 오른쪽 카샤의 공격을 워터 실드로 방어했던 라미비아는 라미셀의 외침에 이를 갈았다. "이제는 불의 중급정령인가?" 라미비아는 라미셀이 불의 하급정령 카샤의 소멸과 더불어 다시 그 보다 강한 불의 중급정령 샐러맨더를 소환하자 도대체 그녀가 어디까지 소환할지 궁금해졌다. 만약 상급이상의 정령을 소환한다면 그녀가 아무리 오서클 유저라고 해도 불안했다. 저 중급의 샐러맨더에서 나오는 화염은 자신의 그녀가 친 워터 실드를 차츰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스 볼트(Ice Bolt)... 아이스 볼트..." 샐러맨더는 땅에서 빠른 속도로 라미비아에게 접근하며 그 붉은 화염을 내뿜었고 공중에서는 불의 하급정령 카샤가 그녀를 노렸다. 라미비아는 아이스 애로우로 빠른 속도의 샐러맨더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위력은 아이스 애로우보다 적지만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아이스 볼트를 연속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샐러맨더의 빠른 속도를 잡기에는 그녀의 아이스 볼트는 너무 느렸다. 아직까지 그녀가 친 워터 실드가 샐러맨더와 카샤의 공격에 흔들림은 없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계속 되리라 보장할 수 없었다. 라미비아는 이를 악물고는 마나를 최대한 끌어 올려 수인을 맺더니 자신이 아침에 캐스팅한 마법중 가장 강력한 마법의 하나를 떠올리고는 시동어를 외쳤다. "아이스 스톰(Ice Storm)" 샐러맨더와 카샤를 조정하며 라미비아의 위아래를 공격하던 라미셀은 라미비아의 표정과 외침에서 그녀의 주문이 매우 강력하기라 생각하고 긴장했는데 갑자기 라미비아의 주위로 얼음 폭풍이 일어나자 깜짝 놀랐다. 매서운 한기와 함께 날카로운 얼음 조각은 라미비아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졌고 그녀를 공격했던 샐러맨더와 카샤는 그 얼음 폭풍의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휩쓸렸고 비명을 지르며 소멸되었다. 한순간에 자신이 소환한 샐러맨더와 카샤가 소멸되자 라미셀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펼친 아이스 스톰에 라미셀의 샐러맨더와 카샤가 소멸되자 라미비아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순식간에 많은 마나를 쏟아 부어 약간 힘들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라미셀이 소환한 정령들을 소멸시킬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엔 소환" 라미셀은 자신이 소환한 불의 중급정령 샐러맨더와 하급정령 카샤가 소멸되자 굳은 마음을 먹더니 불의 상급정령 프리엔을 소환했다. 한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불의 상급정령을 이런 급박한 순간에 소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아악..." 라미셀은 온몸에 느껴지는 프리엔의 마력에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아무리 정령과 친화력이 강한 엘프의 피를 타고났다고 해도 불의 상급정령 프리엔을 소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멀쩡한 몸이라고 해도 소환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그녀의 육체는 최악에 가까웠다. 과다한 출혈과 상처... 그리고 도주로 인한 체력의 고갈은 그녀에게 프리엔이라는 강력한 불의 상급정령을 소환하기에 무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을 감수하며 프리엔을 소환하였다. 불의 상급정령 프리엔은 그 부리를 쩍 벌리고 시뻘건??화염을 토해 냈다. 그 무시무시한??붉은 색의 염화가 허공을??뜨겁게 달구며 라미셀을 머리 위를 빙빙 맴돌았다. "불의 상급정령..." 라미비아는 라미셀이 불의 상급정령 프리엔을 소환하자 이를 악물었다. 불의 상급정령이라면 자신의 실력이 아무리 5서클 유저라 해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조금 전에 샐러맨더와 카샤를 소멸시켰을 때 많은 마나를 소모했다. 저런 상급의 정령과 싸우려면은 그녀에게 더 많은 마나가 필요했고 그녀는 지금 그만큼의 마나가 없었다. "프리엔 부탁해..." 라미셀은 끊어질 듯한 음성으로 허공을 날던 불의 상급정령 프리엔에게 말했고 그녀의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렀다.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은 그녀는 라미비아를 향해 울음을 터뜨리며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프리엔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프리엔은 붉은 염화(炎火)를 토해내며 라미비아의 워터 실드를 공격했다. 라미비아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프리엔의 모습에 놀란 눈으로 급격하게 온몸에 전해지는 열기를 느끼고는 결코 워터 실드만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이스 윌(Ice Wall)... 아이스 애로우..." 그녀는 얼음의 방벽을 올려 프리엔의 화염을 막으며 얼음 화살을 쏘아내며 프리엔을 공격했다. 프리엔의 불꽃은 라미비아가 만들어낸 아이스 윌에 막혔고, 그녀의 얼음 화살에 프리엔은 방향을 틀어 손쉽게 막아냈다. 정령을 소환하고 움직일 때 소환자는 그 정령을 움직이는 매개체 즉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강력한 상급의 정령을 소환하고 그 정령이 강력한 힘을 쓸수록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라미셀은 지금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녀가 소환한 불의 상급정령 프리엔은 라미비아와 거의 대등한 상태로 싸우고 어느정도 우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라미셀의 현 상태는 매우 불안했다. 프리엔은 계속 힘을 쏟아 낸다면 언제 어느 때 라미셀이 위험한 상황을 맞을지 몰랐다. "재미있는 놈과 싸우는군." 그때 장내에 나타난 한 사내의 음성이 들렸고 그의 등장에 한 명은 안도의 한숨을 한 명은 절망의 눈길을 보냈다. 후커... 그는 라미셀을 쫓아 여기까지 추격해 온 하프 오우거 후커였다. 후커의 등장에 라미셀은 라미비아은 제쳐두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면서 프리엔에게 후커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파갈로를 죽인 것도 로라를 죽인 것도, 마리언을 죽인 범인도 저 후커라는 놈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죽더라도 저 후커의 죽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의 생애 마지막 소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커의 등장으로 라미셀의 온 이목은 그에게 집중되었고 라미비아를 공격했던 프리엔은 빠른 속도로 후커를 향해 날아가며 그 붉은 화염을 토해냈다. "크크... 그놈 되게 귀엽군." 후커는 뜨거운 불꽃을 내뿜는 프리엔의 모습에서 별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서서히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프리엔을 주시하던 후커는 손에 언제 빼들었는지 바스타드 소드를 움켜쥐고는 프리엔의 날카로운 불꽃을 검으로 막아내었다. 그의 바스타드 소드에는 노란 불꽃의 검기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프리엔의 붉은 화염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프리엔의 붉은 화염은 후커의 검기가 실린 검에 가로막혔다. 빠른 속도의 화염 공격이지만 후커는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검 놀림으로 프리엔의 화염을 가볍게 막아내더니 일순간 번쩍이는 섬광을 일으키며 프리엔을 반으로 갈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의 검은 불의 상급정령인 프리엔을 소멸시키기에 충분한 힘이 실려있었다. "아악..." 라미셀은 프리엔의 소멸과 더불어 온몸을 빠져나가는 마력에 비명을 질렀고 그녀는 서서히 쓰러졌다. 그녀로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것은 자신을 구하려던 파갈로의 모습이었다. "괜찮아요." 그때 그녀의 의식을 깨운 것은 젊은 사내의 목소리였고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의 등뒤에서 전해지는 기운은 매우 포근한 것으로 그녀는 차츰 희미해지는 의식이 또렷하게 돌아옴을 느꼈고 바닥을 드러냈던 체력이 차츰 회복되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부축하고 자신의 몸을 회복시켜 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검은머리에 자신과 같이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는 한 사내였는데 그는 매우 안쓰러운 모습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내는 걱정스런 모습으로 자신을 부축하며 안절부절못했고 그의 모습에 그녀는 사내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몸을 가누었다. "아아..." 체력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았지만 상처는 아직 아니었다. 옆구리 쪽에 깊게 새겨진 상처사이로 아픔이 밀려왔고 그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가이가..." 그때 그 검은머리의 사내는 누군가를 불렀고 그녀의 앞에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섰다. 라미엘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검은 사제복의 사내를 보고 주춤 물러났고 그녀의 행동에 사내는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우면서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가 당신의 상처를 치료할 꺼에요." 그의 음성은 무척이나 다정다감했고 그 음성에 라미셀은 두려움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다가온 사제의 한 손이 자신의 상처 위에 놓이더니 한순간 하얀 광채가 번쩍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광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마법에서 말하는 리커버리(Recovery) 즉 상처 회복의 마법과 비슷한 치유 능력인 것이다. 그녀는 차츰 고통이 사라지자 그때서야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라미비아와 후커를 찾았다. 저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라미비아와 후커는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데 그들은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라미셀은 지금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저들에게 긴장감을 심어주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살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을 부축해준 그 검은머리의 사내였다. 대략 이십대 중반쯤 보이는 젊은 사내로 평범한 인상의 소유자였고 약간 이국적인 용모를 갖고 있다. 평범하다고 하지만 그 검은머리와 검은 눈은 대륙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모습에서 매우 친숙함을 느꼈고 자신과 같은 검은 눈을 보면서 그녀는 안정감을 찾았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그의 왼쪽 옆의 사내를 보았다. 그는 매우 덩치가 큰 사내였는데 그 덩치 때문에 그녀는 저 잔혹한 살인자인 하프 오우거 후커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후커의 잔혹함과 다른 무언가 굉장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덩치 큰 사내에서 시선을 돌려 검은머리 사내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쪽 옆에는 마법사 차림의 중년 사내가 있는데 현기 어린 눈빛과 차분한 모습에서 그가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옆집 아저씨 아니 학교 선생님 같은 차분한 인상 때문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은머리 사내의 뒤쪽에는 조금 전에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준 검은 로브의 사제가 있는데 머리를 뒤덮은 로브의 모자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 보았다면 약간 음침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겠지만 그녀는 그의 치유 능력으로 상처의 고통을 없앴기에 그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있었다. 라미셀이 료우 일행을 일일이 돌아보고 나자 료우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라미셀은 료우가 다가서자 분명 자신을 도와준 인물들이지만 조금 전까지 겪었던 그 충격 때문인지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었고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예전 같으면 이런 겁먹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텐데 지금 그녀는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평상시의 그녀의 모습과 많이 틀려 보였다. 그녀의 불안정한 태도에 류우는 다가섬을 멈추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머리를 극적이며 쑥스러운 모습으로 물었다. "저기 제가 도와 줄 일이 없을까요?" 료우는 매우 힘들게 말했고 그의 이 한마디에 그녀는 어떤 포근함을 느꼈다.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가 한참을 헤맨 끝에 집을 찾고 그 집에 들어가면서 느끼는 안락함이라고 할까? 또한 료우의 한마디는 마치 자신을 향해 천사가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미비아와 후커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자신들에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단지 라미셀의 주위에 모여 있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청객들에게 왜 이런 긴장감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라미비아 보다 후커의 긴장감이 더 컸는데 그는 긴장감 때문에 전신 근육이 굳어지면서도 온 신경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예기에 세포 전체가 바짝 곤두선 느낌이 들었다. 그 날카로운 예기는 저쪽의 자신만큼이나 덩치가 커 보이는 근육질 사내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듯 보였다. 후커는 왜 자신이 이렇게 긴장을 하는지 의문스러웠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는 바이크에게 전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전혀 처음 보는 상대이지만 마치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 것처럼 그는 바이크라는 존재에 대해 잔뜩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커의 이런 반응과는 다르게 바이크는 후커라는 존재를 별반 크게 느끼지 않았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온통 자신의 주인인 료우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료우 한마디 한 동작에 그는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원천이자 살아가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료우만을 위해 창조된 그의 종이고 그의 인생의 모든 부분은 오직 료우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급의 마족이면서 인간이 되어버린 이 사내의 모든 정신은 오직 료우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년을 죽여. 그년이 살아나면 마스터의 모든 계획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라미비아는 새로운 불청객 때문에 생겨난 긴장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고 그녀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후커에게 그렇게 말했다. 후커는 라미비아의 말을 듣고 그녀를 죽이고 싶었지만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그만큼 그는 긴장하고 있었고 평생 마스터 의외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 이 후커님을 이렇게 긴장시키다니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겠다." 후커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묶고 있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하였다. 그리고는 료우 일행을 향해 한발 앞으로 전진했다. 후커의 행동에 바이크가 무의식적으로 료우 옆에 있다가 앞으로 전진한다. 이미 바이크가 나오리라 예상하고 있던 후커는 전신 근육의 모든 세포들이 일제히 세찬 반응을 보이는 것을 느끼고는 어이없게도 그 전율에 희열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살인 후의 그 짜릿한 쾌감과는 다른 죽음의 공포에 대한 쾌감이라고 할까? 후커의 입가에 희열이 가득 찬 미소가 일어난다. 그것은 료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후커의 입가에 머문 미소에 나는 여관에서 보았던 살인들이 떠올랐다. 그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며 마치 그것을 즐기는 살인광의 모습을 보였던 저 악마 같은 자는 지금도 그 변태적인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신에 분노라는 감정이 솟아올랐고 나는 나도 모르게 바이크의 앞을 막고는 그 살인자에게 다가섰다. "내가 놈을 상대하겠어. 저런 놈은 내 손으로 꼭 죽이고 말겠어." 내가 무엇 때문에 그에게 이런 살인 의지를 느끼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처음에는 단지 그런 잔혹한 살인자는 내가 처리하고 싶다는 영웅심리인가도 생각했고, 아니면 피를 보면서 나도 모르는 피에 대한 쾌감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가 아무리 잔혹한 살인을 했다고 해도 내가 그것에 분노하여 스스로 그를 살인하려고 나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를 죽이고 싶었다. 영웅심리도 살인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아닌 그것은 그 자체에 대한 분노였고 내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인간이면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간 같지 않은 모습이 되어버린 내 입장에서 인간이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의 모습은 내게 분노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한 고통을 느낄지 몰랐다. 일단 내가 싸움에 나섰기에 나는 여태까지 내가 취해왔던 구경꾼이 아닌 실제적인 사람과의 싸움을 해야하고 그 싸움으로 인해 죽음을 당할지 몰랐다. 살해당할지도 모르고 살인을 할 수도 있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런 극단의 상황을 피하려면 지금이라도 바이크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나는 뒤로 물러나 구경꾼으로 돌아가면 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후커라는 자는 자신의 앞에 바이크 대신에 내가 나서자 잔혹한 미소를 더하며 약간 긴장감을 푸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치 바이크는 약간 두렵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별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는데 나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물론 바이크라는 존재가 너무도 강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인간의 심리를 갖고있기에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후커라는 자가 나에 대해서 긴장감을 풀 정도로 내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에 대해 그가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이번 싸움에서 내가 유리할지 몰라도 그런 이점을 갖고 놈과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를 뽑아들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팔라딘이었나?" 후커라는 자는 내가 검에 검기를 일으키자 풀어졌던 긴장감을 다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다가 내가 검기를 일으키는 팔라딘급 검사라는 것을 알고는 드디어 그 자도 나에게 신경을 쓴 것이다. 다행히도 오면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는지 나는 어느새 팔라딘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검에 일어나는 푸른 광채에 후커는 다시 비웃음을 터뜨렸다. "크크... 겨우 이제서야 팔라딘 수준에 올라선 애송이가 골드 팔라딘인 나를 상대하겠다고 덤비다니 계집애가 옆에 있다고 객기가 너무 심하구나. 나이 어린놈들의 그런 객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내가 직접 보여주마." 후커는 그렇게 외치더니 그 자신의 검에 마나를 쏟아 붓는데 노란 광채가 빛나는 바스타드 소드는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위험스러워 보인다. 그 큰 덩치에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개미 죽이는 일보다 쉽다고 말하고 있는 잔혹한 미소, 그리고 노란 불꽃은 나를 짓누르는 압박감으로 충분했지만 이미 여러 번 죽어 본 경험이 있는 나에게 후커가 말하는 결과 즉 죽음 따위는 별반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사실 죽으면서 느끼는 그 고통 때문에 내가 죽기 싫어하는 것이지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이미 예전에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물론 그것은 내가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전제하에서 가진 자신감이었지 만약 내 몸이 불사가 아니고 내가 죽음 뒤에 다시 부활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나도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커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불행했다. "차아앙..." 선제 공격을 한 것은 물론 나였다. 객관적인 실력으로 이제 겨우 팔라딘에 들어선 내가 골드 팔라딘 실력의 후커와 싸우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나마 내가 그에게 어느 정도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그의 몸집이 무척 크다는 것으로 그의 행동이 덩치 때문에 약간 둔할 거라는 생각으로 빠른 속도와 적절한 타이밍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그와 대등한 싸움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크크... 애송아! 그 정도 속도로 이 후커님의 옷자락이라도 건들 것 같으냐?" 후커라는 자는 내가 빠르게 찔러대는 검을 속속들이 막고 있었다. 그 큰 덩치가 어떻게 그런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지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그는 나의 검이 들어갈 경로를 예측하고 있는데 무리 없이 막아내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다른 이들의 우리의 대결을 보았다면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으음..." 빠른 속도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 큰 덩치에서 휘두르는 검풍에 내 몸 전체가 마치 무엇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얼얼하다는 것이다. 나를 두 쪽으로 내려는 듯 양단(兩斷)하는 그의 검을 어렵사리 피했을 때 그의 검에서 일어나는 검풍에 나는 오른 볼에서 살갗이 마치 벗겨지는 듯한 고통을 받았다. 이런 고통이 싫어 싸움을 피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이 진저리 나는 고통 때문에 이 자리를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크크... 운이 좋구나. 그 검을 피하다니... 하지만 이미 너의 죽음은 예정된 것이다." 후커는 마치 내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이라도 하듯 기분 나쁜 미소를 나에게 보이더니 두터운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 나의 왼쪽 허리를 두 동강 내려고 덤벼들었다. 황금빛 검기가 순간적으로 대지를 가르며 다가오는데 그 화려한 광채가 주는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살기에 나는 몸을 틀어 간신히 피해내기는 했지만 나의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검만으로 그를 상대할 실력이 아직까지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는 그에게 숨겨놓았던 나의 재능인 마법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한 손에 검을 들고 다른 손에 수인을 맺으며 시동어를 외쳤다. "파이어 볼" 3서클의 파이어 볼은 빠른 속도로 후커의 좌측 허벅지를 노리고 날아갔다. 예상치 않은 나의 마법공격에 후커도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후커는 잠시 주춤하더니 신속하게 검을 휘둘러 내 파이어 볼을 막았다. 골드 팔라딘이라는 등급이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 확연하게 보여주는 한 수였다. "마검사?" 후커는 내가 순간적으로 날린 파이어 볼을 피해내고는 그렇게 외쳤다. 그의 외침이 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에게 틈을 주지 않고 다시 후속 공격을 날렸다. 내가 파이어 볼만 무작정 날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 후속 공격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후커가 결코 나의 3서클 파이어 볼에 맥없이 당하리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 뒤에 후속 타로 빠른 직선 찌르기를 시도했다. 확실히 이번만은 내 공격이 먹혀 들어가리라 생각을 했는데 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괜히 그가 골드 팔라딘의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닌지 그는 내가 시도한 회심의 찌르기를 역동작을 취하며 간단히 피했다 "젠장..." 입에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거의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회심의 일격을 날렸건만 피해내다니 이제는 그도 내가 마법과 검을 같이 쓰는 마검사라는 것을 알았으니 내 마법을 염두 해두고 방어를 할 것이다. 내 최고의 이점이자 히든 카드가 사라진 순간이다. "후후... 겨우 팔라딘 초입의 실력으로 내게 덤벼서 이상하다 싶었더니 마법을 익힌 마검사였다니 나를 놀라게 해준 대가로 네놈의 목은 아주 예쁘게 잘라주마." 후커는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순간적으로 검을 휘둘러 나의 목을 노렸다. 이미 그의 공격은 나도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한줌의 지체없이 나는 검을 세워 그의 베기를 막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나보다 덩치가 커서 그만큼 완력이 좋다는 것과 그의 공격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후커와 같은 팔라딘과 싸워본 경험이 없어 내 실전 경험이 매우 미천하다는 것이었다. 오크나 오우거, 크롤등의 마물들과는 싸워봤지만 내 실력보다 더 뛰어난 검사와는 한번도 상대해보지 못했다. 나는 내 완력을 생각하지 못한 체 후커의 검을 막았다가 부딪치면서 그 충격에 뒤로 반걸음 밀렸고 검을 쥐었던 손이 얼얼한 느낌을 받고는 주춤했다. 아주 잠깐동안의 빈틈이었지만 후커는 그 틈을 노리지 않고 검을 휘둘러 나의 얼굴을 그었다. 그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가 내 얼굴을 덮치는데 나는 놀라서 검을 들어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것을 깨닫고 고개를 비틀었다. 순간적이 움직임이었지만 얼굴이 반쪽이 되는 것은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하게 피하지 못해서 오른쪽 볼이 후커의 검 끝에 살짝 긁혀 상처가 나고 말았다. "크윽..." 오른쪽 귀 위에서부터 대각선으로 길게 그어져 턱밑까지 이어진 기다란 상처로부터 피가 흐른다. 얼굴을 적시는 뜨끈뜨끈한 핏물에 나는 왼손을 갖다 데고는 슬쩍 문질렀다. 손바닥을 붉게 물든 피의 광란은 내 눈을 붉게 만들었고, 내 심장은 거칠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아악..." 그때 내 뒤쪽에서 나와 후커의 대결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는 것을 들었다. "제길..." 나는 얼굴에 그어진 상처의 아픔이나 내 눈과 가슴을 뜨겁게 타오르게 만들었던 피의 광란보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렸다. 여관에서 그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그 사내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를 지켜주기로 마음먹었는데 처음부터 이게 무슨 꼴인가? 나는 왼손에 묻은 피를 옷에 문질러 닦고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에게 미소를 보여주고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에 의한 만들어진 상처에 대한 고통은 나에게 아무런 아픔도 주지 못했다. 그보다 나는 내 피를 보면서 내 심장이 빠른 박동하는 것을 느끼며 그 느낌에 사로잡혀 버렸다. 후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내 피를 보면서 내 눈은 차츰 서서히 붉은 빛깔로 물들어 갔고, 심장은 마치 붉은 열기로 인해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무래도 내 몸 안에 나도 모르는 기이한 무엇인가가 심하게 반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 안에 숨어있던 나의 투쟁심이나 전투 욕구 같은 것이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런 환상에 사로잡혔을 때 후커의 검이 다시 나의 허리를 노리면서 날아왔다. "흥..." 나는 빠르게 검을 내려치면서 조금 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했다. 조금 전에 나는 그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힘으로 막으려고 하다가 후커의 힘에 밀려 그 충격으로 그의 후속 공격을 막지 못하고 상처를 입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정면에서 힘으로 맞서는 대신에 그의 공격을 옆으로 흘리고 반격을 노렸다. 그 반격을 위해 나는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를 준비했다. 검사가 마검사와 싸우려면 그만큼 많은 부분을 고심해야 된다. 그것은 마검사가 검을 들고 싸우면서도 언제나 빈틈을 노려 마법을 펼치는 것 때문인데 후커의 경우에도 나에게 상처를 입혀 우세를 차지하고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 나의 마법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의 베기 공격을 검으로 막으면서 그의 오른쪽 허리가 열리는 것을 보고 라이트닝 볼트를 날리자 후커는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나의 공격을 피했다. 내가 노렸던 것은 그것이었다. 그의 중심이 순간적으로 뒤로 이동했기에 나는 여지없이 검을 쭉 뻗어 그의 어깨를 노렸다. 한바퀴 회전하면서 나의 공격을 피한 후커는 내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꼈는지 보지도 않고 검의 검로를 차단하며 나의 검을 막았다. "째앵..." 검과 검의 마찰음은 시원스럽게 울려 퍼지고 나의 검과 후커의 검은 서로 엑스(X) 자를 만들었다. "그런 잔꾀 따위로 나를 상대하려고 하다니 그래 상처는 아프지 않느냐?" 그의 말에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 얼굴이 조금 못쓰게 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목에 붙이고 다닐 것도 아닌데 흠집이 조금 나면 어떻겠냐? 그럼 어디 다른 잔재주가 있나 살펴볼까?" 후커는 그러면서 검에 힘을 주어 밀었고 나도 밀리지 않으려고 검에 힘을 주어 밀어서 우리는 순간적으로 서로 간격이 벌어졌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서로의 틈을 노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나는 그와 싸움을 하면 할수록 내 자신도 몰랐던 내 안의 호승심과 투쟁심을 하나씩 일깨우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평범한 인간으로 계속 살았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지만 지금의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그런 느낌이 차츰차츰 깨어나고 있었다. 검대 검으로 검사대 검사로 나는 결코 후커를 이기지 못한다. 그것은 그와 나의 실력 차이로 아무리 여러 가지 조건이 좋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승부를 뛰어 넘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갖고있는 장점인 마법이 추가되면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게 된다. 그것은 마법과 검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 상호보완(相互補完) 작용을 하면서 일어나는 상승효과이다.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 순간적으로 강력한 불꽃의 구가 내 주위에서 생성되더니 후커를 노리며 날아갔다. 이번 것은 조금 전에 내가 날린 파이어 볼이나 라이트닝 볼트하고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갖춘 불 속성 마법 공격이다. 파이어 버스트는 마법사가 정한 목표물에 맞으면 강력한 폭발로 주위에 타격을 주는 마법인데 그 위력이 파이어 볼을 정통으로 맞은 것만큼 대단한 위력이다. 나는 후커가 내가 날린 파이어 버스트에 명중하지 않으리라 알고 있었기에 강력한 폭발로 주위에 타격을 주는 마법을 날린 것이다. 후커가 조금 전에 말했던 잔꾀를 약간 쓰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쾅..."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붉은 화염은 땅에 부딪쳤고 사방으로 화염의 잔해가 퍼져 나갔으며 충격에 대지가 울렸다. "으윽..." 파이어 버스트를 피했다고 안심하던 후커는 화염의 잔해가 퍼지면서 어느 정도 피해를 본 모양이다. 내가 이런 좋은 기회를 그대로 보고 있을 까닭이 없다. 나는 검을 두 손으로 붙잡고는 빠른 발걸음과 함께 검을 일직선으로 뻗어 후커의 가슴을 노렸다. 파이어 버스트의 충격으로 주춤하던 후커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나의 검을 보고는 주춤 뒤로 물러서면서 서둘러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파이어 버스트에 타격을 받았는지 동작이 굼떴고 나의 공격을 확실하게 피하지 못했다. "으윽..." 살짝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 나는 그때서야 왜 이 검을 영혼의 검이라 불렀고 그 검이 왜 저주를 받았는지 깨달았다. 영혼을 소멸시킨다는 검 소울 스워드. 단지 스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후커의 몸은 덜덜 떨리더니 그의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가 땅바닥을 굴렀다. 나는 단지 스치는 정도의 상처에 그 커다란 덩치의 후커가 갑자기 부들부들 떨더니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고는 어리둥절하였다. 그가 쓰러지자 후커의 뒤쪽에 있던 회색의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후커에게 달려왔다. 나는 그 여인의 공격을 대비했는데 그녀는 후커를 잡더니 중얼거렸다. "워프"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막지도 못했다. 그녀는 후커를 데리고 공간 이동을 해버린 것이다. 단지 검에 스친 상태로 쓰러져 버린 후커와 그를 데리고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을 해버린 여인의 반응에 나는 어리둥절 하고있었다. "료우... 영혼의 검입니다. 단지 스치는 것만으로 영혼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살아난다고 해도 그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론의 말이었다. 그런 것이었나? 단지 스치는 것만으로 영혼에 타격을 주어 팔라딘을 쓰러트려 버리다니... 나는 엄청난 놈을 얻은 것이다. 14장. 던전 탐험 ??내 경험이 미천하여 라미비아와 후커를 놓쳐버린 후 나는 그녀를 보호해야 했다. 라미셀의 이야기를 듣고 전후사정을 알게된 나는 라미셀이 그녀 자신이 속한 어새씬 길드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들 두 남녀가 살아 돌아간 이상 그녀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를 혼자 내버려둔다는 것은 그녀의 위험을 알면서 방치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나는 라미셀에게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를 청했고 그녀도 나의 제의에 응했다. 길드의 배신과 유일한 동료라고 할 수 있는 파갈로의 죽음 후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장 믿었던 동료와 자신의 보금자리라 할 수 있는 길드의 배신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를 나는 보살펴 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라미비아와 후커가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하고 그들을 대비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감감했다. 포기했나?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까지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정도면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텐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마냥 그들을 기다릴 수 없어 다시 일행과 함께 길을 떠나기로 했다. 나중에 그들의 습격이 있다고 해도 하나도 겁은 나지 않았다. 그만큼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가 나에게 주는 힘은 굉장한 것이다. 그까짓 암살자들에게 겁을 집어 먹을만큼 우리는 약하지 않았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지?" 나는 그들에게 다음 가야할 곳을 물어보았다. 내가 이들의 리더이면서 목적지를 묻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 세계에 들어오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을 만큼의 힘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의 경우에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의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마계의 마왕인 벨제뷔트가 마음씨 착한 아저씨처럼 나의 요구를 덥석 수용해서 마황의 권능이라는 것을 부여하고 바이크와 아론을 주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가? 설마하니 정말로 그들을 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정말 내 스스로가 감당하기 힘든 힘을 얻은 것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힘을 백퍼센트 동원한다면 아니 내가 갖고 있는 마황의 권능을 이용한다면 나는 어쩌면 이 중간계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내 스스로가 무슨 야심이 있어서 이곳 중간계 전체를 지배한다라는 그런 망상은 없었다. 뭐 정 할 것이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피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정복욕이라는 것이 있고 남들 위에 있고 싶은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이런 힘을 바탕으로 어디 가서 조그마한 왕국이라도 세웠을 것이다. 왕 노릇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도 같으니 말이다. 뭐 왕이 아니라면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웅이라는 것이나 해볼까? 인간들을 괴롭히는 마족이나 고급 몬스터들을 퇴치하여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영웅도 꽤 괜찮은 직업같다. 한번쯤은 그런 것을 꿈꾸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 아참 마족을 퇴치하는 것은 좀 곤란하기는 하다. 나 자체가 마계에서 힘을 얻어 마황의 권능으로 중간계의 모든 마족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갖고 있고, 내 주위에 있는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 모두가 마족이니 같은 마족을 때려잡고 인간들에게 영웅소리를 들을 수 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내가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떤 존재이고 나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되고 이런 저런 고심을 하다보니 내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인가? 갑자기 주위는 거대한 하얀 벽으로 둘러싸이고 마치 홀로 그 하얀 벽안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든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조그마한 공간에서 나는 홀로 우두커니 남아있다. 내가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해 방황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중요한가요?" 상념을 깨는 아니 내 주위를 둘러싸고 나를 막아섰던 벽들의 환영을 깨며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라고 했지요?" 나의 물음에 그녀의 미소가 보인다. "그게 그리 중요한가 해서요? 살면서 언제나 목적지지 정해져 있어 그곳으로 가지만은 않아요. 어떤 때는 아무런 목적 없이 방황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잘못 들어설 수도 있는 것이에요. 지금은 그냥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면 되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휴식기에 있는 것이고요." "새로운 목적지를 얻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요." "그래요.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 것뿐이에요. 일단 우리에게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으면 아무 곳이나 발길 닿는 대로 가면 그만 아니에요. 그리고 그 동안 잠시 쉬면서 우리에게 맞는 목적지를 만들면 되잖아요." "우리에게 맞는 목적지..." "네... 당신과 여기 있는 우리에게 맞는 목적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당신을 믿고 끝까지 따라갈 꺼에요. 이제 저도 당신의 동료이고 당신은 우리의 리더에요. 당신이 흔들리면 우리는 모두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고 말꺼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무언가 가슴 속 깊이 뭉클한 것을 느꼈다. 내가 이들의 리더이고 이들은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온다. 이들은 내가 책임져야 할 동료이자 가족인 것이다. "하하하..." 이곳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큰소리로 웃어보는 웃음 소리였다. 나는 나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족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고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 맞아! 우리 케이팜으로 가요. 예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곳에 던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던전이요?" "그래요. 우리 이참에 탐험을 하는 거에요. 던전을 탐험하면 또 알아요. 뭔가 굉장한 것을 발견할지... 저 어렸을 적 꿈이 모험가였거든요. 저도 이참에 모험이라는 것을 하고 싶어요." 그녀의 천진 난만한 말에 나는 내 가슴속에 있던 상념들이 말끔히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모험이라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나에게 무엇을 하자라고 제시해 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니 전사 둘에, 마법사, 신관, 암살자로 이루어진 우리 파티는 충분히 모험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구성이 되고도 남았다. 거기다가 실력으로 따지면 대륙 내에서 상대를 찾을 수 없는 전사와 마법사가 우리 파티에 속해 있으니 말하자면 우리 파티는 최고의 모험가 집단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겠군.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케이팜은 미르 왕국에서 파미르 왕국으로 통하는 서쪽 산맥의 한곳에 자리잡고 있는 고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고대 도시로 알려져 있는 곳인데 어느 날 큰 전쟁으로 인하여 도시는 불바다로 변했고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는 폐허로 변했다고 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에 던전이 있다는 것은 매우 의외의 일이다. 라미셀의 말을 빌리자면 라미셀이 속한 어세씬 길드원들이 미르 왕국에서 원정 암살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일거리를 타국의 암살자들에게 빼앗긴 미르의 어세씬 길드 마스터가 무척 화가 나서 파미르에서 온 암살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미르 어세씬 길드 마스터의 명령으로 미르 길드 내의 암살자들은 파미르에서 온 암살자들을 죽이려고 추적을 감행하였고 같은 암살자들에게 쫓긴 파미르의 암살자들은 추격을 피해 이제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죽음의 도시 케이팜까지 도망쳤다고 한다. 죽음의 도시 케이팜에 도착한 그들은 미르 암살자들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을 찾았는데 우연찮게 거의 무너져 흔적이 남지 않은 신전 터에서 지하 비밀 장소를 찾았다고 한다. 그 비밀 장소에 몸을 숨긴 암살자들은 미르 어세씬 길드의 암살자들의 눈을 피했고 그들은 그래도 몰라 그곳에서 이틀동안 더 숨어 있었다고 한다. 지하에서 이틀 동안 지낸 암살자들은 호기심에 주변을 탐색하였는데 그것은 오래 전에 만들어진 곳으로 기다란 통로를 지나면 다시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다고 한다. 호기심에 젖은 한 암살자가 그 지하 2층으로 내려갔는데 내려가자마자 비명이 들리며 내려간 암살자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동료가 내려가려고 하다 경험 많은 리더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고 한다. 분명 아래에는 함정이 있을 것이고 이곳은 아무래도 던전 같다는 이유이다. 자신들이 함정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내려갔다가는 모두 죽음을 당한다는 그의 설명에 그들은 내려가서 소식이 없는 동료를 구하지 못한 체 그곳에서 나왔다고 한다. 던전이라는 것이 예로부터 마법사의 작업실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마법사가 뛰어날수록 던전의 규모는 무척 컸고, 그 마법사가 생전에 모아놓은 여러 가지 귀중한 것들이 보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의 보물이라든지 마법 물품, 마법서 등 어쩌면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돌아온 암살자들의 이런 얘기를 예전에 라미셀이 들어 호기심을 갖고 기억했다가 그곳에 가자고 한 것이다. 케이팜에서 돌아온 암살자들은 그후 그 던전으로 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원체 던전이라는 곳이 모험가들도 쉽게 뚫고 들어가기도 어려운데다 그들은 암살자들이지 탐험가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신전의 지하에 있다는 것은 마법사의 던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는 것이기에 별로 값어치가 나갈 물건이 없으리라 추측한 것도 한몫을 했다. 라미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무척 호기심이 동했다. 흔히 던전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마법사의 연구실쯤으로 알려져 있는데 신전 지하에 던전이 있다는 것은 무척 특이한 케이스이다. 아론의 말로는 케이팜이라는 곳은 원래 케루빔이라는 지명이었다가 시간이 흘러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케루빔은 고대어로 지식, 중재자라는 뜻을 갖고있는데 영계의 주인인 창조주의 호위를 맡고 있는 천사 중에 케루빔이라는 이름의 천사도 있다고 한다. 영계의 천사 케루빔은 지천사(智天使)라고도 불리는데 불꽃의 검이라 알려진 번개를 무기 삼아 성스러운 장소를 지키는 천사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나는 라미셀이 말한 곳이 천사의 이름을 본떠서 만든 도시명이라 무척 호기심이 동해서 일행을 재촉하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케이팜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삼일이 조금 지난 후였다. 5월의 화창한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죽어버린 도시 케이팜에 도착한 우리는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당황했다. 물론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라미셀의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마치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 한??도시의 분위기에 젖어 이곳에 왜 죽음의 도시로 알려졌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이곳 도시에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뒤쪽에서 가이가의 무미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이곳 도시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어버린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는 아무런 생명체의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 던전이라는 곳을 찾아야 겠군."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라미셀이 말했던 신전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성전(聖殿)이로군요. 이곳은 성전을 모시는 도시입니다." 신전을 찾으려고 하는데 왠 성전...? 그리고 성전을 모시는 도시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직까지 성전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고대에는 중간계의 인간들도 신계와 마계, 정령계, 영계에 대한 존재를 모두 알고있어 자신들을 창조한 것이 영계의 주인인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들을 창조한 창조주를 모시는 성전들이 많았는데 창조주라는 존재가 단지 영적으로 중간계 생명체의 삶과 죽음만을 관장하고 중간계에 그 모습을 발현(發現)하지 않자 시간이 흐르면서 창조주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차츰 그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반하여 신계와 마계, 정령계의 신족이나 마족, 정령등은 중간계에 가끔 현신(現身)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의 힘을 방출하자 무지한 인간들은 자신들보다 강한 신족이나 마족등의 힘에 감탄하여 그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창조주는 멀리하고 말입니다." 아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곳은 고대에 아마도 창조주를 섬기는 도시였나 봅니다. 지명도 창조주의 호위 천사중 하나인 케루빔의 이름을 빌렸고, 저기 보이는 저 흔적은 신계의 신들을 숭배하는 신전이 아닌 영계의 주인 창조주를 모시는 성전입니다." 아론이 말한 곳은 도시의 중앙에 위치에 있는 넓은 평지인데 지금은 폐허가 되어 주춧돌 몇 개만 덩그러이 남아있는 곳이다. 우리는 아론의 말을 따라 그곳으로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지하로 통하는 하나의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는 완전히 암흑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두웠는데 아론이 라이트(Light) 마법을 써서 빛의 수정구를 만들자 금방 우리는 어둠에서 해방되었다. 하기는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의 경우에는 빛이 없어도 어둠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마족이고, 나도 팔라딘의 경지에 오르면서 별로 어둠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라미셀도 어둠에 익숙한 암살자 출신이라 아론의 라이트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야 나았기에 우리는 아론이 만들어 놓은 빛의 수정구를 선두에 세우고 앞으로 전진했다. 예전 전설 속에 나오는 던전들의 대부분은 무서운 함정이 즐비하고, 던전을 지키는 몬스터들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1층이야 라미셀의 이야기로 보아 아무런 함정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재수 없이 상황이 바뀔수도 있는 것이라 나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기는 조심스럽게 접근 하다는 것이 거의 평상시와 비슷한 속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라미셀에게 우리의 진정한 정체는 알려줄 수 없어서 일행에게 본연의 능력을 숨기도록 명령했다. 솔직히 우리가 갖고 있는 힘 그러니까 나의 불사 능력이나 그랜드 마스터인 바이크의 검술 실력, 9서클 마스터인 아론의 마법 능력, 사신 로크의 사제인 마족 가이가의 힘은 라미셀이나 일반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무서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결코 인간으로는 생각되어지지 않는 능력이기에 나는 바이크에게는 갓 초입에 들어선 소드마스터 정도의 실력을 보이게 하였고, 아론에게는 7서클 유저, 가이가에게는 치유 능력과 죽은 자들을 움직이는 네크로맨서(Necromancer)의 능력만을 보여주도록 명했다. 그 정도도 솔직히 엄청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신전에 등록되어 있는 대륙에 있는 소드마스터의 숫자는 지금까지 모두 합해 열둘이다. 대제국 바빌론에는 황제의 동생이자 대공국 루시온의 공왕인 루시온 R 바빌론 대공을 필두로 모두 여덟이 있었고, 신성국가로 잘 알려진 쥬안 제국에는 제국 제일의 성기사이자 전쟁의 신 아슈르의 기사로 알려진 성기사 카들리안 아시르가 있다. 또한 제국에 맞서는 남부 대륙동맹의 수뇌라 할 수 있는 대륙 남부의 강자 시미르 제국에서는 신임 황제의 양자로 알려진 소드마스터 미카엘 토르스탄이라는 거물이 있었고, 동쪽 사막에는 사막 국가이자 용병국가로 알려진 레다스 왕국의 왕이자 소드마스터인 시굴트가, 남부 대륙동맹 소속으로 수많은 도시들이 모여서 만든 랑트 연방의 영웅으로 불리는 라그하임 피루첸도 전쟁의 신전에 등록된 소드마스터이다. 대제국 바빌론을 제외하고는 전쟁의 신전에 등록된 소드마스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모두 네 곳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도 결국에는 한 명의 소드마스터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소드마스터라는 존재는 엄청난 것이고 그런 소드마스터가 우리 파티에 있는 것이기에 그것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7서클 유저의 마법사는 또 어떠한가? 마법 왕국으로 알려진 테란트 왕국의 최고 마법사로 알려진 루안 실프레드는 8서클 마스터로 테란트 뿐만 아니라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외에는 아직까지 8클래스의 마법사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7서클 유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굳이 설명을 붙이자면 8서클 마스터 밑으로 대륙에는 7서클 마스터가 모두 일곱 명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마법왕국인 테란트에 네 명, 대제국 바빌론에 한 명, 남부 대륙 시미르 제국에 한 명, 북부 파미르 왕국에 한 명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7서클 유저는 지금까지 알려진 숫자로 모두 열 두 명이 있는데 그 중에 마법왕국 테란트에 일곱 명이나 있다고 하니 각 왕국에서 보유한 7서클의 마법사는 모두 합해서 8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희귀한 7서클 마법사가 우리 일행인 것이다. 네크로맨서의 경우는 또 어떤가? 언데드 몬스터에게 사악한 힘을 불어넣거나 죽은 자를 소생시켜 자신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진 네크로맨서는 흑마법사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능력은 가히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것이고 예전에 네크로맨서가 활발하게 활동했을 때는 살아있는 자보다 죽은 자의 전투가 빈번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능력의 네크로맨서라는 단서가 붙겠지만 그들의 능력은 결코 소드마스터나 7서클 유저에 비해 낮다고만 평가할 수 없다. 그만큼 네크로맨서의 능력은 무서운 것이다. 개인이 아닌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이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 군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1층은 라미셀의 말처럼 아무런 위험도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는 긴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막다른 곳을 발견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를 발견했다. 통로의 끝 쪽 바닥 부분에 보이는 통로는 시커먼 아가리를 내밀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데 라미셀이 얘기했던 그 암살자의 비명을 상기하고는 나는 조심스레 바이크를 내려보냈다. 그래도 몸빵으로는 바이크가 우리 중에서 가장 강했기에 그를 믿고 보낸 것이다. 밑으로 내려간 바이크에게서는 아무런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밑에 괜찮은 거야?" 나는 밑에 내려간 바이크에게 물었고 바로 바이크의 대답이 들려왔다. "밑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몇 개의 화살이 날아왔을 뿐입니다." 몇 개의 화살? 그게 별개 아니라고... 하기는 그 정도 실력이니 내가 믿고 내려보내기는 했지만 바이크가 툭툭 던지는 말을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도대체 그의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는지 의심할 수 도 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날아온 화살을 그것도 던전을 지키는 화살이라면 평범한 화살은 아닐 것이 분명한데 별개 아니라고 한다면 누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바이크를 선두로 세우고 2층으로 내려갔는데 처음 바이크에게 날아왔던 화살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함정도 없었다. 의외로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무수한 함정과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하 2층을 탐험했는데 긴 통로 제외하고는 별달리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3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뭔가 특별한 함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심리까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나도 던전이라는 곳에 대한 인식이 함정이 즐비한 곳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3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는 2층 통로의 거의 끝 부분 바닥 부분인데 두꺼운 석판으로 막혀있었다. 그리고 입구를 이루는 바닥의 석판에는 묘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그 모습이 특이하다. 얼굴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특이하게 등뒤로 네 개의 날개라 달려있는 두 존재가 이상한 모양의 궤를 양쪽으로 호위하듯 서있는 모습이다. 날개 달린 존재의 생김새는 마치 인간을 본떠서 그린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얼굴에 새겨져 있는 성스러움은 보통의 인간을 새긴 것이 아니었다. 마치 천사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케루빔의 모습입니다." 아론이 궁금증을 해결이라도 시켜주듯 나에게 말했고 나는 아론을 쳐다보았다. "영계의 주인인 창조주를 호위하는 천사중 하나입니다. 이곳 입구에 케루빔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이곳이 성전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케루빔은 계약의 궤를 지키는 천사로도 널리 알려진 존재입니다." "계약의 궤?"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나는 아론에게 물었고 아론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계약의 궤란 영계의 주인인 창조주가 고대시대 인간들의 왕에게 전해준 물건으로 초창기에 힘없고, 선량하기만 한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한 힘을 담았다고 알려져 있다. 계약의 궤가 도대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힘을 이어받은 인간의 왕은 한때 중간계 전체를 지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중간계 최고의 생명체로 알려진 드래곤조차 계약의 궤를 얻은 인간의 왕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니 그 계약의 궤라는 것이 어떤 힘을 갖았는지 과히 짐작할 수 있다. 그 계약의 궤를 지키는 것이 천사 케루빔이었고 고대 왕국이 멸망한 것은 창조주를 멀리는 인간에 분노한 천사 케루빔이 계약의 궤에 담겨있는 힘을 방출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케루빔의 모습이 새겨진 3층의 입구는 이렇게 해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들어가지?" 내 질문에 뒤쪽에 있던 가이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저 계약의 궤에 힘을 불어넣으면 됩니다." "계약의 궤에 힘을...?" 나는 오랜만에 입을 연 가이가를 쳐다보았고 가이가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인다. 나는 얼른 바이크를 쳐다보았는데 가이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영계의 힘을 갖고 있는 존재만이 입구를 열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전을 지키는 사제만이 이곳을 출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이가의 말에 나는 난처함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누가 영계의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바이크나 아론, 가이가는 모두 마계의 마족이고 나와 라미셀은 인간이다. 거기다가 솔직히 나라는 존재는 인간이지만 이계에서 온 존재이니 더욱 영계의 힘이라는 것을 갖고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했다. "료우만이 가능합니다. 세커니트의 힘을 불어넣으십시오." 내가 난처하게 있을 때 가이가의 슬며시 다가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는데 나는 놀란 눈으로 가이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얼른 라미셀을 슬쩍 쳐다보고 그녀가 혹시 듣지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다. 그런 나의 행동과는 다르게 가이가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불사의 힘 세커니트는 영계에서 보면은 아주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삶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곳에 불사라니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가장 자비로운 분이시기에 자신이 창조한 모든 생명체를 아끼십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을 반하는 세커니트는 영계에서 제 나름대로의 삶을 유지하는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불사의 힘 또한 영계의 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가의 말에 나는 바닥에 새겨진 석판에 두 세라핌이 지키고 있는 계약의 궤에 내 몸 안에 있는 세커니트의 힘을 서서히 불어넣었다. 물론 라미셀이 약간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뭐 가이가가 나에게 뭔가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것이다. 서서히 석판에 불어넣은 힘은 마치 무언가 내 몸 안의 힘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석판에 새겨진 계약의 궤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 광채는 조금씩 강해지더니 어느 순간 통로 전체를 휘감았다. 지하 3층은 장방형(長方形)의 100평 남짓한 규모로 계단에서 보면 정면으로 하나의 제단이 보였다. 안은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습기하나 없이 매우 건조하고 공기도 지상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이 마법이나 기타 다른 것을 이용하여 보호하고 있는 것 같다. 벽면에는 화려한 벽화들이 새겨져 있는데 인간들의 모습과 드래곤, 엘프, 드워프등 중간계 전체의 종족들에 대한 세세한 모습들이 보였다. 간간이 천사와 인간들의 모습들도 보였는데 아마도 고대 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 그림을 보았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큼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그림임에 분명하다. 그중 내 눈을 잡아끄는 그림들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왕처럼 보이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내가 3층 입구에 새겨져있던 천사 케루빔에게 하나의 궤를 받는 장면이다. 그 궤는 확인하지 않아도 계약의 궤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미노타우로스(Minotaur), 오우거, 트롤, 오크등으로 보이는 몬스터들과 인간들이 서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장면인데 아마도 몬스터들에게 인간들이 몰리는 장면으로 보였다. 패하는 인간들의 뒤에는 계약의 궤를 들고 서 있는 인간의 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왕의 등뒤에는 불의 칼을 들고 있는 천사 케루빔의 모습도 보였다. 다음 그림에는 인간의 왕이 계약의 궤를 여는 장면이 있는데 아마도 몬스터들에게 패한 인간의 왕이 최후의 방법으로 계약의 궤의 힘을 사용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계약의 궤라는 것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나는 바로 다음 그림을 확인하러 옆에 시선을 두었는데 아쉽게도 다음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훗..." 나는 아쉬운 웃음을 터트리고는 계약의 궤가 갖고있는 힘을 확인하지 못해 실망해서 벽화에 대한 관심을 접고는 장방형 석실의 전면에 있는 제단으로 향했다. 석실에는 벽화와 달랑 제단뿐이 없었기에 무슨 보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라미셀의 약간 풀 죽은 모습도 언뜻 보였다. "후후..." 나야 물론 보물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고 나도 인간인 이상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할지 몰랐다. 지금이야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또 나중에 재물에 맛을 들이면 정말 돈벌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몰랐다. 물론 지금이야 돈에 대해서 별로 구애를 받지 않아 석실에 보물이 없어도 그렇게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단 위에는 아무 것도 없이 달랑 하나 매우 작은 상자가 보였는데 하얀 백은처럼 생긴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상자는 정 육면체로 각각의 면에는 기묘한 모습이 새겨진 그림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매우 특이해 보인다. 각 면에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을 그렸다고 말할 수 없는 기괴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나는 이 상자가 우리가 처음 3층 입구로 들어올 때, 그리고 내가 조금 전에 보았던 인간의 왕이 들고있는 계약의 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계약의 궤인가? 창조주가 인간의 나약함에 불쌍히 여겨 스스로를 지키게 하려고 주었다던 창조주의 힘이 담겨져 있는 계약의 궤가 이런 곳에 숨어 있었다니... 나는 내 손에 잡힌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상자는 무척 차가 왔는데 특이한 금속의 면은 한 점의 흠도 보이지 않고 기괴한 문양만이 새겨져 있다. 맨 위쪽에는 마치 안개의 형상처럼 보이는데 두 눈이 있는 것이 악령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다른 면에는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묘한 인간의 모습도 보였고, 그 이외에 인간처럼 생긴 불꽃의 모습, 늑대를 닮은 인간, 거인처럼 생긴 인간, 모래 폭풍 속에 뚫고 서있는 난쟁이 등의 모습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내가 세심하게 그것들을 하나 하나 만지면서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상자입니다." 뒤에서 아론의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판타지에서 미스릴은 대단히 귀한 금속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곳 세계에서도 미스릴은 대단히 희귀한 금속으로 여타의 금속보다 강도도 강할뿐더러 라이칸드롭이나 언데드 계통의 사악한 생물체에게서 몸을 지켜준다고 해서 매우 비싸게 팔리는 금속이다. 들리는 말로는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열 배 이상 더 쳐준다고 하니 이 금속의 귀함은 말이 필요 없다. 그런 미스릴로 만들어진 상자라면 아마도 나의 예상이 맞을 것이 틀림없고 나는 그렇다면 창조주가 인간에게 전했다던 계약의 궤를 얻은 것이다. 나는 가슴은 두근두근 떨렸고 상자를 잡고 있는 손에 땀이 베었다. 아무리 내가 불사의 능력을 갖고 그랜드 마스터, 9클래스 마법사, 상급 마족등등을 거느리고 있고 중간계의 모든 마족을 다스릴 수 있는 마황의 권능을 가졌다고 해도 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존재이다. 물론 내 정체성에 대해 약간 고민을 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인간의 심성을 가졌음에 틀림이 없기에 보물이나 힘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감은 충분히 내게 남아있었다. "이것이 계약의 궤인가?" "맞아요. 저기 저 그림하고 매우 흡사해요." 옆에서 내가 들고 있던 상자를 자세히 살피던 라미셀은 언제 갔는지 한곳 벽화앞에 서서 그림을 자세히 살피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어떻게 열지?" 하지만 이번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되던 아론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이 계약의 궤에 대한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나마 영계에 대해 아론보다 더 자세히 알고있는 가이가를 쳐다보았지만 가이가 또한 그런 사실은 모르는 듯 고개를 흔든다. "이런..."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린 것인가? 계약의 궤라고 생각되는 상자를 얻었는데 그것을 여는 방법을 모른다니 아무런 흠도 없고 열 수 있는 방법도 알려져 있지 않은 상자라면 이것은 얻으나 마나가 아닌가?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라미셀이 어느새 다가와서 내 팔을 잡더니 말했다.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분명 방법은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잖아요." 그녀의 고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았고 언젠가는 이것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열지 못한다고 낙심하는 것은 너무 우스운 이야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챙기고는 더 이상 남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던전을 나가자고 일행에게 얘기했다. 계약의 궤로 생각되는 기이한 상자! 도대체 이것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고대의 인간의 왕이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이 상자는 나중에 내게 어떤 힘을 주는지 아니면 어떤 악연을 주는지는 나중에 생각해 볼일이다. 언젠가는 그 힘을 나에게 보여줄 터이니 말이다. 15장. 레드 블러드(Red Blood) ??"무슨 소리인가? 죽지 않았다니...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것인가?" 당혹한 음성으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인물은 이제 대략 50대 후반쯤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다. 약간 호리호리한 체격에 냉혹해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그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에게 지적을 받고 있는 인물은 사제 복장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라미셀을 죽이려다 료우 일행에게 쫓겨 달아났던 라미비아로 보였다. 라미비아는 고개를 숙이고 그 중년 사내의 호통을 들으면서도 아무소리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겁을 집어먹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자들이었어. 후커가 젊은 놈의 검에 의해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렀다. 신전의 사제들에 의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고 하더군." 라미비아의 말에 중년 사내는 놀란 눈으로 믿어지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라미비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후커가 당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젊은 애송이에게 말이야. 누가 후커를 상대에서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말이야?" 중년 사내는 아직까지도 절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질문을 던졌고 라미비아는 그의 물음에 짜증이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럼 내가 없었던 일을 꾸미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가뜩이나 청부에 실패해서 열이 받아 죽겠는데 그런 헛소리나 하다니... 거기다가 후커는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야. 신전의 사제 놈들도 고개를 흔들더군. 아마도 오늘을 넘기지 못한다고 해서 지금 마스터에게 어떻게 보고할까 고민중이란 말이야." 라미비아의 불평에 중년 사내는 그제서야 후커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놈들이 그렇게 강하다는 말인가? 젠장... 어떻게 그런 놈들이 엘프 계집 따위를 구하지? 그런 놈들이라면 최소한 일 국의 기사단장이나 아니면 무예 수련가가 분명할 텐데... 그런 천한 계집을 구하다니..." 중년 사내가 그렇게 투덜거리자 라미비아는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어찌 되었건 놈들의 품에서 그 계집을 죽이거나 아니면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자들을 입막음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꺼야. 물론 그 중에는 아마 당신도 들어가겠지!" 라미비아의 말에 중년 사내는 살기를 내보이며 말했다. "나뿐만 아니지. 너도 무사하지 못할걸..." "그러니까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계집을 죽어야 할 꺼야. 아니면 마스터의 손에 너는 죽음을 면치 못할테니..." 라미비아의 말에 중년 사내는 몸을 떨더니 너무 두려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평정을 되찾았다. "마스터께는 내가 모두 해결하겠다고 보고해라. 내 밑의 아이들을 모조리 풀어서라도 그 계집을 죽일 테니..." 중년 사내의 말에 라미비아는 엷은 미소를 보인다. "후후... 그럼 그대만 믿지. 레드 블러드(Red Blood)의 잠재력이 얼마나 되는지 이번에야말로 마스터께 보여드리는 계기가 될꺼야." 라미비아의 말에 중년 사내는 음흉한 미소를 보인다. 그의 미소 뒤에는 죽음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라미비아가 나가고 뒤이어 한 사내가 들어왔는데 그는 예전 라미셀에게 암살을 청부했던 연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로더라는 사내였다. 로더는 들어오자마자 그 중년 사내에게 인사를 하더니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 "마스터 어떻게 되었습니까? 후커라는 자는 안보이고 저 사갈 같은 계집에만 온 것 같은데... 일은 잘 해결이...?" 그런데 로더의 말을 빌리자면 이 중년 사내가 마스터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중년 사내가 라미셀이 속해 있는 어세씬 길드의 마스터인가? 로더의 물음에 사내는 인상을 쓰더니 말했다. "그 계집이 실패했다. 라미셀 그년이 살아있다고 하더군." 사내의 말에 로더는 놀란 눈으로 중년 사내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설마 그 계집을 살려 두었다는 말입니까? 아니 왜...?" "누군가 그 계집을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커라는 놈이 그 계집을 구한 사내놈에게 당했다고 하더군." 중년 사내의 말에 로더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 조금 전 중년 사내가 보여주었던 반응과 동일했다. "나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지만 라미비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인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가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중년 사내의 말에 로더는 놀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 계집을 처치하려고 했던 후커는 팔라딘 급의 검사였습니다. 그런 자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로더의 말에 중년 사내는 냉소를 터뜨렸다. "흥... 우리 길드내의 특급 암살자를 보내면 아무리 후커놈이 팔라딘이라고 해도 지옥의 강을 건너고 만다.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그의 말에 로더는 잠깐 두려운 얼굴을 보였는데 그는 조심스럽게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그럼 설마 그들을 보내시려고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그들은 저번 일 때문에 지하 감옥에 가두었는데..." 중년 사내는 로더가 말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았는지 인상을 찡그리더니 대답을 했다. "미쳤나? 그런 살인귀들을 보내다니... 그놈들은 우리 길드의 최후의 방패막이야. 그놈들까지 이일에 투입할 필요는 없다. 일만 더 확대될 뿐이야. 이런 일은 자일이 적당하다. 아주 조용하게 쉽게 끝내려면 말이야. 자일에게 이 일을 맡겨라." 중년 사내의 말에 로더는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자일에게 그 계집을 처리하도록 시키겠습니다. 자일이라면 저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아주 조용하게 끝내는 것이 자일의 특기이니..." 로더의 말에 중년 사내도 그의 판단에 만족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로더가 나가가 중년 사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자일이 실패하고 그놈들이 이 일에 투입되면 우리도 당분간은 숨어 있어야 할 꺼야. 그 살인귀들이 나서면 온통 피바다가 되고 말아. 그럼 우리는 이곳에서 영업을 하지 못하지. 아암... 제발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군." 그의 음성에 약간 두려움이 깃 든 것으로 보아 아마도 로더가 말했던 그들에 대해 매우 난감함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섣불리 투입시키지 못하는 그들 대신에 자일이라는 인물이 적임자로 파견되었는데 하여간 료우 일행에게는 길드 내의 특급 암살자가 다가오고 있음은 확실했다. 던전을 빠져 나온 우리는 라미셀의 의견을 받아 미르의 서쪽 국경이자 파미르 왕국의 접경 지대인 셀파라는 곳을 다음 목적지로 삼았다. 셀파라는 곳은 매우 작은 국경의 접경지대 도시로 인구가 모두 합쳐 천을 넘지 못하는 작은 마을이다. 라미셀의 말로는 이곳을 통해서 파미르 왕국으로 국경 검문을 통하지 않은 체 넘을 수 있다는데 라미셀이 미르 내에서 라미비아의 배신으로 현상 수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속일 필요성이 있었다. 우리는 낮에는 쉬고 밤에는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예상외로 라미셀을 잡으려는 미르 내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했기 때문이다. 상인 하나 죽은 것으로 한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힌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주엘 샤미르는 그만큼 미르 내에서는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죽었음이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라미셀을 잡기 위해 모든 군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 했다. 우리가 미르와 파미르의 접경 지대인 셀파에 온 것은 던전을 나온지 오일만의 일이다. 낮에는 쉬고 밤에만 이동했다고 해도 일반인이 아닌 이상 우리의 움직임은 대단히 빨랐고 예상했던 것보다 하루 일찍 셀파에 도착하고는 그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하얀 여우의 보금자리' 라는 매우 색다른 이름의 여관은 매우 친절해 보이는 주인 가족이 운영하는 곳인데 예전 미르의 라센 지방에서 묵었던 '여행자의 집' 보다 음식 솜씨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조그만 도시에 깨끗한 숙소와 깔끔한 음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한 이틀 정도 묵었다가 주변을 살핀 후에 국경을 넘자고." 나는 미르 전역에 붙어있는 현상 수배 포스터 때문에 약간 불안해 보이는 라미셀을 위로하고는 그녀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었다. 솔직히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잡으려고 움직이는 수천, 수만의 병사들을 보면서 누가 겁에 질리지 않겠는가? 하나같이 못 잡아서 안달이 난 자들이 도시 전역은 물론이고 길이란 길은 모두 막아서서 검문을 하고 있으니 쉽사리 이동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얀 여우의 보금자리'의 주인은 뚱뚱한 사십대 중년의 아저씨로 매우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를 대하였고 주인 아주머니는 꽤 깔끔한 음식으로 내 입맛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귀여운 딸은 이제 열 다섯쯤 되어 보이는 소녀로 제법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려고 여관에서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는 등 부지런해 보였다. 우리는 2층에 숙소를 정하고 국경 근처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라미셀의 대한 대단위 수배령 때문에 라미셀의 길드가 준비했던 탈출로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그 길드에 의한 배신이 거의 확실한 이상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라도 라미셀에 위해를 가하려고 덤벼들지 몰랐기에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했다. 여관에서 하루 밤을 묵은 후 일어난 우리는 아침 식사를 위해서 1층으로 내려갔다. 나나 우리일행은 라미셀을 제외하면 식사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서 여관에 묵을 때면 아침 식사를 하는 편이다. 거기다가 라미셀의 경우에는 음식을 꼭 먹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식탁에 앉은 우리에게 주인 아저씨는 아침 메뉴로 특식을 한번 먹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해서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한참 후 주인 아저씨가 가져오는 쟁반에서 매우 향긋하고 매콤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자 입안에서 침이 고였다. 고기 냄새에 매콤한 향내까지 풍겨서 사뭇 기대 되었다. 접시에 담긴 것은 역시나 잘게 썬 고기에 양송이와 몇 가지 채소를 얹은 것인데 코를 자극하는 냄새 때문에 입안에서는 벌써 빨리 넣으라고 야단이다. 침을 삼키며 가져간 고기 맛은 정말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맛있었는데 그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그 맛에 감동해서 빠른 동작으로 고기를 입에 넣었는데 옆에서 우리의 음식평을 기대라도 하듯 우리의 행동 특히 나의 행동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눈에 뜨였다. 나는 얼른 아저씨를 기대를 어기지 않고 물었다. "이것 참 맛있네요. 무슨 음식이죠?" 역시나 아저씨는 음식에 대한 것을 물어보기를 학수고대했는지 얼른 그 특유의 넉넉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로우스티드 립스(Roasted Ribs)라고 소의 가슴살을 잘게 썰어 우리 집 특유의 양념을 바른 후에 구워낸 음식이죠. 양념 때문에 생겨나는 매콤하고 향긋한 맛이 아주 일품이에요.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또 찾아오고는 하죠. 저의 아버님께서 개발하신 것인데 이런 변두리 도시에서 그래도 이만큼의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죠." 주인 아저씨의 긴 설명을 들으며 나는 아저씨의 말에 동감했다. 다른 음식은 몰라도 이 것은 정말로 다시 찾아오게 만들만큼 내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물론 하프 엘프인 라미셀의 경우에는 거의 육식을 하지 않는 관계로 로우스티드 립스를 먹지 않고 야채 샐러드와 과일 주스, 빵을 대신 했지만 그녀가 고기를 좋아한다면 한번쯤은 꼭 권해보고 싶은 음식이었다. 아침을 풍족하게 먹은 우리는 여관을 나와 시내를 둘러보았다. 라미셀의 경우에는 현상금 포스터 때문에 풍요의 여신 라르샤의 여사제 복장을 하고 모자를 눌러 썼는데 미르의 경우 라르샤를 믿는 신도들이 많아 라르샤의 여사제에게는 군인들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솔직히 아론의 공간 워프 마법을 이용해서 미르를 벗어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바이크나 아론은 벨제뷔트가 나 때문에 창조해낸 상급 마족이기에 이 중간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했다. 그들이 알고있는 것은 마계의 지식들이 대부분이기에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워프를 하려고 해도 좌표를 몰랐다. 뭐 라미셀의 경우에는 우리보다 중간계의 지형에 대한 지식은 폭 넓다고 해도 마법사가 아닌 이상 이동할 곳의 좌표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몰랐다. 마법사 길드에서 공간 워프를 위한 책자를 구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변두리 도시에서 그런 것을 팔 리가 없고, 만약 그 책을 구한다고 한다면 미르의 수도나 그 밖의 대단히 번성한 도시를 찾아야 하는데 그 책자 하나 구하려고 헤매고 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우리는 그냥 도보로 국경을 넘기로 했다. 셀파는 국경 지대의 작은 도시이고 인구도 천 명이 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국경이 인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처음에 이 작은 도시에 나타난 낮선 무리인 우리 일행을 보고는 호기심을 갖는 듯 하다가 우리를 모험가 파티쯤으로 여겼는지 이내 자신들의 생업에 집중했다. 우리는 별다른 성과 없이 오전 내내 도시를 방황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라미셀의 안내로 우리가 넘어야할 국경 쪽을 살펴보았다. 꽤 작은 산맥으로 막혀있는 그 곳은 미르와 파미르의 국경선으로 외길 하나뿐인데 각국의 국경에는 조그마한 검문소가 서로 있었다. 미르나 파미르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쯤이야 그대로 통과해도 문제는 없지만 내가 유의하는 것은 라미셀을 해하려는 암살자들이었다. 라미셀의 암살이 실패한 이상 그들은 성공 할 때까지 암살자를 보내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조금 늦어질지 몰라서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기에 어쩌면 그들은 우리 곁에서 기회만을 엿보고 있을지 몰랐다. 아직까지는 우리를 노리는 어떠한 위험도 없었지만 파미르에 들어서면 그 위험은 더 강해질 것이고 거기서는 긴장을 풀면 안됐다. 나나 바이크, 아론, 가이가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안심은 된다고 하지만 라미셀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녀는 하프 엘프였고 수명이 인간보다 길다고 해도 나처럼 불사신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긴장하고 그녀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오후 내내 몇 가지 상황을 염두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1층에 다시 모였다. 나는 아침에 먹은 그 음식에 반해서 다시 그것을 시켰고 라미셀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의외로 그 맛에 반했는지 모두 그것을 시켰다. 라미셀만 빵과 과일 쨈, 과일 주스를 시켰다. 나는 육식을 하지 못하는 엘프들에 대한 이야기를 판타지 책을 통해 접하기는 했지만 직접 그것을 보니 채식만을 주장하는 채식주의자들이 이곳에 와서 엘프들과 어울리면 아무 마찰도 없이 잘 살 것 같다는 망상을 하다가 그 매콤한 냄새에 얼른 고기를 집었다. 원래 우리 일행은 나를 주축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론의 경우도 내가 먼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것은 바이크나 가이가도 마찬가지고, 라미셀도 우리 일행의 그런 행동을 느꼈는지 먼저 먹는 경우가 없었다. 물론 라미셀을 의식해서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한번 굳어진 습관이라 고치기 힘든 모양이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식사가 늦었는데 그들은 아직까지 나를 의식해서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나 때문에 그런 거야. 기다리지 말라고 하니까..." 나는 너털웃음을 보이고는 얼른 고기를 입에 넣었다. 혀끝에서 감도는 그 매콤한 맛은 역시 일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 다른 재료가 들어갔는지 매콤한 맛 뒤에 느껴지는 시큼한 맛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맛이 조금 이상한데..."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라미셀의 비명이 들렸다. "료우! 얼... 얼굴이..." 라미셀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놀란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무슨 이야기인가 했다. 그때 아론도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료우! 독입니다." 나는 독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고 라미셀의 말로는 내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조금 전의 시큼한 맛이 아무래도 음식에 독이 첨가돼서 그런 모양인데 매우 반응이 빠른 독인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마나를 순환시켜 몸에 이상을 살펴보았는데 혈맥이 막히고, 근육이 서서히 굳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의 경우에는 독에 중독이 되지 않은 모양인지 얼굴에 붉은 반점이 없었고, 다행이 라미셀의 경우에는 멀쩡한 것으로 보아하니 아마도 내가 먹었던 로우스티드 립스에 독이 들어있는 모양이다. "큐어 포이즌(Cure Poison)" 나는 곧바로 독을 치료하는 마법을 나에게 걸었는데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서서히 굳어지는 몸의 반응에 나는 차츰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침침하고 정신이 몽롱한 것이 아무래도 대단히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는 독으로 보인다. 음식은 같이 먹었는데 바이크의 경우에는 그랜드 마스터에 근접한 마족이고, 아론은 9서클 마스터인 마족이고, 가이가는 사신 로그의 사제인 마족이고 보니 중독이 된 것은 나밖에 없는 모양이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가는 나에게 아론이 다가와서는 고위급의 치유 주문을 나에게 거는 모습이 보였는데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지 자꾸만 눈이 감긴다. 옆에 있던 가이가도 아론의 마법이 먹히지 않자 손을 뻗어 나를 향해 치유 능력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의 치유 능력도 이번만은 효과가 없는지 좋아지지 못했다. 바이크의 경우에도 마나를 이용한 치료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내가 독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음식을 건네준 주인을 찾았는데 그새 도망을 쳤는지 주인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프 엘프인 라미셀의 경우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기에 아마도 그녀가 먹지 못하는 고기에 독을 넣어 우리를 노린 모양이다. 그런데 중독 된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독을 넣은 주인은 놀라서 도망을 친 것이 분명했다. 내가 거의 의식을 잃어가자 라미셀은 놀라서 나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일행도 걱정스런 모습으로 나를 둘러쌓다. 물론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별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번씩 죽을 때마다 강해지는 나이기에 죽음은 나에게 있어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신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죽음을 좋아하지는 못한다. 거기다가 라미셀의 경우에는 내게 있는 불사의 능력을 몰랐기에 나는 그것을 숨기고 싶었다. 나는 내 자신의 능력을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 이유는 내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그것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내 유희를 들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여기서 내가 유희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불사의 능력을 갖으면서 삶에 대해 무척 관조적인 입장으로 바뀌면서 마치 드래곤이 유희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그런 입장이 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하여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나는 독이 치료할 수 없다면 죽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내 불사능력을 라미셀에게 보여주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리는 통에 얼른 아론을 불러 나를 옮기게 하고는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라미셀에게 보여주지 못하게 하고 따로 그녀에게는 다른 변명을 하도록 명령했다. 아마도 아론은 나를 치료한다고 하고 그녀를 당분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는 나의 부활을 기다릴 것이다. 내가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독에 어처구니없이 중독 되어 죽어버린 시간은 한시간이었다. 다시 살아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눈물로 범벅된 라미셀의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그녀가 정말로 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엷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다시 살아나면서 나는 내 자신이 또 한번 강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아마도 검술은 중급 이상의 실버 팔라딘 수준으로 올라갔고, 마법 능력도 그만큼 상승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 독에 중독 되어 죽었다는 사실에 나는 난감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 독에 중독 되어 죽었다면 다음 번에 같은 독 또는 다른 독에 중독 되어 죽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독에 조심해야 하는 것이고 항상 긴장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나 우리 일행의 경험이 적어 독에 당했다고 변명 할 수도 있지만 생명이 걸린 일이기에 그것은 결코 변명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독을 쓴 범인 즉 아마도 주인이 거의 확실하다고 추정되는데 그를 찾아서 독의 실체를 알아내고 나를 한번 죽인 범인에 대해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행방을 추적했다. 주인과 그의 가족을 찾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그들은 여관의 지하 한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지 오래였는데 넉넉한 웃음의 주인은 배가 갈라진 체 죽어있었고, 그의 부인은 그의 곁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변해있었다. 또 그들의 귀여운 딸은 손과 발이 묶인 체 하의가 처참하게 유린된 상태로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데, 목이 졸려 숨졌는지 목에는 검붉은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어린 소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피눈물을 흘린 상태로 혀를 깨물었는지 입안 가득 피를 머금고 있었고,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그들 가족 그리고 그 어린 소녀의 시체를 보고는 울컥하는 분노가 솟아올랐다. 이것은 조금 전에 내가 독에 중독 되어 죽었을 때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분노였는데 지금 범인이 이 자리에 있다면 정말 찢어 죽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만행... 그것은 예전에 라미셀을 구하려고 마음먹었던 그 여관에서 후커라는 놈이 했던 만행만큼이나 지독했다. 아마도 전에 우리에게 독이 든 음식을 대접한 자는 주인을 가장한 다른 자였음에 틀림없다. 그자는 이미 아침부터 이곳에 있었던 모양으로 우리가 아침에 먹었던 음식을 시킬 것이라 예상했는지 아니면 이곳의 별미가 그것이라 이미 만들어져 있던 것을 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심기가 무척 예리한 인물이 분명했다.?? 주인과 가족 시체로 보아 이들이 죽은지 한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여관에 오기 전에 주인 가족을 죽이고 우리를 기다렸다는 것인데, 주인을 가장하고 우리가 와서 바로 음식을 시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독을 쓴 것이 분명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음식을 시켰다면 그는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우리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음식이 나오기 전에 물 또는 다른 음료에 독을 넣어 마시게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라미셀도 중독이 될 수도 있었기에 나는 고기를 시켰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이들 주인 가족은 너무 불행했다. 그들은 억울하게도 우리 일행을 노린 자들에 의해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나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사람이 나로 인해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었다. 아니 일어 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내가 만약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기 무척 힘들겠지만 나는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렇다는 것은 이런 일이 또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독에 의해 나나 내 동료가 죽는 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희생되어지거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독 이전에 내가 풀어야 할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성자나 영웅도 아닌 이상에는 나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가 남 때문에 내 자신이 이용되는 것을 참고 지켜보는 성격도 아니고, 또 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구하는 그런 자비로운 성격은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이 알기 때문에 내려진 결론이다. 만약 내 자신을 희생하면서 저 가족을 구하겠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흔들 것이다. 그것은 내가 성자도 영웅도 아닌 단순한 인간의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얻은 결론이다. 내 자신을 희생하면서 만약 누군가를 구한다면 그것은 다른 타인이 아니라 내 가족이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한정될 것이다. 그것이 내 한계이고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도 될 수 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론은 주인 가족들이 죽은 장소에서 리멤버런스 오브 더 어스 마법을 시전해서 대지의 기억을 읽었다. 범인의 얼굴을 알아야 쫓아서 죽이던지 살리던지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는 지하에서 일어난 그 끔찍한 사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상대는 육십이 넘는 노인인데 근력은 젊은 사람보다 더 강인해 보이고 평범한 인상이다. 그자는 도시의 평범한 노인의 인상을 하고 있는데 몇 번 부딪쳐도 금방 잊어버리게 할만큼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저런 얼굴을 갖은 자가 암살자가 된다면 아마도 남들의 이목을 속이기 쉬울 것이다. 거기다가 늙은 노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일!" 라미셀은 아론이 시전한 대지의 기억을 보고는 놀란 외침을 질렀는데 아마도 그 노인을 아는 모양이다. "누군지 아는 거야?" 나는 놀란 눈으로 내 물음에 고개를 돌린 라미셀에게 그렇게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독에 중독 되어 죽기 전까지는 나는 그녀에게 존대를 했고, 그녀도 내게 존대를 했지만 독에 중독 된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진심을 안 나는 그녀에게 서로 말을 놓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물었고 그녀의 대답도 그렇게 들려왔다. "레드 블러드! 내가 속했던 길드의 이름이야. 그는 레드 블러드의 특급 암살자로 통해. 나도 몇 년 전에 딱 한번 봤는데 늙은 노인이라고 무시하면 큰 코 다쳐. 그는 매우 무서운 자야. 내가 다른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에게 죽은 자들 중에 팔라딘급 기사와 6클래스의 마법사도 다수 있었다고 했어. 늙은 노인이지만 그 잔인한 성격과 치밀한 살인 방법 때문에 길드의 마스터에게 신임을 받고 있어. 레드 블러드에서 가장 두려운 상대인 울프 삼형제에 못 미치지만 그 다음으로 손꼽히는 암살자가 바로 그야." "울프 삼형제?" 나는 그 노인의 잔인함보다 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레드 블러드의 울프 삼형제라는 자들에게 관심이 갖았다. 그녀는 내가 울프 삼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순간적으로 약간 몸을 떨었다. 그들이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도 그녀와 같은 암살자가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에 몸을 떤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아! 그건 나중에 얘기 해죠. 지금은 이자를 처리하는 것이 첫 번째이니..." 나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는 그녀에게 두려움 같은 것을 주고싶지 않아 더 이상 그 울프 삼형제에 대한 것은 물어보지 않고 우선 그 자일이라는 노인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자일이라는 암살자는 자신의 암살이 실패했다고 해도 포기하고 돌아갈리 만무했다. 그는 성공할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암살을 시도할 것이고 지금도 어디서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노릴 것이 분명했다. 팔라딘급 이상의 검사라면 주위의 살기 같은 것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팔라딘급의 기사를 암살했다는 것은 그에게 충분히 살기를 감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 그자와 같은 특급 살수의 경우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살기를 감추는 능력이 탁월하다면 굳이 우리가 그를 찾아 나선다고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얼굴을 알고 있으니 잡기 쉽지 않느냐고 물어보겠지만 그 자도 충분히 우리에게 마법사가 있고 그렇다는 것은 마법을 이용해서 범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독에 죽을 것이라 방심하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지하에서도 자신의 본 모습을 내놓고 살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주인의 얼굴로 우리에게 왔을 때 그가 가짜라는 사실을 우리가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의 변장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분명 변장을 하고 우리 주의에서 감시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도달한다. 찾아서 그를 잡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일단은 자일이라는 특급 어세씬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했지만 나는 놈들의 허를 찌르기로 마음먹었다. 그 방법으로 내가 택한 것은 자일이라는 특급 암살자를 보낸 레드 블러드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노리는 살수들을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기다리는 것도 내 성격에 안 맞거니와 우리 일행 때문에 죽은 주인 가족의 복수 때문이라도 자일 하나 갖고는 성에 안찼다. 아니 주인 가족의 복수라는 그런 알량한 이유보다 나와 우리 일행을 위해서 우리를 죽이기 위해 암살자들을 계속 파견할 것이 분명한 레드 블러드 자체를 붕괴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가 자일이라는 특급 살수를 죽인다고 해도 레드 블러드라는 그 암살 조직은 다른 암살자를 우리에게 보낼 것이 틀림없다. 어세씬 길드는 한번 목표한 자는 그 자가 죽을 때까지 암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자들의 암살을 피하려면 오직 두 가지 밖에 없다. 그자들에게 죽던지 아니면 그 조직 자체를 모두 몰살을 시키던지...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미안한 일이지만 떨고 있는 라미셀을 앞장세워 그녀가 한때 속했던 레드 블러드라는 암살 조직의 본거지를 덮치기로 했다. 라미셀의 말로는 레드 블러드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어세씬 길드로 파미르 왕국에서도 그 규모로 따지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길드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길드 마스터는 보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인물로 50대 후반의 중년 사내이고 무척 잔혹하고 한번 목표를 정한 사냥 물은 절대 포기를 하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레드 블러드 암살 길드에 소속된 어세씬의 숫자는 정규 어세씬만 대략 100여명이 조금 넘는데 그 중에서 자일 정도의 특급 암살자는 라미셀이 두려워하는 울프 삼형제를 제외하고 2명 정도가 더 있고, 라미셀과 같은 1급 암살자의 숫자도 40여명을 상회한다고 한다. 그 밖에 길드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길드 마스터의 명령에 움직이는 인간 사냥꾼들이 대략 200여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는 대단한 것이다. 우리는 레드 블러드의 본거지로 알려진 파미르 왕국의 로암시를 목표로 정하고 미르의 국경을 넘기로 했다. 자일이라는 암살자가 우리의 주변에 맴돌고 있지만 그 자도 아마 우리가 빠른 속도로 자신의 본거지인 로암으로 향하는 것을 느낀다면 보고만 있지 않고 기회를 노려 달려들 것이 분명하다.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적을 초조하게 만들어 성급하게 달려들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리했다. ??레드 블러드의 마스터 보른은 자일에게서 온 소식을 듣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일 정도의 특급 암살자라면 이번 일을 간단하게 해결해 주리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암살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도 못마땅한데, 지금은 되려 자신들이 먹이로 정한 먹이 감이 자신들을 목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일도 이제는 늙었나?" 보른은 자신의 충복인 로더를 불러 푸념을 했고 로더는 자일의 첫 번째 암살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약간 고심을 하는 눈치이다. 거기다가 그들이 자신들의 길드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자신들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인데 왠지 불안했다. 물론 자신이 속한 레드 블러드가 겨우 다섯 명의 여행자들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불안한 것이다. 그런 불안한 생각에 젖어있는데 보른이 자일에 대해 물어보자 로더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스터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일이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우리 길드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놈들의 실력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모양입니다."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아. 놈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그만큼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놈들을 잡았어야 했어." 보른의 말에 로더는 입을 다문다. 보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암살자가 적이 강하다고 실패했다는 변명을 하는 것은 우스운 말이다. 만약 적이 약하다면 뭐하러 힘들게 암살을 하겠는가? "일만 더럽게 꼬이고 말았어. 그 계집을 희생양으로 보내자고 자네가 제의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틀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계집의 미모 때문에 그 년을 돕는 모양인데 그 때문에 우리만 우습게 되버렸어." 보른의 말에 로더는 자신이 막무가내로 주장하여 라미셀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기에 고개를 숙인다. "하여간 이번 일이 이렇게 계속 지체된다면 우리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어. 한시라도 빨리 놈들을 처리하고 일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해. 일이 늦어지면 그분께서 아마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시지는 않을 거야." 보른은 이 한마디를 던지면서 약간 두려움에 젖어 있는데 파미르 왕국의 최고 암살자 길드로 알려진 레드 블러드의 길드 마스터 보른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대단히 궁금해 졌다. 로더의 경우에도 보른이 이야기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아는지 두려움에 잠긴 모습이다. 도대체 그들이 이렇게 두려워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자일이 혼자서 처리하기 매우 곤란한 모양이니 조금 도움을 주어야겠습니다. 헌터(Hunter)들을 풀어서 놈들을 공격하게 한다면 아마 자일이 암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그래도 자일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을..." 로더가 말하는 최후의 수단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보른은 조금 전부터 더 인상을 찌푸린다. 그들만은 꺼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일도 안 된다고 한다면 최후의 수단을 강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놈들을 풀고 싶지는 않지만 자네가 실패하면 그렇게 해야겠지. 물론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한 이, 삼 년은 푹 쉬어야 할거야. 왕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잡으러 다닐 테니..." 보른의 말에 로더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번 일은 자네가 시작했으니 자네가 알아서 끝내도록 해. 자일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던 아니면 다른 놈들을 불러서 처리하든 말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하면 자네의 생사는 나도 장담하지 못할 꺼야. 나는 실패자는 용납을 못하거든." 보른의 말에 로더는 움찔했다. 길드 내에서 보른의 제일 심복인 그라고 해도 보른의 분노는 감당하지 못한다. 아무리 제일 심복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 가차없이 죽이는 자가 그의 주인인 마스터였다. 로더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비장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맡겨 주십시오. 이번 일도 실패하면 제 목을 마스터께 바치겠습니다. 결코 두 번의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로더의 말에 보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길... 그분께 어떻게 이번 일이 늦어졌는지 설명하려면 머리가 터지겠군. 하필이면 이렇게 중요한 일이 차질을 빗다니... 아무래도 신임을 받기에는 글렀군." 그의 넋두리에 가까운 말을 들으며 로더는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방을 빠져 나왔다. 이제는 자신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면 자신은 마스터의 손에 죽을 것이 분명했기에 로더의 눈은 붉게 물들었다. "으득... 그 계집년이 끝까지 내 발목을 잡아 버리는군. 그래서 이번 일의 희생양으로 그년을 택했는데 끝까지 말썽을 부리다니... 죽일 년..." 로더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미셀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이를 갈았다. 알게 모르게 길드에서 상관인 자신을 무시했던 라미셀의 태도에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로더는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 희생양으로 라미셀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마스터의 반대도 있었지만 자신의 현란한 언변으로 마스터를 설득시키고는 모든 것이 자신이 계획했던 것처럼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라미셀이 살아나면서 그의 계획은 갑자기 틀어져버려 일이 더럽게 꼬이고 말았다. 믿었던 자일마저 첫 번째 암살을 실패하면서 이제는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번 일이 해결된다고 해도 만약 마스터가 그분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그분의 손에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로더는 더욱 불안했다. 미르의 국경을 넘어 파미르 왕국으로 넘어온 우리들 앞에 낮선 자들이 손에 무기를 꼬나 쥐고 나타난 것은 파미르 왕국을 넘어 온지 이틀만이 일이다. 저마다 특색이 있는 무기들을 하나씩 들고 나타난 자들의 수효는 대략 50여명이 넘었다. 하나같이 살기가 가득 찬 눈으로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데 라미셀의 말로는 길드의 명령을 받는 인간 사냥꾼이라고 한다. 사람을 사냥하는 인간 사냥꾼이라는 말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료우! 어떻게 할까요?" 전면에 늘어선 인간 사냥꾼과 대치하고 있을 무렵 아론이 내게 물었다. 솔직히 우리는 아직까지 인간을 죽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인간에 대한 살인 의지가 없어서 가능했는데 우리가 살인을 한 것들은 대부분 지능이 낮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몬스터가 대부분 이었다. 인간의 경우에는 내가 애써 살인 의지를 자제하고 상처를 입히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는 살인은 결국 습관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내가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오크라는 존재를 죽였을 때 느꼈던 감정 때문이다. 내 검에 의해 피가 튀고 더운 김을 내뿜으며 내장을 흘리고 죽어 가는 오크를 보면서 저승의 강을 건너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한참이나 꼼짝도 못했다. 그 잔인한 모습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었다는 충격에 석상처럼 꼼짝하지 못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처음 살인이 어려웠던 것이지 두 번 째의 살인은 처음보다 덜 충격적이었다. 아니 오히려 얼굴이 갈라지고 시뻘건 뇌수를 쏟는 광경에도 나는 묵묵하게 참으며 살인이라는 행위를 계속했다. 살인이라는 것이 그러했다. 처음 살인을 하면 몸이 떨리고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처음의 그 살인에 대한 공포가 잊어지면 언제부턴가 살인에 대한 쾌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피를 보면서 피어오르는 흥분과 비릿한 혈향(血香), 죽으면서 내뱉는 비명이 자신도 모르게 살인을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살인이라는 습관에 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이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살인 의지는 무척 자제했는데 여관에서 일어난 그 끔찍한 영상은 내 의지를 바꾸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끔찍한 살인을 무슨 재미쯤으로 여기는 자들에게 나는 관용이라는 것을 보이기도 싫었고 내 살인 의지를 자제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무엇인가 그들에 대한 억제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여관의 그 끔찍한 모습 때문에 충격을 받고 그들에 대한 복수를 빌미로 내 가슴속에 품고있는 살인의지를 충동질하는 것 일수도 있다. "죽여. 이 시간 이후로 레드 블러드라는 어세씬 길드는 대륙에서 지워버리겠다." 나의 강렬한 의지가 섞인 말을 듣자 바이크는 그 특유의 전투적인 기질을 발산하면서 바스타드 소드를 등뒤에서 뽑으며 전면으로 나섰고, 아론은 공격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가이가의 경우에는 거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그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공격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처 참가할 여유를 바이크나 아론이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가이가의 경우에는 내 뒤에서 그냥 가만히 구경만 하는 정도로 아무런 공격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인간 사냥꾼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 머뭇거리던 라미셀도 내가 죽이라는 말을 하자 마치 심성이 바뀐 사람처럼 석궁에 화살을 매기더니 매서운 눈으로 전면의 그들을 주시한다. 나는 라미셀의 행동을 보면서 그녀의 성격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은 것이 있었다. 라미셀은 평상시 보통의 인간 여자처럼 행동하는 편인데 다소 활달하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세씬이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매우 심성이 고운 편이다. 불쌍한 자들을 보면서 눈물을 떨구는 경우도 종종 있고 죽음이라는 것에 그렇게 친숙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전투가 일어나면 그녀는 마치 딴 사람처럼 성격이 바뀌는데 평상시의 그 활달하면서 연약한 모습은 사라지고 전형적인 전사의 기질과 살인에 대한 냉혹한 의지를 표출한다. 살인에 대해 친숙하지는 않지만 절대 살인을 피하지 않고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목표에 대한 끈질긴 집착력까지 보였다. 마치 양면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녀의 어두운 과거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우리가 자세를 잡고 대응하려고 하자 레드 블러드가 보낸 인간 사냥꾼들은 저마다 우리의 기세에 압도당한 모습을 보이다가 누군가의 함성이 계기가 되어 두려움을 이기려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처음 공격을 날린 것은 아론이었다. 솔직히 아론의 실력이라면 저기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50여명의 인간 사냥꾼들은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내가 아론에게 제 실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게 하였기에 그는 7서클 유저로 불 속성의 공격마법을 펼쳤다. 인간 사냥꾼들도 우리에게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뭉쳐서 한꺼번에 아론의 밥이 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고 서로 간격을 넓혀 포위하듯 달려들었다. 아론이 처음 날린 마법은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로 순식간에 전면에서 달려오던 한 무리의 앞에 화염구가 날아가더니 몇몇 자들의 앞 대지에서 폭발했다. 순식간에 폭음이 들리며 커다란 구덩이가 나타났는데 그 여파로 화염이 사방으로 퍼지며 두, 세 명의 사내들이 화염에 의해 불꽃의 먹이로 변했다. 시뻘겋게 타오르며 뜨거운 열에 괴로워하며 익어 가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보면서도 인간 사냥꾼들은 결코 머뭇거리지 않고 달려드는데 그들도 마법사에 의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론의 파이어 버스트는 다시 두 번이나 더 인간 사냥꾼들의 무리 속에서 폭발했는데 그 여파로 5-6명이 죽거나 심한 화상을 입었다. 아론의 공격과 함께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라미셀의 화살도 빠른 속도로 날아가 희생자를 만들었다. 그녀는 엘프 특유의 뛰어난 궁사로 한발에 하나씩 상대의 숨을 끊어 놓았다. 아론의 파이어 버스트로 십여 명이 죽을 쯤에 그녀의 활에 5-6명의 인간 사냥꾼들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어느새 인간 사냥꾼들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 일행에게 달려들어 선두에서 달려오던 자가 제일 앞에 있는 바이크와 부딪쳤다. "차아앙~" 무섭게 질주하며 달려드는 기세로 검을 있는 힘껏 내려치던 자는 바이크의 검에 막히면서 검기가 실린 바이크의 검에 의해 통째로 자신의 검이 바수어지면서 바스타드 소드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달려들던 기세만큼이나 부딪치는 힘에 의해 목이 날아간 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체 목을 잃은 몸은 앞으로 두, 세 걸음 내달렸다가 쓰러졌고, 머리는 저만치 땅을 굴렀다. 바이크의 검에 의한 첫 번째 희생자였다. 바이크는 첫 번째 상대를 단 한 수에 죽이더니 뒤이어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먹이를 덮치는 성난 이리처럼 매서운 바람을 일으키며 뛰어들어갔다. 마치 양떼를 공격하는 한 마리 이리처럼 피를 잔뜩 머금은 바스타드 소드는 한번에 하나씩 상대의 목숨을 끊었다. 바이크가 인간 사냥꾼들의 목숨을 빼앗을 때 나도 뛰어드는 자와 부딪쳤다. 예전에 후커와 같은 팔라딘 급의 실력을 가진 검사는 아니지만 그만큼 죽음에 대해 익숙해져 있는 상대와 싸운다는 것은 매우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강한 상대를 만나 싸우는 것보다 살인에 익숙한 자와 싸우는 것이 어쩌면 더 부담이 된다. 강하다고 해서 사람을 잘 죽인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살인에 익숙하지 않으면 상대를 죽일 기회가 생겨도 선뜻 상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전투에서 머뭇거린다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아무리 강해도 죽음에 대해 익숙하지 못하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날카로운 검 끝을 세우며 내 목을 노리는 상대의 검을 몸을 틀며 피하고는 서슴없이 검을 휘둘렀다. 아론에 의해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가 영혼마져 소멸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공간에 소울 스워드를 넣어 두었다. 아무리 내가 분노로 인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죽인다고 해도 그 영혼마져 소멸시키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인간을 향해 소울 스워드를 빼어 든다면 그는 정말로 구제하기 힘든 아니 그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야 할 최악의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수련 시에 사용했던 검을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상대의 검을 피하고 그 자의 허리를 베어 나가자 나와 부딪친 자는 그나마 전투 경험이 풍부했는지 휘두른 검을 비껴 내리치며 내 검을 막았다. 처음 상대 치고 제법 전투에 익숙한 자를 만난 것이다. 그자가 어렵지 않게 내 공격을 막았지만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지체없이 우측으로 턴을 돌면서 상대의 좌측 허리를 베어버렸다. "커억" 내 공격을 막았다고 안심하던 그 자는 등뒤로 돌면서 휘두른 내 검에 보기 좋게 베어져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더니 생을 마감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살해한 순간이었다. 물론 영혼의 검을 통해 후커를 상대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었기에 이번이 나에게는 처음 살인을 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명과 함께 물씬 풍기는 뜨거운 혈향이 코끝을 찌른다. 하지만 이 순간에 나는 머뭇거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바로 뒤에서 달려드는 자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싸움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상황은 예상보다 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바이크의 경우에는 마치 양떼들 사이를 누비는 노련한 맹수처럼 여기 저기서 그 무서운 발톱을 휘두르는데 순식간에 덤벼들던 인간 사냥꾼들은 하나 하나씩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론은 적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발 물러섰고 라미셀의 경우에도 뒤로 물러선 체 나와 바이크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나는 지금 두 명의 상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인데 한 명은 우람한 체격에서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두터운 그레이트 소드(Great Sworrd)를 휘두르고 있는데 지금까지 상대한 자들과는 다르게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자들과 달리 약간 작은 체구에 특이하게 보이는 시미터(Schimitar)를 들고 맞서고 있는데 조금 어설픈 동작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레이트 소드는 양쪽에 날이 붙은 폭이 넓은 장검으로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신속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 자는 원천적으로 힘이 장사인지 그 무거운 그레이트 소드를 장난감 다루듯 휘두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실력도 출중한 것이 아마도 이자들 중 상위급에 속하는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미터를 들고 있는 사내는 약간 경험이 미숙한지 어정쩡한 자세로 덤벼드는데 그의 실력이 미숙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나는 그레이트 소드를 들고 달려드는 사내에 집중하였다. "휘익" 바람을 가르며 허공 위를 가르는 검을 고개를 숙여 피한 나는 나를 공격한 사내의 복부를 겨냥해서 검을 휘둘렀는데 그자는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아직까지 내 경험이 미숙하여 능숙하게 상대를 하지 못하는 단점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었다. 시미터를 든 사내는 나와 그레이트 소드를 든 사내와의 대결에서 내가 약간의 허점만 보여도 달려드는데 아직까지 그의 실력이 다른 자들에 비해 못 미쳐서 안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장내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50여명이 넘었던 인간 사냥꾼들은 거의 대부분 땅바닥에 누워있는데 바이크를 둘러싸고 있는 네 다섯 명과 나를 상대하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저승의 강을 건너고 있는 상태였다. 바이크야 뭐 별 신경도 쓸것이 없었고 나와 상대하는 자도 노련하기는 하지만 상대할 바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큰 부담은 없었다. 일단은 이 자들을 끝장내고 장내를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나는 바로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비껴 치듯 검을 휘둘렀고 그레이트 소드를 휘두르는 상대는 내 공격에 우측으로 턴을 돌면서 내 허리를 노렸다. 순간적인 상대의 반응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노리던 함정이었다. 나는 그가 턴을 돌자 바로 기다렸다는 듯 검의 방향을 바꾸면서 상대의 목을 노렸다. 상대는 내가 갑자기 검의 방향을 바꾸자 미처 검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놀란 표정으로 굳어졌다가 목이 베었다. 실 날 같은 금이 상대의 목에 새겨지더니 그의 부릅뜬 눈은 서서히 굳어지고 가는 금 사이로 시뻘건 혈화(血花)가 피어오르더니 벌어진 틈새로 피가 솟구쳤다. 마치 세찬 수도꼭지를 튼 듯 조금씩 흐르는 피는 서서히 그 양이 폭발하듯 늘어나는 것이 기괴롭다. 순간적으로 멈춘 사내는 서서히 무너지듯 뒤로 쓰러졌다. 실력이 높은 자를 어렵지 않게 처치하였기에 남은 상대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나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시미터를 든 사내를 노려보았는데 그자의 눈빛은 이미 공포 때문에 전투 의욕을 상실한 표정이다. 간단한 동작만으로 충분히 그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도 예상하지 못한 그자의 움직임이 있었다. "헉..." 미처 말을 뱉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복부를 꿰뚫은 시미터를 보면서 믿지 못하였다. 복부를 관통한 검에 화끈한 고통보다도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에게 일어났는지 믿을 수 없는 충격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료우..." 비명을 지르며 내 이름을 부르는 라미셀의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빌어먹을... 너무 방심했다.' 내게는 무척 긴 시간처럼 느꼈지만 그것은 매우 찰나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검을 휘둘러 시미터를 잡고 있는 상대의 팔뚝을 노렸다. 그자는 내 움직임을 간파했는지 뒤로 훌쩍 물러나며 히쭉 미소를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여태까지 놈이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번에는 살기 힘들 것이다. 네놈이 여관에서 아라크의 독을 어떻게 피해 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만은 절대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칼에 섞인 것은 어둠의 눈물이라 불리는 다크 티어(Dark Tear)... 절대 해독이 불가능한 놈이지. 운이 좋아 복부의 상처를 치료한다고 해도 그 독만큼은 해독이 불가능하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 자가 자일이라는 특급 살수임을 깨달았다. 놈은 우리 일행이 무척 강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일행 중 제일 만만해 보이는 나를 먼저 노린 것이 틀림없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치는 나를 향해 아론과 라미셀이 달려왔다. 저쪽에서 다섯 명과 싸우던 바이크는 내 상태를 파악했는지 순간적으로 다섯을 한꺼번에 베어버리더니 달려왔다. 자일이라는 자는 곧바로 자신이 이곳에서 너무 올래 머물렀다는 실책을 생각했는지 바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하지만 그를 무사하게 보낼 만큼 만만한 상대는 우리에게 없었고 제일 먼저 선수를 친 것은 나로서도 의외였던 가이가였다. 무엇인가 중얼거리던 가이가의 모습과 함께 자일의 앞에 어둠이 스며들더니 시클(Sickle)로 보이는 커다란 낫을 든 자가 나타나더니 자일을 두 동강이 내버렸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특급 암살자 자일도 미쳐 피하지 못했고 지켜보던 나와 라미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둠의 사제 사신 로크의 신관답게 가이가에게도 특수한 공격 방법이 있었고 그것이 지금 이렇게 시연된 것이다. 나를 두 번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일의 최후를 보면서 나는 서서히 의식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어둠의 눈물 다크 티어가 도대체 어떤 독인지 모르지만 그전에 여관에서 썼던 아라크의 독이라는 것도 막지 못해 한 번 죽었던 나에게는 이번 독도 힘들어 보였다. 이번에는 라미셀의 눈도 피하지 못할 것 같다. 그녀도 다크 티어라는 것이 어떤 독인지 알고있는지 절망에 가득 찬 눈으로 눈물만 가득 차 있었다. "비키십시오." 그때 자일을 처리한 가이가가 라미셀을 비켜 세우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입에 넣었다. 약간 쓴맛이 혀끝을 맴도는데 그것 때문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대륙에서 다크 티어가 해독하지 못하는 독으로 알려졌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해독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그 자가 처음 여관에서 사용했던 아라크의 독이라면 몰라도 이 다크 티어라면 충분히 해독할 수 있습니다." 가이가의 말에 일행은 안심을 했고... 뭐 솔직히 안심을 한 사람은 라미셀 혼자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내가 죽어도 부활함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크게 근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죽는 것을 무척 싫어함을 알고 있기에 근심했던 것이다. 물론 나로서는 내 비밀이 라미셀에게 밝혀짐을 두려워했기에 가이가가 자일이라는 사내가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던 다크 티어의 해독이 가능하다는 소리에 안심을 했다. 물론 다크 티어라는 독만이 내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복부를 관통하고 있는 자일의 시미터도 내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일단은 다크 티어라는 독에 대해 해독이 가능하다는 소리에 아론은 곧바로 복부를 관통한 시미터를 뽑고는 회복 마법을 외치면서 내 상처를 치료했다. 그의 회복 마법은 가이가의 치유 능력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듯이 빠른 상처 회복을 가져왔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를 노리던 자일이라는 특급 암살자의 마수를 벗어났고 그를 죽여 여관 주인 가족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거의 죽을 뻔했던 불행한 사건은 빼고 말이다. 나는 레드 블러드를 가만히 나둘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며 복부의 상처가 치료되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에 그자들의 씨를 말리리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 16장. 레드 블러드의 최후 ??"실패?" 레드 블러드의 마스터 보른은 불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자신에게 보고하는 로더의 말을 듣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되는대로 집더니 힘차게 던졌다. "크윽..."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로더는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아니 피할 수 있어도 결코 피하지 못했겠지만 하여간 이마가 깨지는 충격을 받으며 신음을 흘렸다. 붉게 물든 이마에서는 바닥을 적시는 선혈이 뺨을 타고 떨어졌고 눈가는 자신의 피로 물들었다. "죽여주십시오. 마스터!" 로더는 엎어지며 머리를 조아렸고 보른은 화를 참지 못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로더에게 달려들더니 발길질을 하였다. 열이 바친 보른의 발길질에 로더는 저만치 굴러갔고 아픔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섣불리 신음을 토할 입장도 아니어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병신 같은 새끼... 그까짓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씩씩거리는 보른은 정말 성질 같아서는 지금 앞에서 죽음을 구하는 로더의 목을 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로더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나마 길드내에서 로더만한 유능한 자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번 일만 실패했을 뿐 여태까지 자신이 명한 일은 한번의 실수없이 모두 깔끔하게 처리해 왔기 때문에 아까왔다. 거기다가 지금은 자일이라는 특급 암살자도 죽어버린 상태에서 한 명이라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냥 죽이자니 한 놈이라도 물고 죽게 만드는 것이 유리했다. 보른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화를 가라앉히고는 소리쳤다. "일단 길드내에 쓸만한 놈들을 모조리 풀어서라도 그놈들의 행로를 지체시켜라. 그리고 너는 빨리 지하 감옥에서 그 미친놈들을 불러라. 그 놈들밖에 이번 일을 해결할 존재가 없으니..." 보른의 말에 엎어져서 용서를 구하던 로더는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가 지하 감옥에서 그 미친놈들을 데려 오라는 이야기에 얼굴 색이 하얗게 변했다. "마스터... 그들을 정말 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일단 목숨은 건졌기에 위기는 모면했지만 지금 마스터의 말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알고있는 로더는 보른에게 그렇게 물었고 보른은 이를 악물더니 외쳤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네놈이 실패한 덕분에 이런 최악의 결과까지 오고 말았는데... 그래도 우리 목숨만은 건져야 할 것 아니냐? 만약 이번에도 놈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그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분께서 용서를 하지 않으실 것이다." 보른의 말에 로더는 끔찍한 상상을 떠올리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분의 분노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지켜본 적이 있는 로더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장면을 연상하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미친놈들 때문에 우리가 4-5년 지하에서 숨어 살아야할지 몰라도 이번에야말로 놈들을 처리해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우리의 무능함을 그분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보른의 말을 귓가로 흘리며 밖으로 나온 로더는 얼굴을 적신 선혈을 닦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길... 그 미친놈들과 대면해야 하다니..." 그로부터 한참 후 로더가 모습을 보인 곳은 지하 감옥의 통로인데 퀘퀘한 냄새가 진동하고 곰팡이와 습기로 가득 차서 당장이라도 귀신과 같은 존재가 나올 듯 한 곳이었다. 길드 내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감옥답게 공포스런 암흑이 지하 감옥을 감싸 돌았고 숨이 막힐 듯 한 긴장감에 온몸의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만들었다. "크르릉..." 바람 소리인지 아니면 귀신의 울음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상한 소리가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로더의 귓가를 울린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짐승의 울부짖음 일수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로더는 알고 있었다. 그 괴이한 소리는 정말 로더의 온몸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결코 오고싶지 않은 곳이야. 마스터의 명령만 없었다면..." 로더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하의 통로를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데 중간 중간에 조그마한 불빛을 비추는 햇불이 없다면 정말 지나가기도 두려운 곳이었다. 이곳 지하 감옥에는 어느 누구도 경계를 서지 않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크르릉..." 그 이상한 소리는 로더가 앞으로 걸어갈수록 더 심해졌고 심하고 역한 냄새가 로더의 코끝을 찌른다. 로더는 지금 자신이 하려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있었다. 마스터의 명령만 아니라면 정말로 이런 짓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걸었다. "우욱..."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로 역한 냄새 때문에 로더는 정말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는 한참을 걷다가 어느 감옥의 방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구토가 일어날 정도로 역한 냄새는 그 방문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로더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감옥 문의 창살에 향해 소리쳤다. "차이칸... 마스터의 명령이다. 너희들이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 도대체 감옥 안쪽에 누가 살고있는지 모르지만 정말로 그곳에 무언인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보통의 인간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참이 지났지만 로더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차이칸! 이번 일만 끝난다면 너희들도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이번이 너희들과 마지막 계약이 될 테니 말이다." 로더의 이 말에 한참 후 드디어 사람의 심장을 긁는 기분 나쁜 소리가 감옥 안쪽에서 들려왔다. "크르르... 마지막이라고? 저번에도 그따위 속임수를 부려 우리를 부려먹더니 또 같은 수작인가?" 어둠 속에서 새파란 불꽃이 일렁이는데 그 숫자는 모두 여섯 개였다. 마치 도깨비불을 연상시키는데 어둠 속에 일어나는 불빛에 로더는 순간적으로 온몸의 소름이 돋아나면서 아득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어세씬 길드의 상급자인 로더가 이런 공포감에 젖는 다는 것은 그만큼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살기가 엄청나다는 증거였다. 저절로 몸이 오그라지는 공포감에 애써 두려움을 떨쳐 내려는 듯 로더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무의식 적으로 뒤로 한걸음 주춤 물러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일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우리도 한동안은 잠적해야 할 테니 말이다." 로더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듯 어둠속 불꽃의 태도가 잠시 얌전해졌다. "크르르... 네놈들이 우리를 풀어주는 최악의 조건까지 걸만큼 대단한 놈들이 나타난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계약은 성립되었다. 그놈들이 어떤 자들인지 몰라도 우리 울프 삼형제의 손아귀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감옥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로더는 적이 안심을 했다가 마지막 소리에 안색이 일그러진다. "이번에도 속인다면 그때는 네놈의 뼈마저 씹어먹고 말 테니 그런 줄 알아라. 크르르..."?? 온몸의 전신 세포를 자극하는 마지막 말에 로더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이번에도 저자들을 속인다면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두려운 존재들인 것이다. 자일이라는 자의 기습을 받은 후 우리는 이틀정도 여관에서 숨을 고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상처가 보기보다 심한 편도 있었지만 라미셀이 내 상처 때문에 약간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동료가 후커에게 잔인한 최후를 당한 후 우리 일행 특히 내가 상처를 입으면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집착이 강했다. 그것이 그 악몽 같은 시간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집착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를 진정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어느 정도 그녀가 충격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한 우리는 다시 레드 블러드의 본거지가 있는 파미르 왕국의 수도 리스파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가 머물렀던 여관에서 파미르 왕국의 수도 리스파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리는 거리로 처음 하루 정도까지는 레드 블러드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하나 둘 우리를 가로막는 무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숲 속이나 길가에서 암습을 기도하는 자들이 종종 있었는데 아무리 일류 어세씬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살기를 보이면 바이크의 경우 거의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어서 쉽사리 그들의 암습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도 우리가 쉽게 자신들의 암습을 막아내자 이번에는 인적이 드문 곳보다 번화가인 거리에서 갑작스럽게 달려드는데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어는 정도 어세씬에 대한 적응력이 생기자 마치 평상시 일을 대하듯 우리도 손쉽게 그들과 부딪칠 수 있었다. 거의 삼일 내내 우리에게 일어난 암습은 총 38건이었고 70명이 넘는 암살자들이 우리 손에 목숨을 잃었다. 레드 블러드의 암살자 수효가 총 100명이 조금 넘는다고 했으니 70퍼센트 이상이 우리 손에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몇 번의 암살이 더 일어난다면 레드 블러드 내의 암살자는 씨도 남지 않으리라. 그런데 마지막 38번째 암습이 끝난 후 이후로 우리에게 암습을 하는 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레드 블러드내의 암살자들이 동이 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우리는 조용해진 행로에 약간 불안감이 감돌았다. 무언가 폭풍전의 고요함이라고 할까? 두 개의 달. 우리 일행이 있는 대륙은 동서남북이 마치 마름모 꼴 형태로 길게 뻗은 곳으로 엔트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엔트 대륙 이외에 동쪽으로 싸울이라는 엔트의 절반도 안 되는 대륙이 있다는 소문은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엔트 대륙의 밤은 두 개의 달이 보인다. 두 개의 달 중 처음 떠오르는 달을 디노(Dino)라 부르고 나중에 떠오르는 것을 디아(Dia)라고 부르는데 디아는 디노의 절반 정도의 크기이다. 사랑의 여신 다이아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인간 남매의 이름 디노와 디아가 달 이름으로 붙어진 이유는 인간들이 밤을 무척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디노가 떠오르는 시간은 거의 밤 9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으로 매우 밝은 빛을 내비치고 그후 1시간이 지난 후 디아가 떠오른다. 디노와 디아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는 시간은 대략 11시가 훌쩍 넘어선 시각이다. 오늘은 두 개의 달이 나란히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시각에 우리는 마을을 찾지 못하고 숲 속 공터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두 개의 달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이 세계에 적응이 되었는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어쩔 때는 달을 한참 바라보면 어느새 그리운 얼굴들이 떠올라 눈시울을 적시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자상한 부모님의 영상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지금은 그런 그리움이 덜하지만 그래도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그런 말은 아니다. 침낭을 덮고 밤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디노와 디아가 나란히 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는데 오늘은 붉은 빛이 감도는게 유난히 아름답다. 붉은 빛? 나는 갑자기 감았던 눈을 뜨고는 다시 디노와 디아를 확인했다. 붉은 달... 저것은 분명 레드 문(Red Moon) 이었다. 내가 레드문에 놀라 벌떡 일어섰을 때 다른 일행도 내 기척을 느꼈는지 저마다 일어섰는데 그 중에 라미셀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붉은 달... 삼 년에 한번씩 일어난다는 붉은 달의 주기에요. 악마의 밤이라고 하는데 이런 날이면 인간들도 쉽게 흥분하지요. 특히 오늘 같은 날이면 마물들이 제 힘의 두 배를 발휘하면서 미쳐 날뛰니까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라미셀도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는데 그녀도 어둠의 종족 다크 엘프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약간 흥분되어 있는 상태이다. 옆에서 지켜보니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의 경우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마족이니 이런 날이면 약간 흥분을 하는 것일까? "아우우우..." "크르르..." 라미셀의 설명을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새 내 귓가에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레드 문의 영향을 받았는지 짐승들도 쉽게 흥분을 하는 모양이다. 불빛이 있는 우리가 야영한 곳을 향해 달려온다는 것은 웬만한 정신상태로는 불가능 할 테니 말이다. "회색 늑대 떼들입니다. 우리를 목표로 한 모양인지 사방에서 달려오는 중입니다." 아론의 경고가 들리고 우리는 저마다 이 낮선 불청객을 맞을 차비를 하였다. 바이크는 등뒤의 바스타드 소드를 빼어들고 나를 중심으로 왼쪽에 포진했고 오른쪽에는 라미셀이 석궁을 들고 한편으로 불의 정령 카샤를 두 세 마리 소환했다. 뒤쪽에는 아론이 자세를 잡았는데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라이트 마법을 써서 주위를 환하게 밝게 만들었다. 가이가의 경우에는 자일을 죽였던 그 이상한 공격력이 있지만 이런 맹수들과의 싸움은 조금 불리할 것 같아서 그를 우리 가운데에 놓고는 나는 수중의 검을 뽑았다. "크르릉..." 점점 가까이 들리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달콤한 휴식을 방해했기에 나는 불쾌한 기분으로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물었다. "늑대라면 불을 무서워하지 않아. 아무리 레드 문 때문에 흥분했다고 해도 이런 환한 불빛 속에서 우리를 습격할 이유가 없을 텐데..." "아무래도 무언가 이 늑대들을 조종하는 모양입니다. 멀리서 늑대보다 더 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의 한 종류인 웨어 울프(Were Wolf)인 것 같습니다." 아론의 말에 라미셀이 소리쳤다. "울프 삼형제..." 그녀의 두려움이 깃든 목소리에 나는 예전에 그녀가 매우 두려워했던 레드 블러드의 특급 암살자들을 떠올렸다. "울프 삼형제라는 것이 늑대 인간이었어?" 내 물음에 라미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우리 왕국에서 왕국의 모든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아주 끔찍한 사건이 한번 일어난 적이 있었어. 마을 한곳이 모두 폐허가 되고 마을이 온통 시체로 뒤덮이고 피가 내를 이루었던 아주 처참한 광경이었어. 거의 400-500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끔찍한 시체로 변했는데 하나같이 짐승에게 당한 모습이었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그런 광경을 연출했는지 왕국이 발칵 뒤집혔지." 라미셀은 한번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북방에 있던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 습격한 것으로 착각하고 영주의 군대가 출동했는데 수개월간의 추적 끝에 그것이 몬스터의 무리가 아닌 늑대 떼에 의한 만행으로 알려졌지. 그리고 그 늑대 무리의 뒤에는 잔혹한 자들이 숨어있다는 사실도 끝내 밝혀졌어. 바로 그들이 울프 삼형제야. 그들은 잔인하고 포악한데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빨라. 오죽하면 영주가 파견했던 팔라딘 급 기사들과 오십 명이 넘는 병사들이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당했던 모양이야. 국왕은 대경 질색하여 군대를 파견했는데 울프 삼형제가 늑대 무리를 부리는지 군대도 한참이나 그들 때문에 고전했던 모양이야. 그후 곤경에 빠졌던 울프 삼형제를 길드의 마스터가 구하고 그 대가로 그들을 부렸던 것으로 알고 있어." 라미셀의 설명에 나는 서서히 밀려오는 늑대들이 울프 삼형제라는 그 존재에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저 늑대들보다 그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울프 삼형제가 문제였다. 아마도 우리가 늑대들과 싸우는 동안에 기회를 노리고 달려들 것이 틀림없다. 마치 자일이 내가 방심한 틈을 노려서 내 배에 검을 꽃은 것처럼 말이다. "크아앙..." 첫 번째 달려드는 놈의 울부짖음에 화답을 한 것은 아론의 파이어 볼이었다. 아론이 날린 붉은 화염구는 보기에도 사나와 보이는 이빨을 한껏 뽐내며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놈들 중 한 녀석을 맞추었는데, 정확하게 흉악한 이빨을 드러낸 체 뛰어 오르던 늑대의 배 부분을 맞추었다. "깨갱..." 늑대가 아파서 지르는 비명 소리는 개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파이어 볼에 그슬린 고깃덩이에서 나오는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늑대 무리와 때아닌 달밤의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크르렁" 거리며 그 날카로운 이빨로 위협하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별로 두렵지는 않았지만 괜히 실수라도 해서 날카로운 이빨이나 손톱에 상처는 입고 싶지 않아서 긴장감은 놓치지 않았다. 첫 번째 놈은 제법 대담하게 내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노린내가 진하게 풍기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지지만 하여간 덤벼드는 놈이 냄새가 풍긴다고 코를 막고 있을 수만은 없는 터라 바로 검을 휘둘러 놈의 공격을 막으며 빠른 동작으로 늑대의 옆구리에 검을 찔렀다. "푸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를 노렸던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체 내 검에 의해 꼬치구이 신세가 되었는데 진한 선혈과 함께 뜨거운 피가 검을 쥔 손을 적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선혈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 놈을 그렇게 보냈지만 한껏 여유를 보이고 있을 상황이 아닌지라 나는 다시 긴 발톱을 내세우며 내 허벅지를 공격하는 놈을 막아야만 했다. 이미 장내는 늑대 떼들로 순식간에 뒤덮여 버렸는데 개중에는 피곤 죽이 되어버린 놈이나 시커멓게 타버린 녀석들이 금새 눈에 띄었다. 바이크의 경우 그의 주변에는 수십 마리의 늑대가 순서를 기다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데 온통 살점과 피로 주변은 얼룩져 있었다. 바이크의 바스타드 소드에 반 토막이 나서 널브러진 놈이나 아니면 그의 발에 채여서 피 곤죽이 되어버린 놈들이 벌써 십여 마리 이상이었다. 아론의 근처에는 하나같이 시커멓게 타버린 숯 검댕이 들이 지척에 깔려 있는데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파이어 볼이나 파이어 볼트를 날린 까닭이다. 늑대와 같은 짐승의 경우 불을 보면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놈들은 불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틀림없다. 한 무리의 놈들이 저쪽에서 몰려오자 파이어 블래스트(Fire Blast)를 날리는 아론을 보면서 내일 아침은 늑대 구이를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라미셀은 의외로 늑대들에게 잘 버티고 있는데 원거리에서 달려드는 놈들은 퀘렐을 사용해서 한 놈씩 잡았고, 주변에서 날카로운 이를 내밀며 달려드는 놈들은 불의 정령 카샤가 달려들어 그녀의 주변을 지켰다. 그녀는 늑대의 숫자가 예상보다 많다고 생각했는지 불의 중급정령인 샐러맨더까지 소환해서 늑대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모두들 제각기 자기 몫을 해주는 것을 보고는 나는 좌측에서 덤벼드는 늑대에게 파이어 볼 한방을 먹이며 차분하게 대처했는데 그런 나를 돌아보며 제법 나도 성장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바이크와 아론의 보호 속에 이곳 대륙에 왔다가 어느 정도 수련을 쌓았다고 자만하다 죽어본 경험도 있다. 자일이라는 놈에게 한번은 죽음을 당하고, 한번은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었던 것을 되돌아본다면 지금 내가 이 상황에서 이렇게 일행을 살펴본다는 것은 나에게 어느 정도는 발전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내게 미소를 가져왔다. 물론 이빨까지 보이는 여유는 찾을 수 없었다. 양쪽에서 죽어라하고 달려드는 늑대 놈들 때문에 검을 좌우로 엑스 자 모양을 하며 휘둘렀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이 죽인 늑대의 수효가 어림잡아 100마리는 훨씬 넘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주변에는 온통 늑대들뿐이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놈들이 동원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때 내 감각에 뭔가 이질적인 존재가 느껴졌는데 늑대들의 울음소리를 뚫고 바이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료우...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이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세찬 기운을 느끼고는 검을 움켜진 손에 처음으로 마나를 듬뿍 쏟아 붓고는 검기를 일으켰다. 팔라딘급 검사가 이제서야 검에 검기를 일으킨다고 뭐라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검에 마나를 넣고 싸운다는 것은 엄청난 마나를 소비하게 만든다. 아무리 팔라딘 급에 해당하는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무한정으로 검에 마나를 넣어 검기를 펼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육체가 마나로 구성되어 있다는 드래곤이 아닌 이상 아무리 소드 마스터 아니 그 할애비가 온다고 해도 무한정으로 검에 마나를 밀어 넣을 수 는 없다. 거기다가 늑대 무리들과 싸우는데 검에 검기를 일으킨다는 것은 마치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다. 처음으로 검에 검기를 일으키며 나에게 달려드는 미지의 존재... 라미셀의 말로는 늑대 인간 웨어 울프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영화로나 보았지 실제로 본적은 없었기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띄고 놈을 살폈다. 하지만 미처 놈의 모습을 보기도 전에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세찬 기운이 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미처 피할 새도 없다는 표현이 정확할는지 모르겠지만 무의식 적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나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적으로 피한다고 취한 동작이지만 약간 늦었는지 순식간에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세찬 기운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화끈거리는 통증과 더불어 따뜻한 액체가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얼굴에 상처를 입은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화끈거리는 통증보다 새로운 적을 만날 때마다 한계에 부딪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짓는 나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마계에서 벨제뷔트에게 내 자신이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한동안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들떠 들었다. 죽지 않는 다는 것...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소망일지 몰랐다. 그런 것이 나에게 왔으니 내가 들뜨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가 마황의 권위까지 얻었으니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세상이 다 내 발 밑에 있다는 착각도 하였다. 그랜드 마스터 바이크와 9클래스 마스터 아론, 죽음의 신관 가이가. 이들 세 명이면 중간계에서 나를 두렵게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간계 최고의 생물이라는 드래곤과 부딪치지 않으면 별로 나를 감당할 인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현실은 단순히 오크나 오우거 등의 몬스터들에 의해 죽음을 얻었고 피나는 수련을 해야겠다는 위기감까지 갖게 만들었다. 예전에 내 자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곳에 와서 불사의 능력과 마황의 권한까지 얻은 상태에서 나는 내 자신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삼 년이 넘는 수련도 그렇거니와 지금도 이렇게 늑대들과 이상야릇한 늑대인간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잇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각설하고 나를 공격했던 그 정체 모를 웨어 울프의 모습은 금방 내 눈에 잡혔다. 그 놈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무시무시해 보였는데 우선 바이크보다 큰 키가 인상적이다. 언뜻 보아도 2미터 40-50센티는 충분히 넘을 것 같은 장신이다. 거기다가 머리는 늑대의 얼굴을 뒤집어썼고, 몸통은 인간의 몸처럼 보이지만 사지(四肢)는 수북한 털로 뒤덮여 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 날카로운 이빨을 한껏 자랑하는데 "크르르" 거리는 것이 광견병이라 걸린 미친개를 연상시킨다. 나는 놈의 모습을 예의 주시하면서 볼의 상처를 쓰다듬었다. 그 큰 몸이 어떻게 그리 빠르게 움직이는지 의아스럽지만 특급 암살자라고 하니 뭔가 다를 것이 분명했기에 의문은 접어 두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제는 상처나 고통에 이골이 났는지 예전처럼 고통 때문에 얼굴이 찡그려지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상처로 인해 손바닥에 묻어난 내 피의 색깔을 보면서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마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본다는 착각까지 하게 만든다. 붉은 피는 사람을 기대 이상으로 흥분시켰다. 거기다가 붉은 달! 레드 문의 영향인지 몰라도 손바닥에 묻어난 붉은 피의 색깔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에 도취되어 가고 있었다. 무어라고 해야 옳은가? 온몸의 신경 세포는 세찬 경련을 하고 숨은 차츰 거칠어졌다. 전신을 데우는 뜨거운 열기는 잔뜩 달아오르고 붉게 상기되어 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가슴 속 깊이 숨어있던 심장의 박동이 차츰 빨라지고 거친 호흡에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붉은 흥분에 이내 젖어 버렸다. "크아앙..." "이야앗..." 가슴 깊숙이 응어리져 있는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터져 버리는 듯 나는 힘껏 기합을 지르며 짐승의 울부짖음을 내보이며 달려드는 놈을 향해 나도 힘껏 몸을 날렸다. 격식이고 뭐고 다 떠나서 무의식적으로 흥분에 몸을 맡긴 나는 의식하지도 못한 체 모든 것을 부수고 싶은 욕망에 젖어 미치고 있었다. 상대는 팔라딘급 기사들을 처치한 무서운 상대이다. 흥분한 상태의 나는 빠르고 강한 놈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 체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만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씩 늘어나는 상처는 나를 더욱 흥분 속에 몰아넣었지만 뜨거운 피가 온몸을 적실 무렵 나는 어느 정도 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려 혼미해지는 의식 때문에 약간 중심을 잡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의식을 잃을 만큼 어려운 처지는 아니었다. 웨어 울프는 사나운 이빨을 보이며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잔뜩 움츠러져 있는 모습이 폭풍전야(暴風前夜)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것이 잔뜩 긴장한 놈의 자세에 나 또한 나름대로 대비를 하였다. 잔뜩 웅크렸다고 하지만 키가 2미터 40-50센티를 넘어섰으니 웅크린 자세도 나보다 훨씬 커 보인다. 덥수룩한 털 사이로 삐죽 나와있는 긴 발톱은 아니 저걸 손톱이라고 해야하나? 뭐 손톱이든 발톱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넘어가고 그 날카로운 발톱은 서서히 붉은 빛이 감도는데 마치 붉은 달에 반사된 빛을 보는 형상이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긴장감과 함께 세찬 바람이 주위를 맴돈다. 드디어 시작인가? 나는 놈의 움직임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늑대 특유의 빠른 움직임과 유연성 때문에 놈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매우 힘들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인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옳은 말일 것이다. 놈은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조차 내보이지 않으면서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의 빈틈을 노리고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놈과 이렇게 대치할 무렵 장내의 거의 모든 늑대는 거의 정리되었고 바이크가 한 놈의 늑대 인간과 여러 마리의 늑대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바이크의 실력이야 어떤 것인지 알고있으니 그리 신경쓸것도 없어 고개를 돌렸다. 아론도 늑대 인간 하나와 싸우고 있는데 아론의 파이어 볼을 맞고도 단지 괴성을 지르면서 물러날 뿐 죽지 않는 놈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역한 노린대가 풍기는데 아무래도 트롤과 같은 재생력을 갖고 있는지 파이어 볼에 맞은 상처가 금새 치료되는 것을 보고는 안색이 찌푸려졌다. 라미셀의 주위에는 이제 늑대라고 불린 만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장내에 남은 늑대들은 바이크에게 덤비는 몇 마리가 고작이었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모두 고깃덩이로 남아있는 것들이 전부였다. 금새 주변의 상황을 파악한 나는 다른 사람들 걱정은 접어두고 내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이들 중에 가장 약한 존재 중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라미셀의 경우에는 열외로 치고 우리 일행 중 라미셀 다음으로 약한 나에게 늑대 인간 그것도 일반 몬스터가 아닌 초특급 암살자는 어쩌면 벅찬 상대일지도 몰랐다. 이제 겨우 실버 팔라딘을 넘어선 내가 팔라딘도 죽여 버린다는 늑대 인간과 싸우는 것은 힘겨운 상황이다. 물론 바이크가 대치하고 있는 놈을 끝장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맡기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내 몫을 남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내 자존심 이전에 내 존재 가치를 상실시키는 짓이다. 처음에는 그냥 편한 생활을 하고 싶어 바이크나 아론에게 모든 일을 떠 넘겼지만 이들과 여행하면서 여러 번 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내 자신이 매우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나도 이들과 똑같이 내 몫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고생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싶은 나의 몸부림이었다. "크르르... 네놈만은 필히 죽여주지. 우리는 실패를 몰랐거든.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우리에게 그 실패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려주었어. 그것도 삶의 마지막... 형제들의 피로 얼룩진 이 곳에서 말이야. 죽은 형제들의 복수보다 그 것이 더 마음에 걸려." 늑대 인간의 목소리는 비장감이 가득했고 그는 자신들의 최후를 이미 예감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동물적인 직감에 의해 느꼈고 그는 자신의 죽음도 인정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죽음이라는 것보다 지금까지 한번도 겪지 못했던 실패라는 것에 무척 분노하는 모양이다. 만약 그가 실패를 한번이라도 겪었다면 그는 여기서 포기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실패라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그의 분노는 나에게 향했다. "어리석은 자! 내게 시간이 있다면 어느 것이 중요한지 알려주고 싶지만 더 이상 기다려줄 시간이 없어. 너의 어리석음이 네 형제들까지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고 생각해." 내 말에 대한 대답으로 늑대 인간은 "크르르..." 거리면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는 몸을 움직였다. 마치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렸다가 놓으면 빠른 속도로 앞으로 튀어 나가는 것처럼 놈은 그렇게 나에게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희미한 모습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길게 늘어선 놈의 잔영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을 했는데 피해야지 하는 판단 이전에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을 무의식적인 반사라고 하는가? 하여간 나의 몸은 좌측으로 한바퀴 턴을 돌면서 움직였고 검을 든 손은 마나를 내뿜으며 원래 내가있던 자리를 통과하는 잔영을 베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털끝만큼의 피해도 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무척 놀랐고 놈은 자신의 공격을 피한 내 자신에 대해 놀란 모양이다. 우리는 각자 동일한 나라는 존재 때문에 놀랐지만 그 반응만은 각자 판이하게 달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날카로운 공격을 피한 내 반응에 자랑스러워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놈은 무의식적으로 얕잡아 보았던 내가 자신의 일격을 거뜬히 피해내자 긴장감을 갖게 된 것이다. 문득 예전에 바이크가 나에게 검술을 가르칠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승리는 승리를 확신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던 짤막한 대화였는데 지금은 그 뜻이 또렷하고 아주 생생하게 머리 속을 맴돈다. 지금까지 나는 늑대 인간과 싸우면서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패배를 염두 해 두고 악에 바쳐 행동했다는 것이 옳았다. 검을 움켜진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여태까지는 내 주위를 감싸고 나를 보호하는 이들 때문에 내 존재에 대해 내 자신에 대해 나는 무감각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내 자신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었기에 나를 보호하는 이들에게 무력하게 기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어쩌면 내 존재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 이렇게 몸부림치는 지도 몰랐다. 승리를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쉽게 패배는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예전과 다르게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차츰 냉정해지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나에게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강해졌고 그것은 확실하게 나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처음에는 고전했던 상대임에 분명했지만 이제는 늑대 인간의 움직임이 눈에 보였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한계를 만들고 벽을 쌓아 올렸다. 그런데 그 벽을 허물자 갑자기 봇물 터지듯 내 능력이 차츰 커져간 것이다. "크르르... 나는 느낀다. 이제는 내가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하지만 피하지는 않겠다. 내 본능이 너를 피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번만은 내 본능을 어기려고 한다. 지금까지 내 본능대로 살아왔지만 오늘은 왠지 본능을 따르고 싶지 않다." 늑대 인간의 눈은 무척 슬퍼 보였다. 장내에 남은 늑대 인간은 그 밖에 없었다. 내가 그와 이렇게 대치할 무렵 바이크와 아론은 다른 늑대 인간들을 모두 해친 것이다. 그의 형제들은 이미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살고 싶지 않은가?" 문득 나는 그에게 그렇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를 살려주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보내주고 싶었다. "크르르... 죽음은 두렵지 않다. 이미 형제들의 죽음으로 나도 죽었으니... 단지 그들과의 추억이 아름답지 않았음을 후회할 뿐이다." 늑대 인간은 그렇게 말하더니 큰 동작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그의 동작은 너무 커서 예전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죽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장 편한 죽음을 그에게 선물했다. "써억"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잘려진 그의 얼굴은 마치 꿈을 꾸는 표정이었다. 형제들과 아름다운 꿈을 꾸는... 로더는 라미셀의 일 때문에 길드 마스터 보른에게 찍힌 상태였다. 무능하다는 것은 차후 그의 신상에 별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일은 잘 마무리되어 더 이상 마스터의 눈밖에 나지 말아야만 했다. 그래서 로더는 조마조마 울프 삼형제의 소식을 기다리며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 물론 그들이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왕국의 기사단도 어쩌지 못했던 자들이다. 문제는 차후 길드의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울프 삼형제가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은 곧바로 왕국에 대학살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예전 울프 삼형제가 저지른 그 일은 아직도 왕국의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공포를 떨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그 추악한 만행의 뒤에는 마스터가 도사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살된 것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울프 삼형제를 얻기 위해 마스터가 저지른 일이다. 늑대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길드에 소속된 자들을 통해서 한 마을을 통째로 학살한 것이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고야 마는 마스터 성격상 울프 삼형제를 얻기 위해 그들이 위기에 몰려야 했고 그것을 빌미로 그들을 구한 후 그들을 부린 것이다. 누명으로 인간들에게 추적을 당한 울프 삼형제는 인간들을 미워했고 그로 인해 이제 그들은 정말로 인간을 학살하는 학살자가 되었다. 그런 그들을 풀어 주었으니 왕국은 또 한번 발칵 뒤집힐 것이 분명했다. 이미 길드는 라미셀을 구한 일행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초특급 암살자 울프 삼형제는 일이 끝나는 대로 계약이 해지되어 더 이상 길드의 소속이 아니고, 특급 암살자 자일과 길드에 소속된 자들의 대부분이 죽었다. 거기다가 울프 삼형제가 난리를 피우면 왕국의 수비는 강화되고 암살 길드의 활동폭이 대폭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길드는 어느 정도 타격을 회복하기 전에는 활동이 전면적으로 중단될 것이다. 로더는 그것 때문에 지금 무척 분주했다. 길드를 정리하고 어쌔신들을 키워야만 했다. 물론 자원은 무척 풍부했다. 돈만 주면 자신의 부모라도 죽일 놈들이 이곳 왕국에는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 자들을 어쌔신으로 그것도 일류급 이상의 어쌔신으로 교육시키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로더는 오늘 하루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 일에 매달렸다.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이틀 내내 밤을 꼬박 새다시피 했는데 차후 길드의 어쌔신으로 성장할 자들을 뽑는 일 때문에 무척 바빴다. 오늘도 그 때문에 수십 명을 만나고 그들의 자질을 확인했다. 저녁 시간이 거의 다 될 무렵에는 무척 피곤했는지 잠깐 잠이 든 모양인데 귓가를 울리는 소음 때문에 잠을 깬 모양이다. 밖이 무척 소란하여 피곤한 몸을 일으키며 일어선 로더는 귓가를 울리는 소리의 정체를 깨닫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것은 죽어 가는 자들의 비명소리가 분명했다. 어떤 미친놈이 길드 내에서 그것도 가뜩이나 어수선한 분위기인 길드에서 살인을 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번에 뽑은 놈들이 하나같이 거칠어서 지들끼리 부딪치다 사고를 낸 모양인데 만약에 이런 소란이 마스터의 귀에 들어가면 로더의 입장에서는 무척 난감한 일이다. 로더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외쳤다. "어떤 새끼가 난리를 피우는 것이냐? 아주 죽고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로더는 그렇게 외치고는 문을 박차고 소란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려 하는데 급하게 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자의 모습이 보였다. 가뜩이나 라미셀의 일 때문에 길드 마스터에게 찍힌 상태에서 이틀 밤샘을 해서 열이 받은 상태에다, 자신의 곤한 잠을 방해한 소란 때문에 열이 받은 로더는 인기척도 없이 뛰어 들어온 놈 때문에 끝내는 폭발하고 말았다. "죽고 싶으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로더의 살기가 담긴 외침에 들어선 자는 얼른 고개를 숙이더니 소리쳤다. "로... 로더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로더는 용서를 구해도 용서할까 말까한 상태인데 다짜고짜 용서를 빌 놈이 큰일 났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지만 놈의 말이라도 들어보고 죽이던지 살리던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러다가 지금 자신에게 큰일 났다고 소리치는 놈의 모습에서 로더는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놈의 옆구리 부분이 붉게 물들어 있는데 아마도 상처로 인해 피를 흘린 모양이었다. "웬놈들이 길드로 쳐들어왔습니다. 보초를 서던 자들이 막았는데 속수무책입니다. 벌써 3관문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마지막 방어선이 뚫리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 말에 로더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누가 쳐들어 왔다는 말이냐? 3관문이 뚫리다니... 도대체 어떤 일인지 똑바로 말해라." 로더는 갑작스럽게 길드를 침입한 자들이 있고 그들이 이미 길드의 방어선을 3관문까지 뚫고 들어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대담하게 파미르 왕국의 제1 어쌔신 길드라 할 수 있는 레드 블러드로 침입을 했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문득 로더의 머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스터는... 마스터께서는 어디에 계시냐?"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던 로더는 그렇게 물었고 보고를 한 사내는 얼른 대답을 했다. "마스터께서는 급한 일 때문에 세덴 공국으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이틀 후에나 돌아오실 텐데..." 그의 말에 로더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하필이면 이런 일이 터질 때에 길드의 마스터가 자리를 비우다니...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길드 내에서 울프 삼형제 다음으로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 마스터의 호위 때문에 마스터 주변에 붙어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그들이 길드 내에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로더는 욕을 내뱉고는 얼른 문을 박차며 소리쳤다. "동원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동원해서 놈들을 막아라. 나는 바로 마스터께 가겠다." 로더는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자신의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이미 일이 틀어졌음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계속 남아있다가는 자신의 생도 장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런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울프 삼형제... 그자들이 실패하다니..." 로더는 그렇게 뇌까리며 길드의 비밀 통로를 향해 달려갔다. "헉... 헉..." 곳곳에서 치솟는 불길과 더불어 비명은 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파미르 내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암살 길드인 만큼 길드의 규모는 무척 컸다. 레드 블러드 어쌔신 길드의 본부는 보기해도 무척 고풍스러운 대저택에 숨겨져 있는데 길드 마스터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상인으로 위장하고 거금을 주고 사들인 곳이다. 왕국의 수도 리스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쌔신 길드의 본거지가 있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것이다. 그것도 이런 대저택에 누구도 모르게 웅크리고 있다는 것은 말이다. 그런 대저택이 지금 불타오르고 있었다. 비명소리가 잦아든 것으로 보아 아마도 침입자들을 막았던 자들이 거의 죽었든지 아니면 침입자를 모두 처리했든지 둘 중에 하나인데 아무래도 전자가 맞을 것 같았다. 로더는 그 때문에 더욱 빨리 몸을 움직였다. 저택을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는 저택의 뒤편 후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장미 넝쿨로 가득 메운 후원은 길드 내에서 몇몇밖에 모르는 비밀 통로가 숨겨져 있는 곳인데 평소 철두철미한 마스터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만일을 대비한 마스터의 비밀 통로를 지금 로더는 자신의 목숨을 챙기기 위해 가고 있었다. 뒤를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뛰어가던 로더는 어느새 후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를 기다리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줄 비밀 통로가 아닌 아주 낮선 사내와 자신이 그토록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던 라미셀이었다. "어떻게...?" 로더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라미셀을 쳐다보았다. 설마하니 이 비밀 통로를 그녀가 알고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자신이 이곳으로 오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니 너무도 어이가 없지 않은가? 로더는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린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 라미셀은 굳어버린 로더를 보며 그렇게 물었고 로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들게!" 심각한 상황에서 갑자기 라미셀의 자문자답(自問自答)에 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갑자기 심각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라미셀의 말에 로더의 얼굴은 석상처럼 굳어 있었는데 바람이라도 불면 흩어져 먼지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고 그녀의 표정은 어둡고 씁쓸하게 굳어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그녀가 단지 농담처럼 던진 말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로더에게 다가서더니 짤막하게 물었다. "마스터는?" 라미셀의 물음에 로더는 한 걸음 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없다. 마스터는 이곳에 없다." 심하게 떨리는 로더의 음성은 마치 수전증에 걸린 환자가 심하게 떨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그의 모습에 라미셀의 비웃음이 터진다. "그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지?" 그녀의 말에 로더는 하얗게 변색된 얼굴로 주춤거리던 로더는 입술을 깨물더니 라미셀을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크흐... 넌 뭐든지 나보다 앞서기를 좋아했지. 아니 너는 언제나 나를 무시했어. 계집 주제에 반쪽 짜리 혼혈 주제에 말이야." 로더의 말에 라미셀은 인상을 찡그렸다. 로더의 언성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넌 내 자리까지 위협했어. 알아? 난 널 매장하고 싶었다. 마스터의 신임을 잃기 전에 말이야. 기회가 왔지! 너를 내 눈앞에서 살아지게 만들 기회가 말이야. 난 네가 너무 두려웠어." 로더의 말에 라미셀은 얼굴이 상기되더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분노를 터뜨렸다. "닥쳐. 그것은 너와 나의 문제였어. 그런데 너는 파갈로와 로라, 마리언까지 죽였어. 그들은 도대체 너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라미셀의 말에 로더는 창백해진 안색이 더욱 하얗게 되더니 잠시 침묵을 고수했다. 그러다가 입을 여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두려움은 마음속의 분노를 가져오지.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가 생기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알아? 그 모든 것은 모두 다 너 때문에 생긴 일이야!" 로더의 분노 섞인 일갈에 라미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치 자신 때문에 그 모든 불행이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라미셀의 표정을 보고는 더 이상 로더의 말장난에 놀아나지 못하게 소리쳤다. "흥... 그따위 헛소리는 집어 치워라. 두려움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그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진정한 용기야. 너는 그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넌 겁쟁이야. 거기다가 네 죄를 남에게 덮어씌우는 아주 비열한 놈이다." 나의 외침에 로더는 머리를 지어 뜯었다. "아냐... 난 겁쟁이가 아냐. 난 비열하지 않아. 넌 뭐냐? 넌 뭔데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로더의 외침에 나는 소리를 질렀다. "흥... 네놈 따위는 살아도 하등의 가치가 없는 놈이야. 오히려 남에게 피해만 줄 뿐이야." 내 말에 로더는 뒷걸음질치다가 자기 발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의 두 손은 부르르 떨렸는데 충격 때문에 넋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누가 시켰나? 이 일의 배후자가 누구지?" 나는 부들부들 떨고있는 로더에게 그렇게 물었다. 자신의 충실한 부하를 사지를 몰아넣는 상관은 별로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자신에게 큰 이익이 있거나 아니면 그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살인이 끝나자 마치 증거를 인멸하려고 살인자의 입을 막는다. 그것은 분명 무언가 배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흐흐... 천 개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일에 끼어 든 이상 그들의 일을 방해한 이상 너는 그들의 눈을 피하지 못해. 그들은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그들이 누구지?" "그들은..." 그때 갑자기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번쩍이는 빛이 나와 라미셀의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나는 얼른 몸을 피했고 바로 비명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컥..." 어둠을 가르는 빛은 두 눈을 하얗게 치켜 뜬 로더의 가슴을 관통했다. 로더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더니 울컥하며 피를 뿜었다. 살아나기 힘든 상처였다. "누구냐?" 나는 누군가 로더의 입을 막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바로 로더를 공격한 자가 있을만한 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내가 예상한대로 누군가가 있었는데 그는 이미 죽어버린 시체 상태였다. 아마도 이곳을 감시하던 자인 것 같은데 피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체 독극물이 있는 약을 깨물고 죽어버린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레드 블러드 뒤에 숨어 있는 배후가 무서운 존재임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부하가 있다는 것은 그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의 모습에서 나는 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더의 입을 막은 자의 죽음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온 나의 시선에 허공을 향해 손을 놀리며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모습을 보이다가 쓰러지는 로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뜬구름을 잡으려고 애쓰는 어리석은 자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았다. 17장. 용병이 되려면? ??로더의 죽음으로 배후를 찾지 못하게 된 우리는 약간 난감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솔직히 던전 탐험 이후 밀려드는 암살자들의 공격, 그리고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이곳 레드 블러드의 본부까지 급박하게 달려온 상황에서 우리들이 할 일이 갑자기 중간에 뚝 끊어진 것이다. 길드의 마스터도 잡지 못하고 하물며 그들의 배후도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천 개의 눈? 혹시 클레이어래젼스를 말하는지 몰라?" "클레이어래젼스?" 무언가 고심하던 라미셀이 인상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천리안 즉 클레이어래젼스가 무엇인지 몰라 되물었다. "클레이어래젼스란 제국의 눈을 뜻해. 바빌론 제국이 전 대륙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첩보, 암살 전문의 비밀 조직이야. 대륙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노츠, 어쌔신 길드를 막후에서 조정한다고 알려질 정도로 무서운 조직이지. 조직원이 누구인지 또 얼마나 되는지, 본부가 어디인지 하나도 알려진 것이 없는 신비조직으로 유명해." 라미셀의 설명을 들은 나는 클레이어래젼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음을 알았다. 내가 알기로는 클레이어래젼스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단 하나. 클레이어래젼스의 마스터가 제국의 머리라고 칭해지는 네 명의 브레인중 하나인 카르고 다마스코 백작이라는 사실이었다. 클레이어래젼스! 왠지 언제인가 한번쯤은 다시 부딪쳐야 할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다. 레드 블러드의 본부로 위장된 대저택이 화재로 불타고 레드 블러드 배후의 연결고리인 로더의 죽음 뒤 우리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빠져나가야만 했다. 수도 근처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고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기에 계속 머물러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에 우리도 몸을 피했다. 레드 블러드의 마스터나 그 배후에 대한 연결 고리가 끊겼기에 클레이어래젼스가 막후로 의심되지만 확실한 것이 아니어서 일단은 모든 것이 잠정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이 배후라면 차후에라도 무슨 반응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단 레드 블러드에 대한 모든 상황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다음 목적지를 찾았다. 이런 일에는 라미셀이 적격이어서 라미셀은 자신의 고향인 하르로 가자고 졸랐다. 하르는 파미르 왕국의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라미셀은 그곳에 파미르 왕국의 용병 길드 본부가 있으니 용병 등록을 하자고 했다. 던전 탐험도 해보았겠다 용병 일도 한번쯤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우리는 승낙하고 라미셀의 고향인 하르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밤! 숲 속의 밤은 무척 조용했다. 하늘 위에는 디노와 디아 남매가 어두운 숲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디노와 디아 남매 때문에 완전히 어두운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물의 식별은 가능했다. 디노아 디아의 시선을 따라가면 숲 속 한 공터에서 한 사내가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사내는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시선을 따라 가면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려 있는데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비를 맞은 참새 모양이다.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조용한 음성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뜻이 무엇인지 알고있는 사내는 고개를 쳐들며 창백한 안색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고개를 처든 사내의 모습은 레드 블러드의 마스터 보른이었다. 어쌔신 길드의 마스터가 왜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것인가? 부들부들 떨리는 보른의 근육은 공포와 긴장이 결집되어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스터! 한번만... 한번만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수하를 잘못 다스린 제 죄가 크지만 한번만 용서를 해주신다면 목숨을 다하여 이번 일을 만회하겠습니다." 떨리는 보른의 음성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었다. "후후... 속죄는 자신이 아무리 심혈을 기울인다 해도 상대가 용서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지. 자네는 내가 어떻게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조용한 음성이지만 그 뜻만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떨리는 보른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쳤다. 숲 공터의 바닥은 대부분이 흙으로 되어 있지만 그의 앞쪽은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흩어져 있는데 보른은 그런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크고 작은 돌 때문에 보른의 이마는 어느새 핏빛 선혈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전혀 괴이치 않고 보른은 연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마스터의 선처를 바랍니다. 제발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간의 저의 공로를 생각하셔서 한번만 용서를..." "공로라...?" 사내의 무심한 음성은 보른의 귀를 자극한다. 보른은 자신이 방금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특히 지금처럼 '내가 해냈던 많은 공로를 대신해서 이번 한 번쯤 내 죄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하는 식의 거래와 같은 요구는 말이다. 보른의 이마는 핏빛 선혈사이로 흐르는 땀방울의 부조화처럼 묘한 긴장감이 베어있다. 오랜 침묵이 이어진 뒤 조용한 숲의 긴장감을 깨는 사내의 작은 음성이 들린다. 숲의 고요를 깨버리는 사내의 고조가 평이하던 음성이 차츰 커져갔다. "사람은 강해야만 살 수 있다고 난 생각하지! 난 약한 자는 멸시한다. 약한 것은 죄악이지. 그런 자들은 살아있어도 하등의 쓸모가 없다. 남들이 말하는 용서니 자비니 하는 것은 모두 힘없는 자들의 변명으로밖에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런 것을 몹시 경멸한다. 사람들이 떠드는 용서, 관용, 자비 등의 도덕적 설교는 결코 믿지 않는다." 싸늘한 사내의 음성은 보른의 삶에 대한 실 날 같은 마지막 끈을 자르고 있었다.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는 보른은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키는데 그 소리가 유독 커 보였다. "내게 오직 필요한 것은 힘이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내게 이득이 되는 자만이 내 곁에 있을 수 있다. 내가 다른 자를 용서한다면 그것은 필요에 따라 너그러운 척 하는 거지. 내 본심이 너그러운 것이 아니다. 만약 내 일을 가로막을 경우엔 그 자가 친 혈육이라도 나는 가차없이 제거할 수 있다. 너는 너 자신이 어떠하리라 생각하는가?" 냉랭한 사내의 음성은 보른을 지옥의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사내에게 용서나 자비 따위를 기대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탓일까? 창백하진 안색으로 부들부들 몸을 떨던 보른은 어느새 입술을 깨물더니 굳어진 안색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서서히 공포 따위를 떠올리던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보였는데 그것은 죽음을 각오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그도 한 어쌔신 길드의 마스터라는 신분을 갖고 있는 자였다. 삶에 대한 애착이 커서 비굴했지만 마지막 순간에서 그는 자신 본연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내가 죽으리라 생각하시오?" 보른의 싸늘한 목소리에 어둠 속 사내는 침묵을 고수했다. "나도 원래는 암살자 출신이오. 당신의 힘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나와 내 조국을 배신했지만 허무하게 가지는 않을 것이오." 보른의 싸늘한 미소가 이어졌다. 그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데 그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결코 울프 삼형제나 자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가 길드의 마스터가 되기까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다. "후후... 나도 네가 쉽게 죽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지!" 사내의 말에 보른은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않았다. 그럼...? 보른은 희미한 불빛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사내를 직시했다. 얼마 전까지 그토록 무서워했던 사내... 그가 이끌고 있는 세력보다도 이 사내 자체가 몹시 두려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인간의 심장을 갖고 있는 않은 자로 보아도 무방한데 친형제라도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일 인물이다. "당신이 나를 상대하겠다는 말이오?" "왜? 상대하지 못할까봐 그러나?" "당신도 검술을 할 줄 안다는 말이오?" 보른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보았고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검사만 자네 같은 암살자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이것은 어떤가?" 그와 함께 사내는 무어라 중얼거리는데 그의 중얼거림과 함께 보른의 앞쪽에 희미한 검은 안개가 솟아올랐다. "소환술사?" 보른은 경악한 표정으로 그렇게 외치는데 그의 앞에 무언가 괴이한 형상의 물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신장이 무려 5미터는 넘게 보이는데 사자의 모습에 노인의 머리를 달고 있는데, 어깨에는 박쥐의 날개와 비슷한 것이 달려있고 전갈의 꼬리와 비슷한 강철같은 가시가 박힌 꼬리를 지니고 있는 마수의 모습이었다. "맨티코어(Manticore)!" 보른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마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인간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알려진 맨티코어는 마계의 생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신이 소환술사였다니..." 보른은 어둠 속의 사내에게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번개같은 동작으로 품속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더니 사내를 향해 던졌다. 번쩍이는 섬광을 쏟아내며 날카로운 소리를 동반한 검은 어둠 속 사내에게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는데 사내의 안색은 변함이 없다. "흥..." 비웃음 소리가 이어지고 어둠을 가르던 단검은 사내의 몸 바로 앞에서 무언가 투명한 벽에 부딪친 듯 "텅" 소리를 내면서 퉁겨져 나갔고 그에 따라 보른의 안색이 변했다. "마법?" 보른은 사내의 주위를 감싸는 투명한 막이 있음을 단검을 던짐으로써 알게 되었고 그것이 사내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발현한 마법임을 깨닫고는 놀라움 가득 찬 모습으로 소리쳤다. 자신의 암습이 실패한 사실보다 상대가 마법사이자 소환술사라는 사실에 보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는 사실은 저 보호막을 처리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는 것이고 끝내 자신이 죽음을 각오하면서 발악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후후... 나보다는 먼저 저놈을 상대하는 것이 순서일 듯 싶은데..." 조용한 사내의 말에 보른은 서서히 다가오는 맨티코아의 거대한 모습을 직시하고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인육을 먹는 마계의 생물과 대결한다는 것... 그것은 팔라딘급 검사라고 해도 매우 힘든 일이다. 특이나 암흑 마법까지 구현할 수 있다는 마계의 생물을 말이다. 하물며 어쌔신에 지나지 않는 자신이 어떻게 이 마계의 생물을 처리한다는 말인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보른의 얼굴은 차츰 어두워졌다. 레드 블러드의 본거지까지 쳐들어가는 엽기적인 만행(?)을 벌인 우리 일행은 라미셀의 의견에 따라 그녀의 고향인 하르로 향했다. 6월에 들어선 날씨는 무척 건조하지만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 여행을 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다. 새들이 쉼 없이 지저귀고 바람이 노래하는 푸른 숲 속의 모습은 여행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였고, 지평선 너머 수줍은 색시 마냥 고개를 떨구는 붉은 노을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우리가 하르에 도착한 것은 레드 블러드 본부에서 떠난 지 육 일째 되던 날이었다. 파미르 왕국의 최북단인 하르는 미르의 최북단인 라센과는 다르게 매우 규모가 큰 도시로 인구의 수효가 물경 십만은 족히 넘는 대도시로 축복과 저주가 공존하는 땅으로 유명한 곳이다. 거의 수도 근처의 대도시에 비해 처지지 않는 인구수와 번화한 도시 환경에 처음 하르를 찾는 여행자들은 매우 놀라는데 북쪽의 변경 도시인 하르가 발전한 까닭은 이곳이 파미르 왕국의 전체 국민을 먹여 살리는 보고이기 때문이다. 하르를 중심으로 인접한 도시에서 파미르 왕국 식량의 70퍼센트 이상을 생산하는데 그 이유는 이곳 하르를 중심으로 하여 서북쪽으로 모두 기름진 곡창지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왕국의 식량을 책임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북쪽지방이라면 추위 때문에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기름진 곡창지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을 턱이 없다고 의혹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지만 하르를 중심으로 서북쪽 대부분은 연중 매우 따뜻한 날씨이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용병 길드 본부가 이곳 하르에 위치해 있는 이유와 동일한데 하르의 북쪽 10킬로밖에는 인적을 찾을 수 없는 버려진 땅이다. 그 이유는 하르의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마물의 숲 때문인데 마물의 숲에는 각종 몬스터를 비롯한 대규모 이종족들이 넓게 분포되어 있고 그 규모가 파미르 왕국의 삼분지 이에 해당할 만큼 넓었다. 파미르 왕국의 국토 삼분지 이에 해당하는 넓은 삼림은 북쪽의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데 그 때문에 마물의 숲 하단에 위치해 있는 하르를 중심으로 몇몇 지역은 항상 따뜻한 기후를 갖게 만들었다. 장점이 있다면 반대로 단점도 존재하여 마물의 숲에 살고있는 각종 몬스터들 때문에 도시는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이런 폐해가 아니더라도 국토의 삼분이 이에 해당하는 넓고 기름진 땅을 탐욕이 강한 왕국이 가만히 둘 까닭이 없는데 파미르 왕국은 마물의 숲을 개척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마물의 숲에 왕국의 군대가 함부로 못하는 존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물의 숲 남쪽에는 대규모의 오크 종족과 리자드맨(Lizardman) 부족이 여러 개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왕국이 보유하고 있는 군대의 수효를 능가하고 남음이 있었다. 서북쪽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오크의 경우 대규모 오크 부족은 오크 전사의 수효가 물경 일만은 족히 넘었고, 소규모 오크 부족의 경우에도 일, 이천은 충분히 되었다. 그런 오크 부족의 숫자가 자그마치 수십 개가 넘었다. 동북쪽으로는 리자드맨 부족이 여러 개 있는데 그들도 엄청난 전사를 보유하고 있어 인간들을 위협했다. 오크 종족의 경우 식량을 구하기 힘들면 기름진 평야에서 농사를 짓는 인간의 마을을 약탈하여 식량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문에 하르의 북쪽은 언제나 왕국의 군대가 눈에 불을 켜고 지키는 형편이다. 하지만 오크 전사 규모가 워낙 많아서 왕국의 정규군만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없어 하르 자체에서 용병을 고용하여 도시를 방어하는데 그 규모가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일만을 훌쩍 넘게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곳에 용병 길드 본부가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고객이 있는 곳이니 용병 길드 본부가 통째로 하르로 이사를 온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하르의 초입에 들어선 시간은 디노가 막 떠오르는 시간으로 밤이 깊어서였다. 우리가 지나쳐왔던 여느 도시와 다를 것 없이 하르의 밤은 떠들썩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술기운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상대방과 주먹다짐을 벌이는 자들이 곳곳에서 눈에 뜨였다. 특히 용병들이 많은 도시답게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사내들의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디노의 빛을 받으며 한껏 발산하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명은 사고로 죽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 추태를 지나쳐서 한 조용한 여관을 찾았는데 처음 분위기와는 다르게 안으로 들어서니 술손님으로 가득 찬 홀을 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밤이 늦어 다른 곳을 찾는 것도 마땅치 않아 나는 이곳에서 여장을 풀기로 하고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키가 무척 크고 근육질로 이루어진 사내로 여관 주인이 아닌 전직 용병쯤으로 보였다. 사내는 큰 눈망울로 우리를 살피더니 퉁명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방, 식사, 술?"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처럼 들려서 처음에 인상을 썼지만 뭐 용병들과 부대끼다보면 성격도 그렇게 나오리라 생각하고는 넘어가기로 하고는 대답했다. "당분간 묵을 테니 방 세 개하고 식사 좀 부탁해요." 퉁명스런 질문에다 반말이었지만 상대의 나이가 나보다 많고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자조하고는 나는 높임말을 하고는 숙소를 부탁했다. 주인은 우리 일행이 자신의 여관에서 당분간 묵는다고 하니 화색이 만면하더니 얼른 우리를 끌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는 달리 여관에 묵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인지 우리는 이층의 빈 숙소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는 혜택까지 받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여관에서 그 우락부락한 주인 아저씨의 거친 손을 거쳐 만들어진 아침 식사를 하고는 주인 아저씨에게 용병 길드의 위치를 물었다. 주인 아저씨는 자신도 왕년에 용병이었다며 우리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바이크가 눈에 힘을 주자 움찔하여 살피는 것을 포기하고는 얼른 용병 길드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이런 귀찮은 일에는 역시 바이크의 힘이 크다. 하르의 용병 길드 본부는 정부 청사같이 매우 규모가 커 보였는데 3층 건물에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 듯 보였다. 또한 몬스터의 침입이 잦은 도시의 특성상 방어적인 측면이 더해져 사람의 키만큼 높은 담이 길드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담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자 매우 넓은 공터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퍼져서 앉아 있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어림잡아 200-300명은 훨씬 넘어 보이는 숫자였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뜻밖에도 인간이 아닌 엘프나 드워프, 노옴등도 그곳에서 무리를 지어 모여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인간 무리들 사이에 하나, 둘 끼여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엘프들로만 이루어진 무리들도 눈에 띠였다. 엘프라는 족속은 주로 숲에 부족 형식을 이루고 살며, 타 종족과의 접촉을 무척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뭐 그들 중에서도 인간사회에 나와 인간들과 생활하는 용감한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마법력. 특히 소환술 계통과 정령계 마법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도 강한 것이 특징인 엘프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해 남을 잘 거슬리게 하며, 일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폐쇄적인 엘프들이 떼를 지어서 용병 길드에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엘프 무리는 대략 15-6명 정도로 보였는데 엘프들의 특징 마냥 하나같이 미남, 미녀가 아닌 자들이 없었다. 나는 이 특이한 종족 무리를 유심히 지켜보고는 용병 길드 본부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갈색 빛의 단발머리를 가진 여자가 접수를 받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서자 약간 놀란 빛을 보였다. 일반적인 모험가 파티로 보이는 우리 일행이지만 바이크의 기세가 워낙에 뛰어난지라 처음 대하는 자들도 바이크를 보면 주눅이 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떻게 오셨지요?" 단말머리 여인은 무척 정감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는데 우리 일행 중 앞에 나서는 이가 나이자 약간 의외라는 표정이다. "용병 등록을 하려고 왔습니다." "여기 서류를 작성해주세요." 그녀가 나에게 내민 것은 용병 가입 신청서였다. 나는 데스크의 여자에게 받은 용병 가입 신청서를 작성했는데 우리 일행은 전사 둘, 마법사 하나, 신관 하나, 정령사 하나로 적었다. 신청서를 받은 그녀는 우리 일행의 짜임새를 보고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완벽한 파티를 이루고있는 우리 일행이었기에 그녀가 놀랄 만도 했다. "어떻게 다른 용병단에 들어갈 겁니까? 아니면 독자적으로 용병단을 만드실 건지...?" 접수대의 여자는 내게 그렇게 물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물었다. 그녀의 설명을 빌리자면 용병 등록을 하면 보통은 기존의 용병단에 귀속되어 그곳에서 용병활동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실력이 뛰어난 경우에는 개인이 프리랜서로 뛰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따로 용병단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말에 귀가 솔깃해서 내가 용병단을 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의 성격상 나 말고 다른 자들에게 명령을 듣는 것이 달갑지 않았고 또 용병단을 만들어 운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바로 다른 신청서를 내밀었는데 그것은 새 용병단 등록에 관한 신청서였다. 