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행운과 불행의 공통점. 그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자신을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때로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성실하게 준비한 노력에 부응해서. 또 어떨 때는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하는 때도···.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예측 불가능한 형태의 우연. 그게 행운과 불행이다. 또한 이 둘의 공통점은 항상 인간의 욕망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운은 욕망에 기름을 붓고, 불행은 인간의 욕망을 더욱더 배고프게 한다. 이 이야기는, 그 행운과 불행이 동시에 찾아온 자들의 이야기이다. ============================ 작품 후기 ============================ 신작 스타트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분들은 추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2화 <갑작스런 행운.> 박정운. 대한민국의 건전한 20살 청년으로 가정은 편모 가정으로 가정의 경제 사정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가난하다. 보통 이런 환경 속에서는 인간이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면서 종종 삐뚤어지거나 아니면 한때 방황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하지만 이 박정운이라는 남자는 그렇게 막 나가지 않았다. 학원 한 번 보내주지 못하는 가정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이 악물고 공부해서 중,고등학교 6년을 통틀어서 전교에서 5등 밖으로 나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용모도 모나지 않게 준수하고 근성도 있었다. 그리고 공부만 해서 외골수인 성격의 다른 모범생들과 달리 사교성도 좋고 상당히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즉, 개인의 스펙만 놓고 보면 상당히 괜찮은 친구인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 바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성적으로는 장학금 받으면서 갈 수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대학에서 연락이 와서 입학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합격이라고, 장학생 대우를 하겠다고 틀림없이 연락을 받고 난 후에 말이다. 말도 안 되는 경우라고 길길이 화를 냈고, 심지어는 경찰에 신고해서 법의 힘을 빌려 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대학도, 경찰도, 그리고 평소 호의적이던 고등학교 선생님들도···. 그 누구도 박정운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마치 세상의 모두가 자신의 적이 된 것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정운은 실의에 빠졌다. 뭐가 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자신을 왕따 시키는 듯 한 기분···. 그런 기분이었다. 실의에 빠져서 힘이 없어 하는 정운을 보고 그의 모친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고···. 다 나 때문이라고···. 눈물을 흐느끼면서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정운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게 어떻게 엄마 잘못이냐고? 왜 그렇게 서럽게 우냐고? 아들의 질문에 모친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진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까지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매해 꼬박고박 제사까지 지냈다. 하지만···. 실상은 틀렸다. 박정운의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그것도 매우 매우 유명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 제일그룹의 회장인 박진식. 그 사람이 바로 박정운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너무나 잔혹한 진실이었다.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숨겨진 여자. 첩이라고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젊은 시절 그녀는 박진식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그녀 뿐. 실제로 박진식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따로 결혼해야 할 여자가 있었다. 다만 그 쪽의 관계는 철저한 이해관계로 이뤄진 정략일 뿐. 사랑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젊은 날의 박진식은 자신의 취향인 여자를 여럿 유혹해서 거느리고 있었다. 박정운의 모친은 그런 여러 명의 여자 중에 한명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박진식에게 울면서 따졌지만···. 돌아온 것은 주제 파악 못한다는 차가운 모멸뿐이었다. 박진식은 야멸찬 말로 그녀를 상처 입히고 버려 버렸다. 마치 이제 싫증난 장난감을 버리는 애처럼 미련 없이 말이다. 하지만 그때 이미 그녀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고···. 그게 바로 지금의 박정운인 것이다. 세상에 홀로 내쳐진 박정운의 엄마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아들을 키웠다. 아들은 그런 모친의 바람에 보답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두 모자였건만···. 세상의 불행은 그 끝을 모르고 또 찾아왔다. 박진식의 본처의 눈에 박정운의 행방이 귀에 들어간 것이다. 자신의 남편의 사생아이면서 공부 잘하고 주변의 평판도 좋은 남자.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거슬렸다. 자신의 아들 둘은 대량의 기부금을 내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입학 시켰다. 하지만 사생아인 박정운이 명문대에 장학금을 받으면서 입학하면···. 그리고 그게 남편의 귀에 들어가면····.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남편의 변덕으로 인해서 제일 그룹에 박정운이 발을 들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대학 쪽에 압력을 넣어서 박정운을 떨어트린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띠는 커리어를 쌓지 못하게 말이다. 경찰도, 고등학교의 선생님들도··. 모두 그녀의 입김이 들어가서 박정운을 밀쳐낸 것이다. 세상만사 돈은 최고, 절대, 최강. 전부···· 라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막대한 돈만 있다면 세상사 90%정도는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법. 아무런 배경도 없는 어린애 하나 뭉개버리는 것은 재계의 최상류층에 있는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모든 진실을 들은 박정운은 절망했다. 자신이 이제까지 해 왔던 노력. 그 노력을 위해서 희생해 왔던 시간. 그 모든 것이 저 사회의 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꿈틀꿈틀 거리면서 기어 올라오는 벌레일 뿐.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떨어트릴 수 있는 그런 벌레일 뿐이었던 것이다. “후우·····. 이제 뭐 하지·····.” 박정운은 그저 한 숨만 내쉬었다. 이제 갓 20살. 아직 만으로는 19인 나이에 인생이 이렇게 고달파 질 줄은 몰랐다. 띠링···. 그때 박정운의 전화기에 문자가 날아왔다. [대박,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으십니까? 바꾸고 싶다면 Yes, 아니면 No를 눌러 주십시오.] “······스팸?” 평소라면 이런 ‘나 스팸이오. 햄 아니오.’ 라고 주장하고 있는 오러가 뭉게뭉게 품기고 있는 문자는 1초 만에 삭제 트리에 등극이다. 하지만···. 인생이 실의에 막 빠진 지금의 정운에게 있어서 이 문자는 뭐랄까? 내 상황에 딱 아니야? 이런 느낌을 들게 한 모양이다. ‘까짓것···. Yes 한 번 누른다고 뭐 있으려고? 기껏해야 어디 가입해라 정도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자의 Yes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구형3G폰인 자신의 폰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초고속의 속도로 눈 깜짝 할 사이에 하나의 어플이 깔렸다. “어···? 이건 뭐야? 그라운드 제로? 게임?” 정운은 평소에 게임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 친구들하고 하는 카톡의 게임 몇 개 정도? 아니면 앵그리 버드 정도, 그건 굉장히 잘하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별것 아닌 게임이라는 생각에 유료결제만 주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의 안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도트 그래픽으로 깔짝깔짝 움직이고 있는 인간 캐릭터 하나와 그 옆에 프로필만 있었다. -이름 : 박정운- 나이 : 19 체력 : 15 힘 : 12 민첩 : 13 지능 : 45 매력 : 80 무력 : 10 운 : -99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왜 태어났니?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운 없는 인간. 무슨 노력을 하든 당신은 소용없다. 그냥 접시 물에 코라도 박고 죽기를 권장함.^^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운은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에 뜬 캐릭터는 자기 자신이었다. 이름이나 나이 정도는 개인 정보로 어떻게 안다고 하지만···. 자신이 대기업 회장의 사생아라는 것은 자기 자신도 불과 최근에야 안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게임의 캐릭터에 그런 정보가···. “이건 설마···?” 정운은 순간 이 게임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자신의 아버지라는 인간 쪽의 수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이 사생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의 어머니를 제외하면 그쪽의 인간들 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 이유는 없다. 함정이라는 것은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쓰는 것이다. 정면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쓰는게 함정인 것이다. 이미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속에 있는 그들이 정운이를 상대로 함정을 쓸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도대체 이 게임은 뭐지?” 정운은 좀 더 게임을 살펴봤다. 약간 광기에 가까운···. 흡사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게임에 몰입하는 자신을 이때의 정운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의 창은 그 프로필에서 끝난게 아니었다. 게임의 밑에 Q창을 클릭하자 거기에는 수백 가지의 퀘스트가 열려 있었다. [대기업 취업하기.] [로또 당첨되기.]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 [여자 친구 만들기] 등등····. 그야말로 수 백 가지의 퀘스트가 진행 중으로 되어 있었다. 그 중에···. 그 중에 딱 하나가 박정운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일가에 복수하기.] “·····이건·····? 정말인가?” 나중에 생각해 보면··. 박정운은 이때의 자기 자신이 정체 모를 광기에 홀려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박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그 퀘스트 창을 눌렀다. 그러자 퀘스트 창에 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제야 정운은 최상단에 작은 숫자로 포인트 5,000 포인트라는 숫자가 보였다. 아마도 이 게임은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게 아니라 퀘스트 자체를 클리어하는 것이 게임의 수단인 것처럼 보였다. ‘퀘스트·····. 아니 이건 퀘스트가 아니야. 이건 나의 소원,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다. 이 포인트를 써서 소원을 빌라고 하는 건가?’ 박정운은 순식간에 이 게임의 원리를 깨달았다. 악질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질이 안 좋아 보이는 게임이었지만···. 이 게임의 진실 여부는 상관없었다. 지금 이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서 써야 하는 포인트는 3,000포인트. 그 포인트를 쓰면 어머니를 농락하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 일가에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기회를 준게 악마라고 해도·····. 상관없어.” 박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퀘스트의 OK창을 눌렀다. 그리자 띠리링, 이라는 소리와 함께 퀘스트 클리어 창이 떴다. 기존의 게임처럼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게 아니라 포인트를 쓰기만 하면 퀘스트가 클리어 되는····. 그런 게임인 것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게임이 정말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문제군.’ 박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제 시간을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화 그날 저녁. 인터넷에 뜬 속보를 본 정운은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제일그룹 박진식 회장. 주가 조작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제일그룹. 기술 유출. 국가 지원금 횡령.] [박진식 회장 일가의 횡령 비자금 조성에 따른··.] “이럴수가·····.” 기사를 하나하나 확인해 가던 정운이는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친부인 박진식이 회장으로 있는 제일 그룹이···. 그야말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제일 그룹 정도의 큰 회사라면 보통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사에는 수십개나 될 법한 제일그룹의 악재라 실려 있었다. 산업 스파이에 당해서 기술 유출. 노조들의 단체 파업. 건설 수주 과정에서 뇌물 수수 혐의.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혐의에서 빠지지 않고 박진식 회장의 이름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건····. 이건 정말로·····?” 박정운은 자신의 핸드폰에 들어있는 게임 어플을 보면서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걸로 정말 복수를 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누가 말했던가? 사람의 욕심은 그 끝이 없다고····. 마법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쥐고 나자 박정운은 가슴이 두근 거렸다. 핸드폰의 잠금 장치를 풀고···. 다시 게임으로 들어간 박정운은 남은 수백개의 퀘스트 창들을 바라봤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지금 박정운이 원하는 것들이었다. [내일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같은 시시한 일 부터··. [로또 1등이 당첨되고 싶다.] 이런 커다란 일까지···. 그 모든 것이 지금 박정운이 원하는···, 그리고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들이었다. ‘이게 있다면···. 그렇다면 내가 잃은 것들을 보상 받을 수 있어. 딱, 그 정도로만 사용하면···. 그럼 괜찮지 않을까?’ 그도 어딘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이 힘이 위험한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그저 예감일 뿐이었고 이 힘이 주는 커다란 보상은 너무나 달콤하고 확실한 확신이었다. 정운은 그대로 퀘스트 창에서 한 가지 목록을 눌렀다. [예정되었던 대학에 합격.] 자신의 아버지의 본처가 압박을 넣어서 장학생 입학을 내정 받았다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일방적인 취소 통고를 받았었다. 억울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으로 합격을 받았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권력에 의해서 떨어졌으니···. ‘이것만···, 일단 이것만 되돌리자.’ ‘일단’ 이라는 단어와 ‘이것만’ 이라는 단어는 이 상황에서 양립 할 수 없었지만···. 이미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도 않은 정운이었다. 그렇게 정운은 어느새 이 악마의 게임. 그라운드 제로에 빠져 들어갔다. 2개월 후. 정운의 일신상에 많은 것이 변했다. 단칸방 전세에서 식당에 주방 도우미로 나가는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살고 있었던 것이 원래 그의 생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는 지금 명문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대학생이고 그의 집은 그럭저럭 넓은 평수의 중산층 아파트였다. 이 모든 것을 불과 2개월 사이에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하는 것은 원래 잃었던 것까지. 즉, 대학 입학까지···. 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인간의 욕심은 그 끝이 없는 법이다. 힘들게 식당에 주방 도우미로 가서 하루종일 설거지만 하고 있는 어머니가 안쓰럽다. 라는 것도 이제는 핑계였는지, 아니면 정말 본심이었는지 햇갈리지만···. 그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다시 한 번 그라운드 제로에 접속했다. 그때 정운이에게 남은 포인트는 1500포인트.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고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포인트가 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포인트라는 것은 그 소원을 원하는 자들의 현재 상황에서의 현실성과,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서 포인트의 가격이 정해졌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대기업 회장이 1억이 가지고 싶다. 라고 비는것과 평범한 소시민이 1억을 가지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은 상황도 다르고 욕망도 다르다. 대기업 회장에게 있어서 1억이라는 것은 그냥 손짓 한번만 하면 쥘 수 있는 금액. 소원으로서의 가치도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서민에게 있어서 1억은 큰 돈이다. 평범하게 직장에서 돈을 벌어서 먹고, 자고, 입고 하는 돈을 따 빼고 모으고 모으면서 조금씩 돈을 불리면서 십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해야···. 그래야만 손에 쥘 수 있는 돈인 것이다. 같은 1억이지만 그렇게 그 1억을 바라는 자의 욕망과 상황에 따라서 포인트는 달라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운이는 지금 돈을 원한다. 라는 욕망이 커진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 포인트도 상당히 많이 들었다. 정운은 있단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저가의 주식을 몇 개 샀다.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를 써서 포인트를 써서 그 주식들이 폭등하게 했다. 거기서 10배, 20배 막대한 차익을 얻어서 그 돈을 또 같은 원리로 불렸다. 그걸 반복해서 정운은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10억이 넘는 거금을 만들었다. 덕분에 포인트를 대부분 사용하고 이제 남은 포인트는 32뿐이었지만···. 그래도 이제 그는 명문대학의 우수한 학생이고 집안도 그럭저럭 평범한, 아니 평범한 것 보다는 조금 더 잘 사는 집안이 된 것이다. 그것만 해도 그는 감지덕지였다. 이제 이 게임이 뭔지 알바도 아니었고 관심도 끊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 남은 포인트도 32뿐이고 말이야·····.’ 그 포인트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봐야···. 라디오 방송에 자기 사연이 채택되기. 걸그룹 사인받기. 인터넷 이벤트 5등상 당첨되기. 이 정도 뿐이었다. 아니면 로또 번호 한 개 예지하기. 라던가····. 어쨌든 전부 시시콜콜한 일들이었다. 별로 상관없는 일들이기에 포인트도 거의 들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상관없었다. 이제 정운은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게임을 핸드폰에서 지우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신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이미 정운은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이 주는 마력에 도취된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게임이 현실에 안겨주는 달콤한 성과에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정운은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문을 열고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정운은 어딘지 모르게 집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정운이 들어가면 집안에서는 어머니가 이제 왔냐고. 밥은 먹었냐고 물어 보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운은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약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정운은 어머니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정운은 어서 달려가서 어머니를 안아 일으켰다. 어머니는 식은땀만 줄줄 흘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정운은 당장 구급차를 불러서 어머니를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환자분의 보호자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다소 굳어있는 의사의 표정에서 정운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말기 암이십니다.” “·······예?” “····말기 암입니다. 아마도 간에서 시작하셔서 이미 췌장과 위장··· 그리고 복막에 스킬스 까지····.” 의사가 이것저것 설명을 했지만 정운의 머릿속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한참의 설명 후에 정운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쥐어짜는 심정으로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선생님·····. 저는·· 의학도가 아니라서 전문지식은 말해도 모릅니다. 하나만···. 솔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 “저희 어머니는····. 살 수 있는 겁니까?” 정운은 제발 의사의 입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의사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잔혹했다. “죄송합니다. 안타깝지만 의학은 무력한 경우가 많습니다.” “·········.”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환자분과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 주십시오.” 치료를 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도록 암이 퍼졌다는 것이다. 정운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세상 모든 부모는 언젠가 자식을 떠나는 법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선인도 악인도···. 그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직 이런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어···. 난 아직·····.’ 정운은 울었다. 병원 복도에서 누가 이상하게 보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고 울고 또 울었다. 다 큰 남자가 체면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우는 모습에 몇몇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몇몇 사람들은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그저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을 울고 운 정운은 이윽고 눈물을 그쳤다. 슬픔이 가신게 아니다. 눈물이 말라 버렸을 뿐. 하지만 눈물을 그치자 그 다음에 생각이 든 것은 어떻게든 하자는 결의였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다. 한 평생 고생만 시키다가 이제야 조금 남들만큼 살만해 졌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놔 드리겠는가? 수단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정환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정환은 병원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핸드폰을 꺼내고 그라운드 제로를 열었다. 퀘스트 창을 다 뒤져보니 자신이 원하는 창이 보였다. [어머니의 병 완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보아하니 퀘스트의 포인트도 만만치 않을게 확실했다. 퀘스트 창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60,000포인트. ‘····망할.’ 6만 포인트나 들어갈 줄은 몰랐다. 원래 있던 포인트가 5천 포인트였다. 거기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30언저리였고 말이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 뿐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화 <이유없는 행운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 정운은 이제까지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한 번도 누르지 않은 창을 눌렀다. [포인트 획득] 이라는 창이었다. 이 포인트의 앞에 익살스런 악마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창만 특별히 빨간 색으로 되어 있어서 그럴까?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정운이었기에 절대로 이 창을 누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창을 열고 포인트를 획득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죽는다. 결국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운은 떨리는 손으로 포인트 획득 창을 눌렀다. 그러자···. [포인트 획득을 하시겠습니까?] 정운은 Yes를 눌렀다. [정말로 하시겠습니까?] 다시 Yes를 눌렀다. [마지막으로 물어 보겠는데 정말 하시겠습니까? 나중에 울고불고 생지랄을 다 해도 소용 없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시죠.] “·········.” 도대체 뭐 길래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정운에게 물러날 길은 없었다. 정운은 Yes를 꾸욱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운의 의식은 어딘가로 이동했다. “으음···. 음····.” 정운이 눈을 떴을 때 정운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백색. 첫눈보다 희고 소의 젖보다 훨씬 더 하얀 백색. 보는 순간 순결이나 청결함 보다는 소름끼치는 광기가 옅보이는 그런 백색이었다. 그리고 그런 백색의 공간 속에 정운은 홀로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홀로는 아니었다. 정운의 눈앞에 둥실둥실 거리면서 한명의 삐에로가 나타났다. 삐이이이!!!!!! “으윽···.” 삐에로는 인간의 청력을 고통스럽게 하는 소름끼치는 불협화음을 내는 피리를 불면서 우스꽝스러운 율동을 추면서 정운에게 다가왔다. 크기가 5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삐에로는 기분 나쁜 가면을 쓰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한손에는 피리를 또 한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추고 있는 율동은 관절의 움직임이 어딘지 모르게 살아있는 생물의 것처럼은 보이지 않아서···. 진정으로 기분 나빴다. 그 삐에로는 정운의 앞에 다가와서 정운에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는 하몬 헬게이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쓰레기 같은 고객님.” 악수를 하기 위해서 내미는 손은 관절이 역으로 꺽여 있는 그로테스크한 형태였다. 그런 소름끼치는 손은 잡기도 싫었지만 상대는 거역할 엄두가 나지 않는 괴물이었다. 손을 잡아서 악수를 한 정운에게 삐에로는 키키키키라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미소 지었다. “그럼 쓰레기 같은 고객님. 고객님에게 앞으로의 게임 플레이 방식을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잠깐, 플레이 방식이라니? 우선 현재의 상황부··· 읍!!!!” 질문을 하려는 정운은 자신의 안면을 통째로 막아 버린 거대한 손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몬이라는 이름의 삐에로는 그 상태로 정운의 머리를 들고 대롱대롱 흔들면서 말했다. “저어어어어엉말!! 제 정신이 아니군요. 고객님. 제 말을 중간에 끊어 버리다니. 계약이고 뭐고 간에 여기서 확 씹어 먹어 드릴까요? 앙? 이 벌레 같은 인간새끼 고객님아?” ‘큭····. 이 새끼···.’ 정운은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하몬 헬게이트라는 삐에로는 아무래도 인간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생긴 걸 척 봐도 인간 같지는 않은 존재였지만 인간을 싫어한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지는 않는다. 라는 점을 미뤄볼 때. 아무래도 상대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일단··. 가만히 있어보자.’ 정운이 그렇게 체념한 듯이 가만히 늘어져 있자 하몬 헬게이트라는 삐에로는 그대로 정운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흥, 똑똑히 잘 들으십시오. 썩어빠진 인간 고객님. 제 설명을 잘 듣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똑바로 이해 하는게···. 그나마 살 확률이 높을 겁니다. 알겠습니까? 이 개 병신 고객 새끼야?” “············.” 정운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하몬의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되었다. “그럼··. 우선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에 관해서 설명 하겠습니다.” ‘게임?’ “이 게임은···. 고객님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커다란 불행을 짊어지고 그 불행을 계속해서 키워온 자들에게 그 불행을 보상하는···. 그야말로 인간들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은혜로운 게임인 것입니다.” “은혜? 보상?” “예. 고객님의 예를 들어볼까요? 고객님은 대기업의 버려진 사생아로 태어나서 그로 인해서 온갖 고생을 다했고, 거기다가 자신의 노력까지 짓밟혀 버렸죠?”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우리 대악마 메피스토펠리스님께서 자비로우사···. 당신들을 구해주고자 만든 보상 시스템 게임. 그게 바로 그라운드 제로인 것입니다.” “·····보상 시스템 게임? 그럼 처음에 내가 받았던 포인트 5,000포인트는?” “아!! 그건 당신이 이제까지 태어나서 겪은 불행의 포인트. 하!! 5,000포인트면 어지간히도 운 없는 케이스인걸요? 하긴 그런 인간들에게 주로 그라운드 제로가 배급되지만 말이죠.” “···········.”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당신들의 불운을 보상해서 소원을 들어준다. 라는 터무니없이 은혜로운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고맙죠? 당연히 고맙겠죠? 이 쓰레기 인간 나부랭이 새끼야.” “·············.” 정운은 그제야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초반 원리를 조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행한 자들에게 게임을 배급하고 소원을 빌게 한다. 그리고 그 소원의 포인트는 이제까지 겪었던 불행의 수치. 즉, 이제까지 겪은 불행 그 자체만을 보상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빌어먹을·····.” “하하하하하. 그래그래. 그 표정. 이제야 뭘 좀 아는 것 같네요. 개새끼 고객새끼야.” 상대는 배를 부여잡고 허공을 빙글빙글 돌면서 깔깔 웃어대고 있었다. 정운은 가능만 하다면 저 재수 없는 삐에로 악마를 박살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럴 힘도 없을 뿐 더러···. 지금 정운은 절망적인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을 보상해주는 악마의 게임. 거기까지만 들으면 무척이나 관대하고 자비로운 게임 같다. 하지만··. 그 진상은 도박판의 호구들 길들이기나 다름없었다. 도박판에서 초반에 몇 판을 이기게 해주면 호구들은 전 재산을 다 가져다 바칠 때 까지 멈출 줄을 모르는 법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라는 것은 비탈진 눈밭을 구르는 눈덩어리와 같다. 멈출 줄도 모르고 점점 불어나기만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가다가는 언젠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깨져 버린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도 인간의 욕심을 이용한 낚시였던 것이다. 애당초 자신이 잃은 것만 보상했더라면···. 그랬더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포인트를 다 쓰고 나서도 이 전지전능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운 법이다. 예를 들어서···. 과거에 한양에 볼일이 있는 사람들은 걸어서 갔다 오는게 보통이라고 했다. 요즘 21세기에서 목포 사는 사람이 서울까지 걸어간다고 하면 그게 뭐하는 허공에 삽질이냐고 할 것이다. 애당초···, 쉬운 길을 한 번 가면 어렵게 가는 길은 좀처럼 선택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정운의 경우는 그나마 어머니의 병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상 모든 자식들의 부모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마냥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다. “하하하···· 하아···. 나 이럴 때가 너무 좋더라···.” 하몬이라는 악마는 실컷 웃고 나서 그 후에 정운의 앞에 와서 말했다. “이제 대강 어떻게 이 세계에 오게 된 것인지는 아는 모양이고···.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가느냐? 라는 것이 되겠군요.” “············.” 정운은 패배감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몬의 설명은 이어졌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은 총 100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100층을 모두 클리어 한 자에게는 어마어마한 포상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던전 돌파 게임인 것입니다.” “던전 돌파?” “예. 소위 당신들 인간들이 생각하는 인터넷 게임을 생각하면 될 겁니다. 열심히 경험치 쌓아서 레벨업 하고 장비 맞추고 보스몹 레이드 뛰고··. 참 쉽죠? 당신도 해 봤죠? 다만····. 여기서는 목숨이 걸린 리얼입니다. 아셨죠? 병신 같은 고객 새끼야.” 키득키득 거리는 하몬을 보면서 정운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자, 이 게임을 클리어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100층에 있는 최강의 보스몹. 파우스트를 쓰러트리는 것.” “······또 하나는?” “또 하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포인트를 다 모으고, 이탈 아이템을 찾아서 사용하는 것.” “이탈 아이템?” “이렇게 생긴 것을 말하는 겁니다.” 하몬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손에 들려있는 검은색 크리스탈을 보여줬다. “자신에게 필요한 포인트를 모두 모을 것. 그리고 이 이탈 아이템을 손에 넣어서 사용할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면 게임에서 나가는 것도 불가능 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이냐?” “물론이죠. 하여튼 인간 새끼들 의심 하고는····. 이건 여러분들의 자비를 위해서 만들어준 일종의 구원권이죠. 장시간 게임하면 몸에 안 좋으니 특별히 배려해 준 것이랍니다.” “············.” 100% 개소리였지만 그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더구나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가는 시점에서 유저는 자신이 게임에 접속한 시점과 동일한 시간대로 돌아갑니다. 즉, 당신의 어머니의 병을 치료 할 수 있다는 거죠. 게임만 클리어 하면!!!” 그 말 한마디가 정운의 가슴에 가장 깊숙하게 다가왔다. “···········.” 정운이 넘어간 것처럼 보이자 이제 하몬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럼. 게임의 클리어 방법에 관해서는 이렇게 설명을 드렸고, 이제 게임 내부에서의 정보는 자신이 직접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X 같은 고객 새끼야. 끄하하하하하하하!!!!” 하몬은 소름 끼치는 광소를 터트렸고 정운의 정신은 거기서 일단 끊어졌다. 정운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정운은 어떤 원형의 탑 안에 있었다. “여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라는 건가?” 정운은 직감적으로 여기가 게임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탑의 밖으로 정운이 나온 순간··. “오오!! 오랜만의 신입 인걸?” “흐음···. 쓸 만한 놈이면 좋겠는데 말이야.” “순서 지켜!! 이번엔 우리 차례야.” 정운이 탑의 밖으로 나온 순간 보인 것은 정운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기는 몇 명의 남자들이었다. 정운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경계하면서 반걸음 물러났다. “아아아··· 겁 먹지 마. 우리는 널 해치려 하는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들 중에 한명이 정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용건입니까?” “경계심 쩌는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 그 남자는 푸념을 했지만 정운은 결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들의 정체가 어렴풋이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본격적인 스토리의 시작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5화 “우리는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있는 네 선배 유저들이다.” “····그렇군요.” “의외로 놀라지 않는군.”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 뭐···. 그건 그렇지. 어쨌든 널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너에게 제안을 하기 위해서야.” “제안?” “그래. 넌 잘 모르겠지만····. 이 게임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만만치 않다. 팀플레이가 필수지.” “···그래서요?” “우리 유저들은 그래서 길드를 만들어서 플레이를 하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대강 알아 듣겠지?” “저보고 길드에 들어오라는 말입니까?” “하하하··. 그렇지. 말귀 한 번 잘 알아듣는군.” “············.” 정운은 잠시 주변의 인물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저기 저분들도 같은 길드의 사람들입니까?” “응? 아니···. 저들은 다른 길드의 사람들이다. 여기 있는 자들 대부분이 각각의 길드에서 신참 섭외를 위해서 이 시작의 탑에서 죽치고 있는 길드의 대표들이지.” “····과연 그렇군요.” 정운은 대강의 상황을 알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정운은 머리가 상당히 좋은 편이고, 눈치도 빠르다. 그런 정운이기에 한눈에 눈치 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이 신용하지 못할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죄송합니다. 아직 제가 이 게임의 상황을 잘 몰라서···. 길드의 가입은 나중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 으음···? 나중이라···. 가능하면 지금 바로 가입하는게 좋지 않을까? 지금이라면 특전으로 우리가 친절하게 게임 가이드를 해 준다고.” “·····죄송합니다. 일단 저 혼자서 좀 상황을 둘러 보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정운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는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다른 길드의 대표라는 자들이···. “뭐야? 실패 한 거야?” “크큭··. 지뢰제거나 맵핑에는 초보가 최고인데 말이야.” “입 닥쳐!! 새끼들아!!” 남자는 정운을 대할 때 하고는 달리 거친 태도로 말했다. 원해 정운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가식적인 것이었다. ‘역시···. 나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초보 유저를 받아 들이는 목적이 따로 있었던 거야. 결코 좋지 않은····.’ 정운이 이들을 신용하지 않은 이유는 두가지 있다. 하나는 이 게임의 특성. 이 게임은 자신의 욕심에 지고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쓴 인간들이 유저로 있다. 즉, 나름 이유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 게임에 참가한 존재라는 것이다. 즉, 믿을 수가 없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 자신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던 남자들 뒤편에서 구경하던 남자들. 그 남자들의 숫자 만큼 길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길드에는 이미 수십개가 넘는 길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길드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길드 사이에 알력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 상황도 모르고 길드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멋모르고 휘둘려서는 절대 안 되지. 이 게임은 리얼은 아니지만 페이크도 아니다.’ 정운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정운은 일단 이 주변의 거리를 탐색했다. 아무래도 여기는 유저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공간 같았다. 시대 배경은 마치 유럽의 도시처럼 현대적인 요소와 중세적인 건축 양식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유럽의 런던 같은 오랜 서양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운은 그 중에서 한 공원에 도착해서는 거기서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골랐다. ‘이 게임에서 가장 좋은 것은 시간의 여유가 많다는 것이야. 그러니···. 절대적으로 신중해야 되.’ 정운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생각했지만 절대로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간다면 그때는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실 때이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않고···. 심지어는 몇 년이 걸릴 것을 각오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게 중요했다. ‘그럼···. 문제는 게임을 어떻게 클리어하는야 인데···. 그러고 보니 온라인 게임이랑 비슷하게 만들어 놨다면···.’ “인벤토리. 인벤토리 오픈. 스테이터스 오픈. ····안 되나?” 정운은 순간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게임이라면 당연히 이런게 될 줄 알았는데 되지 않은 것이다. 그때 정운은 자신의 왼손의 검지에 걸려있는 반지를 문득 발견했다. “반지? 이건 무슨···?” 이런 반지는 정운이 원래 가지고 있던게 아니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반지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몰랐다. 보석은 박히지 않았지만 반지는 복잡한 문양으로 만들어져 있는 뭔지 모를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정운은 혹시나 하면서 그 반지를 슥 쓰다듬었다. 그러자···. 파팟!! 정운의 눈앞에 정운의 눈에만 보이는 몇 개의 창이 떠올랐다. 박정운 종족 : 인간. 직업 : 없음. 나이 : 19 체력 : 15 힘 : 12 민첩 : 13 지능 : 45 매력 : 80 무력 : 10 운 : -99 초보자 보호 : 남은시간 167시간. “이건···. 내 스테이터스. 내 예상이 맞았군.” 정운은 스테이터스의 창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조작했다. 마치 태블릿을 다루는 것처럼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조작하는게 가능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 중에 몇 개의 상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초보자 보호? 이게 뭐지?” 정운은 초보자 보호라는 창을 살짝 클릭해 봤다. 그러자 거기에 관한 설명이 나타났다. -초보자 보호- 초보 유저를 상위 유저의 PK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보너스. 이 보호기간이 지속되는 동안 초보자는 다른 유저에게 공격 받지 않는다. 몹에게도 공격 받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먼저 공격을 하면 공격을 받는다. 시간이 다 되거나 레벨이 10에 도달하면 초보자 보호는 풀린다. 초보자 보호 기간에는 혈맹에 가입 할 수 없다. “····이래서 였군.” 정운은 아까전에 그 길드의 인간들이 자신을 활용하려고 했던 이유를 알았다. 지뢰제거나 맴핑이라는 말은··. 아마도 그 인간들 자신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위험 지대에 초보 유저를 밀어 넣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몹이 있는지? 어떤 함정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탐사하는 임무를 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라고 정운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생각은 정확했다. 보통의 게임이라면 상위 유저가 하위 유저를 이끌어주고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다르다. 모든 유저들이 자신들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 전원은 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해도 자기 목숨을 담보로 거는 것은 역시 망설여지는 법. 이 게임에서의 죽음은 그냥 게임에서의 죽음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생명이 끊어지는 위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위험부담. 제 정신으로는 어지간해서는 짊어지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멋모르는 초보를 이용해서 탐사를 하고, 그 탐사에 용이한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면 한 번더 일회용으로 이용하거나 그대로 버려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혹은···. 길드의 선배들이 멋대로 PK를 해 버리기도 한다. 왜냐 하면···. 유저가 유저를 죽이는 것도, 충분한 경험치와 포인트를 주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봐도 정운이 길드의 가입을 거절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는 99% 욕망으로 인해서 악마의 게임에 빠져든 자들. 대부분은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 이라고 봐야 했다. “음···, 스테이터스는 대강 알겠고, 여기 인벤토리에는····.” 정운은 스테이터스 창 옆에 있는 인벤토리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살펴봤다. 보통 아무리 초보라고 해도 게임의 시작에는 맨주먹으로 시작하지 않고 지원을 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행이 정운의 예상대로 인벤토리에는 딱 한 개의 물건이 있었다. [랜덤박스] “····말 그대로 운빨이란 말이지.” 정운은 평소 자기 인생을 생각해 보면··. 솔직히 말해서 운 좋다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하긴 이 게임 자체가 운 없는 인간들에게만 배포 되는 게임이라고 했으니 어련할까? 하지만 이번 만큼은···. 제발 이번 한 번 만큼은 행운이 따라주기를 바라면서 정운은 랜덤 박스를 클릭했다. 띠리링!! 게임에서나 날 법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정운의 인벤토리에 몇 가지 아이템이 추가 되었다. 초보자의 검. 초보자의 흉갑. 초보자의 글러브. 초보자의 포션 X 5. 초보자의 지도. “제길···. 전부 초보냐?” 정운은 속으로 탄식했다. 결국 이번에도 자신에게 행운은 따라주지 않았다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금화 2만 골드. 정운은 인벤토리 창에 금화 2만 골드라는 말을 듣고 나서 조금이지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금화 2만 골드? 보통 초보자한테 주어지는 돈은 백단위가 보통 아닌가?’ 정운은 직감적으로 이게 적은 금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예상은 정확했다. 보통 초보 유저가 게임을 시작해서 만 단위의 골드를 만져보기 위해서는 아끼고 아끼며 모아서 운 좋으면 1년에서 3년 정도는 걸리는게 보통이었다. 정운은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었지만···. 시작 금액이 2만 골드라는 것은 이 그라운드 제로의 초보 유저에게 있어서 어마어마한 이득이 것이다. ‘···침착하자··. 아직 이게 대박인지 평박인지도 확인하지 못했어. 우선은··. 이 근처를 돌면서 물가의 시세부터 알아보자.’ 정운은 그렇게 마음 먹고 근처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NPC들에게 탐문을 하면서 이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의 물가를 알아봤다. 다행이도 NPC와 유저를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NPC의 겨우는 모두 이마에 M자 마크가 세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온갖 상점, 백화점, 그리고 여관과 심지어는 부동산까지 들어가서 물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대박이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세계는 리얼 게임이다. 즉, 캐릭터로 활동하는 유저는 먹고 자고 입는 것 까지 모두 게임의 머니로 해결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좀처럼 돈을 모으는 것도 힘들었다. 돈의 구조는 아주 간단하게 삼단계로 먹여져 있었는데···. 1골드 = 10실버 = 100쿠퍼. 라는 구조였다. 보통 식사 한 끼에 5실버 정도 하는 것을 봐서는 1골드의 가치는 한국으로 치면 1만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즉, 2만 골드를 가지고 시작하는 정운의 경우는 일단 시작 금액이 한국으로 치면 총 2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6화 <본격적인 시작> 정운은 몰랐겠지만 보통 이 그라운드 제로의 초보 유저의 시작 금액은 500골드. 즉, 500만원 딸랑 던져 주면서 먹고 사는 것 까지 다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게임의 세계에서 적극적인 클리어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아사하기 딱 좋다는 말이었다. 정운은 우선 어떻게 해야 할지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처음에 길드에 가입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지····.” 아마 정운이 길드에 가입하고 나서 2만 골드를 손에 넣었다면···. 그렇다면 초보자 보호 기간이 풀리는 데로 정운은 길드원들에게 PK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여러 가지고 정운이 그때 선택을 잘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돈을 잘 사용하는 법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가장 중요한 것···. 게임의 클리어를 위한 강력한 무기··.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그건 둘째다.” 정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이었다. 정운이 잠깐 알아본 바로는 유저라는 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한정 되어 있다고 했다. 체크인 중인 여관. 자신의 거주구로 정해진 하우스. 대강 그 안에서의 공간에서는 PK가 불가능 하고 유저에게 해를 입히는 것도 불가능 하다고 했다. “지금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안전한 지역. 그리고 근거지. 그렇다면···.” 정운은 크게 마음먹고 집을 사기로 했다. 여관을 장기간 빌리는 것 보다 집을 사는게 더 싸게 든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너무 비싼 집은 말고 대략 1만 골드 안으로 살 수 있는 저렴한 집을 찾았다. 정운은 부동산에 가서 NPC에게 가서 자택의 구입 여부를 밝혔다. 그러자···. “여기 카탈로그 중에서 필요한 집을 골라 주십시오.” “음···.” 정운은 주어진 카탈로그를 보면서 집을 고르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이 그라운드 제로의 집값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비싼 집들도 보였지만 5,000골드 이하의 가격에 합리적으로 구입 할 수 있는 집들도 상당히 많았다. 정운은 그 중에서 3,500골드의 작은 집을 하나 구입했다. 원룸에 부엌 욕실이 딸린 작은 집이었지만 시작부터 집을 가지고 게임에 임한다는 것은 대단히 유리한 일이었다. 설령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이 집안에 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정운에게 해를 끼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정운이 구입하려고 한 것은 렙업에 빠른 도움이 될 법한 도구들이었다. 먼저 상위급 장비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구입하기 직전에 정운은 망설였다. 사실···. 장비라는 것은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것이었다. 초반에 돈을 써서 구입한 장비라고 해도 나중에 가면 쓸모도 없고 팔아 봤자 똥값이다. 그렇다면···. 어떤게 좋을까? 정운은 초보들의 사냥터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정보길드라는 곳에 갔다. 거기에 가면 게임에 대한 가이드북이 있었다. 가이드북은 층 별로 달랐지만···. 1층부터 10층까지의 정보를 소개한 가이드북은 200골드였다. 단순히 지도만 있는 지도책은 1골드였지만 가이드북은 그것보다 200배나 비쌌던 것이다. 원래 유저들 중에 어지간하면 가이드북을 사는 인간은 없다. 현대로 따지면 200만원이나 하는 책을 사는게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금에 여유가 있는 정운은 과감하게 가이드북을 질렀고···. 그리고 천금과도 같은 정보를 원할 수 있었다. 가이드 북에는 1층부터 10층까지의 탑에서 나타나는 몹들이 모두 적혀져 있었다. 몹의 레벨, 특성, 그리고 출몰 시간대까지 모두 말이다. 정운은 그걸 보면서 차분하게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른 렙업을 위해서는 역시 대량 사냥을 해야 해···. 하지만 그게 될까? 보통 대량 사냥이라는 것은 탱커, 어태커, 힐러가 조를 짜서 힘을 합쳐야 되는 건데···.’ 정운은 지금 길드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정운은 지금 적을 사냥하기 위해서 혼자서 머리를 쥐어 싸매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정운은 우선 몹의 수준을 알기 위해서 가장 쉬운 몹이 출몰한다는 1층의 초원으로 출발해 보기로 햇다. ‘아직은 초보자 보호 기간도 있고···. 다른 유저의 공격은 괜찮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1층의 초원으로 향했다. 사냥터로 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탑은 각 층마다 포탈이 설치되어 있어서 마을에서 그 포탈을 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그 층에서는 100% 걸어 다녀야 했다. 한 층의 넓이가 못해도 제주도만큼은 되었으니 먼 사냥터로 갈 때는 거의 행군 한다고 봐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이동수단이 있었지? 한 번 알아봐야겠다.’ 정운은 역시 그냥 책으로 내용만 보는것 보다는 사냥터에 직접 나와서 부딪혀보니 계획을 좀 더 상세하게 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운이 집에 돌아가서 게임을 더 잘 클리어 할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정운은 일단 가이드북에서 나온 지도를 따라갔다. 목적지는 가이드 북에서 ‘죽기가 살기보다 어려운 곳.’ 이라고 정해진 완전 초보 사냥터. 슬라임이 뛰노는 곳. 이었다. ‘네이밍 센스 하고는·····.’ 어쨌든 정운이 슬라임이 뛰 노는 곳에 가자 몇몇 유저들이 이미 슬라임들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정운을 슬쩍 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려 버리고는 자신들의 일에 집중했다. ‘무뚝뚝하군···. 하긴 게임의 성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가?’ 보통의 온라인 게임의 경우는 초보 유저끼리 살갑게 말도 걸고 함께 사냥도 하면서 친목을 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다르다. 보통의 게임에서 뒤통수 맞았을 때 잃는 것은 경험치와 아이템 정도겠지만···. 이 게임에서 뒤통수를 맞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서로를 향해서 살갑게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서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욕망 때문에 이 세계에 온 것이다. 그런 자를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운은 이내 다른 사람들을 신경 끄고 슬라임을 찾아서 때려보기 시작했다. 푸릉푸릉 거리면서 바닥에서 통통 튀기고 있는 슬라임은 그다지 강력하지는 않았다. 공격이라고 해 봐야 힘껏 날아와서 부딪히는 정도인데···. 축구하다가 공에 맞은 것보다도 안 아팠다. 그야말로 죽기 어려운 장소라고 전해질만 했다. 다만 의외로 죽이기는 어려웠다. 무척 질겨서 검으로 있는 힘껏 내리쳐도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았다. 꼭 두꺼운 타이어를 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서는 거의 20발 정도는 때려야 죽었는데···. 이리저리 통통 튀는 놈들이라서 그렇게 죽이기도 버거웠다. “흐아앗!!!” 퍼엉···. 정운의 마지막 일격에 기어코 슬라임이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후우우···. 힘들다.” 정운은 하루 종일 이리저리 뛰면서 사냥을 거듭했고, 그 결과···. 거의 다섯 시간에 걸쳐서 슬라임 10마리를 잡아냈다. 실로 극악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10마리를 잡는 동안 정운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띠리링~. 이라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아니다 다를까? 정운이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보자 거기에는 레벨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역시 초반은 렙업이 빠르군. 그나저나··. 슬라임 10마리 잡아서 30실버? 돈 벌기 극악한 게임이군.’ 아무리 초보라고 해도 이렇게 돈을 짜게 주는 게임에서 정운이 가지고 있는 2만 골드는 진정 대박이었다. 잘만 활용하면···. 정운에게 있어서 커다란 힘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정운은 여기 말고도 1층의 사냥감들을 대강 둘러봤다. 1층은 주로 동물들이 많았다. 여우, 너구리, 뱀, 오소리, 가장 흉폭한 몹으로는 멧돼지가 있었고··. 그 놈은 레벨이 8이었다. 그리고 보스몹으로는 1층의 보스. 외눈박이 늑대대가 있었다. 이놈은 레벨이 10으로 이 놈을 잡아야 다음 층으로 올라갈 자격이 생겼다. ‘가이드 북에는 대략 레벨 12이상이면 잡을 수 있다고 권장 되어 있었지? 좋아···.’ 정운의 기름 레벨은 아직 3이다. 스테이터스 보너스는 10 포인트였지만 아직은 하나도 찍지 않았다. 어떤 스테이터스가 필요해 지는지는 미리 찍지 말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포인트를 자연스럽게 찍는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운은 그렇게 첫 날의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서 안락하게 샤워를 마치고 미리 사둔 밥을 먹었다. ‘컵라면이 있는게 정말 다행이기는 해···.’ 지친 몸으로 요리한다고 생 지랄을 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잡화점에서 산 노트에 자신의 앞으로의 계획에 필요한 것을 생각했다. ‘일단 탈것, 이동 수단은 거의 필수일거야. 그리고 원거리 무기··. 역시 위험 부담을 줄이려면 원거리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다. 다음날. 정운은 마을의 상점에 가서 가장 먼저 탈것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탈것은 이런저런 종류가 많았다. 가고일이라거나 와이번 같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있었고 그게 아니라도 샤벨 타이거, 블랙 울프 같은 마수들도 있었다. “저기··. 여기 있는 블랙 울프라는 것 구입 가능한가요?” 정운이 NPC에게 질문을 하자 NPC점원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구입은 가능하지만···, 마수는 주인이 자기보다 약하면 주인을 공격합니다. 참고로 블랙 울프의 레벨은 35인데? 괜찮으신가요?” “··········.” 괜찮을 리가 없었다. 달리는 마수 중에서 가장 싼 것이 이 블랙 울프라는 놈으로 보였는데 이렇게 흉폭 했을 줄이야···. “저기, 초보가 쓸 만한 이동편은 없을까요?” “초보 분들은 보통 걸어 다닙니다. 탈것이 모두 비싼 것들 뿐이라서요····.” “제 경우에는 돈은 여유가 좀 있습니다. 그러니 순수하게 제가 탈 수 있는 것을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NPC점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를 살펴보시겠습니까?” 점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카탈로그에서 보여줬다. 거기에는 각종 말들과 노새, 당나귀 들이 있었다. ‘역시 이런 건가···.’ 마수들처럼 공격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자신이 살 수 있었고 또 타고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1등급 말과 2등급 말은 차이가 큰가요?” “예. 카탈로그의 세부 정보를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1등급 전마] 하루에 300km를 이동한다. 질주시 최고 속도 시속 70km 평균속도 시속 40km [2등급 전마] 하루에 150km를 이동한다. 질주시 최고 속도는 시속 50km 평균속도 시속 30km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7화 ‘다른건 몰라도 최고 속도와 하루 이동거리에서 차이가 너무 나는걸?’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1등급 전마에 눈이 좀 더 갔다. 자신의 발이 되어주고 함께 파트너가 되어줄 동료가 찌질해서는 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의 차이가 크기는 컸다. 2등급 전마 500골드. 1등급 전마 1500골드. 이정도의 차이면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정운은 1등급 전마를 사기로 했다. “1등급으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정운이 그렇게 말한 순간 인벤토리에서는 피같은 골드가 1500이나 나갔다. 정운으로서도 큰 손실이었다. ‘이제 다른 것은 좀 아껴서···.’ “아! 그런데 손님. 승마술은 할 줄 아시나요?” “·····예?” “승마술을 할 줄 모르신다면 승마 스킬북이 있습니다. 승마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분들도 이 스킬북을 숙지하면 기초 승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죠?” “승마술. 스킬북. 500골드입니다.” “······제길.” 순간 당했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정운이었다. 결국 정운은 말 하나에 2,200골드라는 거금을 쓰게 되었다. 승마술 스킬북이 500골드. 그리고 각종 말에 쓰는 안장, 고삐, 등자, 그리고 말의 먹이용으로 쓸 당근들과 물통. 그런 장비들을 다 맞추고 나니 그 정도의 돈이 들었던 것이다. ‘하아···. NPC라고 방심했어.’ 마치 용산에서 조립식 PC를 다 맞추고 나니 가격이 300만원은 훌쩍 넘더라. 라는 사기당한 자의 리뷰를 직접 겪은 느낌이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장사꾼을 상대 할 때는 정신 줄 놓으면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다시 겪은 정운이었다. 어쨌든 승마술 스킬북의 존재는 살짝 고마웠다. 아직 이 그라운드 제로에 관해서 적응하지 않은 정운이었기에 범한 실수였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냥 말을 타자. 라고 해도 쉽게 말을 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승마술을 모르고 말을 다루는 법을 모르면 못 탄다. 초짜가 말 위에서 굴러 떨어져서 죽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승마 스킬북을 사용하니 정운의 머릿속에 승마에 관한 기본 지식이 확실하게 들어왔고, 어느정도 승마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 정운의 스테이터스에는····. [승마술 LV.1] 이라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혹시···. 이런 스킬북들이 많이 있지 않을까? 검술이라거나····.’ 정운은 어제 생각해 보니 그저 막대기 휘두르던 초보자용 검을 휘두른 자신이 무모해 보였다. 상대가 만만한 슬라임이었기에 다행이었지···. 자칫 상위 몹을 상대로 검술 하나 모르고 무작정 휘두르기만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정운은 혹시나 싶어서 다른 상점들에도 가서 스킬북의 존재를 확인해 봤다. 확실히 스킬북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개중에는 가격이 몇 억 골드나 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물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이 손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주 무기를 정해야 겠어.’ 정운은 이제 사냥을 위해서 무기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보자의 검을 휘두르기는 하지만 검은 의외로 다루기가 어려운 무기다. 창보다 거리도 짧고 도끼보다 파워도 떨어진다. 정운은 무기 상점의 카탈로그를 쭉 살펴 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무기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정운의 눈길을 잡아 끄는 아이템이 있었다. 개마무사 철로 온몸을 감싸고 싸우는 기마병과. 가우리, 가야 등. 한반도 국가에 존재했던 중장기병. 무장 : 기수용 갑옷, 마갑, 삭, 환두태도, 각궁. 정운은 그것을 보는 순간 한순간에 홀딱 반해 버리고 말았다. 마침 말을 먼저 사버린 자신에게 딱 맞는 무기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내가 왜 말을 이동 수단으로만 쓰려고 했지?’ 말은 강력한 전투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을 깜빡하고 말을 이동수단으로만 써 먹으려고 한 것은 큰 실수였다. 정운은 NPC에게 말했다. “여기··. 이 장비를 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예. 개마무사 말씀이시군요. 이것은 세트 아이템이라서 가격이 좀 나갑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얼마죠?” “5,000골드입니다.” “···········.” 생글생글 웃으면서 5,000골드라는 가격을 말하는 여성 NPC를 보고 정운은 순간 한 대 쳐 버리고 싶은 구타 욕구를 느꼈다. “으음···. 그거 스킬북도 포함인가요?” “스킬북 포함 가격은 2,000골드가 추가 되어서 7,000골드입니다.” 쿵!! 머리 위에서 7,000골드라는 숫자가 바위가 되어서 내려치는 것 같았다. 살 수는 있다. 살수는 있지만···. 무슨 장비 아이템이 집 하나보다 더 비싸단 말인가? 하지만···. ‘스킬북 없이는 절대로 개마무사의 장비를 못 쓰겠지?’ 개마무사는 삭이라고 하는 거대한 창부터 환두태도에 각궁까지 사용하는 전천후 만능 병력이었다. 과거 가우리가 만주벌판의 패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그 근원에 있는 병력이기도 했다. “후우우···. 투자다.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야.” 정운은 자기 자신을 다독이면서 NPC에게 말했다. “···주세요.” “예. 고객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운은 개마무사로서의 장비를 다 갖췄다. 장비를 다 갖춘 정운의 스테이터스는····. [견습 개마무사] 레벨 : 3 나이 : 19 체력 : 15 힘 : 12 민첩 : 13 지능 : 45 매력 : 80 무력 : 10 운 : -99 스킬 기마술 : LV.1 창술 : LV.1 도술 : LV.1 궁술 : LV.1 이렇게 변해 버렸다. 원래 있던 승마술이라는 스킬은 개마무사로 변하고 나서는 사라져 버리고 대신 기마술이 되었다. 승마와 기마의 차이. 즉 이제 정운은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을 넘어서 말을 타고 싸우는 것이 가능해져 버렸다. 보통의 게임 같으면 이제 정운은 신이 나서 사냥을 하러 가야겠지만····. “하아···. 피곤하다. 집에 가자.” 오늘은 너무나 많은 골드의 출혈 때문에 그저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초보 주제에 이렇게 시작 장비가 빵빵한 인간은 정운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정운의 레벨은 3이다. 하지만 실제 아이템 빨로 전투력은 15~17정도하고 비등한 정도일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자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다음날. 이제 정운은 비장하게 사냥터로 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자신이 어제 구입한 모든 장비를 클릭하고 말했다. “장비 1번 셋업.” 그러자 정운의 몸이 환하게 빛이 나면서 정운의 몸에 갑옷이 걸쳐졌고, 정운이 어제 산 말에도 마갑과 개마무사의 장비가 달려졌다. “으읏····. 무거워···.” 장비를 걸치자마자 정운은 자신이 걸친 갑옷의 무게에 짓눌려 버리는 것 같았다. 정운의 눈앞에는 경고창이 떠서 깜빡 거렸다. [중량과다.] “큭···. 중량 과다라니···.” 정운은 급하게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전부 힘에 찍었다. 그러자 정운은 자신의 근육이 좀 더 단단해 지고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중량 과다의 경고창이 사라졌다. “휴우··. 다행이다. 이거 다 찍어도 안 사라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말에 올라탔다. “히이잉···.” 말은 정운이 올라타자 살짝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진정했다. 과연 1급 전마. 명마의 반열 까지는 아니라도 우수한 말이었다. “워워···. 진정해 진정···. 그러고 보니 이 말 이름이 없네····. 이름이 있어야 할 텐데.” 정운은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줄 이 말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넌 검은 털을 가지고 있으니, 흑토라고 하자. 적토마와 비슷하게 말이야.” 띠리링!! 순간 정운의 머릿속에 게임의 효과음과 함께 한가지 창이 떴다. [1급 전마 흑토가 귀속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흑토가 정운에게 귀속 되었다. “··이름을 지어야 귀속 되는 거였어?” 정운은 몰랐겠지만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는 그 동물의 소유권을 새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흑토. [1급 전마] 레벨 : 21 체력 : 120 힘 : 80 민첩 : 140 지능 : 10 [일급 전마로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적에게 용맹하게 돌진한다. 레벨이 오르는 것에 따라서 클래스는 변한다.] 정운은 순간 머릿속에서 대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름 안 짓고 막 대했으면 두고두고 후회 할 뻔 했네.” 다른 것 다 집어 치우고···. 레벨이 오르는 것에 따라서 클래스가 변한다. 라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정운이었다. 말위에 올라타서 정운은 이제 사냥을 위해서 삭을 들었다. 그리고····. [중량과다] “이 썅!!!” 삭은 무거웠다. 결국 정운은 삭도 환두태도도 들지 못했다. 이 무기를 쓰려면 좀 더 힘을 올려야 했다. 그 대신에 활을 쓸 수 있었다. 활은 가벼웠기에 가까스로 중량과다가 아니었다. 정운은 일단 활로 사냥을 하기로 했다. 1층의 몹들은 대부분 동물 몹들이었다. 정운은 그 중에서도 어제의 슬라임이 아니라 좀 멀리 떨어진 여우들을 잡으러 갔다. ‘흠····. 명색이 기마무사인데 여우사냥이라····. 무슨 중세 유럽의 귀족도 아니고.’ 정운은 피식 웃어 버렸다. 어쨌든 정운이 사냥터를 여우의 들판으로 정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가이드 북에 의하면 거기가 넓은 초원지대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포탈에서 여우의 들판은 굉장히 멀다는 것이다. 말을 타고도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인데 초보 유저 사냥터에 탈것을 안 가지고 거기까지 가는 유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즉, 다른 유저들과 충돌 없이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8화 “저기 저 사람 뭐지?” “기마? 철갑병?” 말을 타고 달리는 정운을 보고 주변에서 슬라임을 잡던 유저들이 의아해 했다. 사실 초보 유저중에 정운처럼 장비가 빵빵한 인간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정운이 갖추고 있는 장비의 수준은 적어도 5층에는 가야 볼 수 있는 장비들이었다. 아직 숙련도는 낮았지만 말이다. “이럇!!” 정운은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면서 기분 좋게 초원을 질주했다. 바이크나 차는 타 봤지만 말은 그것들 하고는 또 감각이 달랐다. 살아있는 물체를 탄다는 감각이 색달랐던 것이다. 정운이 30분 정도 걸쳐서 말을 타고 달려서 여우의 들판에 도착하자··. 띠리링. 정운의 앞에 레벨업 소리가 났다. [기마술이 LV.2가 되었습니다.] “흐음···. 초반이라서 빨리 오르네.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정운은 주변에는 여우가 수십 마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운은 일단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무기인 활을 들었다. 그리고 신중하게 활을 들어서 겨냥했다. “끄으응···. 이거 생각보다···.” 정운은 일단 궁술의 스킬북을 사서 LV.1의 궁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운이 가지고 있는 각궁은 탄력이 굉장히 강한 활이다. 정운은 간신히 활을 당겼지만 조준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으으읏····. 읍!!!” 정운이 활을 쏘고 나자 그대로 화살이 날아갔다. 하지만 조준한 여우에게서 1미터는 벗어나 버렸다. 30미터 정도 떨어진 여우를 조준했는데 맞지 않은 것이다. 거기다가 여우는 활에 깜짝 놀라서 도망가 버렸다. 다른 여우들도 연쇄적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무래도 가이드북에 적혀있던 도피 특성이 발동한 모양이다. “끄응···. 레벨7이지만 전투력이 강해서라기 보다는 잡기가 어려워서라고 하더니···.” 정운의 사방 100미터 안에 여우가 싹 사라져 버렸다. 정운은 일단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준비해온 다른 아이템들이 있었다. “초반 광렙을 위해서 혹시나 싶어서 준비해온 거지···.” 정운은 품속에서 투척용 단검을 꺼냈다. NPC상인이 개마무사의 보조 무장중에 하나로 쓸만한 것을 추천한 것이 이것이었다. 서비스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독을 발라서 쓰면 효과가 더 좋다는 식으로 끼워 팔기를 지목하고 있었다. 정운은 단검만 받고 독은 사지 않았다. “다섯 자루라··. 이거면 그럭저럭 쓸 만하지 않을까?”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사냥 방식을 바꿨다. 이곳의 여우는 민첩하고 재빨리 내빼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곳은 들판. 숲속처럼 숨을 수 있는 장소가 많은 그런 장소는 아니다. 여우를 쫓아갈 기동력만 있다면 사냥은 지극히 용이한 것이다. “흑토야. 네가 수고 좀 해야 겠다.” “히이잉!!” 흑토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정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녀석이야···.’ 정운은 말 위에서 여우 한 마리를 찍었다. 그리고 흑토의 배를 차서 그 여우에게 달렸다. “이럇!!” “히히이잉!!” 흑토는 대지를 박차면서 여우에게로 달렸다. 여우는 말이 달려오자 깜짝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여우 보다는 1급 전마인 흑토가 훨씬 더 빨랐다. 정운은 한 손으로 흑토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단검을 쥐었다. 그리고 여우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얏!!!” 캐애앵!!! 여우는 그대로 단검이 깊숙하게 박혀서 한 방에 절명해 버리고 말았다. 멧집은 어이없을 정도로 약한 여우였던 것이다. “좋았어···. 이렇게 계속 가자.” 정운은 이제야 자신의 사냥을 본격적으로 시작 할 수 있었다. 사흘 후. “이럇!!” “히히히힝!!” 정운이 흑토의 위에서 내달렸다. “꾸웨엑!!” 상대는 이미 등에 화살이 몇 대나 꽃힌 멧돼지였다. 정운은 멧돼지에 가까워지자 한 손에는 삭을 들고 그대로 멧돼지의 등판에 찍어 버렸다. “쿠웨에엑!!” 멧돼지는 그대로 한 방에 절명해 버렸다. “워워···.” 정운은 흑토를 진정 시키고는 멧돼지의 아이템을 수거했다. “어금니하고 가죽하고··. 고기도 남겼네.” 다행이 이 그라운드 제로도 게임은 게임이라서··. 잡은 멧돼지를 해체하면서 땀을 뻘뻘 흘릴 필요는 없었다. 아이템은 알아서 드롭하니까 말이다. 현재 정운의 레벨은 15. 사흘만에 오른 것 치고는 진정 광렙이었다. 그 덕분에 스테이터스도 많은 것이 변했다. 지금 정운의 스테이터스는···. 종족 인간 [초보 개마무사] 레벨 : 15 나이 : 19 체력 : 20 힘 : 45 민첩 : 20 지능 : 45 매력 : 80 무력 : 35 스킬 기마술 : LV.7 창술 : LV.5 도술 : LV.5 궁술 : LV.7 이렇게 올랐다. 이전에 비하면 많은 발전을 거둬서 이제는 1층에서 보스몹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하다는 멧돼지들도 손 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이미 장비가 1층에 있을 장비가 아니었다. 그러니 장비의 숙련도를 맞출 정도로만 스킬이 오르면 그 다음 부터는 광렙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 이제 오늘은 잡으러가 보실까?” 정운은 오늘 1층의 보스몹. 외눈박이 늑대를 잡으려고 한다. 원래 보스몹이라는 것은 여럿이서 힘을 합쳐서 사냥 하는게 필수다. 하지만 워낙 초반이고 또 지금의 정운은 레벨도 장비도 무척 충실했다. 특히 장비가 말이다. 그래서 일층의 외눈박이 늑대 정도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늑대 따위는 5층만 가면 그냥 일반 몹으로 나오는 놈이다. 그걸 못 잡아서 쩔쩔매면 얘기가 되지를 않았다. 정운은 1층의 보스몹인 외눈박이 늑대가 있는 황무지에 갔다. 그리고 20골드를 주고 산 고성능 망원경으로 늑대의 모습을 봤다. “저건···. 늑대가 아니라 거의 송아지 만하잖아?” 아무래도 나름 보스몹이라고 티를 낸 것 같았다. “뭐··. 나름 준비도 했고. 어쨌든 해 볼까?”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외눈박이 늑대를 겨냥하고 활을 당겼다. 꾸우우욱···. 이전과는 달리 부드럽게 활을 당기는 정운의 모습은 익숙한 궁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핑!! 이윽고 정운이 화살을 놓자 편전히 그대로 날아가서 외눈박이 늑대의 몸에 밖혔다. “카앙!!” “먹혔나?” “크르르···.” 먹히긴 먹혔다. 외눈박이 늑대는 척 봐도 나 지금 화났음이라는 얼굴을 하고 정운을 노려 봤으니 말이다. “어쭈? 네가 화 내면 어쩔 거야?” 정운은 그대로 다시 한 번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다시 편전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하지만 외눈박이 늑대는 두 번이나 넋놓고 맞아줄 생각은 없다는 듯이 화살을 피하고는 정운 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자. 흑토!!” “히이잉!!” 흑토는 습관처럼 앞 발을 들었다가 힘차게 달렸다. 마주 달려오는 외눈박이 늑대와 흑토가 서로를 향해서 최고 속력으로 질주했다. 정운은 가는 길에 다시 한 번 화살을 쐈다. “커허엉!!” 외눈박이 늑대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몇 발인가 맞았지만 굴하지 않고 달려 들었다. “그래··. 그 정도는 해야지.” 정운은 이제 거리가 가까워지자 활을 넣고 능숙하게 삭을 들었다. 한손에 삭을 꼭 쥐었다. 삭의 경우 차이는 있지만 지금 정운이 들고 있는 삭은 길이 4.5미터에 무게는 9kg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한손으로 들면 자꾸 창의 날이 나려갔지만 힘을 45까지찍은 보람이 있어서 이제는 너끈히 들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의 정운이 먹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다. 기마의 돌진력을 살려서 한 방을 묵직하게 박아 넣으면 멧돼지들도 한 방에 절명해 버렸다. 이윽고 외눈박이 늑대가 가까워지자 정운은 힘차게 삭을 뻗었다. “하앗!!!” “크아앙!!!” 늑대는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흑토의 목을 물어 뜯으려고 했지만 정운의 삭의 창날은 그 아가리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커허엉!!” 그대로 목구멍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늑대를 보면서 정운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띠리링. [그라운드 제로 1층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2층으로 올라갈 자격이 생겼습니다.] [클리어 보상을 받으십시오.] “클리어 보상?” 정운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라고 반색했다. [50골드가 지급 되었습니다.] [스킬창을 생성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템의 능력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다워 지는군···.” 스킬과 아이템의 성능. 두 가지 모두 온라인 게임에서는 빠지지 않는 옵션들이었다. 정운은 마침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의 성능을 살펴봤다. 기수용 갑옷. 방어력 : 45 무게 : 20 내구력 : 30 삭 공격력 : 70 무게 : 15 내구력 : 30 환두태도 공격력 : 50 무게 : 10 내구력 : 30 각궁 공격력 : 15 무게 : 5 내구력 : 30 ‘호오··. 이런 식인가?’ 보통 온라인 게임의 무기라면 옵션이 달릴 가능성도 있었는데 아직 초보 아이템이라서 거기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아! 마갑도 있었지?” 정운은 흑토가 걸치고 있는 마갑도 확인해 봤다. 마갑 방어력 : 40 무게 : 50 내구력 : 28 “내구력 28이라···. 이거 멧돼지한테 몇 번 부딪힌적 있다고 이런건가?” 아무래도 대장간에 가서 수리 한 번 맡겨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이제 1층을 정복했으니 내일부터는 2층으로 갈 생각인 정운이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쉴까?’ 이 게임에 입문하고 가장 어려운 시기가 바로 초보 시기다. 호구로 만들려는 길드의 유저들···. 그리고 아무 정보 없이 만만하게 갔다가 실수하는 유저들···. 광렙의 유혹 속에서 무모한 짓을 하다가 죽는 유저들···. 정운은 몰랐겠지만 그는 이 그라온드 게임의 설립 이후로 다섯 번째로 빨리 일층을 돌파한 유저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게임 소설의 특성중에 빼 놓을 수 없는게 초반 광업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9화 1층을 돌파한 이후 정운은 거칠게 없었다. 불과 1주일 만에 정운은 5층에 돌파했다. 애당초 정운이 1층에서 너무 신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정운의 발걸음이 최초로 멈추기 시작한 것은 5층의 보스몹을 멀리서 정찰했을 때였다. “1층은 늑대, 2층은 곰, 3층은 오크 대장, 4층은 샤벨 타이거, 그리고 5층에는 저거란 말이지?” 정운의 눈에는 트윈헤드 라이거 라는 놈이 보였다. 머리 하나는 사자, 또 하나는 호랑이인 맹수였는데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트윈헤드 라이거의 레벨은 30이라고 했다. 같은 레벨이라도 보스 몹이 되면 한층 더 강해진다. 그것은 3층의 오크 대장을 잡을 때 느꼈다. 3층의 오크 부족 중에 그냥 일반 오크부족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대장도 있었다. 하지만 보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격이 달라진다. 자칫 방심하다가 큰 코 다칠 뻔 했던 정운이었다. “일단 저건 레벨을 좀 올리고 싸우는 편이 좋겠군. 지금 이층의 몹 들부터 좀 살펴보자.” 정운은 가이드 북을 펴고 사냥감들을 살펴봤다. 5층의 몹의 종류는 대강 다음과 같았다. 스켈레톤 전사. 스켈레톤 나이트. 부패한 좀비. 독을 품은 좀비. 블루 고블린. 레드 고블린. 블랙 고블린. 거대 거미. 거대 사마귀. 거대 개미. “흠···. 언데드 지역과 숲 지역으로 나뉘는군. 숲에서는 적토가 움직이기 힘든데···.” 정운은 아무래도 숲에서 고블린이나 곤충 몹들하고 싸우는 것 보다는 언데드를 잡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사냥하기 전에 아이템부터 좀 맞추고 시작하자.” 정운은 그렇게 마음먹고 상점으로 향했다. 사실 정운은 이제까지 아이템 업그레이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템 자체가 초보유저 치고는 좋은 것이었고··. 무엇보다 아이템 교체를 자주하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템은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맞춰서 레벨이 올라가면 결국에는 다른 아이템으로 변하는 법이다. 즉, 너무 자주 바꿔봤자 소모성 재료 아이템과 골드의 낭비만 심할 뿐이다. 정운의 지금 레벨은 15. 이제 처음으로 아이템을 바꾸려는 것이다. 장비 상점에 가자 NPC점원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정운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상위 장비들을 보고 싶은데요?” “예. 알겠습니다. 장비는 구입입니까? 제작입니까?” “제작으로 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의 무구의 방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NPC상인은 정운을 데리고 어떤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자 그 방의 벽면에서 수천가지의 무구의 아이템들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정운의 앞에는 제단 같은 물건이 떠올랐다. “이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조건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가지고 계신 무기 하나를 앞에 보이는 제단에 올려 보시죠?” 정운은 가장 자주 쓰는 아이템인 각궁을 올려놨다. 그러자···. 띠리링!!! 수백 가지의 상위버전 각궁들이 올라왔다. “호오··. 이 중에서 고르면 되는 건가?” “예. 그 안에서 따로 결과 내 검색을 하셔도 됩니다. 파괴력, 연사력 등등···. 여러 가지의 검색 결과가 있으니 살펴 보십시오.” “예, 그렇다면····, 착용 가능한 아이템 재검색.”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수 백 개의 아이템이 여덟 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이전처럼 또 스테이터스가 받쳐주지도 않는데 아이템을 막 지를 생각은 없었다. 실수를 통해서 학습을 한 정운이었던 것이다. “그럼···, 어디 볼까?” 정운은 꼼꼼하게 무기들을 살폈다. 정운에게 이 그라운드 제로는 그냥 게임이 아니다. 살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아이템 하나도 허투루 지르듯이 구할 수는 없었다. 정운은 신중하게 무기를 고르다가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각궁을 발견했다. 살라만더의 각궁. 공격력 : 30 무게 : 5 내구력 : 40 [화염 속성을 지닌 각궁으로 폭발의 위력을 가지고 있으며 언데드 계열에 특히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제까지 정운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과 달리 처음으로 마법 같은 부가 속성이 있는 무기였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에게 특히 강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한동안 언데드들 잡으면서 광업 하려고 했는데···. 이게 좋을 지도.’ 정운은 아이템 창에 적혀있는 구입과 제작 중에 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제작에 필요한 아이템 중 다음이 없습니다. -불도마뱀의 심장. -오우거의 힘줄. -정령수의 나뭇가지. -다음의 아이템을 구입해서 제작하시겠습니까? 수락 하실 경우 제작비를 포함해서 총 3,000골드가 소모 됩니다. “비싸!!!!” 정운의 입에서 비명인지 항의인지 모를 정도로 큰 소프라노가 터졌다. “이런이런····. 상위급 장비로 가면 10억이 넘는 것도 허다합니다. 이 정도에 비싸다고 하시면 곤란한데요?” “그래도 비싸!! 뭐야? 이 가격은?” 이때까지 하던 존댓말을 집어 치우고 반말로 따지는 정운에게는 진상의 오로라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실 순수 제작비로는 500골드 정도 밖에는 안 듭니다. 하지만 제작에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해서 결제하시면···. 뭐, 그렇게 되는 거죠.” “큭···. 과연···. 그런 시스템이란 말이지?” 정운은 대강 알았다. 이 게임에는 아이템에 레벨 제한 따위는 없다. 숙련도와 스테이터스의 파라미터만 받쳐준다면 초보도 고급 아이템을 걸칠 수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스테이터스를 올리기 위해서는 레벨이 올라야 하니까 아지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템의 착용에 대한 제약이 느슨한 것은 사실이다. 대신에··. 착용이 느슨한 대신에 아이템의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즉, 돈의 소모성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일단 이건 보류.”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돈으로는 너무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정운의 캐릭터 특성상 활 하나에만 돈을 따 쏟아 부을 수는 없었다. 삭도 사야 했고, 환두태도도 사야 했다. 정운은 좀 더 무기를 둘러 봤다. 무기들 중에 마음에 드는 무기들은 좀 있었다. 예를 들어서 삭의 경우는····. 바람의 기마창. 공격력 : 100 무게 : 5 내구력 : 10 [기마창 중에서 무척 가벼운 종류. 공격 속도가 빠르며 가벼우나 파괴력이 있다. 숙련되면 투척하는 것도 가능하다.] 창으로는 이게 마음에 들었다. 지금 쓰고 있는 무기보다 더 강력하면서도 가벼워서 공격 속도도 빨라진다고 한다. 거기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 무기가 투척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록 거리야 멀지 않겠지만 공격 팬턴이 하나 늘어나는 것만 해도 큰 메리트였다. 그리고 검 중에서는···. 뇌광도. 공격력 : 200 무게 : 40 내구력 : 30 [뇌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태도, 묵직한 일격의 위력이 강렬하다. 한 방의 위력을 중요시한 무기.] 이제까지 정운이 가지고 있는 무기중에 한발의 위력이 가장 강한 무기는 삭이었다. 하지만 이 뇌광도라는 무기는 창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검인 것이다. 공격력이 무려 200이다. 마상에서 흑토의 돌진력까지 살려서 공격하면 어느 정도 위력이 나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한방의 파괴력을 생각하면 꼭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막대한 골드였다. 아직 정운에게는 충분한 양의 골드가 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 하면 할수록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정운이 가지고 있는 골드는 이리저리 쓰고 남은 1만 1514골드 8실버였다. 대략 1,1500골드 정도는 있었지만 이 장비를 다 맞추고 나면 50골드가 딸랑 남는다. 절대로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하나만 고르자 하나만···. 나머지는 경우에 따라서 보충 할 수 있을 거야.’ 정운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면서 살라만더의 각궁을 구입했다. 원래는 갑옷까지 포함해서 모든 장비를 싹 바꾸려고 했지만···. 이 이상은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사실 이 살라만더의 강국 하나만으로도 3,000골드였다. “좋아···. 이제 부터는 절약이다.” 정운은 결심했다. 돈을 벌기 전에 지금 있는 돈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그만두겠다고 말이다. 그나마 지금 이렇게 살라만더의 각궁이라도 구입하는 것은 이게 지금부터 사냥할 언데드 지역에 매우 적합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고 지출을 마친 정운은 그대로 사냥터인 언데드의 묘지로 향했다. “목적은 두 가지야. 하나는 레벨을 올리는 것. 또 하나는 돈을 버는 것.” 이제까지 해본 결과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돈의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보통의 게임과 달리 이 그라운드 제로는 캐릭터가 아니라 플레이어 본인이 직접 뛰고 달리는 게임이다. 즉, 아이템뿐만이 아니라 의식주까지 모두 플레이어가 골드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초반에 집을 사둔 것부터가 정운에게는 정말 잘한 일이었다. 사냥터에 도착한 정운은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묘지에 살짝 몸을 떨었다. “여기가 언데드들의 출몰 지역이란 말이지···.” 뭔가 거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숫자의 좀비들이나 스켈레톤들이 나온다고 적혀 있었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정운은 발을 질질 끌면서 돌아다니는 좀비를 볼 수 있었다. “찾았다.” 정운은 새로운 아이템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살라만더의 각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좀비의 머리를 겨냥하고는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파앙!!! “쿠어엉!!” 좀비는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털썩 쓰러져 버리는 좀비를 보고 정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한방에···. 이거 좋은걸?” 살라만더의 각궁의 공격력은 30이었다. 사실 평범한 30의 데미지로는 좀비를 한방에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살라만더의 각궁에 붙어 있는 화염 속성의 위력은 육체를 지니고 있는 언데드들에게 치명적이었다. 거기다 급소인 머리를 맞추자 한 방에 적을 죽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좋아···. 하하하. 달려라 흑토야.” “히히힝···.”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0화 신이 난 정운은 흑토의 말 위에서 마치 슈팅게임을 하는 것처럼 화살을 쏘고 또 쐈다. 머리를 맞추면 한 방. 가슴이나 몸통에 맞춰도 두 발이나 세 방이면 죽일 수 있었다. 정운은 인벤토리에 3,000발의 화살을 준비해 갔는데··. 그 화살이 다 떨어지도록 활을 쏘고 또 쐈다. “후우우······. 몸 한번 잘 풀었다.” 사냥이 끝나고 정운은 자신의 레벨을 살펴 봤다. 레벨이 1 올라서 16으로 변해 있었다. ‘하루만에 이 정도라···. 여기서 20···. 아니 25까지는 찍을 수 있겠어.’ 정운은 한동안 여기서 사냥을 계속하고 레벨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기···. 실례합니다.‘ 누군가가 정운에게 말을 걸었다. “··········예···.” 정운은 어색하게 말을 받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한 기분이었다. ‘아! NPC들하고는 말 했구나.’ 유저로서는 지금 정운에게 말을 거는 상대가 처음이었다. 상대는 고대 로마풍의 글라디우스와 방패로 무장을 하고 있는 갑옷차림의 여검사였다. 투구를 슬쩍 벗고 모습을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저기···. 부탁이 있는데 제 사냥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사례는 꼭 할게요.” “예? 사냥요?” “예. 아까부터 보니까 말 위에서 굉장히 손 쉽게 좀비들을 잡는 것 같았는데···. 좀 도와 주시면 안 될까요?” “··········상관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례는 꼭 할게요. 저기····. 시간당 1회면 될까요?” “예? 예···. 뭐···.” 이때 정운은 상대가 말한 시간당 1회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일단 초보로 보이기 싫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파티창 보낼게요.” 띠리링. [문시영님으로부터 파티 승낙창이 왔습니다.] 정운은 눈앞에 보이는 창의 Yes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띠리링. [파티가 허가 되었습니다.] [파티원 끼리는 공격 할 수 없습니다.] [경험치와 골드는 공헌도에 따라서 자율 분배됩니다.] [아이템의 소유권은 파티 해산시 파티원들의 의견에 따라서 조율 할 수 있습니다.] [파티원들 끼리 상호간의 레벨과 능력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추가 승낙, 혈맹 허락을 하셔야 합니다.] ‘무슨 파티에 조건이 이렇게 많아?’ 정운은 살짝 황당해 했지만 그래도 크게 이상한 조건은 없었다. 서로 레벨이나 능력치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좀 그랬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자신이 상대를 볼 수 없는 만큼 상대도 자신을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저기··. 일단 사냥 방식을 정하죠. 정운님이 활로 대미지를 깎으면 제가 가서 칼로 처리할게요.” “알겠습니다. 여자분이 위험한 역할을 하기는 좀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상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전 근접전이 특기인 검사 캐릭터고 정운님은 궁기병 같은데···.” “아. 그거야 뭐···.” 정운의 클래스는 궁기병이 아니라 개마무사였다. 궁기병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창, 검, 단도 등을 골고루 썼다. 그리고 심지어는 마상에서 내려서도 어느정도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런 진실을 상대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상대는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 즉 욕망에 지고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이 게임이 빠져든 인간이라는 말이다.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사정이 아닌 이상은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간들은 이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어쨌든 파티 플레이도 경험해 봐야 하는 거니까····.” 정운은 상대와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보통 파티를 이뤄서 사냥 할 때는 두 가지 형태를 이룬다. 혼자서는 못 잡는 강한 몹을 잡던가? 아니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몹을 잡던가···. 정운과 문시영이라는 여자의 경우는 후자였다. 정운이 먼저 화살을 쏴서 좀비와 스켈레톤의 어그로를 끈다. 여기서 정운은 이제까지 하던 것 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조준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마구 쑤는 것이다. 펑펑펑펑펑!!! 여기저기서 좀비들이 화염의 화살이 맞아서 살점이 퍽퍽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까지처럼 조준하고 쏘는 것이 아니라 말 위에서 전력으로 또 쏘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운은 대량의 좀비 떼를 이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다 끌고 왔어요.” “예. 이제 저한테 맡기세요.” 그렇게 해서 정운이 도착한 곳은 사람 한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다. 거기에 정운이 들어가고 그 앞에 문시영이 진을 쳤다. 그녀는 둥근 라운드 방패를 앞에 세우고 글라디우스를 날카롭게 새웠다. 그리고는···. “스킬 철벽 사용.” 우우웅. 그녀의 방패에 녹색의 기운이 서리고는 그대로 굳건하게 버티기 시작했다. ‘호오····. 저게 스킬이란 말이지.’ 정운은 아직 패시브 스킬은 있지만 액티브 스킬은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액티브 스킬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꾸준한 반복에 반복을 해야 생기는 스킬이었다. 정운의 경우는 광업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액티브 스킬이 생기지는 않았다. 이제 막 생길까 말까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워어어어!!!” “쿠우우워어어!!!!” 좀비들은 문시영을 넘어서 정운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좁은 골목 때문에 한 번에 덤빌 수 있는 좀비의 숫자는 많아야 둘 정도였다. 문시영은 철벽 스킬을 사용해서 능숙하게 좀비들을 막아냈다. 좀비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그들의 느려터진 공격으로는 문시영의 철벽 스킬을 뚫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틈을 타서 정운의 화살이 무차별 적으로 날아갔다. 퍼퍼퍼퍼퍼퍼퍼펑!!! ‘조준 안하고 막 쏘니까 편하군.’ 점점더 빠르게 쏘는 것에도 익숙해지니까 정운은 마치 슈팅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띠리링. [액티브 스킬. 속사가 생성되었습니다.] [속사 LV.1 화살의 발사 속도를 100% 올린다.] “호오···. 스킬 사용. 속사.” 정운이 생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 속사를 외쳤다. 그러자 정운의 팔이 두배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화살의 발사 속도가 두배로 늘어났다. 퍼퍼퍼퍼퍼퍼퍼·····. 단순히 두배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용은 대단했다. 이제까지 화살을 쏘던 정운이 두 명으로 늘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퍼펑!! 결국 거의 100마리 가까이 끌어왔던 좀비떼 들이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전멸해 버렸다. 어그로 끌어서 몹을 모은 시간까지 합하면 20분 만에 좀비 100마리를 잡은 것이다. “이거 괜찮네요. 몇 타임 더 돌죠.” “예. 그럼 준비하고 있을게요.” “알겠습니다.” 그날 정운은 문시영과 함께 파티 플레이로 세 시간 가까이 사냥을 했다. “후우···. 이제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저 이제 스킬을 사용할 정신력이 남아있지를 않아요.” “알겠습니다.” 문시영이 더 이상 철벽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둘의 사냥도 거기까지였다. 정운의 속사와는 달리 문시영의 철벽은 둘의 파티 플레이에 꼭 빼 놓을 수 없는 스킬이었다. “그럼 아이템 분배하죠. 경험치와 골드는 자동 분배고···. 잡템들을 분배해야 겠네요.” 좀비와 스켈레톤이 흘리는 잡템은 조약했다. 스켈레톤의 단검. 좀비의 시독. 뼛가루. 대강 이정도가 다였다. 별로 쓸모는 없지만 잡화점에 가지고 가서 팔면 그럭저럭의 수익은 된다. “보자···. 스켈레톤의 단검 5자루, 좀비의 시독 50개, 뼛가루 200개. 그럼 대강은 이렇게 나누면 될까요?” 정운은 파티창의 분배 시스템에 자신의 요구 사항을 정리해서 보냈다. 거기에는 뼛가루는 정확하게 100개씩 나누고 좀비의 시독 역시 25개로 정확하게 나눴다. 그리고 스켈레톤의 단검은 정운이 2자루, 문시영이 3자루 나눠서 한 자루 양보했다. “예. 이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기 세 시간 가까이 했는데 그럼···. 두 번으로 할까요? 아니면 세 번으로 할까요?” “예? 아···. 그거요···.” 그거라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정운은 그게 뭘 말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초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아는 척 하는 것뿐이다. “예···. 저기 혹시 다음에도 파티 맺어 주신다면···. 그럼 세 번으로 해 드릴게요.” 문시영은 오늘 정운과 사냥을 해서 거의 사흘치 사냥에서 모을 돈과 경험치를 한 번에 모았다. 이 정도면 정운은 그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었다. “예···. 뭐,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도 파티를 맺죠.” “알겠습니다. 그럼··. 보수는 마을에 가서 치르도록 하죠.” “예. 그렇게 하죠.” 정운은 이때까지만 해도 멋도 모르고 그냥 알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때 정운은 상대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라운드 제로에서 몇 달동안 사람과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운은···. 그녀가 말하는 보수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끝까지 모르고 있었다. 아이템을 분배하고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녀는 아직 파티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정운을 데리고 그녀가 간 곳은···. 자신의 여관방이었다. “저기···? 여기서 뭘···? 어엇!!!” 정운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문시영이 갑옷의 후크를 풀어 버리고 거기다 상의까지 훌렁 벗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상의를 가리고 있는 것은 흰색 브레지어 뿐이었다. ‘····이런··. 세 번이니 두 번이니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던가?’ 정운은 이제야 그녀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정운은 운이 좋아서 처음부터 유리한 환경 속에서 게임을 시작했지만···. 모든 유저들이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운이 없어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유저들은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 했다. 상급 유저들에게 빌붙기 위해서 위험한 임무를 자처해서 보수를 받거나···. 목숨을 걸고 자기보다 높은 레벨의 몹을 잡으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거래를 하는 것도 주요 수단이었다. ============================ 작품 후기 ============================ 수효와 공급이 있는 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매춘은 식량 산업과 수명이 비슷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인간은 어디를 가도 인간이라는 거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화 <첫 인연>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는 다양한 편의 시설과 상점들이 있었다. 평범한 무기점도, 잡화점도, 심지어 마트에 편의점 까지···. 그야말로 없는게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성적인 상품을 제공하는 사창가는 없었다. 여성 NPC들은 단정하고 예쁜 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들에게 함부로 손을 데려고 해 봐야 로직에 걸려서 절대 불가능 하다. 이 세계에서 NPC에게 손을 대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완전히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귀족의 직위를 손에 넣고 하녀 NPC들을 고용하면 그때는 그녀들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귀족의 작위를 손에 넣으려면 무지막지한 돈이 든다. 즉, 어지간한 상위급 유저가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보통의 유저들이 이 세계에서 성욕을 풀기 위해서는 유저들간에 성관계를 가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참던가···. 그러니 여성 유저들의 경우, 특히 문시영 처럼 어느 정도 미모가 받쳐주는 여성의 경우는 특히 더 자신의 몸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인간에게 식욕, 성욕, 수면욕은 기본적인 필수욕구다. 매춘은 사회적 경멸을 받아오면서도 어떤 사회 어떤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수요와 공급이 있는 산업은 주춤하거나 규모가 줄어드는 경우는 있어도 절대 망하지는 않는다. 매춘도 인간에게 성욕이라는 욕구가 있는 이상 세계에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정운이 문시영과 진하게 키스 하면서 그녀를 침대에 쓰러트리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아니··. 여기까지 온 이상 어차피 뒤로 물러날 수는 없지만····.’ 정운은 문시영이 옷을 벗는 짧은 순간 망설였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문시영을 품에 안고 찐하게 키스하면서 자신의 옷도 벗어갔다. 여기서 뒤로 물러나면 자신이 초보라는 것이 들킬 수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능숙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대처해서 상대를 속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라는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어쩌면 정운도 그냥 여자의 품이 그리웠을 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생각해서 정신없었지만···. 그라운드 제로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정환도 많이 지쳐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정신력은 아무리 강해도 한계가 있다. 가끔씩 풀어주지 않고 항상 팽팽한 상태가 이어지면 언젠가는 끊어지는 법이다. 매춘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정운은 뭔가 긴장을 풀고 욕구를 해소할 어떤 것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하아·····.” 정운이 문시영의 한쪽 젖가슴을 빨면서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반대편 젖가슴을 주물렀다. 그러자 문시영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정운은 그녀의 유두를 이빨로 잘근 깨물었다. “흐윽···. 아프게 하지 마요. 우리 지금 파티 맺었어요.” “아아····.” 파티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공격은 일체 금지, 혹은 무효화 된다. 방금전에 정운도 문시영의 유두를 깨물었지만 이빨이 살짝 아팠다. 그만큼 문시영도 살짝 아팠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정운은 이제 시간 끌지 말고 그대로 본 행위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에 자신의 몸을 겹치면서 서로 한 몸이 되었다. “아아·····. 하아아···.” “괜찮아요?” “예. 움직여도 되요.” “알았어요.” 정운은 그녀의 몸위에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시영은 정운의 움직임에 파도처럼 출렁 거리면서 정운의 욕망대로 흔들렸다. “하아···. 으으읏····. 좋아요···. 좀 더 세게···.” 그녀는 경험이 풍부한 것처럼 보였다. 목석처럼 가만히 누워서 있는게 아니라 밑에서 호응하면서 정운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정운은 이 순간 남자의 이기심 때문에 이 여자가 몇 명이나 되는 남자와 이런 순간을 보냈을까? 라는 유치한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지워 버렸다. 사랑은 고사하고 애정도 없는 사이였다. 그냥 지금 정운이 가지고 있는 욕구와 성욕을 풀 대상으로 있는 것 뿐이다. 정운은 거칠게 그녀를 탐했다. 그녀는 그런 정운의 거친 몸놀림에 호응하면서 충분히 정운을 만족시켜 줬다. 마치 이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처럼 철저하게 말이다. “으읏···. 안에 괜찮아요?” “괜··· 찮아요. 여기서는 임신 안 되요.” 피임이 필요 없다는 소리를 듣고 정운은 바로 그녀의 몸안에 자신의 욕정을 배설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한 쪽 팔로 가리면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섹스의 여운에 젖어있는 정운에게 말했다. “두 번 남았어요. 이대로 마저 할까요? 아니면 자세 바꿔요?” “······예.” 그날 정운은 철저하게 계산 하에서 그녀를 안았다. “스킬, 철벽 사용!!” 문시영이 다시 골목을 막고 좀비떼 앞에서 말 그대로 철벽처럼 가로 막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스킬, 속사 사용.” 정운이 자신의 스킬을 사용했다. 퍼퍼퍼퍼퍼퍼퍼····. 지금 정운의 속사 스킬의 레벨은 LV.3 화살의 발사 속도가 예전보다 300% 올라간 것이다. 덕분에 거의 경기관총을 난사하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속사가 가능해 졌다. ‘의외로 숙련도 올리는 것이 빨랐어··. 그런데 이렇게 계속 활만 쏘다가는 개마무사에서 궁기병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 문시영하고 파티를 맺은 후로 정운은 검이나 창은 한 번도 쓰지 않고 오로지 활만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 궁술의 패시브 스킬 렙벨은 12. 액티브 스킬인 속사의 경우 레벨 3까지 올라간 것이다. ‘뭐··, 효율적인 사냥이 가능하니 일단 이번 층에서는 이거면 충분하겠지.’ 정운은 이 층에서 목표한 레벨은 25였다. 그리고 현재 정운의 레벨은 23. 목표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능력치도 상당히 상승했다. 박정운. 종족 : 인간 레벨 : 23 나이 : 19 체력 : 30 힘 : 60 민첩 : 30 지능 : 45 매력 : 80 무력 : 40 패시브 스킬 기마술 : LV.9 창술 : LV.5 도술 : LV.5 궁술 : LV.12 액티브 스킬 속사 : LV.3 (화살의 발사 속도가 300% 올라간다.) 대강 이 정도였다. 게임을 시작하고 보통 이 정도 레벨에 살아서 도착하는 것은 열명 중에 여섯~일곱명 정도. 그나마 그들이 이렇게 20레벨을 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2년에서 4년 정도는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저들에게 가장 유리한 것이 있다면 주어진 플레이 시간이 무한하다는 것이다. 유저 중에는 이 세계에서 이미 수십년을 체류중인 플레이어들도 흔했다. 어쩌면 그 이상도···. 그랬기에 아직 시작하고 반년도 되지 않은 정운이 이미 20레벨을 넘었다는 것은 경이적인 속도였다. 정운이 이렇게 크게 레벨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운이었다. 처음에 랜덤으로 떨어지는 아이템 중에서 2만골드라는 거금이 떨어진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 행운을 적절하게 살린 정운의 통찰력이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 정운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100%살려냈다. 만약에 정운이 처음에 주어진 2만 골드를 함부로 탕진했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정운은 없을 것이다. 잘 해봐야 아직까지 돈만 야금야금 까먹고 있었겠지····. 적절한 행운과 정운의 정확하고 침착한 투자가 있었기에 지금 정운이 이렇게 무서운 광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우···.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 하죠.” “저 아직 더 할 수 있는데요?” “화살이 다 떨어졌어요.” “···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정운의 말에 문시영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녀는 정운과 파티를 맺고 나서 레벨이 5나 올랐다. 거기다 사냥으로 얻은 부산물도 비교적 공정하게 나누고 무엇보다 성행위시에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그녀에게 있어서 정운은 최고로 중요한 고객인 것이다. 정운과 파티를 맺고 나서 그 동안 거래 해 오던 남자들과의 거래를 모두 잠정 중단 시켰다. “오늘은 어디서 할까요? 제 여관으로 오실래요? 아니면·····.” “저희 집에서 하죠.” “고마워요. 아무래도 그 편이 더 안심이 돼서···.” 정운과 문시영은 이제 당연하다는 것처럼 사냥 후에는 서로 살을 겹치고 피곤을 풀었다. 예전처럼 한 시간에 한 번. 이라는 가격으로 받는게 아니라 그냥 정운이 문시영을 안고 싶은 만큼 안았다. 안기 싫으면 안지 않고 말이다.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라고 해야 할까?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문시영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가 바로 이 미모였다. 그녀는 처음 초보로 왔을 때 정운만큼 현명하지를 못했다. 초보자의 탑에서 나오고 자신을 끌어 들이려고 하는 길드원들의 말에 그대로 넘어갔고··. 그 길드에서 미탐험 지대의 지뢰 제거용으로 이용당했다. 원래, 위의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스몹을 잡아야 그 권리가 생기지만··. 예외가 있었다. 바로 상위권 멤버들과 파티를 맺으면 비록 보스몹을 잡지 못한 유저라고 해도 최상위권 유저가 돌파한 층 까지는 통행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상위 45층까지 올라가 봤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는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고 나서 자신의 신세를 깨달았다. 이 길드에게 있어서 초보자 보호 기간이 긑난 자신은 필요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 유저로서는 말이다. 그녀는 유저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의 자신을 가지고 길드원들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일정한 골드와 약간의 아이템. 그리고 무엇보다 길드에서 벗어날 자유를 얻기 위해서 그녀는 거의 1년 동안 길드원들에게 몸을 팔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창녀 이하···. 아니 인간 이하의 노예신세였다.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간신히 풀려난 후에도 그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꾸준하게 남자 유저들과 거래를 해야 했고···. 그나마 제법 괜찮은 미모를 지니고 있는 그녀였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여기 5층까지 자력으로 기어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붙여서 연참하면 추천이 준다는 기본을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ㅠㅠ;; 선작수가 추천수를 따라가지 못하다니...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2화 그렇게 험난한 고생을 하던 문시영에게 있어서 정운은 제법 괜찮은 상대였다. 일단 약속은 꼬박꼬박 지켰고 다른 남자들처럼 자신을 거칠게 대하지는 않았다. 보통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인간들 대부분은 욕망에 지고 더 큰 소원을 위해서 여기에 들어온 자들이다. 그런 인간들이 목숨의 위험이 달려있는 이 그라운드 제로를 플레이하면서 한층 더 날카로워 진 상태인 것이다. 결국 그들은 거칠고 난폭하고, 그리고 그녀를 대함에 있어서 매너 따위는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애당초 그런게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시영은 그냥 대가를 제공하고 성을 사는 대상일 뿐. 즉 여자가 아니라 그저 노리개인 것 뿐이었다. ‘별의 별 거지 같은 요구를 다 하는 새끼들이 널렸었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정운에게 마음에 드는 것은 정운의 경우 자기 집이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세계에서도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집이라는 것은 최소한 20층 이상을 돌파한 유저들이나 가질까 말까한 것이었다. 평범한 유저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집을 가지기 위해서는 족히 10년은 적극적으로 플레이 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5층에 도전중인 정운이 집을 가지고 있다니···. 비록 큰 집은 아니고 그냥 좁은 원룸에 화장실 부엌이 달린 작은 집일 뿐이지만··. 그래도 문시영으로서는 부러운 것이었다. 집이 있다면 여관비로 더 이상 불필요한 골드를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꿈 같은 일이었다. 여관비가 하루에 2골드다. 즉, 안전한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것 만으로도 하루에 2골드, 그리고 한 달이면 60골드가 들었다. 일년이면 무려 720골드였다. 거기에 식비와 기타 잡비까지 포함하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일 년에 1500골드 정도는 들었다. 게임 플레이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이 게임에서 살아가는 것에만 해도 그만큼의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유리한 환경 속에 있다는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딱 깨놓고 말해서···. 문시영은 정운이 탐이 났다. 이 남자와 계속해서 파티를 맺고 함께 해 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아아···. 아··. 좋아요···.” “으읏···.” 정운은 그녀의 몸속 깊숙한 곳에 욕망을 배설하고는 그대로 침대의 옆에 누웠다. 문시영은 마치 자신은 황홀하다는 듯이 넋이 나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정운의 탄탄한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남자들은 어차피 다 똑같아. 홀릴 수 있다면 홀리는게 이득이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운에게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운씨··. 너무 좋았어요. 또··. 하실래요?” “아니요··. 됐어요. 이만 자죠.” “예···.” 다음날 부터···. 그녀는 헌신적으로 정운을 대하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정운의 집에서 잠자리를 같이하더니 은근슬쩍 정운의 집에 자신의 옷과 몇가지 도구를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운에게 말을 꺼냈다. “저기···. 부탁이 있는데··. 파티랑 별도로 제가 집안일 다 해드릴 테니 이 집에 살게 해 주지 않을래요?” “이 집에요?” “예. 걱정하지 마세요. 항시 파티 상태로 있으면 제가 뭔가 위해를 가하지는 못해요.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군요.” “예. 그리고··. 제가 여관의 반 정도지만···. 하루에 1골드씩의 숙박료는 드릴게요. 제 몸도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그러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문시영이 무슨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정운은 허락을 해 버렸다. 정운에게 문시영은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를 하고 인연을 맺은 동료였다. 장황한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그 정도의 요구라면 들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이 게임은 그라운드 제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이 되어도 그 끝을 모르는 법이다. 정운과 문시영의 동거 생활 이후···. 둘의 생활은 마치 부부나, 동거중인 연인 같았다. 뭐···. 살갑고 알콩달콩하게 깨소금이 쏟아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이불을 덥고 잠을 자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주거 환경에서 삶을 공유했다. 거기다 함께 사냥까지 하기 하면서 경제 활동도 같이 했으니···. 뭐, 사실상 부부보다 더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간 사냥을 하다가 정운은 더 이상 좀비떼 사냥으로는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5층의 다른 사냥터를 가자고 하니 좀비들의 묘지보다 더 좋은 사냥터는 없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아직 목표하던 레벨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한 번 해볼까?’ 정운은 6층으로 가기 위해서 보스몹인 트윈헤드 라이거를 잡기로 마음 먹었다. 가이드 북에 의하면 트윈헤드 라이거의 레벨은 30. 거기다 보스 몹이니 평범한 30레벨의 몹보다 더 강하다고 봐야 한다. 보스 몹을 레이드 할 때는 절대로 자신보다 레벨이 높거나 같은 보스몹은 피하는게 상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대일일 경우의 얘기다. ‘시영씨하고 파티 플레이로 하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시영에게 은근히 물어보리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시영씨. 한가지 제의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예? 뭐가요?” 시영은 정운이 뭔가를 말하려고 하자 살짝 긴장했다. 둘의 관계는 철저하게 정운의 갑과 시영의 을로 이뤄져 있기에 시영으로서는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사냥터에서 효율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예···. 뭐 그렇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너무 빨리 올랐던 거잖아요?” “아니 그래도 너무 느려요.” “··········.” 여기서 정운과 시영 사이에는 커다른 체감의 차이가 있었다. 짧은 시간에 5층까지 올라온 정운과 오랫동안 바닥을 기다가 간신히 올라온 시영. 둘의 사이에서는 레벨업에 대한 커다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 층에는 더 좋은 사냥터가 없어요. 하지만···. 위층으로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져요. 6층에 가면 더 좋은 사냥터가 있을 거에요.” “지금···. 보스 몹을 잡으려는 거에요? 우리 레벨은 아직 트윈헤드 라이거 보다 낮아요.” “그래요. 하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볼수 있잖아요? 적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번 가늠을 해 보는 것도 좋잖아요?” “··············.” 시영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 게임은 그라운드 제로다. 한 번 죽으면 다시 플레이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죽으면 거기서 실제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리얼 데스 게임인 것이다. 보스 몹에 대한 도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 좀 더 정보를 모아 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보스몹의 공격 팬턴도 모르는데?” “이미 다 조사했어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영의 앞에서 종이에 적어가면서 조사한 자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두 개라서 시야가 넓어요. 그리고 행동도 빠르고요. 하지만 장거리에는 약한 것 같으니 내가 화살로 힘을 빼 놓으면서 준비한 위치까지 유인하고 그 다음에는··············.” “············.” 정운은 장황하게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설명을 듣는 시영은 계속해서 난색을 표하고만 있었다. “···········가장 주의할 것은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건데···. 거리가 그렇게 길지는 않고 크게 공격력도 없다고 해요. 오히려 육탄전에서 더 주의해야 겠죠.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한 번 부딪혀 보고 판단하죠.” “·····알겠어요. 대신에···. 저도 조건이 있어요.” “조건?” 이제까지 시영은 정운이 하자고 하면 대부분의 일을 그대로 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시영도 조건을 달았다. “저기··. 함께 보스몹을 공략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한 팀으로 활동한다는 거죠?” “예···. 뭐 그런거죠.”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혈맹을 맺지 않을래요? 그 정도의 신뢰는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요.” “혈맹····.” 정운은 살짝 망설였다. 혈맹. 그것은 파티하고는 달랐다. 파티가 일시적인 관계라면 혈맹은 영구적인 관계에 가깝다. 물론 양쪽의 합의하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있지만 일단 혈맹을 맺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고···. 또 상대방의 재산에 대한 지분도 요구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혈맹을 맺을 때 서로의 재산 지분을 50%로 하면···. 그때는 서로의 재산을 50%정도까지는 공유 할 수 있어지는 것이다. ‘즉···, 말은 돌려서 하고 있지만 돈을 달라는 건가?’ 정운은 살짝 망설였다. 정운에게는 아직도 몇 천골드의 골드가 남아 있었다. 50%의 지분율만 준다고 해도···. 그때 망설이는 정운에게 시영이 말했다. “아··, 재산에 대한 지분율은 10%면 되요.” 정운은 깜짝 놀라면서 대꾸했다. “정말? 그거면 되겠어요?” “예. 난 그냥····. 그냥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진짜로···, 서로 믿을 수 있게 뭔가를 공유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다에요.” “·············.” 정운은 침묵했다. 시영의 말에 죄책감이 든 것이다. ‘내가 너무 했나?’ 정운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너무 야박하게 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시영은 자신과 함께 살고 있었고 또 몇 번이고 살을 섞은···. 사실 부부나 다름 없는 관계다. 그런데 너무 계산적으로 거리를 두고 이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죄책감이 들었다 “지분은···. 좀 더 높이죠. 적어도 50%는 되어야···.” “아니요···. 그래서는 제가 너무 미안하죠. 그냥···. 그냥 10%면 되요. 대신에···. 다른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다른 부탁?” “예···. 저기···. 정운씨가 저한테 말을 편하게 해 줬으면 해요. 그러니까···. 그냥 시영이라고···.” “·······알았어. 시영아.”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영을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했다. 그날 밤. 정운은 이제까지 어떤 밤 보다 진하게 시영을 품에 안았다. 정운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완벽하게 사람을 믿은 날이기도 하다. 그래····. 정운은 믿은 것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 13화 <믿음, 그리고 돌아온 배신> 문시영 종족 : 인간 (철벽의 보병) 레벨 : 21 나이 : 24 체력 :55 힘 : 50 지능 : 30 매력 : 90 무력 : 25 스킬 보병 검술 : LV.5 보병 방패술 : LV.15 보병 행군 : LV.10 액티브 스킬 철벽 : LV.4(전방에서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준다. 지속 시간 40분.) 혈맹이 된 후에는 서로서로 상대의 스킬을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그것도 혈매의 사전 조건에서 조율 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운과 문시영은 그것을 서로 공개했다. 장비는 척 보면 뭘 쓰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지만 스킬, 특해 패시브 스킬은 이렇게 공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모른다. “주로 방어력 위주로 키웠네?” “제 본의는 아니에요. 그냥···. 예전에 길드에 있을 때 일단 살고 봐야 한다고 하면서····.” “아아·····. 그러고 보니···. 시영이 너가 나 보다 누나였잖아?” “피···. 그래서 실망했어요?” “아니. 난 연상도 좋아해.” “훗····.” “그보다 나한테 계속 존댓말 쓰는 것은 안 불편해? 나 이제 20살인데? 만으로 19고.” “예. 지금은 이게 편해요. 차차 고쳐가도록 하죠.” “알았어···. 그럼 가자.” “예. 아···. 그 전에 저 이번의 보스몹 공략을 위해서 준비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어요. 그러니 상점에 들렸다 가도 될까요?” “상점? 뭘 준비하려는 건데?” “사실은·····.” 시영은 정운에게 자신이 생각한 아이테을 말했다. 그 설명을 다 들은 정운은····. “그런게 있다고?” “예. 1,000골드나 하기는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사두는게 좋을 것 같아요.” “으음····. 하긴. 이번에 쓰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필요 할지도 모르니까···.” “그럼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정운과 시영은 필요한 장비까지 모두 구입하고 보스몹 공략을 위해서 움직였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 충분히 소진 시킨 다음에 여기로 유인할 테니까.” “예. 알았어요.” 정운은 문시영을 사전에 준비한 위치에 내려 놓고 자신은 흑토를 타고 보스몹이 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트윈헤드 라이거는 자신을 잡으러 온 적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팔자 좋게 늘어져서 햇빛을 쬐고 있었다. “후우···. 그럼 시작해 볼까?” 정운은 대략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화살을 활에 매기고 적을 겨눴다. 그리고는···. “가랏!!!” 퍼엉!!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트윈헤드 라이거의 머리에 적중해 버렸다. 제대로 맞은 화살의 폭발에 보통의 좀비들이라면 그대로 머리가 터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보스몹인 트윈헤드 라이거. “크르르···.” 놈은 대미지를 받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화가 난 것 같았다. “커허엉!!!” 놈은 크게 포효하면서 정운을 향해서 달려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면서 달려오는 트윈헤드 라이거를 보면서 정운은 그대로 흑토의 배를 찼다. “달려!!!” “히히힝!!!” 흑토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1급 전마인 흑토는 정운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정운의 기동력이었고, 전투의 동반자였고, 흑토 덕분에 평소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장비도 더 많아졌다. 정운의 인벤토리의 공간에 여유를 주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최근에 늘어난 정운의 승마술 덕분에 흑토는 빠른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흑토의 속도도 흑토를 쫓아오고 있는 트윈헤드 라이거 보다는 약간 느렸다. 그래서 준비한 것들이 있었다. “받아랏!!” 정운은 그대로 달리면서 말에서 뭔가를 바닥에 뿌렸다. “커허엉!!!” 뒤에서 달려오던 트윈헤드 라이거는 그대로 발이 뭔가를 밟은 것처럼 아파했다. “제대로 먹혔군.” 정운이 뿌린 것은 일본의 닌자 만화에 자주 나오는 함정인 마름 형태의 쇠가시였다. 쇠가시에 독을 듬뿍 발라서 미리 준비했는데 덕분에 트윈헤드 라이거도 어느 정도 기동력이 떨어졌다. “좋았어. 그럼 시작해 볼까?” 정운은 마치 기마민족들이나 가능할 법한 자세로 허리를 비틀어서 후방을 향해서 활을 쐈다. 퍼엉!! “커허엉!!” 정운이 쏜 화살은 발이 느려진 트윈헤드 라이거에 정통으로 맞았다. “좋아···. 할 수 있어.” 정운은 자신의 공격이 어느 정도 먹히자 자신감에 가득 차올랐다. 비록 큰 대미지는 아니지만 시영에게 도착할 때까지 대미지는 충분하게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먹어랏!!” 퍼퍼펑!! “크하앙!!!” 정운이 계속해서 달리면서 트윈헤드 라이거에게 틈틈이 공격을 가했다. 만약에 흑토의 스테미너에 한계만 없다면 계속해서 이런 상태로 시간을 끌어서 사냥을 하는 것도 가능은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흑토의 스테미너지만 말이야.’ 정운은 사전에 몇 번의 실험을 더해서 흑토의 스테미너의 한계치를 알아왔다. 이정도 페이스로 계속 달리면 대략 15~20분 정도가 한계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흑토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발이 멈춰 버린다. “그때까지 대미지의 총량을 최대한 주는게 중요하지. 그럼 계속 먹어!!!” 퍼퍼펑!! 기마 상태에서의 궁술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는 정운이었다. 그렇게 대략 12분 정도···. 슬슬 트윈헤드 라이거를 뺑뺑이 돌리는 것은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운은 사전에 정한 포인트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거기서 시영과 합류해서 이 놈을 잡으면 된다. 정운은 달리면서 흘깃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트운헤드 라이거를 바라봤다. ‘대미지를 제법 입었지? 저 정도면 시영이하고 힙을 합치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영하고 사전에 약속한 작전 지역으로 달렸다. 정운과 시영이 사전에 트윈헤드 라이거를 유인하기 위해서 작정한 지역. 그것은 높이 10미터 이상의 석주가 즐비한 황야였다. 여기라면 몸을 피할 장예물도 충분하고 둘이서 따로따로 움직이면서도 트윈헤드 라이거를 충분히 유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영아. 다 데리고 왔어.” “대미지 상태는요?” “충분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알았어요.” 정운이 도착하자 시영은 장비를 차고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달려오는 트윈헤드 라이거의 아애 섰다. “뒤에서 원호 부탁해요.” “알았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뒤로 돌아갔다. 시영은 그런 정운을 흘깃 보고는 말했다. “위험하니까 조 더 뒤로 가요.” “응? 여기서 더” “예. 더 뒤로 가라고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엇!!” 뒤로 돌아가려던 정운은 갑자기 자신의 주변에 뭔가가 솟구치더니 오각형의 결계를 만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함정 결계 어떻게 된 거야?” “역시···. 혈맹이던 파티 던 상관없이··· 함정은 글리는군. 다행이야.” “시영아 너 설마····?” 정운은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 함정 결계는 오늘 아침에 혹시나 하는 만약의 사태에 트윈헤드 라이거의 발을 묵기 위해서 구입했던 함정이었다. 이것을 쓴 것은 믿기 힘들겠지만 문시영이 트림 없었다. “모두 너 때문이야.” 시영은 태연하게 정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 배신 한 거냐?” 정운이 사납게 노려 보면서 말했지만 문시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네가 처음도 아니야. 그동안 재미 많이 봤으니 됐지? 네 재산은 내가 잘 쓸게.” “너···. 그래서 혈맹을····.” 정운은 그제야 시영이 혈명을 요구한 진짜 이유를 알았다. 혈맹이 되면 혈맹원이 죽었을 때 그의 재산 아이템 등은 다른 혈맹원들 에게 분배된다. 이번에 정운의 경우는 시영에게 모든 재산과 아이템이 이전 되는 것이다. 시영은 애당초 이것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계···. 적어도 10분 동안은 꼼짝도 하지 못할 거야. 그럼 잘 있어.” 시영은 그렇게 말하고 멀리 자리를 피했다. 트윈헤드 라이거가 도착했을 때 여기 있다가는 덤터기를 쓰는 수가 있었다. 다만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않고 어느 정도 떨어져서 정운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는 거리까지 떨어졌다. 자신의 눈을 정운의 최후를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면 된 거야··· 난 원래 이러면 충분해···.’ ============================ 작품 후기 ============================ 분량을 나누다 보니 조금 적습니다. 하지만 스토리의 조절을 위해서는 여기서 끊는게 좋을것 같았습니다. 오늘 중에 한 편 더 올릴 테니 이해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4화 문시영. 그녀는 원래 21살의 나이로 이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에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오게 된 원인은 남자와 관련된 트러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남자들과 관련된 트러블이 원인이었다. XX대학교 2학년인 그녀는 소위 세간에서 말하는 어장관리녀였다. 여러 남자에게 몇 다리를 걸치고 남자들에게서 같은 선물을 받아낸다. 그리고 여러개 받아낸 선물들 중에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팔아 버린다. 그렇게 해서 여러 남자들과 문어발식 연애···. 아니 관리를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젊음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라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그렇게 된 원인은 자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폭력 가장으로 어린 시절부터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때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해야 할 남자. 즉 아버지에게서 모진 폭력을 겪으면서 자란 그녀는 사춘기 시절부터는 남자를 경계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치명적으로 남자를 경계하게 된 사건. 아니 경멸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남자 친구가 생겼다. 이제까지 남자를 꺼려왔던 그녀가 마음을 열 정도로 준수하고 성실한 남자친구였다. 이제까지 인생에 한 번도 믿을 만한 남자가 없었다는 반작용 때문일까? 그녀는 남자 친구를 진정으로 아꼈고··.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줬다. 사귀고 나서 2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남자친구가 성관계를 요구했고···. 그녀는 남자친구를 사랑하면 해줘야 한다. 아니면 떠날 지도 모르니까···. 라는 지극히 철없는 생각에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와중에 순결을 잃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남자친구와는 수시로 성관계를 가졌다. 그러다가···. 몇 개월 후. 그녀는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고 덜컥 겁이 났다.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던 그녀는 일단 남자 친구와 의논을 하기 위해서 만났다. 그리고 자신이 생리가 없다는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고백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우리 헤어지자. 그리고···. 아기는 낙태하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 절대 내 발목은 잡지 마. 알겠어.” “··········너···. 어떻게···” “솔직히 우리 나이에 애 생기면 어떻게 해!? 너 피임약도 안 먹었냐? 난 날짜 계산하고 했잖아? 혹시 다른 남자하고 한 것 아니야? 내 애라는 증거라도 있어?” “··········.” “그리고···. ###### #### ####.” 남자 친구는 문시영에게 뭐라고 무너가 말을 이었지만···. 시영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를 믿었는데···. 그 믿음은 잔인한 배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후···. 다행이도 그녀의 임신은 오해였다. 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검사를 한 결과 검사기의 오류였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이미 깊숙한 상처가 생긴 후였다. 그 후로···. 그녀는 이제 남자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남자를 증오했다. 남자는 여자를 상처 입힌다. 남자는 여자를 괴롭힌다. 남자는 여자를 못살게 구는 생물이다. 그녀는 철저한 남성 혐오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 손에 넣은 것이 바로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이었다. 그녀는 게임을 이용해서 자신의 미모를 뛰어나게 했고, 그리고 또 남자들이 자신에게 푹 빠지게 했다. 자신의 말이라면 뭐든지 듣도록··. 아무 의심 없이 듣도록···. 그라운드 제로를 사용하면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마치 이제까지의 복수를 하기라도 하듯이 남자들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순진해 보이는 남자에게 접근해서 호감을 사고 돈이나 선물을 뜯어내는 악종 어장 관리녀로 성장한 것이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 하자마자 이 남자 저 남자들을 잔뜩 상처 입혔다. 남자들 중에는 정말로 그녀를 좋아해서 크게 무리를 한 순진한 남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카드 빛으로 인해서 신용 불량자가 되기도 했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서로 상처 입히느냐? 상처 입느냐? 이게 다야····. 난 다시는 상처 입는 쪽으로 가지는 않겠어.’ 그녀는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고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호구취급하면서 잔뜩 뜯어낸 남자가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서에는 그녀를 탓했고, 그녀는 세간에 악당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교는 물론이고 그녀의 SNS를 포함해서···. 어떻게 신상이 알려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모든 것이 알려졌다. 이제까지 그녀의 어장안에 있던 남자들도 모두 그녀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살기 등등하게 그녀를 노렸다. 그녀는 급하게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몸을 피했다. 몸을 피하면서···. 그녀는 세상을 탓했다. 자신은 나쁘지 않다고···. 그저 당연히 해도 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에는 그녀에게 혼인빙자 간음이라는 명목으로 경찰의 수사망 까지 좁혀져 오자 그녀는 초조졌다. “벗어나고 싶어··.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난 그저 행복해 지고 싶었을 뿐이란 말이야. 왜 나는 행복해 지면 안 되는 건데? 왜·····.” 초췌해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에 접속했다. 어장 관리녀를 하면서 포인트를 대량으로 소모했기에···. 이제 남은 포인트는 없었다.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 포인트를 모으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의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게임의 세계에 들어와서 지금 정운을 함정에 빠트리면서도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먼저 함정에 빠트리지 않았다면···. 언젠가 저 남자가 날 함정에 빠트렸을 거야. 그러니···. 그러니 난 나쁘지 않아.’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정운의 최후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편 정운은····. “제길···. 결국은 싸워야 하나? 흑토. 내린다.” “히히힝····.” 정운은 흑토의 몸에서 내려서 태도를 뺐다. 체력이 떨어진 흑토의 등위에서 싸우는 것 보다는 이게 더 유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사실 유리함 불리함을 넘어서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가 나는 상대였지만 말이다. “빌어먹을····. 역시 너무 성급했나?” 상대는 보스몹.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대미지를 주기는 했지만 역시 아직은 정운이 훨씬 약한 상태였다. “커허엉!!!” 트윈헤드 라이거는 한 입에 정운을 삼켜 버리겠다는 것처럼 달려 들었다. 정운은 그런 트윈헤드 라이거의 공격을 옆으로 피하면서 칼을 휘둘러서 놈의 몸을 내리쳤다. 쫘아악!! “제길····.” 정운은 자신의 공격이 들어갔지만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마치 두꺼운 타이어를 나뭇가지로 긁어버린 것 같은 감촉이 났다. 이제까지 흑토와 한 몸이 되어서 기마 상태에서의 전투를 주로했던 정운에게 있어서 지상에서 홀로 싸우는 것은 전력이 대폭 반감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좁은 결계 속에서 흑토를 타고 싸울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군.’ 정운은 일단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제까지 올린 레벨이 있었기에 지금 정운의 움직임은 지구의 1류 스포츠맨들 보다도 훨씬 민첩했다. 상대가 말 그대로 괴물이라서 효과는 반감 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상대는 맹수 절대로 정면으로 마주하면 안 된다. 무조건 옆이나 뒤를 잡기 위해서 정운은 원으로 빙글빙글 움직였다. “카하아앙!!!” 그런 정운의 움직임에 좀처럼 목표를 포착하지 못한 트윈헤드 라이거는 짜증이 난다는 것처럼 크게 포효했다. 그리고는 호랑이와 사자의 머리에서 동시에 불길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륵!!! “크윽···.” 정운은 전신을 휘감아오는 불길의 뜨거운 열기에 고통 스럽게 신음했다. 이 좁은 결계의 속을 트윈헤드 라이거가 가득 메워 버린 것이다. ‘이렇게 끝인가····.’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학 일을 때···. 갑자기 이레귤러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주변에 서 있던 높은 석주 중에 하나가 트윈헤드 라이거의 화염에 쩌적 갈라지더니 그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석주는 그대로 트윈헤드 라이거의 머리를 강타해 버렸다. “카하앙!!!” 불을 뿜다가 사자의 머리에 한 대 맞아 버린 트윈헤드 라이거는 신경질을 냈다. 거기다 큰 행운은 부서진 석주의 잔해가 결계석까지 박살내 버렸다는 것이다. 애당초 이런 종류의 가두는 식의 함정은 내부에서의 공격에는 강해도 외부에서의 공격에는 약했던 것이다. “이건····. 기회다. 흑토!!” 정운은 결계가 부서졌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흑토를 인벤토리에서 소환했다. 다행이도 흑토의 스테미너는 조금 쉬면서 돌아와 있었다. 정운은 그 상태로 재빨리 흑토에 올라타서 달렸다. “이럇!!!” “히히힝!!!!” 흑토는 부지런히 달려서 이 지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황야에 남은 것은 잔뜩 화가 나서 적대 상태에 들어가 있는 트윈헤드 라이거. 그리고 정운의 최후를 지켜보기 위해서 남아있던 문시영 뿐이었다. “크르르·····.” 트윈헤드 라이거는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유저인 문시영을 보고는 으르렁 거렸다. 그녀가 정운과 함께 혈맹 관계였기 때문에 다음 공격 대상으로 찍힌 것이다. “안···. 안돼!!!” 문시영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이레귤러의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가 당황하건 말건····. “크하아앙!!!” 트윈헤드 라이거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띠리링!! [같은 혈맹원인 문시영 유저가 사망했습니다. 유저의 재산과 아이템이 당신에게 귀속 됩니다.] 흑토의 등에 올라타서 한참을 도망가던 정운은 갑자기 뜬 메시지를 보고 흑토의 고삐를 잡아 세웠다. “·····근처에··· 있었던 건가? 진작에 도망 간 줄 알았는데·····.” 정운은 문시영이 곁에 있었던 줄 몰랐다. 아니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과연 그녀를 구하려고 했을까? 자신을 배신한 그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싸우려고 했을까? ‘····모르겠어.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데도 난 전혀 슬프지가 않아. 난····. 난 어떻게 된 거지?’ 정운은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이런 상실감. 이런 허탈감. 정운은 생각했다. 다시는 이런 느낌을 겪지 않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이제 그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이 게임의 기본 설정은 '그녀는 나의 애완동물'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미쳐버린 세계 속에 정상적임을 유지하려는 자의 마음 그게 바로 이 소설의 포인트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문시영도 나름 이유는 있지만 모든 이기주의자들은 그 이기주의에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죠. 결국 그게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5화 <3년후.> 3년 후. 정운이 무시영의 배신을 겪은 후로 시간이 3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정운은 미친 것처럼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냉철하게 그리고 때로는 무모한 도전까지 반복하면서 오로지 위를 노리고 격한 공략을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강한 유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은 대부분 세 가지 형식으로 플레이를 한다. 하나는 포기형. 이미 게임의 클리어를 포기하고 이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 살기 위해서 최소한의 사냥 말고는 하지 않는다. 보통 유저들 중에 50%정도는 이런 형태로 이 그라운드 제로에 살아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중도파. 자신에게 필요한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 대략 유저들의 40%정도가 이들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포인트를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과연 그 포인트가 얼마나 모였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없다. 라는 것이다. 스테이터스 창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포인트의 양을 표기한 정보는 없었다. 대중으로나마 알 수 있는 척도도 없었다. 일부러 악마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함부로 게임에서 발을 뺄 수 없게 말이다. 잠깐 게임에서 나갔다가 다시 접속하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아주아주 희귀한 아이템인 이탈 아이템을 사용한 유저가 이제까지 몇 명은 있었다고 한다. 이탈 아이템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희괴한 아이템이다. 자력으로 손에 넣으려면 20년 이상 플레이 해도 한 번 손에 넣을까? 말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도박을 한 플레이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다. 그들이 모든 포인트를 다 모았기에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한 번 나간 유저는 다시 접속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거기에 과해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탈을 쓰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도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유저. 전체 유저들 중에 약 10%정도만이 있는 유저가 바로 공략파였다. 포인트를 몰라도···. 그리고 이탈 아이템을 구하지 못해도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다. 클리어파 중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었다. 자신의 소원을 위해서 이 게임을 클리어하겠다는 자들 보통은 이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세상에 이미 푹 빠져서, 혹은 너무나 오랫동안 게임을 플레이 하다 보니 당초의 목적을 잊어 버리고 게임의 클리어를 자신의 목적으로 삼은 자들도 있었다. 보통 이 공략파에 있는 유저들은 대부분 20년 이상의 게임 경력을 자랑하는 유저들이 대부분이지만···. 정운은 그 중에서 신참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서 공략파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현재 정운이 클리어 한 층은 54층. 예전에 정운이 애먹었던 보스몹인 트윈헤드 라이거, 놈이 이 층에서는 일반 몹이었다. 그것만 봐도 정운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에 걸맞게 정운도 강해졌다. 현재 정운의 레벨은 71레벨. 이전과 비교해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사이에서도 70레벨대의 유저는 100명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정운의 경우 이제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 누군가에게 크게 꿀리는 일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정운의 소문을 듣고 가입을 건의한 길드들이 있었다. 그들은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정운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정운은 그 어느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솔로 플레이만 했다. 아주 가끔씩···. 보스몹 레이드를 할 때 다른 길드들이 합동으로 연계를 할 때. 그때만 정운도 어쩔 수 없이 힘을 빌려주고는 했다. 40층 이후로는 보스몹을 혼자서 어떻게 한다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를 빼고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철저하게 피했다. 촤아악!! “흠···. 여기도 거의 다 정리했나?” 정운은 자신의 검에 반토막이 나버린 신장 2미터는 될 법한 오크전사의 시체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정운의 주변에는 수십 개의 오크 전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히히힝···.” “그래. 이제 집에 가자.” 정운은 흑토의 보챔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올라탔다. 흑토의 모습도 과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변했다. 덩치는 1.5배는 커졌고, 눈에서는 붉은 광망이 나고 있었다. 원래 흑토는 경험치를 쌓기에 따라서 진화를 계속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원래 1급 전마였던 흑토는 특급 전마를 거치고 전설의 명마를 거쳐서 지금은 영수(靈獸)의 영역에 이르렀다. 현재 흑토의 스테이터스는···. 흑토. [영수(靈獸)] 레벨 : 60 체력 : 200 힘 : 120 민첩 : 170 지능 : 20 영력 : 35 [영수로서 주인을 보좌한다. 하루에 천리를 가며 질풍을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질주한다. 주인을 위애서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충성과 적들과 싸우는 용맹함을 겸비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진화를 이룬 것이다. 