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가 봉인된 이후 내 생활은 예전에 비해 많이 불편해졌다. 편리하게 사용했던 정령과 마법을 쓸 수 없어, 그로 인해 자질구리한 일을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던 것이다. 몸을 씻는 거나, 무엇을 가져오는 것 등 나는 지금껏 모든 일에 정령과 마 법을 사용해 왔었는데 이노가 마나를 봉인해 버렸으니! '마법이 없는 삶이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군.' 그리고 가장 귀찮은 것은 먼 거리를 움직이는데 직접 걸어가야 하는 일이었다. 실 험이 끝난 이후 이노의 오두막집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실험 대상이 되어줬으면, 원래 있던 자리까지 알아서 대려다줘야 하는거 아냐? 이 렇게 나만 떨어뜨리고 자기 혼자 가면 어쩌냐고!" 언제나 공터에서 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이노. 움직여가면서 뭔가를 연구해야 할 때는 항상 오두막집 뒤편에 자리한 공터로 나를 끌고와 실험을 했다. 이곳은 오두막집과 연결이 되어 있었기에 이노의 텔레포트로 쉽게 올 수 있었다. 오두막집 지하에서 뭔가를 실험해보고 싶으면 언제나 나를 대리고 텔레포트로 이곳 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이용한 실험이 끝나면 재빠르게 텔레포트로 다시 오두막집으로 갈 뿐이다.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을 해야 한다면서 그녀 혼자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를 같이 대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건지, 아니면 나를 골탕먹이려는 건지 그녀는 언제나 혼자 이곳을 빠져나갔다. 원래 이 실험장은 텔레포트가 되지 않게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너무도 쉽게 텔레포 트로 이곳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텔레포트를 못하게 방해요인 을 설치해놓은 장소에서는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좀 다른 배열로 마나를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배열이 뭔지 아직 알 수 없었고... 알고 있다 고 해도 마나를 쓸 수 없었기에 나는 천상 걸어서 오두막집으로 가야만 했다. '별 이상한걸 다 알고 있다니까...' 마법서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방법들을 이노는 아무 어려움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왔는지 그녀는 이상한 것들을 비롯해 모르는게 없었다. 못만드는 것도 없었고... "이곳은 신기하게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않는단 말야?" 이노의 집과 그 근처 일정 공간에는 몬스터들과 독초들이 전혀 없었다. 아름다운 풀들의 모습은 독초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것들은 전혀 사람에게 해 가 없는 것이었다. 이노가 주변에 어떤 장치를 했는지 몰라도 이곳에 서 있으면 죽 음의 숲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과 바람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수다를 떠는 나뭇잎들. 간간이 그 둘의 수다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끼어들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낙원의 그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움에 취해 길을 걸을 수는 없었다. "으이쿠!" 주변의 광경에 한눈을 팔다, 나는 내 발을 잡아끄는 뭔가에 고개를 다시 아래로 돌 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걷고 있는 곳은 평평한 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숲 속의 길 이었으므로. 게다가 이곳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아니었기에 길이라는 것 자체가 나있지 않 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텔레포트로 왔다 갔다 했으니 길이라는게 만들어 졌을리 없었고... "이건 내가 매번 길을 만들어야 하니..." 울퉁불퉁 솟은 너무 뿌리들을 넘으며 나는 단도로 내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들을 쳐 냈다. 하지만 내 단도에 의해 잘려나간 나뭇잎은 어느새 다시 자신의 모습을 되찾 으며 내 바닥에 떨어진 부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죽음의 숲은 죽음의 숲인 모양이군. 독이 없다 뿐이지, 저 질긴 생명력은 여전하 니 말야..." 이곳에서 오두막집으로 걸어가는 날이 오늘로 몇 일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동안 매번 이런 수고를 하며 길을 걸어야만 했다. "나를 걸어가게 만들었으면, 길이라도 좀 편하게 만들어둘 것이지..." 절래절래 흔들리는 내 고개는 다시 뭔가 솟아난 지면 때문에 땅바닥 아래로 시선을 고정시켜야 했다. "매번 이 길을 이용하면서 길을 다듬고 있지만, 어떻게 된게 소용이 없어요, 소용 이! 아, 그건 그렇고 오늘은 정말 심장이 내려 앉는줄 알았어... 히유~." 바닥의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투덜거리던 나는 좀 전에 있었던 이노와의 시간을 회 상하며 가슴을 한차례 쓸어 내렸다. 요즘 그녀는 내가 마나를 매우 친숙히 다루는데 호기심을 보이고 있어 나를 상대로 작은 마나구를 날리며 공격을 해대고 있었는데, 아마 그녀의 눈에는 마나가 봉인 된 상태에서도 마나의 흐름을 느껴 주변 사물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내가 신기 하게 보였나 보다. "나야, 마법을 배우기 전, 아니 마나라는 것을 알기 전에 이미 주변의 마나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었는걸." 즉 나는 내 몸에 마나를 갖고 있지 않아도 주변 마나의 흐름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었다. 뭔가의 존재가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사실을 이해 못하는 듯 계속해서 내 주변에 마나를 날리는 등의 실험을 하며 나를 괴롭히 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마나구를 알아차릴 수 있는지 그 규칙을 알려고 하는 것처 럼. 그러던 중 오늘 그녀는 꽤 강한 마나구를 눈을 가린 내게 기습적으로 날렸다. 내가 잘 피해서 열이 받기라도 하듯 눈이 가려진 나를 향해 평상시와 다른 강력한 마나 구를 날린 것이다. 내가 아무리 라이너와의 대련으로 몸놀림이 마법사치고는 빠르다곤 하지만 나를 향 해 날아오는 공격마법을 완벽히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이노의 공격에 도 사실 몸을 내줬어야 했다. "프로시아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히유~."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것과 그것을 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이노는 그런 것 에 신경쓰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일이야. 간신히 몸을 뒤로 빼긴 해지만, 내 몸을 스쳐 지나가는 이노의 마나구의 충격이라니! 다행히 프로시아가 그것을 튕겨내, 그리 큰 타격은 입지 않았지만..." 만약 프로시아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에 나는 다시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노는 내가 마나가 봉인된 상태에서도 마나를 느끼는 것과 프로시아를 쉽게 착용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요즘 열을 올리며 연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죽지 않을 정도 의 마나구를 던지며 실험을 하고 있었고... "상관없는 것 같은데... 굳이 나한테 그렇게 강력한 마나구를 날릴 필요까지는 없 잖아? 음... 분명 화풀이야, 화풀이!" 결론은 언제나 이렇게 났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 다. 오두막집에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이노였으니... "그러고 보면, 나보단 란이 더 고생인 건가?" 란도 나와 같이 모든 힘이 봉인되었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그녀는 요즘 때아닌 고생을 하고 있었다. 공주라는 신분으로 편히 자랐을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의 모 습은 그런 시절을 전혀 떠오르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완전히 공주에서 하녀로 전락한 모습이지... 어디서 구했는지, 이상한 원피스를 갖고 와서 입고 있으니..." 이노는 란을 마치 커다란 인형취급 하듯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 로 만들어 일을 시키고 있었다. 물론 란이 그런 이노의 말을 들을리 없었다. 란의 성격상 누군가의 말을 들을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노에게는 레드 사이어라는 무 기가 있었다. 대륙에서 손꼽히는 명검인 레드 사이어가... "그 명검을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하다니... 이노다운 생각이지~!" 란에게는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레드 사이어. 이노는 그런 란의 약점을 잡고는 협 박하며 란에게 자신의 인형이 되라고 강요했다. 란도 이노가 레드 사이어를 망가뜨 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는지 이노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요즘 때아닌 눈요기를 하고 있었지만... "치마 입은 란의 모습은 크로와 왕국에서 잠깐 본 것 빼고는 없었는데... 흠~." 순간 내 머릿속에는 허리까지 오는 긴 푸른 머리를 곱게 양 갈래로 빗어 금빛 리본 으로 묶은 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한 가닥으로 질끈 묶어 버리던 그녀의 모 습과는 판이하게 틀린 너무도 여성스러운 모습이 말이다. 머리부터 떠오르기 시작 한 란의 모습은 어느새 하늘거리는 흰 원피스 차림의 영상까지 만들어졌다. 흰색의 끝 테두리에 알 수 없는 금빛 문자가 박힌 그런 옷을 입은 란의 모습이... "이노가 참 특이한 취미를 갖고 있어... 그런 옷을 입혀놓고 집안 일을 시키다니 말야... 크큭." 예전 그녀가 공주였을 때보다 더 귀해보이는 옷을 입은 란이 바닥과 책장의 먼지를 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 나는 피식 웃음을 보이며 다시 눈앞의 나뭇가지를 단도 로 쳐냈다. 이노가 나와 란을 괴롭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각자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기에 나는 별다를 투덜거림을 그녀 앞에서 털어놓지 않았다. 란의 경우 차갑고 무뚝뚝하던 말투가 꽤 조심스럽게 변하고 있었으며, 나의 경우는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 "이 기회에 좀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보는 것도 괜찮겠군~!" 그동안 끊이지 않는 마나 때문에 내 실력에 대한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나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바닥의 상태가 되자, 그동안 안보였던 부분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 다.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한편 오두막집에서는 리넨이 보지 못한 란의 새로운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란! 오늘 저녁은 태우질 않도록! 어제는 고기가 무슨 숯인줄 알았다고!" 날카로운 이노의 목소리에 인형 같은 모습의 란이 움찔했다. 눈앞에 칼이 들어와도 놀라거나 할 그녀가 아니었지만, 지금 란은 이노의 한마디에 몸을 긴장시켰던 것 이다. 언제나 하루의 모든 식사를 란이 맡고 있는 지금, 이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한번도 먹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요리라는 것을 해본적 없는 란으로서는 당연한 결과였지 만, 그런 사실을 생각할 이노가 아니었다. 만약 오늘도 묽은 스투라던가, 짠 고기 찜 같은 망친 요리를 란이 만들어온다면, 그녀는 아마 이노에게 지금보다 더 심하 게 당할지도 몰랐다. "대답이 없는데?" "...네..." 다소곳하게 들려오는 란의 목소리. 불만어린 그녀의 표정과는 다르게 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경어였다. 청소를 좀 전에 마친 란은 바쁘게 부엌으로 향하면서 뒤 에서 들려오는 이노의 목소리에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빨리 해~." 이노는 부엌으로 향하는 란에게 소리친 후, 즐거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자 신에 의해 바뀌어가는 란의 모습을 보는게 즐거운지 얼굴 한가득 미소가 가득했다. "처음 란은 내 명령어에 심한 반항을 했었는데... 크큭, 많이 발전했군~!" 이노는 지금 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자신에 의해 꽤 많이 변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란은 이노의 명령에 눈하나 깜박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란에게는 이노의 말을 거슬를 만한 힘이 없었다. 레드 사이어도 이미 이노에게 빼앗겨 버렸고, 그 녀의 힘 또한 봉인당했으니, 란으로서는 그저 힘없이 이노가 하라는데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란은 이노에게 길들여져갔고...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노의 표정이 지금과 같았을까?" 쉐이트론은 너무 즐거워하는 이노의 표정을 살피며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빛냈다. "네가 처음 왔을 때?" "그래. 내 기억으로는 그때 꽤 반항을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옛 기억을 떠올리듯 쉐이트론은 잠시 초점을 흐려졌다. "반항? 하긴 했었지... 저런 식이 아닌 다른 식으로." "다른 식?" "자기 학대를 하며 내게 반항했었잖아, 기억 안나? 내가 너를 살려냈다고 얼마나 화를 냈었는지~." 이노의 말에 쉐이트론은 어두운 기억이 생각났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피식 웃어보였 다. "그랬었나?"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쉐이트론의 모습에 이노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하지만 금방 나한테 길들여졌잖아~, 쿠쿡. 아~! 그리고 물론 그때도 지금 처럼 즐거웠지~." 밝은 이노의 모습에 쉐이트론은 다시 한번 자신이 왜 그녀에게 길들여졌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항상 활기찬 그녀의 모습에서 삶이 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이노와 함께라면 산다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서 이노에게 길들여지기로 한거지~." "응?" 너무도 작게 들려오는 쉐이트론의 목소리에 이노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지만 쉐이트론은 좀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오는 이노에게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보 여줄 뿐이었다. "뭐야~, 좀 전에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냐... 그냥, 란도 나중에는 이노에게 길들여진걸 고마워 할꺼라고..." "당연하지~! 내가 친히 가르쳐주는건데!" 장난끼 가득한 이노의 표정을 보며 쉐이트론은 오늘 저녁이 어떻게 나오든 즐거운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Ip address : 211.229.109.115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오두막집으로 향하던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평평해 보이는 바위 위에 몸을 얹었다 "히유~. 일찍 도착하면 좋을게 없으니 오늘도 여기서 시간 좀 보내다 가야지~." 시원한 바람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을 쓸어가며 내 몸을 가볍게 해줬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숲 속의 그윽한 내음을 맡으며 명상시간을 갖는건 꽤 즐겁단 말야?" 실험장에서 오두막집까지 걸어다녀본 적 없는 이노였기에 나는 그 사실을 이용해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실험장으로 간 첫날, 나는 텔레포트로 혼자 사라진 이노를 원망하며 거친 길과 어 둠을 헤치며 오두막집으로 가야만 했다. 그때 나는 오두막집까지의 길도 몰랐고 고 르지 못한 땅바닥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목적 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날 그렇게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다음에 오두막 집까지 올 때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단도로 내 앞길을 막는 나뭇가지들과 발을 거는 나무뿌리들을 헤치고 가야했지만. 그래도 첫날 걸렸던 시 간보다는 덜 걸렸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덜 걸렸고... 하지만 그 날 이후 난 그때 와 비슷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발길을 오두막집으로 돌렸다. '계속 늦게 돌아갔으니 지금 이노는 내가 오두막집까지 가는데 언제나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만 알고 있지~. 처음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매번 이런 자유시간을 갖게됐으니, 내게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니야~! 힘들게 내려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는건 어쩔 수 없지만..'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를 얻으려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아무것도 없이 뭔가를 바란다면, 나중에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으니 말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이마의 땀을 바람에 완전히 맡겨버렸다. 내 몸의 열이 식을 때까지. 처음부터 그래왔기에 오늘처럼 실험장에서 실험을 하는 날이면, 이렇게 경관 좋은 명당자리에서 나만의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미 그들에게 나는 실험장에 한 번 가면 늦게 오는 걸로 인식이 박혀버렸으므로. 잠시 시간이 흐르자, 땀이 흐르던 내 몸은 서서히 추위를 느끼며 떨려오기 시작했 다. 우거진 숲 속이라 햇빛이 덜 들어와 원래 서늘했는데, 거기에 바람까지 부니 뜨거웠던 몸이 금방 식은 것이다. 어느 정도 땀이 마르자, 나는 이제 웬만큼 휴식을 취한 몸을 느끼며 조용히 다리를 모아 앉고는 두 눈을 감았다. 이런 곳에서 자연과 함께 동화되면 그만큼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엉켰던 것들이 하나 둘씩 풀렸기 때문이다. '오늘 있었던 것을 정리해볼까?' 언제나 이노와의 실험이 끝나면, 이노는 이노의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내 몸 상태에 대해 하나씩 정리를 해갔기 때문에 나는 눈을 감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없는 상태에서 주변의 마나를 느끼게 되니, 예전보다 더 몸이 예민해져가 고 있어. 처음 내가 이 세계에 태어났을 때, 그때의 답답함처럼 마나가 느껴지고 있으니까.' 이노의 섬뜩한 공격 덕분에 내 몸은 서서히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숨 쉬기 곤란할 정도까지 예민해져 있던 몸 상태를 되찾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내 몸의 마나를 주변에 흩뿌려 그것의 흐름을 느끼며 좀더 명확한 주변 상황을 파악했을텐데, 이제는 내 몸 자체가 마나에 동화되어 주변 마나의 흐 름을 읽고 있으니... 흠~. 확실히 예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 게 됐어. 뭐, 생각해보니 당연한 결과군. 이노가 그렇게 나를 괴롭히니...' 이노가 바로 코앞에서 마나를 난사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마나의 흐름 읽기가 좀더 빨라져야만 했다. '흠~. 그건 그렇고, 멀리 있는 마나까지도 느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이노와의 실험에 바빠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몸 을 주변의 마나에 맡겨봤다. 예전 같았으면 몸 안 마나의 양에 비례해 먼 거리까지 그 마나를 보내 그곳의 상황을 파악했겠지만, 지금 나는 몸 안의 마나를 하나도 쓸 수 없었기에,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곳이야, 조금만 정신을 집중하면 그 흐름정도는 알 수 있지. 하지만 먼 곳 의 상황까지 알려면... 주변 마나와 더 친숙해져야 해.' 서서히 눈을 감고 몸을 주변에 내맡긴 나는 점점 크게 느껴지는 대기의 알갱이에 내가 자연과 하나됨을 서서히 느낄 수 있었다. '마나와 내가 하나가 되야, 주변의 흐름을 느낄 수 있지!' 아직까지는 가까운 거리만에 빠르게 그 흐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즉 먼 거리까 지 알고 싶다면, 이렇게 정신을 집중하며, 조용히 몸을 내맡겨야 했던 것이다. 아 직 그렇게 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잠시 눈을 감고 그렇게 있자, 아무 영상도 떠오르지 않던 머릿속에 서서히 작은 알 갱이들이 뭉쳐 흑백의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음파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 주변의 사물에 부딪힌 후 다시 내게 돌아오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자 점점 멀리까지 영상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호오~. 꽤 먼 거리까지 보이잖아?' 눈을 감고 있는 상태였지만, 난 우거진 숲과 그 숲을 지나는 바람, 그리고 멀리에 있는 이노의 오두막집까지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거 꽤 신기하군~.' 예전의 나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던 일이었을텐데,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 몸이 마나에 매우 민감한 줄은 알았지만, 그 민감함을 이용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될 줄이야~. 흠~. 좋아, 좋아! 이대로 가면, 마나 없이도 꽤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겠군~!' 점차 시간이 지나자, 오두막집 뒤로 펼쳐진 숲까지 볼 수 있었지만, 그 거리가 멀 어지는 것에 비례해 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 수가 늘어가고 있었다. '이런, 이런, 이거 쉬운 일은 아니네?' 신기한 마음에 더 멀리까지 마나를 느껴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는지, 휴식을 취했던 내 몸은 새로운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되겠지!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고~! 오늘만 날이 아니니깐~ !'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 나에 대한 이노의 실험이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감았던 눈을 뜨며, 굳어 있던 몸을 조금 풀어줬다. "이렇게 마나가 익숙하니, 특별한 마법을 쓰는 것 이외에는 그리 달라진 것도 없군 ! 아! 그러고 보니, 마법을 쓸 수 없었던게 아니잖아?!"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나는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내 몸 안의 마나가 없다면, 주변의 마나를 이용해서 사용하면 되잖아! 지금까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너무 벅찬 하루 일과에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나는 새로운 사실에 대한 발 견에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주변의 마나를 이용하는 거야, 이렇게 주변의 마나를 이용해 주변 상황을 알아가 니, 그 정도는 일도 아니겠지! 그리고 난 이미 예전에 주변의 마나를 사용해봤으니 까 그리 어렵지 않겠지! 뭐, 그동안 마나에 대한 친숙도도 더 늘려놨으니 어색하지 않을테고!" 내 몸에 마나를 모으기 전에 이미 난 정령과 계약을 맺은 적이 있었다. 즉 주변의 마나를 이용해 정령과 계약을 했던 것이다. 비록 그 정령이 초급정령이라 별로 많 은 마나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딘가! "마나를 사용할 수 있으니... 지금까지 내가 했던 자질구리한 일들은 하지 않아도 되잖아!" 자질구리한 일들... 이노가 살험하면서 버리는 실험기구들과 어질러진 방을 치우는 일, 장작을 패오는 일 그리고 마당 청소 등등... 일명 이노의 하인으로 전락해버린 나는 강자 앞의 약 자로 전락해 그녀가 시키는 일들을 해오고 있었다. 먹고 재워준다는 명목아래 그런 일들을 시키는 이노. 그런 그녀의 명령이 싫었지만, 어쩌겠는가! 마나가 봉인되어 힘을 빼앗긴 내가!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됐다. "초급 정령을 부리는데 필요한 마나 정도는 내가 끌어들여 사용할 수 있지!" 갑자기 눈이 반짝인 나는 대기에 내 몸을 맡긴 상태에서 정령 실프를 불러봤다. 정 겨운 내 목소리에 반가운 실프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역시 되네! 오랜만이야, 실프!" "안녕하셨습니까, 주인님?" 순간 모습이 희미한 실프의 표정이 방긋 웃는 것처럼 보인 나는 그 상태에서 다른 정령들도 하나 둘씩 불러봤다. '흠~. 확실히 예전에 비해 주변의 마나 사용량이 늘었군!' 눈앞에 보이는 정령들이 모두 넷. 초급 정령들은 한꺼번에 모두 부릴 정도의 마나 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중급 정령은 어디까지지?' 이왕 시작된 것, 난 주변의 마나를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일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정령들을 불러 내가 쓸 수 있는 주변의 마나에 대해 알아갔다. '이 정도의 마나라면, 중급 정도의 마법까지는 무난히 쓸 수 있겠네... 하지만 주 변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것이므로 자주 쓸 수는 없겠어. 마나가 대기에 다시 모이 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할테니... 흠~. 천천히 쓰더라도 중급 정도라면... 꽤 괜 찮은 편이지. 마법을 전혀 쓸 수 없었던 때보다는 나은 편이니까~!'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빨리 오두막집으로 가야한다는 생 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이노의 잔소리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령은 이 정도면 됐어. 중급 정도는 둘 정도까지는 부릴 수 있군, 상급은 힘들고 ... 하급 정령 같은 경우는 상관없지만 중급 정령 같은 경우는 둘 이상을 계속 부 리기가 힘들어... 마나를 내가 끌어 모을 수 없으니 말야...' 내 몸 안의 마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주변 마나를 모으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대기 에 퍼져있는 마나는 대부분 특별한 곳이 아니면, 일정한 양이 고루 퍼져 있기 때문 에 주변으로부터 마나를 빠른 시간 안에 얻으려면 인위적인 힘으로 그것들을 끌어 모으는게 효과적인 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마법을 쓸 수 없는 몸. 즉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주변에 마나가 다시 모이기까지 기다려야만 마법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양의 마나를 쓰는 경우라면 내가 대기에서 마나를 끌어, 사용하는 속도와 다 시 대기에 채워지는 속도가 비슷해서 별 상관이 없지만... 마나를 좀 많이 사용하 게 되면, 다시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조금 귀찮아졌어~! 하지만 이 정도도 어디야~! 마나를 끌어 모을 수 있는 방법은 나중에 한번 찾아보면 되는 거지~! 지금은 그보다 어떤 마법까지 사용가능한지 알아보기로 하고~!' 내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나는 마법 쪽으로 방향을 돌리기 위해 눈 앞에 보이던 정령들을 모두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램프~!" 주변에 다시 마나가 모여드는게 느껴지자, 나는 가장 간단한 마법인 램프마법을 실 현시켰다. 램프 마법, 이것은 마법 중에서도 기초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마법으 로 예전의 나였다면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실현이 가능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단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시동어를 외쳤다. 램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를 내 몸 안으로 끌어들인 후 외친 시동어 ! 내 목소리가 주변으로 퍼지는 시간과 같이, 내 양 손바닥 안에는 흰색의 밝은 빛 의 구가 생겨났다. 그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어두워지는 주변을 밝혀줄 정도 는 됐다. "호오~, 마법도 가능하군! 좀더 강한 것도 사용해볼까?" 자신감이 생긴 나는 아까와 같이 비슷한 마법을 사용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법 역시, 초급 이상의 마법은 사용하기 힘들었다. "마나가 모이는 속도를 좀더 빨리 할 수 없나? 내 몸에 마나만 있었어도 강한 마법 정도는... 어라? 내 몸에 마나만? 이런 멍청한!" 난 지금까지 내가 이노에게 멍청하게 당했다는 생각을 없앨 수 없어, 오른 손으로 내 머리를 세게 한 대 칠 수밖에 없었다. "이노가 내 마나를 봉인했다고, 마법사용을 못한다고 생각하다니! 마나야 다시 모 으면 되잖아! 왜 드래곤 하트가 주는 마나만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손으로 때린 머리가 조금 아려왔지만, 새로운 사실을 자각한 나는 그 아픔 금새 잊 으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주변의 마나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다시 주변에 마나가 모이는 시간이 필 요하니까! 빠르게 모을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아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한대의 범 위까지 마나를 이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지! 즉 마나가 모이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 내 몸 안에 다시 마나를 끌어들여 축적시키 면 되는 거잖아! 드래곤 하트를 얻기 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Ip address : 211.203.207.191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5; Windows 98; Win 9x 4.90) 열심히 몸의 구석구석에 마나를 보내보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높은 고음에 몸 안 에 모아두려던 마나를 그만 흩트리고 말았다. "리·넨! 헉헉... 지금 뭐하는 거얏! 헉헉..." 숨을 심하게 헐떡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란. 그녀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바위 위에 앉아 있던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어라? 란 아냐? 여기서 뭐하는 거야?" 나는 그때까지, 란이 왜 내 앞에 와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얏! 내가 너 찾으 려고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알아? 실험장인지 뭔지, 그곳까지 왔다갔다만 두 번이나 했다고! 헉헉..." 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란을 보 며, 나는 그녀가 나를 찾기 위해 꽤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그러고 보니, 주변이 매우 어둡군!' 이곳은 낮에도 빛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늘에 있으면 꽤 어두운 편이 었다. 그런 곳에서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던 빛 마저 사라졌으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났나 보군!' 고개를 옆으로 흔들던 나는 란의 화난 얼굴을 보며 그녀가 냉정한 표정을 되찾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란이 이렇게 흥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내가 뭐라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음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나처럼 이노에게 많이 당해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 서 예전 같았으면, 칼을 먼저 뽑을 상황인데도 그녀는 단지 흥분하며 화를 내는 것 으로 끝을 내고 있었다. '뭐, 그래도 조금 지나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긴 하지... 말이야 그때 하 면 되는거고~, 그 전에는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니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아니나 다를까! 란의 화난 얼굴은 무표정하게 변해갔다. "험험..." 그녀는 자신이 조금 전에 흥분한 것에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연신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자기 자신도 이렇게까지 변한게 어색한가 보지? 확실히 이노와 생활을 오래하다보 니, 많이 망가졌어. 뭐, 나쁘게 망가졌다곤 할 수 없지만~. 예전의 차가운 모습보 다는 이 모습이 더 나아 보이긴 하지~.' "험험! 리넨! 네가 뭘 하든 상관은 안 하겠지만, 나까지 끌어들이진 말아!" 화를 내는 란 앞에서 피식 웃었기 때문인지, 란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좀 전보다 더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내가 너를 끌어들인건 아닐텐데? 분명 이번에도 저녁식사를 망쳤나 보지. 그래서 이노가 그 벌로 나를 찾아오라고 한 거고~! 아냐?"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나. 지금까지 그래왔던 일이 꽤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 으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의외로 내 예측이 맞았는지, 란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내 게 강한 부정을 해왔다. "그..그럴리 없잖아! 내가 아무리 요리를 해본 적 없다곤 하지만,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다고!" "흠~. 그래?" "그..그래!" "그럼, 그런건가 보지~. 근데 이노가 보냈다고?" "...응..." 란은 내 질문에 대답해놓고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자신의 대답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았다. '후훗, 귀엽군... 예전의 란이었다면, 저런 표정은 꿈도 못꿨을텐데... 게다가 옷 차림도 여성스럽게 변했고...' 이노가 란을 갖고 놀고 있는건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노 덕에 란이 꽤 인 간다워졌다는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예전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행동들이 란에게 서 간혹 흘러나오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 이러고 있을게 아니군! 여기서 더 지체하면 이노가 망가뜨린 설거지를 내가 다 해야 할지도 모르잖아?' 언제나 란의 차지인 망가진 그릇들! 하지만 가끔 그 그릇들은 내 차지가 되어버리 곤 했다. 완전히 나와 란은 이노의 오두막집의 하인들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쉐이트론은 별로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데... 아니, 오히려 우리들에게 관심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데, 이노는 마치 우릴 장난감 다루듯 한단 말야?' 이노가 확실히 강하긴 하지만, 그에 걸맞는 정신연령은 매우 낮은 듯 했다. 내가 보기에도 단순해보였으니...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진가? 지금까지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서 잘 흥분하 긴 했으니까~. 흠~.' 이런 저런 생각에 자칫 또 다른 곳으로 정신을 팔 뻔한 나는 란의 손 힘에 의해 다 시 현실로 정신을 돌릴 수 있었다. "으..응?" "가자고! 뭘 또 그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아, 미안, 가지!" 나는 빠른 몸놀림을 이용해 눈앞의 가지들을 깨끗이 제거하며 길을 안내하는 란을 쫓아갔다. 그녀는 어두운 숲 속의 길도 대낮처럼 환하게 보이는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속도는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녀의 몸에 베어있는 기초 검술 기술은 변하지 않은 듯 했다. '하긴, 힘만 봉인한 거니까~!'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재빠르게 이동하면서 바닥의 돌이나 나무 뿌리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란.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들려진 단도는 시야를 가리는 모든 나뭇가지들 을 빠르고 깨끗하게 잘라내고 있었다. 투툭, 촤락~! 나뭇잎들이 란의 손놀림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것들을 밟으며 나는 란의 걸음에 보조를 맞췄다. '호오~. 역시 이런 곳을 가는 건 나보다 란이 더 낫군~! 하지만 이렇게 길 안내를 해도, 발 밑의 장애물에 대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단 말야!' 나는 그녀의 매끄러운 움직임에 의해 하늘거리는 레이스를 바라보며 길 안내를 받 았다. 그리고 엎어지지 않으려고 온 정신을 다리에 쏟으며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오두막집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연기에는 오랜만에 맡아 보는 매우 구수한 냄새가 뭍어 있었다. "흠~, 오늘도 망쳤구나?" 오두막집까지 다다른 나는 란을 힐끔 쳐다보며,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구수한 냄새는 쉐이트론 밖에 낼 수 없다는 것을 얼마 안되는 이곳 생활에서 이미 경험한 적 있었기 때문이다. "흥! 실수였다고! 잘 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불길이 솟구쳐서 태운 것 뿐야!" 씩씩거리며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란. 그녀가 태웠다고 하는 수준은 거의 폭발 수준임을 알았기에 나는 그저 천천히 고개 만 끄덕여줄 뿐이었다. '많이 발전했어, 정말! 예전엔 자신이 요리를 못하던 말던 별 상관 안했는데... 이 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정도로 밖에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잘 하고 싶어하니... 이노가 정신개조까지 한건가?' 단순한 이노와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새 같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인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몸이 굳는걸 느껴야만 했다. "이제 왔냐?" 갑자기 오두막집의 닫혀진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안쪽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 ! 그 목소리는 내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이노의 장난기가 그 싸늘한 목소리에 담겨져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안에 들어선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뭔가를 먹는 이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 안쪽으로 들어선 나와 란을 쳐다보지 않은 채 손에 들린 음식이 없어질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이건 마치 긴장하고 기다리라고 하는 것 같잖아?' 불만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나와 란은 이노에게 뭐라고 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흠~, 내가 지금 되찾은 힘 정도로 이노에게 덤빌만큼 어리석진 않지! 지금은 이 힘을 숨겨, 편안한 생활을 하는게 목표니깐 말야! 하지만 그녀가 내 몸 상태를 계 속 체크하기 때문에 몸 안에 마나가 있으면 의심을 살텐데... 흠~.'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떠오르자 나는 이노의 식사가 끝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갑자기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 일을 어떻게 하지?' 몸 안에 존재하는 약간의 마나. 프로시아 덕분에 몸 구석구석에 마나를 퍼트린 나 는 그 양이 예전과 비교한다면 터무니 없이 작은 양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 도 어렵게 모은 마나였기 때문인지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내 몸 안에 모여져 있는 마나를 모두 흘려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아깝잖아. 힘들게 모은건데... 그걸 모으기 위해서 이렇게 늦었는데~. 흠~, 뭔가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리며 해결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깝지 만 버려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어렵게 모은 마나를 버린다라... 하지만 이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이노가 나중에 알아서 이 마나 마저도 봉인하거나 날려버리겠지! 그럼 상황은 지금과 같게 될테고 , 이노도 자연 내가 마나를 모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겠지! 지 금 그녀는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는 일만 시키고 있는데, 만약 사실을 알고도 마나를 봉인시키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을 시킬 꺼야...' 장작 패기도 힘이 든 현실이라, 낮은 수준의 마법으로도 기뻐하던 나였다. 그런데 그런 기쁨이 사라지려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머리를 흔드는 두통이 생길 수밖에!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노가 모르면, 나는 당연히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 을 꺼야! 어차피 마나야 흘러가는 것! 내 몸에 모은다고 그것만이 내 것일 리는 없 겠지! 대지에 흘러다니는 마나가 모두 나의 것이 될 수 있을테니!' 몸 안의 마나를 버리기로 생각을 굳힌 나는 서서히 몸의 마나를 이노가 모르게 방 출시켰다. '내가 마나를 몸 안에 가두려 했던 것은 몸 안 구석구석까지 마나를 보내 새로운 활로를 찾아보기 위함이었지! 내가 몸안의 마나를 내보내면 분명 다시 그 일을 했 을 때, 처음과 같은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니까 그리 어렵지는 않을꺼야. 좀더 시간이 걸릴 뿐이니까!' 사실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이런 생각보다 보장된 편안한 미래 가 더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무릎을 꿇은 나는 이노가 저녁 식사를 다 하기 전에 몸 안의 모든 마나를 내보낼 수 있었다. 프로시아 덕분에 그리 쉬운 일 은 아니었지만, 이노가 몰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렵다는 사실은 미처 할 수 없 었다. "란! 리넨을 찾아오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린거야?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쉐이트 론이 저녁 식사를 했잖아!" 배가 불러서인지 몰라도 이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싸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 소리에 담겨진 뜻은 이전과 달라진게 없었다. "늦어진 벌로 설거지뿐만 아니라 실험실 청소까지 네가 해야 했겠지만, 리넨이 이 상한 곳에 숨어 있어서 네가 늦어진 것이 분명할테니 넌 가서 쉬어. 어차피 리넨 찾느냐고 힘들었을테니까!" 이노의 말 한 마디에 나와 란의 표정은 순식간에 뒤바뀌고 말았다. '에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내가 그 식기 갖지도 않은 것들을 떠맡아야 하는거 잖아?' 란의 손을 한번 거친 식기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던 나는 역시나 하는 표 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이노가 시킨 일들에 대한 걱정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내게는 정령들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까! 하 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을 티낼 수 없었기에 나는 이노 앞에서 죽을상을 지어보여 야만 했다. 이런것들을 즐기는 이노였으므로. "근데 리넨, 왜 이렇게 늦은거지? 매번 가는 갈을 잃었을리는 없을테고?"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는 이노.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다는 생각은 했 으니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떨려오는 손을 뒤로 감췄다. 얼마 있지 않은 자유시간 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두막집으로 오던 길에 몸이 좀 피곤한 것 같아서 바위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한 것 뿐이야,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이고... 그것 뿐이야!" "낮잠? 흠~, 그런 것을 잘 정도로 시간이 넉넉한 편이란 말인가?" "아..아냐! 그런게 아니라고! 잠시 쉬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말했잖아! 잠시!" "흠~, 그래?"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힐끔 쳐다본 이노는 떨려서 뒤로 감춘 내 손을 순식간에 잡 아챘다. 마치 내가 늦은 이유와 내 몸의 변화가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런데 왜 네 주변에 정령의 기운이 남아 있지?" 이상하다는 듯이 내 손목을 잡은 이노는 내 몸 상태를 체크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 다. "저..정령?" "흠~, 마치 좀 전까지만 해도 정령이 네 옆에 있었던 것 같잖아?" "그..그럴리 없잖아! 마나는 네가 이미 모두 봉인했는걸! 단지 그 전에 내가 4대 정령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주변에 정령의 냄새가 배서 그런걸 꺼야! " 흥분했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조금 크게 나왔지만, 이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흠~, 그런가?" "그래! 그런거야!" 강력한 내 말에 아직도 이노의 눈빛은 의심가득한 듯 했지만, 그녀는 나를 순순히 부엌쪽으로 보내줬다. "뭐, 그런가 보지! 오늘은 네가 늦어서 실험을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군! 하지만 그 대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빨리 일어나야 할꺼야! 궁금한게 있으니까!" 그렇게 이노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히유~, 다행이다. 그녀가 손목을 잡는 순간 몸이 굳는 줄 알았잖아! 미리 몸 안의 마나를 모두 내보내길 잘했지! 그녀에게 들켰으면 어쩔뻔 했어?' 나는 예민한 이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가 쉐이트론과 같이 그들의 보금자리 로 사라질때까지 부엌에서 직접 그릇을 닦았다. '빨리 들어가라~! 그래야, 내가 정령을 부르지!' 정령들로 이것들을 모두 처리할 생각을 한 나는 느긋하게 산더미처럼 쌓인 망가진 그릇들을 쳐다보았다. '지하 실험실도 이곳과 마찬가지겠지만, 별로 걱정은 안되는군! 초급 정령들이라도 쓰는 방법에 따라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말야!' Ip address : 218.149.211.76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마나의 흐름에 민감한 이노였기 때문에 나는 정령 사용이나, 마나 사용에 최대한 신경을 써야했다. 자칫 잘못해서 그녀에게 걸리는 날에는 꽤 힘든 미래가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지하 실험실만 하면 끝나는 건가?' 밖은 희미한 달과 별빛이 없으면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어두워진 것으 로 봐서, 설거지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이노의 오두막집은 겉에서 보기보다 꽤 넓은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이층에는 이노 와 쉐이트론의 방이, 그리고 지하에는 나와 란의 방이 있었다. '실험실이 이노와 제일 먼 지하에 있다는게 이렇게 다행스럽게 생각된 적은 오늘이 처음이군. 항상 청소할 때면 이층으로 올라가는게 귀찮게만 여겨졌는데, 후훗~.' 이미 난 설거지를 할 때, 물과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별 어려움 없이 일을 처리했 기 때문에 실험실 청소 또한 그리 어렵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령들에게 몇 가지 내가 지정을 해줘야 할 것들이 있겠지만, 그런 것은 감독자의 위치에서 말 만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나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내 걸음의 보조에 맞춰 불이 켜지는 지하복도.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는 마법구를 따라 실험실로 향한 나는 역시나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어질러져있는 실험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나...! 언제나 느끼지만 매번 이렇게까지 어지를 수 있는 이노가 존경스러워. .. 그걸 얼마 전까지 아무 불평 없이 치운 쉐이트론은 더 존경스럽고..." 어깨를 으쓱한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바람, 물, 땅, 불의 4대 정령을 모두 소환했 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4대 정령들! 그들은 내 체계적인 명령을 내려 주변을 하나 둘씩 치우기 시작했다. '흠~, 그럼, 난 이들이 이것들을 다 치울 때까지 뭘 하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본 나는 이노가 어지르지 않는 유일한 책장 쪽으로 발걸 음을 옮겼다. 언제나 이곳만은 깨끗한채로 남겨진 책장. 그곳에는 같은 크기와 모 양의 책자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건 손대지 말라고 했었지?" 내 접근을 막는 유일한 책장. 나는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커져오는 호기심에 서 서히 손을 책장의 손잡이 쪽으로 가져갔다. "아! 이곳에는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마법이 걸려있었지?" 나와 란이 이곳에 온 이후 이노가 걸어놓은 마법! 예전에 그런 장치가 있는지도 모 르고 손을 가져갔다가 꽤 강력한 화력에 손에 화상을 입었던 기억이 났던 나는 책 장 문손잡이까지 간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이곳에서 나와 란의 손길을 거부하기 위해 건 마법이라 그런지 그리 강한 마법은 아니었어... 그렇다는 것은 지금 내가 그 마법을 해제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 가능성이 없을 때도, 이노가 아끼는 이 책장 근처를 한참동안이나 어슬렁거렸던 나 였다. 그런데 지금은 약간의 가능성이 생겼으니!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나는 힐끔 신속하게 주변을 정리해나가는 정령들을 한번 살펴본 후 시선을 다시 책 장 쪽으로 돌렸다. '저들이 주변의 마나를 꽤 많이 빼앗아 가긴 하지만, 이곳은 숲 속보다 매우 많은 마나들이 흘러다니니까 별 상관은 없겠군!' 마나가 보통의 대기에 있는 양보다 많이 뭉쳐져 있는 곳이 드물기는 하지만 존재하 긴 했다. 예전 유투 왕국에 있을 때도, 별궁에 있을 때도 그런 장소를 접해 본적이 있는 나였기에 그렇게 마나가 밀집해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 만 그 마나 양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커야 3배 정도의 차이가 있는 정도? 하 지만 이곳 이노의 집안은 그 마나 양이 거의 6~7배 정도는 훨씬 뛰어넘는 양이 존 재했다.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일 텐데... 역시 이런 것들을 만드는 이노는 대단해. 특히 이렇게 내게 도움을 줄 때면 더더욱!' 나는 이층에 있을 이노에게 고마움을 표한 후, 주변에 가득 차 있는 마나를 서서히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 어려운 장금 장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칫 실수를 할지도 모르니 신중에 신 중을 기해야지!' 눈을 감자 서서히 주변의 마나가 나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익숙하게 움직이는 내 의지에 의해 서서히 책장과 나를 하나로 묶기 시작했다. 장금 장치 같은 것을 해제할 때는 억지로 파괴하는 방법이 아닌 바에는 이렇게 장금장치에 쓰 인 마나를 나와 같이 동화시켜 내 의지대로 해제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면서 흔적도 없앨 수 있었는데, 내가 아는 한에서 이런 방법 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마나로 그 사람만의 방법으로 장치해둔 뭔가를 내가 해제하기 위해서는 파괴 이외의 방법을 쓰려면 그만큼 마나와 동화가 잘 되어야 하고, 마나를 잘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많지 않은 사람 중에 나도 한 사람을 차지하고 있지만! 거부감 없이 책장 주변에 걸려있는 마나를 서서히 내 쪽으로 끌어들여 장금 장치를 무효화시키던 나는 무리없는 작업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우선 내 자신이 갖고 있는 마나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마나를 내 것과 같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그런 친숙한 뒤에 책장 주변의 마나도 내 의지가 작용되는 범위의 마나와 동화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별 다른 무리는 없었지만 많은 시간의 소모에 따라 내 정신력도 많이 지쳐갔다. 하 지만 철컥 소리를 내며 열리는 책장의 문을 보자, 이마에 맺혔던 땀은 순식간에 식 어버리는 것 같았다. "호오~! 드디어 이 문을 열어보는군!" 천천히 손을 들어 책꽂이 안의 책들을 살펴보기 시작한 나는 이노가 최근 나를 실 험대상으로 연구하며 쓴 일지를 찾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모양의 책들이 정리되어 있어 찾기 힘들지도 몰랐지만, 난 이미 이노가 어느 곳에 그 일지를 적어놓았는지 알아뒀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흠~! 이것이군! 리넨에 관한 연구라... 책 제목이 이게 뭐야?" 이노의 유치한 일기를 본 적 있던 나였기에 책 제목은 그저 고개를 흔들면서 넘어 갔다. 지금은 이런 것보다는 책 내용이 더 나의 관심을 잡아 끌었으므로. "인간은 태어난 이후 꾸준히 마나에 노출되게 된다. 그러면서 그 마나에 대한 거부 감이 사라지면서 민감도가 떨어지게 된다라... 호오~! 이론을 적어 놓은 건가?" 흥미를 자극하는 이노의 일지에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기 시작했다. <<리넨은 인간이지만 보통 인간과는 다르게 마나에 대해 매우 민감히 반응한다. 인 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친화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통 인간은 대략적으로 6~7세가 되면, 대기 중의 마나를 완전히 느끼지 못하게 되 는데, 이것은 환경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는 인간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이다. 환경에 자신을 맞춰 좀더 편한 생활을 하기 위한 인간은 마나라는 것을 이용 하기 힘든 몸이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어렵게 느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서 인간들에게 마나를 다루는 일, 즉 마법같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마나에 대한 민감도를 잃지 않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리넨도 그런 방법으로 마나에 대한 민감도를 잃지 않고 발전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보통 인간 이 노력한 결과와는 다르게 리넨은 내가 보기에도 믿지 못할 정도로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 정도로 노련하게 주변 마나를 느끼고 조종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최소 9클래스 이상, 아니 어쩌면 10클래스에 도달해야만 가능할 것 이다. 하지만 지금 리넨은 겨우 8클래스. 8클래스로 그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리넨의 몸을 살펴본 이후 리넨을 보통 인간의 기준으로 살펴볼 수 없었다. 지금까 지의 이론으로 그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리넨의 몸에는 인간이 포용할 수 없는 드래곤 하트가 녹아 있었고, 그로 인해 끝없는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마나에 대한 친화력 덕분에 드래곤 하트를 완전 흡수 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나 자신에 관한 이노의 실험 노트를 보며 나는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나를 다시 바 라볼 수 있었다. 지금 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처음부터 찾아 볼 기회가 된 것이다. 이노는 나를 보통 인간이 아닌 특별한 경우로 취급하며, 내 몸에 대한 기록을 차근 차근히 기록해뒀다. 대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부 분들도 그 기록을 보면서 꽤 많이 알 수 있었다. 처음 집어 든 책은 이노가 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직 많은 부분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이노의 결론을 볼 수는 없었지 만 그 외에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른 공책들이 많았기에 나의 시선과 손은 다 른 책으로 옮겨졌다. 다른 책들은 이노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 책들이었는데, 알아 보기 힘든 글씨체라 눈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았기에 나는 그 책들을 하나, 둘씩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제일 윗칸에는 여러 종족에 대한 책들이, 중간에는 식물에 대한 책들이, 그 외에 독이나 해독제 등 잡다한 자료가 적혀져 있는 책들이 수두룩하게 꽃혀 있었다. 책 장이 큰 크기는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보기보다 많은 책이 놓여져 있었다. '이거 다 읽는데 꽤 오래 걸리겠는걸? 하지만 이노에게 들키지 않는한 내게 시간은 많으니 별 걱정은 없겠지~!' 고개를 돌려, 나의 명령을 기다리는 정령들을 모두 돌려보낸 나는 깨끗해진 실험실 을 만족스럽게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이노가 일어나기 전까지 책을 읽어야겠다! 잠자는 것보다는 이게 더 재밌 으니까!' 내가 꺼내보기 시작한 책들은 모두 나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손에 의해 책꽂이에서 뽑힌 책은 드래곤 하트에 대한 자료가 실린 책이었다. '드래곤 하트에 관해 이렇게 두껍게 써놓았다니! 드래곤들도 자신들의 심장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적으라면 이 정도까지 방대하게 적을 수 없을텐데... 이노... 확실히 대단한 여인이야!' 고개를 흔들거리며 잠시 이노에 대해 생각했던 나는 다시 호기심 충족을 위해 책장 을 넘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가져본 책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내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드래곤 하트라는 것은 드래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쓸데없이 몸만 큰 드래곤들에게서 쓸만한 것은 그들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 하트와 그들의 껍 질인 비늘뿐이다. 비늘은 이런 저런 장신구와 무기를 만들기에 더 없이 강한고 아름다운 빛을 내기 때문에 꽤 쓸모가 있고, 드래곤 하트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마나가 농축되어 있 어 꽤 괜찮은 실험재료로 쓸 수 있다. 비늘의 강도와 빛은 드래곤의 나이와 비례하는데, 최고의 빛깔을 자랑하는 드래곤 의 나이는 성룡이 된지 2000년 정도가 지났을 때가 가장... ... ...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의 몸에서 나오면 그 즉시 대기로 환원되려는 성질 때문 에 드래곤 몸 안에 있었을 때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즉 드래곤의 숨이 끊어 지면, 가장 먼저 드래곤 하트는 서서히 마나를 방출해 자연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무한한 마나가 채워진 자연, 그곳으로... 드래곤 하트가 무한한 마나를 갖고 있다곤 하지만, 사실 무한한 마나는 대기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 자연이야 말로 모든 것을 수용함과 동시에 모든 것이 가능 하게 만드는 곳이므로. 이런 것으로 보면 드래곤 하트가 갖고 있는 마나 정도는 자 연이 갖고 있는 마나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하트가 무한한 마나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 이상의 마 나를 쓸 수 있는 존재는 신이 만든 생명체 중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 다. 