신청서에 일단 용병단의 구성원은 나를 비롯한 바이크, 아론, 가이가, 라미셀 다섯 명을 적어 넣었고 따로 용병단의 사람들을 뽑기로 했다. 대장은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런데 용병단의 이름은...?" 서류를 접수받은 그녀는 내게 새 용병단의 이름을 정해달라고 했는데 내 작명 센스로 뭔가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관계로 아론을 쳐다보았는데 아론은 그저 나를 쳐다볼 뿐이다. 하기는 내가 만들자고 했으니 내가 이름을 정하는 것이 당연하니 어디 좋은 이름 없을까하고 고민하던 나는 쉽게 생각하기로 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악마의 전사(Warrior Of The Devil)!" "악마의 전사?" 그녀는 내 대답에 놀란 표정으로 그렇게 외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조금 이상한가? 하기는 악마의 전사라는 뉘앙스가 조금 섬뜩하기는 하지만 워낙에 용병단이 많고 특이한 이름의 용병단도 몇몇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처음에는 약간 질린 표정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승인을 해줬다. "접수 비용은 10골드입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품에서 돈을 꺼내 그녀에게 지불하고는 용병단 등록을 마쳤다. "이제 하나만 남았군요!" "하나?" 나는 아직도 무언가 남았다는 그녀의 말에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내 물음에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실력을 봐야죠!" "실력?" "그럼요. 용병단의 실력을 봐야 어떤 클래스를 줄 건지 결정할 것 아니에요!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테스트를 하도록 하죠." 그녀의 대답에 나는 용병단 등록에 무슨 테스트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내일 오라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용병 길드 사람들에게 안내 받은 곳은 용병 길드 본부 뒤편의 연무장 같은 곳인데 예상외로 아침부터 사람들의 수효가 무척 많았다. 내가 물어보니 요즘 들어 마물의 숲에 있는 오크 부족들이 종종 남쪽으로 내려와 인간 마을을 약탈하는 행위가 빈번해져 그들과 싸울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져 용병을 많이 뽑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처럼 용병 길드 본부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안내한 길드의 사람은 40대 후반쯤 보이는 남자인데 약간 마른 체격에 근육도 붙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용병이라기 보다는 행정적 업무를 보는 사람 같았다. "우선 이곳에서 기다리시오. 당신들 차례는 저쪽 사람들이 끝나면 곧바로 이어질 것이오." 사내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른 바닥이지만 그리 불편하지는 않아서 그대로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어제 보았던 특이한 엘프 무리들도 보였다. "근데 용병은 그냥 등록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듣기로는 테스트 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내가 궁금해서 라미셀에게 물었더니 라미셀이 엷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 용병으로 등록하는 것은 테스트가 없어. 하지만 용병대의 경우에는 조금 틀리다고 들었어. 특이나 요즘은 용병왕 시굴트 아크챔버의 영향으로 많이 개혁됐다는 소문이야. 용병 왕국으로 불리는 레다스 왕국뿐만 아니라 북쪽의 끝인 이곳 파미르의 용병 길드도 용병왕의 용병 개혁에 적극 동참해서 질이 낮은 자들로 이루어진 용병단은 아예 신규 등록을 시키지 않는 형편이야. 뭐 지방의 소규모 용병 길드의 경우는 틀리지만 이곳은 파미르 왕국 용병 길드의 총 본산이잖아." 라미셀의 말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는 용병왕 시굴트 아크챔버에 대해 물었다. 라미셀의 말을 빌리자면 용병왕 시굴트 아크챔버는 레다스 왕국의 국왕이자 용병 출신의 검투사로 전쟁의 신전에 등록된 대륙의 열두 소드마스터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레다스 왕국은 대륙의 동쪽 사막의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는 용병 국가로 황폐한 토지 때문에 다른 보통 국가와 같은 농사나 기타 산업이 불가능하여 대부분 국민 전체가 용병일을 하면서 국가의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 대부분이 용병 출신으로 이들의 대부분은 국경을 마주보고 있는 해상왕국이자 상업 국가로 알려져 있는 팔리스 왕국의 용병으로 일을 한다고 한다. 해상왕국인 팔리스는 군대의 대부분이 레다스 왕국의 용병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년전 용병왕 시굴트 아크챔버와 팔리스 왕국의 국왕 샤반 라무리스 5세의 조약을 통해 경제적인 원조를 조건으로 레다스의 군대로 자신들의 왕국을 방어하도록 했다고 한다. 용병왕 시굴트 아크챔버가 주장하는 용병 개혁이란 각 용병단들의 실력을 파악하여 등급을 매기고 질 낮은 자들로 이루어진 용병단은 등록을 아예 못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용자의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었는데 많은 돈을 주면서 계약한 용병단이 싸구려 실력을 갖고 자신이 맡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손해가 막심하였기에 대부분이 찬성하였다. 일부의 용병단들은 자신의 가치를 하찮은 등급 따위로 매긴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용병단들의 성격상 대체적으로 호승심이 강한 자들로 이루어진 곳이 대부분이었기에 많은 용병단들이 용병왕의 용병 개혁에 동조를 하게 되었다. 워낙에 환경이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자들로 이루어진데다가 항상 자신들만이 최고라고 떠들며 다니는 자들이 비일비재해서 언제 어디서 서로 부딪칠지 모르는 것이 용병단들이었다. 이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으로 용병단의 피해가 컸는데 해당 용병단을 보유하고 있는 길드의 입장에서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등급을 정해줌으로 용병단들 간의 분란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길드에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용병왕 시굴트의 용병 개혁에 찬성표를 던졌다. 용병단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매년 1회씩 실시하는데 각 등급은 위로부터 해서 로얄, 골드, 실버, 블랙, 레드, 블루, 화이트 순으로 이어진다. 보통 화이트 등급의 경우 최소의 인원을 보유한 용병단으로 거의 모험 파티 수준이 보통이다. 인원으로 따지면 대략 10여명 안팎으로 가장 흔한 용병단이기도 하다. 블루의 경우에는 50명 안팎의 용병을 보유하고 있고 최소 나이트급 검사 한 명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레드의 경우에는 100명 이상의 용병이 소속되어 있어야 하고 나이트급 검사도 세 명 이상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블랙 등급은 용병 인원만 최소 500명 이상에 나이트급 검사 다섯 명 이상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한다. 용병단이 실버급에 올라서면 왕국의 기사단이 부럽지 않는데 규모나 실력을 따져도 기사단을 능가하는 편이라 대우도 기사단에 비해 하등의 차이가 없다.?? 실버 등급의 용병단은 최소한 팔라딘급 용병이 한 명 정도 있어야 하고, 나이트급 검사도 열 명 이상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인원도 대략 1,000명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 규모면 보통 왕국 귀족의 영지 하나는 충분히 찜 쪄먹고도 남는 병력이다. 골드 등급의 용병단은 거의 일반 국가에서도 하나, 둘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팔라딘급 검사가 세 명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일반 기사단의 경우에도 팔라딘급 검사가 세 명 이상 있다는 것은 거의 왕국의 근위 기사단쯤 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용병중에 팔라딘급 검사가 세 명 이상 있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거기다가 나이트급 검사도 이 십 명은 넘어야 한다고 하니 거의 근위 기사단 정도의 실력이라고 보면 딱 알맞을 것이다. 용병단의 인원도 대략 5,000 정도는 상회를 해야 하는데 이 정도 규모면 소규모 도시 국가 하나와 충분히 싸우고 남을 인원이었다. 용병단 최고의 서열인 로얄 용병단은 대륙 전체로 따지면 모두 합쳐 일곱 개밖에 없는데 용병 왕국인 레다스에 넷, 남부 해상왕국인 시미르 제국에 하나, 남부 도시 연방인 랑트 연방에 하나, 그리고 이곳 파미르 왕국에 하나가 있다. 이곳 파미르 왕국의 로얄 용병단은 검은 늑대(Black Wolf) 용병단으로 불리는데 이들의 단장은 쥬르 모빌리티라는 인물이다. 그는 골드 팔라딘 급의 실력을 갖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파미르 왕국의 제1 기사단장인 제프 샤브리엘 역시 골드 팔라딘 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위와 같이 각 용병단은 등급을 매겨 그 등급에 해당하는 일을 맡는데 우리의 인원은 모두 합쳐서 5명이라 화이트 등급을 갖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양보다 질이라는 점이 존재하였기에 인원만으로 등급을 매기지는 않는다. 아무리 다섯 명이라고 해도 오십 명, 혹은 백 명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쪽수야 맞추면 그만이었고 용병단 주요 구성원의 실력이 좋으면 달라붙는 용병들도 많았기에 주요 인물들을 통해서 용병단의 등급을 매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처음 등록한 우리 인원이 다섯 명임에도 불구하고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악마의 전사!" 라미셀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듣던 나는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호명을 받고 찾아간 곳은 뒤편 연무장의 한쪽에 있는 작은 원형의 경기장이었는데 특별히 사람들의 시선을 제한하는 긴 블록으로 감싸고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으로 들어선 내 눈을 자극하는 것은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있는 몇몇 검은 로브를 둘러 쓰고있는 사내들의 모습이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깊게 눌러쓴 모습은 꼭 가이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어서 오시오! 악마의 전사라... 참! 특이한 이름이로군." 심사관으로 보이는 사내는 대략 사십대 후반쯤 보이는 남자인데 짙은 눈썹이 매력적인 사내이다. 보통의 용병처럼 그다지 매력적인 근육은 보이지 않지만 느낌으로 이 사내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내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들고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테스트를 받는 용병단의 기록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내가 내가 지은 이름에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는 씽긋 웃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저도 조금은 조악한 이름이라 많이 망설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대로 정이 들더군요." 내 말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에 쥔 서류를 내려다보더니 흥미로운 미소를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사 둘에, 마법사, 신관, 정령사라... 역시 내 눈을 자극하게 만드는 파티로군요." 그 사내는 정말로 우리에게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 우리를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맨 끝 쪽의 바이크 앞에서 시선이 딱 멈추더니 약간 긴장하는 모습으로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그의 고정된 눈을 쫓아가던 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 사내를 직시하는 바이크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내두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크흐..." 아무래도 바이크가 은연중에 살며시 그 사내에게 자신의 기를 슬쩍 내비친 모양이다. 거의 말도 없이 과묵한 성격에 우리들의 대화에도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의 바이크는 가만히 있어도 대단한 카리스마를 내보이는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에 한가지 단점도 있다. 그것은 우습게도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특히 전쟁터를 누비는 용병들에게 흔하게 볼 수 있는 강한 호승심을 갖고 있다는 점인데 특히 자신과 같은 계통의 검사 그것도 실력이 뛰어난 자를 보면 으레 나 대단한 사람인데 함 붙어볼까? 하는 식으로 슬며시 자신의 기를 내 보여 결투를 신청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평화로운 여행 중에 가끔 싸움이 일어날 뻔한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모양이다. 바이크의 기를 느낀 심사관은 긴장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그의 실력이 바이크의 호승심을 자극할 정도인 것 같았다. 하기는 지금까지 골드 팔라딘 이상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그 상대도 내가 해버리는 바람에 바이크는 거의 어린애 수준의 하급 검사들만 상대했기에 고급의 검사들과 싸우고 싶은 욕구가 강할지도 몰랐다. 심사관은 바이크의 기운에 시선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다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으음... 각자의 실력을 대략적으로 알고 싶은데 말해 주시겠소!" 심사관의 말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병 심사 때 미리 정해둔 우리 등급을 이야기했다. 라미셀이 알고있는 우리의 대략적인 실력은 바이크가 초입의 소드마스터, 아론이 7서클 유저, 가이가가 네크로맨서, 내가 초입의 팔라딘에 5서클 유저였다. 하지만 그것을 용병 테스트에 말해 버린다면 모두 우리를 미친놈 보듯이 볼지도 몰랐기에 우리는 여기서 더욱 줄여야만 했다. 뭐 남의 이목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정한 것이 바이크는 골드 팔라딘으로, 아론은 6서클 유저 정도로 줄였고 가이가의 경우에는 네크로맨서는 빼고 신관으로, 라미셀과 나는 원래 실력 그대로로 정했다. 내 경우에는 초입의 팔라딘이 골드 팔라딘을 제치고 용병단의 리더가 된다는 것이 우습기 때문에 검과 마법을 함께 쓰는 마검사임을 강조하여야만 했기에 속일 수 없었다. 심사관은 우리의 면면을 듣더니 매우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솔직히 파미르 왕국의 하나뿐인 로얄 용병단인 검은 늑대 용병단의 단장인 쥬르 모빌리티가 골드 팔라딘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놀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것도 그리 어색한 장면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6서클 유저의 마법사라면 파미르 왕국에서 골드 팔라딘 이상으로 대단한 존재이다. 대륙에 알려져 있는 7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모두 합쳐도 고작 20명밖에 안 되는 인원이다.?? 파미르 왕국에서도 7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7서클 마스터인 왕국 최고 마법사 하르켄 르발루쉬를 제외하고는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6서클의 마법사도 겨우 두 명이 있을 뿐인데 제 1 궁중 마법사가 6서클 유저이고, 골드 용병단인 마법의 창 용병단의 단장이 6서클 마스터일 정도였다. 그리고 바이크와 아론의 실력을 제외하고라도 중급 정령을 부리는 정령사 라미셀과 팔라딘급 검술 실력에 5서클 유저의 마법적 소양을 갖고 있는 마검사인 내가 있으니 심사관을 맡은 사내가 놀랄 만도 했다. 심사관은 한참동안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한번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한 실력들이군요. 얘기만 들어도 최소한 실버 이상의 등급을 매기고 싶지만 규정은 규정이라 테스트를 해보아야 합니다. 보통은 상급의 몬스터로 시험을 하는데 여러분들한테는 그것도 힘들고 다른 방법으로 대처를 해야겠군요." 사내는 다분히 힘들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데 나는 그의 말에 동감을 하는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상대로 몬스터를 갖고 시험한다는 것은 시험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팔라딘급 검사를 앞에 두고 아무리 힘 좋은 미노타우로스나 오우거라고 해도 1분 이상을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심사관이 말한 보통의 방법은 힘들고 다른 방법으로 한다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동했다. 심사관은 우리의 면면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어느 분부터 나오시겠습니까?" 심사관의 말에 항상 그렇지만 전투가 일어나면 가장 앞에 나서는 바이크가 먼저 움직였다. 바이크의 실력을 골드 팔라딘으로 소개하였기에 심사관은 약간 고심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처음 내가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보았던 로브를 둘러쓴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두 분께서 나오셔야 하겠습니다." 그가 지적한 사내들은 제일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두 사내였는데 심사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흑색 로브를 깊게 눌러쓴 두 사람은 나오자마자 우리의 반대쪽 끝에 위치하더니 조용히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내가 유심히 살펴보니 흑색 로브의 모자를 깊게 눌러쓴 까닭에 용모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대강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저런 복색을 입는 자들은 거의 흑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흑마법사가 보통이었다. 가이가의 경우도 그들과 거의 비슷하지만 그의 옷은 신관 복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암흑의 신 다크로드를 섬기는 암흑 사제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내가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자 아론이 슬쩍 내 곁으로 다가서더니 귀에 대고 입을 달싹였다. "흑마법사로 보이지만 아마도 소환술을 주로 하는 소환술사가 분명할 듯 보입니다. 저들의 복장은 마족과 계약한 흑마법사의 복색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저 가슴 쪽에 붙어있는 표식을 보면 그들이 소환술사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말에 나는 흑마법사를 만나는 것도 놀랍지만 저들이 소환술사라는 사실에 흥미가 일어났다. 흑마법이야 아론 자체가 9서클 마법사였기에 그리 관심을 갖을 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소환술은 또 틀렸다. 아론의 말처럼 그들의 가슴 한쪽에는 육망성으로 보이는 육각형의 별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소환술사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재미있겠는데..." 나는 라미셀을 통해서 정령술은 보았어도 소환술은 보지 못했기에 기대되는 눈초리로 그들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쯤 검은 로브의 소환술사들은 저마다 각자 수인을 맺더니 중얼거리는데 마치 마법의 영창을 외우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검은 연기가 두 군데서 피어오르는데 그 연기 사이로 희미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기가 거치고 우리 앞에 나선 것은 꽤 특이해 보이는 존재였는데 키가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흉측한 괴물이었다. 뱀의 머리에 초록색의 비늘로 온 전신이 덮여 있는 괴물은 두꺼운 가죽 재질의 갑옷에 기다란 장도를 들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도마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도마뱀 형상이라고 해도 두 다리로 직립하고 있고 기다란 꼬리를 돌리며 놀랍게도 검은 로브의 소환술사들에게 말을 하는데 인간의 언어치고는 약간 어눌하기는 했다. "우리가 상대할 자가 누구인가?" 도마뱀 형상의 괴물들이 이렇게 물으니 소환술사들은 손가락을 뻗어 바이크를 가리킨다. 소환술사의 손가락을 쫓아 시선을 움직인 그 괴물들은 바이크를 보더니 씨익 미소를 짓는데 도마뱀의 웃음이라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괜찮은 상대를 골랐군. 어떻게 하면 되는가?" 도마뱀의 물음에 소환술사 중에 하나가 중얼거렸다. "5분 정도면 충분하다. 실력이 안되면 그대들에게 죽겠지만..." 소환술사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도마뱀 녀석들은 바이크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나는 소환술사의 말을 듣고는 "훗" 하고 웃었는데 과연 저들이 바이크의 상대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5분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을 바이크에게 달려들어도 그들의 실력으로는 바이크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오히려 30초 정도면 저 도마뱀들은 바이크의 검에 의해 소멸이라는 것을 맞을지 몰랐다. "아참! 근데 저거 마족 아니야?"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들이 바이크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뒤로하고 녀석들의 정체가 궁금해서 살며시 아론에게 물었다. 라미셀은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내가 조용하게 물었기에 그녀는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그녀는 리자드 헌터를 보고는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바이크와의 대결을 주시하는 모양인지라 우리의 대화를 엿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내 물음에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들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었다. "리자드 헌터로군요. 마계에서도 하급의 마수들을 사냥하는 놈들인데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의문이 생겼다. "바이크는 상급 마족인데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상급 마족에게 덤벼들 만큼 담이 큰 녀석들인가?" 내 말에 아론은 고개를 흔들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벨제뷔트님의 권능으로 저희는 마족이 갖고있는 마기를 하나도 풍기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외견상 순수 인간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신계의 신족이나, 마계의 마족들 조차도 우리가 상급의 마족인지는 꿈에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라면 아마도 신급의 존재나 그에 비등한 능력을 갖고있는 정령왕 정도라고 할까요." 그 말에 나는 리자드 헌터들이 왜 바이크에게 스스럼없이 달려드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저들도 마족이면 내가 갖고있는 마황의 권능으로 복속이 가능 할 터인데 못 알아보나? 내가 아론에게 이런 궁금증을 물어보자 아론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대면하는 것으로는 료우님께서 갖고 계신 마황의 권능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와 마찬가지로 료우님의 능력도 가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면 그들은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아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표정을 지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벨제뷔트의 세심한 배려라는 말인데 우리의 정체가 쉽게 발각되지 못하도록 우리의 능력과 기운을 감춘 것이다. 마신치고는 참 괜찮은 마신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뭐 용모는 좀 보기 흉하지만 마음 씀씀이가 그만이다. "하지만 가이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벨제뷔트의 권능이 미치지 않는 가이가는 왜 못 알아보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겨서 나는 아론에게 물었다. 나의 이런 궁금증은 아론 대신에 가이가 본인의 입으로 해결되었다. 가이가는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와서 내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데 다행히 옆쪽에 있는 라미셀은 바이크와 리자드 맨들의 대결에 푹 빠져있어서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하는 것 같다. "마족이기 전에 저는 사신 로크님의 사제입니다. 얼마든지 영혼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중간계로 료우님을 따라가라는 로크님의 명을 받으면서 저는 이미 마족으로서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지금 이 몸도 원래 제 몸이 아닌 마계로 내려온 인간의 육신입니다. 말하자면 저의 이 몸은 언데드의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치라는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가이가의 말에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말이야?" 내 물음에 가이가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로크님의 사제... 그분이 시키시는 일을 소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족이라는 것은 저에게 그저 헛된 육체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렇게 료우님을 따라서 중간계를 돌아보는 행운도 얻지 않았습니까?" 가이가의 말에 나는 약간 울컥하는 기분에 빠졌다. 솔직히 가이가의 경우에는 내 말장난에 놀아난 사신이 보낸 엉뚱한 선물 같은 존재이지만 그 자신은 마계의 마족이면서 사신 로크를 받드는 4대 신관중 하나이다. 마계 내에서도 사신 로크의 추종자중 신관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는 자는 모두 넷에 불과했는데 그런 고위의 직위까지 버리고 중간계로 나를 따라와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하는데 별로 불만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중간계를 여행하는 행운을 얻었다고 하니 내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족의 허물을 벗고 인간의 몸, 그것도 언데드의 리치가 된 몸을 갖고 살아가는 가이가의 모습에서 나는 가이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언데드 인간의 몸이지만 가이가의 능력은 살아 숨쉬고 있다. 신관으로서의 치유 능력이나 마족, 특히 사신 로크에게 받은 마법적 능력, 거기에 네크로맨서의 능력까지... 하지만 마족과 리치는 엄연히 그 격이 다른 존재였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에 젖을 무렵 바이크와 리자드 헌터들은 서로 엉겨붙었다. 3미터의 커다란 키에 뿜어져 나오는 가공한 파워를 담은 장도는 바이크의 바스타드 소드를 단숨에 부셔버릴 듯한 위력처럼 보였다. 바람을 가르는 리자드 헌터의 장도는 수직으로 내려와 바이크의 머리 부분을 두 쪽이라도 내려고 달려드는데 바이크는 얼른 자신의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올려 막고는 미소를 보였다. 나는 바이크를 미소를 보면서 바이크의 내심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바이크는 지금 매우 즐거웠던 것이다. 중간계로 와서 거의 하급의 실력자들과 싸우는 통에 호승심이 강한 그로서는 별로 재미없는 여행이었는데 간만에 하급의 마족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마족과 부딪치는 것이다. 바이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단숨에 끝내 버리지도 않고 두 리자드 헌터와 잘 놀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면은 꽤 치열하게 싸운다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단지 바이크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갖고 싫증이 날 때까지 놀아 보려는 어린애 심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5분 정도만 버텨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압도를 하는군요. 이만 됐습니다. 충분히 당신의 실력을 파악했습니다." 심사관은 바이크와 리자드 헌터와의 싸움이 5분 이상 흐르자 승부가 나지 않음을 느끼고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바이크의 장난에 약간 지루해져서 고개를 끄덕였고 바이크를 향해 말했다. "바이크... 이만 끝내. 기다리던 사람들이 지쳤어." 그 말에 바이크는 리자드 헌터와 싸우는 도중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저런..." 싸움도중에 고개를 돌린 바이크의 위험한 동작에 심사관이 놀란 제스처를 취했고 소환술사들도 약간 당황한 모양이다. 리자드 헌터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양쪽에서 빠른 동작으로 장도를 휘두르는데 바이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풀썩 주저앉더니 그 큰 바스타드 소드를 이용해서 바닥을 쓸었다. 갑자기 목표물을 잃어버린 리자드 헌터들은 당황한 듯 보였는데 자신을 지탱해 주는 두 발과, 꼬리가 바이크의 바스타드 소드에 의해 잘려나가자 기우뚱하며 그 큰 덩치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녹색의 피는 바닥을 적셨고 리자드 헌터를 소환한 소환술사들은 당황한 듯이 쓰러진 리자드 헌터들에게 달려갔다. "죽이지는 않았다." 당황한 소환술사들에게 이 한마디를 던진 바이크는 우리에게로 돌아섰다. 나는 바이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기에 웃음을 짓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다시 마계로 돌려보내면 저 정도의 상처는 금방 낳을 것이오. 바이크가 소멸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니 그에게 감사하시오." 내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도 금방 이해했는지 나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수인을 맺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바닥에 검은 원이 생기더니 서서히 짙은 어둠을 내보이며 옆으로 퍼져갔다. 그것은 금새 쓰러진 리자드 헌터들을 포함할 만큼 커졌는데 어느 정도 커진 어둠의 공간으로 리자드 헌터들이 서서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것이 역소환술인 모양인데 특이한 방법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이다. 리자드 헌터들이 마계로 사라지자 나는 다음 순서로 아론을 지목하려다가 내가 나서기로 했다. 리자드 헌터 정도면 좋은 상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내가 나가지요." 내가 앞으로 나서며 이렇게 말하자 심사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흑색 로브를 걸친 자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심사관의 눈길을 피하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보다못해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우리는 능력이 미천해서 오직 한 존재만 소환이 가능하오. 그 존재가 소멸되면 그야말로 엄청난 타격이지요. 저들의 능력으로 보아 우리에게 저들을 상대하라고 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요. 아무리 계약이라고는 하지만 더 이상 이번 일을 응할 자는 이곳에 아무도 없을 것이오." 로브의 사내는 이렇게 말했는데 심사관도 그들의 처지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더 이상 우리를 상대할 자들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빨리 끝나서 좋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바이크를 내세우는 바람에 이번 테스트를 망치고 만 것이라 심사관이나 용병 길드에게 미안했다. 심사관은 더 이상 우리들의 테스트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우리가 적은 이력을 그대로 인정해서 우리 용병단에게 실버 등급을 매겼다. 18장. 새로운 동료들 ??심사관을 통해 겨우 다섯 명밖에 안 되는 우리가 실버 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길드나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용병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버 등급을 상징하는 은색의 용병 마크를 받으려고 다시 길드 본부 건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무슨 괴물 보는 식으로 보는데 부러움 반, 시샘 반이 섞인 눈빛이었다. "저기 용병이 더 필요하지 않나요?" 내가 막 실버 등급의 용병 마크를 길드 사람에게 받고 감사의 미소를 보일 즈음 뒤쪽에서 사람의 심신을 편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이십대 초반의 여성과 그 뒤쪽에 세 명의 사나이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성은 황금빛 긴 금발에 날씬한 체형을 소유하고 있는데 무척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그녀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화사한 미소를 보이는데 저절로 침이 꿀꺽 넘어갈 만큼 미인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라미셀과 거의 대등한 미모를 소유하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의 뒤쪽에는 세 명의 사나이가 묵묵히 서있는데 금발의 미녀처럼 하나같이 내 눈을 자극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선 가장 눈길을 끄는 존재는 예전에 보았던 하프 오우거 후커보다도 머리 한, 두개는 더 커 보이는 장신의 사내였는데 아마도 2미터 40-50 센티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키였다. 거기다가 훌쩍 마른 것도 아니고 그 키에 어울리게 온통 근육질로 이루어진 육체를 갖고 있어서 마치 자이언트(Giants)족을 보는 것 같았다. 사내는 체구도 우람한데다 덥수룩한 수염과 흐트러진 장발이 무척 위압적인데 한 손에는 내 눈을 의심케 만드는 커다란 배틀 엑스(Battle Axe)를 들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 커서 손에 들고 다닐만한 그레이트 소드(Great Sworrd)를 차고 있었다. 그 사내의 모습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나는 다음 사내를 쳐다보았는데 무척 단아한 체구에 예쁘장하게 보이는 청년이었다. 거구의 사내 때문에 그를 보았을 때는 무척 작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었다. 사내는 회색 물감을 들인 옷을 입고 있는데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것은 칼날이 파도치듯 휘어진 프람베르그(Flamberge)로 보였다. 검의 성격상 사내는 용모와는 다르게 무척 잔인한 인물로 보여졌다. 그 옆의 사내는 인간으로 보기에는 약간 어색한 부분이 있는데 피부는 핏기가 없는 회색 빛에 가깝고 눈은 눈동자 없이 암흑만을 연상케 하는 온통 검은 색 일색이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대머리에 길쭉한 두상, 이마와 양미간을 흐르는 네 갈래의 검은 선은 아마도 문신을 새겨 넣은 듯 보였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칼날 같은 뾰족한 긴 턱수염이 거기에 더해지자 사내는 무척 날카로운 인상을 보여주었고 그의 허리춤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단검이 두 자루 있었다. 하나같이 무척 특이한 자들의 집합이었다. 나는 그들을 한번씩 쳐다보고는 내게 질문을 던진 그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려 고정시키고는 말했다. "무슨 말인지...?" 그들의 모습도 이상했지만 대뜸 용병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의 속뜻을 몰라서 그렇게 물었고 그 여자는 생긋 웃으며 금발의 부드러운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더니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실버 등급치고는 인원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희는 이번에 이곳 파미르에서 용병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이왕이면 색다른 용병단에 소속되고 싶거든요. 하지만 기존의 용병단은 너무 인원도 많고 구태의연해서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재미요?" 나는 그녀의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보통 용병단에 소속되는 용병들의 경우 용병단을 선택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자신의 안전을 고려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왕 선택하는 것 자신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규모가 큰 용병단이나 실력 좋은 자들이 많이 있는 이름 있는 곳을 고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놀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생긋 웃음을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무척 귀엽다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드는 것을 느끼고는 미소를 지었다. 뭐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녀와 같이 귀엽고,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을 테고 나도 특이한 취향이 아닌바 그녀를 싫어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대신에 옆에서 찌릿 찌릿 전해져오는 느낌 때문에 뒤통수가 따갑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지루한 용병 생활에 재미까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그쪽도 다섯 명이 실버 등급을 받았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는 것이니까 꽤 괜찮은 용병단이 될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품고있는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실력에 대해 그렇게 높게는 평가하지 않는 다는 말인데 그것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제의에 꽤 재미있는 자들이 일행으로 끼어 든다는 의미에서 찬성하기로 했다. 뭐 라미셀에게는 의견을 물어보기는 해야겠지만 바이크나 아론, 가이가는 내가 하는 일에 무조건 찬성이라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잠깐만 기다리겠습니까? 일행에게 의견을 물어보아야 하니..." 내가 그녀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첼... 레이첼 듀 라미테이르에요. 우리는 저쪽에서 좋은 소식을 기다릴께요." 그녀가 자신의 소개를 하자 나도 얼른 고개를 숙이고 내 소개를 했다. "저는 료우입니다. 저도 좋은 소식을 전해 드렸으면 좋겠군요." 내가 그렇게 인사를 하자 그녀도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일행을 데리고 길드 건물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너무 건방져!" 대뜸 들리는 목소리는 라미셀의 음성이었는데 약간 화가 섞인 듯한 표정이다. "뭐가?" "마치 우리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 같으니 어울릴 수 있다는 말투잖아.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말하는 것 좀 봐!" 라미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하기는 내가 들어도 너무 자신만만한 것이 걸리는 것도 있지만 레이첼이라는 여성의 말처럼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여성으로는 보기 드물게 강해 보이는 존재입니다. 최소한 팔라딘급 이상의 실력은 되겠습니다." 문득 내 귀를 자극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과묵하게 있던 바이크의 목소리였는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이크를 쳐다보았다. "팔라딘급 검사라고?" "네... 최소한 팔라딘급 검사입니다. 거기다가 그 거구의 사내는 아마도 하프 자이언트(Half Giants)가 분명합니다." "하프 자이언트?" "네" 고개를 끄덕이는 바이크를 보고는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자신만만해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겠는데..." 내가 그렇게 라미셀에게 말하자 라미셀은 "쳇" 하고는 고개를 돌리는데 삐진 모양이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녀를 달래줄 필요성이 있는지라 나는 얼른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으로 머리를 쓱 들이밀고는 말했다. "끼어주지 말까? 재미있을 것 같지만 라미셀이 싫으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아." 내가 입가에 미소를 들이밀며 갑자기 고개를 내밀자 그녀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냥 단지 첫인상이 좋지 않았을 뿐이야. 료우가 좋다면 나도 찬성이야." 그녀는 이내 화가 풀렸는지 그렇게 말했는데 내 행동 때문에 그런지 수줍은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하여간 라미셀의 화도 풀렸고 나는 다른 일행에게도 의견을 물었지만 뭐 어차피 바이크나 아론, 가이가는 무조건 내 의견을 따르는 편이니 반대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일행을 데리고 레이첼 일행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내가 다가서자 얼른 기척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돌리는데 이미 자신들을 받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모습이었다. "좋은 동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그녀는 얼른 악수를 하더니 생긋 웃음을 보인다. 팔라딘급 검사라고 해서 굳은살이 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녀의 손은 매우 부드럽고 하얗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은 매우 부드러워 저절로 얼굴이 붉혀지게 만들 정도였다. 내가 한동안 그녀와의 악수에 도취되어 있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 허리를 콕 찌르는데 깜짝 놀라서 뒤를 쳐다보니 라미셀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나를 흘려본다. 나는 라미셀의 표정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는 내 실수를 깨닫고 사과를 했다.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그럼 일단 우리 소개부터 하죠. 저는 이미 소개한 것처럼 료우라고 하고 여러분이 소속될 용병단의 대장이 되겠군요. 그리고 이쪽은 바이크입니다. 검사이고 용병 기록에는 골드 팔라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바이크를 소개하자 그들은 바이크를 유심하게 쳐다보더니 골드 팔라딘이라는 소 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용병 기록에는 골드 팔라딘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내 말의 진의를 모르는 것 같다. 그 말은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 말인데 말이다. "만나서 반갑군요!" 레이첼이 대표로 슬쩍 고개를 숙이는데 바이크는 무표정한 얼굴로 까닥 고개만 끄덕인다. 바이크의 행동에 뒤에 있는 한 사내가 살짝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데 그는 하프 자이언트로 여겨지는 거인이었다. 바이크는 그 사내의 표정을 읽었는지 눈을 슬쩍 치켜 뜨는데 그 사내는 바이크의 눈빛을 받더니 움찔하는 기세이다. 확실히 카리스마 하나는 죽이는 바이크다. "이쪽은 아론입니다. 마법사죠. 6서클 유저로 기록되어 있지요." 내 말에 레이첼은 이제서야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더니 물었다. "잠깐... 혹시 그 말의 뜻은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 한가요?" 의외로 머리 회전이 빠른 편이었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내 행동에 레이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으로 나는 그녀가 사람을 매우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답하기 힘든 것을 계속 물어보면 무척 난처할 테니 말이다. "이쪽은 가이가에요. 신관이죠." 사제 복장을 하고 있는 가이가는 깊게 눌러쓴 모자 덕분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그가 앞에 나서서 살짝 고개를 숙이자 레이첼이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을 보이더니 물었다. "얼굴은 보여 주시지 않을 건가요?" 그녀는 가이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모양인데 가이가는 조용한 음성으로 그녀의 요구를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그의 거절에 그녀는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려 사과를 한다. "아녀... 제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네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그녀의 사과를 들은 나는 그녀가 무척 사람을 잘 다룬다는 평가도 함께 내렸다. 그녀는 가이가가 뒤로 물러서자 마지막 남은 라미셀을 바라보는데 묘한 표정을 짓는다. "다크 엘프의 피를 이어받으신 분이군요. 반가워요!" 자신과 동류의 여자라서 그런지 레이첼이 먼저 라미셀에게 다가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데 라미셀은 약간 곤혹스런 표정을 짓다 금새 미소를 보이고는 말했다. "라미셀이라고 해요. 레이첼이라고 하셨죠! 저도 반가워요." 금새 웃음을 교환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남자들의 눈길을 충분히 사로잡을 만한 미모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녀들의 미소는 충분히 남자에게 미소를 만들어 줄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미셀과 레이첼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 레이첼은 자신의 일행을 일일이 소개했다. "일단 저는 아까 소개한대로 레이첼 듀 라미테이르라고 하고 레다스 왕국 출신이에요. 현재 골드 팔라딘 초입에 들어섰어요." 이미 바이크에게 그녀가 팔라딘급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직접 골드 팔라딘 초입이라는 말을 들으니 이만저만 놀라운 것이 아니어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자가 팔라딘급의 실력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엄청나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남자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체력이나 기타 부가적인 상황이 모두 뒤떨어지는 가운데 팔라딘에 올라섰다는 것은 그녀가 남자였다면 더 뛰어난 실력으로 올라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다. "레다스의 라미테이르... 아! 그렇군요. 당신은 전사의 검 소드 워리어(Sword Warrior)라고 칭해지는 라미테이르가 출신이군요." 라미셀은 레이첼의 소개를 듣다가 그렇게 외치는데 레이첼은 무척 놀라는 표정을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의 검? 소드 워리어?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 라미셀에게 물었는데 그녀는 살짝 레이첼을 주시하더니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전사의 검 소드 워리어는 레다스 왕국의 동쪽 사막에 위치한 가문으로 대륙 오대 무가 중 하나로 알려진 가문이에요. 현 가주는 슈레인 폰 라미테이르라는 분으로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이에요. 흔히들 라미테이르가를 용병의 검가라고도 부르는데 레다스의 왕이자 용병왕으로 알려진 시굴트 아크챔버도 이곳 출신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녀의 설명을 들은 나는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륙 오대 무가 출신이라니... 말로만 들어도 대단한 가문임을 확연하게 알게 해주는 명칭이다. 물론 오대 무가에 관련된 내용을 몰랐기에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륙에서 열 두 명밖에 없다는 소드 마스터를 키울 수 있는 곳이라면 그 힘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럼 라미테이르라는 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나는 슬쩍 그녀의 위치를 물었는데 그녀는 미소를 짓더니 대답했다. "맞아요. 저는 라미테이르 출신이고 슈레인 이라는 이름을 갖고 계신 본가의 가주님은 저의 숙부님이세요. 이들도 모두 본가 출신이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뒤쪽의 사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소드 마스터를 키울 만한 실력을 갖고 있는 가문의 출신이라면 그것도 애지중지한 가문의 소공녀를 따라 왔다는 것은 그들의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이쪽은 스타그라스!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거인족의 피를 이어 받았어요." 소개를 받은 사내는 레이첼이 앞으로 나서더니 고개를 숙이는데 우락부락한 얼굴과 거구의 체구에도 불구하고 얌전하게 인사를 마쳤다. "헤이트리드! 인사해요. 그는 저와 같은 팔라딘 급의 실력을 갖고 있어요." 다음 번에 소개를 받은 자는 프람베르그를 허리에 차고 있는 회색 옷의 사내였다. "헤이트리드라고 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는 사내의 목소리는 얼굴과는 다르게 무척 차가운 음색을 보유하고 있는데 저절로 한기를 흐르게 만드는 기분 나쁜 음성이었다. 헤이트리드라는 자의 소개가 끝나자 인간처럼 보이지 않던 사내의 소개가 이어졌다. "어비스 카타브루 세인 블래이저에요. 그냥 간단히 어비스라고 부르면 되요. 보시다시피 인간이 아닌 암흑의 아들 세이드(Shades) 종족 출신이에요. 세이드 종족 특유의 능력 때문에 5서클의 흑마법에 민첩한 행동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은신술과 각종 변칙적인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어비스 카타브루... 흐음... 그 다음은 생각이 안 난다. 하여간 무척 긴 이름의 소유자인 사내를 바라보았다. 나와 같은 마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나이인데 인간이 아닌 암흑의 아들... 라미셀과 같은 어둠의 종족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무척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는 소개를 받자 그 자리에서 살짝 고개만 끄덕인다. "덧붙이면 그는 말을 하지 않아요. 선천적으로 세이드 종족은 침묵의 종족이라고 불릴 만큼 조용한 종족이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라미셀을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세이드라는 종족은 다크 엘프와 마찬가지로 증오와 타락의 대상으로 불리고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대륙에서 세이드 종족을 찾기는 쉽지 않은데 한때 인간의 왕국과 전쟁이 일어나 인간들에 의해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가버린 희귀한 종족이라고 한다. 세이드 종족은 선천적으로 힘은 약하지만 높은 지능과 민첩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선천적으로 숨어 있는 물체를 찾아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탐험가나 모험가, 혹은 도둑 길드에서는 무척 환영받는 종족이라고 한다. 레이첼 일행이 합류한 우리 악마의 전사 용병단은 다섯 명에서 금새 아홉 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일단 우리가 묵고 있는 거처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새 식구가 생겼으니 레이첼 일행을 위한 환영 파티라도 열어줄 요량으로 말이다. 길드 본부 건물이 있는 앞쪽 공터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늘어서 있는데 우리가 나가자 한 무리가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그들은 아까 뒤쪽 연무장에서 테스트를 받기 전에 보았던 엘프들인데 선두에 선 자는 하얀 백색의 머리에 귀가 무척 뾰족하고 단아한 용모를 갖고 있는 엘프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30대 초반의 굉장한 미남형으로 조금 말라 보이는 외모인데, 허리에는 초생달 모양의 단검인 숏 시미터가 여러 자루 나란히 꽂혀 있었다. 고개를 숙여 우리에게 인사를 한 엘프는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세리안트라고 합니다. 이들은 저희 부족의 전사들이죠." 그는 뒤쪽의 여러 엘프들을 소개했는데 그의 소개에 그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인지...?" 나는 갑자기 우리를 막아선 그의 의도를 몰랐기에 그렇게 물었고 세리안트라는 엘프는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들이 우리를 막아선 의도를 설명했다. "저희는 이곳 하르의 서쪽 크라우스 산맥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푸른 나무 일족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저희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막아선 까닭은 저희들도 여러분의 용병단에 합류하고 싶어서 입니다." 세리안트라는 엘프의 말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첼과 그의 일행들도 갑작스럽게 나타나 합류한 마당에 다시 엘프 무리들이 우리 용병단에 합류하려고 하니 조금은 의아한 일이다. 거기다가 엘프 특유의 그 고고한 자존심이 다크 엘프의 피가 섞인 라미셀이나 암흑의 자식이라는 세이드족의 어비스를 용납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아니 엘프족 무리들이 용병시장에 나온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당신들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종족으로 알고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세리안트라는 엘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크 엘프의 피가 섞인 하프 엘프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내가 살짝 라미셀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세리안트라는 엘프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나 엘프 족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엘프이다. 특히 인간보다 고고한 자존심의 엘프 족에게 더 냉대를 받는데 거기다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악마의 하수인으로 지칭되는 다크 엘프의 자식이라면 냉대보다 더 심한 악의까지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세리안트라는 엘프는 라미셀을 살짝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씁쓸한 표정에 침울한 미소까지 보이며 말했다. "저희가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씀드려야겠군요." 주로 숲에 부족 형식을 이루고 살며 타 종족과의 접촉을 무척 싫어하는 고고한 자존심의 엘프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그것도 피로 얼룩져있는 용병 시장에 나선 것은 매우 희한한 일이다. 나는 도대체 그들이 무슨 이유 때문에 이곳에 나왔는지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기로 하고는 세리안트의 말을 기다렸다. 하르의 서쪽 크라우스 산맥은 서북쪽에서 시작하여 서쪽과 남쪽 두 갈래로 길게 늘어진 대 산맥인데 자그마치 다섯 개 국가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을 만큼 그 규모 면으로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 산맥이다. 북쪽의 파미르 왕국을 시작으로 바빌론의 북쪽에 위치한 공국 중 하나인 젤마 공국 까지는 하나의 줄기로 뻗어 있다가 서쪽과 남쪽으로 갈라지는데 서쪽에는 신성 쥬안 제국을, 남쪽으로는 바빌론 제국 본토를 경유해서 서쪽의 리온 공국까지 이어져있다. 이 정도 규모의 크라우스 산맥이라면 다섯 개 국가가 저마다 자국의 영토 안에 산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빌미로 영토분쟁이 심할 것 같지만 의외로 산맥에 대한 소유권을 어느 누구도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이유는 이곳에 드래곤 레어가 그것도 난폭하기로 유명한 레드 드래곤 일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세 마리나 되는 숫자가 떼거지로 웅크리고 있는데 제일 북쪽 파미르 왕국과 젤마 공국의 잠정적인 국경선이 되 버린 곳에 레어를 틀고 살고있는 드래곤은 레드 일족 중에서도 가장 사납다고 알려진 칼슈마라는 이름의 드래곤이다. 고대 역사서를 살펴보면 레드 드래곤 칼슈마가 얼마나 흉악한지 잘 설명되어 있는데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왕국를 수시로 찾아 들어 갖은 협박과 파괴를 일삼아 두 개의 왕국이 참다못해 영토를 버리고 도망을 쳤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천년 전쯤 수면기에 들었는지 한동안 잠잠하던 레드 드래곤 칼슈마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무척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크라우스 산맥을 기점으로 여러 인간 왕국을 들쑤셔놓고 사라졌는데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는 소문이다. 하여간 칼슈마의 난동 후 다시 크라우스 산맥은 평온한 나날을 지속했는데 그 크라우스 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엘프 종족이 푸른 나무 일족이었다. 오랜 옛날 인간의 날짜로 따지면 거의 천년 전쯤 이곳에 정착한 엘프 족은 인간들이나 기타 몬스터의 침입이 없는 평화로움에 빠져 이곳에서 오랜 평화를 누렸는데 200년 전 레드 드래곤 칼슈마의 등장 후 공포 때문에 한동안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칼슈마의 난동이 잠잠해지고 다시 평화가 지속되었는데 그러니까 한달 전 그들 엘프 마을에 커다란 불운이 찾아 왔다고 한다. "이보게... 나스라얄! 이번에 세리안트가 님헬과 결혼을 한다고 하던데 자네는 선물로 무엇을 준비했는가?" 평범한 엘프보다 약간 살이 쪄 보이는 비만의 엘프는 반대편 나무 위에서 무척 커 보이는 활을 만지작거리는 장신의 엘프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들은 모두 커다란 나무 위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를 감시하고 있는데 마을의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보였다. 비만 엘프에게 질문을 받은 엘프는 비만의 엘프와 비교되는 호리호리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는데 아마도 나스라얄 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샤이힌에게 갈보른을 얻었어. 그것을 베른에게 부탁해서 플래트 메일(Plate Mail)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 나스라얄 이라는 엘프의 말에 비만 엘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갈보른으로 플래트 메일을 만들자면 어마어마한 양이 소요될텐데 그만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비만 엘프는 약간은 걱정된다는 표정인데 그 속에는 약간의 질투까지 섞인 듯 해 보였다. 질문을 받은 나스라얄은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안트는 내 둘도 없는 친구야. 거기다가 그는 부족 최고의 전사라고... 갈보른이 아니라 미스릴이라도 내게 있다면 그렇게 할거네." 나스라얄의 말에 비만 엘프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쉰다. 아마도 자신은 그만큼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비만 엘프가 그렇게 비탄에 잠기고 있을 무렵 나스라얄이라는 엘프의 귀가 쫑긋했다. 그리고는 넓은 나무 등뒤로 몸을 숨기더니 활에 시위를 매기는데 그의 행동에 한숨을 쉬던 비만 엘프도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던 엉덩이를 떼고는 후다닥 일어나 전방을 주시했다. 그의 시야에 잡히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울창한 나무들과 그 사이로 형형 색색의 화사한 색채를 자랑하는 다양한 꽃들뿐이었다. 자신들을 긴장시키게 할 만한 아무런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쉿..." 비만 엘프는 옆쪽에서 잔뜩 긴장하는 나스라얄에게 질문을 던지다가 그의 제지에 얼른 입을 닫고는 다시 전방을 쳐다보았다. 그때서야 그의 시선에 한 낮선 침입자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붉은 장발에 평범해 보이는 망토, 허리에는 긴 장검을 차고 있는데 용모는 무척 딱딱하다는 느낌이 드는 전사의 모습인데 체구도 우람하고 근육도 무척 발달된 것으로 보아 노련한 전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런 자들은 무척 위험하다는 것을 비만 엘프는 경험상 느끼고 있었기에 나스라얄을 슬쩍 쳐다보았다. 나스라얄은 롱 보우(Long Bow)에 화살을 매기고는 시위를 당기는데 근육이 떨리는 것이 잔뜩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나스라얄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전방의 낮선 침입자를 향해 활을 겨누고는 엘프 마을을 침입하려는 이 간 큰 이방인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서 멈춰라. 이방인! 지금 너는 우리 영토를 침범하고 있다." 긴장한 표정과는 달리 나무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스라얄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매우 냉랭했는데 듣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비만 엘프도 얼른 몸을 숨겼던 나무에서 슬쩍 나와 모습을 보이고 역시 롱 보우에 화살을 매기고 낮선 이방인 사내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오홋... 드디어 찾았나? 역시 엘프들은 이런 외진 곳을 좋아한다는 말이 맞았군. 하지만 너무 고생했어. 에휴..." 붉은 머리의 사내는 자신을 위협하는 활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화살을 겨누고 있는 엘프들을 보며 짜증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봐... 고개 아프니까 그만 내려와! 가뜩이나 며칠동안 너희들 찾느라고 돌아다니는 통에 고생했어." 붉은 머리 사내의 이 같은 반응에 비만 엘프는 잔뜩 긴장한 표정에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도대체 저 자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운지 고심하는 눈치다. 하지만 옆쪽의 나스라얄은 그 낮선 이방인의 말에 더욱 굳어진 얼굴로 표정이 바뀌더니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어투로 말했다. "저는 나스라얄... 푸른 나무 일족입니다. 이곳은 인간의 출입이 금지된 곳임을 알려드립니다.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나스라얄의 존대어에 비만 엘프는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비만 엘프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정면의 낮선 이방인의 반응만을 살피는 나스라얄의 모습이다. 나스라얄의 말에 붉은 머리 사내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인간의 출입을 금지한다. 그렇다면 싸워야 하는가?" 처음에는 웃음 가득한 얼굴이어서 적이 안심이 되었는데 나중에 이어지는 말과 함께 피어오르는 기운은 나스라얄의 피부 하나 하나를 자극하는 가공할 살기였다. "허헉..." 온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 침입해오는 기운 때문에 당혹감에 젖은 나스라얄은 얼른 살기를 피어내는 사내를 향해 겨누던 활의 시위를 놓고는 옆쪽에서 멍청히 사태의 추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멀뚱하게 서있는 비만 엘프를 향해 외쳤다. "레두르... 빨리 부족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강한 침입자가 나타났다고..." 나스라얄은 그렇게 외치면서 빠른 속도로 화살을 다시 매기는데 그의 활은 빠른 속도로 붉은 머리 사내의 심장을 노리며 날아왔다. "피융..." 활은 빠른 속도로 붉은 머리 사내를 노렸지만 사내는 슬쩍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그 무서운 화살을 피해냈다. 나스라얄이 쏘아낸 화살은 사내를 스치고 지나가 나무 기둥에 깊숙히 박혔다. "오호... 꽤 무서운 공격인데... 솜씨도 뛰어나고... 역시 오기를 잘했단 말이야." 붉은 머리 사내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스라얄을 직시했다. "인간의 속담 중에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다고 했지. 아마? 나도 보답을 해야겠군. 파이어 애로우!" 붉은 머리 사내는 나스라얄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시동어를 외치는데 그 순간 붉은 화염을 담은 화살이 나스라얄이 있는 나무로 쏘아졌다. "헉..." 나스라얄은 붉은 머리 사내를 향해 다시 겨냥하던 활시위를 놓고는 비명을 지르고는 붉은 화염의 화살을 피해 나무 밑으로 뛰어 내렸다. "꽝..." 폭음이 진동하며 나스라얄이 있던 자리는 붉은 화염이 치솟아 오르는데 금새 매캐한 연기가 솟아올랐고, 화염은 나무를 자양분으로 삼아 서서히 커져갔다. "이런... 이런... 실수를 했군. 역시 마법은 오랜만에 써보는 거라 힘들단 말이야. 그렇다면 이것으로 해야겠군." 붉은 머리 사내는 자신의 파이어 애로우가 실패했지만 별반 신경을 쓰지 안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허리춤에서 장검을 꺼내 들었다. 바스타드 소드보다 약간 커 보이는 장검을 꺼내 든 사나이는 나스라얄을 미묘한 얼굴로 쳐다본다. 그러더니 웃음을 짓는데 나스라얄은 자신이 있던 자리를 대신해서 공백을 메우고있는 붉은 화염에 주눅이 든 상태였다. "쯧쯧... 너무 심했다. 이봐! 상대는 나란 말이야.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붉은 머리 사내의 외침에 화염의 위력에 정신을 빼앗겼던 나스라얄은 깜짝 놀라서 사내를 쳐다보았고 순간적으로 시위를 당겼다. "호오... 그래도 반응은 무척 빠르군. 역시 엘프들의 동작 하나 만큼은 마음에 든단 말이야." 붉은 머리 사내의 그 같은 말에 나스라얄은 자신이 이 사내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자신은 지금 무척 긴장하고 있지만 저 사내는 마치 유람 나온 여행객처럼 편안한 자세로 자신과 대치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무척 자신감에 차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퍼팅 아웃 어 파이어(Putting Out a Fire)!" 잔뜩 긴장해서 붉은 머리 사내를 바라보던 나스라얄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색이 바뀌었다. 그의 그런 모습과 함께 나무를 통째로 삼키려던 붉은 염화는 갑자기 매서운 적을 만난 듯 주춤거리는데 불 주위로 상당량의 물이 쏟아졌다. "후후... 이제야 구원군이 도착했나?" 붉은 머리 사내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작품을 망쳐버린 자들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짓는데 어느새 그의 주위에는 수십에 이르는 엘프들이 활과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선두에는 삼십대 초반의 젊은 엘프가 앞장을 섰는데 허리춤에는 반월형 모양의 단검인 숏 시미터가 여러 자루 꽂혀 있었다. "자네가 우두머리인가? 엘프 치고는 무척 독특한 취향의 무기를 쓰는군." 붉은 머리 사내는 엘프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젊은 엘프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그 엘프는 붉은 머리 사내가 자신들 일행을 보고도 주눅 하나 들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지라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단신으로 찾아와 엘프 마을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것은 그자가 보통의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처음 기세 좋게 당당한 모습으로 앞장을 선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어투는 나스라얄이 그랬던 것처럼 존대어로 바뀌었다. "저는 푸른 나무 일족의 세리안트라고 합니다. 이곳은 우리 일족의 영토입니다. 인간의 침입은 절대 불허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저는 푸른 나무 일족을 대표해서 당신께 징계를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리안트의 말에 붉은 머리 사내는 대소를 터뜨리는데 그것은 기쁨과 분노가 교차하는 묘한 웃음이었다. "하하하... 인간의 침입을 불허한다. 그리고 내게 징계를 내린다고... 하하하..." 사내의 웃음과 함께 터진 말에 세리안트는 자신의 말이 씹혔다는 사실과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태도에 인상이 찡그려졌다. 자신은 최대한의 인내를 갖고 그를 정중하게 대했건만 그는 자신의 말을 무시한 것이다. "내 말이 그렇게 우스웠습니까? 하지만 내 검은 절대 우습지 않을 겁니다." 세리안트의 분노가 터지고 그의 손은 어느새 그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숏 스미터가 들려 있었다. 세리안트의 반응에 붉은 머리 사내는 아직도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검을 자신에게 꺼내드는 행동에 웃음을 멈추고는 세리안트를 직시했다. "인간이라는 그 말 한마디가 너를 살렸다고 생각해라. 하지만..." 또박또박 끊어지는 붉은 머리 사내의 음성을 듣고있던 세리안트는 갑자기 온 몸에 피어오르는 한기에 주춤했다. 그것은 조금 전에 사내가 뿌렸던 살기와는 전혀 다른 기운인데 마치 거대한 존재의 위엄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인간으로 보이나?" 갑자기 대지를 진동하는 사내의 일갈에는 가공할만한 기운이 숨어 있었는데 그 소리에 세리안트를 비롯한 주위의 모든 엘프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탈색되어 버렸다. 가슴에 거대한 충격을 받은 듯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린 얼굴의 엘프들은 서서히 무기를 든 손이 밑으로 쳐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대표로 나섰던 세리안트는 질린 표정으로 붉은 머리 사내를 바라보다 털썩 주저앉았다. "위대하신 존재여! 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무례를 저 하나만으로 만족하시고 제발 저희 일족만은 살려주십시오." 공포 때문에 떨리는 음성이었지만 세리안트는 용기를 내어 붉은 머리 사내에게 말했고 붉은 머리 사내는 가는 웃음을 보이고는 말했다. "후후... 떨지 말라고. 너희를 어떻게 하겠다고 온 것은 아니니... 단지 너희들이 나를 도와줄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 그의 말에 세리안트의 얼굴에 작은 희망이 비쳤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세리안트의 설명을 듣고 있다 무척 궁금해서 그를 재촉했다. 세리안트는 한달 전 자기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설명하다 잠깐 숨을 고르다가 내 재촉에 기억하기도 싫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더니 다시 설명을 늘어놓았다. "내 이름은 네오 칼라드... 홍염의 일족이지만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를 인간으로만 생각해야 한다." 네오 칼라드라는 이름을 들은 세리안트는 그것이 인간의 이름임을 깨닫고는 자부심이 무척 강한 것으로 알려진 레드 드래곤이 인간의 이름 따위를 가졌다는 사실에 무척 의아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무리 유희중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드래곤임을 밝힌 이상 자신의 본명을 말하는 것이 이치인데 그는 유희중인 인간의 이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인간의 도시로 내려가 용병이 되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터진 네오 칼라드 붉은 머리 드래곤의 깜짝 발언에 세리안트를 비롯한 엘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변했다. 용병이 되라니... 고고한 엘프의 자존심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요구가 아닌가? 모두의 안색이 떫은감을 씹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후... 왜 싫은가?" 그것은 가공할만한 살기를 담은 드래곤 피어였다. "허억..." 모두의 안색은 다시 하얗게 변해버렸고 세리안트는 고개를 땅에 박으며 소리쳤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누가 위대한 존재의 명령을 거부하겠습니까?" 자존심 이전에 종족의 안전이 제일 우선이다. 아무리 고고한 자존심의 대명사로 알려진 엘프이지만 자신들의 자존심보다 종족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두말하지 않겠다. 너희들은 도시로 내려가서 용병이 되어 상단 무리를 호위하여 무라토리 산맥을 넘어야 한다. 나는 무리토리 산맥에서 산적이 되어 너희들을 기다리겠다." 붉은 머리 드래곤은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떠나 버렸는데 남아있는 엘프들은 이 대책 없는 드래곤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래곤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들은 부족 사람들은 그의 요구를 듣느니 차라리 도망치자라는 의견이 지배적 이였는데 드래곤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는 장로의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드래곤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표로 드래곤의 요구를 직접 들었던 세리안트를 필두로 부족 전사 30명이 인간의 도시로 용병이 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결혼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세리안트는 사랑하는 약혼녀 님헬의 눈물을 뒤로하고 길을 떠나는 아픔을 되새기며 두고두고 그 붉은 머리 드래곤을 저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들이 자신의 부족을 떠났던 사연을 듣고는 무척 희한한 괴짜 드래곤도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자신들의 용병대에 들어오겠다는 이유를 몰랐다. 용병이 되었으면 드래곤의 요구대로 상단을 데리고 무라토리 산맥으로 떠나면 되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을 막은 것인가? 내 말에 세리안트는 침울한 안색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무라토리 산맥을 넘을 상단은 딱 하나밖에 없는데 그들의 요구는 실버급 용병단입니다. 저희는 이번 일 때문에 엘프 전사 20명, 정령사 7명, 마법사 3명을 동원했지만 인간들이 말하는 팔라딘급 전사가 없는 관계로 실버 등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리안트의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미친 드래곤 하나 때문에 부족의 전사가 30명이나 차출되었다면 아마도 푸른 나무 일족의 타격은 무척 클 것이다. 거기다가 세리안트의 얘기를 들어보면 세리안트가 부족 내에서 가장 강한 전사인 것 같은데 어떻게 부족의 안전을 위해서 부족 전사를 모두 사지로 밀어 넣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다른 실버급 이상의 용병단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희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모두 거부했습니다. 제발 저희 일족을 살려주십시오." 세리안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거짓말을 못하는 엘프의 특성상 지금까지 내게 했던 이야기를 다른 용병단에게 털어놓았을 것이고 그들의 반응은 보지 않아도 훤했다. 아마 기겁을 하고 달아났을 것이다. 하기는 드래곤 그것도 성질 포악하기로 유명한 레드 드래곤이 기다리고 있다는 무라토리 산맥을 제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갈 마음을 먹겠는가? 내 표정을 지켜보는 세리안트의 표정은 무척 무거웠고 그의 뒤쪽에 있는 엘프들은 무척 지쳐 보였다. 아마도 고고하고 자존심 강한 엘프들이 인간의 세상에 나와 피로 얼룩진 용병시장에서 생활하는 것도 곤욕이지만 자신들이 천하게 여겼던 인간들에게 구걸하듯 부탁을 하고 돌아다녔으니 심신이 모두 지칠 만도 했다. 거기다가 숲에서만 생활하던 엘프의 습성상 인간의 도시는 그들의 신체적 리듬을 깎아먹는 결과를 나았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들이 부족에서 가장 강한 전사들이고 적응력도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들은 지쳐서 미치거나 자살을 결정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세리안트의 긴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재미있겠다는 잠정적인 결정을 내렸다. 또한 그 괴짜 드래곤 네오 칼라드라는 도마뱀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다. 거기에 더해 제작과 감독, 연출, 각본에 주연까지 모두 도맡은 드래곤의 초 울트라 스팩타클 액션 로드 무비의 한 장면에 출연해 보고 싶은 마음까지 일었다. 아마도 영화로 상영이 된다면 영화 말미에 이렇게 나올 것이다. 제작 : 네오 칼라드 감독 : 네오 칼라드 연출 : 네오 칼라드 각본 : 네오 칼라드 주연 : 네오 칼라드 조연 : 엘프 떨거지와 산적 나부랭이 게스트 : 료우와 그의 용병단 크흐... 얼마나 멋진 영화가 될는지 무척 기대가 되는 장면이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내 행동을 처음부터 막아선 것은 자신만만 레이첼이었다. 그녀는 세이란트의 이야기를 듣고는 처음에는 약간 호기심 가득 찬 눈길을 보내다가 끝내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내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깜짝 놀란 모양이다. 도저히 내 생각을 모르겠다는 표정도 역력해 보였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까 그랬잖아. 지루한 용병 생활에 재미까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이번 일 흥미진진하지 않아?" 내 말에 레이첼은 그 예쁜 입술을 뾰로통하게 짓더니 눈을 치켜 뜬다. "그 의미하고 이것과는 별개잖아요. 지금 드래곤을 상대하러 간다는 말이에요. 드래곤을... 설마하니 드래곤과 싸우겠다는 간 큰 도박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레이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내 행동에 입이 벌어지더니 다물 줄을 몰랐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라미셀도 잔뜩 긴장한 표정인데 내가 레이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낙담하는 기세이다. "당신 미쳤어요? 아무리 당신이나 우리 일행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기준으로 보는 관점이에요.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라는 드래곤이라고요. 드래곤... 설마 드래곤 슬래이어라도 되겠다는 망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드래곤 슬래이어라... 그것도 어쩌면 괜찮을지 몰랐다. 뭐 약간의 위험 부담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리안트의 얘기를 들어보면 상대는 괴짜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고룡급은 고사하고 에이션트급이나 웜급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은 상대가 선보였다는 화염 마법의 위력이었다. 내가 예상하기로는 아마도 그 드래곤은 성년을 갓 넘기거나 아니면 이제 겨우 웜급을 바라보는 드래곤일지 몰랐다. 내 표정에서 위험한 상상을 느꼈는지 레이첼은 발끈 해서는 소리쳤다. "설마 진짜로 드래곤 슬래이어가 꿈이에요. 그렇다면 이만 작별을 고하고 싶군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을 짓고는 레이첼에게 말했다. "당신이 말했던 재미가 듬뿍 담긴 일인데 이제 와서 포기하려고 그래?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게 얘기했던 그 말들은 모두 거짓이었군. 당신이 말만 앞세우고 실천을 하지 않은 여자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군. 뭐 하기는 자신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나는 슬며시 그녀에게 말을 놓으면서 이렇게 그녀의 자존심을 긁었다. 그러자 레이첼은 얼굴을 붉히며 발끈 하고는 소리쳤다. "흥... 생명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재미있는 일과 미친 짓을 당신은 구별하지 못하고 있군요." 레이첼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미친 짓이라? 나는 단지 그 괴짜 드래곤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내 말에 레이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 제정신이 아니군요." "제정신인데..." "그럼 미쳤군요." 19장. 인간이 되고 싶은 헤즐링 ??"속았어. 속았어. 나쁜 자식... 사랑한다고 그럴 때는 언제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존재는 붉은 피부에 날카로운 발톱, 산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덩치와 더러운 성질로 점철된 레드 드래곤이었다. 레드 드래곤의 품에는 붉은 색이 약간 감도는 큰 알이 있는데 아마도 드래곤의 알인 모양이다. "으아아... 일만 치르고 도망가다니... 두고보자. 쉴마르... 언젠가는 이 일을 후회하게 만들겠어." 그녀는 자신의 품안에 있는 알을 터질 듯이 꽉 안으며 이를 가는데 쉴마르라고 불리는 존재가 물론 아무래도 드래곤이겠지만 무척 걱정이 되게 만드는 외침이다. 그녀의 이름은 그 악명 자자한 크라우스 산맥의 레드 드래곤 칼슈마 킨 드보르켄이었다. 성질도 급하고 사나운데다 난폭하기까지 하고, 자존심도 무척 센 편으로 알려진 레드 드래곤계의 열혈녀 칼슈마가 이런 레어에서 알을 안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품안에 있는 알을 보면서 이 모든 고생의 원인을 제공한 원흉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그녀가 안고있는 붉은 빛 감도는 알이 미세한 떨림이 일어났다. "으응..." 한참 히스테리를 부리던 칼슈마는 품안에 일어나는 미세한 진동에 신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숙여 그 진동의 근원지를 확인했다. 붉은 빛의 알은 미미한 진동을 하다 더 강하게 반응을 하는데 어느 순간 가는 실 선이 알 외부에 새겨졌다. 잔잔했던 진동은 심하게 흔들렸고 서서히 알의 외부에는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금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아..." 지금까지 히스테리로 점철됐던 그녀의 안색이 처음으로 환희와 놀람, 그리고 호기심이 가득 찬 모습으로 바뀌었고 금새 금이 간 알에서는 소음이 일어났다. "짜자자작... 키에에엑..." 알이 깨지는 소음과 함께 들려오는 "키에에엑..." 하는 울음소리는 금새 그녀의 레어에 울려 퍼졌다. 그 울음소리와 함께 갈라진 알의 틈새로 붉은 비늘로 뒤덮인 조그마한 몸통과 얼굴이 나오는데 그것은 말로만 듣던 용의 새끼였다. 그것도 갓 태어난 레드 드래곤의 새끼 말이다. 칼슈마의 어린 자식은 칼라드 드보르켄 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원래 자식의 성은 아버지의 것을 따르는 것이 원칙인데 성질 더러운 칼슈마가 자신을 고생시킨 칼라드의 아버지 쉴마드에게 복수한답시고 아이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원체 성질 더럽고 무대포 엄마를 둔 칼라드 드보르켄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헤즐링 시절은 몹시 힘든 시기였다. "엄마 배고파아~" 이제 겨우 태어난지 10년도 채 안 되는 헤즐링을 굶기는 엄마가 도대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냐고 묻고싶은 칼라드였다. 겨우 열살 밖에 안 되는 어린 헤즐링을 레어에 두고 놀러 나가는 것은 이해한다고 쳐도 어떻게 아이의 밥까지 챙겨주지 않느냐는 말이다. 어린 헤즐링의 밥도 챙겨주지 않는 칼슈마의 반응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3일전에 먹었잖아!" 3일전에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고 알려주며 무슨 말이냐는 듯 묻는 엄마 칼슈마를 쳐다보며 칼라드는 도대체 이 아줌마가 제정신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칼슈마를 바라보았다. 으윽... 도대체 어린 헤즐링의 식성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겨우 3일전에 먹여준 식사로 지금의 상황을 만회하려고 하는 것인가? "배고프단 말이야!" 거의 악에 바친 칼라드의 음성에 엄마 칼슈마는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는 표정으로 인상을 일그러뜨리더니 텔레포트를 통해 레어 밖으로 나갔다. 그런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칼라드는 다른 헤즐링의 부모들도 저럴까하는 의구심이 생겼고 만약에 모든 드래곤의 부모가 저런 다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헤즐링들은 몹시 불행한 인생을 타고났다고 서글퍼했다. "쿵..." 한참만에 돌아온 칼슈마가 칼라드 앞에 던진 것은 오크 두 마리였다. 마치 무슨 애완동물에게 마지못해 음식을 던져주는 것처럼 식사거리를 던진 칼슈마를 보면서 칼라드는 다시 한번 이 세계 모든 헤즐링의 슬픔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헤즐링은 괴롭다. 고로 슬프다." 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들 모자는 칼라드가 자신의 힘으로 사냥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언제나 이런 식이었고, 그 때문에 다른 헤즐링보다 두 배나 빠른 시간에 사냥을 시작한 것이 칼라드였다. 칼라드가 사냥을 시작하기 전까지 언제나 배고팠던 칼라드의 입에 붙은 소리가 "엄마 배고파!" 였고 칼슈마의 입에 붙은 소리가 "식충이!" 였다. "우와... 네오 데모나이드... 그래 당신은 이제부터 나의 우상이야!" 어느 정도 고난의 헤즐링 시기를 겪은 칼라드가 엄마 칼슈마의 레어에 있는 서재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나오는데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인간의 책이 들려 있었다. 칼라드의 손에 들려있는 책은 인간 용사의 모험담을 담은 책인데 그것은 드래곤 슬래이어로 이름높은 인간의 영웅 네오 데모나이드의 모험담을 장쾌한 스케일로 그린 대 서사시였다. 네오 데모나이드는 약 500년전 인물로 인간 왕국을 괴롭히던 마룡 블랙 드래곤 크레이슈터를 무찌른 인물로 유명하다. 인간의 역사서에는 마룡 블랙 드래곤 크레이슈터너가 자그마치 5,000년 이상을 산 에이션트급 드래곤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성룡식을 겨우 넘긴 1,000살의 드래곤으로 인간에게 죽은 어리석은 드래곤으로 알려져 있다. 블랙 드래곤 족의 수치라고 블랙 드래곤 족의 족보에서까지 빠져버린 이 불쌍한 드래곤을 죽인 인물은 네오 데모나이드와 그의 동료들인데 그의 모험담은 원래 확대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을 통해 거대하게 부풀어져 에이션트급 드래곤을 죽인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같은 동족은 아니지만 자신과 같은 드래곤을 죽인 드래곤 슬래이어를 우상으로 삼은 어이없는 드래곤은 어린 시절 엄마 칼슈마의 품에서 고난의 시절을 보냈던 칼라드였다. 어쩌면 그가 인간을 동경하게된 주된 원인은 어린 시절의 아픔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네오 데모나이드를 우상으로 삼은 칼라드는 자신이 왜 인간이 아닌 드래곤으로 태어났는지 신을 원망했고 인간을 꿈꾸는 어이없는 헤즐링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엉뚱한 헤즐링은 끝내 네오 데모나이드와 같은 인간이 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는데 그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네오 데모나이드와 같은 용사가 되려면 검술이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칼라드는 어머니 칼슈마의 레어를 온통 뒤져서 검에 관련된 책자와 강해 보이는 검들을 몽땅 들고 와서 검술을 수련했는데 아무리 뛰어난 육체와 지능을 갖고 있다는 레드 드래곤이라고 해도 혼자서 수련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수십 년을 검에 매달렸지만 칼라드의 진전은 거의 답보 상태에 이르러 칼라드는 혼자 힘으로 검술을 익힐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 검술은 그만두고 검에 비견되는 마법을 파고들었는데 원체 마나 덩어리로 이루어진 육체를 갖고 있는 드래곤의 특성상 마법은 무척 빠른 시간에 익혀 나갈 수 있었다. 본래 드래곤은 용언 마법을 통해 저절로 마법을 익히는 것이 보통인데 칼라드의 경우 아직 성룡식을 치루지 못한 관계로 용언 마법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마법서를 가지고 마법을 익혔는데 근 백년만에 7서클 마스터의 능력에 이르게 되었다. 아 물론 인간의 지능보다 훨씬 뛰어난 드래곤이 7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데 백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 의심스럽겠지만 레드 드래곤이란 존재가 오직 마법만 파고드는 그런 열혈 종족도 아니고 먹고, 자고, 놀고... 특히 한번 자면 백년 이상씩도 자는 것이 드래곤이라는 점을 파악한다면 칼라드가 백년만에 7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그렇게 의심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드래곤은 성룡식을 거치지 않는 이상 부모의 보호 속에 살아가야 할 존재이다. 헤즐링의 시기가 대략 500살까지이고 그후 성룡식이 이루어지는 1,000살까지는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의 시기인데 그때는 무척 반항적이고 어떤 돌출행동을 할지 모르는 무척 위험스런 존재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부모의 관심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데 칼라드의 나이 800살 때 이 겁 없고 엉뚱한 드래곤은 끝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어디로 사라졌지? 칼라드... 칼라드! 어디 있니?" 아무리 자식에게 관심이 없는 엄마라고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부모인지라 3일 동안 레어에서 보이지 않은 자식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칼슈마였다. 어떻게 3일이 지나서야 자식을 찾아다니는지 의심스러운 엄마지만 하여간 찾기라도 하니 자기 자식은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칼라드를 찾아 자신의 레어 근방 수십 킬로를 찾아 헤맨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칼라드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한 칼슈마는 무척 당황했다. 자식을 찾지 못했다는 것보다 드래곤 초유의 성룡식을 치르지 않은 자식이 가출했다는 점이 자존심 강한 칼슈마를 당황스럽게 만든 주된 원인이다. 칼라드를 찾지 못한 칼슈마는 며칠동안 찾아 헤맸지만 칼라드의 행방을 찾지 못하자 끝내 이웃에 있는 자신의 일족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뭐... 뭐라고? 가출..." 인간에게 죽은 블랙 드래곤 크레이슈트너를 비웃던 레드 일족은 드래곤 역사상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어린 드래곤의 가출 소식에 벌집 쑤셔놓은 듯 난리가 났다. "크흑... 우리 레드 일족의 수치이다. 어떻게 자식을 관리했기에 가출을 한다는 말이냐?" 이웃에 살고있는 칼슈마의 아버지 칼로틴 칸 드보르켄은 이 칠칠맞은 엄마 드래곤이자 자신의 딸인 칼슈마를 꾸짖었는데 칼슈마는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이라도 열이 무척 받은 상태에서 칼라드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호통에 성질을 버럭 냈다. "그럼 아버지가 좀 챙겨주던가요!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알아요. 800년이라고요... 800년... 내가 칼라드 때문에 800년 동안 레어에 갇혀 있었다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지요! 좀 찾아와서 애를 돌봐주었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거에요." 되려 큰소리치는 딸의 호통에 아버지 칼로틴은 고개를 수그린다. 확실히 저 난폭한 딸년은 말 몇 마디로 다그치다가는 되려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실로 오랜만에 되새기는 칼로틴이었다. 칼라드의 가출과 더불어 칼라드 때문에 800년 동안 조용했던 크라우스 산맥의 평화는 깨졌다. 난폭하고 성질 더러운 칼슈마는 칼라드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크라우스 산맥을 시작으로 주변의 인간 왕국을 휩쓸었는데 그 때문에 수많은 종족들이 숨을 죽이고 활동을 멈추었다. 인간의 왕국에서는 수많은 재물을 받쳐 칼슈마의 분노를 달래려고 하였고 몇몇 드워프 족들도 자신들이 모아놓은 많은 물품을 받쳐야 했다고 한다. 한때의 태풍은 사라지고 칼라드를 찾지 못한 칼슈마는 레어로 돌아갔고 자존심 강한 드보르켄 일족들은 어쩔 수 없이 레드 일족의 우두머리인 드래곤 로드 카라벤 칸 슈발리언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룡급 존재인 카라벤 칸 슈발리언은 드보르켄 일족이 무더기로 찾아와 무척 놀랍다는 표정으로 반가와 했다가 그들의 소식을 듣고는 똥 씹은 표정을 했는데 무척 볼만했다는 후문이다. 하여간 레드 일족의 망신으로 알려진 칼라드의 가출은 전 레드 일족에게 퍼졌고 가출한 칼라드를 찾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모든 드래곤에게 이 사실을 알려 협조를 얻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칼라드가 드래곤 본체로 돌아올 때 그 마나를 감지해서 잡아오는 방법이었다. 평소에 인간을 동경했다는 칼슈마의 말을 빌리자면 아마도 인간으로 폴리모프에서 돌아다니는 모양인데 드래곤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상은 후자의 방법은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은 레드 일족의 수치를 전 드래곤에게 알리는 것이라 자존심 강한 레드 드래곤 전체가 반대했고 할 수 없이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다. 문제는 칼라드가 드래곤 본체로 돌아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레드 일족은 가출한 드래곤 칼라드를 찾지 못한 체 발만 동동 굴렀고 인간의 시간으로 따지면 백년이라는 긴 세월은 어느새 덧없이 흘러갔다. ??스투언 맥그레이브는 용병으로는 드물게 7서클 마스터로 유명한 인물인데 그의 평생 소원은 사람들의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줄 유일한 방안으로 그 자신이 영웅이 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영웅의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대륙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 전쟁을 승리를 이끄는 전쟁 영웅이 되는 방법이 있지만 아쉽게도 대륙은 매우 조용했고 그의 조국은 너무도 힘이 약한 국가였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룡이나 마신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자신을 도와 악룡이나 마신을 물리칠 좋은 동료가 없어 그것도 무척 힘들었다. 한숨을 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그에게 불쑥 찾아온 손님은 붉은 머리에 묘한 눈빛을 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보기에도 무척 평범해 보이는 긴 장검이 있는데 근육질로 무장한 건장한 육체를 보면 보통 평범한 전사로 보이지는 않는 사내였다. 용모는 평범해 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압박하는 기세라는 것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클라우스 산맥에서 온 네오 칼라드라고 합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불꽃을 연상케 하는 긴 머리카락은 보기에도 사람의 이목을 끄는 것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런 그의 특이한 외모보다 그가 클라우스 산맥에서 왔다는 사실이 스투언 맥그레이브에게는 놀라움을 주는 일이었다. "붉은 악룡 칼슈마의 레어가 있다는 곳 아닌가? 그곳에서 인간이 살고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스투언 맥그레이브는 네오 칼라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붉은 머리의 청년이 붉은 악룡 칼슈마의 레어가 있다는 클라우스 산맥에서 왔다는 사실에 주시했다. 보통 드래곤이 폴리모프를 하면 그들 일족의 특징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보통은 머리카락에 종족의 특성이 나타난다고 전한다. 말하자면 레드 일족의 경우 폴리모프를 하면 붉은 머리를 갖는 다는 말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위험한 상상을 하게된 스투언이었다. 스투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네오 칼라드는 머리를 극적이며 소리내서 웃었다. "하하... 무슨 상상을 하시는지 잘 알겠지만 저는 드래곤이 아닙니다. 그런 붉은 마녀를 저하고 연계시키다니 무척 기분이 나쁘군요." 네오 칼라드는 붉은 악룡 칼슈마를 붉은 마녀라고 칭하며 몹시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의 그런 표정에서 스투언은 내심 안심을 하였다. 자존심이 높기로 소문난 레드 드래곤이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는 발언은 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실례했습니다. 클라우스 산맥에서 왔다고 하기에 잠시 의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군요. 악룡 칼슈마가 살고있는 곳에서 생활하셨다니..." 스투언이 정말 대단하다는 표정과 함께 자신을 향해 칭찬을 하자 네오 칼라드는 정말 자신이 생각해도 그 붉은 마녀의 곁에서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질 급하고, 난폭한데다 자식 생각하기를 집에서 키우는 간식인 오크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자신의 엄마 칼슈마였다. 그런 엄마라면 자신이 남들에게 붉은 마녀라고 욕을 해도 하나 미안할 것이 없는 칼라드였고, 오히려 그런 엄마 밑에서 자신이 이만큼 멋지게 성장했다는 사실이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네오 칼라드. 자신의 이름인 칼라드 드보르켄을 버리고 어렸을 적 동경했던 용사 네오 데이나이드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네오 칼라드로 만든 이 엉뚱한 드래곤이 용사를 꿈꾸는 마법사 스튜언 맥그레이브와 만난 것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칠십 년 전쯤의 이야기이다. 집을 떠나 가출한 칼라드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하여 한동안 어색한 인간 생활을 전전했는데 그나마 엄마 칼슈마의 레어에서 익힌 7서클 마법으로 신변의 위협은 없었다. 드래곤 본체로 돌아가면 아마도 칼슈마나 다른 드래곤에게 들킬 것이 확실했기에 칼라드는 위험한 상황이 있어도 절대로 본체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안 인간 생활을 하던 드래곤 칼라드는 7서클 마법을 바탕으로 용병생활을 전전했는데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인간의 검술을 전쟁터에서 보고는 검술을 배워야겠다는 열망을 품게되었다. 그래서 용병 생활에서 알게된 어느 노검사를 통해서 검술을 배웠는데 노검사의 실력이 예상했던 것 보다 뛰어난바 그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노검사가 죽기까지 근 십 년 동안 검술을 익힌 칼라드는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이르렀지만 자신이 원했던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더 뛰어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산에 틀어박혀서 검술 연마를 하게 되었다. 근 백년을 넘게 검술에 온 정성을 쏟아 부은 칼라드는 드래곤 초유의 소드 마스터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원체 게으른 드래곤의 성격상 검술로서 소드 마스터 경지에 오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 드래곤보다 인간을 동경한 칼라드는 성룡식을 치르지 않아 드래곤 본연의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끈기와 인내를 바탕으로 이를 악물고 매진에 매진을 거듭해서 소드 마스터가 된 것이다. 백년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여 소드 마스터를 이룬 칼라드는 드디어 자신이 동경했던 네오 데모나이드처럼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펴며 산을 내려왔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쉽게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칼라드는 십년이 넘게 방황하다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렇게 해서 그가 찾아간 곳이 바로 영웅을 꿈꾸는 마법사 스투언 맥그레이브가 있는 곳이었다. 스투언은 칼라드 아니 네오가 소드 마스터 경지의 검사라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그 동안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변변한 동료가 없는 관계로 자신을 꿈을 접었던 그에게 영웅을 꿈꾸는 또 하나의 동지가 찾아 온 것이다. 둘은 금새 죽이 척척 맞았고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원했던 영웅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벌여나갔다. 영웅을 꿈꾸는 소드 마스터와 7서클 마스터 마법사가 만났다는 것만으로 대륙은 열광했고 그들의 실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금새 대륙에서 이름 깨나 있는 자들이 몰려들어 큰 파티가 만들어 졌다. 그 중에는 전쟁의 신 아슈르를 섬기는 성기사도 있었고, 대지의 여신 라르샤를 섬기는 여사제도 있었다. 물론 엘프와 드워프도 빠지지 않았는데 마치 오래 전 마룡 블랙 드래곤 크레이슈터너를 물리친 용사 네오 데모나이드 일행의 판박이를 보는 것 같았다. 영웅이 필요했던 대륙은 열광했고 네오 칼라드를 주축으로 모인 파티는 당시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악명 높은 악룡 루시아페르를 처단하기로 결정하고는 악룡이 살고있다는 레어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악룡 루시아페르는 동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페어든 산맥에 웅크리고 있는 블랙 드래곤으로 알려졌는데 그것은 예전 네오 데모나이드 일행이 마룡 크레이슈터너를 물리친 행적과 거의 비슷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네오 데모나이드 일행의 행적을 모방한다고 비난했지만 그것은 영웅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열망 때문에 쉽게 묻혀졌고 네오 칼라드와 그의 일행들은 악룡을 처단한다는 미명아래 무수한 사람들의 환영까지 받으며 루시아페르의 레어가 있는 페어든 산맥에 도착했다. 페어든 산맥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산맥의 줄기를 따라 빽빽하게 뒤덮은 녹색의 숲은 그야말로 고대의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질리도록 가득 찬 녹색의 삼림(森林)은 이미 숲이라는 이미지를 떠나서 수해(樹海)라고 칭해도 누구 하나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온갖 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데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천연의 요새처럼 느껴졌다. 거기다가 산맥은 매우 험악하고, 악명이 높은 곳이어서 인간이 살고 있다는 기록은 없고 숲의 종족이라는 엘프조차 각종 몬스터와 날짐승 때문에 생활 터전을 옮겼다고 할 정도이다. 드래곤 슬래이어를 꿈꾸는 네오 칼라드 일행은 그 천연의 원시림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여행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들은 모두 합쳐서 일곱 명으로 파티를 이뤘는데 소드 마스터 네오 칼라드를 필두로, 7서클 마법사 스투언 맥그레이브, 팔라딘 급 전사인 보아른, 전쟁의 신 아슈르를 섬기는 성기사 아르니온, 대지의 여신 라르샤를 섬기는 여사제 제르시나, 최상급의 정령을 부린다는 정령사이자 엘프 셀미온, 드워프 족의 전사 포테로 등이다. 처음 페어든 산맥의 초입에서부터 네오 일행은 고난을 겪게 되었는데 숲의 종족이라는 엘프조차 이 고대의 원시림에서 길을 잘 찾지 못하였다. 아니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기에 그들은 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전진해야 했다. 몬스터나 날짐승이 살고 있다면 그들이 다니는 길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산맥의 입구에는 그런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난폭한 블랙 드래곤의 영향 때문이야. 예전에는 많은 몬스터와 날짐승, 들짐승들이 종종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아예 흔적조차 보이질 않으니..." 마법사 스투언은 흔적을 찾던 일행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신들이 상대할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했다. "100년인가? 제국의 기사단이 그 악룡을 처단하려고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왔다는 기록이 있어.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팔라딘급 기사만 10명은 넘었다고 하던데 산맥으로 들어간 후 소식이 끊겼다고 하더군.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했어." "팔라딘 10명씩이나 들어갔는데 소식이 끊겼다고...?" 팔라딘 전사 보아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스투언을 다그쳤고 스투언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너는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웜급 드래곤 한 마리만 있어도 작은 도시 하나쯤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스투언의 한심하다는 말에 이 단순 무식한 전사는 입을 삐쭉 내밀고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럼 어떻게 싸워?" "영웅이 되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나?" 난쟁이 드워프 포테르는 그 짧은 다리로 힘겹게 쫓아오다 보아른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고개를 쳐들고 그렇게 외쳤다. 보아른은 갑자기 아래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화들짝 놀라다가 상대가 드워프 포테르임을 알고는 격렬하게 뛰었던 심장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무슨 짓이야? 놀랐잖아?" 보아른은 자신을 놀래 킨 포테르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그쳤는데 그런 보아른의 보는 포테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한심해서 그런다. 한심해서..." "..." 무척 기이하게도 일행이 페어든 산맥 깊숙이 전진하면 전진할수록 그 흔하다고 알려진 몬스터를 한 마리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로써는 어느 정도 안전한 여정이라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편한 것하고,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것이 편안하다고 해도 편하지가 못한 것이다. 거의 삼일 여정동안 그들은 개미새끼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커다란 산맥에 그 흔한 몬스터 한 마리조차 살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다. 그나마 조그마한 날짐승들의 흔적은 보였지만 그것도 아주 약한 초식동물들뿐이고 육식 동물이라고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때, 이상한 점은 없어?" 너무도 편안 여정이지만 심적으로 무척 긴장되는 일행들에게 앞서 지형을 살피던 엘프 셀미온이 돌아오자 네오가 그렇게 물었는데 셀미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아직까지 악룡의 반응은 포착하지 못했어요. 레어로 예상되는 곳이 있어 가 보았는데 대단위 탐지 마법이 걸려 있을 것 같아서 가까이 까지는 가보지 못하고 주위만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예상외로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엘프라는 존재가 원래 미남, 미녀가 많다고는 하지만 네오에게 보고를 하는 셀미온은 다른 엘프들보다 더 미녀처럼 보였다. 무릎 위까지 올라간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그녀의 다리는 남자의 시선을 충분히 끌만큼 매혹적이었는데 일행은 그녀의 다리보다는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 약간의 방심이 가져올 결과를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일단 셀미온이 발견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하지." 네오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룡의 레어가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할만큼 매우 아름답군요." 악룡의 레어로 짐작되는 곳을 이동하는 대열에서 갑자기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매우 매혹적인 음성인데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대지의 여신 라르샤를 섬기는 여사제 제르시나는 40대 후반의 노년이지만 신의 축복인지 생김새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여자처럼 보이는데 그녀는 주위를 감싸는 진한 꽃향기와 가슴을 청량하게 만드는 숲의 내음에 빠져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감탄이 섞인 말에 뒤쪽에서 약간 긴장을 하고 있던 드워프 전사 포테로의 핀잔이 들렸다. "쉿! 지금부터는 조용히 하고 걸으라고... 드래곤의 레어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레어에 도착하기도 전에 드래곤의 디저트가 되고 싶지 않으면..." 보기보다 약간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마법사 스투언은 철없는 여사제 제르시나와 그녀와 다투는 드워프 전사 포테로의 말싸움을 막으며 옆쪽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선두를 서고 있는 붉은 머리 용사 네오 칼라드를 슬쩍 바라보았다. 네오 칼라드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는 표정인데 아마도 드래곤의 레어에 거의 도착하면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흥분했으리라 생각이 드는 스투언이였다. 그들이 침묵을 고수하고 다시 전진할 무렵 일행은 무언가 틀려진 숲의 분위기에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떠들 때는 몰랐는데 침묵 보행 후 숲의 이상함을 감지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 그들의 귓전을 메우던 풀벌레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무척 잔잔한 고요만이 숲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의 레어가 분명하군." 그들이 숲의 고요 때문에 긴장하고 있을 무렵 네오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고 스투언을 포함한 일행들은 잔뜩 긴장했던 분위기에서 이제는 숨까지 죽이며 네오가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그런 그들의 눈은 삽시간에 화등잔(火燈盞)만하게 커졌는데 그들의 정면에는 어마어마한 굴이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굴의 입구는 거대한 아가리를 "쩌억" 하니 벌리고 있는데 그 높이만 대강 추려보아도 20미터 이상은 충분히 넘어 보였다. "으음... 저 정도 크기면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드래곤이지? 거의 이십 미터는 충분히 육박할 것 같은데..." 떨리는 음성으로 고개를 쳐 들은 전사 보아른은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의 입구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드래곤에 대한 상식이 부족해서 무식한 것이 용감하다고 해도 드래곤 레어의 입구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보아른 이었다. 드래곤을 뒷산에서 노는 무슨 동네 오우거 쯤으로 생각했던 그의 무식함이 단번에 사라진 순간이었다. 아까 까지만 해도 슬레인의 말을 반신반의하던 보아른은 이제는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데 질문을 받은 네오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입구를 예의 주시한다. 그러더니 일행을 보고는 나직이 말을 꺼냈다. "잘 들어. 지금 우리가 선택할 방법은 많지 않다.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하도록 해!"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일행의 귓전에 들린다. "첫 번째는 드래곤 레어 안으로 들어가서 드래곤을 잡는 방법이다. 물론 이때는 제한적 공간에서 싸우고 우리가 레어의 지형을 모르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드래곤의 활동 반경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때문에 공중에서 공격하는 드래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다른 방법은...?" 이제는 드래곤에 대해 어느 정도 무서움을 느낀 보아른이 안달이 나서 묻는다. "두 번째 방법은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밖으로...?" "그래... 상대를 유인해서 입구 쪽에서 단번에 잡는 방법이지. 하지만 첫 번째 공격이 실패하면 우리는 무척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네가 선택하고 싶은 방법은...?" 스투언이 네오를 향해 그렇게 묻는데 네오도 약간 긴장이 되는지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유인해서 단번에 잡는다. 상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단 일격에 죽여야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당한다." 네오의 말에 모두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의를 표했다. 일행의 리더인 네오가 세운 계획은 이러했다. 7서클 마법사 스투언이 위력이 강한 대단위 공격마법인 파이어 블래스트를 동굴 입구로 날려서 상대를 격동시킨다. 자신의 레어에 마법 공격을 받은 드래곤은 무척 흥분해서 밖으로 나올 것이 분명하고 그러면 입구로 나오는 드래곤을 기다리고 있던 스투언의 마법과 셀미온의 정령술을 이용해서 공격을 하는 것이다. 마법과 정령술로 드래곤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기회를 보아 입구 양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보아른과 성기사 아르니온, 포테로등이 기습 공격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의 공격은 드래곤에게 많은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7서클 마법이나, 최상위급 정령술을 이용한 공격이라고 해도 마법 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드래곤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팔라딘급 실력을 갖추고 있는 보아른의 검기가 실린 검이나, 성기사 아르니온의 신성력이 담긴 오러 소드, 무지막지한 힘을 자랑하는 드워프 포테로의 무식한 도끼질이라고 해도 강철보다 강하다고 알려진 드래곤의 비늘을 뚫고 얼마만큼의 타격을 줄지는 의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결정적인 마무리는 네오의 검에 실린 오러 블레이드가 필요했다. 일행의 공격에 당황하기는 하겠지만 자신에게 별반 타격을 주지 못하는 공격에 드래곤은 방심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네오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서 드래곤의 급소에 오러 블레이드가 실린 검을 박아 넣겠다는 것이다. 네오의 계획이 착착 맞게 진행된다면 그들은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다른 누구보다 영웅을 꿈꾸는 스투언의 안색은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이 역력한데 그 이유는 소드 마스터 네오의 강력한 오러 블레이드를 믿기 때문이다. 드래곤의 몸은 쇠보다도 강한 딱딱한 비늘이 온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무기로는 뚫을 수조차 없다. 하지만 마나를 실은 오러 블레이드의 경우에는 예외였다. 모든 계획이 정해지자 여사제 제르시나가 일행에게 축복의 주문을 내렸다. 그녀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보여주었던 철없는 아이 같은 모습은 어느새 잊어버렸는지 성스러운 기운을 내비치며 일행의 무기에 축복을 내리는데 마치 자비로운 여신의 모습을 방불케하였다. "그럼 계획대로 모두 움직이자고..." 제르시나의 축복이 끝나고 네오의 말에 파티의 일행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았는데 선제 공격을 할 스투언과 엘프 셀미온은 입구 쪽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사제 제르시나의 경우 전투에는 별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옆쪽 숲 속 안전한 장소에 대기했고 근접전을 벌일 보아른, 아르리온, 포테로등은 빙 돌아 레어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네오의 경우에는 결정적인 기회를 노려야 하기 때문에 상대의 시선에 걸리지 않는 곳에 대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은 동굴의 위쪽 절벽 위였는데 땅에서부터 거의 높이가 25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이런 높은 곳에서 어떻게 기회를 잡으려는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에게 다른 방법이 있을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일행은 네오의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네오의 손짓을 시작으로 그들의 드레곤 사냥은 시작되었다. "파이버 블래스트" 붉은 화염은 가공할만한 원형의 모습을 드러내며 빠른 속도로 거대한 동굴로 쏘아졌다. "콰아앙..." 순식간에 대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들리고 그 거대한 동굴이 폭발의 진동으로 곤욕을 치르기 시작했다. 부스스 떨어지는 돌덩이와 흙먼지는 동굴 주위를 자욱하게 메웠고 사람들의 시선을 가렸다. "파이어 블래스트..." 다시 한번 쏟아지는 스투언의 화염 공격은 혹시라도 레어에서 나오지 않을 소심한 드래곤을 떠올리면서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먼지 때문에 혹시라도 모를 위험을 대비하고 날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의 공격 때문에 다시 한번 큰 폭음이 들렸다. 파이어 블래스트의 영향으로 동굴은 무자비하게 흔들렸고 떨어지는 돌덩이와 흙은 조금전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일행은 두 번의 공격으로 드래곤이 화를 내며 나올 것을 기대하며 긴장한 눈빛으로 다음 공격을 기다리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동굴 안은 무척 조용했다. 네오 일행은 동굴 안에서 금새라도 나올 듯한 드래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무척 당황한 표정인데 특히 마법 공격을 날린 스투언은 초조한 안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된거지?" 스투언은 다음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동굴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어 캐스팅을 풀어 버리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옆쪽에서 정령을 불러내어 공격하려던 셀미온도 마찬가지 심정인지 그를 보면서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동굴의 양옆에 대기하고 있던 보아른과 아르니온, 포테로등도 동굴 속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초조하기는 마찬 가지였다. 보아른은 긴장한 가운데 동굴 밖을 나오는 드래곤을 공격하기 위해 검에 마나를 있는 힘껏 불어넣고 검기를 일으킨 가운데 기다리고 있다가 드래곤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제길... 여기에 없는 것 아니야?" 중얼거리는 보아른의 긴장은 어느새 풀렸는지 동굴 쪽을 뚫어지게 주시하던 그의 시선은 무의식 적으로 앞쪽에서 드래곤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스투언과 셀미온 일행에게로 향했다. 그런 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두 배쯤 커지는데 그는 간신히 팔을 들어 검지 손가락을 피더니 중얼거렸다. "저... 저기..." 한참 긴장한 상태로 동굴 입구 쪽에서 드래곤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르니온과 포테로는 갑자기 보아른의 떨리는 음성이 들리자 무슨 일인가 하고 그의 시선을 쫓아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스투언과 셀미온 뒤쪽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물체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제일 놀란 것은 역시 스투언과 셀미온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 자신의 일행을 보고는 무슨 일인가 해서 무의식 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들의 눈동자는 급격하게 커졌다. "레... 레드 드래곤..." 스투언은 거의 질린 듯 한 안색을 보이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는데 옆에 있는 엘프 셀미온은 이미 얼굴이 창백한 상태에서 온 몸이 공포 때문에 굳어져 있었다. 네오 일행의 눈에 잡힌 존재는 크기가 무려 17-8 미터는 충분히 넘어 보이는 붉은 비늘을 갖고있는 드래곤이었는데 그들이 예상했던 블랙 드래곤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가소로운 놈들... 감히 내 레어에서 장난질을 치다니.." 고막을 울리는 거대한 목소리는 분명 인간의 음성이었지만 그들은 그 거대한 존재가 뿜어내는 기운에 온 몸이 굳어졌다. "드래곤 슬래이어를 꿈꾸는 자들인가? 하기는 그런 헛된 망상을 꾸는 종족들은 너희 호비트들밖에 없지." 레드 드래곤의 거대한 두 다리는 마치 두 개의 기둥을 땅에 박은 것처럼 굳건하게 서 있었고, 온 몸을 감싸는 붉은 비늘은 기사의 갑옷을 연상케 할만큼 단단해 보였다. 등뒤로 접은 거대한 날개와 이마 양쪽으로 뻗어있는 거대한 뿔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잡아넣기에 충분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 거대한 크기만으로 충분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저 거대한 드래곤을 퇴치한다고 왔는지 처음 드래곤을 발견한 보아른은 후회 막급이었다. 저런 거대하고 무서운 존재인줄 알았다면 그는 이 일행에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병으로서 수많은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많은 죽음과 공포를 접해보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무서운 적은 없었다. 저 거대한 존재가 지금 보여주는 위압감은 죽음에 대한 공포 그 이상이었다. 네오 일행은 보아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후회막급이었다. 처음 네오의 계획을 들었을 때는 모든 것이 쉽게 풀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지만 막상 일이 틀어지고 자신들의 앞에 그 거대한 본체를 드러내고 있는 레드 드래곤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니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이미 판단을 좌우하는 그들의 두뇌는 모든 활동을 중지한 체 드래곤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 동굴 위 절벽 위에서 기회를 노리며 숨어있던 네오 칼라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자신은 악룡 블랙 드래곤을 죽인 드래곤 슬래이어로 사람들이 기억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물론 같은 일족은 아니더라도 동족인 블랙 드래곤을 죽인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미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인간들이 널리 우러러보는 영웅이 된다는 것은 칼라드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되는 마음으로 자신이 검이 블랙 드래곤을 죽이는 결정적인 순간만을 내심 그리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네오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인데 아무래도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네오는 자신의 정면에 보이는 광경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레드 드레곤... 강철보다 강하다고 알려진 붉은 빛이 감도는 비늘과 이마 양옆으로 뻗어 나온 거대한 뿔, 그리고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거대한 본체는 자신이 잘 알고있는 레드 드래곤의 형상이었다. 왜? 네오는 정말 그렇게 묻고 싶었다. 왜 이곳에 블랙 드래곤이 아닌 자신의 일족인 레드 드래곤이 있는 것인가? 그것도 크기를 보면 최소한 3,000살 이상 되어 보이는 웜급의 드래곤이 확실해 보였다. 엄마를 피해 가출 나온 레드 드래곤 칼슈마 드보르켄은 거의 자신의 엄마와 동년배의 나이를 먹은 드래곤과 마주친 것이다. '도망가야 한다.' 네오의 마음은 거의 굳어진 상태였다. 영웅이고 뭐고 지금 여기서 저 드래곤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인간을 꿈꾼다고 해도 일족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를 배짱도 없었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다. 아니 상대고 뭐고 저 레드 드래곤에 잡히면 분명 자신은 그 무식한 엄마 칼슈마에게 끌려갈 것이 분명했다. 네오는 그것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하기는 웜급의 드래곤을 인간이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만약 레드 드래곤이 아닌 블랙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해도 네오는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의 검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성년을 훨씬 뛰어넘은 웜급 드래곤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오러 블래이드고 뭐고 웜급의 드래곤이라면 경험적인 측면에서 허점이 많은 자신의 계획을 충분히 흔들어 놓을 수 있고 또 이미 드래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호비트들! 나를 찾아온 용기는 가상하다만 감히 페어든 산맥의 주인인 나 쉴마르 칸 리파우드의 레어에서 소란을 피운 죄는 용서하기 힘들다." 레드 드래곤의 드래곤 피어가 담긴 호통이 들리자 네오 일행은 그 극심한 공포 때문에 손에 힘이 풀렸고 들고있던 무기도 떨어트렸다. 네오의 경우에는 살기가 담긴 드래곤 피어의 공포보다 그 이름에 대해 극심하게 놀랐는데 그 이름은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름이었다. 난폭하고 성질 사납기로 유명한 칼슈마가 매일 악다구니를 하면서 이를 갈았던 이름이 바로 쉴마르 칸 리파우드가 아닌가? 헤즐링인 자신을 밥도 주지 않은 체 레어에 남겨두고 밖으로 쏘다녔던 이유도 바로 그 이름을 갖고 있는 존재 때문이 아니던가? 자신이 결국 인간이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존재가 바로 쉴마르 칸 리파우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존재였다. "아빠?" 네오 칼라드는 자신의 모든 계획을 망친 존재가 바로 자신의 아빠라는 사실에 멍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텔레포트를 외치며 사라졌다. 걸리면 최소한 중상이고 심하면 사망이다. 난폭하고 성질 사나운 엄마까지 골탕먹였던 존재가 바로 아빠였기 때문이다. 네오가 도망친 줄은 모른 체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 다른 일행들은 레드 드래곤 쉴마르 칸 리파우드의 식후 디저트가 되었고 쉴마르는 이들 말고도 다른 존재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미 도망간 것이 확실한 매우 약삭빠른 놈인데 그자는 무척 강해 보이는 붉은 머리의 인간 청년이었다. 하지만 인간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강해 보이는 존재 때문에 그 기운을 감지한 쉴마르는 결국 그 존재가 분명 성년이 되지 않은 레드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쉴마르는 자신의 일족 중 헤즐링 시기를 벗어나 성년을 넘기지 않은 존재는 자신과 칼슈마의 자식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가출했다고 그 난리를 피우던 자신의 자식이 왜 이곳에 그것도 자신을 죽이려고 일행을 끌고 왔느냐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일은 성질 사나운 칼슈마의 농간임이 확실하다고 심증을 굳히고는 이제는 자식까지 동원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는 사실에 이를 갈았다. 칼슈마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블랙 드래곤 그것도 매우 난폭한 악룡이 살고 있다는 거짓 소문을 냈는데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보금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철없던 때 벌였던 불장난이 내심 후회되는 쉴마르였다. 쉴마르는 쉴마르대로 자신의 레어를 버리고 페어든 산맥에서 도망갔고, 네오는 네오대로 아빠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어느 깊은 산 속에서 숨을 죽이며 쥐 죽은 듯이 숨어있었다. 이 두 난감한 레드 드래곤 부자는 그렇게 이 사건이 잊혀지기를 기다리며 도피를 했다. 20장. 산적이 영웅보다 좋은 이유 ??"네오... 네오... 이자식 도대체 어디서 퍼 질러 있는 거야?" 소리를 버럭 지르며 누군가를 찾는 사내는 우람한 덩치에 근육질이 두툼하고 짧은 콧수염을 기른 자로 짜증이 가득 섞인 음성으로 이곳 저곳을 헤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한참 식탁에 앉아 닭다리를 뜯고 있던 30대 후반의 배불뚝이 사내는 네오라는 인물을 찾는 사내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아.. 러프! 혹시 네오 그 자식 못 봤어? 두목이 찾고 있는데 보이질 않으니..." 배불뚝이 사내는 러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네오라는 인물을 찾는 사내는 무척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으로 보였다. 그의 난처한 상황을 파악한 러프는 그 큰배를 출렁이며 웃음을 흘리더니 대답했다. "푸하하... 네오 녀석 또 어디서 퍼 질러 자고 있는 모양이군! 놈의 행방은 제이크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를 거야." 러프의 말에 콧수염 사내는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냐는 듯 자신의 머리를 치더니 러프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는 얼른 달려나갔다. "제이크... 제이크..." 숨까지 헐떡이며 사내가 찾은 곳은 무척 규모가 커 보이는 연무장인데 많은 사람들이 각자 손에 맞는 병기를 들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내가 외침에 반응을 보인 자 중에는 수려하게 생긴 외모의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몸은 매우 건장하고, 꽤나 근육질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샤르만씨..." 제이크라 불린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그 콧수염 사내를 보며 물었는데 사내의 이름이 샤르만인 모양이다. "혹시 네오 못 봤나? 두목이 찾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으니..." 샤르만의 표정을 읽으며 그의 현재 상태를 짐작한 제이크는 안됐다는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많이 찾아 헤맨 것 같군요. 진작에 저를 찾아오시지. 아마 저쪽 나무 그늘 아래서 자고 있을 겁니다. 이 시간이면 저쪽에서 자는 게 습관이거든요." 제이크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방향을 알려준 곳에는 커다란 나무가 땅에 뿌리며 박으며 하늘 위로 뻗어 있는데 무척 오래된 고목임을 입증이라도 시키는 듯 울창한 가지에 수많은 잎들이 서로의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샤르만은 제이크의 말을 듣더니 인상이 일그러지며 나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자신을 이렇게 고생시킨 놈은 한가하게 나무 밑에서 퍼 질러 자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만든 것이다. 달려가는 샤르만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인 제이크는 또 한소리 들으며 무신경한 얼굴로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알았어!" 하며 한마디 툭 내뱉고 상대를 더욱 열 받게 만들 붉은 머리 사내를 상상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붉은 머리 청년 네오 칼라드는 무척 게으른 편에 속하는 인물로 실력은 뛰어나지만 별로 열심히 하지 않는 성격이다. 두목이 찾는 모양인데 아마 이번에 새로운 상단들이 자신들이 근거지로 삼은 이곳 무라토리 산맥을 넘을 모양이다. 대규모 상단의 경우에는 호위하는 용병대의 규모도 크고, 실력도 뛰어나서 자신들 무리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네오를 찾는 것이 두목이 맨 처음 하는 일이다. 제이크는 처음 네오와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1년 전 루센의 용병단이라는 블랙 용병단의 호위를 받던 상단을 기습할 때였다. 나이트급 검사가 여러 명 포진된 블랙 용병단이 호위를 맡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단을 습격했던 그들 산적 패거리는 무척 당황했다. 상대는 자신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나이트급 용병들이 여러 명 포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 산적 무리들도 산적으로는 무척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나이트급 검사가 둘 이나 있었다. 두목인 코렐과 몰락 귀족 출신이라는 제이크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상대는 나이트급 검사가 5명이나 있었고 상단을 습격한 산적 일당은 무척 버거운 상대와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초반에 기습으로 상단을 호위하던 용병단을 밀어 부쳤지만 나이트급 용병들이 앞으로 나서자 상황은 금새 반전되었다. 두목인 코렐과 제이크가 두 명의 나이트급 용병을 막고 있다고 해도 상대는 아직도 세 명의 나이트급 검사가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라 산적들은 무척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되었다. 물론 산적들 중에 나이트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나이트급과 나이트급을 바라보는 자들과는 수준 차이는 엄청난 것이라 그들 산적 무리는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때 나타난 것이 붉은 머리의 청년 네오 칼라드였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붉은 머리에 허름한 망토 하나를 걸치고, 허리춤에 장검을 꽂은 상태에서 어슬렁거리며 산적과 용병단의 난전 속에 끼어 든 이 사내는 처음 무슨 일인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용병 중 하나가 그도 산적 패거리인줄 오해하고 공격을 했는데 갑자기 용병이 공격하자 네오는 당황하여 슬쩍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쉽게 피하자 용병은 악이 받쳐 더 무자비하게 덤벼들었는데 싸움을 별로 반기지 않았던 네오는 상대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달려들자 열이 받았는지 검을 뽑아 단숨에 상대의 목을 날렸다. 그 상황을 나이트급 용병이 목격하게 되었다. 네오에 의해 자신의 동료가 처참하게 목이 잘려 죽어 나가자 나이트급 용병은 검에 검기를 일으키고는 네오에게 달려들었다. 네오는 이번에 달려오는 자가 나이트급 검사임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그와 싸웠는데 난데없이 끼어 든 이 붉은 머리 청년을 싸우는 와중에도 슬쩍 보았던 제이크는 그의 입가에 이는 미소에서 그가 무척 강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감지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난전 속에 그것도 나이트급 검사를 상대하는 자의 입가에 재미있다는 미소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가 미쳤거나 아니면 무척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이크의 예상처럼 이 붉은 머리 청년의 실력은 몹시 뛰어났다. 그는 덤벼든 나이트급 검사와 몇 번 검을 섞어 보더니 단숨에 그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그것이 첫 나이트급 검사의 죽음이었고 그의 죽음 때문에 다른 나이트급 용병들이 네오라는 붉은 머리 청년에게 달려 들었고 그들도 처음 사람과 비슷한 죽음을 당했다. 산적들은 갑자기 불쑥 나타난 네오의 활약으로 거의 죽음에 내몰렸던 상황에서 반전되어 상단을 호위하던 용병들을 몰아쳐 갔고 이미 붉은 머리 청년에 의해 세 명의 나이트급 전사가 죽어나가자 용병단은 자신을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산적과 붉은 머리 청년 네오 칼라드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무라토리 산맥은 산세가 험하고 규모가 큰 산적 떼가 있어서 산맥을 넘는 사람들은 큰 무리를 이루어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통행세를 내서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물품을 운송하는 상단의 경우에는 통행세만으로 산적을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예전 상단이 무라토리 산맥의 산적 떼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팠던 결과 때문에 이루어진 것인데 그 때문에 산맥을 통과하는 상단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북부 하르에서 동쪽의 대도시 셀잔이나 미르 국경을 신속하게 왕래할 수 있는 도로가 마련되어 있는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거의 7일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린다. 7일의 여정이라는 것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급한 상단의 경우에는 대규모 용병단을 고용하여 산적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한다. 보통은 블랙급 이상을 고용하지만 예전에 블랙급 용병단이 산적 떼에게 깨지고 나서는 실버급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하지만 실버급 용병단을 고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일이라 실버급 이상의 용병단을 구하는 상단은 별로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꼭 산맥을 넘어야 하는 상단의 경우에는 손해를 무릅쓰고 실버급 용병단과 계약해서 산맥을 넘는데 그것도 산적들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향상되어서 지금은 실버급 용병단들도 몹시 꺼려한다고 한다. 또한 실버급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는 용병단을 구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산맥을 넘는 상단은 거의 없었다. 지고 상단의 주인이자 책임자인 톨푸카 지고는 몰락 귀족 출신으로 한때 남작의 작위를 갖고 있던 인물이다. 하지만 몰락 귀족이라는 것이 작위만 있을 뿐 돈과 영지도 없는 관계로 가족들은 배를 골아야만 했다. 이에 톨푸카 지고는 과감하게 귀족의 명예를 버리면서 남작의 작위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상계에 투신했다. 그는 다행히 귀족 출신이라 학식이 높았고 풍채도 좋은 편이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계산에 밝고, 수완도 제법 뛰어나서 금새 상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시작한 톨푸카 지고는 금새 중소 상단을 키우더니 하르에서 나오는 풍부한 밀을 바탕으로 미르와 교역을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미르는 양질의 광물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지만 식량이 부족해서 파미르 왕국에서 수입을 하는 형편이다. 톨푸카 지고는 이를 놓치지 않고 하르에서 대규모의 밀을 사들여 미르로 가져다가 팔고, 대가로 받은 그 돈으로 다시 양질의 광물을 사들여 파미르에 파는 수완을 발휘하면서 점차 커나갔다. 지고의 상단은 조금씩 성장하더니 십 년도 안되어 하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규모 상단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는 톨푸카 지고는 상단을 더욱 크게 만들 기회만을 기다렸다. 기회를 기다리던 톨푸카 지고는 마침내 기회를 맞게 되었다. 그것은 파미르와 미르의 외교 분쟁으로 야기된 것인데 미르의 삼각 받침대중 한 명이자, 미르 상단의 대부 격이라 할 수 있는 주엘 샤미르 암살 사건에 기인한 것이다. 미르 왕국은 암살자가 파미르 왕국 출신이라는 정보를 알아내고 이를 강력하게 항의하며 관련된 인물에 대하 처벌을 요구했다. 또한 파미르 왕국의 관리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 파미르 내에서 자신들이 직접 조사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파미르 왕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부인하며 내정 간섭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양 왕국은 몇백 년의 넘는 외교관계를 단절하고야 말았다. 바빌론 제국의 팽창에 따라 자국의 안전을 위해 맺었던 외교 관계가 깨진 것이다. 외교 관계의 단절은 곧바로 파미르의 곡물과 미르의 광물에 대한 국가적인 교역의 단절을 야기했고 파미르는 미르에서 수입하던 광물의 단절로 철 값이 폭등했고, 미르는 미르대로 수입에만 의존했던 식량의 단절로 밀가루 값이 껑충 뛰어올랐다. 이런 상호 양국의 단절로 말미암아 기회를 얻은 것은 상단이었다. 외교 단절로 국가적인 교역은 금지되었지만 양국간의 곡식과 광물은 서로가 필요했기에 암묵적으로 상인의 이동만은 막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톨푸카 지고는 대규모 상단을 조직하여 엄청난 수량의 곡물을 실은 상단을 미르로 보내게 되었다. 성공적으로 미르로 엄청난 수량의 곡물을 가져가면 톨푸카 지고는 엄청난 금액의 수익을 올릴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지고 상단은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알려진 미르와 파미르를 연결하는 교역로에서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았다. 위험한 무라토리 산맥을 넘는 것도 아니고 7일이라는 긴 여정을 감수하고 출발한 상단은 가장 안전하다는 곳에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싣고 갔던 수많은 곡물들은 모조리 도적 떼에게 빼앗기고 톨푸카 지고는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그러나 문제는 도적 떼에게 물건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미르의 상인들에게 선수금을 받았고 기일에 맞추어 곡물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용이 생명인 상단으로서는 만약 기일에 맞추어 곡물을 전달하지 못하면 엄청난 금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용 불량자로 상계에서 매장 당하고 만다. 기한을 넉넉하게 잡아서 20일 전에 출발했던 지고 상단은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다시 곡물을 운반해야 했고 기한을 맞추기 위해 무라토리 산맥을 넘어야 했다. 이 때문에 톨푸카 지고는 거금을 들려 용병단을 고용하려고 했는데 무라토리 산맥을 넘으려는 용병단이 없었다. 그것은 엘프들이 전한 소문 때문인데 무라토리 산맥에 드래곤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종족으로 알려진 엘프들의 말이니 그 소문은 거의 확실하겠지만 톨푸카 지고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산맥을 넘어야 했다. 기한을 맞추어 곡물을 운반하지 않으면 그의 상단은 물론이고 그 자신은 상계에서 빚더미에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소문을 전달했던 엘프들이 속해있는 실버급 용병단이 톨푸카 지고를 살렸다. 새롭게 실버급 용병단이 되었다는 악마의 전사 용병단은 인원은 작았지만 이미 무라토리 산맥을 넘으려는 용병단이 없었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톨푸카 지고는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이번 미르로 향하는 상단은 톨푸카 지고가 직접 참여했는데 밀 포대를 실은 마차가 무려 100대가 넘었고 상단에 소속된 자들이 200명이 참여한 대규모 행렬이었다. 상단 인원이 200명이나 참여한 것치고는 호위 인원은 무척 작아서 40명밖에 안되었지만 숲 속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는 엘프 전사들과 다섯 명으로 실버급 실력을 입증했다는 악마의 전사들의 실력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일행은 드래곤이 버티고 산적들이 있다는 무라토리 산맥을 향해 출발했다. "정찰대가 도착했나?" 삼십대 후반의 사내는 무척 강한 인상을 소유하고 있는데 한쪽 눈이 없는 애꾸의 사내였다. 그는 약간 호리호리한 체형이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었고 그의 물음은 옆에 서있던 사르만이라는 사내에게 물은 것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두목!" 사르만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출발한지 언제인데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 정찰대를 속으로 욕했다. "흐음... 놈들의 행렬이 생각보다 훨씬 느린가보군. 하기는 정보에 의하면 100여대의 수레를 동원했다고 하니 느릴 수밖에 없겠군. 감히 대규모 상단을 거느리고 이곳을 넘으려고 하다니 무척 대담한 놈들이야!" 두목이라는 사내의 말에 사르만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했다. "이봐... 코렐! 아직 인가?" 산적들이 아무리 난폭한 자들로 이루어 졌다고 해도 위계 질서를 무시하고 두목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는 단 한 명뿐이 없었다. 사르만은 손까지 흔들면서 히쭉 웃음을 내보이며 다가오는 붉은 머리 싸가지 네오 칼라드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두목 코렐 레브라드도의 이름을 동네 강아지 부르듯 거침없이 짖어대며 다가오는 네오가 영 못마땅한 그였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이제 갓 산채에 들어온 신출내기일 뿐이다. 블랙 용병단인 루센 용병단에 의해 거의 전멸한 자신들을 살린 은혜가 있다고 하여도 이제는 코렐의 산채에 정식으로 들어온 이상 그는 산채 내부의 위계질서를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 물론 두목 코렐이 그에게 자신과 같이 산채를 이끌자는 제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이미 거절했고 그냥 산채에 속한 상태에서 자유만을 고집했어도 말이다. 코렐의 산채에서 참모의 직위를 맡고있는 사르만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사르만의 이런 불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채의 두목인 코렐은 반가운 표정을 지며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어... 왔나?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이번에는 자네의 활약이 꼭 필요하다고..." 코렐의 말에 붉은 머리 네오는 피식 웃음을 내보이더니 손을 내저었다. "앓는 소리 그만하고 어디쯤 왔나? 요즘 일이 없어서 무척 짜증이 나던 참인데 잘됐군." 네오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웃는데 자신이 세운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음에 기분이 좋았다. 엘프 마을을 찾아가 협박한 결과가 이제서야 나타나는 모양이다. 반년 전 수면기에서 갓 깨어난 자신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서 호기심에 찾아간 곳이 산적들과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과의 전투였다. 간만에 인간들이 서로 피 튀기며 싸우는 장면이라 열심히 구경했는데 웬 용병 놈 하나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싸움에 끼여들었다. 뭐 싸움이야 별로 피하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참가한 전투였지만 오랜만에 겪어보는 전투에서 그는 제법 즐거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처음 어머니의 레어에서 도망칠 때는 영웅 네오 데모나이드의 행적만을 고집하며 그의 행적을 따라했는데 영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다. 특히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영웅이 되려면 많은 제약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자유를 박탈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니 많은 자유가 억압되었고 끝내 아버지를 사냥하려고 하는 엉뚱한 짓까지 하고 만 것이다. 네오는 자신들을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대접하는 산적들과 며칠간 어울리다보니 지금까지 자신이 인간 세계에서 누려보지 못한 자유라는 것을 만끽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에게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예법을 무시하는 산적들의 삶에 그는 매료되고 말았다. 가진 자의 부를 빼앗는 재미도 쏠쏠했고, 특히 용병단들과 검을 섞는 재미도 영웅을 꿈꾸던 그 시절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그는 영웅을 버리고 산적을 택했는데 아마도 자유가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추측이 된다. "이번에 좀 강한 녀석들이 온다는 정보야! 실버급 용병단이라고 하더군." "실버급?" 네오는 약간 의외라는 표정인데 그도 실버급 용병단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프들이 어떤 농간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실버급 용병단이라면 최소한 팔라딘급 검사 한 명과 나이트급 검사 10명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알기로는 엘프 마을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던 엘프의 실력을 아무리 높게 잡아주어도 나이트급 이상은 되지 않았다. "응... 갓 용병 등록을 한 용병단인 모양인데 인원은 모두 합쳐서 40명이 고작이라는 풍문이야. 그런데 특이하게 엘프들이 대부분이라는 소문이야." "엘프?" "그래... 숲에 사는 자존심 강한 놈들이 어떻게 인간 땅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웃긴 놈들이야. 하지만 그놈들보다는 처음 용병단 등록을 했다는 자들이 대단하다는 소문이야." "누군데...?" 네오도 무척 궁금했다. 솔직히 엘프들에게 상단을 이끌고 무라토리 산맥을 넘으라고 했던 이유는 조금 짜증났던 산적 유희에 신선한 충격이라도 주려고 꾸민 일이다. 요 몇 달 사이에 이렇다할 싸움이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상태였기에 한번쯤 검을 섞어볼 상대가 필요했고 그래도 숲 속에서 무척 빠른 엘프들과 싸우다보면 조금 짜증났던 이 생활도 조금은 풀리리라 계획한 일인데 실버급 용병단이라니... "흐흐... 자네도 무척 긴장이 되나 보지?" 코렐은 예상외로 많은 것을 물어보는 네오를 보면서 그렇게 툭하고 농을 던지는데 그 말을 들은 네오는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실버급 용병단이라면 팔라딘급 검사도 있을 테니 몸이 달아올라서 그래. 요즘은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몸에 녹이 슬었다고..." 네오의 말에 코렐은 알았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말했다. "아아... 농담이야! 농담... 하지만 이번에는 자네도 긴장해야 할거야. 들리는 이야기로는 대단한 놈이 하나 섞여있다는 소문이야. 믿을 수 없지만은 용병단 시험에서 리자드 헌터 두 놈을 갖고 놀았다고 하더군." 네오는 리자드 헌터라는 이야기에 약간 놀라는 빛을 보였다. 리자드 헌터라면 마계의 마족이 아닌가? 마계의 사냥꾼으로 알려진 놈들은 팔라딘급 검사도 꽤 고전한다는 강한 녀석들이다. 어지간한 검으로는 그들의 피부를 뚫을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무리 검기를 실은 팔라딘급 검사의 검이라고 해도 섣불리 상대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그런 놈들을 그것도 두 놈씩이나 데리고 놀았다면 상대가 보통 강한 인물이 아님을 의미한다. 물론 소문은 부풀리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강함을 예상하는 것이 승부에는 도움이 되었기에 네오는 온몸을 감싸는 짜릿한 흥분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도 모르게 무척 흥분이 되고 입가에 미소가 일어난다. 네오와 코렐의 이런 저런 대화가 막 끝날 무렵 앞쪽에서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잡혔다. "이제야 오는군. 놈들의 행렬이 무척 느렸던 모양이야." 코렐은 네오에게 그렇게 말하더니 달려오는 자를 기다렸다. 달려오는 자는 코렐이 미리 보냈던 정찰대인데 급하게 달려온 그는 코렐에게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십 분쯤 후면 이곳에 도착할겁니다. 정보대로 마차 100대와 호위로 보이는 자들이 한 40여명쯤 됩니다." 정찰병의 말에 코렐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사르만을 보며 명령했다. "후후...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자네는 계획했던 대로 매복을 시키도록 하게." 코렐의 명령에 사르만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령을 이행하려고 사라졌다. "흥분되나?" 코렐은 사르만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옆쪽의 네오를 슬쩍 훔쳐보았는데 아까부터 무언가 생각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거기다가 표정이 무척 상기된 것이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흥분되는군. 빨리 그자를 만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야. 오랜만에 상대다운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몸이 후끈거리는군." 네오의 말에 코렐은 웃음을 보이더니 자신도 그에게 전염되었는지 무척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미소를 보였다. ??무라토리 산맥은 소문과 다르지 않게 무척 험난한 듯 보였지만 다행히 산맥을 관통하는 넓은 도로가 있어서 수레가 지나기에는 불편이 없었다. 나는 선두에 세리안트와 그의 엘프 일족 전사중 행동이 무척 빠른 자 두 명을 전방 100미터 앞에 세우고는 느긋하게 그 괴짜 드래곤이 덤벼올 때만을 여유 있게 기다렸다. 그 괴짜 드래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옆에 있는 레이첼 듀 라미테이르 양은 무척 불만이 많은 모양인지 잔뜩 굳어진 얼굴로 마지못해 나를 따르고 있었고, 라미셀의 경우에도 약간 불안한 모양인지 귀를 쫑긋하는 모양이 무척 귀여웠다. 확실히 일행은 무척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데 나를 비롯해서 바이크, 아론, 가이가는 그다지 드래곤이라고 해도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인간적인 면이 많이 퇴색되어 버린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내가 불사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 등이 없었더라면 이런 곳을 굳이 자처하면서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 괴짜 드래곤에 대한 흥미 때문에 위험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자청해서 나서는 일은 꿈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드래곤을 상상하면서 웃음부터 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내가 이런 생각에 골몰할 무렵 선두에 섰던 엘프 전사 하나가 내게 뛰어왔다. "료우님! 전방 숲 속에 인간들이 숨어있습니다. 숫자로 보아서 대략 100명은 훨씬 넘는 것 같습니다." 다가온 엘프 전사는 내게 머리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그의 말을 듣고는 이제야 괴짜 드래곤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 반응과는 다르게 보고를 한 엘프 전사는 무척 긴장된 표정인데 아마도 그 괴짜 드래곤을 만난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뭐 사실 평범한 인간이나 엘프가 드래곤을 만난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기에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손을 들어 일행을 정지 시켰다. 내가 정지 명령을 내리자 뒤쪽에 있던 상단의 주인 톨푸카 지고씨가 다가왔는데 그는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전방에 산적 떼가 숨어있는 모양입니다. 한 100명 정도 되는 모양인데 더 깊숙이 들어가면 수레가 위험하니 이곳에서 상대하려고 생각중입니다." 내 대답에 톨푸카씨는 무척 놀란 표정인데 그는 무척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그들과 협상을 할 수 없겠는가? 돈이라면 어느 정도 지불할 용의가 있네!" 뭐 싸우지 않고 무사하게 통과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아마도 우리를 기다리는 괴짜 드래곤도 바라지 않는 일이지만 나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나는 지금 드래곤 슬래이어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드래곤의 실력을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위험을 자처할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기에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도 모르게 짧은 인생을 살다가는 인간은 결코 갖을 수 없는 유희라는 것을 하고있는 것일지 몰랐다. 내가 아무런 목표 없이 이것저것 뛰어드는 것도, 위험이라는 것을 즐기려고 하는 것도 아마 긴 인생을 갖게 된 순간에서부터 일 것이다. 마치 드래곤이 성룡식을 마치고 유희라는 것을 즐기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그런 마음으로 용병 생활을 즐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딴 생각을 하는 동안 톨푸카씨는 내가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 수용할 마음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보이는데 그의 한숨소리에 나는 옆길로 빠진 내 생각을 정리하고는 그를 보며 말했다. "아마도 저쪽에서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런 제의 따위는 하고싶지도 않고요." 내 말에 톨푸카씨의 안색이 창백한 도화지를 연상케 하듯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그런 표정에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있던 레이첼이 끼어 들었다. "료우씨! 설마 정말로 저들과 싸우겠다는 소리는 아니죠? 그들 중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레이첼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레이첼양! 이미 우리의 이야기는 지난번에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차후 내 말에 절대 이의를 달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내 물음에 레이첼은 입술을 깨물더니 휑하고 물러났다. 크크... 사악하기는 하지만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레이첼 일행에게 몇 가지 다짐을 받았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그들이 우리 용병단에 소속된 이상 단장인 내 말에 절대 복종하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판단이 선다면 용병단에서 나가는 것은 절대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 일행은 일단 우리 용병단에 소속이 되었다면 단장인 내 말에는 절대 복종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들 말하는 군대식 사고방식인데 나는 나를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할 마음은 없었다. 뭐 여타 다른 자잘한 것은 제외하고 내 말에 절대 복종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와 별로 충돌할 이유가 없었다. 엘프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의 조건을 받아준 이상 그 대가로 5년간 내 밑에서 일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엘프 전사는 의외로 쓸모가 많은데 특히 숲 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솜씨 좋은 마법사와 정령사, 궁사등이 즐비해서 내가 억지로 잡아두려고 하는 것이다. 산기슭에서 매복하고 있던 코렐과 네오등의 산적 패는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 상단을 보면서 자신들의 매복이 들켰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쩝... 엘프들이 선두에 서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군. 숲의 종족이라는 그들의 눈을 피해 산에서 매복을 한다는 것이 어리석었어." 코렐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손을 들어올려 매복을 풀고는 상단이 있는 곳으로 무리를 이끌고 이동했다. 료우의 용병단과 상단의 사람들은 100여명이 넘는 산적 패들이 다가오자 약간 긴장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별반 표정의 변화가 없는 자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그 수는 매우 한정되었다. "이곳을 넘으려면 우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군." 코렐은 앞으로 나서며 나직하게 말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있던 료우는 그를 자세히 살피다가 슬쩍 옆에 있는 세리안트에게 물었다. "저자야?" "아닙니다. 뒤쪽에 있는 붉은 머리의 사내입니다." 세리안트의 나직한 대답에 료우는 고개를 돌려서 네오의 모습을 살폈다. 보통의 인간과 거의 비슷한 것이 폴리모프라는 마법이 대단하기는 대단한 모양이다. 약간 상기된 표정의 그는 이 상황을 몹시 즐기는 모양이었다. 료우가 코렐의 협박 따위는 영 신경 쓰지 않고 네오에게 집중을 하고 있자 분위기는 이상하게 바뀌었다. 코렐은 자신의 물음에 답변을 해야 할 료우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관계로 상대편에서 대꾸가 없다는 사실에 자신의 말이 씹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큭... 이거 요새는 개나 소나 다 내 말을 씹는군. 그래 얼마나 대단해서 겁 없이 이곳을 통과하려고 하는지 봐야겠군." 코렐의 화난 음성이 들리기가 무섭게 산적들은 저마다 병기를 움켜쥐고 서서히 상단과 료우의 용병단을 덮치려고 했다. "흐음... 대장인줄 알았더니 아니로군." 료우의 나직한 음성이 터지자 막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코렐은 무슨 말이냐는 듯 료우를 바라보았다. 난데없이 대장인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소리가 무척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코렐의 이런 태도에 료우는 피식 웃더니 코렐을 향해 물었다. "이봐... 자네가 이중에서 제일 강한가? 아니면 따로 고수를 감춰두었나?" 난데없는 료우의 질문에 코렐은 이 젊은 청년이 용병단의 단장임을 깨닫고는 긴장했다. 용병단의 단장이라는 말은 결국 용병단에서 제일 강하다는 의미와 일맥 상통했고 그것은 팔라딘의 검사가 이 청년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자신과 같이 네오라는 거물이 뒤에 버티고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코렐의 실력은 이제 겨우 골드 나이트급 이었기에 팔라딘으로 예상되는 료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 일대 일 승부라도 겨루어 보고 싶은가? 하하..." "그것도 재미있겠군." 료우의 대답에 코렐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후후... 꿈은 야무지지만 우리가 그런 것을 허락할 리 없잖아!"?? 솔직히 자신의 안방에서 그것도 인원만 따져도 두 배가 넘는 코렐의 산적 패가 일대 일을 하자는 제의에 응할 이유가 없었다. 인해전술로 밀어 부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렐의 말에 료우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단체전으로 싸워도 우리에게는 별로 손해날 것이 없어. 우리에게는 마법사와 정령사가 수두룩하다고... 지금처럼 저렇게 떼거지로 모여있는 자들을 향해 공격하는 것은 거의 실패할 확률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군." 료우의 그런 말에 코렐은 상대에게 엘프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장애물 없는 분지에서는 다수의 마법사와 정령사들의 공격을 받는다면 일단 피해가 클 것은 자신들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고 무작정 전진한다면 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불확실한 확률을 갖고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으음... 좋다. 그렇다면 상대는...?" 코렐은 일대 일의 대결이라고 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자시의 산채에 있는 붉은 머리 청년 네오에 대한 자신감이었는데 팔라딘급 검사도 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실버 나이트급 검사인 자신을 반년만에 골드 나이트급으로 만든 네오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냥 대결은 재미가 없으니 우리 내기를 하지!" 자신의 대답에는 아무런 대꾸 없이 불쑥 이런 말을 던지는 료우의 제의에 코렐은 약간 놀란 표정을 보였는데 금새 얼굴이 바뀌더니 웃음마져 보이며 말했다. "후후... 내기라! 무척 궁금하군. 자네가 어떤 조건을 걸지 말이야?" 코렐의 대답에 료우는 사악한 미소를 보이더니 말했다. "사내라면 당연히 전부가 아니면 전무지!" "화끈하군!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 대단한 자신감이야." 코렐의 감탄에 료우는 씨익 웃더니 말했다. "자신을 믿지 못하면 남도 믿어주지 않고, 자신을 의심하는 자는 남 역시 의심하며 자기 이외에는 모두 적이 되지. 매우 극단적인 논리지만 의외로 효과는 만점이야!" "그런 극단적인 논리로 전부를 건다는 말인가? 자네의 뒤쪽에 있는 자들의 심정을 묻고 싶군." "이곳의 책임자는 나야. 그런 걱정보다는 내 제의에 대한 대답이 중요할 텐데..." 료우의 말에 코렐은 문뜩 이 사내의 화끈함에 동요가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대단한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극단적인 제의를 하면서 자신에게 내기를 건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이런 제의에 선뜻 응할 자신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제의에 마음의 동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료우의 제의는 어떻게 보면 코렐에게 있어서 무척 반가운 제의였다. 전투 없이 양자 대결로 승패를 가린다는 것은 네오를 믿고 있는 코렐로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일인데 이상하게 료우의 자신감에 코렐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포커 판에서 손에 풀하우스를 잡고 있지만 상대가 혹시 포커라도 들고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생겨난 망설임이다. 그때 멀리서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네오가 답답한지 코렐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좋은 패를 잡고도 주저하는 것은 자네답지 않군!" 그 말은 쐐기가 되었다. 코렐은 자신의 패가 꼭 승리하리라는 자신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예상외로 료우가 세게 나오자 망설였을 뿐 이번 승부를 결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로서는 서로간의 집단 난투극 끝에 얻을 상처뿐인 영광보다 일대 일 대결로 얻어지는 큰 이익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자네가 나올 텐가?" 료우는 망설이던 코렐이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 이 괴짜 드래곤에게 그렇게 물었고 네오는 미소를 보이며 끄덕였다. "상대는 자네인가?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솔직히 네오는 상대가 료우라면 별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 경지에 오른 만큼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한 네오는 료우가 젊은 나이에 팔라딘급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칭찬해주고는 싶지만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아... 오해하지 말라고... 자네 상대는 저쪽이야!" 료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들의 대결을 관전하는데 그런 그의 말에 뒤쪽에 있던 레이첼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레이첼의 입장에서는 지금 바이크와 상대하는 붉은 머리의 사내가 엘프들이 말했던 레드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때문이다. 그런데 드래곤과 싸우는 상황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니 도대체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레이첼의 이런 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이크와 네오는 서로를 노려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오가 먼저 움직였는데 그의 발끝이 서서히 미동하더니 갑작스럽게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순간적인 동작이지만 그 한번의 발놀림에 네오는 일순간 바이크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와 함께 그의 검은 마치 빛살을 가르는 듯한 형상으로 바이크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앗..." 장내에서 네오의 이 순간적인 동작을 읽은 자는 바이크 외에는 없는 듯 보였다. 모두들 네오의 몸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가자 놀란 목소리로 비명을 지를 때 바이크의 몸이 슬며시 사라졌다 돌아왔는데 그는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만들 정도의 빠른 몸놀림으로 옆으로 슬쩍 비껴 섰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저 잠깐 사라졌다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눈의 착각이었다. 그는 그렇게 네오의 번개같은 찌르기를 간단히 피한 것이다. "역시 제법이야." 네오는 그렇게 감탄을 하며 뒤로 다시 물러나는데 그의 매서운 공격은 단지 시험일 뿐이었다. 상대의 몸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본 것인데 상대의 이번 한번의 동작으로 네오는 이자가 최소한 자신과 같은 소드 마스터 경지의 검사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적수다운 적수를 만난 순간이라고 할까? 서서히 달아오르는 네오의 전신 신경은 하나같이 꼿꼿이 서서 반응을 보이는데 그것은 난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적수에 대한 본능이었다. "죽여도 됩니까?" 그때 네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상대는 자신과 대적하고 있는 사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의 시선은 저쪽의 용병 대장에게 고정되어 있는데 용병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안돼! 전리품이야. 흠집 내지 말고 잡아!" 네오는 료우의 대답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자였다. 일단은 분노보다도 그들의 대화에 어이가 없어 멍한 상태였지만 그들이 결코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얼굴이 서서히 굳어진다. "전리품이라... 재미있는 발상이군." 네오는 차가운 냉소를 보이는데 그의 검에서 서서히 오러 블레이드가 생겨났다. "소드 마스터!" 사방에서 터지는 음성은 하나같이 놀람이 잔뜩 섞인 목소리인데 그들로서는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일반 왕국 이곳 파미르 왕국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소드 마스터가 산적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이나 검에 온 생애를 다 걸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검사들의 경우에는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켜고 그의 검강을 보며 부러움 반, 질투 반이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호오... 소드 마스터라! 바이크가 간만에 좋아하겠군." 료우는 드래곤 주제에 인간의 끊임없는 의지에서나 가능한 소드 마스터의 실력을 갖고 있는 네오를 보면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게으름이 천성이라는 드래곤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그들이 아무리 지상 최강의 종족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불가능을 깬 장본인이 지금 저기에 있는 것이다. "좋군." 오랜만에 바이크의 카리스마가 섞인 음성이 흘러 나왔고 그의 검은 서서히 미동을 하기 시작했다. "설마 맨 검으로 오러 블레이드와 부딪치려는 것은 아니겠지?" 네오는 바이크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와 비슷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의 검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그렇게 외쳤는데 바이크의 입가에 가는 미소만 보였다. 그와 함께 바이크의 검이 순간적인 폭발력을 발휘하며 앞으로 쏟아지는데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수십, 수백 개의 검영(劍影)이 사방을 감싸 안았다. 바이크와 네오를 중심으로 반경 3미터 안은 오직 검의 그림자만 가득 메웠는데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윽..." 온통 검의 그림자로 가득 메운 바이크와 네오의 주위에 그림자가 사라지고 벌어진 상황은 네오의 신음과 그의 왼쪽 어깨에 보이는 붉은 핏방울이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오러 블레이드를 보인 소드 마스터 네오가 오히려 상처를 입은 상황을 보고는 모두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시선을 보냈다. "가공하군. 검의 폭풍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어. 하지만 그것보다 맨 검으로 오러 블레이드와 부딪치고도 검이 멀쩡하다니 믿을 수 없어." 네오의 입에서 터진 음성은 정말로 믿기 힘든 말이었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지금까지 갖고있던 고정관념들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맨 검으로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와 부딪쳐 검이 멀쩡하다는 것은 솔직히 지금까지 그들이 갖고 있던 관념을 깨버리는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일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간의 얼굴을 쳐다보며 지금 벌어진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고 하지 못하고 무언가 속임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섞인 눈길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짜릿한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네오의 음성은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비장감이 풍겨져 나오는데 자세를 가다듬는 그의 온몸은 순간적으로 멈칫거린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의 검은 공간을 가르는데 마치 그와 바이크가 있던 공간을 찢어 버리는 듯 가공할 위력을 담으며 바이크가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허억..." 장내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네오의 믿을 수 없는 움직임에 탄성을 질렀는데 주위 공간을 찢어버리듯 바이크가 있던 공간을 베었다. 아니 베었다고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차앙..." 병장기의 날카로운 울림이 휘날리는 가운데 부릅떠진 두 눈에는 믿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지금 네오의 두 눈은 믿음을 배반한 현 상황에 대한 심각한 고찰보다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한 배반감이 물려 있었다. "설마 그것까지 막을 줄은..." 부지불식간에 터지는 네오의 음성은 아쉬움이 깊게 베인 탄성이라고 하기보다도 믿음을 배반하는 충격이었다. 성공하리라 자신하며 온 힘을 쏟았던 회심의 일격이 바이크의 검에 막힌 것이다.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 보다 더 강한 공간을 찢는 자신의 필살기를 맨 검으로 막았다는 사실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다. "약하군." 바이크의 나지막한 음성이 터지자 네오의 안색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붉은 머리와 어울려 붉어진 안색은 그의 지금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네오가 아무리 인간이기를 바라고 인간과 같이 생활하고, 행동하려고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중간계 최고의 생물인 드래곤이었고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드래곤 특유의 자존심과 오만이 숨어있었다. 아무리 인간을 자처한다고 해도 드래곤의 자존심과 생각은 그의 몸에 은연중 남아있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의 검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나 인간에게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네오는 결코 용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룡 블랙 드래곤 크레이슈터를 죽인 네오 데모나이드를 우상으로 섬긴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은 그가 어디까지나 순수한 드래곤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은 드래곤 따위를 드래곤으로 보지 않는 고고한 자존심과 인간을 일개 식후 간식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드래곤 특유의 오만한 성격이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아무리 인간을 꿈꾸며 외적인 모습으로 포장을 했다고 해도 내부에 남아있는 드래곤의 정신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 계속 그에게 남아 있을 오만과 자존심인데 네오는 지금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나도 몰랐는데 이제는 느끼게 되었어." 네오의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진해졌다. "난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피하려고 해도 드래곤이었던 거야." 그의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몸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솟아나는데 그의 음성에는 살기가 잔뜩 담긴 드래곤 피어가 섞여 있었다. "역시 중간계 최고의 종족이라는 말이 틀림없군." 료우는 자신의 가슴을 억누르는 기운이 흔히들 얘기하는 드래곤 피어임을 깨닫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네오의 드래곤 피어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인물은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 정도뿐이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네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거의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는데 그것이 드래곤 피어임을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후후... 사람을 압박하는 놀라운 기운이 담겨 있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를 진작에 파악했으면 저런 장난을 안칠텐데..." 료우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그의 말처럼 네오의 상대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의 다음 행동을 응시하고 있었다. 네오는 자신의 드래곤 피어에도 하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바이크의 반응에 불현듯 떠오르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생겼다. 어머니 칼슈마와 아버지 쉴라드의 그런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진정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두려움에 네오의 숨은 턱턱 막혀갔다. "누구냐? 너는...?" 네오는 바이크의 정체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드래곤의 가공할 살기가 담긴 드래곤 피어를 두려워하지 않을 인간은 일찍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고고한 자존심의 종족인 엘프나 드워프도 드래곤의 살기를 두려워한다. 어떤 난폭한 몬스터라고 해도 드래곤 피어 만큼은 공포에 잠기는데 지금 이 인간은 오히려 귀찮다는 표정까지 보이고 있다. "계속 그 짓만 하고 있을 건가?" 한심하다는 표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바이크의 무표정과 말에 네오의 숨은 멈추었다. 그는 진정으로 강한 자를 만난 것이다. 21장. 무투(武鬪) 대회에 참가하다 ??세덴 공국은 옛 세르시안 왕국 영토의 절반이 넘는 땅을 차지하고 있는 제국의 속국이다. 바빌론 제국의 대륙 1차 침공으로 세르시안 왕국을 멸망시키고 얻은 땅을 현 황제인 조르젠 보 바빌론 2세가 대륙 침공을 준비하며 옛 세르시안 왕국의 고위 귀족중 하나인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작에게 맡긴 곳으로 제국의 속국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야망이 큰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작에 의해 제국의 12 공국중에 루시온 대공국을 제외하고는 서쪽의 탈라스, 동쪽의 리온과 더불어 가장 큰 세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작은 원래 제국 출신이 아닌 옛 세르시안 왕국의 고위 귀족 가문인 페닐 가문 출신으로 유일하게 제국인이 아닌 자중에 최고의 직위인 공왕의 자리까지 오른 야망이 큰 고위 귀족으로 제국의 세르시안 침공 때 자국을 배신하고 전 영토를 고스란히 바친 인물로 유명하다. 바빌론 제국의 경우 전체주의 또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성격이 무척 강한 나라로 유명한데 민족적 단결과 통합은 그들에게는 절대절명의 과제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자기 민족의 단결과 번영, 즉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가장 우수한 민족은 자신들 즉 바빌론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자국민을 위해서라면 타민족의 안전이나 생명 따위는 무시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마치 예전의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연상케 한다. 그런 바빌론 제국의 성격상 자국민이 아닌 인물이 공왕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작은 바빌론 제국의 정통 제국민은 아니지만 바빌론 제국민보다 더 제국을 찬양하는 전통적인 골수 제국주의자로 자신의 성과 가문을 버리고 황제가 하사한 자코니아라는 성을 쓰는 인물이다. 그는 끝까지 옛 세르시안 왕국에 충성을 다할 것을 권유했던 아버지를 직접 죽일 정도로 잔인한 인물로도 유명한데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제국에 무한한 신임을 받고 있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제 나이 사십대 후반의 사내로 금색 모발에 약간 체구가 건장한 인물이다. 고급으로 보이는 의상으로 보아 그 직위가 만만치 않음을 저절로 느끼게 만드는데 그는 약간 냉혹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사내는 바빌론 제국의 12 공국중 하나인 세덴의 공왕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작이다. 그는 지금 세덴 공국의 군부 최고 실력자인 지브란토 나딜 백작을 독촉하며 미르 침공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 하지만 아쉽게도 미르의 삼각 받침대중 제거한 인물은 겨우 상인인 주엘 샤미르 밖에 없다는 보고입니다. 다른 놈들은 경비가 너무 삼엄해서 그쪽에서도 제거에 실패했다는 보고입니다." "흥... 바보 같은 카르고 녀석! 언제나 잘난 척만 하더니 겨우 해놓은 것이라고는 상인 나부랭이라니..." 알칸시우스 공왕의 비웃음이 들리자 무척 정갈한 제복을 입고 있는 사십대 후반의 지브란토 나딜 백작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나마 주엘 샤미르의 죽음으로 미르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그의 죽음으로 파미르와의 외교 관계도 단절된 체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민간 상단들이 양국의 묵인 하에 오고가고는 있는 실정이지만 그 물량은 미르 전체를 먹일 만큼은 못됩니다. 자국민이 그러하니 군대도 마찬가지로 식량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저희에게는 이만한 호기도 없습니다." 지브란토 나딜 백작의 말에 알칸시우스 공왕의 입 꼬리가 말렸다. "지금 내 앞에서 놈을 두둔하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공왕 전하! 어찌 제가 그자를 두둔하겠습니까?" 그의 냉소가 섞인 말에 평소 클래이어버젼스의 마스터 카르고 다마스코 백작을 무척 싫어하는 공왕의 성격을 알고있는 지브란토 나딜 백작은 무척 당황한 목소리로 그렇게 부인했다. "세 놈의 목숨을 요구했는데 겨우 하나만을 나에게 안겨주다니 이제는 그놈의 실력도 줄었는가? 뭐 하여간 어느 정도 미르를 흔들어 놓았다면 더 이상의 추궁은 하지 않겠다." 더 이상 자신이 싫어하는 자의 이름을 입에 담고도 싶지 않은 공왕은 더 이상 추궁을 하고싶지 않은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지브란토 백작을 보면서 물었다. "준비는...?" 공왕이 더 이상 추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지한 지브란토 백작은 안심한 표정으로 얼른 대답을 했다. "예... 본국에 총 군사동원령을 선포하여 10만의 병력을 추가로 모집했습니다. 기존의 20만 정규군에 이번에 뽑힌 병력 10만을 추가하여 총 30만의 대군이 전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는 완벽합니다." 지브란토 백작의 말에 알칸시우스 공왕의 눈빛이 빛났다. "미르쪽의 반응은...?" "그들도 어느 정도 우리군의 움직임은 파악하고 있겠지만 설마 쉽게 침공하리라 생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도 자신들을 침공하는 의미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요... 거기다가 동맹국인 파미르와의 외교도 단절된 상태라 외톨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르의 총 병력은 모두 합쳐야 15만!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 승산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확신이 있어야 한다. 확신이... 본 제국의 2차 대륙 정벌이 우리를 시발점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첫 번째 단추를 우리가 맡은 이상 이번 일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그 점 꼭 명심하도록..." 알칸시우스 공왕의 말에 지브란토 백작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모든 이목이 우리에게 쏠려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관심도 지금 우리에게 쏠려있다는 말이야. 여기에서 우리가 이 일을 성공하지 못하면 그대나 나는 더 이상 제국에서 살아가지 못함을 각오해야 할 것이야." 알칸시우스 공왕의 말에 지브란토 백작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지금 그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의 무게를 깊게 인식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공 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번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꺼야." 알칸시우스 공왕의 마지막 말에 지브란토 백작의 얼굴은 서서히 변해갔다. 나는 바이크와 네오라는 이름의 괴짜 드래곤과의 대결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네오가 드래곤 그것도 가장 난폭한 레드 드래곤이라는 사실과 바이크, 네오가 모두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은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어 보았자 하등의 좋은 일이 아니었다. 국가에서조차 소유하지 못하는 소드 마스터를 둘이나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를 비롯한 우리 일행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한 일이다. 나는 그런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아니 지금은 그들의 정체가 알려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아론에게 명령하여 바이크와 네오가 싸웠던 기억들을 왜곡시켜 다른 기억들을 그들에게 심어주었다. 9서클 대마법사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순간이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수 백 명의 머릿속을 완벽하게 제어한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라울 따름이다. 약속대로 괴짜 드래곤 네오 칼라드를 비롯해서 무라토리 산맥의 산적 패들은 나에게 완전히 굴복하여 모든 것을 바쳤다. 물론 네오의 경우에는 바이크에 의해 드래곤인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면서 그 오만한 자존심으로 끝까지 저항하려고 했지만 일단 바이크의 카리스마와 내 정체를 어느 정도 알려주자 나와 같이 행동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그도 어찌되었건 성룡식을 끝내지 못한 불완전한 드래곤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도 있고 해서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유희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뭐 다른 이유라면 드래곤 세계로 돌아가서 겪어야 할 뒷감당에 대한 무게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여간 나는 네오 칼라드라는 괴짜 드래곤을 내 품에 안았고 그는 우리의 일행이 되었다. 우리로서는 새로운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누군가를 얻는 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마치 귀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취미처럼 하나라도 뛰어난 인재를 모으고 싶은 욕구가 나도 모르게 생기고 있었다. 그것은 예전 지구에서 삼국지라는 게임을 하면서 군주로서 인재를 얻기 위해 이러 저리 포섭을 하고 전쟁에서 패한 장수를 굴복시키는 그런 기분인데 하나라도 놓치면 너무도 아까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괴짜 드래곤 네오 칼라드를 힘으로 누르면서 내 정체까지 밝히면서 그를 유혹했고, 고고한 자존심의 숲의 종족 엘프들을 협박해서 그들을 얻었다. 또한 자유분방한 무라토리 산맥의 산적들도 내기라는 사악한 술수를 사용해서 얻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하나씩 끌어 모으는지 나 자신도 애매 모호한 일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을 얻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나는 산적 패들을 모조리 끌고 갈 수 없는지라 일단 그들을 무라토리 산맥에 남겨두고 차후 우리가 돌아오면 우리 용병단에 입단을 시킨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수련을 하도록 명령했다. 그들로서도 산적보다는 용병이라는 명함이 더 좋을 것이고 우리 용병단에 들어오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했으니 무한한 노력을 할 것이다. 물론 약간 아론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아무런 방해 없이 무사히 파미르의 국경을 넘어 미르의 수도에 도착했다. 우리가 무사히 미르의 수도인 네이팜에 도착한 것은 무라토리 산맥에서 네오가 충돌한지 십일이 넘어서였다. 인구 백만이 넘게 사는 대 도시인 네이팜은 미르의 수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화려한 도시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상단의 주인인 톨푸카 지고는 무라토리 산맥을 차지한 산적들을 물리치고 자신들을 안전하게 미르까지 호위한 우리 용병단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산맥을 지키고 있다는 드래곤이 나타나지 않음을 무한하게 감사했다. 아마도 그는 끝까지 네오의 존재에 대해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미르의 수도 네이팜까지의 호송만을 책임지기로 한 까닭에 우리 용병단은 다시 네이팜에서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 일행은 새로 용병단에 합류한 네오와 엘프들을 포함해서 모두 40명이 넘는 관계로 여관을 하나 통째로 빌렸다. 큰 여관에 방 몇 개를 얻어서 돈을 절약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톨푸카 지고가 나에게 넘긴 사례금이 꽤 되었고 엘프들이 주를 이루는 용병단이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끌자 나는 생각을 달리하고 여관을 잡은 것이다. 거기다가 라미셀의 경우에는 미르에서 아직까지 현상금을 걸고 수배령이 풀리지 않은 죄인의 신분이기에 나는 특히 주의했다. 물론 아론에 마법에 의해 트란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으로 얼굴은 변형이 됐다고 하더라도 혹시 고위 마법사에 의해 마법이 들통날수도 있었기에 매사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용병 길드에 한번 가보아야겠군." 여관에 투숙하지 하루가 지나고 나는 일행에게 그렇게 말했다. 껄끄러운 미르보다는 파미르 쪽이 일하기 편했고 무라토리 산맥에서 기다리는 산적들도 데려다가 수련을 시키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용병단이 아무런 할 일없이 그냥 파미르로 향하는 것이 우스웠기에 나는 미르에서 파미르 쪽으로 향하는 일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바이크와 아론만을 데리고 용병 길드에 가보려고 했는데 굳이 레이첼이 따라 온다고 우겨서 그녀까지 데리고 갔다. 라미셀의 경우에는 미르에서 활동에 어느 정도 제약이 있기에 여관에 남겨 두었다. 물론 레이첼을 따라 오려는 그녀의 떨거지 세 명도 여관에 남겨 두었다. 시장 바닥을 헤매며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찾은 용병 길드는 무척 초라한 건물로 보였는데 외관상으로 볼 때와 차이가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무척 작고 초라해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그것은 단지 겉모습만 그랬을 뿐이었다. 내부는 무척 세련되고, 깔끔하게 꾸며져 있고 문 앞쪽에는 접수처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테이블이 여럿 보였는데 의외로 사람들도 많아서 북적거리는 것이 꽤나 활기에 차 있는 곳이다. 그다지 크지는 않은 테이블에 여럿이 모여서 떠들고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검을 비롯한 무기를 들고 있는 용병들로 보였다. 제법 수련을 쌓은 자들도 여럿 보이는데 그들은 새롭게 나타난 우리 일행을 보고는 관심을 눈길을 돌리다가 우리가 자신들과 같은 용병임을 깨닫고는 금새 시들해졌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미르의 수도 네이팜의 용병 길드는 미르의 용병 길드 본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지만 파미르의 일반 용병 길드보다 규모가 무척 적었다. 그것은 미르에서 용병일이 별로 많지 않은 이유 때문인데 마물의 숲 때문에 몬스터의 침입이 잦은 파미르와는 달리 미르의 경우에는 몬스터의 침입이 적었다. 그 때문에 용병일이 파미르와 비교해서 절반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정도 수준의 용병단이라면 일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찾은 것이다. 나는 접수를 받는 길드의 직원에게 우리가 실버급 용병단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파미르 용병 길드에서 받은 증명서를 보여 주었다. 길드의 직원은 우리가 실버급 용병단이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제법 긴장된 눈으로 쳐다보는데 내가 파미르 쪽으로 가는 용병일이 있느냐고 묻자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말로는 파미르 쪽으로 가는 용병일이라면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가능하다고 한다. 직원의 말에 나는 일주일의 시간을 미르에서 허송세월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가 귀가 번뜩이는 이야기를 탁자에 앉아 있는 한 용병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자는 제법 근육질로 다져진 몸에 30대 초반의 용병으로 보이는데 낮부터 술을 한잔 걸쳤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약간 흥분했는지 맞은편의 사내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봐! 그 소문 사실이야. 이번 무투(武鬪) 대회에서 우승하면 상금이 무려 1천 골드라는 얘기 말이야. 작년 보다 다섯 배나 많아졌다고 사람들이 난리이던데..." 그 용병의 질문에 맞은 편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소리친 용병 사내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용병인데 약간 호리호리한 체격의 평범한 외모를 소유한 사내였다. 그 사내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흥분해서 소리쳤던 용병 사내는 무척 놀란 얼굴이었다. "무투 대회야 매년 열리는 경기이고 올해도 지난해와 달라질 것도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상금이 큰 거지? 이렇게 상금이 큰 경우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는 상금이 작년보다 다섯 배는 많아졌다는 사실이 무척 궁금했는지 그렇게 물었고 맞은편 사내는 주위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내가 왕궁에 있는 친구에게 슬쩍 물어보았는데 들리는 정보로는 이번 무투 대회는 예년과는 다르게 특별히 이황자께서 직접 주관을 하신다는 소문이야. 이번 무투 대회의 우승자는 상금 말고도 특전이 있다는 풍문까지 나돌고있어." "특전?" "그래. 어쩌면 이황자 측근으로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야." "그래...? 하지만 무투 대회에 나가는 자들의 실력이야 뻔하잖아. 이번에도 잘해보아야 작년처럼 몇몇 무가의 애송이와 용병들뿐이 없을 텐데..." 그의 말에 맞은편 사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우승 상금이 자그마치 1천 골드라는 사실을 잊지마. 그리고 경기당 승리 수당도 1 골드야. 본선 경기의 경우에는 5 골드를 더 준다고! 작년 대회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야."?? 사내의 말에 그 용병은 붉어진 안색에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는 모양이다. "자네 말은 그렇다면 예전 같지 않게 만만찮은 실력자들이 모인다는 이야기야." "당연한 것 아닌가? 소문으로는 무투 대회에 기사가 참석하지 못한다는 조항 때문에 왕궁의 기사 중 몇몇이 기사의 작위를 내놓고 참가한다는 믿지 못할 풍문도 있어. 또 왕립 기사 아카데미에서도 실력 있는 졸업생들이 참가한다는 소문이야. 이번 왕립 기사 아카데미의 졸업생 중 대단한 친구들이 몇 있다는 소문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사내의 말에 그 붉은 안색의 용병은 더 붉어진 기색이다. "젠장 우승은 물 건너갔군." "큭... 우승! 농담하나? 재수 없게 예선 1회전에서 나이트급하고 붙으면 무슨 꼴을 당하려고 그래. 작년에 기사 아카데미 출신 놈한테 걸려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떡이 된 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고..." 사내의 말에 용병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하기는 1회전부터 나이트급 기사를 만나면 정말 열 받겠군.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떻게 할건가?" "당연한 것 아닌가! 이미 신청서를 냈다고..." "빠르군!" "요새는 그 흔한 운송 일거리도 없는데 이거라도 해서 입에 풀칠을 해야지. 할 수 있나? 잘만해서 본선에만 오른다면 넉넉잡고 20-30 골드는 충분히 벌어들일텐데..." "크크... 자네의 지금 실력으로는 본선까지 바라보는 건가? 그냥 마음 편하게 구경이나 하라고..." "쳇..." 두 용병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나는 무투 대회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참석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두 사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번 무투 대회에 실력이 제법 뛰어난 자들이 많이 참석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는 것은 내가 이 대회에 참석하면 내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내가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레이첼이 내게 미소를 보이더니 물었다. "저들이 말하는 무투 대회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죠." "당연히..." 내가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첼은 의외라는 표정이다. 그녀는 무척 호기심이 가득 찬 눈길을 내게 보이더니 물었다. "의외인데요. 그런 무투 대회 따위에 관심을 갖다니..." "후후... 당신이 언제나 주장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제법 괜찮은 상대를 만난다면 내 실력도 파악할 수 있고 좋잖아." "팔라딘급 실력을 갖은 자가 무투 대회에 참석할 까닭이 없잖아요. 그 정도 실력을 갖고 있다면 이미 이곳 미르에서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을 텐데..."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을 보이며 대꾸했다. "나도 팔라딘급 실력을 갖고 있지만 기사는 아니라고..." 내 대답에 레이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 사실이 그러니 그녀의 대답이 궁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가 약간 장난끼가 섞인 그녀의 미소를 보았는데 무언가 불안한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을 따라 무투 대회에 참여하겠어요." ??미르의 무투 대회는 매년 열리는 경기로 미르 왕국의 수도 네이팜에서 여름에 벌어지는 건국 축제와 더불어 가장 화려한 축제로 잘 알려져 있다.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콜로세움은 매년 열리는 무투 대회를 치르기 위해 왕국에서 특별히 건설한 경기장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출전하기 위해, 혹은 관람하기 위해 무투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도시는 북적인다. 일년에 딱 한번 열리는 무투 대회를 위해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콜로세움을 세웠다는 것은 이 경기가 얼마나 유명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 일행은 나와 레이첼이 무투 대회에 참석하기로 결정해서 엘프들을 제외한 모두 콜로세움 이동했다. 엘프들이야 숲이 아닌 도시 한복판에 자리를 틀은 결과로 아직까지 적응을 못해서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가기를 꺼려했고, 또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 같아서 데려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와 레이첼은 참가자로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 라미셀, 네오, 스타그라스, 헤이트리드, 어비스등 팔인은 구경꾼으로 콜로세움을 찾았다. 괴짜 드래곤 네오의 경우에는 자신도 무투 대회에 참가해야 된다고 한참동안 우기기는 했지만 실력이 실력인지라 나는 그의 참가를 자제시켰다. 팔라딘급 실력도 아닌 소드 마스터가 무투 대회에 참석한다면 우승이야 하겠지만 시선을 너무 끌뿐더러 도대체 뒷감당은 무슨 수로 하겠다는 것인지 할말이 없어진다. 이번 미르의 무투 대회는 용병들의 대화처럼 무척 많은 인원이 참가 신청을 낸 모양인지 예선전은 무려 4일이나 지나서 겨우 끝났다. 나는 너무 쉽게 예선전을 통과해서 그 용병들이 말했던 실력자들이 대거 참가했다는 소문이 의심스러웠다. 레이첼의 경우에도 여성 참가자로는 드물게 본선에 진출했는데 그녀의 미모는 이번 무투 대회의 최대 화제였다. 미의 종족이라는 엘프들을 능가하는 외모와 화려한 검술 실력은 그녀의 인기를 폭등하게 만들었고 동행인 나도 서른 두 명만이 오르는 본선에 출전한 관계로 우리 일행도 그녀의 인기에 편승하여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다닌다는 사실에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아 별로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러움 반, 시샘 반의 눈길이 싫은 것만도 아니었다. "자신 있는 거야?" 본선이 시작되고 나와 레이첼은 참가자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곳에는 저마다 긴장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상대를 파악하려는 자들의 모습이 부지기수였다. 물론 조용히 앉아서 명상을 하는 자나, 자신의 검을 닦으며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는 자들의 모습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몹시 긴장을 한 눈치였다. 내가 레이첼에게 그렇게 묻자 레이첼이 반짝 웃음을 보이더니 말했다. "긴장되나 보죠?" "크..." 나는 미소까지 보이면서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레이첼의 모습에 할말을 잊었다. 그녀의 말처럼 오히려 내가 잔뜩 긴장을 해서 그녀에게 그렇게 물은 것 같으니 말이다. "예전에 가문에서 매일처럼 동문들과 서로 검을 맞들고 싸웠어요. 우리 가문은 여자라고 결코 봐주지 않거든요. 제가 태어나서 손에 처음 잡은게 검이라면 이해를 하시겠죠!" 레이첼의 말에 나는 그녀에게 나도 깨닫지 못했던 아픔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한창 자신을 가꿀 나이에 검을 들고 사내들과 뒤섞여 검술을 연마했다면 그녀는 어쩌면 여자로서의 많은 권리를 포기했을지 몰랐다. 그것이 그녀의 의지이든지 아니면 가문의 의지이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레이첼도 라미셀도 모두 평범한 여자로서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부터 본선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 1경기는..." 내 상상의 나래를 깨는 목소리가 들렸고 거대한 함성이 콜로세움을 가득 메웠다. 드디어 본선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나와 레이첼의 대전표를 확인한 결과 나는 8경기이었고, 레이첼은 14경기였다. 일단 내가 첫 번째 타석이라는 말인데 어느 정도 레이첼과 라미셀에 대한 생각 때문에 긴장은 풀린 듯 보인다. "제 8경기 출전 선수인 루그엔 헤롤, 료우 하얀 준비하십시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내 차례가 온 것을 깨닫고는 일어섰다. 아참 그런데 내 성이 무척 궁금할지 모르겠다. 나는 현이라는 성을 갖고 있지만 이 세계에서 현이라는 성이 무척 특이하고 부르기도 쉽지 않아서 약간 고쳐서 하얀이라는 성을 신청서를 작성할 때 적어 넣었다. 부르기도 편하고 순 우리말이라 나름대로 의미도 있기에 그렇게 한 것인데 나름대로 멋져 보인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내 우측에서 한 사내가 몸을 일으키는데 무척 거구로 보이는 사내였다. 바이크와 견주어도 하등 꿀릴 것이 없는 덩치인데 손에 들은 것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주는 그레이트 소드(Great Sword)로 보였다. 사내는 무척 긴장한 모습으로 있다가 내가 일어서자 덩치로 보아 자신의 힘이 통할 것 같은지 무척 안심한 듯한 분위기다. 제길 내가 그렇게 약해 보이나? "와아아..." "우우..." 대기실 밖으로 나오자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의 함성 소리가 귀를 강타하는데 예선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군중의 숫자에 사뭇 긴장이 된다. 사방을 뺑 둘러서 앉아있는 군중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최소한 3, 4만은 족히 넘어 보이는 엄청난 숫자였다. 저런 인원이 무투 경기를 보러 왔다는 사실은 미르 왕국의 국민들이 최소한 싸움에 대해 별반 거부 반응은 갖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콜로세움의 중앙에 놓인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결투장은 좌우 폭이 대략 50미터 정도로 두 사람이 싸우기에는 무척 넓은 곳이다. 예선전 때와 비교하면 거의 세, 네 배는 훨씬 커졌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의 인원이 많고 화려함을 자랑하다보니 규모가 무척 커진 모양이다. 내가 허리춤에서 내 검을 뽑아들고 자세를 잡자, 맞은편 사내도 그레이트 소드를 뽑아 들더니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제 8 경기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렁찬 사회자의 외침이 들리고 드디어 나와 루그엔 헤롤이라 불리었던 사내와의 무투 경기가 시작되었다. 공격의 시작은 루그엔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시작하였는데 그의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가 큰 반원을 그리며 내게로 덮쳐왔다. 무척 동작이 큰 움직임이라 파괴력은 강할지 모르지만 허점이 많은 동작이었다. 지금이라도 빠른 속도로 사내의 품에 파고들어 일격에 사내에게 항복을 받을 만큼 상대는 나보다 약해 보였다. 하지만 금새 끝내 버리면 우리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기다리는 저 수많은 군중을 실망시키는 것이라 나는 잠시 참기로 했다. 흑...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착한 놈이다. 각설하고 나는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사내의 그레이트 소드를 슬쩍 우측으로 비껴서 피해내고는 떨어지는 상대의 검 옆면을 쳐냈다. "깡..." 하는 소리가 울리며 상대는 자신의 검을 쳐낸 내 검의 위력 때문인지 오른쪽으로 몸이 30도쯤 돌아갔는데 무척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힘만을 갖고 무식하게 덤벼드는 자들은 그 무시무시한 파워을 제외하면 하등의 보잘 것도 없는 상대였다. 그레이트 소드와 같은 무시무시한 병기로 사람을 찢던지, 아니면 단검으로 상대를 찌르던지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위력이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만큼 적에게 타격을 입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몇 번 루그엔이라는 사내의 공격을 받아 주었지만 더 이상은 상대를 농락하는 기분이 들어서 일찍 끝내기로 했다. 몇 번 자신의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한 사내는 나에게 회심의 일격이라도 보낼 양으로 비스듬하게 검을 눕히더니 근육질로 뭉친 팔뚝에 힘을 주었다. 예전 같으면 저렇게 불끈 솟아오르는 심줄이 무척 대단해 보이고, 겁을 집어먹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하등의 흔들림이 없는 나이다. 상대는 검을 움켜진 손에 힘을 가하더니 빠르게 베기를 시도했다. 무척 단순한 동작처럼 보였지만 조금 전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속도인데 거의 한배 반쯤은 빨라 보였다. 하지만 저런 단순한 동작에 겁을 집어먹을 나도 아니었기에 나는 사내의 검이 지나갈 만큼의 공간만 남겨두고 뒤로 슬쩍 물러났다. 상대가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력의 검으로 베기를 시도한다고 해도 검이 베어지는 공간 안에 목표물이 없다면 아무런 위험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내의 베기는 다음 동작이 있었는지 한바퀴 회전을 하면서 다시 베기를 시도하는데 아마도 길이기 긴 검을 이용해서 내가 피해내는 범위를 어느 정도 줄이면서 운이 좋게 검에 걸리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모양인데 나는 두 번째 상대의 베기를 피하고는 상대가 다시 한바퀴 돌 때 그 자의 등뒤로 붙었다. 무척 빠른 동작이라 사내는 내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는지 다시 전면을 향해 베기를 시도했는데 내 빠른 동작에 관전하는 사람들의 탄성이 울려 퍼졌다. "이쯤에서 끝냅시다." 나는 세 번째 베기를 시도하는 사내의 등뒤로 접근해서 왼 손으로 상대의 목을 휘어 감고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그렇게 말했다. 사내는 자신의 세 번째 베기를 시도하다 전면에 내 모습이 비추지 않자 무척 당황했다가 자신의 목을 감고 끌어당기는 힘에 숨이 막히는지 얼굴이 시뻘개져서 기침을 하다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항복의 모습을 보이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심사관은 깃발을 들어올려 내 승리를 확인시켰고 우레와 같은 함성이 콜로세움을 진동했다. "와아아..."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함성 소리와 내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잠깐동안 우쭐했다가 내 처지를 깨닫고 쓴웃음을 짓고는 선수 대기실로 들어갔다. 나에게 패해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한 사내는 축 쳐진 어깨를 하고 내 뒤를 따르는데 나도 경기를 계속하면서 저런 모습을 보일지 몰랐기에 그를 이겼다는 사실이 그렇게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본선 1회전은 오전 내내 계속되고 점심 무렵에 끝이 났다. 레이첼도 무리 없이 상대에게 완승을 거두었는데 그녀의 미모와 검술에 매혹된 수많은 남성들의 함성 때문에 콜로세움은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몇몇 사내들이 레이첼을 보겠다고 선수 대기실에 밀어닥치는 통에 한때 선수 대기실이 난장판이 될 뻔한 적도 있었는데 이래서 인기인들은 밀려드는 팬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다. 레이첼의 경우에는 그런 관심이 별로 달갑지 않은지 굳은 인상으로 덤벼드는 팬을 뒤로하고는 선수 대기실 제일 깊숙한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뭐 나도 덩달아 그녀를 따라 옆에 앉았는데 남은 14명의 본선 2회전 출전자 대부분은 하나같이 무척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데 본선 1회전 때보다 더 긴장한 듯 보였다. "본선 2회전 제 1 경기는..." 드디어 시작인가? 태양은 어느새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었고, 사람들은 약간 더운 날씨에 앉아있어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숨막히는 순간 순간을 흥건하게 젖은 땀을 움켜쥐며 관전했던 사람들이 점심때가 지나도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 것은 본선 2회전의 숨막히는 광경을 또 한번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본선 2회전 4번째 경기였고, 레이첼의 경우에는 7번째 경기였다. 다행히 그녀와는 결승에서나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와 별로 검을 섞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기는 골드 팔라딘급이 확실한 그녀에게 깨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을지 모르겠다. 여자 검사에게 그것도 한번 본 것만으로 반할 만큼 아름다운 미녀 검사에게 패하고 실망하며 돌아서는 사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난 후는 더욱 그런 마음이 간절했다. "라크 누아셀, 료우 하얀... 출전하십시오." 본선 2 차전 경기에 내 상대로 나선 상대는 무척 젊은 편에 속하는 사내로 전형적인 기사 타입이었다. 듣기로는 미르 왕국의 기사 아카데미 졸업생으로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는 무척 길어 보이는 롱 소드를 들고 있는데 은색 모발에 무척 잘생긴 타입이다. 라크 누아셀이라는 청년이 나오자 관중들의 함성이 크게 울리는데 그 중에서 제법 많은 여인들의 탄성이 눈에 뜨였다. 나는 관중석을 바라보면서 상대에게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본선 1 회전 때 내게 응원을 보냈던 사람들은 이번에는 내 상대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뭐 하기는 자국의 기사 후계자가 이국의 무사인 나에게 승리하기를 기대하는 자들이 무척 많을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에게 엄청난 응원을 보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내 2 회전 상대인 라크 누아셀이라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무척 잘생긴 외모는 우리 용병단의 헤이트리드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여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매력은 있어 보였다. 