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608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26-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05 02:48 읽음:2807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26- <제 13막. 제시마는 그랬었다.(1)> 아침 식탁엔 험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드래마와 디트마가 둘이서 서로 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갈 거야.” “글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아! 여행 같은 거 문제없다고!” “흥! 웃기고 있군. 오늘 아침 바닥에다 피를 한 사발이나 쏟은 게 누구 지?” 디트마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속을 다스리기 위해 피가 도느라 그런 거야. 네가 준, 하이 포션(High Potion)까지 마셨으니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자신의 상태에도 맞지 않는 능력을 마구 써서 내장 이 상한 걸 모를 줄 알아? 적어도 3주는 집에서 요양하고 있어!” “글쎄 마구 쓰지 않았다니까! 그린 라이트까지만 냈다고!” “그러니까 네가 그 멍청한 입을 아직도 놀릴 수 있는 거겠지. 그 이상 썼으 면 네가 살아있을 수나 있는 줄 알아!!!” 드래마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 말했다 하면 상당히 거칠게 말 했다. 또 둘은 가만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가운데 낀 시나는 두 사람 때문에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잖아도 어젯밤 잠을 잘 못 잤는데 이 두 사람 때 문에 생 머리가 아파 오고 있었다. “저, 두 분? 오늘 아침은 영 입맛이 없으신가 보죠? 수프 안 드실 거면 이 제 치워도 되요?” 자신의 수프를 다 먹은 시나는 당당히(?) 말했다. 두 사람은 시나를 찡그린 얼굴로 보더니 뭐라고 투덜거리며 숟갈로 수프를 퍽퍽 퍼먹었다. 먹느라고 좀 조용해지자 시나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사람을 조용히 시키는 방법으로는 먹을 것을 이용하는 게 최고야.] 어젯밤은 붙잡혀간 여자들 생각이 나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 세계로 오기 전 깡패들에게 끌려 산으로 질질 끌려가던 기억이 있기에 그 여자들이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끈거리는 머 리를 하고 음식을 차려야 했다. 아침 무렵 디트마는 피를 쏟긴 했지만 평소 처럼 쾌활한 모습이었다. 의외로 기분도 좋아 보였다. 기분이 나쁜 건 시나 와 드래마뿐이었다. 그래서 둘은 가만히 있고 디트마 혼자서만 이러니 저러 니 떠들고 있었는데 곧 이어 이런 말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드래마는 무슨 일 때문에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 같았다. 어제 벌목장에 가지 않은 건 그 일 때문으로 영주-일전에 본 꽃관 아저씨의 형이라고 했다 -를 찾아가 여행을 떠나도 좋다는 허가증을 받아왔단다. 뭐 약 두 달 남짓의 여행이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원래 계획으론 그 동안 시나는 옆 집 제시마네 같이 있기로 하고 드래마와 디트마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디트마가 힐러 라이트인가 라이터인가를 써서 건강을 망치자 드래마 는 디트마와 같이 갈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산 넘어 산 이라고 디트마에겐 나쁜 일이 겹친 셈이었다. 하루아침에 건강 망치고 상당 히 기대(?)했던 여행도 못 따라가고.... 하지만 그 덕분에 제시마가 살 수 있 었으니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시마의 할머니는 제시마 때문에 디 트마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귀한 달걀을 3개나 시나에게 쥐어주며 디트마님 께 갖다 드리라고 했었다. 그 달걀 들어간 수프를 먹는 디트마의 얼굴은 사 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동정은 가지만 시나가 생각하기에도 여행은 무리였 다. 오늘 아침 세면장에 쏟아져 있던 피를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했던 것이 다. 디트마는 피를 왕창 쏟고 귀신처럼 하얀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 아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상태의 사람이 어떻게 여행을 간단 말인가? [디트마도 참,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드래마를 따라간다고 고집을 부릴까? 그냥 이 집에 있지. 두 달이면 돌아온다고 하는데? 이렇게 추운데 여행하는 건 건강한 사람한테도 힘들텐데....] 그때 디트마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포기할게. 그냥 이 집에 있겠어” 디트마의 그 말에 드래마와 시나는 무척이나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디트마 가 고집을 꺾다니 잘 된 일이었다. 그러나 디트마의 다음 말은 상상을 초월 하는 것이었다. “그래. 이 상태의 나로선 너의 짐밖에 안 될 거야. 그래... 그러니 대신 시나 마를 데려가.” 드래마와 시나는 동시에 동일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방금 들은 소리가 정말 이 사람에게서 나왔나 심하게 의심하는 표정. 두 사람이 똑같은 표정을 짓기 란 이 이야기 시작하고 처음일 것이다. 곧이어, 드래마는 어이가 없는 표정 으로 넘어갔고 시나마는 황당한 표정으로 넘어갔다. 디트마는 단호한 표정으 로 그런 둘을 보고 있었다. 마침내 드래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입술만 약 간 올라간 것이 눈은 하나도 안 우스운 듯 살벌했다. “......속만 상한 줄 알았는데, ...머리까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도대체 왜 시나마하고 여행을 가야하는 건데?” [맞아!] 시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디트마는 드래마가 자신을 죽일 듯 노려 보던 말던 꿋꿋하게 말했다. “시나마는 네 종속자니까... 카할에서 의식도 치러야 하지 않아?” “무슨 헛소리야!! 애초 그런 건 두 달 후로 미루기로 했잖아?!” 당사자인 시나는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니 그러려니 했다. 디트마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하여튼 ..그게 아니라면 내가 널 따라가겠어. 설사 따라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어.” 아침 식탁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말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식탁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드래마는 화가 나는 듯 했다. 순간 그가 뭐 라고 고함을 지르는 게 아닐까 했다. 하지만 그는 억누른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디트마... 너... 뭘 걱정하는 거지? 응..? .....웃기는 소리하지마. 그런 협박 따위에 내가 넘어 갈 것 같아? 그렇게 따라오고 싶으면 맘대로 해! 죽든 살 든 내가 알 바 아니니까!” 그리고 드래마는 벌떡 일어서서 굳은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는 디트마 에게 말했다. “그토록 따라가고 싶으면 네 옷가지랑 네 그 빌어먹을 약들 오늘 저녁까지 챙겨 놔!!” 몹시 화가 난 음성이었는데 문을 쾅 닫고 나간 것으로 보아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지켜보던 시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디트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아프면서 여행을 간다니요? 그 것 때문에 저까지 들먹이고.. 너무한 것 아니에요?” 시나는 고개를 저었다. 디트마가 이렇게 고집쟁이 인줄은 처음 알았다. 그때 그가 빙그레 웃었다. 좀 힘이 없어 보이는 건 드래마와 최선을 다해 싸워서 일 것이다. “...시나마 준비해요. 당신은 며칠 후 여행을 가게 될 거예요. 두 달 예정이 니까 저 번에 사준 옷들 전부 다 갖고 가세요. 나머지는 드래마가 준비할 테 니 걱정 없어요.” “예에?!” 시나는 그의 뜻밖에 말에 놀랐다. “하, 하지만 드래마는 분명히 디트마보고..” “그는 날 데려가지 않아요. 내 몸이 이런데 데려갈 리가 없죠. 화가 난 나 머지 그런 말을 한 거예요. 그는 내가 그걸 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더 화 를 내는 거죠.” [하아?] 시나는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이 십 년 동안 같이 살았다고 했었나? 그래서인가? 이건 도대체 뭐야? 무슨 선문답 하는 것도 아니고 따라 오라니까 따라가지 못한다니? 장난하는 건가?] 디트마는 시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더니 곧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어제 내가 한 말을 들었죠? 후후.. 역시 한 집에 살아서일까요? 단 며칠이지만 그 동안 시나마는 우리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한 걸 알고있는 사 람이에요. 지난 20년간 우리를 봐 왔던 마을 사람들 보다요. 어제 그런 말을 경솔하게 한 건... 몸이 안 좋아서 끝까지 신경 쓰지 못한 탓도 있지만, 뭐.. 어느 정도는, 당신에게 말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시나마? 어제 들었던 말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 할 수 있나요?” [신분에 대한 것 말인가...? 그게 비밀이었나?] “네.” 시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내가 앞으로 할 말에 대해서도 비밀을 지킬 수 있나요?” “네?” 디트마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묻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비밀을 지킬 수 있습니까?” “네.. 네.” 비밀이야기라면 굳이 말 할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어쩐지 시나는 디트 마가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시나가 비밀을 지키는 걸 봄으로써 자기가 시나를 믿은 것에 대해 보답 받고 싶어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네. 비밀을 지킬게요. 디트마.” “훗. 착한 아가씨군요. 시나마. 좋아요. 자, 이건 드래마에 대한 비밀입니다. 시나마? 당신은 드래마가 화를 잘 내는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죠?” 시나는 그의 직접적인 물음에 당황했다. “...아, 아니라고는..” 그는 웃었다. “솔직한 아가씨군요. 쿡쿡.. 그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죠.” “디트마?”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감이 안 잡혔다. 그녀를 보고 웃은 디 트마는 이윽고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덧문사이로 한줄기 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췄다. 아침에 피를 쏟아서 그런지 초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니에요. 그건 그가 아니에요. 그는 그렇게 자신을 자제 못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난 그를 알아요. 그가 정말로 그 자신이었을 때를. 어떤 사 건 때문에 그는... 아, 이 사건에 대해선 자세한 얘길 안 할게요. 이건 말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어요. 음.. 어쨌든 어떤 사건 때문에 그는 제1기사 자리에서 쫓겨 나야했어요. 신분을 강등 당하고.. 괴로웠어요. 그의 개인 힐러 중 하나였던 저는...” 시나가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짓자 그는 웃으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루이티온 중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개인 힐러를 몇 명이나 둘 수 있어 요. 루온 루사트는.... 아, 이건 그의 옛 이름이죠. 그러니까 드래마는 기사 중 의 기사였고 파워즈(Powers)에게 수호 받는 능력자중에 능력자였습니다.” 그의 눈이 꿈꾸듯 빛났다. 이 이야기를 하는 그는 정말 즐거운 듯 했다. “그는 정말 대단했어요.. 12개의 세계에서 온 기사들 사이에 벌어진 자이온 산의 토너먼트에서 그는 최후의 영광스런 우승자였죠... 꽃이 뿌려지고 그의 머리에서 은색의 투구, 실버 하트가 빛나고 아름다운 적색의 검, 블러디 루 비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죠... 아무도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어요. 그의 아름 다운 약혼녀 루온 루사벨라님과 함께...”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띄었다. “그는 최고의 루이트였습니다. 나의 영웅이었고 나의 존경하는 주인이었죠. 그는 나의 자랑이었어요. 그런 분을 섬긴다는 건 동료 힐러들 사이에서도 부 러움 받는 일이었죠. 헌데... 그런 그가...” 그의 눈이 슬퍼졌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고 노력해서 얻었던 지위들인데!!” 시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드래마는 귀족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최고의 기사... 기사라면 싸우는 사람들이다. 그제야 시나는 그가 그렇게 쉽게 몬스 터를 해치웠던 것과(비록 몬스터의 눈에 그가 안 보였다고 하더라도)피에 익 숙한 표정이었던 것이 이해되었다. “게다가 그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데도 그걸 거부하고 있어 요.” “네에?!!” 시나는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돌아 갈 수 있다고요!? 마노테에서 루이티온으로요? 그런데 드래마는 왜?” 다시 돌아 갈 수 있다면 돌아가면 되지 않는가?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디 트마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는 그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더불 어 나도 나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 있겠죠. 어차피 그를 따라 마노테가 된 거 니까. 나한텐 특별한 죄가 없거든요.” “결혼이요?! 결혼만 하면 된다 구요?!” 겨우 그것뿐이라니 사정 같지도 않은 사정이었다.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만 시나 자신은 현실세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가는 형편이다. 그런데 드래 마는 결혼만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지 않는가? 왠지 부럽기도 하고 분했다. “그, 그게 뭐가 어려워요? 하면 되잖아요? 15살만 넘으면 결혼 할 수 있으 니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도 아니고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약혼녀도 있다면 서요?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거죠?” 디트마는 다 먹은 수프그릇의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하하.. 시나마 당신이 얘기를 하니 왠지 모든 문제가 간단하게 생각돼 좋 군요. 후후.. 하지만 시나마. 그는 그 결혼을 거부해요. 이제 성인식을 치를 기한이 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네? 왜요? 신분이 돌아가는 거야 둘째치고 성인식을 치르지 않으면 목숨 이 위험하다면서요?” 제시마에게 설명을 들어 시나도 이제 알만큼 안다. “네. 자 시나마,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잘 들으세요. 이건 누구에게 도한 적이 없는 이야기니까. 여기서부터가 본론이에요.” 디트마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일루젼과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했죠? 똑같은 것에 걸린 당신으로 선 어쩌면 좀 더 그를 잘 이해할지도 모르겠군요.” 시나는 그냥 하하 웃었다. 원래 일루젼과 기억상실 같은 것에 걸리지도 않았 으니 그를 이해할 건덕지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드래마는 시나에게 정체 불명의 사람이었다. 디트마는 말을 이었다. “일루젼과 기억상실 때문에 그는, 드래마는.... 마음 안에 여러 개의 방을 갖 게 되었어요. 헌데 그 방 하나 하나는 어느 것도 진정한 그가 아니죠. 모두 환상 일뿐.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 드래마는 지금 단 하나의 방에만 살고 있 어요.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방. 누구도 손 댈 수 없는... 그토록 오랜 세월 노력했건만!! 고귀한 신분의 한 소녀, 그녀가 있는 곳, 바로 그곳 에 그는..!” 디트마는 주먹을 꽉 쥐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 라보았다. 디트마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고요히 시나를 바라보았다. “그녀 때문에, 드래마는 지금도 그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요. 진정한 자기자 신을 잃어버린 채. 하지만 난 그가 그 방들을 전부 다 부숴 버리길 바래요. 예전의 그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녀는, 그 소녀는, 절대 손에 닿지 못할 곳 에 있는데... 바보같이.” 디트마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 소녀 때문에 죽어가고 있어요. 후훗. 어제 드래마가 하는 말 들었 습니까 시나마? 내 생명을 요구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죽이겠다는 드래마의 말?” 시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제시마마저도 죽이려 했다는 그의 말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웃었다. “난 그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어떤 힐러가 자신의 주인에게 그 런 애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난.... 가슴 한 편에선 지독한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는 나 따위에게 그런 애정을 쏟아선 안 되요. 루이티온 은 자신의 힐러를 그런 식으로 다루어선 안 됩니다.” 디트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잘못됐어요. 그래요. 드래마가 저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저도 드래마 를 소중히 여깁니다. 하지만 그건 루이티온으로서의 그에게 힐러로서 바치는 애정이 돼야합니다. 그래서 전, 그를 그렇게 만든 그 소녀를 증오해요.” 그는 말을 마치고 빙긋 웃었다. 빙긋 웃다니! 시나는 그래서 그가 말한 뜻을 맨 처음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섬뜩해졌다. 그의 그런 담담 함이 더 무서웠다. 깊고 폭이 넓은 강물이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그의 증오도 그렇게 깊고 폭이 넓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디, 디트마가 누굴 미워할 사람이라고는...] 디트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소녀 때문에 드래마는 더 이상 어떤 피해도 받으면 안돼요. 그래요... 시나마. 그래서 난 당신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그를 따라가서 그가 성직자가 되는 걸 막아 달라는 거예요.” “네에?! 성직자요!?”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다. [드래마가 성직자?!] 도저히 상상이 안됐다. 시나의 어이없는 표정에 디트마는 피식 웃었다. “그는 성직자가 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우스운 일이 죠. 그는 내가 모르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 성인식 을 치르는 방법은 그것뿐이에요. 이제부터 가게 될 제일로트는 엘의 성전, 그러니까 베쓰엘(Bethel)-카할(Kahal)이 있는 곳이죠. 설마 그가 경솔하게 일 을 치르진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만일을 대비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니까.” “하하.. 서,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래마가 성직자가 되겠다는 데 제가 그걸 어떻게 막겠어요?” “종속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세요. 그가 성직자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해요.” “그, 그럴 수 있어요?” “당연하죠. 종속주와 종속자는 한 가족이에요. 종속자의 말은 가장 친한 친 구의 말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죠.” [과연...] 그럴듯한 얘기였다. 하지만,“그, 그래도... 무슨 일 때문에 여행을 가는 건지 모르지만 성직자가 될 만큼 시간여유가 넉넉한 여행인가요? 성직자 되는 것 이 그렇게 쉬워요?” 현실세계에서도 신부라든지 수녀, 목사가 되려면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가 많은 걸로 아는 시나였다. 현실 세계완 다르게 쉽게 될 수 있다면 할말없었 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디트마는 시나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시나마. 당신은 생각을 아주 깊게 하는 편이군요. 후후. 맞아 요. 성직자가 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죠. 적어도 2달 이상은 각종 의 식과 맹세를 거쳐야 하니까. 그런 짓을 했다간 아무 일도 못 할 거예요. 그 러니까, 이것은 만약의 경우일 뿐이죠. 또 하나 내가 당신에게 드래마를 따 라가라고 하는 이유는, 드래마가 그 고귀한 신분의 소녀를 만날 때 그가 무 너지는 걸 지켜 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 소녀를 만날 때? 드래마가 제일로트에서 그 소녀를 만나게 된다는 건 가요? 도대체 그 소녀가 누군 데요?” 디트마가 말한다 해도 알 리 없었지만 시나는 자신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디 트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그 소녀가 누구라고 입에 올릴 순 없어요. 맹세에 어긋나니까. 하 지만 당신은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드래마가 옆에 있다면. 그가 보통의 반응을 보일 리 없으니까. 그때 당신은 드래마를 붙잡아 주세요. 그 리고 그를 부디, 무사히 지켜주세요.” 디트마는 시나를 보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나는 질린 표정을 지 었다. “디, 디트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어쨌든 확실한 얘기를 안 해주시니까.. 그, 고귀한 신분의 소녀라고 했나요? 그녀에게서 어 떻게 지키라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드래마가 사랑을 하는데 저 보고 뭘 어 쩌라는 것인지..”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데 어쩐지 껄끄러웠다. 그의 평소 행실로 봐선 도 저히 상상이 안 됐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뒀을 땐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갑자기 심히 궁금해졌다. 그때 디트마가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잘못된 마인드컨트롤이고 집착일 뿐이에요!” 그가 갑자기 소리쳐 시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분노한 표정이 채 가시지 않 는 얼굴로 말했다. “드래마와 같이 가면... 그녀가 누군지 알게돼요. 그리고 왜 내가 당신한테 그를 지키라고 했는지도 알게 될 거예요. 시나마. 난 알아요. 당신은 강한 사 람이에요. 전혀 다른 세계로 와서 이렇게 적응해가고 있는 건 당신이 강한 사람이란 증거예요. 어떤 부분에서 당신은 드래마보다 더 강해요. 당신은... 믿을 수 있어요. 당신이 드래마를 지켜주세요.” [저 드래마를 지키라고? 내가?] 디트마의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시나는 절대 자신 없었다. 드래마는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다. 시나 자신으로서는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는 자기의 친구에겐 절대적인 애정을 바치지만 적이라든가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겐 한없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시나는 자기가 그 의 친구인 지 적인지, 혹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지 그것이 파악 안됐다. ‘은혜의 법’이라지만 그거야 ‘법’이고 사람의 감정까지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쎄요. 저는 자신이 없어요. 디트마. 당신이 드래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 도록 그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건 알겠지만, 저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 하시네요.” 디트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당신은 엘의 의지에 따라 ‘은혜의 법’으로 드래마의 종속자가 된 사람이에요. 이 조건만으로도 저의 말은 당신에게 무리한 요구가 아니에 요. 당신이 검은머리여서 구했든 남자인 줄 알고 구했든 그가 사람을 구했다 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니까. 어쨌든 당신들 두 사람은 엘의 의지로서 맺어진 겁니다.” “하, 하지만 어떻게 두 달씩이나! 디트마!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전 그가 무서 워요! 당신이 있다면 괜찮지만, 당신도 없는데! 저, 전 싫어요!” 그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시나마.. ‘은혜의 법’을 무시하지 말아요. 그는 당신의 절대적인 우방이 될 거예요. 세상 모두가 당신에게 등을 돌린다 해도 그는 당신에게 등을 돌 리지 못해요. 그게 바로 ‘은혜의 법’이에요. 게다가 드래마는 책임감이 강 한 사람이니까 당신을 끝까지 도울 거예요. 그러니까 그를 무서워 할 필요는 없어요. 알겠어요?” 그는 끝까지 나의 우방... 나의 친구가 되어준다... [윽!] 갑자기 시나는 찌를 듯한 두통을 느꼈다. 잠을 못 자서 머리가 아프긴 했지 만 이 찌르는 듯한 통증은 몹시 불쾌한 느낌이다. 그래서 시나는 저도 모르 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래도 난...” 그때 디트마의 눈에 짜증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마침내 그는 단호하게 말했 다. “시나마. 당신은 가야 해요. 드래마는 당신의 생명을 구했어요. 당신도 그에 합당한 은혜갚음을 하세요. 종속자로서.” 그의 싸늘한 말에 흠칫 몸이 떨렸다. 그의 눈은 냉랭했다. [드래마가 디트마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디트마도 드래마를 소중히 여긴 다..] 다시 한 번 디트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두통이 서서히 사라졌다. 어쩐 지 머리 속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자신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 신은 거절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시나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어요. 디트마의 말대로 할게요. 자신은 없지만....” 우울한 목소리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달 동안의 여행일 뿐인데 왜 이렇게 드래마를 따라가기 싫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마음이었다. 때문에 저도 모르게 우울한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디트마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섞인 묘한 표정을 지 었다. 하지만 시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것을 볼 수 없었다. 마침내 디트마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준비를 하세요. 옷을 정리하고..” 하지만 시나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앉아있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609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27-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05 02:49 읽음:2844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27- <제 13막. 제시마는 그랬었다.(2)> “..피곤하군요.. 전 좀 자고 싶어요. 부상자들의 가족이 오면 갈색 병과 푸른 병의 알약들을 꺼내서 나눠주겠어요? 진통제와 소염제니까 한 알씩 줘요. 그 이상은 오히려 해로우니까 더 달라고 해도 주면 안돼요. 알았죠?” “...네.” 시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럼 부탁할게요.” 디트마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시나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옆집에 가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여행을 떠난다니까 제시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출입문을 닫고 골목으로 나서는데 대로로 우울한 사람들 의 모습이 보였다. 전날의 활기찼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10여 명의 여자들이 잡혀가고 한 명의 남자가 죽고 수 십 명의 남자가 심한 부상 을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도끼를 들고 일터로 가는 사 람들이 보였다. 일할 기분 따위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시나는 촌장과 유리마 부인 외 몇몇의 부인들을 만났다. “시나마. 잘 있었나요?” 그들은 드래마를 존경해서인지 시나같이 어린 소녀에게도 존댓말을 쓰고있 었다. “유리마 부인.. 안녕하세요?” 시나는 얼굴을 아는 몇몇에게 인사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드래마님과 디트마님은 안에 계시나요?” “드래마는 나가셨고, 디트마는 피곤하다면서 주무시고 계신데... 아, 알약을 얻으러 오신 거라면 제가 드릴게요.” 유리마 부인을 포함한 몇몇이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시나는 진료실로 들 어가 디트마가 지정한 약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유리마부인이 고마 운 표정으로 약을 받아갔다. “고마와요 시나마. 그럼 다음에 봐요.” 이제부터 여행을 떠나니 2달간은 춤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뭐 라고 말 할 사이도 없이 유리마 부인은 서둘러 진료실을 나갔다. 그 단정했 던 머리가 부스스하고 안색이 나쁜 걸로 보아 한 숨도 못 잔 것 같았다. 남 편과 아들이 부상당한 걸로 안다.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안 심할 순 없었다. 어제 드래마가 부상당한 사람들의 가족을 모아놓고 상처가 곪거나 썩으면 잘라내는 수밖에 없으니 물이 닿지 않도록 하고 간호를 확실 히 하라고 했었다. 잘라내다니 말이 쉽지 사람의 몸은 조립식이 아니다. 한 마디로 그건 죽는다는 소리를 돌려서 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 유리마 부인 도 간호하느라 정신이 없어 어차피 당분간 춤 같은걸 가르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나는 마음속으로만 인사했다. [두 달 후에 뵐 게요. 유리마 부인.] 춤 따윈 질색이었지만 몇 번 보면서 정이 든 것이다.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 던 빨간 눈도 이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에 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 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 이제 진료실에는 촌장만이 남았다. 시나 는 그에게도 진통제와 소염제를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쥐며 촌장은 말했 다. “시나마. 드래마님은 언제 돌아온다고 하고 나가셨나요? 어제 일로 다시 한 번 사과할 겸 왔는데...” “글쎄요. 여행물품을 사러 나간다고 하셨으니까.. 아, 촌장님 알고 계세요? 우린 곧 여행을 떠나게 될 것 같아요.” 촌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마님과 디트마님, 그리고 당신, 모두 다 떠난다는 이야깁니까?”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 낭패와 실망으로 얼룩졌다. “아, 그건 아니고요. 저하고 드래마만 갈 것 같아요. 두 달 간만이요. 디트 마는 여기 남아있게 될 거예요. 많이 아프시거든요.” 촌장은 안심한 듯 긴 한숨을 쉬었다. “아아.. 그렇습니까? 모두 다 떠나는 게 아니군요. 어제 그 일 때문에 떠난 다는 이야기인줄 알고... 정말 안심했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마을을 떠난다 고 하면 우린 어찌해야 할지..” 촌장은 진료실 안을 둘러보았다. “마노테온 마을 안에 이런 진료실이 있다는 건 순전히 그 분들 덕입니다.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어제 부상당한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죽었겠지요.” 촌장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 내내 그 생각을 했습니다. 드래마님과 디트마님의 이야기도요. 그 분들이 뭔가 높은 신분이었고 신분을 강등 당해 마노테온이 된 것이라면... 우린 정말 잔인한 요구를 한 게 되겠지요. 우리가 그분들 아픈 마음을 건드 린 게 되니까...” “촌장님..! 하지만 전 촌장님도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자들이 잡혀갔는데 촌장님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어요...!!” “시나마..?” 촌장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빙긋 웃었다.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요. 상당히 주제넘은 행동들이었는데. ..” “촌장님!” 시나는 안타까웠다. 뭐가 주제넘은 행동이란 말인가?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 한 게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촌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자, 이제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지요.” 그리고 촌장은 문으로 향했다. 나가면서 문득 그는 시나에게 주의를 돌렸다. “시나마? 여행을 가신다구요?” “네. 촌장님.” 시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행에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언제든 우리 집으로 오세요. 무엇이든 도와 드리지요. 드래마님에게도 그렇게 말씀 드려주시고요.” 시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제 시나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 다. 아버지가 딸을 보는 듯 친절하고 다정한 미소였다. 어쩐지 시나의 아빠 가 떠올랐다. 아까 까지만 해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였는데 말이야... 어쨌든 본심으로는 시나의 말에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촌장님. 드래마에게 그렇게 전해 드릴게요....” “그럼..” 시나의 말에 빙긋 웃은 촌장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갔다. [확실히.. 드래마의 거절을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촌장님도 괴로 우셨구나.. 드래마를 원망할 수도 없고...] 시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병들을 챙겨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진료실의 문을 닫고 나왔다. 또 사람들이 올 지 모르지만 잠 깐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제시마가 어떤지 꼭 보고 싶었다. 바로 옆집으로 걸어가 문 앞에 섰는데 갑자기 제시마네 집 문이 벌컥 열려 깜짝 놀랐다. “헉!!! 아, 아이구 놀래라!! 시나마? 우리 집에 온게유?” 헤리마 할머니가 놀란 눈초리로 시나를 보았다. 시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지 만 침착하게 말했다. “아, 헤리마 할머니.. 저, 제시를 만나러 왔거든요..?” “그래요? 그럼 어서 들어가구랴. 그래 달걀은 디트마님께 드렸어요?” “네. 그럼요. 맛있게 드시던 걸요?” 수프에 넣어서 줬는데 헤리마 할머니가 준 것이라 하자 디트마는 미소지었 었다. “아이구.. 그래요.” 할머니는 기쁜 듯 했다. “난, 지금 막 그 뭐냐 어제 드래마님이 그러셨잖우. 무슨 알약인가를 매일 받아 가라고. 그래서 그걸 받으러 가던 참이었다우.” “아, 그거 제가 가져왔어요.” 시나는 천에 싼 것을 보여 주었다. 거기엔 갈색과 푸른색의 알약이 있었다. “아이구.. 고맙기도 해라. 어서 들어와요. 시나마. 우리 손녀는 지금 저기 누 워 있다우.” 안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거실 겸 부엌이었다. 디트마네와 비슷했는데 한가 지 다른 점이 있다면 구석에 침대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로 말하 면 원룸 아파트 식이었는데 물론 제시마네가 그런 세련된 구조 일리는 없었 다. 장작을 아끼기 위해 아예 하나의 공간으로 만든 것 같았다. 지금 화덕에 는 작은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고 희미한 나글로 차의 냄새가 났다. “앉아요. 시나마. 차를 내올 테니.” 할머니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컵을 꺼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부유한 살림은 아니었다. [제시는 자기네가 가난하다고 했었지..] 시나는 제시의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제시마는 핼쓱한 얼굴이었지 만 잘 자고 있었다. 털가죽 이불 바깥으론 오른손만이 나와 있었다. 왼손은 팔뚝에서부터 잘려 있었다. 목걸이를 뺏기지 않으려다 손 째로 잘렸다고 했 다. 그걸 보자 새삼 분노가 치밀었다. 그때 할머니가 차를 갖고 왔다. “자, 시나마 들어요.” “고맙습니다.” 할머니는 다른 의자를 가져와 거기에 앉았다. 그리고 제시마의 오른손을 쥐 었다. “에휴..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다른 집 여자들이 끌려간 걸 생각하면. 내 어젯밤 그 생각이 자꾸 나 한 숨도 못 잤다우. 이것마저 끌려갔더라면 나 도 살지 못했을 거라고. 세일마가 그 놈들을 막아 못 끌어가게 했다는데 얼 마나 고마왔는지 모른다우. 그리고 디트마님께도. 우리 손녀 때문에 디트마 님이 아프시다는 얘길 듣고 어찌나 미안했는지..” “디트마는 괜찮을 거예요. 할머니. 디트마가 그러셨거든요. 그러니까 걱정하 지 마세요. 디트마도 제시마를 구한 것에 대해...” [아!] 말을 하던 시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 디트마는 제시마의 생명을 구한 것 이다. 제시마는 디트마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은혜의 법’이다! 시나는 흥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리마 할머니! ‘은혜의 법’이에요! 제시마를 디트마와 ‘은혜의 법’으 로 맺어 주세요!!!” “뭬, 뭬라구?” 할머니는 시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답답해진 시나가 소리쳤다. “‘은혜의 법’이요!! 디트마가 제시를 구했잖아요!!”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시나의 말을 막았다. “시나마.. 힐러와는 ‘은혜의 법’을 맺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제시마는 제 게 ‘은혜의 빚’이 있으니까 다른 누구와도 ‘은혜의 법’을 맺을 수 없어 요.” 깜짝 놀란 시나는 고개를 들었다. 집의 뒤꼍에서 장작을 가져오는 듯 오른손 에 장작을 한 아름 든 세일마가 뒷문에 서 있었다. 왼 손은 부상을 입어 쓸 수 없었다. “세, 세일마...” “그렇지요 세일마? 힐러하고 어떻게 ‘은혜의 법’을... 에엥? 아, 아이구 세일마! 안 그래도 된다니까.. 몸도 성치 않으면서 웬 장작을 나르고 그러 나..?” 헤리마 할머니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서 장작을 받아들려고 했다. 하지만 세일마는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할머니. 시나마가 와 있는 줄은 몰랐네요.” “방금 왔다우. 우리 제시를 보고 싶다고 하면서. 참 착한 아가씨 아니우? 자, 잠깐 여기들 좀 있어요. 난 뒤꼍에 놔 뒀던 절임 좀 꺼내 올 테니. 둘에 게 맛보여 주고 싶구먼.” “네.” “네.” 시나와 세일마는 동시에 대답했다. 할머니는 웃으며 뒷문을 닫았다. 할머니 가 나가자 시나는 일어서서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세일마? 그런데 아까 힐러가 ‘은혜의 법’을 맺을 수 없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그는 빙긋 웃었다. 그는 들고 있는 장작을 화덕 앞에 내려놓고 화덕 속에 2-3개를 집어넣었다. “생각해보세요. 시나마. 힐러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고 그와 ‘은혜의 법’을 맺는다면 평생동안 수 백 명과 맺어야 할겁니다. 그들은 인간의 생명 을 구하는 게 직업인 걸요. 마찬가지로 영혼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성직자 또한 아무와도 ‘은혜의 법’을 맺을 수 없습니다.” 시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그랬단 말야?!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납득이 가는걸. 근데, 깜빡 잊고 있었네. 그러고 보면 제시의 생명을 맨 처음 구한 건 세일마인데..] 세일마는 장작을 다 집어넣고 나자 옷을 툭툭 털고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그의 회색 눈은 침착하고 상냥해 보였다. “그럼 세일마. 당신이 제시마의 종속주가 돼서 제시마의 신랑감을 구해주실 거에요? 제시마는 자기에게 종속주가 없어서 남편 찾기가 어렵다고 했거든 요?” 시나의 말에 세일마는 약간 당황스러운 듯 했다. “제가 종속주가 되어 남편 감을 찾아 줄거냐고요?” 그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저.... 시나마..?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제시마와 어울리지 않나요?” “? ....뭐가요..?” 세일마는 얼굴을 조금 붉히고 있었다. 그리고 진지한 눈빛.... 그걸 본 시나는 둔중한 충격을 느꼈다. 그랬다. 시나가 장님이었다고 해도 그게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란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세일마의 표정은 확실했다. “하하... 세, 세일마..? 서, 설마, 제시마를.... 좋아하세요..?” 그는 대답대신 시나를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희미하게 열기를 띤 눈빛을 보아하니 확실했다. 그는 제시마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시나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실에 놀라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회색 눈, 모자를 쓰고 있어 잘 모르겠지만 눈썹 색을 보아 알 수 있는 푸른 색의 머리칼.. 부드러운 미소... 상냥하고 침착한 성격. 시나에게 이렇게 분명 한 태도로 말하는 것을 보아 그 행사에선 제시마 앞이라 더듬고 우물거렸던 것 같다. 그래.. 잘 생긴 편이고 성격도 좋다... 그것만 놓고 본다면 제시마의 신랑감으로는 손색이 없겠지. [하지만...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보여어!!!!] 시나는 잠시 마음속으로 괴로워 한 뒤 실례되는 질문이 아니길 빌며 물었다. “세일마...? 당신은 이미 ‘성인’으로 보여요. 당신은 이미 결혼을 하신 거 아니에요?” 세일마가 빙긋 웃었다. “내 아내.. 마리는 사고로 19년 전에 죽었어요. 엘의 시기 18년에 그녀와 결 혼해 겨우 2년 동안만을 같이했죠. 지난 19년 동안 내내 그녀를 그리워했고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지금 제시마를... 좋아합니 다.” 말하고 부끄러운 듯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 잠깐!! 계산을! 계산을 해보자! 이 사람이 18년에 결혼했고 결혼 생활 2 년에다 19년이 지났으니까.. 에?! 39살?! 제시마랑 겨우 4살 차잖아!!] 시나는 기가 막혔다. 나이 상으로 별로 차이가 안 나는데 ‘성인’과 ‘아 이’는 이렇게 외모 상으로는 차이가 났다. 시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그렇군요. 저는 세일마껜 아내가 있는 줄 알고.. 하하 하하 네. 참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하하(;)”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습니까? 전 역시 걱정했죠. 제시마와 같은 처녀에게 저 같이 이미 성 인인 남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 걱정을 하긴 했구나..] 시나는 진땀을 흘렸다. 그때 누워있던 제시마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세일 마와 시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세일마.. 정말 저 같은 사람도 좋다는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세일마는 간이 내려앉은 표정을 짓고 제시마를 보았다. 제시 마는 갈색 눈가가 붉어져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시나는 기절 중(?)인 세일 마를 힐끔힐끔 보면서 말했다. “제, 제시?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하하하... 언제부터 듣고 있었어?” 제시마가 약간 두려운 눈초리로 말했다. “아까 전에, 네가 디트마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은혜의 법' 이야기를 할 때 부터..... 네가 온 것을 보고 말 걸려고 했는데.. 세일마 때문에... 부끄러워서.. ..” [헉!!] 그럼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다는 말이다. 시나는 많이 민망했다. 그때 세일 마가 벌떡 일어섰다. “자.. 제나마!!!? 나중에 봐요! 난, 장작을 캐 와야 해서! 그럼!!!” 제나마라니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장작을 캔다니? 시 나가 벙찐 얼굴로 세일마를 쳐다보는데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문 밖으로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그때 제시마가 소리쳤다. “세일마!!! 잠깐만요!!!” 그 소리에 세일마의 온 몸이 딱 얼어붙었다. 제시마는 몸을 일으키며 세일마 의 등에 대고 말했다. “제 말에 대답 좀 해주세요!!” “하하하... 그렇지만, 난 장작이 필요하니까....” 세일마는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하는 지도 모를 것이다. 시나는 그렇게 확신 을 했다. 어쨌든 헛소리든 무슨 소리든 말을 마친 세일마는 몸을 움직여 다 시 문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세일마!!! 가지 마세요!!!” 제시마는 결정적인 순간엔 언제나 대담한 소녀였다. 이렇게 큰 소리로 세일 마의 이름을 부르다니!! 그때 제시마의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의 손에는 큼지막한 그릇이 들려 있었고 거기엔 시원해 보이는 오이 절임이 담겨있었 다. “제시! 제시야?! 무슨 일이냐? 왜 그래?” “하, 할머니! 세일마가..” “왜? 세일마는 친절하게 잘 해주었는데?” 제시마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친절... 이요? 친절하게요? 그, 그렇군요. 그것도 모르고 난..” 제시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왠지 쓸쓸한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세일마. 당신이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은 건 알지만 굳이 저와 ‘은혜의 법’을 맺어 도와주실 필욘 없어요... 당신은 이미 해주신 것만으로 도...” 그때였다. 그때까지 등을 돌리고 서있던 세일마의 어깨가 움찔 움직였다. “아냐! 제시마!” 그는 크게 소리치며 제시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제시마를 바라보았다. “내가 널 구한 건 친절이나 동정이 아니야!!! 난! 제시마! 나와 결혼해 주겠 어? 이번 기슬러월 하누카의 날에!? 비록 한 번 결혼했던 몸이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너를..!!” 뭔지 모르겠지만 시나는 세일마의 말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입 술을 심하게 떨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입술로 말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원 참! 한 번 결혼 해 본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떨지? 오히려 제시마가 더 침착하네.. 쯧쯧...] 제시마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지며 거기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전 포기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21년 전 마리마와 결혼했을 때... 역시 안돼 는 거라고... 언제나, 언제나 당신의 회색 눈을 좋아했지만.. 포기해야 했으니 까.. 그래서 디트마님을 좋아했어요. 그분은 당신과 비슷한 색의 눈을 갖고 있잖아요? 그리고 당신처럼 상냥하고... 또 당신처럼 침착하고...” “제, 제시마...” 세일마는 감격한 듯 제시마 옆으로 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 았다. 시나는 제시마의 말에 놀랐다. 제시마의 할머니도 놀란 듯 했다. [뭐, 뭐야! 그럼 제시는 결국!] “제시? 제시야? 너 초, 촌장님의 아드님을 좋아했던 거냐? 우, 우리같이 가 난한 사람들은 안 된다니까! 게다가 디트마님?” 할머니는 손녀의 눈이 높음에 진심으로 경탄한 듯 했다. 시나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그러고 보니 회색 눈의 사람은 친절하고 마음씨가 어떻고 한말 이 생각이 났다. “할머니? 혹시 이곳에 회색 눈의 사람이 마음씨가 착하다는 옛날이야기 있 나요?” 시나는 히죽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얼 굴을 찌푸렸다. “그런 얘긴 내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다우.” [후후후-] 시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맙소사! 할머니와 시나의 대화를 듣던 제시마가 얼굴을 붉혔다. “미안해. 시나-. 그냥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워서... 하지만 내가 회색 눈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진짜야!!!” [그렇겠지.] 시나는 또 한번 히죽 웃었다. 왜 아니겠는가? 그 옆에 있던 ‘회색 눈’의 세일마는 좋아서 입이 쭉 찢어져 제시마의 손을 잡았다. “제시마!” 작은 오두막 안은 이제 온통 하트가 날아다녀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래서 시나는 이만 퇴장하기로 했다. 더 이상 있어봤자, 눈만 시릴 뿐이니 까. 시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시, 나중에 보자.” 문병도 하고 여행 이야길 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해야겠다. 제시마가 문을 열 고 나가는 시나를 보며 말했다. “시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내가 너무 경솔해서...!!!” 시나는 문 앞에서 제시마를 돌아보았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녀는 시나의 목걸이 이야길 하고 있었던 것이 다. 결국, 시나의 목걸이는 제시에게 필요가 없었던 것인데.... 제시 자체를 보석처럼 여겨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서로 20년 넘게 좋아했으면서 이 제야 고백하다니... 시나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괜찮아. 제시. 그거에 대해선 용서했어. 그러니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제시마는 얼굴 가득히 고마움을 표시했다. 옆에 있는 세일마와 헤리마할머니 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서 제시마와 시나를 번갈아 보았다. 시나는 그냥 문을 조용히 닫았다. 제시마는 행복해 보였고 그걸로 된 것이다. 엄마의 목 걸이에 대해서는, 아쉽고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나는 자조적으 로 웃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물건에 집착하지 않는’타입 이었다. [어차피.. 세상에서... 영원히 내 것이란 없어... 엄마. 미안해요.] (계속)================================================== 안녕하세요? ^^ 어린이날을 기념하여...(도대체 어린이날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길래? --;;) 다섯 편을 한꺼번에 올립니다.^^ 으흠... 그럼, 다음 주 월요일 날 뵐게요... 안녕히...^^ 좋은 어린이 날 되시길 바랍니다.^^ <어린이날이 왠지 좋은 엔...^^>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741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28-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11 22:34 읽음:2807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28- <제 14막. 시나, 개를 위하여 그리고 말을 타며, 죽 쓰다.(1)> ‘일루트 렌의 클로니아 궁정기사 이야기’를 마저 읽고 있는데 디트마가 방 문을 열고 나왔다. 하루종일 잔 그는 아침보다 얼굴빛이 더 나아 보였 다. “디트마 배고프지요? 앉으세요.” 시나는 벌떡 일어섰다. 디트마는 점심도 거르고 거의 저녁때까지 잔 것이 다. 아까 디트마의 방에 살짝 들어가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어주고 나왔 는데 그 때도 계속 깊은 잠이 들어 있어 깨우기 힘들었다. 디트마는 몽롱 한 눈빛으로 있다가 빙긋 웃었다. [이 소녀는 아까 내게 섭섭했던 걸 그새 잊어버린 건가? 참 붙임성이 좋 구만.] 시나는 희미하게 미소짓는 얼굴로 수프와 빵을 가져왔다. “시나마 내가 자는 동안 뭔가 좋은 일이 있었나요? 왠지 즐거워 보이네 요?” “후후후. 좋은 일이요?” 시나는 방긋 웃었다. “디트마, 제시마가 결혼 한 대요. 세일마와요.” 말한 순간 시나는 아차 했다. [앗 그렇지 디트마는 제시마가 자길 좋아하는 줄 알고 있을 텐데.] 그러나 예상외로 디트마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습니까? 세일마가 드디어 용기를 냈군요.” 시나는 그의 뜻밖에 말에 놀랐다. “디트마....! 알고 있었던 거예요? 세일마가 제시마를 좋아한 걸요?” “네. 뿐만 아니라 제시마가 세일마를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었죠.” [헉! 이럴 수가!] 시나는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저번에 드래마가 벽난로 만들 때 제시마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드래마에게 말했잖아요?” “하하.. 그걸 들었습니까? 그건 드래마가 제시마에게 원망을 품지 못하도 록 한 말이죠. 뭐... 자존심이 좀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제시마가 날 좋아 한 건 내게서 세일마의 모습을 찾고 있기 때문이란 걸 눈치채고 있었 죠.” [하하.. 그, 그랬단 말야?] 시나는 황당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긴 해도 용케 눈치를 채셨네요 디트마.. 제시마는 그런 티 하나도 안 냈는데.” “티를 하나도 안 냈다고요? 아니에요. 시나마. 제시마는 언제나 그런 티 를 냈어요. 그녀는 자기의 속마음을 쉽게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죠.” “네!? 티를 냈다고요? 하지만 제시마는 평소에 세일마에게 전혀 신경을 안 썼는데요? 그 행사에서도 세일마에겐 별로 말도 안하고 디트마가 오니 까 얼굴이 붉어져서 디트마가 춤 신청하니까 그렇게 좋아했잖아요?” “제시마는 세일마를 의식해서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내가 춤을 신청하 자 눈에 띄게 좋아했던 거죠. 전, 세일마를 자극하기 위해 제시마에게 춤 을 신청한 거고. 제시마가 그 동안 도와준 걸 생각하면 그 정도는 해 주 어 야죠.” “의, 의식이라고요? 좋아하는데 왜 그런 복잡한....?” 시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디트마는 수프를 먹으 며 씨익 웃었다. “시나마 당신은 틀림없이 이성을 좋아해 본 경험이 별로 없군요.” [엥?] “제가요? 하하, 디트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7명이 나 남자애들을 좋아했다고요!” “7명이나요? 글쎄요... 숫자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래요? 그럼 그들을 좋아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기분이요? 기분? 그냥.. 뭐.. 그 애랑 있으면 좋다! 그 애한테 고백해서 나의 마음을 알리고 싶다! 뭐, 이런 거죠.” “그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떨 려 도저히 말이 안 나와 쓸데없이 옆 사람에게 말을 건다 거나 차마 얼굴 을 보지 못해 계속 다른 곳만 쳐다보던 기억은 없나요?” [말을 못하고 딴 짓만 한다고?] 