드래곤 하트 정도 되는 마나를 수용하며, 쓸 수 있는 존재도 드래곤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일반적인 드래곤 하트에 대한 내용이라 책을 넘기던 나는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뒷 부분에 나온 드래곤 하트를 쓰는 방법은 다시 꺼져가던 호기심의 불씨를 살려놓 았다. '호오~! 내가 원하는 부분이군!' <<최고의 드래곤 하트는 고룡의 드래곤 하트인데, 고룡일수록 그것들이 갖고 있는 드래곤 하트의 파워는 강해진다. 하지만 그와 비례해 빠르게 자연으로 환원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얻는 것도 사용하는 방법도 꽤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여기 다양한 사용방법을 적어놓는다. 드래곤 하트는 무병장수와 무한한 마나를 얻는 것으로 크게 알려졌지만, 그것 이외 에도 다른 여러 영약의 재료로 활용범위가 꽤 넓은 편이다. 드래곤 하트는 잘라지거나 상처가 나면, 그 효력이 뚝 떨어져 쓸모 없게 변할 가능 성이 높기에 사용함에 있어 주의를 기울이는게 좋다. 한번에 사용하는게 가장 좋지 만, 부득이하게 자르거나 할 경우에는 보조 마법으로 그 기능이 떨어지지 않게 하 려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질병 없이 오래 살기를 위해 드래곤 하트를 얻으려 한다면, 우선 몸 안의 마 나를 대부분 빼주는 편이 좋다. 몸 안에 마나가 적으면 적을수록 드래곤 하트에 갇 혀진 마나가 그의 몸에 녹아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몸이 드래곤 하트를 감당할 정도로 튼튼해야 한다. 드래곤 하트 라는 것이 원래 드래곤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드래곤의 몸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 문에 다른 종족이 이를 얻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몸과 같은 강인함이 요구되는 것이 다. 하지만 이 경우 해결 방안이 있긴 하다. 인간의 경우 드래곤의 몸과 같은 강인 함이 요구될 수 없기 때문에 드래곤 하트에 일부러 흠집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있 다. 이렇게 되면, 원래의 능력이 소실되긴 하겠지만, 소실된 드래곤 하트를 먹는 것도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이다. 드래곤 하트는 너무도 강인한 물건이기 때문에, 그 정도 기능 소실로도 인간의 경우라면,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는 꿈을 실현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 그런 흠집 없이 드래곤 하트 원래의 모습 그대로 섭취하기를 권장한다.>> '호오~! 이거 그냥 무턱대고 먹는다고 다 오래 사는 건 아니었구나? 흠~! 이런 준 비가 필요했다니! 키에라도는 그냥 상처내면 드래곤 하트가 망가진다는 식의 말밖 에 한 적이 없었는데, 이걸 보니 일부러 상처를 내 먹는 경우도 있었군! 하지만 그 렇게 되면, 너무 아깝잖아? 그보다 더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데 말야...' 다행히 내 경우 첫 번째 방법이 아니었기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 내용 을 읽어내려갔다. <<둘째, 무한한 마나를 얻기 위해 드래곤 하트를 얻으려면 위의 방법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우선 이 경우 얻는 방법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보조자가 필요하다. 혼자서는 거 의 불가능하므로 뛰어난 보조자를 얻어야 할 것이다. 드래곤 하트를 먹어 무한한 마나를 얻으려면 그것을 모두 흡수해야 가능한데, 솔직히 그 흡수가 인간은 불가능 하다. 인간의 신체 구조상 드래곤 하트의 무한한 마나를 모두 흡수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렇다고 드래곤 하트에 상처를 입혀 먹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 이 경우 드래곤 하트에 상처가 생긴다면 무한한 마나는 얻을 수 없으니까! 대부분 드래곤 하트를 얻어 무한한 마나를 얻으려고 한다면 인간보다는 엘프나, 마 족의 경우가 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굳이 인간이 드래곤 하트를 얻어 무한한 마 나를 얻으려 한다면, 나 같은 보조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약품을 써서 어떻게 하 려 해도, 드래곤 하트 자체가 약품같은 것에 변질되기 쉬우므로, 어렵기 때문이다. >> 여기까지 읽은 나는 의야스러움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간의 몸 으로도 드래곤 하트를 먹어 무한한 마나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함에 그 뒤편을 보니 새로 적은 듯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가 생겼다. 리넨의 경우, 드래곤 하트를 먹어 무한한 마나를 얻은 것이다. 이 경우는 드래곤 하트의 엄청난 에너지가 대부분 리넨의 심장의 병 을 고치기 위해 들어갔기 때문에 완벽한 드래곤 하트의 흡수를 할 수 있었기에 가 능했던 일이다. 몸에 그 정도의 병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완벽히 드래곤 하트를 흡수해 무한한 마나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는 가능성을 리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 지만 이 경우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일 뿐이다. 리넨이 갖고 있던 상처의 정도, 즉 드래곤 하트의 힘이 대부분 치료를 위해 소비될 정도로 깊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 간이라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로밖 에 볼 수 없다. 일반적인 이론으로 적용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흠~! 결국 나 같은 경우는 찾기 힘들다는 말이군. 아니 더 이상 찾을 수도 없는 것인가?' 책장을 넘기면서 나의 두 눈은 새로운 사실들에 대한 지식들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 야만 했다. 드래곤 하트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이렇게 체계적으로 자세히 적혀 있 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얻지 못했던 지식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같은 시각, 리넨이 지하 실험실에서 이노의 책장에 손을 대고 있을 때, 이층 이노 의 방에서는 은은한 불빛 아래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방의 문은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빛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있 었다. "이노, 오늘보니 리넨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왜 그냥 넘어갔지?" 나직한 쉐이트론의 목소리에 이노가 재밌다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녀석이 늦은 이유는 잠들어서가 아니었지! 그 녀석 주변에 진하게 풍기는 정령들의 냄새는 얼마 전에 정령들을 소환했다는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재밌지 않 아? 내가 마나를 봉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령을 불렀다는게 말야." "아까 보니 리넨의 몸에 아무 마나도 없었다며?" "물론 그랬지! 하지만 신기하게도 저녁에 돌아온 이후 녀석의 몸이 미세하긴 하지 만 변해 있었더라고!" "변해?" 궁금하다는 쉐이트론의 말에 이노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응! 녀석이 마나에 민감하다는 것은 내가 말했었지? 그런데 그 민감함을 이용해 주변의 마나를 이용한 것 같아. 그게 가능한 단계도 아니면서 말이지!" 언제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올때면 두 눈을 반짝이는 이노.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쉐이트론은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해보이며 이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녀석의 몸도 주변의 마나를 이용해 바꾼 것 같더군! 녀석의 몸 안에 마나가 돌아 다닐 수 있도록 길을 튼 것을 보면 말이야. 거의 티는 나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내 몸의 마나가 녀석의 몸 안에서 더 빨리 돌아다니더군. 그렇다는 것은 녀석이 자신 의 몸을 변화시켰다는 결론밖에는 나오지 않지!" "호오~! 스스로 그런 식으로 발전을 한다?!" 쉐이트론은 가식이 아닌 진정한 심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데 왜 아는 척을 안했지?" "재밌어서야! 오늘 보니, 심장이 아닌 다른 곳에 마나를 저장했던 것 같은데, 나 때문에 다 버린 것 같더군. 앞으로 그런 식으로 계속 할 모양이겠지? 내가 아는 척 을 해버리면, 녀석의 의욕이 떨어질거야. 그럼 내 새로운 실험도 할 수 없을테고! 계속 변해가는 녀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말야." "하지만 그러다가 이전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크큭, 그걸 내가 모를리 없잖아~! 그렇게 된다면, 녀석에게 좋은 일이 될테니 막 을 필요도 없고~! 뭐, 약간의 반항은 하겠지만~ 그건 반항에서 끝날 뿐이야~! 녀석 은 언제까지나 내 손바닥 위에서 놀 뿐이라고!" 키득거리는 이노를 바라보며 쉐이트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어보였 다. "지금도 지하실에 있는 녀석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며 내 책장을 손대고 있겠지~! 내가 그곳에 그 정도의 장치만 해뒀을 까봐?" "그런데 왜 막지 않지?" "뭐, 감추고 싶은 것들은 아냐. 난 리넨 녀석이 변해갈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경우 라서 녀석의 변화를 막지 않을거거든~!" "그럼, 처음부터 책장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지 그랬어?" 쉐이트론의 말에 이노가 발끈하며 손을 가로저었다. "내가? 흥! 그냥 보여주라고? 고생을 해서 얻은 지식이 더 값진 거야~! 그리고 그 냥 보여줄만큼 내가 착한것도 아니고~!" 쉐이트론은 이노의 그런 말에 속으로 미소지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자료를 그냥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도 아니라고 하는 이노를 보면서 말이다. Ip address : 211.229.35.50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정독을 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손에 들 고 있던 책을 책장 속에 급히 꽂았다. '이..이런 이거 이노 아냐?' 누군가의 접근이 확실한 발자국 소리! 조금 전까지 내가 한 행동은 주인의 허락 없 이 그의 물건을 훔쳐본 것이었기 때문에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거 도둑질 하다가 걸린 심정이 이럴까? 책 내용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고 있었더니 벌써 이노가 내려올 시간이라니!' 나는 이노의 눈에 거슬리는 글씨도 의식하지 않을 채 책을 읽어내려가던 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주변에 대한 경계심은 흩으러져서 이노로 생각되는 사람의 접근 에 당황하고 만 것이다. '이..이걸 어째!' 최대한 소리를 줄여 주변의 책을 책꽂이에 집어넣던 나는 발자국 소리가 빨라질수 록 몸이 굳어오는걸 느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지?' 다급한 상황에서 나는 우선 내 행동에 대한 증거들을 감추기 위해 주변에 널려있는 책들을 쁘르게 책장 안에 꽂기 시작했다. 꽤 많은 책들이 널려 있었지만, 다급한 마음 때문인지 내 행동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누군가 실험실로 들어오기 전 에 책을 모두 책장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마루리 행동으로 책장을 닫고 그곳에 이노가 설치한 것과 같은 마법을 설치하기 위해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처음 책장 의 느낌을 떠올렸다. '시간이 없지만, 어설퍼서는 안되지!' 이노가 매우 눈치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와 같은 마나 분포를 만들어줘야 해!' 마나라는 것이 이제는 내 몸과 같이 내 의지에 따라 쉽게 움직여줬기 때문에 나는 처음 책장 주변에 설치되어 있던 마나의 구성을 떠올렸다. 머릿속에 그 구성이 떠 오르자마자 책장 주변에 다시 머릿속의 것과 같은 마나가 모여져 같은 구성을 이룰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철컥! 문의 이음세가 벌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내 행동에 대한 증거 인멸 작업 도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 없었기에 나는 실 험실을 좀 전에 다 정리한 것처럼 보이게끔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등뒤에서 들려 올 이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이노가 아닌 란이었다. "리넨, 잠안자고 여기서 뭐한거야?" 졸음이 가득한 란의 목소리가 실험실 안을 가득 채우자 나는 한순간에 나를 사로잡 았던 긴장이 사라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란..." 천천히 몸을 돌린 나는 아직 잠옷 차림으로 귀엽게 눈을 비비는 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뭐했어?" "그냥 청소했지 뭐~!" 조금 전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말을 내뱉은 나였지만, 내가 생각해도 변명치고 는 너무도 궁색한 것 같았다. 란도 그것을 아는지 예쁜 이마를 조금 찌푸렸다. "청소를 지금까지?" "으..응, 그냥 여기서 청소하다가 깜빡 졸았지 뭐야... 그래서..." 란은 내가 청소하다 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좀 전의 말갖고 뭐라고 하 지는 않았다. 단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내 뒤의 책장을 힐끔 쳐다볼 뿐. "그건 그렇고 벌써 아침인가?" "내가 일어난거 보면 모르겠냐? 불빛이 있어서 들어와 본건데 아직까지 청소 중이 었다니! 오래 하는군!" 화제 전환을 위해 말을 꺼낸 나였지만, 아침 준비를 하러 가기 위해 아침일찍 일어 난 란에게는 아침이라는 단어가 매우 귀에 거슬리는 단어였나 보다. 이노에 의해서 많이 바뀐 란의 말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그렇군. 그럼 이곳 정리도 끝났으니 난 그만 나가봐야겠네~!" 왠지 란에게 추궁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고는 그곳 을 나가려고 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실수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란이 일어난걸 보면, 이노와 쉐이트론이 일어나기까지 약간의 시간밖에 없 었으므로 이곳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게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으므로! 상황정리가 미숙하긴 하지만, 꽤 괜찮게 마무리 되자, 나는 조심스럽게 란을 지나쳐 실험실 문 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란의 움직임에 발을 멈칫해야만 했다. "리넨, 잠깐만!" '서..설마 알아차린건 아니겠지?' 긴장하고 있던 나는 란이 꺼낸 말에 내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졸았다고는 하지만 거의 밤샌거지?" "으..응?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의야해했던 나는 다음에 들려오는 란의 말에 지금까지의 모든 긴 장이 다 사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몸으로 오늘 버티겠냐? 들어가서 약간이라도 편하게 자!" 부드럽게 변한 란의 목소리에서 나는 란이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뒤돌아섰던 몸을 돌려 란의 얼굴을 살펴봤는데, 역시나 그녀의 표정은 조금 전까지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란이 내 걱정을? 이노가 란의 성격개조에 힘을 쓰고 있긴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정도로까지 변화시켰을 줄이야!' 란의 말에 가슴이 따뜻하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녀를 향해 편안한 미소를 보여줬다. 란의 말에 대한 일종의 보답 같은 것으로... 하지만 그녀는 내 미소에 당황한 듯 하더니,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외면했다. "너..너를 음... 걱정하거나 해서 이런 말 하는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이건 단지 네가 또 이노랑 실험하고 오다가 졸아서 늦게올지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그.. 그러면 내가 어제처럼 고생해야 하잖아!"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란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기 전 란의 얼 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는 것을 봤기에 커다란 란의 목소리에도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알았어~! 누가 뭐라나? 넌 식사 준비하러 가봐. 난 네 말대로 조금이라도 눈을 붙 여야 겠으니까~! 그리고 다시는 늦는일 없게 할게."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나는 그렇게 란을 두고 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훗, 확실히 란이 귀엽게 변해가고 있어! 이노의 괴롭히는 솜씨가 꽤 효과를 발 휘하고 있는 것이겠지! 레드 사이어 때문에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시 간이 지날수록 저런 행동들이 점점 몸에 익어가고 있잖아? 후훗.' 이노가 감춰버린 레드 사이어. 처음엔 그것 때문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렇게 움직 여야만 했던 란이지만, 지금은 이노의 약올리는 말에 대한 반발심으로 저렇게 행동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냉철한 판단의 란이였는데 말야.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완성된 식사를 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아. 단순한 이노의 말에 발끈 발끈 하는 것을 보면 많이 란 도 이노와 같이 단순해져 가는 거지...' 이곳이 복잡한 생각 자체가 필요없는 곳이라 그렇게 변해버린 것일 수도 있었지만, 난 그 변화에 반대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변해가는 란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으 니까. 그리고 단순한 행동에 따른 결과들로 표정이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하는 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확실히 귀여워...' 차가운 란의 모습만 봤더라면 그녀에 대한 느낌 중에 귀여움은 있을 수 없었을 것 이다. 차가운 란은 아름다움 이외의 단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했으니까. '귀여운 란이라... 후훗. 이상한 수식어였는데, 지금은 잘 어울린단 말야?! 아! 이 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군!' 방으로 들어온 나는 문을 닫고는 시간 계산으로 잠시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아침 식사 때까지, 아니 정확히는 이노가 나를 부를 때까지 내게는 얼마 없는 시간밖에 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동안 란이 말대로 몸의 피로를 풀어야 할텐데... 흠~! 하지만 잠을 자는 것으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아무리 넉넉잡아도 1시간 밖에 안남았는데~!' 시간 계산이 어느 정도 되자, 나는 몸을 급히 침대 위에 실었다. 잠을 자기 위해서 가 아닌, 편안한 자세로 앉기 위해서! '몸의 피로를 푸는게 잠만 있는게 아니지! 지금까지 그랬듯이 마법도 있는 거잖아!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잠 이외에는 써보지 않은 나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몸에 익은 피로 푸는 마법을 잊었을리 없는 나지!' 마법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내 입가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퍼졌다. 왠지 이노가 모르는 상태에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그녀를 이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었기 때문이다. '마나야 이곳에 충만하니 걱정 없겠지! 1시간 동안이면 내 몸 안 구석구석에 마나 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아! 잠깐만! 몸 안 구석구석에? 흠~! 그러고 보니, 몸의 피로를 풀 때 사용하던 방법이 몸 안 구석구석에 마나를 보냈던 거였지! 대자 연의 원동력을 이용해 몸안의 모든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일깨워 그 피로를 풀었으 니 말야! 흠~! 이거 흥미로운데?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심장이 아닌 다른 곳 에 마나를 모아두는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몸의 피로를 푸는 것과 흡사 하잖아? 단지 다른 것이라면, 몸 구석구석에 마나를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가둬 두는 거지만! 물론, 내 몸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나는 몸의 피로를 푸는 것에 매우 큰 의욕을 불태워야만 했 다. "이게 결과적으로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같은 거였잖아? 후훗. 그렇다면, 이 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커다란 의욕 덕분에 나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마나를 내 몸 안으로 끌어드릴 수 있 었다. 그리고 몸 안으로 들어온 마나를 이용해 난 단순한 몸의 피로 풀기가 아닌, 몸에 마나 정장하기의 연장선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마법은 주문이 필요치 않은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나 자 체를 주문의 가공이 아닌 의지에 가공으로 바꿔가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적으로 마 법을 사용할 때 간단한 시동어를 외치긴 하지만, 그것은 사실 습관에 따른 것일 뿐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게 더 이상의 시동어는 필요치 않았으니까! 물론 시동어를 외치면 시간의 절약이라는 장점이 결과로 나올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의지 실현에 익숙해지면 시동 어라는 것은 단순한 습관으로 남게 될테니까! 서서히 변해가는 나 자신을 느끼며, 나는 입가의 미소를 만들며 마나를 몸 안으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리넨이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이고 있을 때, 이노는 리 넨의 생각과는 다르게 벌써 일어나 란이 시끄럽게 움직이는 일층으로 내려와 있었 다. "오늘은 태우지 마라! 네가 먹을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음식을 낭비하면 안되잖아! 뭐, 어차피 네가 구해오는 것이기는 하다만~!" 약올리는 듯한 말투가 이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란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란은 더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고 묵묵히 불이 치솟는 곳에 신경을 집중했다. 마치 요 리하는 동안에는 다른 곳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호오~! 많이 발전했군! 하지만, 네가 그렇게 한다고 성공할지는 모르겠군~!" 다시 한번 란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입을 연 이노였지만, 그녀는 아무 변화 없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크큭, 정말 많이 발전했어~. 그렇지, 쉐이트론?" "그러네. 처음에는 이노의 이런 말에 발끈하며 막 대들었었는데~!" 부엌에서 나오는 이노와 쉐이트론은 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크큭, 이게 다 내 교육 효과라는거 아니겠어? 내가 가르치는데 이 정도의 효과는 당연하잖아~!"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이노를 바라보면서 쉐이트론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래~! 지하에서도 이노의 가르침에 힘입어 리넨이 열심히인 것 같으니까 말 야." "아! 그 녀석! 이곳이 내 집이라는 것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저렇게 무지막지 하게 마나를 끌어모으면 내가 눈을 가리고 있어도 다 알겠다!" 고개를 흔들면서 한숨을 내뱉은 이노는 일부러 모른 척 해주는 것도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던 쉐이트론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이거 모른척 하는것도 힘드네? 가서 조심하라는 언질을 좀 해줄까?" 이노가 고개를 들며 장난끼 어린 말을 쏟아내자, 쉐이트론은 그녀의 흘러내린 앞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줬다. "그러면 리넨이 당황할걸? 이럴 땐 끝까지 모른 척 해줘야지~!" "우웅... 그래야 하는 건가?" "그럼~! 이노는 녀석이 빨리 배우길 바라잖아? 그래야 이노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으니까! 그렇지?" "우웅~!" "그럼, 조금만 기다려봐~! 녀석이 스스로 한 단계 올라설 때까지~! 그동안 심심하 다면 나하고 놀면 되잖아!" 쉐이트론의 말에 이노는 화사한 미소를 보여줬다. "크큭! 쉐이트론! 사실은 그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그 말을 그렇게 돌려 하다니~!" 이노는 언제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쉐이트론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리넨 녀석이야, 알아서 잘 하겠지~! 쉐이트론에게는 못미치지만, 나름대로 머 리가 괜찮은 녀석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녀석이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오려 면 멀었으니, 그동안은 쉐이트론의 말대로 네가 나랑 놀아줘야해! 알았지?" 이노는 쉐이트론의 넓은 가슴에 안기며 리넨과 란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쉐이트론도 그들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미소를 이노에게만 보여 줬고... Ip address : 211.47.238.60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5; Windows 98) 오늘 아침, 란의 눈에 비친 투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지만, 내 혀는 어제와 별 반 다를게 없는 맛을 느꼈다. '투지가 강해도 맛의 변화는 거의 없군...' 나는 식탁 위의 음식을 적당량 입안에 털어 넣고 꼭꼭 씹으며 아침에 강한 의지를 내비친 란의 눈빛을 생각했다. "으윽! 이걸 지금 먹으라고 내놓은 것은 아니겠지?" 확실히 처음보단 많이 발전한 란의 요리솜씨!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이노의 입에서 는 신경질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즉 그녀에게 란의 요리는 목구멍 뒤로 넘기기에는 큰 무리가 있는 아침식사였던 것이다. 이노는 예민한 후각 때문인지 아니면, 까다 로운 입맛 때문인지, 맛도 보기 전에 란이 만들어온 음식에 대한 불평이 터트리기 시작했다. 검푸른 색의 이상한 스튜와 검게 그을린 토스트... 그리고 새의 알로 추정되는 뭉 게진 알 요리... 차려진 것들은 많았지만, 제 모양과 향을 갖고 있는 것은 몇 개, 아니 전혀 없었다. '이노의 불만이 터져나올만도 하지... 하지만, 먹을만은 한데... 쩝쩝...'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이노의 반응에 란은 톡 쏘는 말투로 대응하려 했지만, 말하던 중 란은 강렬한 이노 의 눈빛에 그만 말끝을 죽이고 말았다. 지금까지 이노에게 당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그녀의 싸울 듯한 목소리가 가라 앉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노를 쳐다보는 란의 눈빛만은 그 의지를 꺾으려 하지 않았다. '호오~, 이건 고양이 앞의 쥐 꼴인데? 불만어린 눈빛을 하고 있긴 해도 말야... 이 노의 말 한마디에 바로 말꼬리를 내리다니~!' 그 둘을 쳐다보던 나는 식탁 위에 올려진 여러 가지 음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삼키는데 약간의 무리가 있긴 하지~! 하지만 처음 란이 만든 극약보다는 훨씬 낫구만?' 내가 처음 란이 만든 식사를 극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말 먹으면 죽는 그런 약 과 같은 맛을 느꼈기 때문이다. '색과 냄새를 무시하고 입안으로 넣은 내 잘못된 판단 덕분에 며칠동안이나 침대에 서 낑낑 앓으며 움직이지 못했었지...'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색과 모양의 변화는 없더라도 맛의 차이는 엄청났다. '먹을만한데 왜 저러는지~!' 우물우물, 입안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뭔가를 열심히 씹으며, 나는 두 여인의 무시 무시한 눈싸움을 구경삼아 힐끔 힐끔 쳐다봤다. '처음엔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생각까지 했지만, 지금은 소화까지 문제없으니 그 럴 필요까진 못 느끼는데...' 쉐이트론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고 싶긴 하지만 그의 요리는 이노만을 위한 거니 내게 줄리 없었다. 그러니 결국 난 란이 만들어주는 것밖에 먹을 수 없다는 결과였 고. 이런 상황에서 음식투정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임을 잘 알았기에 난 별 말 없이 소화하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륵. 쉐이트론이 예의 상 식탁 의자에 앉았다가, 이노의 투덜거림이 시작되자,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노가 란이 만든 음식을 먹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부엌 안쪽으로 걸어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노의 아침 식사를 차려주기 위해 서! '이노는 란이 만드는 것을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매일 란에게 요리를 맡기는 건 뭐야? 어차피 쉐이트론이 만든 것만 먹으면서 말야. 그럴 바엔 란에게 요리를 시키 지 말지! 그러면 나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텐데 말야. 란을 괴롭힌다고 보기 에는 내가 더 괴롭잖아... 이건 분명 나까지 괴롭히기 위함일꺼야! 이노의 성격이 라면, 한번에 두 명을 모두 괴롭히는 일을 택할테니! 흠~. 아무래도 이게 맡는 것 같군!' 부러운 마음으로 쉐이트론의 뒷모습을 쫓던 나는 생각이 별로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자,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의 것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즉 배를 채우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노의 휘둘림에 휘둘려지더라도 챙길건 챙겨야 했으므로! '할 일이 생겼으니, 그런 것까지 신경쓰며 정신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겠지~!' 우걱우걱, 냄새를 최대한 맡지 않으려 하며 눈앞의 음식들을 하나 둘씩 입안으로 가져가던 나는 빨리 배가 불러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음식을 씹었다. '아~! 이렇게 먹는 것에도 집중을 하다 보면, 마나를 몸 안에 모으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 되겠군! 하루 종일 생활 자체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니깐 말야! 이노의 생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만, 가끔 란도 내 신경을 곤두서게 하니까, 쉴 틈 이 없어, 쉴 틈이!' 난 언제나 그랬듯이 란에 대한 이노의 잔소리가 끝나기 전에 지하 실험실로 발길을 옮겼다. 위에서 들려오는 이노의 잔소리로 보아, 그녀의 식사가 끝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내려가서 실험실이나 둘러봐야지! 뭔가 실수라도 했을지 모르니까!' 아침에 란 덕분에 뒷마무리를 서둘러 했기 때문에 나는 평소보다 조금은 빠르게 지 하 실험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곳은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다. 이노의 손길이 타지 않은 것 같은 깨끗한 방이 있을 뿐! '흠~! 책장 주변에 설치된 마법도 내가 손대기 전과 같군! 좋아, 이 정도면 이노가 눈치 못채겠지!' 이노가 내려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책장 안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지 만, 예측할 수 없는 이노의 행동 때문에 나는 책에 대한 호기심을 꾹 눌러야만 했 다. '아직 다 읽으려면 며칠은 걸리겠군! 그때마다 이노가 이 실험실을 많이 어질러야 할텐데... 이곳 청소는 거의 내 담당이니까 말야.' 청소야 정령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하 실험실에서 이노를 기다렸 다. '새벽에 살펴봤던 책이 드래곤에 관한 책이었지? 드래곤 하트에 관한 것... 참 신 기한게 많이 적혀 있었지! 저 안에 있는 지식이 사실이라면, 이노가 모르는 것은 없을지도...' 책장 안의 책들을 쳐다보며 나는 위층에 있을 이노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금은 모든 지식에 대한 궁금증이 없는 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노가 아는 것만 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지식을 내 머릿속에 넣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이노가 존경스러울 때가 꽤 많았다. '그녀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을 흡수해야지! 우선은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만!' 나는 오늘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나가고 있자, 어느 새 이노의 존재가 꽤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만족스런 식사를 했는 지 기분좋은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실험실 안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청소는 다 해뒀군. 새벽까지 시끄럽던데, 오래 걸렸나?" "...! 아니, 별로... 단지 그냥 이곳에서 깜박 잠이 들었었지. 그래서 청소는 일찍 다 했지만, 나간 것은 새벽이였어." 나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내 연기가 꽤 괜찮았는지 이노는 그저 고 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실험실 안을 한번 훑어봤다. "아, 오늘은 밖에 안나갈거야! 네 몸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서, 즉 이곳에서 실험할 거야!" "궁금증? 어떤?" "네가 선천적으로 마나에 대해 민감하다는 것은 실험으로 알았는데, 그 이유에 대 해서는 아직도 모르겠단 말야? 몇 가지 이유에 대해서 추측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내 생각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고... 그래서 실험 좀 해보려고." 뭔가 잔뜩 벼루고 왔는지, 이노의 눈은 평소보다 더욱 반짝거리고 있었다. "뭐, 이상한거 먹는건 아니겠지?" "아! 먹긴 먹을거야. 물론, 몸에 해가 가진 않으니까 걱정은 말고~! 어디 있더라?" 이노는 정령들이 깨끗하게 정리해둔 포션병들 사이에서 여러 개의 병들을 꺼냈다. "이거랑... 아, 이것도...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것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곳에 있고싶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뭔가를 먹는 것은 란의 음식으로도 충분한데...' "저기, 이노! 혹시 그 몇 가지 추측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까? 내 상태에 대해서 말야." 가만히 그녀가 만들어 줄 알 수 없는 액체를 기다리기 싫어진 나는 이노에게 말을 걸며 무료함을 달랬다. 이노는 내 말에 붉은 액체가 담긴 포션병을 꺼내며 내 쪽을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포션 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생명체는 혼돈에서 만들어지지. 흔히 인간들은 그 혼돈을 아무것도 없는 상 태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들이 모를 뿐 존재하는 거야. 뭐, 지금은 그게 중 요한게 아니지!" 이야기를 꺼내려는 이노는 자신이 꺼낸 것들이 맞는지 살펴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혼돈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경우는 말야,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혼돈의 흔 적을 모두 벗어던지지 못한 상태로 태어나. 혼돈에서 일정한 질서를 갖고 세상에 태어나면, 더 이상 혼돈이 아니게 되지만, 그 상태에서도 태어난 즉시가 되면 약간 이나마 혼돈의 흔적이 있는거지." 이노는 자신의 말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고개를 들어 내 얼 굴을 살펴봤다.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다는 말이군.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과 비슷한 부분이 많 아.' 나는 예전 새로운 경지로 가기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할 때 떠올 린 말들을 생각하며 이노의 눈빛에 이해한다는 행동을 취해줬다. "하지만 그 혼돈의 흔적이 조금 강하게 남아있을 때는 태어난지 얼마 안됐을 때 뿐 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저절로 주변의 조화에 익숙해져가거든. 생명체라는 것 자체가 질서를 가진 조화로움이니까, 자신이 태어날 때 완전히 벗지 못했던 혼돈 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버리는 것이지. 아니 잊는 것인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대부 분이 그런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거야. 몇 몇 그 혼돈의 흔적을 잊지 않으려고 하 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이노의 말이 잠시 끊어지자, 나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혹시 그 혼돈과 조화라는 것이 마나와 연관되어 생각할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이 태어날 때 주변의 마나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느 낌을 잊어 가는 것이랑 말이야. 마나를 잘 느끼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훈련 같은 것을 하는 것도... 같은 건가?" 새벽에 읽은 이노의 책 내용을 떠올리며 나는 혼돈과 마나를 연관시켰다. 이렇게 이노의 말을 내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돌리자, 그녀의 두 눈빛이 잠깐 반짝 거렸다. "호오~! 잘 이해하는데? 대부분 그 사실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인데, 네 말 을 들어보니,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식장 밑의 서랍에서 포션병이 아닌, 커다란 삼 각형의 유리병과 길다란 작은 유리관들을 꺼냈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이 리넨, 네가 말한 바로 그것이야. 네 상태! 즉 마나에 민감 한 상태로 지금까지 있는 이유가 그 혼돈의 흔적을 아직 갖고 있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혹시 혼돈과 가장 흡사한게 뭔지 알아?" 이노의 갑작스런 물음에 내 머릿속에서는 마나라는 단어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마나?" "그래! 잘 아는 군. 마나라는 것 자체는 혼돈과 매우 흡사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거부하거든. 말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다른 말로는 설명이 좀 어렵지. 어쨌든 그래. 그래서 혼돈의 상태로 가게 되면 마나에 대한 제약이 없어지 지. 마나의 제약이란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갖고 있는 것이거든? 마법사의 경우에는 좀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좀 더 많은 마나를 사용하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오래 살거나 건강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마나의 제약을 없애려고 하지. 모두 느끼진 못하지만 마나의 제약을 받고 있지. 그 제약을 덜 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마법사가 많고~! 높은 레벨 의 마법사일수록 혼돈에 가까워지며, 마나에 대한 제약도 줄어들거든?" 긴 이노의 설명을 듣고 있자, 알 수 없는 뭔가가 내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것과 같 은 충격이 느껴졌다. "혹시 마법사란 혼돈으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말인가?" 내가 자신의 말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이해를 해나갔기 때문인지, 이노는 신 이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지! 정말 똑똑한데? 쉐이트론보다는 못하지만~! 어쨌든 마법사들의 꿈이 최고 의 레벨인 10 클래스잖아? 물론, 인간으로는 가기 힘든 영역이지만... 뭐, 그 10 클래스는 혼돈으로 가는 문이라고 할 수 있지. 가끔 몇 몇의 사람들이 그 문을 혼 돈 자체라고 이해하긴 하지만. 사실은 모든 이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혼돈의 길일 거야. 그곳에 가면 못할게 아무것도 없을테니. 세상을 창조하라면 할 수도 있을 껄 ?" 장난기 어린 말로 끝맺음을 한 이노였지만, 난 그 말을 그녀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 길 수 없었다. '혼돈으로 가는 길이라... 내가 가야할 길이군! 근데 10 클래스가 단지 그곳으로 가는 문일 뿐이라고? 그렇다는 것은 그보다 높은 단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노는 잠시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커다란 탁자 위의 여러 개의 포션 병을 하나 씩 들어 자신이 만들려던 것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포션병 안에 담겨 있는 액체를 조금씩 양을 제며 덜며 새로운 삼각 유리병에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노... 그럼 10클래스 이상의 단계도 있다는 것인가?" "후훗... 솔직히 말하면 그래. 하지만 그 이상의 단계는 누구도 도달할 수 없을거 야.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일 경우라면 더더욱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야?" "10 클래스 이상의 단계는 혼돈 그 자체야. 혼돈이란 신의 영역이거든. 즉 신만이 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거야. 신의 피조물이 그 영역으로 가는걸 신이 내버려 둘리 는 없잖아? 피조물이 자신과 맞먹으려는 것을 말야... 크큭." "흠~. 그럼 인간은 갈 수 없는 건가?" 이노는 내 말에 자조적인 웃음을 멈추고는 내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리넨. 너무 욕심이 많군~! 내가 알기로 10 클래스에 도달하기도 매우 어려워! 그 런데 아직 8 클래스인 네가 10도 아닌 그 이상의 단계에 가고자 하다니! 목표가 높 으면 높을수록 의욕이 생기긴 하겠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쳐!" "그런...가?" 뭔가 더 갈 수 없는 단계라는 말에 힘이 빠져나가긴 했지만, 이노의 말대로 아직 8 클래스에 머물고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머릿속에 맴돌던 혼돈의 영역을 지워버렸 다. "리넨! 내가 좀 전에 말한 혼돈의 영역은 잊어버려라. 그건 생각해서 좋을게 못되 니까. 정히 생각하고 싶다면, 10 클래스가 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 알았냐?" "응..."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노가 피식 웃으며 삼각 유리병에 들어간 여러 액체들을 잘 휘저으며 주변의 마나를 이용해 액체를 끓이기 시작했다. 이노의 손에 들린 삼 각 유리병은 순식간에 커다란 공기방울을 터트리며 끓어올랐는데, 신기하게도 유리 병 위로는 그 어떤 기체도 솟아오르지 않았다. 마치 연기가 만들어지자마자, 주변 으로 빠르게 흡수되어 버리는 듯. "아,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셌네? 네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말야. 흠~. 어디까지 했더라? 아! 네가 마나에 예민하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됐 지? 내 생각엔 네가 태어난 이후 그 혼돈의 흔적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조화로운 세상에서도 그 혼돈의 흔적을 잃지 않고 있 다는 것이지." 이노의 말에 나는 그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은 그녀에게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고 해서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난 태어날 때의 기억을 갖고 있어! 그때 내가 느낀 것은 마나의 압박감이었지. 즉 태어날 때 마나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그 느낌의 정도가 너무 심 해 마나라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지. 그게 마나라는 사실도 모르고 말야" 내가 이노의 질문도 없이 먼저 자진해서 입을 열었기 때문인지, 이노가 잠시 의외 라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중에 마법을 배울 때 느끼지 않으려고 했던 마나를 다시 느끼려고 했어.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노력해서 지금은 태어날 때 느끼던 압박감과 비슷한 상태로 주변 의 마나를 느낄 수 있지. 물론, 불편함 같은 것은 못느끼면서 말야." 내 설명이 끝나자, 이노가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태어날 때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신가 하네? 어쨌든 네가 마나에 민감하다는 것은 조화로운 세상에 잘 섞이지 않았기 때 문인 것 같다. 태어날 때 기억이 있다는 경우는 그때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는 말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예리한 이노의 말에 나는 잠시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들킨 것 같 아 몸이 긴장했지만, 다른 쪽으로 이노가 말을 돌리자, 그 긴장도 함께 사라졌다. '히유~. 이노... 예리해. 흠! 그건 그렇고 이노의 말에 따르면 내가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나서 이쪽 세계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건 가? 그래서 마나라는 것도 그렇게 잘 느꼈던 것이고?' 마나 뿐만 아니라 정령의 냄새 또한 잘 맡을 수 있는 나였기에 결론이 이렇게 나면 , 나는 환생에 대한 이점을 꽤 많이 갖고 태어났다 할 수 있었다. '괜찮네~. 후훗!' 이왕 시작된 이야기였기에 아는 어렸을 때의 이야기도 이어서 꺼냈다. 이노이 손에 들린 검은 액체가 내게 다가오는 시간을 좀더 미루기 위해서... "나는 태어난 이후 몸 안에 마나가 쌓이지 않았어. 언제나 주변의 마나와 비슷한 양만이 몸 안에 존재할 뿐이었지. 마치 흐르는 물처럼 마나가 내 몸을 통과하는 것 처럼. 그것은 그 때 내 몸의 상태가 혼돈과 비슷했기 때문이겠지? 너무도 자연스러 워, 아무 거부감 없이 마나가 내 몸을 통과했으니까. 마법을 배운 이후 마나를 쓰 기 위해 몸 안에 인위적으로 마나를 가뒀지. 그러면서 내 몸은 혼돈에 대한 기억들 을 잊혀갔고... 하지만 다시 난 그 상태로 돌아가고 있어! 예전의 마나가 내 몸을 통과했던 그 때의 상태로... 단지 그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때는 마법을 사 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쉽게 사용하기 힘든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는 것이야!'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나는 옆의 탁자에 몸을 편히 기대고는 그녀의 반응을 살 폈다. "흠~. 마나가 통과한다라... 보통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지. 그걸 느끼고 있었다 니 대단하군! 역시 특이해! 근데 쌓이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과 틀리군. 네 말처럼 혼돈의 영역으로 가는 문엘 도달한 것과 같이 말야. 내가 알기로 그게 10 클래스의 단계야! 마나의 구에를 받지 않는 단계이지! 즉 몸 안에 무한한 마나를 갖고 있게 되는 상태야. 드래곤 하트가 없어도 말야." 이노는 내 말에 더더욱 눈빛을 빛내며 호기심을 겉으로 드러냈다. "인간의 몸에 드래곤 하트 없이 무한한 마나가 들어올 공간이 있나?" "후훗!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네? 무한한 마나를 갖는 다는 것은 다시 말해, 몸 안 에 거의 모든 마나를 내보낸다는 것과 같아. 즉 주변의 마나와 같은 양의 마나만을 갖고 있는 다는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어 그녀의 설명을 요구 했다. "대기에 흐르는 마나를 자신이 자유자재로 끌어 들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야! 바 로 바로 사용가능하지! 몸 안에 마나가 없어도, 대기 중의 마나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가 된다는 말이야." "하지만 난 지금도 그런데?" 그녀의 설명에 더욱 이해를 할 수 없었던 나는 지금 내 상태에 대해 너무도 진실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지금 이노에게 내가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고 인식시키고 있 는 상황이라는 것도 잊은 채... "뭐?" '헉... 이런 실수를! 어쩌지? 음...' 싸늘한 미소와 함께 추궁하는 듯한 이노의 눈빛이 내게 다가오자, 나는 좀 전의 말 을 어떻게 수습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기의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지금? 내가 모든 마나를 봉인한 상태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짐짓 놀라는 표정을 하며 이노가 내게 대답을 요구해왔다. 그녀의 입가에 비친 날 카로운 미소가 즐거운 듯 보였지만, 나는 전혀 즐겁지 못했다. "이왕 엎지러진 물. 사실대로 말해봐! 네가 마나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고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주변의 마나를 그 자체로 이용할 수 있단 말야? 몸에 저 장하지 않고 바로?" '헉... 아..알고 있었단 말야? 그럼, 모른척해 준건가?' 괜히 혼자 이노의 손에서 놀아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못했지만, 내가 그녀를 속인 것에 대한 이렇다할 응징이 없는 것 같았기에 나는 모르는 척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노의 보복을 받기보다는 그냥 말해주고 편해지는게 낫겠지... 하지만 주변의 마 나도 사용 못하게 하면 어쩌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나는 몸을 굳히며 이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경 지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가능성을 빼앗길지도 몰랐기에...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걱정마. 더 이상 네 몸에 대한 제약은 늘리지 않을테니까. 그러니 그런 이상한 표 정 짓지 말고 말이나 계속해봐." 짐짓 선심쓰는 것같은 말투로 입을 연 이노. 하지만 그런 거만한 행동도 나는 알아 차릴 수 없었다. 그동안 이노의 끈질기고도 집요한 괴롭힘을 받아왔으므로 그런 것 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난 지금도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들여 마법을 사용하고 있어. 단지 그 범위가 넓 지 못해 강력한 마법은 쓸 수 없지만..." "자..잠깐! 정말 네 몸에 저장하지 않고 사용한다고?" "응." "호오~, 8 클래스에서 어떻게 10 클래스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쓸 수 있 는 거지?" "이게 10 클래스의 단계에서 사용가능한 건가? 난 마법을 배우기 전에도 이랬는데? 물론 그때는 더더욱 적은 마나만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허어..." 솔직해지기로 시작한 나는 서슴없이 어렸을 때의 일을 말했지만, 이노는 허탈한 듯 입을 조금 벌리고는 내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너란 인간은 이해불능이야... 알려고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고.. 허허..." "흠... 그.. 그런가?" "그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생기는 것일지도~! 아직까지 내가 질리 지 않은 인간들 중 두 번째가 너니깐 말야." 첫 번째가 쉐이트론이라는 사실은 우리 둘다 입을 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넌 신기한 구석이 많군! 리넨 너는 혼돈의 정도가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 도로 강하게 남아져 있는 인간이니 말야. 그래서 주변 마나의 흐름에 민감했던 것 이고! 뭐, 그럼 대충 네 몸에 대한 결론은 어느 정도 내려진 건가? 하지만 그 이유 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궁이야." 이노는 자신이 생각한 나에 대한 결론이 맞자 기분 좋게 웃었지만, 다시 원점으로 그 이유에 대해 알 수 없게 되자, 고개를 흔들며 손안에 들린 유리병을 쳐다봤다. "뭐, 이유야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겠지~! 준비도 다 됐으니까!" 내 몸의 상태에 대해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이노가 완성된 삼각 유리병의 액체를 마시기 쉬운 그릇에 옮긴 후 내게로 다가왔다. "뭐..뭐야?"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서 좀 알아보자고~!" 사악하게 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이노가 손에 들린 그릇을 내게 넘겼다. '으윽... 내 몸에 대해 알게 되면 이걸 안마셔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 그건 전혀 가능성이 없었던 거군! 이 거무튀튀한 것을 정말 마셔야 하는 건가?" 조금 전까지 팔팔 끓던 액체였건만, 그릇 안에 담겨 있는 검은 액체는 마치 미지근 한 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내가 마셔주기만을 기다리 고 있었다. "마.셔!" 잠시 고개를 들어 이노를 쳐다봤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빨리 그릇을 비우라는 말밖 에 나오지 않았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내가 죽으면, 이노는 더 이상 실험도 못할테니... 그럴리는 없겠... 으..으악!" 맛없을게 분명했기에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은 나.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뼈져리게 느껴야만 했다. "으악! 차..차..차가워!!" 아까 끓던 액체의 영상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지만, 여전히 목구멍을 타고 넘어 가는 액체의 온도는 매우 낮은 것이었다. 갑자기 차가운 것을 마셔서인지, 꽤 강한 두통이 이마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내가 미처 차갑다는 말을 안했네? 그것들이 잘 안 섞여서 말야. 그래서 내가 낼 수 있는 온도까지 내려서 그것들을 끓였거든?" "차..차가운 온도로 끓..였다고?" 말하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나는 이노의 말에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물 론 내 말에 돌아오는 것은 장난끼 어린 이노의 미소뿐이였지만... "죽지는 않을꺼야. 어차피 그건 차가운 상태로 마셔야 효과가 있거든? 그럼, 시작 해 볼까?" 이노는 내가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도 무시한 채 구부정하게 탁자를 잡고 간 신히 서 있는 내게 다가와 몸을 지탱하는 내 오른 손을 낚아챘다. '으윽... 무슨... 실험이... 이래! 이건 고문이얏!' 절규가 터져나오려 했지만, 몸 안에서 전신으로 퍼지는 차가운 음기에 그것은 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된 실험은 몇 시간에 걸쳐 이어졌지만, 결론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 을 정도로 간단하게 나왔다. 내 몸 자체에 혼돈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강하게 세 겨졌다는 것이 말이다. 태어날 때 내가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 느꼈던 마나의 압박 도 그 흔적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보다 강하게 세겨졌긴 했지만, 그것보다 내 가 지금 마나에 익숙해지게 된 이유는 그 흔적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노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잊지 않고 마나를 느끼고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 흔적이 유지되는 선을 넘어 몸 안에 깊이 세겨진 거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인 간이라면 꿈꾸기도 어려운 양의 마나를 다루며 생활했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세겨 진 거리고... 몇 시간 동안의 고통치고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이었지만, 애매했던 부분 한 곳의 퍼즐이 맞춰진 듯 했기에 고통에 대한 대가는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Ip address : 218.149.211.36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크로와 왕국과 유투 왕국의 전쟁. 이것은 몇 백년만에 다시 발발한 전쟁이었기에 사람들은 미처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으로 인해 피폐해 져 가는 마을들, 그로 인해 삶의 의욕마저 잃은 사람들... 전쟁은 사람들에게 너무 도 생소한 변화들을 보여줬다. 그래서 평화로웠던 시대를 산 이들은 전쟁이 가져다 준 변화를 모두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서 전쟁이 끝나 다시 예전의 평화로웠던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거의 일 년... 그들의 그런 바램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유투 왕국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가려고 하자, 왕국 사람들은 전쟁의 승리보다는 다 시 평화로운 날이 돌아왔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익숙하지 않던 환경에서 드디 어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을 보이는 것 같던 전쟁은 드루젤의 전쟁 선포에 의해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크 로와 왕국이 아닌, 폴보트 연합과의 전쟁으로 말이다. 유투 왕국의 국민들은 다시 전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평화로웠던 생활을 무참히 짓 밟는 악마의 숨결이었으므로... 하지만 국민들이 아무리 전쟁을 반대한다고 해도 나라를 직접 움직이는 것은 드루젤이었기에 다시 시작되는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 다. 그렇게 시작된 또 다른 전쟁은 유투 왕국의 사람들을 거의 기계적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게끔 만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지옥으로 내몰린 상황에 삶의 의욕을 잃어 텅빈 눈동자를 갖게 됐고, 그로 인해 눈앞의 적들을 향해 검을 무의식적으로 휘두 를 수밖에 없었다. 의욕을 상실한 그들에게서 폴보트 연합과의 싸움에 대한 성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결국 그런 이들로 군대를 채운 유투 왕국은 폴보트 연 합과의 계속되는 전쟁에서 전력 낭비라는 결과만을 얻게됐다. 하지만 폴보트 연합 에서는 유투 왕국과는 반대로 상황을 역이용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 있었다. "처음 먼저 우리를 공격해 연합의 땅을 빼앗은 유투 왕국은 최근 계속되는 패전으 로 우리들에게 오히려 땅을 내주고 있는 상태요! 이대로 더 나아가게 된다면, 유투 왕국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할 수 없을 것이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유투 시까지 우리의 군대가 들어가야 하겠지만... 그리고 그때까 지 저하께서 도와주셔야 하고요... 후훗..."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는지, 아르엘 대공은 심각한 표정의 라 피에르 앞에서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르엘 대공은 이번에 최고의 협력자 를 얻어, 유투 왕국의 위에서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가 그렇게 소망하던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라피에르의 표정은 밝을 수 없었다. 그는 조국을 공 격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보살펴야 할 국민들을 피를 보게 만드는 상황이었기에, 라피에르는 아르엘 대공처럼 밝게 웃을 수 없었다. 라피에르는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며 되도록 유투 왕국의 국민들을 다치지 않게 하 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전쟁이라는 미명아래 그런 그의 노력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최소한의 희생'이라는 단어는 유투 왕국의 군사 가 아닌, 폴보트 연합의 군사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는 군사의 대부 분이 폴보트 연합국의 국민이었으므로 라피에르의 뜻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 금 그에게는 소위 말하는 권력이 없었으므로! 