외모 때문에 약간 주눅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뭐 미인대회에 나온 것도 아니니 꿀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바로 검을 빼들고 승부를 준비했다. 상대도 바로 검을 뽑아 드는데 그의 자세가 약간 특이해 보인다. 검을 정 중앙으로 곧게 빼어 들어 치켜올리더니 오른발을 일보 뒤로 빼더니 자세를 잡았다. 마치 금방이라도 앞으로 뛰쳐나와 나를 양단 할 기세인데 내가 잔뜩 상대의 자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때 심사관이 외침이 들렸다. "제 4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심사관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내 예상대로 상대의 공격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상대는 오른발을 일보 앞으로 내 디디더니 순간 적으로 롱 소드를 이용해 정면을 내려 베는데 내 오른쪽 어깨를 노리는 모양이다. 나는 이미 예상을 했던 공격이라 빠른 동작으로 검을 수평으로 세워 위로 밀어 올려 그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고는 앞으로 돌진했다. 상대는 1차 전의 힘만 아는 멍청한 상대가 아닌 기본적인 검술 교육을 차근차근 배워나간 엘리트이다. 나는 그에게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앞으로 돌진하며 검을 쥐고있는 오른 손 팔꿈치를 이용하여 상대의 얼굴을 가격했다. 상대는 변칙적인 내 공격에 무척 당황했는지 뒤로 고개를 빼면서 검을 거두어들이는데 내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상대가 검을 거두어들이자 바로 왼쪽으로 턴을 돌면서 상대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미르의 무투 대회는 대체적으로 살상이 적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부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신관들을 주변에 배치해서 상처를 입은 자는 곧바로 치료하기 때문에 부상자는 무척 많은 편이었다. 안심하고 부상을 당한다고 할까? 아니면 안심하고 부상을 시킨다고 할까? 하여간 일격에 상대의 숨을 끊어놓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의 부상자는 신관들의 치료를 받고 죽지는 않았다. 나는 상대의 옆구리를 노리면서 내 공격이 성공하면 그가 극심한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힘을 조금 뺐다. 깊숙이 밀어 넣는 찌르기라면 살아남기 힘든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내 변칙적인 기술에 당황해서 고개를 젖히고 검을 거두어 들였다가 내가 회전을 하면서 자신의 옆구리를 공격하자 억지로 검을 움직여 아래로 비껴 막으려고 했다. "컥..." 무리한 동작은 아무리 검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무술가라고 해도 몸에 무리를 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내가 상대했던 상대인 라크 누아셀이라는 청년은 미르의 이번 기사 아카데미 졸업생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출중한 실력자로 이미 실버 나이트급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경험이 부족한 관계로 내 변칙적인 기술에 쉽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억지로 검을 비껴 막으면서 취했던 동작이 몸에 무리를 주었는지 라크 누아셀은 마나의 흐름이 엉키면서 피를 토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와아아..." 대부분은 아니지만 내 승리를 환호하는 관중들도 있었는지 내 승리가 확정되자 크지는 않았지만 함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환호하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고는 다시 선수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제는 8강 전인가? 나는 선수 대기실로 들어오면서 몹시 소란스럽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경기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신관들로 보이는 사제 여럿이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저렇게 급하게 뛰어 다니는지 궁금해진 나는 슬쩍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내 시선에 잡힌 것은 가슴과 복부가 심하게 찢겨 나간 한 사내의 시체였다. 아마도 경기 중에 심한 상처를 입고는 신관들이 치료도 받기 전에 죽었던지 아니면 도저히 신관들의 능력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이게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 죽은 자를 포함해서 이번 대회해서 모두 일곱 명이 죽었는데 모두 한 사람의 소행이라는 말에 나는 무척 잔인한 자가 대회에 참가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 일행은 나와 레이첼의 8강 진출에 대해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저녁을 푸짐하게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여관을 통째로 빌린 덕분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고 해도 여관의 규모가 워낙에 작아서 우리 일행 40여명이 모두 나오니 홀 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워낙에 소란스럽게 떠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여관은 무척 한산해 보였다. 개중에 약간 소란스러운 것은 괴짜 드래곤 네오와 활발한 미녀 검사 케이린 정도였고, 나나 바이크, 아론, 가이가 등은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료우... 다음 상대가 누구인줄 알아?" 문득 케이린과 떠들다가 나에게 시선을 돌린 네오가 그렇게 묻는데 나는 무슨 소리인가 해서 눈을 멀뚱거렸다. "그 녀석 무척 잔인해 보이던데... 검은 전사(Dark Warrior)라고 했던가?" 네오의 말에 라미셀이 무척 걱정스런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활발한 레이첼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에는 잘 나서지도 않았다. "벌써 그 사람의 손에 일곱 명이 죽었어요. 료우! 섣불리 상대할 인물은 아니에요." 라미셀이 무척 걱정스런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라미셀의 그런 걱정스런 모습을 웃음으로 무마하고는 경기 끝나고 보았던 그 시체를 떠올렸다. 가슴과 복부가 마치 짐승의 발톱에 의해 찢겨져 나간 듯 한 잔혹한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내일 나와 시합을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긴장이 되었다. "얼마나 강한 거지?" 나는 한쪽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바이크에게 넌지시 물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은 실버 팔라딘급 이상입니다. 오늘 오후에 쓰러트린 인물은 미르의 왕궁 기사단에서 상위의 실력을 갖고 있던 기사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자를 쉽게 농락하면서 죽였다는 것은 그의 실력이 최소한 골드 팔라딘급 이상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쩌면 로얄 팔라딘 이상일지도..." 나는 바이크의 마지막 말에 스산한 바람이 휑하니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골드 팔라딘급도 아니고 로얄 팔라딘급 이상이라는 말은 어쩌면 소드 마스터에 근접했다는 말과도 거의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전쟁의 신전에 등록되어 있는 소드 마스터중 미르 왕국의 인물은 없었으니 소드 마스터가 아닐지 몰라도 또 모르는 일이었다. "하하... 난처하군. 로얄 팔라딘급의 실력자라니..." 머리를 긁적이는 내 모습에 옆쪽에 있던 네오가 네 등을 딱 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뭐야... 벌써 긴장한거야? 우리 악마의 전사 용병단의 단장님이 이렇게 나약해서야 어디 불안해서 용병일 해먹겠어?" 네오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누가 긴장하게 만들었는데... 다 내가 시작한 일이잖아?" 내 말에 네오는 자신이 처음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하하" 거리면서 웃음으로 무마하고는 탁자에 놓여 있는 맥주를 들이켰다. 무척 시원하게 들이키는 모습에 나도 탁자에 놓인 맥주를 들이키며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에 대해 긴장되기는 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우리는 저녁나절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한참이나 떠들었고 그 날은 무투 대회를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무척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아직 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이른 새벽이었다. 이미 주변은 환해졌지만 그 빛은 태양의 눈부신 노란빛이 아니라 새벽녘에 만물을 하얗게 감싸는 희미한 풍요의 빛이다. 평소 같으면 약간 늦게 일어날 나였지만 오늘은 어제 저녁 들었던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에 잠을 설쳤던 모양이다. 입이 찢어져라 길게 하품을 하고는 침대에서 일어선 나는 저녁 숙취로 인한 피로를 풀어볼 요량으로 밖으로 나왔다.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폐부로 깊숙이 스며들면서 상쾌함이 더해지는데 여관 담 한 구석에 길게 목을 빼고 피어있는 풀잎 언저리에 맺혀있는 이슬이 무척 신선하게 보였다.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이 새벽의 고요를 깨우는데 신선한 공기와 상쾌한 바람에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들고 나온 장검을 뽑아 들었다. 나에게는 누구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아니 실력 면으로는 대륙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최고의 스승이었다. 최고의 스승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나에게 있어 내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계발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재능을 계발함으로써 충분히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노력 여하에 따라서 최고의 경지에 오를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검의 무게는 오늘 따라 나의 어깨를 짓누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무게들은 내 정체성에 대한 고찰이었고,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이 세계에 속하지 못하고 외곽에서만 빙빙 도는 그런 나를 상상하면 숨이 막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라미셀을 만나고 그녀와의 만남에서 나는 억지로 그들에게 동화되려고 시도하지 않고 나름대로 내 삶을 내 스스로가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던전도 탐험하고, 어세씬 길드도 박살내고, 또 용병 노릇도 해보고, 이렇게 무투 대회에도 나왔다. 마치 예전 상상으로만 꿈꿔왔던 모험들을 하나씩 해보는 것이었다. 마치 드래곤이 성룡식을 끝내면 나오는 유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후후... 아무렴 어떤가? 나는 지금 내 상황에 충실하면 그 뿐이야." 나는 내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며 여관 앞뜰 공터에서 어제 저녁 나를 한참이나 고단하게 만들었던 숙취를 풀었다. 6일째 되는 오늘 무투 대회는 8강전과 준결승전이 있는 날이다. 한때 천 여명의 넘던 사람들이 참가했던 무투 대회도 어느덧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인원은 모두 합쳐서 여덟이 고작이었다. 왕국의 기사 출신이었던 전직 기사가 3명, 미르에서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무가 출신의 무사가 2명, 나와 내 동료인 미녀검사 레이첼, 그리고 나와 오늘 상대하게될 검은 전사라 불리는 용병이 전부였다. 대기실에 레이첼과 들어선 나는 선수 대기실 안에서 선택받은 아니 정당한 실력으로 올라온 자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앉아있는 곳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기사처럼 보이는 사내 세 명이 나름대로 여유를 보이면서 잡담을 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그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가득 차있는 모습이다. 왼쪽에는 두 사내가 따로 떨어져서 검을 손질하고 있는데 칼날처럼 일어 선 날카로운 기운은 그들이 약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내 시선은 마지막 인물을 찾았고 그 인물은 검은 베일로 얼굴 전체를 가린 특이한 모습의 사내였다. 마치 사막의 유목민들이 모래 바람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긴 천으로 몇 번이나 감아서 눈 부분만 드러나게 하고 다른 부분은 천으로 뒤덮은 모습인데 사람의 시선을 끌면서도 얼굴 형태를 보여주지 않는 특이한 모습이다. 얼굴 전체에서 드러난 부분은 오직 두 눈이었고 지금 사내의 두 눈은 조용히 감겨 있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폭풍전야(暴風前夜)의 고요 속에 다음 희생자를 음미하는 맹수의 모습처럼 보이는데 그 사내의 이야기를 이미 들어서인지 보는 것만으로 상당한 위압감을 갖게 만드는 인물로 느껴졌다. 내가 그 사내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을 때 사내는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알아챘는지 갑자기 눈이 떠지면서 번뜩이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곧 알 수 없는 냉기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착각이었을까? 순간이었지만 그의 두 눈동자는 붉은 광채가 번쩍였고 그것은 왠지 모를 죽음의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붉은 섬광은 금새 사라졌지만 그 기분 나쁜 붉은 빛은 내 뇌리 속에 깊게 아로새겨져 버렸다. 내가 그 기분 나쁜 기억을 떨쳐버리고 다시 그를 찾았을 때는 그는 예전처럼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언제 그런 눈빛을 보냈는가 싶은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처절하리 만치 싸늘한 살기를 느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살기가 아닌 광기인지도 모른다. 대체 저 자의 정체는 뭐지?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갔고 첫 번째 시합이 시작되었다. 기사 출신의 사내 하나와 무가의 검사 하나가 맞붙었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였지만 나에게는 저쪽의 사내에 대한 정신이 팔린 관계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8강전 제 2시합이 시작되겠습니다. 다크 워리어, 료우 하얀 출전하십시오." 내가 검은 베일 사내의 정체에 대해 골똘하게 고민하고 있을 즘 어느새 제 1 시합은 끝났는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지불식간 호명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 나는 검은 베일에 얼굴을 감춘 사내의 광기를 떠올리며 절대 상대가 보통의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 한번의 시선만으로 나는 상대의 위압감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무척 어려운 승부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투지를 짓누르고 있었다. "제길..." 경기장으로 나가는 도중에 터진 나의 욕지거리는 상대가 강하다는 사실보다 내가 무척 약하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自傀感) 때문이다. 충분히 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그어놓고 그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 주위에 나를 보호해 줄 훌륭한 보호자가 여럿 있었기 때문일지 몰랐다. 아니 그 말이 정답일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 개발은 고사하고 나는 어느 한도 내에서 내 자신에 만족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섣부른 판단과 오만이 가져온 결과였다. 의욕적으로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테스트하겠다고 참가한 무투 대회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내 스스로의 오만이었을지 몰랐다. 항상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계의 사람들과 다르게 죽음에 대한 어떠한 제약도 없는 오만이 나 스스로를 너무도 안이하게 만든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피 빛 날이 날카롭게 선 칼날 위에 자신의 목숨을 내 맡긴 체 살아가는 이곳 세계의 사람들과 다른 나는 마치 드래곤을 흉내내고 있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와아아..."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관중은 전날보다 훨씬 많았고 그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온몸을 짜릿하게 흥분시키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는 투사들을 보며 그들은 돈을 대가로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날까지 나는 그들의 열광에 들뜬 기분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철부지 어린애 마냥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나는 이곳 세계의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제 2시합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함성이 원형 경기장을 진동했고 죽음을 담보로 뛰어든 투사들은 살기를 가득 담으며 상대를 응시한다. 검은 베일의 사내... 다크 워리어라고 했던가? 그 사내는 불꽃같은 칼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불타는 검 프람베르그(Flameberge)를 무기로 사용하는 듯 보였는데 그때서야 죽은 자의 상처가 마치 짐승의 발톱에 찢긴 것처럼 보였던 이유를 깨달았다. 프람베르그의 날 모양은 불꽃을 연상시키거나, 파도치는 모습등을 연상케하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는데 사내의 프람베르그는 특이해서 마치 날카로운 상어의 이빨을 연상케 하는 톱날로 보이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저 톱니에 살을 베이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스르릉..."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자극한다. 검을 빼어드는 그 소리조차 내 신경을 극도로 자극하는데 나는 상대가 먼저 검을 뽑아들자 서서히 허리춤에 달려 있는 내 검을 뽑았다. "스륵..." 그는 검을 가볍게 쥐고 팔에 힘을 뺀 체 머리위쪽으로 천천히 들어올리고는 왼발은 뒤쪽으로 오른발은 앞쪽으로 내밀고 몸은 곧게 세웠다. 그 자세에서 서서히 검 끝에 힘을 불어넣는 모습이 보이는데 일격 필살로 상대를 끝장내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검을 세운 사내의 검 끝에서 붉은 아지랑이 비슷한 기운이 피어오르는데 나는 그것이 검기임을 깨닫고는 정신을 집중하고는 내 검에 마나를 집중했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모든 것을 결정 내려는 모습에서 상대도 어느 정도 나에 대해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가 보여주는 저 붉은 기운은 내가 알고있던 상식으로는 골드 팔라딘을 뛰어 넘는 경지로 보여진다. 골드 팔라딘이 보여주는 황금색 검기보다 더 진한 붉은 검기라면 어쩌면 로얄 팔라딘 수준의 검기일지 몰랐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마나를 검에 모조리 쏟아 부어 저 검과 부딪치더라도 아마도 내 검은 재수 없으면 산산조각이 나고 몸은 강력한 기운에 휩쓸려 두 동강이 날지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마나로는 상대의 강력한 마나가 실린 검기를 이길 수 없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오른 발 끝에 힘을 집중적으로 불어넣고는 순간적으로 기를 폭발시키며 앞으로 쭉 나갔다. 예전 바이크와 네오가 서로 싸울 때 네오가 보여주었던 순간적인 찌르기 동작과 유사한 동작인데 네오가 보여주었던 동작보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속도였다. 검과 부딪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은 빠름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앗..." "어...?"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나는 주위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가운데 상대의 목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실력을 판가름하는 무투대회여서 섣불리 사람의 인명을 살상하는 공격은 하고싶지 않았지만 상대는 나보다 강하였기에 인정을 베푸는 경기를 한다는 것은 오만이었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한 공격으로 상대를 이겨야만 했다. 네오가 보여주었던 그 빠른 공격을 흉내내는 공격이었지만 처음 시도치고는 무척 잘 흉내낸 듯 보였다. 나의 검은 여지없이 상대의 목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아니 관통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놀람과 탄성은 생생하게 내 고막을 자극하고 있었다. 끝났는가? 하지만 나의 섣부른 판단은 금새 막이 내렸는데 상대는 내 일보 앞에서 검을 겨눈 상태로 그렇게 있었다. 실패인가? 무척 빠른 공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바이크가 네오의 공격을 피한 것처럼 내 공격을 피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재빨리 자세를 잡고는 뒤로 두 세 걸음 물러서며 상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등뒤로 흐르는 차가운 한기는 회심이 일격이 실패한 대가로 내 감각을 자극한다. 한 방울 긴장감이 얼룩진 땀방울은 오른쪽 이마를 지나 눈썹 밑으로 매섭게 떨어지더니 볼을 타고 아래로 수직 낙하를 하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이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지는데 어느새 나는 긴장감에 푹 파묻혀 버린 체 상대의 매서운 공격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어 버렸다. 그때 미세하게 움직이는 붉은 기운이 내 눈을 자극했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 떨림은 진동으로, 그리고 세찬 파도로 변하더니 내 몸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었다. 저것인가? 나는 확연하게 골드 팔라딘과 로얄 팔라딘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 골드 팔라딘인 후커와의 싸움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공격이 지금 이 사내의 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골드 팔라딘인 후커와의 싸움도 마법과 검을 섞고, 영혼의 검 소울 스워드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겼지 않은가? 피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 몸을 옥죄는 듯한 세찬 붉은 파도는 조밀한 그물이 되어 사방팔방 내 주위를 포위하고 내가 빠져나갈 모든 공간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나는 이을 악물고는 내 검에 내 모든 마나를 싣고 정신을 집중했다. 모든 공간을 옥죄고 있는 그물을 벗어나려면 한곳에 힘을 집중하여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검 끝에 마나를 싣자 여태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힘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잠재적인 능력일지 몰랐다. 나는 서서히 일어나는 검기를 보면서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실버 팔라딘을 상징하는 은색의 검기가 서서히 누런 황금빛을 띄었기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생사를 가늠하는 이런 위험한 순간에 골드 팔라딘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내 검 끝에 일어나는 약간 탁한 황금 검기는 순간적으로 앞으로 폭사하더니 상대가 펼쳐놓은 그물과 부딪쳤다. 전신을 옭아매듯 달려오던 붉은 검기는 순간적으로 내가 뿜어낸 황금 검기가 부딪쳤는데 검 끝으로 전해지는 충격에 나는 내장이 흔들리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는 한 모금 선혈을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을...' 속으로 뱉어낸 욕이지만 지금 내 처지를 여실하게 표현한 말이다. 골드 팔라딘에 들어섰다는 잠깐의 행복과는 다르게 다크 워리워라고 불린 사내의 붉은 검기에 부딪친 내 허망한 황금 검기는 여지없이 깨졌고 내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약간 멈칫한 붉은 검기는 내 검기에 부딪쳐 한곳이 서서히 균열이 가는 듯 보였지만 금새 자리를 다시 찾아들었고 내 회심의 일격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빠져 나오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결국에는 사내의 붉은 검기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서서히 내 몸을 조이는 붉은 검기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죽일 작정인가?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사내의 눈을 쳐다보았다. 검은색 베일로 얼굴을 칭칭 감은 사내의 두 눈은 탁한 어둠으로 침전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경기 전에 보았던 살기도 광기도 아닌 심연이었다. 도대체 저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도 나는 내 목숨을 움켜쥔 사내의 정체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사내의 눈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나는 그 순간 그 자의 마음이 살기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조금 전까지의 탁한 어둠과는 다르게 붉게 물든 혈안은 내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다. "제길..." 나는 욕을 내뱉고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간 소 마냥 꿈벅이는 눈으로 도축자의 칼을 기다리는 신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 스스로 내 자신의 생명에 대해 이미 포기하고 만 것이다. 어차피 죽으면 살아나는 것은 기정 사실이고 또한 더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런 것을 위안 삼아 내 생명을 포기한 가운데 상대의 검을 기다리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금방 포기하는 놈이군." 문득 내 귓전을 흔드는 한마디 말에 나는 눈을 번쩍였다. 다크 워리어라 불린 사내의 검은 내 앞에서 멈춘 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조금 전까지 내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 버리듯 포기했던 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이 생겨났다. 마치 수 십억 짜리 생명 보험에 가입하고 난 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사내의 비웃음으로 인해 아침에 품었던 마음을 되새기게 되었다. 현 상황에 충실하자고 다짐했던 아침의 결심은 나도 모르는 사이 금새 타성에 젖어버려 쉽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이를 악무니 입술 사이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데 입술이 터져서 붉은 선혈이 입가를 적시고 있었다. "후후... 그래! 그렇게 발악을 해야지. 그래야 죽일 맛이 나지 않겠나!" 사내의 나직한 음성이 귓전을 울리고 갑자기 큰 파도가 전신을 휘감았다. 조금 전까지 마치 나의 발악을 기다리듯 멈추었던 기세가 서서히 덮쳐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온힘을 쥐어짜서 부딪쳐 보리라 다짐했다. 이미 패배는 기정사실이지만 조금전과 같은 포기는 더 이상 하고싶지 않았다. "콰쾅..." "크억..." 온몸의 마나를 모조리 쥐어짜서 만든 내 황금색 검기는 온몸을 죄어오는 붉은 그물과 부딪쳤고 엄청난 폭음소리와 함께 장내를 뒤흔들었다. 귓가를 울리는 진동과 함께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퉁겨져 나갔다. 아마도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는 엄청난 충격에 내 몸이 이기지 못하고 퉁겨져 나가는 모양인데 나는 피를 내뿜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와 함께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데 스스로 의식을 붙잡으려 애를 썼지만 서서히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료우우..." 멀리서 들리는 비명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었다. 22장. 친구를 위한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무투 대회에서 검기의 충격에 정신을 잃은지 반나절이 훨씬 지난 후의 일이다. 눈을 떠보니 아론과 바이크, 가이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라미셀이나 레이첼등의 여자들이 자리에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죽어서 부활한 모양이다. 온몸을 감싸는 마나의 양도 예전보다 대폭 많아진 것을 보아 내 생각이 맞는 듯 하다. 나는 내 몸의 현 상태를 살펴보고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다크 워리어의 비웃음에 쉽게 생명을 포기한 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 반항을 하였건만 결론적으로 그의 손에 죽어 다시 부활을 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아론에게 전후 사정을 물었고 아론은 검기의 충격에 정신을 잃은 후의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론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다크 워리어의 검기와 부딪쳐 3미터쯤 뒤로 퉁겨져 나가더니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전신은 다크 워리어의 검기에 벌집이 되었고 상처가 엄중하여 경기는 종료되고 다크 워리어는 승자가 되었다고 한다. 나의 상태는 거의 빈사지경까지 이르러서 경기장에 대기하고 있던 신관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치료를 하려고 했지만 신성력이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나의 육체 때문에 그들은 상당히 당황한 표정으로 내 정체에 대해 갑론을박 토론만 벌였다고 한다. 이런 그들을 구원한 것은 아론을 선두로 한 우리 일행이었고 그들은 급히 나를 데리고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지라 신관들은 자신들의 신성력으로 다시 치료를 해보겠다고 아론 등을 만류했지만 어차피 그들의 신성력이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내 육체에 아무리 축복을 해도 치료는 불가능했다. 그나마 내가 아직 죽지 않아서 부활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우리 일행은 억지로 나를 신관들 틈에서 빼내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내 육체를 이목이 없는 곳으로 옮겨야 했기에 치유력이 있는 가이가의 능력을 보여주고는 내 육체를 신관들 틈에서 빼내어 우리가 묵고있는 여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내가 죽어서 다시 부활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론과 바이크, 가이가, 그리고 레드 드레곤 네오 밖에 없었기에 다른 일행들은 내가 죽어가자 시름에 잠겼는데 그 때문에 레이첼도 8강전 경기를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가이가는 다른 일행에게 나의 부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치유력으로 치료를 하겠다고 하고는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나를 은밀한 곳으로 옮기겠다고 하고는 나를 따로 옮겨서 치료하는 척 했다고 한다. 물론 가이가의 치유 능력이라면 거의 죽음에 다다른 나를 살려 놓을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가이가는 다른 이들과 상의하고는 나를 살리려고 치유 능력을 펼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죽어 부활함으로 내 능력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그들은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에 서로 동의를 하고는 내가 부활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아론이나 바이크, 가이가가 타의가 아닌 자의로 자신들의 의견에 따라 내 생사를 결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시키는 것만 했던 그들이 내 생사를 놓고 서로 협의해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무척 주목해야 할 사건이었다. 종이 주인의 생사를 결정 할 하등의 권리도 없거니와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주인에 대한 반항이거나 아니면 그들과 나의 벽이 무척 엷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벨제뷔트에 위해 나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에 반항을 한다는 사실은 거의 희박했고 그렇다면 나에 대한 벽이 무척 엷어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중에 합류한 일행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딱딱한 관계인 아론, 바이크, 가이가가 이런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 좋은 일이었다.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상하관계보다는 이해와 배려가 있는 관계가 나와 그들에게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인님! 저희가 무례하게 주인님의 생사를 논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내가 그들이 서로 합의하여 나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고심을 하는 표정을 보이자 아론과 바이크, 가이가는 무릎을 꿇었고 용서를 빌었다. "아냐! 아냐! 나는 지금 무척 만족하고 있는걸... 요즘 들어 그대들과의 관계가 무척이나 딱딱해서 걱정이었는데 이번 일로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야. 앞으로도 그대들의 이성과 판단을 믿겠어. 그리고 이제는 주인이나 종보다는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어떻겠어?" 내 말에 아론과 바이크, 가이가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절대 불가합니다. 친구라니요... 저희는 이미 주인님께 귀속된 몸입니다. 친구로 지내라 하심은 가당치 않습니다. 아니 절대 불가능합니다." 극구 거부하는 그들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힘든 일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주인과 종이라는 입장을 유지한다면 나는 무척 용병 활동을 하기에 껄끄럽다는 생각을 갖았다. 우리 일행도 어느 정도 피부로 느끼고 있겠지만 그들은 내 지시로 나를 료우라고 이름을 부르지만 언제나 존대하는 말투와 행동을 보였고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레드 드레곤 네오를 제외하고는 다들 무척 이상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우리 용병대에서 가장 강한 자를 꼽으라면 검사로는 바이크, 마법사로는 아론이다. 거기다가 그들은 나보다 훨씬 연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극히 존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무척 불안정한 모습이고 이 때문에 나에게 반말을 하는 라미셀이나 레이첼등은 그들과 대화할 때 무척 곤혹스런 모습을 보인다. 물론 대화도 극히 적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주군과 신하 정도의 관계로 하지. 더 이상은 나도 양보 못해." 나는 못을 박듯 그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내 결연한 의지를 느끼고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내 명령만을 무조건 따르는 종도 좋았지만 나에게는 지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나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존재가 필요했다. 거기다가 그들의 능력은 이곳 중간계의 어떤 존재보다도 강했기에 종이라는 신분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것이고 용병대를 이루는 자들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바꾸어야만 했다. 내가 이들과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맺는다면 다른 일행에게 어느 정도 핑계를 될 수 있어 좋았다. 원래 이들은 예전 가문의 가신이었고 지금은 가문이 멸망해서 같이 떠도는 중인데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감추기 위해 같은 동료처럼 지냈다고 우리 일행에게 거짓말을 하면 된다.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나와 바이크, 아론, 가이가 등의 어색한 부분을 주군과 신하의 관계로 인해 생긴 것이라 설명하면 아마도 그들도 이해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들과의 관계를 일행에게 확실히 인지시키기 위해 공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뭐 어느 정도 일행도 이해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참... 무투대회는 어떻게 됐지?" 나는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립하고는 한시름을 덜자 무투 대회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아론을 쳐다보며 물었다. 계속 마음속에 걸렸던 그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해결되자 나도 모르게 이미 패배한 무투 대회이지만 그 후의 상황이 무척 궁금해져서 물은 것이다. "레이첼양이 경기를 포기한 덕분에 미르의 기사 출신 사내는 부전승으로 올라갔고 준결승전에서 주군과 싸웠던 그자는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아마도 주군과의 대결에서 그 자도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론은 주인에서 나를 주군으로 불렀고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레이첼이 나 때문에 경기를 포기했다는 사실과 다크 워리어라 불리었던 그 무시무시한 자도 나 때문에 어느 정도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한 뿌듯한 감정도 들었다. 나는 아론을 통해 오늘 있었던 무투 대회의 상황을 어느 정도 듣고는 궁금증을 해결하고는 다른 일행에게 내가 부상에서 회복되었다고 알리도록 했다. 라미셀이나 레이첼등의 여자들은 무척 걱정을 했을 터이라 빨리 알리는 것이 좋았다. 물론 거의 빈사지경의 내가 갑자기 불쑥 일어나서 건강한 모습을 보이면 약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는 기간을 갖고 그들의 눈을 속이도록 했다. 내가 다른 이들의 이목을 속이고 숙소에 쳐 박혀 나오지 않는 까닭에 우리 일행은 발목이 묶인 체 숙소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무료한 시간을 보냈지만 실질적인 용병대의 대장인 내가 상처를 입고 거동이 불편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나는 그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데 바이크를 통해서 무투 대회에서 느꼈던 점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고 어느 정도 내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이크에게 내가 무투 대회에서 위험한 상황 속에 골드 팔라딘에 올라섰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지금 현재 부활을 통해 얻어진 힘을 보태어 그에 맞는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많게 잡아야 2-3주간의 짧은 기간이겠지만 훌륭한 사부를 갖고 있는 나에게는 아마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어디 산 속이라도 쳐 박혀서 수련을 쌓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라도 쪼개어 수련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예전에 아론과 바이크, 가이가만 있는 상황이라면 몇 년 또는 몇 십 년의 시간을 수련에 쏟겠지만 지금은 책임져야 할 이들이 많았다. 나 하나만을 위해 그들을 버릴 수도 없는 입장이라 나는 그것에 만족을 해야했다. 한 일주일 정도 바이크에게 검술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으면서 나는 밖에서 마음놓고 수련의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을 수 없었다. 죽었다 살아난 놈이 갑자기 검을 들고 설친다면 모두들 무척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였기에 나는 방안에 꼼짝 말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주일의 기간동안 검술에 대한 배움이 있었다고 뚜렷하게 더 강해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움은 있었던 모양이다. 육체적인 훈련은 없었지만 바이크의 검술은 이곳 중간계 특유의 육체적인 훈련을 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나를 몸에 끌어들여 그것을 바탕으로 기를 이용하는 것이라 앉아서 수련도 가능했다. 마치 예전 무협지를 보면서 무림의 고수들이 내공을 쌓는 과정과 비슷한데 검로를 머리로 익히면서 바닥에 앉아 마나를 몸에 쌓는 훈련을 통해서 나는 골드 팔라딘이 다루어야할 마나에 조절에 대한 수련을 쌓았다. 어느 정도 일정량의 마나를 다루는 훈련이 능숙하게 이루어지자 나는 바이크에게 무언가 적에게 강렬한 타격을 줄 필살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고 바이크도 내 말을 이해했는지 새로운 기술을 전수했다. 내가 그렇게 내 처소에 박혀 바이크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으며 나오지 않는 동안 우리를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 레이첼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찾아온 인물은 언뜻 보아도 왕국의 관리라는 신분을 알려주는 복장을 하고 있는데 그는 우리를 미르의 2왕자가 찾고 있다는 알려왔다. 무엇 때문에 찾느냐고 레이첼이 묻자 우리들을 스카웃 하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그의 말을 듣고는 일행은 그 소식을 나에게 전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 처음 무투 대회를 2왕자가 주재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감은 잡았지만 상처를 입은 나나 대회를 포기한 레이첼까지 잡을 정도로 인재가 없지는 않을텐데 무척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그것 때문에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아론이 내게 귀뜸을 해주었다. 아론의 말로는 미르의 국경 쪽이 무척 소란스러운데 아마도 전쟁의 조짐이 보이는 듯 하다는 말을 했다. 제국의 열 두 공국중 하나인 세덴 공국이 미르의 국경 쪽으로 병력을 재배치한 모양인데 그 수가 예전과 판이하게 다른 까닭에 미르 왕국에서도 난리가 난 모양이다. 나는 아론의 말을 듣고는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었다. 8강 전에서 떨어진 우리를 붙잡을 정도로 미르의 상황이 심각한 것이었다. 나는 나와 하등의 관련도 없는 왕국의 전쟁에 끼어 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까닭에 소식을 전한 관리에게 거부의 뜻을 전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이곳에 머물고 있으면 귀찮은 결과가 생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 나는 일행을 재촉하여 여관을 나섰다. 일주일 동안 여관에 쳐 박혀 있다가 나와 대로를 걷고 있는 우리 일행은 얼마 걷지도 못해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구경거리라도 있는 냥 빙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습에 처음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활발한 성격의 레이첼이었다. 나도 레이첼과 마찬가지로 약간 호기심이 동해서 그녀의 뒤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곳에는 두 사내와 한 무리의 기사들이 서로 마주보고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비웃음과 조소가 가득 찬 표정으로 두 사내를 쳐다보고 있는데 한 사내는 울었는지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운 것으로 보이는 사내는 약간 왜소한 체구지만 단단한 근육과 체인 메일을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일반 평민이 아닌 기사처럼 보였다. 그런데 당당한 기사의 모습과는 다르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 밑에서 볼에 걸쳐 커다랗게 불그스름한 눈물 자국이 생기기까지 했다.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사내의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쯤 보이는데 벌겋게 물든 얼굴로 보아 대낮부터 술을 먹은 모습도 내보였다. 이래저래 명예를 소중히 하는 기사의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른 한 사내는 왜소한 체구의 사내와는 다르게 무척 당당한 체구로 미남형의 얼굴인데 그 사내와 마찬가지로 기사처럼 보였다. 사내는 약간 슬픈 기색에 그 사내처럼 심하게 울지는 않았지만 약간 눈가가 붉은 것이 그의 슬픔에 동조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당당한 기사의 모습에 비추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나약한 모습이었다. "퉷! 사내자식이... 그것도 미르의 기사라는 놈이 대낮에 대로에서 술을 마시고, 눈물을 흘리다니 너희들은 우리 루센 기사단의 수치이다." 일부 기사 무리중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더니 두 사내에게 이렇게 외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의 조소가 이어지자 다른 사내들도 덩달아 침을 뱉으며 그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다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손가락질하더니 외쳤다. "루턴, 셀라온... 너희들은 우리 루센 기사단의 수치이다. 기사의 명예를 모르는 자들은 우리 기사단에 남아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 말에 미남형의 사내가 반사적으로 얼굴을 치켜들며 소리 지른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의 행동에 손가락질을 하던 사내가 순간적으로 움찔하더니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는데 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냉소를 쳤다. "흥... 그래 무슨 할말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왜 변명이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수치를 모르는 자 같으니..." 그의 말에 미남형의 청년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소리쳤다. "그를 비난하지 말아라. 그는 기사이기 이전에 남자이고, 남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인간은 슬플 때는 울고 기쁠 때는 웃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는가? 너희들은 슬플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이냐?" 그의 외침에 기사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금새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물론 슬프면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 하지만 기사의 품위를 벗어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사의 명예와 긍지를 더럽혔다. 기사의 명예를 아는 자라면 아무리 슬픈 일이 있다고 해도 대로에서 술을 먹고 목놓아 울지는 않는다." 그들의 외침에 미남형 사내의 외침이 들렸다. "무엇이 명예요, 무엇이 긍지라는 말이냐? 그는 기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은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물론 기사의 직분을 잊고 대낮에 술을 마신 것은 잘못이지만 그의 울음까지 비난할 것은 없지 않은가? 너희들이 말하는 기사의 명예와 긍지에 그런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에 다른 기사가 대꾸했다. "흥... 기사의 신분을 가진 자라면 기사의 명예와 긍지를 소중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라고...? 그가 이미 기사의 직위를 받았을 때는 기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폐하와 폐하의 왕국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일반 사람이기 이전에 왕국에 충성하는 기사의 본분을 다해야만 한다. 결코 왕국의 강력한 기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일반 백성에게 보이지는 말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기사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강력한 왕국 기사단의 이미지를 훼손했다. 충성을 맹세한 폐하와 폐하의 왕국에 반역을 저지른 것이다. 너도 친구라고 그를 옹호한다면 반역의 이름으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대답에 미남형 사내의 반박이 터졌다. "반역이라고... 누가 언제 반역을 저질렀다는 말이냐? 그의 슬픔이 커서 참지 못하고 술을 마시고 운 것인데 너무 비약적으로 상황을 매도하는구나? 그대들은 한가지 사실만을 비약적으로 부풀려 있지도 않은 일로 나와 내 친구 셀라온을 모욕했다. 그것이 명예와 긍지를 소중히 하는 기사의 모습이라는 말이냐?" 사내의 말에 다른 기사들이 약간 멈칫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에 약간은 꺼림 직한 면이 있는지라 서로를 보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의견을 구하는 것 같은데 금발의 한 사내가 나서며 소리쳤다. "너희 수치를 모르는 자들 앞에서 우리가 기사도를 보일 필요가 있을까? 이미 너희들은 기사의 명예를 더럽혔고 폐하의 왕국에 반역을 저질렀다. 그런 너희들에게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사도를 갖고 대하라는 것이냐? 너희들은 책임과 직분을 버렸기에 당연히 모욕을 받아야 하고, 처벌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금발 사내의 말에 미남형 사내의 외침이 들렸다. "처벌이라고? 살루만... 너에게 무슨 권한이 있어서 우리를 처벌한다는 말인가? 네놈이 네 아버지의 권력만을 믿고 함부로 설치는구나!" 사내의 말에 살루만이라 불린 금발 사내의 입술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루턴... 평민 주제에 기사가 되었다고 기고만장하여 감히 귀족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이냐? 네 놈이 어찌 내 아버님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더냐? 네놈이 정녕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살루만의 말에 루턴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자신이 기사이고 상대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하여도 어디까지나 살루만의 아버지는 자작이라는 지위를 갖고있는 중앙의 귀족이었다. 평민 기사인 자신이 함부로 입에 담을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턴은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자신 한 목숨이면 몰라도 이번 일은 친구의 생사와 명예까지 달려있는 것이다. 루턴은 이를 악물고는 눈을 부라리며 살루만을 직시했다. "내가 평민이기 이전에 명예와 긍지를 갖고 있는 기사이다. 너는 기사의 명예를 무시한 체 우리를 모욕했다. 세치 혀로 우리를 반역도로 매도했고 내 뒤의 무리를 믿고 무도하게 처벌을 운운했다. 나는 내 이름을 걸고 너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고 이에 결투를 신청하겠다." 루턴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살루만에게 던졌는데 그 결투의 대상이 되어버린 살루만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 살루만은 루턴의 결투 신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기사의 직분을 갖고 결투를 응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했던 모든 말에 실수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해야했고 책임도 져야만 했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살루만은 결투에 응해야만 했다. 하지만 루턴은 평민출신의 기사이기 전에 루센 기사단 내에서도 상위의 실력을 갖고있는 실력파로 유명하다. 살루만은 자신의 실력으로 결코 루턴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자 이를 악물었다. 루턴은 일어나 검을 뽑고는 살루만을 응시했다. 살루만은 루턴이 검을 뽑아들자 주춤 앞으로 나서더니 검을 빼들었지만 섣불리 덤비지 못하고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이 결투를 말려 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지만 그의 동료들은 섣불리 결투 중간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의 말이 정당한지는 이 결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만약 네 말이 옳다면 내가 패할 것이고, 내 말이 옳다면 너는 내 검에 의해 죽을 것이다." 루턴의 살기 어린 말에 살루만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더니 주춤 뒤로 물러선다. 아무리 명예와 긍지를 아는 기사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살기까지 일으키며 죽어라하고 덤벼드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미리 안다면 누가 용기를 일으켜 덤비려 할 것인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멈춰라!" 웅성거리며 이제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피 튀기는 결투를 벌일 두 기사의 대결에 온 신경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흥취를 깨어버린 방해에 눈을 찌푸렸다. 모두의 시선이 싸움을 멈추라는 말을 꺼낸 방해꾼에게 향해졌고 그들의 시선은 금새 원망에서 공포로 젖어 들었다. "누가 감히 대로에서 검을 들고 설친다는 말이냐? 어제부터 사적인 결투는 전면 금지한다는 국왕폐하의 명을 듣지 못했다는 말이냐?" 호통을 내지르는 인물은 무척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회색 빛의 갑옷을 입고 있는 사십대 후반의 기사인데 단아한 용모나 위엄으로 보아 어느 정도 낮지 않은 직위를 갖고 있는 인물로 보였다. 그의 등장에 두 기사의 결투에 온 신경이 쏠려있던 다른 기사들의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모두 고개를 숙였다. "핫... 카슈 호그와트 백작님을 뵙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존경심이 가득 찬 눈으로 결투를 방해하며 나타난 사내를 응시하는데 이 인물이 미르의 삼각 받침대중 한 명으로 알려진 미르 제 2 근위 기사단의 단장인 카슈 호그와트 백작이다. 미르 내에서 유일하게 소드 마스터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카슈 호그와트는 엄숙한 표정으로 기사들의 인사를 받고는 서로 검을 겨눈 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두 사내를 응시하더니 재차 소리쳤다. "내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렸더냐? 아직도 검을 겨누고 있다니..." 카슈 호그와트의 말에 루턴과 살루만은 검을 얼른 거두더니 고개를 숙였다. "호그와트 백작 각하... 그가 저와 제 친구를 모욕했습니다. 결코 이 모욕을 받고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루턴은 참지 못하는 떨림이 강하게 섞인 음성으로 카슈 호그와트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그의 두 눈은 분노로 인해 붉은 색 광채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루턴의 말에 살루만은 지지 않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는데 그의 음성에는 어느 정도 안도의 내음이 섞여 있었다. "호그와트 백작 각하! 저 자와 그의 동료 놈은 감히 기사의 명예와 긍지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습니다. 전군의 비상령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저 자의 친구 놈은 대낮에 술에 취했고, 기사의 긍지를 저버리고 길바닥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 놈도 제 친구 따라 우는 모습을 여기 모든 자들이 지켜보았습니다. 저희들은 결코 기사의 명예와 긍지를 저버린 저 자들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살루만의 말에 카슈 호그와트는 안색을 찌푸렸다. 미르 제일의 기사로 알려진 카슈 호그와트는 기사의 명예와 긍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살루만의 말을 듣고는 루턴을 쳐다 보았다. 사실이냐는 물음이 섞인 눈초리인데 그의 시선을 받은 루턴은 이를 악물더니 소리쳤다. "물론 그가 비상령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먹은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기에 술을 마셨고 슬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자신의 직분을 잃고 술을 마신 죄는 달게 받겠지만 슬픔에 운 상황을 기사의 명예와 결부시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점 염두 해 주십시오." 루턴의 반박에 카슈 호그와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슬픈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이 많은 대중들 앞에서 기사의 직분을 갖은 자가 운다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세덴 공국의 침략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왕국을 수호하는 기사들은 일반 백성에게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결코 그들의 나약한 모습을 내비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의 그런 생각은 곧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입을 통해서 흘러 나왔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다고 해도 기사의 직분을 잃고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대가 아무리 변명을 하려고 해도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 그 책임을 묻겠다." 카슈 호그와트의 말에 루턴의 얼굴은 절망감이 가득 찼다. 무리를 지어 자신들을 핍박하며 달려들던 기사들은 루턴에게 버거운 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살루만이라는 자를 통해서 왕국에서 금지령을 내린 사적인 결투까지 벌이면서 이 일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왕국 제일의 기사인 호그와트 백작이 알아버린 상황이라 빠져 나올 구멍이 없었다. "판결을 내리겠다. 우선 비상령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먹고 왕국과 기사의 직분을 버리고 명예를 실추시킨 행동을 한 저자는 교수형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옹호하고 함께 눈물을 보인 너는 기사의 직위를 박탈하고 왕국의 지하 감옥에 10년 수감을 명령한다." 호그와트 백작의 말에 루턴은 해머로 머리를 맞은 듯이 충격에 멍한 표정으로 호크와트 백작을 쳐다보더니 뒤쪽에서 슬픔과 충격에 몸이 굳어버린 친구를 일별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미 슬픔으로 인한 강한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대로 친구를 교수형에 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의 죄는 결코 교수형에 처할 정도로 크지 않습니다. 저는 그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붉게 물든 두 눈을 부라리며 판결을 내린 왕국 제일 기사 카슈 호그와트를 쳐다보며 소리치는 루턴의 모습은 발악에 가까웠다. 그의 그런 발악에 호그와트 백작의 눈살은 더욱 찌푸려지더니 수중의 검을 뽑아들었다. "네놈이 지금 나의 판결에 반항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의 죄는 충분히 교수형에 처할 만큼 중죄임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신 것만으로 충분히 즉결 처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카슈 호그와트의 말에 루턴은 이를 악물었다. "호그와트 백작 각하.. 그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그는 지금 커다란 충격 때문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정신 상태를 평상시의 다른 자들과 똑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십시오." 루턴의 말에 카슈 호그와트의 입 꼬리가 진하게 말렸다. "왕국 전체에 비상령이 내린 위험한 상황이다. 제국의 침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인데 왕국의 기사라는 자가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말이나 된다는 말이냐? 지금 네가 나에게 자비를 청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왕국의 안위가 걸린 상황에서 한 개인의 사정 따위는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 카슈 호그와트의 굳어진 말에 루턴은 죽음을 각오한 듯 보였다. 친구를 위해 기사로서 보이지 말아야 할 눈물을 보이고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죽음을 각오한 자의 의지를 읽었고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무엇 때문에 그의 친구가 기사의 직분을 잃고 술을 마시고 눈물을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결코 한 젊은 사내의 인생을 끝낼 만큼 중죄는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건 우정이 강하게 작용했기도 했지만 말이다. "멈..." 내가 막 소리를 지르며 상황을 가로막으려고 할 때 주위를 둘러싸고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차후 상황을 지켜보던 군중들의 뒤쪽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카슈 호크와트의 위엄 때문에 침묵을 고수하고 있던 군중들이 갑자기 웅성대는 것은 무언가 특이한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 분명했고 예상대로 인파를 헤치며 나타난 일단의 무리들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주위를 빙 둘러싼 수많은 군중들을 가르며 나타난 자들은 몇몇 기사와 이제 겨우 스물도 되어 보이지 않는 청년이 고작이었다. 약간 수수한 평상복과 대조적으로 찬란해 보이는 황금 모발을 갖고 있는 청년은 꽤 미남형의 인물로 무척 단아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무게의 견주어 특이하게 위엄이라는 것이 몸 전체에 서려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이런 위엄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가 낮지 않은 지위를 갖고있는 귀족 가문의 자제라는 신분을 증명해주는 것이 분명한데 그의 등장을 지켜보던 카슈 호그와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카슈 호크와트! 2왕자 전하를 뵈옵니다." 카슈 호그와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자들은 새로 등장한 인물이 미르 왕국의 2왕자임을 깨닫고는 모두 급하게 부복하여 머리를 숙였다. "왕자 전하를 뵈옵니다." 주위에 있던 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부복해서 머리를 숙이며 큰소리로 외치는데 그런 것에 별로 적응이 되지 않은 우리 일행은 그들의 행동을 따라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그들의 하는 행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우리 일행은 마치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덩그러이 서서 그것을 구경하는 꼴을 연출하고 말았다. 왕자의 주위에 있던 기사들은 부복한 사람들 사이로 가만히 서서 그런 모습을 구경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일별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우리 일행의 모습을 면면히 살펴보더니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기는 인간과 엘프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은 다른 자들이 보아도 무척이나 특이해 보이는 용병단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미르에서 엘프가 용병이 되었다는 소식이 없었기에 그들은 우리를 타국의 용병대로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미르 본국의 백성이 아닌 이상 그들 나라의 왕자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악질적인 자들이라면 타국의 백성이라도 왕족을 무시했다는 죄를 물어 처벌하려고 하겠지만 우리 용병단의 구성이 무척 특이한 관계로 그들도 우리와 굳이 마찰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번 무투 대회를 직접 주재하고 엄청난 상금까지 걸었으며, 부하를 보내어 8강전에서 탈락한 나와 케이린을 청했던 2왕자 본인의 등장에 무척 호기심이 동한 얼굴로 그를 살펴보았다. 처음 2왕자를 보았던 첫인상과 별로 다른 것은 없어 보이지만 스무 살도 체 되지 않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국의 무투 대회를 열었다는 사실과 그것을 기회로 자신의 측근을 뽑으려 했다는 사실에서 그가 실력을 중시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인물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어린 나이지만 왕자라는 화려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수수한 옷차림에 몇몇 기사들만 대동한 채 왕궁 밖으로 나왔다는 것도 무척 특이해 보인다. 여느 왕국의 어설픈 망나니 왕자는 아니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내가 처음 만나 2왕자에 대해 그런 평가를 내릴 즈음 2왕자는 주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더니 검을 들고있는 카슈 호그와트를 부르며 말했다. "호그와트 백작! 일단은 검을 거두시오. 저 기사의 죄가 비록 무겁다고는 하지만 무언가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그 사정을 들어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듯 하오!" 2왕자의 말에 카슈 호그와트는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뽑았던 검을 만지작거리더니 할 수 없이 다시 검집에 넣었다. 기사가 한번 뽑아든 검을 휘둘러보지도 않고 다시 집어넣는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왕자의 말인지라 아무리 왕국 최고의 기사라 하더라도 불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주장을 굽힌 것은 아니었는지 검을 넣더니 입을 열었다. "왕자 전하! 아무리 개인적으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해도 왕국의 비상령이 내린 상태에서 술을 마시고 기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제 스스로 느끼기에 이번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복하여 반항한 저자 또한 그 죄를 물어야 함이 지당한 줄 아옵니다." 카슈 호그와트의 강력한 발언에 2왕자는 약간 굳은 표정을 짓더니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표정은 아닌 듯 보였다. 그 증거로 왕자는 다시 카슈 호크왕트를 보며 말했다. "자자... 호그와트 백작의 생각은 내가 다 알았으니 잠시 기다리시오. 나는 일단 저 기사가 무엇 때문에 기사의 직분을 잊고 백주 대낮에 술을 먹고 울었는지 무척 궁금하오! 또한 그 친구라는 인물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목숨을 걸고 변호를 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오." 2왕자의 말에 카슈 호그와트는 더 이상 자신의 주장만 내세울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닫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도 어쩌면 2왕자의 말처럼 기사의 명예를 잊고 행동을 한 그 인물의 사연에 대해 궁금했을지 몰랐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대의 친구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소!" 2왕자는 카슈 호그와트와 설전을 벌였던 루턴에게 그렇게 물었고 루턴은 옆쪽에서 힘없이 무너져 넋을 놓고있는 친구를 힐끗 보고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여주고는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왕자전하! 꺼내기 무척 어려운 이야기지만 제 친구의 명예와 목숨이 걸려있는 터라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의 이번 행동이 비록 올바르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사연을 들으시면 왕자 전하도 그 혼자만을 욕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루턴의 어투는 무척 단호하게 들렸지만 무척이나 느릿느릿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꺼내기 무척 힘든 이야기를 어렵게 꺼낸다는 표정으로 친구를 불쌍한 눈으로 한번 일별 하더니 자신이 알고있는 친구의 기구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대강 이러했다. "나, 그녀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 할거야." 침묵의 연장선에서 뜬금없이 터진 한마디에 루턴은 무슨 말인가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친구 셀라온을 쳐다보았다. 한 시간동안 침묵을 고수한 체 술만 마시더니 얼굴이 벌개져서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게 된 정도가 되서야 드디어 한 마디 한다는 것이 바로 이말 이였다. 루턴은 요즘 들어 무척이나 초췌한 모습으로 평상시와 전혀 다른 모습을 가끔씩 보이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여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루턴은 셀라온의 벌개진 얼굴을 쳐다보았다. 셀라온은 평민의 신분으로 미르의 3대 기사단중 하나인 루센 기사단에 어렵게 입단한 루턴을 반갑게 맞이한 최초의 귀족 출신 친구였다. 다른 귀족 가의 자제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았다고 하지만 신분의 차이가 엄연히 있는 미르에서 그와 같은 행동은 무척 신선한 일로 여겨질 만큼 그의 행동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시고 백부의 손에 자랐지만 거의 혼자 힘으로 자랐다고 하는 것이 옳은 친구로 정말로 강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루턴은 이 친구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 대하는 일이었다. 셀라온이 눈물을 흘린다. 기사단에 입단 한 후 단짝처럼 가슴속에 품어둔 비밀까지 속속들이 까발렸던 그 만큼 친했던 친구가 자신도 몰랐던 비밀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힘든 역경 속에서도 그 오랜 시간 동안 눈물을 아껴 오던 친구가 지금 울고 있었다. 사랑,,,,, 사랑은 이토록 강한 친구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와 여자... 이 두 존재가 만나는 것은 신이라고 해도 결코 말리지 못하는 만고불변의 자연의 섭리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자연의 섭리 외에 사랑에 필요한 조건을 부여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했고 이후에도 그러할 것이다. 셀라온은 나도 모르던 여인이 있었던 모양이다. 뛰어난 미모에, 풍부한 학식, 귀한 집안의 영예가 분명한 듯 했다. 모든 조건을 갖춘 전형적인 일등 신부 감인 것이다. 그에 비해 셀라온은 그 조건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부족했다. 오직 명예와 긍지, 자부심으로만 똘똘 뭉친 전형적인 기사라는 직분이 전부인 사내였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만났고, 서로 사랑을 했고, 누가 보아도 부러울 그런 아름다운 커플이었던 모양이다. 나에게 숨긴 것은 둘도 없는 단짝인 나를 놀라게 해줄 요량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인데 그런 그들 사이에 크나큰 벽이 가로 놓였다. 그렇게 서로의 사랑만을 원했던 그들 사이를 방해한 것은 여자 쪽 부모의 반대였다. 여자 쪽 부모 입장에서는 셀라온은 턱없이 부족한 사위 감은 분명했다. 나름대로 귀족 가의 자제라고는 하지만 거의 고아나 다름없는 가정 환경에 재산이며 직위 등도 그들 부모의 눈에는 여러 가지로 맘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였다. 특이나 그녀 부모님이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셀라온이 기사라는 이유였다. 기사의 명예와 긍지에 자부심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셀라온에게는 그것이 그녀를 사귀는데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다. 미르 왕국은 대륙 전체를 넘보고 있는 제국의 열 두 공국중 하나인 세덴 공국과 국경을 마주보고 있는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는 나라중 하나이다. 언제나 정복 야욕에 불타고 있는 제국의 침입을 초조하게 감시하는 입장에서 미르 왕국은 국력을 키워 제국의 침입에 대비해야 하건만 왕국의 수장인 왕조차 무인보다 문인을 중시하는 성격이 짙어서 미르에서 기사의 지지기반은 무척 약했다. 다른 나라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 기사라는 신분이 미르 왕국에서는 일반 행정 관리보다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제국의 수족인 세덴 공국과 국경을 마주보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나마 천대받는 기사들은 일반 병사의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기사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기사라는 하나의 이유 때문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기사의 명예를 소중히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 국한된 생각이었다. 물론 일반 평민들이야 검을 들고 직접 전쟁터에 뛰어드는 기사들을 존경심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보지만 일반 귀족들은 기사들을 무척이나 천대했다. 그런 미르의 기사들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이 결국에는 셀라온의 사랑을 방해한 것이다. 셀라온은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와 그녀가 그녀 부모의 성황에 못 이겨 결국에는 헤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 그날, 두 사람은 무척 많이 울었다고 한다. 서로 사랑하면서 사랑하지 못하는 아픔은 사랑한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었기에 루턴은 그 슬픔에 대한 판단은 섣불리 내릴 수 없었지만 살아오면서 그토록 강했던 친구가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그래서 더욱 아파 보이는 모습으로 앉아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루턴에게 셀라온은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옆에 지켜주었던 친구였고,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주었던 친구였기에 그 아픔은 다른 누구보다 더했다. 친구는 기사라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오직 기사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평생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갈 친구가 기사가 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최고의 가치가 지금에서는 자신의 발목을 잡아버린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직 기사만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어. 그것만이 내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누군가 내게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꼽으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를 꼽을 거야. 눈물로 얼룩진 그의 시선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시선은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헤어진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는 모습처럼 몽롱한 시선으로 셀라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랑해" 루턴의 이야기는 끝을 맺었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있는 셀라온에게 돌아갔다. 너무도 슬픈 사랑 이야기 이전에 2왕자가 느끼고 있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있는 기사에 대한 국가와 귀족들의 푸대접이었다. 왕과 왕국에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받치며 오직 충성만을 맹세하는 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멸시와 비웃음이다. 셀라온의 사랑이 깨어진 것도 그의 신분이나 환경보다 그가 기사라는 이유가 결정적 이였을 것이다. 그가 만약 일반 망나니 귀족 가의 자제처럼 놀고먹는 한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든지, 아니면 일반 왕국의 행정 관리를 담당하는 자였다면 어쩌면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지 몰랐다. 2왕자는 루턴의 말에 셀라온의 정신 상태가 어떠한지를 충분히 파악했고, 자신의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며 지키려 했던 루턴의 우정에 감동했다. "호그와트 백작! 백작도 어느 정도 공감하시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소! 그의 처지도 이해하고 친구를 위해 눈물을 보인 그의 행동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소. 친구를 위한 눈물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오. 그것이 기사라고 해도 말이오. 내 뜻은 이러하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오?" 2왕자는 시선을 카슈 호그와트 백작에게 돌렸고 루턴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며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깊은 자숙의 시간을 갖던 카슈 호그와트는 감았던 눈을 뜨고는 2왕자의 시선을 받으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왕자 전하! 또한 같은 처지의 후배 기사들을 돌보지 못한 죄가 무척이나 크옵니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성급한 결정을 내린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기사들에 대한 귀족들의 시선이 어떠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카슈 호그와트는 루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옛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도 셀라온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고 지금의 부인을 놓칠 뻔한 기억이 있었다. 다행히 그가 왕국 최고의 기사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도 셀라온의 지금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리라 장담하지 못했다. "아니오. 그대의 잘못보다 기사들에 대한 시선을 고치지 못한 아버님과 내 잘못이 크오이다. 전쟁이 목전인데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는 그릇한 행동을 계속한다면 이 나라가 어찌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오!" 왕자의 탄식에 카슈 호크와트와 모여있는 모든 기사들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23장. 어수선한 대륙 ??어느덧 성큼 초여름이 다가와서 그런지 기온은 예전과는 다르게 무척 더웠지만 뭉게구름 피어나는 푸른 창공은 가슴마저 탁하니 시원하게 뚫어 놓았다. 거기다가 덤으로 바람마저 살랑거리며 주위를 맴도는데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전신이 시원해지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숲 속 대로를 가득 메우고 시원스럽게 뻗어 있는 수목의 나뭇잎들이 햇볕에 반짝이며 바람에 팔랑거리는 모습도 새삼스럽게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마치 내 안에서 어떤 생명력을 막 생성시키려 하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어수선한 정국의 미르 왕국을 빠져 나올 목적으로 용병 길드를 찾은 우리는 다행스럽게 파미르 국경까지 호위를 부탁한 상인 일행이 있어서 적은 돈이지만 비용을 받고 파미르로 향했다. 7월 초입에 들어선 여름이라 그런지 기온은 무척 더웠지만 그렇다고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하기는 수련의 성과가 있어 지금은 더위나 추위를 별로 거리끼지 않은 수준에 다다랐지만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어떻게 더운 한 여름을 견딜까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예전부터 여름이라면 치를 떨고 얼른 비껴가기를 바라며 에어컨이나 선풍기만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희미해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다가 수없이 많은 시간을 반복했다면 그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위에 대한 내 기억은 온통 나쁜 것이 전부였고 나는 그 기억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 여름 내내 땀으로 목욕을 한 악몽을 떠올리면 덥지도 않는데 몸이 스스로 반응해서 등뒤를 땀으로 적신다. 그 끈적끈적한 기분이 싫어 여름을 싫어했던 내가 지금은 오히려 한낮의 뙤약볕을 받고 능선 길을 걸으며 발을 옮길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의 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더위를 굳이 몸으로 맞을 필요가 없지만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전신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고,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후덥지근한 열기를 식혀주면 그 기분의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다가 나는 지금 단지 일행의 선두에 서서 한껏 자신의 열기를 뿜어내는 태양과 마주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수련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바이크가 나에게 가르쳐준 새로운 수련 방법중 하나인데 마치 무협지에서 말하는 내공을 수련하는 심법과 유사한 방법이다. 대자연의 기를 전신으로 받아들여 몸 안에 가두는 이 방법은 태양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달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방법은 오전, 오후 내내 태양이 떠있는 시간이면 수련이 가능한데 어떤 자세도 상관없이 태양의 기를 받아들이는 독특한 수련 방식이다. 물론 초보자는 이 방법으로 수련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 수련방법은 어느 정도 마나의 운용이 가능한자 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바이크가 알려준 두 번째 방법은 밤에 수련하는 방법으로 두 개의 달 디노와 디아가 떠오를 때 수련이 가능한 것으로 이것 역시 첫 번째 수련방법과 별 차이가 없이 달의 기를 받아들이는 수련 방식이다. 이것 또한 초보자는 수련이 불가능한데 어느 정도 수련의 성과가 있는 인물이 이 두 가지 수련 방식으로 대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면 무척 빠른 성장을 한다고 한다. 내가 바이크에게 예전에 내게 왜 이런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내가 미르의 북쪽 오지에서 삼 년간의 수련을 끝으로 별로 수련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할말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나는 미르의 북쪽 오지에서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그 성과에 만족에서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미르의 상인 무리를 호송하며 파미르 국경까지 오는 동안 나는 일행에 대한 모든 권한은 아론에게 떠맡긴 체 내 스스로의 수련에만 신경을 집중했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무언가 내 몸 안에 이질적인 기운이 쌓인다는 기분에 더욱더 수련의 박차를 가했다. 우리는 파미르 국경에서 상인 무리와 헤어지고 무라토리 산맥에서 우리를 눈 빠지게 기다리며 수련을 쌓고있을 산적들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일단 내가 그들을 우리 용병단에 입단시킨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하기도 했지만 그 많은 인원을 데리고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그곳에 본부를 세우기로 했다. 우리 용병단은 엘프들과 산적들을 모두 합치니 그 인원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커져서 무려 350명이 훨씬 넘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원 실버급 용병단의 인원보다 훨씬 적은 수효였지만 질적으로 그 수준이 틀렸다. 일단 대외적으로 알려진 우리 용병단 팔라딘의 수효는 무려 다섯 명이다. 바이크와 네오, 나와 레이첼 그리고 헤이트리드! 거기에 아론을 포함한 마법사와 엘프 전사들을 포함시킨다면 그 질적인 측면은 결코 상위의 골드나 로얄급 용병단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상급의 실력자 말고 중간급의 실력자가 부족하고 인원수에도 절대 다수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일단 수련에 대한 욕구가 생겨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해 무라토리 산맥의 예전 산적들이 있던 거처에 용병단 본부를 세우고 하르의 용병 길드에 두뇌 회전이 빠른 산적 두 명을 상주하게 만들고는 특별한 의뢰 건수가 있으면 연락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내 자신의 수련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에게도 더 강해지도록 요구하며 수련을 시켰는데 특히 바이크와 아론에게 부탁하여 산적패들 중 검이나 마법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자들을 추려서 따로 교육을 부탁했다. 굳이 내가 바이크와 아론에게 이런 수고를 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제는 그들 산적패가 내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무척 많이 망설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일단은 내가 손수 용병단을 만들었고 우연찮게 이렇게 식구도 많아졌기에 나는 이들을 제대로 이끌 책임이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나에게 이런 경우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을 갖춘 조력자가 여럿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 바이크와 9서클 대마법사 아론, 어둠의 신관 가이가, 레드 드레곤 네오등등.. 나는 이들의 도움으로 차츰 제대로 된 용병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이크와 아론, 거기에 더해서 네오까지 실력이 뛰어난 스승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배움을 청하는 자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기회이며 행운이었다. 평민 혹은 노예의 신분으로 배고픔에 지쳐서 혹은 억울하게 인생의 제일 밑바닥까지 내몰렸던 자들이, 산적이라는 악명을 뒤집어썼던 자들이 나와 만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비상할 기회가 만들어졌다. 물론 전적으로 나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겨우 검이나 창, 활 등의 병장기를 휘두르며 일반 용병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우리 용병단의 산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매섭게 단련되어 나갔고 어느 정도 용병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특히 재능이 뛰어난 축에 끼었던 자들은 바이크와 아론의 도움으로 단시간에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실력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그것은 예전 아론이 처음 나에게 해주었던 마법진을 통해 마나를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가능한 이야기인데 그들의 재능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던 모양인지 익히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였다. 우리 용병단이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할 무렵 급박한 소식이 내 귀에 들려왔다. 아마도 내가 무라토리 산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한 달 가까이 수련을 쌓을 시기였을 즈음이라고 생각이 든다. "전쟁입니다." 급작스럽게 달려와 소식을 전한 사람은 예전 산적패의 두목이었다가 이제는 우리 용병단에 소속된 코렐 레브라드도였다. 그는 원래 골드 나이트 초입의 검사였는데 그 재능이 바이크의 눈에 띄어 지금은 상위의 골드 나이트 급에서 얼마 안 있으면 로얄 나이트 급까지도 바라본다고 한다. 우습게도 이곳 산적들은 재능이 뛰어난 자들이 무척 많았는데 나는 그들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재능에 대해 한탄을 감추지 못했다. 각설하고 나는 코렐이 급박하게 와서 알려준 전쟁이라는 소식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하였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는데 다른 이들은 무척 놀란 모양이다. 물론 그들도 어느 정도 전쟁이 터질 것이라고 예상은 했을 터이지만 막상 전쟁이라는 소식에 잔뜩 긴장한 것이다. 확실히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았던 자들과 이계에서 온 나와의 차이가 이런 점에서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미르인가?" "네... 제국의 속국인 세덴 공국에서 30만의 대병력이 어제 새벽을 기점으로 미르의 국경을 전면적으로 침범했다는 소식입니다. 미르에서도 어느 정도 대비는 하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원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병력이 한꺼번에 들이닥쳤고 또 대륙 전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설마 이렇게 대대적으로 침공하리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심한 모양입니다. 국경은 단 한시간만에 돌파 당했고 천연의 요새라고 불리던 사우스 성도 두 시간만에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세덴 공국의 대군은 15만 미르 정규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막힘 없이 미르 전 국토를 유린하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 미르의 수도 네이팜도 전쟁의 여파에 혼란이 극에 다다르고 있다고 합니다." 코렐의 자세한 설명에 나는 사태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파미르 왕국의 반응은 어떻지? 분명 미르에서 지원을 요청했을 텐데..." 내 물음에 코렐이 얼른 대꾸를 했다. "저번 미르에서 일어난 암살 사건으로 양국의 감정은 골이 깊어 질대로 깊어진 상태입니다. 미르 다음에는 파미르임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왕국이지만 애써 전쟁의 여파를 피하려고 제국의 눈치를 살피고 원군을 보내지 않으려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서 세덴이 미르를 점령하고 발길을 돌려 왕국으로 침범할지 몰라 벌써부터 용병 길드에 왕국은 물론이고 대 귀족들의 의뢰가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세덴 공국의 미르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왕국은 물론이고 귀족들도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이미 로크와 젤마등 제국의 다른 공국들의 침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그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경선에는 제국군의 침입을 대비해서 국경 수비대는 물론이고 예비 병력까지 모두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르쪽 국경 부근에는 군이 부족한 상태라 사설 용병단을 투입하여 지키려는 모양입니다." 코렐의 말에 나는 어느 정도 파미르의 상태를 듣고는 고민을 했다. 이미 왕국은 용병 길드에 국경 방어에 대한 의뢰를 넣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뒤쪽에서 나와 코렐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아론이 물었다. 우리들 중에 가장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9서클 대마법사 아론을 꼽을 것이다. 마법사만큼 뛰어난 지식의 소유자도 없을뿐더러 그는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항상 나에게 뛰어난 조언을 해주는 동반자였다. 나는 아론의 물음에 미소를 보여주고는 결심을 굳혔다. "지금 우리 처지는 용병이니 용병답게 해야겠지. 의뢰가 들어온다면 피할 이유도 없고..." 내 말에 모두들 지금까지 고생을 하며 쌓았던 수련들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실전에 투입된다는 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용병 일을 처음 접하게되는 예전 산적패들의 흥분은 더했고 알게 모르게 나와 네오의 계략에 말려든 엘프들은 때아닌 인간들의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미르쪽 국경선으로 이동하는 용병단은 하르의 용병 길드에 등록되어 있는 군소 용병단들 중 무려 서른 일곱 군데나 동원되었는데, 개중에는 파미르에 하나밖에 없고 대륙에서도 오직 일곱 군데밖에 없다는 로얄 용병단 검은 늑대 용병단을 필두로 해서 골드급 용병단인 사이크 용병단과 레드 스워드 용병단등 제일 상급의 용병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 악마의 전사 용병단과 같은 실버급 용병단도 다섯 군데나 참여했고, 그 밖에 블랙, 레드등의 소규모 용병단도 다수 참여한 대규모 병력이었다. 파미르는 원래 군대보다 용병들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까닭에 오히려 용병들을 군사상 더 중요시하는 비정상적인 군대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 때문에 전쟁시에도 용병들의 전력은 군대의 전력보다 더 중요시되는 우습지 않은 장면도 연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다 파미르의 열악한 주변 환경 때문이다. 파미르는 북쪽의 땅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무척 커다란 나라이지만 실제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은 파미르 국토의 사분지 일 수준이라는 미르보다 조금 더 크다는 수준밖에 안되었다. 그 이유는 파미르 국토의 절반이 훨씬 넘는 땅이 인간이 살 수 없는 수준의 열악한 환경이라는 점 때문인데 서쪽 드래곤들의 레어가 있는 크라우스 산맥은 험준함은 뒤로하더라도 드래곤의 가디언들인 상급의 몬스터가 즐비했고, 또한 예전부터 크라우스 산맥에 살고있는 이 종족인 엘프, 드워프등이 인간의 침입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인간이 살기에 부적합했고 오히려 상급 몬스터의 출몰 때문에 방어선까지 세워둔 형편이다. 상급의 몬스터는 정상적인 군대의 수준으로 막기가 무척 힘들기에 수준 높은 용병들을 대거 고용하여 방어선을 지키게 하였는데 현재는 골드급 용병단 두 개가 동원되어 지키고 있는 형편이었다. 파미르 왕국 식량의 70퍼센트 이상을 생산하는 북쪽 하르를 중심으로 위쪽으로 파미르 국토의 삼분지 이에 해당하는 넓은 숲은 난폭한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마물의 숲으로 명명된 곳으로 이곳 역시 인간이 살기에는 부적합했다. 아니 원체 식량 때문에 남하하는 몬스터들의 수효가 많아서 정상적인 군대만으로 몬스터의 침입을 막지 못해서 용병들이 대거 몬스터의 침입을 막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규모는 주둔하는 군대의 숫자보다 많았다. 파미르의 동북쪽도 인간이 살기에 부적합 한 땅으로 알려져 있는데 버려진 땅, 혹은 죽음의 사막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테미가 바로 이곳이다. 테미에는 파미르 왕국과는 별개의 전사 부족인 아슈리안 부족이 넓게 분포되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원래부터 왕국이 존재하기 이전에 지금의 왕국에 살고있던 토착 종족으로 뛰어난 전사들이 많았지만 소수 부족으로 모여 살고 있다가 파미르 왕국의 등장으로 모든 땅을 빼앗기고 버려진 땅 테미로 쫓겨간 민족이다. 원체 농작물은 고사하고 동물들도 살기 힘든 열악한 땅이기에 일반 사람들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기에 부적합했지만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아슈리안 인들은 버려진 땅이나마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가꾸고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파미르 왕국은 아슈리안 부족에게 자신들이 살기 힘든 땅을 내주면서 그들의 전투력을 얻었는데 아슈리안 족은 동북쪽 마물들의 침입을 막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이런 저런 까닭 때문에 파미르는 정상적인 군대보다 용병이나 아니면 파미르에 살고 있는 소수 종족들을 이용해서 국토를 방위했는데 미르보다 네 배나 넓은 땅에 인구수도 두 배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정규군의 수효는 이십만이 겨우 넘었고 그나마 이중 절반은 예비군 수준의 능력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 숫자를 모두 제국의 북쪽 공국인 젤마와 로크의 발호를 막기 위해 국경으로 모두 돌리자 파미르 쪽에서 혹시도 있을지 모르는 세덴 군의 침입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실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파미르 왕국은 용병 길드에 의뢰를 신청했고 용병들 대부분이 서쪽 미르의 국경 지대로 이동하는 것이다. ??핏빛으로 물든 대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던 강렬한 태양의 그림자는 그 밝고 찬란한 푸른빛을 뒤로하고 어느새 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짙게 물든 붉은 빛의 석양(夕陽)은 여지껏 보았던 그 무엇보다 더 진한 피를 머금은 채 피의 향연에 동참하려고 하는지 성큼 대지 곁으로 다가서고 있는데 그 모습은 죽음의 냄새를 동반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낙조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은 빈 언덕 너머로 모습을 감추는 석양의 그림자에 찬탄을 금하지 못한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절대의 풍경에 취해 사람들은 그 찬란한 붉은 빛에 평화를 말한다. 그들은 '이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광경인가?' 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평화로운 풍경이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 그 누가 이 풍경에서 평화를 말할 것인가? 대지를 붉게 적시는 석양의 붉은 빛은 핏빛으로 물든 대지와 어울려 진한 살의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역하게 올라오는 피 냄새와 사방을 가득 메운 시체 더미 속에서 죽음에 통곡하고 원한에 사무친 영혼의 저주만이 가득한데 누가 한가로이 평화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피로 물든 붉은 대지 위에 일단의 무리들이 붉은 석양을 뒤로 한 채 굳은 표정으로 도열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 표정 하나 하나는 저마다 굳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개중에는 분노와 공포라는 이질적인 두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만들어낸 기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저마다 굳건한 자세로 서 있는데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전방을 향하고 있었다. "왕자 전하... 말씀하신 대로 배치는 모두 끝냈습니다." 선두의 일단 무리들 중 한 사내가 자신의 곁에 있던 한 청년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그는 예전 료우가 미르의 수도 네이팜에서 보았던 2왕자였다. 미르의 2왕자는 그 사내의 보고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울한 눈빛으로 피로 붉게 물든 대지를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억울하게 죽어간 병사들의 원망 소리가 들리는 듯 하구나! 조금만 신중하게 대비를 하였던들 이리도 큰 피해는 없었을 텐데... 아니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가지 않았을 텐데 너무도 원통하구나. 그리고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구나!" 2왕자의 중얼거림에 주변의 사내들은 모두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침묵을 고수했다. 그들도 왕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우... 참으로 그대들에게도 미안하다. 나 얀 주엘 슈데이론! 내 하나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그대들까지 내 죽음에 동참하게 만들었으니 내 욕심이 너무도 과한 듯 하구나." 왕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는 한숨이 섞인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얼굴 색이 붉게 물들더니 하나같이 부복을 하며 숙연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그대들에게 미안하다. 이런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는가?" 얀 주엘 슈데이론 왕자가 숙연한 표정으로 용서를 빌자 부복한 사내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내의 음성이 들렸다. "어인 말씀이십니까? 얀 왕자 전하! 저희가 미흡에서 왕자 전하를 이 험한 전쟁터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하의 고귀한 생명까지 장담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고 말았습니다. 저희 죄를 추궁하심이 당연한데 어찌 용서를 말하시옵니까? 저희는 이미 국왕 폐하게 충성을 맹세했고 왕국의 운명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얀 주엘 슈데이론 왕자의 말에 대꾸한 사내는 사십대 후반의 중년 기사였다. 그는 푸른색 독수리 문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데 비장한 얼굴과는 다르게 옆집 아저씨 같이 평범하게 생긴 편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다른 자들도 하나같이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거두어 달라고 청했다. 그들의 말에 왕자는 어두운 안색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장탄식을 토했다. "아! 그대들의 충정을 이해 못하는 아버님과 귀족들의 오만이 그대들과 나라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드는구나. 나는 오직 그대들과 백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얀 왕자의 탄식은 붉은 물든 석양의 그림자에 묻혀 그렇게 조용히 묻혀지고 있었다. 거침없이 미르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며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제국군의 행보도 어느 한순간은 멈추어지기 마련인데 그것은 저녁때가 되어서 야영지를 만들고 저녁을 먹을 때였다. 아무리 철혈의 제국군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숙영과 숙식은 필요했다. 하루 반나절동안 자그마치 두 개의 도시와 세 개의 성을 점령한 세덴의 제 2 군단도 석양이 짙게 물든 저녁때가 되어 전진을 멈추고 숙영을 위해 야영지를 세웠다. 1군과 3군에 못지 않게 빠른 행보로 미르를 점령하는 세덴 공국 제 2군단의 수장 루비안 셀루트로 백작은 많은 전쟁 경험을 갖추고 있는 노련한 인물로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공왕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작에게 무한한 신임을 받고 있는 존재이다. 그의 숙련된 전쟁 경험은 군단의 야영지를 세우면서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사방에 정찰조를 투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전방 10키로 북쪽에 일단의 병력이 발견되었다는 첩보입니다. 대략 일 천 정도의 숫자인데 아무래도 기습을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저녁을 먹고 있던 루비안 셀투트로 백작은 전방에 파견했던 정찰조가 소규모 적의 출현에 대한 첩보를 가져오자 보고를 듣고는 내심 비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앞을 막았던 미르 정규군 삼만 군대도 단숨에 몰아 부쳐 깨어버린 전적을 갖고 있는 제국의 정예군이 바로 자신이 이끌고 있는 2군단이다. 그런데 겨우 일 천 밖에 안 되는 소규모 군대가 정면을 막고 기습을 준비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가? 하지만 전쟁 경험이 풍부한 인물답게 그는 그 보고를 허투루 듣지는 않았다. 아무리 적은 군대라 할지라도 무방비 상태에서 밤에 야습을 당한다면 그 피해는 예상했던 것보다 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주위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있던 여러 지휘관중 우측 끝 쪽에 있던 사내를 지목했다. "무르시안 남작... 수고스럽지만 그대가 군대를 이끌고 적이 기습을 사전에 차단하시오." 지목을 받은 인물은 삼십대 중반의 사내로 식사 중 지목을 받자 빠른 행군 때문에 피곤에 지쳐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상관이 명이기에 약간 싫은 내색을 보였지만 명령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뭐 거부했다면 전쟁중이기에 즉결 처형도 가능했으니 그만한 배짱을 부릴 수도 없지만 말이다. "아참... 그들은 기병인가? 보병인가?" 셀투트로 백작은 무르시안 남작을 지목하여 적병을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리다말고 소식을 가져온 전령에게 물었다. "모두 보병이옵니다." "흐음... 이외로군. 보병이라...! 정규군이 아닌 지방의 군대인가? 하기는 이미 우리 군에게 수많은 병력을 잃은 상태이니 제대로 갖춘 정규군이 이렇게 신속하게 대응할 수는 없겠지." 셀투트로 백작은 나름대로 적에 대한 분석을 하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셀투트로 백작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무르시안 남작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적은 전부 합쳐 일 천 정도의 보병이라고 하니... 남작은 한 3천 정도의 보병을 데려가시오. 기병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오랜 행군으로 말들도 지쳐있고 기병이야말로 우리 2군이 중요 전력이니 어느 정도 쉬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오. 그러니 남작은 보병만으로 3천을 데려가 적을 처리하도록 하시오." 셀투트로 백작의 말에 무르시안 남작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무르시안 남작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식사를 방해한 그 건방진 미르군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을 했다. 상관인 셀투트로 백작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이 화풀이는 그들에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무르시안 남작이었다. 남작이 이렇게 고심하여 명령을 처리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그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기습하려는 목적을 가진 자들이 너무 쉽게 발견된 것 같지 않나?" 그의 물음에 다른 자들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설마 매복이라도 생각하시는 것이옵니까?" "뭐 어느 정도 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은데..." 셀투트로 백작의 말에 다른 자의 의견이 들렸다. "하지만 겨우 1천의 적 때문에 너무 많은 병사들을 움직이는 것은 아군의 다음 행보에 무리를 주옵니다. 만약에 적이 백작님의 예상과는 다르게 1천이 전부라면 그 적을 처리하기 위해 보낸 병력들은 다음 날 전투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옵니다. 그 점도 염두에 두셔야 할지 아옵니다." 사내의 말에 셀투트로 백작은 일리가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무리가 가지 않게 5천 정도의 숫자를 동원하는 것이 적절할 듯 싶군. 3천은 처음과 같이 무르시안 남작이 이끌고 선두에 서고, 나머지 2천은 만약을 대비해서 1키로 후방에서 남작의 뒤를 따르다가 적의 매복이나 기습이 있을 시에 지원해 주는 것으로 말이야." 셀투트로 백작의 말에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백작의 신중함에 고개를 숙였지만, 몇몇 지휘관들은 그의 소심함을 비웃기도 하였다. 하여간 셀투트로 백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르시안 남작이 3천의 보병을 이끌고 적이 숨어있다는 북쪽으로 천천히 부대를 움직였고 얼마 후에 그들의 뒤를 2천의 병력이 쫓아갔다. 석양이 붉은 빛을 감추고 사라지고 첫 번째 달인 디노가 떠오르기 전 약 두 시간 정도의 공백을 여기서는 저녁이라고 부른다. 우리 시간으로 따지면 대략 오후 7시에서 9시로 사이로 보면 정확하다. 그런데 무척 재미있는 것은 디노가 떠오르는 밤보다 디노가 떠오르기 전 2시간의 공백이 사람의 시야를 더 좁게 만든다는 것이다. 주변이 약간 어둡다고 느껴지는 어둑하다라는 표현이 정확한데 밤에 떠오르는 밝은 디노의 빛이 비추지 않기 때문에 시야가 더 좁은 것이다. 자신의 식사와 휴식을 방해하도록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미르의 잔챙이들을 소탕하러 가는 무르시안 남작은 그 많은 지휘관중 하필이면 자신을 지목한 셀투트로 백작의 판단에 불만을 표시하며 3천의 병력을 재촉해서 빨리 끝장을 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듯 빠르게 군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무르시안 남작이 이끄는 제국의 군대는 그의 재촉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미르의 군대가 머무르고 있다는 10키로 지점까지 이동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미르 군이 있다는 지점에 도착한 남작은 병력을 멈추어 세우고는 선두로 보냈던 정찰병들의 보고를 기다렸다. 얼마 후 정찰병이 돌아왔고 적이 언덕 너머 아래쪽에 대열을 갖춘 채 포진해 있다는 보고를 접하게 되었다. "언덕 아래쪽에 대열을 갖춘 채 포진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설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냐?" 그의 물음에 정찰병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은 듯 보입니다. 아마도 저들은 저희 야영지 쪽으로 출발을 막 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즉시 언덕 아래로 지쳐 들어가면 적을 섬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찰병의 말에 무르시안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언가 고심하는 눈치이다. 그는 언덕 위쪽에 적이 포진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하지만 언덕 아래쪽에 포진하고 있다니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 자신들이 언덕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지쳐 들어가면 충분히 적을 포위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적이 만약 다른 병력을 숨겨두고 자신들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린다면 자신들은 반대로 포위를 당해 전멸할 수도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말이다. "주변에 다른 병력의 흔적은 없더냐?" 무르시안 남작은 보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무척 신중한 듯 보였는데 어쩌면 그가 불만을 터뜨렸던 셀투트로 백작이 그를 지목한 것도 이 때문인지 몰랐다. 무르시안 남작의 말에 정찰병은 고개를 흔들며 적의 흔적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흐음... 그렇다면 우리 정찰병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언덕 아래쪽에 병력을 배치를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너무 안일하군. 적의 지휘관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멍청한 지휘관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할 미르 군이 불쌍하군." 무르시안 남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곧바로 휘하의 군대를 움직여 언덕위로 이동했다. 후속으로 뒤쫓아 오고있는 군대에게도 전령을 보내 곧바로 이쪽으로 이동해서 언덕 위에 포진하고 있다가 자신들의 손을 빠져 나온 미르의 패잔병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물론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한데 자신들이 언덕 아래쪽의 적을 공격하려 들어간 사이 혹시 모를 미르 군의 기습적인 포위 공격이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놈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담담한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심 생각을 굳히고 있던 얀 주엘 슈데이론 왕자는 기다리던 제국군의 모습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약간 긴장되는 표정으로 바뀌었는데 차츰 맥박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느끼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키며 소식을 전한 인물을 쳐다보며 물었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왕자 전하..." 몇 번이고 확인한 일이지만 다시 한번 확인을 하는 왕자였다. 얀 왕자는 이미 알고있는 대답이지만 다시 한번 확답을 받고는 주먹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저들이 우리 그물에 걸리기만을 기다려야겠군." 제국 군이 나타났음에도 놀라지 않고 적이 그물에 걸리기만을 기다린다는 말은 얀 왕자가 이끄는 미르 군이 제국 군에 대한 무언가 대비를 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아직 밤하늘에 첫 번째 달 디노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지 언덕 주변은 약간 어두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시야를 가린다는 말은 아니고 시계(視界)가 평상시보다 약간 좁다는 의미이다. 그 뜻은 일정한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의 범위가 좁다는 말로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는 곳은 잘 보이지만 좌우 시야가 제한적으로 가려서 전체적으로 다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미르 군이 포진하고 있는 언덕 아래쪽은 마치 큰 웅덩이를 연상시키듯 가운데가 깊게 파여진 곳으로 만약 군을 이곳에 숨겨 둔다면 다른 곳에서 이곳을 볼 수 없어 다른 자들의 이목을 속이기에는 충분하지만 만약 적에게 이곳에 숨어 있음을 들키고 적이 언덕 위쪽을 포위하고 사방으로 지쳐 내려간다면 몰살하기 딱 알맞은 장소이다.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거리는 대략 500미터 정도이고 약간 경사진 것이 사람이 뛰어서 내려가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물론 내려가는 도중 곳곳에 우거진 잡목들과 수풀들이 있어 방해가 되기는 하지만 내려가는 경사면은 많았고 그곳을 경유하지 않고 약간 돌아서 내려간다고 해도 충분히 공격이 가능했기에 아무런 방해가 없다는 말이 정확했다. 어느새 언덕 위쪽으로 이동한 제국 군들은 아래쪽에 포진하고 있는 미르 군을 발견하고는 저마다 전의를 다지며 무장하고 온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고는 다시 한번 이상 유무를 확인하며 공격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빠른 행군과 거친 싸움 덕분에 오늘 하루동안 무척 피곤했던 제국 군들이지만 자신들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고 이곳까지 빠른 속보로 이동하게 만든 원흉들에 대한 분노가 컸기에 저마다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들은 자신들의 꿀맛 같은 휴식을 방해한 방해꾼들에 대한 분풀이를 충분히 해주어야겠다는 복수심보다는 서걱거리는 칼끝에 느껴지는 피육(皮肉)의 색다름 경험에 젖어 다시 한번 그 특이한 경험을 맛보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요 이틀동안 자신들의 칼끝에 의해 만들어지는 온몸을 적시는 죽음의 붉은 선혈과 색다른 쾌감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비명을 떠올리며 그들은 차츰 살인이라는 행위에 깊게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숙련되어지는 자신들의 살인 기술에 젖어 들었고 그 붉은 피의 향연에 젖어 흥분에 도취되어가고 있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살인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온몸을 깨우면서 그 자극적인 느낌에 조금 전까지 피곤해 지친 듯한 제국군의 얼굴을 서서히 생기 있는 얼굴로 바꾸고 있었다. 마치 앞으로 있을 살인에 대한 환상에 젖은 얼굴들이다. "한 놈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오직 죽음만이 우리가 저들에게 베풀 자비임을 잊지 말아라. 전군! 돌격..." 미르 군이 포진되어 있는 언덕 아래쪽을 가소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무르시안 남작은 진한 살기를 보이고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언덕 위에 포진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기를 참아내던 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아래쪽으로 지쳐 내려갔다. 살인의 추억에 대한 환상을 쫓으며 말이다. "와아아..." 함성이 지축을 울리며 어둠이 약간 짙게 깔린 구릉을 한꺼번에 쏟아지며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제국 군의 모습은 마치 먹이를 발견하고 흉성(凶星)에 젖어 두 눈에 시뻘건 살기를 풀풀 날리며 침을 흘리는 맹수의 모습과 유사했다. 날이 잔뜩 선 검과 창을 휘두르며 죽일 듯한 함성까지 지르며 내려오는 제국군의 모습을 바라보는 미르 군은 약간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하나 대열을 흩트리지 않고 내려오는 제국 군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런 밀집 대형의 경우 재수 없게 마법사가 대단위 마법이라도 날리면 영락없이 전부 몰살을 당하고 말겠지만 다행히 세덴 공국의 제국군의 경우 마법사의 숫자가 무척이나 적었다. 거기다가 대단위 마법을 날릴 실력이라면 최소한 7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가 아니면 곤란한데 이번 세덴 원정군의 경우 7서클 마법사는 고사하고 6서클 마스터의 실력을 갖고 있는 마법사도 없었다. 원정군 최고의 마법사는 5서클 마스터가 최고일 정도로 제국군의 경우 마법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르 군이 이렇게 밀집 대형으로 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적에게 고위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이런 밀집 대형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진이 될 것이다. "진정해라. 모두들 침착하게 기다려라." 원형을 그리며 사방에서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는 제국군의 난폭한 모습은 그들의 공격을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제국 군의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부딪치면 분명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피해자가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근 이틀동안 제국군의 손에 죽거나 다친 미르 군의 숫자는 근 7만 이상이 되었다. 거의 전 미르 정규군의 절반 이상이 이틀간의 싸움에서 사상자로 발생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적의 숫자가 적고, 그에 대한 방비를 하고 있다고 치더라도 기다리는 미르 군의 입장에서는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섞인 눈빛으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제국 군을 쳐다보는 미르 군을 충분한 작전 수행능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임무는 이번 작전을 주도한 얀 왕자의 심복인 파이크였다. 평민 출신이지만 노련한 지혜와 뛰어난 검술 실력으로 얀 왕자에 발탁되어 그의 측근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얀 왕자가 노리는 것은 적의 저돌적인 공격 속에 미리 구릉 사이사이에 매복하고 있는 미르군이 후방 습격이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 때문에 미르 군은 잠시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함정에 몰아 넣었다고 좋아라하고 포위 공격을 감행할 제국군의 지휘관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공격하는 모습에 미르 군의 지휘관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적은 일부의 병력을 남겨두고 언덕 아래로 달려오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옵니까? 왕자 전하!" 얀 왕자는 자신의 계책이 일부 틀어졌다는 사실에 입술을 깨물었다. 적의 지휘관은 매우 노련해 보였다. 승리에 젖은 일반 지휘관 같으면 자신들과 같은 좋은 먹이 감을 발견하면 뒤로 돌아보지 않고 달려들건만 지금 제국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은 그렇지 않은 듯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만약을 사태를 대비하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전하..." 다급한 목소리가 얀 왕자의 귓전을 때렸다. 제국 군은 어느새 전방 200미터 이상 접근한 것이다. 지금 매복하고 있는 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하면 제국 군과 자국 군이 섞여버리게 되어 매복이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공격을 한다면 언덕 위쪽에 있는 적들이 분명 반응을 보이고 포위 공격을 할 것이 분명했기에 얀 왕자는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전하... 어서 결정을..." 잠깐의 고뇌였지만 적은 어느새 더욱 접근하고 있었다. 다급한 지휘관의 목소리에 얀 왕자는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공격하시오." 얀 왕자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휘관은 매복하고 있는 자국 군에게 공격 신호를 보내고는 원형의 대열을 유지하고 있는 군에게 일제히 방패를 세우게 하고는 마치 적의 화살 공격을 막으려는 모습을 취했다. 달려드는 제국 군은 갑작스럽게 일제히 방패를 세우며 마치 거북이 등과 같은 대형을 이룬 미르 군을 보면서 당혹해했다. 미르의 병사들은 서로 밀집대형을 이루더니 원형의 방패를 서로 붙이고 방어하는 대형을 만들어 냈는데 앞으로는 창을 내밀어 접근하는 적을 막아 세우고, 위에는 지붕처럼 방패를 덮어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흐트러지지만 않는다면 과히 무적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한 진형처럼 보였는데 이것은 제국 군이 흔히 써먹는 거북등 대형의 모습과 유사했다. 제국 군의 경우 육면체 모양의 방패를 세워 완전한 방어체제를 유지하면서 적에게 접근하여 던지는 창을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는 주된 진형이 있는데, 이 거북등 대형의 경우 방패끼리 닿을 정도로 간격을 좁혀 적과 대치하여 적국 한 명에 대해 두 명이 대응해 전투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제국 군 특유의 진형이었다. 그런 제국의 진형을 흉내내는 미르 군의 모습은 무척 아이러니(irony)했다. "쉬익..." "크악..." 미르 군의 이런 대형에 주춤하며 달려들던 속도를 줄이던 제국 군은 갑자기 공기를 가르는 음향과 함께 뒤쪽에서 쏟아지는 비명이 들리자 무의식적으로 후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두 눈에 비친 것은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의 폭우였다. "쉬이익..." "쉬익..." "뭐냐?" "크아악..." 쉼 없이 쏟아지는 화살의 폭우와 비명은 달려가는 제국군의 후방에서 연달아 터졌고 앞선 자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적이다!" "습격이다." 흡사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 모양으로 화들짝 놀란 인물은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는 언덕 위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던 무르시안 남작이었다. 자신의 명령을 받고 질풍노도(疾風怒濤)를 연상시키듯 미르 군을 향해 전진하는 군대의 뒤쪽에서 무언가 불쑥 솟아나더니 갑자기 화살의 폭우가 자신의 군대를 뒤덮은 모습을 지켜보던 무르시안 남작은 '아뿔사!' 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일그러트리더니 남아있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적의 매복이다. 빨리 적의 매복을 차단하여 아군을 구해라." 이미 적의 매복에 의해 많은 동료들이 죽어 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제국 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언덕 곳곳의 잡목과 수풀 속에 어떻게 숨어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숨어있는 미르 군의 수효는 대략 일 천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들은 아군이 미끼가 되어 적을 유도하는 사이 적의 후방을 향해 화살을 날려 최대한의 피해를 줄 목적으로 공격을 한 것인데 의외로 제국 군의 피해는 컸다. 오직 앞만을 보며 전진하던 제국 군은 갑작스럽게 미르 군이 자신들의 거북이 대형을 흉내내자 주춤한 것이 큰 실수였다. 쏟아지는 화살 비에 죽어간 제국군의 수효는 미르 군조차 예상하지 못한 숫자로 무려 일 천 가까이 되어 보였다. "공격하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금까지 후방에서 쏟아지는 화살 비에 혼란에 빠진 제국 군의 미끼가 되었던 미르 군이 재빨리 대형을 풀더니 전면으로 쏟아졌다. 지금까지는 무섭게 달려오는 제국군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아군의 매복에 걸려 우왕좌왕하는 제국군의 모습에서 그들은 어느새 두려움 대신 자신감으로 가득 찼고 필승의 신념이 가득 베어져있었다. "와아아..." 상황은 급박하게 반전되었고 처음 미르 군을 향해 쏟아졌던 3천의 제국 군은 앞뒤에서 포위된 위험한 상황에 놓여졌다. 언덕 위쪽에 있는 제국 군이 구원을 위해 내려오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고 숫자적으로 그리 열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제국 군은 미르 군의 좋은 먹이 감이 되어버렸다. 사냥하러 왔다가 오히려 사냥을 당한 제국 군이었다. "차아앗..." 자신의 키만큼 커 보이는 장검을 휘두르며 두 명의 제국 군을 한꺼번에 베어버린 미르의 기사는 전방에서 자신의 동료 하나를 베어버린 제국군의 기사를 발견하고는 달려나갔다. 그의 장검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동료를 죽인 제국군의 기사를 목을 공격했는데 공격을 당한 제국군의 기사는 실력이 그리 약하지 않은 듯 재빨리 검을 휘둘러 막아 세우고는 자신을 공격한 미르의 기사를 향해 마주쳐 나갔다. 사방은 검과 검, 검과 창으로 난전으로 빠져들었고 어느새 시체가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울부짖은 비명과 사방을 튀기는 핏자국은 끔찍한 지옥도(地獄道)를 방불케 만들었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사신의 낫을 피하지 못한 망자들의 끔찍한 비명은 살아남은 자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있었다. "살려줘... 허엉..." 적의 공격에 검을 놓친 병사는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뿜는 적군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죽기에는 자신의 생애가 너무도 억울했다. 눈물을 흘리며 생명을 구걸하는 모습이 비겁하고, 비참해 보이기는 했지만 살려는 의지가 담긴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자는 자신이 그런 상황에 빠졌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결코 비난하지는 못할 듯 싶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행위는 적에게 동정을 사지 못했는지 적이 칼날은 눈물을 보이며 살려달라는 자의 머리를 무참히 베어 버렸다. 전쟁터에서 적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목숨을 살려준 적의 칼날이 언제 자신의 생명을 노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터지는 혈전은 극에 치달았고 의외로 혼란에 빠진 제국 군을 강하게 밀어 부치는 미르 군에게 전황은 유리하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언덕 위에서 매복에 걸린 자국 군을 구하러 내려오는 제국의 구원 군이었다. 얀 왕자는 전황을 살피면서 잠깐의 시간이지만 어느새 언덕 위에서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는 제국의 구원 군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대열을 정비하고 매복 군은 내려오는 자들을 향해 활을 날려라!" 얀 왕자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매복에 걸린 적군을 상대하던 미르 군은 몸을 무서운 속도로 아래로 내려오는 자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구원하러 오는 제국 군은 무척 급박하게 달려 내려왔는데 어느새 처음 쳐들어온 제국 군을 반수이상 해친 미르 군은 침착하게 2차로 내려오는 제국 군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아무 준비 없이 자신의 동료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서 내려오던 제국 군들은 다시금 미르 군의 화살 비를 맞아야만 했다. 너무도 무기력하게 미르 군의 화살 비에 죽어나가던 동료들을 목격했던 제국 군들은 그 끔찍한 악몽을 다시금 겪고야 말았던 것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의 폭우는 구원하는 제국군의 걸음을 막았다. "크악..." "아악... 살려줘!" 복부를 관통한 화살을 움켜쥐며 화살을 잡고있는 손가락 사이로 콸콸 쏟아지는 피를 내려다보며 비명을 지르는 사내는 이제 겨우 스물 안팎의 어린 병사였다. 그는 자신의 복부를 관통한 화살의 아픔보다 자신이 화살을 맞았다는 사실에 대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사방은 미르 군의 화살에 관통된 제국 군의 시체로 뒤덮이고 있었다. "당황하지 마라! 적의 숫자는 우리보다 작다. 후퇴하지 마라!" 구원 군을 이끌며 급하게 내려오던 무르시안 남작은 적의 궁수부대에 의해 곳곳에서 화살에 의한 피해가 늘어나자 이를 악물었다. 죽어나가는 부하들이 속출하고 당당하던 제국군의 모습은 어디 가고 그의 부하들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몸을 돌려서 언덕 위쪽으로 도망을 가는 자들도 보였는데 그 모습에 무르시안 남작은 패배를 직감했다. 하지만 승승장구(乘勝長驅)하는 제국의 지휘관들 사이에 자신이 첫 번째 패배자라는 오명을 쓰고싶지 않은 무르시안 남작은 도망가는 부하들을 막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가는 자들은 내 손에 죽는다. 공격하라." 그의 다그침과 함께 그의 검이 번쩍이며 몸을 돌려 달아나려던 한 병사의 목을 베었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몸을 돌려 달아나려던 제국 군들은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갔다. "왕자 전하! 적이 의외로 강렬하게 밀어 부치고 있습니다. 이미 위쪽에 매복했던 우리 군대의 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얀 왕자를 보좌하는 파이크는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던 제국 군이 쏟아지는 화살 비에도 굴하지 않고 밑으로 자꾸 몰려 내려오자 매복한 미르의 군대가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것을 보고는 걱정스런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일... 나나 그대나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지 않았나!" 왕자의 이런 태도에 파이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몇 년 가까이 모시지는 않았지만 어린 왕자는 의외로 전사의 기질이 다분한데 자신의 목숨 따위는 별로 개의치 않게 생각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만약 그가 왕자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는 지금쯤 용병이 되어 전쟁터를 누볐을 것이 분명할 듯 보였다. "죽어라..." "으아악..." 사방을 가득 메운 비명과 혼란은 첫 번째 달 디노가 떠오를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어느 정도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는 언덕 아래를 가득 메운 시체가 무려 오 천 구가 넘었는데 시체로 언덕 아래가 메워졌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제국 군과 미르 군은 모두 합쳐 오 천이 넘는 시체를 남기고 물러났는데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말이 정확할 듯 싶은 결과였지만 굳이 승자를 정하자면 미르 군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처음 제국의 진지를 출발했던 오 천의 제국 군중 언덕에 뼈를 묻은 자들의 수가 무려 사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미르 군은 처음 얀 왕자가 이끌던 결사대중 절반 정도가 시체를 남겼는데 그 수를 정확히 말하자면 일 천이 조금 넘었다. 사천과 일 천 이라면 미르 군을 손을 들어주어도 무방할 듯 싶었다. "쿨럭..." 번쩍이는 황금 문장은 이미 붉은 피로 얼룩져서 예전의 화려함을 덮어버렸고 창백하게 변해버린 안색과 입가를 적신 선혈은 피를 토하는 사내의 지금 상태를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전하... 어서 몸을 피하소서! 이미 적이 성의 방어를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왕궁을 방어하는 근위 기사단과 레먼 기사단이 막고는 있지만 뚫리는 것은 시간 문제이옵니다."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사내는 말을 하면서도 쉴새없이 붉은 선혈을 토하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사내의 몸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끝인가?" 오십대 후반의 미르의 국왕 루이안 주엘 슈데이론은 창백한 안색으로 보고를 하고 있는 기사의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무너지는 자국의 미래를 감지한 듯 패배자의 모습으로 고뇌가 가득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 둘째의 말을 들어야 했거늘 너무도 안일했구나?" 국왕의 탄성과 낙담 어린 음성을 듣고 있던 왕세자 론 주엘 슈데이론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무릎을 꿇더니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크흑... 폐하! 이 모든 것이 소자의 잘못이옵니다. 제가 고집만 부리지 않았던들 이런 결과까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며 흐느끼는 왕세자의 모습에 국왕은 자신의 큰아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휴우... 이 모든 것이 내 부덕의 소치로구나. 내가 조금만 둘째의 말을 경청하였던들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을..." 국왕의 말에 국왕의 주변을 지키는 자들의 안색은 심하게 굳어졌다. 특히 미르의 삼각 받침대중 일인인 재상 로울 헤밀턴 공작의 얼굴은 심한 자책감에 젖어 있는데 자신이 여태껏 그렇게 두둔하며 국가의 운명을 맡겼던 고위 귀족들이 제국의 침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급하게 왕국을 배신하고 자신들의 살길만을 찾아 도망가는 통에 왕국의 상황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런 사실 때문에 재상 로울 헤밀턴 공작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폐하... 소신을 벌하여 주옵소서. 소신의 잘못이 너무도 크옵니다.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너무 신뢰한 것이 왕국을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크흐흑..." 엎어지듯 무릎을 꿇으며 흐느끼는 재상의 통곡을 바라보는 국왕의 눈빛은 너무도 암울했고 그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오!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지. 어느 누구를 탓하겠소? 단지 우리의 잘못으로 앞으로 겪어야할 혹독할 시련들을 감당해야 하는 백성들이 불쌍할 뿐이요."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국왕의 말에 국왕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침울한 안색으로 탄식을 연발했다. 미르의 국왕 루이안 주엘 슈데이론은 폭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리석은 국왕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예전의 국왕이 그러했듯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신분 사상에 집착하여 귀족들을 우대했고, 무를 배척하고 문을 숭상하였다. 평화시기라면 그런 그의 잘못이 왕국의 운명을 망치지 않았겠지만 그는 시기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국왕의 곁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몇몇의 관리와 기사들뿐이었다. 이미 미르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고위급 귀족들은 자신들의 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왕궁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지로 내려가고 없었다. 전쟁을 피해 자신의 영지로 내려간 귀족들은 자신들의 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영지를 바치며 제국에게 항복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국왕의 곁에 끝까지 남아있는 자들은 지금까지 국왕이하 귀족들이 그렇게 천대하던 기사들이 주를 이루고있었다. 현재 세덴 공국의 30만 대군은 미르의 영토를 무인지경으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듯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진군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조우하는 미르 군은 너나 할 것 없이 제국군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고, 적의 침입을 막아야 할 성들의 성주들은 하나 같이 백기를 들고 제국군의 자비를 빌며 항복을 하는 실정이었다. 연전 연패를 거듭하며 무너지는 미르 왕국은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할 고위 귀족들의 대거 항복에 더욱 사정은 악화되었고, 참혹하게도 일주일만에 수도 왕궁에까지 적의 침입을 허용하고 마는 극단의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영토 곳곳을 돌아다니며 분전하던 2왕자 얀 주엘 슈데이론이 이끄는 결사대를 제외하고는 미르 군은 곳곳에서 패전을 거듭하였고 현재는 수도에 세덴의 대병력이 포위를 한 실정에서 나머지 병력을 끌어 모아 방어를 하고 있지만 함락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미르의 국왕 루이안 주엘 슈데이론은 자신과 왕국의 최후를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침울한 얼굴로 주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조용히 물었다. "이왕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기사들과 함께 왕궁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묵묵히 국왕 주변을 호위하는 기사중 한 명이 국왕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대는 어서 빨리 이왕자를 불러오너라!" "예... 국왕 폐하!" 명령을 받고 물러서는 기사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국왕은 위험한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사의 모습에서 자신의 잘못이 또 하나 있음을 깨달았다. 언제나 듣기 좋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오던 문신 귀족들은 막상 전쟁이 터지고 국가의 위기가 봉착하자 혼비백산하여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제국 군에게 항복을 하거나 몸을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해외로 도피를 하는 실정이었고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천대했던 기사들은 우습게도 끝까지 남아 자신이나 왕국의 운명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은 저들인가?" 국왕의 중얼거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재상 로울 헤밀턴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서둘러 들어오는 얀 왕자는 곳곳에 피로 얼룩진 갑옷을 입고 있는데 그의??오른쪽에 비껴 찬 검에는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적과 접전을 벌이다가 기사의 부름에 달려온 모양인데 아직까지 상처는 없는 모양이었다. "상황이 급박하옵니다. 어서 몸을 피하소서. 태자 형님과 함께 북쪽 이슐린 성으로 몸을 피하소서!" 얀 왕자는 왕궁의 급박함을 알기에 휘하의 기사를 보내 아버지와 형을 피하도록 시켰는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왕과 왕세자를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얀 왕자의 말을 듣고있는 국왕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곳을 피한들 잠시 죽음이 지체될 뿐이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나는 이곳에 남아 왕국과 최후를 함께 하겠다. 너야말로 이곳을 피해 파미르 왕국으로 떠나거라." 국왕의 말에 얀 왕자는 펄쩍뛰며 소리쳤다. "그 무슨 말씀이옵니까?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신 다니요... 어찌 그리 나약하신 말씀을 하시옵니까? 비록 적의 기세가 무서워 현재로는 적을 막을 수 없다고 하지만 후일을 기약하면 되옵니다. 국왕 폐하만 살아 계신다면 충성스런 미르의 국민들은 다시 한번 일어날 것이옵니다. 심약하신 말씀 거두시고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아들의 말에 국왕은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후후... 이미 나는 모든 것을 결정했노라. 우매한 국왕을 둔 죄로 어진 백성들이 앞으로 겪어야할 고난이 미안할 따름이다. 너야말로 이곳을 떠나도록 하여라." 국왕의 말에 얀 왕자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아바마마... 소자보고 어찌 아바마마를 두고 떠나라 하시옵니까? 차라리 이곳에서 소자의 목을 치옵소서. 소자 아버님을 두고 떠나지 않겠습니다." 얀 왕자의 말에 가만히 있던 왕세자 론 주엘 슈데이론은 가만히 얀 왕자에게 다가서더니 자신의 동생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버님 말씀대로 너는 너를 따르는 기사들을 데리고 이 곳을 떠나서 후일을 기약하도록 하여라. 그것만이 네가 지금 아버님께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이니라." 왕세자의 말에 얀 왕자는 권력 싸움으로 인해 언제나 차갑게만 보였던 자신의 친형을 바라보며 눈물을 보였다. "형님... 어찌 저보고 떠나라 하시옵니까? 후일을 기약한다면 당연히 형님이 떠나서야 합니다. 형님은 다음 대의 왕위를 책임져야 할 분이옵니다. 남는다면 당연히 제가 남아야 합니다." 얀 왕자의 말에 왕세자 론 주엘 슈데이론은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자신의 동생을 자애로운 눈길을 쳐다보았다. 국왕으로부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인 왕세자의 권한을 얻은 후 지금까지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이 동생을 형은 언제나 멀리하고 두려워했다. 권력이라는 달콤한 함정에 빠져든 왕세자는 자신보다 뛰어난 동생의 존재 유무에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동생의 능력은 왕세자인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차츰 다가오고 있었고 그 때문에 우매한 형은 항상 불안한 좌석에 앉은 마냥 언제나 좌불안석(坐不安席) 이었다. 그 때문에 동생은 혈육이 아닌 적으로 형에게 인식되어갔고 형은 동생의 흠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형의 눈빛의 변했다. "나는 왕국의 왕세자다. 저들은 폐하는 물론이고 내 목숨을 취하기 위해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많은 왕국의 백성들이 저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미 나는 백성들에게 너무도 많은 잘못을 했다. 내 목숨 하나를 지키기 위해 저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한 나보다는 네가 왕국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이 든다. 형으로서 마지막으로 너에게 하는 부탁이다. 아버님의 말씀처럼 너는 이곳을 떠나라." 형의 자애로운 눈빛을 오래 만에 본 얀 왕자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어찌 저에게 이런 가혹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아버님과 형님을 사지에 남겨두고 떠나라니 어찌 저에게 그런 부도덕한 행동을 강요하십니까? 저는 이곳에서 아버님과 형님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하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얀 왕자의 말에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국왕은 얀 왕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부덕한 아비이지만 이 하나만은 말하고 싶구나. 내 욕심이 커서 너 하나만은 꼭 살려 가문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싶구나. 나의 욕심을 이해해주렴..." 아비의 말에 아들은 눈물을 흘렸다. "어찌 저 하나만을 남겨두고 떠나려 하시옵니까? 지금 제가 겪고있는 이 고통을 어찌 저에게 짊어지우려고 하시옵니까?" 얀 왕자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아들아! 너는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지금 이 순간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너 혼자 만이 아니다. 내 욕심이 커서 너에게 슬픔과 고통만을 남겨주지만 이것 또한 아비의 마음이니 너는 아비를 이해해주려무나!" 국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의 손이 왕자의 목을 가격하였다. 갑작스럽게 급소를 맞은 왕자는 슬픔에 젖은 가운데 갑작스런 충격으로 기절하였고 왕자를 부축한 인물은 왕자의 측근인 파이크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왕국 최고의 기사라는 카슈 호그와트 백작이 있었다. "백작! 못난 국왕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꼭 들어주게. 어렵겠지만 내 아들을 부탁하겠네." 처연한 얼굴의 국왕의 말에 국왕의 명령으로 왕자를 피신시키기 위해 왕자의 급소를 때렸던 카슈 호그와크 백작의 몸이 움찔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평생을 두고 지켜왔던 왕국의 운명과 함께 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국왕은 그에게 왕자의 안위를 부탁한 것이다. 그 말은 그도 왕자를 따라 떠나야 한다는 소리이다. "폐하..." "내 마지막 부탁이네." "하지만..." "어리석은 주군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생각하게. 그대의 손에 왕자의 운명을 맡기겠네." 대륙력 5123년. 미르 건국 234년만에 북쪽의 왕국 미르는 제국의 열두 공국 중 하나인 세덴 공국의 침공으로 일주일만에 멸망하였다. 너무도 쉽게 무너진 미르의 운명과 더불어 대륙은 제국의 힘에 두려움에 느끼고 대륙인들은 다시금 불어오는 혈풍에 몸을 떨었다. 24장. 파미르 왕국의 음모 ??세덴 공국의 미르 침공과 더불어 미르의 국경 쪽으로 빠르게 이동한 파미르의 용병대들은 세덴 공국이 방향을 바꾸어 파미르를 침공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서고 있었다. 물론 예전 미르와 파미르의 외교 관계 같았다면 국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 군이 되어 제국 군과 싸워야 했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파미르와 미르의 분쟁으로 외교는 단절되고 그들은 전쟁터로 이동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동쪽 국경을 지키는 입장에서의 용병들은 로크와 젤마를 대비하는 파미르 정규군이 있는 남쪽 국경보다 이곳이 더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호전적인 세덴 공국은 미르를 집어삼키고 욕심을 부려 파미르까지 먹으려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두려움에 빠진 파미르 왕국에서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세덴 공국의 공왕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작과 접촉하려고 들었다. 세덴의 미르 침공이 있은 지 얼마 후 파미르 용병 길드에서 각 용병단에게 보내는 명령이 전해졌다. 명령의 내용을 살펴보면 각 용병단이 막고있는 지역으로 들어오는 미르의 난민들을 막아 파미르로 망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골자였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는 난민들을 막으라는 명령에 처음 용병단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돈을 받고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계약 내용을 어기면 용병단의 신뢰나 등급이 떨어지고 또한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했기에 용병단은 어느새 왕국의 명령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살려주십시오! 나리... 제발 이 어린것의 목숨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 전쟁의 여파 속에 제국 군의 손길을 피해 파미르 국경을 넘는 미르의 백성들은 파미르 왕국의 명령을 따라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용병들에게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미르를 점령한 제국 군의 손길은 그들이 감히 인간을 자처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잔혹했다. 제국 군의 입장에서 점령지의 국민은 이미 인간이 아닌 노예 정도로밖에 비추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제국 군 특유의 민족 우월 의식으로 제국 군의 손에 점령된 땅은 그야 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특히 반반한 여인의 경우에는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전부 제국 군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였고, 성인 남성의 경우 노예로 부역에 동원되었고 조금이라도 반항의 모습을 비추면 참형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힘든 처지의 이들은 점령지 정규군에 소속되어 제국 군과 싸웠던 기사나 장병의 가족들인데 그들의 경우에는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하나같이 모두 제국 군의 손에 무참하게 처형을 당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국 군에 점령된 많은 점령지 백성들은 제국 군의 손을 피해 타국으로 망명을 시도하였다. 현재 세덴 공국과 물밑 교섭을 벌여 자국의 안전을 약속 받은 파미르 왕국에서는 제국 군이 조건으로 내세운 미르인들의 파미르 망명 불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용병들로 하여금 국경을 봉쇄하고 미르인들의 자국 망명을 저지하도록 시켰다. 자유를 찾아 죽기 살기로 망명을 시도하던 미르인들은 파미르 왕국의 청천벽력과 같은 결정에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을 넘으려 했지만 번번이 용병들의 손에 저지되었는데, 반항하며 대항하던 자들은 심한 경우에는 용병들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제국 군이 아닌 파미르 국의 결정으로 용병들의 손에 죽어나가는 미르인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미르인들의 제국에 대한 분노는 파미르 왕국으로 전가되고 갔는데 그것은 제국이 노리는 것이었다. "우습군. 내 일에만 충실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도대체 누구의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 거지?" 용병들을 부여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미르의 피난민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예전 같았으면 나는 내 생명이 걸린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저들의 목숨을 구하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에게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걸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겠냐고 묻는다면 거의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제약이 없어진 지금의 내 자신은 저들을 구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선뜻 나는 저들을 구해야겠다는 자비심이 생기지 않았다. 마계에서 벨제뷔트를 만나고 이곳 중간계에서 몇 번의 죽음을 겪으면서 나는 예전의 내 자신이 갖고 있던 많은 감정들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거기다가 나를 노리는 자들과 그들과의 싸움에서 살인을 하면서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처음 라미셀을 만날 때 주점에서 무참하게 죽은 가족들과 라미셀을 구하려다 죽은 동료의 죽음에서 분노를 느끼고 그녀를 구하려고 했던 그 감정들은 지금에 와서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불사라는 내 자신의 능력과 몇 번의 죽음이 가져온 파편들은 나에게 인간이 가져야 할 많은 감정들을 앗아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무척 대단해진 내 자신에 빠져서 나는 내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조금씩 잃어 가는 인간의 감정 속에 자비라는 것도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목숨을 구걸하는 자들을 보면서 애처롭다는 생각보다는 단지 책임감이라는 놈과 이렇게 갈등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인간의 감정을 모두 잊어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해진 인간적인 감정도 많았는데 특히 인간 관계에 대한 감정들은 더욱 강해졌다. 아마도 혼자서 이계에 떨어진 나로서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무척 크게 작용이 되었는지 우정이라든지 동료애, 신의와 믿음 등은 무척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쩌면 동료의 희생으로 도망친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라미셀을 구했고, 미르에서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건 우정에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고뇌는 길었지만 선택은 짧았다. 용병으로 내 임무에만 충실한다면 나는 저들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죽음을 피해 자유를 찾아 이곳까지 넘어오는 자들을 막을 수 있는가? 나는 가족의 안전과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미르인들과 그들을 막아서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내 휘하의 용병들을 보면서 판단을 내렸다. 우리 용병단의 경우 대부분은 가장 밑바닥 삶을 살았던 농노나 노예가 주를 이루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산적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자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삶은 지금 자유를 찾아 파미르로 넘어오는 자들의 처지와 비슷했다. 그래서 다른 용병단과 다르게 우리 용병대의 인물들은 국경을 넘는 미르인들과 부딪쳐도 함부로 다치게 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막는 형편이었다. 그것이면 선택은 충분했다. 다른 곳과 비교해서 심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인지 우리가 지키고 있는 지역으로 많은 미르인들이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미 선택은 이루어졌고 우리는 형식적으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모자라는 인력으로 그 넓은 지역을 막고있어 우리 용병단 만으로 그들을 모두 막기에 힘들다는 핑계를 대면서 미르인들을 하나 둘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 때문에 파미르 왕국이나 다른 용병단에서 우리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였지만 인력이 부족한 마당이라 계약을 해지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단장님! 이번에는 대규모로 몰려옵니다. 대략 3천 이상은 넘겠는데요." 국경을 넘는 미르인들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나서 약간 한가해졌던 나는 다시 수련을 쌓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식에 수련을 멈추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평균적으로 20-30명 많으면 백 명 단위로 탈출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너무 많이 한꺼번에 국경을 넘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미 의식적으로 그들을 탈출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처지에서 한꺼번에 3천 이상의 난민들이 국경을 빠져나가면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책임을 미루기에는 힘들었다. "젠장..." 나는 푸념을 터트리고는 난민들이 넘어온다는 지역으로 일부의 용병단을 이끌고 이동했다. 3천이라는 숫자가 적다면 적어도 보이겠지만 한꺼번에 모아두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금방 깨달을 것이다. 3천이라는 숫자가 만들어낸 빽빽하게 늘어선 미르의 피난민들은 나로 하여금 머리 깨나 아프게 만들었다. 저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국경을 빠져나가면 금새 파미르 왕국이나 용병들이 눈치를 챌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무척이나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인원을 통과시킨다면 아마도 우리는 책임을 지고 용병 계약을 해지하게 되고 잘못하면 파미르 왕국이나 용병 길드에 의해 제재를 받을지 몰랐다. 용병 해약이나 제재가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나 혼자만의 용병단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자들이 많았기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금 이들에 대한 선택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때 난민들 사이로 몇몇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소!" 갑자기 나타난 자는 난민들과 비교해서 무척이나 깨끗한 옷차림에 부유한 인물로 보이는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반 평민이 아닌 귀족처럼 보였다. "내가 이곳의 책임자이지만 무슨 일입니까?" 내 곁에는 나보다 훨씬 지휘자로 보이는 바이크나 아론, 가이가, 네오 등이 즐비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들의 대장은 나였고 내가 앞으로 나서자 말을 한 사람의 눈초리가 묘한 빛을 띄었다. "젊은 친구가 대단하군. 나는 제넨 지방의 영주 풀리시 펠로우 남작이라고 하네." 자기 소개를 하며 거만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내를 보면서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망한 나라의 귀족이다. 거기다가 들어보지도 못한 지방의 영주라고 하니 아마도 하급의 지방 귀족이 분명했다. 그런 주제에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흐음... 이들을 모두 통과시키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있네. 그 정도의 상식은 나도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도 몇몇은 가능하지 않겠나? 이 정도면 충분할 듯 싶은데..." 그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미소를 보이면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는데 보지 않고도 그것이 돈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게되었다. 나는 그래도 일국의 귀족이라는 자가 돈으로 나를 매수하고는 저 많은 자신들의 동족을 버려 두고 자신과 관련된 자들만 데리고 떠나려 한다는 사실에 분노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뭐 나라고 해도 만약에 저런 상황이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자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를 느끼지는 못했다. 한 명의 부탁을 들어주면 다음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고 그렇게 된다면 모든 이들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라 나는 내 뒤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미르 난민들의 대열 뒤쪽에서 소란스런 비명이 들렸고 나는 뒤로 돌렸던 고개를 다시 제자리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나는 갑작스런 소란의 진원지인 난민들이 뒤쪽 대열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길게 이어진 난민들의 대열이 한꺼번에 흩으러 지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그때 내 귀를 자극하는 한마디 외침이 들렸다. "제... 제국군이다!" 소란스런 아우성에 섞인 외침이지만 그 소리는 유독 컸던 모양인지 비명에 섞이지 않고 소란함을 뚫고 나왔는데 그 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고 영문을 모르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던 앞쪽 대열의 미르인들은 소리를 듣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제국군이라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핏기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 듯한 그들의 표정에서 미르의 난민들이 얼마나 제국군에게 공포심을 갖고 있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살려줘!" "아악..." 미르의 난민들은 제국군이라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우리가 막고 있는 국경을 넘으려고 발버둥쳤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난민들의 아우성과 행렬에 내 휘하의 용병들은 단장인 내가 통과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에 몸으로 막았지만 3천의 인원이 뒤쪽에서 꾸역꾸역 밀려오면서 밀치는 힘에 차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들의 거의 광란적인 반응에 미르 난민들의 뒤쪽을 주시했는데 금방 뽀얀 먼지를 휘날리며 빠르게 달려오는 한 무리의 제국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도착해서 난민 무리 속을 헤집을 만큼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데 대략적으로 추려보아 얼추 일, 이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기병이였다. 무서운 기세로 우리 쪽으로 접근하는 제국군의 모습을 보았는지 우리 용병단원들은 어느새 무기를 빼들며 긴장하는 눈치로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무기를 뽑아드는 용병들의 반응에 우리를 뚫고 들어오려던 난민 대열의 선두는 그새 다른 곳에서 벌어진 파미르 용병들의 난민 살해를 떠올렸는지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지만 뒤쪽에서 공포 때문에 계속 밀치는 난민들에게 떠밀려 앞으로 전진을 하고 있었다. "안돼... 밀지 마! 밀지 말란 말이야!" 앞에서 무기를 꺼내 든 우리 용병단의 모습에서 죽음이라는 공포감을 느낀 난민의 선두는 거의 발악에 가까운 외침을 터트리며 밀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뒤쪽에서 제국군들의 접근에 공포를 느끼는 후미들은 안 잡히려고 앞으로 계속 밀고 들어오니 난민 대열은 순식간에 혼란과 공포로 얼룩졌다. "제길..." 나는 혼란의 극에 다다른 난민들의 행렬을 보면서 선택을 미룰 수 없음을 깨닫고는 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열어 줘!" 나는 지금 내린 이 결정이 나와 우리 용병단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아니 최악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지금 달려오는 저 제국군들과 어떻게 해서든 좋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의 제국군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 그들과 부딪쳐서 우리 용병단의 미래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 뻔한 상황이라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지만 저들이 내 결정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앞에서 무고한 3,000의 인간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아무리 인간의 감정을 조금씩 잊어버리고 있다고 해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육을 가만히 지켜볼 만큼 인간의 감정을 전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상급 마족인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 거기에 드래곤 네오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인간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가 인간의 감정을 조금씩 잊어버리는 이유는 인간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와 계속 생활하면서부터 일지 몰랐다. 상급 마족인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에게서 인간의 감정을 기대하기는 무척 힘들 것이 분명했고 나는 이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동화가 되었을지 몰랐다. 으음... 그런 이유라면 아마 이들과 계속 생활하면 나도 차후에 인간의 아닌 다른 감정으로 내 안의 모든 것을 채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떨어져 생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이미 나의 가족이고 내 동료이고 또한 내 충실한 신하이다. 내가 인간의 감정을 모두 포기한다고 해도 이들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었다. "길을 터라!" 갑자기 귓가를 자극하는 외침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내가 이번 일과 관련 없는 다른 생각에 젖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느 하나를 생각하다 다른 망상에 곧잘 빠지는 모양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하아... 또 다른 망상에 빠질 뻔했군. 나는 생각을 멈추고 내 명령에 길을 터주는 우리 용병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 혼자라면 저런 제국군 따위에게 내가 이렇게 고심하지도 않았을 것을 하는 생각에 또 빠졌다. 상급 마족인 바이크와 아론, 가이가, 거기에 레드 드래곤 네오까지 있다면 저런 기병 나부랭이가 아니라 미르를 집어삼킨 세덴 공국이라도 한번쯤 승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기지는 못한다고 하여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마황의 권능을 이용해서 중간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족들을 끌어 모은다면 얼마든지 승부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350명의 인원이 나를 지켜보고 내 결정에 생사를 맡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그들의 생사를 맡고 있는 내 자신의 책임이 무거운 적도 없을 것 같다. 그들도 지금 내가 내린 이 명령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내 휘하의 용병들은 어떤 불복이나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길을 터주며 난민들을 통과시키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어떤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음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더욱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에 얼굴이 굳어졌다. "멈춰라!" 미르의 난민들이 우리가 막고 있는 저지선을 어느 정도 통과할 즈음 난민들을 추격하던 제국군들의 선두가 우리가 지키고 있는 곳으로 거의 접근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들의 선두에는 휘황찬란한 금속의 체인 메일에 번쩍이는 세덴의 꽃 샤론의 문장이 새겨진 젊은 기사가 보였는데 그는 롱 소드를 앞으로 내밀며 후미의 난민을 목표로 무섭게 달려들고 있었다. "막아!" 나는 내 앞에서 내 결정으로 도주하는 난민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기에 명령을 내렸고 바로 두 명의 용병들이 뛰쳐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크와 파렌.. 모두 산적이었다가 우리 용병이 된 인물들로 하나같이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바이크에게 특별히 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양보해라. 누크..." 푸른 눈에 금발의 청년 파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뛰쳐나간 파렌이 자신 말고도 자신의 경쟁자중 하나인 누크가 따라오자 양보를 요구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얼마 되지도 않은 기간이었지만 산적 무리 중 몇몇은 이미 나에게 절대 복종이라는 상하관계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에 이들도 끼어 있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저건 내꺼야!" 유달리 자신이 한번 목표로 정한 상대는 끝까지 쫓아가서 승부를 낸다는 승부사 누크가 자신의 목표를 파렌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뻔한 질문을 던진 파렌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으리라 하는 것은 안 보아도 이미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하앗..." "가랏..." 누크와 파렌은 동시에 선두의 제국군 기사를 막아섰고 난민을 노리던 제국군 기사는 갑자기 누크와 파렌이 급박하게 달려오자 목표를 변경하고는??달리던 말을 멈추며 양쪽에서 달려오는 상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감히 제국의 일을 방해하다니 죽고 싶으냐?" 나직이 터진 젊은 기사의 호통에 다른 자들 같으면 주눅이 들겠지만 나나 내 휘하의 용병들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누크와 파렌이 예전의 입장이었다면 어느 정도 기사의 호통이 먹혀 들어가겠지만 지금 그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기에 젊은 기사의 호통은 단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피식.. 멀리서 지켜보니 누크와 파렌의 입가에 걸린 것은 젊은 제국군 기사에 대한 조소였다. "후훗..." 나는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제국군의 젊은 기사를 비웃을 만큼 강해진 것이다. "감히..." 아직은 젊다는 것인가? 아니면 등뒤에 제국이라는 커다란 방패가 있어서인가? 제국군의 젊은 기사는 자신의 호통에 오히려 비웃음을 흘리는 누크와 파렌의 조소를 보고는 금방 흥분하여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화를 참지 못하고 무작정 달려 나왔는데 그는 말을 박차며 우측에 있는 누크를 향해 롱 소드를 휘둘렀다. 상대가 제국이라는 이름에도 겁을 먹지 않고 비웃음을 보였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하고 웬만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면 그만큼 상대가 강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국의 젊은 기사는 경험이 미천한 모양인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누크를 공격하였다. "그렇지!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누크는 젊은 기사의 롱 소드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려치자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몸을 옆으로 살짝 비껴 서며 회피 동작을 취하고는 갑자기 이렇게 외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누크의 갑자기 젊은 기사의 공격을 피하며 이렇게 말하자 그의 꿍꿍이가 무엇인지를 금방 깨달았다. 누크는 지금 제국군이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며 도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제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 용병단은 섣불리 제국의 군대를 공격할 수 없다. 하지만 제국군이 먼저 우리를 공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아무리 파미르의 정규군이 아닌 용병단이라고 해도 지금은 어디까지나 국경을 책임지는 파미르의 임시 군이다. 그 말은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은 곧 파미르 왕국을 공격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누크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미르의 난민들을 통과시킨 죄 때문에 차후에 파미르 왕국이나 용병 길드 또는 제국에게 어떤 제재나 보복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문제는 눈앞에 있는 제국군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미르의 난민들을 통과시킨 나와 용병단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외교적 채널을 이용해서 파미르 왕국에 우리의 책임을 묻는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왕국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파미르 왕국이나 용병 길드에게 엄청나 처벌이나 제재를 받을 것이 뻔하지만 상대가 만약 외교적 채널이 아닌 직접적인 공격으로 우리를 건드리면 그것은 바로 침략 전쟁이 되는 것이다. 국경을 지키는 군대를 건드리면 우리는 바로 자위권을 발동시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고 그 말은 누크가 제국의 기사를 죽이던지 살리던지 그것은 국경을 지키려는 파미르 왕국의 군대가 할 수 있는 정당방위라는 말이다. 제국군의 젊은 기사는 이런 전후사정은 꿈에도 모르는 상태에서 누크가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화를 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뒤쪽에 있던 제국의 기사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말을 박차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파렌에게 달려들었는데 그자도 무척 젊은 애송이였다. 말을 타고 덤벼드는 기사와 두 발로 서서 싸우는 용병들의 싸움에서 누가 유리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기사를 꼽을 것이다. 그들은 말을 타고 상대를 공격하기 때문에 시야가 넓고 위에서 아래를 공격하는 것이라 훨씬 유리했다. 물론 둘 모두 실력이 비슷하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제국의 기사라면 아무리 공국 출신이라고 해도 최소한 나이트급 이상의 검술 실력을 갖고 있을 것이 뻔했다. 누크와 파렌에게 달려든 제국의 젊은 기사들도 나이에 비해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갖고 있는지 바이크에게 겨우 한 달의 교육을 받았지만 아론의 도움으로 이미 나이트급 실력으로 올라선 누크, 파렌과 견주어 별로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히얏..." "받아랏..." 순간적으로 발하는 외침은 단순히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온몸의 마나를 한곳으로 모아 순간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공격 방법중 하나이다. 저마다 지르는 기합과 현란한 검술은 매 순간 순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차앙..." 검과 검이 부딪치며 발생하는 소음은 쩌렁쩌렁 장내를 메웠고 공포심에 이미 멀리 도망갔으리라 생각하던 미르의 난민 중 몇몇은 대담하게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놓칠 수 없는 구경이 싸움 구경하고 불 구경이라고 했던가? 공포심마저 떨구고 싸움 구경을 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나는 어처구니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차앗..." 제국의 젊은 기사를 향해 기합을 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누크의 현란한 검술은 보면 볼수록 사람을 감탄시키는데 그의 검술을 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누크는 상급 마족인 바이크의 제자인 만큼 그의 검술은 바이크에게서 배운 검술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상급 마족인 바이크의 검술을 살펴보면 '과연 그가 마족일까?' 하는 의문점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단 바이크의 검은 익히기가 몹시 까다로울 뿐 아니라 속성하는 단계도 없이 차근차근 기초부터 밟아 나가 대성하는 정통적인 검가의 수련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족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단계적으로 올라서는 방법보다 속성 위주의 변칙적인 방법을 써먹을 것이 유리할 터인데 바이크의 경우에는 예외였다. 처음 내가 바이크에게 검술을 배웠을 때 속성으로 고수가 되는 방법을 슬쩍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바이크는 고개를 흔들며 그런 방법은 자신에게 없다고 했다. 물론 아론에 의해 마나를 몸에 가두는 방법을 써서 금방 나이트 수준으로 올라서기는 했지만 바이크의 검술만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없었다. 그만큼 바이크의 검술은 익히기 까다롭고 대성하려면 무척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서면 동급의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지금 제국의 젊은 기사들과 싸우는 누크와 파렌의 검도 그러했다. 제국의 젊은 기사들과 누크, 파렌등은 모두 실버 나이트 정도의 수준으로 처음에는 마상에서 싸우는 제국군이 싸움 환경 면이나 경험 면에서 유리한 국면을 맞이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승세는 누크와 파렌에게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전투 경험이 적었던 누크와 파렌이 제국의 젊은 기사와 싸우면서 어느새 금방 싸움에 적응에 나가면서 바이크의 검술을 유감없이 발휘했기 때문이다. 누크의 검이 순간적으로 두 개로 보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갑자기 늘어나는 누크의 검은 마상 위에 있는 제국 기사의 옆구리와 말의 다리를 동시에 공격했다. 자신의 애마를 보호하자니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고, 자신을 보호하자니 자신의 애마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국군의 젊은 기사는 순간적으로 망설이다 일단은 자신의 목숨을 챙긴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옆구리를 공격하는 누크의 검을 막았다. "걸렸다." 순간적인 누크의 외침과 함께 기사의 좌측 허리와 말의 다리를 공격하던 그의 검이 하나로 모아지더니 현란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권투에서 어퍼컷을 치듯 순간적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는 누크의 검은 몸을 약간 숙이며 누크의 허리 공격을 막으려는 제국 기사의 턱 부분을 관통하고 지나가 뒷머리를 뚫고 나왔다. "컥..." 단말마의 비명이 제국의 젊은 기사가 이승에서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순간적인 정적이 감돌았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누크의 검이 제국군 젊은 기사의 머리를 뚫고 지나가자 둘의 대결을 관전하며 자신의 편을 응원하던 제국군과 용병들의 입이 한꺼번에 닫혔다. 사방은 흡사 충격으로 인해 한순간 정적에 파묻혀 버린 인상이다. "쓰으윽..." 고요를 깨는 소리는 누크가 기사의 머리를 관통한 검을 거두며 피육을 헤집는 소음이었는데 그 소음도 잠시 갑자기 "쏴아악..." 하는 신기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죽은 제국군 기사의 뒷머리 검상을 통해 피분수가 사방으로 솟구쳐 올랐다. 흡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정교한 무대장치가 아니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순식간에 피가 사방을 붉게 물들 무렵 마상 위의 기사는 힘없이 허물어지더니 말 위에서 떨어져 차디찬 대지에 몸을 뉘였다. 한순간 충격으로 말을 잊었던 자들은 그때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각각의 반응이 엇갈렸다. "와아아..." 함성을 지르는 쪽은 당연히 우리 용병단이었다. 한 달 전까지 기껏해야 상인이나 여행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었던 산적 나부랭이에서 지금은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의 젊은 기사와 승부를 벌여 당당하게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실력으로 올라선 것이다. 지금 그들의 입에서 울리는 함성은 단지 승부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들을 억압했던 모든 것들을 떨쳐냈다는 자유에 대한 환호였다. "감히..." "으으..." 반면에 용병들의 환호와는 다르게 제국군 무리에서는 자신들의 동료가 죽어 나가자 분노로 점철되어 무기를 움켜쥐고 뛰쳐나가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처참하게 죽은 제국의 젊은 기사의 영향 때문에 약간 긴장을 하는 자들도 보였지만 거의 대부분은 제국의 이름 하에 분노로 몸부림쳤다. 특히 젊은 기사들의 경우에는 그 분노가 커서 금방이라도 말을 박차고 뛰쳐나오려고 했다. "아앗..."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놀라움에 가득 찬 음성이 들렸고 사람들의 시선을 금방 한 곳으로 모아졌다. 한 사내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르쳤고 사람들의 시선은 사내의 손끝을 쫓아 방향을 바꾸었는데 그들의 시선에 잡힌 것은 마상 위에서 허무하게 쓰러지는 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시선은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한참을 생각하는 모습이었고 그들은 그때서야 두 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 목이 없다." 누군가의 충격에 가득 찬 음성이 들렸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야에 잡힌 죽은 사내의 목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시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국 기사의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와아아..." 다시금 터지는 함성은 당연히 용병들의 함성이었고 그들의 시선은 어느새 기사의 목을 날린 주인공 파렌을 찾았다. 마침 제국의 젊은 기사를 죽인 파렌은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이용하여 슬쩍 검을 터는 동작을 보였는데 그 동작과 함께 그의 검 면에 묻어 있던 붉은 핏방울이 "쫘아악..." 하면서 대지를 붉게 적시는데 그 장면에 용병들의 함성이 또 한번 이어졌다. 장내를 울리는 용병들의 환호가 있다면 그 반대편의 제국군에게는 수치만이 남아있었다. 제국의 두 젊은 기사가 차례대로 용병들의 손에 죽어나가자 제국군 일각에서는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분노와 공포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이질적인 기운이 제국군 전체를 감싸고도는 것이다. "이이... 감히 제국의 기사를 죽이다니..." 부르르 떨리는 분노의 음성은 한순간 환호하는 용병들의 소음을 뚫었는가 하면 소란스러워진 제국군 전체의 혼란을 일식에 막았는데 모든 이들의 귓가를 울린 분노의 진원지는 제국군 기병들이 모여 있는 중간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물결이 좌우로 벌어지듯 제국군 기병들 가운데가 쩍하니 갈라지더니 한 기사가 말을 몰면서 등장했다. 등장한 기사는 대략 삼사십 초반의 기사인데 다른 자들과 다르게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전신을 무장한 자인데 가슴에는 누크에게 죽었던 젊은 기사의 문장과 같은 세덴의 꽃 샤론이 새겨져 있었다. 등장이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기병대의 지휘자 또는 그에 해당하는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자가 분명한 듯싶었다. 그는 분노가 가득 찬 얼굴로 제국군 기병대의 앞으로 나서더니 큰 소리로 소리쳤다. "버러지 같은 이민족 주제에 감히 제국의 기사를 살해하다니 나 누크의 남작 카쟈냐 피엘주르는 절대 너희 쥐새끼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뭣들 하느냐? 빨리 저 쥐새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버려라." 그의 외침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혼란스럽던 제국군들은 하나, 둘 말을 박차고 우리 용병대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보병이 아무런 대책 없이 기병과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그것은 자살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말과 함께 되어 달려드는 기병들은 말이 달리는 속도를 창에 실어 내지르는 전술을 주로 쓰는데 기병과 한번이라도 전투를 치러 본 경험이 있는 자라면 아마도 그들과 대적하느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물론 월등한 공격력과 속도를 갖춘 기병대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친다는 것은 무의미 하지만 말이다. "아론..." 나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기병대를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급하게 아론을 찾았다. 우리 용병대는 모두 보병이다. 말하자면 말을 몰고 다가오는 기병대와 부딪치면 전멸은 아니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피해를 최소를 줄여야 했고 그러려면 원거리에서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사가 필요했다. "익스플로젼(Explosion)" 내 뜻을 이해했는지 어느새 아론의 6서클 마법인 익스플로젼이 순간적으로 캐스팅되었다. "쿠아앙..." "크아악..." 아론이 펼친 익스플로젼 마법 한방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론이 캐스팅한 익스플로젼 마법은 아직 출발하지 못하고 선두의 출발을 기다리던 제국 기병대 일각을 때렸는데 익스플로젼 마법이 적중한 곳 중심으로 직경 5미터 내외는 붉은 화염 구체가 생성되더니 그 안에 있던 제국 기병과 말을 한꺼번에 태워 버렸다. 달리고 있는 도중의 기병대에게 익스플로젼 마법이 캐스팅 되었다면 직경 5미터 내외에 많아야 두, 세 명의 피해자만이 있었겠지만 아직 출발을 하지 않고 일렬로 늘어섰던 제국군이기에 그 피해는 엄청났다. 아론의 익스플로젼 마법은 인명 피해뿐 아니라 누크의 남작이라는 카쟈냐 피엘주르의 외침에 기운을 차렸던 제국군의 사기를 여지없이 꺾어버렸다. 그만큼 아론의 익스플로젼 마법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직 출발하지 못한 제국 기병대의 말들은 엄청난 폭발음에 놀라서 혼란에 빠졌고 이미 출발한 기병대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비명에 온몸이 굳어진 듯 빠르게 달리던 속도를 늦추었다. 속도를 늦춘 제국 기병대는 우리 용병단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의 좋은 먹이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론의 익스플로젼 마법이 시발점이 되었는지 마법을 할 수 있는 몇몇이 바로 수식을 외우며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레이첼과 함께 우리 동료가 되었던 5서클의 마검사 어비스가 그중에서 제일 먼저 캐스팅을 끝냈는지 선두에서 속도를 늦추던 제국군 기병대를 향해 외쳤다.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어비스에 의해 번개를 이용한 4서클 공격 마법이 캐스팅되고 하늘에서 여러 개의 번개사슬이 생성되어 선두의 제국군 전면을 때렸는데 푸른 불꽃이 일어나면서 전면의 제국 기병과 말들은 순식간에 전기에 감전되어 쓰러졌다. "크아악..." "히이잉..." 그뿐이 아니었다. "파이어 볼(Fire Ball)"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뒤늦게 캐스팅이 끝난 엘프 마법사들도 지지 않고 3서클 마법인 파이어 볼을 캐스팅 하였고, 아론에 의해 그 재질을 인정받은 초보 마법 수련자들도 1서클 공격 마법인 매직 미사일을 펼쳐 보이며 미약한 힘을 더했다. "으아악... 마법사다." "크아악..." 제국 기병대는 순식간에 벌어진 우리 용병대의 마법 공격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엘프 정령사와 궁사들은 정령 마법과 궁술 실력을 선보였는데 특히 엘프들의 궁술은 신기에 가까워 한발에 하나씩 제국 기병의 목숨을 앗아갔다. "어... 어..." 제대로 말을 못하고 놀라움을 지나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제국군의 피해를 지켜보는 자들의 입은 한껏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용병들에게 거의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고 있는 제국군을 지켜보는 미르의 난민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15만의 미르 정규군도 저들 제국군을 맞이해서 연전연패하며 끝내는 자신들의 조국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파미르의 정규군도 아닌 한낱 용병들에게 그 패전이란 두 글자를 모르리라 생각되는 제국군이 처참하게 깨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들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은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악마의 전사 용병단에 속한 마법사와 정령사, 엘프 궁사들에 의해 제국 기병대는 용병대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원거리 공격으로 인해 전체 병력 중 거의 삼분지 일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마법 왕국이라는 테란트라면 모를까 이렇게 원거리 마법만을 사용해서 기병대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거의 전무했다. 마법사라는 것이 그렇게 흔하지 않은데다 거의 대부분의 마법사는 마법 왕국 테란트에 집중되어 몰려있다. 원체 마법사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다가 고위 마법사의 절반 이상이 테란트에 있기 때문에 마법에 소질이 있거나 마법사가 되고픈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테란트로 귀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법사에 대한 대우도 다른 어떤 제국이나 왕국보다 좋기 때문에 실력 있는 마법사의 대부분이 테란트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리 제국이나 왕국의 경우에도 마법사로 이루어진 마법부대는 꿈도 꾸지 못하고 약간의 마법사를 운용해서 전쟁을 치르는 실정이지만 그 숫자가 극히 미비해서 전쟁터에서 마법사를 보는 것은 거의 한정되어 있다. 그런 실정에서 용병대에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놀라운 일인데 그 숫자가 한, 두 명이 아니라면 그것은 놀라움에서 그치지 않고 경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엄청난 것이다. 거기다가 고위 공격 마법 중 하나로 알려진 6서클의 익스플로젼 마법을 사용하는 고위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전적으로 용병단에 마법사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골드급 이상의 용병단은 적어도 하나에서 둘 이상의 마법사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대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고 전사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 마법사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등급이 높은 용병단일수록 실력 있는 마법사를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대륙에 분포되어 있는 마법사의 대부분이 마법왕국 테란트에 밀집되어 있는 관계로 그 외의 마법사의 숫자는 무척이나 적은데다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는 마법사는 대부분 황실이나 왕국의 궁정마법사로 들어가기 때문에 용병단에서 끌어들이는 마법사의 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용병단은 3서클 정도의 마법사가 주축을 이루었고, 간혹 로얄급 용병단의 경우에 5서클의 상위 클래스 마법사도 포함되기는 하지만 극히 미비한 수준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파미르 왕국에는 6서클을 마스터한 마법사를 단장으로 두고 있는 골드 용병단 마법의 창 용병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6서클 마스터 자신이 용병단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서클 마법을 손쉽게 펼치는 마법사와 4서클 이상의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 거기에 더해 엘프 마법사와 1, 2 서클이지만 어느 정도 수효의 견습 마법사... 굳이 더 첨가한다면 정령술을 펼치는 정령술사까지... 제국군을 유린하다시피 한 마법사와 정령술사를 데리고 있는 용병단의 존재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자아내게 할만큼 대단했던 것이다. 제국군 기병대를 움직였던 누크의 남작 카쟈냐 피엘주르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자신이 믿었던 아니 자신의 신념과도 같았던 그 막강한 제국군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혼란에 빠진 모습은 그가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국군의 모습은 예전 제국군에게 철저하게 유린되어 혼란에 빠진 나약한 이민족 군대의 모습과 흡사했다. "아냐... 아니야!" 제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남작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애써 부정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의 정신상태는 극도의 혼란으로 우왕좌왕하는 제국 기사들의 모습과 흡사했는데 애써 부정하는 남작은 두 손을 들어올려 귀를 막으며 고막을 찌르는 혼란과 비명을 듣지 않으려고 했다. 남작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남작의 시야에 한 기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 있던 기사는 남작과 비슷하게 혼란에 빠진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그의 신형이 남작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눈앞에 보였던 사람이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작은 깜짝 놀라 상대를 찾았고 금방 차디찬 흙먼지와 죽음의 붉은 선혈로 더렵혀진 바닥에서 쿼렐에 목이 뚫려 선혈을 콸콸 쏟으며 휑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기사의 흉물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는 남작의 모습은 조금 전까지 제국군을 호령하며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용병단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리던 그 당당한 패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공포에 짓눌린 채 벌벌 떠는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도주라는 두 글자를 몰랐던 제국군도 남작과 마찬가지로 과도한 공포심에 젖어 쓰러진 동료들을 남겨둔 채 등을 보이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 접하는 제국군의 도주에 지켜보던 용병단과 미르 난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제국군 전사자 41명, 중상자 26명... 악마의 전사 용병단과 제국군과의 첫 교전은 일방적인 제국군의 피해로 끝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제국군의 경우 전사자가 중상자보다 많은 이유는 아론이하 어비스의 공격 마법 위력이 큰 까닭도 있지만 정확한 명중률을 자랑하는 엘프 궁사에 의한 피해가 컸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발에 하나씩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엘프 궁사의 궁술은 제국군의 사망자수를 더욱 높였다. 하여간 이로 인해 악마의 전사 용병단과 제국군과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깊은 골이 생겼고 차후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 대륙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제국군과 싸우는 계기가 되었다. "무... 무슨 말이냐?" "설마...?" 엄숙한 분위기만이 흐를 것 같은 웅장한 대전의 회의실은 갑자기 사람들의 술렁임에 거리의 시장 통을 연상케 하듯 무척이나 소란스러운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화려한 의복을 걸친 귀족들이었다. 몇몇의 사람들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듯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방금 들린 소리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는데 그 중에는 왕국의 최고 권력자인 국왕도 포함되어 있었다. 왕궁의 회의실이 갑자기 이렇게 소란스러워진 이유는 방금 전 전해진 한 가지 소식 때문이었다. "자... 자세히 말해보아라!" 그나마 국왕의 쇼크가 덜했는지 소식을 전한 관리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데 이에 관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국왕에게 소상하게 아뢰었다. 관리가 가져온 소식이라는 것은 서쪽 국경에서 일어난 일개 용병단과 제국 기병대와의 사소한 전투에 관한 사항이었다. 물론 사소한 전투라고 해도 이미 양국간에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은 시점에서 벌어진 마찰이라 문제가 약간 미묘하기는 했지만 그리 큰 사건은 아니었기에 국왕이하 귀족들은 듣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전한 전투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것이다.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너무 생소하게 들렸기도 했지만 상대가 제국군이라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처음 관리가 가져온 국경에서의 전투 소식은 파미르 왕국의 국왕과 귀족들을 무척이나 긴장시켰지만 단순히 한 곳에서만 국한된 싸움이라고 해서 긴장이 풀어졌다. 물론 가뜩이나 병력의 숫자가 모자라고 실력도 미천하여 용병을 의지하는 파미르 왕국으로서는 제국군과 부딪친 용병대가 무척 아깝기는 했지만 이를 기회로 세덴 공국을 압박하여 상호불가침 조약을 더욱 공고히 한다면 용병대 하나쯤 잃는 것도 큰 부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명 제국군에게 전멸하리라 예상했던 용병대가 제국군에게 승리를 했다고 하니 그들이 이렇게 소란한 것도 당연했다. 그것도 제국 기병대에게 수 십 명의 사상자를 남기게 하고 수치스럽게 도주를 시킨 것이다. 패배라는 두 글자를 모를 듯 한 제국군이 일개 용병대에게 패하여 도주를 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커다란 사건이었다. 오직 승리만이 전부라 알려진 그 사나운 제국의 기병대와 싸워 일개 용병대가 승리를 했다는 사실은 파미르 왕국이나 국민에게는 분명 통쾌한 일이었고 승리의 함성을 질러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차후에 닥칠 제국의 보복에 고심을 하고 있었다. 일개 용병대에 의해 제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자존심 강한 제국의 기사들이 죽어 나갔고 승리만을 고집했던 제국의 기병대가 패배해 도망쳤다. 그렇다는 말은 제국의 자존심이 이 일을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그 책임은 당연히 파미르 왕국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일개 용병대 하나 때문에 제국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왕국의 실력자 중 하나로 알려진 카를 샤르망 후작은 벌떡 일어서더니 국왕의 면전에서 소리를 질렀다. 소란스럽던 왕궁의 회의실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은 카를 샤르망 후작에게 집중되었다. "험험..." 국왕이하 자신보다 높은 고위 귀족들까지 자신을 주목하자 카를 샤르망 후작은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국왕의 면전에서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허기침을 하더니 슬쩍 자리에 앉았다. "카를 후작! 제국과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네. 그래서 이렇게 당황하는 것 아닌가? 그래... 경에게 무슨 특별한 해결책이라도 있는가?" 국왕은 자신의 면전에서 소리를 지른 카를 후작이 괘씸한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쥐꼬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지 카를 샤르망 후작을 직시하며 이렇게 물었는데 카를 후작은 국왕의 질문에 자신의 성급함을 탓하며 슬쩍 옆에 있는 왕국의 실세 르베르 로이만 공작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아무리 왕국의 실력자 중 하나라고 해도 왕국의 최고 실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왼편에서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는 르베르 로이만 공작이었다. 만일 르베르 공작의 눈밖에 난다면 자신의 권력은 일장춘몽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컸다. 카를 후작은 르베르 공작의 표정을 읽고 국왕의 질문에 대한 대답 여부를 결정하려고 작심했다. 르베르 공작의 분노를 산다는 것은 왕국에서의 자신의 지위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심정은 벼랑 끝에 선 기분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는 르베르 공작의 표정에서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했는데 공작의 표정이 무표정했기 때문이다. 캬를 후작의 이마 위로 송글송글 식은땀이 맺혔고 그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공작의 눈치만을 살필 뿐이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무엇을 주저하는가? 카를 후작!" 다행히 벼랑 끝까지 내몰린 카를 후작을 도운 것은 지금까지 무표정한 표정으로 일관하여 후작의 애를 태웠던 르베르 공작이었다. 카를 후작은 르베르 공작의 말이 떨어지자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의 표정을 짓더니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예... 예... 제가 그만 긴장을 했던 모양입니다. 현재로서는 일개 용병대를 구하기 위해 저희가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국에서는 자국의 병사들을 상하게 한 용병대의 생사를 원할 것입니다. 왕국의 안전에 대한 대가치고는 그리 비싸지 않을 듯 합니다만..." 카를 후작은 공작의 눈치를 살피면서 이런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의 말은 제국군과 싸워 이긴 악마의 전사 용병단을 제국에 넘겨주자는 이야기였다. 그의 말에 몇몇 귀족들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제국과의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고 있었다. 왕국의 최고 책임자인 국왕도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카를 후작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모습이었다. "안됩니다. 국왕 폐하!" 용병대를 희생시키자는 의견이 지배적인 분위기에서 터진 거부의 목소리는 왕국 최고의 기사이자 왕국 제1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었는데 그는 예상보다 무척 젊은 편에 속했다. 약간 회색 빛이 섞인 금발에 탄탄한 체격을 소유하고 있는 젊은 백작은 외모도 수준급 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골드 팔라딘에 올라섰다는 것만으로 왕국 내에서 상당한 입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금 약간 격앙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며 카를 후작의 의견을 반박했다. "국왕 폐하... 제국에게 승리한 용병대를 제국에 넘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들에게 상을 주지 못할망정 목숨을 넘기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프 샤브리엘 백작은 흥분 때문에 약간 격앙된 목소리인데 그의 반박에 그의 등장 때부터 얼굴이 붉어진 카를 후작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렇다면 백작은 그깟 용병들 때문에 왕국이 위험에 처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요?" 카를 후작은 자신의 의견을 반박한 제프 백작을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평소부터 의견이 안 맞아 티격태격하는 사이였지만 이번처럼 국왕의 면전에서 반박하고 나선 적은 없었기에 카를 후작의 분노는 더욱 컸다. 분노한 카를 후작의 말에 백작 또한 지지 않고 대꾸했다. "흥... 그깟 용병들이 지금까지 왕국의 안전을 책임졌습니다. 후작 각하께서는 우리 정규군만으로 제국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프 백작은 왕국의 약점을 끄집어내며 카를 후작의 말을 반박했다. 그러자 카를 후작은 노골적인 표정으로 비웃음까지 흘리며 말했다. "흥... 그것은 그대 휘하에 있는 나약한 기사들 문제이지.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카를 후작의 말에 제프 백작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는데 그는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책임이요? 군대를 증설하자는 의견을 묵살한 사람이 누구인데 지금 책임 운운하시는 겁니까?" 그는 금방이라도 카를 후작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흥분해서 손을 부르르 떨었는데 그의 행동을 제지하고 나선 인물은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약간 창백한 혈색에 무표정한 얼굴로 국왕의 면전에서 상대방을 질책하는 간 큰 후작과 백작을 제지시킨 인물은 현 왕국의 최고 권력자인 르베르 로이만 공작이었다. 르베르 공작은 앞으로 나서며 후작과 백작의 사이를 제지시킨 후 제프 백작에게 물었다. "제프 백작! 일개 용병대 하나 때문에 제국과의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왕국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들을 보호하자는 이야기인가?" 노련한 백작의 질문에 제프 백작은 조금 전처럼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르베르 공작 각하! 아무리 제국과의 마찰이 겁이 난다고 해도 우리 왕국의 상당 부분을 용병들이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용병대를 제국에 넘긴다면 용병 길드는 그 책임을 물어 우리와의 모든 계약을 해지할지 모릅니다. 아니 반드시 해지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왕국에 계약을 할 얼빠진 용병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 분명하니 말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부터 용병 없이 왕국을 수비해야 한다는 말인데... 저로서는 용병이 없는 왕국의 앞날은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왕국 최고 기사인 제프 백작의 말은 결코 흘려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제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카를 후작의 말에 쉽사리 동조를 했던 귀족들도 제프 백작의 말을 듣고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생각을 바꾸는 자들이 여럿 늘어났다. "그깟 용병 따위가 무섭다는 말이냐?" 카를 후작은 장내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바뀌자 이렇게 소리를 쳤는데 그의 말은 다소 억지가 섞여 있었다. 파미르 왕국에서 용병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카를 후작이 말하는 것처럼 그깟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개 용병단을 구하고자 제국과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르베르 공작은 인상을 찡그리며 카를 후작의 말을 무시하고 슬쩍 제프 백작을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제프 백작은 르베르 공작의 질문에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물론 용병들을 하찮게 생각하는 카를 후작의 말을 반박하며 용병들을 구하려고 나섰지만 공작의 말처럼 왕국의 운명까지 맡기며 그들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위험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후후... 저에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르베르 공작과 제프 백작의 대화를 경청하던 장내의 모든 귀족들과 국왕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그들의 이목을 받으며 등장한 인물은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는 특이하게 마법사의 로브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왕국의 마법사쯤으로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갑자기 등장한 이 노인의 정체를 모르는지 모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그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모습인데 그때 환한 미소를 보이며 반기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르베르 로이만 공작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시오? 왕국의 최대 현자이신 하르켄 르발루쉬 후작이 여기는 어인 일로...!" 초로의 마법사가 누구인가 궁리하던 귀족들 대부분은 공작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새롭게 등장한 노인을 다시 한번 유심히 쳐다보았는데 말로만 듣던 왕국의 최고 마법사 하르켄 르발루쉬 후작을 두 눈에 각인 시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왕국의 최대 권력자라는 공작이 애써 반기는 이 노인은 파미르 왕국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인물로 대륙에 존재하는 일곱 명의 7서클 마스터 중 한 명이자 왕국 내에서 현자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대마법사 하르켄 르발루쉬 후작이었다. 현재 나이 무려 92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젊은이 못지않으며 현 국왕의 부친 때부터 궁정 마법사로 있다가 현재의 국왕이 즉위하면서 자신의 제자에게 궁정 마법사의 직위를 넘겨주고 국왕으로부터 후작의 직위를 새롭게 받아 자신의 영지에 은거하며 왕국 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인데 그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랫만에 제자를 찾아왔다가 왕궁이 매우 소란스러워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들렸습니다. 잠시 알아본 바로는 왕궁 내에서 지금 여러 가지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르켄 후작의 물음에 공작은 무언의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긍정의 뜻을 보이며 말했다. "특히 지금 제국군과의 마찰 때문에 가장 머리가 아프다네. 후작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일개 용병단이 덜컥 제국의 기병대를 이기고 마는 사건이 벌어졌네. 우리로서는 너무 난감한 일이야. 용병들을 제국에 넘기자니 용병대의 반발이 두렵고, 보호하자니 제국의 보복이 두렵고..." 공작은 끝까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얼버무렸는데 공작의 말에 하르켄 후작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듣기로는 그 용병대가 특이하게 마법만으로 제국의 기병대를 상대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맞습니까?" 후작의 질문에 공작도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문이 맞을 것이오. 내가 듣기로도 원거리 공격 마법과 정령 마법으로 제국의 기병대를 물리쳤다고 들었소. 그래서 무척이나 탐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작은 마법사에 대해 상당히 아쉬운 모양인지 혀를 차더니 왕국이나 자신에게 골머리를 싸매게 하는 용병단 문제의 빠른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하르켄 후작에게 독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들어올 때 좋은 방법이 있다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하르켄 후작은 독촉하는 공작의 모습에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이 문제 말고도 몇 가지 문제 때문에 회의를 했던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하르켄 후작의 질문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이 다가오니 벌써부터 오크나 리자드맨 따위들이 추수한 식량을 노리고 대규모 약탈을 준비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오. 이미 북방의 도시들은 대규모 용병들을 모집하려고 난리를 피우지만 대부분의 용병들이 우리의 요청으로 서쪽 국경에 배치된 상황이라 각 도시들이 무척 곤욕스런 모양이오. 그것 때문에 남쪽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빼려고 했지만 그쪽도 쉽사리 병력을 뺄 상황이 아니라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다오." 