시나는 인상을 쓰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이상해요 디트마.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좋아 하는 마음 그대로 고백하면 될 것 아니에요?” “고백하면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데요? 그나마 있던 작 은 관계나마 깨어져 다시는 옛날로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요? 시나 마.. 기본적으로 남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두려움이 있어요. 내가 이 사람 에게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세일마와 제시마에겐 그런 두려움이 있었고 이제 그들은 그 두려움을 극복해낸 거죠.” “두려움이라고요?” 시나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좋아하면 일단 고백하는 거고 그 뒤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시나는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런 건... 사람마다 틀린 거 아니에요? 게다가 진정한 사랑엔 두려움이 없다고요.” “진정한 사랑이요? 그 진정한 사랑은 하루 이틀로 얻어지는 게 아니에 요. 진정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 결혼한지 10년 이상이 되어 온갖 고락 을 같이 한 사람들의 사랑, 그리고 신의 사랑을 말하는 거죠. 그 사랑엔 믿음이 함께 있기에 두려움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 막 사랑을 시작 하려는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모르겠나요? 누군가 를 좋아한다는 건 자신을 포기한다는 뜻이에요. 자신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타인을 초대하는 행위죠. 그러므로 좋아하는 사람의 눈짓이나 손 짓 하나에 그리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거겠죠. 또 그 좋아하는 사람으 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하는 거구요. 그 런데 자신을 포기하는 그런 행위에 어떻게 두려움이 따르지 않을 수 있겠 어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힘이 있는데? 사랑은 그런 본능을 거슬리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에겐 끝까지 이질적인 감정일지도 모 르지요. 하지만 인간에겐 죽음에의 욕구 또한 있으니까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본능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군요.” [자신을 지키려는 욕구와 죽음에의 욕구? 나 자신을 내어준다고?] 왠지 머리가 아팠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였다. 시나는 남녀간의 관계가 그 렇게 복잡한 건 안 좋아했다. 그래서 애정소설도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이 지만.... 시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두려움 없이도...! 전 남자애들을 좋아했어요.” 디트마가 빙긋 웃었다. “그 두려움이 없었다면 당신은 그 남자애들을 진정으로 좋아한 게 아닙 니다.” 디트마의 말은 시나의 마음속으로 퍼졌다. [내, 내가 그 애들을 진정으로 좋아한 게 아니라고? 그, 그런!] 지금까지 좋아했던 남자애들이 떠올랐다. 그 애들을 좋아하면서 그렇게 행복했는데? “디트마 난!” 디트마는 담담히 미소지으며 이제 그만 하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시나마..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 해 봤자 당신은 이해 못 해요. 당신이 나중에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을 때 그때는 나의 말을 이해하 게 될 거예요.” 눈썹을 찌푸리며 시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을 때 이해하게 된다고? 그럼 디트마 는? 디트마는 어떻게 그걸 아는 거지? 그도 누군가를 좋아한 경험이 있 는 건가? 그래서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가?] 알 수 없었다. 그때 디트마는 수프와 빵을 다 먹었다. “아, 이것 참 맛있군요. 시나마가 수프를 끓인 후로는 수프를 마음껏 먹 을 수 있으니 좋은데요. 응? 이건 뭡니까? 이것도 수프예요? 수프보다 걸 쭉한데?” 디트마는 어느새 식탁 위에 놔 둔 그릇에 있는 죽을 한 숟갈 먹었다. “오, 이것도 참 맛있군요!!” [으앗!] 시나는 그것을 보고 질겁했다. “이거 제가 먹어도 되나요? 쿠냐냐를 쳐서 그런지 맛이 좋은데요?” “하하하.... 디, 디트마... 그건 남은 음식 버리기 아까워, 옆집 개한테 갖 다 줄려고 이것저것 섞어서 끓인 건데요?” 디트마는 입에 있던 걸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인상을 썼다. “음.. 이거 개 수프입니까?” “네? 네.” 시나의 세계에선 ‘개죽’이라고 하지만 이름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그 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그래요? 재료가 뭔가요?” “나글로차 남은 물에 빵 딱딱하게 굳은 것, 저번에 디트마가 쿠냐냐를 너무 넣어 실패한 수프, 어제 먹다 남은 베이컨이요.” “흐응.. 이거 더러운 그릇에 끓인 건가요?” “네? 아니오. 깨끗한 그릇에 끓였는데요?” 아무리 개가 먹을 거라지만 요리는 요린데 어떻게 더러운 그릇에다 아무 렇게나 끓일 수 있겠는가? “그래요? 그럼 됐어요. 내가 먹죠. 이상한 재료로 끓인 것도 아니고 더러 운 그릇에 끓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제대로 된 요리를 개한테 준다는 건 낭비죠.” “예?” [디, 디트마는 의외로 비위가 강한가봐. 하긴 20년 동안 내내 자기가 만든 이상한 음식만 먹고살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하..(;)] 디트마는 열심히 먹었다. 그러다 시나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시나마, 그렇게 이상한 표정으로 보지 말아요. 지금은 너무 배고픈데다 이거 정말 맛있다고요. 시나마는 자기가 만들었으면서 이거 맛 안 봤어 요? 지금 좀 먹어 볼래요?” 시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일까? 개한테 줄려고 끓인 것이니 물론 맛 따위 안 봤다. 의외로 훌륭한 요리가 된 걸까? 시나의 호기심이 비위 를 이겼다. “한 숟갈만 먹어 볼게요.” 시나는 아주 조금만 먹어보았다. [헤에? 정말이네? 나글로의 약간 씁쓸한 맛과 쿠냐냐의 미원 맛이 의외로 잘 어울리잖아? 씹히는 베이컨도 맛있고.. 흐응.] “맛있죠?” “네. 저도 놀랐어요.” “하하.. 시나마 이거 만드는 법 아직도 기억하고 있죠?” “그럼요.” “그럼 여행 떠날 때까지 종종 이걸 만들어 줘요. 참 마음에 드는 음식인 데요? 음... 하지만 저녁이라든가 아침엔 만들지 말아요. 드래마는 단 건 좋아하지만 쿠냐냐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음식도 안 좋아할지 몰라 요.” “네.” 시나는 웃었다. 의외였다. 드래마가 단 것을 좋아하다니.. 그래서 칸자 치 기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일까? 디트마가 다 먹자 시나는 그릇을 치웠다. 디트마는 시나가 보는 책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아직도 이걸 읽고 있나요?” “네. 이 곳의 문화를 알고 싶어서..” 디트마는 얼굴을 찡그렸다. “문화요? 이 책으로? 글쎄... 그런 거라면 더 좋은 책이... 아, 시나마 그 러고 보니 예전에 책을 더 읽을 수 없냐고 했었죠?” 설거지하던 시나는 그 소리에 귀가 쫑긋했다. “네! 책을 더 읽을 수 있나요?” “후후... 이거 참, 시나마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 기쁘군요. 이제부터 가게 될 제일로트엔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죠. 뭐 그 곳이 이 곳 클로니아의 수도니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다 제일로트로 가는 도중에 있는 큰 일루테오나 마을엔 서점도 있을걸요? 대부분 성직자나 상 류계급, 힐러(Healer), 아티스트(Artist)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이긴 해도요. 뭐 여기서 제일로트까진 하룻거리니 중간에 마을에 들릴 일은 없겠지만 여하튼 책 하나는 실컷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드래마가 일을 보는 동안당 신은 책을 읽으면 되겠군요.” “와아-- 정말이요?” 기뻤다. 내키지 않는 여행에 즐거움이 추가된 것이다. “근데 디트마, 아티스트(Artist)라니.. 이 세계에선 예술가들에게 많은 혜 택을 주나봐요? 그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도 따로 있어요?” “네? 예술가요? 하하... 아니에요. 시나마. 아티스트란 마나(Mana)를 연 구하는 자들이에요. 아주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어야 택할 수 있는 직업 이죠. 스피릿(Spirit)을 마나로 순화시켜 수학적으로 계산해 제어하고 이용 하니까요.” [그게 뭐야? 물리학자를 말하는 건가? 여기선 물리학자를 아티스트라고 하나?]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드디어 이 세계의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문득 시나는 자신의 콘택트렌즈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렇지!! 디트마! 혹시 내 교복을 붕대로 만들다가 치마 호주머니에 있던 투명하고 조그만 상자 같은 거 못 보셨어요?” “투명하고 조그만 상자? 아니오. 못 봤는데요?” 디트마는 고개를 저었다. 시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치마 주머니에 넣었는데 어디로 간 걸까?” “그게 뭔데요?” 디트마가 물었다. “어, 그러니까 그건 플라스틱으로 만든 건데요.. 그 안에 작고 동그랗고 검은 색의 말랑말랑한...” 디트마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프라시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나마... 당신이 좀 더 여기 있었다면 내가 당신을 치료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긴 일루젼이나 기억상실은 거의 고칠 수 없긴 하지만... 안타깝군요.” “예?” [프라시틱? 으휴. 하긴 이 세계에 플라스틱이 있을 리 없지. 합성섬유로 만든 옷인 줄도 모르고 푹푹 삶았을 정도니... 나도 안타까워요 디트마. 그게 있었으면 실물로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어디 간 걸까? 숲 에서 괴물에게 쫓길 때 떨어뜨렸나? 으휴! 답답하다!] 그것마저 사라졌다면 이제 시나에게 남은 현실세계의 물건이라곤 속옷뿐 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제시마의 어드바이스로 이 세계의 것으로 갈아입 고 있었다. 시나의 속옷은 다른 곳에 잘 챙겨놓았다. 디트마도 남자인데 남자한테 속옷을 보이며 이거야말로 현실세계의 물건이라고 말할 수도 없 고 갑갑했다. 도대체 현실세계 이야기만 나오면 그 지긋지긋한 일루젼에 기억상실이야기다. 하도 그러니까 어느 땐 자기가 있던 세계가 정말 일루 젼인 것 같이 생각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시나는 속옷의 섬세한 바느질이라든가 리본 같은 것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 세계엔 이런 물건이 없는 것이다. 자신은 분명히 '지구’, '대한민국',‘서 울’에 사는 여고생 윤시나였다. 한숨밖에 안 나왔다. 설거지를 끝마친 시 나는 손을 탈탈 털고 의자에 앉았다. “근데 디트마? 도대체 드래마는 왜 일루젼과 기억상실에 걸린 거예요? 그도 얼음의 숲에 들어간 건가요?” [하아--- 혹시 그도 나처럼 일루젼이나 기억상실이 아닌 정말 기억을 갖 고 있는 거 아냐? 아, 아니다... 그는 자기 입으로 과거를 전부 다 잊었다 고 했었지.. 음... 하여튼 궁금하군.] 시나는 계속 이어 물었다. “그러니까 그는 왜 애초에 얼음의 숲에 들어간 거죠? 그곳이 이상한 곳 이란 걸 알텐데?” 디트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시나는 혹시 그가 대답을 거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말했다. “그가 들어간 곳은.. 얼음의 숲이 아니라 암흑의 숲입니다. 힐라토에선 성역과 닿아 있는 숲을 얼음의 숲이라고 안하고 암흑의 숲이라고 하죠.” “네? 암흑의 숲이요?” [그건 또 뭐야? 도대체 이 세계엔 숲 이름도 가지가지구만? 힐라토는 다 른 지역 이름인가?] “네. 그가 그곳에 왜 들어갔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것도 맹세에 어 긋나는 일이니까요.” [웅- 맹세에 어긋나는 비밀도 참 많구만!!] 너무 너무 궁금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말 못하겠다는 데 억지로 물어 볼 순 없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뭔지 맹세 자체에 대해선 알 수 있을지 몰 랐다. 맹세라는 게 도대체 뭐냐고 물으려는데 드래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 다. 바깥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나 왔어.” 무뚝뚝한 목소리다. 그는 하나의 커다란 자루를 어깨에 지고 있었다. 디트마가 말했다. “어서 와 드래마. 꽤 오래 걸렸군.” “오셨어요 드래마?” “응.. 자, 이거 신어봐.”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742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29-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11 22:35 읽음:2809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29- <제 14막. 시나, 개를 위하여 그리고 말을 타며, 죽 쓰다.(2)> 드래마는 커다란 자루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시나 앞에 집어 던졌다. 그것 은 갈색의 예쁘고 튼튼해 보이는 가죽신이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워커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앞부분은 끈으로 조이게 되어 있었다. “아, 그렇군. 맞아. 여행을 떠나려면 신발이 필요하지. 드래마 잘 생각했 군.” 디트마는 빙긋 웃었다. “시나마 신어보세요. 지금 신고 있는 건 내 신발이라 내내 불편했죠? 크 기도 하고. 여행하려면 역시 튼튼한 신이 있어야죠.” “어.. 저?” 드래마는 디트마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안 보이고 자루를 식탁 옆에 놔두 고 의자에 앉았다. 디트마의 말에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시큰둥했다. “빨리 신어봐 시나마. 먼길을 갈 거니까 잘 맞는지 봐야해.” 황당했다. 드래마나 디트마나 시나가 여행을 가는 걸로 결정을 내린 듯했 다. 디트마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드래마는 도대체 뭔가? “저, 드래마? 아침만 하더라도 디트마한테 따라오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디트마를 데려갈 리 없잖아?” 그는 눈을 찌푸리고 디트마를 보았다. “얘기 안 해줬어?” “아니 해 줬는데.” 디트마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드래마는 시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럼 빨리 신어봐.” 드래마는 벌떡 일어나 화덕 위에 있는 나글로를 컵에 따랐다. 그리고 솥 에 있는 수프와 빵을 가져왔다. 어안이 벙벙해진 시나는 하는 수 없이 신 을 신어 보았다. [흐응.. 오늘 저녁에 또 한바탕 데려가니 안되니 하며 싸울 줄 알았는데? 정말 디트마의 말이 맞잖아? 어.....!] “와아! 신발이 딱 맞아요! 드래마 대단하네요! 제 발 치수를 어떻게 아셨 어요?” 시나는 걸어보았다. 몇 년은 신은 듯 편안하고 따뜻했다. 큰 신발로 질질 끌며 걷던 것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은 시나는 좋 아서 드래마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드래마. 제 마음에 꼭 들어요.” 드래마는 피식 웃었다. “잘 맞는다니 다행이군. 내일 모레 떠날 건데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 말에 디트마가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렇게 빨리? 이번 엘의 날을 지낸 후 ‘달의 날’에 갈 줄 알았는 데?” “음. 그럴까 했는데. 되도록 이번 주 안까지 오라고 하시잖아. 내일까지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처리하고 내일 모레에는 떠나야지. 제일로트까지는 하룻길이니 ‘흙의 날’ 새벽에 출발하면 저녁 무렵엔 도착하겠지. 그럼 엘의 날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그래? 아슬아슬하군.” 시나가 끼어 들었다. “그럼 역시 제시마의 결혼식은 못 보는 거네요? 하드카의 날이 한 달 후 라니까 두 달 동안 떠나있으면..” 시나는 왠지 섭섭했다. 시나의 말에 드래마는 수프를 먹다말고 말했다. “하드카가 아니라 하누카야 시나마. 근데 제시마가 결혼? 누구랑?” 시선이 왠지 디트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디트마는 빙긋 웃었다. “내가 아냐. 드래마. 세일마랑 하기로 했대.” 드래마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세일마? 갑자기 웬 세일마야?! 그럼 보석으로 유혹한다는 것 은...!” “응?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드래마?” 디트마가 물었다. 시나는 당황했다. [뭐야? 드래마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그럼 드래마는 내가 제시랑 나눈 이야기를 들은 거잖아! 그런데 그렇게 모른 척 하다니!] 디트마는 이제 드래마와 시나, 양쪽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보고 있었다. 드래마는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시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든 설명 을 해야했다. “하하하... 드래마..? 제시마는 원래 세일마를 좋아했대요. 세일마도 제시 마를 좋아했고요.” 디트마는 드래마를, 드래마는 시나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시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드래마는 약간 눈썹을 찌 푸리고 물었다. “그럼... 네 목걸이는... 괜한 짓이었잖아?” 시나는 웃었다. 목걸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팠다. “그거야... 어쩔 수 없죠. 뭐. 제시마도 잘 해보려고 그런 거니까...” “무슨 소리들이야 도대체?” 디트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하지만 드래마는 디트마의 말에 대답을 안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가치 있는 물건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포기하다니 대단하군.” 그리고 드래마는 디트마에게 물었다. “디트마 넌 제시마를 좋아한 거 아니었어? 그린 라이트를 써서 구해주기 까지 하고?” “뭐? 아냐. 내가 왜 제시마를 좋아해? 오랫동안의 친분도 있고 계속 내 조수일도 해준 소녀를 죽이기 싫었을 뿐이라고. 또 제시마가 죽으면 헤리 마 할머니는 혼자가 되잖아? 언제나 맛있는 것을 먹여 주신 분인데?” “쳇! 네 박애주의는 대단하군 디트마. 네 놈의 속은 알 수가 없다니까.” “뭐? 무슨 소리야? 아까 그 유혹은 또 뭐고?” 드래마는 시나를 보았다. 시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씨익 웃자, 드래마는 고 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아냐. 아무 것도. 신경 쓸 필요 없어. 도대체 여자들은 모르겠군.” 드래마는 결국 말을 하지 않기로 한 듯 했다. 디트마는 의아한 표정이었 지만 시나도 할 말은 없었다. 디트마가 또다시 뭐라고 말하려는데 드래마 가 화제를 돌리자는 듯 이야기했다. “디트마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냥 잊어버려. 그건 그렇고 시나마? 말은 탈 줄 알아? 오늘 말을 두 마리 사와서 촌장 댁 마구간에 맡겨 놨으니 까...” 그 말에 시나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에엑?!! 말이요? 저 말 못 타요!!!!” “음 그래? 하긴 마노테이니 말 탈 기회도 별로 없었겠지. 하지만 한나절 정도 배우고 나면....” 시나는 소리를 질렀다. 춤을 추라는 것만큼 소름이 끼쳤다. “싫어요!! 그 커다란 짐승을 타라고요!!! 떨어지면 어떡하고요?!” 드래마는 인상을 쓰며 시나를 보았다. “말 타는 걸 배울 때는 누구나 한 두 번은 떨어져! 그런걸 무서워해선 말타기를 배울 수 없어!” 별로 말타기 같은 거 배울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드래마의 의지는 확고 한 듯 했다. 디트마는 지금까지 나누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이 새로운 화제에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시나는 절망했다. 괴물에다 춤, 말이 라니... 이런 세계는 시나에게 절대로 맞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세계에 떨어져 이런 고생을 하게 된 것일까...? 시나는 속으로 눈물을 주르륵 흘 렸다. [흑, 흑. 이건 정말 너무해에!!!] 그 다음날 시나는 촌장집 앞에서 말 잔등 위에 달랑 올라 타 덜덜 떨고있 었다. 말 위에서 보는 땅바닥이 이렇게 까마득히 보이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드래마는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시나 옆에서 말의 고삐를 쥐고있 었다. 드래마는 말을 타는 요령에 대해 이미 설명을 해 줄 만큼 해 준 것 이다. “자.. 이제 출발시키겠어.” 드래마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말 위에 올라탄 시나는 그 말에 질겁했다. “으아악! 안돼요! 드래마! 출발시키지 말아요오! 저 떨어져요!!!!” 안장이 너무 미끄러워 말이 가만히 서 있는데도 떨어질 것 같았다. 게다 가 짙은 갈색의 암말은 시나가 불안해하자 덩달아 불안한 듯 두 귀를 쫑 긋 세우고 이를 드러내며 푸르르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드래마는 시나의 말을 무시하고 말의 엉덩이를 탁 때렸다. “드래맛!” 시나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때였다. 주위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시나의 승마시범(?)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밑으로 떨어졌 다. “으아아아악!!” 시나가 말에서 떨어진 것 때문이었다. 겨우 15 발자국 정도 걸었을까? 주 위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나와 땅바닥에 널브러진 시나를 부축했다. 드래 마는 못 믿겠다는 듯 그런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맙소사... 정말 저렇게 균형을 못 잡는 인간은 처음 보는군... 디트마! 나 보고 저런 여자 애를 데려가라고?!” 같이 옆에서 구경하던 디트마는 안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시나마도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드래마. 진정하라고.” “디트마!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디트마도 장난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시나에게 너 무나 미안하니까. 이것으로 시나는 네 번째 떨어진 것이다. 말을 배울 땐 누구나 한 두 번은 떨어진다지만 시나는 그 두 배로 떨어지고도 여전히 말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 때문에 더 무서워하는 걸까? 어쨌든 시나는 울진 않았지만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허리를 주무르며 서 있었다. 디트마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떡해야 할까? 아! 그래!] 디트마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드래마 이러면 어때? 음... 여기서 제일로트 까진 잘 닦인 길이 죽 놓아 져있으니까 짐마차를 타고 가는 거야. 촌장님께 말씀드려서 빌려달라고 해.” “디트마!” 드래마가 소리를 질렀다. 그때 뒤에서 같이 구경하던 촌장이 말했다. 그때 밤에 있었던 일로 촌장과 드래마 사이가 서먹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 그렇게 하시죠. 드래마님. 도저히 눈뜨고 못 보겠습니다.” “안 됩니다.” 드래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디트마를 보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짐마차를 타고 제일로트까지 가라고?! 이게 무슨 소풍인줄 알아! 차라 리 그냥 나 혼자 간다니까...!!!” “드래마? 난 언제라도 널 따라 나설 의향이 있어. 아..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없지? 헉! 으... 콜록! 콜록!” 디트마는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이며 기침을 했다. “디트마 이 자식!!!” 드래마는 디트마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말에서 떨어져 절뚝거리며 둘에 게 다가온 시나 또한 똑같은 시선으로 디트마를 노려보았다. 이 이야기가 시작 된 지 두 번째로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디 트마는 그런 둘을 무시하고 끈질기게 기침했다. “쿨럭! 쿨럭!! 으....” 드래마는 마침내 신경질을 버럭 냈다. “시끄러웠! 디트마! 억지로 기침하지마! 마차를 타면 될 거 아냐!!” [흑흑...] 내심 여행에 안 가게 되길 기대하고 있던 시나는 이렇게 하여 말 대신마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말에는 넌덜머리를 내고 있던 시나였으므로 말만 안 탄다면 뭐가 어찌되었든 결국은 감사해야 했다. 드 래마의 말을 들은 시나는 한숨을 길게 쉬며 생각했다. [아아. 엘이시여 감사합니다!!!! 내가 죽기 전에 드래마가 이 짓 하는 걸 포기하게 해주셔서.. 아예 디트마가 날 여행 보낸다는 계획을 포기하도록 해주셨으면 더 감사했겠지만, 전 그리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니까.. 엘이 시여!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으윽... 허리야...] 다음 날 시나가 타야 했던 구렁말과 드래마가 타려고 했던 검은말은 촌장 댁의 마차에 매어져 있었다.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아 안개가 낮게 끼 어있었다. 언제나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던 흰 산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꽤 축축한 날씨였지만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이른 새벽에도 불구하고 많 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드래마와 시나를 배웅했다. 디트마는 그 사람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잘 다녀와 드래마.” “아아. 그래. 너도 너무 무리하게 몸 움직이지 말고 있어. 두 달 후에 돌 아와서도 건강해 있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둘 테니까.” “알겠어. 걱정말라구.” 디트마는 미소지었다. 드래마도 싱긋 웃더니 촌장에게 말을 걸었다. “촌장님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드래마님. 우린 언제까지라도 당신과 시나마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디트마님은 걱정 마세요. 우리가 잘 모실 테니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드래마는 그 옆에 서 있는 세일마에게 말했다. “결혼 축하해요. 세일마. 제시마에게도 안부 전해줘요.” 드래마가 세일마에게 그런 말 할 줄은 몰랐는데 의외였다. 세일마의 얼굴 이 붉어졌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며 미소지었다. “네.. 잘 다녀오십시오. 드래마님. 마젤토브(Mazel-tov), 엘께서 행운의 별을 당신들의 발 앞에 준비해 놓으셨기를...” 여행자를 위한 인사말을 들은 드래마는 고개를 끄떡였다. “마젤토브.. 우리가 있었던 곳에, 그리고 다시 만날 곳에 엘의 축복이 함 께 하시기를.” “마젤토브- 시나마.” “잘 다녀오세요 시나마, 마젤토브-!!” 디트마와 사람들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를 쫓아오며 시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던 시나는 그 말에 대답을 못할 뻔했다. 드래마가 시나의 옆구리를 툭 쳤다. “아? 왜, 왜요?” 시나는 그제야 마차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있 었다. “마젤토브- 잘 다녀와요 시나마!” 마젤토브가 뭐지? 의아했지만 인사말이라 생각한 시나는 모르는 건 관두 고 그냥 자기 식으로 인사했다. “네에-!! 다녀올께요! 안녕히 계세요! 다시 만날 때까지 몸 건강하세요 -!!! 디트마! 촌장님! 세일마!!.....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시나는 아는 사람의 이름을 모조리 부르며 인사했다.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뒤로 멀어져가고 길을 따라 달리며 드래마는 눈살 을 찌푸리고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그렇게 멍한 거야?” “네?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사실 시나는 출발하기 전 제시마네 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 다. 거기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제시마의 팔을 걱정하다가듣 게 된 이야기였는데 제시마의 불구가 된 팔은 성인식을 거치면서 다시 온 전하게 된다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무슨 도마뱀 꼬리도 아니 고... 사람의 잘려진 팔이 다시 난다니? 황당했다. 하지만... 그렇다는데 어 쩌겠는가? 어차피 성인식 때 변태(變態)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 다. 그래서 시나는 땀을 삐질 흘리며 하하 웃고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제시마는 시나의 놀란 표정에 그것도 잊었구나.. 하며 동정해 주었고 언제 나 시나를 위하여 기도하겠다고 말했었다. 목걸이를 잊어버려 미안하다는 사과도 다시 한 번 더 덧붙이며. [그래서 세일마도 제시마에게 손이 하나 없다는 것을 그리 신경 쓰지 않 은 거구나.. 우리세계라면 그런 건 큰 약점이 될텐데... 어쩐지 그런 건 부 러운 이야기이군. 이 세계만 같다면 우리 세계에도 장애인은 없게 될텐 데...] 세일마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제시마가 가난하긴 했지만 촌장이하 여 러 사람들은 꽤 오래 전부터, 이제 슬슬 그가 다시 결혼했으면 하고 간절 히 바라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세일마가 제시마와 결혼한다는 소리 에 크게 기뻐했었다. [어쨌든 행복해야 돼. 제시. 내가 이곳에 다시 돌아 올 때쯤이면 완전히 성인이 되어 있겠다. 도대체 얼마만큼 변할까?] 시나는 빙긋 웃었다. 드래마는 옆에서 그런 그녀를 힐끔 보았다. [흐응. 조용하군. 좋아.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이 상태라면 좀 편안한 여 행이 되겠군.] 그러나 드래마의 그런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시나가 소리를 질렀다. 안개 를 뚫고 옆에서 뛰어가는 이상한 동물을 본 것이다. “드래마!! 저게 뭐예요!!! 야아!!! 정말 귀여워요!!!” 드래마는 시나의 흥분한 목소리에 맙소사! 라는 표정을 지었다. “드래마!! 저게 뭐냐니깐요?” 그녀의 고집은 익히 아는 바였다. 드래마는 빨리 대답해주고 시나의 입을 잠재우기로 했다. “바이스라고 해. 알았으니 이제 좀 조용히...” “와아! 저건 뭐예요?!! 저건 바이스보다 덩치가 더 크네요?!” 드래마는 얼굴을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엘이시여...] (계속)================================================== ...월요일에 올린다고 했는데... 일이 많아서.. TT 어찌되었든 말해 놓고 못 지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편집해서 올리는 것도 꽤 시간을 잡아먹는군 요...TT 으흠... 그러나 저러나 요즘은 애니 레녹스, No More I Love You's 라는 곡을 듣고 있는데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마치 달밤에 라이컨 슬로프가 변신을 꾀하는 느낌의 곡...하하... ^^ 좋은 밤 되세요...^^ <달 보며 울부짖어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은 엔...^^>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785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0-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15 00:14 읽음:2779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0- <제 15막. 몬스터와의 조우.(1)> “이야--- 정말 멋진데요? 저건 뭐라고 하는 동물이지요?” 시나는 오후가 돼서 까지도 즐거운 말투로 주위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드 러내고 있었다. 이젠 날이 완전히 개어 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점점이 떠 있고 햇빛이 밝게 비치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주변의 사물까지 똑 똑히 보였는데 시나는 지금 그것들을 관찰하며 흥분한 나머지 쉴 사이 없 이 드래마를 귀찮게 하고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드래마는 이제 지긋, 지긋 하다는 표정을 온 얼굴과 온 몸에, 가득,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제기랄! 두고보자 디트마! 돌아가면 가만 놔두지 않겠어! 제기랄!! 디트마 가 뭐라고 하든 혼자서 왔어야 하는 건데!!!] 그는 시나를 데려온 걸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 드래마! 저게 뭐냐니깐요?” 시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흥분에 들떠서 마차 옆으로 빠르게 달려가 는 희한하게 생긴 한 떼의 동물들에 대해 물었다. “슈카드. 초식동물이고.... 떼를 지어 살아.” 얼굴 표정과는 다르게 그래도 드래마는 설명까지 붙여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역시 심상치 않았다. “와아- 저건요?” “시나마!!!” 마침내 드래마는 소릴 꽥 질렀다. 오전 내내 줄곧 참았다가 드디어 터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시간만에 두 손들었을 텐데 대단한 인내심이 었다. “에?” “조용히 좀 앉아 있어! 이게 무슨 놀러 가는 건 줄 알아? 일 때문에 가 는 거라구!! 너 때문에 생각할 틈이 없잖아! 도대체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어도 시끄러워 견딜 수가 있어야지!! 다시 한 번 더 떠들면 마차 밖으 로 집어 던져 버릴 거야!” 얼굴 표정으로 보아 그건 단순한 위협이 아닌 것 같았다. 시나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마, 마인드 컨트롤? 그건 이런데도 쓰나? 쳇! 그래도 쩨쩨하다! 좀 가르 쳐줘도 되잖아. 난 이 세계에 처음 온 것인데.] 시나는 부루퉁해서 앞의 말 잔등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짐마차는 덜그 덕거리며 곧게 뻗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모자를 깊숙이 썼다지만 차가운 바람이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얼얼하고 너무 추웠다. 하지만 뜨뜻한 새 털가죽 외투와 바지를 입고 있었으므로 견딜만 했다. 드래마는 이예티의 후드를 입고 있어 역시 안 추운 듯 했다. [음. 일 때문에 수도로 간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난 아직도 거기에 왜 가는지 모르고 있잖아? 디트마한테 여러 가지 말을 듣긴 했지만.. 그거야 내 일이고... 드래마는 도대체 왜 그곳에 두 달 동안이나 가게 된 걸까? 어디 한 번 물어볼까?] 시나는 드래마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무뚝뚝하게 인상을 쓴 채 드래 마는 길 앞쪽을 뚫어져라 보며 마차를 몰고 있었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 은 인상이었다. [다음에 물어보자.] 시나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그때 저 앞에서 숲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간간이 초목이 우거져 있을 뿐 거의가 다 널따란 들판이었는 데(그 위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저렇게 큰 숲은 처음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와- 얼음의 숲보다 작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크네.] 그때 갑자기 숲 앞에서 드래마는 마차를 세웠다. [?] “여기서 점심을 먹고 저 숲을 곧바로 돌파할거야. 점심 준비를 해줘.” 드래마는 말들을 풀어주고 곡식낱알같이 생긴 말먹이를 두꺼운 끈이 달린 천에 넣어 말의 목에 걸어주었다. 말들은 그 먹이를 즐거운 듯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시나는 황량한 들판을 둘러보았다. “여기서요? 차라리 저 숲에 들어가서 먹는 게 어떨까요? 그럼 좀 더 따 뜻하게 먹을 수 있을 텐데....” “몬스터의 먹이가 되란 말야? 저런 숲엔 대부분 몬스터가 우글거린다고. 요즘은 차원의 벽이 불안정해서 대부분의 숲이 그렇게 됐어. 어서, 불 피 울 나무나 모아와.” 시나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몬스터? 그,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몬스 터? 자신이 처음 얼음에 숲에서 보았던 [놀]이란 몬스터가 떠올랐다. 그러 자 그냥 마을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몇 시간이나 달려왔으니 그건 불가능했다. [어휴! 이래서 내가 여행가는 걸 싫어했는데!] 중간에 마을에 들리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디트마의 말대로 마을에 들리 진 않았다. 오늘 안으로 제일로트에 갈 예정인 것 같았다. 책도 못 구하 고... 왠지 한숨이 나왔다. 시나는 드래마를 힐끗 보았다. [뭐, 괜찮을 거야. 드래마도 별로 불안해하는 것 같지 않구. 걱정 할 필요 없겠지. 게다가 그때 보니 몬스터를 상대하는 솜씨도 만만치 않았고..] 시나는 나뭇가지를 모으는 드래마의 등을 슬쩍 보았다. [근데, 칼은 어디다 둔 거지?] 그때 드래마가 시나를 쫙 째려보았기 때문에 시나는 방긋 웃고 자신도 열 심히 나뭇가지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음, 차고 다니면 불편하니까. 마차에 두었나 보지.] 시나는 널브러진 짐들을 슬쩍 보았다. [근데... 칼같이 보이는 건 별로....] “시나마! 빨리 점심 준비하라니까! 시간 없다고!” [알았어요! 네, 네! 성질 한 번 급하기도 하지.] 시나는 마차 구석에 천으로 둘둘 싼 칼같이 길다란 것을 보고 빙긋 웃었 다. 드래마가 도끼와 함께 들고 나가곤 하던 그것이었다. 안심한 시나는 짐들 사이에서 음식 바구니를 꺼내 날랐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그마한 냄비를 꺼내 눈을 퍼다가 담고(이곳의 눈은 순수 무공해 눈이었다.) 이제 막 불이 활활 붙은 나뭇가지들 위에 두 개의 튼튼한 고정대를 세우고 매 달아 놓았다. [흐응.. 뭘 할까?] “시나마!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제발 빨리 좀 움직여!!! 따라 왔으면 도 움이 되야 할 거 아냐?!” [아니, 누가 따라오고 싶다고 했나?! 쳇! 두고보자! 음식 만드는 사람을 화나게 했겠다!!] 그의 신경질적인 말에 화가 난 시나는 복수를 다짐하며 주먹을 꽉 쥐었 다. 곧 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고 시나는 나글로를 우려내었다. 그리고 가 져온 야채와 밀가루를 같이 넣고 끓였다. 쿠냐냐도 듬뿍 넣었다. [후후후...] 이‘개죽’의 맛의 비밀은 나글로와 쿠냐냐의 절묘한 조화에 있는 것이 다. [쿠냐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음... 하지만 편식은 안돼요. 종속주씨.] 시나는 킥킥 웃었다. 어쨌든 이건 야외에선 든든한 식량이 될 것이다. 수 프 보단 걸쭉하고 빵보단 부드러워 먹기도 좋고 체할 염려도 없다. 게다 가 맛도 좋다. 이걸로 시나의 양심의 가책은 덜어졌다. [이런 이상적인 요리를 드래마가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안 먹을 순 없지. 후후.] 음식은 구수한 냄새를 내면서 끓었다. 마차 바퀴며 짐들을 점검하고 마지 막으로 마구까지 점검을 끝낸 드래마는 시나의 옆에 와 털썩 주저앉았다. 시나가 요리를 푹푹 퍼서 건네주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얼굴을 찡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이건 뭐라는 음식인데 모양과 색깔이 이렇지?...” 약간 거무스름하게 우러나온 차에다 다양한 재료를 넣었으니 썩 좋은 색 깔은 아니었다. [원래 정체는 쿠냐냐 친 개죽이란 소릴 하면 절대로 안 돼지.] “맛있어요.” 시나는 최대한으로 상냥하게 방긋 웃었다. 의심스럽게 시나를 힐끗 본 그 는 음식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어휴, 매너하고는.] 냄새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듯 그는 한 숟갈 떠먹었다. 그리고 기대(?)했 던 대로 그의 얼굴은 곧 심하게 일그러졌다. [음... 역시 쿠냐냐를 싫어하나봐?] 모르는 척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시나는 생각했다. 인상을 쓰고 있던 드 래마는 억지로 입안에 있는 것을 꿀꺽 삼켰다. 그러더니 그릇을 노려보았 다. 먹자니 쿠냐냐 맛이 나 싫을 테고 안 먹자니 배가 고플 것이다. 드래 마는 마침내 한마디 불만스럽게 내 뱉었다. “젠장. 디트마 자식이었다면 미치도록 좋아했겠군.” 시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쿡. 잘 맞췄네요. 드래마. 디트마는 이 개죽 정말 좋아했는데. 킥킥.] 여행을 떠날 때까지 종종 끓여달라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떠나게 돼 그러지 못했다. [20년 동안 같이 살았다면서 어쩌면 입맛이 이렇게 틀릴까?] 드래마는 지금 인상을 잔뜩 쓰며 되도록 맛을 느끼지 않고 먹을 셈으로 씹지도 않고 ‘개죽’을 삼키고 있었다. 마침내 드래마는 그럭저럭 음식 을 먹어치웠다. “더 드릴까요? 드래마?” “됐어.” 드래마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벌떡 일어섰다. 왠지 좀 미안했다. 하지만 어 떠랴? 이미 지나간 일을. 시나는 반성하는 의미로 다음엔 칸자를 듬뿍 넣 은 맛있는 요리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헤헤. 미안해요. 드래마.] 드래마는 시나가 그릇을 치우는 동안 모닥불을 끄고 말들을 다시 마구에 맸다. 시나가 아까처럼 옆자리에 자리를 잡자 드래마는 고개를 저었다. “뒤로 가. 그리고 짐들 사이에 앉아. 거칠게 달릴 건데 이런 불안정한 자 리에 앉았다간 떨어지고 말 거야. 그럼 몬스터들이 얼씨구나 하겠지” 안 해도 될 말까지 붙인 드래마의 예지력에 시나는 아무 군소리 없이 재 깍 짐칸으로 가 단단히 매어놓은 짐들 사이에 쭈그리고 않았다. “엘님에게 기도 드려. 시나마. 무사히 통과하도록.” 그 말에 시나는 간절히 기도 드렸다. [엘님! 무사히 통과하도록 도와주세요.] 잘 모르는 신이었는데 어느새 시나는 이 세계 사람처럼 엘의 이름을 부르 고 있었다. 그 정도로 불안했다. 마차가 갑자기 덜거덕 움직였다. 시나는 짐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침을 꿀꺽 삼켰다. “으, 으, 엘님!!!!!!” 마음이 불안하니 저절로 신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왔다. 다그닥, 다그닥, 덜컹, 덜컹- 마차는 부서져라 숲의 입구를 통과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럇- 달려- 렌돌프! 게터!” 드래마는 말의 잔등을 힘껏 내리쳤다. 말들은 한껏 흥분하여 무서운 속도 로 달려갔다. 짐칸에 앉은 시나는 굴러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드래마의 말 이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쪽도 이런데 마부석은 장난이 아 닐 것이다. 시나는 이빨을 꼭 물었다. 자칫 잘못 입을 열었다간 진동에 혀를 깨물 것 같았다. 그때였다. 길가로 뭔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드 래마가 뭔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것 같았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 말들을 재촉했다. “이럇-!” 두두두- 마차는 터널처럼 생긴 숲 가운데를 달렸다. 이제 사방에서 바스 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뭔가 무섭게 생긴 동물들을 본 것도 같았다. 시나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마차의 진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괘, 괜찮을 꺼야. 이런 속도로 달려가는데 쫓아오려고-] 그때 갑자기 드래마가 마차를 세웠다. “이런! 젠장! 렌돌프! 게터! 서! 워! 워!” “깩!!!!!”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시나는 마차 모서리에다가 어깨를 찧고 말았다. “으윽, 팔이야..! 드래마 갑자기 왜!?” 말들이 거칠게 히힝대고 드래마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 빌어먹을 몬스터 놈들!” 가까스로 일어나 길 앞을 보니 거기엔 한 나무가 길게 가로질러 누워있었 다. 자연적으로 쓰러졌다기엔 너무 똑바로 놓여 있어서 아무래도 누가 일 부러 그런 것 같았다. 시나의 얼굴이 새하애졌다. [설마, 몬스터들이? 그 정도로 지능이 있단 말야?] 놀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 모습에 이 지능이라니 이건 완전한 공포였다. 드래마가 말들을 진정시키는 사이 주위 수풀엔 번쩍 번쩍 빛나 는 눈들이 가득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돼지가 우는 듯한 꿀꿀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시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게 뭐, 뭐죠?” “오크(Orc)들 이야.” 드래마가 내뱉는 말로 보아 다행히(?) 놀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나타난 그들의 모습으로 보아 아주 많이 다행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 았다. 이 몬스터는 해 놓은 짓에서도 보여지듯 약간의 지능은 있는 듯한 몬스터였다. 그러나 그 지능은 외모를 꾸미는데는 적용되지 않은 듯 모습 들이 상당히 엉망진창이었다. 여행자의 옷을 훔쳐 입은 건지 너덜너덜한 옷들을 아무렇게나 짝도 맞지 않게 입고 있었고 돼지의 발처럼 둘로 갈라 진 발굽을 가진 발엔 아무 것도 신고 있지 않았다. (하긴 그 발에 무슨 신발을 신으랴...) 짧은 털이 숭숭난 손엔 몽둥이 같은 무기가 들려 있었다. 키는 각각에 따 라 차이가 있지만 약 150센티 정도? 놀 보단 키가 작았지만 덩치가 옆으 로 푹 퍼져 위협적이었다. 제일 희한한 건 얼굴이었는데 놀이 하이에나의 얼굴이었다면 이 몬스터는 돼지, 그것도 어금니가 길게 자라난 멧돼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에선 이상한 썩은 듯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 눈빛은 역시 몬스터답게 흉폭했고 그 숫자 가 점점 불어 30여 마리나 되자 시나는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다. 드래마 가 신음소리를 냈다. “맙소사.. 이렇게 많은 오크들이라니.. 근처에 오크 농장이라도 생긴 건 가... 젠장!” 드래마가 그런 소리를 하자 시나는 엄청 불안해졌다. “드, 드래마..!” “쉿! 조용히 해 시나마!” 드래마는 마부석에서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시나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잘 들어. 내가 놈들의 눈에 안 보인다는 것 알고 있지? 그러니까 내가 몰래 마구를 풀어놓을 동안 저 녀석들을 좀 상대해봐.” 시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마, 맞아! 이예티의 후드는 모습을 감춰준다고 했었지! 으, 으아! 그럼 저 녀석들 눈엔 지금 나만 보인다는 거잖아!] 시나는 덜덜 떨며 말했다. “저, 저, 저보고 어떻게 상대하라고요?” “아무 말이나 걸어! 오크들은 말하길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한 드래마는 마차의 마부석에서 살그머니 내려가 버렸다. [으, 으악! 저 녀석들도 말을 할 줄 안단 말이야?! 도대체 이 세계는 왜 이리 희한한 게 많은 거지?!] 오크들은 이제 서서히 거리를 좁혀 거의 시나의 앞까지 다가 왔다. “꾸꿀.. 이상하다. 냄새는 두 명인데 한 명이다? 꽤액-” 한 녀석이 시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꿀꿀 남자 냄새, 여자 냄샌데 여자만 있다. 꿀 꿀꿀” “꽥꽥, 그래. 그래.” “이상한데..꽥엑-” 얼이 빠져 있었지만 순간 시나는 감격했다. 바지차림의 자기는 틀림없이 남자로 오인 받는데, 여자라고 알아봐 주다니... [몬스터지만 눈썰미도 있고 괜찮군.] (;) 사실 그들은 외모가 아닌 냄새를 맡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시나 가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때 감격하던 시나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 게 질렀다. 가까이 온 그들의 옆구리에 사람의 해골이 걸려 있는 걸 본 것이다. [으, 으아!] 시나는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드래마는 말의 마구를 풀어내고 있었다. 더 이상 가까이 오다가는 마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드래마가 있다는 것 을 눈치 챌 지 몰랐다. 시나는 마차에서 뛰어 내리며 소리질렀다. “야- 이, 오그들아! 가까이 오지 마라!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남자이면서 도 여자인 나 시나가 너희들을 한 칼로 쓸어버리겠다!!!” 저 쪽에서 마구를 풀던 드래마의 몸이 갑자기 넘어질 듯 기우뚱했다. 웃 기지도 않은 허풍이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경계하던 오크들에게는 먹혀든 듯 했다. 그들은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고 멈춰 섰다. “꾸꿀. 남자인데다 여자라는데?” “꿀! 이상한 인간이다.” “조심할까? 꽤액?” 그때 조금 머리 있어 보이는 오크 한 마리가 소리쳤다. “꿀꿀 허풍이야! 잘 맡아봐! 저 인간에게 칼 없어! 쇠 냄새 나지 않아!!! 꽤액-! 가서 죽이자!” 그 말에 시나가 제일 놀랐다. “뭐라곳?! 칼이 없다고?” 시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구를 푸는 드래마에게 소리쳤다. “드래마-!! 칼 없어요?!” 드래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시나는 그의 표정을 보고야 자기가 큰 실수 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오크들이 크게 웅성, 웅성거렸다. “꽤액! 역시 한 명 더 있다!!!” “남자다!!!” 오크들은 붉고 흉측한 눈을 일그러뜨리며 드래마 있는 쪽을 보았다. 이 녀석들은 냄새는 귀신같이 맡지만 눈이 나쁜 듯 했다. “꽤액!! 꽤액!! 저 봐! 마구가 움직인다!” 머리 있어 보이는 오크가 외쳤다. “이예티의 후드다! 한 인간 놈이 그걸 입고 있는 거야!!! 꽤액! 도망치기 전에 인간 여자를 죽여!!!” 드래마는 혀를 쯧 찼다.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이렇게 금방 들킬 줄이야. “바보같이!” 드래마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시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구는 풀어 놓았으니 언제라도 말을 타고 도망 칠 수 있었다. 그때 오크들이 달려들 었다. “꽤애애액---!” “꺄아아악---”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788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1-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15 00:20 읽음:2828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1- <제 15막. 몬스터와의 조우.(2)> 시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때 맨 앞에서 덤벼들던, 머리 있어 보이던 놈의 그 머리가 뎅겅 잘렸다. “꽤액--!” “으악!” 갑자기 머리가 날아가 시나는 질겁을 하고 놀랬다. 드래마였다. 그는 어느 새 한 손에 피가 뚝뚝 흐르는 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엔 그 것을 감쌌던 헝겊이 들려있었다. 오크들이 거짓말 한 것이었다. 그에겐 칼 이 있었다. 시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하하..! 뭐, 뭐야! 칼이 있었잖아!! 응? 아, 아냐! 저, 저건!!!] 시나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아냐!!! 저건 칼이 아니라 목검이야!!!] 맙소사--!! 반질반질 윤이 나긴 했지만 분명 목검이었다. 믿어지지 않았 다. 드래마는 방금 그런 목검으로 몬스터의 머리를 한 방에 날려 버린 것 이다. 오크들이 놀랐는지 달려들다 멈춰 섰다. 오크들은 으르렁거렸다. 하 지만 그들의 눈엔 아직도 드래마가 보이지 않았다. “비, 비겁하다!! 꾸꿀!! 이예티의 후드를 벗어라! 인간!!” 비겁한 걸로 따지면 나무를 쓰러뜨려 놓고 여행자들을 강탈하는 자기네들 이 더 하면서 오크들은 소리쳤다. 시나는 코웃음쳤다. [흥! 그런다고 드래마가 후드를 벗을 줄 아냐 이 놈들아?! 니들이라면 벗 겠니?!] 그런데 놀랍게도 드래마는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나에게 맡겼 다. 왼 손에 들고 있던 헝겊은 던져 버렸다. “드, 드래마!” 놀라서 시나는 소리쳤다. “어차피 벗을 생각이었어. 오크 놈들 피를 후드에 묻히긴 싫으니까.” 드래마는 냉정하게 말했다. 오크들이 뭐가 좋은지 킬킬거리며 웃었다. “쾍 쾍 저것봐! 벗으랬다고 벗었다! 멍청한 놈!! 저 놈은 이제 죽었다!!여 자랑 같이 죽여!!! 꽤액!!” 오크들은 신이 나서 다시 덤벼들었다. 드래마는 칼(?)을 두 손에 들고 몸 을 낮게 숙였다. “시나마! 말에 붙어 서 있어!” “드래마!!!” 한 마리 오크가 펄쩍 날아 뛰어들었다. 대단한 점프력이었다. 오크가 드래 마의 머리를 덮치려는 찰나 드래마는 그의 몽둥이를 피해 뒤로 돌아가 오 크의 등을 좌악 그었다. “꽤에엑!”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오크가 나가 떨어졌다. 드래마는 좌악 그어 피가 날리는 칼을 크게 돌리더니 그대로 옆에 있는 오크의 배에 푹 꽂았다. “쾌에에에에엑!!!” 처참했다. 드래마는 틈을 주지 않고 덤벼드는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시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목검에서 하얀 검광이 났던 것이다. [어, 언제 쇠칼이?] 그러나 그건 쇠칼이 아니었다. 여전히 아까의 그 목검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단순한 목검이 아닌 것 같았다. 한 면만 날카롭게 깎인 목검은 움직일 때마다 오크의 팔이나 다리, 혹은 머리를 사정없이 날리고 있었다. 목검도 목검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드래마의 솜씨는 더욱더 눈부셨다. 발 을 그리 많이 움직인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눈이 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무서운 스피드로 움직이는 목검은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느, 능력이 없다고 하더니 엄청나게 강하잖아!!!] 그는 낮은 자세에서 오크들의 온갖 공격을 피하며 정확한 팔놀림으로 베 고, 올려쳤다. 피가 사방으로 튀는 잔인한 광경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드래 마는 시종일관 냉정하며 무표정했다. 아름다운 플라티나 블론드를 날리며 피가 얼굴로 튀어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와아- 대, 대단해!! 호, 혹시 저것 마인드 컨트롤 아냐? 어떻게 저렇게 무표정할 수 있지? 그때 밤에 본 그 표정이잖아!!!] 그 밤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은 왠지 흥분이 되는 시나였다. 박수라도 치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드래마의 동작은 절도 있고 순간, 순간 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시나가 넋을 잃고 드래마의 활약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말들이 크게 동요하며 흥분을 했다. 말들이 움직여서 자신도 모르 게 뒤를 돌아본 시나는 오크 한 마리가 자기를 노리고 말 위에서 뛰어내 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꽤애액! 죽인다아!! 여잣!!!” “꺄아아아아악-!” 그 순간 덤벼들려던 오크는 자신의 동료와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드래마가 달려들어 어느새 처치한 것이었다. 오크의 목이 뒤로 날아가며 피가 확 뿜어져 나왔다. “와악!! 피, 피가...” 저번 놀 때도 옷에 피가 다 튀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하나 틀린 건 후드를 버리고 싶지 않다는 드래마의 말이 떠올라 그 순간 힘껏 몸을 웅크려 그것을 보호했기에 뒤통수와 등 쪽으로 피가 뿌려졌다는 것 이다. 몸을 웅크리면서 균형을 잃은 시나는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몸이 떨려서 일어나지 못하고 드래마를 쳐다보는데 드래마는 혀를 차며 시나를 거칠게 잡아 일으켜 세웠다. “정신차려!” 시나는 고개를 끄떡이며 떨리는 손으로 드래마의 팔을 꽉 붙들었다. 한편 오크들은 목검을 휘두르는 이 사나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땅바닥에 오크의 시체가 뒹구는 가운데 20여 마리의 오크들이 뒤로 물러서 수군댔다. “꿀, 꿀, 어, 어떻게 된 거야?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잖아!” “꽥, 기사인가?” “바보같이! 짧은 머리잖아, 꿀꿀!!!” “뭐, 뭐야 그럼!!!” 오크들의 공격이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드래마는 마차 뒤에 실린 짐 중에 서 작은 하얀 자루만 갖고 말 잔등에 훌쩍 올라탔다. 시나의 얼굴이 새파 래졌다. [말? 말을 타고 도망가는 거야?! 어떡해! 난 말 탈 줄 모르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승마를 배워놓는건데!!! 아냐! 아예 어릴 때부터 배웠더 라면! 으으! 하지만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었다고!!!] 이런 생각으로 덜덜 떠는 시나였다. 