중간에 단 한번이라도 죽었다면 이런 진화는 기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운이 공들여서 키운 덕분에 용케도 이 정도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단순이 능력만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스킬까지 생겼다. 액티브 스킬 비상 : LV.5. 50분 동안 허공을 달릴 수 있다. 염화 : LV.3 30분 동안 전신에 화염을 휘감는다. 영수라고는 해도 기본이 말이다 보니 두 가지 스킬 뿐이었다. 하지만 둘 다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진화 시키는 것에 따라서 더 좋은 스킬이 생길 지도 몰랐다. 어쨌든 오늘 사냥은 끝났다. 정운은 흑토를 타고 질주해서 포탈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흑토를 타고 질주하는 정운의 속도는 시속 300Km가 넘는 고속이었지만 정운도 적토도 조금도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둘이 작정하고 달리면 이것보다 훨씬 더 빨라질 수 있었다. 포탈을 타고 마을로 돌아온 정운을 보고 몇몇 유저들이 수근 거렸다. “박정운이잖아?” “사냥 마치고 왔나 보지.” “제길···. 저 인간이 사냥하는 것 반만큼만 할 수 있다면 이 세계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겠는데···.” 유저들은 정운을 보고 명백하게 부러워했다. 정운은 그런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정운을 비롯한 상위급 유저들이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위험한 사선을 많이 넘었다는 증거다. 짧은 경력으로 상위급 유저로 올라간 정운은 다른 유저들에게 질투의 대상이었지만··. 그 만큼 정운은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왔었다. 아무런 리스크도 짊어지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 살만큼만 간신히 사냥하는 루저들에게 나눠줄 동정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정운은 그대로 말을 몰아서 여느 저택으로 향했다. 유럽식 저택이 넓은 정원이 있는 집. 이 집이 바로 정운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이전의 원룸과는 완전히 다른 대저택이었는데 정원을 뺀 평수만 해도 200평은 되었다. 정운이 이렇게 넓은 집에서 살고 있는 이유는 귀족의 직위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원래 큰 사치를 하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게임에 투자 하는게 더 유리했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에서 상위급 유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귀족 작위가 필수였다. 상점 중에서 귀족 작위가 없으면 이용 할 수 없는 상점들도 있었고, 귀족의 작위를 유지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정보도 있었다. 가끔씩 비정기적으로 이벤트 몹들이 나타날 경우도 있는데 그란 정보는 오로지 귀족들에게만 우선적으로 주어졌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장점이 많지만 아무나 귀족의 작위를 유지 할 수는 없다. 귀족으로 살기 위해서는 매달 10만 골드의 세금을 내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골드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템이나 게임 공략을 위한 정보 체득을 목적으로 하는게 아니고 순수한 생활비로 말이다. 일종의 품위유지비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정운도 이렇게 큰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 준비해줘. 메뉴는 적당히 알아서 하고.” “알겠습니다.” 정운이 저택에 들어가자 집사복을 입은 깔끔한 인상의 영감님이 나와서 정운의 시종을 들었다. 그리고 그 영감님의 뒤를 따라서 아리따운 메이드들도 정운에게 다가와서 정운의 겉옷을 받고 흑토를 지정된 마구간에 데리고 갔다. 인벤토리에 넣어서 보관하는 방법이 편했지만 괜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도록 따로 마구간을 만들었다. “목욕부터 하시겠습니까?” “음····.” 정운은 메이드의 시중을 능숙하게 받으면서 정원에 마련된 노천 온천에서 피로를 풀었다. ‘노천 온천이 딸린 저택이라···. 한국이었다면 가격이 얼마나 했을까?’ 새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운은 노곤하게 몸의 피로를 풀었다. 이 저택에서 정운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지금 이 저택에 있는 집사 영감님과 메이드들은 모두 고용한 NPC들이었다. 원래 NPC들은 유저들이 위해를 가하는 것도 불가능 하고 필요 이상으로 터치를 하는 것도 불가능 하다. 하지만 유저에게 고용된 NPC들은 달랐다. 고용된 NPC들은 유저의 말에 절대 복종했고 충실한 충복들이었다. 참고로··. 지금 여기서 정운의 목욕 시중을 들고 있는 메이드들의 경우 성관계도 가능했다. 다만 문시영 이후로 정운은 그 어떤 여자하고도 관계를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배신이 깊숙한 상처가 된 것이다. “후우···.” 목욕을 하고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정운이 식탁에 가니 혼자 먹기는 거북할 정도로 화려한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무슨 몬스터 헌터도 아니고···.’ 예전에 작은 게임기로 했던 게임이 생각나는 정운이었다. 그때 그 게임처럼 이걸 순식간에 게걸스럽게 먹고 버프라도 붙으면 편하겠는데 말이다. ‘뭐, 꿈속의 꿈같은 일이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얌전히 식사를 했다. 메뉴는 한식이었지만 반찬의 숫자가 50첩은 넘을것 같았다. 반찬 한 번에 밥 한 숟가락씩 먹어도 반찬을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이런 사치스러운 생활을 반복해서 매달 1만 골드라는 돈을 소모해야 했기에 정운은 그냥 먹었다. 생활비로 1만 골드를 소모하는 것에 관해서는 집사 영감에게 모두 일임했다. 알아서 잘 할 것이니 자신은 그냥 먹으면 되는 것이다. 식사 후에 정운은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서 그라운드 제로의 야경을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집사 영감은 뭔가 비싼 와인을 잔뜩 사놨지만···. 정운의 입에 가장 잘 맞는 것은 쌉쌀한 맥주였다. 와인은 그냥 가끔 식사 중에 마실 뿐이었다. “후우····. 54층이라···. 여기는 언제 돌파 할 수 있을까?” 몇몇 유저들이 힘을 모아서 레이드를 시작할 기미는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아직 54층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좀 더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수집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장비를 한 번 업그레이드 하고 올라가고 싶은데 말이야···.” 장비를 너무 자주 바꾸면 좋지 않다. 골드의 소모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정운이 가지고 있는 장비는 예전에 62레벨일 때 업그레이드 한 것이다. 이제 레벨이 71에 도달했으니 슬슬 교체를 해야 할 시기였다. ============================ 작품 후기 ============================ 보통 3년 정도 구른다고 정운처럼 빨리 렙업하는 세계는 아닙니다. 정운이 지난 3년동안 굉장히 모무한 플레이를했기에 저 레벨에 도달한 것입니다. 참고로. 그라운드 제로의 레벨 상한선은 99가 아닙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6화 장비의 교체는 돈이 많이 든다. 돈이 최소한 적게 드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많은 재료 아이템을 모아두는 것뿐이었다. 정운은 오늘을 위해서 많은 재료 아이템들을 모아두고 있었다. 이제 그것을 사용할 차례였다. 정운은 다음날 바로 공방으로 향했다. 귀족이 되면 좋은 점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상급의 공방을 이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유저들이 사용하는 공방과 상급 공방에서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은 그 종류와 기능이 완전히 달랐다. 정운이 비싼 돈을 유지해서 귀족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운님 오셨습니까?” “음···.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려고 하는데? 카탈로그를 보여줘.” “예. 이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정운은 점원 NPC의 안내를 받아서 캡슐에 들어갔다. 그러자 정운의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넓은 투기장이 나타났다. “우선 검부터 시작하지. 카테고리 오픈.” 정운이 말하자 허공에 수천가지 종류의 검들이 나타났다. 정운은 그 중에서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무기보다 상위 종류의 무기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옵션과 기능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과의 차이점이 있었으니···. “이걸로 시험해 볼까? 적당한 놈으로 하나 꺼내 줘.” [알겠습니다.] 정운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자 정운의 눈앞에 한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쿠워어어!!!” “오크 백인장인가? 신삥 시험으로는 안성맞춤이긴 하네···.” 정운은 새롭게 손에 넣은 검을 가지고 오크 백인장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콰앙!! 오크 백인장의 커다란 도기와 정운의 손에 들려있는 화염을 내뿜고 있는 검이 서로 부딪혀서 폭발했다. “흐음····.” 정운은 품평하듯이 검의 성능을 확인하면서 차근차근 상대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일반 유저들은 이용하지 못하는 고급 공방의 기능이었다. 기껏 만든 무기가 생각한 것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스테이터스가 따라가지 못해서 잘 쓰지 못한다거나··.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귀족들이 이용하는 고급 공방에서는 그런 사태를 막 위해서 이렇게 트레이닝 시스템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아무 무기나 시험해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유저가 한 번 이상 싸워본 몬스터여야 했고, 보스몹을 연습 상대로 지목 할 수는 없었다. 그 조건만 지키면 수천 개의 아이템을 가지고 수천가지의 몹과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게 모두 귀족의 신분을 유지해야 얻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흐읏!!!” 정운은 있는 힘껏 무기를 휘둘러서 눈앞에 있는 오크 백인장의 몸을 양단해 버렸다. 오크 백인장의 시체는 그대로 빛의 입자가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흐음···. 손맛에 이물감이 좀···. 좀 더 베는 맛이 있는게 좋겠군.” 정운은 금방 다른 검을 뽑아서 시험해 보기로 했다. 3년의 시간 동안 그라운드 제로에서 겨한 전투의 순간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고 넘나드는 동안 정운은 어느새 완숙한 검사처럼 검의 미묘한 차이까지 느끼고 있었다. 정식으로 검술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대신에 스킬을 익힐 수 있는 게임 시스템과 스킬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전보다 좋은 훈련은 없다고 할까? 지금 정운은 목검 하나만 있으면 검도 챔피언 정도는 손쉽게 요리 할 수 있을 것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기를 정하는 것은 막대한 돈이 든다. 그리고 한 번 만들고 나면 물리는 것도 불가능 하고 말이다. 그러니 정할 때 신중하게 정해야 했다. 정운은 이런 저런 무기를 닥치는 대로 시험하다가 마음에 드는 무기가 있으면 일단 관심목록에 담아두고 그리고 다른 무기를 또 들러봤다. 그런식으로 모든 무기를 다 꼼꼼하게 시험하고 무기를 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열흘이었다. 정운은 열흘 동안 사냥도 나가지 않고 꼬박꼬박 무기 공방을 출근하면서 자신에게 적합한 무기가 뭔지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한 무기가 바로 이것들이다. 정령의 태도. 공격력 : 2500 무게 : 60 내구력 : 500 [상황에 맞춰서 사 속성의 정령의 힘을 빌려서 사용 할 수 있다. 대지, 불, 물, 바람. 네 가지 속성의 정령의 힘을 검에 부여해서 사용한다.] 월광의 창. 공격력 : 3200 무게 : 40 내구력 : 300 [달의 힘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창.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나 스피릿 계열의 유령들에게 강한 힘을 발휘한다. 소유자에게 하루 10번의 힐링 스킬을 사용 할 수 있게 한다.] 크리스탈 보우. 공격력 : 800 무게 : 1 내구력 : 100 [화살이 없어도 크리스탈 화살을 무한대로 날릴 수 있다.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 번 크리스탈 화살을 맞은 자는 소유자에게 계속해서 위치가 발각된다.] 정운이 주로 쓰는 무기인 활, 창, 검은 이 정도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갑옷과 보조 장비들을 맞춰야 했다. 장인의 미스릴 갑옷. 방어력 : 500 무게 : 10 내구력 : 100 [신성한 급속인 미스릴을 장인이 공들여서 만든 갑옷, 가볍고 튼튼하며 저주나 독으로부터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영웅의 망토. 방어력 : 100 무게 : 5 내구력 : 50 [영웅에게 어울리는 망토. 두르고 있는것 만으로 공격력과 방어력이 5%씩 올라간다. 냉속성에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선인의 팔찌(레어) 방어력 : 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퀘스트 선인의 가르침을 클리어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아이템. 이 팔찌를 차고 있어야 특수 스킬인 기공술을 수련 할 수 있다.] 원래 보조 무장은 종류는 다양하지만 손에 넣기는 어려웠다. 정운은 망토와 팔찌 하나를 보조 무장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선인의 팔찌는 정운에게 하나 밖에 없는 레어 아이템으로 정운에게 귀속된 아이템이었다. 50층에서 우연히 발견한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아이템으로 정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후우····. 일단 여기까지만 할까?” 원래 이것 말고도 이번 기회에 흑토의 장비도 대폭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장비를 맞추는데 든 돈이 무려 254만 6,200골드였다. 크리스탈 드래곤은 45층의 보스몹이었기에 그 놈을 잡고 재료 아이템을 보충 했는데도 그만큼의 돈이 들었다. 결국 정운은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고 당분간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골드를 충당하기 위해서 여기 54층에서 사냥을 계속해야 했다.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하자. 어차피 신 장비들도 손에 익어야 하니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54층의 몹들은 미궁의 괴수들과 초원의 괴수와 오크전사 부족. 그리고 황야의 와이번들과 그리폰.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검은 숲에 살고 있는 다크엘프 부족들이었다. 정운은 우선 가장 익숙한 오크 부족들과 초원의 괴수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예전에 정운을 죽일 뻔한 트윈헤드 라이거가 여기서는 일반 몹으로 상당수 자리하고 있었다. 정운은 흑토를 타고 그런 놈들을 상대로 하나하나 사냥을 시작해 보고 있었다. “커허어엉!!!!” “흥!!” 정운은 예전에 자신을 애 먹였던 트윈헤드 라이거의 목 줄기에 월광의 창을 꽃아 넣었다. 그러자 단발마를 남기면서 놈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후우···. 오늘 수입은 대강 이 정도로 해 둘까?” 정운은 오늘 반나절 동안 사냥을 해서 얻은 전리품 계산해 봤다. 딱히 귀중한 아이템은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의 수확을 골드로 계산하면 대략 1~2만 골드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버는 것만큼 나가는 것도 많아서 돈 모으는게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스킬 스킬북도 몇 개 추가하고 싶은데··. 괜찮은 스킬북은 대부분 50만 골드 이상하니····.” 이 게임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은 몹의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보통의 게임이라면 프로그램상의 오류가 있고 그 틈을 파고들면 어느 정도 약점이 드러나는 법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몹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잡기가 어려웠다. 개중에는 인간 못지않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몹들도 종종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 54층에 자리하고 있는 다크엘프들. 그 놈들의 지능은 실제 살아있는 인간 못지 않다고 한다. ‘골치 아픈 것은 이번에 54층의 보스몹이 그 다크엘프들의 퀸이라는 것이지만 말이야.’ 나중에 그 다크엘프 퀸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50층 이후로는 보스 몹을 공략 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실제로 저번의 53층 공략에서는 계약상 파티를 맺었던 파티원이 한 명 죽기도 했고 말이다. “레이드에 실패하는 것은 괜찮지만···. 사망자의 생성은 큰 로스지···.” 상위급 유저 한명이 탄생하기까지 짧게는 몇 년부터 길게는 수십년이 걸린다. 그 정도 전력의 로스는 공략파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것이었다. 하위급 유저들, 그리고 여기에 안주하고 있는 중위급 유저들도 자신들끼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만 상위급 유저들은 다르다. 개중에는 자신들끼리 찐득한 전우애를 과시하는 자들도 있고··. 그런 사이가 아닐지라고 해도 상위급 유저들은 레이드에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괜한 발목 잡기는 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말이다. 어디까지나 어지간 하면···. 이라는 말이지만 말이다. 아주 가끔씩 상위 유저들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그렇게 되면 상위급 유저들이 그렇게 부딪히면 둘 중에 하나가 죽고 나서야 끝나고는 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위기의 상황에서 적대자를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관계를 맺지 않는게 최고야.” 정운은 흑토의 위에서 조용히 말하면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나하고 가장 친한 건 너구나.” “히이잉.” 흑토는 주인이 자신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자 기분 좋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릴 광경을 발견했다. “쿠워어어!!!!” 한 마리의 케르베로스가 유저 한명을 잡아 먹기 위해서 달리고 있었다. 유저의 모습을 척 보아하니 그다지 강한 유저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유저의 뒤편에는 그 유저의 동료로 보이는 자들이 히죽히죽 거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말하는 것을 깜빡 했는데 제목을 바꿨습니다. 이편이 더 좋다고 해서요.^^ 17화 <그녀와의 만남> “이제 슬슬 도와달라고 하지 그래?” “혈맹창에 오케이만 찍어. 그럼 얼마든지 도와 줄 테니까.” “푸하하하··.” 정운은 한 눈에 척 보고 상황을 깨달았다. 길드원들이 어디 초보를 잡아서 실컷 이용하다가 초보자 보호기간이 끝나자 더 이용해 먹기 위해서 혈맹으로 묶어 두려고 하는 것이다. 길드라는 것은 그냥 유저들의 모임을 부르는 통칭일 뿐. 실제로 어떠한 효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길드원이 되기 위해서는 강제력이 있는 계약. 즉, 혈맹을 맺어야 한다. 하지만 초보자 보호 기간에는 그 유저와 혈맹을 맺을 수 없다. 그래서 보통 그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혈맹을 맺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 초보 유저는 혈맹을 거부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혈맹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정운과 문시영이 맺었던 혈맹은 비교적 대등한 관계였다. 보통 유저간의 혈맹은 그것을 표준으로 맺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다양한 혈맹의 조건이 있었다. 혈맹이라는 것은 기브 앤 테이크의 계약조건이다. 하지만···. 그 계약 내용은 100% 유저들에게 일임하게 때문에 일방적인 기브 앤 기브의 계약도 가능했다. 물론 그런 계약을 순순히 맺을 리는 없다. 하지만 협박과 회유를 반복해서 결국은 그 조건에 계약을 하게 하는게 악덕 길드의 수법이었다. 사실 말만 혈맹이지 사실상 노예 계약이나 다름 없었다. 그 계약을 맺으면 하위급 유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상위급 유저의 명령에 강제력이 발달해서 군대의 상관이 시킨 것처럼 절대 복종하고는 해야 했다. ‘저렇게 묶어 두려는 것을 보니···. 상대는 여자인가?’ 로브로 온 몸을 감싸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아마도 여자가 맞을 것이다.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지간하면 다른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꺼리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냥 외면하려는 저 길드원들이라는 놈들이 하는 짓이 상당히 열받게 했다. “쿠워어어어!!!” 트윈헤드 라이거는 한 입에 로브를 쓴 유저를 삼켜 버리겠다는 식으로 크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뜻은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끼어든 화살 하나가 트윈헤드 라이거의 몸에 꽂혔기 때문이다. 퍼엉!! “카항!!!” 정운이 쓰는 화살은 무한대로 계속 쓸 수 있는 크리스탈 화살이다. 보통의 화살보다 훨씬 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장비의 공격력이 800이고, 거기다 정운의 궁술까지 더해지면 그 위력은 2,000에 달한다. 거기다 스킬을 쓰거나 하면 그 위력은 더욱더 올라가고 말이다. “스킬 속사.”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정운의 손이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파파파파팡!! “카하하앙!!!!” 마치 머신건, 그 중에서도 중화기에 맞은 것처럼 트윈헤드 라이거는 걸레짝으로 변해갔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초당 10발? 15발? 그 정도의 화살이 날아가서 트윈헤드 라이거를 죽여 버린 것이다. ‘예전에 이 놈한테 죽을 뻔 했는데 말이야···.’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몰아서 트윈헤드 라이거에게 죽을 뻔한 유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정운의 물음에 상대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갸름한 턱선으로 봐서는 역시 정운이 생각하는 데로 여자가 맞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마 상당한 미인. ‘그러니까 저 쓰레기들이 찍은 거겠지.’ 정운은 유저를 내버려 두고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길드의 인간들을 보고 말했다. “아직 이 자리에 용건이 있나? 쓰레기들.” 정운의 말에 상대들은 입술을 악 물고는 정운에게 말했다. “박정운씨, 정말 이러시깁니까?” 상대는 정운을 향해서 거칠게 항의 하고 있었지만 말투 자체는 존칭을 쓰고 있었다. 겉보기에 나이는 정운보다 더 많아 보이지만 존칭을 쓰는 이유는 정운이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고 유명한 상위권 유저라는 것 때문이었다. “뭐 불만 있냐? 너···. 이름이 뭔지는 까먹었지만 쓰레기.” “·····장우형입니다.” “쓰레기 새끼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해서 뭐하지? 볼 일 없으면 꺼져!!!” 정운은 고압적으로 상대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장우형이라는 남자는 입술을 깨물면서 정운의 뒤편에 있는 유저를 바라봤다. “그녀는···. 저희 길드원입니다. 그러니 인도를 바랍니다.” “뭐? 죽고 싶다고?” “·····아니···.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저희 길드장님에게 큰 혼이 납니다. 제발 이해해 주십시오. 당신도 우리 말벌파하고 싸우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싸워도 상관없다면?” “············.” “어때? 나하고 한 번 싸워 볼 텐가?” 정운이 활을 꺼내서 겨누는 척을 하자 장우형은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제길···. 저 년을 놓치면 길드장이 노발대발 할 텐데····.’ 길드장이 무서운 장우형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정운은 더 무서웠다. 같은 급의 공포라면 항상 가까이 있는 공포가 더 무서운 법이다. 결국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일단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관해서는 저희 마스터에게 그대로 고하···.” 핑!! 말하던 장우형의 뺨을 스치고 한발의 화살이 지나갔다. “빨리 꺼져. 안 그러면 다음에는 미간 정 중앙을 꿰뚫을 거다.” “···········.” 장우형은 몇몇 길드원들을 데리고 그대로 도망가듯이 꺼져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가자 정운은 잠시 로브를 쓴 유저를 흘깃 보고는····. “흑토. 가자.” “히히힝···.” 그대로 흑토를 몰고 가 버렸다. 마치 관심도 없다는 듯이 지나가 버리는 정운을 보고 로브를 뒤집어 쓴 유저가 급하게 불렀다. “저기··· 잠시만요!!!” 상당히 아름다운 미성에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면서 멈춰 섰다.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 같은데····.’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정운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초보 유저로 들어온 유저들 중에 정운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시하고 다시 가려고 했지만 여자는 다시 정운을 불렀다. “잠시만요!! 제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예!?” 정운은 여자의 간곡한 부탁에 일단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지?” “저기···. 마을 까지만 좀 데려다 주시면 안 될까요? 초보자 보호 기간이라는 것이···. 끝났어요.” 마지막에 가서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의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차가운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착각하지 마라.” “···예?” “내가 널 구했다고 착각하고 거기에 선의가 있다고 착각하고, 내가 널 구할 거라고 착각하고, 널 구할 누군가가 있다고 착각하지 말란 말이다.” “··········.” 정운의 목소리는 마치 진리를 설법하는 선인의 가르침 마냥 절대적인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듣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질릴 것처럼 확고한 신념의 근거는 그동안 정운이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세계에서 겪은 경험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널 구한 것이 아니다. 아까 널 괴롭히고 있던 말벌파라는 길드 놈들이 꼴 보기 싫었던 것 뿐이지.” “그건···. 하지만 절 도와 주셨잖···.” 처억!!! “꺄악!!” 말하던 여자의 목에 어느새 정운의 창이 겨눠 졌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정운은 그 상태로 그녀에게 말했다. “착각하지 말라고 했다. 널 도운 것은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니다. 애당초 이 빌어먹을 게임의 세계에서 순수한 호의로 누군가가 널 도울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라. 서로 이용하고 견제하고 뒤통수 치고···.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다. 그게 바로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인 것이다. 알겠나?” 정운의 말에 상대는 잠시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지만 이내 일어나서 정운에게 말했다. “당신의 말은 틀렸어요.” 자기 목에 창끝을 겨누고 있는 상대에게 당당하게 틀렸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정운은 살짝 놀랐다. ‘깡이 좋은 건가? 아니면 개념이 없는 건가?’ 아마도 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지간한 근성 가지고는 말벌파의 협박에 진작에 굴복 했을 텐데. 눈앞에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여자는 정운이 구해주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포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힘과는 별개로 제법 근성이 있는 인간인 것 같았다. 특히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처럼 욕망에 넘어온 이기주의자들이 만연한 게임의 속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하지만 근성만으로 세상의 결과는 따라와 주지 않는 법이다. 근성은 상대를 감탄 시킬 수는 있어도 그 근성에 타당성과 정당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냥 악바리 취급에서 끝날 뿐이다. “내가 뭘 틀렸다는 거지?” “당신은 나를 도와주고 있잖아요?” “그건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을 텐데?” “아니요. 도와주고 있어요.” “그럴 증거라도 있나?” “지금 이렇게 제 앞에서 저에게 충고를 해 주고 있잖아요? 이걸 도움이 아니면 뭐라고 하죠?” “··············.” 정운은 할 말이 없어졌다. 말문이 막힌다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여자의 말대로 말벌파를 쫒아낸 것은 결과일 뿐이라고 해도···. 그 후에 눈앞에 있는 이 여자에게 이런 저런 충고를 한 것은 필요 없는 오지랖. 그녀의 입장에서는 도움이었을 것이다. 부정할 말이 없진 정운에게 여자가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뻔뻔할지 모르지만 전 여기서 마을까지 돌아갈 능력이 없어요. 살려주신 생명에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시고···.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정운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중얼 거렸다. “····말발 좋은 여자군.” “예?” “타라.” 정운은 결국 그녀를 흑토의 뒤에 태웠다. 그녀의 말대로 마을까지만 데려다 주는 것이라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것으로 끝날 일이었다. 정운은 그녀를 뒤에 태우고 흑토의 배를 찼다. “좀 달리자.” “히이잉!!” 흑토는 투레질을 하고는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원래 1급 전마로 시작한 흑토였지만 지금은 영수의 레벨에 도달했다. 그런 흑토가 제대로 달리기 시작하자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꺄악!!!” 한줄기의 바람처럼 달리는 흑토의 뒤에서 여자는 정운을 꼭 붙잡고 뒤에서 강하게 달라 붙었다. 그나마 정운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써서 제법 느리게 달리고 있는 거였지만··. 이것만 해도 그녀에게는 충분히 빠른 속도였다. 떨어지지 않게 필사적으로 붙어 있는 그녀의 행동 덕분에 그녀의 부드러운 여체가 정운에게 밀착했다. ‘·····불륨있네.’ 여자가 오랜만이라서 일까? 정운은 잠시 딴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뭐.. 새삼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치채셨겠지만 여기 로브녀가 진짜입니다. 문시영은 페인트였구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8화 바람처럼 질주한 흑토 덕분에 둘은 금방 마을에 도착했다. 일단 마을에 도착하면 어느 정도 안심이었다. 마을 내부에서는 플레이어리 위해를 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 여러 가지로 위험을 리스크를 무릅쓰거나 조건을 모두 갖추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까지 해서 마을 내부에서 플레이어 킬러를 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시도 할만한 고위급 유저들은 모두 자신의 저택을 갖추고 철옹성이나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공략은 불가능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괜찮을 거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상대 유저를 내렸다. 그녀는 로브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있었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정도는 정운도 알 수 있었다.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정운은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차피 자신의 이름 정도는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 살아가다 보면 금방 깨달을 일이었다. “박정운.” “그렇군요. 제 이름은····. 저기. 비밀이에요.” “·············?” ‘뭐 하자는 수작이지?’ 말 해줄 것 같다가 말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여자였지만···. 사실 몰라도 상관없었다. “그럼····.” 정운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그 순간까지···. 절대로 다른 사람과의 인연은 만들 생각이 없었다. 문시영의 배신 이후로 정운 스스로 정한 절대적인 룰 이었다. 그러니 저 로브 여자도 더 이상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때는 말이다. 다음날 정운은 사냥을 가기 위해 저택의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꼴 보기 싫은 쌍판들이군.” 말 그대로 보기 싫은 인간들을 봐야 했다. 바로 말벌파의 길드원들이었다. 대략 30명은 되어 보이는 놈들이 모두 문 밖에서 정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최고로 꼴 보기 싫은 인간은 바로 말벌파의 길드장인 구민구였다. 구민구는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놈의 모습은 항상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 하면 척 봐도 눈에 확 띠는 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격투기 선수 중에 버터빈이라는 선수가 있다. 신장 182cm에 체중이 188kg인 선수다. 이 구민구의 체형은 그 버터빈이라는 선수와 똑같아 보였다. 그만큼 비대하다는 말이다. 통통함을 아득하게 초월했고 뚱뚱함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비대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커다랗고 눈에 확 띄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얼굴은 항상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영화에 나올법한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기분 나쁜 놈이었다. 이 놈이 바로 말벌파라는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길드의 길드장이다. 저렇게 보여도 겉모습하고 그라운드 제로의 능력치는 별로 상관없어서 놈의 레벨은 정운이 추정하기로 60대 중반 정도였다. 몇 번 보스몹 공략에서 몇 번 레이드를 같이 뛰면서 봤는데 저 거대한 체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적을 공격하는 권법가였다. ‘게임 밖의 세계라면 뛰는 것은 불가능 하고 굴러서 이동해야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런 놈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안 물어봐도 뻔하다. “어제 여자 찾아서 온 거냐?” 정운이 먼저 묻자 구민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내 꺼다. 넌 여자에 별 관심 없었을 텐데?” “넌 여자가 너무 많았을 테고 말이야. 네 일벌들이 평소에 물어오는 초보 여자 유저들이 널리고 널렸을 텐데?” 정운의 말에 구민구는 노성을 버럭 질렀다. “시끄럽다!!! 당장 내 여자를 내 놔!!!”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구민구에게 말했다. “약 좀 올렸더니 꿀단지 뺏기고 광분한 곰돌이 푸가 따로 없군.” “뭐야!!?” “그 여자는 어제 버렸다. 일단 마을에 옮겨 주기는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내 알바 아니라서 말이야.” 정운의 말에 구민구는 잠시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 말 진짜겠지?” “아니면 어쩔 건데? 나하고 싸워 볼 테냐?” “···········.” 정운의 말에 구민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운과 말벌파가 싸우면 당연한 얘기지만 정운이 질 것이다. 정운이 71레벨의 고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벌파의 길드장인 구민구는 65레벨이다. 1대1이면 이길 수 있지만 뒤에 있는 30여명의 길드원들이 문제다. 놈들 대부분이 20~30레벨의 유저들이다. 간간히 40레벨의 유저도 섞여 있다. 저 놈들이 다 덤빈다면 정운이라고 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대1로 싸울 때의 얘기다. 정운이 흑토를 타고 작정하고 움직이면 그때는 말벌파의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다. 정운이 몇 명을 처리하고 도망치고 또 나중에 다시 와서 처리하고 하는 식으로 싸운다면 말벌파는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 전멸 할 것이다. 일전에 흑곰파라는 놈들이 그런 식으로 정운과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사건이 바로 그것 이었다. 평균 레벨 40의 유저들이 20명 이상 있는 중견급 길드였던 흑곰파는 사냥터의 영역 다툼을 두고 정운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때 정운은 45레벨의 이제 막 애송이 티를 벗기 시작한 유저에 불과했기에 흑곰파는 정운을 얕봤다. 약간 협박하면 알아서 자신들의 사냥터에서 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정운이 흑토의 기동력을 살려서 흑곰파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하기 시작하자 곤란에 빠진 것은 흑곰파였다. 흑곰파 중에서도 몇 명은 말이나 전차를 탈 것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전설의 명마로 클래스 업을 했던 흑토의 발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박정운 대 흑곰파의 싸움은 거의 3개월에 걸쳐서 벌어졌고 정운은 이때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상대 유저를 죽였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PK는 그냥 캐릭터 한 번 죽이고 경험치 깎이게 하는게 아니다. 실제 살인인 것이다. 정운은 처음에 사람을 죽이고 크게 흔들렸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로 잡고 무참하게 적들을 죽여갔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대부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짓밟아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자들뿐이었다. 결국 흑곰파와 정운의 전쟁에서 승리자는 정운이었다. 흑곰파를 해체한 정운은 그때부터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사이에서 위험인물로 찍혔다. 솔직히 말해서 말벌파라고 해서 그런 정운하고 적대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 운 좋게 이용해 먹으려고 끌어 들였던 초보유저인 그 여자에 대한 길드장 구민구의 강렬한 집착 때문에 이렇게 단체로 모인 것이다. ‘제길 하필이면····.’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년을 그냥 길드로 끌어 들이는게 아닌데···.’ ‘망할 또라이들 사이에 끼어서 이게 무슨 신세인지···.’ “····박정운. 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했잖아. 어쩔 거야. 싸울 거야? 말 거야?” 정운의 말에 구민구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다가 정운에게 말했다. “그 여자에게서 손때라. 알겠나?” “내 알바 아니야. 네 부하들 데리고 쌍판이나 치워.” “············.” 정운의 말에 구민구는 부하들과 함께 일단 자리에서 물러났다. ‘적어도 저 놈이 이제까지 초보 유저를 감쌌다거나 끌어 들였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으니···.’ 구민구는 정운의 말을 일단 믿고는 물러났다. 대부분의 상위 유저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이루기 위해서 하위급 유저를 끌어 들여서 조건을 정하고 혈맹을 맺고 길드를 정한다. 하지만 정운은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소문에는 초보 유저 때 어느 여자하고 딱 한 번 혈맹을 맺었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박정운 그 놈이 감싸주고 있는게 아니라면 아마도 여자는 지금쯤 저층에서 사냥에 힘쓰고 있겠지···. 거기서 덮치자.’ 구민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길드원들을 데리고 저층의 사냥터로 나갔다. “쿼어어어!!!” 촤아악!!! 정운은 검으로 오우거의 허리를 반 토막 냈다. 흑토의 질주력에 정운의 검격이 더해지자 두꺼운 바위 같은 오우거의 근육도 수수깡처럼 썰어 버릴 수 있었다. “후우우····. 쓸 만한 아이템이 전혀 안 나오는군···.” 사냥감을 바꿔서 오우거와 미노타우르스를 잡으러 왔는데 그다지 좋은 아이템은 나오지 않자 정운은 살짝 실망했다. 나온 아이템이라고 해도 대부분 재료 아이템이었다. 오우거의 가죽, 오우거의 힘줄, 미노타우르스의 뿔, 미노타우르스의 심장. 그나마 나온 아이템 중에 가장 쓸 만한 것은 미노타우르스의 배틀 액스였지만···. 정운이 쓰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냥 상점에 가져다 팔면 얼마정도는 돈이 되기는 하겠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돌아가자 흑토야.” “히이잉···.” 정운은 흑토를 타고 평소보다 좀 이르지만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재수 없는 것들 쌍판을 봐서일까? 영 운수가 사납군.” 노력에 비해서 아이템이 그다지 나오지 않았다. 정운은 피곤함과 짜증에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에 돌아가자 정운은 바로 집으로 가기 전에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상점에 팔아 버리기 위해서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으로 가는 길에 정운은 몇몇 유저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그러니까···. 말벌파 놈들이 갑자기 1층 사냥터를 다 지키고 있다고?” “그래. 그리고 포탈 포인트마다 사람들을 배치하고 있다고 하던데? 누구를 찾는 것 같애.” “말벌파 놈들이 찾으려는 초보유저?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그 길드의 길드장이 찾는 인간이면 여자겠지?” “그렇게···. 아마도 무진장 예쁜 여자일거야. 그 돼지 여자 밝히는 것 유명하잖아?” 정운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말벌파가 뻘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피식 웃었다. ‘아니지···. 웃고만 있을 일은 아닌가? 그 돼지 성격에 아마도 계속해서 찾지 못하면 역시 내가 숨겨두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나한테 시비를 걸 거야.’ 정운은 거기까지 생각이 뻗치니 살짝 짜증이 났다. 말벌파와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귀찮았다. 그것도 매우매우 귀찮았다. 그 놈들과 실랑이가 벌어지면 일단 한쪽이 끝장나기 전에는 제대로 된 사냥은 불가능 할 것이다. 예전에 흑곰파와 싸웠을 때도 그랬던 경험이 있었다. 사냥은 거의 포기하고 흑곰파를 상대로 철저한 게릴라전만 하느라고 골드를 거의 벌지 못했었다. 그나마 흑곰파를 다 잡아 죽이고 나자 놈들의 재산이 정운에게 한꺼번에 귀속 되었던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지만 말이다.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와서 가장 큰 돈을 만졌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어쨌든 정운으로서도 그런 마찰은 이제 다시는 사양이었다. 그 여자가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그리고 설사 자기 눈앞에서 말벌파에세 쫒기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무시할 것이라고 굳게 생각했다. ‘뭐···. 애당초 그런 우연이 또 생길 리가 없지만···.’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거기 서라!!!” “서지 못해!!?” “···헉··· 헉·····.” 정운의 눈앞에 로브를 휘날리며 얼굴을 가리고 뛰어가는 여자와 그리고 약간 떨어져서 추적하고 있는 말벌파의 똘마니들이 보였다. “······제기랄.” 다짐이 약해지려고 하는 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9화 “제기랄···. 사람 피곤하게 하고 있어.” “얌전히 따라와. 안 그러면 크게 다칠 줄 알아.” 말벌파의 똘마니들이 로브를 둘러싼 여자를 협박하자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도와줄 사람을 찾았지만···. 어제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벌파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힘이 있다고 알려진 길드고, 그런 길드와 마찰을 일으킬 유저는 상위급 유저들 빼고는 없었다. 아니 기본적으로 상위급 유저라고 해도 어지간하면 생판 모를 사람을 돕지는 않는다.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자신의 욕망을 제일로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이기주의자가 이기주의자를 도울 때는 서로간에, 아니면 하다못해 최소한 어느 한쪽에라도 매리트가 있을 때 뿐이다. 주변의 유저들은 철저히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딱 한명을 빼고 말이다. “거기 말벌파 쓰레기들.” “누가··· 박정운?” “그래 나다. 일단 물러나지?” 정운이 둘에게 경고를 하자 그들은 자기들 끼리 잠시 마주보고 생각하다가 한 명이 말했다. “여기는 마을 안이다. 여기서 PK를 할 생각이냐?” 마을 안에서 PK를 하면 NPC들 사이에서 평판이 내려가서 상점에서 바가지를 쓰게 된다. 거기다 벌금으로 10만 골드를 내야 하기도 했고 말이다. 단순히 PK만으로도 이 정도의 패널티가 주어진다. 여죄의 유무에 따라서 패널티는 더 커질 수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평민이고 난 귀족이지. 그럼 NPC들의 패널티는 없어.” “·········.” “그리고 상위급 유저한테 10만 골드 정도는 그냥 깽값이다. 한 번 물어볼까?” 정운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말벌파의 두 명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가 일단 자리를 피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위에 보고 할 겁니다. 괜찮겠죠?” “그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는 듣기 싫지만···, 네놈들 하는 꼴은 더 역겨워.” “·············.” “·············.” “3초 줄 테니 꺼져라. 안 그러면 20만 골드 물고 마는 수가 있다.” 정운의 말에 둘은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달려서 도망갔다. 정운은 일단 둘을 처리하고 나서 로브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정운을 보고 입가를 살짝 올리면서 말했다. “또 도와 주셨군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만····.” 로브녀는 정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 물러났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망설였다. 만약 여기서 로브녀가 정운에게 도움을 청했거나···, 혹은 예전에 문시영이 했던 것처럼 자기 몸을 미끼로 정운에게 뭔가 거래를 하려고 했다면···. 그랬다면 정운은 절대로 이런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그냥 감사만 표하고 그대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는···.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서 의외의 대사를 말했다. “좀 도와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정운이 로브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오면서 백번 정도는 생각한 고민이었다.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이제까지 혼자서 잘 해오고 있었는데, 문시영의 배신 이후로 다시는 그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납득도 가지 않았다. 지금 자기가 왜 이러는지 조금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오랜 세월동안 다른 사람과의 연결 고리가 없다보니 외로웠을 수도 있다. 아니···. 아마도 그게 가장 정확한 원인일 것이다. 마음의 고리를 아무리 단단하게 잠근다고 해도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다른 사람의 존재가 없으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정운은 스스로를 잘 컨트롤 했다고 여기고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불만이 쌓여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우연한 타이밍에 우연한 상황으로 연결된 것 이었다. 그걸 정운 스스로는 아직 자각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와아····. 여기가 당신 집이에요?” “그래. 안으로 들어와.” 정운은 자신의 저택에 처음으로 자기 이외의 인간을 들여 놓았다. 정운이 들어와. 라고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유저도 이 안으로 들어 올 수는 없다. 즉, 이 저택은 다른 유저들의 자택과 마찬가지로 정운에게 있어서는 모든 긴장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요새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사람을 들여 놓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정운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들어왔으니, 잠깐 파티 좀 맺어.” “예? 파티는 왜·····?” 한 번 말벌파에게 이용당한 전력이 있어서일까? 그녀는 정운이 파티를 맺자고 하자 살짝 경계했다. ‘도와주려고 해도 저러는군·····. 하긴 초보 유저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집이라는 것은 각 유저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안전 지역이야. 여기서 공격 받을 일을 배재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사람은 파티를 맺는 거다. 아니면 혈맹원이 되거나.” “아·····. 그런가요.” “그래.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띠링!! 정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보낸 파티창이 정운의 눈앞에 도착했다. “·········.” “왜요?” “아니, 아무것도····.” ‘·····이 여자는 의심도 모르나?’ 정운은 속으로 한 숨을 살짝 내쉬고는 파티를 맺었다. ‘아마도 이런 성격이기에 말벌 파 놈들의 수작에 걸린 거겠지. 그 놈들 초보 유저를 낚을 때는 무척 상냥하게 대하니까···.’ 그게 말벌파의 수법이었다. 처음에는 상냥하게 대하지만 일단 혈맹을 맺고 나면 그 후에는 뼛속까지 이용해 먹는다. [이슬기 님과 파티를 맺었습니다.] 파티를 맺고 나서야 정운은 그녀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이슬기? 이게 당신 이름인가?” “예.” “흠···. 아이돌 이름하고 같네.” 정운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중얼거린 말이었다. 하지만·····. 이슬기가 로브를 스르륵 내리자 정운은 놀라 수밖에 없었다. “제가···. 그 아이돌 이슬기 맞아요.” “·······리얼리?”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로 와서 아이돌을 보게 될 줄은 정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슬기. 여성 5인조 그룹인 밀키웨이라는 걸그룹의 아이돌이다. 인기도 있어서 종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거나 TV의 광고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여기 그라운드 제로에서 보게 될 줄은 정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많이 놀라셨나요?” “뭐···.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상관없어.” 정운은 이내 마음을 진정 시켰다. 어차피 여기서 아이돌 만났다고 사인 해달라고 하기도 뭐했다. 그녀가 여기에 있는 사정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간의 금기 중에 금기가 바로 왜 이 게임에 들어왔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정운은 그냥 그녀의 과거를 묻어 버리기로 했다. “저택안의 식재료나 시설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아. 편히 쉬어.” “···아무것도 안 물어 보는 건가요?” 정운의 쿨 하다 못해서 무관심하기까지 한 반응에 이슬기는 살짝 놀랐듯 했다. 그런 이슬기에게 정운이 말했다. “내가 물어보면 대답은 할 건가?” “그건······. 예.” “그 대답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 “없지? 그럼 물어보나 마나야.” 정운의 말에 이슬기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과연···, 그런 거군요.” “일단 쉬어. 앞으로의 일은 좀 있다가 얘기하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먼저 씻기 위해서 저택의 노천 온천으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온 아이돌의 존재 보다는 오늘 하루를 마감하면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뭐!!? 그 새끼가 끼어들었다고!!!?” 구민구는 부하의 보고를 듣고 벌컥 화를 냈다. “예. 길드장님. 저희가 경고를 했지만 전혀 먹혀 들지가··· 컥!!!” 보고를 하던 부하는 구민구의 손에 목을 잡혀서 발이 대롱대롱 거릴 정도로 높게 올려졌다. “장난 하는 거냐? 그래서 그 년을 놓쳤다고?” “컥···. 죄송··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제발···. 으으윽····.” 뿌지직!! 용서를 빌던 말벌파의 길드원 한명은 그래도 머리가 으깨져서 죽어 버렸다. 말벌파의 길드장인 구민구의 클래스는 권법가. 보통 인간의 머리 정도는 악력만으로 부셔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보통 유저가 유저를 죽이면 페널티가 들어가지만 구민구가 방금 전에 부하를 죽인 것은 괜찮았다. 길드원들은 보통 혈맹으로 묶여 있는데···. 이들이 구민구의 이름을 빌려서 말벌파라고 건들거리며 행동하는 대신에 이들은 매우 불리한 혈맹의 계약에 묶여 있었다. 혈맹에서 갑인 구민구가 을의 혈맹원을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다. 애당초 그런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정운처럼 특수한 몇몇의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어느 정도 레벨을 쌓기 위해서는 일단 앞선 유저의 도움이 필요한게 사실이다. 도움 없이 올라가서 도달 할 수 있는 한계는 보통 40정도 전후? 그것도 중간 클래스 정도는 되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40레벨에 도달하려면 1년 2년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해 보다가 안 되는 자들은 대부분 길드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길드장에게 거의 노예 계약이나 다름 없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 중에서도 말벌파의 계약은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생사여탈은 물론이고, 매달 마다 일정 이상의 골드를 상납금으로 바쳐야 했다. 거기다 툭 하면 구민구가 부리는 억지에 맞춰서 초보 여자 유저중에 얼굴이 반반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상납해야 했다. 이미 한 번 들어온 이상은 죽기 전에 빠져나가는 방법도 없었다. 한쪽에서 해지가 가능한 파티와 달리 혈맹의 경우는 일단 양쪽 모두가 동의를 해야 해지가 되는데···. 구민구는 기껏 잡은 노예들을 절대로 해방 시켜주지 않았다. 뭐 하러 해방 시키겠는가? 모두 자신의 전력인데 말이다. “제길, 박정운···. 그 놈 그랬단 말이지··.” 어쨌든 지금 그 말벌파의 보스인 돼지벌이 화가 잔뜩 났다. 놈은 초조한지 자기 손톱을 물어 뜯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박정운의 소문은 놈도 들어서 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자칫잘못 하면 자기가 이제까지 이뤄온 말벌파가 붕궤 될 수도 있었다. 보통은 그런 위험을 무릅쓸 바에는 다른 여자를 찾는게 보통이다. 아무리 이슬기가 예쁜 미인이라고 해도 보통 자기 목숨보다는 더 귀중하지 않지 않은가? 하지만 구민구는 달랐다. 왜냐 하면 구민구, 그는 무척이나 특이한 성벽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구민구의 성벽···.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뭐··. 사실 세상에 수많은 남자들이 아니 여자들 까지 포함해서 인간들이 있고···. 그 사람들 마다 조금씩 남사스러운 성벽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민구 그의 성벽은 좀 특이하다. 그는 소위 말하는 유명인, 특히 연예인들 같은 여자들에게 특히 더 끌리는 성벽이었던 것이다. 모든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들에 동경의 감정을 품고 있고 때로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로맨스를 상상하기도 하지만···. 이 구민구의 경우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집착적이었다. ============================ 작품 후기 ============================ 연재 일주일 만에 일단 선작 1,000은 넘겼네요. 일단 페이스는 나쁘지 않은데 상위권에 랭크인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겠죠. 신작을 시작할 때는 항상 이런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0화 구민구. 그는 원래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별다른 특기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항상 구석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렇다 보니 결국 그는 바로 불량학생들에게 찍혔고 왕따라는 이름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불량학생들의 왕따로 전락하면서 우울했던 성격은 거기에 비굴함까지 더 해지면서 그의 인격을 철저하게 좀 먹어 갔다. 바닥에 바닥을 기는 인간일수록 위를 향한 동경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구민구에게 있어서 가장 동경의 대상은 바로 TV에 나오는 아름다운 연예인들이었다. 화려하고, 빛나고, 항상 즐거워 보이는 그들···. 사람들이 그들을 칭찬하는 것의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만큼이라도 자신에게 세상의 사랑이 돌아왔으면 하고 바랬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왕따가 계속되면서 그는 점점 더 힘들어져 갔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살을하기 위해서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간 그는 거기서 자신의 핸드폰에 온 문자로 그라운드 제로를 만났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그의 인생은 극단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라운드 제로를 향해서 얻은 것은 자신의 안온. 괴롭힘이 없는 생활과 자신을 고통 스럽게 했던 양아치들에 대한 복수였다. 복수의 과정에서 양아치들이 전부 휠체어 신세를 지고 다시는 세상을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그래도 거기서 멈췄다면 그는 그라운드 제로라는 제로섬 게임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안온이 갖춰진 다음 구민구가 손을 뻗은 것은 욕망의 발산이었다. 보통···,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법, 도덕, 예의, 신앙 인간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에 이렇게 많은 조정 장치들이 필요한 것은 순자의 주장대로 모든 인간이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민구는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고통에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해서 자신이 평소에 동경하고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의 후광과 함께 바라보기만 했던 연예인들을 자기 곁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포인트를 어마어마하게 사용해서 그는 여성 연예인 중에 하나를 자신과 친분이 유지 할 수 있는 인연으로 만들었다. 다민아 라는 이름의 여배우였다. 다른 또래들이 동경만 하고 있던 연예인이 자신과는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고 그리고 친분도 유지하고 있었다. 뭔가 자기 자신이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이때의 결과는 상당히 괜찮게 나타났다. 인간은 사소한 자신감으로 변화하기도 하는 법이다. 구민구는 자신감이 생기자 약간이지만 성격도 밝아졌고, 조금은 평범한 멘탈에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 버렸다. 계기는 별것 아닌 상담이었다. 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다민아라는 여배우와 그의 관계는 일종의 친구 같은 관계였다. 평범한 고등학생과 아무 접점도 없던 여배우와의 사이가 이렇게 되는 것은 좀 이상했지만···.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상대가 구민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앙금도 모두 풀어 놓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구민구에게 푸념을 하듯이 자신의 괴로움을 말했다. 바로 그녀가 데뷔초에 배역을 따기 위해서 성상납을 강요받은 적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 응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구민구의 안에서 뭔가가 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여자와의 특별하고 긴밀한 관계가 자신의 자신감의 근거였는데···. 그런데 이 여자가 특별하지 않으면? 이 여자의 광체가 거짓말이면? 그렇다면 자신의 자신감도 근거 없는 거짓말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멋대로 우상화 하고···. 거기에 멋대로 실망하고···. 구민구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이성적이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이 욕망에 이상을 잃으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성을 잃은 구민구는 폭주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다민아를 강간해 버렸다. 다민아는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고 마음을 열었던 친구라고 생각한 구민구가 갑자기 짐승처럼 돌변해서 자신을 범하자 쇼크로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처럼 망연자실했다. 구민구는 그녀를 범하고 그녀의 몸에 남아있는 자신의 능욕의 흔적을 보고 삐뚤어진 정복감에 도취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다민아의 눈을 마주하자 덜컥 겁이 났다. 그제야 구민구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임을 깨달았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는 뒷감당이 두려워진 구민구는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해서 그녀를 세뇌했다. 사실 여기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거나···. 기억을 약간 조작하는 정도로 해도 충분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구민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민구는 다민아를 자신에게 거역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세뇌였다. 이 후에도 그녀를 계속해서 범하기 위한 삐뚤어진 욕망의 말로가 그를 그렇게 악마의 길로 이끌었다. 모든 악행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려운 것은 처음 뿐이라는 것이다. 처음 이후부터는 점점 도덕심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아무리 끔찍한 범죄라고 해도 죄악감 없이 태연하게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실제로 정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범죄자들의 선처는 사회적으로 범죄의 재범률을 높이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구민구가 딱 그런 경우였다. 처음 이후로 몇 번이고 다민아를 범하고 난 이후로 그는 수시로 그녀를 범해갔다. 어느새 다민아는 그가 작은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 삐뚤어진 욕망을 채워주는 노리개에 불과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 구민구가 느낀 것은···. 이제까지의 소소한 자신감과는 전혀 종류가 다른 감정. 어쩌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경험해 볼 지도 모르는 감정. 바로 우월감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우상을 독점하고 더럽히고 그리고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타락 시켰다. 그것을 자각하자 단순한 성관계 이상의 쾌감이 그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그는···. 더 이상 구원의 여지를 남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삐뚤어진 경험을 한 구민구에게는 끔찍한 버릇이 생겨 버렸다. 구민구는 여성 연예인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강하게 집착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포인트를 다 써서 총 세 명의 여성 연예인들을 자신의 성노예로 만들기 까지 했다. 이미 그때쯤에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많은 여자를 자기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역겨운 이유로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에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다. 여기 들어오고 나서는 미친 듯이 후회했었다. 여기서 나갈 수도 없었고 여기에는 자신의 성적 대상이 되어줄 유명인도 없었다. 결국은 그냥 일반 여자들이나 NPC들도 안아 봤지만 자신의 욕망을 다른 사람들이 동경하는 우상을 통해서 더럽힌다. 라는 미쳐버린 욕망을 푸는 것은 불가능 했다. 결국 그는 미친 듯이 게임에 몰두했고, 반드시 게임에서 나가서 다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말벌파도 그래서 만든 것이다. 삐뚤어지고, 왜곡되고,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진 욕망의 덩어리···. 구민구라는 남자의 존재를 표현하려면 이렇게 밖에는 표현 할 방법이 없었다. “절대 포기는 할 수 없다··. 어떻게 찾은 연예인인데····.” 구민구는 이를 갈면서 중얼 거렸다. 그에게 있어서 이슬기는 사막에서 만난 한 모금의 물 같았다. 애당초 없었다면 모를까?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는 이상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미칠 것 같은 욕망을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여차하면 박정운 그 놈하고 전쟁을 해서라도 반드시······.” 구민구는 이제 끝없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한편 구민구의 집요한 욕망의 대상이 되어 있는 이슬기는 지금 연예인 시절에도 못해보고 있던 호강을 하고 있었다. 넓은 실내 목욕탕에 들어오니 깔끔한 인상의 여인 두 명이 들어와서 그녀에게 말했다. “손님. 목욕 시중을 들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저희 저택에 들어오신 이상은 손님 대접에 소흘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디 저희들 시중을 받아 주십시오.” “····예. 그럼····.” 시종NPC들의 말에 이슬기는 얼떨결에 그녀들의 시중을 받았다. ‘이렇게 챙겨주라고 까지 했나?’ 이슬기는 정운이 이 여자들에게 시켜서 자신을 이렇게 극진하게 대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정운은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운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귀족의 계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놓고 있는 집사와 메이드 NPC들의 경우는 저택의 관리에 관해서는 오토 매뉴얼이 인스톨 되어 있다. 요리, 청소, 저택의 관리. 그리고 손님의 대접까지 그 오토 매뉴얼의 일부인 것이다. 정운이 슬기를 데리고 온 순간 그녀는 이 저택의 손님이 되었고, 정운에게 있어서 별도의 명령이 없는 이상 이 저택의 NPC들이 그녀를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슬기는 나긋나긋한 손길과 부드러운 바닐라 향의 향료에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초호와 뷰티샵에 가서 관리를 받았던 적도 있었던 그녀다. 지금 그녀는 그때 못지않은 편안함에 취하고 있었다. 목욕과 함께 그녀들의 마사지를 받아서 전신의 근육이 싹 다 풀린 그녀는 욕실을 나오자 준비된 옷을 입으려 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메이드들이 그녀를 데리고 간 방에는 여성용 드레스가 수백 벌은 넘게 있었고, 거기다 온갖 악세사리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슬기는 어안이 벙벙해 하면서 메이드들에게 말했다. “이건···? 그 사람 취향인가요?” “손님들을 위한 기본적인 배려일 뿐입니다. 특별히 원하는 취향이 없다면 저희가 세팅해 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아이돌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항상 협찬 받은 의상이나 코디들이 추천하는 의상을 즐겨 입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꾸며 준다는 것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그녀는 메이드들이 시키는 데로 드레스를 입고, 악세사리를 맞추고, 거기다 헤어스타일도 세련되게 살짝 틀어 올려서 세팅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갖추고 나자···. “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녀도 살짝 놀랬다. 연말의 시상식에 가기 위해서 코디가 심열을 기울여서 세팅을 했을 때 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변한 자신이 거기에 있었다. 머리를 살짝 틀어 올렸지만 뒤편은 자연스럽게 늘어트렸기 때문에 나이 들어 보인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어려 보였다. 연하게 한 화장은 피부를 하얗게 보다는 뽀얗게 보이게 했다. 이런 딱 정적선을 찾아내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완벽하게 그 적정선이 걸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드레스····. 노출면적은 거의 없지만 몸에 딱 맞게 살짝 달라붙어서 몸의 굴곡을 여성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름답다. 라기 보다는 기품 있다. 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꾸민 그녀는 그대로 일층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1화 정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지?” 로브 하나 밖에는 없었던 그녀였는데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 정운이 오히려 놀라면서 묻자 슬기는 약간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건··. 저기 메이드씨들이 꾸며준 건데요? 당신의 지시 아니었나요?” “····아니. 아니야. 아마도 멋대로 한 모양이군.” 이 저택의 집사나 메이드들이 가끔씩 이렇게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동으로 척척 하고는 했다. 정운은 아마도 그렇게 된 일이거니 생각하면서 넘어갔다. 그녀가 자리에 앉고 50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다란 테이블에 요리가 차려졌다. 요리는 양식도 있고 한식도 있고, 딱히 정해진 격식은 없는 것 같았다. “···늘 이런 식으로 혼자 먹지도 못할 양의 식사를 하는 건가요?” “그래.” 정운은 뭐라고 변명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그렇다고 긍정해 버렸다. “좀 아깝네요···. 유저들 중에는 기본 생활도 어려운 자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놈들 사정이야. 내 알바 아니지.” “······예.” 정운의 냉정한 말이 슬기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냉정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난 왜 도와준 것일까? 내가 이슬기라는 것도 이제 알았을 텐데.’ 이슬기는 정운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도왔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말만 차가운 사람이지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저택에 들어와서 보니 인간이라고는··, 정확히 말해서 NPC들을 제외한 유저라고는 자신과 정운 둘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좋은 말로 속아서 넘어간 말벌파에서는 한 저택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유저는 정운 한 명 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 말은 정운이 이렇게 자주 사람을 돕는게 아니라 자신만 특별하게 예외였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아이돌 이슬기라는 것을 알고 그랬다면 혹시 어느 정도 납득이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을 이 저택에 들여놓기 전에는 자신의 정체를 전혀 몰랐다. 얼굴 한 번 보여 달라는 말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혹시 연쇄 살인마 같은 것은 아니겠지? 여성을 한명씩 꿰어서 지하실에서 무참하게 살해하고 다음 사냥감을 데리고 고는·····.’ 슬기가 예술가 특유의 혹시나 하는 상상의 나래를 평치고 있을 때 정운이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연쇄 살인마 아니죠?” “······응?” “····아니, 그게···. 타이밍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니에요.” 슬기는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고, 정운은 자신의 어디가 연쇄살인마 같은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기? 아까 뭐라고 하셨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아··. 앞으로요. 그러니까···. 가능하면 게임을 클리어하고 싶은데요?” “···········.” 정운은 식사를 하던 손을 멈추고 슬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게임을 클리어 한다. 라는게 어떤 말인지 알기는 해?” “예. 말벌파에서 어느 정도 들었어요. 엄청 힘들다고····.” “·········.” 정운은 눈앞의 철부지를 어쩌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기 성적으로 턱도 없는 높은 수준의 대학에 원서를 밀어 넣겠다는 말을 하는 학생을 보는 교사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라운드 제로는 엄연히 말해서 엔딩이 있는 게임이다. 누군가가 게임을 클리어하기만 하면 그 순간 모두는 이 게임에서 일단 해방된다. 그리고 그동안 모음 포인트는 각자 정산되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저들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있다. 라는 것은 그 누구도 이 게임을 클리어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저들 중에는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있다는 유저도 있었다. 어차피 이 안에서 외부의 시간은 흐르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이 게임을 클리어 한다라는 것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었다. 정운을 포함해서 본격적으로 게임의 클리어를 노리는 공략파들은 엔딩을 보는 시기를 짧게는 50년, 길게는 300년까지 내다보고 있다. 그만큼 슬로우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기는 아는 건가? 이 여자는····.’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자신이 거기에까지 참견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게임의 클리어를 원한다면···. 너에게 약간의 장비를 나눠주지. 그리고 게임의 노하우도 약간 가르쳐 주고···. 숙소는 한동안 여기서 지내도 좋아.” “그 말은····. 도와 주신다는 건가요?” “······그래.” 정운의 말에 슬기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운이 자신을 왜 도와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그녀에게 있어서 정운의 도움은 정말 하늘의 도움이었다. “감사합니다. 꼭 이 은혜는 갚을게요.” “·····너 말이지. 의심은 안 하는 거냐?” 너무나 간단하게 믿는 그녀를 보고 정운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말했다. “저기··. 믿으면 안 되는 건가요?” “그걸 나한테 묻는 것 부터가····. 아니 됐어. 그냥····. 됐어.” 정운은 어째서 그녀가 말벌파에게 그렇게 쉽게 속았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어째서 이런 여자가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에 들어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사람을 의심할 줄을 몰랐다. 이 게임에 들어온 유저들 대부분은 자신이 욕망에 패배하고 들어왔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고···. 그리고 다른 유저라는 인간들 역시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잘 믿지 않았고, 협력이 필요할 때는 어디까지나 기브 앤 테이크의 룰 안에서 서로간에 협력을 구할 뿐이다. 그게 아니면 한쪽이 속여서 이용해 먹고 있는 관계이거나 말이다. ‘정말···. 이런 여자가 무슨 이유로 이런 욕망에 패배한 루저들만 있는 세계에 온 거지? 어째서?’ 정운은 정말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게 유저들 간에 최대의 금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묻어뒀다. 정운 본인도 누군가에게 그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과거 마음을 열었던 문시영에게도 말이다. 다음날. 정운은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으로 저택의 대문을 살폈다. 그러자 거기에는 말벌파의 인간으로 보이는 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끈질긴 놈들·····.’ 정운은 말벌파와 부딪히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상대하는 것은 귀찮았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언젠가 부딪히기는 해야 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놈들을 좀 애태울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초조하게 만들어서 평정심을 잃게 해 주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래층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래에 내려가자 비교적 편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을 하고 있는 슬기가 먼저 내려와서 정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음·····.” 정운은 저택의 아침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안녕히 주무셨냐는 말을 하는 것에 살짝 당황했다. 이런 소소하고도 당연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조차도 몇 년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무인도에 동떨어져 있다가 또 다른 포류자가 그 무인도데 들어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침은 간단한 샐러드와 햄, 그리고 빵과 우유로 때우면서 정운은 그녀에게 말했다. “한 동안 저택 밖으로는 나가지 말도록 해.” “예? 어째서죠?” 그녀의 질문에 정운은 태연하게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면서 대답했다. “저택 바로 앞에 말벌파 놈들이 진을 쳤거든.” “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찮아. 어차피 재수 없는 놈들이었으니, 언젠가는 부딪혔을 거야.” 정운의 말에도 슬기는 미안한 표정을 하고는 정운에게 말했다. “저기···. 제가 뭔가 힘이 되어 드릴 수는 없을까요?” 그녀의 말에 정운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제기랄·····.’ 순간 정운에게는 슬기의 얼굴이 문시영하고 똑같이 겹쳐졌다. 그리고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너희 여자들은 그런 생각 밖에는 못하는 거냐!?” “예?” “다리 벌리고 도와줄 남자를 찾는 거라면 말벌파의 길드장 새끼한테 가봐. 그 놈이라면···.” “잠!!! 잠깐만요!!!” 슬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정운에게 말했다. “지금··, 제 말을 어떻게 들으신 거죠?” “어떻게 라니? 네가 나한테 힘이 되어 드릴 수 없을까요? 라고 했잖아? 그럼 뻔한것 아니야? 이제 와서 아닌 척 할 생각···.” 짝!!! 정운의 뺨이 살짝 화끈···· 거리지 않았다. 대신에 화끈거리는 것은 싸대기를 날리려던 슬기의 손바닥이었다. 정운의 뺨이 아니라 그 전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힘껏 때렸으니 말이다. 아마도 무척 아플 것이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 바보냐? 지금 파티 상태에서 아군을 공격하는게 될 것 같았어?” “이익····.” 슬기는 분함에 눈물을 글썽 거렸다. 그리고는 정운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당신이···. 연예인에게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절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때문에····.” 눈물까지 글썽 거리면서 정운에게 따지고 드는 그녀는 상당히 필사적이었다. 마치 자기가 아끼는 장난감을 빼앗은 어른에게 달려드는 꼬마 같은 필사적임. 어른의 입장에서는 별것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정말정말 중요한 일인 그런 느낌···. 정운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도 알았고 말이다. ‘망할···. 나 사람 대하는데 완전히 서툴러 진 건가?’ 이렇게 대인관계가 서툴러진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NPC메이드에게 말했다. “그 여자 어디 있지?” “안내하겠습니다.” 정운은 그대로 그녀를 따라서 슬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슬기는 어제 자신이 묶었던 방으로 가 있었다. 정운은 그대로 문을 벌컥 열고는···. “할 말이 있어. 아까는·····. 어?” “·····뭐···, 뭐··· 뭐하는 거에요!!!?” 방안에서 슬기는 옷을 갈아입고 있는 상태였다. 연두색의 속옷 차림이 그대로 정운에게 드러났다. 그러자 슬기는 소리를 빽 질렀고 정운은 그대로 문을 닫고는 조심 스럽게 문 밖으로 나갔다. 딱히 당황하거나 얼굴을 붉힌다는 식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디 십대 소년도 아니고 말이다. “미안. 이러고 있는 줄 몰랐어.” 정운은 그 한마디를 하고는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갔다. 문 안에서는 슬기가 베개를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무시했다. 잠시 후···. ============================ 작품 후기 ============================ 분량이 여기서 딱 끊어졌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2화 <그녀 동료가 되다.> 똑똑··. “이제 들어가도 돼?” “·····예.” 약간 화가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슬기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정운은 문을 열고 안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거기에는 다시 완벽한 로브녀로 변신한 그녀가 있었다. “···떠나려는 건가?” “그런 여자로 취급 받으면서 여기 있을 이유는 없어요.” “············.” 정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속으로 참 답답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거야 그런 말을 한 것은 정운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비싸게 팔려고 하던 여자들을 수도 없이 상대하다 보니 결국 이런 편견이 생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시영 이 후에도 정운에게 여자로서의 성을 팔고 대신에 대가를 원하는 여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슬기에게 실수를 한 것이다. 여기서 정운은 이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대인관계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하면···. 지금 정운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미안, 내 실수야.” 바로 정중한 사과였다. “·······정말로, 실수였던 거에요?” “그래. 한 동안 정상적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오랜만이라서 잠깐 오해한 거야.” “···변명이 좀 섞이기는 했지만··. 사과는 받아 들일게요. 그리고 저도 미안해요.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셨는데 이렇게··· 그러니까 소리치고 화내고 해서····.” “됐어. 어차피 도와주기로 한 거야 내 변덕이었으니까···. 어쨌든 이제 진짜로 앞으로의 일에 관해서 얘기 좀 하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방안에 있는 티 테이블에 앉으며 메이드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시럽 없이. 넌?” “아···. 저는 모카라떼로 할게요··. 되나요? 모카라떼?” “예. 가능합니다. 슬기님.” 메이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서 방을 나갔다. “···혹시 그녀들이 못하는 것이 있나요?” “나도 몰라. 동 서양의 대부분의 요리를 만들 줄 알고, 가사 전반에 그것 말고도 정원 가꾸기에 테니스나 당구 상대까지···. 다재다능하더라고.” “과연····.” 슬기는 납득한 것 같았고 정운과 슬기는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 30레벨, 네가 최소한의 자기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레벨이야.” “30···· 얼마나 걸리나요?” “개인에 따라서 다르지. 난 9개월 정도 걸렸다.” “그 정도라면···.”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은 15년 걸렸지.” “············.” 정운의 말에 슬기는 붕어처럼 입을 뻥긋 거렸다. 그리고 메이드가 빨리도 커피를 가져왔고 정운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하지만 너에게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야. 내가 일단은 도와 줄 테니 말이야.” “아··.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인데···. 난 너를 도와 줄 거야. 비록 그게 나의 변덕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예. 감사합니다.” “그럼 넌 나를 어떻게 도울 거지?” “·······음······.” 슬기는 생각에 잠겼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가 상식이었다. 그냥 말벌파에서 숨겨주고 정운의 저택에 짱 박혀서 지낸다는 것 정도라면···. 그거면 그냥 변덕이려니 하면서 무상으로 도와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 게임의 클리어를 목표로 하고 있거 거기에 협력을 한다는 것은···. 정운에게도 상당한 양의 시간과 골드의 지출을 감수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까지 무상으로 도와 줄 수는 없었다. 정운의 질문에 슬기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결국 자기 스스로 정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항복하고 말했다. “······제가 어떻게 보답 할 수 있을까요?” “내 동료가 되어야지.” “동료라고요?” “그래. 정식으로 제안하는 거야. 네가 전력이 될 때까지 내가 키워줄게. 대신에 어느 정도 전력이 증강되면 그때는 나에게 도움을 줘.” “그건···. 저에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 같은데요? 제가 만약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맺는 것이 조건혈맹이라는 거야.” “혈맹···. 그거 맺으면 말벌파 사람들처럼 노예 계약처럼 되는 것 아닌가요?” “조건에 따라서 다르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혈맹이라는 것의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혈맹이라는 것은 일종의 계약서다. 쌍방이 서로 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을 적어서 혈맹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맺어지게 되면 그 다음 부터는 쌍방이 모두 혈맹을 준수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어기려고 해도 어길 수가 없다. 강제력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후우····. 그런거군요. 그럼 말벌파의 사람들이 그렇게 길드장에게 절대복종하고 있던 이유는···?” “굉장히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이지. 그 놈들이 왜 말벌파라고 불리는 줄 알아?” “···아니요? 잘···.” “처음부터 자기들이 그렇게 불렀던게 아니야. 그놈들 길드원들 끼리 레이드 뛰는걸 보고 유저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거지. 그 놈들 진짜 벌떼처럼 싸우거든.” “··············?” 이해가 안 간가는 표정을 하고 있는 슬기에게 정운이 부연 설명을 마저 했다. 말벌파의 레이드는 일종의 채거름이기도 하다. 초보 유저들을 어느 정도 장비를 갖춰준 다음에 레이드를 시키는데··.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보스 몹을 간신히 잡는 형태이다. 거기서 능력이 모자란 자들은 그대로 죽어 나가고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 형식으로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자들만 남기고 나머지 벌들은 침을 소모하고 다 죽어 버린다. 그게 바로 말벌파의 레이드 방식이었다. “그러면····. 아니 그런 방식으로 하면···.” “한 번 레이드를 할 때마다 적게는 10명, 많을 대는 50명까지 죽었어. 그러니 그 놈들의 주력 멤버들이 그렇게 적은 거야. 어느 정도 늘어나려고 하면 그때는 또 인원이 줄거든.” “·············.” 슬기는 정운의 설명을 들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처음에 감언이설에 속아서 그런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자칫 잘못하면 그녀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체온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녀의 경우는 그녀의 미모와 변태적인 성벽을 가지고 있는 구민구의 눈에 들어서 그런 식으로 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것보다 더한 치욕을 겪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부르르 떨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이제야 어느 정도 이 게임의 무서움을 실감한 것 같다. 속고 속이고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이 게임에서 보스몹 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같은 유저들이었다. “너하고 그런 노예 계약을 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 상호간의 조건을 정하도록 하지.” “···예. 그러면····. 우선 정운씨가 조건을 제시하세요.” “음····. 내가 생각하기로는···. 대략 이런 조건이면 될 것 같은데?” 정운은 미리 생각해둔 내용이 있었는지 제법 자세한 내용을 종이에 적어서 슬기에게 내밀었다. 슬기는 마치 소속사의 계약서를 읽는 것처럼 꼼꼼하게 읽고 있었다. 1. 박정운(이하 갑)과 이슬기(이하 을)은 서로를 공평한 전력으로 인정하여 서로의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않는다. 2. 갑은 을의 레벨을 올리는 것에 협조하되 그 협조의 내용은 갑의 자주성에 맡긴다. 3. 갑은 을에 대한 명령권이 없으며 부당한 명령을 받아도 을에게는 거부권이 있다. 4. 갑과을 둘 중에 어느 쪽이든 혈맹의 조건을 해지하고 싶다면 해지가 가능하다. 대강의 내용은 공평해 보였다. 슬기에게 유일하게 불리해 보이는 조건 중에 하나는 도움을 주는 정도를 갑인 정운의 자주성에 맡긴다는 것이었지만···. 그런 조건이 없다면 정운은 슬기가 레벨이 몇이 될 때까지건 계속해서 도와줘야 했다. 그러니 그 정도의 안전망을 미리 쳐두는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4번 항목이 가장 파격적이었다. 원래 혈맹은 강제성이 강한 것이었다. 한 번 맺으면 서로 동의를 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혈맹이 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말벌파에서 다른 길드원들이 절대로 구민구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운은 아애 혈맹의 조건 자체에 혈맹 탈퇴의 조건을 자유롭게 해 놨다. 이것은 파격적이었다. 언제든지 슬기가 떠나고 싶다면 떠나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 반대로 언제든지 정운이 슬기를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지만 말이다. “·····알았어요. 이 조건으로 할 게요.” “좋아··. 그럼 혈맹조건은 이대로···. 자.” 정운이 혈맹 동의창을 슬기에게 보내자 슬기는 예스에 클릭을 했다. 그리고····. [이슬기 님과 혈맹을 맺었습니다.] [서로의 정보가 공유됩니다.] 정운과 슬기는 혈맹이 되었고, 정운은 오랜만에 동료를 얻었다. 혈맹이 된 후에 일차적으로 정운이 해야 할 일은 슬기를 최단 시간에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레벨을 올리기가 극악할 정도로 어려운 그라운드 제로이지만····. 위에서 끌어올려주는 고레벨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그 전에 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녀가 어떤 타입으로 성장하고 싶은가? 라는 것이다. 평범한 온라인 게임처럼 이렇다 할 직업이나 종족이 없는 그라운드 제로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직업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런 느낌이 더 강했다. 지금 정운의 직업은 ‘전설의 개마무사’라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다른 유저들도 대부분은 저마다의 고유적인 직업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단 직업군을 나눠 보자면 네 가지 분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전사형. 권법가, 검사, 창술가 등등···. 한 마디로 근거리에서 적과 붙어서 싸우는 타입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흔한 타입들이었다. 대부분의 초보 유저들은 이 전사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원거리 공격형. 아쳐라고 불리는 궁수들이 이런 타입이 많지만 접근전이 주인 전사형 유저들도 가끔씩 이런 원거리 공격 팬턴을 보유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운의 클래스인 개마무사가 그 대표적인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근거리 원거리를 모두 커버하고 우수한 기동력도 가지고 있으니···. 사실상 정운의 경우는 잡캐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정운이 못하는 일도 있다. 바로 세 번째 타입인 배틀 메이지 타입이다. 배틀 메이지 타입은 초보들 중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돈이 워낙에 많이 들기도 하고 전위에서 보호해주는 전사형 타입이 없다면 배틀 메이지 혼자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어느 정도 고위 레벨에 올라가면 배틀 메이지들이 혼자서 사냥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런 배틀 메이지들은 손 꼽힐 정도였다. 여기서 진심으로 서로를 돕는 인간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강력한 배틀 메이지로 만들어 놨다가 뒤통수라도 맞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기에 강력한 배틀 메이지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나는 전사를 할 테니 너는 법사를 하거라.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3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타입. 백업 메이지라고 하는 자들이다. 같은 메이지라도 공격성이 강한 기술을 쓰는 유저들은 조금은 있다. 전문 배틀 메이지가 아니라도 몹들 중에는 마법을 써야 잡을 수 있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니 고위 유저들 중에는 세컨드 스킬로 메이지의 스킬북을 사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백업 메이지는 더욱더 드물었다. 거대 길드에서 몇 명을 키운 것이 고작이고, 길드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백업 메이지의 해택을 보기가 거의 힘들다. 백업 메이지란 자신의 주 스킬이 없고 오로지 적을 약화 시키거나 아군을 강화시키거나 혹은 아군을 치유하거나···. 그런 기술들 밖에 없는 캐릭터들이다. 즉, 혼자서는 싸우는게 불가능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업 메이지들은 자신들의 생명줄로 다른 전투 스킬을 백업으로 익혀 두는게 보통이었다. 아무리 거대 길드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 뿐.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술 한 두 개 정도는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슬기의 경우는 일단 정운의 조력이 있는 이상 처음부터 메이지의 길을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일단···. 난 널 더블 메이지로 키우고 싶어. 그래도 상관없어?” “더블 메이지라면···. 방금 말한 배틀 메이지와 백업 메이지를 같이 한다는 건가요?” “그래. 어차피 고위급 유저로 되면 이것저것 조금씩 다 손대다 보니 잡캐가 되기 마련이야. 넌 처음부터 메이지 스킬 그 자체에만 손을 데고 거기에 집중해야해.” “····알았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은 스킬북을 사서 마법을 익히고 그 마법을 연습해야지. 쓸 만한 마법을 몇 가지 사올 테니까 일단 저택에서 기다려. 절대 저택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게 좋아.” “예. 알았어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저택의 밖으로 나가면서 돈이 될 만한 장비 몇 가지를 챙겨서 나왔다. ‘최근에 내 장비 업그레이드 한다고 한 거덜 났는데···. 이번에는 진짜 바닥까지 칠지도 모르겠는걸?’ “기다렸다 박정운!!!!” “····젠장, 그리고 이 놈들도 처리해야 되지.” 정운은 저택을 나가자마자 매복해 있다가 튀어나온 구민구와 말벌파의 길드원들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민구는 정운을 보자마자 멧돼지처럼 숨을 씩씩 거리면서 따지고 들었다. “박정운!!!!! 내가 분명 내 여자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구민구의 거친 항의는 고객 센터에서 종종 진상 부리는 머저리들하고 닮아 있었다. “네 여자라····. 그건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이지?” “그건···.” “아!! 됐다. 어차피 쓸데없는 헛소리만 지껄이겠지. 들어봤자 내 귀만 더러워 져.” “··········.” 정운은 구민구의 말을 끊어 버리고 그대로 구민구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서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건? 아니면 무슨 사정이 있건? 그딴건 상관없다. 들을 생각 없으니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까지는 이해 하겠지?” “············.” 정운의 기세에 압도된 구민구를 보면서 정운은 마지막 마무리라는 식으로 쇄기를 박았다. “다만, 앞으로 나한테 한 번만 더 지랄하면 그때는 말벌파 전원을 내가 죽여 버릴 거다. 알겠나?” “···········.” “접수 된 걸로 알지. 그럼 이제 꺼져.” 정운은 그렇게 구민구에게 경고를 하고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 이동했다. 구민구는 그런 정운을 보고 이를 갈았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강한 자가 뭘 하든 약자는 아무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도덕도 법도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있는 것이라는 것은 강자존의 법칙 하나 뿐. 말벌파 전체를 동원한다고 해도 정운을 상대로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구민구가 지금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두고보자··. 어디 두고보자 박정운····.’ 물론 그냥 여기서 포기할 구민구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이 단계에서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말이다. “······저 머저리 포기는 안 하겠지?” 정운은 구민구에게서 한참 멀어지고 나서 한숨을 내쉬면서 투덜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포기할 구민구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무조건 아니다. 저 오크의 면상에 뱀의 집념을 가지고 있는 놈은 반드시 자기 목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다. 죽이는 것은 나중에 정 필요하다 싶을 때 해도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일단 이슬기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다. 그녀가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으면 그때는 정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던 정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 죽이는 걸 쉽게 생각하게 됐는지···. 제기랄····.’ 어쩔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약해서 환경에 좌지우지되는 법이니····.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믿고 있는 정의를 끝까지 관철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보기 힘든 법이다. 정운은 상점에 가서 NPC점원에게 말했다. “초보부터 익힐 수 있는 몇 가지 마법서들을 구하고 싶은데?” “예. 알겠습니다. 여기 카탈로그 룸에 들어가십시오.” 정운은 귀족들만이 이용 할 수 있는 카탈로그 룸에 들어가서 마법을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꼼꼼하게 뭐가 필요한지 따지고 구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정운은 마법을 쓸 수 없지만 카탈로그 룸에 들어가면 거기서는 온갖 마법을 다 사용해 볼 수 있었다. 뭐, 그게 귀족 신분의 이점 중에 하나지만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체험해 보는 것 이상으로 좋은 방법은 없는 법이다. “흠····. 그럼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것도 필요하겠군, 나하고 다니려면 이것도···. 그리고 이것···.” 정운은 필요한 스킬북, 그리고 장비들을 모두 구입하기 시작했다. 역시 초보 유저라고는 해도 더블 메이지로 키우려고 하니 드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필요한 문건을 다 구입하고 나니 든 돈이 12만 골드를 넘어서고 있었다. “후우····. 왕창 깨지는군.” 정운이 초보 시절에 대박으로 터졌던 돈이 2만 골드였다. 그 돈으로 정운은 초반부터 개마무사의 장비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런데···. 정운이 구상하고 있는 배틀 메이지의 장비와 스킬북을 다 쓰고 나니 10만 골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하긴···. 이러니 초보 메이지가 없지.’ 초보부터 메이지를 하는 것은 힘든게 아니다.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정운은 필요한 장비를 다 가지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저택의 정원에서 뜻밖의 모습을 발견했다. “·····호오···.” 정운의 눈에 보인 광경은 슬기가 목을 풀듯이 발성 연습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한 옥타브씩 정확하게 잡아가면서 연습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확실히 배우면 안 배운 것과는 차이가 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정운이 도착한 것을 보고 고개를 슬쩍 돌렸다. “아··. 오셨어요.” “그래····. 잘 하네. 연습하던 중이야?” “예. ····그냥 버릇이에요. 일제 필요 없는 건데···.” 그녀의 약한 소리를 듣고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저쪽 세계로 돌아가면 계속 가수 할 것 아니었어?” “·····이제·· 안 할 거예요. 있었던 일을 다 되돌리기만 하면··· 그런 이제 연예인은 안 할 거예요.” “············.” 정운은 그녀의 말에서 뭔가 상처의 흔적을 읽었다. 아마도 그 상처가 그녀가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들어온 근원이 되는 어떤 것일 것이리라···. 하지만 굳이 거기에 관해서 묻지는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걸 말하려면 자기 자신도 왜 이 세계에 왔는지 말해야 하는데··· 정운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부터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너한테 가져온 거야. 여기 스킬북들 다 익히고··. 그리고 여기 장비도 다 착용해.” 정운은 인벤토리에서 그녀의 물건을 건내 줬다.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강해져서 내 동료가 되어서 일조해. 그거면 충분해.” 정운의 말에 그녀는 야무진 얼굴을 하고는 대답했다. “알았어요. 반드시 그렇게 할 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이 가져온 물건들을 다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살짝 놀랐다. “저기···. 저 메이지라는 것으로 키운다고 하셨죠?” “그래. 게임 안 해봤으면 뭔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까?” 정운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게임을 좀 해봐서 오히려 아는데···. 메이지인 제가 왜 말을 타야 하죠?” 그녀는 자신의 아이템 창에 한 마리의 백마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나하고 같이 행동하려면 말은 필수야.” “저기··. 당신의 뒤에 타고 이동하면 되지 않나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림없어. 난 흑토를 이동 수단으로만 사용 하는게 아니야. 내가 전력으로 싸울 때는··. 흑토는 나의 가장 믿음직한 파트너가 된다.” “·····그렇군요. 알았어요. 그럼 당신의 파트너를 노리는 저로서는 그 말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는 거네요.” 웃으면서 말하는 슬기에게 정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부지런히 광업 해. 아무리 해도 부족하겠지만 흑토 따라잡으려면 부족하겠지만··.” “너무해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토라진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리고 정운은 이런 훈훈한 분위기를 오랜만에 만끽하고 있었다. 슬기는 일단 정운이 가지고 온 스킬북을 다 익혔다. 그녀의 직업도 일단은 초보 메이지로 바뀌었다. 이슬기 종족 : 인간 (초보 메이지) 레벨 : 1 나이 : 19 체력 : 10 힘 : 10 민첩 : 10 지능 : 70 매력 : 99 마력 : 20 패시브 스킬 기마술 : LV.1 스킬 : 약초술 LV.1 액티브 스킬 파이어 볼트 : LV.1 (불의 화살을 한 발 날린다.)아이스 불트 : LV.1 (냉기의 화살을 한 발 날린다.)스턴 : LV.1 (스파크로 1의 적에게 전격을 가한다.)슬로우 : LV.1 (적의 움직임을 1%느리게 한다.)홀드 : LV.1 (1마력의 힘으로 적을 구속한다.)힐링 : LV.1 (아군을 20의 효과만큼 치료한다.) 아직 전부 레벨 1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상당한 양의 스킬이 생겼다. 이정도의 스킬이라면 일단은 그녀도 단순한 초보는 아니라고 해도 좋았다. 그리고 장비도 변했다. 견습 메이지의 스태프. 공격력 : 5 마력 : 50 무게 : 5 내구력 : 10 [초보 메이지들이 사용하는 스태프 낙뢰를 맞은 떡갈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마력을 다소 서포트 한다.] 견습 메이지의 로브 방어력 : 10 무게 : 5 내구력 : 10 [초보 메이지들이 사용하는 로브. 조금이지만 적의 마법 공격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 작품 후기 ============================ 음, 댓글들에 의견 반영이 많아서 오늘은 후기에 여러분들의 의견에 관해서 답변을 하겠습니다. 우선,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가 독자분들을 고맙게 생각해도 그 분들의 모든 취향을 맞춰 드릴 수는 없습니다. 연재 싸이트에서 글 쓰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게 사실 그것입니다. 욕심을 내서 독자분들의 댓글에 하나하나 흔들려서 이리저리 휘청하다가는 그 작품은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아 버립니다. 그렇게 침몰하고 아이디어를 준 독자에게 항의하는 작가들이 더러 몇명인가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소설이 망하면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건 100% 작가 잘못입니다. 제 경우 좋은 아이디어는 채택도 할 것이고, 고쳐야 할 지적점은 고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디어에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 작품의 지향성과 제 필링과 맞는 아이디어여야 제가 도입해서 작품 내에서 소화 가능한 것입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좋은 글로 보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최선이 언제나 최고의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 출판작도 포함해서 말아 먹은 작품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수한 말이지만 제가 무슨 과대 공약 남발하는 정치가도 아니고 이 수수한 약속 이상으로 뭔가를 보답 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한 저이다 보니 독자분들에게 항상 '최고'를 드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항상 '최선'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24화 개마무사인 정운의 경우 장비가 여러 가지였지만···. 메이지인 슬기의 경우 초보 때 사용할 장비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팡이 하나에 로브 하나. 나중에 가면 다른 보조 아이템도 챙겨 주겠지만 지금은 어차피 구입한다고 해도 쓸 수 없다. 적어도 레벨이 20정도는 되고 나서 그녀의 장비를 대폭 업그레이드 할 생각인 정운이었다. 그때는 또 돈이 왕창 깨지겠지만 말이다. 일단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비중에 마법사답지 않은 것도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정운이 사준 말이었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정운과 함께 움직이려면 그녀도 기마술은 필수였다 그래서 정운은 그녀에게 기마술 스킬북도 같이 사다준 것이었다. “말의 이름을 지어. 그럼 너에게 귀속 될 거야.” “정말요?” “그래. 인벤토리에서 꺼낸 다음에 이름을 붙이면 돼.”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슬기는 시키는 대로 했다. 인벤토리에서 말을 꺼내자 거기에는 하얀 순백의 백마가 있었다. “아···· 이거 비싸지 않아요?” “그걸 이제 물어보냐?” “예?” “어차피 너한테 사준 스킬북도 다 비싼 거야.” “······· 얼마인데요?” 조심스럽게 묻는 그녀에게 정운이 말했다. “12만 골드 이상.” “윽····.” 그녀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게 얼마나 큼 돈인지는 잘 안다. 귀족에다가 고위 유저인 정운에게도 그 정도의 금액을 적지 않은 지출이었다. 더구나 얼마 전에 자기 장비를 업그레이드 시킨다고 대폭적으로 돈을 썼던 정운에게는 말이다. “뭐, 네가 고위 메이지가 되면 본전 뽑을 테니까··. 일단 말부터 빨리 귀속 시켜.” “예···. 꼭 갚을게요.” ‘당연하지.’ 정운은 속으로 꼭 갚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슬기는 말을 보면서 말했다. “하얀색이니까····. 얘 여자인가요?” “그럴걸?” “그러명 예쁜 이름이 좋겠네요···. 백설. 눈처럼 하얀 털을 하고 있으니 백설이라고 이름 지을래요.” “그래···. 그러든가.” 띠리링!! 백설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과 동시에 백설은 슬기에게 귀속 되었다. 백설 [1급 명마] 레벨 : 30 체력 : 150 힘 : 80 민첩 : 170 지능 : 50 [명마로서 지능이 우수하고 순한 성격이며 주인을 잘 보필한다. 레벨이 오르는 것에 따라서 클래스는 변한다.] 정운의 말인 흑토는 예전에 1급 전마였다. 하지만 직금은 클래스 업을 하고 영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슬기에게 준 말인 백설은 1급 전마가 아니라 1급 명마였다. 나중에 가면 역시 클래스 업을 하고 발전하겠지만 전마와 명마의 경우 용도가 약간 다르다. 백설이 클래스 업을 하면 약간 다른 형태로 변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어떻게 변할지 전혀 모르지만 말이다. “일단 10층 까지는 그 장비로 돌파해.” “10층까지요····. 제가 거기까지 올라가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열흘. 그 이상 걸리면 안 돼.” 정운은 딱 잘라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냥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라운드 제로를 몇 년 클리어 해본 유저라면 지금 정운의 말에 장난 치냐고 소리를 칠 것이다. 아직 레벨1에 불과한 슬기가 10층까지 열흘 만에 돌파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레벨 71인 정운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건 하드 페이스였다. 보통의 게임과 달리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렇게 하드 페이스로 클리어에 도전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다만 정운은 자신이 있었다. 우선 그 자신부터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레벨업을 했던 유저였고···. 그런 그가 도와준다면 10층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슬기 육성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우선은 1층부터 5층까지의 보스몹을 3일안에 전부 잡을 거야. 그래야 네가 5층까지 자유롭게 움직이지.” “저기··. 고위 유저인 정운씨하고 같이면 어디든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건 그래. 하지만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너무 윗층에서 사냥을 해도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아.” 정운의 말 대로였다. 보통의 게임이라면 고위급 유저하고 파티를 맺고 게임을 하면 고위급 유저의 경험치를 나눠 받고 광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파티를 맺는다고 해도 공헌도에 따라서 나눠 받는 경험치가 정해진다. 즉 고위급 몹을 잡는다고 해도 슬기가 제대로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윗층으로 가면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광렙을 했던 5층의 좀비들이 좋겠지. 며칠간은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기를 데리고 본격적으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첫 번째로 사냥하는 몹 부터가 보스몹이었다. 1층의 보스몹인 외눈박이 늑대였다. “내가 지켜 줄 테니까 마법으로 공격해.”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스스로 앞으로 가서 외눈박이 늑대를 주먹으로 때렸다. 퍼엉!! “캐앵!!” 외눈박이 늑대는 정운의 주먹에 맞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으르렁 거리면서 공격했지만 정운의 갑옷을 뚫지는 못하고 있었다. 마치 경찰견 훈련시키는 과정에서처럼 팔이 물린 상태로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정운을 보면서 슬기는 당황했다. “저기···. 저···.” “빨리 공격해. 자꾸 공격당하면 나도 아프다고.” 레벨 71인 정운이 1층의 보스몹인 외눈박이 늑대에게 질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픈건 아픈 것이었다. 당황하던 슬기도 정운이 계속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공격을 했다. “파이어 볼트!!” 퍼엉!!! “캐앵!!” 불의 화살이 맞으면서 외눈박이 늑대가 신음했다. 놈은 자신을 공격한 슬기를 으르렁 거리면서 노려봤지만 정운이 다시 그런 외눈박이 늑대의 죽빵을 날렸다. “나한테 집중해라 멍멍아.” “카앙!!!” 외눈박이 늑대는 제대로 빡쳤다는 듯이 정운에게 달려들었고 그렇게 정운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외눈박이 늑대는 계속해서 슬기의 마법 공격을 맞아야 했다. “파이어 볼트!! 파이어 볼트!! 아이스 볼트!! 아이스 볼트!!!” 마법 공격이 초반부터 파괴력이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레벨을 올리지 않고는 쉽게 통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정운이 계속 시간을 끌면서 슬기가 공격마법을 계속 날리자 결국은 외눈박이 늑대의 최후가 다가왔다. “카아앙!!!” 마지막 불화살을 맞고는 결국 외눈박이 늑대도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슬기의 레벨을 올리는 소리도 났다. “흐음···. 초보일 때 외눈박이 늑대를 죽이니까 바로 레벨이 1오르는 구나.” 정운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고마워요. 정운씨.” “고마워하기는 아직 일러. 일단 오늘 안에 갈 수 있는데 까지는 가보자.” 그리고 정운과 슬기는 그날 3층까지의 보스몹 공략을 끝냈다. 마지막 보스 몹을 잡는 것에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경이적인 공략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한 달 안에 20레벨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만에 레벨3에 오른 슬기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위로 가면 갈수록 경이적으로 어려워져. 우습게 보지마. 여기서 한 번이라고 게임 오버 당하면 바로 사망이야.” “····예.” 정운의 엄중한 충고에 슬기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알았으면 됐어. 앞으로 최고 속도로 레벨을 올릴 거야. 똑바로 따라와.” “옛!! 저 힘낼게요.” 정운의 호령에 슬기는 힘차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제길, 귀엽잖아.’ 아이돌은 아이돌이었다. 정운의 슬기 육성 프로젝트는 고속으로 발전해 갔다. 원래 고레벨이 초반에 도와주면 많이 편한 법이다. 하지만 슬기의 경우는 편함을 버리고 대신에 빡빡하게 행동해서 레벨을 많이 올렸다. 2달이 지났을 때 슬기의 레벨은 드디어 19레벨에 도달했고 목표점이던 20레벨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정운은 10층에서 그런 슬기와 사냥을 하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페이스로 보면···, 오늘이나 내일 중에는 20레벨로 오를 거야. 그때 되면 너한테 새로운 장비를 줄게.” “예. 고마워요. 정운씨.” 슬기는 웃으면서 정운에게 대답했다. 지난 2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슬기에게 있어서 정운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멘토가 되었다. 아마도 정운이 여기 메주는 팥으로 쑨다. 라고 하면 ‘아, 그래요? 그거 달달한게 맛있겠네요?’ 라고 하면서 순순히 믿을지도 모르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가끔씩 생각했다. ‘도대체 이렇게 순한 성격으로 무슨 욕심이 있어서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온 거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슬기라는 여자를 곁에 두고 보면 볼수록 이 순해빠진 여자가 무슨 업을 짊어지고 이 세계에 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은 모두들 자신의 욕망 소원을 위해서 여기에 온 욕망의 망자들이다. 정운의 경우 그나마 좀 나은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 그 전에 친 아버지의 집안을 무너트리는 것에 사용한 포인트나 경제적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포인트를 생각하면···. 역시 깨끗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몸이었다. 그런 정운이었기에 여기 이슬기라는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욕망의 망자들을 위한 트랩에 낚였는지 실로 궁금했다. “저기 정운씨···. 다음 포인트로 이동 안해요?” “아···. 아아···. 아니 오늘은 이만 가지. 슬슬 접을 시간이기도 하고.” “예? 평소보다 몇 시간 빠른 것 같은데요?‘ “···그냥 가자.” “예.” 정운이 다시 말하자 그녀는 생긋 웃으면서 정운의 말에 순종했다. 둘은 말을 타고 포탈까지 천천히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나저나···. 제법 하드 페이스인데도 잘 따라오는걸? 사실 중간에 우는 소리를 하면 호되게 야단 치고 혈맹을 끊어버릴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웃으면서 말했다. “전 아이돌이에요····. 근성 없으면 연습생 시절도 못 버티죠.” “헤에···. 거기도 경쟁이 치열한가 보지?” “예. 치열하죠. 그리고·····. 가끔씩 그 치열함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잘못된 선택? 그게 뭔데?” 정운은 순간 질문을 하고도 자신이 잘못 질문 했나 싶었다. 가능하면 개인 프라이버시는 가능하면 물어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많이 친해지다 보니 이런 대화가 스스럼없이 나오기도 하게 된 것이다. 말을 하고서 살짝 아차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그건····. 여려가지가 있죠. 여러 가지가····.” “····알았어.” 굳이 대답하지 않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그녀를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포탈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운은 자신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뜻밖의 인물들을 보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5화 <메이지를 육성하다> “·····여기는 어쩐 일들이죠?” 정운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살짝 존댓말을 했다. 정운으로서도 지금 눈앞에 잇는 인물들은 거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삼대 길드의 멤버들이 정운의 눈앞에 찾아온 것이다. 삼대 길드란····. 메두사 길드. 라이온 길드. 타란툴라 길드. 이 세 개의 길드를 말하는 것으로 이 길드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길드들이었다. 말벌파 같이 정운 혼자서도 밟아 버릴 수 있는 피라미들하고는 격이 다른 존재들이다. 오히려 저들이 마음먹으면 정운을 밟아 버릴 수도 있었다. 각각 멤버들의 숫자만 해도 100명이 넘는 거대 길드들이었고 그 평균 레벨도 무척 높았다. 특히 이 길드의 길드장들은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도 손꼽히는 유저들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중에서 가장 강한 유저 10명을 두고 유저들은 십왕(十王)이라고 불렀다. 메두사 길드의 길드장 이보영.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 명주호. 타란툴라 길드의 길드장 김수민. 이들 세 명은 십왕에 나란히 이름이 올라가 있는 고수들이었다. 자세한 레벨은 모르지만 십왕이라도 불리는 자들은 최고 레벨이 100을 넘긴 자들이라고 했다. 아직 71레벨인 정운하고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는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길드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길드에 고수를 등용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예전에 정운도 이 삼대 길드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믿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정운은 그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물론 완곡한 거절을 위해서 가끔씩 이들이 소집하는 레이드에 참가해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완전 강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레이드는 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때마다 보수는 따로 두둑하게 받았으니 말이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서 삼대 길드라는 거대 길드가 되기 위해서는 유저들 사이에서 신용이 있어야 한다. 믿을 놈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 그나마 신용이 좀 있는 거대 길드가 있다는 것이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안심이 될지 생각해 보라. 그점을 잘 알고 있는 삼대길드였기에 지금까지는 정운에게 무력을 행사하거나 압박을 넣지는 않고 가끔씩 용병으로 불러서 사용하는 정도의 선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다. 오늘까지는 말이다. “박정운씨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전에 본적 있는 라이온 길드의 스카웃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정운에게 말을 걸었다. “예··. 그럼 제 집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 여기는 귀가 너무 많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잠시 후. 정운과 삼대 길드의 스카웃터 역할을 하는 자들이 정운의 집에 들어왔다. 그들은 정운과 함께 정원의 테이블에 앉았고 메이드들이 차와 간단한 과자를 내왔다. “오늘 삼대 길드의 스카웃터 여러분들이 모두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 묻고 싶은데요?” 정운이 먼저 말을 꺼내자 라이온 길드의 스카웃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름 아니라 정운님이 최근에 솔로 플레이를 그만 두고 팀을 만들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역시 그것 때문인가?’ 정운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예. 사실입니다.‘ “흠····, 이제까지 저희 길드의 스카웃 제의를 모두 거절하셨는데 좀 의외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가지의 솔로주의를 그만 두셨다고 해석해도 되는 건가요?” 정운의 말에 타란툴라 길드의 스카웃터가 말했다. 그러자 정운은 중간에 말을 자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드에 들어가거나 저 중심의 팀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은···. 길드 말고 팀으로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그렇게 구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둘 뿐이지만··. 멤버가 는다고 해도 팀 수준의 이상을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정운의 말에 삼대 길드의 인간들은 모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정운은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지만 전력으로 탐나는 상위권 유저중에 한명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런 정운이 따로 자신의 길드를 만든다거나 하면 새롭게 라이벌이 늘어날 뿐이었다. 그들은 가능하면 자신들 이상 가는 길드가 더 이상 나타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운은 길드를 만들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길드 말고 팀은 만들 수도 있다고 뉘앙스를 풍겼지만 말이다. 길드와 팀. 사실 유저들 끼리 말장난으로 하고 있지만 거의 같은 말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규모에서 차이가 나고 스스로 길드냐 아니냐를 내세울 뿐이다. 길드는 보통 20명 이상에서 100명이 넘는 대인원들 끼리 무리를 이룬다. 팀은 그것보다 좀 작아서 아무리 많아도 10명을 넘지 않는다. 한 4~8명 정도로 활동하는 자들을 팀이라고 말한다. “흠···, 정운님. 파티 플레이의 중요성을 깨달으셨다니 반갑습니다. 가능하면 이번에 새롭게 들이신 분 하고 같이 저희 타란툴라 길드로 오시지 않게씁니까?” “저희 라이온 길드로 오면 최고의 대우로 모시죠. 지금 8번대 조장이 비었는데 정운님이 오시면 바로 조장입니다.” “저희 메두사 길드에 오시면····.” 삼대 길드의 스카웃터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파격적인 조건으로 정운을 영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길드에 들면 탈퇴 하는게 하늘에 별 따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운이었기에 그런 제의는 모두 거절했다. 대신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길드에 가입은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레이드에 용병으로 불러주시면 그때는 성심껏 돕겠습니다.” 결국 이제까지의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겠다는 정운의 말에 삼대 길드의 스카웃터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삼대 길드 하나하나의 힘은 정운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만약 힘으로 강제로 누르려고 하면 정운은 다른 두 개의 길드 중에 한 개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기에 일단 정운의 중립을 용인 하는 것이다. 상위권 유저중에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자들은 상당수가 이런 형식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정운이 길드를 만들 생각이 없다는 진위를 확인했다. 스카웃에는 실패 했지만 그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 소기의 목적은 이뤘다. 삼대 길드의 스카웃터들을 모두 배웅하면서 정운은 은근슬쩍 말했다. “그런데 제가 팀원을 받아 들였다는 말은 누구에게 들었나요?” 정운의 말에 라이온 길드장이 말했다. “정보원은 밝힐 수 없습니다. 이쪽도 약속이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사실 그 대답이면 충분 합니다.” “······예.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정운은 자신의 저택에서 삼대 길드의 스카웃터들이 모두 나가자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제길···. 그 돼지벌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정보원은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삼대 길드에 동시에 정보가 들어갔다면 누군가가 제보 했을게 뻔했다. 그리고 지금 정운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한 명 뿐이다. 말벌파의 구민구가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지금은 봐 준다. 슬기의 육성이 먼저니까···. 하지만 내가 얼마나 뒤끝 있는 인간인지 나중에 알게 해 주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옆에서 슬기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이제 나와도 되요?” “그래.” 정운은 삼대 길드를 상대하는 동안 일단 슬기보고 자기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삼대 길드를 상대하는 것은 정운도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들 하나하나가 정운 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 그렇게 무서운 자들인가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좋은 기회니까 말해줄게. 적들은 삼대 길드의 멤버들이야.” “····그게 뭔데요?” “삼대 길드란 이 그라운드 제로의 수많은 길드 중에서도 가장 강한 길드지. 단체로는 가장 강한 자들이다.” “그렇군요····. 그럼 정운씨는 저들에게 안 들어가나요?” “안 들어가.” 1년쯤 전부터 꾸준하게 스카웃 제의는 받고 있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단체에 속하면 아무래도 개인의 의지 보다는 그 단체의 의지대로 행동해야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일 레벨업이나 신경 써. 그 다음에는 바로 나하고 같은 층에서 플레이 할 거야.” “정운씨하고 같은 층의 플레이라면···?” “54층. 레벨 20찍고 장비 레벨업 하면 내 백업 정도는 충분히 할 거야.” “54층···.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네요.” “그래···. 거기서 트윈헤드 라이거 잡고 다닐 거야.” “············.” “기대해도 좋아.” 하나도 기대하는 표정이 아닌 슬기였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전 층의 보스몹을 잡아야지 올라 가는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몇 가지 편범으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우선 다른 상위권 유저하고 같이 올라가면 올라가는게 가능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으로는 레이드에 파티원으로 이름만 올려 두는 것이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도 일단 파티원으로 이름만 올려두면 위로 올라 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거대 길드원들은 대부분 길드장이 돌파한 층 까지는 올라 갈 수 있는 통행권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또한 레이드의 법익에 있어서 위층의 몹을 잡으면 그 밑의 층은 모두 자동으로 통행권이 생기는 법이다. 즉, 상위권 유저와 와서 40층의 레이드를 뛰었다고 치자. 거기서 성공하면 그 유저는 그 밑의 레이드 몹은 한 번도 잡지 않아도 40층 이하의 층은 어디든지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지금 슬기 54층에 올라온 방법은 정운과 함께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운이 슬기와 목표로 한 몹은 오크전사 부족이었다. 오크 자체는 저층부터 나오는 몹이었다. 하지만 전사 부족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보통의 오크는 체격이 150cm에 좀 탄탄한 체격에 짧은 글레이브를 쓴다. 하지만 오크 전사부족은 신장 2미터에 탄탄한 근육질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쓰는 무기도 도끼부터 체인소드까지 각양각색이었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놈들이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10명에서 20명 정도로 뭉쳐서 다닌다. 그리고 놈들의 근거지인 부락을 공격하면 거기서 수천에 달하는 오크 부족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예전에 어떤 길드가 오크 부족을 단체로 털어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자기들이 털려버렸다는 얘기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명하다. 오크를 절대 얕보지 말라. 라는 교훈과 함께 말이다. 정운이 그런 오크 부족을 사냥감으로 정한 이유는 그 오크 부족이 그나마 이 54층에서는 가장 만만했기 때문이다. 오크 전사들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강함은 집단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락을 공격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사냥을 나온 무리들을 치고 빠지는 식으로 꿰어서 사냥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슬기의 아이템부터 맞춰야 했다. 현재처럼 초보자 아이템만 가지고는 싸울 수 없었다. 슬기의 장비는 대폭 업그레이드 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6화 크리스탈 스태프 공격력 : 7 마력 : 300 무게 : 10 내구력 : 20 [마수정으로 만든 크리스탈로 인해서 상당한 마력을 서포트한다. 사용자의 마법의 위력을 2%상승 시켜준다.] 바람의 로브. 방어력 : 50 마력 : 100 무게 : 0 내구력 : 10 [마법 공격에 내성이 강하고 하루에 두 번에 걸쳐서 바람의 방어막이 발동한다.] 마력의 팔찌. 방어력 : 5 무게 : 5 내구력 : 20 [하루에 세 번 마력을 완전 충전 시켜준다.] 이렇게 장비를 맞추는데 든 돈이 무려 50만 골드였다. 덕분에 이번 달에 제대로 돈을 벌지 않으면 정운으로서는 귀족의 작위를 유지하는 것도 간당간당할 정도로 돈이 부족할 정도였다. ‘뭐, 앞으로 54층에서 본격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는 돈이 되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설사 도움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될 뿐인 일이니까····. 정운은 자신의 장비도 꼼꼼하게 체크한 다음에 흑토에 올라타면서 슬기에게 말했다. “가자.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의 시간이다.” “예. 정운씨.” 슬기는 갑자기 40층 이상이나 건너 뛰는게 불안할 법도 했는데 그런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슬기에게 마음을 다 열지 않은 정운에 비해서 그녀는 달랐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는 정운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정운씨 말이라면 모두 믿을 수 있어. 모두····.’ 어쩌면 그냥 믿음 이상의 감정 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정운은 슬기와 함께 먼저 사냥법에 관해서 의논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정운이 오크 부족을 발견하면 거기서 그들을 공격한 후에 한쪽으로 유인한다. 유인하는 과정에서 보통 반 정도는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오크전사는 굉장히 빠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토보다 빠르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대략 다섯 정도의 숫자가 되면 정운은 그들을 끌고 예정된 포인트로 오크 전사를 유인한다. 그 다음에는 오크 전사를 상대로 정운이 전방에서 싸우기 시작하고, 그 뒤에서 슬기가 백설의 위에서 마법으로 지원 공격을 하는 것이다. 오크가 다섯이나 되니까 어느 정도 슬기에게도 공격이 갈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슬기가 재빨리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라고 사준 말이 아니던가? 백설의 레벨은 아직 오르지 않았지만 슬기의 경우는 레벨과 함께 승마술의 경험치가 올랐다. 현재 슬기의 승마술은 레벨 3이다. 말 위에서 달리면서 마법을 쓰는게 가능한 레벨인 것이다. 정운도 이것 때문에 슬기를 데리고 올 마음이 들었고 말이다. 현재 슬기의 전체적인 스킬과 스테이터스는 이렇다. 이슬기. 종족 : 인간(메이지) 레벨 :20 나이 : 19 체력 : 20 힘 : 10 민첩 : 20 지능 : 85 매력 : 99 마력 : 80 패시브 스킬 기마술 : LV.3 약초술 : LV.2 액티브 스킬 파이어 볼트 : LV.3 (불의 화살을 세 발 날린다.)아이스 볼트 : LV.3 (냉기의 화살을 세 발 날린다.)스턴 : LV.4 (스파크로 4의 적에게 동시 전격을 가한다.)슬로우 : LV.3 (적의 움직임을 3%느리게 한다.)홀드 : LV.2 (마력의 힘으로 적을 구속한다.)힐링 : LV.2 (아군을 40의 효과만큼 치료한다.) 레벨은 20이었지만 정운이 돈 들여서 사준 스킬 북 때문에 이제 어느 정도는 메이지 티가 나는 그녀였다. 사실 정운은 그녀가 레벨 20이 되면 다른 마법의 스킬북도 구입해 주려고 했지만···. 돈이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부지런히 벌어야 했다. “하앗!!!” 촤아악!! “쿠웨엑!!!” 정운의 검격에 한 오크 전사의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한운이 미처 놓친 한 마리를 향해서는 슬기의 마법이 날아갔다. “파이어 볼트!” 퍼퍼펑!! “쿠우욱!!!” 불의 화살을 정통을 세대나 맞으니 오크 전사는 큰 대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정운은 그대로 상처 입은 오크를 상대로 창을 집어 던졌다. “쿠웩!!!” 정운의 창이 심장에 부딪히자 그대로 그 오크 전사는 비명을 지르면서 절명했다. 그리고 정운은 정운의 빈틈을 노리고 3명의 오크 전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나름 등 뒤에서 빈틈을 노린 것이었지만 약간 떨어진 위치에 있는 슬기가 빈틈없이 백업했다. “스턴!!” 파지지직!!! “쿠웨엑!!” “쿠우우울!!!” 오크들은 마치 스턴건에 맞은 것처럼 몸에서 스파크를 튀면서 몸을 몇 초간 뻣뻣하게 굳혔다. 원래 스턴 마법은 대미지는 적지만 적에게 일시적인 마비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더 컸다. 정운은 오크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러서 두 마리의 목을 동시에 날려 버렸다. “쿠웨엑!!!” “쿠우우우!!!”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놈은 자기 자신만 남자 발악을 하듯이 흉폭 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전신이 상처투성이인 놈이었기에 정운은 그냥 무시했다. 자기가 나설 것도 없었다. “아이스 볼트!!” 퍼퍼펑!! “크으으으으···.” 냉기의 화살이 세 발 날아와서 두 발은 발에 한 발은 엉덩이에 맞았다. 오크 전사는 마치 오크가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 이런 소리를 내는 걸까?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상한 소리를 내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좀 불쌍하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착실하게 경험치와 아이템을 챙겼다. “어때? 슬기 너한테도 경험치 가냐?” “····예. 10층에서 사냥하던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이 들어와요.” “좋아···. 그럼 이 패턴으로 사냥하면 되겠군.”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는 파티를 맺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공헌을 하지 않으면 경험치는 들어오지 않는다. 방금 전의 사냥에서는 슬기가 정운의 사냥을 상대로 제법 공헌을 했기에 경험치를 나눠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일단 시작하자마자 적에게 슬로우를 걸어서 적의 움직임을 3%느리게 만들었다. 마주 미미한 정도지만 안하는 것 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마법으로 적을 원조하면서 부지런히 싸웠기 때문에 경험치를 나눠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력은 어때? 충분한가?” 정운의 말에 슬기는 자신의 느낌으로 남은 마력을 적당히 측청해봤다. 이 그라운드 제로는 게임이지만 플레이어는 리얼 라이프를 살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스테이터스에 나오는 체력이나 마력이라는 숫자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반응을 스스로 측정하면서 예민하게 느껴야 했다. 실제의 삶에서 하는 것처럼 똑같이 말이다. “으음····. 약간 힘이 빠지기는 했지만 지치지는 않았어요.” “좋아···. 일단 이 패턴으로 하루에 몇 번이나 사냥이 가능한지 보자.” 이 사냥법으로는 정운이 타깃을 찾아서 유인하는데 20~30분. 그리고 전투에 15~20분 정도. 거기에 기타 정비와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하면 대략 한 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봐야 한다. 몇 번의 반복 끝에 슬기의 마력과 몹의 리젠 속도 등을 생각하면 하루에 6회 정도의 오크 전사 무리 사냥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루의 사냥이 끝난 후···. 정운은 마지막 오크 한명의 숨통을 끊는 것과 동시에 일단 무기를 갈무리 하며 말했다. “일단 이걸 정규 스케줄로 집어넣고···. 그리고 그것 말고도 가끔씩 트윈헤드 라이거나 오우거같은 것들도 잡아 보도록 하자. 남는 시간에 말이야.” “예. 오늘 하루 수고하셨어요.” “그래. 너도····. 경험치가 제법 올랐네. 잘만 하면 이달 안에 3업 정도는 가능 하겠다.” 정운은 슬기의 스테이터스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슬기는 문득 그런 정운을 보고 말했다. “저기 정운씨···. 딱히 불만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문제있어?” “아니요. 그냥···. 정운씨는 제 스테이터스를 마음껏 볼 수 있는데 저는 정운씨의 스테이터스를 못 보잖아요?” “인벤토리하고 아이템 창은 보여 줬잖아? 스테이터스는 네가 봐도 별것 없어.” 인벤토리나 아이템 창은 정운이 잡템의 분배를 불균형하게 하고 삥땅을 치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공개했다. 하지만 중요한 스테이터스는 절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에게 슬기가 말했다. “우리는···. 동료잖아요? 정운씨가 저에게 비밀을 갖고 있는게 어쩐지 절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아서 좀 그래요.” “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가요?” “난 정말로 널 신뢰하지 않으니까.” “····예?” 정운의 말에 슬기는 심각하게 상처 받은 얼굴을 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리는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당연하지.” “하지만···. 전 당신을 믿는 걸요?” “그래? 그거 안 됐군.” “····정말이지····. 일부러 그렇게 마음의 벽을 만들고 있는 것 보기 안 좋아요.” “여기서는 필요한 일이야.” “절 믿지 않는다면 어째서 저를 도와 주시는 건데요?” “그냥 내 변덕이야. 시험이기도 하고.” “거짓말 하지 마요. 시험이라면 하다 못해···.” “못해 뭐?” “하다 못해 혈명으로 저에게 어느정도 구속이라도 걸어 둬야 하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으면서···.” “혈맹으로 구속? 아아···. 너 그것 때문에 날 신뢰라도 하고 있었던 거냐?” 정운은 슬기에게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말해주지. 내가 널 혈맹조건으로 구속하지 않은 것은 말벌파나 여타 쓰레기들과 동급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하지만 만약 제가 배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거기데 관해서 아무론 제동을 걸지 않은건 당신도 절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아니. 믿은건 네가 아니라 내 힘이다.” “··· 당신의 힘?” “그래. 설령 네가 내 뒤통수를 때린다고 해도 상관없어. 내가 반드시 10배로 갚아줄테니까. 혈맹의 조건으로 인한 족쇄? 그런 족쇄는 내가 감당 못할 맹수를 사육할때나 필요한 거지. 머리속이 꽃밭인 골빈 계집애 하나 변덕으로 주워 키우면서 그렇게까지 공들일 생각은 없어.” “······.” 요지부동인 정운을 보면서 슬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정운은 은인이자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말은 상당한 쇼크였다. 하지만····. 정운이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연예계라는 곳은 마음과 마음이 엮이고 섞이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어려서부터 몸을 담은 그녀는 보통 사람들 보다 철이 없고 순진한 구석도 있었지만···. 거기서만 겪은 경험으로 일찍 철이 든 구석도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정운이 하는 말은 진실이 섞인 거짓이었다. 평소보다 찬바람이 몇 배는 더 쌩쌩 부는 차가운 말투이기는 하지만 역시 말 그 자체에서는 거듭해서 모순이 느껴졌다. 고집을 꺽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까지 거짓을 고하는 사람. 지금 정운의 모습이 딱 그랬다. 그녀는 이런 상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다. 괜한 수를 써서 상대를 떠 보는 것 보다는 그냥 정면으로 돌격 하는게 가장 좋다는 것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7화 <그녀의 과거.> 그녀는 정운에게 정면으로 승부를 걸었다. “제가 정운씨의 신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걸 본인에게 묻는 거야?” “그게 가장 확실한 걸요?” “············.” 은근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정운은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자신이 그녀를 믿지 못하는 이유와 그녀를 믿기 위해서 넘어야 할 최소한의 적정선···. 잠시 생각하던 정운은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 뛰어든 이유를 말해 봐. 그리고 포인트로 이뤘던 소원까지 모두 다.” “······그건···.” “말 못하겠지? 나도 그래. 왜 그런지 알아?” “············.” 대답 없는 그녀에게 정운이 말을 이었다. “거기에 관해서 말 못하는 이유는 넘어온 이유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온 치부이기 대문이야. 여기 와서 알게 된 거지만.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보다 더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 것은 없더라구. 그래서 모두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거기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리는 거지.” “············.” “욕망의 망자가 되어서 악마와 계약한 인간들의 모임. 거기다 그 치부를 알 수도 없지. 모두들 구린 구석이 있다고 확신만 하고 있을 뿐. 그런데 누군가를 믿는다고? 그랬다가는 큰 코 다치기 마련이야.” 정운은 말을 하면서 문시영을 떠 올렸다. 자신이 처음으로 믿었던 동료이자 약간이지만 마음을 주었던 여성.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을 때의 쇼크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그녀가 무슨 이유로 이 그라운드 제로에 왔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애당초 그런 상태에서 서로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 ‘앞으로 사람을 믿으려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해.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슬기는 곰곰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날 밤. 정운은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할 때까지 슬기는 곰곰하게 생각에만 잠겨 있었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운은 슬기가 어쩌면 자신을 떠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 원래 혈맹은 상위급 유저가 하위급 유저를 구속하는 조항을 넣기 마련이지만···. 정운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슬기가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해 놨다. 그러니 그녀가 떠난다고 해도 붙잡을 방법은 없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들인 골드와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설사 배신당한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도움이 되었다. 이제 정말 그 누구도 믿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정운에게 있어서 슬기의 경우는 어쩌면 외로움과 호기심이 겹쳐셔 만들어진 호의에 약간의 실험 정신이 더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 정도는 더 사람에게 호의를 보여보고자 하는 실험 말이다.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그냥 내가 한 번 더 속고 마는 거지 뭐····.’ 정운은 스스로를 다짐했다. 설사 무슨 결과가 나와도 마음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정말 다시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업료 정도로 생각하겠다고···. 그렇게 슬픈 생각을 하고 있는 정운이었다. 그런데 쉬고 있는 정운의 방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가도 돼요?” 어차피 이 집에서 이 시간에 정운의 방에 찾아올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정운은 슬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고, 그녀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사태도 예상하고 있었다. “들어와.” 그녀가 떠나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쿨 하게 보내주겠다고 생각한 정운이었다. 복수운운하기는 했지만 치졸하게 직접 손을 댈 생각은 없었다. 아직 슬기의 실력으로는 말벌파의 추적에서 홀로 대응 할 수 없다. 굳이 정운이 손 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안에 들어온 슬기는 차를 두 개 가지고 왔다.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차부터 한 잔 하실래요?” “·····그러지.” 안전 지역인 여기서 정운에게 독을 먹이는 것 따위는 어차피 불가능 했다. 정운은 그녀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차를 마셨다. “허브차가 있기에 끓였어요. 생각보다 괜찮죠?” “그렇군. ····그래서 할 얘기는 뭐야?” “······제 과거가 궁금하다고 하셨죠?” “················.” “그 과거를 얘기하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계기를 모두 설명하면···, 그럼 절 신뢰해 준다고 하셨죠?” “······그래.” 정운은 설마 설마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그 설마라는 얘기가 나왔다. “모두 얘기해 줄게요. 대신···. 저도 부탁이 있어요.” “그게 뭔데?” “제 얘기는···, 다른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도 많이 포함 되있어요. 그러니··. 정운씨에게만 설명 할 테니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내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하지.” “알았어요. 그럼 얘기 할게요. 저는····.” 이슬기. 그녀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이돌이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아이돌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돌. 문자 그대로 아이들의 우상이고 선망의 대상이다. 단순히 바라는 것을 넘어서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 중에서 데뷔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 그 데뷔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또 일부 중에 일부일 뿐이다. 거기다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고 5년 후에 계속해서 그 바닥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정말 그 안에서도 또 일부 중에 일부 중에 일부일 뿐이다. 그야말로 삽으로 모래를 한 가득 펐을 때 거기서 딱 한 알갱이 정도만 연예계에서 평생 종사 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의 세계였다. 재능? 노력? 그걸 믿고 이 바닥에 뛰어 들었다가 이빨도 안 들어간 사람은 길가의 돌맹이 만큼 흔했다. 그런건 대기업 입사하면서 면접에서 스팩 설명하면서 운전면허증이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애당초 그게 없으면서 뛰어드는 사람이 더 신기한 것이었다. 재능과 노력은 특출난게 아니라 기본적인 최소 사양일 뿐이었다. 어쨌든 그런 험난한 경쟁의 장에서도 그녀는 운 좋게 기회를 잡았다. 밀키웨이라는 5인조 그룹을 결성하면서 그녀는 메인 보컬을 맡으면서 데뷔에 성공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인기 몰이를 하면서 그녀는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빨리 달리는 사람은 종종 자신의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밀키 웨이라는 그룹은 메인 보컬인 그녀와 랩퍼인 메이라는 두 명이 핵심이었다. 사실 나머지 세 명은 나름 분할 파트가 있기는 했지만 그 비중이 압도적으로 적었다. 이제까지 별로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밀키웨이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나머지 은근히 질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 놓고 뭐라고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괴롭힘이나 보이지 않는 차별이 느껴졌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들 바쁜 스케줄에 지쳐서 힘들어서 그럴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집 활동이 끝나고··. 잠시 쉬었다가 2집 활동을 준비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파트가 확 줄었고 거기다 파트 자체도 메인 보컬에서 랩으로 바뀐 것이다. 랩은 잘 못한다고 말 했지만 다양한 시도를 위해서 하는 거니 무조건 따르라는 말로 소속사에서는 그녀에게 그 파트를 강요했다. 그녀는 거기서 이미 소속사에서 자신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저 앞만 보고 왔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녹음을 마치고 자신들의 곡의 샘플을 들으면서 그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랩은 여전이 어색했다. 하지만 그 어색한 랩을 메우고 남을 정도로 보컬의 부분이 훌륭했다. 문제는····. ‘지영이 언니가 5옥타브 파 음을 이렇게 깔끔하게 올릴 수 있었나?’ 노래가 좀 이상했다. 같이 녹음 할 때는 이렇게 깔끔하게 부르지 못했다. 몇 가지 실수가 느껴져서 다시 녹음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냥 넘어가자는 식으로 넘어갔다. 그녀가 고집을 피워도 별 소용없었다. 