공작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는 호흡을 조절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이런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다 미르가 제국에 점령당하면서 미르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철광석등의 광물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벌써부터 군대에서 쓸만한 무기가 없다고 야단이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군대의 무기 지급은 고사하고 농민들에게 농기구조차 조달되지 못해서 농사를 망칠수도 있소이다." 이래저래 산적한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픈지 공작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의논을 계속했지만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던 국왕이나 다른 귀족들도 한숨을 쉬기에는 마찬가지였다. 공작의 얘기를 조용히 듣던 하르켄 후작은 공작의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더니 뜻 모를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는 숨을 가다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후후... 저에게 그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있습니다." 하르켄 후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자기 왕궁 회의실의 모든 이목은 하르켄 후작에게 집중되었고 국왕의 성급한 질문이 터졌다. "어떤 방법이오? 후작..."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벌떡 일어나 하르켄 후작에게 다가서려던 파미르 국왕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허허 웃으면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으며 하르켄 후작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르켄 후작은 국왕의 그런 반응에 슬쩍 미소를 보이더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국왕 폐하! 제가 해결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시각 파미르 용병길드 내에서는 파미르 왕국의 용병 길드장을 중심으로??하나뿐이 로얄 용병단 검은 늑대 용병단의 단장 쥬르 모빌리티와 골드 용병단인 마법의 창 용병단의 단장 샤르켄, 철벽의 루탄 용병단의 단장 루탄 하모쉬 그리고 다섯 개의 실버급 용병단의 단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반백의 머리에 약간 마른 체격의 중년인은 골치가 아픈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나같이 체구가 우람한 용병단장들을 일일이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 신규 용병단이 우리 길드의 명령을 무시하고 미르의 난민들을 통과시키더니 끝내는 사고를 치고 말았소이다. 제국군과 정면으로 부딪쳐 제국의 기사들을 죽였으니..." 길드장은 자신이 임시로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벌어진 경악할 만한 사건 때문에 밤잠을 설친 듯 얼굴까지 푸석해 보였다. 그의 말에 좌측에 앉아있던 한 사내가 벌떡 일어나며 길드장을 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그랬소! 외지인들은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용병등록을 시키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그깟 몇 푼 하는 용병 등록비에 눈이 멀어 처음부터 외지인에게 용병등록을 허락한 길드의 책임이 가장 크오! 게다가 숫자도 겨우 350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을 실버급 용병단으로 등록시키고 한 지역을 담당하게 만들었으니 그들이 이렇게 설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오!" 사내는 길드장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는 표정으로 그를 다그치는데 그의 모습에 오른쪽에서 묵묵하게 길드장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가 손을 들어 사내를 제지시켰다. "그만... 이제 와서 누가 잘못했네 하면서 따져봐야 입만 아프니 그만들 하시오. 문제는 왕국에서 저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오! 제국에서 분명 저들의 신병을 넘기라고 강요할 것이 분명하고 왕국의 귀족들 특성상 저들을 제국에 보내려고 할 것이 뻔한 이상 차후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오." 사내의 말에 좌중의 사람들은 향후 미래가 달려있는 일이라 침을 삼키며 사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보통은 이런 경우 우리는 동업자 정신을 내세워 왕국과 관련된 용병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저들도 나름대로 용병 길드의 명령을 무시하고 일을 어렵게 만든 책임이 있으니 그 죄를 면하기는 어렵소." 사내의 말에 길드장과 다른 용병단의 단장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긍정의 뜻을 보였다. 대략 사십대 초반쯤 보이는 중년인은 토해내는 목소리는 무척 웅후하고, 표정에서 강력한 카르스마가 물씬 풍기는데 그의 열변에 용병길드의 길드장을 포함해서 다른 용병단장들이 딱딱한 자세를 주의 깊게 듣는 것으로 보아 그가 차지하는 비중에 꽤 높은 모양이었다. 특히 그가 나서자 길드장을 다그치던 사내가 머쓱해서 자리에 앉는 것으로 보아 그 추측은 맞을 것 같았다. "험험..." 카르스마가 물씬 풍기는 사내의 말에 한참동안 면박을 받았다 겨우 살아난 길드장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곧 몸을 일으키며 자신을 구해준 사내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는 말했다. "검은 늑대 용병단의 쥬르 단장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쥬르 단장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 인가를 정하는 것이 순서겠군요." 용병길드의 길드장이 나서자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 앉은 사내는 바로 대륙에 7개가 밖에 없다는 로얄 용병단 중 하나인 검은 늑대 용병단의 단장 쥬르 모빌리티였다. 현재 골드 팔라딘 상급의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쥬르 모빌리티는 42세의 중년인으로 뛰어난 검술 실력과 비견되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휘하의 용병대를 포함한 군소 용병대를 단숨에 사로잡아 대륙에서 일곱 손가락 안에 드는 용병대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검술 실력보다 그가 뿜어내는 엄청난 카리스마에 매혹되어 그의 휘하에 드는 용병들의 숫자가 많았는데 지금만 해도 골드 용병단의 용병 단장들과 실버 용병단의 용병 단장들은 그의 열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길드장을 다그치는 것조차 잊고 향후 대책을 고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자...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의견을 구하는 길드장은 다른 용병단장들의 눈치를 살폈는데 임시로 길드를 맡는 바람에 그 권한이 대폭 축소되어 길드에 대한 영향력이 무척 적었기도 했지만 이미 잘못한 것이 있어서 섣불리 자신의 의견을 개진(開陳)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가(不可)!" 검은 늑대 용병단의 단장 쥬르 모빌리티의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약간 왜소한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쥬르 모빌리티의 바로 옆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용병단의 등급이 높은 모양이다. "불가라면...?" 길드장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외소한 체격의 사내는 길드장의 물음을 듣고 바로 답했다. "나 샤르켄은 그깟 실버 용병단 따위 때문에 주요 고객을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골드 용병단인 마법의 창 용병단의 단장이자 6서클 마스터인 샤르켄의 말에 다른 용병단장들도 약간씩 수긍하는 눈치가 보였다. 그들 대부분은 파미르 왕국에서 이미 십 수 년을 활동한 본토박이였고 80-90%는 파미르 왕국 출신이다. 타지의 용병단 하나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주요 고객인 왕국을 놓치고 싶은 생각을 가진 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구의 사내가 탁자를 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몹시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는데 세차게 주위 용병들을 훑어보며 인상을 찡그리더니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퉷... 제국의 눈치를 살피며 미르의 난민들을 막는 꼴도 역겨워 죽겠는데 이제는 동료 용병단을 팔아서라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꼴이라니.. 난 빠지겠다." 사내의 극단적인 발언에 주위의 용병단장들의 눈이 씰룩이더니 한 사내가 급하게 일어서며 말했다. "루탄 하모쉬! 지금 우리가 동료를 팔아먹는다고 욕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철벽의 루탄... 혹은 난공불락(難功不落)이라고 불리는 이 사내는 파미르 내의 두 골드 용병단 중 마법의 창 용병단을 제외한 또 하나의 용병단 철벽의 루탄 용병단의 단장이다. 단장의 별명이 그대로 용병단의 이름으로 화한 특이한 경우인데 그의 별명이 철벽 혹은 난공불락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의 성격 때문인데 그는 자신이 한번 정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으로 유명한데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루탄 하모쉬는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용병단장들의 시선을 무시한체 그렇게 대답하며 할말 있으면 해보라는 표정이다. 그의 태도에 동급의 마법의 창 용병단장인 샤르켄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 말은 나나 옆의 쥬르 단장에게도 해당되는 것인가?" 묘한 눈빛으로 그렇게 질문을 던진 샤르켄은 철벽 혹은 난공불락이라는 루탄 하모쉬의 대답이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루탄 하모쉬는 샤르켄의 질문을 듣고 곧바로 대답을 하려다가 그 질문에 쥬르 모빌리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약간 주춤했지만 워낙에 자신이 한번 정한 일은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라 오히려 자신이 주춤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책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쥬르 단장이 아닌 국왕이 온다고 해도 지금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내 의견은 변함이 없다." 그의 말에 한쪽에서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쥬르 모빌리티의 눈이 반짝였다. 루탄 하모쉬에게 대답하기 힘든 부분을 건드리며 그를 격동시켰던 샤르켄은 슬쩍 쥬르 모빌리티의 눈치를 살피더니 회심의 미소를 보였는데 마치 두 사내에게 악감정을 심어주려고 작정한 듯 보이기까지 했다. 파미르의 동북쪽 인간이 살기에 부적합하다고 알려진 버려진 땅, 혹은 죽음의 사막이라 이름 붙여진 테미는 전사의 부족 아슈리안 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원래 예전부터 이곳에 살던 부족들은 아니고 지금의 파미르 영토에 넓게 분포되어 살고 있던 부족인 들이었다. 그런데 오래 전 국가라는 개념도 없이 소규모의 부족만을 만들며 살아가던 아슈리아 인들은 왕국의 군대라는 자들의 갑작스런 침입을 받았다.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소규모 부족으로 무리를 이루었던 탓에 수적으로 부족했던 아슈리안 인들은 서서히 왕국에 의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겼고 끝내는 모든 땅이 왕국의 소유로 들어갔다. 자신의 모든 땅을 빼앗긴 아슈리안 인들은 끝내 인간이 살기 힘들다는 척박한 땅 테미까지 몰렸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 척박한 곳에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끝까지 자신들을 몰아내려는 왕국의 군대를 맞아 흩어졌던 작은 부족들이 서로 통합하여 게릴라 전술로 대항을 하니 왕국은 아슈리안 인들에게 테미를 양보하면서 휴전을 했다. 그 후로 파미르 왕국은 약간의 술수를 부려 갈수록 늘어나는 북쪽의 마물들을 막을 목적으로 동북쪽의 마물들을 전사의 부족인 아슈리안 인들이 막아내면 그 대가로 그들에게 자신들에게는 쓸모없는 땅 테미에서 영원히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원체 쓸모없는 땅이어서 북쪽의 흉측한 마물을 막는 대가치고는 무척이나 헐값이기에 성사여부를 떠나서 그냥 장난삼아 제안한 것인데 아슈리안 인들은 척박하지만 이미 뿌리내린 자신들의 터전을 대가로 준다고 하니 순순히 허락했다. 그야말로 파미르 왕국으로서는 생각지도 않은 행운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그 헐값에 넘겼다고 생각했던 테미가 문제가 되었다. 파미르 왕국이 그토록 쓸모 없다고 여겼던 버려진 땅 테미는 어느 한순간 축복의 땅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온통 생명이 살 수 없는 황무지와 쓸모 없는 바위 산맥만이 길게 늘어섰던 이곳에 몇몇 드워프들이 이주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반전되었다. 아슈리안의 몇몇 선지자들을 통해 이주한 이종족인 드워프들은 모든 자들이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바위산맥을 살피면서 자신들의 특기를 이용해 광맥 개발에 착수하였고 오랜 고생 끝에 대규모의 철광맥을 발견하였다. 철광석의 전부를 미르에 수입으로 의존하던 파미르 왕국으로서는 엄청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외교상의 문제로 소수 상인들만 교역이 허락된 마당에 자국에서 철광석이 생산되었기에 버려진 땅 테미는 파미르 왕국 내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미 테미는 아슈리안 인들의 손에 들어갔고 왕국은 욕심을 내어 그곳을 다시 찾으려고 해도 이제는 똘똘 뭉쳐 소규모 부락에서 대부족으로 화한 아슈리안 인들을 예전처럼 쫓아내지 못했다. 비록 그 숫자가 모두 합쳐 10만이 체 안 된다고 해도 전부가 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슈리안 인들은 10만의 군대와 마찬가지였고 왕국은 10만의 전사와 싸워야 했기에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왕국이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테미는 대규모 철광석을 바탕으로 무척 빠른 발전을 하였는데 행운이 겹치는지 대규모의 철광맥이 여러 개 더 발견되고, 거기다가 소규모이지만 황금 광맥도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테미에 살고 있는 아슈리안 인들은 갑자기 부유해졌다. 이 때문에 몇몇 주변의 영주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사병들을 이끌고 테미를 집어??삼키려는 무모한 행동도 벌였지만 전사의 부족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지 그들은 아슈리안의 전사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고 지방의 귀족들은 섣불리 탐욕을 부리지 못했다. 지방의 영주들이 그렇게 당하고 보니 왕국도 섣불리 욕심을 보이지 못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소식은 왕국에게 테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대륙인들에게 이 시대 최고의 금속을 꼽으라면 대부분은 보통 굳기는 다이아몬드에 버금가고 무게는 무척 가벼운 은색의 금속 미스릴을 꼽을 것이다.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몇 갑절 값어치가 뛰어나고 무척이나 희귀한 금속으로 알려진 이 금속은 오직 드워프 장인들만이 가공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미스릴로 만든 무구는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할 정도로 값어치가 뛰어났다. 그 미스릴 광맥이 테미에서 발견된 것이다. 미스릴 광맥 발견은 대규모의 철광석 광맥이나 황금 광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것이라 왕국은 탐욕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이미 테미를 아슈리안 인들에게 내준 상태이고, 북쪽의 마물들이 서서히 준동을 하는 까닭에 왕국은 섣불리 아슈리안 인들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제국의 손발이라는 세덴 공국이 미르를 침공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서쪽 지역을 담당하던 일개 용병대가 제국군을 패전시키면서 왕국 전체는 곤혹스런 상황에 놓인 것이다. 왕국의 대마법사 하르켄 르발루쉬 후작이 제시한 방법은 왕국이 골치 아파 하는 문제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으로 국왕이하 모든 귀족들을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왕국이 직면했던 모든 문제의 고리를 한 번에 풀어버리면서 왕국에게는 절대적인 이득까지 챙겨주는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이러했다. "일단 세덴 공국과 협상을 벌여 용병대의 신병은 넘겨주지 못하지만 그들을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전하십시오." "으음...?" 공작은 하르켄 후작의 말에 신음을 터뜨리며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에 대한 굳은 신뢰가 있는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국이 가만히 있을까?" 고개는 끄덕였지만 약간 불안한지 그렇게 물어보는 공작의 물음에 후작은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무언가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지요. 죽거나 부상을 당한 기사와 병사들에 대한 보상금을 저희가 지급한다고 하십시오.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물리려 할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감당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병대에 대한 확실한 처리 방법도 그들에게 알려주면 어느 정도는 만족하고 물러갈 것입니다." "확실한 처리 방법...?" "후훗... 여기서부터 무척 중요합니다!" 하르켄 후작의 웃음소리가 미미하게 실내를 진동했다. "테미에 살고 있는 아슈리안 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난데없이 날아온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다는 공작은 후작을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갑자기 용병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테미의 아슈리안 인들에 대한 질문을 하니 공작의 입장에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테미는 무척 척박한 땅입니다. 인간이 살기에는 무척 어려운 환경이죠. 그곳에서 철광맥과 황금, 미스릴 광맥이 나오지 않았다면..." 공작을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하르켄 후작의 말은 이어졌고 그때서야 공작은 후작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았다는 표정이다. "땅... 하지만...?" 공작은 하르켄 후작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지만 그것이 이번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표정이다. 척박한 테미에서 살고 있는 아슈리안 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아마도 사람이 살기 편한 대지일 것이다. 원체 농작물은 고사하고 동물들도 살기 힘든 열악한 땅이기에 거의 모든 생필품을 타지방에서 가져오는 아슈리안 인들에게는 그것은 꿈이자 열망일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겁니다." 하르켄 후작의 말에 공작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대체 모르겠군. 그들에게 우리 땅을 내주자는 거요. 하지만 그것하고 이번 문제하고는..." "마물의 숲!" 하르켄 후작은 공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말했고 공작은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문 채 하르켄 후작의 말을 곱씹었다. 주위의 많은 귀족들과 국왕은 공작과 후작의 대화를 경청하면서 도대체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멀뚱하게 서 있었는데 그때 후작의 말을 곱씹었던 공작의 탄성이 터졌다. "아아..." 공작은 놀람과 의혹이 섞인 표정으로 후작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흐음... 그렇군. 그들에게 동북쪽 마물의 숲을 개척하게 하고 개척한 땅을 전부 그들에게 준다고 한다면..." 공작은 그렇게 말하다가 무언가를 생각했는지 약간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들이 순순히 응할까?" 공작의 의혹에 섞인 물음에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분명 응할 것입니다. 땅은 그들의 꿈이자 열망일 테니까요... 거기에다 약간의 힘을 넣어주면..." "약간의 힘?" "그 골치 아픈 용병대를 그들에게 주는 겁니다. 마물의 숲을 개척하는데 그들을 투입하는 것이죠. 전사는 많지만 마법사가 부족해서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만 실력 있는 마법사가 있는 용병대를 붙여주면 그들도 어느 정도 모험을 감수하려고 할 것입니다. 거기에 몇몇 용병대와 용병을 뽑을 권한도 쥐어주면..." 후작의 말에 공작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일석이조(一石二鳥)... 아니 일석 삼조의 효과를 볼 것입니다." "일석 삼조?" 후작의 말에 공작은 그렇게 물었고 후작에게 답을 요구했다. "마물의 숲이 어떤 곳입니까? 지금까지 왕국에서 끝임 없이 수많은 병력을 투입하여 개척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곳입니다. 아슈리안 인들이??아무리 뛰어난 전사라고 해도 시간이 문제이지. 필히 들어가면 모두 몰살을 당할 것이 틀림없는 곳이죠. 그렇다는 것은 아슈리안 인들과 함께 들어가는 용병대도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후작의 말에 공작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발그레해졌다. 그들이 지금까지 골치 아팠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더해서 아슈리안 전사들이 마물의 숲에서 모두 몰살된다면 테미를 빼앗는 것은 어린 아이의 과자를 빼앗듯 쉬울 것입니다." 후작의 마지막 말은 국왕까지도 자신의 실태를 깨닫지 못하고 손수 나와서 그의 손을 붙잡고 연신 손을 흔들어 대며 그대의 공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왕국의 모든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책이었다. 물론 아슈리안 인들이나 악마의 전사 용병대에게는 죽음으로 모는 엄청난 계략이자 모략이었지만 말이다. 파미르 왕국력 352년. 파미르 왕궁에서 벌어진 이 계략이 향후 파미르 왕국에게 미치는 영향은 차후에 논하기로 하겠다. 25장. 전사의 부족 아슈리안 ??"마물의 숲?"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소식을 전한 파미르 왕국의 사신이라는 자를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삽시간에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 대략 70대 후반쯤 들어 보이는 노인은 무척이나 강인한 인상이 역력한데 얼굴 하나 하나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은 노인이 결코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능히 짐작하게 해준다. "마치 죽으러 가라는 말 같이 들리는데 우리가 그렇게 어리석어 보였나?" 비웃음이 지나쳐 분노의 빛까지 섞인 노인의 물음에 파미르 왕국의 사신으로 뽑혔던 뉴먼은 움찔하며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쉽게 생각하며 떠났던 사신 길이었는데 자신을 맞이한 아슈리안의 대장로 켈라힘을 처음 접하는 순간 뉴먼은 이번 일이 결코 순탄하지 않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상대는 미개인이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학식과 외교적인 능력도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 연륜에서 느껴지는 경험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제국을 상대로 외교적 수완을 벌였던 자신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수완까지 부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처음 왕궁에서 후작의 계획을 듣고는 무척이나 절묘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아슈리안 인들에게 사신으로 보낸 국왕에게 내심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뉴먼이었다. 아슈리안 인들이 왕국의 제안을 거부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태였기에 내심 자신의 경력을 또 한번 편안하게 올리게 해준 제프 백작의 추천에 보답으로 얼마간의 재물을 헌납해야겠다며 웃음으로 출발했던 전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슈리안 대장로 켈라힘의 반문에 갑자기 목이 타는 뉴먼이었다. "왕국에서 마법사를 붙여주기로 했소이다. 거기다가 임의로 용병대와 용병을 고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소. 마물의 숲을 개척하면 개척한 모든 땅은 당신들 것이오." 마치 매달리듯이 왕국에서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는 인상을 보이는 뉴먼이었지만 아슈리안 대장로 켈라힘의 반응은 냉담했다. "흥... 그보다 높은 전력으로도 마물의 숲을 어쩌지 못했던 왕국으로 아는데..." 켈라힘의 말에 뉴먼은 찔끔했다. 그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대답을 못하는 뉴먼의 반응에 켈라힘은 피식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 격언에 이런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제국을 향에 칼을 뽑아들지언정, 마물의 숲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라!' 라는..." 뉴먼도 익히 알고있는 파미르 왕국의 격언 중 하나였다. 파미르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6대 국왕 네이피로스 질 오브 라이스 2세가 눈물을 흘리며 토해냈다던 일화로 유명한 격언인데 마물의 숲에 관련된 격언 중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가을만 되면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수시로 왕국의 영토를 침입하는 몬스터에 골머리를 앓던 왕국이 네이피로스 질 오브 라이스 2세 때에 이르러 급격히 팽창된 국력을 바탕으로 왕국의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마물의 숲에 원정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무려 5만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면서 국왕이 눈물을 흘리며 토해냈다는 말이다. 아슈리안 대장로 켈라힘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뉴먼은 할말을 잊었다. "켈라힘 대장로! 왕국의 사신이 왔다는데 무슨 일입니까?" 왕국의 제안이 거절되었다고 생각하자 자신의 장래가 암담해짐을 깨달은 뉴먼은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새롭게 등장한 사내 때문에 고개를 들었다. 장내에 모습을 보인 사내는 무척이나 젊은 편에 속했는데 가죽으로 만들어진 레더 아머(Leather Armor)의 갑옷에 수 백 개의 쇠로 만든 리벳을 박아 넣은 형태의 스터드 레더 아머(Studded Leather Armor)를 걸치고 있는데 리벳의 모양이 스파이크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유독 어깨를 감싼 부분은 스파이크 형태가 두드러져 어깨로 상대방을 공격한다면 끔찍한 상처를 남기고도 남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흔히들 그 모양과 낮은 가격 때문에 '가난한 자의 갑옷'으로 불리는 스터드 래더 아머는 주로 도적이나 해적, 야만인으로 불리는 바바리안 들이 입는 편인데 이 사내도 이런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보아 돈이 부족한 모양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뉴먼이었다. 그러다가 상대가 대장로 켈라힘을 부르는데 있어서 존칭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낸 뉴먼은 상대가 대족장과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직위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자 출발하기 전 후작이 자신에게 귀뜸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억을 탓하며 순간적으로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 "신경쓸 것 없습니다. 쓸데없는 요구로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려는 수작입니다. 마물의 숲 원정이라니..." 혀를 차며 비웃음을 흘리는 켈라힘의 모습과는 다르게 켈라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슈리안의 젊은 족장 케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현재 나이 스물 아홉의 이 젊은 족장은 아슈리안의 역사상 가장 용맹한 전사 중 하나로 기억될 정도로 호전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로 오우거도 한 손에 때려잡는다는 "마물의 숲 원정이라뇨...?"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설명을 요구하는 족장의 모습에 대장로 켈라힘은 또 다시 발동하는 젊은 족장의 호기심과 호전성에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족장님! 파미르 왕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라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흉측한 계략 따위를 들을..." "아... 아닙니다. 족장님! 계략이라뇨...? 왕국에서는 가을이면 영토를 침입하는 몬스터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 실정입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대족장님을 찾은 것입니다. 제국의 침공 때문에 병력을 마물의 숲으로 쉽게 돌리지 못하는 급박한 상황이라 족장님께 도움을 청하러 온 것입니다." 뉴먼은 켈라힘 대장로의 말을 끊으며 최대한 저자세로 머리를 굴리고는 미개한 아슈리안의 족장에게 존대말까지 써가면서 족장의 비위를 맞추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 제의를 하는 것입니다. 이왕에 마물의 숲에 관해 아슈리안 부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면 이 기회에 아예 마물의 숲을 개척하여 차후에 일어날 몬스터에 관한 고민을 해결하려는 것이지요. 그 대신 조건으로 개척된 땅은 모두 넘겨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물의 숲을 개척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기 때문에 강력한 마법사로 이루어진 용병부대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뉴먼은 말을 하는 중간에도 젊은 족장의 눈치를 살폈다. 아슈리안의 젊은 족장 케인은 뉴먼을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기심이 무척이나 동한 눈치였다. 그의 옆에서 뉴먼과 마찬가지로 젊은 족장의 표정을 살피는 대장로 켈라힘의 표정은 여지없이 굳어지고 있었다. "족장님께서도 아실 겁니다.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라고... 이번에 제국의 기병대를 마법으로 쓸어 버렸다는 용맹한 용병단 입니다. 거기에 덤으로 임의로 용병대와 용병을 뽑아서 원정을 갈 수 있는 권한도 드리겠습니다." 뉴먼의 긴 설명을 들은 아슈리안의 젊은 족장 케인은 순간적으로 그 푸른 눈빛을 빛내더니 뉴먼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척이나 좋은 조건이군." 빛나는 눈빛의 젊은 족장을 쳐다보던 뉴먼은 자신의 말이 먹혀 들어갔음을 느끼고는 회심을 미소를 보였다. "맞습니다. 족장님의 부족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입니다. 왕국에서 두 번 다시는 이런 제의를 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시면 후회하실 것입니다." 뉴먼은 후회하지 말라는 반 협박성 멘트까지 날리며 족장을 유혹했고 그의 유혹은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간 모양이었다. 젊은 족장의 고개가 끄덕이는 것이 뉴먼의 시야에 잡혔다. 물론 족장의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늙은 대장로 켈라힘 모습도 함께 잡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왕국의 제의를 받아들이겠소. 대신에..." 젊은 족장 케인의 승낙에 이겼다는 회심의 미소를 보였던 뉴먼은 족장의 마지막 말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무슨...?" 약간 긴장이 섞인 음성으로 눈치를 살피는 뉴먼이다. "아! 긴장하지 마시오. 단지 한마디만 그대들의 국왕에게 전해주었으면 해서 말이오. 이 제의 후회하지 말라고..." 젊은 족장의 마지막 말은 무언가 힘이 담겨 있는데 그의 말에 뉴먼은 자신을 비롯한 왕국이 승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후회할 일을 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 일단은 시킨 일은 정확하게 수행해서 임무는 완성했다고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뉴먼이었다. "이봐.. 라멘! 정말 두렵지 않나?" 흔들리는 눈동자와 걱정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삼십대 후반의 사내였다. 그는 약간 두터운 경장갑을 입고 걷고 있는데 고개를 살짝 돌리고 한 사내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었다. 질문을 받은 라멘이라는 사내는 그 사내와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는데 사내의 심각한 표정과는 다르게 살짝 미소까지 보이고 있었다. "모르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나?" 대답이 아닌 반문이 들어오자 모르얀이라는 사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 농노의 아들, 농노의 남편이 어떤지 아나?" 자괴감이 묻어있는 라멘의 질문은 모르얀에게는 당황스런 일이다. 질문을 했으니 대답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모르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마저 속박 당했다. 나의 아내... 내 사랑하는 루시아는 탐욕스런 영주의 손아귀에 죽었다. 나는 그녀의 복수조차 하지 못했다." 모르얀은 라멘의 슬픈 사연을 알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농노의 아내라고 보기에는 무척 아름다운 미모를 갖고 있었고 그것이 탐욕스런 영주에 눈에 띄어 영주의 병사들에 의해 끌려가게 되었다. 라멘은 반항을 했지만 병사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았고 영주에게 겁탈당하는 와중에 반항하다 영주의 얼굴을 할퀸 그의 아내는 영주에게 겁탈당한 후 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라멘은 아내의 복수를 하려고 했지만 힘이 없었고 그는 오히려 영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복수는커녕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라멘은 결국 산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우리 모두 죽는다고..." 두려움이 섞여 있는 질문에 라멘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내가 죽었을 때 이미 죽었어. 지금의 나는 아내의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야." "그렇다면 더 살아야 하지 않나? 아내의 복수를 하려면..." 모르얀은 무언가 돌파구를 찾았다는 듯이 급하게 말했고 모르얀의 질문에 라멘은 다시 부정의 행동을 보였다. "아니... 죽어버린 나를 깨운 것은 지금의 대장이다. 나에게 꿈이라는 것을 넣어 주었지. 쓰레기같이 살던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내의 복수를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라멘은 눈은 굳건한 의지가 빛났고 그의 말은 단호했다. "후후... 바보같군." 모르얀은 라멘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내의 복수만이 전부인 놈이 가면 죽을 것이 뻔한 곳으로 가면서 후회가 없다고 한다. 모르얀은 라멘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인지 알고 있었다. 현재 그의 심정은 이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영위하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현재의 실력이라면 다른 용병대에 들어가서 떵떵거리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후회가 없는지 알아보고는 싶군." 고민하는 모르얀의 독백은 이런 것이었고 그는 고개를 슬쩍 행렬 옆으로 빼더니 선두에 선 한 청년의 뒷모습을 쫓았다. ??연초록 숲 사이로 퍼져나가는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 등등은 긴행군으로 지쳐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 푸근하게 만들어준다. 탁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대자연의 앞에 서면 대자연 속에 몸을 누이고 하루 이틀 정도 일상의 번잡함을 잊은 채 휴식을 취하고 싶은 유혹이 간절한데 정말로 일행의 행군을 멈추고 이곳에서 사나흘 여유를 가지고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기다리는 자들이 있는 탓에 걸음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현재 우리는 파미르의 동쪽 국경을 방어하다 제국과의 마찰로 인해 북쪽으로 긴 행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북쪽으로 쫓기듯 이동하는 사연이 참으로 우습다. 동쪽 국경에서 제국군과의 마찰로 어느 정도 위험을 예상하고 있던 터라 나나 우리 용병대는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빠르게 결정을 내려 대처를 하는 파미르 왕국의 반응에 한참이나 당혹해 했었다. 평소 같으면 늦장을 부려 한참이나 시간을 끌고 난 후에나 결정이 날 일이 단번에 해결이라도 된 듯 빠르게 대처를 하니 조금 놀랐던 탓이다. 왕국의 히스테리적 반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수순이라 테미로 이동하라는 명령에 별반 저항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용병들 편에서 행동해야 할 용병길드나 다른 용병대에서조차 왕국의 이런 명령에 순순히 따르라는 의견을 보내자 나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동료 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자 들이다. 명령의 내용을 들어보니 마물의 숲 원정단에 합류하라는 말이다. 마물의 숲 원정이라는 말에 우리 용병단원들의 대부분이 절망감이 가득 찬 눈빛으로 축 늘어지는데 그 것으로 보아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지만 제국과의 싸움에서 월등한 전투력을 보였던 이들이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은 반응에 나는 의구심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그런 반응을 보면서 나는 파미르 왕국이 단단히 우리 용병대를 사지로 밀어 넣을 결심을 했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내가 저들의 명령에 따라 용병대를 이끌고 사지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용병대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륙의 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파미르 왕국은 예전 미르 왕국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오지와 제국의 공국들로 둘러 쌓여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인접 국가였던 미르 왕국이 세덴 공국에게 멸망한 이상 파미르 왕국과 국경을 마주보는 국가는 모두 제국의 공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북쪽에는 마물의 숲, 서쪽에는 드래곤 레어가 있는 크라우스 산맥, 남쪽과 서쪽에는 제국의 공국.. 그야말로 완벽하게 고립된 상태가 되어버렸는데 그나마 제국에게 원한을 사고 있는 우리로서는 파미르 왕국을 빠져 나가는 유일한 방법으로 조금은 위험하지만 서쪽의 드래곤 레어가 있는 크라우스 산맥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물론 네오가 극구 반대해서 실현되지 못했다. 드래곤 주제에 엄마한테 걸리면 맞아 죽는다며 막무가내(莫無可奈)로 떼를 쓰는데 두손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파미르를 벗어나기 어려운 이상 나는 일단 왕국의 요구대로 마물의 숲 원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왕국을 빠져나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는 했지만 마물의 숲에 대한 호기심도 나의 발을 묶어놓기 충분했다. 휘하의 용병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나를 더욱 마물의 숲으로 이끌게 만들었는데 파미르 인들이 느끼는 마물의 숲에 대한 공포는 다른 나라의 사람보다 심했다. 하기는 뭐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는 공포감이 말로만 들었던 사람들하고는 차이가 날만도 하지만 말이다. 마물의 숲 원정에 동참하기로 한 이상 나는 일단 마물의 숲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어 이제는 나의 정보통이 되어버린 코렐 레브라르도를 불러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솔직히 마물의 숲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얘기로만 들었던 짤막한 정보가 고작이었기에 나는 내가 처음 중간계에 도착해서 수련을 했던 미르의 북쪽 오지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 곳에도 소규모의 오크 부락과 대형 몬스터인 오우거와 트롤이 즐비했기에 아마 그보다 조금 많은 몬스터들의 집단을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서 코렐이 전한 마물의 숲에 대한 정보는 나조차도 입을 벌어지게 하기 충분했다. 왜 용병들이 마물의 숲 원정이라는 소리에 그렇게 절망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정도였다. 일단 마물의 숲에 존재하는 많은 이종족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과 비슷하게 대규모로 집단을 이루는 종족들이 숲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그러지 못하는 종족들은 서서히 도태되었다. 다른 몬스터에 비해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 오우거나 트롤들이 유독 마물의 숲에 존재하지 않은 이유가 집단을 이루는 몬스터들에 의해 몰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마물의 숲에서 집단을 이루는 종족들을 살펴보면 오크와 리자드 맨, 고블린, 코볼트, 프로그맨 등이 대부분인데 그것도 이제는 숫자 면으로 우세를 차지하는 오크 부족의 대규모 물량 공세에 의해 다른 종족들은 대부분 북쪽으로 내몰리고 인간 마을과 근접한 곳에는 대다수의 오크 부족만이 남았다고 한다. 물론 예외적인 종족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강인한 전사의 부족으로 알려진 리자드 맨 부족이었다. 개개인의 전투 능력이 인간의 기사와 맞먹는다는 전투 종족인 리자드 맨 부족은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오크 종족의 전사들조차 섣불리 공격을 못하는 강인한 부족이라 이 때문에 오크와 리자드 맨은 서로의 영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가 마물의 숲을 개척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강대한 세력의 오크와 리자드 맨 부족과 부딪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크의 경우 태어나면서 선천적인 전투병사로 키워지는 것이 보통인데 생후 3-4년이면 성인 전사가 되기 때문에 그 엄청난 물량으로 인해 인간들이 감당하기에는 약간 버거운 존재들이다. 거기다가 인간에 비해 키는 작지만 힘은 오히려 더 강해서 여느 보통 인간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는 존재이다. 돼지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오크들은 지능은 별로 높지 않아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인간과 같은 무기와 방어도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들과 싸운다는 것은 여느 국가의 정규군과 싸우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그만큼 오크들은 인간에게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런 오크들이 대규모로 모여 있는 부락이 마물의 숲에만 수 십 여개가 된다고 하니 내 입이 저절로 닫히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봐... 거기! 등록은 이쪽이란 말이야." "제길... 많기도 많구만!" "줄서... 어디서 새치기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어지러운데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용병으로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의 목적지에는 무언가 접수를 하는 곳으로 보이는 사내가 앉아서 서류를 접수받고 있는데 접수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용병들로 보였다. 가끔 중간에서 새치기를 하는 이들도 눈에 보였지만 금방 들통이 나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파미르의 서북쪽 버려진 땅, 혹은 죽음의 사막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던 테미의 주요 도시중 하나로 발돋움한 하르엠은 원래 몇몇 아슈리안 인들이 조그마한 촌락을 이루고 살고있던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테미에 철광석을 비롯한 황금과 미스릴 광산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금새 도시로 성장을 해버린 것이다. 황폐한 땅과 뜨거운 열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슈리안 인들 일부만이 자리를 메웠던 이곳 하르엠은 현재는 황금을 찾아 혹은 일자리를 찾아 테미로 넘어온 자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는데 특히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는 모험가나 용병들이 많았다. 또한 미르 왕국이 제국의 공국인 세덴에게 멸망당하면서 많은 유민들이 파미르 왕국으로 넘어왔는데 그중 상당수가 이곳 테미로 흘러 들어왔다. 일단 많은 광산과 막 성장하는 테미였기에 일자리가 많았고 미르 난민에 대한 차별도 다른 곳보다 심하지 않았다. 아니 파미르 인이나 미르 인이나 아슈리안 인들에게는 모두 이방인에 불과했기에 서로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척 복잡하군." 우리 용병대가 테미의 중심 도시인 하르엠에 도착한 것은 서쪽 국경 지방을 떠난지 오일만의 일이다. 생명력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무척 황량한 황토색의 대지위에 인간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무척 의외이지만 황금을 쫓는 자들에게는 그것은 하등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거기다가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은 난민들에게는 어쩌면 이 황량한 도시가 그들만의 새로운 낙원일수도 있었다. 용병들과 모험가, 광산 노동자, 난민등이 넘쳐 흐르는 하르엠이라고 해도 350명에 이르는 우리 용병대가 등장하자 약간 긴장하는 분위기가 흘렀다. 용병들이 하르엠 전체에 넘쳐 흐른다고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용병 무리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어서 그러는지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긴장감이 엿보였다. 거기다가 우리 일행의 조합이 약간 특이해서 그런지 우리를 지켜보는 자들의 눈에서는 호기심 이상의 긴장감이 돌았다. "몇년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 이었는데 황금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입니다." 선두에 서서 길 안내를 하고있던 베뉴사는 내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산적패중 하나였다 용병대에 합류한 인물로 서른 정도의 나이에 약간 마른 몸매의 소유자이다. 검에 대한 소질은 약간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예리한 통찰력과 뛰어난 추적 기술등을 바탕으로 우리 용병대의 정찰조 조장을 맡고 있는데 나름대로 젊었을 때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모양인지 경험이 풍부했다. 나는 베뉴사의 말을 듣고는 씨익 웃고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5일간의 긴 행군과 황토 바람 때문에 먼지를 뒤집어 씌고 있는 용병들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일단은 숙소를 마련하고 용병들의 피로를 푸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이 들어서 베뉴사에게 말했다. "일단은 아슈리안의 족장 케인이라는 자를 찾는 것이 우선이지만 우리 꼴이 말이 아니군. 자네는 우선 우리들이 쉴만한 곳을 수배해보게. 찾으면 바로 연락주고..." 나는 오일간 행군하며 피로에 지친 우리 용병들을 일분 일초라도 빨리 쉬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고 베뉴사는 바로 명령을 받고는 사라졌다. 아마도 350명의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쉴만한 곳을 찾기는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만 꾸역꾸역 밀려오는 용병들과 모험가, 난민들 때문에??없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자자... 숙소가 마련되는 대로 바로 여장을 풀고 모두 푹 쉬도록 하고 아론과 바이크, 그리고 코렐은 나를 따라와라. 여기 전부가 그를 만날 필요는 없을테니..." 나는 그렇게 말하고 용병대의 지휘를 네오에게 맡기고는 아론과 바이크, 코렐만 데리고 아슈리안의 족장 케인이라는 자를 찾아 나섰다. 우리 용병대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관리가 수월하게 하기 위해 열명씩 한조가 되는 십인대를 만들었고 다시 십인대가 열개 모여 백인대를 이루게 하였다. 마치 옛날 몽고족의 군대 편성과 비슷한 방식인데 일단 관리하기가 편해서 그렇게 정했다. 백인대의 대장은 산적패중 실력이 가장 출중했던 자들을 따로 뽑아 앉혔는데 바이크나 아론, 네오를 백인대장에 임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너무 강한 관계로 따로 운영하기 위해서이다. 3개 백인대의 대장은 예전 산적 두목이었던 코렐 레브라드도를 포함해서 실력이 나날이 향상하고 있는 제이크, 그리고 레이첼의 일행이었던 헤이트리드가 특별히 한 백인대를 맡았다. 이제 겨우 로얄 나이트 수준에 근접한 코렐이나 제이크의 무력이 안심이 안되어 따로이 골드 팔라딘 수준의 헤이트리드를 특별히 앉힌 것이다. 각 백인대를 이루는 십인대는 완벽한 하나의 작은 조직을 이루게 하기 위해 각각 전사 7명과 암살자 1명, 정찰조 1명, 마법사 1명으로 이루게 하였는데 전사중에는 궁수계열의 궁사도 포함되어 있도록 하였다. 원거리 공격을 마법사 일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면도 있지만 엘프라는 뛰어난 궁술 선생들이 있어서 가능한 조합이다. 이밖에 엘프 전사들을 데리고 온 세리안트를 대장으로 특별히 엘프 전사들만 따로 모아서 3개의 십인대를 만들어 특수부대로 운영했는데 전사 20명, 정령사 7명, 마법사 3명으로 이루어진 엘프들은 제각각 균등하게 배분되어 십인대를 이루었다. 또한 특별히 암살자였던 라미셀의 경험과 5서클 흑마법사에 세이드 족 특유의 능력을 갖고있는 어비스를 주축으로 하여 따로 암살 조직을 만들었는데 각 십인대에 배치한 암살자를 제외한 최고의 능력자들을 따로 뽑아 하나의 십인대를 만들었다. 이럭 저럭 나누다보니 현재 우리 용병대의 전력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대강 이런 결론이 나왔다. 용병대장인 나를 포함해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 바이크와 9서클 대마법사 아론, 사신 로크의 사제이자 네크로맨서인 죽음의 신관 가이가, 집에서 가출한 소드 마스터 레드 드래곤 네오 칼라드, 골드 팔라딘 실력의 여검사 레이첼,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는 하프 자이언트 스타그라스 등은 아무런 조직에 속하지 않고 용병대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적극 투입하는 특수 전력이된다. 다음 각 백인대의 백인대장인 로얄 나이트 수준의 코렐과 제이크, 골드 팔라딘 헤이트리드와 300명으로 이루어진 3개의 백인대가 있다. 3개의 백인대에는 따로 바이크와 아론에게 교육을 받은 능력이 뛰어난 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누크나 파렌과 같이 짧은 시간내에 실버 나이트 수준에 올라선 인물들을 비롯해서 이제 막 나이트에 올라선 30여명 정도의 전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아론에게 교육받은 마법사들도 30여명 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개중에는 특별히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마법사들도 있었는데 이제 막 3서클 유저에 올라선 슈온과 피드로라는 인물을 포함해서 최저가 1서클 마스터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엘프 전사 세리안트를 대장으로 특수부대를 이룬 30명의 엘프 전사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전사에 궁사이고 3서클 이상의 마법사에 중급 이상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정령사였다. 또한 다크 엘프 라미셀과 흑마법사이자 세이드 족인 어비스를 포함한 열명의 암살자들은 하나같이 매우 독특하면서 뛰어난 암살자들로 나름대로 암흑 종족인 다크 엘프와 세이드 족의 기술을 전수받아 1급 이상의 암살 실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런 특수 전력까지 보유하고 있는 우리 용병대는 다른 용병대와 비교해서 인원은 작지만 무척 특이하면서 안정된 전력에 고급 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옳을 것이다. "이봐... 네오! 자네는 베뉴사가 오는 대로 숙소를 잡고 있으라고... 나는 그 케인이라는 인물을 찾을테니..." 내 말에 네오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용병대를 지휘하여 앞으로 나섰고 나는 바이크와 아론, 코렐 등을 데리고 아슈리안의 대족장 케인을 찾아 나섰다. ??테미의 중심도시 하르엠은 갑작스럽게 번창하는 바람에 계획 없이 건물이 들어선 관계로 급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부분이 많이 보였다. 특히 위태롭게 보이는 건물의 구조나 아직 짓다가 말아서 지붕도 세우지 않은 채 뚜껑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장사를 시작하는 주점을 지나칠 때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났다. 가뜩이나 황폐한 황토로 인해 황사가 심해서 바람이라도 불면 누런 흙먼지가 사방 천지에 휘날리는 처지인데 지붕 없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도대체 저기서 장사를 해먹는 주인의 상판을 돈을 주고서라도 구경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무리 돈에 대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해도 아직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곳에서 식사를 하게 만드는 자들을 떠올리면 생각 같아서는 그자들의 머리를 갈라 뇌를 꺼내어 속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해부를 해보고 싶은 심정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이런 악질 상인들과 용병, 부랑아, 난민이 밀려드는 하르엠의 처지는 소문과는 다르게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황금이 샘솟듯 솟아나고 사방 천지가 돈이 쌓였으리라 생각하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이 하르엠으로 밀려들면서 아직 건실한 발전을 이루지 못한 이 신흥도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인구수를 넘어선 관계로 알게 모르게 끙끙 앓고 있는 중이었다. 도시가 포용할 수 있는 인원수를 넘어서 버린 까닭에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고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로 인해 도시의 거리는 전부 북적이다 못해 마치 10여 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닭장 속에 20-30마리를 한꺼번에 집어 쳐 넣은 것처럼 꽉꽉 미여 터졌다. 온통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인해 길을 걷는 것도 아니 몸을 움직이는 것도 무척이나 성가셔서 짧은 이동 거리라고 해도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걸리적 거려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쉼 없이 오고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 끼어 들어 움직이다 보면 웬만큼 주의를 하지 않을 시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치기 십상인데 원래가 성질 급하고 험한 용병들과 부랑아들, 그리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난민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종종 시비가 붙었다. 처음은 사소한 말다툼에 지나지 않지만 어느새 감정이 상하고 큰 싸움으로 이어지는데 하루에도 여기저기에서 곧잘 소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시비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는 사소한 말다툼과 욕설이 오고가지만 원체 신경을 긁는 말과 성질 더러운 자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말다툼은 금방 주먹이 오고 가는 싸움으로 번지는데 그 여파는 주위로 금방 확산 되서 순식간에 그 주변은 싸움터가 되어버린다.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폭발해서 생기는 현상인데 그 여파는 상당히 심했다. 처음에야 주먹이 오고 가는 실정이지만 성질 급한 자들이 병장기라도 꺼내들면 순식간에 살인이 벌어지는데 치안을 유지하는 자들이 전사의 부족 아슈리안 인들이기에 그들은 싸움에 대한 것은 무척이나 관대해서 서로가 검을 들고일어난 싸움에서 벌어진 살인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물론 상대가 약자이고 반항조차 하지 않은 가운데 일어난 일방적인 살인이라면 중죄를 묻지만 서로가 싸움을 했다면 그것은 정당한 결투로 인정해서 죄를 묻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다소 비논리적인 이유로 악질적인 경우에는 상대방을 자극하여 싸움을 일으킨 후 상대를 죽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데 피해자가 대응을 했다는 이유로 인해 가해자는 정당한 결투로 인정을 받아 처벌을 면한다. 그것은 아슈리안 인의 전사적인 기질에서 생겨난 오랜 전통으로 철저한 생존법칙에 의거하여 나온 것으로 약한 자는 보호하나 동정하지 않고 강한 자는 존경하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전사들의 논리였다. 아슈리안 인들은 전통적으로 약자에 관해 결코 동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전사로 자라난 아슈리안 인들이기에 강자를 숭배하는 정신이 강해서 약한 자는 철저하게 약자에 걸맞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대신 약자들은 철저하게 강한 자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나면 전면에 나서는 것은 무조건 강한 전사이고 약한 자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아니 참여 할 수 있는 권리조차 없다. 그만큼 그들은 전쟁에서 안전하다는 말이다. 대신 식량이라든지 그 밖의 물품, 약품 등에 있어 지원의 우선은 우선적으로 강한 전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당장에 약한 자가 눈앞에서 굶어 죽는다고 해도 식량 배급의 우선은 강한 자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대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전쟁터에 내놓는다. 언뜻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다소 모호한 논리인데 강한 자가 살아나야 더 많은 약한 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생겨난 논리였다. 반대로 강한 자에 대해 아슈리안 인들은 적이라 할지라도 지나칠 정도의 존경심을 보이는데 아무리 자신의 부모 형제를 죽인 자라고 할지라도 그가 자신을 능가하는 최고의 전사라면 그들은 복수 이전에 존경심을 우선적으로 갖는다. 그런 이유로 아슈리안의 최고 지도자라 할지라도 자신을 능가하는 부족의 최고 전사가 탄생한다면 지도자의 위치는 상당히 불안해진다. 부족에 존재하는 모든 전사들의 존경심은 지도자의 몫이 아니라 최고 전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부족의 최고 전사가 지도자의 위치를 요구한다면 아무리 최고 지도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자리를 내어놓아야 한다. 그것은 철저한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를 우선시 하는 아슈리안 인들만의 법칙인 것이다. 그들의 이런 전사적인 기질은 강자에게 끊임없는 도전하는 불굴의 전투 의지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 아슈리안은 대륙 최고의 전사 부족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아슈리안의 부족장 케인을 찾으러 나서는 우리는 북적이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몇몇 부랑아들과 시비가 붙을 뻔한 적도 있지만 상대를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카리스마 바이크가 있는 관계로 사소한 시비는 금방 무마되었다. 마치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불만을 해소하려는 듯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싸움을 일삼는 자들처럼 툭툭 지나가는 사람을 건들고 시비를 거는 폼들이 이 하르엠이 소문처럼 지상의 낙원이자 황금의 엘도라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하르엠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아슈리안의 부족장 케인의 소재를 찾던 중 나는 다른 거리보다 무척 넓어 보이는 대로를 지나치다가 하나의 광장을 발견했는데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광장 한 곳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기에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일행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했는데 가까워질수록 뜨거운 열기와 함성, 흥분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싸움인가?' 첫 번째로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은 싸움이었다. 사람들에게 저런 본능적인 열기를 발산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이나 돈에 굶주려 하르엠을 찾아온 용병이나 모험가, 난민이나 부랑아라면 그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황금이겠지만 이런 광장에 그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황금이 있을리가 만무하니 결론은 무척 좁아졌고 내가 내린 결론은 폭력이었다. 폭력.. 인간은 문명을 이루면서 사회라는 것을 만들었고 그 사회안 그 문명 안에서 도덕과 예의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교육을 통해 그들은 착하게 살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강요받으며 자라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사회로부터 인간의 여러 본성 중에서 오직 선한 것만을 극대화시키도록 강요받으며 살게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악한 것은 가슴 깊숙이 묻어두며 자제를 하고 살아가지만 아무리 감추려고 애를 써도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은 완전히 없앨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이 미워하고 증오하며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폭력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것은 문명의 교육을 통해 자신의 이성으로 막아 놓았던 잠재되어 있는 본성이 다른 존재의 폭력을 보면서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분출되는 과정인데 자신이 아닌 남의 폭력을 통해 그들의 이성은 자신의 폭력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싸움 구경을 좋아한다든지 붉은 피에 열광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인 폭력성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고 또한 언제나 그들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다. 저마다 폭력성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면서 교육을 통해 얻은 이성이라는 놈을 이용해서 자신의 가슴 한켠에 있는 잠재된 사악한 본성을 막아놓고 살지만 인간 본성의 일부인 폭력성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의 일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들 자신과 별개로 갈라놓을 수 없는 그들 자신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들이 폭력... 즉 싸움에 저렇게 열광하는 이유도 납득이 간다. 폭력에 대한 괴이한 논리를 펴면서 사람들의 무리에 다가선 나는 나의 예상과 틀리지 않은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흥분에 가득 찬 얼굴로 서로가 각자의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리를 지르는데 어떤 이는 지금이라도 끼어서 한판 붙을 요량인지 소매를 걷어올리고 팔을 휘두르다 앞쪽에 있던 사람의 뒤통수를 가격해서 시비가 일어났다. 폭력성에 도취된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흥분에 들뜬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는 이 난동을 주도하고 있는 자들의 정체가 궁금해서 슬쩍 엿보았는데 일대 다수의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숫자적인 열세 때문에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다수의 사람들과 맞서는 인물을 자세히 관찰하고는 어떤 느낌이 들어서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켜본 그 사내의 모습은 무척이나 야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사내라는 것이다. 대략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나이인데 어떤 동물의 가죽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무척이나 질긴 가죽으로 만들어진 듯 한 가죽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고 약간 흥분된 눈길로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다수의 사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사내의 눈빛은 무척이나 개성이 강해 보이고 강한 호승심과 즐거움이 스며 있었다. 이런 상황을 즐긴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사내는 그런 표정으로 다수의 사내들을 바라보는데 사내의 모습을 미루어보아 이곳 테미의 원주인인 아슈리안 인이 분명해 보였다. 전사의 부족이라는 명칭답게 붉은 태양에 그슬린 듯한 구리 빛 피부에 온갖 싸움으로 다져진 듯 해 보이는 탄탄한 근육, 호전적이면서 근성 있는 눈빛 등은 그가 전사의 부족이라는 아슈리안 인임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사내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야성미는 나의 눈을 끌고도 남음이 있었다. 특히 사내의 손질하지 않은 듯 해 보이는 길게 풀어헤친 흐트러진 머리와 대치하고 있는 무리들을 향해 보여주는 엷은 미소는 마치 먹이를 찾아 초원을 헤매이다 드디어 먹이를 발견하고 포효하는 한 마리 사자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의 기세는 맹수의 왕이라는 사자에 비할 것이 못되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몰라도 그와 대치하는 사내들의 모습이 불쌍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 사내와 대치하는 자들은 모두 합쳐 십여 명에서 몇 빠지는 숫자인데 대부분이 뜨내기 용병처럼 보였지만 그중 하나는 그 커다란 체구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장신의 거구였다. 대략 얼추 보아도 2미터 이삼십은 훨씬 넘어 보이는 거구에 어울리는 대단한 체격인데 보통의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커 보이는 바이크 조차도 그 사내의 옆에 서면 작아 보일 정도로 사내의 체구는 대형 몬스터 특히 오우거나 트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애송아... 너 혼자서 우리 모두를 상대하려고 하다니 배짱한번 좋구나!" 약간 헐렁해 보이는 상의를 걸치고 삐딱한 자세로 눈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예전에 보았던 동네 양아치 같은 느낌을 주는 자는 다수의 무리 중에 껴 있었다. 사내는 보기에 서른은 훨씬 넘어 보이는 나이에 약간 호리호리한 체구인데 아슈리안족 사내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자신의 등뒤에 늘어서 있는 무리들을 믿는 폼이 분명했다. 그의 그런 말투에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엷은 미소로 위장한 한 마리 야수의 눈빛이 순식간에 살벌하게 바뀌었다. 단지 약간의 눈빛의 변화이지만 분위기는 삽시간에 긴장감에 젖어들었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나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았다. "케인... 뭘 망설여. 시간 없다고..." ------------------------------------------------------------------------------- 역시나 또 오랫만에 뵙는 별빛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무척 바쁜 프로젝트 인데다가 제가 봉사라는 미명아래 이것 저것 하다보니 글을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군요. 거기다가 출판 문제까지 겹쳐서 처음부터 글을 다시 쓰려고 하니 글 올리는 속도가 더욱 느려졌습니다. 일단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야 하기때문에 수정본은 올리지 못하고 잠시 수정되는 상황에 대해 잠시 맛배기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주인공의 성격이 강렬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의 성격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판타지 세계로 오기전 현실에서 무척이나 많은 아픔을 겪은 인물로... 아픔을 감춘 가운데 남에게 웃는 얼굴을 가진 이중 인격으로 말입니다. 또한 마황의 권능이 대폭적으로 삭감되어 중간계의 마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닌 마계의 군대를 중간계로 소환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됩니다. 그게 무슨 삭감이냐고요? 문제는 마족의 군대를 중간계로 함부로 호출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바로 신전과 정령계와 관련된 이종족들이 들고 일어나 주인공을 공격할테니... 말하자면 그림의 떡이라고 할까요! 벨제뷔트에게 얻은 두명의 충복 바이크와 아론의 능력이 처참하게 깍입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9서클 대마법사에서 현실적인 능력치로... 물론 마족도 아니고 죽은 인간의 몸에 마족에 영혼을 바친 두 인간의 영혼을 넣은 것이죠. 가이가의 경우에도 마계의 마족이 아닌 지혜와 대지의 여신 라르샤를 섬기는 신관으로 선과 악에 대한 고민으로 악을 위험함을 체험하기 위해 마계로 들어선 괴짜 사제로 묘사됩니다. 물론 바이크와 아론의 성격도 약간씩 달라집니다. "왜 그들을 감싸주시는 겁니까? 그들은 빛과 반대되는 악의 종자입니다. 신의 분노가 두렵지 않습니까?" "그들은 나의 가족이다. 두려운 것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가족을 잃는 것이다." "왜 그를 쉽게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는 당신에게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우정이란 두 글자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한마디의 말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 겁니까?" "죽음이 두려워서이다. 내 눈앞에서 쓰러지셨던 그분들의 눈빛이 생각나는 것이 두려워서이다." "그들은 세상의 절반을 움켜쥐고 있는 자들입니다. 무엇 때문에 저들과 대적하려고 하십니까?" "내가 칼을 든 이유는 영웅이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통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자비심이 생겨서도 아니다. 단지 내 추억 속에 깊게 새겨둔 아픔 때문이다. 가진 자들... 탐욕에 물들어 다른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왜 저들을 놓아주시는 것입니까?" "이제야 용서를 배웠기 때문이다. 복수가 어리석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리석음이 세상을 피로 물들였구나. 이 대화는 아마도 글의 서문이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열쇠가 될 것입니다. 25장. 전사의 부족 아슈리안 분명히 귀에 익은 이름이었는데 '내가 찾던 사내가 저 사내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름이 똑같다고 해도 상대가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찾던 상대는 아슈리안 족의 대족장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갖고 있는 인물이니 이런 길거리에서 저런 허름한 삼류 용병들과 싸울 처지는 아니었기에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버렸다. 하여간 어쨌거나 그 사내는 내 흥미를 유발시키게 하는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케인이라 불린 사내는 시간이 없다는 소리에 어깨를 으쓱하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는 전면에서 주둥이를 나불거리던 사내에게 고개 짓을 하며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려 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상대를 무시하는 모습이었기에 구경하던 사람들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이제 결과는 싸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건방진 애송이 자식..." 케인에게 처음 달려든 사내는 그에게 먼저 말을 꺼냈던 그 삼십대 후반의 용병 사내였다.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빠른 동작으로 달려들더니 오른쪽 주먹을 휘둘러 케인의 얼굴을 노렸는데 무척 짧은 궤적을 그리는 폼이 싸움 꽤나 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빠른 공격에도 불구하고 케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고 그는 슬쩍 고개를 꺾으며 그의 주먹을 너무도 간단하게 피해내고 있었다. "약해!" 고개를 슬쩍 돌리던 케인이 처음으로 꺼낸 한마디와 더불어 터지는 불꽃은 정확하게 말하면 케인에게 달려들었던 사내의 두 눈동자에 비친 불빛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무쇠같이 단련된 오른쪽 주먹이 그 사내의 복부에 꽂혔을 때 사내는 "악" 하는 비명조차 지를 여유도 갖지 못한 채 허리를 숙이더니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지금 그의 상태가 어떠한지는 대강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 새끼가..." 자신의 동료가 한방에 거의 초죽음이 되어 버린 모습을 지켜보던 나머지 용병 사내들은 욕을 하더니 하나, 둘 케인에게 달려들었다. 두 번째로 달려든 사내는 약간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는데 짧은 반팔에 드러난 팔뚝에는 보기만 해도 흉측해 보이는 상처들이 아로 새겨져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신속한 동작으로 케인의 우측을 노리며 파고들었는데 그의 움직임이 일어나자, 다른 한 사내가 그와 연계하여 케인의 좌측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두 사내의 합공은 나름대로 이미 여러 번 연습을 한 모양인지 짜임새가 있어 보였는데 케인이라는 사내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공격이 영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는 피식 웃음을 짓더니 우측으로 달려들던 사내에게 빠른 속도로 덤벼들었다. 케인의 우측을 공략하려던 사내는 케인이 자신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자 처음 대하는 반응이었는지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이 영력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동료인 사내와 연계한 이 합공에서 이런 반응을 보인 상대를 만나지 못한 모양이 분명했다. 싸움에서 당황한 사내는 이미 케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케인은 마치 어린아이 과자를 빼앗듯이 상대의 명치에 주먹을 가볍게 꽂아놓고는 자신의 동료가 어이없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당황해하는 좌측의 사내를 쉽사리 공략했다. 싸움은 마치 짜여진 각본마냥 무척이나 손쉽게 케인이라는 사내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는데 어느새 케인과 대적했던 십 여 명의 사내중 제대로 서있는 인물은 서넛을 넘지 않았다. 무척이나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한방에 하나씩 상대를 바닥에 눕히는 것이 처음 시간이 없다고 소리친 그의 동료의 이야기를 의식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바보 같은..." 마치 큰 드럼통에 대고 소리를 지르면 이런 소리가 날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큰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신장이 2미터 2-30은 훨씬 넘어 보이는 거구의 용병 사내였다. 마치 오우거나 트롤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용병 사내는 뒤쪽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하나, 둘 케인에 의해 쓰러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 용병 사내의 등장은 지금까지 너무도 쉽게 승부가 나서 식상했던 관중들의 호흡을 가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들은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꼭 움켜쥔 두 주먹과 어느새 축축한 땀이 베이고 있는 손바닥의 변화조차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였다. 나도 유독 내 눈길을 끌었던 그 거구의 용병 사내 등장에 이채로운 눈빛을 보이며 이후의 상황을 나름대로 짐작했다. 물론 당연한 것이지만 케인이라는 사내와 저 거구의 용병 사내는 서로 싸울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그 거구의 용병 사내가 나서지 않은 것은 그가 겁을 먹어서도 아니고 그가 싸움을 하지 못해서도 아닐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이 싸움에 참가하지 않아도 상대를 땅바닥에 눕힐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싸움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전적으로 틀렸고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예상외로 바닥에 드러눕자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여어... 키로! 이번이 스물여덟 번째야." 관중 중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고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소리가 들린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는 첫눈에 보아도 용병이라는 사실을 금방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사내가 서 있었는데 왼손에 술병을 든 채 발그레한 인상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꽤 취기가 오른 모습이었다. "무슨 말이야?" 관중 중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의문을 대변했고 그 대답은 쉽사리 들려왔다. "어제까지 키로 일당과 시비가 붙어서 키로에게 맞아 죽은 녀석이 모두 합쳐서 스물일곱이야. 이제 저 아슈리안 사내가 스물여덟 번 째겠군." 대답을 한 사내는 케인의 죽음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모습이 역력했고 주위에 있던 자들도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뭐 외관상으로도 케인이라는 사내와 저 키로라는 사내와 비교하면 역시나 키로라는 거구의 사내의 손을 들어주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싸움의 승부는 단지 외적인 요인만으로 결정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주위의 반응에 동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없다고..."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 두 마디의 말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 두 마디의 말에 거의 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약간 흐트러진 모습으로 서있던 케인의 입에서 나온 두 마디의 말에 앞으로 나섰던 키로는 얼굴이 시뻘개 지더니 "쿵쿵" 하는 발 울림을 보이며 성큼성큼 케인에게 다가왔다. 한걸음이 보통 사람의 두 걸음은 충분히 될 듯한 보폭이었기에 그와 케인의 거리는 약간은 멀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다가와 버렸다. "터진 주둥아리라고 함부로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여주마!" 이미 살인을 결심한 듯한 키로의 음성은 무척이나 잔인하게 들렸는데 이미 사방의 관중들은 케인의 죽음을 상상하고 있는 듯 보였고 몇몇 이들은 그 목소리에 어느새 주눅이 들었는지 자신들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선 자들도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위의 반응과 다르게 정작 상대인 케인의 반응은 마치 옆집의 개가 신나게 떠들어서 무척이나 짜증이 난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시큰둥한 반응에 살기까지 풀풀 날리며 케인을 노려보았던 키로의 모습이 우습게 비추어졌다. "끝났나? 그럼 하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5장. 전사의 부족 아슈리안 ------------------------------------------------------------------------------------- 아무래도 시점 변화를 주어야겠습니다. 제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글을 썼던 이유는 제 나름대로 묘사부분이 약한 저의 약점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저는 묘사보다 서술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보니 묘사부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면서 부족한 묘사부분을 만회하려고 했던 것인데 여러 가지 제약이 참 많군요. 그래서 과감하게 지금까지 서술했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벗어버리려고 합니다. 중간에 바꾼다고 비난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부터 쓰는 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차후 수정 본은 아마도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변화하리라 생각합니다. --------------------------------------------------------------------------------------- "와아아..."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 퍼지는 함성은 흥미진진한 싸움을 갈망하고 있는 구경꾼들의 입에서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자신과 비교해서 무척이나 왜소한 물론 이것은 키로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료우나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케인의 체격은 무척이나 건장하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하여간 분명한 것은 현재 키로의 입장에서는 케인의 체격은 그리 크지 못했고 저런 체구의 사내가 무엇을 믿고 저렇게 방자하고, 오만하게 구는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맞아 죽은 자들 중에는 케인보다 덩치도 크고 경험도 많았던 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들은 저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던 자들이었는데도 자신에게 케인만큼 저런 오만무도함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건방진 자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통에 케인이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씹는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또다시 키로는 그런 말을 내뱉으며 오른팔을 들더니 케인의 머리를 목표로 하고는 그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손바닥을 쭉 펴서 어린아이도 아닌 성인의 머리통을 한꺼번에 감싸 쥘 정도라면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가? 지금 케인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키로의 손바닥은 정말 저게 사람의 손이 분명한지 의심을 갖게 하기 충분할 만큼 컸다. "휘이잉" 하는 바람 소리도 그렇고 만약 저 커다란 손바닥이 자신의 머리를 때린다고 생각하면 최소한 목뼈가 꺾여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 2-3미터는 충분하게 날아가기 충분하리라 생각이 드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실히 드러났다. 그 만큼 무섭고, 위력적인 키로의 공격에 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움찔하고 몇몇 이들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느려..." 도대체 이 사내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정말 남의 속을 긁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듯 보였다. 그것도 단지 몇 마디 말로 말이다. 저 거구의 사내 키로의 공격을 피하는 거야 어느 정도 수련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속을 긁는 것은 일반적인 수련 정도로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 말인 즉은 그런 능력은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다. 순간적으로 료우는 저 사내의 선천적인 능력이 무척이나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남의 속을 긁는 그 성격이 부럽다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부럽다는 말이다. 상대를 흥분시키는데 그만한 것도 없었고 흥분한 적은 상대하기 무척 편하기 때문이다. 키로 자신은 모르고 있겠지만 그는 케인의 몇 마디 말로 인해 무척이나 흥분하여 평소의 예리한 공격을 보이지 못한 채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의 현재 심정은 저 건방진 자식을 피떡으로 만들어 두고두고 짓누르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였다. 평소 적이라고 생각되는 상대를 만나면 잔인하게 죽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만큼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죽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케인은 키로의 속을 박박 긁고 있었다. 무모하리만치 달려드는 키로의 모습은 평범한 구경꾼들이야 케인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겠지만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는 자라면 그가 무척이나 불리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휘이익..." 머리를 살짝 숙여 자신의 머리 위 몇 센티 간격으로 살짝 스쳐 지나가는 키로의 오른 손을 힐끗 쳐다본 케인은 묘한 미소를 짓더니 순간적으로 땅을 박차며 키로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 만 있어서 상대가 겁을 먹었다고 지레짐작하며 방심하던 키로는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자신의 품안으로 뛰어드는 케인의 모습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의 맷집을 자신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방심에 대한 실책을 인정하는 것이지 케인의 공격에 겁을 집어먹은 것은 아니었다. "퍼억..." 키로의 품으로 파고드는 동시에 일 권을 날린 케인의 오른 주먹은 정확하게 키로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슴을 중심으로 근육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그 사이의 아래쪽 그러니까 가슴뼈 밑을 만져보면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곳으로 흔히들 사람들이 급소라고 말하는 명치에 주먹이 작렬한 것이다. 인체의 치명적인 급소중 하나로 알려진 명치에 상대하던 용병들을 한방에 기절시키는 케인의 주먹이 작렬했다면 아무리 상대가 거구이고 뼈가죽이 두껍다고 해도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보통의 사람이라면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이승을 하직할 수 있는 그런 치명적인 급소가 명치이다. 케인의 공격이 키로의 명치에 작렬했을 때 료우를 비롯한 몇몇 싸움에 대한 식견이 있는 자들은 케인의 승리를 예감했다. "살짝 비틀었군요." 료우는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웬만해서는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바이크임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료우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 외에는 평상시 거의 입을 열지 않는 그가 입을 열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기에 료우의 놀라움은 그만큼 컸다. 물론 자신의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바이크도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지만 그것도 매우 적은 편이었기에 바이크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란 매우 힘든 편이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비틀었습니다. 지나친 흥분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몸은 어느 정도 반응을 하는 것이 쓸만할 것 같습니다." 바이크의 말을 경청하던 료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보였다. 료우가 이렇게 미소를 짓는 이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 주변의 인물들 특히 아론이나 바이크, 가이가등의 성격이 점점 바뀌어 지고 있다는 것을 바이크의 말을 빌어서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투 이외에는 무신경했던 바이크의 경우 산적패들 중 재능이 뛰어난 자들을 가르치면서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이 동했는지 재능이 있는 자이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얻으려는 경향을 보였는데 용병대의 인원이야 한정되어 있어 이미 각자 스승이 있는 터라 더 이상 가르칠 인재가 없었다. 그래서 외부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조금씩 생겼는데 바이크의 눈에 들어 료우의 용병대에 새롭게 들어온 인물들도 벌써 다섯이나 되었다. 바이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료우의 시선은 어느새 케인에서 키로로 바뀌었다. "녹녹치 않다는 말인가?" 케인은 명치에 자신의 주먹을 맞은 키로가 주춤할 뿐 쓰러지지 않자 약간 놀란 모습을 보이더니 의욕적인 시선을 발했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감과 호승심이 일어나는 것이 아슈리안 족의 특성중 하나이다. 그는 전사의 부족이라 일컬어지는 아슈리안 족의 제일 전사로 자부하는 사나인 만큼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투쟁의식은 더욱 강해지는 당연하다. "좋아!" 무언가 결심한 듯 보이는 케인의 입에서 터진 한마디와 함께 그의 동작이 갑작스럽게 빨라졌다. 그전까지는 자신의 전력을 다하지 않은 듯 보이는 그의 빠름이란 방심한 사이에 케인에게 명치를 얻어맞은 키로의 흥분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아니 자신의 방심으로 급소를 맞은 순간 이미 키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흥분을 진정시킨 채 냉정함을 되찾고 있었다. "잊고 있었어." 중얼거리는 키로의 얼굴은 조금 전까지 흥분 때문에 붉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냉정한 안색을 되찾고 있었고 그의 자세는 이미 갑작스럽게 빠른 속도를 내는 케인의 그림자를 뒤쫓고 있었다. "본격적인 대결인가?" 두 사람의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료우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고 옆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바이크의 고개가 크게 움직였다. "쐐애액..." 마치 허공을 가르는 화살의 궤적처럼 극쾌(極快)의 움직임을 보이는 케인의 오른 주먹은 정확하게 키로의 좌측 옆구리를 노렸는데 명치에 맞고도 멀쩡한 키로의 맷집을 생각하면 과연 저것이 통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키로는 케인의 공격에 슬쩍 좌측 다리를 뒤로 빼더니 다가오는 케인의 목을 움켜쥐려고 팔을 놀렸다. 마치 영화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무협 속 고수들의 빠른 몸놀림을 보는 것처럼 그들의 동작은 신속하였고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위험한 공격의 연속이었다. "우아... 대단하군!" 사방에서 터지는 감탄은 조금 전까지 마구잡이식의 싸움만을 목도하며 붉은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기고, 상처와 죽음만을 즐겼던 사람들에게 '진정한 싸움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줄 만큼 화려하고, 격렬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모조리 빼앗고, 그들의 심장마저 제압하고 있었다. 호흡조차 멈춘 채 케인과 키로의 싸움을 관전하는 무리 중에 물론 료우 일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각오..." 순간적으로 터진 외침의 출처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금방 주인이 누구인지 밝혔고 사람들은 커다란 체구의 키로가 허공을 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2미터 30센티의 오우거를 연상케 하는 거구가 무언가에 맞아서 퉁기어 나온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로 그 일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보디 체크로군." 료우는 방금 전 일어난 상황에 대해 놀란 눈초리로 그렇게 말했고 옆에 있는 바이크의 고개가 잠깐 끄덕였다. "순간적인 탄력을 빌어 자신의 체중보다 훨씬 무거운 상태를 퉁겨낸 것도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파워가 없으면 저런 공격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바이크의 부연 설명을 들은 료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를 바닥에 눕힌 케인을 바라보았다. 키로는 케인의 공격에 정신을 잃었는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케인은 고개를 한번 앞으로 숙이다가 크게 동작을 보이면서 고개를 쳐들어 싸움 때문에 흐트러트린 머리카락을 나름대로 정리하더니 미련도 없다는 듯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아직까지 싸움 때문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상대한 키로는 케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지게 만들만큼 대단했던 모양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공지 안녕하세요. 별빛사랑입니다. 일단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다 지우고 수정본을 올렸는데 제가 게을러서 다시 수정본을 지우게 되었네요. 예전에 올렸던 글을 지금부터 계속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연중에서 벗어나 이틀에서 사흘에 한번 꼴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약속은 최대한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예전에 잠깐 올렸던 수정본은 책으로 출판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마루출판사와 계약이 되어 출판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모두 제 글을 사랑하시는 여러 독자님들의 덕분이라 고개를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책으로 나올 부분에서 등장인물의 성격과 구성이 약간 바뀝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이가 다크프리스트가 여자가 된다는 것이죠. ^^; 가이아라는 이름으로... 18세의 귀여운 소녀랍니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많이 바뀌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능력치도 약간은 수정되었습니다. 초반부터 뭔 치킨을 만들려고 했는지... 에휴... 뭐 그렇다고 약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고 약간의 제약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지금의 설정과 비슷해 지겠지요.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변화면서 약간 이상한 부분도 있겠지만 이해하시고 지웠다가 수정본 올렸다가 다시 지운거 올렸다가 하는 저의 잘못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과의 뜻으로 열심히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고 저는 다음 글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되세요. 곧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5장. 전사의 부족 아슈리안 케인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료우는 아차하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멀어져가는 케인에게 뛰어갔다. 급작스런 반응이라 다른 일행들은 영문을 모른 체 료우를 뒤를 따랐고 료우는 케인의 뒤쪽으로 접근하여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뭐...?" 뒤에서 누군가 접근하는 기운을 눈치 챈 케인은 홱 하니 몸을 돌려 접근하는 상대를 향해 물었는데 아직까지 키로와의 싸움으로 인해 투기가 남았는지 그의 말투며 기운은 접근하던 료우의 몸을 순간적으로 경직되게 만들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투기인가?' 료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케인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약간 굳어진 몸을 슬쩍 움직이며 풀었다. 무의식적으로 케인의 반응에 그의 몸도 반응한 것인데 멀리서 보았을 때와 가까이서 케인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상당히 틀렸다. 일단 케인의 외모는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이지만 그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노회함이 살짝 엿보였고, 흔히 볼 수 없는 사내의 강인한 인상과 강렬한 외모가 그 뒤를 받치고 있었다. 누런 황금색으로 길게 늘어트린 사자의 갈기를 연상케 하는 긴 장발도 그러하거니와 가만히 나두어도 상대를 향한 강렬한 투지를 불태우는 사자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혹시 그가 맹수의 왕이라는 사자의 현신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료우가 케인의 투기에 긴장하고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반응을 보일 쯤 케인은 말을 채 잇지도 못하며 상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틀린 것이 있다면 그 주인공이 료우가 아닌 료우의 뒤쪽으로 다가선 사내라는 점인데 그의 시선은 료우의 우측에 선 바이크에게 잔뜩 고정되어 있었다. 서서히 타오르는 투지가 케인의 몸을 다시금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강한 자를 만나면 필연적으로 반응하는 아슈리안 족 특유의 본능적인 감각인데 아슈리안 족은 본능적으로 강한 자를 찾을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을 갖고 있었다. "흠..." 료우는 케인의 투지가 서서히 타오르는 것을 느꼈는지 짧은 신음을 흘렸는데 긴장하는 상대가 자신이 아닌 바이크라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상대를 쳐다보지 않은 다는 것 자체는 자신의 존재감을 무력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고, 자신보다 뒤쪽의 바이크를 예의 주시한다는 것은 료우에게 약간의 자격지심마저 불러오게 만들었다. 드래곤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내 바이크가 항상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은 료우에게는 무척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조금씩 묻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항상 좋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이 조금씩 상실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강한 의문을 불러오게 만들고 급기야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강한 부정을 갖고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이 아론과 바이크의 존재가 료우에게는 무척이나 커다란 장점이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숨겨진 단점은 분명히 존재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료우는 그중에서 가장 큰 단점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강해지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는...' 케인의 반응으로 인해 강해져야 할 이유를 찾는 료우의 모습이 살짝 내비쳤다. "무슨일인가?" 바이크로 인한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는지 케인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는 냉막한 표정을 짓더니 굳은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케인의 물음으로 료우도 자신의 결심을 뒤로 한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케인이라는 사내를 찾고 있어서... 당신과 동명이더군." "따라와라!" "으응...?" 료우는 케인의 반응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케인이라는 사내를 찾는 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따라오라는 대답 때문이다. 케인이라는 이름이 한둘도 아닐텐데 설명도 듣지 않고 따라 오라니 약간은 상식 밖의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료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휘적휘적 앞으로 나가는 케인의 모습에 료우는 말문을 잊은 채 그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케인의 옆에는 어느새 붙었는지 한 사내가 곁으로 다가와 보조를 맞추며 걷고 있는데 조금 전 용병들과 싸움하기 전에 시간이 없다고 소리친 사내가 분명했다. 무척이나 어색한 모습의 일행은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한참을 걸었는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규모가 상당히 커 보이는 2층의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건물은 주위의 다른 건물과 비교해서 무척이나 허름하고, 볼품없이 보인다고 하는 편이 옳았는데 상당히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처럼 보였다. 검붉은 황토로 쌓아 올린 듯한 담 벽 하며 허름한 대문하며 단지 눈길을 끌게 만드는 것은 다른 건물보다 상당히 크다는 것과 현관으로 보이는 곳에 두 사내가 번뜩이는 눈으로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지키는 자들의 모습을 살피면 이 건물이 보기보다 중요한 것임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다른 건물에 비해 허름한 것이 과연 이런 건물이 중요하기는 한건지 의문스러울 수 있었다. 어쩌면 창고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봄직하다. 케인과 일행이 그 허름한 건물의 문 앞에 서자 두 사내 중 한 사내가 재빠른 동작으로 현관의 문을 열어 주는데 케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문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그의 동료가 들어가는데 따라오라는 말 한마디 없는 케인의 행동에 어색해진 료우는 쓴웃음을 지우며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현관을 통해 들어선 건물의 내부는 무척이나 큰 홀이 먼저 눈에 비쳤는데 마치 큰 주점을 들어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널찍하게 퍼져있는 탁자위로 술과 안주가 널려있고 그 주위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호쾌한 웃음과 소리를 지르며 즐기고 있었다. '주점 이었나?' 료우는 얼핏 케인이 안내한 곳이 주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주점입구에 경비를 선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돼서 곧 잊어버리며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술을 마시는 자들은 하나같이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병이나 부랑자가 아닌 아슈리안 전통의 부족민들 같았다. 짐승의 가죽으로 엮어 만든 가죽옷이며, 웃통을 벗어 제치고 나름대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던져줄 근육질하며, 보통의 사람보다 커 보이는 몸집하며 말이다. "여어... 벌써 온 거야? 재미가 없었나 보지." 술판이 벌어진 홀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려고 홀을 통과하는 케인의 옆쪽으로 한 사내가 보통의 것보다 두 배쯤은 거뜬히 커 보이는 술잔을 들고 그렇게 물었다. 그는 이미 상당히 많이 마신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의자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 그렇게 물었는데 케인은 그의 질문에 대꾸할 마음이 없는지 그의 이마를 오른손으로 누르며 강제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마시다 죽어." 사내들의 틈바구니를 지나 이층으로 오른 료우 일행이 마주친 것은 1층의 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느낌의 복도였는데 마치 살아있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로 복도 좌우에 뭔가로 꽉꽉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료우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들은 하나같이 전사를 형상화 시킨 조각상이었는데 하나같이 투쟁심이 가득 찬 얼굴로 상대를 누르는 듯한 인상이 가득했다. 만약 한밤에 이런 통로에 홀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약간은 공포감에 젖을 듯한 분위기였다. 복도의 좌우에는 몇 개의 문이 있는데 아마도 숙박을 할 수 있는 방문으로 보였다. 그리고 거의 복도의 끝쯤에 도착했을 때 케인은 오른쪽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그의 동료가 따라갔고 료우 일행도 그 뒤를 쫓았다. 방안으로 들어선 료우가 먼저 발견한 것은 무척이나 많은 시선들이었다. 대략 스무 개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시선은 새로운 불청객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에 젖어 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건장한 체구의 젊은 아슈리안 전사들로 보였다. 물론 그 중에는 예외가 있어 한 노인이 유독 료우의 눈을 끌었다. 대략 70대 후반쯤 들어 보이는 노인의 인상은 젊었을 때 한참이나 많은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으리라 생각되어 지는 모습이었다. 노안이지만 강인한 인상과 얼굴 하나하나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이 즐비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강인한 인상과는 별개로 오랜 경험을 겪으면서 얻어진 현명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는 예전 파미르의 외교관 뉴먼을 농락했던 아슈리안의 대장로 켈라힘이었다. "저들은 누구 입니까?" 한참 동안 마물의 숲 원정에 대해 여러 부족의 전사들과 회의를 하고 있던 켈라힘은 자신들의 회의 장소로 불쑥 들어온 케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을 보고는 약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부족의 미래에 대한 향방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 부족의 최고 책임자라는 족장이 불참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웬 불청객까지 회의석상으로 데리고 오다니 아무리 젊고 거칠다고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족장인 케인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기에 켈라힘은 케인의 회의 불참보다 중요한 회의석상에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의 존재를 꼬투리로 잡아 족장의 행동을 제약하려고 하였다. "몰라!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툭하니 던지는 대답에 켈라힘의 입은 다물어지지 못했고 소리는 못 내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물론 자리에 있던 다른 자들의 얼굴도 멍청한 표정에 더해서 눈이 커지는 것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료우는 켈라힘의 질문과 케인의 대답에 어이없어 피식 웃음을 지었고 턱하니 중앙의 자리에 앉아 탁자위에 발을 올려놓고 고개를 까닥이며 자리를 권하는 케인의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척이나 당돌하면서 막무가내고 행동을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판단하는 중이었다. "나를 왜 찾았지?" 포기한 듯 자리를 잡은 료우를 향해 케인의 질문이 던져졌고 료우는 자신이 찾고 있던 사내가 이 막무가내 젊은 친구임을 깨닫고는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보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다고 집을 뛰쳐나와 자신의 동족을 사냥하려던 네오와 쌍벽을 이루는 엉뚱한 면을 갖고 있는 사내처럼 보였다. 한편으로 건방지면서 한편으로 당돌한 모습을 갖고 있는 사내로 말이다. "마물의 숲!" 간단의 대답이 던져주는 파장은 상당히 컸는데 질문을 던진 케인 보인보다 옆에서 한동안 충격에 말을 잃은 켈라힘이 반응이 더 컸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켈라힘은 료우의 대답에 충격에서 벗어난 반응을 보이더니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료우에게 달려들 듯 행동을 취하더니 입을 열었다. "숫자는...?" "350" "350? 3만 5천... 아니 3천 5백이 아니고..." 다시금 료우의 대답에 충격을 먹었는지 켈라힘은 한동안 말을 잊었고 그곳에 있던 다른 자들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할말을 잊었다. "하하하... 350이라!" 혼자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료우의 대답에 큰소리로 웃는 친구는 역시 엉뚱한 족장 케인이었다. 마물의 숲 원정에 나름대로 파미르에서는 제국의 기병대를 마법으로 쓸어 버렸다는 용맹한 용병단 악마의 전사 용병단을 비롯해서 임의로 용병대와 용병을 붙여주기로 합의가 되었고 아슈리안 족은 나름대로 최소한 1만 이상 아니 적어도 5천 이상 규모의 용병대가 오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특히 악마의 전사 용병단은 나름대로 소문이 과장되어 실버급에서 골드급으로 용병단의 실력이 부풀어지고 숫자도 300에서 단숨에 5천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겨우 350이라니 켈라힘이나 다른 자들이 할말을 잊어버린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를 농락하는 것이냐?" 한참동안 큰소리로 웃는 케인의 웃음을 뚫고 나오는 뾰족한 호통은 켈라힘의 입에서 터져 나왔고 그는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료우를 바라보았다. 켈라힘의 눈길을 받은 료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켈라힘을 응시했고 그의 그런 반응에 켈라힘의 분노는 더해갔다. "겨우 350을 붙여 주면서 마물의 숲 원정을 권유하다니 파미르 왕국의 귀족 놈들이 아예 우리를 몰살 시키려고 작정을 했구나!" 켈라힘의 분노는 멀리 있는 파미르 왕국의 귀족보다 가까이 있는 용병대장 료우에게 쏟아졌고 료우는 켈라힘의 분노가 영 달갑지가 않았다. 5일 동안 죽어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달려온 것도 나름대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료우였다. 만약 자신을 비롯해서 원래의 일행만 있었다면 파미르 왕국이나 용병 길드에서 협박을 한다고 해도 이곳까지 먼 길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도리어 그들에게 큰 것 한방먹이고 다른 곳으로 튀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350명의 목숨이 달려 있고 그는 그들의 생사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물론 용병대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해 파미르 왕국과 용병 길드의 압력을 피할 수도 있지만 대륙에 두루 깔려있는 용병 길드의 이목으로 모아 더 이상의 용병 노릇은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용병이 아닌 다른 것을 하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지금 료우의 밑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산적 노릇을 하다가 드디어 사람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있기는 했지만 산 것이 아니었고 단지 죽지 못해서 발버둥 친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고향에서 도망쳐 산적이 되었고 죄를 지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들은 료우 일행을 만나면서 용병이 되고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행복을 빼앗고 싶지 않은 것이 료우의 심정이었다. "부족한 건가?" 다른 자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물음이었지만 용병단의 진정한 힘을 알고 있는 료우에게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 9서클 대마법사, 용언을 받지 못했지만 소드마스터 실력의 드래곤등등 어떻게 보면 과분한 전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실력을 갖고 있는 용병단이 료우가 이끄는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자신이 이끌고 있는 용병단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하... 충분해! 충분해... 숫자야 모자라면 채우면 그만이고 실력 없는 것들 수만보다는 실력 있는 몇 백이 더 쓸모가 있지. 그리고 부족한 숫자로 겁먹을 우리들이 아니라고!" 큰소리치며 켈라힘과 료우의 충돌을 막은 이는 케인이었고 그는 더 이상의 불만은 용납하지 않는 다는 의지를 보였다. "부족한 숫자의 용병이야 여기서 채워도 그만이야. 널린 것이 용병들인데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고 또 어중간한 용병들은 많아보아야 우리 전사들의 앞길을 방해할 뿐이야. 진정한 실력을 가진 자들로 이루어진 용병대 하나만으로 이번 원정은 충분해." 못을 박아버리는 케인의 말에 다른 자들의 눈이 커졌다. 전쟁에 관련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을 켈라힘에게 일임하던 케인의 예전 모습과는 다른 반응 때문이기도 했지만 겨우 350의 인원으로 구성된 용병단 하나를 데리고 저 공포의 마물의 숲을 원정을 한다는 말에 놀랐기 때문이다. ------------------------------------------------------------------------------------------- 오랫만에 올리는 글이죠. 열심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량은 아니고 연참도 아니지만 꾸준히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내일부터 시작되는 주말 잘 보내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6장. 마물의 숲 26장. 마물의 숲 마물의 숲 원정을 착수한 아슈리안 부족의 원정단 규모는 대략 5만 정도로 추산되며 이 숫자는 아슈리안 부족 전체 전사들 수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거의 대부분의 아슈리안 부족의 전사들이 참여한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만큼 엄청난 규모의 원정군은 대부분 아슈리안 부족의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정군 일부만 용병대로 숫자를 채웠는데 처음에는 케인의 주장으로 350명으로 이루어진 악마의 전사 용병단 만을 데리고 가려고 하다가 켈라힘의 반대에 부딪쳐 하르엠을 비롯한 테미 전역의 도시에서 대대적인 모집을 통해 일만의 용병단을 구성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테미 전역의 도시에서 일만의 용병을 모집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일단 원정을 가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닌 마물의 숲인 바에야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고 보통의 용병에게 주는 계약금과 급여보다 최고 다섯 배를 불러서야 모집이 가능했다. 그것도 보통의 용병이 아닌 돈 때문에 모여든 부랑자와 난민들이 주를 이루어 숫자만 채워진 용병단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물론 용병을 고용하는 비용은 전적으로 파미르 왕국에 청구하였고 파미르 왕국도 나름대로 눈치를 보아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용병 모집에 필요한 자금을 전적으로 부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모인 인원이라고 해야 정상적인 용병 출신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부랑자와 난민이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거의 인원수만 채웠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말이다. 부랑자와 난민을 주축으로 급조된 일만 용병들의 행색을 지켜보는 료우나 정상적인 용병들은 이 실력도 볼품없는 이름뿐인 용병들을 보면서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머리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숫자가 부족하다고 해도 훈련이나 싸울 준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들을 용병이랍시고 전쟁터에 몰아넣는 것은 거의 살인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물론 같은 이유로 이런 이름뿐인 용병들을 마물의 숲 원정에 데리고 가다가는 자신들까지 위험해 진다는 이유로 명목상인 용병 모집에 대해 료우를 비롯한 용병들은 반대를 했지만 태워날 때부터 전사로 키워지는 아슈리안 인들은 남자는 일단 칼을 들면 전사가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지 그들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칼을 쥐어주면 세살 먹은 아이라도 전사가 된다는 아슈리안 인들의 이야기에 료우를 비롯한 용병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웅성웅성..." 성큼 다가온 9월의 낮 동안은 아직까지 무더위가 남아서 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아침과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이 활동하기에는 딱 알맞은 날씨였다. 몇 일전 내리던 때 아닌 폭우로 인해 테미도 건조하던 날씨가 조금은 풀렸고 황토도 충분히 수분을 머금었는지 그 색깔이 진하고 흩날리는 먼지의 양도 많이 줄어 들였다. 공기도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탓에 촉촉해서 그런지 하르엠의 북쪽 드넓은 황토 평야가 자리잡은 누엘에 모여든 많은 인파들은 거창한 출정식 준비를 하는 원정군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곤란함이 없었다. 거창한 출정식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자들이 짐승의 가죽으로 엮어서 만든 레더 아머의 갑옷에 수 백 개의 쇠로 만든 리벳을 박아 넣은 형태의 스터드 레더 아머를 걸치고 있었는데 리벳의 모양이 스파이크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유독 어깨를 감싼 부분은 스파이크 형태가 두드러져 있는 형태로 되어있어 무척 특이하게 보이는 집단 이었다. 어떻게 보면 야만인으로 불리는 바바리안 들이 모인 대규모 전투 집단과 비슷하게 보였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대륙에서 명예로운 전사의 부족으로 불리는 아슈리안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나고, 자라서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그들에게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옷은 먼 나라 이야기였고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원체 태어날 때부터 전사로 태워난다는 아슈리안 족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는 주변 국가에서 그들의 무력을 키워줄 철을 비롯한 광물의 판매를 전적으로 방해했기에 그들은 그 귀한 철을 방어구로 쓰기보다는 무기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환경적인 이유 말고도 그들 자신들조차 전사라면 금속 갑옷 따위에 자신의 생명을 의지하는 짓은 나약한 자들의 변명정도로 밖에 치부하지 않았기에 금속 갑옷을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작위적인 냄새가 많이 풍기는 변명이었다. 이런 저린 이유로 그들은 맨몸으로 전사로 키워졌고 싸움에 나설 때는 항상 맨몸으로 적을 맞았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손으로 잡은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방어하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잡은 그들의 사냥물이기에 충분히 전사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다고 해서 가죽으로 만든 레더 아머의 경우는 나름대로 수용하게 되었다. 그들 자신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몸을 방어하는 방어구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구하기 쉬운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는 허락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 천연적으로 생명체가 살기 힘든 곳이라 짐승이 잘 잡히는 곳도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쪽 마물의 숲으로 사냥을 나갔고 거기서 몬스터와 싸우고 짐승을 사냥하며 살아갔다. 그래서 특이하게 그들의 레더 아머는 짐승의 가죽보다 몬스터의 가죽을 덧붙여 만든 것이 많았는데 짐승보다 흔한 몬스터의 가죽이 구하기도 편했고, 나름대로 짐승의 가죽보다 질겼기 때문에 애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철광석등의 광물의 부족이 주된 이유로 금속으로 만든 갑옷이 경원되었다고 한다면 테미에 대규모의 황금 광산과 미스릴 광산의 발견으로 자금적인 여유가 풍부해진 현재 아슈리안 부족이 금속 갑옷이 아닌 레더 아머를 입고 있는 이유는 약간 단순했다. 이미 레더 아머에 길들여져 금속으로 만든 갑옷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은 자금적인 여유로 레더 아머의 갑옷에 수 백 개의 쇠로 만든 리벳을 박아 넣은 형태의 스터드 레더 아머를 걸치고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원정군 전체가 길게 늘어서 대열을 갖추고 있는 모습은 흔하게 보기 힘든 장면으로 테미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물의 숲으로 떠나는 전사들을 축복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원체 죽음을 동반한 채 살아가는 부족민들이라 그들은 원정군이 떠나는 곳이 마물의 숲이라고 해도 어둡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전사들이 마물의 숲이라는 저 거대한 사냥물을 충분히 사냥하고 돌아오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용병으로 뽑혀 원정군과 같이 마물의 숲으로 떠나는 신규 용병 가족들과 같은 슬픔이나 걱정은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움과 그리고 확신에 가득 찬 신념만이 묻어나 있었다. 그 모습은 료우를 비롯한 악마의 전사 용병단 전원하게 나름대로 믿음을 주는 큰 힘이 되었다. "웅성... 웅성..." 시끄럽게 떠드는 누엘의 대평원은 허허벌판을 온통 가득 메운 원정군과 원정군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소란에 한참이나 시끄러웠던 참이다. 나름대로 원정을 떠나는 곳이 마물의 숲이고 사냥이 아닌 정벌이었기에 승리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분명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도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름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아슈리안 인들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나름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어서 그 소란함이 덜하기는 했지만 분명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중에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 혹은 친구나 동료일지는 몰랐지만 그들도 분명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에 환송이라고는 하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것도 있었다. "둥둥둥..." 원정군을 향해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들과 다시 볼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에서 이별의 아픔을 곱씹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도 어느 순간 자신들의 귀에 크게 울리는 북소리에 한순간 입을 다문 채 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은 북소리에 묻혔고 모든 이들의 이목은 자신들 정면에 보이는 큰 단상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는 단상에 나타난 몇몇의 인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두에는 료우도 익히 알고 있는 젊고, 패기에 가득 찬 케인이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일견하기에도 보무도 당당한 걸음으로 힘차게 걸어 나오고 있었고 그 뒤를 70의 늙은 나이에 부족 전체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켈라힘이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케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뒤로 몇몇 료우가 회의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아슈리안 최고의 용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단상 앞으로 걸어 나온 케인은 수많은 대중들 앞에 서자 처음의 그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자신을 향한 수많은 이목에 약간은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다. 확실히 이런 수많은 시선을 굳건하게 견딜 만큼 케인에게는 경험이 부족했다. 아무리 그가 아슈리안 부족 전체를 호령하는 부족장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부족민들 사이에 나와서 연설을 하는 것은 아직까지 어려웠다. 차라리 지금 모인 인원수만큼의 적 앞에 서서 싸우라고 한다면 그는 당당하게 나가 싸울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것이 그에게는 편한 일이었다. "흠흠..." 애꿎은 헛기침만 연신 해대는 케인의 행동에 옆에서 지켜보는 대장로 켈라힘은 나름대로 불안한지 힐끗 힐끗 케인에게 눈치를 주고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시야가 한쪽으로 굳어버린 케인은 켈라힘의 동정을 엿볼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의 고민을 모르는 채 사람들은 보부도 당당하게 단상의 앞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황금 모발을 길게 휘날리는 이 젊은 족장을 보면서 확연한 힘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근육질로 이루어진 몸매에 어깨 위로 스파이크가 수십 개 박혀있는 스터드 래더 아머를 걸치고 당당하게 서있는 케인의 모습은 누엘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에게는 부족 최고의 용사이자 살아있는 전신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수백 년 고난의 역경 속에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언제인가는 그들을 일으켜 세울 용사가 나타나 부족을 이끌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갖은 박해와 굴욕 속에서도 그들이 꿋꿋하게 전사의 명예를 지켜온 것은 자신들이 언제인가는 일어나 대륙을 질타하는 영광이 있으리라는 믿음과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들은 그 확신을 이 젊은 족장에게서 찾고 있었다. 나름대로 그들의 확신은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뜻하지 않는 테미에서의 황금과 미스릴의 발견으로 부가 축적되었고 나름대로 수많은 전사들도 양성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이 조금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제 저 마물의 숲으로 출정을 떠나는 것이다. 침묵 속에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할말을 잊고 있던 케인의 모습은 수많은 군중에게는 무언가 큰 위압감으로 다가왔는지 그들의 눈빛은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이제..." 케인은 무언가 말해야겠다는 압박에 슬쩍 말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군중의 한 곳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케인... 케인..." 갑작스런 외침에 모든 시선은 한 곳으로 향했고 한 아슈리안 전사의 손이 하늘 위로 치켜드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케인을 연호했고 그의 외침에 조용했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달아올라 마치 전체가 마약이라도 먹은 듯 케인을 외쳤다. 조용했던 누엘의 대평원은 케인을 연호하는 군중의 외침이 다시금 들썩들썩 거렸고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던 케인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케인... 케인..." "와아아아" 목이 터져라 외치는 군중의 모습에 케인은 자신이 이들에게 그 어떠한 훌륭한 연설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연설가도, 웅변가도, 정치가도 아니었다. 그는 전사였고 이들 부족민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이 원정의 승리로 이 환호성을, 그들의 신뢰를 보답하면 되는 것이다. 케인은 웃었다. 그리고 외쳤다. "가자! 용사들아..." ---------------------------------------------------------------------------------- 아침부터 눈이 내려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면 좋겠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빙판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는 것을 보아하니 나이가 들기는 들었나 봅니다. 모두 눈길에 조심하시고 저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아참... 여기 마지막 맨트가 좀 껄끄러워서 그런데 좋은 말 없을까요? 케인의 이미지에 맞는 말을 찾아 주세요.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6장. 마물의 숲 5만의 원정군은 마물의 숲 규모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병력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예전 파미르 왕국에서 마물의 숲 원정을 계획하고 모았단 원정군 규모를 생각하면 삼분지 일도 안돼는 적은 숫자였다. 거기다가 말뿐인 용병 1만은 거의 숫자를 채우기 위해 모집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따라서 정상적인 원장군의 규모는 4만이 전부였다. 원정군 총사령관은 당연히 아슈리안의 부족장인 케인이 맡았고 케인이 자리를 비운 부족의 관리는 대장로 켈라힘이 맡게 되었는데 켈라힘은 연신 자신이 원정군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연로한 나이로 그 험한 길을 함께 한다는 것이 걱정 아닌 걱정으로 대두되었다. 물론 전사로 태어나 전사로 죽는다는 아슈리안 부족이 나이를 먹었다고 전쟁터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고 특히나 켈라힘의 경우는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은 힘이 남아 있는 인물이었다. 단지 그것은 말뿐인 핑계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아직까지 혼란한 테미를 안정화 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자신이 빠진 마당에 부족의 주축인 켈라힘까지 자리를 비우면 테미의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케인이 반대한 것이다. 원정군의 숫자가 무엇보다 부족하고 전쟁의 경험이 부족한 케인을 보내는 것이 원체 불안한 켈라힘으로는 꼭 원정군을 따라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케인의 말처럼 비정상적인 발전 속도로 인해 급속도로 늘어난 부랑아와 난민, 용병, 모험가들로 인해 혼란에 빠진 테미의 상황도 무시하지 못할 문제라 아쉽지만 케인의 말에 순응하기로 했다. 싸움을 할 용사는 많지만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맡아볼 인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케인이 켈라힘의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전제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 부족장을 현명한 지도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열의가 앞선 켈라힘은 사사건건 케인의 행동을 제약했고 나름대로 젊은 패기와 열정이 가득 찬 케인은 켈라힘의 이런 말과 행동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마치 물가에 내 놓은 철없는 어린 아이를 보는 듯한 켈라힘의 시선은 케인에게는 큰 제약이었고, 케인은 켈라힘에게 자신도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이상 철모르는 아이가 아닌 당당한 성인이며 자신의 몫은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케인은 켈라힘에게 입증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켈라힘을 배제한 채 자신의 힘으로 마물의 숲 원정을 성공하고 싶었다. 이런 케인의 의지가 반영되어 켈라힘을 남겨둔 채 마물의 숲으로 향하는 원정군은 구성되었고 처음부터 4개의 부대로 나뉘어 출발했는데 워낙에 마물의 숲이 넓은 까닭에 이 편제는 나름대로 고심 끝에 최종 회의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4개의 부대는 약간씩 차등 분배되어 나누어졌는데 총사령관 케인이 이끄는 1군은 아슈리안 전사 1만 5천이 배속되었다. 2군은 대장로 켈라힘의 아들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현명한 용사로 알려진 40대의 키케르가 대장이 되어 이끌었는데 그의 2군 휘하에는 케인의 1군과 마찬가지로 아슈리안 전사 1만 5천이 배속되었다. 3군은 아슈리안의 대사제이자 전쟁의 신 아슈르를 섬기는 성전사 누게르가 이끌었는데 그의 휘하에는 전쟁의 신 아슈르를 섬기는 성전 출신의 성전사 3천과 료우가 이끄는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 포함된 가장 적은 숫자이자 가장 뛰어난 자들로 구성되었다. 4군의 경우 아슈리안의 대족장 케인의 절친한 친우이자 용사인 코라가 주축으로 아슈리안 전사 7천에 용병 1만이 배속되었는데 숫자는 가장 많지만 전체적으로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구성된 원정군 4개 부대는 현재까지 포착된 마물의 숲 몬스터 집단 중에 가장 강력한 집단인 오크 부족 세 곳과 리자드맨 부족 한 곳을 목표로 출발했다. 아슈리안 부족의 전사들이 아무리 용맹한 전사라고 해도 그들이 마물의 숲에서 사냥했을 당시 그리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하고 초입 부분에서 거의 사냥을 하였다. 마물의 숲 초입이라고 해도 거의 자신들이 살고 있는 테미보다 두 세배는 훨씬 넓은 면적이었기에 그들의 활동 반경이 좁은 것은 아니었지만 마물의 숲 전체로 따진다면 무척이나 좁은 곳 이었기에 그들이 갖고 있는 정보는 마물의 숲 초입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마물의 숲 원정이 결정되면서 아슈리안 부족은 나름대로 정보를 캐기 위해 마물의 숲에 솜씨 좋은 사냥꾼들과 전사들을 미리 보내어 정보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워낙에 위험한 곳이라 정예화 된 아슈리안 전사들이라고 해도 소규모의 인원으로는 마물의 숲에 깊숙이 들어가 살아오는 것은 힘들었기에 모두 실패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만을 바탕으로 원정군의 첫 목표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가장 강한 부족들을 목표로 잡으니 오크 무리와 리자드맨 무리가 있는 부락을 첫 목표로 잡은 것이다. 마물의 숲 초입이라고 해도 몬스터의 숫자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도시와 가까이 있어 습격을 하기 편했기에 그들 나름대로는 강한 자들이 변방이 차지할지도 몰랐다. 물론 확실한 사정을 알 수 없어 숲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강한 부족들이 모여 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변방의 오크나 리자드맨들도 그들 입장에서는 결코 약한 조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예상처럼 원정군의 첫 목표가 된 오크와 리자드맨 부족의 규모는 상당히 컸고 강해 보였다. 일단 숫자로만 따져도 오크의 경우 원체 많은 수의 인원을 갖고 있는 종족이라 그 근처에서 가장 큰 무리의 규모는 대략 3만에서 많게는 5만까지 된다고 하니 웬만한 소규모 공국이나 왕국의 병력과 비슷했고, 리자드맨 부족의 경우도 대략 3천에서 5천 정도는 거뜬해 보였다. 리자드맨이야 거의 인간 기사와 동급의 전투력을 갖고 있었기에 어쩌면 많은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오크들보다 힘든 존재일 수 있었고 그들은 인간보다는 지능이 낮으나 오크보다 높았고 리자드맨 마스터의 경우에는 현명한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어 싸움에 어려움이 있었다. 오크의 단순한 머리는 오직 정면 승부를 택하지만 리자드맨의 경우에는 습격은 물론이고 함정까지 파고 상대를 유인하는 머리가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다. 마물의 숲 원정군의 전략은 매우 위험한 면이 적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5만의 대군을 이용해서 한꺼번에 몰아붙여 수의 우세를 바탕으로 하나씩 각개 격파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4개로 쪼개어 상대하는 적은 각 부대에게는 약간은 부담스러운 병력의 숫자이지만 한꺼번에 밀어 붙인다면 물량의 우세를 바탕으로 손쉬운 승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체 땅덩이가 넓고 계절적인 영향도 있어 겨울은 금방 닥칠 것이고 식량의 후송이나 기타 제반 사정이 원정군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뻔했다. 생각 같아서는 겨울이 지난 후에 원정을 떠나는 것이 옳았지만 이 시기에 오크를 비롯한 몬스터들이 준동하고 바로 인간의 마을이 피해를 입는 지라 하루가 급한 파미르에서 재촉을 하는 통해 급하게 서두른 것이다. 원정군은 이런 속사정 때문에 속전속결로 최대한 많은 부분을 정벌하고 그곳에 토대를 쌓아 겨울나기를 하고 몬스터의 침입을 막기로 결정하고는 힘들지만 4개의 무리로 쪼갠 것이다. 이 선택 뒤에는 분명 막대한 피해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수뇌부지만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슈리안 족은 기꺼이 이 선택을 받아 들였다. 4개의 군으로 편성된 원정군은 각자의 목표를 향하여 나누어 출발했는데 료우가 이끄는 악마의 전사 용병단은 성전사 누게르가 이끄는 3군에 편제되어 리자드맨 부족이 있는 동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용병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실력이 뛰어난 료우의 용병단이 원정군 총사령관인 케인이 지휘하는 1군이 아닌 3군에 포함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오크에 비해 지능과 전투력이 높아 위험성이 다분한 리자드맨을 상대하는 3군의 경우 가장 뛰어난 실력의 이들로만 구성되었다. 전쟁의 신 아슈르를 섬기는 아슈리안 민족의 경우 가장 강한 전사는 성전에서 키워진 성전사를 꼽는데 성전사 3천이면 다른 아슈리안 전사 두 배내지 세배 몫은 너끈히 한다고 알려져 있다. 거기에 더해서 제국의 기병대를 한명의 피해 없이 패배시킨 료우의 용병단이 포함된다면 그 부대는 아마도 가장 정예화 된 부대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강한 적은 가장 뛰어난 부대로 하여금 맡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료우의 용병단 또한 같이 움직이는 아슈리안 전사들이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성전사임을 알아 크게 불만이 없었다. 숫자는 적지만 뛰어난 동료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살 확률이 높다는 결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6장. 마물의 숲 마물의 숲이라는 명칭이 나무로 이루어진 숲만 울창해서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원체가 그 크기가 거대한 마물의 숲은 온통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숲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허리밖에 올라오지 않은 잡목만으로 이루어진 곳도 있고, 초원과 사막같이 메마른 황토의 대지도 존재하고 있다. 또한 정글과 늪지도 흔하게 보이는 매우 다양한 환경이 공존하는 곳이어서 그 곳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종류도 실로 다양하다 아니할 수 없다. 기후 자체도 환경과 더불어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 어느 곳은 열대의 기후를 능가할 만큼 더웠지만 또 어느 곳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날씨를 보여주고 있는 곳도 있었다. 동북쪽 거대한 마물의 숲을 처음 바라보는 료우의 얼굴은 약간의 긴장감과 호기심 그리고 나름대로 앞으로의 전투에 대한 걱정도 함께 묻어나 있었다. 이곳은 테미의 가을 날씨와는 다르게 약간 건조한 기후로 푸른 초원과 숲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드넓은 평원으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야생의 소와 양떼, 뒤로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숲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하게 하여 과연 이곳이 몬스터가 즐비하게 나온다는 공포의 숲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보기와는 다르지요!" 한가로운 분위기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마물의 숲에 들어선 것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던 료우의 기분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앞쪽에 있던 정찰대 대장 베뉴사가 슬쩍 다가와서 그렇게 말하는데 료우는 베뉴사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런가? 하지만 얘기로만 듣던 마물의 숲과는 다르게 보이는군." "겉모습만 보고 달려들면 찾아오는 것은 죽음뿐이지요. 이곳의 실체는 금방 들어날 것입니다." 약간은 두려움이 묻어난 베뉴사의 음색은 료우도 금방 알아차렸다. 확실히 마물의 숲을 논하는데 있어 아는 자들과 모르는 자들의 모습이나 반응은 상당히 달랐는데 말이나 소문으로만 마물의 숲을 접한 이들의 경우 마물의 숲은 그냥 단지 몬스터가 즐비한 위험한 곳 정도로 치부하지만, 마물의 숲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하나같이 이 숲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그 무서움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기에 그런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들의 그런 반응은 확실히 이 숲의 위험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초원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마물의 숲으로 들어서는 3군의 분위기는 약간의 긴장감에 묻어 있었고 굳은 안색으로 천천히 숲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슈리안의 제일 전사들이라는 성전사들도 어느 정도 마물의 숲이라는 이름에 부담감은 가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3군의 선두는 아슈리안 성전사 5백으로 구성된 용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들은 특별히 마물의 숲을 여러 번 경험했던 경험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되었다. 자신들이 목표로 한 대규모 리자드맨 부족의 근거지로 이동을 하는 3군의 선두는 마물의 숲 자체가 원체 수많은 오크와 리자드맨 부족들이 움집해서 살고 있는 관계로 숲에 들어선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하나의 작은 리자드맨 마을과 부딪치게 되었다. 대략 2-3백 가량의 리자드맨 정도는 모여 살만한 작은 마을로 보였는데 마을을 발견한 선발대는 빠른 속도로 마을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리자드맨 서식처는 습지와 같은 물이 풍부한 곳에 자신들의 터전을 잡는 것이 보통인데 반하여 이들 리자드맨 부족들은 관목이 우거지고 물이 풍부하지 못한 이곳에 터전을 잡다보니 살아남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부분을 변화시켜 환경을 극복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들로 변화할 정도의 도마뱀 특유의 환경 적응 능력이 그들에게도 이어졌는지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건조한 날씨와 잡목과 초원만이 즐비한 이곳에 터전을 잡고 적응하고 있었다. 선발대가 발견한 이들의 마을은 다른 곳보다 잡목이 약간 우거진 곳을 근거지로 해서 땅을 평평하게 다진 다음 자신들이 주거할 공간의 땅을 파서 반 지하 형태의 움집을 만들어 사는 듯해 보였는데 주위에서 흔히 구할 잡목을 엮어서 바닥 면 주위는 낮은 벽으로 만들고 이 벽의 바깥쪽에 구덩이의 중앙부로부터 지붕을 이어 내리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옛날 인간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의 인간들의 주거 공간과 비슷한 모습인데 구조로 보아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지만 습기가 많은 것이 흠처럼 느껴지는 모습이었는데 원래 습지에서 살던 종족이라 이 주거형태는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주거 형태라 할 수 있었다. 원정군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마물의 숲 원정을 마물의 숲에 살고 있는 몬스터 무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발견 즉시 빠른 시간 안에 몰살이라는 방법을 채택하여 최대한 원정 소식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런 의도 때문에 3군의 선봉에 선 선발대는 리자드맨 마을을 포위하여 단 한 마리의 리자드맨도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주의했다. "크아아아..."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잡목이 우거진 곳이라 아무리 은밀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금방 들켜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을 해할 적이 없는 곳에 터전을 잡았다고 해도 리자드맨 마을에서는 만약을 대비하여 파수꾼을 세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다른 곳이 아닌 마물의 숲인 바에야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크의 경우에야 원체 지능이 낮아 그런 지혜가 없다고 하지만 리자드맨은 달랐다. 그들이 비록 인간보다 지능이 낮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지능은 갖추고 있었고 리자드맨을 끄는 상위 계층인 하이 리자드맨의 경우에는 인간의 지능과 엇비슷했기에 학습만 따라준다면 그들은 인간과 비슷한 정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곳 조그만 마을에서도 상위 계층인 하이 리자드맨이 있어서인지 보초는 어김없이 세워졌고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침입한 침입자를 발견하고는 경고의 소리를 질렀다. "제길 들켰다." 선두에 서서 습격을 준비하던 3군 선발대 대장 니카로는 아쉬움에 이를 악물었다. 그는 명예로운 아슈리안의 전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노련한 사냥꾼으로 전쟁터에서 오직 정면승부만을 고집하는 능력 없는 지휘관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적을 유인하고 기습하는 방법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노리는 노련한 지휘관 이었다. 그는 이 원정의 약점을 익히 알고 자들 중 하나인데 싸울 곳은 많은데 반하여 인원이 부족한 까닭에 어떻게 해서든 군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싸움에서 아군의 피해를 최소로 줄이며 적을 섬멸하는 것이 그의 최선의 전략이라 그런지 그는 제일 처음 만난 리자드맨 부족을 기습이라는 장점을 이용하여 적의 피해는 최대로, 아군의 피해는 최소로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에 따라 행동했다. 그리고 그는 이 기습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리자드맨은 자신들의 마을에 보초를 여기 저기 세워 놓고 경계를 게으르게 하지 않았다. 기습이 주는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해가 머리위로 떠있는 낮이라고 할지라도 방심한 적과 경계하는 적과의 조우는 확연하게 틀렸다. 방심한 적을 상대하는 편이 경계하고 있는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편하다는 것은 달리 설명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기습이 실패했기에 니카로는 아쉬움을 곱씹으며 공격명령을 내렸다. 마을에 있는 리자드맨들이 보초의 위험 신호를 듣고 신속한 대응을 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공격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차선책 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슈리안 성전사들은 어느새 마을을 빙 둘러서 포위하고 있었고 사방에서 무서운 기세로 나오는 그들의 위세는 금방이라도 리자드맨 마을을 휩쓸어 버리리라 생각되어졌다. "키에엑..." 처음으로 부딪친 리자드맨 전사의 울부짖음과 함께 충돌한 성전사 리브로는 이제 겨우 열여덟의 젊은 청년으로 전쟁의 신 아슈르를 모시는 신전에 들어 간지 겨우 5년이 체 넘지 않은 전사였다. 보통 제대로 된 성전사의 기준은 최소한 전쟁의 신전에서 10년 이상은 수련을 쌓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신전에 들어온 것도 늦었지만 나이도 어렸다. 하지만 전사가 부족하여 많은 이들을 모집하였기에 어린 나이의 그도 마물의 숲 원정에 참여한 것이다. 물론 나이가 어리다고 그가 약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같은 나이 또래의 다른 성전사들보다 강했고 수련 경험은 적었지만 완력과 체력도 좋았고 검술도 나름대로 잡혀 있어 충분히 성전사 몫을 해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문제는 그에게 리자드맨과의 전투 경험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도마뱀 인간으로 알려진 리자드맨은 인간보다 지능이 낮아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무기와 방어도구는 인간의 것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다. 인간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같은 칼을 사용해도 위력이 전혀 달랐다. 거기다가 꼬리를 흔들며 공격해 오는 경우도 있어 리자드맨과의 싸움은 몹시 힘든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가 리자드맨의 방어면에서의 특징은 그 두꺼운 피부에 있는데, 아슈리안 전사들이 걸치고 있는 레더 아머 이상의 방어력이 있는 두꺼운 피부는 거기에다 방어도구까지 부착하면 상당히 높은 방어력을 보여주어 상대하기 무척이나 까다롭게 만들었다. 물론 두꺼운 피부 탓에 움직임이 둔하다는 약점이 있기는 했지만 원체 완력이 좋은 리자드맨의 힘 때문에 동작이 둔하다는 것은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야앗..." 툭하니 튀어나온 주둥이하며 긴 꼬리, 청녹색의 피부에 파충류 특유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고, 길게 빠져나온 혀끝은 두 쪽으로 나뉘어져 날름거리는데 이 생전 처음 보는 낮선 적을 맞은 리브로는 생소한 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기합과 함께 휘둘러지는 그의 검은 보기만 해도 상당한 파괴력을 갖고 있는 롱스워드 였는데 크게 휘둘러지는 검은 금방이라도 이 괴상하게 생긴 리자드맨의 허리를 베어버릴 기세를 품고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반원을 크게 그리며 휘둘러졌다. "차아앙..." 섬뜩한 피육(皮肉)을 헤집는 소리와는 별개의 금속의 격렬한 울림은 회심의 일격이 실패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고 손끝으로 다가오는 묵직한 울림은 적의 힘의 세기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부르르" 떨리는 미세한 혈관의 진동과 함께 손끝으로 전해지는 얼얼한 충격에 리브로는 재빠르게 뒤로 빠지면서 자신의 상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함을 인식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처음으로 목숨을 걸고 참가한 첫 상대는 자신이 지금까지 대련을 통해 상대했던 자신의 동료와는 판이하게 다른 힘을 보여주고 있었고 미개의 몬스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방어 동작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습적인 공격을 간단히 막아내는 것하며 손끝에 전해지는 충격은 리브로를 조금은 위축시키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두려움을 갖았다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좋아!" 상대가 강함에 리브로는 좋다는 표현을 하더니 다시 달려든다. 아슈리안 부족 특유의 투쟁심은 이 순간에도 크게 작용하여 강한 상대를 대적함에 있어 부쩍 힘을 실어 주었고 그런 모습은 전투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리자드맨의 무력은 강해 보였다. 개개인의 무력이 인간의 기사와 맞먹는다는 표현이 거짓이 아닌지 전사의 부족 아슈리안의 그것도 신전의 성전사들이 상대함에도 리자드맨들은 물러섬이 없이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야아앗..." 몸속에 남아있는 모든 기운을 짜낸 듯 일갈을 지르며 크게 반원을 그리는 검의 궤적은 전사의 머리 위를 순식간에 지나 정면 상대의 머리를 노르며 반쪽이라도 만들 것처럼 가속도를 내며 떨어졌다. 녹색의 피가 군데군데 묻어있는 그의 검이며 그의 갑옷은 이미 자신과 동등한 실력의 리자드맨 전사 하나의 목숨을 빼앗은 경험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상대는 전사의 자신감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이었던 모양이다. "키에엑" 마치 자신이 펼친 검의 속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리자드맨 전사는 울음을 터뜨리며 전사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의 일격을 검을 들어 막아내더니 갑작스럽게 긴 꼬리를 이용하여 전사의 하반신을 공격했다. 이 예상외의 공격은 전투 곳곳에서 효과를 보았는데 특히 경험이 적은 성전사의 경우에는 반수이상이 이 공격에 의해 균형을 잃고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넘어져서 운이 나쁜 경우에는 리자드맨의 먹이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지금 리자드맨 전사와 싸우는 그는 리자드맨과 싸운 경험이 있어 상대의 검은 물론이고 그 꼬리도 예의 주시하고 있었기에 리자드맨 전사의 빠른 꼬리 공격이 펼쳐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뒤로 펄쩍 뛰면서 물러서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였다. 회심의 공격이 실패했는지 리자드맨 전사는 물러서는 아슈리안 전사를 보며 울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달려들었다. 이 둘의 공방처럼 치열한 전투는 리자드맨 마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거의 엇비슷한 전력의 두 집단이 맞붙는 가운데 그나마 숫자가 많은 아슈리안 전사측이 조금은 유리해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빠른 기습을 펼침으로 해서 비록 경계병에 의해 완벽한 기습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하고 대응했던 리자드맨 전사들의 초반 피해가 큰 까닭에 승부는 이미 기울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현재 아슈리안 부족의 선발대는 숫자의 우위에 있으면서도 그 장점을 버리고 일대 일로 승부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사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그들은 일대 일의 전투에 끼어들지 않고 승부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대부분의 승리가 아슈리안 성전사에게 돌아가고는 있었지만 나름대로 리자드맨 전사의 손에 죽는 이 또한 속출하고 있었다. 당연히 위험한 동료가 있으면 구하려고 하는 것이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료의 싸움에 끼어드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동료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면승부가 아닌 기습이라는 묘미를 살려 병력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선발대의 대장 니카로조차 일대 일의 대결에 대해서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원정군의 약점 때문에 병력의 피해를 최소로 줄인다고 해도 자신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벌이는 행위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리자드맨이 보통보다 강하게 표현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숫자가 적은 가운데서도 오크의 무리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이고 제가 설정을 인간의 기사 정도로 했으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무슨 마나를 느낄수 있는 나이트 정도의 수준이라는 말은 아니고 어느 정도 지방 영지의 기사들과는 비견되는 실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뭐 작가 나름대로 개인적인 설정이니 이해하시길...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6장. 마물의 숲 3군의 본진이 리자드맨 마을에 도착하였을 즈음 전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남은 몇몇의 리자드맨과 아슈리안 성전사와의 싸움을 지켜보게 되었다. "왜 않도와 주지?" 아직까지 아슈리안 전사의 싸움 방식을 잘 알지 못하는 료우의 의문은 당연했고 그나마 아슈리안 족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베뉴사는 그런 료우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전사의 자존심이죠. 정당한 승부라면 어떠한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치욕은 당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자존심입니다." "으음..." 베뉴사의 말에 료우는 혀를 찼다. 물론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대해 뭐라고 왈가왈부 할 이유는 없었고, 그럴 처지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저들의 고지식한 면을 보아서 그런지 차후의 전투에서 약간은 의견 다툼이 일어나리라 생각되어지는 료우였다. 리자드맨들의 움직임과 전투 능력을 보아하니 의견이 통일되어 하나로 뭉쳐서 마물의 숲 원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일도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내부적인 충돌이 있다면 그 어려움은 배가 될 것이 뻔하기에 골치가 아파오는 료우였다. 료우가 아슈리안 인들의 싸움방식을 지켜보며 골치를 썩일 무렵 전투는 어느새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리자드맨 전사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함께 차디찬 흙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기점으로 리자드맨과의 첫 전투는 종결되었다. 원정군 3군이 처음으로 발견한 리자드맨 마을은 원정군 선발대에 의해 철저하게 괴멸되었고 마을에 있던 200-300의 리자드맨은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아슈리안 전사들의 손에 의해 몰살당했다. 물론 그 승리 뒤에는 아슈리안 전사 오십 여명의 죽음도 뒤따랐지만 말이다. 전투가 끝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원정군은 리자드맨 마을의 가옥에 불을 놓고, 죽은 시체를 한데 모아 모조리 태우는 등 마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고는 3군의 원래 목표인 리자드맨 대부족이 있는 마을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선발대의 피해가 큰 모양인지 3군은 리자드맨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기는 했지만 승리의 포만감에 젖을 수 없었다. 첫 전투에서 사상자 50이라는 것은 그것도 기습이라는 묘미를 살린 것인데도 그런 피해라는 것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상자를 낼지 미리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리자드맨 전사들의 무력이 강하다는 것은 앞으로의 전투가 몹시도 힘들어 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료우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피해가 커지자 나름대로 고심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정예를 끌어 모았다고 해도 숫자가 부족한 것은 실질적으로 원정군에게 커다란 약점이다. 마물의 숲은 넓었고 마물의 숲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수효는 그 규모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라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는 말은 아슈리안 전사들의 피해가 커지면 커질수록 원정군의 마물의 숲 원정은 힘들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용병단의 피해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끄는 용병단에 애착이 큰 료우로서는 용병단의 그런 피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에 따라 료우는 나름대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우리가 선발을 맡겠어!" 료우가 애써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정은 선발대를 자신들이 맡기로 한 것이었는데 마법과 원거리 공격이 뛰어난 용병대의 특성을 잘 살리면 구성원의 숫자가 적은 조금 전의 마을 정도는 미세한 피해만으로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아슈리안 선봉대도 무식하게 전면전이 아닌 효과적인 기습으로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자신들의 자존심만은 버리지 못해서 일대 일 대결은 묵인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 리자드맨들의 무력이 뛰어나자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료우는 결심은 더욱 굳어진 것이다. 한명의 숫자가 아까운 원정군으로서는 이런 작은 마을 하나 소거시키는데 50명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무척 큰 타격이었고, 일대 일 전투를 숭상하는 아슈리안의 전투 방식을 보았을 때 차후의 싸움에서도 이런 피해를 입을 것은 확연하였기에 료우는 꼭 선봉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불가!" 하지만 의외로 3군의 대장인 누게르의 입에서는 불가하다는 말이 튀어 나왔다. 원정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최대한의 피해를 억제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원정군으로서는 응당 료우의 의견은 충분히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3군의 선봉을 자처하는 료우의 말에 대해 3군의 대장인 누게르는 약간은 불쾌하다는 표정까지 보이며 료우의 의견을 듣고는 불가하다는 외침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아슈리안의 대사제이자 최고의 성전사로 꼽히는 누게르는 이 타민족으로 구성된 용병들에게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특히 그가 테미에서 보아왔던 용병들이라는 자들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거들먹거리다가 자기 부족의 전사들에게 혼쭐이 나서 생명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용병들에 대한 그의 편견은 더욱 심했다. 부족의 대족장인 케인이 명령의 아니었다면 그는 이 악마의 전사 용병대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을 자신의 군대에 끼어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아니 자신에게 원정군 전체를 다스리는 권한이 있었다면 원정군에 허접 쓰레기 같은 용병들을 원정군 근처에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는 것이 누게르의 생각이었다. 물론 들리는 소문으로 자신과 동행하고 있는 이 용병단의 경우 저 제국의 막강한 기병대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지만 그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소문이야 부풀리기 나름이라 크게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한 저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제국 기병대와의 첫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저들은 신생 용병들이었고 구성된 용병들도 대부분이 평상시 자신들이 비웃던 파미르인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전사인 아슈리안 인들은 자신을 땅을 빼앗고 왕국을 자처하며 자신을 핍박하던 파미르 인들에게 별반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들을 비하하는 실정이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터전을 빼앗겼다거나, 자신들을 핍박했다거나 하는 과거의 잔재 때문에 생겨난 감정은 결코 아니었다. 전사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는 아슈리안 인들은 전쟁에 져서 땅을 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약한 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가 자신들이 힘을 키워서 원래의 땅을 되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문제는 그들의 실력을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것에 있었지 과거의 원한에 대한 잔재는 아니었다. 하여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누게르는 료우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누게르의 불가 입장에 료우는 그가 현재 자신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고 화를 내기 보다는 자신들의 실력을 어느 정도 보여주어 저들이 자신들을 인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물론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물러서서 방관자적 입장을 취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솔직히 자신들의 일도 아니고 원정 실패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 아슈리안 인들이 지는 것이고 자신들은 고용된 입장에 불가하다. 고용자가 불가를 외치면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편하기도 했고 용병대에 소속된 용병들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나 그들도 이제는 용병이었고 자신이 참여한 전투에 대해 승패가 무척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선봉을 맡지 못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은데..." 무조건 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이는 누게르의 입장에 기분이 상한 료우였지만 일단 그의 입장을 정확하게 듣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지라 그렇게 물었고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믿지 못하는 상태인 용병대의 젊은 대장 료우의 반말에 기분이 상한 누게르는 인상까지 쓰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희들의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 누게르의 불가 이유는 간단했다. 실력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깟 제국군 기병대 하나와 싸워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3군의 중요한 역할인 선봉을 맡길 수는 없어!" 누게르의 약간은 용병대를 비하하는 간접적인 발언에 료우는 울컥했지만 감정만으로 싸워서 권한을 쥐고 있는 누게르를 설득할 수 없는지라 잠깐 냉정하게 정신을 추스르고 말을 꺼냈다. "우리가 선봉을 서지 못하는 이유가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면 실력을 보여주면 되겠군." "흥... 관심 없다." 료우의 말에 누게르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코웃음을 쳤다. 그의 그런 반응에 료우는 울컥하는 기분에 앞으로 나가서 저놈의 주둥이를 갈겨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금방 냉정을 되찾고 회심의 일격을 꺼내 놓았다. "왜 두려운가?" "두려워?" 누게르는 료우의 입가에 묻은 미소와 더불어 던져오는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하게 몰라서 둥그렇게 뜬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가 료우의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의 의미를 파악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드디어 걸렸군!' 전사 특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료우의 질문에 누게르는 금방 걸려든 것이다. 그야말로 상대의 자존심을 자극시켜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격장지계(激獎之計)의 성공인데 료우의 태도에 누게르는 앉아있는 의자를 박차고 나와서 달려들 듯이 료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두렵냐고...? 건방진..." "그럼 한번 붙어볼까?" 히쭉 웃으며 그렇게 묻는 료우의 행동에 누게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분명 머리는 그것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었지만 가슴은 이성의 울림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승낙의 말이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든지..." "OK!" 희희낙락(喜喜樂樂)한 표정으로 오케이를 던지며 장내를 빠져나오는 료우의 모습에 누게르는 자신이 료우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것을 사실을 깨닫고는 뼈저린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저들이 자신에게 인정받을 실력을 입증시키지는 못하겠지만 괜히 원정에 소모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서 아니 료우의 말 몇 마디에 끌려 다녔다는 것이 분한 누게르였다. ------------------------------------------------------------------------------- 시간이 많이 지났군요.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바쁜일이 생겨서 쓰는게 좀 늦었습니다. 다음에는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고요. 저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6장. 마물의 숲 먼저 글을 올리기 전에 죄송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제가 출판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올렸던 인물의 성격이나 능력에 대해 불만이 생겨 어느 정도 수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가는 글에는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과 능력에 대해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었던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지금부터 소개되는 각 인물의 성격이나 능력을 참고하셔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지켜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료우 하얀 : 부모의 죽음 이후 강해지려고 하지만 원래 성격은 남의 말에 잘 흔들리는 성격이다. 자신감이 부족한 단점이 있는 반면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준다. 현재 능력은 골드 팔라딘 초입에 5서클 유저인 마검사이고 불사의 능력인 세커니트를 얻어 죽으면 한 시간 후에 부활한다. 부활 후에는 전보다 더 강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지만 언제까지 되살아 나리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고, 있다고 해도 죽음후에 전해지는 고통과 외로움을 알기에 죽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료우가 가진 마황의 권능은 사라집니다. 또한 축복이나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는 제약도 없어집니다. 대신 수정후의 글에는 료우가 우연찮게 마계의 이인자 벨제뷔트의 피를 복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이 어떤 능력을 료우에게 심어줄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마황의 권능을 사용한 적도 없고, 마황의 권능을 어떻게 써먹을지 구체적인 내용이 안서서 빼버렸습니다. 전사 바이크 : 전체적인 외모나 성격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독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전투 성향이 강한 인물로 표현됩니다. 살아 생전에 그랜드 마스터를 눈앞에 두었던 인물로 설정이 되었고 마계에서 벨제뷔트에 의해 사람의 몸에 다시 환생하여 료우를 따라갑니다. 현재 갖고있는 능력은 소드 마스터 정도로 격하가 됩니다. 물론 이미 한번 그랜드 마스터까지 다달했던 경험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 그 능력에 다다르리라 예상됩니다. 마법사 아론 크라세우스 : 전체적인 외모나 성격은 그대로입니다. 살아 생전에 9서클에 도달했던 인물로 단 한번 9서클 대단위 마법을 펼친후 죽은 사람입니다. 벨제뷔트의 능력아래 부활하여 다른 사람의 몸을 뒤집어 썼는데 현재 능력은 7서클 마스터입니다. 그도 한번 9서클에 도달했기에 시간이 흐르면 그 능력에 다라르리라 예상됩니다. 어둠의 신관 가이아 다크프리스트 : 수정본에서는 금발의 미남이 아닌 17-8세의 빛의 신 레미르의 딸이자 어둠의 신 다크로드의 사제로 나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가이가가 아니라 가이아로 표현합니다. 현재까지 가이가가 많이 등장하지 않았기에 어느정도 반발은 예상되지만 크게 혼란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습니다. ^^; 가이아는 빛의 성녀로 태어나 스스로 어둠의 사제가 되어버린 약간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로 표현됩니다. 귀여움성과 애교가 많은 외모와 성격으로 주인공 료우를 편하게 합니다. 빛의 성녀이자 어둠의 사제인 관계로 성력과 마력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하프 엘프 다크 아이 라미셀 : 암살자인 라미셀의 성격을 많이 바꾸었습니다. 반쪽짜리 인간으로 태어나 험한 세상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던 라미셀을 표현하는데 제가 서툴렀습니다. 그래서 수정본에는 겉으로 단호하고 강하며 활발하지만 속은 여리고, 슬픔이 많은 여자로 표현했고, 이제부터 그렇게 이어 나가겠습니다. 인간인 아버지와 다크 엘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한 라미셀은 살아남기 위해 겉으로는 강한 인상을 남들에게 심어주지만 속은 무척이나 여린 여자입니다. 어머니 다크 엘프의 영향으로 어쎄신이 가져야할 암살 능력이 뛰어나고 정령술에도 뛰어난 것이 현재와 동일합니다. 괴짜 드래곤 네오 칼라드 : 약간은 소심한 성격이고 괴짜라는 것은 똑같습니다. 수정본에서는 썰렁 개그를 종종하는데 이후부터는 이부분도 글에 집어 넣습니다. 특히 말꼬리를 잡고 썰렁 개그를 할때는 일행의 눈총을 한몸에 받으며 얼굴을 붉힙니다. 잘 삐지는 성격이죠. 가출 드래곤의 설정은 똑같고 능력은 소드 마스터에 7서클 마스터 능력을 소유하는 현재와 같습니다. 레이첼 듀 라미테이르 : 금발의 이 당찬 여검사는 평소 남자같은 성격을 보이지만 여자이고 싶어하는 내면을 갖고 있습니다. 오대 검가중 하나인 전사의 검 소드 워리어 라미테이르가 출신인 그녀는 아들이 없는 가문의 장녀로 태어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스스로 검을 든 여인입니다. 환경때문에 자존심 강하고, 당찬 성격을 보이지만 속은 무척 여리고 여자이기를 갈망합니다. 그밖에 레이첼의 일행인 스타그라스와 헤이트리드, 어비스 카타브루 세인 블래이저의 성격은 제가 표현하지 않았기에 넘어갑니다. 물론 다른 인물들도 잘 표현하지 않았기에 그것도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이후부터 읽으실 때 많이 헤깔리는 부분이 생기시겠지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출판되는 부분을 수정해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렸던 부분이 많이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극약의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고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대신 열심히 쓰겠습니다. 또한 이후 제 글의 제목도 바꾸려고 합니다. 마황의 권능이 사라져서 마황의 용병대라는 이름도 사라져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벤트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이름을 알려주시는 분께 이후 출판되는 책을 보내드리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 악마의 전사 용병단의 실력 입증은 매우 간단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대 일 대결! 우습게도 그 일대 일 대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 그것을 통해 마무리 되려고 하는 것이다. 아슈리안 부족은 예로부터 무를 숭상하여 옳고, 그름이 이성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 서로의 무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판단하는 전통적인 관습이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누게르는 그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일대 일 대결을 통해 료우의 용병대가 실력을 입증시키면 선봉을 받아들이겠다고 공표했다. 한두 명의 실력으로 전체를 판단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전체를 다 테스트하기에도 힘들어서 대결에 참가한 수는 모두 다섯 명으로 제한하였다. 그리고 승부는 다섯 명 중에 많이 이긴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하였는데 먼저 세 번을 이긴 쪽이 승리하도록 법칙을 정했다. 누게르는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다. 이미 예전부터 그들은 그들 전통의 방식에 따라 일대 일 대결을 선호했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저 말만 번지르르한 용병들 따위는 자신 휘하의 성전사들에게 꼼짝도 못하리라 판단하는 누게르였다. 그래도 부족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중요한 일이라 누게르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몇몇 실력이 좋은 자들이 용병대에 있을지 몰라 만약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누게르는 일대 일 대결에 참가한 자들은 그가 믿는 자들을 주축으로 꾸렸는데 모두 톱 클래스급 이상의 성전사들이었다. 성전사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들만 추려서 대표로 보냈다는 것이 옳은데 다른 이국의 나라들이 말하는 팔라딘급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하나같이 검에 신의 권능(權能)을 담아 성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상징인 오러 소드(aura sword)를 만들어 내는 자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이국에서 말하는 성기사(聖騎士)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국의 웬만한 성기사들은 그들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성전사 다섯 명을 추렸으니 승부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는 누게르였다. 누게르와의 협의한 대로 일대 일 대결에 참가할 료우는 어쩌면 누게르보다 더 자신만만해 보였다는 표현이 옳았다. 일단 숫자가 다섯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 료우였다. 물론 열명이 짜여진다고 해도 확실한 실력자가 몇 명 있으니 부담은 되지 않았지만 료우는 확실하게 모두 이겨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자신을 비롯한 용병대를 생각했던 이상으로 평가 절하하는 누게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료우는 전승을 목적으로 싸우는 순서를 정했다. 료우의 용병대에서 마법이 아닌 무력으로 가장 확실한 실력을 갖고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모두 다섯 명 정도를 꼽으면 된다. 일단 소드 마스터인 바이크와 네오는 말할 여지도 없고 골드 팔라딘 실력의 료우 자신과 여검사 레이첼, 헤이트리드가 존재한다. 거기에 더해서 몇몇 더 있지만 이 다섯 명은 하나같이 골드 팔라딘 이상이니 아슈리안 부족에서 나올 성전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료우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료우는 일단 선발에 바이크와 네오를 넣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현재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하다고 생각되는 여검사 레이첼을 넣었다. 물론 자신이 나서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실력을 자신하지 못하는 료우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레이첼을 세 번째로 정했다. 전면의 사내를 바라보는 쉴파르의 눈빛은 자신도 모르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처음 젊은 애송이 용병 대장의 농간에 놀아나 하찮은 용병 따위와 부족의 신성한 결투를 하게 만든 누게르를 보면서 그는 혀를 찼다. 신전의 대사제라는 막중한 직분을 갖고 있으면서 젊은 애송이의 격장지계에 말려들어 부화뇌동(附和雷同) 했다는 것이 우스웠고, 화를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용병 따위와 부족의 성스런 결투를 하게 만들어 저런 천한 이민족의 용병과 손을 섞게 만들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분 나쁜 쉴파르였다. 거기다가 용병들 따위와의 대결에 자신을 뽑아버리자 그 화는 배가 되어 누게르에 대한 반발마저 들었다. 부족의 첫 번째 전사로 나온 그는 '저 따위 천한 용병 따위와 손을 섞다니...' 하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섰다가 현재 자신의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대가 주는 위압감에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대가 보여주는 위압감은 그의 심신을 잔혹하게 억누르고 있는데 그 사내가 뿜어내는 기세는 그가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운이었다. '도대체 저자의 누구기에...?' 쉴파르는 전면에 서있는 거구의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모든 동작이 정지된 상태에서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이미 그에게는 현재의 상황은 훌쩍 떠나버려 자신이 부족의 자존심을 걸고 일대 일 대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게 만들고 있었다. 현재 그의 심정은 상대가 주는 위압감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았다. "와라!" 한순간 그의 뇌를 하얗게 만든 것은 전면에 서있는 사내의 일갈 이었다. 쉴파르는 상대의 외침에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얼어 있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사내를 보았다. 상대의 키는 1미터 90센티 정도로 타종족에 비교하면 큰 편이지만 자신의 부족으로 따지면 평범한 체구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근육질로 이루어진 몸은 잘 단련된 몸매라고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부족의 전사들도 저만큼의 근육은 나름대로 모두 갖고 있었다. 자신 또한 사내의 몸매와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 근육질이 아닌가? 그럼 무엇 때문에 사내의 모습에 이런 추한 모습을 보였을까? 쉴파르는 그런 의문을 떠올리다 금방 떨쳐버리고 자신이 다음에 취할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그는 한 자루 검을 뽑아들며 상대를 향해 겨누는 자세를 취했다. 쉴파르의 전면에 선 사내는 료우의 명령을 받은 바이크였다. 악마의 전사 용병대 최고의 전사라고 할 수 있는 바이크는 일대 일 대결이라는 매력에 흠뻑 빠졌고 상대가 그리 약해 보이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낮게 쳐주더라도 상대는 팔라딘급 전사로 보였기에 지금은 자신의 동료가 된 네오만큼의 스릴은 없겠지만 그동안 마주쳤던 실력 없는 기사라는 자들보다는 강해보였기에 그는 나름대로 몸을 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히쭉 웃는 바이크의 모습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처음 접한 어린 아이의 모습과 유사했다. "히얏..." 순간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고막을 때리는 쉴파르의 기합은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였던 추태를 한꺼번에 떨쳐내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상대의 기세만으로 위축되었던 자신의 추한 모습을 잊어버리려는 듯 힘찬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는 쉴파르는 자신의 가슴속 깊이 숨어있던 아슈리안 전사 본연의 투쟁심을 이끌어내었고 그는 힘찬 발걸음을 떨치며 대검을 휘둘렀다. 큰 반원을 그리며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쉴파르의 대검은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맹수의 발톱처럼 전면에 서있는 바이크의 목을 노렸다. 마치 한꺼번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는 대해의 큰 파도처럼 돌진하는 쉴파르의 모습에 바이크는 나름대로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상대의 기세가 큰 만큼 그 싸움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할 것이다. 상대가 자신을 상대함에 최선을 다해 죽기 살기로 덤빈다면 그도 결코 대강 대강 넘어갈 성격은 아니다. 아니 그에게 대강 대강이라는 말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가 그렇게 약하지도 않는데 그리고 저런 투쟁심을 갖고 덤빈다면 그에 합당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 검을 든 무인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바이크였다. 바이크는 등 뒤에 꼽혀있던 자신의 애검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들고는 쉴파르의 매서운 공격을 막아 나갔다. "째애앵..." 대검과 바스타드 소드의 격렬한 충돌은 천지사방(天地四方)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을 흘려보냈고, 두 사내는 검과 검의 충돌로 이어지는 손목의 충격을 느끼며 상대의 힘을 가늠하게 되었다. '강하다!' 쉴파르는 팔목 가득 전해지는 충격에 상대의 힘이 자신보다 강함을 짧은 순간에 인식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단 한번의 접전이지만 그가 받은 부담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처음 바이크를 접한 순간 느꼈던 그런 두려움은 없었다. 쉴파르는 두 눈을 부릅뜨며 다시 한번 접전을 시도했다. 그는 힘을 다해 상대의 검을 앞으로 밀면서 공간을 만들고는 검을 우측으로 비틀어 상대의 허리를 노렸다. 쉴파르가 검을 밀면서 공간을 만드는 순간 바이크도 이미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 바스타드 소드를 쥐고 있는 오른 손 근육에 힘을 불어 넣으며 상대를 밀었다. 그와 함께 역시 쉴파르와 마찬 가지로 상대의 오른쪽 허리 쪽을 베어 나갔다. 서로가 목표한 곳이 동일해서 인지 그들은 자신들의 허리로 날아오는 검을 발견하고는 좌측 발을 뒤로 빼면서 몸을 뒤로 빼어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한편 상대의 검을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째애앵..." 다시금 들리는 검의 마찰음은 장내를 뒤덮었고 장내에서 일대 일 대결을 지켜보는 양측의 사람들은 두 번의 부딪침을 겪은 상대방 전사의 무위에 감탄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내의 실력에 놀라고 있는 사람들은 짧은 순간에 다시 몇 번의 접전을 벌이는 그들의 대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한번의 실수가 가져오는 결과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그들은 그들의 대결을 한시라도 놓칠까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헉... 오러 소드!" 누군가의 짧은 외침과 함께 사람들은 대검에서 일어나는 푸른 불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상대의 완벽하리만치 뛰어난 검술과 가공할 힘에 부딪친 쉴파르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든 것이다. 오직 신을 믿는 성전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러 소드! 신의 권능을 담아 성스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그의 검에는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데 그 황홀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금방이라도 상대를 태워버릴 것 같았다. "벌써 인가?" 바이크는 몇 번의 접전을 참지 못하고 바로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드는 상대에게 아쉬움을 느꼈다. 서로의 실력차는 처음 상대를 접했을 때 느꼈던 것보다 조금 컸음은 인정하지만 금방 오러 소드를 펼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보통 팔라딘 수준의 검사가 자신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집약시켜 검기를 일으키는 시간은 수준에 따라 틀리지만 로얄 팔라딘이 대략 30분, 골드 팔라딘이 20분, 실버 팔라딘이 10분 정도이다. 그것도 처음부터 자신의 전 마나를 끌어 올려서 펼치는 시간이고 이런 일대 일 대결에서 오직 한 사람만을 상대한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것이지 전투라면 그 시간은 대폭 감소된다. 말이 좋아 팔라딘이고 소드 마스터이지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당해내기에는 무척이나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천하가 알아주는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혼자서 백 명, 천명, 만 명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인간인 이상 그도 힘을 쓰면 지치기 마련이고, 체력을 소모하는 것은 보통 사람과 똑같다. 단지 그 시간이 좀더 길다는 것뿐이지 그도 인간인 이상 체력을 소모하면 지치는 것이다. 정말 무한정으로 몸에서 마나를 뽑아내어 검기라든가 검강을 펼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도 저마다 한계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팔라딘이 지속적으로 검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검기의 한계는 30분이 고작이었다. 푸른 불꽃을 바라보는 바이크는 오랜만에 느꼈던 짜릿한 기분을 금방 마무리 해야 함을 느끼고는 자신의 검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오른 팔을 통해서 서서히 전해지는 마나의 힘은 팔목을 통해, 손목으로, 그리고 검으로 이어졌다. 그와 함께 일어나는 기운은 서서히 바이크의 바스타드 소드를 감싸는데 서서히 피어오르는 푸르스름한 불꽃은 찬란한 빛이 되어 어느새 검 전체를 둘러쌓다. 바이크의 검에서 일어나는 찬란한 검의 기운은 조금 전 쉴파르가 보여주었던 오러 소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검에서부터 전해지는 기운은 마치 매서운 폭풍우가 대지를 삼켜버리는 듯 사방으로 뻗어나가는데 장내의 사람들은 그 기운을 느끼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러 블레이드..." "설마 소드 마스터..." 좌우 사방에서 터지는 탄성과 놀람은 모두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뇌세포의 활동마저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설마하니 상대가 소드 마스터 일 줄이야... 쉴파르는 자신의 앞에서 푸른 불꽃을 여유롭게 뿌려대는 바이크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도저히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지 못하겠다. 적어도 골드 팔라딘 이상, 아니면 로얄 팔라딘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설마하니 오러 블레이드를 펼치는 소드 마스터 일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강하다. 그것도 너무...' 허탈한 표정의 쉴파르는 이미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커억..." 신성한 성력이 담긴 오러 소드를 무참하게 가르며 파고드는 레이첼의 검은 누게르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휴지조각처럼 구겨버렸다. 설마하니 삼백 오십 명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용병대에 소드 마스터가 두 명에 골드 팔라딘 까지 포함되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누게르였다. 처음 쉴파르와 대적한 바이크가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는 소드 마스터 임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랬는가? 오금이 저리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충격에 휩쌓였던 그였다. 그런데 그 놀람도 잠시 다음에 나선 상대는 처음부터 푸른 색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누게르는 이것이 정녕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왕국 아니 제국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보유할 수 없다는 소드 마스터가 언제 이리도 많이 나왔단 말인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의 소드 마스터를 직접 눈으로 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누게르였다. 그와 함께 그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세 번째 참가한 여전사의 검에는 황금색 검기가 일렁였고 그것도 그 진한 색으로 미루어 골드 팔라딘의 정점에 이른 것을 확인하고는 누게르는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상대는 소드 마스터 두 명에 최고 정점에 선 골드 팔라딘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왜 대족장 케인이 겨우 삼백 오십 명으로 이루어진 용병대를 자신의 3군에 붙였는지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고 그 어린 용병대장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졌다. 완벽하게..." 허탈한 표정의 누게르의 말은 힘이 실리지 못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6장. 마물의 숲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숲 속을 지나는 일행의 선두에는 항상 일행의 선두를 책임지고 있는 베뉴사가 있었다. 선두에 서서 어두컴컴한 나무 밑을 지나는 베뉴사는 자신의 앞을 가리고 있는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그곳을 지나치려 했다. 그때 비탈길 아래쪽으로 들리는 나지막한 소음을 그는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베뉴사는 몸을 웅크린 채 어둠 속을 응시했다. 소리가 들린 곳은 그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그의 머릿속에는 맨 먼저 자신들이 목표로 잡고 있는 리자드맨이 떠올랐다. 이런 어둠이 깔려있고 습지가 많은 곳에는 자신들보다 리자드맨이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베뉴사였다. 푹푹 들어가는 습한 진흙덕분에 행군의 속도가 느려지고 움직임에 제약이 많은 편이어서 더욱 민감해지는 베뉴사였다. '놈들인가?' 베뉴사는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소음을 통해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청각을 곤두세웠다. 조금씩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는 그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고 그에 따라 그의 몸은 더 바닥에 붙어갔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등줄기에 식은땀이 베이는 것은 그가 원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자신도 모르는 채 무의식 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아슈리안 부족과의 일대 일 대결이후 승리한 용병대는 3군의 선봉을 자처하고 리자드맨 대부족이 있는 마을로 출발했다. 마을로 가는 방향과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정보를 듣고 파악할 수 있었지만 가는 도중에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찰을 맡았던 아슈리안의 정찰대들도 마물의 숲이라는 제약 때문에 확실하게 파악하지는 못하고 방향과 마을의 위치만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는 와중에 리자드맨 마을과 조우하게 된 것이고 원정 계획에 없던 작은 마을을 토벌한 것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5일 동안에 네 군데의 리자드맨 마을을 발견하여 별 피해 없이 쑥밭으로 만든 용병대였지만 그것도 갈수록 어려워짐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짧은 잡목이나 초원에 터전을 잡은 리자드맨 마을은 원형으로 포위하여 한꺼번에 대단위 마법과 원거리 공격으로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힌 뒤 실력 좋은 이들이 나가서 마무리를 함으로 쉽게 적을 처리했지만 숲 안쪽으로 전진하면서 수십 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나무들과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과 습지는 용병들이 움직이는데 많은 제약을 주었다. 처음에 가졌던 자신감을 약간은 식어지게 만드는 환경과 조우했다는 표현이 옳았다 네 군데 마을을 소탕하면서 용기 백백하게 보부도 당당히 앞으로 나섰던 베뉴사는 어둠이 깊어질수록 긴장감으로 인해 손에 땀을 쥐었고 두 귀는 온통 사방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하면서 한참이나 곤두서 있었다. 그러다가 미세하게 귀를 간지르는 소리로 인해 그는 긴장을 하며 어둠을 직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근처에서 들리는 나뭇잎 밟히는 소리를 들은 베뉴사는 무언가 서서히 다가옴을 느끼게 되었고, 소리가 다가올수록 서서히 심장의 박동이 빨라짐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온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이곳이 마물의 숲인 바에야 원정군을 따라온 용병대에게 호의적인 것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베뉴사는 몸을 숙인 자세에서 오른 손을 힘차게 뻗어 주먹을 보여주고는 뒤쪽에서 따라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무언가 발견했다는 수신호이자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신호였다. "스으윽..." 뒤로부터 거의 들리지 않는 소음을 동반한 채 누군가 빠르게 접근하는 것을 감지한 베뉴사는 슬쩍 고개를 돌렸고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료우와 바이크, 네오등을 발견하였다. 질척거리는 습지의 바닥을 별다른 제약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베뉴사는 부러운 한편 경외감까지 들었는데 언제나 선두에 서는 그로서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질척한 진흙의 제약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고 그런 것들을 너무도 쉽게 하는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다가선 료우는 베뉴사의 옆자리에 다가오자 곧바로 눈짓을 보냈고 베뉴사는 지체 없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일곱, 여덟... 리자드맨 정찰대인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전방을 주시한 네오의 입에서 들려왔고 베뉴사는 저 어둠을 꿰뚫고 상대를 파악하는 네오의 말에 소드 마스터가 이정도인가 하면서 속으로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을 꿰뚫고 상대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어둠 속에서 먼저 상대를 파악하고 공격한다면 그만큼 살아남기 유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자신의 일행에게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곳 마물의 숲에서 살아남기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놈은 살려둬!" 료우는 이곳의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했기에 바이크와 네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전방으로 움직였다. 료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이크와 네오도 료우의 뒤를 따라 빠르게 전방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숲 속을 이동하는 리자드맨 무리의 선두에는 하이 리자드맨 전사인 바쿰이 있었다. 남부 리자드맨 부족의 대족장인 바르의 차남인 바쿰은 어려서부터 용력이 대단하고, 보통의 인간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 지혜까지 겸비한 리자드맨이었다. 리자드맨으로서는 드물게 인간의 언어까지 어렵지 않게 구사하는 바쿰은 며칠 전부터 연락이 끊어진 남쪽 마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 바르의 명령을 받아 자신을 따르는 몇몇 전사를 데리고 확인차 부족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는 어두운 숲 속을 조용히 이동하면서 차후 부족의 대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형인 쿠암은 자신보다 두 살이나 많았고 힘도 셌지만 머리가 부족한 자였다. 마물의 숲 남부 전체를 다스리는 부족의 차기 책임자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바쿰이었다. 부친이자 대족장인 바르가 아직도 정정하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곳이 마물의 숲이고 보면 후계자는 꼭 필요했고 현재 리자드맨 남부 부족들은 두 패로 갈라져서 부족의 후계자를 밀고 있었다. 장남 쿠암의 경우 장남에다 부족 제일의 용사로 알려질 만큼 용력이 뛰어난 자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와 맞상대하는 자신의 경우 세력이 미비하여 쿠암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상태는 매우 절망적이었고 사나운 쿠암의 성격으로 보아 차후 후계자로 지목되면 자신과 대적한 동생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이 분명한지라 바쿰은 현재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몰려있었다. 이런 이유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바쿰은 나름대로 이 어려움을 벗어날 타개책을 궁리하고는 있지만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오죽하면 한번은 자신들과 남부 전 지역을 두고 맞싸우고 있는 저 흉악한 오크 무리와 동맹을 맺을까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사납고 무식한 오크들에게서 협상이라는 것을 끌어내기도 힘든지라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실정의 바쿰이었다. 바쿰은 현재 아버지 바르의 지지도 잘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러했다. 남쪽 변경 마을과의 연락이 며칠 끊어졌다 하더라도 굳이 자신을 보낼 이유는 없었다. 그 일을 수행할 자들은 많고 많았는데 그런 하찮은 일에 자신을 보낸 것이다. 마치 부족 내에 자신을 있지 못하게 하고 외부로 돌리는 것이 이미 후계자는 형인 쿠암으로 정해진 듯 보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바쿰은 이대로 쫓기듯이 부친과 형에게 몰려 죽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이 냉대를 갚아야 했다. 그의 의지가 강해질 무렵 번뜩이는 칼날이 눈을 가렸다. "캬악..." 순간적으로 시퍼런 장검의 칼날을 발견한 바쿰은 비명을 지르며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숙이며 땅을 굴렀다. 순간적인 반응이지만 그 대응은 적절했는지 자신을 노리던 장검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바쿰이었다. "대단한걸..." 정신없이 구르는 바쿰의 고막을 자극하는 말은 분명 인간의 언어였다. 바쿰은 땅바닥을 두 번 구른 뒤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며 재빠르게 일어서 방어자세를 취하고 방금 전 자신을 공격한 존재를 직시했다. '인간?' 바쿰의 눈에는 젊은 사내의 미소 가득한 얼굴이 들어왔다. 대략 스물 대여섯쯤 보이는 인간 사내는 검은 모발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였다. 대륙에서는 무척 보기 드문 형태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자이지만 인간을 몇 번 보지 못한 바쿰으로서는 그의 외모는 별반 특이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예고도 없이 자신을 먼저 공격하고 저렇게 웃고 있는 모습이 좋을리 만무했다. 물론 인간을 먼저 발견하면 자신도 저자와 같은 행동을 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피해자의 입장에 서니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감히..." 상대가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자신도 모르게 대륙 공용어를 내뱉은 바쿰의 말에 선두의 리자드맨 전사를 공격했던 료우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도마뱀 인간으로 잘 알려진 리자드맨의 지능이 인간에 비해 낮다고는 하지만 그중 상위 계층인 하이 리자드맨은 인간의 지능과 비교에서 별반 떨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은 들어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하니 인간의 말을 할지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료우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일격을 피하고 저렇게 별반 불편 없이 인간의 언어를 내뱉는 리자드맨을 보니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우리말을 할줄 아는군. 그럼 너로 정하지." 바쿰은 료우의 다음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다짜고짜 공격을 하고는 무엇을 정했다는 말인가? 그때 외마디 비명을 들리고 바쿰은 인간 일행이 료우 혼자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 명의 인간이 장내를 휩쓰는데 그들의 무위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어떤 전사의 움직임보다 빨랐다. 마치 저 거대한 숲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저 북부의 검은 돌풍처럼 새롭게 나타난 두 인간은 자신을 따라온 전사들을 휩쓸어갔다. 감히 반항이라는 것도 못해보고 쓰러지는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바쿰의 눈은 놀라움에 더해서 허탈감마저 들기까지 했다. 분노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전에 상황은 종결되고 있었다. 도대체 그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말이다. "쿵..." 마지막 하나 남았던 리자드맨 전사의 미간이 서서히 갈라지면서 녹색의 진한 피가 뿜어져 나왔고 그 거대한 몸은 서서히 뒤로 넘어가더니 바닥에 부딪쳤다. 처음 여덟에서 이제 남은 자는 오직 바쿰 자신 혼자였다. 자신을 처음 공격한 료우와 대치한지 겨우 일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따라온 일곱의 전사들이 인간 둘에게 모두 생을 마감한 것이다. 분노이전에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키는 두 사내가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사내의 뒤에 서자 바쿰은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정지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무런 말과 행동도 하지 못하고 얼이 빠진 듯 한 리자드맨을 바라보는 료우는 자신이 공격한 리자드맨 전사의 실력이 꽤 좋은 것 같아 겨루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바이크와 네오가 금방 장내를 쓸어버리는 바람에 상대와의 대결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결도 중요하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맡은바 일이 있었다. 료우는 슬쩍 검을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제안을 하나 하지!" 갑작스런 료우의 말에 바쿰의 멍했던 정신이 깨어났고 그는 인간 사내를 주시했다. 검을 내리고 무방비한 상태로 그렇게 말하는 료우의 모습에서 자신을 무시한다는 모습이 느껴져 분노가 치밀었지만 뒤쪽에 서있는 바이크와 네오의 모습이 들어오니 금방 그 분노라는 것도 식어 감을 느꼈다. 상대는 너무 강했고 지금 현재 자신이 그에게 보여줄 분노는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는 바쿰이었다. "무엇을 원하냐?" 바쿰은 제안 따위에는 간심도 없었지만 자신의 목숨은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료우의 말을 경청했다. 상대가 자신을 죽일 마음이 있었으면 예전에 이미 죽었으리라 생각하는 바쿰이었다. 지금 자신의 전면에 서있는 사내는 모르더라도 그의 뒤에 있는 사내 둘은 결코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남부 리자드맨 대부족 바르를 원한다." "바르...!" ----------------------------------------------------------------------- 벌써 금요일이네요. 시간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어느덧 12월도 다 지나가는군요. 요새 날씨도 쌀쌀하고 주위에 감기 걸리는 분도 많으신데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이어지는 주말 잘 보내시고. 저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6장. 마물의 숲 바쿰은 료우가 이야기하는 바르가 바로 자신이 속한 부족을 지칭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잠시 멈칫했다가 코웃음을 쳤다. 리자드맨의 경우 부족의 이름은 부족장의 이름을 따르는 것이 예로부터 이어진 전례이다. 따라서 현재 부족장인 바르의 이름을 따서 부족의 명칭이나 마을의 이름도 바르인데 바쿰이 코웃음을 치는 이유는 이들이 용맹한 리자드맨 전사 5천이 모여 있는 자신의 부족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을 뿐 아니라 어리석어 보였기 때문이다. 남부 전 지역을 아우르는 바르는 남부에 존재하는 리자드맨 중소부족 마흔 두개를 거느리는 명실상부한 남부의 패자이다. 아무리 인간의 토벌대가 몰려왔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손쉽게 토벌될 부족이 아닌 것이다. 아니 오히려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쫓겨 갈 것이 뻔했다. 거기다 현재 부족의 우두머리이자 자신의 아버지 바르는 오크와의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정예병으로 단련된 리자드맨 전사 5천을 가지고 있다. 어지간한 인간무리들 따위가 함부로 맞설 세력이 아닌 것이다. "큭큭... 우습구나! 겨우 너희들로 우리 부족을 노리다니..." 바쿰의 비웃음에 료우는 씨익 웃음을 보였다. 뭐 하기는 단 세 명만 보였으니 저자가 웃는 것도 별반 이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바쿰의 비웃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료우와 바쿰이 있던 자리로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료우의 용병대였다. 하나, 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바쿰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세 명 만이 이곳에 왔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도 단지 세 명이 자신의 부족을 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지 예상되는 것이 있어서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지나치는 리자드맨 마을의 숫자가 모두 대여섯 개는 되니 아마도 많은 숫자가 전투에서 족히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쿰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자신에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의 수효는 모두 합쳐도 삼백을 조금 넘는 숫자가 전부였다. 시간이 더 흘렀지만 더 이상의 추가 병력은 없는 것이다. "겨우 이 숫자로 싸우려고 하느냐?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바쿰은 주위로 더 이상의 병력이 모이지 않자 조금 전의 비웃음을 지나 분노까지 나타냈다. 아까 전에는 세 명 만이 보였기에 분노이전에 어이가 없어 웃음만 흘렸지만 지금은 그 실체를 드러낸 상황이다. 그리고 그 숫자를 보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지금 모여 있는 자들의 개개인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겨우 삼백 오십 여명으로 리자드맨 전사 5천이 버티고 있는 부족을 공략한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인간의 나라에서 기사라고 콧대를 높이는 자들과 비교해도 거의 대등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리자드맨 전사들이었다. 저 난폭한 오크무리들도 대여섯이 모여야 리자드맨 전사 하나를 겨우 감당하는 실정이다. 