헌데 갑자기 시나의 몸이 번쩍 들렸 다. “꺄악-!” “시끄럽게 까악, 까악 거리지 좀 마!” 드래마가 짜증난다는 듯 뒤에서 소리쳤다. [으아아아...] 드래마는 자신의 검은말에 시나도 함께 태우고 시나의 허리를 꽉 붙들었 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나 까마득했다 [흐흑... 호, 혼자 타는 것보다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이럇!” 드래마가 힘껏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자 말이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악!” 몸이 갑자기 뒤로 쏠리자 시나는 깜짝 놀랐다. “갈기를 잡아당기지 말고 차라리 말의 목을 잡아!” 자신도 모르게 말의 갈기를 붙잡은 것 같았다. 가까스로 몸을 숙여 말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때 갑자기 말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말은 내려가는데 시나만 올라가는 그 느낌! 팔팔 열차를 방불케 했다. “꺄아아아악!” “시나마! 입 좀 닥쳐!!!!” 뚜그닥- 말이 바닥에 착지했고 곧이어 온몸을 메다꽂는 느낌과 함께 골 반서부터 척추가 온통 부서지는 느낌이 왔다. [아악! 골반 뼈가 부서졌나봐! 그, 그럼 아이도 못 낳는 거야?!!!] --; --; 인간이란 훈련되지 않은 이상은 위급한 순간에 의외로 가장 쓰잘데기 없 는 생각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렇게 쓰러진 나무의 바리케이드 를 뛰어넘어 달리는데 옆과 뒤에서 뭔가가 같이 달리고 있었다. 무섭게 진동하는 말 잔등 위에서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옆을 본 시나는 그것이 오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헉, 몸은 둔하게 생겨서 엄청나게 빠르구나!!!] 드래마가 뭐라고 소리쳤다. “젠장. 이것까지 쓰게 되다니...!!!” 드래마는 투덜 투덜대며 한 손으로 뭔가를 품안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한 층 더 박차를 가해 말을 앞으로 달려나가게 만들었다. 오크들이 뒤로 쏠 렸다고 생각한 순간, 드래마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물질에 담긴 마나Mana여-! 발현하라! 이 공간, 이 순간에!!” [뭐, 뭘...?] 무슨 소리인가 하는데 갑자기 드래마가 크게 소리쳤다. “그대의 성스러운 힘으로 적을 불태우라!!! 파이어 볼Fire Ball-!!!!!” 화악---!! 뭔가 시나의 등뒤에서 밝은 것이 타올랐다. [앗 뜨거!!!] 등뒤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뜨거움이 느껴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 느낌 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뒤쪽에서 뭔가가 쾅하고 터지는 폭음이 들렸 다. 오크들의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그 뜨거운 것에 맞았는지 뜨겁다고 꽥, 꽥, 꿀, 꿀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뒤에서 한 녀석이 크게 소리쳤다. “꽤애액---!!! 아, 아티스트Artist다!!!” [잉? 뭐라구? 아티스트!?] 시나는 깜짝 놀랐다. 드래마는 말을 달리며 피식 웃었다. “멍청한 녀석들, 파이어 볼만 쏘면 아티스트Artist인줄 아나? 아티팩트 Artifact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시나는 그제야 옛날에 디트마가 말한 아티스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아티스트Artist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물리학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아티스트는 바로 ‘마법사’를 지칭하는 말이었던 것이 다! [하하... 마, 맙소사. 이 세계엔 마법까지 있는 거야? 정말 굉장한 세계에 떨어졌구나.. 나는... 하, 하...] 신난다고 해야할까 황당하다고 해야할까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 고 방금 자기 눈으로 직접 봤지만 시나는 믿을 수 없었다.(하긴 정확히 말하면‘본’ 게 아니라 뜨거운 기운을 ‘느낀’ 거지만.) 말은 힘차게 달려 드디어 숲 반대쪽 입구까지 달려나왔다. 입구를 지나쳐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겨우 말은 멈추었다. “워, 워-” 아직도 시나는 말 목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지금 엉덩이가 떨 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꾹 참고 있었다. 게다가 안장이 없이 탔기 때 문에 드래마와 같이 타긴 했지만 거의 굴러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안장이 있을 땐 그것이 없었으면 차라리 덜 미끄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말잔등도 만만치 않게 둥글고 미끄러웠다. 그러므로 드래마가 말을 멈췄 을 땐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굴러 떨어 지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지독한 녀석들. 결국 귀한 아티팩트까지 쓰게 만들었어.” “저, 저기... 잠깐 말에서 내려도 되, 될까요...?” 드래마는 필사적인 포즈로 말에 붙어있는 시나를 보았다. 마땅히 잡을 데 가 없으니까 말 목을 끌어안고 있었는데, 저러다가 말이 숨막혀 죽는 건 아닐까 할 정도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게다가 전체적인 몸의 균형이 약 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몹시 힘들어 보였다. 드래마는 피식 웃었다. [아마 기분상으론 말의 옆구리에 달려있는 것 같겠구만.] “내리려면 내려. 하긴 내 뒤쪽에 타는 게 나도 그렇고 네게도 좋겠군. 나 한텐 시야를 가리는 게 사라지는 거고 넌 붙잡을게 생기는 거니까.” 그의 말에 시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 나보고 어떻게 혼자 내리란 말야!?] 그냥 굴러 떨어져야 하는 건가 어쩐 건가 생각하는데 드래마가 시나를 번 쩍 안아 말밑으로 내려주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좀 놀랐지만 무사히 땅을 밟은 데 더 없이 안심했다. 허리와 다리에 아무 힘이 없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으 굴러 떨어지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이야...] “오크녀석들도 여기까지는 추격해오지 않겠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햇빛 을 싫어하는 녀석들이니...” 그렇게 말하며 드래마 본인도 말에서 휙 내렸다. 그리고 그는 옆구리에 꽂아둔 칼(?)을 땅에 있는 눈을 퍼서 쓰윽 닦았다. 오크의 시뻘건 피에 물들은 눈들이 떨어졌다. 시나는 새삼 경외심이 들었다. 밝은데서 드러난 그것은 역시 나무로 만든 검이었던 것이다. 진한 갈색으로 잘 닦여 반들반들 빛나긴 했지만 틀림없 이 그랬다. [왁스로 코팅이라도 한 건가 언뜻 보면 갈색 금속 같네.] “드래마, 너무 놀랐어요. 그거 나무칼이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날카로 울 수 있죠?” 드래마가 시나를 힐끗 보았다. “네르세바 아트가 걸려 있는 아티팩트거든. 일반 쇠칼보다 더 날카롭 지.” [그게 뭔데?] 시나는 땀을 주르륵 흘렸다. 네르세바 아트란 그냥 마법의 한 종류이겠거 니 하고 추측했다. “그, 그래요? 하하.. 쇠칼은 별로 안 좋아하나 보죠?” 드래마가 피식 웃었다. “쇠칼을 안 좋아하냐구? 그럴 리 있어? 아트가 걸려 있어 진짜 칼처럼 날카롭더라도 강도는 보통 나무에서 조금 더 단단할 뿐인데? 이건 잘못 쓰면 금방 부러진다고. 그래서 많은 적들을 베지 못하는 거고.” “그런데 왜? 쇠칼을 안 쓰고?” “넌 정말 별걸 다 잊어버렸군. 쇠칼 같은 금속제 무기는 마노테온에겐 금지 품목이야.” [그런 건가? 흐응. 어쩐지.. 더 싸울 수 있는 것 같던데 그냥 도망친다했 지. 칼을 아끼느라 그런 건가?] 드래마는 땀에 젖은 말의 몸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모든 짐을 잃은 데다 시나마도 저 모양이니...] 시나는 지금 땅에 쭈그리고 앉아 허리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내일은 엘의 날이니 빨리 달려서 오늘 중으로 제일로트에 들어가야 하는 데....] 잃어버린 옷가지라든가 필수품 같은 것은 돈이 있으니 제일로트에 들어가 서 사도 된다. 문제는 시나였다. 드래마 자신과 같이 탄다고 해도 시나 같 은 초보자가 안장도 없는 말을 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안장이 있어도 툭 떨어지는 판인데. 오늘 중으로 제일로트에 들어가는 것은 역시 무리였 다. [휴- 하는 수 없군. 가까운 마을에 들려서 엘의 날을 지내고 가는 수밖 에...]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은 일루테오나 마을뿐이었다. 드래마의 표 정이 어두워졌다. [젠장. 애초에 말을 타고 왔으면 그런 엉성한 바리케이드 따위 뛰어넘어 올 수 있었잖아! 디트마가 뭐라고 하든 나 혼자 왔어야 하는 건데!!!] 그는 아까 수십 번 한 생각을 또 되풀이하고 있었다. 드래마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오크들만 아니었어도!] 수도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숲에 그렇게 대량의 몬스터가 출현하리라 고는생각 못했다. 그때 시나가 말했다. “저, 근데 드래마? 그 오크들... 지금은 아니어도 해가 지면 쫓아오는거 아니에요?”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었지만 걱정이 되는 시나였다. “...그렇지 않을 거야. 말 한 마리와 마차, 짐들까지 놔두고 왔으니, 그걸 로도 그럭저럭 만족하겠지. 더구나 파이어 볼까지 한방 먹었으니. 쫓아 올 생각 같은 건 안 할걸.” 그 말에 시나는 안심했다. “자, 이제 그런 걱정은 그만두고 그 후드나 이리 줘. 잘 지켜줘서 고맙 군.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었는데.” 시나의 등과 뒷머리에 있는 피를 보고 말한 것이다. “예에- 하하..” [크- 이예티의 후드가 비싼 물건이란 게 머리에 박혀 나도 모르게 몸 바 쳐 지켰구나.. 흑, 덕분에 이 피비린내, 너무 끔찍하다... 나도 바보 같아, 옆으로 피하면 될 것을.. 몸을 웅크리다니. 으이구..!] 드래마는 후드를 받아 입었다. 칼은 다시 옆구리에 차고 팔목에 달려있던 하얀색 자루는 허리띠에 달았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윤곽을 보아 둥그런 물건 같았다. 그리고 나서 후드를 단정하게 여민 그는 말에 훌쩍 올라탔다. “자, 뒤에 타” [으..또?!]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하, 하, 그래... 나중에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분명히 이건 자랑거리가 될 거야. 말을 타본 건 우리 반에서 나뿐일걸...]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격려하며 시나는 말 앞으로 다가갔다. [그것도 이렇게 큰말을 말이지...] 침을 꿀꺽 삼켰다. 다가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 말에 는 등자라던지 딛고 올라설게 아무 것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타라는 말이지?] 드래마의 눈치를 힐끗 보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으로 허리를깊 게 숙였다. “말을 하면 빨리 빨리 좀 움직일 순 없겠어?” 그런 말을 한 뒤 그는 시나를 자신의 뒤에다 털썩 앉혔다. 균형을 유지하 려는 듯 말이 앞뒤로 다각 거렸다. [히야- 드래마 유연성이 대단하시네요? 하긴 아까 싸움에서도 봤지만..] 시나는 속으로 그를 칭찬해 주었다. “자, 내 허리를 꽉 잡아.” 시나는 그의 허리를 가볍게 잡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이번엔 잘 해보자. 어제에 이어 두 번째인데 익숙해 질 때도 됐잖아?] 하지만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시나는 익숙이고 뭐고 그저 떨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며 드래마의 허리를 [꽈악] 붙잡고 늘어졌다. “윽!” 드래마는 시나가 옆구리를 쥐어뜯어 더 없이 괴로웠다. 하지만 그냥 참기 로 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등을 통해서 시나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훗. 설마. 옆구리에 구멍이야 나겠어? 디트마! 두 달 후엔 틀림없이 건강 해 있으라구! 내 손으로 직접 목을 조르고 싶으니까!....] 찬바람을 가르는 드래마의 뇌리엔 살벌한 생각이 떠올라 스쳐갔다. 그런 드래마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나는 끝까지 그의 옆구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아.. 제발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나기를... 흑흑..] (계속)================================================== 휴우- 수면부족에다가 시간부족입니다..^^;;; 옛날 백수시절이 너무 그리워요.. 아침에 회사 갈 때마다.. 아.. 잠 좀 더 자고 시퍼..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오늘 글을 올릴 수 있어서 좋군요...^^ 그럼,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엔...^^>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55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2-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5 00:13 읽음:2764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2- <제 16막. 시나, 대한민국 모 고교의 교육방침 때문에 절망하다. (1)> 드래마는 말을 세웠다. 두 개로 갈라진 길이었는데 오른쪽 길에 서 있는 화살표 모양의 이정표엔 [마우르코트 일루테오나-300미터]라고 쓰여있었 다. 그리고 그 옆에 갈라진 길엔 [제일로트대로-제일로트 앞으로 98킬로 미터]라고 쓰여있었다. 드래마는 오른쪽의 이정표를 보고 말했다. “여기가 좋겠군. 여기라면 제일로트로 가는 길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 으니까... 시나마, 오늘과 내일은 여기서 묵을 거야. 엘의 날엔 움직일 수 없으니까.” [엘의 날엔 움직일 수 없다고? 꼭 유태인이나 기독교인 같네.] 어쨌든 시나는 안심했다. 마을에서 묵는다는 건 말에서 내려 좀 쉴 수 있 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즐겁게 대답했다. “네” 드래마는 양쪽에 경작지가 펼쳐져 있는 길로 말을 몰며 말했다. “시나마, 혹시나 해서 확인해 두는 건데, 실내에서라도 사람들 앞에선 모 자를 벗지마.” “예? 예에. 그렇게 할게요” 시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나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시나는 다시 물어 보았다. “근데, 왜요?” 저번에 있던 마을에선 사람들 앞이라도 실내에 들어가면 모자를 벗었는 데? 마을마다 관습이 틀린가? “마노테온만 여행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귀찮기 때문이야. 허가증이 있긴 하지만 관리에게 신고도 해야하고... 시간낭비지. 거기다 좋은 잠자리도 얻 지 못해. 너를 마노테라고 의심한다고 해도 다행히 내가 이예티의 후드를 입고 있으니 아무도 나를 마노테라곤 생각 안 할거야. 그럼 별다른 일 없 이 하룻밤만 묵고 무사히 나올 수 있겠지.” “이예티의 후드도 마노테온에게 금지품목이에요?” “아니. 하지만 이예티의 후드는 값이 비싸니까 마노테는 좀처럼 입을 수 없거든.” [그렇군. 그러나 저러나 희한하네? 실내에서 모자를 벗으면 마노테라는 걸 뜻한단 말이야? 마노테는 노예나 농노의 의미 같으니, 함부로 여행할 수 없다는 개념은 알겠는데.... 뭔 소린지....] 어느새 그들은 마을로 들어 왔다. 시나는 말 위에서 사람들이 분주히 다 니는 것을 구경했다. 길가로 여러 가지 상점과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여 기도 바리스 마노테오나와 같이 진창길 위로 짐마차 몇 대와 말들이 줄줄 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상류계급(?)의 마을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더 번화해 보였다. 바리스 마노테오나에는 상점이라든가 가게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때 드래마의 몸이 움찔했다.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천막처럼 세워진 곳이 있었는데 그곳엔 몇 명의 노인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 며 불을 쬐고 있었던 것이다. 드래마는 혀를 찼다. [이런! 젠장! 이런 곳에 ‘문지기’가 있다니! 마을을 잘못 골랐군. ..하는 수 없지. 지금에 와서 다른 마을로 가기엔 너무 떨어져 있고.. 제기랄. 들 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한 번 시도는 해봐야지.] 그는 인상을 쓰고 조심스럽게 말을 몰아 모닥불을 쬐고 있는 노인들에게 가까이 갔다. “저, 실례합니다. 이 마을에 묵어 갈만한 여관이 있습니까?” 한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하얀 털모자를 쓴 그 노인은 역시 하얀 색의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얀 머리인 줄 알았냐 하면 모자 밑으로 길게 인디언 스타일로 땋은 두 가닥의 머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땋은 머 리는 등까지 오고 있었다. 노인은 부드러운 인상과는 달리 꽤 날카로운 눈빛을 갖고 있었다. “...여관이라고?” 노인은 드래마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관..? 여관이라.. ...흐응...” 그리고 드래마와 시나의 차림을 눈 여겨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그는 손가 락으로 시나의 옷을 가리켰다. “..당신들, 싸움에 휘말렸던 모양이군. 그거 몬스터의 피지? 사람 피는 마 르면 까만데 몬스터의 피는 말라붙어도 시뻘겋거든.”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 걸까? 노인은 드래마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은 안하 고 이렇게 물었다. 오크와의 싸움에서 튄 핏자국들을 닦아낸다고 닦아냈 지만 역시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싸움을 한 드래마보다 가 만히 서 있었던 시나에게 더 많은 피가 튀어있었다. 드래마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있는 숲을 지나오다가 오크들하고 부딪혔습니다.” “동쪽? 그럼 창의 숲을 지나 왔단 말이군. 흐음... 요즘은 몬스터들이 왜 이리 난리인지... 일전에 그곳에 있던 오크들을 잡는다고 잡았는데, 또 생 긴 건가? 귀찮은 녀석들이군... 어쨌든 장정 3-4명은 되야 지나오는 숲인 데...” 그는 시나를 힐끗 보았다. “아직 젖비린내 나는 어린애하고 지나왔다니 경의를 표하오. 여행자.” 시나의 이마에 힘줄이 삐죽 솟았다. [누가 젖비린내 나는 어린애야! 누가!] 하지만 싸움에 아무 도움이 안 된 것이 사실이었으므로 속이야 어떻든 시 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잠자코 있었다. 드래마는 빙긋 웃었다. 문 지기이긴 하지만 이 노인이 마음에 들은 것이다. “...그렇게 대량으로 나타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알았더라면 절대 이런 젖비린내 나는 어린애하고는 여행을 안 떠났겠죠. 살아난 것에 대해 엘에 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으악! 정말이지!!!! 누가 여행하고 싶댔어요?!] 시나 스스로 데려와 달라고 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오기 싫어서 여러 번 거절했었는데 정말 신경질이 났다. 노인이 씨익 웃었다. “그래 오크들 몇 마리하고 부딪혔는가?” “약 30마리 정도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놀란 한숨소리를 냈다. 노인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많군...” “네.” “....요즘 들어 부쩍 그래... 역시 우리 마을도 어서 빨리 자경대를 조직하 지 않으면... 마우르코트는 하바트가 다스리는 곳이라 불안하단 말야... 그 들은 자기 몸 지키기도 바쁠 테지... 그러나 저러나 루이트와 계약하는 건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하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혼자서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 시나는 아랫입술을 쑥 내밀었다. [이상한 할아버지네. 여관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자기 말만 하구.] 허리와 다리, 등줄기가 아파 시나는 좀 초조해져 있었다. 그러나 드래마는 참을성 있게 노인 앞에 말을 세우고 기다렸다. 그때 노인이 말 위에 탄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노인은 피식 웃었다. “아, 미안하네. 여행자의 정보는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 나도 주책없이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군. 그래. 여관이라... 여관이 어디냐 고 물었지? 저쪽 골목으로 가면 [마우르코트의 휴식처]란 술집이 있다네. 그곳에서 여관도 겸업하고 있지.” “.....!” 노인은 이제 손을 불가에 대고 천천히 비비고 있었다. “아.. 춥구만... 이제 가보게 여행자. 여관을 가르쳐 주었으니 묵을 수 있 을지 없을지는 자네 능력에 따른 것일세.” 시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한 말이었다.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돈을 말하는 건가? 하긴 지금까지 한 번도 드래마가 돈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관은 많이 비쌀까? 못 묵으면 어떡하지? 시나 가 이런 걱정을 하는데 드래마는 미소지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꾸벅 한 그는 그 노인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말을 몰았다. 노인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나도 노인을 힐끗 뒤 돌아보았다. [헤에.. 저 할아버지, 남자인데도 땋은 머리를 하고 있네. 하긴, 뭐 남자라 고는 해도.. 남자가 머리 길러서 땋으면 안 된다는 법칙은 없으니까.. 킥, 킥, 그러나 저러나 할아버지가 여고생처럼 양갈래 땋은 머리를 하고 있으 니까 웃긴다.] 시나는 옛날 꽃관 아저씨도 머리를 올려 묶은 것을 기억해 냈다. [이 세계에선 남자라도 머리를 길게 길러서 치장하나 보지? 음...] 길 여기저기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모자를 쓰고 있어 언뜻 봐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자 밑으로 길게 기른 머리들이 나와 있었다. 바리스 마노테오나 사람들은 대부분 짧은 머리였는데 마을에 따 라 선호하는 머리 스타일이 틀린 것 같았다. 시나는 드래마의 등을 쳐다 보았다. [드래마도 머리를 기르지.. 예쁜 색의 머리칼을 갖고 있으니까 멋질 텐 데...] 그때 말이 멈췄다. “자, 내리자고.” 어느새 노인이 가르쳐준 여관에 도착한 것 같았다. 땅 바닥에 내려선 시 나가 허리를 주무르는데 드래마는 말의 고삐를 입구 기둥에 묵고 시나마 를 재촉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 뚱뚱하고 역시 머리를 길러서 하나로 딴 주인이 나왔다. 모자 밑으로 나온 머리는 초록색이었고 눈은 노란 색 이었다. 시나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이런 거에 일일이 놀라다간 이 세계 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주인은 여관주인다운 미소를 지으며 싹싹하 게 물었다. “어서 오세요. 식사하실 건가요 아니면 묵어 가실 건가요?” “이틀밤 묵어 가겠습니다. 이 여잔... 내 아내이고요...” 드래마가 그런 거짓말을 해 시나는 너무나 놀랐다. 주인도 의외라는 듯 시나를 보았다. “아... 네, 부인이십니까... 그럼 방 하나로도 충분하겠군요. 유만!” 사환소년이 달려나왔다. “이 분들이 밖에다 매어놓은 말을 마구간으로 끌고 가 돌봐 줘.” 사환소년은 재빠르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보자...에, 또 그리고... 여기다 사인을 해 주시겠습니까? 관청에서 세금 을 매기느라 요즘은 장부검사가 아주 심하거든요.” 놀라서 아직도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시나를 못 본 척한 드래마는 주인이 준 펜(?)을 받아 들었다. 새의 큼지막한 깃털을 뾰족하게 갈아서 쓰는 필 기 도구였다. 잡기 편하게 겉엔 가죽을 둘둘 말아놓았다. 드래마는 그 펜 (?)을 옆에 놓여있는 큼지막한 잉크병에 푹 담갔다 뺐다. 그리고 그는 앞 에 있는 헝겊에다 펜의 남아도는 먹물을 좀 닦아냈다. 그러고 보니 카운 터 위엔 여기저기 먹물이 튀어 있었다. 이윽고 드래마는 먹물이 튀지 않 도록 조심하며 카운터 위에 있는 엄청나게 큰 장부에다가 [엘야시온 가디 엘 106년 말케스완월 26일 ‘흙의 날’ -드랫과 그의 시나.]라고 썼다. 그 위에 다른 이들이 한 사인 난에는 그냥 동그라미라든지 브이 모양 아 니면 찍 갈긴 표시가 있었고 그 위에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물체가 붙여있 었다. 그에 비해 드래마의 글씨는 정확하고 아름다워 그 가운데서도 확 튀었다. 주인은 그것을 보고 감동한 듯 했다. “히야- 글씨를 쓰시는군요..! 음... 호, 혹시 힐러이십니까? 아니면 아티스 트?” 드래마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거짓말을 했다. “아티스트입니다.” “예에--? 저, 정말 아티스트님이십니까?!!!” 엄청나게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관주인을 보며 드래마는 약간 고압 적인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장부에 붙이기 위한 머리카락이 필요합니까?” 주인은 호들갑을 떨며 두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저 이곳에 머물면서 다른 아티스트 분들께 우리 여관 선전이나 해 주십시오! 어쩐지- 값비싼 이예티의 후드를 착용하고 계신다고 했죠. 우리 여관의 영광입니다. 헤헤. 자- 방은 이쪽입니다.” 주인의 안내에 따라 목조계단을 올라 이층으로 올라간 드래마와 시나는 한 방을 배정 받았다. 더블침대 하나가 있는 방이었다. “편안히 쉬십시오.” 주인은 문을 탁 닫고 나갔다. 드래마는 한숨을 쉬었다. 무사히 여관에 방 을 잡은 것이다. 머리카락을 달라고 했으면 일부러 신경질을 내며 ‘아티 스트’를 무시하는 여관 따위엔 묵지 않겠노라고 하며 나갔어야 하는데... 다행히 여관주인은 높은 사람(?)에겐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인물인 것 같 았다. 시나는 드래마를 흘끗 보았다. 그는 지금 등을 보이며 허리에 있던 묵직한 흰 주머니를 풀러 침대 위에 던져 놓고 있었다. 시나는 조금 인상 을 썼다. 이런 거 물으면 드래마가 자존심 상하겠지만 그래도 집고 넘어 갈 건 집고 넘어가야지. “드래마! 돈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방을 하나만 얻을려구 날 아내 라고 거짓말 한 거죠? 침대가 하나 뿐이잖아요?” 드래마의 등이 갑자기 옆으로 뎅- 하고 기울어졌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 은 그는 한 쪽 입가를 실룩이며 시나를 돌아보았다. “....돈....?”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넌...! 하아..... 시나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널 나의 아 내라고 해두면 주인이 네겐 장부를 쓰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한 거잖아! 아까 주인이 장부에 사인하라는 거 못 봤어? 관청의 세금문제도 그렇지만 도망친 마노테온을 잡으려고 그렇게 하는 거라고. 사인을 하면 꼭 모자를 벗고 머리카락을 붙이게 하니까! 그래서 일부러 장부에 글자까 지 써서 주인이 의심하지 않도록 하고 머리카락을 달라는 소릴 않도록 한 건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예?” 시나는 너무 뜻밖의 말을 들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카락? 그러고 보 니 장부에도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고 드래마도 머리카락 어쩌고 했었다. 머리카락과 마노테온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그런 얼빠진 표정은 그만 짓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자나 벗지 않도 록 해. 정말이지...” “드, 드래마? 하, 한 가지만 물어 볼께요. 장부 작성할 때 머리카락을 달 라고 하는 건 무슨 의미예요? 머리카락을 갖고 마노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 거죠?” 드래마는 이제 이 무슨 바보 같은 여자아이가 다 있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도대체 어디까지 깡그리 까먹은 거야? 모자를 벗으면 머리 길이 가 드러나는데 그럼 모르겠어?” “머, 머리 길이...? 머리 길이가 신분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시나마! 오다가 못 봤어?! 다들 나실인의 긴 머리잖아! 이 세계에서 짧 은 머리를 갖고 있는 건 마노테온밖에 없다고!” 콰과광---! 시나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는 말을 새삼 몸으로 진하 게 체험했다. 황당하다아---!!!!!!!!!! “드, 드, 드래마?! 그, 그, 그럼! 나를 맨 처음 보고 마노테라고 한 것은 내 머리카락이 짧아서!!!!” 마노테 마을 근처에서 구조되었다거나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드래 마는 시나의 새하얀 얼굴을 눈을 찌푸리고 보았다. “얼굴을 보아하니 계급에 따라 머리카락 길이가 틀리다는 것을 잊어버리 고 있었나 보군.” “하.. 하...” 대답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무슨 이런 개떡같은 세계가 다 있단 말인가? [그, 그렇다면... 나, 나는 머리가 짧다는 것 하나 때문에... 최하위층이 되 어서.. 하하...]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드래마는 문을 열고 말했다. “난 마을에서 안장이랑 다른 필요한 것들을 사 갖고 올 테니 혼자 있더 라도 조심하고 있어. 그리고 그 흰 자루는 건드리지 말고.” 이제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드래마는 쯧쯧 혀를 차고 문을 닫았다. [나도 과거에 대해 기억을 못 하긴 하지만 저 여자아이는 너무 하는군. 아예 일상적인 것조차 까먹었잖아? 휴... 디트마한테 조금이라도 치료를 받게 하는 건데... 괜히 데려와서는....암담하구만. 디트마 자식! 쓰잘데기 없는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드래마는 오늘 162번째로 디트마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혼자 남은 시나는 이제 회한의 눈물을 가슴속으로 주르륵,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그래.. 그랬던 거야!” 시나의 머릿속에 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방금 본 마을사 람들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다. 짧은 머리와 긴 머리... 그러고 보니 그 재수 없던 마부도 머리가 길었었다. 그는 따지 않고 뒤로해서 하나로 묶 고 있었지만... “그럼 애초에 내 머리가 길었더라면 이 세계 사람들이 나보고 마노테니 뭐니 하지도 않았을 거 아냐?” 이왕 이상한 세계로 떨어진 거 좀 더 높은 신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다. “으아아악!!!! 이건 다, 귀 밑 3센티로 머리모양을 단속한 우리 학교 때 문이야야야!” 시나는 절규했다. 애매모호한 그 귀 밑 3센티라는 것이 귀찮아 시나는 아 예 컷트머리를 하고 있었다. “윽!! 도대체 이게 뭐야!!!”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대한민국, 서울 모동 모고교의 교육방침을 저주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가 문제였다. [그, 그래!!! 난 원래, 그... 뭐냐... 하바트인가 하바티온인가 하는 신분이었 다고 얘기할까? 머리야 기르면 되는 거고....] 시나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다. 하지만 다시 곧 어두워졌다. 그것도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바트가 된다고 해도 어디 마땅히 몸을 의탁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쉽게 다른 이들이 [저런- 그랬었단 말이야?]라고 하며 수긍 할 리도 만무했다. 시나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뭐, 마노테는 함부로 머리를 기를 수 없다거나 그런 거 겠지?] 그때 갑자기, 시나의 머리에 한가지 사실이 번뜩 스쳐지나갔다. [헉, 서, 설마! 그, 그럼 난 여기에 있는 이상은 언제까지나! 혹은 평생이 라도! 짧은 머리로 살아야 한다는 거야?!!!]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시나는 완전히 절망했다. [아, 안돼!!! 대학에 들어가면 머리도 길게 기르고 스트레이트 파마도 하 려고 했단 말이야!!! 으앙- 당장 우리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아빠-!!] 시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글래머의 미인! 시나의 꿈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침대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 렸다. (계속)================================================== 저어... 정말 죄송합니다. TT 이렇게 뺀질거리며 연재를 하다니...TT 하지 만, 타통신에서 계속 글을 진행하느라... 흑흑..TT 회사 다니랴, 글쓰랴, 글 올리랴... 정신이 없군요...TT(확실히 글쓰는 것과, 글 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무리를 해서라도, 나우누리에도 적어도 이번 주 안에는 쓴 분량까지 다 올려야겠습니다. 차라리, 올릴 때마다 한꺼번에 올리는 게 더 속 편할 것 같습니다...TT 저기, 쪽지 보내주신 분들, 감사하고, 또 죄 송합니다. 꼬리에 불나게 최대한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근데 나한테 꼬리가 있었던가...--;;)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56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3-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5 00:14 읽음:2708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3- <제 16막. 시나, 대한민국 모 고교의 교육방침 때문에 절망하다. (2)> “삐삐삐삐삐-” “이게 웬 삐삐 소리야?” 이런 세계에 삐삐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삐삐소리와 비슷했다. 소리는 드 래마가 던져 놓고 간 흰 주머니에서 나고 있었다. 삐삐삐삐삐- 시끄럽기도 하고 호기심도 발동하여 시나는 그 주머니를 끌러 보기로 했 다. [만지지 말라고 했지만 살짝 보기만 하고 도로 넣어 놓으면 드래마도 모 르겠지.] 칭칭 동여매 놓은 가죽끈을 푸는데 그 동안에도 계속 그 물체는 삐삐-거 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게 뭘까-?” 흰 주머니 밖으로 나온 것은 아이들이 구슬치기 할 때 갖고 노는 것과 똑 같이 생긴 녹 푸른색의 둥그런 구슬이었다. 크기만은 이제까지 본 어떤 구슬보다 커서 지름이 한 15센티는 되 보였다. “히야- 예쁘다-” 자기도 모르게 그 구슬을 쓱 쓰다듬었는데 갑자기 삐삐 거리는 소리가 뚝 그쳤다. “응?” 시나는 깜짝 놀랐다. 투명한 구슬 가운데서 뭔가가 희뿌옇게 퍼지고 있었 다. 뭉글한 그것은 곧 인간의 형체를 갖추었다. ≪드랫- 엘의 날을 다른 마을에서 보낼 셈이야? 이번 주 안에 너를 보기 원했는데? 왜, 지도대로 따라오지 않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지..? 그러니까 블루 크리스털이 내게... 응? 이게 웬 하얀 천이야?≫ 너무 놀라 시나는 그 구슬을 침대에 떨어뜨렸다. 덕분에 그 뭉글뭉글한 사람 같은 형체의 앞부분은 침대보 있는 쪽으로 깔렸다. [구슬 안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이고 목소리까지?!!!! 이 세계에 이런 멀티 미디어가---!!!!?!] 시나는 발치에 있는 그것을 눈이 둥그래져서 바라보았다. ≪이봐- 드랫! 뭐냐구! 크리스털을 당장 똑바로 놓지 못해?!≫ 어쨌든 구슬을 이대로 놔 둘 순 없을 것 같았다. [꿀꺽!] 시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들었다. ≪도대체-!!!! 응?!!! 넌 누구야?!≫ 동그란 구 안에 볼록 렌즈로 비친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남자였는데 나 이는 20살 중반에서 20살 후반정도? 드래마와 비슷한 또래 같았다. 형태 가 왜곡되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볼 만했다. 남자가 물었다. ≪드랫은 어디에 있지?≫ 그는 드래마를 ‘드랫’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긴 아까 드래마도 장부 에‘드랫’과 ‘시나’라고 적었었다. “드래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는 물건을 사러 나갔는데요.” ≪...물건...?≫ “네. 숲을 통과하다가 오크들에게 짐과 마차, 말을 뺏겼거든요.” ≪드랫이 오크들에게 물건을 뺏겼다고? 그거 놀랄 일이군. 내 주위 사람 들에게 이야기하면 안 믿을걸... 흠 보자.. 네가 있어서 그랬나? 그는 자기 한 몸 정도는 지킬 힘이 있는데..≫ 그는 구 안에서 시나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시나와 같은 회색의 눈동자였 다. 시나도 그를 자세히 관찰했다. 상당히 잘생긴 남자였다. [흐응... 푸른 색 구슬 때문인지 머리색이 파랗게 보이네. 아니, 여기 사람 들은 별의 별 머리색이 다 있으니까 진짜 파란색의 머리인지도 몰라.] ≪넌 누구야?≫ 잘생긴 얼굴을 찡그리고 그가 물었다. 뭔가 의심이 잔뜩 깃 든 말투였다. 게다가 처음부터 반말?! 왠지 불쾌했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안 좋은 사 실을 알아 기분이 무지 꿀꿀한데 시나는 신경질이 났다. 이 세계 사람들 에게 무시당하는 것도 이제 진절머리 난다! “보세요! 남에게 누구냐고 묻기 전에 자기가 누구인지 ‘정중히’밝히는 게 어떻겠어요?” 구슬 안에서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꼭 둥그런 어항 밖에서 금붕어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뭐라구 했지. 방금?≫ 그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 난 지금 모자도 쓰고 있다구! 그러니 머리카락도 안 보일텐데 도대체 뭐야, 이 사람은!! 함부로 반말을 하고!] 시나는 그냥 밀고 나갔다. “남의 정체를 물을 땐 자신을 먼저 소개하는 게 예의 아니냐고요!” 갑자기 그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더니 급기야 기가 막힌다는 듯 허허거 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 [이 사람이 실성을 했나] ≪..하하하... 배, 백년 만에 처음이야.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하... 이 늙은이를 아주 웃겨주었어. 아가씨?≫ 시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엥? 백 년? 늙은이? 이게 무슨 소리야?] ≪그래, 그래.. 이 정도로 살다보니 나도 예의란 걸 많이 잊어버렸군.. 모 든 사람들이 내게 먼저 인사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훗훗≫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그딴 소리를 하니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시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무시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좋아. 내가 먼저 내 소개를 하지.≫ 그는 빙긋 웃었다. ≪아가씨. 난 청의 엘야시온 가디엘이라고 한다네. 부디 엘야시온님이라고 불러 주시길.≫ 그리고 그는 뭔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꼭 시나가 엎드 려 절이라도 하길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 시나는 의아했다. 엘야시온? 어디서 많이 듣던 단어다. 그러나 저러나 머 리가 긴 걸 보니 분명히 상류계급인데? 시나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그에 게 물어보았다. 직접 대하는 것이 아니고 통신(?)으로 대하는 것이라 많 이 대담해져 있었던 것이다. “신분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일루티온? 루이티온? 하바티온? 어느 것이 세요?” 시나는 자신이 아는 신분을 모두 불러보았다. ≪뭐....?≫ 그는 땡감 씹은 표정으로 시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의 침 묵이 흐른 후 그는 한마디, 한마디 끊어 다시 말했다. ≪난, ‘엘. 야. 시. 온.’ 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못 알아듣다니 바보천치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시나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에, 엘야시온이 도대체 뭐지? 그것도 계급 이름인가? 아, 그러고 보니 난 1, 2, 3계급 이름은 모르잖아? 그,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이 사람은 4계 급보다 높은 사람?] 이런 생각들이 빠르게 시나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나는 그냥 공 손하게 인사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 내렸다. “예에.. 엘야시온이시군요. 안녕하세요-?” 시나의 공손한 말에 그는 찌뿌등한 표정을 지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우르릉거리는, 그런 날씨 같은 표정이었다. [안녕하시냐는 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지?] ≪......넌... 누구냐? 이름을 말해봐.≫ “에... 전, 시나라고 합니다. 윤시나요.” 그의 표정에 한층 더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그는 먹구름(?)을 구기며 말 했다. ≪시나야? 윤시나야?≫ “시나요.” 시나는 얼른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선 성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 다. 도무지 성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시나? 시나라... 이름만 가지곤 알 수 없군. 일루티온인가? 설마... 일루 티온 계급이 내게 이럴 리는 없고..... 신분이 뭐야?≫ 아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야 하는 건데! 시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통신(?)이라고 나의 당돌함이 너무 지나쳤구나! 상류 계급에 대한 불경죄 로 처형되는 것 아닐까? 그 마부도 그러지 않았는가? 시나는 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 저기, 전... 전......마, 마노테인데요?” 그 말에 엘야시온의 눈이 번쩍 빛났다. 다음, 당연한 순서로 고함이 뒤따 랐다. (번개 뒤엔 천둥이 따른다.) ≪뭐이야-!!!?! 마노테!!?! 마노테 주제에 내게 예의니 뭐니 했단 말이야 --?!≫ “죄, 죄송합니다!!” 그 호통을 들으니, 자기가 뭔가 아주 크게 잘못을 한 것 같아, 시나는 무 조건 구슬에 대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 시나 를 보며 헛웃음을 쳤다. ≪...헛, 헛. 기가 막혀서... 참. 말투로 봐선 하바티온나 루이티온, 아니야, 스웰디온의 규수라고 해도 지지 않을 정도던데 겨우 마노테라니... 그래서 인가? 내가 엘야시온이라고 해도 도무지 놀란 얼굴을 비추지 않고.. 음. 교육을 받지 못한 거였군. 별 멍청한 인간을 다 보겠다고 했더니.≫ 시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우씨- 난 이 세계 사람도 아닌데 이런 소릴 듣다니. 이봐요! 젊은이인지 늙은이인지 알 수 없는 아저씨! 나도 머리가 길었을 때 이 세계에 왔으면 훌륭한 귀족이라구요!] ≪그래. 넌 도대체 왜 드랫과 함께 있는 거지?≫ 시나는 그 질문에 대답이 궁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를 지키기 위해 서? 왠지 웃겼다. 방금 숲에서 그가 시나를 지켜주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를 지킨다는 이야긴 이 상황에선 관두기로 했다. 곰곰이 생각한 시나는 결국 다음과 같이 말하기로 했다. “저기, 제가 드래마의 종속자거든요. 그래서 디트마가 저보고 드래마를 쫓아가라고... 하하하...” ≪뭐시야--?!!!! 너 따위 마노테가 드랫의 종속자아--?!!!≫ ‘따위’라니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엘야시온은 또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드랫은 왜 내게 그런 말을...!!! 아니.. 아냐. 그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의무는 없지. 하지만 그래도!≫ 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시나를 보았다. ≪어떤 경로로 종속자가 된 거지? 설마 너 드래마의 약혼녀인가?≫ “아니에요! 전 그 ‘은혜의 법’인지 뭔지에 따라..” ≪은혜의 법-?!! 드랫이 네 목숨을 구했다고?!!!≫ “네.” ≪하하하... 이럴 수가. 그래? 드랫이 그 애 외의 아이를 구했다고? 이거 놀라와 정말로 놀랍군!! 드랫이 드디어 자기 신분으로 돌아올 생각인가? 그래.. 네가 그의 종속자라 이거지?≫ “아, 아직 정해진 건 아니고요.. 무슨 예식을 올려야 한다고..” ≪은혜의 법이라면 굳이 예식 따위 치르지 않아도 종속주 종속자야. 흐응... 정말 놀랄 일이군. 아주- 의외야. 이걸 사람들에게 말해 주면 아주 재미있어 할거야. 좋아. 네가 드랫의 종속자라니 너의 무례함은 용서하겠 다.≫ “가, 감사합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인사는 했다. ≪어쨌든 그가 왜 곧바로 이곳으로 오지 않는 건지는 이해했어. 그럼 드 랫을 보는 건 내일 모레가 되겠군. 아쉬워. 20년만에 보는 건데.. 흐응.. 하 지만 네가 있으니..≫ 그는 혼자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더니 시나에게 말했다. ≪드랫은 지금 외출 중이라고 했지?≫ “네..” ≪좋아. 그럼 그는 내가 너와 이야기한 걸 모르겠군. 그에게는 나에 대해 서 말하지마. 알았지?≫ 왜 그러는 걸까? 이상했지만 대답했다. “네.” ≪자, 그럼.≫ 그는 갈 모양이다. 시나는 또 공손히 대답했다. “네.” ≪........≫ “.....” ≪.......?≫ “....?” ≪....뭐하는 건가...?≫ “네?” ≪아, 인사를 해야지--!!!≫ 그가 소리를 꽥질렀다. [엥? 그런가? 뭐라고 하지?] 시나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 안녕히 가세요... 엘야시온님.” 엘야시온은 시나를 보며 한참이나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끄응... 넌 도대체... 예의니 뭐니 어쩌고 하더니 가장 기본적인, 상류층 에게 하는 인사도 배우지 않았어?≫ “그게 사실...” ≪어디 두메산골, 무지렁뱅이 사이에 있던 마노테인가 보군. 내가 그토록 열심히 교육정책을 펼쳤건만... 쯧, 쯧... 자! 따라해 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를 지으신 거룩한 유일신, 엘의 은총 안에 서 저, 제 6계급 마노테... 시나? ...? 에잉!!! 쯧, 쯧, 쯧.. [시나마]는 제 1계 급 청의 엘야시온님께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그의 긴 인사말보다 제1계급이란 소리에 더 놀랐다. [헉! 뭐야? 1계급? 이 사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던 거야? 드래마는 어 떻게 이런 사람과 알고 있는 거지? 아, 옛날에 아주 훌륭한 기사였다고 했으니까... 그, 그래서인가?] ≪아, 뭐 하는 거야?!≫ “네, 네!” 시나는 놀라는 와중이었지만 엘야시온의 말을 그럭저럭 떠듬떠듬 따라했 다. 땅과 어쩌구.. 저쩌구... 드립니다.. [와- 대단하다! 윤시나!] 시나는 자신의 기억력이 좋다는 사실에 그야말로 신에게 감사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그리고 그 중에서 제 1계급과 청의 엘야시온님 사이에 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을 집어넣으면 되는 거지. 뭐 ‘12개 의 세계 동안 복 받으실’이라든지 ‘정결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엘의 축복을 받고 계신’이라든지.... 알겠나?!≫ [God bless him!!!] “네에...” 땀이 삐질 흘렸다. [꽤... 자상...한 분이네? 하하...] ≪좋아, 다음에 만나면 기대하지.≫ 그 말을 끝으로 구슬은 다시 투명하게 돌아갔다. “휴우-!” 시나는 두 손으로 받치고 있던 크리스털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잠깐 구경한다고 하다가 진땀을 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엘야시온이 크 게 화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인가 하면... 그는 오히려 재 밌어 하는 눈치였다. 인사말까지 가르쳐 줄 정도였으니까. 구슬을 흰 자루 에 집어넣으며 시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떡할까? 그래도 드래마에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냐! 그러다가 왜 맘대로 자루를 풀었냐고 하면...] 드래마가 화내는 모습이 가히 충분히 상상이 됐다. 그리고 그런 상상만으 로도 피곤해진 시나는 엘야시온에 말에 충실히 따르는 순종적(?)인 인간 이 되기로 했다. [그래. 엘야시온님도 말할 필요 없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혹시나 들켜서 왜 말 안 했냐고 하면 엘야시온님이 시켰다고 해야지. 어쨌든 제1계급의 명령이니까.] 시나는 그렇게 결정하고 구슬을 있던 대로 해 놓았다. 그러나 저러나 제1 계급이면 최고 계급일텐데 그 마부나 꽃관 아저씨보다 대하기 편한 것 같 았다. [옛말 중 그른 것 하나도 없다니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진짜 높 은 사람은 꽤 괜찮잖아? 후후후. 음..그러나 저러나.. 머리에 대해선.. 으 휴..] 엘야시온과 이야기한 충격(?)으로 머리 길이에 대한 충격은 어느 정도 감 소되긴 했지만 어쨌든 아직도 그것에 대해서는 우울했다. 드래마가 실내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으라 했지만 시나는 모자를 벗어 머 리카락을 살짝 흔들어 보았다. 짧은 커트의 머리가 흔들거렸다. 여기 온지 겨우 1주일 남짓 지났으니 머리가 자랐을 리는 없었다. 시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아.. 이 세계에 온지 겨우 1주일 남짓? 700년은 산 것 같은데? 흐유.] 사람의 인생이 1주일만에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짐작이나 할까. 앞으로 남 은 인생의 1주일들이 다 이 모양이라면 어떡하지? 갑자기 왠지, 산다는 것에 심히 두려운 생각이 드는 시나였다.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57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4-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5 00:15 읽음:2739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4- <제 17막. 마우르코트 일루테오나에서 있었던 일I (1)> “...이게 뭐지요...?” 시나는 맛있게 드시라며 주인이 방금 자신 앞에다 놓고 간 비둘기 크기의 통째로 구운 새 구이를 바라보았다. 주위엔 당근이나 감자로 보이는 것들 이 장식되어 있었다. “아크리 구이.” 드래마는 그의 앞에 놓인 같은 것을 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는 오후 내내 쇼핑을 하고 저녁 무렵에야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 에 들린 반질반질한 안장을 보았을 때 좀 끔찍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그 안장에 정을 붙이려 노력 중인 시나였다. 그밖에 놀랍게도 드래마는 시나를 위하여 한 벌의 털외투와 모자를 사 왔다. 갈색과 회색이 번갈아 섞인 두꺼운 코트와 모자는 저번 것보다 예뻤다. 눈에 띄게 기뻐하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는 시나에게 드래마는 [피묻은 외투를 입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때문]이라고 무뚝뚝하게 말했 다. 그러면서 밥이나 먹으러 내려가자고 시나의 말을 딱 잘라버렸다. 그런 그의 태도에 김이 좀 샜지만 뭐 어쨌든 몬스터의 피가 묻은 걸 계속입지 않아도 된다는 건 너무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 좋음은 징그러운 살을 드러내고 머리까지 온전히 달려서 두 눈을 번쩍 뜨고 있는 새 구이를 보자 완전히 싹 사라지고 말았다. 주 인이 아티스트님과 그 아내에게 특별히 공짜로 대접하겠다고 내 논 그 날 의 특제요리였는데 시나에겐 맛있어 보이기 보단 징그러워 보였다. “...꼭 이렇게 통째로 구워야 하나..” 시나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포크로 찌를까 어쩔까 망설이는데 드래마가 말 했다. “..왜냐하면... 이 머리에서 나온 뇌수 국물과 내장 국물이 고기 맛을 더 좋게 해주거든. 뇌수와 내장자체도 맛있고.” [욱-!] 속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드래마는 이미 그것의 다리 한 쪽을 뜯어먹고 있었다. 왠지 그가 야만인 으로 보인다. 하긴 그는 약과였다. 저쪽 테이블에선 얼굴에 기름이 잘잘 흐르는 중년 아저씨 두 명이 배를 두드리며 통 구이의 내장부분, 혹은 뇌 수 부분을 해치우고 있었다. [웩-!] 시나의 표정을 보고 그는 싱긋 웃었다. 뭔가 사악하고도 의미 있는 웃음 이었다. “맛있어-” “-?” “아까 네가 만든 것도 그리 멋진 모양은 아니었다고. 그걸 먹을 수 있으 니 이 정도야 거뜬하겠지?” “!” 시나는 그제야 그가 낮의 음식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주인이 특제요리 종류를 줄줄이 말할 때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요리로 갖다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여자에게는 좀...]이라고 주인이 말해 도 드래마는 괜찮다며 시나에게도 같은 걸로 갖다 달라고 했었다. 뭐가 뭔지 모르는 시나는 옷 덕분에 기분이 좋기도 하고 드래마가 어련히 잘 알아서 시키겠거니 하고 그냥 헤-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익- 남자가 쪼잔하게 시리!] 드래마는 포크로 고기를 쿡쿡 찌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봐 시나- 그럼 다른 걸로 시켜주지.” 드래마는 사람들 앞에서는 시나를 ‘시나’라 부르고 있었다. 이름 뒤에 ‘마’는 마노테온이란 것을 나타내 준다는 설명이었다. 과연-! 그제야 시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왜 꼭 뒤에다 '마’를 붙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드랫’ -드래마의 원래 이름은‘드랫’이란다. 그 뒤에 마를 붙이면‘드래스마’가 되지만, ‘스’는 왕족들의 이름이라 쓸 수 없다는 복잡한 설명이었다.- 은 뭔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싱글싱글 웃으며 시나 를 협박(?)하고 있었다. “아, 미리 참고삼아 말하자면 지금 식사를 안 하면 내일 아침까지는 식 사가 없거든? 이걸 염두에 두고 대답해 줘. 낮에 그거- ‘개 수프’였 지?” 시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디트마가 ‘개 수프’에 대해 드래마에게 말 했나보다. 으.... 정말이지! 뭘 그런걸 갖고 그러냐고 치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 아침까지 아무 것도 못 먹는다니... 배고픈 건 시나 가 가장 못 참는 것 중 하나였고 지금은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었다. 내일까지 기다리다간 확실히 저 세상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시나 는 풀이 죽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맞아요. 그거‘개 수프’예요.” 시나가 솔직히 이야기하자 드래마가 상냥하게 웃었다. 참으로 소름 끼치 는 웃음이군... 등골이 오싹했다. “그리고- 디트마가 말했었지? 나는 쿠냐냐 친 음식 너무 싫어한다고?” 시나는 고개를 숙였다. 으.. ....디게도 집요하네. “시나? 디트마가 그런 이야기 안 했어?” “사실은.... ...했어요.” 후회막급이었다. 내가 왜 드래마를 건드렸지? 흑흑... 드래마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다른 데를 보며 말했다. “음. ...사과할 생각 있어?” 시나는 좀 신경질이 났다. [아, 참!!! 장난 좀 한 거 가지고 끈질기구만! 으휴! 정말 더럽다! 식사고 뭐고 확 때려치고-!] 드래마는 시나의 열 받은 표정을 보더니 부스스 일어났다. “싫으면 관두고. 굳이 사과 받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그럼, 난 그럭저럭 먹었으니 올라가서 잠이나 잘까?” 그 말에 시나는 울상을 지었다. 이 아크리랑 나만 놔두고 그냥 올라간다 고? 너무너무 배고픈데? “드랫!! 잠깐! 가지 말아요!! 사과할게요!” 시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과해야 했다. 시나의 자존심이란 녀석이 인간 이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둥 어쩐다는 둥 또 잔소리를 해대고 있 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드래마는 시나의 슬픈 얼굴과 슬픈(?) 사 과를 듣더니 팔짱을 끼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으 며 말했다. “좋아.. ...그게 맛까지 별로 였다면 이 여행 내내 식사를 주지 않았을 거 야. 시나.” 그리고 그는 손도 대지 않은 시나의 접시를 들고 직접 주인에게로 다가갔 다. 사환을 불러서 시켜도 될 텐데 그가 직접 가다니 의아했다. “?” 음식을 주문하는 드래마의 어깨가 왠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상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주인이 뭔가 드래마와 이야기 나누며 시나를 힐끗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그제야 시나는 알아챘다. 드래마는 숨을 참고 웃 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직접 접시 를 들고 간 것이다. [윽! 정말!!] 그걸 보고 시나는 분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밥줄은 드래마가 쥐고 있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그는 곧 시나가 먹을만한 음식을 가져왔다. 계란과 밀가루를 섞고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야채를 섞 어 부풀려 찐빵이었는데, 같이 가져온 갈색의 수프도 좋은 냄새가 났다. “어, 고마워요.” 너무 좋은 냄새에 시나는 원한을 잊고 자기도 모르게 감사를 표했다. 