모두들 문제없다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나무랐다. 그리고 샘플 음원을 들으니 이렇게 깔끔한 소리가 나왔다. 기계로 약간 손본다고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이건 누군가가 대신 부른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슬기는 화가 나서 따지기 위해서 지영이라는 멤버를 찾으러 갔다. 그녀는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는데 마침 그녀가 사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연습생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사장실로 들어갔다. 원래 같으면 공손하게 노크를 하고 들어갈 그녀였지만 그때는 너무나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서 자기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광경을 봤다. 자신과 같은 그룹의 멤버인 지영이 소속사 사장과 몸을 섞고 있는 광경이었다. “아···. 아···. 아····.” “후욱···. 후욱···.” 둘은 슬기가 들어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들의 열락에 빠져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슬기는 처음에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가, 그 다음에는 마치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뒷걸음질을 치면서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쾅!! 문을 닫는 소리에 소속사의 사장은 고개를 돌려서 문을 보고는 지영에게 말했다. “야. 너 문 안 잠궜냐?” “····몰라요.” “망할···. 누군지 알아보고 입 막아야 하잖아···. 으읏···.” 말을 하던 사장은 자신의 몸에 자극을 주는 지영의 몸을 느끼고 신음했다. 그런 사장에게 지영이 요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던거나 마저 해요. 사장님.” “X 같은 년····.” 사장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자기보다 서른살은 어린 지영의 몸을 탐욕스럽게 범해갔다. 사무실을 나오고 즉시 소속사 건물 밖으로 나온 슬기는 머릿속으로 복잡한 상황을 다시 생각해 봤다. ‘둘이···. 둘이서···. 그거 성상납? 그런 거야?’ 그녀도 연예계에 몸담고 있었고 그런 소문을 듣기는 해 봤다. 하지만 설마하니 실존할 줄은 몰랐다. 둘이 사귀는 사이일 리는 없다. 사장은 나이도 훨씬 더 많았고, 또 처자식도 있는 몸이었다. 결국 결과는 하나 밖에 없었다. 지영은 자신의 몸을 소속사 사장에게 헌납하고 그걸 대가로 뭔가를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파트. 휴식 기간에 지영만 따로 CF를 몇 개인가 찍기도 했다. 증거가 점점 많아지자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자기가 어떻게 감당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지영과 단 둘이서 만났다. 그리고 사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봤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심 거기서 지영이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언니!!!” 지영이 뻔뻔스러운 태도로 일관하자 슬기는 입을 쩍 벌리고 소리쳤다. 그녀가 설마 이렇게 안면에 철판 깔고 나올 줄은 몰랐다. “시끄러. 이 바닥에서 한철이라도 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잖아? 내 노력을 질투할 시간 있으면····.” “그런건 노력이 아니에요. 반칙이라고 하는 거지.” “시끄러. 넌 남들보다 좀 튀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잖아? 내가 너 같은 목소리 가지고 있었으면 50대 아저씨한테 다리나 벌리고 있었을 것 같아?” “········언니.” “그래. 나 몸 팔았다. 어쩔래? 사장한테만 판거 아니야. 나한테 CF 몰아준 대기업 중역들도 내 위에서 재미 좀 보다가 갔지. 그래서 어쩌려고? 경찰에 성매매로 신고라도 할래?” “···········.” 신고라는 말이 나오자 슬기는 흠칫했다. 만약 여기서 신고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밀키웨이는 끝장일 것이다. 실제로 증거가 없다고 해도 여성 연예인에게 이런 추문이 한 번 들러붙으면 계속해서 따라 붙는다. 내부자의 신고라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앞으로 연예계에 두고두고 소문이 날 것이 뻔했다. 슬기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난···, 난 언니가 그런 것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제까지 한 거는····. 그냥 없던 걸로 했으면 좋겠어요.” 슬기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8화 슬기의 말을 들은 지영은 콧웃음을 치면서 가사롭다는 듯이 말했다. “하!! 결국 너도 너 자신은 아깝다는 거잖아? 그럼 얌전히 닥치고 있어. 알겠어?” “언니. 난····.” “도대체 내가 몸을 팔건 말건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나만 그런 것 하는 줄 알아!!?” “·······나만 이라니? 언니····? 설마····?” “몇 번인가 파티에 불려갔어. 아는 사람 많더라. 왜? 그 사람들도 다 신고해 볼래? 그게 될 것 같아?” “················.” “너라고 다를 것 같아? 정신 차려. 한 5년만 지나면 네 노래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 그때 너 뭐해 먹고 살래? 어차피 아이돌은 나이 먹으면 끝이야. 없는 재능으로 이 바닥에 계속 비비고 있으려면 수단 방법 가려야 할 것 같아?” “·······언니·······.” 슬기는 힘이 쭉 빠졌다. 이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 후로 소속사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계약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탈퇴도 쉽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밀키웨이로 계속 활동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활동 기간 동안 자신을 제외한 전원이 성상납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도 끈질긴 얘기가 있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다만····. 동경하고 간절하게 원했던 꿈을 이뤘지만 그 꿈의 실체를 알게 된 지금 그녀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날이 힘들고 지쳐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악성루머였다. 그녀가 툭하면 성상납을 한다거나···. 이미 임신을 한 적이 있어서 낙태 수술을 받았다거나···. 소속사에 대응 할 것을 말해 보기도 했지만 소속사는 미적지근하게 그냥 참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소속사에서 일부러 그렇게 한 말이었다. 개중에는 소속사 사장이 시켜서 소속사 직원이 주도하 루머들도 있었다. 자신들에게 반항적인 그녀를 길들이기 위해서 소속사에서 벌인 악의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인터넷에서 자신을 더러운 여자 취급하는 사람들은 진짜 자신을 모른다. 진짜 자신을 모르면서 그저 가상의 멍울을 씌우고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욕하고 모함하고 그러면서 심심풀이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자신은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녀는 견디고 견뎠다. 이제까지 노력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운이 없을 뿐이다. 계약 기간만 지나면 제대로 된 소속사에서 다시 계약해서 제대로 뮤지션으로서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녀의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계약 기간이 다 되어가는 어느날···. 그녀는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잠이 들었다. 매니저가 준비해둔 생수를 먹고 피곤함에 몸을 눕혔던 것은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 후에는 의식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생수에는 뭔가 약이 타져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순간에 조금 일찍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업어서 나르는 매니저와 옆에서 익숙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정말 이래도 됩니까?” “그래···. 어린년이 근성이 독해서 은근슬쩍 압박해서는 안 먹히네. 이런 년한테는 옛날 방식이 잘 먹힌다.” “············.” “쫄지 마라. 동영상 찍어서 확보만 해 놓으면 그 다음에는 순한 양처럼 하는 말 다 듣게 되있다.” 여기까지 말을 들은 슬기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한 번에 알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가 어느 빌딩의 계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정신이 들었다는 것을 모른다. 그녀는 일단 죽은 듯이 기절한 척 하고 있다가 이 둘이 방심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매니저가 어느 방에 자기를 내려 놓고는 잠시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움직였다. 어디든 좋으니 지금은 도망가야 했다. 그녀는 도망가기 위해서 몸을 일으켜서 방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멀리 도망가기도 전에 바로 들통나고 말았다. “제길!!! 잡아. 이 썅년 여기서 경찰에 신고하면 골치 아파 진다고.” “옛.” 슬기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불안감에 바들바들 떨었다. 저 짐승들에게 끔찍한 짓을 당할 바에는 그냥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리는게 나았다. 그때 그녀에게 문득 생각난 것은 얼마 전에 폰에 깔려진 그라운드 제로라는 이상한 어플이었다. 자신이 다운 한 적도 없는데 깔려서 뭔가 이상한 어플은 아닌가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몰라도 지우지 않고 그냐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지금도 112보다는 그 어플이 먼저 생각났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그 어플이 말이다. “····해 볼까?” 그녀는 홀린 것처럼 핸드폰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해서 소원을 클릭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놀랍게도 자신의 집이었고 몸 상태도 멀쩡했다. 그때가 그녀가 처음 그라운드 제로를 접했을 때였다. 그녀가 그라운드 제로를 접하고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안 순간 가장 먼저 행한 것은 그녀와 소속사 간의 인연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포인트를 써야 했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1초라도 그들과 관련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 사항을 클릭한 순간···. 그녀는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다음날····. 그녀는 인터넷 기사에서 자신의 소속사가 가스 폭발로 폭발하고 상당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순간 그녀는 몸을 덜덜 떨었다. 그 사망자 명단 중에는 지금은 소원해 졌지만 함께 연습생 시절부터 열심히 노력했던 동기도 있었다. 그녀의 계약은 약속대로 깨졌다. 계약의 주가 되는 사장이 사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녀는 20명이 넘는 인간을 죽이고 말았다. 그녀는 손을 덜덜 떨면서 몇날 며칠 동안 불안해했다. 방의 구석이 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치 뭔가가 자신을 심판 할 것만 같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초췌해진 그녀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이 모든 사태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뿐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고···. 그리고 결심했다. “난 할 거야. 해내고 말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로 들어갔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이게 다에요. 그 다음은 정운씨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벌파 사람들에게 속고···,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정운씨가 도와 줬어요.” “·············.” 정운은 슬기의 과거를 다 듣고는 많이 놀랐다. 그거야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정운이 생각하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가요? 이제 저를 믿을 수 있나요? 살인자인 저를·····.” 슬기는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얼굴을 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말했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마음이 이끄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어린애처럼 말했다. “살인이라기 보다는 사고에 가깝지.” 그리고 그런 정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랍게도 위로의 말이었다. 말하고 나서 정운 스스로도 살짝 놀랄 정도였다. 슬기는 오죽할까? “····예?”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반문하는 슬기에게 정운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살인은 네가 살의를 가지고 명확한 과정과 목적 하에서 상대를 죽였을 때 성립하는 거야. 넌 그라운드 제로로 널 지키려고 했고···. 그게 우연하게 누군가의 죽음으로 귀결 되었을 뿐이다.” “···············.” “넌 살인자가 아니야. 그러니··. 네가 부정해야 할 너 자신은 없어.” “·········흑····. 흑흑····.” 슬기는 정운의 말에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어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줬다. 그 날 부터··. 정운은 슬기를 믿기로 했다. ‘이번에도 배반당한다면···. 그때는 정말 이 망할 게임을 클리어하기 전에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며칠 후. “그럼 정운씨의 목적은 어머님을 살리는 거군요.” “그런거지···.” 정운의 사정을 들은 슬기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귀여운 표정을 하고 말했다. “····거짓말쟁이.” “응? 뭐가?” “이 세상의 모든 유저는 이기주의자에 믿을게 못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정작 자기는 아닌 주제에···.” “·····나라고 별로 다를 것 없어. 결국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악마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것 뿐이니까.” “아니요. 달라요. 적어도 자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아들을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건···. 마음대로 해.” 정운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돌렸다. 둘은 오늘도 순조롭게 사냥을 하고 이제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예전 같으면 말을 빨리 달려서 질주해서 떠나겠지만 지금은 그냥 산책하는 듯한 느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서로 마음을 연 다음부터 대화도 늘고 함께 하는 시간도 즐거워진 두 사람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레벨을 올리는 속도는 조금 줄었을지 몰라도 둘은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정운의 경우 오랜만에 다시 사람을 믿고 대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의식적으로 막고 있었던 외로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고···. 그래서 슬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더 즐거웠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말벌파의 보스인 구민구였다. 그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정운과 대화하면서 미소 짓고 있는 슬기를 보면서 이를 갈았다. “제길···, 정운 저 개새끼 이미 자기 여자로 만들었군. 망할 개새끼···. 죽여 버리고 말겠어.” 구민구는 사나운 광기로 이를 갈면서 중얼 거렸다. 이 남자의 인생의 원동력은 삐뚤어진 광기와 집념이다. 나쁜 쪽으로지만 포기를 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이다. 그런 그가 자기 취향에 딱 들어맞는 슬기를 포기할 리가 없었다. 삼대 길드를 부추겨서 정운이 새로운 길드를 만들려고 한다는 식으로 정보를 제공해서 손 안대고 코 풀려고도 해 봤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다. 그 후에 구민구는 렙 업도 그만두고 멀리서 슬기와 정운을 관찰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과 슬기가 54층으로 올라오고 나서 쭉 그들의 팬턴을 관찰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결행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슬기····.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죽여주마. 개 같은 년····.” 그는 이를 갈면서 주변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준비한 함정을 풀어라.” “···길드장님. 정말 하실 생각입니까?” “내 말 못 들었나?”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부하는 어딘가로 쪽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거 자칫 잘못 하면 길드의 전력이 대폭 깎일 텐데····.’ 속으로는 이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9화 <말벌파의 공격> “······응? 잠시만···.” 정운은 돌아가는 길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대지가 살짝 떨리는 이 느낌은 뭔가가 대량으로 달려오는 경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건 설마?” “정운씨? 왜 그래요?” “내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와.” “예?” “빨리!!!”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기를 데리고 재빨리 달려가기 시작했다. 목표는 마을로 가는 포탈이 있는 장소까지다. 하지만 가는 길목에 아니나 다를까 정운이 생각하던 함정이 있었다. “제길···.” 그 함정이란 바로 몹들의 무리였다. 그것도 명백하게 부자연스러운 대량의 몹들의 무리, 족히 100마리는 되어 보이는 흉폭한 늑대 무리가 모여 있었다. 원래 20마리 정도가 한 무리고 생활하는 놈들이 저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은 역시 이상한 일이었다. 정운은 그걸 보자마자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제기랄··. 역시 어그로 트랩.” “어그로 트랩이라뇨?” “나중에 설명해 줄게. 진로 변경이야. 따라와.” “·····예.” 슬기는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정운의 말에 따랐다. 어그로 트랩. 그것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길드들이 가끔씩 쓰는···, 아주 가끔씩 쓰는 PK의 수단이었다. 필드에서 길드원들이 흩어진다. 그 다음에 자신은 감당 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숫자의 어그로를 끌어서 몹들을 모은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몹들을 목표가 되는 쪽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중소 길드에서도 상당한 고수 유젇들을 잡는게 가능했다. 다만 이 PK법에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우선 어그로를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하는 길드원들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어그로를 끌고 도망 다닐 정도의 기동력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역할인 것이다. 즉, 최소한 중수 정도의 능력을 지닌 유저들을 다량으로 보유해야 가능한 방법이란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이게 가장 큰 문제인데 그렇게 어그로를 끌고 나서 미끼 역할을 하는 유저들이 살아남을 확률은 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막대한 희생을 미끼로 한 자폭 공격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나한테 이런 짓 할 놈들은···. 하나 밖에 없지.’ 정운은 말벌파의 구민구를 떠 올리면서 이를 갈았다. 원래 경계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슬기를 육성하느라고 잠시 놈들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방심이 이런 결과로 나타날 줄은 정운도 몰랐다. ‘정신 차리자···. 놈들의 어그로 트랩도 아마도 완벽하지는 않을 거야. 가장 안전한 길목을 막아놨을 테니···. 일단은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가는게 가장 안전해.’ 만약 이 자리에 있는게 정운 한명이라면 어떻게든 도망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기까지 데리고 도망가기 위해서는 역시 어느 정도 무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슬기야. 이쪽으로.” “예!!” 슬기도 어느정도 승마술이 늘어서 정운을 잘 따라왔다. 슬기가 타고 있는 백설도 좋은 명마였기에 거기에 잘 화답해서 질주하고 있었고 말이다. 정운은 중간 중간에 말벌파의 함정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넓은 지역을 질주했다. ‘함정의 숫자는 대략 다섯 군데···. 아니 확인 한 것만 그만큼이니까 실제로 따지면 일곱? 아니면 여덟 군데 정도는 될 거야.’ 정운은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함정이 없는 쪽으로 움직였다. 목표는 다크엘프의 숲. 이 54층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고 정운도 아직 사냥터로 삼지 않은 위험한 장소였다. 하지만, 거기라면 숲의 복잡한 지형 때문이라도 어그로 트랩을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운은 숲이 보이는 곳까지 달렸다. 가는 길에 몇 번인가 전투가 있었지만 몹을 잡는게 아니라 뿌리치는 것에 주력하는 전투였다. “하아앗!!!” 촤아악!!! “우워어어어!!!” 정운은 오우거의 배에 한 칼을 먹이고 그대로 흑토를 몰고 다시 달렸다. “정운씨!!!” “난 괜찮아. 넌 무조건 승마술에만 집중해. 말에서 넘어지면 절대 안 돼.” “·····예.” 슬기의 레벨로는 정운을 잡기 위해서 마련한 54층의 어그로 트랩에 대응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했다. 정운은 몇 번의 고군분투 끝에 다크엘프의 숲에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쿠워어어어!!” “우우우우우!!!!” 정운의 뒤편에는 몹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숲으로 따라왔다. 이미 어그로를 끌던 말벌파의 유저들은 태반이 죽어 버린 후였다. 하지만 폭주한 몹들은 이 근처에서 가장 고레벨인 정운을 목표로 해서 계속해서 달려오고 있었지만···. 다크엘프의 숲에서부터는 몇 마리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대신이 숲의 입구에서 몹들이 서성거리는 것이··. 적어도 지금 당장 정운이 다크엘프의 숲에서 탈출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말이었다. “쯧, 바로 잡아 죽이지는 못한 건가···?” “길드장님. 하지만 다크엘프의 숲에 몰아넣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이제 저기서 몹이 떨어지는 것만 견제하며 막으면 사흘 안에는 죽을 것입니다.‘ “열흘.” “예?”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열흘은 저기서 몹이 흩어지지 않게 막아라.” “·······알겠습니다.” 저 몹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려면 못해도 하루에 한 명씩 정도는 저기서 어그로를 끌면서 죽어야 한다. 즉, 유저 10명을 죽이라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이미 중견급 유저를 다수 잃은 말벌파에게 있어서 그 희생은 상당한 출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민구는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부하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실제로 불공평한 혈맹의 계약에 묶인 이상 부하들은 한 마디 불평조차 할 수 없었고 말이다. 한편 다크엘프의 숲에 들어온 정운은 깊숙한 곳까지 도망가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어그로를 물리치고 있었다. “산탄사!!” 퍼퍼퍼펑!!! 반경 7미터 안의 공간에 무수한 산탄의 화살을 날리는 정운의 공격이 작렬했다. “쿠워어어어!!!” 마지막까지 쫒아오던 오크 전사들이 그 화살에 고슴 도치가 되면서 쓰러졌다. 그리고 정운은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후우···. 이제 어떻게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군···.” “괜챃아요? 정운씨?” “일단 지금은··. 하지만 여기 오래 있으면 곤란한데···.” 정운은 주변을 둘러봤다. 차갑고 음습한 공기에 빽빽한 침엽수림···. 여기가 바로 54층의 보스몹인 다크엘프 퀸이 있는 다크엘프의 숲이다. 언젠가 공략할 대상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 레벨 20을 약간 넘긴 슬기를 데리고 단 둘이서는 더욱더 아니었다. 여기를 공략 하려면 거대 길드와 협력해서 적어도 50인 정도는 되는 공략조를 꾸린 다음에 공략해야 했다. ‘얌전히 어디서 있다가 물러나야 겠군··. 말벌파 놈들이 어그로를 언제까지 유지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며칠간 머물 각오를 하는게 좋겠어.’ 그러면서 가능하면 이 숲에 있는 몹들과의 전투도 피하는 것이 좋았다. 보스몹이 있는 필드의 몹들은 그 층에서 가장 강력한 놈들도 포진되어 있는게 기본 상식이었다. 안전한 마을이나 완전 안전한 저택과 달리 이 필드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몹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슬기야. 일단 기습 받지 않을 장소로 이동하자.” “예. 알겠어요.” 슬기는 정운의 명령에 순순히 대답했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 정운은 유일한 선생이고 동료였다.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크엘프의 숲에서 며칠을 보낸다는 것은 험난한 일이다. 의식주를 전부 안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했는데 평범한 현대의 아웃도어 생활하고 같다고 생각하면 큰 일이다. 일단 로브 정도는 있지만 침낭이나 텐트는 없었다. 거기다 언제 어디서 습격 할지 모르는 몹들까지···. “카아아앙!!!” “회천포!!!” 퍼어엉!!! 정운의 강력한 창을 이용한 찌그리게 라이칸스롭 전사의 몸뚱아리가 그대로 터져 버렸다. 정운의 액티브 스킬 중에 하나인 회천포는 창을 나선 형태로 회전 시키면서 찌르는 기술이다. 찌르기의 파괴력을 무려 500%나 증가 시키는 기술로 정운의 창술 중에서 파괴력이 가장 뛰어난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런 액티브 스킬을 써서 빨리빨리 몹들을 처리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운이 초조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여기도 안 되겠군···. 자리를 옮기자.” “예. 정운씨···” 정운이 라이칸스롭 전사를 처리하고 나자 그대로 슬기는 정운의 말을 따라서 움직였다. 둘은 이미 말을 인벤토리에 넣어둔 후였다. 숲이 가면 갈수록 빽빽했기 때문에 말로 움직이는 것 보다는 인간의 두 발로 움직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정운은 숲을 탐색하면서 어딘지 몰라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을 찾고 있었다. 필드에 세이프 존처럼 절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몹의 발길이 뜸한 지역은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었다. 길드들은 종종 장기 사냥을 떠날 때 그런 지역에 텐트를 치고 불침번을 세우면서 사냥을하기도 했다. 정운은 이 숲에서 그런 지역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그런 지역을 잘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숲에서 나타나는 몹은 대략 세 종류였다. 다크엘프 전사. 쉐도우 엘프 전사. 라이칸스롭 전사. 나타나는 몹은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을 것 같았지만 일단 정운이 확인한 것은 이 정도였다. 이 중에서도 특히 골치 아픈 것은 쉐도우 엘프 전사들이었다. 이 놈들은 하나같이 숙련된 암살자처럼 나무의 그림자에서 슬그머니 솟아나서 정운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주의를 기울였지만 초전의 공격을 계속해서 허용하고 있었다. 떨어진 정운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슬기는 일전 나서지 않고 힐링 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의 힐링으로 정운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오늘 해가 지기도 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결국 이동하고 이동했던 정운은 숲의 깊은곳에 있는 설원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침엽수립이 우거진 숲의 가운데서는 쉐도우 엘프들의 기습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탁 트인 설원에서 슬기와 돌아가면서 주변을 경계하며 체력을 회복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설원에 들어온 정운은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 설원의 어귀에 어떤 짐승의 것으로 보이는 동굴이 있었던 것이다. “잘 됐군··. 슬기야. 여기서 잠시 쉬어 갈 거야.” “···········.” “슬기야?” “예? 예···. 예····.” “···········.” 아무래도 정운이 보기에 슬기는 많이 지친 것 같았다. 빨리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굴의 안으로 들어간 정운은 생각보다 동굴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동굴의 길이는 기껏 해봐야 10미터 정도? 그리고 어떤 동물의 것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반대편에 입구가 없으면··. 여기서 일단 경계를 서면서 쉬자.” “····예. 알았어요.” 슬기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운은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공격이라도 당했어?” “그건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너무 추워요.”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그제야 정운은 아차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운의 경우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 영웅의 망토가 체온을 저절로 유지해주고 있었다. 그 아이템은 냉속성에 공격이 강한 아이템이라서 이런 설원의 추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슬기가 느끼기에는 지금의 추위는 심각한 것이었다. “쳇···. 슬기야. 일단 불 마법 쓸 수 있겠냐? 그걸로 체온을····.” “미안해요···. 지금···. 좀···.” 슬기는 말을 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 위기 속에서 무리하게 정운을 따라오고···. 거기다 강추위까지 겹치자 체력이 다 떨어지면서 실신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얼음장 동굴 속에서 조난당하고 거기에 쓰러진 여성.... 왕도라면 왕도다운 이벤트지요. 다만 분량 때문에 지금은 절단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0화 “큭····.” 정운은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는 것을 알았다. “망할···. 여기는 장작 땔 것도 없는데···.” 순간 숲까지 가서 나무를 베어 올까 생각했지만 어떤 몹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여기에 슬기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흑토. 나와라.” “히히힝···.” 정운은 흑토를 꺼내서 명령했다. “이 동굴의 입구를 지켜라. 필요하면 전투 형태도 허락 하겠다.” “히힝··.” 흑토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그리고 정운은 동굴에서 결심했다는 듯한 눈을 하고는 심호흡을 했다. “억울하면 나중에 따귀 한 대 정도는 맞아 줄게····.” 불씨 하나 없는 상황에서 차가운 냉장고 안이나 다름없는 이 동굴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이다. 정운은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면서 슬기의 옷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로브를 벗기고 그 안에 입고 있는 셔츠를 벗기기 시작했다. “·····음····.” 셔츠를 벗기고 그녀의 하얀색 브레지어에 감싸여 있는 그녀의 가슴이 드러나자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치 여자를 전혀 모르던 시절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떻게든 진정 시키면서 정운은 그녀의 옷을 벗겨갔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바지를 잡고 밑으로 내리지 브레지어와 같은 세트인 흰색 레이스의 팬티가 드러났다. 정운은 이것을 어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다시 슬기의 속옷을 벗겨갔다. 땀을 흘렸을 때 갈아입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속옷까지 젖어 있으면 좋지 않았다. 브레지어를 벗기자 겉으로 보던 것 보다 훨씬 더 예쁜 형태를 하고 있는 슬기의 가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녀의 팬티까지 벗기자 태어난 시절 그대로의 그녀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순간 정우는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녀의 몸을 멍하니 바라봤다. “············.” 아름다웠다.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뭔가 다른 수식어로 표현 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그저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여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하나도 빼지 않고 완벽하게 조화 시켜 놓은 것 같았다. 이대로 조각을 해서 항상 곁에 두고 보고 싶을 정도로···. 마치 수천억짜리 완벽한 예술품의 조각이 살아서 숨 쉬는 생동감까지 더해진 느낌이랄까? 정운은 자신을 잊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시각이 충족된 남자는 촉각의 만족을 원하는 법이다. 정운은 그대로 손을 뻗어서 봉긋하게 솟아 있는 슬기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한 손에 쥐고는 그 촉감에 자신도 모르게 활홀경에 빠졌다. 이건 그냥 여체를 애무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초월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충족되어 오는 어떤 충족감에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좀 더···. 좀 더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를 통해서 만족감을 얻고 싶었다. 정은은 그대로 다른 손을 그녀의 몸의 다른 부위로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으음······.” 슬기가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추위에 신음소리를 내자 정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정운은 황급하게 슬기의 몸에서 손을 땠다. 아직 손에 남아있는 보들보들한 감촉이 자신을 아쉽게 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슬기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운은 자신의 로브를 먼저 밑에 깔고 그 위에 슬기를 눕혔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도 알몸이 되어서 슬기를 꼭 끌어안고는 그 위에 로브를 덮었다. 서로 알몸이 되어서 슬기를 끌어안자 남자로서의 욕구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하지만 정운은 자신의 혀를 깨물면서 그 욕구를 참았다. 여기서 슬기를 범하면 자신이 경멸하던 그 말벌파의 쓰레기하고 다를 바가 없어져 버린다. 정운은 그 상태로 자신의 유니크 스킬인 기공술을 응용했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 말고도 유니크 스킬이라는 것이 있다. 특수한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골드를 무진장 쏟는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다른 스킬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중에서 정운이 익힌 기공술은 전신에 기공을 이용한 공격을 하게 하는 것이다. 무기에 기를 실어서 검기나 창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응용하면 전신의 체온을 끌어 올리는 것도 가능했다. 정운은 그대로 슬기의 몸을 꼭 끌어안고 그녀의 체온까지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직접 공격을 하는게 아니니까···. 시간은 충분해. 적어도 그녀가 정신을 차라기 전까지는 이러고 있자.’ 정운은 그녀의 체온을 유지하면서 한 편으로는 그녀의 부드러운 여체의 감촉을 느끼며 전율했다. 솔직히 말해서 몇 번이나 그녀의 몸을 범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지 몰랐다. 이슬기.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알 정도의 스타이며 그녀가 입는 옷 하나.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가 이슈가 된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손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 선망을 품고 동경을 품고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자신의 품안에 무방비하게 있다. 남자로서의 이기적인 욕망과 수컷으로서의 난폭한 욕정이 동시에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걸 필사적으로 억누르는 것은 슬기의 신뢰를 져버리고 싶지 않다는 정운의 이성이었다. 여기서 그녀를 안아서 일방적으로 욕심을 채우면 얻을 수 있는 것은 한순간의 쾌락. 그리고 앞으로 평생을 따라다닐 자괴감과 후회일 것이 뻔했다. 강제로 당했는데 나중에는 정이 붙어서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라는 관계는 실제로 있을 수 없다. 강제로 당한 여자는 남자를 미워하게 된다. 미워하게 되고, 증오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 고작 한 순간 남자로서의 욕정을 배설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그런 원망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게 그녀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를 자신이 배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운은 자신의 욕심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지켜주겠어··. 반드시, 반드시 널 지켜 주겠어.’ 이 순간···. 정운은 자신의 안에서 긴가민가하고 있던 감정의 형태가 뚜렷해 졌다. 어째서 그녀는 이렇게 자신을 흔드는 것일까? 어째서 그녀는 이렇게 자신을 애타게 하는 것일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정운은 슬기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정운에게 있어서 그녀는 그냥 여자가 아니라 여자 그 이상의 존재였다. “으음····. 어머!!!” 슬기는 정신을 차리고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뭔지 모를 포근한 어떤 것에 감싸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어떤 것···. 마치 어린 시절 아빠의 품에 안겨 있던 것처럼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포근한 품안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좋은 기분으로 눈을 떴을 때의 상황은 황당한 것이었다. 자신은 알몸이었고 거기에 정운을 품에 않고 누워 있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정운도 알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와 맨살을 부비면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설마···. 설마 정운씨가···.’ 슬기는 정운을 믿었다. 믿었지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음에 관한 커다란 배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배신감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 “흑··. 흑흑····.” 팔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하는 그녀는 자신이 순결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믿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를 정도로 아련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남자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슬픈 흐느낌을 듣고 정운이 눈을 떴다. “응? 어···? 어····.” “흑··. 비·· 비켜요.” “응. 어····.” 정운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어제 밤새도록 정신력이 다하도록 기공술을 응용하고 있었기에 온몸이 노곤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도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슬기의 알몸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 미안.” 정운이 사과를 하자 그 순간 슬기는 복 받친 것처럼 외쳤다 “미안하다면 다예요? 이 나쁜·····.” “미안···. 체온을 유지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어.” “그렇다고 제····. 체온···요?” “그래. 널 끌어안고 밤새도록 내 체온으로 네 체온을 유지했어.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 “···········.” 슬기는 그제야 자신이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 보면 듣던 것처럼 몸이 아프다거나 혹은 하혈을 한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정운과 맞닿고 있었던 부분에 따뜻한 체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죠?” 슬기가 샐쭉한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맹세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니 믿어줄래?‘ 정운의 말을 들으면서 슬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믿을게요. 그러니···. 잠시 옷 입게 좀 돌아 줄래요?” “어차피 볼건 다 봤···. 얌전히 있을게.” 정운은 슬기가 째릿하게 노려보자 살짝 뒤로 돌아봤다. 양심에 약간 찔려서일까? 레벨 차이에 상관없이 그대로 순순히 뒤로 돌아보는 정운이었다. 사실 약간 아쉽기도 했다. 잠시 후에 둘은 옷을 입고는 마주 앉았다. “일단 한동안은 이 동굴을 중심으로 생활하도록 하자. 레벨업은 둘째 치고 오로지 생존을 우선시 해서 움직여야 해.” “생존을요?” “저 침엽수립에서 어느 정도의 사냥감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장작도···.” “장작은 중요하죠···. 장작은···.” “그렇지···.” 장작이 없으면 또 밤마다 체온 유지를 위해서 서로 몸을 맞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장작은 꼭 필요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굴을 나왔다. 동굴을 나오자 입구 부분에서 흑토가 두 사람을 반기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는 라이칸 스롭으로 보이는 시체가 있었다. “어머? 정운씨 이건?” “음. 밤새 흑토가 해치운 모양이네.” 정운의 말에 슬기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흑토가 싸울 수도 있어요?” “그래. 이 녀석 클래스가 영수인데 이 정도 몹들은 혼자서도 상대 가능하지.” 사실 슬기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제의 어그로 트랩에서도 정운 혼자였다면 충분히 도망 갈 수 있었다. 굳이 그걸 말해서 슬기가 스스로를 짐짝처럼 느끼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에 입조심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정운은 눈보라가 좀 잠잠해진 틈을 타고 일단 숲으로 향했다. 말벌파가 어그로를 유지 할 때까지 이 숲에서 슬기와 함께 있어야 했다. 정운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건조 식량이 있었고, 그리고 식수는 설원이 눈을 먹으면 되었다. 하지만 역시 장작과 여분의 식량은 꼭 필요했다. 슬기를 동굴에 놓고 올 것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만약 정운이 없을 때 슬기가 감당하기도 힘든 몹이 쳐들어 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정운의 눈이 닿는 곳에 두는게 가장 안전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1화 <퀘스트 포인트> 둘은 일단 숲으로 가서 적당한 사냥감을 찾고 그리고 장작을 모아 오려고 했다. “·············.” “·············.” 다만 장작을 줍는 두 사람의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어제 그런 일이 있다 보니 뭐라고 말을 꺼내기가 좀 어색했던 것이다. 정운은 땔감을 주우면서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마치 사춘기 시절 첫사랑에 빠졌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어떻게든 다가가고는 싶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그 느낌이었다. 스스로 슬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망설여지고 있었고 그런 마음이 점점 입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하아···. 내가 뭐하는 건지···.’ 사실 앞으로 혈맹으로 쭉 같이 행동해야 할 텐데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그 어색함을 어떻게 할까? 어째서인지 점점 안 좋은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씨. 정운씨?” “응? 아아··. 왜?” “저기··. 저쪽에 이상한 것이 보여서요.” “이상한 것? 어···. 저게 뭐지?” 슬기가 가리킨 곳에는 반딧불 같은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반딧불 치고는 좀 커다란 느낌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무슨 몹일까요?” “글쎄···. 어째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한 번 가 봐도 될까요?” “그래. 같이 가 줄게.” 정운은 슬기와 함께 불빛이 반짝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둘은 한 가지 물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나뭇가지에 쓰러져 누워 있는 손바닥 만한 작은 인간에 등에는 잠자리 같은 날개가 달려 있는 물체였다. 슬기는 조심 스럽게 그 존재를 손바닥에 올리면서 말했다. “이건···? 요정인가요?” “페어리군. 그런데 이건 몹이 아니야.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중에 54층에 이런 몹은 없어.” “이 아이 다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니 슬기의 말대로 그 페어리는 다쳐 있는 상태였다. 다쳐서 여기저기에서 피 대신에 빛의 입자가 세어 나오고 있었다. 정운은 순간 직감이 왔다. “이거···. 생각보다 대박인지도 모르겠는데?” “예? 대박요?” “그래. 이건 퀘스트 포인트인지도 몰라. 아니 아마 거의 확실할 거야.” “퀘스트 포인트요?” “응.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퀘스트는 있어. 하지만 다른 게임들처럼 막 얻을 수는 없지.” “····설명해 주실래요?” “일단 이 페어리를 동굴로 옮기도록 하자. 사냥감은 몰라도 장작은 충분히 주웠으니까···.” “예. 알았어요.” 정운과 슬기는 다친 페어리를 데리고 일단 동굴로 돌아왔다. “파이어 볼트.” 퍼엉····. 슬기가 마법으로 단번에 장작에 불길을 붙였다. 그리고 둘은 작은 헝겊에 페어리를 눕혀 두고는 상태를 지켜봤다. “정운씨. 퀘스트 포인트가 뭔지 가르쳐 주세요.” “아···. 가르쳐 줄게. 퀘스트 포인트는 퀘스트로 돌입하는 시점 역할을 하는 거야. 어떨 때는 숨겨진 던전일 때도 있고 NPC일 때도 있고··, 경우는 천차만별이지. 하지만 공통점은 클리어 했을 때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거야.” 퀘스트 포인트. 그것은 정운의 말 대로 퀘스트로 들어갈 수 있는 포인트를 말하는 것이다. 연예 시물레이션 같은 걸로 치면 이벤트를 보기 위한 플레그 같은 거라고 할까?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무수히 많은 퀘스트가 있지만···. 공통점은 똑같은 퀘스트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퀘스트 포인트를 발견 하고 못 하고는 오로지 운에 달렸다. 때로는 그냥 랜덤하게 나타나거나··, 혹은 어떤 조건을 클리어해야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접한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그 난이도에 따라서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주로 유니크 아이템이나, 유니크 스킬, 혹은 거기에 준하는 어떤 것으로 보상한다. 이 퀘스트 포인트는 돈을 준다고 얻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발견하면 몹시 귀한 취급을 받았다. 어떤 유저는 자신이 발견한 퀘스트 포인트를 거대 길드에 이양했다. 이양 가능한 종류의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 유저는 그게 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그때 그 유저가 얻었던 돈은 2,000만 골드. 그게 어떤 퀘스트인지는 둘째 치고 고위급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정운이 가지고 있는 유니크 스킬인 기공술 역시도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보상을 받은 것이다. 필드에서 헤매고 있는 어떤 노인을 도와주고는 그 노인이 원하는 약초를 구해주고 나니 기공술이라는 비급을 줬다. 뭐, 그게 결국은 스킬북이었지만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퀘스트를 정운은 세 개를 클리어 했다. 그 중에서 하나는 정운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간신히 클리어한 것이기도 했다. 다만 그만큼 보상도 컸지만 말이다. ‘이번 퀘스트는 얼마나 큰 퀘스트인지 몰라도···. 일단 적당히 들어보고 중간에 빠져 나올지 말지를 생각하는게 좋을 것 같군.’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페어리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슬기와 정운이 건조 식량을 먹으면서 반나절 정도 기다리자 페어리가 눈을 떴다. 눈을 뜬 페어리는 정운과 슬기를 보고는 말했다. “여러분들이 절 도와 주신 건가요?” “····그래.” 정운이 순순히 인정하자 페어리는 허공으로 반짝거리면서 날아와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슬기는 페어리의 말에 겸양을 떨면서 말했다. 아직 NPC라는 것을 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유저들이 종종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NPC들은 프로그램으로 정해진 말만 하는 그런 종류의 NPC들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유저가 아닐 뿐이지 그들은 실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다만 철저하게 정해진 룰의 반경을 벗어나지는 않을 뿐이었다. 그래서 몇몇 유저들은 저 NPC들이 자신들처럼 어떤 이유로 악마들과 계약을 한 인간들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유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말이었다. 그런 NPC들이다 보니 몇몇 유저들 특히 정착자 중에서는 NPC를 반려로 삼아서 이 세계에 뿌리를 내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유 없이 NPC를 공격하거나 하는 위해를 끼치는 것은 무리지만 정운이 한 것처럼 계약을 맺어서 그 NPC를 고용하는 것은 가능했다. 뭐, 일종의 자기 위안일지 모르지만 욕망의 망자나 이기주의자들이 만연하는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는 차라리 NPC들을 더 믿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 페어리는 실제로 크게 감사를 표하고는 정운에게 살며시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실례지만···, 상당히 강한 모험자 분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글쎄···. 어느 정도는?” “정운씨 굉장히 강해요.” 정운의 말에 슬기가 재빨리 뒤를 받쳤다. “고마워··.” “어··. 아···. 예.” 정운이 슬기에게 고맙다고 하자 슬기는 살짝 당황했다. 정운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몰랐지만···. 슬기가 기억하기로 정운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이다. ‘····혹시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건가? 아니··.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슬기는 잠시 고뇌에 빠졌고 페어리는 그 와중에 정운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모험자 분의 강한 힘과 정의심을 믿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페어리들의 여왕님. 페어리 퀸을 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페어리 퀸을 구해? 무슨 말이야?” “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페어리는 본격적으로 퀘스트의 진행이 될수 있는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운은 그 얘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배경 스토리 하나하나에서 퀘스트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었다. 놓치지 않고 똑바로 들어야 했다. 먼 과거··. 이 숲에는 무수히 많은 페어리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항상 봄날처럼 꽃이 피어있고 따뜻한 봄바람과 태양이 항상 대지를 축복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타락한 엘프인 다크엘프들과 쉐도우 엘프들이 이 숲에 차가운 겨울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들은 꽃을 말려 죽이고 자신들의 나무인 침엽수림을 심고 오로지 자신들만의 영토로 이 숲을 바꾸기 시작했다. 페어리들의 여왕인 페어리 퀸은 그들에게 그러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페어리 퀸을 돕지 않았다. 분노한 요정족의 여왕은 자신들의 일족을 이끌고 싸웠지만 다크엘프들과 쉐도우 엘프들의 연합군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패배한 페어리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겼고, 페어리 퀸은 쉐도우 엘프 킹에게 붙잡혀서 봉인 당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페어리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중에 몇몇은 끈질긴 쉐도우 엘프들의 추적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배경 설정을 설명한 페어리는 정운에게 애타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부탁 드립니다. 모험자님. 부디 우리 일족을 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름모를 페어리의 설명이 여기까지 이어지자 정운의 눈앞에 한 개의 창이 떠 올랐다. [AAA급 퀘스트, 페어리 퀸 구출이 떳습니다. 승낙 하시겠습니까?] ‘AAA급? 이런·····.’ 정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예전에 기공술을 익혔던 퀘스트는 A급이었다. 그 후에 클리어 한 것은 A+급이었고··. 그리고 그 다음에 거의 죽을 뻔 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클리어 했던 것이 바로AA+급의 퀘스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한 단계 위인 AAA급의 퀘스트라니···. 섣불리 손이 가지를 않았다. ‘어떻게 하지? 이거 클리어 해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거대 길드에게 이 상태로 그대로 넘길까?’ 말을 들어보니 이 페어리가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여왕을 구출해줄 대상이다. 그렇다면 굳이 정운이 계속 속행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그 임무를 도와줄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말한 다음에 거대 길드들에게 낙찰을 보면 된다. 하지만····. 정운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 안주하는 유저가 아니라 클리어를 하려는 유저였다. 그렇다면 AAA급 퀘스트는 정말 놓치기 아쉬운 퀘스트였다. 정운은 일단 파트너이기도 한 슬기하고 의논을 해 봤다. “슬기야. 어떻게 생각해? AAA급의 퀘스트는 솔직히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야. 하지만 자칫 잘못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기도 해.” 정운의 말에 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운씨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난 이 게임을 클리어 하고 싶어. 그리고···. 위험한 다리를 건넌다고 해도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기는 싫어.” 정운으로서는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슬기는 말했다. “저도 도와 드릴게요.” “아니. 저기 슬기야···. 넌 빠져.” “····예?” “AAA급 퀘스트야. 나도 AA+급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강해지기는 했지만 이번 퀘스트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그러니···. 일단 넌 말벌파의 포위가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저택으로 돌아가서 나오지 마. 내가 모든 것을 끝내고 저택으로 돌아갈게.” “···········그거 진심이에요?” “그래.” 슬기의 말에 정운은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아무리 슬기가 저 레벨이라고 해도 법사 하나 데리고 가는게 더 도움이 되기는 한다. 그리고 여차하면 희생말로도 쓸 수 있을지 모르고 말이다. 그것이 보통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의 유저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슬기를 위험에 빠트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반했다는 자각을 한 이후로는 그녀를 함부로 굴릴 수가 없어져 버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지켜주고 싶다는 남자 특유의 본능이 자꾸 고개를 드밀고 있는 것이다. 정운의 말을 들은 슬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싫어요.” ============================ 작품 후기 ============================ 무협에는 기연. 판타지에는 마법. 게임에서는 퀘스트. 보통 주인공을 강화하는 왕도 팬턴중에 하나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2화 “···왜? 싫다는 건데?” “전 정운씨 파트너잖아요. 힘이 있든 없든···. 제가 정운씨 곁에 없으면 어떻게 해요?” “····언젠가는 네가 계속 내 옆에 있을 거야. 하지만 아직은 네 힘이 부족해. 그러니···.” “내가 힘이 부족하니까 좀 더 정운씨 옆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힘을 기를 수 있게?” “···············.” 슬기의 말은 맞았다. 애당초 레벨이 어느 정도 올라가기 시작하면 노 리스크로 레벨을 올리는 것은 무리다. 강해지고 싶으면 그만큼 리스크를 무릅쓰고 용기를 내서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정운도 머리로는 슬기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트너인 이상 위험한 도박을 할 때는 똑같이 칩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 비록 그 칩이 목숨이라고 해도 말이다. “···알았어. 그럼 함께 하자.” “예. 알았어요. 정운씨.” 슬기는 그제야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남자는 반한 여자의 미소에 마냥 행복해 질 수 있는 생물인 법인가 보다. 정운과 슬기는 퀘스트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페어리의 안내를 받아서 숨겨진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 바위를 치우면 쉐도우 엘프들의 지하 도시가 나타납니다.” “그 안에서 쉐도우 엘프 킹을 잡으면 되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알았어. 넌 이제 위험하니까 내 가방 안에 들어가 있어.” “예. 부탁 드립니다. 모험자님.” 페어리가 정운의 인벤토리에 들어가고 정운은 슬기에게 당부했다. “내 뒤에서 백업에 주력해야 해. 주로 내 회복과 적의 약화에 주력해.” “예. 알겠어요.” “명심해. 절대로 무리하지 마. 퀘스트 클리어는 천천히 조금씩 하는 거야.” “알았어요.” 원래 사냥을 할 때 장비를 충실하게 가져오는 정운이다. 그래서 장비는 새로 보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실했다. 물론 미발견 던전을 탐험하는 것이니 만큼 위험성이 좀 있었지만····.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보상도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게 기본이었다. 드디어 정운은 슬기와 함께 던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흠····. 과연···.” 그리고 정운은 들어가자 마자 던전의 형태를 신중하게 살폈다. 던전의 내부는 깔끔한 벽돌로 만들어진 사각의 미궁 같은 형태였다. ‘이런 형태라면 함정이 있을 수도 있겠군···. 주의해서 가야겠어.’ 벽에서 화살이 날아오거나 지반이 무너지거나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거나···. 고전적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골치 아픈게 아닌 함정들이었다. 던전에서는 몹들 이상으로 그런 존재를 조심해야 했다. 정운은 방심하지 않고 슬기와 함께 조심스럽게 전진해 갔다. 다행이도 함정은 없었지만 끝까지 신중함을 풀지 않았다. 이렇게 방심 시키다가 막판에 푹!! 그런 함정도 몇 번인가 목격했던 정운이었다. 그렇게 신중하게 던전을 전진하던 정운은 어떤 관문을 발견했다. “········흠. 제대로 찾아 온 것 같은데.” 정운은 일단 관문을 열고 그 안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수십개는 되는 석주가 세워져 있는 동공이 있었다. “···슬기야.” “예.” “넌 이 동공에 들어오지 말고 입구 부근에서 날 엄호해. 나도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예. 알았어요.” 정운은 여기서 쯤에 뭔가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업에 슬기를 남겨두고 혼자서 살금살금 걸어갔다. “기공술 사용.” 정운이 기공술을 사용하자 전신에 기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온몸에 힘이 돌고 감각도 예리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액티브 스킬도 아니고 유니크 스킬은 사용하는 만큼 정신력의 소모가 강했다. 그래서 함부로 남발 할 수는 없었지만 써야 할 때는 써야 했다. 날이 선 진검처럼 날카로워 진 정운의 감각에 지름이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이 동공안에 다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실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수의 살기가 자신을 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초반은 기공술만으로 대응할까?’ 정운은 서서히 석주의 사이를 걸으면서 상대의 공격을 유도했다. 사실 정운은 자신이 있었다. 쉐도우 엘프들은 갑작스런 기습이 특기다. 하지만 첫 번째의 기습만 피하고 나면 그 다음 공격은 별것 아니었다. 더구나 정운이 입고 있는 장비는 장인의 미스릴 갑옷 이라는 것이다. 방어력 500에 저주나 독 같은 것에도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암살자들의 가장 큰 무기인 독이나 저주에 대항하기에는 천적인 방어 장비인 것이다. 정운은 다른 장비는 일단 집어넣고 정령의 태도만 꺼내서 거기에 화속성을 불어 넣었다. 화르륵···. 정령의 태도에 불길이 일어나면서 주변의 석주의 그림자들이 일렁이면서 파도치듯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운은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먼저 한 마리!!!” 푸욱!!! “크아악!!!” 정운이 아무것도 없는 석주의 그림자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거기서 잠복하고 있던 쉐도우 엘프 하나가 비명을 지르면서 죽었다. 그리고 동시에 동료의 죽음에 반응해서 무수히 많은 쉐도우 엘프들이 그림자에서 나와서 정운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흥, 누가 쉐도우 엘프 아니랄까봐···. 어디 숨었는지 너무 뻔해.” 정운은 일단 그들을 상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상대하지 않고 동공의 입구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거기서 슬기와 합류했다. “내가 입구를 막을게. 넌 마법으로 지원해.” “예. 알았어요. 정운씨.” 슬기의 마법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하지만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좁은 입구에서 싸우면 쉐도우 엘프들이 공격해 올 방향이 정면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암살자 나부랭이들 주제에 정면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냐!!!?” 정운은 그렇게 외치면서 정령의 태도를 사납게 휘둘렀다. 화아아악!! “크아악!!” “아아아!!!!” 쉐도우 엘프들은 정운의 공격에 불나방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기는 짧은 단도와 입으로 부는 바람 화살 총이었다. 아마도 화살 총에는 독이 발라져 있겠지만 정운이 가지고 있는 장비의 독 내성을 뛰어 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짧은 단도를 가지고 기다란 태도를 장비하고 있는 정운에게 덤벼봤자 닿기도 전에 화염에 휩싸여서 불타오를 뿐이었다. 몇 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순식간에 무모한 공격을 하다가 당하자 주변에 다른 쉐도우 엘프들은 주춤 거리기 시작했다. 좁은 입구에서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생각보다 똑똑한 놈들이군···. 이래서 인간형 몹은 까다롭다니까···.’ 원래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냥 마수나 짐승들은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지만 인간형 몹, 그러니까 이족종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 생각을 하면서 행동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아무리 몹이 생각을 해도 몹이라는 기본 로직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정운은 자신의 뒤편에 있는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저기 떨어져 있는 놈에게 스턴을 걸어.” “예. 스턴!!” 파지직!! “크앗!!” 슬기의 스턴은 지금 LV.4 네 명의 적에게 동시에 스파크를 날리고 동작을 살짝 주춤 거리게 한다. 그리고 그거면 정운에게는 충분했다. “검풍!!!” 퍼어엉!!! 정운이 액티브 스킬 검풍을 쓰면서 정령의 태도를 휘두르자 반달 모양의 기공의 칼날이 날아가서 쉐도우 엘프들에게 작렬했다. 더구나 정령의 태도에 화염의 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반달 모양의 화염의 검풍이 날아가서 동작이 정지한 쉐도우 엘프들에게 작렬했다. 원래 검풍은 기공술을 사용한 상태에서만 사용 가능한 기술로 정운이 검술로 사용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원거리 기술이다. 반달 모양의 공격을 날리는 기술로 위력 자체는 정운의 평범한 참격하고 비슷하다. 레벨이 올라 갈수록 거리가 멀어지고 현재 정운의 검풍의 레벨은 LV.5 거리는 약 50미터다. 즉, 이 동공의 안에서는 정운의 공격을 피할 곳이 전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슬기가 스턴을 걸고 동작이 잠깐 멈춘 타이밍을 노려서 공격하면 그냥 슈팅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크아악!!!” “커억!!!” 쉐도우 엘프 30마리는 모두들 추풍낙엽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애당초 암살자라는 설정답게 체력이 그다지 강한 몹이 아니었다. 정운의 검풍을 한 대, 혹은 두 대 정도 맞으면 모두 불타올라서 죽어갔다. 가까이 가면 정운에게 베여 죽고 멀리 떨어지면 슬기의 스턴에 이어서 날아오는 검풍에 불타서 죽고····. 지형을 이용한 완벽한 공격법이 있는 이상 이런 놈들 전혀 무서운 놈들이 아니었다. [띠링, 1차 관문을 클리어 했습니다.] 정운이 마지막 쉐도우 엘프를 죽이는 순간 정운과 슬기의 앞에 알림창이 떴다. “호오···. 이런 던전인가? 잘 됐군.” “예? 뭐가 잘 된거죠?” 정운이 잘 됐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슬기를 보고 정운은 싱긋 웃으면서 설명했다. “오면서 함정이 없어서 혹시나 했지만 아마도 이 던전은 여러개의 관문이 있고 그 관문을 모두 통과해서 보스몹에 도달하는 던전일 거야.” “그렇군요···. 그게 좋은 건가요?” “좋은 거지. 적어도 관문에서의 전투 말고는 전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쉬는 공간과 시간이 생길 수 있잖아?” “아······.” 정운의 설명을 들은 슬기는 그제야 감탄을 하면서 정운이 하는 말을 이해했다. 한편 정운은 얻은 전리품을 체크하면서 중얼 거렸다. “더구나 이 놈들···. 아이템과 경험치도 제법 쏠쏠하게 주는걸? 타란툴라의 맹독에, 흑철이 섞인 단검까지···.” “좋은 편인가요?” “상당히···. 이 정도로 물 좋은 사냥터는 흔하지 않아. 흠···, 이 관문을 20회··, 아니 50회 정도는 리플레이 하는게 좋겠어.” “예? 그만큼이나요?” 슬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던전 공략중에 한 곳을 그렇게 많이 반복 공략 한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사실 정운이 보기에는 별로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 정도는 해야지. 잘 하면 이 관문에서만 네 레벨을 두 단계는 올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어떤 희귀 아이템을 떨어트릴 수도 있고.” 정운이 보기에 이 석주로 늘어져 있는 공동은 사냥터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았다. 아마도 퀘스트로 발견한 던전이니까 그럴 것이겠지만 경험치도 아이템도 쏠쏠했고, 무엇보다 다른 유저의 방해 없이 자신들이 독점해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장소를 활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이 동공으로 통하는 문을 막고 야영 준비를 하자.” “어···. 정운씨. 그게 문제가 있어요.” “응? 뭐가?” “저기··. 장작은 저희 인벤토리에 약간 있지만 이제 건조 식량은 이틀치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어요. 어쩌죠?” 슬기의 말에 정운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그럼 알아서 사냥감이 올 거야.” “정말요? 여기서?” “그래.” “·······설마 저 쉐도우 엘프를 잡아먹을 생각은 아니겠죠?” “그러겠냐!!?” 정운은 어이없어서 소리를 빽 질렀다. 가끔씩 맹한 구석이 있어서 황당한 여자였다. 뭐, 덕분에 같이 있으면 질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3화 <본격적인 퀘스트 공략> 정운과 슬기가 간단히 장작에 불을 붙이고 양영을 준비하는 동안 정운은 틈틈이 공동의 문을 열면서 쉐도우 엘프들이 리젠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쉐도우 엘프들이 30분 간격으로 리젠하는 것을 알았다. “흐음···. 소모성 장비의 소비 없이 사냥을 하려면 40분···. 아니 50분에 한 타임씩 뛰면 되는 건가? 그럼 하루에 10번을 플레이 한다고 생각하면 약 여덟 시간 반 정도···. 여기서 닷새 정도는 머무는게 좋겠어. 그리고 정신적 피로를 봤을 때 오전 4시간, 그리고 오후에 4시간 반 정도로 나눠서 사냥 하는게 좋겠고···. 어때? 뭐 문제 같은 것 있어?” 정운이 착착 사냥 스케줄을 계산하는 것을 보고 슬기는 감탄했다. 여자는 원래 남자가 척척 뭔가를 알아서 하는 것을 보고 듬직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남자에게는···. “예. 정운씨 뜻대로 하세요.” 이렇게 여자도 순종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녀의 입자에서 봤을 때는 무조건 정운의 말이 진리였다. 그리고 그때 입구 쪽에서 뭔가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응? 뭐가···. 어머? 흑토가···.” “아, 이제 왔나? 잡아 온 모양이네.” 입구쪽에서 들어온 것은 정운의 영수인 흑토였다. 정운은 흑토가 던전에 들어온 순간 이 던전에서는 흑토가 활약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흑토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숲에서 간단한 사냥감을 잡아 오라고 했다. 보통 전마가 사냥을 해 오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수의 영역에 오른 흑토였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흑토는 등에 작은 사슴 한 마리와 토끼 두 마리 그리고 꿩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 “이 정도면 충분 하겠어··. 사슴만 가지고도 조절해서 먹으면 열흘은 먹을 거야.” 정운은 흑토의 등에서 사냥감을 잡아서 익숙하게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기는 흑토를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흑토가 대단하네요. 말이 사냥도 하다니···.” “꾸준히 레벨업 시켰거든. 네 백설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 지도 모르지.” 사실 모든 탈것을 애용하는 유저들은 많지만 모든 유저들이 자신의 탈것을 이렇게 크게 레벨업 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전투 중에 그 탈것이 사망하는 경우가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키우던 탈것이 죽으면 다른 것으로 교환한다. 상위 유저들 사이에서는 주로 마수 계열이 인기 상품이었다. 많이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인을 도와서 전투에 참여 할 수도 있었기에 인기 상품이었다. 다만 정운처럼 애지중지 해가면서 1급 전마에서 영수의 영역까지 업그레이드 시키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실제로 흑토에는 골드도 제법 많이 들었다. 그냥 경험치만 쌓으면 레벨업을 하는게 아니라 필요한 아이템들도 상당히 많았고···. 영수로 업그레이드 하는데 든 돈은 족히 800만 골드는 넘을 것이다. 보통 탈 것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50만 골드면 상위급 유저가 쓸 만한 마수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운은 슬기를 만나기 전에는 흑토가 유일한 전우였고, 말 상대였다. 최대한 냉정하게 그라운드 제로의 공략에만 주력하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토에는 신경을 썼던 것이다. 역시 인간은 혼자서 고고하기에는 불가능한 생물일지도 모른다. 비록 살아 있는지 아닌지도 모를 존재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교감할 대상은 항상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수고했다. 흑토야.” “히힝···.” 흑토는 주인이 칭찬에 기분 좋다는 듯이 투레질을 쳤다. “검풍!!!!” 퍼어엉!!! “크아악!!!” 정운의 일격에 활활 불타오르는 쉐도우 엘프를 끝으로 또 다시 이 동공을 클리어 했다. 그리고 오늘로 드디어 정운과 슬기는 목표한 클리어 횟수를 완전히 클리어 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흑토가 준비해준 사냥감을 비축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냥에 부지런히 열을 올렸다. 덕분에 슬기의 경우 이제 레벨이 25가 되었다. 정운은 아직 레벨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경험치를 상당히 축척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층의 쉐도우 엘프 암살자들이 주는 아이템도 제법 충실했다. 기본 골드도 제법 주었고, 특히 귀중한 재료 아이템인 오리하르콘 금속바를 다섯 개나 떨어트렸다. “흠, 이거 하나에 시세로 최하 10만 골드인데 말이야···.” 정운은 바닥에 떨어진 오리하르콘 금속바를 주우면서 기본 좋게 중얼 거렸다. 고위급 장비를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재료 아이템인 이 아기 손바닥 만한 오리하르콘 금속바는 무척 인기 아이템이었다. 여러 가지 아이템을 맞추는데 들어가고 워낙에 소량이었기에 상점에서 파는 것 보다 유저간의 직거래를 하는게 더 시세를 높게 받을 정도였다. NPC가 운영하는 상점은 아무래도 팔때와 살때의 차이가 너무 컸다. 어쨌든 여기서 단물은 충분히 빨았다. 이제 다음 광장으로 나가야 할 때였다. 다만 이제부터 흑토가 사냥을 해오지는 못할 것이다. 필드 밖으로 나가려면 이 쉐도우 엘프들의 공동을 지나서 이동해야 하는데···. 흑토 혼자서 여기를 통과하게 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는 없었다. 정운은 일단 흑토를 인벤토리에 넣고 슬기와 함께 이동했다. 두 번째로 들어간 관문은 묘지였다. 지하에 있는 공동 묘지 같은 장소였는데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몹은 고스트라는 몹이었다. “칫···, 이건 좀 까다로운데.” 정운은 동공에 들어가기 전부터 필드를 배회하고 있는 고스트의 무리를 보고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가 물었다. “많이 강한 몹인가요?” “강하다기 보다는···, 나하고 상성이 안 좋아.” “유령이라서요?” “그래···. 실체가 없는 것에 대미지를 주는 스킬이 없는 것은 아닌데 효율이 좋지 않아서···.” 정운의 무기에 기공술로 기를 보내서 치면 유령에게도 대미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줄 수 있는 대미지는 실체가 있는 몹을 가격했을 때의 3분의1정도에 불과했다. 공격력이 순식간에 3분의1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척 봐도 100마리는 되어 보이네··. 이 놈들 선공 몹은 아니지만 한 번 달려들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어쩌죠? 뭔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런 스피릿 계열에는 법사 계열의 공격이 더 잘 통하기는 한다. 마법 공격은 기본적으로 이런 유체들에게 150%의 확대 효과를 발휘한다. 거기다 이런 스피릿 계열의 몹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마법을 사용하면 그 효과는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슬기가 그런 마법을 익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벨 30이 되면 스킬도 더 익히게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직 이었다. 슬기가 지금 쓸 수 있는 주문은···. 파이어 볼트, 아이스 볼트, 스턴, 슬로우, 홀드, 힐링. 이렇게 여섯 개 밖에 없었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하다 못해서 실드 마법 하나 정도는 익히게 하는 건데?” “실드? 그게 이 상황에 도움이 되나요?” “그래. 마법으로 방어를 할 수 있으면 내가 그 안에서 무한대로 화살 공격을 하면 되니까···.” 질이 안 되면 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정공법으로 싸우는 수밖에···. 정운은 일단 정령의 태도를 집어넣고 무장을 바꿨다. 월광의 창을 꺼낸 정운은 거기에 흑토까지 꺼내서 올라탔다. “이 층은 내가 혼자서 상대할게. 어설픈 팀 플레이를 하는 것 보다는 나 혼자서 쓸어버리는 편이 좋을 거야.” “····그게 되요?” “응. 내가 작정하고 싸우면.” 정운의 말을 들은 슬기는 환하게 웃었다가 의아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고민 했던 거에요?” “그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정운은 말을 그냥 얼버무렸다. 슬기의 경험치를 우선적으로 쌓아주고 싶었다는 본심을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쑥스러웠다. 어쨌든 정운은 슬기에게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지하 공동 묘지의 입구를 닫게 했다. 그리고는 목을 뿌드득 풀면서 말했다. “레이드 말고 작정하고 싸우는게 얼마만인지····.” 정운이 가지고 있는 월광의 창은 공격력 3200, 거기다 달의 힘이 깃든 신성한 창이라서 언데드 계열이나 스피릿 계열의 몹들에게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원래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장비했던 무기였다. 솔로 플레이어인 정운에게 있어서는 모든 상황에 상정해 놔야 했고, 스피릿 계열의 몹들에 대비한 장비도 구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스피릿 계열의 몹을 상대로는 정운의 물리 공격력이 3분의 1 이하로 반감 된다. 하지만 이 월광의 창을 쓰면 3분의 1로 반감된 공격력이 다시 2배로 올라간다. 그렇게 함으로 본래의 66%정도의 공격력을 유지하면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지금부터 사용할 유니크 기술을 사용하면 모든 공격력이 약 2,000%의 상승 효과를 지니게 된다. 즉, 최종 공격력은 본래의 약 1320%. 그리고 이제 정운은 흑토의 위에 올라가서 그 비장의 기술을 쓰려고 했다. 어지간해서는 레이드에서도 잘 쓰지 않던 기술을 말이다. “흑토. 영수화 해라.” “히히힝····.” 정운의 명령에 흑토는 크게 울부짖더니 온몸의 거은 털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삼국지의 적토마처럼 붉어진 몸에서는 이윽고 화르륵 화염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푸르르릉····.” 흑토의 눈에서는 초식 동물이 말이 아니라 사나운 맹수의 안광 같은 것이 나타났다. 이것이 흑토의 스킬 중에 하나인 염화였다. 현재 LV.3으로 약 30분 동안 전신에 화염을 휘감고 자신에게 접촉하는 것에 화염계 대미지를 준다. 주변의 고스트들은 흑토의 화염에 살짝 대미지를 입었는지 정운과 흑토를 적으로 인식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지금 우리한테 오면 뜨겁거나? 짜릿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뇌신!!” 흑토에 이어서 정운 역시 비장의 유니크 스킬을 꺼냈다. 정운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유니크 스킬 중에서 기공술 이외의 두 개는 효과는 강력했지만 거기에 비례해서 위험성도 높았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 못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뇌신인 거이다. 뇌신, 현재 LV.2의 기술로 전신에 번개를 두르고 모든 공격의 위력을 2,000% 중거 시킨다. 단 지속 시간에 비례해서 10분당 20%의 대미지를 입는다. 강력한 기술인만큼 함부로 사용 할 수 없게 디메트리가 걸려 있는 것이다. 보통은 기술을 쓰고 약해진 틈에 PK를 당할 우려가 있어서 잘 쓰지 않지만··. 여기서 라면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가자. 흑토야. 날뛰는 거다.” “히히힝!!!!” 정운과 흑토는 뇌전과 화염의 덩어리가 되어서 지하 묘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기술도 뭣도 없었다. 축구장 정도 크기인 지하 묘지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것 만으로도 고스트들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허물어 졌다. 일방적인 무력으로 적들을 잠재우면서 정운은 오랜마에 신나게 질주했다. 좀처럼 쓰지 못하는 기술이라서 지금처럼 사용할 기회가 오니 미친 듯이 쓰는 것이었다. 10분 정도···. 지하 묘지에서는 마치 산사태와 천둥이 동시에 일어난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고 고스트가 다 전멸했을 때는 필드 자체가 상당히 많이 부서져 있었다. “이런···. 좀 지나쳤나? 여기서도 20번 정도는 리플레이 하고 싶었는데···.” 정운은 필드의 무덤들이 다 부서지는 것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온 몸이 살짝 저릿저릿 한 것은 기술의 후유증이었다. 그래도 딱 저스트 10분에 맞춰서 끝낸 전투였기에 20%의 대미지로만 끝났다. 하지만 끝나고 보니 무덤들이 다 부서진 것을 보고 살짝 난감한 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연애 감정이 싹트기는 했지만 아직 그게 답니다. '그녀는 나의 애완동물'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그렇게 간단히 남주의 연애를 허락하는 쉬운 작가가 아닙니다.^^;;;; 난 주인공이야. 고백만 하면 여자가 알아서 붙지. 여자는 그냥 어망에 낚인 물고기일 뿐이야. 이런 패턴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애에는 갈등이 따라와야 흥미도 고조되는 법이죠. 그러니 한동안은 퀘스트 진행에 주력합니다. 여러분들의 성원 덕분에 '악마의 게임'도 10위권 안에 올랐습니다. 안착이 되고 안 되고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모두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오늘은 일단 무리를 좀 해서 삼연참을 하겠습니다. 단 붙여서 연재하면 아무래도 추천이 줄어들어서 간격을 두고 연재하겠습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 34화 경험상 이런 필드에서 고스트들은 저 무덤 리젠 되는데 저것이 다 부서졌으니 한동안은 리젠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저 무덤도 시간이 지나면 고쳐 지겠지만 부서진 필드의 복구에는 몹의 리젠보다 좀 더 시간이 가는 법이다.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것··, 호오, 이건 또 이런 효과가···.” 정운은 부서진 무덤을 보다가 살짝 놀랐다. 그 안에 상당한 양의 골드와 아이템들이 있는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이런 일 없었는데 여기만 특별한 건가? 일단 이거라도 챙기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덤을 샅샅이 뒤져서 아이템과 골드를 챙겼다. 꼭 도굴꾼 같기는 했지만 어차피 전리품이었으니 똑같은 것이었다. 골드로만 80만 골드가 있었고 다양한 재료 아이템이 있었다. 특히 반가운 것은 스킬북이 세 권이라 발견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두 마법 계열의 스킬북 이라서 무척 고가의 물건들이었다스켈레톤 소환. 포이즌 클라우드. 소울 미사일. 정운은 이 마법을 슬기에게 익히게 해 볼까? 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만 뒀다. 마법을 익힐 때는 상성이 중요한 법이다. 여기서 구한 마법들은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 같은 계열의 메이지들이 원하는 것이다. 이미 전통 메이지의 길을 가고 있는 슬기에게는 해가 될 뿐이었다. ‘대신에 다른 길드나 유저에 비싸게 팔리기는 하겠군.’ 정운은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난 후에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정운은 한쪽에 무릎에 얼굴을 박고 숙이고 잇는 슬기를 발견했다. “어···. 슬기야?” 정운은 그녀를 보고 어색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약간 붉어진 눈을 가지고 고개를 들자 웃으면서 말했다. “다 끝냈어. 다음으로 가자.” “······이제 끝났어요?” “그래···. 오래 기다렸···. 덥썩!! 말을 하던 정운은 중간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슬기가 그대로 와서 정운의 품안에 안겨 버렸기 때문이다. “걱정···. 굉장히 많이 했다고요···. 얼마나 많이 걱정 했는지 알아요?” “아니···. 별것 아니었는데···.” “갑자기 굉음이 막 울리다가 조용하고···. 그리고 정운씨는 아무런 반응도 없고···, 당한 줄 알았잖아요!!!” 슬기는 정운의 가슴을 통통 주먹으로 치면서 서럽게 말했다. 정운은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렇게 오해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운이야 10분 만에 정리하고 나은 무덤에서 아이템들 수거하느라고 오래 걸린 것 뿐이었다. 하지만 슬기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초조할 수 있었다. “···미안.” 정운은 그냥 순순히 사과했다. 하지만 실상 정운의 마음에 드는 감정은 미안함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애간장을 까맣게 태운 슬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 줬다는 것이 정운의 입장에서는 기뻤던 것이다. 정운은 슬기를 달랜 다음에 다음 던전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 던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망할···. 저거 32층 보스몹이었는데···.” 정운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것은 검은색 갑옷과 검은색 방패로 중무장 하고 거기에 롱소드 까지 검은색으로 가지고 있는 흑색 일색의 기사였다. 정운은 저게 뭔지 안다. “데스 나이트. ···그것도 다섯 마리나?” 정운이 말을 한 순간 데스 나이트들은 정운의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정운은 황급하게 문을 닫아 버렸다. 쾅!! 카가가가가····. 정운이 관문의 문을 닫자마자 거기에는 데스 나이트들의 공격이 문을 긁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필이면 선공 속성까지···. 저거 훨씬 더 골치 아프겠는데?” 정운의 푸념을 듣고 슬기가 말했다. “그렇게 강력한 몹들인가요?” 그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저것들 32층에서 레이드 뛸 때는 당시의 날 포함해서 10명의 인간들이 2시간 꼬박 걸려서 잡은 거야. 한 마리를.” “···당시 정운씨 레벨이 얼마 였는데요?” “글쎄····. 40 중반·· 아니 50 초반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워낙에 거칠게 광업을 해 놓고 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한 정운이었다. “40·····.” 슬기는 이번에도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 25정도의 레벨인 그녀가 데스 나이트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점점 자신이 정운의 파트너라는 것에 자격지심이 생기는 그녀였다. 그리고 정운은 침울해진 그녀를 보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런 표정 하지 마. 이번에는 너 보고 그냥 얌전히 있으라는 말 안 할 테니까.” “····예?” “네 힘이 필요해. 이번에 할 공략 방법은 스캘핑이거든.” “····스캘핑?” “그래. 어떤 유저가 이름 붙인 사냥법인데···. 설명 할 테니 잘 들어. 네 역할이 중요해.” “···예. 알았어요.” 슬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운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스캘핑. 원래는 주식 투자자들이 쓰는 용어로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주식을 샀다가 팔았다가 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누군가가 그 스캘핑이라는 이름의 공략법을 만들었다. 이런 관문형 던전에 딱 맞는 공략법으로 이른바 철저한 치고 빠지기였다. 우선 조를 두 개로 나눈다. 하나는 공격조, 또 하나는 회복조였다. 대규모 길드의 스캘핑에는 여기에 교대 공격조, 백업조, 탐색조 등이 추가되지만 기본은 공격조와 회복조만 있어도 가능했다. 예를 들어서 관문 안에 열 마리의 몹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열 마리나 되는 몹을 한 번에 잡기 어렵다. 스캘핑은 그런 상황에서 쓰는 공략법이다. 우선 공격조가 안에 들어가서 다른 놈은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한 놈만 죽인다. 그리고 그 한 놈이 죽으면 무조건 빠져 나온다. 그럼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회복조는 일단 공격조의 사람을 회복시킨다. 그리고 회복되는 대로 몹이 리젠 되기 전에 들어가서 또 들어가서 몹을 잡는다. 그리고 다시 한 마리를 잡고 다시 빠져 나온다. 그런식으로 공격과 회복을 번갈아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관문 안의 몹을 갉아 먹어가는 것이 스캘핑이라는 공략법이었다.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 조건을 클리어 해야 했다. 하나는 공격조가 최소한 안에 들어가서 몹을 한 마리라도 해치우고 생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몹이 리젠되는 속도보다 더빠르게 공격조를 회복 시킬 수 있을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성립 되어야 가능한 것이 스캘핑이라는 공략법이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여기까지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슬기는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그거라면 자신도 할 수 있었다. 이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힐링의 레벨도 제법 올랐다. 스턴과 더불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킬이다 보니 역시 오르는 속도도 빨랐다. 원래는 LV.2였는데 이제는 LV.5였다. 치료 효과도 40에서 320으로 올랐다. 그 정도면 정운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회복 속도였다. “맡겨 주세요. 회복에만 주력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에요.” “알았어. 그럼 믿고 갈게.” “····예?” “응?” 정운의 말을 듣고 있던 슬기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슬기를 본 정운 역시 되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뭐 잘못 된 거라도 있어?” 정운의 말에 슬기는 잠시 벙찐 표정을 하고 있다가 이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 정운은 이때 자각하지 못했지만···. 방금 전에 정운은 자연스럽게 슬기를 믿는다고 말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정운이었는데 말이다. 슬기는 그런 정운이 자신을 믿어 준다는 말을 한 것이 너무 기뻐서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래도 눈치 없이 지금 그걸 정운에게 지적하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운은 약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는 일단 데스 나이트가 다섯 마리나 기다리는 필드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관문은 아무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석실일 뿐이었다. 오로지 데스 나이트의 강력함만이 이 관문의 가장 강력한 함정일 것이다. 데스 나이트들은 정운이 관문의 안에 들어가자 갑옷의 눈 부위에서 붉은 안광을 뿜어내면서 정운에게 달려왔다. “처음부터 빼는 것 없이 전력으로 해야겠지? 뇌신!! 기공술!!” 정운은 전신을 뇌화한 상태로 기공술까지 덤으로 썼다. 기공술이 큰 약점이 없는 기술이라고는 해도 유니크 기술을 두 개나 동시에 쓰는 것은 정신적으로 크게 지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필드가 넓지 않았기에 흑토를 꺼내지는 않고 대신에 검으로 놈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흡!!!” 촤아악!!! 기공에 뇌전의 대미지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참격을 횡으로 길게 휘두르자 접근해 오던 데스 나이트들이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사납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데스 나이트들의 갑옷 사이사이에서 검은색 안계 같은 것이 피어났고, 그들의 검에서는 검은색 검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검이 정운의 검기와 부딪힌 순간 사방으로 크게 기파가 터졌다. 퍼어엉!!! ‘이게 골치란 말이야····.’ 데스 나이트의 특징은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척 뛰어난 몹이라는 것이다. 몹들 중에는 약점이 뚜렷한 것들이 제법 있었지만 이 데스 나이트들은 달랐다. 언데드 몹인 주제에 언데드 특성 공격에 대한 저항략이 강했고, 공격력, 방어력 이 모두가 발군이었다. 특히 체력. 보통 이렇게 인간 형태의 몹들의 최대 단점은 체력이 괴수형들 보다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데스 나이트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형 몹들 중에서 체력만큼은 정운이 알고 있는 몹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했다. 그만큼 괴물 같은 몹이 다섯 마리나 동시에 상대하려니 정운으로서도 고전을 면치 못할 수밖에 없었다. 참격이 동시에 다섯 개가 날아오면 그 중에서 세 네 개는 몸으로 때워야 했다. 급소를 최대한 감싸고 깊숙하게 먹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나마 입고 있는 미스릴 갑옷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크윽····. 빌어먹을···.” 일대 다수다 보니 그동안 정운이 익힌 나름의 실전 검술 같은 것은 쓸 겨를도 없었다. 그저 거칠게 휘두르면서 최대한 놈들을 멀리 떨어트리는 것에 주력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좀 과감하게 나가볼까?’ 정운은 이제까지 언제까지 관문 너머로 후퇴 할 수 있도록 문을 등지고 싸웠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포위 효과를 발휘해서 전혀 싸울 수가 없었다. 35화 데스나이트의 무장은 롱소드와 방패. 방패는 소위 말하는 카이트 실드라는 것으로 면적이 상당히 넓은 것이었다. 그런 방패를 들고 있는 존재들이 다섯이나 포위를 하니 공격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정운은 크게 참격을 날리고 왼쪽으로 피했다. 스팟!! 정운의 머리를 노리고 데스 나이트의 참격이 날아왔지만 가까스로 머리를 숙여서 피했다. 데스 나이트의 공격은 정운의 머리카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급소 공격은 위험하지····.’ 그라운드 제로에는 치명적인 공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머리나 심장 같은 부분을 맞으면 남은 체력 게이지에 상관없이 바로 즉사인 것이다. 정운은 일단 포위망을 벗어나서 달렸다. 흑토는 빠르지만 좁은 공간에서는 선회 능력이 좀 부족하다. 그러니 차라리 정운이 직접 달리는 편이 훨씬 더 빨랐다. 철그럭, 철그럭··. 정운을 놓친 데스 나이트들은 정운의 뒤를 쫒아서 오기 시작했다. 다만 추적을 하면 오는 놈들 상이에도 뒤처지는 놈과 빨리 오는 놈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정운이 약간 움직이니 것만으로도 놈들의 포위망에 확실한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한 마리가 가까워지자 정운은 재빨리 돌아서 대비했다. 놈은 높이 검을 들어서 정운에게 내리치려고 했지만 일대일이라면 꿀릴 생각이 없는 정운이었다. 놈의 검이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그대로 검을 위로 올려 베었다. 촤아악!! 정운의 참격은 놈의 검을 든 한쪽 팔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정운은 그 기세를 살려서 그대로 물 흐르듯이 오른쪽으로 빙글 돌면서 원심력을 살려서 참격을 날렸다. 촤아악!!! 정운의 참격은 확실하게 데스 나이트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이걸로 적을 죽이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칫···.” 데스 나이트가 골치 아픈 것은 여기서 부터다. 인간형인 주제에 체력이 높고 재생력까지 가지고 있어서 급소가 없다. 체력이 다 할 때까지는 그저 베고 또 베는 수밖에 없었다. 정운은 다른 데스 나이트가 끼어들려고 하자 다시 냉큼 자리를 피했다. ‘그걸 쓸까? 아니야··. 일단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자.’ 정운은 다시 필드를 빙글빙글 돌면서 데스 나이트들의 연계를 흐트러트렸다. 그런식으로 돌다가 빈틈을 보이는 놈에게 다가가서 대미지를 주고, 그리고 다시 떨어지고···.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30분 후··. “크아아아아아아!!!” 정운의 태도에 심장이 꿰뚫린 데스 나이트 한기가 귀곡성을 울리며 절명했다. 그리고 정운은 재빨리 관문의 문을 열고 밖으로 후퇴했다. “정운씨···.” “후우····. 회복 부탁해. 천천히 해도 되.” “예? 최대한 빨리 해야···.” “아니. 천천히 해···. 지금은 시간을 계산해야 하니까.” “·············?” 슬기는 정운의 말이 언 듯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정운이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정운은 관문의 문을 아주 살짝 열어서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 신중한 눈으로 관문 내부를 한참 동안 살피던 정운은 30분후에 자신이 알고 싶었던 것을 확인했다. “리젠에 걸리는 타임이 30분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아슬아슬하게 스캘핑은 가능하군.” “···그런가요?” “응. 내가 몹 하나를 잡는데 15분에서 20분은 걸리고 네 회복이 3분에서 5분 정도 걸리지. 그러니··. 빡빡하게 잡아서 총 20분당 한 마리의 사냥이 가능하다는 거야. 즉, 이 관문을 돌파하려면······. 얼추 6시간 40분 정도는 걸린다는 얘기야.” “예? 한 마리당 맣이 잡아서 25분이면···. 다섯 마리니까 2시간 5분 아닌가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슬기의 계산은 스캘핑을 처음 하는 유저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다. “리젠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거니까. 계속해서 생기는 몹의 속도를 생각해야지.” “아아·····.” 정운의 지적에 슬기는 뭐가 문제였는지 깨달았다. 이 관문에서 데스 나이트의 리젠 속도가 30분이었다. 그 말은 125분에 걸쳐서 다섯 마리를 잡는다고 해도 최초의 한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몹둘의 리젠 타입은 105분. 그 안에 3마리는 리젠 된다는 말이다. 거기다 이미 다음 몹의 리젠 타임도 15분이나 남고 말이다. 그 리젠 타임을 무시한다고 쳐도 다시 3마리를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75분. 거기에 기존의 리젠 타입 15분을 더하면 대기 타입 없이 딱 타이로 3마리가 된다. 그 세 마리를 잡는데 다시 75분, 그동안 리젠 수는 2마리 거기다 축적된 리젠 시간 15분·····. 이런 식으로 계산해 가면 단계별로 적들을 다 해치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125분 + 75분 + 75분 + 50분 + 50분 + 25분이 된다는 것이다. 즉 총 시간은 400분, 시간으로 6시간 40분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뭐, 어디까지 최대치로 잡은 시간이고 실제로 잡으면서는 광역 스킬에 사전에 대미지를 입는 녀석들도 있을테고 정운이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그 정도로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말은 6시간 40분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정운은 대략 5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예상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다행이야.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스캘핑이 가능한 수치라서, 리젠 속도가 5분만 더 빨랐다면 스캘핑을 포기하고 여기서 물러 나는게 나았을 거야.” ‘아니면 마지막 방법을 써 보든가 말이야.’ 정운은 몸을 이제 완전히 회복된 몸을 추스르면서 슬기에게 말했다. “이제 다 회복 됐으니까 본격적으로 시작···. 응? 왜 그래?” 정운의 눈에 보이는 슬기의 눈은 굉장히 초롱초롱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정운씨 굉장해요.” “응? 뭐가? 스캘핑? 이거야 내가 만든 방법도 아닌데?” “아니 그래도···. 이렇게 일일이 생각 하며서 꼼꼼하게 플레이 한다는 것은 굉장해요. 존경스러울 정도에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어 버렸다. “그만둬.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인간들도 많으니까···.” 정운이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꼼꼼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몇 번이고 죽을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지금의 경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제 본격적으로 한다. 이 층도 못해도 열 번은 리플레이 할 거야. 알았지?” “예. 힘내세요.” 그렇게 정운과 슬기의 데스 나이트 격파가 시작되었다. 스캘핑은 일단 시간상의 공식만 가능으로 성립되면 플레이 중에서도 무척 안정적인 플레이로 손 꼽히는 플레이 방식이었다. 더구나 정운이 싸우면 싸울수록 데스 나이트들과 익숙해지자 스캘핑은 훨씬 순조로웠다. 정운은 여기서 상당한 경험치를 쌓았다. 이제는 레벨업도 그렇게 먼 얘기가 아닌 것 같았다. “후우··. 잘하면 3개월 만에 레벨 업 한 번 하겠네.” 고레벨로 가면 1년에 1업 하기도 어렵다는 말들이 있다. 정운은 아직 거기까지의 레벨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고위급이었고 3개월에 1업이면 굉장히 빠른 페이스였다. 정운이 예상하던 페이스로는 아직 두 달은 더 있어야 레벨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더 빠른 속도인 것이다. 그리고 슬기의 경우도 제법 레벨이 올랐다. 사실 스캘핑에서 회복조는 몹을 잡아도 경험치가 안 들어온다. 몹은 잡는 것에 직접 협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복 스킬의 레벨이 오르고, 그리고 조금이지만 정운을 회복시키면서 얻은 경험치는 제법 있었다. 잘만 하면 이 던전을 나가기 전에 레벨 30도 끝은 아닌 것 같았다. 몇 주일이 지났을까? 이제 데스 나이트의 필드에서 사냥을 계속 하는 것도 한계였다. 원래 당초에는 데스 나이트의 관문은 10번 정도만 리플레이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만큼 효율적으로 렙업이 가능하고 아이템도 풍족하게 주는 곳은 좀처럼 없었다. 데스 나이트 자체가 워낙에 강한 몹이라서 그럴까? 골드도 아이템도 경험치도··. 아주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마냥 팍팍 주고 있었다. 특히 가끔씩 떨어트리는 데스 나이트의 저주받은 롱소드. 저것은 아이템 그 자체로도 상당한 인기 있는 것이었지만 신전에 가서 정화를 거친 다음에 대장간에서 업그레이드를 시키면 아주 좋은 부가 속성이 붙은 아이템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것 말고도 무척이나 좋은 아이템을 많이 줬기에 여기에서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지체를 해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한계였다. 다른게아니라 최초의 관문에서 흑토가 사냥을 해온 식량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서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제 슬슬 데스 나이트들을 포기하고 앞으로 나가야 했다. 뒤로 가서 다시 사냥을 해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이런 필드에서 뒤로 후퇴하면 자칫 퀘스트 포기로 인식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방법은 하나 뿐인 것이다. 다음 관문으로 가는 수밖에···. “다음 관문에는 어떤 몹일까요?” “글쎄···. 데스 나이트보다 더 고위 언데드 몹이라면··, 아크 리치나, 킹 듀라한, 데스 나이트 챔피언 정도인데····. 제길. 좀 깜깜하네···.” 방금 정운이 말한 몹들은 정운 스스로가 전력으로 일대일로 싸우면 간신히 이길까? 말까? 한 놈들이었다. 솔직히 이 이상은 곤란했다. “일단 관문의 내부를 살펴보고··. 여차하면 물러나는 것도 생각해 봐야지.” “그런가요?” “어쩔 수 없어.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그냥 죽자고 덤비는 것은 다른 얘기야.” 무모함과 용맹함은 구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다. 정운은 슬기와 함께 다음 관문으로 향했다. 이제 이 관문에서 상태를 보고 감당하지 못할 몹이 있거든 그대로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서가서 계속해서 도착한 관문에는····. “어? 여기는 뭐죠?” “흐음···. 이건···?” 둘은 관문 대신에 돔 형태의 넓은 공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보였다. 정운은 차분하게 필드를 둘러봤다. 아무 의미 없이 이런 공간이 있을리는 없다. 이건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정운은 문득 지면에 음각된 홈을 발견했다. 그 홈은 뭔가 마법진 같은 것을 그려 놓은 것 같았다. “이건···. 아차!! 슬기야 물러나!!” “예?” “빨···.” 화아아악!!! 정운이 말을 마저 할 틈도 없이 지면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면서 공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망할···. 이탈 금지 필드··.” “정운씨 이건···.” “내 옆에 붙어. 아니··. 백설이 꺼내서 타고 있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흑토를 꺼냈다. 그리고는 흑토의 등에 올라타서 그대로 올라탔다. “정운씨 이거 안 좋은 건가요?” “····보스몹이야. 그리고 퇴로도 막혔고.” “예!?” “정신 바짝 차려. 그리고 날 돕는 것 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것에 주력해.” “···예. 알았어요.” 정운이 슬기와 대화를 막 끝낸 순간 필드의 중앙에 서서히 보스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쉐도우 엘프 킹이었다. ‘망할··. 상대 할 수 있을가?’ 최후의 수단을 쓴다고 해도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무엇보다 한 번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몹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정운은 일단 몸 전체에 뇌신과 기공술을 전개했다. 나타난 쉐도우 엘프 킹은 신장 10미터에 넝마다 된 로브를 입고 있었고 엘프라기 보다는 언데드의 왕 같은 모습이었다. 손은 뼈만 남아 있었고 얼굴은 황금 소의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전신에서 쉐도우 엘프 특유의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놈은 그 모습으로 나타나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놈의 손에서 검은색 덩어리들이 나타나서 지면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들은 꿈틀 거리더니 하나하나가 쉐도우 엘프로 변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삼연참을 항상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6화 <보스몹 공략.> “아차···. 이 자식 하필이면···.” 정운은 혀를 찼다. 보스 몹 중에서도 부하들을 양산하는 타입들이 있다. 이 놈이 하필이면 그런 타입인 것이다. 이럴 때는 보통 조무래기들은 최대한 신경끄고 보스몹에 주력해야 했다. 안 그러면 끝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슬기를 생각하면 무조건 저 것들도 치워야 했다. “흑토!! 달려라!!!” “히히힝!!!” 정운은 흑토의 등에 타고 그대로 힘차게 달렸다. 흑토도 어느새 전신을 염화 시켜서 불길의 화신이 되었다. “기마 차지!!” 정운은 쉐도우 엘프들이 흩어지기 전에 재빨리 처리해 버리기 위해서 기마 차지를 사용했다. 직선거리 500미터 안에 있는 적을 단번에 뚫고 지나가는 기술이다. 너무 강한 몹이 가로막으면 통하지 않았지만 애당초 어그로 트랩 정도는 정운 혼자서도 어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이런 기술들 때문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놈들이 흩어져 있었다면 이렇게 정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뭉쳐 있는 지금이라면 이런 큰 기술 한방으로 일망타진 할 수 있었다. 뇌신화 된 정운과 화염에 휩싸인 흑토가 한 바탕 쓸고 가버리자 뒤에 남은 것은 처참한 유린의 현장 뿐이었다. 다행이도 쉐도우 엘프들이 한 군데 모여 있을 때 박살 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정운은 바로 본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흑토. 비상이다!!” “히히힝!!”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흑토의 등에서 한 쌍의 커다란 날개가 생겼다. 마치 전설속의 페가수스의 흑마 버전처럼 생긴 이것은 흑토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스킬이었다. 염화와 비상. 이 두 가지 스킬을 적절하게 이용 가능한 영수가 바로 흑토였다. 흑토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정운은 바로 가면을 쓰고 있는 쉐도우 엘프 킹의 안면을 노렸다. “가랏!! 회천공!!!” 콰콰콰콰!!!! 뇌신 상태에서 기공술을 풀로 끌어 올린 상태에서 최대 위력의 회천공. 정운이 창으로 쓸 수 있는 기술 중에는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그거 한방으로 뻗을 쉐도우 엘프는 아니었다. 쉐도우 엘프는 흑토를 타고 있는 정운을 마치 모기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크게 휘둘렀다. 퍼억!!! “크윽····.” 정운과 흑토는 그대로 돔의 벽면에 처 박혀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서 쉐도우 엘프의 괴광선 공격이 이어졌다. “크윽··. 흑토 피해!!” 퍼퍼퍼퍼펑!! 흑토는 말이면서도 마치 매트릭스 영화처럼 벽면을 타고 질주했다. 흑토가 지나간 자리에는 쉐도우 엘프 킹의 공격이 벽면을 모두 박살내고 있었다. “가자!!” 쉐도우 엘프의 공격이 끝나기 무섭게 정운은 흑토의 고삐를 낚아채면서 외쳤다. “가자!!” “히히잉!!” 정운의 명령에 흑토는 벽면을 크게 박차고는 다시 쉐도우 엘프에게 달려 들었다. 그리고 정운은 무장을 태도로 바꾸고는···. “검기!!” 정운은 검기 스킬로 싸우기로 마음 먹었다. 정운이 가지고 있는 액티브 스킬 중에서 정신력을 가장 크게 소모한는 기술 중에 하나가 검기였다. 기본 공격력을 700% 올려주는 대신에 정신력의 소모가 컸지만 보스 몹을 상대하면서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아아아아앗!!!!” 정운은 마치 곰에게 달려드는 늑대의 심정처럼 힘차게 달렸다. 그리고 쉐도우 엘프 킹과 정운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대단해.” 밑에서 정운과 쉐도우 엘프 킹의 전투를 구경하고 있던 슬기는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정운이 고위급 유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저 커다란 괴물을 상대로 조금도 물러 설 줄을 몰랐다. 용맹하게 싸우는 정운의 모습을 보면서 슬기는 손에 땀을 쥐었다. 정운이 미리 말하지 않았어도 이런 커다란 전투에 자신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대신에 그녀는 양손을 마주 잡고 제발 정운이 승리하기를 기도 할 뿐이었다. ‘제발···. 제발 정운씨가 이기기를····.’ 슬기의 애타는 바람과는 다르게 전투의 양상은 정운에게 불리했다. 서로 비슷비슷하게 공방을 주고 받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스몹인 쉐도우 엘프 킹과 일개 유저인 정운의 경우 체력의 한계치가 너무나 달랐다. 아마도 정확한 수치화 시키면 10배가 넘는 차이가 날 것이다. 콰앙!!! “크윽····.” 번번이 돌격 했다가 쉐도우 엘프의 공격에 벽면에 쳐박히는 정운은 입에서 울컥 뭔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위험한데····.’ 애당초 쉐도우 엘프 킹은 이 54층의 다크 엘프 퀸과 동급의 몹이었다. 그런 몹을 상대로 이렇게 단신으로 도전을 한다는 것은 무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관문형 던전의 특징상 스캘핑을 사용해서 장시간에 걸쳐서 체력을 깎아 나가면 어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기에 도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설마 보스몹만 이탈 금지 구역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애당초 이탈 금지 구역이라는 것이 소문만 들어봤지 직접 체험하는 것이 처음인 정운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그걸 쓴다.’ 정운은 지상에서 자신의 승리를 기도하고 있는 것 같은 슬기를 흘깃 봤다. 여기서 죽으면 자기 혼자 죽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반한 여자도 같이 죽는 것이다. ‘그렇게 둘까 보냐?’ 정운은 결심하고 자신의 마지막 유니크 스킬을 사용했다. “아스트랄 소드!!!!” 정운이 그렇게 말한 순간 정운의 주위에 크기가 5미터는 될 법한 커다란 대검들이 열 자루나 나타났다. 그 검들은 마치 무협지의 이기어검술처럼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가라!!!” 그리고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대검들이 뇌전과 검기를 머금고 쉐도우 엘프 킹의 전신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푸푸푸푸푸푸푹!! “크아아아아아!!!!” 전투가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쉐도우 엘프 킹의 고통 스런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운이 가지고 있는 유니크 스킬은 세 가지다. 기공술, LV.3으로 기공을 이용한 공격의 공격력을 30% 올린다. 정신력의 소모가 유니크 스킬답게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리스크 없이 편하게 사용 가능한 기술이다. 그리고 뇌신 LV.2로 전신에 뇌전을 두르고 공격력을 무려 2,000%나 증가 시킨다. 단 지속 시간에 따른 대미지가 존재한다. 10분당 20%의 대미지를 스스로 부과하기 때문에 자주 사용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마지막 기술. 그것이 바로 아스트랄 소드다. LV.1의 기술로 이렇게 레벨이 오르지 않은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워낙에 위험한 리스크가 있는 기술이라서 함부로 사용 가능한 기술이 아니었다. 총 10개의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그 대검의 위력도 어마어마했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것은 없지만 정운의 공격력이 단번에 10배로 추가된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즉, 저 검들 하나하나가 정운이 전력으로 공격한 것 만큼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기공술의 검기와 뇌신의 전격을 저 아스트랄 소드에 입혀서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이 절대적인 파괴력을 자랑하는 스킬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2시간 동안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무방비다. 기술도 못 쓰고 검을 휘두를 정도의 힘도 없다. 심지어는 뛰는 것도 힘들고 고작해야 걷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즉, 이 기술을 사용하고 상대를 끝장내지 못하면 그 다음에 끝장이 나는 것은 바로 정운인 것이다. 이런 모 아니면 도 식의 기술을 함부로 남발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정운은 사실상 비장의 카드로 봉인하고 있었던 기술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으아아아아아!!!!” 촤촤촤촤촤!!!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로 쉐도우 엘프 킹을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활을 꺼내서 화살 공격을 병행했다. “속사!!!” 지금 정운의 속사의 스킬은 LV.9 화살의 발사 속도를 무려 900% 연사 시킨다. 이쯤 되면 거의 헬기에 달린 경기관총이나 다름 없었다. 퍼퍼퍼퍼퍼펑!!! 쉐도우 엘프 킹은 그 거대한 동체가 좋은 과녁 역할을 했기에 드디어 체력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어!!!” 놈의 머리위에 크리스탈 모양의 표식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됐다. 잡을 수 있어!!!” 저 표식은 보스 몹의 체력이 반 이하로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20% 이하로 떨어지면 저 크리스탈을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정운은 잘만 하면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보스몹은 항상 발악을 하는 법이다. 놈은 양손을 높이 들어서 무언가를 소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낫이었다. 그리고 그 낫을 잡고는 크게 휘둘렀다. 촤아아악!! “크으윽!!!” 낫질의 일격은 정운의 팔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갑옷을 완전히 관통해서 정운의 팔의 살점을 뭉텅으로 떨어트렸다. ‘미스릴 갑옷을 이렇게 간단히···. 저거 방어력 무시 옵션 공격무기구나.’ 정운은 저 낫질에 걸리면 끝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스릴 갑옷이 아니라 그 상위 버전의 갑옷이라고 해도 저 공격에는 견딜 수 없다. 방어력 자체를 완전 무시하는 공격인 것이다. 정운은 낫의 사서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 멀리 뒤로 피하는 한편 공격의 피치를 더욱더 올렸다.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둘 중에 하나가 끝날 때 까지 해 보자!!!!” 여기까지 오면 이제 남는 것은 근성 뿐이었다. 한 인간과 악마의 결투가 그렇게 한계 직전까지 치달아 갈 때····. 드디어 쉐도우 엘프 킹의 크리스탈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운의 정신력도 거의 한계였다. “크윽····. 제기랄, 좀 더···. 조금 만 더···. 벌써 30분 가량 유니크 스킬을 세 개나 동시에 쓰고 있다. 다른 유저들이 들었다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정신력이라도 언젠가는 한계가 드러나는 법. 서서히 지쳐가는 정운의 공격에는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고 쉐도우 엘프 킹은 재빨리 자기 부하를 소환했다. “칫···, 하필이면···.” ============================ 작품 후기 ============================ 전화의 스캘핑에 대한 지적에 관해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생각해 보니 시간 계산을 잘못 했더군요. 그런데... 지적하신 분이 두분인데 두분의 정답이 서로 달랐습니다. 그래서 저도 저 나름대로 다시 계산해 봤는데.... 저도 또 두분과 다른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게 누가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처음에 썼던 숫자는 오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죄의 의미로, 원래 오늘만 할 예정이었던 3연참을 내일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뭐... 내일 있을 역사적인 대결인 GSP와 핸드릭스의 대결의 생방시청을 포기해야 겠지만 그건 감수하겠습니다.ㅠㅠ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7화 정운은 혀를 차면서 재빨리 움직였다. 정운에게는 큰 위협은 아니지만 저것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슬기가 위험하다. 슬기의 레벨로는 아직 저 놈들 하나 상대하기 힘들었다.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 중에 다섯 개를 움직여서 그대로 그것들을 금방 도륙하려고 했다. 하지만····. 휘이이잉!!! 퍼억!! “커어억!!!!” 아스트랄 소드 다섯 개가 동시에 빠지자 쉐도우 엘프 킹이 그 빈틈을 노리고 정운을 낫질로 찍어 버렸다. 정운의 미스릴 갑옷을 뚫고 내장에 낫이 파고 들 정도로 치명적인 대미지였다. “커억···. 제기랄····.” 심장 바로 직전에서 태도로 막기는 했지만 이건 치명적이었다. ‘이렇게 지는 건가···.’ 다시 한 번 낫을 들어서 자신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고 하는 쉐도우 엘프 킹을 보고 정운은 한탄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뛰어들고···. 그리고 여기서 배신을 겪고···. 레벨업을 위해서 미친 듯이 무모한 전투를 계속하고··. 그러면서 이제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어지는 여자를 맞났는데····. 그런데 이제 여기서 죽는다니···. ‘억울··· 하군····.’ 그렇게 정운이 최후를 한탄하고 있을 때···. 퍼펑!!! 세 개의 불화살이 날아와서 쉐도우 엘프 킹의 안면에 폭발했다. “큭···. 슬기?” 정운이 바라본 곳에는 슬기가 쉐도우 엘프를 공격한 것처럼 보였다. 보통 쉐도우 엘프 킹 정도의 보스 몹은 어그로 보다는 파티에서 가장 강력한 몹을 공격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까부터 슬기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정운에게 공격을 집중 시킨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슬기의 공격을 받고는 공격 대상이 바뀌었다. 완전히 무력화 된 정운과 팔팔한 슬기를 비교해서 저 레벨이지만 슬기를 더 위험인물로 판단한 것이다. “큭··.· 안돼!!!” 정운이 말리건 말건 상관없이 놈의 무지비한 공격이 슬기에게 가려고 했다. 정운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은 거기에 응해주지 않았다. 발밑에는 정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미 작은 웅덩이처럼 맺혀 있을 정도였다. 정운은 쉐도우 킹이 슬기를 공격하려는 것을 보면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초조해 졌다. ‘안 돼··. 절대 죽게 할 수 없어···.’ 처음에는 그냥 변덕이었다. 주워 놓고 보니 그라운드 제로의 다른 인간들하고는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들어서 키워주려고 했다. 그 후에 그녀의 과거를 들었을 때는 동정심과 동시에 그녀를 향한 조그만 애정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 지금 정운은 스스로 확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 동안 외로웠던 것일 수도 있고,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빌어먹을 게임의 속에서 사람다운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부작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로 그녀를 자신보다 먼저 죽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으읏····. 아아아아아!!!” 정운은 피를 토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햇다·····, 그리고 그때 정운의 머릿속에서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가 쉐도우 엘프 킹이 배출한 부하 몹들을 공격하고 있던 경험치가 정운에게 들어온 것이다. 거의 아슬아슬하게 도달할까 말까하던 경험치가 그 순간 다음 레벨로 넘어갔다.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 레벨이 오르면 보너스로 순간 이제까지의 대미지와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되는 특전이 붙어있다. 즉, 이 순간 다 죽어가던 정운이 기적적인 확률로 회복을 한 것이다. 다시 없는 행운.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해도 좋을 행운이었다. 정운을 바로 완전히 회복한 몸으로 쉐도우 엘프킹을 전력으로 공격했다. “검풍!!!” 쉐도우 엘프 킹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 이상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다시 놈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 그리고 효과는 직빵이었다. 아까까지는 정운이 다 죽어가고 있었기에 슬기의 공격에 위험 대상이 교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운이 다시 팔팔해진 이 순간···. 쉐도우 엘프 킹의 공격은 다시 한 번 정운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정운은 이를 악물고 아스트랄 소드를 다시 조종해서 놈을 공격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이미 흑토의 스킬 사용 시간은 다 되었다. 정운은 흑토에서 내려서 대신에 아스트랄 소드 중에 하나에 올라타서 그대로 날아올랐다. 적의 체력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천운으로 팔팔해진 정운의 공격에 쉐도우 엘프 킹은 점점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베고 베고 베고, 또 베고····. 열 자루의 아스트랄 소드를 총 동원해서 마치 책형을 내리는 것처럼 쉐도워 엘프 킹을 유린한 정운은 드디어 그 끝을 고했다. 촤아아악!!!! “크워어어어어어!!!!!!” 열 개의 검이 쉐도우 엘프 킹을 완전히 난자하듯이 썰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쉐도우 엘프 킹은 그대로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그 거체가 쓰러졌다. 쿠웅!!! “후우····, 후우······.” 정운은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한숨을 몰아 쉬었다. 최근 들어서 했던 전투 중에서 가장 위험한 전투였다. 그리고···, 가장 위험했던 만큼 보상도 컸다. [퀘스트 보스 몹을 잡았습니다. 추가 경험치와 보너스 아이템을 받습니다.] [100만 골드를 입수했습니다.] [오리하르콘 바(대형)를 두 개 입수 했습니다.] [오리하르콘 바(중형)를 다섯 개 입수 했습니다.] [마력 증강의 시약을 세 개 입수했습니다.] [민첩 증강의 시약을 세 개 입수했습니다.] [유니크 아이템 그림자의 망토를 입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공술의 스킬이 올랐습니다.] [뇌신의 스킬이 올랐습니다.] [아스트랄 소드의 스킬이 올랐습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아주 시끄러운 정도로 여러번의 상태 알림 창이 떴다. 그리고 정운은 순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랐다. 이 정도의 보스몹을 혼자서 잡은 것은 사실 처음이다. 물론 슬기가 결정적으로 한 가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사실상 대부분 정운이 잡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증거로 경험치도 보상도 모두 정운에게 들어왔다. 슬기에게는 아까 파이어 볼트의 한 방 만으로 인해서 50골드가 들어왔을 뿐이다. 어쨌든··, 레벨이 오늘 올랐는데 설마 쉐도우 엘프 킹을 잡고 나니 거기서 또 레벨이 오를 줄은 몰랐다. 이제 정운의 레벨은 73이다. 거기다 유니크 스킬들의 레벨도 한단계 씩 다 오르고 심지어 유니크 아이템 까지 얻다니···. 유니크 아이템은 아직 정운도 한 개도 얻지 못한 것이었다. 상위수준의 유저가 아니라 최상위권 유저들이나 간신히 가지고 있는 것이 유니크 아이템이다. 상점에서 제작하거나 사는게 불가능하고 오로지 직접 사냥으로 구해야 했으며, 보스 몹을 100번 쯤 잡아도 나온다는 보장이 없을 만큼 휘귀한 아이템인 것이다. ‘일단 무슨 아이템인지는···, 나중에 확인해 보면 알겠지. 망토라고 하니 일단은 내가 착용 가능 할 거야.’ 정운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슬기가 정운에게 달려와서 덥썩 안겼다. “정운씨···. 정운씨······. 흑····.” “아 저기····.” “····흑··· 흑흑···.” 슬기는 그냥 정운의 품안에 안겨서 울고만 있었다. 중간에 정운이 죽을 뻔 했을 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던 그녀다. 그 후에 어찌어찌 역전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정운이 죽을 뻔 했다는 것에 심장이 두근 거리는 그녀였다. 정운은 그냥 그녀를 품에서 다독여 줬다. “걱정 하지마. 다 끝났어. 일단은····.” “흑······. 예.” 어째 분위기가 묘해지는 순간이었다. 죽음을 함께 넘어서 흔들다리 효과가 극대화 되었다는 것일까? 정운과 슬기는 서로 눈동자를 마주쳤고, 슬기는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스르륵 눈을 감았다. 정운은 슬기의 아름다운 얼굴에 심장이 두근 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앵두처럼 붉은 그녀의 작은 입술에서 매혹적인 향이 피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왼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서 그녀의 얼굴을 고정 시켰다. 그리고 홀린 것처럼 중운의 입술이 슬기의 입술에 부딪히려고 하는 그 순간····. 화악!!! 갑자기 정운의 인벤토리에 있던 페어리가 발광을 하면서 나타나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모험자님. 저희 페어리들의 여왕님을 구해 주셔서. 이제 저희 페어리 일족은 여왕님의 보호 아래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정운과 슬기는 어색하게 바로 떨어져 버렸다. 중간에 산통을 다 깨 놓고는 뭐가 그렇게 신 났는지 페어리는 정운에게 초롱초롱한 두 눈을 하고 말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일단 원수로 갚았지.” “정운씨···.” 정운의 뼈 있는 중얼거림에 슬기는 얼굴을 붉히고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치 없는 페어리는 자기 할 말을 다했다. “여러분들에 대한 보상으로는 저희 페어리들의 여왕님을 직접 만나 뵙고 전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왕님. 여기 이분들이 여왕님을 가두고 있던 잔인한 쉐도우 엘프 킹을 잡은 자들입니다.” 페어리의 말에 허공에서 빛이 나더니 바비 인형 같은 작은 크기에 화려하고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페어리 퀸이 나타났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존재였지만 여왕이라고 할 만한 위엄이 있어 보였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에 있는 이상···, 그냥 인공 지능은 아니라고 봐야 겠지.’ 아직 이 게임의 로직은 모른다. 하지만···, 그냥 이진법의 수열로 짜여진 대응 밖에 못하는 그런 NPC는 하나도 없다. 저것은 저것 나름대로 뭔가 존재를 하고 있는 어떤 존재일 것이다. 그 페어리 퀸이 정운과 슬기에게 말했다. “저를 구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 답례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공에서 뭔가를 소환했다. 빛의 무리처럼 모여서 생성된 그것은 이윽고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새하얀 나신에 엉덩이까지 내려 올 법한 길 금발을 하고 있는 그녀는 그대로 정운의 눈앞에 내려와서는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건···. 뭡니까?”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기대했던 정운으로서는 너무 뜻밖이었다. 이건 뭐 하자는 말일까? 그거야 아름다운 여성도 보상이라면 보상이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홍두깨 크리티컬로 작렬하는 느낌이강하지 않은가? 정운의 의아한 얼굴에 페어리 퀸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의 모친을 위해서 고난의 길을 가는 자, 자신의 실수로 인한 살인의 업을 돌이키려는 자. 여러분들이 이 세계에 있는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죠.” 순간 정운과 슬기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설마··. 어떻게 저 페어리퀸이 자신들의 과거를 안다는 것인가? 그런 정운과 슬기를 두고 페어리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애당초 여러분들 같은 분을 선별하기 위해서 공을 많이 들인 보람이 있군요. 여러분들을 믿고 이 아이를 맡기겠습니다. 부디 악마····· 혹····· 물········요····.” “응? 이봐요? 이봐!!!” 중간에 하는 말에 노이즈가 생기기 시작한 페어리 퀸을 보고 정운은 고함을 질렀지만 그래도 소용 없었다. 마치 세계에 의해서 노이즈가 지워지는 것처럼 페어리퀸은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운과 슬기에게도 동시에 알림창이 떴다. [던전이 소멸 합니다. 유저들은 자동으로 마을까지 송환 됩니다.] “잠깐!!! X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지금···. 야. 이 개새끼들아!!!!!” 정운은 그대로 자신이 저항 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마을로 이동 되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8화 <레이드의 보상> “쯧, 빌어먹을····.” “진정해요. 정운씨··. 일단 당초의 목적인 던전 클리어는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마을로 돌아온 정운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게임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뭔가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게 중간에 끊어지다니····.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화가 났다. “진정해요···. 그보다 지금은 할 게 있잖아요?” “·····그래. 할 게 있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할 일이 많지.” 정운은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현재 해야 할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우선 이번 던전의 퀘스트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단순히 골드만 해도 100만 골드가 훌쩍 넘게 들어왔고 거기에 수많은 아이템들과 레벨업. 거기다 유니크 아이템까지 손에 넣었다. 솔직히 말해서 반년 정도 예상하고 있던 진도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다 클리어 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운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대략 세 가지였다. 하나는 현재 정운의 장비 업그레이드, 원래 한동안 참고 쓰려고 했지만 이번에 재료 아이템을 많이 손에 넣었고 공격 아이템은 몰라도 방어 아이템은 업그레이드가 가능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레벨업을 했으니 스테이터스도 갱신해야 하고 전체적인 재정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둘째로 페어리 퀸이 남긴 보상(?) 이라고 하는 여자. 그녀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조사가 필요했다. 사실 그녀는 마을로 강제로 쫓겨나는 길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사라지지 않고 정운의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었다. 인벤토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최소한 그녀가 유저가 아닌 그 어떤 존재라는 말이었다. 일단 빈 방에 눕혀두고 그대로 그녀의 메이드들에게 살피고만 있으라고 했다. 그것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가장, 꼭,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바로 말벌파 조지기였다. ‘그 돼지벌···. 정신 나간 줄은 알았지만 나한테 감히 어그로 트랩을 써?’ 그런 쓰레기들이라도 일단은 사람취급해서 살인은 가급적이면 하지 않으려고 했다. 정운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와서 한 일 중에 가장 기분 더러운 일이 바로 살인과 배신당하기 였다. 살인, 자기 손으로 같은 동족 개체인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기분 더러운 일이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정운에게 있어서는 정말 기분 더럽고 또 더러운 일이었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의 감촉은 아직도 종종 꿈에 나왔다. 원통하다는 듯이 정운을 바라보던 상대의 마지막 눈빛. 비참할 정도로 애걸하는 상대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는 찝찝함···. 그런 모습을 보일 거면 애당초 먼저 시비를 걸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치밀어 올랐다. 가급적이면 그런 찝찝한 경험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급적이면 이라는 말이 붙었을 뿐이다. 자신을 노렸고, 그리고 앞으로도 노릴게 뻔한 놈들 따위를 계속 살려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슬기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운은 말벌파를 싹 쓸어버리기로 작정했다. “문제는 뭘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거냐는 건데·····.” 정운은 잠시 턱을 괴었다. 생각 같아서는 더러운 일부터 먼저 처리한다고 말벌파부터 싹쓸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재정비와 저 정체 불명의 금발 여인에 관한 문제부터 먼저 풀어야 했다. “슬기야. 넌 집에서 그 아가씨 곁을 지키고 있어.” “그··· 2층에 있는 아가씨요.” “그래. 아마도 위험한 존재는 아닐 거야. 일단 일어나면 적당히 뭐라도 입혀서 보살펴 주고 있어.” “예. 알았어요.” 정운은 일단 슬기에게 일감을 준 후에 자신의 스테이터스부터 점검했다. 이번에 레벨이 두 단계 올라서 이제 정운의 레벨은 73이 되었다. 박정운. 종족 : 인간 (쉐도우 나이트) 레벨 : 73 나이 : 19 체력 : 93 힘 : 93 민첩 : 85 지능 : 45 매력 : 80 무력 : 90 패시브 스킬 기마술 : MAX 창술 : MAX 도술 : MAX 궁술 : MAX 비도술 : LV.72 격투술 : LV.55 탐색술 : LV.83 액티브 스킬 속사 : LV.9 (화살의 발사 속도를 900%올린다.)산탄사 : LV.7 (지름 7미터의 공간에 무수한 화살을 뿌린다.)관통사 : LV.5 (5분간 충전해서 화살의 위력을 500% 올린다. 특수 스킬인 관통이 가능하다.)검기 : LV.7 (무기에 기공을 싣는다. 위력이 700% 올라간다.)검풍 : LV.5 (반달 모양의 원거리 공격을 날린다. 공격 유효 거리는 50미터.)기마 차지 : LV.5 (기마를 탄 상태로 돌격한다. 직선거리 500미터를 뚫고 전진한다.)창공파 : LV.3 (허공을 가격해서 기창의 공격을 한다. 유효 거리는 30미터.)회천공 : LV.5 (창을 나선형으로 회전시키면서 찌른다. 파괴력이 500% 증가한다.) 유니크 스킬 기공술 : LV.4 (기공을 이용한 공격을 한다. 기공을 이용한 모든 공격의 위력을 40% 올린다.)뇌신 : LV.3 (전신에 뇌전을 두르고 모든 공격의 위력을 3,000% 올린다. 지속 시간 10분당 30%의 대미지를 받는다.)아스트랄 소드 : LV.2 (20개의 대검을 조종해서 적을 공격한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2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다.) 기본적으로 말해서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특히 아스트랄 소드가 레벨1에서 레벨2가 되면서 공격 가능한 대검이 20개로 늘어났다. 여전히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그 후에 2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성장이었다. 정운은 흐뭇하게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감상하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확인했다. “···어? 이상하다? 운-99가 사라졌네?” 원래 정운에게는 이상한 스테이터스가 있었다. 원래 스테이터스가 유저들 마다 조금씩 변하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운은 특이하게도 운-99라는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었다. 운이라는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는 유저도 드물었지만 ?99라는 수치는 더욱더 드물었다. 그런데 그 수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운이라는 종목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왜지? 뭐 때문에····.’ 정운으로서는 일단 꺼림칙한 수치 하나가 사라졌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영문을 모른다는게 영 좋지만은 않았다. ‘일단 넘어가자··. 일단.’ 정운은 그 다음으로 이번 퀘스트 최대의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니크 아이템을 살펴 봤다. 사실 유니크 아이템은 정운으로서도 처음 관찰하는 것이라서 기대가 컸다. 그림자의 망토 LV.1 방어력 : 5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스킬 : 쉐도우 컷터 [그림자를 조종해서 물리력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능력의 활용성은 더욱더 커진다.] “·····아이템에 자체적으로 레벨과 스킬이 있어? 그럼··, 사용 할 수록 아이템이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말인가?” 정운은 상당히 놀랐다. 우선은 망토일 뿐인데도 방어력이 자신이 입고 있는 장인의 미스릴 갑옷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에 놀랐다. 거기다 더해서 내구력이 무한이면 파괴될 염려도 없다는 말이고, 거기다 특수 능력까지 있다. 심지어 그 특수 능력은 레벨이 오르면 점점 증가하는 것 같다. “···십왕(十王)들이 유니크 아이템을 수색하기 위해서 안달이 났다더니···. 이래서였나?” 여기서 정운이 말하는 십왕이라는 것은 유저들 사이에서 부르는 열명의 최상위 유저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현재 클리어된 최고층인 67층에서 플레이 하고 있는 최강자들이다. 정운도 그들 중에 만나본 것은 몇 명 뿐이지만 그들이 플레이 하는 것을 보고는 확실하게 느꼈다. 아직 자기가 손을 뻗어서 닿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그 십왕이라는 자들이 주력으로 쓰는게 바로 이 유니크 아이템이라고 했다. 개중에는 아주 세트로 가지고 있다는 자들도 있었다. 정운도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이제 그 유니크 아이템을 하나 손에 넣은 것이다. “이걸 베이스로···. 다른 장비들도 업그레이드 좀 시켜야 겠네. 우선 무기는 일단 놔두고 갑옷이라도 좀 바꿔야 겠다.” 현재 정운이 입고 있는 장인의 미스릴 갑옷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너덜너덜 해 졌다. 원래 내구력이 100인데 이제는 12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 고치는데 드는 돈만 해도 상당하다. 차라리 더 상위 갑옷으로 하나 바꾸는 것이 낳았다. 정운은 이번에 얻은 아이템을 얻어서 오리하르콘 갑옷을 제작했다. 거기다 더해서 그것을 가지고 마탑에 의뢰해서 속성 부가를 신청했다. 갑옷에 속성을 입히기 위해서는 신전이나 마탑에 가져가서 의뢰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 하면···. 돈이 지랄 같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운이 이번에 그렇게 해서 갑옷 하나 맞추는데 든 돈만 해도 80만 골드 이상이었다. 실제로 재료 아이템의 핵심이 되는 오리하르콘을 온전히 정운의 재료로 제작하고도 이 가격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고 통째로 돈으로만 사려고 했으면 150만 골드가 훌쩍 넘을 것이다. 그 가격은 차마 감당 할 수 없었지만 80만 골드 정도라면 이번에 번 돈으로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갑옷이···. 챔피온의 오리하르콘 갑옷. 방어력 : 700 무게 : 10 내구력 : 150 [착용자의 민첩을 15만큼 향상 시킨다. 저주를 반사하고 독에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마법 공격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호오··. 제법 잘 나왔는 걸?” 정운은 새로운 갑옷에 만족했다. 원래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방어 장비에는 저주, 독, 마법에 저항력이 있다. 하지만 마탑에 맡긴 덕분에 더 강한 저항력을 가지게 되어서 저주는 아애 반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 말은 정운에게 저주를 걸면 그 저주가 오히려 시전자를 압박한다는 말이다. 거기다 민첩 15는 덤이었고···. 마탑에서 속성을 부과 했을 때 어떤 속성이 붙을지는 완전 랜덤인데 상당히 만족할 만한 속성이 붙은 것 같았다. 장비의 업그레이드는 이만하면 됐다. 이제는 슬기가 익힐 스킬북을 몇 개 사고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39화 <의문의 그녀.> 저택으로 돌아가자 집사가 나와서 정운을 반겼다. “오셨습니까?” “그래. 나 없는 동안 무슨 문제는 없었나?” “없습니다. 2층의 새로운 손님이 깨어나신 것 같습니다.” “그래? 바로 가봐야 겠군.” 정운은 페어리 퀸의 보상으로 받아온 정체불명의 여성이 눈을 떴다. 라는 보고를 받고는 그대로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면서···. “슬기야. 그 여자 눈을 떴다며? 어떤 여자····. 이런···.” “나···. 나가요!!!” 정운은 살짝 당황했고 슬기는 소리를 빽 질렀다. 그녀가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눈을 뜬 금발의 여인이 완전히 나체인 상황에서 옷을 입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나체를 그대로 관람하게 되었기에 정운은 살짝 당황했다. 사실 그 전에도 나체이기는 했지만 그때의 그녀는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자고 있는 상태였다. 아름답기는 했지만 살아있는 여성의 나체라기 보다는 그냥 아름다운 조각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정운을 바라보니 약간 어색했던 것이다. “옷 다 입으면 불러.” “알았으니까 빨리 나가요!!” 슬기는 자기 몸으로 여자의 몸을 감싸면서 정운에게 결사적으로 말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방의 밖으로 나갔다. “분명 비교할 거야···. 분명··. 나도 동양인 치고는 있는 편인데····.” 뒤에서 슬기가 자기 가슴을 만지면서 뭐라고 중얼 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너무 작은 소리라서 정운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정운이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정갈하게 옷을 다 갈아입은 여성이 보였다. “그 옷은 어디서 난 거야?” “이 저택에 있던데요?” “흐음····.” 여성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남색의 롱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뭐랄까···? 90년대 초반의 여대생 느낌? 외국인이기는 한데 오히려 이렇게 단정하게 입혀 놓으니까 더 어울리는 느낌이라서 미모가 한층 살아났다. 새삼스럽지만 슬기하고 옆에 같이 있으니 그림이 되고 있었다. TV에서 슬기가 다른 밀키웨이의 멤버들과 같이 있는 화보나 장면도 본적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그림이 되는 느낌이었다. “정운씨, 여기는·····. 당신 이름이 뭐라고 했죠?” 슬기는 정운에게 여자를 소개하려고 하다가 문득 자신도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그녀는···. “죄송합니다. 제 본명은 말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는 정운님에게 귀속된 상태이니 정운님이 저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 됩니다.” “나한테 귀속 되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흠·······.” 정운은 새삼스럽지만 그녀를 차분하게 둘러봤다. 그녀는 페어리 퀸이 보상이라고 준 것이었다. 정운에게 귀속 당했다면 일종의 가디언 같은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가디언 같은 시스템은 없었는데 말이야.’ 몇몇 유저들이 언데드나 골렘을 조종하기는 한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저 이외에 몹과 싸우는 존재는 대강 그정도 뿐이었다. 적어도 가디언 NPC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정운이 알기로는 말이다. 정운은 어쩌면 그녀가 유니크 아이템 보다 훨씬 더 대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이름을 지어주면 되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이름이라····.” 정운은 한 3초 정도 생각하다가 그냥 내뱉듯이 말했다. “그냥 세레나로 하지 뭐.” “세레나··. 알겠습니다.” 순간 그녀의 이마에 어떤 문양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정운에게 알림창이 떴다. [세레나가 귀속 되었습니다.] 마치 예전에 흑토의 이름을 지어 줬을 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세레나라는 이름을 얻은 그녀는 정운에게 정중하게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지금부터 등록된 개체명인 세레나로 불러 주십시오.” 세레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옆에서 그걸 보고 있던 슬기가 말했다. “왜 세레나라고 이름 지었어요?” “응? 아··. 예전에 내가 읽은 소설의 캐릭터하고 이름이 닮았거든. 임모 작가라고···.” 정운의 말에 슬기는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 성의 없이 지어도 되요?” “금발에 가슴 크고····. 뭐 어차피 이름 하나 짓는데 시간 끄는게 더 이상해.” “·············.” 슬기가 약간 게슴츠레한 눈으로 정운을 바라봤지만 정운은 그냥 못본척 했다. “어쨌든··, 세레나.” “예. 명령하십시오.” “좋아. 우선 질문하지. 넌 정확히 뭐지? NPC···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한데?” “죄송합니다.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정운의 질문에 세레나는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대답에 정운은 흥분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다음 질문을 했다. “···넌 살아있는 인간인가?” “아닙니다. 제 생명은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너에게 과거의··, 그러니까 살아있던 시절의 기억은 온전히 있나?” “예. 그렇습니다.” “거기에 관해서 설명해 봐.” “죄송합니다.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너하고 페어리 퀸의 관계는?”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 페어리 퀸은 정말 페어리 퀸인가? 그러니까 정말로 본질 자체가 요정의 여왕이냐는 말이다.” “아닙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에 관해서 설명 해 봐.”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대답 할 수 없다는 말은 그거지? 사실은 알고 있지만 말해 줄 수가 없다. 라는···.” “예. 그렇습니다.” “흠········.” 여기까지 숨까쁘게 질문했던 정운은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페어리 퀸이라는 존재의 말을 듣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녀의 존재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이 그라운드 제로의 근간의 존재를 모두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 할 수 없다. 라는 말은 그녀에게 나름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네가 대답 할 수 없다. 라는 말의 대답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예. 있습니다.” “그 방법은?” “대답 할 수 없습니다.” “후우···. 답답하군····.” 출근길에 교통사고라도 난 것처럼 꽉꽉 막힌 그녀의 대답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뭔가 굉장히 중요한 열쇠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 열쇠로 뭘 열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정운은 머리를 붕붕 흔들어서 혼탁한 정보를 정리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정립했다. 일단 저 세레나라는 여성은 살아있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생명이 다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악마의 게임의 근간이 되는 진실을 알고 있는 존재다. 다만 그 진실을 완전히 말 할 수 없을 뿐이다. 현재 얻은 정보는 이정도 뿐이다. 굉장히 중요한 정보들 같기는 한데 모두들 뭔가가 살짝 씩 부족해서 현재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일단 그녀의 존재에 관한 설명은 더 이상 추궁해도 들을 수 있는게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우선 실질적으로 그녀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 하는게 우선일 것 같다. “너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지? 전투 중에 우리를 서포트 하는게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호오··. 그래? 어떻게?” “무기를 주시면 싸우겠습니다.” “무기를? 너 특기가 뭐지?” “저의 단련된 검술과, 신의 가호를 받은 신성력입니다. 승마 또한 가능합니다.” “····잠깐 기다려봐.”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세레나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해 봤다. 생각해 보니 흑토처럼 자신에게 귀속 되어 있다면 스테이터스를 확인 하는게 정확했다. 세레나 종족 : ? (?) 레벨 : 73 나이 : ? 체력 : 100 힘 : 160 민첩 : 70 지능 : 99 매력 : 99 신앙 : ? 패시브 스킬 기마술 : MAX 검술 : MAX 창술 : MAX 액티브 스킬 신의 보호 : LV.5 (자신을 비롯한 아군의 방어력을 50% 강화 시킨다.)신의 가호 : LV.7 (무기에 신성력을 부과해서 공격력을 700% 올린다.)신의 자비 : LV.8 (자신을 비롯한 아군의 체력을 분당 8%씩 회복 시킨다.)홀리 버스터 : LV.5 (성스로운 빛으로 가득한 광선을 발사한다. 언데드들에게 치명적이다.)세이크리드 존 : LV.5 (사방 500미터를 신성한 영역으로 만든다. 언데드들의 모든 능력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유니크 스킬 신의 철퇴 : LV.2 (범위 100미터 안에 아군을 제외한 적들에게 대미지 10만의 충격을 가한다. 1주일에 1회만 사용 가능하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운은 벌어진 입이 다물지가 않았다. 레벨이 자신과 똑같은 73이다. 거기다 스킬의 숫자는 적었지만 상당히 강력했고, 특히 언데들에게는 거의 천적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유니크 스킬까지 있었다. “뭐야? 신의 철퇴? 100미터 안의 적에게 10만의 충격···? 이거 10만이면 어느 정도의 대미지를 말하는 거야?” 정운의 의문에 세레나가 선선히 대답했다. “정운님이 상대하신 쉐도우 엘프 킹이 상대라면 그 체력을 한 방에 3분의 1 이하로 떨어트릴 수 있는 수치입니다.” “···············.” “···············.” 정운은 물론이고 슬기까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겨서 간신히 잡았던 그 쉐도우 엘프 킹을 한 방에 그렇게 할 수 있다니···. 물론 1주일에 한 번 밖에 사용 할 수 없다는 조건이 달려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점을 핸디로 본다고 해도 정말 대단한 파워였다. “스킬수는 나보다 적지만 나보다 훨씬 더 강한 것 아니야?” 정운의 중얼거림에 세레나가 말했다. “아직 저의 모든 힘이 개방된 것은 아닙니다. 저의 힘은 마스터인 정운님의 수준에 맞춰서 하향 조정되어 있습니다. 정운님이 강해지시면 거기에 맞춰서 저 역시 점점 강해질 것입니다.” “···········.” 정운은 이제 무스 말을 해야 할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말인 즉, 원래 저 세레나라는 여자는 훨씬 더한 괴물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십왕을 능가하는 수준의 괴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운이 약하니까 일단 거기에 맞춰서 비슷한 수준으로 제약이 걸려있다는 말이었다. 한 마디로···. 세레나 > 정운 > 슬기 라는 공식인 것이다. 마스터 보다 더 강한 가디언이라니···. 이 정도면 대박이 아니라 거의 버그 수준이었다. ‘잠깐?? 버그?’ ============================ 작품 후기 ============================ 일단 중요한 떡밥이니까 여기까지만 깔아 두려고 합니다. 게임의 엔딩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엔딩이라서요.. 뭐, 아직 엔딩까지는 멀었지만 말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시합을 못 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겼기에 GSP가 그렇게 온갖 욕을 다 듣고 있는 걸까요? 