아무리 현재 이곳에 있는 자들의 무위가 뛰어나다고 해도 숫자의 부족은 여실히 결과에 반영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거기에는 이들이 전부 자신이 조금 전에 보았던 두 사내만큼의 실력은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의 전제하에서였지만 말이다. 바쿰의 말에 료우도 어느 정도 공감은 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료우 자신도 자신들만으로 남부 리자드맨 대부족인 바르를 공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 공략한다면 못 할 일도 아니지만 그 피해는 자못 클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섣불리 객기를 부린다거나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7서클 마스터 마법사인 아론과 네오를 포함해서 오서클 마법사인 료우 자신과 흑마법사 어비스가 리자드맨 전사를 상대로 대단위 마법을 펼치고 다른 하위 서클의 마법사와 엘프들을 동원해서 원거리 공격을 한다고 해도 5천이나 되는 숫자를 마법만으로 모두 다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분명 숫자가 적은 용병대와 마법 공격에서 벗어난 리자드맨 전사들은 전면에서 맞부딪칠 것이 뻔한데 그런 난전 속에서 희생자가 안나온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물론 전투로 인한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슈리안 성전사를 두고 굳이 자신들만 나서서 싸우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이 아닌 돈에 의해 움직이는 용병이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들만 왔다고 생각하지?" 료우의 반문에 바쿰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단지 선발대야. 뒤쪽을 보라고..." 료우의 말에 바쿰은 놀란 눈으로 뒤를 보았고 어느새 도착했는지 3군을 구성하는 아슈리안 성전사들의 선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쿰은 다시금 나타나는 병력을 보면서 그들이 저 남쪽의 인간 종족 중에 자신들과 비교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전사들인 아슈리안 족임을 깨닫고는 이번 인간의 원정대가 얼마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역사가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까지도 들었다. 하나, 둘 모여드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숫자는 바쿰이 보기에도 적게 잡아 3천은 되어보였다. 아직까지 숫자 면으로는 부족의 5천 전사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기세만은 결코 부족의 전사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 "흐음..." 바쿰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보통 인간 왕국의 병사 3천이라면 그가 이렇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다. 그들을 보조하는 용병들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한손이 열손을 막기에는 힘든 것이고 인간 병사들의 실력이라고 해봤자 자신들과 매일 밥 먹듯이 싸우는 오크 전사들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이들 용병들만 막으면 되는 것이고 용병들의 숫자는 겨우 삼백 오십이 전부였다. 승부의 추는 이미 자신의 부족에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숫자라도 상대가 아슈리안의 전사라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이다. 거기다가 지금 저기서 투기를 뿜어내는 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반 아슈리안 전사의 모습도 아니었다. 리자드맨 중에서도 최상위층에 속하는 하이 리자드맨의 감각으로 저들은 아슈리안 전사중에서도 최상위의 정예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들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료우의 질문에 바쿰은 자신도 모르게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확신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정도 병력이면 내 도움도 필요 없을텐데 내게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료우로부터 조롱받았다고 생각하는 바쿰은 그렇게 따지듯 물었고 료우는 바쿰의 반응에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승리는 확신하지. 하지만 최소의 피해를 원한다." 료우의 대답에 바쿰의 얼굴은 잠시 동안 일그러졌다. 초록 피부로 매끈하게 뒤덮인 얼굴이 일그러진다는 표현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전사로 태어나 전사로 살아간 리자드맨 전사의 긍지를 가진 바쿰은 료우의 대답에 화가 치밀었다. 전사가 전장 터에서의 피해를 두려워하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 자신에 료우에게 화를 낼 처지는 아니었다. 자신도 이미 전사의 자존심을 버린 채 살고자 했고 그것만이 살길이라면 그는 마땅히 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쿰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자가 하나 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슨 소리냐? 피해를 두려워해 적과 치졸하게 거래 따위를 하다니..." 붉어진 안색으로 성을 내며 다가오는 자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선두에 섰던 원정 3군의 책임자 누게르였다. 이 40대 후반의 중년 사내는 하루도 끊이지 않는 단련을 통해 보통의 젊은이보다 더 매끈해 보이는 근육과 젊음이 베어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현재 그의 얼굴은 노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살아오는 수 십 년 동안 수많은 전장 터를 누비면서도 결코 죽음 따위를 두려워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자신이 알고 있는 전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해 적과 거래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는 료우가 바쿰에게 하는 소리를 듣고는 분기탱천해서 그렇게 끼어들었다. 이미 한번 료우에 의해 부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로서는 현재 료우가 바쿰에게 하는 소리는 다시 한번 부족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그런 누게르의 화난 목소리을 들은 료우는 오히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국(大局)적인 측면은 무시한 채 오직 자존심만 세우려고 하는군. 원정의 목적이나 목표 따위는 벌써 잊었나? 그깟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한가?" 료우는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는데 그의 말에 누게르의 붉어진 안색이 더욱 짙어지며 그의 목소리는 커졌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자존심이고 우리의 역사다. 너 따위가 우습게 이야기 할 것이 아니야." 성난 누게르의 대답에 료우의 얼굴도 상기되었고 그의 외침이 이어졌다. "그 따위 알량한 자존심만으로 전쟁은 승리하지 못한다. 자존심만으로 그대의 부하들을 희생시키고 싶은가? 저기 너의 형제와 친구들을 모조리 사지로 집어넣고 싶으냔 말이다?" 료우의 목소리는 이제 분노로 떨려 있었다. 죽음이 전해주는 그 절망의 깊이를 저들은 모르고 있다. 오직 어둠만이 존재하는 그 공포가 주는 외로움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 진한 어둠의 깊이만큼 깊은 심연의 공포를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전사로 태어나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너 따위 이방인의 충고를 들을 만큼 우리는 약하지 않다. 그런 나약한 정신으로 우리를 판단하려 하지 말아라." 분노 섞인 누게르의 화는 이미 멈추지 않는 활화산과 같았고 료우와 누게르는 마치 양쪽에서 돌진하는 폭주 기관차와 같았다.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오직 앞만 보고 전진하는 그들은 끝내 충돌을 멈추지 않았다. "꺼져라. 너 같은 정신 상태를 갖고 있는 자들과 함께 전투에 나서고 싶지 않다." 누게르는 끝내 료우에게 자신의 부대에서 나갈 것을 외쳤고 료우는 료우대로 이런 외고집에 허울 좋은 자존심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무시하는 자들과 더 어울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흥... 어디 그 자존심이 얼마나 가는지 지켜보겠다." 그렇게 말을 하며 "훽" 하니 고개를 돌리고 돌아서니 누게르는 료우의 그런 태도에 분노를 내보이며 금방이라도 쫓아가 결판을 내려고 하다가 주위의 부하들이 말리니 씩씩거리며 화를 참았다. "나는...?" 갑자기 자신에게 거래를 종용하다 서로의 다툼으로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료우를 바라보며 바쿰은 멀뚱멀뚱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고 씩씩거리는 바게르의 분노 때문에 조용했던 주변의 시선은 온통 그에게로 집중되었고 그들의 시선 속에는 살기가 묻어나 있었다. '이런...' 난감한 바쿰이었다. ----------------------------------------------------------------------------- 바쁘다는 핑계로 겨우 올렸네요. 요즘 감기가 유행인데 모두 감기 조심하고 이번 회로 이번 챕터를 마칩니다. 저는 다음에 찾아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27장. 오크의 왕국 료우와 누게르의 다툼으로 료우를 따르는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 빠져나간 상태의 3군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리자드맨 대부족 바르와 싸워야 하는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는 상황이지만 다른 원정군은 3군과 달리 나름대로 괜찮은 전과를 올리며 북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올리는 곳이 4군이었는데 제대로 된 용병의 숫자는 거의 전무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름대로 고심을 하며 어설픈 용병들을 이끌고 몇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나름대로 경험이 부족한 자들을 경험 있는 자들이 채워주는 방식으로 몇몇의 오크 마을들을 점령하면서 초보 용병들도 어느새 자신감을 가지면서 조금씩 제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몇몇의 조그마한 승전으로 기세가 등등해진 4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는 듯 북진을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적과 조우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4군의 총책임자인 아슈리안 부족의 용사 코라는 처음 4군을 이끌면서 돈으로 끌어 모은 용병들을 자신이 이끌어야 된 다는 사실 때문에 무척이나 화가 났던 기억이 났다. 제대로 된 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얼마 되지 않고 온통 부랑아에 난민이 전부였다. 칼이나 창을 쥐어주어 봤자 싸움이 일어나면 무기를 놓고 달아날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런 용병 따위는 없느니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원체 부족의 대족장이자 친우인 케인이 고집을 부리는지라 억지로 그들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 처음의 싸움은 마물의 숲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발견한 작은 오크 마을이 점령이었다. 대략 천여마리의 오크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마물의 숲 원정이후 첫 번째 전투라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전 병력을 내몰아 한꺼번에 쓸어버렸다. 물론 첫 번째 싸움에 용병을 집어넣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도 않았다. 괜한 첫 승전을 용병 같지도 않는 자들 때문에 더렵혀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노도와 같이 오크 마을을 휩쓸어버리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모습은 흡사 초원에 뛰노는 초식동물을 물어 죽이는 맹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고 그 살육의 현장은 뒤에 쳐져 불안한 모습으로 전쟁터를 지켜보는 용병들에게 끌어 오르는 피의 열기를 타오르게 만들었다. 돼지의 얼굴에 인간과 비슷한 몸을 하고 인간과 같은 무기와 방어도구를 가지고 있는 오크들은 미개한 몬스터이기 전에 무서운 적이었다. 저들의 무기에 찔리면 죽는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였고 그래서 살기 위해 돈에 팔려온 미숙한 용병들에게는 두려움이자 공포였다. 그런데 그 오크라는 존재들이 지금 너무도 쉽게 아슈리안 전사들의 손에 의해 죽어나가고 있었다. 흡사 지나가는 개미를 손쉽게 밟아 죽이는 아이들의 장난처럼 오크들은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지켜보는 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오크들의 모습에서 자신도 모르게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살육... 피... 비명... 죽음... 세 번째 전투가 마무리 될 무렵 4군의 책임자인 코라는 초보 용병들을 전투에 집어넣었다. 짙은 초록빛으로 얼룩져버린 대지를 뒤덮은 오크들의 시체가 사방 천지에 가득 찬 가운데 아직 쓰러지지 않은 몇몇 오크들과 죽지 못해 몸을 바르르 떠는 오크들 무리 속으로 초보 용병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부여잡고 억지로 끌려 들어갔다. 머리가 잘려진 시체와 몸통이 갈라져 그 안에 가지각색의 내장들이 흘러나와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는 것을 보면서 몇몇 자들은 차마 직시 하지 못하고 엎어져 먹은 것을 게우기도 하였고 몇몇은 덜덜 떨면서 뒤로 물러서기도 하였다. 하지만 뒤에서 눈을 부라리며 그들을 밀어내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모습에 억지로 그들은 전쟁터로 내몰렸다. "죽여라. 마지막은 너희들의 몫이다." 냉혹한 음성이 흘러나왔을 때 몇몇 용병들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막상 돈을 받고 용병으로 팔려왔지만 자신들이 무언가와 싸워야 된다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몇 번의 전투에서 자신들을 내보내지 않고 아슈리안 전사만으로 싸웠을 때 얼마나 안심을 했던가? 그런데 지금 그들은 다 이긴 싸움이라고 하지만 전쟁터에 내몰렸다. 그나마 몇몇 자들이 용기를 내어 쓰러져 있는 오크들에게 다가갔는데 그나마 서서 발악하고 있는 오크들보다는 안전해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르르 떨고 있는 오크의 눈빛은 인간의 모습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도 생명체고 죽지 않고 살아남기를 원한다. 그들이라고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바닥에 누워서 고통에 헐떡이는 오크는 다가오는 인간의 모습에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설프게 두 손으로 창을 잡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사내의 손과 발은 보기에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젖어 있는 것이다. "쿠루룩.." 오크는 다가오는 인간을 향해 억지로 소리를 지르며 반항을 하려 했다.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지르는 그의 목소리는 이미 꺼져가는 불씨처럼 힘이 없어서 인간의 발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쓰러져 자신을 향해 무어라 외치는 오크의 모습에 인간 사내는 약간 겁은 났지만 이것도 하지 못한다면 그는 어쩌면 용병에서 내쫓길지 몰랐다. 적을 죽이지 못하는 용병을 누가 돈을 주고 고용할 것인가? 그는 집에서 자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렸다. 조국이 제국이라는 자들의 손에 넘어갔을 때 무작정 고향을 버리고 타국으로 넘어 온 그였다. 들리는 소문이 너무도 흉흉하여 제국의 군인들은 보이는 사람마다 모조리 죽인다는 이야기 때문에 무작정 가족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도착한 파미르는 그에게 고통과 배고픔만을 안겨주었다. 그나마 고향에서는 영주의 수탈이 있었다고 해도 삼시 세끼 굶지는 않았지만 난민이 되어버린 지금은 하루에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땅을 일구던 손에 창을 들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 그는 움켜쥔 창대에 힘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두 손을 힘껏 뽑아 올려 쓰려져서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는 오크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심한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애처로운 눈길만 보내는 오크의 눈길을 도저히 피할 수 없이 고개를 돌린 채 박아 넣은 사내의 손끝에 전해지는 것은 피의 떨림이었다. 근육을 찢고 살을 헤집는 그 느낌은 사내가 지금까지 땅을 일구던 그 느낌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이어지는 비명과 미세한 진동마저 사라졌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는 느낌에 젖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죄책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살기위해 적을 죽인 것이고 인간이 아닌 몬스터였다. 그는 그렇게 자위하며 오크의 몸에 박아 넣은 창을 뽑았다. 창끝은 초록색 오크의 피가 묻어있고, 무언가 살점 비슷한 것이 함께 딸려 나왔는데 애써 땅바닥에 긁어 그것을 떼어내고 사내는 다른 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마다의 모습은 틀리지만 대부분의 용병들은 오크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며 그 충격을 저마다의 모습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애써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죽어 있는 오크를 향해 침을 뱉으며 욕을 하는 자들이나, 먹었던 음식물을 게우며 토악질을 하는 자나, 또는 창을 놓아 버린 채 떨리는 두 손을 쳐다보며 멍청하게 서있는 자들도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는 것이고 물러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전투가 끝났을 때 4군의 책임자인 코라는 부족의 전사뿐만 아니라 용병들도 전쟁터에 집어넣었다. 적의 숫자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한, 두 번의 경험으로 죽음에 익숙한 용병들을 더 이상 써먹지 않는 것은 낭비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싸움에서 많은 수의 용병들이 죽어나가리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피해를 감수 할 자신이 있었다. 써먹지 못할 용병 1만보다 당장 써먹을 용병 1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다섯 번째 전투에서 용병들은 처음부터 전면에 나서며 싸우는 바람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죽은 자만 1천이 넘었고 부상으로 제대로 싸우지 못할 자들이 2천은 되었다. 거의 용병의 3할을 이 전투에서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는 코라였다.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을 겪어 이제는 적을 죽일 수 있는 용병 7천을 얻었기 때문이다. 상처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을 남겨둔 채 북진하는 4군은 아슈리안 전사 7천과 용병 7천으로 이루어진 총 1만 4천의 병력이었다. 그들은 다섯 번의 싸움으로 다섯 개의 오크 마을을 점령하며 대략 1만 5천에 다다르는 오크들을 죽였다. 계속적인 승전은 마지막 싸움으로 입은 피해를 너끈히 잊어버리게 만들었고 그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힘찬 걸음으로 북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군이었으니 그들의 운이 없음을 한탄할 따름이다. ----------------------------------------------------------------------------- 즐거운 성탄입니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께 즐거운 성탄되시기를 기도하며 나름대로 멋진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마물의 숲 원정군 1군의 수장이자 아슈리안 부족의 부족장인 케인은 긴 탁자를 두고 자리에 앉아 주위의 부장들을 모아 놓고 자신들이 목표로 한 오크의 대부족이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는 사실에 당혹해하며 그런 물음을 던졌다. 예상했던 오크들의 수효는 대략 5만 정도였는데 그들이 그 부족의 본거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과 맞부딪쳐 싸운 오크의 규모는 다 합해도 2만을 넘지 않았다. 아니 여자와 어린 오크들을 뺀다면 그 숫자는 5천도 체 안 되는 숫자였다. 그 정도 규모라면 그들이 지금까지 거쳐 왔던 다른 오크 부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남부 지역에서 가장 큰 부족이라는 대부족의 전사 수효가 5천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 숫자였다. "저도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오크들 쪽에 무슨 문제라도 발생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부족을 비우고 대부분의 숫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무언가 큰 일이 아닌 이상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이곳 마물의 숲 남부 쪽에 오크들이 부족을 비우고 떠날 만큼 큰 위험이 닥쳤다는 사실밖에는..." 말을 흐리는 인물은 좌측에 있던 케인의 부장 뭉크였다. 대장로 켈라힘이 특별히 추천해서 따라온 뭉크는 전술적인 측면이나 판단이 빠른 편에 속해서 케인 역시 총애하는 아슈리안 전사중 한명이었다. 이런 뭉크의 대답에 케인 역시 그런 것을 느끼던 터라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뭉크의 말대로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군. 확실히 숲 전체를 다시 한번 탐지할 필요성이 있겠어. 북쪽 깊숙이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남쪽 지방은 모조리 파악하는 편이 옳겠군. 키얀!" "네... 족장님!" 케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측에서 한 인물이 일어서며 고개를 숙이더니 대답했다. 그는 짙은 흑색의 피부를 갖고 있는 인물로 날카로운 눈을 소유하고 있는 전사였다. 무척 젊은 편에 속하는 사내는 고개를 깊숙이 숙인 상태로 케인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이번 일은 네가 맡도록 해. 아무래도 미심쩍은 곳이 많으니 최대한 빠르게 파악하도록..." "알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리며 빠른 속도로 나가는 키얀의 모습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가 막사를 나가고 사라지자 좌중을 둘러보았다. 서남부에 위치한 오크의 대부족을 쓸어버리고 그들의 터전에 대규모 막사를 지은 원정 1군의 지휘부 막사의 분위기는 약간 무거운 편에 속하는 형편이었다.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오크 대부족을 쓸어버리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숫자의 오분지 일도 체 안 되는 저들의 숫자가 아무래도 찜찜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의 사정은 어떤가?" 한참 만에 꺼낸 케인의 물음에 우측에서 40대 중년 부장인 뉴리안이 벌떡 일어나며 보고했다. 그는 1군에 있는 8명 지휘관중 한명이자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정보 부장이었다. "네... 약간은 늦은 편이지만 키케르님이 이끄는 2군은 순조롭게 북진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조금 전에 목표로 하는 부족의 전방 200킬로 근방까지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이틀이나 삼일 후면 적들과 조우할 것 같습니다." 약간은 험상궂어 보이는 외모의 뉴리안이 그렇게 보고하자 케인은 대장로 켈라힘을 닮아서 현명하지만 조금은 신중해 보이는 키케르의 전술을 익히 파악하던 터라 늦어진 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1군을 재촉해서 예정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목표로 한 부족을 궤멸시켰지만 지휘관마다 성격이 다 다른 터라 자신과 동일한 시간 안에 목표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3군은...?" 케인이 가장 관심을 두는 곳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1군이 아닌 3군이었다. 특별히 숫자는 적지만 개개인의 실력이 인간 기사와 동등한 전력의 리자드맨 부족을 공략하는 것은 이 원정의 승패에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래서 특별히 전쟁의 신전에 있는 성전사 3천을 요구하였고 신전의 대사제인 누게르까지 불러들여 지휘권을 주고 3군에 배치시켰다. 또한 제국의 기병대를 물리친 용병단까지 포함시켰다. 성전사의 무위는 이미 익히 알고 있는 터였고, 비록 350의 용병을 데리고 온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라고는 하지만 배포나 실력은 나름대로 파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그들의 마법과 원거리 공격에 대한 정보는 케인에게 더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었다. 숫자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족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더해서 용병 대장이라는 료우라는 사내는 모르겠지만 그의 뒤에 있던 바이크라는 사내를 보고는 케인은 더더욱 악마의 전사 용병단에 대한 미더움을 느꼈다. 그 정도의 사내가 소속된 용병단이라는 숫자에 관계없이 강하리라 자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말을 흐리는 뉴리안의 대답에 케인은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파악했다. "무언가?" 눈을 번뜩이는 케인의 물음에 뉴리안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게 누게르 대장로님과 그 용병 대장의 의견 충돌이 있었나 봅니다.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란 자들은 이미 하루 전에 전부 3군을 떠났다는 보고입니다." "뭐라고...?" 벌떡 일어나는 케인은 금방이라도 보고하는 뉴리안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 보였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한참 만에 진정을 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아슈리안 부족의 경우 마법사가 없는 관계로 마법을 이용해서 통신구를 사용하는 통신 방법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전서구를 이용하는데 비둘기 보다는 안전한 맹금류를 이용해서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3군의 지휘관인 누게르와 료우의 충돌은 하루 전에 전서구를 통해 정보를 담당하는 뉴리안에게 보고 되었다. 뉴리안은 고작 350명의 용병대 따위는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을 하지 않은 관계로 누게르의 보고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이 좋아 350명이지! 그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뉴리안의 속마음 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미 하루 전에 보고 될 것이 지금에서야 보고 된 것이다. "빌어먹을..." 전후의 사정을 뉴리안으로부터 들은 케인은 욕을 한마디 내뱉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아슈리안의 전사이고 부족의 명예를 소중히 하는 편이라 누게르의 행동에 대해 뭐라고 추궁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부족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그 또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쳐나갈 것이고, 전사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목숨을 걸고 상대에게 도전할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원정 초기에 대두되었던 숫자의 문제 때문에 특별히 마법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용병대를 3군에 끼어 넣은 것인데 이렇게 틀어져 버렸으니 3군의 피해가 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손을 벗어난 일이었다. "4군은 현재 어디까지 왔나?" 3군의 문제를 털어버리려고 하듯이 케인은 4군의 일을 물었고 뉴리안도 얼른 4군의 현 상황을 보고했다. "네... 4군은 다섯 번째 오크 부족을 점령하면서 용병 1천을 잃었고, 2천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오크 부족에 부상자를 남겨두고 북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병력은 총 1만 4천입니다." 자신의 절친한 친우이자 부족의 용사인 코라의 능력을 알고 있는 케인은 나름대로 걱정이 컸던 4군이 순조롭게 북진 중이자 3군의 다툼을 쉽게 잊었다. 용병단이 빠져나간 3군의 큰 피해가 예상되지만 불안했던 4군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3군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계산 하에서였다. 한편 케인의 뇌리에서 사라진 료우의 용병단은 3군에서 빠져나와 다음 경로를 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료우는 막상 3군의 지휘관인 누게르와의 다툼으로 3군 진영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 돌아가자니 용병으로서의 책임도 책임이지만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한 상태였고 정말로 자신들이 빠져나가고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 태도가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누게르의 말에 마음이 상한 료우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뒤를 따를 까요?" 아론은 료우의 마음 상태가 어떠하다는 사실을 파악했기에 그렇게 물었고 아론의 말에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료우는 얼굴을 붉히고는 자신이 무척이나 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깟 몇 마디 말에 얼굴을 붉히고 뛰쳐나왔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은 수장으로서의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책이 들자 매우 의기소침에 지는 료우였다. 료우의 이런 태도에 옆에서 딴 짓을 하고 있던 네오가 불쑥 뛰쳐나와 료우의 등을 "퍼억" 하니 때리더니 소리쳤다. "뭐야? 그깟 일로... 이참에 우리끼리 해볼까? 까짓것 저것들 없어도 우리끼리 충분하잖아. 뭐 정 힘들면 파미르로 튀면 그만이고..." 장난기 어린 네오의 말에 료우는 피식하고 웃고는 자신이 실태를 파악하고 몸을 추스르고는 네오의 말처럼 그까짓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편이라는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다. 이런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다음부터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료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케인을 찾아가지. 3군으로 돌아가기에는 체면도 있고..." 애써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료우의 말에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케인이 있는 원정군 1군으로 발길을 돌렸다. 3군의 지휘자인 누게르와의 다툼으로 3군으로 되돌아 갈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원정군이었기 때문이다. -----------------------------------------------------------------------------------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너무 정신없는 연휴라 글 올리는 것이 너무 늦었네요. 이렇게 매번 늦게 올려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할려고 하는데 그게 뜻대로 안되네요. 다음부터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ㅡ_ㅡ::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마물의 숲 북부는 인간들이 알고 있는 마물의 숲 남부 변경보다 더 잔혹하고 흉흉한 몬스터들이 즐비했다. 남부에 존재하는 것들이야 대부분 오크나 리자드맨이 전부였지만 마물의 숲 북부로 올라갈수록 인간들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거대 몬스터들도 많았다. 인간들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오크의 무리가 떼를 지어 거대 몬스터나 대형 몬스터등을 북쪽으로 쫓아내고 약탈이 가능한 마물의 숲 남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마물의 숲 중부만 해도 감히 오크들이 떼를 지어도 덤비지 못하는 하피나 그리폰, 와이번등의 조류형 몬스터는 물론이고 오우거타 트롤등의 대형 몬스터들도 무리를 지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밖에도 라이칸 슬로프나 고블린, 코볼트등도 무리를 지어 살아가기 때문에 거의 단독 행동을 하는 대형 몬스터들도 마물의 숲 안에서만은 감히 홀로 독불장군 행세를 할 수 없다. 그만큼 마물의 숲은 무서운 곳이다. 마물의 숲 북부는 더 무서운 곳이었다. 인간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기에 더해 이야기 속에서나 회자될 뿐 감히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없다는 자이언트나 사이클롭스, 맨티코어등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곳이 바로 북부 마물의 숲이었다. 그만큼 마물의 숲 북부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으로 아무리 오크의 무리가 많다고 해도 마물의 숲 북부에서는 감히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법칙을 깨고 마물의 숲 북부에서 세력을 떨치며 점차적으로 마물의 숲을 지배하는 세력이 생겨났으니 그것은 지금까지 유래도 없던 오크의 왕국이었다. 오크의 무리가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왕국을 이룬다는 것은 감히 듣지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 무척 생소한 일이지만 감히 그런 일이 마물의 숲 북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쿠루룩... 남부 공략이라..." "쿠룩... 황제께서 원하시고 계십니다. 대제국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는 남부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 밑의 인간의 땅도 차지해야 되겠죠. 이것이 황제께서 주군께 원하시는 일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자들은 놀랍게도 모두 하나같이 대략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구 사내들로 인간이 아닌 오크였다. 그것도 일반 오크가 아닌 발견하기 흔치않다는 그레이트 오크였다. 일반 오크보다 1.5배나 덩치가 크고, 힘도 강한데다, 지능도 높다는 그레이트 오크는 리자드맨으로 치자면 하이 리자드맨에 속하는 무리들로 그 숫자가 극소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황제라니... 그들의 대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의자에 앉아있는 그레이트 오크는 붉은 머리에 날카로운 안광을 내뿜는 오크로 떡 벌어진 어깨하며,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뭉쳐진 몸매는 보기만 해도 매서워 보였다. 거기다가 분명 인간의 기사나 착용할법한 중갑주를 몸에 걸치고 있으니 얼굴만 가린다며 감히 인간이라고 상상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대략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이 거구의 오크는 자신에게 황제의 명령을 전하는 부하를 쳐다보며 고심을 하고 있는 중이였다. 보고를 한 오크는 역시 그레이트 오크로 보이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붉은 머리 오크에 비해 약간 마른 편이지만 거의 떨어지지 않는 근육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오크는 특이하게 녹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데 두 눈에는 현기가 넘쳐흘렀다. 외모만 빼놓고 본다면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보이는 오크였다. "쿠룩... 아직 이곳 북부도 다 평정하지 못했는데 남부 공략이라니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붉은 머리 오크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는데 그의 옆에서 부동자세로 서있는 녹색 머리의 오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쿠룩... 아닙니다. 케블 각하! 북부에서 더 이상의 확장은 무리입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자이언트와 사이클롭스, 맨티코어의 서식지를 더 이상 침범하면 우리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의 북부에서의 팽창은 오히려 제국으로의 발돋움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차라리 남부를 비롯한 인간의 왕국을 점령하는 편이 우리에게는 이익입니다. 쿠르르..." 녹색 머리 오크의 대답에 붉은 머리 오크는 아직은 수긍하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면서도 더 이상의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이미 황제의 결정이 난 터라 자신이 더 이상 왈가왈부(曰可曰否) 해 보았자 소용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물의 숲 서북부와 중부 마물의 숲 대부분을 차지하고 인간들은 감히 들어보지도 못했던 오크의 왕국을 세운 오크 황제 커비터스는 오크 중에서도 가장 무섭다고 알려진 그레이트 오크로 드레곤의 유희로 탄생되었다는 탄생 신화를 갖고 있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오크의 왕이다. 스스로 황제로 칭하고 자신이 속한 그레이트 오크 부족 전체를 이끌고 끝없는 전쟁을 통해 힘을 키운 이 오크의 황제는 십년 만에 마물의 숲 절반을 차지하는 오크의 왕국을 세웠다. 하지만 오크의 황제 커비터스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탐욕의 대명사로 알려진 블랙 드레곤 카니스트라우스의 피를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진 커비터스는 대륙 전체를 오크로 채우고 싶었다. 인간의 힘에 밀려 그 옛날 북부로 밀려난 오크의 예전 고토를 회복하고 싶었다. 저 옛날 자신의 조상들이 차지했던 기름진 대륙의 땅을 그는 차지하고 말겠다는 다짐 속에 세력을 키우고 드디어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해 침략을 시도하는 것이다. "둥둥둥..." 숲 전체를 울리는 북소리와 더불어 오크의 왕국 오이라트에서 출발하는 대규모 오크 군대는 그 수만 따져도 물경 5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스스로 황제를 지칭하며 마물의 숲 절반을 차지한 오크의 왕국 오이라트의 힘은 인간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왕국 병력의 주축을 이루는 오크 정규군의 숫자가 50만에 이르렀고 거기다 오우거와 트롤등의 대형 몬스터 군단도 3만은 족히 넘어섰다. 지름이 2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북을 두드리며 선두에 선 오우거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 거대한 병력의 규모는 대륙을 호령하는 바빌론 제국의 군사력과 맞먹을 만큼 엄청난 것처럼 보였다. "쿠루룩... 진군하라. 황제께서 너희들의 승전을 고대하신다. 전군... 진군하라!" 50만 오크 대군의 선두에는 칠흑의 어둠과 같은 털을 탐스럽게 휘날리며 "크르르" 거리며 울고 있는 묘한 짐승의 모습이 보였고 그 짐승의 등 위에 한 사내가 앉아있다. 그는 놀랍게도 지옥의 불꽃과 같은 붉은 색 머리를 한 그레이트 오크였다. 케블이라 칭해진 이 그레이트 오크는 오크 왕국의 삼공(三公)중 하나이자 적염(賊炎)의 공작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오크로 홀로 거대 몬스터로 알려진 사이클롭스를 단숨에 갈라버리는 엄청난 무위로 유명한 오크였다. 그가 타고 있는 묘한 짐승은 눈은 지옥의 불꽃처럼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입에서는 유황냄새를 풍기며 불을 뿜어 낸다는 지옥의 사냥개 헬 하운드(Hell Hound)였다. 그리고 그 뒤로 보기만 해도 사나워 보이는 워 울프(War Wolf)를 타고 있는 오크 기병대가 보이는데 "크르렁" 거리는 울음소리는 꽤나 시끄러웠다. "쿵쿵쿵..." 케블의 명령이 떨어지기 앞으로 전진하는 오크 대군의 움직임은 마물의 숲 전체를 소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엄청난 오크의 해일은 단숨에 마물의 숲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이봐... 이봐... 얼마나 더 가야한데?" 원정 4군의 용병대에 소속되어 있는 랄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옆의 동료 사내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을 받은 사내는 30대 초반의 중년 사내로 약간 지친표정을 하고 있다가 랄스의 물음을 받자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고개 짓을 하며 귀찮다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궁금하면 저쪽의 대장에게 물어봐!" 그의 대답에 랄스는 사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이번에 자신들의 대장으로 임명된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거의 거리의 부랑자나 난민으로 구성된 원정군 용병대는 4군의 지휘관인 코라의 혹독한 방법으로 인해 이제야 조금은 용병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은 미숙했다. 그런 초보 용병들에게 싸움을 할 줄 아는 경험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었다. 4군의 지휘관인 코라는 용병으로 경험이 풍부한 몇몇 자들을 이들 초보 용병의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그들을 이끌게 하였다. 그것이 자신들이 이끄는 것보다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랄스가 속한 원정 4군 제 5용병대의 대장은 매우 젊은 청년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대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데 그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용병대의 대장이 될 수 있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어린 나이 때문에 대장이라는 직책을 맡기는 것을 극구 반대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범상치 않고 또 그 젊은 청년에게 비추어지는 기운도 예사롭지 않아서 반대는 금방 시들시들 해졌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그를 대장으로 뽑은 선택은 옳았다. 원정 4군이 다섯 번째 오크 마을을 점령할 때 싸움은 처음으로 용병들을 투입한 싸움이라 무척이나 지독하고, 피해가 큰 전투였다. 초반에 살인과 무기에 익숙하지 못한 용병들은 흉성을 내보이며 달려드는 오크 전사들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싸움도 펼쳐 보이지 못하고 얼어버린 채로 도망을 가거나 몸이 굳어버려 오크들의 먹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나마 조금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자들도 오크의 기세가 흉흉하여 죽이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제 5용병대의 경우에는 선두에 용병대 대장과 그를 따르는 30여명의 사내들이 예상치 못한 무위를 펼치며 한꺼번에 많은 오크들을 죽이자 기세등등해져 싸움에서 큰 성과를 이루어냈다. 전투 이후로 그의 진가는 더 명확하게 들어났는데 3천의 사상자를 낸 용병들의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제 5 용병대의 경우 사상자가 겨우 50여명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전투에 소극적으로 참전했다면 그런 피해도 납득할만한 일이지만 제 5 용병대의 경우 전투의 최전방에 있었고 용병대중 가장 큰 성과를 올렸기에 그의 능력은 대번에 용병대는 물론이고 아슈리안 전사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졌다. 20대 초반의 이 젊은 용병 대장은 황금빛 모발과 단아한 외모 때문에 더욱 특이해 보이는 편이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꽤나 교육을 받은 명문의 귀족쯤으로 보이게 만드는데 그를 따르는 30여명의 사내들이 하나같이 놀랄만한 무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런 짐작을 뒤받침 해주고 있었다. 랄스는 동료의 대답으로 용병대의 젊은 대장을 주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그런 질문 따위를 자신의 대장에게 하기에는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이름을 얀 슬러버라고 했던가? 모두들 쉬쉬 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멸망한 미르의 귀족쯤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이 얀 슬러버라는 사내였다. 그를 따르는 자들 중에는 보기만 해도 엄청난 위세를 떨치는 사내도 하나 있는데 이름을 카슈 메그놈이라 했던가? 보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이 사내의 무위를 랄스는 우연치 않게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얼마 전 갑작스럽게 용병대를 덮친 일단의 오크 무리들 때문이었는데 덤벼드는 오크를 단칼에 두 쪽으로 내는 모습에 랄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오크 몸을 단번에 두 쪽으로 내는 경우는 그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소드 마스터 어쩌구 하는 존재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할 정도로 말이다. 랄스가 이런 상상을 하며 용병 대장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을 쯤 그의 귓전에 소란스러움이 들린 것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작스럽게 소란해진 주변 환경 때문에 상상이 깨진 랄스는 무슨 일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오오 오... 크!" -----------------------------------------------------------------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숲이라는 명칭과 걸맞지 않게 마물의 숲은 나무 한그루 존재하지 않는 황토뿐인 평원도 있고 하천이나 연못, 늪 따위만 즐비한 습지도 존재하는 희한한 곳이다. 또한 무척이나 작은 잡목들로 이루어져 있거나, 거친 수풀만이 우거진 초원도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마물의 숲 원정을 나온 인간의 군대는 환경이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 적과 싸우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이번에는 누런 황토만이 가득 찬 평원에서 오크의 군대와 조우하게 되었다. 원정 4군은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며 오크와의 싸움에서 연승을 거두며 북진을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오크의 군대를 만났어도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의 싸움에서 승리한 까닭에 오크의 군대 따위는 그리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너른 황토 빛 평원 건너편 나무로 우거진 곳에서 하나, 둘 나타나는 오크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들의 갖고 있던 자신감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간 원정군 4군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전투에서 접했던 어떤 오크의 숫자보다 현재 눈에 보이는 오크의 숫자는 많아 보였다. 거기다가 예전 마을을 습격하거나 포위해서 공격할 때는 오크들이 갑작스러운 인간의 공격에 당황해서 많은 이득을 보았지만 현재 그들은 오크와 전면으로 부딪친 상황이라 예전까지의 이로움은 하나도 갖지 못했다. 짙은 황토색 대지에 바람이 일자 누런 먼지가 사방으로 퍼지는데 그 희뿌연 먼지 너머로 보이는 오크 군대의 수는 어림잡아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랄프는 자신의 앞에 늘어선 오크의 대군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만 둥그렇게 떴다가 지금까지 가졌던 자신감이 한순간에 무너짐을 느꼈다. "제길..." 인간 원정군 4군의 지휘관인 코라는 나름대로의 혹독한 방법을 거쳐 그나마 써먹을 수 있는 용병대 7천을 만들어 이후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 유리함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하다가 예기치 않게 마주친 오크의 군대를 만나고는 욕을 퍼부었다. 이제 겨우 서른을 갓 넘긴 그는 부족의 전사로 또한 훌륭한 지휘관으로 명성이 높았던 까닭에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원정 4군의 지휘를 맡을 만큼 유능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유능한 지휘관도 적의 숫자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면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어림잡아도 최소한 10만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런 병력이 이런 곳에 불쑥 나타날 수가..." 코라의 부관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런 행동은 그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지휘부 전체가 거의 비슷했는데 그나마 지휘관인 코라만이 조금은 침착한 표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도 전혀 예기치 않는 상황이 닥쳤기에 한순간의 공황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반응은 인간 군대와 조우한 오크의 진형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의 다음 대응이 조금은 빨랐다는데 있었다. 동남쪽 오크 부족을 평정할 임무를 받고 출동한 오크 왕국의 원정 5군단의 군단장은 원정 사령관인 적염의 공작 케블의 수족 중 하나인 크루라는 그레이트 오크였다. 키가 무려 2미터 50센티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이 거구의 오크는 그 힘이 천하장사라 거의 오우거에 필적할만한 용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자신의 무기도 오우거나 사용 가능하다는 그레이트 엑스를 주로 다루고 있었기에 그 소문은 아마도 정확할 듯 보였는데 힘이 무식할 만큼 강한 반면에 무척 단순한 오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원정 5군단의 군단장을 맡은 후 마물의 숲 동남쪽을 평정하라는 임무를 받자마자 자신의 5군단에 속한 10만의 오크 군대를 몰아 단순무식하게 바로 남하를 시작하였다. 어떠한 전략이나 전술 따위는 그에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무조건 일직선으로 돌진해서 마물의 숲 동남쪽의 끝까지 남진하면 그는 자신이 맡은바 임무를 다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 군단장의 성격과 걸맞게 오크 왕국의 원정 5군단은 무조건 자신들의 앞을 방해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일단 쓸어버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로인해 그들은 최단시간에 마물의 숲 남쪽 외곽까지 접근할 수 있었고 다섯 군데로 나누어진 오크 군단 중 제일 처음으로 마물의 숲 원정을 하고 있던 인간의 군대와 만나게 된 것이다. "쿠르르... 인간의 군대 따위가 이제는 이곳까지 들어와서 버젓이 활동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인간의 군대를 발견한 오크 왕국 원정 5군단의 군단장 쿠루는 덩치에 어울리는 큰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를 터뜨렸다. 오크 왕국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 대륙에서 인간을 쓸어버리고 오크들만이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자신들의 최대의 적인 인간이 벌써 자신들의 보금자리까지 침입한 것이다. 그의 분노는 그 어떤 것보다 컸다. "쿠루... 모조리 죽여라. 한 놈이라도 살려두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 모조리 씨를 말려 우리 왕국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호전적이고 단순한 성격 때문인지 군단장 쿠루는 인간의 군대를 발견하자마자 왜 이곳에 인간의 군대가 있는지에 관한 의문 따위는 접어두고 일단 공격 명령부터 내렸다. 그딴 것은 나중에 인간의 군대를 쓸어버리고 알아보면 그만인 것이다. 그의 이런 호전성 때문에 선공은 오크가 먼저였다. "쿠루... 돌격!" "죽여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전적인 오크의 종족성에 걸맞게 그들은 앞을 다투어 인간의 군대에게 달려 나갔다. 급조된 듯이 보이는 어설픈 투구와 흉갑은 보기에도 무척이나 조잡해 보였고,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병기들 또한 하나같이 단단하고, 날카로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호전성만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인간의 장인에 해당하는 대장장이의 숫자가 극히 적고 수준도 극히 조악한 수준이라 오크들의 무구나 장비는 매우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원래 그들이 무기나 무구 따위의 질적 수준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호전적인 성향으로 싸우는 것이 다반사라 결코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오크들의 선제공격은 당황하고 있던 인간 지휘부를 혼란시키기에 충분했다. 4군의 총 지휘관인 코라는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그를 제외한 지휘부를 비롯해서 하급 지휘관의 경우 아직까지 저 많은 수효의 오크 숫자에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것이 정확했다. 거의 자신들의 7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대군을 바라보는 심정이라는 것은 대부분 동일할 것이다. 그전까지 숫자의 우위를 이점으로 삼아 적을 섬멸했지만 이제는 그 이점이 사라지고 오히려 약점이 되어버렸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오크 떼의 공격은 아무리 전사 부족인 아슈리안 종족의 전사들이라고 해도 당황스럽게 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막아라!" 오크의 대군에 놀라 제대로 진형도 갖추지 못한 인간의 군대는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쏟아져 나오는 오크의 대군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오크들과 맞붙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악..." "커억..." 순식간에 맞부딪친 오크와 인간의 군대의 충돌은 많은 인원 수 만큼이나 넓은 격전지를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싸움에 의해 죽은 자가 속출하였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오크 무리에 인간 원정군은 순간적으로 뒤로 밀리며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인간 군대의 전멸은 시간문제였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인간 군대를 돌려놓은 것은 유능한 지휘관인 원정 4군의 총지휘관 코라였다. 코라는 곧바로 냉정을 되찾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지휘관을 수습하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코라의 영향으로 몇몇 지휘관들이 정신을 차리고 군을 수습하며 독려하자 밀렸던 진형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사상자를 낸 상태여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으으으..." 제 5 용병대의 랄스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오크의 대군과 그리고 이어진 그들의 선제공격에 얼이 빠져 있었다. 순식간에 밀어닥치는 오크의 대군을 맞이한 용병들은 어느새 그전까지 가졌던 자신감은 어디로 팽개쳤는지 두려움에 잔뜩 젖어서 겁을 집어먹고 있었고, 랄스 또한 그들과 비슷하게 신음까지 흘리며 벌벌 떨고 있었다. 두려움에 젖은 랄스는 이대로 창을 버리고 도망을 칠건지 아니면 그냥 엎드려 항복을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랄스의 이성을 깨우는 소리가 저만치에서 들렸다. "두려움을 버려라. 이들도 지금까지 그대들의 손에 죽었던 나약한 오크들과 다를 바 없다. 모두 용기를 갖고 맞서 싸워라!" 두려움에 젖어 있다가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랄스의 눈에는 검을 뽑아들고 용맹하게 달려드는 오크를 손쉽게 베어 넘기며 소리치는 젊은 용병 대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황금 모발을 휘날리며 마치 젊은 맹수처럼 여기 저기 뛰어들며 덤벼드는 오크들을 베어 넘기는 젊은 사내의 모습은 랄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 자신도 전번의 싸움에서 두 마리의 오크를 자신이 들고 있는 창으로 찔러 죽이지 않았던가? 랄스는 창을 잡은 손에 힘을 불어 놓고는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더니 힘껏 소리를 쳤다. "으아아아..." 고함과 더불어 전면의 오크 무리에게 뛰어 나가는 랄스의 모습은 조금 전까지 공포에 떨었던 겁쟁이가 아닌 진짜 용기 있는 용병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용병대 전체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많은 수의 용병들은 겁을 집어 먹은 채 서서히 물러섰고 용병들이 물러선 자리는 오크들의 차지가 되어 용맹하게 많은 숫자의 오크를 막아서는 아슈리안 전사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다. ----------------------------------------------------------------------------- 쿨럭... 여전히 늦은 연재 주기를 고수하는 별빛입니다. 주말에는 유독 바쁜것이 핑계라고나 할까요? ㅡ_ㅡ;; 주말 시작 잘하십시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서쪽이 뚫린다. 용병들이 물러선다. 빨리 막아라!" 자신들의 숫자보다 7배나 많은 병력과 부딪친 관계로 인간의 군대는 자신들도 모르게 원형을 이루며 방어하기에 이르렀는데 오크들의 거센 공격에 용병들이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서자 원형의 진이 뚫리기 시작했다. 서쪽 방향의 진이 구멍이 나자 그 구멍을 뚫고 오크들이 밀려오는데 외부의 적도 막기 급급한데 진안으로 들어온 오크까지 감당하려고 하니 원형을 이루던 인간의 진형 전체는 급속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막아!" "엄마!" 어린 병사의 울부짖음도 들렸고 바닥을 구르는 자신의 손을 집어 들고 고통 이상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정신이 멍한 상태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누구의 창에 찔렸는지 복부를 뚫고 나온 창대를 움켜쥐고 두 손 가득 베어있는 피를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도 보였다. 둔기에 맞았는지 오른쪽 머리가 함몰되어 갸우뚱거리면서 쓰러지는 늙은 노병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고, 자신의 목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는 자의 손에는 왈칵 왈칵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죽어간 인간의 병사만큼 오크들도 피를 뿌리며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숫자가 많은 만큼 유리하다고 하지만 아슈리안 전사들의 무위는 오크 두, 셋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만큼 강해서 초반의 유리함은 어느 정도 상쇄된 관계라 서로 비등비등한 싸움을 했는데 용병들이 밀리자 전세는 오크들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면 죽는다. 너희뿐만 아니라 옆의 동료도 같이 죽는다." 급속도로 무너지는 서쪽 진형에 젊은 사내의 급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 떼의 용병들이 나타나 오크들에게 무너지고 있는 서쪽 진형을 막아섰다. 이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오크의 군대가 속속들이 밀려드는 관계로 마치 오크들의 거센 파도를 연상케 하는 파상공격은 어느 때 보다 강해보였는데 그들은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잘 막아내고 있었다. 선두에서 오크를 막아내는 인물은 제 5 용병대의 대장인 얀 슬러버라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의 황금 빛 모발은 어느새 오크의 피로 뒤덮여 제 색깔을 잃고 있었고, 그의 갑옷 또한 진한 녹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얀은 이미 얼마나 많은 숫자의 오크를 베었는지 몰랐다. 하나, 둘 세었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그의 손에 죽어간 오크의 숫자는 손꼽아 헤아릴 만큼 적은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주변을 따르는 기사들의 숫자는 보통 때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에 해당하는 15명의 기사들은 난전 중에 헤어졌는데 오크들의 손에 쉽게 죽지는 않으리라 확신을 하면서도 오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눈먼 칼에 맞을 수도 있기에 약간은 불안한 상황이었다. 얀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의 충성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신은 그들에게 무엇 하나 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에 항상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그러했다. 당당한 왕국의 근위 기사였던 그들이 지금은 일개 용병이 되어 오크 무리들과 검을 섞고 있는 중이었다. 얀 슬러버! 실제 이름은 얀 주엘 슈데이론.. 몰락한 미르의 2왕자이자 이제는 신분을 숨기고 성까지 바꾼 상태에서 얀 슬러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는 미르를 삼킨 세덴 공국이 파견한 암살자와 추적자들의 눈을 피해 자신의 호위 기사들과 함께 파미르 왕국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처음에는 무척 많은 숫자의 기사가 따랐지만 몇 번의 추격과 암살로 많은 숫자가 죽거나 헤어졌고 이제 남은 숫자는 모두 합쳐서 서른 명이 고작이었다. 얀은 세덴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테미 땅까지 넘어왔다가 마물의 숲 원정에 동참하였다. 테미에서도 세덴의 추적자들은 넘쳐났고 그들을 피해 할 수 없이 마물의 숲까지 온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수많은 오크들에 둘러싸여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수많은 기사들을 잃으며 여기까지 도망친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왕국의 복수와 무너진 왕국을 다시 세우겠다는 일념 하나에서였다. 그런데 이런 난전이라면 언제 어디서 적의 손에 죽을지 몰랐다. 하지만 얀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서면 더 이상 갈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 악을 쓰며 서서히 힘이 빠지는 오른손에 힘을 불어넣은 얀은 달려드는 오크의 머리를 베어 넘겼다. 툭하니 잘려 나가는 오크의 머리는 저만치 굴러갔고 목을 잃은 몸뚱어리는 달려가는 탄력에 못 이겨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방에는 피와 죽음의 비명성이 난무했다. 얀과 그의 기사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 5 용병대의 일부 병력이 무너지는 서쪽 진형을 어느 정도 방어하고 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인간과 오크의 군대가 접전을 벌이는 장소는 방대했고 한쪽을 방어하면 한쪽이 어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오크의 숫자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 말이 10만이지 그 숫자의 갖는 무서움을 실제 겪는다면 치를 떨 것이다. 하나 둘 쉴 새 없이 적을 죽여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의 적이 다시 자리를 메운다. 그것은 하나의 공포였다. 아무리 아슈리안 전사들이 태어날 때부터 용맹하고 물러섬이 없다고 해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크의 무리에는 질릴 만도 했다. "쿠룩... 아직도 뚫지 못하다니 감히 내 명예를 더럽힐 생각이냐?" 오크 왕국의 원정 5군단의 군단장 크루는 많은 숫자의 병사를 동원해 공격하였는데 아직까지도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한 채 전투가 지지부진(遲遲不進)해지자 화를 터뜨렸다. 한번에 적을 쓸어버리는 그의 성격상 이도 저도 아닌 대치국면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프! 너의 군사를 움직여라. 그리고 뒤쪽의 오우거와 트롤들도 전면에 내세워라." 크루는 더 이상의 지루한 국면을 참을 수 없다는 듯 5군단의 실체라 할 수 있는 블랙 오크 부대와 오우거, 트롤등의 특수 부대를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마물의 숲에 나라를 세운 오크의 왕국은 실제적으로 오크 중에서 가장 사납고, 똑똑하다고 알려진 그레이트 오크들이 세운 나라이다. 하지만 그레이트 오크의 경우 숫자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이들은 일반 오크와는 달라서 짧은 오크의 수명과는 다르게 수명이 긴 수명을 갖고 있는 반면에 번식력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오크의 왕국에 있는 그레이트 오크의 숫자는 모두 합쳐도 체 50만을 넘지 않았다. 왕국을 이루는 국민의 숫자가 고작 50만이라는 것은 마물의 숲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종족과 비교해 보면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 숫자로는 절대 왕국은커녕 살아남기에도 힘든 숫자였다. 그래서 왕국을 세운 오크의 황제 커비터스는 자신들과 비슷하지만 미개한 오크 종족을 힘으로 병합했고 그 첫 번째가 일반 오크 중에 가장 사납다고 알려진 블랙 오크 종족이었다. 블랙 오크는 인간들이 흔히 알고 있는 갈색 오크와 비교에서 덩치가 크고 힘도 강할 뿐만 아니라 성질도 사나운 오크 종족이다. 거의 북쪽 마물의 숲에 살고 있는 놈들이라 복종시키기 힘든 반면에 한번 충성을 맹세하면 절대적인 힘이 되는 종족이었다. 오크의 황제 커비터스는 왕국의 기반을 마련하기위해 절대적으로 블랙 오크 종족부터 제압을 했고 그들을 통해 왕국 군대의 근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블랙 오크 종족에 못지않다는 회색 오크들을 병합해서 일반 병력을 채워 넣었다. 이런 까닭에 오크 왕국은 그레이트 오크가 상위 계층을 이루고 그 밑으로 블랙 오크와 회색 오크가 비슷한 지위를 갖았고 오크 왕국의 주 병력은 블랙 오크와 회색 오크로 채워졌다. 이런 왕국에 갈색 오크가 추가된 것은 어느 정도 왕국의 크기가 커지면서 마물의 숲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발견한 갈색 오크 부족들은 제대로 대항도 하지 못하고 오크 왕국에 항복했다. 오크 왕국은 처음에 자신들보다 약한 갈색 오크 따위를 왕국에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숫자가 많고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전투력은 낮지만 숫자가 주는 이로움이 있어 받아 들였다. 사람들이 흔히들 알고 있는 오크들은 바로 이 갈색 오크를 지칭하는 말이다. 수명이 짧은 대신에 번식력이 대단히 높고 2-3년만 지나면 성인 오크가 되어 바로 전투에 투입된다는 호전성이 강한 이 오크들이지만 오크 왕국에서는 거의 하위 계층에 노예와 비슷한 일면을 갖고 있었다. 숫자가 많은 까닭에 오크 왕국의 거의 70프로를 차지하는 이들은 이번 원정에서 숫자를 채워 넣기 위해 포함되었다. 한마디로 노예 병사라는 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까지 인간의 군대와 싸웠던 오크 병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숫자를 채워 넣기 위해 투입된 노예 병사들이었고 진정한 왕국의 오크 부대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현재 오크 원정군 5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오크 부대의 대부분은 갈색 오크로 짜여진 노예 병사들로 짜여져 있지만 실제적인 블랙 오크로 채워진 부대도 1만 정도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군단장 크루의 호위대는 3천의 그레이트 오크들로 채워져 있었다. "크르륵... 모두 준비해라." 크루의 명령을 받은 블랙 오크 부대의 지휘관 차프는 크루와 같은 그레이트 오크였다. 숫자가 가장 적은 그레이트 오크들은 왕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모든 오크 군대의 지휘관을 모두 자신의 종족으로 채워 넣었다. 일반 오크보다 머리가 뛰어나 작전 명령을 잘 수용하는 측면에서 이기도 했지만 숫자가 많은 다른 오크들의 배반을 두려워해서 일부로 그렇게 채워 넣은 것이다. 블랙 오크 부대는 보기만 해도 일반 갈색 오크 부대보다 키도 크고 몸집도 약간 커보였다. 거기다가 투구와 흉갑등도 더 단단해 보였고, 칼과 창도 나름대로 오크들이 쓰고 있는 보통 것보다 좋아 보였다. 흉성을 내보이며 정렬을 하는 블랙 오크들을 바라보는 차프는 한번 "휘익"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크루룩...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모조리 죽여 피를 마셔라!" "쿠아아아..." 검을 빼어들고 외치는 차프의 말에 블랙 오크들은 함성을 내지르더니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전쟁터로 빠르게 움직였다. ----------------------------------------------------------------------------------- 즐거운 하루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새로운 오크 부대의 진입은 가뜩이나 힘겨워 하는 인간 원정군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그들이 오크 원정군의 진정한 실체라고 한다면 더욱 그러했다. 무너지기 시작하는 서쪽 진형을 겨우 막아내면서 분전하던 얀은 갑자기 나타난 검은 해일을 확인하고는 입을 악물었다. 세찬 파도를 연상하게 하는 블랙 오크의 대군은 무엇이든 집어 삼키고도 남을 가공할 태풍이었다. 쐐기 형의 진형으로 전진하는 블랙 오크 부대는 간신히 오크의 대군을 막아내고 있던 인간 군대의 원형 진을 세차게 두드렸다. 오우거와 트롤등의 대형 몬스터를 선두로 내세우고 그 뒤를 강력한 블랙 오크부대가 받치는데 오우거와 트롤의 가공한 힘은 간신히 오크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아슈리안 전사나 용병들을 단번에 물러나게 하기 충분했다. "콰아앙~" "으악..."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는 가공할 크기의 배틀 엑스와 보기만 해도 무식해 보이는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오우거와 트롤의 힘은 아무리 선천적인 전사로 알려진 아슈리안 전사들이라고 해도 심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힘의 차이가 한순간에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오우거의 곤봉에 맞아 어깨뼈는 물론이고 그와 인접한 모든 뼈들이 박살나며 2-3미터는 족히 날아가는 참혹한 광경은 여기 저기 펼쳐지고 있었다. 오우거의 가공할 힘과 어우러진 배틀 엑스에 상반신이 갈라져 내장과 함께 시뻘건 핏물을 한순간에 쏟아버리는 병사의 죽음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확하게 두 쪽이 나버리는 참혹한 광경은 평원 여기저기서 보여지면서 더 이상의 승부는 무의미했다. 인간의 군대는 오우거와 크롤의 무서운 힘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고 그 뒤를 받치며 지금까지 겪어왔던 오크 부대와는 다른 힘으로 부딪치는 블랙 오크 부대의 칼날을 피해야했다. "진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벌써 동북쪽은 적에게 뚫려 버렸습니다." 무너지는 진형을 살피던 휘하 부장의 절망어린 보고가 들리자 원정 4군의 지휘관 코라는 입을 악물었다. "으으... 이럴 수는..." 새롭게 추가된 오크 부대의 가공할 힘에 그나마 힘겹게 적을 막아내던 진세가 한꺼번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적의 예기치 않은 대군을 보면서도 그나마 침착하게 대응을 했던 이유는 승리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대등한 국면을 유지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어려움을 알고 물러서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많은 피해가 속출하겠지만 이렇게 허무하게까지 쓰러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코라로서는 갑자기 나타난 오우거, 트롤 부대와 새롭게 추가된 가공할 블랙 오크 부대의 힘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코라는 물러서지 말고 최후까지 싸우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전사로 태어나 지금까지 전쟁터에서 적에게 등을 보인 적이 한번도 없던 코라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것을 따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포위를 뚫어야 한다. 더 이상의 저항은 우리 모두의 죽음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승부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린 코라는 남아있는 부대만이라도 살리려고 그렇게 말했는데 코라의 말에 옆쪽의 있던 젊은 부장 하나가 나서며 주먹을 부르르 떨고는 소리쳤다. "결코 물러설 수 없습니다. 도망이라니요! 부족의 긍지를 잊으셨습니까? 저런 오크들 따위가 무서워서 등을 보이다니요! 저는 결코 저 미개한 놈들에게 등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코라의 말을 반박한 부장은 전사의 긍지를 떠올리며 후퇴는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을 던졌다. 그는 젊은 부족의 전사로 그 뛰어난 용맹 때문에 부장의 자리까지 올랐던 사내였다. 그에게는 후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장의 말에 코라는 그자의 멱살이라도 잡고 얼굴을 갈겨주고 싶지만 참았다. 전사의 긍지 하나만으로 1만의 넘는 생명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랬고 부족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자가 단지 그런 허울 좋은 명예만을 따라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그에게 화를 낸다고 해도 상황은 바뀌는 것이 아니었기에 물러설 수 없다는 부장을 보면서 명령을 내렸다. "정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네가 책임을 지고 후퇴하는 부대의 후위를 맡아라. 너에게 1천의 병력을 주겠다." 코라의 명령에 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아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자프!" "네..." 코라의 부름에 한 사내가 나서며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대략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인물로 각이 진 얼굴에 이미 몇 번의 격전을 펼쳤는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흉갑에는 초록색 오크의 피가 진득하게 묻어있었다. "네가 저들의 포위를 뚫어라. 어떻게 해서든 포위를 뚫지 못하면 우리는 여기서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나 혼자라면 몰라도 이 병력 전체를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 허무한 죽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미 후퇴하기로 결심을 굳인 코라의 음성은 단호했고 명령을 받은 자프는 잠시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았다. 그도 아슈리안 전사로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싸움에서 물러서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부하를 아끼는 인물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도 자신 혼자면 모르지만 아끼는 부하들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지휘관인 코라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자프는 바로 지휘부를 나서며 자신의 부대를 수습하여 포위를 뚫기 위해 행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원정군 지휘부의 이런 결정을 알 수 없는 용병들은 이미 절반이상이 싸움도 하기 전에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며 얼어있는 상태였고, 다른 반수는 새롭게 추가된 블랙 오크 부대의 위력에 순식간에 무너지는 전세를 보고는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공포는 다른 이들에게도 전염되며 용병대의 대부분은 싸움을 포기하며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고 포위망을 뚫으려 했지만 단합되지 않고 저 혼자 살겠다고 달려드는 자들을 오크들이 순순히 보내줄리 없었기에 속속들이 오크의 창, 칼에 죽음을 맞았다. "얀님! 더 이상의 전투는 무리입니다. 저들의 포위를 뚫고 후퇴해야 하겠습니다." 왕자를 보호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받고 이곳 마물의 숲까지 얀을 호위하며 따라온 옛 미르의 기사단장 카슈 호크와트 백작 아니 현재는 카발 메그넘으로 불리는 이 충성스런 사내는 덤벼드는 오크 두 마리를 단숨에 베어버리며 얀에게 그렇게 말했다. 세덴의 추격 때문에 성과 이름을 버린 그들은 얀의 명령으로 호칭마저 벗어버려 얀을 부를 때도 그냥 "님" 이라는 존칭만 붙였다. 얀도 이미 카발의 조언 이전에 승부는 오크들에게 기울어 졌다고 판단을 내렸고,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더 안 좋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카발의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자신의 무리에서 떨어진 다른 기사들이 걱정되어 망설였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았고 거기다가 새롭게 합세한 오크들은 조금 전까지 상대했던 오크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대로 난전에 휩쓸리고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다면 자신을 따라왔다 난전 중에 헤어진 기사들과 합류하는데 적잖이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거기다가 포위망을 뚫는 것도 쉽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결정은 내려야 했고 더 이상의 지체는 더 안 좋은 상황을 야기시킬 수 있었기에 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카발..." 얀의 명령이 떨어지자 카발은 곧바로 남아있는 기사 중 얀의 호위를 맡을 네 명을 제외한 십여 명의 기사와 휘하 5 용병대의 생존자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기 위해 오크 부대에 부딪쳤다. 하지만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오크의 장벽은 의외로 단단했다. 특히 새롭게 추가된 블랙 오크의 장벽은 지금까지 겪어왔던 어떤 오크의 전투력보다 무서워서 예전에는 한번의 칼질에 무너졌던 기사들의 검도 그들은 심심치 않게 막아내고 공격까지 펼치고 있었다. "휘이익..." 아슬아슬 지나가는 오크의 검을 피한 기사의 등 뒤로는 짧은 순간에 한기가 스미는데 그는 오크와의 여러 번의 전투 중 이만큼 긴장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훈련받은 인간의 병사보다 못한 실력을 갖고 있는 존재가 바로 오크들이었다. 그들은 훈련이 아닌 본능으로 싸우는 존재였기에 일반 평범한 수준의 인간 장정보다 강할지는 모르지만 훈련받은 인간의 병사보다는 약했다. 그는 그렇게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상대했던 오크들도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와 상대하고 있는 이 검은 피부의 오크들은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훈련받은 인간 병사보다 더 강한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일대 일로 싸운다면 아무리 블랙 오크의 전투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다. 한명 한명을 상대한다면 모르겠지만 전후좌우 사방에서 쏟아지는 오크의 공세는 아무리 그가 로얄 나이트 수준의 수준 높은 기사라고 해도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마나를 미약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는 블랙 나이트 수준의 기사는 한꺼번에 일반 병사 열명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트의 수준에 오르려면 일단 자기만의 검술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그만큼 경험도 풍부해야 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검술 하나만으로 일반병사 4-5명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결론 때문이다. 그리고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공격 방법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실버 나이트 수준의 검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골드 나이트 수준에 이르면 미약하게나마 마나 소드라는 것이 생성이 된다. 물론 시전 하는 시간은 무척 짧지만 일단 자신이 검이 마나 소드의 된다면 그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일단 그 강도가 보통 검의 두 배 이상 강해지기 때문에 검이 주는 강도의 이로움은 얻는다. 몇 번의 부딪침에 상대의 검이 못쓰게 된다면 승부는 이미 기울어 진거나 다름이 없다. 거기다가 마나 소드는 검의 강도를 높여 줄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상대의 체력을 소모시키거나 호흡을 흩으려 놓을 수 있는 역할까지 했다. 이것은 처음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였는데 검과 검이 서로 부딪치면서 마나 소드를 이루는 마나가 서로의 검을 통해 상대방에게 조금씩 흘러들어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상대의 몸속에 조금씩 흘러들어간 마나는 마나를 받아들인 사람의 경우 이질적인 마나의 기운 때문에 신체가 급격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무척 신기해서 자신도 모르는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면 무의식적으로 모든 기관들이 그 기운을 막아내기 위해 급격하게 반응한다. 그것이 이롭게나 해롭거나를 떠나서 무조건 적으로 신체들이 반응을 보이는데 그 반응의 결과는 급속한 체력의 소모와 심한 운동으로 호흡의 곤란을 가져온다. 처음에는 단지 단단한 강도의 검을 받느라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나의 기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임을 깨달은 검사들은 검을 통해 마나로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갔고 이제는 조금만 마나를 다루는 검사라면 검을 통해서 상대의 몸속에 자신의 마나를 흘려보내 공격하는 방법을 썼다. 그래서 블랙 나이트 수준의 검사는 일반 병사 열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열이 아닌 스물, 서른으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고 해도 무한정으로 덤벼드는 적을 다 막아낼 수는 없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의 체력이라는 것은 어느 선엔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지속적으로 신체를 계속 움직이다보면 지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고 체력이 떨어지면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몸속에 있는 마나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마나라는 것이 무한정으로 퍼다 쓸 수 있는 바닷물이 아닌 계속적인 소모를 하면 남아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금방 채워지는 것도 아니기에 체력과 마나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다보면 아무리 로얄 나이트 수준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보다 못한 자들에게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가 열을 당해낼 수 없는 이치와 동일한 것이다. 카발과 열명의 기사들은 최선을 다해 포위망을 뚫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쉽사리 포위망은 뚫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처지가 위험한 상태였다. 상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을 깨달은 블랙 오크의 부대들이 그들에게 집중되었고 거기에 더해서 오우거와 트롤들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선두에 서서 블랙 오크들을 베어 넘기는 카발의 꽉 다문 입술에 피가 맺혔다. ----------------------------------------------------------------------------- 하단부에 나오는 마나를 이용한 공격 방법은 출판을 위해 준비중인 원고본에서는 앞부분에 언급할 내용입니다. 실제적인 검사들의 공격 방법의 일반적 형태의 유형이지요. 제 소설에서 소드 마스터라고 해서 한번에 수 십, 수 백명씩 죽이는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물론 검강을 펼쳐 단숨에 칼이고 갑옷이고 사정보지 않고 베어넘기는 그런 무식한 방법은 있겠지만 그것이 한꺼번에 수십명씩 죽이는 방법은 아니죠.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무한정으로 검강을 펼칠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몸에 쌓아두고 있는 마나라는 것이 무한정일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편법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언급될 내용입니다. 따라서 위의 설명을 따르자면 로얄 나이트 정도의 수준이라고 해도 적의 숫자가 얼마나 많느냐에 따라 그 위력이 충분히 반감될 수 있습니다. 한 열명, 스무명이라면 체력의 소모를 무릅쓰고라도 마나 소드를 펼쳐 죽여버릴 수 있다고 하지만 숫자가 백명, 이백명이면 이야기가 틀려집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급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전투의 경우 체력 소모는 보통때보다 더 심하게 소모되는 편이고 전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움직임이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동체시력이 좋고 순간적인 반응이 빠르다고 해도 체력이 딸리면 움직임이 느려지고 그렇게 된다면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칼을 몸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이죠. 현재 검사에 대한 저의 견해는 대충 이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약간 가장되게 표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그리고 현재 쓰고있는 원고에서는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일반 판타지 소설처럼 슈퍼맨, 히어로는 아닙니다. 물론 그 전투 능력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면 마법사의 능력이 더 커질듯이 보이는데 마법사에 대한 능력도 조절하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제가 마법에 대한 것은 잘 표현하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검사보다는 조절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현재 제가 생각하는 마법사의 능력은 각 클래스의 유저인 경우 해당 클래스의 마법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딜레이 시간을 주려고 합니다. 또한 급격한 마나의 소비를 통해 자신의 클래스에 해당하는 마법을 시전했을 경우 어느 정도 수준의 공백을 갖게 만들 생각입니다. 무한정으로 마나를 끌어다 마법을 펼칠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마스터의 경우 유저보다는 딜레이도 빠르고 또 한, 두개 정도의 마법을 더 쓸수 있겠지만 예전보다는 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위 클래스의 마법인 경우에도 몇 번이고 무한정으로 쓸수는 없고 그날 그날 메모리하는 마법의 갯수도 한정을 시킬 예정입니다. 뭐 말하자면 유저의 경우에는 자기 클래스에 맞는 마법을 한 두개정도 메모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마스터는 3-4 정도 가능하다고 하는 정도로 말입니다. 제가 지금 알려드리는 검사와 마법사의 설정에 혼란을 느끼실 수 있는 분들도 많겠지만 제가 이것 저것 생각해서 쓰다보니 어느 정도 능력의 한계는 분명히 그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쓰는 것이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먼치킨이 좋아도 혼자서 수천, 수만명을 이길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주인공이라고 해도요.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글을 올리기 전에 일단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출판사에 넘기는 원고 마감 시간때문에 현재 글의 진행이 원활하지 못한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책으로 나온다고 생각하니 제 글에 많이 부족한 점이 눈에 띄여서 손을 많이 보다보니 연재를 할 시간이 없더군요. 거기다가 원래 하는 일이 바빠서... 현재 프로젝트 진행중이라 더욱 짬이 없습니다. 그래서 늦어지는 점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제가 원고를 수정하다보니 제 글이 약점이 꽤나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게 보아주시는 독자분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정도로 말입니다. 일단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에 대한 표현이나 대화, 심정등 드러나지 않고 얼렁뚱당하게 넘어간 부분이 많더군요. 몇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들 주변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사건만 열거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으로 나올 부분에서는 이런 들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또 문제 발생하더군요. 현재 진행중인 연재분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더군요. 그래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약간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집어 넣으면서 이후의 글에 대해서는 짜임새 있게 진행을 하려고 합니다. 아마 현재 연재한 글과 책으로 출판된 글은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진행되는 사건은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지만 몇가지 틀린 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일단 사람들의 관계이며, 인명, 지명등도 많이 틀립니다. 예전에 언급했던 검도 그렇고, 화폐도 약간 변동이 생겼습니다. 이것, 저것 쓰다보면 무척이나 많이 바뀌었군요. 이후의 연재분에서는 제가 수정한 단위나 지명, 인명등은 따로 해설을 달아 놓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오늘 연재분에서는 짚고 넘어 갈 점은 대략 이렇습니다. 첫째로 료우와 바이크, 아론, 네오 등등의 관계에 대한 변동입니다. 처음 연재분에서는 벨제뷔트에 의해 바이크와 아론이 료우의 부하 형식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있고, 가이아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 부분은 출판본에서 수정되었습니다. 물론 벨제뷔트에 의해 바이크와 아론이 료우에게 붙여지는 것은 똑같지만 료우와 그들의 관계는 그냥 동료나 혹은 친구에 가깝습니다. 나이 어린 료우가 다자고짜 나이 많은 바이크와 아론에게 존대를 받는 다는 설정도 그렇고 관계가 너무 딱딱해 보이더군요. 그리고 현재는 매우 친밀한 상태입니다. 3년이 넘게 수련을 하면서 어울렸고 그후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으니 친밀해지지 않는 다면 이상하겠죠. 가이아의 경우에는 여성으로 설정이 바뀌었고 사신의 선물이 아닌 예전에 한번 언급한 것 같이 빛의 신 라르샤의 성녀이자 어둠의 신 다크로드의 사제로 료우와 함께 행동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어린아이와 진배없는 행동을 합니다. 둘째로 라미셀이나 레이첼과의 관계 변동입니다. 제가 연애쪽은 영 깡통이라 그들을 포함은 시켰지만 표현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그쪽도 대폭 수정을 했습니다. 일단은 삼각관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차후 연재분에서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셋째로 네오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집나온 괴짜 드래곤과 파티를 이루었다고 했는데 네오와의 관계도 매우 부실하더군요. 전체적으로 제가 일행들 내부에서의 오고가는 말들이나, 행동, 사건등은 제대로 표현을 하지 않아서 이들의 관계가 도대체 어떤 건지 애매모호 하더군요. 그래서 조금 더 세세하게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네오는 소심한 성격에 잘 삐지고 썰렁한 개그를 한다고 설정을 잡았는데 그렇게만 설정을 잡으니 뭔가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추가를 하기로 했습니다. 네오의 경우 평소 성격은 처음의 설정과 똑같이 약간은 소심한 성격에 잘 삐지고, 괴짜이지만 일단 한번 자기 마음에 안들고 화가 나면 레드 드래곤의 본래 성격답게 성급하고 또한 단호해 집니다. 그래서 료우가 때때로 우유부단 해지면 성질을 내면서 료우가 잘 부딪칩니다. 보통 드래곤이 그런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인간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약간 말을 함부로 하지요. 물론 잘 풀어지고 화가 풀리면 다시 평상시처럼 행동합니다. 신경이 무딘건지 얼굴 낮짝이 두꺼운건지 모르게 말입니다. --------------------------------------------------------------------------------------- "아무래도 용병대가 있는 4군으로 가는 것이 옳겠지?" 료우는 원정 3군의 수장인 누게르와 틀어져 3군에서 나온 후 케인이 있는 1군을 찾아 가려고 하다가 같은 아슈리안 종족이니 생각하는 것이 비슷할 거라는 판단이 서자 답답한 그들보다는 차라리 실력이 떨어져 불안하기는 하지만 용병들이 포함되어 있는 4군으로 향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병력을 4군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려고 했다. 처음에는 화가 치밀어서 이참에 마물의 숲 원정을 때려 치려고도 마음먹었지만 이대로 물러서자니 자존심이 상했고 다시 돌아가서 할 것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원정에 동참하되 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부 변경지방이 이미 인간의 원정군에 의해 대부분 소거되었다고 해도 발견되지 않은 조그마한 마을은 아직도 남아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료우의 용병대는 3군과 헤어진 후 두 번의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한번은 100여명 규모의 작은 리자드맨 부족과의 전투였고 또 한번은 500명 규모의 오크 부족과의 전투였다. 그나마 아직까지 작은 부족을 만난 터라 별 피해는 없었지만 만약에 큰 부족이라도 만난다면 전혀 피해가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료우는 하루라도 빨리 원정군과의 합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올 때는 큰소리 뻥뻥 치면서 나왔는데 막상 나와서 보니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약간 초조했진 료우였다. 그래서 일행에게 자신의 판단이 옳은가를 묻는 료우였다. "어디를 가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1군이든 4군이든 우리는 어차피 용병이라고...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잖아." 료우의 물음에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투덜거리는 대답을 하는 이는 네오였다. 성질 같아서는 성전사라고 거들먹거리는 놈들과 대판 붙어 버릇을 고쳐놓고 싶었는데 료우가 그냥 물러서는 바람에 마치 그들에게 쫓겨 난 듯한 형세가 되어버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다 료우가 요즘 갈팡질팡하며 중심을 못 잡자 한마디 던진 것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문제는 어디가 덜 위험 하느냐란 것이야." 료우의 대답에 네오의 인상이 더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료우! 도대체 너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예전 같지 않게 말이야. 마치 빌어먹는 강아지 새끼마냥 낑낑되기나 하고 말이야." 갑작스러운 네오가 심한 말에 료우가 발끈했다. "무슨 말이야! 빌어먹은 강아지 새끼라니..." "그렇지 않으면... 어디가 덜 위험 하느냐니 도대체 그게 무슨 헛소리야? 설마 지금 위험하지 않은 곳만 골라서 찾아가겠다는 소리냐?" "당연한 것 아니야! 나는 이제 3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책임자라고... 부하들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해주는 것이 내 책임이란 말이야!" 료우의 대답에 네오의 음성이 더 커졌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야? 여태까지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환장하겠군." "누가 멍청하다는 거야?" "너지 누구야!" "뭐라고..." 감정이 격해진 료우와 네오의 설전이 오고가자 주변에서 바이크와 아론, 가이아 등이 와서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그만들 하라고... 이게 무슨 추태야! 부하들이 모두 보고 있다고!" 굳은 목소리로 둘을 말리는 바이크의 음성에 료우와 네오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감정적으로 해결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풀어보도록 하지! 네오... 자네는 료우에게 뭐가 불만인가?" 이번에는 아론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론은 침착한 눈으로 네오를 쳐다보며 그렇게 묻는데 아론의 차분한 질문을 받은 네오는 어느 정도 격한 감정이 진정이 되는지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며 대답했다. "요즘 료우가 하는 행동들을 보라고! 점점 나약한 소리만 늘어놓잖아. 지금 얘기를 늘어놓는 것만 해도 그래! 용병이면 용병답게 처신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일단 책임을 맡았으면 지휘자는 강해져야 한다고. 부하들에게 나약한 소리만 늘어놓고 하는 행동도 계집애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도대체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고... " 네오의 말에 질문을 던지 아론 이하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료우는 네오의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도대체 뭐가 나약하다는 거야?" 시근덕거리는 료우의 말에 네오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냐? 부하들 안전을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은 어린애가 아니라고!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들의 안전에 전전긍긍(戰戰兢兢) 하고 있을 거냐! 우리는 용병이라고...! 용병이 죽음을 두려워해서 안전한 곳을 쫓아다니다니 그게 말이나 될법한 소리야!" 네오의 말에 료우의 안색이 바뀌었다. "물론 전번의 그 놈들처럼 자존심 때문에 동료의 죽음 따위는 신경도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너의 태도는 아니야! 이건 완전히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모습과 똑같잖아!" 네오의 이어지는 힐난에 료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데 마땅히 비난할 대꾸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료우의 모습에 옆에 있던 바이크의 음성이 들렸다. "그만 하라고! 료우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료우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하들이, 동료들이 옆에서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행동했을 거야. 그리고 료우는 아직 경험이 미숙하다고... 그래서 우리들이 옆에 있는 것 아냐! 화만내지 말고 료우에게 조언을 해주어야지 그게 동료로서 해주어야 할 몫 아니야. 그리고 너도 화만 내지 말고 반성하라고! 여태까지 모든 것을 료우에게만 맡겨놓고 네가 한 일이 뭐야! 료우에게 신경질만 냈지 뭔가 조언이라도 해주었냐?" 바이크의 변호에 네오도 찔리는게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정상적인 용병일이 돌입하고 그들의 대화는 많이 단절되었다. 특히 갑자기 인원수가 늘어나며 료우가 부대 운용에 대한 부담감에 힘들어할 때 자신은 별반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원래 천성이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드래곤이라 그런지 네오는 머리 쓰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제 그만! 바이크의 말처럼 모두 제각기 잘못이 있으니 여기서 마무리하자고... 그리고 료우!" 아론의 장내를 수습하며 마지막으로 료우를 부르자 료우는 "으응..."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네오의 말에 충격을 먹었는지 약간 흐트러진 모습인데 그것을 본 아론은 안쓰러운 표정을 짓더니 료우를 다독였다. "료우! 이제부터 잘하면 되는 거야! 옛날일은 더 이상 떠올려보았자 좋을 것 없으니 덮어놓아. 그리고 네오의 말처럼 부하의 안전을 최대한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은 전쟁터야! 전쟁터에서 피해가 없을 수는 없는 일이야. 그것을 두려워하면 절대 훌륭한 지휘자가 못된다. 겁 많은 지휘자를 만난 부대는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거야! 그 말을 명심하라고..." 아론의 말에 료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번일은 여기서 끝내고 이제 빨리 움직이자고... 자네들 싸움에 뒤에 있는 부하들이 모두 넋 놓고 있잖아!" 아론의 말에 뒤를 돌아본 료우는 휘하 용병들이 멀뚱히 지켜 서서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자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사태를 빨리 수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자 큰소리로 외쳤다. "출발~"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4군이 있는 위치할 만한 곳으로 방향을 바꾼 료우의 용병대는 빠른 속도로 원정 4군과 합류하려고 시도했다. 일단 결정을 내렸으니 지체할 이유도 없고 료우가 걱정하는 바처럼 좀더 큰 부대와 함께 있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안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지체했다가 괜한 희생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4군이 있을만한 곳으로 이동하던 용병대는 하루 내내 시야를 가리는 큰 나무들로 우거진 침침한 숲을 지나 잡목만이 우거진 평원에 도달하고는 한숨을 내셨다. 정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어둠의 숲이었기에 일행은 많은 긴장을 했던 차였다. 시야가 확 트인 평원에 도달하자 용병대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다시 전진했다. 아직까지 원정 4군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지 약간은 초조한 상태로 이동하는 용병대였다. 물론 그렇다고 당황해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원정 4군이 얼마쯤 전진했는지 모르는 상태라 빨리 따라 잡아야 한다고 생각만 하는 중이었다. 그때 용병대 행렬 중 뒤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전서구다!" 전서구라는 소리에 료우를 비롯한 용대들은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고 그들의 시야에는 자신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는 한 마리 새가 발견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원정을 나온 아슈리안 부족이 자주 쓰는 맹금류의 전서구처럼 보였다. "어! 왜 전서구가 우리 머리위에서 돌고 있지?" "그러게..." 용병들은 자신들의 머리위에서 전서구가 선회하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웅성거렸고 그때 그들의 고막을 울리는 가는 피리소리가 들렸다. "삐이익..." 용병대의 선두를 있던 베뉴사는 전서구로 보이는 새를 발견하자 바로 품안에서 가는 피리를 꺼내 입에 물고 힘껏 부는데 그 조그마한 피리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울림이 일어난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피리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하염없이 용병대의 머리 위를 선회하던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쿠이잇..." 새는 한바탕 위에서 울음을 터뜨리더니 피리를 불었던 베뉴사를 향해 날아왔다. 역으로 날개 짓을 하며 베뉴사에게 다가온 새는 순식간에 땅으로 내려앉는데 독수리나 매 과의 수리처럼 보였다. 생김새는 전장(全長)이 대략 90센티 이상 되는 크고 육중한 놈이어서 그런지 매우 사나워 보였다. 황갈색에서 담황갈색의 머리와 목, 그리고 흰색의 꼬리를 제외한 부분은 전체적으로 갈색이었는데 날개를 접은 새의 모습에 옆에 있던 아론이 흰꼬리수리라고 알려주었다. 흔하지 않는 수리 종류로 북쪽에서만 서식한다는 흰꼬리수리는 아슈리안 부족이 전서구로 훈련시킨 몇 안돼는 맹금류였다. "카앗... 카앗..." 료우를 비롯한 용병들은 흰꼬리수리를 처음 보는 자들이 많았기에 신기해서 그런지 모두 둥글게 둘러서서 흰꼬리수리를 바라보았는데 사람들과 달리 흰꼬리수리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울음을 울면서 뒤뚱 뒤뚱거리며 베뉴사에게 다가왔다. 새의 울음에 베뉴사는 자신이 할 일을 떠올리고는 얼른 새의 발목에 메어 있는 전서구를 꺼내어 펼쳤는데 전서를 읽던 베뉴사의 안색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료우 대장님!" 다급한 베뉴사의 음성에 료우는 신기하게 수리를 구경하다 베뉴사를 쳐다보았고 이내 그가 건네주는 전서구를 읽었다. 그리고는 베뉴사와 마찬가지로 안색이 급격하게 바뀌더니 소리쳤다. "4군이 위험하다. 모두 빨리 움직여라!" 료우는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바로 용병대를 수습하며 빠르게 달려가는데 그가 읽었던 전서구의 쪽지는 이미 땅바닥으로 버려진 상태였다. 바닥으로 버려진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오크 10만 대군 조우. 아군 위험. 후퇴 예정. 원군 필요' 료우의 용병대가 4군을 만난 것은 그들이 한참 포위를 뚫으려고 발버둥칠 때였다. 얀의 제 5 용병대는 카발과 기사들의 노력으로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뚫으려고 했지만 중과부족이었다. 블랙 오크 부대도 어려운 상태에서 오우거와 트롤 등의 대형 몬스터들까지 쏟아지자 오히려 이제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원정 4군의 대장인 코라에게 포위를 뚫으라는 명령을 받은 자프의 군대도 마찬가지였는데 오크들은 얄밉게도 포위를 뚫으려는 부대가 보이면 그곳으로 전력을 집중시켜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원정 4군의 어려운 상태에서 료우의 용병대가 들이 닥친 것이다. "제길... 너무 많군!" 료우를 비롯한 용병대들은 4군으로 보이는 원정군이 가히 수를 짐작하기 힘든 대규모 오크 부대에게 둘러싸인 광경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음 테미에서 원정을 출발할 때 인간의 원정군의 숫자가 무려 5만이었다. 그 행렬은 가히 끝을 짐작하지 못할 만큼 길었다. 그래서 얼마나 위세 당당하게 원정을 떠났던가? 그런데 그 2배의 숫자가 지금 평원에 가득 차 있는 상태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빽빽하게 들어 찬 오크들의 숫자는 겨우 350의 용병대가 감당하기에는 많아 보였다. 료우가 이를 악물며 그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이에 동의하는 표정으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가 모여있는지 감히 잡히지 않는 용병대의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지? 숫자가 너무 많은데..." 망설이는 료우의 표정에 다른 사람들도 공감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같이 원정을 떠난 동료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망설임이 있었다. 당연히 도와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 일은 흡사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망설이는 료우를 재촉하는 것은 네오였다. "빨리 결정하는게 좋겠다. 구하던 도망치던 둘중에 하나를 말이야. 우리는 너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를테니 말이야." 아까의 불만어린 말투가 아닌 전적인 신뢰를 보이는 네오의 말에 료우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는 결심을 굳혔다. "좋아! 일단 포위망이 약한 곳을 뚫도록 해보자. 이대로 두었다가는 모두 몰살만 당할 뿐이야!" 료우가 결정을 내리자 옆쪽에 있던 바이크가 한 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료우가 바이크의 손끝을 따라 보니 한 무리의 용병들이 포위를 뚫으려고 난전을 펼치고 있는데 그곳으로 제법 많은 오크들이 몰려 있었다. 다른 곳 보다 두 배나 많은 숫자였는데 거기에 더해 간간히 보이는 오우거와 트롤 등의 모습으로 비추어 볼 때는 그쪽의 포위망은 더욱 두터워보였다. 몰려있는 오크들의 숫자나 덩치도 다른 놈들보다 크고 장비도 허술해 보이지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정예 오크병인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저기에는 왜 이렇게 집중되어 있지? 거의 다른 곳의 두 배인데...?" 료우의 의문에 바이크는 다시 손가락을 가리키는데 그쪽에는 오크 무리와 대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복장으로 볼 때 아슈리안 전사가 아닌 일반 용병들 같았는데 무척 의외인 상황이었다. 그들은 오크들에게 서서히 밀리는 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전면에서 싸우는 자들의 실력은 무척이나 뛰어나 보였다. 특히 한 중년 사내는 검에는 오러가 맺혀있는데 전면에서 달려오는 오우거와 트롤 등의 대형 몬스터를 단번에 가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용병들은 많은 오크 병력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포위를 뚫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실정으로 보였다. "저길 뚫자는 얘기야?" "안에서 저렇게 포위를 뚫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다른 곳은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지만 저쪽은 포위를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 우리가 뒤쪽에서 충분히 흔들어 주면 아무리 병력이 몰려 있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할 거다." "좋아!" 바이크의 대답에 료우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을 향해 바로 명령을 내렸다. "아론, 네오, 어비스는 저들 오크부대를 충분히 흔들만한 마법을 준비해주고, 각 백인대에 속한 마법사들들도 각자 자신 있는 공격마법을 준비하도록 해!" "응..." "네... 알겠습니다!" 아론과 네오등의 마법사들이 명령을 받고 대답하자 료우는 다시 옆쪽을 향해 외쳤다. "세리안트...!" "네..." 엘프들의 대장 세리안트가 대답하고 나서자 료우의 명령이 이어졌다. "라미셀과 같이 정령 마법으로 마법 공격을 보조하고, 엘프 궁사들과 각 백인대에 속한 궁사들을 모조리 끌어 모아서 최대한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도록 활 공격을 해! 전부 몰려있으니 조준할 필요도 없을 거야." "네..." 명령을 받고 세리안트가 엘프들과 궁사들을 모으려고 물러가자 바로 료우는 옆에 있는 바이크를 쳐다보았다. "바이크!" "응..." "바이크가 선두에 서죠. 코렐과 제이크, 헤이트리드와 함께 남은 백인대중 마법사와 궁수를 제외한 모든 병력을 이끌고 우리가 원거리 공격으로 놈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면 바로 저들의 뒤를 흔들도록 해! 어떻게 해서든 안에 있는 용병들에게 기회를 주도록 말이야." "알았어!" 바이크의 힘 있는 대답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자신도 마법을 준비했다. 일단 몰려있는 오크들의 숫자가 많아서 한 마리 한 마리를 상대하는 마법은 전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번에 대단위 마법이라도 펼치면 좋으련만 오크의 무리들과 원정군이 함께 섞여있는 바람에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료우는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좋아. 그럼 모두 시작하자. 공격~" ------------------------------------------------------------------------------ 출판본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이것도 예전에 쓴것을 겨우 이어서 쓴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말을 바꾸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실망도 하고 헤깔리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제부터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마 이번주에는 그래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연재를 몇개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별빛입니다. 그럼 새해 잘 보내시고 저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먼저 마황의 용병대 추가 수정사항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일단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라는 료우의 용병대 이름을 료우의 용병대로 수정했습니다. 처음부터 악마의 전사 용병단이라는 명칭을 썼을때 많은 분들이 반대를 했기에 수정하려고 하다가 이제서야 수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황의 용병대라는 제 소설의 제목도 수정을 하려고 고민중입니다. 마황이라는 말이 너무 흔해서 수정을 하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특별히 좋은 제목이 생각이 안나 고민하다가 하나 떠올라서 이렇게 여러분의 의견을 묻습니다. "용병왕 료우 하얀" 이라는 제목이 어떨까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조금 유치할지 모르지만 이런 제목으로 쓰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의견을 받겠습니다. ---------------------------------------------------------------------------- 료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일 먼저 시작된 공격은 아론과 네오를 포함한 마법사들의 집단 마법공격이었다. 용병대의 마법사야 기껏해야 1, 2 클래스 마법사가 전부였지만 엘프 마법사의 경우 3, 4 클래스의 마법사가 있었기에 그들만 해도 웬만한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의 공격과 견주어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7 클래스의 아론과 네오, 그리고 5 클래스의 료우와 어비스의 마법공격이라면 오크 부대를 혼란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매직 미사일..." "파이어 볼!" "파이어 블래스트!" "파이어 스톰!" 한꺼번에 쏟아지는 마법은 거의 대부분 불 계열의 공격 마법이었다. 네오나 료우의 경우에도 불계열의 마법을 펼쳤는데 유독 특이한 마법을 펼친 인물도 있기는 있었다. 그들은 아론과 어비스였는데 아론의 경우에는 라이트닝 필드(Lightning field)를 외치며 일정한 구간에 번개를 떨어뜨려 방전 지대를 만들었다. 이 마법은 확실히 갑옷을 입은 복수의 적을 한 번에 공격할 수가 있는 대단위 마법의 일종이라 그 효율성이 상당히 좋았다. 어비스의 경우에도 아론과 마찬가지로 라이트닝 필드를 펼쳤다. 확실히 이런 대단위 전투의 경험이 풍부했기에 어느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엘프들의 경우에는 숲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불계열의 마법 보다는 물 계열이나 바람 계열의 공격 마법을 펼쳤다. "쏴라!" 마법 공격이 시작되고 바로 이어지는 것은 엘프와 인간 궁사들의 화살 공격과 정령사들의 정령 마법 공격이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화살들은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워낙 적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아무런 겨냥 없이 적이 있을만한 곳을 향해서 속사를 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적들이 많은 관계로 화살은 여지없이 하나에 하나씩 적의 멱 줄을 끊고 있었다. "캬아악..." "크엑..." 순식간에 벌어진 료우의 용병대의 공격에 오크 부대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뒤통수를 맞은 가운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료우 용병대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얀의 제 5 용병대와 붙었던 흑색 오크들은 한번에 수십 마리씩 쓰러졌다. "쿠에엑... 적이다. 뒤쪽에 적이 있다." "쿠룩... 적이다." 흑색 오크들은 뒤쪽에서 자신들의 후미를 공격한 료우의 용병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적이라는 소리를 지르는데 어느새 다가왔는지 바이크를 중심으로 2백 명이 넘는 용병들이 무서운 속도로 흑색 오크 부대의 후미를 무섭게 때렸다. "크에엑..." "키엑..." 울부짖는 흑색 오크 병사들의 비명성이 사방에서 터지고 일순간 흑색 오크의 포위망은 조금이지만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고작 200명의 적은 숫자였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일당백의 전사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해도 전선에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함은 당연했다. 하지만 견고한 오크의 포위망을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흔들기에는 충분할 듯 보였다. 밀려드는 흑색 오크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원정대 4군의 제 5 용병대의 카발과 기사들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커다란 폭음과 오크 부대의 뒤쪽에서 일어나는 화염에 무언가 오크들의 무리들에게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누군가 자신들을 도우려고 뒤쪽에서 오크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다. 노련한 카발은 바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바로 달려드는 흑색 오크 두 마리를 순식간에 베어버리고는 검을 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응원군이다. 응원군이 오크 놈들을 공격하고 있다. 모두 힘을 내서 총 공격하라. 빨리 포위망을 뚫어라!" 카발의 느닷없는 외침에 제 5 용병대의 용병들도 카발과 함께 폭음과 화염을 보았기에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어느 정도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는지 함성을 지르며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터운 오크의 포위망에 거의 지쳐서 기진맥진하던 자들은 카발의 외침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동료들이 소리를 지르며 오크들에게 달려들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고는 이내 덩달아 함성을 질렀다. '살 수 있다!' 거의 포기했던 용병들의 눈은 서서히 생기가 일어났고 그들은 자신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그 단단한 오크들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다시 함성을 지르며 힘차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와아... 적을 죽여라!" "포위망을 뚫어라!" "응원군이 왔다!" 제 5 용병대에서 일어난 함성은 금방 전염이 되어 인간부대 전체로 퍼졌다. 응원군이 왔다는 소식은 지치고, 이미 삶을 포기했던 용병들에게 힘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그 열기만으로 오크들의 견고한 포위망을 전부 뚫을 수는 없었지만 료우의 용병대가 후미를 공격하고 있는 제 5 용병대의 경우에는 그 견고한 포위망이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순간 이었다. "쿠륵... 저것들은 또 뭐냐?" 오크 왕국의 원정 5군단 군단장 크루라는 놀라서 벌떡 일어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거의 인간의 무리를 포위망에 가두어 모조리 몰살시킬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자신의 포위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전세를 살피던 중 웬 인간의 소규모 군대가 자신의 부대를 뒤쪽에서 공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숫자는 잘해보아야 300-4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들의 공격에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흑색 오크 부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쿠륵... 저런 머저리 같은 놈들을 믿고 보냈다니..." 크루라는 얼마 되지도 않는 인간들에 의해 흔들리는 흑색 오크들을 보면서 화를 내며 팔딱팔딱 뛰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치욕과 같은 것이었다. "쿠륵... 뭣들 하냐? 빨리 저것들을 공격해서 놈들이 포위를 뚫지 못하게 해라." 크루라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친위대를 향해 외쳤고 곧바로 크루라를 호위하던 친위대의 일부가 흑색 오크 부대의 후미를 공격하고 있는 료우의 용병대를 향해 힘차게 뛰어 나갔다. 크루라의 친위대는 모두 하나같이 그레이트 오크로 이루어진 정예중의 정예로 흑색 오크 2-3명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정예병들이었다. 쿵쿵거리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크루라의 친위대는 흑색 오크 군대의 후미를 무섭게 공격하는 료우의 용병대를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볼트" 무작위로 캐스팅을 하며 죽어라 흑색 오크 무리들에게 마법 공격을 날리던 료우의 용병대는 가지고 있는 마나를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하나라도 더 죽여야만 포위되어 있는 동료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은 정신없이 공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료우의 용병대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적이다!" 갑자기 터진 외침에 정신없이 마법 공격을 날리던 료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그의 시야에는 자신들의 왼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한 무리의 오크들이 보였다. "오크로군." 료우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마법 공격을 받고 제지하려고 달려드는 부대가 있을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달려오는 오크들의 무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나같이 덩치가 큰 것이 거의 트롤을 연상케 하는 놈들이었다. "으음... 그레이트 오크!" 료우는 달려오는 존재들이 모두 그레이트 오크라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신음을 흘렸다. 료우도 어느 정도 그레이트 오크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보통의 오크보다 거의 한배 반 이상 덩치도 크고, 힘도 좋고, 머리도 뛰어난 편이다. 인간보다는 못하다고 하지만 거의 지능도 비슷한 상태에서 트롤 만큼이나 힘이 좋은 존재들이 그레이트 오크였다. 인간의 기사와 거의 맞먹을 만큼 무력도 좋은 존재들이 떼거지로 달려드는 것을 본 료우는 바로 용병대를 향해 외쳤다. "저것들을 막아라.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라." 료우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료우의 용병대들은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더니 달려드는 그레이트 오크들을 향해 공격 마법을 날렸다. "파이어 볼!" "매직 미사일!" "라이트닝 볼트!" 그와 함께 궁수 부대에서도 화살이 쏟아졌다. 엘프들과 인간 궁수들의 화살은 무더기로 달려드는 오크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는데 대부분 중갑주를 걸치고 있는 오크들의 갑옷을 뚫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 현상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1, 2 클래스의 마법사들이 펼치는 매직 미사일등도 오크들을 살상하지는 못했다. 단지 충격에 잠깐 기우뚱 할뿐 그들은 하위 마법사들의 공격을 맞으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콰아앙..." 그때 아론과 네오의 익스프플로젼(Explosion) 마법이 순간적으로 터졌다. "크에엑..." 확실히 7클래스 마법사인 아론과 네오가 펼친 익스플로젼 마법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떼로 무리를 지어 달려드는 그레이트 오크들이 밀집한 지역에 터진 익스플로젼은 직경 5미터 내외를 붉은 화염으로 감싸는데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화염에 익어버렸다. 하지만 원체 숫자가 많은 오크들이어서 그런지 수십 마리가 죽었음에도 그 기세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료우의 용병대 코앞까지 도달했다. "막아라!" 료우의 외침이 터지며 제일먼저 그레이트 오크들의 앞에 선 이는 료우 자신이었다. 료우는 자신의 애검인 티어 소드를 뽑아내며 제일 선두의 그레이트 오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원체 덩치가 큰 그레이트 오크이다 보니 료우는 평상시의 오크들과 상대할 때와는 달리 힘보다는 빠른 속도로 상대와 싸웠다. "쿠에엑..." 빠른 료우의 검에 몸을 감싸는 중갑주가 뚫리며 오크의 비명이 터졌다. 심장이 정확하게 관통이 되었는지 그레이트 오크는 짧은 단말마를 지르더니 풀썩 쓰러졌다. "막아라! 어서 마법사들을 보호해라." 검사들은 이미 용병대를 둘러싸고 있는 흑색 오크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달려 나간 상태라 마법사와 궁사들을 보호할 검사들은 한명도 없었다. 다만 라미셀이나 어비스와 같은 암살자들만 몇 명 남아서 만약을 대비하는 형태라 수도 없이 쏟아지는 그레이트 오크는 마법사나 궁사들에게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원거리 공격에서는 누구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그들이지만 이런 근거리라면 이야기는 틀려졌다. 료우는 불안했는지 소리를 지르며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다행히 마법사나 궁사들도 처음에는 검을 익힌 자들이기에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할 힘은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그레이트 오크였다. 당연히 불안한 료우였다. "커억..." 료우의 불안한 예상이 들어맞았는지 료우의 용병대에서 처음으로 희생자가 나왔다. 궁사중 한명이 그레이트 오크와 맞붙다가 옆에서 달려드는 그레이트 오크의 도끼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는 두개골이 정확하게 도끼에 찍힌 상태에서 기우뚱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동시다발적으로 용병대 전체에서 일어났다. "이익..." 료우는 쓰러지는 용병대원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토록 보호하려고 애썼던 이들이었는지 한순간에 그것도 한명이 아닌 용병대 전체가 위험한 순간에 빠진 것이었다. "안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7장. 오크의 왕국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자의 눈길은 료우에게 온통 쏠려있었다. 아니 료우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 때문에 그들이 죽는 것 같은 느낌이 든 료우는 심한 자책감에 빠져 들었다. 하나 둘 쓰러지는 자들의 비명과 그들의 애처로운 눈빛은 료우를 괴롭게 만들었다. 심한 자책에 빠진 료우는 한순간 비명을 지르며 용병 무리에서 이탈하여 앞으로 뛰쳐나갔다. 어떻게 해서든 죽어가는 용병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뛰어 나간 료우는 정신없이 오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떠한 격식도 없이 휘두르는 료우의 티어 소드에는 료우가 무한정으로 쏟아 붓는 다량의 마나 때문에 황금색의 오러 소드를 만들었고 눈이 부실만큼 가공할 황금빛은 사방으로 퍼지며 달려드는 오크들을 위협했다. 료우의 검은 무적이 되어 달려드는 그레이트 오크의 몸을 무인지경으로 베어갔다. "쿠에엑..." "쿠어억..." 아무리 중갑주를 걸치고 있다고 해도 티어 소드 자체의 날카로움과 료우가 쏟아 붓는 마나로 인해 생겨난 팔라딘의 오러 소드의 영향으로 료우의 검에 걸린 오크 군단의 친위대들은 베이는 족족 갈라지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검이든, 방패이든, 갑옷이던 보이는 족족 갈라버리는 검의 위력은 아무리 용맹한 그레이트 오크라고 해도 두려움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그와 더불어 근거리 공격력이 미약한 용병 마법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자 그들의 스승이기도 한 아론이 대노하여 대단위 마법을 캐스팅하는데 그는 오크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달려들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아론의 외침이 터지고 금세 가공할 불의 폭풍이 천지사방으로 빠르게 퍼졌다. 붉은 화염의 폭풍은 그 매서운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아론의 주변을 휩쓸었는데, 아론은 스스로 불의 폭풍을 자처하며 용병들을 죽인 그레이크 오크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붉은 화염의 궤적은 금세 큰 원을 그리며 오크 군단의 친위대 무리들을 무한정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가공할 불의 분노는 삽시간에 수십 마리의 그레이트 오크들을 태워버리는 위력을 보였다. 아론의 가공할 분노에 뒤이어 바이크와 싸움 이후에 한번도 본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던 게으름뱅이 네오도 분노했다.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용병들이 그레이트 오크들의 칼날에 쓰러지자 갑자기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물론 드래곤인 그가 아무리 동료라고는 하지만 인간들의 죽음에 분노했다는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현재 네오는 보통의 드래곤에 어울리지 않게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끝까지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 분노한 네오는 검과 마법이 가능했기에 먼저 뒤쪽으로부터 계속해서 꾸역꾸역 충원되어지는 그레이트 오크 무리들의 후방을 향해 마법을 펼쳤다. "썬더 스톰(Thunder Storm)!" 귀청을 울리는 큰 목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위력의 번개의 폭풍을 목격하게 되었다. 네오의 썬더 스톰은 아론이 펼친 파이어 스톰보다 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썬더 스톰이 터진 곳은 마치 무엇이던지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한 듯 주변에 있는 모든 오크들을 무한정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반경 20-3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넓이에서 빨아들이는 가공할 흡인력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고 썬더 스톰으로 인해 한곳으로 빨려든 오크들은 중앙으로부터 뿜어지는 가공할 전기의 위력에 비명을 지르며 감전되기 시작했다. "지지지직...." "쿠에엑..." 뼈와 살을 순간적으로 녹여버리는 가공할 번개의 위력은 아무리 대단한 오크 군단의 친위대 그레이트 오크라고 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곤두서는 충격으로 인해 비명을 토하고 발버둥치며 죽어가게 하기 충분했다. 네오가 펼친 썬더 스톰은 용병대를 향해 달려들던 오크 친위대의 후방 진형을 한번에 휩쓸었고 썬더 스톰이 펼친 지역은 전기로 익어버린 오크들로 인해 어느새 짙은 노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용병들을 향해 달려들던 오크 친위대는 네오가 펼친 썬더 스톰 한방에 최소한 200-300 마리는 족히 죽었으리라 추측되어졌다. 네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검을 뽑아들고 선두에서 전진하는 그레이트 오크들을 베기 시작했다. 이미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네오는 용병중에서 바이크 다음으로 강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검은 무인지경으로 달려드는 오크 군단의 친위대들을 손쉽게 베어 넘겼다. 그것은 분노 때문에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료우의 검보다 더 강해보였고 더 큰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네오는 본신 특유의 가공할 살기를 내뿜었는데 그 살기의 정체는 드래곤 고유의 능력이었다. 아직 성룡식을 치루지 못했기에 본래의 드래곤이 갖고 있는 드래곤 피어 능력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반경 몇 미터 안의 그레이트 오크들은 네오의 살기에 맥을 못 추고 공포감에 젖어 무력해 졌다. 그로인해 네오의 곁에서 싸우는 자들은 조금 편하게 오크들을 상대했다. 료우와 아론, 네오등이 가공할 위력을 선보이며 달려드는 오크 친위대들을 공격하자 다른 용병들도 어느 정도 사기가 진작이 되었는지 힘을 내며 몰려드는 오크 친위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패배 직전까지 갔던 분위기는 금세 반전이 되었고 오크 군단의 친위대는 처음 공격했던 숫자의 거의 대부분이 시체로 변하는 사태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쿠룩...." "쿠르륵..." 자신의 명령으로 인간의 군대를 완벽하게 포위하여 모조리 전멸을 시키려는 순간 포위망을 펼치고 있던 아군 부대의 진형을 흔들어 놓았던 인간 군대의 지원군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친위대를 파견한 오크 원정군 5군단 군단장 크루라는 친위대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일단 병력의 숫자만으로 해도 그들의 열배는 족히 넘어서고 있었기에 적들이 아무리 마법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궁사들로 포진되어 있다고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친위대는 용감하게 적의 마법과 화살 공격에도 결코 물러나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격했고 어느새 그들에게 접근하여 하나, 둘 적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숫자의 우위와 접근전의 실력도 자신의 부대 쪽이 우세해 보였기에 크루라는 안심을 하고는 다시 시선을 인간 군대를 포위한 포위망으로 돌렸다. 이미 지원군으로 생각되는 적의 응원군은 자신의 친위대에 의해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크루라는 자신의 주변을 지키던 친위대들이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무슨 일인가 해서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리다가 그는 아론과 네오가 펼친 파이어 스톰과 썬더 스톰을 목격하게 되었다. "쿠루륵... 저... 저건..." 크루라는 아론과 네오가 보여준 두 마법 위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꺼번에 수백의 친위대를 삼켜버리는 마법의 위력에 할말을 잊었다. 단 두 번의 대단위 마법이었지만 그 위력만큼이나 친위대의 우세는 반전되어 버렸다. 크루라는 자신이 파견한 친위대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죽어가는 자신의 친위대를 구원하라는 명령을 차마 내릴 수 없는 크루라였다. 아론과 네오가 보여준 마법의 위력이 너무도 엄청나서 차마 남은 친위대를 그곳에 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망설이던 크루라는 갑자기 장내에 큰 함성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그 함성은 분명 인간들을 포위하던 아군의 포위망에서 흘러나온 소리였고 크루라는 정신없이 함성이 터지는 곳을 향해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끝내 그는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와아... 포위망이 뚫렸다. 탈출하라!" "와아아!" "살았다. 빨리 탈출해라!" 사방에서 터지는 인간들의 함성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오크 군대의 포위망을 뚫은 인간 군대의 함성이었다. 바이크를 필두로 한 료우 용병대의 용병들이 포위망을 쉴 새 없이 때린 결과였다. 단단한 둑이 한번 구멍이 생기자 그 균열은 삽시간에 커져갔고 포위망을 쉴 새 없이 때렸던 카발과 기사들 그리고 용병들은 구멍이 뚫린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한번 구멍이 뚫리자 그 곳으로 밀려드는 인간의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인간 군대는 급속도로 구멍이 뚫린 포위망을 통해서 오크 군대의 포위를 뚫었다. 포위망이 뚫리자 포위를 했던 오크들은 당황하며 막으려고 애썼지만 한번 뚫린 포위망을 다시 수습하기에는 인간들의 저항이 너무 거셌다. "쿠룩... 막아라!" "쿠룩...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사방에서 터지는 질책성 어린 명령에 오크들은 인간의 군대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처절한 저항에 아무리 사나운 오크들이라고 해도 고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파! 너의 차례다. 아군의 후퇴를 도와라." 오크들의 두터운 포위망이 기적처럼 뚫리자 인간 원정군 4군의 대장인 코라는 젊은 부장을 불러 그렇게 말했고 젊은 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았다. "네 스스로 공언한 것처럼 너는 아군의 후위를 맡아서 적의 추격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라. 너의 용맹을 기대하겠다." 아슈리안 부족의 젊은 전사이자 부장인 투파는 스스로 적에게 등을 보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끝까지 적과 싸우기를 주장했었다. 이미 그를 따라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전사들이 무려 1천을 넘었기에 그는 용기 백백 했고 코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저 없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4군의 후위를 맡았다. 그는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려는 인간들을 막으려는 오크 군대를 막아섰다. 스스로 비겁하게 살아남는 것보다 명예롭게 전쟁터에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던 젊은이였기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전사들과 함께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다. "쿠룩... 놈들이 도망간다. 빨리 막아라."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는 인간의 군대를 쫓는 오크들은 자신들을 막아서는 투파의 1천 후위부대를 보고는 매섭게 부딪쳤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한 자들이라 그런지 쉽사리 그들의 두터운 방벽을 뚫지 못했다. 추격하는 오크의 수효가 무려 10만이었기에 고작 1천으로 막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지만 투파를 비롯한 1천의 아슈리안 전사들은 최후의 일인까지 결코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고 맞서는 용맹으로 10만의 추격군을 10분이상 막았다. 그 때문에 4군은 가까스로 오크 부대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게 되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어떻게 됐었나? 놈들의 움직임은 파악이 되었나?" 노회한 공작의 물음에 카를 샤르망 후작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공작 전하! 이미 첩자들을 대거 풀어서 놈들의 실태를 낱낱이 파악해 놓았습니다. 놈들은 현재 마물의 숲 원정에 거의 모든 인원을 투입했습니다. 테미에 있는 아슈리안 전사의 80퍼센트 이상이 마물의 숲 원정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따라서 현재 테미에 남아있는 자들의 수는 모두 합쳐도 체 1만을 넘지 못합니다." 자신만만한 카를 후작의 말에 르베르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후후... 그렇다면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겠군." "네... 물론입니다. 이미 저희 쪽에 줄을 선 귀족들을 다독여서 이번 일을 넌지시 언급을 했습니다. 국왕 폐하의 직인만 떨어진다면 공작님의 군대 1만과 각 영지의 군대 5만이 바로 테미로 진격할 것입니다." 카를 후작의 보고에 르베르 공작은 만족한 웃음을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의 정규군을 보내는 것보다 본인과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이 군대를 이끌고 테미를 차지하면 그만큼 얻어지는 이득은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테미라는 큰 보물을 자신이 한꺼번에 삼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만족한 웃음을 보이는 르베르 공작이었다. 그러다가 공작은 카를 후작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더니 슬쩍 물었다. "그건 그렇고 예전에 내가 지시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하르켄 후작에 대한 것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 현재 제가 풀어놓은 자들을 통해 대강의 정보는 파악이 되었지만 별반 특이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워낙에 한곳에 틀어 박혀 연구만 하는 자라 그런지 별로 수상쩍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자라고는 그의 제자이자 궁정 마법사 정도가 고작이고 특이한 사항은 없었습니다." "으음..." 약한 신음소리가 르베르 공작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공작 전하!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아니... 그 정도면 됐네. 현재로는 국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하르켄 후작을 자극할 필요까지는 없네. 다른 자와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면 그것으로 족하네. 국왕의 총애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그런 자라면 안심을 하겠군." 르베르 공작의 말에 카를 후작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태도에 르베를 공작은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일단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자네는 계속해서 귀족들을 더 독려해서 철저한 준비를 서둘러주게. 나는 바로 국왕 전하를 만나서 이 일을 매듭짓도록 하겠네. 더 이상 늦출 수도 없는 일이니 빨리 처리를 하도록 해야겠어." 르베르 공작의 말에 카를 후작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르베르 공작은 카를 후작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렸다. 무엇이 그리고 급한지 카를 후작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나가는 르베르 공작 때문에 홀로 안에 남아있던 카를 후작은 르베르 공작의 뒷모습을 계속 응시하더니 갑자기 한기가 일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후후... 공작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소. 이제 얼마 후면 그대의 시대도 종말을 고하는 거요! 노회한 늙은 여우 따위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오. 이번 일만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나는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작이 되는 거요. 그대가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는 자리에 오르는 거지. 크하하하..." 어느새 카를 후작은 대소를 터뜨리며 멀리 사라진 르베르 공작을 비웃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파미르 왕국의 국왕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역대 국왕 중 무척이나 나약한 인물로 평가를 받는데 그의 왕권이 무척이나 약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왕국의 실세를 움켜쥐고 있는 르베르 공작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도 있었지만 국왕의 우유부단한 성격도 한 몫을 하였다. 루폰 국왕은 르베를 공작이 자신을 찾아 왔다는 사실에 약간 긴장을 한 표정을 보였다. 국왕이 신하가 찾아왔다는 사실에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이상스러운 일이지만 왕국의 실세인 르베르 공작의 영향력은 국왕마저 긴장시킬 만큼 큰 것 이었다.. "어서 들어오라고 일러라!"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국왕은 대전 안으로 들어오는 르베르 공작을 보았다. 60대 초반의 공작은 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체격과 사람들의 속을 꿰뚫어 보는 노련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늙은 여우라는 별명답게 노련한 공작은 국왕의 앞에 서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신 르베르... 폐하를 뵙고 급히 청할게 있어서 이렇게 무례를 범했습니다." "무슨 일이시오? 공작!" "예! 다름이 아니오라 테미 때문에 그렇습니다." "테미...?" 국왕은 르베르 공작의 말에 살짝 놀란 눈치를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전하!" "테미의 정벌 때문에 그러는가?" 난데없는 국왕의 말에 이번에는 르베르 공작이 깜짝 놀랐다. 자신이 건의를 하기도 전에 이미 국왕은 이번 일을 아는 듯 한 눈치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런데 어떻게 아시고 계셨습니까?" 르베르 공작은 국왕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의 차가운 눈길은 국왕을 압박하는데 국왕은 르베르 공작의 눈빛에 저절로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더니 애써 긴장한 표정을 없애며 대답했다. "험험...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하르켄 후작이 넌지시 언급을 하더군. 공작이 아마도 테미에 관하여 찾아오리라고 말이야." "네에...?" 르베르 공작은 국왕의 말에 잠시 놀란 눈빛을 보이더니 이제는 자신의 정적이 되어버린 하르켄 후작을 떠올렸다. 노회한 나이 때문에 전대 국왕의 충성스런 궁정 마법사로 왕국의 최대 현자로 있었으면서도 정계에서 은퇴한 인물이 그였다. 그런데 이번 용병대와 제국의 마찰로 인해 다시 등장한 그는 갑자기 탄탄해 보였던 자신의 권세를 뒤흔들만한 정적으로 등장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전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노회한 마법사는 어느새 국왕에게 자신이 테미건으로 올 것을 알렸던 모양이었다. 르베르 공작은 안심해도 좋다는 카를 후작의 보고를 떠올리고는 쓸모없는 녀석이라고 카를 후작을 욕했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르베르 공작이 놀라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자 국왕은 그렇게 물었고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공작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옵니다. 폐하! 신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바람에 폐하께 무례를 범했사옵니다." 그러면서 별로 미안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억지로 사과하는 르베르 공작의 표정을 보았지만 국왕은 그의 태도를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만큼 공작의 영향력이 컸던 까닭이었다. "그럼 폐하께서 이미 알고 계시니 짧게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테미를 공략해서 그곳의 풍부한 철광석을 얻어야 할 줄로 아옵니다." "테미를 지금 바로 공격하자고...!" "네 그렇사옵니다. 폐하! 한시라도 빨리 테미를 손에 넣어야 하옵니다. 미르가 제국에 떨어진 이상 더 이상의 철광석의 수입은 심히 어렵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옵니다. 제국이 우리들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와중에 저희들의 군사력을 증강시킬 철광석등의 광물을 쉽게 내어줄 까닭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출을 금지한다던지 하면서 저희들을 눈에 띄게 압박하려고 하지는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수출은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아마도 철광석등의 광물을 수출한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우리 왕국의 재정을 파탄시키려 할 것이옵니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많은 양의 광물을 내어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마도 그 판단이 옳을 듯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빨리 철광석의 산지인 테미를 얻어 우리의 약점을 없애야 하옵니다." 르베르 공작의 장황한 말에 국왕은 약간 내키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제국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지 않았소? 너무 불안해하는 것 아니요?" 국왕의 말에 르베르 공작의 인상이 굳어졌다. "폐하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고 해도 제국은 충분히 주변국의 시선을 무시한 채 쳐들어 올 수 있는 나라이옵니다. 또 이미 여러 번의 전례가 있지 않사옵니까? 거기다가 미르가 사라진 이상 이제 북방에는 단지 저희뿐이옵니다." 르베르 공작의 말에 국왕은 비관론적인 르베르 공작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끌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그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하지만 그랬다가 제국의 심기를 괜히 건드린다면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하구려." "폐하... 얌전한 뱀이라면 폐하의 판단이 옳을 수 있지만 제국은 결코 얌전하지 않습니다. 이미 독기가 오를 때로 올랐고 거기다가 몹시 굶주려 있습니다. 저희가 놀라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만히 있는 저희들을 공격할 이유가 있사옵니다." 르베르 공작의 말에 국왕은 이미 하르켄 후작에게 언질을 받은 것이 있는지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으음... 그렇다면 공작의 뜻대로 행하시오. 하지만 이번 테미의 건은 공작이 나서기 보다는 카를 후작과 하르켄 후작을 지휘관으로 삼아서 출전을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오." 국왕의 난데없는 말에 르베르 공작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테미를 차지하기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르베르 공작은 급하게 말을 꺼냈다. "폐하... 테미에 있는 아슈리안의 미개인들이 비록 숫자가 적다하여도 최소한 1만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전쟁 경험도 미천한 카를 후작과 하르켄 후작을 보낸다니 천부당만부당 하옵니다." 르베르 공작의 다급한 말에 국왕은 예전과 같지 않게 능글능글한 웃음을 보였다. 그 웃음에 르베르 공작은 심히 불안했다. "내 그 때문에 왕국 제2기사단의 단장인 풀먼 백작에게 명령을 내렸소이다. 이미 왕국의 정규군 3만과 3개의 용병대가 테미로 떠날 차비를 끝냈다고 하더구려." 국왕의 말에 르베르 공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완벽하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자신은 밥에 뜸까지 들이며 모든 준비를 하였더니만 정작 밥을 차지하는 것은 국왕과 자신의 정적으로 오른 하르켄 후작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이 그토록 신임했던 카를 후작도 자신을 배신한 듯 보였다. 르베르 공작은 분노가 치솟아 올랐지만 입술만을 깨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유조아 서버가 이상해서 계속해서 글을 올리지도 못했네요. 일단 한편 올려드립니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마물의 숲에서 10만에 다다르는 오크 군단의 포위를 가까스로 뚫고 도망친 인간 원정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단 7천에 다다르던 아슈리안 전사중에 살아남은 수효는 고작 2천을 넘지 않았고, 두려움에 몸을 사렸던 용병대의 경우에도 3천 가량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 원정대를 탈출시키기 위해 포위를 뚫으려했던 료우 용병대의 경우에도 마법사를 포함해서 궁수들의 대다수가 죽음을 당했고 검사들의 피해도 적지 않아서 반수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번의 전투에 너무도 많은 피해를 본 까닭은 적의 숫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크 대군의 포위를 빠져나온 인간 원정군은 남쪽으로 남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추격을 시작한 오크의 대군을 후위에 남겨놓은 결사대가 막는다고 하여도 그 시각은 한정되었고 어떻게 해서든 추격을 피해야 했기에 그들은 결사적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하루 반나절을 도망친 그들이 겨우 한숨을 돌린 곳은 인간 원정군 4군이 마지막으로 불태웠던 오크들의 마을이었다. 용병대중 오크들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자들을 남겨두었던 마을에 도착한 이들은 마을에 남아 혹시라도 모를 오크들의 침입을 불안해했던 부상자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부상을 입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부상자들은 자신들을 버린 군대가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로 마을에 들어오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4군의 수장인 코라는 냉정하게 행군에 지장을 줄 부상자들을 남겨두고 떠났던 자신이 이제는 도리어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상황을 인지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마을로 들어온 인간 원정군은 도망치느라 너무 지쳐서 하나같이 마을에 도착한 후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그들은 경계고 뭐고 그냥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들의 모습에 4군의 수장인 코라는 만약을 대비해서 경계를 세우고 싶었지만 그 강인하다는 자신의 부족 전사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사기마저 땅에 곤두박질 친 상태라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마을에 남아있던 부상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마을에 남아있던 부상자중 한명이 지쳐서 널브러져 있는 용병 한명에게 슬쩍 물었다. "모두 죽었어!" "죽어?" "그래... 모두 죽었어. 오크놈들에게..." 사내의 말에 사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이봐... 자세하게 말해봐. 그게 무슨 말이야. 모두 죽다니... 그럼 자네들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야." 그는 지쳐서 쓰러져 있던 사내를 움켜잡으며 심하게 흔들었는데 사내는 지친 나머지 그가 흔드는 대로 따라서 흔들거릴 따름이었다. 그러더니 힘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0만이었네. 10만... 그 악귀 같은 오크놈들이 무려 10만이나 몰려들었어. 우리가 이렇게 생명을 부지한 것도 운이 좋았을 뿐이야." 사내의 말에 부상자 사내는 놀라서 다급하게 궁금해 하던 동료들에게 뛰어갔다. 포위망을 뚫고 살아남은 인간 원정군은 그만큼 사기가 저하되었고 의욕을 잃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장내의 상황이 몹시 안 좋다는 상황을 인식하고 있던 네오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료우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도 나름대로 많은 힘을 쏟아 부었고 쫓기던 상황이라 지쳐있는 상태였다. 성질 같아서는 드래곤 본체로 돌아가 쫓아오는 놈들에게 브레스라도 뿌려주고 싶었지만 그 나름대로 폴리모프를 풀면 레드 일족에게 잡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후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그는 인간들과 같이 행동을 했다. 아무리 그가 인간 동료들의 죽음에 분노하고 가지고 있는 분노를 터뜨렸다고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드래곤이었기에 자신의 자유를 망치면서까지 인간들을 도울 이유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미개한 오크들에게 쫓겨났다는 자존심의 상처에 그는 분노했고 또 자신의 동료이기도 한 료우가 무척이나 지친 표정이라 현 상황을 그에게 일깨우려했다. "100명이 넘게 죽었어." 료우는 힘이 없어 보였다. 전보다는 자책감과 자괴감에서는 많이 벗어났다고 해도 용병들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지 유독 힘이 없어 보이는 료우였다. 료우의 그런 모습에 네오는 약간 언성을 높이며 질책을 터뜨렸다. "그거 묻는게 아니잖아.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 "바보같이 대장이 그렇게 힘이 없으면 밑에서 너는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 내가 종종 말했지. 그 정도 희생은 각오하라고 말이야. 그들은 용병이었고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내 명령을 따랐고 그렇게 죽어간 거야. 후회 없는 죽음이라고. 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지?" 네오의 말에 료우는 약간 분노를 띈 얼굴로 고개를 쳐들며 외쳤다. "그걸 어떻게 알지? 죽은 자들에게 물어봤어. 후회 없었노라고 말이야." 료우의 언성이 커지고 그런 물음이 들리자 네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걸. 그리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저만큼 구한 것도 사실이잖아!" 네오는 마을 여기저기서 널브러져 있는 아슈리안 전사들과 용병들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에 료우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알아. 100명의 목숨으로 5천명을 구했으니 어쩌면 잘한 일 일지도 모르지. 그래 어쩌면 죽은 이들도 자신들의 희생으로 저만큼의 목숨을 구했다고 만족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문에 자책하는 것이 아니야. 충분히 그들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많은 생명을 잃었기에 이렇게 내 자신에게 분노하는 거야. 내가 만약 처음부터 온힘을 쏟아 부었다면 아마도 열명, 스무 명은 더 구하지 않았을까?" 료우의 말에 네오는 할말을 잊었다. 그도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병 동료들의 죽음 이후로 분노해서 힘을 썼을 뿐이었기에 그도 할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풀죽어 있는 료우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죄책감 따위는 벗어버려. 너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리고 만약 그들에게 아직까지 죄책감을 갖고 있다면 원한을 풀어주면 되는 것이다. 복수를 하라는 말이다." 네오의 말에 료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복수...! 그러면 그들이 살아날까?" "제길...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이대로 앉아서 후회나 하고 있을 생각이냐?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생각이야?" 네오의 화난 말투에 료우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며 눈물을 떨어트렸다. "그렇지. 그래야겠지. 하지만 더 이상은 내 옆의 누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료우의 눈물은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테미에 남아있는 아슈리안의 대장로 켈라힘은 젊은 대족장 케인과 마물의 숲 원정대를 떠나보내고 난후 한동안 불안감에 젖어있었다. 역대로 파미르 왕국의 많은 군대가 마물의 숲을 정벌하러 떠났지만 살아서 돌아온 자의 수는 극히 적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자신들에게 마물의 숲 정복을 부탁한 것은 무언가 함정이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족장인 케인이 젊은 혈기를 참지 못하고 마물의 숲 원정을 용인한 후 직접 부족의 전사들을 대거 끌어 모아 원정군을 이끌었기에 남아있는 켈라힘은 부담감은 무척 컸다. 남은 전사들을 수효는 잘해야 1만이 넘지 않아서 무척 혼란스러운 테미의 치안을 신경 쓰기에도 벅찬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 용병들을 끌어 모아 치안을 맡기기에는 불안했기에 켈라힘은 없는 병력을 쥐어짜서 겨우 테미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한 생각이 드는 켈라힘이었다. 황금의 땅으로 바뀌어버린 테미는 다른 자들의 군침을 돌게 만들만큼 아주 먹음직한 먹이였기에 그의 신경은 무척이나 날카로워져 있었다. "대장로님!" 켈라힘은 한동안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자신을 애타게 부른 인물은 누벤이라는 자였다. 그는 테미 곳곳을 감시하며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불순분자를 색출하는 일을 맡은 인물로 켈라힘이 신임하는 몇 안 되는 인물중 하나였다. 켈라힘은 혼란한 테미의 상황 때문에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반란이나 혼란을 조장하는 이들을 감시하고, 색출하기 위해 정보부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부의 책임자가 누벤이라는 인물이었다. "무슨 일인가?" 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누벤의 말투가 약간 상기되어 있음을 깨달은 켈라힘은 그렇게 물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여서 말입니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라니...?" 약간 놀란 눈초리로 묻는 켈라힘의 어투에 누벤은 급히 대답을 했다. "예... 다름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 평소보다 많은 외지인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그 수효가 눈에 거슬릴 정도로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보게 누벤! 부랑자와 떠돌이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어제, 오늘일도 아닌데 무어가 그렇게 심상치 않다는 말인가? 그 숫자가 예전보다 많다고 해도 말일세." 켈라힘은 누벤의 대답에 의심스러운 점을 크게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게 물었는데 켈라힘의 말에 누벤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종전보다 두 배는 늘어났고 거기다가 하나같이 노련한 용병들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용병?" 이번에는 켈라힘도 약간 놀란 눈치로 보였다. "예... 아무리 뿔뿔이 흩어져서 도시로 흘러 들어오기는 했다고 하지만 하나같이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거기다가 몇 명씩 단위를 지어서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그 때문에 지금 저희 정보부에서는 인력이 모자란 상황입니다." 누벤의 보고에 켈라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혹시 파미르나 지방 귀족들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는 없었나?" "아직까지 특별한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파미르 왕국의 정규군 일부가 세덴 공국과 인접한 국경의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인다는 첩보는 들어왔습니다." 누벤의 보고에 켈라힘은 급하게 물었다. "무슨 말인가? 정규규의 이동이라니..." 켈라힘의 외침에 누벤은 바로 자신이 며칠 전 들은 보고를 기억해내고 켈라힘에게 대답했다. "동쪽 세덴과의 접경 지역에서 사소한 충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뜩이나 용병대에게 정규군이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제국이기에 파미르의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모를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하는 모양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현재까지 정규군 3만에 왕궁의 제2기사단이 참여했다는 보고입니다." "기사단?" "네... 들어온 보고로는 파미르 왕국의 제2기사단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출전했다는 보고입니다." "이... 이런..." 켈라힘의 갑작스런 말투에 누벤의 표정이 변했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는 모르겠나?" "혹시...?" "맞아. 자네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네. 이건 아마도 우리를 노리는 파미르의 움직임이 분명하네. 우리 전사들을 대부분 마물의 숲으로 떼어놓고 이곳을 날로 삼키겠다는 그들의 시커먼 속셈이지." "으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벤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물었다. "일단 먼저 빨리 장로들과 전사들을 소집하도록 하게. 그리고 자네 정보부는 현재까지 파악된 자들의 소재를 확실하게 파악해서 하나도 놓치지 말고 일망타진 하도록 하게.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두려우니 어떻게 해서든 그자들을 놓쳐서는 안 되네." "네... 알겠습니다." 누벤은 켈라힘을 명령을 받고는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고 누벤의 뒷모습을 보는 켈라힘의 안색은 굳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물의 숲 원정을 떠난 대족장인 케인과 전사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 연재시기가 넘 느리죠! 죄송합니다. 요즘 바쁜일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늦장을 부리네요. 최대한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주의 시작....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무척 규모가 커 보이는 황토 빛 광장에는 무척 많은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놀란 기색과 화난 표정으로 서로 떠들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자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메워진 관계로 그들이 조금씩 자리를 움직일때 마다 발밑으로 일렁이는 흙먼지가 금세 바람에 날려 주위를 메우는데 그 황토바람 때문에 사람들은 금세 누런빛의 흙바람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불편함은 괘의치 않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물론 몇몇 이들은 무명천으로 입을 막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사나운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런 혼란함이 한참인 가운데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 사이로 웅성대는 소음을 뚫고 짧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두 조용!" 그 한마디 말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뚫고 들려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는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한곳으로 몰렸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아슈리안의 대장로 켈라힘을 주목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중구난방(衆口難防) 식으로 떠든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모두 주목하고 한 가지씩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게!" 켈라힘의 말소리가 끝나자 사방에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켈라힘은 바로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고 떠드는 사람중 한 사람을 지목했다. "루베크의 아들 루살이 말해보게!" 켈라힘의 지목을 받은 이는 30대 후반의 사내였다. 그는 온몸에 붉은 문양이 가득 새겨진 짐승의 털을 뒤집어쓰고 있고 이마와 볼에는 붉은 선이 두 줄 그어져 있었다. 그는 몹시 흥분한 듯 붉어진 안색으로 켈라힘의 지목을 받자 바로 큰 소리로 외쳤다. "켈라힘 대장로님! 따지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슨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입니까? 이미 저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오기로 작정한 이상 우리는 나가서 맞서 싸우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저런 버러지 같은 녀석들은 모두 없애버려야 합니다." 루살의 외침에 많은 자들이 동조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다. 그들은 대부분 비교적 젊은 아슈리안의 전사들이었다. 루살의 말을 들은 켈라힘은 다른 의견이 있는지 다른 이들에게 물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번에 나선 이는 대략 40대 후반의 중년인인데 비교적 큰 체구에 노련함이 물씬 풍기는 인물이었다. "자메크 가문의 수장인 자네가 말을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어서 해보게." 켈라힘의 승낙을 얻은 사내는 바로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작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현재 상황을 대족장님이 있는 마물의 숲 원정군에 신속하게 알려야 함이 첫째인줄 압니다. 우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숫자의 한계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이나 파미르 왕국은 일반 영지의 귀족군도 아닌 정규군과 기사단까지 파견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노련한 용병부대들도 대거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이곳을 지키고 있는 우리 전사들을 모조리 끌어 모은다 해도 우리는 겨우 1만의 병력밖에는 더 이상 모을 수도 없습니다. 저들의 군세를 막아내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마물의 숲 원정군이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저 교활한 파미르 왕국의 침략군을 막아낼 수 있다고 판단이듭니다. 또한 현재 이곳에 있는 용병이나 난민들도 모두 끌어 모아 저들과 대항하는데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메크 가문의 수장인 자메크의 말에 바로 다른 자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무엇을 믿고 그따위 쓸모없는 용병 나부랭이나 난민들을 쓴다는 말입니까?" 소리를 지른 자는 자메크가 의견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 루살이었다. 성질이 급하고 아슈리안 전사로서 자부심이 강한 루살은 자메크의 의견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루살의 반박에 자메크는 루살을 쳐다보더니 성난 표정을 보였다.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따위 오합지졸의 파미르 군사들을 대적하는데 다른 자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성을 저는 느끼지 못합니다." "한번은 이기겠지만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하겠는가? 저들은 계속해서 군사를 보낼 것인데 우리의 인원은 한정되어 있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저들을 막겠는가?" 자메크의 말에 이번에는 루살도 별반 대답을 찾지 못했다. 3만이 넘는 파미르 정규군과 용병부대와 맞싸워 루살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절반...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전사들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을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 자메크의 말은 그 다음 다시 파미르가 군대를 보냈을 때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 였다. 그것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루살은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병력의 피해를 최소로 줄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 내의 용병이나 난민들을 끌어들여서라도 저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자메크가 최종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얘기하자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자메크의 생각에 동조를 하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아무래도 들킨 것 같은데 어떻게 하죠?" 블루 용병단중 하나인 샤먼 용병단의 고참 용병중 하나인 딘테는 자신의 대장인 샤먼을 바라보며 불안한 기색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는 약간 초조한 빛이 얼굴에 감도는데 무척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토껴야지. 별 수 있냐?" 40대 후반의 용병으로서는 무척 나이가 든 늙은 용병대장 샤먼은 그렇게 딘테의 말을 일축하고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파미르 왕국과의 계약으로 수 십 여개의 중소 용병단이 테미로 흘러들어 잠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들이었다. 예정된 계획은 파미르의 정규군이 테미를 공격할 시각에 맞추어 테미에 잠복하고 있던 그들은 내부에서 도시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테미를 장악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사전에 누출되었는지 현재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 주변의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다른 자들보다 신중함이 엿보이는 샤먼 용병단의 용병들은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다가 주변의 낌새가 심상치 않자 아무래도 자신들의 의도가 적에게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하였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들이 머물던 숙소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숲 속 동굴이라는 여관에 머물던 놈들이 아무래도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한꺼번에 여관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테미로 스며든 파미르의 용병 부대를 처단하기위해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온 누벤은 주변을 감시하던 부하중 하나가 한 용병부대가 자신들이 감시하던 곳에서 급하게 이탈한다는 말에 때가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 놈도 살려두어서는 안된다. 모든 부대에게 지금 즉시 알려라! 현재 시각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감시하던 자들을 모두 처단하라. 그들중 한 놈이라도 도망가는 자가 있다면 그쪽을 책임진 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도록 해라." 누벤의 며령이 떨어지자 전령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명령을 전하기 위해 뛰어갔고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탐욕이 부른 피의 바람이 조용한 테미 곳곳에 불기 시작했다. "저기다. 놈들이 도망간다.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도시의 뒷골목으로 스며든 한 떼의 용병들을 처단하려고 달려온 아슈리안 전사 바라크맨은 자신에게 배정된 부하 30여명을 이끌고 자신들이 처단하게 될 용병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다가 그들이 눈치를 챘는지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바라크맨의 목소리에 그의 부하들도 놀랐지만 낌새가 이상해서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빠져나가려던 샤먼 용병단의 단장 샤먼과 용병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길! 벌써 들이닥칠 줄이야..." 샤먼은 아슈리안 전사 바라크맨의 외침에 이미 저들에게 들킨 것을 감지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적의 수효가 자신들보다 20여명이 적기는 하였지만 이곳 아슈리안의 인간들은 그 용맹함이 이미 널리 알려진 자들이었다. 보통의 용병들은 그들과 일대 일 대결해서 이길 수 없음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두,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는 이상 저들을 상대하기는 무척 버거웠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현재 자신의 부하들이 저들보다 20여명은 많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것은 오히려 저들보다 열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판단이 서자 샤먼은 입술을 깨물고는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라. 놈들과 싸워봤자 이기기 힘들다. 모두 제 살길을 찾아라." 샤먼은 그렇게 외치고는 부리나케 자신의 목숨을 돌보기 위해 아슈리안 전사들이 몰려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죽어라 뛰어갔다. 샤먼 용병단의 용병들은 적이 나타나자 싸우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단장이 그렇게 외치며 반대편으로 뛰어가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워보지도 않고 이기기 힘들다고 말하고는 도망을 치다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몇몇 고참들은 단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리나케 단장의 뒤를 쫓는데 대부분의 용병들은 아직까지 사태 파악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어정쩡한 모습과는 달리 몇 명의 용병들이 반대편으로 달아나자 그들을 처단하러 온 바라크맨은 급하게 부하들을 독촉했다. "뭣들 하느냐? 놈들이 도망치지 않느냐? 빨리 놈들을 잡아라. 한 놈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라!" 바라크맨은 그렇게 외치고는 급하게 용병들이 서있는 곳으로 뛰어 나갔다. 그는 어느새 빼 들었는지 긴 롱소드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용병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으아악..." "막아!" 자신들의 단장이 도망치는 바람에 전의를 잃고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던 용병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아슈리안 전사들을 맞으며 제대로 대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장을 따라 급히 도망을 치던지 아니면 서로 합심해서 대항을 했더라면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기회가 늘었겠지만 그들은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슈리안 전사들의 매서운 공격을 받자 자신들의 실력을 체 발휘하지도 못하고 피를 뿌렸다. 공기를 가르는 매서운 칼바람에 온몸이 갈기갈기 난도질당하는 한 용병 사내는 삽시간에 자신의 몸이 고깃간 갈고리에 걸려있는 고기처럼 변한다는 생각을 하며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목이 잘린 자들부터 팔다리가 끊어지는 자들이 다반사였다. 아슈리안 전사들은 한 치의 자비심도 갖추지 않은 듯 그들을 지독하게 학살했다. 대부분의 용병들이 대항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몇몇 자들은 겁에 질려 몸을 돌려 달아났지만 이미 기회를 놓쳤는지 금세 따라붙은 아슈리안 전사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이런 모습은 테미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황금의 도시 테미는 참혹한 붉은 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거의 날마다 야근의 연속이라 이렇게 펜을 들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도 잠깐의 짬을 내서 쓴 글을 올려드립니다. 제 글을 기다리시는 여러분께는 정말 죄송스럽네요. 좋은 하루 되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10만으로 짜여진 오크 원정군 5군단에 쫓겨서 남으로 후퇴하는 인간 원정군 4군의 남은 병력은 부상자를 포함해서 모두 합쳐도 7천명을 넘지 못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오크 군대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 저런 대규모 오크 군대가 그것도 이런 남쪽 외곽까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어쩌면 마물의 숲 전체가 이들 오크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비슷했다. 그것 때문에 무너진 오크 마을에서 한숨을 돌리는 인간 원정군 4군의 수뇌부는 지친 병력을 다시 억지로 일으키며 다시 남쪽으로 병력을 후퇴시키는 한편 인간 원정군 총사령관인 케인에게 전서구를 보내며 현 상황을 자세히 알리려고 시도했다. 인간 원정군 4군의 지휘자인 코라는 남은 병력이나마 살리려고 애를 썼다. "뭣들 하느냐? 빨리 움직여라. 여기서 오크놈들에게 따라 잡히면 모두 죽음뿐이다." 재촉하는 상관의 명령에 움직이기도 힘든 몸을 겨우 일으킨 노병은 피곤한 기색을 뒤로한 채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목숨은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몇몇 병사들이 지친 몸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병사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저것이 과연 군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들은 몹시 지쳐있었고 사기는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기세 좋게 북진하던 그 사기는 도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굼뜨게 움직이는 군대는 마치 피난길에 오르는 피난민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거기에 더해 심한 부상을 입은 자들은 하나같이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뒤를 힘겹게 쫓아오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혀를 차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군단장님! 저것 좀 보십시오. 저런 상태로 다시 오크들을 만난다면 이번에는 모두 전멸입니다. 차라리 지친 자들과 부상자를 떼어버리고 신속하게 후퇴하는 것이 그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4군의 지휘관인 코라의 부관중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의견을 내며 지치고 부상을 입은 자들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그들 대부분은 모두 용병으로 마물의 숲 원정에 동참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 수는 적어도 삼천 이상은 되어보였다. "저들을 모두 죽일 셈이냐?" "저들을 살리려 한다면 다른 자들도 모두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전체를 죽이느니 차라리 가혹하더라도 절반은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부관은 코라가 신임하는 부장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뛰어난 용맹과 빠른 판단력으로 승승장구 원정군 지휘부중 한자리를 꿰찬 인물이었다. 부관의 잔혹한 의견에 코라는 망설였다. 그도 부관의 말처럼 저들을 모두 데려간다면 뒤쫓아 오는 오크 군대에게 잡힐 확률이 많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따라 전쟁터를 누볐던 자들을 냉정하게 내칠 수는 없었다. 북진할 때 오크 마을에 2천의 부상자를 남겨둔 전력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했기에 내버려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저들을 떼어 버리고 이동한다면 저들은 그 무자비한 오크 군대에게 모두 죽을 것이 분명할 듯싶었다. 아니 확신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옳았다. "절반을 살리기 위해 절반을 버리라는 말이군." 침울한 표정으로 내뱉는 코라의 말은 어느 누구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그 말을 곱씹으며 고심을 하였다. "군단장님! 지금은 냉정하셔야 합니다. 한순간의 자비로 말미암아 부대 전체가 전멸할 수 있습니다." 독촉하는 부관의 냉정한 목소리에 코라의 이마에는 서서히 주름살이 잡혔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 보이는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혼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던 료우는 현실로 돌아왔다. "무슨 말이야?" "저기 좀 봐봐!" 손가락을 뻗어 한곳을 가리키는 네오의 손끝을 따라 료우의 시선이 한곳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료우의 시선에 비친 것은 3군의 하급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들이 부상자들을 한곳으로 떼어놓는 장면이었다. "뭐지?" "아무래도 부상자들을 격리하는 것 같은데..." "격리?" "부대의 움직임이 둔해지니까 아무래도 저들을 떼놓고 갈 모양이다." 네오의 말에 료우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설마...?" "설마가 아니다. 저들의 움직임으로 보아서 당연한 조처이다." 네오의 말에 료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뭐가 당연하다는 말이야?" "저들을 모두 데리고 움직일 수 없는 노릇이잖아. 이미 오크놈들이 어디까지 쫓아왔는지 모르는 상황이고 그렇다면 쫓기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신속하게 도망쳐야 하는데 저들 때문에 행군속도는 갈수록 느려지고 있다. 절반을 살리기 위해서는 절반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처럼..." 네오의 냉정한 어투에 료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동료를 버리겠다는 말이냐. 그럼?" "절반이라도 살리려면 그래야겠지." "절반을 살리려고 절반을 버리겠다는 말이야?" "그럼 다 같이 죽자는 말이냐?" 이번에는 네오의 어투에 힘이 들어갔다. "왜 죽는다고 미리 판단하지. 저들을 데리고 얼마든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왜 미리 짐작하고 미리 판단해서 있지도 않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지. 그리고 누가 무슨 권리로 저들을 죽이려는 거지?" 떨리는 음성의 료우의 말에 네오의 눈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료우를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이냐? 어디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봐라. 만약에 저들을 데리고 도망치다 오크 군대와 만나면 어떻게 할 거냐? 그때도 저번처럼 운이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너는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자들은 모두 죽겠지. 그것이 네가 바라는 일이냐?" 냉기가 풀풀 날리는 네오의 어투에 료우는 서서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네오의 말처럼 만약 그들을 데리고 이동하다가 오크 군대를 만난다면 이번에는 정말 살아남기 힘들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10만이지 정말 10만의 대군과 싸웠던 료우는 그 숫자가 주는 위압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오크들의 인해전술(人海戰術)에 아무리 소드 마스터가 두 명이나 버티고 있다고 해도 대적할 수는 없었다. 그 무서움을 이미 경험했기에 료우는 네오의 말에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가슴은 냉정해지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네오의 말에 동감하고 있는 료우였다. "하지만..." "한순간의 자비로 모두들 죽음으로 밀어 넣을 생각이냐?" 료우의 발언을 끊어 버리는 네오의 말에 료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료우가 네오의 말을 납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는 료우 일행 말고도 한곳에서도 더 벌어지고 있었다. "설마 저들을 정말로 버리려고 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얀님!"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들을 살리려 한다면 모두 죽을 수 있습니다." "대체 누가 저들의 생명을 놓고 판단한다는 말입니까?" "살리려고 한다면 못 살릴 것도 없지만 극히 위험한 도박입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모두의 죽음은 기정사실 입니다." 냉정한 어투의 카발의 말에 얀의 얼굴은 흐려졌다. 저들 속에는 자신이 이끌던 제 5용병대의 인물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지금까지 함께 어려움을 헤쳐 온 자들을 냉정하게 버릴 만큼 얀은 가혹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저들을 살리는 방법은 없나요?" "뭐 희박한 확률이기는 하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어떤?" "죽음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무거운 카발의 음성에 얀의 고개는 미미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대들이 이곳에 남겠다는 말인가?" 4군의 지휘관인 코라는 자신을 찾아온 두 무리를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부상자들을 떼어놓자는 부관의 의견에 많은 고심을 한 끝에 부관의 의견에 찬성을 하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 불편하기 그지없어 급기야는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전사의 아들로 태어나 약한 자들을 보호하지 못할망정 그들을 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이미 전사의 자존심이나 명예는 헌신짝처럼 내버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버린 자들을 위해 두 무리의 용병들이 자신을 찾아 온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이 이끌고 있던 부족의 전사들보다 더 용맹하게 싸웠던 제 5 용병대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을 구했다는 표현이 적절한 료우의 용병대였다. 하나같이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용병무리들이 자신이 버린 부상자들을 위해 남겠다고 자신을 찾아 온 것이다. "저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모험을 해야겠지요!" 얀의 조용한 음성이 들렸다. 그의 대답에 코라는 료우쪽을 쳐다보았다. 얀의 옆에서 자신 말고도 부상자들을 구하려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료우는 옆의 사내가 어디선가 무척이나 낯이 익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코라의 눈길을 받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 정말 오랫만에 뵙는군요. 연중을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쉽지가 않네요. 뭐 지금은 그래도 바쁜일이 많이 끝나서 조금은 여유롭게 되었네요. 그래서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좋은 시간 되시고요. 저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당신이 미끼가 되어주면 돼!" 난데없는 료우의 발언에 코라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얀의 눈도 커졌다. 료우는 조금 전까지 갈팡질팡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힘이 실려 있는 어투로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지?"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도망칠 거야. 물론 흔적을 지우면서 도망칠 거야. 노련한 사냥꾼이라면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거의 전부가 부상자만 즐비한 우리를 애써 추적하려는 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야. 그것을 노리려고 해." "우리를 미끼로 그들을 살리겠다는 의도로군." "그렇지." "그대도 같은 생각인가?" 코라는 이번에는 얀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얀은 약간 다른 대안을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방법은 료우가 말하는 것과 거의 비슷했다. 얀이 가져온 대안은 매우 단순하면서 확률적인 도박으로 두 갈래로 병력을 나누는 방법이었다. 쫓아오는 자의 수효가 적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그리 높지 않은 성공률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방법은 생각해 놓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물론 료우가 지금 말하는 방법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도망치기 수월한 부대를 미끼삼아 달아나는 방법으로 흔적을 지우면서 도망치는 방법인데 료우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코라가 이끌고 가는 부대를 미끼삼아 도망치겠다는 말에 얀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 그럼 성공할 확률은 있는 것인가?" "조금은..." 료우의 대답에 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속에 일어났던 죄책감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 드는 코라였다. "그 정도라면 동료를 버리고 가는 자들의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 주기에 충분하겠지. 좋다! 너희들을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우리가 기꺼이 미끼가 되어주겠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아니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을 거다." 코라의 비관적인 말에 료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힘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10만을 뚫고 도망친 자들이야. 저들의 삶에 대한 의지라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큼 나도 노력할거다. 저번처럼 쉽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어." 굳은 의지가 베어있는 듯한 료우의 말에는 힘이 실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얀은 료우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고한 의지가 실려 있는 료우의 말에 스스로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모습처럼 보였다. 료우와 얀의 의견을 코라가 받아들임으로 인해 3군은 둘로 나뉘어졌다. 이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은 부상자들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진 상태이고 몸이 성한 자들은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했고 남은 자들은 가로막는 료우의 용병대와 얀을 따르는 용병대에 막혀서 그들을 뒤쫓지 못했다. "살려줘!" "난 죽기 싫어!" "야... 이 새끼야! 무슨 권리를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야?" 부상당한 용병들은 가로막는 용병들을 붙잡으며 그렇게 울부짖었다. 몇몇 자들은 억지로라도 그들을 뚫고 몸이 성한 자들을 뒤쫓으려 했지만 번번이 앞을 가로막는 용병들에 의해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자 막아선 자들을 향해 그렇게 욕을 내뱉었다. 부상자들을 가로막은 이들은 살려달라는 울부짖음과 욕설에 당황했지만 명령을 어기고 그들을 내보내지는 않았다. "모두 조용! 제 말 좀 들어봐요." 울부짖음과 갖은 욕설에 소란스러운 장내를 단번에 제압하는 호통에 사람들은 떠들던 입을 다물었다. 물론 몇몇은 "어떤 새끼야?" 라는 소곤거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저는 료우의 용병대를 맡고 있는 료우 하얀이라고 합니다." "네가 뭔데 우리를 막는 거냐?" "그래! 이 새끼야... 네놈이 뭔데 우리를 막는 거냐?" 료우가 자신에 대해 소개를 하자 난데없이 부상당한 무리중 한 사내가 그렇게 물었다. 사내의 난데없는 질문이 이어지고 그의 말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삽시간에 사방에서 욕이 쏟아졌다. 갑작스럽게 다시 혼란스러워진 장내의 반응에 료우는 잠시 얼굴이 붉어졌다가 이내 참지 못하고 화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시끄러워! 너희들 때문에 우리도 남았다. 그런데 무슨 쓸데없는 헛소리냐?" 료우의 분노에 시끌벅적하던 사내들의 욕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의 기세에 눌린 것도 있지만 그들도 료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여지마저 막아선 료우였기에 몇몇 이들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 누가 남으라고 했냐? 나는 살아야만 해.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말이야!" 료우의 말을 반박하며 울분을 토하는 사내의 두 눈에는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몇몇 사내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우리는 살아야 해! 살아야 한다고..." 다시 한 사내의 외침이 다시 들렸다. "그래! 그래서 내가 아니 우리가 남았다.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이곳에 남았다는 말이다." 료우의 대답에 사내들은 웅성거리던 입을 막았다. 지금 료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들은 그 진실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한 가지 묻겠다. 너희들이 그들을 따라가는 의도가 무엇이냐? 그들까지 끌어들여 함께 죽자는 말이냐?" 난데없는 료우의 물음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도 료우가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함께 움직이면 대열은 지체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추격하는 오크들에게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기에 그들은 살기위해 발버둥을 쳤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료우가 질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대로 우리보고 죽으라는 말이냐? 목숨을 걸고 같이 싸웠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같이 죽기 싫으니 여기 남아서 우리더러 죽으라는 말이냐?" 성난 목소리에 료우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사내는 대략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데 아마 일반 부랑자나 난민이 아닌 정식으로 용병으로 등록한 용병처럼 보였다. 그는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길게 이어진 검상을 당했는지 다친 부분을 몸을 붕대로 감싸고 있었고, 머리도 심하게 다쳤는지 그 부분도 붕대로 감싸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분노로 불타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료우를 향해 분노를 쏟아낼 기세였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텐데 너희들을 살리려고 남았다고..." 료우의 대답에 사내의 분노어린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어떻게 우리를 사리겠다는 말이오?" 누군가의 물음이 던져졌고 료우는 장내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조용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꺼이 우리들을 위해 미끼가 되기로 했다." 료우의 말에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료우를 쳐다보았다. 미끼라니...? 흔적을 지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료우 용병대에게는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기발한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물론 두 명의 고위 마법사가 존재하는 료우의 용병대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많은 시간이 걸리고 두 사람이 상당한 힘을 쏟아 부어야 하는 일이지만 다른 어떤 방법보다 그 방법은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물론 거기에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있었지만 코라의 도움으로 문제는 이미 해결된 상태였다. 료우는 아론과 네오에게 이동 마법진을 통해 최대로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을 파악한지 오래였다. 7클래스 마법사인 아론과 네오의 경우 최대로 크게 이동 마법진을 그리면 한번에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500명 넘었다. 문제는 이곳이 마음 편하게 큰 이동 마법진을 그릴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대로 넓게 그린 것이 20명 정도가 이동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이동 마법진이 전부였다. "어디로 이동할거야?" "기분 나쁘지만 3군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다." "3군?" 네오의 물음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하필 3군이지? 다른 곳도 많은데... 아니 그냥 이들을 테미로 보내도 상관없지 않냐?" 네오의 물음에 료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어. 이들은 용병으로 마물의 숲 원정에 참가한 자들이 대부분이야.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무턱대고 이들만 덜렁 테미로 돌려보낸다면 테미에 남아있는 아슈리안 인들이나 다른 용병 가족들이 이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가뜩이나 많은 아슈리안 전사들이 죽은 상태야. 용병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자들이 부지기수로 있는 곳으로 이들을 한꺼번에 돌려보낸다면 이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그리고 현재 너희들이 한번에 보낼 수 있는 인원도 20명이 고작이잖아. 아무리 네가 마나를 무한정으로 써도 고갈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한번에 보낼 수 있는 인원은 둘이 합쳐서 고작 40명이 전부란 말이야. 그렇다는 말은 백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80-90번을 연거푸 시전 해야 한다는 말인데 테미는 거리상으로 너무 멀고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 그 안에 오크 놈들이라도 들이닥치는 날이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백퍼센트 죽는다고 봐야해. 그러느니 차라리 이들을 3군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것이 편할 거야. 또 거기에는 오크들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는 리자드맨들이 살고 있으니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말처럼 그들은 어쩌면 우리의 강력한 우군이 될 수도 있는 자들이야." 료우의 말에 네오는 쉽사리 납득은 가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 "걱정 말아!" 료우의 말에 네오는 씨익 웃음을 짓고는 바로 아론과 함께 용병들을 이동시킬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러 개를 그려서 몇 군데서 한꺼번에 이동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건 이동 마법진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의 소리였다.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했고 조율해줄 마법사가 각 마법진마다 한명씩은 꼭 필요했다. 이동 마법진을 컨트롤할 마법사야 3클래스 이상이면 그나마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동에 원천적인 힘을 내어줄 마나는 달랐다. 3클래스는커녕 5클래스의 마법사도 20여명을 한꺼번에 마법진을 통해 이동시켜줄만한 마나는 극히 부족하다고 보아야 옳았다. 뭐 한번쯤은 가능하다고 해도 그 다음은 거의 마나의 고갈 현상에 허덕여야 함이 분명했기에 마법진을 그리는 수고만 더해질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행 중에 마법사가 스스로 마나를 불어넣는 대신에 적정량의 마나를 보태줄 상급의 마나석이라도 갖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5클래스 마법사가 둘이 있어도 스스로 이동 마법진을 통해서 다른 자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함이 옳았기에 두개의 마법진만 그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떻게 7클래스의 마법사와 드래곤이 있으면서 마나석 하나 없냐고 물어본다면 상급의 마나석 가격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과 아론의 경우에는 별로 마나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구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옳았고, 드래곤인 네오의 경우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는 아니 거의 별종이나 다름없는 드래곤이었기에 그는 다른 드래곤과 달리 재물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었고 마법 또한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마나석 같은 것은 챙기지도 않았고 오직 검술에 미쳐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마나석은 고사하고 그와 비슷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텔레포트를 통해 인간의 도시로 가서 사오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도 들겠지만 일행에게는 도시로 가서 마나석을 구할 시간도 부족했고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럴만한 재력도 없었다. 상급의 마나석 가격은 그 크기에 비례하지만 최소 수백에서 수천 골드를 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구하는 것은 다 불가능했기에 그들은 언제 오크들이 추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3천명이 넘는 인원을 이동시켜야만 했다. 아론과 네오는 20명을 이동시킬 수 있는 마법진을 그리고는 3군과 헤어졌던 곳으로 텔레포트를 하였다. 양쪽에 이동 마법진을 완성해야 마법진을 통한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 더해 도착하는 지점의 안전도 살펴보는 것이 중요했기에 주위를 수색해야 하는 시간도 필요했기에 아론과 네오가 나타난 것은 한참 후였다. "설마 이동 마법진이라니...!" 료우와 아론, 네오등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3천명이 넘는 인원을 이동 마법진을 통해 옮겨서 흔적을 지우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말이 좋아 이동 마법진으로 인원을 옮기는 것이지. 미르의 왕국에서 살았던 얀은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마나석이 없는 가운데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려면 최소한 6클래스 이상 아니 수십번을 연속으로 사용한다면 7클래스 이상의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얀으로서는 설마하니 료우의 용병대에 대륙에서 얼마 있지도 않은 7클래스 마법사가 두 명이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그와 함께 있는 카발이나 주위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엄청나군요. 저번 싸움에서 소드 마스터로 보이는 자도 보았는데 설마하니 7클래스 마법사가 두 명이나 있다니..." 카발의 놀라움이 담긴 소리에 얀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인간 원정군의 총사령관인 케인의 상황도 코라가 이끄는 인간 원정군 4군과 비교해서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인지경으로 북쪽으로 대규모 오크마을을 휩쓸며 진격하던 1군도 예외 없이 4군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오크 병력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 수는 4군이 마주친 병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병력으로 그 수효가 대략 10만이었다. 이들은 오크 왕국이 남부를 공략하기 위해 내보낸 다섯 개의 군단중 제 2군단으로 군단장은 적염의 공작 케블의 수족중 하나인 물라카라는 그레이트 오크였다. 5군단장 쿠루와는 성격이 비슷하여 성급함에 있어 쌍벽이라고 칭하는 그레이트 오크인 물라카는 남하하던 중 난데없는 인간의 군대와 조우하자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공격명령을 내렸다. 남쪽에 존재하는 대부족 오크 마을에 전사로 보이는 오크들의 숫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다는 생각만 가졌던 인간 원정군 수뇌부는 그것이 설마하니 대규모 오크 군대를 막기 위해서임을 알지 못했던 까닭에 케인과 그의 인간 원정군 1군은 난데없는 오크 군대와 조우하자 혼란스러워졌다. 자신들의 숫자보다 적어도 6-7배는 많아 보이는 오크의 군대는 기존에 그들과 싸웠던 어떤 오크 무리들보다 절도가 있었고 기세가 있어보였다. 그것은 아무리 전사의 부족이라고 해도 주춤할 수밖에 없는 기세였다. 단 한번의 접전으로 1군은 엄청난 숫자의 전사자를 남겨둔 채 남쪽으로 쫓겨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군의 수뇌부가 그나마 빠른 판단력으로 오크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는 것만은 막았기에 절반의 전력은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전사들로 이루어진 용맹한 부대라고 해도 숫자의 우위가 가져다준 적의 여세는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케인은 오크 군대에게 쫓겨서 남하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병력을 파악하고는 자그마치 절반 이상의 사상자를 전장 터에 남겨둔 채 남쪽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이런 상황은 다른 곳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키케르가 이끌던 인간 원정군 2군도 삼분지 일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채 남쪽으로 패퇴했고 그들은 쫓기고 쫓겨서 끝내 4군이 후퇴하고 있는 남동쪽 방향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 온통 하얀 눈으로 덮혔네요. 다니는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하얀 색이 보는 이로 하여금 설레이게 하는 것은 있네요. ^^ 어제는 글을 못 올려드렸군요. 빨리 빨리 써서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주말 잘 보내시고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테미의 각 도시내부로 스며든 용병대를 하나 둘 처리하며 도시의 혼란을 꾀하던 파미르 왕국의 음모를 분쇄하던 아슈리안 부족은 생각보다 빠르게 테미로 접근한 왕국 군대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미 파미르 왕국에서 출발한 왕국의 제2기사단과 왕국의 정규군 3만, 용병 3개 부대 1만의 병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테미의 가장 서쪽에 있는 르블에 근접했다는 정보가 전해졌다. 테미의 중심 도시인 하르엠에서 대략 반나절 거리의 르블은 테미에 있는 4개의 도시중 하나로 테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황량한 황토 대지만 있었던 때에도 규모는 작지만 테미 내에서 가장 큰 마을이 있던 곳이 르블이었다. 그런 것이 테미 곳곳에 광산이 개발되면서 광산 주변으로 도시가 세워지고 상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유입으로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지자 덩달아 도시로 성장한 것이 르블이었다. 테미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르블은 물론 다른 세 개의 신규 도시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여느 지방의 소규모 도시에 비해서는 적지 않은 규모라 할 수 있었다. 대략 5천에서 1만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도시인 르블은 테미 전역의 광산 개발로 인해 몰려든 난민들 덕분에 현재 3만 가량의 인구가 밀집해서 살고 있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테미의 때 아닌 발전으로 인해 테미 전역은 그들의 부를 호시탐탐(虎視耽耽) 노리는 파미르 왕국의 지방 귀족들에게 많은 수난을 당한바 있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달려드는 지방 귀족의 병사들 때문에 이미 르블과 같은 테미의 주변 도시는 파미르 왕국의 병사들과 여러 번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어 싸움 경험이 풍부한 편이었고 예상외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편이었다. 그런 까닭에 르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파미르 왕국이 테미 전역을 전면적으로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당황하기 보다는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을 시도하고 있었다. "싸울 사람들을 모두 모아라. 한명이 아쉬운 형편이다. 남아있는 용병들도 모조리 끌어 모아라. 돈은 얼마든지 지급하겠다고 알려라!" 르블의 책임자인 차니크는 자신들만으로 4만이 넘는 파미르 왕국의 군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르블에 있는 아슈리안 전사의 수효는 모두 끌어 모아야 2천이 채 되지도 않았다. 거의 대부분 마물의 숲 원정에 전사들을 보낸 다른 도시와 달리 르블은 원래부터 아슈리안 전사의 숫자가 부족한 편이었다. 파미르 왕국의 지방 영지와 인접한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아슈리안 전사들이 있을 법도 했지만 원래부터 그리 크지 않은 규모 때문에 르블에 살고 있는 아슈리안 인들은 모두 합쳐 5천을 넘지 않았기에 성인 장정은 그 수에 비례해서 그정도 뿐이었다. 그나마 경험이 풍부한 성인 전사는 일천이 고작이었고, 남은 1천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들과 이미 늙어서 힘이 많이 빠진 노병이 전부였다. 그 때문에 르블은 다른 테미의 도시와는 달리 이미 여러 번 도시로 흘러 들어온 난민들과 부랑자, 용병들을 고용해서 도시를 노리는 지방 귀족의 군대와 싸운 경험이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르블에 살고 있는 자들은 아슈리안 부족민이 아니더라도 다른 도시 사람들과 다르게 르블이라는 도시 자체를 사랑했고 아슈리안 부족인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그것은 물론 르블에 살고 있는 아슈리안 부족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아슈리안 인들의 도시인 르블에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대규모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아슈리안 인들뿐만 아니라 르블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힘겹게 목숨을 바치며 지켜왔던 도시를 고스란히 빼앗길 수는 없었기에 숫자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파미르 왕국의 군대를 막아서기로 결심했다. 