정 말 이 여자 애는 단순해...라고 생각하며 드래마는 빙긋 웃었다. “천만에.” 그리고 자리에 앉은 그는 통 구이를 다리와 가슴까지만 먹고 다른 것으로 시켰다. 그도 내장과 뇌수는 역겨운 모양이었다. 분위기가 잠시 험악했지 만 어느 정도 괜찮아지자 시나는 엘야시온과 대화를 나누며 궁금했던 것 을 드래마에게 물어보았다. “드래.. 아니 드랫, 어떤 사람이 100년 이상 살았는데 당신과 같은 젊은 외모일 수 있을까요?” 드래마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없어.” [그래? 그럼 아까 엘야시온님이 100년째 다스리고 어쩌고 한 건 내가 잘 못들은 건가?] “단, 엘야시온님은 예외야.” [헉!] 드래마가 시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을 해 시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 만 그런 건 아닌 듯 드래마는 의아한 눈초리로 시나를 보았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묻지?” “아, 아니 그냥요. 엘야시온님은 어떻게 100년 이상 살면서 젊음을 유지 할 수 있는 건데요?” “엘야시온님은 엘의 대제사장이야. 엘에게 선택받는 그 순간 영원한 젊 음을 보장받게 되지.” “주, 죽을 때까지요?” “응.” 너무나 신기한 이야기였다. 죽을 때까지 젊을 수 있다니. 그렇다면 아까 100년 이상 다스렸다는 게 이해가 간다. [음- 우리 세계의 진시황이 들었으면 부러워 죽을려고 했겠다. 그러나저 러나 그런 사람들이 이 세계엔 도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걸까?] “그런 엘의 대제사장을 1계급이라고 하나요?” “응.” “제1계급은 얼마나 많아요?” “시나마.. 방금 말했잖아. 대제사장이라구. 제사장 중의 제사장. 그러니 제1계급은 12개 세계 안에서 언제나 한 명이야. 지금은 청의 엘야시온 가 디엘님이 12개의 세계를 다스리시지.” [엥? 겨우 한 명 놓고 무슨 계급이라고 한담?] 그때 드래마가 한숨을 쉬었다. “휴- 계급에 대해 잊은 거지? 어떻게 이런 것을 잊을 수 있는지 모르겠 군. 그 밖에 계급에 대해 궁금한 다른 것 없어? 이런 건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하는 것들이니까 뭐든지 대답해 주지.” 그는 이제 상당히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밤이 되어 여관 주인이 켜 놓은 램프는 가끔 흔들거리며 드래마의 얼굴에 부드러운 음영을 더하여주 고 있었다. 그의 짙은 눈동자는 밤하늘과 같이 깊고도 아름다웠다. 시나는 그런 그를 뚫어지게 보았다. 정말 예쁜 색의 눈이다... 하지만... “?”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심하게 아픈 건 아닌데, 머리를 누군가 솜망 치 같은 걸로 툭툭 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한 것 은..... 이상하다..? 말을 타고 달려서 그런가? 너무 피곤해서?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고개를 갸우뚱한 시나는 더 이상 드래마와 이야기 나누 고싶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피곤한 것도 같네. 아, 쉬고 싶어. 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많았지.. 힘든 일주일이었어... “후우.. 전... 피곤해요 드랫.... 그러니, 나중에 물어봐도 될까요?” 가슴이 아파... 아, 너무나 기분이 나쁘다. 인상을 쓰며 시나는 말했다. “...기분이 안 좋아요....” 드래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렇기도 하겠군. 아침부터 계속 마차로 달리고 익숙지 않은 말 까지 탔으니. 그럼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좋겠군.” 드래마는 시나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정말 피곤한 모양이라고 해석하고 벌떡 일어섰다. 시나도 따라 일어섰다. 왠지 안심이 됐다. 둘이 일어서자 여관 주인이 쪼르르 달려와 웃으며 물었다. “아이구- 다 드셨습니까? 두 분? 목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욕이란 소리에 시나의 눈이 커졌다. 말만 들어도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 다. 이 세계로 와 목욕을 한 번도 못한 것이다. 느긋한 목욕을 한 것이 언 젠지 까마득했다. 제시마가 마을의 노천탕에 가자고 권했던 것이 기억난 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었다. 시나 는 흥분해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와, 아저씨-! 여기 목욕탕도 있어요?!” 주인 빙글빙글 웃었다. “그럼요. 부인. 노천탕이랍니다. 우리 마을의 자랑이죠. 오늘도 몇 사람이 나 들어와 있는 걸요.” 으.. 공중목욕탕이구나! 시나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목욕을 하려면 모자 를 벗어야하는데, 그러면 마노테온이라는 것을 들키고 만다. 시나는 너무 실망을 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네에.....” 여관주인이 의아한 듯 시나를 보았다. 드래마는 그런 시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우리 목욕이나 할까? 시나?” “네에?!” 시나는 놀랐다. 마노테온인걸 들켜도 좋다는 말인가? 설마 모자를 쓰고 목욕하라는 건 아니겠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데 드래마가 주인에게 말했다. “여긴 부부탕 됩니까?” 드래마의 말에 시나는 인상을 썼다. [부부탕? 그게 뭐지?] 그러나 주인은 기분 좋게 웃었다. “아 그럼요. 역시 두 분, 이번 하누카의 날을 맞아 정식으로 결혼하실 분 들이군요? 하핫. 신혼이지요?” “네. 그러니 둘이서 쓰고 싶군요.” 에에에에엑!!!! 뭐라구? 둘이서 쓴다고? 시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드 래마를 봤다. 주인은 여전히 벙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 좋습니다. 좋아요. 아티스트이시니 특별히 염가로 봉사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부부탕은 원래 5탈란 정도는 받아야 하지만 3탈란만 받겠습니 다. 요금은 나가실 때 숙박비와 함께 지불하시면 됩니다. 하핫.” “네, 정말 싸군요. 호의에 감사합니다.” “뭘요. 마우르코트의 휴식처를 동료 분들에게 잘 말씀 드려 주시기만 하 면 됩니다. 하핫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자 가자구 시나.” [아악-- 뭐야!! 설마, 이 세계!! 남녀 혼탕인거야?!!!!!!] 갑자기, TV에서 본 일본의 온천 생각이 났다. 말도 안돼에에!!! 황당해서 뭐라고 말도 못하는 시나를 질질 끌고 드래마는 여관주인 뒤를 따라갔다. 주인은 일층 안쪽으로 들어가 나무로 된 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곳은 뒤 뜰이었는데 칸막이로 가려진 저 쪽 편에선 수증기가 나오고 사람들의 즐 거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황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것으로 보아 천연 온 천인 듯 했다. 주인은 그곳을 지나 계속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한 칸 막이 문에 다다르자 문을 드륵 열고 드래마와 시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자, 이곳입니다. 두 분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하핫” 주인은 그렇게 말하고 뭐가 좋은지 벙긋 웃는 표정으로 인사를 꾸벅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으아!! 이게 뭐야--?!!!] 시나는 경악해서 안을 둘러보았다. 안은 미니 온천처럼 보였다. 램프가두 세 개 달려 빛을 비추고 있었고 사방을 칸막이로 막아놓고 지붕까지 막아 놓았다. 가운데 돌로 빙 둘러싼 곳에 가득찬 물에서는 수증기가 나고 있 었다. 드래마는 빙긋 웃었다. “3탈란이나 치른 값어치는 있군. 좀 비싸긴 하지만 이 정도면 작은 일루 티온 마을에선 괜찮은 편이지. 자, 시나? 네가 먼저 할래? 내가 먼저 할 까..? ....응? 시나?” 하지만 시나는 이미 드래마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구석에 쳐 박혀 있었 다. “가, 가까이 오지 말아욧!!!!!” 시나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다 늑대라더니 아빠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드래마도 결국 그런 사람이었나? 어떻게 여자랑 혼욕 할 생각을 하지? 이게 이곳의 관습이더라도 절대 이럴 순 없다!!!! 자신은 동방예의지국(그랬었던 때가 있다는군요.--;)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소 녀다! “드래마, 나 건드리면 가만 안 있을 거예요? 소리지를 거라구요!! 그럼 마노테온인 거 들켜도 난 몰라요?!!” 드래마는 시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어안이 벙벙해서 듣고 있었다. 저 여자 애가 희한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도대체 구석탱이에 처박혀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야? 목욕하라는데 왜 소리를 지른다는 거지? 목욕하고 싶어하는 표정이길래, 나도 하고 싶고 해서 일부러 비싼 돈 치르고 빌린 탕을.....? “누가 같이 할 줄 알고요?!! 죽어도 싫어요--!! 억지로 시킬려구 해두 소 용없어요!!!!” 시나가 이렇게 소리 치자, 드래마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뭐라구? 가, 같이? 억지로? 그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나 참, 기가 막혀서...!드래 마는 화가 나서 말했다. “시나마!!!! 넌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방금 누가 먼저 할까라고 하는 말 못 들었어?!!! 젠장!! 내가 미쳤어?! 너와 함께 목욕을 하게?!” 엥? 그럼, 아까, 드래마가 싱긋 웃으며 중얼거리던 말이 누가 먼저 할건지 물어보는 말이었나? 멀찌감치 떨어져서 들은지라, 잘 안 들렸다. 어, 어찌 됐든!! 시나는 끝까지 말했다. “하, 하지만! 여기 부부탕이라면서요!!! 그건 뭐예요!!!” 드래마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만 쓰는 걸 빌려야 번갈아 가면서 하지!!! 그럼 밖에 사람들이 잔뜩 있는데서 목욕 할 거야? 마노테온인걸 알리고 싶어? 나 참! 착각 같은 착 각을 해야지! 누가 너 같은 어린애랑!! 제기랄!! 네가 먼저 해!!!!” 그리고 그는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그가 신경질을 내고 나가자 시나는 방 어용(?)으로 들고 있던 바가지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 그런 거였어?] 그러면 그렇다고 진작 말할 것이지! 이 세계의 관습이 '혼욕'이고 드래마 가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는 줄 알았잖아!!! 하긴...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드래마 성격상 그런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여자들하고도 밋 밋하게 지내는 드래마인데.. 하하... 아이 참, 어쨌든 내가 너무 오버했군. 아이... 쑥스러워라... 목욕할 수 있도록 해준 걸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의심했으니 얼마나 기 분이 나빴을까? 그가 마지막에 말한 '어린애'라는 말은 기분이 나빴지만 시나가 먼저 잘못한 것이니 나중에 사과하기로 했다. [하하.. 음. 음. 그, 그럼 들어가 보실까?] 옷을 벗고 모자까지 벗어 구석에 있는 탁자에 올려놓은 시나는 탕으로 들 어갔다. 따끈한 물이 기분 좋았다. 수증기가 무럭무럭 피어 나오고 있었고 피부에 닿는 물은 약간 미끈거렸다. 어제 말에서 떨어져 멍들어 아픈 곳 에 시원하게 느껴졌다. 꼭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하아-- 너무 좋다. 아, 행복해.] 그러고 한 시간도 더 있고 싶었지만 10여 분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드 래마도 기다리고 있을 테고 또 계속 이러고 있으면 피곤해서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머리를 가볍게 감고 안에 있는 수건으로 몸을 닦은 시나는 옷 을 챙겨 입었다. 한결 개운하고 좋았다. 판자 문을 열고 나오니 문 밖에 드래마가 서 있었다. “어, 드래마... 아, 아깐 제가 미안...” 시나는 민망한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사과했다. 하지만 드래마는 냉담한 눈길로 그런 시나를 힐끗 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휙 지나갔다. “저기? 드래마?” 역시 아무 대꾸도 안한 그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시나의 코앞에서 문을 탁 닫아버렸다. 시나는 슬픈(?)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어떡하지? 디게 화 났나봐..... 하하... 음. 그래. 이해할 수 있어..] 안 이해돼도 되는 일까지 열심히 이해하는 시나였다. 방안엔 작은 램프가 하나 있었는데 벽난로의 불빛과 함께 방안을 어슴푸 레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그 희미한 불 빛 속에서 시나는 벽난로의 불을 보며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졸렸지만 한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때 드래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 드래마...” “왜?” 드래마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깐 정말 미안...” “아아. 됐어. 잠이나 자자구. 나도 피곤해.” 그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고 후드를 벗었다. 불빛에 그 의 젖은 머리칼이 반짝였다. 시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자고? 하지만 방 안에는 침대가 단 하나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아까부 터 드래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요... 저기... 드래마? 우리 같이 자는 거예요?” “그럼 어떡하게? 네가 바닥에서 잘 거야?” “그, 그게 아니라!” “바닥에서 자고 싶으면 바닥에서 자. 이불을 나눠줄 용의는 있으니까. 하 지만 내일 일어나서 삭신이 쑤시니 온 몸이 얼어붙었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드래마는 시큰둥하게 말하고 신을 벗고 침대 한 쪽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썼다. “드, 드래마.. 저기..!” 시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벌써 눈을 감고 있었다. 이 사태를 어 찌하면 좋단 말인가?! 어쩔 줄을 몰라하던 시나는 일단 입고 있던 모자와 코트를 벗었다. 어쩐다...? 잠시 서서 드래마의 누운 모습을 보던 그녀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어쩔 수 없지. 시나는 베개와 이불 하나를 침대 위에 서 들었다. 그리고 벽난로 앞으로 가, 코트를 깐 뒤 베개를 놓고 베개가푹 신해지도록 탁탁 두드렸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거기에 누웠다. 이제 된건가? 으음.. 헌데, 생각보다 바닥이... 시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벽 난로 앞이라 따뜻할 줄 알았는데, 오판이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건 열에 직접 닿은 몸 윗부분이고 몸 아랫부분은 얼음을 깔고 누운 것 같았 다. 게다가 이 딱딱함이라니... 현실세계에서도 침대를 쓴 지라 익숙지 않 아 몹시 불편했다. 하긴 맨바닥에 익숙해 있다고 해도 이런 잠자리는 누 구나 불편해 했을 것이다. 이런 딱딱하고 차갑고 뜨거운 잠자리는... 코트가 깔리지 않은 부분은 닿기만 해도 진저리가 쳐져 시나는 최대한으 로 몸을 웅크렸다. 후울쩍-- 콧물이 나왔다. 머리카락이 아직도 젖어 있 는데, 이렇게 찬 기운을 쐬니 감기가 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왠지 무척 이나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흑흑.. 아이, 추워....] 그렇게 침묵 속에서 10분 여가 지났다. 시나가 내일 아침 시체로 발견된 다면 사인은 동사(凍死)와, 분신(焚身: 몸을 불태움)일 것이다. 몸 반은 너 무 차갑고, 몸 반은 너무 뜨거웠다. 시나는 몸을 고루 뎁히기 위해 10분동 안 잠도 못 자고 너댓번은 몸을 뒤집었다 바로 세웠다 하고 있었다. [흑흑... 이러다, 잠은 언제 자지..?] 시나가 또 한 번 몸을 뒤척이는데 갑자기 드래마가 화난 듯 소리를 쳤다. “시나마! 사람 짜증나게 하지 말고 빨리 침대에 올라 와서 자-!!” 시나는 그의 말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시시 일어났다. “하, 하지만...” 드래마도 이불을 제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는 짜증이 가득한 눈빛으 로 시나를 쏘아보았다. “미안하다며!!!” “네에?” “내가 널 덮칠거란 웃기지도 않은 상상을 한 게 미안하다고 했으니 그럼 그 증거를 보여봐! 이 침대에 올라와서 자라고!!” “하, 하지만...” 계속 그 ‘하지만’을 연발하는데 드래마가 벌떡 일어나, 시나 앞으로 와 딱 섰다. 그러더니 시나를 번쩍 안아 들어 침대에다 내 팽겨쳐 버렸다. “으악-!!!” 침대에 거꾸로 처박혀 시나는 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제기랄!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어!!! 그 중에 너 같은 뼈밖에 없는 여자 애는 발 밑에 꿇어 엎드려 빌어도 안 덮쳐!! 도대체 이러면서 밤을 새자 는 얘기야 뭐야?” 그리고 그는 씩씩거리며 와 한 쪽 침대에 누웠다. “제기랄! 피곤하다고 한 주제에, 이게 무슨 웃기는 짓이람!! 이럴 줄 알 았으면 왕창 싸운 부부라고 하고 방 두 개를 빌리는 건데!!! 에잇!!” 드래마는 램프의 불을 꺼버렸다. 벽난로 불 빛 외엔 아무 것도 없어 깜깜 한 가운데 시나는 아픈 목을 주무르며 툴툴댔다. [쳇! 하지만 생판 남인 사람들이 한 침대를 쓴다는 게 말이 되냐구!! 쳇! 뭐 나 같은 여자 애가 발 밑에 엎드려 빌어도 안 덮친다구?! 쳇 누가 빌 기나 한댔나?!! 쳇!! 너무하잖아! 쳇!! 아까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거 다아 취소다!!] 하지만 사실 올라와 자라고 해서 고마운 시나였다. 벽난로 앞은 감히 대 지도 못할 정도로 침대 위는 푹신하고 따뜻했다. 아까 주인이 불냄비로 이불 속을 고루 뎁히는 것을 보았다. 그 열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사 람의 체온(드래마)까지 있어 따뜻했다. 뭐, 침대가 꽤 넓은 편이니까 모서 리에 웅크리고 자면 드래마와 몸이 닿지 않고 잘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체.. 드래마는 정말 너무해... 쿨...]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58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5-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5 00:16 읽음:2764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5- <제 17막. 마우르코트 일루테오나에서 있었던 일I (2)> 좀 추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눈을 뜬 건 아침이었다. 침대에는 시 나 혼자였다. 시나는 부스스 일어났다. 벽난로를 보니 불이 거의 꺼져 있 었다. [웅? 드래마는 어디 간 거지? 벌써 일어났나?] 눈을 비비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드래마가 들어왔다. 들어와서 문을 잠 근 그는 후드를 벗었다. 머리카락이 좀 젖어 있는 걸로 봐서 세수를 하고 온 것 같았다. “일어났으면 너도 빨리 가서 세수하고 와. 오늘은 예배를 드려야 하니 까.” “예, 예배요?” “응. 엘의 날이니까.” [헤에? 예배라구?] 현실세계에서도 가끔가다 한 번씩 교회에 갔던 시나였다. [여기에도 그런 게 있구나. 엘에게는 어떤 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걸까? 헤에. 신기하다.] 시나는 그 궁금증을 약 3시간 뒤 풀 수 있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교회(?)-드래마는‘카할'이라고 했다.-의 채색된 스테인 드글라스에서는 울긋불긋한 빛이 비춰 들어오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일주일 남짓만에) 보는 유리라 가슴이 뭉클할 지경이었다. ‘카할‘은 회색의 돌로 지은 석조 건물이었는데 2층까지도 사람들이 빽 빽이 들어차 있었다. 시나와 드래마는 2층 구석에 앉아 있었다. 여행자와 이방인을 위해 마련한자리였다. 시나 앞줄에는 여자들이 죽 앉아 있었다. 그 다음 줄에는 어린아이들이 죽 앉아 있었는데 드래마의 말로는 2층은 극빈자나 미망인, 고아들, 여행자들이 앉는 자리라고 설명해주었다. 아래층에는 마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들 예의 바르게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관주인이 저쪽에 보였다. 맨 앞쪽 강단엔 날개 달린 사람(천 사?)을 뚜껑 위에 조각한 네모난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 양쪽으로 사제처 럼 보이는 네 명의 사람들이 은색의 후드를 입고 손에는 두루마리를 들고 늘어서 있었다. 건물 정면에도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 사제들 머 리 위로는 형형색색의 빛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벽 양쪽에는 사제처럼 후드를 입은 사람들이 각각 30명씩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은색이 아닌 흰색의 후드를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볍게 웅성거 리고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그때 누군가가 능숙한 목소 리로 소리쳤다. “우리 마을의 영주님이신 하온 하네루트님과 그의 부인 하온 하슈리님, 그리고 영식(令息)이신 하온 하테스님, 영애(令愛)이신 하온 하리카님이 들어오십니다. 모두 기립-!”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시나도 따라서 일어섰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 이 노래를 불렀다. 맑고 청아한 음성들로 아름다왔다.‘거룩하신 엘에게 축복 받으실 지어다. 하바티온의 영광이여-’ 뭐 이런 가사의 노래였는데 성가인 듯도 했다. 노래가 들리는 가운데 통로 가운데로 네 명의 사람들이 걸어왔다. 상당히 화려하게 입고 있었는데 그들은 맨 앞자리의 역시 화려하게 치장된 의자 쪽으로 갔다. 거기서 네 명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중에 나이 들어 보이 는 한 남자가 잘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엘의 은총이 엘의 날에 너희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노라-!” 사람들은 '역시 또한 엘의 은총이 영주님과 영주님의 가족에게 함께 하시 기를-!’이라고 입을 모아 외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예배가 시작됐 는데 은색의 후드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 씩 나와 들고있는 두루마리를 차 례로 읽었다. <브레쉬트·바라·엘·로힘·에트·하쉬마임·붸에트·하아레츠- 세계가 창조되었을 때는 아직 하나였더라- 최초의 붉은 흙과 그것의 뼈는 아름 답고 완전했다. 새벽 별이, 배와 눈과 마음을 가지고 인류를 가르쳤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 우리가 범죄 했을 때 세계는 죽음으로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아래와 위가 섞이고 인간들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 거룩한 엘 께서 결정하셨다. '세계를 나누리라- 때가 될 때까지. 11번의 내 이름이 거론 될 때까지- 마지막 남은 하나의 이름의 날- 그때 나의 권능으로 세 계를 회복시키겠다’ 그리고 그의 말씀대로 이루어 졌다-> 다음 사제가 나와서 두루마리를 읽었다. <세계여- 12개의 세계로다- 영원할 지어다 엘의 권능이여- 그 안에서 살 아 숨쉬는 모든 피조물들이 안전히 거하도다- 계급이여- 6개의 계급이로 다-영원할 지어다 엘의 질서여- 그 안에서 우리 인간들이 안전히 거하도 다-> 시나는 흥미롭게 들었다. 이것도 이 세계의 문화(?)라면 문화였다. <엘의 자식들이여 일어나라- 저 이교도(異敎徒), 우리의 적, 게엔나 (Geenna)의 주(主), 그 새벽별과 그 아들들을 무찌르라- 그것이 우리의 사명-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 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을 것이다- 자비로우신 엘의 권능아래-> [우, 이는 이대로 갚는데 뭐가 자비하다는 거지? 묘하구만..] 마지막 사제가 나와서 읽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난 그 때에, 바로 그 때에- 나는 영원에서 시간으로 돌 아갈 것이다- 나는 시간에서 영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의 이름과 함 께.> 카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옆에 앉은 드래마도 그렇게 말했는데 시나는 뭐가 뭔지 몰라 그냥 엉거주 춤하게 서서 입만 뻐끔거렸다. 사람들이 다시 앉자 한 사제가 나와 이야 기했다. “엘의 아들과 딸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뒤로는 길게 이어지는 설교 시간이었는데 좀 지루했다. “게엔나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게엔나의 아들들이라는 것이 무엇이 겠습니까? 게엔나란 바로 저 저주받을 환계(幻界)를 가리키며 게엔나의 아들들이란 몬스터들을 말함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동의하는 표정으로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시나는 옆자리에 앉 은 드래마를 보았다. 드래마도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듣고 있었다. 하지 만 시나는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잘 들어보려 했지만 이해 도안가는 딱딱한 어투의 말들과 전문용어(?)는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엘의 4대 황금률(黃金律)이 우리에게 명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지루한 시나는 딴 데를 보고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음- 저 뒤에 서 있는 3명의 사제들 다리 아프겠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앉았지? 어? 저 여관아저씨 왜 저렇게 인사를 열심히 하지? 침까지 질질 흘리고. 크! 그럴 줄 알았다. 옆구리 되게 아프겠네.] 옆에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옆구리를 찍힌 여관주인은 깜짝 놀라 주 위를 두리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킥킥.. 저렇게 두리번거리면 자기가 졸았다는 거 다 나타내는 거잖아. 저 아저씨도 참, 되게 재밌네.. 후훗.. 음.. 보자.. 그리고 저 하바티온 뒤에 앉 아 있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는 입구에 앉아 있던 그 할아버지 아냐? 흐 응.. 꽤 열심히 들으신다. 헤에? 저 귀족 아가씨는 통통한 것이 귀엽게 생 겼다. 바지를 입고 있는데도 되게 여자다와 보이는 걸.... 귀족 부인도 그 렇구...] 넋을 잃고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사제가 드디어 말 을 마쳤다. “자, 오늘은 이것으로 설교를 마칩니다. 기도 드리고 끝냅시다.”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시나도 눈을 감았다. “엘이시여, 우리를 12개 세계에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저 더 러운 몬스터가 아닌 것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우리의 계급인 것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와 우리의 아들, 딸들이 깨끗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클로니아에 축복을, 클로니아 세스틴님에게 축복을, 하온 하네루트님께 축 복을....” 축복을.. 축복을... 셀 수도 없는 축복이라는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나는 하마터면 졸 뻔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의식이 몽롱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엘에게로 모든 영광은 돌아갈지어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졸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드래마가 째려보자 시나는 허겁지겁 일어섰다. 사람들이 입을 맞추어 말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나는 이번에도 역시 입만 뻐끔거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앉자 시나도 앉 았다. [앉았다 일어섰다. 정신이 없네.] 설교를 했던 사제가 뒤로 물러나 서자 60명의 성가대(?)가 성가를 불렀 다. <엘께서 로이카라의 날개로서 엘야시온을 다스린다- 그들의 날개는 모든 스피릿의 이름, 만만 천사의 이름이도다- 휠마즈의 대지여, 그대, 엘의 의지를 실현하는 밭이 되거라- 모든 역사를 보는 자여- 위테리드여 엘야시온의 젖줄이 되는 그대의 푸른색 호수를 찬미하노라- 엘께서 그대를 정결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칼리안, 그대의 광휘는 엘의 얼굴에서 비추는 빛과도 같아서-그대의 영광 이 기쁨 안에서 뛰노는 힘이 되리라- 로트라여 그대의 광대함을 찬미하노라- 무수한 생명이 그대 안에서 잉태 되어 나오나니- 그대, 엘의 눈물이여- 네르세바, 그대는 생명나무와도 같이 아름다워, 만만 나무들의 왕이여-엘 의 이름을 새기는 자여- 클로니아의 얼음 기둥이여 그대- 엘의 증거자가 되라- 그대는 엘의 이름 의 증거자가 되리라- 마이레스여 온갖 풍요의 왕이여, 천둥의 수호자- 그대, 엘의 분노를 발하 는 자가 되리라- 뷰겐트, 불꽃의 왕이여, 모든 더러움을 불사르는 엘의 공의를 실현하는 이 름이 되리라- 베르노크, 그대의 지혜는 엘의 지혜와 같아, 찬미 받아 마땅 하도다-엘께 서 그 지혜로 꿈을 꾸시도다- 카이러스의 바람은 엘의 시간, 이 세계, 처음부터 끝날까지 그대가 존재하 였고, 한 순간도 그치지 않았도다.-- 힐라토 우리에게 영원을 가져오는 이여- 그대의 휴식이 어찌나 달콤한지, 왕의 삶보다 낫고, 황금의 생명보다 낫구나- 이렇게, 우리들, 나실인의 서약은 12개의 세 개가 파하는 날까지 영원하리 라-엘 스스로 일어서는 그날까지- 엘께서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는 그날 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조의 이상한 노래였다. 하지만 마을의 행사에서 춤을 출 때 들었던 음악처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 었다. ‘춤 음악’ 보단 정중하고 의젓한 음악이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동 일한 것이 흐르고 있었다. [햐- 멋지다!] 시나는 이 성가가 마음에 들었다. 예배는 좀 지루했지만 성가는 최고였다. 성가가 끝나자 사제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어? 왜 또 나오지? 설마 또 설교를 하는 건 아니겠지?] 시나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사제는 커다란 목소리로 말 했다. “오늘은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다행히 설교는 아닌 것 같았다. 사제는 이제 손을 펴서 누군가를 가리키 며 말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 카할에 순례자 한 분이 찾아 오셨습니다. 여러분께 이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오시아? 이리로 나오십시오.” 왼 쪽 줄 맨 앞자리에 있던 푸른색의 후드를 입은 사람이 일어나 강단으 로 나갔다. “와아- 순례자래! 정말 오랜만의 순례자잖아? 신기한데?” “어제 밤 늦게 도착해서 영주님 댁에서 묵으셨다더군...” “난 아까 저분이 영주님과 마차로 도착하는 걸 봤어.”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푸른 색 후드의 사람은 강단 앞 사제 옆 에 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천천히 카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와아- 엄청나게 파란 눈이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파란 눈이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옅은 푸른색 후드와 멋지게 어울리는 눈이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 2층에 있는 사람들을 죽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그의 눈이 시나와 딱 마주쳤다. [헉!] 시나는 깜짝 놀랐다. 괜히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순례자는 무심한 미소 띤 얼굴로 눈길을 시나를 지나쳐 옆으로 죽 돌리고 있었다. [와아- 놀랐다!... ....응? 근데 내가 왜 놀랐지?] 시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드래마가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진짜군. 디바인 파워(Divine Power)야. 사람의 내면을 꿰뚫 어보는 성스러운 힘... 하긴 그러니까 순례자가 될 수 있었겠지..” [?] 드래마의 말투로 보아 뭔가 훌륭한 사람인가보다 하는데 순례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전 클로니아 북부의 엔나시라 일루테오나 카할 에 속한 이오시아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따뜻 한 호의에도 감사드리고요.” 평범한 목소리에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단지 그의 눈빛만이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사제가 말했다. “이오시아님께 마침 기도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순례자는 씨익 웃었다. “그럼요. 영광입니다.” [으- 또?] 시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축복을... 축복을... 하는 말은 너무 지겨웠던 것이다. “기도합시다!” 순례자가 기운차게 말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시나는 이미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눈만 감았다. 헤이구- 이 세계에 온 뒤로 편할 날 이 없는 시나였다. 이오시아는 또렷하고 맑은 음성으로 또박또박 기도했 다. “엘님,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엘 에게로 모든 영광은 돌아갈지어다.” “...?” “....?”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눈을 뜨고 순례자를 보았다. 너 무 기도가 짧았던 것이다. 순례자씩이나 하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덜 배운 사람처럼 기도를 할까? 순례자 옆에 서 있던 사제도 당황한 표정으 로 순례자를 보았다. 하지만 순례자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다시 한 번 더 크게 말했다. “...그리하여 엘에게로 모든 영광은 돌아갈지어다!” 사람들은 그제야 엉거주춤 일어섰다. 이제 익숙해진 시나도 알아서 일어 섰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말도 맞출 수 있었다. [헤헤.. 저 순례자 괜찮은 사람이네. 사람들이 지루해 하는 걸 눈치챘나 보지?] 타이밍을 맞추고 말까지 따라해 기분이 좋은 시나였다. 사제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흠! 에.. 또 그럼... 이, 이오시아님? 기도에 대해서 감사드립니 다.” “네, 그럼 이만.” 이오시아는 빙긋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사제는 좀 벙찐 눈 으로 그를 보았지만 다시 사제로서의 위엄을 찾았다. “에, 에! 크흡! 그럼 이것으로 예배는 끝났습니다.” [휴- 드디어 끝났군.] 시나는 한 숨 돌렸다.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순례자와 함께 앞자 리에 앉아 있던 초록색 후드의 소년이 나왔다. “광고입니다! 이 시간이 끝난 후엔 '아가트' 연구시간이 있으니 원하시는 분은 남아서 듣고 가시고요.. 에 또... 그리고, 오늘은 인딜 마노테오나로 '소순례'를 떠날 예정이니 거기에 참가하고 싶으신 분들은 남아주세요. 음, 그러면, 이제 영주님께서 축복 말씀과 전하는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오른쪽 맨 앞자리에 앉은 귀족남자가 일어섰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는 것 을 멈추고 그에게 집중했다. 영주는 강단 앞에 서서 사람들을 보며 말했 다. “본인은 여러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게 되어 가슴이 벅차 오름을 억누를 길이 없다. 이 소식은 왕명으로, 어제 이오시아님에 의해-” 영주는 이오시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오시아도 답례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게도 내게 전해졌다. 그러므로 왕명에 의해 이제 너희들에게 알 린다. 나의 백성들이여-!” 영주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자신이 이제부터 말할 내용에 몹시 감격하 고있는 듯 했다. “기뻐하라-! 우리 클로니아의 존경받으실 클로니아 세스틴님께서 드디어 오는 하누카의 날에 성인식을 치루노라!”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크, 클로니아 세스틴님이?!!” “이럴수가-! 와아---!!!!” “와아-!!” 사람들은 흥분하여 만세를 부르고 난리를 쳤다. 뒤에 서 있는 네 명의 사 제들과 벽에 붙어있던 60명의 성가대들도 서로 손을 잡고 기뻐하고 있었 다. [뭐, 뭐야? 클로니아 세스틴이 누군데?] 시나는 어리둥절했다. 다들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시나만 모르는 것 같 아 답답했다. 고개를 돌려 드래마를 보니 그는 씁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 자기 말에 흥분하는 사람들을 본 영주는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나의 백성들이여-!” 흥분하여 떠들던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클로니아 세스틴님의 부인이 되실 힐라토의 스온 아스테린님을 위하여! 세계혼을 위하여 이곳 클로니아에 계신 힐라토의 왕족들과 힐라토 레이서 스님을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엘야시온님! 영광스러운 엘의 대제사장 청의 엘야시온, 가디엘님을 위하여-!!!! 이곳 마우르코트의 영주 인 나, 곧 하온 하네루트는 클로니아 세스틴님의 명을 대신 받들어 이제 부터 2달간을 대축제일로 선포하노라!! 왕이여 만세수 하시옵소서--!!” 와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으로 카할은 떠나갈 듯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서로 껴안고 좋아했다. 영문을 모르는 시나는 앞과 뒤에서 사람들이 만세를 부 르며 펄쩍펄쩍 뛰자 혼자만 무덤덤 하게 있기도 좀 민망해서, 그냥 하하 웃으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클로니아 세스틴이란 이 세 계의 왕인가 보다. 클로니아가 이 세계의 이름이라고 했으니까, 세계의 이 름을 성(?)으로 쓸 정도면 왕정도 되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 하나 보지? 라고 시나는 추측했다. 사람들이 날뛰며 좋아하는데, 호령하는 사람이 말했다. “하온 하네루트님과 그의 부인 하온 하슈리님, 그리고 영식(令息)이신 하 온 하테스님, 영애(令愛)이신 하온 하리카님이 나가십니다. 모두 기립-!"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하바티온들은 그 사이를 지나갔다. 그 뒤 를 은색 후드의 사제들과 푸른색 후드의 순례자, 하얀색 후드의 성가대가 줄줄이 따라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그제야 사람들도 와글와글 떠들 며 카할 밖으로 나갔다. 드래마가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 시나. 예배는 끝났어.” “어? 네.” 이상하게도 드래마의 표정은 다른 사람에 비해 담담했다. 묘한 일이었다.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하고 있나? 시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설마... 놀라 는 표정 보이는 게 싫어서 그럴 리는 없고... 이상한데? 그때 누군가 뒤에 서 몸을 밀쳤다. 너무 복잡했다. 1층에서 나온 사람들과 2층에서 나온 사 람들이 섞여 정신이 없었다. 시나와 드래마는 2층에 있었기 때문에 계단 있는 데가 사람들에게 막혀 나가려면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시나는 드래마 옆에 붙어 서서 그에게 물었다. “저, 드랫? 당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별로 안 놀라시네요?” 드래마는 피식 웃었다. “...나도 놀랐어.” [근데 무슨 놀란 표정이 저래? 저게 놀란 표정이면 우울한 표정은 도대체 어떻게 지어야 하는 거야?] 드래마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는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시나는 더 이상 대답을 안 하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보았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카할의 넓다란 아치형 입 구는 북적댔다. 그 앞에 서 있는 사제들은 하바티온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하바티온들은 초록색 바탕에 금으로 수를 놓은 화려한 마차를 타고 있었다. 떠나려는 것 같았다. 그 주위엔 초록색으로 염색한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10 명 정도 말을 타고 호위하고 있었다. 마차가 떠나고 입구의 사람들이 빠 져나가자 시나와 드래마도 입구로 나왔다. 시나와 드래마를 본 한 사제가 아는 척하며 말을 걸었다. “당신들이 마우르코트의 휴식처에 묵고 계신 아티스트와 그 부인되십니 까?” “네.” 드래마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시나는 좀 찔렸다. [사제님한테 거짓말하다니... 음.. 왠지...껄끄럽구만] 그런 시나의 미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제는 기분좋게 웃었다. “이거, 이거, 이번 엘의 날은 좋은 일도 많군요. 클로니아님의 성인식소 식에다 순례자, 아티스트 여행자까지 우리 마을에 들려주시다니.. 그런데 1층 앞자리에 앉으시지 왜 2층에 앉으셨습니까?” 드래마가 대답했다. “앞자리는 앉을 데도 없더군요. 괜히 앞자리로 나갔다가 뒤로 쫓겨나면 어떡합니까? 차라리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앞날의 창피를 면하는 지혜 아니겠습니까?” 사제가 하하하 웃었다. “참 겸손한 아티스트님이시군요. 원 참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티스트 이신데요? 하하.. 어쨌든 이 마우르코트에서 편안히 머물다가 가시길 바랍 니다. 부인도요.” “네 감사합니다.” 드래마는 꾸벅 인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시나는 얼굴이 좀 붉어져서 인사했다. “가자. 시나.” “네에.” 둘은 걸어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걸으면서 보니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 아서 거리는 한적했다. 여관을 들어서는데 벌써 돌아와 있던 주인이 반갑 게 맞았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점심들을 드셔야죠? 오늘은 엘의 날이니 모든 것 이 공짜입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드래마는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핫! 그럼 클로니아님의 결혼을 축하하여 마련한 우리 여관의 자랑 바베큐 특정식을 갖다드리지요! 오늘은 그게 제일 잡수실만 할겁니다. 앉 으세요!” “네.” 드래마는 주인이 권하는 대로 하나 남은 빈 테이블에 앉았다. 다른 테이 블엔 벌써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대부분 여행자인 것 같았다. 주인은 부 엌 쪽으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갔다. “여보-! 특정식 12인분 만들자구-!” 의자에 앉은 시나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와아- 정말 다 공짜예요?” “응. 엘의 날 장사하는 건 금지된 일이니까.” “헤에? 그럼 손해잖아요?” “손해는 무슨... 그러니까 엘의 날 전에는 방 값이 두 배라고. 몰랐어? 내 일 나갈 때 만만치 않은 돈을 치르게 되겠지.” “그, 그래요?” “응. 그러니까 엘의 날을 끼어서 여행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쳇, 네가 말만 탈 줄 알았으면, 어제 안에 제일로트로 갈 수 있었는데.” 드래마는 부루퉁하게 말했다. 시나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그게 내 탓만은 아니잖아요... 쳇!” 드래마는 그녀의 불만 섞인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음. 하긴 그렇긴 하지. 너도 나만큼 너 자신을 여행시키는 걸 싫어했 지.” “?” 좀 복잡하고도 난해한 대답이었는데, 드래마가 조금 미소짓고 있어서 그 제야 그가 농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웃어야 할까? “하하하...” 시나는 농담한 사람의 기분을 생각해서 웃어주었다. 하지만 드래마는 시 나가 애써 웃은 것도 무시하고 다시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농담한 거 아닌가? 시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에잇! 이래서 꿀꿀한 남자하고는 같이 있는 게 아니라니.... 그때 드래마가 말했다. “시나, 책을 읽고 싶다고 했지? 저녁 때 안식일이 끝나서 서점이 문을 열면 그때 책을 사주지.” “?” 책을 사준다니 기쁘긴 했지만 이상했다. “저녁 때 안식일이 끝나요? 보통 하루종일 안식일로 치는 거 아니에 요?” 시나의 세계에서도 그랬던 것이다. 드래마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율법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라고 돼있거든. 그 뜻은 칠 일 중 하루, 즉 엘의 날엔 일 할 수 있는 시간을 엘에게 바치 고 푹 쉬라는 뜻인데... 일주일 내내 일하다간 지쳐서 일찌감치 엘에게로 돌아가게 되니까... 요즘은 율법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해가 지면 슬슬 문을 여는 상점도 많아졌어. 시대가 발전하니, 램프의 성능이 좋아지고 그 건 꽤 밝은 빛을 제공하니까 밤에도 활동하게 된거지. 옛날이라면, 해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푹 쉬고, 밤에도 쉴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음. 뭐, 그 거야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고... 어쨌든 이따가 서점의 문이 열릴 거란 건 거의 확실해.” [헤에--] 시나는 재밌었다. 여기도‘칠 일’중 하루를 쉰다니... 하도 흥미로와 시나 는 한 번 재미 삼아 물어보았다. “드래.. 아니, 드랫? 엘님도 세상을 육 일만에 창조하셨어요? 그래서 일 주일 중에 하루인 거예요?” 드래마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떻게 그것을... 너... 브레쉬트를 본 적이 있는 건가..?!” 시나는 인상을 썼다. “브레쉬트가 뭔데요?” 드래마는 시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놀랐던 것을 진정시켰다. 시나를 성 직자로 보내는 것도 상당히 보람있는 일일 것 같다는 기대가 무너졌다. “...아니군...” 드래마는 자신의 생각에 피식 웃었다. 하긴.. 마노테에게 브레쉬트를 읽을 기회가 어디 있었을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훗.. 확실한 것 같아. 시나.” 오늘따라 드래마가 잘 웃네? 아까는 우울해 보이더니, 이상하네? 라고 생 각하던 시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뭐가요?” “네가, 베르노크에서 거울을 만들며 성직자의 시중을 들던 마노테라는 것 말이야. 거기서 주워 들었나 보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인데?” 아.. 지쳤다. 시나는 그냥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봐요... 이건, 교회에 안 다녀도 우리 세계에선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구요. 당신 세 계와 우리 세계의 '일반인'은 상식의 정도가 좀 틀리네요. 하하.. 아, 책을 빨리 읽고 정보를 얻어야 해... 시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확실한 거죠?! 드래... 드랫?!” “뭐가?” “책 사준다는 거요! 정말 사줘야 해요?!” 드래마는 눈을 찌푸렸다. “......난, 내가 꺼낸 말은 잘 지키는 타입이야.” 드래마는 한 번 정도 돌려서 말하길 좋아하는 타입일까. 그냥 ‘응-’이 라고 말하면 될 것을... 어쨌든 사준다는 말인 것 같아 시나는 기분이 무 진장 좋아졌다. 하하하.. 그리고 ‘클로니아님의 결혼식을 축하한 마우르 코트의 휴식처의 자랑, 바베큐 특정식’도 무진장 맛있어 오랜만에 행복 을 느낀 시나였다. (계속)==================================================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안에 74편을 모두 올리리라 활활 불타는 엔...--;;;>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88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6-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7 00:23 읽음:2765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6- <제 18막. 마우르코트 일루테오나에서 생긴 일Ⅱ(1)> [호오-! 와-! 이야--! 굉장한데--!] 시나는 드래마가 검 연습을 하는 걸 보며 속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점심 을 먹은 후 조금 쉰 드래마는 목검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었다. 어디 가냐 고 하니까 검술연습을 하러 간다기에 이렇게 쭐래쭐래 따라와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뭐 어차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하니 그를 쫓아 왔는데 드 래마도 시나가 쫓아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제지를 가하진 않았다. 계속 침대 위에 앉아 지루한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불쌍하게 본 것도 같았다. 그런데 심심해서 쫓아와 하는 구경치곤 기대이상의 기쁨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드래마가 검 연습하는 것은 정말 볼 만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 을의 뒷산, 공터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시나는 다시 한 번 더 목검에서도 검광이 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이예티의 후드를 벗고 있어서 하얀 검광과 함께 은발이 날리는 모습도 멋졌다. 꽤 추운 날 씨였지만 땀을 흘리는 거로 봐서 그다지 추워 보이진 않는다. 하얀 입김 을 쏟아내고 있긴 하지만 검술연습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 나로서도 외투 때문인지 별로 춥지 않았다. 시나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드래마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드래마는 흡사 땅위에 어떤 보이지 않은 도형이라도 있는 것처럼 몸을 그대로 움직 였다. 약, 50미터쯤 그 보이지 않는 도형을 쭉 따라간 드래마는 숨을 고르 게 쉬며 그대로 돌아서서 다시 새로운 도형을 밟는다. 몸을 돌릴 때마다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작아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제 1식, 제 2식,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드래마가 칼을 4번 정도 연속으로 휙휙 돌리자(너무 빨 라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 정도로 보였다.) 시나는 마침내 손뼉을 짝짝 짝 치며 칭찬을 해주었다. 구경하는데 이 정도는 장단을 맞춰 줘야지? “와아- 드래마!!! 너무 재밌어 보여요!!! 멋져요!!!” 드래마는 시나의 그 응원을 듣고 한순간 칼을 놓칠 뻔했다. 뭐? 그는 눈 을 찌푸렸다. 다음 초식으로 나아가던 그는 시나의 말이 몹시나 신경이 쓰여 검술에 집중하는 게 조금 전처럼 안 됐다. 재미? 드래마는 검을 크 게 휘둘러 큰 검광을 나게 하며 생각했다. 시나의 말 때문에 드래마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졌다. 드래마는 칼을 올려쳤다. 으흠? 재미라고 했겠다...? 이 말을 어디선가 예전에 들었다. 자신이 검술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재밌 겠다고 외친 웃기는 여자 애는... 누구지? 드래마는 골똘히 생각하며 시나 를 흘끗 보았다. 시나는 4-5미터정도 떨어진 돌무더기 위에 앉아 눈을 빛 내며 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 분명하다. 예전에 이 비슷한 일이 있었 던 것 같다. ‘루드랫, 드랫--!! 너무 재밌겠어!! 나도 가르쳐줘-!!! 싫어, 싫다구-!! 네 가 안 가르쳐주면 아빠한테 이를 거야?!!” 쨍알거리는 목소리가 심연의 기억 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누구지? 진한초 록색 머리칼에 연두색의 눈빛... 13살의 꼬마... ...계집애....? 그래..! 잠들어 있던 몇 십 년 전의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루온 루사벨라..? 그래, 그 렇군. 그녀다! 루이티온 계급의 그녀밖에 없었다. 기억이 하나 살아났군. 비록 아무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하게 낡고 버석거리는 오래된 풍 경화 같은 기억이지만 드래마는 미소지었다. 디트마가 들었으면 되게 좋 아했겠군. 그는 지금까지 루온 루사벨라와의 사건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 했던 것이다. 갑자기 연습할 의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한 번 정도 더 12식을 되풀 이할 생각이었는데 관두기로 했다. 기억이 하나 돌아와 기쁘기도 한데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다. 루온 루사벨라는 그렇게 졸라대다 결 국자신한테 검술을 배웠던 것 같다. 웃고.. 싸우고.. 잘했다고, 칭찬했었다. 시나는 드래마가 검술연습을 멈춘걸 보고 좀 실망했다. 이제 고만 하는 건가? 더 한다면 좋을 텐데? 구경거리가 없어져 섭섭했다. 그가 말했다. “시나마?” “네?” 그는 이제 뭔가 수상쩍은 - 그러니까 웃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인데, 드래 마가 그렇게 자주 웃을 리 없다는 냉철한 판단아래 - 몹시 수상쩍은 표 정으로 시나가 앉아 있는 돌무더기 앞으로 와서 딱 섰다. 그리고 그는 팔 짱을 끼더니 빙긋 웃었다. 그의 미소를 보던 시나는 진짜 수상쩍은 걸..이 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방금 재미라고 했지?” 시나는 인상을 썼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한 게 있나? 왜 이렇게 드래마 가 이상한 표정이지? “네. 왜요? ..재밌지 않았어요? 드래마? 너무 유연해 보여서 재밌어 보였 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잘 하는 거 하면 재밌어 하잖아요?” 뭐? 그게 그런 의미였단 말이야? ‘내가’ 검술연습을 재밌어 하는 걸로 보였단 의미? 별 희한한 화법 다 보겠군. 드래마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어쨌든 시나마의 그 희한한 화법 때문에 떠올리기 힘든 기억을 하나 떠올 릴 수 있었다. 예전의 루온 루사벨라는,‘너무 재밌어 보이니 나도 하고 싶다--’라고 뜻으로 말했었지? 드래마는 시나의 말도 그렇게 생각했고, 기억이 살아나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기억대로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또 누가 아는가? 여기서 검술연습을 해 시나마가 몸의 균형감각을 조금이나마 기를 수 있다면, 말도 잘 탈 수 있을지? 드 래마는 고개를 끄떡였다. [음.. 시나마가 한 말의 의미는 그렇다 치고 ‘말을 잘 탈 수 있을지도 모 른다’라는 얘기는 상당히 괜찮게 들려.] 그래서 드래마는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았어. 시나마. 일어서 봐. 간단한 초식을 가르쳐 주지.” 뭐? 시나는 그의 갑작스런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이 지금 뭐 라고 하는 거야? 자기 검술 연습하다가 갑자기 난 왜 끌어들여? 하지만 그는 시나의 벙찐 표정에도 한결같은 어투로 진지하게 말했다. “검술을 가르쳐 줄께. 재밌어 보인다는 말, 난 배우고 싶다는 뜻으로 받 아 들였거든. 네 의도야 어찌됐든, 난 네 말을 듣고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 각이 들었어. 음, 저런..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불평하고 싶으면 검술 연 습하는데 쓸데없는 소리한 너 자신에게나 해.” 이, 이건 말도 안돼-!!! 완전한 억지였다. 시나는 체육도, 무용도, 춤도, 다 싫었다. 그리고 재미도 없었다. 그건 그녀가 그 일들을 잘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나는 ‘몸을 움직여서 하는 일’은 다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 기에 자신은 ‘운동신경’의 희미한 흔적.. 내지는 화석만을 지니고 사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몸을 움직이는' 류의 검술도 잘 맞지 않을게 뻔했다. 헌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시나의 얼굴은 옆에 쌓인 눈처 럼 하얗게 질렸다. 그를 설득하자! 내가 검술연습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 논리적인 이유를 찾아낸 시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소리쳤다. “전 여잔데, 무슨 검술을 배워요!!” ...시나 세계의 여성운동가들이 들었으면 심히 통탄하며 울분을 삼키며 이 말도 안돼는 말에 98페이지 짜리 논문으로 반박을 하며, 논리적으로 시나 를 배척하고 따져들었을 그런 심각한 문제성 있는 발언이었지만, 뭐, 여긴 시나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물론 여자라는 것 때문에 무슨 일을 못 한다 고 하는 건 시나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 라 이 순간만은 싫어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인생이란 가끔 싫어하는 일 도 억지로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라고 시나는 자못 순교자(?)