화이트까지 열 받았더군요. 40화 <말벌파 박살내기> 정운은 순간 뭔가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뭔가···. 아주 중요한 가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정확하게 캐치 할 수를 없었다. “으음···. 아. 제기랄··. 오늘 머리 진짜 안 돌아가네.” 정운은 푸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세레나가 말했다. “정운님. 저는 스킬이나 스테이터스는 자력으로 갱신하지만 무기는 정운님이 지급해 주셔야 합니다.” “응? 아아···. 알았어. 희망하는 무기 있어?” “기마 일기, 검 한 자루. 방패와 갑옷 일체가 있었으면 합니다.” “음··. 알았어.” 기본적으로 정운도 슬기도 말을 타고 있었다. 그러니 어차피 말은 하나 사줄 생각이었다. ‘검이나 방패는···. 나 예전에 쓰던 것 다 팔았지. 제기랄···. 또 사야 겠군.’ 돈 깨지는 소리가 저절로 들리는 정운이었다. 세레나를 귀속 시킨 정운은 그녀에게 다른 유저들을 만나면 인간 유저인 척 행동하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녀를 가디언 같은 캐릭터라고 소개했다가는 그라운드 제로에 일대 파란이 일어 날 수도 있었으니 그렇게 소개 하는게 나았다. 그녀 역시 그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는지 선선히 승낙했다. “어때? 장비는 마음에 들어?” 정운은 세레나에게 장비를 맞추기 위해서 상점에 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고르는 것 보다는 세레나에게 예산 안에서 직접 맞추라고 했다. 얼마 전에 자기 갑옷을 업그레이드 한다고 제법 돈을 썼기에 세레나에게 허락한 예산은 70만 골드 정도였다. 거기에 세레나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갈색 털의 준마 하나와 플레이트 아머에 검과 사각방패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정운에게 60만 골드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말 이외에는 그렇게 큰돈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마스터와 공동으로 행동하려면 말은 1급 전마는 필요했기에 말은 좋은 것으로 골랐습니다.” 정운은 그녀의 아이템창을 확인해 봤다. 세인트 [1급 전마] 레벨 : 25 체력 : 130 힘 : 80 민첩 : 160 지능 : 10 [1급 전마로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적에게 용맹하게 돌진한다. 레벨이 오르는 것에 따라서 클래스는 변한다.] 바스타드 소드 공격력 : 45 무게 : 20 내구력 : 50 플레이트 메일 방어력 : 50 무게 : 30 내구력 : 40 카이트 쉴드 방어력 : 30 무게 : 10 내구력 : 20 이게 다였다. 정운이 확인한 그녀의 아이템 중에 비싼 것은 세인트라는 말 뿐이었다. 나머지는 지극히 평범한 무기들 뿐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도··, 하다못해 검이라도 좀 좋은 것으로 하지 그래?” “그것은 나중으로 하겠습니다. 적어도 지금 저 가게의 무기 중에 제 눈에 차는 것은 없었습니다.” “···········.” 한 마디로 그녀의 안목이 너무 높아서 그냥 저렴한 것으로 골랐다는 것이다. 정운은 그래도 공방력의 전체 강화를 위해서는 좋은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어차피 좀 더 손발을 맞춰 보고 그 후에 필요한 만큼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레나의 장비까지 모두 맞춰준 후··. 정운은 이제 미루고 미뤘던 일을 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말벌파를 쓸어버릴 거야.”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앞에두고 선고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그냥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슬기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동의했다. “정운씨의 뜻대로 하세요.” “·····괜찮겠어? 내가 말하는 말벌파를 쓸어 버린다는 말은 살인을 한다는 거야. 그건 알고 있겠지?”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쪽에서 먼저 비열한 방법을 동원한 이상 신속하게 배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전쟁에 익숙한 군인 같은 느낌이 강했다. 진짜 그녀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어쨌든 애당초 그녀는 정운에게 귀속된 존재이니 명령에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남은 한 사람이었다. “슬기는?” 정운의 질문에 슬기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사람을 죽인 것을 후회하고 여기에 들어왔어요. 그러니···. 살인이 죄악이라고는 생각해요.” “나도 알아. 그러니 넌 가능하면 빠져도 돼.” “아니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씨 혼자 죄를 짊어지게 하지 않겠어요.” “·········.” “당신이 가는 길의 끝이 지옥이라도 좋아요. 절 버리지 말아줘요.” “···········.” 슬기의 간절한 말에 정운은 침묵하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죽인 것을 후회하고 되돌리기 위해서 온 여자가 그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인다. 모순이다. 촌극이다. 그녀를 유혹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쳐 넣은 악마가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조소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인간은 모순 덩어리의 존재이다. 한 가지 가치관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인간은 항상 자기모순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추태를 부리게 된다. 그러니 슬기도 여기서는 사고의 유연성을 발휘해야 했다. 정운 혼자만 손을 더럽히게 하고 자신은 뒤로 빠진다. 라는 선택지를 선택할 정도로 슬기는 모질지도 못했고, 고고하지도 않았다. “좋아···. 그럼 모두들 동의한 걸로 알겠어.” 정운은 슬기를 뺄까 싶기도 했지만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 강인한 잡초가 되어야 한다. 정운 역시 유저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과거 흑곰파를 박살낸 사건 이후였다. 이 후로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역시 말벌파를 박살내는 것에 한 몫을 해야 했다. ‘이제···. 그 돼지벌 새끼를 잡아 족치는 것만 남았군.’ “술!! 술하고 여자 가져와 이 새끼들아!!!!” 정운이 목숨을 노리고 있는 말벌파의 길드장인 구민구는 주변에 온갖 진상을 다 부리고 있었다. 어그로 트랩으로 정운을 해치우려고 했던 이후 그는 줄곧 이 상태였다. 놈의 옆에는 이미 텅텅 비어버린 술병들과 폭행과 난행으로 망가진 여자들이 늘어져 있었다. 놈은 자기 저택의 침대에서 쳐 박혀서 지랄발광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술 쳐 먹고 섹스하고 부하들에게 화풀이 하고 다시 술 쳐 먹고···. 이렇게 온몸으로 나 지금 초조하고 겁 잔뜩 먹었다. 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 놈이 정운이 생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운의 저택이 아직도 정운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만약 저택의 소유주인 정운이 죽으면 그 순간 저택은 매물로 나와야 했다. 놈은 매일매일 어그로 트랩을 유지하기 위한 제물을 바쳐가면서 숲을 봉쇄했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끈질기게 버텼다. 하지만 결국은 저택을 망보던 길드원이 정운과 슬기의 귀환을 알렸고, 그 순간 놈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그냥 실패가 아니라 대 실패였다. 사자가 방심한 틈에 한 대 뒤에서 때린 것은 좋은데 사자가 살짝 아프기만 했을 뿐. 멀쩡하다. 그럼 때린 인간은 어떻게 될까? 답은 뻔했다. “으··· 으으···. 제기랄 술 가져 오라고!!!” 놈은 하루하루 정운의 손에 죽어가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지금 놈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딱 하나 뿐이었다. 이 저택에 쳐 박혀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방법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 시스템상 이 저택의 안에 있는 순간 만큼은 안전할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기 말고는 안전 한곳이 없다. 마을 안이라고 해도 전투가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패널티가 있어서 가급적이면 하지 않지만 그래도 전투 자체는 가능했다. 그리고···. 놈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정운의 심판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길드장님!!” “뭐야? 여자는? 술은?” 문을 열고 들어온 장우형을 보고 구민구는 벌컥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런 구민구에게 장우형이 말했다. “필드에 나가 있던 사냥조 10명이 죽었습니다. 그게··. 박정운의 짓이라고 합니다.” “·······놈이··· 나왔어?” “예. 그리고···. 여기 길드장님에게 전하라면서 한 개의 쪽지만 보냈습니다.” 구민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받았다. 그리고 확인한 쪽지에는 아주 짧은 문장만이 하나 들어 있을 뿐이었다. [죽인다.] “히익·····.” 이런저런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죽인다고 했다. 뭔가 괴롭힘을 주겠다는 말도 아니고 널 증오한다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죽인다. 죽일 뿐이다. 그냥 죽인다. 무조건 죽인다. 죽이는 것 하나에만 완벽하게 포커스를 맞췄다. 마치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 라는 것처럼 당연하게 필요하니까 널 죽이겠다. 라는···. 마치 절대적 포식자의 당연한 선고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놈··· 놈과 싸워야 해··. 놈과···. 지금 길드원들 몇 명이나 있지?” “예···. 그게····. 전투 가능한 인력은 10명 정도입니다.” “왜 그거밖에 없어!!!!?” 구민구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사실 말벌파의 총 인원은 48명이다. 하지만 그 중에 상당수가 그냥 힘없는 여자들일 뿐이었다. 말벌파 같은 악덕 길드에서 여성 유저를 제대로 키워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아무리 혈맹으로 묶어 둔다고 해도 역시 여자가 강해지면 자칫 다루기 어려워지지 않는가? 그래서 그녀들은 그냥 성의 대상으로 착취당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 레벨도 1~5사이 정도였고··. 싸울 힘은 전혀 없다고 봐야 했다. 원래 전투 가능한 유저가 50인 정도는 있었지만 그들은 이번에 어그로 트랩을 펼치면서 상당수가 죽었고, 남은 인원 중에서도 이번에 정운에게 10명 정도가 죽었다. 이제 전투 가능한 전력은 구민구를 포함해도 12명 뿐이었다. “제길····. 빌어먹을·····.” 구민구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 뜯으면서 망가진 라디오처럼 같은 말만 중얼 거렸다. 만약 자신을 빼고 부하들만 정운에게 보냈을 때의 승산은···. 아마 필패일 것이다. 현재 그는 정운에게 어느 정도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한 슬기와 강력한 가디언인 세레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1화 사실 세레나라는 전력이 없다고 해도 정운 한명의 전력만 생각해도 부하들만 보낸 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만약 내가 함께 가면····.’ 그렇게 하면 조금은 승산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잘못 판단한 것이지만 그래도 놈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승산을 느낀다고 해도···. 그렇게 갈 용기가 없었다. 이렇게 소심한 성격이면 차라리 처음부터 정운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을 텐데···. 결국 소인배는 자신이 감당 못할 지경이 되고 나서야 후회하는 인간들이었다. “부하들···. 부하들을 모두 불러내.” “········싸우실 겁니까?” “미쳤냐!!!? 버텨····. 버티는 거야. 저택 안에서 놈의 화가 풀릴 때까지 버티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구민구를 보고 장우형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잊으셨습니까? 이틀 후면······.” “···이틀 후··. 아····· 아아아······.” 구민구는 절망적인 표정을 했다. 저택에서 농성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이틀만 버티면 돼.”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의 관청 건물 앞에 아예 원터치 텐트까지 치면서 말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째서요? 어째서 이틀만 버티면 되는 데요?” “놈이 귀족 작위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내일 나와야 하거든.” “·········작위 갱신?” “그래. 듣자하니 놈의 갱신 날짜는 내일이라고 하더라고, 사실 저번에 처벌하려고 했을 때도 이 날짜가 한참 남아서 그냥 넘어갔는데 말이야.” 귀족 작위 갱신. 귀족으로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품위 유지를 위해서 일정 이상의 금액을 소모할 것.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공헌을 할 것. 또, 3개월에 한 번씩 관청에 가서 귀족 작위 갱신을 등록 할 것. 등록 자체는 별것 아니다. 운전면허 재발급 받는 것만큼이나 선선히 해 준다. 그걸 왜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선선히 말이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그 절차만큼은 본인이 직접 가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저택에서 무조건 나와야 한다. 만약 귀족 작위를 거부하려고 하면? 그래도 나와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강제성 이벤트다. 날짜를 깜빡하고 있다가 사냥 중에 강제적으로 귀환당한 자들도 있다고 했다. 즉, 여기서 기다리고만 있으면 이틀 안에 돼지벌이 나오게 되어 있다. “교대로 불침번 설 거야. 알았지.” “예. 알았어요.” “말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그렇게 아리따운 미녀 둘을 데리고 관청의 앞에서 복불복 야외취침 같은 느낌으로 진을 치기 시작했다. 한편 주변 유저들은 그런 정운의 행동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미 그들도 정운이 저렇게 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다. “쯧쯧···. 말벌파 놈들 끝장이군.” “거기 혈맹 조건으로는 길드장이 죽으면 다른 길드원들도 다 죽는다며?” “그렇다고 하더라···. 하아····. 아까워라.” “그럼 네가 박정운 말릴래?” “저 성질을? 내가 못 죽어 안달했냐?” 주변 유저들의 사이에서 정운은 사실 상당히 싸가지 없는 성격으로 통했다. 삼대 길드정도 빼고는 그렇게 협조하지도 않았고 흑곰파 정도로는 아니지만 정운과 작은 마찰을 빚었다가 큰코 다칠까봐 냉큼 사과한 작은 길드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정운은 미친개로 통했다. 길드도 아니고 솔로 플레이어인 주제에 한 번 시비가 붙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차라리 상종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운의 악명(?)이 이 상황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기는 했다. 만약 정운이 좀 친숙한 성격의 유저였다면 그때는 지금 정운에게 다가와서 귀찮게 하는 자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슬기와 세이라. 둘 다 로브로 얼굴을 가리기는 했지만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들이다. 더구나 슬기의 얼굴을 알고 있는 유저들은 잔뜩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연예인 봤다고 꺅꺅 거리면서 사인해 다라는 무개념은 어지간하면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슬기와 세이라를 귀찮게 하는 유저는 없었다. 그녀들은 흘깃 흘깃 구경하다가도 정운과 눈이 마주치면 길거리에서 조폭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45도로 눈깔아 버리는 유저들이었다. “어쨌든 이틀이다···. 이틀만 기다리면 돼···.” 약간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는 했지만 정운은 이틀만 기다리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날 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잠시 텐트 안에서 재우고 자신이 불침번을 섰다. 갱신일은 내일이지만 그래도 놈이 야밤에 몰래 살금살금 나와서 관청 안에 잠입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운에게 한 무리의 인간들이 다가왔다. 우물쭈물 하면서 다가오는 30명 정도 되는 인간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다. 정운은 그녀들을 보고 살짝 눈썹을 치켜떴다. ‘·····이렇게 나온다 이건가?’ 정운은 뻔 하다면 뻔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 말고는 구민구 그 놈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들은 정운에게 다가오더니 누군가가 대표로 나와서 조심 스럽게 말했다. “저기···. 박정운님이시죠?” “그래. 너희들은? 이라고 물으면 이상한 질문인가?” 정운의 비아냥섞인 말에 그녀들은 살짝 움츠리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말벌파의 길드원입니다.” “··········.” 길드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성노예라고 하는 편이 그녀들 신세에 어울릴 것이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악마의 유혹에 걸려들고, 그 안에서 다시 인간의 유혹에 걸려들어서 지금과 같은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운은 그녀들에게 동정심이 전혀 들지 않았다. 슬기하고는 다르다. 그녀의 경우 이 게임에 들어온 이유 자체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자신의 속죄가 원인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고의로 저지른 죄도 아닌 죄업을 되돌리기 위해서 그녀는 이 험난한 게임에 뛰어든 것이다. 정운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녀들에게 보일 동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 태연한 정운의 말에 잠시 당황했던 여자가 한명 앞으로 나와서 심호흡을 하고는 자신이 입고 온 롱코트를 벗었다. 그러자 어두운 달빛과 거리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새하얀 나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나이는 20대 중후반? 미모는 그럭저럭의 느낌이었다. 대한민국 평범한 여성 20명 정도를 모아두면 그 중에 좀 예쁜 여성이 한 두명 정도는 있지 않은가? 딱 그 정도였다. 그녀는 그 상태로 자신의 알몸을 정운에게 드러내고 말했다. “·····정운님의 화를 풀어드리라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 주십시오. 저희를···. 저희를 살려 주십시오.” 미리 준비된 듯한 대사를 하던 그녀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진짜로 울먹이듯이 말했다. 늦은 새벽이었지만 주변에 지나가던 유저들 몇 명이 마치 구경거리 보듯이 그녀의 나체를 음흉하게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마도 거기에 신경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녀 본인에게도 목숨이 걸린 문제일 테니 말이다. 말벌파의 혈맹 조약에 따르면 길드장인 구민구가 죽으면 다른 길드원들도 다 죽는다고 되어 있다. 배신을 완전히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녀들도 필사 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비참한 신세라고 해도 구민구가 죽으면 자신들도 같이 죽는 것이니 말이다.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는 결의가 그녀에게서 뿜어져 왔다. 하지만 정운은 냉정한 눈을 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옷 입어라.” “············.” “딱 잘라 말하지. 너희들 몸뚱아리에는 관심 없다.” “···········.” 알몸으로 들이대기까지 했는데 마치 넌 가치 없다. 라는 듯이 말하는 정운의 말에 여자는 눈물을 글썽 거리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래부터 시대와 배경을 불문하고 돈, 권력, 명예와 더불어서 남자를 움직이는 가장 큰 사대 당근질 중에 하나로 여자가 꼽히기는 한다. 하지만 안 통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사람이 다 제각각인데 당연하지 않은가? 애당초 정운이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타입이었자면 진작 집안에 있는 NPC메이드들부터 건드렸을 것이다. 그녀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여성들 보다 훨씬 더 미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운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적어도 자신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널리고 널린 욕망의 망자들하고는 스스로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성접대에 냉큼 낚인다? 구민구라는 놈이 정운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시도하는 일이었다. “구민구에게 가서 전해라. 난 널 살려줄 생각이 없다. 그냥 체념하고 죽어.” 정운의 말에 여자들은 털썩 주저앉거나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흐느꼈다. 방금 정운이 한 말은 구민구 한명에게만 떨어진 사형 선고가 아니었다. 그녀들 모두에게 떨어진 단두대의 칼날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마침내 시간이 다 되어간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대략 앞으로 두 시간 안에 구민구는 이 관청의 앞에 출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대 길드의 정보원에 돈을 주고 의뢰한 정보인데···. 설마 거짓은 아니겠지?’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 구민구를 보고 정운은 속으로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만약 정보가 잘못 된 것이면 그때는 그때대로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그때···. “오오, 왔다.” “죽으러 왔군. 죽으러 왔어.” 주변에 구경하던 갤러리들이 술렁 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오 올 놈이 온 것이다. “흐음···. 많이들 끌고 왔군. 해 보자는 건가?” 구민구는 어제의 여자들을 포함해서 길드원들을 다끌고 왔다. 정운은 세레나에게 말했다. “아마도 슬기를 인질로 노리고 있을지 몰라. 넌 후방에서 슬기를 지키고 있어.”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세이라에게 지시를 내린 후에 태도를 뽑고 말벌파의 앞을 가로 막았다. 일단 세이라에게 맡긴 이상 슬기는 안심이다. 이제 안심하고 싸울 뿐이었다. 주변의 갤러리들은 자신들에게 혹시나 피해가 갈까봐 몸을 사리면서 구경했다. 자고로···. 세상만사 구경 거리 중에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고 한다. 비록 그 싸우는 사람들은 피를 말리는 심정이든 말든 한 발 물러서서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저 즐거운 구경거리일 뿐이다. 구민구의 말벌파는 몇 년간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서서히 입지를 다져가던 중소 길드였다. 비록 삼대길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힘이 없는 길드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길드가 박정운이라는 상위급 유저 한 명에게 깨져 버렸다. 정운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수준의 유저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 100명 가량은 있다고 판단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은 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2화 박정운과 구민구의 대치에서도 이미 둘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겁먹고 부하들을 잔뜩 대동하고 온 구민구. 그리고 당당하게 홀로 구민구를 기다리고 있던 박정운. 유저들은 새삼스럽지만 고위급 유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실감들 하고 있었다. 부하들을 이끌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부하들을 앞세우고 등장한 구민구는 박정운을 보고 말했다. “박정운···. 아직도 나하고 싸울 생각이냐?” “아니. 그냥 죽일 생각이지.” 정운의 입에서 ‘아니’라는 말이 나왔을 때 노골적으로 환해진 표정을 지었던 구민구는 다시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말이 안 통하는 새끼 같으니라고····.’ 자기가 먼저 시비 걸고 어그로 트랩까지 펼쳤던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여기서 상대만 원망하고 있다. 이기주의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자, 보아하니 그냥 죽으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시작해 볼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태도를 뽑아서 거기에 검기를 일으켰다. “검기?” “유니크 스킬이지. 저거···?” “몰랐냐? 저거 박정운 주력 스킬이야.” 정운의 검에 검기가 맺히는 것을 보고 몇몇 유저들이 중얼 거렸다. 기공술이 유니크 스킬 중에서는 좀 약하다는 평가를 듣기는 한다. 그러나 리스크가 거의 없는 만큼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주력으로 사용 할 수 있었다. 정운 뿐만 아니라 기공술을 익힌 유저들은 모두들 그 기술을 주력으로 사용하고는 했다. 다만 유니크 스킬이니 만큼 흔한 기술이 아니라서 좀처럼 보기가 힘들었다. 정운은 실컷 보라는 듯이 검기를 내뿜었고 주변의 갤러리들은 오랜만에 좋은 구경한다. 라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정운의 검기를 그냥 신기하다는 듯이 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구경꾼들에 한해서였다. 말벌파의 인간들은 인상이 일그러졌다. 자신들은 저거에 싸워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아무리 싸워도 이길 수 없는 거대한 벽에 말이다. 정운은 차갑게 정신을 가라앉혔다. 여기서 동정은 금물이다. 보스몹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이름에 무게가 사라지는 것이다. 십왕, 삼대길드, 그리고 다른 상위 유저들까지··. 그들이 보통 유저들의 두려움을 사고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은 그들이 일반 유저들에게 경애와 두려움을 동시에 사기 때문이다. 상위권 유저라고 해도 그 이름에 무게가 없으면 다른 유저들과의 부딪힘에서 유리함을 차지하기 어려운 법이다. 지금 눈앞에 말벌파들이 벌벌 떨고는 있지만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애당초 저들도 수없이 많은 유저들을 짓밟고 유린하면서 자신들의 위명을 유지하던 자들이었다. 악명이 높았던 만큼 동정의 여지는 없는 자들이다. “제길!!! 싸워라!!!” 구민구의 명령에 따라서 몇몇 말벌파의 유저들은 발악하듯이 정운에게 달려 들었다. 싸우러 달려드는 와중에 그들의 얼굴은 공포와 눈물 콧물로 얼룩져져 있었다. 정운은 문득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자들이 조종석에서 아마 저런 표정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령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비인간적인 인간 병기가 되어야 했던 자들···. 딱 지금의 말벌파의 인간들과 같은 입장이었다. “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검풍!!” 콰쾅!!! 정운은 검풍으로 원거리 공격을 시작한 것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말벌파에 실질적으로 남아있는 전투 인원은 고작해야 10명 남짓이다. 나머지 여자들은 소 도축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오기는 왔지만 전투가 벌어지자 모두들 사방으로 흩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피해 있었다. 반면 싸울 수 있는 전력들은 사력을 다해서···. 그야말로 로또급의 대박을 바라는 심정으로 정운에게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애당초 그들의 공격으로는 급소 크리티컬이 터지기라도 하지 않으면 정운에게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정운은 애당초 접근 그 자체를 시키지 않고 있었다. 기공술로 강화된 검풍을 날리면서 접근하는 적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갔다. 보통 정운의 검풍이 세 대, 좀 많이 맞으면 네 대 정도면 바로 사망이었다. 열 명이서 정운 한명에게 덤볐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아서 네 명이 전투 불능에 빠졌고, 세 명은 죽었다. 나머지 세 명도 결코 멀쩡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정운의 전투를 맡긴 구민구는···. ‘지금이다. 저 년을 인질로 잡아서····.’ 구민구는 애당초 정운하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가 싸운다고 해서 결과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하들에게 가장 강한 정운을 상대하게 하고 자신은 몰래 옆으로 빠져서 슬기를 잡으려고 했다. 정운은 싸우는 와중에 그런 구민구의 행동을 봤지만 구태여 신경쓰지 않았다. ‘거기는 사형 코스다.’ 정운의 생각대로 슬기를 잡기 위해서 달려가는 구민구의 앞을 할 발 앞으로 나서서 가로 막는 것은 세레나였다. 그녀는 한 발 앞으로 나서서 로브를 슬쩍 넘기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주변의 남자 유저들의 얼굴에 감탄이 서렸다. 금발에 고귀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감탄한 것이다. 그런 그들의 감탄은 그 아름다운 여성이 구민구를 일합에 제압하는 것을 보고 끝났다. 촤아악!!!! 순간 세레나와 구민구가 교차하는가 싶었더니 구민구의 양 다리가 절단되고 그대로 바닥에 추락하듯이 쓰러진 것이다. “커억···. 크·· 크으으····. 아···. 아파!!!!!” 구민구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아파했다. 게임을 플레이하던 초기 시기에는 자신도 사냥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말벌파가 비대해 지고 나서는 부하들이 물어오는 사냥감만 손을 대거나 아주아주 안전한 전투만 반복했을 뿐이다. 혹시나 위험한 전투를 할 때가 오면 그때마다 부하들을 잔뜩 희생양으로 내밀었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정면승부를 해 본지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 됐다는 것이다 “야···. 방금 봤어?” “아니 난 잘···.” “순간 서로 교차한 것은 봤는데··. 그리고 여자가 한 바퀴 빙글 돌았어.” 주변에 구경하던 갤러리들은 상황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깔끔하고 신속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세레나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둘의 공방을 해설하자면···. 먼저 구민구가 슬기에게 가기 위해서 세레나를 향해서 있는 힘껏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놈의 스킬은 무투가이며 그 일격은 오크 부족의 전사도 절명 시키 수 있었다. 하지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법이다. 세레나는 그대로 상체를 숙이면서 지면을 스치듯이 제비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둘의 몸이 교차하는 순간 횡으로 한 바퀴 회전하면서 그대로 원심력을 살려 놈의 양 다리를 깔끔하게 날려 버렸다. 깔끔한 카운터 타격에 완벽한 일격으로 노의 양 다리가 무릎위로 깔끔하게 절단된 것이다. 속도 그 자체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굉장히 깔끔하고 숙련된 일격이었다. 세레나는 그대로 차가운 얼굴로 쓰러진 구민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도 어느새 말벌파의 전투 인원을 모두 처리하고 합류했다. “다 된 것 같군.” “끝을 낼까요? 마스터.” “그래. ···아니. 잠깐, 그 전에····.” 정운은 구민구에게 가서 멱살을 잡고 말했다. “어이? 지금 당장 혈명창에 승낙해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구민구에게 혈맹창을 보냈다. 혈맹창의 조건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혈맹 가입자 구민구는 제의자 박정운에게 모든 권리의 귀속을 인정한다.] 당연하지만 다리가 날아간 와중에도 구민구는 정운에게 욕을 하면서 말했다. “이 XXX새끼야!! 누가 이런 조건에··. 크악!!!!” 지껄이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운은 검으로 놈의 팔을 찔러 넣어서 빙글빙글 둘렸다. “누가 너한테 제의를 했지? 난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뿐이다.” “으윽····. 이···. 으으아아악!!!!” 놈은 정운의 검격이 자신의 사지를 푹푹 찔러 넣기 시작하자 고통에 겨워서 신음했다. 사실 정운이 구민구에게 이런 제의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구민구의 재산을 모두 압류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말벌파의 인간을 10명이 넘게 마을에서 죽였다. 그들에 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거기다 이제부터 죽일 구민구는 귀족의 자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벌금도 더욱더 크다. 최근 장비를 새로 맞추고 세레나에 이슬기라는 동료까지 생긴 정운으로서는 그런 잉여 지출은 결코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 구민구를 협박해서 놈을 혈맹에 가입 시킨 후에 죽여서 재산을 압류하려는 것이다. “크윽··. 내·· 내가 할 줄 알아···.” 사악한 쪽으로는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 것일까? 구민구는 이 와중에도 정운의 생각을 대강 알아채고 자신이 혈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게 좋은 선택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래? 어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한 번 보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지옥의 간수가 죄인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구민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부터 구민구의 인생 평생에 걸쳐서 가장 고통스런 순간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두시간 후···. “크···, 크크···으윽······.” 인간이 망가지면 이런 느낌으로 소리를 내는 걸까? 정운이 작정하고 구민구를 고문하기 시작한지 두 시간 남짓···. 주변에 구경하던 갤러리들도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상위 유저들 중에서도 정운은 자신에게 적대만 하지 않으면 그렇게 위험한 인물은 아니라고 평가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적대했을 시에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에 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알았다. 마을 광장의 한 가운데에서 수많은 갤러리들이 보는 와중에 정운은 자신의 잔혹함을 공개적으로 피로했다. 뭔가 복잡하고 창의적인 고문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죽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고통에 익숙해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두 시간 가량 구민구의 멀쩡한 몸뚱아리들을 찔렀다가 다시 세레나를 불러서 치료 했다가는 반복했다. 세레나의 회복 스킬인 신의 자비는 체력을 분당 8%씩 회복시킨다. 즉, 한 번에 확! 회복시키는 힐링과는 다르게 고문으로 적절한 대미지를 끝없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슬기는 정운의 뜻대로 따르기로는 했지만 너무나 잔인한 광경에 이미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직 그녀에게는 이런 독한 광경을 멀쩡하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일그러짐은 없었다. 그나만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환경과, 저 구민구라는 남자가 이제까지 저지른 악행을 알고 있었기에 정운을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푸욱!! “크아··· 아아아······.” 다시 몸이 회복되려는 찰나에 몸에 박힌 칼날에 고통에 전율하는 구민구는 정운에게 눈물을 범벅으로 흘리면서 말했다. “제발···. 제발 그···만····.” 정운은 이제 놈의 얼굴에서 충분한 고통과 후회를 읽었다. 반성의 기미는 애당초 바랄 수 없는 쓰레기였지만 그래도 고통으로 인한 후회라도 시킬 수 있다면 되었다. “한 번 더 혈맹창을 보내지. 여기에 수락하지 안으면 지금가지 했던 것을 총 복습 할 거야. 알겠나?” “···········.” 정운의 말에 구민구는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드 인간이라고는 말 할 없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고통에 약한 존재다. 구민구는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태도 아니었다. 정운이 보낸 혈맹창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그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리고 정운은 구민구의 모든 재산이 자신에게 귀속되자····. “이제 됐군.” “부탁···이야···. 살려···.” 촤아악!!! 구민구의 말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정운의 칼날이 날아가서 그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놈의 목을 정운은 싸늘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제 푹 쉬어라. 영원히···.” 그리고 띠리링 소리와 함께 정운에게 한가지 알림창이 떴다. [혈맹원 구민구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모든 재산이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후우···. 이제 한 건 끝났군.” 고문은 하는 사람도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정운은 지쳐서 한숨을 내쉬면서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이 돌아가고 난 자리에는 어부지리로 간신히 생명을 건진 말벌파의 여자 길드원들과 하드코어 공포 영화라도 본 어린애들 처럼 바짝 얼어붙어 있는 갤러리들뿐이었다. 이 순간을 기해서 유저들 사이에서 정운에 대한 공포심이 상당히 올라갔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일단 적이라고 판단되면 마냥 무르게는 할 수 없는 거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3화 <용병의뢰.> 말벌파 격퇴 이후···. 정운은 비교적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말벌파의 재산은 상당했다. 역시 길드라서 그런 것일까? 총 재산이 정운의 배가 넘었다. 사실 정운의 협박에 넘어가서 정운과 혈맹을 맺은 순간 이제까지 구민구가 맺고 있던 혈맹은 풀렸다. 즉, 그 혈맹원들의 재산은 구민구와 따로 분리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말벌파의 재산 99%는 구민구의 관리하에 있었다. 덕분에 정운은 거의 온전하게 말벌파의 재산을 모두 입수 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말벌파의 여성 유저들이 그런 정운에게 자신들의 재산을 요구···.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날 그녀들은 자신들이 두려워 하던 구민구가 도축장 돼지처럼 무참하게 살육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 정운에게 돈 달라고 따진다? 목숨에 10개 정도 여분이 있다고 해도 할 배짱이 없었다. 어쨌든 정운은 말벌파의 재산중에 재료 아이템만 현물로 챙기고 자신이 쓰지 못할 아이템이나 저택은 모두 경매에 붙여서 팔았다.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골드가 무려 1,028만 골드 이상이었다. 오랜만에 거금을 만진 정운은 일단 장비가 가장 빈약한 세레나의 장비부터 업그레이드 했다. 세레나는 어차피 지금 장비로도 별 문제 없다고 했지만 정운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세레나가 강하다고 해도 아이템의 강화는 필수였다. 이 그라운드 제로가 게임의 시스템을 모방하고 있는 만큼 공방력의 수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아이템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해서 세레나의 아이템은 한 층 업그레이드를 해서····. 영광의 성검 공격력 : 2000 무게 : 80 내구력 : 400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성기사의 성검. 언데드에게 100%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소유자의 저주 저항력을 높인다.] 천사의 깃털로 만든 경갑 방어력 : 450 무게 : 10 내구력 : 120 [천사의 깃털을 역어서 만든 경갑, 소유자의 민첩함을 3%상승 시킨다. 저주, 독, 마법 공경에 저항력을 높인다. 30분 동안 하늘을 나는게 가능하다.] 성스러운 방패 방어력 : 300 무게 : 30 내구력 : 20 [신의 축복을 받은 기적의 방패, 적의 마법 공격을 10% 확률로 반사한다.] 이렇게 세레나의 장비를 대폭 업그레이드 했다. 여기에 든 골드만 해도 230만 골드였다. 천사의 깃털로 만든 경갑은 상점에서 산게 아니고 어떤 유저가 경매로 오른걸 샀는데··. 거기만 해도 113만 골드가 들엇다. 하지만 그만한 돈이 들어도 꼭 그녀에게 주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정운은 이제까지 그녀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녀가 싸운느 못습을 보고는 역시 자신과 같은 전위이면서 성기사 같은 느낌으로 육성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언데드들이 자주 쓰는 독이나, 저주에 대한 저항력에 신경을 많이 쓴 아이템을 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로서 정운의 팀은 슬기가 제 구실을 하기만 하면 만능형 전위 한 명에 회복형 전위 한 명. 거기에 뒤에서 마법 공격을 받쳐줄 법사까지 가지게 되었다. ‘제법 틀이 잡혔단 말이야.’ 물론 슬기가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 곧 30레벨을 눈앞에 두고는 있지만 한참 부족하다. 아직은 꼽사리 끼고 있다는 느낌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슬기가 제 몫을 하려면 적어도 레벨 50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운의 계획으로는 그렇게 되기까지 대강 1년 정도는 잡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슬기의 육성 하나에만 게속 목을 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운도 정운 나름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플레이를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정운은 최근에 유니크 아이템인 그림자의 망토를 최대한 이용해서 사냥하고 있었다. 유니크 아이템인 그림자의 망토는 아무리 사용해도 다른 유니크 스킬 같은 위험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키워야 했다. 그리고 그 보람이 있어서 오늘···. “쉐도우 컷터!!!” 촤아악!! “커허어엉!!!” 정운의 그림자가 지면에서 상어의 지느러미 같은 칼날을 보내서 트윈헤드 라이거를 절명 시켰다. “흠···, 역시 아직은 솔로 플레이가 익숙하군.” 그렇다. 54층이기는 하지만 지금 정운은 혼자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정운은 요즘 슬기와 세레나를 따로 레이드에 보내고 자신은 몇 킬로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솔로 플레이를 종종 하고는 했다. 자신의 스킬을 점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슬기와 세레나가 생각보다 전투의 궁합이 좋아서 둘이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둘이서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다면 거기에 자신까지 끼어서 경험치를 3등분 하는 것 보다는 둘이서 2등분 시키는게 효율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오! 됐다.” 정운은 그림자의 망토의 레벨을 확인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림자의 망토 LV.2 방어력 : 7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스킬 : 쇄도우 컷터 쉐도우 스피어 [그림자를 조종해서 물리력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능력의 활용성이 더욱더 커진다.] “좋았어!!” 역시 유니크 아이템이라고 해도 집중적으로 그림자의 망토 하나만 쓰니까 레벨이 빨리 올라 갈 것 같았다. 이 느낌대로라면 3레벨 정도 까지는 무난한 속도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운은 마침 늘어난 스킬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서 적당한 상대를 찾았다. 길 잃은 어린양··. 아니 흉폭한 늑대 무리가 10마리 정도 보였다. “이럇···.” 정운은 주저 없이 흑토를 거기로 몰았다. 그리고 새로운 스킬을 시험해 봤다. “쉐도우 스피어!!” 파팟!!! “캐캥!!!” “카항!!!”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창날이 뻗어 나와서 흉폭한 늑대 무리 중에 두 마리를 꿰뚫어 버렸다. 그리고 다른 놈들을 향해서도 정운의 공격이 계속 되었다 “쉐도우 컷터!!” 촤촥!!! “캐캐앵!!!” “카항!!!” 이번에는 그림자의 칼날이 늑대를 공격했는데 놀랍게도 그것 역시 이전처럼 하나만 날아 가는게 아니라 두 개의 공격이 날아가고 있었다. 다수의 늑대들이 동시에 상당한 대미지를 입었다. “호오··. 레벨이 오르면 공격의 양도 오른다는 건가?” 정운은 몹시 기쁜 얼굴을 했다. 만약에 정운이 앞으로 그림자의 망토의 레벨을 10까지 찍으면 그때는 10개의 그림자의 칼날과 그림자의 창날이 적을 공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스킬들도 생기겠지만 이미 생긴 스킬이 성장하기만 해도 충분히 강력한 무기였다. ‘아이템을 다 성장 시키면 어느 정도로 진화 할지 볼만 하겠군.’ 왜 십왕급 유저들이 유니크 아이템이라면 환장을 하는지 이제 정운도 알 것 같았다. 그날 정운은 한참을 더 사냥하다가 슬기에게서 연락이 오고 나서야 사냥을 접고 돌아갔다. “후우·····. 좋다···.”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노천 온천에서 노곤하게 피곤을 푸는 정운의 얼굴은 평화롭게 풀어져 있었다. 물론 저택의 안은 절대 안전지역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의 정운이라면 이렇게 자연스러운 미소는 짓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게 슬기가 합류하고 거기에 세레나까지 합류해서 생긴 일이었다. 세레나는 가디언이었지만 대화를 해 보면 그녀가 그냥 NPC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아니지···. 애당초 PC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도 아닌 세계인데 AI같은게 있을리는 없어. 모두들 뭔가에 기원을 두고 있는 존재겠지····.’ 정운은 노천 온천에서 별빛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었다. 그런 정운에게 메이드 한명이 와서 말했다. “정운님. 슬기님의 전언입니다.” “응?” “욕실을 비우려면 아직 멀었냐고 합니다.” “아··. 난 다했어. 그러니 곧 나간다고 해.” “알겠습니다.” 순간 정운은 이 넓은 온천에서 슬기와 세리나와 함께 목욕을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군···.’ 그냥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남자라는 생물의 슬픈 생리 같기도 했다. 정운은 목욕을 정당히 하고 밖으로 나왔다. 온천은 하나 뿐이었지만 항상 정운이 먼저 썼다. 정운이 집 주인이라서? 아니다. 물론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지만 진짜 이유는 여자들이 목욕하면 걸리는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정운의 경우 온천욕이라고 해도 1시간이 넘지 않았다. 어떨 때는 20분 만에 끝나기도 했다. 10분간 탕 속에서 졸다가 밖으로 나와서 몸 씻고 머리 가고 밖으로 나가서 옷 입고 그 다음에 나가면서 머리 말리고···. 전형적인 남자의 목욕 스타일이다. 거기에 비해서 슬기와 세레나는 다르다. 어떻게 하는지는 정운도 모른다. 다만, 그녀들의 경우 온천에 들어가서 최하 2시간은 기본이었고 어떨 대는 4시간 까지 미기적 미기적 거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사실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목욕을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 맞는 사실이다. 여자들의 경우 목욕이라는 것이 그냥 청결의 수단이 아니라 심신을 회복하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 중에는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목욕을 공들여 하는 것을 손 꼽는 사람들도 있다. 뭐···. 남자들 중에 가끔씩 세차광들도 있으니 같은 느낌으로 받아 들이면 되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목욕에 시간이 왕창 걸리는 그녀들이다 보니 정운도 처음에는 그녀들에게 목욕의 순서를 양보했지만···. 그녀들의 길고 긴 목욕 시간에 학을 때고는 앞으로 자신이 먼저 하기로 했다. 이런 사소한 부딪힘도 인간의 정에 굶주려 있던 정운에게는 안온의 활력제였다. 목욕을 마치고 잠시 후에 세 사람은 식탁에서 다시 만났다. 슬기와 세레나는 목욕 후라서 뽀얀 피부와 약간 젖어있는 머리카락이 매력적이었다. ‘눈이 호강이긴 하군····.’ 정운의 주변에 있는 NPC메이드들도 매력적인 외모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경우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를 않았다. 정운이 하는 명령에 복종하고 자신들의 일에는 성실하게 매진하지만 본인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자신들끼리 놔두면 하루 종일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다. 마치 꼭두각시가 집안을 배외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슬기와 세레나는 달랐다. “세레나, 거기 소스 좀 줄래요?” “여기 있습니다. 흐음···. 늘 느끼는 거지만 전시라고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풍족한 식사로군요.” “좀 그렇죠? 남기는 것도 많고···.” “마스터의 의사이니 제가 불평을 말할 일은 아닙니다. 더구나 여기서 자원을 아끼는 것도 의미가 없기는 하니까요.” “그건 그래요.” 그녀들이 자신들끼리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녀들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확 들었다. 이런 소소한 광경이 정운에게는 마음에 약이었다. ‘세레나의 정체는 아직 미지수지만 말이야.’ 그건 중요한 문제였지만 일단은 안온한 지금의 일상이 마음에 드는 정운이었다. 셋이서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그때···. “주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공손한 집사의 말에 정운이 되 물었다. “손님? 누구지?” “메두사 길드에서 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들어오라고 해.” 삼대길드의 손님이라면 일단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아마도 뭔가 용건이 있어서 왔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4화 잠시 후. 저택의 응접실에 메이드가 커피를 가져오고 세레나와 슬기를 포함한 정운이 메두사 길드의 전령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정운님. 메두사 길드의 김철웅이라고 합니다.” “박정운입니다.” 두 사람은 형식적으로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운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긴, 정운이라고 3대 길드의 인간 모두를 아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하하···. 이거 이거, 아름다운 미인분들을 보니 눈이 호강이군요. 저기 저 분은 혹시 밀키웨이의···.” “용건을 말해 주겠습니까?” “아···. 불쾌 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친근하게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다가 정운이 차갑게 받아치자 김철웅은 바로 사과했다. 아무리 메두사 길드의 간판을 등에 업었다고 해도 일개 전령 나부랭이가 정운을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 정운이 다른 삼대 길드에 가입한다고 하면 절대로 윗사람들한테 좋은 소리 듣지 못할 테니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냉정한 인간이군···.’ 김철웅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 용건을 꺼냈다. “예. 이번에 저희 길드에서 54층 보스몹인 다크엘프 퀸의 레이드를 하려고 합니다. 정기 레이드는 아니다 보니 우리만으로는 손이 부족해서 외부의 조력을 얻으려고 합니다.” “흠···. 구성원은 어는 정도 입니까? 그리고 대가는 얼마입니까?” 레이드 용병 의뢰. 이건 정운과 삼대 길드들 사이에서 종종 있어온 일이었다. “구성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희 길드에서 경험자 한 분이 조장으로 참가하실 겁니다. 그 이외의 멤버는 아직 모집 중입니다.” “경험자가 한 분 참가한다면 됐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보수의 얘기를 해 보죠.” 정운의 말에 김철웅은 헛기침을 하고는 운을 때기 시작했다. “크큼····. 우선 정운님도 아직 54층의 보스몹을 잡지는 않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경험자로 분류되어서···. 아!! 혹시 뒤에 두 분도 참가하실 겁니까?” “이름은 올려 둘 겁니다.” 정운은 선선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전력은 아니니 저 두 분의 경우는 저희가 페이를 받아야 합니다.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54층 레이드에 저기 두 분의 파티까지 포함하는 가격으로 15만 골드 어떠십니까?” 김철웅의 말에 정운은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눈앞의 상대가 자신을 호구 취급하고 있다고 말이다. ‘처음 보는 놈이 왔는데···. 아무래도 교섭 자체를 처음 하는 놈이군. 그런데 사람 호구 취급을 해? 삼대길드에 들어가니 눈에 보이는게 없다 이거지?’ 레이드 용병으로 그 레이드에 가세하면 주어지는 보상은 경험치를 제외하고는 제로다. 그 보스몹을 잡아서 나오는 골드, 아이템, 스킬북 등이 나와도 그런 보상품은 모두 레이드를 주최한 길드에서 가진다. 대신에 용병들에게는 사전에 약속한 보수만을 지급할 뿐인 것이다. 그건 이미 정운도 알고 있다. 이미 그라운드 제로의 불문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5만 골드라니? 이건 너무 저렴했다. 40층 보스몹을 레이드 뛸 때도 20만 골드는 받았다. 54층 보스몹이라면 적어도 40만 골드는 받아야 했다. 아마도 슬기와 세레나를 파티로 맺어주는 것 때문에 그런 반응을 하는 모양인데··. 이 둘의 파티 사용료를 일인당 5만 골드씩 친다고 해도 적어도 30만 골드는 받아야 했다. 아마도 이 놈 길드에서 교섭의 상한가로 허락 받은 돈도 그 정도 될 것이다. 이렇게 정운의 등을 쳐 먹으려는 이유는 아마도 저렴하게 깎으면 깎을수록 자신에게 떨어지는 페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만만하게 호구 노릇이나 하기에는 정운도 그 동안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세월이 너무 아까웠다. 정운은 태연한 태도로 그에게 말했다. “54층 레이드라면 이미 다른 곳에서도 몇 군데 오퍼가 들어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상대는 살짝 당황한 티를 너무 많이 냈다. 그런 상대에게 정운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예. 이미 몇 개나요. 하지만 메두사 길드처럼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길드는 하나도 없더군요.” “아니 그건·····.” 정운의 말에 김철웅은 이제 완전히 당황해서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정운은 그런 그를 보면서 쇄기를 박았다. “50만 골드. 그동안 좋은 거래 관계였던 메두사 길드와의 마지막 일로서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하다고 봅니다만···.” 정운의 말에 김철웅은 깜짝 놀라서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50만 골드면 자신의 깜냥을 초월해도 한창 초월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메두사 길드와의 마지막 일이라는 단어였다. 그건 정운이 이제 메두사 길드와의 거래를 그만 두겠다는 말로 들렸다. 말단 길드원일 뿐인 자신의 말실수 때문에 박정운이라는 우수한 용병을 잃어버리면 메두사 길드로서도 큰 손해였다. 툭하면 사망자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환경이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다. 위로 올라가기 위한 위험한 플레이를 계속하는 자들은 더욱더 그랬다. 그러니 삼대 길드라고 해도 상위권 유저는 유용한 재원으로서 좋은 인연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 했다. 현실에서 대기업들이 하청에 갑질 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삼대 길드. 비슷한 경쟁업체가 세 개나 있지 않은가? 균형이 무너지면 이대 길드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정운님. 진정 하시죠···. 저기···40만 골드 어떻습니까? 이게 저희가 제안 할 수 있는 최대한입니다.” 김철웅은 바로 바닥을 드러냈다. 사실 이제 막 외부와의 교섭을 시작하기 시작한 신참에게 40만 골드도 큰돈이었다. 메두사 길드의 거대함을 생각하면 길드 전체에서는 별것 아니지만···. 그 본인에게는 큰돈이 아닐 수 없었다. “흐음···. 40만이라····.” “사실 이 정도면 시세보다 비싼 편입니다. 저기 두 여성분의 파티비도 받지 않는 것이고···. 그리고 또, 정운님으로서도 54층의 레이드는 슬슬 시도하실 때이지 않습니까?” “흐음······.” 정운이 계속해서 이렇다 할 대답은 하지 않고 뜸만 들이자 똥줄이 타는 김철웅이었다. 그로서는 어떻게든 이 거래를 성사 시켜야 했고, 그만큼 절실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심리가 어느새 갑을의 관계를 완전히 역전 시켜 버렸다. 정운이 아무리 상위급 유저라고 해도 삼대 길드의 하나인 메두사 길드보다 위세가 높지는 않다. 아무리 신뢰 할 수 있는 용병이 중요하다고 해도 일단 하청을 주는 쪽은 메두사 길드다. 하지만 정운이 배짱을 튕기고 몇 가지 거짓을 곁들이자 이런 거래다 처음인 신삥 전령이 있는 대로 당황해서 저자세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형적으로 거래의 화술에서 말린 결과였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40만 골드에 일하도록 하죠. 날짜와 자세한 전력은 서신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저··. 그리고 가능하면 앞으로도 저희 길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으면 합니다만····.” “····예. 그렇게 하죠.” 정운이 선선히 동의를 하자 김철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안심했다. 애당초 가격이 40만 골드로 오른 것에 관한 아쉬움은 완전히 없었다. 펄펄 끓는 물에 한 번 데이고 나니 50도 정도의 열탕도 미지근한 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메두사 길드의 전령이 가고 나서 슬기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저번에 삼대길드는 무진장 강하고 위험한 자들이라서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죠?” “그랬지.” “그런데 그렇게 막 나가도 되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그들보다 약한 것은 맞지만···. 마냥 숙이고만 있어서는 안 돼. 일정 선은 넘지 못하도록 선을 그어놔야지. 안 그러면 두고두고 고생길이야.” “만약 그러다가 저쪽에서 화를 내고 정운씨에게 뭔가 나쁜짓을 하면요?” 얼마 전에 말벌파와의 트러블 때문에 살짝 애를 먹었던 정운과 슬기였다. 뭐, 결과적으로는 숨겨진 퀘스트도 찾고 전력도 대폭 강화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별것 아닌 말벌파만 해도 그 정도였다. 삼대 길드가 정운에게 뭔가 공격을 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슬기였다. 그런 슬기를 보고 정운이 말했다. “어차피 삼대 길드가 작정하고 나를 찍어 누르려고 하면 힘들어. 하지만····. 나 역시 그냥 당하지는 않을테고, 저들도 어느 정도 피해는 있겠지. 나 하나잡자고 자신들의 큰 피해가 생겨봐야 손해일 뿐이야.” “그렇군요····.” “거기다 삼대길드잖아? 같은 수준의 길드가 세 개나 있는 거라고 만약 내가 몸을 피하고자 하면 다른 두 길드 중에 하나로 피신하면 돼.” 정운의 말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정운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상위권 유저들은 종종 그런 방식으로 삼대 길드와 줄타기를 하기도 했다. 아니면 완전히 삼대 길드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 하던가···. “어쨌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 이번 기회에 거대 길드의 레이드를 봐 두는 것도 너희들에게 좋을 거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기와 세레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주 후···. 메두사 길드의 주도하에 다크엘프 퀸의 레이드가 시작 되었다. 보스몹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모인 인원은 150명. 이 중에서 50명은 이름만 올려두고 있는 멤버들이었고 실질적으로 100명이서 다크엘프 퀸을 공격하는 것이다. 메두사 길드에서 60명의 유저를 보냈고 나머지 40인은 용병이었다. 그리고 용병 중에서 정운하고 비슷한 수준의 상위급 유저는 두 명이 더 있었다. 이 정도면 큰 변수가 없는 이상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오늘의 레이드를 리더를 맡게 된 이보영입니다. 새삼 소개는 필요 없겠죠?” “이보영?” “그녀가 직접 나서는 거야?” “오오···. 한 명 참가한다는 경험자가 그녀였다니···.” 유저들이 수근 거리고 정운도 살짝 놀라서 눈을 치켜떴다. 그런 정운을 보고 옆에서 슬기가 말했다. “정운씨, 저 사람은 누구죠?” “·····십왕중에 한명이야. 그리고···. 메두사 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하지.” 정운의 그 짧은 소개 하나에 슬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게 놀랐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강한 유저 십왕. 그들의 이름은 그라운드 제로 전체에 유명했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랭킹도 매겨 놨다. 직접 부딪혀서 승패가 정리된 유저들도 있었고 그냥 간접적으로 본 사람들이 비교해서 매기기도 했다. 그 결과···. 1위. 박추성 2위. 배대호 3위. 이민지 4위. 한중겸 5위. 윤정철 6위. 명주호 7위. 김수민 8위. 이보영 9위. 이지영 10위. 주경택. 이상이었다. 이상의 열 명들이 그라운드 제로의 수많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정점에 있는 존재. 십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6위부터 10위까지는 모두 삼대 길드의 인물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저기 나오는 열명은 앞으로의 전개에서도 종종 나올 중요인물들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5화 6위 명주호는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이다. 그리고 7위 김수민은 타란툴라 길드장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정운의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이보영. 메두사 길드의 길드장인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9위인 이지영은 메두사 길드의 부길드장이고 개인적으로는 이보영의 동생이라도 했다. 그리고 10위인 주경택 역시 타란툴라 길드의 부길드장이다. 사실 6위부터 10위까지의 인물이 길드를 만든 이유가 그 위의 상위 다섯 명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10왕의 내부에서도 그들간의 격차가 어느 정도 난다는 것이다. 어쨌든····. 십왕과 같이 레이드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현재 최고층인 67층에서 플레이하고 있어야 할 그녀가 어째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십왕의 실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저들은 기대했다. 그녀는 유저들 사이에서 단상에 서서 말했다. “먼저 조를 네 개로 만들겠다. 그리고 각 조장을 뽑아서 조원을 통솔하도록 한다. 만약 조원에서 사망자가 나왔을 시에는 조장에게 엄하게 책임을 묻겠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자는 꺼져라.” 여자 치고는 키가 좀 큰 편이기는 하지만 얼굴은 청초한 인상인 이보영이었다. 얼굴만 보면 청초한데 전체적인 인상은 세련미가 풍기는 그런 느낌이었다. 평범한 세상에서 만났으면 어디 모델 같은 일을 하는게 어울릴 정도로 근사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단상 위에서 수많은 남자들에게 하는 말투는 터프했다. 애당초 여자가 사근사근하게 굴었다면 삼대 길드의 길드장 같은 것은 해먹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네 개로 나뉜 조들 중에 세 개의 조장들은 모두 길드의 외부인이었다. 사실 이번에 참가한 메두사 길드의 길드원들은 대부분 40~50사이의 레벨이었다. 아직 54층의 레이들를 하기에는 좀 무모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부족함을 한방에 매워주고 있는 존재감이 바로 십왕인 이보영이었다. 정운 역시 3조의 조장이 되어서 20명의 조원을 이끌게 되었다. ‘사람들 이끄는 것은 영 체질이 아닌데···. 그래도 원거리 조니까 다행인가?’ 정운은 조원들을 배정 받으면서 생각했다. 조는 일단 근거리에서 싸우는 조 30명과, 원거리 엄호 조, 20명, 그리고 교대 근거리 공격조, 30명. 마법 공격조, 10명. 혹시 모를 비상대기 조 10명으로 배치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레이드가 시작 되었다. 레이드를 하기 전에 보스몹이 있는 방으로 가는 길은 쉬웠다. 다크엘프 퀸은 다크엘프의 숲 깊숙한 곳에 궁전을 지어두고 거기에 있었다. 가는 길에 이런저런 잡 몹들이 좀 공격해 오기는 했지만 이정도의 인원이 모였다. 그 놈들 정도는 등장하고 10초 만에 초살이었다. 이윽고 궁전의 내부에 들어가니 거기서는 더 강한 가디언 몹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 공격조 앞으로 후방에는 2 공격조, 잉여 파티원들은 중앙에 밀집해라!!!” 궁전의 안에 들어오자 이보영의 지시대로 진형이 갖춰졌고 레이드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전진했다. 평균레벨 60대의 강력한 몹들이 덤볐지만 약간의 발목 잡이 밖에는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몇 번이고 이 레이드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이보영의 지시는 일사분란하고 매우 정확했다. 그녀는 한참 전진하다가 일행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10분 정도면 보스몹의 방에 도착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3분간 휴식하면서 각자 정비하라.” 그녀의 지시에 따라서 몇몇 보초를 서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의 아이템과 상태를 체크했다. 정운도 자신의 조원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후에 자기 장비를 점검하고 잠깐 짬을 내서 중앙에 있는 슬기와 세레나에게 갔다. “둘 다 어때? 그냥 걷기만 하니까 지루하지?”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별로··. 그보다 이제 저 얼굴 다 팔렸어요. “아···. 그러고 보니 너 로브···.” “예. 어차피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기는 했지만···. 아까 전투시 이동 중에 우르르 움직일 때 로브가 벗겨져서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세레나.” “예. 마스터.” “슬기를 확실히 지켜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슬기는 연예인. 그것도 제법 잘 나가는 아이돌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얼굴이 팔리는 것은 언젠가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앞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연예인이 들어온 것을 보고 이런저런 입방아들이 좀 많을 것이다. 그것도 주로 정운과의 사이에서 성적인 거래가 있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정운이라도 해도 그런 여론을 모두 잠재울 수는 없다. 인터넷 따위가 없어도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지게 되어 있다.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미 주변의 몇몇 유저들 사이에서는 슬기를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자기들 끼리 귓속말로 뭔가 수근 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별의 별 상상과 함께 엄한 소리를 다 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예···. 저도 알아요.” 이미 루머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겪어본 그녀였다.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악 소문이 따라 붙을지는 스스로도 대강 짐작을 하고 있었다. “걱정하시 마십시오.” 그때 슬기의 옆에 있던 세레나가 슬기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세레나···.” “당신은 맑은 영혼을 지닌 좋은 사람이며 또한 나의 벗입니다.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세레나의 말은 온화한 어머니의 그것 같은 안도감을 불러 일으켰다. “···고마워요. 세레나.” 슬기는 세레나의 말에 환한 웃음으로 보답했고, 정운은 자신이 무뚝뚝하게 굴어서 세레나에게 좋은 역할을 빼앗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의 휴식 후에 드디어 일행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크엘프 퀸의 방에 도착했다. 화려하지만 아무도 없는 대전의 가운데에 화려한 옥좌가 있었고 거기에는 한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봐도 폼 하나는 좋단 말이야···. 전원 준비!! 보스몹이다!!” 이보영의 명령을 시작으로 유저들은 본격적인 대형을 갖췄다. 그리고····. “전원 공격하라!!!” “와아아아!!!!” 드디어 거대 길드에서 주도하는 대규모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레이드가 시작되고 30분···. 멀리 떨어져서 현장을 구경만 하고 있던 슬기는 감탄했다. “대단해····. 보스몹을 저렇게 안정적으로도 잡을 수 있구나···.” 사실 생각해 보면 이전에 쉐도우 엘프 킹을 무모하게 단 둘이서 잡으려고 했던게 비정상이었다. 원래 레이드는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합쳐서 잡는게 정상이었다. 한명 한명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지만 여러 명이서 힘을 합쳐서 싸우니 LV.90의 보스몹인 다크엘프 퀸도 어렵지 않았다. 다크엘프 퀸은 마치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 같은 스킬을 이용해서 싸웠다. 그녀의 곁에 정운만큼 크지는 않지만 대신에 수백개는 될 법한 얼음의 검들이 둥둥 떠다니면서 그게 방패가 되고 공격의 가시가 되었다. 조종 가능한 거리에는 제한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무척 강력한 공격이었다. 다만···.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쉐도우 엘프 킹 같이 일격 필살의 위력은 없어 보였다. 대미지를 입어도 뒤로 빠지고 다음 공격조가 교대를 하고 회복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 다시 전쟁터에 투입되는 방식으로 전투를 꾸준하게 이어갔다. 회복 아이템과 힐러들의 소모가 크기는 하지만 역시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고 먼저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다크엘프 퀸이었다. “오오오오오오!!!!!” 그녀의 머리위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자 그녀의 입에서 귀곡성 같은 통곡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보랏빛 파문이 번져서 유저들을 통과했다. 두 가지 모두 보스몹 특유의 위기 시에 발동하는 히든 스킬이었다. [정령의 통곡을 당했습니다. 능력이 50% 떨어집니다.] [여왕의 저주를 당했습니다. 분당 10%씩 체력이 떨어집니다.] “큭··. 이게 소문의 다크엘프 퀸의 스킬인가?” 정운은 자신의 모든 능력치가 반으로 뚝 떨어지고 거기다 체력까지 닳기 시작하자 혀를 찼다. 확실히 이런 능력 혼자라면 감당하기 힘들다. 하지만···. “당황하지 마라. 최후의 발악일 뿐이다. 백업 메이지들은 공격조의 체력 회복에 사력을 다해라!! 능력이 반감 된 것은 신경쓰지 마라!! 무조건 공격이다!!!” 뒤에서 유저들을 지휘하고 있는 이보영의 호통이 유저들을 독려했다. 이제까지 그녀는 단 한번도 전투에는 나서지 않고 뒤에서 지시만 하고 있었다. 아마도 길드원들에게 돌아갈 경험치의 비율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 전투를 자제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녀가 나서서 다크엘크 퀸에게 큰 대미지를 주면 그녀에게 집중적으로 경험치가 쏠릴 테니 말이다. 실제로 그녀는 지휘를 하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래서 경험자는 무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크엘프 퀸의 디버프 때문에 점점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그녀도 살짝 갈등했다. ‘내가 나설까?’ 길드원들에게 경험치는 좀 적게 갈지 몰라도 일단 이쯤에서 묵직한 것 한방을 먹여 두는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앗!!! 뚫렸다!!” 전선에서 보스몹을 잡아두고 있던 공격진의 실수로 다크엘프 퀸이 원거리 공격조인 3조를 향해서 달려갔다. 수백개의 검을 앞세우고 달려가는 다크엘프 퀸의 공격이 원거리 공격진에 도착하면 다수의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쯧!!” 이보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차고는 움직였다. 어지간하면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안전한 레이드. 그것이 삼대 길드가 다른 유저들 사이에서 동경받고 인정받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질풍처럼 달렸다. 그녀의 직업은 무투가. 그것도 클래스 명은 전설의 권성이었다. “하앗!!!” 특별한 스킬도 아니고 그냥 힘껏 휘두른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 발이 다크엘프 퀸에게 작렬했다. “꺄아아아악!!!” 퍼어어엉!!!! 그녀의 주먹과 함께 어떤 공격이 다크엘프 퀸에게 작렬했다. 그러자 째지는 목소리와 함께 그대로 다크엘프 퀸은 절명해 버렸다. 단숨에 사라져 버리는 다크엘프 퀸을 보고 그녀는 오히려 당황했다. ‘이런···. 이렇게 죽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경험치의 고른 분산을 위해서도 자신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했다. 비록 상태가 옐로우 크리스탈이기는 했지만 평범한 일격에 절명해 버릴 줄은 몰랐다. “제가 주제넘게 나선 것 같군요.” 그때 이보영의 옆에서 말에 올라타 있는 한명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정운이였다. “····박정운이라고 했지? 이거 당신이 한 건가?” “정확히 말하면 길드장님과 제 공격이 동시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살짝 놀랐다는 듯이 정운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공격과 함께 다른 강력한 일격이 다크엘프 퀸에게 작렬한 느낌은 받았다. 그냥 원거리 공격진의 누군가가 한 공격인줄만 알았는데 설마 이 정도의 위력일 줄은 몰랐다. 사실 정운은 적당히 전투에 개입하면서 군데군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원거리 스킬인 관통사로 다크엘프 퀸을 저격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진행하는 레이드였기에 정운도 평범하게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방의 레이드들이 빈틈을 보이고 뚫리자 힘을 모아뒀던 최강의 원거리 공격을 발사했다. 관통사는 대미지 자체도 500%나 올려주지만 더 무서운 것은 특수 스킬인 관통이 붙는다는 것이다. 관통의 경우 급소에 맞으면 그 대미지가 최대 1,000%이상으로 올라간다. 거기에 십왕이라고 불리는 이보영의 공격까지 동시에 들어가니 다크엘프 퀸이라고 해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띠리링, 다크엘프 퀸을 잡았습니다.] [경험치와 보상이 주어집니다.] [전 유저들에게 55층으로 올라갈 권리가 주어집니다.] 레이드가 끝나고 보상이 분배 되었다. 물론 경험치를 제외한 모든 보상은 메두사 길드의 것이다. 외부의 용병들은 이미 사전에 약속한 보수를 모두 받았다. 이보영은 길드원들에게 보상에 관해서 일임하고는 정운에게 다가왔다. ============================ 작품 후기 ============================ 한번쯤 거대 길드의 레이드를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안정적이지만 개개인당 돌아가는 보상은 적은 그런 느낌으로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46화 <혼란스러운 감정.> “당신, 박정운이라고 했나?”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돌아갈 준비를 하다가 이보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예. 그렇습니다. 뭔가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정운은 일단 상대가 삼대 길드의 길드장이니 만큼 예의를 지켰다. 삼대 길드의 스카우터들이나 교섭을 위해서 온 전령이라면 정운도 뻗댈 수 있다. 하지만 길드장 본인이 직접 나섰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흠···, 그러고 보니 스카우터들이 말했지? 최근에 솔로 플레이로 두각을 드러낸 유저가 있다고, 그게 당신 이름이었어.” “십왕씩이나 되시는 분이 기억해 주니 영광이군요.” “솔로 플레이를 지속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여자에게는 약한가 보지?” 이보영은 정운의 뒤편에 있는 슬기와 세레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운은 그런 이보영에게 말했다. “최근에 솔로 플레이에 한계를 느껴서···. 제가 받아들인 동료입니다. 길드까지 갈 생각은 없고 그냥 팀으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팀이라····. 그럼 그 팀 통째로 우리 길드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보수는 후하게 주지.” 길드장 본인이 직접 길드에 들어오라는 것은 큰 매리트였다. 앞으로 길드에 들어가서도 길드장이 직접 챙겨준다는 말이나 같은 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운은 생각 없었다. “죄송하지만 어딘가에 구속되는 것은 질색이라서···. 거절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딱 잘라 말하네···. 여자 좋아하는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봐. 우리 길드에도 미인은 많고 당신이라면 바로 조장이다. 원하는 여자라면 모두 순순히 품에 안길거야. 물론 그 이외의 보상도 섭섭하지 않게 하지.” 골드, 경험치, 아이템, 스킬북, 여자···.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남자 유저들을 낚기 위해서 필요한 종합선물 세트였다. 그것도 삼대 길드의 길드장이 직접 준다는 보상이니 오죽할까? 90% 남자 유저들은 이런 조건이면 충분히 낚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정운을 부럽게 바라봤지만 정운의 의지는 확고했다. “여자는···. 이 둘이면 충분합니다.” “어머, 정말?” “예. 그리고 다른 보상도···.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정운은 상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정중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사과했다. 결국 그런 정운의 거절에 이보영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아쉽네···. 오랜만에 탐나는 인재였는데 말이야···.” “높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라도 생각 바뀌면 연락해. 아! 여차하면 나라도 한 번 품게 해 줄까?” “거절··.예?” “어머? 생각 있어? 저기 아이돌 아가씨랑 금발 거유 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꽤 미인이기는 한데? 하룻밤 정도 날 마음대로 해도 좋아. 말 그대로 뭐든지 해 줄게? 뭐. 든. 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찔하게 요염한 표정으로 정운을 바라보면서 혀로 입술을 낼름 핥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슬기나 세레나 하고는 좀 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언 듯 보면 대학가의 벤치에서 순수문학이라도 읽고 있는게 어울릴 것 같은 청순한 얼굴인데 체형은 섹시한 모델 같았다. 그런 그녀가 작정하고 유혹을 하니 섹시하다기 보다는 요염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보는 것 만으로 남자의 가슴을 두근 거리게 하는 그런 느낌? “아니···. 큼, 거절하겠습니다.” “아쉬워라···. 아니면 그냥 거래하고 별개로 나하고 엔조이···.” “길드장님!!” 옆에서 메두사 길드의 길드원이 이보영에게 뭐라고 했다. “알았어···. 그만 놀릴게.” “길드장의 위신을 생각해야죠.” “뭐 어때서 그래? 그럼 박정운이라고 했지? 당신 마음에 든다. 나중에 꼭 보자고? 필드에서든 침대에서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뒤에 남은 정운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못 말릴 여자군···. 우리도 돌아···. 왜들 그래?” “···별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스터.” 슬기와 세레나의 시선이 좀 차가워 졌다고 느끼는 것이 정운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멀어지는 정운과 그 일행들을 보면서 이보영은 비서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했다. “그래서? 레이드의 보수는 어때?” 그녀의 말에 비서로 보이는 여성은 목록을 제출하면서 보고했다. “평범합니다. 딱히 뛰어나지는 않고 54층 보스몹의 평균 수준입니다.” 그러자 이보영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흐음····. 쯧, 역시 정규 보스몹을 잡아도 소용없는 거였나?” 안타까워 하는 이보영을 보고 비서가 물었다. “길드장님.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째서 갑자기 54층 정도의 보스몹에 길드장님이 나오신 겁니까?” “왜? 궁금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부하를 보면서 이보영은 대답했다. “최근에 최상층에서 플레이 하다가 54층 부근에 거대한 이벤트 발생이 느껴졌거든. 혹시 쓸만한 보상이 있을까? 싶어서 부리나케 내려왔는데 흔적도 찾을 수 없더라고.” “이벤트 발생?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응, 그런게 특기인 남자가 있어서····. 어쨌든, 내려온 김에 이벤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서 일단 보스몹을 잡으면 뭔가 티가 날까 싶었는데 말이야. ····꽝이네.” “혹시 누가 먼저 클리어 한 것은 아닐까요?” “설마? 내 정보로는 최소한 AAA급 퀘스트였다고? 54층을 무대로 활동하는 길드 중에 이 단기간에 그런 퀘스트를 해결할 길드는 없어.” “그렇군요. 그럼 좀 더 54층에 계실 겁니까?” 그 말에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AAA급 퀘스트는 귀중하지만 최상층의 전력에 계속 로스를 줄 수는 없지. 우리 십왕중에 한 명만 없어도 바로 티가 나거든?” 그녀를 비롯한 십왕들은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게임 클리어의 핵심들이었다. 그런 그녀가 계속해서 최상층에서 자리를 비워두는 것은 확실히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는 공략파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난 돌아간다. 나머지 전력들은 모두 정규부대로 돌아가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이보영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에 문득 아까전의 정운을 떠 올렸다. “귀여운 남자였단 말이야. 강하고 눈도 썩지 않았고, 살짝 순진한 구석도 있어 보이고····. 한 10년쯤 후에 최상층에 올라오면 그때는 진짜로 놀아줘 볼까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최상층으로 돌아갔다. 그라운드 제로의 최전선으로····. “앞으로 사흘 정도는 쉴 거야.” 54층의 레이드를 마친 후에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에게 한 말이다. “정말요? 쉰다고요?” “그래. 생각보다 빠른 페이스로 올라왔으니 조금은 재충전을 가져야지.” 정운의 말에 슬기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지금 슬기의 레벨은 31. 과거의 정운을 능가하는 하드 페이스로 레벨을 올린 결과였다. 물론 정운과 세레나가 최대한 도와줬기에 있을 수 있는 결과였다. 뭐, 그래도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혹독한 페이스로 플레이를 해온 결과 슬기도 내심 티는 내지 않고 있었지만 약간 지쳐 있었다. 팽팽한 실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때때로 대규모의 휴식도 필요한 법이다. “사흘간 다음 층에 대한 정보도 얻고, 사냥터도 정하고, 그리고 슬기 네 아이템도 바꿀거야.” “제 아이템요?” “그래. 이제 레벨 30대인데 장비 업그레이드도 해야지.” 31레벨인 슬기가 73레벨인 정운과 세레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장비로 중무장을 시키는 것이최선이었다. 장비라는게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드는 돈이 많아서 자제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정도 되었으면 역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정운은 슬기를 데리고 상점에 가서 그녀의 장비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현재 슬기의 스테이터스와 스킬은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이슬기 종족 : 인간 (배틀 메이지) 레벨 : 31 나이 : 19 체력 : 22 힘 : 11 민첩 : 22 지능 : 90 매력 : 99 마력 : 90 패시브 스킬 기마술 : LV.5 약초술 : LV.3 요리술 : LV.1 액티브 스킬 파이어 볼트 :LV.5 (불의 화살을 다섯 발 날린다.)파이어 붐 :LV.2 (반경 2미터에 걸쳐서 화염의 폭발을 일으킨다. 아이스 볼트 : LV.5 (냉기의 화살을 다섯 발 날린다.)아이스 월 : LV.1 (높이 1미터의 얼음 방벽을 만든다.)스턴 : LV.7 (스파크로 7의 적에게 동시에 전격을 가한다.)체인 라이트닝 : LV.2 (600의 대미지를 뭉쳐있는 적에게 연쇄적으로 가한다.)실드 : LV.3 (방어력 1,500의 보호막을 만든다.)슬로우 : LV.4 (적의 움직임을 4%느리게 한다.)홀드 : LV.3 (3마력의 힘으로 적을 구속한다.)힐링 : LV.7 (아군을 1,280의 효과만큼 치료한다.)디코딩 : LV.1 (아군에게 독의 저항력을 올려준다.) 역시 법사로 키우는 것이라서 스킬의 숫자는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이 스킬들 중에 어떤 스킬이 주력이 되고 어떤 스킬이 잉여가 될 지는 앞으로의 전투를 꾸준하게 거쳐봐야 했다. 그래도 많이 발전했다는 것에는 틀림이 없었다. 칭호만 해도 초보 메이지에서 배틀 메이지로 바뀌지 않았나? 이제 20층 정도의 레벨이라면 혼자서 사냥을 해도 될 지도 모른다. 레벨과 장비에 비해서 너무 저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원래 메이지라는 클래스가 홀로 사냥하기 보다는 동료의 지원이 있을 때 100% 장점을 발휘하는 클래스였다. 어쨌든, 오늘 상점에서 정운은 슬기에게 적당히 100만 골드의 예산을 주면서 말했다. “장비는 네가 알아서 맞추고 와.” “예? 제가요?” “그래. 너도 네 장비를 맞출 수 있어야지.” 정운의 말에 슬기는 마치 첫 심부름을 가는 어ㅓ린애의 얼굴을 하고는 상점을 바라봤다. “알았어요. 그럼 갔다 올게요.” “기다릴게. 100만 골드 안에서 알아서 맞춰 와.”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상점의 로비에서 혼자 앉아서 아이템 카탈로그나 살피면서 기다렸다. 현실 세계든 그라운드 제로든 간에 여자의 쇼핑에 따라가는 것은 별로 마음에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운씨 다녀 왔어요.” “응? 호오···. 제법 화려하게 입었는 걸?” “별로···. 예뻐서 고른 것 아니에요. 옵션이 마음에 들어서···.” 정운의 눈에 보인 슬기는 굉장히 세련되 보이는 인상의 메이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티 하나 없는 하얀색 실크에 붉은 실로 세련된 자수를 놓았는데 자수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주술적인 것으로 보였다. 거기다 손에 들린 스태프의 끝에는 어른 주먹 만한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고 머리에 쓰여져 있는 작은 서클릿의 중앙에도 붉은 루비가 박혀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딱 판타지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성 메이지 같은 인상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화 부터 몇 화까지는 연애 파트입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 47화 정운은 인벤토리를 열어서 슬기의 아이템을 자세히 살펴봤다. 홍옥의 스태프. 공격력 :5 마력 : 400 무게 : 8 내구력 : 20 [화염의 정령이 봉인된 붉은 홍옥의 스태프.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20% 올려준다.] 피닉스의 로브 방어력 : 70 마력 : 200 무게 : 5 내구력 : 20 [피닉스의ㅣ 깃털로 자수를 새긴 로브. 화염계 마법에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으며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30% 올려준다.] 강한 마력의 팔찌 방어력 : 5 무게 : 5 내구력 : 20 [하루에 다섯 번 마력을 완전 충전 시켜준다.] 불꽃의 서클릿. 방어력 : 5 무게 : 5 내구력 : 10 [마력을 2% 보조해준다.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10% 올려준다.] 아이템을 다 살펴본 후에 정운은 슬기에게 말했다. “화염계 마법에 많이 신경 썼네?” “예. 아무래도 파괴력만 보면 화염과 뇌전 쪽이 가장 강렬한 것 같아서요. 그 중에서도 범위 공격은 화염 쪽이 가장 강한 것 같더라고요.” “뭐···. 정확하게 말하면 각자 장점이 있는 거지만···. 뭐 상관없어. 네가 그쪽으로 가고 싶다면 그쪽으로 가도···.” 사실 정운이 생각하고 있던 메이지는 하나가 특출나게 두드러지는 메이지가 아니었다. 당초의 구상은 공격마법과 회복 마법에 버프와 디버프까지···. 전방위에 걸쳐서 여러 가지를 다 소화 할 수 있는 멀티 메이지였다. 하지만 역시 지금 당장 그런 경지를 바랄 수는 없었다. 일단은 하나에 먼저 주력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슬기가 노리는 것처럼 화염계 속성 하나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대미지 딜을 할 수 있는 편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 할 일도 다 했으니 그냥 갈까?” 정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와중에 슬기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전부터 궁금했는데···. 저쪽 구역은 뭐에요?” 슬기가 가리킨 방향은 정운의 저택과는 좀처럼 떨어진 장소였지만 상당히 많은 유저들이 찾아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저기? 저기는····. 궁금해?” “예. 뭐····.” “그럼 갔다가 가지 뭐.”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슬기와 함께 그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화려한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21세기 프랑스 파리의 샹그리제 거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명품숍이 즐비한 그 장소의 끝에 있는 것은 수많은 유저들이 들락날락 하는 꿈과 희망과 거품의 장소.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의 카지노야.” 그렇다. 여기는 카지노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지노와 유원지의 짬뽕 같은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골드만 있다면 현실 세계의 왕후장사가 부럽지 않을 호강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설비들이 많았다. 골프장, 카지노, 경마장에 요트 클럽까지····. 남쪽의 해안 구역에 가면 어지간한 나라의 독재자 못지않은 호랑을 누릴 수 있었다. 뭐, 골드가 왕창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째서 악마들이 이런 편이 시설들을 안에 늘어 놓았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인간을 타락으로 이끌기 위해서 이런 대규모 호화 시설을 만든 것일수도 있다. 사창가는 없지만 그래도 매춘업 전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유저들이 있었고 정운처럼 귀족이 된 후에 아애 NPC를 귀속시켜 버리면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종속 관계였으니 말이다. 다만, 귀족의 작위를 얻는데 드는 골드도 그렇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환락에 대한 물가는 엄청나게 비쌌다. 그래서 일반 유저들처럼 자신들의 플레이나 생활비에도 빠듯한 유저들은 함부로 그런 환락을 즐기지는 못했다. 즐기고 싶다면···. 욕망에 취해서 영혼까지 쾌락에 취하고 싶다면 필드에 나가서 골드를 벌어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일하게 필드에서 골드를 안 벌어도 정당하게 골드를 얻을 수 있는 방법. 그게 바로 이 카지노에서 대박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카지노라···. 원래 제가 현실에서 카지노에 들어갔다가는 그날 바로 스포츠 신문 1면인데 말이죠.” “아···. 그렇지. 그럼 어쩔래? 안 갈래?” “아니요. 가보죠. 오랜만에 쉬는 건데. 사실 어떤 건지 좀 궁금하네요.” “그럴까? 그럼 가자.” 정운과 슬기는 그렇게 함께 카지노의 안으로 들어갔다. 카지노의 안에 들어가자 거기에는 수많은 유저들과 NPC들이 어우러져서 시끄럽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흐음···. 이런 곳이었나?” “정운씨도 처음인가요?” “여기에 카지노가 있다는 것은 알지. 하지만 실제로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 정운이 생각하기에 카지노에서 골들을 번다는 사고방식은 너무 안이했다. 카지노라는 것은 원래 99% 돈을 잃게 되어 있다. 99%고객이 손해를 보고 그 중에서 1%고객 만에 돈을 제법 큰 배당으로 따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 세계의 모든 카지노는 진작 다 망해 버렸을 것이다. 카지노가 망하지 않을 제 1조건. 손님을 철저하게 호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운은 딱히 도박사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도박의 생리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긴,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그런 생리를 알고 있어도 혹시나, 어쩌면, 이번에는···.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돈을 갖다 바치는 것이지만 말이다. ‘뭐, 내 알바 아니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그라운드 제로라는 나락에 떨어진 다음 그 안에서도 바닥에 바닥이 도박에 꼴아 박는 머저리를 위해서 해줄 뭔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니 아무것도··. 저기 룰렛이나 가볼까?” “예. 그래요.” 정운과 슬기는 룰렛에 가서 적당하게 즐기듯이 게임을 하려고 했다. 그냥 잃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적당하게 돈을 걸면서 말이다. “루즈!! 루즈!! 루즈!!” “노아르!! 제발 노아르!!!!” 거기에는 이미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룰렛의 경우 두 가지 배팅 방식이 있다. 0부터 36까지의 번호에 걸어서 고배율을 노리는 방식. 루즈와 노아르, 즉 빨강과 검정에 걸어서 확률 2분의 1 속에서 고배율을 노리는 방법. 카지노에서 초보자가 처음부터 폼 잡는다고 카드패 앞에 갔다가는 10분만에 이마에 호구 마크 찍히고 터덜터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초보자가 즐기기에는 기계로 하는 솔롯 머신이나 이런 단체로 배팅 할 수 있는 룰렛이 좋았다. 한 판의 게임이 끝나고 다시 유저들은 배팅을 하기 시작했다. “루즈에 500!!!” “노아르에 1,000!!!” “노아르에 300!!”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면서 돈을 거는 인간들은 아마도 여기서 크게 한 번 따겠다는 집념으로 가득한 집념의 망자들 같았다. 정운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느긋하게 칩을 내밀면서 말했다. “노아르에 1만.” “···········.” “···········.” “···········.” 거는 돈은 별로 느긋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운이 배팅을 하자 다른 유저들이 대부분 조용해 졌다. 안쪽의 VIP도박석이라면 모를까 이런 대중적인 장소에서 1만 골드다 거는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어? 저 사람 박정운 아니야?” “정말이네.” “여기서는 처음 보는데···.” 도박장에서 주로 죽치고 사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정운은 제법 유명 인물이었다. 상위권 유저인 정운의 등장에 다른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위축 되었다. 정운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평범하게 게임을 즐겼다. “배팅이 끝났으면 던지겠습니다.” 딜러는 그렇게 말 한 후에 구슬을 던졌다. 또르르르르···. 룰렛이 돌고 구슬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고 돈 구슬은 정운이 1만 골드를 건 노아르에 도착했다. “오오오!!!” “단숨에 두 배다!!” “좋겠다···. 제길 나도 노아르에 걸었는데···.” “망할···.” 정운이 단번에 1만 골드를 따자 주변에서는 부러움과 탄식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같이 노아르에 걸었던 사람들도 부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고작 몇 백 골드 정도 벌 때 정운은 단번에 1만 골드를 건 것이다. 뭐, 당연하다 많이 걸면 많이 따거나 많이 일거나··. 도박의 기본중에 기본이었다. 다만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본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부러울 뿐이고 자신들도 그렇게 되고 싶을 뿐이었다. 도박에 빠진 망자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바로 대박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었다. 다른 사람이 대박을 터트리면 그게 부러워서 자신도 한 번 해보겠다고 내장에 뼛골까지 모두 갖다 바치기 시작하면···. 이미 도박의 망자나 다름없었다. 정운은 1만 골드를 따자 다시 딜러에게 말했다. “노아르에 2만 골드.” 정운은 그대로 다시 딴 돈을 모두 걸었다. “오오····.” “멋진데?” “남자다···.” 주변의 갤러리들은 정운의 행동이 멋지게 보인 모양이다만 정운의 입장에서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정운에게 있어서 1만 골드 정도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다. 매달 귀족으로서 작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만 10만 골드에 그것 말고도 정기적으로 적절한 사치를 해야 했다. 여기서 1만 골드를 다 날려도 상관없었다. 이것도 사치를 했다는 기록으로 남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정운에게 있어서는 날려도 상관없는 돈이었고, 그러니 긴장감도 없이 대범하게 걸 수 있었다. ‘애당초 이 인간들은 자신이 감당 못할 돈을 거는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상병신 짓거리가?’ 정운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룰렛을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NPC 유저가 구슬을 던졌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구슬은 다시 돌고 돌아서 정운이 걸었던 노아르에 착지했다. “축하합니다. 4만 여기 4만 골드입니다.” 딜러는 정운에게 4만 골드를 주면서 말했다. 주변에서는 자기 일도 아닌데 도박의 흥분에 빠진 인간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리고 말끔한 집사복을 입은 NPC 한 명이 정운에게 와서 말했다. “손님. 좀 더 큰 게임을 원하시면 안쪽에 따로 마련된 특설·····.” “아니 됐어.” 정운은 NPC의 말을 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구 취급당할 생각 없다. 그냥 여기까지 하지.” 정운으로서는 애당초 돈을 잃어도 따도 그만이었다. 안쪽의 큰 판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뭔가를 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정운이 일어나자 슬기도 그래도 따라서 일어났다. “정운씨, 같이 가요.” 정운이 돈을 따고 아름다운 미녀와 함께 사라지자 뒤에 남은 갤러리들은 어쩐지 허무함을 느끼고는 그대로 흩어졌다. 그래도 내일만 되면 바로 또 정신 못 차리고 도박장에서 열광 하겠지만 말이다. 정운은 카지노에서 나와서 근처에 있는 유원지로 나왔다. “좀 더 놀다가 들어갈까?” “예. 그럼 좋죠?” 정운의 말에 슬기는 스스럼없이 정운에게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그녀로서는 정운이 친한 오빠 정도로 여겨져서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정운으로서는 이런 슬기의 스킨쉽 하나하나에 가슴이 두근 거렸다. ‘·······티내면 안 돼. 절대 안 돼.’ 정운은 속으로 차분하게 자신을 타일렀다. 그날··, 그러니까 말벌파의 어그로 트랩에 몰려서 설산의 동굴에서 단 둘이 하룻밤을 보낸 후에 정운은 자신이 슬기를 좋아한다는 자각을 했다.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먹었지··. 그리고 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는 몰랐다. 애당초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복잡한 이유를 가져다 댈 수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로 지금의 관계를 부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8화 정운과 슬기는 대등한 혈맹의 계약으로 묶여 있다. 슬기가 떠나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애당초 그녀가 떠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식으로 그런 계약을 맺었지만···. 이제 와서야 정운은 그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스스로도 가슴이 철렁 거렸다. 과거에 그녀를 가볍게 봤던 자신을 책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정운이 선택한 것은 그녀에게 자기 마음을 절대로 고백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정운은 그걸 이제야 안 것 같았다. ‘만약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절대 지금 같을 수는 없겠지···. 제길, 내가 무슨 중딩도 아니고 이런 일로 허둥거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어리석다는 생각을 면할 수가 없었다. “정운씨? 무슨 생각해요?” “···아무것도?” 양손에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으로 무장한 슬기의 목소리에 정운은 그냥 얼버무렸다. 그녀는 카지노에서는 얌전하게 있더니 의외로 유원지에 와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놀고 있었다. “재미있나 봐?” “예. 당연하죠. 보통 이런데 함부로 오기 힘들다고요. 사람들 많고 자칫 잘못해서 놀이기고 타다가 스타일 망가진 사진 찍힐 수도 있고···.” 공인은 공인 나름대로 고초가 많은 법이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산다고 하면 듣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항상 감시를 받고 산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사람들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에 너무나 거리낌이 없다. 그들이 누구와 사귀는지? 뭘 좋아하는지? 어디에서 뭘 하는지? 혹 거짓은 아닌지? 자신하고 별 상관도 없지만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집착하고 때때로는 자신들의 이상과 다르다고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건 소위 말하는 팬심이 아니다. 군중의 폭거? 아니 그보다는 진상에 가까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프라이버시가 있고 타인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비밀도 있는 법이다. 그게 없는 인간이 오히려 드문 편이다. 세상에 모든 것을 공개하고 떳떳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상에서는 원래 연예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들은 보통 성자, 혹은 선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예술가인 연예인들에게 자신들의 이기심에 가까운 이상의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 다수의 폭력일 뿐이다. 그래도 그 폭력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게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슬기는 모처럼 군중의 관심에서 벗어나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와서 평범한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눈부신 미소로 환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은 앞으로 가끔씩은 그녀가 이렇게 편하게 즐기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운씨? 우리 저거 타요. 저거!!” “관람차라··. 이 야밤에는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도시의 야경은 보일지도 모르죠. 가봐요.” 슬기는 정운의 손을 잡고 관람차로 향했다. 그리고 정운은 슬기와 함께 관람차를 타고 느긋하게 위로 올라갔다. “와아····.” 그리고 위로 올라감에 따라서 슬기는 자연스럽게 탄성을 질렀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마을의 분위기는 중세와 현대의 조화 같은 느낌의 건물들이었다. 고층 빌딩도 있었지만 그냥 사각형의 성냥갑 같은 건물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유럽풍의 아파트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건물들이었다. 전체 면적은 제주도 정도 되는 크기의 마을의 건물에 화려한 네온사인을 위에서 보니···. 확실히 장관은 장관이었다. 이정도의 야경은 지구의 도시에서도 손에 꼽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이 슬기에 비해서 감동이 적은 것은 정운이 지금 야경보다는 더 아름다운 것에 감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지? ···나 정말 미치도록 반한 모양인데?’ 정운은 환하게 웃으면서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있는 슬기를 보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걸 도대체 어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여자에게 반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설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성을 넘어서는 감정. 주체 할 수 없는 느낌. 행복함과 두려움과 안타까움과 충족감이 뒤범벅이 되어서 정운을 알 수 없는 정신 상태로 몰아갔다. 그런 정운에게 슬기가 다가와서 왼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정운씨. 여기 봐요. 여기!!! 저쪽이 바닷가인거죠? 나중에 한 번·····.” 그녀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정운의 양손이 그녀의 머리를 잡고는 그대로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 “·············.” 키스 중이면서 정운은 자신인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전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입술에 닿아있는 슬기의 입술이 전해주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사고를 마비시켜가고 있을 뿐이었다. 정운은 가슴속 깊속한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충족감과 만족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슬기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치고 탐욕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자신의 쾌락에 취한 정운은 슬기의 몸이 딱딱하게 석상처럼 굳어 있는 것을 미처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몸의 행동력을 사고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이 입술을 때고 나자 슬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운을 바라봤다. 그녀도 내심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마치 무방비 상태에서 총 소리라도 들어서 잔뜩 얼어붙어 있는 작은 동물 같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욕망을 주체 할 수 없었다.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하면서 그녀를 품에 안아갔다. “음···, 잠··· 잠깐만요. 정운씨!!!” “·············.” 슬기는 뒤 늦게 정운을 두 팔로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메이지인 그녀가 완력으로 정운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정운은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옷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어갔다. 그리고 손 끝에 전해지는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한 그녀의 살결의 감촉을 손으로 만끽하면서 그녀의 향기를 깊숙하게 폐 속까지 빨아 당겼다. “·정··· 정운·····씨···. 잠깐만요. 정운씨!!!!” 슬기는 정운의 손이 자신의 몸 안쪽까지 들어오려고 하자 그제야 위기감에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고성 한방에 정운은 순간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정운은 슬기의 몸에서 살짝 떨어졌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순간 그녀를 품에 안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만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 버리려고 했다. 중간에 멈추기는 했지만 슬기의 흐트러진 옷 차림새를 보면서 정운은 뭐라고 해야 할지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했다? 사랑해? 그냥 장난이었어? 많이 놀랐지? 머릿속으로 빙빙 맴도는 말은 많았다. 하지만 아까까지의 환한 미소가 사라지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는 슬기를 보고 있으려니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없을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후회는 항상 늦게 오는 법이다. 항상···. 정운과 슬기는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택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슬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정운도 그런 슬기에게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어색하게 돌아온 둘은 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정운은 오랜만에 술에 진탕 취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메이드들에게 시켜서 독한 걸로 술을 가져오게 한 후에 정운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병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크으······.” 한 번에 병에 든 술을 반 이상 비워 버린 정운의 입에서 쓴 소리가 나왔다. 맛, 향, 깊이. 모두 훌륭한 명주였지만 지금 정운에게 중요한 것은 그딴게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정신 줄 놔 버리기에 적당한 알콜 뿐이었다. “빌어먹을···. 망할···. X 같은····.” 정운은 입에서 아무 의미없는 욕지꺼리를 내 뱉으면서 술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세 병인가? 네 병 정도 비웠을 때인가? 정운의 방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늦은 시각에 실례 하겠습니다. 마스터.” “····세레나?” 정운은 처음에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순간 슬기가 들어온 걸까? 라는 생각에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세레나가 들어온 순간 역시 실망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꼭 술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옆의 방에서 제 벗인 슬기의 울음 소리가 들려서 잠시 가보니 울고 있더군요.” “·····울어?” 정운은 슬기가 울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리고 안타까움 뒤에는 그렇게 슬기를 울린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생각에 자책감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슬기는 무슨 일 때문에 우는지 저에게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마스터께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녀의 차분한 설교조의 말투가 지금의 정운에게는 무척이나 거슬렸다. 평소 잘 마시지도 않던 술로 왕창 흐트러진 정운에게 세레나의 위에서 타이르는 듯한 말투의 설교가 잘 먹힐 리가 없었다. “시끄러워. 네가 알아서 어쩌자는 거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대답했다. “저는 마스터의 조력자이자.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마스터의 기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스터의 마음이 어지럽다면 그 마음을 진정 시켜 드리는 것도 기사의 의무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에게 다시 한 번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 지금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를 괴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녀의 말은 차분하고 논리적이었지만···. 그런 말이 오히려 듣는 사람을 짜증나게 할 때도 있었다. 더구나 그게 정신이 혼탁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말이다. “시끄러!!!!” 정운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그대로 세레나의 팔을 잡아서 거칠게 잡아 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집어 던지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게 알고 싶어? 그럼 알게 해 주지. 네 몸으로 말이야.” 정운도 이때 쯤 에는 거의 정신이 나가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는 그대로 세레나의 옷깃을 잡고 찢어 버리듯이 잡아 당겼다. 찌이익!! 찌익!!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세레나의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정운은 드러난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거칠게 탐했다. “후우·····. 후우·····.” “················.” ============================ 작품 후기 ============================ 주인공의 감정이 한창 고조된 이 시점에서 이렇게 자른게 고의는 아니지만... 하고 보니 딱이기는 하네요. 분량을 나누다 보니 여기서 딱 절단이 되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9화 마치 몇 주만의 굶주림 끝에 사냥에 성공한 맹수처럼 흥분한 정운과 달리, 남자의 손길이 자신의 옷을 찢고 몸을 탐하는 이 순간에도 세레나는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에게 상대방의 태도는 아무래도 좋았다. 분노? 자책감? 아니면 정곡을 지적당한 수치심?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간에 지금의 정운은 냉정한 상태가 아니었다. 정운은 어느새 완전히 나신이 되어버린 그녀의 몸 위에 자기 몸을 겹쳤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뽀얀 나신을 손길로 쓰다듬으면서 음미했다. 머릿속의 술기운이 확 달아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나신에 정운은 욕망과 술기운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도 불구하고 감탄했다. 매끈하게 뻗어있는 아름다운 맨 다리에 항아리처럼 매끈하게 곡선을 거리고 있는 그녀의 골반을 지나서 한 뼘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잘록한 허리에 지나서 올라가면 한손에 다 쥐기 힘들 정도로 풍만하면서도 완벽한 형태의 젖가슴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살펴본 정운은 어느새 숨결에 남자로서···. 아니 수컷으로서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저 여자를 안고, 자신의 욕정대로 가지고 놀고,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만 보는 눈···. 평소의 정운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눈빛 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은 그대로 시선을 더 올려서 세레나의 아름다운 얼굴과 마주한 순간····. 그리고 그 눈빛과 마주한 순간 정운은 심장이 철렁 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이럴까? 안타까움과 이해심과 나무람이 동시에 깃들어서 정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가벗고 자신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세레나인데···. 그런데 정운은 오히려 자신이 발가벗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자신의 나신을 더듬어가던 정운의 손길이 멈추자 세레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하면 마스터의 기분이 풀리는 겁니까?‘ “··············난.” “어차피 저는 마스터에게 종속된 존재. 이른바 물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사용하시든, 그 사용법은 마스터의 마음이죠.” “··············.” “절 품에 안아서 그저 노리개로 삼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게 정말 마스터께서 바라시는 것이라면.” “················.” 세레나의 태도는 정말로 담담했다. 마치 이 자리에서 당신이 날 범한다고 해도 난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디 할 테면 해봐라. 그런 의사가 한 눈에 느껴질 정도로 담담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은 차마 욕망대로 그녀를 범 할 수는 없었다. 세레나의 푸른 호수처럼 잔잔한 사파이어 빛깔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면서 짐승이 되기에는 정운의 양심이 마지막 브레이크를 걸었다. 결국 정운을 일시적으로 지배했던 욕망과 욕심은 물러나고 그 자리에는 인간다움을 품고 있는 이상과 도덕심이 돌아왔다. 정운은 생각했다. 이 여자의 진정한 정체는 모른다.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로 평범한 여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디언으로 종속된 상태인 그녀는 정운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정운이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요구라고 해도 모두 수용 할 수밖에 없다. 보통의 여자라면 이런 상황에 정운을 향해서 애원하면 자비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냥 체념하고 포기해 버리는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세레나는 달랐다. 그녀 스스로가 차분하게 정운을 컨트롤 했다. 계약의 위치상으로 봤을 때 분명 정운보다 밑에 있는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어떠한 위엄 같은 것이 있었다. 정운이 몸을 비키자 세레나는 자신의 몸을 시트로 가리면서 일어났다. “지금의 행동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강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뭐 할 거지? 경멸? 설교? 아니면 계약 파기라도 할 건가? 어떻게 파기 하는 건지야 모르지만 그러겠다면 기꺼히·····.” 말을 하던 정운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뒤에서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 안아주는 세레나의 체온에 입을 다문 것이다. “화가 났을 때 가볍게 입을 열지 마세요. 나중에 후회할 말들이 입을 통해서 나옵니다.” “················.” “누구나 잘못을 범합니다. 하지만, 범한 잘못을 바로 잡느냐? 아니면 외면하느냐는 누구나 하는게 아닙니다. 올바른 이는 바로 잡고 그릇된 자는 잘못을 외면하죠.” “···············.” “마스터. 당신은 옳은 길을 택해야 합니다. 아무리 주변이 시궁창처럼 더럽다고 해도 마지막에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의 의지입니다. 마음을 굳게 다지십시오.” “··············.” “만약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기 위해서 주변에 손이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당신 스스로를 포기하고 더럽히지 말아 주십시오.” 세레나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마치 상처에 스미는 특효약처럼 정운의 마음을 위로했다. 어느새 정운은 자신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각했다. 얼마만일까? 얼마 만에 이런 다정한 위로를 받아 보는 것일까? 얼마 만에 진실로 느껴지는 타인의 온기인 것일까? 말이라는 것은 하기에 따라서 마음에 스미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세레나의 말은 이제까지 정운의 마음을 좀 먹고 있던 독을 부드럽게 치유해주는 약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래····. 바로 잡을 일은 바로 잡아야 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레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세레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그런 세레나의 모습에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뽀얀 가슴 계곡이 들어왔다. “음···. 옷 입어야···. 아·····. 이런.” 정운은 세레나의 옷, 아니 옷이었던 물건을 보면서 난색을 표했다. “마스터께서 다 찢어 놓았군요. 죄송하지만 걸칠 것을 빌릴 수 있을까요?” “응. 저기 옷장에 가면 있으니 입어.” “예. 알겠습니다.” “·············.” “·············.” 옷장의 앞에 간 세레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정운을 바라보면서 곤란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고 계실 겁니까?” “아!! 아··· 미안.”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뒤로 돌았다. ‘내가 왜 이러는··· 잠깐 설마···?’ 정운은 자신이 세레나는 대하는 태도가 명백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등 뒤에서 사르륵 거리면서 세레나의 맨살에 스치고 있는 천의 소리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직 자신의 뇌리에 남아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과 자신의 손에 남아있는 그녀의 부드러운 맨살의 감촉이 사라지지를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건 마치····. 설마, 잠깐 그럼 슬기는····.’ 정운은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에 당황했다. 슬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세레나를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소유욕이 들기도 했다. ‘이건···. 설마? 아니,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야. 난 그런 쓰레기가 아니야····.’ 정운은 자신이 여자 두 명에게 동시에 반하는 무절제한 남자가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사실···. 지금 정운은 두 여자에게 동시에 호감, 아니 사랑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인간의 멘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성과 본능이다. 본능은 충동적이고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이성은 논리적이고, 지속적이며 은유적이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화해서 자신이라는 감성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때로는 이 두 가지가 강렬하게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보통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한명을 바라보고 한명을 사랑하는 것이 맞다고 배운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 자라도 다수의 이성과의 만남을 즐기는 바람둥이들도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이 모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즐기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생리, 그리고 정운이 지금 처한 상황을 살펴 봤을때···. 인간은 복수의 이성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생물이다. 그냥 성욕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서 복수의 대상을 사랑하는 것.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의 가치관으로 봤을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고, 방탕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애당초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손 쉽게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인 것이 아닌가? 정운은 슬기에게서 사랑스러움과 지켜주고 싶은 보호본능을 느꼈다. 세레나에게서 자애로움과 그 품안에서 편히 쉬고 싶은 안온함을 느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니 하지만···.’ 정운의 혼란은 극에 도달했다. 차라리 정운이 어느 정도 방탕한 편이고, 여성을 그저 성으로만 보는 남자였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슬기도 세레나도 여자로서의 가치, 즉 외모만을 보고 소유욕 하나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자신의 이기심만을 충족시켰으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정운이 그런 남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몇 번인가 여자와 사귐을 가져본 적은 있다. 비록 철없던 시기에 자연스러운 끌림일 뿐이었고 그다지 길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그 한명에게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심지어 문시영과의 관계는 사귐이라고 하기도 어색했지만 그녀와 같이 있는 동안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준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정말 자기 혼이 떨릴 정도의 진지한 사랑을 만난 지금. 정작 지금에 와서 정운은 두 명의 여성에게서 동시에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게 정운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책임감과 맞물려서 정운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터, 마스터.” “응? 아아···. 세레나. 왜 그래?” “옷을 다 입었습니다. 이제 나가보겠습니다. 마스터께서도 술은 적당하게 해 주십시오. 판단을 흐트립니다.” “으음···. 응.” 정운은 말을 하면서도 세레나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하고 많은 옷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정운의 하얀 와이셔츠를 골라서 입었다. 아니 물론 크기 때문에 그녀의 신체를 가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그녀의 매끈한 다리가 정운의 심신을 혼란 시키고 있었다. ‘작정하고 유혹하는 것 아니면 이런 짓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가 방을 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럼 마스터. 전 이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정운의 방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가려고 했다. 다만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없다면 말이다. “슬기, 당신이 여기는 어쩐 일이죠?” “아··. 저기 저는···.” 슬기는 마침 정운의 문에 노크를 할 생각이었든 듯이 한쪽 손을 살짝든 상태 그대로였다. 그리고 당황한 그녀에게 들어온 것은 정운의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세레나와 정운의 침실에 찢어져 있는 세레나의 의복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곤란한 것만 딱 가려서 보는 훌륭한 안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정운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상황에 최악의 안목이었지만 말이야. ============================ 작품 후기 ============================ 이번 챕터인 혼란스런 감정이라는 뜻의 의미는 키스 당하고 멘붕하고 있는 슬기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어느정도 있기는 하지만 20% 정도일 뿐입니다. 주는 약해지고 흔들리고 있을때 자신을 옆에서 잡아준 세이라를 보고 호감을 느끼기기 시작하는 저운의 감정이었습니다. 요즘 조아라의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두 여자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두 여자가 주인공에게 다가옵니다. 뭐. 실제로 제 소설에서도 상당수가 그런 하렘적인 요소를 사용했으니 마냥 부정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너무 한가지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두 여자의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동시에 두 여자에게 호감도 얻지만 결국 남자는 한 여자를 선택해야 하는... 사실 연애에 관한 환상 보다는 약간 수라장 같은 현실성의 비중을 좀 더 높힌 그런 연애 스토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참고로 저번 화에서 정운이 술기운에 당연하다는 듯이 사고치실 거라고 생각한 분들은 잘못 짚으신 겁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0화 <그녀의 마음> 슬기는 방안의 상황을 보고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용건이 있어서 왔는데····. 아무래도 그냥 가야 될 것 같네요.” “그럼 저도 같이 가죠.” “···그러든지요.” 그리고 두 여성이 방문을 닫고 나가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최악이야.” 이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리는 정운이었다. 며칠 후. 어색하고 알콜에 절어 지내던 휴식 기간이 지나고 정운은 세레나와 슬기의 앞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55층은 총 다섯 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어. 보스몹인 블러디 엠페러가 있는 지역과 나머지 네 개의 지역이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마스터.” 세레나의 질문에 정운은 지도를 펼치면서 말했다. “지역은 늪 지역, 사막 지역, 바위의 황야 지역, 그리고 평야 지역이야. 각각 다름 몹들이 서식하고 있지.” “몹들의 종류를 떠나서···. 늪 지역은 빼는게 좋을 것 같군요.”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늪에서는 우리 팀의 장점인 말들의 기동력을 살리기 어려워. 그리고 이 지역에는 준 보스급의 몹이 있더라고.” “준 보스급?” “늪의 히드라라고 하지. 용족이야.” “····헤라클레스의 시련에 나온 그 마수 말이군요.” “그래. 55층의 일반 몹들 중에는 가장 강력한 놈이기도 하지. 경험치와 보상은 제법 쏠쏠한 편이라지만····. 역시 한 마리 잡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패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막 지역과 바위의 황야 지역도 패스하고 싶어.” “어째서입니까?” 세레나의 질문에 정운은 설명을 덧 붙엿다. “사막 지역에는 샌드 웜이라는 몹이 살아. 모래 깊숙한 곳에 있다가 갑자기 기습을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둘째 치고 흑토를 제외한 다른 말들이 한 방에 가는 수가 있어.” “그렇군요. 그럼 바위의 황야 지역은 어째서입니까?” “거기는 아이언 와이번과 스톤 가고일 무리. 그리고 그리폰 무리까지 있지. 모두 비행형 몹들이야. 높은 바위 위에서 독수리처럼 덮친다고 하더군.” “저하고 마스터의 흑토야 비행 스킬이 있으니 몰라도, 확실히 슬기의 경우는 곤란 할지 모르겠군요.” “············.” 세레나의 말에 슬기는 묵묵하게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분위기상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큼, 어쨌든···. 갑작스럽게 보스몹을 잡으러 갈 수는 없고, 결국 남은 것은 여기 평야지역. 활동 몹은 실버 울프와 이족보행 타이거. 그리고 킹 베어라고 하더군.” “강력한 존재들입니까?” “실버 울프는 저층에서 한 번 싸워 본 적이 있어. 하지만 다른 두 종류는 몰라. 약하지는 않겠지.” 정운이 기억하는 실버 울프는 그 크기가 다 자란 황소만 했고 몸 놀림이 영수화 하기 전의 흑토보다 빠른 놈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보스몹으로서의 특수 보정이 다소 들어간 상태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여기서도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족보행 타이거와 킹 베어라는 몹들은 정운도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정보에 의하면 실버 울프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적들은 강해져. 둘 다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와 줘.”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저도 알았어요. 정운씨.” 세레나와 슬기는 선선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정운은 내일의 사냥에 대비해서 오늘은 푹 쉬라고 했다. 사실 정운의 성격상 바로 사냥을 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 전에 풀어야 할 일이 있었기에 하루 더 시간을 끈 것이다. 정운은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잠깐 장비에 관해서 할 말이 있는데 얘기 좀 할까?” “····알았어요.” 그리고 정운은 슬기와 함께 단 둘이서 저택의 뒤편에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제 장비는 최근에 업그레이드 했잖아요?” 도착하자마자 슬기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장비에 관해서 할 말은 없어. 그냥 대화를 좀 하고 싶어서 불렀어.” “거짓말 한 거예요?” “네가 요 며칠간 나를 노골적을 피했잖아? 안 그러면 나도 이런 수작은 안 부려.” “··········.” 정운의 말에 슬기는 약간 음울한 얼굴을 하고는 침묵했다. “먼저····, 사과할게. 그때 관람차에서 한 일.” “···········.” “내가 실수했어. 그때, ·····그때 갑자기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업었어. 그래서 널 상처 입힐 뻔 했고, 무섭게 했지. 미안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알았어요.” 슬기는 일단 선선하게 정운의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슬기의 목소리에서 정운은 이물감을 느꼈다. 사과를 했고, 상대는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이걸로 둘의 사이가 원래대로 돌아갈까?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금이 간 벽에 급하게 시멘트를 발라서 보수를 한다고 해도 그건 그냥 눈속임일 뿐이다. 시멘트로 겉면을 보수했을 뿐이지 속에는 이미 커다란 금이 가있는 상태였다. 그 금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벽을 한 번 완전히 허물었다가 다시 짓는 수밖에 없다. 정운은 눈을 딱 감고 다시 말했다. “슬기야. 그날 한 행동은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잘못이야.” “저도 알아요. 그러니 사과했고, 이제 끝냈잖아요. 그러니 이제 그만 해요.” “아니, 아직 안 끝났어.” “············.” “네가 날 용서하는데 시간이 걸릴거야. 원망하는 것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지.” “···········.” 정운의 말은 타당했다. 사과했잖아. 그러니 그만 징징거려. 이딴 사고방식은 바다 건너 어떤 우익 정치가들이나 하는 병신 같은 사고방식이다. 뭐, 그 치들은 정식으로 사과도 안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과를 했다고 바로 상대의 용서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상처를 입은 쪽은 사과 한 번 받는다고 바로 그 상처가 아물지는 않는다. 그러니 정운은 지금 슬기에게 좀 더 확실한 용서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드러내기로 했다. “그날 너에게 그런 행동을 했던 건···. 내가·····.” 정운은 마음을 먹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나오려는 말이 목구멍에서 걸려서 다시 가슴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다시 용기를 내서 그 가슴속의 말을 한 번 더 꺼냈다. “내가, 너를 여자로서 좋아하기 때문이야.” “·······정운씨, 그 말은?” “그래. 난 널 좋아해. 아니 사랑해.” 정운은 그 말을 하고 나자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서는 ‘해 버렸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슬기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모를 불안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런 와중에 기대감이 드는 것 자체가 남자 특유의 어떤 이기심일 수동 있지만··. 그래도 기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정운에게 슬기가 한참의 침묵 후에 말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난 정말로···.” “그럼 그날 내가 봤던 것은 뭐에요? 뭐냐고요?” 슬기가 말하는 그날의 일이 뭔지는 새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르는게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은 여자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아니에요? 나든? 세레나든? 내가 그때 무슨 용기를 내서 그 방으로 갔는지도 모르면서······.” 답지 않게 흥분해서 소리치는 슬기를 보고 정운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슬기 너 그때 어째서 내 방에 온거야?” “하! 그게 궁금해요? 이 와중에 그게 궁금해요? 그럼 말해줄게요. 난 그때···.” 슬기는 정운에게 그런 일을 겪고 나서 큰 쇼크를 받았다. 원래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가 남자들에게 큰 욕을 보일 뻔하다가 간신히 도망친 것이 원인이었다. 거기다 이 세계에 온 이후에도 말벌파에서도 여자라는 것은 큰 장애가 되었다. 자신을 성적으로 노리고 괴롭히는 자들에게 슬기는 거의 뭐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그런 그녀를 구해준 것인 정운이었다. 슬기에게 있어서 정운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남자였고, 이슬기라는 여자에게 가치를 두지 않고 이슬기라는 인간에게 가치를 둬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에게 갑작스럽게 키스 당하고 또한 덥쳐질 뻔 하기도 했다. 그래서야 그녀에게 쇼크가 가지 않을래야 안 갈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에 와서 자시의 방에서 흐느껴 울었다. 배신감과 서러움이 동시에 밀려왔고, 심지어는 여자로 태어난 사실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된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울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현실에서 문제를 발견하고도 눈을 돌리고 외면하기만 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 될 것처럼 피하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안다. 문제를 피한다고 해결 되는 것은 없다. 문제가 있으면 정면으로 부딪혀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자신을 향해서 헌신적일 정도로 많은 도움을 준 정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고 쉐도우 엘프 킹에게 맞서 싸우던 그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설산에서 자신의 체온을 위해서 하룻밤 꼬박 껴안아 준 정운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의 일이 떠오르자 슬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때의 일을 상기한 것이 머리를 식히는 도움이 되었다. 만약 정운이 자신의 몸이 목적이었다면, 그때 어떻게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정운은 순순하게 자신의 체온만 덥혀줬을 뿐이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자신에게 파격적일 정도로 호의적인 정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비, 스킬북, 그리고 사냥터에서의 이끌어준 것까지····. 그걸 그라운드 제로의 골드로 환산하면 얼마가 나올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호의를 주면서도 정운은 슬기에게 언제든지 떠나도 상관없다는 식의 혈맹을 맺었다. 슬기가 어지간히 배은망덕한 여자가 아닌 이상 그런 정운에게 적의를 품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녀는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 아니면····. 아니면 정운씨가 나를····.’ 거기까지 생각하던 슬기의 얼굴은 한번 더 발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붕붕 흔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정운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정운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고 오해를 풀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1화 거기까지 과거의 일을 얘기했던 슬기는 젖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죠. 제가 정운씨 방에 가서 노크를 하려니 당신 와이셔츠 하나만 걸친 세레나가 태연한 얼굴로 걸어 나오더군요.” “그건·····.” “예. 말해 보세요. 그건 뭔데요? 제가 어떻게 생각하면 되는데요. 하는 말이면 뭐든지 믿을 테니 어디 한 번 말해 보세요.” “··············.” 정운은 뭐라고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세레나의 옷을 찢었던 것도 자신이었고 그녀를 한순간 범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더 큰일이 생겼다. 세레나를 그냥 정체불명의 조력자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던 정운의 안에서 그녀의 존재가 단번에 커진 것이다. 거의 슬기와 대등하게 말이다. 그런 상황을 말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방금 슬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거기에 세레나도 좋아하게 됐다고 말하면···. 그때는 정말 영영 글러 먹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세레나의 경우···. 내가 좀 술에 취했어. 너한테 한 짓 때문에···.” “그렇다고 그런 짓을···.” “하지만 난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 중간에 잘못이라고 깨닫고 그만 뒀다고.” 그 잘못을 깨달은 이유가 세레나의 차분하고 냉나무람 때문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고 말하는 정운이었다. 뭐, 거짓은 아니다. 거짓은····. “·······정말,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맹세코 하지 않았어. 세레나에게 물어봐도 좋아.” 정운의 말에 슬기의 얼굴에서는 조금이지만 분노의 응어리가 풀린 듯한 기색이 드러났다. “······확인은 안 해도 되요. 믿을게요.” “고마워.” 슬기의 믿음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정운이었다. 사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모든 진실을 말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슬기는 자신을 전폭적으로 믿어준다고 하니····. 정운으로서는 슬기에 대해서 은근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슬기가 말했다. “정운씨, 그럼 정운씨는······. 저를 좋아하는 거죠? 여자로서·····.” 슬기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응. 그래.” “··········.” 슬기는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들은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팬레터나 공연중에 혹은 스캐줄의 중간중간에 기다리는 팬클럽의 회원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사랑한다고, 예쁘다고···.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랑한다와 예쁘다는 인간 이슬기가 아니라 밀키웨이의 아이돌 이슬기를 향한 사랑이었다. 슬기는 그걸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엄연한 자신의 일부였고, 그런 일부를 사랑해주는 팬들은 고마운 존재였다. 가끔씩 프라이버시의 영역을 침범하는 극성팬들이 문제기는 하지만 99%의 팬들은 그래도 슬기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사랑해라는 말에서 지금 정운에게 들은 것 같은 두근 거림은 느낄 수 없었다. “···정운씨, 저는·····.” 슬기는 말을 하다가 망설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정운에게 말했다. “저도 당신을 좋아해요.” 순간 정운은 세상이 환하게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이게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뒤에 슬기의 사족이 달리지만 않았다면 그 느낌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말 한마디에 정운을 들었다 놨다 하는 슬기의 말이 이어졌다. “정운씨,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어요. 하지만, 전 아직 남녀간의 사랑이나··, 그런건 몰라요. 쭉 연예계에 있었고···. 소속사에서는 엄금했기 때문에 저 자신도 그쪽으로는 마음을 닫고 있었어요.” 슬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운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정운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단칼에 빨리 죽여 줬으면 할 뿐이었다. 그런 정운에게 슬기가 말했다. “그러니 정운씨, 지금 당장은 대답을 해 드릴 수 없지만···. 시간을 좀 주세요. 그게····,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에요.” “·········알았어.” 결국 슬기의 말은 차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귀게 된 것도 아니었다. 결국 결론만 보면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만 끌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운으로서는 이것도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감사한 경우였다. 사실 정운 스스로도 지금 세레나에 대한 마음을 전혀 고백하지 않았다. 그러니 슬기에게 지금 당장 대답을 독촉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정운이 세레나에 대한 마음도 털어 놓거나, 아니면 세레나에 대한 마음이 정리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는 되어야 둘의 사이는 앞으로 나가든 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정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기는 배시시 웃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그럼 정운씨···. 우리 이제 어색한··. 그런 것은 이제 없는 거죠?” “그래··. 걱정하지 마.” 아직 걱정거리가 하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렇게 말하는 정운이었다. 이래서 남자는 다 잠재적 바람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몇주 후···. 55층으로 올라온 정운의 팀은 힘을 합쳐서 부지런히 사냥을 했다. 사냥의 대상은 실버 울프나 이족 보행 타이거, 혹은 킹베어 등으로 평야의 몹들이라면 가리지를 않았다. 가장 까다로운 것이 이족보행 타이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별로 위험하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냥의 대형은 대강 이렇다. 일단 사냥을 시작하면 세레나는 항상 신의 보호와 신의 자비라는 두 가지 버프를 발동 시킨다. 그렇게 하면 아군의 방어력이 50%올라가고 아군의 체력을 분당 8%씩 회복 시켜간다. 이것만 해도 큰 도움이었다. 거기에 정운과 세레나가 번갈아 가면서 전위를 맡았고 거기다 뒤에서 슬기가 마법 공격을 퍼부었다. “파이어 붐!!” 콰아앙!! “쿠워어어어!!!!” 거의 3층 건물 정도의 크기는 될 법한 거대한 곰인 킹베어가 크게 울부짖으면서 뒤로 그 거대한 몸을 눕혔다. “됐다.” “수고 했어. 슬기야.” 최근 화염계열의 공격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슬기였기에 그 대미지는 상당히 강했다. 레벨은 30대였지만 아이템과 한쪽으로 특화된 강화력은 순수한 대미지는 50레벨 초반의 유저들과 대등할 정도였다. 뭐, 메이지의 특성상 원래 딜은 좋은 것이 당연했지만 말이다. 딜이 좋은 만큼 자신은 무력해서 탄탄한 딜이 필요한 존재. 그게 메이지였다. 물론 지금의 슬기로서도 아직 정운과 세레나에 비하면 약하디 약했다. 다만, 이제 발목 잡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면한 것 같았다. 슬슬 키운 보람이 있어서 자기 몫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런 패턴으로 사냥을 지속하면서 하루에 6시간씩 꼬박꼬박 사냥을 하고 있는 정운들이었다. 참고로 전위를 번갈아 가면서 맡는 이유는 정운과 세레나 둘 중에 한 명은 슬기를 지켜 주고 있는 호위 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터, 오늘의 일과 시간은 거의 다 되어갑니다. 어떻게 할까요? 조금 더 돌까요? 아니면 돌아갈까요?”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 타임 더 돌기는 애매한 시간이네. 해 지기 전에 돌아가자.” “예. 마스터.” 정운은 좌편에 세레나, 우편에 슬기를 두고 가볍게 말을 달려서 마을로 돌아갔다. ‘양손의 꽃은 꽃인데···. 손대기 어려운 꽃 인걸?’ 정운으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좌우에 둘이나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손도 뻗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씁쓸했다. 그런 정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을에 들어오자 주변에 유저들은 정운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저기, 박정운이네.” “그러게···. 길드에도 안 들고 팀도 안 만든다더니··, 예쁜 여자니까 다 통하는 구만.” “그러게 말이야. 쯧, 그런데 예쁘기는 진짜 예쁘다. 우리 길드 애들이 다 호박으로 보인다.” “그러게 말이다····. 부럽다. 부러워.” 주변의 유저들은 정운을 보고 수근 거리면서 부러워 했다. 그들의 잣대로 보기에는 정운이 아름다운 두 여성에게 여성으로서의 대가를 요구하면서 그녀들을 키워주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진실은 달랐지만 말이다. 아마도 세레나의 정체나, 혹은 정운과 슬기가 맺고 있는 혈맹의 조건이 알려진다면 유저들은 크게 황당해 할 것이다. 뭐, 알 리가 없지만 말이다. 정운은 저택으로 돌아와서 오늘 잡은 아이템들을 정리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55층 레이드는 나중에 한다고 치고···. 일단 이 층에서 모아야 할 재료 아이템은 다 모으고 싶은데····. 역시 히드라도 잡아야 하려나?” 히드라는 55층의 일반 몹들 중에서는 가장 강한 몹이다. 하지만 그 몹을 잡았을 때 나오는 히드라의 독니는 정운에게 있어서 탐나는 재료 아이템이었다. 만들고 싶은 활 중에서 독 속성을 부여하는 활이 있었는데 그 활을 만들려면 히드라의 독니가 꼭 필요했다. 그냥 생돈으로 만들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었고 말이다. “어쩔 수 없지. 한번 잡아서 나온다는 보장은 없고···, 나중에 나올 때까지 노가다라도 뛰어보자.”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담은 다이어리를 접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와서 정운의 눈을 가렸다. “누구게?” “····너 말고 누가 이런 짓 하냐?” “칫, 그래도 장단 좀 맞춰주면 안되요?” 슬기는 볼을 귀엽게 부풀리고는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이 슬기에게 고백을 한 그날 이후···. 슬기는 정운에게 좀 더 살갑게 굴었다. 본인 말로는 연인다운 감정을 잘 모르겠으니 좀 더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정작 행동은 어느 캠퍼스의 염장 완전체 커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런 애교를 종종 부리는 것은 물론이고, 식사때 정운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정운에게 살갑게 굴었고, 그것 말고도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정운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런 슬기의 애교를 정운은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쑥쓰러워서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슬기의 이런 모습을 보면 슬기도 자신에게 아주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게 기뻤고,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있을 둘의 미래가 그려지기도 했다. 비록 마음 한편으로 여전히 세레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걸렸지만···. 그래도 일단은 슬기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정운씨, 우리 55층에는 언제까지 있어요?” “글쎄? 반년 정도?” 정운의 말에 슬기는 살짝 놀란 눈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 오래 있을 거예요?” “어디까지나 최대치로 잡아서 말 한거야. 그리고 사실 54층의 클리어가 너무 빨랐어. 갑자기 메두사 길드의 레이드가 있어서 거기에 묻어 왔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제 슬기도 그라운드 제로에 대한 사정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 자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레벨업을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정운이 자신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 준 것인지 말이다. 그런 사실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정운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커져가는 슬기였다. 그래서 정운이 매일같이 고맙고, 그리고 또 그를 향한 호감도 서서히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 슬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운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말했다. “너하고 나, 그리고 세레나 이렇게 셋이서 보스몹 레이드를 하는 것은 사실 무모해. 물론 성공 가능성도 있고, 그렇게 했을 시에는 보상도 크지만···.” “위험도 크다는 말이죠?” ============================ 작품 후기 ============================ 일단 연애파트는 여기쯤에서 고삐를 느슨하게 하고 넘어갑니다. 이제 슬슬 게임 플레이로 넘어가야죠. 작품이 계속해서 질리지 않기 위해서는 파도타기 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죠. 하나에만 너무 파고들면 안 된다는 것을 전작인 '노예상인' 시절에 깨달았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2화 <비정기 퀘스트.> 슬기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가능하면 최대한 안전하게 올라 가는게 좋아.” “알았어요. 나도 예전에 쉐도우 엘프 킹 때의 일 같은 것은 이제 싫어요.” 슬기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 다는 듯이 말했다. 정운으로서는 사실 몇 번인가 넘겼던 사선 중에 하나일 뿐이었지만 슬기의 경우에는 그게 최초로 이 게임에서 죽음을 실감했던 경우였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생길만도 했다. 그런 슬기를 보고 정운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넌 지켜 줄테니까.” 정운의 말에 슬기는 정색을 하고는 말했다. “그러지 마요.” “········어?” “나보다 먼저 죽는다는 말 하지 마요. 절대로···.” 슬기는 정운을 향해서 마치 아이를 나무라는 엄마 같은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정운이 보기에는 그게 투정 부리는 여동생의 그것처럼 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전해져 왔다. “알았어. 안 할게.” “정말이죠? 약속이에요.” “알았어. 일단 위험한 일 자체를 한 동안은 할 생각이 없으니까····응?” 띠리링. 그때 말을 하던 정운에게 알림창이 떴다. 정운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귀족 유저들에게 동시에 뜬 알림창이었다. [긴급 퀘스트, 마족의 군사들로부터 그라운드 제로의 성을 지켜라.] “···이건? 비정기 퀘스트.” 알림창을 확인한 정운의 얼굴이 진지하게 싹 변했다. “정운씨 왜 그래요?” 