아르엘 대공과 달리 그에게는 힘이 없었던 것이다. "저하께서 계속 도움을 주실거죠?" "물론,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저는 연합국을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이곳에 온 것이고요." 확인 질문을 해오는 아르엘 대공에게 라피에르는 밟은 표정으로 그를 마주 바라봤 다. 대공처럼 그 역시도 자신의 도움으로 빨리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 기라도 하듯. 하지만 탁자 밑에 있는 라피에르의 두 손 그 순간 으스러질 듯 꼭 쥐 어져 있었다. 그의 손이 너무 세게 쥐어져,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정도로 말이 다. 그래도 그의 입가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하하, 라피에르 저하께서는 확실히 정치에 소질이 있으신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법황은 라피에르가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그 의 연기하는 모습에 칭찬의 말을 건냈다. 하지만 라피에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 정을 지어보이며 법황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는 말이었으니, 신경쓰지 마시지요." 다시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법황. 그는 다시 한번 라피에르에게 대단하다는 뜻 이 담긴 눈빛을 한번 보내주고는 대공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있으면 우리가 유투 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 까?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가야 할텐데요... 지금,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전쟁은 빨리 끝날수록 좋으니 어서 끝을 내야지요." 그는 진정으로 사람들의 고통을 나누려고 하는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을 얼 굴에 가득 담고 있었다. "그렇지요, 전쟁은 빨리 끝날수록 좋은 것이지요. 법황께서는 너무 슬퍼하지 마십 시오. 그들이 흘리는 피는 발드르 신의 뜻에 따른 것이니 그들에게는 영광인 것입 니다." 법황의 걱정스런 표정에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말 을 하는 대공의 얼굴에는 그리 슬픈 빛이 들어있지 않았다. 전쟁을 대하는 이들의 마음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것처럼 대공의 속마음이 법황과 같을수는 없었던 것이 다. 대공의 저택에서 열리는 회의. 지금 이곳에는 폴보트 연합의 실세들과 라피에르 일 행이 모여 전쟁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들이 타원형의 탁 자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속과 겉이 다른 말들을 쏟아 붙 고 있었다. 라피에르 일행은 지금의 자리와 이곳에서 듣게되는 말들이 너무도 싫었지만, 그 기 색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대공 일행들은 탐욕을 숨긴 채 전쟁으로 인한 피해 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황의 일행들은 전쟁의 피해를 최소한으 로 줄이려는 노력을 말로 내뱉고 있었지만 전쟁의 제일 앞에서 사람들의 피를 흘리 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가식적인 회의 속에서 오늘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폴 보트 연합쪽으로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그들의 상투적인 회의는 그리 길지 않았다. 이틀에 한번 꼴로 진행되는 회의였기에 , 특별히 할 이야기들이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간 그들은 회의장에서와는 달리, 서로 아까 하지 못했던 가슴속의 말들을 내뱉기에 바빴다. "저하! 이대로 가다가는 유투 왕국의 피해가 너무 막심해 집니다. 아무리 지금은 폴보트 연합 쪽에서 유투 왁국을 공격하는 입장이라지만, 이상태로라면 결국 연합 쪽에 유투 왕국마저 송두리째 내줘야 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흥분한 듯 리온이 입을 열며 회의장에서 미소까지 보여주며 방관적인 입장을 보인 라피에르를 탓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힘이 없어! 그들이 하는 행동에 제재를 가할만한 힘이 없단 말이다! 나라고 왕국의 국민들의 피를 보고 싶겠느냐? 나 역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폴보트 연합의 힘을 이용해야 할 때지 ! 기회를 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 기회가 오지 않았어..." 착 가라앉은 라피에르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진심으로 지금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 기고 있다는 것을 듣는 이로 하여금 절실히 느끼게 만들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지금은 폴보트 연합의 힘이 필요한 상태지! 내가 나선다면 그 리 어렵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흘리게 되는 피가 더 많아질 뿐이지! 지금의 상태에서 최선의 방법은 폴보트 연합과 손을 잡는 것뿐이다. 라피에르는 최선을 선 택한 것이지!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다, 리온!" 어깨를 으쓱하며, 키에라도가 옆에서 그 둘 사이에 끼어 들었다. "키에라도님, 지금이 최선이란 말이십니까?" 답답했던 것이었을까? 크릭이 잔뜩 인상을 쓰며 키에라도의 말꼬리를 잡았다. "그렇지, 지금은!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봐라. 연합쪽이 유투 왕국 안쪽으로 다가갈 수록 라피에르가 얻게되는 세력은 늘어날테니, 그때가 되면 상황은 조금 바뀔 것이 다. 연합쪽이 왕국의 땅을 많이 잡아먹을수록, 그 땅에 숨어 있던 왕국의 세력들은 라피에르에게 모두 흡수될 것이다. 그럼, 나도 앞으로 나서 그들을 직접 도울 수 도 있을테고, 그렇지 라피에르? 자신의 말이 맞음을 확인하기 위해 키에라도는 라피에르를 쳐다봤다. "예, 지금은 조용히 참고 지내야 하는 시기죠..." 라피에르의 나직한 한 마디에 리온과 크릭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작게 끄 덕였다. 그들에게 기회가 오면, 그때는 하고 싶은 일을 할거라는 다짐을 하면서... 그들의 방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또 하나의 방에서는 라피에르 일행의 방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대륙의 성인이라 일컬어지며, 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자, 법황! 그와 그의 수제자인 엘벤트가 속에 감추고 있던 말을 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카란님, 이번 전쟁으로 인해 사제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들의 희생에 비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게 모두 수련이 부 족한 우리들의 탓도 있겠지만... 전쟁의 참혹함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 엘벤트는 조심스럽게 법황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카란님께서 직접 나셔서 삶의 의욕을 잃어 가는 이들에게 희 망을 주셨으면 합니다." 엘벤트는 이번 전쟁에 법황이 나서면 얼마나 사기가 올라갈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리고 그의 능력이라면 수많은 인명또한 구할 수 있음이 분명했고...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법황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엘벤트야... 물론 내가 나서면 상황이 약간은 호전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그들 이 흘리는 피는 더욱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길일 뿐이다. 발드르 신 의 세상을 만들려면, 그만한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법황은 굳이 자기가 나설 필요가 없음을 발드르 신을 언급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었 다. "하..하지만, 카란님! 그들도 발드르 님의 자식들입니다. 아무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 한다지만, 그들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만들려는 것은 발드르 님의 뜻을 잘못 해..." "그만! 지금 내 앞에서 나를 훈계하는 것이냐?" "아..아닙니다." "흥! 난 발드르 님의 계시를 받은 몸이다. 그 분께서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 의 희생은 용서받을 수 있다 하셨다. 지금 이 작은 인원이 희생을 하면, 그 후에는 보다 많은 인원이 영원히 발드르 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작은 일로 내가 나서기를 바라다니! 발드르 님께서는 내가 나서든 그렇지 않든 어 차피 수많은 인명의 피해는 막을 수 없다 하셨다. 그러므로 내 앞에서 내가 나서라 는 듯의 말은 하지 말도록 해라! 네가 아무리 내 수제자라고 해도 말이다!" 회의장에서 보여준 말투와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마치 뭔가에 씌인 듯 광기어 린 눈동자로 엘벤트를 나무라고 있었다. 엘벤트 역시 그의 변화를 알아봤는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법황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아무 행동 없이 그들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발드르 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리..." "엘·벤·트!" 엘벤트가 알기에 발드르 신은 이 세계의 평화를 담당하며 모든 이들을 굽어 살펴주 는 자애로운 신이었다. 그런 신이 인간의 피라는 제물을 달라고 했을리 없다는 것 이 엘벤트의 생각이었다. 그는 법황이 뭔가로 인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 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요사이 부쩍 그 모습이 많이 변해 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 면서 말이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뭣이냐!" "...이번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위니아를 제게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뭐..뭣이야? 위니아를?" 대륙 4대 마법 기구 중 하나인 위니아. 축복의 반지라고 알려진 이 위니아는 법황 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을 가진 자가 법황의 권위 또한 갖게 되는 것으 로 말이다. 그런 상징물을 달라고 했으니, 법황의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음... 물론 네가 내 하나뿐인 수제자로 곧 내 지휘를 너에게 물려줄 것이지만... 위니아는 아직..." "카란님, 지금은 그런 형식적인 것보다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는게 더 올바른 선 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지닌 엘벤트! 그는 한치의 물러섬 없이 강한 의지가 담긴 눈 빛으로 법황을 쳐다봤다. "무..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노력은 해야겠지! 그 들을 살릴 수는 없더라도 말이다." 법황은 엘벤트의 시선을 교묘히 피하면서 잠시 그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주머니 안에서 아름다운 수정반지를 하나를 꺼냈다. "아..아니, 카란님! 왜 위니아를 끼고 계시지 않고 그렇게 따로 보관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잠시 따로 보관해둔 것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쓰지 말도록!" 엘벤트는 위니아가 발드르 신을 모시는 사람의 손에 끼어져 있어야 진정한 그 효력 을 나타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렸을 때, 법황의 손에 끼 어져 그 찬란한 빛을 뿜던 위니아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무슨 이 유에선지 법황은 그 위니아를 손에 끼지 못하고 있었다. 위니아. 축복의 반지로 발 드르 신자 중에서 그 믿음이 강한 자만이 낄 수 있는 반지... 즉, 발드르 신에 대 한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위니아는 고통 이외에는 그 어떤 이득도 주지 않는 수정 반지일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엘벤트는 조심스럽게 수정반지를 자신 에게 건내는 법황을 보면서, 혹시라는 의심을 잠깐동안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불 경한 자신의 태도를 깨닫고는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조심해서 사용하도록 해라!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갖고 오도록! 네게 법황 의 지위를 물려줄 때, 다시 줄테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발드르 님의 축복이 계시길..." 다시 인자한 미소를 입에 머금은 법황은 회의장에서와 비슷한 모습으로 엘벤트를 배웅해줬다. Ip address : 61.80.95.156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0; Windows 98; DigExt) Name 아나크 Subject <연금술사>-37-2 유투 왕국과 폴보트 연합의 전쟁은 어느새 서서히 연합이 우세한 쪽으로 그 흐름을 바꿔가고 있었다. 공격당하는 위치에 있던 연합 쪽에서 뜻하지 않게 강한 지원군 이라도 얻은 듯, 점점 유투 왕국을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륙 전 쟁의 흐름도 죽음의 숲까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세상과 고립된 죽음의 숲. 그곳은 대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던지, 항상 그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듯 격렬하게 변해 가는 대륙의 흐름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안의 생물체들도 자신의 일 에만 몰두하며, 숲 밖의 일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슈각. 털썩! 살과 살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몬스터의 머리가 땅바닥의 흙 을 진동시켰다. 몬스터의 머리를 몸과 분리한 존재도 대륙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 는 듯, 눈 앞의 몬스터들의 수를 줄여나가는데 온 정신을 쏟아붓고 있었다. 몬스터 들 역시 그런 그를 향해 달려들기에 바빴고... 서걱. 털썩! 언제나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는 뭔가 육중한 살덩이가 떨어지며 주변에 먼지를 일으켰다. "지겨워..." 투덜거리는 트레모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것은 뒤늦게 쓰러지는 몬스터의 몸체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의해 허공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꽤 오랫동 안 같은 자리를 맴돌며 라이너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막무가내로 길을 만들어 앞으로 나가는 라이너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좀 천천히 가자, 바쁘게 간다고 출구가 보이는 것도 아닌데..." 검을 간단한 동작으로 움직여 몬스터를 베는 라이너에게 트레모스가 투덜거리는 한 마디를 건냈지만, 이번 역시 그의 목소리는 쓰러지는 몬스터의 몸 때문에 그 소리 를 제대로 라이너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사실 검을 휘두르며 서둘러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라이너도 자신이 반복되는 길을 걸으며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너에게 있어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리넨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금, 그는 이런 시간 낭비라도 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뒤에서 들려오는 트레모스의 말에도 휘두르는 검의 속도 를 늦출 수 없었다. "라이너, 이렇게 무턱대고 같은 자리를 맴돈다고 해서 숲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 조금 쉬었다 가자고! 그렇게 서둘러 걸을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며칠 후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걸!" 트레모스가 지친 목소리로 눈앞에 보이던 몬스터들을 다 처치한 라이너를 붙잡았다 하지만 라이너는 그의 말에 아랑곳 않고 앞에서 그를 기다릴 다른 몬스터들을 향 해 발을 내딛었다. 이제 더 이상 트레모스의 입에서 죽음의 숲을 나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조금 쉬어가자는 말만이 그의 입에서 맴돌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에도 라이너는 몬스터들을 죽이며 앞으로 걸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너무도 간단히 눈앞의 몬스터들을 죽여가는 라이너! 그는 이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종류를 모두 외울 만큼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몬스터들 의 생김새, 습성, 그리고 그들의 약점까지도! 라이너에게 이곳의 몬스터들은 너무 도 익숙한 존재였던 것이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면, 쉽게 그들을 쓰러뜨릴 수 있 는지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라이너는 아무런 힘도 들이 지 않고 단순히 검을 휘두른 것으로 장애물들을 없애고 있었다. 예전에 그들을 상 대할 때 몸을 꽤 많이 움직였을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라이너!" 트레모스는 많이 지친 표정으로 라이너를 다시 한번 불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효과 도 얻지 못해 힘없는 한숨을 쉬어야만 했다. 그가 이토록 지친 모습으로 고개를 흔 드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그의 곁에 계속 맴도는 몬스터들이 아닌 그의 앞에서 고집스럽게 걸음을 재촉하는 라이너 때문이었다. 라이너의 그런 모습이 트레모스의 정신력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히유~, 대체 내 말을 뭘로 아는 거야? 처음엔 나를 대하는게 조금 조심스러운가 했는데, 이제는 툭하면 무시군! 명색이 드래곤인데... 그것도 드래곤들 사이에서 꽤 잘 나가는... 하아~. 리넨을 만난 이후 이번 유희는 고달픈 것이 되버렸어..." 한번 투덜거리기 시작한 트레모스의 입은 멈출 줄 모르며 계속 움직였다. 그에게 이런 투덜거림은 자신의 말을 안 듣는 라이너의 뒤를 쫓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을 제 공해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이너는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익숙한 손동작을 계속 해가면서...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오랫동안 죽음의 숲에서 헤맨 라이너와 트레모스. 그들 은 그동안 이곳에서 시간만 낭비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라이너의 경우 눈에 띄게 체력, 검술이 늘었고, 트레모스의 경우도 성격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던 것이 다. 하지만 그런 이득에도 이들은 그것에 대한 만족감 같은 것은 가질 수는 없었다 원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기 때문인지 자신의 변화를 두손들어 환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라이너의 뒤를 쫓던 트레모스는 한참동안 혼자 투덜거리다가 이내 라이너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혼자 떠드는 것보다는 둘이 떠드는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라이너의 생각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냐? 우리가 이곳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한지도 꽤 됐잖아? 모르긴 몰라도 몇 달은 지났을 거야! 이 정도의 시간이면 우리가 아무리 조심했다곤 해도, 그녀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무 조용해 . 마치 일부러 그녀가 우리를 모른 척 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트레모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생각을 꺼내면서, 라이너의 발걸음을 조 금은 늦추게 만들었다. "생각해봐! 그녀는 분명 내게 이곳을 나가라고 했었어! 걸리면 그땐 이 정도로 끝 나지 않을거라면서 말이지. 그런데 이곳을 떠나지 않은 우리들을 막는 요소는 믿기 지 않을 정도로 적어. 괴상한 몬스터들과 길이 안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전혀 없다 는 거야." 트레모스는 어느 정도 그 이유에 대해서 혼자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만, 지루함을 달래고자 라이너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만 듣기는 조금 지겨 운 듯. "너도 그렇게 생가가지 않아?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이라면, 너와 나 같은 귀찮은 존재는 발견 즉시 척살 대상인데 말야.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어."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트레모스. 그런 그의 모습에 드디어 라이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오?" "뭐, 요점만 말하자면 그녀에게 리넨이 뭐라고 한게 분명하다는 것이지~! 잔 꽤가 많은 리넨이라면 그 정도의 말은 하고도 남으니까." 라이너가 자신의 말에 반응하자, 트레모스는 오랜만에 미소라는 것을 지으며, 흐느 적거리던 발에 힘을 줬다. "그럼, 리넨님이 그녀와 계약을 했다는 말이오?" "그렇지~! 녀석을 데려간 것은 뭔가 이유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어? 리넨을 데려갈 때 상처입히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일테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리넨이 협조적으로 나왔을리는 없지! 그럼 어떻게 되겠냐?" 트레모스의 논리적인 설명에 라이너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들을 놓고, 그녀와 리넨님이 뭔가 계약을 했음이 분명하겠군..." 라이너가 자신의 말에 잘 따라오고 있자, 트레모스는 신이 난 듯 밝은 표정이 되었 다. "너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지금의 상황과 잡혀간 리넨을 연관지어보면 말 이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얻는게 뭔지 알겠냐?" 트레모스는 라이너에게 다시 말을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라이너는 리넨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어두운 표정으로 변했다. "모르겠소." "그래? 간단한데~. 흠,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조심하며 그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야! 리넨과 그녀가 우리를 놓고 계약을 했음이 분명하다면 말이지! 알 겠냐?"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질 건 없는 것 같은데..." "으..윽!" 이야기의 결론을 라이너가 내버리고 말자, 트레모스는 뒤통수 맞은 표정으로 변하 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도 결론이 이렇게 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척을 죽이며 몬스터들을 상대해도 별 어려움을 못느끼 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녀를 생각하며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쓸대없는 말로 내 걸음을 멈추게 하지 마시오. 난 이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 갈테니까!" "쳇! 소용없는 행동으로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겠다고?" 부정적인 입장으로 입을 여는 트레모스. 그런 그를 쳐다보며 라이너가 돌리려던 고 개를 잠시 멈추고는 트레모스를 잠시 쳐다봤다. "그래도 그런 행동으로 난 빠른 시간 안에 꽤 많은 실력을 늘릴 수 있었소! 당신에 게 폐를 주지 않을 정도까지 말이오!" "......!" 다시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라이너를 보며, 트레모스는 지금까지완 격이 다른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히유~. 저 녀석... 말이 안통해... 대체 왜 저렇게 무식한거야?" 점점 멀어지는 라이너를 보며, 트레모스는 중얼거리는 수준으로 다시 투덜거림을 시작했다. 라이너가 한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그 말을 듣던 트레모스의 머릿속에는 반박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넨아... 제발 빨리 좀 나타나라! 이러다간 내 수명이 반으로 확 줄어들지도 몰 라..." 한편 같은 시간, 리넨은 라이너와 트레모스가 자신을 찾으며 고생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태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식의 습득이란 단순히 책에 적혀 있는 글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지!" 리넨은 최근 접근하기 시작한 새로운 단계의 길을 닦으며 스스로에게 다짐의 말을 건냈다. 얼마 전 있었던 이노의 실험 후, 리넨은 혼자 있는 시간이 꽤 많아졌기 때 문에 이렇게 여유롭게 자유시간을 활용하고 있는 터였다. 이노가 리넨의 몸에 대한 결론을 대충 낸 다음 새로운 것에 대해 알아보겠다며, 혼자 연구실에 처박혔기 때 문에 리넨으로서는 꽤 자유로운 상황이 된 상태였다. 실험실 청소를 할 시간도, 이 노와 같이 실험을 하며 보내야 하는 시간도 모두 그에게 자유시간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시간 모두를 자기 수련 시간으로 잡고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몸 안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꾸 준한 노력이 필요할거야. 지금 뭔가 될 듯 안될 듯 한 상태니 더 꾸준히 이 상황을 유지시켜야 해! 더 이상 이노를 생각하며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집중은 잘 되겠 네~!" 리넨은 얼마 전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밝혔기 때문에 더 이상 불안한 마음으로 조 심스럽게 수련을 하지 않았다. 즉 오두막 바로 뒤에서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몸 을 자연에 맡기며 수련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척척 진행될 것 같던 그의 수련은 란의 접근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다. "야, 리넨! 뭐하는 거냐? 시간 많은거 다 이니까 정령 하나만 불러줘!" "......" "야! 리넨!" 자신의 말에도 리넨이 아무런 반응없이 두 눈을 감고 있자, 란은 고운 이마를 찌푸 리며 리넨의 몸에 손을 대려했다. "야! 내말 안들...잉?" 하지만 그녀의 손에 리넨의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리넨이 먼저 눈을 뜨고는 자신에 게 접근하려는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야!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날 건드리면 큰일난단 말야! 이때는 무방비 상태라 잘못하다간 지금까지의 수련이 헛수고가 될 수도 있어!" 란의 행동에 화가 난 듯, 리넨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아... 미안..." "...아니다. 내가 미리 말해두지 않아서 생겨난 일이니... 에휴... 그건 그렇고 아 까 뭣 때문에 왔다고 했지?" 리넨은 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과의 말에 자신이 너무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숨을 한번 고르고는 평상시의 잔잔한 어조로 바꿔 이야기를 이 어갔다. "방해되는거 아냐?" "......"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꺼낸 란의 말. 하지만 리넨은 그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듯, 두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마치 이미 방해 해놓고, 방해가 아니냐 고 물어보는 란의 말에 황당해 하는 듯 말이다. "리넨?" "...으응... 방해는 무슨... 말해봐." 이미 포기했는지, 리넨은 조금 전, 자신의 몸에 대한 변화를 머리 속에 기억시키고 는 란에게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아, 정령이 필요해서 말야." "정령?" "응! 너한테 필요한게 아니라면, 4대 정령을 다 빌려줬으면 해서 말야." 이미 이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리넨이 초급 정령 정도는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어느 정도 주변의 마나를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사실 도 같이 말이다. "4대 정령들은 왜?" "그..그게... 이노가 없는 틈에 연습... 좀 해보려고..." "연습?" 란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리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 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그게... 내가 쉐이트론에게 요리 강습을 받거든?" "뭐어? 요.리.강.습?" "그렇게 강조할 필요는 없잖아..." 자신이 생각해도 민망한 사실인 듯, 란은 고개를 숙이고 리넨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쉐이트론이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 "아, 내가 부탁했어! 앞으로 계속 이렇게 이노에게 당할 수만은 없잖아! 그리고 몇 가지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 말야..." "호오~, 그래서 도와준데?" "응! 뭐, 댓가가 필요하긴 했지만,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라..." "그게 뭔데?" 리넨은 쉐이트론이 움직였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흥미로운 눈빛을 거두지 않고, 란 을 주시했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내가 구해와야 한다는 거야... 그가 이노에게 요리할 때 필 요한 재료들까지 말이지..." "호오~! 그렇군~!" "그래서 4대 정령이 필요해! 두 사람이 요리할 재료와 연습용 재료까지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거든? 그 시간을 절약하려면, 정령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 야." 이제는 자신이 요리를 하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졌는지, 란은 당당하게 리 넨에게 정령들을 요구하고 있었다. "뭐, 그런 거라면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리넨의 곁에 순식간에 불, 물, 흙, 바람의 정령들이 그 모습을 드러 냈다. "다 쓴 다음에는 가라고 하면 될거야." "저...리넨... 이것들 내가 계속 사용해도 괜찮을까?" "잉? 왜?" 뭔가를 망설이는 듯 했지만, 린은 주먹을 불끈 쥔 후, 리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앞으로 괜찮은 음식을 만들려면 계속 필요할 것 같아서 말야." "쿠..쿡...음... 알았어! 계속 써. 어차피 초급 정령들이 필요로 하는 마나 정도는 별 상관없으니까 말야." 자신이 한 말이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란이었는데, 의외로 리넨이 쉽게 허락해주자, 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우와~! 고마워~! 내가 오늘은 정말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만들어줄게!" "그..그래..." 리넨은 란이 4대 정령과 함께 그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다가 그들의 기척이 모두 사라지자, 그때까지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크하하하하... 란이 요리에 저렇게 열성이라니... 쉐이트론에게... 배울 정도란 말인가? 쿠쿡... 그리고 뭐? 맛있는 식사? 크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긴지 알 수 없었지만, 리넨은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이나 웃은 후에 야 숨을 고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너무 웃었더니 힘이 다 빠졌네... 그건 그렇고 란과 쉐이트론이 이곳에서 요리를 하면 시끄러워질테니, 장소를 옮기는게 좋겠어. 크큭... 요리강습이라니... 재밌어." 그는 란에 대한 생각을 하는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방향을 숲 속으로 바꿔 걷기 시 작했다. "숲 속에서라면 방해는 받지 않겠지~! 어차피 늦어도 이노는 실험실에서 식사를 하 니까 내게 잔소리 할 리는 없을테고, 쉐이트론은 내게 별다른 관심이 없으니 말야. 흠~! 이 기회에 좀 멀리까지 가봐?" 리넨은 그동안 자신이 이 주변에서 갇혀 지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빽빽하게 우 거진 숲 뒤쪽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Name : 쎄쎄쎄 Date : 17-02-2002 14:17 Line : 501 Read : 7229 [14] <연금술사>-37-3 -------------------------------------------------------------------------------- -------------------------------------------------------------------------------- Ip address : 211.229.65.66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오두막집을 떠나서 무작정 숲을 걷던 나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멀지 않은 곳 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느낄 수 있었다. "어라? 몬스터들이잖아! 조금만 더 가면 이노의 영역이 끝나는 건가?" 오두막집 근처에는 몬스터들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알고 있던 사실 이었다. 그 이유가 이노가 오두막집 주변에 결계 비슷한 것을 쳐놨기 때문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결국 나는 몬스터들의 존재로 이노가 설치한 결계가 머지 않은 곳에서 끝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호오~! 꽤 오래 걸어왔다고는 느꼈지만, 결계의 끝을 보게 될 줄이야!" 그동안 이노의 감시 속에서 자유롭게 멀리까지 벗어난 적이 없었던 나는 작은 흥분 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괴한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고싶었던 것은 아니었 지만, 왠지 지금이라면 그 모습도 웃으며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던 나. 그동안 나는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며, 아무 생각 없 이 숲을 걸어왔었다. 즉, 편안한 자리를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앞으로만 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물론 그 결과 대략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걸어가 면서 나름대로 내 몸에 대한 정리도 끝낼 수 있었고... "이왕 몬스터들이 눈앞에 존재하니까,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 수련을 마저 끝내는게 낫겠다." 결계의 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인지 나는 수련보다는 우선 몬스터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결계앞까지 다가간 나는 그 생각을 바로 고쳐버려야만 했다. "우욱... 내가 생각을 잘못했었어..." 보기만 해도 역겨울 것 같은 괴물들... 잠시 나는 그들과 떨어져 지냈기 때문인지 괴물들의 악취와 생김새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었나 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 통의 몬스터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울퉁불퉁 마치 용암이 솟아올라 생기는 거품처럼 얼굴 여기 저기가 들쑥날쑥한 모습과 그 사이로 진물로 보이는 것 들이 흘러다니는 모습.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모습을 가진 몬스터들 이 눈앞에 서 있었다. "젠장! 저것들의 모습이 잠시나마 보고 싶어했다니... 내가 미쳤지." 그들의 모습을 보자 마자 나는 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그들을 보자마자, 나는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워워워-! 내 기척을 발견하자마자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내게 다려들었다. 오랜만에 적을 봤기 때문인지 그들은 마치 굶주린 늑대 마냥 쉴새없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내게로 달려왔던 것이다. "이..이곳에 있는 결계가 저들을 막는게 화..확실하겠지?" 순간 아무 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제자리에서 반걸음 뒤로 물 러섰다. 분명 내 앞에 결계 때문에 생겨난 이상 기류를 형성하는 마나를 느낄 수 있었지만, 힘차게 달려드는 몬스터의 박력에 불안감을 없앨 수 없었던 것이다. 콰쾅! 털썩! 한 마리의 몬스터가 내 앞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울퉁불퉁한 얼굴을 납작하게 뭉개며 뒤로 자빠졌다. 캉! 탕! 쿠다당! 털썩! 그 뒤 여러 마리가 더 그와 같은 행동으로 내 앞에서 뭉개 졌는데, 그들은 내가 보기 힘든 모습들을 연출하며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생긴 것뿐만 아니라 하는 짓도 역겹네...' 하지만 그런 몬스터들의 행동들은 이곳에 결계가 있음을 인식한 것인지 곧 끝나고 말았다. 아쉬운 듯 나를 향해 한번씩 으르렁거리고는 숲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흠~! 아무리 봐도 머리는 매우 뛰어난 몬스터들이야. 이곳에 못들어오는 것을 깨 닫고 나에 대해 포기하는 것 같으니 말야. 그건 그렇고, 확실히 이 안은 안전하군!" 나는 이노가 만들어 놓은 결계를 한번 다시 쳐다보고는 손을 들어봤다. 갑자기 손 으로 결계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륵! 내 손은 몬스터의 얼굴이 부딪힌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그 밖으로 빠져나가고 말았 다. "헉! 이..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치 결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 손은 자유롭게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 이다. 몬스터들에게는 존재하는 결계가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손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이상하군... 대체 결계를 어떻게 만들었기에 몬스터들만 골라서 막아주는 거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곧 호기심에 몸이 움직이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별 다를게 없는 것 같은 마나의 배열. 외부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만들어내는 결계와 별로 다를게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결계를 만들어도, 외부의 힘은 막을 수 있지. 하지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배열에 약간의 손을 봐야지만 되는 건데? 즉, 결계를 만든자가 아니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게 정석인데... 이건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때문인지 내 고개는 쉴새없이 좌우로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몬스터들만 막는다라... 흠~! 신기해! 밖에서 한번 살펴볼까?" 어차피 몬스터들이 다가오면 결계 안으로 들어오면 됐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망설 임 없이 발을 결계 밖으로 내딛었다. 그리고 스륵! 아무런 장애 없이 내 몸은 허공 의 결계를 가로질러 몬스터들의 체액이 흔건한 바닥 뒤로 옮겨졌다. "이쪽에서 한번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 뒤쪽에서 아까 사라졌던 몬스터들이 내 움직임을 파악했는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별 다른 걱정 없이 결계에 쓰인 마나의 배열에 대해 연구하기 로 했다. 어차피 그들이 다가와도 나는 단 한 걸음이면 안전을 확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오! 이거 결계가 하나가 아니었잖아? 안쪽에 하나, 밖에 하나... 그리고 중간 에도 있군! 안에서 보기엔 단순히 한 겹만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매우 얇게 세 겹이나 되어 있었잖아!" 이노의 치밀함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왜 이렇게 세 개나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하 기 시작했다. "근데 이상해. 왜 세 겹이나 되는 거지? 이게 세겹으로 되어 있어야지만 몬스터들 을 골라 막을 수 있는건가?" 마나의 배열에 있어, 몬스터들의 접근만 막는 특이한 점은 발견하지 못한 나는 고 개를 간간이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답을 찾기 전에 고개를 바로 세우는 일이 없었겠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몬스터의 거 친 숨소리 때문에 내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크흑크흑~! "이크! 이거 안쪽에서 생각해야지 안되겠네~!" 잠시 뒤를 돌아본 나는 녀석들이 육중한 몸을 날리며 콧바람을 휘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발을 결계 안쪽으로 빠르게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 인지 내 발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히기라도 하듯,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뭐..뭐얏! 이거 왜 이래?" 뒤에선 몬스터들이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게 보였고, 내 발은 막힌 결계 앞 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있었기에 나는 평상시의 배에 해당하는 박동수를 보이 는 심장을 느끼며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어..어떻게 하지? 왜 안들어가는 거야! 내가 몬스터도 아닌데, 왜? 호..혹시 외부 의 모든 것이 다... 모..못들어 가는!"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빠르게 움직이는 내 심장을 잠시나마 멈추 게 하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왜냐하면 그 생각은 지금 이 순간 몬스터들을 피해 결계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이 결계가 삼중으로 되어 있는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어! 즉, 외부의 침입만을 막는 거잖아! 다른 보통의 결계와 같이 말야! 안쪽에 있는 것 은 밖으로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거였고! 즉, 몬스터든 인간이든 안쪽에 있는 거라면 밖에 쉽게 나갈 수 있다는 거잖아! 그..그것도 모르고 행동을 했다니!" 휙!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결계에 대한 결론은 내릴 수 있었지만, 내 몸은 몬스터의 날 카로운 손톱과 이빨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안쪽의 결계는 아무 저항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이고... 밖의 결계는 안쪽에 설치된 것과는 다르게 모든 것의 침입을 막게 되어 있 는 거였어! 중간의 결계는 그 두 결계를 잇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모두 마나 배 열이 비슷해 같이 붙어있기도 쉽지! 그래서 처음에 내가 결계가 하나라고만 생각하 는 착각을 했던 것이고! 겨..결국! 헉!" 다시 휘둘러지는 몬스터의 팔에 나는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지금은 결계에 대한 생각보다 살아 남는게 더 중요했으므로. 그리고 몬스터 한 마리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뒤늦게 도착한 녀석들까지 나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젠장!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거잖아!" 그나마 빠른 몸놀림을 이용해 녀석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나는 무사히 몸을 날카로운 그들의 흉기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지만,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수는 없었 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 안전 속에서... '제기랄! 이노!!' 순간 이노가 오두막집 밖으로 멀리 가지 말라고 했던 말 보다, 그녀가 내 마나를 봉인한 행동이 머릿속에 떠올라, 순간 내 입에서는 그녀에 대한 욕이 흘러나왔다. '이대로라면 몬스터들의 공격은 피할 수 있겠지만, 포위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어! 포위가 되면, 그 뒤는 끝이란 말이다! 음... 어쩌면 좋지? 우선은 이들에게서 벗 어나야 하는데... 하지만 숲 안쪽으로는 더 많은 몬스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 고... 어쩌지?"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타액을 뿌려대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공격이 시 작되는 순간을 포착한 이후 그들의 다리 사이로 몸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총 다섯 마리의 몬스터들이 따로 따로 손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 사이의 빈 공간을 포착해 움직이는건 쉽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다가는 그들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어깨에 기다란 상처가 생기는 것을 감수하고 몸을 그들에게서 빼냈 다. 찌지지직! 어깨 위의 옷이 찢어지며, 살이 타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지만, 그 자리에서 고 통 때문에 멈칫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나는 몬스터들의 몸이 돌려지기 전에 앞을 향해 전력 질주를 했다. 아까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봐뒀던 커다란 나무 위 가 바닥보다는 조금 안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간다면, 조금은 버틸 수 있겠지! 나무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안전할 테니 말야!' 녀석들이 기다란 발톱을 이용해 위로 올라올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한 손으로 몸 을 지탱하고, 나를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올라오는 것도 수월할 것 같 지 않았고...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올라가서 시간을 번 후, 해결책을 모색하는게 낫겠어!' 빠른 속도로 나무를 향해 달려가 그 위로 기어올라갔지만, 나무 타기를 거의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바로 뒤에서 휘둘러지는 녀석의 팔 공격에 몸을 내줄 뻔했다. 휘익~ 퍽!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놀라 몸을 왼쪽으로 최대한 이동시키자, 옆구리 쪽에 녀석의 손톱이 깊게 박히는게 보였다. '이..이거 큰일날 뻔했군!' 힘을 잃은 것에 대해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던 나였지만, 이렇게 위기가 닥치 자 강자 앞의 약자가 어떤 심정이 되는지 뼈저리게 느끼며 다시 이노에 대한 분노 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나중에 이노를 보면, 바로 힘을 되찾던가 해야지 이거 안되겠어!' 나무 깊게 박힌 녀석의 커다란 손톱이 나무에게서 빠져나가기 전에 그것을 계단대 신 이용해 나무를 타던 나는 어렵지만 나무 위쪽으로 몸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한 번 올린 몸은 그 뒤 쉽게 슥슥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가장 높은 꼭대기까지 올라간 후에야 나는 겨우 한숨을 돌릴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쳐다보자, 우거진 나뭇잎들 밑으로 조금씩 으르렁거리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나무 자체가 크다 보니 아래가 까마득히 멀리 느껴지네...' 나무를 타고 올라와서 그런지 양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그리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은 녀석들이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그런 아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내 기우였는지, 녀석들은 내가 있는 나무 위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꽤 오랫동안이긴 해도 아래서 어슬렁거리다가 다른 곳으로 사라진 것을 보면 말이다. '히유... 그나마 다행이네... 이곳에서 내려가지 않는 한, 걱정은 없을 듯 하니... 하지만 이 위도 안전할 것 같지는 않군...' 몬스터들이 지상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나무의 중간 가지로 몸을 이 동시키고는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하아... 이거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네... 결계 안쪽에 있었으면, 이런 고생은 안했을 텐데... 이노가 결계를 저따위로 만들어놔서 내가 고생하는 거잖아! 제기랄!" 한번 열린 입은 계속해서 이노에 대하나 투덜거림으로 이어져갔다. "쳇! 하지만 이렇게 화풀이를 한다고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니 머리 좀 굴려봐 야겠군!" 지금 내게는 이노에 대한 화보다는 이곳을 빠져나가는게 가장 급선무였기 때문에 나는 잠시 이노에 대한 화풀이를 뒤로 미뤘다. '이건 이노를 신경쓰면서 수련했을 때보다 더 긴장하면서 해야 하는 상황이군. 쳇 쳇!'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고 잠시 이노에 대한 생각을 접어놨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튀 어나오는 투덜거림은 막을 수 없었다. '어디보자... 이노는 저리 제껴두고... 예전에 내가 어떻게 했었지? 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나는 쉽게 예전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예전 내가 이들에게서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기척을 모두 죽였기 때문이었지. 주변 마나의 흐름을 차단시키고 그 정지된 흐름 속에 내가 있었으니까 말야. 하지 만 지금은 그럴 수 없지... 내가 아무리 마나를 잘 다룬다고는 해도, 그렇게 자연 의 흐름을 막으려면 인위적인 힘이 필요하니까 안되는 거야. 이럴 때, 내가 마나의 흐름 그 자체가 되면 좋을텐...어...! 자..잠깐! 내 자신이 마나가 되면 몬스터들 을 피해갈 수도 있겠군! 그들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기척, 즉 더 자세히 들어가 면 마나의 흐름을 느끼기 때문이니까. 그럼, 내가 대기 중에 흘러다니는 마나와 같 이 움직인다면, 그들이 나를 공격하지는 않겠군! 하지만... 내가 내는 소리와 내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그들에게서 안전하게 해줄까?' 번뜩이는 생각으로 출구가 보이는가 했던 나는 다시 걱정스런 가능성들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방법이라도 터득해야 했기에 나는 주변을 경계 하며 두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은 이 방법이 그래도 가장 효과적이니 한번 시도해 보는게 좋을 것 같군. 마 나의 흐름이라는 것은 너무도 익숙하니 그것을 느끼는 즉시 내 몸을 맡기면 되겠지 ! 대기 중의 마나는 내 몸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통과할테니까! 그럼, 몬스터들이 마나의 흐름만을 봤을 때, 내 존재는 찾을 수 없는게 되는 거지. 즉, 멀리 있는 몬 스터들은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오지 않을거라는 말씀! 좋았어! 가까이 있는 것들 이야 냄새등으로 나를 찾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나는 이노가 없는 사이 몸 안에 저장해뒀던 마나들을 모두 대기 밖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런 것들보다 내 목숨의 안전이 더 중요한 것이었기에 아깝긴 했지만 망설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내 몸 안의 드래곤 하트는 이노가 봉인 시켜뒀기 때문에 그들이 느낄 수 없으니 상관없겠지... 그렇다는 것은 그 동안 내가 모아뒀던 것만 모두 비워내면 된다는 거고!' 몸 안이 순식간에 텅 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자, 그 뒤부터 나는 자연이 되기 위한 시도를 바로 할 수 있었다. 내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몸 안에 대기의 마나와 같은 량의 마나가 흘러다니는 것은 마법을 배우기 전부터 자연적으로 됐던 일이었기에 별로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흐름을 대기 의 마나와 같이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술이 필요했기에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가만히 있을 때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만, 내가 몸을 조금이 라도 움직이면, 이내 변해버리는 마나의 흐름 때문에 내가 대기의 마나가 되는 일 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흐르자, 내 몸은 더 이상 예민해질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 스스로 몸이 주변의 대기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마 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흘러다니는 마나를 느끼기만 해봤지 언제 그걸 따라해 본적이 있어야 지! 쳇, 처음이라 그런지 좀 어색하군...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테니 문제될 건 없어. 그리고 대기 중의 마나량은 그리 많지 않으니 이 정도는 조금만 예민하게 몸을 관리하면 돼!' 대략적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보이자, 나는 서서히 의식적이 아닌 무의식 적으 로 몸을 대기에 맡기기 시작했다. '예전에 주변의 마나를 더 잘 느끼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해왔는데, 살기 위해 다시 하게 될 줄이야... 그때는 느끼는 거였지만, 지금은 내가 마나 그 자체가 되는 거 니... 더 발전하긴 한건가?' 몸 안에 흘러다니는 마나들. 내 몸 전체를 마나와 같이 만들기 위해 나는 몸 구석 구석에까지 적은 양이지만 많은 마나를 흘려보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나는 더 높은 경지를 위해 몸 구석구석까지 마나를 보내 길을 만드는 일 을 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교롭게도 그와 같이 내 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살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다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하고자 하던 대로 몸을 움직 여야 하는군! 호오~! 즉 이득이 된다는 말이군. 좋았어! 이대로 가다가 내 몸이 완 전히 주변 마나의 흐름과 같아진다면 몬스터들도 잘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몸을 유지하는 동안 내 몸 안의 길은 저절로 만들어지겠군! 움직이면서 흘러 다니는 마나와 같은 흐름을 유지하는 건 힘들긴 하지만... 움직이면서 수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고 말야... 흐흐흐!' 조금 전까지 나는 이곳으로 나온걸 후회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버리자 곧 그 후 회의 감정을 없애버렸다.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건 어려운게 아니지. 여러 곳으로 분리할 수 있는 정 신력이라면 주변에 다가오는 몬스터들에 대한 경계와 내 몸에 대한 수련을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말야. 좋았어! 얼마 후면, 이곳에서 내려가도 별 문제 없겠군! 가까 운 곳의 몬스터들만 조심한다면 말야!' 이런 생각으로 상황을 정리한 나는 빨리 나무 위에서 내려가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 을 하기 시작했다. Ip address : 211.229.64.240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밥 먹을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를 쳐다보며 나는 잠시 나뭇잎들 사이로 하늘을 쳐다봤다. 아직은 푸른빛을 내고 있는 하늘. 해가 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은 것 같았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가? 아직 저녁 식사시간까진 꽤 남았지만, 배가 고프 네? 오늘은 란이 쉐이트론에게서 기술을 좀 많이 배웠으면 좋겠는데...'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실망이 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린 나는 그저 머릿속을 비우는 것으로 저 녁식사에 대한 생각을 끝마쳤다. "흠~, 이제 조금씩 움직이는건 괜찮으니 아래로 내려가 볼까?" 저녁 식사시간까지 맞춰 오두막에 도착하려면 빨리 아래로 내려가 결계 안으로 들 어갈 방법을 알아내야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완벽하지 않은 몸을 일으킨 후 나무 아 래로 천천히 몸을 이동시켰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나무 아래에는 몬스터들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 나를 위 협할만한 몬스터들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흐흐, 역시! 내가 기척과 소리를 죽이고, 마나까지도 대기의 흐름을 따르니 이쪽 으로 달려오지 않는군! 좋았어! 그럼 결계쪽으로 가볼까나?'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몸을 이동시킨 나는 한 발자국에도 급격히 변하는 마나를 느 끼며 그 흐름에 몸을 맞추기 바빴다. 나무 위에서는 상체만 움직이며 그 변화를 몸 에 적응시켰기 때문인지 몸 전체가 움직이자 약간의 오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크! 조심해야지. 이러다가 다시 아까처럼 녀석들을 불러드릴지도 모르겠군! 신 중에 신중을 가해야지!'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던 나는 결계 앞에서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됐기에 긴장을 조금 느슨하게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보자, 이 결계 안으로 들어가려면... 흠~. 무턱대고 발을 뻗을 수는 없는 노 릇이고... 어쩐다지?' 그냥 단순한 결계라면 책장을 열었을 때처럼 시간을 투자해 결계를 없앨 수 있었지 만, 지금 내 눈앞에 놓여져 있는 결계는 그 크기를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 단한 넓이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파괴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계의 흐름을 안다고 해도 파괴가 안된다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아! 잠깐만! 흐름을 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걸?' 나는 아까 처음 몬스터들의 기척을 결계 안에서 느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 결계 가 마나에 대해서는 무방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나에 대해 무방비 하다는 것은 내가 그 마나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쉽게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잖아?' 우연치 않게, 몬스터들을 피하려고 하기 시작한 일이 이렇게 쉽게 결계 안으로 들 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나는 흥분되는 마음으로 손을 천천히 결계 안쪽으로 내밀어봤다. 턱!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앞으로 내밀어진 손바닥은 단단한 장애물에 이해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음... 마나만 되는 거야? 마나를 담고 있는 나는 통과를 못한다는? 흠... 그럼, 이노와 쉐이트론이 이곳을 지날때는 어떻게 하는 거지? 이상하잖아! 그때마다 결계 를 부술 수는 없을텐데! 그건 말이 안되지!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그들이 매번 그 렇게 할 리가 없지. 그리고 그때마다 알 수 없는 녀석들이 이노의 오두막집으로 들 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거고... 그렇다는 것은! 