같은 마 음가짐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그래. 이거야말로 이 세계에 어울리는 논리적인 이유지. 시나는 흐뭇했다. 하지만 시나가 자신의 양심을 팔아먹 으면서까지 한 논리적인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 드래마가 코웃음을 친 것 이다. “여자? 여자가 뭐 어쨌다고? 여자는 검술 배우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여인 루이티온이 들었으면 넌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시나마.” 으아아악---!!! 시나는 주먹을 꼭 쥐고 절규하고 말았다. 난 이세계가 정 말로 싫어---!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부분에 남녀평등이 실현돼 있는 거야!? 이 세계는?!!! “자, 일어서.” 시나는 울상을 지었다.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뭘 어떻게 가르쳐 준다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 다. 핑계거리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배가 아프다고 꾀병이라도 부릴 까 했는데, 속아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짓까지 해야하는 거지? 시나가 신세 한탄을 하며 투덜대는데, 드래마가 말했다. “이 검을 들어봐. 목검이니까 가벼울 거야.” 시나는 마지못해 그것을 들었다. 검은 그의 말대로 가벼웠다. 그리고 진한 갈색으로 반짝이며 날카로워 보였다. 뭔가가 걸려있다고 했으니, 손을 대 면 진짜 칼에다가 손을 댄 것처럼 스윽 베일 지도 모른다. “내리쳐 보겠어?” 한숨을 쉰 시나는 그의 말대로 목검을 내리쳤다. 그걸 보던 드래마는 고 개를 흔들었다. 역시 엉거주춤하고 엉성한 자세다. 예전에 같이 춤 출 때 도 느꼈지만 시나의 균형감각은 최악이었다. “시나마, 어떻게 그렇게 뻣뻣한 이상한 자세로 손목만 움직여서 내리칠 수 있지? 게다가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잖아? 재주도 좋군.” 드래마의 칭찬(?)에 시나는 또 투덜댔다. 그러니까 안 한다고 했잖아요!! “우선 몸의 자세부터 제대로 하는 게 낫겠군.” 드래마는 가까이 다가와 시나는 몸과 손을 잡아 교정해 주었다. 추운 날 씨로 손이 차가와 져 있었는데, 드래마의 손은 따뜻해서 손 시려운 게 나 아졌다. 어쨌든 꽤 진지한 모습이라 시나도 끝까지 투덜대는 게 미안해 졌다. 그래, 할 일도 없는데, 이런 거나 배우지 뭐.... 시나는 또 한 번 한 숨을 푸욱 쉬었다. 누가 또 알아? 검술의 달인이 돼서 현실세계로 돌아가 게 되면, 도장이라도 하나 차리 게 될지? 이런 생각으로 그가 지시해주는 대로 자세를 잡은 시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보다 엉덩이를 몸 쪽으 로 들이밀고 몸을 똑 바로 세워야 했다. 그리고.. 무릎은 더 낮게 구부리 고... 한 발을 가볍게 앞으로 내민다.... 오른손에 든 칼은 칼막이까지 바짝 다가들어 잡고, 왼 손으론 그 밑을 보조하듯, 손목이 구부러지지 않게, 팔 꿈치와 일직선이 되도록 잡고... 그대로 부드럽게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칼날이 앞으로 가도록 한다.... 턱은 약간 잡아당겨서 시선은 5미터 앞으 로, 등을 쭉 펴고... 과연, 그러고 있으니 온몸이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드 래마가 물러서며 말했다. “좋아. 그럼 그대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어깨를 사용해서 칼을 내리 치며 걸어봐. 아까 내가 하는 것 봐서 요령은 알겠지? 네가 아니라 발 밑 의 땅이 움직인다는 느낌으로....” 으흠, 그래? 시나는 그가 말한 그대로 했다. 걷는데 이렇게 신경 써보기는 처음이다. 음, 드래마처럼 유연하게.... 하나! “으아아악--!” “조심해--!!!” 시나는 한 발 내딛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앞에 있던 돌을 못 보고 움직이 다가 거기 걸렸던 것이다. 엎어지려고 하는데 드래마가 재빠르게 시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시나마! 애도 아니고 돌에 걸려 넘어지면 어떡해!” 시나는 그에게 떨어지면서 부루퉁하게 소리쳤다. “고개는 움직이지 말라면서요!!! 5미터 앞을 보는데 어떻게 발 밑에 있는 돌을 보란 말이에요!!!” 아이구!! 드래마는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5미터 앞에다 뒀으면, 5미터 안에 있는 사물은 기억에 새겨놔야 지!!넌 걸을 때 바로 발 앞만 보면서 걸어?! 자연스럽게, 자세를 흩트리지 말고 걸으란 이야기야!!” 윽! 정말이지.. 되게도 복잡하네!! 시나는 자신의 발 앞에 대충 뭐가 있는 지 기억해 놓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고정 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 둘! 음.. 이런 요령인가? 등이 당겼다. 시나는 드 래마를 보며 물었다. “어때요?” 드래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도 어딘가 이상하다. 하지만 아까 보단 훨씬 나았다. 이 연습은 몸의 자세를 교정하고 균형감각을 키워주는 연습 이다. “음... 괜찮아.. 시나마, 앞으로 이 연습을 아침마다... 시나마!!!!” “으악--!!!” 대답을 들으려고 고개를 돌린 채로 있다가 시나는 그만 앞의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시나는 그 와중에도 포즈를 유 지하느라 노력했다. 그래서 더 우스꽝스러웠지만 하여튼 시나가 가르친 대로 따르려 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눈물이 핑 돌고 눈앞이 번쩍번 쩍했다. “시나마-!! 괜찮아?” “윽..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눈앞이 캄캄하다고요!!!” 드래마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 이 여자앤 루온루 사벨라가 아니지. 평범한 마노테를 데리고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아침마다 이런 연습이나 하도록 시키 자. 이것은 시나에겐 다행이자 불행인 생각이었다. 더 이상 자신의 화석 같은 운동신경을 드래마에게 선보이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었고,(드래 마에게도 다행이다.) 현실세계로 돌아가 도장을 차리지 못하게 된 건 불 행한 일이었다. 자신이 시나에게 한꺼번에 다행과 불행을 선사한 것을 모 르는 드래마는 포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그래. 이젠 일어나. 어쨌든 요령은 대강 안 것 같으니까..” 시나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일어났다. 에잇--!!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거야! 조금 화가 난 시나는 무심코 검을 휘둘렀다. 위잉---!! 그때였다. 시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칼에서 하얀 검광이 났다. 드래마는 그것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의 목검은 힘의 균형을 잘 맞추지 않으면 저런 소리에다 저런 빛을 내지 않는다. 그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 로 말했다. “시나마?” 시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그 검 다시 한 번 더 휘둘러봐. 방금처럼.” “? 왜요? 이렇게요?” 휙--! 드래마는 눈을 찌푸렸다. “아니, 그렇게 말고. 아까처럼.” “어떻게요? 아까도 이렇게 휘둘렀는데요?” 휙- 휙- 휙---!! 시나는 연속으로 세 번 휘둘렀다. 으흠... 그래. 그냥 아침마다 균형 감각 키우는 연습이나 하게 하자. 드래마는 고개를 끄떡이며 생각했다. 아까는 떡갈나무 향해 돌팔매질했는데 도토리 맞춘 식으로 어쩌다 몸의 균형이 맞아 제대로 휘두른 거군. “됐어. 그만해 시나마. 아니군.” “?” 도대체 뭐가 아니란 걸까? 의아했는데, 드래마가 검을 달라는 듯 손을 내 밀었다. 검을 드래마에게 건네주는데 그가 말했다. “아침마다 내가 가르쳐 준대로 몸을 움직여. 시나마. 그러면 네 최악인 균형감각도 어느 정도 나아지겠지.” “어? 그래요? 정말 이것만하면 돼요? 검술연습이란 게 의외로 간단하네 요?” 검술연습이 ‘의외로’ 간단할 리가 없다. 그 이상의 초식이 무궁무진 한 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게 설명하는 게 귀찮았다. 드래마는 검을 천으로 조 심스럽게 감싸며 말했다. “간단이라.. 뭐, 계속해보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는 걸 알게될 거야. 몸 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어야 하는 거니까.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당황한 가 운데서 너처럼 일일이 생각하며 자세를 취하다간 포즈가 완성될 무렵 몬 스터 뱃속으로 들어가 있을걸. 게다가 완벽하게 익히기 전엔 오히려 불안 감이 느껴지는 자세기도 하구. 사실은 가장 싸우기 좋은 자센데...” 흐응... 그렇단 말인가? 시나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술 연습이라지 만 맨손 체조정도로 생각하고 아침마다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 다. 몸의 균형감각이 키워진다면야, 시나로서도 환영이었던 것이다. 후드 를 입으며 드래마가 말했다. “내려가자. 시나마.” “이제, 더 이상 연습은 안 해요?” “....재밌었나 보군? 더 하고 싶어?” 드래마가 웃으며 말했다. 시나는 얼굴을 구겼다. “드래마!! 제가 말한 건 드래마가 연습하는 거 말하는 거라구요!!” 드래마는 후드의 모자를 썼다. 그리고 땅 위에 떨어진 시나의 모자를 주 워서 툭툭 턴 뒤 그녀의 머리에 푹 눌러 씌워주었다. “곧 어두워 질거야. 그럼 뭐가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까 지금 내려가야 지.” 그 말에 시나는 하늘을 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해가 상당히 기울어 있었다. 뭐가 나타나는 건 시나로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으므로 시나도 내려가는 데 찬성하기로 했다. 드래마가 내려가자 시나는 그의 뒤를 쫓았 다. 그때 갑자기 낮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해가 지면 책을 사준다고 했었지? “드래마!! 기억하고 있어요? 서점 문 열면 책 사준다는 약속이요!” 비탈길을 내려가며 그는 말했다. “....난 기억하지 못할 약속은 안 하는 타입이야.” 확실하군. 시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드래마는 돌려서 말하길 좋아하는 타 입이야. “흐응... 이건 별로 쓸모가 없겠는데? 그럼, 저거는...? 푸앗---!” 먼지가 와수수 쏟아져 내렸다. 으, 콜록, 콜록.... 이 서점 주인은 청소도안 하고 사나... 드래마네 집 창고 이후로 이런 먼지는 처음 맛보는 군. 시나 는 기침을 하며 다른 먼지들을 안 건드리도록 조심스럽게 책들을 꺼내 살 폈다. 이 마을의 서점은 드래마의 말대로 어두워지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나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무척이나 실망하고 말았다. 서점에 간 다고 하더니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하여 드래마를 쳐다봤을 정도다. 이 세계의 서점은 시나가 보통으로 생각하는 ‘서점’의 모습이 아니었다. 가게 안에는 작은 병들과 이름 모를 약초, 그리고 동네 부인들이 만든 듯 한 잼과 사탕(동네 아이들이 하나 둘, 와서 사가기도 했다.), 그밖에 이름 도 모를 잡다한 물건들이 훨씬 더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 반면 책같이 생긴 모양의 것은 한 쪽 구석에 있는 다섯 칸 짜리 책장, 서너 개에 꽂혀 있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드래마가 ‘이런 작은 일루테오나 마을에서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고 말해 그냥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도 말하지 않았는 가? 양보다 질이라고. 이런 곳이라도 그럭저럭 쓸만한 책을 비치해 놓지 않았을까 하여 열심히 책을 살피고 있는 시나였는데, 먼지만 잔뜩 마셨지, 아직까지 그렇게 흥미로운 책은 찾을 수 없었다. 드래마는 저 쪽 책장에 서 뭔가를 꺼내 부시럭, 부시럭 읽고 있었다. [휴- 이렇게 헌 책들은 헌 책방에서도 안 받겠네.] 시나는 손의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생각했다. 물론 이건 시나 세계에서 의 이야기다. 여기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 까 이렇게 먼지 구덩이 속에 방치해 놓은 거겠지. 책들의 대부분은 한 눈 에 보기에도 별로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아니었다. 같은 제목의 헌 책들 이 여러 개 꽂혀 있었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디트마의 집에서 보았던 것처럼 약초나, 약품에 관한 책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마나니, 스피릿이니 주절대며 어려운 공식이나 도형이 잔뜩 그려 진 책들이었는데, 현실 세계 에서도 수학엔 별 취미 없던 시나인지라, 그런 책들은 그냥 자던 잠 계속 자도록 안 건들기로 했다. 이런 저런 책들 다 제하면 남는 것은? [일루트 렌의 클로니아 궁정기사 이야기 투(2)?] 이것도 시리즈 물이었나 보다. 아는 제목을 찾아내 시나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또다시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난번 돋은 닭살 이 아직도 남아 있었으니까. 뭔가 다른 제목의 소설은 없나? 아니면.. 이 세계를 설명해 놓은 책이라든지..? 그때 시나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찾 아냈다. [사랑 받는 종속자가 되기 위한 50가지 방법?- 종속주는 이런 종속자를 좋아한다?] (계속)================================================== 메일을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메일 받고 기뻤습니다..^^) 열심히 힘내 서 올리겠습니다.^^ <엔...^^>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89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7-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7 00:24 읽음:2713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7- <제 18막. 마우르코트 일루테오나에서 생긴 일Ⅱ(2)> 정말 흥미로운 제목인지라 시나는 그 푸른 표지의 책을 꺼내 읽었다. <자,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앞날의 종속주를 그리며 꿈을 꾸는 엘 의 시기에 있는 꽃다운 소녀들이겠지요? 여러분 가운데는 열 다섯이 넘어 성인식을 치를 수 있는 분도 있을 테고 열 다섯 이하라 아직은 어린 분들 도 있을 거예요. 어느 분들이던 아-- 나의 종속주는 누구일까? 어느 분이 날 데려 가실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이 글은 그런 소녀들을 위한 어드바이스랍니다.> 흐응... 역시, 이 세계는 남녀평등이... 조금 문제 있군. 어느 분이 날 데려 가실까라.. 재밌네? 책에는 그런 짧은 서론이 붙어있고 차례가 주욱 나와 있었다. <1. 몸매를 가꾸자. - 종속주들은 몸매 좋은 여자를 좋아한다.> [과연... 음.] 시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이 세계에도 역시 글래머 미인이... 몸매에 콤플 렉스가 많은지라 시나는 그 장을 펼쳐 보았다. <여러분? 여러분은 앞으로 성인식을 치르고 나서 더욱 성숙하고 더욱 아 름다운 몸매를 갖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것에 지나친 기대를 갖고, 엘의 시기에 음식 조절 안 하고, 운동을 안 한다면 여러분의 몸매는 성인식을 거치고 나서도 형편없게 되겠죠. 즉, 노력을 안해서 빼빼 마른 몸매는, 성 인식을 거치고 나서도 빈약한 몸매가 되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여러분? 많이많이 먹어서 부드러운 살들(지방을 말하는 것 같다)을 많이 축적해 놓으세요.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축적하면, 성인식을 치르고도 부드러운 살들이 남아돌아 몸매에 오히려 악 영향을 미치니까 적당한 운동을 곁들 이는 것은 필수적이죠. 이 모든 것에는 부단한 노력이 따른 답니다. 적당 한 몸매에 대한 표가 밑에 있으니 참조하시고요, 한가지 더 덧붙일 것은, 여러분의 시기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찌죠. 그건 여러분의 몸이 불완전 하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거기에 실망하여 노력을 안 하는 것은 금물! 자, 다시 한 번 더 기억해 놓으세요? 종속주들은 토실토실한 여자아이를 좋아한다!> 시나는 좀 황당했다. 토실토실? 돼지새낀가? 잡아먹을 것도 아니고 웬 토 실, 토실이람.. 성인식을 거쳐 몸매가 변한다는 건 이해하는데.... 여긴 우 리 세계랑 다르게 좀 찐 애들을 좋아하는가 보네? 그럼 내 경우는 이 쪽 세계로 보면 영 아닌 몸매겠구만? 하긴, 제시마도 가난해서 그런지 엄청 말라 있었지. 거의 나만큼. 그래서 제시마도 자기가 이쁘지 않다고 했나? 웅... 그랬을지도... 하긴 이곳 여자 애들은 꽤 ‘토실토실’ 하더군. 시나 는 낮에 예배 때 본 귀족 아가씨랑 오다가 본 몇몇 여자 애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 곳 여자 애들은 바리스 마노테오나의 여자 애들에 비해, 잘 먹어서 그런지 ‘토실토실’한 여자 애들이 많았다. 시나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 중 마른 애들이라곤 남자애들뿐이었다. 남자애들... 그 생각을 떠올 리자, 시나는 기분이 무지 나빠졌다. 쳇! 여기서도 남자애들로 오인 받을 몸매라 이거지!! 시나는 책을 탁 덮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 는데 그럼 어쩌냐!!! 쳇!!! 그때 뒤에서 드래마가 말했다. “사랑 받는 종속자가 되기 위한 50가지 방법? 그거 꽤 유익한 책인데? 그거 사 줄까?” “드, 드래마!!!” “시나, 드랫이라고 불러.” 드래마는 책망하듯 말했다. 시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책 읽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온 거지?] 시나는 들고있던 책을 슬그머니 책꽂이에 밀어 넣었다. 시나는 그 50가 지... 어쩌구가 마음에 안 들었다. 무슨 3류 다이어트 어드바이스 책 같기 도 하고, 너무 노골적으로 남자를 꼬시는 책 같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 서 그런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드래마는 다시 그 책을 뺏어서 가져갔다. “드랫! 그건 그냥, 여자 애들을 위한...!” 시나가 소리치자, 드래마가 말했다. “그래. 여자 애들을 위한 상당히 좋은 책 같아. ...어디 보자. 음.... 호오? 이건 귀족 아가씨용의 책이잖아? 이런 게 왜 이런 일루테오나 마을에 있 는지 모르겠군? 신기한데?” 시나는 인상을 썼다. 에? 귀족 아가씨용 책? 귀족 아가씨들은 저런 거 읽 으며 살을 토실토실 찌우나? 참...나, 문화도 여러 가지, 색색이구만. 시나 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드래마는 책장을 넘기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러더 니 말했다. “흠.... 어쨌든 좋아. 이걸로 사주지. 이걸 읽으면 너도 조금은 사랑 받는 종속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 더 이상 찾아봤자, 이 보다 나은 건 없을 것 같고, 시간 끌지 말고 이걸로 정하자고.” [에?] “드, 드래.. 드랫!! 잠깐만요! 누가 그 책 사고 싶댔어요!!! 전 이 세계의 문화가 적힌..” ..정확히 말해서 우리 세계의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는 책을 읽고 싶다구 요!!!까지 말하려는데 드래마가 딱 잘라 말했다. “내가 이 책을 사주고 싶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야. 시나.” “뭐라고요?! 와! 말도 안돼요!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드래마는 의외로 자기 멋 대로다! 아까 검술 연습 때도 그렇고 순 자기 맘대로 인 것이다. “책 읽는 건 저라구요!!” 시나가 그의 뒤를 쫓아가 그의 팔을 잡아당기자 드래마가 냉정하게 말했 다. “책 읽는 것은 너지만 돈 내는 것은 나야. 정 억울하면 니가 돈 벌어서 책 사봐!” 와아--!! 이럴 수가!! 이건 정말 너무 하잖아!! 돈 벌어서 사보라는 말에 시나는 말문이 딱 막혔다. 돈 문제가 나오니 정말 할 말 없었다. 드래마는 자기가 고른 ‘조각, 그 입체감을 살리는 법’이란 책과 시나가 고른‘사랑 받는 종속자가 되기 위한 50가지 방법- 종속주는 이런 종속 자를 좋아한다.’란 책을 주인에게 보여줬다. “이 두 권, 얼마입니까?” 카운터를 행주로 주섬주섬 닦던 주인은 책들을 받아들고 하나하나 살폈 다. 그는 '사랑 받는...(알아서 읽어 주세요. 지겨..--;'을 보더니 감탄하는 표정 을 지으며 벙긋 웃었다. “아이고.. 아티스트님이시라 역시, 안목이 높으시군요. 이건, 어떤 나그네 가 지나가면서 팔아먹고 간 책인데... 너무 비싸서 아무도 안 사가더라고 요.. 헌데, 이런 고급 책을 사시다니, 존경합니다.” 시나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가게 주인을 보았다. 안목이 높다고? 저런 3류 다이어트 어드바이스 책이? 게다가 고급 책? 근데 왜 저런 먼지구덩이 속에 놔둔거람. 혹시.. 이거 바가지 씌우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며 가게 주인을 보는데 그가 말했다. “음, 이건 일 탈란입니다.” ‘일’ 탈란이라... 그리 비싼 거 같진 않군. 일이라는 단어에 시나는 가게 주인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돈의 가치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돈의 가치 를 아는 드래마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주인을 쳐다보고 있기에 시나 는 책값이 그리 비싼 건 아니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나가 '탈란' 의 가치를 제대로 알았다면, '의심'정도가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서점 주 인을 째려봤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이 서점 같지도 않은 서점을 나가자 고 했을 것이다. 시나 세계에 비해 책값이 너무나 비쌌던 것이다. ‘탈란’의 가치는 시나 세계에서 노동자의 하루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이 고 엘야시온에서도 마찬가지다. 엘야시온에서 일곱 가족을 가진 일루티온 노동자는 하루 동안 일해 일 탈란을 번다. 그리고 가족들이 일용할 양식 을 사는데 거기서 남는 5할 정도의 돈은 저금을 한다. 그러니 ‘탈란’이 란 상당한 가치를 지닌 돈이었던 것이다. 주인은 다른 책도 감정했다. “에... ‘조각...’은 ‘사랑...’을 사셨으니 싸게 드리지요. 50므나입니다. 허허.. 오랜만에 오신 아티스트이시니 특별히 할인해 드리는 겁니다. 사실 제대로 받자면 각각 1탈란 60므나, 70므나는 받아야 하는 책들인데...” 깎아주는 거라고 하니까, 시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은 드래마를 ‘아티스트’로 알아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무척 친절했다. ‘책’같은 지 적물(知的物)은 신분이 확실한 사람에게만 판다고 해서 드래마와 시나는 가게에 들어 올 때 또 한 번 ‘아티스트 어쩌구’ 거짓말을 해야 했던 것 이다. 물론 시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드래마의 아내가 되야 했다. 거 짓말을 해 찝찝하긴 했지만 덕분에 드래마와 시나는 마음껏 책을 고를 수 있었다. 뭐, 별 쓸만한 책은 없었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시나는 무덤덤하 게 드래마가 돈 치르는 모습을 보았다. 이 세계 돈은 금색으로 반짝반짝한 게 이쁘네? ...이 정도가 시나의 생각 이었다. (모르는 게 때론 세상사는 데 편한 법이다. 책값이 비싸다고 열 받을 일도 없고.) 그때 책장 있는 쪽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저씨!!! 이 책 2권 없어요?” 청년인 듯 목소리가 젊었다. 주인은 기록을 위해 장부를 펴다말고 그 목 소리가나는 쪽을 보았다. “네? 무슨 책인데요?” “이 책 말이에요. ‘엘의 성가’ 일 권뿐인데 이 권은 없어요? 전 일 권 은 다 외웠거든요.” “아이고.. 글쎄요.. 잠깐만요. 있었던 것 같은데... 같이 찾아보죠. 아, 아티 스트님? 그 동안 여기 장부에다 성함하고 날짜, 책이름 좀 기록해 주시겠 습니까?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네. 그러죠.” 드래마가 대답하자, 주인은 오랜만에 비싼 것을 팔아먹어서 그런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램프하나를 들고 청년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고-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책을 찾는 손님이 많은지 모르겠네. 허허허“ 주인이 책장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자, 드래마는 허리를 숙이고 카운터 위 의 장부에다 여러가지 것을 끄적끄적 기록했다. 그 동안 시나는 둘레를 돌아보았다. 먼지와 여러 가지 약초, 달콤한 잼의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떠돌고 있었다. 카운터의 램프는 구석까지 비춰주진 않았지만 주인과 청 년이 있는 곳에 있는 불빛이 오락가락 하며 벽에 희한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하... 저건 토끼 모양이랑 비슷하다. 저건.. 음, 집모양..!] 이런 생각으로 있는데, 반대쪽 구석으로 뭔가가 휙 지나갔다. [?] 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또 희끗한 게 휙 지나갔다. 쥐 보단 더 큰 것 같았다. 뭐지? 시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쪽 구석을 더 자세히 쳐다 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잘못 봤나? 하고 있는데 카운터 밑에서 웬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꼬마야.. 거기, 사탕 하나만 집어 줄래? 착하지?” 꼬마? 꼬마라니? 이게 도대체 누굴 보고하는 소리야? 카운터 주위에는 꼬마처럼 보이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드래마도 그 작고 귀여운 목소리 에 의아한 듯 주위를 살폈다. 185센티 정도 되는 드래마보고 '꼬마'라고 했을 리는 없고,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카 운터 밑을 보는데 과연.. 거기엔 웬 '꼬마'가 있었다. 50센티가 될까 말까 한 작달막한 키에 조그마한 몸집을 가진 ‘꼬마’였는데,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금 그 목소리는 이 ‘꼬 마’에게 누군가가 한 목소리란 말인가? 도대체 누구일까? 시나가 주위 를 살피는데 놀랍게도 그 ‘꼬마’가 시나를 보며 말했다. “꼬마야, 내 목소리 안 들리니? 거기 사탕 하나만 집어 달라니까.” 그 '꼬마'는 시나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시나를 향해 장갑 낀 손을 내밀 고있어서 알 수 있었다. “너... 그, 그럼 지금까지 ‘네’가 ‘나한테’ 말한 거니?” 시나는 황당했다. 지금까지 외모에 대해 벼라별 기가 막힌 소리를 다 들 었지만,‘꼬마’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165센티의 키는 결코 꼬마라 불 릴 키가 아니다. 더구나, 50센티의 키를 가진 꼬마에게는 더더욱 그런 소 릴 들을 키가 아니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가정교육이 왜 이 모양인지... 시나는 투덜 투덜대며 그 ‘꼬마’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꼬마야, 너 지금 누구한테, 꼬마라는 거니? 응? 꼬마야.” 갑자기 드래마가 시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꼬마’의 후드자락 뒤에 서 살랑대는 짧은 털로 뒤덮인 검은 꼬리를 본 것이다. “잠깐만, 시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시나는 그 건방진 ‘꼬마’의 모자를 툭 건드려 뒤 로 젖혀지게 하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에 드러난 것은... “으, 으아아악-- 고, 고양이가 말을 한다아---!!!” 정확한 시제동사는 말을 ‘한다’가 아니라 말을 ‘했다’일 것이다. 그 러나, 그 고양이는 코를 찡끗거리더니 눈살을 찌푸리고 시나가 말한 시제 동사를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아... 참, 시끄러운 꼬마네. 사탕 하나 달라니까...” 드래마가 씁쓸하게 말했다. “...고양이 몬스터로군. 오랜만에 보는 걸.” 모온스터?!! 시나는 후다닥 일어나서 뒤로 물러났다. “몬스터--!! 사람을 잡아먹는 그 몬스터요?!!!” 고양이 몬스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난, 사람 같은 거 안 먹어. 이오 때문에, 식생활 개선했거든. 하지만 난 지금 배가 좀 출출해서... 식생활 개선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해. 회 색 눈을 가진 맛있게 보이는 싱싱한 꼬마를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들어.” 시나의 얼굴이 하애졌다. 옆에 있던 드래마가 그런 시나를 보며 쿡 웃었 지만 시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고양이(?)는 윤기 흐르는 새까만 털이 나 있는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호박색의 투명한 눈을 찡긋했다. “음.. 하지만 거기 있는 사탕하나 주면 안 잡아 먹....” ..지..라고 말하려는데 고양이 몬스터 위로 사탕꾸러미가 와르르 쏟아졌다. 시나는 드래마가 말리기도 전에 카운터 위에 있던 사탕을 고양이 몬스터 위에다 쏟아 부운 것이다. 드래마가 기가 막혀 하며 말했다. “맙소사!! 시나-!! 하나에 5므나나 하는 사탕들을...!! 미친거야?!” 시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사탕의 값어치 따위 알 바 아니다. 흑흑... 이 세 계는 정말 이상해!! 사탕을 안 주면 잡아먹는다고? 해와 달 오누이를 둔 불쌍한 떡장수 아주머니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시나는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그, 그 사탕들 몽땅 다 갖고 없어져 버려!!!” “시나--!!!” 드래마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고양이 몬스터는 시나의 말에 입이 찢어졌 다. 그(그녀?)는 땅바닥과 자신의 옷자락에 떨어진 사탕에 좋아 어쩔 줄 모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고양이가 웃다니!! 무슨 냉장고 선전도 아 니고!!시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분홍색 입술과 함께 하얀 송곳니가 반 짝 드러났다. “이렇게 많이? 물론 네가 사준 거지? 고마워--” 그 모양을 보던 드래마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시나의 표정이 하도 웃 겨서가만 뒀더니, 이런 불상사가... 고양이 몬스터에게 이렇게 쉽게 속아넘 어가는 사람은 처음 봤다. 게다가 이 많은 사탕들을 다.... 드래마는 허탈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나.. 그 사이 돈이라도 많이 벌어놨어? 한 3-40개는 돼 보이는 사탕 이군. 못해도 1탈란 이상은 돼. 물론 돈은 네가 치를거지?” 시나는 울상을 지었다. 이 사람은 지금 자기 종속자가 고양이한테 잡아먹 히게 생겼는데, 사탕 값 걱정하고 있나? 정말 치사하다고 한 마디 하려는 데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억-- 이,이럴수가!! 왜 사탕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겁니까?!!!!” 주인 옆에 있던 연푸른색 후드의 청년이 고양이 몬스터를 보더니 말했다. “르핀--?!!!! 이거 네 짓이지? 이 분들 협박해서 사탕 얻어먹고 있는 거 야?! 내가 그러지 말랬지?!!” 청년의 화난 목소리에 고양이가 푸드득 날아올랐다. 정말이다. 말 그대로 ‘푸드득’ 날아올랐다. 흰 깃털을 휘날리며. 시나는 입을 쩌억 벌리고 그 모습을 보았다. 고양이는 푸드득 날아올라 공중을 두 세 번 휙휙 돌더니, 시나 뒤로 와 숨었다.(하필이면) 때문에 시나는 질겁을 하고 말았다. “꺄아악-- 저리갓-!!!!” “르핀-!!! 이 녀석!! 너, 그 사람 뒤에서 당장 떨어지지 못해?” 시나가 너무 놀라서 펄쩍펄쩍 뛰며 소리치는데 연푸른색 후드의 사람이 당황해서 말했다. 그러자 고양이는 시나의 목을 더욱더 꼬옥 끌어안고 잉 잉 울기 시작했다. “야옹- 야옹- 너무해- 내 잘못 아냐! 사탕 하나만 달라고 했는데, 이 꼬 마가 사탕을 다 줬어!! 앙- 앙- 난 사탕 값 갖고 있어- 사탕 하나만 사 먹으려고 했단 말야--” 청년이 눈을 찌푸렸다. “너한테 사탕 값이 어딨어?” 고양이가 시나의 목덜미에서 말했다. “내가 사탕을 사면, 이오가 돈을 치르는 거야. 그러면 내가 사탕을 먹는 거야. 그렇지?” “르피인------!!!!!!!!!!!” 청년이 소리를 꽥지르자, 고양이는 더욱더 시나의 목을 붙들고 늘어졌다. “야아아아옹-- 소리치지마. 이오, 너무해--!” 그, ‘야아아아옹’이라고 하는데 고양이의 송곳니가 시나의 목에 닿았다. 섬뜩했다. 목을 물릴지도 몰라!! “꺄악- 사, 살려줘요!!!! 드래...” ‘마’까지 말하려는데, 드래마가 시나의 입을 막았다. “시나.. 좀 진정해. 저 고양이 몬스터는 사람 같은 거 안 잡아먹어. 보아 하니 그렇게 길이 든 것 같아. 사람 피가 사탕 정도로 달아진다면 먹을까, 그러기 전엔 절대, 안 먹을걸.” 시나는 놀란 눈으로 드래마를 봤다. 갑자기 손으로 입을 막아 깜짝 놀란 것이다. “게다가.. 시나.... 너의 ‘드랫’은 네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몹시 괴로 워. 조용히 할 수 있겠지?” 시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앞으로는 절대 ‘드랫’이라고 부르겠다는 의미 였다. 드래마가 싱긋 웃으며 손을 놓자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어 시나는 안심했다. 이때를 타서 연푸른색 후드의 청년이 시나의 목에서 고양이를 잡아 당겼다. “르핀!! 당장 이리로 오지 못해?! 그 여자 분이 싫어하시잖아!!!” 르핀이라 불린 고양이는 시나의 목을 결사적(!)으로 붙들고 늘어졌다. “앙앙... 야-옹- 싫어!! 난, 잘못한 것 없어-- 얘가 사탕 사준거야!! 꼬마 는 내 친구가 됐어!! 그러니까, 난 얘랑 있을거야!!” 겨우 숨을 쉴 것 같았는데, 고양이에게 목이 졸려 다시금 캑캑거리며 시 나는 괴로워했다. 해서 시나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르핀, 르핀- 이 목 좀 놓으면, 네 잘못 아니라는 거 사람들에게 말해 줄께에--!” 시나의 말에 고양이가 훌쩍거렸다. “야옹- 정말이지? 사탕도 다 나 주는 거고?” “저, 정말 죄송합니다.. 평소에도 르핀은 버릇이 없었죠. 헌데 오늘은 더 욱 버릇이 없군요.” 연 푸른색 후드의 사람은 난처한 표정으로 드래마와 시나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더욱더 고양이를 끌어 당겼다. “르핀!! 말도 안돼는 소리 그만하고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야옹- 싫어!!” 캑-!!! 너무 괴로왔다. “드, 드랫...!” 시나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너무나도 불쌍한 눈초리로 드래마 를 쳐다보았다. 흑흑... 제발 나 좀 살려줘요... 잡아먹히진 않아도 목 졸라 죽겠어요...!드래마는 한숨을 푸우욱 쉬었다. 누구를 탓하랴... 진작에 고양 이몬스터를 쫓아내지 못한 자기의 잘못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이고 시나의 놀라는 모습이 재밌어서 내버려뒀더니... 하여튼 평소에 안 하던 짓 하면 손해보는 건 언제나 드래마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돈주머니를 열었다. 사탕 같은 것에 2탈란이나 써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더구 나, 고양이 몬스터 같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몬스터와 계약하는데 들어 가야 하는 사탕을-!! “여기 2탈란입니다. 사탕들을 모두 사겠어요.” 드래마의 체념한 목소리에 굴러다니는 사탕을 보며 울상을 짓던 주인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그, 그럼 바구니에 담아 드리죠!” 주인이 바구니를 꺼내오는데 르핀이 환호성을 질렀다. “야옹- 신난다-! 이오시아! 들었지? 이 사람이 사탕을 모두 다 샀어!!” 르핀은 드디어 시나의 목을 놓고 활기찬 몸짓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오시아라 불린 새파란 눈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르핀!! 이 분들이 산 건데, 네가 왜 신나!!” 고양이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들었잖아, 이오. 이 꼬마가 나한테 준 사탕들이라구. 이건 다 내꺼 야. 이 꼬마가 날 아주 좋아하나봐. 야옹.” “뭐라구?!” 청년은 시나를 보았다. “르핀의 말이 사실입니까? 정말로 당신이 이 사탕들을 모두 다 르핀에게 줬습니까? 도대체 뭣 때문에?” 고양이한테 사탕을 다 줬냐고? 그래. 내가 주긴 줬지. 하지만 그건 좋아서 가, 아니라... 그러니까... 시나가 뭐라고 말해야 좋을 지 몰라 그러고 있는 데 드래마가 대신 말했다. “...사실입니다. 순례자님. 시나가 이 사탕들을 저 몬스터에게 모두 다 허 락했죠. 이 계약물이 건네 질 때까지 저 몬스터에게 목이 졸려도 할 말없 는 입장이었죠. 시나는. ..무엇 때문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됐다. 거기다 드래마가 한 말 중 ‘순례자’와 ‘계약’이라는 단어에 놀랐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낮에 ‘카할‘에서 봤던 사람이다. 이 선명한 푸른색의 눈은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지. 하도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지만... 그래. 그런데 뭐? 계약?! “계약이라니요? 제가 언제 저 고양이랑 계약을 맺었어요?” 고양이 몬스터 르핀이 시나의 어깨로 내려앉아 이마를 시나의 턱에 비비 며 고르륵 거렸다. “내가 ‘사탕 하나만 줘-’ 하니까, 네가 사탕들을 와르르 부어 줬잖아. 내 말을 받아 줬으니깐, 넌 내 친구야. 내가 좋아서 사탕을 이렇게 많이 준거지? 나도 네가 참 좋아- 꼬마야.”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란 말인가? 시나가 어이없어서 그 고 양이를 바라보는데, 드래마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자, 나가자구. 고양이 몬스터랑 이렇게 사탕을 왕창 써서 계약하는 인간 은 보다보다 처음 봤어.” 드래마는 1년 중 최고의 대박을 맞아 희희낙락한 주인이 건네준 사탕바구 니를 들고 말했다. 사탕 준 게 계약 맺은 거란 말이야? 시나는 황당했다. 하지만 드래마가 나가자 따라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깨에다가 고양이 몬 스터를 매달고. 이제 더 이상 그 몬스터는 무섭지도 않았다. 단지 무거울 뿐이다. 키는 작은 게 왜 이렇게 무거운지... 한 4킬로그람은 되는 것 같았 다. 이오시아는 방금 고른 ‘엘의 성가 제 이권’의 값을 치르고 장부에 이것저것을 기록한 뒤 황급히 드래마와 시나의 뒤를 쫓아 나왔다. “잠깐만요-- 기다리세요--!!” 셋은... 정확히 말해 르핀까지 넷은... 가게 주인의 열렬한 인사를 뒤로하고 - 안녕히 가세요- 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여러분의 평생 에 희망찬 앞날이 존재하기를...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의 휘황찬란한 인사 말이 가게문 닫고서까지 메아리 쳤다. - 그럭저럭 ..가게를 나왔는데, 가 게를 나온 이오시아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시나를 바라보 았다. 100년 동안 혼자서 산 속에 살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 외의 인간을 보면 이런 표정을 지을 것이다. “뭐, 뭐라고 해야할까... 음. 이, 일단은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르핀에게 이렇게 친절히 해 주셔서. ...그런데, 고양이 몬스터를 평소에도 좋아하셨 습니까?”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90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8-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7 00:25 읽음:2712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8- <제 19막. 이오시아와 르핀 (1)> 좋아했냐구? 고양이를 좋아하긴 했지. 고양이에 몬스터라는 단어가 붙으 면?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이다. 날개가 달린 말 하는 고양이라니... 게다가 두 발로 걷고? 르핀은 고르륵, 고르륵 거리며 시나의 어깨에 아직도 매달려 있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그 리고 나서 좋아할 것인지 아닌지 결정해야겠다. “저기요.. 전 고양이 몬스터를 한 번도 본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계 약’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구요.. 하하하... 그러니 아무나 설명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드래마는 참담한 심정으로 굳이 미소지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이오시아 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 몬스터는 요 근래 들어 희귀해 졌으니까 못 봤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몬스터와의 ‘계약’도 모른다고요? 르핀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 줬으니, 당신은 르핀과의 인연을 맺은 거고 그래서 르핀은 당신을...” 그때 갑자기 고양이 몬스터 르핀이 소리를 질렀다. “꼬마야! 나랑 계약하는 건 나랑 친구가 되겠다는 뜻이야!!” 그러더니 그는 아이구! 고막이야!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시나의 어깨에 서 극적으로 푸드득 날아올랐다.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걸 보고 놀란 듯 웅성댔다. 고양이 몬스터네? 와- 오랜만에 보는데- 꺄- 귀엽다- 뭐 이런 정도의 소음이었다. 이런 소음 속에서 고양이 몬스터는 시나를 바라 보며 노래를 불렀다. 꼬마야- 우리 약속을 하자. 나는 르핀, 나는 네 친구가 되는 거야. 우리 관계는 아마도 사탕처럼 달콤하겠지? 난 너를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할거야. 달이라도 따다 줄까? 공주님의 왕관을 훔쳐다 줄 수도 있어. 밤새 내내 옛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단다. 하지만 달은 너무 멀리 있고, 공주님은 왕관이 없어지면 눈물 흘리실거야. 그러니 난 더욱더 많은 노래를 너를 위해 부를게 내 노래는 언제나 너와 있지. 널 위해 별보다 많은 노래를 불러줄께. 난 르핀. 노래하는 고양이란다. ...뭐.. 괜찮은 노래였다. 노랫말은 꽤 그럴 듯 했으니까. 음정하고 박자하 고 가락이 조금만 더 정확하고 중간에 고르륵 거리는 소리나, 숨만 헐떡 이지 않았어도 더 나았을 것이다. 노래방에 가서 점수를 매겼어도 괜찮게 나왔을 수도 있다. 뺑뺑이로 점수 주는 노래방도 많으니까. 시나는 땀을 삐질 흘리며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 반면 드래마는 못 들은 척 하는 표정이었고, 이오시아는 감명 어린 표정이었다. 정말 언제 들어도 변 함없이 노래를 못하는구나. 하여간 고양이 몬스터만큼 음유시인이라는 직 업과 천부적으로 상관없는 종족도 드물거야. 이것이 오랜 동안 르핀과 같 이 다닌 이오시아의 소감이었다. 르핀이 노래하는 것을 구경하던 주위 사람들이 킥킥 웃었다. 맙소사- 저, 애가 저 고양이 몬스터랑 계약했나봐. 노래 불러준대. 저런, 밤에 잠은 다 잤네? 하는 동정에 찬 말들이 날아왔다. 이런 소음에도 꿋꿋이 르핀은 자 랑스러운 표정으로 시나의 주위를 날았다. “내 노래 어땠어? 꼬마야?” 하도 기대가 충만한 표정이라 ‘예의상’ 칭찬해 줄려고 입을 여는데, 드 래마가 재빠르게 말했다. “르핀, 됐어. 네 노래는 하룻밤에 다 듣기엔 너무 아깝구나. 다음에 또 들려줘. 순례자님? 이 바구니 받으세요.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자 가자. 시 나.” 드래마는 그렇게 말하더니 순례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시나 를 데리고 여관 쪽으로 향했다. 이오시아가 외쳤다. “잠깐만요!!! 기다리세요!!” 고양이 몬스터도 소리쳤다. “꼬마야! 어디가!! 같이 가!!!” 순례자와 몬스터는 쪼르르 드래마와 시나를 쫓아왔다. 드래마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거짓신분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데 디바인 파 워의 성직자와 같이 있어 좋을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문지기가 갖고 있는 것 같은 파워는 아니니까,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나가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오 시아는 드래마의 그런 심정도 모르고 친근하게 말했다. “에.. 또 어떨까요? 제가 두 분께 식사를 대접한다면? 르핀은... 음, 인정 하긴 싫지만 제가 길들인 몬스터죠. 그러니 제 책임 하에 좀 더 확실히 관리해서, 그.. 사탕 같은 걸로 두 분을 귀찮게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 러니 제가 두 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군요. 아직 식사 전이시죠?” 이오시아의 예의바른 말에 드래마가 정중히 사양했다. “아닙니다. 그거야. 저와 저의.. 그러니까, 음.. 아내의 부주의였죠. 그러니 바쁘실텐데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순례자님.” “이오시아라고 불러 주세요. 하하하.. 이분이 아내셨군요. 하하.. 이 번 하 누카의 날을 맞아 결혼하실 건가 보죠? 하하.. 축하드립니다. 하하... 그러 나저러나, 저는 별로 바쁘지도 않습니다. 천천히 식사하고 오늘밤을 이용 해 다음 마을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마우르코트의 휴식처인가 그곳의 음식이 제일 괜찮다던데, 그곳에서 사고 싶군요.” 드래마는 정말 난처했다. 자신들도 식사전이라 식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이 순례자가 자신들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온다니... 어떻게 따돌리지? 그 때 시나가 말했다. “저기, 우린 마우르코트의 휴식처에 묵고 있어요. 식사도 거기서 하구요. 그지요? 드랫? 그러니까 같이 식사하면 좋지 않을까요?” 정말로 별 도움이 안 되는구만. 이 고양이 몬스터와 비교해 쓸모가 없는 면에서는 막상막하로 누가 이길지 쟁탈전을 벌이는 구만!!! 드래마는 시나 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오시아가 없었다면 말로도 표현할 수 있 었겠지만, 드래마는 그냥 단념했다. 여기서 더 거절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연이군요. 같이 가시죠.” 시나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맨 처음 놀라고 당황했던 마음이 가라 앉자 르핀이 귀엽게도 보였고, 그래서 좀 더 르핀을 관찰하고 싶었던 것 이다. 이오시아는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 기쁘군요. 남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그래 맞아.” 르핀도 웃으면서 맞장구 쳤다. 세 사람이 걷고 한 마리는 날아서 여관으 로 향하는데 르핀이 포르르 내려와 시나에게 속삭였다. “꼬마야.. 솔직히 말해봐. 난 네가 아주 좋거든? 아까 내 노래 어땠어? 저기, 괜찮았다면 또 노래 해 줄까?” 시나가 대답을 망설이는데 드래마와 이오시아가 동시에 소리쳤다. “괜찮아! 르핀!” ×2 시나는 깜짝 놀라서 두 남자를 바라보았고, 르핀은 그 격렬한 반대에 무 척이나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꼬마가 칭찬해 주면 또 한 번 앙콜 송을 부르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자신의 이 즐거운 기분을 어떻게 풀어야한단 말인가? 꼬마를 위해서 해 줄 일은? 르핀을 머릿속을 뒤졌다. 내가 무슨 능력을 갖고 있지? 쥐잡기? 으음.. 꼬마한테 쥐를 잡아 줄 수야 없지. 가 장 자신 있는 노래부르기는 방금 했고, 다음은... 다음은 뭐가 있지..? 사탕 먹기? 그게 능력인가...? 사탕을 내가 먹으면 꼬마를 위해서 해 준 것이 다? 거봐 이건 말이 안돼. 그러니까 이건 능력이 아냐.. 나한테 무슨 능력 이 있지? 르핀은 이런 형이상학(?)적인 고민을 하느라 하늘 높이 날아올 라 날기 시작했다. 드래마와 이오시아는 그런 르핀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드래마가 말했다. “다행이군. 자칫했다가는 이 밤을 꼬박 고양이 몬스터의 노랫소리로 샐 뻔했어.” 이오시아는 드래마의 말에 맞장구쳤다. “잘 아시는군요. 저도 맨 처음 저 녀석을 만났을 때 멋모르고 노래가 괜 찮다고 칭찬했다가.. 사실, 노랫말은 그럴 듯 하잖아요? 밤새 내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새벽 무렵엔 자기도 힘든지, 야아아아아옹-- 우아아아앙- 소리로 후렴을 하는데, 으애애애앵---거리면서 아기 우는소리까지 냈을 때는 정말 두 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그만 부르라고 해도 한 번 발동이 걸리면 안 듣더라구요. 저 녀석은. 으휴.” 시나는 아까 사람들의 태도와 이오시아의 말을 종합해서, 이 세계에서 고 양이 몬스터의 노래는 무척이나 혹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방금 노랫소리를 들어보니 시나 자신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므로 이해하 기로 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이나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저 몬스터는 절보고 왜 자꾸 꼬마라고 하죠?” 아까부터 그것이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이오시아가 말했다. “아, 그건 르핀이 당신과 이 남자분... 아, 그러고 보니 우린 통성명도 안 했군요. 전 클로니아 북부 엔나시라 일루테오나 카할에 속한 이오시아라 고 합니다. 그리고 저기, 저 고양이 몬스터는 르핀이라는 이름이죠.” 드래마도 마지못해 자기소개를 했다. “전, ...아티스트 드랫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여자앤.. 여자는.. 제 아내 시나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새삼스럽게 서로 이름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눈 뒤 그들은 다시 길을 걸 었다. “...에, 그러니까 아까 질문이 뭐였죠?” 시나는 방긋 웃었다. 그녀는 한 번 물어본 것은 끝까지 물어본다. “왜 저를 꼬마라고 부르냐고요.” “아, 그렇죠! 그건 말이죠, 르핀이 당신과 이 남자 분을 한꺼번에 봤기 때문일 겁니다. 르핀은... 뭐, 몬스터들이 대개 그렇긴 하지만, 사물을 볼 때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이 없어요. 그냥 보이는 그대로 비교해서 인식을 하죠. 인간도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들은 어떤 나름대로의 가치관 이나, 기준을 갖고 있는데, 몬스터들은 그런 게 없죠. 언제나 외부의 정보 만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요. 르핀은 당신이 이 남자 분에 비해 키가 작으 니까 ‘꼬마’ 라고 한 거예요.” 그렇군. 그런 뜻이었군. 시나 자신의 키가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드래 마에 비해 작아서 그런 거였군.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안 가는 몬스터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사탕을 주고 친구가 될 수 있 다..라? “..음, 저기요? 어제 저희들은 오크인가, 오그인가를 만났거든요? 그 몬스 터들도, 사탕이나 뭐 다른 걸로 계약이 가능한가요?” 이오시아는 빙긋 웃었다. “그럼요. 이론상으로는 어떤 몬스터하고도 친구가 되는 게 가능하죠.” 시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래요? 그럼 몬스터하고 서로 싸울게 아니라 친구가 돼서 친하게 지내 는 게 더 좋지 않아요? 왜 굳이 싸워서...” 아까 설교시간에도 그러지 않았는가? 몬스터와 싸우자! 나가자! 이기자!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때 드래마가 말했다. “시나, 몬스터들과 계약을 맺으려면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해. 오 크들의 요구사항이 뭐였는지 잊었어?” 요구사항이 뭐였지? 시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요구사항이 뭐였는지는 모 르겠지만 확실히 ‘여자를 죽이자’고 모두들 동의하고 덤벼들었었지? 그 래. 그건 절대 불가능하군. 시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거기다, 그 오크들은 마음이 게엔나에 물들어 있는 상태였어. 한 번 사 람의 피를 본 몬스터들은 인간들에게 길들기 어려워지지. 더구나, 이오시 아님 같은 디바인 파워를 갖고 있지 않으면 갓 태어난 몬스터에게라도 다 가가서 친구가 되니 어쩌니 하는 건 위험해. 요구사항 중엔 말도 안돼는 게 많으니까.” 이오시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요... 아티스트 드랫님? 제가 디바인 파워를 갖고 있다는 걸 어떻 게 아셨죠?” 드래마는 눈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냐니? 뻔한 사실 아닌가? 순례자라는 신분에다가, 밤을 타서 여행하는 습관, 그리고 무엇보 다 그 눈빛. “...카할에서 당신이 사람들을 쳐다보았을 때, 느꼈습니다.” 드래마의 말에 이오시아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때 말입니까? 호오? ...민감하신 분이군요. 보통사람들은 그런 건 잘 못 느끼던데?” “...글쎄요.” 씁쓸하게 웃은 드래마는 지나가는 말처럼 이오시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카할 안에 있던 사람들의 영혼 상태는 어땠는지 여쭤봐도 되 겠습니까?” “네?” “....이런걸 물어보는 게 실례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에 대 해선 엘과만 대화를 나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말한 드래마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너무 속보이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는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됐어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오시아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생각하는 어투로 말했다. “음.... .....카할에서 본 인간들의 영혼 말입니까? 음. 그건...그냥.. 인간들 의 영혼이었습니다... 하나로 뭉뚱그려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그리고 아름다웠습니다.” 시나는 귀를 열고 그들의 대화를 열심히 청취했다. 정보다, 정보!!! 이 순 례자가 사람들의 영혼 상태를 본 단 말야? 어떻게? 디바인 파워가 그런 건가? 그때 드래마가 말했다. “..그랬습니까? 혹시 그 중에 특별히.. 죄악에 물들어 있는 영혼을 느끼지 는 못했습니까?” 이오시아는 걸음을 멈춰서고 드래마를 보았다. 드래마도 그를 보았다. 한 없이 짙은 블랙 사파이어의 눈빛을 응시했다. 이오시아는 단호하고도 부 드럽게 말했다. “아니오. 없었습니다.” 드래마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까?” 그러더니 그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의외군요. 인간사회에는 어디든 하나 정도는 구제 받을 길 없는 영혼 이 있기 마련인데... ...퍽, 깨끗한 마을이군요.” 이오시아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요. 괜찮은 마을입니다.” 드래마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으흠. ...어쨌든, 고양이 몬스터를 데리고 다니시는 걸보고 디바인 파워 의 순례자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디바인 파워의 순례자시라면 좀 더 쓸 모 있는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었을 텐데, 왜 고양이 몬스터를 데리고 다 니시는 거죠?” 두 사람이 다시 걷기 시작하고, 이오시아가 웃었다. “아.. 그건 뭐랄까.. 운명이었어요. 하하하... 순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마을을 나서는데 마을 입구에 저 몬스터가 있었죠. 그대로 놔두면 마을에 해가 될 몬스터로 성장할 게 뻔하니까 도저히 못 본 척 할 수 없었어요. 저도 그때는 풋내기에 불과했으니까, 아직 어려서 길들이기 쉬운 몬스터 를 길들여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구요. 뭐, 그렇게 결정했던 것을 하루에 한번 이상은 꼬박꼬박 후회하고 있지만,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하하 하... 이것도 인격 수양이죠. 하하하하...” 조금 어두웠던 분위기가(왜 어두웠었는지 그 초점을 잡아내는데 시나는 실패했다.) 사라지고 다시 밝은(?) 분위기로 돌아왔다. 그래서 시나가 용 기를 내어 디바인 파워가 뭐여요? 하고 물으려는데 머리있는 데서 르핀의 야옹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웅! 이오- 이오- 배고프다-!! 밥 먹자-!! 사탕 줘-!!” 체질에 맞지 않은 형이상학적인 생각 때문에 르핀은 갑자기 배고픔을 느 꼈고, 쏜살같이 날아 내려와 이오에게 매달렸다. 물론 ‘자신이 남에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따위는 사탕바구니라는 거대한 존재에 밀려 뇌리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오시아는 츠츠 혀를 차며 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이 녀석, 괜히 단 걸로 길들였어요. 이 비싼 사탕을... 며칠동안 고기를 못 먹어 더 단 거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며칠동안 쥐도 못잡은 것 같으 니까, 여관에서 나오는 고기조각이라도 줘야겠습니다.” 르핀은 사탕을 우물거리면서 시나에게 와서 매달렸다. “꼬마야, 내가 사탕 먹으면 너 기뻐?” 니가 사탕 먹는데 내가 왜 기쁘냐? 시나는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저렇게 많은 사탕 중에 하나라도 주면서 그런 소리해라. 이오시아가 시나의 눈길 을 눈치채고 쿡쿡 웃었다. “소용없어요. 시나. 르핀은 절대 남에게 자신의 사탕을 뺏기지 않아요. 그냥, 기쁘다고 해 주세요. 그럼 르핀이 아주 좋아할 거예요.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몬스터들은 온순해지지요.” 시나는 참 기가막히군.. 이라고 생각하고 르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응. 르핀. 네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까 너무 좋다. 