갑자기 변한 정운의 모습을 보고 슬기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서 의아하게 물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고 피식 웃음면서 말했다. “비정기 퀘스트가 생겼어. 서둘러 이것저것 준비 하는게 좋겠다.” “비정기 퀘스트···? 그게 뭔데요?” “비정기 퀘스트는····.” 정운은 슬기에게 비정기 퀘스트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정키 퀘스트. 혹은 긴급 퀘스트라고 불리는 이것은 1~2년에 한 번 정도 유저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퀘스트다. 이런 정보는 선결적으로 일반 유저들 보다 귀족 작위를 가지고 있는 유저들에게 먼저 통보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한 발 더 앞선 유리함을 가져가는 것이다. 퀘스트의 내용은 다 달랐는데 어떨 때는 몹의 토벌을, 어떨 때는 선착순 레이스 같은 것을···. 그리고 어떨 때는 유저들끼리의 무투 대회 같은 것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크던 작던 그 퀘스트에 공헌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졌다. “마스터, 마스터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귀족들에게 먼저 정보가 주어지는 이유는 유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이런 수성 이벤트에서는 어떤 유리함이 있는 것입니까?” 설명을 다 들은 세레나의 질문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위치 선정의 유리함이겠지.” “위치 선정?” “그래. 이걸 봐. 이게 우리 번호표야.” 정운은 자신의 손에 있는 카드를 보였다. 그 카드에는 130번이라는 번호가 있었다. 즉, 정운이 이 퀘스트를 130번째로 수락한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아마도 수성전이 시작되면 각자 위치에 배정되겠지. 하지만 그 배정되는 위치의 선택권이 각각 유저들에게 있어.” “즉, 먼저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좋은 위치에서 수성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아마도 수성전이면···. 성벽 위와 성벽 아래. 같은 식으로 정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마스터, 그렇다면 일반 유저들은 지원을 많이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위험한 성벽 아래에 배치되면 위험할 텐데요?” “아니. 그게 그렇지 않아. 왜냐 하면 이 비정기 퀘스트는 전원 강제 참가거든. 초보자 보호기간의 유저들 빼고 말이야.” 정운의 말 대로였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실제로 게임의 공략을 포기하고 그저 안주하고만 있는 유저들도 제법 있다. 그런 유저들도 어쩔 수 없이 피해 갈 수 없는 이벤트가 바로 이 비정기 퀘스트인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비정기 퀘스트는 가장 싫어하는 경우였지만···. 다른 공략파들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짭짤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의 기회였다. 누군가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으로···. 또 누군가는 오랜만에 기회를 잡은 운동선수 같은 심정으로···. 그렇게 모두의 만감을 품고서 비정기 퀘스트의 날은 다가왔다. 퀘스트의 날. 퀘스트는 기존의 필드가 아니라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임시 필드에서 진행 되었다. 필드의 맵은 끊 없는 지평선이 사방에 펼쳐져 있고 그 안에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커다란 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성의 창구에는 이미 NPC들이 제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번호표대로 고객님들은 창구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퀘스트의 설명과 함께 위치 배정과 아이템 구입이 있겠습니다.” “대기중이신 분들은 주변의 상점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해 주십시오.” NPC들의 설명을 들은 유저들을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정운은 여유만만하게 밴치에 앉아서 자기 번호 차례가 되기는 기다렸다. “정운씨, 주변 상점에서 뭔가 안 사도 되요?” “그래, 필요한 아이템이라면 요 며칠간에 다 구입했잖아?” 정운의 말대로 였다. 일반 유저들과 달리 자세한 정보가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귀족 유저는 미리 필요한 아이템들을 모두 준비 할 수 있었다. “삼대 길드 때문에 숫적으로 조금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130번이면 성벽 위에 배치 되는데는 무리 없을 거야. 슬기 넌 이번 기회에 레벨을 최대한 올려줘.” “예. 알겠습니다.” “세레나. 넌 이번 전투에서 직접적인 전투 보다는 나와 슬기의 보조와 회복, 그리고 슬기의 호위에 주력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혹시나 숫자가 다 차서 성벽 위에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작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거야. 슬기 넌 세레나의 옆에 찰싹 달라 붙어서 마법으로 원조만 해. 알았지.” “예. 걱정하지 마세요.” 정운이 그렇게 작전을 짜는 사이에 어느새 정우느이 차례가 되었다. “130번 유저님.” 정운은 자신의 번호가 들리자 슬기와 세레나를 대동하고 창구로 갔다. 마치 은행 창구 같은 느낌의 카운터에서 NPC가 말했다. “여기 지도에서 배정을 워하시는 위치를 선택해 주십시오.” 정운이 성벽을 바라보자 동벽과 서벽, 그리고 남벽에 특히 많은 유저들이 몰려있었다. “삼대 길드가 선택한 지역인가 보지?” “예. 귀족 유저가 아니라도 혈맹으로 묶여 있으면 같은 위치에 배정이 가능하므로, 그 분들은 서로 동, 서, 남벽에 배치를 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삼대 길드에 묻어가기 위해서 다른 유저들도 그쪽으로 몰렸겠지···. 그럼 난 북벽으로 부탁해.” “북병의 성벽 위쪽, 확실합니까?” “그래. 그리고 수성용 아이템을 따로 구입하기는 했는데 추천할 상품이 따로 있나?” “예. 여기 보시면 대포와 탄알, 그리고 성벽위 가드용 쉘터가···.” “아, 그럼 됐어.” 정운은 NPC가 보여주던 카탈로그를 그대로 덮어 버렸다.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것은 정우도 대강 알고 있는 것들이다. 겉 보기에만 번지르르 하지 별로 정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저런 아이템은 스스로를 지키기도 버거운 저 레벨 유저들에게 절실한 것일 뿐이었다. “회복용 포션이나 줘. 한 100개만.” “알겠습니다.” 정운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회복용 아이템만을 구입한 후에 정해진 위치로 포탈을 타고 이동했다. “어디 보자···. 우리 위치는 저기군.” 정운은 성벽의 위에서 자신들에게 배정된 위치에 도착해서 거기서 가장 먼저···. 땅땅땅···.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정운씨···. 정말 이래도 되요?” 슬기는 성벽의 위에 태연하게 텐트를 치는 정운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정운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주변을 잘 봐. 나 말고도 비슷한 인간들 있잖아?” 정운의 말에 슬기는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은 정운처럼 텐트를 혹은 침낭을, 개중에는 무슨 사각형 쉘타 같은 것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퀘스트는 장기전이 될 지도 몰라. 그래서 식량이나 잠자리 같은 것을 똑바로 해결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해.” 정운을 비롯해서 몇 번이고 이런 퀘스트를 겪어본 베테랑들은 중요한 포인트를 잘 알고 있었다. 일반 전쟁터의 수성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라운드 제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내의 보급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충분한 식량과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일단 성벽 위는 크게 위험하지 않을 거야. 성벽의 밑은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말이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그녀는 자신은 정운의 배려 덕분에 성벽의 위로 올라왔지만 보통의 유저들 태반은 이번 퀘스트를 통해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무슨 생각하는지는 대강 알겠지만···. 너무 신경쓰지 마. 넌 네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주력해. 위에서 우리가 열심히 싸우면 싸우는 만큼. 밑의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안전해져.” “예. 알았어요.” 슬기는 정말로 열심히 싸우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이 보기에 이런 슬기의 상냥함은 인간적으로는 장점이고 그녀의 매력이었지만···. 그라운드 제로라는 수라장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좋은 약점으로 자리 잡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운을 비롯한 몇몇 유저들이 텐트를 치면서 자기 자리에서 숙영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는 어리둥절해 하는 유저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그런 생각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들도 저럴걸. 이라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이 이벤트에는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이 참가한다. 즉, 막대한 인원이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런 유저들을 하나하나 제 자리에 배치하는 것만 해도 한참 걸렸다. 이미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가 되었는데도 남은 사람들의 반 정도는 배치가 완료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위치 배정 뿐만이 아니라 아이템의 구입과 기타 문의 사항 같은 것을 일일이 말하다 본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도 당연했다. 정운을 비롯한 경험자들은 그 동안 차분하게 자신들의 배정된 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달치 정도의 식량은 챙겨 두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군요?” 슬기는 다른 사람들이 부지런히 상점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서 가는 것인데 상점에서는 한 번에 하루 정도의 식량 밖에는 팔지 않았다. 한 번 줄서면 기본이 네 시간 이상이다 보니 유저들 입장에서는 정말 고생도 이런 생고생이 없었다. 미리 정보를 듣고 만반의 준비를 해둔 정운의 경우는 별 고충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굳이 말하면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운도 정운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그런데 정운씨,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조금 있는데··. 잠 못 잤어요?” “응? 으음···. 뭐.” 슬기의 말에 정운은 적당하게 대꾸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저도 많이 도울게요.” “··············.”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큼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53화 정운은 그냥 쓰게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정운이 긴장한 이유는 슬기와 세레나 때문이었다. 자신의 영역에 배치된 정운은 당연하지만 텐트 속에서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자야 했다. 텐트 자체는 오인용이라서 그다지 좁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오인용 텐트의 오른편에는 슬기가, 그리고 왼편에는 세레나가 누워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 아니 정확히 말해서 여자들이 양 옆에서 새근새근 누워서 자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잠이 제대로 올 리가 없었다. ‘차라리 둘이 아니라 한 명이었다면 뭔가 분위기 라도 좀 잡아서 대시라도 해 보겠는데·····.’ 하필이면 여자 둘에게 동시에 반해버린 정운에게는 그것도 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결국 이리저리 뒤척거리다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샌 정운이었다. ‘차라리 빨리 퀘스트나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런 정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유저 배치에는 한참의 시간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정운에게 익숙한 사람이 한 명 다가왔다. “아! 찾았다.” 정운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보영 길드장님.” 정운의 눈에 보인 것은 마치 보물찾기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은 어린애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메두사 길드의 길드장 이보영이었다. “호호, 내가 동생 정도면 성벽 위에 있을 것 같아서 어제부터 돌고 있었지.” 그녀는 스스럼없이 정운에게 다가와서 정운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언제부터 허락도 안 했는데 정운을 동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웅? 나야 밑에 애들한테 성벽의 순찰 좀 간다고 뻥치고 동생 찾으러 왔지.” 그녀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었다. 이 여자 아무래도 저번에 한 번 눈에 들었더니 제대로 찍은 모양이다. 거대 길드들의 인재 영입에 대한 집념이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길드장에게 직접 찍힌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남벽에 있는데 동생은 왜 정 반대인 북벽에 있을까? 꼭 우리 로미오와 줄리엣 같아. 그치?” “그럴까요?” 정운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함부로 크게 말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정운이 거침없이 나간다고 해도 삼대 길드의 길드장의 눈에 거슬려서는 좋을게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보영은 정운에게 몸을 찰싹 밀착해서 정운에게 말했다. “이거 알아? 위치가 배정된 이후에도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 어때? 내 쪽으로 와. 내가 잘 챙겨 줄게? 응?” “죄송합니다. 이미 정한 자리라서 위치를 옮기기가 좀 그렇네요.” “흐음···. 내 쪽으로 오면 내가 안 심심하게 좋은 것 해 줄 건데. 그래도 싫어?” 이보영은 입술을 살짝 혀로 핥으면서 요염한 눈으로 정운을 유혹했다. 그녀의 모습은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으로 유혹적이었다. 다만···, 옆에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둘이나 있는 정운으로서는 그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으음···. 죄송하지만 전 여기가 좋습니다.” “흐음··. 그래? 그럼 내가 여기에 올까?” 그녀의 말에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확실하게 말해 두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길드장님은 매력적인 분이지만···. 제 취향이라는게 있어서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를 양옆에 끼고는 어필했다. 슬기는 그런 정운의 태도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세레나는 놀랍게도 대범하게 정운의 한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승자의 미소 같은 느낌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그녀는 정운이 지금 연극을 하니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정운으로서는 연기를 가장한 진심이었지만 말이다. “으음···. 예쁜 아기들이네? 더구나 한명은 금발에 외국인? 어? 이상하다. 어째서 외국인이 여기에 있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유저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정운도 그것은 알고 있었기에 세레나에 대한 배경 설정으로 어느 정도 입을 맞춰 둔게 있었다. “그녀는 프랑스인과 한국인의 하프입니다. 한국에는 유학으로 왔다가 이 게임에 뛰어 들었다고 하더군요.” “헤에···. 그런 방법도 있구나··. 뭐, 거짓말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이보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운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정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자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호호···. 동생 얼굴에 티 너무 난다. 그냥 떠 본거야.” “음······.” 정운이 당황하면서 침음성을 내뱉자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정운의 뺨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쪽. 너무 갑작스러워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운은 살짝 당황했고 이보영은 그런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뭐, 오늘은 돌아갈게. 하지만 동생, 언제든지 엔조이 콜은 오케이라는 것 알아둬. 안녕.” 그녀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다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는 그대로 물러나 버렸다. 정운으로서는 뒷감당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건지 곤란할 뿐이었는데 말이다. 실제로 지금 정운의 양쪽에서 세레나와 슬기가 동시에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마스터, 마스터의 사생활에 참여는 하지 않겠지만 문란함은 죄악이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저 좋다고 했죠? 말해 두겠는데 저런 여자하고 뒹굴면 다시는 내 얼굴 못 볼거에요.” 세레나의 설교와 슬기의 협박에 정운은 그저 쓰게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하다못해 너희들이 내 품에 좀 안겨주라···.’ 두 여자에게 동시에 반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자각하는 정운이었다. 사흘에 걸쳐서 유저의 배치가 다 끝났다. 상위급 유저들은 대부분 성벽의 위에 올라왔고 혹은 성벽의 내부에서 지원부대로만 지원한 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거대 길드에서 성벽의 위에서 있는게 도움이 되지 않는 멤버들을 안전한 지역에 두게 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거대 길드의 비호도 없고, 스스로의 힘도 약한 대부분의 일반 유저들이 성벽의 밖으로 배치되었다. 그 중에서도 최전선과 최후선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유저의 배치는 완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본격적인 실전 퀘스트가 시작된 것이다. 띠리링!! 모두의 머릿속에 알림차이 뜨고는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설명문이 떴다. [이제 곧 퀘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그에 앞서서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과 실패 조건을 설명하겠습니다. 성공 조건은 앞으로 열흘 동안 이 성벽을 지켜낼 것. 실패 조건은 열흘 안에 마족의 공격에 성벽이 파괴되고 성이 점령당하는 것입니다. 클리어시에는 모두에게 활약한 만큼 소정의 보상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실패했을 때에는 그에 따른 패널티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럼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분들, 지금부터 긴급 퀘스트, 마족 군단의 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설명이 마치는 것과 동시에 성벽의 중앙에 거대한 모래시계가 생겼다. 그리고 그 모래시계가 빙글 돌면서 뒤집히더니 작은 모래가 사라락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속도가 느리군. 저 시간 만큼 버티라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죠. 그럼 마스터. 저는 슬기의 호위로 들어가겠습니다.” “알겠어. 그리고 네 유니크 스킬은 어지간하면 쓰지 마. 너무 눈에 띄니까.”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세레나에게 지시를 내린 후에 자신도 일단 활을 꺼냈다. 일단 성벽 위의 원거리에서 싸우려면 역시 활이 정석이었다. 두두두두두두·····. 그리고 드디어 땅이 흔들리는 느낌. 아니 느낌이 아니다. 실제로 미세하게 대지를 진동시키는 대군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까마득한 지평선의 너머에서 밀려오는 몬스터 대군의 처음은 오크와 고블린때였다. 저 정도면 하위권 유저들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파이어 볼!!” “익스플로젼!!!” “체인 라이트닝!!!” “먹어랏!!!!” 성벽 위에 수많은 유저들의 마법 공격과 궁수들의 원거리 공격에 몹들은 일차 방어선을 넘지도 못하고 쓰러져 가고 있었다. 정운도 부지런힌 활을 당기면서 싸웠다. 다만 초반에 너무 힘을 주는 일은 자제했다. 어차피 저건 워밍업 같은 것이다. ‘이 이벤트는 게임으로 치면 수비게임하고 비슷한 거야. 그렇다면···. 초반에 힘을 많이 빼고 너무 휘둘리면 안 돼.’ 정운이 쓰고 있는 활은 크리스탈 보우. 이 아이템의 좋은 점은 화살이 없더오 무한대로 크리스탈의 화살을 계속 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운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차분하게 활을 계속 당겼다. 몇 시간 후···. “헉··· 헉····.” 슬기는 성벽 위에서 마음껏 마법을 난사했다. 덕분에 이제는 정신력의 한계가 다다라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말했다.. “슬기야. 넌 텐트 안에 들어가서 좀 쉬어.” “예? 하지만 전투중인데···.” “앞으로 열흘 동안 대부분이 전투 중일거야. 휴식하면서 싸우지 않으면 못 배겨.” 실제로 다른 조들도 자신들의 위치에서 적절하게 교대를 해가면서 싸우고 있었다. 이 퀘스트는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이 모여서 클리어하는 단체 퀘스트. 좋든 싫든 평소의 앙금은 일단 넘겨두고 지금은 협력 하는게 당연했다. “···알았어요. 그럼 저 좀 쉴게요.” “세 시간 후에 깨워 줄게. 그때까지 푹 쉬어. 세레나 너도.” “전 멀쩡합니다. 마스터.” “그러니까 쉬라는 거야. 어차피 넌 원거리 스킬이 적어서 지금은 큰 힘이 안 돼.” “····알겠습니다.” 정운의 말대로 세레나는 슬기와 함께 텐트의 안으로 들어가서 쉬었다. 저 텐트는 특제품이라서 일단 안에 들어가면 외부의 공격에도 쉽게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세레나의 약점 중에 하나가 원거리 기술의 부재였지··. 나중에 레벨이 좀 오르면 나아지려나?’ 세레나의 원거리 스킬은 홀리 버스터, 사방으로 성스러운 광선을 발사해서 언데드들을 궤멸 시키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광범위 능력이라서 거리가 넓지 않았고 언데드들이 아니면 큰 효과가 없었다. 유니크 스킬인 신의 철퇴는 강력했지만 이런데서 함부로 유니크 스킬을 써댈 수는 없었다. 유저들 눈에 띄는 것은 일단 자재하는 중이니 말이다. “뭐, 일단 한, 이틀 정도까지는 아무런 위기감도 없겠어. 이 페이스대로라면····.”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부지런히 활을 당겼다. 그리고 정운의 예상대로 위기는 삼일째에 다가왔다. 이틀 동안 유저들에게 몰려온 몹들의 종류는 대부분 10층 이하의 필드에서 나오는 일반 몹들이었다. 물론 그 숫자가 징그러울 정도로 많기는 했지만 앞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유저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숫자가 많은 만큼 경험치가 팍팍 들어오고 있어서 좋아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정운 정도의 고위급 유저들의 경험치 바가 조금이지만 꿈틀 거리면서 올라올 종도였다. 하위급 유저들 중에는 벌써 몇 단계나 레벨업을 한 유저들도 빈번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오는 몹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크나 고블린 늑대에 잘해봐야 트롤 정도였던 몹들 사이에서 오우거나 배틀 울프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보고 정운은 생각했다. ‘대략 20층 정도의 몹들인가?’ 이제 여기서부터는 이제 초보들에게는 버거운 현장일 것이다. 정운은 몸을 풀면서 세레나에게 말했다. “세레나. 잠시 여기서 슬기를 호위하고 있어.” “마스터께서는 어쩌실 겁니까?” “난 밑으로 내려간다. 한바탕 쓸고 오겠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흑토를 꺼내서 훌쩍 올라탔다. “히히힝.” 흑토는 오랜만에 정운이 부른 것이 기쁜 듯이 투레질을 하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갑자기 올리는 와중에 렉이 걸리더니 이상하게 되어서... 중복에 짤리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다시 올리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4화 “오늘쯤에 화끈하게 하자. 알겠지?” “히힝.” 흑토는 정운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수화 했다. 화르륵!! 흑토의 전신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주변의 공기를 후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운은 그런 흑토의 위에서···. “스킬 비상 사용. 밑으로 내려 가자. 흑토.” “히힝···.” 정운은 그대로 흑토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런 정운과 더불어서 성벽 위에서 몇 명의 유저들이 비행 스킬이나 마수를 이용해서 잠깐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하고 비슷한 수준의 유저들이군. 몇 명은 안면도 있고 말이야.’ 레벨 20정도의 몹이면 지급의 정운이 싹 쓸어버리기에 딱 좋다. 이것보다 강하면 대량 사냥을 하기에는 좀 버겁고 이것보다 약하면 들어오는 경험치가 너무 약하다. 그러니 지금 정도가 딱 좋은 것이다. “뇌신 사용. 기마 차지!!!” “히히히힝!!!!” 정운과 흑토는 뇌전과 화염에 휩싸여서 전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투투투투투투·····. 흙먼지를 휘날리면서 정운과 흑토가 한 몸이 되어서 몹들의 사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정운과 흑토에 스치는 몹들은 그대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성벽의 위에서 보면 뇌전과 화염을 동반한 어떤 것이 몹들 사이에 길을 만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정운 이외에도 상위급 유저들이 광역 스킬로 몹들을 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소드 템페스트!!!” “멀티 익스플로젼!!!” 콰콰쾅!!! 화려한 폭발과 함께 몹들이 마치 약이라도 맞은 바퀴벌레처럼 죽어가기 시작했다. “오오오!!! 상위급 유저들이다.” “저 괴물들···.” “우리 경험치를 다 가져가네···.” 일선에 있던 하급의 유저들은 자신들의 경험치를 가져간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지금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아니다. 이제 몹이 이렇게 강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적들이 강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운은 한 30분에 걸쳐서 몹들을 사냥했다. 조무래기 몹들이지만 그래도 숫자가 이정도면 경험치의 보상이 상당했다. 비록 퀘스트 중이라서 아이템은 얻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아마도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주어지는 보상이 있을 테니 말이다. “이쯤하면 됐나? 이제 슬슬 돌아가야 겠군.”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뇌신을 풀고 흑토를 타고 성벽위로 돌아갔다. 몇몇 유저들은 아직 좀 더 남아서 분탕질을 치겠다는 듯이 싸우고 있었지만 정운은 좀 더 힘을 온전하기로 했다. 3일째의 몹들은 상위급 유저들의 활약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4일째를 맞이하고···. 일반 유저들에게는 정말로 지옥 같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이클롭스다!!” “트윈헤드 오우거가 무리를 짓고 나왔어.” “다크 트롤까지·····.” 몹들의 수준이 현격하게 올라왔다. 이전과는 사이즈가 갑자기 두배 이상 늘어난 놈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 것이다. “우오오오!!!” 콰앙!! 외눈이 특징인 사이클롭스 한 마리가 집채만한 바위 하나를 유저들에게 집어 던지고는 과시했다. 그런 놈의 행동에 수많은 유저들이 바싹 얼어 버렸다. 원래 평범한 필드에서는 한 마리 한 마리씩 따로 다니던 대형 몹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무리를 지어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위급 유저들도 이번에는 쉽게 나서지 않고 있었다. 저것들 하나하나는 감당이 가능하지만 저렇게 여럿이 뭉쳐 있으면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밑에 내려가서 싸우기 보다는 성벽의 위에서 강하게 엄호를 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었다. 정운도 마찬가지였다. “산탄사!!!” 퍼퍼퍼펑!! 정운이 날린 화살이 무수한 화살의 비가 되어서 전쟁터에 작렬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직접 흑토를 타고 달려가서 난전에 뛰어드는 행위는 좀처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운으로서도 필요이상의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치나 보상도 좋지만···. 성벽위를 고른 것은 누가 뭐래도 안전을 우선시하기 위해서였다. ‘밑의 하위급 유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목숨을 걸고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야. 살아남는 승자가 되고 싶은거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화살을 당겼다. “크아악!!!” “제가랄!!!!” 밑에서 하위급 유저들은 자신들이 생전 감당하지도 못했던 대형 몹들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분투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사망자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싸울 수 있었다. 성벽의 위에서 상위권 유저들이 원거리 공격으로 열심히 원호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나서서 싸워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평하는 자는 없었다. 어차피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이기주의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싸워주는 별종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 정도는 하위급 유저들이라고 해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아비규환의 4일째가 지나고 5일째가 되었다. 4일째의 지옥이 시작되었고 유저들은 본격적으로 이 퀘스트의 무거움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하위급 유저들은 이미 기진맥진이었다. 그들로서는 5일째의 여명이 영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태양은 떠올랐다. “5일이라···. 오늘을 넘긴다고 해도 이제 반이 넘었을 뿐이지.” 정운은 성벽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중얼 거렸다. 그런 정운의 옆에는 세레나와 슬기가 긴장된 표정으로 지평선의 너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도 사람들이 죽을까요?” 슬기의 질문에 정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그렇다기 보다는 마음을 비워. 아마도 이 퀘스트가 끝났을 시기에는 밑에 있는 하위급 유저들 중에 절반 이상은 죽을 거야.” 정기 퀘스트가 원래 하위급 유저들에게 가혹한 이벤트이기는 하지만···. 이번건 특히 더 그랬다. 사실상 레이스나 평범한 토벌 퀘스트, 혹은 무투대회라면 본인들 분수에 맞게 이득을 보거나, 혹은 그냥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 하위급 유저들에게 고통스런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렇듯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성벽의 위에 있는 인간들은 위험한 성벽 밑의 인간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타인의 불행보다는 자신의 안전이 더 중요한 법. 만약 그들이 지금의 불행에 불만이 있다면 평소에 나태하기 지낸 자신들의 처지에 불만을 가져야 한다. 대강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게 대부분의 성벽위에 민심이었다. ‘슬기 같은 경우가 오히려 별종인 거지. 나 역시 저들의 희생에서는 그냥 눈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5일째의 몹들이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어제와 다름없어 보이는 몹들이었는데 드문드문 새로운 종류가 섞여 있었다. 그 새로운 종류란····. “망할··. 세레나. 오늘부터는 일 좀 해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자신의 검을 뽑아서 무장을 갖추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는 각종 소란이 펼쳐졌다. “비행형이다!! 비행형 몹들이 나타났다.” “비행스킬이 가능한 유저들은 요격에 나서라!!” “서둘러!! 빨리 서두르라고!!!” 성벽의 여기저기에서 난리가 났다. 정운도 흑토를 꺼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고일에 그리폰, 자이언트 배트. 아직은 그리 강력한 몹은 아니군. 아마도 내일쯤이면 와이번이라도 나오려나?” 정운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흑토를 타고 한 손에는 태도를 들고는 정운이 날아올랐다. “이럇!!!” “히히힝!!” 그렇게 5일째의 전투도 치열한 서막을 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성벽위의 유저들은 자신들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비행형 몹들을 우선적으로 요격했다. 덕분에 성벽 아래의 하위급 유저들의 피해는 어제보다 더욱더 컸다. 어느 정도는 원조 사격이 이뤄 졌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몹들을 고스란히 상대해야 할 때가 많았다. “으아악!!!” “이놈이!! 커억!!!” “죽어랏!!!” 성벽의 아래에서도, 그리고 하늘에서도 수많은 유저들의 비면 소리와 몹들의 단발마가 들렸다. 그날의 전투가 끝났을 때···. 성벽 밑의 유저들 중에 상당수는 죽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레벨 20이하의 초보들이었다. 성벽 밑의 진형에서는 어느 정도 후방으로 빠져 있던 30대 레벨의 유저들이 앞으로 나서야 할 위기까지 번졌다. 그리고 정운은····. “후우····. 슬슬 피곤하군. 그나마 밤에는 잘 수 있어서 다행이야.” 다행이 큰 상처는 없었지만 흑토를 타고 몇 번이고 출격을 반복했던 덕분에 상당한 피로가 쌓인 것 같았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가 말했다. “마사지라도 해 드릴까요? 예전에 배웠는데.” “고마워. 하지만 포션··. 아니 해 줘. 받아서 나쁠 건 없지.” 정운은 거절하려다가 금세 말을 바꿨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슬기는 살짝 새초롬하게 바라봤다가 텐트 안에서 정운을 엎드리게 하고 거기에 부드러운 손길로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끙····, 으음 생각보다 근육이 많이 뭉쳤네요··. 괜찮아요?” “응. 괜찮아.” 슬기는 손바닥이나 팔꿈치를 이용해서 꾹꾹 누르고 슥윽 밀어 올리는 식으로 정운의 근육을 마사지 했다. 내심 마사지라는 단어에서 살짝 야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정운으로서는 약간의 실망이 들었지만···. 그거랑 별개로 확실히 슬기는 어디서 마사지를 배운 경험이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었다. 어느새 노곤함과 동시에 피로가 풀리고 정운은 그대로 스르륵 잠들어 버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적장 진짜로 반이 지났음에도 아직 반이 남았은 사람들에게는 짜증나는 말일 뿐이다. 딱 깨놓고 말해서 그냥 개소리다. 그럼 나머지 반은 뭐란 말인가? 잔업? 야근? 시간외 근무? 궁극의 뻘짓? 어찌되었든 반이 지났다고 나머지 반이 그냥 사라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6일째와 7일째, 그리고 8일째까지 모두 가혹한 나날이 되었다. 하위권 유저들은 힘든 전투를 계속했고 성벽위에서도 사망자가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했다. 비행형 몹들 중에서도 강력한 편인 아크 그리폰이라던가? 배틀 와이번 같은 몹들이 나타났다. 그런 놈들은 공중의 방어라인을 뚫고 들어와서 종종 성벽위의 유저들을 공격하고는 했다. 슬기의 경우 세레나가 밀착방어를 하고 있었기에 그런 적들에게 큰 공격을 맞지 않았지만··. 거대 길드의 원거리 공격 유저중에 상당수가 그런 공격에 맞고 절명했다. 그들은 애당초 자신들의 능력 보다는 길드의 이름값에 힘입어서 유리한 성벽의 위쪽에 있다가 방심하고 당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8일째 부터는 더 이상 지시를 내리는 사람도 없었고 지시에 응답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살기 위해서 싸우고 또 싸웠을 뿐이다. 그리고 드디어 9일째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5화 <십왕의 서열4위 한중겸> 9일째의 날에 지평선에서 오는 몹들을 보고는 유저들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X 같은 악마 새끼들····. 적당히 하라고!!!!” “·······나 여기서 죽는 건가” 9일째에 몰려오는 몹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숫적으로만 따지면 한 60~80마리 정도? 문제는 그 종류였다. “쿠오오오오오!!!!!” 지축을 흔드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등장한 거대한 몸체에 등 뒤에 달린 커다란 날개. 그리고 종종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브레스. 상대는 드래곤이었다. 종종 보스몹으로 나오는 놈들이 60~80마리가 동시에 나왔던 것이다. “쯧, 레벨 60이상만 나와!! 나머지 놈들은 방해다!!!” 정운은 사방을 향해서 크게 소리쳤다. 딱히 정운이 이 지역의 지휘자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운의 말에 불평하는 자는 없었다. 정운의 지시가 타당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몹들은 밑에 있는 하위급 유저들에게도 어느 정도 발목 잡이를 할 수 있는 몹들이었다. 하지만 저 용족들은 다르다. 저것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쓸 만한 유니크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정운을 비롯해서 대략 140명 정도 되는 유저들이 북벽에서 나왔다. 얼핏 보아하닌 다른 성벽에서도 한 가닥 하는 유저들이 성벽의 아래로 내려온 것 같았다. ‘어차피 용적이 상대라면 좁은 성벽의 위 보다는 밑에서 상대하는 게 좋지.’ 정운뿐만 아니라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북벽의 누군가가 주변의 유저들에게 말했다. “우리쪽의 할당량은 대략 20마리인가? 누구 좋은 작전 있는 사람?” “···········.” “···········.” “···········.” 있을 리가 없었다. 120명의 유저끼리 20명의 드래곤 레이드.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일이었다. “성벽 위에서의 원조가 있을 테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어그로 놓치지 않을 정도로 촐랑 거려주자고.” 그때 누군가의 말이 그나마 여기 있는 유저들에게 좋은 충고가 되었다. “그게 정답이긴 하군. 자기 목숨은 스스로들 챙겨. 자 그럼···. 흩어져!!!” 쿠오오오오오오!!!! 누군가의 말과 동시에 제일 앞에 있던 커다란 드래곤이 거칠게 돌진해 왔고 유저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상위급 유저들과 강대한 용족들 간의 전투가 그렇게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위급 정도 되면 용족들과의 전투가 새삼 신기할 것은 없다. 각자 차이는 좀 있지만 용족의 공통된 무기는 일단 그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막중한 물량과 입에서 뿜어내는 브레스. 그리고 자잘하지만 종류에 따라서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마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지막지한 체력이다. 보통의 보스몹들도 피통이 크다. 하지만 용족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그 중에서도 피통의 용량이 또 한 차원 달라진다. 그런 놈들이 한 마리도 다수가 모여 있는 것이다. 이정도 되면 아무리 용족에게 익숙한 고위급 유저들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공격만으로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장기전으로 몰고 가야해. 성벽의 위에서 꾸준하게 원거리 공격이 올 테니. 어그로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데미지를 주면서 꾸준하게 전투를 계속해야해.’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유니크 스킬은 기공술 하나만 사용하고 다른 두 개의 유니크 스킬은 봉인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유니크 스킬 말고 다른 그림자의 망토에 있는 기술들은 쓸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동안 꾸준한 전투를 더해서 그림자의 망토도 레벨이 4로 올라갔다. 새로운 스킬도 두 개나 붙었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본격적으로 그것을 사용할 때가 아니었다. 다른 유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타인의 눈이 있는 곳에서는 함부로 전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상위급 유저들은 드래곤들을 상대하면서도 한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일단 드래곤이라고 하면 겁부터 먹고 보는 다른 유저들과 다르게 그들은 침착하게 드래곤들을 상대하면서 싸울 수 있었다. 이윽고 다른 지역에서는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쿠웅!! “오오!! 한 마리 쓰러트렸다.” “좋았어. 이대로 계속 해!!!” “힘차게 밀어 붙여!!” 동벽과 서벽··, 그리고 아마도 멀어서 잘 안 들리지만 남벽에서도 드래곤들이 쓰러지고 있을지 몰랐다. 아마도 삼대 길드를 비롯한 유저들이 힘을 좀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도 슬슬 한 마리 정도 쓰러트려야 사기가 올라가려나··. 그런데 하필이면 북벽이 가장 전력이 떨어지니··.’ 정운은 살짝 초조했다. 다른 세 군데는 삼대 길드가 있었기에 안전함을 우선시해서 다른 유저들이 많이 몰렸다. 성벽위에 올라가지 못한 유저들도 다른 북벽지역만큼은 기피하고 있었다. 뭐, 정운처럼 어느 정도 보상을 우선시해서 할 일이 많은 북벽을 고른 쪽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전력이 가장 떨어지는 것이 북벽인 것은 사실이었다. 초조해하는 정운을 비롯한 북벽의 유저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실수를 했던 것일까? 드래곤중에서 두 마리의 어그로 성벽 쪽으로 튀어 버렸다. “크라라라라!!!!!!” 전신에 호랑이 무늬를 하고 있는 육전용 드래곤과 강한 바람을 동반하고 있는 푸른 비늘의 드래곤. 그 두 마리가 성벽 쪽을 향해서 돌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중에서 호랑이 무늬를 하고 있는 드래곤이 돌격하고 있는 쪽을 본 정운은 기겁을 했다. “안 돼!!!” 거기는 세레나와 슬기가 있는 쪽 한가운데였다. 세레나의 힘을 믿기는 하지만 운신의 폭이 좁은 성벽이 위에서는 드래곤의 힘을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정운은 호랑이 무늬 드래곤을 향해서 스킬을 날렸다. “쉐도우 체인!!!” 촤라라라락!!! 그러자 달려가던 드래곤의 그림자에서 두꺼운 그림자의 사슬이 나와서 드래곤을 칭칭 구속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드래곤은 거칠게 몸부림 쳤지만 좀처럼 체인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림자의 망토가 레벨 3일 때 얻은 스킬이 바로 이것이었다. 쉐도우 체인, 상대의 그림자에서 사슬을 만들어서 적을 구속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그림자라는 점이다. 즉, 그림자의 부피가 큰 대형몹에 더욱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정운은 그 상태로 그대로 다른 스킬을 연동했다. “쉐도우 컷터, 쉐도우 스피어!!!” 촤아악!! 파파팍!! “쿠워어어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그림자의 칼날과 창날이 드래곤을 꿰뚫었다. 호랑이 무늬의 드래곤은 제법 대미지가 있었는지 상당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거기다 달려오던 드래곤의 빈틈을 보고 성벽위의 유저들도 힘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쏴라!!!” “절대 성벽에 접근시키지 마라!!” “파이어 익스플로젼!!!” “라이트닝 볼트!!!” 퍼퍼퍼퍼펑!!! “크오오오오!!!” 호랑이 무늬의 드래곤이 발버둥 치는것과 동시에 놈의 머리위에 한 번에 옐로우를 넘어서 레드 크리스탈이 떴다. 정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뇌신!! 이거나 먹어랏!!!!” 정운은 흑토와 함께 뇌신화 한 상태로 그대로 드래곤의 정수리를 창으로 찍어 버렸다. 콰아앙!!!! “쿼어어어!!!!” 그리고 그 한방으로 북벽에서도 드디어 드래곤 한 마리가 쓰러져 버렸다. “오오오!!!” “드디어 잡았다!!” “꼴 좋다. 망할 용가리 새끼야!!!” 북벽의 한쪽에서는 드디어 드래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에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째 잠잠하다 싶었던 다른 한 마리가 성벽위를 향해서 브레스를 발사하려고 하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마치 놈의 입에 태풍이 생기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진공음이 들렸다. “크윽···.” 정운은 놈을 향해서도 돌격하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카오오오!!!” 퍼어엉!!! 놈의 공격이 성벽의 한쪽을 향해서 그대로 날아갔다. 공기의 압축 덩어리 같은 것이 성벽의 한쪽을 향해서 날아갔다. 저게 들어가면 이번 전투 최대의 참사일 것이다. 정운은 막으려고 했지만 사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늦어. 대응 할 수가····.’ 슬기와 세레나가 있는 쪽을 우선시해서 저쪽을 내버려둔 결과 어쩔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성벽이 무너질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앱솔루트 리플렉스!!” 누군가가 그쪽 성벽을 통째로 막을 수 있는 방어막을 쳤다. 그리고 그 반투명한 방어막에 드래곤의 브레스가 닿더니 그대로 흡수되었다. 그리고는·····. 콰아아아!!! 마치 되로 받았으니 말로 돌려주마. 라는 식으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브레스를 발사한 드래곤에게 그대로 돌아갔다. 콰아앙!! “카오오오오!!!” 드래곤은 고통에 신음했고 그대로 놈의 머리위도 레드 크리스탈이 떴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누군가···. 아마도 방금 마법을 펼친 사람으로 추정되는 자가 둥실 떠올랐다. “흠····, 가능하면 최종 스테이지 까지는 힘을 온전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성벽이 무너지면 말짝 도루묵이니 어쩔 수 없나?” 그는 정운이 있는 쪽을 흘깃 바라봤다. “북벽에 있는 애송이들 중에는 저 녀석이 가장 싹이 보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드래곤 두 마리 어그로 잡는건 아직 무리겠지.” 그는 마치 나름 애써서 분투한 어린애를 보는 어른 같은 표정으로 정운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그런 그를 보고 화가 난다는 것처럼 날아오는 드래곤이 있었다. “아아, 미안. 널 깜빡 할 뻔 했구나.” 그는 자신을 한입에 씹어 버릴 것처럼 날아오는 드래곤을 보고도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한쪽 손을 뻗어서 드래곤을 향하고 말했다. “나와라. 펜닐!!!” 그러자 그의 손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늑대가 나타났다. 달려들던 드래곤보다 2배는 거대한 늑대는 마치 피처럼 붉은 털을 가지고 있었다. 콰직!!! 그리고 그 늑대는 그대로 한입에 드래곤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렸다. “크르르르!!!!” 우지직!!! 우직!! 살을 찢고 뼈를 부셔버리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거대한 늑대는 드래곤의 목을 씹어 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유저들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겸···. 한중겸이다. 십왕의 서열 4위의 마스터 테이머 한중겸이야.” “오오!! 싸우는 것 처음 봤어.” “대단해····.” 유저들은 십왕의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보통 일반 유저가 들어오면 10초만에 사망하는게 보통이고, 설령 고위급 유저라고 해도 자력으로는 30분도 버티기 힘든 지역에서 사냥하니 말이다. 그들의 싸우는 장면을 본다는 것은 이런 집단 퀘스트가 아니면 거의 볼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저 한중겸이라는 남자의 싸우는 모습은 워낙에 독창적이라서 상당히 유명한 편이었다. 그는 원래 직업은 메이지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몹을 잡아서 길들이는 테이머 스킬을 가지고 있다. 자신보다 레벨이 낮기만 하면 어떤 몹이라도 잡아서 길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정운도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크게 놀랐다. “저 몹은···. 틀림없이 펜닐이지?” 카탈로그에서 본적이 있었다. 아직 싸운 적은 없지만 틀림없이 저것은 60층의 보스몹이었다. ‘보스몹을 길들였다는 건가? 터무니없는 괴물이군.’ ============================ 작품 후기 ============================ 아직 주인공은 십왕에 비하면 애송이입니다. 아직은 말이죠. 어제의 중복 업로드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제 고의가 아니라 인터넷의 회선 문제였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이빨 무진장 아픔니다. 내일은 시간 내서 치과에 한 번 나가봐야 겠습니다. 56화 정운은 새삼 스럽지만 십왕이라는 자들이 얼마나 괴물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그는 나선 김에 확실하게 도우려고 작정을 한 것일까? 양손에 다시 마법진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도 두 개의 마수가 나타났다. “나와라. 그레이트 타이탄, 데몬 엠페러.” 그러자 한 쪽에서는 펜닐 만큼이나 큰 거대한 거인이, 다른 한쪽에서는 그보다는 작지만 신장 5미터 정도는 될 법한 악마가 나타났다. “그레이트 타이탄? 데몬 엠페러? 저것도 61층과 62층의 보스몹이잖아?” 과연 십왕 서열 4위라는 걸까? 수준이 다른 힘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 손에 거대한 대검을 다른 한손에는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회색 피부의 거한은 위엄있는 얼굴로 드래곤들을 내려봤다. 그리고 길이 10미터는 될 법한 대낫을 소환해서 들고 있는 산양의 뿔을 하고 있는 근육질의 붉은 악마는 자기 혀로 대낫을 핥으면서 드래곤들을 바라봤다. “가랏!!” 한중겸이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명령하자 그대로 그들이 드래곤들을 향해서 공격해 들어갔다. “으아앗!!!” “피햇!! 휘말린다!!” 드래곤들 주변을 알짱 거리면서 싸우고 있던 유저들은 일단 자기 몸을 피하는 것에 주력했다. 그들로서는 이 싸움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대강 파악한 것이다. 콰아앙!!! “우오오오오!!!” 그레이트 타이탄의 일격 한 방에 드래곤 중에 한 마리가 절명해 버렸다. “우오오오!!! 퍼엉!! 그리고 이어서 그레이트 타이탄이 휘두른 방패의 일격에 머리가 두 개인 드래곤의 머리 하나가 터져 버렸다. 그 드래곤의 남은 머리위에는 단번에 레드 크리스탈이 떴다. 펜닐 역시 다른 드래곤의 머리를 잡아서 그대로 호두를 깨버리듯이 짓 뭉게 버렸다. 그리고 가장 압권은 데몬 엠페러라는 악마 였는데···. 그 악마가 한번 대낫을 휘두를 때마다 드래곤의 몸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흘러나온 피에서 다시 피로 만든 작은 개 정도 크기의 블러디 데몬이 나와서 드래곤들을 갉아 먹어갔다. 마치 쥐 때에 갉아 먹혀가는 코끼리를 보는 것 같은 광경 속에서 악마는 즐겁다는 듯이 괴기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운은 그런 보스몹들의 전투를 보면서 속으로 간담이 서늘해 졌다. “·····위로 가면 갈수록 저런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이제까지 어느정도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 뭉텅이로 깎여 나가는 것 같았다. ‘···아직 멀었어. 클리어를 위해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한참 더 강해져야 해.’ 정운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결국 북벽에 조금 위기가 닥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기서 십왕의 하나인 한중겸의 활약으로 무난하게 넘어 갈 수 있었다. 드디어 내일이면 마지막인 10일째인 것이다. 한편 성벽의 위에서는 어느 한 텐트의 주변을 몇몇 유저들이 똥 마려운 개 마냥 서성거리고 있었다. 바로 십왕으로 알려진 한중겸의 텐트였다. 사실 일반 유저들은 평소에 십왕의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려운게 사실이었다. 그나마 삼대 길드 소속인 6위부터 10위까지는 상대적으로 얼굴이 좀 알려져 있었지만 상위 다섯 명을 확인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그래서 한중겸이 성벽위에서 대충 싸울 때도 다른 유저들은 그걸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한중겸의 정체가 밝혀지자 이제 어떻게 인연이라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다른 유저들이 이렇게 모여 있었다. 그런 유저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중겸은 텐트 밖으로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무시는 건가?” “어떻게 하지? 깨워?” “미쳤냐? 네가 어디 해 봐라.” 유저들이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는 사실 이미 충분히 시끄러웠다. 하지만 한중겸은 깨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때 이미 텐트에 없었으니 말이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란 말이야.” 그 시간에 이미 한중겸은 텐트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돌고 있었다. 다른 유저들이 자신을 만나서 할 얘기라고 해봐야 뻔하다. 어떻게든 조금 묻어 갈 수 있을까? 싶어서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비벼볼 뿐이다. 예전에는 그런 유저들을 몇 명 키워줘 본 적이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키워 본 유저들 대부분이 50층 쯤에서 죽어 버리는 것을 보고는 허무함을 느끼고는 그만 뒀다. ‘어차피 이 게임에서 위로 올라온 녀석들은 위로 올라오게 되 있지. 온실 속 화초 따위는 못 써먹는 거야.’ 그게 한중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개인적으로 요즘 들어서 이 게임에 뛰어드는 놈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영 정이 가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래도 제법 각오와 심지가 굳은 인간들이 들어오는 경우도 빈도가 높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인간 쓰레기 같은 놈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그래서 그는 언제부터인가 단 한명의 유저도 이끌어 주지 않았다. 최상층에서 자신의 레벨업에 주력할 뿐이었다. 그는 몰래 북벽의 위를 돌다가 문득 한 명의 유저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호··, 저 녀석은 낮에 그?’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정운이었다. 성벽을 향해서 필사적으로 달려가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요즘 애들 치고는 그래도 근성이 썩지 않은 인간이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식사중이군. 한 그릇 얻어먹어 볼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정운들에게 다가갔다. 정운은 다른 유저들과 달리 십왕의 한중겸과 별로 연관을 가지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그가 강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에게 뭔가 빌붙어 보려고 행동하는 것은 정운의 스타일이 아니다. 애당초 그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면 삼대길드에 가입해서 조장이라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아니니 정운은 여기서 아리따운 두 미녀들과 미리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메뉴는 스프에 빵, 그리고 간단한 말린 과일들이었다. 냄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세 명은 단란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저택에서 먹었던 것처럼 호화로운 식사는 아니지만 그 누구도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셋이서 이렇게 소박한 식사를 하는 편이 더 취향이었다. 슬기는 스프를 먹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내일은 어떤 몹이 나올까요?” “글쎄? 상황으로 봐서는 이제 마지막 날이니···. 보스몹이 나올 것 같은데 말이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움찔했다. 보스몹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예전에 정운과 자신을 위기에 몰아 넣었던 쉐도우 엘프 킹이 먼저 떠올라서 불안했다. “어떤 보스몹이요?” “그건 그날 가봐야 알지 하지만, 내일은 오늘 이상의 사망자가 나올거야.” “그렇군요····.” 침울해하는 슬기를 보고 정운은 서둘러 말을 바꿨다. “어쩌면 안 그럴지도 모르고, 오늘 십왕이라는 괴물 봤잖아? 아마도 지금까지 힘을 온전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내일이 되면 그 괴물들이 총력을 다 기울일거야. 그럼 어쩌면 금방 끝날지도 모르지.” 하는 말이 참 엉망진창이었다. 논리적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슬기를 안심 시키기 위해서 중구난방으로 떠벌이고 있는 말이니 당연했다. 그런 정운의 말에 대답한 것은 슬기가 아니라 정운의 뒤편으로 접근한 한중겸이었다. “괴물이라니? 그런 소리가 마냥 듣기 좋지 많은 않은걸?”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의 등장에 정운은 순간 크게 놀랐다. “한중겸씨?” “여어··. 괜찮으면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면서 허락도 안 받았는데 자연 스럽게 정운의 옆에 앉았다. 정운은 세레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세레나는 적당히 스프를 덜고 빵을 잘라서 한중겸에게 건냈다. “여기 있습니다.” “오, 고맙군. 이런 아름다운 아가씨가 식사 시중을 들어주는건 오랜만인걸?” 그는 넉살좋게 식사를 받아서 태연하게 먹으면서 말했다. “오늘 낮에 활약하는 것 봤다. 요즘 올라온 애들 치고는 싹이 좀 있더군.” “···칭찬 감사합니다.” “훗, 온지 얼마나 됐지? 10년? 20년?” “이제 4년째가 됩니다.” 정운의 말에 이제까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던 한중겸은 처음으로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 그거 거짓말은 아니겠지?” “제 간이 당신 앞에서 거짓을 말할 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 정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던 한중겸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진짜 같군···. 대단한 걸? 낮에 싸우는 걸 보니 지금 레벨이 70정도는 되 보이던데? 맞나?” “···예. 그 정도 됩니다.” “그렇군. 고작 4년 만에 70레벨이라·····. 놀랍군.” 한중겸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자신이 70레벨에 도달했던 것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 끼어들고 나서도 대략 12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보통 그렇게 되기 전에 죽어나가는 인간들도 부지기수니 그것도 대단하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고작 4년 만에 70대의 레벨에 도달하다니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일종의 천재라는 건가?’ 한중겸은 정운의 재능을 인정했다. 재능이라는 것은 그 종류가 하늘에 별 만큼 많은 법이다. 공부, 체력, 예술. 이렇게 간단하게 나눌 수 있는게 아니다. 공부 안에서도 물리학, 의학, 경제학 등등 여러 가지 분야가 나뉘는 것처럼 수많은 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재능을 들어낸다. 심지어 도박이나 싸움 같은 것을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타고나서 잘하는 자들이 종종 있다. 그런 것처럼 눈앞에 있는 박정운이라는 남자는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위로 올라가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능력,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과감성, 그리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꼭 따라야 하는 운까지··.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자만이 위로 올라오는게 가능한 것이다. ‘뭐, 앞으로 살아남을지 안 남을지는 봐야 아는 거지만 말이야. 그래도 오랜만에 싹이 보이는 걸?’ 한중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스프를 마셨다. 정운은 그런 그에게 별 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어색한 침묵이 잠깐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슬기가 말했다. “저기··, 그런데 한중겸씨는 레벨이 얼마나 되는 거죠?” 슬기의 말에 정운은 순간 자신도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중겸이라는 남자가 어려워서 직접 물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정운도 궁금했다. 말로만 듣던 십왕의 레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느 정도 정진하면 저들의 수준에 올라 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 175레벨.” “···········.” “···········.” “···········.” 선선하게 대답하는 그의 말을 듣고 주변은 살짝 침묵에 빠져 버렸다. 175레벨이라니··. 지금 정운의 레벨이 73이니까 정운보다 102레벨이나 높다는 말이다. ‘그 정도인건가? 십왕의 서열 4위라는 자리의 힘은····.’ 얼이 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정운에게 한중겸이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것 가르쳐 줄까? 내 위에 있는 인간들 중에 1위 박추성과 2위 배대호, 그 둘은 레벨이 200을 넘는다고 해.”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7화 <한중겸의 과거> 정운이 푸념하듯이 말했다. “····괴물들 맞군요.” “하하하. 어쩌다 보니 말이야.”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호탕하게 웃어 버렸다. 불쾌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보이지 않고 그는 넉살 좋게 스프를 한 국자 더 뜨면서 말했다. “뭐, 별로 놀라운 것은 아니야. 나만 해도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몰라. 원래대로 나이를 먹었다면 지금쯤 고손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일걸? 내 위에 인간들은 더하지.” ‘고손자라니? 도대체 몇 살이란 말인가?’ “실례지만···. 이 게임에 뛰어든 시대라도 알려 주시겠습니까?” “나는···, 1951년인가? 너희들이 6.25전쟁이라고 불리던 시절에 뛰어 들었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전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손자 운운할 정도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정운의 얼굴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한중겸은 웃으면서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 그라운드 제로의 시간은 외부의 세계와의 시간 흐름과 완전히 달라. 아니 여기서는 여기서의 시간 밖에 흐르지 않는다고 봐야 겠군.” “무슨 말씀이죠?” “만약 내가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가면, 그때는 내가 있던 시대로만 돌아간다는 말이고, 너희들은 너희들이 있던 시대로 가고 말이다. 아!! 이건 십왕들 밖에 모르는 고급 정보인데, 뭐 상관없나?” 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고급 정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대로 유출 된다고 해서 크게 소동이 날 소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결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만약, 이탈 아이템을 써서 중간에 게임을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몰라.” 한중겸은 딱 잘라서 말했다. “예전에 딱 한명 이탈 아이템을 써서 밖으로 나간 인간이 있었지. 그러나 그 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몰라.” “딱 한 명···.” “그래. 조선 시대의 인간이라고 했는데 말이야.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과연·····.” 결국 이탈을 쓰는 것은 도박이다. 워낙에 입수하기도 어려운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이탈이 가져올 결과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에··. 있다면 복장 터지는 일이지만 이 게임에서 플레이해서 모은 포인트가 이탈로 인해서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면? 악마들의 목적이 이 게임의 클리어인 이상 이탈의 아이템은 계약의 중도해지. 라는 형태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었다. 즉, 모든게 제로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마도 멀쩡한 형태로 돌려 보내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기억의 소거, 혹은 그라운드 제로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못하도록 기억의 조작이 가해진 후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탈을 썼다가 다시 돌아오는 자가 없는 것일 테고 말이다. “어, 저기···. 그런데 이상한게 있는데요?” 슬기가 그때 한중겸에게 말했다. “뭐냐? 말 해보렴. 아가야.” 한중겸은 슬기를 귀여운 이웃집 어린애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다른 남자들이 슬기를 바라보는 눈빛이 기분 나쁜 정운이기는 했지만 한중겸의 시선에서는 사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괜찮았다. “저기···, 저희는 계약할 때 스마트 폰의 어플로 해서 계약을 하고 왔어요. 그런데 한중겸씨 때라면 스마트폰도 없는데 어떻게···.” 슬기의 말에 한중겸은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아!! 그거? 요즘 애들은 이상한 기계로 계약을 한다고 하더군. 얼마 전에 애들은 TV라는 것으로 계약을 한다고 하기도 했고 말이야. 하여튼 알 수 없는 세상이야.” 한중겸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말했다. “우리 때는 그냥 악마들이 직접 눈앞에 나타났지. 그리고 일대일로 계약을 맺었어. 나만 해도 아군이 고립되고 모두 빨갱이들한테 죽기 직전에 계약을 맺고 이 세계로 왔지.” “계약을 하신 이유가···. 전쟁 때문입니까?”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웃으면서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거 좀 볼래?” “이건···.” 그가 꺼낸 것은 흑백의 꼬질꼬질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여기저기 헤진 곳은 많았지만 그래도 대강 알아볼 만한 구석이 제법 남아있었다. 사진에는 옛날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어둔 것이었다. “이 사진이····. 내가 그라운드 제로에 뛰어든 이유 전부지.” “············.” “식사의 보답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나도 오랜만에 말하고 싶으니 옛날 얘기나 좀 해볼까?” 그는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서 남한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이유? 그거야 그 당시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었다. 북쪽의 김일성이 영웅주의에 미친 병신이라서? 구소련이 뒤에서 도와 줄테니 한 번 해보라고 바람을 넣어서? 세계적 흐름이었던 냉전 시대의 쌓인 감정이 한 번은 터질 때가 되어서? 첫 번째가 가장 유력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유야 알 바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한반도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이고 병신 짓거리였던 동족상간의 전쟁은 그렇게 벌어지고 말았다. 전쟁이 벌어지고 북한은 선빵의 유리함을 앞세워서 준비도 되지 않았던 남한을 낙동강 근처까지 밀어 붙였다. 그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죽고, 피난길에 오르고, 그리고 헤어지고, 또 죽고···. 한반도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렸고 개중에는 아직 어린 소년들도 책 대신에 총을 잡고 전쟁터로 나갔다. 한중겸도 그런 소년병 중에 한 명이었다. 당시 한국은 부강한 나라라고 하기는 좀 어려웠지만 당시 그의 집안은 그래도 밥 굶을 정도는 아닌 그런 평범한 집안이었다. 그런데 6.25가 터지고 그의 아버지가 전쟁터에 가고, 그리고 그의 큰 형과 둘째 형도 전쟁터에 갔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 둘을 전쟁터에 보내면서 어떻게든 막내 하나만은 못 보내겠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애원했고 결국 그는 전쟁터 대신에 어머니를 따라서 봇짐을 메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전쟁의 초반에 남한은 패배 일로를 걸었고, 그는 소식통에 자신의 아버지와 형들이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가족의 죽음을 들었을 때.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던 그의 안에서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증오가 폭발했다. 혈육이 죽으면 핏 값으로 받아낸다. 야만적이고 미개하기까지 한 사고방식이지만 결국 자기 입장이 되면 이성 따위로 억누를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는 홀로 남은 어머니를 뿌리치고 전쟁터로 지원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젊은 피. 아니 어린 피들이 전쟁터에서 이 땅을 붉게 적셨다. 나라를 위해서?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국민으로서의 명예를 다하기 위해서? 이유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 싸워갔고 죽어갔다. 한중겸 역시 전쟁터에서 수많은 피를 뿌리면서 싸워가야 했다. 그리고 전쟁터라는 아비규환 속에서 그는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에 가까운 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소위 전우라고 하는 자들이었다. 당시 그의 소대에는 그를 비롯한 십수명의 사람들이 함께 고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당초 소대로 배정되었을 때의 사람 수는 좀 더 많았지만 결국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고··. 그러다 보니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치 친가족이나 다름없는 끈끈한 정이 생겼다. 그러던 소대에 위기가 닥쳤다. 상부의 명령을 받고 척후로 정찰을 갔던 그의 소대가 적들에게 발각되었다. 순식간에 포위된 그의 소대는 적들의 공격을 받고 위기에 빠졌다. 간신히 도망은 쳤지만 이미 그의 소대 전체가 위기에 포위당한 후였다. “소대장님!! 놈들이 주변을 싹 포위 한 것 같습니다.” “······몇 명이나 살아 남았지?” “소대장님 포함해서 여섯 명입니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 어떻게든 도망가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막내는 어디 있지? 살아있나?” 소대장은 한중겸을 불렀다. 당시 한중겸은 총을 다리에 맞아서 절뚝거리고 있었다. “아직 멀쩡합니다.” “····그 다리로 달릴 수 있나?” “달릴 수 있습니다.” 애써 씩씩하게 대답하고 있지만 총 맞은 다리로 사람이 멀쩡하게 달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서 있는것도 용케 하고 있는 상태였다. “막내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소대장님!!” “방해다. 너까지 챙길 수 없어. 여기 기다려.” “소대장님 저도 같이···. 윽!!” 말을 하던 한중겸은 그대로 뒤통수에서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뒤에서 선임이 개머리판으로 뒷목을 쳤던 것이다. “애들이 말 안 들으면 쓰나···. 넌 자라.” 그리고 한중겸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이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덮여서 위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건··. 소대장님!!! 박병장님!!! 김상병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리를 절뚝 거리면서 전우들을 애타게 찾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자신의 동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온몸에 총을 맞고 한 명도 빠짐없이 차가운 주검이 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으····· 으아아아아아!!!!!!” 가족이나 다름 없던 전우들을 잃은 슬픔에 그 순간 한중겸은 미쳐버릴 것처럼 울부 짖었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한눈에 파악 할 수 있었다. 위장되어 있던 자신. 그리고 자신과 한참 떨어져서 죽어있는 전우들··. 사방에 널려있는 총격전의 흔적들···.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전우들이 미끼가 되어서 일부러 싸우면서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 한명은 살았지만 나머지 전우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 집에 가면 자신하고 비슷한 나이대의 여동생이 있으니 살아만 남으면 나중에 소개 시켜 주겠다던 박병장. 전쟁터로 오기 하루 전에 결혼해서 색시가 집에서 기다린다던 김상병. 소대원들 하나하나를 친자식처럼 챙기던 소대장까지···. 모두, 모든 동료들이 죽어 버린 것이다. 이 병신 같은 전쟁 때문에 모두···. 그들 모두 가족이 있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는데··. 그런데 자기 하나만 살고 모두 죽어 버렸다. 한중겸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분노로 미쳐서 짐승처럼 절규하고 있는 그에게 눈앞에 악마가 나타나서 계약을 제시했다고 한다. 당신 한중겸이 원하는 것은 이 전쟁의 원인인 빨갱이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 소원이 쉽게 이뤄 질 수 있을 리 없었다. 원하는 것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한 법이다. 가족을 잃고 가족 같은 전우들도 자기 때문에 죽었지만 그런 업으로도 그의 소원은 다 이룰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뛰어든 것이다. 6.25라는 전쟁의 참극에서 그라운드 제로라는 서바이벌의 참극으로······. “그 후에는···. 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이렇게 고레벨의 유저가 되었지. 그 후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말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대강은 들었다. 이 놈이 잘못 했니, 저 놈이 잘못 했니, 워낙 뒤죽박죽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요약하면 여전히 정치하는 놈들이 지랄 삽질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더라.” “···········.” “···········.” 한중겸의 설명을 다 들은 정운과 슬기는 말을 잃어 버렸다. 지금 한국에도 6.25참전 용사는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감나는 참가자의 얘기를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한중겸씨는 실제로 게임을 클리어하면 돌아가서 자신의 소원을 이룰 겁니까?” 정운의 조심스런 질문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왜? 역사라도 대폭 바뀔까 걱정이냐?” “···········.” 사실 어디서 어떻게 바뀔지 모를게 역사기에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최선의 선택이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역사처럼 예민한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미 흘러간 역사를 바꾼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미래를 최악으로도 바꿀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12시 정각이 아니라 예약아이템을 써서 12시 07분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7분 늦어서 죄송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8화 <비정기 퀘스트의 마지막 전투> “안심해라. 너희들의 미래가 뭔가 크게 바뀌는 일은 없을 거다. 나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독기가 빠져서····. 이제는 원하는 소원도 하나뿐이다.” “···그게 뭡니까?”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남편이 죽고, 자식 셋까지 다 죽고···. 아마도 내 어머니는 한 평생을 한으로 보내셨겠지.” 회한에 젖은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정운보다도 어려 보이는 동안이었지만 실제로는 100살이 훌쩍 넘은 노인이었다. 지금 그의 얼굴에서는 처음으로 세월의 관록이 보이고 있었다. “큰 욕심은 없다. 내가 내 시대로 돌아가면 그냥 우리 어머니 시름이나 조금 덜어주고 싶을 뿐이야. ·····정말 그것 뿐이다.” “···········.” “···········.” “···········.” 한중겸의 인생사를 다 들은 정운과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세레나는 몰라도 정운과 슬기는 나름대로 다른 인간들 보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다.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소원으로 죽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둘 다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그라운드 제로에 널리고 널린 다른 쓰레기 같은 인간들 보다는 나름 깨끗한 이유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한중겸이라는 남자와는 무게가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분노, 회한, 후회. 수많은 감정의 풍파가 오랜 세월에 거쳐서 깎아온 완성품이 바로 이 남자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뭐, 요즘 애들 치고는 행동이 천박하지 않고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서 오랜만에 옛날 얘기를 좀 했군. 그럼 박정운이라고 했나?” “예····.” “밥 잘 먹었네. 이건 보답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서 정운에게 던져줬다. “이건····?” “난 필요 없는 거라서, 말 타고 싸우는 자들에게는 필요할 거야.” 그리고는 그는 태연하게 뒤를 돌아서 가 버렸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놈을 만났어. 저 놈은 위로 올라 올거야.’ 대화를 하기 전에는 반신반의였다. 하지만 자신의 얘기를 듣고도 흔들림 없는 눈을 하고 있는 정운을 보고는 그 반신반의가 확신으로 바뀌었다. 정운은 언젠가 자신의 위치까지 올라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뒤에 남은 정운은 얼떨결에 그가 준 아이템을 확인해 봤다. 그가 던져준 것은 말에게 걸치는 마갑이었다. 마갑은 마갑이지만 평범한 마갑이 아니었다. 흑룡의 마갑. 방어력 : 700 무게 : 20 내구력 : 100 [철 대신에 흑룡의 비늘을 역어서 만든 마갑. 막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마법 공격에 강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다.] “말 전용 아이템? 이거 찾기 어려웠는데···.” 정운은 본인의 아이템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해 왔지만 흑토의 아이템은 좀처럼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 전용의 아이템이라는게 상점에서는 종류가 워낙에 적었고···. 그리고 만들려고 하니 필요한 아이템이 워낙에 많았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박의 아이템을 얻을 줄은 몰랐다. “방어력이 700이라니.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갑옷하고 같은 방어력이잖아? 그리고 모든 마법 공격에 강한 저항력이라니?” 정운은 이런 선물을 공짜로 받아도 되는지 약간 부담 스러울 정도였다. “그냥 받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스터.” 그때 세레나가 정운에게 물건을 받기를 바랬다. “그래도 될까? 의외네. 세레나는 이런 호의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소인배들이 실익을 따지면서 건네는 물건은 받아도 꺼림칙합니다. 하지만 저 남자는 나름 투명한 영혼을 하고 있습니다. 저런 자의 호의라면 그냥 순수한 호의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역으로 실례입니다.” 세레나의 말을 들은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예전부터 있었으면 하는 아이템이기도 했으니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토에게 흑룡의 마갑을 입혔다. 전신에 매끈한 칠흑빛 찰갑을 걸치고 머리 부분에는 일각의 검은 뿔까지 있었다. 이렇게 있어보니 마치 유니콘의 블랙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어머? 흑토 완전 멋져졌는데요?” “그것만이 아니지. 이제 내가 타고 갔을때의 방어력도 대폭 올랐을 거야.” “좋군요.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퀘스트 최종전을 하루 눈앞에 두고 정운은 뜻하지 않은 전력 강화를 얻었다. ‘이제 내일만 무사히 넘기면 적어도 이 퀘스트에서 손해 본 것은 없는 거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일을 기다렸다. 쿵!!!!!! 쿵!!!!!! 쿵!!!!!!! “·······돌겠군. 사람 돌게 하고 있어.” 정운은 멀리서 다가오는 10일째의 마지막 몹을 보고 쓰게 중얼 거렸다. 멀리서 오고 있는 몹의 종류는 처음 보는 몹이었다. 다만, 한 걸음 한 걸음 지축을 울리면서 다가오고 있는 그 몹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언 듯 보면 거북이와 비슷했지만 머리는 두 개였고 꼬리는 뱀으로 되어 있었다. “현무, 저거 현무 아닌가?” “잠깐, 현무라면···. 이거 혹시···?” 성벽위의 사람들은 동시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저 보스몹이 현무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면···. 그렇다면····? “끼이이이이이!!!!” “크아아아아아앙!!!!” “크르르르····.” 현무의 뒤편에서 다른 몹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신을 붉은 깃털로 뒤덮은 커다란 괴조. 현무에지지 않는 거대한 체격의 백호. 하늘에서 여의주를 물고 나타난 커다란 동방의 용까지···. “현무, 주작, 백호, 청룡이라···. 화려하게 하자 이거군.” 아무래도 저것들이 이번 퀘스트의 최종 보스몹인 것 같았다. 9일째에 공격해 왔던 드래곤들 정도는 한입에 씹어 버리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커다란 덩치를 하고 있는 저 사방신들이 이번 퀘스트의 보스몹인 것이다. “정운씨. 어떻게 하죠?” 슬기의 말에 정운은 망설였다. 사실 전날의 드래곤과 싸우면서 50레벨 이하의 유저들 보고 빠지라고 한 것은 그 이하의 유저들은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으로 자신들이 빠져야 할 것 같았다. 저기 보이는 사신이라는 것들은 십왕 정도의 레벨이 아니면 절대로 상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한 마리라면 모를까? 무려 네 마리다. 십왕들이 분산될 것이 뻔했고 그들로서도 조력은 필요할 것이다. 성벽 밑에 있는 하위급 유저들로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최소한 70레벨 이상 정도는 되어야 어느정도 십왕의 서포트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운은 결심하고 슬기에게 말했다. “난 싸울 거야. 슬기 넌 세레나하고 어딘가로 피해 있어. 성벽의 위가 오히려 표적이 되는 만큼 위험할 거야. 필드 어딘가에서 멀찍하게 떨어져 있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흑토를 소환했다. “정운씨···. 무리하는 것 아니죠?” 슬기가 정운의 손을 덥썩 잡으면서 말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내가 주력도 아니니까···. 들러리 열심히 하고 올게.” “·············.” 그래도 슬기는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향해서 말했다. “안심 하라니까? 난 꼭 돌아온···.” 정운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말을 마치기 이 전에 슬기의 양팔이 정운의 목에 감기더니 그대로 정운의 입술에 키스해 버렸기 때문이다. “··········.” “··········.” 둘 사이에 일어난 두 번째 키스. 단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슬기가 먼저 했다. 그녀는 정운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자신의 혀로 정운의 입안을 살짝 터치했다. 마치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하기는 해야 했고, 그래서 망설이는 그런 느낌? 슬기의 그런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느낌의 키스에 정운을 얼이 빠질 정도로 행복감을 느꼈다. 테크닉? 미모? 그런것 하고는 별 상관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입술 보다 더 황홀한 키스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녀는 어설프지만 길었던 키스 이후에 입술을 땠다. 둘의 사이에 타액이 살짝 늘어졌고 슬기는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정운에게 말했다. 나름 용기를 쥐어 짜주기 위해서라는 듯이 필사적으로 생각한 듯한 그 말을···. “돌··· 돌아오면···. 이거 다음에 하는 것 해 줄게요.” “·····꼭 돌아올게.” 정운으로서는 다시없을 만큼 기쁜 일이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몇몇 자기 능력에 자신 있는 유저들이 앞으로 나섰다. 전날의 드래곤을 상대하던 것의 반 정도 되는 숫자였는데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참가하지 않은 인간들이 몇몇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름대로 큰 전력이 증강되었으니 말이다. “펜닐, 그레이트 타이탄, 데몬 엠페러.” 쿵!! 쿵쿵!! 하늘에서 어제 봤던 세 마리의 소환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세 마리의 소환수는 커다란 백호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한중겸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한중겸 뿐만이 아니었다. 삼대 길드가 없는 이 지역이 약점이락 생각한 것일까? 이 북벽에는 십왕 중에 세 명이 끼어든 것 같았다. “미티어 샤워!!!” 성벽 위에서 누군가가 화살을 쐈다. 그러자 그 화살이 수백, 수천 개로 분열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공군이 융단 폭격을 하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공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앙!!!” 백호는 거대한 공격을 맞고는 거칠게 포효했다.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놈의 덩치를 생각하면 코끼리가 바늘 수천 개에 찔린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백호가 워낙에 거대하고 강력한 몹이라서 그런 것이고···. 공격 자체는 어마어마하게 강렬했다. 궁수 중에서 저런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십왕 중에서도 5위인 윤정철 이라는 유저 말고는 짐작가는 사람이 없었다. 순수하게 궁수 계열의 유저 중에서 최강의 클래스에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것도 아니었다. “실피드, 이프리트!!” 하늘에서 로브를 걸치고 있는 누군가가 하늘에서 정령을 소환했다. 직업 클래스 자체가 유니크라고 불리는 정령술. 그 중에서도 정령왕 클래스를 둘이나 동시에 소환 할 수 있는 것은 한명 밖에는 없다. “저 사람이 십왕중에 서열 3위인 이민지인가?” 정운은 하늘에 떠있는 그녀를 보고 감탄했다. 직업은 정령사. 성별은 여성. 이렇게 밖에는 드러난 사실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따라오는 다른 수식어가 하나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 최강의 여성 유저. 그게 바로 그녀였다. ============================ 작품 후기 ============================ 이 소설이 몇 화까지 갈까?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궁의 들개들' 만큼 연재하라는 분들도 계시고, 심지어는 '철혈독보행'만큼 연재하라는 분도 계십니다. 참고로 조아라 소설에서 25화 정도면 소설 1권입니다.^^;;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 길어지기 위해서는 저의 끈기뿐만 아니라 독자 분들의 꾸준한 사랑도 필수라는 것을 당부 드리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59화 정운은 마음을 바로 잡았다. “십왕중에 서열 3,4,5위가 모두 한 자리에 있다면··. 충분히 할 만하지.” “나도 힘 좀 내볼까?” 여기저기서 유저들이 힘을 내서는 거대한 백호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크허어엉!!!” “받아랏!!!” “죽어라. 이 고양이 새끼야!!!” 다른 사신수 중에 백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마리는 다른 성벽으로 달려갔다. 여기 있는 백호만 잡아내면 일단 할당량은 되는 셈이다. 다른 곳이 뚫리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뭐, 지금 거기 걱정 해 봐도 아무 소용없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흑토를 타고 백호의 주변을 빙 돌면서 달렸다. 놈의 공격 패턴을 모르는 이상 섣불리 접근하거나 정면에 서는 것은 위험하다. 측면을 빙글빙글 돌면서 화살로 공격하는 가장 안전했다. 백호는 유저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만 있었다. 아직까지 거의 공격을 하지 않고 웅크리고만 있었다. “크르르르······.” 그러나 백호가 웅크리던 몸을 갑자기 움직이자 상황이 한 번에 변했다. “커허어엉!!!” 촤아아아아악!!!! 백호가 포효와 함께 움직인 순간···.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몰랐지만 그 순간에 놈을 감싸고 있던 정령과 소환수 중에 둘이 동시에 나가 떨어졌다. 불꽃의 정령와 이프리트는 그대로 사라졌고, 그레이트 타이탄도 허리에 커다란 구멍이 나서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망할···. 저거 또 잡으려면 얼마나 힘든데···.” 한중겸의 능력은 어떤 보스몹이든 일다 제압하면 그대로 자신의 소환수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이다. 하지만 그 소환수가 죽으면 끝이다. 다시 소환하기 위해서는 그 소환수를 잡아서 끌고 와야 했다. “그나저나···· 61층의 보스몹을 한 방에 날려? 저거 생각보다 훨씬 위험 하겠는걸?” 한중겸은 이번 퀘스트를 몹시 조심해서 플레이 해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큭···. 절대 정면에 서지 마!!!” “옆으로 돌아 옆으로!!!” 상대적으로 익숙한 듯한 십왕들과 달리 대치하고 있던 유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방금 백호의 일격에 열 명 가까운 유저들이 사망했다. 직접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다. 그저 백호의 공격의 사정권에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고위급 유저들 십여명이 한방에 죽어나간 것이다. 덩치만 크고 얌전한 몹? 당치도 않다. 저건 소름끼치는 스피드와 동시에 절대적인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몹이었다. 그레이트 타이탄을 한방에 절명 시켰다는 것은 어떤 유저든 한방이면 끝장이라는 것이다. “공격 패턴이 저것 하나 뿐이라면 좀 낫겠지만···. 제길, 그럴 일은 없겠지?” 정운의 혼잣말은 여기 있는 유저들의 모든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콘솔!!!” “삐이이이이이!!!!” 성벽 위에 있던 원거리 공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윤정철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탈 것을 불렀다. 거대한 독수리인 콘술은 영수의 일종 같았다. 날개 길이를 다 펴면 길이가 2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크기였다. 성벽 위에서 고정된 포대 역할을 하는 것은 위허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그대로 독수리 형태의 영수의 위에 올라타서 하늘로 날아갔다. “벌집으로 만들어주지.” 그는 이를 갈면서 호라에 화살을 한움쿰 집어서 그대로 당겼다. 퍼퍼퍼펑!!!! 수십발의 화살의 폭격은 이제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크하아아아앙!!!!” 백호는 거칠게 포효하고 앞발을 휘둘렀다. “커억!!” “아아악!!!” 아까전의 돌격 공격 만큼의 강력함은 없었지만 그 공격 한방만으로도 상당한 숫자의 유저들이 체력이 바닥 직전까지 떨어졌다. “당한 놈들은 뒤로 꺼져!! 방해다!!!”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백호는 거칠게 날뛰고 있었고 그런 백호를 십왕들은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었지만 여파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마치 전쟁터, 아니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간 천재지변의 현장 같았다. “크허어엉!!!” 백호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때는 주변의 유저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냥 울림이 아니라 공기의 진동으로 이용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어떤 기술 같았다. 유저들은 전신이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움직임에 강한 저항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이에 백호의 공격이 날아왔다. 후우웅!!! “크윽!!” 백호의 앞발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을 보고 정운은 즉시 흑토의 고삐를 당겨서 측면으로 피했다. 백호의 공격은 순간 정운과 흑토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대미지를 주었다. “괴물 같은 놈이군····. 아니 어차피 괴물인가?” 흑토의 방어력이 대폭적으로 올라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의 반 정도고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함부로 유니크 스킬을 쓸 수도 없고···.” 정운의 유니크 스킬중에 기공술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끝장을 볼 순간이 아니면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카하앙!!!!” 한중겸의 소환수인 펜닐이 기회를 잡았다는 것처럼 백호의 등 뒤에 올라타서 그대로 목덜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커허엉!!” 백호는 자기 덩치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펜닐의 공격에 가소롭다는 듯이 거칠게 몸을 털어서 놈을 털어냈다. 찌이익!!!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백호의 목덜미가 왕창 찢어졌다. 그리고 거기를 놓치지 않고 다른 공격이 끼어들었다. “우오오오오!!!” 거대한 골렘 같이 만들어진 땅의 정령왕 노아스의 커다란 주먹이 그 상처 부위를 후려쳤다. 콰앙!! “크르르··· 카아앙!!!” 잠시 대미지를 입고 휘청 거린 백호는 아직 멀쩡하다는 듯이 거칠게 울부 짖으면서 공격했다. 그대로 땅의 정령왕에게 거칠게 부딪혀서 그 거대한 몸을 무너트렸다. 쿠우웅!! 바닥에 쓰러진 노아스의 몸은 몇조각으로 부서졌다. 하지만 정령왕들은 소환사인 정령사의 정신력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재생했다. 실제로 노아스의 몸은 점토처럼 다시 뭉치더니 그 몸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했다. “크르르····.” 백호는 그런 노아스를 보고 다시 어금니를 드러내면서 으르렁 거렸다. 비슷한 소환계열의 유저이지만···. 정령을 다루는 이민지와 몹을 직접 소환수로 다루는 한중겸의 차이가 그것이었다. 아마도 둘의 서열이 한 단계 차이가 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이민지는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땅의 정령와 노아스, 물의 정령왕 엘라임까지····, 사대 정령의 정령왕을 모두 소환해서 싸우고 있었다. 실제로 백호를 상대로는 그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일단 어그로를 끌 수 있는게 그녀 한명 뿐이라고 봐야 했다. 나머지 유저들은 조금이라도 더 대미지를 주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이미 상위권 유저들 중에 사망자의 숫자가 20명이 넘었다. 요 몇 년 사이에 상위권 유저가 단체로 이렇게 많이 사망한 퀘스트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성벽위의 유저들은 원거리 공격으로 간신히 엄호를 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그 힘은 빈약했다. 백호의 움직임이 워낙에 빨라서 제대로 공격하기도 힘들었고 만에 하나 성벽 쪽으로 어그로가 튈까봐 무서워서 공격을 못하는 유저들도 상당수 있었다. 쿠웅!! 그때 동벽 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현무모양을 하고 있는 보스몹이 쓰러졌다. “와아아!!!” “해 냈다!!!” “배대호 만세!!!!” 그쪽에서 들리는 이름인 배대호는 십왕중에서도 2위에 랭크되어 있는 남자였다. 아마도 그를 주축으로 해서 현무를 쓰러트리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다. “칫, 이쪽도 이대로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 소리를 듣고 자극을 받았던 걸까? 이민지는 소환했던 정령들을 더욱더 크게 만들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이다. “가랏!!” 그녀가 손을 내리며 명령하자 백호보다 훨씬 더 거대해진 정령들이 단체로 백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쿠르릉!!! 콰르르릉!!!! 마치 산사태와 태풍과 지진과 천둥이 동시에 울리면 이런 굉음이 나는걸까? 정령왕들의 전력 전투는 마치 자연재해의 종합선물 세트 같았ㄷㆍ. “카하아앙!!!” 백호는 물의 채찍과 대지의 창, 불의 검, 바람의 칼날을 맞으면서 거칠게 포효했다. 놈도 정령왕들에게지지 않고 거칠게 반항했다. 하지만 역시 정령왕 넷을 상대로는 열세를 모면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백호의 머리 위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떴다. “좋아. 바닥이 보이는 군. 이쪽도 총력전이다. 나와라. 자이언트 스네이크!!” 한중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환수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소환수를 꺼냈다. 자이언트 스네이크. 그 길이가 도대체 몇 미터인지 파악하기도 힘든 거대한 뱀이 나타나서 그대로 백호의 몸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63층의 보스몹으로서 지금 한중겸이 가지고 있는 소환수들 중에는 가장 강력한 놈이었다. “샤아아아!!!”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두깨만 해도 수십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 거대한 몸뚱아리로 거대한 백호를 꽁꽁 구속했다. 그리고 그 큰 입을 쩍 벌리더니 그대로 백호의 목줄기를 물어 버렸다. 물린 부분에서 보라색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나는 것을 봐서는 독을 주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카하앙!!!” 백호는 몸을 뒹굴면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지만 자이언트 스네이크의 구속력이 너무 강했다. 아마도 단순한 구속을 넘어서 주입중인 독이 뭔가 디버프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정운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였다. “저건? 그렇구나···. 뇌신!! 아스트랄 소드!!!” 정운은 꼼짝달싹 못하는 백호를 보고 자신의 총력을 모두 끌어 올렸다. 유니크 스킬을 모두 개방한 것도 모자라서 유니크 아이템에서 최근에 익힌 기술까지 더했다. “쉐도우 아머.” 그러자 정운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스멀거리면서 올라와서 정운과 함께 흑토까지 꽁꽁 무장시켰다. 마치 SF영화의 히어로 같은 모습이 된 정운을 척 보기에도 엄청 강해져 보였다. 그림자의 망토가 레벨이 4가 되면서 익힌 기술이 바로 이 쉐도우 아머였다. 자신의 그림자를 전신에 두르고 공격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올렸다. “으아아아아아!!!!” “히히힝!!!” 정운은 그 상태로 거침없이 백호에게 돌격했다. 콰앙!!! 촤촤촤촤촥!!! 정운의 기마 돌격이 백호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아스트랄 소드가 놈의 전신을 난자해 갔다. 그런 정운을 보고 한중겸은 피식 웃었다. “센스가 좋은 놈이라니까···. 다른 녀석도 뭐해!!? 빨리 썰어!!!” 한중겸의 호령에 다른 상위급 유저들은 머뭇머뭇 망설였다. 이제까지 최대한 떨어져서 원거리 공격 위주로 싸웠는데 이제 와서 저렇게 근거리에서 닥돌을 하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그들은 정운이 너무 모무 하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중겸은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놈들··. 평생 50층 대에서 놀고 있어라.” 지금 한중겸이 가장 아끼는 비장의 소환수까지 꺼내서 적을 제압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원래 보스몹이라는 것들은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면 비장의 기술을 쓰기 마련이다. 위기가 닥치면 한 번 더 거하게 발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발악 이라는게 참 만만치가 않다. 특히 이번의 백호처럼 사전에 정보도 없는 몹을 상대로는 더욱더 그렇다. 그러니 십왕급 정도 되면 그 타이밍에 선두를 쳐서 적이 아예 위급시에 발동하는 스킬을 막아 버리려고 시도한다. 경험치와 발상의 스케일이 다른 것이다. 스킬을 막는게 아니라 사전에 봉쇄해 버린다. 듣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것은 아니었다. 십왕 정도 되니까 할 수 있는 시도인 것이다. ============================ 작품 후기 ============================ 500화? 1,000화? 거기까지 연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재미있게 연재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악마의 게임이 어디까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까지 제 작품중에 최고 장기작이 될 거라고 대강 예상은 하고 있습니다. 일단 작품 자체를 1부, 2부로 나눠서 제작할 생각이기 때문에... 1부의 엔딩은 대강 정해져 있기도 합니다. 다만 1부와 2부의 사이에는 상당한 휴식기가 있겠지만요. 아마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을 먼저 올리고 그 다음에 악마의 게임 2부가 올라갈 겁니다. 사실 작품을 여러개 준비하는게 정말 큰일이기는 합니다. 지금 잠정 휴재중인 '마왕이 될 테다.' '구원의 낙일.' '끝장난 세계의 히어로.' 그거 절대로 그냥 끝내지는 않습니다. 특히 마왕이 될 테다는 약간만 분량 더 쌓이면 다시 한 단락 정도는 연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올해 안에는 연재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항상 최고를 드리지는 못해도 최선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 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60화 <퀘스트의 보상> 지금 자이언트 스네이크에게 꽁꽁 묶여 있기는 하지만 오래 묶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백호는 지금 스킬을 쓰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서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 즉, 백호의 집중력이 자이언트 스네이크에 집중된 지금이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근거리에서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딜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미리 설명을 듣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런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끼어들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위로 올라갈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상위급 유저 중에 정운이 가장 먼저 움직였고, 정운이 30여초가 넘게 썰고 또 썰고를 반복하는 것을 보이자···. 그제야 다른 유저들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움직였다. “으아아앗!!!” “받아랏!!!” 퍼퍼퍼펑!!! 백호의 전신에 유니크 스킬과 강력한 공격들이 작렬했다. 상위급 유저들이 한꺼번에 방어는 신경 쓰지 않고 극딜만 하니 아무리 거대한 보스몹이라도 대미지가 없으면 거짓말이다. 거기다 더해서···. “이걸로 끝이다···.” 하늘의 위에서 거대한 독수리 위에 누군가를 중심으로 황금색 전류가 방전하고 있었다. 십왕 중에서 5위에 있는 궁수인 윤정철이 큰 것 한 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저 녀석 이제 다 된 모양이군.” 한중겸은 슬쩍 중얼 거렸다. 십왕중에 서열은 5위지만 사실상 한 방의 파괴력만 본다면 3위 아니면 2위일 것이다. 그게 윤정철이었다. 정운의 관통사도 5분간 힘을 모아서 발사하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 처럼··. 궁수들 중에는 힘을 모아서 강력한 한방을 발사가능한 유저들이 있었다. 윤정철의 저 스킬은 그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기술이었다. 제대로 맞기만 하면 60층대의 보스몹이라고 해도 단 한방에 레드 크리스탈까지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 “가랏!!! 레퀴엠 샷!!!” 현존하는 그라운드 제로의 궁수들의 기술 중에서 최대의 파워를 자랑하는 기술이 작렬했다. 비록 충전 시간이 10분이나 들기는 하고, 한번 쏘면 사용자의 체력을 절반이나 소비하지만···. 그래도 그 파괴력은 그런 수고를 충분히 감수할만 하게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커허어어어엉!!!” 화살이 백호에게 맞는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유저들이 낙엽처럼 주변에 날라갔다. 퀘스트 중이기에 같은 파티원인 윤정철의 공격이 유저들에게 대미지를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공격의 여파인 후폭풍 만으로도 상위급 유저들이 낙엽처럼 날아가 버린 것이다. “크윽···. 십왕은 다 괴물인가?”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 다섯 개를 전면에 울타리처럼 세워서 날아가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에 마치 원폭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버섯 구름이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백호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크···. 크르르르···.” 놀랍게도 백호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레퀴엠 샷이라는 거대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공격을 맞고도 여전히 체력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마도 아주 작은 체력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자이언트 스네이크의 구속이 풀려서 놈은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다. 입에서 거대한 빛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게 척봐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를 이용해서 그대로 백호에게 마지막 공격을 날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이미 자이언트 스네이크의 구속은 풀렸다. 백호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으면 정운은 100% 사망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저 스킬을 멈추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한 정운은 정신없이 몸을 날렸다. 퍼어엉!!! 정운의 창날과 아스트랄 소드의 공격이 스킬을 쓰기 직전의 백호의 안면에 적중했다. 그리고 백호의 시선이 정운에게 돌아간 그 순간···. “쿠···· 우으으으····.” 그 거대한 덩치가 옆으로 쿵, 하고 쓰러져 버렸다. 머리위에 레드 크리스탈도 사라진 것을 보니 이제야 쓰러진 것이다. “후우···. 하아아···. 살았다.” 정운은 간신히 한 발의 차이로 살아 남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잘못하면 슬기도 세레나도 다시는 보지 못할 뻔 했다. “정말 구사일생이었어.” 띠리링!! 그때 정운에게 알림창이 떴다. [퀘스트 최종 보스중에 하나인 백호에게 최후의 대미지를 가했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백호의 가죽 X 5를 얻었습니다.] [백호의 어금니 X 2를 얻었습니다.] [백호의 내단 X 1을 얻었습니다.] [스킬 합성북을 손에 넣으셨습니다.] “····어····? 이걸 어쩌지?” 아무래도 이 백호라는 퀘스트 보스몹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자에게 막대한 보상을 주는 몹이었던 모양이다.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를 플레이하면서 수많은 대박을 터트렸다. 물론 그 대박 이라는게 거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서바이벌 게임에서 대박이란 리스크를 무릅쓰고 도박을 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역대 최고급의 보상을 손에 넣었다. 어마어마한 경험치가 들어와서 레벨만 해도 바로 80으로 올랐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백호의 소재 아이템들에··, 스킬 합성북이란 또 뭐란 말인가? 상위급 유저인 정운으로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보상이 주어진 것이다. 너무나 어마어마한 보상에 정운은 스스로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다 떠나서 레벨 80이라니···. 아직 그 레벨에 가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운은 확신했다. 아마도 이번 퀘스트에서 가장 큰 보상을 손에 넣은게 자신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정운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나머지 사신수인 청룡과 주작이 죽었고···.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단체 퀘스트는 끝이 났다. “············.” “············.” “············.” 지금 정운의 눈앞에는 로브를 깊숙하게 눌러쓰고 얼굴에는 하얀색 가면까지 쓰고 있는 여성과, 그리고 어깨에 활을 메고 머리에는 독수리의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와, 그리고 언 듯 보면 상당히 어린 10대 중반으로만 보이는 어린 청년이 있었다. 뭐, 생김새의 설명이 좀 장황했지만····. 이들 세 명의 이름은 십왕의 3위 이민지, 4위인 한중겸, 그리고 5위인 윤정철이었다. 이들은 퀘스트 이후 지금 정운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찾아온 내용은 다름 아니라 정운이 막판에 받은 어마어마한 내용의 보상 때문이었다. “크흠····. 차는 입에 맞으십니까?” 정운은 평소에 다른 유저들 대하는 것 답지 않게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정운이라고 해도 십왕 세 명을 눈앞에 두고 다른 유저들 대하듯이 막 대할 수는 없었다. “차 마시자고 온 것은 아니지.” “나도 그래요.” 그런 정운의 말에 윤정철과 이민지는 살짝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하하··, 둘 다 너무 까칠하게 나가지는 말지? 좋게 좋게 봐 주라고.” 그나마 이 둘과 달리 정운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한중겸이 분위기를 약간이나마 환기 시키고 있었다. 퀘스트 이후···. 살아남은 유저들은 모두들 자신의 공적에 걸 맞는 큰 경험치와 골드, 아이템 등으로 보상을 받았다. 이번 퀘스트로 사망자가 상당히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그라운드 제로의 전체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보상은 후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신수에게 마지막으로 강력한 공격을 먹인 유저에게는 막대한 보상이 돌아간다는 것이 알려졌다. 주작, 현무, 청룡의 경우는 마지막 읽격을 먹인 사람이 십왕이었으니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가장 큰 대미지를 입힌 자들이었고, 마지막 일격을 먹이고 특별 보상을 모두 독점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까? 문제는 북벽의 백호였다. 그 백호를 공격해서 쓰러트린 것은 다름 아닌 십왕 이외의 유저. 즉, 정운이었다. 자신이 마지막 일격을 꽂았다고 생각한 윤정철은 상당한 허탈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보상은 상대에게 돌아가 버린 것을···. 그런 그가 지금 이렇게 정운의 앞에 온 것은 다름 아니라 거래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들어간 경험치에 관해서는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나한테는 1레벨이나 오를까? 말까한 경험치야. 대신에···. 잡아서 들어온 재료 아이템을 내가 거래하고 싶다.” “백호의 재료 아이템을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너에게는 아직 별 필요 없는 것일거야? 안 그런가?” “·········.” 확실히 윤정철의 말대로였다. 정운도 그 아이템을 가지고 상점에 가서 이것으로 제작 가능한 아이템이 뭔지 감정해 봤지만···. 상점에서는 제작 불가라는 말만 떴다. 백호의 내단은 한 번 먹어보려고 했는데 괜히 탈 날 것 같아서 그만 뒀다. 무협지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처럼 주화입마 같은 것이라고 걸리면 만사가 허사니까 말이다. “···확실히. 저는 그 아이템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수는 없습니다.” “흠, 보기보다 배짱 있군. 내 앞에서 그런 말 하는 놈은 오랜만인데 말이야.”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죠.” 정운은 십왕의 일인인 윤정철을 상대로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해서 마냥 비굴하게 나갈 수는 없다. 물론 백호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인 것은 주워 먹은 것이다 다름없다. 그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주워 먹기도 정운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워서 얻은 보상인 것이다. 자신이 목숨 걸고 얻은 보상이라면 거기에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어야 했다. 거기에 양보를 하다가는 호구, 아니 호구 이전에 그냥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 숨쉴 가치가 없는 부적응자일 뿐이다. “····좋다. 뭘 원하지?” “전 이 아이템들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원하시는 분들의 양심에 그 대가를 맡기겠습니다.” 정운이 말을 하자 먼저 입을 연 것은 이민지였다. “보상으로 들어온 것은 가죽과 어금니, 그리고 내단이지?” 그녀의 얼굴은 가면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 자체로는 상당한 미성으로 들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죽 다섯 개, 어금니 두 개, 그리고 내단 하나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다해서····. 5억 골드에 사지.” “·············뭐라고요?” “왜 적은가?” “아니··. 아닙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금액이 나와서 정운은 순간 되려 당황해 버렸다. 정운으로서는 설마하니 그 정도의 가격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민지 누님이 5억 골드면, 난 7억 내지.” 거기에 뒤지지 않고 윤정철도 끼어 들었다. 거기에 이민지는 슬쩍 윤정철을 보다가 말했다. “8억.” “난 10억.” “············.” “············.” 한발 늦게 뛰어든 한중겸을 향해서 윤정철과 이민지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왜? 나 여기서 빠진다고는 안 했어. 안 그래?”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가격을 올렸다. “누가 말려···. 11억.” “난 13···.” “잠시만요···. 잠시만 멈춰 주시겠습니까?”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오고가자 정운은 일단 셋을 멈추고 끼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절 놀리시는 겁니까? 아니면 실제로 그 정도의 금액이 있는 겁니까?”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아직 모르지?” “···뭘 말입니까?” “나중에 자네도 상층부로 가보게. 그럼 억 단위의 돈도 아주 흔하게 거래되고 있을테니?” ============================ 작품 후기 ============================ 노는 물이.. 클래스가 다르다. 아직은.....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61화 한중겸의 말에 정운이 되물었다. “상층부?” “미클리어 상태인 최상층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유저들만이 활동하는 거주구지. 우리 십왕들이 어째서 평소에 보기 힘든지 알고 있나?” “그거야 여러분들 저택이 워낙에 크고, 그리고 주변에 사유지도 있으니····.” “그것도 그렇지. 저택 안에 개인 포탈 포인트도 있고 말이야.” “저도 사려고 했지만 너무 비싸더군요.” “뭐,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우리를 보기 힘든 것도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우리가 상점에 가는 것도 한 번 본적 없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 한 적 없나?” “·······그건·····.” 정운은 그제야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NPC 메이드나 집사를 시키면 직접 생필품을 사러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템 같은 것은 자신이 직접 사용하는 것이니 보고 사는게 보통일 텐데···. 그런데 어째서 상점에서는 한 번도 십왕들을 본적 없는 것일까? 정운의 깨름칙한 표정을 보고 한중겸이 웃으면서 말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여기 안살아. 따로 우리들의 상층부에 살지. 여기에도 일단 집은 있고 가끔 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가 우리 주 거주지는 아니지.”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도 말을 이었다. “참고로, 지금 네가 손에 넣은 재료 아이템도 상층부의 상점이 아니면 가공이 불가능한 아이템이다. 그러니 그냥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좋아. 아니면 네가 최상층까지 올라올 때까지 가지고 있을 건가? 한참 걸릴 걸?” “············.” 확실히 그녀의 말 대로였다. 가지고 있어봐야 그림의 떡. 필요한 사람들이 제값을 쳐준다고 하면 넘기는 것이 이득이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에게 넘기느냐? 라는 것이다. ‘자칫 잘못 하면 피박 쓰겠지?’ 정운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이 셋 중에서 가장 친분이 있고 믿음이 있는 것은 한중겸이었다. 하지만 그와도 그렇게 인연이 깊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다른 둘 보다는 좀 더 낫다. 라고 말 할 정도일 뿐이다. 무엇보다 정운으로서는 한 명에게 아이템을 모두 넘겨서 다른 둘에게 앙금을 남기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물건은 넘겨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지금의 저는 쓸 수 없는 물건이니까요. 단.” 정운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최대한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건은 여러분들 모두에게 공동 구매라는 형식으로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분배도 세 분이서 상의하에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셋에게 동시에 넘길 테니까 알아서 우리끼리 분배하라? 슬쩍 발 빼는 타이밍이 예술인데?” 정곡을 찔린 정운이었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대신에 가격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물건이 제 값을 받는 것만큼 이나 십왕 씩이나 되시는 분들과 악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도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정운이 담담하고 정직하게 말하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다른 둘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쩔거야?” 한중겸의 말에 둘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민지가 먼저 말했다. “백호의 내단만 저한테 주신다면 다른 아이템은 제가 양보하죠.” 이민지의 말을 듣고 윤정철이 재빨리 끼어 들었다. “그럼 저는 송곳니로 참도록 하죠.” 둘의 말에 한중겸은 허탈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그럼 난 가죽 뿐인가? 쩝, 늙은이한테 양보를 할 줄 알아야지.” “별로 늙은이처럼 안 보입니다.” “그리고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요.” 둘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었다. “골드는 사실 10억이나 있으면 충분하겠지? 대신에 네가 쓸 만한 아이템으로 주지. 둘 다 안 쓰는 것 있으면 하나씩 내놔 봐.” “안 쓰는 물건이라····.” “어째 갈취 당하는 느낌인걸?” 한중겸의 이민지와 윤정철은 잠시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다가 한 가지씩 물건을 앞에 올려놨다. “전에 싸우는 것 봤는데 활 좀 쓰지? 예전에 내가 쓰던 건데····.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보다는 좋을 거다. 사정이 있어서 안 팔고 가지고 있었던 건데···. 이제 좀 지겨워 졌어.” 윤정철이 내민 아이템은 활이었다. 그 자신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강한 궁수 클래스이다 보니 정운에게 줄 아이템 역시 활이었다. 아이템 자체는 환영이었지만 윤정철이 말하는 사정과 ‘지겹다.’라는 말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 정운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다는 거지? 밤에 귀신이라도 나오나?’ 정운이 고심하고 있을 때 이민지가 말했다. 여전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녀가 작은 보석 상자를 내밀었다. “난 당신에게 줄 것은 별로 없고···. 팀원 중에 마법사가 있다고 했지? 이거 주면 좋아할 거야.” 그리고 이민지는 보석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 아이템은 작은 반지였다. 붉은 루비의 보석이 달려있는 아름다운 반지는 아무래도 메이지 게열의 유저들에게 쓸모 있는 물건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보석 상자에 담아서 주면 프로포즈처럼 오해 받지 않을까?’ 정운은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한편 둘은 자신들이 한 개씩 아이템을 꺼내고는 한중겸을 바라봤다. 마치 말 꺼낸 당신은 왜 아무것도 안 꺼내는 거냐? 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러자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난 이미 준 것 있어? 그렇지?” “···예. 고마운 선물이었죠.” 흑토에게 입힌 새로운 마갑은 정운의 입장에서도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었다. 앞에 있는 두 개의 물건도 옵션을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명색이 십왕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준 물건이다. 옵션을 자세하게 확인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물건일 것이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골드도 10억 골드나 받기로 했고 말이다. “그런. 세 분에게 이 아이템들을 양도하겠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백호의 내단, 어금니, 가죽을 꺼내서 셋에게 넘겼다. “거래는 완료 됐으니 우리는 이만 가지. 나중에 최상층 까지 가면 그때 보도록 하자고.” 윤정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른 두 명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정운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셋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얻은 아이템 중에 궁금한게 있었습니다.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정운의 말에 셋은 멈칫했다. “무슨 다른 아이템이라도 나왔나?” “예. 이런게 나왔더군요.” 한중겸의 질문에 정운은 한 가지 아이템을 꺼내서 셋의 앞에 보여줬다. “스킬 합성북이라는 거던데? 어떤 물건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말만 들으면 스킬을 합성하는 것 같은데?” 정운의 말에 물건을 본 셋은 살짝 의외라는 듯한 시선과 함께 동시에 실망감도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였나?” “확실히 일반 층에는 안 나오는 물건이었지···.” “난 한 번도 써 본적 없습니다. 리스크가 워낙에 커서요.” 셋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리스크가 있는 물건인가요?” “그렇지. 뭐···.” 그리고 한중겸은 정운에게 스킬 합성북이라는 것에 관해서 설명했다. 저 아이템은 상층부에 가면 상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한 아이템이다. 아이템 자체가 고가의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이템의 효과는 상당했다. 저것은 두 개의 스킬을 합성해서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내는 스킬이었다. 언듯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함부로 쓰는 사람은 없었다. 리스크가 너무 큰 스킬북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A라는 스킬과 B라는 스킬을 합성해서 C라는 스킬을 만들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 C라는 스킬이 기존의 A, B 두 가지의 스킬보다 좋은 스킬이 나올 확률은 100% 랜덤이었다. 즉, 자칫 잘못 하면 이제까지 숙련도를 올려 둔 두 개의 스킬을 포기해서 쓰레기 같은 스킬 하나를 얻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한 번 합쳐진 스킬을 다시 두 개로 분리하는 것도 절대 불가능 하고 말이다. 설명을 들은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십왕들이 보인 애매한 태도를 이해했다. “그런····. 스킬이었군요.” “그래. 리스크가 너무 커서 십왕 중에서도 스킬 합성북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호 오라버니가 유일하다고 봐야겠죠.” “그 사람은 도박사니까 말이야.” 셋의 대화를 들으면서 정운은 스킬 합성북을 쥐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확실히···. 유니크 스킬 두 개를 합쳤다가 이상한 쓰레기 스킬 하나로 변해 버린다면 그것은 피눈물 날 일이었다. ‘리스크가 큰 거군····. 일단 가지고만 있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운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사용할 생각이 없으면 가지고 있는게 아니고 매각을 해야 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단계에서 정운은 유혹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지금은 묻어 뒀지만 말이다. 퀘스트 이후···. 그라운드 제로에는 열정적이다 싶을 정도로 사냥의 열풍이 불었다. 특히 이제까지 자신의 보전에만 신경 쓰고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안주하던 자들의 마음이 크게 변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혹독함과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중압감에 지쳤던 그들은 적당히 안전한 플레이만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수명이 없다. 몇 백년이 지난다고 해도 그날그날 연명만 하고 있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현실을 포기하고 안주하기로 한 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에서 그런 자들 사이에서 대량의 사망자가 나왔다. 좋든 싫든 참가해야 하는 강제 퀘스트에서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자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현실이든, 그라운드 제로든 간에 사람은 자신을 지킬 힘을 만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보통 학력, 직장, 능력, 연줄 같은 것들이 그런 힘이 된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 그것이 가장 안심하고 절대적인 자신의 아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고 열정적으로 레벨을 올리기 시작했다. 만약 이번 퀘스트를 주최한 것이 악마라면···. 그들은 이런 결과를 바라고 준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달리지 않는 말의 엉덩이에는 채찍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말이다. 덕분에 저층이고 고층이고 간에 활발한 레이드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32층의 레이드 현장···. 거기에 정운과 세레나가 있었다.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마스터.” “응. 고마워. 세레나.” 물론 이 둘이 여기서 레이드 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 현장에서 32층의 보스몹과 레이드를 뛰고 있는 것은 슬기였다. 현재 슬기의 레벨은 35이다. 이슬기 종족 : 인간 (배틀 메이지) 레벨 : 35 나이 : 19 체력 : 25 힘 : 13 민첩 : 25 지능 : 90 매력 : 99 마력 : 105 패시브 스킬 기마술 : LV.6 약초술 : LV.4 요리술 : LV.2 액티브 스킬 파이어 볼트 : LV.7 (불의 화살을 일곱 발 날린다.)파이어 붐 : LV.4 (반경 8미터에 걸쳐서 화염의 폭발을 일으킨다.)파이어 월 : LV.2 (높이 1미터의 불의 방벽을 만든다.)파이어 볼 : LV.2 (지름 50cm의 화염구를 날린다.)아이스 볼트 : LV.6 (냉기의 화살을 여섯 발 날린다.)아이스 월 : LV.1 (높이 1미터의 얼음의 방벽을 만든다.)스턴 : LV.8 (스파크로 8의 적에게 전격을 가한다.)체인 라이트닝 : LV.2 (800의 대미지를 뭉쳐있는 적에게 연쇄적으로 가한다.)실드 : LV.3 (방어력 1,500의 보호막을 만든다.)슬로우 : LV.5 (적의 움직임을 5%느리게 한다.)홀드 : LV.4 (4마력의 힘으로 적을 구속한다.)힐링 : LV.9 (아군을 5,120의 효과만큼 치료한다.)디코딩 : LV.2 (아군에게 독의 저항력을 올려준다.)플라이 : LV.1 (10분간 하늘을 날 수 있다.) ============================ 작품 후기 ============================ 슬기가 참 많이 컸죠?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발목만 잡았는데 이제는 그래도 전력 구실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풍파를 생각하면 아직 한참 멀었기는 하지만요. 이번에 쓰면서 알게 된 건데 미궁탐사물은 필연적으로 캐릭터의 성장이 동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제가 좋아하는 스킵을 자주 쓰면 안된다는 거죠. '그녀는 나의 애완동물'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전 딱히 수련 과정이나 성장 과정을 꼼꼼하게 쓰지 않습니다. 그런것도 잘 쓰시는 분들은 많은데 전 그런쪽이 좀 약해서요. 하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약점에 도전해 봐야 겠습니다. 물론 스킵을 아주 안한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62화 스킬과 레벨을 봤을 때는 나무랄대 없을 정도로 슬기는 강해졌다. 이게 모두 정운과 세레나의 백업으로 인해서 고속 성장을 한 결과였다. 하지만 너무 고속 성장만 했다. 아직 자신의 레벨과 스킬에 어울리는 경험치가 부족했다. 레벨을 위해서 쌓이는 경험치 말고 진짜로 위기를 겪으면서 발견하는 임기응변이나 대응책에 관한 경험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운은 슬기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저층의 레이드를 하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 슬기가 뛰고 있는 레이드는 이 층의 플레이어 몇 명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레이드였고 정운과 세레나는 그냥 파티에 이름도 올리지 않은 방관자일 뿐이었다. 만약 위험하면 도와 주겠다는 조건을 달고 슬기를 파티에 집어넣고는 이렇게 대기중인 것이다. 사실 말만 대기중이지 태도는 여유만만했다. 그도 그럴게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뭐, 도와줄 필요는 없어 보이는 군.” “예. 전위가 탄탄하군요. 저들 다섯 명은 길드인가요?” 세레나는 방패와 짧은 글라디우스를 들고 수비 대형을 유지하고 있는 전위 다섯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운은 그들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길드는 아니고 팀 같군. 뭐, 저게 좀 더 커지면 언제 부턴가 자신들끼리 무슨 무슨 길드라고 이름 대기 시작하겠지만.” 정운은 현재 3인 1조로 되어 있는 자신의 팀을 더욱더 증강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보통의 유저들은 팀을 꾸리다 보면 그게 길드가 되고, 나중에는 삼대 길드처럼 커지는 꿈을 꾸기 마련이다. 정운이 보기에는 헛꿈이지만 말이다. 정운은 이번 퀘스트에서 다시 한 번 십왕이라는 자들의 힘을 깨달았다. 자신도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십왕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 삼대 길드 역시 십왕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더 이상 삼대 길드가 아닐 것이다. 삼대 길드 같은 거대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구심점이 되는 길드장이 강해야 했다. 최소한 십왕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어야 그들을 중심으로 강자들이 모여들고 이윽고 조직이 탄탄해 지는 것이다. ‘저 치들은 아직 멀었지.’ 세레나가 가리킨 이들은 로마의 중장 보병 같은 장비를 하고 있었다. 정운에게는 좀 안 좋은 기억이기는 했지만 익숙한 장비이기도 했다. 예전에 문시영이 쓰던 장비가 저런 스타일이었으니 말이다. 그것 보다 좀 더 발전한 형태의 물건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튼튼한 방어력이 특징인 장비였다. 저런 유저들 다섯이 앞에서 방패를 앞세우고 진을 치고 있으니 후방의 다른 유저들이 마음 놓고 적을 공격 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 32층의 보스몹인 자이언트 트롤은 열심히 워 해머를 휘둘렀지만 그래도 전방의 방어는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놈에게 날아드는 원거리 공격과 마법에 조금씩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흐음···. 끝난 것 같은데?” “그렇죠. 레드 크리스탈이 뜬지도 3분이 지났고 이제 거의···.” 콰아앙!! 세레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슬기의 마법 공격이 자이언트 트롤의 멀리를 날려 버렸다. 원래 무지막지한 방어력과 재생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이언트 트롤이었지만···. 이제 체력이 다 된 상황이고 거기에 슬기의 공격이 급소를 날려 버리자 드디어 뒤로 넘어갔다. 쿠웅···. “와아!! 끝냈다.” “이제 33층으로 올라 갈 수 있다.” “만세!!!” 유저들은 오랜만에 상위 층으로 올라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좋아했다. 저층이든 고층이든 위층으로 가면 갈수록 보상이 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뭐, 그만큼 위험도 커지지만 말이다. 슬기는 레이드를 마치고 파티원들과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는 정운에게 돌아왔다. 정운과 세레나는 아애 본격적으로 돗자리 펴고 차 마시고 있다가 슬기가 돌아오니 여유 있게 맞이했다. “수고했어.” “고마워요. 다 정운씨 덕분이죠.” “수고했어. 이제 집에 가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인벤토리에서 흑토를 꺼내서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 슬기와 세레나가 나란히 말을 꺼내서 올라탔다. 돌아가는 길에 정운이 슬기에게 말했다. “평범한 저 레벨의 레이드를 해 보니 어때?” “예. 생각보다 쉬워요. 정운씨가 상대하던 어마어마한 괴물들에 비하면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그건 그렇지··. 하지만 조심해. 30층 대의 보스몹이라고 해도 너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힘들어.” 정운의 말에 슬기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만약 저 혼자서 레이드를 한다면 공략 가능한 보스몹은 몇 층 정도일까요?” “글쎄····. 한 15층 정도?” 정운의 말에 슬기는 실망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저 그렇게 약한가요?” “약하고 강하고를 떠나서···. 넌 메이지라고, 배틀 메이지.” “그거야····.” “나나 세레나처럼 혼자서도 온전한 제 힘을 발휘하는 전위계의 유저들과 다르게 너처럼 후위에서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는 자는 전방을 지켜주는 동료가 있어야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해.” “그렇군요···.” “뭐, 백설을 타고 도망 다니다가 한 방 먹이고 다시 도망 다니다가 한 방 먹이는 식으로 지루하게 레이드 하면 20층 초반대 정도는 어찌어찌 될까 말까 하겠지만 말이야.” “후우···. 저 아직 한참 멀었군요.” “넌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여기서 더 빠르게 성장하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그러니 마음 쓰지 마.”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의 어깨를 토닥였다. 말 위에서 이런 식으로 옆의 기수를 토닥이는 행위는 위험한 것이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승마술 스킬을 MAX로 찍은 정운이었기에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마음 먹으면 매트릭스처럼 옆으로 매달려서 타는 것도 가능했다. 어쨌든 정운의 위로에 슬기는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화답했다. “고마워요···. 저 정운씨 한테 힘이 될 수 있게 힘 낼게요.” “···고마워.” 최근 들어서 그녀가 이렇게 기특한 말을 할 때면 다 집어 치우고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그녀가 사랑스러운 정운이었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는 하지만···. 내가 좀 심각한 건가?’ 정운은 슬기 몰래 한 숨을 푹 쉬었다. 마을로 돌아온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난 잠시 상점에 들렀다 갈게. 둘은 먼저 집으로 가 있어.” “알았어요.” “마스터 오래 걸리신다면···.” “둘이서 먼저 목욕해도 돼.”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서로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뭐, 쇼핑 좋아하는 것 보다는 저게 낫지.’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잔뜩 있다. 쇼핑, 목욕, 마사지, 커피숍에서 남자 씹으면서 수다 떨기, 기타 등등····. 그것 하나하나가 어쩐지 남자들하고는 코드가 안 맞지만, 그래도 쇼핑이 다른 것들 보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다른 것들은 여자들 혼자, 혹은 여자들 끼리 하는 법이지만···. 쇼핑은 남친을 보이지 않는 개목걸이에 채워서 끌고 다니면서 같이 한다는 것이다. 개목걸이 보다는 족쇄에 가깝지만····. 어쨌든 정운은 혼자 떨어져서 상점으로 향했다. 오늘 정운이 상점으로 향하는 이유는 상점에 흥리로운 스킬북이 옥션에 올랐다는 정보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스킬북이라고 해도 정운 본인이 익힐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슬기나 세레나가 익힐 것도 아니다. 나온 스킬북은 다름 아닌 영수들이 익히기에 특화된 스킬이라고 했다. 즉, 흑토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었다. ‘사실 내 업그레이드는 한 동안 안 해도 되지. 레벨도 올랐고, 새로 얻은 장비도 훌륭했으니 말이야.’ 저번 퀘스트에서 백호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린 정운은 레벨이 드디어 80에 도달했다. 덕분에 정운 본인이 우선 상당히 강해졌다. 박정운. 종족 : 인간 (전설의 개마무사) 레벨 : 80 나이 : 19 체력 : 100 힘 : 145 민첩 : 90 지능 : 45 매력 : 80 무력 : 110 패시브 스킬 기마술 : MAX 창술 : MAX 도술 : MAX 궁술 : MAX 비도술 : LV.75 격투술 : LV.60 탐색술 : LV.90 액티브 스킬 속사 : MAX : 화살의 발사 속도를 1,000% 올린다. 산탄사 : LV.8 (지름 8미터의 공간에 무수한 화살을 뿌린다.)관통사 : LV.6 (6분간 충전해서 화살의 위력을 600% 올린다. 특수 스킬인 관통이 가능하다.)검기 : LV.8 (무기에 기공을 싣는다. 위력이 800% 올라간다.)검풍 : LV.7 (반달 모양의 원거리 공격을 날린다. 공격 유효 거리는 70미터.)기마 차지 : LV.7 (기마를 탄 상태로 돌격한다. 직선거리 700미터를 뚫고 전진한다.)창공파 : LV.4 (허공을 가격해서 기창의 공격을 한다. 유효 거리는 40미터.)회천공 : LV.7 (창을 나선형으로 회전시키면서 찌른다. 파괴력이 700% 증가한다.) 유니크 스킬 기공술 : LV.5 (기공을 이용한 공격을 한다. 기공을 이용한 모든 공격의 위력을 50% 올린다.)뇌신 : LV.3 (전신에 뇌전을 두르고 모든 공격의 위력을 3,000% 올린다. 지속 시간 10분당 30%의 대미지를 받는다.)아스트랄 소드 : LV.2 (20개의 대검을 조종해서 적을 공격한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2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다.) 유니크 스킬 중에 뇌신과 아스트랄 소드의 스킬이 오르지 않은 것은 유감이었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전체적인 공방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거기다 십왕과의 거래에서 얻은 아이템도 마음에 쏙 들었다. 이민지에게 받은 살라만더의 반지라는 것이었다. 살라만더의 반지. 방어력 : 5 무게 : 5 내구력 : 20 [불의 마법 공격의 위력을 10% 올려준다. 하루에 30분 동안 불의 하급 정령인 살라만더를 소환할 수 있다.] 이 반지는 마침 화염계열의 마법을 집중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한 슬기에게 딱이었다. 그리고 윤정철이 준 활은 건곤파천궁이라는 것이었다. 건곤파천궁 공격력 : 1,200 무게 : 20 내구력 : 200 [화살이 필요 없으며 양의 힘과 음의 힘을 지난 화살 두 개를 나눠서 쏠 수 있다. 두 가지 힘을 합성한 건곤파천시를 쏠 수 있다. 단 건곤파천시를 쏘기 위해서는 건곤파천궁의 숨겨진 비밀을 풀어야 한다.] 사실 건곤파천궁은 그 화살의 성능 자체만으로도 이전에 쓰던 크리스탈 보우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물건이었다. 공격력만 해도 크리스탈 보우는 800, 건곤파천궁은 1,200이지 않은가? 거기다 두 개의 화살을 골라서 쓸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딱, 한가지 문제는····. ‘도대체 건곤파천시가 뭐야? 수수깨끼를 풀어? 무슨 장보도냐?’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 작품 후기 ============================ 쓰고 보니 저번편과 이번 편은 인터페이스와 아이템 소개에 많은 분량을 할당해버렸군요. 하지만 계속해서 성장하는 스테이터스와 꾸준히 변화하는 다채로운 아이템도 게임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게임 소설이 엔딩 만들기가 영 안 좋아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약점을 돌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스토리를 진행 할 수 있으니 제가 모르던 장점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63화 <기분나쁜 남자와의 만남.> 아마 윤정철이 넘기면서 한 말도 그런 말들일 것이다. 뭔가 굉장히 강력한 기술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윤정철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 아니, 어차피 주면서 한 말을 생각해 보면 그도 수수깨끼를 풀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지만 말이다. 결국 정운으로서는 그저 성능이 몹시 좋은 활로 쓰고 있을 뿐이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 봐야지.’ 어쨌든 이런 식으로 장비와 레벨업을 했던 정운이었기에 지금 자신의 장비는 충실하다. 그 대신에 정운은 그동안 수고한 흑토에게 새로운 스킬을 익히게 하고 싶어서 이렇게 경매장에 찾아온 것이다. “경매장의 입장료는 5만 골드입니다.” “여기···.” 입구에서 NPC에게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정운은 상당히 익숙한 인물들을 볼 수 있었다. 십왕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입장료 5만 골드를 스스럼없이 지불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만큼의 골드가 여유로 남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힘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정도 상위급 유저들이 이번 퀘스트에서 받은 보상을 가지고 자신들이 노리는 물건을 입찰 받기 위해서 온 것 같았다. 애당초 이 옥션은 상점에서는 팔지 않는 물건을 파는 곳들이다. 그러니 이런 유저들이 몰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유저들 중에 한명이 정운에게 접근했다. “박정운씨죠? 반갑습니다. 전 김신수라고 합니다. 혹시 저 기억하시나요?” “당신은····. 예. 기억합니다.” 정운은 일단 아는 척을 했다. 이 남자는 다섯 명 정도의 유저들과 함께 팀으로 움직이는 남자로 레벨은 정운과 비슷한 정도였다. 이전에 몇 번인가 같이 레이드를 했던 적도 있었다. “평소 옥션에 보이지 않던 분이 보이시 길래 반가워서 인사했습니다.” “그렇군요.” 최근 슬기와 세레나 때문에 많이 부드러워 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운은 다른 유저들을 신용하지 않는다. 이 남자도 기억은 하고 있지만 그저 비즈니스 적인 관계였을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넉살 좋게 웃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하하··. 여전이 냉정한 분이군요. 혹시 시간 되시면 잠시 얘기 좀····.” 땅땅땅!! 그때 그의 말을 끊고 옥션의 NPC가 망치를 내려차면서 말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나올 상품은····.” 그리고 정운은 옆의 사람에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경매에 집중하고 싶으니 대화는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그럼···.” “예. 알겠습니다····.” 정운의 더 이상 말하기 싫다. 라는 단호한 말에 그는 일단 입맛을 다시면서 물러났다. 상위급 유저들은 최근에 있었던 퀘스트에서 제법 큰 목돈을 손에 넣었다. 활약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퀘스트 였기에 살아남은 상위급 유저들은 일시적으로 풍족한 여윳돈이 생긴 상태였다. 그런 만큼 경매는 상당히 치열했다. “30만 골드!!” “35만 골드!!” “다들 닥쳐!! 50만 골드!!!” 정운은 자신이 노리고 있는 상품이 나오지 않기에 그냥 턱이나 괴고 심심하다는 듯이 경매를 구경하고 있었다. 사실 10만 골드의 업이 계속 나오고 있었지만 정운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 십왕 세 명이서 억 단위의 업을 하는 경매를 주관(?)하지 않았던가? 뭐, 본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큰 물을 한 번 구경하고 나니 십만 단위 가지고 깨작깨작 거리는 다른 유저들이 좀 시시해 졌다. ‘빨리 안 나오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기다리면서 심심하게 기다리는 정운을 보고 옆에서 김신수도 뭔가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정운에게 더 신경이 가는 모습이었다. 정운도 그런 그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자식 설마···. 그런쪽은 아니겠지?’ 좀 따가울 정도로 자신을 집중 마크하는 김신수의 표정이 영 마음에 거슬리는 정운이었다. 땅땅!! “신속의 경갑은 87번 고객님에게 낙찰 되었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짝짝짝짝···. 형식적인 박수 소리가 지나가고 그 다음에 정운의 귀가 쫑긋 할 말이 들렸다. “다음 경매 물품은 스킬북입니다. 유저가 익히는 것이 아니고 유저의 탈것인 영수나 마수들에게 적합한 기술입니다. 여기 영상을 보시죠.” 사회자의 말에 중앙의 빔 프로젝트에 하나의 영상이 나왔다. 마수로 보이는 그리폰이 입을 열어서 거기서 광선 같은 브레스를 발사하는 영상이었다. 발사된 영상은 그대로 오크 한 마리를 즉사 시켜 버렸다. “스킬의 이름은 브레스입니다. 주로 용족들이 자주 쓰는 스킬이죠. 위력은 갈고 닦는 것에 따라서 점점 강력해 질 것입니다. 그럼 스킬북 브레스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는 20만 골드부터입니다.” 시작하자마자 정운은 손을 들었다. “20만 골드.” “예. 다른 경쟁자 분은··.” “25만 골드!!” “30만 골드!!” “40만 골드!! 양보들 하시죠?” “50만 골드!!! 헛소리는 집에 가서 해라.” 마수나 영수용 스킬북이 워낙에 적어서 그럴까? 정운 말고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귀찮은 것들···.’ 이대로라면 가격이 어디까지 뛸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한 번에 가격을 확 불러서 떨거지들을 떨쳐 내자. 라고 정운은 생각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90만 골드!!” 정운의 옆에 있던 김신수가 단번에 20만 골드를 올렸다. 그리고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 옆에 있는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제가 드리는 사소한 선물입니다. 부디 사양하지 말아 주십시오.” “··········.” 순간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으로 김신수의 느끼한 안면을 한 대 갈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 새끼 정말로 그쪽 인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어라···.’ 사회자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90만 나왔습니다. 혹시 다른 분은 안 계신 겁니까? 안 계시면··.” “95만!!” 다른 누군가가 외쳤다. 그러자 김심수가 여유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110만.” “크윽···. 11····2만!!! 김신수 너 이 새끼 좀 그만···.” “300만 골드.” “·············.” “·············.” “·············.” 좌중이 조용해 졌다. 정운이 한 방에 사태를 정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300만 골드 나왔습니다. 300만 이상은 안 계십니까? 하나, 둘, 셋. 낙찰 되었습니다.” 땅땅땅!!! 정운은 스스로의 힘으로 스킬북을 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별 상관없는 자에게 호의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안녕히····.” 생각 같아서는 사내 새끼가 한 번만 더 그러면 죽여 버린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적을 만들어서 좋을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이성적으로 억눌렀다. 정운이 나가는 것을 보고 김신수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중얼 거렸다. “내 계획에 필요한 장기말이었는데····. 없으면 없는 대로 진행할까? ·······아니야. 놈은 손엔 넣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중얼 거리는 그의 얼굴에는 정운의 앞에서 보이던 가식적인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뱀 같은 집념의 어떤 것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온 정운은 바로 흑토에게 스킬을 장착 시켰다. 그리고 바로 정원의 바위를 대상으로 스킬을 시험해 봤다. “쏴!!” “히히힝!!” 퍼엉!! 흑토의 입에서 브레스가 발사 되더니 바위에 정통으로 맞았다. 바위는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맞은 부분이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었다. 용도 아니고 말의 입에서 광선이 나가는 것이 비주얼 적으로 좀 그렇기는 했지만···. 뭐 보다 보면 익숙해 질 것 같았다.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킬의 위력이었다. 생각보다 위력이 크지를 않았다. “역시 지금 당장 위력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차츰차츰 늘려가도록 하자.” “히힝···.” 흑토는 알았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정운의 가슴에 문질렀다. 정운은 그런 흑토의 갈기를 쓰다듬어 줬다. 원래 다른 말들의 갈기는 퍼석퍼석한 편인데 흑토의 것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너한테는 정말 신세를 많인 졌지.” 슬기나 세레나와는 다른 의미로 정운에게 흑토는 소중한 존재였다. 둘이서 수많은 위기를 넘겨왔고, 어떤 강적의 앞이라고 해도 둘이서 해쳐왔다. 흑토가 처음에 영수화에 성공하기 이전에 몇 번이고 다른 마수형태의 탈것으로 교체 할 것을 생각 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 당시 정운에게 있어서는 흑토야 말로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대할 수 있닌 친구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클리어까지 잘 부탁한다. 친구.” “히힝···.” 흑토는 기분 좋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그때 저택의 발코니에서 그런 다정한 정운과 흑토를 지켜보는 두 여인네가 있었으니···. “····둘이 사귀는 것 아닐까요?” “아닙니다. 전마란 본래 전쟁터에서 자신과 함께하는 분신 같은 사이니 가족처럼 친하다고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뭐, 마스터의 경우는 좀 많이 친한 것 같기는 하네요.” 정운을 바라보는 두 여인의 시선이 어딘지 모를 미묘한 감정에 물들어 있었다. 흑토의 업그레이드를 마친 이후에 정운은 다시 55층의 사냥터로 향했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역시 기본적인 그라운드 제로의 일상이라면 꾸준한 사냥으로 인한 렙업과 골드의 수확이다. “합!!” “쿠워어어어어!!” 정운의 강력한 찌르기에 그대로 절명한 킹 베어의 시신을 챙기면서 정운은 생각했다. “슬슬 내일부터는 사냥터를 바꾸는게 좋겠어.” “어디로 말씀이십니까?” “늪의 히드라를 잡으려고.” 정우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말했다. “거기는 행동하기 힘들다고 안 간다고 했잖아요?” “그럴려고 했는데···. 역시 히드라를 잡기는 잡아야겠어. 놈들이 주는 아이템 중에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럼 내일부터는 사냥터를옮기는 것입니까?” “그런 거지···. 그 보다 오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히드라의 늪지를 미리 둘러보고 가자. 시간만 맞으면 한 마리 잡고 가도 되고.”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까지 포함한 세 명은 늪지대로 이동했다. 히드라는 55층에서 보스몹인 블러디 엠페러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몹이었다. 그만큼 경험치도 많이 줬고 무엇보다 놈이 주는 재료 아이템은 정운이 전부터 만들고자 하는 아이템에 꼭 필요한 것이었기에 잡고 가려고 했다. 말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늪지대에 도착하자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한 가지 아이템을 주었다. “이거 각자 말들에게 장착 시키도록 해.” “이것은 뭡니까? 마스터.” “발목 장화··. 하고 비슷한 건데?” “늪 장화라고 하는 거야. 일단 신기기만 하면 사람이든 말이든 상관없이 쓸 수 있어. 말들이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비를 찾아봤는데 상점에서 그걸 팔더라.” “헤에···. 그런게 있었군요. 그런데 왜 아무도 안 쓰는 걸까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흑토에게 늪 장화를 장착 시키면서 말했다. “늪에 안 빠지는 것 말고는 아무런 효능도 없는 아이템인 주제에 하나에 1만 골드나 하기 때문이겠지.” 정운의 말에 슬기는 어이없어서 웃어 버렸다. 이제는 그녀도 그라운드 제로의 물가를 어느정도 안다. “이거 하나에 1만 골드 라고요?” “그래. 한 마디로 여유 있는 인간만 쓰라는 거야.” “············.” ============================ 작품 후기 ============================ 한동안 돈이 남아둘기 시작한 주인공입니다. 십왕한테 빨대 한 번 크리티컬로 꽂았으니까요. 오늘 조아라하고 악마의 게임 E북 계약을 했습니다. 