수차례 귀족들의 침입 때문에 르블의 경우에는 다소 초라하기는 하지만 성벽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략 3-4미터 높이의 매우 낮고 흙으로 쌓아올린 성벽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성벽을 방패삼아 밀려오는 파미르 군대를 맞이하는 르블의 자치군은 대략 1만이 넘는 많은 숫자였다. 거의 도시 인구의 삼분지 일이 도시 방어에 나섰다는 말과 동일한데 자발적으로 도시를 지키려는 도시민의 수효가 대략 8천에 가까웠고 용병들도 실력은 미천하지만 3천 정도가 지원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상대가 되지도 않는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파미르 정규군과 싸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르블에 있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수효가 대략 1천에서 2천 정도가 고작이라고 알고 있던 파미르 왕국의 총 지휘관 하르켄과 카를 후작은 테미의 가장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르블에 도착하자 자신들을 맞이한 병력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정보보다도 최소 3배에서 최대 5배가 넘는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어떻게 된 일인가?" 수도에서부터 퍼진 테미에 대한 정벌 소식을 접하고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것이 있을까 해서 소속 영지의 병사들을 이끌고 직접 찾아나서 길잡이를 자처한 바브슈 영지의 귀족 세르 자작은 카를 후작의 설명을 요구하는 물음에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번번이 테미에 눈독을 들여 여러번 르블을 침입한 경험이 있는 그로서는 르블에 저렇게 많은 병사가 있다는 사실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카를 후작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우물쭈물 대꾸를 못하고 눈치만 살피자 옆에 있던 왕국의 제2기사단장 풀먼 백작이 나서서 말을 했다. 그는 대략 40대 후반의 호리호리한 사내로 멋들어진 콧수염이 독특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피부와 여느 젊은 사내 못지않은 탱탱한 피부로 인해 나이가 무색해 보이는 젊음을 갖고 있는 사내는 하얀 광택이 빛나는 백색 갑주를 입고 있었다. 사내의 하얀 갑주 오른쪽 가슴에는 왕국의 제2기사단을 상징하는 슐라의 검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여성용 검이라 할 수 있는 레이피어(Rapier)가 거꾸로 세워져 있었다. 흔히들 왕국의 제2기사단을 부를 때 슐라의 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슐라의 검은 파미르 왕국 최초의 여기사이자 왕국의 제2기사단을 직접적으로 탄생하게 만들었고 또한 기사단의 초대 기사단장을 역임한 슐라 폰 제니시스 백작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파미르 왕국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이자 여성으로는 대륙 역사상 두 번째로 소드 마스터에 오른 슐라 폰 제니시스 백작은 파미르 왕국에 있는 모든 기사들의 우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백년이 넘는 오랜 세월 속에 묻힌 인물이지만 아직까지도 파미르 왕국의 모든 기사들은 슐라 폰 제니시스 백작을 동경했고 특히 왕국의 제2기사단은 자신들의 초대 기사 단장이었던 그녀를 우상시했기에 그녀의 검을 자신들 기사단의 상징으로 삼고 있었다. "아마도 저들은 도시에 있는 시민들을 끌어들인 듯 합니다. 복장이 통일이 되지 않았고 그 소유하고 있는 무기조차 매우 조잡해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쪽에 있는 자들은 무기도 아닌 농기구와 나무를 급하게 깎아서 만든 창을 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한쪽을 가리키는 풀먼 백작의 손끝을 따라간 하르켄 후작과 카를 후작은 금방 수긍하는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무지몽매한 무리들이 무엇 때문에 모두 나왔다는 말인가? 숫자도 적고 싸워보았자 이기지도 못하는 놈들이 무엇을 믿고 저리도 방자하게 구는지 알 수가 없군!" 카를 후작은 르블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막아서고 있자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렇게 묻는데 풀먼 백작은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였다. "아마도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목숨을 거는 것이겠지요.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 풀먼 백작이 오히려 그들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평소부터 기사들에 대해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던 카를 후작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그는 상대가 아무리 정규 기사단의 기사단장이라고 하지만 저런 미천한 자들을 두둔하는 풀먼 백작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한마디 쏘아 붙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옆에서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하르켄 후작은 카를 후작의 모습에 그를 말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자... 자... 그런 것은 나중에 따지고 빨리 저들을 섬멸하고 도시를 장악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끼리 싸운다면 저자들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참으시오." 하르켄 후작의 말에 카를 후작은 나름대로 그를 어려워하는지라 "끙.." 하는 신음만 흘릴 뿐 풀먼 백작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고 분을 삭였다. 그런 카를 후작의 모습에 하르켄 후작은 아무도 모르게 입가에 진한 비웃음을 흘려보냈고 풀먼 백작은 나름대로 카를 후작의 모습에 뭐라고 한소리 들을 것을 하르켄 후작이 나섬으로 무마하자 고개를 슬쩍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파미르 군의 수뇌부는 다시 회의를 속개하였다. "자므란 남작! 그대의 2사단이 선봉을 서시오!" 파미르 군의 양대 지휘관중 하나인 카를 후작의 명령에 이번에 테미를 공격하기 위해 수도를 떠난 왕국의 제 4군단 소속 2사단의 사단장인 자므란 남작이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았다. 명령을 받은 자므란 남작은 약간 젊은 편에 속한 귀족으로 여느 귀족과는 다르게 절도와 패기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는 카를 후작으로부터 명령을 받자마자 "예" 하는 대답과 함께 지휘부를 나섰다. 대륙에 존재하는 많은 제국과 왕국의 병과 체계는 거의 대부분 바빌론 제국의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한 체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바빌론 제국은 정규군을 크게 군, 군단, 사단, 연대, 대대, 중대, 분대로 나누었다. 가장 작은 집단인 분대의 경우 보통 10명을 최소 단위로 한다. 그리고 약간은 들쑥날쑥 하지만 보통 10-30여개의 분대가 모여서 중대를 이루고, 4개에서 5개 정도의 중대가 모여서 대대를 이뤘다. 그리고 3개에서 5개 정도의 대대가 모여서 연대를 이루고, 사단은 3개 연대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보통 사단의 경우 1만 여명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는 편이고 3개의 사단이 모여서 군단을 이루었다. 또한 군이라 함은 육군과 수군을 나누어서 모든 군단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파미르 왕국의 경우에는 정규군이 모두 7개 군단 20만 정도로 짜여져 있는데 3, 4 군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남쪽 국경 지대에 배치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7개 군단중 5, 6, 7 군단은 예비군 성격이 짙은 반면 1, 2, 3, 4 군단은 파미르 왕국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군대였다. 제 4군단 소속 2사단의 사단장인 자므란 남작은 근위기사 출신으로 북쪽에서 침공한 오크 무리를 물리치는 공을 세움으로 남작의 작위를 받은 인물로 그는 카를 후작으로부터 명령을 받고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2사단의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놈들이 움직인다." 성벽에서 파미르 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경계병의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껏 긴장한 모습으로 파미르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던 르블의 시민군들은 드디어 적과 싸우게 되었다는 흥분과 두려움에 젖은 채 저마다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르블을 향해 움직이는 파미르 군의 수효는 적어도 1만은 되어보였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승부겠군." 르불의 책임자인 차니크는 서서히 움직이는 파미르 군의 제 2사단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예상치 못한 르블의 함락소식이 하름엠에 있는 아슈리안 지도자들에게 전해진 것은 파미르의 르블 침공이 일어 난지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미 르블에 파미르의 대군이 밀려온다는 소식에 르블을 구하기 위해 일단의 병력을 모아서 원군을 보내려고 하던 아슈리안 수뇌부는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적의 숫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예전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르블의 함락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파미르가 급하게 르블을 공략했다고 해도 그 숫자가 예전보다 많았다고 해도 르블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의 삼분지 일이나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도시를 방어하려 했던 그들의 열의가 불과 반나절 만에 산산이 부서져, 먼지처럼 흩어졌다는 사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아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믿기지 않는 일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쉽게 밝혀졌다. 그리고 그 때문에 하르엠을 비롯한 다른 네 개 도시는 때 아닌 난리가 한바탕 또 벌어졌다. 이미 도시 내부로 스며든 용병들을 모조리 소탕했다고 생각했던 아슈리안의 지도부들은 르블에서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지원한 3천의 용병중 절반 이상이 파미르에서 파견한 첩자라는 사실에 광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천 5백의 용병들이 성 내부에서 도시를 방어하던 시민군의 뒤를 치면서 르블은 너무도 쉽게 무너진 것이다. 이미 용병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체크하여 소탕했다고 생각했던 지휘부나 정보부는 그 소식을 접하고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으... 설마하니 그자들이 겨우 미끼였을 줄이야!" 정보부를 책임지고 있는 누벤은 르블의 함락 소식과 더불어 전해진 함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용병들의 배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비롯한 정보부는 도시로 흘러들어온 용병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그들이 파미르에서 넘어온 첩자라는 사실을 밝혀낸 후 그들을 모조리 토벌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파미르에서 그 자신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든 미끼정도의 역할밖에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진짜 결정적으로 대세를 바꾸어 놓을 배신자들은 따로 이미 도시 내부로 스며든 것이었다. 그야말로 파미르의 공작에 의해 자신과 정보부가 놀아난 꼴이 되었다. 르블에 있는 용병들의 배신은 르블의 어처구니없는 함락은 둘째치더라도 더 나쁜 상황을 몰고 오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테미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인즉슨 더 이상 테미에 있는 용병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테미에 있는 아슈리안 인만으로 파미르의 대군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은 이미 부족의 회의에서 결정이 난 사항이었다. 그 때문에 아슈리안 수뇌부는 따로 도시에 있는 용병들과 난민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막대한 재화를 풀면서까지 파미르 군에 대항하려고 했다. 아슈리안 전사들의 피해를 최소를 줄이면서 전투에 임한다는 작전이 이제는 물거품이 된 것이다. 가장 큰 전력을 차지하리라고 생각하던 용병들을 믿을 수 없는 이상 전투의 전자도 모르는 난민들을 앞세워 파미르 군과 싸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 때문에 이제 전쟁은 아슈리안 전사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테미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켈라힘을 비롯한 그나마 의식 있는 수뇌부들이 결코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느림보 별빛입니다. 너무 늦게 글을 올리네요. 빨리 올린다 올린다 하면서... 쩝... 뭐라고 할말이 없네요. 기다리시는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뿐이 드릴말이 없네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오크의 대군에 쫓겨 남쪽으로 후퇴하던 인간 원정군이 다시 뭉친 것은 1군이 눈물을 머금고 후퇴한지 일주일이 조금 지나서였다. 1군과 2군의 패잔(敗殘)병력, 거기에 더해 4군의 패잔병력 일부가 모이니 그 숫자는 대략 2만이 조금 넘었다. 거의 마물의 숲 원정에 동참한 원정군중 오분지 이 이상을 잃어버린 최악의 상황이었다. "족장님! 더 이상의 마물의 숲 원정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만으로 저 수많은 오크들의 대군을 막기에는 너무 버겁습니다." 애써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두 눈 가득 분노와 회한(悔恨)이 가득 차 있었다. 이미 패전의 멍에를 씌고 도망쳐 나온 까닭에 주위에 있는 아슈리안 전사들도 예전의 그 당당한 모습은 쉽사리 찾아볼 수 없었다.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임에도 그런 말이 나왔고, 그런 말을 들었다면 응당 흥분해서 화부터 내야 할 것이 분명함에도 그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나도 알아. 더 이상의 싸움은 부족의 피만 더욱 늘리는 것뿐이겠지. 저 오크들은 우리 힘만으로 어쩔 수 없는 존재들이야.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내가 이곳을 원한 것은 부족을 위해서였지, 부족의 피를 원해서가 아니야!" 예전 케인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의 의기소침한 대답은 그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자신만만하고, 패기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케인의 얼굴은 흡사 낙오자의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정녕 이대로 물러나야합니까?" 암울한 분위기에 가라앉아 있던 아슈리안의 지휘부에서 한 젊은 사내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대략 이십대 후반의 청년인데 그의 얼굴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사내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그렇게 말하는데 그의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마저 보일 듯싶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 사내가 꼭 움켜 쥔 두 손은 심한 경련마저 일으킬 듯 보였다. "보레! 너의 기분은 알지만 이것이 최선이다. 더 이상의 피는 부족의 미래마저 흔들리게 한다. 이미 우리는 너무도 많은 피를 흘렸다." 씁쓸한 음성을 발하는 이는 4군의 수장이었던 코라였다. 코라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분노에 몸을 떠는 사내에게 다가가며 그렇게 말하는데 그의 말에 보레라 불린 사내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크흑..." 그리고 이어지는 사내의 울음소리는 조용한 장내의 분위기를 더욱 침울하게 만들었다. "보레! 자네 동생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났네. 이미 나를 비롯한 우리 4군의 모든 전사들은 자네 동생과 그곳에서 죽은 1천 결사대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자네의 동생과 그곳에서 죽은 1천 결사대들의 복수를 결심하고 있네." 잠깐 숨을 멈춘 코라는 보레의 두 어깨를 움켜잡으며 자신에게 다시 한번 결심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네. 지금은 사사로이 그대의 동생과 우리들을 위해 죽은 그들의 복수를 할 때가 아니네. 하지만 우리는 꼭 복수를 할 것이네. 그 기간이 언제이든지 내가 못하면 내 자식이, 내 후손이 꼭 할 것이네." 코라의 굳은 결심이 담겨있는 말에 보레는 이를 악물며 터져 나오는 슬픔을 삼켰다. 그도 코라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 때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말은 삼켰다. 하지만 분명히 그도 결심하고 있었다. 동생의 복수... 필히 자신의 손으로 하리라 말이다. 두 사내의 대화를 경청하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침통 그 자체였다. 언제 이리도 많은 부족의 전사들이 죽음을 당했던가? 그 옛날 왕국의 침입으로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 간 이후로 처음이지 않는가? 그 때문에 케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돌아가야겠지요!" 씁쓸한 음성이 두 사내의 대화 때문에 가뜩이나 침울해진 케인의 귀를 자극했다. 케인이 고개를 돌려 보니 2군의 수장인 키케르였다. 40대의 중년 사내는 약간 마른 체격이지만 다부진 근육질의 몸매를 갖고 있었고 현기 넘치는 눈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현기도 지금의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지 침울한 얼굴만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그래야겠지." 케인의 힘없는 대답에 키케르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아슈리안 원정군의 분위기는 전쟁의 패전을 인정했고 테미로 회군하는 것으로 결정되어지고 있었다. "휴우... 겨우 모두 이동했군." 료우는 내심 조마조마했던지 한숨을 내쉬고는 이동 마법진을 통해 이동한 용병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힘들군." 아론보다 몇 번은 더 이동 마법진을 통해 용병들을 옮긴 네오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드레곤도 과도한 마나 소모에는 힘이 드는 모양인지 약간은 지친 기색이 완연해 보였다. "수고했어." 료우의 말에 네오는 씨익 웃고는 슬쩍 뒤쪽에서 명상에 잠겨있는 아론을 보고는 슬쩍 물었다. "나야 그렇다고 하지만 아론도 정말 대단한걸. 7서클 유저라고 하지만 마나가 부족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보다 훨씬 낫아." 네오의 칭찬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만약 네오가 아론이 한때 9클래스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이크나 아론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네오였기에 그런 놀람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마법 하나만을 평생 동안 파고들은 마법사라고. 자네 같은 변종 드래곤이 아니고 말이야?" "뭐야?" 소리치는 네오의 행동에 료우는 피식 웃음을 지며 입을 열었다. "안 그러면 자네가 정상인가? 드래곤 주제에 소드 마스터라니 누가 들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걸. 거기에 드래곤씩이나 되어가지고 겨우 7클래스 마법사라고 한다면 아마 다들 배꼽을 잡고 웃을걸." "끙..." 료우의 말에 네오는 할말이 없는지 입맛을 다셨다. "하여간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했지만 다음이 문제로군. 어때? 3군의 그 답답한 놈들은 찾아보았어?" 료우는 네오를 그만 놀리려고 하는 듯 다른 물음을 던졌다. 료우의 진지한 물음에 네오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생각보다 많이 북진을 하지 않은 모양이더군. 거기다가 현재 대규모의 리자드맨 부족과 대치중이야. 그런데 묘하게도 아직까지 큰 접전은 없었던 것 같더군." 네오의 말에 료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만약에 이미 인간 원정군 3군과 대규모 리자드맨 부족이 부딪쳤다면 그 피해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이미 오크들에 의해 대부분의 마물의 숲이 점령되었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라도 귀중한 전력이었다. 거기에 지금 자신들이 데리고 온 무리들은 대부분 부상자가 많았다. 이들을 데리고서는 많은 수의 오크떼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럼 빨리 그쪽으로 이동해야겠군.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말이야." 료우의 말에 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주도적으로 용병들을 옮기는 료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얀은 다음 상황이 무척이나 궁금했는지 카렐과 함께 료우에게 다가와서 그렇게 물었다. 료우는 비록 멸망했지만 미르의 2왕자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졌던 얀을 이미 파악한지 오래였다.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그 기억이 강렬했기에 처음 대면을 하자마자 그가 미르의 2왕자라는 신분을 가진 인물임을 기억해낸 료우였다. 료우는 상대가 예전 왕국의 왕자라는 신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보다는 휘하의 기사를 위해 몸소 나서 변호를 했던 기억이 더 강렬했기에 그에 대한 감정은 좋은 편이었기에 살갑게 대했다. "원정군 3군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야. 그나마 그쪽은 고스란히 전력이 남아있다고 하더군." 료우는 왕자라는 신분 때문에 굳이 존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에 편하게 하대를 했고 료우의 대답을 들은 얀은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료우의 하대에 옆에서 있던 카발의 인상이 굳어졌다. 아무리 망국의 왕자라고 하지만 자신의 주군이다. 거기다가 지금 료우는 마치 이 무리의 지휘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것을 상기한 카발은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얀님! 죄송하지만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카발은 일단 얀에게 동의를 구했다. 어디까지나 얀은 자신의 주군이었기 때문이다. 난데없는 카발의 동의를 구하는 말에 얀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회를 얻었다는 듯 카발이 앞으로 나서더니 강렬한 인상으로 료우를 직시하며 물었다. "당신들의 능력은 우리도 확인한 이상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왈가왈부(曰可曰否) 하지는 않겠지만 선은 분명히 긋고 넘어가야 하겠소!" 카발의 힘이 가득실린 발언에 료우의 눈이 빛났다. "무슨 선을 말하는 겁니까?" 상대의 의도가 무엇이든 상대가 딱딱하게 나오자 료우도 얼굴을 굳히며 딱딱한 어투로 그렇게 물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저들을 두고 갈수 없었기에 이곳에 남았지만 당신의 지휘를 받으려고 남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으면 하오!" 카발의 대답에 료우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후... 내가 언제 당신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까? 왜 갑자기 밥그릇 싸움입니까? 나는 당신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들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고 그가 물었기에 솔직하게 답했을 뿐입니다. 당신들이 싫다면 굳이 나를 따라오지 않아도 됩니다." 료우의 대답에 카발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가 듣고 싶은 것은 그런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 카발! 그런 말은 실례에요. 죄송합니다. 카발 대신에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지금까지 잘하셨고 앞으로도 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미력한 힘이나마 당신을 돕도록 하죠. 카발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야... 얀님!" 얀은 가만히 듣고 있다 카발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는 놀라서 급하게 카발의 행위를 수습하려 하였다. 그러자 카발은 당황하여 얀을 말리려고 했지만 얀은 카발의 성급한 행동을 책하며 카발을 대신해서 사과를 했다. 그 둘의 모습에 료우는 료우대로 그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씁쓸한 웃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한명은 일국의 왕자였던 신분이고, 한명은 왕국의 기사단장이라는 신분을 가졌던 사내였다. 비록 망했다고 하지만 일반 평민들은 감히 쳐다 볼 수도 없었던 신분의 사내들인 것이다. 충성심 강한 신하는 주군이 스스로 다른 자에게 낮추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주군은 신하의 충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이 기묘한 주종관계에 료우는 나름대로 두 사내의 평가를 좋은 방향으로 내렸다. "그 사과는 받아들이지요. 뭐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의 지휘자가 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좋은 의견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저보다 더 좋은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따를 용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일단 저보다 좋은 의견이 없다면 목적이 틀려지지 않는 이상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일단은 저들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료우의 말에 얀은 고개를 끄덕였고 카발은 자신의 행동에 얀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는 사실에 자신을 책하고 있었다. [152 회] 28장. 불타오르는 테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군의 수장인 누게르는 부장인 슈투리안의 재촉하는 질문에 대답을 미루고 있었다. 적의 규모가 예상했던 것보다 커서 쉽지 않은 전쟁이 되겠다는 이유보다도 다른 원정군과의 연락이 갑자기 끊기면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불안한 마음에 눈앞의 적을 보면서도 쉽사리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신전에서 조금 전에 날아온 연락은 더욱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조금 전 신전 고유의 연락망을 통해 날아온 소식은 테미에 파미르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다는 급박한 전쟁소식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누게르는 더 불안한 상황이었다.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가?" "예... 벌써 이틀이 흘렀지만 족장님에게 보낸 전서응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으음..."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누게르는 신음을 흘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반대편에서 자신들과 대치중인 리자드맨 부족이 섣불리 공격하지 않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다분히 자신들과 비슷한 전사적 기질을 가진 놈들임에도 불구하고 적은 쉽사리 덤벼들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 둘은 현재 묘한 대치 상황을 이틀째 연출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누게르는 한참동안 고민하다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은 듯 묵묵히 자신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부장을 보면서 힘없이 입을 열었다. "일단 다시 한번 전서응을 날려서 이곳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 한시가 급하다고 꼭 연락 바란다고 알리도록 하게나." "네!" 몇 번이나 전성응을 날렸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지휘부에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겼거나 전서응이 지휘부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두 가지 이유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 누게르였다. 그리고 후자보다는 전자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누게르의 가슴을 더 짓누르고 있었다. 한편 누게르의 이런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게 반대편의 리자드맨 진영에서도 누군가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키엑... 대족장님! 북쪽에서 쫓겨 온 동족의 숫자가 이제는 1만을 헤아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북쪽 연합 전체가 오크놈들에게 넘어갔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둘로 쪼개져 있는 푸른빛이 감도는 혀를 날름거리며, 보기만 해도 쉽게 친근해지지 않는 청녹색의 피부에 파충류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는 리자드맨 플레케머는 외모와는 다르게 다소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플레케머의 보고에 남부 리자드맨 43개 부족의 수장인 바르의 눈이 푹 가라앉았다. 그는 표정이 얼굴에 잘 나타나지 않는 인물로 널리 알려진 리자드맨인데 지금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부하의 보고에도 아무런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속마음까지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 상황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들어온 것이 없나?" 바르의 차분한 물음에 플레케머는 바로 입을 열었다. "저번에 발견한 1만 가량의 오크 군대에 대한 정보 말고는 아직까지 들어온 보고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예상대로 1만의 오크 군대는 선발대가 확실해 보입니다. 도망쳐온 자들의 말로는 오크놈들은 10만을 군단으로 나누어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1만의 병력은 단지 정찰의 목적으로 움직인다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휴우..." 플레케머의 말에 바르는 다른 자의 귀에 들리지 않게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1만의 병력을 겨우 정찰의 목적으로 내보낸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1만이라면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력의 두 배였다. 바르가 알게 모르게 신음을 흘릴만한 이유였다. "그건 그렇고 둘째에 대한 소식은 아직 들어온 것이 없느냐?" "네에... 아직까지는 들어온 소식이 없습니다." "흐음..." 신음을 흘리는 바르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근심의 싹이 슬쩍 엿보였다. 남쪽의 몇 개 부족이 갑자기 소식이 끊겨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 부족에서 그래도 영민한 편에 속하는 둘째아들을 직접 내려 보냈는데 갑자기 소식이 두절된 것이다. 가뜩이나 후계자 문제 때문에 첫째와 사이가 안 좋은 편에 속하는 둘째는 자신이 그를 직접 남쪽으로 내려 보내려 하자 원망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다. 아들의 시선에 가슴이 아프지만 일단 부족의 문제가 중요했기에 가족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고 일단 부족의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억지로 내려 보냈는데 둘째 아들의 소식이 끊기고 얼마 후 남쪽에서는 일단의 인간 무리들이 쳐들어 온 것이다. 그 때문에 바르는 내심 아들이 이들 인간들의 손에 죽지 않았나 의심도 들었다. 둘째 아들의 생사 때문에 근심을 하고 있는 바르의 걱정과는 다르게 바르의 차남 바쿰은 현재 인간 원정군 3군에 포로로 억류되어 있는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3군의 수장인 누게르의 손에 죽는 것이 당연했지만 바쿰을 잡은 이들은 료우를 비롯한 용병대였다. 전사의 명예를 소중히 하는 아슈리안 족으로서는 남의 포로를 함부로 해칠 수는 없는 까닭에 바쿰은 어중간하게 끼어서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3군을 제외한 병력이 모인 인간 원정군은 지휘부의 결정에 따라 케인의 명령을 받고 패전을 인정하며 눈물을 머금고 자신들의 고향인 테미로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2만이 넘는 동료들의 시체를 버려두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큰 아픔이었다. "3군에 대한 소식은 없나?" "아직까지 들어온 소식이 없습니다. 하기는 저희가 있던 곳은 모두 오크놈들에게 빼앗기고 한참 남쪽으로 이동을 했으니 연락이 안 되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으음... 설마 그들도 오크들에게 당하지는 않았겠지?" "글쎄요. 아직까지 합류를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할 따름입니다." 부관의 말에 케인은 신음성을 터뜨렸다. 3군의 숫자가 비록 3천에 불과하지만 아슈리안 전사 가운데 가장 정예라 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이미 절반을 잃은 상태에서 그들까지 잃는다면 부족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만은 꼭 살려야 하는 것이 케인의 심정이었다. 케인은 사람들을 풀어서라도 그들의 행방을 뒤쫓아 데리고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이미 절반이상의 병력을 잃은 이상 나머지만이라도 살려야 했다. "그들은 강한 사내들이야. 걱정하지 말게." 4군의 수장이자 케인의 친우인 코라가 슬쩍 입을 열었다. 이미 여러모로 충격을 받아 의기소침한 케인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배려였다. 코라의 말에 2군의 수장인 키케르도 그런 심정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군. 전서응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가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까지 쫓겨 내려와서 그들이 방향을 찾을지나 모르겠군. 그나마 남은 전서응이 하나도 없는 것도 문제야. 남은 것은 모두 테미로 날려 보냈는데 그쪽도 연락이 안 되니..." 케인의 말에 다른 인물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때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 급하게 케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족장님! 족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휘부의 분위기가 깊게 가라앉을 무렵 들려오는 갑작스런 소란은 인간 원정군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었다. 케인은 갑작스럽게 밖이 소란스러워지고 누군가 자신을 부르며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뭔가 안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는 예측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케인은 들어오는 사내를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일인가?" 케인 대신에 옆에 있던 부관의 입이 열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테미가... 테미가..." "테미라니?" 케인은 소란스러운 상황을 보고 오크의 군대나 혹은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한 3군에 대한 소식인줄 알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테미라는 말이 나오자 놀라서 그렇게 소리쳤다. 케인의 반응에 소식을 전한 자는 털썩 무릎을 꿇더니 입을 열었다. "테미가... 테미가 전부 불탔습니다." "무... 무슨 말이냐? 테미가 불타다니..." "흐윽... 파미르 놈들이... 파미르 놈들이 저희가 없는 틈을 노려 테미를 공격했습니다. 대장로 이하 5천의 전사들이 막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3일 만에 모든 것이 불타버렸습니다." 갑자기 전해지는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소식에 케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큰 충격이었는지 그는 흡사 얼음조각이라도 되어버린 듯 굳어버렸다. "무... 무슨 말이냐? 3일 만에 함락 당하다니... 자세하게 말해보아라." 침착하기로 소문난 2군의 수장 키케르의 안색이 바뀌며 그는 급하게 달려들어 소식을 전한 이를 다그쳤다. 갑작스런 테미에 대한 소식은 지휘부 전체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미 테미로 돌아가려고 결정한 마당에 테미가 불타다니... 테미가 파미르에게 함락되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은 지휘부를 혼란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3일 만에 함락이 된다는 말이냐?" 키케르의 물음에 당황해하던 전령은 케인의 부관의 물음을 다시 받아야 했다. 케인의 부관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데 반쯤 얼이 나간 상태였다. "반나절 만에 동쪽의 관문인 르블을 빼앗겼습니다. 파미르 놈들이 미리 용병들을 도시에 잠입시켜 그들로 하여금 저희에게 칼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용병들이 갑자기 저희들을 공격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르블은 어이없이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장로님 이하 저희들은 도시에 남아있는 용병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용병들이 없는 이상 도시의 난민들을 끌어다 쓸 수도 없었기에 저희 힘으로 저들을 막아내려 하였습니다. 처음과 두 번째 전투에서 저희는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적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령은 말을 잠시 끊더니 그 생각만 하면 분한지 한참이나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표정에서 장내에 있는 인물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설마하니 도시에 남아 있는 다른 용병들까지 저희를 배반할지 몰랐습니다. 저들 파미르가 심어놓은 용병들 때문에 르블이 함락당하고 그 때문에 도시에 있는 용병들의 신뢰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저희들이 그들에게 보복 따위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희에게 다시 칼을 돌렸습니다. 파미르 놈들이 저희가 용병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역이용 했는지 도시에 남아있는 용병들은 저희를 배반했습니다. 그들로 인해 도시는 불타고 대장로 이하 5천의 전사들은 대부분 파미르 놈들의 손에... 흐으윽" 전령은 참을 수 없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전령의 말에 키케르가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까닭이다.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던 아버지의 죽음은 아무리 강한 전사라고해도 충분히 쓰러지게 만들 만한 일이었다. 그와 함께 다른 자들도 모두 다리에 맥이 풀리는지 하나, 둘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일어설지 몰랐다. 이미 여러 번 충격을 받은 케인은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케인은 힘없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가는 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케인의 부관은 상관이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은 채 하염없이 한곳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그가 하염없이 쳐다보는 곳은 남쪽 테미가 있는 곳이었다. 그의 부모가, 그의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곳이었다. [153 회] 29장. 연합전선 "쏴아악..." 료우를 비롯한 일행들은 지금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가을비는 피와 죽음으로 얼룩진 마물의 숲을 정화라도 하려고 하는 듯 싸악 하니 훑어 내리고 있었다. 때 아닌 가을비의 차가운 기운에 부상자들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상처라도 닿을라치면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오는데 "후욱" 하니 밀려오는 바람 속에 섞인 빗방울의 크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료우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쉼 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도 내리는군!" 살며시 다가온 아론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료우는 빗줄기를 쳐다보다 슬쩍 고개를 돌려 아론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쪽에 한 사내가 조금이라도 빗방울을 피하려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데 그래보았자 이미 젖은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료우는 사내의 행동을 지켜보다 흥미를 잃고는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늙은 용병도 료우와 마찬가지로 사내가 하는 양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그의 시선에는 부러움이 묻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내의 한쪽 다리가 허전하다. 료우는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얼른 고개를 돌렸다. "환자들이 많아서 걱정이야! 이런 비속에 오래 놔두면 상처에 좋지 않을 텐데 말이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아론의 말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상처가 중한 이들은 일단 가이아를 비롯해서 엘프들과 마법사들의 치료가 있어 어느 정도 상세가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그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가이아가 빛의 성녀이고, 어둠의 사제라고 하지만 무한정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 엘프들과 마법사의 경우에도 인원이 적은 탓에 치료하는 환자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아직도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의 수효는 흘러 넘쳤다. 그 때문에 일행의 이동시간도 꽤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사람들은 큰 나무를 의지해서 비를 피하고 있는 상황인데 가지를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맞을라치면 아픈 환자들의 신음이 귓가를 때렸다. 상처에 신음하는 자들과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줄기의 묘한 조화 속에 료우는 이곳에 온 것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료우는 이내 이런 느낌을 예전에 한번 받았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연이은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자폐증에 걸려 병동에 홀로 남아 있을 때였다. 병원 창가에 서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죽음을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아론의 목소리에 료우는 이내 참담했던 옛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저 비 때문이겠지!" 료우는 스스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약해진 마음을 바로 잡았다. 마물의 숲 전체를 적시는 가을비는 료우뿐만 아니라 다른 사내들의 마음도 흔들고 있었다. 리자드맨 부족과 대치하고 있는 3군은 현재 이틀 동안이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치를 하는 중이라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주위 사정이 지극히 나빠 하루를 꼬박 새우고 조금 전에야 피곤한 몸을 침상에 뉘였던 누게르는 "후두둑" 거리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진영을 갖추고 가지고 온 군용천막을 임시로 몇 개 세우기는 했지만 3천에 가까운 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몰라서 개인 천막을 세우지 않은 탓에 지휘부를 제외한 많은 수의 아슈리안 성전사들은 고스란히 차가운 가을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저녁 무렵 내려간 차가운 기온에 축축한 비까지 더하니 이래저래 곤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필 이럴 때에 비라니... 밖에 누구 없는가?" 누게르는 곤욕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밖을 향해 외쳤다. 그의 외침의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들렸다. "네... 대사제님!"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한 사내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대략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비를 한참이나 맞았는지 온몸은 축축하게 젖었고 추위 때문인지 약간의 떨림이 보였다. 거기에 피로까지 겹쳤는지 얼굴이 꺼칠했다. "니므 형제인가?" "네! 오늘 제가 이곳을 맡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것 같은데..." "네... 아까부터 내리기 시작했는데 쉽게 그치지 않을 듯싶습니다." "으음... 밖에 있는 형제들은 모두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겠군." 누게르의 말에 니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상당한 양의 비를 자신도 맞았고 그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있었기에 대답이 필요 없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비까지 내리다니 난감하군!" 누게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니므를 보며 말했다. "자네는 고생스럽겠지만 모든 형제들에게 경계를 강화하도록 지시하게. 우리들이야 비 때문에 고생할지 모르지만 리자드맨 놈들이야 워낙에 물을 좋아하니 아무래도 걱정이 앞서는군." 누게르의 말에 니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천막의 입구를 막아놓은 천을 제치자 쏴아아 하는 소음이 귓가를 울렸다. 니므가 밖으로 나가자 누게르는 걱정 때문에 잠이 달아났는지 피곤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뭉쳐진 근육을 풀었다. 그러면서 귓가를 울리는 빗줄기의 소음에 왠지 모를 아픔이 묻어나 있다는 생각에 잠겼다. 한편 누게르의 걱정과 달리 리자드맨 진영 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간만에 내리는 비 때문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리자드맨들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빗방울의 느낌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런 인간들의 등장과 그들과 대치하면서 이틀간의 긴장 속에 나름대로 별다른 휴식도 취하지 못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라 그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온몸을 휘감아 돌며 촉촉하게 피부로 스며드는 빗물에 몸을 내맡긴 채 최대한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쏴아아" 오랫동안 메말라버린 황토의 대지를 어루만지는 가을비의 반가움에 밖으로 나온 바르는 조용히 눈을 감고는 떨어지는 빗방울의 만족감에 한참이나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만에야 눈을 번쩍 뜨더니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로군!" "예! 그렇습니다. 족장..." 바르의 옆에 있던 플레케머는 자신의 몸을 적시는 빗줄기에 한참이나 빠져 있다 느닷없이 중얼거리는 바르의 말에 깜짝 놀라 그렇게 대답하고는 바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바르가 혼자서 중얼거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플레케머의 실수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르는 다시 침묵에 빠져 머리며, 어깨며 자신의 몸을 다독이는 가을비의 생동감에 젖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오크 놈들의 동정은 없는가?" 플레케머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홀로 긴장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바르가 자신에게 질문한 것임을 깨닫고는 조금 전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곧바로 대답을 했다. "선발대를 발견한 후 아직까지 큰 변동은 없습니다. 이미 곳곳에 정찰병들을 풀어놓았으니 오크놈들이 반나절 거리에 도착했다면 미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플레케머의 대답에 바르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니 다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자신들과 대치하고 있는 인간 진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약간 긴장감이 묻어 있는 인간 진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아무런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지만 내심은 답답한 심정이 묻어 있으리라 추측되어진다. "처벅 처벅"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진흙으로 변해버린 숲을 힘겹게 걷고 있는 자들은 무척 많은 수의 사람들이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행군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 많은 수의 사람들이 행군하는 도중에도 아무런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저 들리는 것이라고는 떨어지는 빗줄기와 질퍽한 진흙을 무덤덤하게 걷는 발자국 소리 뿐이었다. 남쪽을 향해 행군하는 사람들의 무리는 육체적인 피로가 아닌 정신적인 피로 때문에 지쳐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슬픔과 분노가 어우러져 있는 듯 보였다. 이들의 선두에는 온몸을 때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묵묵하게 걷고 있는 케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걷고 있는 케인의 얼굴은 마치 북극의 빙설을 보는 듯 차가웠다. 오크로 인한 원정군의 참패와 파미르의 배신으로 무너져버린 테미로 인해 충격이 겹치면서 그는 예전의 활발하고 당당했던 모습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케인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희망을 안고 힘찬 걸음으로 걸어왔던 이 길을 이제는 슬픔과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다시 돌아가려는 그 마음은 어떨까? 떨어지는 빗줄기와 한차례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끝까지 붙어 있으려 발버둥치는 잎사귀 하나가 힘겨운 몸짓을 하더니 이내 떨어졌다. "..."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말없이 이별을 슬퍼하는 낙엽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4인 4색! 서로가 다른 삶을 살았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들의 가슴은 여느 때와 달리 하나같이 근심이 묻어있었다. 가슴을 적시는 가을비 때문이지 아니면 전쟁의 참혹함이 전해주는 아픔인지 모를 일이다. [154 회] 29장. 연합전선 가슴을 적시던 가을비를 한없이 뿌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색을 바꾸더니 그칠지 모르던 빗줄기의 꼭지를 틀어막았다. 하염없이 내리던 빗줄기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멈추었고 때를 같이하여 짙은 회색 그림자에 감추어졌던 디노가 그 화려한 미소를 사람들의 시야에 내 놓았다. 가을비를 맞으며 시름에 잠겼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시간이 아홉시가 넘었다는 사실에 저마다 잠자리를 준비해야만 했다. 땅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드러눕기가 불편했지만 마땅히 마른 땅을 찾을 수 없어 사람들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줍거나 죽어버린 나뭇가지를 꺾어 밑에 깔고는 그 위에 잎사귀를 덮어서 그나마 축축한 기운을 막아내려고 했다.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을 잘 닦아내어 그 위에 모포를 깔고 자리에 누운 자들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었다. 전쟁에 패해 목숨을 구하려고 있는 짐까지 버리고 후퇴했던 자들은 변변한 모포하나 없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몇몇 이들은 몸을 얼리는 밤의 기운에 담요 한 장 덮지 못하고 떨어야만 했다. 환자들의 경우에는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이 나름대로 그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잠자리를 편하게 해주려고 배려해주었지만 그 숫자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추위에 떨고 있던 한 청년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보기에도 무척이나 어려 보이는 것이 청년이라기보다는 소년에 가까웠다. 소년은 거칠거칠해 보이는 창대를 움켜쥔 채 추위 때문인지 벌벌 떨면서 축축하게 젖은 나무등걸에 등을 기대며 피곤한 기색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묻어있었고 정신은 반쯤 나간 듯 보였다. "참아라! 클락... 여기까지 와서 약해지면 안 된다." 약간 나이를 먹은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고 약간 거칠해 보이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팔을 뻗어 의기소침해 있는 소년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스페온 아저씨! 저희는 집에 갈 수 있나요?" 두려움이 섞인 클락이라는 소년의 물음에 스페온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꼭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누이와 동생들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 걱정 말고 집에 돌아가서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생각 하렴!" 사내의 말에 클락이라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 집에만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이런 힘든 생활도 견디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클락이었다. 클락의 동네에서 이번 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클락을 포함해서 30명이 넘는 숫자였다. 지금 클락의 옆에 있는 스페온은 예전에 용병일을 했던 사람인데 그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은 두둑한 보수를 준다는 말에 목숨을 걸고 원정에 참가했다. 싸움이라는 것을 모르던 순진한 마을 사람들은 오크들과의 몇 번의 전투에서 나름대로 두려움을 떨쳐내며 싸웠고 살아서 돌아만 가면 두둑한 보수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졌다. 오크들과의 몇몇 전투에서 무지한 마을사람 몇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사람들은 내 일처럼 슬퍼하기는 했지만 그 주인공이 자신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죽거나 혹은 다친 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그들의 여정은 평온한 편이었다. 몇 번의 전투만 끝나면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전투에 임했다. 그러다가 오크의 대군을 만난 것이다. 클락의 마을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은 클락 자신과 노련한 용병이었던 스페온 그리고 두, 세 명의 마을 주민들이 더 있었는데 그들의 경우에는 모두 하나같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아저씨! 근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죠? 왜 아슈리안 사람들하고 헤어져서 이렇게 따로 가는 거죠?" 클락의 말에 스페온은 무어라 할말이 없었다. 그와 클락은 인간 원정군 4군의 제 5 용병대 소속이었다. 젊은 용병대장이 나이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뛰어난 덕에 최전방에서 적과 맞서 싸웠지만 제 5 용병대의 경우 많은 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클락을 억지로 데리고 부상자들을 남겨두고 떠난 아슈리안 4군을 따르지 않고 제 5 용병대장을 따라 이곳까지 따라왔다. 자신들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보아 아마도 인간 원정군 3군이 향했다고 하는 리자드맨 부족이 있는 지방 같은데 오크를 피해 리자드맨이 수두룩한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걸리기는 걸리는 스페온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 5 용병대장인 얀을 믿었다. 능력 있는 지휘관 밑에 있는 것이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그는 오랜 용병생활을 하면서 깨달았기에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생각이 있겠지. 걱정하지 마라! 10만의 오크부대에 포위되었어도 살아남은 우리다. 우리는 꼭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가슴속에 남아있는 스페온은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거는 듯 그렇게 확신하며 클락의 불안감을 달래었다. 스페온의 대답에 추위와 불안감에 떨고 있던 클락은 그나마 위안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무 등걸에 몸을 의지한 채 피곤한 눈을 애써 감았다. 이른 새벽녘 어둠을 뚫고 은은히 퍼지는 뜨는 해의 붉은 기운은 흡사 선홍색의 붉은 피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폐부를 시원하게 적시는 새벽의 신선한 공기는 추위와 공포에 지쳐버린 사람들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일깨우고 있었다. 길섶 이름모를 들꽃 하나 바람에 떨다 산책 나온 새벽공기의 입마춤에 고개를 숙인다. 풀잎 사이사이 싱그러운 아침이슬하며 전날의 그 아련한 아픔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새벽의 모습은 희망이었다. "편하게 잤어?"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새벽 공기를 들이 마시는 료우의 곁에 언제 왔는지 바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사람들에게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바이크였다. 4군을 구하기 위해 오크의 대군과 싸운 이후로 료우와 그의 일행들은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료우 자신이 절반이 넘는 부하들의 죽음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타격을 받아 혼란한 상황이었던 점도 있었지만 일행중 아론과 네오를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료우에게 접근하는 인물이 없었다. 가이아의 경우에는 수많은 부상자들 때문에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라미셀은 그런 가이아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와 붙어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레이첼 일행은 그녀 일행대로 점차 안 좋아 지는 상황에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파미르 왕국의 사람도 아슈리안 부족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레다스 왕국의 사람이었고 호기심과 경험을 쌓기 위해 료우의 용병에 들어온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은 점차 그녀 일행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면 모를까 그녀는 대륙 오대 무가중 하나인 용병의 검가 라미테이르가의 소공녀였다. 그녀를 따르는 그녀의 호위들은 차츰 위험해지는 상황 때문에 그녀에게 가문으로 돌아가자고 재촉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들이 비록 료우의 용병대에 속했고 용병의 서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 서약만큼 중요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주인이자 스승인 가주의 명령으로 레이첼의 안전을 약속했기에 그들은 명예보다 그녀를 택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그들 세 명의 보호자를 설득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바이크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다소 의외의 일이었다. 료우나 아론, 가이아등 친한 사람들이 있을 때는 가끔 장난도 쳤던 바이크였지만 일행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거의 대부분 침묵을 고수하며 단단한 카리스마로 일행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바이크였다. 그런 바이크가 10만 대군의 오크들과 싸움 이후로 일행에게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한참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새벽에 이렇게 불쑥 료우에게 나타나 잘 잤냐는 안부 인사를 하니 약간은 놀랄 일이었다. 료우는 바이크의 등장에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숨었던 거야! 한참이나 안 보이던데..." 료우의 물음에 바이크는 잠시 침묵을 하다가 무언가 회상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몇몇 놈들은 그나마 정이 들었는데 말이야!" 중얼거리는 바이크의 음성에는 비감이 서려 있었기에 료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파렌 알지? 그놈 꽤나 마음에 들던 녀석이었어. 누크 놈하고 같이 마음에 드는 아이중 하나였거든. 네오가 제이크 놈에 대해 하도 자랑하기에 도마뱀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가르치기는 했지만 가르치는 동안에 재미가 솔솔 하더라고! 꽤 소질이 있는 놈이었거든!" 료우도 파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파렌이 오크와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며 바이크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그때 이후로 인연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다가왔어. 나도 모르게 말이야." 바이크의 말에 료우는 바이크의 지금 심정이 어떠한지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처음 바이크를 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뚝뚝함과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놀라 그를 어려워하지만 바이크는 원래 정이 많은 사내이다. 그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무뚝뚝하게 대하는 것도 그가 정이 많은 사내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네오는 바이크의 얼굴을 지켜보다 그의 시선을 쫓아 붉게 떠오르는 태양으로 시선을 돌렸다. 료우는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생생함을 보면서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해는 뜬다.'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처음 료우는 그 말을 듣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을 듯싶었다. 그것은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미래를 직시하는 용기 있는 자의 발언이었다. 현재에 안주에서 과거만 쫓는 것이 아니라 닥쳐올 미래를 용기 있게 바라보는 자의 말이다. '그래도 해는 뜬다. 그래! 그래도 해는 떠오르겠지. 내가 슬프던, 힘들던, 외롭던 말이야.' 료우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유난히 더욱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빛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155 회] 29장. 연합전선 오전의 대부분을 어렵게 움직인 료우 일행은 다행히 점심나절에 리자드맨들과 대치하고 있는 3군의 진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밤에 내린 비 때문에 피곤에 지쳐있던 경계병들은 남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보이자 경계를 알리는 비상종을 울렸다. 3군의 수장인 누게르는 간밤의 피로에 반쯤 잠긴 눈으로 앉아 있다 경계를 알리는 타종에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누게르의 외침에 밖에서 한 사내가 급하게 들어와 대꾸했다. "일단의 인간들이 보입니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용병들 같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누게르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는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서서히 인간 진영으로 접근하는 인간 무리들의 선두에는 료우가 있었다. 누게르는 멀리서 다가오는 인간들의 무리를 지켜보다 료우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한번 안 좋은 일로 부딪친 사이였기에 반가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일행이 문제였다. 료우의 뒤로는 대략 3천여 명이 넘는 용병들이 줄지어 있었다. 물론 거의 부상자가 대부분이라 누게르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케인을 비롯한 지휘부와는 연락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부상자가 대부분인 무리들을 접하니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기 저쪽에 그 답답한 사제 놈이 서 있는데..." 선두에서 료우와 함께 걷고 있던 네오가 누게르를 발견했는지 그렇게 말하자 료우도 그를 발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큰소리치고 나갔는데 다시 돌아왔으니 쑥스럽기는 하군." "별달리 갈 곳도 없잖아!" "하기는..."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인간 진영으로 접근했다. 길게 이어진 환자들은 줄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다행히 누게르는 다시 돌아온 료우에게 핀잔을 던지기 보다는 뒤에 붙은 부상자들에 대해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의 물음에 료우의 대답이 들렸다. "4군을 만났어. 오크의 대군에게 포위되어 있더군. 우리가 목숨을 걸고 구하기는 했지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거의 절반 이상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대부분 부상을 입었어. 이들은 모두 4군의 부상자들이야. 4군이 남쪽으로 도주하면서 오크에게 쫓기는 마당이라 데려갈 수 없다고 해서 내가 데리고 왔어. 물론 그들이 미끼가 되어준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야." 료우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렇게 대답을 했지만 듣는 누게르의 입장은 달랐다. 4군의 패배와 도주는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무리 쓸모없는 용병들을 데려갔다고 해도 4군에는 아슈리안 전사만 7천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부상자까지 버리고 도망칠 정도라면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급했는지 지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누게르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가슴에 품었던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사실에 신음을 터뜨렸다. 단지 기우이기를 바랬는데 그것이 현실이 다가오니 누게르의 마음은 무거운 추라도 달은 듯 무거워졌다. 거기다가 뒤쪽으로 연이어 들어오는 부상자를 보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그것 말고 다른 소식을 들은 것은 없는 거냐?" "나도 4군과 헤어지고 바로 이곳으로 왔기 때문에 다른 정보는 없어! 그런 거야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나에게 그런 것을 묻다니 우습군!" 료우의 대답에 누게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답답한 심정에 그렇게 물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누게르의 심정은 절실했다. "아무런 연락도 안 되고 있다. 혹시 알아볼 방법이 없느냐?" 불안한 예감이 적중했기에 자존심 강한 누게르는 료우에게 머리를 숙였다. 부족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일 때문에 불화가 생기고 그 때문에 언성을 높이며 헤어졌지만 지금 달리 부탁할 곳도 없었다. 누게르가 얼마나 다급해 하고 있는지 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으음..." 료우는 누게르의 표정에서 상황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단지 부하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위해 이곳까지 부상자를 데려오기는 했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흐르고 있는 중이었다. 1, 2, 4군과의 연락이 끊기고 현재 3군은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만일 오크의 10만 대군이라도 들이닥친다면 전멸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 있을 수도 없겠군." "당연하다." 누게르의 대답에 료우는 잠시 고심을 하더니 물었다. "원정군 지휘부와 연결이 안 된다면 차라리 테미에 있는 수뇌부와 연락을 해보는 것이 어때? 지금 상황으로는 그게 더 빠를 듯싶은데..." "가능하냐?" 누게르가 얼른 료우를 쳐다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마법사가 괜히 있는지 알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료우의 대답에 누게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한다. 이대로 이곳에서 속수무책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저쪽에 자리 잡은 리자드맨들이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거기다가 원정군 4군이 오크에게 패했다고 한다면 다른 원정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우리는 모르겠지만 테미에서는 원정군 지휘부와 연락이 통할 것 같으니 테미와 연락이 된다면 원정군 지휘부와도 연락이 될 것이다." 누게르의 말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얼른 네오를 불렀다. "네오!" "응..." "수고 좀 해줘야겠어. 일단 테미 쪽으로 워프해서 저번에 우리가 찾아갔던 그곳으로 가봐. 거기 가서 그 대장로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찾아서 이곳 상황을 알려줘. 아니 차라리 통신 마법을 사용해서 이곳과 연결해 줘! 직접 말하는 것이 빠르겠군." 료우의 말에 네오는 귀찮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여기서 별달리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자존심 강한 놈이 저렇게 머리까지 숙이며 들어오는 바에야 별달리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네오는 테미로 이동할 워프 지점을 떠올리고는 바로 좌표를 맞추더니 워프를 외쳤다. 네오가 테미로 워프를 하자 료우는 바로 누게르에게 테미로 네오가 워프 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료우의 말에 누게르는 말로만 듣던 마법사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있는 이곳에서 테미와의 거리가 과연 얼마던가? 쉬지 않고 걸어도 무려 10여일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곳을 단숨에 간다고 하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화르르륵..." 강한 바람을 타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강렬한 불길은 건물 한 채를 먹어치우고도 모자라 옆의 건물에까지 옮겨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일어난 화재로 도시는 잿더미로 변화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건물들이 이제는 검은 재만 남긴 채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주위에는 온통 건물들의 잔해와 불에 탄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점차 번지는 불길은 바람을 타고 도시 전체를 화염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붉은 화염과 피로 얼룩진 대지위에 탐욕에 가득 찬 병사들의 발길만이 바쁠 따름이다. "엇! 저게 뭐지?" 불타오르는 건물 여기저기에서 무언가 얻을 것이 없나 기웃거리던 왕국의 병사들중 하나가 손가락질을 하며 놀란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이미 재가 되어 주춧돌 몇 개만 남은 2층 건물의 옆에 난데없는 공기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것인데 급격히 생겨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는 번쩍이는 광구가 일어나는 듯 하더니 빙글빙글 돌기까지 했다. "비상! 전원 경계태세를 갖춰라." 개중에 그나마 경험이 있는 장교가 하나 있어 그것이 공간이동을 해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소리를 질렀다. 장교의 호통에 약탈에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병사들은 다급하게 여기저기에 내버려둔 자신의 병기를 챙기려고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한참만에야 간신히 각자의 병기를 챙겨들고 광구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각자의 병장기를 빼어든 병사들은 광구를 중심으로 넓게 포진하고는 숨을 죽이며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약탈에 정신이 없던 상태에서 모여들었기에 아직도 어리둥절한 자들도 끼어 있었고 품속에 쑤셔 넣은 물건들이 삐죽 튀어나오기 까지 한 병사들도 보였다. 멀리서 약탈을 자행하던 몇몇 무리들이 소란이 일자 무슨 일인가 하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광경도 보였다. 이런 주변의 광경과 상관없이 광구 주변으로 일렁이던 빛 무리는 어느 한순간 밝은 빛을 쏟아내더니 삽시간에 소멸했다. 순간적인 광채에 눈부심을 느낀 병사들은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감았다가 떠보니 한 사내가 그들의 정 중앙에 버티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 아까 호통을 질렀던 장교 하나가 검을 뽑아 그를 겨냥하더니 소리를 질렀다. 날이 시퍼렇게 선 장검이 자신을 겨누고 있음에도 나타난 인물은 아무런 동요 없이 그들을 마주보았다. 사내에게는 모여든 병사들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이 장소를 잘못 찾아왔나 하는 당황감이 잠시 비추어졌을 따름이었다. 그의 그런 태평한 태도에 모여든 병사들이 더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잘못 왔나? 어떻게 파미르의 병사들이 이곳에 모여 있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네오였다. 마물의 숲에서 료우의 부탁으로 테미로 공간이동을 한 네오는 갑자기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든 병사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파미르의 정규군임을 증명하는 깃발과 문장을 발견하고는 잠깐 당황하다가 주위의 건물들이 잿더미로 변한 모습과 곳곳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파미르 병사들에 의한 약탈과 방화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누구냐고 물었다." 장교의 호통이 다시 한번 들렸다. 하지만 그런 물음에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는 네오는 인상을 찡그릴 따름이다. 일이 묘하게 꼬여버린 탓이다. "제길... 아주 최악이로구만. 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으니... 휴우..." 한숨을 내쉬는 네오의 모습에는 돌아가서 료우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걱정이 묻어있었다. 나름대로 마물의 숲 원정은 아슈리안 부족의 실패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마물의 숲 원정의 실패에 더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네오는 이후의 행로에 대해 료우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했다. 그런 네오의 생각과는 다르게 자신의 말이 두 번씩이나 씹힌 파미르의 장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주위를 향해 호통을 쳤다. "뭣들 하느냐? 수상한 자이다. 저 건방진 자를 잡아라." 네오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장교는 그렇게 명령을 내리며 직접 네오에게 달려들었다. 네오는 료우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파미르 병사들이 달려들자 귀찮다는 듯이 한마디 외쳤다. "공간이동!" 밝은 광채가 다시 사방으로 퍼지고 네오를 잡으려고 달려오던 자들은 허공에 헛손질만 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황당할 따름이었다. 네오로부터 통신을 기다리던 료우와 누게르는 번쩍이는 광구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낸 네오를 보고는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거야? 통신은...?" 료우의 물음에 네오는 고개를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엉망이더군. 모두 불타버렸어. 도시에 남은 거라곤 잿더미와 시체, 그리고 약탈에 미친 파미르 병사들뿐이야." 네오의 무덤덤한 대답에 료우의 옆에서 네오의 대답을 듣던 누게르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잿더미와 시체라니... 자세하게 설명해봐라. 그리고 파미르 병사들이 무엇 때문에 테미에 있다는 말이냐?" 놀란 눈으로 네오를 다그치는 누게르의 물음에 네오는 그를 살짝 피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몰라. 하여간 내가 이동마법을 하고 테미에서 보았던 것은 폐허로 변한 도시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파미르 병사들뿐이었어." 네오의 대답에 누게르는 굳은 표정으로 얼굴이 바뀌더니 경직된 자세로 굳어버렸다. "혹시 좌표가 틀린 것 아냐?" 심각한 얼굴로 묻는 료우의 질문에 네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정도로 덜렁거리지는 않아. 분명히 테미라고..." "으음..." 신음을 흘리는 료우의 인상이 찡그려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이 구겨진 이는 누게르였다. 아직까지 네오가 전한 소식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인 누게르는 급하게 자신의 천막으로 달려갔다. 누게르가 갑자기 달려가자 료우가 중얼거렸다. "어디 가는 거지?" "확인하러 가겠지!" "확인?" "그래! 그래도 전쟁의 신전에 속한 대사제인데 우리가 모르는 신전과의 연락 방법이 있을 거야. 아마도 내가 가져온 소식에 대해 확인하려고 달려갔을 거야." 네오의 대답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직접 테미하고 연락하지 않았지? 그랬으면 테미가 그 지경으로 변했다는 것을 우리보다 빨리 알았을 것 아니야. 이제야 급하게 확인하러 가다니..." "저들은 마법사가 아니고 사제라고... 마법사처럼 통신이 자유롭지 않을걸. 아마 신성력이나 뭐 그런 것을 이용해서 통신을 할 텐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네오의 대답에 료우는 누게르가 달려간 천막 쪽을 바라보았다. 네오가 가져온 테미에 관한 소식은 삽시간에 용병들과 아슈리안의 성전사들 사이에 퍼졌다. 사람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몇몇은 혼절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땅에 주저앉아 실성한 자들도 보였고, 땅을 치면서 오열하는 자들도 간간이 보였다. 인간 진영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그들과 마주 보고 있는 리자드맨 진영은 무슨 일인가 귀를 곤두세웠다. 특히 인간들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리자드맨의 수장 바르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오크의 대군이 몰려올지 모르는 급박한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잘못하면 앞뒤에서 적을 맞이하는 상황으로까지 갈수도 있기에 그는 한껏 긴장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데 저리도 소란이냐?" "키에엑... 한 떼의 인간들이 나타나고 얼마 안 있어 일어난 소란입니다. 무슨 나쁜 소식을 들었는지 우는 자들이 여럿 보입니다. 쓰러진 자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심각한 일인 모양입니다." 인간 진영을 유심하게 관찰하던 부관 하나가 그렇게 대답을 하자 바르는 무슨 일인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뾰족한 답이 나올리 만무했다. [156 회] 29장. 연합전선 테미에 속해있는 4개의 도시를 피로써 점령한 파미르군은 약탈과 방화로 테미 전역을 잿더미로 만들며 반항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아슈리안 부족이라면 보이는 족족 학살을 자행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전사로 태어난다는 그들의 잠재력이 어떠한지는 이미 충분히 경험해 보았기에 그들은 진저리를 치며, 두려움에 젖은 나머지 지독하게 아슈리안 부족민들을 찾아내어 살해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파미르의 병사들은 한 살 박이 갓난아이 까지도 아이가 아슈리안 부족의 피를 타고 태어났다면 참혹하게 죽음을 강요했다. 테미 전역에 퍼져있던 아슈리안 부족민의 거의 절반 이상이 이렇게 파미르 병사들에 의해 소거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난민들도 살육과 광기에 젖은 파미르 병사들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황금과 부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테미는 피와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파미르 군의 본진은 기세등등하게 테미의 중심부인 하르엠으로 들어왔다. 잿더미로 변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군의 선두에는 보기에도 명마로 보이는 두 필의 말안장 위에 몸을 기대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그들의 얼굴 가득히 만족감에 젖은 미소가 남아있다. 주변은 아직도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탄내와 흉물스럽게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고, 그 사이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해골들이 불에 그슬린 상태로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하하하... 하르켄 후작 각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카를 후작은 만면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큰소리로 대소를 터뜨리며 자신의 옆에 있는 하루켄 후작에게 축하 인사를 하였다. 카를 후작의 인사를 받은 노회한 하르켄 후작도 그에게 축하의 인사 하는 것을 까먹지 않았다. 그는 약간 차분한 언성으로 카를 후작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허허... 나보다는 카를 후작께서 고생을 하셨소이다. 이 늙은이야 멋모르고 따라온 것이지 무슨 공이 있겠소이까? 다 카를 후작의 공이외다." "하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공이라니요! 이게 다 후작께서 계획하고 진행하신 일 아니십니까? 저야 무어 한 게 있겠습니까?" 카를 후작이 어울리지 않게 겸양의 인사를 하자 하르켄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 무슨 겸양의 말씀을...? 후작께서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쉽게 성공하지 않았을 것이오. 나 같은 늙은이야 이런 대업에 얼굴만 들이밀어도 성공한 것이외다." "하하... 무슨 말씀을...?"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공이 있다고 하니 싫지 않는 카를 후작의 얼굴 표정이었다. "이게 다 후작의 공이외다. 후작이 우리 곁에 있었으니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 된 것이지. 나 혼자 있었으면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오. 내 이번 후작의 공을 국왕 폐하께 아뢰겠소이다." "하하... 이거..." 늙은 하르켄 후작의 대답에 카를 후작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입은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하르켄 후작의 말처럼 테미의 성공적인 점령의 모든 공이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국왕으로부터 공작의 작위는 따 놓은 당상이다. 그렇다면 그 건방진 르베르 공작의 콧대를 멋지게 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기분이 좋아진 카를 후작이었다. 그는 더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 후작께서 국왕 폐하께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저야 바랄 것이 없지요. 까짓것 이번에 일만 잘 성사된다면 그 무엇을 못해 드리겠습니까? 이번 한번만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모든 공을 돌리라는 카를 후작의 말에 하르켄 후작은 사람 좋은 미소를 흘렸다. 하르켄 후작의 반응에 카를 후작은 마치 당장이라도 공작의 작위를 받은 마냥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웃음 뒤에는 수많은 자국 병사들의 희생이 숨어있었다. 테미와의 싸움에서 파미르군은 처음 데리고 온 정규군 3만중 2만 여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고 용병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두 번의 전투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 때문에 추가로 원군이 테미에 도착했고 하르켄 후작의 계략과 맞물려 테미에 있는 용병들을 선동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테미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파미르 왕국은 정규군 4군단이 완전히 와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함께 온 왕국의 제 2 기사단은 거의 재기 불능에 빠진 상태였다. 사상자만 해도 총 4만이 넘었고 그중 사망한 자는 무려 2만에 가까웠다. 물론 상대적으로 테미의 피해는 상상할 수 없었다. 파미르 군과 싸웠던 1만의 아슈리안 전사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했고 그들의 가족들은 반 수 이상이 분노로 얼룩진 파미르 병사들에 의해 학살당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학살을 피해 대부분 북쪽 마물의 숲으로 도망을 쳤는데 거의 대부분이 노약자나 여자, 혹은 어린아이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물의 숲은 그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소이다." 카를 후작의 대소를 들으며 묵묵히 길을 지나던 하르켄 후작의 말소리가 들리자 혼자서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있던 카를 후작이 고개를 돌렸다. "네? 걸리는 것이라니요?" 웃고 있던 카를 후작의 질문에 하르켄 후작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마물의 숲 원정을 떠났던 자들 말이오. 그들이 만약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이곳으로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하시겠소이까?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이야 저들의 주력이라기보다는 예비 병력의 성격이 짙었소이다. 그 수도 겨우 1만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우리가 당한 피해는 저들의 4배가 넘었소이다. 그런데 만약 저들이 방향을 바꾸어 이곳으로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소이까?" 웃고 있던 카를 후작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기분 좋았던 상상이 싹 달아날 정도로 하르켄 후작의 이야기는 카를 후작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만약이라고 하지 않았소." "만약이라도 그런 일이 생길 리 없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마물의 숲이오이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아국의 수많은 군대가 들어가서 시체만 무수히 남긴 채 돌아온 곳입니다. 저들이 아무리 전사의 부족이라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르켄 후작의 말에 부정을 하던 카를 후작은 침을 삼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거기다가 마물의 숲으로 떠난 지 보름이 넘었소이다. 아무리 그들이 정예병으로 이루어졌다 하여도 보름이라면 제대로 된 전력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오이다. 그리고 설령 그들이 전력을 보존해서 이곳으로 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다는 말에 강한 어조를 싣는 카를 후작이었다. "이번에 추가된 아군 병력을 모두 합치면 우리는 물경 5만에 육박하는 군대를 가졌습니다. 이런 대병으로 저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카를 후작의 대답에 하르켄 후작은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후작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렇겠지요. 단지 나이 많은 늙은이의 기우라고 생각하시오. 이거 나이가 먹다보니 걱정만 늘었구려!" 하르켄 후작이 그렇게 말하며 한발 물러서자 카를 후작은 구겼던 인상을 다시 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인상에는 왠지 모를 앙금이 생겨났다.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지만 한편으로 하르켄 후작의 말처럼 저들이 고스란히 전력을 유지한 채 테미로 방향을 돌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어 찾아온다면 아군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이 드는 카를 후작이었다. 저들의 숫자가 2만만 넘어도 아국의 병사 5만은 거뜬히 상대하고도 남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카를 후작이었다. 그러했기에 카를 후작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시키고 있었다. 테미가 파미르 왕국에게 점령당한 사실을 전해들은 아슈리안 원정군은 쉬는 시간까지 아끼며 테미로 회군하고 있었다. 오크의 대군으로 인해 절반 가까운 피해를 당해 이제는 절반만 남은 상황이지만 2만의 병력이면 최소한 테미에서 파미르 왕국의 군대와 싸워볼 만했다. 물론 차후의 일은 부족의 멸족만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복수를 피하지는 않았다. 오크와의 싸움은 힘에서 밀린 것이지만 파미르와의 싸움은 배신에 대한 복수였다. 아니 가족과 형제들을 구해야 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것은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인 것이다. 최후의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그들은 목숨을 걸고 파미르 왕국과 싸우기를 맹세했다. 추위와 절망으로 피폐해진 아슈리안 원정군에게 남은 것이라곤 독기뿐이었다.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며 잠도 잊은 채 밤새 행군을 한 이유도 복수를 하기 위함이다. 밤낮을 잊은 채 걷고 있는 아슈리안의 전사들은 하루의 여정을 반나절로 줄였다. 그들의 행군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족장님! 족장님!" 쉼 없이 행군하는 행렬의 선두에 전방을 정찰하던 전사중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케인을 찾는데 케인의 싸늘한 눈빛이 두렵다. "무슨 일이냐?" "전방에 일단의 오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쪽에 아무래도 우리 부족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찰대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기는 했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빨리 구원을..." 정찰병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케인이 먼저 달려 나갔다. 그는 탄탄한 육체에 어울리게 무척이나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는데 케인이 뛰쳐나가자 그 뒤를 이어 상급의 지휘관들과 병사들이 지친 몸도 개의치 않고 앞으로 달렸다. "후우... 후우.." 온힘을 다해 달려온 탓에 심장의 박동은 지나치게 빨라졌고, 허파는 쉼 없이 수축운동을 했다. 턱 끝까지 올라온 거친 숨을 몰아쉬는 케인의 시야에 일단의 전사들이 오크들에게 포위된 채 악전고투(惡戰苦鬪)를 치르고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전방의 광경은 처참할 정도로 참혹했다. 그들은 숫자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오크들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흡사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듯이 한 치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전사들은 크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사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원안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여자와 어린 아이들로 보였다. 그들은 척 보기에도 아슈리안 부족의 여인들과 아이들이었다. 부족의 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도 사나운 오크 떼에게 포위되어 있어 두려움이 클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감정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전사들의 처절한 죽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하나, 둘 늘어가는 상처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오크 떼의 진입을 막아내려는 전사들의 희생을 그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마치 그들의 최후를 두 눈에 각인시키는 것만이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 "으아아아..." 이미 몇 번의 검상으로 서있기 조차 힘들 것처럼 보이는 전사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여 달려드는 오크의 목을 베었다. 사내의 옷은 이미 자신의 피와 오크들의 피로 얼룩덜룩하게 변해 있었다. 가슴을 죄이는 통증은 극에 달했고 검을 들어올리는 팔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전사는 마지막 한 올의 힘마저 쥐어짜서 달려드는 오크들을 막으려고 했다. 그의 등 뒤로 여린 체구의 한 소년이 두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전사가 보여주는 최후의 전투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커억..." 매서운 도끼날이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보호하려던 전사의 어깨를 찍었다. 솟구쳐 나오는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사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의식이 멀어지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온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었기에 사내는 살아나기 힘들어 보였다. 사내의 눈길이 등 뒤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소년의 시선에 멎었다.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보였다. "크르륵..."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리며 사내는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듯 보였지만 입 밖으로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검은 색 눈동자는 서서히 풀렸다. "읍... 읍..." 전사의 죽음을 지켜보던 소년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울음을 삼켰다. 눈동자는 핏발이 올랐지만 소년은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케인이 정찰대로 보낸 백여 명의 전사들은 오크들에게 포위된 채 하나, 둘 쓰러지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케인은 오크들의 공세에 사방에서 쓰러지는 전사들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고함을 지르며 무모하리만치 오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크에엑..." 케인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클레이모어(Claymore)가 오크의 흉부를 날카롭게 그었다.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녹색의 피를 한사발이나 쏟아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쿠룩..." 뒤쪽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일부의 오크들의 고개를 돌린다. 번쩍이는 검광과 함께 두 마리 오크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외마디 비명도 없었다. "쿠룩... 적이다. 막아라!" 케인의 등장을 이제야 알았는지 한 오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슈리안 전사들과 부족민들을 포위하고 있는 오크들의 수는 어림잡아 1천은 넘어 보였다. 단순한 정찰대라고 하기에는 그 숫자가 무척이나 많았다. "비켜라!" 케인은 두 손으로 클레이모어를 움켜쥐고 전면을 막고 있는 오크들을 사정없이 베면서 길을 트려고 시도했다. 하나, 둘 오크들은 케인의 검을 막아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주변은 온통 케인의 손에 죽은 오크들이 흘린 녹색의 피로 홍건하게 젖어있다. 하지만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케인의 손에 이미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목숨을 달리했지만 주변에는 그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은 오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차앗..." "쿠에엑..." 한번의 기합과 함께 하나의 오크가 땅바닥을 구른다. 하지만 상황은 별반 좋지 못했다. 빽빽하게 몰려든 오크들로 인해 케인은 완벽하게 포위되어 버렸다. 전후좌우,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오크들의 공격에 케인은 온힘을 다하여 막고 있지만 조그마한 상처들이 늘어갔다. 거기다 그도 사람인 이상 체력이 떨어지면 위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위험천만한 순간이다. 그때 함성이 울려 퍼졌다. "놈들을 죽여라!" "족장님을 구해라!" "동료들의 원수를 갚아라!" 사방에서 터지는 함성과 함께 모여 있던 오크들이 술렁이고 있다. 케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자신의 뒤를 따라온 전사들이 뒤쪽에서 오크들을 공격하는 모양이었다. 삽시간에 장내는 난장판이 되고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들의 비명과 몸 안을 흐르던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하얀색 김이 사방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차가운 바닥은 차츰 뜨거운 피로 홍건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피의 대지! 그것이 붉던지 아니면 녹색이던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인간이나 오크나 서로 공평하기 때문이다. 시체더미 속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는 대지를 적셨다. 30여분이 흐르고 장내는 간신히 수습되었다. 1천 마리가 넘었던 오크들은 거의 대부분 전투에서 죽음을 당했고 살아서 도망친 오크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아슈리안 전사들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여자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달려들었던 정찰병들의 대부분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흑흑..." 누군가의 울음소리에 케인은 클레이모어를 검집에 넣고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아이가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데 아이의 앞에는 한 구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시체는 보기에도 끔찍하게 여기저기 치명적인 검상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어깨는 큼지막하게 찢겨져 있다. 아이는 시체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전투가 끝나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 듯 보였다. 한 여인이 보다 못해 아이의 곁으로 다가서더니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 아이를 안았다. "누구더냐?" 아이의 울음을 지켜보고 있던 케인은 죽은 시체와 아이의 관계가 평범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는지 다가와서 그렇게 물었다. "흑흑... 큰형이에요!" 어린 아이의 대답에 케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 저에게는 아무도 없어요. 아빠도, 엄마도 모두 파미르 놈들에게 죽었어요. 작은형도 저를 지키려고 죽었어요. 그런데 이제 큰형도 저를 지키기 위해 죽었어요. 제 눈앞에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떠나갔어요." 아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공포와 분노가 한데 어울러져 있었다. 케인은 다가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부르르 떨리는 아이의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케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있었다. "너만은 꼭 내손으로 지켜주고 싶구나!" 케인은 소년의 여린 손을 꼭 움켜쥐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157 회] 29장. 연합전선 자신의 천막에서 나온 누게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힘없이 료우에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흡사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처럼 힘이 없어 보이는데 천막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는다." 료우에게 다가와서 누게르가 던진 첫마디였다. "아무도 내 통신을 받지 않는다." 누게르의 어조가 조금 강해졌다. "왜? 왜? 내 통신을 받지 않는 거지?" 누게르는 료우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필요이상으로 흥분해있는 누게르였다. 그는 아직까지도 네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누게르의 질문에 료우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네오가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이미 테미는 불타버렸다고... 내가 갔을 때 도시는 잿더미만 남았어. 이미 테미는 파미르 왕국에게 빼앗긴 거야." 네오의 대답에 누게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믿을 수 없어. 테미가 어떤 곳인데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그곳은 우리 전사들이 지키고 있다. 파미르 놈들에게 도시를 빼앗길 만큼 그들은 나약하지 않아. 왜? 어째서 그곳을 빼앗겼다는 말이냐?"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누게르의 고함에 네오는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조에 힘을 실었다. "젠장...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눈에 보이는 사실만 이야기 한거라고... 어떻게 빼앗겼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정 궁금하면 테미로 가서 직접 보면 될 것 아니야?" 네오의 신경질적인 대답에 누게르는 가만히 네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슨 결심을 했는지 표정이 경직된다. "직접 가겠다. 나를 테미로 데려다다오." 누게르의 요구에 네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무슨 네 부하라도 된다고 생각해. 어딜 데려다 달라는 말이야?" "직접 보겠다. 너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그러니 데려다다오." "쳇... 웃기는군!" 네오는 콧방귀를 뀌더니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직접보아야 네 말을 믿겠다. 그러니 나를 테미로 데려다다오!"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마! 그리고 보고 싶으면 네가 직접 가서 봐라! 내가 왜 너를 데려다 줘야 하지?" 누게르에 대해 별반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네오였기에 네오는 누게르의 요구를 묵살했다. "네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 않느냐? 그러니 책임을 져라. 나를 직접 테미로 데려다 주고 내 앞에 테미를 보여 다오. 그러면 너의 말을 믿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누게르는 직접 테미의 참상을 보아야 직성이 풀릴 듯싶었다. 누게르는 그러했기에 네오에게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에게 끈덕이게 달라붙었다. 그의 계속적인 요구에 옆에 있던 료우가 참지 못하고 네오의 팔을 끌고는 말했다. "네오!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하자." "어!" 네오는 끈질기게 테미로 데려달라는 누게르의 요구 때문에 짜증이 났기에 료우가 자신의 팔을 당기며 얘기하자는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기다려봐라! 네오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 료우는 네오만을 쳐다보는 누게르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네오를 끌고 누게르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뭔데...? 무슨 이야기야?" "데려다 줘라. 웬만하면..." "뭐?" 눈이 둥그레지는 네오였다. "저렇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 보니까 웬만해서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어차피 그도 현실을 깨달아야 하잖아. 그래야 우리도 피곤하지 않을 거고 말이야. 그러니 데려다 줘라!" 료우의 말에 네오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이고는 왼쪽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약간 삐딱한 자세로 물었다. "내가 왜 저 재수 없는 자식을 데려다 줘야 하는데? 저 건방진 자식을 데려다 줘야 하는 이유를 대라!" "에휴... 어쩔 수 없잖아! 나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이곳의 책임자고 우리에게는 그가 필요하다고! 아니 그의 부하들이 필요하지. 우리들만으로 이곳에서 버틸수 없다는 것 너도 잘 알잖아! 그것 때문에 이곳에 온 거고... 지휘관이 저렇게 혼란에 빠져있으면 아무리 그의 부하들이 최강의 전사라고 해도 오크들을 당해내지 못 할거다. 그러니 차라리 네가 눈 한번 딱 감고 그를 테미로 데려다 줘라! 그게 이 문제를 쉽게 해결 할 방법 같다." 료우의 대답에 네오는 잠시 머리를 굴린다. 처음부터 재수 없는 자식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거나 료우의 말이 맞았다. "제길...!" "아참 그리고 데려갔다가 안전하게 데려와라." 료우의 말에 네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야! 내가 무슨 보모인줄 알아? 누굴 안전하게 데려오라는 말이야." "네가 그만 달랑 테미에 남겨두고 그냥 올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쳇... 네가 무슨 세 살 박이 어린애줄 아냐?" "세 살 박이 어린애면 안심이라도 돼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수틀리면 아마 내버려두고 올 것 같은데..." "쳇!" "하여간 데려다 주고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줘라! 그다음에 우리 문제를 생각하자!" 료우의 말에 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일이 그렇게 돌아간다면 마지 못해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네오는 인상을 구기며 누게르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휴우~" 새롭게 늘어난 병력들과 이어지는 소란에 인간 진영을 유심히 지켜보라고 지시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바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저래 골치가 아픈 바르였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북쪽의 오크 군대도 골치가 아프지만 마주보고 있는 인간 진영도 골치 아픈 것은 동일했다. 무엇 때문에 맞은편에서 아무런 움직임 없이 버티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노릴지 모르는게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다. 차라리 전투라도 벌어지면 누가 이기던지 가부간에 결단이 나겠지만 인간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인간 진영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다. 북쪽의 오크들이 얼마나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는지 도망친 동족들의 입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병력을 최대한 아껴야한다. 차라리 이대로 인간들이 물러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르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었다. "하아... 차라리 이대로 술탄께 돌아가서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미 누불라에서 나왔던 북쪽의 동족들은 모두 쫓겨서 이곳으로 도망쳤고 이곳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니... 내가 갖고 있는 전력으로는 동족들이 말하는 10만이상의 오크 군단을 하나이상 막기 힘든데... 갈색 오크도 아니고 블랙에 블러드, 회색 오크의 군대라면 이겨도 그 피해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크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위대한 마스터 술탄께 용서를 빌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를 믿고 따라온 내 동족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바르는 "아니야! 아냐!"를 연발하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르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한숨을 내쉰다. "뿌우우우우!" 그때 바르의 고막을 울리는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나빨 소리에 의자에 기대된 바르가 벌떡 일어났다. 위급을 알리는 비상 나팔소리였다. 바르는 빠른 걸음으로 천막을 나섰다. 나팔소리 때문인지 주위의 리자드맨 전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키에엑... 무슨 일이냐?" 바르는 자신의 처소를 지키는 경계병에게 물었다. "키엑... 북쪽입니다. 대족장님! 북쪽에서 나팔소리가 들렸습니다." 경계병의 대답에 바르는 성급히 북쪽을 쳐다보았다. "뿌우우우우!"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뿔나팔 소리에 리자드맨 진영이 혼란해졌다. 곳곳에서 무슨 일인가 뛰어다니는 리자드맨의 숫자가 늘어갔다. 진영이 어수선해지자 바르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 "플레케머! 플레케머는 어디에 있느냐?" "키에엑... 족장님!" 잠시 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달려오는 부관 플레케머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냐? 플레케머!" "키에엑... 오크들입니다. 북쪽에 오크들이 나타났습니다." 헐떡이는 플레케머의 대답에 바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것이 사실이냐?" "네... 북쪽을 정찰하던 정찰병이 급하게 전갈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더니 플레케머는 한 리자드맨 전사를 불렀다. 플레케머가 데려온 리자드맨 전사는 나뭇가지에 긁혔는지 곳곳이 생채기가 즐비한데 왼쪽 어깨는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녹색의 피가 흥건했다. 전사의 몰골에 바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무슨 일이 일어 난거냐?" "키에엑... 대족장님! 오크들이 나타났습니다." "오크?" "네!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없었지만 대략 10만은 족히 되어 보이는 숫자입니다. 북쪽 평야를 빽빽이 메운 것이 그 정도의 숫자로 보입니다. 거기다가 처음 보는 오크들도 있습니다. 붉은 놈들과 회색빛의 놈들은 저희들도 처음 보는 놈들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오우거와 트롤도 숫자는 적지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찰병의 대답에 바르의 표정이 심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북쪽의 동족들이 말하는 오크 왕국의 1개 군단이 동원된 것 같습니다. 10만이 넘는 숫자에 블러디 오크와 회색오크, 거기에 오우거와 트롤이라면 틀림없습니다." 플레케머의 말에 바르는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상처는 무엇이냐?" "키에엑... 오크의 정찰대로 보이는 놈들과 부딪쳤습니다.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저도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끝까지 싸우고 싶었지만 조장님이 오크들의 침입을 꼭 알리라고 해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수치스럽게 달려왔습니다." 상처를 입은 정찰병은 혼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창피한지 고개를 숙였다. "놈들은 어디까지 도달했느냐?" 바르의 질문에 옆에 있는 플레케머가 대답했다. "정찰병의 말로는 오크들의 정찰병과 부딪친 곳이 북쪽 30키로 전방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남하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저희와 부딪쳤다면 더욱 빨리 행군하려고 할 듯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저희에게 남은 시간이라곤 2-3 시간이 전부입니다." 플레케머의 대답에 바르는 이를 악물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시미터(Simitar)를 뽑아 들었다. 약간 구부러진 형태의 반월도는 손잡이는 기이한 형태의 나무가 새겨져 있었다. 바르는 시미터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더니 소리쳤다. "키에엑... 전투신호를 울려라! 빨리..." "네~" 플레케머는 얼른 고개를 숙이더니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리자드맨 진영을 울리는 뿔나팔 소리가 길게 들렸다. "뿌우웅... 뿌우우우..." "뭐지?" 네오에게 겨우 테미로 보내주겠다는 승낙을 얻은 누게르는 갑작스럽게 리자드맨 진영에서 울리는 나팔소리에 깜짝 놀랐다. 갑작스럽게 리자드맨 진영이 소란스럽다. "무슨 일이냐?" "리자드맨 놈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투를 하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 리자드맨 진영을 관찰하던 부장 하나가 오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부장의 대답에 누게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상... 비상이다! 모두 전투준비를 해라!" 리자드맨이 움직인다면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현재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었기에 리자드맨이 전투 준비를 한다면 싸울 목표는 그들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리자드맨의 돌발적인 행동에 누게르는 신음을 터뜨렸다. 예전과 같았으면 적이 덤벼든다면 싸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현재 믿을 수 없는 소식이지만 테미의 멸망소식이 전해졌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들의 전력을 리자드맨과 싸우는 곳에 소모할 수 없었다. 전사의 명예도 소중하지만 부족이 사라지면 모든 것은 끝난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깨달은 누게르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게르는 갑작스러운 리자드맨의 행동에 분통이 터졌다. "둥둥둥둥..." 북이 울리며 아슈리안의 성전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챙겼다. 3일 동안 한번의 전투 없이 대치만 했다고 하지만 충분한 휴식은 없었다. 언제 어디서 기습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의 대부분이 잠을 설치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은 탓이다. 거기다가 전날의 비 때문에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뭐야?" 료우는 리자드맨 진영에서 갑작스럽게 나팔소리가 들리자 제법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다가 급하게 벌떡 일어나고는 소리쳤다. "저쪽 리자드맨 진영에서 들린다." 옆에 있던 바이크의 대답에 료우는 멀리 리자드맨 진영을 살펴보았다. 무척 분주해보이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전투 준비를 알리는 신호 같은데..." 몇 번 리자드맨 부족과의 충돌 때문에 그들의 신호를 접해본 료우는 방금 들려온 소리가 전투 준비를 알리는 신호라는 것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맞아! 전투 준비를 알리는 신호다. 아무래도 싸워야 할 것 같다." 바이크의 대답에 료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하필 이럴 때에 전쟁이라니... 가뜩이나 상황이 어려운 판인데..." 푸념하는 료우의 말에 옆에 있던 아론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그거지만 환자들은 어떻게 하지?" "환자!" 료우는 고개를 돌렸다. 거의 3천에 달하는 자들이 곳곳에서 쉬고 있다. 이들 중에 그나마 상처가 양호한 자는 대략 500여명! 대부분은 중상자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 싸움이 가능한 자는 많아야 300-400명 정도가 고작일 듯싶었다. 살아남은 료우의 용병대 250여명하고 인간 원정군 4군 5용병대였던 얀이 데려온 용병들 400을 합치면 1천 정도가 싸울 수 있는 인원의 전부였다. 그나마 3군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들만 가지고 저 리자드맨들과 싸운다면 환자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었다. "일단 최대한으로 보호해야지. 기껏 데려와서 여기서 개죽음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저기 우리와 함께 온 용병들의 대장을 데려와라. 그에게 환자들을 맡겨야겠다." "넷..." 뒤쪽에서 료우 용병대의 용병중 하나가 얼른 뛰어갔다. "둥둥둥둥..." 3군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료우는 아슈리안 성전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지는 것을 보고는 싸움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절 찾았습니까?" "여기를 맡아줘야겠소." 료우의 말에 급하게 달려온 얀이 머뭇거렸다. "어차피 우리들중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 저들을 보호해야 하니 당신에게 부탁하는 거요. 우리가 리자드맨과의 싸움에서 조금은 유리할 듯싶어서 하는 말이오. 당신들을 얕잡아 보아서 이들을 맡기는 것은 아니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시오!" 료우는 불만스러운 카발의 눈빛에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기 몇몇은 당신들을 따라가겠습니다." "네엣?" "어차피 저기 아슈리안 인들이나 당신들이 뚫리면 이들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력 있는 사람들이 앞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크가 아닌 리자드맨 전사라면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할겁니다. 그래도 이들은 그나마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으니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처음 보았을 때 약간 여린 듯 한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얀의 표정은 굳건해보였다. 얀의 제안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들을 제외한 용병들은 리자드맨 전사와의 싸움에서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할 듯싶어서 남아서 환자들을 지키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얀이나 그를 따르는 기사들은 그래도 한 왕국의 근위 기사들이었다. 최소한 나이트급 이상의 기사들이 분명했다. [158 회] 29장. 연합전선 "척척..." 길게 줄을 맞추며 늘어선 병력은 남부 리자드맨 43개 부족중 바르족 주위에서 급하게 끌어 모은 18개 부족 총 1만의 전사들이다. 시간이 많았다면 남부 부족 전체를 불러 모았을 테지만 바르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겨우 18개 부족의 전사들만 간신히 모은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 북쪽에서 오크들에게 쫓겨 도망 나온 1만의 부족민중 싸울 수 있는 병력을 끌어 모으니 현재 바르의 휘하에는 총 1만 5천의 리자드맨 전사들이 줄을 맞추고 모여 있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꾸역꾸역 모이는 리자드맨의 숫자에 리자드맨 진영을 관찰하던 인간 진영이 소란스럽다. 그들이 파악한 숫자는 대략 5천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숫자가 단번에 세배로 늘어난 것이다. 숨겨놓은 병력을 펼쳐 보이니 숫자 면에서 비슷했기에 승리를 확신하던 인간 진영이 소란스러울 만했다. 줄을 맞추고 전방을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리자드맨들의 눈빛이 매섭다. 바르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눈빛을 받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키엑... 모두 들어라! 이미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북쪽에서 대규모 오크 군대가 남하하고 있다. 우리와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던 인간들은 잊어라. 어차피 둘 중에 하나와 싸워야 한다면 난 저 교활한 인간보다 우리의 형제와 친구들을 죽인 오크들과 싸우고 싶다." 잠시 말을 멈춘 바르는 조용히 자신의 연설을 듣고 있는 리자드맨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강한 어조로 그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하겠느냐? 누불라의 아들, 딸이여! 나와 뜻을 같이 하겠느냐?" 바르의 물음에 1만 5천의 전사들이 소란스러워 졌다. "키에엑... 대족장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키엑! 원수에게 죽음을..." "오크의 살을 씹어 먹자!" "바르! 바르!" 사방에서 터지는 함성이 리자드맨 진영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우리는 오크와의 대 전쟁을 시작한다. 마지막 하나가 죽을 때까지 오크에게 죽음을...!" "오크에게 죽음을...!" "키에에엑..." 각자의 병기를 하늘 위로 솟구쳐 올리는 리자드맨 진영은 함성을 질렀다. "키에엑... 가자! 전군 출진하라!" "뿌우우웅... 뿌우웅..." 긴 나팔소리와 함께 모여 있던 리자드맨 진영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자드맨 전사들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인간 진영에서도 서서히 리자드맨들과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의 싸움에서 약간의 피해가 있었지만 현재 아슈리안 성전사의 숫자는 모두 합쳐 2천 8백! 갑작스럽게 늘어난 리자드맨 전사들의 수효가 적잖아 당황했지만 어차피 싸움에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원하지 않는 싸움이지만 상대가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수도 없었기에 누게르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나팔소리에 전원 전투 준비 명령을 내렸다. 서서히 움직이는 리자드맨의 대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인간 진영이었다. "어?" 아슈리안 성전사들과 함께 최전방에서 싸움을 기다리던 료우와 일행은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는 리자드맨 전사들이 자신들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자 놀란 눈빛을 보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어..." 너도 나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전방을 살피는 용병들과 아슈리안 전사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지! 왜 우리 쪽으로 안 오고 북쪽으로 가지?" 그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저들이 갑자기 방향을 돌려 북쪽으로 이동하다니... 설마?" "설마? 뭐 짐작되는 것 있냐?" "오크!" "오크?" "그래 오크 말이다. 여기서 3일 동안 아슈리안 인들과 대치를 하고 있었지만 싸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 나팔을 불었다. 그리고 움직였는데 북쪽이라면... 대치하고 있는 우리를 무시하고 전쟁을 할 상대라면 오크밖에 더 있겠냐?" 료우의 말에 주위의 사람들은 그도 그럴 듯싶었는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럼 그 오크 놈들이 온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저기를 봐봐! 최소한 1만에서 1만 5천은 족히 되겠어. 저 정도 숫자가 동원되었다면 저번에 우리가 상대했던 그놈들 정도의 숫자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정도 숫자가 동원될 리 만무하다." 료우의 대답에 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렸다. "어떻게 하지?" "싸워야지!" "싸워?" "그래 싸워야지. 리자드맨이 대단할지 모르겠지만 숫자가 너무 빈약해. 아무리 리자드맨이 인간 기사와 실력이 비슷하다고 하지만 너희들도 저번에 느꼈을 거다. 오크들의 숫자가 보여주는 그 힘과 그리고 녹녹하지 않는 그 실력 말이다. 갈색 오크들로 이루어 졌다면 모르겠지만 그 블랙오크나 그레이트 오크! 거기에 더해 오우거와 트롤까지 섞여있다면 리자드맨들은 아마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거다. 저들이 뚫리면 그다음에 차례는 당연히 우리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들을 도와 오크들과 싸우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곳도 없잖아." 료우의 말에 료우 휘하의 용병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동의를 했지만 얀과 그의 기사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몬스터들과 같이 싸우다니 그게 어디 될법한 소리냐?" 제일 먼저 소리친 것은 카를이었다. 옛 미르 왕국 제 2 근위 기사단의 단장이자 로얄 팔라딘 카슈 호크와 트 백작! 미르의 삼각받침대중 하나로 미르 기사들의 신앙이었던 이 중년의 기사는 왕국이 멸망하면서 국왕의 명령으로 2왕자를 보호하며 이곳 마물의 숲까지 따라왔다. 근위 기사에서 용병으로 전락을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기사로서의 명예가 있었다. 어찌 인간이 리자드맨과 같은 몬스터와 한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왜 안 된다고 하는 거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어떻게 저 미개한 몬스터들과 한배를 탈 수 있다는 말이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 하냐?" "왜 불가능하지?" "저들은 인간이 아닌 리자드맨이다. 어떻게 리자드맨하고 인간하고 한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냐?" 카를의 말에 료우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어. 그들이 인간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냐!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야. 우리만으로 그 오크들을 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그렇게 본다면 리자드맨들은 지푸라기가 아니라 굵은 나뭇가지란 말이야." 료우의 대답에 카를의 안색이 빨개진다. "흥...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리자드맨과 한편이 될 생각을 한다는 말이냐? 얀님! 듣고 있을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그만 가시지요." 카를의 말에 얀은 아무런 대답 없이 료우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싸우리라 생각합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얀님! 대꾸할 가치도 없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얀의 카를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다시 료우에게 물었다. "그들이 과연 우리와 함께 싸우려고 하겠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같이 싸우려고 하지 않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함께 싸워야 해! 그것만이 이 난관을 극복할 거라고!" 료우의 대답에 얀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무런 확신도 없군요." "하지만 그럴 목적으로 이곳에 오기는 했어!" 료우의 말에 얀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어차피 살아남으려면 오크에 대항하는 자들을 끌어 모아야 하겠지! 내가 알기로는 오크와 리자드맨은 거의 철천지원수라고 들었거든! 그렇다면 리자드맨을 끌어들여서 오크를 막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우리만으로 힘들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오크를 막아야겠지!" 료우의 대답에 얀은 쓴 웃음을 지었다. "후훗... 정말 대단하군요. 설마하니 리자드맨을 끌어 들여서 오크들을 막으려고 생각하다니 말이에요. 어느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방법이에요." "잠시 머리를 굴리면 생각해 낼 일이야." "아니요!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겁니다. 설마하니 몬스터와 합작을 할 생각을 하다니 말이에요. 당신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얀의 말에 료우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인다. "크흐... 졸지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군. 하여간 그럼 찬성인거야?" "네! 찬성입니다. 하지만 저보다 저들을 설득해야 할 겁니다." 얀이 가리키는 곳은 아슈리안 성전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얀의 말에 료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 꽉 막힌 자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쿠룩..." "쿠루룩..." "키에엑..." "켁... 켁..." 서로 마주보고 있는 오크와 리자드맨의 대군은 넓은 초지에서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적개심을 불태우며 서로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그들의 진영은 소란스러웠다. 커다란 초지를 뒤로 하고 늘어서 있는 오크들의 진영은 그 어마어마한 숫자가 보여주는 위압감에 기세등등하다. 오크 군대의 선두에는 붉은 피부의 블러디 오크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블러디 오크의 선두에는 붉은 피부와 어울리지 않게 은백색에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는 투구를 쓰고 있는 블러디 오크가 보였다. 붉은 오크는 다른 블러디 오크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데 오른쪽 눈은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애꾸눈으로 오른쪽 눈 주위는 잔인할 정도로 깊은 검상이 새겨져 있었다. "케모니아!" 뒤로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를 부르는 블러디 오크에게 뒤쪽에서 그레이트 오크 하나가 워 울프를 타고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두터운 중장갑을 걸치고 있는데 대단한 위압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쿠루룩... 위대한 피의 주군이시여! 부르셨습니까?" 케모니아라고 불린 그레이트 오크는 블러디 오크에게 다가 서더니 오른쪽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 번 탕탕 치더니 고개를 숙였다. 오크 왕국의 최상위 지배층인 그레이트 오크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하위 계층인 블러디 오크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블러디 오크가 이 그레이트 오크보다 직위가 높다는 것이다. 대부분 그레이트 오크가 지휘권을 가진 것이 보통인 오크 군대에 특이하게 군단의 지휘권을 갖고 있는 이 블러디 오크는 붉은 군주라 불리는 블러디 오크족의 차기 족장이었다. 나르바야라 불리는 애꾸눈의 블러디 오크는 그 용맹함이 그레이트 오크와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하여 특별히 적염의 공작 케블이 제 4군단을 맡긴 상태였다. 오크 제 4군단은 인간 원정군 2군과 싸우고 그들을 물리 친 상태에서 급하게 남하하다가 리자드맨과 마주친 것이다. "쿠룩... 저번에는 인간과 싸웠지만 이제는 리자드맨 녀석들과 싸워야겠구나. 준비를 서둘러라!" "쿠룩... 알겠습니다. 주군이시여!" 가슴을 두 번 때린 뒤 케모니아는 뒤로 물러선다. 애꾸눈의 블러디 오크는 부하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는 하나뿐인 눈으로 앞쪽에 길게 늘어선 리자드맨 전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보통의 리자드맨 전사보다 약간 커 보이고, 당당한 체구를 갖고 있는 한 리자드맨이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청녹색의 피부, 거기에 거대해 보이는 꼬리하며... 가슴을 가리는 흉갑에는 기이한 형태의 나무가 새겨져 있다. 블러디 오크는 그 리자드맨 전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블러디 오크가 유심히 지켜보는 리자드맨은 남부 43개 부족의 대족장인 바르였다. 바르는 10만의 오크 진영을 보면서 그 선두에 있는 붉은 피부의 오크를 예의주시했다. 날카로운 인상에 하나뿐인 눈! 상당히 기억에 남는 인상이다. "플레케머!" "예... 대족장님!" "준비는 확실하겠지!" "물론입니다. 이미 일부의 병력을 숲 속 양쪽에 매복시켰습니다. 저 미련한 오크들은 정면만을 보고 돌진을 할 터이니 우리가 슬쩍 물러선다면 좋아라하고 따라올 것입니다. 그때 놈들의 양옆을 노리면 충분한 승산이 있습니다." 플레케머의 대답에 바르의 인상이 조금은 펴진다. 현재 바르의 리자드맨 진영은 초지의 끝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들의 진영 양 옆쪽에는 사람 키보다 커 보이는 잡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플레케머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숲 양쪽에 리자드맨 병력이 숨어있다는 말인데 그러고 보니 현재 오크들과 마주보고 있는 리자드맨의 숫자가 한참이나 부족했다. 대략 5천이상은 빠져나간 듯 보였다. "쿠룩... 제8, 9, 10! 세 개의 만인대를 보내라!" 나르바야는 전방을 직시하더니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갈색 오크로 이루어진 세 개의 만인대가 앞으로 나섰다. 오크의 한개 군단은 10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다시 1만으로 이루어진 열개의 만인대로 구성되어 있다. 1만으로 이루어진 만인대는 다시 10개의 천인대로 구성되고, 천인대는 다시 10개의 백인대, 백인대는 또다시 10개의 십인대로 이루어진다. 흡사 옛 몽고 군대의 편제와 비슷한데 오이라트의 국왕이자 오크의 황제인 커비터스가 직접 만든 군대 편제였다. 그것은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가장 실용적인 부대를 나누는 방식으로 현재 오이라트의 모든 오크 군대는 이 편제를 따르고 있었다. "둥둥둥둥..." 4미터 크기의 오우거가 성인 팔보다 두꺼워 보이는 북채를 잡더니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진군을 알리는 신호였다.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1만으로 구성된 3개의 만인대가 흉성을 보이며 서서히 앞으로 진군했다. "키에엑..." 바르는 오크중 일부의 병력이 움직이자 바로 자신의 시미터를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뒤쪽에 있는 1만의 리자드맨들이 자신의 병기를 뽑아 들었다. "키에엑... 모두 내 말을 들어라! 놈들은 우리하고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는 놈들이다. 너희들도 들어서 알고 있듯이 북쪽의 동족들이 저놈들의 손에 무참히 죽었다. 수많은 동족들의 피가 북쪽 대지에 뿌려졌다. 하지만 놈들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여기까지 내려와서 또 우리를 노리고 있다. 우리가 겁을 집어먹고 저들에게서 물러나야 하는가?" "키에엑... 죽음을! 원수에게 죽음을!" "키엑! 싸우자." 사방에서 들리는 함성에 바르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한 어조로 힘차게 소리 질렀다. "나는 너희들에게 다짐한다. 최후의 일인이 죽을 때까지 우리는 놈들과 싸울 것이다. 그것이 승리이든 패배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물러서지 않고 싸운다는 것이다. 모두 나와 같이 싸우겠는가?" "키에엑... 싸우자!" "키엑... 오크들을 죽이자!" 전의를 불태우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함성이 진동했다. 그에 맞물려 그들은 서서히 접근하는 오크 군대를 향해 적개심을 불태웠다. "푸팡카!" "네!" 젊은 리자드맨 전사 하나가 바르의 옆에 섰다. "너의 용맹을 믿겠다. 네가 선두에 서서 놈들의 기세를 꺾어라!" "네! 대족장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푸팡카는 그렇게 외치고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2천의 리자드맨 전사들을 이끌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바르와 마찬가지로 시미터가 들려있었다. 그는 자신의 뒤쪽에 서있는 리자드맨 전사들을 향해 외쳤다. "누불라의 위해한 전사들이여! 이제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때가 왔다. 대족장님께서 우리에게 선봉의 영광을 주셨다.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키에엑... 싸우자!" "싸우자!" "그렇다. 누불라의 전사들이여! 우리의 선택은 오직 하나이다. 최후의 일인이 죽을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의 희생은 위대한 누불라의 대지에 바쳐질 것이다." "키에엑..." 각자의 병기를 치켜 세운 리자드맨의 함성이 울렸다. "가랏! 오크들에게 누불라의 힘을 보여줘라!" "키에엑..." 함성이 터지며 2천의 리자드맨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3만의 오크 군대와 2천의 리자드맨 전사! 숫자로만 따져도 15 : 1의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아무리 리자드맨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혼자서 열다섯을 상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바르는 2천만을 보냈다. "쿠엑!" "키에엑.." 두 무리는 마치 성난 황소 떼가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세차게 맞부딪치더니 급기야 큰 소리를 내며 뒤엉켰다. 무려 열다섯 배가 넘는 숫자의 오크 군대였기에 싸움터는 오크들만 보였고 간간히 리자드맨 전사가 난전을 벌이는 모습이 드러났다. 시미터를 좌우 횡으로 그으며 전방의 두 오크 병사를 도륙한 푸팡카는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오크의 모습을 살펴보지도 못했다. 죽이자마자 바로 빈곳을 채우며 달려드는 오크 병사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푸팡카는 앞뒤 가리지 않고 시미터를 휘둘렀다. 전후좌우 모두 오크 병사들로 채워졌기에 주위는 온통 적뿐이다. 2천의 리자드맨 전사가 3만의 오크 병사들과 교전을 한다면 결론은 하나이다. 자기 주변은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즉 자신 외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싸우는 것이다. 좌측에서 달려드는 오크 병사 하나의 목을 가볍게 베어버린 푸팡카는 전방과 우측에서 동시에 찔러오는 칼날을 보고는 곧바로 몸을 틀면서 전방의 오크를 베었다. "크에엑!" 살을 베고 들어가는 느낌이 손끝에서 일어나며 귓가에 오크의 비명이 들린다. "후욱..." 하는 더운 김이 빠져나온 칼끝에서 일어난다. 오크의 복부를 갈랐기에 갈라진 오크의 복부에서 뜨거운 내장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휘이익..." 뒤쪽에서 들려오는 파공성에 푸팡카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무의식 적으로 몸을 180도 몸을 돌리며 시미터를 그었다. "쓰윽" 하는 소음이 들리며 칼끝에 살이 베어지는 느낌이 났다. "쿠엑..." 푸팡카의 목뒤를 노리며 달려들었던 오크 하나가 푸팡카의 시미터에 양 무릎을 베이고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푸팡카는 적이 쓰러지는 것을 마냥 지켜볼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일어나는 동시에 달려드는 오크의 턱에 시미터를 꽂았다. 반월형의 시미터는 거기 베기 위주의 병기였기에 찌르는 공격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자세가 불안전했기에 푸팡카는 임기응변식으로 칼끝을 세우며 오크의 아래턱을 노린 것이다. 오크 병사는 자신의 인중까지 파고든 푸팡카의 시미터에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쓰윽..." 화끈거리는 통증에 푸팡카는 인상을 찌푸렸다. 달려드는 오크를 죽인 푸팡카의 허벅지에 한 오크 병사의 창이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도 출혈이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부담감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벌써 10여 마리의 오크를 죽인 푸팡카는 달려드는 두 마리의 오크를 상대하면서 주위를 힐긋 살폈다. 온통 오크들로 채워졌지만 간간히 자신의 부하들 모습이 보인다. 아직까지는 숫자가 많은 적을 상대로 잘 싸우고 있지만 그것도 일순간이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부하들은 하나, 둘 생명을 다할 것이다. 날카로운 시미터의 칼날로 오크 하나의 목을 잘라버린 푸팡카는 자신의 임무를 떠올렸다. "푸팡카! 누불라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위대한 부족의 지도자시여!" "너의 목숨이 필요하다." "맡겨만 주십시오. 누불라의 영광을 위해, 바르의 영광을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그럼 죽어라! 너의 희생이 부족의 영광을 일으키리라!" 바르의 잔혹한 명령에 푸팡카는 고개를 숙였다. 무턱대고 죽어야 한다는 막무가내 명령에 푸팡카는 어떠한 의문도 달지 않았다. 왜 죽어야 하는지 묻지 않고 죽음을 맹세하는 푸팡카였다. 푸팡카는 자신과 함께 죽어야 하는 2천의 수하들을 생각했다. 그와 그들은 모두 부족의 영광을 위한 희생양이다. 리자드맨 부족은 수적으로 불리했기에 수장인 바르는 승리를 위해서 적들의 방심을 이끌어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오크들의 사기를 한껏 올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승리에 도취되어 무작정 달려드는 오크들을 함정으로 몰아넣어 결정적인 순간에 적을 제압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르의 계략이었고 그 계략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인물로 푸팡카 자신이 선택되었다. 푸팡카는 열세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명령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자신의 부하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이 계략의 속내를 모르고 있다. 이 죽음의 계략은 족장인 바르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작전인 것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이 잔혹한 계략은 세상에 뭍일 것이다. 그리고 2천의 수하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하지만 부족은 승리하리라 생각하는 푸팡카였다. 하나, 둘 멋모르고 오직 부족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수하들은 시간이 지나면 오크들의 매서운 칼날에 쓰러지면서 누불라의 영광을 외칠 것이다. 푸팡카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키에엑..." 기합을 지르며 푸팡카의 날카로운 시미터가 두 마리 오크 병사의 목을 베었다. [159 회] 29장. 연합전선 공격의 나팔이 울리고 리자드맨 들과의 전투를 준비하던 누게르는 처음과는 다르게 부쩍 늘어난 병력의 규모에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하니 5천 정도로 생각하던 리자드맨 전사들의 수효가 자그마치 그 세배에 달하는 1만 5천이라는 사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피할 수도 없는 싸움이다. 최후의 일인까지 용감하게 싸우는 방법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리자드맨들이 북쪽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리자드맨들의 움직임에 고심하던 누게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누게르에게로 료우가 다가왔다. "오크다!" "오크?" 난데없는 료우의 말에 누게르는 그를 쳐다보며 의문을 표했다. "내 생각에 아마도 북쪽에 대규모 오크 군대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아. 확실하지 않지만 저번에 우리가 부딪친 것처럼 최소 10만 정도의 규모가 출현했겠지. 그래서 저렇게 많은 병력을 동원했을 거야. 아마도 끌어 모을 수 있는 최대 숫자를 동원했겠지. 솔직히 우리와 싸울 목적이었다면 전에 있던 병력만으로도 충분했을 거야." 료우의 말에 누게르의 인상이 묘하게 바뀌었다. 설마하니 오크들이 나타나서 위기를 조장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저들이 마음이 바뀌었는지 자신들과 싸우려고 하는 줄 알았다. "선택을 해야 할 거야?" "선택?" "그래! 이 시점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지 않겠어!" "그게 무슨 말이냐?" 누블라는 료우의 말뜻이 무엇인지 몰랐다. "10만이야! 10만... 아무리 리자드맨 전사들의 무력이 뛰어나고 그 숫자가 1만 5천에 다다른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이 들어. 아니 설혹 이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도 다음에는 어림없겠지. 저들의 숫자를 보건데 아마도 최소 20-30만 많겠는 50만 이상의 병력이 동원됐을 것 같아." 료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히는 누게르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리자드맨를 도와서 오크를 처리하자는 말이야!" "리자드맨을 돕자고...?" "그래! 어차피 이 상태로 리자드맨이 무너지면 다음에는 우리 차례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고... 우리들에게 싸울 병력은 최대 4천이 고작이야. 거기다가 보호해야 할 부상자가 3천에 다다르지. 단독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잖아.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망 칠 수도 없는 입장이잖아! 언제 어디서 우리 뒤를 쫓고 있던 그 오크 부대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고 말이야." 료우는 말을 끊고는 누게르의 표정을 살폈다.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잖아.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라도 살아서 후일도 도모해야 하지 않겠어. 너도 그렇고 너희 부족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거야. 지금은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고... 일단 살아서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을 생각해야 할 것 아니야! 부족을 생각한다면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봐!" 료우의 말에 누게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료우의 말을 곱씹는 누게르의 모습을 보면서 료우는 자신의 말이 조금은 먹혀 들어갔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누게르였다면 전혀 먹혀들어갈 턱이 없었다. 네오가 가져온 테미의 점령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으면 바로 소리를 지르고 달려들었을 누게르였다. 부족에 대한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누게르의 성격을 이미 한번 겪었기에 료우는 미친척하고 그에게 리자드맨을 도와 싸우자고 한 것이다. 그가 거부하면 독자적으로라도 리자드맨을 도와 그들과 합심해서 오크들과 싸우려고 생각했던 료우였다. 부상자들을 구하기 위해 죽은 부하들의 희생을 보더라도 자신이 데리고 온 부상자들만큼은 어떻게든지 구해보겠다고 다짐하는 료우였다. 물론 그렇다고 살아남은 자들을 희생하면서 지키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지금 상태에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뿐이다. 현재 3천이 넘는 부상자들을 모두 데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료우는 리자드맨과 합심해서 대규모 오크 군대를 상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했다. 물론 오크 군대와 리자드맨 군대가 박 터지게 싸우고 승부가 결정 난 다음에 그 뒤를 공격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저들이 과연 오크 전력의 전부일까? 료우가 의문을 갖는 것은 오크 군대의 숫자가 과연 얼마냐 하는 것이다. 한번 움직이는 부대 단위가 10만이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최소한 3개에서 5개 이상의 부대가 운용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이라면 이 넓은 마물의 숲 규모로 보았을 때 단지 한개 부대를 운용하는 미친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원정군의 경우에도 숫자의 부족을 무릅쓰고 4개의 부대를 운용하지 않았나? 그렇다는 것은 오크들의 경우에도 최소 3개에서 5개의 부대를 운용한다고 보아야 했다. 그것이 료우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너는 우리 부족의 자존심을 꺾는 발언만 하는구나!" "자존심보다 목숨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자존심보다 목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만약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거부하면 그만이다." 료우는 과감하게 그렇게 말했다. 누게르가 이끌고 있는 아슈리안 성전사의 전력은 어느 때보다 료우에게 몹시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그들에게 매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료우의 말에 누게르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후... 언제나 당당하군. 용병 주제에 말이야." "그래도 멍청하게 자존심만 내세우는 너보다는 낫지!" 료우의 대답에 누게르의 인상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그러다가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후훗! 지지 않으려 하는군. 나보다도 내가 더 자존심이 센 것처럼 보이는 걸?" "지는 것도 습관이 되면 무섭거든. 그래서 이제는 웬만하면 지지 않으려고 해!" 료우의 대답에 누게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처절한 싸움은 대략 20여분 동안 계속 되었다.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리자드맨 전사들은 3만에 다다르는 오크 병사들을 상대로 장렬하게 싸웠다. 피가 내를 이르고 갈가리 찢긴 리자드맨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지독하게도 한 치도 물러섬도 없이 오크의 대군과 싸운 리자드맨은 무려 7천이 넘는 오크들을 동반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리자드맨들의 장렬한 최후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리자드맨 진영의 모든 전사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승리를 했지만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은 오크들은 잠시 진군을 멈추었다. "케모니아! 4, 5, 6, 7 네 개 만인대를 더 투입해서 한꺼번에 쓸어 버려라! 놈들이 2천의 희생으로 전의를 불태웠지만 우리는 저들보다 몇 배는 많다. 한꺼번에 공격해서 일거에 쓸어 버려라! 네가 직접 선두에 서서 승리의 북을 울려라!" "넷! 주군.." 3만을 투입해서 2천의 리자드맨 전사들에게 막혀 한참을 싸우다가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적의 전의만 높여준 꼴이라 불만인 블러디 오크 나르바야는 부장 케모니아를 불러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나르바야의 명령에 그레이트 오크 케모니아는 자신의 가슴을 두 번 두드리고는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았다. 우습게도 바르의 작전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의 사기를 끌어내리는 역작용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한 방향으로 나타났다. 사기가 떨어진 것을 우려한 오크 4군단장 나르바야는 7개의 만인대를 동원해서 한꺼번에 리자드맨을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다. "둥둥둥..." 급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다시금 4개의 만인대가 서서히 앞으로 이동한다. 7천의 피해를 입은 8, 9, 10 오크의 3개 만인대는 4개의 만인대가 합류할 동안 자리를 지켰다. "플레케머! 준비를 서둘러라!" 바르는 적의 사기를 드높여 적이 방심하여 저돌적으로 밀고오기를 기다렸다가 예상외의 결과를 도출하자 당황했지만 적이 다시금 더 많은 숫자를 동원하는 것을 보고는 나름대로 자신의 작전이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바로 부관으로 하여금 숲 속의 매복군을 챙기게 하고는 전투 준비를 서둘렀다. "키에엑... 보았느냐? 우리의 형제들이 전혀 굴하지 않고 적의 대군에 부딪쳤다. 그리고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너희들은 죽음이 두려우냐?" "키엑... 두렵지 않습니다." "키에엑... 싸우겠습니다." 눈에 핏발이 곤두선 리자드맨 전사들은 소리를 질렀다. 예상치 않은 사기 진작으로 바르는 가슴 가득 밀려오는 전의에 불타있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형제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다면 꼭 이겨야 할 것이다. 너희는 승리할 수 있느냐?" "키에엑... 승리할 수 있습니다!" 리자드맨 전사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럼 나를 믿고 따르겠느냐?" "따르겠습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모습에 바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바르였다. 7개 만인대의 지휘를 맡은 케모니아는 단번에 리자드맨 놈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다짐을 했다. 2천의 숫자로 3만의 군대를 막는 예상 밖의 전략으로 아군의 사기를 꺾었지만 7만이 주는 힘은 아무리 그들이 사기가 충천한 리자드맨 전사라고 해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케모니아는 자신의 장검을 뽑아 들더니 소리쳤다. "오이라트의 용맹한 병사들이여! 위대하신 황제폐하께 신민이여! 우리에게는 위대한 황제폐하의 영광이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저 쓰레기 같은 리자드맨의 뼈와 살을 발라 위대한 황제폐하의 영광을 알려라!" "둥둥둥둥..." "무엇을 망설이느냐? 전군 총 돌진하라!" 어떠한 작전은 없었다. 오직 하나뿐! 케모니아는 휘하의 7만 오크 병사들에게 돌진 명령을 내렸다. 그의 검이 앞으로 향하고 그와 함께 참았던 전투 본능을 깨우는 오크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이미 승리를 확신하는 케모니아였다. "쿠루룩..." "쿠엑..."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쏟아져 나가는 7만의 병력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전부가 갈색 오크들로 이루어진 만인대여서 통일된 갑옷이 없지만 그 숫자가 주는 장엄함은 일견 화려하기까지 했다. 녹색의 물결이 마치 파도를 연상케 하듯 초원을 덮는데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초록 물결에 단단한 방파제로 우뚝 선 리자드맨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빛난다. "투창부대는 준비하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련의 리자드맨 전사들이 한 무더기의 투창을 들고 전면으로 늘어섰다. 대략 2천은 충분할 듯 보이는 리자드맨 투창부대는 원거리 공격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리자드맨 부족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바르게 새롭게 만든 부대였다. 투창부대는 유일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부대로 바르가 남부 43개 연합의 수장이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바르의 친위군이었다. 2미터는 거뜬히 넘는 긴 나무창은 리자드맨의 선천적인 힘을 바탕으로 거의 200미터 이상을 날아간다. 날카로운 페이잔 나무를 깎아서 만든 리자드맨의 투창은 단단한 가죽갑옷도 충분히 뚫을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늘어선 투창부대는 오크들이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투창 준비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2천의 투창 부대 전사들은 자신의 어깨 위로 창을 들었다. 창의 중간쯤을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으로 힘을 쥐고, 나머지 손가락은 창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쥔 그들은 팔꿈치를 부드럽게 구부려 창을 쥔 손이 오른쪽 귀 근처에 오도록 하고는 창 끝을 위로 세웠다. 또한 왼발을 앞으로 빼고 오른쪽 뒤축에 힘을 실어 충분히 멀리 날아가도록 준비했다. 전면을 주시하는 그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전군 투창하라!" 돌진하는 오크들과의 거리를 재던 투창부대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단단히 준비하던 투창부대의 리자드맨 전사들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른쪽 근육에 힘을 싣고는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창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자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오른발을 1보 전진시킨 리자드맨 전사들은 던지기 무섭게 다시 창을 빼어 들었다. "휘이익..." "쉬익.." 하늘을 가득 메우는 투창의 모습은 초원을 가득 메우던 녹색의 물결만큼이나 장관이었다. 물론 죽음을 부르는 장관이어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장면이기는 했다. 일순간에 2천개의 투창이 하늘을 메우자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이라도 몰려온 듯 묵 빛의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듯 보였다. "쐐애액..." "퍼억..." "쿠에엑..." "쿠엑..."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던 오크들은 하늘 위해서 쏟아지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투창에 흡사 꼬치 꿰이듯 창이 몸에 박혔다. 일순간에 2천개의 투창이 하늘에서 쏟아지자 오크 병사들은 거의 1천 이상이 투창공격에 피해를 입었다. 워낙 숫자가 많은 덕분에 겨누어서 던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크 병사들의 피해는 컸다. 두 번째 투창 공격에 다시 천여마리에 가까운 오크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세 번, 네 번 오크 병사들이 거의 눈앞까지 접근하는 사이 리자드맨 투창부대는 다섯 번에 걸친 투창 공격을 하여 거의 5천 이상의 오크 병사들을 바닥에 눕혔다. 하지만 저돌적인 오크 병사들은 동료의 피해에도 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뛰어갔고 이내 리자드맨 진영의 선두와 부딪쳤다. "쿠루룩... 죽어라!" 악에 바친 오크 병사의 분노 섞인 음성과 함께 날이 바짝 선 도끼가 선두에 있던 한 리자드맨 병사의 어깨를 노렸다. 리자드맨 전사는 오크 병사의 날카로운 공격에 바로 창을 쭉 내뻗으며 거리의 우세로 상대를 견제했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한, 둘이 아니었다. 옆에서 다른 오크 병사 하나가 기회를 노리며 옆구리를 찌른다. 리자드맨 전사는 바로 창을 빼면서 왼손을 이용해서 좌측으로 창을 꺾었다. "쿠에엑..." 날카로운 대응에 창끝이 오크 병사의 안면부위를 쓸고 지나갔다. 진한 녹색의 피가 튀면서 오크 병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전면에 있던 오크 병사는 자신의 동료가 상처를 입자 분노를 터뜨리며 바로 뛰어 들어가 리자드맨 전사의 얼굴을 노리고는 도끼를 휘둘렀다. 리자드맨 전사는 오크 병사 하나를 상처 입히는데 만족하지 않았기에 전면에서 자신을 노리는 오크 병사를 이미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상대가 무모하리만치 급하게 뛰어들자 리자드맨 전사는 바로 창을 돌리며 돌진하는 오크 병사의 목을 노리며 창을 찔렀다. "푸욱..." 살을 찢는 소리와 함께 돌진하던 오크 병사의 몸짓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창끝으로 녹색의 진한 핏물이 창대를 따라 리자드맨 전사의 손끝을 적신다. 창에 목이 찔린 오크 병사의 눈은 하얗게 탈색되었고 리자드맨 전사는 다시 옆에서 달려오는 오크 병사 때문에 급하게 창을 뽑았다. 녹색의 피는 구멍 난 댐에서 물줄기가 대책 없이 터지듯 사방으로 녹색의 수증기를 동반한 채 뿜어졌다. 6만 3천의 병력과 8천의 병력이 맞붙는 싸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리자드맨 전사들은 자신들보다 9배 많은 오크 군대와 잘 싸우고 있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그들은 자신의 진영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오크 군대를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버거울 것은 분명했다. 쓰러지는 숫자는 오크들이 확연히 많았지만 오크들의 숫자는 리자드맨 전사보다 무려 9배가 많았다. 리자드맨 전사 하나가 9명의 오크 병사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리자드맨 전사가 죽일 수 있는 숫자는 한계가 있다. "쿠에엑...." "키르르..." 사방에서 죽음을 부르는 비명성이 난무하고 하나, 둘 쓰러지는 숫자가 점차적으로 늘어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에 하나가 쓰러졌다면 지금은 열에 둘은 쓰러지는 것 같다. 갈수록 바닥을 구르는 오크와 리자드맨 숫자가 늘어갔다. "천천히 물러나라! 후퇴 나팔을 불어라!" 상황을 주시하던 바르의 명령이 떨어졌다. 점차적으로 쓰러지는 리자드맨 숫자가 늘어나자 바르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적의 모든 병력이 모였을 때 써먹으려고 했던 전략이지만 현재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에 숨겨놓은 전략을 써먹지 않을 수 없었다. "뿌우우웅..." 전쟁터를 울리는 뿔나팔 소리가 장내를 휘감자 오크들과 싸우던 리자드맨들이 서서히 뒤로 몸을 뺐다. 리자드맨 전사들이 서서히 뒤로 물러서자 오크들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이미 적은 기세가 많이 꺾인 것이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쿠룩... 쫓아라!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7만 오크 군대의 지휘권을 받은 케모니아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미 적은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올랐던 사기가 많이 떨어진 듯 보였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충분히 승기를 잡을 수 있을 듯 보였다. 케모니아는 부하를 독려하며 서서히 물러나는 리자드맨 전사들을 더욱 압박했다. "이때다! 신호를 전달해라!" 승기를 잡은 듯 물밀 듯이 밀려오는 오크들의 모습에 바르는 기다렸던 기회를 잡았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뿌웅... 뿌우웅..." 그것은 후퇴의 신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공격의 신호였다. 물러나는 리자드맨 전사들을 향해 압박을 하던 오크들은 갑작스럽게 숲이 열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리자드맨 전사들! 7만의 오크 군대는 양옆구리에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먹었다. 흡사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7만 오크 군대의 허리를 무자비하게 끊어버린 리자드맨 매복군의 공격에 맞물려 도망치던 부대가 갑작스럽게 돌진하며 칼끝을 세운다. 갑작스럽게 앞뒤로 협공을 받은 오크 군대는 수습이 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상대가 어디서 나왔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 상태로 오크 군대는 당황했다. "쿠루룩... 침착해라! 적은 소수이다. 모두 침착해라!"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에 일순간 당황했던 케모니아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우왕좌왕하는 병력들을 수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이미 하번 흐트러진 오크 진영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놈!" 후방에서 허리가 끊기며 리자드맨 전사들의 혹독한 공격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군대를 바라보며 나르바야는 혀를 찼다. 오크 종족중 가장 똑똑하다고 알려진 그레이트 오크로 태어났으면서도 저런 공격에 쉽게 대응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부하의 모습에 나르바야는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한 장수를 불렀다. "샤케! 네가 나서라!" 나르바야가 지목한 샤케라는 오크는 나르바야와 같은 블러디 오크였다. 자신과 같은 동족인 샤케는 나르바야가 가장 신임하는 전사중의 전사였다. 그레이트 오크를 능가하는 체구에 머리 또한 제법 영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르바야가 그를 가장 신임하는 이유는 그의 잔인함에 있었다. 같은 동족이나 아니 같은 형제라고 해도 자신에게 해가 될 존재라면 과감하게 제거를 하는 자가 바로 샤케였다. 샤케는 붉은 눈동자를 불태우며 입가에 흉성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는 1만의 블러디 오크가 길게 늘어섰다. 그들은 오크 제 4군단의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제 1 만인대였다. 샤케는 전방을 향해 흉성을 드러내는 자신의 부하들을 일견하고는 소리쳤다. "쿠루룩... 모두 주목하라! 드디어 피의 향연이 시작됐다. 너희들에게 충분한 피를 약속하마! 너희들이 갖고 있는 피의 본능을 일깨워라! 적의 피로 너희들의 뜨거운 심장을 적셔라!" 샤케의 연설에 1만의 블러디 오크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피의 본능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쿠루룩..." 핏빛으로 변하는 블러디 오크들의 눈동자에 샤케는 그들이 준비되었음을 직감했다. "쿠룩... 전군 출전한다." 샤케의 명령이 떨어지자 서서히 오크의 본진에서 1만의 블러디 오크 부대가 진군했다. 4군단의 실질적인 정예라 할 수 있는 블러디 오크들이 전장에 끼어든 것이다. [160 회] 29장. 연합전선 한편 누게르를 설득한 료우는 용병들과 아슈리안 전사들을 이끌고 오크와 리자드맨의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부상자들을 일단의 용병들에게 맡겨두고 만약을 대비해서 아론과 네오가 환상 마법진을 설치에서 위험한 상황에 대한 대강의 대비를 하였다. 대략 두, 세 시간 정도는 적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료우를 비롯한 인간들은 부상자들의 안전을 점검한 뒤 빠른 속도로 전쟁터로 이동했다. 리자드맨이 행군했던 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한 그들의 눈에 대규모 오크 군대와 리자드맨 전사들의 전투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 부대의 선두에는 료우를 비롯해서 바이크와 아론, 네오등과 얀과 카발, 그리고 누게르 등이 포진되어 있었다. 료우의 요구로 성전사들을 모조리 끌어온 이상 이제는 용병이나 아슈리안 성전사들이나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료우는 전방의 상황을 한참 살피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크흐... 무식할 정도로 밀어붙이는군. 저놈들 공격은 항상 저것뿐인가?" "오크들 하는 짓이 거의 똑같지. 뭘 그렇게 따지냐? 원체 숫자가 많으니 별다른 작전 없이 쪽수로만 밀고 나가도 웬만해서는 지지 않을걸!" 료우의 혼잣말에 네오가 그렇게 말하는데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얀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저거 너무 무모하군요! 상대의 숫자가 저렇게 많은데 무작정 기다렸다 정면으로 부딪치려고 하다니 아무리 전투력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숫자에서 밀린다면 끝장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않을 텐데... 잘못하다가는 지금 당장 도와줘야할지도 모르겠군요." 거의 삼분지 이 이상의 숫자를 동원하여 밀고 들어오는 오크들의 돌진에 마냥 기다리는 리자드맨 부족의 모습에 얀의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으음... 아무리 인간의 지능과 비슷하다고 해도 전략은 힘든가? 저런 무모한 짓을 하다니 꼭 너희들을 보는 것 같다." 히쭉이며 누게르를 쳐다보는 료우의 장난에 누게르의 눈을 흘긴다. 이미 예전의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누게르였다. "머리는 그냥 폼으로 달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군!" 네오의 목소리에 누게르에게 장난을 치던 료우가 고개를 돌렸다. 하늘 가득히 시커먼 것들이 가득 메우니 장관이다. 리자드맨 투창부대의 투창공격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 저런 것도 있었나?" 놀란 눈으로 리자드맨 부대의 투창공격을 지켜보던 료우가 다시 누게르에게 시선을 던졌다. "크흐... 너희들이 무작정 달려들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눈에 선하다." 료우의 장난스런 말에도 누게르는 리자드맨 투창공격의 가공함에 눈을 떼지 못했다. 진짜로 료우의 말처럼 무작정 리자드맨 진영을 향해 공격을 했다가 저런 투창공격을 받았다면 많은 수의 전사들이 제대로 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투창공격의 목표가 자신들이 아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했다. "밀리겠는걸!" 투창공격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이 밀고 내려오는 오크들과 어우러진 리자드맨들의 진영이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자 서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을 지켜본 네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숫자에서 밀리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이제 우리 차례인가요?" 얀이 불쑥 끼어들어 한마디 하고는 료우를 쳐다본다. 료우에게 의견을 묻는 모습이 역력하다. 알게 모르게 인간 진영의 리더가 되어버린 료우였다. "준비는 해야겠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작스런 상황 변동이 일어났다. 오크들과 리자드맨이 싸우던 전쟁터 좌우측에서 일단의 리자드맨 전사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오크들의 허리를 끊는다. 갑작스런 리자드맨 부대의 등장에 오크들은 당황하고 전세는 한번에 역전되었다. "오홋... 저런 전략도 있었던 거야! 대단하군." 감탄을 터뜨리는 네오의 말에 료우 또한 단순히 머리 좋은 몬스터 정도로 상대를 펌 했던 것을 수정했다. 저 정도의 전략이라면 인간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을 듯싶었다. 상황은 리자드맨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아직 오크이 본진에는 병력이 남아 있었다. "으음... 블러디 오크로군!" 멀리서 일어나는 붉은 물결에 좀처럼 말이 없던 바이크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졌다. 바이크의 갑작스런 말에 료우는 전쟁터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바이크가 쳐다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초원을 가득 메운 붉은 오크의 물결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흡사 붉은 파도가 넘실거리며 녹색의 광란을 삼켜버리려고 하는 듯 빠른 속도로 전쟁터로 몰려오는 블러디 오크의 돌진은 피의 진군이었다. "굉장하군. 저들이 주력인가?" "아마도 그러겠지. 하지만 아직도 저쪽 본진에는 적어도 2만 이상의 병력이 남아있는 듯 보이는데..." "흐음..." 료우는 신음을 터뜨리더니 머리를 굴렸다. 적의 주력으로 보이는 블러디 오크 부대가 원군으로 가세한다면 아무리 승기를 잡은 리자드맨 부족도 승리를 장담하기는 힘들 듯 보였다. 갈색 오크도 아닌 블러디 오크라면 리자드맨 전사들도 상대하기 무척이나 껄끄러울 것이다. 거기다가 블러디 오크 부대의 가세는 리자드맨에게 기울어져 있던 상황도 충분히 반전시킬 수 있는 명분이 된다. 그렇다면 이대로 달려가 저들을 도와주어야 할까? 료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에게 있는 병력은 겨우 4천! 아무리 아슈리안 성전사와 자신의 용병대가 끼어든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의 본진에는 아직도 2만 이상의 병력이 추가로 남아있기에 언제 어디서 증원될지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적의 본진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차라리 적의 본진을 쳐버리면 어떻게 될까? 료우는 순간 적의 본진을 공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적의 머리를 없앤다. 아군의 피해는 줄이는 한편 상대를 격퇴하는 가장 좋은 방법중 하나다. 상대가 강대할 경우 적의 병력에 부대끼며 몸통을 공략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적의 머리 즉 수뇌부를 공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때도 있다. 료우는 그 점을 생각했다. "목 베기 전략이다." "목 베기 전략?" "무슨 뜻이지?" 갑작스러운 료우의 말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료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말 그대로다. 적의 목을 베는 거지. 어차피 저쪽 싸움터에 우리가 끼어봤자 우리가 이길 확률은 솔직히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어.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취해야 할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그러다가 생각해지! 적의 머리를 없애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적의 머리를 없앤다! 오홋... 그렇군. 차라리 본진 쪽을 공격해서 적의 수뇌를 잡자는 말이냐!" "그래! 어차피 우리 병력은 모두 합쳐서 4천! 저쪽에 몰려있는 부대들에 우리가 끼어들어도 숫자에서 열세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적의 본진을 쓸어버리면 어떨까? 중요한 것은 적은 우리의 존재를 모른다는데 있다. 얼마든지 기습이 가능하다는 말이지. 거기다가 한군데 몰려있다. 정신은 딴 곳에 팔고 있고... 대단위 마법쓰기에는 무척이나 적당한 환경 같은데..." 료우의 말에 네오가 히쭉 웃었다. "적당할 정도가 아니라 최상의 조건이지. 한번 기대해봐라!" 네오의 말에 료우는 피식 웃는다. 료우의 의견에 따라 인간들로 이루어진 4천의 병력은 숲 속을 가로질러 오크 본진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아무도 모르게 접근했다. 대략 1키로 정도쯤 접근 했을 때 료우가 손을 쳐들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처다 보았다. "아론! 네오!" "응!" "그래!" 대답을 하며 나서는 두 사내는 료우의 앞에 섰다. "기대하고 있을게. 오크들에게 아주 잊지 못할 선물 좀 안겨보라고..." 료우의 말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고 네오는 씨익 미소를 짓는다. 네오의 장난스런 미소 뒤에는 드래곤 특유의 힘이 실려 있다. "한번도 구경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지. 물론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러더니 네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갑자기 사방으로 마나의 진동이 심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료우도 처음 느껴보는 마나의 흐름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대인마법을 펼칠지 모르겠지만 네오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나의 양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뒤쪽의 엘프 마법사 몇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된다. 확실히 마나에 가장 민감한 종족다운 모습이다. 아론도 눈을 감더니 무언가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메테오스(Meteors)!" 먼저 마법을 펼친 것은 네오였다. 네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캐스팅을 한 후 외친 주문에 료우나 몇몇 마법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자들은 놀라서 입을 벌리고는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하니 운석을 부르는 메테오 마법을 펼칠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서 7클래스 마법이지! 메테오스는 아무리 7클래스 마스터라고 해도 함부로 펼치기 힘든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는 마법이다.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도 현재 네오가 펼쳐보였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 정말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7클래스에 오르면 배우기는 배우지만 사용 가능한 마법이 아니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7클래스 마스터라고 해도 자신들이 배운 클래스 마법중 절대 사용 불가능한 것은 한, 두 가지 꼭 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이 메테오 계열의 마법이다. 일단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대마법사라고 해도 메테오 계열의 마법을 펼치면 그날은 다른 마법은 절대 손을 못 댄다고 보아야 한다. 아니 잘못하다가는 캐스트 하는 본인의 목숨까지도 위험하다. 8클래스에 오른 마법사도 메테오스를 한번 펼치면 기진맥진하여 며칠간은 방안에서 꼼짝도 못해야 마땅한 것이 바로 이 마법이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7클래스 마법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메테오스는 7클래스 마법중 가장 위력이 강한 것으로 8클래스 공격 마법중 메테오스보다 강한 위력을 갖고 있는 것도 몇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메테오스를 펼친다면 7크래스를 마스터 했다고 보아도 가능한 것이다. 물론 8클래스 중에 메테오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메테오 스톰(Meteors storm)이나 9클래스 최고의 위력을 갖고 있는 메테오 스웜(Meteors swarm)이 있기는 하다. 그 위력을 말하자면 입만 아프다. "블리자드(Blizzard)!" 네오의 메테오 마법에 얼이 빠졌던 일행에게 아론의 캐스팅 목소리가 들렸다. 블리자드! 아론의 주문과 함께 갑자기 오크 본진 한쪽에서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얼음 기둥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땅속이 벌어지며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냉기에 주변에 있던 오크들은 순간적으로 냉동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얼마나 차가운 냉기가 나오는지 주변 10미터안에 있던 오크들은 하나같이 얼음으로 변했다. "쿠루룩..." 놀란 눈으로 자신들에게 닥친 황당한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오크들이었다. 그들이 놀라든지 말든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광택을 갖고 있는 얼음 기둥은 빠른 속도로 치솟아 오르는데 그 규모만으로 족히 사람의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얼음기둥은 지름만 해도 대략 10-20미터는 족히 되어보였다. 거기다 대략 15미터 이상 치솟아 오르며 그 가공할 몸체를 보이는데 도대체 어디서 저런 엄청난 얼음 기둥이 땅속에 박혀 있다가 솟아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땅밖으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얼음 기둥의 위세에 그곳에 진을 치고 있던 오크들은 혼란에 빠져 소리를 질렀다. "쿠에엑..." "쿠루룩..."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오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쿠룩... 조심하라! 마법이다. 마법사가 있다." 그나마 미개한 갈색 오크 병사들보다 머리가 뛰어난 제 4군단장 나르바야는 작금의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거대한 몸체를 드러냈던 얼음 기둥이 삽시간에 산산이 부셔져 버렸다. 마치 거대한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며 유리잔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한 듯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얼음 기둥에서 산산 조각이 난 얼음 조각들은 갑자기 거대한 바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바람은 이내 모습을 바꾸고 폭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얼음 조각을 동반한 폭풍은 거대한 회오리로 변하며 얼음 기둥이 있던 자리에서 소용돌이치더니 삽시간에 그 범위를 넓혔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예리한 냉기와 더불어 얼음의 조각들이 회오리를 따라 사방으로 그 날카로운 흉성을 드러냈다. "파아악..." "쿠에엑.." "사각..." "쿠엑..." 얼음 기둥에서 시작된 얼음 폭풍은 삽시간에 오크 본진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땅이 갈라지며 치솟아 오른 얼음 기둥의 차가운 냉기에 순식간에 얼어버린 오크들은 그나마 행복했다. 살을 에이는 냉기와 함께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주변의 오크들을 헤집고 지나가자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가운 날이 하얗게 선 얼음의 칼날은 아무리 단단한 오크의 육체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고 헤집고 들어갔다. 몸을 뚫고 지나가는 얼음의 창과 살을 베어버리는 날카로운 얼음 칼날에 베인 고통! 거기에 삽시간에 상처를 얼려버리는 차가운 냉기는 오크들을 보기 흉할 정도로 만들었다. 흡사 가뭄으로 인해 쩍쩍 갈라진 논두렁처럼 오크들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차가운 냉기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으로 인해 벌어진 상처가 얼어버린 오크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리고 일어나는 광경은 또 한번 오크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자신이 몸이 산산이 부셔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떨까? 의식이 붙어있는 오크들은 얼어버린 육체가 바닥에 부딪쳐 깨어지는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자신들이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을 후회했다. 아무리 난폭한 오크라고해도 그들도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아론의 블리자드 마법은 삽시간에 오크 본진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는 말이 맞았다. 오크 본진을 헤집는 얼음 폭풍에 오크 병사들은 폭풍을 피하기 위해 사방으로 도망쳤고, 몰려드는 동료들의 발길에 밟혀 죽는 이도 속출했다. "쿠룩... 마법사가 있다! 빨리 마법사를 찾아라!" 오크 군대의 제 4군단장 나르바야는 지독한 광경에 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펼친 마법인지 모르지만 본진에 떨어진 마법 하나에 본진은 지독하리만치 처절하게 당하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부하들은 자신의 동료들마저 짓밟고 지나갔다. 나르바야는 리자드맨이 마법을 할줄 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본진에 마법이 떨어졌다. 마법에 대한 대비는 하지도 않았기에 물론 안다고 해도 마법에 대한 대비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하여간 나르바야는 소리를 지르며 마법사를 찾도록 명령했다. 또 한번 같은 마법이 펼쳐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때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흡사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어두워진 하늘에 나르바야는 무의식 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난데없이 맑은 날이 갑자기 바뀐 것이다. 그러다가 나르바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언가 하늘에서 붉은 빛이 번쩍인다. "쿠우우우..." 무언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조그맣게 보였던 것은 서서히 그 본체를 드러내고 하늘을 쳐다보던 나르바야는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불에 활활 타며 떨어지는 운석이 드디어 그의 시선에 잡힌 까닭이다. 집 채 만한 크기의 운석이 대여섯 개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쿠에엑... 피해라!" 하늘을 바라보던 나르바야는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최대한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블리자드의 얼음 폭풍에 당황하던 오크 병사들은 난데없는 나르바야의 외침에 놀라 멍한 표정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쿠오오오..." 하는 소음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거대한 운석이 자신들의 머리위에 있다. "쿠에엑..." 놀란 오크 병사들은 사방으로 도망쳤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운석의 그림자에 그 밑에 있는 오크들은 절망을 했다. 불에 활활 타오르는 운석은 뜨거운 열기를 동반한 채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데 그 밑에 있던 오크들은 운석을 보면서 두 손을 쳐들어 두 눈을 가리거나, 머리를 감싸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와 절망이 묻어 있었다. 거대한 운석은 가공할 소음을 동반한 채 지면과 충돌을 했다. "콰아아앙..." "쿠우웅..." 엄청난 소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솟구쳐 올라왔다. 땅은 운석의 충돌에 몸을 떨었고 불의 분노는 세상을 감쌌다. 운석의 충돌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진 것일까? 그것은 금방 눈으로 확인되었다. 대략 지름이 2-3미터 되어 보이는 운석이 가공할 속도로 지면에 충돌하자 마치 원폭이라도 터진 듯이 화려한 폭발을 보여주었다. 치솟아 오르는 불기는 수백 미터 상공으로 뻗어 올랐고 지면에 부딪친 가공할 충격에 바닥은 초토화가 되었다. 삽시간에 운석이 떨어진 곳 수백 미터는 거대한 핵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렸고 1키로 이상 벗어난 지점에 있던 료우나 다른 사람들도 운석이 떨어진 여파에 몸을 가누지 못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운석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100미터 반경은 움푹 파였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화염에 근방 수백 미터에 있던 오크들은 불구덩이에 빠지거나 충격에 내장이 파열되었다. 지면에 부딪친 운석의 충격에 수 킬로 이상 벗어난 지역도 흔들거렸다. "콰르르릉!" 성난 화염을 뿜어내는 운석의 분노에 초지와 나무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운석이 떨어진 주위에 있던 오크 병사들은 화염 속에 잿더미가 되었고 사정없이 대지를 때리던 운석의 위력에 지형이 바뀌었다.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갈라지며 지하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설마 저 정도의 위력이 있을 줄이야..." 멀리서 네오가 펼친 메테오스의 위력을 기다리던 료우와 일행들은 그 가공할 위력에 할말을 잊었다. 자신들이 서있는 곳까지 흔들어대는 운석의 위력에 중심조차 잡지 못해서 쓰러지는 이가 속출했고 아수라장으로 변한 지옥도에 충격을 받았다. 저 한번의 공격에 얼마나 많은 오크들이 죽었을까? 불타오르는 화염지옥은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뭘 망설이냐?"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가공할 만한 메테오스를 펼친 까닭에 막대한 마나 소모에 하얗게 탈색된 네오의 외침이 들렸다. 료우는 네오가 펼친 메테오의 위력에 정신을 잃고 있다고 네오의 외침을 듣고는 정신을 차렸다. "네가 요구한대로 놈들에게 기억할만한 것을 보여주었으니 다음은 네 차례다." 네오의 말에 료우는 네오가 보여준 메테오스의 위력을 털어버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싸워야 할 거고,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려면 공격해야겠지! 모두 공격하라!" [162 회] 29장. 연합전선 "쿠루루룩..." 붉은 물결이 무서운 파도를 이루며 세차게 달려든다. 흉성을 드러낸 채 붉은 파도를 만들며 전쟁터에 무서운 속도로 달려든 블러디 오크들의 원군에 승기를 잡았던 리자드맨 진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7만과 싸우면서도 승기를 잡았던 그들이 겨우 1만의 병력이 추가되었다고 흔들리는 것은 이상할 수도 있지만 상대는 보통의 오크 병력이 아니었다. 붉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불태우는 블러디 오크들은 피에 굶주린 야수들이었다. "쿠룩... 죽어라!" 핏빛 눈동자를 불태우며 고함을 지르더니 검을 휘두르는 블러디 오크의 광기에 리자드맨 전사 하나가 여의치 않아 뒤로 밀렸다. 그는 이미 10-20 마리의 오크를 자신의 칼로 도륙한 일당백의 전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체력을 많이 소모한 탓인지 새롭게 덤벼드는 블러디 오크 전사의 힘에 밀렸다. 거기다가 상대는 좀 전까지 자신이 상대했던 평범한 오크 병사가 아니었다. 사나운 흉성을 터뜨리며 덤벼드는데 그 힘의 강도가 달랐다. 리자드맨 전사는 체력적인 이유 때문에 힘에 밀려 뒤로 두 세 걸음 뒷걸음질치다가 어이없게 뒤쪽에서 달려드는 오크 병사의 기습에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고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키에엑..." 자신도 모르게 터지는 비명은 리자드맨 전사의 상처가 자못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쉽게 멈추어지지 않았다. "쿠룩..." 뒤쪽에서 기습적인 공격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 오크 병사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오크 병사는 자신의 공격이 기분 좋게 성공하여 상대가 고통에 젖어 신음하자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새라 다시 리자드맨 전사에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키엑..." 고통에 젖어있던 리자드맨 전사는 오크 병사가 달려들자 고통을 뒤로한 채 칼을 휘둘렀다.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었다. "쿠에엑..." 상대에게 기습적인 공격으로 상처를 입히고 상대를 끝장내려고 달려든 오크 병사는 조금 전까지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자드맨 전사의 날카로운 공격에 하복부가 심하게 베였다. 거의 복부 전체를 베인 상처사이로 오크 병사는 자신의 내장을 쏟아냈다. "쏴아아아..." 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내장 때문에 더운 김이 진하게 솟아오르며 초록색의 뜨거운 피와 더불어 길쭉길쭉한 장기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흡사 뜨겁게 쪄놓은 순대를 바닥에 펼쳐 놓은 모습과 유사했다. "쿠룩... 죽여 버리겠다." 블러디 오크는 자신에게 밀렸다가 다른 오크 병사에게 상처를 입은 리자드맨 병사가 그 오크 병사를 죽이자 흉성을 보이며 살기를 드러냈다. "까아앙..." 날카로운 공격을 어렵게 막아낸 리자드맨 전사의 검에 불똥이 튄다. "쿠룩... 죽어!" 흡사 주문이라도 외는 것처럼 고함을 지른 블러디 오크의 매서운 검이 리자드맨 전사의 오른쪽 팔목을 잘랐다. "키에엑..."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녹색의 진한 피를 쏟으며 떨어진 것은 팔목뿐만 아니라 리자드맨 전사가 지금까지 보여준 용맹도 함께였다. "촤아아악..." 다시금 이어지는 블러디 오크의 검날에 리자드맨 전사의 목이 몸통에서 처참하게 분리되었다. 상처 사이로 뜨거운 선혈이 쏟아지며 리자드맨 전사의 동체는 뒤로 무너졌다. 하나, 둘씩 블러디 오크 부대가 가세하면서 리자드맨 전사들의 피해가 늘어갔다. 매복에 걸려 혼란스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오크 병사들은 새롭게 가세한 블러디 오크의 용맹에 고무되었는지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으며 다시 리자드맨 전사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후위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점검하던 바르의 안색이 차츰 어두워졌다. 2천의 부하를 희생시키며 꾸몄던 작전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적은 의도한 바는 틀리지만 바르가 원했던 대로 저돌적으로 덤벼들었고 숨겨놓았던 매복에 보기 좋게 걸렸다. 매복에 걸려 혼란에 빠진 적은 더 이상 바르의 용맹한 전사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바르는 7만에 다다르는 적군을 겨우 1만 5천의 병력으로 무너뜨리는 전사에 길이 남을 공적을 이룰 뻔했다. 하지만 오크 진영에서 다시 투입한 1만의 병력은 바르의 이런 기대로 여지없이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흡사 사나운 붉은 파도를 여상케 하는 적의 기세는 승기를 잡았던 아군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적의 주력 병력으로 보이는 1만의 블러디 오크 병력에 바르는 혹독한 패배를 보았다. 숫자에서 밀린 상태에서도 잘 싸웠던 아군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1만의 붉은 적은 바르의 군대를 여지없이 흔들고 있었다. "키엑! 이제 끝인가?" 바르는 점점 밀리는 아군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신의 대지 누불라에서 일족을 데리고 떠나 온지 어언 20년이 넘었다. 젊은 시절 야망으로 똘똘 뭉쳐 종족의 위대한 마스터 술탄 헤블러를 배신하며 이곳까지 왔고 그토록 꿈꿔왔던 1인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꿈은 이루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고향이 그리워지는 바르였다. 자신의 위대한 주군인 마스터의 모습도 그립고 그 풍요로운 대지 누불라의 정경도 그립다. 두 아들의 권력 다툼에 더욱 그런 열망이 일어나는 바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갈수는 없었기에 망설였던 바르였다. 바르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고향 누불라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가고 싶다. 키에엑..." 바르는 북동쪽 누불라가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련히 거대한 사원을 중심으로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는 누불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비록 살아서 갈수는 없지만 죽어서 꼭 가고 말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때 바르의 기분좋은 상상을 깨는 엄청난 소음이 터졌다. "콰아아앙!" "쿠에엑..." "키에엑..."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진동이 바르가 있는 곳까지 밀려왔다. 지면을 때리는 거대한 폭발음은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고 화려한 불꽃은 하늘 위에 화려한 수를 놓았다. 땅은 요동을 쳤고 거친 비명을 질렀다. 7만의 오크 군대와 리자드맨 전사들이 붙었던 전쟁터는 네오의 메테오가 오크 본진에 떨어진 순간 그 격렬했던 싸움을 멈춰야만 했다. 고막을 진동하는 거대한 폭발음과 거대한 불꽃을 사방으로 토해내는 후폭풍은 그들의 싸움을 멈추게 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운석이 지면에 부딪친 순간 전해지는 진동은 멀리 떨어져있는 싸움터까지 격렬하리만치 진하게 전해졌다. 심하게 바닥을 울리는 진동 때문에 전쟁터에 있던 오크나 리자드맨 전사들은 싸움을 하는 도중에 심한 진동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워낙에 거대한 폭발과 진동이었기에 흡사 누군가 땅을 붙잡고 뒤흔드는 것처럼 심한 진동이었기에 오크 병사들과 리자드맨 전사들은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게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 시체들의 곁에 누워야 했고 그들의 피에 몸을 적셔야 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남아있던 적의와 분노, 그리고 공포와 슬픔이 담긴 눈을 쳐다보아야만 했다. 그때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화염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오크와 리자드맨드의 신경을 사로잡았다. 마치 원래 그곳에 거대한 활화산이 숨쉬고 있었던 것처럼 거대한 불줄기를 뿜어대는 화염에 오크와 리자드맨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함성과 고함, 비명은 오크 본진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쿠에엑..." 바닥의 진동 때문에 땅을 굴렀던 오크 하나가 채 일어서기도 전에 리자드맨 전사의 창에 꼬치가 되었다. 복부를 깊숙이 뚫고 지나간 창날을 움켜잡은 오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가 다리가 풀렸는지 왼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더니 쓰러졌다. 오크가 쓰러지는 통에 창을 몸에서 채 빼내지 못했던 리자드맨은 창대를 잡고 있다가 끌려갔다. 그것 때문에 균형을 잃었는지 몸이 앞으로 쏠리며 우측으로 갸우뚱거렸다. "쏴아악..." 회색빛의 도끼날이 정확하게 창대를 잡고 있던 오른 팔목을 노리고 다가온다. 리자드맨 전사는 세찬 바람을 동반한 싸늘함에 급하게 두 손을 머리위로 올리면서 창대를 들어 베어오는 도끼의 날을 막았다. "짜아악..." 나무로 만들어진 창대는 날카로운 도끼날을 이기지 못하고 쪼개졌다. 그리고 도끼는 리자드맨의 가슴 앞부분을 무자비하게 후벼 팠다. "키에에엑..." 고통스런 비명이 터지며 처참하게 찢겨진 상처사이로 피가 솟구친다. 동료를 죽인 리자드맨 전사에게 상처를 입힌 오크 병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확실한 죽음을 보여주려고 도끼를 휘둘렀다. "키엑..." 리자드맨 전사는 가슴을 헤집은 상처의 고통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그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지 부러진 창대를 꽉 움켜쥐고는 우측으로 비스듬히 몸을 눕혀 오크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이에 멈추지 않고 도끼날에 쪼개져 날카롭게 되어버린 창대의 끝을 무기삼아 오크의 발목에 창대를 힘껏 박았다. "쿠에엑..." 깊숙이 박힌 창대의 끝에 발목이 심하게 찔린 오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상처사이로 피가 샘솟듯이 흘러나온다. 초록빛 오크의 선혈은 흡사 샘물이라도 되는 듯 쉴 새 없이 바닥을 적셨다. "쿵..." 발목을 뚫고 들어온 창대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오크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육중한 몸이 지면과 부딪치자 세찬 소음이 귓가에 울렸다. 오크 본진에 두 방의 대단위 마법이 떨어졌지만 싸움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무너졌던 전세는 차츰 리자드맨 진영에게 유리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본진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깨달은 오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63 회] 29장. 연합전선 "와아아아..." "죽여라!" "오크들을 무찔러라!" 료우의 공격 명령에 자신들의 키보다 커 보이는 잡목을 헤치고 달려 나가는 인간들은 아론과 네오가 보여준 공격 마법에 이미 승리를 확신했다. 각자의 병기를 치켜들며 함성을 지르는 그들은 마치 달리기 경주라도 하는 냥 옆에서 달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뒤질세라 숨 가쁘게 뛰어나갔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함성을 지르며 뛰어가는 선두에는 용병들이 다소 섞여 있었다. 전번의 전투에서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과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며 도망쳤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들은 복수의 칼날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료우의 용병대에 속해있는 용병들의 심정은 더욱 그러했는데 그들의 두 눈에는 활화산 같은 복수의 불꽃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크라면 절대 하나라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에는 가득 차 있었다. "크아앗..." 무모할 정도로 급하게 뛰어가던 선두의 용병 사내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오크를 발견하더니 자신의 두꺼운 소드를 휘둘렀다. 용병 사내의 칼질에 고막이 터졌는지 양 귀에서 녹색의 핏물을 줄줄 흘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던 오크 하나가 반항도 하지 못하고 마치 정육점에 걸려 있는 고기마냥 그 두꺼운 칼날에 심하게 다져졌다. "서걱" 날이 잘 선 칼날에 깨끗하게 잘려나가는 사지의 일부분을 바라보는 오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진다. 생각해보라! 자신의 눈앞에서 깨끗하게 잘려나가는 사지를 쳐다보는 기분이 어떻겠는가? "쿠에엑..." 사지가 잘린 충격도 잠시 오크는 온몸에 뼈 속 깊이 새겨지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심한 고통은 몸을 요분질하게 만들었고 상처 때문에 입 밖에서는 비명을 흘러나왔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는 것도 한순간 오크는 다시 날아오는 칼날에 목이 몸통에서 분리 되었다. "데구르르..." 마치 자신을 공이라고 착각 했는지 몸통에서 떨어진 오크의 머리는 자신의 육체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까지 굴러가더니 비로소 멈췄다. 머리가 떨어진 오크의 목에서는 녹색의 피가 피분수를 이루며 하늘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장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아론의 블리자드에 의해 한바탕 휩쓸었던 얼음 폭풍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네오의 메테오스 마법이 떨어지면서 그 충격에 대지는 엄청난 상처에 화상을 입었다. 푸른 초원은 곳곳이 대규모 공사라도 한 듯 움푹 패여 있었고, 한참이나 불바다로 잠겨있다 다 타서 재만 남았다. 그런 처참한 몰골의 대지위에 이제는 오크들의 녹색 피가 덮었다. 흡사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리고는 그 위에 초록 물감으로 덧칠을 한 것처럼 보인다. "타앗..." 분노는 용병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살아남은 용병들에게 오크들의 공격으로 자신의 동료들이 상당수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던 아슈리안 성전사들도 오크들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그들중 상당수는 처음부터 번쩍이는 오러 소드를 펼치더니 털끝만큼의 인정도 남겨두지 않고 상대를 베었다. 한 고위급 아슈리안 성전사는 오러 소드를 휘두르며 좌우에서 달려드는 그레이트 오크 두 마리를 한꺼번에 베어내는 광경도 연출했다. 하얀 광채의 화려한 그림자를 남기며 좌우로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사내의 오러 소드는 그 위력만으로 칭찬감이었다. 몸을 두른 두터운 장갑에 웬만한 검이라면 온통 근육질과 단단한 피부로 이루어져 있는 오크의 몸을 단번에 가르기에는 힘들다는 것이 평론이다. 그런데 사내의 오러 소드는 웬만한 오크도 아닌 중장갑을 걸치고 있는 그레이트 오크의 몸을 통째로 갈라버렸다. "쿠에엑..." 밑동 채로 잘려나가 뻣뻣하게 굳은 상대로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거대한 나무처럼 오크들은 그 거대한 몸체를 가누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날카로운 오드 소드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상태로 말이다. 오크들의 비명성이 여기 저기 터졌다. 이미 아론과 네오의 두 번의 대단위 마법에 엄청난 수의 병력을 입은 오크 본진이었다. 단 두 번의 대단위 마법이지만 이 공격에 본진에 있던 2만의 병력중 살아남은 숫자는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워낙 밀집된 지역에 떨어진 대단위 공격 마법이고 그 위력도 여타의 대단위 마법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에 근방 수백 미터에 있던 오크들은 모두 떼죽음을 당했다. 그런 상태에서 실력이 뛰어난 인간들이 다수 달려드니 아무리 용맹한 오크라고 해도 당해낼 수 없었다. "쿠에엑... 도망쳐라!"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금세 잠잠해 졌다. 소리친 오크의 목이 제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외곽에 있어 그나마 목숨을 건진 오크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아론의 블리자드와 네오의 메테오스의 공격을 운 좋게 피한 오크 병사들은 재수없게 인간들의 공격에 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쿠루룩..." 본진에서 지휘를 하다 네오가 부른 운석을 보고 놀라 황급히 도망쳤던 오크부대 제 4군단의 군단장 나르바야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다행이 네오의 메테오스 공격을 간신히 피했는지 살아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하게 피한 것은 아닌지 나르바야는 온전한 몸이 아닌 듯 보였다. 입가에 진한 녹색의 피가 묻어있고 몸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도 선명하다. 하지만 그런 외부의 상처보다 운석이 지면에 부딪치면서 동반한 가공할 충격파에 장기가 충격을 받았는지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통에 나르바야는 인상을 찡그렸다. 온몸이 떨리고 입에서는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터진다. 하지만 상처 때문에 멍하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무능한 지휘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르바야는 부상 때문에 떨리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소리쳤다. "쿠룩... 빨리 진영을 수습하라! 뭣들 하느냐? 대오를 정리해라. 놈들의 공격이 있을지 모른다." "대오를 정리하라! 뭣들 하느냐?" 나르바야의 명령에 장교들은 고함을 지르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오크 병사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뜻대로 쉽게 진영이 정비되지는 않았다. 애써 고통을 참으며 소리치는 나르바야의 호통은 메테오스의 영향에 아직도 혼란에 빠져있는 군대를 수습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르바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예상치 않는 마법 공격으로 상황은 그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와아아아..." 갑자기 멀리서 쏟아져 나오는 함성이 귓가를 울린다. 나르바야는 부하들을 수습하다가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르바야는 곧 자신과 그의 부하들을 이토록 처참하게 만든 원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 인간들이었다. "쿠르륵... 저 간교한 인간 놈들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구나!" 나르바야의 인상을 심할 정도로 구겨졌다. "뿌드득... 용서하지 않겠다." 나르바야는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는 인간들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나약한 인간들 때문에 본진은 파괴되어 수많은 부하들이 화염 속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나르바야의 눈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분노의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을 듯싶었다. "쿠룩.. 막아라! 저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다. 뭐들 하느냐? 놈들을 죽여라!" 나르바야는 호통을 내지르며 주위의 부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르바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크 군대는 혼란과 공포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만큼은 그들도 예전의 그 용맹스러운 군대가 아니었다. "차아앗..." 번뜩이는 칼날에 오크의 목이 허무하게 떨어진다. 이미 싸움에 대한 본능마저 상실했는지 오크 병사들은 달려오는 인간들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한 공황과 운석이 떨어졌을 때 받은 충격은 그들의 육체를 심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반응하는 몸의 대응도 현저하게 느린 상태였다. "가랏!" 료우는 한발자국 일찍 들어가며 티어 소드를 빼어들어 전방의 두 오크를 베었다. 크기로 보아 일반 갈색 오크 병사가 아닌 그레이트 오크로 보인다. 일반적인 오크보다 무장상태도 좋아보였고 덩치도 커 보였는데 그들은 료우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날카로운 티어 소드에 의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진한 녹색 핏물이 새어나온다. "쿠루룩..." "쿠에엑..." 오크들의 비명은 금세 사방을 감쌌다. 이미 두 번의 마법공격에 동료의 대부분을 잃었던 오크들은 뒤이어 이어지는 인간들의 공격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쿠루룩... 후퇴, 후퇴하라!" "둥둥둥둥..." 나르바야는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의 싸움은 피해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가 무능한 지휘관이라면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웠겠지만 이미 승기를 놓친 상태임을 깨달은 나르바야는 다음을 기약하며 부하들을 후퇴시켰다. 급박하게 울리는 북소리는 초원 전체를 뒤덮었다. 료우를 비롯한 인간 군대의 공격에 허둥지둥하던 본진의 병력이나, 리자드맨 전사들과 싸우던 7만의 오크들은 이미 자신들이 패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후퇴를 알리는 북이 울리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썰물처럼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터라 그들은 본능적인 후퇴를 반복했다. 인간과 리자드맨 전사들의 날카로운 칼날에 하나, 둘 쓰러지지만 오크들은 대적하지도 않고 북소리에 맞추어 퇴각을 하였다. "와아아아..." "만세! 이겼다!" "와아아아..." 승리의 함성이 초원 곳곳에 울려 퍼졌다. 처참한 시체 위에서 인간들과 리자드맨 전사들은 승리의 기쁨에 젖어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사지가 절단되고, 처참하게 찢긴 시체들로 즐비했고, 메테오의 영향으로 화염에 휩싸여 불타버린 시체들의 백골만이 가득 한 상태였다. [164 회] 29장. 연합전선 리자드맨 전사들은 거의 막다른 골목까지 밀렸던 패전이 뒤엎어졌다는 사실에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새롭게 추가된 블러디 오크 부대에게 밀렸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가 승리를 하였기에 그들은 기쁨은 두 배였다. 승리에 젖은 부하들을 보는 바르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미소가 보였다. 바르는 멀리서 하늘위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오크 본진에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오크들이 후퇴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짐작했다. "키에엑... 인간이다." "인간들이 나타났다." 환호하던 리자드맨 전사들은 오크가 도망쳤던 쪽으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들의 모습에 소리를 지르며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누구의 도움인지 알 수 없었던 바르는 오크들의 본진이 있던 자리에서 오는 인간들을 보면서 그 주인공이 인간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키에엑... 인간들의 도움을 받은 건가?" 바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벅... 저벅..." 리자드맨 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는 인간들은 한참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언제 어디서 싸움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순간이다. 오크라는 공통된 적을 두고 같이 싸우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적대관계에 놓여있는 종족들이다. 이전까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칼을 겨누었던 존재들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은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키엑... 