얘.” 르핀이 눈을 반짝 빛냈다. “그래? 꼬마, 넌 역시 날 좋아하는구나! 나도 널 좋아해! 저기.. 그럼 내 가 노래 불러줄...” “르피인--!!!!” 이번엔 이오시아 혼자서 소리를 질렀다. 르핀은 이오시아의 험악한 표정 에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좋아하는 꼬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능력이란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란 고민을 다시 하기 위 해 하늘로 떠올랐다. 그걸 보던 이오시아가 성직자답지 않은 거친 소리로 투덜거렸다. “젠장, 제기랄! 저 녀석은 질리지도 않는다니까!!” 그러더니 그는 시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당신이 되게 마음에 든 것 같아요. 하룻밤 사이에 두 번이나 노래를 해 주겠다니. 드문 일이에요.” 옆에서 드래마가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누군가가, 2탈란 어치의 사탕을 한 바구니쯤 사준다면 그 사람의 인격이야 어찌됐든 호감부터 가지게 될 것 같군요.” 투덜! 투덜! 그게 무슨 뜻이야? 시나는 드래마와 이오시아의 뒤를 따라 여관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나도 우리 세계에선 한 카리스마 했다구! 인격이야 어찌됐든 이라니!!! 사탕 바구니에 호감부터 가지게 될 것 같다 고? 아이구! 드래마가? 잘도 그러시겠군. 발렌타인 데이 때 받은 초콜릿 더미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여자 애들에게 틱틱 거리지나 않으면 다행이 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여관주인이 쪼르르 달려나왔다. “아이구! 오셨군요, 아티스트님과, 그의 부... 엥? 아니, 순례자님 아니십 니까?” “안녕하세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마을, 최고의 음식점이란 데를 들 려보려고 왔습니다. 아, 이 몬스터는 르핀으로 길이 잘 들었으니까 걱정 마세요.” “하하하하핫-- 아, 이거 영광입니다!!! 그렇죠!! 우리 여관은 이 마을에서 최고의 음식솜씨를 자랑합니다. 하하하핫!!!” 여관주인은 엄청나게 시끄럽게 웃으며 시나일행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두 달간을 축제일로 선포한다고 해서인지 테이블 있는 곳은 꽉꽉 들어차 시 끄럽고 들뜬 분위기였다. 모두들 한 잔씩 걸치면서 앞으로 두 달 간 세금 이나 부역이 얼마나 감면될 건지, 그러면 그 남는 돈이나 시간으론 뭐 할 건지 등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즐겁게 낄낄대는 사람들이 있는 한 테이블에 다가가 여관주인이 소리쳤다. “어이, 어이 비켜-! 저 쪽으로 가서 합석하라구-!!”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뭐라고 중얼중얼 불평을 했지만, 여관 주인 의 말이라 그런건지 기분 좋게 취해서 그런 건지 군소리 없이 다른 곳으 로 옮겨 앉았다. 앉아있던 곳에서 옮겨가게 해 좀 미안했지만 옮겨간 그 곳에 있던 사람들과 어울려서 더 즐겁게 떠드는 것을 보고 시나는 피식 웃었다. 마을사람들끼리 꽤 친한 것 같았다. “에이! 시끄러운 녀석들!! 하하하... 자, 이제 주문하십시오. 손님들!!!” 셋과 한 마리는 주문을 했고, 주인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주방으로 물러 갔다. 식당은 껄걸 우하핫하는 웃음소리로 떠들석했고 의외로 시나 일행 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르핀을 보고 다들 신기하게 생각할 줄 알았 는데 그런 것도 아닌 듯 했다. 모두들 자기들 포부와 희망찬 두 달간에 대해이야기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오시아는 그런 식당 안을 생글생글 웃으며 둘러보더니 드래마에게 말했다. “그러나 저러나, 어떻습니까?” “뭐가요?” 밑도 끝도 없는 이오시아의 물음에 드래마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음.. 그러니까 전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나눈 건 꽤 오래 되었거든요? 아 티스트들은 대개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던데.... 이야기 하나 해 주시면 어떨까요? 요즘 아티스트들의 동향이라든지, 최근에 인기 를 끄는 연구라든지...” 드래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나도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드래마가 그 런걸 알고 있을 리 없는데? 하지만 이오시아는 드래마의 난처한 표정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혼자서 떠들었다. “음.. 그러고 보면, 최근 이야기랍시고 들은 건 한 달 전인가 어떤 마을 에서 만난 아티스트가 해 준 이야기뿐이었어요. 꽤 재밌는 이야기였죠.” 드래마가 빙긋 웃었다. “재미있었다구요? 전 연구만 하느라 재밌는 이야기 같은 건 해 드릴 게 없는데, 순례자님이 들으신 이야기가 궁금하군요. 어떤 이야기였습니까?” “에? 그래요? 하지만 제가 들은 이야기는 아티스트 드랫님도 아실 지 모르는 이야긴데?” “해 보세요.” 드래마가 말했다. 설사 골 백 번들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 순간 이야기 의 바톤은 이오시아에게 넘겨야했다. 괜히 쓰잘데기 없이 말을 많이 하다 간 정체가 들통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나도 드래마의 놀라운 임기응변 솜씨에 감탄을 하며 맞장구쳤다. “해주세요. 이오시아님. 저기, 전 맨날 드랫의 이야기만 들어서, 다른 분 이야기 듣는 게 더 좋아요.” 드래마는 호의 섞인 눈길로 시나를 바라봤다. 아주 쓸모 없지는 않군. 하 긴 인간이라면 몬스터보다 한 단계 정도는 더 쓸모가 있어야 하는 법이 지. 이오시아는 두 명의 열렬한(?) 요청과 한 마리의 열띤 무관심 속에서 (르핀은 조막만한 손으로 3번째 사탕 껍질을 벗기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쑥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그, 그럼 이야기할까요?” 시나는 기대 섞인 눈빛을 지었고, 드래마도 그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흥미로운 눈길로 이오시아를 보았다. “음. 이건 카이러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해요. 아시는 이야깁니까?” 시나와 드래마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예, 그렇군요. 듣다가 아시는 이야기면 그만하라고 해 주세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착실한 눈빛을 짓고 있는 경청자를 보며 이 오시아는 계속 이야기했다. “카이러스 동부인가에 있는 한 일루테오나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 는데요, 거기 있던 어떤 아티스트가 카이러스 스피릿을 운용(運用)한 인비 저빌러티(Invisibility) 아트(Art)를 발동했다는 이야깁니다.” 드래마는 그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이러스 스피릿을 운용한? 그게 가능합니까? 이상하군요. 그 스피릿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마나로 전환시키기 어려웠을 텐데요?” 시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아트가 나왔군. 아트란 마법이지. 인비저빌러티라면 모습이 안 보인단 뜻이잖아? 근데 스피릿? 무슨 영혼 을 운용해? 마법도 영혼을 가지고 뭘 하나보지? 디바인 파워도 그렇다던 데, 그럼 마법은 디바인 파워의 일종? 시나의 머릿속이 점점 헝클어져 가 고 있는데 이오시아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그 아티스트는 기존의 방법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카이러스 스피릿 파워를 마나로 순화시키려고 했고, 그러다 엄청난 부작용이 일어 났다는 말입니다.” 드래마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이제 정말로 이오시아의 말에 흥미를 느 끼고 있었다. “그렇군요. 기존의 방법과는 좀 다른 방법이라... 재밌군요. 어떤 방법이 었죠?” 이오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하... 어떤 방법인진 저도 듣긴 했는데 잊었어요. 하도 복잡해서... 단 지 그 부작용의 내용이 재밌어서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후후.... 아주 재미있는 내용의 부작용이었죠. 자, 잘 들어보세요? 여기서 부터가 재밌습니다. 그 아티스트가 인비저빌러티 아트를 발동한 그 순간 말입니다-” 시나는 헝클어져 버린 머릿속은 한 쪽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일단 이오시 아의 말에 집중했다. 내용은 둘째치고 그의 표정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 도 털어놓는 양 흥미진진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걸 발동한 순간 그 아티스트는 어떤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이겁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 마저도요.” 썰렁했다. 인비저빌러티란 그런 마법아닌가? 지금 장난하나? 시나가 인상 을 쓰고 이오시아를 보는데 드래마 또한 인상을 쓰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마저 안 보였다구요? 맙소사... 엄청나군요.” 드래마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자, 시나는 자기 자신에게 자기가 안 보이는 게 어떻다는 건가 하고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이오시아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네. 그렇죠. 엄청난 일이었어요. 뭐, 그 아티스트도 처음엔 그럭저럭 살 아갈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헌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기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점점 잊게 됐대요. 얼굴처럼요. 사실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떠올리는 사람은 없잖아요?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런 거 죠. 쯧쯧. 어쨌든 그래서 그 불쌍한 아티스트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어떻 게 간수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고 말았대요. 멍하게 발을 문턱에 올려놓 고 잊고 있다가 문짝에 찧고 하는 식이었어요. 물체와의 거리짐작도 모호 해져서 지나가면서 탁자나 의자를 툭툭 건드리고 가게 되고 돌에 걸려 넘 어지는 일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도 의심이 들어서 끊임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했다나요? 목소리를 통 해서라도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그때까지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가 시나가 말했다. “자기가 안 보인다고 자기의 존재를 의심해요? 그건 좀 이해가 안 가는 데요? 시각장애자들도 자기가 안 보이긴 하지만 자기 존재를 의심하진 않 는다고요.” 이오시아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하하.. 시각 장애자요? 아니에요. 그거랑은 좀 틀리죠, 시나. 상상을 해 보세요. 시각 장애자들에겐 세상 모든 것이 안 보이는 거예요. 하지만 그 아티스트에겐 세상 모든 것이 다 보여요. 오직 ‘자기 자신’만 빼놓고요. 시각이라고 하니까 상상이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청각으로 놓고 생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소리가 다 들리는데, 자신의 말소리만 안 들린다면 어 떻겠어요? 심지어 남들의 귀에도 그 소리가 안들린다면요? 설사 목소리 가 정말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인식되지 않는 목소리는 존재도 아무 것도 아닌거에요.” 그렇군. 시나는 이해했다. “다시, 시각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다른 사물이 다 보이는데 자기자신만 ‘안 보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죠. 인간에게 있어 자기 자신 이란 존재의 의미일 수밖에 없어요. 아까 몬스터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나요? 몬스터들은 사물을 인식할 때 백퍼센트 바깥의 정보만으로 판단하지만 인간들은 어떤 가치기준을 통하여 사물을 판단한다고 했었 죠?” 시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거예요. 시나, 인간들은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라 사물을 인식할 때 는 우선 자기를 본 다음 사물을 봐요. 어떤 사물을 인식하든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라는 채를 통해서 보게 되는 거죠. 심지어 인간은 ‘자 기’ 자신마저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라는 채로 걸러서 보 죠. 하하.. 이상한 표정 짓지 마세요. 시나. 잘 생각해보면 내 말이 맞는다 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남은 괜찮다고 하는데 자기 자신의 외모에 쓸데없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전 많이 봤어요.” 아! 그래 맞다. 외모!!! 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른 경우이긴 하 지만 시나시스터즈도 언제나 그랬다. 그 애들은 자기들이 상상한 시선으 로 줄곧 시나를 바라 봤던 것이다. 고맙긴 하지만 부담스러웠던 그 애정 들... 그 애들은 그 애들의 채로서 나를 바라봤던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 는데 이오시아가 말했다. “어쨌든 그 중요한 자기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자기는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채이니까 살아있어 정보를 흡수하는 동안에는 그럴 수밖에 없죠. ‘난’ 어떤 사람일까?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제대로 된 인간인가? 이런 식 으로요. 그런데, 그런 중요한 존재인 내가 인식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 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때는 우선 시각을 통해 80% 정도 감지한다고 하죠? 그런 것을 감안해 볼 때 그 아티스트는 자기자신을 보지 못함으로 서 80%의 자기를 잃어버린 거예요. 언제나, 꿈속에서라도 끝없이, 끝없이 계속 인식하던 자기자신을 갑자기 80%나 잊어버렸으니, 얼마나 당황했겠 습니까? 그리고 이제 그 아티스트는 깨닫게 된 것이에요. 인비저빌러티 아트를 하기 전엔 꿈에도 몰랐겠죠. 이 세상에서 ‘자기자신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간이 상상해 봤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겪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내가 없이 존재하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에 요. 그건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죠. 나를 빼놓고도 세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죠. 바로 그것이‘죽음의 공포’가 갖는 본 질 아닐까요? 나의 존재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라는 사실. 그 아티스트는 살아서 그 공포를 체험한 겁 니다. 모든 세계를 감지할 순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자신은 감지되지 않는다. 난 살아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아니... 난 애초에 존재하기나 했었나? 나란 무엇일까?.... 상상해 보세요. 시나. 세상 모든 사물이 다 보 이는데 오직 나만 안 보이는 것을요. 그건 죽음입니다.” 시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오시아의 말을 들었다. 별 것 아닌 것 같 고 죽음의 이야기까지 나오다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상해보라니 상상해보기로 했다. 세상 모든 것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다. 이 손도 이 다리도.. 그리고 이 몸통 도... 내 몸을 통해 바로 의자와 탁자가 보인다. 거울을 통해봐도 내가 보 이지 않는다. 곧바로 뒤의 벽이 보일 뿐이다. 그럼.. 그럼 도대체 여기 앉 아 있는 나란 존재는 뭐지?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나란 존재는? 내가 없어도 세상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럼 결국.... 나란 존 재는...? 나를 잃어버리고 나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어. 그것이 죽음의 공 포... 시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털어 내버렸다. 무서웠던 것이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와 존재와의 괴리감... 그래 이건 시각장애자와는 다 른 경우다. 그들은 모든 것을 못 본다. 그래서 괴리감을 느낄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아티스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자신이 죽은 후의 세상의 모습을 본 것이다. 생각만큼 세상은 나와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 그건 너 무 무섭고 슬픈 광경이었다. 아티스트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목 소리를 통해서라도 자기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던 그의 목소리... 몬스터 르핀은 천진난만하게 사탕을 우물거리고 있었고, 드래마는 생각하 는 표정으로 잠잠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이오시아는 부드러운 미 소를 띠고 시나를 바라보았다. 시나는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요. 이오시아님. 이오시아님이 말씀하시는 게 어떤 뜻인지 알 것 같 아요.” 그렇게 말한 시나는 좀 인상을 썼다. “하, 하지만 그 아티스트도 이상해요. 그러면 그 아트를 풀어버리면 될 것 아니에요? 그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잖아요.” 이오시아가 고개를 끄떡였다. “글세 말입니다. 그럼 아무 문제가 없었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푸 는 방법을 생각해 놓지 않고 인비저빌러티 아트를 자신에게 건 거예요. 카이러스 스피릿 마나를 사용하여 건 인비저빌러티 아트라 효과도 지독하 게 좋아 몇 달이 지나도 안 보이는 그대로였고, 그래서 몸이 보이는 비저 빌러티 아트를 연구하는 동안 그는 그만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 거예 요. 그리고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살게 되고... 그리고 그걸로 연구 는 끝- 이었습니다.” “이해가 안가요. 왜 연구가 끝이죠?” 시나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드래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나, 방금 말했잖아 맨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살았다고. 아트는 아 주 섬세한 연구과정이야. 더구나 자기가 모르는 아트를 배우거나 개발 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게 만들지. 그래서 새로운 아트를 개발하는 아 티스트들 대부분은 금식(禁食)이나 금언(禁言)을 해. 그런데 맨날 소리를 지르는 자가 어떻게 집중할 수 있었겠어?” “그, 그래요?” 이오시아는 박수를 짝짝쳤다. “그렇죠! 역시 아티스트시라 잘 아시는군요!” 그때 여관주인이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4991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39-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27 00:26 읽음:3342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 -39- <제 19막. 이오시아와 르핀 (2)>z “주문하신 것입니다! 순례자님! 아티스트님! 그리고 부인! 맛있게 드십시 오!!아, 그리고 이건 특별히 서비스로 드리는 거구요...” 시킨 것보다 푸짐한 음식이 나오자 테이블엔 한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오갔다. 특히 르핀은 고기를 보자 군침을 흘리더니, 이오시아의 허락을 맡 고 즐겁게 먹기 시작했다. 사탕봉지 뽀스락거리는 소리가 줄어들어 좋은 일이었다. 여관주인이 다른 테이블로 가버리자 이오시아가 시나를 보며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근데요, 이상하군요. 아티스트님의 아내라면 이 정도는 아실텐데... 자기 자신이 안 보이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길게 설명해보기도 처음입니다. 이건 아티스트들 사이에 유명한 불문율 아닙니까? ‘만가지 아트를 해도 좋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존재를 없애지는 말아라'이거 맞죠? 그 런데 이걸 모르시다니, 묘하군요?” 윽! 시나는 당황했다. 이게 그렇게 유명한 이야기였어? 드래마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최근에서야 만났습니다. 그래서 아직 그런 것에 대해 모릅니다. 제 일 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거든요.” 그래 그 말은 사실이다. 최근에 만난 것이랑, 드래마의 일에 대해 많은 이 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나는 동의하는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드랫과 저는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어요.” 드래마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시나를 봤고, 이오시아는 입을 쩌억 벌 렸다. “네? 이, 일주일?.. 이, 일주일이요? 저, 정말 최근에 만나셨군요. 그런데 결혼까지 하시다니... 하하? 사, 상당히.. 그, 뭐랄까... 두 분이 만나자 마 자, 서로.. 그.. 열렬한 사랑에 빠지셨나보군요? 하하하....” 드래마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졌고, 시나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결혼이라니.. 이건 우리세계 에서도 무리한 이야기다. 윽! 어떻게 해! 시나가 자신의 큰 실수에 당황하 는데, 드래마가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우린 ‘은혜의 법’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법?” 이오시아가 드래마와 시나를 번갈아 봤다. 드래마는 무뚝뚝하게 다른 데 를 쳐다보고 있었고 시나는 조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맞아! 그 것도 사실이야! 하하하.. 역시,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뭐, 난 거짓말하지 않았으니까...이렇게 시나는 자신의 어리석은 실수를 합리화시 켰다. 이오시아는 시나의 안도한 얼굴을 보며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랬군요. 어쩐지이. ‘은혜의 법’이었군요. 엘께서 맺어주신 관 계였군요. 하하..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양가 집안 에 복잡한 이야기들이 많았을텐데.. 결혼 하셨다고 해서.. 전 혹시 두 분이 서 ‘사랑의 도피행’이라도 하고 있나 했죠.” 이오시아의 말에 드래마와 시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외면하고 인상을 썼다. 사랑의 도피해앵?!! 참 상상력도 좋은 성직자로구만!!! 이오 시아는 당황했다. 테이블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다. 여, 역시 ‘은혜의 법’으로 맺어진 커플이라 그런지 서로 많이 부끄러워(?) 하고 있는건가? 서먹(?)해 하는 것도 같고... 그래서 이오시아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돌리기 위해 두 사람을 격려해주는 말을 하기로 했다. “하하... 은혜의 법이라니, 보통 분들의 결합보다 더욱 더 많은 엘의 축복 이 임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오시아는 나름대로 성직자의 권위를 갖고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확 신 어린 말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큰둥한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시큰둥하게 변해만 갔다. 그래서 당황한 이 오시아는 또 다시 머리를 짜내 이야기해야 했다. “하하하... 아, 이것 참... 음... 아! 그러나 저러나, 제가 결혼선물로 좋은 이야기를 하나 더 해드리지요. 뭔지 궁금하십니까?” 드래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떡였다. 시나도 시큰둥한 표정을 풀고 이오 시아를 보았다. 두 사람은 찝찝한 소리를 들은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오시아는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아, 그래. 그렇군! 역시 둘은 부끄러워(!) 하고 있었던 거야. 하하.. 나도 참 눈치 없게스리... 음. 그래 결혼과 관계없는 이야기로 이 둘의 긴장감을 풀어줘야겠군. 사람들의 마 음을 위로하는 것! 그게 성직자의 의무이지. 그렇게 생각한 이오시아는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 운 일이다. “에헴- 이건 그 인비저빌러티에 걸린 불쌍한 아티스트의 후속담입니 다.” “에? 후속담도 있어요?” 시나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이오시아가 웃었다. “그럼요. 저는 해피엔딩의 이야기가 아니면 잊어버리는 체질이거든요. 이 것도 해피엔딩이기에 아직껏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흐응... 해피엔딩이요? 결말이 좋았단 이야기예요? 그 아티스트가 어떻 게됐는데요?” “그 아티스트가 어떻게 됐느냐하면 말이죠, 어느날- 그 아티스트가 집 안에 앉아 언제나 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 그 집은 아무 도 없는데 소리만 들린다고 해서 이미 유령의 집으로 소문이 나 아무도 그 집 근처에는 가지 않았죠.. 그렇게 그 아티스트 혼자서 외롭게 앉아 소 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문득 깨달은 거예요.” “뭘요?” 시나는 먹는 것도 잊고 이오시아를 바라보았다. 이오시아는 시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보는 것이 자기에게 있어 오히려 고통이라는 것을요.” “네?” “후후... 그때까지 그 아티스트는 계속 엘에게 기도했을 겁니다. 자기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남들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은 거예요. 도대체 난 왜 이 세상을 이토록 끊임없이 바라보며 괴로워해야 하는 건가.. 이 세상 은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었어요. 너무나 시끄러운 세상... 그토록 갖길 원하던 시각이 오히려 자신을 망치고 있다 는 것을, 드디어 그는 안 겁니다. 그리고 그 아티스트는 그토록 집착하던 80%의 자기를 버리기로 했답니다. 자기 자신을 거의 전부 다 버리기로 결심한거죠. 그리고 난 뒤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도 할 수 없고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드래마가 이상하게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네. 듣기론 불에 달군 부지깽이로 눈을 지졌대요.” “우, 너무...끔찍해요. 그게 무슨 해피엔딩이에요?” 시나는 입까지 가져온 눈알 모양의 둥그런 야채를 다시 내려놓았다. 이오 시아가 하하 웃었다. “해피엔딩이었습니다. 그 아티스트는 눈을 잃어버렸고 기절한 뒤 다시 눈을 떴을 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이제야 세상은 정상으로 돌아온 겁니다. 인식의 주체인 ‘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 도 보이지 않는다. 이건 충분히 안도감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아티스트가 아픔을 참으며 일어나 집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그때 놀라 운 일이 벌어졌거든요....” 이오시아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빵을 떼었다. “그가 온전한 장님이 되었을 때- 그토록 간절하게 열망하던 시각,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각을 버렸을 때, 오히려 세상은 제대로 돌아왔습니 다. 그의 남은 20%의 감각이 춤을 추기 시작한 거죠. 지저귀는 새의 노래 와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발 밑에 느껴지는 거친 대지의 감촉... 바 람의 움직임... 공기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맛... 이 모든 것들은 눈이 있을 때는 느끼지 못 했었던 것들이었는데... 눈이 없어지고야 이것들을 인식하 게된 그는.. 그렇게 다시 한 번 더 새롭게 세상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자신을 보는 방법도 또한 새롭게 배우게 됐고요. 그가 80%의 자기 대신 20%의 자기를 선택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때서야 겨 우100%의 자기를 얻게 된 겁니다. 80%의 자기에게 집착했을 때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 했지만요. 결국 그 아티스트는 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을 알고 감사했다고 하더군요 후후... 어때요? 재미있는 이야기 아닙니까?” ‘사랑의 도피행’같은 닭살 돋는 말들은 이미 잊어버린 시나가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불쌍하네요. 평생 장님으로 살아야 했으니....” 후후.. 웃으며, 해피엔딩의 결말에 행복해하던 이오시아가 무슨 소리냐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평생? 왜, 평생을? 아-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아직 결혼식 전이었대요. 그래서 곧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성인식을 치르고 시력을 다시 회복했다 고 하더군요.” 윽! 이 세계 사람들의 별난 체질을 깜빡 잊고 있었다. 성인식을 치르면서 떨어져나간 팔 하나가 다시 날 정도인데... 하긴... 시력 잃은 것쯤이야. 이 런 건 참 좋은 세계로구만. 시나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드래마가 고 개를 숙이고 말했다. “...좀 멍청한 아티스트였다고 생각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씁쓸한 목소리에 이오시아가 살짝 웃었다. “후후.. 그렇죠?” 그때 르핀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야아아아웅. 난 재미없었어. 그 멍청한 인간은 이상해.” 세 사람은 그 존재를 거의 잊고 있었던, 한 마리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고 양이 몬스터 앞에 놓인 접시는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음식 먹는 것에’ 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저렇게 깨끗이 비울 수는 없다. 세 사람의 음식 은 아직 반 이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오시아는 이야기가 재미 없었다는 르핀의 말에 매몰차게 대꾸했다. “..르핀. 너 들으라고 한 이야기 아냐! 게다가 아까부터 쩝쩝거리며 음식 만 열심히 먹어놓고, 이제 와서 재미없는 이야기였다고 하면 하나도 설득 력 없어!” “하지만, 그 이야긴 너무 멍청... 꺼르륵--!!!” 르핀은 트림했다. “..야웅. 너무 멍청했어. 아트 하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눈을 부지깽이 에 찔렸다니, 바보 같은 인간이야. 그러면 눈이 안 보이는 게 당연하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랬대? 야웅. 바보 같은 인간이야.” ...확실했다. 르핀은 이야기를 ‘하나도’ 안 듣고 있었다. 사오정 고양이 몬스터냐? 시나는 벙찐 표정으로 르핀을 바라보았다. 이오시아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뭐야? 르핀.” 르핀이 방긋 웃었다. “이야기 같은 거 그만두고, 내가 꼬마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면 어떨 까?” 테이블 분위기가 삽시간에 살벌해 졌다. 이오시아가 말했다. “관둬.” “왜?! 난 할꺼야! 할꺼라구!! 자- 봐- 한다? 진짜루 할꺼다?” 그러더니, 푸드득 날아오를 태세를 취했다. 어느 날, 길 가다가 난 널 만났지.. “으악-- 르핀!!! 제발 그만둬-!!!” 기겁을 한 이오시아는 르핀을 붙들어 앉혔다. 그리고 르핀의 입을 틀어막 았다. 르핀은 버둥거렸다. 드래마는 그런 이오시아를 격려하는 표정으로 쳐다봤고, 시나는 그저 웃는 수밖에 없었다. 하하.. 사탕의 위력이 대단하 긴 하구나.. 이 소동이 일어나자, 자신들의 이야기에만 열중해 있던 사람 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래?” “자네도 들었어? 오리 꽥꽥거리는 소리였지?” “오리? 아니야. 돼지 멱따는 소리 같던데? 어디서 돼지 잡나?” “돼지? 아냐. 고양이 몬스터가 노래 부르는 소리 아니여?” 이렇게 저마다 말하던 사람들은 시나의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제야 시나 일행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 하던 곳이 많이 조용해졌다. “가만.. 저거, 그러고 보니, 고양이 몬스터아냐?” “맞아!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몰랐더니.. 어쩐지.. 애 녀석치고는 몸놀 림이 재빠르다고 했지..” “고양이 몬스터? 그럼 저 분은..?!” 이오시아가 사람들을 보며 방긋 웃었다. 이오시아가 웃자 사람들이 자기 들끼리 쑥덕거렸다. “..틀림없이, 낮에 카할에 있던 순례자님이 고양이 몬스터를 데리고 있었 지? 순례자님 아냐?” “글세.... 솔직히 별로 인상적인 얼굴이 아니었잖아? 그래서 기억이 안 나 는데?” 시나는 그 쑥덕거림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군. 난 순례자님 이 참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계속 수근거렸다. “맞아! 맞다니까! 저 푸른색 후드를 보면 알지! 순례자님은 푸른색 후드 를 입고 있었다구!” “에에?! 설마! 순례자님이 왜 이런 후진 음식점엘!!!!” 듣다 못한 이오시아가 여전히 버둥거리는 르핀을 꼭 붙잡고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전 엔나시라 일루테오나 카할에 속한 이오시아라 고 합니다.” 허억--!! 사람들은 엄청나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순례자님이야!” “이, 이럴수가! 아까는 왜 몰랐지?” “하도, 평범한 인상이라 별 신경도 안 썼더니...”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란 눈초리로 시나일행을 바라보았다. 그 리고 마침내, 그 중 한 사람이 일어나서 시나 쪽 테이블로 가까이 왔다. “헤헤헤, 아, 안녕하십니까? 순례자님? 영주님댁에서 식사를 하실 줄 알 았는데, 이런 지저분한 여관에서 식사를 하신다니 이게 도대체 웬일.....” ..까지 말하는데 여관주인이 다다다 달려와 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이 쫘식이, 뭐가 어쩌고 저째?! 우리 여관이 뭐가 어때서?!! 맨날 와서 빌 붙어사는 주제에!!!! 취한거야? 뭐야?!!! 취했으면 집에 돌아가 마누라 궁뎅이나...” 아니다. 여관주인은 말을 삼켰다. 내가 이러면 안되지!! ‘성직자’가 옆 에 계시는데, 이런 저질스런 말을... ‘고급여관’의 주인다운 우아한 말투 가 어떻게 되더라..? 궁뎅이 걷어차인 남자가 꽥 소리쳤다. “궁뎅이 뭐-?!!!!!” “뭐? 구, 궁뎅이...? 궁뎅이가 아니라.. 으흠.. 흠. 그래, 히프!! 히프다! 히, 히프나 만져--!!!” 여관주인은 우아하게(--; 영어로 말하면 우아한 건가? --;) 말했다. 그의 평소의 언행을 잘 아는 사람들은 피식피식 웃었다. 무리하고 있군, 여관주 인. 궁뎅이를 걷어차인 남자는 히프라는 우아한(--;) 언어에도 별 감명을 받지 못한 듯 했다. 그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우이씨-! 웃기고 앉아있네!! 웬 히프-?!! 남의 궁뎅이 더러운 발로 걷어 차놓고 내 마누라 궁뎅이가 히이프?!! 나 참, 웃기지도 않아서!! 그리고! 내가 틀린 말했어?!!!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여긴 순례님같은...” “노오만?! 너 외상 값 좀 계산 해 볼까...?” 히프라는 우아한 언어에 여론이 다들 ‘우습지도 않다’로 돌아가자 여관 주인은 얼굴이 벌개져서 말했다. 그러자 우아한 언어에는 별 감명 못 받 던 노만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알았어. 오늘 밤, 왠지 갑자기, 마누라의 ‘히이프’가 만지고 싶군.” 노만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깔... 히이프!!! 여관주인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자신의 별명이 ‘히이프’가 될 것 같다는. 이오시아도 웃었다. 하하핫.. ‘히이프’라.. 이래서 내가 이런 여관을 좋아하지. “하하핫... 정말 활기차고 좋군요. 확실히 전 이런 곳이 더 편합니다.” 그 말을 여관에 대한 칭찬으로 알아듣고 여관주인, '히이프'는 벙그레 웃 었다. 아, 역시 우아한 언어를 쓴 보람이 있구나. 사람들 역시 즐겁게 웃 었다. 그 중에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 말했다. “하하하--!!! 편하다고요? 부라보-!! 역시 순례자님은 깨끗한 영주님보단 죄 많고 지저분한 우리 같은 녀석들을 더 좋아하시는군요!!!” 한 사람이 맞받았다. “와하하- 그래, 맞아! 잉거! 넌 죄가 많은 녀석이야! 순례자님도 네 녀석 같이 탁한 영혼을 갖고 있는 놈을 보면 일할 맛 나실거다!! 더러운 걸레 일수록 깨끗하게 빨고 나면 보람이 넘치거든. 와하하!! 그러나 저러나 네 녀석의 영혼은 땟국물 빼면 뭐 남는 거나 있겠냐? 잉거! 잘 생각해서 순 례자님 옆으론 가지마! 몬스터처럼 형체조차 없어지고 싶지 않거든! 와하 하!!!” 잉거만 빼고 모두 즐겁게 웃었다. 잉거가 방금 말한 사람과 붙어서 엎치 락뒤치락하는데, 한 사람이 아직도 이오시아의 팔에 붙잡혀 버둥거리는 르핀을 가리키며 말했다. “순례자님, 그 고양이 몬스터, 노래하고 싶어서 난리인 것 같은데, 순례 자님이 대신 노래하시면 어떨까요? 축복의 노래요. 그러면 몬스터도 고분 고분해 지지 않을까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소리쳤다. “맞아요! 해 주세요!” “우리 같은 녀석들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 술집에 쳐 박혀 사는 우리들은요!!! 와하하!!!” “옳소!!! 안 해 주시면 타락할 거에요?” 사람들이 농담처럼 너도나도 떠드는데, 히이프가 가계 안의 사람들을 쫘 악 째려보면서 이야기했다. 그에겐 고급여관주인으로서의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어잇! 불손한 자식들! 드럽게도 떠드네! 순례자님 신경 쓰지 마세요. 아, 그렇지 편하게 식사하시게 독방으로 모실까요?” 주위 사람들이 히이프에게 벼라별 욕을 다하는데 이오시아가 빙그레 웃었 다. “아니오. 됐습니다.” “네? 하지만 여긴 굉장히 시끄러워서...” “저기, 엘의 성가를 부른다면 좀 조용해지겠지요? 아까 그분의 말씀대로 르핀도조용해질 것 같구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말 그대로 가게 안은 물 끼얹은 듯 조용해 졌다. 이오시아는 르핀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어때? 르핀? 내가 노래하면 너 조용할 수 있겠냐?” 르핀은 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오시아가 노래해? 괜찮아. 꼬마가 이오시아 노래 듣는 건, 내 노래 듣 는 거 보다 좋아.” 이오시아가 르핀의 말에 히죽 웃었다. 히이프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 하지만, 순례자님? 여, 여긴 카할같은 그, 뭐냐, 거, 거룩한 장소도 아닌데요?” “저도 압니다.” 이오시아가 생긋 웃자마자, 가게 안은 삽시간에 난리가 났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꽥꽥 소리 지르며 우르르 몰려 나갔다. 자기 가족 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히이프도 갑자기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고함 을 고래고래 지르며 자신의 아내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을 찾고 있는 듯 주방 밖에까지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그 모양을 지켜 보던 시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하고 생각했다. 드 래마 또한 불가사의하다는 듯 말했다. “...순례자님..? 무슨 생각이십니까..?” 이오시아가 웃었다. “하하하.... 좋지 않습니까? 엘의 성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죠. 마침 사 고싶던 책도 샀겠다, 르핀도 제가 노래하면 조용히 한다고 했겠다. 부르고 싶군요. 이 밤을 르핀의 노래로 보내는 건 끔찍하니까요.” 이렇게 말을 나누는 와중에도 가게 안에는 소극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 람들이 바글바글 들어찼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테이블 위, 심지 어는 카운터 위에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낮에 카할에 있던 사람들 반수는 온 것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 ‘엘의 성가’라는 단어가 물결치고 있었다. 시나는 드래마에게 속삭였다. “드랫, 도대체 엘의 성가가 뭔데 사람들이 이러는 거예요? 그 노래가 대 단한 건가 보지요?” 드래마가 말했다. 그도 뭔가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단? 그래. 대단하지. 엘의 성가 자체도 대단한 거지만, ‘순례자’ 이 오시아님이 부르기 때문에 대단한 거야. 디바인 파워의 성직자가 부르는 ‘엘의 성가’는 말 그대로 '생명의 노래’지. 잘 들어둬. 시나. 아마 어쩌 면 평생에 이런 기회는 없을지도 몰라. 디바인 파워의 성직자가 일루티온 계급의 여관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그래? 그렇단 말이야? 왠지 시나도 기대하는 마음이 되었다. 르핀이 시나 에게 달라붙어 고르륵 거렸다. “야옹. 이오는 별로 노래를 잘 안 해. 듣고 싶다고 해도 안 해줘. 맨날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해. 난 안 그런데. 이오는 날 닮아야 해. 그치?” “응. 그래 르핀.” 시나는 웃으며 르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여웠던 것이다. 이윽고 이오 시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느라 벌어졌던 소란이 그 럭저럭 진정된 것이다. 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이오시아를 보았고, 이 오시아는 이윽고 입을 열어 노래했다. ..과거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것. 나무가 거꾸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그다지 아름다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첫 음절부터 사 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카할에서의 그 눈빛처럼, 시나는 가슴에 섬뜩 함을 느꼈다. 과거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것. 나무가 거꾸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과거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것. 나무가 거꾸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첫 부분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성가로 흔치 않은 성가라고 생각했다. 이오시아는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하더니 갑자기 사람들을 보고 벙긋 웃었다. 얼굴이 좀 붉어져 있었다. “아하하하... 아, 이거 죄송합니다. 오늘 책을 샀더니, 노래를 다 못 외웠 어요. 제일 마음에 드는 노랜데...” 계단 위와, 테이블 위와, 카운터 위와 심지어는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 까지도 거기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엉덩이에 힘을 굳세게 줬다. 모 두 다 표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오시아를 보 았고, 르핀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야옹’이라고 한 뒤 사탕을 씹는데 열중하는 척했다. 드래마 마저도 황당하다는 듯 이오시아를 바라보았다. 요즘.. 순례자들은... ...재밌군. 이것이 순화된 드래마의 생각이었다. 시나는 순례자란 사람들이 모두 다 이오시아 같은 사람들이라면 그건 보통집단이 아닐 거란 확신을 강하게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찬 눈빛 속에서 노랫말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배낭을 뒤지고 있다니... 노래방에서 팝송 시 켜 놓고, 모든 노랫말을 한 구절씩 뒤늦게 읽으면서도 또 다시 팝송 시키 는 사람보다 더 강심장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황당함에 의한 뇌 진탕(?)으로 돌아가시게 할 뻔한 이오시아는 여전히 별다른 동요 없이 가 지고 다니던 배낭에서 책을 찾아냈다. “아, 여기있네요.” 그는 새로 산 엘의 성가를 들어 펼치더니, 씨익 웃었다. 그와 눈이 마주 친 사람들도 엉겁결에 씨익 웃었다. 그 불가사의한 분위기 속에서 이오시 아가 노래했다. 드디어 제대로 시작하는 건가.. 하고 사람들은 안도의 한 숨을 쉬며 엉덩이에 준 힘들을 풀었다. 과거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것. 나무가 거꾸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새겨진 시간, 다시는 지워지지 않으리. 자신의 법을 따르기 즐겨하는 엘의 의지로서. 미래는 엘의 발자취. 엘의 그림자, 人. 앞서 갈 수 없는 숙명의 그림자인 그대여. 오지 않는 시간. 시간이 잠드는 그날까지 엘의 소유로 남게 되리. 그러니, 그대여. 지나간 시간의 나이테를 슬퍼하지 마세요. 앞날의 그림자를 두려워 마세요. 오직, 가장 천한 나무라도 가장 아름다운 事物로 바꿀 수 있는 엘 안에서. 용기를 내어, 당신의 여행을 계속하기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시간 속의 영원을 살아갈 용기를 당신에게 드립니다... 정말이었다. 특별히 아름답거나 한 음색은 아니었다. 그저 맑고.. 투명했 다. 공기에 녹아들어, 대기의 숨결이 되어, 사람들의 호흡 속으로 들어와 폐부를 찌르도록 맑고 투명했다. 목소리 때문에 생긴 폐부의 작은 아픔은 가슴속으로, 깊숙한 곳으로, 뭉근히 퍼졌고, 퍼진 작은 티끌 같은 그 아픔 은 다시 파도처럼 아련히 천천히 몰려와, 사라져갔다. 물결과 같은 그 아 픔이 마침내 목줄기를 타고 올라와 시나의 눈물샘을 자극했을 때... 그때, 시나는 눈물이 자신의 눈에 고임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 다. 자신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런 노래에 동질감을 느끼는 거 지?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지으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슬프고 안도하는 표정들... 긴 인생 속에서 작은 쉼을 얻은 표정이었다. 이오시아 는 계속 노래했다. 한숨과 고통과 슬픔까지도 긴 인생에 있어 빛나는 축복이 되리니 이것이 엘의 의지. 더없이 사랑스러운 그대여 그러니, 그대여. 당신의 이름을 찾으세요. 당신의 이름을 짓는 자가 이미 당신의 이름을 지었으니 그가 그 이름을 부를 때 그 자리에서 그에게 화답하는 자가 되세요. 사랑하는 그대여. 지나간 시간의 나이테를 슬퍼하지 말고. 앞날의 그림자를 빛으로서 확인하고. 오직, 가장 천한 나무라도 가장 아름다운 事物로 바꿀 수 있는 엘 안에서. 용기를 내어, 당신의 여행을 계속하기를. 그렇게 하나의 이름으로서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당신이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그날까지 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노래는 끝났다. 그리고 여관 안에는 이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 다. 공기마저도 바뀐 듯 했다. 어떤 깃털처럼 부드러운 것이 그들의 육체 와 마음을 쓰다듬고 있었다. 생명의 노래...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왜 사람들이 이 노래를 생명의 노래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시나는 슬펐 다. 이 노래는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묻어두 기 원했던 것.. 그녀는 드래마를 힐끗 보았다. 드래마 또한 우울한 표정이 었다. 카할에서 나왔을 때 보인 그 표정.. 지치고 괴로운 표정.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강하게 열망하는 표정. 그건 바로 시나 자신이 가진 또 하나의 모습이었다. 이오시아는 마우르코트 일루테오나에서 멀리 떨어져 마을의 모습을 보았 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나와 배웅하고 있었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더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길을 걸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희미하게 외치고 있었다. 마젤토브 (Mazel-tov), 엘께서 행운의 별을 순례자님의 발 앞에 준비해 놓으셨기 를...!!! 마젤토브.. 우리가 있었던 곳에, 그리고 다시 만날 곳에 엘의 축복 이 함께 하시기를... 우리가 만났던 시간과 함께 했던 장소에서처럼 앞날 에 우리가 같이 함께 할 장소에 엘께서 함께 하시기를... 마젤토브.. 드랫... 시나. 좋은 만남이었다. 엘께서는 언제나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다. 왕 의 공고문을 마우르코트 일루테오나의 영주에게 전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 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보통 이런 일들은 보발꾼(Couriers)이 하 지만 정말 예외는 있는 것이다. 엘의 섭리 안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이 오시아는 빙긋 웃었다. 르핀은 그의 옆에서 푸드득거리며 날고 있었다. 그 런 르핀을 보며 이오시아가 피식 웃더니 물었다. “르핀, 너 시나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보지? 네가 시나에게 사탕을 주 는걸 보고 정말 놀랬어.” “응. 야웅.. 난, 꼬마가 정말 좋아. 우리 마젤토브 할 수 있는 거지?” “후후.. 글세.” 이오시아의 애매모호한 웃음에 르핀이 말했다. “아이온 이오시아, 이오는 꼬마가 좋아?” 이오시아는 빙그레 웃었다. “응. 좋아해.” “사랑해?” 이오시아는 땀을 삐질 흘렸다. 이 녀석은 가끔 웃기는 단어를 쓴다니까. 하지만, 성직자들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게 일이지.. “그, 그래.. 사랑도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르핀이 말했다. “...이오..? 남의 유부녀를 사랑하면 안돼. 불륜이야.” ...이오시아는 검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엘야시온엔 이런 전설이 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엘께 서는 가끔 천사들을 내려보내어 자신의 의지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지 시험하신다고. 엘의 사자들이 거지나 나그네로 분해 엘께서 원하시는 의 롭고 관대한 사람들을 찾는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나그네나 여 행자를 맞아들이는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천사’의 방문을 받을 수 있 는 것이다. 굳이 그런 로맨틱한 전설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순례자는 어디서나 환영 받는 존재였다. 힘들고 슬픈 인생에 있어 디바인 파워의 순례자들이 불러 주는 노래는 사막을 걷다가 아름다운 오아시스에서 물을 맛 본듯한 위로 와 새 힘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여행자나 나그네가 ‘천사의 방 문’으로 환영받는 것은 아니지만, 순례자들은 거의 대부분 ‘천사의 방 문’으로 환영받는다. 그리고 어느새 ‘천사의 방문’이란 말은 ‘순례자의 방문’을 뜻하는 말 로 변화되기도 했다. ‘천사의 방문’을 위해 여행을 하는 순례자... 엘이 이끄시는 대로 여행하는 순례자들은 이윽고 새벽과 아침이 오면 쉼 을 위해 어느 마을의 한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길고 긴 밤이 지나고 새 벽이 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연 사람들은 아침 햇살 속에 서 그들에게 찾아온 천사를 보며 이 세상에 아침마다 뿌려지는 엘의 은혜 가 자기에게도 임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순례자 이오시아는 어둠 속을 걷는다. ‘어둠 속의 작은 빛’이라 불리기도 하는 순례자의 별칭을 가지고. 옆에는 ‘천사’ 비스므리한 날 개를 가진‘몬스터’를 데리고. 그래!! 이오시아는 지지 않으리라 결심했 다. 자신은 엘의 뜻에 따라 어느 마을, 누구에겐가 희망을 주어야 하는 존 재다. 여기서 르핀의 말을 듣고 좌절하여 여행을 포기하면 안 된다.(르핀 의 말을 듣는 순간 르핀을 데리고 여행 다니는 것에 심각한 회의가 들었 었다.) 그래!!! 이것도 인격수양이다!!! 이오시아는 밤하늘 속에 빛나는 별들을 바 라보았다. 그래에!!!!! 어떤 어둠 속이라도 엘께서는 희망이라는 작은 빛을 준비해 두셨다. 저 밤하늘과 같이!!! 밤의 어둠보다는 그 속에 있는 별을 바라보자, 그것이 비록 너무 미약하다할지라도, 그래서 별은 더욱 아름다 운 것!!!이오시아는 주먹을 쥐었다. 그래에에!!!! 엘이시여--!!!! 그는 밤 하 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애써서, 힘내서, 주먹을 꼭 쥐고 처절한 ‘인격수 양’을 했다. ...이렇게 순례자 아이온 이오시아의 여행은, 고양이 몬스터 르핀과 함께 계속될 것이다.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5028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75-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5/30 00:00 읽음:3940 관련자료 없음 ----------------------------------------------------------------------------- ** 안녕하세요? ^^ 말씀 드린대로, 이번 주안에 74편까지 올리려구, 자료 실에 들어갔는데... 과부하가 걸려서 지겹게 글이 안 올라가는군요..--;; 으 음.. 하는 수 없이 월요일 새벽에나 등록해야 할 것 같고요..^^ 이 밑에 것 은 75편입니다.^^ 하이텔과 유니텔에 오늘 올린 분량이죠.^^ 그 전에 이야 기를 모르시는 분은 나중에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하하..^^ 엘야시온의 외전 토너먼트도 올렸는데, 제대로 안 올라간 것 같습니 다.--;; 다시 올려야죠 뭐. 으음... 이것으로, 이제 나우누리에도 동시에 연 재하게 되어 기쁩니다. (진작 자료실에 올려버릴걸... 그 고생을 했다 니..--;;) 웬만하면 게시판에 차근차근 올리겠지만, 시간이 너무 없군요. ^^; 최근에는 게임을 하나 알게 되어서... 하하... 뭐, 열심히 살아보리라, 다짐하는 엔입니다. --;;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엘야시온 스토리(RF) - 제75회, 제 29막. 셰리카,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아이. (5)> 샤일라테는 창을 통하여 하늘을 보고 있었다. 높다란 하늘을 아까부터 한 마리 솔개가 맴을 돌고 있었다. 솔개라... 혹시, 도비온의 것인가? 저렇게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니... 부하들을 있는 대로 끌어 모을 생 각인가 보군. 후훗. 하지만, 머릿수만 많다고 사람이 제대로 찾아질까? 머 리 나쁜 녀석들 모아놓으면 입 단속시키고 통솔하는데 힘만 많이 들뿐이 지. 쯧쯧. 그러니까, 도비온, 사람이 좀 겸손해야 하는 거 아냐? 네가 조금 만 더 이쁘게 굴었더라면, 굳이 솔개 따위 이용해서 부산떨지 않아도, 이 샤일라테 옆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만 주워먹어도 충분했을 것을. 쯧쯧. 뭐, 잘해보라고 도비온. 건투를 빌어줄게. 네 일이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나중 에 확실히 비웃어주지. "호- 호호호....." 메르칼은 눈앞에 있던 하바트가 느닷없이 웃어젖히자 당황해서 그녀를 쳐 다보았다. 도대체 갑자기 왜 웃는 것인가? 내가 무슨 웃긴 짓이라도? 그 때 샤일라테가 웃음을 뚝 그치고 메르칼을 쳐다보았다. "뭘 보는 거지? 말 한 것은 찾았나?" "아, 아니오, 아직.." 메르칼은 다시 황급히 명부로 눈을 돌렸다. 클로니아 힐러 연맹의 인사부, 제일로트 담당 서기인 그는 샤일라테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샤일라테는 클로니아 소속의 힐러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밝힌 자신의 신 분은 힐라토 궁정 힐러단 소속의, 레드 라이트급의 힐러이다. 오렌지 라이 트까지 낼 수 있다는 네르세바의 성가(聖家)들 외에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능력을 가진 힐러이다. 거기다 하바티온 계급이니.. 문서의 보안을 철저히 지키기로 유명한 인사부의 서기라도 그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던 것이 다. 더구나 '힐라토와, 클로니아간의 경사로운 혼인을 맞아, 힐라토 궁정 힐러로서 이곳에 거주하는 힐라토 출신의 힐러들을 만나, 그들과 고향 이 야기라도 나누며 위로 및, 격려의 말을 하고 싶다.'...라는 고무할 만한 이 유가 있다면 당연히 들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 여기 있군요. 있습니다. 힐라토 출신의 힐러 명단이.... ....블레미쉬의 아들, 구안타. 인데오의 아들 바이틀리. 웨시의 딸 다일랜.... 으흠... 아, 챈 다후의 아들... 라단. 이들이 현재 제일로트에 거주하는 힐라토 출신의 힐 러들입니다." 샤일라테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중, 청의 엘야시온 가디엘 83년에 토너먼트에 참가한 힐러는? 그 이 름과 그들이 당시 계약을 맺었던 주인의 이름을 찾아보도록." 83년도의 토너먼트? 