결계 파괴가 아닌 다른 방법이 있 다는 말 아니겠어? 이노와 쉐이트론이 그 방법을 이용해 이곳을 들락날락 하는 것 이라는 걸 말야! 좋았어! 어차피 결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니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 이노와 쉐이트론이 하는데 나라고 못할리는 없지!' 나는 손을 결계의 벽에 댄 상태에서 조용히 몸의 힘과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밖으로 빼냈다. 그러자 흐물거리는 주변의 마나에 내가 동화되듯 내 몸 전체가 흐 물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흐느적흐느적. 내 몸을 주변 마나의 흐름에 맡기자, 내가 마치 투명인간이 되어버 린 듯 자유롭게 마나가 나를 통과해 왔다 갔다 하는게 간지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점점 마나의 느낌이 강하게 내게 다가왔다. 손에 닿아 있는 결계에 일 정한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는 마나도... '느껴진다... 복잡한 배열 공식은 모르겠지만, 그 마나들 사이의 틈이 느껴져...' 무력적인 힘이 아닌 마나의 흐름을 이용해 나는 천천히 그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빠져나가는 마나가 결계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 틈 사이로 빠져나가 는 것을 이용해 내 손도 같이 밀어 넣었던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결계가 물컹물컹하게 바뀌더니 이내 내 손을 어깨까지 잡아 먹어으며 나 를 안쪽으로 쓰러뜨렸다. "헉!" 갑작스런 변화에 내 손과 몸을 지탱하던 결계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나는 몸의 균 형을 잃고 그대로 결계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니 쓰러지려 했다. 즉 갑자기 몸 이 기우는 것에 놀라 손이 낀 상태로 마나의 흐름을 놓쳐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자 연 나는 결계를 사이에 두고 몸의 양쪽을 결계 안과 밖에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크! 큰일이다. 잠시 놀라 마나의 균형을 흩으러 뜨렸어! 음... 몬스터들이 오기 전에 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지!' 몸에 힘이 들어가자마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팔! 나는 다시 좀 전에 했 던 행동을 하면서 팔을 결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내 몸은 결계 안쪽으로 서서히 들어가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 에 내게 여러 번 골탕먹은 기억을 갖고 있는 몬스터들이 지금까지의 빠르기와는 비 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몸놀림을 보이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릉! '침착하자! 조금만 더 들어가면 안전해지니까, 지금은 저 녀석들을 신경쓰지 않는 거야! 침..착...' 생각은 이렇게 진행되었지만 몬스터들의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지자,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며 내 생각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침착해야해! 마나의 흐름... 그리고 그 마나가 흘러갈 수 있는 결계의 틈...' 점차 다가오는 몬스터들의 기척. 눈 깜짝할 시간이 흘렀지만, 그 기척은 내 등뒤에 서 숨결로 다가오고 있었다. 뜨거운 그들의 악취와 함께.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녀석들의 살기보다는 결계의 틈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찰싹! 결계 안 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굽히고 있던 나는 등뒤로 차갑고 찐득찐득한 뭔가가 넓 은 범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몸을 결계 안으로 완전히 이동시킬 수 있 었다. 크앙! 끼이이이익! 갑자기 너무 크게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입을 쩍 벌리고 결계에 이빨을 긁고 있는 몬스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히유~! 조금만 늦었어도, 저 입빨 사이에 내 등을 내줬어야 했을지도 모르겠군... ' 이빨 사이에 흐르는 타액을 본 나는 내 등에 묻은 차갑고 악취가 나는 액체가 바로 그것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쳇... 뭐 저렇게 더러운... 흐억!' 차가운 등뒤의 액체가 갑자기 염산이라도 되는 것 마냥 내 옷을 태우고 그 안의 내 살까지도 태우려는 듯 단백질이 타는 역겨운 냄새를 내며 내게 고통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이놈들의 침에도 독이 있었던 거야?" 놀라움도 잠시, 나는 살에 그 타액이 묻기 전에 옷을 찟 듯이 벗어 멀리 던져버리 고 말았다. 치지지직!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며 멀리 떨어진 윗도리는 순식간에 흐믈거리는 액체와 함께 녹아 땅위의 식물들과 함께 그 형체를 잃어버렸다. '자..장난 아니군! 조금만 더 늦었어도 내 등이 저렇게 될 뻔했잖아!' 등이 따끔거리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상처는 시 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히 치료할 수 있었으므로. 힐 마법. 간단한 힐 마법 정도라면, 등뒤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꽤 여러 번 마법을 시전해야 했겠지만, 나는 힐 마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치료하기로 했다. 어차피 마법이란 마나를 이용한 것! 주문이 아닌 마나 자체로 상처를 치료하는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자신이 마나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동화된 상태를 유지했으니 이 정도의 상처라 면, 쉽게 치료할 수 있겠지!' 내 몸을 자유롭게 관통하는 마나들. 나는 순간 그것들을 등뒤의 상처 쪽으로 집중 시키기 시작했다. 자연적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보다 모으는게 더 익숙했기 때문인 지, 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던 마나들이 순식간에 등뒤로 밀집하기 시작했다. 그리 고 그것들은 외부 이물질에 의해 본래의 성질을 잃어가는 등의 살들을 원래대로 변 화시키기 시작했다. 힐 마법처럼 밝은 빛도 흘러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등이 시원하게 변해가는 것 을 느낄 수 있었다. '손을 등뒤로 가져갈 필요도 없군! 매우 편리해. 훈련만 잘 한다면, 주문을 외우거 나, 시동어를 외쳐 마법을 시전하는 것보다 빨리 마나를 움직여 마법을 사용할 수 도 있을 것 같군! 아니, 그것 자체가 마법이라는 틀을 벗어날지도 모르겠어! 사람 들이 마법이라고 하는 범위는 그들의 생각에서 만들어진 거라 정확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그들이 마법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에서부터 마법보다 더한 것까 지도 마나를 이용한다면 넘나들 수 있겠지... 후훗!' 지금까지 간단한 마법 정도를 의지라는 것으로 마나를 이동시켜 시전해 왔던 나. 나는 이번에 대기의 마나자체가 되어봄으로써 그보다 더 강한 마법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익숙해지는 것이 문제야! 마나의 양이라는 것은 내 자체가 마나가 되면 별 상관이 없게 되는 거니까! 완벽하게 일치된다면 아무리 멀리 퍼져 있는 마나라고 해도 어 차피 내 영역에 속하게 될테니. 내 머리와 발끝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내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와 같이 말야. 내 자체가 마나가 된다면...' 지금의 나는 잠시 마나에 몸을 맡겨 의탁하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동화가 되는 수 준일 뿐이었다. 즉 내 생각대로 되려면 아직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 정도가 된다면... 클래스로 따져보면, 10 클래스는 될까? 아니 어쩌면 혼돈, 즉 마나 자체가 되는 것이니 이노가 말한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까지 가게 될지도. .. 후훗, 이건 생각이 너무 지나친건가?' 어깨를 으쓱한 나는 등이 아프지 않은 것은 느끼며 숙였던 허리를 폈다. '마나라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라는 것을 실감하겠어! 잠깐인데도 상처가 아물어버렸으니 말이야. 상처가 모두 치료될 때까지 머물던 마나가 치료가 끝나자 마자 다시 원래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어. 내가 그만두려고 하기도 전에 말 야... 스스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 마나는 알고 있기라도 한건가? 이노가 말 한 것처럼 마나가 혼돈,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하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고개를 돌려 결계 밖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언제 사라 졌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섭게 이를 갈던 몬스터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또 사라져버렸군... 그건 그렇고 시간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시간이 꽤 많이 흘러간 줄 알았지만, 하늘은 아까 쳐다봤 을 때의 색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좀 있다가 돌아가도 되겠군. 다시 한번 나가볼까?" 결계에서 왔다갔다하던 나는 결계 밖으로 나가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주변 마나 에 내 몸을 동화시키기 위해서는 긴장이 최고였기에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 는 결계 밖이 수련 효과가 더 좋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런 생각은 내 몸을 결계 밖으로 내몰았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좀 더 이렇게 돌아다닌 후 돌 아가면 되겠지! 이제 결계를 통과하는 법도 알았으니 말야. 그리고 혹시 몬스터들 을 만나면 아까 상처치유와 같은 방법으로 공격도 해봐야지. 피하는건 어느 정도 되니까 한 놈 한 놈씩! 유인이라면 할 수 있을테니... 후훗!' 몬스터들의 존재가 즐겁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몬스터들의 존재를 발견하기 전에 이상한 마나의 흐름에 잠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이거 뭔가 이상한걸?' 대기에 흘러다니는 마나와 같이 움직이던 나는 잠깐이긴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이상한 쪽으로 왔다갔다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이곳에 흩어져 있는 마나와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내 의지보다는 마나의 흐 름에 따라 움직였던 것 같군. 근데 이곳의 마나는 왜 이런 거지? 같은 자리만 맴돌 고 있을 뿐이잖아! 이런 상태에서 마나의 흐름에 나를 맡기면, 결계쪽으로는 가지 못하... 헉! 그..그럼 이곳의 마나가 이노의 장난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움직이는?' 결계쪽으로 가지 못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마나! 나는 그 마나가 결계로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종류의 결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계가 없어도 이런 이노의 장난이라면 오두막집으로 가기는 힘들겠군! 눈앞에 표 적이 보여 그것을 따라오지 않는 한 결계쪽으로 다가갈 수 없도록 되어 있으니... 흠~! 그럼, 몬스터들이 그곳으로 온 것도 내가 기척을 냈기 때문이겠군! 이곳의 몬 스터들은 외부인들의 인기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말야... 하지만 그런 기 척이 없으면 그들은 이곳으로 오지 않을거야. 그런데 왜 이런 장치를 해둔거지? 몬 스터들의 침입을 막으려면, 결계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텐데... 호..혹시?!' 갑자기 떠오른 라이너와 트레모스에 대한 생각들! 나는 혹시나 그들을 막기 위해 이노가 이런 장치를 해둔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트레모스는 몰라 도 라이너라면, 지금까지도 나를 찾아 떠돌아다닐 녀석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노의 입장에서는 나와의 계약 때문에 그런 그들에게 상처 입힐 수 없었고...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뒀다면, 오두막 안까지 들어왔겠지! 결계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이 쉽지만은 않지만, 라이너와 트레모스라면 꼭 찾아내고 말았을테니! 아니, 그 앞에서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말썽을 부렸을지도 몰라. 뭐, 어쨌든 이노를 귀찮 게 하는 결과는 같게되지! 귀찮은 것은 질색인 이노라면 그런 일들은 미연에 방지 해 뒀을 테고... 흠~! 그럼, 이런 것들이 그들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내 생각은 맞 을 확률이 높군!' 생각이 이렇게 흘러가자 나는 머지 않은 곳에 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가지 않고 있다면 만날 수 있을지도!' 이노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면, 그들을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든 나는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될 때까지 좀 더 돌아다녀볼 생각을 했다. 그들이 아직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으므로. '내가 결계 밖에서 돌아다닌걸 들키면, 어떤 제재가 가해올지 모르는 일이니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해 둬야지... 그럼 앞으로 가볼까?' 나는 이상한 흐름의 마나와 동화되어 있는 상태라 다른 쪽으로 움직이기 어려웠지 만, 일정 표적을 두고 몸을 움직이자, 생각보다 쉽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결계를 찾아 돌아오는 방법은 마나의 흐름과 반대쪽으로 움직이면 되는 거니 어렵 지 않겠지! 이곳에 흘러다니는 마나는 결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쪽으로 흘러가 고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한 나는 표적을 보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생각 보다 쉽지 않았다. 만약 이 상태에서 몬스터라도 다가온다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방향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주변의 아무런 방해가 없다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마나가 없으니 그들이 기척을 먼저 느끼고 피하면서 가면 별 무리 는 없겠군, 하지만 조심은 해야겠어!' 나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둘을 찾기 위해 앞으로 좀더 나가기로 했다. Ip address : 211.229.65.73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평화로울 것 같은 오두막집의 뒤뜰. 하지만 지금 그곳은 란이 저녁 식사 준비로 잠 시라도 조용하지 못했다. 콰쾅! 다시 들려오는 커다란 폭발음. 그것은 소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를 내뿜어 순식간에 뒤뜰 전체를 뒤덮었다. "코..콜록, 콜록!" 잠시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곳에서 갑자기 뭔가가 휙휙 움직이며 주변의 먼 지를 거둬내고 있었다. "란! 대체 불 조절을 어떻게 했길래 이런 폭발이 일어나는 겁니까!" 한번도 언성을 높였던 적이 없는 쉐이트론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연기를 뒤집어썼 는지 손을 빠르게 내젓고 있었다. "켁켁..."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란의 목소리. 그녀 역시 쉐이트론과 같은 상황 에 처한 것인지 심한 기침을 하며, 연기를 거둬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냐고욧! 정화!" 정화마법으로 먼지를 거둬낸 쉐이트론은 그답지 않게 화를 참지 못하고 란에게 소 리를 버럭 지르고 있었다. 두 시간째 반복되는 상황 때문에 그의 인내심에 금이 가 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의 무표정하던 얼굴도 오래 전에 잔뜩 찌푸려진 상태로 바 뀌었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뿌연 연기가 쉐이트론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사라지자, 아무것 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는 꽤 높게 쌓여진 깨진 그릇더미들과 란의 모습이 드러났다 울상이 된 란은 그곳에서 좀 전의 폭발로 깨진 그릇들을 모아, 옆에 있는 그릇 더 미 위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어떻게 해서 허리 높이까지 깨진 그릇들이 쌓여졌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아... 불 조절은 요리의 기초중의 기초입니... 하아... 그만두죠." 잔소리를 하려던 쉐이트론은 고개를 흔들며 입을 다물었다. 그가 보기에 검게 그을 린 얼굴과 헝크러진 머리를 하고 있는 란이 자신보다 더한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 았기 때문이다. "왜..왜 또 실패한거지?" 혼자 중얼거리는 란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운 심정이 가득 담겨 있었는지 그 소리를 들은 쉐이트론은 더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란, 당신이 계속해서 식사 만들기에 실패하는 이유는 조급한 마음과 한번에 성공 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인 것 같군요. 모든 일이 그렇듯, 성공은 쉽지가 않죠." 쉐이트론은 화가 나서 그만두려고 했던 요리 강습을 다시 시작하려는 듯, 란에게 충고조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화력 조절을 더 익히는게 좋겠어요. 정령을 이용하는 것에 서 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당신의 정령이 아니기에 더더욱 정령들의 힘에 대한 조절에 차질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직접 나뭇가지에 불을 지펴 요리하는 방법보다는 정령을 이용해 손쉽게 불을 만드 는 방법을 선택했던 란. 그 결과가 좀 안좋게 나오긴 했지만 쉐이트론은 그것 갖고 또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성격상 화를 잘 내는 편도 아니었고. "정령의 주인인 리넨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정령들을 다룰 수 있는 것을 보면, 정령술에 소질이 있는 것 같군요. 이참에 그냥 당신이 정령과 계약을 맺으면 더 좋 을 듯 한데... 그럼, 지금과 같은 사고는 최소한 줄어들겠지요?" 무참히 부서진 그릇더미들을 본 쉐이트론은 그럿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란 과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숨쉬는 횟수가 늘어나는 쉐이트론이었다. "네? 제가 직접 정령과 계약을 맺는 다고요?" 쉐이트론의 중얼거림에 란은 순식간에 눈빛을 180도 바꾸고는 더 자세한 설명을 그 에게 요구했다. "흠. 글쎄요. 가능할지 안할지는 아직 모르겠군요." "가능성이 아주 없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란은 언제 자신이 요리 때문에 침울해 했는지 기억 안 나기라도 하듯, 손에 들고 있던 깨진 그릇들을 멀리 던지고는 손을 털며 쉐이트론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에게 도 리넨과 마찬가지로 정령은 실생활에 매우 필요한 것들로 인식되었던 모양이다. "물론 가능성이야 있죠. 하지만 당신이 정령을 부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군요 ." "한번 해봐요!" 두 눈을 반짝이는 란을 바라보며, 쉐이트론은 자신이 말을 잘못 꺼낸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잠시 해봤다. 지금 상황이 요리 배우기보다는 정령 부리기 쪽으로 넘어가 는 것 같았기에... "하아... 좋습니다. 어차피 당신이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면, 요리하는게 더 쉬워질 수 있을테니까요..." "네!" 쉐이트론은 란이 정령과의 계약 때문에 눈을 반짝이는 것인지,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요리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두 시간 째 계속되는 일을 반복하던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정신적으로 녹초가 다 된 상태였다. 마나의 흐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걸어가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여러 곳으로 정신을 분산시킬 수 있었기에 지금까 지 몬스터들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피로가 쌓이는 근육들을 바로바로 풀어줄 수 있었고... '이거 보통 힘든게 아니군! 두 시간 갖고는 익숙해지지도 않아! 하지만 몸만은 가 뿐하군. 마나와 동화되는 것 때문에 꽤 많은 이득을 보고 있어. 의도하지 않았는 데도 몸 전체를 통과하는 마나가 몸에 쌓이는 피로를 바로바로 없애주니까 말야.' 하지만 그래도 힘든건 힘든 것이었다. 그것이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거라도 말이다 보통의 짧은 거리라면 별 생각 없이 발을 옮길 수 있었지만, 이노가 마나에 장난 을 쳐둔 이곳에서는 그 짧은 거리동안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길을 잃고 마는 사 태가 벌어질 수 있었기에 나는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라이너와 트레모스가... 있기는 한건가? 아무리 천천히 앞으로 걸어온 거라지만 주변에 그들의 기척으로 생각되는게 발견되지 않고 있잖아!' 나는 그들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걸어온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이대로 계속 앞으로 가다보면, 저녁 시간까지 오두막집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인데... 그들이 있으리란 확신이 없는 이상 앞으로 더 가는 것은 무모한 일이겠지...' 한숨을 푹 내쉰 나는 그 자리에서 방향을 돌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돌아가는 방법은 결계 쪽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마나 때문에 지 금까지완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게 뻔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나는 더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방법이 아니면, 결계 쪽으로 다가갈 수 없었으므로. 하지만 그래도 내 등뒤 쪽에 대한 미련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등을 돌려야 하는 걸까 ? 음... 하지만 그들이 있을거라는 것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인데... 하아~. 그렇다 고 그냥 가자니 미련이 남고... 에잇! 모르겠다!' 결국 나는 이대로 미련을 갖고 돌아가느니 저녁 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더 앞으로 나가보기로 결정했다. 다음에는 이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기에... '미련을 갖고 돌아가면, 다음에 분명 이곳으로 또 돌아올거야! 하지만 다음이라는 기회가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이노가 실험을 언제 끝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즉,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는 말씀!' 나는 조금 억지가 있는 말들로 자신을 설득시키고는 다시 아까 가던 방향으로 걸음 을 옮겼다. 멀리 갈수록 돌아오는 길이 어려울게 뻔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 라이너와 트레모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에 내 발걸음에 대한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하아~, 이렇게 걷고 있긴 하지만, 이건 분명 고생을 자처하는 일일 뿐이야... 손 해보는 일은 하지 말자는 주의인데 이러고 있으니... 정 때문인가? 그들에 대한... 흠~.' 이곳에서 내가 아는 인물은 몇 안됐지만, 그 중에서도 라이너와 트레모스는 내게 각별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던 모양이다. 어리석은 일임이 확실한데도 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뭐, 이렇게라도 안하면 나중에 후회할게 뻔하니 어쩔 수 없지~. 크큭, 리넨아~, 너도 많이 변했구나. 큭큭.' 그런데 그때였다. 내 앞으로 멀지 않은 곳에 몬스터가 있음이 포착된 것이다. '이크! 이렇게 웃다가 녀석들에게 다가갈 뻔했군. 이 상태에서 몬스터 때를 만나면 , 내가 그 녀석들을 상대해야 할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기척은 더 이상 숨길 수 없게되지... 그러면... 순식간에 다른곳 에 있던 여러 몬스터들이 내게로 몰려올테 고...' 끔찍한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으며 발의 방향을 옆 으로 돌렸다. 총 6마리의 몬스터 때가 내 쪽으로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회하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라? 저 녀석들이 왜 저러지?' 내 쪽으로 걸어오던 몬스터들은 마치 새로운 먹이라도 발견한 듯 빠른 속도로 나와 는 반대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 후, 녀석들의 기척이 모두 사라지자, 옆으로 돌렸던 나의 발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고 말았다. '먹이라도 발견한 건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 저 녀석들은 이곳에서 저런 식으로 먹 이에게 다가가지 않은데? 그것이 외부 침입자라면 몰라도.' 죽음의 숲이 녀석들에겐 쾌적한 환경임을 지겨울 정도로 잘 알고 있던 나는 조금 전 녀석들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껴야만 했다. 즉 먹이가 풍부한 이곳에서는 먹이 경쟁을 위해 저렇게 달려드는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그렇다는 것은! 혹시 녀석들이!' 몬스터들이 갑자기 달려간 이유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한의 속도로 몬스터들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걷는게 한계였던 내 발은 몬스터들을 쫓아가는 내 마음을 따라잡지 못해 결국 움직임을 멈춰야만 했다. "젠장! 어차피 주변에 몬스터란 몬스터들은 아까 달려간 쪽으로 몰려간 것 같으니 이렇게 조심하며 걸어갈 필요는 없을거야! 만약 녀석들이 몬스터들의 표적이 되었 다면, 그들은 내가 아닌 녀석들을 쫓을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사라진 몬스터들의 기척을 잃어버리면 녀석들과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워져! 이곳에 흘러 다니는 마나 는 제멋대로 움직이니까!"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멈춰졌던 내 발은 매우 빠른 속도로 몬스터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경우는 딱 두 가지 뿐 이었다. 즉 의지를 갖고 마나의 흐름을 조정해 움직이는 것과 몬스터들이 움직이 는 것처럼 하나의 표적을 정해두고 그 표적의 기척을 향해 다가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첫 번째에서 두 번 째로 걷는 방법을 전환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기척이 사라진지 얼마 안됐으니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라이너와 트레모스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 발의 속도에 박차를 가 했다. 그리고 그런 발의 움직임은 달린지 얼마 되지 않아, 먼저 앞으로 달려간 몬 스터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다. '히유~. 겨우 다시 찾았네! 아직도 달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목표물을 찾지 못 한... 헉! 멈추잖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달려오던 나는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느낀 이후 가슴이 흥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움직임을 멈춘 곳에 꽤 강한 기운 이 퍼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기운이... '이..이건 분명 녀석들이다!' 꽤 만은 생물체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중에서 단 두개의 기척을 따 로 뽑아 낼 수 있었다. 바로 라이너와 트레모스의 기척을! "녀석들이군! 크큭! 역시 있었던 건가?" 마나와 동화되는 것을 멈추지 않은 나는 쉬지 않고 먼 거리를 달려왔지만, 전혀 지 쳐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정신적으로는 꽤 피로해 있던 상태였다. 마나 와 동화되는 것이 아직은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정신적 피로도 녀석들의 기척을 느낀 후에는 바로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라 이너와 트레모스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런 피로마저도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 문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Ip address : 211.229.64.139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서걱! 촤라락! 라이너의 다크로드가 간단하게 한번 휘둘러지자, 그의 앞에 있던 몬 스터의 몸에서 녹색의 피가 뿜어져 나와 잠시 그의 시야를 가리고는 땅바닥으로 떨 어졌다. 간단한 검의 휘두름만으로 위협적이던 몬스터들의 손과 발을 몸체에서 분 리해 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간단한 동작은 꽤 오랫동안 해왔는지, 라이너의 주 변에는 조금 전에 분리되어 떨어진 몬스터의 신체 일부가 꽤 많이 널려 있었다. 어 떤 것은 아직 신경이 죽지 않았는지 꽤 크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히유~! 라이너 녀석, 예전에 힘들게 싸우던 때와는 전혀 틀린 모습인걸? 하긴, 내 가 오두막집에서 지냈던 동안 녀석은 이곳에서 지금처럼 몬스터들을 상대했을 테니' 눈부시게 발전한 라이너를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이 변했네. 특히 저 뒤에 있는 트 레모스는 더더욱 말야.' 뭔가 불만인 듯 투덜거리는 트레모스의 모습에 나는 뜻밖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의 성격을 보면, 라이너의 뒤를 투덜거리며 따라갈리 없는데, 지금 보면 그런 것 같으니. 흠~, 이상해. 그 사이 녀석의 성격이 변한건가?' 투덜거리긴 해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트레모스의 모 습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와 있을 때 이외에는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싫어하는 녀석 앞에서는 말이다. '내가 알기로 녀석은 라이너를 싫어했을 텐데? 그런 라이너와 함께인 상태에서는 더더욱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테고... 확실히 이상해! 혹시, 내가 없는 사이 둘 사이가 조금은 친해진 건가?' 수풀 뒤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라이너, 트레모스를 관찰한 나는 그럴 가능성이 크 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좋은 징조야. 후훗! 라이너의 경우 사교성이 부족했는데 말야. 괜 찮은 친구를 만든 셈이군. 트레모스도 성격이 많이 좋아진 것 같고~!' 둘의 변화에 나는 흐뭇한 미소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나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들 앞에 나타나면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몬스터들을 피해 다니 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으므로. 마나와 동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 뭔가를 공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격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덩어리로 만들기 위해선 따로 마나를 끌어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격이 아닌 치유를 위해서라면, 마나는 신기하게도 스스로 더 많은 양을 내 몸 안으로 끌어들여 상처를 치유했다. 하지만 공격 쪽으로는 내 의지가 작용해야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상황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의지가 작용해 모은 마나는 초급 마법 정도의 공격력 밖에 만들 수 없었으므로 더 더욱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고... 초급 공격 마법 정도로는 이곳의 몬스터를 죽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상태라면, 앞으로 나서 저들에게 짐이 되는 것보 다 이렇게 뒤에 숨어 있어 주는게 그들을 돕는 거지.' 이런 생각이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보고싶어 하는 내 발을 제 자리에 묶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꽤 많이 모여든 몬스터들이었지만 라이너와 트 레모스는 순식간에 녀석들을 모두 처리했던 것이다. '흠~, 이제 보니 트레모스 녀석, 그렇게 꺼려하던 마법도 마구 쓰고 있잖아? 예전 에 나와 함께 있었을 때는 이노에게 들킨다고 그렇게 마법사용을 꺼리더니 말야. 쳇.' 녀석의 행동에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트레모스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나는 그런 생각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라이너! 조금만 쉬었다 가자!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같은 자리만 빙빙 돌고 . 여길 봐! 주변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잖아. 며칠 전에 이곳을 지날 때 죽 였던 몬스터들이 썩고 있는 냄새라고!" 많이 지친 듯, 트레모스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라이너는 그가 말만 저렇게 힘없이 할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앞으로 걸 어갈 뿐이었다. "라이너!" "난 리넨님을 찾기 전까지 쉴 생각이 없으니, 쉬고 싶으면 혼자 쉬도록 하시오." '허허... 트레모스가 저런 말을! 예전 같았으면, 라이너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혼 자 다른 곳으로 갔을텐데... 확실히 변했어, 둘다.' 나는 그 둘의 대화가 너무 재밌어 미처 앞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들과의 재회를 뒤로 미룬 것이다. "매일 리넨, 리넨! 히유~. 지겹지도 않냐? 리넨 녀석이야 잘 지내고 있을거라고! 네가 서두른다고 해서 녀석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야. 우리가 왜 그녀와 안 만나고 있는지 아냐? 우리가 그녀와 함께 있는 리넨에게 다가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이곳에서 뱅뱅 돌고 있는 것도 그녀의 손안에서 놀고있는 것이고! 아직도 모르겠냐? 서둘러서 그녀의 장난에 보조를 맞출 필요가 없단 말이다!" 트레모스는 그동안 쌓였던걸 폭발시켜 버리기라도 하 듯 커다란 목소리로 멀어져 가는 라이너의 등을 쳐다보며 침까지 튀기며 말을 내뱉었다. "야! 어딜 가!" 하지만 점점 멀어져 가는 라이너의 뒷모습에 트레모스는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는 사라지려는 라이너의 뒤를 쫓듯 뛰어가야만 했다. '우..우와! 세상에 이런 일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자, 나는 잠시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 시간이 없는데... 잘못하다가는 저녁 시간 에!' 라이너와 트레모스를 찾은 지금, 나는 미뤄뒀던 문제가 다시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저 녀석들! 왜 이렇게 빠른거야?" 몬스터들을 무리 없이 쫓아온 나였지만, 저 둘은 몬스터들 보다 훨씬 빠른 듯, 아 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힐 수 없었 다. '젠장! 괜히 늦게 말 걸어서 이게 뭐하는 거야?' 숨이 목구멍까지 차 오를 정도로 한참을 달린 후에야, 나는 겨우 트레모스의 모습 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헉헉... 겨우 따라잡은 것...이 아니군.' 몬스터들에 의해 걸음을 멈춘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몬스터들의 존재가 매우 고맙 게 느껴졌다. 몬스터가 아니었으면, 나는 꽤 오랫동안 좀 전처럼 무리해서 달려야 했으므로. "헉헉... 확실히 이노의 실력은 대단해! 라이너와 트레모스가 결계와 전혀 다른 방 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야."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나는 이제 그들에게 방해가 되고 안되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 다. 좀 전과 같은 실수를 또 할 수 없었기에 바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는 라이 너와 트레모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야! 나 좀 봐라! 사람 무안하게 무시하는 거냐?"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그들 사이로 걸어갔지만, 나는 마치 내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행동하는 그 둘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헉! 리..리넨님!" "뭐얏? 리..넨?!" 내가 소리를 지른 후에야 뒤늦게 그들은 내 존재를 발견했는지, 아까 보여줬어야 할 반응들을 그제서야 보여줬다. "너 기척도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아..아니, 어떻게 여기 있는 거냐? 그녀는 ? 그녀에게 잡혀 갔었잖아?" "리넨님, 괜찮으신 겁니까? 어디 다치신 곳이라도?" "가만 있어봐! 지금 리넨이 문제가 아니잖아! 이곳에 그녀가 나타났다면, 우린 죽 은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조용히 하는 건 당신이오! 지금 중요한건 무엇보다 리넨님이란 말이오! 리넨님, 괜찮으신..." "그마~~안!" 내 존재를 재차 확인한 그들은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해치운 후, 내게 단숨에 다가 와 궁금한 사항들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도가 좀 지나쳤기에 나는 결국 손을 들어 그들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한 만남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동안 입을 다물고 다니기라도 한거냐? 천천히 하나씩 물 어봐라! 이곳에 이노는 없으니까, 그렇게 걱정할건 없다고. 라이너부터 물어봐." 트레모스보다 라이너가 더 반가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녀석이 내게 더 큰 관심을 보여줬기 때문인지 나는 옆에서 뾰루퉁하게 입을 내민 트레모스를 간단히 무시한 후, 라이너를 쳐다봤다. "아~, 리넨님!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넌 언제나 내 몸 걱정뿐이구나. 난 괜찮다. 내가 어디 다칠 사람이냐? 다치더라도 치료하나 만큼은 완벽하게 하는 주의니 걱정할 건 없...는데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꺼냈지만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라이너 때문 에 나는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심각해지면 눈물이라도 흘릴 눈을 하 고 있는 라이너 때문에 말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리넨님이 이곳까지 얼마나 위험하게 오셨으면, 상의도 다 잃어버리시고... 상처는 없는 것 같지만 힘드셨..." "하아~. 라이너야... 본래 모습을 드러내라고~. 내 말을 싹 씹던 녀석은 어딜 갔나 ~." "트레모스!" 라이너가 내 앞에서는 한없이 걱정 많은 사람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트레모스도 알 고 있었지만 평소 라이너에게 불만이 많았는지, 녀석은 시비조의 말로 라이너의 화 를 돋구고 있었다. 따끔한 내 말에 트래모스가 입을 다물긴 했지만 라이너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그 후에도 한참동안 트레모스에게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냈다. '음... 라이너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좀 무뚝뚝하긴 하지... 좀이 아니라 많 이...' 눈빛의 강도가 좀 세지는 것을 본 나는 제 삼자 입장에서도 등골이 시려오는걸 느 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선이 내게로 옮겨진 이후, 라이너는 더 부드러워질 수 없 는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후훗, 라이너, 그렇게 걱정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라.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는 나니까 말야." 내가 라이너와의 대화를 이어가자, 옆에 있던 트레모스가 다시 시비조의 말을 꺼내 며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런 녀석이 웃옷을 잃어버리냐?" "트레모스!" 녀석은 그동안 라이너에게 많은 무시를 당해왔는지, 기회만 있으면 나와 라이너의 대화를 방해하며 시비를 걸었다. 마치 더 이상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듯. "왜! 내가 틀린말 했냐?" "하아~, 아니다 아냐. 내가 웃옷을 잃어버린 건, 힘이 봉인됐기 때문이야. 이노가 실험을 한답시고 드래곤 하트를 봉인 했거든? 뭐, 그래도 이 상태로도 내 몸 하나 는 무사히 지킬 수 있다고! 내가 이곳까지 무사히 온 것을 보면..." "힘을 봉인당해?" "리넨님!" 내 말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그들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게 다시 질문을 해왔다. "하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말 좀 끊지 말아라! 뭐가 그렇게 급 한 거냐?" "아, 죄송합니다." "흥!" '녀석들... 좋은 쪽으로만 변한건 아닌가 보군. 하아~.' "힘을 봉인당한건 그녀와의 거래였어. 뭐, 나중에 봉인을 풀기로 했으니 별로 걱정 할건 못되지."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연 나였지만, 트레모스는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도망 나왔는데, 어떻게 봉인을 푸냐? 설마 다시 돌아간다는 말은 아니겠지 ?" "엥? 도..도망? 누가? 내가?" "아닙니까?" 라이너와 트레모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설마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입에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하려는 듯. 하지만 난 도망이라는 단 어는 생각한 적이 없었으므로 녀석들의 뜻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난 돌아갈거야. 도망이라니! 계약은 계약이라고. 그리고 이노와 같이 있으면서 난 조금씩 발전하고 있어. 별로 나쁠게 없는 상태에서 도망가듯 그곳을 나올 수는 없다고." "그 마녀에게 돌아가겠다고? 지금은 무사할지 몰라도 그녀가 언제 돌변할지는 모른 다고~! 하지만 네가 발전한건 맞는 모양이네~! 바로 옆까지 왔는데도 기척을 못느 낀 것을 보면 말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트레모스와 불안한 듯 이마를 찌푸린 라이너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이 변하지 않았음 을 녀석들에게 알렸다. "뭐, 돌아가시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저도 같이 갈 것입니다." 내가 라이너를 두고 혼자 돌아가리란 사실을 녀석은 알고 있었던 건가? 굳은 의지 가 담긴 목소리가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난 혼자 갈거야! 내가 너희 둘을 찾아 결계를 나온 이유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너희들에게 더 이상 고생을 하지 말라고 알려주기 위해서였어! 이노와의 생활이 내 게 위협이 아닌 도움을 주고 있기에 그 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러니 먼저 돌 아가 있어. 이곳 생활이 끝나면 곧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테니" 중간에 라이너가 내 말을 끊으려 했지만, 나는 그 전에 손을 들어 녀석의 입을 막 아버렸다. 이들을 데리고 이노의 집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격이 제 법 관대한 편이긴 했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항이 이들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면, 바 로 차가운 얼음으로 돌변해 이들을 헤칠지도 몰랐다. 내겐 그녀와 계약할 다른 조 건도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이노의 오두막집, 죽음의 숲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됐다. "내 말을 거역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라이너. 그리고 트레모스! 너는 라이너를 데 리고 이곳을 떠나줘!" "쳇 그런거냐? 그럼 뭐야! 지금까지 우리가 무슨 고생을 한거야? 너한테 이 말을 들으려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몬스터들의 역겨운 냄새나 맡았던 거야? 나타날거면 좀 더 빨리 나타날 것이지!" 강한 반발심이 들어있는 목소리였지만, 녀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뭐, 좋아! 이곳에 더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너도 그녀와 함께 지내는게 괜찮다니 우리가 이곳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겠지. 네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이곳에 있었던 거니까 말야. 그렇지 라이너?" "......" '라이너...' "...저는 그래도 리넨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야! 그녀의 손짓 한번에 나가 떨어져서 죽을 고생을 했던 녀석이 그런 말이 나오 냐?" 트레모스의 참견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기절해 있을 때, 녀석이 다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뭐? 이노가 공격을?"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나는 라이너의 몸을 다시 한번 천천히 훑어봐야만 했다 혹시라도 그때의 상처로 몸이 불편하거나 하진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 만 라이너는 아무렇지 않은 듯 괜한 말을 한 트레모스에게 불만 어린 눈빛을 보내 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리넨님." "흠~. 그래!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서 다치거나 하지는 말라고. 그리고 라이너!" "네!" 라이너를 데려갈 수 없었기에 나는 크게 숨을 들여 마시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명령이다. 이노의 오두막집에 너와 함께 갈 수 없어! 혼자 내가 그곳을 나왔 으므로 난 혼자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넌 트레모스와 같이 죽음의 숲을 나가있어라." "......" 명령이라는 말이 나왔는데도 녀석은 쉽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하는 말 을 거역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기 때문인 듯, 녀석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 을 회피하고 있었다. "라이너! 대답이 없구나!" "...그럼, 그 결계라는 곳까지 만이라도 같이 가겠습니다. 지금의 리넨님은 힘이 봉인당한 상태라고 하셨으니, 혼자서 가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내 뜻이 굳었음을 깨달았는지 라이너는 한 박자 정도를 쉰 후에야 겨우 내 뜻에 간 접적으로 동의해 줬다. "히유~, 난 또 이곳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하는 줄 알았네. 뭐, 결계까지라면 같이 가주지! 그곳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곳이길래 그동안 못찾았는지 궁금하기도 하 고 말야." 트레모스는 나와 라이너 사이의 긴장감이 사라지자, 과장된 말투로 우리 사이에 끼 어들며 분위기를 풀어줬다. Ip address : 211.224.12.98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뚜벅, 뚜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석실 안으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 지고 있었다. 뚜벅뚜벅. 코앞도 보이지 않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그 발자국 소리는 규칙적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사내의 거친 숨소리... 사내는 마치 숨쉬는 것이 너무 어려워 곧 그대로 세상과 하 직 인사를 할 것처럼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내의 걸음걸이가 빨랐던 것은 결코 아 니었다. 오히려 그의 발자국 소리는 너무 느린 축에 속했다. 하지만 그런 속도와는 상관없이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드는 듯, 사내는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너무도 힘들어 곧 쓰러질 것 같은 사내. 하지만 그는 결코 멈추고 싶은 마음이 없 는 듯, 규칙적으로 발을 내딛었다. 스윽, 스윽. 손바닥이 벽을 스치는 소리가 거친 숨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려왔다. 벽을 이루는 돌들은 모두 차가운 냉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 손을 대고 있는 것만으 로도 손이 얼어붙을 것 같은 느낌을 뿌리칠 수 없었지만 사내는 아무런 거리낌 없 이 꽤 오랫동안 이곳의 돌에 손을 얹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죽은 시체처럼 산 사람 의 온기를 거부하는 돌들을 무시한 채 사내는 벽에서 손을 떼지 않은 것이다. "오랜만에 와보는 군..." 규칙적이던 발자국 소리가 멈추자 그 대신 나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복도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사내는 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 졌다. "예전엔 이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는데... 죽을 때가 된건가? 콜록 콜록. 이곳 이... 포근하게 느껴지니 말야... 흐흐... 콜록 콜록." 심한 기침소리와 함께 입을 연 사내는 힘겹게 육중한 석실의 문을 열며 그 안쪽으 로 발을 내딛었다.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문안의 장소가 어떻게 생겼 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문이 열림과 동시에 복도의 냉기보다 더한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봐서, 그 안은 더욱 사람의 온기를 거부하는 돌들로 이뤄져 있으리란 추측만 하 수 있었다. "콜록 콜록. 내 마지막도 이곳에서 보냈으면... 그럼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군. .." 사내는 어둡고 습한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보 통의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나가고 싶어하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니! 그는 이곳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추억이라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빛이 없는 상태에서는... 콜록 콜록, 처음... 와보는 건가? 매우 불편하군. 어머 니께서는 이런 곳에 오래 계시면서도 아무런 불평도 없으셨는데..." 과거를 회상하는 듯 사내의 목소리는 조금은 몽롱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차갑고 습한 석실 안쪽으로 들어가 구석 쪽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석실 안은 냉기 가 너무 강해 쥐조차 살고 있지 않은 그들이 좋아하는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서는 그 어떤 설치류들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털썩. 몸을 가눌 힘이 없었던 것인가? 사내는 구석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이내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몸을 작게 웅크리고 는 모아진 무릎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 그곳에 또 머리를 얹었다. "어머..니..."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듯 그는 작게 어머니를 불러봤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 는 심하게 갈라져,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하나 둘 씩 털 어놓았다. 마치 자신의 옆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어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라 도 하듯 말이다. "저는 어머니 말씀대로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콜록 콜록 이 길이 올바른 길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모든 것을 잃고, 마음 속의 욕망 마저 지우고 뒤돌아보니 코..콜록 콜록, 켁켁... 하아, 하아... 어리석은... 하아. .. 길이었더군요. 인간이 어리석은 존재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땐 저는 예외라고 생각했는데, 크윽.. 저도 욕망이란 덫에 걸림으로써 그 어리석음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께서 해주신 주옥같은 말씀을 잊은 대가겠지요. 콜록 콜록. 마지막... 어머니께서 평소와 다르게 변한 모습을 보았을 때는 배신감을 느꼈었는데, 그것은 제가 아무것 도 모르는 상태여서 그랬던 것 콜록 콜록, 흐윽.... 같습니다. 지금 어머니의 말씀 을 듣게 된다면, 그때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크륵크륵. .." 그는 꽤 천천히 말을 하고 있었다. 말보다는 중간 중간에 심할 정도로 터져 나오는 심한 기침 때문에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조차 매우 버거워 했던 것이 다. "크..크윽!" 가슴을 주먹으로 여러 번 친 사내는 숨을 계속해서 모아 쉬며 기침을 가라앉혔다. "라이스만... 어머니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어떻게 저를 보좌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제 옆에서 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던 일종의 해결사라는 생각만 갖고 있을 뿐이었죠. 크윽, 콜 록콜록. ...그래서인지 저는 그 자를 너무 믿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파멸의 길 로 간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죠. 콜록콜록, 크륵. 하아~, 하아~... 그 자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시작은 저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만을 탓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에는 라이스만, 그자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긴 후부터 일이 이상 한 방향으로 흘러갔으니까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는 지금처럼... 제 정신으로 돌아와 있는 시간을 조금밖에 가질 수 없습니다. 라이스만이라는 편안한 존재에서 두려운 존재로 바뀐 이후부터는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지 더군요. 아마 머지 않아 어머니 앞에서 용서를 빌게 될 것 같습니다. 크르...켁켁. .. 콜록콜록! 물론 하아... 그 전에 라피에르를 만난다면 녀석에게 먼저 빌어야겠 지만요... 그리고 그 후에는 리넨과 아버지에게도... 용서를 빌어야겠군요. 그럼.. 그럼, 전 다시 착한 아들이 될 수 있겠죠?" 사내가 고개를 들자, 그의 눈가에 고였던 뭔가가 주르륵 사내의 볼을 타고 내려와 딱딱한 석실 바닥을 때렸다. 또옥~. 또옥~.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는 한참동안이나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전 그 자가 두렵습니다. 그 자가 해내는 일이나 일으키고 있는 일들은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잔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것보다는 제가... 제가 그 런 일을 그 자에게 의식도 없이 시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크윽, 콜록콜록. 지금 처럼 정신이 돌아와 있는 상태가... 될 때마다 생각을 하며 제가 해온 일을... 크 윽. ...정리해 왔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라이스만, 그 자가 더욱 두렵게 느껴집 니다. 마치 제가 그 자에게... 이용당하는 것 같아, 소름이 돋습니다. 어머니께서 는 느껴보셨습니까? 무의식중에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온 몸을 그 사람의 피로 범벅하고 있는 콜록, 켁켁... 크읍 퉷! 하아... 하아... 그런 저 자신을 말입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그건... 지옥입니다.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꼭두각시만이 남아 있다는 느낌... 그것을 떨쳐버릴 수 없기에 제 가 있는 이곳은 하아~, 하아~. 순간 지옥으로 변해버립니다. 왜... 왜 제가 이렇게 변했죠? 제 손으로 어머니를... 죽였기에 벌을 받는 것일까요? 정신을 차리고 있 는 시간이 적은건... 어쩌면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무의식중에 꼭두각시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나 긴 말을 잇다가 입을 다문 사내. 그는 자신의 말을 훼방놓으며 즐거움을 찾고 있는 가슴 깊은 곳의 방해자를 몸밖으로 내뱉었다. "콜록, 콜록. 크윽, 퉤!" 가슴속에 맺혀 있던 뭔가를 뱉은 사내는 꽤 커다란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가 들렸는데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몸안의 것들을 밖으로 뱉어내기 시작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몸밖으로 나오는 것은 찝찔한 맛을 내는 피밖에 없었다. 사내는 피 이외에는 더 이상 나올게 없자, 만족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는 아직도 찝찔한 피 맛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다시 입을 연 것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라이스만... 그는 제 몸이 허약해질수록 제 곁을 오랫동안 떠나 있습니다. 항상 제 곁에 있을 때와는 비교되는 모습이죠. 하지만 그가 그럴수록 전쟁의 피해는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덕분에... 제가 이렇게 어머니께서 잠드신 이곳에 올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저에게서 잠시 한 눈 을 파는 사이에 말입니다. 어머니, 이곳은 정말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군요..." 따뜻한 사내의 입김이 금새 얼어붙는 공간인데도 사내는 전혀 그런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손을 내려 바닥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의 품이 이 바닥이라도 되는 것 마 냥. "어머니... 그 동안에 제가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이.. 이 생활을 그 만두고 싶습니다. 그냥 편안히 어머니 곁에 가고만 싶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제가 저지른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저를 용서하지 않으시겠지요. 어머니께서 용 서해 주신다면 금방이라도 이 생활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유투 왕국을 이대 로... 둘 수는 없게죠? 제가 망치기 전의 모습을 되찾기 전에는 말입니다. 하아...하아... 어머니,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간단한 메모를 수 십장 만들어 사 람들에게 전하고 왔습니다. 그 메모에는 폴보트 연합과의 전쟁에 지는 쪽으로 움직 여,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게 하는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제가 다시 발작을 해 전쟁을 하더라도, 나라를 위해 이 종이에 적힌 대로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입니 다. 지금 저는... 그런 힘 밖에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결말을 보기 위해 그 동 안 그토록 노력해 온 것이 아닌데... 제가 그 동안 해오던 일들에 대한 자긍심... 그런 것들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군요. 모두... 모두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로만 보 일 뿐입니다. 어머니..." 