뭐, 출간되는 것은 좀 나중의 일이겠죠. 일단 '고수가 갑이다'도 다 출간되지 않았고 '로마의 혁명'도 준비 작업중이니까요. 실제로 '악마의 게임'이 E북으로 나오는 것은 나중의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64화 정운은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뭐, 나야 그 여유가 있으니 상관없지만 말이야.” 최근 십왕들에게 경매로 넘긴 물건들의 대가로 받은 골드만 해도 10억 골드였다. 나중에 최상층에 올라가면 그렇게 큰돈은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의 정운에게는 충분히 큰돈이었다. 그 10억 골드 덕분에 이런 사소한 아이템에 3만 골드나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요즘 정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들의 금전 사정이 참 좋아진 편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몇 군데 돌아보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토를 타고 늪지대를 돌았다. 늪의 바닥은 질척질척 거리고 있었지만 흑토들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간편하게 달리고 있었다. 말에 무거운 장비에 그 위에 사람까지 태웠다. 하지만 늪 장화가 돈 값은 하고 있었는지 말들의 발은 조금도 늪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컨디션 좋은 날에 초원의 풀밭을 달리는 것처럼 기분 좋게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늪지에는···. “전위 무너지지 마!! 지금 큰거 한 방 간다.” “빨리 와!!!” 거기에는 이미 한 무리의 유저들이 열심히 히드라를 잡고 있었다. “정운씨. 이럴 경우는 어쩌죠?” “글쎄···. 보통 이럴 때는 먼저 온 자들의 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예의긴 한데····.” 정운은 말을 하면서 플레이중인 유저들의 면면을 바라봤다. 55층 정도에서 사냥하고 있는 팀이라면 그 중에서 한 둘 정도는 정운과 동수준의 유저가 있는게 정상이다. 그게 정상기기는 하다. 하지만 이 팀은····. ‘유저들 전원이 나와 같은 상급 유저들이군.’ 정운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플레이중인 유저들 중에는 정운과 한두 번 같이 레이드를 했던 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저들의 평균 레벨은 60대 중반에서 70대 초반 정도 될 것이다. 그런 자들이 다섯 명이나 모여서 고작 히드라나 잡고 있다니? 이 정도 멤버라면 조금만 더 인원 충원을 해서 보스 레이드를 하는게 정상이었다. “····뭐, 히드라가 나오는 곳은 여기 뿐만이 아니니, 우리는 자리를 옮기도록 하자.” “예. 알았어요.”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말 머리를 돌렸다. 55층에서 히드라가 나오는 늪지의 출몰 장소는 총 세 군데였다. 그리고···. 첫 번째는 다른 유저들이 플레이를 하고 있었고···. 그리고 두 번째 늪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세 번째에서는···. “저 인간은····.” 거기서 정운은 익숙한 인물을 봤다. 다른 유저들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익숙한 인간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얼마전에 옥션에서 본 김신수였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상당한 고위급 유저들···. 이건, 그런 의미였던 건가?” 정운은 혀를 차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정운씨. 무슨 말이에요?” 정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놈들을 노려 보면서 말했다. “저 놈들이 우리의 사냥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거야. 그것도 사냥터 독점이라는 아주아주 스트레이트한 방식으로 말이야.” “예!!?” 깜짝 놀란 슬기에게 정운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잠깐 기다리지. 저쪽에서 잡고 있는 것은 다 끝나 가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저들이 히드라를 잡는 것을 구경했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뱀으로 그 몸의 절반 정도는 늪에 잠겨 있었다. 뿜어내는 독액은 한 방이라도 맞으면 유저의 체력을 뭉텅이로 깎고 거기다 독 속성으로 계속해서 추가 대미지를 줬다. 이 정도면 무늬만 일반 몹이고 사실상 30층대의 보스몹에 필적하는 능력치였다. 하긴, 어차피 위층으로 가면 갈수록 더 강한 몹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야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유저들은 히드라 정도는 여유 있게 잡고 있었다. 마치 이 정도는 아무런 부담도 아니라는 듯이 손 쉽게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여기 있는 인간들 정원이 최소 70레벨은 되는 인간들 뿐이었다. 저 정도의 인간이 다섯 명이나 모여 있어서는 히드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으아아앗!!!” 퍼어엉!!! 누군가가 워 해머로 히드라의 마지막 머리를 날려 버리고 히드라를 잡는 것에 성공했다. “좋아. 아이템 수거하고 다음 리젠 시간까지 대기.” “예. 알겠습니다.” 정운의 눈에 들어왔던 김신수는 이 무리의 리더인 것처럼 태연하게 주변 유저들에게 명령했다. 그런 김신수에게 정운이 접근했다. “잠시 시간 좀 낼 수 있을까요?” “오, 박정운씨, 오랜만이군요.” ‘바로 얼마 전에 옥션에서 보고는 이 능구렁이가···.’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플레이 중이라서 힘듭니다. 나중에····.” “당신 하나 없다고 히드라에게 애 먹을 멤버로는 보이지 않는데? 내 안목이 틀렸습니까?” 정운의 말에 김신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잠시 나 없이 하고 있어. 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얘기나 느긋하게 하고 오십시오.” 멤버들은 이미 무슨 사정인지 뻔히 알고 있다. 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레나. 슬기하고 여기서 기다려.”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씨···.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 그보다 저 놈들이 뭐라고 말 붙여도 대꾸하지 말고 무시해 버려.” 정운은 그렇게 슬기와 세레나를 남겨 두고 자리를 이동했다. 정운과 김신수를 늪지대 한쪽에 가서 얘기를 시작했다. “무슨 꿍꿍인지 설명해 주겠습니까?” 먼저 직설적으로 말을 꺼낸 것은 정운이었다. 지금 정운의 심사는 영 좋지만은 않았다. “무슨 꿍꿍이라니? 꼭 제가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군요?” “아니라는 말입니까?” “··········훗, 눈가리가 아웅 하는 것은 쓸모없다 이거군.” 김신수의 얼굴에는 예의 바른 호인의 미소가 사라지고 비릿한 느낌의 표정이 떠올랐다. ‘재수 없는 얼굴이다.’ 한 대 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는 표정으로 바꾸고 싶을 정도로 구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얼굴이었다. “간단히 말하죠. 전 제 길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구타욕구를 간신히 참고 있는 정운에게 김신수가 꺼낸 말은 어느 정도 정운도 예상했던 말이었다. “만들려면 만들어. 단 나는 관여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전 당신을 내 길드의 길드원으로 꼭 집어 넣고 싶습니다.” “······거절한다면?” “오늘처럼 계속해서 당신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사냥을 방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좀 더 과격한 수단을 동원 할 수도 있죠.” 은근히 PK도 서슴치 않겠다는 협박을 하는 김신수였다. 정운은 눈썹을 꿈틀 거렸다. “너 이새끼····.” “워워···. 성질 죽이시죠? 아직 신생 길드지만 우리를 적으로 돌리면 당신은 뒈질걸?” “··············.” 울컥!! 정운은 성질은 났지만 그렇다고 이판사판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놈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이 필드에서 본 멤버만 해도 60레벨 이상이 15명. 거기다 다른 숨겨진 멤버까지 있다고 치면····.’ 이거 잘만 하면 3대 길드 다음 가는 길드가 탄생 할 지도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운처럼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따로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고위급 유저들은 제법 된다. 아까부터 본 유저들도 그런 유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서 뭉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협박했나? 그 다음에는 혈맹으로 묶어두고?” 정운의 말에 김신수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훗, 상상력이 빈약하군요.” “············.” “지금 우리 길드에 아··, 아직까지 길드라고 발표는 안했지만··, 뭐 까짓것 지금부터 길드라고 하죠. 어쨌든 우리 길드에 강제적으로 참가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뭐, 혈맹은 맺었지만 비교적 공정한 조건의 혈맹이었죠.” “믿을 수 없는데?” “믿건 말건 당신 마음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자발적으로 뭉쳐서 그라운드 제로라는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한 동지들입니다.” “········말은 좋군.” “빈말이 아니라 진실이니까요.” “잡소리 집어치워. 너희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길드라면··. 어째서 나에게는 이런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 “개수작이라···. 듣기 좋은 말은 아니군요.” “말꼬리 잡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정운의 말에 김신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까칠하기는····. 자꾸 그러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은근한 김신수의 협박에 정운은 싸늘한 눈으로 대꾸했다. “내가 쉽게 당할 것 같나?” “글쎄요···. 당신은 둘째 치고 당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그 여자들 정도는 쉽게·····.” 퍼억!!! 순간 울컥함을 참지 못하고 정운의 주먹이 김신수의 안면을···. “워워···. 참으라고 참아.” “개 자식····.” 작렬 시키지는 못했다. 안경에 약간 마른 인상. 척 봐서는 도서관을 주 서식지로 삼은 범생이처럼 생긴 얼굴과는 달리 정운의 기습적인 라이트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그는 그 상태로 얼굴에 안경을 올려 쓰면서 말했다. “너무 놀리지 않는게 좋겠군. 그럼···. 간단한 얘기야. 난 이 그라운드 제로에 3대 길드 이상가는 거대한 조직을 만들고 싶어. 아! 물론 과정일 뿐이야. 진짜 플레이 목적은 물론 게임 클리어지.” “그건 네놈 마음대로 해. 대신 나처럼 관여하고 싶지 않은 인간을 끌어 들이지 말라는 말이다.” “후후···.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왜냐하면 넌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거든? 앞으로 몇년만 잘 키우면 실로 막강한 전력을 지니게 될 테지. 난 그런 너를 내 수하로 두고 싶은 거다.” “수하? 미친놈····.” “다들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말이야. 이 세상에는 항상 선두에서 용감하게 깃발을 흔들면서 사람들을 이끌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야.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는 유능한 소수의 측근들과 그 뒤를 따르는 무지하지만 머릿수 하나는 쓸모가 있는 민중들이 따르는 거지.” “너 병원이나 가라. 정신과로.” 정운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듣자듣자 하니 이 놈은 그냥 미쳤다고 밖에는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세계, 자신의 주장에 완전히 틀어 박혀서 밖에서 무슨 말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놈의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치들에게 있는지 이해를 못할 정도였다. 그때 김신수가 정운에게 말했다. “넌 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나면 뭘 할 거지?” “그걸 네놈이 알아서 뭐 하게?” “뭐, 너는 너 나름대로 이루고 싶은 바램이 있어서 왔겠지. 하지만 말이다···. 너 혼자서 이루는 것 따위는 시시한 거야. 개인의 욕망이라는 것은 어차피 그 그릇의 한계가 있거든.” “우습군···. 넌 다르다는 거냐?” 정운의 말에 김신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르지. 넌 내가 누군지 알기는 아나?” “알지. 미친놈.” “큭···. 좀 너무 하는 걸?” “············.” “명진 그룹의 김장수 회장.” “··········?” “그게 내 아버지 이름이다. 뭐, 세상에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난 소위 말하는 사생아. 밖에서 난 자식이거든?” “········!!!” 순간 정운은 이제까지 놈이 한 말 중에서 가장 크게 놀랐다. ============================ 작품 후기 ============================ 같은 처지의 두 남자의 만남입니다. 사실 같은 처지라고 해서 같은 유형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요. 김신수는 앞으로도 쭉 나올 중요 캐릭터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65화 <김신수라는 인간> 정운의 얼굴에 동요가 생기자 김신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왜 믿기지 않나? 거짓말 같아?” “······글쎄.” 사실 믿기지 않는게 아니라 다른 의미로 놀랐던 것이다. 대기업 회장가의 사생아. 즉, 이 눈앞에 있는 재수 없는 놈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인물이라는 것에 놀란 것이다. 김신수는 안경을 슬쩍 올리면서 말했다. “특별 서비스다. 넌 앞으로 내 오른팔로 활약해 줬으면 하니까···. 특별이 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들려주지.” ‘묻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지껄이면서 서비스는 무슨····. 그런데 혹시 남들이 볼 때 나도 이렇게 재수 없게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신수는 자기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김신수. 그는 정운처럼 대기업 회장의 사생아였다. 다만 19세까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몰랐던 정운과 달리 김신수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화류계에서 제법 인기 있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명진 그룹의 김장수 회장의 눈에 든 것으로 인생이 살짝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잘 나가는 화류계의 꽃이라고 해도 어차피 화류계는 화류계. 여자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파는 직업은 그 수명이 짧은 수밖에 없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아름다움이 저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김장수 회장의 숨겨진 여자. 즉, 소위 말하는 첩이 되는 것에 성공했다. 뭐, 흔하다면 흔한 스토리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나이는 많지만 경제력이 풍부한 남자. 사랑이나 취향, 성격 차이 따위는 다 접어두고 그냥 기브 앤 테이크일 뿐인 관계. 그녀는 자신의 그런 역할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다른 남자들을 모두 제쳐두고 김장수 회장에게만 술을 따르고, 그에게만 웃고, 그에게만 몸을 허락하고···. 본처가 있는 김장수 회장은 첩으로서의 그녀의 교육도 철저하게 시켰다. 매스컴이나 세상의 눈에 띠지 않게 하는 것. 경제적인 풍족함은 약속하지만 절대로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 본가의 가족들과 차별을 받더라고 불평을 하지 말 것. 그 외에도 첩으로서의 불합리한 규칙이 많았지만 그녀는 모두 감수했다. 김장수를 사랑해서? 아니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김장수가 아니라 명진 그룹의 회장. 정확히 말하면 그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안정뿐이었다. 딱히 대기업 사모님이 되어서 남들에게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저 한 평생 먹고 살기 부족함이 없는 경제적 지원만 있으면 충분했다. 어린 시절부터 김신수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남편으로 부르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십수년을 자란 김신수는····. 자신의 어머니를 경멸했다. 김신수는 그의 모친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야심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누군가를 밀어 넘어트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본가의 김장수 회장의 직계의 아들이나 손자들을 통틀어도 김신수 만큼 김장수 회장을 닮은 아들은 없었다. 지식을 쌓기에 부족하지 않은 명석함. 상황을 냉철하게 가늠 할 수 있는 판단력. 적절한 비정함과 적절한 자비로움이 잘 섞인 당근과 채찍을 잘 휘두르는 유연한 사고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있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가 되었든 보통 그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서 다른 사람을 부리는 자들은 대부분 이런 자들인 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신수는 자신의 친 아버지가 자신을 아들로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애정이 깃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은 그저 하고 많은 결과물일 뿐이었다. 눈밭을 걸으면 그 뒤에 족적이 남는 것 처럼···. 자기보다 젊은 여자의 몸을 취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결과물. 그에게 김신수의 가치는 그 정도 뿐이었다. 애정은 고사하고 증오 한조각 조차 받지 못했다. 완벽한 무관심. 김신수가 아버지에게 받은 것은 오직 그것 하나 뿐이었다. 그런 무관심으로 일관된 아버지의 시선이 김신수에게는 집념의 비료가 되었다. 아버지를 뛰어 넘겠다. 라는 일념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했다. 공부, 사교성, 흠 없는 커리어. 그의 십대는 철저하게 앞으로 사회에서 필요한 무기를 갖추는 것에만 주력한 시절이었다. 실제로 그에게는 노력에 보답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보답 받았다. 아무런 후광도 빽도 없이 불과 22세에 그는 자기 손으로 회사를 창업했다. 아버지인 김장수 회장에게 손을 빌려서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손으로 한 창업이었다. 직원 수 1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였지만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미국의 회사에 막대한 돈을 받고 회사를 팔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자본으로 다시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적인 능력만 본다면···. 그는 확실하게 말해서 천재적인 영감과 재능이 있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돈을 잘 버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흐름을 캐치해내는 재능이 있었다. 김신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원하는 것, 시대가 원 하는 것, 앞으로 세상에 필요한 것.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캐치해서 먼저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박을 터트린다. 22살에 사업을 시작한 젊은이가 27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연매출 2,000억 대의 거대한 기업의 CEO가 된 것이다. 당시 그 보다 나이가 20~30세는 많은 배다른 형들은 연 매출 1조대의 계열사의 사장을 하고 있었지만···. 별로 부럽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월감에 젖었다. 낙하산 타고 재벌 2세 혹은 3세라는 가격표로 거저 자리에 오른 그들 보다는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이렇게 위에 오른 자신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또, 누가 봐도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그는 실제로 유능했다. 하지만··. 역설하자면 그는 너무 유능했다. 김장수는 자신이 거의 버려둔 것이나 다름없었던 사생아의 화약을 듣고 흥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들 중에 이제까지 눈에 차는 녀석은 거의 없었다. 고작해야 자신이 깔아준 레일 위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게 고작인 놈들이 그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그는 차라리 버려두고 있었던 아들이지만 김신수가 그의 눈에는 더 마음에 들었다. 김장수 회장은 사람을 시켜서 김신수의 지난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김장수 회장의 행동에 촉각을 바짝 세운 것은 김신수의 배다른 형제들이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고 자신들에게 배다른 형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평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귀족? 왕족? 그런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들은 대한민국 유수의 대기업의 회장의 본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면서부터 이미 다른 보통 인간들하고는 주어진 것도, 짊어져야 할 것도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들의 어머니 외의 다른 여자를 품던? 말던? 이름 모를 배 다른 형제가 있건? 없건? 그딴 건 별로 상관없었다. 전혀 중요한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중에서도 결혼하고 다른 애인을 두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그런 이름도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길거리 잡초나 다름 없던 배다른 동생이 갑자기 급부상하고 아버지의 주목을 받는다면? 그건 중요한 일이었다. 딱 잘라 말해서 몹시도 신경에 거슬렸다. 그들도 각자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김신수의 행적에는 감탄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생판 남이라면 거금을 주고 스카웃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신수는 그들에게 있어서 배다른 이복 동생 이었다. 존재 자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도 마이너스였고, 무엇보다 자신들과 같은 동렬에 선다는 상상을 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신수가 더 커지기 전에, 혹은 아버지의 관심이 닿기 전에 밟아 버리자고 말이다. 그리고 김신수의 사업체에는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에서 별의 별 공격이 다 들어왔다. 특허시비, 거래처 압박, 은행 거래의 차단 등등···. 김신수가 아무리 유능한 사업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개인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서 돈을 가장 잘 버는 것은 경영에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이미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돈이 돈을 번다고 가장 많은 실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아무리 김신수가 능력이 좋다고 해도 그런 치명적인 핸디캡 매치에서 이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하나 허물어지는 사업체를 보면서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까지 몰렸다. 그리고 절망의 직전까지 몰린 그에게 내밀어진 것이 바로 악마의 유혹. 그라운드 제로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체를 살리기 위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포인트를 쓰고··. 그 다음으로 다시 형제들의 견제를 물리치지 위해서 포인트를 썼다. 거기서 그는 느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엄청난 능력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 힘만 있다면··. 이것만 있다면···.’ 보통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자들은 자신의 포인트를 다 쓰고 다음 소원을 이루기 위한 포인트가 부족할 때 그라운드 제로에 접속한다. 하지만 김신수는 달랐다. 그는 아직 충분한 포인트가 남았지만 주저 없이 더 많은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로 날아 들었다. 김신수의 인생 얘기를 다 들은 정운은 한 마디로 감상을 표했다. “···너 진짜 미친놈이군.” “그렇게 보이나? 좀 섭섭한걸?” “섭섭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를 기대했기에 섭섭하다는 개지랄이 나오는 거냐?” “글쎄? 대단하다? 훌륭하다? 혹은 요즘 하는 애들 라로 쩐다?” “·············.” 어떤 의미로 봤을 때 마지막 말은 맞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정운의 입장에서 봤을 때 김신수는 정신상태가 쩔도록 미친놈이었다. “목적을 이루고 충분한 포인트가 남아 있는데 여기 뛰어 들어? 그런 미친놈은 그라운드 제로를 다 뒤져도 너 밖에 없을 거다!!” 정운의 말에 김신수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그럴지도··. 하지만 말이야. 원래 세상에 큰 변혁을 주는 것든 나 같은 비정상 적인 사람들의 창의력이야.” “세상을 바꿔?” “그래. 난 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막대한 포인트를 얻고, 그리고 이 험난한 서바이벌을 견뎌낸 인제도 얻을 것이다.” “미친놈.” “생각해 봐라. 우수한 인재와 악마의 힘. 이 두 가지를 갖춘 이상 세계의 왕이 된다는 것도 마냥 꿈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진짜 미친놈.” 계속해서 정운이 미친놈 취급을 해도 김신수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어쩌겠어? 이게 나인데?” “·········.” “그래서, 나한테 협조할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나?”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네놈이 세상을 바꾸건 말건 난 네놈 옆에 있고 싶지도 않다.” 정운은 딱 잘라서 말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확신이 들었다. ‘난 생리적으로 이 인간이 싫다. 정말정말 싫다.’ 라고 말이다. 처음에 같은 대기업의 사생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순간 동질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인간이라고 해서 비슷한 타입으로 자란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정운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평안과 소소한 행복 뿐이다. 김신수 처럼 세상을 바꾸겠다거나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되겠다는 망상적인 야망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음, 저번화에서 사생아라는 것만 밝히고 끊어 버렸더니 김신수를 그냥 깝죽거리는 무개념 제벌2세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뭐, 저도 읽어보니 거기서 딱 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신수는 앞으로 참 많은 역할이 남아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무개념 상병신으로 등장시킬리가 없죠. 그건 초반에 미친 푸우의 역할이었습니다. 김신수는 개인적으로 무척 능력있고 야심 넘치는 인간상입니다. 현대판 조조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런 철부지 병신은 아닙니다. 오히려 숨겨진 패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뭐,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지는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몇 번이고 수행할 겁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66화 <변화하는 정세> 세계의 왕? 그딴 극강의 병신 트리는 타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김신수의 본심을 안 정운으로서는 ‘이런 미친놈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 라는 기분이 더욱더 커졌다. 아마도 지금 김신수를 따르고 있는 자들은 그에게 뭔가 약속 받은 것이 있을 것이다. 게임 클리어 이후에 포인트를 이용해서 세계의 중심이자 고위층으로서의 화려한 영화를 약속했는지도 모른다. 김신수의 길드에 들어간 자들의 수준을 생각할 때 그라운드 제로의 안의 일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정운도 그렇지만 그들 대부분이 자신이 원하는 것 정도는 자력으로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적어도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밖에 나갔을 때는 어떨까? 포인트를 써서 자신의 소원을 이룬다고 해서 거기서 끝날까? 그라운드 제로에 뛰어든 자들은 모두들 납득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건 진리다. 아무리 풍족해도, 아무리 부족해도, 인간은 오늘보다 더 발전된 내일을 원한다. 그 감정이 인류를 이렇게 발전 시켰고, 그리고 때때로는··. 그 감정이 인류를 추악한 욕망의 구렁텅이로 집어던지기도 한다. 결과는 다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욕심, 욕망. 그것에 관해서는 이미 절절히 체험을 해 본 자들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었다. 자신들 스스로 만족을 모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김신수는 지금 정운에게 한 것과 비슷한 제안을 한 것이다. 게임을 클리어하고 밖에 나갔을 때 김신수의 밑에 뭉쳐서 세계를 좌지우지 한다. 라는 제안을 말이다. 아마도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욕망에 취해서 부귀와 영화를 바라는 자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정운에게는 역시 마음에 안 들었다. 세계의 왕? 찬란한 미래? ‘엿이나 먹으라지.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 뿐이라고···.’ 정운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했다. 언젠가 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그 후에 어머니의 병이 낫고, 그리고 그 옆에 슬기와 세레나가 있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 이상은 더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뭐···. 마지막 하나가 결코 작은게 아니기는 하지만 적어도 세계의 왕 어쩌고 저쩌고 하는 또라이에 비하면 작은 것은 사실이었다. “너 같은 미친놈 생각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지만···. 딱 하나만 더 물어보지. 나한테 집착하는 이유가 뭐지?” 정운이 고위급 유저이기는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를 다 뒤지면 정운과 동 레벨의 수준은 100명 가까이 나올 것이다. 단순히 고위급 유저라고 알려진 자들만 모으면 아마도 500명 정도는 될 것이다. 그리고 놈은 이미 척 봐도 그 중에서 20~30명 정도는 자신의 세력 안에 집어넣은 것 같았다. 잔챙이 없이 고위급 유저로만 그 정도 있는 다수정예는 강력하다. 이미 길드 선포만 하면 삼대 길드 다음 가는 길드로 이름을 매길 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놈은 그 상황에서 정운에게 또 집착을 하는 걸까? “간단한 얘기다. 난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난 네가 싫어.” “큭큭····. 상처 받는다고.” “··········.” 정운은 개소리 하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는 눈으로 김신수를 바라봤다. 김신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박정운. 그라운드 제로에 나타난 지 4년차, 처음에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2년 전에 흑곰파와의 마찰에서 두각을 드러냄. 그 후에 말벌파 해체. 현재는 두 명의 여성 유저와 팀 플레이 중. 유니크 스킬 최소 2개 이상 보유. 뭐 틀린 것 있나?” 자신의 프로필을 쫙 읊어대는 놈을 보면서 정운은 말했다. “없다. ·····스토커 새끼야.” 스토커라는 말에 김신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만큼 너 한테 관심이 많다는 거야. ····하나만 물어보지. 너에게 이 그라운드 제로는 뭐지?” “그딴 것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런가? 난 이따금씩 생각한다.” “네가 미쳤다고? 그럼 제대로 생각한 거다.” “·······아니. 난 이 그라운드 제로가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인재를 뽑기 위한 면접장으로 딱 이라는 생각을 한고는 하지.” “···········아앙? 면접장?” 정운은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이 새끼가 미쳤다는 것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이따위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자아도취도 정도가 있지····. ‘이른바 미친놈 한계 돌파라는 건가?’ 어이없어하는 정운에게 놈이 말했다. “사회에 나가서 회사 하나를 이끌어 보니까 알겠더라고···. 우수한 인재야 말로 사회인으로서의 최고 자산이라는 것을 말이야.” “············.” 대꾸하지 않고 침묵하는 정운을 내버려두고 김신수는 자기도취 되어서 떠들기 시작했다. “우수한 인재는 최고의 보물이지. 밑에 두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그 우수한 인재는 어떻게 알아내지? 보통 학력이나 자격증 같은 스팩으로 뽑기는 하는데···. 그게 사실 꽝이 제법 있더라고.” “꽝?” 정운의 반문에 김신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래. 학력 좋고 능력도 많고···. 그런데 정작 사회 생활에는 잼병이라서 1년 못 버티고 회사 나가 버리는 놈들도 제법 있더란 말이지.” “············.” “뭐, 한마디로 말해서 진짜로 우수한 인간의 능력은 그런 스팩으로 재기는 어렵다는 것이지. 강한 정신력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 같은··· 좀 진부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하는 그런 것을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은 대강 알겠다. 즉 너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위로 올라가는 자들이 네가 생각하는 우수한 인재. 라는 거군.” “맞는 말이야. 이해가 빠르군. 너도 알고는 있겠지? 이 안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 과감성. 그 위험 속에서 살아남는 끈기. 다른 유저의견제 속에서 자리를 잡는 사회성, 그리고 운까지·····. 난 이들이야 말로 최고의 인재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세계의 왕이 되었을 때 내 옆에서 날 보좌하기에 어울리는 자들이지.” “다시 한 번 확신하는데····. 넌 미쳤어.” 정운은 노골적으로 김신수를 비웃었다. 김신수의 말은 맞는 면도 있었지만 미묘하게 틀린 구석도 많았다. 하지만··. 그걸 일일이 짚어가면서 놈과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제 더 이상은 놈과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았다. “내 옆에 얼쩡거리지 마라. 난 네놈의 망상폭주에 참여하지 않아.”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런 정운을 보고 김신수가 정운의 어깨를 잡았다. “잠깐···.” 퍼억!!! 그리고 그 순간 날아간 정운의 오른쪽 주먹이 이번에는 정통으로 맞았다. 아무래도 불시에 맞았기에 제대로 한 대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작정하고 싸우면 큰 차이는 아니지만 정운이 김신수보다는 한수 위였다. “크으····. 맵군. 이빨이 나간 것 같아?” 정운의 격투술 레벨은 60이다. 거기다 신체 스팩도 레벨에 어울리게 높았기에 보통 인간이라면 맨 주먹으로 때려서 절명 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냥 맵다 정도로 끝난 것은 김신수가 어느정도 레벨이 되는 고위급 유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금니가 두 개나 나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운은 입에서 피가 나오는 김신수를 보면서 말했다. “다음에 내 주변에서 시비 걸고 다니면 맵다 정도로 안 끝날 거야.” “····그건 두고 봐야지. 알아둬라. 난 너 정도의 인재를 포기 하지 않아.” “··········.” 정운은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등을 돌리고 가 버렸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김신수는 중얼 거렸다. “지금 당장은 무리인가···. 그래도 저 정도의 인재는 절대 포기할 수 없지.” 보통 남자가 안면에 한 대 맞으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같은 편으로 있기 싫어한다. 하지만 정운을 자기 부하로 삼고 싶어하는 김신수의 욕심은 그런 자존심은 사뿐히 뛰어 넘은 것 같았다. 저택에 가는 길. 내내 저기압이었던 정운의 분위기 때문에 슬기와 세레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원래 세레나의 경우는 과묵하기는 했지만 슬기까지 조용하니 마치 양들이 침묵 같았다. 가장 많이 떠든게 사람이 아니라 말들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히히힝.” (네 주인 왜 저러냐?) “히힝···.” (몰라. 뭘 잘못 먹었나 봐.) “히히히힝···.” (우리 주인한테 또 차인 것 아니야?)물론 실제로 말들이 이렇게 뒷담화를 깠을 리는 없지만 그만큼 분위기가 적막했다는 말이다. 그런 정운의 저기압이 좀 풀어진 것은 저택에 도착하고 하룻밤 늘어지게 자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정운의 이마에 싶은 주름이 없어지고 나서야 슬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운씨, 어제 무슨 일 있었는지 말해 줄래요?” “걱정했니?” “많이요.” 정운은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제야 자기 때문에 슬기가 눈치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정운은 슬기에게 어제 김신수와 만났던 일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다 듣고 나자 슬기가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그라운드 제로를 이용해서 세계 정복이라도 하겠다는 거래요?” “그렇다고 하는 셈이지. 사실··. 클리어의 보수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어.” 정운의 말대로 김신수의 말은 허점이 많았다.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주어지는 포인트는 어느 정도인가? 이 게임을 클리어 하는 순간 이 안에서 있었던 기억이 전부 지워 진다거나 하면 어떨까? 그리고 밖에 나갔을 때 부하들이 그의 말을 계속해서 들을지 말지까지···. 여러 가지 변수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자신있게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정운씨는 그 사람하고 손 잡을 생각 없는 거죠?” “없어. 원래 미친놈하고 어울리는 취미는 없고···, 그리고 놈의 말은 허풍이 강해. 삼대 길드를 뛰어 넘는 세력을 만들어서 클리어를 주도하겠다는 것 같은데····. 그게 될 리가 없어.” “하긴···. 그건 그럴 것 같아요.” 정운의 말에 슬기도 동감했다. 이번에 있었던 비정기 퀘스트를 통해서 정운과 슬기는 새삼스럽지만 십왕이라는 자들의 힘을 확실하게 체험했다. 그들의 힘은···. 이미 다른 유저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삼대 길드를 이끌고 있는 십왕들은 십왕들 중에서는 나름 하위권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도 보통 유저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괴물들이었다. “만약 놈들이 삼대 길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면··. 그때는 박살이 날 거야.” “정면으로 도전···· 할까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안 하겠지. 놈들도 바보는 아니야. 정면으로 도전하는 짓은 안 해. 그보다는···. 아마 삼대 길드에 들어있지 않은 상위급 유저들을 챙겨서 자신들의 세력을 만드는 것에 주력할 거야.” “그렇군요. 그럼 정운씨는 어떻게 할 건가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곰곰하게 생각하다가 결심한 듯이 말했다. “······당분간 휴식이야. 한 한 달, 길면 두 달 까지.” “그렇게 오래요?” 슬기는 크게 놀랐다. 그녀가 알고 있는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를 위해서 하루 후라 사냥을 거듭하는 남자였다. 쉬는 날도 있기는 했지만 절대로 길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달이라니? 두 달 이라니? “어쩔 수 없어. 일단은 분위기를 파악해야지. 슬기 너도 당분간은 외출 자제하고 있어.” “····알았어요.” 정운은 슬기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일단 사태를 지켜 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짙은 안개가 깔려있으면 안개가 사라질 때 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가지 수죠. 주인공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 올지는 좀 더 지켜봐 주시면 압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67화 ‘삼대 길드보다 약한 놈들인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나보다는 강한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 정운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놈들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고위급 유저들의 모임인 다수정예 시스템은 확실히 정운보다 강력했다. 현제 정운의 레벨은 80. 그리고 유니크 스킬은 보유한 것만 세 개에 유니크 아이템도 있었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아마도 상위급 유저들 중에서도 상당한 수위에 있을 것이다. 50레벨이라면 20명 정도는 정운 혼자서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다. 60레벨은 아마도 7~10명 정도? 그리고 70대의 레벨이 되면···? 1대1이라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70 초반대의 유저라면 2~3명 정도와 호각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김신수라고 했던가···. 그 놈만 해도 70대 중반은 넘어 보였어. 그리고 다른 놈들도 만만치 않았고···.’ 히드라를 잡고 있는 놈들을 관찰하면서 정운은 대강 눈대중으로라도 적의 전력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드러난 놈들의 전력이 숫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반이라고 치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혼자서는 답이 안 나왔다. 슬기와 세레나와 힘을 합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놈들이 정식으로 길드를 발표하기 시작하면 삼대 길드에서도 견제가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그 동안은 일단 숨을 죽이고 있기로 했다. 무작정 설치는 것 보다는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상수이기도 했다. 이런 정운의 선택은 현명했다는 것은 좀 더 나주에 밝혀진다. 김신수가 새롭게 만든 길드 뉴 웨이브는 그라운드 제로에 일대 변혁을 불러왔다. 보통 길드 하나 둘 생기는게 문제는 아니다. 항상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길드니 말이다. 문제는 그 길드의 규모였다. 총 52인. 그 중에서 가장 저레벨이 53레벨이었다. 보통의 길드에 가면 길드장, 혹은 에이스급으로 분류될 자가 가장 저레벨인 것이다. 가장 고레벨은 78로 알려져 있었고 한 마디로 고위급 유저만의 길드인 것이다. 심지어 모집 공고에서 적혀 있었다. 최저 가입 레벨에 50이상의 유저라고 말이다. “와···. 이거 미쳤네?” “이만큼의 고수들이 모인 것도 대단해.” “이거 어쩌면···.” “어쩌면 뭐?” “혹시··, 십왕들만 빼면 전체 전력은 삼대 길드보다 더 높은 것 아닐까?” “에이 설마··. 삼대 길드에도 고수가 얼마나 많은데?” “모르지? 십왕이라는 괴물만 없다면 혹시 아나?” “누가 듣겠다. 새끼들아. 주둥아리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서 훅 가고 싶냐?” “···아니 뭐····.” “그냥 한 말이지 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뉴 웨이브의 얘기를 했다. 그들이 이미 빠른 속도로 고위층 레이드를 성공 시키고 있다는 얘기가 허다했다. 길드를 결성하고 열흘만에 50대의 보스몹 레이드를 다섯 차례나 성공 시켰다. 그것도 사망자 제로라는 조건으로 말이다. 이 정도면 사람들의 사이에서 뉴 웨이브라는 길드의 이름이 널리 퍼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이런 뉴 웨이브의 발족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삼대길드들이었다. 삼대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한 십왕들은 그다지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길드를 만든 것은 조직의 테두리안에 고위급 유저를 많이 육성하고 자신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저층의 레이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 역할을 뉴 웨이브가 대신 한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정적 불쾌한 것은 삼대 길드의 중간 간부들이었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위치를 향해서 오후죽순마냥 쑥쑥 뻗어오는 뉴 웨이브가 그다지 좋지만은 안않았다. 무엇보다 그냥 경쟁자라면 모를까 뉴 웨이브의 존재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고 있었다. 뉴 웨이브의 길드 규율중에 거슬리는 조건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독단으로 타 길드나 타 유저와의 레이드 금지였다. 이게 삼대 길드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였다. 보통 삼대 길드에서 레이드를 할 때 100% 자신들의 길드원들만 가지고 레이드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상위급 유저의 제한된 숫자를 생각 할 때 비효율 적이었고 피해가 발생할 때 자신들이 온전히 뒤집어 써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자신들의 길드원과 그 외의 용병들을 섞어서 레이드를 했다. 비율은 그때그때 달랐지만 보통은 5대5, 혹은 6대4 정도로 했다. 즉, 길드의 힘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상위급 유저들과의 끈이 무척 중요했던 것이다. 실제로 상위급 유저들도 삼대 길드와의 거래로 비교적 안전한 레이드를 뛸 수 있었으니 일종의 상부상조의 결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뉴 웨이브가 상위급 유저를 독점하고 자신들끼리도 충분히 레이드가 가능 하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리고, 뉴 웨이브에는 삼대 길드에는 없는 메리트도 있었다. 자신들끼리 레이드를 하면 레이드의 보상도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다. 삼대 길드에서 레이드 용병을 뛰었을 때처럼 골드만 얼마 정도 받고 마는게 아닌 것이다. 이러니 상당한 숫자의 상위급 유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김신수와 직접 만나서 교섭을 한 후에는 뉴 웨이브에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정운의 눈에는 미친놈으로 보였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 뿐만이 아니라 그 후에 실제 세계에서의 지배까지 생각하고 있는 김신수의 생각은 그라운드 유저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것들이었다. 정운이나 슬기와는 다르게 대부분 이 그라운드 제로에 온 자들은 돈, 지위, 권력 같은 것을 원하고 또 원했다. 거기에 초연한 자들이었다면 애당초 그라운드 제로라는 서바이벌에 뛰어 들지도 않았을 테니 당연했다. 결국 상당수의 상위급 유저들이 뉴 웨이브에 가입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까지 보유하고 있던 용병들과의 커넥션을 잃어 버린 삼대 길드의 간부들은 급하게 회의를 열었다. 고급 호텔의 룸 같은 장소에 아홉명의 인간들이 원탁에 모였다. 각 삼대 길드에서 대표로 세 명씩을 선출해서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모두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제는 모두들 알다시피 뉴 웨이브라는 신흥 길드의 문제입니다.”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것은 라이온 길드의 중견 길드원이었다. 그의 밀을 시작으로 다른 길드원들도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골치더군요. 우리하고 용병 거래를 주기적으로 하던 상위급 유저중에 20명이 거래를 끊고 거기에 들어갔습니다.” “메두사 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길드장님은 그냥 내버려 두라고만 하시더군요.” “끙···. 애당초 길드장님들은 우리하고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 분들의 진짜 전쟁은 최상층이고 길드 운영은···. 좀 실례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후배들을 위해서 취미로 운영하는 학교 정도의 개념이죠.”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삼대 길드의 위치가 그렇게 쉽게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메두사 길드의 간부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판이 변한 것···. 우리도 이제부터 용병들에게 골드 말고 레이드의 부산물을 나눠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더 이상 이탈자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의 말은 일리 있는 의견이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이제까지 쭉 해온 길드의 관행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면 이제까지 우리가 해온 일이 불공평한 일이었다고 인정하는 격이 됩니다.” “으음···. 곤란하군요.” 그때 타란툴라 길드의 간부 한 명이 조심 스럽게 말했다. “차라리 너무 돌아가지 말고 직접적으로 뉴 웨이브를 압박하는 방법은···.”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시오!!” “당신 미쳤소!!!?” 타란툴라 길드의 간부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다른 길드의 간부들이 일어났다. “타란툴라 길드는 미쳤소? 우리 라이온 길드 같으면 그렇게 했다가는 길드장님에게 맞아 죽을 거요.” “우리 메두사 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길드장님이 다른 것에는 몰라도 그런 쪽으로는 얼마나 엄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건 타란툴라 길드의 김수민 길드장님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아니···. 그냥 저는 가능성의 한 가지로···.” 말을 버벅거리는 타란툴라 길드의 간부의 모습에는 곤란함이 가득했다. 사실 삼대 길드는 그 거대함과 강력함으로도 유명했지만 또 한 가지 유명한 것이 있었다. 절대로 아무 이유 없이 다른 길드나 타 유저를 압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삼대길드간의 암묵적인 철칙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무 이유없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유가 있다면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예전에 어떤 중소 길드가 필드에서 삼대 길드의 조원을 덮친 적이 있었다. PK의 경우 몹을 잡는 것 보다 보상도 경험치도 훨씬 짭짤하다. 그들은 삼대 길드의 하위급 조원들을 덮쳐서 한몫 잡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조원에서 단 한명의 생존자가 가까스로 돌아와서 길드에 자신의 조원들의 비보를 전했다. 삼대 길드는 즉각적이고 무자비하게 대응했다. 1층부터 50층까지 모든 층의 모든 포탈을 점거하고 놈들을 수색했다.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을 내부든 외부든 가리지 않고 놈들을 찾아서 최후의 일인까지 모두 죽여 버렸다. 그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놈들과 거래를 하던 다른 길드까지 족치면서 철저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했다. 당시 분위기가 하도 흉흉해서 일반 유저들이 함부로 필드에 사냥을 가기가 힘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놈들을 다 잡아 죽이고 포탈의 검문을 회수하고 나서야 일반 유저들은 어느 정도 숨통이 틔는 것 같았다고 한다. 함부로 진상 부리듯이 다른 유저들을 압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도전한다면 그때는 확실한 죽음을 보여주겠다. 그게 바로 삼대 길드의 방침이었다. 그리고 이런 방침은 바로 길드장이기도 한 십왕들이 만든 것이었다. 만약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른 유저들을 핍박한다면 그때는 그 길드원에게는 즉각적인 제재가 내려졌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에 들어온 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에 약한 자들이다. 그러니 그런 와중에서도 이런 털통 같은 군기가 성립되는 것은 그만큼 삼대길드의 길드장들이 칼같이 길드원들의 기강을 잡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직접적으로 뉴 웨이브를 압박해 보자는 주장은 당장에 폐기 되었다. 그리고 길고 긴 의견 교환 속에서 메두사 길드의 간부 한명이 말했다. “북풍보다는 태양이 좋을 법 하군요.” “····무슨 말입니까?” “뉴 웨이브를 압박하거나 상위급 유저들에게 혈맹을 제안하는 식으로 매달리지 말고 좀 사근사근하게 다가가 보자는 말이오.” “············?” “우리 삼대 길드에는 아직 뉴 웨이브에는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장점이 있소. 그게 뭔지 아시오?” “그거야···. 전체적인 힘은 우리가 훨씬 위지요.” “길드원의 숫자도 훨씬 많고··. 뭐, 질에서는 좀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길드 내부에도 상위급 유저는 충분히 있소.” 다른 길드 간부의 말을 들은 메두사 길드의 간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죠. 하지만 다른 상위급 유저들에게 제안할 당근이 되지는 못하죠.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단 하나의 이유? 그게 뭡니까?” “그러니까 ········ ········ ····· ········. 어떻소?” 메두사 길드의 간부의 말이 끝나자 다른 길드원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확실히 우리도 생각하지 못한 거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 까요? 지금 당장 시험해 볼까요?” “우선 정확한 오랫동안 우리와 거래를 해온 믿을 만한 상위급 유저들을 상대로 거래를 제시해 봅시다.” “그게 좋겠군요. 시험적으로 한 열 명 정도가 좋을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그렇게 뉴 웨이브의 삼대 길드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었다. 직접 힘으로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대립각을 세우고 적대한다는 이유로 그랬다가는 길드장들에게 간부들이 박살이 날 것이다. 그러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수작에는 수작인 것이다. ============================ 작품 후기 ============================ 음, 보통 후기에쓴것 가지고 뭐라고 해명을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저번화의 후기에 제가 쓴 '안개가 짙을때는 기다리는게 수' 라는 말에 관해서 불쾌 하셨다는 분들이 있어서 거기에 관해서 말하겠습니다. 그 표현을 제가 나쁜 댓글을 다신 분들의 무시하고 그냥 기다린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완전히 틀렸습니다. 제가 어제 후기에 쓴 안개에 빗댄 표현은 주인공의 행동에 관한 해설이었습니다. 김신수하고 삼대 길드의 미묘한 다툼 사이에 끼지 않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한 걸음 물러나 있다. 라는 상태에 관한 해설입니다. 그러니 챕터 이름도 '변화하는 정세'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뭔가 불만이 있다는 식으로 표현한게 전혀 아닙니다. 보통 이렇게 자세하게 해설할 일은 없는데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적습니다. 전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직 1류가 아닙니다. 1류는 아니지만 1류가 되고 싶고 또,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작가이기는 하죠. 하지만, 스스로 프로 장르문학 작가라고 자각은 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부정적인 댓글을 다는 의견이 많다고 독자분들에게 무례한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취미로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 정도 기본적인 자각은 있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제 글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 68화 <어부지리 버프? 아니 워프.> “하앗!!!” “흡!!!” 카앙!!! 정운의 저택에서는 정운과 세레나가 한창 대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냥을 멈춘다고 해도 마냥 놀고 있기만 해서는 몸이 둔해질 것 같아서 시작한 정운의 훈련에 레나가 끼어 든 것이다. 세레나는 자신의 참격을 막아낸 정운을 보고 살짝 떨어지면서 말했다. “많이 느셨군요.” “덕분에 말이지···.” 정운은 세레나에게 말을 하면서도 내심 생각했다. 이미 세레나와의 대련을 시작하고 30분이 지났다. 그런데 계속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면 확실히 는 것이다. 원래 몸보다는 감을 둔하게 하지 않을 정도로 생각하면서 시작한 훈련이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 인간의 몸은 스테이터스에 좌지우지 된다. 슬기 같은 가녀린 여자라고 해도 힘 스탯을 마구마구 찍으면 언제부터인가 근육질의 마초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정운은 그런 슬픈 일은 절대로 생기게 내 버려두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역설하면 스테이터스가 줄어들지 않는 한 팽팽 놀고 있어도 몸에 근육이 쇠퇴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대련은 그냥 감을 유지하는 선에서 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세레나가 끼어들면서 목적이 확 변했다. 처음 그녀와 대련을 할 때 세레나가 한 말은 아직도 정운의 귓가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스터의 그 조잡한 칼 부림을 한 번 정도는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군요.”] [“어···? 세레나, 나 검술 레벨이 MAX인데···.”] [“그런가요···? 그럼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죠.”] 그리고 시작된 대련에서 정운은 자신의 검술에 대한 자신감이 확 사라졌다. 1분. 컵라면에 불붙고 면 불기도 전에 정운은 스스로의 검을 떨궈 버렸다. 아연이 실색한 정운을 향해서 세레나가 말했다. [“이게 검술의 MAX, 그러니까 극한에 도달했다는 자의 수준입니까?”] [“어·····.”] [“애당초, 검술에 끝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건방진 말이죠. 그게 기본기도 되먹지 않은 초.심.자.의 말이라면 더욱더 말이죠.”] [“···········.”] 세레나가 초심자라는 말을 강조하자 정운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반한 여자기는 하지만 그때 그 순간 만큼은 세레나의 말이 참 얄미웠다. 세레나는 검면으로 자신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면서 말했다. [“제가 처음부터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제까지 마스터가 익히고 있던 얼간이 칼부림은 모두 잊어 버리는게 좋을 것입니다. 안 그러면 몹시 괴로울 테니까요.”] 그리고 그날부터 정운은 세레나와의 본격적인 검술 수련에 들어갔다. 확실히 정운의 검술에는 문제가 있었다. 원래 정운은 초보 시절에 검술의 스킬북을 사서 검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기본중에 기본의 검술이었다. 검을 잡는 자세, 휘두르는 자세, 찌르는 자세. 정말 기본 검술이 다였다. 거기에 정운의 몇 년간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정운 나름의 검술이 생긴게 지금 정운의 검술이었다. 사실 정운 말고도 대부분의 유저들이 검술이든 창술이든 권법이든 이런 식으로 완성시켜갔다. 그런데 그런 정운의 검술이 세레나가 보기에는 참 조잡해 보였던 모양이다. 기본은 왕도고 기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기본이 잘 되어있다고 해도 혼자서 실전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 기본은 본래의 목적과 효용을 잃어 버린다. 진정한 기본기란 어떤 상황에도 굳건하게 대응 할 수 있는 응용력과 경험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정운의 경우···. 아니 그라운드 제로의 대부분의 유저들의 경우 전투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운 자들은 드물다. 그들의 기술은 기초만 다져진 상태에 그 위에 변칙적인 실전의 전투방법이 더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건물로 치면 기초만 다져 놓고 그 위에 삐뚤삐뚤하게 건물을 올리는 격이랄까? 정운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 그런 형태의 전투를 하고 있었다. 개개인의 센스에 의해서 차이가 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견실하게 기초를 다진 전투 스타일을 고수하자는 드물었다. 사실 유저들을 조금 변호하자면 거기에는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특수한 환경도 나름 한 몫을 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싸우는 상대는 보통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괴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검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술들은 대 인간의 기술이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에서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연마하는 기술이지 커다란 덩치의 괴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연마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거대한 괴수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일이 다반사인 그라운드 유저들의 검술이 제대로 된 검술로 발전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어쨌든···. 지금 정운은 세레나에게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우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배우기에는 역시 무리였다. 이제까지 정운 나름대로 쌓아온 노하우와 전투 패턴이 있는데 그걸 모두 고칠 수는 없었다. 그럼 오히려 약해져 버릴 것이다. 세레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는 정운의 나쁜 버릇을 지적하면서 고쳐가고 있었다.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보수 작업을 하는 정도로 조정을 한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정운의 검술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일단 빈틈이 없어졌고 공격도 한층 날카로워 졌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늘었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정운은 이전과는 다르게 확연하게 검의 실력이 늘었다. 특히 몹들 중에서 인간형의 몹, 다크엘프나 데스 나이트가 상대일 때는 한 층 더 능숙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세레나에게 검술을 지도받은 보람은 충분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후우····.” 몇 시간의 수련을 마친 후에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수고 하셨습니다. 매일매일 불평 하나 하지 않으시고···. 사실 마스터의 근성에는 저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별 말씀을····.” 정운은 개면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힘겨운 훈련이었지만 정운은 전혀 힘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 훈련을 가르치는 교관이 일단 자신이 반한 여자가 아닌가? 아름다운 금발을 햇빛에 반짝이면서 땀을 닦고 있는 세레나의 자태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는 저 멀리 날아가고는 했다. ‘····갈수록 중증이군···. 어찌해야 될지··.’ 정운으로서는 씁쓸하게 입맛만 다실뿐 이었다. 그때 집사가 정운에게 와서 말했다. “정운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예. 메두사 길드의 길드원이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거실로 안내 하도록. 씻고 나가겠다.” “예. 알겠습니다.” 정운은 메두사 길드에서 손님이 왔다는 것을 듣고는 몸을 간단하게 씻고는 거실로 향했다. 거실로 가니 평소에 본적 없는 멤버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정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성목입니다.” ‘김성목? 혹시····?’ 상대의 이름은 정운의 기억 한 구석에 있는 이름이었다. “메두사 실드의 김성목씨라면···. 혹시 제가 예상하는 그 분이 맞습니까?” 정운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김성목은 웃으면서 말했다. “예. 아마도 맞을 겁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메두사 길드의 간부 분을 뵙는군요.” “별 것 아닙니다.” 김성목. 그는 상당한 유명인이다. 메두사 길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길드장이자 십왕인 이보영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유명한 자는 이보영의 동생이자 역시 십왕의 9위에 있는 이지영이었다. 하지만 이 둘을 제외하고도 메두사 길드에 고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메두사 길드 뿐만 아니라 다른 삼대길드에도 80~90레벨의 간부들이 몇 명 있는데···. 김성목도 그 중에 한 명이다. 십왕들은 간간히 도움을 주는 선에서 그치고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삼대 길드를 이끌고 있는 주력이 바로 이들이라는 말도 있다. 또한 이들은 길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십왕인 길드장에게 직접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직통 라인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은 주로 60층 대의 클래스에서 싸우고 있었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미답지인 60층 대에서 사냥을 하는 그들은 삼대 길드가 십왕만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 어쩐 일이십니까?” 정운은 어째서 이런 거물이 자신을 찾아 왔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 별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저희 길드에서 장시간 동안 신의를 지켜주신 분들을 상대로 한가지 서비스를 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정운님이 대상에 올랐습니다.” ‘꼭 스팸으로 보험 넣게 하는 사람들하고 말 머리가 닮았는걸?’ 저쪽에서 뭔가 원하는게 있다는 증거였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다. “어떤 서비스를 말하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 정운님의 현제 플레이중인 층은 55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예. 그렇죠.” “그걸 한 번에 확 워프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워프?” 상대의 말에서 뜻밖의 제안이 나오자 정운이 반문했다. 그런 정운에게 김성목이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예. 55층을 넘어서 현제 우리 길드에서 안내 해 드릴 수 있는 최고층인 65층까지 모셔 드릴까 합니다.” “····65층으로·····.” 정운은 속으로 크게 놀랐지만 겉으로는 심각한 척 하면서 티를 내지 않았다. 냉정하게 생각 했을 때 이건 기회다. 현제 개발된 최고층은 67층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거기데 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십왕들 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십왕들도 최상층만큼은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올라간다고 한다. 왜 십왕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십왕들이 최상층을 독점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고, 혹은 십왕들이 다른 유저들을 데리고 와 봤자 금방 죽어 버려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뭐, 이유가 어찌 되었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십왕들이 일반 유저들을 낙하한 태워서 최상층에 데리고 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길드의 간부들이 정운을 단번에 워프시켜 준다는 것은 매력적인 제안임에 틀림없었다. 정운은 생각 같아서는 단번에 콜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멍청한 물고기가 지렁이 물듯이 덥썩덥썩 물수는 없었다. “흠···, 65층까지 데려다 주신다는 말은 저에게 65층의 레이드에 대한 참가권을 주신다는 말입니까?” 정운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거기에 관해서는 별개의 얘기입니다. 사실 저희 길드의 간부들도 아직 65층의 레이드를 시도하지는 못했습니다. 거기 보스몹이 워낙에 강력해서요.” “그렇군요···. 그럼 올라갈 때마다 포탈에 가이드를 붙인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게 되는 거죠. 계약을 체결하시면 항상 포탈에 상주중인 우리 길드원이····.” “계약이라고 하셨습니까?” 정운이 말 허리를 자르면서 핵심을 찌르자 순간 김성목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순간이었고 바로 표정 관리를 하면서 말했다. “예.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계셨겠지만 그런 해택을 막 주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는 저희들에게도 메리트가 있어야 합니다.” “흐음·····.” 정운은 속으로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제시할 조건이 뭔지도 대강 짐작이 가기는 갔다. ============================ 작품 후기 ============================ 정운 : 난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할지 대강 알고 있다. 성목 : 그래? 뭔데? 정운 : 그건 다음 화에....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69화 “일단 조건을 들어 볼까요?” 짐작은 하고 있지만 새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물어보는 정운에게 김성목이 말했다. “최근에 뉴 웨이브라는 길드의 창설 소식을 아십니까?” “모를 리가 없죠.” 역시나 그것이었다. 놈들이 상위급 유저를 독식하기 시작하자 이제까지 삼대 길드와 용병 거래로 맺어져 있던 수많은 상위급 유저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이제까지 경쟁상대가 없던 삼대 길드로서는 설마설마 하다가 한 방 제대로 먹은 것이다. 상위급 유저들을 포섭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는 있었지만 그냥 용병거래로도 충분하다. 라고 만족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김신수는 그런 삼대 길드의 태만한 방심의 빈틈을 제대로 찔렀던 것이다. 이렇게 삼대 길드에서 뒤 늦게 대응을 해야 할 정도로 정확하게 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저희 메두사 길드를 비롯한 삼대길드와의 독점 용병거래입니다.” “그건, 혈맹을 맺으라는 것입니까?” 정운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하자 김성목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혈맹은 아닙니다. 그저 계약을 맺을 뿐입니다. 일종의 약속이죠.” “약속이라·····. 그거 어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제까지 비교적 공손한 태도였던 김성목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날카로운 기세 같은 것이 느껴졌다. ‘과연···. 삼대 길드란 말이지.’ 현실의 사회에서는 계약이나 법을 어기면 경찰과 검찰에서 잡아가서 법원에서 법을 심판하고 그에 걸맞게 형량을 구형한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그런 사회적인 시스템이 없다. 즉,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보통 혈맹이 아닌 이상 약속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애당초 여기 모이는 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인간들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삼대길드쯤 되면 얘기가 다르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그 약속을 어긴 대가는 스스로 받아 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는 곳이다. ‘뭐, 반대로 약속을 어기지만 않으면 이들도 체면이 있는 이상 함부로 어떻게 하지는 못하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굳혔다. “자세한 계약의 조건을 들어보죠.” “여기 서면으로 가져 왔습니다.” 정운은 이미 어떤 조건일지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꼼꼼하게 계약서를 읽어 봤다. 계약서에는 정운이 65층의 통행권을 얻는 대가로 앞으로는 절대 삼대 길드 이외의 용병 의뢰를 받지 않는다는 계약이 명시 되어 있었다. “····만약에 제가 하위급 유저를 키우기 위해서 저층의 레이드를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운의 말에 김성목은 계약서의 조항을 지적하며 말했다. “여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계약자 명에 정운님의 이름을 기본으로 다른 팀원을 계약의 부속자로 적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키우기 위해서 하위급 레이드나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 없을 겁니다.” “그럼 저 뿐만 아니라 저희 팀원 전체가 이 계약에 묶이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불편하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어차피 65층에 혼자 올라가실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그건 그랬다. 슬기가 거기서 얼마나 제 몫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세레나는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거기서는 정운도 지금처럼 안전빵으로 사냥 하는 것은 불가능 할지 몰랐다. 어느 정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만큼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알겠습니다. 다만··, 여기에 추가 조항을 달아도 될 까요?” “추가 조항이라고요?” “예. 만약에 부득이하게 다른 팀원과 레이드를 해야 할 일이 생겼을 시. 미리 사전에 삼대 길드에 보고하고 거기에 허락을 구했을 시에는 해도 된다. 라는 조항 정도면 좋겠습니다만?” 정운의 말을 듣고 김성목은 피식 웃었다. 한 마디로 삼대 길드가 허락 안해주면 절대로 외부 레이드를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런 조항···· 과연 필요 할 까요?” “세상만사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한 조항 하나 정도는 있는게 좋아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별 문제 없는 조항이니 지금 바로 추가하도록 하죠.” 그렇게 해서 정운은 삼대 길드와 계약을 해서 그들과의 전속 용병 계약을 했고, 이렇게 해서 단 번에 65층으로 워프 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정운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숫자의 상위급 유저들이 삼대 길드로부터 이런 조건을 제안 받았다. 또한 그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미 뉴 웨이브에 가입한 상위급 유저들 사이에 상당한 동요가 발생했다고 한다. 65층의 출입권. 그건 어지간한 레이드 보상보다 훨씬 매력적인 보상이었다. 설마하니 삼대길드에서 그런 달콤한 보상을 풀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다면 뉴 웨이브에 이렇게 냉큼 가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뉴 웨이브에 가입을 한 이상 삼대 길드의 65층 통행 해택을 받는 것은 불가능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김신수는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 했다. “쳇···. 누군지 몰라도 머리 좀 굴렸군.” “어쩔가요? 길드장님.” “····지금 우리 길드에 가입한 유저의 숫자는?” “75명입니다. 그리고 전원 50레벨 이상이고 70레벨 이상도 상당수입니다.” “일단 기초는 갖췄군··. 탐내던 인재 몇 명을 놓치기는 했지만 기틀은 잡았어.” 김신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잠시 후 눈을 뜨고 말했다. “일단 내부를 다스리도록 하지. 길드원들에게 동요하지 말라고 하고 레이드 주기를 늘려. 이쪽에 가입한 자들이 한숨 쉬지 말게 하는데 주력해.” “알겠습니다.” 보고를 하고 밖에 나가는 부하를 보고 김신수는 집무실의 푹신한 중역 의자에 기다면서 중얼 거렸다. “놓친 물고기는 일단 나중에 다시 생각하고···. 지금은 잡은 물고기들을 건강하게 관리해야지.” 그의 눈은 이미 10년 후의 계획을 보고 있었다. 65층. 현제 그라운드 제로의 최고 개발층은 67층이다. 그리고 삼대 길드의 간부들의 주 사냥층은 주로 60층에서 65층 사이로 되어 있다. 그 밑이 일반 유저들 중에서 상위급 유저들이 사냥하는 곳이고 말이다. 즉, 65층이라는 곳은 정운에게 있어서도 미지의 영역인 것이었다. 단번에 10층을 워프해 버린 정운으로서는 준비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정보를 수집하고 거기서 어떤 방법으로 사냥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삼대 길드에 막대한 골드를 찔러 주면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정보에 대한 수집을 모두 마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불러서 회의를 시작했다. “우선 지형을 설명할게. 전체적인 지형은 여느 층과 마찬가지로 원형이고 중앙이 고산지대를 중심으로 남쪽의 황야지대, 동쪽의 초원지대, 서쪽의 숲지대. 북쪽의 빙하지대로 나눠져 있어. 일단 지형은 흔한 패턴이지.” 정운의 설명을 들은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숲지대를 제외하고는 별로 어려울 지형은 없네요.” 가봐야 알겠지만 숲에서는 아무래도 말을 달리기 어려울 것이다. 숲도 숲 나름이고··. 말이 달릴 수 잇는 침엽수림 같은 곳도 있지만 어쩌면 열대 아마존 같은 숲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흑토 이외의 말들이 달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 슬기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빙하지대도 말들에게 좀 춥지 않을까요?” “아마도 추위를 이겨내는 아이템들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까? 마스터.” “물론 있지. 말들은 물론이고 우리도 모두 장착 할 거야.” “그런데 있어요?” 정운의 말에 세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물론 있지? 그런데 왜 그렇게 놀래?” “아니···. 그런게 있었으면····. 아니··· 그러니까···.” 슬기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은 왜 그러는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슬기는 예전에 정운이 자신을 알몸으로 만들고 끌어안고 체온을 유지했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게 있으면 그대 썼으면 될 걸···. 정운시 혹시 일부러 그런건······.’ 슬기는 얼굴이 화끈해 졌다. 사실 그건 슬기의 오해다. 물론 방한 아이템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건 소모성 아이템이고 가격도 제법 나간다. 항상 상비하고 다닐 물건은 아닌 것이다. 그때는 그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벌파의 어그로 트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슬기와 설원 지대로 대피해야 했었다. 그러니 불가항력이었다. “크흠···. 아무것도 아니에요. 설명 계속 하세요.” 슬기는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진 상태로 말했고 정운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설명을 계속했다. “우선 하나하나 설명할게. 가장 먼저 설명할 것은 65층의 보스몹인 가루라. 이놈 골치 아프게도 새야. 비정기 퀘스트에 나온 주작하고 비슷한 성질의 새인데···. 굉장히 강하다고 해.” “새? 주작 처럼요?” “그래. 불교에 말하는 가루라를 모티브로 제작한 모양인데··. 전체적으로 금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번개를 다루고, 한 번 날면 음속으로 소닉붐을 일으키며 날아다니는 모양이야. ····망할 악마새끼들 좀 쉽게 만들 것이지.” 정운은 말하다 보니 너무 터무니 없는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몹들을 만든게 악마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불평할 곳이라고는 거기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정운의 설명을 들으면서 질린 거슨 정운 뿐만이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잡아요?” 질렸다는 듯이 말하는 슬기를 보고 정운이 대답했다. “나도 몰라. 적어도 지금 당장 잡을 것은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하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보스몹 보다는 단번에 10층이나 올라가면서 수준이 훌쩍 높아진 일반 몹들이었다. 보스몹은 나중에 잡아도 놈들을 지금 상대하지 않으면 65층으로 올라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운은 설명을 계속했다. “일단 가루라가 있는 중앙의 고산 지대에 서식하는 몹들의 종류는 자이언트 골렘, 흡혈조, 봉법 원숭이라는 놈들이야. 여기 자료가 있으니 읽어 봐.” 정운은 삼대 길드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산 자료를 둘 에게 배포했다. 자이언트 골렘 높이 10미터의 골렘. 막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고산 지대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굴러서 육탄 공격을 하기도 한다. 주공격은 육체적 공격이지만 때때로 손끝에서 낙석 정도 되는 크기의 암석을 발사함. 흡혈조 날개 길이를 합하면 2미터 정도 되는 크기에 독수리처럼 생긴 새. 단체로 10~20마리씩 몰려 다니며 제비처럼 저공비행 하면서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며 공격함. 부리와 날갯죽지가 날카로워서 거기에 스치면 출혈이 나기 쉬움. 봉법 원숭이. 신장 4미터 정도에 한 자루의 철곤을 잘 쓴다. 무술가 처럼 능숙한 봉법을 자랑하며 위기에 처하면 털이 붉게 변하는데 그렇게 되면 신체 스팩이 1.5~3배 정도로 올라감. “중앙의 보스지대에 있는 놈들이니 강력하기야 말 할 것도 없지만···. 하나 같이 까다로운 놈들 뿐이야.” “····험난하네요.” “그래. 하지만 험난하다고 피할 수 있는 산은 아니지. 우리는 이 놈들을 다 이겨 내야 되.”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기는 물론이거니와 세레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을 꼭 클리어 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지역의 자료들도 여기 있으니까 꼼꼼하게 살펴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65층의 다른 지역의 몹들의 정보를 슬기와 세레나에게 알려줬다. 한 지역마다 보통 세 종류의 몹들이 주로 서식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단 번에 10층을 점프 했습니다. 이것도 스킵의 축에 들어가기는 하려나요? 어쨌든 삼대길드와 뉴 웨이브의 마찰을 차분히 지켜보다가 어부지리 크리티컬로 작렬하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70화 <어서 와. 65층은 처음이지?> 65층의 몹의 전체 정보를 정리하면 대강 다음과 같았다. 황야 지대. 암석 드래곤 전장 20미터에 온몸이 암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로 바위로 위장하고 있다가 주변에 유저가 오면 공격함. 방어력이 강하고 한번 화가 나면 무대포로 돌격한다. 날개가 없는 육지형 드래곤이며 입에서 토하는 위액은 강력한 초산이다. 육미호 꼬리가 여섯 개 달린 요물 여우. 강력한 마법 공격을 하고 지능적이라서 위험할 것 같으면 도망간다. 때때로 동료 유저로 변신하기도 한다. 말을 하지는 못하니 사전에 암호를 정해서 위험에 대비 할 것. 흑철오공 길이 5미터에 온 몸에 검은색 철갑을 두른 것 같은 지네. 굉장히 빠르며 흉폭하다. 한번 물리면 극독을 가지고 있어서 독 저항력이 없는 자는 10초안에 죽는다. 암수가 한 쌍으로 다니고 재수 없을 때는 새끼들도 다수 있는 경우가 있다. 도주시에는 비행 스킬을 사용할 것을 권장함. 초원지대. 웨어울프 히어로. 현제 발견된 웨어울프 종류의 몹 중에서 가장 강력함. 전체적인 공수가 완벽하게 위급시에는 전장 10미터의 거대한 늑대로 변신함. 변신한 상태에서는 도주가 어려움. 오크 히어로 현제 발견된 오크종 중에서 가장 강력함. 오크지만 검기를 쓸 수 있고, 검술에도 능숙함. 트윈헤드 오우거 보다 더 강하며, 40층대의 보스몹에 필적함. 무장은 각양각색으로 통일되지 않음. 광폭한 육식소. 한 번에 최소 200마리 이상씩 다니는 무게 2톤짜리의 광폭한 소. 일단 무리를 이루고 있을 때는 못 잡음.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 임. 가끔씩 한 마리씩 떨어져 있는 몹은 잡을 수 있음. 단일 개체로는 65층에서 가장 약함. 숲지대. 숲의 폭군. 티라노사우르스 처럼 생긴 높이 20미터의 공룡. 꼬리 공격이 강력하고 한 번 점프하면 높이 50미터까지 점프해서 낙하함. 도망가기는 어렵지만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음. 다크엘프 엘리트 전사. 현제 발견된 다크 엘프중에 가장 강력한 존재. 정령과 작은 석궁. 그리고 롱소드를 사용함. 전체적으로 빈틈없이 강하고 보통 3~5인 정도 1조로 행동함. 무리에 여성 다크엘프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포획 시 SEX 가능. 다크문 엘프 전사. 이마에 초승달 무늬가 있는 엘프. 가면을 쓰고 주로 행동하고 그 강력함은 다크엘프 엘리트 전사에 뒤지지 않음. 주 공격 수단은 쌍검술. 긴 레이피어와 짧은 단검을 교대로 사용함. 역시 포획 시 SEX 가능. 빙하지대. 설원의 유니콘 길이 3미터에 이마의 뿔에서 얼음과 뇌전을 다루는 난폭한 유니콘. 가죽이 질겨서 생각보다 방어력이 강하다. 뿔이 약점이기는 하지만 마법 공격의 근원지이기도 해서 공격하기 어려움. 예티 권법가. 신장 4미터는 넘는 설인. 강력한 권법을 쓰며 공격 패턴이 다채롭다. 먼저 공격하지는 않지만 한 번 공격하면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공격함. 단체 공격은 하지 않지만 새끼를 공격하면 예외. 눈보라의 유령. 하늘거리는 해파리처럼 생긴 아스트랄 계열의 몹. 물리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빙계열 마법으로 공격. 화염계 마법에 상대적으로 약함. 길고 긴 보고서를 다 읽고 나서 정운은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이것 참···.” 정운이 곤란한 듯이 중얼 거리자 슬기가 얼굴을 빨갛게 하고 외쳤다. “이거 작성한 사람 바보 아니에요?” “마스터 이것 좀···.” “나 보고 따지지 마. 자기들 딴에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모든 정보를 기입한 거래. 나도 지금처음 읽어봐.” 슬기가 저렇게 얼굴이 빨개진 이유는 아마도 다크엘프 엘리트 전사와 다크문 엘프 전사에 대한 보고서 때문일 것이다. 사실 몹에 대한 정보 자체가 그동안 삼대 길드의 상위급 유저들이 틈틈이 조사한 것이니 부족한 면이 종종 있었다. 약점이 밝혀진 녀석들도 있었고, 없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 세··· 가능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짜 해 봤다는 거에요? 몹이랑?” “글쎄? 아마도 그랬을지도···.” 슬기가 얼굴을 빨갛게 말하고 있는 정보는 사실 정운에게도 별로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몹의 경우 죽으면 얼마후에 그 시체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다른 이용 방법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중겸의 직업이기도 한 테이머. 그 직업은 몹을 길들여서 자신의 부하로 복종 시키는게 가능하다. 한중겸의처럼 커다란 보스몹을 복종 시키는 것은 무리지만 다른 테이머들도 자신들 딴에는 제법 쓸 만한 몹을 잡아서 길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길들인 몹들 중에 아름다운 몹. 그러니까 엘프들이나 혹은 수인족 계열의 몹들을 성적인 용도로 쓰는 변태들이 종종 있다는 말도 들어왔다. ‘그렇다고 그걸 이렇게 서면으로 정리해둘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이 자료 자체가 삼대 길드의 고위급 유저들이 돌아가면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누가 이 글을 적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짝짝··. 정운은 박수로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 말했다. “자, 일단 그건 그거고···. 우리가 사냥할 사냥터를 정해야지.” “전 숲은 싫어요.” 슬기는 냉큼 대답했다. 아무래도 보고서의 내용이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슬기야. 내가 그럴 놈으로 보여?” “········아니요.” 슬기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슬기가 보기에 정운이 그럴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게 싸워서 몹하고 그 짓을 할 바에는 집안에 있는 NPC를 건드리는 편이 훨씬 안전하겠다. 그런데 뭐 하러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사냥을 위해서만 움직이도록 하자. 알았지?” “예···. 잘못했어요.”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슬기의 목소리가 정운에게는 어쩐지 굉장히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정운의 말을 듣고 있던 세레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마스터, 여기서 미리 말을 한다고 해도 그다지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보스몹이 있는 중앙의 고산지대를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모두 둘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사실 어떤 몹이 어떤 보상을 주는 지는 잘 모르거든.” “그렇다면, 여기서 하는 말은 모두 단순한 탁상공론일 뿐입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우리들의 행보를 정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그 말이 맞군.” 정운은 세레나의 말에 자신이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 번에 10층이나 올라가는 것이 처음이라서 그럴까?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에 주력한 나머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감한 결단력이 무뎌지고 있었다. ‘어차피 이 게임은 직접 부딪혀 봐야 아는 거다.’ 정운은 마음을 굳혔다. “고마워 세레나. 일단 내일부터 해서 한무리, 한무리씩 잡아 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슬기야. 너도 오늘은 푹 자둬. 내일부터 한동안 다시 바쁠 거야.” “예. 알았어요 정운씨.” 그렇게 해서 그날의 회의는 일단 부딪혀 보고 생각하자. 라는 식으로 결정 되었다. ·····회의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 정운이 65층으로 향하는 날. 정운은 포탈에서 기다리고 있는 삼대 길드원의 멤버를 보고는 그들이 발급해준 통행증을 내밀었다. “어디 보자··. 박정운씨 맞으시죠? 알겠습니다. 여기로 오시죠.” 정운을 포탈로 안내하는 유저는 장비가 충실한 것이 제법 레벨이 있어 보였다. 아마도 40과 50레벨 사이 정도는 되어 보였다. ‘역시 65층 쯤 되니 그냥 포탈 요원도 제법 가려 뽑았군.’ 아마도 그는 64층의 레이드 시에 자리에 이름만 올린 요원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통행권은 나오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저 수준으로 혼자서 65층에 가라는 말은 가서 죽어라. 라는 말과 다를게 없다. 평소에는 저층에서 사냥을 하다가 오늘 같은 날에만 포탈에서 죽치면서 정운처럼 이번에 계약한 자들의 안내를 하는 것이리라. 정운은 그를 따라서 포탈을 타고 65층으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포탈이 도착한 곳은 65층의 황야지대였다. “오실 때는 제 안내가 없어도 이 포탈을 이용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설명을 하고 부리나케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긴, 그 레벨로 여기 있는 것이 무리수이기는 하지.’ 그가 서둘러 돌아가고 나서 정운은 세레나와 슬기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황야 지대를 탐색 할 거야. 둘 다 바싹 긴장하고 따라와.” “알겠습니다. 마스터.” “예. 알았어요. 정운씨.” 그렇게 해서 정운의 첫 65층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정운은 몰랐다. 55층과 65층의 까마득한 차이를 말이다. 우선 황야 지대를 탐색하던 정운이 처음으로 마주한 몹은 흑철오공이라는 거대한 지내였다. 온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검은색 껍질은 매끈매끈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보통 지네는 징그럽다는 느낌을 주는데 놈은 5미터 정도의 덩치가 있으니 징그럽다 이전에 위험하다. 라는 위압감을 먼저 주고 있었다. 놈과 마주한 순간 정운은 세리아에게 말했다. “세레나!! 보조 버프!!” “알겠습니다. 마스터.” 세레나는 즉시 신의 보호와 신의 가호 그리고 신의 자비까지 일으켰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정운과 슬기에게까지 발밑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방어력 50%강화] [공격력 700%강화] [체력이 분당 8%씩 회복됨.] 온몬에 활력이 도는 것과 동시에 알림창에서 메시지가 떴다. “좋아··. 가자 흑토!!” “히히힝!!” 정운은 자신이 직접 앞으로 나서서 전위를 맡았다. 세레나 역시 그런 정운과 함께 앞으로 나왔다. 예전에는 슬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명은 후방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우선 슬기 본인이 기마술이 많이 늘어서 전투중에 안전한 사각 지대로 몸을 빼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전투에 능숙해 진 것이다. 덕분에 정운과 슬기 중에 한명이 교대로 딱 붙어서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거기다····. “실드.” 슬기가 실드를 펴자 방어력 6,000짜리의 은은한 보호막이 생겼다. 이제 저 안에 있으면 한 방에 즉사하는 일은 어지간하면 없을 것이다. 설명은 길었지만 그렇게 세 사람의 진형이 완성되기까지 3초가 걸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다음화에서는 65층의 첫 몹사냥이 있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71화 “크라라라라라!!!” 흑철오공은 자신을 적대시하는 자들을 보고는 크게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마치 뱀처럼 머리를 세우더니 그대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정운을 향해서 달려 들었다. ‘빠르다!!!’ 공충이나 벌레는 움직임이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법인데 놈의 움직임은 마치 민활한 뱀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놈의 공격이 적중한 것은 정운이 아니라 그 사이에 끼어든 세레나였다. 콰지직!! “어림없다.” 일행 중에 유일하게 방패를 장비하고 있는 그녀는 방어력이 두터웠다. 그대로 그녀는 방패로 흑철오공의 공격을 막았다. 마치 쇠망치로 철판을 우그러트리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세레나는 몇 걸음인가 뒤로 물러났다. ‘방어가 두터운 세레나가 저렇게···.’ 정운은 역시 65층의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감탄했다. 하지만 감탄은 감탄이고···. 사냥중에 정신 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세레나가 전방에서 시간을 끄는 사이에 정운은 그대로 옆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창을 힘껏 찔렀다. “받아랏!!” 카앙!! 정운의 창이 흑철오공의 껍질에 부딪힌 순간 불꽃이 튀는 것과 동시에 정운은 손목이 얼얼해 짐을 느꼈다. “미친···. 뭐 이따위야.” 정운의 공격은 적에게 전혀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일반 몹일 뿐인데 정운에게 돌아온 손맛은 방어가 두터운 보스몹을 때렸을 때와 비슷한 감촉이었다. “좋아··. 어디 보자!! 기공술!! 회천공!!” 유니크 스킬은 정신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보통 레이드 상황이 아니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게 현명하다. 퀘스트형 던전도 아니고 일반 필드에서 전력으로 이런 스킬을 써야 할 정도로 몰렸다는 것에 정운은 속으로 짜증이 좀 났지만···. 콰지지직!! “크에에에!!!” 그래도 이번 공격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아까전의 공격은 어디 탁구공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무시하던 흑철오공이 이번에는 크게 소리 지르면서 자기 측면에 있는 정운에게 머리를 돌렸다. 정운은 그 순간 재빨리 뒤로 움직였고 흑철오공의 시선이 정운에게 몰렸다. 그리고 세레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날카롭게 검을 휘둘렀다. “하앗!!!” 카앙!! 세레나의 경우 방어력은 정운보다 높지만 공격력은 많이 모자란다. 그런 그녀의 검격이 흑철오공의 껍질을 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자라는 공격력을 기교와 지혜로 극복할 수 있는 여자였다. “핫!!!!” 푸욱!! 세레나는 공격을 베기에서 찌르기로 바꿨다. 지네라는 생물이 가지고 이는 약점인 껍질과 껍질 사이의 연한 부분을 있는 힘껏 찌른 것이다. “크에에에!!!” 흑철오공은 짜증이 나는 것처럼 몸을 거칠게 비틀었다. “웃···.” 세레나는 미처 검을 다 빼지 못한 상황에서 놈이 거칠게 발버둥을 치자 거기에 휩쓸려 버렸다. “세레나!!!” 정운은 세레나의 위기에 눈에 불을 켜고 그대로 스킬을 썼다. “쉐도우 체인!!!” 촤르르륵!! 정운의 말에 흑철오공의 그림자에서 다섯 가닥의 그림자가 뻗어와서 놈의 전신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좋아··. 공격 갑니다!!” 그리고 정운과 세레나가 시간을 번 틈에 마법의 캐스팅을 마친 슬기의 공격이 날아왔다. “파이어 월!!!” 화르르륵!! “크라라라라라!!!!!” 흑철오공은 자신의 몸 바로 밑에서 불의 방벽이 일어나자 철판위의 지렁이처럼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역시, 그냥 공격 마법보다 이게 더 정답이었어.” “슬기 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속으로 적지 않게 감탄했다. 정운이 쉐도우 체인으로 몸을 구속하는 사이에 슬기가 그 지면에 파이어 월을 일으킨다. 확실히 단발로 끝나는 다른 마법 공격 보다는 이렇게 지속적으로 구워 버리는 편이 대미지가 더 클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정운은 한 번도 이런 콤비네이션을 사전에 연습하거나 말로 꺼낸 적도 없었다. 지금 이 콤비네이션은 슬기가 순전히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이건 정운의 실수였다. 딱히 정식으로 말을 꺼낸 것은 아니지만 이 무리의 리더는 누가 뭐래도 정운이었다. 정운에게 귀속된 가디언인 세레나는 물론이고 슬기 역시 혈맹의 조건은 대등했지만 사실상 정운이 키워주고 있는 레벨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라면 팀웍을발휘 할 수 있는 콤비네이션이나 연계기술의 구상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어야 했다. 실제로 제법 이름난 팀이나 길드에서는 자신들만의 연계공격 패턴이 몇 가지나 있기도 한다. 정운과 슬기, 세레나. 이 세 명의 조합이면 만들어 낼 수 있는 패턴이 상당수 있었지만 정운은 그저 개별적으로 갈라 놓기만 하고 거기에 만족한 것이다. 그래서는 팀 플레이의 상승 효과가 반감된다. 정운이 그걸 게을리 한 이유는 두 가지. 우선은 정운 스스로가 워낙에 솔로 플레이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렇다보니 팀플레이에 관해서 경험이 부족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세레나는 둘째 치고 정운은 아직도 슬기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었다. 그거야 슬기가 정운이나 세레나에 비해서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운 덕분에 고속 성장을 하고 이제는 제법 경험을 쌓아서 한 명의 배틀 메이지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스스로 이런 창의적인 응용공격을 할 정도로 말이다. “크···크에에에에!!!!” 흑철오공은 프라이팬 위의 베이컨처럼 바싹 구워지고 있다가 크게 몸부림치면서 쉐도우 체인을 벗어났다. “이럴수가··. 저 놈···.” 정운은 크게 놀랐다. 이제까지 쉐도우 체인에서 벗어난 것은 보스몹들 뿐이었다. 그 놈들도 보통 20초 정도는 묶여 있다가 간신히 벗어나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일반 몹인 흑철오공이···. 비록 30초 정도 걸리기는 했지만 쉐도우 체인에서 벗어날 줄은 몰랐다. “크에에에!!” 놈은 그 상태로 슬기를 향해서 달려갔다. “이런····. 슬기야!!” 콰아앙!! 슬기의 실드에 흑철오공이 전신을 달려서 부딪혔다. 정운과 세레나가 막으려고 했지만 한번 달리기 시작한 흑철오공은 너무 빨라서 둘을 제치고는 그대로 슬기에게 온 몸을 부딪혔다. “괜찮아요.” “키에에에!!!” 먼지가 겉히고 드러난 모습에 슬기는 약간 위급하게 깜빡이는 실드의 안에서 침착하게 다음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행이 실드가 한 번은 버텨준 것이다. 하지만 흑철 오공은 단단한 머리를 들고는 두 번째의 공격을 준비했다. “이 새끼가!!!” 물론 그 두 번째 공격을 그대로 두고 볼 정운은 아니지만 말이다. “기마 차지!!!” 콰지직!! “크라라라!!!” 정운의 돌격 스킬이 흑철오공에게 작렬했다. 흑철 오공은 처음에 몇 미터 정도 밀리는가 싶더니 뒷다리 몇 십개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 시키고는 정운의 차지 공격에 버텼다. 콰직. 콰지직. 마치 치면에 스파이크를 밖는 것처럼 몸을 고정 시키는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정운은 맹세코 초보 시절 이후에는 일반 필드몹에게 이런 고전을 한 적이 없었다. 한번 발동하면 700미터를 뚫고 전진하는 것이 정운의 기마 차지인데 그게 고작 10미터도 가지 못해서 막혔다. 그런데 이 실패에 자존심이 상한 것은 정운뿐만이 아니었다. “푸르릉!!!” 정운을 태우고 있는 흑토가 코에서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말은 할 수 없지만 그 의미는 마치 ‘어쭈? 개긴다 이거지?’ 라는 듯 했다. 그리고는 정운이 명령을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영수화를 하더니 입을 벌리고··. “히히힝!!!” 퍼어엉!!! 얼마전에 익힌 브레스를 뿜어 버렸다. “크에에엑!!!” 아직 위력은 약하지만 거리가 가까웠고 무엇보다 공격을 맞춘 곳이 흑철오공의 단단한 껍질이 없는 부드러운 배 부분이었다. 거기에 고통스러워 하는 흑철오공은 그대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달려 흑토!!!” “히히히히힝!!!” 흑토와 정운은 다시 한 번 놈을 향해서 기마 차지를 발동 시켰다. 콰콰콰콰콰!!! 황야지대에 거칠게 흙먼지가 일어나면서 정운과 흑토는 흑철오공을 거칠게 일직선으로 밀어 붙였다. “으아아아아아아!!!!” “크에에에에에에에!!!” 흑철오공은 뒷발을 스파이크처럼 지면에 밖아서 고정 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기세가 붙은 정운과 흑토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그대로 정운은 창으로 거대한 흑철오공의 전신을 황야의 바위에 꼬챙이처럼 갔다 밖아 버렸다. 콰지직!! “좋았어!! 이거나 먹어랏!! 뇌신!! 검기!!” 촤촤촤촤촤촤촤!!!! 정운은 뇌전과 검기가 맺힌 정령의 태도를 휘둘렀다. 최근에 자주 쓴 적은 없었지만 정운이 쓰고 있는 정령의 태도는 대지, 불, 물, 바람 네 가지 속성을 부여 할 수 있는 무기였다. 정운이 검에 부과한 속성은 물이었다. 거기에 뇌전과 검기가 더해서 미친 듯이 참격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정운을 중심으로 거대한 발전기가 폭발직전까지 방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크에에에!!” 이쯤 되면 어지간한 저층의 보스몹이라도 체력에 한계를 보일 법 하다고 생각한 순간··. 흑철오공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몸을 거칠게 움직였다. 놈의 몸을 꿰고 있는 창이 뽑히고 놈은 몸을 크게 일으켜서 입에서 보라색 연기를 뿜어냈다. “크윽··. 이건?” [흑철오공의 맹독에 중독 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하락합니다.] [분당 10%의 대미지를 입습니다.] “도대체 이 새끼는···?” 정운은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보스몹이 옐로우 크리스탈이 떴을 때 쓰는 스킬하고 그다지 차이점이 없을 정도였다. 이건 무늬만 일반 몹이지 사실상 거의 보스몹인 것이다. “마스터! 비키십시오!!!” 그때 정운의 뒤편에서 세레나가 돌격했다. 그녀는 방패로 몸을 가리고 검을 앞세워서 그대로 기마돌격을 했다. “하아앗!!!” 카아아앙!!! 맑은 쇳소리와 함께 세레나의 참격이 흑철오공의 머리를 두들겼다. 사실 이걸로는 그다지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이 다음의 일격이었다. “홀리 버스터!!!” 그녀가 방패를 끼고 있는 손을 뻗어서 손에서 자기 직경 1미터는 될 법한 광선을 발사했다. 콰아앙!!! “크에에에에!!” 제로 거리에서 홀리 버스터가 정통으로 작렬했다. 세레나의 공격에 흑철오공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나서 저 멀리 쳐밖혀 버렸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슬기의 마법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이어 볼트!!” 퍼퍼퍼펑!!! 완숙한 경지에 이른 그녀의 파이어 볼트가 날아가서 흑철오공에게 작렬했다. 정운도 멍 때리지 않았다. 바로 무장을 검에서 활로 바꿨다. 이번에 새롭게 무장을 바꾼 건곤파천궁을 부지런히 당겼다. “속사!!” 화살에서는 흰색의 에너지 화살과 검은색의 에너지 화살이 교대로 날아갔다. 퍼퍼퍼퍼퍼퍼펑!!!!! 원거리 스킬의 향연이 계속되고 흑철오공의 비명도 계속 되었다. 그러기를 2분여 가량··. “크···· 크으으으····.” 마침내 흑철오공의 최후가 다가왔다. ============================ 작품 후기 ============================ 슬기가 많이 성장했죠? 하지만 65층은 여전이 힘듭니다. 갑자기 10층을 워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힘겨운 만큼 얻는 보상도 많은 법입니다. 아! 그리고 노블에서 읽을 만한 소설 찾으시는 독자분들에게 신작중에 '지배하지 않는 지배자.' 라는 작품 추천입니다. 소재가 좋고, 아직 초반이지만 전개도 나쁘지 않은 흐름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며칠 정도 12시 정각이 아니라 12시 7분에 올라갈 것 같습니다. 턱관절 때문에 병원 치료를 좀 받아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집필 시간을 조정하다 보니 12시에 글 올릴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72화 털썩! 거대한 5미터 짜리 지네의 몸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황야에 떨어졌다. 정운은 최후의 단발마와 함께 쓰러진 흑철오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미치겠군.” 시간으로 치면···, 전투 타임은 대략 20~30분 정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잔 공방이 워낙에 많았고, 정신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마치 55층에서 3~4시간 정도는 사냥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 돌게 하는군···.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 이 정도라고? 이런 놈이 보스몹도 아니고 그냥 일반 몹?” 정운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윗층으로 올라가면 몹이 강력해 진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력해 질 줄은 몰랐다. “효율이 너무 안 좋아. 이런 사냥은 하루에 두 세 번 밖에 못 할 거야. 소모가 너무 크고 위험성도···.” “정운씨, 보상 확인 한 번 해보세요.” “응? 보상?” “저 레벨업 했어요. 저거 한 마리 잡고.” “·····뭐라고?” 정운은 서둘러서 인터페이스를 확인해 봤다. 정운의 경험치 바가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 찔끔 움직였다. 단 한 마리를 잡았는데 말이다. 더구나 인벤토리에 재료 아이템도 무척 충실해졌다. [흑철오공의 극독] [흑철오공의 강철껍질] [흑철오공의 간] “···이거, 척 봐도 감정가가 좀 나가겠는데···. 골드도 제법 늘었어? 이거 한 마리 잡았을 뿐인데?” 순간 정운은 십왕의 한중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상류층으로 가면 억 단위의 골드도 심심치 않게 거래 된다고 했다. ‘아마도···. 십왕들 수준이 되면 이런 놈들을 대량 사냥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겠지··.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네.’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몹이 강력하면 사냥을 해도 수지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운이 잠시 깜빡 한 것이 있었다.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보상도 늘어난다. 그것이 이 그라운드 제로의 철칙이다. “보상이 이 정도라면···. 이 놈을 잡는게 나쁘지는 않겠는데? 경험치가 이 정도나 주고···.” 그때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했다. “마스터. 제 레벨도 올랐습니다.” “정말?” “예. 원래 98%정도 차 있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마리를 잡고 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그 한 마디로 정해졌다. “시간은 좀 들고, 힘도 들겠지만···. 여기를 사냥터로 정했어. 일단 오늘 이 황야의 모든 몹들을 다 경험해 보자.”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건 세 가지 다 잡아 본다는 건가요? 정운씨?” “그래야지.” 정운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65층의 황야지대에 살고 있는 세 가지 몹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 이 흑철 오공이었다. 다른 두 가지 몹을 보기는 했지만 정운의 일행은 실로 오랜만에 사냥에 실패했다. 꼬리가 여섯 개 달린 요물 여우인 육미호를 만났을 때는 공격을 적중 시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육미호는 마법 공격을 주로 하면서 민첩하게 움직여서 그 동작을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원거리 스킬을 쏟아 부어서 어찌어찌 갉아먹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대미지를 주기 시작했다. 다행이 놈은 흑철오공처럼 방어가 탄탄한 몹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놈이 갑자기 위험에 처하니 육미호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기 시작했다. 정운이 급하게 쉐도우 체인을 시전 했다. 하지만 얼마나 빠른지 그림자에서 솟아난 체인이 몸을 구속하기도 전에 육미호는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실로 허탈할 정도로 명확한 사냥 실패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 암석 드래곤의 경우는 더 심했다. 꼬리 길이까지 합하면 전장 20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암석 드래곤··. 놈은 도망가지 않았다. 용맹하게 정운들을 향해서 싸워 줬다. 문제는 이번에는 정운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가야 했다는 것이다. 한참을 달린 후에 정운이 슬기에 세레나를 보면서 말했다. “헉··· 헉···. 모두 괜찮아?” “예.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후우, 망할···. 무슨 일반몹이 그따위야···.” 정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암석 드래곤은 정말로 강했다. 얼마나 강했냐 하면 그 자체가 50층 대의 일반 보스몹하고 비교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정운의 팀이 전력을 다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야 간신히 잡을 수 있을까? 말까?한 그런 놈이었다. 정운은 놈과 5분 정도 공방을 나눠보고 그 점을 바로 느꼈다. 그리고 놈이 더 날뛰기 전에 재빨리 후퇴를 감행한 것이다. ‘적어도 흑철오공이나 육미호에게 힘을 소모한 상태에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놈은 아니야.’ 만약 그대로 싸웠다면···. 아니 후퇴를 결정하는 시기가 5분만 늦었어도 팀원 중에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암석 드래곤이 나오는 필드의 위치가 무작위 적이지 않고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황야지대의 외각. 그러니까 다른 지형으로 넘어가려는 지형쪽에 자리 잡고 있는게 바로 놈이었던 것이다. ‘둔감하기는 하지만 선공 속성이기도 하니··. 놈을 잡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렵겠지?’ 만약 놈을 피해서 간다고 해도 돌아오는 길에 다른 필드에서 소진된 채로 놈과 조우하는 것은 위험했다. “한동안은 흑철 오공을 잡는데 주력 하는게 좋겠어. 그게 그나마 가장 만만하니까.” “동감이에요.” “현명하신 결단입니다. 마스터.” 슬기는 물론이고 무뚝뚝한 세레나 역시 이번에는 제법 학을 땠는지 정운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자. 그리고 내일···. 아니 내일은 쉬면서 준비 좀 하고 모레부터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자.”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알았어요. 내일은 쉰다니 다행이네요.” 그렇게 정운과 그 팀원들은 65층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마을로 돌아갔다. 삼대길드에 의함 65층의 개방. 이것은 그라운드 제로의 상위급 유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위급 유저들에게야 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상위급 유저들에게 65층은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에 확실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문제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삼대 길드와 계약을 하고 65층에 들어갈 권리를 차지한 상위급 유저들의 숫자는 20팀. 정운처럼 팀으로 들어간 자도 있고 혹은 개인으로 들어간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10팀이 첫날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이다. 후일 삼대 길드에서는 그들의 주거지가 공매로 넘어갔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말은 소유주가 죽었다는 증거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솔로 플레이로 자신만만하게 들어간 자들이 많이 사망했다. 10팀의 사망자 중에 8팀이 단신으로 들어간 솔로 플레이어인 것이다. 사실 삼대길드에서도 어느 정도 희생자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50%라는 높은 사망률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들은 대략 10% 이하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정보가 상위급 유저들 사이에서 퍼져갔고, 그들은 고민했다. 삼대길드와 계약을 해서 위로 한 번에 올라간다. 라는 제안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고 해도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 의견이 더 커지고 여론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삼대길드는 몰랐겠지만 이때 끼어든 것이 바로 김신수에게 지령을 받은 뉴 웨이브의 길드원들이었다. 삼대길드의 한수에 일단 발을 빼고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김신수들이었다. 하지만 삼대길드의 정책에 빈틈이 보이자 거기를 날카롭게 파고 든 것이다. 물론 아직 결성 초기인 뉴 웨이브가 삼대길드에게 적극적으로 비판을 할 수는 없다. 삼대길드가 무작정 힘을 앞세우고 핍박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정면으로 모독을 당하면 대응할 지도 몰랐다. 그래서 김신수는 한 발짝 돌아서 다른 유저들의 입을 통해서 사대길드의 정책이 위험한 도박이라는 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이 제대로 먹히기 시작하자 삼대 길드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래서는 자신들이 마치 자충수를 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몇몇 상위급 유저들의 사이에서는 삼대 길드가 실험적으로 상위급 유저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높은 수준의 레이드를 할 수 있는 뉴웨이브로 몰리는 상위급 유저들의 숫자가 살짝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65층의 레이드에 도전하겠다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숫적으로는 뉴 웨이브의 기반이 좀 더 탄탄해진 결과가 되었다. 애당초 삼대 길드는 경쟁, 즉 싸움의 기본을 몰랐다.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인 싸움의 기본이건만 그들은 뉴 웨이브를 그냥 건방진 도전자 정도로만 봤다. 언제든지 힘으로 누를 수 있는 약자로 말이다. 하지만··. 레벨을 넘어서 김신수는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에 성공 했을 정도로 유능한 인간이다. 이런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나 여론의 유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은 그의 특기중에 특기였다. 그라운드 제로에 오래 있다 보면 그 인간의 가치는 곧 레벨과 스킬에 집중되어 버린다. 하지만 원래는 그게 인간의 가치는 아니다. 사회가 되었던 그라운드 제로의 안이 되었든. 어떤 극한 상황에 가더라도 마지막에 살아남는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지혜를 총동원 하는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삼대길드의 간부들은 너무 태만했다. 자신들의 힘을 믿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경쟁 상대를 무시한 것이다. 그들이 방심하지 않고 뉴 웨이브를 진짜 적으로 생각했다면 적어도 김신수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는 수고 정도는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방심한 대가를 지금에 와서 비싸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뉴 웨이브의 길드 본부. 거기서 김신수에게 누군가가 보고를 올렸다. “길드장님. 저희 뉴 웨이브의 길드원들이 80인을 넘겼습니다.” 김신수는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고는 조용히 중얼 거렸다. “80명이라···. 아직 20명 부족하군.” “어떻게 할까요? 일단 레벨이 좀 떨어져도 머릿수를 채우고자 한다면····.” “아아··, 쓰레기 잉여 따위는 필요 없어. 내 밑에 있는건 유능한 인간들이어야 해.” “············.” “좀 더 기다리지. 2단계는 사람의 숫자가 100명이 채워지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열람은 철저하게 자제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혈맹의 조건에 절대 엄수할 것을 죽음과 맞바꿔서 넣어놨습니다. 누구도 그걸 입에 담지는 못할 것입니다.” “좋아. 충분해.” 김신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삼대 길드는 아직도 방심하고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진짜 조커는 뒤집지 않고 아껴 워야 든든한 법이야.’ 그는 아직도 숨겨진 수가 몇 개는 있는 상태였다. 그라운드 제로 전체를 뒤 흔들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수를 말이다. ============================ 작품 후기 ============================ 정운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김신수는 김신수대로 꾸미는게 있습니다. 몇몇 분들은 김신수를 보고 10왕에게 도전하는것은 무모하다고 설정 어류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아직 김신수의 전체 설정중에 공개된 것은 5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가면 갈 수록 숨겨진 설정이 나오는 양파같은 캐릭터이니 아직은 기다려 주십시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73화 <업그레이드의 지름길. 그것은 골드질.> 상위급 유저들이 갈팡질팡 하는 와중에 정운은 이미 마음을 굳혀서 65층의 사냥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 사냥감은 흑철오공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많이 잡을 수는 없었다. 워낙에 소비가 커서 한 마리를 잡고 나면 한 시간 정도는 쉬어서 체력과 정신력을 비축해야 했다. 첫 날에는 네 마리를 잡고 나니 더 이상 힘이 들어서 잡을 수가 없었다. 보상이 크기는 했지만 하루에 세 마리 밖에 그것도 한 종류 밖에 잡지 못하는 것은 큰 로스였다. 하지만 정운은 포기하지 않았다. 애당초 65층에 두 번째 올라오기 전에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오로지 흑철오공하고 씨름을 하면서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흑철오공은 힘겹게 잡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 위험 부담이 없이 잡을 수 있는 몹이기는 했다. 육미호처럼 도망가 버린다거나 암석 드래곤 처럼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몹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냥을 했을 때 보상이나 경험치는 일단 접어두고···. 사냥이 가능한가? 불가능 한가? 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한꺼번에 65층으로 워프 하듯이 올라온 정운에게 있어서는 모든게 버거운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정운은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사냥에 주력하기로 했다. 뉴 웨이브가 삼대길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무슨 수작을 부리든 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때는 말이다. “크에에에!!” “마스터!! 이쪽에서 주의를 끌겠습니다.” “오케이!! 쉐도우 체인!!” 세레나가 흑철 오공의 주의를 끄는 사이에 뒤편으로 돌아간 정우는 그대로 쉐도우 체인으로 적을 구속했다.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고 팀플레이의 느낌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팀 플레이는 사냥의 효율을 높이고, 사이클이 올라가는 얻는 보상도 나날이 많아졌다. 사실 한 번에 10층이나 올라가는 워프의 효과는 컸다. 65층에서의 사냥은 그동안 정체 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천천히 올라가던 정운의 경험치에 눈에 띠는 상승효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거기다 슬기와 세레나 역시 수준을 올리면서 팀의 전체적인 전력은 점점 더 상승되어 갔다. 무엇보다 슬기의 전력 상승이 가장 두드러졌다. “파이어 월!! 더블 캐스팅!!” 화아아악!!! 쉐도우 체인으로 묶어둔 흑철오공의 발밑에서 십자 형태로 교차된 높이 3미터의 불의 방벽이 솟아났다. “키에에에에!!!” 흑철오공은 전신을 꿈틀거리면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쉐도우 체인의 구속이 워낙에 굳건해서 좀처럼 풀리지가 않았다. 파이어월 두 개가 겹쳐진 상태에서 두 배로 대미지가 가해지자 흑철오공은 철판위의 지렁이 같은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이건 구속을 건 정운도 파인 플레이였지만 슬기의 발전에 주목을 해야 했다. 그동안의 사냥으로 슬기는 본인의 레벨도 올랐지만 자주 사용하는 스킬의 레벨업은 더 크게 늘었다. 특히 파이어 월은 원래 레벨이 1이었는데 현제는 3까지 올랐다. 거기다 최근에 생긴 패시브 스킬인 멀티 캐스팅이라는 스킬의 레벨이 2가 되었다. 멀티 캐스팅은 메이지들에게만 생기는 패시브 스킬이다. 액티브가 아니라 패시브라는 것이 주목할 점인데 여러개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 하게 해 주는 스킬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메이지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있고 없고 에 따라서 1류와 2류를 가르는 하나의 경계가 되는 중요 스킬이었다. 상점에서 스킬북으로 파는 스킬도 아니라서 열심히 사냥하면서 스스로 익히는 수밖에 없는데 최근에 그게 생긴 것이다. 그녀는 지금 더블 캐스팅, 즉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발현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레벨이 올라가면 트리플, 콰트루플 등등 점점 늘어날 것이다. 멀티 캐스팅의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마법사의 화력은 더욱더 강해진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파이어볼 하나를 던져도 그냥 던지는 것에 비해서 더블 캐스팅으로 던지면 두 발이 동시에 날아가서 화력이 두 배가 되지 않는가? 메이지는 본인의 힘이나 민첩은 쓸모가 없다. 하지만, 화력. 오로지 공격력 하나만큼은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전위 10명의 몫을 혼자서 하는 것도 가능하다. 타입에 따라서 좀 다르기는 하지만 슬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제 몫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서는 어림 없지만 동료들의 도움이 있다면 65층에서도 몹에게 제대로 된 대미지를 줄 정도로 말이다. “크···. 크에에!!!” 흑철오공은 온몸이 바싹 구워지는 고통 속에서 기어코 몸을 스크류 회선 시키듯이 비틀어서 탈출에 성공했다. 놈은 탈출하고 자세를 바로 잡은 후에 다시 공격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 패턴은 이미 정운들에게 익숙한 광경이었다. “홀리 이레이져!!” 퓽!! 퓽퓽퓽!! 놈이 슬기에게 반격을 하기도 전에 세레나의 주변에 야구공 정도 되는 크기의 하얀색 광구가 두 개 생겼다. 그리고 그 광구는 그대로 흑철오공에게 가서 주변을 위성처럼 맴돌면서 집중적으로 광선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크에에!!” 흑철오공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 같은 광선 공격에 몸을 사납게 비명만 질렀다. “저 기술 정말 쓸만 하다니까?” 홀리 이레이져는 최근에 세레나에게 새롭게 생긴 스킬이다. 현제 레벨은 2다. 두 개의 광구가 타깃을 맴돌면서 집중적으로 광선 공격을 하는데 아직 레벨이 낮아서 파괴력은 약하다. 하지만 스킬 자체가 저렇게 몹의 주의를 잡아 끌기 때문에 발을 멈추는 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그 틈에··. “다시 묶여라. 쉐도우 체인!!” 촤르르륵. “크에에!!?” 만약 지금 흑철오공의 말을 번역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또 이거냐? 적당히 하라고 이 비겁한 놈들아!!!’ 일 것이다. 세레나와 정운이 흑철 오공의 발을 묶고 거기에 슬기가 지속적으로 마법 공격의 대미지를 준다. 이미 흑철오공의 사냥법은 완벽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크아아아!!!” 결국 마지막에 흑철오공은 뭔가 되게 억울한 것 같은 단발마를 남기고 죽어 버렸다. “후우···. 오늘만 일곱 마리인가? 이제 제법 탄력이 붙었는데?” “그렇게 말이에요? 세레나 오늘 레벨 또 오르지 않았나요? 지금 얼마죠?” “현재 레벨은 76입니다. 슬기 당신은요?” “헤헤··. 저 이제 42레벨이요.” “벌써 42레벨? 이제 8레벨만 더 오르면 소위 말하는 상위급 유저 반열 인걸?” “고마워요. 이게 다 정운씨 덕분이에요? 음, 그리고 세레나하고···.” 처음에 정운의 이름만 불렀다고 문 듯 생각난 것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세레나의 이름을 덧 붙이는 그녀의 태도가 귀여워 보였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사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99%의 변덕으로 주웠던 그녀였다. 설마하니 이렇게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는 그때의 정운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소위 50레벨 부터는 이제 고위급 유저라고 부른다. 뭐, 딱히 근거는 없다. 그냥 유저들이 그렇게 부를 뿐이다. 하지만 보통 그렇게 50레벨로 오르는 것은 빨라도 5년 정도는 걸리는게 보통이다. 정운과 세레나가 도와 줬다고 해도 1년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인데 이 정도로 빠르게 레벨이 오른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서 도박과 같은 플레이를 계속하면서 3년 만에 71레벨이 되었던 정운은 진짜 괴물이라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제 정운의 팀에게 흑철오공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니다. 정운은 다음부터 다시 한 번 육미호의 사냥에 도정해 보기로 했다.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 오늘 마을로 돌아가서 모든 장비를 풀로 교환 할 거야.” “장비를 풀로요?” “그래. 바꿀 수 있는 장비는 모두 교환해. 특히 세레나, 당신은 장비를 너무 소흘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운 눈살을 살짝 찡그리면서 말했다. “마스터. 진정한 기사의 실력은 도구가 아니라 평소에 단련된 기량에서···.” “바꿔. 이건 게임의 설정이 살아있는 세계야. 아이템이 우열은 바로 캐릭터의 우열로 자리 잡는다고?” “·········.” 세레나는 그다지 납득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운의 말에 토를 달지도 않았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과 함께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도 활은 몰라도 창이랑 검은 바꿔야겠지? 갑옷도 바꿀까?’ 활은 일전에 십왕 5위인 윤정철에게 받은 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때 받은 돈과 최근 65층 레이드에서 번 돈 덕분에 예산은 충분했다. 하루에 잡을 수 있는 몹의 숫자가 5~7마리 정도가 한계지만 한 마리 한 마리 보상이 워낙에 두둑했기에 65층의 사냥도 충분한 벌이가 되고 있었다. 정운은 이 기회에 자신의 장비에 억 단위의 돈을 투자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을로 돌아간 일행은 만사 제쳐두고 일단 상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각장 5,000만 골드 까지는 마음껏 아이템을 사도 좋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왕하고 거래 한 것은 진짜 초대박이었어.’ 자신의 아이템에 1억, 그리고 슬기와 세레나의 아이템에 각자 5,000만 골드를 투자해도 아직 8억이 넘는 골드가 남는다. 더 굉장한 것은 십왕이라는 자들은 이런 굉장한 금액의 출혈을 감당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했다는 것이었다. ‘역시 십왕의 무게는 장난이 아니야. 괜히 시비걸고 있는 김신수 그 머저리가 미친놈이지.’ 정운으로서는 놈이 삼대길드를 넘겠다는 이유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또 자신만만하게 삼대 길드를 넘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마인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가지 유력한 가능성이라면 놈이 미친놈이거나, 혹은···. 아직 숨겨진 패를 들고 있다는 것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쯧, 어쩐지 후자 같은게 마음에 안 들어.’ 사실 놈의 행동은 그냥 미친놈의 생지랄 이라고 보기에는 노골적일 정도로 이상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일단 놈이 노골적으로 삼대길드의 신경을 건디리는 것 부터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위급 유저를 모아서 삼대 길드의 용병풀을 줄인다? 왜? 그게 나름 회심의 한 수 같기는 하지만 삼대 길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치명적인 한 수는 아니었다. 약간 귀찮은 한 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작 잠자는 사자의 머리 한 대 빡! 치고 성질 자극시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 좋은 놈 치고는 빈틈이 너무 많았다. 마치 사자가 화 내기를 일부러 기다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놈들 길드에서는 왜 나쁜 소문 하나 안 나는 거지? 보통 길드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는 불공정 대우 같은 것이 밖으로 새어나와야 하는 법인데··. 놈들의 길드에 들어가면 무슨 정신 세뇌라도 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정운의 무의식 적인 중얼거림에 대답한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예? 이상한가요? 다른 아이템 보여 드릴까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 정우의 말에 눈앞에 갑옷 리스트를 늘어놓던 NPC상점이 당황했다. 잠시 딴 생각에 너무 깊숙하게 빠졌었던 모양이다. 정운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점원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흑철오공의 껍질을 가공한 갑옷은 아직 불가능 하다고?” “예. 저희 상점에서 팔지 않는 재료 아이템이 다수 필요합니다. 아!!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그것보다 더 좋은 갑옷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점원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군. 그럼 예산에 상관없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갑옷 중에 더 좋은 갑옷은 뭐가 있지? 아! 내가 지금 바로 구입 할 수 있는 걸로 말이야.” 정운의 말에 NPC점원은 정운의 갑옷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 “챔피언의 오르하르콘 갑옷···, 좋은 것 입고 다니시는 군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라면···. 고객님 기마기사 계열이시죠? 그럼 이런 것은 어떨까요?” 점원은 몇 가지 아이템을 추천해줬다. 정운은 그걸 카탈로그 룸에 들어가서 이제 시험해 보려고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예전에 언 듯 봤는데 너무너무 비싸서 ‘이딴 걸 누가 사?’ 라고 생각했던 아이템이 생각난 것이다. 그때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 했지만···. 지금은 ‘그딴 걸’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거 있지 않나? 그거?” “그거라는 이름의 갑옷은 없습니다만····.” “··············?” “하하하··. 많이 썰렁한가요?” ============================ 작품 후기 ============================ 현질은 없는 세계이지만 십왕급이 현질 수준의 골드를 줬었죠. 덕분에 제대로 장비 업그레이드 한 번 하려고 하는 정운입니다. 괜찮은 신작 하나 발견해서 추천했는데. 추천하자 마자 하루만에 1위까지 확 치고 올라갔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74화 전원의 어색한 말에 정운은 지그시 째려 보다가 말을 이었다. “드래곤 리빙 아머.” 정운의 말을 들은 점원은 약간 곤란한 영업용 스마일을 하고는 말했다. “음····. 손님. 그 갑옷은 가격이 4,000만 골드입니다만····.” “딱 좋군. 가져와.” “·······예?” “가져 오라고. 바로 시험해 볼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카탈로그 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고 NPC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사실 보통의 게임이라면 NPC가 이런 표정,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NPC는 그냥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공인격이 아니다.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보통의 인간들과 같은 사고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 근원이야 뭔지 잘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드래곤 리빙 아머···. 우리 상점의 갑옷 중에서 제일 좋은 건데···.’ NPC는 속으로 설마 이 값옷을 팔아치울 날이 올 줄이야? 라는 감상을 하면서 정운에게 갑옷을 줬다. 정운은 갑옷을 받고는 간단한 아이템 설명을 읽었다. 드래곤 리빙 아머. 방어력 : 5,000 무게 : 20 내구력 : 500 [드래곤의 비늘과 뼈로 만든 갑옷. 용의 의지가 살아있어서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서 자유롭게 변화한다. 모든 마법 방어에 강력하고 착용자의 체력을 분당 5%씩 회복시킨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20%씩 올린다.]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쩐다. 라는 말은····.” 이전에 정운이 쓰던 아이템인 챔피언의 오리하르콘 갑옷은 방어력이 700이었다. 드래곤 리빙 아머는 방어력만 5,000, 단순 방어력에서만 7배가 넘는 차이가 났다. 거기다 공방력 변화에 체력을 분당 5%씩 회복? 만약 여기에 세레나의 버프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제길, 이렇게 좋은 건줄 알았다면 진작 바꿀걸.’ 십왕에게 돈 생겼을 때 너무 큰 액수라서 나중에 쓰자고 생각한게 실수 같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은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즉, 돈은 써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보처럼 묶여두고 있었다니···. 정운의 눈앞에 오크 전사가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정운은 그런 놈을 보고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꿔, 트윈헤드 오우거로.” 정운의 말에 오크 전사가 사라지고 머리 두 개의 거대한 오우거가 통나무 같은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어디 해 보렴.” “쿠어어어!!!” 트윈헤드 오우거는 그대로 몽둥이를 휘둘러서 정운을 갈겼다. 콰아앙!!! 어차피 카탈로그 룸에서 하는 실험이다. 죽을 걱정은 절대로 없다. 하지만···. “이럴수가···. 거의 노 대미지라니···.” 예전 같으면 트윈헤드 오우거의 공격을 무방비로 맞으면 정운이라도 한 번에 삼분의 일은 체력이 떨어져야 했다. 급소에 맞으면 바로 절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게이지가 아주 살짝 닳았을 뿐이었다. ‘어마어마한 방어력 상승···.’ 정운은 완전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설명서에 의하면 지금 상태는 표준 모드다. 갑옷을 방어형, 혹은 공격형으로 바꾸면 거기에 따라서 공방력은 더욱더 올라간다고 한다. 돈에 여유가 생겼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4,000만 골드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갑옷은 이걸로 하고··. 검이랑 창도 바꾸자.” 정운은 희희낙락하면서 무장을 체인지 했다. 돈값을 하는 갑옷에 기분이 좋아진 정운은 다른 아이템들도 크게크게 질렀다. 마치 지름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이전에 쓰던 정령의 태도는 혈광참마도(血光斬魔刀)라는 검으로 바뀌었고, 월광의 창은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각 아이템을 살펴보면···. 혈광참마도(血光斬魔刀) 공격력 : 5,000 무게 : 100 내구력 : 700 [붉은 도신에 마를 베는 참마의 검. 평소에 살아있는 존재를 베어서 피에서 힘을 비축한다. 비축한 힘을 한 번에 소진 할 수 있는 멸마광참(滅魔光斬)을 쓸수 있다. 한 번 쓰면 비축한 힘은 제로로 돌아간다.] 룽기누스의 레플리카 공격력 : 7,000 무게 : 60 내구력 : 200 [신을 죽이는 성창. 룽기누스의 모조품. 모조품이긴 하지만 높은 공격력과 언데드나 스피릿 계열의 적들에게 강한 위력을 발휘난다. 하루에 한 차례 모든 대미지를 완전 회복 시켜준다.] 두 가지 모두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아이템들이었다. 이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태도계열, 창 계열 중에는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갑옷의 가격까지 합하면 총 1억 2천만 골드가 들어 버렸지만 그래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쇼핑이었다. ‘세레나에게 아이템을 소흘하게 한다고 하고는··. 이제까지 나 자신도 그랬던 것 같아···.’ 정운은 씁쓸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면 10억이라는 거대한 돈이 생겨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몰랐다. 이번에 장비를 바꾸면서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 중에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바꿨으니 당분간 아이템을 바꿀 일은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은 보조 무장인 그림자의 망토였는데, 유니크 아이템을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으로 바꾸는 미친 짓을 할 리는 없었다. 아이템을 다 바꾸고 밖으로 나가자 슬기와 세레나도 아이템을 바꾼 후였다. 슬기는 이전의 피닉스의 로브는 그대로 두고 대신에 스태프를 바꿨다. 분위기 있는 나무 지팡이 위에 정체불명의 붉은 돌이 은은한 빛을 내면서 둥둥 떠 있었다. 슬기의 경우는 그것 말고는 바뀐게 없었다. “그거 하나 바꾼거야?” “예. 아직 레벨도 부족한데 이것저것 많이 바꾸는 것 보다는 하나만 확 좋은 걸로 바꾸려고요··. 이거 좀 비쌌어요.” “헤에··. 얼마인데? 무슨 아이템?” “2,000만 골드요. 아이템은 드래곤 하트의 스태프요.” 어린 드래곤 하트의 스태프.(2,000만 골드) 공격력 : 10 마력 : 2,000 무게 : 10 내구력 : 100 [갓 성룡이 된 레드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로 만든 스태프. 마력 보조가 뛰어나고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100% 올려준다.] 정운이 리빙 드래곤 아머를 맞춘 것과 마찬가지로 슬기도 드래곤 계열의 소재를 쓴 아이템을 샀다. 사실 그게 이 상점에서 파는 상한선일지도 모른다. 드래곤을 소재로 한 아이템이 말이다. 그 이상을 원한다면 직접 사냥을 해서 만들거나 그것도 아니면 한중겸이 말했던 최상층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슬기의 장비를 다 확인한 정운은 세레나에게 말했다. “세레나 당신은?” “장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바꾸기는 바꿨습니다.” “흠,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네? 인터페이스 잠깐 확인해 볼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세레나의 인터페이스를 확인해 봤다. 슬기와 달리 세레나의 경우 정운에게 귀속된 가디언이기에 이런게 가능했던 것이다. 대천사의 성검 공격력 : 3,000 무게 : 80 내구력 : 500 [대천사의 축복이 담긴 성검 언데드나 악마들에게 200%의 상승 효과를 발휘한다. 소유자의 저주 저항력을 몹시 높인다.] 대천사의 갑옷 방어력 : 1,000 무게 : 50 내구력 : 200 [대천사의 축복아 담긴 갑옷, 착용자의 체력을 10% 올린다. 저주, 독, 마법 공격에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대천사의 방패 방어력 : 500 무게 : 40 내구력 : 100 [대천사의 축복이 담긴 방패, 착용자의 방어력을 50% 올린다.] 확실히 아이템에 무관심한 세레나이기에 그다지 공을 들여서 고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전체적인 공방력은 늘었지만 그래도 크게 늘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이번에도 내가 새로 맞춰줘야 하나?’ 정운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인터페이스 창의 변화를 확인해 갔다. 그때 정운의 눈에 띄는 한 가지 항목이 있었다. 세트 아이템 효과. [대천사의 가호 발동.] 공격력을 300% 올린다. 방어력을 300% 올린다. 저주에 강한 내성을 지닌다. 언데드나 악마들에게 강한 공격력을 지닌다. 천사의 날개로 하루 20시간 비행이 가능하다. “오오···. 세트 아이템 효과? 처음 봤다.” 정운은 절로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고 세레나가 고개를 살짝 갸웃 하면서 말했다. “···그게 뭐죠?” “세트 아이템 효과야. 숨겨진 보너스 같은 거지.” 그리고 정운은 세트 아이템 효과라는 것을 설명했다. 정운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세트 아이템 효과라는 것은 비슷한 계열의 아이템으로 무장했을 시에 발생하는 효과였다. 문제는 이게 완전 랜덤이라는 것이다. 어떤 유저가 A, B, C라는 아이템을 써서 세트 아이템 효과를 발동 시켰다고 하자. 그런 그 조합을 다른 유저들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세트 아이템 효과는 발동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해명된 것은 아니지만 세트 아이템을 맞추는 것에 성공한 유저들은 유저의 스킬이나 능력치 등이 어떤 상성을 준다고 짐작하고 있다. 그게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레나는 우연히도 세트 아이템 효과를 준 것이다. ‘공방력 300%강화··. 이건 크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상위급 아이템 못지않게 커다란 성과였다. “세레나. 이제 당분간 장비 바꾸지 마.” “제발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세레나는 마치 쇼핑에 여친 따라 나와서 이리저리 끌린 남자같이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할 바뀐 것 아닌가?’ 은근히 자존심이 꿈틀 거리는 정운이었다. 아이템을 바꾼 후에 정운들은 본격적으로 65층 사냥에 돌입했다. 먼저 하루에 흑철오공을 몇 마리나 잡을 수 있는지에 도전했다. 이전까지 신기록은 하루에 여덟 마리였다. 하지만 아이템을 대폭 바꾸고 도전한 그날 정운들은 하루에 흑철오공을 23마리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해··. 내일부터는 육미호 사냥이다.” “예. 알겠어요.” “마스터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정운들은 다음날 만전의 준비를 갖추고 육미호의 사냥을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골드질로 대폭 업그레이드 시킨 장비빨의 효과는 지대한 법입니다. 다만 현실의 게임에서 현질 후에 느끼는 것은 찝찝함과 허무함이지만요.... 제가 가끔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75화 <여자를 생까지 마라> 육미호의 경우 가장 골치 아픈 것은 놈이 불리함을 느끼면 도망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더럽게 빠르게 말이다. 마법 공격은 상당히 강력했지만 체력이나 물리 공격력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즉, 전체적으로 흑철오공보다 강력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문제는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세레나!! 그쪽에 막아!!” “옛. 마스터!!” 정운은 흑토를 타고 육지를 막고 세레나는 천사의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면서 육미호의 동작을 견제했다. 사실 정운의 흑토도 비상이라고 해서 하늘을 나는 스킬은 있다. 하지만 세레나 만큼은 못했다. 그녀의 비행은 용맹한 매처럼 날카롭고, 민첩한 제비처럼 빨랐으며, 고요한 밤의 부엉이처럼 우아하기까지 했다. 마치 굉장히 익숙한 것 같은 그녀의 비행은 육미호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번번이 도망가려는 육미호를 막았다. “얼마 안 남았어!! 절대 방심 하지 마!!” “옛!!” “옛!!” 정운도 이제는 팀플레이에 익숙해서 슬기와 세레나를 수족처럼 잘 다루면서 전황을 잘 컨트롤 해 갔다. 그리고 이윽고는 궁지에 몰린 육미호에게 쉐도우 체인을 옭아매는 것에 성공했다. 촤르르륵!! “카항!!!” 동작이 워낙에 빨라서 번번히 피하던 육미호였지만 결국은 쉐도우 체인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걸리자마자 이때까지의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공격이 쏟아졌다. “산탄시!!!” “홀리 버스터!!!” “체인 라이트닝, 아이스 볼트, 더블 캐스팅!!” 퍼퍼퍼퍼퍼퍼퍼펑!!! 화살과 광선과 번개에 얼음의 화살까지 무차별 적으로 육미호를 두들겼다. 빠르기는 흑철오공보다 훨씬 빠른 육미호였지만 그 맷집은 흑철오공에 미치지 못했다. 이미 체력이 상당히 준 상황에서 정운들의 집중 포화가 쏟아지니 그대로 단발마의 비명도 남기지 않고 절명해 버렸다. “드디어 잡았다···. 애 먹이기는··.” “한 마리 잡는데 대략 50분 정도 걸렸네요? 이래도 괜찮을까요?” “잡는데 오래 걸린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연습하면서 여러 가지 패턴을 시도해 보자.” “알았어요. 그럼···. 세레나가 전위에 있는게 아니라 좀 더 멀리 떨어져서 포위망을 넓게 펼치면 어떨까요?” “하지만 그래서는 전체적인 전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의 사태에 슬기의 보호도 어렵고···.” “난 실드 치고 있을게요. 그러니···.” “아니. 안전이 우선이야. 그러니 우선은···.” 처음에는 정운이 지시를 내리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형태로 팀의 콤비네이션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이제는 정운뿐만 아니라 슬기나 세레나도 본격적으로 의견을 내며 팀의 콤비네이션을 생각했다. 사실 그게 더 다양한 패턴을 만들 수 있었다. 한 명의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의 형태는 어차피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부딪히고 토론하면서 상승효과를 발휘해야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법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의논을 하면서 그날 정운들은 육미호를 세 마리 더 잡고 거기에 흑철오공도 네 마리를 잡아서 사냥을 마칠 수 있었다. “아아···. 피곤하다···.” 집으로 돌아온 정운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구면서 정운은 기분 좋은 안락함에 젖었다. 말로는 피곤하다고 하지만 정운의 입에는 가벼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런 기분은 오랜 만이었다. 최근 들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앞으로 전진 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머리 굴려가면서 최선을 다해서 사냥을 하고 있노라면 예전에 초심이 생각났다. 그때는 아직 아이템도 어설프고 스킬도 부족했다. 그래도 빠른 렙업을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다. ‘몇 번이고 죽을 뻔 했지····.’ 눈을 지그시 감고 정운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죽을 뻔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이기고··. 자신을 노린 PK유저들을 상대로 도망칠 때도 있었다. 문시영에게 배반당한 상처를 잊기 위해서 바보처럼 극렬하게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 ‘지금와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용케 안 죽었단 말이야. 심각한 위기가 꽤 있었는데···.’ 지금에야 별것 아닌 상대들이지만 그때의 정운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흑토의 빠른 발 때문에 죽다가 살아난 경우도 많았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간신히 탈출해서 포탈타고 귀환하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절로 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위기 속에서도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던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은 일이었다. ‘뭐, 덕분에 강해졌고, 그 강하진 힘으로 슬기와 세레나를 지킬 수 있으니 됐나? ·····아무리 어리석은 시간이라고 해도 지나오면 무의미한 시간 따위는 없다는 걸지도····.’ 갑자기 인생의 어떤 깨달음이라도 얻을 것처럼 감상에 잠기는 정운이었다. 만 19세에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으니 지금 정운의 나이는 25세. 인터페이스에는 19세라고 적혀 있지만 그것은 신체의 연령이지 정신은 육체와 무관하게 성장하는 법이었다. 정운이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구고 오랜만에 느긋하게 회상에 젖어 있을 때··. 욕실의 문이 열리고는 누군가가 들어왔다. 정운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아마도 NPC 메이드들이 시중을 들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운은 종종 온천에서 목욕을 하면서 음료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하기도 했다. “거기 놔둬.” “뭘요?” 태평한 정운의 말에 돌아온 대답은 정운을 크게 놀라게 했다. “어···? 어어···?” 정운이 어어 하는 사이에 정운을 당황하게 한 사람은 태연하게 온천에 들어와서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궜다. 이쯤 말하면 모두 알겠지만 지금 정운을 멘붕시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슬기다. 그녀가 전신을 베스타월 하나로만 꽁꽁 가리고 노천탕에 들어온 것이다. “하아····.”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정운의 심장이 온천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정운은 굉장히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저기 슬기야.” “왜요?” 어렵게 말을 붙이는 정운에게 슬기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운은 오히려 머쓱해하면서 말했다. “나 먼저 들어와 있었는데?” “저도 알아요.” 슬기는 마치 당연한걸 왜 묻느냐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 정운은 그런 슬기의 태연한 대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쟤 왜 이러는 거지? 무슨 이유로? 아니 그보다 왜 저렇게 태연한 거야?’ 정운은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있었다. 반한 여자와 함께 알몸으로, 뭐 슬기는 베스 타월로 전신을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혼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운의 심장이 멀쩡한 박동수를 유지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슬기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온천물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뺨이 붉게 상기되기는 했지만 저게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온천 때문에 체온이 올라서 그런 건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참고로···. 슬기는 지금 전혀 태연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미치도록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고, 머릿속이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럼, 그녀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 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려서 살펴보기로 하자. 비정기 퀘스트 때. 슬기는 정운이 죽음을 각오하고 위험한 싸움을 하러 가는 것을 보고 걱정과 불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전에도 위험한 순간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그랬다. 만에 하나 정운이 저 무시무시한 괴수를 상대하다 죽기라도 하면 그 후로는 자신도 더 이상 살아도 살 수 있는게 아닐 것 같았다. 힘이 부족해서? 이제까지 자신을 지켜주던 배경이 없어져서? 아니다. 이제 그녀라면 어느 정도 튀는 짓만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 정도는 가능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정운이 만약 저기서 죽기라도 하면 자신에게도 그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 나 혹시·····.’ 그때 그녀는 자각했다. 예전에 정운이 자신에게 고백한 이후에 생각해 보겠다는 식으로 일단 시간을 필요하다고 했지만···. 사실 시간 따위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자신 역시 정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 자신의 마음을 그녀는 그때 자각했다. 장비를 꺼내고 흑토에 올라타려는 정운을 보고 슬기는 홀린 듯이 움직였다. 그래도 정운의 목에 자신의 팔을 감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대로 정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그 후로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보통 잘 나가는 아이돌들은 연기의 오퍼도 들어오지만 그녀는 자신의 음악에만 집중하겠다고 해서 연기도 하지 않았고 예능에도 단독으로 출현 한 적은 없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는 한층 더 아니꼬왔을 지도 모른다. 자신은 아이돌이 아니고 뮤지션이다. 라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어쨌든 연기라고는 뮤직 비디오의 댄스 정도 밖에는 없었던 그녀였기에 정운에게 한 것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첫키스였다. 입을 맞추고 정운의 숨결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정신이 아찔해 지는 것 같았다. 마치 마약을 깊숙하게 흡연한 중독자처럼 그녀는 정운의 숨결이 취해서 어설프지만 격하게 정운의 입술을 탐했었다. 자신이 어떻게 그랬는지도 모를 정도로 격한 키스를 마치고 그녀는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가다듬고 정운에게 말했다. “돌···· 돌아오면···. 이거 다음에 하는 것 해 줄게요.” 라고 말이다. 정말 간신히 쥐어 짜듯이 한 말이었다. 