왜 그런 것까지 묻는 것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어차 피 명부는 개방되었다. 그러니 못 알려 줄 것도 없는 것이다. 메르칼은 집 게손가락으로 토너먼트 참가 기록 난을 훑었다. "예에... 구안타와 다일랜입니다. 구안타가 계약을 맺은 분은 힐라토의 루 온 루케이지님, 다일랜은 힐라토의 루온 루페그님이군요...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주인이 이곳으로 이주할 때 따라서 왔습니다. 바이틀리도 마찬가 지 연유로 이곳 클로니아에 왔는데, 이 사람은 85년 생이니까... 83년도 토 너먼트에는 당연히 출전한 적이 없군요... 응? 라단? 아니 이 사람도 토너 먼트에 출전했다고 나와있네? 이 사람, 페이스 힐러도 아닌데, 어떻게 토 너먼트에 따라갈 수 있었지? 흐응... 꽤 하급의 루이트와 계약을 맺고 토 너먼트에 참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온 루드랫님이라.... 확실히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군요." 샤일라테는 활짝 웃었다. "그렇군... 힐러라이트도 못내는 힐러가 토너먼트에 참가했다라... 호호... 뭐, 세상에는 별별 일이 다 있으니까... 20년이나 지나서 완전히 잊혀진 별 별 일들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기억할 가치가 없는 사건이라도...." 샤일라테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쉽게 잊어버리는 인간들과는 달리, 문서는 확실히 기억을 해 주고 있으 니까... 나도... 그 녀석들도 이렇게 마음놓고 기억을 잊고 있었는지도... 호 호... 하지만, 그 기억을 되돌리는 키워드마저 잊은 놈들은... 한심해. 호- 호호호..." "네? 그게 무슨 말씀..." "그 네 명의 신상명세서를 적어 줘. 아,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주소도 잊지 마." "아, 네넷." 그리고 잠시 후, 샤일라테는 메르칼이 건네준 네 개의 서류를 갖고 나왔 다. 메르칼은 사무실을 나가는 샤일라테를 보며 그녀가 만족한 표정으로 나간데 대해 안도했다. 굉장한 여자였어. 외모나, 분위기나. 역시 하바티온 계급이어서 그런 것일 테지? 그런데 하바티온의 여인이 수행원도 없이 저 렇게 혼자 다니나? 실력 있는 힐러여서 그런가. 수행원 없이도 상당히 당 당하고, 할말도 다하고. 휴우... 대단한 여자야. 한편 샤일라테는 이런 메르칼의 감탄을 뒤로 한 채 도비온의 마차에 올랐 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잠시 네 개의 서류를 훑어보고 단 하나만 남겨놓 고 쫘악, 쫘악 찢어서 마차 바닥에 흩뿌렸다. "흥! 청소야 도비온 녀석 마차이니, 그 녀석이 잘 알아서 할 테고..." 샤일라테는 마차의 창 밖을 보았다. 해는 벌써 자오선을 넘어 상당히 아 래로 기울어 있었다. "...식사나 하고 찾아가 봐야겠군. 도비온 녀석 때문에 아침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으니까." 그리고 샤일라테는 들고 있는 종이를 차곡차곡 접어 자신의 소매 자락에 넣었다. 힐러 라단. 이 녀석이 틀림없을 것이다. 자이온에서 클로니아까지 그를 따라온 힐러. 이 녀석... 아마도 보호물이 토너먼트에 참가하기 위해 자이온에 데려갔던 힐러 중의 하나일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아직도 이곳 제일로트에 있었군. 후후.. 샤일라테는 낮게 웃었다. 도비온이나 다른 형제 들이 힐러 라단의 존재를 떠올리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호물의 힐러라고 해도... 보호물이 토너먼트에 우승한 순간부터, 아마도 이런 하급 의 힐러는 보호물과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토너먼트의 우승 자에겐 발에 채일 만큼 실력이 쟁쟁한 힐러들이 붙는다. (계속)================================================== 왜 이렇게 짧냐고요? 하하... --;;; 제가 요즘 창세기전 2를 하고 있기 때 문입니다.(뒤늦게...--;;) 빌린 시디인데요, 빌려주신 분이 강력 추천하며 하신 말씀대로 정말 넘 재미있군요. 이것 때문에 일주일 동안 평균 2-3시 간 자고 있습니다. 목요일은 밤을 꼴딱 새며 했다가, 다음날 죽는 줄 알았 죠...--;;; (눈이 부시고 졸려서, 햇빛 가운데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습니 다. 뱀파이어냐...--;;) 그런데 이 게임, 왜 이렇게 다운이 잘되는지.. 화면 이 까매지는 그 순간, 궁극의 분노와 허탈, 기막힘을 느낍니다. 요즘은 초 월 내지는 초탈, 득도, 해탈, 탈선(?)해서, 그냥 허허- 웃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사랑스럽다! 다운!!!! 흐흑.. 다운만 아니었으면 벌써 끝냈을 텐데.. 어려운 피리어드도 많구.. 그 래도, 주인공이 참 멋집니다. TT 덕분에 게시판에 올라오는 창세기전들을 다 찾아서 보고 있는데... 전, 개 인적으로 하늘님의 흑태자가 마음에 들더군요. 그 사람 나오는 장면이 짧 은 게 흠이지만..^^ 이런 멋진 이야기의 주인공을 그냥 놓칠 리 없는 엔... 당분간 저는 '안타 리아'에서 살겠습니다. 창세기전 2 끝나면, 창세기전 1를 어떻게든지 부팅 시켜서 할 야망입니다. 돌 던지시려면 돌 던지십시오. 흐흑... 쥐에스.. 널 위하여 이 한 몸 돌 맞으련다!!!!! TT 창세기전은 정말 글 연재 안 해서, 조회수가 격감되고 욕 얻어먹어도 좋 다! 라고 느낄 만큼 재밌는 게임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 나라에서 만들 었다고 생각하니 참 좋군요.^^ 유시진님도 그렇고 드래곤 라자도 그렇고... 이런 것을 보면, 우리 나라에 태어나길 잘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룰루.. <엘야시온 끝내고 나도 꼭 창세기전 패러디 써보리, 다짐하는 엔..^^>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5288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76-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6/12 23:48 읽음:2882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RF) - 제76회, 제 29막. 셰리카,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아이. (6)> 힐러에 관해서 만은 거의 왕족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러니 토너먼트를 같이한 공이 있는 힐러라고 해도 그건 이름뿐이다. 힐러 들 세계 안에서 실력에 따라 나뉘는 상하관계와 명령체계... 이것은 누구 라도 함부로 못한다. 그러니, 페이스 힐러가 아닌 녀석 따위 일치감치 잊 혀진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샤일라테는 같은 힐러로서 라단이라는 자의 행동이 몹시 의외라고 생각해서 아직까지도 맘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녀는 라단이 주인을 따라 클로니아로 왔을 때 도비온이나, 나머지 형제들이 반 비웃음, 반 놀라움으 로 아직까지도 이런 충성스러운 힐러가 있었는가 하고 놀랐던 것을 기억 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보호물은 클로니아의 수도 제일로트에서 자신의 옛날 힐러와 헤어진 뒤로 다시는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라단이라는 힐러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자그마치 20년의 세월동안 그런 것이었고... 샤일라테는 방긋 웃었다. ...그러니, 모두가 그의 존재를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누구였더라.. 디테? 디 트? 토너먼트에서 놀랍게 오렌지 라이트까지 낸 일루티온. 그 녀석이 돌 연히 모든 혜택을 뿌리치고 이곳으로 왔을 때, 그 사건에 모두들 놀라서, 더욱 라단은 잊혀질 수밖에 없었겠지. 혹시, 디트가 위험인물이 아닐까 하 고 모두들 거기에 신경을 곤두세웠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오렌지 라이트 의 힐러였다고 해도 마노테 따위... 아무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것이 사실 인 것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일련의 사건들로 힐러 라단의 일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많이 지워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십중팔구, 그들의 보호물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한겨울, 여자 애... 노숙은 불가능하다. 여관... 그녀는 도비온 으로부터 다른 마을에서 보호물이 어떻게 여관에 묵었는지를 들었다. 그 러니 여관은 안 어울려. 또 속임수를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속임 수 없이 그냥 여관에 묵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은 뭔가 김이 빠지는 느 낌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개인 집에 묵는 것. 이 제일로트에서 보호물 과 친분이 있는 자는 왕궁 외엔 힐러 라단이다. 호호... 샤일라테는 여기까 지 생각한 자신이 대견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 예감은 꼭 맞을 것 같은 기분이야. 호호.... 게다가 그 마노테 힐러도 여기에 왔을 때 제일 먼저 라단을 찾아갔었지. 그런 걸 보더라도 그들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단 말야. 여기서 문득 샤일라테의 생각이 그 엉뚱하고 어리석은 마노테 힐러에게로 멈추었다. 흐응... 그러고 보니, 83년도의 토너먼트였나? 분명 그 녀석 거 기서 인정을 받았지? 독극물 사건에서 말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샤 일라테의 입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호호호-- 아하하... 그때 일은 정말 생각 만해도 웃겼어. 쿡쿡.. 설마 다 섯 발 달린 송아지보다 더 희귀하게 태어난다는 일루티온 돌연변이가 루 온 루드랫 옆에 있었을 줄이야. 하하... 참. 루온 루드랫도 최고의 운을 갖 고 태어났단 말이야. 호호... 아니, 아니... 그건 그 디트라는 힐러에게 오히 려 최고의 운이었나? 호호- 그럼, 내가 그 녀석의 '은인'이 되는 거군. 호 호..." 그렇게 말한 샤일라테는 스스로도 자신의 말이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말한 '최고의 운'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변질되었는 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계속 의기양양한 혼잣말을 했다. "하아. 어쨌든 뭐, 결과적으로 거기서 루온 루드랫이 죽지 않았던 것은 좋 았던 일이야. 나중에 자신의 이모에게 철저히 당한 것은 안됐지만.." 그랬다. 힐라토 헤르가스의 루이트인 루온 루칼라, 그 여자는 일이 실패한 것을 알자, 그 위기를 루온 루드랫의 힐러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으로 넘 어갔다. 누명을 쓴 그 힐러는 그때 당시 두 명이나 되는 프레미어 루이트 의 서명으로 자신과 그 자손이 전부 다 마노테온으로 강등 당했다. 머리 를 잘리고... 그 머리카락을 회복할 여지없이 자손 대대로 마노테온과만 짝을 맺게 된 것이다. 디트에 비해, 그 녀석은 정말 운이 없는 힐러였지. 쯧쯧. 그게 다 힘이 없어서 그런 거지 뭐. 샤일라테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 다. 힘이 있는 자는, 어떤 죄를 지어도, 어떤 불합리한 일을 해도 다시 회 복할 수 있다. 루온 루칼라처럼. 그 사건은 아직까지도 묻혀있고, 그 일로 그녀는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다. 사람들에게서든, 운명에게서든. (대가는 무슨... 그녀는 토너먼트 우승자의 이모로서 속내용이야 어떻든 굉장한 칭 송을 받았었다.) 그래... 힘이 있으면 그저 자기가 목표한 일을 향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 리고 물어뜯기만 하면 된다. 경쟁자의 배척이라... 정말, 루이티온다운 여 자지. 루온 루칼라는. 그녀에겐 어떤 협박도 필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 기 조카를 이런 죽음만도 못한 자리로 팔아 넘겼으니까. 비열한 인간. 샤 일라테의 눈은 경멸을 담았다. 샤일라테는 루온 루칼라가 싫었다. 도비온과 겐트온, 그리고 이드넘을 보 며 언제나 '싫다, 싫다' 말하고 다투기도 많이 하지만, 그 여자를 싫어하는 마음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다.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여 자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거나, 그 밖에 그녀가 헬리옷의 고모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뭐, 지금은 전 여왕 헤르가스와 함께 힐라토의 내궁에만 머물고 있으니, 특별히 만날 일도 없겠지. 샤일라테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쪽지를 넣어 두었던 소매 자락에서 파란빛이 스며 나왔다. 그 빛을 보는 샤일라테의 얼굴에 약간의 짜증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체념한 표정으로 손 을 옷자락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나온 그녀의 손위에는 하나의 구슬이 들려 있었다. 샤일라테는 그것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체온이 구 슬에 닿자, 거기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형상은 샤일라테를 보고 반갑게 외쳤다. "롯테 언니...!" 샤일라테는 딱딱하게 말했다. "...아마사. 왜 또 그래?" 아마사는 구슬 속에서 울먹거리듯 말했다. "어, 언니! 어떡해? 언니가 어제 준 그 향 있지? 그거, 너무 진한 거 같애. 저기.. 아피네스에게... 아니, 스온 아피네스님한테 사용하니까, 스온 아피 네스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숨이 너무 낮아. 어떡하지? 언니?" 샤일라테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무슨 소리야? 그 향은 좀 진하긴 해도, 쓰러질 정도까지는... 응? 잠깐, 아마사! 너 그 향을 어떻게 사용했지? 내가 말한 대로, 냄새만 맡게 했 지?" 아마사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저어, 스온 아피네스님이 입고 있는 옷을 갈아 입혀 주려고 했는데, 너 무 난폭해서, 저어... 옛날의 그 향처럼, 물에 타서 조금 먹여 봤는데..." 아악-- 내가 못살아--!! 샤일라테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아마사-!!!!! 이 멍청한-!!!!! 내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너 도대체 뭐야--?!! 내가 어제 말할 때, 또 딴 생각하고 있었지?!!!" 샤일라테가 이렇게 외치는데, 아마사가 주눅들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 언니... 그, 그럼... 이번에도 아마사가 잘못 한 거야?" "그래!!!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똑같이-!" "..!" 아마사는 샤일라테의 솔직한 말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울려고 했다. "언니. 미안해. 화내지마. 잘못했어." 이 멍청한 계집애-! 아마사-! 아버지께서 널 왕녀의 시녀로 추천했을 때, 열렬히 반대했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이런 바보 같은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었을 텐데! 샤일라테는 아마사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갈았다. "...잘 들어! 아마사. 이번에도 멍하니 딴 생각하다가, 사람 말하는 거 흘려 듣고, 나중에 웃기는 소리는 할 생각도 말아-! 네가 얼마나 많은 향을 왕 녀에게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불쌍한 왕녀를 독으로 인한 가사상태 나, 죽음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면-!" "주, 죽음? 흑.. 미안해. 언니. 잘못했어. 아피네스가 죽으면 안돼. 아버지 가 화내실거야.. 흑흑.." 당연하지!! 이 바보 같은 계집애야-!...라고 샤일라테는 여기서 마음속으로 후렴구를 넣었다.(아마사를 부를 때면 언제나 넣는) "으휴.. 머리야. 또 편두통이 오는 거 같네. 으휴... 너, 지금, 당장 내 방에 서 하얀 병을 찾아..." ..까지 말한 샤일라테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 는 거람. 차라리, 원숭이한테 소염제를 제조하라고 시키는 게 낫지. 더 이 상 아마사에게 뭘 시킬 생각을 관두자. "관둬. 지금 당장 왕궁으로 돌아갈테니, 왕녀는 그냥 그대로 눕혀 놔. 넌, 왕녀에게 손가락 하나도 대지마. 그리고 다른 힐러들도 얼씬 못하게 하고. 이건 언제나 처럼의 일이니까 실수 안 하겠지? 알겠어?" 하지만 아마사는 샤일라테의 말에 대답도 안하고 눈을 빛냈다. "어, 언니가 직접 와? 바쁘니까, 저녁까지 외출한다고 했으면서..." 아마사는 샤일라테가 신경질을 잔뜩 내는데도, 그녀가 직접 온다고 하니 까 안심이 되는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잘 됐다아. 언니가 아침부터 없어서, 쓸쓸했거든. 언니에게 알려줄 것도 있어. 새로운 사실을 알았거든... 아피네스 옷을 갈아 입혀 주고, 아버지께 알려 드릴려고 했는데, 언니한테도 알려줄게. 빨리 와. 언니. 나는 조금 걱 정이거든." 샤일라테는 눈을 감았다. 쓸쓸? 설마, 이 계집애, 날 불러들이기 위해 이 런 일을 일부러 한 것은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가만 안 놔둔다. 아마사. 아버지가 뭐라고 하든, 적어도 뺨을 몇 대는 후려쳐 주겠어. 바보 같은 헬 리옷이 그것 때문에 뭐라고 한마디하더라도! 내, 단연 맹세하지! 가장 우 수한 실험물이 될 것 같은 물건을 내버려두게 하고, 게다가 도비온보다 우월한 입장에 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고... 내가, 널 용서할 줄 아 니? 아마사? "언니, 언니, 정말 고마워. 기다릴게 빨리 와. 알았지?" 샤일라테의 생각이야 어떻든, 아마사는 한껏 친근하게 말하고 구슬에서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샤일라테는 구슬을 던지듯이 소매 자락에 집어넣 고, 괴롭게 생각했다. 하아... 이건 정말 불공평해. 나 같은 미인에, 나 같 은 여자가, 어째서 이런 바보 같은 여자 애에게 휘둘려야 하는 거지? 하 아... 어서, 이 모든 일이 끝났으면. 그러면, 아마사랑 직접 부딪힐 일도 없 을 거야. 샤일라테는 진심으로 그렇게 바랬다. 그러면, 헬리옷도... 헬리옷, 그는 진실을 몰라. 샤일라테는 그의 처지가 가슴 아팠다. 하지만, 그는 강 한 사람이니까, 분명히 이겨낼 수 있겠지. 샤일라테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녀는 루이티온의 영혼의 공명 같은 건, 그냥 일반인의 호감 같은 거 보 다, 조금 더 진한 감정일 뿐이라고... 언제나, 애써서 생각했다. 그렇게 생 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샤일라테는 덧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차의 행선지를 바꾸도록 지시했다. 유리궁전으로. 어쨌든, 샤일라테는 스온 아피네스의 수석힐러이다. '하온 하롯테'로서... 주인이 위험에 있다면, 어떤 매혹적이 사냥감이 눈앞에 있 더라도, 일단은 달려가야 한다. 왕녀가 다른 힐러에게 보여지기 전에. 아마사는 구슬 속에서 샤일라테가 사라지자, 방긋 웃었다. 잘됐어. 롯테 언니가 온다니. 롯테 언니는 뭐든지 잘 고치니까. 후후.. 아마사는 구슬을 테이블 위에 놓은 채로, 천개(canopy)가 달린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마이 레스의 오데나 산(産) 직물이 길게 늘어뜨려진 그곳에는 창백한 얼굴의 그녀가 누워있었다. 향을 물에 타 먹였을 때부터 내내 아피네스는 그렇게 누워있었다. 올리브 그린 색의 천개와 베게 사이에서, 그녀의 얼굴은 더더 욱 생기 없어 보인다. 붉디붉은 입술만 아니었다면, 이 상태의 그녀는 누 구에게나 '젊은 나이에 죽은 불쌍한 소녀'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아마사는 침대 앞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아피네스에게로 가까 이했다. "...아피네스. 이제 곧 언니가 올거야." 아마사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네게 잘못 한 건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할게. 힐라토 레이서스님에 게 이상한 소릴 들어서, 난 정신이 없었어. 그만 평소대로 향을 타서 먹인 거...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이제 곧 언니가 오면 널 파랗고 예쁜 빛으로 고쳐 줄거야." 거기서 잠시 아마사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멈추었다. "...사실, 난 언니가 너한테 파란빛 쓰는 거 싫어. 언니는 내 언니니까. 언 니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는 거 싫다구.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번엔 내가 잘못한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응..." 그때, 문간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아마사는 일어나서 문간으로 나갔다. 그 리고 아피네스를 시녀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내실에서 나와 문을 닫았다.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 모습의 시녀는 거기에 있었다. "마냐. 무슨 일이죠?" 시녀는 자신의 상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온 하아마사님. 루온 루헬리옷님께서 점심 식사에 늦지 마시라고 전갈 을 보내오셨습니다. 지금 접견실에 계시죠." 아... 맞아! 아마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헬리옷... 그 사람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었지. 아아.. 곤란한데. 언니가 올텐데. 언니가 없을 줄 알고 그 냥 먹자고 한건데. 언니가 오면 언니랑 먹고 싶어. 아마사는 찡그린 표정 으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마냐. 저, 나는 스온 아피네스님이 편찮..." 아, 안돼! 생각 없이 문 안쪽에 있는 변명거리를 말하려던 아마사는 순간 자신의 입을 가렸다. 스온 아피네스님이 아프다고 마냐에게 말하면 당장 힐러 몇이 달려올걸. 마냐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거든. 샤일라테 언니가 다 른 힐러들에게 아피네스를 보이지 말라고 했는데. 그럼? 뭐라고 변명하 지? "음... 저어... 저어... 난... 그, 그래. 저, 배가 아파서 못나간다고 루온 루헬 리옷님에게 전해주겠어요, 마냐?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고 다음에 뵙자고 요." 마냐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 수석 시녀님은 상냥하고 마음씨가 곱긴 한 데... 가끔은 어린아이만도 못한 판단력을 보여주신다. 저런 말로 과연 루 온 루헬리옷님이 속아줄까? 그 동안의 경험을 보더라도.... 그때 반대편에 있는 문 쪽에서 나무기둥을 주먹으로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변명은 잘 들었어. 아마사. 그럼 이젠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지?" "...!" "...!" 아마사와 마냐는 남자음성에 깜짝 놀라 문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언제 나 입고있는 경갑옷이 아닌, 외출용 옷을 입은 루헬리옷이 서 있었다. 아 마사의 멀쩡한 모습을 보아 아마사가 거짓말 한 것을 알텐데도 어떤 불쾌 한 표정도 없었다. 그냥 무뚝뚝한 얼굴이다. 그리고 아마사는 그런 감정 없고 차갑게 보이는 루헬리옷이 언제나 무서웠다. 당황한 나머지 아마사 는 뒤로 한발자국 물러나며 말했다. "....헬리옷. 나, 나는... 저..." 그때 마냐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루온 루헬리옷님! 어떻게 이런 무례를!!! 접견실에서 기다리시는 게 궁중 예법 아닙니까? 스온 아피네스님은 바로 이 문 뒤에 계십니다! 어떻게 아 무 스스럼없이 이곳까지 들어오실 수가 있는 겁니까? 지금 당장-!" "난 아직 거기까지 들어가지 않았어. 공식적으로 난 아직 접견실에 있지." 그 말에 아마사와 마냐는 그가 발 디딘 곳을 보았다. 과연... 루헬리옷은 아직 문 너머에 있었다. 그가 지금 보고 있고 말하고 있는 상대가 시녀들 만 들어갈 수 있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마냐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얼토당토않습니다! 루이트님도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입니다. 문을 닫겠습니다. 말씀대로 아직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이일은 아무 에게도 말씀드리지 않도록 하지요. 하지만 차후엔 이러시면 절대 안됩니 다." 마냐가 재빠르게 루헬리옷 앞으로 다가가 문을 닫으려고 하는 순간,(그래 서 아마사가 조금 안도한 순간) 루헬리옷은 문을 탁 잡았다. "루, 루이트님!!!!" "아마사. 빨리 나와. 안 그러면 여기 계속 서 있겠어." 아마사의 얼굴이 마냐처럼 빨개졌다. 그냥 이대로 내실로 도망가 버릴까 생각을 했는데 그랬다간 저 루헬리옷이 정말로 화낼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의 눈길이 계속 아마사의 눈을 붙잡고 놔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마 냐는 그 와중에도 문을 닫으려고 계속 낑낑거렸지만, 그건 애초부터 불가 능한 일이었다. 일루티온 계급의 늙은 시녀가 한창 나이 루이트의 힘을 당해내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아마사!" 아마사와 루헬리옷의 모양을 보는 마냐는 초조해졌다. 궁중예법이니 뭐니 했지만, 루온 루헬리옷은 지금 당장 이곳에 들어와 수석 시녀를 끌고 나 갈 지도 모르는 모습이다. 개인 루이트도 아닌 자가 왕녀의 시녀실까지 들어온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해도 용납할 수 없지만, 이 루이트님이라면 정말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전대 프레미어 루이트의 조카이고, 현재 프레 미어 루이트의 사촌이며 막역한 친구. 거의 왕족에 버금가는 지위를 지닌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스온 아피네스님의 방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마냐는 그녀보다 적어도 40센티는 더 큰 남자를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마냐는 문을 닫으려는 우스꽝스러운 노력을 관두고 힘 없이 돌아서서 말했다. "하온 하아마사님. 나가시지요. 이 미천한 것, 감히 말씀 드리자면... 두 분 은 정혼하신 사이이니, 두 분의 일은 두 분이서 해결하시길. 스온 아피네 스님이 있는 이곳에서는 나가주시길 빕니다." 루헬리옷이 마냐를 흘끗 보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상당한 무례함이 깃든 말투... 하지만 그 안에 스온 아피네스를 향한 충성과 안타까움이 스 며있다. 그래서 그는 화가 나있는데도 불구하고 마냐를 용서하기로 했다. 일루티온 계급의 다른 시녀가 이 같은 건방진 말투를 썼더라면, 목숨이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한편 아마사는 마냐까지 그렇게 말하자, 거의 울상을 지었다. 싫다구. 이 렇게 억지로 끌려가는 건! "시, 싫어! 싫단 말이에요. 롯테 언니가 점심시간에 돌아오기로 했는데!! 언니와 점심을 먹고 싶어요! 그, 그렇게 억지로 말하지 말라구요!" 그러더니, 언제나처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루헬리옷은 그것을 보며 암담함을 느껴야 했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루헬리옷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향한 짜증과 괴로움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사, 우린-!" 첫마디가 무뚝뚝하게 나온 것 같아, 루헬리옷은 입을 다물고 다시 단어를 골랐다. 아마사는 여전히 울고 있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마음은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우린, 아마사... 우린, 약혼한 사이야. 이제 곧, 하누카의 날을 지낼거야. 난, 그저... 너와 식사를 같이 하고 싶을 뿐이야." 아마사가 말했다. "하지만 난 롯테 언니와 먹고 싶어요." 그녀는 계속 운다... 루헬리옷은 방 건너편에 있는 황금색 머리의 소녀를 보며 점차 마음이 편한 길을 찾는 것을 느꼈다. 아마사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것. 루헬리옷은 문에서 손을 떼었다. 엄청 난 힘으로 붙잡고 있던 것을 놓으니,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럼, 내가 기다리지. 하롯테가 올 때까지. 그녀가 이곳으로 온다고 했 어?" (계속)================================================== 소제목... 나중에 정리하자. 우으..--;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5289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77-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6/12 23:50 읽음:2801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RF) - 제77회, 제 29막. 셰리카,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아이. (7)> 아마사는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보다 적어도 25센 티는 더 큰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했다. 하 지만 그의 얼굴엔 이제 눈썹 밑으로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어서, 더욱 무섭게 보일 뿐이었다. 그때 문득 루헬리옷의 눈이 아마사에게로 향했다. "왜? 내가 너희 자매 사이에 끼는 게 싫어?" 아마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하지만, 대답과는 달리 아마사의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루헬리옷은 말했다. "아마사, 이리 와 봐." 하지만 아마사는 그리로 다가가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굉장히 차가와 보 인다. 아마사는 두려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는 그런 그녀를 보더니, 젠 장! 이라는 말을 뱉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루, 루, 루이트님!!!" 하지만 루헬리옷은 마냐의 외침 따윈 귀에 들리지도 않는 듯이 행동했다. (실제로도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아마사 앞으로 다가갔다. 아 마사는 공포를 느껴서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루헬리옷은 그 손을 잡아서 내렸다. "아마사. 넌 내 약혼녀야. 네가 좋든 싫든 이번 하누카의 날에 넌 내 아내 가 되는 거야. 그건 너도 받아들인 일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날..." ...무서워하지? 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거야? 내가 널 때리기라도 할 것 같아? 하지만 루헬리옷은 차마 이 말까지는 못했다. 단지 이제는 몸까 지 덜덜 떠는 아마사를 멀거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무기력한 느 낌이 들었다. 헬리옷은 말했다. "난, ....너를 해치지 않아." "네에. 고, 고맙.." "기다릴게. 접견실에서." 그 말만 하고 루헬리옷은 그곳을 나왔다. 마냐가 계속 뭐라고 난리를 쳤 지만,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그의 마음상태로 본다면, 지금 이 순간 루헬 리옷이 그녀에게 그러한 가치를 부여했다는 것은 마냐로서도 행운이었다. 루헬리옷은 접견실에 들어와 거기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 고 생각했다. 괴롭다. 괴롭다. 난 아마사를 해치지 않아. 해칠 수가 없다. 루이트는 영혼의 공명을 느끼는 상대를 해치지 못해. 난 아마사를 위해서 많은 것을 버렸다. 난 왕족의 루이트가 되어 가문을 더욱 빛낼 의무가 있 었다. 하지만, 일족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위해서 살기로 했다. 그게 어 리석은 일이라는 건 나도 안다. 나도 누군가가 나와 같이 행동했다면, 그 를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쾅-! 루헬리옷의 주먹이 테이블을 쳤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엘 이 내게 이렇게 행한 것을? 내가 어떻게 그녀를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괴롭더라도, 난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마사가 나에게 아무 것도 못 느끼더라도. 23년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마사에게 나를 '헬리 옷'으로 부르도록 만든 것뿐이었다고 해도. 그는 자기도 모르게 괴롭게 혼 잣말을 토해냈다. 이전의 그라면 결코 안 했을 일이었다. 아마사로 인해 그는, 계속 치욕스럽다고 느꼈던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마사. 난 너를 포기하지 않아. 나보다 낮은 지위의 인간을 계약 주로 삼는 것이 불가능해서, 너와 결혼하기로 한 거야. 이것만으로도 난 많은 것을 버렸어. 네가 아무리 싫어해도 어쩔 수 없어. 이 일의 원인은 바로 너 자신이니까. 넌, 23년 전 그때... 그 연회장에 있었던 너 자신을 원망해야 해. 내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 말을 끝으로 루헬리옷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감정도 없 는 사람처럼, 표정을 차갑게 하고, 격자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무 생동 감이 없는 흰 하늘이었다. "무, 무서웠어." 끝없이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샤까지 보내고 나서, 아마사는 침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꼼짝도 않고 낮은 숨을 쉬고 있는 아피네 스 앞에서 아마사는 불안한 듯,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아피네스. 너도 헬리옷을 알지? 그 거인같이 커다란 사람 말이야. 무서웠 어. 그 눈이 노려볼 때면 너무 무서워." 하지만 아피네스가 아마사의 불안감을 달래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 녀는 아마사의 말을 들어도 똑바로 누워있기만 했다. 그래서 아피네스에 게 실망한 아마사는 벌떡 일어서서 방안을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아아... 롯테 언니는 언제 오는 거지? 롯테 언니가 오면 편해질 텐데. 아... 아니지. 롯테 언니가 오면 그 사람,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지? 싫어. 아까 내 손을 잡았을 땐, 너무 무서웠어. 며칠 동안 안 봐서, 견딜 수 있 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야. 아아.. 그 사람은 왜 자꾸 그렇게 날 귀찮게 하는 걸까? 그냥 가만히 하누카의 날만 기다리고 있으면 되잖아? ...아아. 너무 괴로워. 아버지의 말씀만 아니라면..." 헬리옷의 생각만 해도 기분이 너무 우울해진다. 그때 테이블 위에 있는 구슬이 아마사의 눈에 띄었다. 아마사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거기 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버지." 말은 그녀의 생각을 담아 구슬을 뿌옇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분 후, 거기 에 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부드럽게 웃었다. "아마사... 너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 그래... 클로니아는 괜찮니?." 아마사는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위로 받 을 준비를 했다. "무슨 일로 연락을 한 거죠..? 당신의 딸은..." 구슬이 다시 투명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던 여인이 물었다. 남자는 구슬을 소매에 넣고, 뒤로 돌아섰다. 벽에 걸린 초들이 그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아아.. 평소와 똑같은 말이지. 헬리옷이 무섭다. 약혼을 파기해 달라. 그 래서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해 준 참이야." "그래요..." 여인은 물었던 것에 비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남자도 더 이상 여인 의 질문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사가 두 번째 말했던 것에 그의 신경 은 온통 쏠려 있었던 것이다. 결혼, 결혼이라... 보호물이 결혼을 한다고? 남자의 은색 눈이 반짝 빛났 다. 겐트온이 보고 한 바로 추측해 보자면, 예의 그 '은혜의 법' 때문인가? 하지만... 아무리 은혜의 법이라지만, 보호물이 자신의 종속자와 결혼을 할 리가 없다. 아마사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레이서스에게 직접 들었다 고? 그렇다면 레이서스는 그 이야길 어디에서 들은 것일까? 남자의 얼굴 이 자기도 모르게 심각해졌다. 하긴... 보호물이 아피네스 외의 인간을 구 했다는 것도 애초부터 이상한 이야기였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쩌 면... 남자의 생각에 잠긴 얼굴... 그에 드리워진 긴 은발과 은색으로 빛나는 눈. 그런 그를 보던 여인이 실소했다. 메마른 입술로 웃으려니, 입술이 버석거 리는 것 같다... 여인이 웃는 것을 보고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오 랜만의 웃음을 보고 남자는 피식 웃었다. "...왜 웃지? 헤르가스?" "호호.. 아니. 난, 때로 당신의 모습을 보면...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를 때가 종종 있어. 마치 세월이 거꾸로 돌아간 것 같애. 우습잖아요? 웨스... 아니, 란사드크라고 했던 가요? 하아... 당신들은 너무 많은 이름을 갖고 있어." "인간은 한 이름만으로 정의되기 어려운 법이니까." 란사드크라는 이름으로 불린 남자는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야드론 차 를 마셨다. 그는 왕의 외모를 갖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 비록 반 쪽뿐이라고 해도, 젊디젊은 저 모습은 슬프구나. 언제나 저 모습을 보면 슬프다. 숨겨진 나의 죄... 나의 상처를 헤집어 놓는다. 난, 저 모습이 싫 다. "그래도, 난 네 앞에서만은 가면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헤르가 스." "당신은 괴물이죠. 하하.. 그리고 나도 괴물. 괴물끼리는 서로 통하는 건가 요? 서로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축배라도 들자는 건가요..." 남자는 찻잔을 받침대에 놓았다. "왜 그러지? 오늘의 넌 어딘가 이상하군. 아들을 며칠 째 못 봐서 그런 건가?" 레이서스.. 내 아들. 아무도 너를 못 건드리게 할거야. 그래서 그를 만나야 하지. 헤르가스는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침대 맡에 기대앉았다. 남 자는 헤르가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보고 있기만 했다. 평 소라면 앉도록 도와주는 성의는 보였겠지만, 방금 그녀의 말이 그의 비위 를 거슬렸던 것이다. 헤르가스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은 계속. 꿈에서 그를 봤어요." "아아.." "...당신 말대로, 그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남자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거 괜찮군. 밤에 꾸는 꿈처럼 허망한 건 없지만, 그걸로 살아갈 의지가 북돋아졌다면... 좋겠지." 그는 미소 짓고, 다시 차를 마셨다. 그는 야드론 차를 너무나 좋아했다. 힐라토의 하누카의 날에만 피는 야드론 꽃으로 만든 야드론 차... 그의 긴 은발이 바닥에 닿을 듯 찰랑였다. 창을 통하여 보이는 것은 눈부신 밤의 풍경이었다. 거대하고 끝없는 하늘엔 세지도 못할 별들이 떠올라 있었고, 그 가운데 커다란 달은 붉게 걸려 있었다. "...이 맘 때의 야드론 향기는 아주 매혹적이거든. 이런 밤엔 말이지." 창의 격자 무늬는 바닥에까지 길게 그림자를 놓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그 가운데서 당당하고 느긋해 보였다. 힘있는 존재의 모습...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헤르가스의 몸이 떨렸다. "...당신.. 날 배신하지마." 란사드크는 그녀를 보았다. 헤르가스는 힘들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약속한 대로... 당신은 그를 내 앞에 데려다 놔야해. 이번 하누카 의 날이 지나면... 그는 내 앞에 서게 되는 거야. 그러면, 난..." 입가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스피릿... 그녀가 그녀의 스피릿을 떠나보내 고, 스스로 자신을 봉인했을 때부터, 삶의 증거는 하나 둘 그녀를 떠나갔 다. 헤르가스는 자신의 바싹 마른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붉은 달이 성큼, 창가로 다가들었고... 그녀 가까이 까지 다가와 있던 빛은 그녀의 얼 굴을 비추었다. 길고 긴 검은머리... 말라버린 채 침대 위에 펼쳐져 있고, 또한 말라버린 몸은 옛날 그녀의 미모를 모조리 퇴색하게 만들었다. 헤르 가스는 고개를 들었다. 총명함과 생기로 빛나던 눈은 이제 그 이름을 잊 어버렸다. 하얗게 말라버린 입술은 오직 입가에 흐르는 피로만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려 반짝였다. "...아아.. 아냐.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 그가 뭐라고 할까. 란사드크. 사이 너스를 찾거든, 그 전에 내게 말해 줘. 그에게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건 싫어. 좀 꾸밀 시간을 줘...." "...말을 좀 쉬었다 하는 게 좋겠군. 움직이지 않는 혀를 움직이려니, 피가 나잖아?" "그래. 사이너스를 꼭 찾아와." "헤르가스." 헤르가스는 눈을 들어 란사드크를 바라보았다. 은색의 눈, 은색의 머리 칼... "그러면, 난 자유롭게 죽을 수 있겠지." 남자는 웃었다. "하하.. 이거야. 네게 있어 네 남편은 살기 위한 의지를 북돋는다긴 보단, 죽기 위한 의지를 북돋고 있는 것 같군. 어찌되었든, 나와는 상관없지만... 후후... 안심해 헤르가스. 난, 계약을 깨진 않아. 널 배신하는 일이란 절대 없어. 네 남편을 찾아주지. 네 딸을 걸고서 맺은 계약이니. 꼭 지킬 거야." 헤르가스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 졌다. 남자는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벌써 힘이 빠졌어? 역시... 스피릿이 없는 왕족이란 미이라 같은 존재군. 흐음.. 잠깐. 편하게 해 주지." 남자의 손에서 푸른빛이 나왔다. 그 푸른빛은 헤르가스 얼굴에 닿아 입 안에서 나는 출혈을 멈추게 했다. "...좋아. 그리고... 멋진 야드론 차를 대접해 준 답례로..." 남자의 손에서 나오는 빛은 색을 달리해 초록색을 띄었다. 그 초록색은 점점 진해지더니, 이윽고 작은 빛 알갱이가 떠다니는 듯한 둥근 공이 되 었다. 헤르가스는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의 지친 눈에 초 록색 빛은 차가운 빛을 던져 주고 있었다. "이것이, 너의 안정을 위해 도움이 되겠지. 넌, 아직은 죽으면 안되니까." 란사드크는 그 둥근 공을 헤르가스의 가슴 위에 놓았다. 파아아--- 빛은 그녀의 가슴에 닿자, 더욱 눈부신 빛을 내며 그녀 몸으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한 10분 정도, 계속 될 거야. 그럼, 헤르가스 나중에 보지. 안녕." 헤르가스는 눈을 감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남자는 그녀에게서 멀어 졌다. 거울 앞을 지나가는데, 거울로 일그러진 얼굴이 비춰졌다. 남자는 잠시 멈춰 서서 그런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얼굴은 더없이 잘생긴 얼굴이지만, 그 반쪽은 마치 무언가로 헤집어 놓은 듯 온통 피부 가 갈라지고 검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그 얼굴을 남자는 냉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은발, 은색의 눈.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었지. 곧 손에 넣을 것도. 그는 거울 앞에 놓인 가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인사를 하듯 거울 속의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 숙이고 가면을 썼다. 그 전에 하나의 실 수라도 있어선 안 된다. 그는 문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 있던 시녀들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수석 힐러님." "아아.. 편안한 밤 되길." 시녀들은 란사드크의 말에 기쁜 미소를 지었다. 수석 힐러 란사드크는 헤 르가스의 시녀들에게 인기가 꽤 많았다. 언제나 두꺼운 가면을 쓰고 다녀 서 그 얼굴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그의 길다란 은발이라든지 부 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는 오히려 더 많은 낭만적인 상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란사드크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시녀들은 속삭였다. "이레나가 봤대. 그의 얼굴을." "호오? 정말? 그저께 고향으로 돌아간 아이 말이지?" "응. 굉장히 잘 생긴 얼굴이었대. 생각보다 젊은 얼굴이었고." "꺄아- 정말? 그런데 왜 가면을..." "얼굴 반쪽이.. 화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돼 있었다나 봐." "저, 정말? 전부터 그런 소문이 있더니!" "응. 왠지 멋지지?" 두 시녀는 비밀스런 눈길을 주고받았다. 전 여왕 헤르가스님의 수석힐러 란사드크는 아직 미혼이다. "정말, 멋져. 어떡하다가 얼굴이 그렇게 된 걸까." "소문으론, 귀족의 사생아... 그러니까, 네르세바 성가(聖家)의 아들이었는 데, 핏줄 정화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꺄아- 왠지 신빙성 있는 이야기야." "흐음... 그리고 연구를 위해 성역 근처의 숲에 들어갔다가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호오.. 그래. '암흑의 숲'은 온갖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응.. 맞아. 그곳에서 정령들에게 홀려서, 얼굴 반쪽을 뺏겼다는 소문이거 든.. 정령들은 그런 짓을 잘 하니까. 으흠.. 하여튼, 엘프의 후손이라는 이 야기도 있고... 아주 여러 가지 소문이 있다니까." "하아... 수석 힐러님은 너무 신비로워." "으응..." 란사드크는 내궁의 입구를 나왔다. 커다란 붉은 달이 그의 머리 위를 비 추었다. 시녀들의 말한 것 중 '이레나'라는 이름이 가슴에 남아있었다. 이 레나라... 정말 입이 가벼운 계집이었군. 벌써 저런 시녀들에게까지 이야기 가 나돌다니. 뭐, 저 시녀들은 괜찮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본 것도 아니 니. 이레나 처럼 '고향집'에 돌려보낼 필요 까진 없겠지. 그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역시, 보호물의 종속자에게도 흥미가 끌린다. 보호물이 그 녀를 구했다고 한 보고를 받았을 때부터 그랬다. 보호물의 종속자를 처치 하라고 명령 내리긴 했지만... 그리고 그 방법으로 도비온의 방법을 채택 하긴 했지만... 역시, 보호물의 종속자를 '고향집'에 돌려보내기 전에, 잠시 관찰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인드 컨트롤을 깨어지게 할 만큼 '강력한' 상대라... 아마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에겐 더없이 좋은 일 아닌가? "하하하..." 란사드크의 웃음소리는 힐라토의 검은 하늘로 퍼져갔다. (계속)================================================== 안녕하십니까? 그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던 6월 전반기입니다. 머릿속의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의 최근이었는데요. 무언가를 한다면, 겜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나날이었죠. 마치, 요즘의 뜨겁고 시원 한 날씨처럼요... 물론, 지금 날씨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아... 이렇게 상황이 딱딱 들어맞다니...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 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엔? --;;> ps...휴우. 오늘이 12일이니까... 적어도, 6월 이내엔 1부를 끝내야죠.^^ 시 골남자님이 군대를 언제 가실지 모르겠지만... 계획은 그렇습니다.^^ ps2...꿋꿋이, 살아라.. 슬기야.--; ps3...창세전을 다시 포장하며...(command.com 사건으로 창세전1은 완전 포기.) 흐흑... 이런 시기에 이런 겜을 해서 나이스여써.. TT 언니, 제가 편지 따루 보낼게요. TT(감샤...) ps4...지숙님...^^ 인사가 늦었지만... 많은 어택을 주셔서 감사...^^ 멜 보내 주시고, 쪽지 보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TT 답장도 안 보내드 려서 섭섭하셨죠. 하지만, 요즘의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죠. 슬라임이 된 기분을 안팎으로 충실하게 느끼고 살았습니다. 머릿속에 젤리가 들어찬 것 같은...TT 그러니, 슬라임이 어떻게 글을 쓰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꺄? 흑흑... 뭐, 앞으로는 그럴 요인도 없으니..(잠재성은 있지만...) 하여... 일단 은 열심히 쓰겠습니다. 끝내자! 1부!!!! 불타오른다! 슬라임!! 퍼엉--!!! 으 윽... 터, 터졌다... 으윽.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5314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78-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6/14 15:56 읽음:2799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RF) - 제78회, 제 29막. 셰리카,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아이. (8)> "으윽! 이거 뭐야!" 셰리카는 이드넘이 던져준 외투를 손가락 끝으로만 들고 질린 표정을 지 었다. 너무 구질구질하다. 게다가 퀴퀴한 냄새하며. 게다가 무엇보다 심각 한 것... 이 자국은... 셰리카는 이드넘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이거... 핏자국 맞지? 무슨 사고라도 당한 사람 옷이야?" 이드넘은 머리를 긁적였다. 클로니아에서는 모자를 꼭 써야 해서 이걸 쓰 고 있긴 하지만, 덕분에 갑갑하고 귀찮다. 그는 모자를 손에 든 채 또 한 번 더 머리를 긁적였다. "아아... 설명하는 거 귀찮아. 그냥 그 옷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자취나 찾 아 줘." 셰리카는 손가락으로 들었던 옷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옷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자취? 쳇... 굳이 호문클로스로 찾지 않아도 추 측할 수 있겠다. 옷 꼴로 보아하니, 어딘 가에서 거지 짓이나 하고 있겠 어. 이렇게 너덜너덜하다니." 아니면, 핏자국으로 봐서 이미 땅 속에 묻혔던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 었지만 셰리카는 일단 어깨에 앉아 있는 호문클로스에게 명령했다. "자, 호문클로스, 찾아봐. 이 옷에 닿았던 사람들, 어제 이후로 닿았던 사 람들 말이야." 호문클로스도 주인처럼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조금 흥분된 상태였다. 아직 감정이 없는 상태라, 셰리카처럼 핏자국이 기분 나쁘다든지 하는 이 유로 흥분된 것은 아니었다. 호문클로스는 인간의 피를 먹고 자라는 생물 이다. 피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셰리카에게서 얻은 것밖에 없는 호문클로 스는 또 다른 핏자국, 그러나 생소한 핏자국에 잠시 혼란을 느꼈던 것이 다. 셰리카는 호문클로스의 몸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호문클로스... 아냐. 저건 네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해. 네가 필요로 하는 건 내가 가진 것이야. 진정해." 이드넘은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했지만, 셰리카는 호문클로스가 점차 진 정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안정이 된 호문클로스는 날아올랐다. 그리고 셰리카의 명령에 따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호문 클로스의 몸은 마치 모래가 밑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듯 소리도 없이, 옷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던 이드넘이 한마디했 다. "신기하군." 댁한테야 그저 신기한 장면이겠지. 호문클로스가 옷에 동화된 것을 확인 한 셰리카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곧, 호문클로스가 모으는 정보들이 셰리 카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호문클로스, 옷을 입은 사람들을 알겠어? 기억 했지? 그럼 이젠... 그 옷에서 나와, 그리고... ≪뷔기어 셰리카. 없어. 아무도 없어. 다 없어...≫ 뭐? 셰리카는 '없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생각했다. 호문클로스는 셰리카 의 아버지를 찾을 때, '모른다'고 했다. '없다'는 건 설마... ≪없어... 따뜻함이 없어. 뷔기어 셰리카처럼 따뜻하지 않아..≫ 죽었...구나. 모두 다... 셰리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셰리카의 표정이 변하 는 것을 보고 이드넘이 말했다. "뭐야? 찾았어?" 셰리카는 더 이상 끔찍한 정보를 듣고 싶지 않아, 호문클로스에게 옷에서 그만 나오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이드넘에게 말했다. "...몰라. 아무 것도 찾은 것 없어. 검은 눈에 회색 머리 마노테고 뭐고... 어제 이후로 이 옷에 접촉한 인간은 다 죽어 버렸다고 이 애, 말하고 있 으니까." "...으흠, 그거 참. 그럼 이 옷은 어때?" 이드넘은 가지고 온 꾸러미에서 다른 옷을 셰리카의 무릎 위에 던져 놓았 다. 툭. "...!!!!" 셰리카는 그걸 본 순간 하마터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날 뻔했다. 하 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그걸 억눌렀다. 대신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무릎 위에 놓여있는 옷을 바라보았다. "...어때?" 이드넘의 목소리에 셰리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어, 없지. 셰리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떠들기 시작했다. 얼굴 이 굳어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말소리가 빨라졌다. "아.. 하하.. 이, 이거.. 정말 심하다. 이건 아예 핏물에 절였잖아? 이, 이봐, 이런 걸 도대체 어디서 갔고 온 거지? 하하..." 갖고 오기야 시체들한테서 벗겨 가지고 왔지만.. 도비온의 식당이 왠지 북 적북적하고, 일부러 도비온을 찾는 것도 귀찮아서 스스로 알아서 단서가 될만한 물건을 갖고 온 것이다. 이드넘은 셰리카를 살폈다. 글세.. 샤일라 테의 경우 이런 옷을 보면, 이 옷의 주인이 어떤 상태로 죽었는가 추측하 기에 여념이 없겠지만... 이 계집애라면 어떨까? 일단, 이 계집애도 상당히 침착한 모습이긴 한데... 하지만 침착하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셰리카는 옷을 당장 던져버리고 싶 은 것을 꾹 눌러 참고 있는 중이었다. 피... 피... 엄청나다. 아까 옷하곤 비 교가 안돼. 이건 완전히 핏물에 옷을 넣고 빤 것 같애. 거기다 이 피비린 내. ...우웩. 아무리 내가 티토우의 딸이라지만, 이런 건 너무 심해. 아빠가 훌륭한 도적이 되기 위해선, 웬만한 거에는 놀라지 않는 담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지만... 이건 너무 끔찍하다고. 셰리카의 마음속이 떨렸다. 대체 이 이드넘이란 작자 어떤 인간이지? 이런 피투성이 옷을 보고도 저런 아 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라니... 아니, 아니... 그 보다 설마... 이렇게 많은 피 라니, 이 옷들의 주인은 도대체 어떤 꼴을 당한 걸까? 서, 설마... 저 이드 넘에게... "셰리카. 옷은 그만 보고, 조사나 해 봐." 셰리카는 이드넘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셰리카는 자신이 넋 놓고 옷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이런! 셰리카는 약한 모습을 보 인 자신을 책망했다. 이래선 안돼! 난 호문클로스 단의 후계자라구! 셰리 카는 억지로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체.. 쳇!!!! 이봐- 이거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같이 순진한 여 자 애한테 이런 걸 아무 거리낌없이 보여준다니 말이야. 야아- 너무 놀라 서 심장이 다 벌렁거린다고. 하하..." 흐음. 역시... 이드넘은 그렇게 말하는 셰리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샤 일라테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 계집 애들하고도 틀린 반응... 재밌군. 이 여자애, 자기 말하는 대로 티토우의 딸이어서 그런가... 꽤 굳건하단 말이야.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일 부러 아무 말도 안하고 피투성이의 옷을 던져 줬던 이드넘은 덩치가 크고 호탕했던 티토우를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드넘은 모자를 다시 썼 다. "...흥. 쓸데없는 소리 말고 찾아보기나 해. 오늘 이내로 찾아야 한다고." 셰리카는 입을 다물고 이드넘을 바라보았다. 역시, 이 인간은 불길하다. 하루라도 빨리 그 애를 찾는 게 낫겠어. "아까 한 약속은 기억하고 있겠지? 마노테를 찾아내면 외출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 "아아.. 알겠으니까. 빨리." 이드넘의 확답을 들은 셰리카는 옷 위에 있는 호문클로스를 불렀다. "호문클로스! 여기!" 호문클로스는 둥실 날더니, 셰리카가 내민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 조금 아 팠지만, 이 정도야 괜찮다. 어려운 일을 했으니, 호문클로스에게 기력을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이드넘은 호문클로스가 셰리카의 손가락을 통해 피를 먹는 것을 보고, 한마디 중얼거렸다. "...쳇. 내가 이래서 호문클로스를 싫어하지. 쪼그맣고 더러운 흡혈귀..." 그 말을 듣고 셰리카는 발끈했다. "흡혈귀? 말조심해! 