사내는 자신의 말이 모두 끝났는지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몸의 균형을 잘 잡지 못하는 사내. 그는 한참의 노력 끝에 겨우 다리에 힘을 줄 수 있었는지 벽을 짚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 자가 돌아오기 전에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만약 제가 여기 온 것을 그에게 들 키게 된다면... 저는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악귀로 변해버릴지 모르니까요.. .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보다 더한 악귀로..." 뚜벅, 뚜벅. 사내의 규칙적인 발걸음이 다시 이어지려 했지만 그는 두꺼운 석실의 문을 닫기 전 다시 한번 걸음을 멈췄다. "라피에르가 이런 제 모습을 보지 못했으면 합니다. 참혹한 지금의 전쟁에 대해서 도... 하지만 녀석은 지금 폴보트 연합 쪽에서 전쟁의 제일 앞에 서 있겠죠? 어머 니...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녀석의 곁에 있어주십시오. 저보다는... 그 녀석이 더 힘들테니까..." 그르릉, 탕! 육중한 문이 힘겹게 닫히자, 사내의 느린 듯한 발자국 소리가 다시 길 고 긴 복도에 울려 퍼졌다. 결계까지 힘겹게 온 나는 라이너와 트레모스와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눠야 했다. 아니 트레모스가 아닌 라이너와 말이다. 트레모스는 예전부터 이곳을 빨리 나가고 싶었는지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유투 왕국에서 기다리라고?" "그래. 이왕 이곳을 떠나는 것, 라피에르 곁에 있어죠. 내가 갈 때까지 말야." "흠~. 그곳은 귀찮은데... 기분 나쁜 영감도 있고..." 트레모스는 인간들의 전쟁이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인지 이미 겪어보기라도 한 듯 고 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렇게 투덜거리가만 할 뿐, 내 말을 거절 하지는 않았다. "숲 바로 가까이에 있는 마을에서 기다리면 안될까요?" "아니, 숲에서 가깝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별 상관없어. 어차피 이곳을 떠날 때는 텔레포트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어디있든지 상관 없거든..." 내 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는지 라이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곳이 결계가 맞긴 하냐? 마나가 뭉쳐져 있긴 한데... 흠~." 손으로 결계의 존재를 확인하는 트레모스. 녀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 결계 안쪽으 로 발을 내딛었다. "이 정도쯤은 파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 어라? 이거 왜 이래?" 투덜거리는 트레모스. 녀석은 결계 바로 앞에서 발로 결계를 차며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Ip address : 218.149.211.114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리넨이 도착하기 몇 시간 전. 쉐이트론은 란이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초롱초 롱한 눈빛으로 정령과 계약만 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요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보 이겠다는 말을 꺼낸 란 때문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사실 쉐이트론은 란이 하는 말 중 그 단어만이 머릿속에 들어왔었다. 자신이 한 말이 덫이 되어 다가오자, 그 는 요리 강습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던 것이다. "요리는 정령과 계약을 맺은 이후에 하도록 합시다. 정령을 다룰 수 있다면 정령과 어느 정도 친화력이 있다는 말이니, 쉽게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네!" 란은 처음 듣는 사실이었지만 정령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자신이 정령을 가질 수 있 다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끌리고 있었기에 이렇다할 질문은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정령과 계약을 맺고 싶었으므로. "자, 우선은 마나를 모으세요. 당신이 검사라고는 마나는 다룰 수 있을테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검기는 만들 수 있겠죠?" 쉐이트론은 혹시나 란이 검기를 사용할 수 없는 단계인지 확인하게 위해 자신을 빤 히 쳐다보는 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란의 고개는 그의 우려와는 달리 쉽게 끄덕여졌다. "좋습니다. 검기라는 것 자체가 마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 검기를 만든다고 생각 하고 마나를 모으십시오. 정령을 불러들이려면 소환된 정령이 정령계가 아닌 곳에 존재할 수 있도록 정령 주변에 마나를 모아 줘야 하기 때문에 마나가 필요한 것입 니다." 쉐이트론은 그 어떤 질문도 받지 않았지만 알아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처음 정령과 계약을 맺는 란에 대한 일종의 보이지 않는 배려인 것 같았다. 그래 서 였을까? 란은 쉐이트론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크로 와 왕국에서 생활할 때, 그녀는 오직 검술 연습에만 집중해 왔기 때문에 그런 종류 의 책만을 읽어봤을 뿐이었다. 즉 정령이나 마법에 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쉐이트론이 이끄는 방향을 잘 따라가고 있었다. "저... 근데 저는 지금 힘이 봉인되어 있는 상태인데요?" "네? 아... 이노가 당신의 힘을 봉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잠시 잊었군요..." 좀 편해보려고 시작한 정령 계약이 더 복잡해지려고 하자, 쉐이트론은 오랜만에 다 시 무표정한 얼굴을 변화시켰다. "힘을 쓸 수 없다라... 지금 이노는 실험중이니 그녀에게 봉인을 풀어달라고 하기 도 뭐하군요. 뭐, 그렇다면 임시방편으로 이것을 사용하도록 하죠!" 쉐이트론은 귀찮은게 싫었는지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작은 반지를 빼서 이노에게 건냈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보라색 빛을 내는 반지는 아무런 무늬 없는 민밋했지만 특이한 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매우 귀해보였다. "이건 뭔가요?" "보시다시피 반지입니다. 물론 보통 반지는 아니지요. 일종의 마법 기구인데, 기능 은 마나를 모으는 것입니다. 이노의 봉인이 풀릴 때까지만 빌려드리겠습니다. 선물 받은 거라 드릴 수는 없군요." 쉐이트론의 설명이 이어지자, 란은 그가 왜 자신의 손에 끼어져 있던 반지를 넘겼 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힘이 봉인되어 있는 자신이 정령을 부르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네, 고맙습니다." 손바닥에 올려진 반지는 자세히 보니 통일된 보라색이 아니었다. 흰색의 안개 바다 에 보라색의 물결이 흘러가는 것처럼 반지 안에서 흰색과 보라색이 섞여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움직이는데요?" 신기한 마음에 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란. 쉐이트론은 그녀의 물음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이노가 좀 특이한걸 좋아해서요. 특별한 무늬가 있는 반지를 만들겠다며 그런 기 류를 넣은 겁니다." 란은 보석의 왕국 크로와에 있을 때에도 이런 류의 보석은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 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입을 여는 쉐이트론. 그녀는 반지 안의 기류에 매우 놀랐 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놀라움을 잠재웠다. 지금 그녀에게는 반지가 아닌 정령과의 계약이 더 큰 관심거리였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 중 맞는 곳이 없자, 목걸이에 펜던트 형식으로 반지를 끼워 넣었다. "자, 이제 검기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마나를 모으십시오. 몸의 힘이 봉인되었다고 해도, 마나를 쉽게 끌어들이는 반지가 있으니 별로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단, 검 기로 형상화시키지는 마십시오. 정령들은 순수 마나가 아니면 불러들이기 쉽지 않 기 때문에 마나를 모은 상태로 있는게 더 좋습니다. " 란의 목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본 쉐이트론은 빨리 정령과의 계약을 끝내고 싶은지 바로 그녀에게 다음 단계에 대한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란은 고개를 끄덕 인 후, 적과 싸울 때와 같은 상태로 몸을 긴장시키며 검기를 만들기 위해 힘을 끌 어모았다. 마법적 지식이 없는 그녀에게 마나란 익숙하지 않은 존재였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마나를 모으는 것인지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란 은 검기를 만들기 전 힘을 끌어 모았던 것만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의외로 쉽게 그녀 주변으로 힘이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그 힘을 뭉 친다면 바로 검기가 그녀의 손에 만들어질 것처럼. "이거... 대단한 물건이군요! 힘이 봉인되기 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란은 자신의 주변에 모여든 마나의 양에 놀란 것인지 쉐이트론이 준 반지에 대한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녀는 쉐이트론이 별거 아니라는 듯 건네준 반지 때문에 자신 의 주변에 엄청난 에너지가 모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쉐이트론은 그녀 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란에게 다음 행동을 지시했다. "자, 마나가 모인게 느껴졌다면 정령을 부르십시오. 당신이 정령과 어느 정도 친화 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불의 정령을 불러보는게 좋겠군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불에 대한 조절이니..." "네. 그런데 어떻게 부르면 되나요?" "흠~, 그냥 불에 대한 생각을 하면 됩니다. 물론 마나를 끌어들인 상태에서 말입니 다. 초급 정령의 이름은 샐러맨더 이니 샐러맨더의 이름을 부르며 불에 대해 생각 하면 됩니다. 물론 처음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누구이며 왜 정령을 부르 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을 해주면 정령 소환에 더 도움이 되겠죠?" 아무것도 모르는 란을 위해 쉐이트론은 친절한 설명으로 그녀가 빨리 정령을 소환 해내길 바랬다. "나 란은 불의 정령 샐러맨더와 계약을 맺고 싶다. 그러니 샐러맨더는 내 앞에 나 타나라!" 마나를 자신의 근처에 끌어들인 상태에서 입을 연 란. 처음 해보는 정령 소환이기 때문인지 그녀의 말은 너무도 서툴게 튀어나왔다. 하지만 쉐이트론이 원한 것은 그 서툰 말에 다 들어갔기 때문에 그는 별 걱정 없이 란의 근처에 나타날 샐러맨더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꽤 흐른 뒤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주변 에는 정령이 소환되지 않았다. "음... 이상하군요. 왜 샐러맨더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당신이 불의 정령을 소 환할 정도의 친화력은 안되나 봅니다. 그럼 다른 성질의 정령으로 바꿔보죠." 쉐이트론은 자신과 란의 방법에서 잘못된 점을 찾지 못했기에 그녀에게 다른 종류 의 정령 소환을 권했다. 정령술사라고 해도 특별한 극소수의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 종류의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란은 4대 정령 모두 소환해 낼 수 없었다. "다시!" 몇 번 째 되풀이되는 정령 소환! 얼마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지 몰랐지만, 그들 은 지친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계속 정령을 소환해 내기 위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노의 말대로 란과 쉐이트론은 독한 성격을 갖고 있는 비슷한 류의 사람이었던 것 이다. 다시 한참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 었다. "정령을 부릴 수 있는 정도라면 쉽게 정령을 소환해 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 그 리고 내가 빌려준 반지의 힘이라면 중급 정도의 정령까지도 소환해내 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 왜 안되는지..." 쉐이트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흠~! 제가 보여주는 정령이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 한번 말해보십시오." 그는 혹시라도 란이 정령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과 계약된 4대 정령을 모두 불러들였다. 리넨의 정령은 그의 허락이 없었기에 자신의 뜻대로 움직 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떤 속성을 지녔죠?" "차가운 것이 흘러다니는 느낌... 물이군요." "이것은?" "시원한 바람이요" "이것은?" "뜨거운 불..." 그 둘의 질문과 답은 꽤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그 동안 란은 단 한번의 실수도 없 이 쉐이트론이 내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말했다. 그는 란이 정령의 이름을 불 러 부리기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조금 전과 같은 시험을 해 본 것이었다.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정령을 느끼고, 부릴 수 있는 친화력이 있 어야 했는데, 그는 란이 그 중 느끼는 것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좀 전의 시험을 그녀는 만점으로 통과했다. 즉 쉐이트론이 생각했 던 이유 때문에 란이 정령 소환을 못하는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아... 대체 이유가 뭔지 모르겠군요." 그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상황에 어지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란에게 지금까지 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다시 시켜 봤다. 뭔가 실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결정 은 이노의 저녁시간을 놓치게 만들었다. 란이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 주다가 그만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다. 평소의 그였다면 이노의 식사 때를 놓 칠 리가 없었지만, 란이 정령과의 계약을 시도한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 을 하고 있자 답답하고, 화가나서 미처 식사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만 것 이었다. "대체 왜 계약이 안되는 겁니까! 정령들의 기운이 느껴진다면서요!" 하루에 두 번씩이나 언성을 높이는 쉐이트론. 그는 자신이 이렇게 언성을 높인게 얼마 만인지 기억할 수 없었지만, 50년은 훨씬 넘었다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 다. "네, 느껴져요! 하지만 왜 계약이 안되는지는 저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답답하고 화가나는 것은 란도 마찬가지인 듯, 그녀의 목소리 역시 높게 올라가고 있었다. "하아... 그만 둡시다. 그만 둬! 아무래도 당신은 정령과의 계약이 어려운 듯 하군 요." 몇 시간동안 매달린 일이 풀리지 않자, 쉐이트론이 두 손을 들며 포기 선언을 했다 "하지만..." 아쉬운 듯 란이 그의 결정을 막으려했지만, 쉐이트론은 자신과 란의 일이 아닌 것 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녀의 말에 뜻 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수풀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그 안에서 외부인이 걸어나오며 그들 사이에 끼어 들었다. "이제 포기하는 건가?" "리넨!"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란은 외부인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반가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런, 당신이 이곳까지 와 있는 줄은 몰랐군요. 기척을 잘 숨기는데요?" 쉐이트론은 자신이 리넨의 존재에 대해 못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리넨의 향상된 실력에 두 눈을 반짝였다. "아, 별거 아냐. 그건 그렇고 란에게 정령과 계약을 맺게 하려고 하다니~, 당신이 하려고 했던건 요리 강습이 아니었나? 내 기억으론 그랬던 것 같은데?"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한 리넨은 용의 주도하게 쉐이트론의 입에서 집요한 질문이 나오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 식사에 대한 운을 띄웠다. 그는 꽤 오래 전부터 그 둘의 행동을 지켜봤기 때문에 그들이 아직까지 저녁식사를 준비하지 못하고 정령에 만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로부터 나온 말은 그가 원한 효과를 그대로 불러일으켰다. "아! 그러고 보니, 저녁 시간이... 이런! 훨씬 넘었잖아?" 하늘을 쳐다본 란이 저녁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놀라운 음 성을 토해냈다. "이..이런, 이노의 식사시간을!" 놀라기는 쉐이트론도 마찬가지인 듯, 급하게 란이 만지다 만 기구들 쪽으로 걸어가 기 시작했다.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어, 치우는 것만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지만, 그는 순식간에 정화마법을 사용해 시간을 줄여버렸다. 그리고는 그냥 보기 아까울 정도의 묘기로 순식간에 먹음직스런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히유~! 저것이 그 사르르 녹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진정한 솜씨라는 건가? 대 단한데?" 리넨이 휘파람을 불며 쉐이트론을 쳐다보자, 그 옆에서 란이 그를 따라 부러운 눈 빛으로 쉐이트론을 쳐다봤다. 마치 언젠간 자신도 리넨에게서 인정받는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이것, 저것 요리를 하기 시작한 쉐이트론은 완성된 요리를 들고 눈에 보 이지 않는 빠르기로 리넨과 란의 앞에서 사라졌다. "와우~, 대단한 정성이네~! 아, 그건 그렇고 정령과 계약을 맺으려고?" 쉐이트론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던 리넨은 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응! 그러면 요리하는데 좀 더 편하지 않을까 해서 말야." 희망이 물거품으로 벼해서인지 란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흠~. 내가 빌려준 정령들은 왜? 말을 안듣던?" "아니, 그건 아닌데 이상하게 불 조절 같은게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돼." "흠~. 그건 아마 그 정령이 나와 계약된 것이라 네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꺼야." "으..응... 쉐이트론도 그렇게 말하더라. 그래서 내게 정령과 계약을 맺게 했던 것 이고..." 다시 정령 계약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인지 란은 아까보다 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턴가 예전의 성격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하게 변해버린 란. 그런 모습에 리넨은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자신이 아는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령술사들이 4대 정령들 중, 한 두 개의 정령과만 계약을 맺 을 수 있듯이, 친화력의 차이로 계약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네 경우 4대 정령 모두와 계약을 맺기 어려운 정도의 친화력을 갖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네가 아무리 정령들을 느끼고 다루는 것이 정령술사 못지 않다지만, 그 정령들과의 계 약에 필요한 친화력은 부족할 수도 있는 거야. 흠~. 혹시 네가 반인 마족이라서 그 런 것 아닐까?" 리넨은 란이 자신이 반인 마족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길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았지 만, 혹시 모를 가능성 때문에 그 이야기를 꺼내봤다. "4대 정령들의 속성은 일반적으로 자연 친화적이라 마족의 피가 섞인 너와는 안 맞 을 수도 있는 거거든. 즉, 다른 류의 정령과는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 야... 그것들이 요리에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정령이라는게, 그 4대 정령 이외에 또 있단 말야?" 언제 얼굴을 굳혔는지, 란의 얼굴은 순식간에 환하게 변해있었다. 그것을 본 리넨 은 자신이 꺼낸 가능성이 란의 표정을 밝게 해주자 다행이라는 생각은 가졌다. 하 지만 자신이 4대 정령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떠 올리고는 걱정이 쌓이는걸 느껴야만 했다. "음... 있다고 알고 있어. 책에서 정령은 4대 정령, 즉 자연계열의 정령과 정신계 열의 정령이 있다고 했으니까. 네 경우 자연계열의 정령과 계약을 못 맺었으니 정 신계열 쪽의 정령과 한번 계약을 맺어봐. 정신계열 쪽으로는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 만... 이노라면 알고 있을거야. 그녀는 내가 알기로 인간 백과 사전이니까. 아니.. . 인간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뭐, 어쨌든 그녀라면 알고 있을거야." "정말? 근데... 그녀가 과연 알려줄까?" "흠~. 글쎄? 호기심 많은 그녀의 성격을 좀 건드리면 알려줄거야!" 리넨은 자신만 믿으라는 표정으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고는 란을 향해 씨익 웃 어보였다. "좋았어! 그럼, 이노가 실험실에서 나오면 물어봐줘!" "으..응..." 리넨은 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제서야 깨 달은 것 같았다. 이노란 상대하기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과 자신이 사서 고생을 하 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이노가 실험실에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거야. 그 안에서 뭘하는지는 몰라 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 이노가 실험실을 나오기 전까지 계획을 세울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건 지 리넨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란에게 시간적 여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 만 하늘은 리넨편이 아닌 것 같았다. "쉐이트론! 왜 이렇게 늦은 거얏! 배고파서 실험이고 뭐고 다 떼려치웠잖아!" "헉..." 오두막집이 떠나갈 듯한 이노의 목소리가 열려 있는 문사이로 흘러나왔던 것이다. Ip address : 211.234.163.3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NT 5.1; Q312461) 란과 내가 오두막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쉐이트론에 대한 이노의 화풀이가 끝나 고 난 다음이었다. 이노가 화가 난 이유가 란 때문이었기에 난 웬만하면 화를 내는 이노에게 가서 쉐이트론을 감싸주고 싶었지만, 화를 내는 이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남의 사랑싸움에 외부인이 끼어 드는건 좋지 못한 거야... 그럼, 그럼! 관히 감싸 준다고 하다가 이노가 더 화내면 쉐이트론에게 더 안좋은 상황이 되는 것이고~. 그 럼, 그럼!' 발이 안 움직여지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혼자 생각해내며, 자기 합리화를 시 키고 있자, 어느새 시끄러웠던 오두막이 잠잠해져 있었다. '흠~. 보아하니 쉐이트론을 식기 전에 먹으려고 말을 멈춘 것 같군. 맛있다라는 말 이 약하지만 계속 들리는 것을 보면 말이야...' 이노의 성격이 단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다 음 그녀가 다시 언성을 높이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란, 이제 안으로 들어가지! 싸움은 끝난 것 같으니까 말야." "으..응." 쉐이트론에게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였지만, 란은 나와 달리 이노 의 단순 무식함을 깨닫지 못했는지 오두막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앞장서서 걷는 내 모습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뒤에서 현관까지 따라왔다 사실 난 이노가 있는 부엌까지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보인 집 안의 풍경 때문에 놀라 순간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우뚝! 오두막집 안에는 기가 죽은 쉐이트론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나였다. 나 는 이노가 그에게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그 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기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 온 후, 내가가 본 것은 쉐이트론과 이노의 웃는 얼굴뿐이었다. 화가 난 채 씩씩거 리는 이노와 잘못을 구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쉐이트론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아? 아까 이노의 화난 듯한 말은 거짓이었나? 아니 면 저렇게 웃는 얼굴로 화난 목소리를 냈단 말인가? 쉐이트론은 웃으면서 그 말을 다 받아줬고?' 선뜻 상상이 가진 않았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어... 뭐, 하긴 지금껏 이해 불가능했는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고 이해가 되지는 않겠지.' 고개를 가로젓던 나는 얼핏 내 옆에 서 있는 란을 쳐봤는데, 그녀도 나와 같은 생 각을 했는지 고개를 흔들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흠~, 맛있어~. 맛없었으면 화낼려고 했는데, 맛있으니 참기로 하지!" 포만감에 배를 통통 두드리던 이노는 씨익 웃어 보이며 화가 다 풀렸음을 쉐이트론 에게 알렸다. 물론 그는 이노가 음식을 먹고 화를 모두 풀리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보여줬다. "어라? 너희는 거기서 뭐하는 거야? 혹시 쉐이트론이 늦은 이유가 너희들 때문이야 ?" 열린 현관문 옆으로 나와 란이 보이자, 이노는 쉐이트론과의 오붓한 시간을 접고는 우리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쉐이트론이 늦은 이유는 그 자신이 식사시간을 깜박하고 잊어 버렸기 때문이었어. 그도 인정했을텐데? 내 덕에 쉐이트론이 그나마 빨리 저녁을 준비했던 거야. 안그랬으면 더 늦게 식사를 했어야 했다고~!" 내게 싸움을 걸오는 이노를 느끼자 마자, 나는 그녀에게 모든 잘못은 쉐이트론에 있음을 정확히 알려줬다. 이유가 란 때문이라곤 해도 그가 원해서 정령의 계약을 맺어주려다 늦은 것임은 확실했으므로 이노에게 내가 꿀릴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흠~. 물론 그랬지... 하지만 믿기지 않아서 말야." 그녀도 내 의도를 알아 차렸는지 고개를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였다. "쉐이트론, 근데 왜 시간을 깜박한거야? 뭐, 다른 일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야?" "아... 그게 란에게 정령계약을 맺게 해주려고 했었어... 근데, 잘 되지 않아 그만 저녁 식사시간을 지나치고 만거지." "호오~." 혹시나 하고 물었던 말에 역시나의 대답이 나오자 이노는 뜻밖이라는 눈빛으로 쉐 이트론을 쳐다봤다. "정령계약은 왜?" "요리하는데 정령들을 이용하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말야..." "흠~.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음식 하는데 필요한 일들을 꽤 정밀히 해낼 수 있으 니, 태우거나 하지는 않겠지. 근데 왜 계약이 안 맺어진건데? 정령과 계약을 맺어 주려고 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란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 아냐? 문제가 있 었던 거야?" 간단한 말 한마디만 들어놓고 모든 상황을 유추해내는 이노. 나는 그런 그녀의 모 습에 다시 시기한 눈빛이 되고 말았다. '단순한 머리의 이노가 신기하게도 이런 쪽으로는 뛰어난 추리력을 발휘한단 말야? ' 신기하게 이노를 쳐다보던 나는 쉐이트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외에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 둘 사이에 끼어 들었다. "쉐이트론이 란에게 맺어주려고 했던 정령들은 자연계열의 정령들이었어. 하지만 모두 실패했지. 란이 갖고 있는 정령에 대한 친화력치고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이었어. 뭐, 이건 내 생각인데 란에게는 자연계열이 아닌, 정신계열의 정령들과 계 약을 맺어야 했던 것 같아." 어깨를 으쓱하며 내 생각을 털어놓자, 이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받았다. "흠~. 란이 반인 마족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건가?" 끄덕. 이노는 란이 반인 마족이라는 것을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맞춰 나와 란을 동 시에 놀래켰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노는 더 놀라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꽤 똑똑하군, 리넨. 마족이 정신계열 쪽의 정령과 친화력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내 다니~!" 물론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단지 추측을 해서 말을 꺼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일부러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 는 이노를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받아 넘겼다. "쉐이트론도 알고 있었을텐데, 생각을 못했었나 보지?" "아...!" 이노의 설명에 뭔가가 떠올랐는지 쉐이트론은 뒤늦게 란을 쳐다보며 한 손을 쥐고 그것을 다른 손바닥에 내리쳤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뿐인데... 정말 마족이 정신계열 쪽의 정령과 친한건가?' 잠시 상황이 정리되자, 이노는 자세한 설명을 하기 위해 자리를 편안한 쇼파가 있 는 장소로 옮겼다. "란은 반은 마족이고, 반은 인간이지. 인간은 자연계열과 정신계열 중 자연 쪽의 정령과 친한 편이야. 자연 쪽도 그렇게 친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말야. 그리고 마족 은 정신계열의 마족과 친해. 하지만 란이 이어받은 인간의 피는 자연계열 쪽의 정 령과 친화력이 매우 떨어져. 그와 반대로 마족의 피는 정신계열 쪽의 정령과 매우 친하지... 리넨의 말대로 란은 정신계열 쪽의 정령들과 계약이 가능할꺼야.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판단된 뭔가가 있었다면 말야." 그녀의 설명이 이어지자, 란은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시 정령과의 계약 을 맺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오~, 내 생각이 맞다니... 이노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내가 일부러 수고를 할 필요는 없겠네~! 그건 그렇고 정신계열의 정령이라...' 괜히 이곳에 오기 전, 란 앞에서 나서서 고생을 할 줄 알았던 나는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는 란과 나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기 위 해 이노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이노, 정신계열의 정령이 정말 존재하는 건가?"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라 나는 자세히 알 수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노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그녀라면 모르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맞아떨어진 듯, 난 이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존재해! 사실 정신계열의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존재는 마족이 월등히 많지. 란이라면 그런 마족의 피를 반은 갖고 있으니 쉽게 계약을 맺을 수 있을거 야." 란은 자신이 저주하는 마족의 피가 쓸모있다는 이노의 말에 어리둥절했는지 잠시 멍한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정신계열의 정령이란 어떤 종류가 있지?" 가장 기초되는 질문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식에 대한 갈증은 그때그때 바로 해소해 주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 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오~, 똑똑한 네가 모르는 것도 있었나?" "내가 읽은 책 중에 정신계 정령을 다룬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말야. 단순한 언 급 정도만이 있었지." "흠~. 그런가? 하긴... 마족이 세상에 사라진게 꽤 오래 됐으니, 정신계 정령에 대 한 말들도 책에서 사라졌겠군... 아니, 잊혀졌겠어! 정신계 정령은 자연계 정령과 조금 달라. 정신계 정령은 계급이 세 개 뿐이야. 하급, 상급, 정령왕으로 나뉘지. 정령의 종류는 분노, 비애, 기쁨, 공포 네 가지고 그들은 모두 하급, 상급의 정령 을 갖게 돼. 자연계와 다른 점은 정령왕이 단 하나뿐이라는 거야. 정령왕 히에로스 . 히에로스와 계약을 맺게 되면, 네 가지 정령들을 모두 부릴 수 있지. 즉, 정신계 정령들을 모두 소환할 수 있다는 말이야." 어느새 이노는 설명하는 것에 푹 빠져 우리들에게 자세한 사항들까지 세부적으로 알려주기 시작했다. 란은 자신이 계약을 맺게 될 정령이 그 설명 가운데 있을지 모 른다는 생각에 눈을 크게 뜨고 듣고 있었고, 나도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망으로 귀 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어디보자... 그럼, 이노가 말한 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건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ㅣ ㅣ 공 포 ㅣ 기 쁨 ㅣ 분 노 ㅣ 비 애 ㅣ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ㅣ하 급 ㅣ 엔 릴 ㅣ 아 리 엔 ㅣ 란 테 아 ㅣ 메 를 로 ㅣ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ㅣ상 급 ㅣ 엘리아덴 ㅣ 로 이 엘 ㅣ 란시스트 ㅣ 멜 리 스 ㅣ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ㅣ정령왕 ㅣ 히 에 로 스 ㅣ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대략적으로 정령의 종류와 계급에 대해 정리가 되자, 다시 이노의 말이 이어졌다. "정신계 정령들과의 계약은 조금 특이해. 분위기를 보아하니, 란이 정신계 정령과 계약을 맺으려는 것 같은데, 이왕 시작된 설명이니 계약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 지!" "네!"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란은 이노의 말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 러난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흥분된 듯 양 볼을 앙증맞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험험... 자연계의 정령과 계약을 맺으려면 마나 이외에 소환자가 정령의 속성을 생각해야 하지. 하지만 정신계 정령과 계약을 맺으려면 소환할 정령의 감정을 느껴 야 해. 예를 들면, 란 네가 공포의 정령 엔릴과 계약을 맺고 싶다고 쳐. 그럼, 너 는 공포의 감정을 느껴야만 해. 그래야 엔릴이 네 몸을 빌어 소환되거든? 정신계 정령들은 자연계와는 달리 형체가 없어. 물, 불, 흙, 바람같이 보고 만질 수 없다 는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정신계 정령들은 그런 물체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감정 을 지닌 소환자의 몸을 빌어 모습을 드러내는 거야. 이건 형체를 만들 수 없기 때 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 그것들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같은 정령술사라고 해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단지 마나의 크기나 그것의 느낌으로 어떤 정령이 소환되었는지는 알 수 있을 뿐이야. 정신계 정령을 알아보는 방법은 조금 어려워. 하급 정령은 소환자가 그 정령의 속성인 감정만 느낄 수 있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자신의 몸에 소환되기 때문에 쉽게 느낄 수 있는 편이야. 물론 소환한 사람에 한해서야... 상급 정령들은 희미한 빛 같은 형상을 갖고 있어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지. 마나의 크기가 클수록 그 빛의 크기와 세기도 같이 커져. 공포, 기쁨, 분노, 비애는 각각 검은색,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의 빛을 내지. 하 지만 이것 역시 빛일 뿐, 뚜렷한 형상은 갖고 있지 않아. 완벽한 형상을 갖고 있는 건 정령왕 히에로스 뿐이야. 정령왕의 형상은 물질계라 할 수 있는 자연계 정령왕 들과 비슷하지. 대충 이해가 가?" 이노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는지 중간에 말을 끊고는 나와 란을 한번 훑어봤다. 쉐이트론은 이미 예전에 이노에게서 이 말을 들었는지 다 안다는 표정을 짓고 있 었기 때문이다. "흠~, 좋아, 계속하지!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정령과 계약을 맺기 위해 꼭 알아둬야 할 부분이야. 앞에서 말했듯이 정령과 계약을 맺기 전에 소환자는 그 정령의 속성인 감정을 꽤 강하게 지니고 있어야 해. 정신계 정령들은 소환자의 몸 으로 소환되는데 이때 소환자가 느끼는 감정이 정령이 갖고 있는 같은 감정보다 강 도가 약하다면, 그 소환자는 정령의 노예가 되고 말아. 즉 소환된 정령은 소환자 없이 자신의 노예가 된 존재를 이끌고 정령계가 아닌 곳도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닐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정신계의 정령들과의 계약은 자연계 보다 어려 워. 그래서인지 감정을 갖고 노는 마족들이 이 정신계 정령들과 친화력이 높은 편 이지. 기쁨 이외에는 모두 쉽게 계약을 맺거든? 좀 노련한 마족들은 남을 괴롭히는 기쁨으로 기쁨의 정령과 계약을 맺기도 하고... 아무튼 마족의 경우는 본능적으로 감정 조절이 매우 잘 되기 때문에 정신계 정령들과 계약하기가 쉬워." 설명이 끝났는지, 그녀는 란을 쳐다보며, 정령과 계약을 맺을 건지, 말건지 눈빛으 로 그녀의 의사를 물어봤다. "그런 감정의 정령들과 계약을 맺으면 요리에는 별 도움이 안되겠네요?" "흠~. 요리 때문에 정령과 계약을 맺으려고 했던거야?" "...네." 본래의 취지가 흐려지자, 란의 목소리도 따라서 작아졌다. 하지만 그녀의 계약을 맺고 싶다는 의지만은 두 눈에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흠~. 그래도 정령들과의 계약은 맺을 거니 상관은 지금까지의 설명이 소용없었던 것은 아니겠군. 잘 들었겠지?" "네!" 이노가 직접 란의 정령과 계약을 맺도록 도와주려는 모양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란 의 곁으로 걸어갔다. '호오~. 새로운 사실들이야! 마족이 정신계열의 정령들과 친화력이 높다니 말야... 흠~. 나두 한번 해봐야지! 란이 하는 것보고 말야...' 호기심이 번쩍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란과 이노의 모습을 살펴봤다. "정령을 불러드리려면 감정 뿐 아니라 충분한 마나도... 어라? 이건!" 이노는 란의 목에 걸린 반지를 보곤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휙 쉐이트론에게로 옮겼다. 해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아! 그..그게... 마나가 봉인되어 있는 상태라 잠시 빌려줬던 거야." "흠~. 그래? 하지만 저건 내가 준건데!" "......" "흥! 지금은 그냥 넘어가겠어! 하지만 끝나고 따로 조용히 보자고!" "......!" 커다란 이노의 목소리에도 웃음을 잃지 않던 쉐이트론이었지만, 이노의 나직막한 말에 그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호오~, 꽉 잡혀 사네? 크큭, 재밌군!' 나는 쉐이트론의 당황한 표정을 더 살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 지금 내 눈길 을 끄는 건 란에게로 소환될 정신계열의 정령이었다. '느낄 수는 있는건가?' 서서히 주변 마나와 동화되기 시작한 나는 민감한 감각을 유지하며, 란이 부를 정 령을 기다렸다. 자연계 정령과 계약을 한 내가 정신계 정령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 했기 때문이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자, 이노와 란은 매우 익숙한 단계를 밟으며 정령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흠~. 계약하는 건 별 다를게 없군.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이 느낌은 분 명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정령임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역 시 정신계 정령이 존재했다는! 대단한 발견인걸?'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게 느껴지자,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생각보다 손쉽게 공포의 정령과 계약을 맺은 란은 그뒤 거의 기계적으로 다른 감정의 정령들 과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이노도 란의 재능에 놀라워했는데, 그것은 나조차조 입 이 벌어질 정도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요리에는 쓸모가 없었기에 란은 그저 정신계 정령들과 계약을 맺는 것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고, 따로 설거지를 하기 위해 부엌 으로 향했다. '확실히 쓸모있기는 자연계 정령들이 월등하군!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해 그들 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연계보다 정신계가 월등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내게 필요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불러드릴 수 없는 정신계 정령과의 계약을 포기했다.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별로 쓸모가 없더라도 정신의 4대 정령 모두와 계약을 맺고 싶 었지만, 결코 내 안으로 불러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갖고 그렇게 자 신을 위로했던 터였다. '란이 부른 정령의 느낌으로는 확실히 정신계 정령들이 존재하니... 내 부름에 응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정신계 정령들과 친화력이 낮기 때문이겠지~! 히유~! 욕심을 너무 부렸나 보군...' 지금까지 원하는 것이면 모든지 얻었던 나였기에 이번 일은 매우 큰 아쉬움이 가슴 깊이 남아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내게는 이득이니 슬퍼해야 할 일은 아니군!' 좋게 생각을 마친 나였지만, 부러운 눈빛이 란을 쫓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Ip address : 218.149.211.104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란을 부엌으로 보낸 이후, 이노는 조용히 나를 지하 실험실로 불렀다. 아직 어질러 져있을게 뻔한 실험실. '내게 그곳을 치우게 하려고 나를 부르는 건가? 하지만 어차피 실험실 청소는 내 차진데? 흠~. 이상하군.' 그녀가 나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조금은 불안한 마음 으로 지하 실험실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조금 떨린걸? 실험실에 이노가 이렇게 오래 있었던 것을 본적이 없으니 말야. 대체 어느 정도까지 어질러 놨을까?' 잠깐이라도 이노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라면 깨끗함을 유지하기 힘든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나였다. 그런데 이번엔 이노가 실험실 안에서 몇 주 정도까지 버티 고 있었으니... '조금 걱정이 되는... 어라? 저건 뭐야?' 실험실 문 밖으로 쏟아지듯 나와 있는 종이 뭉치들! 앞장서서 걷고 있던 나는 이상 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노보다 먼저 문까지 걸어갔다. "헉! 이..이건!" 걱정스런 마음으로 실험실 문을 들어선 나는 그만 헛 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어 느 정도 방의 상태를 예상하며 이곳에 들어선 나였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오래 전 에 끝났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어 질러져 있어 마음의 준비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장난이 아니군! 무슨 종이가 이렇게 많아?' 발목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무릎까지 차 있는 종이 더미 속을 걸어야 겨우 그 안으 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니! "이노! 대체 이게 뭐야?" 당연히 내 고개는 실험실이 아닌 이노에게로 돌려지고 말았다. 방안이 어쩌다 저렇 게 됐는지, 난 그녀에게 추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노는 아무렇지도 않다 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뭐가? 내가 실험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원래 저렇게 변해.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그건 그렇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 좀 치워봐. 저렇게 쌓여져 있으면 들어가기 힘들니 말야.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정령들을 이용해. 뭐, 손으로 하라고 해도 정 령을 부를 테지만." '으이그... 들어가기 힘든 장소에서 지내다가 나온 넌 뭐냐? 에휴~, 내가 상대를 말아야지. 근데 확실히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청소는 아닌 모양이군. 나와 같 이 이곳까지 내려온 것을 보면 말야~! 흠~.' 궁금증이 솟아나는 것을 느낀 나는 빨리 방안 청소를 하기 위해 정령들을 불렀다. "실프! 방문을 닫고 그 안에서 바닥의 종이만 뭉쳐! 그리고 샐러맨더는 그 종이를 태우고, 연기는 실프가..." 좀 복잡한 명령이긴 했지만, 녀석들은 생각보다 빨리 실험실 안을 깨끗하게 청소했 다. "할 말이 뭐야?" 발걸음을 방해하던 종이들이 사라진 실험실로 들어온 나는 그곳에 들어오자 마자, 이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별건 아냐. 그동안 연구한 걸 확인해 보려는 거지." "연구한 것? 다 끝나긴 한거야? 아까 들어보니, 때려치운다고 했던 것 같은데?" "들었냐?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다, 말이! 연구가 끝나기 전에는 실험실에서 한 발 자국도 안나와. 내가 하던 실험이 결론이 안나면 찝찝해서 중도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하거든." 별 것에 신경을 다 쓴다는 듯, 이노는 나를 잠시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종이 뭉치를 헤집었다. "흠~, 어디 뒀더라... 아! 여기 있군!" 뭔가를 뒤적뒤적 열심히 찾던 그녀는 너덜너덜한 종이 뭉치 사이에서 깨끗한 책 한 권을 들고 내게로 걸어왔다. "내가 이번에 이곳에서 책 한 권을 만들었지! 요 며칠 동안 이거 만드느냐고 고생 좀 했거든?" 얇아 보이는 책. 나는 그녀에 손에 들려 있는 책을 어디서 많이 봤다는 생각에 눈 을 책장 안에 꽂혀 있는 책들로 돌렸다. 역시 이노의 손에 들려있는 책과 책장 안 의 책들은 모양이 같았다. "혹시 그것... 나에 대한 자료를 적어 놓은 거냐?" "호오~! 눈치 빠른데? 마치... 내가 이렇게 자료를 정리해서 책에 적어 놓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말야~!" 뜨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 입은 감춰야 하는 사실을 드러낼 뻔했다. '설마 이노가 눈치채기라도 한건가? 저 눈빛은 알고 있는 것 같잖아? 하지만 알고 있다면 바로 내게 그것에 대한 추궁을 할... 헉! 혹시 그것 때문에 나를 부른?' 내 머릿속은 어느새 걱정들로 가득 차고 말았다. 이노의 성격이 얼마나 괴팍한지 이곳 오두막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 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짝거리던 이노의 눈동자는 피식 한 번 웃음을 보여주고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손에 들 린 책을 촤르륵 펼쳤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른 말을 꺼내며 이야기를 돌렸 다. "네 생각대로 이건 너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는 책이야.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책 에 적혀 있는 내용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말야. 몇 가지 확인해 볼게 있어 서 불렀어. 임의대로 적은게 몇 개 있거든?"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말을 하는 이노를 보며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호오~! 드디어 그 지겨운 실험이 끝나는 건가? 이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니 곧 이곳을 떠날 수 있겠군! 흠~. 몇 달 정도 여기서 생활했던 거지?' 시간 관념이 별로 잡혀 있지 않던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리고 갑자기 알게 된 사실에 나는 조금은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노의 구박 때문이 아니라 더 높은 단계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환경을 잃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었다. 죽음의 숲 자체가 마나가 풍부했고, 이노의 집은 그보다 더욱 농밀한 마나가 흘러 다녔기에 아쉬움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라피에르와 라이너, 트레모스를 빨리 만날 수 있을거라는 사실에 그 작은 섭섭함은 금방 사라졌다. "별거 아니긴 해도 검증이 없으면 찝찝하거든? 이건 내가 임의적으로 쓴건데 맞나 한번 들어봐." 책의 어느 한 구절을 읽으려는 것인지 그녀는 탁자 위에 걸터앉아 양손으로 책을 받쳐들었다. "인간이 태어나면 그 상태로 마나에 노출되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그 상태 바로 마나를 몸 안에 축적할 수 있다. 즉, 갓난아기 라 할지라도 의식을 갖고 있다면 최적이라 할 수 있는 그 상태에서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의 인간은 마법을 배우기 위해 마나와의 친화력부터 키우게 된다. 하지만 갓난 아이의 경우 그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꽤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다. 리넨의 경 우가 바로 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태어날 때를 기억한다고 했다. 즉 그는 그때부터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과 같은 높은 클래 스를 이룩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내 표정을 살피던 이노는 두 눈을 깜박이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때? 이상한 부분 있어?" "음... 그거 혼자 생각해서 쓴거야? 마치 이론같잖아?" "물론, 이론이야!" "하지만 증거가 없... 아! 내가 그 증거인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책이 다 른 일반인이 보게될 것은 아니라지만, 이노의 이론 정립이 너무 허술하게 느껴진 것이다. 보통 어떤 사실이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수많은 근거가 밑 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이노의 경우, 단지 나밖에 없으니... '에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맞긴 한데, 조금 틀린 부분이 있어. 내가 태어나자마자 마나를 느낀 건 맞지만 그 때 바로 마법을 배운건 아니지. 난 여섯 살 때부터 마법을 배웠으니까." "여섯 살?" "그래. 처음에 마법이라는게 뭔지 알았어야 말이지. 내가 느끼던게 마나인지도 몰 랐어." 내 말에 책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게되자, 이노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흠~.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마법이라는 것을 몰랐다니까?" "음... 그럼, 이걸... 고쳐야 하잖아? 왜 마법이란 걸 모른 거야? 그걸 알았으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내가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목청을 높인게 아닌 것 같았다. 안타깝게 책을 쳐다보는 것으로 봐서 이노는 단순히 자신이 적은 책 내용을 고쳐야 하는 상 황이 되었기에 목청을 높인 것이다. '히아~. 한숨을 안 쉴 수가 없군! 뭐, 그때 내가 마법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9 클 래스에 도달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아직 9 클래스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말야.' 안타깝긴 했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마법 실력을 늘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어두워지려던 기분을 떨쳐버렸다. "쳇! 여섯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인간이 벌써 9 클래스란 말야? 얼마 전에 입문 한 것 같긴 하지만... 빠르군!" 책의 내용을 조금씩 바꾸려는 모양인지 펜으로 책을 끄적이는 이노. 하지만 내 눈 에 그런 이노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한 9 클래스라는 말 때문에 눈앞 에 뭐가 보이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뭐? 다시 한번 말해봐! 바..방금 분명 9 클래스라고 한거야? 내가 지금 9 클래스 라고?" 이노가 실험실에서 책을 만들고 있을 동안 나는 물론 9 클래스가 되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어느 정도 발전은 할 수 있었지만, 9 클래스가 되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한 단계를 넘어 섰을 때의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9 클래스라니! "아~! 시끄럽네, 너는 네가 몇 클래스인지도 모른다는 거냐? 너 9 클래스 맞아! 척 보니 그렇구먼, 꼭 모른다는 것처럼... 음... 너 진짜 몰랐냐?" "......!" "진짜군!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를 수 있는거냐? 말해봐! 그 동안 뭘 했는지! 내가 언제부터 단계가 높아졌는지 알려줄테니 말야!" 내 표정을 살피던 이노는 마치 나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도 된 마냥, 팔짱을 끼며 내 가 말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거만한 태도의 이노에게 나는 제재를 가할 수 없 었다. 지금 아쉬운 건 그녀가 아니라 나였으므로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설명을 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유시간을 갖게 된 이후, 나는 몸 구석구석에 마나를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 . 그것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면, 왠지 클래스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 후 우연히 나 자신을 마나에 동화시키기 시작했지.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동안 ..." "자..잠깐! 방금 뭐라고 했지? 마나와 동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던 나는 흥분한 이노에 때문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그래?" 그렇다는 대답을 한 나는 황당해 하는 이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믿을 수 없 다는 눈빛도 같이... "어떻게 지금 마나와 동화가 된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설마 정말 네가 마나와 동 화되었다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라는 표정인 이노... 그녀가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천천 히 그녀의 뜻과는 다르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서..설마... 그..그럼, 그 뒤 어떻게 했어?" 어느새 이노의 거만하게 끼여져 있던 팔짱은 풀려, 그녀의 두 손은 탁자를 누르고 있었다. "별거 아니야... 왜 그렇게 흥분하는진 모르겠네. 처음엔 힘들었지만, 서서히 마나 와 동화가 되긴 하더군.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동안 몸 구석구석까지 마나를 보냈던 것이 효과를 보기 시작했어. 그 덕분인지 내가 마나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 던 것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노를 한 번 쳐다보자 그녀는 계속하라는 듯, 손을 내 쪽으로 흔들었다. "마나와 동화되기 위해, 그 동안 몸 안에 쌓아뒀던 마나를 모두 버렸어. 그리고 바 로 텅 빈 상태의 몸에 마나를 흘러 들어오게 만들었지. 물론 그 양은 대기에 흘러 다니는 마나의 양과 동일하게 하고 말야. 그리고 그 마나가 내 몸을 통과하도록 해 봤지.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말야. 힘들긴 했지만, 몸 구석구석까지 마나가 저장 된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마나가 흘러가듯 움직이기 시작하더군. 물론 처음부터 자 연스럽게 되진 않았지만..." 내 말이 이해가 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노를 쳐다봤지만, 이노는 얼빠진 표정으로 두 눈에 초점을 잃고 있었다. "이노?" "...으..응?" "뭐하는 거야?" "아니, 잠시... 놀라서. 너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인간은 처음이라 말야. 어떻게 된 것이 8 클래스에서 9클래스로 넘어가는 것에 10 클래스의 방법을 쓰냐?" "뭐..뭐?" 말을 더듬을 정도로 내 말에 놀라워하는 이노.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그녀보다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난데없이 10 클래스라니! "무슨 말이야?" 이해가 안간다는 내 말에 이노는 오히려 자기가 그렇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뭐야? 너, 모르고 그랬던 거야? 흠~. 하긴 10 클래스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네가 사용한 방법이 10 클래스라는 것을 알 수 없었게군!" "빨리 설명해봐!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허~참! 오히려 내게 화를 내는 거냐, 지금? 하지만 놀랐을테니 설명해주기로 하지 ."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다시 펜을 들어 나에 대해 적혀 있는 공책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마나와 동화가 된다는 것은 10 클래스에 들어서야 가능한 거야. 즉 그만큼 더 마 나에 친숙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혼돈의 영역에 가까워졌다는 뜻이지. 하지 만 넌 8 클래스에서 9클래스가 되는 시점에서 10 클래스의 방법을 쓴 거야. 즉 지 금 너는 9 클래스지만 10 클래스가 되야 하는 마나와의 동화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지. 네가 마나를 꽤 잘 다룬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걸?" 어렸을 때부터 몸 안에 대기 중의 마나 이상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그리고 몸 구 석구석에 마나를 저장하려 했던 것 덕분에 나는 뜻하지도 않은 성과를 거둔 것 같 았다. '마나와 동화되는 것이... 10 클래스가 되어야 가능한 거라고? 그..그럼 난 뭐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마나와 동화되는게 가능하니 말야...' 괜히 어깨가 으쓱거려지는 나는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헤벌 쭉 벌어지려는 입 때문에 말이다. '음... 표정관리... 표정관리...'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입가의 미소만은 어쩔 수 없었는지 꽤 오랫동안 웃는 얼굴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건 그렇고, 너 그렇게 마나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 어렵지 않냐? 내가 알기로 네 팔목엔 프로시아가 있었을 텐데?" 갑자기 이해가 가지 않는 사항이 떠올랐는지, 이노는 책에서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 다. "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프로시아의 힘에 구속받지 않고 마나를 내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익숙하게 해뒀어. 물론 몸에서 밖으로 쏟아 붙는 것도 말야." "호오~! 즉, 넌 프로시아의 힘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군. 예전에도 그렇다고 들은 것 같긴 하지만, 프로시아를 몸에 지닌 채 마나와 동화가 될 정도가 되다니. .. 대단하군! 네 몸에서 프로시아가 없었다면 더 빨리 9 클래스가 되었을지도 모 르겠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내게는 프로시아가 필요했다. 그것이 없 으면 몸 안에 마나를 저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법 방어구로서의 역할도 꽤 쓸만하고! "참, 이노. 