이 말을 하고나서는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에게 정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꼭 돌아올게.” 그 짧은 한 마디가 슬기로서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과 마음이 통했을 때의 그 일체감. 안도감. 그 모든게 처음인 그녀로서는 그저 기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살아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굉장히 기쁘고 앞으로 있을 정운과의 미래가 즐겁게 기다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살짝 문제가 생겼다. 비정기 퀘스트 이후에 정운은 굉장히 바빴다. 십왕들과의 거래에 히드라 사냥에 나갔다가 김신수라는 이상한 인간과의 트러블. 거기다 간신히 시간이 났나 싶었더니 거기서 세레나와의 검술 수련한다고 바짝 붙어있고··. 그 후에는 65층의 사냥을 계획하고 또 여러 가지 작전의 구상과 실행까지···. 어쨌든 굉장히 바쁘고 또 바빴다. 그녀는 처음에는 기다렸다. 신혼초인데 상사의 등쌀에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참자··. 정운씨도 생각이 있겠지. 좀 더 참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런데 말이다····. 결국 인간의 인내심이라는 것은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바쁘니까 이해하자.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정운이 아무런 어프로치를 하지 않자 서서히 슬기의 안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내 키스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 좋아하기는 하는 건가? 나한테 관심 없는 건가? 설마 아무 여자한테나 막 그러는 건가? 그야말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 그녀였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폭발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여자로서의 프라이드가 쩌저적 하고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 결심했다. ‘좋아.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내가 가면 되지. 내가 못 할 줄 알고?’ 순진하고 얌전했던 사람들일수록 폭발했을 시에는 한층 더 막나가는 법이다. 그녀는 오늘 정운이 온천에 들어가자 마자 결심한 행동을 했다. ============================ 작품 후기 ============================ 키스 그 이후의 일에 관해서 그냥 넘어가시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그냥 좀 뜸을 들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슬기가 화 낼때까지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76화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아마도··. 할 수 있을 거야.’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온천으로 들어가려고 5분 동안 심호흡을 하던 그녀는 그대로···. “그래도 일단은 좀 가리자.” 들어가려다 말고 베스 타월을 꺼내서 몸에 칭칭 감기 시작했다. 가슴부터 시작해서 허벅지까지 완벽하게 가려 놓고 나자 약간 야한 원피스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무대 의상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 지금부터 스테이지에 나가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 긴장하지 마. 관객도 한 명 뿐이잖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추스 렸다. 그리고 간신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는 정운의 앞에 알몸에 베스타월 하나만 가린 상태로 같은 탕에 들어온 것이다.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내심은·····. ‘여기는 스테이지. 여기는 스테이지. 여기는···.’ 소위 말하는 아이돌 근성으로 필사적으로 자신의 동요를 외부로 누출 시키지는 않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는 슬기 본인도 정신이 나가 버릴 것처럼 부끄러웠다. ‘제발··. 이렇게 까지 했으면 뭔가 좀 해줘요. 여기서 나 한테 뭘 더 하라고 하면 울어 버릴 거야.’ 슬기는 정운이 이제 뭔가 자신에게 어필을 하기를 바랬다. 여차하면 여자로서의 자신을 전부 정운에게 바쳐도 좋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애당초 그럴 각오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정운이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흠칫!!! 슬기는 경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녀와 접촉을 하고 나서야 슬기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신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정운은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포근한 어떤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 순진한 아가씨가 지금 자신을 위해서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기분이 붕 뜬 것이다. 정운은 그대로 슬기의 귓가에 자기 입술을 가져가서 살짝 뺨에 입술을 맞췄다. “아···.” 뺨에 살짝 입술이 닿았을 뿐인데 긴장하고 있던 슬기에게는 커다란 자극이 온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신에 힘이 가득 들어간 그녀를 보고 정운이 말했다. “무서워?” “아니··. 아니요. 절대로···.” “떨고 있는데?” “아···. 음··. 추워서요.” “·········온천안에서?” “·············.” 말이 되지를 않았고 변명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슬기의 얼굴에 애써 유지하고 있던 태연의 가면이 완전히 벗겨졌다. 눈물을 글썽 거릴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가자.” “아···. 저·· 저는 괜·· 괜찮·· 괜찮····.” 말을 더듬을 정도로 당황해서 괜찮다고 하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첫 경험인데 이렇게 온천 속에서 충동적으로 할 수는 없잖아?” “··········.” “오늘 밤에 내가 찾아갈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기의 뺨에 한 번 더 키스를 하고는 그대로 온천에서 먼저 일어났다. 뒤에 남은 슬기는 마치 전함이 침몰하는 것처럼 온천으로 머리 끝가지 들어가 버렸다.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밖에 내 놓고 있기도 힘들었다. 꼬르르르르····. 물 속이라서 들리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목욕을 하고 나서 슬기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식사때 정운과 세레나가 뭔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거기에 끼어 들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오늘 밤에 정운이 자신을 찾아 온다는 사실 하나만이 계속해서 떠 올랐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물릴까? 어떻게?’ 슬기는 머릿속에서 쳇바퀴 돌듯이 ‘어떻게?’라는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처음엔 많이 아픈가? 기분 좋기는 한가? 남자들은 가만히 있는 여자 싫어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이상한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그녀였지만 사실 쓸모없는 걱정이다. 물론 사람들 마다 다양한 취향이 있고 개중에는 적극적인 여성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첫경험부터 그런걸 바라는 놈이 있다면 그건 만렙 변태다. 그런건 서서히 같이 맞춰가면 되는 거다. 일단 가장 중요한 마음만 맞으면, 그 다음에 몸은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것이다. 뭐, 순진한 처녀가 거가까지 머리가 돌아갈 리야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느리게 느껴지던 시간이 마침내 다 지나갔다. 그녀는 침실에 들어가서 새신랑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신부처럼 정운을 기다렸다. 신장이 쿵쾅 거려서 긴장되었지만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똑똑··. “슬기야. 들어간다.” 노크소리와 함께 정운의 목소리가 들리자 슬기는 약간 새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 드러고세···요.” ‘나 바보 같이 왜 이러지.’ 말하고 나니 얼굴이 한층 더 화끈 거리는 슬기였다. 정운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불을 목까지 덥고 얼굴을 빨갛게 하고 있는 슬기를 볼 수 있었다. ‘····젠장, 귀엽잖아?’ 아까 전에 욕실에서 보여줬던 가면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마치 사냥꾼에게 잡힌 아기 사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는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쟤는 누구 심장을 멎게 하려고···.’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슬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침대에 살짝 기대앉고는 손을 뻗어서 슬기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바짝 얼어있는 슬기를 보면서 말했다. “많이 무섭니?” “아니요. 전혀··········· 예.” 슬기는 습관적으로 부정하려고 했다가 자신을 편안하게 내려다보는 정운의 시선을 보고는 그저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하게 무섭다는 것을 시인하자 그녀는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 할 것은 하나도 없어. 내가 그저, 너를 사랑하고 너를 내 것으로 만들고, 그리고 앞으로 널 지켜갈 뿐이야.” “·············.” “사랑해.” 정운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는 천천히 슬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고래부터··. 수많은 남자들이 수많은 여자들을 함락시킨 마법의 키워드. 사랑해. 라는 말에 슬기는 그대로 팔을 뻗어서 정운의 목을 감았다. 이제 그녀의 안에 자리하고 있던 두려움이 미지의 흥분과 설렘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정운은 조금씩이지만 풀리기 시작한 슬기의 몸을 느끼고는 천천히··. 어디까지나 천천히 그녀를 어루만져 갔다.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마치 한순간 한순간을 놓치기 싫은 것처럼 그녀를 안아가는 정운의 손길은 조심스러움을 넘어서 어떤 집념까지 느껴졌다. 마치 일생일대의 걸작을 만들어 가는 도공이 흙을 빗어가는 손길처럼···. 정운의 손길이 슬기의 전신을 스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옷 위로··. 그리고는 슬며시 옷 안으로 들어와서 슬기의 옷 안에서 머물기 시작했다. “····으음····.” 슬기는 자신의 몸에 와 닿아서 노니는 정운의 손길에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의 숨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평소에 옷을 갈아입거나, 혹은 목욕을 하면서 몇 번이고 만졌던 몸이었고 피부였다. 그런데 거기에 남자의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정운은 그대로 손으로 슬기의 피부를 쓰다듬으면서 그 감촉에 전율했다. 실크 같은 미끄러움과 초여름의 새잎과 같은 촉촉함이 공존하는 것 같은 이 감촉. 처녀인 슬기와 달리 정운은 몇 번이나 이런 여체의 감촉을 취하고 또 거기에 쾌락을 추구해 봤다. 하지만 맹세코···. 지금과 같은 만족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일차원적인 쾌락을 위해서 여자를 안는게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여자를 품에 안는 것이다. 쾌락 이상의 충족감이 들었고 그런 것은 정운에게도 미지의 희열이었다. 정운은 그대로 손을 움직여서 슬기의 몸을 가리고 있는 괘심한 옷들을 벗겨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상의를 벗기자 그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는 수수한 연두색 브레지어가 드러났다. 정운은 그대로 손을 그녀의 등으로 돌려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키스를 하면서 혼을 빼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이 키스에 쏠린 사이에 브레지어의 후크를 풀고는 그대로 그녀의 팔 사이로 브레지어를 완전히 풀어냈다. 그러자 슬기의 맨 가슴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이성의 앞에서 완전히 들어났다. 봉긋하고 뽀얀 젖무덤의 위에 앙증맞은 유실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정운이 자신의 빤히 바라보자 슬기는 부끄럽다는 듯이 자기 손으로 가슴을 가리면서 말했다. “·····부끄러우니까 너무 보지 마요.” “미안. 하지만 무리야.” 정운은 슬기의 애원을 묵살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서 그대로 옆으로 치워 버렸다. 슬기는 자신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는 정운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렸다. 정운은 슬기의 예쁜 가슴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손을 뻗어서 약간 강하게 그녀의 가슴을 손에 쥐었다. “······아!!” 슬기는 정운의 강한 손길에 살짝 아프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많이 아파?” 정운이 살짝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자 슬기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말했다. “아픈게 아니라·····. 저기··, 부끄러워요.”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고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몸을 살짝 일으켜서 자신의 상의를 벗어 버렸다. 보통 처음인 경우 여자만 옷을 벗고 있으면 여자의 부끄러움은 더욱더 커지는 법이다. 그럴 때는 자신도 같은 페이스로 벗어주는 것이 여자의 부끄러움을 감소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슬기의 눈에 정운의 탄탄한 상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상체를 본 순간 슬기는 감탄과 더불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운씨····.” “좀 흉하지?” “아니요. 전혀····.” 온천에서는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알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정운의 온 몸이 잔 상처 투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회복 마법을 쓰면 거의 대부분의 상처는 치료가 된다. 설사 현실에서 스포츠맨들의 선수 생명을 끝장 낼 수 있는 중상이라고 해도 치료는 된다. 하지만··. 상처의 흉터는 역시 남기 마련이다. 정운의 상체는 멀쩡한 면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상처 투성 이었다. “····만져 봐도 돼요?” “얼마든지.” 슬기의 조심스런 부탁에 정운은 허락했다. 그리고 허락이 떨어지자 슬기의 고운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녀의 손길은 정운의 거친 흉터 위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끝에서는 탄탄한 근육 위로 오돌토돌하게 겹쳐져 있는 정운의 상처들이 느껴졌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쓸어내는 것처럼 정운의 피부를 쓰다듬으면서 슬기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까지 수도 없이 격전을 치르면서 만들어온 상처는 이미 흉터가 아니었다. 박정운이라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 역경을 이겨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이고 역사였다. 슬기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슬기도 안다. 충분히 알고 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행운을 거머쥔 여자인지를 말이다. 몸도 마음도 아무런 상처입지 않고 이렇게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앞서서 이렇게 정운이 상처를 입어줬기 때문이었다. 그런 정운이 자신을 지켜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슬기는 정운의 상처 하나하나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입은 것으로 보였다. 슬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서 정운을 꼭 껴안고 말했다. “사랑해요. 정말···. 정말로 많이 사랑해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해요.” 어느새 울먹이면서 말하는 슬기의 촉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운은 슬기에게 화답했다. “나도 사랑해.” 정운은 그리고 슬기의 입술에 다시 진하게 키스하면서 그녀를 다시 침대로 쓰러트려 갔다. ============================ 작품 후기 ============================ 베드신을 오랜만에 쓰다 보니 공을 좀 들여서... 뭐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베드씬의 분량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절단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신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77화 거친 호흡과 달뜬 신음 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면서···. 둘은 마침내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 되었다. 정운은 그녀의 모든 옷을 벗기가 잠시 하던 행동을 모두 멈추고 그녀의 새하얀 나신을 가만히 감상했다. “····아름다워.” 설원에서 정신을 잃었던 그녀를 간호했던 이후로 처음 보는 그녀의 나신이었다. 그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의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자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운은 그대로 다시 그녀와 몸을 겹쳤다. 조금이라도 더 밀착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와 완전히 몸을 겹친 두 사람은 심장소리가 하나로 들릴 정도로 겹쳤다. 그리고 정운이 마침내 슬기의 미답지를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하자···. “아··· 아앗·······.” 슬기는 발가락을 꽉 오므리고 허리에 힘을 잔뜩 주면서 고통에 반응했다. “많이 아프니?” “·····괜찮아요. 정말 괜찮으니까···. 많이많이 사랑해 주세요.” “슬기야·····.”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한없는 기쁨에 젖었다. 그리고 그대로 슬기의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윽고 둘의 몸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하··· 하아····· 읍····.” 여성의 경우 고통을 느끼는 비중에 따라서 약간의 개인차가 있는데···. 슬기는 특히나 많이 아파하는 타입 같았다.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계속해도 될지 말지가 고민될 정도였다. 그런 정운의 고민을 알았을까? 슬기는 양팔을 들어서 정운의 목을 꽉 감고는 정운이 자기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했다. 마치 이대로 계속하라는 듯한 그녀의 제스처에 정운은 슬기의 입술에 키스하면서 몸을 부드럽게 풀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훨씬 아프다. 일단 물 먹은 솜처럼 약간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정운은 일단 움직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몸을 애무하면서 숨은 성감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으음···. 음····. 아아····.” 슬기는 반응이 민감한 편이어서 생각보다 여러 군데에 약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운은 짓궂은 장난꾸러기 같은 느낌으로 슬기의 여기저기를 자극했다. 귓불을 입을 맞췄다가 그대로 내려가서 매끄러운 쇄골을 빨고 손으로 등줄기를 자극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앙증맞은 유실을 간질이듯이 자극했다. “아····. 아아아····.” 슬기는 정운의 손길 때문에 전신에서 다발적 테러처럼 일어나는 쾌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여자가 첫경험에서 쾌락을 얻는건 힘들다. 행위 자체가 고통을 수반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첫경험이라고 해도 전희나 애무에서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정운은 슬기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그녀를 노골노골하게 녹여 버렸다. 본격적인 행위는 참고 있었지만 그녀의 안에 들어간 분신에서 느껴지는 자극은 그녀가 한 번 한 번 느낄 때마다 움찔거리면서 정운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 느낌만으로도 정운은 이따금 씩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그리고 한참 공을 들인 끝에 그녀의 전신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하아···. 하아····. 정····. 정운씨···.” “이제 좀 덜 아플 거야. 그럼···. 시작할게.” “하아··· 으음·····. 아···.” 슬기는 자신은 이미 완전히 나가떨어질 것 같이 지쳤다. 그런데 이제 막 시작한다는 정운의 말에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처 그럴 틈도 없었다. 잔뜩 뜨거워졌다가 살짝 가라앉았던 그녀의 체온이 다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얌전하게 자신의 안에서 가만히 있던 정운의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잠시 잊고 있던 고통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앗···.” 다만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것이 그냥 고통뿐이었던 전과는 달리 아련한 어떤 감각이 그녀를 동시에 간질이듯이 느끼게 하고 있었다. 고통이 9라면 그 느낌은 1정도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 이상으로 90이나 되는 사랑이 그녀에게 고통을 이겨내게 해 줬다. “정운··· 정운씨···.” “슬기야···.”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의 타액을 탐하고, 서로의 피부를 느끼면서 이윽고 절정으로 인도 되었다. 정운은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 최대의 만족감을 확신하면서 슬기의 몸 안에 자기 욕정을 폭발 시켰다. “아·····. 아아····.” 슬기는 자신의 몸안에서 정운이 무언가를 배출한 느낌을 받으면서 묘한 감상에 젖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무를 다한 것 같은 달성감? 여자라는 성의 역할을 처음으로 완벽하게 완수한 것 같은 성취감? 하지만 가장 크게 든 것은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었다는 감동적이기까지 한 일체감이었다. 정운 역시 완전히 폭발한 이후에 만족감에 젖어서 슬기의 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느끼고 싶은 것처럼 그녀의 부드러운 몸에 자신을 겹치면서 여운을 잠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감정이 진정되고 나서 슬기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슬기야·····.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요.” 그라운드 제로에 정운이 들어온지 4년이 넘었고, 슬기가 1년이 조금 넘은 시간. 둘은 이런 척박한 수라장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사랑을 찾았다. 다음날 아침. 눈부신 태양이 창밖에서 해살을 비췄다. 그리고 그 했살은 자기보다 더 눈부신 새하얀 나신에 부딪혀서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으음···. 어? 정운씨?” “깼어?” “········예.” 슬기는 눈을 뜨자 자신이 알몸으로 정운에게 안겨 있는 것을 자각하고는 부끄럽다는 듯이 작게 속삭이며 대답했다. 정운은 슬기의 그런 행동마저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자기 품안에 품었고, 슬기는 그런 정운의 가슴팍으로 더욱더 파고들었다. 지금 얼굴을 마주하기는 너무 부끄러웠다. 정운은 아침에 눈을 뜨고 아름다운 슬기의 나신과 그 나신의 곳곳에 남아있는 어젯밤 자신의 흔적을 보고는 행복감에 젖었다. 슬기는 연예인이고, 그런 그녀는 수많은 이들에게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마 수많은 남자들이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품안에서 사랑스럽게 안기는 이 순간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지금 정운의 품안에서는 연예인도 아이돌도 아닌 그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일 뿐이었다. 정운은 그런 슬기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세상 그 무엇도 지금 자신의 행복을 부셔 버리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이후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배신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서였다면 납득해 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했다. 정운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식사 가져올게. 여기 있어.” “아··, 괜찮아요. 그렇게 안해도 제가·········.” 말을 하던 슬기는 몸을 일으키다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에 눈물을 찔끔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조심스럽게 다시 눕히면서 말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너 어제 굉장히 아파했어. 아침 가져 올 테니 천천히 쉬고 있어.” “······알았어요.” 슬기는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을 챙겨주는 정운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어서 그대로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쉬고 있어.” 정운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며칠 정도 사냥 쉬고 느긋하게 좀 보낼까? 그래··. 그러는게 좋겠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느껴지는 편안한 안도감이었다. 정운은 이 여운을 금방 사냥으로 망쳐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식당에 내려간 정운은 메이드들에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달라고 말하고는 받아서 자신이 직접 가지고 올라가려고 했다. 토스트, 스크램블 에그, 샐러드 그리고 커피까지···. 지극히 간단한 아침이었지만 가지고 올라가는 정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래···. 세레나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는 말이다. “일어나셨습니까? 마스터.” “음····. 아아····.” 정운은 순간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들뜸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슬기와 하나로 맺어진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무의식 적이었을까? 아니면 세레나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까봐 의식적으로 한 것일까? 이제까지 세레나에 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마주한 그 순간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죄책감을 마주하고 만다. 사실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아니 심지어 명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레나의 얼굴을 보기가 껄끄러웠다. 그런 정운에게 세레나가 말했다. “오늘 사냥은 몇 시부터 가실 겁니까? 평소처럼 오전 9시에 출발하면 될까요?” “음····. 아니. 오늘부터 며칠간은 쉴 거야.” “예? ·····어째서죠?”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한 가지 변명이 나왔다. “미안. 내 컨디션이 안 좋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세레나는 정운의 변명에 태연하게 납득했다. 그리고 정운은 순간 그런 그녀를 보고 가슴이 아릿해졌다. ‘내가 뭘 한 거지? 비겁하게·····.’ 정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세레나를 다시 불렀다. “세레나!!!” “····왜 그러시죠? 마스터.” 세레나의 얼굴을 보면서 정운은 다시 말을 고쳤다. “사실····. 내 컨디션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까····. 어제 밤에 나하고 슬기하고 함께 있었어.” “·····아!!” 세레나는 이제 알았다.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에게 정운이 정직한 결론을 말했다. “며칠간은 쉬고 싶어. 나도 그녀도···. 이해 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그런 것을 부끄러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결과일 뿐이니까요. 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마워.” 세레나의 태연한 축하를 받으면서 정운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세레나가 뒤를 돌아가는 것을 보고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한명으로 정해야 한다고···. 세레나는 잊어야 한다고 말이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뜻대로 잘 움직일지 말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슬기와 서로 마음이 통하고 난 뒤로 정운은 일주일 동안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면서 둘은 주변 사람들이 다 닭으로 변할 정도로 염장질을 하면서 알콩달콩 오로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슬기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인생 첫 연애였다. 그리고 공인이라는 허울도 없는 그라운드 제로였기에 마음껏 보통 사람들처럼 애정을 드러내도 되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하루 종일 정운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애정공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달콤한 휴가에도 끝은 있는 법이어싿. “정운씨, 내일부터 사냥 나가는 거예요?” “그래. 다시 움직여야지.” “에이····. 좀 더 이렇게 있고 싶은데···.” 슬기는 정운의 가슴에 자기 얼굴을 기대면서 말했다. 둘은 지금 노천 온천에 서로 몸을 밀착하고 몸을 담그고 있었다. 슬기는 정운의 팔에 안겨서 자기 이마로 정운의 탄탄한 가슴을 비비면서 애교를 떨고 있었다. 정운은 슬기의 이런 애교가 싫지 않았다. 안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둬야 하는 것이 있었다. “슬기야. 사냥에 나갔을 때는 언제나 변수가 많아. 아무리 안전한 계획을 세우고 편안한 장소에 간다고 해도 위험할 수 있어.” “예. 저도 알아요.” “그래. 그러니 사냥 할때는 연애 스위치는 잠깐 끄고 팀의 플레이에 협조해야 해. 알았지?” 이런 말 하기가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확실하게 이런 선을 그어둬야 할 필요는 있었다. 다행이 슬기는 이런 일로 토라지는 속 좁은 여자는 아니었다. 정운이 하는 말에 슬기는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물론 그럴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사냥 나가는게 아깝다는 거죠.” 슬기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면서 귀엽게 말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다시 무릎에 올리면서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걱정하지 마. 그럼 오늘 충분히 사랑해 줄 테니까.” “···여기서? 앗·· 정운씨·····.” 뜨뜻한 온천이 한층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아무리 연인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일(?)하는 중에는 선을 그어놔야 겠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78화 <암석 드래곤을 사냥하다> 다음날. 세 사람은 다시 65층의 사냥터에서 힘내서 사냥을 주력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쉬면서 그동안 쉬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한층 더 힘을 내서 사냥을 시작했고, 드디어 정운의 유니크 아이템인 그림자의 망토에 새로운 스킬이 추가 되었다. 그림자의 망토 LV.5 방어력 : 1,5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스킬 : 쉐도우 컷터 쉐도우 스피어. 쉐도우 체인. 쉐도우 아머. 쉐도우 홀. [그림자를 조종해서 물리력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능력의 활용성이 더욱더 커진다.] “쉐도우 홀?” 방어력이 1,000에서 1,500으로 오른 것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보다 새롭게 생긴 스킬에 흥미가 생겼다. 마침 눈앞에 보이는 흑철 오공이 눈에 보이기에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세레나 잠시 전방에서 주의를 좀 끌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제는 정해진 수순처럼 세레나가 흑철오공에게 가서 놈의 주의를 끌었다. “핫!!!” 카앙!! “키에에에에!!!” 흑철오공은 자신을 공격한 세레나를 보면서 거칠게 화를 냈다. 뭐, 가만히 있다가 검으로 머리를 얻어 맞으면 누구나 화 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운은 놈의 주의가 세레나에게 돌아가 있는 틈에 옆으로 가서 기술을 시전했다. “쉐도우 홀.” 정운이 기술을 시전하자 흑철오공의 그림자가 먹물처럼 번지면서 그대로 흑철오공이 지면에 반쯤 잠기기 시작했다. “키에에····.” 흑철 오공은 몸부림 치면서 늪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좀처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오고는 있어지만 그래도 재빨리 빠져나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호오··. 지면을 늪처럼 만드는 건가? 이거···. 쓸만 하겠는걸?” 정운은 바로 스킬의 특성을 파악했다. 같은 구속 스킬이라고 해도 쉐도우 체인과는 달랐다. 쉐도우 체인은 힘으로 적을 묶어두는 스킬이었다. 말 그대로 강한 쇠사슬로 구속하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쉐도우 홀은 바닥을 늪처럼 만들어서 행동을 제약했다. 구속의 힘은 쉐도우 체인보다 좀 약할지 몰라도 그만큼 빠져나오기 힘들었고 또 적의 행동에 적지 않은 제약을 주는 것 같았다. ‘발밑을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니까···. 잠깐? 그렇다면·····.’ 정운은 마침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이거라면···. 이 스킬을 잘만 응용한다면 저번에 실패했던 암석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정운씨!! 원거리 공격으로 딜해요!!”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는 정운에게 슬기가 소리쳤다. 흑철오공이 그림자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이에 그녀의 마법 공격들이 작렬했다. “파이어볼, 더블 캐스팅!!” 퍼펑!!! “이런··. 알았어.” 흑철 오공의 전신에 작렬하는 불의 구를 보면서 정운도 활을 바꿔 잡고는 원거리 공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단 눈앞의 흑철오공은 잡고 봐야 했다. 십 여분 정도 후. 세 사람은 흑철오공을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흑철오공 정도는 여유 있게 상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두 사람 다 수고했어.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예? 아직 두 시간 밖에 안 했는데?” 슬기는 이상하게 빨리 사냥을 끝내는 정운을 보고 의아하나 표정을 지었다. 세레나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다고 생각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둘에게 정운이 말했다. “미리 준비할 게 좀 있어. 그리고, 내일은 암석 드래곤에게 한 번 더 도전해 보자.” “내일요?” “그래. 생각이 좀 있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을이 있는 포탈로 돌아갔다. 포탈을 열고 마을로 돌아가자 마침 삼대길드의 포탈 안내원이 누군가를 안내하기 위해서 포탈 근처에 대기중이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정운이 인사치례로 말을 한 마디 하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박정운씨. 빨리 오셨군요.” “뭐, 그렇죠···. 하루종일 여기 있으려면 심심하지 않으십니까?” “하하하··. 어쩔 수 없죠. 포탈 안내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여기 있어야 하니까요.” 포탈을 타고 올 때는 누구나 자유롭게 올 수 있지만 65층으로 갈 때는 출입할 권리가 있는 누군가가 동석해야 한다. 그러니 삼대길드에서는 저 레벨이지만 출입권이 있는 누군가를 이렇게 항상 포탈에 대시 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정운씨는 오랫동안 사냥하시네요. 힘들지는 않으십니까?” “예. 좀 빡세기는 하지만 할 만 하더군요.” “혹, 무리가 간다고 싶으면 언제든지 우리 길드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상대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소문은 들었지만···. 역시 재미 좀 본 모양이지?’ 삼대 길드가 65층을 개방하면서 노린 수는 용병이탈 방지만이 아니었다. 아예 직접 삼대길드에 가입하기 시작하는 상위급 유저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솔로 혹은 자기들의 팀으로만 사냥을 하던 그들은 갑자기 올라간 65층의 혹독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제까지 무시하고 있던 길드의 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콧대를 세우면서 가입을 거부하고 있던 상워급 유저들 중에 상당수가 삼대 길드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 소문은 정운에게도 들렸다. 삼대 길드로서도 용병계약 보다는 아애 길드에 가입한 자들을 더 알뜰하게 챙겨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정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전 아직 할 만 합니다. 나중에 용병 의뢰 할 일이 있거든 그때 보도록 하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포탈에서 나갔다. 그런 정운의 뒷모습을 보고 길드원이 말했다. “용케 잘 적응한 것 같네···. 65층이 보통 빡센게 아닌데 말이야.” 중얼 거리는 그는 몰랐다. 지금 정운이 내일이면 황야지대 최강의 몹인 암석 드래곤을 사냥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운은 슬기와 세이라를 집에 보내고 혼자 상점으로 왔다. 이번에 온 이유는 상점에서 장비를 충원하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십시오. 뭐 드릴까요?” “함정계열의 아이템을 좀 보려고 하는데?” “함정계열 말씀이죠? 알겠습니다.” 점원은 카탈로그를 쫙 꺼내기 시작했다. 함정계열의 아이템. 그것은 정운이 주로 30레벨 때쯤에 자주 애용하던 아이템이었다. 타입은 다양하지만 말 그대로 몹을 함정에 빠트릴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그게 30레벨 때쯤에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레벨이 되자 함정이 주는 효과가 통하지 않는 몹들이 많았다. 물론 함정 아이템도 고급 아이템을 쓰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문제는 그런 아이템이 너무 비쌌다. 예를 들어서 화약통 이라는 함정이 있다. 그 중에서 최상급은 마치 다이나마이트를 다발로 터트린 것 같은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최상급 화약통은 가격이 무려 20만 골드였다. 두고두고 쓰는 아이템이라면 모를까? 누가 한번 쓰고 마는 소모성 아이템에 20만 골드다 쓰겠는가? 거기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몹들은 상당히 영리한 놈들이 많다.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유저들을 공격하는 몹들에게 통하지도 않는 함정을 소모했을 때는 사냥에 성공한다고 해도 적자일 뿐이다. 그래서 정운도 레벨이 40대를 접어들면서 함정계열 아이템을 끊었다. 일반 사냥에 성공해봐야 적자일 뿐이니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다. 레이드 시에 사용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 보다는 용병 의뢰를 통해서 파티 플레이를 하는게 더 많이 남고 효율도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함정 아이템을 이번에 쓰려는 것이다. 정운은 카탈로그의 항목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면서 영상을 클릭했다. 그렇게 하면 그 함정을 쓰는 영상이 나오고는 했다. 그렇게 확인하던 정운이 상점의 NPC에게 말했다. “여기 가장 강력한 화약은 얼마지?” “50만 골드입니다.” “너무 비싸!!!” 정운은 NPC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폭탄 하나에 50만 골드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인간적인 가격이었다. “대신 위력은 상당합니다.” “그래 봤자 고레벨 유저가 직접 스킬로 갈기는 것만은 못하잖아.” 정운의 말에 점원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그게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폭탄으로 제대로 된 대미지를 주는 것은 포기 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여기 1만 골드짜리 화약통 좀 줘. 위력은 약하지만 시한으로 터지는 것 있지?” “예, 그거라면 있습니다. 몇 개나 드릴까요?” “일단 10개. 그리고···. 그것 말고도····.” 정운은 생각하고 있던 아이템을 몇 개나 구입했다. 다 사고 나니 가격이 50만 골드가 넘었다. ‘···어차피 지금 돈이야 많지만, 그래도 은근히 바가지 쓴 것 같아서 짜증나는걸?’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단 상점을 나왔다.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 왠지 상점 NPC의 예의바른 말이 자신을 호구 취급하는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내일의 사냥법에 관해서 설명했다. “우선 몇 가지 시험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보다시피 이렇게 작전을 짰어. 어때?”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세레나는 감타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마치 공룡을 사냥하는 것 같은 느낌이군요.” “실제로 공룡보다 더 한 괴물이잖아?” “작전의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전에 마스터가 소모한 아이템의 가격을 암석 드래곤이 충분히 메워 줄지가 의문입니다.” “흐음···. 뭐, 여차하면 흑철오공이나 육미호를 잡아서 보충해야지.” 정운의 말에 세레나와 슬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윗층으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보상은 더욱더 커지는 법이다. 보통 소재 아이템이 어떤 것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차이는 좀 있었지만 65층의 사냥은 상당히 쏠쏠했다. 흑철오공의 경우 잡으면 평균 5만 골드 정도는 돈이 되는 놈이었다. 가끔씩 흑철오공의 내단 이라는 것이 나오면 10만 골드까지 하기도 했다. 육미호는 더해서 한번 잡을 때 평균 8만 골드 정도는 했다. 아직 많이 잡아보지 않아서 모든 재료 아이템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잘하면 대박 아이템을 줄 때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요즘 들어서 벌이가 쏠쏠해진 정운의 파티였기에 사냥 한 두 번 적자 본다고 애 닳을 일은 없었다. “그럼 설명은 여기까지. 내일을 위해서 편히 쉬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세레나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최근에 정운과 슬기는 이미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이제 슬슬 암석 드래곤을 잡고 65층의 사냥을 본격화 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광업을 하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 79화 둘은 같은 방에서 옛날 영화를 보거나 함께 살을 마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없는게 없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 없는 것은 있었다. 예를 들어서 라디오, TV방송,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은 전무했다. 물론 TV는 있었지만 방송국이 없으니 사실은 그냥 영상 재생장치일 뿐이었다. 근처 상점에 가면 나온지 20년은 넘은 것 같은 옛날 영화들이 잔뜩 있었다. 듣기로는 그것도 거의 몇 십 년에 한 번 정도 새로운 작품들이 한꺼번에 들어온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없는 것 보다는 말이다. “고전 명작이라는 것도 재미있네?” “그렇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저는 100번도 넘게 봤다니까요?” “음···. 난 한 번 봤으니 됐어.” 눈을 반짝반짝이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애써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정말···. 명작은 한 번 한 번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 할 수 있다니까요?” “그래. 나도 널 한 번 한 번 안을 때 마다 새로운 너를 발견해.” “아이 정··· 꺄악!!” 더 이상 말싸움은 하기 싫다는 듯이 정운은 슬기를 덮쳤다. “진짜···. 너무 밝히는 것 아니에요?” “맞아. 싫어?” 슬기의 핀잔에 뻔뻔스러울 정도로 간단하게 인정해 버리는 정운을 보고는 슬기가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질 정도였다. 오랫동안 여자를 멀리하고 있었던 정운이었지만 최근에 슬기로 인해서 마치 쌓인 둑이 터져버린 것처럼 슬기에게 자기 정렬을 불태우고 있었다. 슬기도 그런 정운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말로 핀잔주는 것은 그냥 그녀의 내숭일 뿐이었다. 다음날. 정운은 이번에 다시 65층으로 올라왔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올라온 정운은 평소와 달리 흑철오공이나 육미호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리고 황야지대의 끝부분에 있는 거대한 암석 드래곤을 향해서 찾아갔다. “쿠우우우·····.” 도착해서 암석 드래곤을 발견한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역시 황당한 놈이군. 이런 놈이 보스몹도 아니고 일반몹이라니····.” 날개는 없지만 전신에 바위같은 질감의 껍질을 두른 20미터 짜리 덩치는 보는 것 만으로도 위압감이 있었다. “그만큼 수준이 높다는 말이죠. 그럼 마스터. 저는 준비한 위치에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알았어. 슬기야. 너도 같이 가.” “알았어요. 조심하세요.” “그래. 걱정하지 마.” 정운과 슬기는 살짝 입술을 맞추고는 떨어졌다. 그리고 둘이 떨어지고 나서 한참을 기다린 후. 정운은 이제 슬슬 작전을 시행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럼 슬슬··. 시작할까?” 정운은 인벤토리에서 작은 화약통을 꺼냈다. 수박 정도 되는 크기의 화약통을 들어서 정우는 심지에 불을 붙이고 그대로 암석 드래곤을 향해서 집어 던졌다. 퍼엉!! 놈의 코앞에서 폭발이 터지자 놈은 거칠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안녕, 오랜만이지?” 정운은 거칠게 포효하는 20미터짜리 괴물을 보면서 태연하게 인사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상대는 별로 안녕하지 못한 것 같았다. 놈은 거칠게 포효하면서 정운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 달리면서 점점 가속도가 붙는 놈을 보고 정운은 흑토의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어디 따라와 봐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토의 배를 차고 달렸다. “히히힝···.” 흑토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영수의 경지에 이른 흑토의 질주는 이미 말이라기보다는 마치 최고급 레이싱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것 같은 속도가 났다. 정운은 틈틈이 달리면서 화약통을 집어 던져서 놈의 심기를 건드렸다. ‘제 1단계 유인···. 클리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준비된 장소로 놈을 유인해 갔다. 원래 정운은 말을 달리면서도 활을 쏘는게 가능하다. 그러니 그것으로 유인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흑토의 속도가 20%정도 느려진다. 암석 드래곤의 질주는 빠르다. 몸 자체는 거대하고 결코 기민한 편은 아니지만 그 보폭이 워낙에 컸다. 흑토가 열 걸음 걸을 거리를 놈은 한 걸음으로 단 번에 좁혀 오는 것이다. 그러니 흑토로서도 전력으로 질주해야 간신히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 갈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 이게 정운이 유인을 담당한 주 이유 중에 하나이기는 하다. 슬기의 백설이나 세레나의 세인트는 흑토에 비하면 너무 느리다. 그러니 그녀들로서는 암석 드래곤을 유인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세레나가 자신이 흑토를 타고 하겠다고 말도 했지만 자존심 강한 흑토는 정운 이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흑토는 머릿속으로···. 정운 ? 주인. 쫄따구 ? 슬기, 세레나. 기타등등 ? 백설,, 세인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운은 드디어 놈을 원한 위치까지 유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정운씨. 깃발이 있는 곳이에요.” 위치에 기다리고 있던 슬기는 정운에게 말했고, 정운은 슬기의 말대로 포인트를 확인했다. “흑토, 비상이다!!” “히히힝!!!” 정운이 말을 하자 흑토는 영수화를 하면서 그대로 허공을 떠 올랐다. 단, 높게 날아 오른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면에서 1미터 정도 떠오른 상태로 저공비행을 하는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지면을 밟지 않는게 중요했다. 왜냐하면 지금 지나가고 있는 지면에는···. 콰와앙!! “크하아아아아앙!!!” 암석 드래곤의 거대한 동체가 쏙 빠질 정도로 거대한 함정이 파여져 있으니까 말이다. ‘제 2단계 클리어. 함정에 빠졌다.’ 정운은 급하게 흑토의 고삐를 잡아채서 반전하면서 외쳤다. “세레나!! 슬기야. 던져!!” “옛!!” “옛!!” 슬기와 세레나는 허공으로 야구공 정도 되는 크기의 공을 집어 던졌다. 그리자 그것은 허공에서 커다란 쇠그물이 되어서 펼쳐졌고, 두 개의 쇠그물이 암석 드래곤을 덥쳤다. “크하아앙!!!” 암석 드래곤은 크게 포효하며 거칠게 날뛰었다. 암석 드래곤이 빠질 정도로 커다란 함정에 하나에 5만 골드나 하는 거대 쇠그물이 두 개나 소비되었다. 하지만 이런 함정장비는 암석 드래곤이 작정하고 날뛰면 20초도 버티지 못한다. 그렇다···. 어지까지나 이 상태라면 말이다. “쉐도우 홀!! 쉐도우 체인!!!” 정운이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함정에 빠진 암석 드래곤의 그림자에서 커다란 쇠사슬 다섯 가닥이 나와서 암석 드래곤을 꽁꽁 구속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놈의 몸도 4분의 1 정도가 늪처럼 변한 그림자에 가라앉아 버렸다. “크하아아아앙!!!” 놈은 거칠게 포효했지만 거듭된 함정에 두 가지나 되는 구속스킬에 좀처럼 쉽게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만약 놈이 비행이 가능한 드래곤이라면 이렇게 구속하기가 힘들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놈은 날개 자체가 없는 육전형 드래곤이다. 그러니 쉐도우 홀의 늪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정운은 발버둥 치는 놈을 확인하고는 외쳤다. “오케이!! 삼단계인 구속도 클리어다. 이제 갈겨!!!” “홀리 버스터!!” “체인 라이트닝!! 파이어 볼트!!!” 정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대로 세레나와 슬기가 원거리 공격으로 암석 드래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정운도 마찬가지였다. 활을 꺼내서 미친 듯이 활을 쏘기 시작했다. “속사!! 좀 죽어라아앗!!!!!” 퍼퍼퍼퍼퍼퍼펑!!! 모두의 맹공이 함정에 빠진 암석 드래곤에게 작렬했다. 정운은 공격을 하면서도 암석 드래곤의 구속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싸웠다. ‘좋아··. 레벨이 오르면서 쉐도우 체인의 구속력도 더욱더 강해졌어. 이대로만 가면 충분해.’ 정운은 모든게 작전대로 돌아가자 승리의 예감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30여분 동안 전력으로 공격을 거듭함으로 드디어 셋은 암석 드래곤의 최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쿠우우우······.” 쿵!! 마지막 한 숨을 내쉬면서 바닥에 쓰러져 버리는 암석 드래곤을 보면서 세 사람은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후우···. 딜만 30분 동안 꾸준히 했네···.” “저 이제 한계에요. 이렇게 연속으로 마법 쓴적 없어요.” “저도 원거리 공격은 제 특기가 아니라서···.” 원거리 전용 무기인 활을 쓴 정운에 비해서 오로지 스킬로만 공격했던 슬기와 세이라의 경우는 상당히 피곤한 모양이다. 사실 중간에 몇 번인가 암석 드래곤은 함정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마다 새로운 쇠 그물을 던지고, 또 정운이 계속해서 쉐도우 홀과 쉐도우 체인이라는 두 개의 구속을 번갈아가면 기전해서 적을 꽁꽁 묶었다. “어찌 되었든···. 사냥은 성공이야. 워낙에 튼튼한 놈이라서 잡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말이야.”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아이템하고 정신적 소모도 장난이 아니에요. 저 평소에 하루치 분의 마법을 이 30분에 다 사용했다고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일단 오늘은 처음이니까 이런거고··. 조금씩 조금씩 익숙할 거야. 그보다 둘 다 경험치 확인해봐.” 정운의 말에 경험치를 확인하던 슬기와 세레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거의 흑철오공 10마리 잡았을 때하고 같은 경험치를 주는걸요?” “그렇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놈을 꾸준히 잡을 가치는 충분해.” “···········.” “···········.”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골드를 퍼 붓고 또 시간을 투자해서 잡았다고 하지만 항상 이렇게 잡을 수는 없다. 이렇게 무리를 해서 잡는 다는 것은 아직 이 팀의 평균적인 강함이 65층에는 어울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 뿐이다. 꾸준한 사냥으로 레벨업을 해서 전체적인 수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돌아가지. 그리고 오늘 사냥의 정산을 해서 앞으로 사냥에 들어갈 돈이랑 사냥의 페이스를 계산할 거야.”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의 말에 두 여인은 얌전하게 복종했다. 정운에게 귀속된 가디언인 세레나는 물론이고···. 슬기에게도 정운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남자. 슬기에게 있어서 정운은 그런 남자였다. 돌이켜 보면··. 처음에 변덕으로 대등한 혈맹을 맺어준 것도 이제 와서는 이런 절대적인 신뢰의 뒷받침이 되고 있었다. 그때 정운이 슬기를 전혀 구속하지 않고 묵묵하게 이끌어 줬기에 슬기도 정운의 말이라면 무조건 절대 진리라고 여기는 신뢰가 구축된 것이다. 세상사가 험난해서 은혜가 항상 감사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정운과 슬기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었다. 마을로 돌아가서 암석 드래곤을 정산해 본 정운은 살짝 놀랐다. 화약통에 쇠그물, 그리고 대형 함정까지···. 정운이 이번 사냥에 쓴 돈은 40만 골드가 넘었다. 소형 화약통 1만 골드 × 8 대형 쇠그물 5만 골드 × 5 대형 함정 10만 골드 × 1 총 43만 골드가 소비된 것이다. 레이드 몹도 아니고 일반 몹 하나 잡는데 말이다. ============================ 작품 후기 ============================ 이번 챕터가 딱히 몬헌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몬헌에서 영감을 얻은 소설은 이미 차기작 준비로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80화 <뉴 웨이브 대 라이온 길드> 정말 돈이 들어도 너무 들었다. 십왕들과의 거래로 인해서 돈이 넘쳐나고 있는 정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 한 마리 잡는데 43만 골드는 너무 큰 출혈이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은 암석 드래곤이 주는 막대한 경험치 라면 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 번 잡을 때 드는 적자가 20만 골드 이하로만 떨어져도 계속 사냥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정산을 해보니까 적자 20만 골드는커녕 흑자가 나 버린 것이다. 정산을 하고 나온 돈은 51만 골드였다. 총 8만 골드의 흑자가 나 버린 것이다. “강하니까 어느 정도 돈이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거 대단한 걸?” 암석 드래곤은 그 강함만 보스급인게 아니라 아이템의 보상도 보스급이었던 것이다. 암석 드래곤의 강갑. 암석 드래곤의 뼈. 암석 드래곤의 어금니. 암석 드래곤의 발톱. 모두 고가에 팔리는 아이템들 뿐이었다. 사실, 65층의 출입권이 있는 3대 길드의 간부들도 함부로 암석 드래곤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레벨 90대의 플레이어 세 명이 모여서야 안전하게 공략하는 것이 바로 암석 드래곤이었다. 그런데 정운의 일행이 암석 드래곤을 이렇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두 가지나 되는 구속 스킬의 존재와, 정운이 그것을 120% 활용 할 수 있는 작전을 세웠기 때문이다. 정운은 팔짱을 끼고 곰곰하게 생각에 잠겼다. ‘흠····, 이거라면···.’ 암석 드래곤을 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일단 유인에만 성공하면 딜로 잡는 시간은 넉넉 잡아서 30분 정도면 될 것이다. 전체 사냥 시간은 현단계에서····, 아마도 45분 정도? 하지만 한 번 잡을 때 마다 정신력의 소모가 컸다. 그러니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렇다면···. 계획은 시간별이 아니가 마리수를 정하고 하루 할당량을 세우는 편이 좋겠는걸?’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꼼꼼하게 할당량을 정해갔다. 흑철오공 열 마리. 육미호 다섯 마리. 암석 드래곤 한 마리. 정운은 자신이 정한 할당량을 슬기와 세레나에게 설명했다. 정운의 말을 들은 둘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생각보다 하이페이스네요. ····차라리 하루에 암석 드래곤 두 마리를 잡는게 좋지 않을까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도 생각은 해 봤는데···. 암석 드래곤의 사냥은 정신력이 너무 많이 소모하고, 무엇보다 위험해. 그러니 다른 몹 들의 사냥으로 어느 정도 몸이 풀린 다음에 행동 하는게 좋을 것 같아.” “그건 좋은 생각입니다. 마스터. 그럼 언제까지 이 페이스로 지속하실 생각입니까?” “모두의 레벨이 65층에 어울릴 정도로 올라갈 때까지. 우선 나와 세레나는 레벨 90을 목표로 하고, 슬기는 못해도 레벨 60까지는 올려줘야 겠어.” 정운은 완벽하게 초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위만을 노려서는 위험할 뿐이었다. 65층의 사냥터에서 주는 경험치는 막대한 편이었다. 여기서 꾸준하게 수련하면 레벨 90대에 올라가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저도 정운씨 말대로 할 게요.” 둘은 정운이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올라가려는 방식에 찬성했다. 이제부터는 다소 지루하지만 꾸준하게 사냥을 지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1년 후···. 정운의 팀이 최소한의 외부 접촉만 유지하면서 외부의 65층에서의 사냥에서만 신경 쓰고 있는 와중에···. 그라운드 제로에 큰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뉴 웨이브가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 삼대길드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손꼽히고 있는 라이온 길드의 길드원들을 대량으로 PK 했다. 필드에서 레이드 중이던 라이온 길드의 유저들을 급습해서 20명이나 되는 길드원을 죽였다. 그리고 정식으로 그라운드 제로에 알렸다. 자신들은 라이온 길드에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한다고 말이다. 이 소식을 듣고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은 생각했다. 뉴 웨이브가 미쳤다고 말이다. 물론 뉴 웨이브는 강력한 길드였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삼대 길드 다음가는 강력한 길드라고 해도 좋았다. 50~70대까지의 상위급 유저들의 인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평가되고 있는 길드였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삼대 길드의 정점에는 십왕이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있었다. 특히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인 명주호는 십왕 서열의 6위에 있는 괴물이다. 타란툴라 길드와 메두사 길드에는 십왕이 두 명씩 있다. 각각 길드장과 부 길드장을 맡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온 길드가 삼대 길드중에 최강이라고 불리는 것은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인 명주호가 그만큼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라이온 길드에 정식으로 선전포고? 유저들은 뉴 웨이브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고, 얼마가지 않아서 뉴 웨이브의 최후를 볼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다. 최상층에 있던 명주호는 자신의 길드원들이 대량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것이냐?” 그는 오자마자 바로 간부들을 소집해서 추궁했다. 간부들은 장성급을 직접 대면한 이등병처럼 바싹 얼어서 긴장들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모두 저희들의 불찰입니다. 뉴 웨이브 놈들을 진작에 밟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죄송합니다.” 라이온 길드의 간부들은 20대 레벨부터 명주호가 직접 키워준 자들이다. 그들도 평균 레벨은 80중반에서 90초반 정도로 강자였지만 그런 간부들도 명주호의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여우일 뿐이었다. “············긴장들 풀어라.” 명주호는 바짝 얼어있는 간부들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진작 뉴 웨이브에 강격책을 쓰지 못한 것은 자신을 비롯한 십왕들의 암묵적인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애당초 삼대 길드라는 것 자체가 결성한 이유가 인재양성을 위해서였다. 10왕들은 그라운드 제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는 않았다. 위에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다수의 저 레벨 보다는 소수의 고레벨의 유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인재를 양성하고 그라운드 제로의 전체적인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삼대 길들를 결성하고, 그리고 거기서 인재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런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하기는 했다. 삼대 길드가 결성하고 2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는 레벨 90대도 상당히 흔하게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부하들이 다른 유저들을 핍박하면 당초의 계획이던 인재육성에서 벗어나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부하들을 그쪽 방면으로는 엄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처음에 뉴 웨이브라는 반대 길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별 위험은 없어 보였고, 그들이 강해져서 최상층으로 올라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경쟁자가 있는 것이 더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십왕들 전원은 별 생각없이 그냥 내버려 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놈들이 설마하니 이런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뒤는 내가 처리해 주마. 지금 놈들이 있는 장소는 파악 되었나?” 명주호의 말에 간부 중에 한 명이 말했다. “그게···. 놈들의 건물과 저택들을 확인해 봤는데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매각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또 뭐가 있지?” “관청에 가서 확인해 봤는데 뉴 웨이브의 멤버들 중에 귀족 작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모두 작위를 반납했다고 합니다.” “········완벽하게 잠수를 탔다 이거군····.” 명주호는 입맛이 썼다. 만나기만 하면 자기 혼자서도 다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을 안이고 뭐고 간에 거하게 날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잠수를 타 버리면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언제 있을지 모를 비정기 퀘스트를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그 퀘스트의 타입에 따라서는 그때도 손을 못 댈 수 있는데.’ 명주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일단 포탈에 멤버들 배치하고 혹시 모를 연락을 기다려라. 놈들의 얼굴은 모두 알겠지?” “예. 중요 리스트라서 이미 얼굴 사진은 다 확보해 둔 후입니다. 수배지를 만들어서 그라운드 제로 전체에 뿌렸습니다.” “잘 했다. 현상금을 두둑하게 걸어서 모든 이들의 이목을 다 집중 시켜.” “알겠습니다.” 명주호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중얼 거렸다. “67층 클리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동안 여기 있어야 겠군.” 부하들의 뒤치닥거리 때문에 한동안 여기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는 명주호였다. 그때부터 라이온 길드는 초가삼간 다 태워서라도 이놈들을 꼭 잡고 말겠다는 듯한 집념으로 그라운드 제로 전체를 뒤지고 또 뒤졌다. 하지만 뉴 웨이브의 길드원들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명주호는 열흘이 다 되도록 놈들이 나타나지 놈들이 어딘가 필드의 숨겨진 던전을 클리어하고 거기에 자신들의 아지트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정말로 찾기 힘들겠는데? 놈들이 어디 숨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냥 시간만 보내서는 영 찾기 힘들겠어.’ 명주호가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수색하는 자들이 서서히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명주호를 한층 더 빡치게 하는 비보가 날아왔다. 쾅!!! “수색대원들이 죽어!!?” 책상을 주먹으로 거칠게 내려치면서 소리치는 명주호를 보면서 간부가 말했다. “예. ·····놈들이 일행을 덮치고 한 명만 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 한명은?” “엉망진창으로 당해서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 “뭐라고 했나? 그래도 전해라.” “·····길드장님을 직접 지명했습니다. 50층의 필드에서 기다리겠다고·····.” 뿌드득·····.“ 명주호를 이를 갈았다. 십왕의 서열 6위이자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 그런 그의 위치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거의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데 자신의 부하들을 죽이고 직접 지명해서 도발까지 해? “좋다. 어디 한 번 놀아주지. 놈들이 어디로 오라고 하던가?” “길드장님. 함정일지····.” 콰아앙!!! 말을 하던 간부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말을 하던 그의 앞에서 명주호가 한손에 도를 꺼내서 그대로 휘둘러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카락을 살짝 스치고 위로 지나간 참격은 그대로 길드의 저택 건물을 반파 시켜 버렸다. “말을····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가려서 해라.” “···············.” “함정? 어떤 함정을 꾸미면 날 상대 할 수 있다는 말이냐?” “··········.” 간부는 꿀꺽 침만 삼킬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상대는 십왕의 서열 6위. 명주호···. 레벨 80이하의 상위급 유저 따위가 몇 백 명이 덤빈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진짜 괴물인 것이다. “함정 이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좋다. 얼마든지 받아주지.” 여우가 함정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늑대 정도까지다. 호랑이를 상대로 함정 따위는 무의미 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는 명주호였다. ============================ 작품 후기 ============================ 스킵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쓰려고 했지만 결국 한 번 더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지루하게 질질 분량만 끄는것 보다는 그래도 1년 정도 스킵해 버리는 편이 좋을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81화 50층의 필드에서 뉴 웨이브와 라이온 길드가 정면충돌하기로 했다. 라는 소식은 그라운드 제로에 순식간에 퍼졌다. “십왕이 직접 나왔다고 하던가?” “그래. 이제 뉴 웨이브 끝장 난 거지 뭐.” “애당초 삼대 길드에 정면으로 시비를 건게 미친 짓이었던 거야.” “바보 같은 놈들···.” 그라운드 제로의 마을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그 사건을 두고 얘기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소문은 라이온 길드에서 알아서 퍼트린 것이다. 자신들을 향해서 도전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대중들에게 어필하려는 것이다. 자신들의 강력함과 거기에 맞선 자들의 말로를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인가는 타인의 불행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느낄 수 있는 생물이라고 말이다. 그날 50층의 필드에는 누구보다 많은 유저들이 들어왔다. 10왕의 일인인 명주호가 이끄는 라이온 길드와 신흥 강자인 뉴 웨이브의 일전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갤러리로 구경을 온 것이다. 뭐, 사실 명주호가 나온 이상 제대로 된 대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일방적인 학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뉴 웨이브가 나타날 리가 없다고 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미리 약속한 장소에 라이온 길드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런 확신은 더욱더 강해졌다. “쯧쯧··. 여기서 바람 맞으면 십왕 체면이 바닥에 덜어지겠는데?” “이봐··. 듣는다고.” “····음, 뭐 그냥 그렇다고···.” 실제로 약속 시간에서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뉴 웨이브 때문에 라이온 길드의 길드원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함정이라면 힘으로 돌파하면 된다. 하지만 그냥 나타나지 않고 바람 맞혀 버린다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져 버린다. 슬슬 짜증이 극에 달할 무렵···. “왔다!!” 누군가의 말대로 한쪽에서 100명이 약간 넘는 무리의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오··. 왔다. 왔어.” “용감하기도 하지.” “저건 용감한게 아니라 무모한 것 아닌가?” 사람들은 용케도 등장한 뉴 웨이브를 보면서 수근 거렸다. 하지만 갤러리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뉴 웨이브는 당당하게 앞으로 라이온 길드의 앞으로 와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도열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내가 뉴 웨이브의 길드장인 김신수다. 라이온 길드의 명주호는 앞으로 나와라.” 김신수의 그런 태도를 보면서 라이온 길드의 간부들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간이 부었군.” “인간이 죽으려고 하면 뭘 못하겠냐만····.” “미친놈···. 길드장님 제가 가서···.” 간부들이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어느새 명주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저쪽에서 대장이 왔으면 이쪽도 대장이 가는게 맞는 거지.” “하지만 길드장님.” “아니면 내가 너희들 뒤에서 무게만 잡는 장식이냐?” “아···아닙니다.” “다녀 오십시오.” 부하들을 간단하게 침묵시킨 후에 명주호는 앞으로 나섰다. 도대체 이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일을 하는 놈이 어떻게 생긴 건지 쌍판이나 한 번 보고 싶었다. 길드원들을 사이에 두고 중간에서 만난 둘의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돌았다. “네가 김신수냐?” “그렇다. 그러는 당신이 명주호?” “그렇다. ·········하나만 물어보지.” “얼마든지.” 김신수의 태연한 얼굴을 보면서 명주호는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죽고 싶은게 소원이라면 그냥 얌전히 칼 깨물고 엎어 지는게 편했을 텐데?” 명주호의 말에 김신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죽을 생각은 없어. 다만···. 이제 앞으로를 위해서 지금쯤에 십왕 한 마리 정도는 잡아 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김신수의 말에 명주호는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대답은 정해졌군. 넌 미친놈이었어. 논리 따위는 필요 없는 거였어.” 명주호의 결론에 김신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좀 너무하는데? 상처 받잖아?” “·······잔말말고 시작하지. 일대일로 할 생각은 어차피 없다. 모두 와라. 상대해주지.” 느물느물한 김신수의 말에 명주호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한 자루의 중국식 도와 서양식 검을 꺼낸 그것이 명주호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그의 클래스 이름은 무신(武神)양손에 검과 도를 쓰면서 싸우는 그의 능력은 근거리 전위 전투 중에서는 탑 클래스였다. 그런 명주호를 보면서 김신수 역시 자신의 무기인 검과 방패를 꺼내서 장비했다. “내 부하들이 나설 것 까지는 없지. 한 번 일대일로 놀아볼까?” “····건방진···.” 콰아앙!!! 명주호의 날카로운 일격과 함께 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콰쾅!!! 콰앙!!! 둘이 격돌하자마자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은 명주호였다. 그의 강맹항 공격이 김신수는 쩔쩔매면서 방어일변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의 도에서는 화염이 그리고 검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무기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거친 화염의 폭발 이후에는 차가운 냉기를 머금은 검날의 찌르기가 김신수를 일방적으로 유린했다. 카앙!!! “크윽···.” 대략 10합 쯤 되었을 까? 김신수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카이트 실드가 박살이 났다. 더 이상 무기의 내구도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것이다. “흡!!!” 그런 김신수에게 명주호의 날카롭고 거친 도격이 날아들었다. 콰앙!!! 김신수는 간신히 검으로 막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미터는 멀리 날아가서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버렸다. “크윽···. 퉷···. 스타일 왕창 구기는 군.” 김신수는 잎에 들어온 흙을 뱉어내면서 중얼 거렸다. 이미 그의 갑옷도 내구력이 다해서 부서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김신수에게 명주호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말했다. “고작 그 실력으로 나하고 싸우자고 한 거냐? 한심한 놈···.” “뭐 어때? 젊은게 도전 아니겠어? 늙다리 영감탱이는 이런 심정 모르겠지?” 김신수의 말에 명주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말 하나는 십왕급이군. 어쨌든 더 이상 너 따위하고 놀아줄 생각은 없어졌다.” 태극음양신공(太極陰痒神功) 명주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유니크 스킬이고 이것을 명주호는 완벽하게 마스터 했다. 그의 양손에 들려있는 도와 검에서 냉기와 화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손을 넓게 피고는 말했다. “네놈의 객기에 대한 나의 보답이다. 잘 가라. 음양회천격(陰痒回天激).” 명주호가 한 바퀴 빙글 돌면서 참격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공기가 모두 빨려 들어가면서 거대한 토네이도가 생겼다. 미국에 가끔씩 출몰해서 집이건 뭐건 다 부셔버린다는 토네이도. 그것과 똑같은 것이 단 한명의 일개 인간에게 의해서 펼쳐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십왕이라는 것들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칫!! 알아서들 피해라!!!!” 김신수는 뒤편에 있는 자기 부하들에게 크게 소리친 후에 토네이도 안으로 뛰어 들었다. 칼날과 같은 바람이 그의 전신을 갈아갔지만 그래도 그는 토네이도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검을 크게 휘둘렀다. “템페스트 소드!!!” 그리고 그의 검에서 거친 난격이 쏟아져서는 토네이오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콰아앙!!! 그리고 그 격돌의 결과는 나왔다. 토네이도가 서서히 걷히고 드러난 결과는····. “흥, 내 그럴 줄 알았지.” 시체가 되어서 쓰러진 김신수와 간신히 사라진 토네이도의 흔적이었다. 그것을 보고는 명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에 내심 뭔가가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몇 번 검을 나눠보고 나서 이 놈이 그냥 객기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정말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나름 무게가 있는 일격을 날렸다. 그러자 그것 하나를 간신히 막아내고 그 대가로 죽어 버린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짜로 오지 말고 최상층에서 내 할 일이나 하고 있을 걸?’ 결국 김신수는 피라미일 뿐이었다. 슬쩍 남은 뉴 웨이브의 멤버들을 보던 명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것들 까지 내가 상대할 필요는 없겠지.’ 이제 남은 것은 간부들에게 맡기면 충분할 것이다. 그는 뒤를 돌아서 간부들에게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너희들이······.” 푸욱!!! 명주호는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어느새 뒤에서 날카로운 일격이 날아와서 그의 복부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길··· 길드장님!!!” “길드장님!!!” 라이온 길드의 간부들이 혼비백산해서 외쳤다. 그리고 명주호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과연 대단하군···. 심장을 노렸는데 그 와중에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어.” “···네··· 네놈····. 김신수?” “그래. 안녕, 또 만났지?” 방금전에 죽은 줄 알았던 김신수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서 어느새 그의 뒤편에서 일격을 찔러 넣은 것이다. “이제 죽어랏!!” “칫!!!” 콰아아앙!!! 김신수에게 두 번째의 공격이 오기 전에 명주호는 그대로 도를 휘둘러서 김신수에게 일격을 날렸다. 김신수는 그 일격을 방패로 여유 있게 막아냈지만 폭발의 충격으로 시야가 가려진 사이에 명주호는 살짝 뒤로 불러 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관통당한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대서 자신의 회복 스킬을 시전했다. “연기공.” 그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나면서 동시에 명주호의 몸에서 나오던 출혈이 멎었다. “호오··. 그게 기공술에 있는 회복술인 연기공이지? 과연 십왕. 기공술 익힌 인간은 많지만 연기공 까지 쓸 수 있는 인간은 흔하지 않지.” “··········어···.” “어떻게 된 거냐고?” “·············.” “풋···· 크큭··· 크하하하하하····.” 김신수는 인상을 와락 구기고 있는 명주호를 보면서 박장대소했다. 마치 저 얼굴을 엄청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배꼽 잡고 웃어재끼고 있었다. 명주호의 입장에서는 그런 김신수가 엄청나게 짜증날 뿐이었다. “크큭···. 아··. 우스워···. 알았어, 설명해줄게.” “··············.” “내 유니크 스킬 중에 하나지. 도플갱어. 라고 하는 거야.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서 부리는 기술이지. 네가 싸운건 내 분신이야.” 김신수의 설명을 들은 명주호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망할.” “음, 좋은 감상이야. 당신 진짜로 망하기 직전이거든.” “아직 너 하나 상대할 여력은 있다.” 명주호는 일단 연기공으로 어느 정도 응급처치를 한 후에 분연히 일어나면서 말했다. ============================ 작품 후기 ============================ 김신수와 명주호의 대결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82화 <난입> 분명 명주호의 말 대로였다. 갑작스런 기습에 약간 대미지를 입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김신수 하나, 아니 둘이건 셋이건 심지어 열이건 충분히 상대할 자신은 있었다. 애당초 레벨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여차하면 뉴 웨이브를 통째로 상대 할 수 있는 자신도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김신수는 박수를 짝짝 치면서 말했다. “참 좋은 태도야. 암, 그렇게 용감해야지. 안 그러면 부하들 앞에서 쪽 팔리잖아?” “그 방종 맞은 주둥아리. 언제까지 놀릴 수 있는지 한 번 보겠다.” “음, 됐어. 이제 입은 그만 놀리고 검을 놀리려고, 그런데 말이야···.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자신의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말하는 김신수를 보고 명주호가 짜증을 내면서 외쳤다. “뭐가 말이냐!!!?” “아까 당신의 일격 말이야. 이전에는 한 대 한 대 맞을 때 마다 그대로 휘청휘청 거렸던 내가 이번에는 여유있게 막아냈지? 왜 그럴까?” “·············?” “애당초 당신이 내 기습에 그만한 대미지를 입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머리끝까지 혈압이 솟구쳐서일까?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생각에 명주호는 침묵했다. 그런 명주호에게 김신수가 말했다. “내가 정말로 확연한 레벨 차이를 무릅쓰고 덤비는 무모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나?” “·············.” 명주호는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모든 사태가 놈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명주호에게 김신수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말했다. “내 도플갱어는 무척 유용한 기술이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게 뭔지 알고 있나?” “·············.” 물론 명주호는 알 리가 없었다. 애당초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이 아닌가? 그저 찝찝한 불안감만이 더욱더 가중되어 갈 뿐이었다. 그리고 김신수는 그 불안감의 정체를 밝혔다. “바로 시전자의 역량의 50%밖에 복사하지 못한다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네 놈·····!!!” 명주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좀 전에 그가 김신수를 상대하면서 느낀 역량이 반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아까 네가 상대하던 도플갱어의 레벨은 74, 즉 본체인 나의 레벨은 148이라는 말이다.” “············.”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그렇게 말하면서 김신수의 진.짜.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쾅!! 쾅!!! “크윽·····.” 다시 시작된 결투. 하지만 공수의 역할이 완벽하게 바뀌어 버렸다. 이번에는 김신수가 명주호를 미친 듯이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슈팅스타!!” 콰앙!! “망할·····.” 명주호는 묵직하게 자신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공격을 막았지만 그 여파로 지면에 발이 무릎까지 밖혀 버렸다. ‘이 놈 진짜다···.’ 명주호도 십왕이라고 불릴 정도의 베테랑이다. 그러니 몇 번의 공방으로 깨달았다. 놈은 결코 자신보다 약하지 않다. 정말로 148의 레벨에 걸 맞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명주호의 레벨은 125. 거기다 초반에 기습으로 입은 대미지로 인해서 평소의 80%정도로 전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 상태로 김신수를 이기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망할····. 이런 위기는 오랜 만인걸?’ 명주호는 거의 십수년 만에 자신의 목숨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의 공격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점점 밀리고 있는 명주호를 보면서 라이온 길드의 길드원들은 초조했다. “빌어먹을···. 이거 어떻게 하지?” “···우리라도 한 팔 거들지 않으면···.” “하지만 그랬다가는 길드장님이 나중에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실지···.” “나중의 추궁이 중요한게 아니야. 길드장님이 없으면 이미 라이온 길드는 끝장이다.” 간부들은 망설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명주호의 성격상 난입을 한다면 나중에 용서를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이대로 명주호가 죽게 내버려 둔다면 어차피 라이온 길드는 패망이었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너희는 여기서 죽어야지. 벌레들아.” 그들이 막 개입을 하려고 결심하고 있을 때. 그들의 눈앞에 한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그 여인은 이 와중에도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빨아들일 정도로 요염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성숙한 매력에 전신이 비치는 것 같은 시스루 소재의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얼굴의 오른쪽 눈 밑에 나 있는 작은 눈물 점 덕분에 그녀의 흰 피부가 더 두드러졌는데 그게 요염한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었다. 라이온 길드의 간부중에 한명이 뒤 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넌··. 누구냐?” “바보 같은 소리 하는군. 이 와중에 그게 중요해?” “으윽····.” “뭐, 저승길 선물로 대답은 해 줄까? 내 이름은 최수영. 직업은 네크로맨서, 레벨은 102 뉴 웨이브의 NO.2다.” “······뭐?” “102라고?” “말도 안 돼···.” 그라운드 제로에 100레벨 대는 십왕 뿐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100레벨대의 유저가 둘이나 나타나다니··. 이래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 이제 궁금증도 다 해결 되었으면 모두 죽으렴. 일어나라 내 군단들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손에 들린 검은색 흑옥의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지면에서 언데드 몹들이 닥치는 대로 일어나서 라이온 길드의 길드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큭!! 싸워라!! 이렇게 된 이상 난전이다!!!” “모두 해치워라!!!” 언데들의 공격에 라이온 길드의 길드원들은 공격을 시작했고, 거기에 이제까지 여유있게 구경만 하고 있던 뉴 웨이브의 다른 길드원들도 전투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길드장 끼리의 일대일 대결은 어느새 길드 대 길드의 난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퍼엉!! “크윽·····.” 자신의 몸통에 부딪힌 묵직한 숄더 어택에 명주호는 입에서 핏물이 울컥 올라왔다. 약세를 보이기 싫어서 쇠 맛이 나는 핏물을 그대로 삼켰지만 그래도 전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흐음···. 다 죽어가는 와중에 제법 애 먹이는 걸?” 김신수는 천천히 검을 어깨에 걸치고 명주호를 향해서 다가왔다. 그 역시 전신에 상당한 대미지를 입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명주호는 거의 걸레짝이 다 되어있었다. 천하의 십왕이 이런 꼴을 겪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제길·····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응? 내 정체? 말했잖아. 뉴 웨이브의 길드장이고 레벨 148의 유저. 그리고 네 목숨을 가져갈 인물이기도 하지.” “웃기지 마라!!! 레벨이 100을 넘길 정도로 단련했다면 우리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어!!!!” 명주호는 발악하듯이 외쳤다. 사실 명주호의 말이 맞았다. 레벨이 상위로 올라가려면 윗 층에서 꾸준한 사냥을 해야 했다. 148레벨의 유저가 되도록 십왕에게 노 마크로 성장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이 녀석···. 뭔가 숨기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뭔가를 숨기고 있어.’ 명주호는 쉴세 없이 머리를 굴리면서 김신수를 바라봤다. 그런 명주호를 보면서 김신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대강 보이는군. 하지만 말이야····.” 그는 검을 높게 들어 올리면서 명주호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죽을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안 그래?” 그렇게 말하는 김신수의 검에는 검은색의 기공이 스멀스멀 맺혔다. ‘저건···. 위험하다.’ 명주호는 본능적으로 저 공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저걸 피하거나 막을 정도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잘 가라.” “큭···.” 자신의 인생의 최후를 예감하는 명주호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서 떨어지는 검은색 검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난 후에 드러난 현장에는··. 놀랍게도 김신수와 명주호 뿐만이 아니라 또 한명의 인간이 있었다. “····넌?” “오랜만이지. 왕재수.” 전신에 번개를 은은하게 두르고 있는 남자. 거기에는 정운이 자신의 검으로 김신수의 검을 쳐낸 상태로 있었다. 어째서 정운이 여기에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대결에 끼어든 것일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지난 일 년간의 정운의 행적을 잠깐 돌아봐야 한다. 지난 일 년···. 정운은 꾸준한 레벨업만 하고 있었다. 65층의 몹은 힘겨웠지만 주는 경험치의 수준이 달랐다. 애당초 정했던 목표는 진작에 달성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가속하듯이 늘어나는 성과에 정운은 막대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정운은 최근에 마을에 퍼지고 있는 뉴 웨이브와 라이온 길드의 전쟁 얘기를 듣고 잠시 사냥을 멈췄다. 사실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자신들의 일에만 주력하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정운은 어쩐지 김신수라는 놈이 마음에 걸렸다. 예전에 봤을 때부터 어쩐지 놈이 거슬렸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 했고, 정신도 어느 정도 나간듯···. 아니 정신은 확실하게 나간 미친놈으로 보였다. 그건 확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친놈이라도 막 미친놈이 아니라 교활하게 미친놈이었다. 일종의 싸이코 패스처럼 말이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승산 없이 부하들과 함께 대규모 자살행위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정운은 어쩐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해서 내일은 두 길드의 전쟁터에 간다고 하고는 참관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명주호가 김신수를 철저하게 몰아 붙일 때만 해도 자신의 노파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되고 점점 이상한 일이 지속되자 정운으로서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정운 뿐만 아니라 주변에 구경하고 있던 갤러리들도 마찬가지로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어···, 이러면 누구를 응원해야 하지?” “응원은 무슨···. 차라리 돕거나 아니면 그냥 방관하고 있어야지.” “그건 그렇지만····. 아니 그런데 돕기는 좀 그렇지 않나?” “그렇게 말이야. 고래 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도 아니고····.” 정운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갤러리들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한심한 것들····.’ 정운으로서는 느낌이 팍 왔다. 이것을 방관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왜 안된다고 생각한 걸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저 김신수라는 놈에게 받은 첫 인상에서의 거부감이 가장 컸다. 놈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 그냥 미친놈 취급하고 내버려 두기에는 찝찝한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마치 독일의 미친 화가 한놈이 세계에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학살을 몰고 왔던 것처럼 저 놈도 그냥 내버려 두면 얼토당토 않을 사고를 칠 가능성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막연한 감이 아니라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놈은 기본적으로 너무 수상하고 숨기는 것도 잔뜩 있었다. 기본적으로 놈의 길드만 해도 그렇다. 마을에 거점도 없고 언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수상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그라운드 제로 최고의 길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명주호보다 더 상위의 십왕이 나서서 뭔가를 정리하기 전에는 일반 유저들이 마음 놓고 사냥에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거기다··. 김신수에 대한 악감정을 배제하고라도 명주호는 여기서 죽으면 곤란하다. 정운이 이 게임의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십왕 정도 되는 인재를 저렇게 허무하게 잃어서는 안 된다. 정운은 가능하면 튀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세레나, 슬기야.” “예. 마스터.” “왜요? 정운씨.” “둘이서 라이온 길드원들을 좀 도와줘. 무리는 하지 않아도 돼.” “알았어요. 그럼 정운씨는···.” “난 저 미친놈한테 약 좀 주고 올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뇌천신공(雷天神功).” 그렇게 말한 순간 정운의 몸은 하나의 번개가 되어서 내달렸다. 그리고 바로 명주호의 위기 상황에 딱 맞게 뛰어든 것이다. ============================ 작품 후기 ============================ 스킵 이후로 처음으로 주인공 등장입니다. 일단 난입부터 하고 봐야죠. 그리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김신수의 레벨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분은 한 분도 없더군요. 하긴 게임 소설에서는 워낙 등잔밑 같은 설정이었으니까요. 전 한번도 김신수가 저레벨이라고 확실하게 말한 적 없습니다.^^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83화 정운을 발견한 김신수의 얼굴에는 미소가 씨익 맺혔다. “호오···. 이게 누구야? 한때 인생 일대의 기회를 차 버렸던 남자 아니야?” 김신수는 정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자신이 직접 스카우트 하려고 했으니 당연했다. 정운이 워낙에 싫어해서 딱 잘라 거절당했으니 기억에 더 진하게 남는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정운은 놈을 흘깃 보고는 말했다. “네 놈 부하들 데리고 꺼지던가? 아니면 여기서 죽던가? 둘 중에 뭐가 마음에 들지?” 정운의 말에 김신수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호오··. 고작 레벨 80 언저리 주제에 뭘 믿고 그렇게 까불지?” 놈의 말에 정운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말했다. “레벨 80? 네놈은 진보라는 단어도 모르는 모양이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전신에 스파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 정운에게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고 김신수는 안색이 굳게 변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 상태로 있는 힘껏 힘을 끌어 올렸다. “아아아앗!!!!!” 콰르르르릉!!!! 그리고 그런 정운을 중심으로 마치 뇌신이라도 강림 한 것 같은 거대한 벼락이 방전했다. “큭···.” 그 뇌전의 여파로 살짝 물러나야 했던 김신수는 안색이 변했다. “고작 1년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네놈 지금 레벨이 몇이냐?” “내 레벨? 생각보다 안 높아. 102 정도?” “··············.” 정운의 말에 김신수는 안색을 완전히 딱딱하게 굳혔다. 그런 김신수의 얼굴을 보고 정운이 말했다. “네놈하고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드는 쌍판을 하는 군.” “············?”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김신수에게 정운이 씨익 미소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X 됐다.’ 라는 얼굴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벼락처럼 달려 들었다. 콰콰쾅!!! 마치 벼락의 폭풍처럼 달려드는 정운은 김신수를 완벽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놈···. 이놈 정말 강하다. 그냥 평범한 102레벨이 아니야.’ 김신수는 바짝 긴장했다. 지금 정운이 쓰고 있는 기술은 과거에 쓰던 뇌신이라는 스킬하고는 달랐다. 지금 쓰고 있는 스킬의 이름은 뇌천신공. 정운이 기공술과 뇌신을 스킬합성북으로 하나로 묶어서 만든 새로운 유니크 스킬이었다. 뇌천신공 : LV.3 (기공술에 뇌신을 더한 기술. 인간의 구조 자체를 뇌전으로 바꿔 버린다. 모든 공격력을 3,000퍼센트 증가 시킨다. 뇌전의 대미지를 추가로 가한다. 체감속도가 300% 올라간다. 전신에 급소가 없어진다.) 이 기술을 만들 때 정운은 많이 망설였다. 잘못하면 이제까지 주력으로 사용하던 두 개의 스킬이 망가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강해지고자 하는 욕심으로 인해서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스킬합성북을 사용했고···. 그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뇌천신공은 막강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고, 거기다 온몸을 뇌전으로 바꿔서 급소의 개념도 사라져 버렸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아무리 체력이 많이 남아있다고 해도 급소 한방에 훅 가는 급소 시스템이 있었다. 하지만 이 뇌천신공을 쓰면 전신이 뇌전의 화신으로 변해 버리기에 그런 급소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체감속도가 300% 증가한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메리트였다. 그냥 속도가 증가 하는 것 하고는 다르다. 인지하고 있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주변의 속도가 갑자기 3분의1로 뚝 떨어지는 것 같은 그 느낌···. 자신이 빨라진게 아니라 주변이 느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훨씬 더 안정적으로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것은 기존에 뇌신이 가지고 있던 약점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원래 뇌신은 메인 스킬로 막 남발하기는 좀 무리가 있었다. 지속 시간에 비례해서 30%의 대미지를 주고 있었기에 장시간 사용하면 체력이 바닥을 보는 수가 있었다. 하지만 뇌천신공은 그런 디 메리트가 없었다. 그러니 얼마든지 사용 하는게 가능해 진 것이다. 그것 하나만 해도 정말 큰 메리트였다. 막강한 공격력. 거기에 급소의 완벽한 커버. 체감 속도의 세배의 효과. 레벨은 102였지만 지금 정운의 힘은 148레벨의 김신수를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꺼져버렷!!!” 콰앙!!! 정운은 빈틈을 노려서 발차기를 김신수의 복부에 밖아 넣었고 김신수는 그대로 위에서 저 멀리 날아가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빌어먹을···. 오늘 하루에만 두 번이나····.” 놈은 입에서 흙을 퉤 뱉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싸워보니 알았다. 지금 박정운의 힘은 자신하고 비등할 정도였다. 레벨은 자신이 더 높았지만 저쪽은 아무래도 유니크 스킬과 경험이 월등한 것 같았다. 사실 둘의 레벨 차이는 상당했지만 그 차이가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면 김신수도 처음에 명주호에게 기습 같은 꼼수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길. 이 놈은 나처럼 편법으로 올린게 아니라 착실하게 경험을 쌓은 놈이야···. 거기다 난 명주호하고 싸우느라고 소모한 것도 있고 말이야.’ 김신수는 머릿속으로 탁탁 계산기를 두드려서 승산을 계산했다. 그리고는····. “전원 후퇴!!! 후퇴하라!!!” 결국 김신수는 후퇴를 결정했다. 아직 숨겨둔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정하고 싸운다면 승률도 낮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정운도 그렇고, 구석에서 부지런히 회복을 하고 있는 명주호도 마음에 걸렸다. 라이온 길드와 싸우고 있는 부하들도 어쩐지 힘을 못 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것은 네크로맨서의 천적인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세레나 때문이었지만 그것 까지는 김신수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김신수라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99% 이기는 싸움만 하는 주의였다. 결벽증에 가까운 안전제일 주의라고 해야 할까? 그런 남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후퇴를 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후퇴하는 김신수를 보고 정운은 피식 웃었다. “누가 보내는 준다고 하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 위로 검을 높게 들어올리면서 조용히 뇌까렸다. “천뢰지망 (天雷蜘網).” 쿠르릉!! 그러자 정운을 중심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깔렸다. 그리고는 정운을 중심으로 사방에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콰쾅!! 쾅!! 콰르릉!!! 천뢰지망 : LV.3 (사방 300미터에 걸쳐서 지상에 번개가 내려쳐진다.) 최근 정운이 한꺼번에 다수의 몹을 정리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정운을 300미터 안에 있는 적으로 인식한 자들에게 어마어마한 대미지를 주는 스킬이다. “칫···. 빌어먹을····.” 김신수는 후퇴하는 와중에 자기한테 떨어지는 벼락의 그물망을 피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임이 흐트러진 사이에 정운의 다음 공격이 놈에게 날아왔다. “천뢰시 (天雷矢)!!!” 관통사가 진화해서 생겨난 기술인 천뢰시는 화살의 위력을 500%를 올려주고 추가로 뇌전의 대미지를 입힌다. 무엇보다 화살의 속도가 정말로 벼락과 같아서 절대로 피할 수가 없었다. 퍼엉!!! “크아악!!!” 정운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서 김신수의 허벅다리를 관통했다. “빗나갔나? 하지만 충분하지···.” 정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김신수에게 달려갔다. 직접 근접해서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김신수는 처음으로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힘의 소모가 좀 있었다고 해도 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웠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등을 돌리고 도망가다가 이런 대미지를 입고 나니 이제는 싸울 도리도 없었다. ‘이··· 이렇게 죽는 건가? 이 내가···?’ 순간 김신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는 느꼈다. 정운이 흑토를 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처럼 달려왔다. 그런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극도로 공포에 질려 있었ㅆ다. 그때···. “아크 본 월!!!” 정운과 김신수의 사이에 딱딱한 뼈의 장벽이 생겨났다. 콰아앙!!! 그리고 그 장벽이 정운과 부딪혀서 박살난 후. 정운은 김신수를 찾으려 했지만 어느새 놈의 흔적은 없어진 후였다. “··망할, 마지막에 방해가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정운은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놓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미친놈 놓치면 또 뭔가 이상한 짓 꾸밀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다음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정운은 그렇게 입맛을 다시면서 다음 기회를 노렸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면서 이동하고 있는 김신수에게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 대상은 좀 전까지 라이온 길드의 길드원들을 학살하고 있던 최수영이라는 여자였다. “수영이 너였나?” “죄송합니다. 제가 명령도 없이 주제넘게 제가 나섰습니다.” 고위 네크로맨서인 그녀가 중간에 나서서 김신수를 구했던 것이다. 독단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김신수는 죽었을 것이다. “·····후우, 고작 1년 사이에 그 정도로 성장할 줄은··. 역시 그때 끌어들였어야 했는데 말이야.” “주인님····. 말씀 드리기 송구하지만, 정말로 박정운을 원하셨다면 ‘그 방법’을 쓰시는 편이····.” “그건 말하지 마라. 다시는.” 정운의 단호한 말에 최수영은 고개를 정중히 숙이면서 복종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럼 놈을····.” “아니 그것도 그만 둬, 레벨은 비슷해도 놈은 유니크 스킬을 다수 보유했어. 아마 너 보다 강할 거다.” “············.” 김신수의 말에 최수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김신수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김신수가 하지 말라고 명령했으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일단 오늘은 물러가자. 예상했던 대로 라이온 길드를 박살내지는 못한게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지.‘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네 탓은 아니다. 그리고···. 아직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정도일 뿐이야. 일어나서 다시 걸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우리는 우리대로 이 게임을 클리어하면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두 남녀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서 몸을 숨겼다. 김신수. 그의 진짜 목적을 이 당시에는 아직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라운드 제로를 크게 뒤 흔든 두 길드의 전쟁은 끝났다. 라이온 길드와 뉴 웨이브의 전쟁 후.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때의 일을 가지고 떠들었다. 쟁점은 주로 세 가지였다. 하나는 가장 큰 화제인 십왕 명주호의 패배. 이제까지 십왕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그것은 충격적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뉴 웨이브의 길드장인 김신수의 강력함. 십왕을 잡아낸 새로운 강자. 놈이 어디서 어떻게 그런 힘을 손에 넣었는지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 중에 정답은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놈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이슈는 그 신흥강자 김신수를 물리친 새로운 신성 박정운. 기습이 어쨌니 저쟀니 하면서 라이온 길드가 수습을 좀 하고는 있었지만 명주호는 체면을 구겼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런 명주호를 잡아낸 김신수는 명성을 높였다. 그리고, 어부지리? 혹은 궁극의 줏어 먹기? 중간에 끼어 들어서 사태를 반전 시켰던 정운은 가장 큰 명성을 손에 넣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과적으로만 봤을때는 가장 마지막에 남은 승자가 아닌가? 이렇게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부지런히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화재의 중심인 인물들은 그 시간에 한 장소에 모여 있었다. 정운의 저택 안. 거기에 십왕의 일인이기도 한 명주호가 직접 방문했다. 그는 방문하자마자 우선 정운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일전에는 길드원들을 수습 하느라 말 못했지만···.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먼저 하겠소.” 그야말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명주호를 보면서 정운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말을 하오체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보다 훨씬 연상일 텐데.” “그럼 그렇게 하지. 사실 나도 처음이라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 뿐이네.” 명주호는 냉큼 하대를 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의 시간까지 합하면 정운 정도 되는 증손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존댓말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크흠···. 어쨌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일전에는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황천길에 있었겠지.” “그 미친놈이 하는 일에 훼방을 놓은 것 뿐입니다. 너무 감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 내 생명의 은인인데 말이야. 이건 별것 아니지만 선물일세.” 그는 정운에게 한 가지 아이템을 선물로 내밀었다. “이건···?” “내가 쓰지 않는 유니크 아이템일세. 자네 동료 중에 마법사가 있지? 척 보니 각별한 사이 같더군 그녀에게 주게.” ============================ 작품 후기 ============================ 유니크 아이템은 십왕들에게도 귀중한 것입니다. 아무리 캐릭터 직업군이 달라서 못쓴다고 해도 말이죠. 그래도 목숨값 보다는 아니긴 하죠. 숨겨진 설정에 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해명하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한꺼번에 공개하면 그냥 설정집이지 소설이 아닙니다. 그런 설정은 조금씩 조금씩 공개 되는게 정석이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뭐, 여러분들 말대로 김신수가 어디서 남 몰래 살짝살짝 레벨을 올렸다거나 하는 식으로 우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자만고양이라는 분이 거기에 관해서 거의 정확한 댓글을 다셨더군요. 제가 급하게 쪽지 보내고 지웠습니다. 그분 말고도 이따금씩 정확하게 스포일러 예측에 성공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의 경우에는 제가 쪽지를 돌리고 댓글을 삭제합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서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은 가장 중요한 설정을 꿰뚫어 보신 자만고양이 님은 정말 놀랐습니다. 절대 아무도 못 맞출것 같았는데. 흰트도 거의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놀라서 급하게 삭제했습니다. 부디 그 댓글을 본 사람이 적기를 바랄 뿐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84화 정운은 잠시 망설였지만 고맙게 받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체면을 생각하면 받지 않고 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유니크 아이템이라는 말을 듣고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레벨이 102에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템은 그림자의 망토이다. 그만큼 유니크 아이템은 각별한 것이었다. ‘65층에서 아무리 사냥해도 못 찾던 거였는데···. 잘 됐네.’ 정운은 아이템은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일단 명주호와 대화를 계속했다. “김신수 그 놈은 예전에도 저에게 접근했었지만···. 사실 그렇게 강한 놈인지는 몰랐습니다. 이번에는 명주호 길드장님을 이길 정도라니··.” “사실 나도 그게 이상했어. 자네는 틀림없이 여성 두 명하고 같이 3인 팀으로 65층에서 사냥하고 있었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런 식으로 고레벨이 되기 위해서 사냥을 계속하면 어느 정도는 소문이 나기 마련이야. 뭐, 자네가 100레벨이 넘었다는 것은 나도 이번에야 알았지만 그래도 148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또 있습니다.” “뭐 말인가?” “길드장님하고 싸울 때 느낀 것이지만 놈의 스킬이나 전투 스타일···. 어딘지 모르게 약간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셨습니까?” “자네도 그렇게 봤나?” “예. 마치 레벨은 높은데 전체적인 경험은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놈은 뭔가 수를 쓰고 있는 것 같네. 속임수 같은 것 말이야.” “속임수? 어떤 속임수를 쓰면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알면 진작 나도 했을 걸?” “············.” 당연한 말이지만 명주호의 말을 지당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당분간은 조심 하고 놈이 다음 행동을 하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지···. 나도 길드원들에게 그렇게 일렀네. 그리고···. 자네에게 줄 선물을 두 가지 더 가지고 왔지.” 선물을 두 가지나 더 준비했다는 말에 정운은 난색을 표했다. 사실 그가 명주호를 도운 것은 김신수라는 미친놈을 방해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했다. 별로 순수하게 명주호를 돕기 위해서 한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도움을 받아서는 많이 곤란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에게 도움이 될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을 거야.”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한 가지 청동 패를 내밀었다. 꼭 암행어사 마패 같은 청동패에는 말 대신에 사자가 그려져 있었다. 정운은 그것을 쥐고는 명주호에게 물어봤다. “이건 뭡니까? 아이템 같지는 않은데?” 정운의 말에 명주호는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길드 부길드장이라는 증표지.” “부길드···. 명주호 길드장님. 저는 길드에 가입은 하지 않고 싶습니다.” 정운에게 이건 감사의 표시가 아니라 족쇄였다. 하지만 그런 정운의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명주호가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그냥 명예직 같은 거야. 물론 자네에게 권리는 있네. 길드원들을 동원 할 권리나 나 이외의 길드원들이 전원 복종해야 할 명령권도 있어. 하지만 길드를 이끌어야 할 의무는 없지. 그래도 싫은가?” “·············.” 정운은 명주호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생각했다그의 말대로라면 의무는 제하고 오로지 부길드장으로서의 권리만 주겠다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정운으로서는 당기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길드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무리 의무가 없다고 해도 일단 형식상으로라도 부길드장에 오르면 여러 가지로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정운은 곱게 패를 내려놓으면서 사양하려고 했지만 그때 명주호가 말을 이었다. “참고로 두 번째 선물은 내가 자네를 66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일세.” 정운은 순간 움찔했다. 그것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꼭 가지고 싶은 선물이었다. 65층의 보스몹인 가루라. 놈은 정말 짜증나는 놈이었다. 지난 1년간 정운은 65층에서 정말 미친 듯이 사냥에 사냥을 거듭했다. 65층의 몹들이 주는 경험치는 정운과 그 일행을 강하게 단련 시켰고 점점 강해진 일행은 사냥의 속도도 점점 탄력이 붙었다. 처음의 할당량의 두 배, 세 배···. 어느새 흑철오공이나 육미호 정도는 몰아서 한꺼번에 사냥을 하는 것도 가능해 졌다. 그렇게 광렙을 한 덕분에 현재 정운의 레벨은 102, 세레나의 레벨이 100, 슬기의 레벨은 85였다. 이렇게 광렙을 한 덕분에 정운은 자신의 레벨이 100이 넘었을 때부터 가루라를 상대로 레이드에 도전했다. 사실 바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죽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했던 것이다. 그것은 큰 오판이었다. 당시 정운의 팀은 처음으로 전멸의 위기에 처했었다. 가루라는 그냥 강력할 뿐만 아니라 음속 비행이 가능한 몹이었다. 만약 전투가 포탈에서 가까운 곳에서 진행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전멸했을 것이다. 삼대 길드의 간부들에게 레이드 의뢰를 해 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이미 가루라는 십왕들 밖에는 잡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결국 가루라의 레이드는 나중으로 점점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십왕중에 한 명이 도와준다고 하면 얘기는 틀려졌다. 십왕들 전원이 가루라의 레이드를 경험해 본 자들이 아닌가? 이들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어떤가? 내 선물 마음에 들지 않는가?” “···········.”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그를 보고는 정운은 입맛이 섰다. ‘사람이 나이를 헛먹는 법은 없다고 하더니···.’ 부길드장은 필요 없으니 그냥 레이드만 도와 다랄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쓰던 달던 다 참고 삼켜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의 정운처럼 말이다. “호의를 고맙게 받아 들이겠습니다.” “나야 말로 고맙군. 그리고 걱정하지 말게. 65층의 레이드 뿐만 아니라 66층의 레이드도 도와 주지.”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사실상 67층의 레이드에 인력이 좀 더 필요했거든 자네하고 저기 세레나라고 했던가? 그녀라면 큼 힘이 될 걸세.” 명주호의 말에 정운은 가슴이 두근 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슬기가 생각났다. “현재 슬기의 레벨은 80대의 메이지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음······. 사실 최상층에는 100레벨 이하는 안 들이는게 우리 십왕들 간의 암묵적인 룰 이었는데 말이야.” 곤란한 얼굴을 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명주호는 잠시 후에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냥 암묵적인 룰일 뿐이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지. 80레벨대면 자기 한 몸은 지킬 수 있겠지.” 그렇게 해서 명주호의 말대로 정운의 67 승격이 결정되었다. 뭐, 덕분에 라이온 길드 명예 부길드장이라는 간판도 짊어지게 되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그거 바라는 사람이 그라운드 제로에 얼마나 많은데····. 65층 레이드의 날. 사실··. 십왕이라는 후원자가 생긴 이상 67층까지 바로 올라가서 싸우는 것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67층에 올라갈 때마다 십왕들이 데려다 줄 수도 없고 자신이 올라갈 자격은 자기 자신이 직접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이왕 레이드를 하는 김에 65층과 66층의 레이드를 모두 하기로 했다. 레이드의 약속한 날에 포탈에 가니 명주호가 정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명주호 뿐만 아니라 다른 맴버들도 있었다. “여어···. 너 67층 올라온다며? 너무 빠른 것 아니야?” 십왕 서열 4위의 한중겸. “오랜만이다. 무뚝뚝하게 인사하는 십왕 서열 3위의 이민지. “동생 오랜만? 이제 나하고 레벨 거의 비슷하다며? 어쩜 내가 진작 찍어 놨는데 아까워라···.” 십왕 중에서 정운에게 가장 호의적인 메두사 길드의 길드장님 이보영까지··. 그녀는 오자마자 정운의 뒤에서 덥썩 안겨서 정운의 목을 팔로 감고는 대롱대롱 매달려서 말했다. “저기··. 이보영 길드장님?” “응? 왜? 동생? 뭐 문제 있어?” 슬기의 눈치를 보면서 곤란해 하는 정운이었지만 이보영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명. 정운이 얼굴을 모르는 남자가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상 아마도 십왕이겠지만 정운으로서는 초면이었다. 전신에 로브를 걸치고 손에는 나 마법사 맞음. 이라고 인증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지팡이를 쥐고 있는 남자. 정운은 이보영에게 그의 정체를 물었다. “저기···, 이 분은 누구시죠?” 정운이 조심스럽게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자 이보영이 말했다. “아!! 동생은 처음 보지? 이 사람은 십왕 중에서 서열 2위인 배대호 오라비. 엄청 쌔.” ‘십왕 서열 2위?’ 정운도 그 이름은 알고 있다. 틀림없이 그라운드 제로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존재라도 알려져 있는 남자였다. “배대호다.” 마법사라는 캐릭터 치고는 마치 해병대처럼 굵직한 인상의 그는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다. “아··, 박정운입니다. 이쪽은 제 팀원인 세레나와 이슬기입니다.” “세레나입니다.” “이슬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무뚝뚝하게 고개를 숙이는 세레나와 환하게 웃으면서 90도 깍듯 인사를 하는 슬기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 모이자 포탈을 타기 전에 한중겸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멤버도 모였고, 오랜만에 레이드나 뛰어 볼까? 먼저 가루라 잡고 66층의 아수라를 잡는 거야. 의의 있는 사람?” “별로···, 오전에 가루라 잡고 점심 먹은 다음에 아수라 잡으면 되겠네.” “오전에 두 타임 다 뛰면 안 돼요? 저 오후에 동생하고 약속 있는데?” “안 돼. 초보도 있는데 신중하게 해야지.” 십왕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정운은 입맛이 섰다. 자신도 이제를 레벨이 세 자리였다. 십왕중에 가장 말석인 주경택은 레벨이 101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십왕 중에서도 자신의 아래가 있는 것이다. 뭐··. 직접 싸워보면 역시 경험의 차이가 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왕들과의 경험의 차이는 너무 컸다. 그들은 가루라를 이미 잡아본 이들이다. 가루라의 약점도 공격 패턴도 그리고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는지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들어있었다. ‘그리고 아마 유니크 스킬이나 아이템의 차이도 좀 나겠지···.’ 정운은 문득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슬기를 보면서 말했다. “슬기야. 새로운 아이템은 어때? 잘 적응 할 수 있겠어?” “예···. 뭐, 해봐야 알겠지만 아직 초반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아! 그래도 열심히 할 게요. 꼭 만렙까지 찍을 거에요.” 슬기는 양손에 새로운 스태프를 꼭 쥐고 말했다. 슬기의 새로운 아이템. 그건 이번에 명주호에게 받은 유니크 아이템인 주작의 스태프였다. 주작의 스태프. LV.1 공격력 : 50 마력 : 2,000 무게 : 10 내구력 : 무한 스킬 : 염소접(炎小蝶) (작은 화염의 나비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주작의 혼이 들어가 있는 스태프. 화염계 최강의 마법 지팡이며,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다양한 화염의 환수를 소환 할 수 있다.] ============================ 작품 후기 ============================ 뭐, 원래 이런 변명 같은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지만... 워낙에 말들이 많으시니 일단 해명을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여러분들의 댓글을 무시하고 작품을 고치지 않기 때문에 무례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뭐. 댓글은 몰론이고 쪽지로도 몇개 날아왔죠. 조아라 같은 포털 싸이트 연재는 독자의 반응이 바로바로 돌아오죠. 그건 작가들에게도 큰 보람입니다. 비평이라고 해도 무관심 보다는 100배 낫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감히 말씀드리자면... 작가는 저이고 작품에 있어서 작가는 절대자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칭찬은 힘이 되고 비평은 겸혀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 비평에 작가가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독자의 의견에 하나하나 휘둘리기 시작하면 작품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작가는 베테랑이든 초보든 작가는 자기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유가 뭐가 됐든 간에 작품이 흥하고 망하고는 작가의 책임입니다. 독자의 의견을 참고하는 건 좋지만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독자분들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을 어떻게 써가느냐는 오로지 작가의 몫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댓글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지만 그것 조차 선택은 제 몫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방향을 휙휙 틀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사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바로바로 설정을 수정한다거나 선회하는 것은 저에게 무리입니다. 애당초 그렇게 못하기 위해서 안전 장치를 걸어 뒀기 때문입니다. 미리 대략적인 플롯이 짜여 있는것도 그렇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보시는 글은 제가 삼일전에 집필한 글입니다. 즉, 그만큼 사전에 이미 써 놓고 그 후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비평에 바로바로 반응해서 작품을 고치려면 삼일 분량. 즉, 6화 분량을 고쳐써야 합니다. 그게 제가 걸어놓은 안전장치입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제 글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말을 조아라 뒤에 수도 없이 쓰면서 한 번도 컨트롤c 컨트롤V 로 붙인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게 작가로서 독자분들에게 드리는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즐감하십시오.^^ 85화 <십왕들과의 레이드> 사실 지금 유니크 아이템을 바로 장비한다고 큰 폭의 전력 상승을 기대 할 수는 없었다. 현 단계에서의 성능만 본다면 이전에 슬기가 쓰던 아이템인 그래곤 하트의 스태프와 별 차이가 없었다. 마력 상승 폭도 똑같고 무게는 더 무겁다. 내구력이 무한인 것은 좋지만 스킬인 염소접이라는 마법의 위력은 슬기가 직접 날리는 파이어 볼하고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슬기는 유니크 아이템에게 거는 기대가 단단했다. 원래 유니크 아이템은 처음보다는 나중에 무기의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더 강력해 지는 것이 특성이었다. 정운의 그림자 망토도 그렇지 않았던가? 한 마디로 유니크 아이템은 만렙까지 찍어 봤을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욕이 대단한 슬기였다. 정운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너 자신을 지키는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여.” “알았어요. 정운씨.” 슬기는 정운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서 자신을 향한 걱정을 느꼈다. 정운은 같은 충고를 세레나에게도 할까 싶었지만 그만 뒀다.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러는게 아니었다. 의식적으로 슬기와 세레나의 사이에 차이를 두기 위해서 였다. 그러기 위해서 정운 나름대로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운이 이런 행동을 의식적으로 한다는 것은 마음 속으로 아직 정리를 완전히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 스스로 자각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운은 처음으로 십왕들과 파티를 짜서 레이드를 나섰다. 예전에 이보영과 같을 레이드 파티에 있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은 수준이 달랐다. 사실상 십왕과의 본격적인 레이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봐야 했다. 정운은 내심 십왕들의 레이드는 어떤 식일까? 라는 기대를 품고 가루라를 잡기 위해서 나갔다. 보스몹까지 가는 길에 한중겸이 일행에게 마침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아! 나 이번기회에 가루라를 내 소환수로 길들여볼 생각이야. 그러니 협조들 부탁해.” “소환수? 그 녀석 그냥 죽이는 것도 좀 빡센데 적당히 하지. 그래?”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한중겸의 의사는 확고한 것처럼 보였다. “꼭 잡고 싶어서 그래. 67층을 클리어하기 전에 전력은 최대한 올려 두는게 좋을 것 같지 않아?”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는 투덜 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가뜩이나 상대하기 피곤한 놈인데···. 거기다 네가 소환수로 만들면 우리한테는 보상도 안 떨어지잖아?” 그렇다. 한중겸이 가루라를 소환수로 만들면 레이드의 조건은 클리어되지만 골드나 경험치, 아이템 같은 보상은 떨어지지 않는다. 뭐, 한중겸이야 가루라라는 강력한 소환수를 만들게 되는 것이니 좋지만 그 이외의 유저들에게는 돌아가는 보상이 없는 것이다. 그때 선두에서 묵묵히 걷고 있던 배대호가 말했다. “뭐 어때? 그냥 하라고 해.” “대호 오라버니.”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 배대호의 말에 이민지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오라버니가 거기서 중겸이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요?” “아무렴 어때? 그냥 들어줘.” “쳇··. 나만 나쁜 년이지···.” 이민지의 푸념에 뒤편에서 정운에게 장난만 걸고 있던 이보영이 정운에게 찰싹 달라 붙어서 말했다. “동생 안보던 사이에 너무 강해졌다. 이제 나보다 강한 것 아니야?” “아니··. 그럴리가요? 그보다 다른 분들 말 다툼 하시는데 의견 조율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저 사람들은 항상 저러니까 그냥 내 버려두면 돼. 알았지. 동생.” “예···. 알긴 알겠는데··. 조금 떨어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바짝 팔짱을 끼고 노골적일 정도로 찰싹 달라 붙어서 따라오는 이보영의 행동에 정운은 곤란했다. 옆으로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노골적으로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있는 슬기가 보였다. ‘나중에 달래려면 한참 걸릴 텐데···.’ 그런 정운을 보고 이보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어머? 뭐 문제라도 있어? 응? 동생?” “음······. 그게····.” “없지? 없으면 됐어.” “···········.” 이보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여전히 정운의 팔을 꼭 껴안았다. 물론 그녀는 눈치가 없는 여자가 아니다. 그런 여자가 아니지만 지금은 굳이 눈치 없는 여자를 연기하고 있었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정운을 유혹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과 그 옆에 있는 슬기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귀여운 녀석들.’ 결국 그녀는 정운을 놀렸을 때의 반응과 그 옆에서 귀엽게 토라지고 있는 슬기의 반응을 보고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악취미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일행은 도저히 65층의 보스를 레이드 하러 가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가했다. 지금 이들이 있는 지역은 중앙의 고산 지대. 여기 있는 몹들도 상당히 위험하고 귀찮은 놈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장소를 십왕들은 무슨 동네 뒷산에 등산이라도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실제로 이들에게는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장소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던 십왕들 중에 이민지가 문득 중얼 거리듯이 말했다. “온다. 흡혈조네.” 그녀의 말을 듣고 정운은 고개를 두리번 거렸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데요?” 그러자 이민지는 손으로 멀리 떨어진 바위 뒤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쪽에서 오고 있어.”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난 직후에 그쪽에서 거대한 날개를 펼친 독수리 같은 새들이 날아왔다. “끼야아아!!!!” “카아아아!!!” 보통의 독수리들이 평범하고 딱딱한 부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서 이 흡혈조들은 마치 익룡 처럼 부리에 자잘한 악어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날갯죽지에도 날카로운 뼈가 나와 있어서 저공 비행하면서 스치면 피가 줄줄 흘러 나왔다. 놈들의 공격에는 출혈 속성이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피가 줄줄 흘러 나왔었다. ‘하필이면 제일 귀찮은 놈들이···.’ 정운은 가루라를 만나기 전에 함부로 힘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전투를 빨리 끝내려고 했지만 흡혈조의 무리라면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강력하기도 하지만 이런 놈들이 20~30마리 정도 뭉쳐서 행동 하는게 무엇보다 골치 아팠다. 정운은 자신의 활을 꺼내고 시위를 당겼다. “속사!!” 파파파파팡!!! 정운의 화살들이 허공을 가르기 시작하고 슬기는 방어의 실드를 펼쳤다. 그리고 세레나는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서 전체 버프와 백업을 준비했다. 그리고 정운의 팀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십왕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흐음···. 연계가 그럴 듯 한걸?” “하긴···, 그러니 저 정도 레벨에 올랐겠지.” 다른 십왕들의 말을 들으면서 이보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꼭 자기 자랑을 하듯이 말했다. “이거 알아요? 동생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지 이제 5년 정도 밖에 안 된 것?” “뭐? 정말? 5년 만에 100레벨이라고?” “네가 알기로는 최단기간일걸요?” “그건 대단하군···. 하지만 중요한 건 짧은 시간에 강해졌느냐? 아니냐? 가 아니야. 지금 얼마나 강한 전력인지가 중요한 거지.” 십왕들은 이보영의 설명을 들으면서 정운들의 실력을 품평하듯이 구경했다. 정운은 내심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그들의 저의가 궁금했다. 생각 같아서는 조금 도와 주시죠?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 사람들한테 아직 막 따질 정도로 친해진 것은 아니지. 일단 내 할 일이나 하자.’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활을 당겼다. 원래 레이드 시에 본격적인 공략조의 힘을 아끼기 위해서 가는 길에 따로 힘을 소비하는 호위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십왕들 수준이 흡혈조 무리에게 힘을 소모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했다. 하지만 그냥 예의려니 하면서 정운은 착실하게 흡혈조들을 공격해 갔다. 흡혈조를 상대할 때 가장 공치 아픈 것은 놈들의 공격 특성인 출혈이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놈들에게 상처를 입으면 마을에 가서 완전히 치료를 받기 전에는 피가 멈추지를 않는다. 예전에 정운도 그래서 자칫 잘못해서 출혈 과다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놈들을 상대할 때 가자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절대로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니 우선 슬기가 마법으로 탄탄한 보호막을 치고 세레나는 아에서 버프를 보내면서 대기. 그리고 정운이 활로 잡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것이다. 일행이 가지고 있는 원거리 공격 중에서 정운의 활 공격이 가장 정신력의 소모가 적었기 때문에 효율이 좋았다. 다행이도 흡혈조들의 공격은 빠르고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실드를 찢어 버리고 들어올 정도로 위협 적이지는 않았다. 슬기가 오로지 방어에만 정신을 집중하면 흡혈조들의 공격 정도는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운이 활로 슈팅게임을 하듯이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내는 것이다. “키에에에!!!!” 공방을 시작하고 20여분 정도 걸리자 숫자가 반으로 줄어든 흡혈조들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무리의 숫자가 반 이하로 줄면 도망간다. 그것도 놈들의 특성이었다. “흠···. 생각보다 머리 많이 써서 플레이 하네?” “그렇게 말이야. 효율이 좋은 팀이군.” 십왕들은 정운의 팀의 플레이를 보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무작정 힘으로 몰아 붙이는 방식이 아니고 꼭 적을 전멸 시키기 위해서 안달을 내지도 않았다. 자신의 소모를 적게 하고 적을 효율적으로 상대했다. 이 정도면 그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최상층으로 끌어 올려줄 자격이 있는 것 같았다. ‘아···. 애당초 이런 유저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만들어 둿던게 삼대길드였는데···. 그 놈들은 그냥 안주만 하고 주저 앉았으니··.’ 십왕들이 삼대 길드를 만든 것든 정운의 팀처럼 위로 올라 올 수 있는 유저들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자신들 보다 두 개 층 아래인 65층의 출입권도 준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삼대 길드는 말만 공략파지 조금씩 조금씩 현 상황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뭐, 전체적인 평균 레벨은 꾸준히 올라갔다. 하지만 평균 레벨과 별개로 특출난 인물이 확 치고 올라오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기 시작했다. 즉, 소위 말하는 삼대길드의 간부들이 안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십왕들은 최근에 삼대길드의 창설이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뭔가 다른 수를 쓰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운처럼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고 레벨의 유저는 그들에게 있어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65층을 주 사냥터로 해서 100레벨이 넘는 것에 도달한 것을 보면 자신들의 진의를 깨달은 팀원은 이들이 유일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호기심이 들어서 이들의 역량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이들 전원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지 5년도 되지 않은 신참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십왕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이들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5년째였을 때는···. 그때는 정운의 반의 반 만큼도 강하지 못했었다. ‘저 녀석이라면···.’ ‘크게 될 거야.’ 십왕들이 그런 뿌듯한 마음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운은 십왕들을 가루라에게 에스코트 하는 것에 총력을 다 기울였다. 흡혈조에 자이언트 골렘. 봉법 원숭이까지··. 65층에 막 올라왔을 때에는 몇 번이고 위기상황에 몰리게 했던 강적들이었지만 이제는 정운의 팀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사냥감일 뿐이었다. 정운의 팀원드르이 사냥 방식이 효율적인 것도 있었고 그리고 그동안 이들이 65층에서 범상치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운들은 드디어 65층의 보스몹 가루라에 도착했다. “호오, 이 금삐까 닭대가리는 오랜만에 보는 걸?” 이보영의 말을 듣고 정운은 순간 풋! 하고 죽은 소리로 웃었다. 듣고 보니 정말로 닭대가리로 보인 것이다. 뭐, 실제로 저게 한 번 날뛰기 시작하면 닭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사납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몇 번이고 쓴맛을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다. 최강의 원군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일행을 안전하게 이끌고 온 정운은 그대로 십왕들에게 가루라의 레이드를 요청했다. “알겠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 작품 후기 ============================ 이제 최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본격적인 레이드입니다. 이제 정운도 100레벨이 넘었으니 슬슬 가봐야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86화 정운이 정식으로 레이드 요처을 하자 가장 고레벨이고 리더인 십왕의 2위인 배대호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아까 중겸이가 한 말을 들었으니 알겠지만···. 이번 목적은 잡는게 아니라 사로 잡는 거다. 그러니 레드 크리스탈 상태까지 몰아붙인 다음에 구속하는 거야. 알겠지?” “알았어요. 그럼 전위는 나하고 주호 오라버니가 하고···. 대호 오라버니하고 민지 언니야는 후위. 중겸이 오라버니는 대기죠?” 이보영의 말에 다른 십왕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민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보영에게 말했다. “보영아. 넌 나 보고 언니야라고 하는 것 좀 그만 둘 수 없니?” 이민지의 말에 이보영은 넉살 좋은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왜? 언니야를 언니야라고 부르지 뭐라고 하는데요?” “그냥 언니라고 하던가···. 에효. 말을 말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냥 허공으로 둥둥 떠올라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운은 한 발 물러서서 십왕들의 레이드를 구경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십왕들 전원이 가족···. 마치 형제 자매 같단 말이야.’ 딱히 팀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전원은 최상층에서 한 팀이 되어서 손 발을 맞추고 있는 자들일 것이다. 아마도 몇 십 년을 그렇게 손발을 맞춰 왔을지도 모르니 이들이 이렇게 사이가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운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격이 없는 그들을 보면서 어쩐지 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정운이라고 했지?” 배대호는 서서히 싸울 준비 하면서 정운에게 말을 걸었다. “예? 예···.” 얼떨결에 대답하는 정운에게 배대호가 말했다. “일단 우리가 하는 것을 잘 봐라. 그리고 적당히 뛰어들 타이밍이 있다면 봐가면서 뛰어 들어. 할 수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정운이 그렇게 대답을 하는 사이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선두는 이보영의 고사리 같은 작은 주먹이 열었다. “하앗!!!” 콰아앙!!! “키오오오오오!!!!” 가녀린 여자 한 명의 주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일격에 불시에 기습을 받은 가루라는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가루라는 날개를 퍼덕이면서 둥지에서 날아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그냥 내버려둘 이보영이 아니었다.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콰아앙!!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의 뒤꿈치 내려 찍기가 가루라의 정수리에 정통으로 작렬했다. 이보영의 직업은 전설의 권성. 무투가 계열 중에는 최고봉에 올라 있는 여자였다. 늘씬하고 가녀린 체격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대한 파괴력이 가루라라는 거대한 보스몹을 압도하고 있었다. 무투가인 그녀의 장점은 어지간한 보스몹 뺨치는 체력과 막강한 육체의 공방력에 있었다. 그녀의 주먹은 가루라를 복날에 삼계탕이라도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박살을 내기 시작했다. 퍼퍼펑!! 펑! 쾅!! 체중이 50kg 전후 정도로 밖에는 안 보이는 가녀린 여자가 날개 길이까지 합하면 30미터는 듯한 괴조를 일방적으로 박살내고 있었다. 직접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이 언밸런스한 광경은 눈에 의심을 불러올 정도였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감탄했다. 과연 십왕, 하지만····. ‘하지만 저걸로는 어림없을 텐데···.’ 이보영의 공격력은 놀라웠다. 스킬하나 쓰지 않고 그저 철갑을 두른 양주먹을 패고 있을 뿐인데도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가 스킬을 못 쓰는 것은 아니지만 무투가의 직업 특성상 스킬 이외에 일반적인 공방력이 워낙에 높아서 그게 주력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다면 진작 정운도 가루라를 잡았을 것이다. 이 놈은 그렇게 만만한 생물이 아니었다. “키에에에에!!!” 가루라의 전신에 황금빛 번개를 두르고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맞고 있던 가루라가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아앗!! 따가워라···. 망할 닭대가리가···. 갑자기 피카피카 거리고 지랄이야.” 맨손으로 가루라를 공격했던 이보영은 황금빛 뇌전의 반격을 받고 대미지를 입어서 뒤로 후퇴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교대하듯이 또 한명의 남자가 나섰다. “나하고 바꾸자.” “부탁해요.” 이보영과 교대 하듯이 전위로 나선 것은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인 명주호였다. 그는 태극음양신공을 힘껏 끌어올리더니 그대로 검과 도를 질풍처럼 휘둘렀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앗!!!!” “키에에엑!!!” 콰콰콰콰카카카카까각····. 얼마전에 김신수의 꼼수&기습에 체면을 구기기는 했지만 역시 십왕의 일각. 그의 공격은 이보영의 권각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가루라를 압박했다. “크윽···. 슬기야. 내 뒤로. 아니 너도 실드 쳐!! 세레나 방패 들고 버프!!!” “옛!!” “옛!!” 정운은 급하게 슬기와 세레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괴수 대격돌? 황금빛 번개를 뿜어내면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는 가루라는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그런 가루라를 상대로 명주호 역시 화염과 냉기의 기를 두르고 돌격했다. 이건 마치 자연현상의 화신들끼리의 격돌 같았다. 그 여파만으로도 대미지를 입기 시작할 정도가 되자 정운은 스스로 방어를 하면서도 슬기와 세레나에게 따로 명령을 내려야 할 정도였다. “거기 아기들. 나 회복 좀 걸어줘.” 그때 세 사람에게 이보영이 세 사람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어? 길드장님.” “누나라고 부르라니까···. 아··. 쓰라려라···.” 세 사람에게 다가온 이 보영은 생각보다 많은 상처를 입었었다. 온몸에 크고 작은 화상과 날카로운 가루라의 날개깃에 베인 깊은 상처까지···. 슬기와 세레나는 재빨리 이보영에게 붙어서 회복을 걸었다. “흐음···. 잘 하네. 시원치 않으면 그냥 하던 대로 대호 오라버니한테 가서 치료 받을까 생각했는데?” 세레나와 슬기의 회복을 받으면서 이보영은 살짝 미소지었다. 사실 배대호에게 치료를 받는 것도 가능은 했지만 가능하면 이 둘에게도 파티원으로서의 역할을 주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이보영이었다. 정운은 그런 이보영을 빤히 바라봤다. ‘한 삼분 정도 싸운 것 뿐인데···.’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이보영은 3분 정도 싸우고 나서 저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아무리 십왕이라고 해도 가루라 정도의 보스몹을 상대로 전위를 맡으니 저런 중상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이런···. 동생 눈이 엉큼한데? 누나한테 반했어?” 이보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정운의 시선에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그런게 아닌 것 알잖습니까? 이런 무모한 방식··.” “아!! 시간 다 됐다. 그럼 동생. 데이트 신청은 파티 끝나고 해줘.” 이보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일어나서 가루라를 향해서 달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이보영이 가는 사이에 명주호가 뒤로 빠졌다. 전위 두 명이 돌아가면서 교대를 한 것이다. 대략 5분 정도 가루라하고 혈투를 벌인 명주호는 역시 상당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회복 부탁하네.” 슬기와 세레나는 그가 말하기도 전에 달려가서 그에게 회복을 걸고 있었다. 정운은 회복중인 그를 보면서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가루라를 잡을 생각입니까?” “응? 아아아···. 뭐 초반에는 고생 좀 해야지.” 정운의 말에 명주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천천히 회복되어가는 자신의 몸을 느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왜? 자네가 보기에 이건 좀 아니다 싶은가?” “····사실··. 저라면 좀 더 다르게 포지션을 취했을 것입니다.” 정운이 생각하기에 이 전력으로 가루라를 잡으려면 전위를 교대로 투입 하는게 아니라 동시에 투입할 것이다. 그리고 이민지의 정령술로 가루라가 하늘을 날지 못하도록 묶어두면서 한중겸의 소환수로 견제하고··. 그리고 배대호의 마법 공격으로 대미지를 쌓아가는 편이 더 좋아 보였다. 전위의 소모를 줄이고 레이드 타임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운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플레이 하는게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은 십왕들의 경험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운의 마음을 알았을까? 명주호는 웃으면서 말했다. “보스몹을 잡을 때는 철저하게 약점을 공략해야 하네. 그저 유저로서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잡기에는 너무 버거운 놈들이니까. 그러니 놈들의 약점을 노려야지.” “약점···. 가루라의 약점이 뭡니까?” “그건 놈이 ‘새’라는 거야. 새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 뭔지 아나?” “·······글쎄요?”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정운에게 명주호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건 천천히 보면 알걸세.”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일어나서 가루라를 향해서 갔다. 그 후로 거의 한 시간에 걸쳐서 명주호와 이보영이 번갈아 가면서 가루라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 둘이 그렇게 행동하는 사이에 다른 십왕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따금씩 이민지가 정령을 움직여서 가루라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그 이외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실상 가루라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은 이보영과 명주호 두 명 뿐이었던 것이다. 정운은 십왕들이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라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역시 비효율 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십왕급이라고 해도 저 둘이 번갈아 가면서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는 가루라를 잡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저 둘이 전위로서 튼튼하다고 해도 역시 65층의 보스몹인 가루라보다 더 튼튼할 수는 없다. 둘에게 번갈아가면서 공격을 받으면서 가루라는 끄떡도 없다는 듯이 쌩쌩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약간씩이지만 이보영와 명주호가 지쳐가고 있었다. “아아···. 피곤해라··. 아기들, 나 회복.” 이보영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와서 마치 ‘엄마 밥 줘.’ 라는 포스로 회복을 요청했다. 정운은 계속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정말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영은 회복을 받으면서 물약 포션을 빨면서 가루라의 상태를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정운은 그런 이보영을 보면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보영 길드장님. 괜찮다면 저희도 전위에 합류할까요?” “응? 으음···. 동생 마음은 고맙지만 그랬다가는 이제까지 쌓아온 것이 허사가 될 것 같으니 사양할게.” “····예?” 이제까지 쌓아온 것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정운에게 이보영이 말했다. “마침 이제 된 것 같네. 슬슬 밑 준비는 다 된것 같으니까 본격적으로 닭털 좀 뽑아 볼까?”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정운은 가루라를 바라봤다. 거기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관찰한 정운의 눈에 보인 것은···. “하아앗!!!” 촤아아악!!! “키에에에에에엑!!!!” 명주호의 날카로운 일격이 가루라의 양 날개를 절단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루라의 날개가 떨어지자마자 이제까지 방관하고 있던 다른 십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프리트, 실피드!! 바싹 구워!!!” “데몬 엠페러!! 자이언트 스네이크!!!” 이민지의 정령과 한중겸의 소환수가 가루라를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루라도 거칠게 반항하려고 했지만 날개를 잃은 가루라의 공격은 생각보다 거칠지 못했다. “과연, 저게 가루라··. 아니 새의 약점이었군.” 정운은 그제야 십왕들의 꾸준한 공격의 이유를 알았다. 전위 두 명의 공격은 그저 시간끌기로 보였지만 사실은 오로지 날개 부위에만 차근차근 대미지를 쌓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다른 부위도 공격하고는 있었지만 그런 부분의 공격은 대부분 페인트였다. 진짜 제대로 된 공격은 날개 부위만 하면서 그 부분을 점점 약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십왕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처음부터 날개를 노렸으면 어땠을까? 아마 무리였을 것이다. 가루라는 위기라고 판단되면 일단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음속 비행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한다. 정운의 팀도 가루라에게 제법 대미지를 준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대미지를 입기 시작한 가루라는 본격젂으로 싸우기 위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일단 놈이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하면 그 때 부터는 일방적으로 유린당할 뿐이었다. 그러니 위기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느슨하게 공격을 하면서 일단 차근차근 날개에만 대미지를 중첨 시킨다. 그리고 날개를 꺾어 버리고 난 후에 진짜 공격으로 놈을 침몰 시킨다. 그게 십왕들의 가루라 레이드 작전이었다. ‘놈의 날개를 꺾어 버리는 것이 우선이고, 대미지를 주는 것은 나중이었어. 그게 가루라의 약점이었어.’ 