이 앤 지금, 당신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라고. 기껏 해야 한 방울 정도의 피인데. 이런 거 갖고 째째하게 굴면 안되지. 돈 드 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야!! 당신한테 피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 그런 소린 삼가줬으면 좋겠어!" 흥. 그래도 호문클로스의 주인이라고 편들기는... 이드넘이 그렇게 생각하 는데, 셰리카가 곧이어 소리쳤다. "알겠어? 이 앤 한참 자라는 시기인데, 그런 말 들으면, 상처받아서 나중 에 좋은 품질의 금붙이를 못 낸다고!!!" ...뭔가... 이건,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편들기가 아닌 것 같지만... 아아, 뭐 어쨌든 좋아! 이드넘이 말했다. "알겠어. 피를 빨던, 살을 구워먹던, 너희들 일엔 전혀 상관 안 할 테니, 어서 빨리 그 마노테나 찾아봐." 살을 구워먹는다는 표현을 듣고, 셰리카는 이드넘에게서 도망치자는 각오 를 다시 한 번 더 새롭게 다졌다. 이 인간, 확실히 뭔가 기분 나쁘다고. 쳇... (계속)================================================== 훗훗... 토요일이 오기 전에 또 올렸다. 기쁘군... (엔, 포즈를 잡다.) "왜? 내가 6월 안에 1부 못 끝낼 것 같나?" (템페스트, 극악의 주인공 말투로...--;) - 물론, 시안님에게 하는 말이 아 니어요... 이건, 쪽지 받기 전에 적어놨던 잡담... 하하..^^ <임무 완료! 다음은? ...이라고 말하며 키보드 들고 설치는 "앤"...> ps...글을 쓰며 문득 생각하는 것은... 남는 거라곤 '대사'뿐이었던 템페스 트...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작가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 는 대사를 주절거리지 않고 있어서 더없이 눈물납니다.... 네. ps2...힘을 써서 아수라를 억지로 다루는 녀석이 주인공이라니... 샤른 호스 트.. 넘, 무식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굳이 별명을 붙여 보자면, "극악, 변태(옷 취향), 무식, 헬스(HP가 굉장히 높았다.), 룸펜 왕자'정도... 클라우제비츠라는 이름에서는 '구름 사이, 제비'족이 연상되고.... 샤른 호 스트라는 이름에서는 '나른... 호스트 바'가 연상되니.. 볼 장 다 봤죠. 거듭 말하지만, 샤른 호스트의 팬께는 죄송합니다. 더운 여름... 맘에 드는 캐릭 터를 깎아먹은 맘에 안 드는 캐릭터를 이리저리 고찰해 보는 재미도 상당 하므로.. 그저, 그러려니 이해해 주시길. ps3...막을 나누는데 실패해서..(흑흑..) 이걸로, 셰리카.. 분홍색.. 어쩌구는 끝입니다..TT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5367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79-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6/18 06:17 읽음:2818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RF) - 제79회, 제 30막. 식당 (1)> 도비온은 2층에 서서 음식점 안을 둘러보았다. 금일휴업이라고 팻말을 써 붙인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이 음식점은 금일휴업을 너무 자주 해서 도 대체 장사를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오 늘도 그 문 앞을 지나갈 것이다.) 어두운 실내엔 10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사람들이 주인이 방금 내린 명령으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일로트 내의 모든 여관, 민박집 등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조사 하여 검은 머리칼과 회색 눈을 가진 마노테를 찾아내라' 명령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들 은 도비온의 말에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었고, 어떤 경로를 거쳐서든 식당에서 나오는 은 혜를 입은 자들이었다. 고향에서 배척 당하고 잊혀지고, 끝내는 돌아감을 잊어버린 자들. 아, 물론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모집하 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 식당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모집할 때 찾지 못해서 쩔쩔맸던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식당의 사람들은 숱한 잊혀진 자들을 교육시켰다. 그 긴 교육이 끝나면 잊혀진 자들은 다시 자신들의 이름을 획득한다. 돌아감을 잊은 자들이 식 당으로 인해 예전의 바로 그곳이 아니더라도, 다시 새롭게 돌아갈 곳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그것이 이곳의 목적이요, 약속이었으므 로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도비온도 그들에 대해 별다른 애정도 집착도 없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도비온에 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이들이 도비온 자신이 고르고 고른 도비온 자신 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수 백 명... 아니, 어쩌면 수천, 수 만 명의 사람들 을 판테온에 바쳤다. 그 중에 남은... 어느 곳에도 돌아가길 거부하며, 의지할 곳이라고는 오직 나밖에 없는, 나의 것... 도비온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이들이 지금처럼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을 좋아했다. 그들의 눈빛은 도비온 자신이 어떤 힘 을 갖고 있는지 계속 실감시켜 준다. 이들은 내 것이다. 절대 나를 배신할 수 없도록 길들여진, 20여 년에 걸쳐 모은 나의 재산. 20년 동안 수많은 힘을 얻었다. 그 힘들 중 가장 믿을 만한 것 중에 하나가 이들이다. 그래 서 도비온은 이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었다. 도비온 은 흐뭇한 얼굴로 그들을 보며 지금까지 한 말을 마무리 지었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계집의 인상착의는 잘 알았을 것이다. 축제 때문에 조금의 어려움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명령은 내려졌다! 찾는 자에겐 약속한 대로 만족할 만한 상이 있을 것이다! 자, 가라-!" 도비온의 말에 식당 사람들은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흩어졌다. 이제 그 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쌓아온 인맥을 활용하여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도 비온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 도비 온은 옆에 서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그래. 이드넘이 시체들에게서 옷을 벗겨갔다고?" 공식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도비온을 대신하여 '음식점의 주인'으로 통하는 슐라츠는 고개를 숙였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점 주인의 인상을 가진 그는 약간 뚱뚱했고,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네. 네 구의 시체들 모두에서 웃옷을 벗겨 가셨습니다." [그 자식.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무슨 생각인지 말을 해주고 행동을 해 도 해야 할 것 아냐? 쳇... 점점 샤일라테를 닮아가나...] 도비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건 다 샤일라테 때문이야. 그래서 계집애들은 안돼. 자기 성질 에 조금 안 맞는다고, 그렇게 자기 멋대로 굴다니. 제기... 그 계집애 때문 에 이드넘까지 물이 들어서, 무슨 상이 어쩌고... 정말, 비위에 안 맞아서, 원. 아버지께서는 뭐 때문에 그것들을 이곳에 보내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지... 미치겠군. 애초에 그 마노테 계집애만 확실하게 처리했어 도... 마노테답지 않게 눈빛이 바락바락 하더니, 결국 이 나를 이토록 골 탕 먹이다니. 젠장. 잡으면 가만 안 놔두겠다.] 이드넘은 수 백 번도 더 한 다짐을 한 번 더 하고, 슐라츠에게 물었다. "이봐, 그럼... 다른 사람에게선 무슨 연락 없었나?" "네? 어느 분 말씀이신지...?" "아침에 왔던 녀석들 중, 아무나." "아, 예. 없었습니다." "이드넘 외엔 연락이라든지, 소식을 전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네, 넷." [...흥. 샤일라테 계집애.. 일이 성공했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잘난 척을 했을 테니, 그럼 아직도 그것을 못 찾았단 이야기군. 하긴... 이 도바님도 아직 못 찾은 계집을 자기라고 어떻게 찾겠어? 잘난 척 하더니 꼴 좋군. 클로니아에도 처음 온 주제에... 지금쯤 어디가서 길이라도 헤매고 있겠지. 흥. 좋아. 잘됐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도비온은 난간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알았어... 슐라츠. 음식점 문은 이대로 닫아 둘거니까, 너도 나가서 내가 말한 계집애를 찾아 와. 한시라도 빨리. ...아까 말한 대로 죽이지는 말고. 내가 직접 손을 보고 싶으니까. 네가 여기서 교육받은 것, 그리고 네가 여 기서 쌓아온 모든 것을 실험해 볼 기회다. 알겠나?" 슐라츠는 고개를 숙였다. "넷" 그리고 슐라츠는 도비온을 남겨두고 앞치마를 머리 위로 벗으며 계단으로 다가갔다. 언제나 식당을 지키고 있어서 특별한 공적을 보여드리지 못했 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잘 해 보고 싶었다. 벌써부터 그의 머릿속엔 음 식점을 하면서 쌓아둔 인맥관계가 주욱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슐라츠 앞에 불쑥 다가들었다. "엇.." 슐라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기척에 놀라서 반사적으로 소리를 냈다. 그 리고 눈을 찌푸렸다. "뭐야.. 넌?" "아... 저, 저기... 도, 도바님... 도바님께 여쭤볼게 있어서.." "아니, 이녀석! 신참 주제에! 도바님의 명령이 떨어진지가 언젠데! 빨리 나가지 못해?!"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이요..!" "아니- 그래도-!" 슐라츠는 고개를 돌려 계단 제일 밑에 있는 덩치가 매우 큰 사람에게 말 했다. "게이드! 이 녀석 당장 데리고 나가지 못해?! 이런 애송이를 이렇게 맘대 로 행동하게 내버려두다니,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 해?! 네가 이곳에 있은 지가 몇 년인데!?" "죄, 죄송합니다. 슐라츠님. 이, 이봐- 키일-" 게이드는 얼굴 잔뜩 난처한 빛을 띠며, 계단을 올라왔다. 도바님이 명령을 들을 때까지 킬은 멀쩡했었다. 게이드가 자신을 때려서 기절시킨 것에 투 덜 투덜대며, 욕을 잔뜩 퍼붓긴 했지만, 게이드는 어쩐지 그런 킬을 보면 자신의 여동생 생각이 나서 그냥 웃음만 나온다. 처음부터 그랬었다. 그런 데 도바님의 명령을 듣는 순간, 킬은 갑자기 벼락 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되어서, 얼굴이 시종일관 새빨개졌다, 새파래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러더니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드디어 이렇게 일을 벌린 것이다. 킬은 아무 것도 모르고 너무 순진하고 맹목적이다. 내 여동생 루니처럼. 루니에 게 절대로 영주님의 성 가까이엔 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 앤 너무 순진해 서... 그리고 맹목적이어서... 게이드는 킬의 팔을 잡았다. "야아- 키일... 그냥 빨리 나가자... 도바님의 명령에 질문 같은 건..." "비켜-!" 킬은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게이드의 팔을 탁 털어 내 버렸다. "킬..!" 그런 모양을 보는 슐라츠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이런 간뎅이가 부은 놈이 다 있어? 도바님 앞에서 자기 선배의 말을 무시해!?] 철썩-! 슐라츠는 킬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이 놈-! 너 감히-!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손하기 짝이 없구나!! 게 이드를 너의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미천한 마노테 주제에!!!!" "슈, 슐라츠님..." 게이드는 당황해서 슐라츠를 바라보았고, 따귀를 맞은 킬은 얼굴이 하얘 져서, 맞은 자세 그대로 볼을 감싸쥐고 바닥을 쳐다보았다. 찌르르한 아픔 이 볼에서부터 어깨까지 퍼져 부르르 떨렸다. 한편 이 모든 상황을 계단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도비온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하- 이것 보게나. 저 킬이라는 녀석은... '마노테'라는 말에 정말 충격을 받은 표정이잖아? 그럼 저 녀석은 지금까지 자신을 무어라고 생각하고 있 었던 것일까?] 도비온은 그제야 킬에게 흥미를 느꼈다. 도비온은 그들의 이념에 따라 마 노테온도 그들 단체에 들어오도록 권유하고 또 그렇게 들어온 자들은 사 람을 붙여 교육을 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식당까지 오도록 한 마노테온은 저 킬이라는 녀석이 처음이다. 마노테온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능력이 떨 어지므로 깊게 가르쳐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또 실제 로 그것이 사실이었으므로) 식당에까지 부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에 일어난 사건들에서는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그냥 식당까지 저 녀석을 부른 것 뿐이다. '중화물'로서... 적당히 교육을 시킨 다음에... 기억을 봉쇄하고, 다른 마을에 집어 넣어준다. 이것이 계획 이었는데... [그런데 저 녀석 눈빛을 보게나.] 킬은 이제 충격에서 벗어나, 슐라츠 마저도 쏘아보고 있었다. 나쁘게 말하 면 건방짐... 좋게 말하면 이글거리는 생명력으로 가득 찬 저 눈빛... 지금 까지 많은 사람들을 겪은 도비온은 저런 눈빛을 가진 인간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맹목적이고... 한 가지밖에 모르고... 짓 쳐들어가 모든 것을 태 우는 불... 그게 설사 자기 자신이라 할 지라도 끝까지 아무런 후회도 없 이 태워버린다. 불의 눈동자... 물론 그런 눈빛뿐이라면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런 눈빛을 내는 저 킬이라는 녀석 이 '마노테'라는 데 있다. 자연상태 그대로라면, 더러운 가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마노테온. 헌데... 불의 눈동자라. 저것이.. [...가치가 있을까?] 도비온은 이제 일장훈시를 늘어놓고 있는 슐라츠 어깨 너머로 킬을 주시 하며 생각했다. [...붉은 보석.]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에 도비온은 씨익 웃었다. [좋겠지.] 잠깐 시간을 들여 보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도비온은 입을 열었다. "됐어-! 좋아. 이제 거기까지 하고, 슐라츠 넌 그만 나가보도록. 그리고 킬-!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뭔지 말해보도록 해." "네엣..?" 슐라츠는 도비온의 말에 입을 쩌억 벌렸다. 정해진 대로 안 따르면 무척 이나 싫어하는 도바님이 이 주제도 모르는 마노테 녀석의 편을 드시다 니..? 한 참 황당해서 도비온을 쳐다보는데 도비온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하나?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빨리 나가서, 계집이나 찾아. 슐라츠. 시 간 없으니까!" "네, 네엣!!!!" 슐라츠는 도비온의 말에 벌려진 입을 탁 다물고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그의 행동이 잘 이해 안 갔지만, 괜히 미적미적 대다가 오늘 아침, 눈치 없이 굴어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진 주방장의 꼴 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뒤, 도바님은 금방 그를 치료해주도록 했지만... 그래도 당하는 순간엔 엄청 아플 테니까. 슐라츠가 나가버리자, 도비온은 다시 한 번 더 킬에게 말했다. 킬은 슐라 츠가 없는데도 정신이 빠져서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킬! 너도 빨리 말하도록 해. 난 이제 곧 나가봐야 하니까." 킬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창백해져 있었다. "..도바님.. 우리가 찾아야 할 계집애는... 역시.. 시나마를 말씀하시는 겁니 까? 그 계집애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이곳에 들어오는 대가로... 도바님께서 저의 복수를 도와주시는 대가로, 그 계집앨 바쳤는 데... 그럼 전..." [뭐야? 자기 신변이 걱정스러운 거였나?] 좀 김빠진 질문에 실망한 도비온은 킬에게서 몸을 돌렸다. "괜찮아. 네가 그 계집앨 바침으로 해서 네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제대로 일을 못한 녀석들 책임이니, 넌 상관없어. 그 계집은 우리 제사를 본 인간 이므로 그대로 살려 둘 수 없어서 찾아내야 하는 거다. 궁금증이 풀렸으 면 이제 가서 일이나.." "도, 도바님!" 킬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죄송합니다! 제발 한마디만 더..! 그, 그럼... 라그, 다문, 테진은... 그들은 어떻게 됐지요?" 도비온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 녀석.. 아침에 소집 명령 때 식당에 없었나? 일을 실패한 것 때문에 한 바탕 말했건만, 무슨 뒷북을... 아... 아니다. 내가 어제 이 녀석을 학교 에 데려가라고 지시했지. 그래서 아침 일찍 나갔었나 보군. 그래도 그렇 지. 눈빛이 맘에 들어서 무슨 쓸만한 말이라도 할까 했더니... 이 나에게 고작 이런 질문이나 하고. 쯧.] 도비온은 불쾌해서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킬. 넌 교육받아야 할 것이 많지. 교육받 으면 알게 되겠지만, 명령이 떨어지면 의문이나 생각을 갖지 말고 그대로 행해라. 다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너에겐 아직 질문 따윈 필요 없 어. 그리고 다음부터 이런 따위의 질문은 게이드에게 하도록. 게이드-! 이 녀석 데려다가-" 킬이 소리쳤다. "도바님! 그들이 죽은 것 맞죠? 아까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죽었다고! 누가 그들을 죽였습니까? 그들을, 그.. 그 놈이 죽인 겁 니까? 그 놈이 그들을 죽였습니까?" 도비온은 킬을 보았다. 혼란하고 괴로운 눈빛. 붉은 것이 눈에 가득 차 있 다. 도비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증오... 지나친 집착... 너무 지나쳐서, 눈빛 마저도 붉게 물들일 수 있는... [...흥... 뭐야... 그런 거였나..?] 본능적으로 그 눈빛에 역겨움을 느낀 도비온은 차갑게 말했다. "게이드! 이 녀석을 데려가라!" "네엣!!" 자신의 말에 상대도 안 해 주는 도비온의 모습에 킬의 얼굴이 한층 더 일 그러졌다. 이제 도비온은 킬을 아예 보고 있지도 않았다. 단호하고 차가운 얼굴이다. 킬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게이드에 의해 잡아당겨지는 팔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회색 눈의 마노테 계집애를 찾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킬의 마음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불태워지는 것 같았는데... 그런 데 지금은 온통 무기력하기만 했다. 계단을 어떻게 내려가는 지도 정신에 안 들어왔다. 오직 하나의 생각이 떠오를 뿐이었다. [시나마가 도망쳤다고? 어떻게..? 그 놈이 왔는가? 그 놈이 그녀를 구했는 가?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는 지금 분노와 좌절, 증오 가운데 몸부림 치고 있어야 하는데! 시나마와 사라졌다고? 어떻게-?!] 이런 생각에 마음이 떨리는 순간, 킬과 게이드가 계단의 중간 플로어까지 내려 온 그 순간, 갑자기 등뒤에서 도비온의 말이 들렸다. 흡사 무언가를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잠깐... 이것 정도는 말해 줘도 될 것 같군. 네가 추천한 계집애가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이었는지, 정말 지독했지. 처녀도 아닌 주제에... 그 계집애에 게 딸린 종속주던가... 그 녀석, 대단하더군. 그래. 아마도... 아마, 그가 네 동료들도 죽였을 것이다. 네 약혼녀가 붙잡혀 가도록 놔둔 녀석이 말이 지.. 정말 대단한 솜씨였다. 이 나도 감탄했지. 덕분에 일이 커지고 말았지 만." 자아... 도비온은 킬의 등을 내려다보았다. 네 분노를 보여봐라. 킬... 여기, 네 먹이가 있다. "가 본 바로는, 정말, 처참했지. ...정말, 마노테의 솜씨인가 의심이 갈 정 도였다..." 제기랄. 누구도 이런 말을 내뱉진 않았다. 다만 킬의 등을 순식간에 굳어져서, 이 런 말이라도 들린 것 같았다. 도비온의 눈동자가 번득였다. 그때 짐승 같 은 신음소리를 내며 킬은 몸을 반으로 구푸렸다. "..제..기랄..!! 크흑-!!!"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도비온이 말했다. "왜 그러지?" "크흐흑... 이.. 럴수가! 그, 그 자식은 정말로 그럴 정도의 힘이 있었는 데!!! 크흐흐... 그런데도 내 이네마는 붙잡혀 갔어... 이, 이네마...! 정말로 그런 힘이 있었으면서!! 분해서...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크흐흑...!!! 이, 이게 다... 제가 마노테온이기 때문입니까? 그래서.. 그런 겁니까? 하지 만, 그 자식은 시나마를 구했잖아요? 그런데 왜 저는 안 되는 걸까요?"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5368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80-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6/18 06:18 읽음:2760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RF) - 제80회, 제 30막. 식당 (2)> 그의 드리워진 머리카락 밑으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 이드가 당황해서 말했다. "키.. 킬. 도, 도바님 앞에서..!!" 하지만 킬은 그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크흐흑... 차, 차라리, 누군가 날 죽여줬으면.... 내, 내 이네마는 지금쯤 어 떻게 돼 있을지... 지켜주고 싶었는데... 이젠... 그녀에 대해 상상하는 것 마저도 무서워요. 누군가.. 나를... 더 이상 더러운 상상을 하지 못하도록 누군가 이 머리통을 부셔줬으면... 도바님...!" 킬은 돌아서서 도비온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도, 도바님...!!!" 그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아, 안됩니다. 그 자식에게는 안돼요. 나, 나 같은 것이, 무슨 복수를 한 다고... 어떻게 이네마를 찾겠다고... 안돼요. 차...차라리, 저를 여기서 죽여 주십시오-! 정말은... 전 이네마를 찾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이네마가 어떻 게 돼 있을지..! 내가 이네마를 찾아서, 그녀의 변한 모습을 보고.. 그 순 간 어떻게 이네마를 대할 것인지- 그것이 두렵습니다..!! 도바님-! 크흐흐 흐흑...." "키, 키일...!" 킬은 또다시 몸을 구부리고 울었다. 악에라도 바친 듯 복수를 부르짖으며 이상할 정도로 결의에 불타던 그가, 그 불균형한 상태에서 허물어지고 있 었다. ...흥. 그래. 바로 저것이 마노테의 모습이다. 그들에겐 아무 희망도 없다. 희망 따위가 있는 게 이상한 거다. 마음이 찢어질 듯한 사건을 겪었다 해 도, 가장 깊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약하며, 모든 능력의 원천을 날 때 부터 봉쇄 당한...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굴할 수밖에 없는 족속. 결 국 저 마노테의 비정상적인 꿈은 모든 아트에서 풀려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록... 도비온은 냉랭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도비온 자신이 그를 위하여 걸어준 아트가 아직도 그의 겉모양을 긴 머리칼로 꾸미며 허위로 유지하 고 있긴 하지만, 마음의 가면이 벗겨진 이상, 그것은 단순한 장식, 그 이 상의 의미는 갖지 않게 되었다. 자아.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도비온은 오열하는 킬의 모습을 보고 눈을 내리뜨고 말했다. "...정말 죽고 싶나?" "크윽... 주, 죽여... 죽여주십시오." 아아... 원한다면. 도비온은 오른손을 들었다. 엠벨루스여... 도비온은 영창 도 외우지 않았다. 이런 정도의 단순한 아트는 이제 아무런 영창도 없이 해치울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인딜산의 동굴에서처럼 엄청난 양의 마나로 상대를 위압할 필요 따윈 없다. 그저 단순한 목적을 위해 단순한 아트를 행한 것 뿐. 아무 빛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킬은 맨 처음 어 떤 사태가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게이드의 몸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리 고... 킬의 얼굴에선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고 말았다. 도비온의 손가락들은 저 인딜산의 동굴에서처럼 하나 하나가 길쭉한 칼날로 변형하고 있었다. 킬은 도바님이 저 칼날을 무엇에 쓸 것인가 금방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 만 대신 그는 자신이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죽여주십시오. 그래서 킬은 도바가 살기어린 눈으로 자신을 쓰윽 돌아봤을 때엔,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으... 쿵- 도비온이 발을 내딛을 때 층계에서는 온 식당을 울릴 만큼 묵직한 소리가 났다. 꼼짝도 못하고 있는 킬의 목구멍에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은 비명 이 났다. 으... 도비온이 또 한 발 떼었다. 시선은 여전히 킬을 주시한 채였다. 쿵- 으...으.. 죽음을 원한 킬이었지만, 킬의 바지가랑이가 지릿한 내음으로 물들기 시 작했다. 쿵- "으...어.. 으... 으아악---" 킬은 마침내 도비온이 중간 플로어의 마지막 층계를 밟았을 때 비명을 질 렀다. 도비온은 그것을 무시하고 시선을 킬의 눈과 똑같은 높이에 맞추고 말했다. "...자아, 킬. 죽고 싶다고 했나?" "으아아아악--" 킬은 미친 듯이 소리질렀다. 어둑한 실내에, 칼날만이 번득였다. 그 빛은 그대로 도비온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그 빛은 되돌아 도비온의 음성과 함께 킬의 얼굴로 떨어졌다. 도바님은 날 정말 죽일 거다--!!! 그 순간, 킬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뒷벽으로 붙었다. "으아아악---!!" 도비온은 킬의 그런 모습을 올려다보며 경멸 어린 눈빛을 지었다. 죽고싶 다..라. 그의 마음의 진실이 어떠했던, 그의 몸은 아직도 삶을 원하고 있 다. 사시나무 떨리듯 떠는 몸, 잊어버린 약혼녀에 대해 토해내던 울음보다 더 절실한 울음들. 코에선 끈적끈적한 콧물이 흐르고, 입엔 비명으로 인한 거품이 물려있다. 가랑이 타고 흘러 바닥을 더럽히는 더러운 오물... 추잡 하고 더러운 마노테온. 카랑- 도비온의 손가락에서 금속의 소리가 났다. "죽음은..." 그의 미소로 드러난 이가 섬뜩한 흰빛을 발했다. "...언제라도 네 옆에 있다. 네가 진심으로 그를 원한다면, 기꺼이 널 찾아 올 방문자가 바로 죽음이다." "으아아악- 도바님!!! 요, 용서를- 용서를- 자비를-!! 제가 시, 실--!!!" 킬이 몸이 무릎을 꿇을 듯 앞으로 휘청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도비 온의 몸도 위로 솟구쳤다. 이미 손은 어깨 뒤로 당겨져 있었다. 그들의 몸 이 부딪히겠다...라고 생각한 순간, 도비온의 오른손은 바로 앞을 향해 날 아갔다. 푸악---!!! "커억---!!" 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바의 얼굴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의 얼굴에 묻어있는 붉은 것은 아마도... 도바는 웃으며 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 다. "...자, 봐라. 네가 원하는 죽음이다. 입을 맞춰라. 마지막 생명을 즐겨라. 내 손에 닿는 네 내장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식을 때까지." "커억- 컥-" 킬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도비온의 옷자락에 떨어졌지만 도비온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큭큭... 멍청한 마노테 녀석. 자기연민도 너 따위에겐 아깝다. 네 구역질 나는 한탄을 위로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면, 넌 나를 쫓지 말았어야 한 다. 그저, 네 불쌍한 부모와 가족들에게 신경질이나 부리며, 운명을 원망 하며 하등 동물답게 그대로 진흙탕 속에서 뒹굴면 되는 거다. 죽음이라 고?" 뱃속 깊숙이 들어갔던 도비온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며 뒤틀려 졌다. 내 장을 산채로 조각 내는 그 고통에 킬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식당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이었지만, 이곳은 어차피 결계 지역이므 로 그 비명이 새어나갈까 걱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게이드조차도 이 를 딱딱 부딪히며, 무력하게 이 모든 광경을 바라 본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울고 있을 뿐이었다. 킬의 복부에서 이제 절단 난 무언가가 투둑 떨어지고 있는데, 도비온은 킬의 귀에 대고 더욱 낮게 말했다. "너 따윈 죽음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 더러운 버러지답게 그냥 죽어 라. 오직 강한 자 만이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 푸악-!!! 꿈틀대는 뜨거운 것들을 떨쳐버리고 도비온은 오른손을 거칠게 빼냈다. 비명을 지를 기력조차 빼앗긴 킬은 자신이 복부에서 도비온이 손이 회수 되자 꺼억- 하는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입을 쩍 벌렸다. 킬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복부에 그 눈길이 꽂혔을 때 킬은 자신이 당한 일을 볼 수 있 었다. 선혈을 쿨럭쿨럭 쏟아내는, 보는 눈을 미치게 만드는 구덩이가 뻐끔 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쏟아져 나가려는 내장을 붙잡으려 노력했지만, 손은 무엇에 묶이기라도 한 듯 힘없이 늘어져, 생각 만큼 잘 되지 않았다. ...난... 죽는다.. 그 순간 그는 이해했다. 그 생각이 비수처럼, 킬을 강타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 속이 탈색됐다. 쿵- 킬의 무릎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 충격으로 자신의 복부에 손이 닿 았지만 그것이 더 끔찍했다. 산채로 자신의 내부를 본다는 것, 자신의 내 부를 만진다는 것은... 죽음의 전조일 뿐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순간 아 무런 아픔도 없이, 오직 순백의 공포만이 느껴지니, 그것이 진정한 죽음 이다. "커헉- 커헉- 컥-" 킬은 마침내 완전히 바닥에 쓰러져 연속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커헉- 컥-" 그 모양을 보고 있던 도비온이 한 쪽 무릎을 꿇고 킬 앞에 앉았다. 그리 고 피범범이 된 그 구덩이에서 왼손으로 킬의 머리카락을 들어올렸다. 오 른손은 여전히 피 빛의 칼날로 번뜩이고 있었다. 킬은 또 한 번 더 피를 토해냈다. "컥--!" 도비온은 그 핏덩이들이 자신의 손에 닿아 질질 흐르는데도, 상관 않고 이를 갈 듯 말했다. "킬! 말해라.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 가-?!! 말해라--!!!" 키르마의 눈, 동공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것... 원...하는 것... 이네마... 내 고향 마을... 어머니... 아 버지... 눈이 가득 쌓인 나의 고향... 통나무집... 시, 싫다.. 이곳에서 죽는 건 싫어. 아... 제발 나를 그 숲으로.... 어릴 적, 하얀 눈만이 존재했던 그 곳... 드래마님을 만났던... 그 숲. 아아... 난--- 주, 죽는 것이... 싫...] 그의 턱을 타고 피에 물들은 눈물이 흘렀다. 흐릿한 눈이 맑아지도록, 눈 물을 떨쳐내기 위해 눈을 감았는데, 눈을 다시 뜨는 것이 힘들었다. 눈꺼 풀이 철로 만든 장막처럼 내려 덮였다. "킬-!!!!" 도비온은 미친 자처럼 소리 질렀다. 게이드는 하얗게 질려서 이 모든 것 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감긴 킬의 눈은 꼼짝도 안 했다. 도비온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포기하는 건가? 이대로? 도비온은 킬의 머리카락을 잡고 소리쳤다. "키르마-!" 키르마. 내, 괴로움의 이름이여. 순간 키르마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지막 순간의 또렷하고 맑은 눈. 키르마는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도비온의 눈을 보며 이를 갈았다. "...분...하다. 분해. 컥... 드... 드... 래마.. ...죽이겠... 컥..." 마지막 핏덩이가 입에서 솟아 나왔다. "커억---!!!!" "키, 키일--!!!!" 게이드는 도비온 앞인데도 그런 킬을 보며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미 킬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게이드가 흐느끼듯 말했다. "..키...킬... 킬..." 한 편, 킬의 마지막 말을 들은 도비온의 눈은 커져 있었다. 그의 손아귀에 서 힘이 빠졌다. 쿵- 지탱해주던 손길을 잃은 킬의 몸이 바닥에 널부러졌다. 도비온은 일어났 다. 게이드가 그런 도비온의 등을 보며 말했다. "꺽... 꺽... 도, 도, 도바님... 키, 킬은 그, 그냥- 그냥- 끅.. 끅.." 하지만, 게이드의 말은 도비온의 웃음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큭... 푸하하하하---!!!! 와하하하핫---" 게이드는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린 도비온을 보고 얼이 빠졌다. 도비온 이 큭큭 웃으며 돌아섰다. 이미 그의 오른손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큭큭... 게이드... 킬을 치료해 줘라. 큭큭... 새로운 동료의 탄생이다." "끅..끅...네?" 도비온은 미소 띤 얼굴로 게이드를 보며 말했다. "치료하란 말이다-! 이것을 가지고-" "아앗-!" 게이드는 도비온이 던지는 것을 받으려 두 손을 번쩍 벌렸다. 그 손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것은 향수병만큼이나 작은 병이었다. "이, 이것은..?" "하이 포션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브리드를 불러서 모든 수단 방법을 가 리지 말고 킬을 살려내라는 명령을 전해라. 그라면 내장이 절단 난 것 정 도는 고칠 것이다. 이 놈은 질긴 놈이야. 쇼크로 죽지만 않는다면 살아날 것이다. 자- 게이드- 발을 빨리 놀려라. 킬의 생명이 네 손에 있다-" "네, 넷---!!!!!!" 게이드는 도비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킬의 갈기갈기 떨어져 나간 살점 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하이포션의 뚜껑을 열어 그 푸르스름한 액체를 그 위에 부었다. 상처가 새롭게 재생하자면, 식당 최고의 페이스 힐러인 브리드가 있어야 할 것이지만, 일단 이렇게 해 두면 지저분한 모든 것들 이 소멸하며, 피가 끊임없이 흐르는 것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옛날 브리드가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이포션은 잘만 쓰면 죽은 자 도 살릴 수 있는 약품이다. [그, 그 귀하고 비싼 것을 주시다니...] 게이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비온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도록, 재빨리 움 직였다. 하이포션을 몽땅 다 킬의 상처에 들이부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 자, 병을 던져버리고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내려가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둔한 그의 몸 어디에서 그런 스피드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도비온은 싱긋 웃고 널부러진 킬을 내버려둔 채 다시 2층 난간으로 올라갔다. 게이 드의 손에 의해 똑바로 눕혀진 킬의 얼굴은 무척 창백했지만,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많이 줄어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브리드가 당장 달려오 지 않으면, 몇 시간 후엔 죽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저 녀석은 죽지 않 을 것이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녀석은 절대 쉽게 죽지 않는 다. 큭큭... 도비온이 이렇게 생각하며 웃는데,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울렸 다. "짝, 짝,---" 흠칫 놀란 도비온은 입구 근처의 그늘 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겐트 온이 웃는 낯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방금 게이드가 문을 열어놓고 나 간 바람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 속에서 그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도 비온은 불쾌한 낯으로 말했다. "겐트...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아- 너의 훌륭한 연극을 모두 보았을 만큼 전부터- 굉장하더군. 난 감동 까지 했거든." 그렇게 말한 겐트온은 웃으며 식당의 탁자 사이를 지나 천천히 계단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쳇!!! 그렇게 경계를 했는데...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 도비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럴 것이다. 비록 이 식당이 도비온 자신이 걸어 논 결계에 의해 유지되며 자신의 허락 없이는 어느 누구도 이곳을 맘대로 드나들 수 없지만...(비록 문이 저렇게 활짝 열려 있을 때라도.) 겐 트온은 유일하게 이 곳을 마치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도비온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보통 일반 식당에 들어오듯,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샤일라테와 이드넘, 그리고 겐트온의 모습 에 놀라 도비온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자신의 자랑인 식당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안내인을 보내지 않고 스스로 찾아오게 했 다. 결계 때문에 쩔쩔맬 때... '아아... 어쩔 수 없군.' ...이라는 말로 결계를 개방하며 그걸로 인사를 대신하려 했더니...! [제길!!!] 왠지 벨이 꼴려서 이드넘이나 샤일라테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결계를 개 방해 주었지만,(아마 그들은 이곳에 도비온이 결계를 만들어 놨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겐트온만은 시종일관 식당을 둘러보며 웃음을 짓고 있어 기분이 나빴다. 무언가를 눈치챈 듯... 그래서 도비온은 오랜만에 만난 형 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불손하게 대했다. 점심 무렵... 슬쩍 결계를 강화 해 봤는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또 뚫고 들어온 것이다. [불쾌한 자식!] (계속)================================================== 『환타지아-장편란 (go FAN)』 5369번 제 목:**엘야시온 스토리** -81- 올린이:roadless(안소연 ) 99/06/18 06:18 읽음:2829 관련자료 없음 ----------------------------------------------------------------------------- <엘야시온 스토리(RF) - 제81회, 제 30막. 식당 (3)> 도비온은 자신의 영역을 무단으로 침범 당할 수밖에 없다는 데 따른 당연 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도비온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 지 겐트온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올라오다 말고 중간 플로어에 멈춰 서서 거기 누워있는 킬을 힐끗 내려다보고 한층 더 웃음을 띄었다. "호오- 쓸만한 걸-? 외모상으로는 전혀 마노테답지 않아. 과연 네가 연극 까지 할 가치가 있었군. 하지만 그거야 외모상의 이야기이고.. ...그래, 도 비온.." 겐트온은 2층의 도비온을 보고 말했다. "이 녀석에게서 뭘 발견했지? 마노테온 따위에게 동료라... 쿡... 너야말로 진정한 판테온의 수호자다. 도비온. 엠벨루스의 칭호에 '자비'와 '박애'라는 말이라도 더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야." 도비온은 겐트온을 외면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 둬. 내게 자비와 박애는 없어. 킬은 쓸모가 있었다. 그걸 위해서 시험했을 뿐이야." "어떤 것을?" 겐트온은 계단을 오르며 그렇게 물었다. 도비온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붉은 피가 가득했다. "...인간의 성질은 쉽게 안 바뀌지. ...난, 20년 동안 이곳에 있었다. 클로니 아 곳곳을 다니며 신중하게 아티스트들을 고르고... 사람들을 골랐지. 오랫 동안 그들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환경에 좌지우지 되어 살아간다는 것. 일루티온은 일루티온의 한계를. 마노테온은 마노테온 의 한계를, 그리고 귀족들은 귀족들의 한계를 벗어나 살지 못한다. 행동 도, 말도, 용기와 결단도 모두 그 테두리 안에서 만큼만 움직이지. 그런 자들은 무미건조하다. 100이면 100 아무 흥미를 끌지 못해. 어디를 가도 그와 똑같은 샘플을 얻을 수 있으니까. 당장에 죽여버려도 아무 것도 아 깝지 않아. 하지만-" 도비온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겐트온은 그런 동생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 다. 도비온은 자신의 형을 쳐다보았다. "알아? 겐트온? 불가사의한 것은... 그 가운데서도, 그 테두리를 타고 올라 가려는 자가 있다는 거야. 무엇에 자극을 받은 건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 겠지만, 분명히 있다. 극소수이지만... 환경을 뛰어넘기 위해 하늘을 보는 자들. 환경 이상의 변할 수 있는 요인을 가진 자들. 난-" 도비온은 두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런 자들을 보면 전율을 느끼지. ...그런 자들은 돌 더미 가운데 원석과 도 같다. 겉보기엔 다른 쓰레기들과 똑같지. 하지만... 누군가 그 돌을 깨 뜨려 준다면- 그들은 빛을 발할 것이다-" 겐트온은 의자를 끌어내어 거기에 앉았다. "과연. ...그건 너의 20년 세월의 철학인가? 너의 식당에 모인 자들이 그런 너의 철학에 따라 모인 수집품인가 보지? 보석..? 저기 누워있는 마노테 도? 흐응 재밌군... 좋아, 또 한 번 묻지. 난 정말 궁금하거든. ..그렇다면 넌 저 마노테가 보석... 아니, 원석이라고 했나? 저 마노테 안에 보석이 있 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어떻게?" 도비온은 웃음을 띠고 자신의 형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형도 알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웠던 것이다. "킥킥.. 겐트. 하긴 넌 모르겠지. 그걸 재미있는 연극이라고 표현했으니..." 그리고 도비온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아아... 어쩔 수 없지. 궁금하다고 했으니 귀찮긴 하지만 알려주지... 겐 트? 너도 알고 있겠지? 인간은 극한의 순간이 오면 싫어도 자신의 본질 을 드러내게 돼있다. 그런 극한의 순간 중에 죽음의 순간보다 더 극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너도 들었지? 킬이 마지막 순간에 뱉은 말을? 저 마 노테 녀석이... 비굴하며 그저 살아가기에 급급한 하위종족들 중에 하나인 저 녀석이 말한 것을 들었지?" "물론." 겐트온은 킬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끊어질 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 게 또렷하게 들렸다. "...분하다.. 드래마를... 우리들의 보호물을 죽이겠다... 던가?" 겐트온은 그렇게 말하며 코웃음 쳤다. 하지만 도비온의 목소리는 열의를 띠었다. "그래! 저 녀석은 죽음의 순간에, 그저 살아남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알겠 어? 그냥 단순한 동물처럼 살아남는 것 대신, 그 이상의 것을 바랬다! 저 녀석은, 어떤 의미론 자신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라고!" 겐트온은 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앉으며 말했다. "...증오로 인한 초월인가..? 그것 참,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사람들도 괴롭 겠군. 물론, 네가 이용해 먹기엔 딱 좋은 상태지만 말이야." 겐트온의 말에 이번엔 도비온이 코웃음 칠 차례였다. "바보같군. 겐트. 넌 저 킬이라는 녀석이 정말로 우리의 보호물을 미워하 고 있다고 생각하나?" 겐트온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럼?" 도비온은 큭 웃었다. "...너도 저 녀석의 눈동자를 봤어야 해. 맙소사.. 저 녀석, 우리의 보호물 에게 완전히 빠져 있더군. 큭큭... 증오로 그렇게 까지 강렬한 분노를 느끼 진 못하지. 큭큭.. 참 주제넘은 녀석이야. 물론 그 점을 높이 산 거지만." "..아아. 그런가." 같이 웃음 지은 겐트온은 조금 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럼? 네가 그를 원석으로 평가 내린 이유가, 그 한마디였나? 쿡... 과연. 그래서 그렇게 무언가를 말하라고 소릴 질렀군. 난 네가 도대체 무슨 짓 을 하는 건가 했다. 쿡쿡... 하긴. 저 마노테 녀석도 특이하긴 했지. 배에 구멍이 나서 피가 철철 나는데, 기껏 내뱉은 마지막 말이 보호물의 죽음 이라니. 보통은 살려달라든지, 죽고 싶지 않다가 정석일텐데 말이야?" 도비온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 따위의 말을 했다간, 정말로 죽여줄 참이었어.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 을 내뱉을 놈들은 얼마든지 깔려 있으니까. 아무 쓸모도 없는 마노테 같 은 것쯤이야. 흥! 내가 모은 녀석들은 절대 죽음의 순간에 그런 소린 안 해!" "저런..! 그럼 죽었다는 네 부하 세 명은... 아까웠겠군? 이곳 식당의 사람 들인데... 원석이 망쳐졌으니 말이야." "...그렇게 쉽게 죽는다면 어차피 그들은 원석도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것 때문에 별로 아쉽진 않아. 아까 말한 대로 난 자비나 박애에서 이 일 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보석이라 여기면서 정작 죽으면 깨끗이 포기가 된다니. 그것 참 편하군. 어쨌든, 네 말대로 그것이 보석으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도비온.." 겐트온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어떻게 말해도, 저건 카운터 어택을 피하기 위한 제물일 뿐이야. 우리 보호물의 종속자처럼. 안 그래? 아티스트를 희생하는 데 대한 방패막이로, 계집을... 계집을 합법적으로 넘겨받아 저주를 막는데 대한 방패막이로, 저 마노테를 선택했다." 겐트온의 얼굴엔 더 이상의 웃음기가 없었다. "도비온. 저 마노테가 제대로 엠벨루스에게 바쳐지지 않으면- 네게 그 대 가가 돌아간다. 아무리 보석이 될 자질을 가졌더라도, 저건 엠벨루스의 것 이야. 그의 것을 탐내다니, 카운터 어택을 받을 셈인가? 그 처참한 기억을 갖고 있는 주제에 아직도 모험을 하겠다고?" 도비온은 겐트온의 말 때문에 싫은 기억이 떠올랐다. 무의식중에 손이 눈 으로 올라갔는데, 손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흠칫 멈췄다. 심장이 두근거 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다시 내리고, 겐트온을 외면했다. "...제사는 실패했어. 다른 마노테로 대치하면 돼." "지독한 실수... 목표로 했던 아티스트는 죽었다. 목표로 했던 계집은 도망 쳐 버렸어. 그리고... 남은 것은 저 마노테뿐. 그토록 확신이 있나? 도비 온? 또 다른 실수가 아니라는 확신이?" 도비온의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그는 겐트온 앞으로 다가가 두 피묻은 손을 탁자에 짚었다. 그리고 겐트온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겐트온. 그날부터 우린 쌍둥이도 아무 것 도 아니야. 내가 네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했던 때는 이미 지나갔어. 내가 판테온을 위해 일하며 받을 품삯은 저런 녀석들이야. 전체 중 10할 은 나의 것이지. 누구도 빼앗지 못해. 내가 그 동안 포섭했던 인간들이 마 음에 안 들었나? 겐트온? 완벽하지 않았어? 그걸로 만족했다면... 더 이상 내게 참견하지마. 네가 아니라 내가 엠벨루스의 수장이다. 엠벨루스의 비 위는 내가 맞추겠어. 너의 거짓말과 배신으로 인해- 고맙게도 난-" 도비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 그리고 피묻은 손가락으로 자신 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두 눈과 심장을 바치고 엠벨루스의 수장이 될 수 있었으니 까! 원치도 않았는데!!! 너 때문이야! 알겠어!!!?" 겐트온이 웃었다. "...도비온. 대신 나의 것을 나누어주었잖아..." "닥쳐-!! 이런 것 따위 바라지 않았어! 이것 때문에 내가 꾸었던 악몽의 횟수가 얼마나 되는 지 알아?! 우린 쌍둥이였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었 어!!! 헌데 이게 뭐야?! 너와 떨어져서 이곳에 왔을 땐 기쁘기까지 했지!! 구역질 나! 네가 이곳으로 온 뒤부터! 겐트온! 네가 또 이제 밤마다 할 것 들을 느끼는 게 구역질이 나!" 겐트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유감이군. 나도 네가 예전부터 제사를 벌일 때면 기분이 좋진 않 았어. 그러니 피장파장 아닐까?" "뭐가 피장파장이야?!!! 네 경우는 네가 원해서 된 거잖아! 난 틀려! 너와 감각을 공유하는 느낌은 끔찍해!!! 너와 심장을 반으로 나누어 가졌다는 게 끔찍하다고!!!! 멋대로 남의 몸을 바치고, 그 대가로 선심이라도 쓰듯 멋대로 네 몸을 나누어줬어도 하나도 고맙지 않아!! 권력에 미친 흡혈귀 같으니라고!!!" 도비온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너 따윈 믿을 수 없어. 겐트온. 아버지에게 리더로서 인정받은 게 너니 까... 너를 통한 아버지의 명령은 듣겠지만, 그 외엔 내게 지시할 생각 따 윈 버려. 나는 나야..." 도비온은 겐트온을 쏘아보았다. "...결코 너의 복제품 따위가 아니라구!!!" 겐트온은 자신을 혐오스런 눈으로 내려다보는 동생을 마주 쳐다보았다. 옅은 갈색의 눈동자, 황토빛의 머리... 이상하다. 그때 나누었던 것은 두 눈과 심장일 뿐인데... 예전에 그 진흙 구덩이에서 저 물이 들은 것일까. 도비온은 아주 예전엔 겐트온 자신만큼 푸른 눈과 금발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외모만큼 아주... [...심장이 아프군.] 겐트온은 웃었다. "...흥. 아무도 네게 복제품이라고 한 적은 없다. 도비온. 이 바보 같은 녀 석아. 단지..." 겐트온은 빈정댔다. "...신경 좀 쓰라는 거야. 엠벨루스가 카운터 어택을 걸면 나한테까지 영향 이 미치니까. 내가 내 몸 걱정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건가? 응? 동생씨? 누가 누구에게 명령을 했다는 거야? 피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건가? 피 때문이야?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이쪽에서 흥분해도 태연하게 받아넘기는 겐트온의 반응에 도비온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런 도비온의 얼굴에 겐트온이 낮 게 흐흐 웃었다. "아니면... 뭐야? 큭.. 내가 네 '결계'를 너무 쉽게 깨고 들어오니, 새삼 네 정체성에 위협이라도..? 큭큭.. 말이 돼는 짓을 해야지. 도비온.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네 결계에 걸려서 새처럼 퍼덕이는 모습? 아직 어리구나 도비온.. 큭.." "겐트온!!!! 너 이 자식!!!" 도비온이 피묻은 손으로 겐트온의 멱살을 감아쥐는데 겐트온이 차갑게 말 했다. "치워. 자식이... 더럽게 어딜 피묻은 손으로. 이거 아주 비싼 후드라고. 게 다가 육체적으로 싸운다면 네가 아주 불리 할텐데? 참새 한 마리 비틀어 죽일 힘도 없으면서..." "..!!!" 도비온의 얼굴이 굳는데 겐트온이 또 한 번 더 느글거리며 말했다. "아까 내가 감동했던 것 중 한가지.. 인간의 복부에 칼날을 꽂아 넣자면 기술과 힘이 꽤 많이 필요 할텐데.. 의아했거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 지..? 넌 몸이 약화돼서 그런 힘 따윈 내지 못할텐데.. 라고 생각을 하다 가.. 아하!" 그는 멱살을 잡힌 채로 자신의 손가락을 딱 부딪혔다. "저것도 아트의 힘이겠군!..이라는 생각까지 해냈지. 뭐니뭐니 해도 난 지 혜의 수장이니까 말이야... 크흣.. 내 말이 틀려 도비온?" "큭!!!" 도비온은 겐트온의 멱살을 풀고 물러섰다. 그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 "너 따윈 빨리 꺼져 버려. 겐트온. 이번 하누카의 날이 지나도 난 너와 같 은 세계엔 절대 안 있어. 제기랄!!!" 그러더니 그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얼 마나 화가 났는지, 바닥에 있는 킬의 모습도 한 번 보지 않고 지나쳐 버 릴 정도였다. 그런 도비온의 뒷모습을 보며 겐트온은 미소지었다. 식당엔 이젠 낮은 피비린내와 낮은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겐트온은 시선을 탁 자위로 돌렸다. 도비온의 손에서 묻은 핏자국이 검붉게 굳어가고 있었다. 겐트온은 탁자를 두 손으로 짚고 허리를 숙여 거기에 입술을 댔다. 찌릿 한 피 맛.. 생기가 돌아오는 느낌이다. ..흐흐.. 권력에 미친 흡혈귀라. 흡혈 귀는 피에 미치는 법이지. 도비온. 그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아직도 상처를 벌린 채 누워있는 있는 킬을 보며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니 내가.. 자비를 베풀어 너의 보석을 먹어치우지 않은 것만도 고맙 게 여겨라. 멍청한 녀석.] 그때 문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와, 브리드!!!" 도비온의 명령으로 페이스 힐러 브리드를 데리러 갔던 게이드라는 부하인 것 같았다. "빨리-!!!" "알았어- 알았다고- 질질 끄집지 좀 마!!! 아악!! 아이고 팔이야! 게이 듯!!" 두 남자가 얼마나 달려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왔다. 하도 급하게 오 느라 계단에서 발이 엇갈려 넘어질 뻔하긴 했지만 두 명은 비틀거리면서 도 용케 계단을 올라와 킬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헉헉... 어, 어때? 어때? 브리드? 살겠지? 살수 있는 거지? 살아야 해!!" 브리드가 말했다. "헉헉헉헉... 시, 시끄러! 저, 정신 집중하게 조용히 좀 해. 젠장. 보기에도 끔찍하군. 이 애송이 녀석... 얼마나 도바님의 신경을 건드렸기에.. 헉헉... 좀 거칠긴 해도 식당 놈들에게만은 이렇게까지 손찌검을 하는 분이 아닌 데... 우... 마노테 계집을 찾아서 공 좀 쌓으려 했더니, 이 자식 치료하고 나면 기가 하나도 안 남겠네. 제길."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느새 두 손을 킬의 상처에 대고 힐러 라이트 를 내고 있었다. 힐러 라이트는 초록색에서 급하게 색을 전환해 어느새 레드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일루티온 계급인데, 그렇다면 상당 한 능력자였다. 그 레드 라이트가 상처에서 빛날 때, 정말 킬은 도비온의 말대로 보석이라도 된 듯 몸 전체가 붉은 기로 번쩍였다. 그걸 보니 우스 운 생각이 들었다. [큭.. 귀여운 녀석. 보석이라고-?] 아직도, 내 동생은 인간에게 그런 희망을 품고 있군. 그는 텅 빈 식당을 돌아보았다. 그는 필요하다면, 그리고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기척을 없앨 수 있었으므로, 도비온의 부하들은 아직도 이 층의 어두운 구석에 겐트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또 웃 고 있었다. 이드넘은 고독을 무서워하고... 샤일라테는 한 인간을 사랑하며... 도비온은 인간들을 수집한다. 그럼 나는...? 겐트온은 눈부신 힐러 라이트로 킬을 치료하는 광경을 보며 웃었다. [환경 이상의 변화할 수 있는 요인을 가진 자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 보석이라고..?] 겐트온은 낮게 속삭였다. [도비온. 너는 우리가 영원토록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라는구나. 극과 극이 통하듯, 너는 우리와 정반대 타입의 사람들을 원하는 거야. 아아... 좋겠지. 동생아. 맘껏 그들을 가져라. 보석을 알아 볼 수 있는 너의 눈은 운명의 작은 장난이겠지만, 그래도 너의 뜻대로 해라. 그것이 빼앗긴 우리들의 어 린 시절에 대한 보상이다. 가질 만큼 가지고, 싫증날 만큼 갖고 놀아라. 결국 남는 것은 보석이 될 뻔했던 파편뿐이겠지만... 그때는 또 다른 장난 감을 찾으면 되니까. 하하...] (계속)================================================== 난, 주운~ 주운~ 주운에 1부를 끝낼 거라네~ 음하하~ <엔...^^> ps...지금쯤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렇게 6월에 1부 공략을 외치는 이유는... 말을 많이 하면... 말이 씨가 되어,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 꽃을 피우 고 열매를 맺지 않을까...하는 자못, 소박한 소망 때문이어요.. 효효... ps2...재훈님, 재훈님이 보내주신 멜에 너무 감동을 해서.. 크흑...TT 감사 합니다...TT 재훈님땜에 전, 제 얼굴에 20미리는 더 두껍게 철판을 깔 수 있었습니다. TT 종이 위에 이슬(?)로 사라진 토너에 대해선... --; 그 토 너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글을 더욱 열심히 써서... 더 많은 토너 를 희생양으로 삼도록...(허억- 내가 무슨 소리를...--;;;;;;) 어쨌든, 넘 감사합니다. ^^ 헤헤...^^ ps3...이번 주는 이걸로 연재가 끝입니다.^^ 다음주에 뵐게요.. ^^ 주인공도 아닌 녀석들이 연재가 질질 늘어지다 보니 너무 오랫동안 설치게 되어 서..TT 빨리빨리 글을 진행시켜야겠습니다.^^(저도, 마음만은 글공장이어 요.. 효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