그럼 난 내가 마나와 동화된 순간 9 클래스가 되었던 거냐?" "뭐, 그렇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 이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놓았던 손을 들어 뭔가를 적 기 시작했다. "10 클래스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을 해낸 건 이해가 조금 안되지만, 그때 9 클래 스가 된 건 분명해. 9 클래스가 되면, 마나가 한 군데가 아닌 몸 전체에 골고루 퍼 져 언제든지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거든? 물론 그렇게 되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빨 리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말야. 물론, 그에 따라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나고..." 마법사용이야 원래 빨랐기 때문에 별로 달라진 것을 못 느꼈고, 마나 역시 부족함 을 느끼지 못했던 나였기에 이노의 말에 무감각할 수밖에 없었다. '흠~. 별로 달라진게 없어서 9 클래스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 못했던 건가? 하지만 혼돈으로 조금 더 접근했다는 사실은 기쁘군!' 다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나였다. Ip address : 211.229.35.45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지하 실험실에서 시작된 이노와의 대화는 내 말실수 때문에 수 십 배는 더 길어졌 다. 대화 뿐 아니라 오두막집에 머무는 시간도... '내가 왜 마나와 동화된다는 말을 했을까? 에휴~.' 나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대략적으로 정리한 이노는 내가 9 클래스인 상태에서 10 클래스의 방법을 썼다는 사실을 안 이후,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지금까지 열심히 정리했던 책을 전면적인 수정을 하기로 했다. "이노 이건 그냥 내가 조금 특이한 경우일 뿐이야! 단지 마나에 대해 다른 사람보 다 더 친해서 마나를 더 쉽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굳이 다시 실험을 할 필요는 없..." "됐어! 내가 말했지? 난 찝찝한 기분으로 실험을 끝내는걸 매우 싫어한다고! 이대 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책을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 이쪽으로 와봐! 다시 시작해 봐야겠어!" '헉!' 이노의 다시 시작한다는 말! 그것은 내게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노가 저 렇게 호기심을 불태울 때면 언제나 나는 그에 비례해 고생을 해야했으므로. 뭐, 그 덕분에 9 클래스가 되긴 했지만... 하지만 힘든건 힘든거였다. "싫어~!" 이노가 이곳에서 간단한 실험을 하겠다며 나와 란을 붙잡은게 벌써 몇 달째였다. 그런데 끝이 보일 것 같았던 실험을 다시 하겠다니! 당연히 나는 그녀의 말에 반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힘이 없는 나는 결국 그녀의 뜻대로 좀 더 오두막집에 머물러야만 했다. 물론 이노 의 뜻을 막기 위해 란에게도 물어보고, 그녀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잔 머리를 굴려보기도 했지만 별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란이 정령에게 푹 빠져버려 이곳에 좀 더 머물고 싶다는 것을 미리 눈치 챘어야 했는데... 쳇! 어쩐지 내가 란의 의견도 물어보자고 했을 때, 이노의 입가에 승리 의 미소가 맺히더라니... 하아~, 이럴 시간이 없는데... 벌써 생각보다 꽤 많은 시 간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말야...' 이곳에서 잠시 머물 줄 알았던 나. 하지만 이노가 생각한 '잠깐'이라는 단어는 내 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도에 그만둘 수는 없었기에, 그 후 몇 주 동안 난 이노의 실험 대상자로 오두막집에 머물러야만 했다. '저절로 들어온 행운을 내 손으로 던져 버리다니...'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이후, 나는 서서히 라피에르가 걱정되기 시 작했다. 솔직히 그 동안 나는 녀석에 대해 거의 잊고 지냈다. 내 자신의 일에도 바 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녀석에 대해 떠오르기 시작하자, 녀석에 대한 걱정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든든한 키에라도가 라피에르 옆에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녀석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아... 결국 방법은 하나 뿐인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이노의 힘이 지배하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다시 실험을 하자는 그녀의 뜻을 따 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오두막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 생활은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노의 실험에 임하는 나의 태 도 때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싫다는 태도로 실험의 능률을 떨어뜨렸을 나지만, 이번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실험이 빨리 끝나야 내가 이곳을 빨리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보다 내가 더 발벗고 나서 실험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 덕에 나 는 이노도 놀랄 정도의 기간 안에 그녀의 실험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 째 이유는 이노가 란에 대한 실험을 그만 뒀다는 거였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노는 란을 약올리며 그녀의 성격을 개조하기 위해 힘을 써왔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지금까지 변한 란의 성격만으로도 만족감을 얻었는지 더 이상 그녀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즉 나와의 실험에 온 정신을 쏟았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정말 최 단시간에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험 덕분에 난 뜻하지 않는 성과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바로 마나와 동화되는 것에 대해 꽤 많이 익숙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거였다. '좋았어! 정말이지 지난 몇 주동안 내가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히유~. 하지만 내게도 꽤 도움이 됐던 실험이었어.' 사실 이노가 이번 실험에서 알아낸 것은 몇 개 없었다. 내가 마나와 동화되는게 정 말 10 클래스에서나 가능한 바로 그것이라는 것과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가 나와 마나간의 친화력이 보기 힘들 정도로 높기 때문이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 만족스런 결과에도 이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뭐,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네... 결론은 네가 너무너무 특이하다는 것... 그것 뿐 이야. 이해할 수 없는 이유지만 뭐, 어쩌겠어... 몇 주간의 실험으로도 그 이상의 이유는 나오지 않는걸.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나와 이 정도로 높은 친화력 을 보인 인간은 너 이외엔 본 적이 없어. 쉐이트론이 그런 이유로는 최고의 인간인 줄 알았는데 말야. 물론 너를 보기 전에. 하지만... 아니더군. 인간이 거의 드래 곤을 육박하는 마나의 친화력을 보이다니... 놀라울 따름이야. 즉 시간은 좀 걸렸 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았으니 손해보는 실험은 아니었단 말씀~.' 이노는 저번에 정리했던 책 뒤쪽에 이번 실험에 대한 결과를 적으며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내가 그렇게까지 수고를 했는데 당연히 손해보는 실험일 리가 없잖아!' 나는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기억 때문에 화가 나서 즐겁게 뭔가를 적는 이노를 향해 커다랗게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일부러 좋은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는지라, 조용히 속으로 화를 삭혔다. "오랜만에 괜찮은 책 한 권이 만들어지네~! 좋아, 좋아~." "그럼, 이제 나에 대한 실험은 끝난거지?" 뭔가를 흥얼거리면서 집필에 열중하던 이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히유~, 드디어... 나가는 구나! 드디어!' 화가 나기도 했던 지난 몇 주간의 피로가 간단한 이노의 끄덕임만으로 단 한 순간 에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자유닷! 크크크큭!' 크게 웃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헛기침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에게 이곳 을 떠날 준비를 요구했다. "이노, 그럼 실험도 끝났으니 봉인한 내 힘을 돌려줬으면 하는데?" "아~! 맞아... 그게 있었지? 조금만 기다려, 거의 다 끝났으니." "그래." 잠시 후, 이노의 손에 의해 책 위를 돌아다니던 펜은 그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의 말대로 집필작업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내 봉인을 풀어주지 않았다. 마지막 확인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이노는 손에 들린 책을 처음부터 한번 촤르륵 훑어보고는 잠겨 있던 책장 안에 그 책을 조심스럽게 꽂아놨다. "흠~. 만족스럽군! 그동안 내 실험을 도와줘서 고마웠다!" "그래, 그래. 그건 알았으니 어서 봉인이나 풀어 줘~!" 마음이 급한 나는 이노에게 어느새 닦달을 하고 있었다. "쯧쯧... 참을성이 저렇게 없어서야... 봉인 푸는건 어렵지 않으니 좀 기다려라! 여기서 그렇게 빨리 나가고 싶냐? 네 얼굴이 슬슬 지겨워지는 것으로 봐서, 나갈 때가 된 것 같기는 하다만..." 귀에 거슬리는 말만 골라 하는 이노를 보며 뭐라고 한마디 톡 쏘고 싶었지만, 내 쪽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이번에도 그런 생각은 밖이 아닌 속에서 터지고 말 았다. '그래! 나 참을성 없다! 그러니 어서 풀어나 줘!' "밖엔 지금 전쟁중이란 말야. 그 전쟁의 제일 앞에 있는 것이 내 동생이다. 그러니 안 급할 수 없지." "호오~. 동생도 있었냐? 그러면 그 동생이라는 녀석은 왕자겠군... 근데, 너 형은 걱정 안하냐?" 내 신분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이노였기에 난 그녀의 입에서 라피에르에 대한 말 이 나오는 것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내가 유투 왕국의 왕자니, 내 동생인 라피 에르 역시 유투 왕국의 왕자가 되니까...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드루젤에 대한 말 이 흘러나올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드루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지? 난 이야기 한 기억이 없는데?" 순간적으로 내 표정이 굳어버리자, 이노가 의야한 듯 나를 쳐다봤다. "형이 맞나 보군... 하긴 그곳을 사용하는 자는 역대 왕국의 왕 밖에 없었으니... 근데 너랑은 사이가 안좋은 모양이지? 그렇게 표정이 굳는걸 보면 말야..." "말 돌리지 말고 대답이나 해줘! 어떻게 드루젤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그를 만난 적이 있는 건가? 하지만 넌 이곳을 나가지 않는 것 아니었나?" 이노에게 질문을 하던 나는 순식간에 수 십 가지의 가능성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 산책 겸 이곳을 나가긴 해... 뭐, 얼마 전에는 끈질긴 영감탱이 때문에 이곳 을 나갔었지만..." 골치 아프다는 듯 오른 손으로 이마를 살짝 누르는 이노의 모습에서 나는 키에라도 를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키에라도?" "아! 맞아, 그 영감탱이 이름이 키에라도였어! 예전에 쉐이트론에 그 자에게 깨달 음을 줬던 적이 있었나봐. 뭐, 그 덕에 귀찮은 일만 얻은 격이지..." 어렵게 피한 키에라도를 다시 쉐이트론이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 이노는 잠시 나를 무섭게 째려봤다. "그..런데?" "뭐, 별거 아냐. 키에라돈지 뭔지 하는 영감탱이를 내쫓으려고 쉐이트론이 그자를 밖으로 유인했지.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야. 생각보다 쉐이트론이 잔정이 많거든~." 별로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었던 나는 조용히 고 개를 끄덕여줬다. "그때 쉐이트론은 오랜만에 밖으로 나간 거였어. 물론 나도 그랬지만. 그 때 쉐이 트론은 영감탱이를 유인한다며 다른 곳으로 갔었지. 나는 그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녀석의 기운을 느껴서 그 녀석을 쫓아갔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녀석?" 갑자기 이야기가 옆으로 세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노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녀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드루젤 때문이었으므로 혹시 그 존재가 드루젤과 관계된 인물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 다. "예전에 한번 혼내주려다가 놓쳤던 녀석이 있거든?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가 바로 그 녀석의 기운을 느꼈지. 쉐이트론과 같이 있던 중, 그 근처에서 말야..." "그래서?" "그래서는 뭘~. 예전에 혼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배로 값아 주려고 녀석을 쫓아 갔지..." 계속되는 이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 다. "그래서? 그 자를 찾았어? 혼내주려고 했다는 그...?" "아니! 조금 쫓아가다 보니,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금새 모습을 감춰버렸더라고... " 이노는 매우 아쉽다는 듯,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그런 이노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았다. 유투 왕국이라는 단어와 드루젤이라는 단어 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으므로... "저..저기 이노. 혹시... 그 자의 흔적을 놓친 곳이... 유투 왕국인 거야?" "호오~! 너 어떻게 알았냐? 뭐, 그 전에 놓치긴 했지만, 그래도 난 녀석의 흔적을 쫓아갔었지.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쪽으로 쫓아가는 건 그리 어려운게 아니었거 든? 아무리 멀어도 말야... 하지만 유투 왕국에서 난 녀석의 진한 흔적만 발견할 수 있었을 뿐, 녀석은 찾을 수 없었어. 그곳 어디에도 녀석은 없었던 거지! 쳇! 언 제나 느끼는 거지만, 그 녀석은 너무 얍삽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인지 이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떠 올라 있던 기억들을 모두 밖으로 털어내듯. 하지만 나는 이노와 달리 머리를 흔들며 머릿속의 생각들을 털어낼 수 없었다. 잊 어버렸던 퍼즐의 조각이 나타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조각 이라 내 머릿속의 그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노! 계속해봐! 어쩌다가 드루젤을 알게된 거야?" 나 혼자로는 맞출 수 없는 퍼즐. 결국 나는 그녀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할 수 밖에 없었다. "흠~. 어디 보자... 아! 녀석의 흔적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대대로 유투 왕국의 왕만이 쓸 수 있는 곳까지 갔어. 그곳에서 녀석의 기운이 매우 강하게 느껴졌었거 든. 하지만 내가 찾는 녀석은 그곳에 없더군. 그 대신 거의 죽어 가는 인간만 발견 했지..." "주..죽어 가는 인간?" 그녀의 말에서 나는 그 인간이 드루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대로 왕만 이 사용한다는 방을 쓸 수 있는 자는 드루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 왕국에는 나와 아버님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애써 얻은 자리에 올라간 드루젤이 죽 어가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라피에르에게서 나는 드루젤은 많 이 변했다는 사실만 들었을 뿐이었다. 전혀 죽어간다는 말은 녀석의 말 중에 없었 던 것이다. 그런데...!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이노의 고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끄덕여졌다. "분명이 죽어 가는 인간이었어. 그대로 뒀으면, 아마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을 거야 ..." "그대로 뒀으면?" "아! 내가 살라놨거든~!"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이노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내가 그곳에서 녀석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인간 때문이었어. 그 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녀석의 기운 때문에..." "기운?" "그래, 기운! 그 녀석이 인간들을 마음대로 조정할 때 쓰는 녀석의 기운 말야. 녀 석은 그런 식으로 인간들을 타락의 길로 인도하거든? 즉, 그 인간은 녀석의 먹이감 이었던 거지... 뭐, 녀석을 찾지 못했던 나는 화풀이로 그 녀석의 먹이감에 손을 댔지만..." "...어떻게... 했는데?" 이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겨우 그녀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녀가 쫓았 던 존재는 내가 혹시나 했던 존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긴! 녀석의 기운 때문에 죽음의 길로 가게 된 거니, 녀석의 뜻과는 반대 로 그 인간을 살려줬지! 내가 그 인간을 살려두면, 녀석의 뜻에 차질이 생길 것 같 았거든?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러냐?" "......" 나는 이노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더 급한 문제들이 머릿속을 헤집 고 다녔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정보. 이노의 말에서 나는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노! 호..혹시 말야, 그... 네가 쫓았다는 그 존재! 그 존재가 혹시... 고위 마 족이냐?" "호오~. 추리력 한번 대단한데?" 혹시나 하고 물어봤던 나였다. 아니길 빌며 물어봤던 나였다... 하지만 이노의 입 에서는 긍정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여..역시 그랬단 말인가? 기운을 불어넣어 인간을 조정한다는 말에 설마 했는데.. 그럼, 그 마족의 기운이 들어간 드루젤이라는 것은... 드루젤 역시 마족에게 이용 당하는 인간이란 말인가? 하지만... 드루젤이 왜 마족의 먹이가?' 예전에 혹시나 고위 마족이 드루젤의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가능성만을 생각했을 뿐, 확정적으로 그 말에 대해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노의 말 덕분에 나는 믿고 싶지 않았던 가능성 을 사실로 인정해야만 했다. '전쟁의 적이... 드루젤 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 뒤에 마족이 있다니! 이대로 가다간, 라피에르가 위험해! 이건 폴보트 연합과 힘을 합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냐!' 마족은 피만을 원한다는 레드 사이어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아니, 확실히 드루젤이 일으킨 전쟁은 그 마족 때문이야! 그 자가 뒤에서 조정하고 있었던 거지... 이렇게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맞춰지니 이해가 가는군. 왜 크로와 왕국과의 전쟁에서 유투 왕국이 그렇게 큰 피해를 입었는지 말야... 그 리고 왜 또 전쟁을 일으켰는지도... 그리고... 드루젤이 왜 죽어 가는 몸이 되었는 지도...' "야! 리넨! 뭘 그렇게 생각해?" "아..아무것도 아냐... 단지 드루젤 뒤에 마족이 있었을 줄은 몰랐을 뿐이야..." "흠~. 그건 나도 좀 의외였어. 드루젤인지 뭔지 하는 네 형 뒤에 녀석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 난 좀 더 나이 많은 인간 뒤에 녀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야..." "왜..왜 그런 생각을 한건데?" "흠~." 혼자 말을 이어가던 이노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할까? 말까? 생각을 하는지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며 입열기를 망설였다. "말해봐! 뭔데 그래? 뭔가 알고 있는 거야?" "흠~. 뭐, 이건 그동안 도와준 걸 생각해서 말해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 이상의 것 을 내게 요구하지는 마. 귀찮은 건 질색인데다 바깥세상의 일에 연관되고 싶지 않 거든?" "알았으니 대답이나 해줘!" 이노는 다급한 내 말투에 알았다는 듯 손을 들어 나를 진정시켰다. "조용히 해라. 나 귀 안먹었어! 흠~. 어디 보자, 내가 처음 네 몸을 관찰했을 때, 널 죽이려 했던 녀석에 대해 언급한 적 있었지? 그 녀석이 바로 드루젤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야." "뭐..뭐얏? 그..그렇다면 둘이 같은 존재?!" 믿기지 않다는 생각으로 언성을 높였던 나는 서서히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존재가 그 마족이라면... 그 마족은 아리아 뒤에서 그녀를 조 종했을 것이다. 젊은 아리아는 야망이 많아 마족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존재였으 니까... 그리고 아리아가 죽은 지금은 그녀의 아들인 드루젤의 뒤에 있는 것이군..' 몰라서 남겨뒀던 퍼즐이 모두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이노가 내가 찾지 못했던 퍼즐 조각을 이리도 많이 갖고 있을 줄은 몰랐었다. "그 마족이라는 자... 예전에 이노가 혼내주려다 만 인물이라고 했었지?" "더 이상 묻지 마. 내가 말했을텐데? 귀찮은건 질색이라고. 네가 내게 질문을 하는 것은 내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행위야!" 단호하게 내 말을 자르는 이노를 보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녀를 통해 나는 얻을 만큼의 정보는 다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정보를. .. "또 같은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다시 해야 할 것 같군... 아슬란... 그 녀 석을 조심해. 눈빛을 보아하니 피해갈 것 같지는 않군. 지금의 네 실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해도 말야... 어쨌든 조심해." "그 자의 이름이... 아슬란인가?" "그래. 최고의 마족이지..." 이노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강력하게 밝히며 대륙에 불어오는 피바람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준 정보에 의해 피바람으로 한 걸음 다가섰 고... Ip address : 211.229.34.199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이노의 오두막집에 머무는 마지막 날. 이노는 나와 란을 불러 우리의 봉인되어 있 는 힘을 풀어주었다. 란이 먼저 봉인된 힘과 레드 사이어를 되찾았는데, 그 과정은 매우 간단해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나도 그녀와 같이 꽤 빨리 봉인된 힘을 되찾 아 이곳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란과 달랐다. "란, 잠시 피해주겠어? 리넨은 조금 복잡해서 말야." "아, 네." 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나를 의야한 시선을 한번 쳐다보고는 레드 사이어를 들고 밖으로 자리를 피해줬다. '오랜만이라, 레드 사이어와 그동안 못했던 대화를 나눌 모양이군...' 문을 닫고 사라지는 란을 쳐다보고 있자, 이노가 내 시선을 고정시키며 마음의 준 비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봉인이 해제되면 넌 예전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들거야. 물론 네가 봉인되었을 때보 다 발전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럼, 시작한다!" "응!" 서서히 이노의 손이 움직이자, 나는 내 몸 안에 들어있지만 느끼지 못했던 드래곤 하트를 서서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드래곤 하트가 이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기라도 하듯, 내 몸 안에서 새롭게 그 모양을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시..신기한데?' 윤곽을 잡아가던 드래곤 하트는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모든 봉인을 풀고 내 몸과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드래곤 하트가 갖고 있던 마나도... '드디어 되찾게 되는 건가? 근데... 으..으윽!' 그런데 그때였다. 순순히 예전의 마나를 돌려 받을 것 같았던 나는 갑자기 몰려드 는 엄청난 마나에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이..이게 뭐...으윽! 이노가 말한게... 이건...가?' 갑자기 엄청난 마나가 내 몸 안을 강타하는 듯한 충격! 마치 높은 마나의 파도에 몸이 쓸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대기에 퍼져있는 양 정도의 마나만 갖 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봉인되어 있던 드래곤 하트가 자유로워지는 그 순간 나는 내 마나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이건... 내가 9 클래스가 되었기 때문인가? 내 몸 안에 돌아다니는 마나의 양이 늘었기 때문?!' 심장 쪽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강력한 마나는 순식간에 몸 구석구석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몸 구석구석까지 마나가 잘 저장될 수 있도록 몸을 단련시켰기 때문인지 손끝 발끝까지 흘러들어간 마나의 양은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리고 그것은 내게 마치 전기 충격과 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몸 안에 들어찬 마나의 양은 예전에 내가 느끼던 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차이를 보였다. '대..대단해! 드래곤 하트가 무한한 마나를 제공해준다고 하더니... 엄청나게 마나 의 양이 늘어버렸어! 단지 1 단계를 올라섰을 뿐인데 말야.' 1 단계를 올라선 나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마나를 주체하지 못한 채 잠시 얼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야! 리넨! 뭐하는 거야?" 잠시 후, 이노가 내 몸을 흔들었을 때에서야 겨우, 나는 내가 9 클래스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꽉 들어찬 마나 속에 들어간 후에야 말이다. "어? 아... 이거 갑자기 엄청난 충격이라서 말야... 마치 마나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 같군~!" "호오~, 그래?" "응... 근데..." 갑자기 늘어난 마나 때문에 난 봉인이 풀린 직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 안에 마나가 이렇게 많으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마나와 동화되어가기가 힘 들어져... 지금까지 나는 마나와 동화되어 가면서 더 발전하려 했으니까, 지금처럼 몸 안에 마나가 많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지. 음... 어쩌지?" 봉인이 풀리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나를 찾아왔다. "몸 안에 많은 양의 마나를 머물게 하는 것은 프로시아... 이것을 빼버릴까? 하지 만 프로시아를 없애 몸 안의 마나를 모두 내 버린다고 해도, 무한한 마나를 제공하 는 드래곤 하트가 있기 때문에 나는 대기의 마나와 같은 양의 마나를 몸 안에 두면 서 마나와 동화되는 일은 할 수 없을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자, 나는 머릿속에서 정리해야 할 말들을 그만, 중얼거리면서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내 말을 들은 이노는 복잡 해 하는 내게 해답을 알려줬다. "뭐야? 그걸 걱정한 거냐? 욕심도 많네~!" "으..응?" "히유~. 네가 마나와 동화되어 가는 것을 계속 시도해 왔었다고 했지? 그 덕분에 9 클래스가 된 것이고!" "응..." 답답하다는 듯, 이노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직한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말했듯이 그것은 10 클래스에서나 가능한 방법이야. 하지만 너는 10 클래스 가 되기 전에 이미 그 방법을 사용했지. 그래서 내가 전에 놀랐었던 거고. 하지만 마나와 동화되는 방법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 있는게 아냐! 즉, 네가 생각해낸 방법 은 조금 변칙적이란 말이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마나와 동화될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네가 마나와의 친화력이 드래곤 만큼이나 높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드래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10 클래스야. 그리고 마나와 동화되는 것을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몸에 마나가 대기중의 마나 정도만 있는 것은 아냐! 그들의 몸에는 무한한 마나가 존재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나와 동화될 수 있어! 물론, 그 상태를 조금밖에 지속시키지 못하지만... 넌 지 금 그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는 상태를 생각하는 거지? 마나와 동화되면서 무한한 마나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상태 말야?" 이노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그런데?" "하.하.하... 역시나... 정말 욕심이 많아... 9 클래스가 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혼돈의 경지를 넘보는 거야?" "호..혼돈?" "네가 말한 것은 드래곤들도 하기 힘들어... 10 클래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흠 ~. 할 수 있는 존재가 있기나 할지도 모르겠네~! 내가 알기론 없지만 말야... 뭐, 어쨌든 불가능한 일이란 말야. 그러니 그렇게 고민하지 말라고!" "그..그래?" 놀라운 말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한 것이 10 클래스도 아닌 더 높은 단계라니... "그래! 그리고 이건 그냥 말해주는 건데 네가 사용한 방법 이외에 드래곤들은 다른 방법으로 마나와 동화될꺼야. 그러니 드래곤 하트가 있는 상태에서 마나와 동화될 수 있겠지. 그들의 방법이 맞다는 말은 아냐. 그런 방법이란 이게 맞다, 저게 맞 다라고 확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이니까! 넌 네 몸에 맞는 방법을 알아봐야 할거야 . 너무 작은 틀로 생각하지 않는게 좋아! 발전하려면, 그 틀을 깨야지! 그건 누군 가 말해준다고 깨닫는게 아냐. 만약 네가 그것을 깨닫게 되면, 인간의 힘으로 10 클래스에 도달하고, 그 이상까지도 갈 수 있겠지, 알겠냐?" "으..응..." 뭔가 대단한 말을 들어버린 것 같은 나는 잠시 동안 이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이해가 힘든 말이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생각해..." "그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생각에 잠기려던 나를 깨웠 다. '그래, 천천히 생각하자, 급할수록 되돌아가라고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크큭...' 다음날 아침, 나와 란은 오두막집을 떠나기 위해 아침부터 분산하게 몸을 움직였다 아슬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봉인이 풀리면 그 즉시 이곳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고 있기까지 했으니까! 이노의 말을 들은 이후 나는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안좋은 일들이 모두 아슬란 아슬란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복잡함은 내게 오두막집을 최대한 빨리 떠나게 만들었다. 내 실력으로도 상대하기 어렵다는 아슬 란. 그런 그를 키에라도만으로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라이 너와 트레모스가 그들 곁에 있겠지만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빨리 가야겠어... 라피에르에게!' 이노가 했던 봉인을 풀어준 이후 나는 신속히 이곳을 떠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지금 난 이미 떠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지만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오직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 생각이 겉으로 드러났기 때문인가? 란은 아 무 말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떠날 준비를 한 후 내 곁으로 왔다. "흠~. 이제 떠나는군~! 잘 가라~. 보아하니 아슬란 생각만 하는 것 같은데, 쯧쯧~. 머리 아프겠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을 하는 이노. 그런 이노 곁에서 쉐이트론이 놀란 듯 헛 바람을 들이켰다. "뭐..뭐? 아슬란? 서..설마 그 아슬란은 아니겠지..?" '쉐이트론도 아는 존재였나?' 설마 하는 표정의 쉐이트론에게 이노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는 존 재가 맞다는 뜻으로... 쉐이트론은 고개를 끄덕이는 이노를 본 이후 나와 란을 쳐 다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시선에서 걱정스런 마음이 담긴 시 선으로... 그런 이노와 쉐이트론의 모습에서 나는 아슬란이란 존재가 매우 위험한 임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웬만해선 신경을 끄고 사는 그들이 저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니 말이다. "저기, 리넨... 아슬란이라는 자가 누군데 저러는 거야?" 옆에서 아슬란에 대해 처음 들은 란은 궁금하다는 듯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소근 거렸다. "이곳을 떠나면 이야기 해 줄게. 지금은 좀 그래..." "흐음... 알았어." 알고 싶어하는 생각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이노와 쉐이트론을 쳐다봤다. “아, 그건 그렇고, 쉐이트론은 어떻게 할거야? 약속대로 키에라도와 만나기로 했잖아!” 이곳에 온 목적이 생각난 나는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생각에 속으로 안 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그거... 지금 상황으로 보니, 대륙엔 전쟁중인 것 같던데요. 그 전쟁이 끝 난 후 만나는게 좋을 것 같군요. 어차피 지금 당신에게는 키에라도라는 존재가 필요한 듯 하니, 저와의 약속을 조건으로 그를 묶어두는 것도 좋겠지요.” ‘호오~! 머리한번 좋은데? 내가 원하는 것을 저렇게 잘 집어내니 말야... 하긴, 지금 쉐이트론을 데리고 가거나 키에라도를 이쪽으로 보내게 되면 내가 힘들어지지!’ “전쟁이 끝난 이후라면 귀찮아하는 쉐이트론이나 나나 둘 다 좋으니... 그렇게 하지, 쉐이트론과 키에라도가 만나는 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로 말야!” "그러세요." “좋아! 그럼, 이만 가볼게! 잘들 지내! 가자, 란!” "아! 아... 잠깐만! 쉐이트론, 여기 반지..." 란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목걸이에 걸어뒀던 쉐이트론의 반지를 풀렀다. 하지만 쉐이트론은 자신쪽으로 내민 란의 손바닥을 꼭 쥐어주며 그 안의 반지를 란에게 다 시 되돌려줬다. "됐습니다. 그냥 가져가십시오. 저보다는 당신에게 더 쓸모가 있을테니까... 괜찮 겠지, 이노?" 이노가 준 반지라 자신의 뜻대로는 할 수 없다고 했던 쉐이트론. 하지만 지금 그는 아슬란이라는 이름을 들은 이후 그 반지를 란에게서 돌려 받지 않았다. 아마 그 이름은 그에게서 반지를 포기하게 만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그의 옆에 있던 이노에 게서도... "흠~. 뭐, 저런 구식 반지보다 더 좋은 반지를 만들어줄려고 했었어~! 저런 구닥다 리는 그냥 줘버리라고!" 고개를 휙 돌려버리며 쉐이트론의 팔짱을 껴버리는 이노. '훗! 일부러 저런 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건가?' 그들이 란에게 약간이긴 하지만 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피식 웃으 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란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저들이 준거니 그냥 받아둬. 어차피 네게는 필요할테니." "으..응!" 란도 내심 그 반지를 갖고 싶었는지 환하게 웃으며 다시 목걸이에 걸려고 했다. "잠깐! 그 반지가 커서 손에 안맞는 모양이지? 이리 줘봐." 이노는 란의 손에 들린 반지를 빼앗듯 가져가더니 그 반지의 크기를 순식간에 란의 손가락에 맞는 크기로 줄여버렸다. "반지는 손가락에 끼라고 있는거야! 이건 펜던트가 아니라고!" 다시 돌아온 반지는 처음 크기보다 많이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영롱한 보라색 물 결들은 여전히 반지 안에서 아름답게 찰랑거리고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노... 쉐이트론..." "...다..당연하지!" "별말씀을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란의 모습에 모두 당황했는지 이노는 말을 더듬었 고, 쉐이트론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나도 입을 반쯤 벌리고 란을 쳐다봤고... '허..허... 저런 식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줄도 알게 된거야? 대..대단한데?' 란의 목소리 속에 들어 있는 감정이 진정한 마음에서 울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나는 란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나도 고마웠어! 그럼 이만 가보지. 잘들 있으라고!" "흥! 네가 그런 말 안해도... 잘 지내니 걱정 마라~!" 이노와 쉐이트론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낸 이후 나는 란을 대리고 아쉬움 반, 기쁨 반이 담긴 발걸음을 돌리며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 내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움직였다. 오두막집 근처에서는 텔레포트를 해도 이곳을 벗어 나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란은 결계가 있는 곳까지 가야만 했다. 처음 그곳까지의 길은 매우 멀게 느껴졌었지만, 힘을 돌려 받은 나와 란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곳 까지 갈 수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이 그리워질지도 몰라. 이 녀석들보다 더한 녀석이 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 결계 밖에서 으르렁거리는 몬스터들이 몰려들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 가자, 란!" "응!" 나와 란의 죽음의 숲에서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이 났다. Ip address : 211.50.254.129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NT 5.1; Q312461) Name 아나크 Subject <연금술사>-39-1 유투 왕국과 폴보트 연합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군사력으로 따져보 면 유투 왕국이 연합보다 월등히 뛰어났지만 연합 쪽에는 그런 군사력의 차이를 무 마시킬 수 있는 뛰어난 마법사가 있었다. 라피에르의 옆에서 그를 도와주는 키에라 도가 바로 그였다. 막상 막하의 전력. 하지만 키에라도는 손쉽게 왕국 군사들의 공 격을 무마시키며 그들을 라피에르의 편에 서도록 만들며 전쟁을 해나갔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연합 쪽은 더 막강한 군사력으로 왕국을 공격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 고 그런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은 키에라도에 의해 계속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왕국에서는 전쟁의 승리가 연합 쪽으로 넘어가려 하자, 감쳐두었던 비장의 수를 꺼내 그들의 우위를 빼앗아 왔다. 바로 의지를 상실한 인간들의 부대를 이용 해서 말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실력과 힘을 가졌고, 상처와 죽음 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알아볼 수 없게끔 검은 복면과 검은 옷을 입 은 사람들... 그들로 이뤄진 왕국의 군대는 막강했다. 아무리 키에라도가 피를 흘 리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만들 정도로... 결국 평화롭게 전쟁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연합 쪽의 계획은 그들의 등장으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전쟁은 다시 피의 전쟁으로 바뀌어갔다. 왕국이 복면인으로 구성된 군대를 제일 처음부터 앞세워 전쟁을 일으켰다면 대륙 전쟁은 순식간에 왕국의 승리로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유투 왕국은 무엇 때문 인지 연합과의 전쟁이 끝나가려 하자 그들을 전쟁터로 내보냈다. 마치 전쟁이 오래 도록 지속되길 바라는 것처럼. "저하, 이대로 가다가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생각 을 할 수 없는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그들을 죽일 수 있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명령을!" 복면인들로 이뤄진 군사들을 상대한지 3일 째였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연합 쪽의 피해는 엄청났다. 그리고 연합 쪽에서 잠시 몸을 담고 있던 라피에르를 따르 는 사람들의 피해도... 그리고 라피에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면 그런 피해 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 사실에 답답했지 전장 한 귀퉁이에 마련된 천막 안에서 리온이 커다란 목소리로 라피에르에게 명령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이다! 단지 누군가의 술수에 걸려들어 이지를 상 실해 전쟁의 노예가 되었을 뿐,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말이다. 그것도 내 나라의 국민들인..."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저하, 이런 때 확고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를 봐야 한다 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을 죽지 않으면, 우리 쪽의 군사들이 죽습니다!" "......" 라피에르는 리온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그 방법 밖 에 없다는 것도... 하지만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적이 라 해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라피에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저하!" "그래... 알았다. 지금은 전쟁 중! 내가 잠시 그것을 잊었나 보구나..." 라피에르는 탁자 밑에서 주먹을 꽉 쥐고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리온과 크릭, 그리 고 그 옆의 키에라도를 쳐다봤다. "리온, 크릭! 그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적이다! 고로 사정 봐주지 말고 공격해라! 키에라도! 당신도 이들을 도와 적을 공격하시오!" "네!" "그러지." 한참의 고민 끝에 라피에르가 결정을 내리자, 리온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더 이상 동료들의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 지 상대를 봐주며 싸우다 죽어간 동료들이 꽤 된 듯... 그렇게 회의가 끝나려고 할 때 밖에서 숨죽이고 있던 두 명의 인물이 무단으로 천 막을 들어올리며 그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야 겨우 끝난거냐? 뭘 그렇게 질질 끌어? 밖에서 기다리다 지쳤네!" 천막 안으로 들어온 이는 두명이었다. 그들은 이곳까지 오는데 꽤 고생을 한 듯 지 저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당신들은!" "쳇, 누가 밖에서 그러고 있나 했더니 너였냐? 보기 싫은 녀석이 왔군!" 놀라워하는 크릭과 리온. 그리고 투덜대는 키에라도. 그들은 라이너와 트레모스의 등장에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흥! 영감! 나도 당신 마음에 안들어! 리넨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당신 얼굴 볼 일 도 없었다고!" "아! 리넨! 그러고 보니, 갔던 일은 다 됐냐? 쉐이트론은? 응? 그는 어디 있지?" "혀..형아는!" 트레모스의 말에 리넨에게 부탁했던 것이 생각났는지 따지듯 달려가는 키에라도. 그 뒤로 라피에르도 어리광 가득한 표정으로 트레모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트레 모스 곁에서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인물을 찾으려는 듯 트레모스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라이너 이외의 인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녀석은 없어. 나와 라이너만 왔지." 트레모스는 라피에르와 키에라도의 기대에 찬 얼굴에 찬물을 붓듯 간단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형님은! 형님은 어디계시지?" 따지듯 물어보는 라피에르. 그는 트레모스의 말을 확인하려는 듯, 트레모스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라이너를 무섭게 쳐다봤다. 언제나 리넨 곁에 있으려 하는 라이너 를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추궁하듯 라이너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라이너 드 리플러스가 라피에르 저하를 뵙습니다." 라피에르의 눈이 라이너와 마주치자, 라이너의 고개가 앞으로 약간 숙여졌다. "형님이 어디계시냐고 물었다!" "리넨님은 아직 죽음의 숲에 계십니다." 라이너는 라피에르의 노려보는 듯한 눈빛도 무섭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 로 입을 열었다. "뭐? 리넨이 아직 그곳에 있다고? 그럼, 나와 만나기로 한 쉐이트론은?" "왜..왜지?" 키에라도가 라피에르와 라이너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리넨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차 있는 라피에르는 그런 키에라도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아직 그곳에 남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곧 이곳으로 온다고 하셨으니 조 금만 기다리십시오." 라이너 역시 키에라도의 말을 무시한 채 라피에르의 얼굴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평상시의 키에라도였다면 그런 그들의 행동에 화를 냈겠지만, 지금 그는 이곳에 쉐이트론이 없다는 말을 들은 뒤, 충격으로 인해 잠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리 고 그뿐이 아니었다. 리넨이 왔으리란 희망을 가졌던 라피에르도 잠시동안 할 말을 잊어야만 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전쟁 놀이는 안하는 거야? 리넨이 이곳에서 너희를 도우 라고 했단 말야!" "전쟁은 놀이가 아닙니다!" 투덜거리는 트레모스의 말에 크릭이 발끈해 입을 열었다.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몇 달 째 겪고 있는 그로서는 트레모스의 말이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하지만 트레모 스는 그런 크릭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트레모스, 그 자신이 보는 인 간들의 전쟁은 놀이일 뿐이었으므로... "저 녀석 말대로 빨리 끝내는게 좋을 것 같군. 어차피 지금부터는 복면인들을 상대 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으며 싸울 수 있으니 빨리 끝낼 수 있을거야! 그리고 나도 빨리 이 전쟁을 끝내고 죽음의 숲으로 가봐야겠다!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는 없을 것 같군!"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으려 하자, 키에라도가 그곳에 있는 이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서로의 존재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하는 생각은 일 치했기에 그들은 키에라도와 함께 복면인들이 설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형이... 나를 위해 라이너와 트레모스를 보내준건가? 형이 도와줬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뭐, 이런 것도 좋겠지!" 라피에르는 혼자 남은 천막 안에서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빨리 끝내도록 할게! 형이 돌아오기 전에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야지! 그럼, 그래야지!" 다시 의욕을 되찾은 것인지, 좀 전의 힘없는 라피에르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 다. 죽음의 숲을 나온 나와 란은 라피에르를 찾기 위해 숲을 나온 직후 바로 폴보트 연 합으로 향했다. 녀석이 전쟁중인 상태에서 아직까지 대공의 저택에 있을거란 생각 은 들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주변에서 녀석의 행방을 알아보는게 최선인 것 같았다. '흠~. 바로 대공의 저택으로 가는건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이곳으로 왔는데, 이곳은 전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드는군. 유투 왕국의 모습과는 너무도 틀려.. ' 대공의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나는 란을 대리고 항구도시인 보트 시에 도착 해 있었다. 이곳이라면 라피에르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이 꽤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어라? 리넨, 여긴 대공의 저택이 아니네? 그리로 가는 줄 알았는데?" 텔레포트로 이동한 란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의아한 듯 나를 쳐다봤다. "아... 바로 그곳으로 가긴 뭐해서... 나와 대공이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리고 결정적으로 녀석이 그곳에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야." "그래? 그럼, 여긴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며 란이 물어왔다. "대공의 저택과 가장 가까운 보트 시. 이곳에서 우선 라피에르의 행방에 대해 알아 보는게 좋을 것 같아... 근데... 분위기가 녀석에 대해 알고 있는 자가 없는 것 같 군." "응. 그렇게 보이네." 지나가는 몇 몇의 사람들이 란의 외모에 놀라 발걸음을 멈추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특징이 없는 듯, 이곳 사람들은 모두 자기 할 일에 바빠 보였다. "그건 그렇고, 리넨, 아까 그 아슬란이라는 사람에 대해 말 좀 해봐. 나중에 말해 준다고 했잖아." "아...! 아슬란... 그는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야." 아직 잊지 않고 있었는지, 란은 아슬란에 대한 말을 꺼내며 움직이려고 했던 내 발 을 묶었다. "마..마족?!" 마족이라는 단어에 아직 민감한 것일까? 아님 그녀 자신의 몸에 마족의 피가 섞여 있기 때문일까? 란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내게 아슬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해왔다. "그 자가 마족이라고? 누구지? 어떤 존재인 거야? 아까 보니 이노나 쉐이트론이 그 자를 조심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레드 사이어에겐 안물어봤었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해주려다가 란의 허리에 걸려있는 레드 사이어를 보고는 하려던 말을 뒤로 미뤘다. 레드 사이어라면 내가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 내 질문에 란은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시선을 자신의 허리에 있는 붉은 색의 검 으로 옮겼다. 그동안 레드 사이어 없이 생활해와서 그런지 그녀는 레드 사이어의 존재를 깜박 잊었던 것 같았다. '혹시 검이 되기 전에 마족이었던 레드 사이어라면 아슬란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란도 그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 듯, 레드 사이어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 하지 만 잠시 후 그녀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고개를 들었다. "모른대. 아슬란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마족 중 아슬란이 라는 이름은 없었다는데?" "흠~. 그래? 뭐, 다른 시대에 살았던 것이나 아님, 이름이 안 알려졌던 마족이었을 수도 있겠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던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갖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리넨, 네가 아는 거라도 말해봐! 그 마족... 지금 실존하는 건가?" 완벽한 마족을 본 적이 없는 란. 자신의 어머니조차 본 적이 없는 란으로서는 마족 에 대해 꽤 굶주려 있었던 것 같았다. "존재해... 그 자가 대륙에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원인이지. 그 자 때문에 유투 왕 국이 이렇게까지 망가진거고..." 입을 열기 시작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 한해 그녀에게 대부분의 사실을 말 해줬다. 그녀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에 대해서...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란은 자신이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그 후, 다시는 아슬란에 대해 입 을 열지 않았다. 자신이 잔인한 일을 벌이고 있는 마족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는 사 실이 언급되는게 싫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슬란이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 라고는 해도... '마족이 사라진지 오래라서 그런지, 란과 같은 반인마족은 거의 없지... 하지만 없 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인간과 같이 어울리기 힘든 종족이 마족이니 말야...' 잠시 다른 쪽으로 생각이 빠져있던 나는 현실로 시선을 돌린 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란, 우선은 라피에르나 찾아보자!" "응..." 제자리에서 발걸음을 땐 나는 예전 신세를 한번 진 적이 있는 도둑 길드로 걸음을 옮겼다. 도둑 길드는 정보 쪽으로도 꽤 뛰어난 수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라피 에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 같았다. '호오~,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역시 있군!' 예전 란과 트레모스가 이곳에 있던 건물을 없애버렸지만, 역시 내 생각대로 그 자 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흠~. 도둑 길드가 다시 만들어진건가?" 란이 건물을 본 직후 한 말이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내가 알기로 그들은 꽤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으니까." 예전 트레모스가 매번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도둑 길드를 찾았다는 걸 떠올린 나는 피식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위장을 위해 술집처럼 꾸민 건가? 분위기를 보아하니, 보통의 술집이 아닌 것 같은데... 위장을 하려면 제대로 좀 하지... 쯧 쯧.' 내가 주변 마나의 흐름을 잘 읽을 수 있게 되어서인지 몰라도 이곳에 들어온 직후, 난 이곳이 보통의 술집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를 뿜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 차렸 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시 란의 외모에 놀라 멍하니 있던 사내들이 하나 둘씩 란에게 음란성 짖은 말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휘익! 이봐 아가씨! 매우 예쁜데 그래? 이리 와서 우리랑 같이 놀지 그래?" "크크큭. 아름다운 아가씨가 이런 곳엔 웬일인가? 남자가 필요한 거야? 그럼 내가. .." 서걱! 촤르르르륵. 레드 사이어가 눈 깜짝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사내의 눈앞에서 휘둘러졌다. 란은 자신에게 말을 걸던 사내의 손에 들린 맥주잔을 반으로 쪼개며 그에게 무심한 눈길 을 보냈지만, 사내는 그런 란의 눈길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입을 커다랗 게 벌린 채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반쪽이 된 맥주잔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허..허억! 아..아닙니다! 뭐라고 하긴요... 제가 잠시 정신이 멀었습죠!"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르기의 검을 본 그는 란이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임을 깨 달은 모양이었다. "여기가 도둑 길드 맞나? 내 생각으론 맞는 것 같은데..." 란은 자신과 눈을 마주친 자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그 자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 으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정보를 얻으러 왔다. 길드 장은 어디 있지?" "저..저쪽에..." 조금 전까지 그저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란. 하지만 그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바뀌 자, 시끌벅적하던 장내는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말았다. 란은 그런 변화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에게서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쪽에 있대, 가자고!" "그..그래..."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란. 마치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나는 말 을 더듬고 말았다. '라..란이 싱긋 웃다니... 허..허허... 역시 아직까진 저런 변화에 익숙하지 않아. ..' 나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란의 뒤에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흠~. 예전과 같은 구존데?" 지하실로 내려가던 란은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마냥,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세 번째 문을 열었다. 벌컥! 문 안쪽에는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는 중년인이 한 명 손톱의 때를 파고 있었는데, 그는 벌컥 열리는 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 을 책상 밑으로 숨겨버렸다. "누..누군데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헉!" 화를 내던 사내는 란의 허리에 있는 레드 사이어를 본 직후, 하던 말을 잊지 못한 채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다..당신은..." "날 기억하는 모양이지? 길.드.장!" "네...넵!" 란의 냉냉한 말투가 흘러나오자, 길드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고개가 아플 정도로 목을 흔들어댔다. 길드 장을 상대하는 란의 분위기는 어느새 예전 처음 봤을 때와 같이 변해 있었다. 차갑고 싸늘해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 그때의 분위기로.. "그럼, 내가 원하는 정보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군!" "그..그러믄요! 모..모든지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것이라면.. 아..아니, 그냥 물어보십시오. 다 말하겠습니다." '호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란이 저 남자를 좀 심하게 다룬 모양이네? 저 정 도까지 벌벌 떨 정도라면 말야...' 난 조용히 뒤에서 란과 중년 사내를 지켜보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란은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길드 장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길드장은 그런 란에 게 성실한 대답을 해줬다. 그 둘의 질문과 답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지만, 나는 그 런 그들의 대화에서 원하는 대답은 얻지 못했다. 길드 장은 라피에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그는 우 리에게 꽤 괜찮은 정보를 제공해줬다. '전쟁이 지금 연합이 이기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단 말이지? 