멈춰라!" 고함을 지르며 창을 들이미는 리자드맨 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 진영의 선두에는 료우를 비롯해서 바이크와 네오, 얀과 카발, 누게르 등이 있었다. 아론의 경우에는 블리자드를 쓰면서 심한 마나 소모가 있었는지 잠깐 가이아 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너희들의 족장을 만나고 싶다." 자신들을 멈춰 세우는 리자드맨 전사에게 료우가 바르를 만나고 싶다는 요구를 했다. 료우의 말에 리자드맨 전사는 겨누고 있던 창에 힘을 더하며 소리쳤다. "키엑... 무슨 일이냐? 족장님을 무슨 용건으로 만나려고 하느냐? 싸우기를 원하느냐?" 호전적인 리자드맨 전사의 태도에 료우는 고개를 저었다. "할 이야기가 있다." "할 이야기?" "그렇다. 너희들의 족장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료우의 대답에 리자드맨 전사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기다려라!" 경계를 서던 리자드맨 전사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는지 잠시 그들을 제지하더니 바르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해 뛰어갔다. 바르는 이미 소란을 듣고 주시하고 있던 상황이라 부하가 알리기도 전에 료우등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약간 늙었다고 하여도 바르의 모습을 보면 여느 리자드맨 전사에 못지않았다. 물론 인간의 눈으로 리자드맨들이 젊은지, 늙었는지 구별하기에는 무척 어렵다. 단지 바쿰과 같은 장성한 아들이 있으니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료우는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존재가 바로 이들을 이끄는 족장 바르임을 금세 깨달았다. 바르는 료우의 앞에 서더니 입을 열었다. "키엑... 나를 찾았는가?" 대륙 공용어로 질문을 던지는 바르의 물음에 일행의 대표로 료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느냐?" "당신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 찾아왔어!" 료우의 대답에 바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료우를 살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의 표정에 약간은 가소롭다는 표정이 생겨났다. "겁도 없이 대담하구나?" "그렇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니까!" 료우의 대답에 바르가 료우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대소를 터뜨렸다. "키에엑... 마음에 들었다." 바르는 입가에 웃음을 짓더니 환영을 뜻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면서 자신을 따라 오라는 손짓을 했다. 바르의 행동에 료우가 아무런 말없이 바르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바이크와 네오, 얀과 카발, 누게르등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줄지어 료우의 뒤를 따라갔다. 바르의 뒤를 따라 걷는 료우 일행은 주위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시체의 강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찢겨진 시체더미와 손발이 잘린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장내를 뒤덮고 있었고 녹색의 핏물은 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전쟁이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일행은 시체들의 강을 지나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무엇을 원하는가?" 자리를 권한 바르는 다짜고짜 료우에게 그렇게 물었다. "동맹!" "동맹?" "당신들과 동맹을 원해!" 료우의 대답에 바르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키에엑... 우리와 동맹을 하겠다고? 얼마 전까지 칼을 겨누고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데 말인가? 이미 서로에게 상당한 숫자의 동료들을 잃었는데 말인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될 수 있고,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사실이 현실이니까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서로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공동의 적이 나타났으니까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생겼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말이야." 료우의 대답에 바르는 이 젊은 인간 전사의 눈빛을 살폈다.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경험으로 바르가 생각하는 인간은 무척이나 간교하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배신을 때릴지 모르는 것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인간들의 진면목이었다. 중간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종족중 육체적인 면만으로 따진다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중간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대 인간들에게 쫓긴 많은 종족들은 인간들보다 강인했지만 인간들의 간교한 두뇌에 속아 오지로, 오지로 쫓겨 갔다. 바르는 료우의 눈빛이 진실을 말하는지 살폈다. "우리와 합쳐서 오크들을 물리치겠다는 것이냐?" "그들의 힘은 서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알고 있는데 안 그래? 이번만 해도 우리가 적의 본진을 노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당신들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걸!" 료우의 말에 바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료우의 말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굳이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바르는 입을 열었다. "키에엑... 그럼 한 가지만 묻겠다. 우리를 미개한 몬스터 따위로 치부하는 너희들이 과연 우리와 연합하여 싸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떠냐? 나는 그것이 제일 궁금한데..." 바르의 이 같은 물음에 료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표정이다. "살기위해서 자존심 따위는 충분히 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이야. 거기다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그렇지! 안 그래?" 료우의 시선은 의식적으로 누게르를 향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존재가 바로 그였다. 료우의 눈빛을 받은 누게르는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부족을 위한 일이라면 우리의 자존심은 묻겠다." 이미 료우에게 설득당하여 리자드맨 종족과 동맹을 결심했기에 누게르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금방 대답을 했다.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누게르의 대답에 바르의 표정이 야릇하게 바뀐다. 그도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슈리안 전사들은 오랜 세월 테미에 자리를 잡은 후 살아남기 위해 마물의 숲에서 오크와 리자드맨 종족들과 수많은 싸움을 하면서 살았다. 오랜 세월 살기위해 많은 싸움을 거쳤던 그들인지라 바르 또한 인간 마물의 숲에서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하는 아슈리안 전사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들중 유일하게 인정하는 자들이 바로 아슈리안 전사들이었다. 그 강인한 육체와 오만한 자존심! 흡사 자신들을 보는 것처럼 아슈리안 전사들은 리자드맨 전사들과 판박이였다. 그 때문에 그 오만한 자존심을 알고 있기에 바르는 자존심을 꺾으며 선뜻 동맹을 하겠다는 누게르의 말에 놀라는 것이다. "키에엑... 대단하구나!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자존심마저 무너뜨렸다면 나도 너의 제의를 수락하겠다. 동맹은 이루어졌다." 바르의 시원스런 대답에 료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원했던 동맹이 이루어진 것이다. 테미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케인과 원정군은 마물의 숲을 벗어나며 남쪽으로 행군하는 도중 테미를 도망쳐 북쪽으로 피난 온 수많은 부족민과 테미에 살고 있던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십에서 수백, 때로는 수천이 뭉쳐서 살기 위해 북쪽으로 도망치던 사람들은 그들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케인과 원정군을 보면서 구원과 복수 두 가지를 외쳤다. 구원을 외친 자들은 대부분 아슈리안 부족이 아닌 테미로 흘러들어온 난민들이 대부분이고, 복수를 외치는 자들은 대부분 아슈리안 부족민이었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에 그들의 눈에는 원한만이 가득했다. "이들을 이대로 두고 갈수는 없습니다." 2군의 수장이었던 키케르는 이미 자신들보다 많아진 피난민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미 북쪽 마물의 숲으로 도망쳐 온 자들의 숫자는 그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숫자가 불어났다. 파미르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테미의 도시민 전부가 북쪽으로 도망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은 차츰 그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 테미까지는 3일 이상을 더 행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난민들의 증가는 케인과 원정군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전쟁을 하러 가는 군대가 일반 민간인과 함께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케인은 키케르의 말에 이제는 한기마저 풀풀 풍기는 차가운 안색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쟁터로 데려 갈수는 없어." "그렇다고 두고 갈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들을 믿고 살겠다고 도망쳐 온 자들을 마물의 숲에 남겨둔다는 것은 그들에게 죽으라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키케르의 대답에 케인은 입술을 다물었다. 굳어진 표정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미 죽음을 결심한 우리야. 하지만 이들까지 죽음으로 끌고 갈수는 없겠지. 이들까지 죽는다면 우리 부족의 미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이들만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3군의 행방도 수소문해야 합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도망쳤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차라리 여기서 기다리면서 도망쳐온 부족민을 수습하고 3군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 테미를 도모하는 것이 옳을 듯싶습니다." "복수를 기다릴 수 없어." "그래도 기다려야 합니다. 복수도 중요하지만 부족은 더욱 중요합니다. 당신의 부족의 책임자 입니다. 부족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감정은 버려야합니다." 입술을 깨문 키케르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 복수를 원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존경하던 아버지가 테미에서 파미르의 군대에 의해 죽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케인에게 참으라는 의견을 내고 있었다. 키케르의 말을 들은 케인은 굳어진 안색으로 키케르를 노려보았다. "참을 수 있어?" "부족을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습니다. 아버님도 그것을 원할 것입니다." 굳은 음색으로 그렇게 대답하는 키케르였다. "켈라힘 장로라면 그러겠지!" 케인은 키케르의 대답에 켈라힘 장로의 모습을 떠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켈라힘 장로를 좋아했던 인물이다. 그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싫어서 그를 테미에 남겨두고 떠났기는 했지만 결코 그가 싫어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테미에 남겨진 그의 죽음에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케인이었다. 그래서 케인은 더더욱 테미로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부족의 복수와 켈라힘의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켈라힘의 아들이 그의 복수를 늦추라고 말했다. 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기다리겠어. 더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 그대의 말대로 부족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야." 케인의 말에 키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이제 그가 해야 할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진인 켈라힘 대장로가 죽은 이상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그였다. 그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뒤로 미룬 채 부족부터 챙겼다. 마물의 숲 남쪽 변방 한 곳에 자리를 잡은 케인과 원정군은 일단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서둘러 시행하기 시작했다. 일단 마물의 숲을 폭넓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테미에서 북쪽으로 도망친 부족민과 난민들을 수습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와 더불어 자신들을 뒤쫓아 올지 모르는 오크들의 행방도 살피기 시작했다. 이미 파악한 숫자만 해도 물경 30만에 육박하는 대군이다. 또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마물의 숲에 퍼져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 뒤를 급습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오크들을 꼭 살펴야만 했다. "카앗! 카앗!" "카아앗..." 목을 빼며 길게 소리를 지르는 흰꼬리수리들이 여러 마리 눈에 보였다. 원정군에 남아있는 전서응의 전부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의 발목에는 3군을 찾는 메시지가 묶여 있었다. 키케르는 케인을 대신해서 전서응을 보내는 곳으로 찾아왔다. 키케르의 지위가 높은 것을 아는지 전서응들은 반가운 울음을 보인다. 키케르는 그중에 한 마리를 자신의 팔목위에 올려놓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앗..." 기분이 좋은지 소리를 내는 흰꼬리수리는 부리를 이용해서 키케르의 왼쪽 팔목부위를 비빈다. 키케르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더니 그는 흡사 흰꼬리수리에게 부탁이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꼭 부탁한다. 3군을 찾아주렴! 너희들밖에 믿을게 없구나!" 키케르의 흰꼬리수리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그렇게 부탁했다. "쿠이잇..." 염원을 담은 키케르의 이런 부탁을 알아챘는지 흰꼬리수리의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키케르는 흰꼬리수리의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꼭 그들을 소식을 갖고 오렴!" 케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왼쪽 손을 하늘높이 치켜들어 흰꼬리수리를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푸드득..." 흰꼬리수리는 키케르의 손동작에 힘찬 날개 짓을 하더니 빠른 속도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쿠이잇..." 한바탕 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키케르의 발목에서 날아 오른 흰꼬리수리는 키케르의 머리 위를 한바탕 선회하더니 세차게 날개 짓을 하고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미 목표를 정한 듯 날아가기 시작했다. 키케르는 북쪽으로 힘차게 날아가는 전서응을 바라보며 3군의 소식을 꼭 가져오기를 기원했다. 첫 번째 전서응이 키케르의 손에서 벗어나고 뒤이어 한 시간 단위로 남은 전서응들로 차례차례 북쪽으로 날려 보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65 회] 날 짜 2004-04-13 ---------------------------------------------------------------------------- 29장. 연합전선 아슈리안 전사 페몬과 베이크는 인간 원정군 1군에 소속되어있던 자들로 부족 내에서는 매우 용맹한 전사로 알려진 자들이다. 그들은 부족장 케인의 명령을 받아 한때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테미를 정찰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현재 도망친 부족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테미의 도시들은 모두 불타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파미르 군대의 학살에 죽어 도시는 흡사 유령의 도시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이미 파미를 왕국에서는 기존 테미에 살고 있던 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시키고 자신들의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킨다는 복안까지 세워둔 상태라고 했다. 이 때문에 페몬과 베이크는 조심스럽게 테미로 스며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테미는 아슈리안 부족민이나 그전에 살고 있던 도시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테미의 최북방 도시인 헬하크는 테미에서 가장 늦게 세워진 도시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곳이다 보니 헬하크는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그리고 마물의 숲과 가장 가깝게 있던 도시인만큼 헬하크는 오크나 리자드맨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북쪽 부근에는 수 미터의 목책을 세워놓았다. 오크나 리자드맨의 침입이 두렵지는 않지만 그들의 습격은 껄끄러웠기 때문에 대비를 해 놓은 것이다. 페몬과 베이크도 마물의 숲 원정을 떠나면서 헬하크 북쪽에 있던 목책을 보았기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 이상한데...” 마물의 숲을 간신히 벗어나 테미의 최북방 헬하크에 도착한 그들은 시야에 헬하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미 빼앗긴 도시지만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다. 마물의 숲에서 오크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며 그리던 도시를 보았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들은 감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감격도 잠시 베이크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뭐... 뭐가?” “저기를 봐라!” 한곳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 베이크의 동작을 쫓는 페몬은 무너지고, 불타버린 목책의 잔해를 볼 수 있었다. “저게 뭐가 어떻다는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북쪽의 목책들이 모두 무너졌거나 불타버렸잖아.” 베이크의 말에 페몬은 베이크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소리야? 도시도 불탔는데 저까짓 목책쯤 무너지고, 타버린게 뭐가 이상해?” “북쪽 오크들과 리자드맨을 막기 위해 세워둔 목책이라고... 우리들보다 마물의 숲 몬스터들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 저 겁쟁이 파미르 놈들이라는 말이야. 그런데 그런 놈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줄 목책을 저렇게 태워버렸을까?” 베이크의 대답에 페몬은 듣고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시를 불태우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시를 전부 불태우는 미친놈들이니 그런 짓도 할 수 있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우리에게 저 목책 따위는 중요한게 아니잖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놈들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지금 어디에 주둔하고 있는지 그것들을 알아보는 거잖아.” 페몬의 말에 베이크는 무너진 목책 때문에 예감이 별로 안 좋기는 했지만 그 말이 맞는지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헬하크를 향해 잠입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벌건 대낮에 헬하크로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라 그들은 태양이 지고 디노가 떠오르기 전 7시 전후를 택했다. 하늘 높이 떠있던 태양은 차츰 고개를 수그리더니 서쪽으로 차츰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붉은 낙조가 헬하크 주변을 빨갛게 달구었다. 두 사내는 언덕 아래에 몸을 숨기고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다가 붉게 물드는 헬하크의 모습에 무척이나 음습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무척이나 평화스럽고 활발한 도시중 하나가 그들이 알고 있는 헬하크였다. 비록 건설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헬하크는 언제나 북적이고 있었다. 황금을 찾아 아니 새로운 삶을 꿈꾸며 도시를 찾은 사람들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무척이나 힘든 막노동을 했지만 밤은 언제나 흥청거렸다. 지친 육체의 피로를 달래며 한 잔의 술과 노래로 삶의 애환을 씻는 도시의 야경은 나름대로 흥취가 있었다. 언제나 밤이 되면 술과 노래로 젖어드는 곳이 헬하크였다. 그런 헬하크의 야경이 무척이나 조용하니 붉은 야경은 그들의 기분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낙조에 젖은 헬하크의 모습을 지켜보던 페몬과 베이크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가을의 저녁이라 그런지 해가 지고 나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언덕 아래에서 헬하크를 주시하던 사내 둘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척이나 조용하군. 거기다가 이렇게 쌀쌀하다니...” “파미를 놈들 때문이겠지. 전부 죽거나 북쪽으로 도망을 쳤으니 말이야. 그리고 여기는 원래 춥기로 유명한 곳이잖아.” “그렇겠지. 하지만 기분 나빠! 저 낙조도 오늘은 무척이나 기분 나쁘게 보인다고...” 베이크의 투덜거림에 페몬은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오늘따라 왜 그래? 아까도 그러더니...” “을씨년스럽잖아! 무너진 목책하며 조용한 도시! 아무리 도시의 주민들이 모두 떠났다고 해도 파미르 놈들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그런데 아직까지 한 놈도 못 봤어! 넌 봤어? 어떻게 이곳에 경계병하나 세우지 않는 거지? 아무리 멍청한 지휘관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상식은 있을 텐데 말이야.” 베이크의 말에 이번에는 페몬도 동의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기는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시에 주민들이 모두 떠났다고 해도 파미르 정규군은 남아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북쪽으로 도망친 주민들과 자신들이 만났다면 자신들이 테미로 남하하리라는 생각은 파미르 군대도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북쪽을 경계하는 경계병 하나 없다는 사실은 이해가 안 간다. 아니 목책이 무너지거나 불탄 상태로 방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곳은 어떻게 보면 파미르 군과 아슈리안 전사들과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멍청하지 않다면 이곳을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예감이 좋지 않아!” 베이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꾸물거릴 수도 없잖아. 들어가자고... 들어가서 눈으로 확인해 보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페몬 또한 불안했는지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언덕 아래로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페몬과 베이크는 소리를 죽이며 헬하크의 북쪽 무너진 목책사이로 몸을 숨기고는 동정을 살폈다. 아무런 소음하나 들리지 않는다. “가자!” 페몬은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자 베이크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베이크는 긴장을 했는지 어깨의 근육이 무척이나 굳어있었다. 서서히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두 사람은 아무런 제지 없이 목책을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대부분은 불에 타서 재만 남기고 있었고 곳곳에는 건물이 있었다는 건물의 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페몬과 베이크는 그 흥청거렸던 밤의 도시가 이렇게 처참하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도시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도시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흡사 도시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도시는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이상해! 왜 아무도 없는 거지?” 베이크의 물음에 페몬 자신도 모르는지라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무언가 발에 걸렸는지 페몬이 기우뚱하더니 중심을 잡으려고 몇 발자국 앞으로 종종걸음을 치더니 겨우 중심을 잡았다. “뭐지?” 그러더니 자신의 발에 걸린 것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페몬이었다. “엇?” 놀람에 가득 찬 페몬의 목소리가 컸는지 옆에 있던 베이크가 깜짝 놀랐다. “쉿... 조용!” “이... 이것 봐!” 페몬은 베이크의 말이 귀에 들리지도 않는 듯 큰소리로 베이크를 불렀다. 그 때문에 베이크의 얼굴에 땀방울이 새겨질 정도였다. “조용히 하랬잖아. 누가 들으면 어쩔라고...” 페몬을 질책하며 다가서던 베이크는 페몬이 놀란 눈을 목격하고는 그 눈을 쫓아 바닥을 쳐다 보다 삽시간에 눈동자가 커졌다. “이... 이건...” “파미르 정규군의 복장이 확실하지?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이자들의 시체가 여기에 있는 거야? 저기 저기에도... 온통 이자들의 시체잖아!” 페몬은 좌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고 페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베이크는 처참하게 죽은 파미를 정규군 복장의 시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벌써 공격한건 아니겠지?” 페몬의 물음에 베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출발한 것이 그들이었기에 부족의 전사들이 이들을 공격해서 죽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한다면 도시에 아무도 있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때 무언가 번쩍이는 섬광이 베이크의 눈에 들어왔다. “불빛이야. 숨어!” 베이크는 페몬을 손을 붙잡고는 얼른 무너진 폐허 더미로 몸을 숨겼다. “저벅... 저벅...” 어두워진 밤을 밝게 비추는 횃불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 사이로 베이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저... 저들은...!”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66 회] 날 짜 2004-04-13 ---------------------------------------------------------------------------- 29장. 연합전선 리자드맨의 남부 수장인 바르와 동맹을 한 료우와 인간 일행들은 모두 한군데 모여서 전쟁의 피해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번 오크와의 전쟁으로 인간 진영의 경우에는 별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리자드맨들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 매복을 위해 희생시킨 2천의 병력 말고도 싸움 도중에 부상자를 제외하고도 5천에 다다르는 리자드맨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매복으로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가 블러디 오크 군대의 추가로 많은 숫자의 전사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그 때문에 거의 전체 전력의 반을 잃어버렸다. 물론 오크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단 료우와 그 일행들이 본진을 공격하면서 본진에 남아있던 2만의 오크 군대중 살아남은 오크의 숫자는 채 3천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리자드맨과의 전투에서 죽은 오크들의 숫자를 모두 합치면 거의 5만에 다다르는 오크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크 진영도 절반의 전력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거의 7배에 다다르는 피해를 입은 오크들이지만 그들은 아직도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도망치기는 했지만 아직도 오크들은 5만의 병력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인간과 리자드맨 진영은 싸울 수 있는 전력이 모두 합쳐 1만이 고작이었다. 물론 부상자를 제외한 숫자이다. 현재 인간 진영은 3천의 부상자가, 리자드맨 진영은 1천의 부상자가 있었다. “현재 우리의 전력은 싸울 수 있는 자들을 모두 합치면 고작 1만! 거기에 부상자가 4천이다. 적은 후퇴하기는 했지만 아직 5만이라는 수사가 남아있다. 또 거기에 더해 얼마나 더 많은 군대가 있는지 모른다.” 바르의 말에 인간과 리자드맨 동맹의 수뇌부는 침묵을 지켰다. 현재 그들은 가칭 연합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리자드맨 동맹을 만들었다. 각 진영의 대표는 인간 진영에서 료우를 리자드맨 진영에서 바르를 세워둔 상황이다. 이미 용병이 아닌 동등한 위치 아니 어떻게 보면 상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료우는 아슈리안 성전사의 책임자인 누게르나 제 4군 5용병대의 얀을 누르고 이들의 대표로 나선 상태였다. “숫자가 너무 부족한 상태입니다. 섣불리 정면 승부를 걸었다가는 우리 쪽의 피해가 커질 뿐입니다.” 연합전선의 수뇌부중 하나로 뽑힌 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말에 다들 그것을 인정하는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번에는 바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그들과 맞상대 할 수도 없습니다.” “흐음...” 얀의 대답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저마다 신음을 터뜨리고는 고심을 하는 눈치를 보였다. 인간과 리자드맨이 서로 합치기는 했지만 숫자가 너무 부족했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없는 병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기에 적의 대규모 병력이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바르는 얀의 대답에 고심을 하다가 문득 자신들을 이렇게 결집시킨 료우를 쳐다보게 되었다. 료우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이다. “무슨 의견 있는가?” 바르가 료우에게 그렇게 물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료우에게로 모아졌다. 료우는 바르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야겠지. 솔직히 정면승부로는 나도 더 이상 오크 부대와 싸우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거든!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뻔한 거야.” “뭐지?” 다급하게 묻는 질문에 료우는 천천히 또박또박 입을 벌리며 대답을 했다. “기습적으로 적을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이야!” “게릴라 전술?” “그래. 게릴라 전술! 치고 빠지면서 적들을 지치게 만드는 거야.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은 너희들의 안방이니 지형적으로 우리가 훨씬 유리하다는 거야. 거기다가 개개인으로 따진다면 우리의 실력이 저들보다 월등하거든. 숫자가 비슷하다면 우리는 충분히 놈들을 괴롭힐 수 있어.” 료우의 말에 인간과 리자드맨 수뇌부는 어두운 하늘에 밝은 광명을 찾은 듯 환한 미소가 만들어 졌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뻔하게 나오는 결론이야. 그런 눈빛으로 볼 필요 없어.” 료우는 자신을 무척이나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몇몇 무리를 보고는 그렇게 일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료우의 의견으로 연합전선은 자신들이 해야 할 전략과 전술을 짜기에 분주했다. 일단 부상자들 때문에 안전한 본거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다. 저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까닭에 얼마나 오랜 싸움을 할는지 몰랐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안전하고 오크들에게 들키지 않을만한 곳이 필요했다. 거기에 더해 숫자의 보강은 꼭 필요했다. 때문에 인간 진영에서는 살아남은 인간 원정군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리자드맨 진영에서는 각 부족에 연락을 해서 모든 부족을 하나로 묶으려고 시도했다. “어떻게 찾지?” “아마도 우리를 찾기 위해 전서응을 날렸을 것이다. 오크들이 깔려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보내지는 않았을 듯싶다.” “전서응?” “그래!” 누게르의 대답에 료우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얼른 아론을 찾았다. “아론!” “무슨 일이야. 료우?” “혹시 인간 원정군을 찾을 방법이 없는지 해서 말이야! 아니면 그들이 날렸던 전서응이라도 말이야!” 료우의 물음에 아론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몇 가지 시도해볼만한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성공할지는 미지수야. 이곳이 워낙에 넓어서 말이야. 물론 한정된 곳을 중점적으로 뒤지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말이야. 일단 네오도 불러야겠어.” 아론의 대답에 료우는 얼른 네오도 불렀다. 네오는 료우의 설명을 듣고는 귀찮다는 표정이다. 그런 것까지 자신에게 시킨다며 투덜거렸다. “빼지 말고 얼른 해! 한시가 급하다고!” “거기가 얼마나 넓은지 알잖아. 드래곤이라고 해도 찾아내기는 힘들다고!” “안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리고 솔직히 드래곤은 게을러서 못 찾는 거지. 능력이 안돼서 못 찾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드는데...” “드래곤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아. 이 넓은 곳을 어떻게 다 뒤진다고 생각해! 드래곤이라고 해도 여기를 다 뒤지려면 몇 달은 걸릴걸!” 네오의 대답에 료우는 알았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더니 빨리 하라고 재촉한다. “끄응...”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던 네오는 료우를 힐끗 째려보고는 바로 마법을 펼쳤다. “클레어버이언스(Clairvoyance)!" 두 눈을 질끈 감고 펼치는 네오의 마법은 천리안이라 불리는 마법이었다. 그것은 원하는 곳을 볼 수 있게 하는 마법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살필 수 있는 고난위도의 마법이었다. 물론 가보지도 않는 모르는 곳을 볼 수는 없었다. 네오가 천리안을 펼치는 동안 아론은 다른 방법으로 케인 일행을 찾았다. 아론은 바르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확인을 한 끝에 와이번(Wyyern) 둥지를 찾을 수 있었다. 와이번은 마물의 숲에 살고 있는 조류형 몬스터중 몇몇 안 되는 종류로 생김새는 드래곤과 비슷하지만 앞발이 없고 덩치도 훨씬 작은 편에 속했다. 물론 작다는 것은 드래곤을 비교해서 하는 말이지 다 자란 놈은 날개 길이를 쭉 펴면 10미터는 족히 되는 놈도 있었다. 아론은 와이번 둥지를 발견하자마자 좋은 생각이 났는지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와이번들은 교배가 끝난 뒤 새끼를 낳았는지 어미로 보이는 놈이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둥지에 눌러 앉아 새끼를 보호하고 있었고, 수놈은 쉴 틈도 없이 먹이를 나르고 있었다. 아론은 암놈이 새끼를 지키는 것을 노렸다. 조심스럽게 와이번 둥지를 접근한 아론은 자신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한 둔한 어미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홀드(Hold)!” 그러자 마치 탄탄하게 얽어맨 그물에 걸린 듯 둥지에 있던 와이번이 파닥거리며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와이번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아론은 곧바로 수놈이 나타나기 전에 일을 해치우기 위해 암놈 와이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마법을 풀기위해 요동을 치는 암놈 와이번의 눈을 응시하고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패밀리어(Familiar)!” 그것은 상대를 자신의 수족으로 묶는 패밀리어 주문이었다. 아론의 패밀리어 주문에 풀려나기 위해 발버둥치던 암놈 와이번의 눈이 혼탁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 움직임을 멈추며 순하게 모습을 바꾸었다. “너는 이제 나의 패밀리어다. 알겠느냐?” 놀랍게도 암놈 와이번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만 패밀리어가 되면 섭섭하니 네 남편도 패밀리어로 만들어주마. 이 일이 끝나면 자유롭게 풀어 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동안 네 새끼는 내가 맡아두고 있겠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놈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해서 네오는 천리안 마법으로 케인이 있을법한 마물의 숲을 뒤지고, 아론은 패밀리어 계약을 맺은 두 마리 와이번을 통해서 아슈리안 부족의 전서응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 연참입니다. ^^ 용병왕 료우 3권을 어제 받아보았습니다. 많이 사랑해 주실거라 믿고 한편 더 올려드립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67 회] 날 짜 2004-04-14 ---------------------------------------------------------------------------- 29장. 연합전선 페몬과 베이크는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자신들의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는 일이 눈앞에 보여 졌다는 말이 옳은 듯싶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질서 정연하게 줄을 맞추어 이동하는 오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략 20여 마리쯤 되어 보이는 오크들은 페몬과 베이크가 숨어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멈추어 서더니 이동을 멈추었다. “쿠룩... 여기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너희들은 못 들었느냐?” 선두의 오크 장교가 그렇게 소리치자 뒤쪽에서 그의 뒤만 졸졸 따라오던 병사들은 듣지 못한 듯 고개를 저었다. “쿠룩...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 너희들은 침입자가 있는지 살펴보아라!” 횃불을 힘껏 치켜든 오크 장교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하급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하급 병사들은 얼른 고개를 숙이더니 급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해가 지고 첫 번째 달 디노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방은 약간 어둡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아직 늦지도 않은 시각이지만 오크들 몇몇은 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페몬과 베이크는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오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수색을 시작하자 긴장된 눈빛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했다. 자신들이 숨어있는 곳이 들통 나면 곧바로 도망을 칠 생각이었다. 전사로서의 자존심보다 자신들의 임무가 중요했기에 그들은 뒤로 안돌아보고 도망칠 수 있었다. 이미 그렇게 지시를 받았기에 페몬과 베이크는 오크들과 싸우기보다는 도주 쪽을 선택했다. 마물의 숲에서 자신들을 그토록 허무하게 패배시켰던 오크들이 헬하크에 있다는 사실은 꼭 알려야만 했다. 자신들을 배신한 파미르 정규군 대신에 오크 군대가 도시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정보보다 귀한 것이었다. 파미르 정규군이 아닌 오크의 군대가 도시에 있다는 것은 아슈리안 부족으로서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페몬과 베이크는 자신들이 발견했던 바닥에 널 부러진 파미르 정규군의 시체들이 오크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삐 사방을 뒤지던 오크들은 한참 후에 다시 모였다. “쿠룩... 아무것도 없습니다.” 잔뜩 긴장하며 그들을 예의 주시하던 페몬과 베이크는 그 말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 자신들이 숨은 곳으로 수색을 하지 않은 오크 병사들 때문이었다. 오크 병사의 보고에 오크 장교는 쓰윽 한번 사방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쿠룩... 이곳에 있는 인간 놈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하지만 아직 남쪽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다. 아직 본국의 대군이 도착하지 않은 이상 이곳은 우리 5군단 만으로 지켜내야 한다. 그러니 모두 철저한 경계를 하도록 해라. 특히 그 인간 기사 놈들의 군대가 또 몰려올지 모르니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마라.” 오크 장교의 말에 병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는 그들은 다시 다른 곳을 살펴보려는지 줄을 맞추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크 경계병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페몬과 베이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이 놀라운 사실에 아직도 얼이 빠진 상태였다. “설마하니 오크들이 이곳을 점령했을 줄이야! 이제 어떻게 하지?” 페몬의 질문에 베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그도 놀라기에는 마찬가지다. 베이크의 대답에 페몬은 인상을 찡그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베이크가 입을 열었다. “일단 빨리 이 사실을 족장님께 알리자. 아무래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베이크의 말에 페몬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싶더니 그것이 옳은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숨어있던 장소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헬하크를 빠져나와 부족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비상이야!” 밤이 깊어 피곤한 육체를 바닥에 누이고 막 잠자리에 들려고 했던 케인을 방해하는 것은 4군의 장이자 친우인 코라였다. 코라는 케인의 천막으로 급하게 들어가더니 그렇게 외쳤다. 코라의 갑작스런 등장에 케인은 막 잠자리를 들려다 얼른 몸을 일으켰다. 난데없는 등장에 어리둥절했지만 그 목소리에 긴박함이 묻어있어 케인은 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오크다!” “오크?”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케인의 물음에 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로부터 반나절 거리 북쪽에서 대규모 오크들의 무리를 발견했다는 전갈이 막 들어왔어. 아무래도 우리들이 예전에 마주쳤던 그 10만 단위의 대규모 군대일 듯싶어.” 코라의 대답에 케인은 잠이 확 달아났다. 그리고는 스스로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키케르의 조언대로 테미를 도모하지 않고 이곳에서 머물면서 북쪽으로 도망친 부족민들을 규합하고 연락이 안 되는 3군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인데 난데없는 오크 군대의 등장이었다. 복수를 위해 테미로 급하게 들어가려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닥친 것이다. “모두 불러와! 회의를 해야겠어.” 케인의 말에 코라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얼마 후에 케인의 천막에 모인 자들은 아슈리안 부족의 지휘부였다. 대족장인 케인을 필두로 2군의 수장인 키케르, 4군의 수장인 코라, 케인의 여덟 명의 부장중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뭉크, 키얀, 누리얀, 보레, 델라이모 등 다섯 명과 키케르의 부장인 쌍둥이 형제 카투슈, 카투파, 그리고 코라의 부장인 자프와 네노크등이 그들이었다. “코라! 네가 말해줘라!” 지휘관들이 모이자 케인은 코라에게 그렇게 말했고 코라는 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북쪽에 대규모 오크 부대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대략 파악한 적의 숫자는 10만 정도로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그 부대중 하나인 듯싶다. 현재 우리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대략 반나절 정도! 하지만 부족민과 난민들의 이동속도로 생각하면 거리는 많이 단축될 듯싶다. 이상!” 코라의 설명에 지휘관들의 낯빛이 변했다. 오크의 부대라니...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싶었다. “그들의 현재 진행방향은 어느 쪽입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케인의 부장 뭉크가 물었다. “들어온 보고로는 남쪽이다. 우리가 있는 쪽으로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는 보고다. 아무래도 놈들이 노리는 것은 우리인 것 같다.” 코라의 대답에 지휘관들은 웅성웅성 거렸다. “조용!” 케인의 외침에 저마다 떠들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멎었다. “지금 여기서 서로 떠들자고 모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향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의견을 내놓아라!” 케인의 말에 지휘관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갑작스런 상황이라 좋은 의견이 나오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울 듯싶었다. “일단 이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에 계속 남아있다가는 오크들의 병력과 부딪칠테니 말입니다. 전사들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에게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전쟁터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주는 것이 원칙일 듯싶습니다.” 처음으로 의견을 내놓은 자는 케인의 부장인 뭉크였다. 뭉크의 말에 지휘관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그들의 목표가 저희라고 한다면 피할 수는 노릇이겠죠. 당연히 싸워야합니다. 하지만 민간인들을 피신시키고 나서 행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케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디에다 말인가?” “...” 이번에는 아무 말도 못하는 뭉크였다. 테미가 사라진 이상 그들에게 돌아갈 곳은 없었고, 위험하지 않은 곳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뭉크가 말하는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 듯싶었다. 이 때문에 지휘관들은 다시 설왕설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도망쳐야 하는지, 싸운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지, 피한다면 또 어떻게 피해야 할 것인지 말이다.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대족장님! 테미를 살폈던 자들이 돌아왔습니다. 급한 소식이랍니다.” 결과를 내리지 못하고 있던 회의 장소로 들려온 소리에 케인은 들어오라는 대답을 했고 케인의 대답에 두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그들은 헬하크에서 급하게 달려온 페몬과 베이크였다. 쌀쌀한 밤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흠뻑 젖은 상태로 들어온 그들의 모습에 지휘관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오크 때문에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그들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아서 눈길이 그곳으로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싶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케인의 물음에 페몬이 나서서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족장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하도 여기저기서 큰일이 났다고 하다보니 이제는 큰일이 무디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 케인은 미동도 없이 그렇게 물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저희가 헬하크에 갔을 때 파미르 놈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야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모두의 눈이 흥미롭다는 모습으로 페몬의 입에 맞추어졌다. “모두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시체?” “시체? 정말이냐?” 사방에서 터지는 질문에 페몬은 누구에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눈치를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설명해보라!” 이번에는 2군의 수장이었던 키케르의 질문이 이어졌다. 키케르의 질문에 페몬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오크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떻게 그놈들이 그곳까지 왔다는 말이냐?” 서로를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눈짓을 교환하는 그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렇다면 그 오크들은 우리가 목표가 아닌 테미로 향하는 군대인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옳을 듯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지휘관들은 일단 오크들의 남하 방향을 살짝 비껴난 지점으로 옮기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일단 오크의 군대를 피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해야 할 듯싶어서였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68 회] 날 짜 2004-04-15 ---------------------------------------------------------------------------- 30장. 파미르의 몰락 “뭐라고?” 테미를 먹어치운 공적으로 국왕으로부터 공작의 작위를 약속받은 하르켄 후작과 카를 후작은 테미의 중심도시라 할 수 있는 하르엠에 머물고 있다가 르베르 공작이 자신들의 공로를 깎아 내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카를 후작은 그 소문을 듣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감히 누구의 공적을 깎아 내린다는 말인가? 그는 성난 목소리로 하르켄 후작을 찾더니 불만을 쏟아냈다. “하르켄 후작 각하! 우리가 어떻게 해서 얻은 승리인데 그 따위 늙은 공작 따위가 우리의 공적을 깎아 내릴 수 있습니까?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카를 후작의 말에 하르켄 후작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카를 후작은 하르켄 후작의 이 같은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아무래도 일단 수도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내 그놈의 늙은 공작을 씹어 먹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듯 하옵니다! 아니 당장 가서 내 국왕 폐하께 청을 드리겠습니다. 늙은 공작의 이 같은 만행을 알리고 내 꼭 이 수모를 갚겠습니다.” 부드득 이를 가는 카를 후작의 말에 하르켄 후작은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이 안정화되지 않았는데 자리를 비울 수 있겠소이까? 카를 후작!” “이미 미개한 아슈리안 놈들은 모조리 소거했고 남아있던 버러지 같은 난민들도 모조리 도시 밖으로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이제 도시에 남은 것은 본국의 병사들뿐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하지만 아직 마물의 숲에 들어갔던 아슈리안 원정군의 소식을 모르지 않소이까? 만약에 그들이 이곳으로 향했다면...” 말끝을 흐리는 하르켄 후작의 말에 카를 후작은 인상을 쓰더니 입을 열었다. “그 따위 미개한 부족 놈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만약 온다고 해도 우리 정예군들이 잘 막아낼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미 5만에 육박하는 우리 군대를 저들이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빨리 수도로 돌아가서 공작의 방해공작을 차단해야 합니다.” 이미 이곳의 사정은 딴전이고 어떻게 해서든 공작의 작위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 있는 카를 후작이었다. 카를 후작의 이 같은 재촉에 하르켄 후작도 더 이상 그를 막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를 후작은 하르켄 후작을 재촉해서 하르엠을 점령하자마자 설치한 이동 마법진을 통해 급하게 수도로 돌아갔다. 파미르의 수도에서 하르엠까지는 꽤 먼 거리였기에 그들은 왕국의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각 영지의 이동 마법진을 여러 번 거친 끝에 수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워낙에 마법사의 숫자가 적은 탓에 파미르의 각 영지에서 이동 마법진이 설치된 곳은 극히 적은 편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하르엠에서 수도까지 걸린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그나마 급하게 돌아온 카를 후작과 하르켄 후작은 곧바로 국왕에게 알현을 요청하고는 국왕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폐하! 하르켄 후작과 카를 후작이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네!” 파미르의 국왕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두 신하의 방문에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테미에 있어야 할 지휘관이 모두 수도로 귀환하여 자신을 찾는 것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하르켄 후작! 카를 후작!” 점령지에서 다급하게 수도로 귀환한 카를 후작과 하르켄 후작을 바라보는 국왕의 눈은 우유부단한 성격 그대로 매우 불안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점령군의 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두 후작이 모두 함께 수도에 나타났다는 것은 그에게는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힘들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긴장 때문에 약간 떨리고 있었다. “폐하, 신 카를!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무슨 말이오? 카를 경!” 루폰 국왕은 카를 후작의 말에 불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카를 후작의 국왕의 물음에 고개를 땅바닥에 숙이더니 입을 떼었다. “폐하! 신 카를 너무도 억울하옵니다.” “억울하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신이 테미에서 소문을 듣기로 르베르 공작이 저희들의 공을 깎아내린다는 소식을 접했사옵니다. 그 때문에 저희를 포함해서 테미의 점령군은 매우 당혹해 하는 실정입니다. 수만의 피를 흘리며 세운 공적이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깎아내리다니요! 실로 억울하옵니다.” 카를 후작은 그렇게 말하더니 바닥에 쿵하니 머리를 세차게 박았다. 조용하던 국왕의 집무실은 카를 후작이 바닥에 머리를 박는 소란에 심하게 기침을 했다. 국왕은 카를 후작의 이 같은 행동에 약간 겁을 집어먹는 표정이 보였다. 그에게는 카를 후작의 행동이 매우 공격적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하르켄 후작!” 약간 겁을 집어 먹은 국왕은 옆에서 잠자코 있는 하르켄 후작을 부른다. 어쨌거나 국왕은 뒤늦게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에게 많은 힘을 실어준 후작이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다. 그 때문에 국왕은 지금도 카를 후작과 같이 온 하르켄 후작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으로 그를 불렀다. “예. 폐하!”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국왕의 물음에 하르켄 후작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일은 아무래도 르베르 공작이 폐하의 세력이 될 저희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랬을 거라는 추측이옵니다. 그러니 공작의 감언이설에 속지 마시고 하루 속히 공작과 대등한 세력을 키워야 함이 지당할줄 아옵니다.” 하르켄 후작의 이 같은 말에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카를 후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상했던 것보다 하르켄 후작이 잘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작을 견제하는 세력을 키운다면 아마도 자신이나 하르켄 후작이 적임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늙고 힘없는 마법사 보다는 젊고 패기만만한 자신을 선택하는 것이 국왕의 올바른 선택이리라 생각하는 카를이었다. 때문에 카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험험... 그렇소? 내 어찌 후작의 말을 잊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내 르베르 공작의 야심에 더 이상 놀아나지는 않을 것이오. 그래서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소!” 국왕의 말에 엎드려있던 카를 후작의 눈이 빛났다. 그는 이제 왕국에서 국왕 다음으로 높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일컫는 공작의 작위를 차지하리라는 상상을 하자 엎드려서 바닥만 쳐다보던 몸이 서서히 떨려 옴을 느꼈다. “음... 내 그래서 그대를 공작으로 봉하려고 하오! 어떻소? 하르켄 후작!” “헉...” 엎드려 있던 카를 후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인가? 자신이 아니라 하르켄 후작을 지목하는 국왕이었다. “폐... 폐하!” 엎드려 있던 카를 후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급하게 고개를 쳐들더니 국왕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말하시오. 카를 경!” 국왕의 물음에 카를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야망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르베르 공작을 배신했다. 2인자로 남고 싶지 않아서 그를 배신하고 하르켄 후작과 공조를 했다. 그런데 그 야심이 허무하게도 무너졌다. 또 다시 2인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한번 배신했기에 하르켄 후작 아니 이제 공작이 될 사람에게 잘못 보인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매장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카를 후작은 고개를 숙이더니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폐하! 옳으신 결단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카를 후작의 말에 국왕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하르켄 후작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폐하! 송구스럽사오나 신보다는 카를 후작이 공작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드옵니다. 저야 이제 다 늙어 쓸모없고 무기력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사오나 카를 후작은 아직도 젊고 패기가 넘치옵니다. 거기다가 공작에 비해서 떨어지기는 하나 정치적인 기반이 있사옵니다. 신보다는 카를 후작이 더 잘 공작의 야심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허니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르켄 후작의 이 같은 발언에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를 후작의 표정이 돌변했다. 설마하니 하르켄 후작이 공작의 작위를 마다하고 자신을 밀어줄지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카를 후작은 다시금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왔다는 생각에 젖었다. “후작! 그게 무슨 말이오! 어찌 후작이 쓸모없다는 말이오. 테미도 그렇고 후작에게는 후작을 두둔하는 많은 중립 세력이 있지 않소이까? 거기다가 본국에 있는 마법사 협회들도 후작을 지지한다고 알고 있소. 어찌 후작의 세력이 미비하다고 하는 것이오.” 국왕의 말에 일말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며 기회를 노리던 카를 후작은 자신의 야망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 카를은 여기서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냥 눈감고 하르켄 후작의 제의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니 그의 야망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이곳까지 올라올 만큼 그도 대세를 읽는 눈은 갖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노련한 르베르 공작이나 하르켄 후작에 비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도 어디까지나 노련한 정치가였다. 카를 후작은 자신이 원한다고 해도 국왕으로부터 공작의 작위를 받는 것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그는 얼른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폐하! 신이 생각하기로도 하르켄 후작이야 말로 충분히 르베르 공작의 야심을 막을만하다고 생각이 드옵니다. 이미 하르켄 후작은 본국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한 적이 있사옵니다. 이번 테미 일도 하르켄 후작께서 다 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이 비록 부족하지만 충성을 다해 하르켄 공작 전하를 도와드리겠으니 명을 내리옵소서!” 아예 이제는 공작이라고 말하는 카를 후작이었다. 카를 후작의 이 같은 발언에 하르켄 후작의 사양 때문에 난처한 처지에 있던 국왕의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국왕은 경쟁자인 카를 후작까지 하르켄 후작을 지지하고 나서자 얼른 다시 한번 하르켄 후작을 보며 공작의 작위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국왕과 카를 후작이 이렇게 나오자 하르켄 후작은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정 이 늙은 몸이라도 원하신다면 폐하의 명을 받겠사옵니다.” 하르켄 후작의 승낙에 국왕은 돈벼락이라도 맞은 듯 뛸 듯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하하... 그래 잘 생각하시었소! 공작! 공작이 아니면 누가 이 나라를 구하겠소!” “축하드립니다. 공작 전하!” 국왕은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보냈고, 카를 후작은 속이 쓰리기는 했지만 다행이 공작이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얼굴에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발표가 나지 않은 상태로 두 사람의 축하를 받은 하르켄 후작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약간 비웃음이 섞인 듯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국에 두 번째 공작이 나왔다는 사실에 중앙 귀족들과 각 지방의 영주들은 놀란 눈으로 국왕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공작의 직위를 받은 인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르켄 후작이었다. 하르켄 후작이 누구던가? 왕국의 최고 현자이자, 최고 마법사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대륙에 존재하는 일곱 명의 7클래스 마스터중 한명으로 왕국의 자랑이자 대현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대마법사로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노령의 나이로 궁중마법사에서 은퇴하고 자신의 영지에 파묻쳐 있다 왕국이 어려워지자 단번에 어려움을 해결하며 황금의 땅이라는 테미까지 차지한 인물이 하르켄 르발루쉬 공작이었다. 때문에 귀족들은 왕국을 좌지우지했던 르베르 공작의 시대가 가고 하르켄 공작의 시대가 오지 않나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만큼 하르켄 공작의 영향력은 알게 모르게 대단했던 것이다. 하르켄 공작이 국왕으로부터 공작의 작위의 받던 날 왕국은 떠들썩한 축하파티를 특별히 왕궁에서 매우 성대하게 열었다. 루폰 두 라미르 1세의 특별 명령으로 왕궁의 연회석을 가득 메운 귀족들은 국왕이 특별히 하르켄 공작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거의 국왕이나 황후 혹은 왕자등 왕가의 잔치에서만 접할 수 있는 화려한 파티가 왕궁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귀족들은 저마다 하르켄 공작에게 줄을 대려고 그를 찾았다. 귀족들의 이 같은 반응에 파티에 참석했던 공작은 입맛이 썼다. 미리 방비는 했지만 설마하니 자신이 가장 믿었던 카를 후작이 하르켄 공작에게 넘어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뒤통수를 한대 맞고 또다시 그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은 것이다. 이미 두 번의 카운트 펀치를 받은 탓에 르베르 공작은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왕국에서 수십 년을 쌓아온 내공이 있었다. 여기서 쉽사리 물러 날수는 없는 것이다. 르베르 공작은 많은 귀족들에게 둘러싸인 하르켄 후작에게 다가갔다. “축하하오. 공작!” 예전과 다르게 평어를 쓰며 오히려 하대를 하는듯한 인상을 풍기는 르베르 공작의 인사였다. 50대 중반의 공작은 하르켄 공작이 후작일 때는 그의 나이를 존중했지만 이제 적수로 만난이상 그에게 하르켄 후작의 나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갑자기 왕국에 나타나더니 대번에 공작의 자리를 꿰차버린 후작의 능력에 르베르 공작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수족이라는 카를 후작까지도 단번에 빼앗아 가는 능력은 르베르 공작을 곤란하게 하기 충분했다. 이미 국왕도 하르켄 후작에게 마음이 돌아간 듯 보여 르베르 공작은 정말로 궁지에 몰린 심정이었다. 아직까지 중앙의 귀족들이나 지방의 여러 영주들이 자신을 지지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른다면 저 간교한 하르켄 후작의 감언이설에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상대는 모든 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왕국 최고의 현자라는 감투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하... 고맙소이다. 르베르 공작!” 환한 모습을 보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하르켄 후작의 넉살에 르베르 공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는 정치판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자신보다 더욱 노련한 듯 보였다. 그 때문에 공작은 도대체 저자의 진짜 정체가 무얼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단지 왕국 최고의 현자이고, 최고의 마법사 말고 그에게는 또 다른 신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저 정도의 여유로운 대처와 노련한 말솜씨, 거기다가 사람을 쥐고 흔드는 인간경영은 웬만한 경험이 없으면 아무리 배우고 익혀도 쉽지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영지에 틀어 박혀 마법 연구만 했다는 말은 믿어주기 힘들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하르켄 공작의 말에 르베르 공작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헛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하하... 미안하오! 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지라... 하여간 축하드리오. 일견에 한번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소이다.” 르베르 공작은 그렇게 말하고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불쑥 남기고 간 르베르 공작의 제안에 하르켄 후작은 슬쩍 입꼬리가 말리는 웃음을 짓고는 다시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한 참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뜻밖의 소식이 왕국에 전해졌다. 하르켄 후작의 공작 취임을 축하하는 파티에 가려고 마음먹고 막 자신의 처소에서 나오던 카를 후작은 급하게 달려오는 장교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후작 각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데 이리도 호들갑이냐?” 카를 후작은 비록 자신이 직접 찬성을 하고 나섰지만 하르켄 후작의 공작 취임이 별로 반가운 것은 아니었기에 기분이 쓰린 상태였다. 때문에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상태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장교를 보는 시선이 고을 리가 없었다. “큰일 났습니다. 후작 각하! 테미에 주둔하고 있던 본국의 군대가 모조리 무너졌다고 합니다.” 창백한 안색으로 소리치는 장교의 말에 카를 후작은 놀란 눈으로 소식을 가져온 장교를 바라보았다. “뭐... 뭐라고? 그게 사실이더냐?” 놀란 두 눈으로 보고를 하는 전령을 채근하는 카를 후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카를 후작의 물음에 장교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옵니다. 이미 북쪽 헬하크에 주둔하고 있던 6군단 1사단의 병력은 모조리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쪽 세라크와 하르엠, 르블의 병력들도 모조리 무너져 세튼 영지로 전부 패주하였다고 하옵니다.” 장교의 말에 카를 후작은 소리를 질렀다. “5만이다. 5만! 도대체 살아 돌아온 아슈리안 놈들이 얼마나 된다고 그 많은 병력이 모두 밀렸다는 말이냐? 그것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말이냐?” 카를 후작의 고함에 장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후작 각하! 아슈리안 인들이 아니옵니다. 오크이옵니다. 오크... 대규모 오크 군대가 테미로 밀고 내려왔다는 보고입니다.” “뭐라고... 오크?” “네!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파악한 오크의 숫자는 물경 20만을 넘는다고 하옵니다.” “뭐라고! 20만? 지금 그 헛소리를 나보고 믿으라는 말이냐?” “6군단의 군단장인 가나트 백작의 직접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미 테미는 모두 오크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이... 이럴 수가...” 카를은 그렇게 말하더니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제 자신의 상관이 되어버린 하르켄 후작에게 이 엄청난 사실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공작 전하! 전하!” 화려한 파티장의 수많은 인파를 뚫고 급박하게 뛰어오는 카를 후작의 모습에 모여 있던 귀족들은 웅성거렸다. 카를 후작이라면 왕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권력자였다. 그런 인물이 평민들이나 할 짓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인가?” 하르켄 후작은 고함을 지르며 숨을 헐떡이는 카를 후작을 세우고는 그렇게 물었다. “오크이옵니다. 오크...” “오크?” “네! 테미에 오크들이 나타났다고 하옵니다.” “오크들이 테미에...? 흐음...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말이오. 오크 무리들을 막을 충분한 병력이 테미에 주둔하고 있지 않소?” 하르켄 후작은 처음 카를 후작이 보였던 반응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카를 후작은 하르켄 후작의 그 같은 물음에 답답함을 느꼈고 아까 장교가 자신에게 보고를 하며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20만의 대군이라고 합니다. 이미 테미를 빼앗겼고 군대는 세튼 영지로 퇴각했다고 합니다.” 카를 후작의 충격적인 보고에 그 여유롭던 하르켄 공작도 약간 놀란 표정이다. “그것이 사실이오?” “테미에 주둔하고 있던 6군단의 군단장 가나트 백작이 직접 보고를 했다고 하옵니다. 빨리 가셔야 할 듯싶습니다.” 카를 후작의 말에 하르켄 후작은 급하게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이미 소란스러워진 왕국의 회의실이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69 회] 날 짜 2004-04-16 ---------------------------------------------------------------------------- 30장. 파미르의 몰락 오타 지적입니다. 현재 파미르가 알고 있는 오크의 군대는 10만입니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 ^^; ----------------------------------------- “찾았다.” 천리안을 사용해서 남부 마물의 숲을 이 잡듯 뒤지던 네오가 이틀 만에 환호성을 질렀다. 네오의 목소리에 아론과 네오를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디야?” 료우는 얼른 네오에게 다가가 그렇게 물었다. “북쪽 헬하크에서 반나절 떨어진 곳 같다. 아슈리안 부족민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것 같다. 거기다가 도시의 주민들도 상당수 모여 있는 듯 보인다. 상당히 많은 숫자가 모였구나!” 네오의 말에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고 있던 누게르는 두 손을 꼭 움켜쥐더니 신의 도움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렇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겠군. 빨리 가자!” 사람들을 재촉하는 료우였다. “내가 무슨 철인인줄 아냐? 이틀 동안 꼬박 밤을 새우면서 찾았다고... 나한테는 휴식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면서 털썩 주저앉는 네오였다. 네오의 행동에 료우는 “쳇” 하더니 입을 열었다. “갔다 와서 쉬면되잖아?” “이틀 동안 소모한 마나가 얼마인데 너희들을 어떻게 데리고 가? 마나를 채울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니야?” “퍽이나 마나를 채울 시간이 필요하겠다.” 료우의 조롱에 네오는 이마가 불끈거린다. “아... 아... 알았어! 장난이라고...” 료우는 장난스런 웃음을 짓더니 진정하라는 듯 네오를 달랬다. 료우는 케인과 아슈리안 전사들을 찾았기에 걱정했던 것들이 조금은 해결되자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리자드맨 전사들과 연합을 하기는 했지만 오크들과 대적하기에는 아직 많이 버거웠다. 그런데 케인과 남은 아슈리안 전사들을 찾았다면 이제는 그래도 나름대로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많이 풀리는 료우였다. 때문에 료우는 네오에게 장난을 칠 수도 있었다. 네오는 료우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당당하게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며 마나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네오의 요구에 네오와 함께 가야 할 료우와 누게르는 네오가 마나를 회복하기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네오의 회복을 방해할까 두 사람은 네오가 있는 곳에서 나갔다.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아 부족한 마나를 채우겠다는 네오는 그 자리에서 금방 눈을 감더니 이내 고개를 위아래로 심하게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밀렸던 잠이 물밀 듯이 밀려왔는지 졸기 시작하는 네오였다. 솔직히 마나가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고 부족한 잠을 채우겠다는 일념에 네오는 거짓말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드래곤의 마나가 어떠한지를 이미 알고 있는 료우는 처음부터 네오의 말을 믿지 않았기에 네오가 쉬고 있는 숙소를 나갔다가 다시 살며시 들어왔다. 그리고는 잠시 후 코까지 심하게 골며 꾸벅이는 네오를 보고는 기회를 포착했는지 살그머니 뒤로 다가가더니 손바닥을 이용해서 세차게 네오의 뒤통수를 때렸다. “퍼억...” “크아악...” 벌떡 일어나며 괴성을 지르는 네오는 자신의 등 뒤에서 히쭉 웃는 료우를 보고는 왜 때렸냐고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다 쉬었냐?” “끄응... 그래!” 한대 맞은 것이 억울하기는 했지만 만약 따지고 든다면 졸았다는 것이 꼬투리가 잡히므로 네오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속으로만 끙끙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오가 휴식을 끝냈다는 소리에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누게르는 얼른 뛰어왔고 네오는 뒤통수까지 한대 맞는 억울함까지 겪으며 그들을 케인이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시켰다. 오크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아슈리안 경계병들은 사방을 예의 깊게 주시하며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은 숲 속의 한부분이 기이한 공간의 왜곡을 그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조용하던 숲에 난데없는 공기의 거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한가운데서 번쩍이는 빛의 광구가 나타났다. 광구는 이내 회오리를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아슈리안 경계병들은 빛의 소용돌이를 보며 그것이 누군가 마법을 통해 워프를 해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그 순간 광구 주변을 일렁이던 빛 무리가 한순간 번쩍이면서 밝은 빛을 쏟아내고는 소멸했다. 한 순간의 광채에 눈을 감은 경계병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내를 보고는 처음 보는 일이라 약간 놀란 눈길이지만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세 사내를 삽시간에 포위했다. 그리고는 경계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누구냐?” 익숙하지 않은 마법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세 사내의 등장에 긴장한 아슈리안 경계병의 외침이 들리자 제일 먼저 대답을 한 것은 누게르였다. 누게르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슈르의 축복이 있기를... 나네!” 갑자기 나타난 자가 전쟁의 신 아슈르의 축복 인사를 하자 경계병은 순간 당황한 눈길을 보내다가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더니 놀란 표정을 하며 외마디 감탄사를 토했다. “엇!” 사내가 놀라 감탄사를 토하자 다른 자가 얼른 누게르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그가 아슈르 신전의 대사제임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 살아계셨군요. 아슈르의 축복을... 대사제님을 뵙습니다.” 다행이 아슈르 신전의 대사제인 누게르를 아는 자들은 많아 보였다. 경계병들은 저마다 감격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누게르에게 인사를 했다. “아슈르의 축복이 형제들에게 있기를... 그래 족장께서는 어디에 계시나?” 살짝 고개를 숙이는 누게르의 질문에 아슈리안 전사는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료우는 누게르와 아슈리안 전사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누게르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누게르는 대단히 자존심이 강하고 상대를 깔보는 성격이 강해 신관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존심 강한 전사에 가까웠다. 헌데 지금 그의 태도는 매우 자상하고 부드러운 신관의 모습이 아닌가? 료우는 딴사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료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게르는 사내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앞으로 가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료우와 네오는 누게르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가 움직이자 바로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경계병이 안내한 곳은 매우 넓은 천막이었다. 입구를 제치고 들어가려고 하니 한 사내가 밖으로 나온다. 그는 2군의 수장이었던 키케르였다. 키케르는 약간 어두운 안색으로 밖으로 나갔다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 아니 살아계셨습니까?” 천막 입구를 가려놓은 가죽을 제치고 나가려던 키케르는 누게르의 발견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두 손을 움켜잡았다. 그의 행동에 누게르는 미소를 지며 입을 열었다. “형제에게 아슈르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네. 정말 오랜만이로군.”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대사제님께도 아슈르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답례를 하며 고개를 숙이던 키케르는 이내 고개를 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저희는 연락이 안 되어...?” 누게르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누게르의 행동에 키케르는 누게르 뒤에 또 다른 두 사내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저들은...?” “그렇네. 그들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찾을 수 있었지! 족장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네... 어서 들어가 보십시오.” 그리고는 얼른 키케르는 천막의 입구를 가린 천을 제쳤다. “후욱” 하고 뜨거운 바람이 피부에 닿았다. 밖의 차가운 기온에 비해 안은 따뜻했다. 키케르와 누게르가 먼저 천막 안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료우와 네오가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몇몇은 료우의 눈에 익은 자들이었다. “아... 아니! 대사제님 아니십니까?” 천막의 입구가 제쳐 지자 몇몇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키케르와 함께온 사람이 누군지를 깨닫고는 반가운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에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 아니!” “누게르 대사제님!” 앉아있던 사내들은 모두 일어났고 그들은 입구에 서있던 누게르에게로 몰려갔다. “아슈르의 축복이 가득하길...” 그러더니 누게르는 가장 늦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케인을 보았다. 전쟁의 패배와 테미의 멸망으로 흡사 북쪽의 설인처럼 차가워진 표정과 한기가 풀풀 풍길 듯 한 행동을 하던 케인이 누게르를 보더니 오랜만에 반가운 기색을 지었다. 누게르는 케인을 보자 갑자기 사랑하던 애인을 만난 연인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족장님!” “살아계셨군요.” “네... 족장님께서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부드러운 케인의 말투였다. 주위에 있던 지휘관들은 케인의 달라진 반응에 그와 누게르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테미에서 죽은 대장로 켈라힘이 케인의 후견인이자 할아버지 같은 존재라면 아슈르 신전의 대사제 누게르는 케인에게 있어 형이자 스승 같은 존재이다. 그들의 인연은 아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케인에게 한동안 무술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누게르였다. 누게르가 신전의 대사제가 되기 전, 케인이 부족의 수장이 되기 전 그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물론 정식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형과 아우하며 지내던 사이였다. 스물아홉의 케인보다 무려 열 살이 더 많은 누게르였지만 그들은 젊은 시절 무척이나 오랫동안 붙어 다녔다. 각자 전쟁의 신 아슈르의 검과 부족을 책임지는 후계자의 길을 걷기 전의 일인데 그들에게는 그 추억만으로 피를 나눈 형제이상 더 진한 형제애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신분이 달라 하나는 전쟁의 신 아슈르의 검이 되었고, 하나는 부족을 책임지는 족장이 되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 때문에 신전을 지켜야 할 대사제가 이런 원정까지 참여했던 것이다. 두 사내는 서로의 손을 뜨겁게 움켜쥐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험험...” 장내의 침묵을 깨는 것은 료우였다. 둘의 해후도 중요하지만 현재 그들에게 닥친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일을 해결하고 싶은 료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슈리안 인들이 더 신경을 써야 할일을 오히려 료우가 더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료우는 이 일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아슈리안 부족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테미의 주민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는 파미르 왕국에 소속되어 있는 용병 길드 소속의 용병대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재는 아슈리안 부족에게 의뢰를 받았지만 말이다. 그가 이렇게 발 벗고 나설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료우는 다른 누구보다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케인과 누게르의 해후 장면을 보고 있다가 뒤쪽에서 료우가 헛기침을 하자 고개를 돌렸다. 케인도 반가움에 젖어 있다가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는 료우를 발견했다. “오랜만이군!” “그래!” 오른손을 살짝 올려 인사를 하던 료우는 케인의 오른쪽에 있던 4군의 수장 코라를 발견하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코라도 료우의 인사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는 들었다.” 료우가 코라와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케인의 목소리가 들었다. “무슨?” “부상자들을 책임지고 데려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모두를 대신해서 고맙게 생각한다.” 케인은 살짝 고개를 숙이는데 그의 표정은 다시 굳어져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갔다. 료우는 케인의 어조가 무척이나 냉기가 풀풀 풍긴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예전의 그 활발하고 엉뚱한 모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습니까?” 케인은 료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다시 누게르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는데 그에게만은 부드러운 음색이다. “그에게 물어보시죠!” 누게르는 부드러운 어조로 케인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료우를 쳐다보았다. 케인의 시선이 다시 료우에게 향해졌다. “내가 아니라 여기 있는 네오가 찾았지. 거의 이틀 밤을 꼬박 새워서 말이야. 그리고 공간 이동을 통해서 이곳까지 우리를 데려왔어.” 료우의 대답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4군의 수장인 코라를 통해 료우가 이끌고 있는 용병대에 대단한 마법사와 검사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다. 물론 대체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곳까지 찾았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케인과의 해후로 잠시 흐트러진 감정을 추스르던 누게르가 약간 심각한 어조로 그렇게 물었다. 네오를 통해 테미의 몰락 사실을 들으면서 스스로 믿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은 단지 떼를 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도 신전과 연락이 전혀 되지 않음에 테미가 파미르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 부족민이나 테미의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것은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누게르는 부족의 대족장인 케인에게 묻는 것이다. “알고 있으셨습니까?” “마법사라는 존재가 편하기는 하지만 듣지 말아야 할 소식을 너무도 빨리 알려주더군요.” “그럼 테미가 오크에게 점령당했다는 사실도 들으셨습니까?” “오크요?” 이번에는 누게르는 물론 료우와 네오가 놀랄 차례였다. “그건 모르셨군요.” 케인의 참담한 말에 누게르는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말했다. “오크가 테미를 점령했다는 말씀입니까?” “네... 우리를 배신한 그 찢어죽일 파미르 왕국의 군대를 저희보다 빨리 몰아냈더군요. 그리고는 그것들은 우리의 도시를 차지했습니다. 그것도 20만의 병력이 모여서 말입니다.” 케인의 말에 누게르는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기껏 케인을 비롯한 아슈리안 전사들을 찾았더니 이제는 오크라니 할말이 없었다. 솔직히 누게르가 이들을 찾은 이유는 인간과 리자드맨들이 동맹을 이룬 연합전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보다는 부족의 힘을 한데 모아 테미를 탈환하려는 목적이 컸다. 오크들이야 마물의 숲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계획이 물거품이 되 버린 것이다. 테미에 있는 오크 병력이 20만이라니! 아무리 기를 써도 그 정도의 병력을 단번에 몰아내기에는 너무 힘겨워 보였다. 때문에 누게르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그래서 결론은 내리셨습니까?” 누게르는 현 지휘부의 판단을 물었다. 누게르의 물음에 케인은 고개를 흔든다.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병력이라고는 겨우 2만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죽을힘을 다한다고 해도 20만을 몰아내기에는 버겁다는 것이 저희들의 결론입니다. 거기다가 부족민을 포함해서 테미의 주민들이 10만정도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들을 두고 저희들만 단독으로 행동하는 것도 힘들 듯 보입니다.” 난감한 상황을 예를 들어 설명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상황일 것이다. 케인의 설명을 들은 누게르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뒤에 가만히 서있던 료우를 바라보았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계획대로 해야겠지!” “그래야겠군.” 누게르는 착잡한 심정으로 료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결코 그럴 의도로 이들을 찾은 것이 아니지만 이제는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일 듯싶었다.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케인은 료우와 누게르의 대화를 듣고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케인의 물음에 누게르는 자신들이 마물의 숲에서 오크들을 물리치며 리자드맨 부족들과 맺은 동맹을 설명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누게르의 긴 설명을 들은 지휘부의 여러 지휘관들은 모두다 그것이 사실이냐고 누게르를 채근했다.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파격적인 동맹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누게르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안전을 위에 동맹을 맺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동맹은 같은 인간끼리 맺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없을 수는 없다. 그 특별한 경우는 그들이 공동의 적을 만났을 때 이다. 보통은 중간계를 침입한 마계의 마족이 나타나거나, 세력이 강해진 오크등의 몬스터들이 강성해 졌을 때 인간만으로 어쩌지 못할 때 인간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깔보았던 유사 종족에게 손을 내민다. 자신들 다음에는 너희들 차례라는 이유로 그들은 유사 종족을 꾀어서 동맹을 맺고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다면 유사 종족중 정령족에 가까운 엘프나 드워프와 동맹을 맺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매우 오랜 옛날 고대 문명에서나 있었던 일이었다. 현재처럼 인간 문명이 그 어떤 종족보다 우세했을 경우에는 다른 종족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엘프나 드워프도 아닌 리자드맨과 동맹을 맺었다니 그들이 놀랄 만 했다. 그것도 자신들과 수십, 수백 년을 목숨을 걸고 싸웠던 몬스터 부족과 동맹이라니...! “부족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테미가 불타오른 그날! 저는 제 자존심을 꺾었습니다. 그 상대가 누구든 저는 우리의 터전을 되찾을 수 있는데 필요한 존재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부족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누게르는 무척 담담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에 포함된 그의 열정은 격렬한 것이었다. 누게르의 말에 연합전선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몇몇 지휘관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대로 자폭을 하든지 아니면 살기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것이다. “그 동맹 우리도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케인의 말에 료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의외로 쉽게 케인이 연합전선에 들어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0 회] 날 짜 2004-04-16 ---------------------------------------------------------------------------- 30장. 파미르의 몰락 “지휘관이 모두 자리를 비웠으니 사태가 이런 지경까지 된 것 아닌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길길이 날뛰는 인물은 왕국의 최대 실권자인 르베르 공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적으로 떠오른 하르켄 공작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 책임을 묻고 있었다. 테미에서 아슈리안 부족을 몰아내고 도시를 점령한 공로로 공작의 작위를 차지한 자가 하르켄 공작이었다. 그런데 테미 점령군의 지휘관이라는 작자가 테미에 있지 않고 왕궁에서 축하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가 테미의 도시 네 곳을 전부 남하하는 오크들에게 빼앗겼다. 거기다가 테미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의 대부분을 오크들의 싸움에서 잃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르베르 공작이 길길이 날뛴 만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정적으로 떠오른 하르켄 공작을 팽하고 싶은 르베르 공작이었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세튼 영지로 도망친 6군단의 군단장 가나트 백작의 패전 소식은 왕국을 벌집 쑤셔놓은 듯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오?” 르베르 공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정적을 몰아세웠다. 르베르 공작의 말에 하르켄 공작은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점령군의 지휘관 둘이 전부 수도로 온 후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리 공작이 작위를 받은 기념으로 자신을 위한 축하 파티였기에 빠질 수 없다고 해도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듯 보였다. 그때 하르켄 공작을 구해준 것은 국왕이었다. 언제나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기로 소문난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르베르 공작의 거센 성토에 궁지에 몰린 하르켄 공작을 비호했다. “이번 일은 과인이 점령지로 가겠다는 공작을 붙잡아서 생긴 일이오. 그러니 그만 하시오. 르베르 공작!” 국왕의 말에 하르켄 공작을 몰아세우든 르베르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 앞에서 큰소리 한번 내보지 않았던 국왕이 이제는 대놓고 자신의 정적으로 떠오른 하르켄 공작을 비호하는 것이었다. 공작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르베르 공작은 바로 국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성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국왕 폐하! 그는 점령지의 총책임자입니다. 그가 공작의 작위를 얻은 명문이 무엇입니까? 테미의 점령 때문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테미를 얻은 지 채 5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도시 네 곳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거기다가 주둔하고 있던 5만 군대중 세튼 영지로 후퇴한 병력이 채 1만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려 4만의 군대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미 테미를 얻기 위해 싸운 전투에서 죽은 정규군까지 합친다면 왕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규군의 절반 이상이 그의 지휘 하에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왕국에 이토록 막대한 피해를 입힌 자를 폐하께서 비호하신다면 다른 자들의 불만을 살 것입니다. 이대로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누가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까?” 르베르 공작은 마지막에는 다그치듯이 국왕을 옥죄었다. 이미 국왕이 내세운 자신의 정적이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기에 르베르 공작은 명문이 있었다. 그 명문을 무시하고 국왕이 계속 하르켄 후작을 비호한다면 르베르 공작은 다음을 생각했다. 무능한 군주를 폐하고 현명한 군주를 세우면 되는 것이다. 이미 그에게는 허수아비 국왕이 되어줄 왕족은 충분히 있었고 명분 또한 그럴 듯했기 때문이다. “으음... 그럼 공작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마치 반대라도 한다면 즉시 자신을 내치고 다른 왕이라도 세울 듯이 보이는 르베르 공작의 반응에 국왕은 몸을 움츠리며 그의 의중을 물었다. 국왕의 물음에 르베르 공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그의 작위는 다시 반납해야 할줄 아옵니다. 공이 없으면 상도 없는 법! 하르켄 후작은 공작의 작위를 반납하고 그 죄를 물어 자택에 연금을 해야 옳을 듯싶습니다. 또한 카를 후작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우니 그에 합당한 처분을 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도 일단 자택에 연금한 후 합당한 조사를 받은 후 그 죄질에 따라 처리해야 하옵니다.” 르베르 공작의 말에 국왕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켄 후작을 공작으로 앉히면서 르베르 공작을 견제하려 했는데 그 일련의 계획들이 한꺼번에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폐하! 그리고 오크들에게 빼앗긴 테미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곳은 우리 왕국에게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신이 직접 테미를 구하겠나이다. 신에게 남은 정규군 병력을 내어주시면 제가 그 무도한 오크들을 몰아내고 폐하의 영토를 되찾겠습니다.” 르베르 공작은 자신의 정적인 하르켄 후작을 단번에 밀어내고,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테미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의 요구가 있자 한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왕국 제1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었다. 회색빛이 약간 섞인 금발의 젊은 백작은 르베르 공작이 국왕을 압박하며 정규군을 요구하자 르베르 공작의 요구를 반박했다. “르베르 공작 전하! 이미 본국의 7개 군단중 4, 6, 7군단이 테미에서 거의 와해가 되었나이다. 이제 왕국에 남은 군단이라고는 4개 군단이 고작이옵니다. 그중에 1군단은 수도를 방위하는 수도 방위군입니다. 이들을 빼낼 수는 없사옵니다. 나머지 2, 3, 5군단도 현재 남부 국경에 모두 투입된 실정입니다. 로크와 젤마 공국에 대한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그 병력을 빼내기도 불가능할 듯 보입니다. 원래 있던 4군단을 빼내어 5군단으로 교체하면서 벌써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잡음이 들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이대로 남부에 있는 3개 군단중 하나를 차출했다가는 왕국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여지가 있사옵니다.”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말에 르베르 공작은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남쪽에는 왕국을 호시탐탐 노리며 기회를 엿보는 제국의 공국이 두 개나 있었다. 섣불리 그곳에서 병력을 빼낸다면 남쪽 국경은 금세 지옥의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도 없는 르베르 공작이었다. 공작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더니 제프 샤브리엘 백작을 쳐다보며 말했다. “군단을 모두 빼내는 것도 아니고 3개 군단중 하나를 빼내겠다는 말이네. 물론 그만큼을 용병 길드에 부탁하여 채워야 할꺼야! 이대로 오크들에게 테미를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리고 나머지 병력은 내 영지의 병력과 용병들로 채울 것이니 더 이상의 반대는 하지 말게.” 르베르 공작은 제프 샤브리엘 백작에게 그렇게 못 박았다. 제프 샤브리엘 백작도 공작이 1개 군단을 빼내고 그 자리에 용병을 채워 넣는다고 하니 달리 반대할 명문이 없었다. “폐하! 신의 충성을 헤아리시고 신의 부탁을 들어주소서.” 르베르 공작은 충성을 운운하며 국왕을 압박했다. 르베르 공작의 요구에 국왕은 하르켄 후작의 일로 약점이 잡혔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비호세력으로 키워 놓으려던 하르켄 후작은 오크들 때문에 단번에 무너졌다. 공작의 작위를 받자마자 그날 다시 공작의 작위를 반납한 하르켄 후작은 파미르 역사에 기록될 듯싶었다. “푸르륵..” “워워...” 거친 숨을 몰아쉬며 투레질을 하는 애마의 고삐를 쥐고 부드럽게 토닥이던 르베르 공작은 명마다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애마가 대견스러운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좌우에 위치하며 따라오는 몇몇 지휘관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투르발 경!” “예... 공작 전하!” 황금빛의 중갑주를 입고 있는 늙은 장군 하나가 공작의 옆으로 말을 몰고 다가왔다. 그는 하얀 수염이 멋들어지게 자란 늙은 장군이었다. “아직 멀었소?” “거의 도착했사옵니다.” “흐음... 그렇소! 아참 그런데 루이벤과 샤니언 영지의 군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오!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오?” “네! 전하... 그들은 아마도 내일쯤에나 도착할 것 같습니다. 워낙 거리도 멀고 출발도 늦은 듯 보입니다. 전하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며 도착해서 죄를 달게 받겠다고 전령을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거리가 가장 먼 곳이니 나도 이해하오. 그런데 오크들의 전력은 파악이 되었소?” 르베르 공작의 물음에 투르발 듀 레모네이트 후작의 대답이 들렸다. “네! 아직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세튼으로 후퇴했던 제 6군단의 군단장 가나트 백작의 말을 빌리자면 오크들의 숫자가 대략 10만은 족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는 정보입니다.” “10만이라! 우리 부대와 루이벤과 샤니언 영지의 군대까지 합치면 어느 정도나 되오?” “정규군 제 3군단 병력이 모두 3만이고 전하의 영지에서 온 영지군을 합치면 6만 이옵니다. 거기다가 세튼에 있는 제 6군단의 병력 1만과 각 영지에서 보내온 병력들을 모두 합치면 총 8만이옵니다. 용병 길드에서 고용한 30여개 용병단 1만까지 더하면 저희는 총 9만의 병력을 가용할 수 있사옵니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충분히 오크들을 상대하고 테미를 수복할 듯 보입니다.” 투르발 후작의 대답에 르베르 공작은 만족하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짓고는 다시 테미를 향해 말을 몰았다. 르베르 공작이 이끄는 파미르 군이 테미의 4대 도시중 하나인 르블시 근처의 르블 평원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르블 시와는 대략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는 르블 평원은 테미의 냉혹한 환경의 탓인지 평원이라고 하지만 거의 황토의 대지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친 곳으로 바람이라도 한바탕 불면 누런 먼지에 눈을 감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파미르 군대가 르블 평원에 도착할 무렵 그들은 끝도 없이 길게 펼쳐진 오크의 대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진영을 갖추었는지 몇 개의 부대 단위로 늘어서 있는 오크의 진영은 쉽게 눈으로 확인해도 도대체 그 병력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르블 평원의 거의 절반은 차지한 듯 보이는 오크의 군세에 평원으로 진입하던 파미르 군대는 지금까지 거침없이 걸었던 발걸음을 단번에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오크의 대군은 이미 파미르의 군대가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해보였다. 화려한 승리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앞으로 나섰던 선두의 르베르 공작은 르블 평원에 도착하자마자 얼굴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미개한 오크 따위의 몬스터들이 마치 자신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평원 전체를 차지하고 포진한 것도 모자라서 그 병력의 수효가 대체 얼마인지 짐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투르발 후작이 자신에게 설명했던 10만의 병력보다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병력이 훨씬 많아 보였다. 르베르 공작의 고개는 심하게 뒤로 돌아갔다. “투르발 경! 저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르베르 공작은 심한 질책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데 공작의 물음에 투르발 후작도 당혹스럽다는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작의 물음에 대답하기 보다는 뒤쪽에서 따라오는 제 6군단장 가나트 백작을 쳐다보았다. 투르발 후작의 시선을 받은 가나트 백작은 역시 투르발 후작의 표정과 비슷했지만 자신이 직접 설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말을 몰고 와서 공작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전하! 분명 저희가 놈들과 싸웠을 때는 10만 정도의 숫자였습니다.” “그럼 그동안 저들이 요술이라도 부렸다는 말이오. 거의 두 배는 되어 보이지 않소?” 신경질적인 르베르 공작의 물음에 가나트 백작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마도 저 오크 놈들이 원군을 보낸 모양입니다.” 옆에 있던 투르발 후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군이라니...? 저 미개한 오크 따위가 그런 개념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도대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원...!” 혀를 차는 르베르 공작의 대꾸에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있던 가나트 백작이 우물쭈물 하더니 한마디 던졌다. “전하! 저들을 보통의 오크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되옵니다.” “흥... 보통의 오크가 아니다? 그럼 무슨 대단한 오크라도 된다는 소리요?” 르베르 공작은 오크 따위에게 패한 가나트 백작에 대해 이미 안 좋은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그에게 아직 1만의 병력이 남았기에 휘하에 두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수도로 곧장 돌려보내 그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나트 백작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변명처럼 들리는 지라 공작은 비꼬는 말을 한마디 던진 것이다. 가나트 백작은 공작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었다. “저희가 겪은 놈들은 거의 정규군과 비슷한 위계질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저희가 그동안 상대했던 오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오크들도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덩치와 장비를 보더라도 일반 정규군에 못지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오크뿐만 아니라 오우거나 트롤의 부대도 보였습니다.” “오우거와 트롤의 부대? 경은 지금 나하고 농담 따먹기라도 하자는 소리요? 오크 따위가 어떻게 자신보다 덩치 큰 오우거나 트롤을 부릴 수 있다는 말이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공작은 화를 냈다. 정규군과 비슷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오크에 오우거와 트롤이라니...!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에 르베르 공작의 언성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이미 두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었기에 가나트 백작은 공작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전하! 저뿐만 아니라 6군단 전체가 본 사실입니다. 저기에 있는 오크들은 흡사 군대를 연상케 합니다. 거기다가 오우거나 트롤등의 대형 몬스터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찌 전하께 거짓 증언을 하겠습니까?” 가나트 백작의 호소에 르베르 공작은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쉽게 들통 날 거짓말을 자신에게 했다고는 이해가 되지 않자 잠시 신음을 토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오크들은 보통의 오크들이 아니고 오크의 군대라는 소리였다. 불길한 예감이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르베르 공작이었다. 파미르 군대는 급하게 진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미 적이 진영을 짜 놓은 채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급해 지는 파미르 군이었다. 그에 따라 그들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져 있는 상황이었다. “둥둥둥둥...” 평원 전체를 울리는 북소리가 오크의 진형에서 들렸다. 흡사 거대한 북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이어지고 죽 늘어서있던 오크들의 진형이 흡사 거대한 물결이 움직이는 것처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 신호이옵니다. 전하!” 이미 한번 오크의 부대와 전투를 경험했던 가나트 백작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뭐라고?” 급하게 도착해서 막 진영을 갖추는 상황이라 아직까지 혼란스러운 파미르 진영이었기 때문에 가나트 백작의 말을 들은 르베르 공작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영이라고 볼 수 없었기에 공작은 전투 지휘관인 투르발 후작을 쳐다보았다. 공작의 시선을 받은 투르발 후작은 등 뒤의 여러 지휘관을 둘러보며 급하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스베인 경!” “네! 후작 각하!” 정규군 제 3군단의 군단장인 스베인 라이어른 백작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40대 후반의 중년 백작으로 화려한 중장갑으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경의 3군단은 중앙을 맡도록 하시오. 우리 군에서 경의 부대가 가장 정예화 된 병사들이니 경의 군대를 믿겠소!” “염려놓으십시오. 오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습니다.” 자신감 가득한 스베인 백작의 말에 투르발 후작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로퍼엘 경!” “예! 각하!” “경은 전하의 영지군중 2만을 이끌고 우측의 적을 막으시오!” “네! 맡겨만 주십시오!” “가나트 경!” “예!” “경은 경의 6군단 병력 1만과 용병들 1만을 데리고 왼쪽의 적을 상대하시오!” “알겠습니다.” “루진 경!” “예! 후작 각하!” “경은 남은 2만의 병력중 1만을 지휘하여 본진 방어에 주력하시오. 나머지 병력은 내가 직접 지휘하겠소!” “예,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각 상급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내린 투르발 후작은 고개를 돌려 르베르 공작을 쳐다보았다. 전쟁에 있어 투르발 후작은 역전의 맹장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르베르 공작의 경우 정치적인 역량은 어떨지 몰라도 군사적인 역량은 부족한 편이라 그는 투르발 후작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투르발 후작의 명령으로 재빠르게 진영을 갖추는 파미르 군을 오크의 군대가 그냥 두고 볼 까닭이 없었다. “둥둥둥...” 돌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오크의 진영에서 급하게 울려 퍼졌다. 아무리 정예군이라 해도 10만에 가까운 부대가 제 진영을 짜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오크의 수뇌부가 놓칠 까닭이 없었다. 오크의 본진은 부대의 돌격을 독려했다. “쿠오오옷...” “쿠루룩...” 함성을 지르며 파미르 진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격을 하는 오크의 군대는 1개 군단 10만의 병력을 상회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현재 테미에 주둔해 있는 오크의 부대는 오크의 왕국 오이라트에서 남부로 내려 보낸 5개 군단중 2개 군단으로 제 3군단과 제 5군단이었다. 제 3군단장은 남부 원정군 총사령관 적염의 공작 케블의 동생이자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크메루스라는 그레이트 오크가 지휘관 이었고, 제 5군단은 아슈리안의 인간 원정군 4군을 혹독하게 몰아 부친 크루의 군대였다. 두 개의 군단이 합친 테미의 오크 군대는 무척이나 많은 숫자로 파미르 군을 향해 흉성을 드러내며 빠른 속도로 전진을 하고 있었다. “크룩...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이번에도 인간들을 놓친다면 내 가만두지 않겠다. 내 말을 똑똑히 명심해라.” 군단장이라는 엄청난 직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5군단장 크루는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마물의 숲에서 휘하 10만의 병력으로 적을 둘러싸고 포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위망이 뚫리고 많은 수의 친위대가 료우의 용병대에 의해 죽으면서 크루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한번도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 크루는 그 때문에 인간만 보면 이를 갈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어떻게 해서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복수까지 해야 했던 크루의 입장에서는 테미에서 파미르의 군대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무너진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이 직접 군대의 선두에 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군단장이 이렇게 직접 선두에 서자 오크 병사들은 독려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일반 오크 병사들은 군단장의 용맹에 사기가 고양되어 물불 가리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무식하게 달려드는군.” “네?” “놈들 말이다.” “아! 네...” 파미르 정규군 3군단의 군단장 스베인 백작은 아무런 전술도 없이 그저 돌격을 되풀이하는 오크들의 전쟁 방법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부관을 향해 말했다. “궁수부대를 준비하도록 해라!” “네!” “훗... 놈들의 용기에 걸맞은 대접을 해줘야겠지.” 스베인 백작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죽을힘을 다해 달려오는 오크들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장전하라!” 석궁으로 무장한 궁수부대의 수효는 모두 합쳐 3천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쿼렐을 석궁에 장전한 채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준비됐으면 일제히 쏴라!” 중앙을 수비하는 파미르 제 3군단의 궁수부대는 명령이 떨어지자 무식하게 정면으로 뚫고 들어오려는 오크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쐐애액...” “슈욱 슉...” 빽빽하게 하늘을 가득 메운 화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오크들을 향해 무자비할 정도로 쏟아지고 있었다. 흡사 하늘에서 화살로 이루어진 장대비가 뿌려내는 듯 평원을 향해 달려오는 오크들은 파미르 궁수부대가 쏘아낸 화살 공격에 대책 없이 피를 뿌리고 있었다. 방패를 들어 화살 공격을 막아내거나 혹은 대열을 분산시켜 최대한의 피해를 줄여보려는 시도도 없이 그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무식하게 전진만을 고집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무자비한 화살 공격에도 오크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워낙에 호전적인 종족이라 그런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옆에서 동료가 고꾸라지면 더욱 힘을 내는 종족이 오크였고 그것이 그들의 호전성이었다. 궁수부대의 화살 공격에 수천에 다다르는 오크들이 바닥을 굴렀지만 파미르 군대를 향해 돌격하는 10만 이상의 오크들의 발걸음은 막아내지는 못했다. “쿠루룩... 공격해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쿠아앗... 차창!” 파미르 궁수부대의 화살 공격을 뚫고 들어온 선두의 오크는 호통을 내지르며 죽을힘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오크의 이 같은 공격에 파미르 병사는 이를 악물며 칼을 휘두르고는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병사는 오크의 약력에 손이 저린 듯 슬쩍 뒤로 물러서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쿠룩... 죽어라!” 오크 병사는 파미르 병사가 슬쩍 뒤로 물러서자 승리를 예감했는지 이를 드러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신의 칼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이얏...” 파미르 병사는 오크 병사의 재공격에 다시 힘을 내어 막아낸다. 하지만 그는 운이 없었는지 주위로 몰려드는 다른 오크의 도끼에 어깨를 찍히면서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쿠룩...” 사방은 온통 난장판 이었다. 이미 오크 군대와 부딪친 파미르 정규군 3군단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오크들로 인해 난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에 숫자가 많은 오크들이라 그런지 3군단의 병력들은 일대 일이 아니 일대 이의 상황을 맞이하는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좌측이 뚫린다. 좌측을 막아라!” 3군단의 군단장 스베인 백작은 군대의 뒤편에서 전체적인 국면을 주시하다 적의 병력이 갈수록 많아지고 좌측 한부분이 급격히 무너지자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아직까지 그의 3군단은 오크 군대를 잘 막아내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오크 군대의 숫자에 백작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그에 더해 그의 목소리도 더욱 갈라지고 있었다. “막아라. 몸을 던져서라도 놈들을 막아라! 뚫리며 안 된다.” 파미르 군대의 우측을 담당하는 로퍼엘 백작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면서 르베르 공작의 영지군 2만을 독려하고 있었다. 정규군이 아닌 일반 영지의 병사들이라 그 훈련양이 적은 것은 당연했다. 아무리 르베르 공작령의 병사들이라고 해도 정규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수많은 오크들의 공격에 당황하는 병사들을 격려하면서 오크들의 저돌적인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처음에는 그나마 적의 병력이 비슷하게 부딪쳐서 어느 정도 막아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도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적의 병력에 전세는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무기를 놓고 도망치는 병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말고 적을 막아라! 도망치는 자는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칼을 직접 뽑아들고는 도망치는 병사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로퍼엘 백작이었지만 죽음 앞에서 그의 목소리나 협박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이미 한번 구멍이 뚫린 제방은 그 힘을 다했는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무기를 던져버리고 도망치는 병사들이 속출하자 한 병사의 목을 자른 로퍼엘 백작의 붉게 물든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고 그는 처참하게 유린되는 병사들을 보면서 패배를 직감했다. “으아아악...” 가나트 백작은 처음부터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싸움에 임하고 잇는 자신의 병사들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다. 몇몇 나이 어린 병사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탈색되어 있는데 보기만 해도 그들이 얼마나 겁을 집어먹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가나트 백작은 그들의 겁먹은 모습을 보면서 지금 자신들을 향해 몰려드는 오크들의 무서움에 관한 기억을 더듬었다. 불과 얼마 전 아슈리안 부족과의 처절한 전투가 있은 후 테미를 점령한 파미르 군대는 총지휘관인 하르켄 후작과 카를 후작이 갑자기 수도로 떠나면서 자리를 비우는 탓에 지휘권에 큰 변동을 겪었다. 6군단의 군단장인 가나트 백작과 아슈리안 부족과의 전투에서 거의 대부분의 병력을 소진하였지만 멀쩡한 4군단의 군단장 사이드리안 백작은 각자 동등한 작위와 직위를 갖고 있어서 서로가 최고 지휘자라고 주장했다. 하르켄 후작이나 카를 후작이 후임 지휘관을 정하지 않은 채 덜컥 수도로 날아가 버린 탓에 벌어진 일인데 이 때문에 두 백작의 사이는 급속도로 틀어졌다. 사이가 벌어진 그들은 끝내 자신의 지휘를 받는 병력을 이끌고 서로 합의하에 네 개의 도시중 각자 두 곳의 도시에 자신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방법을 채택했다. 때문에 가나트 백작은 자신의 3군단을 둘로 쪼개어 르블과 하르엠에 주둔시켰고, 사이드리안 백작은 남은 병력으로 나머지 북쪽의 두 도시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각자 두 곳의 도시를 맡고 틀어진 사이 때문에 연락을 끊었던 두 지휘관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그들이 각자 도시를 맡은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갑자기 북쪽에서 물밑 듯이 나타난 오크의 대군은 테미 최북단 도시인 헬하크를 단 한시간만에 쓸어버렸다. 헬하크에 주둔했던 1만의 파미르 군은 반항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밀렸고 오크 군대는 거침없이 다른 도시를 쓸었다. 하르엠에서 하르켄 후작이나 카를 후작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가나트 백작이 오크를 발견한 것은 사이드리안 백작이 북쪽의 두 도시를 모두 잃고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가나트 백작은 기겁을 해서 하르엠에 주둔하고 있던 2만 병력을 모아 오크들을 상대하려 했지만 북쪽에서 나타난 오크 군대는 예전 자신이 상대했던 북쪽 오크 부족의 미개한 오크들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그 차원이 달랐다. 척보아도 훈련받은 병사들임을 알 수 있게 할 만큼 질서정연한 오크들의 모습은 그들이 정규군임을 느끼게 했다. 비록 인간의 장비와 비교해서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들은 장갑과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가나트 백작과 그의 3군단은 쉴 새 없이 전후좌우 사방에서 쏟아지는 병력을 맞이하면서 지옥을 경험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몰려오는 오크들의 인해전술은 그 어떠한 전술보다 두렵다는 것을 가나트 백작은 오크와의 싸움에서 여실히 느꼈다. 무려 아군 숫자의 3배 이상이 밀려오는데 아무리 정예화 된 군인이라고 해도 적도 비슷한 훈련을 받은 병사라고 한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더해 자신들이 지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나중에 투입한 회색 머리의 오크들은 일반 오크보다 덩치도 크고, 장비도 뛰어났으며, 뛰어난 무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벅찬 상태인데 덩치가 자신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오우거와 트롤까지 가세하니 그 괴력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그 때문에 그와 그의 부대는 수많은 동료들을 남겨둔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가나트 백작은 그 기억이 떠오르자 몸서리를 쳤다. 병사들이 왜 두려워하는지 그도 애써 떠올리려고 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르자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누군가의 비명이 터졌다. “으아악...”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오크 병사를 보면서 한 나이 어린 병사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 것이다. 그는 저번 전투에서 오크들에게 죽을 뻔한 병사였는데 간신히 참았던 두려움이 다시 터졌다. 나이 어린 병사는 무기를 버린 채 뒤쪽으로 도망쳤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다시 몇몇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며 전선에서 이탈했다. “도망치지 마라! 누가 도망을 치느냐? 싸워라!” 하지만 소리를 지르는 가나트 백작의 목소리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도 오크에 대한 두려움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중앙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이 무너지자 파미르 군대의 진영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끝임 없이 몰려오는 오크의 군대는 7만에 다다르는 파미르 군대를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전하! 대패입니다.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병력을 물려야겠습니다.” 이미 패배를 직감한 크루발 후작은 싸운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지없이 무너지는 아군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그였기에 그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모든 병력이 전멸할지 몰랐기에 크루발 후작은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는 르베르 공작에게 그렇게 청했다. 후작의 말에 르베르 공작 또한 이미 전체적인 전세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아군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르베르 공작은 분한 얼굴로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오크 놈들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 한마디 던지는 르베르 공작의 말에 투르발 후작의 고개가 떨어졌다. “전... 전하!” 전쟁터에 직접 나온 르베르 공작에게 패배를 보여준 투르발 후작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전세는 굳어졌기에 그는 창피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고는 물러났다. “뿌우웅... 뿌우웅...” 긴 나팔 소리가 파미르 본진에서 급하게 울려 퍼졌다. 이미 수많은 오크들의 인해전술에 패배를 직감했던 파미르 병사들은 본진에서 후퇴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자 기다렸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기 시작했다. 도망치는데 방해가 되는 물건이라면 벗어 던지면서까지 달아나는 파미르 군이었다. 이미 그들의 손에는 무기가 쥐어지지 않았고 갑옷도 달리는데 방해가 된다면 벗어 버렸다. 파미르 군대의 후퇴에 오크 군대는 사기가 고조되었다. “쿠루룩... 놈들이 도망친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아라!” “죽여라. 쿠룩...” 기세가 하늘 끝까지 오른 오크들은 도망치는 파미르 군대를 쫓아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했다. 선두에서 밀려 본진까지 도망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파미르 군대는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뒤쪽으로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미르 군대가 지나온 평원은 온통 그들의 피와 시체로 뒤덮였다. 붉은 선혈은 내를 이루고 찢기진 시체는 평원을 가득 메웠다. 르블 평원에서 쫓겨 후퇴를 거듭한 파미르 군대는 거의 30킬로나 멀리 떨어진 하무엔 성에 도착해서야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9만의 군대중 무려 절반에 가까운 4만의 병력을 잃고서야 오크들의 손에서 겨우 빠져나온 파미르 군의 처참한 패배였다. --------------------------------------------------------------------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아마 주말에는 글을 올리지 못할듯 하네요. 그래서 한꺼번에 올립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1 회] 날 짜 2004-04-20 ---------------------------------------------------------------------------- 30장. 파미르의 몰락 “뭐라고? 패했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국왕은 놀란 얼굴로 큰소리를 물었다. 신하가 전해온 테미의 소식이 설마하니 패전소식이라는 것에 국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공작이 직접 군대를 끌고 갔는데 패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 후 당황해서 발을 동동 구르던 국왕이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은 마치 고소하다는 것과 기쁨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인데 국왕은 지금 테미를 탈환하기위해 큰소리를 치며 왕궁을 나갔던 르베르 공작을 떠올리고 있었다. 말이 신하이지 르베르 공작은 자신보다 더 큰 입김을 불며 권력을 움켜쥔 채 왕국을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국왕의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자신이 직접 르베르 공작을 견제하려고 하르켄 후작을 키우려했겠는가? 국왕은 하르켄 후작이 오크 군대에 의해 테미를 빼앗기는 실책을 하면서 공작의 자리에서 물러난 사건에 대해 공작의 힘과 자신의 무능력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손수 키우려 했던 하르켄 후작이었기에 국왕은 어떻게 해서든 하르켄 후작만큼은 공작의 자리에 유임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르베르 공작의 입김에 자신의 말이 씨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국왕은 자신의 무능력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분을 삭였다. 국왕은 이 사건으로 어떻게 해서든 공작의 세력을 꺾고 자신의 왕국을 되찾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그런데 자신에게 모멸감을 심어주었던 공작이 덜컥 패전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국왕은 이 패전 소식을 듣고는 그 자존심 강한 공작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저절로 나오는 웃음 때문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억지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어야 했다. “폐하!” “오! 후작인가? 그렇지 않아도 그대를 찾고 있었소!” “테미의 패전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후후... 그렇소!” 테미의 패전 소식에 급하게 국왕의 집무실로 달려온 하르켄 후작은 국왕이 얼굴에 미소가 묻어 있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 표정이 이상하오?” “예... 송구하옵니다. 폐하!” “후후... 그 교활한 공작이 실수를 하였기에 기뻐서 그러오?” “예?” 놀란 눈으로 국왕을 쳐다보는 하르켄 후작이었다. “안 그렇소? 그 자존심 강하던 공작의 표정이 지금 어떠할지 생각만 해도 짐은 기분이 무척이나 흡족하구려!” 국왕의 어이없는 말에 하르켄 후작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노회한 하르켄 후작은 국왕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산을 하는 듯 했다. “폐하! 공작을 이 기회에 지우려 하시옵니까?” “지운다. 그게 가능하겠소? 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겠소. 저번에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구려!” 국왕은 정말로 분에 못이긴 듯 치를 떨었다. 바르르 몸을 떠는 국왕의 행동에 하르켄 후작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어렸다. “폐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이 기회에 공작을 지워버리겠습니다.” “그것이 정말이오. 후작! 정말 그럴 수 있겠소!” 자리에 앉아있다 하르켄 후작의 말에 하르켄 후작이 부복하고 있는 자리까지 달려 나온 국왕은 눈을 빛내며 그렇게 물었다. 그의 표정은 절실해보였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번에 공작이 데려간 병력은 정규군의 숫자만 해도 무려 4만이옵니다. 그 책임만 물으셔도 충분히 공작의 죄를 추궁하실 수 있사옵니다.” 하르켄 후작의 말에 국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흐음... 그렇긴 하지만 공작의 세력 때문에 힘들 것이오. 만약 내가 공작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공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공작이 데리고 있는 병력이 무려 5만이 넘소. 거기다가 공작을 추종하는 귀족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으니 만약 내가 공작을 누르려고 한다면 공작은 반란이라도 일으킬 것이오. 정규군의 대부분이 남쪽에 묶여있는 상황에서 공작의 세력을 누를 수 있을지 걱정이구려!” 국왕의 시름에 잠긴 설명에 하르켄 후작은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폐하!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이번에 공작의 주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공작 휘하의 병사가 무려 3만이나 동원되었다가 2만 가까이 잃었다고 하옵니다. 거기다가 공작의 추종세력이라 할 수 있는 지방 영주의 병사들도 상당수 피해를 입었사옵니다. 이것은 공작의 세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말이옵니다. 거기다가 공작은 현재 하무엔 성에서 오크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발을 뺄 수도 없사옵니다. 이 기회에 공작의 세력을 누르고 공작을 추종하는 귀족들을 처단한다면 공작을 충분히 꺾을 수 있사옵니다. 어쩌면 오크들이 테미로 침공한 이 사건이 저희에게는 하늘이 내려온 기회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하르켄 후작의 설명에 국왕의 근심어린 표정이 싹 사라졌다. 하르켄 후작의 말을 들으니 정말로 자신을 옥죄던 르베르 공작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국왕이었다. 국왕은 바로 하르켄 후작의 두 손을 붙잡으며 간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경뿐이 없소이다. 경이 이 못난 국왕을 도와주시오. 내 다시 경을 공작의 자리에 앉히겠소. 경이 직접 수도의 근위군을 이끌고 공작의 추종세력을 꺾고 공작을 직접 제거하도록 하시오. 내 경에게 근위군의 지휘권을 넘겨주겠소!” 국왕의 말에 하르켄 후작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 신 하르켄... 폐하의 명을 기꺼이 따르겠사옵니다. 제가 직접 저 무도한 공작의 머리를 베어 폐하의 근심을 덜어 드리겠나이다.” 하르켄 후작의 충성어린 말에 국왕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나에게는 경밖에 없다며 손을 더욱 꼭 쥐었다. 그러면서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왕국의 실세라 할 수 있는 르베르 공작만 제거할 수 있다면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예전까지는 르베르 공작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나라를 만들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테미의 패전소식과 함께 국왕의 집무에서는 르베르 공작의 제거가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왕과 하르켄 후작은 자신들이 결심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채 벌여보지도 못하고 다음 날 엄청난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회의실은 무척이나 어수선했다. 국왕을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되어 있는 귀족들은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루폰 두 라미르 1세 때문에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회의장에 모여든 탓에 피곤함에 하품을 해대는 이도 있고, 테미에서 르베르 공작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패했다는 소식에 걱정스런 얼굴로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도 보였다. 그런 귀족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아직까지 회의실에 도착하지 않은 하르켄 후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르베르 공작에 대한 제거를 결심한 국왕은 자신의 수족을 자처하는 하르켄 후작이 도착하면 그를 공작으로 다시 올리고, 테미에서 패전한 르베르 공작에게 패전의 책임을 물어 그의 작위를 박탈하려고 결심했다. 그 때문에 초조하게 하르켄 후작을 기다리던 국왕은 갑작스럽게 회의실의 문을 벌컥 열며 급하게 뛰어오는 기사의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헉헉...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숨을 헐떡이며 무례하게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 앞까지 달려온 기사의 행동에 국왕의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무어냐? 무슨 일이기에 이리도 무례 하느냐?”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전쟁이옵니다. 오크들이 북쪽에서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하였다고 하옵니다. 벌써 북쪽 4개의 도시가 불타고 수많은 백성들이 오크들의 손에 죽었다고 하옵니다.” 기사의 보고에 짜증 섞인 눈길로 보고를 하는 기사를 노려보던 국왕의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뭐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 상태로 보고를 한 기사를 쳐다보았다. 회의장에 있던 귀족들도 국왕의 이 같은 태도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아침부터 회의장에 모여 있는 상태에서 졸린 눈을 비비고 있다고 기사가 전해준 전쟁 소식에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정말이오?” “말도 안돼는...!” 순식간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북쪽의 전쟁 소식은 전혀 뜻밖의 소식이라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혼란스럽게 웅성거렸다.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오크의 침공 소식을 전한 기사의 보고에 혹시 그가 르베르 공작 측의 간세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래서 다시 그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기사를 향해 물었다. “그것이 정녕 사실이더냐?” 놀란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국왕의 말에 소식을 전한 기사는 고개를 숙이며 엎드려 입을 열었다. “예, 폐하! 믿고 싶지는 않지만 정녕 사실이옵니다. 하르를 주축으로 북쪽 4개 도시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고 하옵니다. 북쪽 마물의 숲으로부터 새카맣게 몰려온 오크들에 의해 도시는 불타고 도시를 지키던 군대는 모두 전멸을 했다는 소식이옵니다. 하르에서 북쪽 마물의 숲을 감시하던 정규군과 용병들은 모조리 오크들의 손에 죽었고, 하르에 있는 용병길드는 잿더미만 남았다고 하옵니다. 오크들은 무인지경으로 하르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네 개의 도시를 점령하고 불태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놈들은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사온데 지방 영지 군들은 오크들을 막기 보다는 도망치기에 급급하다고 하옵니다. 이미 수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오크들의 손에 죽었사옵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북쪽 들판은 온통 병사들과 백성들의 시체로 뒤덮여 있다고 하옵니다. 이런 속도로 놈들이 남하한다면 왕궁까지 오는 시간도 채 5일이면 도착할 듯 보입니다.” 부복한 채 입술을 깨물며 기사가 전해주는 오크들의 침공 소식에 루폰 루 라미르 1세는 놀람이 더해 이제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오크들이 왕국을 목표로 쳐들어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고 설마하니 자신의 군대가 막아내지 못하리라고는 꿈에서라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왕은 테미를 오크들에게 빼앗기고 테미를 되찾겠다고 나갔던 공작이 도리어 오크들에게 패했을 때 그 콧대 높은 공작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하는 생각에 스스로 기뻐했고, 이 기회에 공작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테미에서 자신의 군대를 두 번씩이나 이긴 오크에 대한 것들은 모두 까맣게 잊어버린 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두 번씩이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군대에게 대승을 거둔 오크들에 대한 것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공작을 처리할 생각만으로 온 신경을 쏟았던 루폰 국왕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오크의 침공 소식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 얼마나 두렵고, 엄청난 소식인가?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들이 온통 오크들에 의해 불바다로 변하고 자신의 백성들이 들판의 시체로 수북이 쌓여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 예전과 다르게 약탈이 아닌 자신의 왕국을 목표로 오크들이 침공을 시작한 것이다.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전신의 힘이 모조리 빠졌나갔는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축 늘어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그 미개한 오크들이 쳐들어오다니...” “뭣들 하는 것이오. 빨리 군대를 파견해야 하지 않겠소?” “어디서 말이오?” 사방에서 오크의 침공 소식에 귀족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며 떠들었다. 그때 회의실 안으로 하르켄 후작이 급하게 들어왔다. 국왕의 회의 소집에 조금 늦었던 하르켄 후작은 북쪽의 소식을 들은 모양인지 약간 어두운 안색으로 국왕에게 다가갔다. “폐하!” 걱정스런 어조로 부르는 하르켄 후작의 말에 국왕은 의자에 기대었던 몸을 간신히 일으키고는 하르켄 후작을 향해 말했다. “하르켄 경! 경도 이 일을 알고 있소?” “네... 폐하!” “하르켄 경!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설마하니 오크들이 약탈이 아닌 본국을 침공하리라고는 여기 있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소. 내가 들으니 놈들의 숫자가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하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국왕의 근심어린 물음에 하르켄 후작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허허... 말 좀 해보시오.” 국왕의 재촉에 하르켄 후작의 입을 열렸다. “폐하! 현재 본국 병력은 테미에서 아슈리안 인들과 싸우면서 5만을 잃었고,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그 배에 해당하는 병력을 잃었사옵니다. 거의 본국 병력의 절반이 넘는 병력이옵니다. 남은 병력이라고는 남쪽 국경을 방어하는 군대가 고작이옵니다. 거기다가 그나마 르베르 공작이 지휘하는 5만 가량의 군대도 하무엔 성에서 테미의 오크들에게 발목을 잡혀있는 상황이라 이곳으로 오지도 못하옵니다.” “그러기에 묻는 것 아니오?” 답답하다는 듯 국왕의 물음이 이어졌다. “도움을 청해야 하옵니다.” “도움? 누구에게 말이오?” 국왕은 하르켄 후작의 대답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2 회] 날 짜 2004-04-24 ---------------------------------------------------------------------------- 30장. 파미르의 몰락 “제국이옵니다.” “제국?” 놀란 목소리로 외치며 되묻는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화등잔 만하게 커진 두 눈으로 하르켄 후작을 응시하는데 후작이 제국이라고 말하는 소리에 핏기가 싹 사라진 얼굴이었다. 루폰 드 라미르 1세는 하르켄 후작의 말에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뻐금거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국이라니요! 후작께서는 지금 우리 왕국을 제국의 손에 고스란히 받치려 하십니까?” 국왕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선 사내가 있었다. 어디서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회의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호통을 치며 나서는 이는 왕국 제 1 근위 기사단의 단장인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었다. 왕국의 제 1 기사이자 국왕파의 핵심 인물중 하나인 이 열혈 백작은 하르켄 후작의 말에 대노하고 있었다.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이 같은 반응에 하르켄 후작은 고개를 쓰윽 돌리더니 그를 응시하고는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하르를 포함해서 벌써 4개의 북방 도시가 오크들의 손에 무너졌고 지금도 하나, 둘 차례대로 북쪽 도시들이 저 무도한 오크들의 손에 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오?” “...”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을 물었기에 제프 샤브리엘 백작은 하르켄 후작의 질문에 대답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르켄 후작은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 자신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별반 기대도 하지 않은 듯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경은 무턱대고 안 된다고 반대를 하지만 그렇다면 경은 이것 말고 더 좋은 대책이 있소이까? 있다면 말씀해 보시오!” 냉정한 어조로 그렇게 묻는 하르켄 후작의 질문에 제프 샤브리엘 백작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질끈 눈을 감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그의 물음처럼 현재 왕국의 상황은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고 특별히 이 난국을 타개할 대책이라고는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왕국의 사정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1, 2, 3, 4, 5, 6, 7 군단으로 대변되는 왕국의 정규 병력은 테미와 관련해서 절반 이상이 사라졌고, 남아있는 남쪽의 정규군 병력은 제국의 공국인 로크와 젤마 공국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그나마 공작이 이끌고 간 병력들은 테미에서 오크들에게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포악한 제국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었다. 제국에게 손을 내민다는 소리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두려워하고, 싸웠던 제국에게 목숨을 받치고 지키고 있던 왕국을 고스란히 갖다 바치겠다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백작이었다. 그래서 백작은 하르켄 후작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었다.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이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개하고 있는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표정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하르켄 후작은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경의 걱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저 미개한 오크들에게 도시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죽어나가는데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지 않소? 저들의 기세로 미루어 이곳 왕성도 결코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대로 오크들의 손에 죽자는 소리는 아니지 않소? 그렇다면 차라리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여 왕국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백번 나을 것이요.” 강력한 어조로 내뱉는 하르켄 후작은 말은 제프 샤브리엘 백작에게 하고 있지만 이제 그의 시선은 좌중의 뭇 귀족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몇몇 귀족들의 고개가 자신들도 모르게 끄덕여지고 있었다. 그들도 저 미개한 오크 따위에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으음...” 참담한 표정으로 한쪽에서 하르켄 후작의 주장을 듣는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설마하니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딴 생각만 했던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다. 그리고 그토록 믿었던 하르켄 후작의 주장에 국왕은 배신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하르켄 후작의 주장은 현 상황에서 가장 냉정한 판단일지 몰랐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도 배탈한번 나지 않는 제국이었다. 지금까지의 전례상 제국에게 손을 내밀고 제대로 왕국을 보존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것으로 왕국의 운명은 끝이었다. 무너지는 왕국의 운명이 눈에 선한 루폰 두 라미르 1세였다. 그런 상상에 처연해진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문득 제국의 손에 무너졌던 미르 왕국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의 미르 침공때 몇몇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후회가 되는 루폰 두 라미르 1세였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당장 그들에게 원군을 청하여 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였을 텐데 하는 생각에 잠기며 후회를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폐하!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결정을 내리시지 않는다면 무고한 백성들이 오크들의 손에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옵니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사옵니다.” 재촉하는 하르켄 후작의 눈빛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전까지 조용하기만 했던 하르켄 후작이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자 낯설기만 한 그의 모습에 루폰 두 라미르 1세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폐하! 하르켄 후작의 주장이 옳습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오크들에게 왕국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협상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오크들을 막아내야 하옵니다.” 국왕이 망설이자 왼쪽에서 한 원로 귀족이 나와 하르켄 후작의 주장을 도왔다. 찬성하는 자가 나오자 회의장 여기저기서 용기를 얻었는지 망설이던 귀족들이 하르켄 후작의 주장이 옳다고 들고 일어났다. 대번에 회의장은 하르켄 후작의 주장에 찬성하는 자들로 넘쳐났다. “폐하! 결정을 내리옵소서!” “하르켄 후작의 말을 따르옵소서!” 삽시간에 회의장은 하르켄 후작의 제안에 동의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금세 소란스러워 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제국에게 손을 벌리다니요! 차라리 저 혼자라도 나가겠습니다. 제가 저 오크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습니다.” 약간 회색빛이 섞인 금발을 휘날리며 소리치는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얼굴은 결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오크들과 싸우겠다고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흥... 말이 될법한 소리를 하시오!” “지금 장난하자는 거요?”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 나서자 여기저기서 그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렸다. 회의장은 난장판이 되었고 하르켄 후작의 주장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나누어져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떠들어댔다. “그만! 그만!” 회의장의 소란에 두 귀를 막아버린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고개를 흔들며 거의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국왕의 외침에 회의장이 떠나가도록 떠들던 귀족들의 소란이 점차 잦아들었다. “모두 조용히들 하시오.” 회의장이 차츰 조용해지자 국왕은 다신한번 장내를 조용하게 만들고는 이 소란을 야기 시켰던 하르켄 후작을 직시하였다. 그의 눈은 여태까지의 우유부단한 눈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르켄 후작!” “예... 폐하!” “정녕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이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건지, 아니면 정말로 포기를 한 것인지 국왕의 어조가 가라앉아 있었다. 루폰 두 라미르 1세의 질문에 하르켄 후작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서는 딱히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이 왕국의 운명마저 위태롭습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제국의 손을 빌려야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왕국은 오크들의 손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잔인하게 들리는 하르켄 후작의 답변에 국왕은 처참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으음... 그것이 정녕 최선의 방법이라면 따라야겠지. 하지만...”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는 국왕의 중얼거림에 앞에서 국왕의 결정만을 주시하던 하르켄 후작의 귀에는 그 어떠한 소리보다 크고, 정확하게 들렸다. 국왕이 찬성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자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으하하하... 그렇다는 말이지?” 화려한 궁성에서 거만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아 보고를 받고 있는 사내는 황금빛 윤이 나는 금발에, 체구가 무척 건장한 사내로 나이는 대략 40대 후반이었다. 그는 보기만 해도 고급으로 보이는 의상을 걸치고 앉아 있는데 얼굴은 온통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한 중년 귀족이 서 있는데 그는 40대 초반의 중년 사내였다. 서 있는 사내 또한 보통의 신분은 아닌지 몹시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지브란토!” “네... 전하!”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해 보아라!” 다시 한번 듣고 싶다는 말에 서있는 사내는 귀찮다는 표정 하나 없이 입가에 미소까지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하! 그럼 다시 한번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정보는 파미르에 잠입해 있는 클레이버젼스의 특급 요원인 매직 아이(Magic Eye)의 최종 보고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와 비록 반목을 하고는 있지만 이런 일로 클레이버젼스가 저희들을 속일 까닭이 없기 때문에 이 보고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저희와 어떻게 협상을 해서 구원을 청할까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협상 조건으로는...” 미르 왕국에 대한 전격적인 침공과 7일 만에 왕국을 무너뜨린 공으로 백작에서 한 단계 상승하여 후작의 작위를 받은 지브란토 나딜 후작은 이제는 열두 명의 공왕중 루시온 대공국의 루시온 R 베르샤 대공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왕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자세히 설명했다. 세덴의 지배자이자 흑자는 피의 가면이라 칭하는 알칸시우스 공왕은 지브란토 후작의 자세한 설명에 다시 한번 대소를 터뜨렸다. 미르를 점령한지 이제 겨우 두 달도 되지 않는 시점에서 북방에 마지막 남은 왕국이라 할 수 있는 파미르 왕국을 단숨에 삼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행운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알칸시우스 공왕은 기쁨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미르를 삼킨 뒤 어떻게 하면 마지막 남은 파미르 왕국을 집어삼켜 북쪽을 완벽하게 통일할까 고민했던 알칸시우스 공왕이었다. 그 누구보다 야망이 큰 알칸시우스 공왕은 철혈의 대공이라 불리는 루시온 R 베르샤 대공을 능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너무도 쉽게 제 발로 찾아온 것이었다. “하하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아졌기에 알칸시우스 자코니아 공왕은 끝임 없는 대소를 터뜨렸다. 한참을 그랬을까? 그는 조용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브란토 후작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 멍청한 자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군대이옵니다. 전하!” “군대?” “예, 그렇습니다. 우습게도 그들은 스스로 우리 군대를 불러들였습니다. 자국의 영토 안으로 말입니다. 수도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방어를 위해서 말입니다.” 지브란토 후작의 대답에 알칸시우스 공왕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큭큭... 아주 웃기는 놈들이구나. 제 발로 찾아와 머리를 숙이고는 타국의 군대를 자신의 영토 안으로 부른다. 그야말로 망하려고 작정을 하지 않았다면 생각하기도 힘든 일 아니더냐?” 알칸시우스 공왕은 비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파미르의 국왕이나 기타 귀족들이 멍청하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파악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심한 듯해서 도대체 무슨 일로 이들이 이런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 무슨 일로 저들이 그렇게 급박하게 우리를 찾는단 말이냐?” 알칸시우스 공작의 물음에 지브란토 후작의 대답이 이어졌다. “오크이옵니다. 전하! 파미르 영토 안으로 적게 잡아 40만에 다다르는 오크들이 사면팔방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하옵니다. 이미 북방의 4개 도시와 근래에 들어 황금의 도시라 불리는 테미까지 오크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하옵니다. 그것도 단 몇 일만에 말이옵니다.” “그래?” 알칸시우스 공왕은 상대가 설마하니 오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알칸시우스 공왕의 물음에 지브란토 후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 작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3 회] 날 짜 2004-05-29 ---------------------------------------------------------------------------- 30장. 파미르의 몰락 “뭐라고?” 놀람에 가득 찬 목소리로 몸을 부르르 떠는 인물은 테미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몰고 갔던 르베르 공작이었다. 그는 오크와의 첫 번째 싸움에서 뜻하지 않은 대패를 당하고 하무엔 성에 웅크린 채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에 왕국에서 제국에게 원군을 요청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는 황당하다 못해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자신이 이끈 9만의 병력이 오크들에게 대패를 당했다고 하지만 아직 자신에게는 5만의 병력이 건재하고 왕국에는 아직 십수만이 병력이 남아 있었다. 아직까지 그리 암울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르베르 공작이었기에 그의 충격은 다른 누구보다 컸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냐?” “예 전하! 하르켄 후작을 주축으로 대부분의 고위 귀족들이 찬성을 했다는 전갈이옵니다.” “뭐라고! 하르켄? 그 자가 주축이 되었다는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전하!” “으으... 그 자가...”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는 르베르 공작의 표정은 떫은 감을 씹은 듯 한 인상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하르켄 후작이 눈앞에 있다면 씹어 먹어도 속이 풀리지 않는 듯한 인상을 한 채 한동안 보고를 하던 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하! 이미 세덴에서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자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들을 끌어들인다는 말이냐? 왕국의 멸망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 아니더냐?” “귀족들 사이에서는 오크들에게 당할 바에는 차라리 제국에게 항복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옵니다. 오크들의 손에 떨어지면 살아남기 힘들지만 제국이라면 그나마 일말의 여지라도 있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뭐라? 겨우 목숨 따위를 부지하고 싶어 제국에게 조국을 판다는 말이더냐? 그것이 왕국의 귀족이라는 자들이 할 소리더냐? 이런 겁쟁이 놈들 같으니...” 르베르 공작은 분노에 호통을 내지르더니 손에 잡히는 유리잔을 집어 들고는 힘껏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차아앙..” 세찬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는 유리잔의 파편은 순식간에 바닥을 뒤덮었다. “내가 직접 왕궁으로 가겠다. 내 가서 그 놈들이 낯짝을 직접 보고 말겠다.” 옷을 떨치며 나서는 공작의 행동에 그의 부관들은 머리를 조아렸다. 공작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공작의 진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무렵 파미르 왕궁의 한곳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한명은 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왕을 핍박한 하르켄 후작이었고 다른 한명은 파미르 왕국의 고위 귀족중 한명이었다. 그는 하르켄 후작의 의견에 처음으로 동조했던 원로 귀족이었다. 이들은 서로 이미 잘 아는 듯 정겨운 분위기였다. “후후... 지난 몇 달은 참 힘들었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까? 레이드 각하!” “호오... 레이드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로군.” “하하! 그러십니까? 하기는 계속 그 하르켄 이라는 이름으로 2년을 넘게 거짓 행세를 하셨으니 그러실 만도 하겠군요. 고생하셨습니다.” “후우... 그렇지! 그 멍청한 왕과 귀족들이 내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가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놈들이 속아 넘어 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네. 지난 2년 동안 많은 준비를 했지만 혹시나 귀족들 사이에서 하르켄이라는 마법사 놈을 깊게 아는 자가 있었다면 곤란하지 않았겠나? 자네의 정보를 믿고 나서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무척이나 긴장이 되었어. 다행이 마법사 놈이 폐쇄적인 까닭에 그런 걱정은 덜었지만 말이야!” 하르켄 후작의 말에 원로 귀족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내보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각하! 제가 이곳에 잠입한지 벌써 20년이 넘었사옵니다. 제 정보를 믿지 못하셨습니까?” 약간 불만스러운 어투에 하르켄 후작의 역할을 맡았던 레이드라는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를 믿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의 중요성이 나를 조심스럽게 만든 거야. 그러니 그렇게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네. 그리고 이제 그동안 우리가 공들였던 공작이 성공했으니 자네는 황제폐하로부터 큰 상을 받을 거네.” “아아... 감사합니다. 하르... 아 아니... 레이드 각하!” “으음... 이제 그 하르켄이라는 이름도 벗어야 하겠군. 나름대로 무척 스릴이 있기는 했지만 왠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피곤했어.” “네... 하지만 각하의 연기에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 왕국을 통째로 집어 삼키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광대마냥 연기한 대가치고는 그 대가가 무척이나 큰 건가?” “하하... 그렇습니다. 레이드 각하! 각하의 연기에 왕국 하나가 통째로 넘어온 것입니다.” “하하하...” 레이드라 불린 하르켄 후작은 광소를 터뜨리며 자신의 공작이 성공하였음을 자축했다. “쿠루룩...” “쿠룩... 케블 전하! 6번째 도시입니다.” “벌써인가?” “넷!” “쿠쿠... 웃기는군. 인간의 왕국이라고 해서 긴장을 했는데 이렇게 쉽게 도시들이 무너지다니! 도대체 우리의 선조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나약한 인간들 따위에 밀려 북쪽으로 쫓겨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오크 왕국 오이라트의 세 명의 공작중 한명이자 남부 원정군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고 있는 적염의 공작 케블은 현재 오크 1군단과 3군단을 거느리고 파미르 왕국의 북부를 공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군대는 마치 성난 노도와 같이 파미르 북쪽의 도시를 집어 삼키는데 그들을 막을 자가 없었다. 하르에 주둔하던 파미르 정규군과 용병 길드 소속의 수천 용병들은 그들의 칼날에 힘없이 무너졌다. 북쪽의 방벽인 하르가 무너지자 다른 도시들의 영주나 귀족들은 오크의 대군에 겁을 집어먹고 목숨을 걸고 막기보다는 도망치기에 급급해서 오크들은 손쉽게 파미르 왕국의 도시들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미 북부의 다섯 개 도시를 점령한 케블은 파미르 왕국의 여섯 번째 도시인 롬바르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롬바르드는 파미르 북쪽의 도시중 가장 부유한 도시로 알려진 곳으로 수많은 대륙의 거상들이 자신들의 지부를 세운 곳이다. 따라서 이곳을 방비하는 병력은 북부의 여느 도시보다 많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많다기보다는 단지 다른 도시보다 많다는 것뿐이었다. “쿠룩... 이번에도 무혈입성(無血入城)인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을 바라보는 그레이트 오크 케블은 날카로운 안광을 내뿜으며 전방을 주시하더니 그렇게 물었다. 붉은 머리에 떡 벌어진 어깨, 제법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중갑주를 몸에 걸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느 인간의 기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의 물음에 지금까지 그의 옆을 지키며 대답을 하던 오크 원정군 1군단의 군단장인 클라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제법 단단해 보이는 회색빛의 중갑주를 몸에 걸치고 있는데 신장이 무려 2미터에 육박했고 등 뒤로는 그레이트 엑스로 보이는 도끼가 메어져 있었다.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고개를 흔들던 클라크는 자신의 주군을 향해 대답했다. “쿠룩! 이번에는 아닌 듯싶습니다. 몇몇 도시에서 잡은 인간 포로들에게 알아본 정보로는 이곳 도시에는 제법 많은 부가 모여 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다른 도시보다 주둔하고 있는 병력도 많고,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사설 용병들도 꽤 되는 듯싶습니다. 절대로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듯 보입니다.” 오크 군대의 1군단장 클라크의 대답에 전방을 주시한 케블의 입가에 간만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는 적이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리라는 대답에 간만에 느끼는 흥분에 몸이 달은 듯 보였다. “쿠루룩... 그렇다면 화끈한 전쟁이 한판 벌어 질수도 있다는 말이로군!” “쿠룩! 그렇습니다. 인간은 재화에 목숨을 거는 종족이니 절대로 자신들의 부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쿠룩... 웃기는 족속들이군. 목숨을 구걸하기위해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던 자들이 재화 따위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야.” “그래서 알 수 없는 종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여간 간만에 내 검에 피를 묻히겠군. 쿠루룩...” “모두들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하!” “쿠루룩... 이제 곧 피의 잔치가 벌어지겠군.” “어디에 있느냐?” 이동 마법진을 통해 급하게 왕궁에 도착한 르베르 공작은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하르켄 후작을 찾고 있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궁성의 관리들을 독촉하는데 르베르 공작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왕궁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전하!” 지나가던 관리를 붙잡고 하르켄 후작의 행방을 추궁하던 르베르 공작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를 부른 인물은 순백색의 갑주를 몸에 걸치고 눈을 어지럽게 하는 노란 금발을 휘날리는 제 1 근위기사단장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었다. “오호! 그렇지 않아도 잘 만났군.” 목소리가 커지는 르베르 공작의 말에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왕궁이옵니다. 전하!” “왕궁! 지금 그것이 문제던가?” “르베르 공작 전하! 국왕폐하가 계시는 왕궁이옵니다. 아무리 전하께서 본국의 유일한 공작이라고 하시지만 국왕폐하의 위엄을 무시할 수는 없사옵니다.” 단호한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일언에 르베르 공작은 그를 쳐다보았다. “호오... 그래! 왕궁 안에서 소란을 떠는 공작은 막을 수 있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후작은 막지 못한다는 말인가?” 갑작스러운 르베르 공작의 비난에 인상을 쓰던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입이 거짓말처럼 다물어졌다. 공작의 말에 아무런 일언반구도 할 수 없었다. “왜 말을 못하는가? 나라는 존재는 막으면서 왜 왕국을 팔아먹은 후작을 막지 못 했는가?” 높아지는 공작의 어조에 제프 샤브리엘 백작은 더욱 더 고개가 숙여졌다. “막으려 했지만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전하! 거의 대부분의 고위 귀족들이 하르켄 후작의 의견에 동조하였습니다. 국왕폐하께서도 귀족들의 성난 의견에 밀려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대답에 르베르 공작은 코웃음을 쳤다. “쳇... 헛소리! 그대가 본 왕국에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다면 그대 휘하의 기사들을 끌고라도 와서 귀족들의 횡포를 막았어야 했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이대로 제국에게 왕국을 고스란히 받치려고 하는가?” 르베르 공작의 말에 제프 샤브리엘 백작은 또다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흥...” 코웃음을 치는 공작은 제프 샤브리엘 백작이 대답을 못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하르켄 후작은 어디 있는가? 내 그자의 낯짝을 꼭 봐야겠다. 그 무도한 자를 내 손으로 처단하고 말겠다.” 씩씩대는 르베르 공작의 물음에 제프 샤브리엘 백작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한발 늦으셨습니다. 하르켄 후작은 본국의 협상단을 끌고 현재 이동 마법진을 통해 세덴 공국으로 떠난 상태입니다.” “뭐라?” “원군 요청에 따른 협상을 하르켄 후작이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제프 샤브리엘 백작의 대답에 르베르 공작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런 머저리들!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왕국을 고스란히 바치려는 자에게 협상권을 주다니... 폐하는 어디에 계시느냐?” “별궁으로 가셨습니다.” “별궁?” “네!” “폐하를 뵙겠다.” 르베르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급하게 국왕이 있는 별궁으로 향했다. 파미르 왕국의 왕궁에는 세 개의 별궁이 존재하는데 왕궁을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 르베르 공작이 찾아간 곳은 세 곳의 별궁중 하나인 루비드 별궁이었다. 루비드 별궁은 회색의 커다란 3층 석조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세월의 풍상을 증명하듯 외벽은 바람과 흙먼지에 긁힌 작은 상처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서북쪽 벽에는 꼬불꼬불한 담쟁이 넝쿨로 벽이 가득 채우고 있고, 남쪽으로 난 현관은 기다란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놓은 듯 외관상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 현관을 통하는 대리석 길가에는 여러 가지 조각들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 동물이나 사람들의 형상이었다. 르베르 공작은 대리석 길을 통해 별궁으로 들어가면서도 얼굴이 무척이나 일그러져 있었다. 현관을 통하는 문에는 두 명의 근위 기사가 정면을 노려본 채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폐하는 어디에 계시느냐?” 르베르 공작은 별궁을 통하는 현관 앞에 도착하고는 경비를 서는 기사에게 물었다. “르베르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폐하는 지금 오침 중이십니다.” “오침?” “네...” “폐하께 내가 뵈려고 한다고 말씀드려라!” “예! 알겠습니다. 공작 전하!” 공작의 말에 곧바로 경비를 서던 한 근위 기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근위 기사가 국왕에게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통보하러 간 사이 르베르 공작은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르베르 공작에게는 추억이 서린 곳이었다. 르베르 공작은 주변을 힐끗 곁눈질 하고는 예전 추억이 떠오르는지 두 눈을 감았다. 오래전 르베르 공작과 지금의 국왕인 루폰 두 라미르 1세는 무척이나 좋은 사이였던 적이 있었다. 르베르 공작이 젊었을 적 루폰 두 라미르 1세가 어렸을 적 이야기다.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던 국왕의 모습이 슬쩍 떠오르자 르베르 공작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젊었을 적 그 귀여웠던 왕자는 어느새 장성해 국왕이 되었고 이제는 자신이나, 국왕이나 서로를 헐뜯고 있었다. 서로를 견제하며 십 수 년을 보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르베르 공작은 세월의 잔혹함에 인상을 찡그렸다. “공작 전하!” 귓가를 울리는 부름에 르베르 공작은 두 눈을 떴다. “폐하께서 부르시옵니다. 들어가시지요!” “앞장서게!” “네..” 국왕에게 자신이 왔다는 소식을 전하고 답변을 가져온 근위 기사가 앞장을 서자 르베르 공작은 얼른 그의 뒤를 쫓았다. 별궁의 현관으로 들어서자 발목까지 솟아오른 양탄자의 감촉이 발끝까지 전해졌다. 르베르 공작은 푹신푹신한 양탄자를 밟으며 기사의 뒤를 따라 무척 커다란 문 앞에 섰다. “끼이익” 기름칠을 덜했는지 거슬리는 음향이 들리고 나서야 르베르 공작은 자신이 그렇게 찾았던 국왕을 만날 수 있었다. “국왕 전하!” 다짜고짜 화부터 내려고 했던 르베르 공작은 약간 초췌해진 국왕의 안색을 보고는 목구멍까지 치솟았던 화를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때보다 안색이 창백해진 국왕의 모습은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왔던 국왕의 모습이 아니었다. 비록 자신감이 없었던 국왕이라고 하지만 저 정도까지 패배자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르베르 공작은 생각했다. “공작인가?” “예, 폐하!” 알 수 없는 슬픔이 목구멍까지 밀려오는 르베르 공작이었다. 한때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인물이고 후에는 자신의 적수와 비슷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다. 자신의 주군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품안에 있던 인물이었다. 르베르 공작은 국왕의 초췌해진 모습에 연민을 느꼈다. “괴로우셨습니까?” 예기치 않은 르베르 공작의 물음에 국왕은 치솟아 오르는 슬픔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공작!” 울먹임이 섞인 국왕의 부름에 공작은 강한 연민을 내포한 눈길을 보내더니 대답했다. “예, 폐하! 말씀하십시오!” “짐은 두렵소이다.” ---------------------------------------------------------------------------- 정말 오랫만에 인사를 드리는군요. 제가 몸이 안좋았습니다. 다음주에는 또 병원에 입원을 해야해서 쩝... 4권이 출판되어서 출판 분량을 지웁니다. 그동안 올리지 않아서 다 지워야 겠군요. 넘 죄송합니다. ---------------------------------------------------------------------------- 작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4 회] 날 짜 2004-06-10 ---------------------------------------------------------------------------- 출판사 사과문 마루출판사입니다. 이번‘용병왕 료우’ 4권의 페이지 누락에 대해 독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글을 올립니다. 편집상의 오류로 다음 권 연재 시 삽입 되었어야할 분량이 관리 소홀로 빠졌습니다. 책이 출간된 시기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미리 발견 못한 점도 죄송하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로 출판사 전원 모두 각성을 하고 앞으로 출간될 책에 더욱 성의를 다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마루출판사와‘용병왕 료우’에 관심을 가져 주신 모든 독자님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이번 일을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5 회] 날 짜 2004-06-10 ---------------------------------------------------------------------------- 작가 사과문 제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정말 한말이 없습니다. 원고만 출판사에 맡기고 다음 과정에 대해 확인하지 못한점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겠으며 다시한번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6 회] 날 짜 2004-06-15 ---------------------------------------------------------------------------- 30장. 파미르의 몰락 “폐... 폐하! 폐하는 이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무엇이 두렵사옵니까?” 르베르 공작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그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르베르 공작은 이 나라의 주인인 국왕이 자신이 보아도 너무나 한심하게 변했기에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교차하였다. 그러면서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국왕이 이렇게 변하게 된 원인에 자신도 일조를 했던 까닭이었다. 아니 어쩌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폐하! 하르켄 후작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그자를 왜...?” 하지만 르베르 공작의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공작! 짐은 이제 힘이 없어요.” “폐하! 그것이 무슨 말씀이옵니까?” 르베르 공작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사실이에요. 이제는 내 곁에 아무도 없어요. 믿었던 하르켄 후작도 나를 버렸어요.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공작! 이제 나는 내어줄 것도, 버릴 것도 없어요.” 국왕의 허탈한 대답에 르베르 공작은 인상을 찡그렸다. “폐하! 그것이 대체 무슨 말씀이옵니까? 이 나라는 폐하의 나라이옵니다. 누가 폐하의 나라에서 폐하를 핍박한다는 말씀이옵니까? 폐하! 이대로 폐하의 왕국을 제국에 고스란히 받치려고 하시옵니까? 이대로 저 잔악한 제국에게 이 나라 백성의 운명을 맡기시려 하시옵니까? 폐하! 말씀해 주십시오.” “사방 천지에 오직 나를 노리는 자들로 가득 찼어요. 공작도 그렇고, 하르켄 후작도 그렇고, 모든 귀족들이 나를 노려요. 이제 지쳤어요. 더 이상은 나도 견딜 수 없어요.” 국왕은 마치 어린아이로 변한 듯 보였다. 그의 말투는 어렸을 적 공작에게 투정을 부리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듯 보였고 그런 국왕의 말에 르베르 공작은 애증이 교차하는지 고개를 숙였다. “공작! 어렸을 때가 그리워요. 그때는 누구도 나에게 바라지 않았는데... 오히려 뭐든지 나에게 줄려고 그랬는데... 공작! 돌아가고 싶어요.” 국왕은 예전 기억을 회상하는 듯 보였다. 그의 눈은 몽롱하게 변해있었고 과거를 쫓는 국왕의 모습에 르베르 공작은 더 이상 국왕에게 희망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고 그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국왕의 모습에 르베르 공작은 짙은 한숨과 함께 연민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닥쳐올 암울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몰려왔다. 이대로 왕국은 사라지는 것인가? “쿠루룩... 죽여라!” “크아악...” “컥...” “쿠에엑...” 사방에서 터지는 성난 함성과 두 귀를 괴롭히는 죽음의 잔혹한 비명, 살을 뚫고 들어온 날카로운 창칼의 고통과 온몸을 지글지글 타오르게 하는 화염에 그슬려진 비명은 지금 이곳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제발 살려달라는 젊은 병사의 애처로운 울음이 토해지고, 핏빛 눈을 번뜩이며 죽으라는 날카로운 외침을 토해내는 광기어린 병사의 몸에는 자신의 손에 의해 죽은 자들의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살인에 맛 들린 자들의 입가에는 잔혹한 희열이 묻어있었고 그들의 두 손은 자신들의 손에 의해 살해된 자들의 붉은 피로인해 얼룩지고 있었다. “막아라! 더 이상 뚫리면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도망치지 마라! 막아라! 북쪽 성벽이 뚫리지 않느냐?” 피를 토하듯 머리끝까지 시뻘겋게 변한 안색으로 병사들을 독려하는 장수의 눈빛은 서서히 절망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갈수록 불리해지는 상황 때문에 서서히 침잔 되어지고 있었다. 목책으로 만들어진 성벽 곳곳은 금방이라도 그 지독한 독을 뿜어낼 듯 보이는 검붉은 뱀이 똬리를 틀고는 회색 연기를 매캐하게 뿜어내면서 붉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그 성난 혓바닥을 내보이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살을 금방이라도 헤집고 지나갈듯한 날카로운 창칼의 매서운 이빨은 붉은 피를 잔뜩 머금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으려 광분하고 있는데 너덜너덜해진 살점이 진득하게 묻어있는 이빨의 험악함은 충분히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공포를 실감하게 해주고 있었다. “쿠룩... 모두 죽여라! 인간들에게 베푸는 자비란 허울 좋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도망가는 자들을 놓치지 마라. 모조리 죽여라! 만약 도망치는 자를 죽이지 못하고 놓친다면 내손으로 그 목을 치겠다. 모두 죽여라!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우리가 당했던 만큼 저놈들에게도 돌려주어야 한다. 모조리 죽여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그레이트 오크는 악에 바쳤는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날카로운 외침을 터뜨리는데 그는 잔혹한 살인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포에 젖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살려달라는 인간 병사의 목이 여지없이 땅에 떨어졌다. 데구르르 구르는 젊은 병사의 눈은 자신의 죽음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인지 부릅떠 있었다. 그 자신의 몸에서 저만치 굴러간 병사의 머리는 도망치는 인간 병사를 죽이려고 달려가는 한 오크의 발에 채여 다시 수 미터 굴러갔다. “쿠룩룩...”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오크 병사들의 성난 함성은 파미르 왕국의 북쪽 도시중 가장 화려하다는 롬바르드를 피와 죽음의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과 땅바닥을 가득 적시는 시뻘건 선혈! 그리고 눈을 부릅뜬 채 원한에 맺힌 시체의 두 눈!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부상자들의 신음소리는 예전의 화려한 롬바르드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미 이곳은 지옥이었다. “쿠루룩... 더 이상의 포로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모조리 죽이고 승리의 찬가를 불러라! 옛 제국의 영광을 인간들에게 알려라! 제국의 위대함을 인간들의 피로 전해라! 황제 폐하의 위대함을 인간들에게 전해라!” 붉은 투구 양쪽의 뿔이 위협적으로 보이는 오크 장수의 입에는 인간들을 모조리 학살하라는 잔혹한 명령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쪽에서 수천에 이르는 도수부들이 보기만 해도 섬뜩해 보이는 그레이트 엑스를 선보이며 앞으로 뛰쳐나가는데, 그들이 양손에 들고 있는 도끼에는 이미 사람의 살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고, 도끼는 얼마나 많은 인간의 피를 머금었는데 붉은 색까지 띄고 있었다. 잔혹한 흉성을 터뜨리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오크 도수부의 모습은 흡사 지옥의 야차와 견줄 만 했다. “쿠에엑... 죽여라!” 피에 광분한 오크들의 함성은 가뜩이나 두려움과 공포에 주춤거리며 도망치려는 인간 병사들의 사기를 여지없이 꺾었다. 자신들을 향해 무섭게 쇄도하는 오크 병사들의 모습에 인간 병사들은 두 눈이 공포에 잠긴 채 몸을 벌벌 떨며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살려줘!” 누군가의 입에서 터진 외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무섭게 밀려오는 오크들을 막아서며 싸우던 병사들의 한 축이 어이없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자신들의 임무를 잊었는지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자신들이 지키던 자리를 뒤로 한 채 도망가기 시작했고 도망치는 병사들이 속출하자 가뜩이나 열세인 인간들의 방어망은 금세 구멍이 뚫렸다. 인간의 피만을 요구하는 오크들이 그것을 놓칠리 만무했다. 대규모 오크 병사들은 구멍이 뚫린 곳을 통해 피를 잔뜩 머금은 창칼을 휘두르며 몰려들었다. “크아악...” “도망쳐라!” “아아악... 살려줘!” 더 이상의 방어는 없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인간 병사들은 흡사 댐이 무너지듯 거대한 방어망이 한꺼번에 무너졌고 방어하던 병사들은 죽어라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사방은 금세 뒤통수를 향해 날아온 날카로운 도끼에 찍힌 병사의 참혹한 모습만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도망치지 마... 커억...” 도망치는 병사를 제지하려고 하던 지휘관의 입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날카로운 창이 틀어 박혔다. 그는 믿기지 않는 듯 한 모습으로 두 눈을 부릅뜬 채 창대를 움켜쥐다가 나무꾼에게 벌목된 거대한 나무가 넘어가듯 뒤로 쓰러졌다. “쿠루룩... 죽여라! 모조리 죽여라!” “쿠룩...” 성난 함성과 죽음을 부르는 잔혹한 명령은 파미르 북부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롬바르드를 피와 죽음의 살육터로 만들고 있었다. 울부짖는 사람들의 음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오랫만에 인사드리네요.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것 저것 문제가 있어서 일이 이지경이 되었네요. 건강이 않좋다 보니 연재도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낫아져서 이렇게 다시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출판사에 원고도 주지 못하는 바람에 이래저래 바쁘게 연재를 시작해야 할 듯 보입니다. 빠른 속도로 원고를 쓰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성의없는 글은 쓰지 않겠습니다. 제 글을 사랑하시는 모든 독자분들께 연재가 늦어졌던 점 사과드리며 다시 열심히 쓸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럼 좋은 하루되시고 제 글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 작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7 회] 날 짜 2004-06-16 ---------------------------------------------------------------------------- 31장. 고대 신전 “이곳인가?” 마물의 숲 남쪽에서 동북쪽으로 대 이동을 시작한 케인의 아슈리안 부족은 료우의 안내를 받으며 리자드맨 부족의 근거지이자 향후 인간과 리자드맨의 동맹인 연합전선의 본부로 결정된 동북부 황혼의 새벽이라는 대평원으로 이동했다. 황혼의 새벽은 남부 리자드맨의 대부족 바르족의 마을에서 동북방으로 백여 킬로 떨어진 곳으로 주위에 빽빽한 산림이 중첩되어 있어 이목을 숨기기 쉬운 곳이고 방어가 용이한 지형이었다. 이곳은 원래 옛 리자드맨의 마을이었다가 리자드맨들이 모조리 마물의 숲 전체로 흩어지면서 폐허로 남은 마을이었는데 오크들로 인해 다시금 더 성대한 마을로 바뀌었다. 인간과 리자드맨의 기묘한 동거는 황혼의 새벽이라는 평원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키에엑... 이곳에 모인 자를 모두 합치면 10만이 넘는 숫자다. 싸울 수 있는 전사는 모두 합쳐 5만 정도가 고작이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의견을 묻는 리자드맨 부족장 바르의 물음에 주위의 시선은 모두 료우에게로 향해졌다. 사람들 및 리자드맨들의 시선을 받은 료우는 괘면적은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일단 주위에 대규모 경계 인원을 풀어서 첩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군. 일단은 오크 군대의 행방을 알아야 작전을 짜도 짤 테니 말이야. 그리고 모두들 먹을 수 있는 식량 확보도 중요할 듯싶군. 그리고 오크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도록 진지를 세우는 것도 중요할 듯싶어.” 료우의 말에 인간들과 리자드맨의 고개가 끄덕였다. “그럼 누가 첩보를 수집하겠어?” 료우는 모인 이들을 향해 물었다. “그건 내가 하도록 하지!” 리자드맨의 수장인 바르가 나섰다. “하기는 이곳은 당신들이 가장 잘 알 테니 당신들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럼 식량은?” “그건 우리가 맡겠다.” 케인이 나서자 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슈리안 전사들이라면 사냥에 능한 부족이기 때문에 식량을 마련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듯싶었다. “그럼 식량은 아슈리안 부족이 담당하고 남은 것은 목책인가? 그건 나와 얀의 용병들이 맡아서 세우는 것으로 하지! 부족한 인원은 양쪽에서 조금씩 도와주고 말이야.” 료우의 말에 바르와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인간과 리자드맨의 연합전선으로 명명된 세력은 크게 세부분으로 갈라지는데 바르가 이끄는 리자드맨의 세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고, 다음으로 케인이 이끄는 아슈리안 부족이 두 번째였다. 료우나 얀의 용병대는 모두 합쳐도 겨우 4천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가장 적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합전선 내에서 발언의 영향력을 따진다면 료우의 입김이 가장 쎄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7서클의 마법사가 둘이나 버티고 있고, 거기에 소드 마스터도 있으니 실력으로 따진다면 그들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영차... 영차...” 웃통을 벗어젖힌 채 나무를 이고 있는 사내들은 커다란 목책을 세우고 있었다. 자신의 몸통보다 커 보이는 통나무를 어깨위에 올려 운반하는 자들은 하나, 둘 높게 쌓아올린 목책위로 통나무를 쌓고 있었다. 목책에 붙어 목책을 세우는 자들은 운반한 통나무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단단하게 엮는데 제법 목책다운 높이만큼 세워지고 있었다. “으음... 예상보다 빠른 진척이군요. 벌써 이정도 까지 높게 세우다니...” “자기들 목숨이 달렸으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지!” “하기는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도 빠른 진척인데요.” “후우... 그건 그렇고 어떻게 다른 소식 들어온 거 없어?”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고 하더군요. 뭐 지금만 해도 거의 1-2천이 넘는 숫자가 외곽을 돌면서 정찰을 하고 있으니 조만간에 오크들에 대한 첩보가 들어올 거 에요. 뭐 놈들이 우리들에 대해 잊는다면 더욱 좋고요.” 목책을 쌓아 올리는 광경을 보면서 빠른 진척에 다소 놀라고 있던 얀은 료우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빠르게 올라가는 목책을 다시 한번 보면서 감탄을 하였다. “우리들이야 놈들과 부딪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을걸. 리자드맨 족은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고 이곳까지 왔으니 눈을 불을 켜고 오크들의 행방을 추적할 것이고, 아슈리안 부족도 자신들의 땅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으니 그렇고 말이야. 하여간 오크들보다 빨리 그들을 추적하는 것이 중요해. 그래야 계획을 짜도 짤 테니 말이야. 선공이 중요하단 말이야.” 료우의 말에 옆에서 료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얀의 고개가 끄덕였다. 어느 때부터 인지 그 둘은 함께 붙어 다니고 있었다. 료우에게는 바이크와 아론, 네오등의 동료들이 있었지만 현재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얀의 보호자라 할 수 있는 카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는 용병들의 숫자는 모두 합쳐 4천에 이른다. 그중에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숫자는 그중 절반인 2천명! 나머지 2천명은 자신들의 목숨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료우와 얀등은 4천에 이르는 용병들의 효과적인 지휘를 위해서 모조리 하나로 묶어서 통일시켰다. 하나로 통일된 용병대는 료우의 용병대 이름 하에 흡수되었는데 료우는 그들의 생존을 높이고, 전투의 승리를 위해 그들의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필요성을 느끼고는 예전 료우의 용병대를 만들 때처럼 현재 자신의 용병대에 편입된 자들을 수련시키기 시작했다. 일단 용병대가 맡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료우는 4천을 둘로 나누어서 오전, 오후로 노동과 수련을 반복적으로 시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마법사인 아론과 검사인 바이크, 네오, 카발등이 무척 바빠졌다. 오전, 오후 쉴 틈 없이 용병들의 실력을 향상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런 대화가 오고가고 있을 쯤 황혼의 새벽에서 남서쪽으로 100 킬로나 떨어진 곳에 수 십 명의 리자드맨 전사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위해 사방을 샅샅이 훑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은 예전 남부 리자드맨 부족중 하나인 슬바인 부족이 터전을 잡고 있는 곳으로 리자드맨 전사들은 이곳을 부족의 이름을 따서 슬바인이라고 불렀다. 대규모의 잡목과 몇 킬로 앞쪽으로는 무척 넓은 평원이 존재하는 이 지역은 이미 두 차례나 살펴본 곳이지만 아직까지 오크들의 행방을 찾지 못한 리자드맨 전사들은 다시 한번 이곳을 살피고 있었다. 이미 오크들과는 불구대천(不俱戴天) 지간이라고 할 수 있고, 게다가 수많은 동족들이 오크들에게 죽은 마당이라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오크들의 종적을 찾아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물론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복수도 중요했다. 피가 끓는 젊은 리자드맨 전사들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보다 동료들의 복수가 중요했다. “키에엑... 도대체 그 많던 놈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야?” “몰라! 하여간 놈들을 빨리 찾아서 꼭 복수를 하고 말겠어! 그 망할 놈의 오크들을 내 손으로 직접 찢어 죽이고 않으면 마음 편이 잠을 잘 수가 없어!” “키에엑... 두말하면 잔소리지. 전번 전투에서 내 친구가 놈들에게 죽었어. 그 복수는 내가 직접 하고 말겠어. 그 놈들을 갈갈이 찢어 죽이고 말겠어.” 전의를 불태우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대화였다. 그들은 대족장인 바르의 명령을 받아 마물의 숲 전체를 모조리 뒤지고 있는 실정인데 근거지인 황혼의 새벽 평야를 중심으로 해서 남서쪽 근방 100 킬로를 모조리 훑고 있었다. 무려 2천이 넘는 병력이 동원되어 수색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오크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한번 수색했던 곳도 다시 수색하는 등 오크들의 행방을 찾는데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혹시라도 흘리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며 주위에서 종적을 찾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행보는 무척이나 바쁘면서도 신중해 보였다. 한시라도 복수를 하려고 하는 열의 때문인지 그들은 쉬는 시간까지 잊으며 오크들의 종적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오크들의 종적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도대체 그 많던 오크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주위를 수색하는 리자드맨 전사들로서는 의문이 쌓일 뿐이었다. “제길... 도대체 그 많던 놈들이 다 어디에 숨어있는 거야? 한, 두 놈도 아니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놈들이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우리하고 맞붙었던 놈들도 하나도 안보이니... 키에엑...” 투덜거리며 근방을 뒤지는 리자드맨 전사들은 하나같이 실망감에 젖어 있는 형편이었다. 이미 주변을 수색한지 수 일이 지난 상황이었다. 2천의 넘는 전사들이 숲을 모조리 뒤지고 있는 형편이지만 아직까지 오크들의 그림자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실망감에 젖어있을 무렵 그들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남쪽에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키에엑... 놈들이다.”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라 무척이가 작게 느껴지는 외침이지만 이미 주위 환경에 온 귀를 기울이며 흔적 찾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리자드맨 전사들로서는 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오크들을 발견했다는 소리만큼 그들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키엑... 어디야?” 아직까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지도 않는 동료를 향해 성급하게 외치는 리자드맨 전사는 오크들의 행방을 물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깝게 들려왔고 드디어 그들의 시야에 한 리자드맨 전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키에엑... 적이 어디에 있냐?” 달려오는 동료를 맞아 달려가며 리자드맨 전사들은 급하게 물었다. “키엑! 서쪽이다. 이곳에서 대략 3 킬로 서쪽에 대규모 군대가 포착되었다. 적어도 우리가 저번에 싸웠던 놈들보다 두 배는 많아 보인다.” 환호 비슷한 음성으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리자드맨 전사의 답변에 주변을 살피던 일단의 리자드맨 전사들은 저마다 환호를 질렀다. 그동안 애써 수색을 했지만 털끝하나 발견하지 못했던 오크들을 자그마치 20만 이상 발견했다는 소리 때문이었다. 물론 적의 숫자가 자그마치 20만에 달한다는 소리에 잠깐 멈칫하기도 했다. 오크들을 발견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숫자의 우세가 보여주는 위험성을 한번 겪어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발견된 오크들의 숫자가 자그마치 20만이라는 사실에 약간은 긴장을 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빨리 본진에 알려라. 적의 흔적을 찾았다고 전해라.” “키에엑...” 이미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리자드맨 전사들은 재빨리 다음 상황을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일단의 전사들은 본진을 향해 오크들의 행방을 전했고 일단의 무리들은 오크들이 나타난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의 행방을 끝까지 추적하여 본진에 알리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연합전선의 본진에 오크들의 등장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얼마나 열심히 본진을 향해 달려왔는지 대략 10여명의 리자드맨 전사들중 본진에 도착한 이는 겨우 삼분지 일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자들은 중간에 뒤쳐져서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냐?” 헉헉대며 가쁜 숨을 토하는 리자드맨 전사의 등장에 한참 오크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방에 자신의 전사들을 풀어 놓았던 바르의 눈길이 쏟아졌다. “키에엑... 족장님! 발견했습니다.” 숨을 한번 크게 내쉬며 대답하는 리자드맨 전사의 말에 바르의 눈이 커졌다. “정말이냐?” “키엑... 그렇습니다. 족장님! 드디어 놈들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남서쪽으로 반나절 너머에 대규모 오크 군대를 발견했다는 전갈입니다.” “그래!” “네... 그래서 일부는 놈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저희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키에엑!” 가쁜 숨을 토하면서 대꾸하는 리자드맨 전사의 대답에 바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드디어 놈들을 찾았군! 전번의 수모는 꼭 돌려주마!’ 바르는 속으로 이렇게 결심하며 바로 연합전선의 수뇌부를 부르기 위해 자신의 부관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모이라고 해라! 오크들의 행방을 발견했다고 전하고 재빨리 이곳으로 모이도록 전해라!” 바르의 명령에 주위에 있던 리자드맨 전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놈들을 발견했다는 것이 사실이오!” 명령을 내린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아슈리안의 대족장 케인과 그 휘하의 여러 아슈리안 지휘부들이었다. 그들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달려왔는지 약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데 그중 케인은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바르에게 달려가더니 질문부터 던졌다. “키에엑... 남서쪽으로 오크들의 행방을 살피던 정찰대에서 올라온 보고요! 놈들을 발견하고 한참 놈들의 뒤를 쫓고 있는 중이라오!” 바르의 대답에 흥분에 쌓여있던 케인의 눈빛이 빛났다. 그때 속속들이 수명의 사람들이 바르가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료우를 중심으로 용병들인 바이크, 아론, 네오, 얀, 카발 등등이었다. “오크들의 행방을 찾았다고?” 들어오던 료우도 케인과 마찬가지로 급했는지 들어오자마자 질문부터 던졌다. 료우의 질문에 바르의 고개가 끄덕였다. “어디쯤이야?” “남서쪽 슬바인 지역이다.” “슬바인이라면 여기서 대략 100 킬로 이상 벗어난 지역이군.” 료우도 슬바인 지역이 어디인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료우의 말에 바르의 고개가 끄덕였다. “숫자는?” “보고로는 대략 20만이라고 하더군.” “20만!” 약간 놀란 눈빛의 료우를 보며 바르가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였다. 바르의 행동에 료우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먼저 와있던 케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죽인다!” 약간은 섣부른 대답이지만 현재 케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오크들에 대한 복수심은 리자드맨 이상으로 아슈리안 족도 강한 편이었다. 물론 오크보다는 파미르 왕국에 대한 복수심이 더 강하기는 했지만 현재 입장에서는 파미르 왕국과의 대적은 곤란했다. 일단은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지 파미르와의 싸움이 가능할 것이기에 케인은 투기를 일으켰다. “싸우는 거야 당연하지만 섣불리 전면전을 불가능하고 우리가 세웠던 계획대로 기습을 해야겠지.” 료우의 말에 케인이나 바르는 이미 세워졌던 계획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들을 쫓고 있던 정찰대에게 정보를 취합하고 놈들의 허점을 노려서 기습한다.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으로 놈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야.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한, 두 번은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열 번, 스무 번이 되면 적의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거야. 그러니 모두 최선을 다해서 분발해 주기를 바래!” 료우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고 그들은 오크들에 대한 전의를 다졌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8 회] 날 짜 2004-06-17 ---------------------------------------------------------------------------- 31장. 고대 신전 “쿵쿵쿵...” 흡사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인지 발 구르는 소리가 몹시도 크게 들려왔다. 지면으로 전해지는 진동에 모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엄청나군!” 흡사 돌개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뽀얀 먼지를 휘날리며 장내의 모든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엄청난 숫자의 오크들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대규모의 긴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엄청난 긴 행렬 때문인지 아니면 엄청난 규모의 인원 때문인지 모르지만 연합전선의 수뇌부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후우... 정말 말이 20만이지. 엄청난 숫자군요! 도대체 저런 군대를 어떻게 모았는지 상상할 수 없네요.” 정말 놀랍다는 표정으로 멀리서 보이는 오크 군대의 행렬을 보며 탄성을 자아내는 얀의 말에 옆에 있던 카발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멸망했지만 옛 미르왕국이 보유하고 있던 군대의 총 숫자가 모두 합쳐서 15만이었다. 헌데 지금 보이는 숫자는 한 왕국이 보유하고 있는 총 군대의 숫자보다 무려 5만이나 많은 상황이었다. 그로서도 저런 숫자의 군대는 미르를 멸망시킨 세덴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20만 군대의 실체를 본 것은 그도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대체 오크 군대의 숫자가 모두 합쳐서 얼마나 되는 건지 궁금하군! 아무리 오크들이 번식률이 좋고, 빠른 성장속도 때문에 몇 년 안에 성인 오크가 된다고 하지만 저건 너무 심한 것 아니야! 도대체 마물의 숲에 얼마나 많은 오크들이 숨어있는 건지 궁금하군.” 이번에는 약간 놀란 어투로 입을 연 네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드 드래곤인 네오의 입장에서도 오크들의 저 무지막지한 숫자는 무척이나 놀란 만한 것이었다. 아무리 번식률이 좋고, 무지한 몬스터라고 해도 끝임 없이 나오는 저 숫자는 드래곤인 그 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많은 오크들이라고 해도 드래곤 본체로 돌아간 네오에게는 한낮 한 끼 식사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드래곤 본체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저만한 숫자라면 아무리 네오가 소드 마스터에 7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숫자였다. 아무리 드래곤에서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그라고 해도 이겨낼 수 없다는 말이다.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가 뒤에 남아있는지 말이야. 이 정도 숫자의 군대가 사라지고 큰 타격을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이들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별로 타격을 받지 않는다면 다음이 문제야! 아무리 우리가 게릴라 전술로 적을 공격한다고 해도 적의 숫자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많다면 큰 문제라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오크 군대의 무서움은 직접 몸으로 체험했으니 그 위험성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료우의 말에 주위에 있던 모두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였다. “뭐 일단 저들의 숫자가 얼마나 있는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걱정은 하지 말자고. 우리는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그럼 일단 누가 선공을 하겠어?” 료우의 눈이 각 세력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리자드맨의 수장 바르와 아슈리안 족의 수장인 케인에게 돌아갔다. 이 둘 말고는 다른 세력이라면 료우의 용병들 밖에 없었으니 료우가 이 둘을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 선공은 내가 맡겠다.” 미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선 것은 케인이었다. 이미 전의를 불태우며 첫 번째 싸움을 마음먹었던 만큼 주저할 것이 없기에 케인은 바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나선 상황이었다. 료우는 케인이 먼저 나서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공을 빼앗긴 바르를 쳐다보았다. 바르 또한 자신이 먼저 나서려고 하다가 케인에게 선수를 빼앗겼는지 약간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데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맡기라고 나설 분위기다. 그 때문에 료우는 바로 바르에게 한마디 던졌다. “일단 선공도 중요하지만 혼란한 적에게 결정타를 먹이는 것도 중요하니 놈들에게 결정타를 먹이는 것은 너에게 맡길게. 일단 나와 몇몇이 대단위 마법을 펼쳐 놈들의 혼란을 유도할게. 그 다음에 케인의 아슈리안 전사가 혼란에 빠진 오크 놈들의 옆구리를 치라고! 뭐 물론 그렇다고 놈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지는 몰라! 하지만 결정적으로 혼란을 수습하고 케인의 부대에 대응하는 놈들의 뒤를 바르의 리자드맨 전사들이 친다면 놈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을 거야. 