다행이군~. 그리고 이 야기를 들어보니, 라이너와 트레모스는 라피에르와 함께 인 것 같고... 흠~. 하지 만 아슬란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라피에르가 있을 만한 곳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들었기에 나와 란은 도둑 길드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자, 그럼 유투 왕국 쪽으로 가볼까?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되었으니, 그 주변으로 만 가면 녀석을 찾을 수 있... 어라? 이..이건?!" 란을 대리고 그곳을 떠나려 한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에 말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이건 혹시? 하지만... 확실치 않은데?'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기운... 왠지 란에게서 흘러나오는 것과 흡사한 그 기운은 마족의 것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라..란! 느껴져?" "......" 란도 나와 같은 기운을 느낀 것인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흘러나오는 그 기운에 란 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란?" "...응. 느껴져! 이건 분명 마족의 기운이야. 레드 사이어도 그렇다고 했으니, 분 명해!" 란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마족의 기운... 매우 강한 것 같은 마족의 기운... 그렇다면 혹시 아슬란?' 억지에 가까운 생각일지도 몰랐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나였 기에 내 몸은 어느새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란과 같이... Ip address : 211.234.163.3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NT 5.1; Q312461) 언제나 환한 빛이 감돌던 법황의 방.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뿜어내던 그 방은 지금, 어둡고 음산하게 변해있었다. 이 방을 사용하는 법황의 분위기 역시 방과 같 이 변해 있었지만, 그 자신의 그런 변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스스로 어둠이 더 좋 아지고 있다는 변화도... "조금만 더 있으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제물이 모자란 듯 하군 . 아직 내가 원한 량을 만족시키려면 멀었어. 이래가지고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군..." 어둠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방안의 분위기가 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보통사람 이라면 듣기 힘든 어조였다. 하지만 법황은 그런 목소리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엘벤트 녀석이 참견을 하는 바람에..." "녀석에게 위니아도 빼앗긴 것 같던데?" "아..알고 계셨습니까?" 권위 있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법황과는 다른 인물이라도 한 듯, 지금 어둠 속에서 사내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사람들이 아는 법황이 아니었다. "네가 한 행동 덕분에 내가 약속한 날짜는 늦어졌다. 하지만 약속은 지키지. 내가 바라는 제물이 다 채우지는 날, 폴보트 연합은 유투 왕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 다." "가..감사합니다. "그럼, 계속 수고하도록..." "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법황과 사내와의 의미심장한 대화는 끝이 났다. 평상시 같았으 면 폴보트 연합에서의 일을 다 끝내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을 사내. 하지만 이번만 은 뭔가 걸리는게 있는 듯, 어둠 속에 있던 사내는 신전에서 나와 보트 시 쪽으로 향했다. "흠~. 아까부터 거슬리던 기운... 이건 분명 반인마족이었던 그 여자의 기운이다. 그렇게 찾을 때는 없더니... 이곳에 와 있었던 건가? 운이 좋군. 크큭." 사내는 즐거운 듯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이동시켰다. 마족으로 생각되는 기운이 있는 곳으로 몸을 이동시킨 나와 란은 그곳에서 검은 색 의 옷을 온몸을 두른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높은 건물 위에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내를... '설마 우릴 기다린 건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서 나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 족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나와 란은 사내와 일정 거리를 유 지한 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일종의 경계심 같은 것이 그에게로 다가가려는 우리의 발을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저 여유로운 모습은 정말 우리가 자신을 찾아오리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군.' 잠시 우리를 내려다보던 사내는 천천히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내의 움직임은 아무것도 아닌 행동이었지만, 나와 란은 그 모습에 온몸을 긴장시켜야만 했다. '저..저자가 아슬란이면 어쩌지? 내 실력으로 그를 당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아슬란이 아니면? 젠장... 이럴 줄 알았다면 아슬란의 외모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건데... 아냐, 외모 정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건가?' 당황한 것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내의 행동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내 모습에 관심이 없는 듯, 그 자리에서 훌쩍 몸을 날려 그곳을 떠났 다. 마치 지금까지 나 혼자 오해하게끔 골탕 먹이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도 되는 듯 . "어..어라?" 점점 작아지는 사내의 모습.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단 말인가? 아님...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인가?' 난 잠시 혼란스러운 마음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를 놓쳐서는 안된다 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아슬란이든 그렇지 않든, 아슬란일 가능성이 있 는 존재라면, 그 가능성만으로도 나는 그를 쫓아야만 했다. "란, 가자!" "응!" 검은 옷의 사내는 빠르지만, 우리들이 쫓아 올 수 있는 속도로 몸을 이동시켰다. 점점 대륙의 아래쪽으로 이동해 가는 사내. 어느새 나와 란은 폴보트 연합을 떠나 유투 왕국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상해, 왜 우리가 쫓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정도 속도를 유지하는 거지? 우리 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건가? 음... 그럼 우린 이대로 저 사내를 쫓아가야만 하 는 거고?' 아무런 확신도 없이 그저 사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이대론 안돼! 이대로 쫓아만 가는 것은 시간 낭비야! 그가 아슬란인지 아닌지는 그에게 가서 물어보는게 더 확실할거야!' 내 옆에서 나를 따라오는 란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나를 쳐다보며 사내에게 좀 더 가까이 가자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한 나는 어느새 움직이는 속도를 높여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나는 사내와의 거 리를 쉽게 좁힐 수 없었다.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던 사내가 우리와 때를 같이 하여 자신의 속력도 같이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이..이럴수가! 설마 했는데, 지금 저 자는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었단 말인가 ? 같은 거리를 일부러 유지할 필요라면 그것밖에는 없지. 하지만 왜지?' 혼란스러움이 찾아왔지만, 나는 지금 눈앞의 사내를 쫓는데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 다. '이대로는 안돼! 반드시 저 자를 따라잡겠어!' 결심이 서자마자,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한계까지의 힘을 모두 짜내기 시작했다. 9 클래스가 된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기에 그 커다란 힘을 모두 억눌러왔던 나. 하지 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힘이 필요했다. 억눌렀던 힘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지자, 나는 예전 이노가 봉인을 풀어줬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역시 익숙하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니지!' 마나가 내 몸에 흘러 넘칠 정도로 가득차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내 몸은 란에게서 점점 멀어져 사내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나 먼저 갈게, 란!" 뒤돌아 잠시, 란을 쳐다보자, 란의 고개가 끄덕여지는게 보였다. 서서히 피로가 몰 려오는 것인지 그녀의 얼굴에는 굵직한 땀방울들이 여기저기 맺혀있었다. 슈슈슝! '이런, 바람의 저항이 더 세졌잖아? 이렇게 되면, 속력을 높인 보람이 없어! 으.. 윽.' 속력을 높이면 높일수록 점점 사내의 모습은 커져갔지만, 그와 비례해 내 몸을 뒤 로 미는 압력도 그 크기를 더해갔다. '젠장! 이 압력... 없앨 방법이 없나? 크..윽.' 9 클래스가 된 이후, 처음으로 난 내가 갖고 있는 힘을 최대한 이용해 달리고 있었 다. 그래서였을까? 지금까지의 속력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내 몸은 사내에게 접 근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느끼던 공기의 저항과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의 저항을 온 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잠깐, 좀 전에 저 사내가 뒤돌아 본건가? 쳇! 눈앞이 흐릿해서 그런건지 아닌건지 도 잘 모르겠잖아.'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든 나는 속도를 줄여볼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럼 눈앞의 사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다시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 에 들자마자 즉시 지워버렸다. '공기의 저항... 저항이 생기는 것은 가만히 있는 공기를 내가 달려가면서 가르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그 저항을 없애는 방법은 공기 자체가 나와 함께 갈라지면 되 겠군. 몸으로 공기를 가르기 전에 가르면... 그럼 아무 저항 없이 달릴 수 있을거 야!' 내 주변에 막을 친다고 해도, 공기의 저항이 생기는 것은 같다. 아니, 그 저항의 크기는 내 몸을 두른 막의 크기에 비례해 더 커질 것이다. 내 몸이 고통을 받지 않 는다고 해도, 사내와의 거리를 좁히는데 방해가 되는 공기의 저항은 없앨 수 없다 는 말. 그렇다는 것은 지금 내게 막을 치는 것은 소용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좋아! 공기를 가른다. 내 몸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는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공기를 가르 는 방법으로 마나를 이용하기로 했다. '공기 속에 흩어져 있는 마나. 그것을 움직이면, 공기는 따라서 움직이게 돼! 그렇 다면, 난 마나만 움직이면 되는 것이지! 내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 있 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에 나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몸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마나의 흐름을 느낀다. 그리고 그 마나를 나와 일치시켜 움직인다.' 9 클래스가 된 이후 마나와 동화되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나. 내 몸에서 흘러 넘치는 엄청난 양의 마나 때문에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시도해봤자 좋은 결과 를 얻을 수 없으리란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생각과 같은 결과 가 나오자, 나는 커다란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할 수 없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차근차근, 마나를 느 끼는 것부터 하자!' 마법을 배우는데 있어 가장 기초되는 것. 하지만 너무 빨리 나를 스쳐 지나가는 마 나 때문에 나는 쉽게 그 흐름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달려가는 거리를 생각해서 그곳의 마나를 느끼면 돼.' 처음에 나는 내 앞으로 100m 되는 거리의 마나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의 마 나를 읽는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미 나의 몸은 100m를 지나고 있었다. '뭐얏! 소용없잖아! 음... 다시!' 처음부터 나는 나와 마나의 거리를 너무 짧게 잡은 듯 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거 리는 내 생각보다 그리 가깝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거리는 내가 달려가는 속력이 늦어서가 아니라 내가 마나를 읽는 시간이 늦기 때문에 1초에 읽을 수 있는 거리는 재시도를 할 때마다 점점 늘어갔다. 하지만 10m씩 늘려가던 내가 200m쯤 되는 거리의 마나를 읽게 되자, 어느새 잠깐이긴 했지만, 마나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었다. '마나를 읽는 속도가...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좋았어!' 내 앞을 달리고 있는 사내를 쫓아가는 것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성과였지 만, 그래도 난 기쁜 마음에 사내를 쫓아가는 것에 대한 의욕을 불태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욕은 어느새 마나 읽기에 익숙해진 나라는 결과를 가져다줬다. '이젠 대략적으로 100m 정도 앞의 마나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게됐어! 대략적으로 1초에 100m 정도는 달리는 꼴이 된건가? 이거 대단하군! 하지만... 쳇.' 짧은 시간동안 꽤 괜찮은 성과를 얻은 나였지만, 사내와 나 사이에는 아직도 일정 한 거리가 유지되고 있었다. '속도가 빨라진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그동안 익힌건 빠른 속도로 나를 지나치는 마나의 흐름을 읽는 것! 내가 지나 치기 전의 마나를 읽는 다는 것은 그 마나를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기에 나는 차근차근 사내의 뒤를 쫓았다. 어차피 사내는 나를 떨쳐내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내 앞에 그 모습을 유지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내 마음 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저 자가 어디까지 나를 데려갈지는 모르겠지만, 놓치진 않아. 좋아, 다시 하자!' 마나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익힌 나는 그 마나를 서서히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마나는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은 서서히 내 의지에 의해 실현되었다. '내가 느끼는 순간 내 몸이 그 마나를 지나쳐서 시간이 없긴 하지만 서서히 내 몸 을 빗겨나가게끔 갈라놓고 있어.' 나는 대기에 퍼져있는 마나 사이에 내 몸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마나 사이에 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깐이면 내 뒤에 존재할 마나들... 하지만 난 내 가 읽어나가는 마나의 범위를 좀 넓게 잡으면서 그 약점을 보완해 나갔다. '100m 지점의 마나만 읽으면 안돼! 내게 필요한건 지속적인 거라고! 100,101,102m. .. 이런 식으로 하는건 비효율적이지. 그렇다면, 100~150을 한 단위로 묶어서 읽는 거야! 그렇다면, 내게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그럼, 시작할까?'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듯, 나는 하나 하나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며 사내와의 거리 를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어느 순간 결실을 맺는 것 같았다. '호오~. 이거 괜찮은데? 좀 전까지 내 시야를 가리던 공기의 저항이 눈에 띄게 사 라졌어! 사내의 모습을 보는데 지장이 없군. 좋아! 속력도 조금씩 올려보는게 좋겠 군!' 어느새 나는 사내를 쫓아가야 한다는 사실보다 내 몸을 막는 공기의 저항이 사라진 다는 사실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 앞쪽에 존재하는 마나를 읽고, 그 마나를 움직여 내가 지나갈 자리를 만드는 것 . 그것은 1초에 100m 정도 움직이는 내게 바람의 저항을 느끼지 않도록 해줬다. 저 항이 사라진 나는 서서히 달려가는 속도를 높여갔다. 처음에는 저항이 있어 속력을 높이지 못했는데, 저항을 줄여나가니 이제는 점점 속력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속력을 높이는 만큼 사내의 속력도 같이 높아져갔다. '흠~.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이제 난 요령을 알았다고! 언제까지 나와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두고 보겠어!' 쫓기는 자가 아닌, 쫓아가는 자이기 때문일까? 나는 어느새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빠르게 달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됐다. 사내를 쫓는 나는 이미 앞에 존재하는 마 나를 순간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터득했기에 서서히 달리는 속력을 높여갈 수 있 었다. 그 속력은 1초에 움직이는 거리를 더 늘어나가 만들었다. 1초에 100m 였던 거리를 150, 200m 로 서서히 늘려갔던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100m의 속력에 대한 저항도 심하게 받았을테지만 지금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속력을 내가 원하는 대로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달리며 거리를 재던 나는 어느 순간 내가 1초에 몇 m를 가는지 잊어 버리고 말았다. 그때의 나는 앞이 아닌 옆의 환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내 주변으로는 사물이 아닌 물감을 흐려놓은 듯, 색이 섞인 듯한 평면만 볼 수 있 는 상태. '이..이거 대..대단한데?' 나조차도 놀라 할말을 잃게 만드는 결과 때문에 나는 사내를 지나친 후에야 겨우 앞으로 달리던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이크, 지나친 것도 모르다니!' 최대한 빨리 달리던 몸을 멈췄지만 이미 사내의 모습은 내 뒤로 꽤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다행히 사내는 제자리에 멈춰 나를 기다려줬다. 공중에 정지한 자세로... "놀랍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거지? 보호막을 한다고 해도, 그 정도 까지는 안될텐데?" 무표정하던 사내의 얼굴은 어느새 호기심이 가득 차버렸다. "생각의 차이겠지. 그건 그렇고, 당신... 아슬란인가?" 너무도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사내를 본 순간부터 머릿속에 맴 돌던 질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사내는 눈썹을 잠시 움찔거릴 뿐,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너와 같이 있던 여자는 늦군. 네 속도에 맞추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차이가 많이 벌어졌어." 사내의 말에 란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쳐다본 나. 하지만 사내의 말대로 그 곳에는 란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너무 많이 떨어진 건가?' 주변 마나의 흐름을 느껴 란의 위치를 파악하려던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란의 기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이게 뭐야?' 예전 같았으면, 내 주변의 마나에서부터 차근히 마나의 흐름을 읽어나가야 겨우 멀 리 있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난 생각을 하자마자, 몇 초도 안되서 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이것 좀 전에 내가 빠른 속도로 나와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나를 읽는 연습을 했기 때문인가? 순식간에 먼 거리의 마나를 읽을 수 있게 되다니... 놀랍군.' 단지 사내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었지만, 뜻밖에 이 방법은 꽤 유 용한 효과를 많이 갖고 있는 듯 했다. '아..아니지, 이 자에게서 확답을 들어야지!' "당신, 아슬란이 맞는가?" "...맞다면?" "......!"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웃어보이는 사내. 하지만 나는 그자의 말에 순간적으 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맞는... 건가?' 사내의 대답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를 경계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 리해야만 했다. '이자가 아슬란이라면 이곳에서 내가 이자를 상대해야 한다. 이자를 놓친다면, 나 중에 라피에르에게 피해가 갈게 분명하므로. 이 자가 전쟁의 골을 더 깊게 만들기 전에 내가 막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면 막아야지. 그게 라피에르를 돕는 것이니 까!' 차분하게 머릿속의 것들을 정리하자 떨리던 마음을 가라앉고, 사내에 대한 두려움 이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아슬란이라는 이름만 듣고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몰라. 이노가 지금의 나는 아슬란의 상대가 안된다고 했지만, 내가 그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잖아. 저 자 의 표정으로 보아, 내 빠르기에 놀란게 분명하고.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는 거란 말 이지! 좋아!' 서서히 마음이 굳어지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내를 바라보는 내 눈에 투지가 불타 오르는 것도... Ip address : 218.149.211.57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자, 사내를 바라보는 눈이 보다 냉정해졌다. '란이 이곳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으니 힘들겠지. 란이 오 기 전에 저 자를 상대해야겠군.' 아슬란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혼자 마음을 정하고 나자, 어느 정도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네가 아슬란이라면 넌 내 손에 죽어야 할 것이다." 힘이 들어간 한마디. 단도 직입적으로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의지를 강하 게 만들기 위해서인지 내 입에서는 조금 거친 말이 나왔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내 말에 콧웃음을 칠 뿐이었다. "흥. 재밌군, 그건 네 마음대로 인가?" 피식 웃으며 나를 깔보는 듯 사내의 입꼬리가 위로 약간 올라갔다. "설마 나를 모른다고 할 셈인가? 나를 안다면 네 자신이 얼마나 죽어도 마땅한 존 재인지 잘 알텐데!" "글세... 네가 누구인지 내가 알아야 하나?" "으드득!" 말장난을 하듯, 사내는 내 화를 돋구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말에 도발하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건가? 사내는 자신의 말에 이를 가는 내 모습을 보고는 커다란 웃 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재밌어, 이래서 인간은 갖고 노는 재미가 커. 크큭." '가..갖고 놀아?!' 사내의 말장난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의 말에 냉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슬.란!"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다. 널 모르는건 아니니까." '여..역시 나를 알고 있었군!' 사내가 아슬란임이 확실해지는 순간, 내 주먹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네가 내게 한 짓도 기억하겠지?" "글세, 사소한 것까지 기억할 수는 없지." 관심 없다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아슬란. 그런 모습에 나는 손바닥에 손톱이 박힐 뻔했지만 잠시 아슬란의 눈동자가 내게서 떠나는 틈을 타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 주먹에 줬던 힘을 서서히 뺐다. '저 자는 일부러 나를 도발시키고 있다. 그런 것에 넘어가서는 안되지. 마족의 말 이라 그런가? 마음의 평정이 유지되기 힘들군... 란의 경우에는 무시할 수 있었는 데. 음~. 역시 저 자는 나보다 강한 건가?'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나는 그 자에게 내 분노를 하나 둘씩 털어놓기 시작했 다. "내가 태어날 때, 내 몸에 악령을 집어넣어 죽이려 했던 것을 잊었는가? 레지 산맥 에서 검은 복면인들을 보내, 유모를 죽게한 것을 잊었느냐! 아리아와 드루젤을 뒤 에서 조종하며, 죄없는 수많은 이들을 죽인 것은! 그것도 잊었다 할 것이냐?" "호오~.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 사이에 내가 네 아비와 어 미를 죽인 것에 대한 사항은 들어있지 않군. 모르고 있었던 건가, 아님 그런 것들 은 너한테 별로 타격이 없었던 건가, 리프네리욘?" '아..아버지와 어머니?! 그..그렇다면, 그들이 죽은게 이..이녀석 때문이라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순식간에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내가 몇 가지 추측을 섞어서 한 말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사실까지도 직접 시인 하며 내 말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저..정말인 거냐? 그런...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고 네게 죽어야 하는 건가? 재밌군 ." 아슬란이 짓거리는 말은 내 귀에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내게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죽게 한 원인이 바로 코앞에 있는 저 녀석 때문이라는 충 격적인 사실에 내 사고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인가!"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간 부모님, 유모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저 가슴 깊은 곳으로부 터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뜨겁게 치솟았다. "쯧쯧. 인간은 그런 귀찮은 감정을 갖고 있어서 안 좋아. 뭐, 그래서 이용해 먹는 재미가 있는 거... 흡~! 이런, 이런!" 작게 중얼거리는 아슬란. 하지만 그는 말을 다 끝낼 수 없었다. 내 가슴속의 분노 와 함께 날린 빠른 바람의 검이 그에게로 쏘아져갔으니까. 하지만 공기가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도 전에 아슬란의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내가 만들 어낸 무형의 검을 피해버렸다. 소리보다 빠르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속도였지만, 그것은 아슬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죽어---엇!" 슈슝, 쉬~익! 순식간에 내 주변에 흘러다니던 마나는 내 의지에 따라 아슬란을 향해 쏘아져갔다. 하지만 이번 공격 역시 아슬란은 아무렇지 않게 내 공격을 피해버렸다. "제길~!" 그가 내 기습적인 공격에 당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도 쉽게 몸을 틀어 공격 을 무마시키자, 내가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오직 눈앞의 자를 죽여야만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런 기분에 나 는 무작정 아슬란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실레스핀, 셀레이나! 저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 순식간에 소환된 물과 불의 최상급 정령이 아슬란 바로 옆에서 그의 발을 묶기 시 작했다. 하지만 위협적인 바람과 불의 합쳐진 공격으로도 아슬란의 입가에 생긴 미 소는 지울 수 없었다. '저리도 여유롭게 피하다니! 내 힘으로는 부족한 것인가?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는 없다!' 최상급 정령 둘을 소환하고도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그제서야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님을 깨닫고는 아슬란을 붙잡는데 어려워하는 정령들에게 동료들을 더 붙여줬다. 자연계 4대 정령이 모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넷을 모두 소환 하는 나. 하지만 아슬란은 그런 모습에 흥미롭다는 눈빛을 더할 뿐, 다급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호오~, 자연계 4대 정령들이군. 아직 어린 듯 한데, 인간치고는 꽤 괜찮은 실력이 야. 하지만 이건 좀 불공평한 것 같군. 5대 1의 대결이라니... 크큭." 마치 내가 정령을 부른 것 때문에 커다란 타격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아슬란은 억 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왜 내가 저 자에게 놀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난 최선을 다해 공격 을 하는데... 왜! 왜!' 4대 정령들을 손쉽게 피하던 아슬란은 커다란 웃음소리로 바람과 불, 물과 흙의 연 합공격을 텔레포트로 모두 피한 다음, 정령들을 향해 엄청난 마나장을 뿜어냈다. 콰콰콰쾅! 최상급 정령들은 엄청난 양의 만나를 요구하는 정령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강력한 마법을 사용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마나의 공격에는 약했다. 검같은 것으로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몸과 같은 마나로 이뤄진 공격이라면 그들은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꽤 큰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슬란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 마나장 같은 순수 마나의 공격으로 정령들을 하나 둘씩 쓰러뜨렸다. 퍼벙! 아스란은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정령들 사이로 파고들어 그들에게 직접적인 공격 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최상급 정령들을 하나 둘씩 되돌려보내야만 했다. 정령이 소멸되는 것을 볼 수는 없었으므로... '이..이대로는 안돼! 정령들로도 저 자에게 타격을 입힐 수는 없어... 뭔가, 다른 것을...' "왜, 이제 다 끝난 건가? 오랜만에 즐거워진 것 같은데, 할 수 있는게 더 있다면, 해봐. 그 동안 네 놀이에 참여해 줄테니... 크하하하." '또 다시 저 자는 나를 도발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에 정신을 흩트리면 안 된다. 지금까지의 공격이 실패한 원인이 흔들리는 내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 분노를 억누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동안... 아슬란을 공격하는 동안에는 이성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해!' 아슬란의 말을 흘려듣고 그의 표정을 보지 않게되자,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아슬란 에게 가는 길의 마나를 가르기 시작했다. '아슬란을 쫓아오는 동안, 나는 내 주변의 마나를 가르는 연습을 했었다. 그것은 공격으로도 쓰일 수 있지! 직접적으로 공격을 하다보면, 마나의 흐름을 상대에게 알려주게 되지. 하지만 마나를 갈라 그 사이로 파고들어 공격을 가한다면, 상대는- !' 아슬란은 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줬 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내게 그것은 중요하 지 않았다. 대기의 마나가 느껴진 순간 그것은 내 생각대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군데 그런 공간을 만든 나는 아슬란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 그 공간 사이에 아 까와 같은 공격을 몇 군데 퍼부었다. 슈슈슝, 슈슝-! "뭐..뭐지?" 난생 처음 받아보는 공격일 터. 내 예상대로 아슬란은 당황하며, 내가 갈라놓은 이 곳 저곳의 공간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약한 마나의 흔적들이었지만 아슬란은 그 변화에 반응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곳에 그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인 지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당황은 했지만, 모든 공격은 막아내는 것인가?' 내 행동이 소용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슬란의 주변에 다시 수 십 개의 공간을 뚫었다. '왜 저 자가 나를 공격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내게 이득인 상황! 이 상 황을 이용하는게 저 자와 나의 실력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겠지?' 나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기회를 만들기 위해 꽤 오랫동안 아슬란에게 쓸데없는 마 나 낭비를 해야만 했다. 어설픈 공격은 오히려 내가 당할 수 있을 여건을 만들었기 에 나는 기회를 노리는 공격도 심열을 기울여야만 했다. 주루륵! 어느새 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볼을 타고 내려와 내 몸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내 몸이 녹초가 되려고 할 때, 드디어 나는 지 금까지 한 노력의 결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 내 공격에 익숙해졌겠지! 허와 실이 섞인 공격에 말야... 그렇다면!' 순식간에 아슬란이 왼쪽으로 세 개의 날카로운 마나 덩어리가 쏘아져갔다. 당연히 아슬란은 그 마나 덩어리에 신경을 써 내가 다른 쪽으로 그에게 다가갈 기회를 제 공했다. 나는 세 개의 마나를 날리면서 아슬란의 몸 주변 여러 곳에 또 다른 공간들을 만들 어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아슬란이 가장 무시할만한 장소를 찾아, 그곳으로 몸 을 날렸다. 이미 내가 지나가는 공간은 내 힘에 의해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내 움 직임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아슬란은 얻을 수 없었다. 내 움직임을 전달해줄 마나 가 내 주변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점을 활용해 아슬란 모르게 그 와의 거리를 최대한으로 줄였다. '아직이다... 아직!' 내가 다가가는 반대쪽의 공격을 튕겨내는 아슬란. 그의 감각이 내 접근을 알아차리 기 전에 나는 그와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기 위해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가 나 를 알아보면, 이번 공격은 지금까지와 같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으므로. 하 지만 다행히 내가 생각한 거리까지 왔어도 그는 내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다!' 속으로 구호를 외친 나는 그 짧은 거리를 이용해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공격을 시 도했다. 단순히 강하고 날카로운 마나 덩어리가 아닌, 그 안에 전기 속성이 들어있 는 마나 덩어리를 날린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마나가 많이 들어가면 갈수록 알아차릴 확률이 높아. 그리고 너무 작아도 치명적일 수 없고! 나는 다시 그에게서 떨어져나와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위협적인 공격을 다른 곳에 서 해대기 시작했다. 물론 아슬란의 시선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이때도 난 최 선을 다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저돌적인 행동. 하지만 직접 그에게로 달려든 나는 아슬란의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아니 그런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갑작스럽게 변한 내 공격 방식에 아슬 란은 아까 내가 공격을 날린 자신의 등 쪽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것 같던 내 심열을 기울인 공격은 란의 등장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 었다. "리넨!"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역했지만, 멀리서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자신의 뒤쪽에 신경을 쓰려던 아슬란은 미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이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늦을 정도의 짧은 시간. 그 동안 몸을 두 곳으로 이동시키며 공격을 가한 나였다. 당연히 눈에 보이는 공격의 수준은 훨씬 지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육감과 마나의 흐름을 읽는 능력! 꽤 오랫동안 아슬란과 싸우면서 나는 그 중 마나를 읽는 아슬란의 능력에 혼란을 줬었다. 물론 지금까지 아슬란은 그런 혼란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었다. 하 지만 란의 등장으로 아슬란은 잠시 그 긴장을 늦춰 내 공격이 성공하게끔 만들어줬 다. 슈각! 지지지징~! 퍼벙! 살을 가르고 그 사이에 전기 충격을 주는 공격! 뒤늦게 아슬란이 자신의 등으로 파 고드는 마나 공격을 튕겨내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크윽! 잔꽤가 제법이군! 하지만..." 아슬란은 내 회심의 일격으로 꽤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았지만, 이쪽으로 달려오는 란을 쳐다보는 그의 입가에는 예전의 그 미소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리넨!" "너를 도와줄 동료가 도착한 것인가? 크큭! 그럼, 난 무서워서 피해야겠군~! 크하 하하!" 다급한 란의 목소리에 아슬란은 순식간에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왜 아슬란이 내 앞에서 모습을 감췄는지 이때는 알지 못했다. 아슬란에게 란이라는 적이 한 명 더 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쳐있는 그녀가 아슬란을 공격하는데 도움 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왜, 도망가듯 사라진 거지? 지금까지 보아온 그의 실력이라면, 내게 란이라는 동 료가 한 명 더 추가되도 아무렇지 않을텐데?'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리넨! 뭐하는 거야! 어서 쫓아가야지!" "으..응? 아!"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란. 나는 그녀의 다급해하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 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대로 아슬란을 놓칠 수는 없어!' 텔레포트로 사라진 그였지만, 단숨에 먼 거리까지 쫓을 수 있는 나는 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란, 날 잡아! 녀석을 쫓는다!" 슈슝! 나와 정령들의 공격으로 그곳의 주변은 초토화되어버렸지만, 미처 수습할 겨를도 없이 나는 란을 데리고 아슬란을 쫓아야만 했다. Ip address : 211.229.35.200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아슬란. 나와 란이 급히 그의 흔적을 쫓았지만 얼마 지 나지 않아, 우리는 그의 기척을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흔적이 사라진 지금, 나와 란은 그가 사라진 부근에서부터 그 일대를 돌아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도 우리는 아슬란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그는 우리가 그를 느끼지 못하는 먼 곳으로 몸을 이동했거나, 우리가 그를 찾지 못하도록 자신의 기 운을 감췄을 것이다. "젠장, 어디로 사라진거야!" 그를 쫓는 동안 우리는 오직 그의 흔적만을 찾았기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슬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체 념한 지금,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대체... 뭐가 보여야지!' 하지만 문제에 대한 생각은 처음부터 막히고 말았다. 가까운 앞도 볼 수 없을 정도 로 빽빽하게 우거진 숲과 그런 숲을 밝혀줄 달빛이 두꺼운 구름에 가려졌기 때문에 나는 현 위치에 대한 짐작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슬란을 쫓다가 어디로 와버렸는지도 모르게 되버리다니!' 현 위치에 대한 정보는 막막했지만 길을 잃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텔레포트만 한다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아 슬란에 대한 생각 때문에 이 숲을 더 뒤져보지 않고서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리넨, 왜 멈추는 거야? 그 자는? 찾은거야?" "놓쳤어..." "뭐, 놓쳤다고? 이런!" 믿고싶지 않다는 듯, 란은 고개를 마구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거의 하루 동안 그를 쫓아 달릴 때, 우리는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 후는 텔레포트로 움직였고... 흠~. 아슬란의 기척을 느낀 후, 바로 이동했기에 좌 표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만약 우리가 계속 남쪽으로 이동해 왔다면...! 호오~, 그렇다면 여긴 죽음의 숲 근처가 될 수도 있겠군... 원점으로 되돌아 온건 가?' "리넨! 안 움직일꺼야? 리넨? 알았어. 그럼 넌 여기 있어. 나라도 그를 좀 더 찾아 봐야겠으니!" 란은 가만히 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혼자서 아슬란을 찾겠 다며 우거진 숲으로 사라졌다. '이런 상태에서 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할텐데...' 나는 이미 아슬란을 찾는 것에 대해 포기한 상태였다. 지금 그를 찾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상황을 다 따져봐도 불가능했으므로...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머릿속에 가득한 이해하기 힘든 생각들 때문에 란의 부질없는 행동 을 막을 수 없었다. '이상해... 갑자기 자취를 감추다니... 지금까지 나와 란은 그를 잘 쫓아왔는데... 텔레포트로도 내가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만 이동했기 때문에 절대 놓칠 것 같지 않았어! 그런데, 이곳에서 갑자기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니! 뭔가 이상해! 나와 싸울 때도 이상했어. 아슬란은 내게 직접적인 공격은 일체 하지 않았단 말야? 내 실력이 자기에게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것 갖고는 설명이 안되지! 그는 내 가족을 죽인 원수야. 그런 내가 죽기 살기로 덤비는 가운 데, 그는 방어만 할 뿐 공격은 하지 않았단 말야... 왜지? 내가 다치면 안되는 일 이라도 있는 건가?' 그것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머릿속 에 떠오른 것을 모두 털어 버렸다. '그런게 있을리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그에게 그럴만한 존재가 될 리가 없지... 그럼,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말?! 음... 그리고 왜 란이 오자마자, 도망가듯 사리진거지? 그녀가 있다고 해도 타격받을 아슬란이 아닌데... 왜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에서 엉키고 설켜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들은 아무리 차근차근 정리해도 아슬란이 그와 같이 행동한 이유에 대해서는 만족 스런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젠장!" 애꿎은 바닥의 흙이 내 발차기에 의해 멀리 날아갔다. '다시 생각해 보자! 이대로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상황이야...' 심호흡을 여러 번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푹신해 보이는 풀이 우거진 나무 둥치에 몸을 기댔다. '나와 란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나?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우리가 다가오는 것 을 알고 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을 찾아오도록 일부러 자신의 기척을 내뿜 고 있었던 거고... 흠~. 이렇게 생각하니 유인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는 군. 맞아! 그리고 그는 내가 쫓아갈 수 있도록 텔레포트가 아닌 직접 몸을 날리는 방법 으로 내게서 멀어져갔었어! 나중엔 내가 그를 추월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먼 거리를 그렇게 무식하게 날아가는 방법만 쓴다는 건 말이 안 돼. 내가... 아니 나와 란이 자신을 쫓아오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이해가 되지만 말 야. 그렇다면 결국, 아슬란은 나와 란이 자신을 쫓아오도록 하기 위해 그와 같은 행동을 했단 말이군.' 전체적인 결론은 아니었지만, 그가 우리를 유인해왔다는 것에 대한 타당성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인은 이곳이 되는 것이고... 이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유인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곳에 우리를 떨어뜨려 놓은 거지!' 감았던 눈을 떠 다시 주변을 살펴봤지만, 죽음의 숲과 같이 우거진 숲 이외의 다른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곳에 우리를 떨어뜨려 놓은 이유가 뭐지? 혹시...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우리를 전쟁에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선가? 보트 시에서 들어본 바에 의하면, 지금 전쟁은 연합의 승리가 확정되었다고 했으니 말야... 그런건가? 우리 가 방해가 되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설마 시간을 끌며,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단 말인가! 그 렇다면 이곳에서 이렇게 시간을 끌 이유가 없지! 란을 데리고 어서 이곳을 벗어나 야 해!" 이곳에서 좀 더 차근히 아슬란을 찾아보려고 했던 나는 그가 의도한 것이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계획을 즉시 수정해야만 했다. "란을 데리고 이곳을 나가야해!" 몸을 일으킨 나는 즉시 란이 사라진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막상 란을 찾은 나 는 생각대로 바로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란이 발견한 이상한 결계 때문에... 한편, 대륙 전쟁은 지금 유투 왕국의 성이 함락되면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와~~~! 드루젤을 죽여라~!" 얼마 전, 성의 문을 무너뜨린 연합군들은 성안으로 빠르게 쳐들어오면서 계속해서 타도 드루젤을 외쳤다. 그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히면서 본성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 는데 그들의 움직임과 같이 타도 드루젤에 대한 소리도 성의 중심 쪽으로 모여졌다 "죽여라~! 죽여~~!" 연합국의 성 함락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전쟁에 대한 승리의 감정이 연합군 들의 능률을 더 높였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연합국 쪽에 선, 라피에르의 존재를 알게된 왕성 사람들이 연합군에게 반항 없이 항복을 선언한 이유가 전쟁의 끝을 더 앞당기는 이유로 작용했다. 즉 라피에르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이 전쟁 의 끝을 보이게 만든 것이다. 사실 유투 왕국의 국민들은 이번 전쟁을 연합과의 전쟁이 아닌, 자신들 조국의 문 제를 풀기 위한 싸움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즉 유투 왕국의 국민들과 귀족들 은 어느새 드루젤이 유투 왕국의 왕좌에서 물러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드루젤을 대신할 인물을 찾았기에 성의 함락에 대해서도 별다른 거부반응 을 갖지 않았다. 지금 성의 한쪽에서도 그 사실을 증명하듯 한 중년의 사내가 라피 에르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신 카를로스 드 라모아가 라피에르 드로이드 카스프리시안 저하께 인사를 올립니 다." 드루젤을 찾기 위해 성의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라피에르는 거대한 문을 연 직후, 한 남자의 인사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인사는 나중에 하시죠. 그것보다 드루젤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까지 이런 식의 인사를 꽤 많이 받아왔던 라피에르. 그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용건만을 물어봤다. 그러자 상대는 굳은 표정의 라피에르의 말 에 민망한 듯 몸을 일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질문에 대답했다. "그..그것이 저도 자..잘 모르겠습니다. 모습을 보이지 않은지 며..칠이 지났으니 까요. 흠흠..." "그렇습니까? 그럼, 나중에 뵙도록 하죠. 리온, 크릭! 가자!" "네!" 라피에르는 리온과 크릭을 데리고 멍하게 서 있는 카를로스를 무시한 채 그 방에서 나왔다. 드루젤을 찾기 위해 그가 있을 만한 방부터 뒤지고 있는 그들... 하지만 꽤 많은 방을 뒤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드루젤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별 로 만나보고 싶지 않은 귀족들만을 몇몇 만났을 뿐이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드루젤에게 따지고 싶은 것이 많은 라피에르는 한시라도 빨리 드루젤을 만나보고 싶었다. 드루젤을 찾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기에 그 다급함은 더 컸던 것이다. 즉 조를 짜서 왕성으로 들어온 연합군들 역시 그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드루젤을 먼저 발견한다면, 라피에르는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라피에르의 표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굳어져갔다. "저하, 찾아볼 만한 곳은 다 찾아봤습니다. 아마, 드루젤님은 성안에 안 계신 것 같습니다." 리온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라피에르의 고개는 그의 말을 부정하듯 세게 흔 들렸다. "형은 자존심이 매우 강해. 연합과의 전쟁에서 졌다고 몸을 피할 만한 사람이 아니 란 말이다! 분명... 분명 이곳에 있어!" "하지만 찾아볼 만한 곳은 모두 찾아... 아, 호..혹시?!" 라피에르의 말을 부정하려던 크릭은 갑자기 떠오른 어떤 생각 때문에 하던 말을 멈 췄다. "혹시라니? 뭐지? 뭔가 떠오른 것이냐?" "예! 혹시, 드루젤님께서는 그곳에 있는게 아닐까요?" "그곳이라니?" 답답하다는 듯, 라피에르가 크릭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감옥 같은 곳 말입니다! 그때 라이스.. 암튼 그 뭔가 하는 사람이 저하 를 가둬놓고 감시했던 그곳 말입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 크릭이었지만, 조금 전의 한 마디는 라피에르의 굳은 표정을 환하게 펼 수 있게 해줬다. "그래! 그곳!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결계가 쳐져 있는 장소. 보통의 사람이라면 찾기 힘든 장소였기에 라피에르는 그곳 을 떠올린 직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드루젤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기에... 라피에르가 알기에 드루젤이 비겁하게 어디 숨어 있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 지만 왠지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드루젤이 그곳에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그곳에 도착한 이후 사실로 드러났다. 예전에 한번 와 본적이 있는 리온과 크릭 덕분에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탑까지 도착한 그들. 라피 에르는 눈에 예전에 갇혀졌던 건물이 보이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어두운 건물 안에서 횃불을 쳐든 라피에르 일행. 그들은 불빛으로 앞을 볼 수 있게 되자, 다시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아무것 도 없는 텅 빈 복도였기에 그들의 발자국 소리는 꽤 크게 울렸다. "드.루.젤-!" 리온과 크릭이 있을 때, 라피에르는 드루젤을 형으로 인정했었다. 하지만 드루젤의 앞에서는 자신이 그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는지 건물 안에서 그는 드루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드.루.젤-! 여기 있으면 대답을..." "...르..." 희미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라피에르는 말끝을 흐려야만 했다. 자신이 들은 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맞은지 확인하기 위해! 하지만 희미한 그 소리에 대해 라피에르는 그것이 드루젤의 목소리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시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 "...라피에...르..." 정확하진 않았지만, 조금 전보다 꽤 크게 들린 목소리. 라피에르의 발걸음 속도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순식간에 빨라졌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예전 라피에르의 어머니인, 아리아가 갇혀 있던 장소였다. 라피에르는 왜 드루젤이 그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드루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달 려가는 속도를 줄이진 않았다. "헉헉... 여기 있었군! 이곳에서 뭐하는 것이지?" "...라피에..르..." 횃불을 쳐든 라피에르. 하지만 그는 어둠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 을 볼 수 없었다. "뭐하는 거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이곳에서 뭐하고 있는 것이냔 말이다!" 손에 들린 횃불을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내던지며, 라피에르가 드루젤을 향해 소리 쳤다. 타다닥! 휙 하고 던져진 횃불은 몇 번 벽에 부딪힌 후에야 겨우 땅바닥에 몸을 고 정시켰다. 기름이 잔뜩 베어 있기 때문인지 심한 움직임으로도 불빛은 꺼지지 않는 데 그 때문에 벽 쪽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횃불의 심지가 타는 소리가 조용한 석실을 울려며 잠시 그곳의 시간을 정시시켰다. 불빛 속에 보인 모습 때문에 라피에르는 입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몸을 굳히고 있었기고, 드루젤은 갑작스런 불빛 때문에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서..설마, 드루...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던 라피에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드루젤의 모습에 그는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바싹 마 른 한 인간이 라피에르의 목소리를 떨리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믿을 수 없다 는 그의 생각은 드루젤의 끄덕여지는 고개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저..정말 드루젤이라는?!" 라피에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그가 알기로 드루절은 아직까지 유투 왕국의 왕좌에 있는 사람이었다. 난폭한 정치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왕! 그것도 유투 왕국처럼 거대한 왕국의 왕이... 저런 모습을 하고 있다니! 지금 순간 라피에르의 머릿속에는 드루젤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분노보다는 드루젤 을 저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만든 무엇인가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Ip address : 218.149.211.212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라피에르의 두 손은 어느새 불끈 쥐어진 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분 노에 떨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편안한 미소를 짓는 드루젤을 의야하게 쳐다봤다 "왜..왜 그렇게 보는 거지?" "아무것도... 죽기 전에 너를... 쿨럭, 다시 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 는데... 내게 기회를... 한번 준건가? 크윽!" 드루젤은 혼잣말로 작게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라피에르를 쳐다봤다. "잠깐 나와 이야... 쿨럭, 이야기 좀 하겠니?"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편안한 목소리. 라피에르는 자 신이 지금 전혀 모르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예전에 한번 이와 같은 경험이 있음을 떠올린 그는 혼 란스러움을 모두 던져버리고 알 수 없는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어머..니...' 라피에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있는 리온과 크릭을 쳐다봤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쳐다본 것에 그친 행동이었지만, 리온은 그의 뜻을 충분히 알았는지 크 릭을 데리고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터벅 터벅. 조용히 드루젤의 곁으로 다가간 라피에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된거지? 예전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간거야!" "많이 컸구나... 늠름해 졌..쿨럭, 쿨럭." 라피에르는 엉뚱한 말로 대답을 회피하는 드루젤에게 따지듯 입을 열려 했지만, 그 의 손바닥에 흔건히 뭍은 붉은 액체를 본 라피에르는 그런 생각은 접어야 했다. 손 바닥에서 뚝뚝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붉은 액체. 처음 횃불의 붉은 빛 때문에 드 루젤 근처가 붉은 색으로 보이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드루 젤이 각혈하는 모습을 바라본 라피에르는 붉은 색의 바닥이 모두 드루젤이 토해낸 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대..대체 이게..." 드루젤을 보기 전까지 라피에르는 그를 만나면 전쟁을 지금까지 끈 이유와 어머니 를 죽인 이유,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이유에 대해서 따지려고 했었다. 그리 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 들은 후, 죽어간 이들의 복수를 하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예전의 사악하고 악랄하다고 생각된 드루젤의 모습 이 아니었다. 라이스만이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면서 그 에 대한 미움을 조금은 없앴지만... 그래도 드루젤은 여전히 그에게 좋아할 수 없 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드루젤의 모습을 본 라피에르 는 그를 미워할 수도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아..."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한 라피에르에게 그런 생각들은 드루젤을 대하는 태도를 바 꾸게 만들었다. "설명해 보십시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 나라의 왕이나 된 사람이 이 런 곳에서 웅크리고 뭐하고 있는 것이냔 말입니까!" 말투가 바뀐 라피에르. 하지만 답답한 듯 따지는 그의 어조는 바뀌지 않았다. 한번 의 심호흡 때문인지 라피에르는 확실히 조금 전보다 많이 차분해졌다. 하지만 드루 젤은 그런 라피에르의 태도가 마치 남을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별로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겐 조금 전의 말투가 더 친숙하게 느껴졌으므로.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는 말을 걸어오는 라피에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구나... 이리 와서 앉거라..." 차갑고 더러운 바닥이었지만, 라피에르는 전혀 그런 것들을 인식할 수 없었다. 진 심으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드루젤을 처음 보았으므로. "다행이다... 네가 무사해서..." 자신의 곁에 라피에르가 앉자, 드루젤은 천천히 손을 들어 라피에르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자신과는 꽤 많은 나이차이가 나는 동생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에게는 오히려 동생이 자신보다 더 늠름해 보였다. "......"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의 입에서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자, 라피에르는 아 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한 말이 이상한...가? 하긴...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웃 기는..쿨럭 쿨럭. 하아..." "......" "크크..쿨럭. 내가 벼..변하긴 했지...야망이란 것을 버렸으니 말이다. 인간이란.. 참 어리석은 존재더구나... 물론 그런 존재가 나라는 건... 하아, 두말할 필요도 없지... 쿡쿡...쿨럭, 쿨럭!" 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드루젤의 모습에 라피에르의 가슴은 다른 종류의 분노로 아련하게 아파 왔다. 하지만 그는 그런 종류의 감정을 겉으로 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드루젤의 이야기를 들을 뿐...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그때 나는 어렸었지..." 드루젤은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하려는 듯, 리넨이 태어난 시기 이후의 일부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왜 그리 미워 보였는지... 아마 그때 난, 리프네리욘을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쿨럭 쿨럭, 하아... 그랬는지도 모르겠구나. 나와 나이 차이도 꽤 많이 나는 녀석 이었지만... 모든게 나보다 뛰어났거든..." 드루젤은 라피에르에게 자신의 과거 어리석은 사고와 행동에 대해 하나 둘 씩 털어 놓기 시작했다. 마치 라피에르에게 용서를 구하려는 듯... 불안한 한 문장, 한 문장의 말들이었지만, 라피에르는 그런 드루젤의 말투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드루젤의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그의 말투는 이미 이야기를 듣 는데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몰랐던 이면과, 새로운 사실들 에 대한 이야기가 그런 드루젤의 말투쯤은 무사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한 드루젤의 이야기는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끝을 향해갔다. "그렇게 어리석은 내 행동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됐다. 그때까지는 어리석은 줄 도 몰랐지... 내 손으로... 이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기... 크흑, 코..콜록 콜록 , 켁켁, 크윽!" 복받치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인가? 드루젤의 기침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됐다. 엄 청난 양의 피가 그의 몸에서부터 빠져나왔지만, 그것만으로도 양이 차지 않았는지, 힘겨워하는 가운데서도 드루젤은 기침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마치 기침소리로 자 신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감추려는 듯...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라피에르는 어느새 자신의 손이 드루젤의 등을 두드 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자신의 행 동을 시인하고 있는데도 자신은 화를 내기는커녕 그의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았어도, 라피에르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겉으로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깊숙한 곳에서부터 드루젤을 용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뭔가 제가 알지 못하는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지금의 드루젤로서는 결코 어머니를 그렇게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라피에르 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쿨럭 쿨럭, 뭐..뭔가라..." "네. 그때 제가 본 모습은..." "큭큭. 그..그래... 크흑... 자식이 어머니를 즐겁다는 듯, 쿨럭 쿨럭. 나..난도질 하는 사람의 모습이 안 이상할 리가 없었겠지..." 라피에르는 흔들거리는 드루젤의 부축하면서 그의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지만... 나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내가 이.. 이 손으로 어머니를 죽인 것이지... 크흑." "......" 라피에르는 드루젤에게 무라고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열리지 않았 다. 드루젤 조차 자신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말투로 말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까 지 뭐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겠구나... 예전의 나는 그처럼 어리석지는... 않았 는..쿠..쿨럭." "혹시, 라이스만이라는 존재와 관계가 있습니까?" "......!" 숙여졌던 드루젤의 고개가 번쩍 들려졌다. 커다랗게 뜬 두 눈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 자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출신조차 정확하지 않은 인물. 언제부터 성에 머물 렀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그리고 일개 하인의 신분으로 그렇 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의심의 여지가 높죠. 그런 능력을 갖고 있으면 서 아직도 하인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더 말입니다." 라피에르의 계속되는 설명에 드루젤의 눈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어린 나이의 동 생이지만, 그의 눈에는 자신의 도움같은 것은 전혀 필요치 않은 한 사람으로 보였 기 때문이다. "충분히... 훌륭하게 자랐구나... 난 몇 십 년 동안 그자와 같이 생활했는데도... 이렇게 몸이 망가진... 후에야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건만..." "...그 자가 관련된 겁니까?" "글쎄다... 지금까지 한 내 행동은... 모두 내가 한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지. 쿨럭, 쿨럭. 라이스만이 옆에서 부채질을 했을지는 몰라도... 하아, 하아. 그의 탓 으로 전부 떠넘길 수는 없을 것 같구나. 크윽..." 라피에르는 드루젤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하나의 가정이 꽤 타당성이 높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루젤이 말은 저렇게 해도, 라이스만의 개입된 정도가 더 크리라는 사실도. "그 자는 어딨습니까? 당장 찾아, 그 죄를 물..." "안 된다!" 라피에르는 갑자기 자신의 손목을 세게 쥐며 강력히 반대하는 드루젤의 모습에 말 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그..그자는... 너무 위험하다. 네 상대가 되지 않는 인물이란 말이다." 드루젤은 라이스만의 속을 알 수 없는 두 눈동자가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몸을 부르 르 떨며, 두려운 감정을 겉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라피에르는 그런 드루젤의 변화 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머릿속에 울리는 아리아의 목소리 때문에... '라이스만을 조심해라...' 두 번째 듣는 말. 라피에르는 이미 아리아에게서 그와 같은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드루젤 역시 그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라피에르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마 음이 없었기에 반대의 말을 하려 했지만, 드루젤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그런 생각은 혼자만 갖고 있기로 했다. "라이스만... 그 자는 지금 성에 없을 것이다. 쿨럭. 며칠 째... 성에서 모습을 감 추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여기에 와 있을 수 있었던 것이고..." "......?" "라이스만이 가까이에 있으면... 난 이성을 잃게 된다. 즉, 내가...쿨럭, 내가 아 니게 되는...크윽... 것이지..." 라피에르는 드루젤의 말에 예전 리넨이 말했던 마족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가 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괴로워하던 드루젤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크윽! 피.. 피다!"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피묻은 두 손을 쳐다본 드루젤은 과거 그의 손에 묻은 피를 봤을 때와 같은 상황을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 내가 또...! 크아--아악!" 현실과 과거조차 구분할 수 없는 것인가? 드루젤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 차 기억하지 못하는지 소리를 지르며, 피묻은 손으로 머리를 세게 감싸며 힘겹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이..이런, 형! 형!!" 다급한 마음에 라피에르는 드루젤을 형이라고 불렀다. 그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가 운데 라피에르는 드루젤을 용서했던 것이다. 드루젤 역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절 차를 밟은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크아--악! 쿠..쿨럭 쿨럭. 크윽." "혀-엉!" 라피에르가 드루젤의 몸을 세차게 흔들었지만, 드루젤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지 계속해서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의 기력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드루젤의 몸부림은 라피에르에게 꽤 큰 충격을 줬다. 드루젤의 옷 여기 저기에 묻어 있는 핏자국. 좀 전의 행동으로 그 핏자국이 더 늘 어나긴 했지만, 그 자국 때문에 라피에르는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형은 이곳에서 지금과 같은 행동을 수없이 반복했던 것 같군. 내가 ..., 내가 그동안 가졌던 분노는... 누구를 향했던 것이란 말인가?" 힘없이 자신의 품에 쓰러진 드루젤을 안으며 라피에르는 한탄스런 마음을 토해냈다 한편, 란을 찾은 리넨은 그녀가 발견한 이상한 결계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뭔가... 이상한 게 있어.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뭔가 가 말야. 리넨, 넌 알 수 있지? 이게 대체 뭐야?" 아무런 특징도 없는 숲을 가리키며 란이 질문을 했다. 그녀는 이곳을 찾은 직후 이 상한 기운 때문에 이곳에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이건 결계가 확실해. 누군가 이곳에 결계를 쳐놓은 것이지. 안으로 들어가 지 못하도록 말야. 대충 규모를 보면... 유투 시 정도의 규모는 되겠군... 아니, 더 클지도..." "유투 시? 그게 무슨 말이지? 이 안에 그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음..." 리넨은 간단하게 생각하는 란의 물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몰라. 갑자기 이 정도로 큰 결계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가 뛰어난 인물이 라는 건 모를 일이야.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 "그럼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그 자가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전에... 하나 물어볼게 있어." "뭔데?" 란은 빨리 결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지 리넨의 질문을 제촉했다. "어떻게 여길 그렇게 금방 찾은 거지? 이 결계는 발견하기 쉬운게 아냐. 마나에 민 감한 나라고 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결 계란 말야." "흠~. 그래? 난 왠지 그 자의 기척이 이 주변에서 느껴진 것 같아서 이쪽으로 온 거야." "아슬란의 기척이?" "아슬란? 그 자가 아슬란이야?" "자신의 입으로 맞다고 했으니... 그렇겠지." "......!" 리넨의 적, 위험한 인물인 아슬란.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족의 피. 그와 같은 피가 흐르는 마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를 쫓아온 그녀였지만, 그 존재가 아슬란 이라는 말은 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란? 왜 그래? "으..응? 아냐, 아무것도..." 리넨은 표정이 굳은 란을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이내 아까 하던 질문으로 넘어갔다. "계속 해봐, 이쪽에서 아슬란의 기척이 느껴져서 왔다고?" "응. 그래서 이곳까지 왔지. 그런데 이곳에 오니 더 이상 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 더군." "그래서?" "뭐, 그래서 이 근처를 살펴보다 이상한 벽을 발견한 거야. 네가 말한 결계라는 벽 을." "흠~." 리넨은 란의 말 중, 이해 안되는 부분이 꽤 많이 느껴졌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 를 깊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숙였던 고개를 든 리넨은 란의 뜻대로 결계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좋아! 이 근처에서 아슬란의 기척이 느껴졌다면, 이 결계 안에 그가 있을지도 모 르지! 하지만 역시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 뭐, 그런 것들은 이 안에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 "응." 고개를 끄덕인 란은 아슬란이 리넨의 적이라고 해도,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와 같 은 피를 가진 그를 자세히 보고 싶었던 모양인지 뜻을 꺽지 않았다. 결계 쪽으로 다가가는 리넨. 그리고 그 옆에서 리넨이 결계를 뚫길 바라는 란. 그 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이 찾고 있는 인물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두운 밤. 암흑의 색으로 온 몸을 감싼 아슬란이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흠~. 리프네리욘... 꽤 똑똑한 인간이야. 하지만 그래도 내 덧에 걸리기는 마찬기 지다. 쿠쿡. 재밌군. 재밌어~. 크하하하. 그럼, 난 진행했던 일을 마무리하러 가볼 까?" 유쾌한 듯 웃음을 터트린 아슬란은 어두운 숲에 웃음소리만을 남기고 암흑 속으로 몸을 감춰버렸다. Ip address : 211.234.163.3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NT 5.1; Q312461) 란이 발견한 결계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것이 그저 커다랗고 정교한 결계인 줄로 만 알았다. 하지만 결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마음먹은 후, 그것을 자세히 살피던 나 는 결계의 구조가 내가 아는 다른 결계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이거...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잖아?' 결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계를 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이 정도 로 커다란 결계는 말이다. '죽음의 숲에 있을 때, 이노의 오두막집 주변으로 쳐져 있던 결계. 그것과 유사해! ' 결계 안에 돌아다니고 있는 마나의 성질이 조금 틀리긴 했지만, 그 차이는 미미한 것이라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옛 기억을 떠올려 결계 안쪽 으로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내 손은 결계 안으로 쉽게 들어 가지 않았다. '뭐..뭐야? 예전엔 잘 됐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 거지?' 예전과 지금 나의 차이! 그제서야 나는 내 몸에 녹아 있던 드래곤 하트의 봉인이 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예전에 난 내 몸 안에 있던 마나를 모두 밖으로 내보내 결계를 통과했었지. 흠~. 그렇다면 지금 저 안으로 들어가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군.' 심각한 분위기 때문인지 란은 그저 조용히 옆에서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몸 안의 마나를 내보낸다... 하지만 마나를 내보내도, 드래곤 하트 덕분에 내 몸 에는 계속해서 충분한 마나가 넘쳐나겠지. 즉, 아무리 내보내도 소용없다는 말! 하 아~. 어쩌지? 예전처럼 이노가 드래곤 하트를 봉인시켰다면... 자..잠깐! 봉인이라 면!'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나는 머리가 번뜩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나를 봉인시키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겠군! 하지만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이노 가 한 방법대로 봉인하기란 매우 어려워. 게다가 봉인했다 다시 봉인을 풀었다 하 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그렇다면 내가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봉인되었을 때와 비슷하게 만들면 되는 건가?' 생각이야 꽤 간단하게 결론을 낼 수 있었지만,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어디 보자, 몸 안의 마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봉인된 것과 같이 만들면 된다 이 거지?' 눈을 감고 몸 안의 마나를 느끼자, 심장으로부터 끝없이 흘러나오는 무한한 마나가 느껴졌다.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마나들. 나는 서서히 그 마나들을 심장 쪽 에 모아두고는 몸 구석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봤다. 그러자 뜨거운 느낌이 심장에서 부터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내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으..윽. 마나를 봉인하는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나? 오랜만이라 그런지 더욱 아픈걸? 크윽. 이노는... 잘만 하던데...' 실력의 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는 고통을 참아봤다. 서서 히 익숙해지는 고통. 이미 어느 정도 계속되는 고통을 참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었 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자 차츰, 고통에 대해 무신경해질 수 있었다. '거대한 마나 덩어리가 느껴지는 군. 내 심장 자체가 드래곤 하트가 되어버린 느낌 이야.' 마나가 밀집되어 있는 심장. 그곳에서 세어나오는 마나의 양을 차츰 줄여가자, 그 거대한 느낌은 더더욱 강해졌다. '거대한 느낌. 이노가 마나를 봉인했을 당시에는 없었던 건데... 흠~. 이런 느낌을 내가 받는다면, 당연히 결계를 지나치는데 문제가 돼. 어쩌면 좋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 나는 다시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파고든 문제는 끝을 봐야 손을 떼는 나였으므로 난 그 자리에서 다시 심장 주변에 하나의 막을 씌웠다. '내가 거대한 마나를 느끼지 못하도록, 심장 주변에 막을 하나 만들면 되겠지. 마 나 차단 막을 말야.' 꽤 기발한 생각으로 이것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 막을 오래 지속시킬 수 없었다. 워낙 거대한 마나를 보유하고 있는 심장이다 보니, 웬만 한 막으로는 막대한 양의 마나를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결계를 통과할 수 있나 볼까?' 천천히 오른 손을 들어 결계 안쪽으로 내민 나. 손 끝 부분은 이미 결계에 흐르는 마나와 같은 종류의 마나가 흘러다니고 있었다. 같은 양, 같은 빠르기... 성분까지 같게 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그 정도로 결계 안을 통과해보려 했다. '약간... 따금 거리는 정돈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지 결계 안쪽으로 들어간 내 손은 정전기가 일어나 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몰아넣고, 감추는 것... 짧은 시간이라면 가능하겠군... 쳇! 그건 그렇고, 이런 상태를 꽤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10 클래스는 대체 어떤 거야? 영원히 유지한다는 그 이상의 단계가 있다는 건 믿지 못하겠군.' 손을 결계에서 뺀 후, 막아뒀던 마나를 풀자, 나는 다시 봉인이 풀릴 때와 비슷한 느낌과 함께 심장 쪽에서 느껴지던 고통에서 해방됐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내 몸은 어느새 땀방울로 흥건히 젖어 있었 다. "이런, 이거 생각보단 힘들군." "우와~! 이 결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네? 근데 괜찮아? 매우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 란은 자신이 실패했던 일을 내가 해내자, 신기한 듯 두 눈을 반짝였지만, 이내 한 손을 집어 넣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깨달았는지 그녀의 표정은 걱정스럽 게 변해버렸다. "아, 괜찮아. 결계가 그리 두껍지 않으니... 충분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결계 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만 알면 말야." "마나의 흐름?" "응. 내가 나중에 가르쳐줄게. 잠깐만, 난 좀 더 살펴봐야겠어." "그래." 란은 정령과 계약한 이후, 마나라는 것을 직접 다루게 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지 즐거운 마음으로 내 조사가 끝나길 기다려줬 다. 혼자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마나를 다루려는 건가? 학구열은 나 못지 않은 것 같군.' 란 주변에 모여드는 마나를 느끼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시선을 결계 쪽 으로 돌렸다. '어디 보자. 이건 아무리 살펴봐도 이노가 만들어 놓은 것 같아. 하지만 이런 곳에 이노의 결계가 있을 리가 없지. 주변의 숲이 우거져 있는게 죽음의 숲과 비슷하지 만 이곳에는 이상한 몬스터들이 없단 말야? 즉 이곳은 죽음의 숲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죽음의 숲에서만 활동하는 이노가 다른 곳까지 와서 결계를 만들리도 없다 는 말이고. 흠~. 그렇다면 커다란 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노가 만들어놓은 것과 같은 형식으로 마나가 돌아다녀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는 군. 뭐, 이런 결계를 만들 수 있는 인물이 이노 밖에 없다는 법은 없으니까.' 생각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 같아, 나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몸의 땀을 식 혔다. '이곳의 결계가 누가 만들었던지 내게 익숙하다는게 중요하겠지? 지금은 이 안으로 들어가는게 가장 중요한 문제니까 말야. 마나가 봉인되어 있었다면, 이노의 결계 처럼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말야. 뭐, 쩝. 그건 과거 일이니 생각해 봐야 소 용없겠지. 지금은 내 마나를 봉인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말야. 근데... 이 안으 로 들어가는게 과연 옳은 걸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아슬란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 고 있는게 아닐까? 이곳으로 유인되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어 찝찝한데... 어쩌면 처음 생각대로 라피에르에게 가봐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려 하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냐, 내가 틀렸다고 해도,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이 결계... 그냥 지나 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수상쩍으니 말야. 쳇! 호기심이 많은 것도 때로는 나쁜 건 가?' 아슬란이 결계 안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으므로 나는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털어 버렸 다. 그것들은 결계 안을 살펴본 후,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말이다. 복잡했던 생 각이 하나로 귀결되자,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눈앞의 결계를 다시 쳐다봤다. '어차피 안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살펴 보는게 좋겠지?' "란, 이리 와봐! 마나를 다루는 간단한 방법부터 알려줄테니!" "응!" 혼자 뭔가를 하던 란은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쪼르륵 내게 로 달려왔다. '머리 양쪽에 강아지 귀가 있는 것 같군... 저 뒤로는 복슬복슬한 꼬리와 함께 말 야. 후훗.' "험험... 란,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을 정도니 네 몸 안에 있는 마나는 어느 정도 익숙하게 다룰 수 있겠지?" "응!" 란은 쉐이트론이 준 반지 덕에 꽤 많은 양의 마나를 다룰 수 있었기에 내 질문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정령은 어느 정도까지 다룰 수 있지?" "흠~. 아직까지는 상급 정령 하나밖에 소환 못해." "호오~. 벌써 그 정도야?"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투의 란.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녀의 학습 속도는 보통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럼, 네 몸 속의 마나가 아닌 주변의 마나도 꽤 자세하게 느낄 수 있겠는걸?" "주변의 마나?" '흠~. 이해가 힘든가?' 마법사가 아닌 란이었기에,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 았다. "왜, 주변에 적이 나타났다거나,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것 있지?" "아~! 그거?" "그래! 그런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마나라고 할 수 있지. 물론 그것 이외 에 다른 요소들도 있겠지만. 가장 주된 요인은 바로 마나야. 누군가가 결계라고 생 각하고 그 기척을 느끼듯 양손을 대고 결계의 마나를 느껴봐." "흠~. 알았어!" 란은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내가 시키는 대로 결계에 흐르는 마나를 느끼기 위해 노 력하기 시작했다. 결계를 통과하는 방법으로는 란이 직접 나와 같은 방법으로 통과하거나, 내가 데려 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란의 경우 전자의 방법은 쓸 수 없었기에 나 는 후자의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자의 방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란을 데리고 결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란이 자체적으로 마나에 순응해 야만 됐기 때문이다. '모든 결계가 그런지는 많이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곳이나 죽음의 숲에 있었던 그 결계나 파괴하는 방법 이외의 방법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결계를 이루는 마나의 흐름을 이용해하는 것 밖에는 없어.' 혼자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란을 데려가야 했기에 상황은 그리 쉽지 않았다. 같이 들어가는 존재 역시 마나의 흐름대로 몸의 마나를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리넨! 뭔가 느껴지는데? 이게 네가 말하는 것 맞아?" 란은 마치 신기한 뭔가를 발견한 어린 아이처럼 초롱초롱 두 눈빛을 빛냈다. "뭐가 어떻게 느껴지는데? 구체적으로 말해봐." "응! 이 결계에 손을 대고 있으니까, 뭔가 뜨거운 물 같은 것이 꽤 빠른 속도로 돌 아다니고 있는게 느껴졌어." "물?" "응, 왜? 이거 아냐?" '역시 아직은 무린가?' "아냐, 네가 느낀게 맞아. 하지만 이곳을 통과하려면 마나를 물로 느끼기보다는 하 나의 알갱이로 느껴야지 돼. 이 결계 속에 흘러다니는 마나는 인위적으로 결계를 만든 이가 그렇게 꾸며 놓은 것이라, 이곳을 들어가기 위해선 빠르게 흘러다니는 마나의 틈을 찾아야만 해. 물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대기에 흩어져 있는 마나하고도 느낌이 조금 틀려 물결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 뭐, 알갱이로 느껴지는 게 힘들다면 물결 사이사이의 틈을 느껴도 상관은 없어. 아, 그것 이외에도 한가지 더. 마나가 흘러다니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면 안 돼. 빠르게 느껴지면 느껴질 수록 그 사이의 틈을 찾기 어려우니까 말야." "......?" "아, 내 말이 너무 어려웠나?" 때아닌 선생님이 되어버린 나는 란이라는 학생을 데리고 마법 수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얼마 전까지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아슬란이 찾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란을 가르치는 것에 별 다른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란은 내가 가르치는 방향을 빠르게 따라왔기에, 결계 앞에서 우리는 생각보 다 시간을 덜 소비했다. 란에게 마나의 틈을 찾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빠른 시 간 안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조금 흐른 것은 아니었 다. 어느새 어두웠던 숲 속에 밝은 태양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으니... Ip address : 218.149.211.158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6.0; Windows 98; Win 9x 4.90; Q312461) 한편, 드루젤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던 라피에르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계속해서 내쉬고 있었다. "하아~. 그동안 계속 이처럼 발작을 일으켰단 말인가? 몸이 이렇게 망가지도록 돌 보지도 않았다니...' 라피에르는 드루젤이 그동안 얼마나 커다란 죄의식 속에 파묻혀 살아왔는지 앙상한 드루젤의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드루젤의 명령에 따라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모습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같 은 피를 이어받은 형제이기 때문인지 라피에르는 생기를 잃어 가는 드루젤의 모습 에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드루젤이 라피에르의 무릎을 베고 누운 상태로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급격히 오르 락내리락 하던 드루젤의 가슴은 작고 안정적으로 그 움직임을 바꿨다. "하아~." 안정을 되찾아 가는 드루젤의 모습에 라피에르는 그제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리온, 크릭. 밖에 있나?" "네." 조용한 부름이었지만, 라피에르의 목소리가 석실을 울리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리온과 크릭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야기가 끝나려면 좀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이곳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도 록." "네!" 리온과 크릭은 라피에르의 뜻을 알았는지 동시에 대답을 하며, 석실을 조용히 빠져 나갔다. 아무런 위험도 없는 석실이었기에, 평소 라피에르의 곁을 떠나지 않는 그 들은 마음놓고 조금 먼 곳까지 나갔다. 결계가 쳐져 있다고는 해도, 누군가 들어올 수도 있었기에 그들은 라피에르의 명령 을 이행하기 위해 탑에서 나와 그 주변의 경계하기 시작했다. 라피에르 역시 그들 에게 무언의 압력을 주며 그들이 석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길 바랬다. 하지만 그들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예전 아무런 기척 없이 드루젤과 라이스만이 석실에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즉 리온과 크릭, 그리고 라피에르는 라 이스만이 지금 이곳으로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탑 어딘가에 있는 비밀통로로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사실, 이들이 라이스만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성안을 온통 뒤지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 들은 라이스만이나 드루젤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탑을 발견 해 여기서 드루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라이스만은 없었다. 즉, 그들은 라이스만이 성에 없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사실 맞는 것이었다. 라이 스만이 보통의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 말이다. 리온과 크릭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라피에르는 두 눈을 감고 잠이 든 드루젤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서 일어나 기운을 차리세요. 형님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형님이 책임져야 하 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누워 있는다고... 그런다고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 어서 일어나십시오." 라피에르는 드루젤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마음속에 자리잡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강한 고개 짓으로 그런 생각들을 떨쳐버렸다. "아냐, 아냐. 그럴리 없어."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드루젤의 가슴. 라피에르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드루젤의 표정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지만,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드루젤의 편안한 모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다시 발작을 일으키 려는 것인지 드루젤의 몸이 심하게 부르르 떨렸던 것이다. "쿨럭, 쿨럭. 크윽..." "혀..형님?" 라피에르가 드루젤의 몸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허약한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 는지, 라피에르의 노력에도 드루젤의 몸은 계속해서 고로운 듯 떨리고 있었다. "크아--악! 크윽. 콜록, 콜록."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라피에르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드루젤과 이야기가 끝난 후에 부를 의사를 미 리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건물 밖에 있는 리온과 크릭에게 빨리 사람을 데려오라 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석실 밖으로 나가려던 몸을 굳혀야만 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한 인영의 그림자가 석실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것 이 보였기 때문이다. "누..누구?" 라피에르는 순간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그림자의 주인이 자신에게 해를 줄 인물이라 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그랬기 때문인지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오랜만이군요, 라피에르 저하. 하지만 다시 되돌아오셨으면 쉬기 좋은 방에 계시 지, 왜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신지..." 언제나 듣기 좋은 목소리 톤으로 웃음을 보여주는 라이스만. 하지만 이 순간 라피 에르는 그 목소리와 표정에서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라..라이스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라피에르가 드루젤과 같이 찾으려 했던 라이스만 이었다. "호오~! 저를 기억하고 계셨군요. 멀리서 들어보니, 폐하께서 많이 편찮아 하시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제가 따로 모셔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자리를 조금 피해주시 겠습니까?" "가까이 오지 마라!" 챙~! 능글능글한 행동으로 다가오는 라이스만을 향해, 라피에르는 허리에 차고 있 던 검을 꺼내 들었다. "이런~. 저하께서는 안정을 취하셔야 겠군요. 제가 다가가는 것이 싫으시다면, 이 쪽으로 사람을 불러오지요." 라이스만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위로 들어올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행동으로도 라피에르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탑 앞에서 리온과 크릭이 지키고 있었을... 아!" 그제서야 생각난 것인가? 라피에르는 예전 이곳에 갇혔을 때, 갑자기 나타난 드루 젤과 라이스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자신이 커다란 실수를 했다는 걸 인정해 야만 했다. "기억 나셨습니까?" 싱긋 웃는 라이스만의 미소에 라피에르의 불안은 더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그런 불 안감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개 없었다. 드루젤과 아리아의 말을 떠올리 며, 라이스만을 경계하는 것과 쓰러져 있는 드루젤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 뿐이었다. 사방이 막힌 장소였기에 그 이상의 것은 힘들었던 것이다. "...여긴 뭣하러 온 것이냐?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도망쳤던 것이 아닌가?" "그럴 리가 없죠~. 제가 드루젤 폐하를 두고, 도망을 가다니요. 있을 수도 없는 일 입니다." "그럼, 어딜 갔던 거지? 성안에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라피에르는 라이스만과의 대화를 끌며 리온과 크릭이 이곳으로 오길 간절히 바랬다 자신의 뜻에 따라 밖으로 나간 그들이었지만, 지금 이순 간에는 그들이 자신의 명 을 거역하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라피에르의 기대는 라이스만의 간단한 한마 디에 의해 꺾여야만 했다. "천천히, 하나씩만 물어보십시오. 갑자기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 대답하는데 혼란 스럽거든요. 뭐, 어차피 이곳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장소니... 시간 걱정 은 하지 마시고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라피에르가 재차 질문을 던졌지만, 라이스만은 부드러운 미 소만 보여줄 뿐이었다. "무..무슨 뜻이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 곳이 밖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아, 그리고 아까 질문을 들어보니 궁금해하시는 것 같은데, 전 밖에서 개인적인 일을 좀 본 다음, 방금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폐하가 걱정되서 말이죠. 그런데 역시 이 곳에 쓰러져 계셨군요." 드루젤이 정말 걱정되는지 라이스만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흥! 네가 그런 가식적인 말을 해도 소용없다. 형님을 보좌한다는 사람이 형님의 몸이 이 정도가 되도록 가만히 있었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라피에르는 라이스만의 눈빛이 '형님'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잠시 빛나는 것 같았 지만 주변이 너무 어두워 자신이 본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흠...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고집을 꺾지 않으셨기 때문에..." 라피에르와 라이스만의 진전 없는 대화는 그렇게 계속 될 것만 같았다. 라이스만이 문가에 서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차단하고 있었고, 라피에르가 라이스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하지만 그 둘의 의미 없는 대화를 깨려는 것인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던 드루젤이 의식을 차리며 자신을 안고 있는 라피에르를 멀리 밀쳤다. 타-앗! 갑작스런 드루젤의 행동. 앙상한 뼈만 남은 드루젤이 밀었다고는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에, 라피에르는 비틀거리는 몸을 석실의 벽까지 끌고 가야 했다. "혀..형님?" 벽에 몸을 기대고서야 겨우 몸의 중심을 잡은 라피에르.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 으로 드루젤에게 좀 전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드루젤은 그런 라피에르가 아닌 라이스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쿨럭, 쿨럭. 라이스.. 만... 왔는가?" "예, 폐하."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안겨 편안한 휴식을 취했던 드루젤. 라피에르는 예상할 수 없었던 드루젤의 행동에 손에 들고 있던 검마저 놓칠 정도로 커다란 당혹감을 맛봐 야만 했다. 챙강~. 당황한 라피에르가 땅에 흘린 검. 그것은 드루젤의 발길질에 의해 석실 밖 으로 사라졌다. "라이스만. 어딜... 갔다 온거냐? 내가... 쿨럭, 쿨럭. 너 때문에... 하아... 내가 저 녀석의 비유를... 크윽, 비유를 맞춰야 했단 말이닷!" "폐하!" 화가난 듯, 붉게 충열된 드루젤의 두 눈. 심하게 기침을 토해내고 있긴 했지만, 그 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들리지 않던 힘이 들어가 있었다. "혀..형님?" "누가 네 형이냐! 죽으려고... 콜록. 그럴려고 다시 돌아온 멍청한 녀석. 큭큭... 라이스만..." 드루젤은 라이스만의 부축을 받으며, 확실한 적의를 라피에르에게 드러내기 시작했 다. 지금까지의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은 모두 연극이었단 말인가? 라피에르는 아 직도 상황 정리가 되지 않는 듯,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드루젤을 쳐다 봤다. "쿨럭, 쿨럭. 라이스만, 내게 검을... 눈엣가시를 지금에야... 없앨 수 있겠군... 크하하.. 크윽." "폐하, 라피에르 저하와는 화해하신게 아니었습니까?" 라피에르가 드루젤을 향해, 형님이라고 말한 것을 보고 혼자 짐작을 한 것인지, 라 이스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해? 크큭. 내가 저... 저 녀석과...쿨럭, 쿨럭. 어림없는 소리다. 저 녀석이... 지금 유투 왕국을 배신하고... 크윽. 연합 쪽에 붙은걸 모르는건 아닐텐데! 지금, 쿨럭. 크윽. 지금 저 녀석이 연합군을 이끌고... 왕성까지 쳐들어온 것을 봐라. 요..용서할 가치도 없는... 쿨럭, 쿨럭. 내가... 내가 이곳으로 도망오지... 않았 다면. 흥. 벌써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크윽." "하지만..." 라이스만이 드루젤의 행동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자신을 부축하던 라이스만 마저 밀치고는 라피에르에게로 다가갔다. "흥! 비켜라, 너한테 시키진 않을테니... 큭큭." "폐..폐하!" 심한 각혈을 하며, 라이스만에게서 건내 받은 검을 들고,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라피에게로 다가가는 드루젤. 그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라피에르를 죽이려는 듯 두 눈에 살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지..지금까지의 모든 행동이... 다 거짓이었단 말인가?" "크큭. 지..지금에서야 알아차린 건가? 하지만... 늦었..다..." 검을 들고 있는 것도 힘겹게 보이는 드루젤. 그의 몸으로 라피에르를 상대하는 것 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라피에르의 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들 려있지 않아, 상황은 쉽게 단정지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힘을 감추고 있었는지, 드루젤 역시 간간히 상대하기 힘든 힘을 발휘했고... 샤-악! 쓰러질 듯, 드루젤의 몸이 순식간에 라피에르와의 거리를 좁히며, 그의 손 에 있던 검을 라피에르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당황스런 상황을 어 느 정도 정리한 라피에르에게 드루젤의 공격은 위협적이지 못했다. "흥! 내가 네 꾀에 놀아났다니, 바보였구나!" 분노가 가득한 한마디를 내뱉은 라피에르는 무릎을 꺽듯이 굽혀 드루젤의 검을 피 하는 동시에 상대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주먹을 내질렀다. "죽어-엇!" 퍽! 둔탁한 격타 음이 나며, 드루젤의 고개가 뒤로 심하게 꺾였다. 손에 무기가 없는 라피에르에게는 검을 든 드루젤의 공격은 조심해야할 요소였다. 석실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문에 서 있는 라이스만도... 비릿한 냄새의 액체가 드루젤의 입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라피에르에게로 향했지만, 그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몸을 숙여 오른쪽 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길 게 뻗친 라피에르의 다리는 순식간에 회전을 하며, 공격에 실패한 드루젤의 다리를 걸어, 그를 뒤로 밀어버렸다. 드루젤이 다시 손에 들린 검이 휘둘러 공격해 오기 전에 라피에르가 먼저 기회를 포착해 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힘없는 드루젤의 몸은 강력한 라피에르의 발 걸기에 의해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드루젤은 라피에르가 생각한 것보다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림... 없다!" 병든 몸으로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드루젤이었지만, 예전 많이 해봤던 대련 의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쉽게 라피에르의 공격에 당하지만은 않았다. 뒤로 넘어갈 듯, 휘청이던 드루젤이 손을 뻗어 몸을 숙이고 있는 라피에르의 옷깃 을 잡아 당겼던 것이다. 휘청~! 공격이 성공했다고 생각한 라피에르의 몸이 드루젤과 같이 휘청거렸다. 사-악. 탓! 다시 이어지는 드루젤의 공격. 그는 다시 휘청거리는 몸의 반동을 이용해 라피에르 에게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렸다. 몸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검을 들고 있던 오른 손이 공격할 위치를 잡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번에도 라피에르는 자신의 옷깃을 잡은 드루젤의 손을 치며 바닥에 몸을 굴려 드루 젤의 공격을 무마시켰다. 육탄전이 되어 가는 두 사람의 싸움. 라이스만은 그 둘 사이에 전혀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석실의 문가를 지키고 있을 뿐, 움직이 려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 쪽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드루젤 을 부축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폐..폐하!"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한 라피에르의 모습에 분노한 드루젤이 다시 몸을 날리다 균형 을 잃고, 라이스만의 품에 겨우 안긴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라피에르는 라이스 만이 만들어낸 틈 사이로 빠져나가 석실 밖에 있던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 챙강-! 깨끗한 금속음이 들리며, 상황이 역전되는 것 같았다. "드루젤 폐하, 제가 나서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시끄럽다! 쿨럭, 저.. 저 녀석은 내가 끝낼 것이다." 드루젤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핏발 선 두 눈동자로 라이스만을 무섭게 쳐다보 고는 그 뒤의 라피에르에게도 다가갔다. 그는 라피에르를 바라보며 축 쳐진 팔을 들어올렸는데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타아-앗! 챙-! 라피에르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석실을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주변은 간신히 음영 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상태에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법. 그랬기 때문일까? 드르젤은 적의 공격에 피한다고 몸을 움직였지만, 어깨를 상 대에게 내줘야만 했다. "크-윽!" 하지만 그렇게 당하고 있을 드루젤이 아니었다. 다시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움직여 상대를 향해 몸을 날린 것이다. 챙-! 촤락! 몇 번 빠르게 검이 연속적으로 부딪히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석실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그 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서 싸워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앗! 불빛이라고는 석실의 흐릿한 횃불만이 존재하던 탑에 갑자기 달빛보다 차갑고 밝은 빛이 가득 차버렸다. 그 빛 때문에 싸움을 계속하던 드루젤과 라피에르는 순간적 으로 움직임을 멈춰야 했지만, 이내 시야가 빛에 익숙해지자, 멈췄던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크큭, 일부러 라피에르를 인도해 주는 건가?" 나직한 중얼거림이 라이스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과 꽤 많이 떨어진 장 소에서 서로 죽일 듯 검을 나누는 두 사람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자, 이제 어떻게 할거지? 밝아진 불빛이 더 이상 내게서 도망가는 것을 허락지 않 을텐데 말야... 크큭."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 하지만 라이스만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을 다물어버 렸다. 그리고 그런 단 한 명의 관중 속에서 드루젤과 라피에르는 처절한 싸움을 시 작해야만 했다. 불빛에 의해 드러난 상황은 라피에르가 월등히 유리한 상황이었다. 온몸에 꽤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드루젤 뿐이었다. 즉, 복도에 검붉은 피를 흘린 이도 드루젤 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라피에르의 몸에는 가느다란 상흔만이 남아 있을 뿐, 치 명적인 상처는 없었다. 병자, 즉 검을 들기도 어려운 사람과 싸웠기 때문일까? 아 님 다른 이유라도 있었던 것인가? 라피에르는 밝은 조명 아래 드루젤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많은 피를 흘 렸기 때문에 얼굴에는 한 점 핏기도 없는 드루젤. 그는 온 몸을 핏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여기 저기 깊게 패인 상처에서는 검붉은 피들을 끝임 없이 흘러내리고 있 었다. "......!" 그리고 불게 충열된 두 눈에서는 맑은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온 드루젤의 실력과 자신의 검을 막던 그의 몸놀림은 저 정도의 상처를 입을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드루젤의 모습은 너무도 처절했다. 자신이 그런 상처를 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라피에르는 드루젤의 볼을 타고 내리는 맑은 물방울의 정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폐하, 그만 검을 놓으십시오. 라피에르 저하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멈춰라, 라이스만! 이 녀석은... 쿨럭, 쿨럭. 내... 내 몫이다! 멍청하게 그렇게 계속 서 있어라! 라피에..르! 크큭." 드루젤은 멍하니 검을 내려놓은 라피에르를 향해 검을 곧게 들고는 빠르게 달려들 었다. 상처가 벌어지며 더 많으 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그의 움직임은 격렬했다. 하지만 강한 살기를 느낀 라피에르는 드루젤의 먹을 막기 위해 아래로 늘어뜨린 손을 재빨리 위로 치켜들었다. 푸-욱! "......!" "크-억-!" 라피에르의 검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에 시간이 정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당연히 자신의 검을 통해서 전해져 오는 느낌은 지금까지와 같이, 드루젤의 검의 단단한 느낌이어야 하는데...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인 듯, 그는 살을 찌르는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서..설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라피에르. 하지만 그의 품으로 쓰러진 드루젤의 몸 과 자신의 검을 타고 손목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는 자신이 드루젤의 복부를 정확히 꿰뚫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이럴수가... 내..내가..." "도망...가......" 툭. 드루젤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라피에르는 희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를... 자신의 몸을 완전히 꿰뚫린 채, 자신에게 안기듯 쓰러져 있는 드루젤. 라피에르를 향해 곧게 들고 오던 검은 라피에르의 몸이 아닌 엉뚱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 이런 일이!" "크하하하하-! 재밌군요~! 재밌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가의 뜨거운 액체에 시야가 흐려졌지만, 라피에르는 가증스럽게 닫가오는 라이스만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네.. 네 녀석!" "왜 그러신가요? 죽이려고 했던 상대가 죽었으니 기뻐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 는 방관적인 입장에서 라피에르 저하를 도와줬는데요~." "이..이!" 라피에르는 엄청난 분노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크큭. 왜 울고 계신 건가요? 무슨 슬픈 일이라도? 크큭. 유투 왕국을 이끌어가야 하는 신분이 그렇게 어린 아이처럼 울면 되겠습니까?" 타이르듯 다정하게 속삭이는 라이스만. 하지만 그런 목소리에서 라피에르는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자신의 몸이 터져나갈 것 같은 분노를... "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드루젤 폐하께서 원하신 대로 라피에르 저하의 목 숨은 가져가지 않을테니... 크큭!" "......!" 라피에르는 라이스만의 말로 설마 했던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그..그렇다면, 역시?!" "네네~! 그, 역시가 맞을 겁니다. 어둠 속에서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당신을 이곳에 서 벗어나게 한 것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그런 상황을 제가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크큭, 역시 우둔한 인간임에는 어쩔 수 없군요. 크하하하-!" "라.이.스.마--안!!!" 라피에르는 자신에게 기대 죽은 드루젤을 바닥에 조용해 내려놓고 검을 들어 라이 스만을 향해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라이스만의 1m 앞에서 멈춰야만 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런, 이런... 그렇게 흥분하시면 안되죠... 크큭. 제게 무의미하게 덤벼들어, 드 루젤 전하께서 목숨을 받쳐 구하시려는 라피에르 저하의 목숨을 버리려는 겁니까?" 움찔. 라피에르는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것인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 렸다. "아아~, 그렇다고 걱정같은 것을 하거나 하진 마십시오. 좀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라피에르 저하의 목숨은 가져가지 않을 테니까요. 이곳에서 둘 중 한 사람만 죽기 만 한다면 그걸로도 제 계획은 충분히 진행될 수 있으니... 크큭." "계..획?" 차분히 마음을 가라읹힌 라피에르가 질문을 던졌지만, 라이스만은 부드러운 미소만 지어보인 채 손을 들어 주변의 조명을 모두 꺼버렸다. 파-앗! 털썩. 불이 꺼짐과 동시에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했던 라피에르의 몸이 움직이더 니 이내 바닥에 굴르듯 쓰러졌다. "이제, 더 이상 라이스만이라는 존재는 필요 없어지는 건가? 크큭, 그동안 재밌었 는데 말야~! 크하하하하-!" 어둠 속에서 라피에르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목소리를 들으며, 리온과 크릭이 올 때까지 바닥에 쓰러져 있어야만 했다. 갑자기 다가온 혼돈과 슬픔. 그리 고 분노 때문에 몸을 움직일 만한 기력이 없었던 것이다. "크아-------악!"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난 절규가 탑을 흔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아직도 결계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나와 란. 우리는 이곳에서 꼬박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며, 결계를 통과할 방법을 연습해야만 했다. "란, 이제 알겠지?" "응!" "결계를 통과할 때는 입도 열지마. 내가 네 몸의 마나를 모두 조종해야만 통과할 수 있어! 잊지마, 절대 몸에 힘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 내게 맡겨, 알았지 ?" "알았어~. 알았다고~." 여러 번 반복된 내 강조 때문인지 란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지겹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결계를 통과하는 동안에는 내가 네 몸의 마나를 움직인다. 알았지?" "응." 지금까지 여러 번 연습한 것이었기에 란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내게 맡 겼다. 내게 안긴 란. 쉐이트론의 반지 덕분인지 란의 몸 안에서는 충만한 마나 느 껴졌다. '드래곤 하트에서 나오는 마나를 심장에 묶어두면서 란의 몸에 흐르는 마나 역시 움직이는 작업은 길어야 10초가 한계야... 그 사이 결계를 통과해야 해.' 사실 결계 하나를 통과하는데 10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결계를 통과하는데는 충분했다. 하지만 내 경우, 그 10초는 너무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쉐이트론의 반지에서 나오는 마나를 막아야 하고, 란의 몸 안에 마나를 일정량만 을 남기고 버려야 하며, 그 남은 마나를 내가 움직여줘야 하지. 그리고 그 후, 내 몸에 녹아 있는 드래곤 하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를 심장에 모아두고 막을 쳐놔야 하니... 하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다 아파오네.' 10초 동안 그 많은 일을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엄청난 정신력과 고통을 참아야만 했 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투덜거림 속에서도 내 몸은 이미 생각을 하나 둘 씩 행동 으로 옮기고 있었다. 정신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는 내 의지에 의해 조정되어야 했지만 ... 1초, 2초, 3초...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란의 몸은 결계 안쪽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팔 다리가 제일 먼저 결계를 통과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몸은 절반도 통과되지 못한 상태였다. 4초, 5초... 찌르르한 전류가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지만 그런 고통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불안전한 상태 로 결계를 통과하려던 나와 란 모두 결계의 힘 때문에 크게 다칠 수 있었으므로... 6초, 7초... 시간의 흐름에 다급한 마음이 결계를 앞서 지나갔지만, 내 몸은 아직 도 결계 가운데 껴 있었다. 마나의 흐름과 함께 움직여 그 틈 사이로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생각처럼 빨리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흐름 사이의 틈... 나와 란의 몸을 마나가 통과하도록 해야... 지나갈 수..크헉!' 심장이 통과하는 순간, 갑작스런 통증이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흐르는 시 간 때문에 나는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다. 8초, 9초... 내 몸이 떨리기 때문일까? 그 순간 나는 란의 몸 역시 심하게 떨리는 것 같은 느낌 을 받았다. 하지만 결계를 통과하는 중이라, 그런 생각은 깊게 할 수 없었다. '이 정도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냐!' 10초.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고통을 무시한 채, 결계를 통과한 나는 10초가 됐다는 생각 을 한 이후 점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누..누가 있었던 건가...?' 39장.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