물론 놈들이 진형을 수습하고 대응하게 된다면 모두 전장에서 후퇴해야 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고 말이야. 과욕은 금물이라고! 우리에게는 이들 말고도 적이 많으니까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피해를 적에게 입혀야 해!” 료우의 말에 주위 연합전선 수뇌부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들에게 료우는 지휘관으로 인식된 듯 보였다. “쿠루룩... 역시 적염의 공작이라는 명성답게 대단하지 않나?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물의 숲은 물론이고 인간 왕국까지 쓸어버리고 있다니 말이야. 역시 적염의 공작이라는 이름이 헛되지는 않는군!” “쿠룩... 무슨 소리! 만약 우리가 모시고 있는 마르카바야 공작 전하셨다면 이미 인간 왕국을 점령하고도 남았어. 그리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마! 만약에 그런 소리가 공작 전하의 귀에 들어간다면 가뜩이나 적염 공작 전하께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 공작 전하의 불호령에 너라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상대에게 충고를 하는 존재는 보통의 오크보다 반배 이상은 커 보이는 그레이트 오크인데 키는 대략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였다. 다른 그레이트 오크와 마찬가지로 그도 인간의 기사가 거칠법한 중갑주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또한 그는 무시무시한 크기의 늑대의 등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갈색털이 유난히 거칠어 보이는 늑대는 보통의 늑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법한 몸길이인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엄청난 몸집이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는 날카로운 이빨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한번 “으르렁” 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투기는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만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었다. 유난히 커 보이는 늑대에 앉아 있는 그레이트 오크는 붉은색 빛깔이 유난히 돋보이는 투구를 쓰고 있는데 두 볼과 코를 가리는 곳은 동물의 뼈로 만든 듯 보였다. 그의 오른쪽 허리춤에는 무척 거대해 보이는 그레이트 소드가 메어져 있었다. “쿠쿠쿠... 제국의 서부 원정군 7군단의 군단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는 나라도 주군에게는 말 한마디 못한다는 소리냐?” 충고를 한 그레이트 오크 옆에는 그와 비슷해 보이는 그레이트 오크가 역시 비슷한 크기의 늑대를 몰고 있었는데 그의 표정은 약간 불만이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의 물음에 충고를 한 오크는 히쭉 이를 드러내더니 한마디 했다. “쿠룩... 나달! 네가 아무리 서부원정군 7군단장이라고 해도 마르카바야 전하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수하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거기다가 카발 공작전하라면 꿈속에서도 이를 갈고 있는 전하시니 함부로 카발 전하에 대한 칭찬을 내뱉는다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전하의 불호령을 피하지 못 할 거야.” “쿠루룩... 슐바인! 나란 존재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냐?” “전하에게는 너 말고도 7명의 군단장이 더 있다는 것을 잊었느냐? 너 하나 빠진다고 해도 7개의 군단이 전하를 따른 다는 소리다. 예전의 전하라면 너를 중요하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다. 함부로 전하의 심기를 거슬린다면 너라도 무사하지 못 할 거라는 말이다.” “끄응...” 이번에는 그 자신도 이해를 했는지 나달이라는 그레이트 오크는 슐바인이라는 그레이트 오크의 말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여기서 끝을 낸 것은 아니었다. 한참 묵묵부답(黙黙不答)으로 침묵을 지키던 그는 혼자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제길... 차라리 리치리온 전하에게 의탁할 것을 그랬어. 그랬다면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을... 쿠루룩” 나달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옆에서 같이 움직이던 슐바인은 슬쩍 고개를 움직여 처다 보고는 입술을 열었다. 그가 입술을 벌리자 무척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가 드러나는데 보통 사람의 이빨보다 2-3배는 훨씬 길고, 커보였다. 거기다가 날카로움을 따진다면 그 자신이 타고 있는 늑대의 이빨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을 듯싶었다. “쿠룩... 리치리온 전하 말이냐? 하지만 리치리온 전하라면 너를 받아줄지 모르겠구나! 그분은 수하를 뽑을 때도 꽤나 고심을 해서 뽑는다고 하던데 말이야.” “쿠루룩... 그 말이 무슨 말이냐? 그렇다면 네놈은 내가 변변치 못해서 리치리온 전하의 수하가 될 수도 없다는 말이냐?” 정말로 화가 치솟는지 성을 버럭 내는 나달의 반응에 슐바인은 자신이 너무 상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생각을 했는지 슬쩍 한발 뒤로 물러났다. “쿠루룩... 진정해라! 그런 뜻이 아니지 않느냐? 단지 내말은 리치리온 전하는 쉽게 자신의 부하를 뽑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세 명의 대공중 리치리온 전하의 세력이 가장 약하다는 사실을... 규모로 따지자면 우리가 모시고 있는 마르카바야 전하의 세력이 가장 크고 다음이 케블 전하의 세력이다. 리치리온 공작 전하의 세력이라고 해보아야 겨우 중앙에 있는 3개의 군단이 고작이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느냐?” 슐바인의 말에 나달 또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쿠루룩... 그만큼 리치리온 전하는 우리 오크들을 쉽게 믿지 못한다. 얼마나 신중한지는 이미 정평이 나있지 않느냐? 그러니 그런 생각일랑 모두 잊어버리고 우리 임무나 신경 써라! 지금은 우리끼리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케블 공작 전하가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남부 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까닭에 공작 전하의 심기가 무척이나 어지러운 상태다. 쿠룩... 그래서 갑자기 우리가 이렇게 서부 원정에 나서지 않았느냐? 일단은 마물의 숲 남서부를 시작으로 서쪽에 있다는 인간의 왕국도 휩쓸어야 한다. 그래야만 케블 전하의 명성을 꺾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마르카바야 공작 전하의 신임을 얻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슐바인의 말에 나달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동급의 군단장이지만 이번 서부 원정군 3군단을 맡고 있는 슐라인은 그레이트 오크중에서 보기 드물게 뛰어난 두뇌를 소유하고 있는 장군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무슨 병법의 귀재라는지 전략, 전술의 천재라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그레이트 오크보다 머리 하나쯤은 뛰어나다는 소리였다. “쿠룩... 최근 입수한 정보로는 마물의 숲 남부에 아직 리자드맨과 인간의 무리들이 숨어 있다는 정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남부 원정군 4군단이 인간과 리자드맨의 공격으로 절반이 넘는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도 들어왔다.” “쿠루룩... 패했다고! 겨우 리자드맨과 인간들의 연합에 말이냐? 도대체 적이 얼마나 많았기에 군단 하나가 대패를 했다는 말이냐?” “리자드맨과 인간들 모두 합쳐서 대략 2만 정도라고 하더군.” “쿠룩... 뭐야? 겨우 2만의 병력에게 10만이 깨졌다는 소리냐? 지금 그걸 나보러 믿으라는 소리냐?” “고위급 마법사가 인간 진영에 있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커다란 운석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얼음 기둥이 솟아나서 많은 병사들을 죽였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패했다는 소식이다.” “흥... 헛소리! 그따위 변명으로 패배를 무마하려고 하다니 나르바야라는 놈 다시 봐야 되겠군.” 그레이트 오크 나달은 그렇게 한마디 던지고는 앞으로 나갔다. “변명인지 아닌지는 지금부터 알아보면 될 거다. 아마도 이제부터 우리가 상대해야 할 존재가 바로 그놈들일지 모르니 말이야.” 서부 원정군 3군단의 군단장인 슐바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간 나달의 뒤를 쫓았다. “준비됐냐?” “쿠쿠... 아주 재미있는 마법을 준비했으니 기다려라. 아! 물론 효과는 조금 기다려야 하니까 내가 마법을 펼치고 한참은 기다려라!” 히쭉 웃으며 무언가 큰 것 하나를 보여주려는 듯 네오는 잔뜩 기대하고 있는 일행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이번에도 너만 믿겠다. 어디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해봐라!” 긴 대열을 이루며 행군하는 오크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던 료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네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미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네오의 눈빛이 번쩍였다. 전번 오크들에게는 7서클 마법중 가장 위력이 크다는 메테오스 마법을 펼쳐서 짭짤한 성과를 올렸지만 이번에도 같은 것을 날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번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색다른 마법을 나름대로 준비한 네오였다. 그리고 이번에 네오가 보여줄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디스럽트(DISRUPT) 웹(WEB)!” 네오의 입에서 터진 시동어와 더불어 긴 꼬리를 잇고 있는 오크 군대에 갑자기 하얀 광채가 치솟아 오르더니 길게 늘어져있는 행렬의 뒤덮는데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오크 군대를 뒤덮기 시작했다. 광채가 갑자기 생겨 난지 채 일분도 되지 않아서 전체 행렬의 삼분지 일을 덮었다. “헛!” “설마하니 저런 방법으로 마법을 펼치다니...” 이미 네오의 능력을 익히 파악하고 있던 몇몇 마법사들은 네오가 어떤 마법을 펼치지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가 네오의 입에서 터진 시동어를 듣고는 인상을 찌푸리다 그 범위를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확실히 네오가 펼친 디스럽트 마법은 그렇게 고위 마법이라고 할 수 있지는 않았다. 7서클 마스터인 네오라면 다시 한번 메테오스나 아니면 아론이 펼쳤던 블리자드 정도는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겨우 디스럽트 마법이라니...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던 마법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하니 디스럽트 마법을 대단위 마법으로 펼칠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크 군대의 행렬 중간에서 치솟은 하얀 광채가 오크 군대를 뒤덮자 지켜보던 료우의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디스럽트 웹이라면 료우도 이미 알고 있는 마법중 하나이고 그 위력도 익히 알고 있었다. 이 마법은 상대에게 심리적 혼란을 일으켜서 상대방의 전투력을 깎아버리는 마법의 한 종류로 그리 흔하게 쓰이는 마법은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 이 마법은 지능이 매우 낮은 몬스터들에게나 쓸모가 있는 것이지 지금처럼 수많은 병사들로 이루어진 오크들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다고 해도 옳았다. 그런데 그 마법을 네오가 펼친 것이었다. 물론 디스럽트 웹의 위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디스럽트 웹을 당한 지역의 상대는 마법으로 인해 심리적 혼란에 빠져서 그 장소에서 도망을 치거나 무력화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기에 더해서 때로는 내부 분열을 일으켜서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해서 싸움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헌데 지금 네오가 펼친 것은 무척이나 확률이 낮은 내부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기에 료우의 입이 벌어진 것이다. “혼란으로는 최고지! 안 그래?” 설마하니 오크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군대를 혼란 속으로 집어넣은 네오의 위력에 새삼스럽게 놀란 료우는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웃음을 흘렸다. “그럼 내 차례인가?” 네오의 마법에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이어지는 것은 아론의 마법이었다. “화이어볼!” “화이어볼?” 갑작스럽게 터진 아론의 시동어는 일반 3클래스 마법사라면 손쉽게 펼칠 수 있다는 화이어볼이었다. 아론의 말에 료우는 의문을 표시하며 아론을 쳐다보았고 그때 아론의 손에서 수십, 수백의 화염 덩어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억...” 벌어지는 입 때문에 료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엄청난 장관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아론의 시동어와 더불어 쏟아지는 무수한 화염 덩어리! 그것은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오크군의 행렬로 쏟아지는데 도대체 얼마나 쏟아 붓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슈우욱... 쾅!” “쿠에엑...” “콰쾅!” “쿠엑!” 무수하게 쏟아지는 붉은 화염의 구체를 날리는 아론은 흡사 표적을 향해 무차별 기관포를 날리는 사수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의 손에서 쏟아지는 붉은 화염은 특유의 광기를 내포한 채 오크 군대를 유린했다. “막아라!” “쿠에엑... 적이다!” 이미 네오의 대단위 디스럽트 웹 때문에 공포심과 더불어 서로에 대한 적대심이 치솟아 같은 동료를 향해 칼을 휘젓던 오크 군대는 아론의 손에서 뿜어진 화이어볼 공격에 통구이가 되었다. ---------------------------------------------------------------------------- 작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79 회] 날 짜 2004-06-18 ---------------------------------------------------------------------------- 31장. 고대 신전 “쿠룩... 이게 무슨 일이냐?” 중앙에서 1개의 백인대를 거느리고 있던 오크 백인대장 트바크는 갑작스럽게 환한 빛에 휩싸이자 어리둥절해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가슴속 깊이 스물 스물 올라오는 공포와 적개심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쿠루룩... 적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인지 모르지만 사방은 환한 빛에 휩싸여 분간이 되지 않는 가운데 적이라는 소리에 트바크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때 무언가 자신의 곁으로 달려드는 상대가 있었다. “휘잉” 하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분명 자신을 공격하는 듯 보였다. 트바크는 놀라서 바로 자신의 도끼를 움켜쥐고는 상대의 공격을 머리를 숙임으로서 흘려보내고는 상대의 몸을 찍었다. “쿠에엑...” 처절한 비명성이 트바크의 귓가를 울렸다. 자신을 공격했던 적을 해치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적은 그 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시금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이 트바크의 눈에 들어왔다. 상대는 자신과 비슷한 모양의 도끼를 들고 있는데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리자드맨 전사였다. 어떻게 리자드맨 전사가 행렬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자신에게까지 와서 공격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트바크는 특유의 괴성을 지르고는 달려드는 리자드맨 전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꽈아앙...” 상대는 자신의 도끼 공격을 막아냈다. 확실히 리자드맨 전사 개개인의 무력이 뛰어나다는 정보가 맞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리자드맨 전사라고 해도 결코 지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트바크는 오크 특유의 괴성을 한 번 더 지르고는 빠른 속도로 상대의 오른쪽 어깨를 노렸다. 트바크와 마주하고 있는 리자드맨도 트바크의 귀를 울리는 괴성을 지르는데 상대도 트바크 만큼이나 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는 모양이었다. “쿠룩... 죽인다!” 일갈과 더불어 트바크의 도끼는 짧은 궤적을 그리며 상대의 어깨를 공격했다. 트바크의 상대는 트바크의 날카로운 공격에 자신의 도끼를 빠른 속도로 움직여 방어를 했다. “꽈아앙...” 다시 한번 터진 도끼와 도끼의 부대낌은 둘 모두의 귀를 자극했고 서로는 상대의 실력에 다신 한번 도끼를 잡은 오른손에 온힘을 불어넣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강하다!’ 오크 왕국의 서부원정군 3군단 제 7 만인대 9 천인대 소속의 백인대장 세타르는 은은하게 울리는 오른쪽 팔목의 충격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자신의 상대가 자신 못지않게 강하다는 사실에 옅은 희열감과 더불어 약간의 두려움도 함께 느꼈다. 강한 상대와 대결한다는 희열감과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세타르는 이 색다른 감정을 맛보면서 강한 승부욕을 느꼈다. ‘쿠루룩... 결코 네놈에게 지지 않겠다.’ 세타르는 그렇게 결심을 하고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손에 온힘을 불어넣고는 빠른 속도로 상대의 품을 노렸다. 이것은 자신의 특기중 하나로 이 공격이야말로 세타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결정적인 절초였다. “쿠룩... 죽어라!” 강한 외침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상대를 파고드는 세타르의 공격은 리자드맨 전사의 몸놀림과 약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트바크로서는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헉! 저건 내 친구인 세타르의 절초와 비슷한 것 같은데...’ 트바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적의 공격에 예전 세타르와 싸웠던 기억을 더듬으며 방어를 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절대 절명의 순간 트바크는 예전 친구와의 대전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 세타르의 강력한 공격을 방어하고는 오히려 치명적인 반격을 가했다. “쿠루룩...” 허리를 파고드는 트바크의 도끼에 의한 상처로 세타르는 신음을 터뜨렸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허리에 박혀있는 도끼를 쳐다보았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레더를 헤집고 박혀버린 도끼 주위로는 자신의 피로 예상되는 녹색의 진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상처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쿠루룩... 여기서 죽다니...” 세타르는 신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상대의 허리에 도끼를 박은 트바크는 상대를 끝장내기 위해 도끼를 움켜쥐고 있는 오른손에 힘을 가하고는 크게 팔을 휘둘렀다. “쿠에에엑...” 강한 고통에 비명을 터트린 세타르는 파르르 떨리는 경련과 더불어 힘없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쿠룩... 이겼다!” 트바크는 친구인 세타르와의 대전 경험으로 인해 강력한 적을 이길 수 있었다는 생각에 전투가 끝난 후 친구에게 한턱을 쏠 생각을 하고는 다시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이 없나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만약 그가 자신이 적이라 생각하고 죽였던 상대가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사실을 안다면 어떠할까? 하지만 트바크에게는 그런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행운이라고 할까? 아니면 불운이라고 할까? 트바크가 다시 적을 상대하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붉은 화염의 구체가 트바크의 몸통을 정확하게 강타하고 말았다. “퍼어엉... 쿠에엑...” 붉은 화염 구체는 순식간에 트바크의 몸을 삼켜버렸고 오크 군대의 백부장을 맡으면서 네오의 디스럽트 웹으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를 죽였던 트바크는 한순간 화염에 휩싸인 채 한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 “퍼어엉...” “쿠에엑...” 사방에서 터지는 붉은 화염 구체에 가뜩이나 사방에 적과 대치하던 오크 군대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쿠룩... 적이다. 막아라!” “마법이다. 마법사를 찾아라!” “쿠에엑...” 적을 찾으라는 외침과 비명은 엄청난 위압감을 주며 행군하던 오크 군단을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네오가 펼친 디스럽트 웹에 걸린 지역의 오크들은 서로를 죽이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론이 펼친 수 백 여개의 화이어 볼로 인해 수백, 수천의 오크들이 불에 그슬린 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때 아닌 엄청난 소란으로 인해 오크 군대는 혼란에 빠졌지만 그나마 디스럽트 웹에 걸리지 않은 선봉과 후군의 지휘관들은 혼란을 수습하려고 애쓰며 적을 찾으려 하였다. “쿠룩... 모두 진정해라. 마법사가 있다.” 누군가의 처절한 외침이 들렸다. “이건 마법사의 짓이다. 빨리 모두 흩어져서 마법사를 찾아라! 쿠루룩...” 선두에 있던 3군단장 슐바인도 외침을 듣고 느끼는 것이 있었기에 혼란에 빠진 자신의 군대를 수습하며 자신의 군대를 혼란에 빠트린 마법사를 찾으라고 외쳤다. 남부원정군 4군단이 리자드맨과 싸울 당시 마법사로 인해 예기치 않은 피해를 입으며 대패했다는 소식을 이미 접하였던 그였기에 슐바인은 자신들을 공격한 상대가 인간 마법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에게 한번 크게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대책 없이 자신만을 탓하며 자책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기에 슐바인은 바로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군대를 수습하려고 애썼다. “쿠룩... 모두 마법사를 찾아라. 근처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오크 지휘관들은 슐바인의 외침을 듣고는 덩달아 깨닫는 것이 있었던지 마법사를 찾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디스럽트 웹에 걸리지 않은 지역에 있던 오크들은 화이어 볼의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혼란을 수습하고 사방으로 감시의 눈을 펼쳤다. 그쯤 네오가 펼친 디스럽트 웹도 그 위력을 다했는지 하얀 광채는 서서히 빛을 잃었다. “이때다. 공격신호를 올려라!” 어느 정도 혼란을 수습했다고 해도 디스럽트 웹이 거쳐지면 오크들은 자신의 손에 죽은 것이 적이 아닌 자신들의 동료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테고 그럼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였다. 료우는 그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우매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료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합전선에서는 기회만 엿보고 있던 케인의 아슈리안 부족에게 신호를 보냈다. “공격 신호가 떨어졌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때가 왔다는 말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 하겠느냐? 모두 나가서 오크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자!” 공격 신호만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던 아슈리안 부족장 케인은 신호를 받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의 클레이모어를 힘껏 쳐들고는 외쳤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스스로 선두로 나서며 오크 군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와아아...” 하는 함성이 울려 퍼지며 아슈리안 부족의 1만에 다다르는 전사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오크 군대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것은 인간과 리자드맨 부족이 연합을 하여 탄생한 연합전선과 오크들의 왕국 오이라트의 오크 군대와 첫 번째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아슈리안 부족이 노린 곳은 정확하게 네오의 디스럽트 웹으로 인해 서로 싸우던 오크 군대의 중앙부였다. 마법으로 인해 자기들끼리 전투를 벌였던 오크들이었기에 많이 지쳤고, 거기다가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는 충격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이야앗...” “쿠에엑...” 보기만 해도 무식해 보이는 대검을 휘두르는 인간 전사의 날카로운 검날은 혼란에 빠져든 오크 병사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축축하게 젖은 두 손은 짙은 녹색의 피로 얼룩져 있는 상태에서 도끼를 들고 있던 오크 병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죽음을 무릎 쓰고 싸웠던 상대가 자신의 동료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하얀 광채가 휩싸이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적이 자신을 공격할 때 오크 병사는 사방에서 자신의 동료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사방에는 오직 적으로 보이는 자들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적의 등장에 느껴지는 공포심과 적을 향한 적개심이 어우러진 오크 병사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동시에 적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서 온힘을 다해서 적과 싸움을 벌였다. 얼마나 정신없이 싸웠는지 자신의 갑옷은 적의 피로 젖었고, 자신의 도끼에는 적의 살점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기분 나쁜 느낌에 젖었지만 섣불리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다시 달려드는 적을 향해 도끼를 날리던 그는 자신이 있던 지역을 감싸고 있던 하얀 광채가 사라질 쯤 믿기지 않은 광경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 자신의 도끼에 등짝을 찍혔던 상대가 자신의 발아래 처참한 시신으로 변한 채 쓰러져 있는데 상대의 정체는 자신과 똑같은 외모의 오크 병사였다. 오크 병사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지금까지 자신과 처절하게 싸웠던 적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의 정체가 자신의 동료인 오크 병사였다니... 믿기지 않는 사실에 오크 병사의 넋은 나가 버렸고 그때 들려온 것이 아슈리안 부족의 함성이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장검과 화끈한 통증! 오크 병사는 자신의 목을 움켜잡으며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터져 나오는 피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힘을 잃고는 무릎을 꿇었다. “이얏... 죽어!” 처절한 외침과 더불어 상대를 향해 창을 박는 아슈리안 부족의 전사들은 숫자 때문에 처절하게 물러서야만 했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하나라도 더 죽이려고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이미 그들은 싸움이 아닌 학살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으로 인한 피해와 동료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젖어있던 대부분의 오크들은 아슈리안 전사들의 매서운 칼날을 막아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죽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쿠룩... 모두 정신을 찾아라! 적은 소수이다. 적을 막아라!” 1만이 넘는 아슈리안 전사들의 공격에 속절없이 쓰러지는 자신의 병사들을 바라보는 지휘관의 심정은 흡사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었다. 서부원정군 7군단 제 3만인대의 지휘관인 클루처는 자신의 손에 자신의 부관을 비롯해서 몇몇 장교들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인간들의 습격에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곧바로 자기 주변에 있는 오크 병사들을 향해 호통을 치며 인간들을 막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죽였던 적이 자신들의 동료라는 사실에 혼란에 빠진 오크 병사들은 클루처가 애썼던 만큼 금방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그의 만인대는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쿠룩... 뭣들 하느냐? 중군을 구해라!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라!” 디스럽트 웹에 피해를 입지 않았던 선두와 후군의 군대는 중군을 매섭게 공격하는 인간의 군대를 향해 달려갔다. 길게 늘어선 줄인데다 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에는 그 폭이 그렇게 넓지 못했기에 선두와 후군이 중군을 돕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만큼 오크 군대는 인간들에 인해 엄청난 피해를 당해야만 했다. “이야앗...”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며 장교급으로 보이는 오크 하나를 베어버린 케인은 이미 열둘이나 죽인 상태였다. 혼란에 빠져있던 오크들을 베어버린 다는 것이 전사의 명예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미 마물의 숲과 테미에서 많은 전사들을 잃었던 케인에게는 전사의 명예 따위는 이제 개에게나 던져줄 것이었다. 케인은 미친 듯이 오크들을 사냥했다. “쿠에엑...” 허리가 통째로 잘려나간 오크 병사의 처절한 비명이 귓가를 맴돈다. 케인은 열네 번째 희생자의 비명을 들으며 사방을 휘익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이미 수많은 오크들의 처참한 시신이 가득 메웠고 그들의 피로 생각되는 짙은 녹색의 액체로 인해 대지는 온통 초록색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아직까지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과욕은 금물이다!’ 케인은 미친 듯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한 오크 병사의 날카로운 도끼 공격을 몸을 움직여 옆으로 슬쩍 피하면서 이제는 후퇴 신호를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격을 생각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었던 오크 병사들이 서서히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까닭이었다. 케인은 곧바로 자신을 향해 도끼 공격을 한 오크 병사의 목을 사정없이 자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후퇴한다. 더 이상의 과욕을 부리지 말고 모두 예정했던 퇴각로를 통해 후퇴한다. 기회는 또 올 것이다.” 후퇴라는 말을 몰랐던 아슈리안 부족들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 까지도 적을 향해 오직 죽어라 공격만 퍼부었을 아슈리안 전사들은 케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장에서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아슈리안 전사들이 케인의 명령을 따른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복수에 눈이 멀어 끝까지 오크들을 향해 그 매서운 분노를 터뜨리다 오크들에 싸여 죽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케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쿠룩... 쫓아라. 모조리 죽여라! 놈들을 살려 두지마라!” 이미 수많은 병사들이 인간들이 손에 죽은 까닭에 오크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에 대한 복수에 눈이 멀어 후퇴하는 아슈리안 전사들을 쫓아 달려 나갔다. 그때 오크 군대는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다시 당하기 시작했다. “키에엑...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다. 모두 놈들의 뒤를 노려라! 최대한 적을 죽이고 신호가 떨어지면 모두 퇴각하라. 섣부른 욕심을 부리는 자가 있다면 내가 직접 그 놈의 목을 치겠다.” 리자드맨의 수장인 바르는 공격 신호만 기다리며 오크 진영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던 자신의 부족 전사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혼란에 빠진 오크들을 향해 적의를 불태우면서도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웅크리고 있던 리자드맨 전사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적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몇 번의 접전을 통해 적의 숫자가 지금 이곳에 있는 숫자보다 얼마나 더 많을지 모른다는 판단과 싸움이 장기화가 된다면 숫자가 부족한 아군이 불리하다는 사실 때문에 연합전선의 수뇌부는 최대한으로 아군의 인원을 아껴야 한다는 판단 하에 작전을 짰다. 적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의 희생을 줄이는 것이 연합전선 수뇌부의 최종 결정이었다. 바르의 명령과 충고가 끝나기 무섭게 리자드맨 전사들은 그 특유의 함성을 길게 내지르더니 아슈리안 전사들을 뒤쫓는 오크 군대의 후미를 공격했다. “키에엑...” 함성을 지르며 선두에 서서 달려가는 리자드맨 전사의 손에는 묵직해 보이는 날카로운 창이 들려있었다. 짙은 녹색의 피부에 길쭉한 주둥이로 함성을 지르는 리자드맨 전사는 오크들을 향해 강한 복수심과 투기, 그리고 전의를 불태우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발놀림은 오크들을 향해 달려갈수록 더욱 빨라졌고 그의 첫 번째 목표는 등을 보이고 있던 오크 병사였다. 이미 여러 번의 충격 때문에 정신없이 휩쓸렸던 오크 병사는 자신의 손으로 서넛 이상의 동료를 죽였고 또 아슈리안 전사들의 손에 죽은 동료 오크들의 죽음도 목격했다. 그 때문에 자책과 분노, 그리고 공포까지 어우러지면서 심한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리자드맨 전사의 그 날카로운 창날은 매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쿠루룩...” 오크 병사는 갑작스런 통증에 눈이 크게 떠졌다. 화끈한 통증은 자신의 등 언저리에서 전해졌고 복부를 뚫고 들어온 창날이 눈에 들어왔다. “쿠룩... 이건...” 등 뒤로부터 해서 복부를 깊숙이 관통한 창날을 바라보는 오크 병사는 서서히 떨리는 고통과 경련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상처사이로는 진한 핏물이 흘러 나왔다. 이미 살기는 글렀다. 그때 오크 병사를 뒤에서 찔렀던 리자드맨 전사가 그의 몸에 박혀있던 창을 빼내려고 힘을 썼다. 하지만 얼마나 깊숙이 찔렀는지 리자드맨 병사는 오크 병사의 몸을 꿰뚫은 창을 쉽게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빼내려고 힘을 쓰다가 끌려오는 오크 병사의 몸을 보고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그의 등 쪽을 세차게 누르더니 다시 한번 힘을 주고는 간신히 빼내었다. “쿠에에엑...” 다시 한번 터지는 오크 병사의 비명은 그가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였고 그를 찔렀던 리자드맨 전사는 일말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창을 이용해서 상대의 질긴 목숨을 끊어 버렸다. “키에엑... 죽어라!” “쿠루룩...” 사방에서 터지는 리자드맨 전사의 외침과 오크 병사들의 비명성은 금방이라도 자신들을 습격했던 인간들을 죽이려고 달려 나갔던 오크 진영에게 또 다른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쿠룩... 적이다. 적이 뒤에도 있다. 막아라!” “리자드맨 놈들이 뒤쪽에 있다. 빨리 뒤쪽을 막아라!” “쿠룩... 정신 차려라! 놈들은 소수다.” 아슈리안 전사들이 습격했던 것보다는 리자드맨 전사들의 습격에 오크들은 그다지 많은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이미 여러 번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이 되었지만 오크들의 숫자는 무진장 많았고 여러 지휘관들의 발빠른 대처 때문에 오히려 리자드맨이 위험에 빠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던 바르는 습격한지 채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후퇴를 알리는 나팔을 불게 했다. “뿌우웅...” 길게 울리는 나팔 소리가 평원을 가득 메웠다. 리자드맨 전사들은 아슈리안 전사들을 뒤쫓다가 후미를 기습받은 오크 병사들과 얼마 싸우지도 못하고 후퇴를 알리는 나팔 소리에 발을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악에 받쳐있는 오크들이 쉽게 그들을 나줄 까닭이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갖가지 마법 공격과 더불어 수천발의 화살이 오크들을 향해 날아왔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리자드맨 전사들의 후퇴를 도우려고 기다리고 있던 료우 용병대의 공격이었다. ---------------------------------------------------------------------------- 작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80 회] 날 짜 2004-06-23 ---------------------------------------------------------------------------- 31장. 고대 신전 “크아아악...” 투구를 내던지며 괴성을 지르는 자는 오크 군대의 7군단장 나달이었다. 폭염(暴炎)의 공작 마르카바야의 서부원정군 선봉을 맡게 되어 3군단장인 슐바인과 더불어 서쪽으로 진로를 잡고 움직이던 그로서는 연합전선의 갑작스런 기습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자신의 군대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번의 전투로 오크 군대는 3만이 넘는 병사를 잃고 말았다. 특히 중군에 있던 그의 군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죽은 자를 빼놓고라도 팔다리가 잘려서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 부상자의 수효가 자그마치 2만이 훌쩍 넘었다. 그것도 적에게 당한 피해보다 동료들끼리 싸워서 입은 피해가 컸다. 죽은 자의 3분지 2이상은 자신의 동료들의 손에 의한 살상이었다. 그 때문에 나달의 분노는 더욱 크기만 했다.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닌 기습적인 공격과 마법으로 인해 자신의 군대가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이 나달에게는 치욕이었다. “쿠룩...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감히 나 나달에게 이런 치욕을 안겨주다니 내 그놈들을 뿌리 채 뽑아서 씹어 먹지 않으면 성을 갈겠다.” 물론 오크인 그에게 성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하여간 나달의 분노는 매우 컸다. “우리가 너무 방심했다. 나르바야가 인간들의 마법에 당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다니 우리의 잘못이 크다. 쿠룩...” 나달이 분노하는 것을 지켜보던 슐바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달은 힐끗 쳐다보고는 가뜩이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것들이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하니 화가 솟구쳤다. “쿠루룩... 헛소리! 지켜봐라. 내 그놈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씹어 먹고 말겠다.” 나달은 슐바인을 향해 그렇게 말하더니 바로 자신들의 부대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휘하의 만인대장들을 소집하더니 병력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할 생각이냐?” “복수!” “쿠룩... 복수? 어디서 놈들을 찾아서 복수를 하겠다는 말이냐?” “크윽... 이 숲을 모조리 뒤지겠다. 그래서 놈들에게 내가 당한 치욕을 갚아주고야 말겠다. 으드득...” 날카로운 이빨을 가는 나달의 태도에 슐바인은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 숲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여기 있는 병력을 모조리 풀어서 이 숲을 뒤진다고 하여도 숲 전체를 다 뒤지려면 족히 수개월은 걸릴 것이 분명한데 그런 막무가내 식으로 작전을 짜다니 정말로 어이가 없구나!” 슐바인의 냉소에 나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쿠루룩... 그럼 이대로 당하고 있으라는 말이냐? 네놈의 부하들이 적게 죽었다고 지금 나보고 참으라는 소리냐?” 나달은 이제 오히려 술바인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 나달의 그런 태도에 슐바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의 주군인 마르카바야 공작이 서부원정군 사령관을 맡고 선봉으로 그와 나달 두 명을 내세우며 길을 개척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 그는 인상을 찡그렸었다. 본래는 그 혼자서도 선봉에 나서는 것인데 나달이 억지로 나서 선봉에 합류하고는 그와 토닥거리며 이곳까지 온 상태였다. 그로인해 행군은 늦어지고 어쩌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것도 나달의 제 7군단이 합류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달이 하는 행태가 심히 괘씸했다. “쿠룩... 말이 심하군. 이제는 눈에 뵈는게 없는 모양이구나?” “흥... 이제야 본심이 나온다는 말이군!”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데 네오의 디스럽트 마법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심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크들의 이런 내분이 이어질 쯤 초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전선은 대승을 자축하였다. “키에엑... 대승이군. 설마하니 이정도의 전과를 올리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어. 마법의 힘이라는 것이 이정도로 대단하리라고는...” 리자드맨의 수장인 바르는 무척이나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데 그의 주변에 있던 다른 리자드맨 전사들과 아슈리안 부족의 사람들도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우쭐해진 것은 네오였다. 비록 그 자신이 드래곤이라고 하지만 인간들과 더불어 산지 오래되서 그런지 그의 생각과 행동은 인간의 그것과 진배없었다. 네오는 우쭐해져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힘을 주는데 그 하는 냥을 보던 료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저게 자신이 알고 있던 드래곤이 맞기는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료우의 그런 반응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지 네오의 어깨는 더욱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구 하나의 공이라기보다는 모두 열심히 싸웠으니 이만한 전공을 세운거야. 칭찬은 이쯤해서 됐고 차후 우리의 작전을 생각해야 하는데...” 료우의 물음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 되었다. “아아... 잠깐! 나만 쳐다보지 말라고... 나도 이제 정말로 부담이 된다는 말이야. 내가 무슨 전략가도 아니고 모든 작전을 짜는데 나만 쳐다보면 어떻게?” 정말로 료우는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훑어보는데 솔직히 료우가 무슨 전략, 전술에 대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이러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의견을 내놓은 것에 불과한데 그게 맞아 떨어져서 지금까지는 100프로 료우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그게 계속되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었기에 료우 자신은 무척이나 부담이 되었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료우의 그런 반응에 그가 괜히 한번 튕겨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그들은 료우의 작전에 대해 100퍼센트 맹신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만큼 끌어온 것도 모두 료우의 공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자존심 강한 몇몇은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대부분은 료우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형편이었다. “료우! 잘 들어라. 우리가 여기 까지 온 것도 어떻게 보면 너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를 이렇게 한데 묶어놓은 것도 그렇고 또 우리가 이렇게 오크의 대군과 맞싸워 대승을 거두게 한 것도 너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런 나약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너를 믿고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나선 케인은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데 케인의 낮은 어조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마물의 숲 원정의 패배와 부족의 근거지인 테미를 잃고, 또 가장 의지하던 대장로 켈라힘을 잃으면서 케인의 성격은 무척이나 많이 바뀐 상태였다. 예전에는 젊은 나이 탓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뜻대로 행하려는 무모함이나, 호승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실책으로 많은 부족민이 죽었다는 심한 자책을 하면서 그로 인해 강한 책임감과 젊은 사람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냉정함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는 전사로서의 자존심도 버린 채 부족의 중흥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무척이나 많은 것을 잃고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케인의 말에 료우는 거의 바이크 비슷하게 말수가 적어진 케인이 자신을 신뢰한다는 소리를 하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저런 성격의 소유자가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네 맞아요. 저도 료우님을 믿습니다.” 옆에서 얀이 거들었다. 어떻게 보면 케인보다 더 불운한 사내라고 할 수 있는 얀이 케인의 의견에 동조를 했다. 한때는 일국의 왕자였던 신분에서 지금은 한낮 용병에 지나지 않지만 얀은 어딘가 모르게 다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이 엿보이는 사내였다. 물론 어렸을 적부터 왕족의 예절이 몸에 밴 탓도 있지만 일왕자인 자신의 형조차 두려워했던 인물이고 소수의 부대로 제국의 군대를 꺾었던 전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은 료우의 말에 전적인 동감을 표하는 것에 그치지만 그 자신도 전략, 전술에 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얀이 료우를 지지한다고 하니 료우는 더욱 골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훗후... 모두들 너를 지지한다고 하니 잘 해봐라.” 네오는 료우가 이들의 지지에 골치 아파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장난끼가 동했는지 미소까지 흘리며 그렇게 말을 하고는 어깨를 툭툭 치는데 료우는 네오의 장난을 눈치 챘는지 이마가 불끈거렸다. “험험... 놈들도 우리에게 당한 빛이 있으니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를 하려고 합니까?” 한때는 일국의 기사단장이자 왕국의 자존심이라고 했던 사나이! 그래서 처음 자신의 주군이었던 얀 왕자를 평대하며 마치 자신들을 부하처럼 대하는 료우에게 적의까지 보였던 카슈 호크와트 백작 아니 카발 메그넘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료우에게 물었다. 원래 연합전선 내에서 료우에게 가장 큰 적대감을 보이는 인물을 꼽으라면 그는 세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카발은 료우의 가장 큰 지원자이자 동료인 바이크의 무위에 탄복하면서 기사로서의 자존심을 꺾은 인물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제국에서도 겨우 8명밖에 안되는 소드 마스터인 바이크의 존재감은 그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얀 왕자 이상의 존경심을 갖게 만들었다. 물론 바이크 말고도 네오라는 소드 마스터가 있지만 네오는 어떻게 보면 정통적인 검사가 아닌 마법과 검을 함께 다루는 마검사였기에 전통적인 기사인 카발은 네오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채 바이크의 실력에 감복에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 인물의 수장이 료우였기에 료우에 대하는 카발은 예전의 그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보일 수 없었고 요즘은 그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카발이 바뀐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카발은 예전 기사일 때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얀을 따라 용병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깔끔했던 이미지를 버리지 못했던 그의 현재 모습은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는 전형적인 용병 이미지를 하고 있었다. 흡사 제 2의 바이크를 보는 것처럼 전형적인 용병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카발은 바이크의 또 다른 추종자중 하나인 아슈리안의 부족장 케인과 함께 바이크의 똘마니들로 칭해지고 있었다. 물론 바이크의 똘마니라는 명칭은 바이크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물론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네오가 셈이 나서 붙인 별명이다. 카발의 물음에 료우보다 아론의 대답이 먼저 이어졌다. 료우가 약간의 부담감 아니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아론의 배려였다. “아마도 우리를 찾으려고 동분서주(東奔西走)하겠지요. 무식한 오크들이라면 무작정 우리를 찾아 헤매려고 온 숲을 다 뒤지고 다닐지 모르니 정찰조의 행동반경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거기다가 저들의 병력은 저번 싸움에서 많이 줄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우리의 몇 배는 넘으니 방심할 수 없습니다.” 아론의 대답에 아슈리안 부족에서 그나마 머리가 있다는 키케르가 나섰다.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 켈라힘의 죽음 후 약간 초췌해진 상태에서 많은 힘든 일을 겪었기에 그는 예전의 모습과는 비교가 안 되는 무척 마른 몸매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눈빛만은 예전의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눈매를 보여주는 키케르였다. 그는 가만히 있다가 불쑥 나서더니 아론의 대답을 받았다. “적들은 아마도 예전 우리가 몇 번 접했던 그런 행태의 정찰 병력을 운용하리라 봅니다. 아마도 적게는 1천에서 많게는 1만의 병력을 한꺼번에 움직이며 정찰을 하겠지요. 그렇다는 것은 섣불리 우리가 정찰 병력을 운용했다가 그들과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는 말입니다.” 키케르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이미 오크들의 정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았기에 동의의 뜻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에엑... 그럼 함부로 정찰 병력을 운용하지도 못한다는 말이군.” 마물의 숲 정찰을 담당하는 바르가 키케르의 말으 듣고는 그렇게 말하자 키케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발이 저들 오크들의 무식한 정찰병 운용 때문에 묶일 수도 있다는 말인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숨죽이며 은둔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대답은 제가 하죠!” 다시 나서는 아론의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아론에게로 집중되었다. “예전 제가 와이번을 잡았던 기억이 납니까?” 아슈리안 부족을 찾기 위해 패밀리어를 잡아 운용했던 사실을 알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와이번을 이용해서 주변을 정찰했다는 사실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번에는 비록 몇 마리에 지나지 않아서 그 유용성이 떨어졌지만 만약 와이번의 숫자가 많고 그 와이번에 사람이 타고 정찰을 한다면 어떨까요?” “용기사!” 아론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던 얀의 목소리가 갑자기 터졌다. 갑작스런 얀의 반응에 사람들은 시선은 그에게 쏟아졌고 얀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 약간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얀이 이렇게 놀란 것은 용기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얀은 일국의 왕자였던 신분이었기에 저 남부 대륙의 강자라는 시미르 제국의 용기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대륙에서 제국이라는 호칭을 쓸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셋뿐이었다. 대제국 바빌론을 위시해서 신성제국 쥬안, 그리고 남부의 해상제국 시미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중 대륙의 가장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해상제국 시미르는 대제국 바빌론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제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바다의 신 라루프를 숭배하며 인구 1억을 갖고 있는 제국인 시미르의 군사력은 대제국 바빌론과 비교하면 삼분지 일 정도의 수준이지만 그 면면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대제국 바빌론조차 무시하지 못 할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 우선적으로 해군력을 비교한다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인구 2억에 본국의 병력만 무려 1백만이 넘는다는 대제국 바빌론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로 시미르 제국의 해군력은 무척이나 강한 편이다. 물론 육군을 비교하자면 해상제국 시미르는 대제국 바빌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병력수로만 따진다면 육군 정규 병력이 대략 80만 정도이기는 하지만 정예화 된 바빌론 제국의 육군 병력과 비교가 되지 않았기에 무척이나 밀린다고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시미르 제국이 고심을 해서 짜낸 것이 바로 용기사라는 존재였다. 예로부터 시미르 제국의 남쪽 바다 가까이 뱃길로 대략 하루 정도의 거리에 몬스터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마물의 섬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대륙의 패자인 바빌론의 침략을 받지는 않았지만 시미르 제국은 마물의 섬 때문에 몬스터들의 침입에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물론 육상형 몬스터는 바다가 막힌 상태라 시미르 제국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지만, 조류형 몬스터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틀려졌다. 그들은 날개를 이용해서 대략 뱃길로 하루거리의 바다를 건너 시미르 제국 본토까지 날아와 민간인을 공격하였다. 이 때문에 시미르 제국은 마물의 섬에 살고 있는 조류형 몬스터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수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마물의 섬에 살고 있는 몬스터를 퇴치하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무작정 마물의 섬으로 들어간 까닭에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것이 한번, 두 번 이어지면서 시미르 제국도 경험을 쌓게 되었고 많은 시간과 물질적인 피해, 병력의 손실을 통해 어느 정도 마물의 섬에 자신들의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다. 마물의 섬에 거점이 확보되자 군대뿐만 아니라 마물의 섬에 살고 있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전문적인 사냥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용병 경력이 있는 노련한 자들로 몬스터를 사냥하여 국가로부터 포상금을 타고 그 부산물인 살코기와 가죽, 뼈 등을 상인들에게 팔아 나름대로 적지 않은 수입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물의 섬은 많은 사냥꾼들로 넘치게 되었고 그들은 나름대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때에 나온 것이 조류형 몬스터인 와이번을 이용해서 같은 종류의 조류형 몬스터를 사냥하는 방법이었다. 전문 사냥꾼중 하나가 공중에 떠있는 조류형 몬스터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을까 하다가 생겨난 것인데 그 사냥꾼은 와이번을 생포한 후 그것을 길들이고 훈련시킨 후 흡사 말을 타는 것처럼 와이번을 타고 공중에서 조류형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 사냥꾼의 방법은 무척이나 기발하고 효과가 만점인지라 이때부터 많은 사냥꾼들이 와이번 둥지를 찾아다니며 알을 훔쳐 새끼 때부터 와이번을 훈련시켜 와이번 라이더가 되었다. 이런 기발한 방법을 절대 놓칠리 없는 시미르 제국이었다. 시미르 제국은 사냥꾼들이 와이번을 길들이는 방법과 훈련하는 방법, 그리고 와이번을 타는 방법들을 배워 기사들로 하여금 와이번을 타고 전쟁을 누비는 방법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로 용기사라는 새로운 부대가 탄생된 배경이다. 얀은 시미르 제국의 용기사에 대한 소문을 접했기에 아론의 말에 그렇게 놀란 것이다. 얀의 갑작스런 말에 아론은 살짝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우리의 경우에는 용기사(Dragon knight)가 아닌 와이번 라이더(Wyvern raider)라고 해야 할까요!” “와이번 라이더라!” “그렇죠. 뭐 기사들이 와이번을 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찰을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니까요. 지금부터 와이번 새끼를 길들이고 훈련시켜서 전쟁에 써먹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단은 정찰을 목적으로 와이번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은 제가 패밀리어로 계약한 두 마리 성인 와이번과 세 마리의 새끼, 그리고 나중에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포획한 다섯 마리의 성인 와이번을 이용하면 정찰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군요.” 아론의 설명에 사람들은 설마하니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을까 생각을 하고는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설마하니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료우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물론 몇몇 판타지 소설을 통해 와이번을 타고 전쟁을 누비는 용기사에 대한 이야기는 접했지만 실지로 그것이 존재할지도 그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정찰에 대한 것은 와이번을 이용하면 된다는 하지만 와이번을 훈련시키고 그것을 타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듯싶은데 그 시간동안은 어떻게 할 겁니까? 무슨 대책이 필요할 듯싶은데요.” 누군가의 질문에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모두 료우의 얼굴만 쳐다보며 그에게 답을 구했지만 몇몇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자 그들도 덩달아 자신의 의견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특별한 의견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지금과 같이 정찰 병력을 운용하지만 일단 오크 정찰 병력을 보면 바로 후퇴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바이크가 한마디 던졌다. “역으로 놈들의 정찰 병력을 부순다.” “역으로?” 료우는 항상 침묵하던 바이크의 한마디에 무슨 소리인가 하고 그렇게 물었고 바이크는 료우를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놈들이 흩어져서 대규모로 마물의 숲을 뒤진다면 그전까지의 숫자 우위는 유명무실해진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저들보다 많은 병력을 운용해서 저들의 정찰 병력을 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아아...” 바이크의 설명에 사람들은 입을 함지박 만하게 벌리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신들은 저들의 대규모 정찰 병력을 운용하여 자신들의 행동반경이 줄어들었다는 걱정만 했을 뿐이지 그로 인한 이득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크들이 무서운 점은 그들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일대 일이라면 리자드맨 전사들이나 아슈리안 족 뿐만 아니라 이제는 바이크와 네오, 카발 등에 의해 용병으로서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4천의 용병들도 충분히 이길수 있는 개인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적의 숫자가 자신들과 비슷하다면 충분히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야하... 바이크! 정말 멋질걸. 이런 기발한 생각을 내놓다니 말이야. 다시 봐야 겠는걸.” 료우의 칭찬에 바이크는 료우를 향해 한번 싱긋 웃고는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항상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의 황제 바이크의 이 같은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약간 어색한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이미 바이크와 함께 몇 년을 함께 했던 료우에게는 결코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요 근래 많은 일들로 인해 바이크나 아론, 네오와의 시간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들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 등이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심히 헤아리고 있는 료우였다. 그들의 자신에 대한 애정을 알고 있는 료우는 아론이나 바이크등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놈들의 우둔함을 기념하며 다시 한번 질퍽하게 놀아봐야겠군.” 지휘부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보여주었던 걱정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 작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81 회] 날 짜 2004-06-24 ---------------------------------------------------------------------------- 31장. 고대 신전 향후 오크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바이크의 의견으로 몇 개의 소수단위로 나누어진 오크 병력을 때려 부수자는 의견으로 결론을 내린 지휘부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정찰 병력을 때려 부수는 병력은 현재 구성되어있는 연합전선의 성격에 따라 리자드맨 부족, 아슈리안족, 용병등 세 부대로 나누어 오크 정찰 병력을 공격하기로 의견이 조율되었다. 때문에 료우가 이끄는 4천의 료우의 용병대는 마물의 숲으로 조용히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놈들의 행적을 찾아야 하니 네오 네가 좀 수고해라.” 와이번 라이더를 훈련시키기 위해 본진에 남은 아론과 그의 와이번이 없는 관계로 료우는 하나뿐인 7클래스 마법사 네오에게 마물의 숲 정찰을 부탁했다. “설마하니 천리안이라도 쓰라는 말은 아니겠지. 전번에 한번 하고 한참이나 기력을 뺀 걸 생각하면 끔찍하단 말이야.” 고개를 흔드는 네오의 반응에 료우는 피식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칫... 겨우 그것 갖고 엄살떨기는... 아마도 우리 찾으려고 무식하게 찾아다닐 오크들을 생각하면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셔. 아마 금방 찾을 테니 너무 초장부터 엄살 부리지 말라고.” 료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네오를 재촉하는데 네오는 료우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다니 큰소리로 외쳤다. “클레어버이언스” 조용히 시동어를 외치고 눈을 감은 네오는 서서히 들어나는 마물의 숲을 속속들이 살피기 시작했다. 거대한 숲과 넓은 초지, 그리고 간간히 모습을 보이는 몬스터들! 이미 마물의 숲은 몬스터의 천국이 아니었다. 대규모 오크 군대에 의해 마물의 숲에 살고 있는 많은 몬스터들은 사냥을 당하거나 살육되어 오크들의 먹이가 되거나 아니면 그들의 노예로 전락했다. 특히 오우거나 트롤등의 대형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먹이에 지나지 않았던 오크들의 노예가 되어 전쟁의 도구로 쓰였는데 그 때문에 현재 마물의 숲에는 예전에 보았던 몬스터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흡사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보다 적은 것이 현재 마물의 숲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다만 무한한 번식으로 인해 늘어난 대규모 오크의 군대만 있을 뿐이었다. 네오는 천리안을 이용해서 현재 자신을 비롯한 료우의 용병대가 위치에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을 천천히 훑으면서 오크들의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후 료우의 말마따나 숲을 뒤지는 한 떼의 오크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략 1만 가량의 만인대로 보이는 오크 부대는 현재 료우의 용병대가 있는 곳에서 대략 30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들은 현재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사방을 정찰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오는 오크 무리를 발견하고는 바로 천리안을 멈추고 눈을 떴다. “발견했어?” “그래! 대략 1만 정도다. 이곳에서 대략 30킬로 남서쪽에 있다.” “...” 네오의 대답에 료우는 잠시 입을 다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할꺼냐!” 네오는 료우가 자신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자 잠시의 기다림도 참지 못한다는 듯 채근을 하는데 네오의 채근에 료우는 생각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잠시만... 남서쪽 30킬로 밖에 녀석들이 있다고 했는데 녀석들의 이동방향은 어디인지 알아?” “곧장 이쪽 방향으로 오는 것 같다.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야.” 료우의 물음에 네오는 바로 그렇게 대답을 했고 료우는 잘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법이 생각 난거냐?” “응!”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매복!” “매복?” “그래! 여기서 매복하고 있다가 놈들을 공격하는 거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료우를 대화를 나누던 네오는 료우의 말에 별반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렇게 말했다. “왜?” “그깟 오크 놈들 1만을 상대로 매복이라니... 너무 귀찮은 짓을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왜 네가 저번처럼 마법이라도 한번 쓸려고? 하지만 이번은 내 뜻대로 해! 계속 너만 의지해서 싸울 수는 없잖아. 이들도 어느 정도 훈련은 끝난 상태가 계속해서 너의 도움으로 이 전투를 끌 수는 없잖아. 그리고 오크 놈들도 나름대로 우리에게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료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네오를 설득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네오의 마법으로 오크들과의 전쟁을 승리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네오나 아론이 7클래스 마법사고 대단위 마법으로 엄청난 숫자의 오크들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한정 그들만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평원에서 인간 원정대 4군이 십만에 달하는 오크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를 떠올린다면 아무리 7클래스 마법사 둘이 있다고 해도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오크들을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료우는 그 때문에 적에게 엄청난 혼란을 줄 수 있는 아론이나 네오의 마법을 의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그 둘만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용병들이나 다른 연합전선의 인물들에게 인식시켜야 했다. 그 예로 료우는 우선 이번 매복 작전을 통해 마법의 힘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이끌도록 결심했다. 물론 그렇다고 마법의 힘이 한축이 되어있는 용병대의 전력을 하나도 안 쓰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용병대에 존재하는 마법사의 힘을 쓰지 않고 1만에 달하는 오크들과 싸운다는 것은 멍청한 짓이기 때문이다. 단지 료우는 네오가 대단위 마법을 쓰지 않게 한다는 것이었다. 네오는 물론 몇몇 고 레벨의 마법을 오크들에게 퍼붓고는 검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모두 내가 한 말을 명심하도록... 알겠지?” “넷!” 한쪽에 모인 료우 용병대의 지휘관들은 료우의 명령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현재 이곳에 모인 이들은 료우 용병대의 주축이자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이었다. 3백 정도의 적은 병력에서 얀의 용병대를 비롯해서 마물의 숲 원정대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용병들을 끌어안은 료우 용병대는 현재 대략 4천이 조금 넘는 인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새로운 체계로 용병대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료우 용병대의 체계를 살펴보면 대략 이러했다. 료우 용병대는 일단 4개의 천인대로 크게 나누어졌다. 일단 4개로 이루어진 천인대에는 각각 1천 정도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천인대를 이끄는 지휘관은 소드 마스터인 바이크와 네오를 위시해서 얀과 카발이 맡았다. 그리고 각 천인대에는 하나씩의 마법부대를 두었는데 그들은 따로 각각 1개의 백인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법부대는 예전 료우의 용병대에 있던 마법사들과 마물의 숲에서 훈련시킨 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4군을 구하기 위한 싸움에서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죽은 까닭에 최고 실력자는 3클래스를 겨우 마스터한 슈온과 피드로를 비롯한 몇몇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은 1, 2 클래스의 저 레벨의 마법사가 전부였다. 그 때문에 마법부대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엘프들의 도움으로 궁수부대를 따로 교육시켜 마법부대와 같이 운용하게 되었는데 마법부대는 마법사와 궁수의 비율이 각각 3:7정도로 구성되어졌다. 예전 복잡했던 구성도 무척이나 간소화 되었다. 예전에는 하나의 십인대에 각각 전사 7명, 암살자 1명, 정찰조 1명, 마법사 1명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현재는 그런 구성없이 단순하게 같은 계통끼리 묶어서 십인대를 최소단위로 해서 백인대를 주축으로 병력을 운용하도록 했다. 예전의 경우 용병대의 숫자가 대략 300명이 겨우 넘었기에 병력운용이 십인대를 중심으로 운용되었지만 지금은 숫자가 많아진 까닭에 백인대 정도가 병력 운용의 최소 단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밖에도 료우의 용병대는 예전처럼 따로 특수 부대를 몇 개 두었는데 일단 암살부대와 정찰부대, 그리고 후방지원부대가 그것이었다. 암살부대의 경우에는 예전에도 있던 것으로 암살자였던 라미셀과 5클래스 흑마법사이자 세이드 족인 어비스가 주축이 되어 대략 2백명 정도의 암살부대가 운용되어졌다. 라미셀과 어비스는 각각 1백의 암살자들을 운용해서 2개의 백인대를 창설했다. 정찰부대의 경우에는 두 명의 지휘관이 있는데 엘프 전사의 수장인 세리안트와 항상 용병대의 선두에 서서 정찰을 도맡았던 베뉴사가 그들이었다. 이들 정찰부대는 최전방에 침투하여 정찰을 주 목적으로 하지만 때로는 적 후방 교란도 도맡아 또 다른 역할도 수행했다. 정찰부대도 대략 2백명 정도의 규모로 2개의 백인대로 이루어졌다. 특수부대의 또 다른 하나인 후방지원부대는 빛이 성녀이자 어둠의 사제인 다크프리스트 가이아를 중심으로 일부의 엘프 정령사들과 공격마법보다 치료마법에 관심이 있는 마법사들로 구성되어졌다. 마물의 숲에서 엄청난 인적 자원을 손실하며 초반에 워낙에 많은 부상자가 있었던 까닭에 부상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신관이나 정령사, 마법사의 필요성을 깨달은 료우의 판단아래 만들어진 부대가 이 후방지원부대였다. 현재 료우 용병대의 후방지원부대는 정령사와 마법사를 중심으로 부상에서 회복은 되었지만 전투에는 참여할 수 없는 용병등을 모두 포함해서 대략 300여명 정도로 운용되어졌다. 이렇게 모든 병력을 따진다면 료우의 용병대의 총 인원은 모두 합해서 4천 7백 명이 조금 넘는 숫자였다. 하지만 후방지원부대의 경우에는 전투에는 참여할 수 없었기에 4천 4백여 명이 전투에 참여할 수 인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땅을 깊숙이 파고 그 안에 몸을 숨긴 르포엘은 숨을 죽이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나름대로 숙지하기 시작하였다. 테미에서 마물의 숲 원정에 참여하는 용병들에게 많은 금액의 급료를 준다는 말 한마디에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며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와 자식들을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자 무턱 되고 마물의 숲 원정에 참여했던 르포엘이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창을 움켜쥐고 나섰던 원정은 처음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그에게 무한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한번도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던 르포엘은 팔다리가 끊어지고 옆에서 웃고 떠들었던 동료가 차디찬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굴렀을 때 그 공포감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놓치고 한참이나 그날 먹었던 것을 게워냈던 기억이 있었다. 그 후 몇 번의 전투로 인해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조금은 해소되었지만 대규모 오크 부대와의 전투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심한 부상을 당해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부상을 당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채 죽을 날만을 기다렸던 그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테미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자신의 원정 참가로 인해 배고픔에서 조금은 해방되었으리라는 일말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들려온 소식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파미르 왕국의 테미 침공! 그리고 오크들의 테미 점령! 연이어 들려오는 불길한 소식에 그는 절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미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파미르 왕국의 병사들에 의해 학살되었고 뒤이어 테미를 점령한 오크들에 의해 테미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다시 한번 학살을 당하는 참변을 겪었다. 오크들은 자신들의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마물의 숲에서는 자신들보다 약한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군량을 조달했고, 인간 마을을 공격하면 그들의 식량을 빼앗아 군량으로 썼다. 물론 식량이 모자라면 인간들의 인육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사람을 식량으로 조달하는 극악의 짓까지 서슴치 않았다. 물론 아직까지 인간 왕국을 침입한 오크 군대가 인육을 먹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충분히 인간을 식량으로 쓸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르포엘은 테미에서 도망친 아슈리안 부족의 사람들의 입을 통해 테미의 참상을 듣고 자신의 가족이 살아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상처가 회복된 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파미르 왕국이나 오크에 대한 원한으로 바뀌었다. 그는 가족의 죽음을 예감하며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와 아이들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는 복수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가 지원한 부대가 암살부대였다. 그는 어느 부대보다 훈련의 강도가 심하고, 인성 따위는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암살부대의 훈련을 묵묵히 받으면서 파미르 왕국과 오크들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다. 때문에 지금 현재 비트를 파고 묵묵히 오크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그는 한시라도 빨리 오크들이 접근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눅눅한 땅의 흙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였다. 한때는 농사꾼이 되기를 갈망했던 적이 있었던 르포엘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비록 작은 규모의 땅이었지만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자랐던 그는 아버지처럼 농부가 되리라고 생각했고, 농부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도 전쟁으로 인해 처참하게 깨어졌다. 미르의 한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던 르포엘은 전해져 오는 소문에 기겁을 했다. 제국의 악마들은 죄 없는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 죽인다는 끔찍한 소문이었다. 때문에 르포엘은 자신의 아내와 아들, 딸을 데리고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제국의 손에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넘어온 이국땅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이미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난민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던 파미르 왕국은 난민들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거나 노예로 파는 짓까지 서슴치 않았고 그 때문에 그는 가족을 데리고 마지막 남은 테미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난민과 부랑아로 몸살을 앓고 있는 테미도 그들에게는 결코 편안 안식처가 될 수 없었다. 때문에 르포엘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무릎 쓰고 마물의 숲 원정에 참여했는데 이제는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르포엘은 눅눅한 흙냄새를 맡으며 어렸을 적 추억을 잠깐 떠올리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자신은 농부가 아니었다. 아니 농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은 이미 피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박 사박...”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소음에 르포엘은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모조리 사라짐을 느끼고는 얼른 귀를 기울였다. 무척이나 조심스럽지만 이미 이런 소리를 구별하는 훈련이 되어있는 그에게는 이런 조심스러운 발걸음도 무척이나 크게 들려왔다. ‘놈들이 왔구나!’ 르포엘은 발걸음 소리를 파악하고는 눈을 빛냈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도래한 것이다. 르포엘은 살기를 드러내며 자신의 왼편에 놓아두었던 화살을 집어 올렸다. 그리고는 등 뒤 화살 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고는 심호흡을 깊게 들어 마셨다. 이제는 최후의 실행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때 잠시 자신을 비롯한 암살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한마디 당부를 던지던 젊은 용병대장 료우의 말이 떠올렸다. “적의 숫자는 우리들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무작정 놈들을 죽인다면 효과적으로 놈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너희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리겠다.” 자신보다 열 살 정도는 어려보이는 용병대장이었지만 르포엘은 자신의 상관을 존경했다. 이미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던 자신을 살려주었고, 그 험한 전쟁터에서 자신들을 끝까지 책임졌던 사내가 바로 저 젊은 용병대장이었다. 또한 가족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그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 것도 료우라 불리던 용병대장이었다. 때문에 르포엘은 자신이 존경에 마지않던 아버지 이상으로 젊은 용병대장을 존경했다. 그리고 그 용병대장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적의 지휘관을 중심으로 노려라! 일반 오크 병사가 아닌 지휘관을 비롯한 장교들을 중심으로 개전과 동시에 저격하여 적 지휘부를 혼란시키게 하여 명령계통을 마비시키라는 것이 이번 작전의 골자였다. 때문에 자신을 비롯한 암살부대와 정찰부대원들이 모조리 땅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저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적 지휘관과 장교들을 저격하는 동시에 매복하고 있다가 바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르포엘은 또렷하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활대를 잡고 있는 왼손에 힘을 쥐고는 화살을 시위에 메기고는 서서히 땅을 덮었던 나뭇가지를 머리를 이용해서 들어올렸다. 머리를 조금 내놓은 상황에서 르포엘은 밖의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오크 병사들이 사방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데 그들은 대략 100명이 한조가 되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르포엘은 자신의 첫 번째 표적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눈에 첫 번째 표적으로 적당한 상대가 눈에 띄였다. 그는 워울프로 보이는 늑대위에 몸을 의지하는 오크 장교였다. 보통의 오크보다 반배이상 커 보이는 오크는 자신이 듣기로 그레이트 오크라 불리는 존재였다. 견고하게 보이는 중갑주를 걸치고 머리에는 미개한 오크 따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투구를 쓰고 있는 오크 장교는 아마도 상당한 지위에 있는 오크로 보였고 르포엘은 자신의 첫 번째 표적을 그로 정했다. 르포엘은 예리한 시선으로 자신의 표적인 오크 장교를 향해 활시위를 고정시켰다. “활을 쏠 때는 마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평안해야 목표로 한 상대를 향해 정확하게 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가리켰던 엘프 교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르포엘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처음 자신이 정했던 표적에 대한 저격을 실패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얻으려면 호흡을 조절해야 합니다. 들어 마시고 내쉬는 호흡법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의 안정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호흡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하며, 호흡의 기본적인 요령은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천천히 가급적 길게 내쉬고 길게 들어 마시는 것이 최상의 호흡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포엘은 엘프 교관의 가르침처럼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일단 급하면 급할수록 실패할 확률은 높았다. 르포엘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엘프 교관에게 배웠던 호흡법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들어 마실 때 호흡을 잠시 멈추고 가슴에 힘을 빼고 기운을 하단 쪽으로 보내면 안정되고 평안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된 호흡법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으면 활시위를 당깁니다. 활시위를 당길 때는 숨을 길게 들어 마시고 활시위가 최고의 극점에 왔을 때 잠시 호흡을 멈추고 활이 고정된 상태에서 표적을 고정시킵니다. 이 때의 발시 직전이야말로 활에 있어서 고요함의 극치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르포엘은 엘프 교관의 궁술 교육을 잊지 않았다. 일반 인간들의 궁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난위도의 엘프 궁술은 그에게 표적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 넣고 있었다. 숨을 가다듬고 표적을 향하는 그의 눈은 한 곳으로 고정되었다. 마법사들을 통해 암살부대원들의 화살에는 일반 가죽 갑옷이나 두터운 판금 갑옷을 멀리서도 충분히 뚫을 수 있는 블레이드 샤프(BLADE SHARP) 마법이 걸려 있었다. 무기의 날카로움을 가증시키기 위한 이 마법은 상대에게 큰 해를 줌과 동시에 명중률까지 높여주게 하는 것으로 암살부대원들에게는 최상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르포엘은 블레이드 샤프 마법이 걸려있는 화살이라고 해도 오크 장교가 걸치고 있는 중갑주를 뚫지는 못하리라는 판단이 섰다. 때문에 그의 표적은 중갑주와 투구에 가려져 있지 않은 오크 장교의 목이었다. 표적이 무척이나 작아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미 충분한 훈련으로 목표를 놓치지 않을 자신감이 르포엘에게는 있었다. 그는 시선을 고정시키고 화살을 메긴 후 시위를 놓았다. “쉬이익...” 귓가를 울리는 파공성과 함께 르포엘이 쏜 화살은 빠른 속도로 워울프에 타고 있는 오크 장교에게로 날아갔다. 그때 르포엘과 같은 목적을 갖고 있던 암살부대원들의 화살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아간 상태였다. “커억...” “쿠에엑...” 순간적으로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과 리자드맨이 연합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채 거의 절반 이상의 병사를 잃은 오크 왕국의 서부원정군 7군단장 나달은 병사들을 재촉해서 마물의 숲 전체를 샅샅이 뒤지면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자들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몇 일 동안의 수색은 자신에게 아무런 성과도 얻어주지 못하고 그 때문에 그는 몹시 초조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친히 한 개의 만인대를 직접 끌고 나와서 수색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마물의 숲 전체를 뒤지겠다는 자신을 비웃으며 한참이나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3군단장 슐바인 때문에 수색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기에 나달은 죽을 맛 이었다. 전 병력을 동원해서 몇 일간 숲을 뒤졌지만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았기에 금방이라도 그만 포기하고 싶지만 슐바인의 비웃음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쉽게 그만 둘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애꿎은 부하들만 독촉하다가 급기야는 자신이 직접 한 개의 만인대를 끌고 수색에 나선 형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섰다고 쉽게 찾을 수 없는 인간과 리자드맨을 쉽게 발견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몹시 초조해진 나달은 아무런 생각 없이 워울프를 몰다가 아무래도 좋으니 인간이나 리자드맨의 습격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귓가를 울리는 비명소리가 터졌던 것이다. 나달은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보다도 귓가를 울리는 비명에 깜짝 놀라 고개를 젖혔고 그때 그를 노렸던 화살 하나가 급하게 날아와 그의 투구를 때렸다. “따앙...” “헉...” 나달은 저만치 날아가는 투구를 보며 신음을 터뜨렸다. 누군가의 표적이 되었는지 자신을 향해 날아온 화살은 자신의 투구를 때리고 자신의 목숨대신 투구를 재물 삼았다. “제길...” 워울프에 타고 있던 오크 장교를 노렸던 르포엘은 자신이 노렸던 목표물의 운이 좋았던 사실에 욕을 내뱉었다. 하필이면 그때 비명이 터지고 오크 장교가 몸을 움직여 자신의 화살을 피한 것이 열이 받쳤다. 하지만 이대로 욕만 뱉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다. 르포엘은 다시 등 뒤에서 화살을 꺼내고는 시위를 메겨 자신이 실패했던 목표물을 한번 힐끗 살펴보았다. 워울프에 타고 있던 장교는 위험성을 알았는지 워울프에서 내려 몸을 숨기며 사방을 감시하며 저격수를 찾는 듯 보였다. 이미 몸을 감춘 상대를 애써 저격할 이유는 없었다. 그 말고도 그의 화살에 표적이 되고 싶은 자들은 널리고 널렸다. 르포엘은 한번 실패한 표적을 내버려둔 채 다른 표적을 향해 화살을 날렸고 이번에는 그의 저격은 성공했다. “쿠에엑...” 돼지 멱따는 비명과 함께 장교로 보이는 오크 하나가 목에 화살을 박은 채 땅바닥을 굴렀다. 오크 장교의 저격에 그의 곁에 있던 오크 병사들은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지며 또 다른 공격에 두려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지휘부의 예상대로 오크들은 지휘관들의 저격에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공격하라!” 사방에서 이어지는 암살부대의 저격으로 오크 지휘관들이 하나, 둘 쓰러지며 오크 군대의 혼란이 가속되자 기다리고 있던 료우의 공격 명령이 터져 나왔다. 이미 오크들을 향해 살의를 번뜩이던 용병들은 혼란해 빠진 오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쿠룩...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누군가의 외침이 터졌지만 이미 각급 지휘관들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오크 병사들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미 한번의 대규모 습격으로 수많은 동료를 잃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오크들은 어느 사이 두려움이라는 것이 마음 깊숙이 존재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료우 용병대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쉬이익...” “쿠아앙...” “퍼어억...” “쿠엑!” “크아악...” 사방에서 터지는 화살 공격과 마법 공격! 그리고 오크들의 비명은 아직 오크들에게 접근하지 못한 용병전사들의 공격 이전에 마법부대에서 쏟아낸 공격이었다. 궁사들과 마법사들이 어우러진 마법부대는 화살과 공격마법으로 혼란에 빠진 오크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며 살상을 하였다. 모두 합쳐 2백에 지나지 않는 병력이기에 그들이 살상하는 오크 병사의 숫자라고 해봐야 기껏 해서 몇 백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마법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던 기억이 있는 오크들은 1, 2 클래스의 낮은 공격마법에도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에 빠진 오크 군대를 들이친 것이 용병 전사들이었다. “죽엇!” 앞으로 세차게 달려 나가며 소리치는 용병 사내의 검은 오크 병사의 목을 스치듯 지나갔다. 흡사 베어내지 못하고 지나친 듯 보였지만 주르르 흘러내리는 녹색의 핏물과 서서히 벌어지는 목의 상처를 볼 때 그의 검은 정확하게 오크 병사의 목을 훑고 지나친 듯 보였다. “쿠에엑...” 뭉툭해 보이는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녹색의 핏물에 오크 병사는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빠져나가는 피 때문에 후들거리는 몸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는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진 얼굴로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는 피를 억제하려고 발버둥쳤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얗게 창백해진 안색으로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급기야 바닥을 굴렀다. 흡사 물속에서 건진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거리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런 참상을 결코 위로하지 않았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82 회] 날 짜 2004-06-25 ---------------------------------------------------------------------------- 31장. 고대 신전 “차아앗...” 료우는 오크 군대를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리고는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는데 결코 주저함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의 손에 얼마나 많은 오크 병사들의 목숨이 사라졌는지 모른다. 아니 그의 말 한마디에 수천, 수만의 달하는 오크들이 이미 생명을 달리했다. 그런 것을 알고 있기에 료우는 오크들을 죽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료우는 자신의 애검인 티어 오브 소드를 휘두르며 자신을 막아서는 오크들을 베었다. “쿠에엑...” 정면에서 창을 들고 막아서는 오크 병사 둘을 한꺼번에 베어버린 료우는 상처사이로 튀기는 녹색의 핏물을 피하지 않았다. 료우는 두 명의 오크 병사를 베어버리고는 또 다른 먹이감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리다가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한 오크 장교를 발견했다. 보통의 오크와는 다르게 화려한 중갑주를 걸치고 있는 오크는 보통의 오크가 아닌 그레이트 오크로 보였다. 아마도 오크 장교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지위가 높은 오크일지 몰랐다. 그 오크는 무척이나 커 보이는 투핸드 소드를 들고 있는데 그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얼굴 생김새도 우락부락한 것이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쿠룩... 죽인다.” 료우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발견하고는 적의를 드러내는 오크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며 외마디 흉성을 내지르더니 일말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고 료우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오크는 무척이나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커 보이는 투핸드 소드를 힘껏 휘두르며 료우의 복부를 노렸는데 쉽사리 오크의 공격에 당할 료우가 아니었다. 마물의 숲에서 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꾸준한 수련은 하지는 못했지만 실전 경험은 어느 누구보다 풍부해진 상태였기에 료우는 여유가 있었다. 이미 료우는 골드 팔라딘 실력에 어울리는 실력을 쌓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하앗...” 복부를 향해 세차게 날아오는 소드를 몸을 움직여 슬쩍 피한 료우는 외마디 기합을 내지르고는 오크가 내뻗은 검날을 힘껏 내려쳤다. “째애앵...”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오크 장교는 료우가 공격을 피해버리자 미처 자신의 검을 회수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공격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부랴부랴 검을 회수하려다가 료우의 공격을 받았다. 오크 장교는 미처 자신의 검을 회수하지 못하고 검을 향해 내려치는 료우의 공격에 쥐고 있던 자신의 검을 놓치고 말았다. 갑작스런 공격이었기에 아무리 두 손으로 붙잡고 있던 검이었지만 놓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르르 떨리는 손아귀는 료우가 내려친 힘에 의해 껍질이 벗겨진 듯 보이기까지 했다. 너무도 어이없는 순간이라고 아니 할 수 없었다. “으흑...” 외마디 신음이 오크 장교의 입에서 터졌고 그것은 끝내 그가 한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료우는 상대의 검을 힘차게 내려쳐 검을 떨어트리게 만들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갑작스런 공격에 자신의 검을 떨어트려 당황한 오크 장교는 너무도 손쉽게 료우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료우의 검은 정확하게 상대의 목을 베어버렸다. 보통의 장검이 아닌 그 지닌 강도만으로 팔라딘이 검에 오러를 불어넣어 만든다는 오러 소드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료우는 검은 료우 자신이 검에 오러를 불러일으키지도 않았지만 너무도 쉽게 두터워 보이는 오크 장교의 목을 그의 몸에서 분리해 버렸다. 료우의 검에 잘린 오크 장교의 목은 흡사 나뭇가지에서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듯 너무도 허망하게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주변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쿠루룩... 저놈이 만부장님을 죽였다.” 조용했던 장내에 갑작스런 외침에 터져 나왔다. 그 외마디 외침에 료우는 자신의 손에 죽은 오크 장교가 보통의 직책이 아닌 이들 부대의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죽은 오크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금세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지휘관을 죽였다고 외치는 한 오크의 외침과 더불어 수명의 오크들이 순식간에 적의를 불태우며 료우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레이트 오크들로 보이는 오크들로 저마다 일반 왕국의 정규군에 뒤지지 않는 무장을 하고 있었다. “쿠룩... 죽여 버리겠다.” “용서할 수 없다. 죽어라!” “쿠루룩... 만부장님의 복수를 하겠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오크들은 저마다 흉성을 내보이며 료우를 목표로 하여 달려드는데 료우에게 몇 마리의 오크들은 크나큰 위협을 될 까닭이 없었다. 물론 몇 마리 오크라는 것이 보통의 오크 병사가 아닌 그레이트 오크들이었지만 이미 중급 이상의 골드 팔라딘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충분한 실전 경험까지 쌓았기에 료우는 달려드는 오크들의 저돌적인 공격에도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이얏!” “짜아앙...” 짧은 기합과 함께 제일 먼저 달려드는 그레이트 오크의 도끼를 검 면으로 흘려 막는 료우의 검은 오크의 도끼와 부딪치면서 심한 소음을 일으키더니 서로가 강한 불꽃을 일으켜 사방으로 튀게 만들었다. 단 일합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로의 힘이 얼마나 강하게 들어갔는지 보여주는 한 수였다. 료우는 제일 먼저 공격을 한 오크의 도끼 공격을 흘려보내고는 뒤이어 달려드는 두 마리의 오크들을 대적했다. “쿠룩... 죽엇!”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였다. 하나는 길이가 무척이나 길어 보이는 장검인데 료우의 몸을 노리고 빠르게 찔러오고 있었고, 하나는 무척이나 두터워 보이는 대도인데 료우의 어깨 죽지를 노리고 있었다. 료우는 두 개의 공격을 동시에 받고는 곧바로 한발자국 우측으로 살짝 비켜서면서 찔러오는 검을 일단 피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을 휘둘러 대도를 휘두르는 상대의 검을 가볍게 흘렸는데 흡사 물 만난 고기와 같은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검을 찔러오던 오크는 료우가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검을 피하자 다음 공격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고, 대도를 휘둘렀던 오크는 몸을 빙그르르 한바퀴 회전하며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좌측 팔꿈치로 자신을 가격하는 료우의 공격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얼굴부위 특히 입가를 맞은 오크는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입 언저리가 온통 피투성이로 변했고 날카로워 보이던 이빨들은 몽땅 부러진 듯 보였다. 료우는 오크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면서 한 마리의 오크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고는 다시 다른 오크의 공격을 막아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오크들은 하나같이 보통의 오크가 아닌 그레이트 오크였기에 손쉽게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보통의 용병이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료우 정도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상대가 그레이트 오크이고 숫자가 많다고 해도 고전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료우는 예상치 않게 고전을 하고 있었다. 실력이 이미 골드 팔라딘인 료우가 오크들을 상대로 고전을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지만 상대가 생명을 도외시하고 오직 자신의 적을 죽이려고 무작정 달려든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고 할 수 있었다. 죽음을 도외시한 그레이트 오크들의 전투력은 보통의 두 배 이상은 되어보였다. 자신의 상관을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레이트 오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료우의 목숨을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이잇...” 료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드는 오크들의 저돌적인 공격에 한 오크의 몸에 검을 찔러 넣으면서 입 밖으로는 욕을 내뱉었다. 아무리 호전적이고 전투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이정도로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오크들은 예전에 겪어 보았던 어떤 오크들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이미 료우 자신의 손에 죽은 그레이트 오크는 스물 이상은 되어보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를 포위한 오크들의 숫자는 그 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듯 했다. “하핫... 우리 대장이 엄청 고생을 하는군.” 료우가 끝임 없이 밀려오는 오크들을 상대로 고전할 때쯤 들려오는 소리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료우를 포위했던 포위망의 한축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료우는 상대가 자신과 티격태격하는 네오임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목숨을 도외시한 채 싸우는 그레이트 오크들이라고 해도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면 결코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쿠에엑...” “크억...” 순식간에 두 마리 오크들의 목을 날려버린 네오는 포위망의 한 축을 너무도 손쉽게 무너트리고는 료우 근처로 다가왔다. “쿠룩...” 료우를 포위했던 오크들은 느닷없는 네오의 등장과 자신들의 동료들이 너무도 쉽게 네오의 손에 쓰러지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네오는 그런 오크들의 반응은 별반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료우에게 한마디 던졌다. “푸하하... 겨우 이놈들 때문에 그렇게 고전하고 있었던 거야. 한줌 해장거리도 안 되는 녀석들을 데리고 언제까지 여기서 놀고 있을 거야. 이미 장내는 거의 정리가 되었는데...” 네오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료우는 네오의 말에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다고 하지만 1만이상이 싸우는 전투가 이렇게 빨리 막을 내릴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료우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료우가 바라본 장내는 온통 녹색의 핏물과 수북하게 쌓인 오크들의 참혹한 시체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물론 간간히 인간 용병들의 시체도 보이기는 했지만 그 숫자는 오크들의 시체와 비교한다면 논할 가치도 없을 정도였다. 아직까지 무기를 들고 대항하고 있는 몇몇 오크들의 모습도 보였다. 대지를 가득 메운 동족들의 시체에도 굴하지 않고 용병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오크들은 자신들의 숫자보다 많은 용병들에게 둘러싸여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료우는 이 예상치 못한 결과에 약간은 어리둥절했다. 너무도 쉽게, 너무도 빠르게 전투가 종결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료우를 포위하고 있던 오크들이나 포위를 당했던 료우만 모르고 있었지 그들이 쉼 없는 격전을 치룰 무렵 전투는 급격하게 마무리가 되었었다. 료우가 이끄는 용병대의 습격을 받고 혼란에 빠진 부대를 지켜보던 오크 7군단장 나달은 자신을 목표로 날아온 화살에 예상치 못한 운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한번도 죽음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았던 나달은 전투 종족이라는 오크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결코 가질 수 없었지만 예상치 않게 목숨을 건지자 갑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함부로 머리를 밖으로 내 놓을 수 없었다. 주변에 매복해 있는 료우 용병대의 암살부대에 의해 지휘관급 장교들이 하나, 둘 저격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마법이 쏟아지고, 뒤이어 4천에 달하는 용병들이 밀어 닥치자 나달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거기다가 자신의 부대가 너무도 손쉽게 무너지자 그는 두려움에 싸여 승부가 이미 기울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초반부터 그는 두려움 때문에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다. 나달은 그런 판단이 서자 주저하지 않고 타고 있던 워울프를 되돌리며 짧은 후퇴 명령을 내리고는 부리나케 도망을 쳤다. 지휘관인 나달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는 바람에 오크 만인대는 너무도 쉽게 무너져 버렸다. 자신의 상관을 죽인 료우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그레이트 오크 무리를 빼 놓는다면 거의 대부분의 오크 병사들은 제대로 싸움을 하지 못하고 도망가기 바빴고 그 때문에 오크 만인대의 피해는 보통의 싸움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쿠에엑...” 마지막 남은 그레이트 오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생명을 도외시하고 적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고 하지만 상대가 자신 같은 존재가 수십이 있다고 해도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실력의 소유자라면 그의 노력은 헛된 일 일수밖에 없었다. 머리끝부터 배꼽부분까지 길게 그어진 검상에 무릎을 꿇은 그레이트 오크는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는 차디찬 바닥에 식어버린 육신만을 남긴 채 쓰러졌다. “휴우...” 가벼운 한숨 소리가 료우의 입에서 터졌다. “크크... 이런 오크 따위에게 고전을 하다니 우리 대장을 다시 봐야겠는걸.” 네오의 놀림에 료우는 지긋지긋 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휴우... 얼마나 지독한줄 몰라! 이건 완전히 죽기 살기로 덤비는데 아무리 전투 성향이 강한 오크들이라고 하지만 이정도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면 나중에 정말 힘들겠어.” 정말로 다시는 대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료우의 대답에 네오는 한번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네오의 시선에 잡힌 것은 빠른 걸음으로 료우에게 다가오는 얀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까는 무척 위험에 보였는데...” 얀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료우에게 다가가 그렇게 묻는데 얀의 물음에 료우는 괜찮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이번 전투 결과 좀 알려주겠어. 오크 놈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한마디로 대승입니다. 1만의 오크들중 살아 도망친 놈들은 손으로 꼽을 만큼 소수뿐입니다. 아쉬운 것은 무척 높은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오크 하나를 놓쳤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나 그에 버금과는 존재였던 걸로 추정됩니다.” “흐음...” 료우는 도망친 오크 하나가 지휘관급 오크라는 말에 자신의 손에 죽은 오크가 만인대장이었으니 이 오크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버금과는 존재가 도망을 쳤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는데 무척 조심스러웠다. “우리 피해는 어떻게 되지?” 료우의 생각을 느꼈는지 얀은 대승을 했다고 좋아하던 표정에서 살짝 얼굴을 굳히더니 입을 열었다. “전사자 216명에 중상을 입은 자가 573명입니다. 거기에 더해 미미하지만 경상을 입은 사람도 1,000여명쯤 됩니다.” 얀의 대답에 료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전투에서 사상자가 안나올 수는 없는 일이지만 생각했던 숫자보다 많았던 탓이었다. 매복과 기습으로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번의 전투보다 사상자가 많이 나온 것은 아마도 아론이나 네오의 대단위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탓이 컸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감수하며 아론과 네오의 공격을 자제했던 전투였기에 때늦은 후회는 자신에게 상처만 줄 뿐이었다. 료우는 겸허하게 피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죽은 자들에게는 아무런 변명이 필요 없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해야 할 것이다. 료우는 얀에게 보고를 받고는 죽은 자를 향해 애도의 뜻을 보이고는 용병들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일단 1만의 오크 부대를 전멸시켰다고 하지만 아직도 적의 수는 많았고 언제 어디서 이곳으로 닥쳐올지 몰랐기에 일단 전장 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물러나는 것이 좋았다. 때문에 료우는 바로 전사자들의 시체와 중상자들을 수습한 후 본진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투두두두...” 병사들을 전쟁터에 남겨두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에 빠져 먼저 도망을 친 7군단장 나달은 2시간 이상을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는지 어둑어둑한 밤기운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고 빽빽한 잡목으로 우거졌던 지형도 이제는 너른 수풀이 넓게 펼쳐진 초원을 그리고 있었다. 대규모 오크 군대를 인해 숲에 있던 많은 수효의 몬스터들이 목숨을 잃은 까닭에 생명력이 넘쳐흘렀던 숲은 고요함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숲은 나달이 타고 있는 워울프의 발자국 소리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달은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오다 대초원을 만나고는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던 고삐를 힘껏 당기더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의 두 눈에 저 너머 평원지역에 일단의 부대가 천막을 치고 야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나달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대를 조우하자 일단 두려움과 경계심을 보이며 어떤 부대인지 확인하려고 애를 썼지만 너무 거리가 먼 까닭에 금방 적아를 구별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진영이 있는 곳으로 워울프를 몰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약간이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그 부대가 자기 휘하의 오크 부대임을 발견하고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긴 한숨소리는 그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여실히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나달은 흡사 생명의 은인을 만난 듯 한 표정까지 보이며 오크 진영으로 접근했다. 아마도 이 부대는 그가 너무 조급한 나머지 한 개의 만인대를 재촉해서 너무 빨리 앞으로 나선 까닭에 뒤쳐져 온 부대중 하나였던 모양이었다. 나달은 두발로 힘껏 워울프의 치며 오크 부대를 향해 달려갔다. “투두두두...” 워울프의 발자국 소리가 세차게 울리며 조용했던 숲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한참이나 진지를 구축하며 야영을 준비하던 오크 진영에서는 난데없는 소음에 경계 병력이 모두 소음이 들리는 곳으로 출동하였고 그들은 나달을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 급하게 달렸는데 나달이 타고 있던 워울프는 무척 지친 표정으로 혀까지 내밀며 “헥헥” 거렸다. 나달 자신도 2시간여의 도망으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었고 몸도 온통 땀투성이였다. 나달은 자신을 맞이하는 일단의 오크 병사들을 발견하고서는 겨우 고삐를 당기며 워울프를 멈춰 세우더니 워울프의 등에서 내렸다. 나달은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땅에 서자 다리의 근육의 풀리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때문에 나달을 발견했던 오크 병사 수명이 재빠르게 달려와 나달을 부축했다. 부하 병사들의 도움으로 겨우 균형을 잡은 나달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서야 자기 자신이 부하들을 버려두고 전쟁터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인상은 더 이상 볼 것 없이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오크 왕국의 서부 원정군 사이에서 가장 용맹한 부대를 꼽으라고 오크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세손가락 안에 그의 부대를 꼽을 것이다. 그만큼 그 자신이나 그의 부대는 용맹함이 널리 알려진 부대이다. 그런데 그 군단의 수장인 자신이 전쟁터에서 두려움에 휩싸여 부하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나달 자신의 명예는 물론이거니와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때문에 나달의 표정은 떫은 감을 씹은 듯 몹시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면서 내심 인간들과 부딪친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전멸하여 자신이 전쟁터에서 도망쳤다는 치부가 은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달은 하늘을 향해 자신의 부대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기를 바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런 나달에게 한 오크가 급하게 다가왔다. “쿵쿵! 쿠룩... 군단장님을 뵙습니다!” 나달에게 급하게 다가온 오크는 그레이트 오크로 보이는데 평범하지 않은 중갑주를 걸치고 있는 지휘관급 그레이트 오크였다. 그는 오른쪽 주먹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세차게 두 번 내려치더니 나달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달은 그의 인사에 고개를 까닥하면서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 혼자만 그의 부대를 찾아온 것을 물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달의 예측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쿠룩... 군단장님! 어째서 혼자 오시는 겁니까? 호위군도 없이...” 나달에게 질문을 던진 오크는 나달 휘하의 제 8만인대의 대장으로 한쪽 눈이 없는 애꾸의 지휘관이었다. 그는 전번의 대패로 인해 결코 안전할 수 없는 마물의 숲을 지휘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군단장 호위병 하나 없이 혼자서 이동을 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만인대장의 이 같은 물음에 나달은 우물쭈물 대답을 찾지 못했다. 전쟁터에서 도망쳤다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급한 일 때문에 혼자 이동을 했다고 얘기했다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부하라도 생긴다면 그 뒷수습은 더욱 힘들기에 그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나달이 약간 대답을 지체하며 눈치만 살피자 만인대장은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무척이나 둔한건지는 모르지만 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서서는 나달의 대답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그런 행태에 나달은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대강대강 알아서 자신이 궁색한 모습과 표정을 보면 알아서 물러서야 하는데 이놈은 끝까지 자신에게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달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만인대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무척이나 불리한 상황이었기에 나달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며 애만 태우고 있었다.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나달과 만인대장의 어색한 현장으로 한 오크 장교 하나가 급하게 뛰어왔다. 그는 만인대장의 부관으로 오크 장교로는 보기 드물게 갈색 오크 출신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갈색 오크는 노예 병사로 쓰이는 것이 오크 왕국의 정석인데 이 갈색 오크는 특별한지 한 부대의 부관을 맡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평범하지 않은 오크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갈색 오크는 둘 사이로 끼어들더니 살짝 만인대장을 부르며 나달의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다. 그는 만인대장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했다. “쿠룩... 대장님! 황송하게도 군단장님께서 이렇게 직접 저희 부대를 찾아 오셨는데 이렇게 밖에서 군단장님을 맞이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거기다가 홀로 많은 길을 달려오신 듯 하시는데 밖에서 계속 군단장님을 세워두신다면 아무리 너그러우신 군단장님이라고 하실지라도 심한 질책을 면하기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그러니 질문은 나중에 하시고 일단 군단장님이 쉬실 만한 곳으로 안내를 해드려야 합니다.” 그는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해서 나달의 귀에 들어가도록 입을 놀렸다. 갈색 오크의 말을 의식적으로 귀 기울이던 나달은 그가 자신의 위기를 구하자 겨우 한숨을 돌리며 이 갈색 오크를 중히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노예 병사 따위로 밖에 써먹지 못하는 갈색 오크 주제에 수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 작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83 회] 날 짜 2004-06-27 ---------------------------------------------------------------------------- 31장. 고대 신전 각개 격파를 목적으로 세 부대로 나뉜 연합전선의 한축을 담당하는 아슈리안 족의 수장인 케인은 특별히 개인적인 전투력이 최상이며 고스란히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아슈르 신전의 성전사들로 하여금 오크 부대의 정찰부대를 찾도록 명령을 내렸다. 개인적으로 저마다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데다 전투력도 다른 전사들보다 뛰어난 그들이었기에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시키는 것이 최상이기는 했지만 일단 적의 행방을 알아야 싸움을 할 수 있기에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정찰임무에 그들을 투입한 것이다. 물론 다른 전사들보다 육체적인 능력이나 전투력도 뛰어났기에 소수의 병력이더라도 적과 조우했을 때 그만큼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컸던 탓도 있었다. 케인은 성전사들로 이루어진 10개의 정찰부대를 조직하여 마물의 숲 전역에 풀어 오크 부대의 행방을 추적했다. 그중 한 부대를 담당하게 된 성전사 누비야크는 20명으로 구성된 정찰 부대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이동을 하고 있었다. 연합전선의 본진에서 나온지 대략 한나절이 흐르는 동안 누비야크의 정찰부대는 아직까지 오크의 그림자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가 훌쩍 지나간 탓에 긴장이 풀릴 만도 했지만 누비야크나 그의 부대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슴속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리까지 뻗은 깊은 수림을 조용하게 헤치고 움직이는 일단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적막하던 숲에 조그마한 활력을 전해주고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움직이는 존재의 정체는 얼굴에 녹색의 물감을 기이한 문양으로 바르고 손에는 두터운 수목을 가볍게 베어버릴 수 있는 큰 대도였다. 그들은 기미한 움직임으로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수풀을 헤치며 이동하는데 몬스터의 천국이라는 마물의 숲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인간 무리의 선두에는 30대 중반의 사내가 무척이나 긴장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하는 듯 보였다. 머리위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대던 태양은 어느새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멀어지고 있는데 길게 이어진 그림자도 주인의 심정을 아는지 조심스럽게 주인의 뒤를 쫓고 있었다. “으음... 어렵군!” 목소리의 주인공은 일행의 선두에 있는 30대 중반의 사내로 사제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단단한 근육질에 날카로운 눈빛을 소유하고 있었다. 볼에는 사선으로 세 가닥의 녹색 칠이 매섭게 그어져 있는데 아마도 수풀에 어울리게 위장을 한 듯 보였다. 신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사제의 모습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사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사내는 전쟁의 신 아슈르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제였다. 어렸을 적 신관에 들어와 일생의 대부분을 신전에서 살아왔던 사제는 신관으로 서품을 받은지 이미 10년을 훌쩍 넘겼다. 사내의 이름은 누비야크라고 하는데 다른 동년배의 사제들보다 믿음은 약할지 모르지만 전투력만은 어느 누구에 뒤지지 않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물론 거기에 더해 그들이 섬기는 신이 보통의 일반 신이 아닌 특이한 존재인 전쟁의 신 아슈르였기에 그는 신앙의 부족함을 전투력으로 채우고도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전투력 하나만큼은 다른 동년배의 사제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던 누비야크는 그 때문에 마물의 숲 원정에 참여할 때 1차로 뽑혔다. 그는 신전이 자랑하는 성전사의 모습에 가장 부합되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나름대로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원래부터 신앙적인 면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고 존경했던 성전사의 모습에 반해 신전에 귀의한 누비야크였기에 성전사로서의 수련에만 온힘을 기울였다. 때문에 그의 전투력 하나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뛰어났다. 때문에 그보다 훨씬 서열이 높은 고위 사제들을 제치고 그가 정찰부대의 지휘관으로 뽑혔다. 누비야크는 자신이 맡은 정찰부대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허리까지 올라온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자신이 맡은 구역을 면밀하게 수색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조용한 발걸음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움직여 이동을 하는 동안 느끼는 것이지만 마물의 숲은 예전과 다르게 무척이나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기 보다는 거의 황량하기까지 했다. 흡사 아무도 살지 않는 원시의 수풀림을 헤치고 다닌다고 할까? 아마도 대규모 오크군대로 인해 이곳에 살고 있던 대다수의 오크들이 오크들에게 사냥당하거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을 피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대규모 오크 군대는 그들의 식량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운 듯 마물의 숲에 살고 있는 여러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무척이나 많았던 몬스터들은 마물의 숲에서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남부는 이미 오크들과 리자드맨이 세력권을 형성했기 때문에 그나마 있던 몬스터들도 북쪽에서 내려온 대규모 오크 군대로 인해 거의 씨가 말라버렸다. 누비야크가 조용해진 숲의 고요함에 자신들이 처음 마물의 숲에 왔을 때를 떠올리며 잠깐 딴생각을 할 때 그의 귓가를 자극하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쉬이잇...” 자신보다 먼저 선두로 보낸 두 명의 성전사 중에 한 성전사가 재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에 이동하더니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이동하던 부대를 제지하는 모션을 취했다. 그의 반응에 누비야크는 재빠른 걸음으로 최대한 소음을 줄이며 그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인가?” 거의 속삭이듯이 말하는 누비야크의 질문에 그 전사는 입술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한 채 오른손을 조용히 내뻗어 손가락으로 한곳을 조용히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누비야크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대략 500미터 지점에 먼저 보냈던 다른 한 성전사가 수풀에 몸을 감추며 웅크려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는 긴장한 듯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비야크는 사내를 지나 그 보다 먼 곳을 향해 시야를 돌렸고 그의 시야에 잡힌 것은 녹색의 물결이 사방천지를 뒤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확하게 살펴보지 않아도 그것이 대규모 오크 부대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일이다. “몇 명인가?” “적어도 1만은 되어 보입니다.” 사내의 대답에 누비야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고했다는 표정을 그에게 지어주었다. 드디어 자신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오크들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오크들보다 그들이 먼저 저들 오크들을 발견한 것이 중요했다. 물론 저렇게 많은 숫자가 움직이는 오크들의 움직임을 미리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일단 칭찬에 인색할 필요가 없기에 누비야크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누비야크는 오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는 저렇게 많은 병력이 넓게 퍼져서 수색을 하며 이동을 하는데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오려면 대략 2-3분쯤 걸릴 듯 보였다. 그래서 그는 얼른 부하들에게 모이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뉴냐 형제, 파르안 형제!” “네!” “옛...” 건장해 보이는 두 사내가 짧은 소리로 대답을 하더니 누비야크의 앞에 섰다. “형제들이 좀 수고를 해야겠소. 일단 전서응을 본부로 보내기는 하겠지만 혹시라도 소식이 전달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니 형제들이 직접 본부로 가서 1만 가량의 오크 부대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시오. 아마도 저들의 이동 방향으로 미루어 그들은 북동쪽으로 직진할 듯 보이니 그렇게 전해주면 될 듯싶소. 나와 다른 형제들은 저들의 뒤를 계속 추적하며 저들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계속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소.” 누비야크의 말에 두 사내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떠나자 누비야크는 바로 품에서 누런 헝겊을 꺼내더니 거기에다 무언가를 적고는 돌돌 말았다. 그리고는 바로 전서응을 담당하는 사제를 부르더니 그에게 자신이 헝겊에 적은 쪽지를 전해주고는 본부로 전서응을 날리도록 명령했다. “쿠이잇...” 새장에서 수리를 꺼내는 사제의 손놀림에 답답했던 새장에서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인식하고 있는지 수리의 울음소리가 짧게 들렸다. 누비야크에게 쪽지를 받은 사제는 짧은 울음을 운 수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바로 전서응의 발목에 쪽지를 매달았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세차게 팔을 뻗었다. 사제의 행동에 전서응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는지 짧은 울음을 한번 울더니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향해 세차게 날개 짓을 했다. 새장에 있다가 오랜만에 자유를 찾은 탓에 기쁨이 넘쳤는지 전서응의 세찬 날개 짓에 전서응의 깃털이 한 움큼씩이나 바닥에 널렸다. 누비야크는 사제가 전서응을 하늘로 날리자 곧바로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는 오크들의 시선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쫓아야 했기에 그들에게 발각되면 큰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수색하는 지역에서 재빠르게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정찰부대를 보내고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아슈리안 부족 특히 자신이 관리하는 전서응을 애타게 기다리던 담당자가 바람을 뚫고 들려오는 전서응의 짧은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해가 늬엿 늬엿 지고 어슴푸레 석양만이 드리워져 있을 때였다. 대략 4-5 미터 높이로 쌓아올린 목책으로 인해 바깥의 사정이 안보이고 또 완벽하게 단절된 듯 해 보이지만 자신이 키운 전서응들은 그런 목책 따위는 우습게 넘을 수 있기에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전서응이 오기만을 애카게 기다리고 있었다. “휘이이잉...” “캬얏... 카얏...” 우거진 수풀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떠들고 있어서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금방 식별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초조하게 새를 기다리고, 누구보다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바람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전서응의 울음소리는 어느 무엇보다 커보였다. 그가 길게 목을 빼서 전서응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후의 일이었다. 서산 너머로 사라지는 석양으로 인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반가운 소식에 저절로 흥이 난 듯 조금 더 길어진 듯 했다. “삐이이익...” 전서응을 발견한 사내는 지체 없이 자신의 품에서 나무로 만든 듯 보이는 삐리를 빼어들더니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삐리를 입에 대고는 숨을 크게 내쉬며 전서응을 불렀다. “쿠이잇...” 길게 허공을 향해 울리는 삐리 소리를 들었는지 전서응은 반가운 소리를 내며 피리를 분 사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세찬 날개 짓을 했다. “푸드드득...” 퍼덕이는 날개 짓에 깃털을 휘날리던 전서응은 이내 자신의 자리를 찾았는지 한쪽 팔을 쭉 뻗은 사내의 팔뚝에 요란스런 소음을 일으키고는 겨우 안착을 했다. 사내는 자신의 팔뚝에 억센 발톱을 박으며 자리를 잡은 전서응의 묵직한 힘에 찰나지만 약간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대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더니 옆구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열어 잘 말린 고기 조각을 한 움큼 꺼내 전서응의 부리 쪽에 갖다 주었다. 전서응은 사내가 먹이를 주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냉큼 입에 넣고는 자신이 받아야할 포상을 자랑스럽게 받아냈다. 사내는 전서응을 배불리 먹인 후에야 전서응의 발목에 있는 헝겊을 빼내고는 바로 자신을 기다리던 다른 사내에게 전해주었다. 헝겊을 받은 사내는 지체 없이 곧바로 한 곳을 향해 힘차게 뛰어갔다. “드디어 발견했군!” 케인은 전서응의 소식을 가져온 전사의 손에서 헝겊을 받아 쥐고 펼치더니 탄성을 지르며 한마디 했다. 모두들 초조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케인의 한마디에 눈을 반짝였다. 케인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수뇌부는 거의 하루를 꼬박 기다리며 오크들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들은 케인의 한마디에 초조함을 털어낼 수 있었다. 전서응을 통해 전해진 내용은 1만 가량의 오크들을 발견했다는 것이고 장소는 본진으로부터 대략 반나절 거리였다. 의외로 무척이나 많이 이동한 오크 정찰대였다. 케인은 소식을 전한 헝겊을 탁자위에 놓고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키케르! 준비는 어떻게 됐어?” 케인의 물음에 오른쪽에 앉아 케인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던 키케르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이미 부족의 용맹한 전사들은 족장님의 공격 명령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출전할 채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으니 명령만 내리십시오. 바로 출전할 수 있습니다.” 키케르의 대답에 케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명령을 내렸다. “그럼 모두에게 전하게. 바로 출발한다고 말이야. 놈들의 뒤를 쫓는 부대를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 안에 놈들에게 가야겠어. 그리고 다른 정찰부대에게 전서응을 날려 오크 부대를 발견했다고 알려주고 혹시라도 다른 오크부대를 발견했으니 조심스럽게 놈들의 행방만 쫓도록 하고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게나. 그럼 준비는 자네가 전담해서 맡아 주게나.” 케인의 말에 키케르는 웃으면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즉시 밖으로 나갔다. 케인이 나가자 다른 지휘관들도 얼른 전투 채비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코라! 자네는 잠깐 남아주겠나?”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던 코라는 갑자기 케인이 자신을 불러 세우자 걸음을 멈추고는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다름이 아니라 말이야. 이번에 자네가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케인의 말에 코라는 무슨 일인가 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남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위해 얼른 자리를 피해주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케인은 코라를 직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자네가 선두를 서주었으면 해서 말이야!” “선두?” “그래 자네가 선봉을 좀 서주게.” “엉...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나. 설마 다른 사람들이 자네가 네게 선봉의 영광스런 자리를 맡긴다고 질투라도 할까봐 그러는 건가? 쩝... 뭐 우리 우정이 상하를 떠나서 진하기는 하지만 자네 너무 의식을 하는군.” 코라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케인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게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만면에 웃음을 짓던 코라는 케인의 모습에 자신이 무언가 잘못 알아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멋쩍은 모습을 보였다. “쿠쿠... 그게 아닌가 보군. 네가 너무 오버를 했나?” “아! 미안하네. 자네 말대로 이번 선봉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서 말이야!” “뭐가 달라서 우리 족장님이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코라는 아직까지 케인의 생각과는 달리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케인은 코라의 그런 행동에 결심을 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야.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네가 해주어야 할 역할이 도망치는 것이라 말이야.” 무척이나 꺼내기 어렵다는 듯이 그렇게 말문을 연 케인의 말에 코라는 씨익 미소를 짓는다. “크크... 난 또 무슨 말이라고.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뜸을 들이고 그래.” 케인의 입장에서는 아슈리안 전사로서 명예가 중요하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데 그는 코라의 성향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코라는 케인이 아직까지 자신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섭섭하기는 했지만 이미 여러 번 힘든 일을 겪었기에 그가 무척이나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말은 꺼내지 않고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자네가 나의 숨은 재능을 제대로 파악한 모양이야! 내가 이래 보아도 모두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숨은 재능이 있거든. 그렇지 않아도 전사가 되지 않았으면 무엇이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마 전사가 되지 않았으면 무대에 서서 연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자네가 내 마음을 읽었나 보군. 후후... 이거 우리 족장님이 부하들의 속속 들이까지 파악한 모양이야. 꿈에도 그리는 연기를 시켜주고 말이야.” 코라의 말에 케인은 진한 감동을 느꼈다. 물론 그가 코라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코라가 전사의 명예라든지 하는 명분보다는 실리적인 면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지만 코라가 자신의 무거운 마음을 이해하고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꺼내들고 쾌히 승낙한다는 고마움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케인은 자신의 수하이자 자신의 친구인 코라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하... 이거 내가 오히려 부탁할 것을 해주면서 인사까지 받다니 다시 살고 볼 일이야. 이거 우리 족장님께 인사까지 받았으니 그에 어울리는 연기를 펼쳐야 하겠군. 약간 부담이 되는걸! 후후... 자 그럼 멋진 연기를 위해서 준비를 해볼까? 멋진 연기를 보여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관객도 많으니 멋지게 한판 벌여보도록 하지!” 코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밖으로 나가면서 한쪽 손을 쳐들고는 흔들었다. 코라의 그런 행동에 케인은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내고 오히려 가벼워진 마음으로 등 뒤의 코라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고맙네. 친구!”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84 회] 날 짜 2004-06-29 ---------------------------------------------------------------------------- 31장. 고대 신전 중천에 떠오른 태양 때문에 이마로부터 떨어지는 한줄기 땀방울에 서부원정군 제 7군단 소속 제9만인대의 만인대장인 카퉁카는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10월이라고 한다면 쌀쌀한 가을 날씨라고 하겠지만 원체 넓은 마물의 숲이었기 때문에 숲 곳곳은 제각기 특유의 날씨를 보유하고 있는데 지금 자신이 뒤지고 있는 곳은 완연한 여름의 후덥지근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는 흐르는 땀방울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자신이 누구던가? 오크 왕국의 혈통좋은 귀족 출신이 아니던가? 덩치가 산만한 그레이트 오크는 이마를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 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귀족가의 자제로 태어나 자부심이 강한 이 그레이트 오크의 이름은 카퉁카라고 하는데 그는 현재 워울프에 올라타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며 허리 위까지 올라온 잡목들을 헤치고 이동하고 있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얼굴은 짜증이 섞여 보기 흉할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마도 더운 날씨도 한몫을 하기는 했지만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있는지 거친 어투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쿠룩... 정말 맘에 안 드는군. 겨우 이런 짓거리를 하기 위해서 이번 원정에 지원한 것도 아닌데... 겨우 저급한 인간들과 미개한 리자드맨 따위를 추적하라니!” 카퉁카는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옆으로 넓게 퍼진 자신의 군사들을 힐끗 보면서 더 짜증이 솟구치는지 거친 호흡을 내뱉고는 침을 뱉더니 성을 냈다. “퉷! 이따위 수색이나 하려고 숙부를 졸라서 1만의 가병을 얻어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정말 열이 받는구나. 쿠룩! 차라리 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나달 따위의 멍청한 오크의 명령을 듣는 내가 바보였다.” 이제는 자신의 상관인 나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카퉁카였다. 그는 원래 오크 군대에 속한 군인 출신이 아닌 귀족으로 이번 원정군에 지원한 자였다.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사병을 직접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고 나달의 제 7군단 소속되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군인이 아니었기에 7군단장인 나달조차 함부로 할 수 었는 존재였다. 거기다가 그의 집안 자체가 대단한 귀족 가문에다 군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문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상관인 7군단장 나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기는 했다. 카퉁카는 이대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자신이 겨우 말단 오크 병사들이나 하는 수색 따위에 하루 이상을 소요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쏟았다. “에이... 정말로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짜증만 느는군. 멍청한 나달은 그렇다고 쳐도 그 망할 놈의 인간들이나 리자드맨 놈들조차 그림자도 보이지 않다니... 차라리 그놈들이라도 발견하면 화라도 삭일 수 있을 텐데...” 카퉁카는 정말로 인간이나 리자드맨이 나타나서 기습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바람은 신을 감동이라도 시킨 듯 뜻대로 이루어졌다. “쿠룩... 적이닷!” 선두에 있던 한 오크의 입에서 적을 발견했다는 반가운 음성이 카퉁카의 귓전을 때렸다. 카퉁카는 그 소리에 눈이 번쩍하고 떠지면서 목을 길게 쭉 뽑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한 떼의 인간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로 인간들이구나!” 너무도 반가웠는지 흡사 반가운 친구라도 만난 듯 한 표정을 짓는 카퉁카였다. 한 떼의 인간들은 뒤늦게 자신의 부대를 발견했는지 일렬로 이동하던 무리가 갑자기 혼란해지면서 사방으로 대열이 흩어지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인간 무리들은 대략 1천은 족히 되어보였다. 카퉁카는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저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서 화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체 없이 큰소리로 목청껏 외쳤다. “쿠룩... 놈들을 죽여라!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 버려라!” 카퉁카는 나달이 직접 인간 포로를 사로잡아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내라는 명령도 어긴 채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워울프를 몰고 인간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수색대의 가장 후미에 있었던 그가 워울프를 몰고 앞으로 나서자 그의 뒤를 따라 1백기의 기병으로 이루어진 호위대와 5백기의 기병대가 그를 쫓았다. 숲을 수색하면서 눈에 너무도 잘 띄는 기병대를 데리고 왔다는 것부터 웃기는 일이었지만 이쯤 되니 쓸모는 있는 듯싶었다. 뒤쪽에 쳐져 있다가 인간 무리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무섭게 채찍질을 하는 카퉁카와 그의 기병대는 무서운 속도로 선두의 오크 병사들을 따라 잡으며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크아앙...” 날카로운 울음을 터뜨리며 빠르게 달려가는 워울프의 모습은 흡사 한 마리 야수를 보는 듯 했고 그 위에 타고 있는 카퉁카는 붉은 색의 중갑주에 번쩍이는 대도를 뽑아들고는 앞쪽에서 혼란해 빠진 인간들을 향해 달렸다. “쿠루루룩...” “와아아아...” 사방에서 울리는 함성은 조용했던 숲을 단숨에 떠들썩한 시장바닥으로 만들었고 허리까지 올라온 잡목들을 제치며 달려가는 오크 군대는 걸음을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고 자신들이 겪었던 고생의 대가를 확실하게 받아내려는 듯 인간 무리들을 향해 노도처럼 몰려갔다. “드디어 시작인가?” 케인의 부탁으로 1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선봉으로 나선 코라는 멍청한 오크들에게 쉽게 발견되기 위해 저들의 눈에 잘 뜨이는 곳으로 병력을 이동하고는 약간의 소란스러움까지 덧붙여 놈들이 빨리 발견하도록 했다. 그러자 멍청한 오크들은 그나마 그의 선봉대를 발견했는지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데 어떠한 전략이나 전술 없이 무조건 앞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이 꼭 죽으러 오는 불나방들 같았다. 물론 숫자가 1만이나 되는 불나방들이라 조금은 위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두두두두...” 짧은 두 다리로 뛰어온다고 하지만 오크들이 달려오는 속도는 보통의 인간과 견주어 전혀 뒤지지 않았다. 특히 1만의 병력중 유독 눈에 뜨인 것은 워울프를 타고 달려오는 기병들이었다. 대략 300기는 족히 넘어 보이는데 선두에 선 것은 아무래도 고위급의 지휘관 같았다. 코라는 질풍과 같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기병들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는 살짝 혀를 내밀어 입가를 적시고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미소까지 지었다. “후후... 재미있겠는걸. 그럼 어디 약을 살짝 올려볼까?” 코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뒤를 향해 소리쳤다. “투창병은 모두 앞으로 나서라!” 코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1천의 병력이 모두 앞으로 나서는데 그들의 손에는 리자드맨 부족의 투창병들이 즐겨 사용하는 페이잔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스피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도 여러 자루의 스피어들이 비스듬하게 매어져 있었다. 1천의 선봉군이 모두 스피어를 사용하는 투창병들로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모두 대형을 갖춰라!” 코라는 앞으로 나선 투창병들을 향해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투창병들은 3열로 길게 늘어서더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창을 단단하게 움켜쥐고는 손을 길게 빼서 어깨 높이 만큼 들어 올리고는 던질 준비를 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며 자신들의 목표물을 꼼꼼히 분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목표는 전방에 있는 저 멍청한 기병대들이다. 저 달리는 모습이 상당히 위협적이지 않나? 큭큭... 아마도 우리를 죽이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인데 저런 멍청한 놈들에게 우리가 아무런 대접도 하지 않는다면 놈들이 무척이나 섭섭해 할 것이다. 그러니 놈들에게 우리의 선물을 안겨주도록 한다! 1열부터 신호에 맞춰 투창을 시작해라.” 코라의 명령일 떨어지자 1열에 서있던 투창병들은 스피어(Spear)를 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잔뜩 불어넣었다. 근육질로 이루어진 팔뚝은 금세 단단해지고 혈관들이 불끈 불끈 그 위험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한줄기 바람이 오크들과 인간들의 모여 있는 중간으로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로 인해 약간의 수풀이 공중위로 떠올랐다가 바람에 날려 저만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코라의 입에의 단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열 공격하라!” 이미 코라의 명령에만 귀를 기울였던 투창병들이었기에 그들은 저만치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오크 기병대를 향해 자신의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으며 창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휘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슈리안 전사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힘 때문인지 투창병들이 던진 스피어는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때문에 거의 선두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오크 기병대와 거리가 무척이나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스피어는 기병의 선두를 공격하기에 충분했다. “퍼어억...” “푸욱...” “깨깽...” “크아악...” 아슈리안 선봉군의 제 1열 투창병들이 던진 스피어의 숫자는 모두 합쳐서 대략 330여개였다. 달려오는 자들을 한꺼번에 저지하기에는 무척이나 적은 숫자였다. 거기다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오크 기병대였고 또 거기다가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인간 마법사의 공격을 의식했는지 넓게 흩어져서 달려오는 것이라 그들의 피해는 미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늘 위해서 떨어진 날카로운 스피어에 타고 있던 워울프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 한 오크 기병은 워울프가 고꾸라지면서 자신도 중심을 잃었는지 앞으로 쓰러지다가 땅바닥에 강하게 부딪쳐 목뼈가 부러지는 참변을 당했다. 또 다른 오크 기병은 매섭게 날아온 스피어에 정확하게 가슴을 꿰뚫리고서는 날아온 힘에 밀리면서 자신이 타고 있던 워울프의 잔등에서 벗어나 뒤쪽으로 튕겨져 나가면서 바닥에 굴렀다가 뒤쪽에서 무섭게 따라오던 동료의 워울프에 밟혀죽는 경우도 생겼다. “2열 투창하라!”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다시 날아오는 스피어의 숫자는 처음과 비슷했고, 뒤이어 세 번째 스피어가 하늘을 메웠다. 1열이 투창을 하고 앉으면, 2열이 투창을 하고 뒤이어 3열이 투창을 하는 방법은 용병들의 대장인 료우가 리자드맨 부족과 아슈리안 부족에게 알려준 방법이었다. 용병들과 다르게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부대가 부족했던 아슈리안 부족은 리자드맨이 오크들과 싸울 때 사용했던 투창부대를 본떠서 투창부대를 만들었는데 그 투창부대에 조언을 준 것이 료우였다. 일제히 투창하는 공격은 한꺼번에 적에게 대단히 많은 피해를 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후의 공백은 적에게 진격을 허용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료우는 그것을 이미 리자드맨과 오크들의 전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는 그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아슈리안 부족의 전사들이 투창병을 조직하여 투창 훈련을 시키자 지체 없이 자신이 파악한 투창부대의 약점을 알려주고는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슈리안 부족은 료우의 방법이 적에게 한꺼번에 큰 피해를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따지고 보면 한꺼번에 던지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적에게 입히리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그 방법을 채택하여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크루룩...”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떨구며 워울프의 잔등에서 중심을 잃고 왼편으로 떨어지는 오크 기병은 워울프의 달리는 속도 때문에 땅바닥에 부딪치자마자 옆으로 더 튕겨나가다가 뒤편에 쳐져있던 워울프의 발에 채여서 다시 저만큼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미 복부를 뚫고 들어온 창에 정신이 가물가물했던 오크 기병은 떨어지는 충격과 워울프의 발굽에 밟혀 약간이나마 남았던 생애의 짧은 시간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쿠루룩...” 금방이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선두로 나섰던 만부장 카퉁카는 1차적으로 날아온 스피어에 자신의 앞쪽으로 나섰던 몇몇의 기병들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적들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카퉁카는 알고 있었다. 미개한 오크들이라면 죽음을 무릎 쓰고라도 적을 향해 달려 나가겠지만 자신은 고위 귀족이고 우세한 혈통을 갖고 있는 그레이트 오크였다. 섣부른 만용으로 개죽음을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카퉁카는 아슈리안 부족 투창병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즉시 워울프의 고삐를 당기고는 속도를 늦추었다. 선두는 자신이 아니어도 자신을 따르는 기병대로 하여금 서게 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카퉁카가 속도를 늦추자 그의 호위대도 속도를 늦추고는 카퉁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정면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은 5백기로 이루어진 기병대가 전부였다. 카퉁카는 그들에게 계속 전진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카퉁카의 명령으로 전방을 향해 지체 없이 달려드는 기병대는 무척이나 매서워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들의 매서움도 아슈리안 투창병들의 투창 공격에는 하등의 쓸모도 없는지 그들은 너무도 어이없게 투아병들이 던진 스피어에게 잡아먹히며 하나씩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보병으로 이루어진 오크 병사들이 카퉁카가 걸음을 멈춘 곳까지 달려오는 동안 선두에 서서 빠르게 달려가던 오크 기병들은 카퉁카처럼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지는 않았는지 멈추지 않고 달려가다가 거의 전멸을 면치 못했다. 무섭게 달려오던 오크 기병들이 거의 전멸을 당한 것은 코라나 다른 아슈리안 전사들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멀쩡했다면 다음에 해야 할일이 무척이나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멍청한 오크 지휘관으로 인해 그들의 피해가 줄어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오크 기병들이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했는지 코라는 투창병들의 투창공격을 멈추고는 큰소리를 입을 열었다. “모두 내 말을 명심해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너희들이 갖고 있는 전사로서의 자존심이나 명예 따위는 모두 팽개쳐라. 너희에게는 전사의 명예보다 부족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또한 하나라도 더 죽여 전쟁터에서 흘렸던 동료들의 피를 갚아야 할 의무도 있다. 그러니 이 일을 절대로 치욕 따위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코라의 외침에 어느 정도 오크 기병대를 멋지게 해치운 투창병들은 굳은 얼굴로 코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지금부터 너희에게 내릴 명령은 최대한 흐트러진 모습으로 후퇴를 하라는 말이다. 아니 저 망할 오크 놈들에게 줄행랑을 놓는 모습을 보여주어라. 전사로서의 명예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고 오직 내 명령을 따라라. 모두 내 말을 명심하고 최대한 놈들에게 우리가 당황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를 해라. 구겨진 자존심이나 명예 따위는 얼마든지 회복시켜줄 수 있지만 우리 부족의 운명과 전우의 복수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모두 내 말을 명심하고 따라라. 모두 달아나라!” 부하들을 향해 소리치는 코라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이미 선봉군에 편성되었을 때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 들었던 이들이었기에 코라의 긴 사설은 솔직히 쓸데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라는 노파심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긴 사설을 늘어놓은 것이다. 코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투창병들은 자신들이 던지고 남은 투창들을 여기저기에 던져두었다. 최대한 당황한 상태에서 도주를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다른 이들도 나름대로 이 기막힌 연기를 하기 위해 가져온 무기들을 여기 저기 흩트려 놓고는 도주하는 연기를 준비했다. “이이...” 카퉁카는 선두에 섰던 오크 기병대가 아슈리안의 투창병들에게 모조리 전멸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를 갈며 보병대를 재촉하여 인간들을 공격하도록 명령하고는 정작 자신은 뒤로 빠진 상태에서 전투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자신의 보병이 인간 진영 쪽으로 어느 정도 가까워졌는데 인간들은 얼마 전까지 그렇게 극성을 부리며 날렸던 투창 공격을 멈춘 채 그들의 접근을 용인하고 있었다. 때문에 지켜보던 카퉁카는 교활한 인간들이 무언가 다른 계략을 세운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때문에 카퉁카는 공격을 잠시 중지해야 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다가 겨우 1천밖에 안되는 인간들에게 자신이 겁을 집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리고 자신이 끌고 온 사병들이야 언제든지 다시 모을 수 있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들의 목숨 따위는 그리 신경 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계속 밀고 나가도록 가만히 나누었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생각과 달리 인간들은 자신의 보병대가 접근하자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갑자기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갑작스런 도주에 카퉁카는 자존심이 팍 상했다. 자신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으드득... 놈들을 쫓아라! 쿠룩... 한 놈이라도 놓친다면 내 그놈의 목을 치겠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카퉁카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도망치는 인간들을 쫓도록 명령했다. 떨어진 자존심을 어떻게 해서든 회복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쿠루룩...” 도망치는 적을 뒤쫓는 것은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다. 일단 적이 등을 돌려 자신들에게 도망을 친다는 말은 자기에게 겁을 먹었다는 증거가 되었고 나름대로 사기를 올려주는 역할을 했다. 거기다가 도망치는 적은 매우 안전한 존재였다. 마주보는 적이 자신의 목숨을 끊기 위해 달려든다면 도망치는 적은 자신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오직 앞만 보고 뛰어가는 존재였기에 뒤에서 공격해도 방어만 했지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주하는 적을 쫓는 것은 매우 신날뿐 아니라 안전하기도 했다. “쿠룩... 쫓아라. 한 놈도 남겨두지 말아라!” 소리치는 오크 장교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들의 공격에 수많은 동료들을 잃었기에 두려움이라는 것이 아무도 모르게 비집고 들어와 고생을 했는데 이번 일로 그 두려움이 많이 가시리라 생각하니 신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치지도 않는 듯 소리를 버럭 버럭 지르며 자신의 부하들을 재촉하여 인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오크 병사들은 상관의 명령에 죽어라하고 도주하는 인간들의 뒤를 쫓는데 그들도 신명이 난 듯 보였다. 조금만 더 달리면 금방이라도 놈들의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듯 보였으니 그들의 발걸음이 더 빨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1만에서 조금 모자라는 오크 보병대가 자신들이 계획한 매복 지점 가까이 다가서자 이미 1만이 넘는 병력을 곳곳에 매복시킨 케인의 입가에는 승리의 미소가 피어났다. 숫자로만 따져도 적보다 많은 숫자였기에 정면에서 부딪쳐도 충분한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케인은 정면 승부가 아닌 매복 작전을 펼쳤다. 아직 싸움은 멀었고 단 한번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전사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케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신나게 코라의 선봉군을 쫓는 오크 군대가 더 깊숙이 와주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케인과 그의 전사들이 매복한 지점은 주변에 잡목이 무척이나 많이 우거진 지역으로 병력을 매복시키기에는 무척이나 적절한 곳이었다. 하지만 신이 나서 코라의 선봉군을 뒤쫓고 있는 오크 군대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은 없는 듯 했다. “이때다. 모두 공격하라!” 드디어 적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전투지역으로 들어왔고 케인은 공격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다. “휘이익...” “슈우웅...” “쿠에엑...” “쿠루룩...” 선두에 서서 신나게 쫓던 오크 장교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음에 깜짝 놀랐다. 한참 신나서 도망치는 적의 뒤꽁무니만 보고 따라왔기에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서툴렀던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이 자신의 바로 옆쪽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소리! 오크 장교는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시야에는 날카로운 화살에 목이 꿰뚫린 부하의 모습이 보였다. “헉...” “슈우웅...” “퍼억...” “쿠에엑...” 사방에서 들려오는 파공성과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들은 오크 군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오직 적에게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뒤쫓았던 순간들이 이토록 당황스러운 결말을 도출해 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크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크에엑...” “쿠억...” 사방에서 쏟아지는 신음성은 달려오던 오크들의 발걸음을 멈추었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굴렀다. 케인은 원거리 공격으로 최대한 적에게 타격을 입힌 뒤 돌격을 명령하기로 이미 생각을 굳힌 상태인지 근거리 접전은 아직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오크 군대가 있는 곳은 화살이 난무했고, 도망치던 연기를 했던 코라의 선봉군도 금세 방향을 바꾸더니 자신들의 스피어를 뽑아들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쿠에에엑...” 사방에서 들리는 울부짖음에 뒤쪽에서 쫓아오던 카퉁카는 적의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그가 있는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적의 포위망에 갇혔는지 후위에 있는 자신도 안전하지 않아서 인간들이 날린 화살에 완벽한 먹이가 되어 버렸다. 자신을 보호하던 호위병들이 하나, 둘 인간들이 쏘아낸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카퉁카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다른 놈들이야 죽던, 말던 별반 신경 쓰이지도 않지만 자신은 틀렸다. 자신은 고귀한 혈통을 자랑하는 귀족이고 가문에서 몇 안 되는 전사였다. 자신의 목숨은 그만큼 소중했다. 때문에 카퉁카는 지체 없이 워울프의 머리를 돌린 뒤 뒤쪽을 향해 워울프를 몰았다. 남은 부하들은 자신의 퇴로를 막아주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카퉁카는 부하들을 후퇴시키는 명령조차 내리지 않고 오히려 적을 막으라는 매정한 명령을 내뱉고는 호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도주했다. 때문에 남은 오크 군대는 지휘관도 없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케인의 매복에 걸린 오크 군대는 지휘관을 비롯한 호위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멸하는 처참한 패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85 회] 날 짜 2004-06-30 ---------------------------------------------------------------------------- 31장. 고대 신전 패전의 경험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나달 휘하의 7군단 소속 오크 부대는 3분지 2이상이 연합전선의 매복과 기습에 걸려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대패를 하고 말았다. 거의 대부분의 부대가 엄청난 수의 사상자를 내며 후퇴를 했고 간신이 자신의 목숨을 건지며 제8 만인대에 몸을 의탁했던 7군단장 나달은 창피를 무릎 쓰고라도 후위에서 따라오는 3군단장 슐바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의 7군단은 유명무실해 졌다. 남아있는 인원이라고 해보아야 몇 번의 대패로 사기가 떨어진 2만이 조금 넘는 군대가 전부였다. 슐바인을 찾은 나달은 예전의 당당함은 찾을 수 없이 푹 숙인 고개를 전혀 들지 못하고 있었다. 3군단장 슐바인은 또다시 대패를 하며 엄청난 숫자의 병사를 잃고 돌아온 나달을 보면서 비웃음을 흘렸다. 이미 그는 자신과 동급의 군단장으로서 대하기에는 부족한 자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제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패전에 대한 책임이었다. 슐바인은 이제 나달을 자신의 동료이자 동급의 군단장이 아닌 죄인 취급을 하였다. 그의 조소는 자신의 죄 때문에 전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서있는 나달에게 매섭게 쏟아졌다. “쿠룩... 무능한 자 같으니라고... 너 따위 무능한 장수가 어떻게 나와 같은 서부 원정군에 포함되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그의 서릿발 같은 책망에 고개 숙인 나달은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틀전만해도 자신과 대등한 지위의 사내가 이제는 자신을 마치 죄인 다루듯 하고 있었다. 물론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더 이상 군단장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지만 아직까지 상부에서 자신의 군단 지휘권을 빼앗은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나달은 슐바인의 무자비한 책망에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쳐들고 대들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죄인이었던 것이다. “흥... 너 따위 오크는 우리 제국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너 같은 무능한 장수가 만약 내 밑에 있었다면 당장 내 스스로 네놈의 목을 쳤을 것이다.” “이이...” 슐바인의 지독한 폭언에 나달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고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슐바인을 향해 욕을 퍼부을 듯싶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한 욕을 참는 나달은 슐바인의 지독한 발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금방이라도 옆구리에 차고 있는 대도를 뽑아 놈의 주둥아리를 도려내고 놈의 비웃는 얼굴을 난도질하고 싶은 욕구가 새록새록 피어났다. 하지만 이곳은 슐바인의 막사였고 주위에는 그의 부하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었다. 섣부른 움직임은 자신의 명을 더욱 단축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달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달은 섣부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며 슐바인의 지독한 욕을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달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슐바인은 비웃음을 흘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쿠룩... 네 스스로 너의 죄를 잘 알 것이다. 때문에 지금 시간부터 너의 7군단에 대한 지휘권은 모두 나에게 이양되었음을 알려주겠다. 서부 원정군 사령관이신 마르카바야 공작 전하께서 오실 때까지 너는 너의 숙소에 연금될 것이다. 그렇게 알도록...”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달은 자신의 지휘권을 뺏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감금한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슐바인의 월권이었다. 하지만 슐바인은 나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을 무시하고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의 옆쪽에 있던 오크 병사들이 나달을 포위했다. “쿠룩... 감히 나를 제거하려고 하다니... 내 지금까지 참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나달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대도를 뽑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달의 그런 태도에 슐바인은 더욱 차가워진 얼굴로 비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흥... 바보 같은 놈!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그의 발언과 더불어 두 개의 검이 나달에게 쏟아졌다. 나달은 자신을 공격하는 두 오크 병사의 검에 살기가 섞여있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너무 섣부르게 칼을 빼들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저기서 자신을 보며 비웃는 슐바인이라는 간교한 놈은 이미 자신을 죽이기 위해 수를 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은 너무도 쉽게 놈의 꾀에 말려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달은 분노가 솟구쳐 제정신이 아니었다. “죽여 버리겠다.” 나달은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슐바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두 개의 검도 무시한 채 오직 슐바인만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두 개의 검은 이성을 잃은 나달의 목을 사정없이 그어버리고 말았다. “커억... 쿠루룩...” 두 세 걸음 달려 나가다가 목이 허전해진 나달은 뜨거운 기운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물컹물컹한 느낌이 자신의 상의와 하의를 금세 젖어버렸다. 나달은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대도를 떨어뜨렸다. “쨍그랑...” 보통의 도보다 무거워 보이는 나달의 도는 바닥을 움푹 패여 놓고는 저만치 굴렀다. 나달은 바닥을 구르는 자신의 도를 쳐다보다가 주우려고 했지만 몸이 따르지 않았다. 그의 몸은 이제 그 자신의 것이 아닌 듯 했다. 몸이 서서히 굳어지고 눈이 가물가물해졌다. 나달은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시야는 어두컴컴해졌다. “풀썩...” 바닥을 구르는 나달의 시체는 목이 반쯤 잘려 나간 상태였다. 슐바인은 냉혹한 표정으로 한때는 자신과 동급의 지휘관이었던 나달을 일견하고는 미련조차 없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쿠룩... 저 무능한 자의 시체를 치워라! 공작 전하께는 전투에서 대패하고 전사했다고 알리겠다. 모두 그렇게 알도록...” 슐바인은 주위에 있던 장수들에게 그렇게 외치며 자신이 직접 명령을 내려 나달을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미 공범이 되어 버린 슐바인의 수하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슐바인의 명을 따랐다. 나달의 죽음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주변이 조금 정리되자 슐바인은 휘하의 여러 지휘관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회의를 시작하였는데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는 자신의 좌우에 모여 있는 오크 지휘관들을 일견하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쿠룩...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멍청한 나달 때문에 20만에 달하는 우리 군대가 절반의 병력을 잃는 참패를 당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패전은 우리 제국 역사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패전에 대한 책임을 죽은 나달에게 돌리고 너희들에게는 패전에 대한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패전에 대한 책임은 너희 스스로 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더 이상의 패배는 너희들의 목숨과도 직결될 것이다. 알고 있느냐?” “넷...” “쿠룩... 알고 있습니다.” 슐바인의 냉혹한 얼굴로 단호한 질문에 주위의 지휘관들은 모두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의 반응에 슐바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따라서 너희들은 지금까지 패전을 만회해야만 한다. 아니 꼭 승리를 해서 우리를 이 꼴로 만든 교활한 인간들과 저능한 리자드맨 놈들에게 복수를 해야 할 것이다.” “쿠르륵...” “쿠룩...” 슐바인의 말에 오크 장수들은 하나같이 분노의 빛을 쏘아내었다. 이미 한 번 더 패배한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들도 직감하고 있었다. 두 번의 기회라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신중하게 놈들과 싸워야 한다. 더 이상 놈들에게 끌려 다니며 패배를 당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몇 가지 작전을 너희들에게 내리겠다. 너희는 내 명령을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수행해야 할 것이다.” 슐바인의 말에 오크들의 머리는 다시 숙여졌다. 숲 속에서 펼친 두 번의 승리로 우쭐해진 리자드맨 정찰병들은 반나절동안 주변의 숲을 뒤졌지만 그 망할 놈의 오크들 머리카락 하나 발견하지 못하자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몇 번의 패전으로 수많은 전사자들을 내자 겁을 집어먹고 모조리 숲에서 달아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때문에 그들은 슬슬 수색하는 것이 느슨해 졌다. 그리고 지금 한 리자드맨 전사는 대부분의 수색대들이 그러하듯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특히 그 장본인이 무척이나 더위를 잘 타는 리자드맨 전사라면 더욱 그러했다. “키에에엑... 이 놈의 더위! 정말 미치겠구나. 없는 놈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더 이상 지쳐서 못해먹겠다.” 리자드맨 전사 르마루이크는 뾰족하게 튀어 나온 입으로 그렇게 불평을 털어놓더니 긴 꼬리를 전후좌우로 흔들며 바닥을 헤집었다. 이미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더 이상 수색은 헛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꽉 메우자 르마루이크는 오른쪽 방향으로 무척이나 커다랗게 자라있는 나무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가득 메운 나뭇가지로 인해 나무 밑은 넓은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지독한 더위는 저기에만 있어도 능히 벗어날 수 있을 듯싶었다. 때문에 르마루이크는 자신의 임무도 잊은 채 수색을 포기하고 나무 그늘 근처로 이동했다. 주변의 여러 리자드맨 전사들은 같이 수색을 하고 있다가 르마루이크가 말도 없이 나무 그늘 근처로 이동하자 서로 눈짓을 했다. 그들도 이 지독한 더위만큼은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르마루이크 만큼은 아니지만 그들도 이 지독한 더위는 참기 힘든 것이었다. 가뜩이나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관계로 습지에 주로 살고 있는 리자드맨의 입장에서는 이 뙤약볕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나무 그늘로 들어가는 르마루이크의 동료들은 하나, 둘 서로 눈치를 주더니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르마루이크의 뒤를 쫓았다. “키에엑... 히야 이렇게 시원하다니...” “그래! 더 이상 저 뙤약볕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군. 키에엑...”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은 리자드맨들은 서로 편안한 자세를 잡더니 그렇게 떠들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는 수색이라는 임무는 뒷전이고 어떻게 해서든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제일 먼저 나무 그들로 들어온 르마루이크는 자신의 동료들이 자신을 따라 더위를 피해 나무 그들로 몰려오자 힘이 났는지 이제는 자리까지 잡고는 누웠다. 슬슬 피곤함이 몰려오고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에 있으니 눈이 감겼기 때문이다. 르마루이크의 동료들은 르마루이크가 자리까지 잡고 누워버리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은 어떻게 넘어간다고 하지만 잠이라니... 혹시라도 오크들이 나타난다면 여지없이 지옥을 구경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반나절이 넘는 수색동안 오크들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차츰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반나절 동안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했던 그들이라 르마루이크가 이제는 코까지 골면서 “드르렁...” 거리는 소리에 자신들도 무척이나 피곤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키에엑...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아무리 찾아봐도 놈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잠깐 눈을 붙이고 싶군. 저 망할 자식만 늘어지게 자는 꼴을 보지 못하겠어.” 한 리자드맨이 그렇게 말을 하더니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가 편안 자세로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아버리자 옆에 있던 동료도 마음이 동했다. 정말 자신도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나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 키에엑...” 그러더니 그는 홱 돌아눕더니 한쪽팔로 팔베개를 하더니 눈을 감는데 마치 배째라는 식이었다. 그의 그런 반응에 다른 리자드맨 전사들도 하나, 둘 그와 비슷한 모습을 취했다. 마지막 남은 전사 하나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눈을 감자 대략 20여 명의 리자드맨 수색대는 모조리 나무 그늘에서 늘어지게 잠을 청하게 되었다. “쿠룩... 먹이가 제 발로 걸려들었구나!” 슐바인의 특명을 받아 이동을 하던 제 3 특임대장 류살로는 쾌재를 부르며 자신의 시야에 잡힌 한 떼의 리자드맨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는 3군단장 슐바인이 특별히 키운 전사로서 5개의 특임대중 하나를 맡고 있었다. 특임대는 모두 그레이트 오크로 이루어진 부대로 슐바인의 전속 사병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나같이 여타의 그레이트 오크들보다 무력이 뛰어난 자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특히 류살로는 비록 하위 귀족이기는 하지만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제법 뛰어난 무위를 인정받아 다섯 개의 특임대중 하나를 맡은 유능한 오크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과 리자드맨이 연합한 본거지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슐바인에게 받고는 마물의 숲을 뒤지며 인간이나 리자드맨의 꼬리를 잡으려고 나섰다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예상치 않은 먹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자신의 시야에 잡힌 놈들은 나무 그늘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자신들에게 걸리면 도망치거나 살아남지 못할 터인데 경계도 세우지 않고 잠든 놈들이라면 너무도 쉬운 목표였다. 류살로는 바로 자신의 특임대원들에게 손짓을 하더니 모조리 포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리자드맨의 죽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기에 류살로는 리자드맨들을 죽이지 말고 사로잡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퍼억...” “크엑...” 곤히 단잠을 자고 있던 르마루이크는 갑작스럽게 전해지는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한참 단꿈에 젖어 있던 상태에서 복부로 전해지는 잔인한 충격은 숨까지 턱턱 막히게 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두 눈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런 충격 때문에 눈물을 찔끔 흘리고는 눈을 번쩍 뜬 르마루이크는 자신의 눈에 비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오크 하나가 발을 들어서 자신의 복부를 밟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잔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데 무척이나 단단해 보이는 회색빛의 갑옷이 독특해 보였다. 왜 그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르마루이크는 자신을 밟고 있는 오크의 갑주가 무척이나 독특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금세 사라졌다. 자신의 복부를 밟고 있는 오크가 발에 힘을 주었는지 복부로 전해지는 고통이 더해졌다. 르마루이크는 복부로 전해지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고 끝내 비명을 내질렀다. “키에엑...”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르마루이크는 오크의 발밑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 이 고통을 벗어나고 일어나 놈과 맞서 싸워야했다. 이렇게 어이없게 자다가 죽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때문에 르마루이크는 몸을 최대한 좌우로 비틀면서 오크의 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육중한 덩치의 오크는 르마루이크의 그런 발버둥을 무색케 하는 엄청난 힘이 있는지 발목에 힘을 주고는 지그시 밟았다. “커어억...” 복부를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르마루이크는 발버둥을 치다가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르마루이크는 신경을 통해 대뇌에 전달되는 아찔한 고통에 반항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깨닫게 되었다. 르마루이크가 어느 정도 반항을 멈추자 르마루이크를 밟고 조용히 내려다보던 오크는 그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쿠룩... 한 가지만 묻겠다.” 르마루이크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오크가 보기 싫을 정도로 자신을 비웃는 표정을 지우며 묻자 냉큼 좌측으로 얼굴을 돌려 그의 질문을 거부했다. 아마도 자신에게서 무언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연합전선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런 협박에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르마루이크가 일말의 여지없이 즉시 고개를 돌리자 입을 연 오크는 의외로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내뱉으며 르마루이크를 향해 말을 했다. “쿠룩... 나도 쉽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쉽게 네 놈의 입을 열고 쉽지도 않고 말이다. 크크크...” 그러더니 복부를 밟았던 오크는 갑자기 발을 들어 세차게 르마루이크의 얼굴을 가격하는데 그 충격에 르마루이크는 정신을 잃었다. “키엑... 헉헉헉...” 얼마나 정신을 잃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되찾은 르마루이크는 자신의 목구멍이 타는 듯 해지자 혀를 쑥 내밀었다. 혀끝을 바짝바짝 마르게 만드는 붉은 태양이 자신의 눈앞에 버젓이 떠 있었다. 두 눈을 고통스럽게 쬐는 태양의 빛에 르마루이크는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두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에 묶여 있는지 그의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키에엑...” 르마루이크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두 눈은 태양 때문에 제대로 뜰 수조차 없는데다가 뜨거운 태양열로 인해 갈증이 심해지고, 피부도 온통 말라버린 듯 했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붉은 불꽃은 르마루이크의 입과 살을 황폐해진 논두렁의 그것처럼 쩍쩍 갈라지게 마들고 있었다. 태양의 붉은 열기는 르마루이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키에엑...” 타는 듯한 갈증의 고통에 르마루이크는 비명을 질렀다. 다른 고통은 모르겠지만 목이 타는 갈증과 수분까지 모조리 빠져나간 듯 보이는 피부로 전해지는 고통은 어떠한 상처의 고통보다 심했다. 쩍쩍 갈라지는 피부는 조금만 지나면 빠짝 말라서 흉물스럽게 변할 듯싶었다. 르마루이크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옭아맨 밧줄의 단단함에 움직임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은 단단한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눕혀져 뜨거운 태양의 고문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쿠룩... 목마르지 않은가?” 갑작스럽게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얼마 전 자신을 밟았던 오크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르마루이크는 오크의 얼굴을 보자 조금 전까지의 고통도 잠시 잊은 채 살기를 드러냈다. “크크크... 아직 나에게 분노를 내보일 힘이 남은 건가? 쿠룩...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려주지. 아직까지 내게는 인내가 남아있거든.” 오크는 그 한마디를 남기더니 르마루이크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르마루이크는 그 망할 놈의 오크가 너무도 쉽게 시야에서 사라지자 녀석을 저주하는 욕을 내뱉고는 다시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밧줄을 끊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나 단단하게 메어있는지 르마루이크는 자신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밧줄이 더욱 자신의 살을 파고 꽉 조여 오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뜨거운 태양은 르마루이크의 정신을 초췌하게 만들었다. “쿠룩... 참을 만 한가?” “물... 물...” 르마루이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타는 듯한 갈증은 그의 정신력이 밑바닥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이미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쿠룩... 물이야 여기에 있지.” “조르르륵...” 귓가를 울리는 물소리에 르마루이크는 억지로 눈을 떴다. 옆으로 졸졸 떨어지는 물소리가 귓가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입은 바싹바싹 말라서 얘기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물...” 르마루이크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혀로 입술을 축이고 싶지만 그의 몸에는 한 톨의 수분도 남아있지 않은 듯싶었다. “쿠룩... 마시고 싶나?” 오크의 목소리에 르마루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묶여있는 터라 위아래로 끄덕이는 것조차 힘들기는 했지만 르마루이크는 필사적이었다. 그의 그런 태도에 오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쿠룩... 한마디만 해주면 내가 물을 주지! 아니 묶여있는 밧줄도 풀어주겠다.” “...” 르마루이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는 오크의 말에 대꾸할 힘도 모두 다 소진하였기 때문이었다. “본거지가 어디인가만 알려주면 이 물을 모두 주겠다. 물론 거기에 더해서 네 목숨도 살려주마!” 오크의 말에 르마루이크는 갈증 때문에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 작 가 별빛사랑 제 목 용병왕 료우 (마황의 용병대) [186 회] 날 짜 2004-07-01 ---------------------------------------------------------------------------- 31장. 고대 신전 연합전선의 근거지가 있는 곳은 황혼의 새벽이라 불리는 평원이다. 여기서 그들이 평원을 부르는 말인 황혼의 새벽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황혼(黃昏)이라 함은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를 일컫는 말이고, 새벽은 날이 밝을 무렵 동이 뜰 때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둘은 전혀 상반된 이야기라는 것인데 어떻게 황혼의 새벽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것은 이곳이 대륙에서 유독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일컬어 그런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략 이러했다. 대륙의 동북쪽에 위치에 있는 황혼의 새벽은 새벽 동이 틀 무렵 밤새 세상을 비추던 디아와 디노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저무는데 그때 태양과 잠깐 동안 교차가 되는 기이한 현상을 겪는다. 유독 이곳 황혼의 새벽에서만 보이는 현상인데 디아와 디노는 잠시 동안 떠오르는 태양을 가리는데 그때 밝아야 할 평원은 황혼의 그것처럼 어둑어둑해진다. 이 때문에 이곳을 황혼의 새벽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새벽녘 황혼의 새벽이라고 명명된 이유처럼 평원은 태양이 떠올랐지만 디아와 디노의 심술에 잠깐 동안 어두워졌다. 연합전선의 수뇌부는 요 몇 일간 무척이나 분주해져 있는 상태였다. 수뇌부가 아니더라도 연합전선에 소속된 자들은 하나같이 무척이나 긴장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한 부대의 실종에 있었다. 그 부대는 리자드맨 전사들로 이루어진 정찰부대인데 그들은 복귀일이 3일이나 지났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때문에 연합전선의 수뇌부는 무척이나 긴장을 하게 있었는데 아무래도 재수가 없어 오크 정찰부대에 발각되어 전멸한 듯싶었다. 문제는 전멸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포로로 잡혔을 때가 문제였다. 하나같이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고문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고도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혹시라도 포로가 된 자들 중 연합전선의 본거지를 발설할 수도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리자드맨의 수장인 바르는 절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큰소리를 치며 연합전선 수뇌부의 걱정을 잠재우려고 했는데 연합전선 내부에서도 바르의 말대로 리자드맨 전사들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라도 발생한다며 10만의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연합전선 수뇌부는 낙관적인 결론만을 내린 채 넋 놓고 지켜만 볼 수 없었다. 때문에 연합전선 수뇌부는 두 가지 명령을 내렸다. 일단 첫 번째 명령은 마물의 숲 여기저기에 퍼져있는 정찰 부대를 모조리 본부로 불러들인 것이다. 일단 한부대가 이유도 없이 사라졌기에 다른 부대도 똑같은 위험을 당할지 몰랐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마물의 숲 주변에 퍼져있던 여러 정찰 부대들은 신속하게 본진으로 귀환을 하였다. 마물의 숲 전역에 흩어져 있던 정찰 부대가 귀환을 하자 연합전선의 수뇌부가 내린 두 번째로 명령은 본부 주변의 경계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인데 혹시라도 적에게 연합전선의 본거지가 드러났다면 아무런 대책 없이 당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었기에 만약을 위해 방비를 강화한 것이었다. 이미 방벽을 세우기로 결심할 때 적에게 언젠가는 들킨다는 과정 아래서 목책을 세웠던 까닭에 목책이 높이는 무려 4-5미터로 높았다. 목책은 적의 침입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전의 의미에서 세운 것이라기보다는 민간인들을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따라서 초반에는 목책을 끼고 수성전을 벌이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만 설계되었고 시간이 지나면 목책은 여지없이 뚫리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목책은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경계가 느슨해서 적이 그런 목적을 갖고 만든 목책을 단시간에 뚫어버린다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목책의 경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었다. 길게 늘어선 목책의 중간 중간마다 높이가 무려 7-8미터는 넘어 보이는 감시탑이 군데군데 서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2-3명의 경비병들이 상주하며 자신들이 맡은 지역을 경계하는데 디노와 디아가 지고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녘 그들은 긴장감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남서쪽 제 21번 탑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토르는 갑자기 어둑어둑 해지는 날씨를 보고는 디노와 디아가 태양을 살짝 가린다는 황혼의 새벽 현상이 일어났음을 느끼고는 간만에 길게 늘어지는 하품을 하였다. 밤새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경계한 까닭에 새벽이 되고 조금만 있으면 자신과 임무를 교대할 교대조가 온다는 생각이 들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때문에 그의 두 눈은 반쯤 감기기 시작했다. 며칠 밤낮을 두 눈을 부릅뜨고 삼엄한 경계를 펼쳤지만 지휘부의 걱정과는 달리 주변은 너무 조용하기만 했다. 지난 며칠간의 경계가 너무도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아아함... 이거 졸려서 미치겠군!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이렇게 졸리니...” 토르는 반쯤 감겼던 눈을 어렵게 뜨고는 피곤함을 쫓기 위해 두 손을 쭉 펴고 다시 한번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투덜거렸다. 여태까지의 고생이 너무도 허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아직도 졸음이 달아나지 않았는지 그는 고개를 크게 한바퀴 돌리기 시작했다. “아함... 미치겠군. 왜 이렇게... 억!” 피곤함을 쫓기 위해 고개를 반쯤 돌리다가 다시 하품이 나오자 턱이 빠지는 느낌에 눈물이 찔끔 나왔던 토르는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래서 애써 눈을 부릅뜨며 졸음을 쫓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의 입에서 외마디 놀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외마디 놀람을 터트린 토르는 갑자기 온몸의 근육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옆쪽에서 자신도 졸린 까닭에 토르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반쯤 감았던 동료는 토르가 지르는 외마디 놀란 목소리에 눈을 어렵게 뜨고는 물었다. “뭐야? 토르... 엉! 왜 그래?” 그는 토르의 외마디 놀란 외침에 무슨 일인가 하고 토르를 보았다가 그의 굳어진 채로 한곳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길래 무언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부릅떴다. “적... 적이닷!” 떨려서 제대로 입이 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은 명령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적의 외침을 알리고는 곧바로 자신의 앞쪽에 놓여 있는 줄을 힘껏 잡아 당겼다. 그것은 적의 침입을 알리는 장치였다. 그가 줄을 잡아당기자 사방에서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땡땡땡땡...” 매우 급박한 느낌을 전달하는 종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자신의 침대에 누워 곤한 잠을 청하고 있던 료우는 인상을 잠깐 찡그리더니 눈을 떴다. 아직 자신의 기상시간은 아니라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시끄러운 종소리에 잠을 깼을 것이다. 료우는 잠깐이지만 시끄러운 종소리에 인상을 쓰고는 곧바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이 시끄러운 종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료우는 자신의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애검을 흡사 독수리가 먹이를 채듯 낚아채고는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습관적으로 옷을 입은 채 잠드는 시간이 많았기에 료우는 잠을 잘 때도 평상복을 입고 잠을 청했기에 옷을 갈아입는다던지 하는 불편함을 없앤 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료우가 밖으로 나서고 제일 처음 본 것은 사방으로 급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리자드맨 들이었다. 갑작스럽게 조용했던 새벽을 깨웠기에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황에서 급박함에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그들은 무척이나 무질서해 보였다. 그중 몇몇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료우의 귓전을 울리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적이 나타났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해라!” “적이 침입했다.” “비상이다. 모두 무기를 챙겨라!” “키에엑... 오크다. 오크들이 쳐들어왔다.” 사방에서 터지는 외침 때문에 료우는 금방 작금의 상황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숲을 정찰했던 오크 부대가 자신들의 본거지를 발견하고는 모습을 드러냈던지, 아니면 사라졌던 리자드맨 수색대가 죽은 것이 아닌 포로를 잡인 후 고문에 못 이겨 본거지를 불어 본거지가 발각되었던지 둘 중에 하나였다. 전자라면 어떻게 해서든 적 오크 정찰대를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포위해서 죽이면 그만이지만 후자라면 약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은 우리의 전력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테니 섣부른 준비를 하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갖고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방에서 터지는 고함들과 떠드는 소리들은 하나같이 숨죽이며 조용하기만 했던 새벽을 깨우기에는 충분한 소란이었다. 아직까지 이런 소란 속에서도 꿈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있다면 그는 살아있는 자가 아니거나 아니면 무척이나 둔한 인물이 분명할 것이다. 사방은 이미 대낮처럼 훤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약간 당황에서 허둥대었지만 이내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았는지 우르르 몰려들면서 저마다 각자의 무기를 챙겨 들고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료우는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는 곳을 향해 자신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이곳 연합전선의 본거지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놓은 목책이 있는 곳이었다. 료우는 목책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지체 없이 무척 높게 솟아 있는 한 첨탑을 향해 달려갔다. 나무로 세워진 첨탑은 다른 감시탑보다 조금 더 높게 세워진 건물로 규모는 보통 감시탑의 열배는 되어보였다. 그곳은 이곳 말로 전투 상황실이라고 명명되어진 곳이었다. 전투 상황실은 보통의 감시탑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높이도 높고, 그 규모면에서 보통의 감시탑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서 자그마치 감시탑의 10배는 되었다. 전투 상황실은 연합전선 본부의 곳곳에 세워졌는데 그곳들은 하나같이 연합전선 수뇌부가 정해놓은 방어선이 있는 곳이었다. 료우가 뛰어 들어간 곳은 제1 방어선이자 목책이 있는 곳이었다. 전투 상황실은 효과적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얀의 의견을 받아 특별히 만든 곳이었다. 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전장을 살펴보며 상황 상황에 알맞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다가 만든 곳이 이 전투 상황실 이었다. 멀찍이 뒤에 떨어져서 내리는 명령 따위는 현장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전투 상황실은 현장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 위해 특별히 만든 것으로 수성을 하는 연합전선에게는 최선의 방법중 하나였다. 전투 상황실로 뛰어 들어간 료우는 그곳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서있는 몇몇 지휘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자는 케인의 부관중 하나인 보레라는 젊은 청년이었다. 덩치는 거의 바이크에 필적 할 만큼 큰 사내는 창밖을 보면서 적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커다란 탁자에 지도를 펼쳐놓고 적의 움직임을 하나하나씩 체크하는 인물은 리자드맨의 수장인 바르의 차남 바쿰이었다. 얼마 전까지 료우 때문에 누게르의 3군에서 포로 아닌 포로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온 후 기가 팍 죽었던 그는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리고 지휘관으로 일선에 복귀하였다. 바르는 빠른 손놀림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지도 위에 깃발을 하나씩 꼽기 시작했는데 깃발 하나에 대략 1만 정도를 표시하고 있었다. 현재 연합전선 보부의 밖에는 모두 합쳐서 11개의 깃발이 꼽혀 있었다. 료우가 전투 상황실로 들어가자 주위 상황을 살피던 보레와 지도에 깃발을 막 꼽고 있던 바쿰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료우를 발견했는지 반가운 얼굴을 하더니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미 예전에 료우에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나서 료우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바쿰이라면 료우를 어려워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아슈리안 부족의 전사이자 케인의 부관중 하나인 보레가 료우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언제부터 료우가 이런 대접을 받았던가? 하지만 의외로 료우는 그들의 인사에 어색해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를 하더니 재빨리 보레가 있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보레가 서 있는 창가는 창이라고 하지만 유리나 그런 것이 있지는 않았다. 이곳은 단지 적의 움직임이나 아군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만든 곳으로 뻥 뚫린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창에는 아무것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료우는 보레가 쳐다보고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무진장 많은 숫자의 오크들이 넓게 퍼져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군!” “옛...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정보에 걸린 자들만 따져도 적어도 11만은 넘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이곳으로 오는 병력이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저번에 저희와 싸웠던 20만의 병력만 이곳으로 왔다면 지금쯤이면 유입되는 병사가 어느 정도 줄어들 기미를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병력이 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추가되는 병력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은 저번에 보았던 병력 말고도 또 다른 병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보레의 대답에 오크 진형을 바라보는 료우의 눈빛이 굳어졌다. 설마하니 그 20만이나 되는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니 너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료우는 보레의 말대로 오크 진영 후미에서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오크 부대를 보면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예전 6.25때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중공군의 모습에 할 수 없이 밀려야만 했던 한국군의 심정이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은 흡사 인해전술을 무기로 달려드는 중공군과 비슷해 보였다. “다른 사람은...?” “키에엑... 아직까지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료우님이 제일 처음이십니다. 저희들이야 오늘 이곳 목책의 경계를 담당하는 임무를 맡았기에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바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쿰의 대답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다른 지휘관들을 찾아서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다시 한번 주변 상황을 점검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지휘관들의 움직임보다 밑에 있는 전사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빨라서 많은 인간 전사와 리자드맨 전사들은 목책 위에서 무기를 꺼내들고 목책 밖에서 엄청난 진영을 갖추고 있는 오크 군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넓어지는 진영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적은 무척이나 많아 보였다. “무슨 일이냐?” 뒤늦게 들어오는 아슈리안의 수장 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바라보던 료우는 고개를 돌려 케인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오크들이다.” “오크?” “적어도 10만에서 20만은 넘어 보인다.” “20만?” “그래!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작전들은 녀석들에게 별반 타격을 주지는 못했던 모양이야. 아직도 저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거기다가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말 안 해도 알 거야. 아마 단단한 벼르고 달려왔을 거야.” 료우의 대답에 케인의 표정이 굳어진다. 10만 가까운 오크들을 죽였다고 환호하던 기분은 싹 달아났고, 료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대규모 오크 진영에 눈이 고정되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숫자군. 거기다가 저 진영의 움직임은...” 케인은 료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오크들의 움직임에 대해 그렇게 말을 꺼냈는데 케인의 말에 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마도 우리의 마법을 의식하고 짜놓은 진영 같아. 한번에 당하기는 싫다는 거겠지. 그래서 저렇게 넓게 진영을 벌린 것이겠고... 거기다가 저기를 봐라.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오크 궁수부대도 보인다. 화롯불이 여기저기에 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화공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공?” “그래... 아마도 우리 목책이 나무로 만들어졌으니 누가 생각해도 먼저 화공을 떠올리겠지. 이게 불에 잘 타지 않는 플리워스 나무를 쌓아 올렸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말이야.” 료우의 말에 케인은 료우나 그의 용병들이 멀리서 나무를 해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료우와 그의 용병들이 처음 연합전선의 본거지에 목책을 세울 때 그들은 주변에서 나무를 벌목하지 않고 이곳에서 수키로나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벌목했다. 옮기는 시간 때문이라도 왜 그렇게 멀리서 나무를 벌목하느냐고 물었을 때 료우는 씨익 웃고만 있었다. 수성전이 벌어지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라는 말만 남기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료우는 적의 화공을 예상하고 불에 잘 타지 않는 플리워스 나무를 벌목하여 방책을 세웠던 것이었다. 케인의 료우의 대답에 료우의 현명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케인이 료우의 현명함에 다시금 혀를 내두를 무렵 다른 연합전선의 수뇌부들도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케인의 여러 부관들과 각 지휘관들을 위시해서 리자드맨 부족의 수장인 바르와 바르의 부관들, 그리고 그의 자식들... 거기다가 용병대의 주축인 아론과 바이크, 네오, 얀 등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 모인거야?” 사람들은 잠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고 빠진 사람이 있나 확인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빨리 설명할게. 내가 학인 한 바로는 적은 대략 10만에서 20만 정도로 추정되고 아마도 우리의 근거지가 놈들에게 파악된 것 같아. 놈들은 작정을 하고 이곳을 찾았고 우리의 대단위 마법에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저렇게 넓게 흩어지는 진영을 짰다. 거기다가 예전에는 없었던 오크 궁수부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다.” 료우의 설명에 수뇌부들은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마도 막아내기 힘들 것 같다. 며칠이야 방책을 빌어 적을 막는다고 해도 저 병력이 전부가 아니라면 우리의 패전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야. 우리가 불에 잘 타지 않는 플리워스 나무로 방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화공으로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만 이것도 나무는 나무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 놈들의 공격을 받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어. 따라서 우리는 원래의 목적대로 민간인들부터 피신을 시키면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방법으로 수성전을 치루어야 할 것 같다.” 료우의 말에 전투 상황실을 빼곡 메운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디로 가지?” 잠자코 료우의 설명을 듣고 있던 네오가 불쑥 그런 질문을 던졌다. 네오의 질문에 사람들은 모두 료우를 쳐다보았다. 료우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키에엑... 우리는 누불라로 갈 것이다.” “누불라?” 모두의 시선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바르에게로 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