정운은 그제야 십왕들의 하는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거들려면 지금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87화 “세레나, 슬기를 부탁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뇌천신공.” 정운은 온 몸에 뇌전의 기공을 끌어올리고 그대로 흑토의 몸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인마일체가 되어서 가루라를 향해서 내달렸다. “이럇!!!” “호오··. 저게 우리 동생의 유니크 스킬인가? 멋진걸?” 슬기들의 옆에서 회복을 받으면서 그런 정운의 모습을 구경하는 이보영은 상당히 감탄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슬기가 말했다. “이보영 길드장님은 안 가시나요?” “응? 아아····. 나야 할 일 다 했는데 뭐··. 날개가 뽑힌 가루라의 공격력은 40층대의 보스몹하고 별 다를바 없어. 히든 스킬만 조심하면 충분히 잡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칼로리 바를 꺼내서 오물오물 거리면서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슬기는 그런 그녀가 약간 불편했지만 그래도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보영의 말대로 날개가 뽑힌 가루라는 별것 아니었다. 대부분의 전투 패턴이 오로지 비행이라는 상황의 전제 하에서 이뤄지던 놈이었기에 날개가 뽑히고 나니 공격력이 팍 떨어졌다. 대신에 체력의 막강함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아아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악!!!!! 정운은 검을 뽑아서 있는 대로 휘둘렀다. 뇌천신공의 상태로 정운이 휘두르는 공격 한방 한방은 이보영의 주먹과 대등할 정도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정운의 모습을 보고 다른 십왕들은 살짝 감탄했다. ‘레벨 뿐만이 아니군. 스킬도 뛰어나.’ ‘예전에 비정기 퀘스트 때 봤을 때 보다 훨씬 더 늘었군. 그때는 저런 스킬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공격력, 방어력 모두 균형 잡혔고 기동력도 뛰어나. 좋은 전력이 되겠어.’ 십왕들은 싸우는 와중에도 정운을 관찰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정운이 67층에 올라갔을때 자신들과 같이 사냥을 할 정도의 힘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해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레이드 중에 정운의 실력을 품평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그들이 정운보다 윗줄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키에에엑!!!” 그때 가루라의 전신에서 황금빛 서광이 비치면서 놈이 크게 울부 짖었다. “스킬이다!! 모두 달라붙어!!!” 가루라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대호가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다른 십왕들이 일제히 극딜을 하기 시작했다. 가루라의 스킬은 회복이다. 그것도 모든 대미지를 회복 시키는 절대 회복. 여기까지 쌓아온 것을 허사로 만들 수는 없다는 일념하에 십왕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공격기를 작렬 시켰다. “패왕권 (敗王拳)!!!” “염빙십자격 (炎氷十字擊)!!!” 가장 먼저 공격을 날린 것은 초반에 수고하고 체력을 쉬고 있던 두명의 전위였다. 이보영의 주먹에서 집체만한 권기가 날아갔고 명주호가 휘두른 가로세로의 참격에 화염과 냉기의 교차된 강력한 감기가 날아갔다. “실피드!! 바람으로 이프리트의 불길을 키워라!!” 그리고 다음으로 이민지의 공격이 이어졌다. 그녀가 소환한 두 정령은 합동 공격을 할 생각으로 힘을 모으더니 거대한 화염의 회오리를 만들어서 그대로 가루라를 덮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것은 십왕의 2인자인 배대호였다. “기가 파이어 볼.” 그가 손을 들어 올리고 마법을 시전하자 정운은 순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광량과 화끈한 열기에 전신이 후끈했다. 슬기의 파이어 볼의 10배? 아니 100배는 넘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파이어 볼이 허공에 만들어졌다. “받아랏!!” 퍼어어어엉!!!! 배대호의 마법이 작렬한 순간 가루라의 전신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줄 알았다. 마치 소형 핵이라도 터진 것 같은 그 공격게 고산 지대의 일부가 붕궤되어 버렸다. 필드의 지형마저 바꿔버릴 것 같은 공격에 가루라는 쓰던 스킬이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옐로우 크리스탈을 넘어서 레드 크리스탈이 간신히 떠올랐다. 그리고 한중겸이 모두에게 외쳤다. “복종시킬 거야!! 구속해!!!” 그가 그렇게 외친 순간 다른 십왕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구속 스킬을 썼다. 정령들과 소환수들이 가루라를 꽁꽁 묶었다. 그리고 배대호가 중력 마법으로 가루라를 바닥에 꽁꽁 눌렀다. 그리고 한중겸의 스킬이 시전 되었다. “인프리팅!!!” 테이머 계열의 마법사가 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마법이고 가장 중요한 마법인 인프리팅이다. 몹을 구속한 상태에서 각인 마법을 주입 시켜서 자신을 주인으로 인식하게 한다. 가루라 수준의 몹에게 통할지 말지는 반쯤 도박 같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한중겸은 최선을 다해서 가루라를 복종시켜 갔다. “키오오오오오오!!!” 가루라는 강력한 통증과 거부감에 난리를 쳤고 그런 가루라와 마찬가지로 한중겸의 얼굴도 찌푸려졌다. “제길···. 만만치 않단 말이야.” 거칠게 날뛰는 가루라 때문에 소환수와 정령들의 구속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여기서 극딜을 해서 죽이는 것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힘으로 구속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십왕들은 몰랐겠지만 정운의 진짜 특기중에 하나가 바로 구속 스킬이었다. “쉐도우 아미!! 소환!!” 정운에게 있어서 지난 일 년 동안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일까? 레벨이 100을 넘긴 것? 스킬 합성에 성공 한 것? 그것도 큰 성장이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유니크 아이템인 그림자의 망토의 레벨을 MAX로 만든 것이었다. 그림자의 망토 LV. MAX 방어력 : 20,0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스킬 : 쉐도우 컷터. (상어 같은 칼날을 날려서 적을 공격한다.) 쉐도우 스피어. (그림자에서 창날을 세워서 적을 관통한다.) 쉐도우 체인. (상대의 그림자에서 그림자의 사슬을 만들어 적을 구속한다.) 쉐도우 아머. (자신의 그림자를 전신에 둘러서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린다.) 쉐도우 홀. (상대의 그림자에 늪 같은 구멍을 만들어서 행동을 제약한다.) 쉐도우 월. (자신의 그림자로 전방에 방어벽을 만든다.) 쉐도우 무브. (그림자에 자신을 숨겨서 이동한다.) 쉐도우 붐. (상대의 그림자를 폭발 시켜서 공격한다.) 쉐도우 서치. (자신의 그림자를 멀리 뻗어서 주변을 탐색한다.) 쉐도우 아미.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그림자의 병사를 만들어 낸다.) [그림자를 조종해서 물리력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능력의 활용성이 더욱더 커진다.]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 와서 얻은 아이템 중에 가장 대박이 있다면 아마도 그림자의 망토였을 것이다. 정운이 보기에 이건 유니크 아이템 중에서도 특출난 물건이 틀림 없었다. 유니크 스킬은 만렙까지 키워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슬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직 유니크 아이템으로서의 가치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레벨이 너무 낮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정운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는 이미 만렙을 찍었다. 그랬기에 이런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운이 스킬을 쓰자 정운의 그림자에서 정운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그림자의 병사들이 일어났다. 전원이 정운과 똑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그 숫자는 무려 열명. 박정운과 똑같은 성능을 지니고 있는 그림자 병사가 열 명이나 생긴 것이다. 그 상태로 정운이 다시 말했다. “쉐도우 체인!!!” 촤르르륵!!! 정운의 분신들까지 동시에 같은 기술을 시전했다. 현재 정운이 쉐도우 체인을 시전하면 지면에서 10개의 쇠사슬이 나와서 적을 꽁꽁 묶어 버린다. 그것을 쉐도우 아미를 동방한 채로 쓰면···. 무려 100개의 체인이 나와서 적을 완전 구속해 버리는 것이다. “키이이이····.” 날뛰던 가루라는 꽁꽁 묶여서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박살이 났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정운이 외쳤다. “쉐도우 홀!!” 그러자 역시 깊숙한 그림자의 늪이 생기면서 가루라를 지면에 반쯤 잠기게 했다. 쉐도우 체인과 달리 쉐도우 홀은 그다지 중첩 효과는 없었다. 그러니 늪이 10배로 깊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정운 혼자서 펼쳤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구속력은 충분했다. 오히려 정신력의 소모를 줄인다는 의미에서도 그게 좋았다. 어쨌든 완전히 꽁꽁 구속당한 가루라를 보면서 십왕들은 감탄했다. “호오···. 구속 스킬을 저렇게 잘 쓰는 놈은 처음인데?” “그렇게요···. 저거면 쓸 만한 작전이 많겠는데요?” 정운의 구속스킬이 가지고 있는 힘은 십왕들 마저도 감탄 할 정도로 강력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구속 스킬이 힘을 입어서 가루라는 점점 힘이 빠졌다. 날개도 뜯기고 온몬을 칭칭감은 체인. 거기다 바닥까지 질철질척한 늪이어서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참고로 최근 정운이 이렇게 구속 스킬을 콤보로 펼치면 암석 드래곤 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구속 할 수도 있었다. 그런 정운의 구속력 덕분에 한중겸은 이윽고 자신이 원하던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각인 완료!! 나에게 복종해라 가루라!!!” “···쿠···쿠우우····.” 한중겸과 가루라에게 크기는 다르지마 똑같은 마법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가루라의 눈빛이 부드러워 지더니 놈의 몸에서 사나운 느낌이 점점 사라져 갔다. 드디어 각인이 완료 된 것이다. 가루라를 손에 넣자 한중겸은 이마의 땀을 닦고는 말했다. “오랜만에 대박이네···.” “우리는 쪽박이라고.”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가 옆에서 살짝 끼어 들어서 말했다. 그런 이민지의 말에 한중겸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다음 층에서는 내 몫은 안 받을 테니까.” 한중겸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루라를 역소환 시켜서 돌려 보냈다. 오랜만에 손에 넣은 강력한 보스몹으로 인해서 한중겸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런 한중겸과 더불어서 가장 기분이 좋은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정운이었다. ‘드디어 66층이다.’ 자신의 팀만으로는 몇 번이고 싸웠다가도 실패했던 몹이 가루라였다. 하지만 십왕들과 함께 싸우니 놈이 날개를 펼 틈도 없이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앞으로 한 층만 더 클리어하면 이런 자들하고 같은 수준에서 플레이 하는 건가?’ 정운은 내심 기대와 부담이 반반 섞여서 다가왔다. 그런 정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서 포탈로 돌아가는 길에도 십왕들은 여유만만했다. “그나저나··. 깜빡 했는데 주호 너 뉴 웨이브라는 놈들한테 죽을 뻔 했다며?” “뭐··. 좀 위험하기는 했죠.” “위험은 무슨···. 듣자하니 죽다 살아나서 네가 아끼고 있던 아이템도 저기 저 애한테 줬다고 하던걸?” “대호 형님은 그런걸 다 신경 쓰고 계셨습니까?” “네가 남한테 양보할 유니크 아이템이라면 그거지? 전에 내가 달라고 해도 안 주던 것.” “형님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네 성격에 유니크 아이템 까지 넘겨줄 정도면 엄청 위기에 몰렸던 거지 뭐···.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이라도 좀 설명해 봐.” “난 그때 얘기하기 싫습니다. 알아서 알아 보십시오.” 명주호는 그렇게 고개를 휙 돌렸고 배대호는 그런 명주호 대신에 정운을 바라봤다. “본인이 말 안하면 목격자에게 들으면 되지. 막내야. 말 좀 해 보렴.” “···막내?” “왜? 싫으냐?”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뭐가 어때서? 라는 시선을 하고 있었다.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뭐···.” 어차피 십왕이라는 사람들 대부분 정운의 형님뻘을 넘어서 증조, 고조 할아버지 뻘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막내 소리도 오히려 많이 높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가 본 것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정운은 명주호와 김신수의 결투 부분부터 놈이 반전을 만들어낸 결과까지 모두 낱낱이 보고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십왕들은 곤혹스런 얼굴을 하고는 명주호에게 말했다 “중요한 얘기가 굉장히 많았잖아? 왜 얘기 안 한거야?” “주호 오라버니 설마 쪽 팔린다고 얘기 안한 거 아니에요?” “····후우, 사내들은 나이 아무리 먹어도 애라니까···.” ============================ 작품 후기 ============================ 할머니 이빨 치료를 위해서 한 동안 치과에 데려다 드려야 합니다. 덕분에 집필 시간이 확 줄어 버렸네요. 그래도 어찌어찌 연재 유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88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명주호는 같은 십왕급 동료들에게 폭풍 디스를 받으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잇··.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140대 레벨의 유저가 나올 줄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명주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 만큼은 다른 십왕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레귤러였다. 김시수의 레벨은 148. 그만큼 레벨업을 하면서 십왕들의 눈에서 완전히 벗어난 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운을 예로 들어서···. 정운의 지금 레벨은 102다. 삼대 길드에서 65층으로 워프를 시켜줬고, 그리고 거기서 정운이 부지런히 사냥을 해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에 화려하게 데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동안 완전 노마크였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정운의 레벨은 정확하게 몰랐다. 그러나 삼대 길드에서도 정운이 65층을 주 사냥터로 사냥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65층에서 부지런히 사냥을 하고 있는 소규모 팀이 있다. 라는 정도의 정보는 십왕들의 귀에도 들어갔었다. 그냥 언듯 듯고 무시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정운의 레벨을 90대 중반 정도로 잡아서 예상은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예상을 넘어설 정도로 광사냥을 했던 정운이기에 다소 오버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예상의 안이었다. 있을 수 있는 오차범위였다. 하지만 김신수의 경우는 65층은 고사하고 이전에 확인 되었을 때만 해도 50층 대에서 놀고 있었던 인간이다. 놈의 레벨은 아무리 높아도 80대 초반 정도일 뿐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놈은 명주호 보다도 고레벨이었다. 그건 마치····. “놈은 마치 버그 같은 존재였습니다.” 정운의 말에 얘기를 얌전히 듣고 있던 배대호가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버그?” “예. 그렇습니다. 게임에서 보면 치트나 에디트를 쓰는 것 처럼···. 아! 여러분들은 그게 뭔지 모르죠?” 십왕들 대부분이 게임이라고는 있지도 않은 시절에 왔던 자들이다. 그러니 정운은 이들에게 치트니 에디트니 말해도 알 리가 없다. 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알지. 우리가 여기서 몇 년을 살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여기서도 상점에 가면 PC하고 게임 정도는 손에 넣을 수 있어.” “너 우리를 완전 원시인 취급 한다.” 정운의 예상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십왕들은 격한 반발을 하면서 정운을 몰아 붙였다. 오히려 정운이 실례되는 말을 했다고 당황할 정도로 말이다. “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알고 계신다니 얘기를 하기가 더 쉽겠군요···. 놈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애당초 명주호 님하고 싸움으로 어느 정도 소모를 했다고는 하지만··. 놈과 제 레벨은 40이상이 차이가 났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좀 어설프더군요.” “어설퍼?” “그게 무슨 뜻이야?” 반문하는 십왕들에게 정운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스킬이나 기술 같은 것은 익히고 나서도 한참동안 사용하면서 실전에서 쓰는 타이밍이나 느낌 같은 것을 잡아내지 않습니까?” 정운의 말에 십왕들은 단체로 짜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들도 짬을 역으로 먹은 것은 아니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몇 십 년부터 백년이 넘는 세월을 구른 자들이 허다했다. 정운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는 자신들이 더 잘 알았다. 그런 십왕들에게 정운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김신수 그 놈은 달랐습니다. 마치···. 스킬만 익혔고, 레벨만 높지만 경험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항상 쉬운 전투만 경험한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놈이 힘의 소모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미숙함이 없었다면 정운이 쫓아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후에 배대호가 말했다. “아마도····. 놈은 상당히 진귀한 퀘스트를 발견해 냈는지도 모르겠군.” “진귀한 퀘스트요?” “그래.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저 층이라고 해도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때가 종종 있어. 워낙에 광대한 세계니까 당연한 일이지.” “그거야··. 뭐.” “놈은 우리가 모르는 손쉽고 레벨이 오르기 쉬운 사냥터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걸 독점하고 있을수도 있지.” 배대호의 예상은 반은 맞았다. 반 정도는 말이다. 김신수의 정체와 놈의 능력에 관해서 활발한 토론이 잠시 오고 갔지만···. 결국 정해진 결론은 '아직 잘 모르겠다.' 였다. 워낙에 수수깨끼가 많은 인물이라서 뭐라고 딱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툭 튀어 나와서 길드를 만들고. 갑자기 툭 튀어 나와서 라이온 길드에 시비를 걸고. 갑자기 툭 튀어 나와서 나 고레벨이요. 하고 있고. 이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단순하게 얘기만 들어도 놈은 아직도 숨겨진 카드를 더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선 놈의 길원은 어디에 있는가? 레벨은 어디에서 올리고 있는가? 어째서 십왕에게 시비를 걸었는가? 특히 마지막 하나는 치명적이었다. 왜 십왕에게 시비를 걸고 목숨을 노렸단 말인가? 이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의 바램이 게임 클리어인 이상···. 십왕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게임의 클리어를 위한 주요 전력이었다. 그 십왕이 먼저 자신을 노리고 찍어 누르려고 해서 혹 반발 했다면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고 함정까지 준비해서 목숨을 노렸단 말인가? 십왕을 적대해서 놈이 얻을 수 있는게 뭐란 말인가? 결국 놈의 진의를 알기에는 아직도 주어진 단서가 너무 적었다. ‘놈의 목적이 게임 클리어가 아니라 게임의 클리어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얘기는 되지만····. 역시 그럴 일은 없겠지?’ 정운은 내심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를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토론을 하는 사이에 일행은 다시 포탈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단 포탈에 도착하자 마자 이보영이 말했다. “밥 먹고 해요.” “·········.” “·········.” “·········.” 그 누구도 그녀의 그 의견에 이이를 달지는 않았다. 일단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십왕을 비롯한 파티는 일단 잠깐 휴식을 위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이 마을에는 오랜만이네.” “난 가끔 온다.” “뭐 하러요?” “그냥···. 애들 뭐 하는가 싶어서···.” 최상층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최상층 거주구라는 곳에 따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이런 마을에 올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정운과 슬기, 세레나는 최상층의 거주구로 갈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일반 마을에 와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시켰다. “점심 정식으로 통일할까?” “그러지 뭐···.” “여기 정식으로 통일.” 일행은 적당한 한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시켰다. 보통 그라운드 제로에서 한끼 식사에 드는 돈은 5실버 정도다. 하지만 이 일행이 식비까지 절약할 정도로 궁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인당 10골드 짜리 최그급 한 정식을 시켰다. 잠시 후에 일행의 앞에 50첩 반찬으로 이뤄진 수라상 급의 밥상이 올라왔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돈 값을 못하는 식당은 없었다. 반찬하나하나가 공을 들인 특상품들이라서 굉장히 맛있었다. 다만 얌전히 밥만 먹기는 좀 분위기가 그랬다고 느꼈을까? 정운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살짝 말문을 열었다. “저기··. 십왕 분들은 모두들 레벨이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정운의 말은 좀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했다. 하지만 십왕들과 몇 마디 말을 해보니 이들이 그다지 거만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안 정운은 조심 스럽게 물어 봤다. 정운의 말에 배대호가 대답했다. “일단 나는 202,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박추성이 215, 민지가··. 민지 네가 얼마지?” “저 183요.” “얼만 전까지 182였잖아? 올랐네?” “당연히 오르죠. 그리고 내 밑으로는···. 한중겸 175, 윤정철 151, 명주호 125, 김수민 117, 이보영 110, 이지영 109, 주경택 107. 이렇게 되있어요. 모두 조금씩은 올랐다고요.” 이민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일행은 박수를 짝짝짝 쳤다. “오오오···.” “잘 아네?” “꼼꼼하기도 해라.”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서 이민지는 한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무관심 한 거야.” 그리고 그런 이민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정운은 생각했다. 현재 정운의 레벨은 102. 내심 십왕의 가장 아래인 주경택의 레벨이 101 이니까 그것 보다는 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십왕들이라고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어느새 십왕의 가장 말석으로 알려져 있던 주경택 역시 레벨이 107에 도달한 상태였다. ‘결국 아직은 내 레벨이 가장 약한 것인가?’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알았을까? 한중겸이 나서서 말했다. “박정운. 지금 너 네 실력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숨길 것도 없이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솔직히 조금 실망감이 들기는 하네요. 열심히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따라 잡은 것 맞다.” “···예?” “레벨이 100을 기점으로 해서 그게 넘으면··. 약간 수준이 비슷비슷해 지거든?” “그게 무슨···?” 정운의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에 한중겸이 말을 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같은 10레벨 차이라도 90레벨과 80레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 90레벨 유저를 80레벨 유저들이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열 명 정도는 있어야 할 거야.” 정운은 선선히 인정했고 한중겸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90레벨의 유저가 100레벨의 유저를 이기기 위해서도··. 역시 열 명, 아니 스무 명 정도는 있어야 할 테고 말이야.” “예.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한중겸은 눈앞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110 레벨의 유저를 이기기 위해서는 100레벨의 유저가 몇 명 정도 있어야 할까?” “·············.”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그 레벨 차이에 의한 격차는 더욱더 벌어진다.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20~30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정운 대신에 대답한 것은 정운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금발의 미인인 세레나였다. 보통 이렇게 끼어들면 예의 없다는 말을 듣기 쉬운데··. 역시 미인이 말하면 뭘 말해도 남자들에게는 먹히는 걸까? 한중겸은 조금도 불편한 기색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답은 1명.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 명이라도 붙어봐야 알지.”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100레벨이나 110레벨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고요?” “차이는 나지. 기본 스팩이라던가···. 하지만 고위급으로 가면 갈수록 아이템의 힘과 유니크 스킬의 힘에 의한 변수의 폭이 워낙에 커지잖아?” “아아·····.” 정운도 그제야 납득이 갔다. 정운도 마음먹고 작정하면··. 혼자서 자신 100명의 몫의 딜을 할 수가 있다. 물론 리스크가 커서 함부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만큼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유니크 스킬의 힘이었다. 하위 레벨일 때는 유니크 스킬이나 유니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스킬이 남아서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더욱더 드물고 말이다. 적어도 100레벨 쯤은 되어야 유니크 스킬이나 유니크 아이템의 레벨이 만렙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이제 진정한 초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제가 김신수와 싸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군요.” 정운의 말에 대답한 것은 그때 함께 있었던 명주호였다. “뭐, 그런거지···. 그리고 당시 놈이 나하고의 싸움에서 상당한 힘을 소모한 것도 있고, 또 네 말대로 놈이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인 수준의 140대 레벨이 아니라는 것도 이유가 있지.”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89화 <최상층으로 가다> 김신수와 직접 싸웠던 명주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납득했다. ‘그래도 100% 상태로 만난다면 아직은 그 미친놈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 하긴, 레벨의 차이가 있으니.’ 좀 더 힘을 손에 넣어야 할 이유가 커지는 정운이었다. 레벨이 100이 넘기는 했지만 아직 멀었다. 정체 불명의 김신수도 마음에 걸리고 당장 난앞에 있는 십왕들 수준 중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자는 한 명도 없지 앟은가? 정운의 얼굴에는 '난 아직 멀었어.' 라는 듯한 표정이 떠 올랐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이보영이 귀엽다는 듯이 말했다. “일단 동생의 지금 힘은 우리에 비해서도 결코 약하지 않아. 뭐··. 대강 주호 오라버니하고 비슷하거나 좀 못한 것 같은데?” “명주호 길드장님하고요?” “그래··. 아, 참고로··. 주호 오라버니하고 수민이 하고는 별 차이가 안 나는데··. 주호 오라버니하고 정철이 오라버니하고는 차이가 좀 나. 6위하고 5위하고는 차이가 좀 크다는 거지.” “·····그런가요?”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 경지에 있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십왕 중에서도 6위부터 10위까지···. 대강 그 정도의 사람들의 문턱 수준? 그 정도 수준에는 도달했다. 하지만 그 위에 다섯 명. 윤정철, 한중겸, 이민지, 박추성, 배대호. 그들에게는 아직도 한참 멀었는 것이다. “사실 정철이 오라버니가 도달한 150대 레벨을 기점으로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뭔가 또 틀어지는 기분이야. 그리고 그 다음으로 대호 오라버니가 도달한 200대 레벨도 뭔가 수준이 다른 것 같고 말이야.” 이보영의 말 대로였다. 100레벨을 넘어가기 시작한 유저들이 보기에 그 이전의 유저들은 대부분 그게 그거다. 강하니 약하니 해도 도토리 키 재기 정도일 뿐이다. 개중에는 정운처럼 80레벨에 유니크 아이템을 손에 넣어서 ‘어쭈? 이 놈 봐라?’ 라고 할 정도의 힘을 손에 넣는 유저는 있어도···. 그래도 100레벨에 도달해서 유니크 스킬이나 유니크 아이템을 만렙까지 찍어 놓기 전에는 차이를 무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100에서 140대 까지는 또 약간씩 차이는 나도 그렇게 절망적인 수준은 아닌···. 일종의 오랜 기간 동안 견뎌야 하는 묘수의 시기인 것이고, 그 후에 200레벨까지는 한중겸이나 이민지처럼 초인의 레벨에 도달한 자들의 힘이다. 그리고 200레벨이 넘어간 자들은···. 뭐 아직 정운으로서는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저번에 비정기 퀘스트에서 한중겸, 윤정철, 이민지. 이 세명하고 같이 있었던 것은 대단히 운이 좋았던 거군.’ 그 셋은 각각 십왕 중에서도 서열이 3,4,5위였다. 즉 십왕 중에서도 한 층 차원이 다른 자들이었으니 정운으로서는 운이 좋았다. 아니···, 사실 그건 운은 아니다. 당시 정운이 있었던 곳에는 삼대 길드도 없었고 상위급 유저도 없으니 십왕들 중에서도 출중한 상위급 세 명이 동시에 왔었던 것이다.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식당을 나갔다. 식당의 식사는 평범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 스러운 식사였다. 그리고 모두가 나가자···. “이런··. 또 이꼴이군.” “어쩔 수 없지만요···.” 식당의 앞에는 마치 연예인이라도 보러 온 것처럼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 있었다. 십왕들이 단체로 마을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온 것이다. “저기 가면 쓴 여자가 이민지지?” “저쪽에 한중겸도 있어.” “저 사람··. 혹시 배대호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나 전에 본적 있어.” 사람들은 십왕들을 보고는 수군수군 거렸다. 사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십왕의 위치는 확고한 것이었다. 뉴 웨이브의 김신수 같은 정체 불명의 이상한 놈이 아닌 이상 십왕에게 도전한다는 미친짓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십왕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 안면이라도 한 번 트고 싶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보통 게임에서도 있지 않는가? 고수가 하수를 이끌어 줘서 편하게 레벨을 올리는 것.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무려 십왕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거의 기연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십왕이라는 소식 하나에 이렇게 군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몰려들었다고 해도 연예인들 사인 받으려는 것처럼 막 밀려오지는 않는다. 자칫 잘못해서 심기라도 거스르면 무섭지 않은가? 몇몇 유저들이 그래도 용기를 내서 쭈뼛거리면서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비켜.” 이보영이 앞으로 나서서 허리에 손을 얹고는 간단하게 한 마디를 했다. 단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유저들의 무리가 모세의 십계가 갈라지는 것처럼 인의 장벽이 갈라져 버렸다. ‘오오오····.’ 정운은 문득 예전에 처음 봤을 때의 이보영이 떠올랐다. 아직 친해지기 전의 그녀는 저런 느낌이었다. 카리스마 있는 여성 리더 같은 느낌? 그런 느낌으로 다른 유저들이 함부로 말 붙이기도 어려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동생이라던가? 언니야 라던가? 그런 말을 하면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은 그녀 자신이 인정한 사람. 혹은 친해진 사람 뿐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는 엄한 누님 포스가 철철 흘러넘치는 그녀였다. ‘태도가 극과극으로 바뀌는군···. 하도 친하게 붙어 있다 보니 잊어버리고 있었어.’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보영이 터 놓은 길을 지나갔다. 드디어 일행은 66층으로 올라갔다. 십왕들은 정말로 오전에 가루라를 잡고 오후에 66층의 보스몹까지 잡을 생각이었다. 66층에 올라가자 그때는 정운이 길 잡이를 하지 않았다. 뒤로 빠져서 얌전하게 십왕들이 안내하는 길을 뒤 따라 갔을 뿐이다. 애당초 66층에는 올라와 보지도 못했던 정운이 길 잡이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지 않은가? 정운은 얌전하게 십왕들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그렇게 가든 정운은 필드에서 뜻밖의 몹을 발견하고 말했다. “저 몹은····? 오크 같은데요? 맞나요?” 정운은 설마 66층에서 오크를 볼 줄을 몰랐다. 지나가던 오크 몹을 보고 말하자 정운에게 가까이 있던 이민지가 대답했다. “아아····. 저거 그랜드 오크라는 거야. 선공몹은 아니지만 건드리지 마. 봉법 원숭이 보다 두 배는 강하니까 말이야.”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과연 66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66층에도 흥미는 있었다. 65층 보다 수준도 높고 그리고 보상이나 경험치도 잔뜩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알아보면 되는 거다. 우선은 67층으로 가기 위해서 이 층의 보스몹을 잡는게 최 우선이다. 십왕들의 안내를 받아서 도착한 곳은 늪지대였다. “여기가 보스몹이 있는 곳입니까?” “그래··. 슬기라고 했지? 넌 내 실드에서 빠져 나가지 마라.” 배대호는 실드를 치면서 슬기에게 경고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슬기는 바짝 얼어서 대답했다. 67층에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녀는 이 중에서 유일하게 100레벨이 되지 않는 하수(?)였다. 여기서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유저인 것이다. “흠···. 찾기 힘드네···.” “오늘은 어디 있는 걸까?” 늪지대에 도착한 십왕들은 주변을 침착하게 살펴 보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으시는 겁니까? 보스몹?” “아아··. 그러고 보니 말을 안 했나? 여기 보스몹은·····.” 애애애애앵····. 그대 주변에서 까마득한 덩어리 같은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오기 시작한 것 같군···.” 십왕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각자 방어 수단을 쓰고는 틀어 밖히기 시작했다. “저건·····? 모기!!!” 정운은 한 박자 늦게 저 까만 덩어리 같은 것의 정체를 알아봤다. 저것은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모기들의 군집체 같은 것 이었다. “물리면 안 돼.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당한 대미지를 주니까.” “····모기가요?” “그래. 그러니까 일단 대호 오라버니 실드 안으로 들어와.” 정운은 일단 이보영의 말대로 배대호가 펼친 보호막의 안으로 들어갔다. 배대호의 보호막을 보고 모기들은 벌때처럼··. 아니 모기때처럼 달려 들었다. “이 놈들의 대장이면··. 어느정도 크기인가요?” “······몰라.” 정운의 말에 대답한 것은 이보영이었다. 그녀의 말에 정운은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모른 다니요? 싸워 봤을 것 아니에요?”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그 자식 그때그때 크기가 변한다고. ·····저 작은 녀석들 중에 있을 수도 있기는 할 텐데···. 어떨 때는 초반부터 크기가 10미터가 넘게 나타날 때도 있어. 일단 발견하고 대미지를 주면 크기가 커지기는 하지만····.” 순간 정운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10미터 짜리 모기라니···.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 별의 별 몹들을 다 봤다. 하지만 10미터 짜리 모기는·····. 생각만 해도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었다. “일단 찾기만 하면 가루라보다 위협적인 놈은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찾아.” 명주호의 말에 정운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요?” “어떻게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십왕들 전원이 정운의 말에 신경질 적으로 외쳤다. 그들도 이렇게 노가다처럼 천천히 살펴보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아!!” 정운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활을 꺼내서 하늘로 겨냥했다. “뭐 하려는···. 안 돼!! 하지 마!!” 정운이 하려는 것을 알고 이민지가 급하게 정운의 행동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천뢰지망!!” 정운의 화살은 하늘로 수직으로 올랐다가 분수처럼 흩어지면서 수백개로 갈라서 떨어졌다. 콰콰쾅!!! 뇌전을 머금은 화살이 사방으로 내려 꽂히면서 지면을 폭발 시켰다. “이렇게 여러개를 맞추면 그 중에 한 개는··· 왜요?” “이 바보가!!!” 정운이 광역 공격기를 써서 보스몹을 찾으려고 하자 이보영이 정운의 머리를 한 대 쿵 쥐어박았다. 그리고 그녀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모기다. 사방 천지가 모기뿐이었다. “칫, 트리플 앱솔루트 실드.” 이대호는 일단 앱솔루트 실드를 세 겹으로 둘렀다. 그리고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말해주는 걸 깜빡한 우리 잘못인데···. 이 놈들은 공격을 받으면 증식한다.” “····증식요?” “그래. 예전에 내가 이 놈들 한테 기가 파이어볼을 먹였을 때에는 수십 키로미터에 걸쳐서 3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기가 새까맣게 뒤덮였었다.” “아아악!!!! 그때 말하지 마요. 신경질 나니까.” “·········.” 이보영은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히스테리를 부렸고 이민지도 가면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결코 기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거기다 심지어는 정운의 편인 줄 알았던 슬기와 세레나도 정운을 지그시 노려봤다. 그녀들의 힐난에 정운은 그저 얌전히 찌그러졌다. ‘그런 놈들인 줄 알았나 뭐···.’ 여자들은 벌레라면 유난히 싫은 모양이었다. 정운은 일단 말을 돌렸다. “그럼. 이 놈을 잡기 위해서는 이 수많은 모기들 사이에서 딱 한 마리 있는 보스몹만을 찾아서 잡아야 한다는 겁니까?” “그래. 참고로···. 찾을 때까지 실드 밖으로 나가지 마라. 덩치는 작아도 공격력이 막강해서 한 대 맞으면 체력이 팍팍 준다.” “거기다 독 속성 추가 공격도 있지.” “그리고 출혈 특성까지···.” 설명을 들어보니 이놈은 어떤 의미로는 가루라보다 더 까다로운 놈이었다. 가루라는 강해서 잡기 힘들었다. 그건 일반적인 보스몹의 경우에도 대부분 상통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 66층의 보스몹. 자이언트 모스키토는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십왕들이 어린애 달래듯이 조심조심하고 있었던 이유를 대강 알 것 같기도 했다. “이 놈 정말 싫어····. 보상도 영 별로고, 거기다 아이템이라고 주는건 정말 허접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보스몹 중에서 최악이야.” 이보영의 투덜거림에 다름 십왕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67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잡아야 할 뿐이었지 그것만 아니면 절대로 잡고 싶지 않은 몹이었다. ============================ 작품 후기 ============================ 가끔씩 레이드 할 맛이 안나는 레이드 몹들이 있죠? 잡기는 어렵고 잡아도 별 성과도 없고... 66층의 몹이 바로 그런 종류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악마의 게임 선작수가 7000을 돌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90화 십왕들의 푸념섞인 설명을 들으면서 정운은 생각했다. ‘찾는게 문제라는 말인데···. 잠깐 그러면···.’ “여러분들 중에 수색 스킬 있는 분은 없습니까?” 정운의 말에 배대호가 마법을 유지한 채로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기는 한데 내건 원거리 스킬이라서 멀리 있는 적을 서치 하는 것은 가능해도, 가까이 있는 작은 적을 찾는 것은 무리야.” 배대호의 수색 스킬은 일종의 천리안 같은 것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멀리 있는 것을 마치 육안으로 가서 보듯이 볼 수는 있었지만 가까이 있는 상대를 관찰하는 스킬로는 별로였다. 다른 사람들은 수색 스킬 자체를 거의 키우지 않았다. 여기서 자이언트 모스키토를 찾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는 적을 꼼꼼하게 찾는 수색 스킬이 필요했다. “제가 한 번 해보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정운도 수색 스킬을 일부러 키우지는 않았다. 수색 스킬 자체가 기습을 하는 몹들이나 함정에 대비하기 위해서 키우는게 보통인데····. 그런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스킬하나를 더 수련하느니 그냥 방어력을 올려두고 스킬 육성은 다른 쪽으로 돌리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정운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에는 수색 스킬이 있었다. 그게 바로 쉐도우 서치였다. “쉐도우 서치.” 정운이 스킬을 사용하자 정운의 그림자가 먹물처럼 지면을 번지고는 사방으로 스멀스멀 확장 되어 갔다. 사방 50미터에 걸쳐서 정운의 그림자가 꼼꼼하게 지면을 뒤덮으면서 적을 서치해가는 스킬이었다. 그림자는 지면의 표면을 덮고 있지만 서치 범위는 지하던 허공이든 상관없다. 정운의 머리속에는 자신의 영역안에 있는 모든것을 마치 2차원의 지도로 관찰 하는 듯한 정보가 생성되고 있었다. “·····찾았다. 쉐도우 스피어!!” 정운이 스킬을 쓰자 지면에서 열 개의 창날이 올라와서 어느 부분을 강타했다. “크에에에!!!”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전신이 붉고 크기가 농구공 정도 되는 모기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타난 것은 아니다. 거기 쭉 있었지만 찾지를 못하고 있다가 공격을 받고 커지자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오오··. 막내가 한 건 했다.” “자네 그런 것 할 수 있으면 진작에 했어야지.” “어쨌든 찾았어. 갈겨!!!” 정운이 자이언트 모스키토를 찾자 다른 십왕들도 단체로 극딜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찾기만 하면 놈은 강한 놈이 아니다. 물론 십왕들 수준에서 봤을 때의 일이었다. 일반 유저들이 보기에는 이 자이언트 모스키토도 충분한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키에에에!!!” 놈은 공격을 받으면서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는 크기가 5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모기로 변했다. “으웩····. 정말 다시 봐도 으웩이다.” 이보영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하는 말은 파티의 모든 여성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콰지직!! 놈은 배대호가 펼쳐 놓은 삼중의 보호막에 거칠게 날아와서 빨대 같은 주둥아리를 꽂았다. 그러자 한 방에 가장 밖에 있는 실드가 부서져 버렸다. “오오···. 제법인걸?” 배대호가 감탄을 하자 이민지가 말했다. “감탄만 하지 말고 빨리 해치워요!!!” “알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민지의 말에 배대호는 허공으로 두둥실 떠 올라서 그 혼자 실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괜찮은 건가요?” 정운이 걱정 스럽게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명주호가 손가락으로 허공의 배대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말했다. “괜찮냐고? 누구? 저 사람이?” “예. 뭐, 다른 사람이 또 있나요?” 정운의 말에 명주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라운드 제로 최전선에 활약하고 있는 최강자 십왕···. 말은 거창하지.” “··········.” 명주호는 말을 잠시 끊었다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저 사람하고 내가 같은 수준으로 불리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넌센스야.” 명주호가 그렇게 말을 한 순간 배대호가 하늘 위에서 자신의 유니크 스킬을 쓰기 시작했다. “········????? ????? ?????? ???. ??????? ??? ????? ???.” 배대호가 영창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주변에 구형태의 마법진이 생기면서 그의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대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저·· 저건 뭐에요?” 정운은 배대호가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뭔지는 몰라도 저것은 이제까지 정운이 알고 있는 메이지들의 공격 마법과는 달랐다. 그런 정운의 놀라움을 보고 옆에서 이민지가 말했다. “배대호··. 저 사람은 말이지. 진짜 천재야. 그리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 유일한 진짜 마법사지.” “····진짜 마법사?” 정운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자 이민지는 부연 설명을 덧 붙였다. 배대호.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시기는 일제 강점기였다. 현재 유저의 생존자 중에서는 박추성과 같이 최고 고참급이다. 그가 이 게임에 들어왔을 무렵에는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게임의 공략 과정에서 이제는 모두 없어져 버렸다. 그 보다 일찍 들어와서 남은 것은 십왕의 일인인 박추성 뿐이었다. 어쨌든 이 남자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남자가 어마어마한 천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통 천재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유명한 책사나 우수한 정치가처럼 지혜가 뛰어난 타입. 그리고 뛰어난 학자들처럼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하는 것에 뛰어는 타입. 배대호는 후자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차별받는 와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정도로 우수한 천재였다. 그런 그가 어떤 이유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본인이 그 과거에 관해서 입을 꼭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메이지로서 그라운드 제로에 살면서 선택한 것은 마법의 연구였다. 보통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른 메이지들이 마법을 쓴다는 것은 스킬을 쓴다는 것이다. 팔을 움직이거나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지극히 단순한 선택과 실행일 뿐이었다. 그 중간 과정에 있는 캐스팅이나 룬의 수열 등은 오로지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슬기를 비롯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메이지들이 그렇게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로지 이 배대호라는 남자만이 그 마법을 그냥 막 사용하는게 아니라 연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법을 쓸 때 마다 영창되는 주문, 마법의 흐름, 마법진의 형태 등등···. 마치 고고학자가 처음 보는 상형문자에서 의미를 해독해 내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연구하고 연구했다. 당시 다른 유저들은 그런 배대호의 모습을 보고 저게 뭐 하는 삽질이냐고 비웃었다. 그들이 보기에 배대호가 하는 짓은 이상한 짓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배대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가 선택한 결과를 믿었다. ‘인과율.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이 마법이라는 것에는 분명 법칙과 원리가 있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법의 연구에 더욱더 시간을 몰두했다. 사냥은 꼭 필요한 정도로만 하고 오로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마법이라는 매커니즘을 해석하는 것에 주력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20여년···. 2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고작 30대의 레벨을 유지하던 배대호는 어느 날 갑자기 본격적으로 사냥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눈부셨다. 한 달 만에 20층에서 당시 최상층이던 40층까지 주파해 버린 그의 행동은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마법을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의 원리를 더해서 마법의 위력을 증폭 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천재. 그것도 학문적 습득과 해석에 특화된 진정한 천재인 것이다. 에디슨보다는 아인슈타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런 남자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흐를수록 그는 마법에 심취했고 지금에 와서는 십왕들 사이에서 그라운드 제로 유일의 진정한 마법사라고 불리고 있었다. 마법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마법이라는 스킬을 사용하는 유저가 아니다. 마법을 이해하고 마법을 사용하는 진정한 마법사인 것이다. “·····괴물 이군요.” 배대호에 관한 설명을 다 들은 정운에게는 이 한마디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달리 무슨 말을 할까? 스킬화 된 마법을 해석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니?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게임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저 남자는 그 시스템의 틀을 벗어났다. 일종의 버그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드디어 마법을 사용했다. “라이트닝 블리자드!!!” 그가 마법을 사용하자 극한의 툰드라를 연상시키는 눈보라와 동시에 뇌전의 다발이 동시에 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 자이언트 모스키토는 그 눈보라로 인해서 전신이 꽁꽁 얼어붙었고 그 상태로 계속해서 뇌전의 다발을 얻어 맞았다. “웃······.” 정운은 눈이 부실 정도의 공격을 보면서 새삼 생각했다. ‘이게 십왕의 NO.2. 그라운드 제로 최강의 마법사···.’ 왜 이 사람이 십왕 중에서도 격이 다르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정말 규격외다. 그렇게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몇 분에 걸쳐서 눈보라와 뇌전이 몰아치고···. 자이언트 모스키토는 마법에서 벗어날 틈도 없이 그대로 한 방에 쓰러져 버렸다. 아무리 보스몹 치고 본연의 강력함은 떨어진다. 라고 해도···. 중간에 옐로우 크리스탈은 고사하고 레드 크리스탈 한 번 뜰 틈도 없이 한 방에 절명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정운의 창에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창이 떴다. 띠리링!! [67층으로 올라갈 권리가 생겼습니다.] “····됐다···.”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 5년이 조금 넘은 무렵···. 정운은 드디어 최상층의 유저가 된 것이다. 최상층 유저의 특권 하나. 십왕들과 마찬가지로 최상층의 거주구. 이른바 스카이 타운이라는 곳으로 주거구가 바뀌는 것이었다. 처음 이 마을을 와 보고 정운은 상당히 놀랐다. 원래 있던 마을에서 살 때 정운은 생각했다. 이 마을에는 없는게 거의 없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정운이 이 최상층 거주구인 스카이 타운에 와보지 못해서 생각하는 말이었다. 우선 여기에 오기 전에 설명만 듣고 가장 놀란 것은 그 크기였다. 유저라고는 열명 뿐이고 나머지는 다 NPC인 주제에 크기는 이전에 살던 마을 보다 10배는 더 크다고 했다. 그리고 스카이 타운에 도착한 후에 그 놀라움은 더욱더 커졌다. 일단 마을의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이 마을의 분위기는 좀 더 근대적이었다. 딱 봐도 21세기다. 라는 느낌이 진하게 드는 완전 도시였던 것이다. 과거에 있던 마을은 현대의 유럽풍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될 수 있는한 중세 풍의 건물을 많이 남겨두고 거기에 꼭 필요한 현대식 건물만 남긴 형태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여기 이 마을의 건축양식은 전혀 달랐다. 가 본적은 없지만 뉴욕의 맨하탄 거리가 이런 모습일까?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현대적인 것이었다. 마을에는 택시에 버스 그리고 지하철까지 있었다. 그리고 NPC들의 숫자가 이전에 있던 마을보다 훨씬 더 많았다. 정운은 잠시 살펴 보다가 어째서 그런 차이가 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전의 마을에서 NPC들은 꼭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만큼만 있었다. 상점에서 물건을 팔기 위한 NPC. 길 안내를 하기 위한 NPC. 거리를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한 NPC. 그렇게 딱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만큼만 있었고, 그들은 정해진 행동 원리의 틀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거리를 보면 각자 자기 어디론가 볼일을 보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NPC들이 굉장히 많았다. 심지어는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는 것 같은 NPC들부터 벤치에 앉아서 비둘기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NPC까지···. 여기가 그라운드 제로라는 것을 몰랐다면 지구로 돌아올 줄 알았을 것이다. 정운은 한참을 거리를 구경하다가 일단 집으로 가기로 했다. “정운씨. 우리 집이 어디죠?” “십왕들이 단체로 거주하는 아파트가 있데. 거기에 우리 집을 사뒀다고 하더라. 가자.” 십왕들은 오랜만에 자신들의 거주구에 막내가 들어왔다고 나름 선물을 준비했다. 그게 바로 앞으로 정운이 살 집이었다. ============================ 작품 후기 ============================ 최상층의 거주구인 스카이 타운은 뉴욕풍의 현대적인 대도시입니다. 유저는 적지만 인구도 많죠. 정운들의 체감으로는 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촌놈들 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91화 <스카이 타운.> 눈이 팽팽 돌아가도록 바쁘고 현란해 보이는 화려한 대도시 스카이 타운. 십왕들은 이 화려한 시가지에서도 가장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생각날 정도로 멋진 아파트는 그 높이만 해도 300층에 달했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쇼핑몰에 수영장, 헬스장, 온천, 스파, 그 외에도 기타 등등···. 한 마디로 정리해서 없는게 없었다. 그런 건물의 최상층인 300층부터 290층 까지를 십왕들이 전세내서 쓰고 있었다. 한 층에 한 명씩이었다. 십왕들은 그 중에서 289층을 통째로 사서 정운들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일단 거처를 구하기 전에는 한동안 여관이나 호텔에서 생활할 생각이었던 정운으로서는 고마운 호의였다. 어쨌든 첫 목적지는 그 새로운 집이었다. 정운은 일단 지도를 보면서 찾아갈 길을 찾았다. “저쪽으로 가야 하는데···. 걸어가기는 좀 머네. 흑토를 타고 갈까?” “그게 좋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일행이 말을 꺼내서 타고 가려고 하는데···. “어머? 저기 좀 봐.” “말? 도심에서 왠 말?” “입고 있는 복장도 좀 이상한데? 왜 저렇게 입고 있지?” 주변의 사람들이 정운의 일행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듯이 수근 거렸다. 순간 정운은 얼굴이 화끈 거렸다. 오랫동안 그라운드 제로에 살면서 한 몸처럼 익숙해진 갑옷과 망토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캐주얼 아니면 슈트 혹은 츄리닝 차림인데 자기들만 이러고 있으니 어디 코스프레 회장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장 해제하고···. 택시 타고 가요.” 얼굴을 사과처럼 은은하게 붉힌 슬기의 말에 정운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튀는 행동을 했을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생물이다. 이런 대도시에서 자기들만 갑옷입고 말 타고 간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행위였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정운은 정말 택시 오랜만에 탄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과학적인 문명의 해택이 과거에는 당연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새롭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역시 사람은 없어져 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는 말이 맞는 말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정운은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손님. 이런 것 말고 돈으로 주셔야죠.” “····어?” 정운은 택시 기사가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속으로 불길한 예상이 들었다. ‘혹시···. 여기는 화폐가 다른 건가?’ 그렇다. 정운은 몰랐겠지만 이곳 스카이 타운에서 쓰는 화폐는 현실과 같은 느낌의 지폐로 이뤄져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통화는 골드고 실버가 맞다. 하지만 저층처럼 동전으로 되어 있는게 아니라 지폐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버 밑에 있는 쿠퍼만이 동전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20실버 50쿠퍼. 빨리 주세요. 미터기 계속 돕니다.” “············.” “············.” “············.” 꿀 먹은 벙어리 셋만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일단 고위급 유저인 정운이다 보니 쿠퍼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보통 실버도 잘 안가지고 있는데 귀찮게 쿠퍼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저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집에서 지갑 좀 가져 올게요.” “예?” 정운의 말에 택시 기사 아저씨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듯이 불만있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돈이 없다는 데 말이다. 정운은 일단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아파트로 올라가서 십왕들 중에 아무나 좀 친한 사람에게 택시비를 빌리려고 했다. ‘아무래도 한중겸씨나, 아니면 이보영 길드장님 정도가 좋겠지···.’ 다른 십왕들과는 택시비 빌릴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게 둘 중에 한명이라도 빨리 발견하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는 정운은 올라가는 와중에 로비에서 찾던 사람을 찾았다. 바로 이보영 길드장을 만난 것이다. 그녀는 밑에서 운동이라도 하고 왔던 걸까? 간단한 추리닝 차림에 손에는 탈의용 스포츠 백이 들려 있었다. 정운은 그녀를 보고 반갑게 말했다. “아!! 이보영 길드장님.” “동생. 빨리 왔네.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렇게 헐레벌떡?” “죄송합니다. 좀 빌려 주세요.” “··········.” 이보영의 얼굴이 그렇게 벙 찌게 변하는 것은 처음 보는 정운이었다. 택시비 트러블을 해결하고 나서 이보영은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깔깔 웃었다. “하··· 하하···. 그래서 말 타고 여기로 오려고 했어? 한 번 해보지 그래? 인터넷에 대도시 기갑무사. 라고 하면서 오를걸?” “웃지 마세요··. 응? 그런데 인터넷?” 정운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말하는 인터넷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녀는 신나게 웃었는지 자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아, 여기는 인터넷도 있고, 방송국도 있고, 스마트 폰도 쓸 수 있어. 단···.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 “아····.” 정운은 그녀의 말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버렸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애당초 그라운드 제로와 외부 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외부와 연결이 되겠는가? “그래도 제법 괜찮아. 여기 NPC들도 재미있는 프로들 많이 만들어 주거든. 외부에서 온 너희들이 보기에도 아무런 부족함 없을 거야.”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 스카이 타운의 NPC들은 자신들이 NPC라는 자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먹고 살고 자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 모든 것을 한다고 한다. “····만약 네가 NPC라고 자각을 한다면 어떻게 되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강제로 포탈 밖으로 끄집어 가기라도 한다면?”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응. 으음····. 몇 번 해보기는 해 봤는데 말이야···. 보통 미쳐 버리더라고. 대부분 마지막에는 자살해 버리고 말이야.”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멀쩡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그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고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 인물 전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대상은 심상치 않은 쇼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에는 자신을 놔 버릴지 모른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사실을 버틸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인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정도는 한계선이 그어져 있을 것이다. 악마들이 이 NPC들을 만들면서 세계의 진실을 인식한 자들은 스스로 죽는다. 라는 정도의 프로텍터는 걸어 뒀을 것이다. “우리도. 여기 주민들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실험을 많이 해 봤어. 주민들을 상대로 아이템을 지급하면서 싸우게도 해 봤고···, 그리고 우리가 범죄자가 되어서 지명수배자까지 올라가 보기도 했지. 하지만 결과는···.” “결과는요?” “이 세계는 일정 이상을 넘어가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가 버려. 마치 백업된 자료로 PC의 하드를 복구하는 것처럼 말이야.” “철저한 방관자들이란 말인가요?” “그렇지. 우리가 뭘 하든. 어떻게 하든 이들은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지 않아. 그저 우리와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는 주민들일 뿐이야.” “·············.” 정운은 미묘한 감각이었다. 이 세계의 주민, 이제는 NPC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졌다. 그들을 자신이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애매해 졌다. 이들은 정운에게 있어서 일정 거리를 두고 철저하게 타인으로서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들을 사람으로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는 좀 애매했다. 결국 정운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만뒀다. 굳이 그들에 대해서 정의를 하지 않아도 이미 정운의 곁에는 슬기가 있다. 그녀의 체온이 있다면 인간인지 아닌지 정의하기도 애매한 자들에게 정을 갈구할 일은 없었다. “자, 그럼 올라갈까? 너 보자고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정운은 이보영의 말에 따라서 가장 윗층으로 올라갔다. 이 건물의 가장 최상층. 300층의 거주자인 십왕의 최고 일인이자. 그라운드 제로 최강의 인물. 박추성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어서와라. 내가 박추성이다.” “····아, 박정운입니다.” 정운이 처음으로 박추성을 보고 받은 느낌은 무척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과 아저씨의 중간 쯤에 있는 남자. 그냥 성인 남자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느낌의 남자였다. 그는 정운을 보고는 태연하게 악수를 하고는 쇼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했지? 5년?” “예. 그렇습니다.” “천재로군···. 내가 그때쯤에는 아직 40층대에서 빌빌 거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운이 좋았습니다.” 정운은 그냥 운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박추성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위로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배팅하는 도박을 수도 없이 하지 않고는 불가능 하다. 정운이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서 어떤 수라장을 겪었을 지는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앞으로 최상층에서 자주 보겠지. 잘 해보도록 해.”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같이 플레이 하면서 한 번 이끌어 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 정운이 먼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원래 정운 자체가 그런 부탁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 앞에 최강이라는 남자가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런 청탁이 들어갔다. “뭐···, 언젠가는 한 번 해 보지. 요즘 필드에 나가 본지가 좀 돼서 말이야.” “·············.” 정운은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추성의 말은 거절도 허락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뭔지 모를 위화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때의 정운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박추성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난 후에 정운은 150층 연회 홀을 통째로 빌린 곳에서 십왕의 풀 멤버를 모두 처음 만났다. “동생 어서 와. 여기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지. 내가 소개해 줄게.” 정우니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보영이 앞으로 나서서 정운을 이끌어 줬다. 정운과 슬기, 그리고 세이라는 이보영이 소개해 주는 대로 사람들과 만났다. “여기는 주경택. 알다시피 타란툴라 길드의 부길드장이야.” “주경택이다.” “박정운입니다.” 정운과 주경택은 서로 무뚝뚝하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경택은 정운을 제쳐 두고···. “주경택입니다.” “예···. 이슬기입니다.” “세레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가씨들.” 그는 정운은 안중에 없고 슬기와 세레나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마음에 안 들어.’ 정운의 안에서 주경택의 평가도가 약간 마이너스로 내려갔다. 그 다음에 이보영이 데려간 것은 그녀의 친 동생인 이지영이었다. 이보영 본인하고 쏙 닮은 그녀는 쌍둥이 여동생이었지만 활발한 언니와는 달리 무뚝뚝하고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보영은 그녀를 정운에게 소개했다. “애는 내 동생인 이지영. 어때? 나하고 많이 닮았지?” “예··. 저는 박정운입니다.” “············.” 이지영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내민 손이 머쓱해진 정운에게 이보영이 등을 팡팡 두드리면서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원래 내 동생이 좀 부끄러움을 많이 타. 특히 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더욱더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후에 슬기와 세레나에게도 그냥 무시로 일관하는 것을 봐서는 그다지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냥 무뚝뚝할 뿐인 것인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 여기 김수민씨. 수민씨. 여기는···. “알아. 만나서 반갑다. 나 김수민이다. 그냥 앞으로 너도 우리 식구가 됐으니 부를때는 그냥 수민이 형님이라고 불러라.” “예. 알겠습니다. 형님.” 정운은 처음으로 기분 좋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타란툴라의 길드장인 김수민은 상당히 호탕한 성격인 것 같았다. 그는 웃는 얼굴로 정운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어? 나머지는 다 아는 사람인가?” “예. 일전에 이런저런 일들로 모두 만나본 분들입니다.” “헤에···. 동생 생각보다 인맥 넓었구나. 어쨌든 이제 자기 소개는 다 끝났으니···. 먹고 마시자.” 이보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분위기를 띄워갔다. 200명은 넘게 수용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연회 홀. 그 안에 모인 인물은 고작해야 13명 뿐이었다. 약간 썰렁한 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끼리 친목을 다지기에는 충분한 장소였다. 뭐, 그런 것은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까 무뚝뚝하게 보였던 이지영은 금방 자리를 피했고 그녀가 나가자 윤정철과 이민지도 자리를 비웠다. 그들은 애당초 별로 이런 떠들썩한 장소는 취향이 아닌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일행들 사이에서 술이 올랐을 때 이보영이 말했다. “동생, 앞으로 필드에 나가려면 어떻게 할 거야? 여전히 팀으로 움직일 거야?”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92화 이보영의 말은 은근한 파티 제안이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의도를 알았지만 살짝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예. 뭐···. 일단 하는데 까지는 그래 보려고요.” “흐음···. 67층은 많이 위험할 텐데····. 그러지 말고 한 동안은 나하고 같이 가는게 어때?” 정운의 레벨은 102. 이보영의 레벨은 110이다. 레벨만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녀에게는 다년간 67층에서 플레이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녀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 순탄하게 플레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도움이 필요할 때는 꼭 부탁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할 수 있는 한은 혼자서 해 보려고요.” “에에···? 정말? 나 섭섭 하려고 하는데.” “워낙에 우리끼리 하는 버릇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칫, 나중에 도와 달라고 징징 울어도 난 몰라···.” 이보영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는 나 지금 삐졌다. 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토라졌다. ‘곤란한 사람이군····.’ 정운은 그냥 쓰게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그냥 겉으로 그럴 뿐이라는 티가 팍팍 나서 별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그라운드 제로에 있었고 나이가 상당할 터인데···. 그래도 저렇게 귀엽게 투정을 부리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의 외면은 내면의 정신에 끼치는 영향이 다소 강한 것 같았다. ‘뭐, 명주호씨처럼 나이 먹은 티를 팍팍 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 명주호가 정운에게 하오체나 자네라는 말을 쓸 때면 어쩐지 애 늙은이 같아서 그다지 어울린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삐진 척을 해도···. 혹은 실제로 삐진다고 해도 정운은 쉽사리 다른 사람들하고 호흡을 바로 맞출 생각은 없었다. 물론 정운도 알고 있다. 67층에 올라온 이상 십왕들의 도움은 이미 필수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박충호에게 파티로 한 수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지도 않았던가? 하지만 박충호와 달리 이보영은 뭐랄까···. 계속 붙어 있다 보면 슬기가 좀 예민해 진다. 라고 할까? 딱히 슬기가 뭐라고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같이 사귄 시간이 있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상으로 어느 정도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십왕들과의 레이드 중에는 될 수 있는한 자중 시키고 있었지만···. 정운에게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세레나의 존재였다. 67층의 필드를 직접 겪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레벨 80대의 메이지인 슬기가 통할지 안 통할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려웠다. 뭐, 적어도 회복 계열에는 쓸모가 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레나··. 십왕들에게 주목 받게 하기 싫어서 레이드 중에는 얌전하게 있게 했지만 그녀 역시 100레벨의 고위급 유저(?)였다. 그녀와 정운이 힘을 합치면 크게 위험한 짓만 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일단은 스스로 하자···. 십왕들에게 힘을 빌리는 것은 나중에 해도 돼.’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운의 첫 환영회는 서서히 끝나갔다. 스카이 타운에서의 첫날 밤.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작은 한 숨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후우···.” 그리고 그런 정운의 한숨 소리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바로 슬기다. 애당초 한 침대에 한 이불 덥고 있으면서 그녀의 귀에 안 들어갈 리가 있는가? 슬기는 정운을 바라봄녀서 말했다. “무슨 생각해요?” “아··.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정운은 자신의 한숨에 눈을 살며시 뜨는 슬기를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둘은 이불속에서 서로 몸을 기대고는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이미 식만 올리지 않았다 뿐이지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었다. 넓은 집에 방만 해도 열 개가 넘었지만 둘은 자연스럽게 한 방에 자신들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는 혼자서 밤을 보내는 것이 더 어색하진 둘이었다. 정운은 슬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녀를 향해서 말했다. “내가 걱정시킨 건가?” 정운의 말에 슬기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고민 있으면 혼자서 짊어지지 마요. 내가 당신 곁에 있잖아요.” 슬기의 말은 아양도 허세도 아니었다. 둘 사이에 쌓인 굳건한 믿음의 근거였다. 슬기가 정운을 의지하고 믿는 것처럼···. 정운에게도 슬기는 힘이 되는 존재였다. 그냥 레벨 80대의 메이지로서의 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슬기라는 연인이 있음으로 해서 정운은 날카로운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일상 속에서도 평안을 얻고 인간다움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정운도 알고 슬기도 안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다거나 빚을 지우고 있다거나···. 둘은 더 이상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대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이상적인 부부 같은 관계였다. 그랬기에 정운도 처음에는 좀 망설였지만 결국은 솔직한 자기 속 마음을 털어 놓았다. “음·····. 약간 67층에서의 플레이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될 거야. 그보다 어때? 이렇게 주변 분위기가 싹 바뀌었는데 한동안 좀 쉴까?” “쉰다고요?” “응. 여기서 라면 정말 평범한 데이트도 가능하잖아? 영화 보고 식사하고, 카페에서 한가롭게 시간도 같이 보내고···. 어때?” 이전의 마을도 좋은 곳이었지만 어쩐지 중세 유럽풍의 분위기가 강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역시 장시간 살고 있노라면 현대의 생활에 익숙한 정운이나 슬기에게는 위화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 최상층의 스카이 타운에 오고 나서는 완전히 현대식 삶이 가능해진 것이다. 오랜만에 이런 분위기 속에 젖어 있다가 보니 어쩐지 조금 그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졌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랄까? 여기가 대한민국은 아니지만 생활 배경이나 수준이 비슷하다 보니 향수같은 느낌이 살아나고 있었다. “·····좋아요.” 사실 슬기도 마찬가지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운의 말에 빙긋 웃으면서 순순하게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의 품안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었고 정운은 그런 그녀를 두 팔로 안았다. 둘은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따뜻하게 잠들었다. 다음날. 정운은 슬기와 밖에 나와서 이런저런 일들을 먼저 처리했다. 우선 십왕들의 조언대로 이 스카이 타운에서 살기 위해서는 여기서 쓰는 화폐가 필요했다. 당장 사냥이라도 가서 벌어야 하나? 라고 생각했던 정운이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은행에 가서 정운이 인벤토리에 가지고 있던 돈을 환전하자 간단하게 화폐를 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 계좌를 예치하고 현금카드와 신용카드까지 만들고 나자 이제는 이 스카이 타운에서 살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졌다. “당장 어디 가볼까? 가보고 싶은곳 있어?” 은행을 나오면서 정운이 말하자 슬기는 곰곰하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제 우리 집에서 보니 한강처럼 제법 큰 강이 흐르고 있었죠? 우리 유람선 타요.” “좋아.” 대한민국에서 슬기가 남자하고 유람선 데이트를 하면 바로 파파라치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 그것도 유저는 거의 없는 이 스카이 피아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아니···, 완전히 문제없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녀의 외모가 상당히 튀는 수준이다 보니 지나가던 시민들····. 특히 남자들의 시선을 마치 진공청소기 처럼 빨아들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 말고는 평범한 커플로 데이트를 하는 것에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정운은 슬기의 바람대로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돌기로 했다. 코스별로 시간대가 다양했는데 긴 코스는 2박 3일동안 꼬박 배를 타고 돌아야 하는 코스도 있었다. 이 스카이 타운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쩐지 어제 집에서 야경을 볼 때도 지평선 너머까지 건물의 끝이 안 보였지.’ 어쩌면 지구의 가장 거대한 도시인 뉴욕 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운은 그런 긴 코스도 좋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세레나가 걱정 할 수도 있다는 슬기의 말 때문에 간단하게 두 시간 짜리 코스를 잡았다. 배는 제법 큰 배로 안에 들어가니 호화 유람선처럼 설비가 화려하게 되어 있었다. 작은 선상 파티가 가능할 정도로 출중한 장비가 갖춰진 배 위에서 슬기는 갑판의 위로 가서 맞바람을 맞으면서 양 팔을 활짝 벌렸다. “아아····. 차가워서 기분 좋다······.” 그녀는 배 위에서 선선한 가을바람을 느끼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정운이 그녀에게 가서 외투를 살짝 벗어서 덮어주면서 말했다. “감기 들어.” “그라운드 제로에서요?” “·········.” 슬기의 핀잔에 정운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기본적으로 수명이 없는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유저들이었다. 사냥중에 부상으로 죽거나 유저간의 PK로 죽을 수는 있지만 그 이외의 원인으로 죽는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감기에 걸릴 리가 없었다. 머쓱해하는 정운에게 슬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고마워요···. 굉장히 따뜻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의 팔에 살짝 자기 팔을 끼워서 몸을 기댔다. 그렇게 분위기 좋은 둘은 생각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1년 동안 정운은 정말 열심히 플레이했다. 당초에 세웠던 할당량으로 인한 플레이는 이미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점점 강해져가는 파티원들의 실력에 맞게 목표를 계속해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십왕들이 65층까지 사냥터를 개방했던 이유는 열심히 사냥 했을 때 100레벨을 넘을 최소한의 조건이 되는 필드가 거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삼대 길드의 간부들은 그런 십왕들의 뜻을 모르고 거기에 안주하면서 전체적인 전력의 상승만을 꿰하고 있었다. 평균 레벨은 꾸준하게 올랐지만 십왕급으로 스스로 성장하겠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오로지 정운만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고, 불과 1년 만에 100레벨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정운을 따라 다니면서 슬기에게 쉬는 시간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둘 다 이런 느긋한 시간은 오랜만이라서 서로 함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포근해 졌다. 둘은 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다음에 선착장에서 내렸다.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지?” “글쎄요. 무작정 오기는 왔는데···.” 타는 장소와 내리는 장소가 다른 수상 버스를 탓기 때문에 둘은 여기가 어딘지 몰랐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니 둘은 적당히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주소는 있었고 그리고 오늘 막 구입한 스마트 폰도 있었다. 이러면 길 잃어버리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둘은 집으로 돌아가는 교통편을 검색했다. “지하철 타면 제일 빠르게 갈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해요.” “그래··. 아! 밥 먹고 갈까? 근처에 식당이··.” 정운이 근처의 식당을 찾으려고 했지만 슬기는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가요. 저 하고 싶은게 있어요.” “하고 싶은 것? ····아직 해 지려면 좀 남았는···. 아얏!!” 슬기의 말에서 엉큼한 생각을 하던 정우는 옆구리의 꼬집힘으로 응징 당했다.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집에 가요.” “알았어.” 정운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슬기하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정운은 문득 차를 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직장에 출근할 것도 아니고 지리도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차가 있으면 여차 할 때 편리할 일이 많았다. ‘한 번 생각해 봐야 겠네.’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정운과 슬기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자 슬기는 정운에게 말했다. “저 잠깐 어디 좀 들렸다 갈게요. 그러니 정운씨는 먼저 집으로 올라가요.” “같이 안 올라가고?” 정운이 섭섭하다는 듯이 말하자 슬기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 가요. 금방 따라 올라갈게요.” 결국 정운은 슬기보다 먼저 집 위로 올라갔다. ============================ 작품 후기 ============================ 바쁜 일상 속에서 살짝 쉬어가는 일상편도 가끔은 들어가야죠. 앞에서도 말했지만 완급의 조절은 작품을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입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고기만 먹으면 금방 질리지만 신선한 야채를 같이 먹으면 오랫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는것과 같은 원리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93화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레나가 거실의 쇼파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정운의 감이었지만 세레나는 TV라는 문명을 처음 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는 주로 음악 프로나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편이었다. 그녀를 보고 정운은 문득 인사를 하려다가 그만 뒀다. 왜쟈하면····. “자네····.” 아마도 TV를 보다가 쏟아지는 졸음에 그대로 항복한 모습인것 같다. 세레나가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은 어지간하지 않으면 구경하기 힘들었다. 워낙에 빈틈이 없는 그녀라서 더욱더 그랬다. 정운은 문득 옆에서 그녀의 잠든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 남자들마다 여성의 좋아하는 표정이 있다. 웃은 미소, 새침한 얼굴, 취향에 따라서는 냉엄하게 자신을 내려다 보는 여성의 표정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정운은 그런쪽 취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정운에게 한 가지 뚜렷한 취향이 있었다. 바로 잠든 여성의 얼굴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특별 한 취향은 아니다. 정운 말고도 평화롭게 잠든 여성의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수 있다.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표정을 싫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의 없을 정도다. 평화롭고 고요한 그런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자신의 기분도 안정적으로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여성이 그런 얼굴을 보여주는 대상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처럼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런점에서 상대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구나. 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끔씩 슬기와 사랑을 나누고 그녀가 새근새근 잠들었을 때는 질리지도 않고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세레나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정운의 얼굴은 슬기를 바라보는 얼굴과 완전히 똑같아 져 있었다. 스윽···. “음!! 마스터.” “아! 깼어.” 자신도 모르게 뻗은 손길에 감각이 예민한 세레나가 깨 버렸다. 그러자 정운도 황급하게 정신을 차렸다. 재빨리 손을 치운 정운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무슨 짓을····.’ 잠에서 깨어난 세레나는 잠의 여운 따위는 없는 것처럼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정운에게 똑 부러지는 태도로 말했다. “오셨습니까 마스터.” 그렇게 말하는 세레나의 모습에서는 막 잠에서 깨어났다는 흐트러짐이나 방심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녀 답다고 해야 할까? 그런 그녀에게 정운이 지갑을 건내면서 말했다. “그래 다녀왔어. 여기 당신 몫의 카드와 지갑 그리고 현금도 좀 넣었어..” “감사합니다. 마스터.” “별 것 아니야. 그리고 내일부터 한 동안 도시 안을 좀 돌아보고 익숙해져. 우리도 한 일주일 간은 쉬려고 그래.” “휴식기를 가지실 생각입니까? 마스터.” “그래. 한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렸으니···. 그 정도의 휴식은 취해도 괜찮겠지.” “저는 마스터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충직한 기사의 모습과 같은 형태로 정운에게 고개를 정중하게 숙였다. 그리고 정운이 세레나와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문이 열리고 슬기가 들어왔다. “정운씨. 배 많이 고파요?” “응? 아니··. 어? 슬기 네가 요리하려고?” 정운은 들어오는 슬기의 양손에 이런저런 요리 재료들이 잔뜩 있는 것을 보고는 살짝 놀랐다. 아마도 그녀가 직접 요리를 차리려는 것 같았다. ‘날 먼저 올려 보내고 이 건물 상가에 가서 장을 봐온 건가?’ 정운의 예상은 정확했다. 슬기는 부엌에 가서 웃는 얼굴로 재료를 풀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예. 많이 고픈 것 아니면 잠시 기다려요. 제가 밥 차리려면 시간 좀 걸릴 거예요.” “얼마든지 기다리고 말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 생각해 보니 슬기가 만든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는 정운의 저택에서 가사 전반을 해주는 훌륭한 메이드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가사 전반은 물론이고 요리도 훌륭해서 최고급 호텔의 쉐프들이 부럽지 않은 훌륭한 요리사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슬기가 감히 나서서 뭔가 요리를 하고 말고 할 틈이 없었다. 아마도 요리 실력이 비교 당할까 싶어서 스스로 부끄러움에 자재했는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 중에는 요리 못한다는 것이 상당한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여자들이 종종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집에는 메이드가 없다. 최근 며칠간은 정운이 외부에서 간단하게 시켜 먹거나 외식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정운이 곧 가사 메이드들을 다시 고용하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는 없는 것이다. 그녀가 손수 요리를 해서 정운에게 대접 하려면 말이다. 처음으로 정운에게 자기 요리를 차려주는 슬기는 의욕이 바짝 올랐다. 그리고 역시 처음으로 슬기의 요리를 먹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정운은 기대가··· 바짝 오르지는 않았고 반만 올랐다. 나머지 반은 걱정이었다. ‘괜찮은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벌칙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멀리서 언 듯 지켜보니 슬기는 연신 인터넷의 요리 레시피를 확인하면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식칼 써는 소리도 탁탁탁탁탁이 아니었다. 탁······. 탁······. 탁······. 이런 느낌이었다. 위의 증거로 볼때 결과는 나왔다. 슬기가 요리에 능숙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레시피대로 정직하게 만들면 크게 못 먹을 것은 없지 않은가? 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잠시 후···. “정운씨, 세레나, 다 됐어요. 식사 해요.” 슬기는 식탁에 자기 요리를 모두 차리고는 정운과 세레나를 불렀다. 정운이 식탁에 가보니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공들여서 만들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밥상이 있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와 함께 몇 가지 나물 반찬에 윤기가 잘잘 흐르고 있는 콩밥이 있었다. “헤에···. 잘 만들었잖아?” “몇 가지 실패 한 건 버렸어요. 다음에는 좀 더 잘 해 볼게요.” 슬기는 살짝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고 정운은 안심하고 앉았다. 일단 척 봐도 버라이어티 벌칙 급의 요리는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만화도 아니고·····.’ 레시피 대로 만들면 크게 망하지는 않는게 요리다. 뭐, 그래도 몇 개 망쳤다는 것은 아마도 간을 잘못 봤다거나 불 조절을 잘못 해서 태웠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쨌든 이정도면 충분했다. 가사 메이드들이 만든 최고 레벨의 요리는 아닐지라도 사랑하는 연인이 만들어준 요리에는 그 나름의 애정이 깃드는 법이다. 정운은 먹성 좋게도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어쩌면 당초에 가지고 있던 불안감이 워낙에 커서 평범한 수준에 턱걸이 한 슬기의 요리가 상대적으로 맞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잘 먹었어. 설거지 도와 줄까?” “그냥 있어요. 금방 끝나요.” 슬기는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서 설거지를 마치고는 정운과 세레나가 있는 쇼파의 테이블로 과일을 몇가지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과도로 사과의 껍질을 깎아 가는데···. “음·····.” 아무래도 칼 쓰는게 어색한 슬기였기에 많이 부족해 보였다. 고군분투 하면서 두껍게 껍질을 깎아가는 그녀를 보고 정운이 말했다. “이리 줘 봐. 과일 정도는 내가 깎을게.” “하지만····.” “괜찮으니까 이리 줘 봐.” 정운은 슬기에게 말해서 과일과 과도를 받아서 능숙하게 껍질을 깎아갔다. “····잘 하네요.” “잘 하지.” 슬기의 샐쭉한 말에 정우는 능청 스럽게 대답했다. 실제로 정운은 과일을 잘 깎는 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이렇게 소소한 수작업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정운이 깎은 과일의 껍질에는 거의 살이 붙어 있지 않을 정도였다. 슬기가 깎은 사과는 거의 사과 맛 감자 같은 형태로 변했다. 거기에 비해서 정운이 깎은 과일은 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예쁘게 깎였다. 이래서야 여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 됐어.” 그러거나 말거나 정운이 과일을 다 깎고 슬기와 세레나는 얌전히 과일을 먹었다. “세레나 며칠 정도 쉰다는 얘기는 들었죠?” “들었습니다.” “쉬는 동안 뭐 하면서 지낼 거에요?” 슬기의 말에 세레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잘 모르겠군요. 저번의 마을도 저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대도시는 정말 처음이라서···.” 그녀의 말에서 정운은 어렴풋하게 그녀의 정체에 관한 힌트를 얻은 느낌이었다. ‘현대적인 대도시가 익숙하지 않다. 라고 하면···. 꽤 옛날에 살았었던 인물이란 얘기지···.’ 정운은 세레나의 정체에 관해서도 아직 모른다. 몇 가지 짐작가는 가설은 있지만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뒷 받침할 수 있는 확신이 없는 가설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운에게 귀속된 그녀는 다른 명령에는 절대 복종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에 관해서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몇 번인가 캐물었지만 그걸로 알게 된 것은 말 안 하는게 아니라 말 못한다. 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세레나가 현대적인 대도시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자 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흐음···. 그럼 정운씨, 정운씨가 세레나하고 같이 어울려 주지 않을래요?” “내가?” “예. 전 그동안··· 잠시 요리 공부 좀 할게요.” “···········.” 아무래도 방금 전의 사과 깎기가 상당히 쇼크였던 모양이다.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야 별 상관 없지만···. 세레나가 불편하지 않을까?” “저도 상관없습니다. 여기서 살아가려면 여기서의 생활에도 익숙해 져야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의했고 슬기는 손뼉을 짝 치면서 말했다. “그럼 결정된 거죠? 내일부터 정운씨가 세레나의 가이드 좀 부탁해요.” 정운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냥 알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정운은 슬기를 품에 안고 격하게 사랑을 나눴다. 몇 번이고 그녀를 품에 안고는 그녀를 절정으로 인도했다. 그리고는 다 끝난 이후에는 섹스 후의 노곤한 탈력감에 취한 정운이 그녀를 가슴에 안고는 말했다. “후우····. 슬기야.” “왜요?” “넌 나날이 예뻐지는 것 같아?” “아부해도 나오는 것 없어요.” 슬기는 그렇게 새침하게 말했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은 듯이 정운의 품안에 조용히 안겼다. 정운은 그런 슬기의 머리카락을 습관처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슬기야···. 너 괜찮아?” “뭐가요?” “으음···. 그러니까 세레나 말이야.” “세레나? 세레나가 왜요?” 슬기의 얼굴에는 정말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라는 느낌이 들어 있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면서 ‘애는 질투도 안 하나.’ 라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잦은 질투와 감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거나 혹은 식겁하게 한다. 그래서 망가지는 커플이 의외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다. 하지만 약간의 질투는 있는 편이 서로의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한 접착제가 되기도 한다. 정운은 슬기가 자신을 보고 세레나에게 대도시의 안내를 맡기는 것을 보고는 약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 어색하지만 이렇게 기회를 틈타서 거기에 관해서 찔러 보려는 것이다. “음···. 내가 세레나하고 단 둘이서 이 도시의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돼? 꼭 데이트 같잖아?” 정운의 말에 슬기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전 정운씨를 믿어요.” “···········.” 믿는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혀보지 않은 순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사였다. 둔한 편인 슬기지만 정운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던 것일까? 그녀는 부연 설명을 덧 붙였다. “정운씨. 제가 정운씨의 어떤 점을 가장 좋아 하는 지 알아요?” “글쎄····. 잘 모르겠어. 난 너 전부를 좋아하거든.”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책잡힐 건덕지를 피하기 위해서 살짝 아부를 하면서 방어막을 치는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정운씨가 날 사랑해 준다는 거예요. 나를. 나 이슬기를 정운씨가 사랑해 준다는 것이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이에요.” “····그건 당연한 거잖아? 애당초 널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관계가 될 리가 없는 걸?”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살며시 저으면서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은 그런게 아니에요. 음····. 저는 아이돌이잖아요? 여성 연예인이고.” “그렇지. 그게 왜?” “·····여성 연예인이라는 것은···. 좋든 싫든 대중으로부터 성적인 시선을 받는 것을 피할 수가 없어요. 사실 거기에 관해서는 여러 번 교육을 받았지만···. 그래도 익숙해지지를 않았어요.” “···········.” ============================ 작품 후기 ============================ 사실 저기 사과깎기 이벤트는 제가 라디오로 들은 기억이 있는 경험담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자친구가 자기 어머니한테 인사하러 왔을때 저렇게 했다고 하더군요? 여자 친구가 얼마나 바늘 방석이었을 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94화 <미련> 정운은 슬기의 말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연예인들의 고질병 같은 것이었다. 애당초 한국에 있을 때 그다지 TV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닌 정운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도 밀키웨이의 이슬기라고 하면 노래는 다 몰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 가끔씩 그녀가 스포츠 신문에 공항패션이 어쩌니 화보가 어쩌니 하면서 기사로 나는 것도 종종 봤었다. 그야말로 일거수 일투족이 만인의 관심이었다. 그런 관심 중에는 그저 팬으로서의 동경만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여성 연예인이라는 직업에서 성적인 환상을 품고 바라보는 자들도 있었다. 슬기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저도 SNS에 가끔씩 성희롱적인 의미를 품은 말이 나올 때도 있었고, 팬레터라고 온 것 중에 노골적인 성희롱인 것도 있었어요.” “그랬어?” 슬기의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정오 예상은 했지만 연예인한테 팬레터라고 보내놓고 성희롱? 걔들은 그렇게 살면 인생이 재미있나? 라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 그래서 때때로 회의감도 많이 들었어요. 내 노래보다는 내 외모에만 관심 두는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죠.” “···········.” 대중 앞에서 항상 웃고 화려한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고충은 있는 법이었다. 슬기는 정운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보통 연예인들이 연예인들 끼리 맺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옛날에는 그런 이유를 잘 몰랐는데 정작 제가 그 입장이 되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어떻게 알겠는데?” “제 입장에서 봤을 때···.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굉장한 부담이에요. 그들이 저를 인간 이슬기가 아니라 아이돌 이슬기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으니···. 내 가치가 아이돌로서 밖에 없는 건가?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죠.” 정운은 슬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 같았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생각 하는것 보다 훨씬 귀가 얇은 편이다. 주변의 시선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보통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연예인이 아니라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자신을 그냥 순수한 인간 대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 그러니까 동종업계의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쉬운 것 같아요. 뭐, 그것 말고도 쉽게 접촉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그렇네···. 그런데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게 내가 널 좋아한다는 것하고는 무슨 상관인 거야?” 이따금씩 여자는 말을 빙빙 돌려서 말 할 때가 있다. 자기 딴에는 상대를 납득시키고 설득하기 위해서 좋은 화술이라고 하는 거지만····. 지금의 정운처럼 상대가 못 알아들을 때 가 태반이다. 뭐, 이번에는 슬기가 말하다 보니 푸념 처럼 변해 버린 것도 이유겠지만 말이다. 슬기는 정운에게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정운씨는 제가 연예인이라서 좋아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냥 이슬기로서의 절 봐주고 그런 저를 사랑해 주잖아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슬기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갔다. “당연하지. 네가 연예인이건 아니건? 그런건 내가 널 사랑하는데 전혀 이유가 되지 않아.” 정운의 말에 슬기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 당신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당신이 날 그렇게 사랑해 주고 있는데 내가 당신을 믿지 않고 않고 의심 할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건 좀 극단적이 견해라고 보는데?” “어머? 그럼 나 앞으로 당신 하는 말 하나하나에 다 간섭하고 그리고 당신이 다른 여자하고 말 하는 것도 금지 시켜도 돼요. 세레나는 물론이고 특히 이보영씨하고····.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아니.” 은근히 쌓인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정운은 차마 거기에 그냥 아니라고 밖에는 대답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슬기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요. 그리고···. 세레나는 우리 동료가 가족이잖아요? 그녀에게 신경 좀 써줘요. 당신은 꼭 그녀를 피하는 것처럼 행동 할 때가 있다고요.” 정운은 슬기의 질문에 약간 곤란한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내가 그랬나?” “그랬어요. 정말··. 여자에게 친절 하게 대할 줄 알아야죠. 그러니 앞으로는······ 앗···. 뭐 하는···. 아····.” 슬기가 정운을 본격적으로 나무라려고 하는 찰나에 정운의 손이 슬기의 몸에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이··. 정말···. 얘기하는 중인··· 아···.” “얘기는 여기까지···. 이제부터 입은 키스 할 때만 쓰는 거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를 다시 한 번 거칠게 덮쳐갔다. 정운으로서는 슬기의 입에서 더 이상 세레나에 관한 말이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세레나에게 야속하게 구는건····.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슬기야····.’ 그 진실을 슬기에게 말 해 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말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말할 용기가 없었다. 다음날. 정운은 슬기의 말대로 세레나하고 같이 도시의 외출을 나갔다. 뭐, 세레나에게 이 도시의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한 가이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나가서 같이 놀고 밥 먹고···. 뭐, 이건 슬기에게 공인만 받았을 뿐이지 거의 데이트였다. “마스터, 그럼 오늘 하루는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평범하게 영화나 보러 갈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를 데리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정운은 세레나와 함께 거리를 걸으면서 문득 그녀를 보고 생각했다. ‘····저렇게 입어도 예쁜 걸?’ 지금 세레나의 옷 차림은 다리에 착 달라붙은 스니키진에 위에는 회색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 헐렁해서 한쪽 어깨가 드러났다. 이 시대의 옷을 잘 모르는 그녀 였다. 아마도 저 옷을 추천한 것은 슬기일 것이다. 아무리 허락했다고는 하지만 자기 남자하고 데이트하러 가는 것에 옷까지 챙겨주는 것을 봐서는 정운 뿐만 아니라 세레나까지 동시에 믿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쨌든 생소한 현대식 캐주얼 패션도 굉장히 어울 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오랫동안 보고 있는게 부담될 정도였다. “후우······.” “마스터. 무슨 근심이 있으십니까?” 정운의 작은 한숨을 세레나가 민감하게 캐치하고는 말했다. “아니···. 별것 아니야.” 근심의 원인은 다름 아닌 세레나 본인이었지만···. 그걸 입으로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운은 세레나와 함께 영화관에 가서 적당한 영화를 골라서 함께 봤다. 영화는 현실에는 없는 이 세계의 영화였는데 그럭저럭 평타를 칠 정도의 재미는 있었다. 세레나가 보통의 여자들처럼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서 적당한 첩보물 영화를 골랐는데····. 세레나는 정말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면서 영화에 심취 되어 있었다. “아···. 저런····.” 주인공의 동료가 총을 맞고 쓰러진 장면에서 안타까워 하는 그녀를 보고 정운은 오히려 그런 그녀가 더 신기해 보였다. ‘냉철한 성격인줄 알았는데···. 저런 면도 있었나?’ 영화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그 영화를 보는 세레나의 반응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운은 어느새 영화는 보지도 않고 세레나의 옆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그것만 한 시간이 넘게 바라보고 있는 정운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세레나가 말했다. “영화라는 것 정말 좋군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 그랬지.” “특히 동료간의 신뢰와 믿음을 강조한 부분이 인상적이더군요. 마스터는 어떤 면이 좋던가요?” “···········음.” 두 눈을 반짝반짝 거리면서 말하는 세레나의 질문에 정운은 뭐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영화를 거의 못 봤으니 당연했다. 정운은 결국 대답하는 대신에 말을 돌렸다. “영화관에서 계속 앉아 있으려니 좀 지루하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좋습니다. 어디 대련장이라도···.” “그런곳 없어. 그러니···.” 정운이 피식 웃으면서 세레나를 데리고 간 곳은 미리 알아둔 유원지였다. 저쪽의 마을에서도 유원지는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갔던 것은 한 번 뿐이었다. ‘슬기하고 첫 키스했던 곳이 거기였지.’ 그때의 첫 키스는 별로 로맨틱 한 편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랬다. 순간적인 충동에 이끌려서 자신도 모르게 사고 쳤던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세레나하고 가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원지에 도착하자 세레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약간 어이가 없군요?” “응? 뭐가?” “이 넓은 시설과 설비들이···. 그러니까 그냥 유희를 위해서 지어놓은 것들 아닙니까?” “그렇지. 왜? 싫어?”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싫다. 좋다. 를 말할 정도의 견해는 없습니다. 그저 약간····. 어이없다. 라고 해야 할까요? 저런 기구들은 결국 안전하다는 조건 하에 설계된 것이 아닙니까? 저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일종의 스릴이지. 확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저런 조잡한 기구들에 스릴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음·····. 당신한테는 무리일 려나?” 세레나는 전투중에 스스로 날개를 펴고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매처럼 급강하하는 식의 전투도 종종했다. 그런 그녀에게 롤러코스터에서 스피드감이나 스릴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무리일 것이다. F1레이서 한테 범버카 타라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뭐, 평범한 여자들이 보이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 라고 정운은 생각했지만·····. 그게 오산이었다는 것은 금방 밝혀졌다. “꺄!!! 꺄악!! 꺄악!!! 꺄아아아아아악!!!!!!” “·····말 도 안 돼.” 정운은 롤러코스터의 제일 앞에서 세레나와 나란히 탄체로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정운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와서 본 것중에 가장 신기한 것을 보고 있었다. 바로 평범한 여자처럼 겁에 질려서 꺅꺅 소리를 지르고 있는 세레나였다.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스마트 폰을 동영상 모드로 바꿔서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마·· 마스··· 꺄아아아악!! 사람 살려!!!!” 세레나는 그런 정운을 보고 뭐라고 말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잠시 후··. “후우···· 후우····.” “음···. 저기···. 미안.” 정운은 벤치에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세레나에게 음료수를 건내 주면서 일단 사과했다. 설마 그 정도로 무서워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재미있어 한게 살짝 미안해 졌다. ‘그렇다고 동영상 지우는 일은 없을 거지만 말이야.’ 두고두고 심심할 때 보면 심심함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갈 것처럼 재미있는 동영상이 찍혔다. 얼마나 다채롭게 놀라던지 반응이 너무 재미있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의외네····. 세레나 당신이 저걸 무서워 할 줄은 몰랐는걸? 저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도 움직이고는 했잖아?” 정운의 질문에 세레나는 눈물로 충혈 된 얼굴로 말했다. “훌쩍····. 제가 움직일 때는 괜찮습니다. 그건 제 뜻대로 움직이는 거니까요···. 하지만 저건··. 저건 제 의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불규칙한 움직임을 하니····. 저도 제가 이럴 줄을 몰랐습니다.”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보고 정운은 피식 웃었다. 제법 오랜 세월동안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런 일면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귀여운데.” “예!?” 정운이 무의식 적으로 자기 마음을 입 밖으로 내보내자 세레나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정운 역시 자기가 한 말에 살짝 놀랬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다음에는 저거 탈까?” 말을 돌리는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정운이 무의식중에 가리킨 놀이기구는 더블 록 스핀. 상당히 무서운 축에 들어가는 놀이기구였다.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무안함을 감추려고 아무 기구나 가리켰는데 그런 결과가 나와 버렸다. 그러자 세레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으음····. 마스터의 명령이라면···. 저는 지옥 끝까지라도 따르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빡센 각오는 필요 없는데·····.” 고작 놀이기구 하나 타면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마친 기사도를 보이는 그녀가 살짝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을 돌리기도 좀 그렇고···. 결국 그날 세레나와 정운은 전 놀이기구를 모두 재패해 버렸다. ============================ 작품 후기 ============================ 세레나는 아직 연애 전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 아닙니다. 그녀가 완전 메인으로 들어가는 에피소드도 있을 예정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95화 어느새 해가 지고 유원지의 형형색색의 네온들이 현란해질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도록 온갖 패턴의 비명을 다 질러대고 있던 세레나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정운에게 보고를 하듯이 말했다. “후우···. 해 냈습니다. 마스터.” “응. 수고 많았어.” 마치 어디 성이라고 함락 시키고 온 장군처럼 자랑스럽게 뿌듯함에 젖어서 말하는 그녀를 보고 정운은 피식 웃었다. 평소의 시크하고 고고한 그녀에게 이런 일면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일면 하나하나가 정운에게는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그녀 덕분에 오늘 하루 정말 많이 웃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간다고 했던가? 이제 해도 지고는 했으니 슬슬 집에 가봐야 할 시간이었다. 아마도 슬기가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슬슬 갈까? 너무 늦게까지 놀았어.”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세레나와 함께 유원지를 나갔다. 가는 길에 정운이 세레나에게 말했다. “오늘 어땠어?” “음···. 좀 정신없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뭐랄까····.” “뭐랄까?”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전 생전에 이런 오락적인 것들하고는 인연이 없었기에·····.”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당신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야?” “죄송합니다. 마스터, 그것은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 정운은 몇 번이고 똑같이 돌아오는 대답에 씁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어차피 저런 대답이 나올 줄은 알고 있었다. 이제 얌전히 집에 돌아가서 슬기가 준비했을 밥을 먹으면 오늘 일정은 끝.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둘은 지하철에 올랐다. 소위 말하는 퇴근길 러시라는 걸까? 정말 철저하게 재현했다는 느낌이었다. 설마하니 이런 골치 아픈 것도 재현 할 줄은 몰랐던 정운이었고, 어절 수 없이 지옥철에 탑승 할 수 밖에 없었다. 지하철은 정말정말 복잡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지하철은 정운에게 한가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꼭 차를 사리라. 라는 결심을 말이다. 어쨌든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지하철로 가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정이 다 끝나가는 와중에 사고가 터졌다. 정운의 옆에 있던 세레나가 약간 이상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다.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얼굴도 살짝 굳어졌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한 타이밍 늦게 알아낸 정운은 그녀에게 속삭였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곤란한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스터···. 마스터의 손이···.” “내 손? 내 손이 왜···? 응!!!” 정운은 순간 눈썹을 찌푸렸다. 세레나가 말하는 자신의 손은 아무런 문제 없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정운의 손이 아니락 지금 세레나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정체 불명의 손이었다. “············.” 소위 말하는 지하철 치한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사태에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순간 넋을 잃었다. 이 스카이 타운의 주민들은 밑의 마을의 NPC들 보다 훨씬 더 자율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런 일 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두 파악하고 나자 정운의 안에서 한박자 늦게 뭔가가 울컥하고 솟구쳤다. 명명백백한 분노의 감정이 이성을 집어 삼키고····. 정운은 머리나 이론을 제쳐두고 오로지 감정 만으로 움직였다. “야.” “으음·· 커억!!!”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에게 치한 행위를 하고 있는 남자의 안면을 주먹으로 박살내 버렸다. 그 남자는 한 방에 코뼈가 박살 났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정운은 그대로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서 놈의 복부를 발로 짓밟아 버렸다. 퍽!! “커억··. 자··· 잠시만···.” 변명하려는 남자를 향해서 정운은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남자의 입에서는 붉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입안이 찢어진 것 인지. 아니면 복부에서 출혈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당한 부상이었다. “죽고 싶나?” “···········.” 정운의 말은 진심이었다. 너무나 진심이라서 정운의 말을 들은 상대는 물론이고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이목이 쏠린 주변의 다른 사람들 까지 오싹 해질 정도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냥 여자에게 치한 한 번 했다가 이런 꼴을 겪으면 상당히 억울할지 모른다. 원인 제공이야 자기가 했지만····. 그래도 정운이 하는 행위는 명백하게 과잉방어였다. 하지만 정운에게는 그런 논리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열이 올라 있었다. 소위 말하는 빡 돌았다. 라는 상태가 맞을 것이다. ‘이 놈····. 정말 죽여 버릴까?’ 이게 정운이 지금 머리속으로 하는 생각이었다. 이 세계의 주민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인간이 아니다. 라는 느낌과 함께 그동안 그라운드 제로에서 험난하게 구르면서 희미해진 정운의 도덕관념이 정운에게 극단적인 선택지를 연상 시키고 있었다. 그대 정운의 분노를 사그라들게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마스터. 그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세레나···.” “충분합니다. 이미 자신의 죄에 충분한 벌을 받은 것 같으니 이만 용서를 해 주시죠.” “···········.” 세레나 본인이 그렇게 말하자 정운은 못 마땅한 표정이 역력하기는 했지만 일단 물러났다. 그리고 정운은 지하철을 내리고 집에 걸어가는 길에 세레나에게 말했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는 대응을 해야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정운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팍팍 묻어 있었다. 세레나는 고개를 숙여서 그런 정운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제가 미숙해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세레나의 잘못은 아니다. 아니지만 그래도 짜증이 난 정운은 세레나에게 연거푸 말했다. “나한테 말 하던가? 아니면 너 스스로 나서도 그런 머저리 팔 분지르는 것은 일도 아니잖아? 그런데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뭐야?” 말을 하다보니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세레나를 탓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치한을 당했다면 여자가 무슨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세레나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역시 자신도 모르게 책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그런 정운의 책망에 세레나는 곤란한 얼굴을 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게 마스터의 손인 줄 알았습니다.” “····뭐라고?” 뜻밖의 말에 정우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그리고 세레나의 말이 이어졌다. “마스터의 손이라고 생각해서··. 그저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세레나의 뜻밖의 말에 정운은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후에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내 손이면 가만히 있는 건데?”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운과 세레나의 눈이 서로 교차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만감이 담겨 있었다. 당혹, 혼란, 어색함 등등···. 정운은 세레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세레나 역시 정운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만 정운은 속으로 새삼 확신하고 있었다. 아직 자신이 세레나를 완전히 떨쳐 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손에 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어떤 의미로는 그 마음이 어떤 집념처럼 강해졌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난 어떻게 하면 되지·····.’ 정운의 마음속 질문에 대답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주 동안···. 정운은 스카이 타운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세레나와의 데이트는 하루만으로 끝냈다. 슬기에게는 세레나가 의외로 적응력이 좋으니 혼자서 다니게 해도 충분하다. 혹은 여자까리 쇼핑이라도 갔다 오는게 어떻겠냐? 라고 말하면서 거부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더 이상 세레나하고 단 둘이 되는 것을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세레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짜로 있다고 해도 접어야 했다. 슬기를 배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좋은 여자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다시 한 번 세레나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슬기를 배신하기 싫다는 마음에서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추스렸다. 어쨌든 그렇게 여자 둘이서 잘 놀게 하고는 정운은 정운 나름대로 필요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선 전에 마음먹었던 차를 구입하고, 그리고 집안의 살림을 봐 줄 가사 메이드들도 10명 정도 구했다. 슬기가 요즘 요리 하는 것에 재미를 들리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슬기가 이 넓은 집안의 일을 다 할 수는 업었다. 거실만 해도 풋살 구장 두개를 합친 것처럼 넓은 집이었다. 거기에 딸린 방만 해도 10개가 넘고 거기에 부엌에 욕실 그리고 넓은 베란다까지···. 어쨌든 청소하는 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그러니 가사 메이드는 필수였다. 그리고 사냥에 대한 준비도 꾸준하게 했다. 정운은 일단 여기에 와서 상점에 가서 스카이 타운에서 파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확실히 십왕들이 말하는 것처럼 고가의 아이템이많았다. 가격에 따라서는 10억 골드가 넘어가는 것도 있었다. 정운은 일단 아이템을 대강 살펴는 봤지만 지금 당장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은 그만 뒀다. 아직 골드는 충분했지만 여기 상점에서 막 쓰면 바로 다 없어질 것 같았다. 일단 한 달 정도 사냥을 해 보고 사냥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금액의 견적을 뽑아 봐야 했다. 수입이 어느 정도 들어오는지 알아야 지출에 들어갈 금액도 준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정운은 상점에서는 67층의 지도 한 장만을 사고 나왔다. 일단은 67층의 전체적인 수준을 알아 보는게 중요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정운의 팀의 67층의 데뷔날이 되었다. 정운은 불과 열흘 정도 쉬었을 뿐인데 장비를 착용하고 나니 무척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슬기나 심지어는 세레나 마저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흐음····. 좀 어색하네요.” “그렇게 말입니다. 뭐, 다시 익숙해지겠죠.” 슬기와 세레나는 그런 대화를 하면서 포탈로 향했다. 67층에서도 포탈을 타고 필드로 향해야 하는 것은 똑같았다. 그런데 그 포탈의 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서 애를 먹고 있었기에 십왕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정운은 위치를 듣고는 실소했다. “등잔밑이 어둡지?” “·····예. 그러네요.” 이번만큼 옛 말이 딱 들어 맞는 경우도 참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왕들이 이 건물이 모여 사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포탈의 위치는 이 빌딩의 지하 20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열쇠로 잠긴 칸을 열어서 지하 20층을 누르니 거기에는 넓은 지하에 포탈이 있는 장소가 보였다. 마침 포탈에서는 누군가가 나오고 있었다. “아!! 갔다 오시는 길인가요?” 정운은 포탈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안부인사를 하듯이 말했다. 지금 포탈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십왕 중에서도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9위 이지영과 10위 주경택이었다. 정운의 인사말에 이지영은 그저 한 번 보고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운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경택은 정운에게 말했다. “이제 첫 사냥인가 보지?” “예. 뭐, 그렇습니다.” “흐음···. 조심 하라고, 처음에는 많이 힘들겠지만 무리 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아가씨들을 지켜줄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십왕들 중에서 정운의 마음에 가장 안 드는 사람이 누구냐? 라고 하면 아마도 이 주경택이라는 남자일 것이다. 별로 트러블이 생길 만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언행에서는 노골적으로 세레나와 슬기를 향한 어필을 볼 수 있었다. 그레 정운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겠습니다.” “그래. 조심해.” 정운은 그렇게 주경택과 인사를 하고 포탈에 올랐다. 오랜만에 사냥이었다. 처음 올라가 보는 67층이었다. ============================ 작품 후기 ============================ 세레나가 의외로 인기가 많네요. 그녀의 서브 스토리가 다 공개되도 않았는데 많이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마왕이 될 테다. 다음 챕터 연재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 드립니다. 96화 <67층의 첫 사냥> 67층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드넓은 초원이었다. 넓은 초원에 저 멀리 아련하게 산이 보이고 있었고 반대편으로 가면 제법 넓은 숲이 있는 지형이었다. 정운은 미리 구해온 지도를 펴고는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지금 위치는 정 중앙의 초원지대야. 그리고 좌측의 산악지대와 우측의 숲 지대가 있다고 되어 있어.” 정운의 설명을 들은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저희는 말의 기동력을 실리기 위해서 초원 지대에서 사냥 하는게 좋겠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떤 몹이 있는지는 차차 알아보자.” 확실히 세레나의 말이 정론이었다. 숲은 어떤 형태의 숲인지 가봐야 알겠지만···. 빽빽한 원시림일 경우에는 말들의 행동이 제약될 것이다. 그리고 산악 지대에서는 말들의 효과를 살리기가 어려워 진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흑토 만이 아니라 다른 두 마리의 말도 나름 특출난 말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말의 특성을 무난하게 살리기 위해서는 역시 초원 지대가 가장 좋았다. ‘신중하게 가야해. 조심 또 조심하자.’ 정운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게 잘 다독였다. 이전의 층과 다르게 67층은 정보가 적었다. 예전에는 미리 플레이해둔 삼대 길드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67층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십왕들에게 말하면 다소의 정보를 제공해 주기는 하겠지만 파티는 거절해 놓고 정보만 원한다는 말을 하기는 좀 어려웠다. 사람이 염치나 체면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일단은 조심스럽게 탐험을 해 보기로 했다. “목표는 북쪽으로 잡고 일단 가보자.” “예.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정운의 일행은 북쪽으로 길목을 잡고 이동을 시작했다. 말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던 정운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몹은 생각 외로 익숙한 몹이었다. “암석 드래곤? 저게 여기도 있었나?” 정운의 말에 슬기는 상대를 천천히 살피면서 말했다. “약간 모양이 다른데요? 이마에 뿔도 몇 개 더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덩치도 좀 더 크네요.” 확실히 슬기의 말 대로였다. 67층의 암석 드래곤은 65층의 암석 드래곤하고는 좀 달랐다. 크기만 해도 대략 30미터는 넘을 것 같아서 65층의 암석 드래곤보다 10미터는 더 컸다. 그것 말고도 전체적으로 좀 더 우락부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부다 더 단단해 보였고 얼굴에는 몇 개나 되는 뿔들이 나 있어서····. 한마디로 전체적인 인상 자체가 훨씬 더 강해 보였다. ‘어떻게 할 까요? 바로 사냥해 볼까요?’ 슬기는 익숙한 몹이 나온 김에 일단 사냥해 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하위층에 나오던 몹이 위로 가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는 반드시 훨씬 더 강화된 상태로 나오는게 정론이었다. 뭐, 실제의 게임에서도 흔한 일이었으니 이미 익숙한 일이기는 했다. 문제는 어느정도나 강해졌느냐 하는 것이다. 한 층을 올라왔을 뿐이지만 훌쩍 강해지는 경우도 있고, 별 차이 없는 상태에서 약간의 체력만 올라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일단 부딪혀 봐야 하는 것은 확실했다. 정운은 사냥을 하기로 마음 먹고는 일단 그에 앞서서 준비를 했다. “기다려 봐. 일단 이걸 한 번 써봐야 겠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인벤토리에서 작은 스마트폰 같은 것을 꺼냈다. “그게 뭐에요?” “최상층에만 파는 아이템 이야. 십왕들은 ME (monster Encyclopedia)라고 하던걸?”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걸로 몹이 들어오게 하고는 찍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화면에는 몹의 정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웜급 암석 드래곤. LV. 110~115 [강력한 공방력을 가지고 있으며 체력이 막강하다. 후공 속성이며 화가 나면 전신이 붉어진다.] “이런 식인가···? 전혀 모르는 것 보다는 좀 나은가?” 정운은 ME에서 나오는 정보를 보고는 살짝 놀랐다. 몹의 레벨이 어림짐작이라도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정보가 약간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슬기가 말했다. “그 옆에 +창은 뭐죠?” “이거? 한 번 눌러볼까?”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창을 눌러보자 화면에는 추가할 내용 이라는 창이 떴다. “아아···. 몹의 정보를 이렇게 수집해 가는 거구나.” 정운은 그제야 십왕들이 필드에 나가기 전에 ME를 꼭 자기고 가라고 한 이유를 알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보의 가치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어떤 몹이 어디에 있고, 어떤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아마도 이 ME는 그런 정보를 모으고 모아서 자신만의 정보사전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의 ME와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내용은 점점 풍족해 진다. 그게 바로 십왕들 사이에서 이게 필수품 취급 받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흠···. 내용 추가에 별개 다 있네. 여기 사냥 기록이라는 것은 뭐지? 우리가 사냥하는 모습을 기록해 준다는 건가?” “일단 한 번 눌러보죠.” 슬기는 손을 뻗어서 그 창을 꾹 눌렀다. 그러자 ME가 허공에 떠 오르더니 그 허공에서 몹과 정운들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카메라 구도를 잡기 시작했다. “정말이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사냥하는 것을 기록하나 봐.” “이거 생각보다 훨씬 유용한 아이템으로 보여요. 그렇죠. 세레나.”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게 있다면 우리가 사냥하는 장면을 보고 복기를 하면서 단점을 고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정운은 ME의 가치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인벤토리 창도 거의 차지하지 않고···. 이건 정말 필수 아이템이었다. “그럼 바로 사냥 시작하자. 항상 하던 대로 전위는 세레나와 내가, 그리고 슬기는 방어에 주력하면서 후방의 지원 부탁해.” “함정 아이템 없이 괜찮을까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확실히 65층에서 초반에 암석 드래곤을 사냥 할때는 함정 아이템에 의존했다. 더 강해지면서 그런 일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잠시 생각하던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괜찮을 거야. 어차피 함정도 없잖아? 지금은 일단 기존의 암석 드래곤보다 얼마나 강한지 간이나 한 번 보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전투의 시작은 먼저 세레나의 일격이었다. “핫!!!” “쿠오오오오!!!” 그녀의 일격은 암석 드래곤의 콧잔등을 날카롭게 가격했다. 암석 드래곤은 갑작스런 일격에 화가 났다는 것처럼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세레나를 향해서 거칠게 돌격했다. 세레나는 그런 놈의 공격에 하늘 높이 날아 올라서 피했다. “쿠우우····.” 암석 드래곤은 하늘 높이 날아오른 세레나늘 보면서 고개를 높이 들었다. ‘역시 육전형 드래곤이라서 하늘로 날아오른 상대에게 공격 패턴이 취약한···. 저건 뭐지?’ 정운이 웜급 암석 드래곤을 관찰하는 와중에 놈이 등을 날카롭게 새웠다. 그리고 그런 놈의 등에서 암석 같이 단단하고 무거운 비늘들이 날카롭게 일어서더니····. 파파파파팟!!! 마치 미사일이 연발로 발사 되는 것처럼 놈의 비늘이 하늘에 있는 세레나를 향해서 발사 되었다. 수십발의 공중 공격에 세레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재빨리 날개를 움직여서 적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정운은 놈이 다시 2차 공격을 하려고 하기 전에 달려 들었다. “이 놈!!!” 콰앙!!! 뇌천 신공을 일으킨 상태로 정운의 기마 차지가 제대로 들어갔다. 웜급 암석 드래곤의 그 거대한 몸이 공격을 받은 순간 옆으로 한 걸음 밀려갔다. 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고 놈은 기다란 목을 돌려서 자신의 옆구리를 공격한 정운을 똑똑히 바라봤다. “크으으으·······.” “보면 어쩔래? 쉐도우 컷터!! 쉐도우 스피어!!!” 정운은 그대로 그림자의 창날과 그림자의 칼날로 적을 공격했다. “크오오오!!!!” “역시··. 할 수 있어.” 정운은 자신의 공격이 먹히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55층에서 65층으로 올라갔을 때하고는 달랐다. 그때는 한 번에 10층이나 워프 했었다. 무려 10층이었다. 그래서는 아무리 정운이라고 해도 갑작스럽게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냥은 고사하고 덤비기도 어려운 몹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정운과 세레나는 100레벨 대의 강자들이고 이제 슬기도 충분히 제 몫은 하고 있다. 거기다 올라온 층은 2층 뿐이니···. 어느 정도는 싸우는게 가능해진 상황인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정운은 세레나와의 연계 플레이로 웜급 암석 드래곤의 주의를 끌었다. 다행이도 웜급 암석 드래곤은 공격 패턴이 다양해 졌고 전체적으로 공격력과 방어력이 다 강해지기는 했지만···. 정운과 세레나의 합공으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강적은 또 아니었다. 세레나는 하늘에서 공격을 하고 정운은 지상에서 흑토를 타고 빙빙 돌면서 싸웠다. 기본적으로 65층의 암석 드래곤과 같은 면이 있었다. 정면으로 서서 싸우지만 않으면 할 만하다는 것이다. 놈의 공격 패턴중에 비늘을 날리는 공격이 새롭게 추가되기는 했지만···. 몇 대 맞아보니 정운과 세레나의 방어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둘은 그렇게 웜급 암석 드래곤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놈의 체력을 깎아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놈의 몸이 약해졌다고 느끼자 그제야 승부수를 걸었다. “쉐도우 홀, 쉐도우 체인!!” 정운이 스킬을 걸자 웜급 암석 드래곤의 거대한 몸이 지면에 푹 가라앉았다. 그리고 열 개의 체인이 웜급 암석 드래곤을 지면에 꽁꽁 묶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십왕들도 인정 하는 것이 정운의 구속 스킬이었다. 쉐도우 아미를 써서 위력을 늘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웜급 암석 드래곤을 잡아서 구속할 정도의 힘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놈이 완전히 구속당하자 정운은 크게 외쳤다. “슬기야!!!” “예. 지금 가요····. 파이어 월. 염소접!!!” 슬기는 일단 웜급 암석 드래곤의 발 밑에 불을 질렀다. 그것도 삼중으로 교차된 파이어 월이었다. 화르르르륵. “쿠워어어어어어!!!!!” 이미 슬기의 파이어 월의 레벨은 8이다. 높이가 무려 8미터가 되는 거대한 불길이 지면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웜급 암석 드래곤은 고통에 몸부림 쳤다. 거기에 슬기는 작은 화염의 나비를 소환해서 계속해서 놈에게 보냈다. 펑!!! 퍼엉!! 염소접의 위력은 아직 약하다. 차라리 슬기가 파이어 볼트를 연발로 갈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슬기가 이렇게 염소접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이렇게 함으로 해서 유니크 아이템인 주작의 스태프의 위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아직 손에 넣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부지런히 사용해서 위력을 높여야 했다. 어린애 손바닥만한 작은 나비가 웜급 암석 드래곤에게 날아가서 계속해서 펑펑 터졌다. 작은 나비였지만 그래도 폭발력 자체는 그럭저럭 있었다. 그리고 위력적인 면에서는 둘 째 치고 웜급 암석 드래곤의 피부가 약해진 곳을 정확하게 때리고 있었다. 일반 마법처럼 정해진 궤도로 날아 가는게 아니라 염소접의 경우는 살아있는 나비처럼 정밀 조종이 가능했다. 피부의 상한 곳만이 아니었다. 눈, 입의 안쪽 등등··. 웜급 암석 드래곤의 약점을 정확하게 공략하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웜급 암석 드래곤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정운이 작정하고 펼친 스킬을 지친 몸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65층의 놈하고 비슷하고, 거기서 피통만 좀 크군····.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겠어.” 비늘을 날리는 스킬이 좀 까다로워지기는 했지만 그건 큰 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65층에서 질리도록 잡았던 놈이 체력만 좀 커진 격이었다. 이러면 시간만 좀 걸릴 뿐이지 조심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정운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쿠우우우으으으······.” 놈의 피부가 붉게 불어지더니 전신이 마치 불에 달군 바위처럼 변했다. ‘저건···. 뭔가 하려는 건가?’ ============================ 작품 후기 ============================ 사실 암석 드래곤은 어떤 분이 쪽지로 보내주신 설정이었죠. 몬스터 헌터에 나오는 캐릭터에서 따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혹시 몰라서 재탕을 했습니다. 혹시 다른분들도 등장했으면 하는 몹이나 매력적인 설정의 보스몹이 있다면 저에게 쪽지로 보내 주십시오. 이름과 스킬 생김새까지 자세하게 묘사하면 좋겠죠. 전부는 무리라도 개중에 매력적인 설정의 몹은 제가 등장 시켜 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97화 정운은 좀 전의 소개에서 놈이 화가 나면 피부가 붉어진다는 정보를 들은게 기억이 났다. 이제까지 놈이 화가 나지 않은 상태라면···. 지금 저렇게 된 상태에서는 어떻게 할까? “슬기야!! 세레나 조심해!!” 정운은 그렇게 외친 후에 자기도 다음 충격에 대비했다. “쿠오오오!!!!!!” 웜급 암석 드래곤은 크게 포효하더니 그대로 지면을 파고 지하로 빠른 속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정운은 순간 곤란한 얼굴을 했다. 정운이 가지고 있는 구속 스킬인 쉐도우 체인과 쉐도우 홀. 이 두 가지 기술은 강력한 것이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두 가지 스킬 다 적을 지면에 옭아매는 형태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지금 놈이 한 것처럼 지하로 파고 들어가 버리면 더 구속하는게 불가능 하다. ‘놈에게 강하게 대미지를 입힌 마지막 인물은····.’ 정운은 급하게 슬기쪽을 보면서 말했다 “슬기야 피해!!!” “쿠워어어어!!!!” 정운이 말한 것과 동시에 슬기의 바로 밑 지면에서 암석 드래곤이 튕겨지듯이 올라왔다. 다행이도 슬기도 이제는 경험치가 있어서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웜급 암석 드래곤이 지면에 파고 들어가는 그 순간 바로 몸을 허공으로 상승 시켰다. 그리고 약간 허공에 떠 오른 상태로 원구 형태의 실드를 두르고 있었다. 덕분에 놈의 갑작스런 공격에도 큰 대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처럼 슬기는 서둘러 몸을 피하려고 했다. “크르르으····.” 웜급 암석 드래곤은 그런 슬기를 끝장내려는 듯이 자신의 입으로 숨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용족의 무기중에 최대의 위력을 지닌 브레스였다. 65층의 보통 암석 드래곤의 브레스도 정운과 세레나에게 대단한 대미지를 줄 정도였다. 완전 방어 상태를 한 상태로 받았을 때도 반 피는 넘게 닳았다. 슬기 같은 메이지 계열의 유저가 저런 공격을 받으면 끝장이었다. 하지만···. 슬기에게는 자신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는 동료들이 있었다. “홀리 스트라이킹!!!” 세레나는 허공에서 날개를 접고 마치 먹이를 향해서 하강하는 한 마리의 매처럼 낙하했다. 뾰족한 검끝을 중심으로 해서 그녀 자신이 날카로운 한자루의 검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검이 웜급 암석 드래곤의 머리에 작렬하는 순간····. 콰아아앙!!! 다이나마이트가 다발로 터진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브레스를 준비하던 놈의 입이 그대로 다물어 져 버렸다. “쿠웨에엑!!!” 홀리 스트라이킹. 세레나의 돌진기중에 하나로 현재 레벨은 5이다. 일직선으로 돌격하면서 강력한 공격을 한 점에 집중 시키는 기술이고, 적의 방어력을 25% 무효화 시키는 위력이 있었다. 머리는 특히 두꺼운 껍질로 보호되고 있던 암석 드래곤이었지만···. 지금 세레나의 일격에는 암석 드래곤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운이 뛰어 들었다. “이 자식이 감히 누구를···. 쉐도우 아미!!!” 쉐도우 아미는 한 번 사용하면 20분이 한계이고··, 또 한 번 사용하면 쿨 타임이 1시간이 넘게 있는 기술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슬기의 위기까지 겪고 나니 더 이상 아끼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정운의 몸에서 정운과 똑같은 모습의 그림자 무사가 열 명이나 생겼다. “개 자식····. 보답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강의 기술을 보여주지.” 슬기의 위기를 목격한 정운은 상당히 화가 났다. 정운은 웜급 암석 드래곤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뇌천신공, 아스트랄 소드!!!” 정운이 그렇게 외치자 사방에 길이가 1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대검이 30개가 생겼다. 과거 정운이 그림자의 망토와 세레나를 손에 넣기 위해서 쉐도우 엘프 킹가 싸웠을 때 썼던 기술. 바로 아스트랄 소드였다. 일단 사용하고 나면 그 후에 2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는 위험한 기술이었기에 잘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틈틈이 사용해서 현재 이 스킬의 위력은 레벨3에 도달했다. 길이 10미터의 대검을 30개나 꺼내서 조종하는게 가능한 것이다. 그걸 뇌천신공하고,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쉐도우 아미하고 겹쳐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허공에 뇌전을 머금은 10미터짜리 대겁이 무려 300개가 둥둥 떠올랐다. 마치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검의 숲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정운이 쓸 수 있는 최강의 콤비네이션이다. 가루라는 툭하면 하늘로 날아가서 쓰기가 어려웠지만···. 순수하게 공격력만 따지면 가루라도 10초만에 옐로우 크리스탈까지 떨어트릴 수 있는 그런 기술인 것이다. “가라···.” 정운이 손짓을 하자 300개의 대검이 마치 사형수에게 심판을 가하는 것처럼 날아가서 내려 꽃혔다. 푸푸푸푸푸푹!!! 원래 강력했던 아스트랄 소드에 뇌천신공으로 인한 뇌전의 대미지까지 추가되자 단단한 웜급 암석 드래곤의 피부도 마치 삶은 무처럼 푹푹 들어가고 있었다. “쿠오오오오오!!!!” 웜급 암석 드래곤은 그대로 크게 단발마를 지르면서 순식간에 난자당해서 죽어 버렸다. “후우우···. 까불고 있어···.” 정운은 난자당한 웜급 암석 드래곤을 잡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한 숨을 내쉬었다. 67층에 처음 들어왔지만····. 그래도 한 마리 잡기는 잡았다. 이게 67층에서 얼마나 강한 몹인지? 혹은 얼마나 약한 몹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첫 개시를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정운은 무기를 갈무리 하고 그림자 분신들을 돌려 보내면서 말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자.”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의 말에 거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정운이 아스트랄 소드를 쓰면 그 날 사냥은 끝이었다. 그 후에 두 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로 변하는 정운의 몸 상태를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슬기와 세레나를 만나고 나서는 많이 나아진 것이다. 예전에 솔로 플레이를 할 때는 이것이 가장 강력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이 기술을 쓰고 나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는 흑토 하나 밖에 없었으니 당연했다. “첫 개시에 한 마리라···. 죄송해요. 정운씨. 제가 좀 제대로 했다면 좋았을 것을·····.”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점점 나아질 거야. 일단 저걸로 집에 가서 우리 사냥법을 복기해보자. 고칠 점이 많을 거야.” 정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자 정운은 그제야 몸이 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온천 보다는 그냥 샤워가 더 좋아.” 이전에 있던 마을에서는 사냥을 갔다 오면 뜨거온 노천 온천에 몸을 담구고 피로를 푸는게 정운읜 순서였다. 하지만 사실 남자들은 목욕 보다는 빠르고 개운하게 땀만 씻어 낼 수 있는 샤워쪽이 더 좋았다. 가끔씩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는 것도 좋을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에도 차라리 사우나를 더 선호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정운이 딱 그런 타입이었다. 이 건물에도 스파가 있고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원천에서 길러온 온천수로 만든 온천도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냥 집에 있는 욕실에서 재빨리 샤워를 해서 흙먼지를 닦아내는 편이 더 좋았다. 모두가 거실에 모이자 정운은 TV로 오늘 사냥 장면을 찍으면서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들 감상은 어때?” 자신들이 사냥 하는 모습을 이렇게 영상으로 딱 잡아 보는 경우는 처음인 일행이었다. 카메라가 한 대 뿐이다 보니 가끔씩 화면의 구도가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전투를 개관적으로 돌아보기에는 최고로 좋았다. “우선···. 초반에 저하고 마스터의 유인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래요···. 사냥의 페이스가 틀어진 것은 저 몹의 피부가 붉어지면서 부터에요.” “여기서 보니···. 싸울 때는 몰랐는데 공방력도 상당히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분노 버프라는 건가···. 골치 아프구만. 안 그대로 충분히 강한 놈이····.” 같은 암석 드래곤에 ‘웜급’이라는 단어 하나가 붙었을 뿐인데 그 강함에는 참 차이가 컸다. 65층의 암석 드래곤은 정운의 팀이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10마리도 잡아 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마리를 잡는데 정운이 리스크를 무릅쓴 최강의 공격기 까지 써야 했다. 뭐···. 그건 꼭 써야 했다기 보다는····. 그냥 정운이 슬기의 위기에 열이 받아서 쓴 것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썼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ME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세레나는 결론을 내리면서 말했다. “우선 페이스를 늦추면서 천천히 공격 하는게 좋겠군요. 그리고 붉은 상태가 되면 그대 서툰짓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극딜을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슬로우 스타트 퀵 앤드. 천천히 시작해서 마지막에 마무리를 지을 때는 정광 석화처럼 재빠르게 끝낸다. 보통 사냥이라기 보다는 레이드의 한 형태이기는 했다. 레이드 몹들은 위급한 상황이 되면 날뛰면서 짜증나는 스킬을 쓰니까 그런 식으로 레이드 하는 것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 말은 쉬워 보이지만 아무나 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공식을 성립하기 위해서는 막판에 딜을 할때에 상대를 순식간에 순살 시킬 정도의 위력이 필요했다. 어지간한 공격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흠···, 공격력이라면 정운씨가 거의 십왕 하위급에 준하는 공격력을 지니고 있지만····.” “내 전력 공격은 안 돼. 쉐도우 아미도, 아스트랄 소드도 한 번 사용하면 인터벌이 너무 길어.” 정운의 말 대로 그것인 문제였다. 그나마 쉐도우 아미의 경우는 좀 나았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쿨 타임이 좀 길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투는 지속 가능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스트랄 소드의 경우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그 후에는 두 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래서 정운도 레이드를 할 때. 그것도 결정정인 국면이 아니면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기술을 일반 사냥의 마무리 스킬로 쓰면···. 사냥 한 번 하고 두 시간은 쉬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야 레벨 올리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나 혼자서 딜을 해서는 별 효과가 없어···. 어느정도 대미지를 입혔다 싶으면 일단 한방 거하게 먹이는 것을 신호로 세 명이서 쉴틈 없이 공격을 가해서 끝장내는 수밖에···.” 단순한 얘기였지만 단순한 만큼 가장 실현 가능성이 큰 얘기이기도 했다. 정운에 슬기와 세레나까지 모두 합공을 한다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뭐····. 일단 웜급 암석 드래곤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우리도 이 ME에 정보를 추가해 놓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웜급 암석 드래곤에 정보를 추가 작성했다. 웜급 암석 드래곤. LV. 110~115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며 체력이 막강하다. 후공 속성이며 화가 나면 전신이 붉어진다. 비늘을 날려서 원거리 공격을 한다. 전신이 붉어지면 공격력이 더 높아진다. 지면을 파고 들어갔다가 갑자기 돌출하는 식의 공격을 한다.] 정운은 자기 나름대로 공격패턴을 적어놓고 정보를 저장했다. “·····흠, 이런게 쌓이고 쌓이면 귀중한 정보가 된다는 말이지····.” 정운은 앞으로 전체적인 필드의 탐사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정운은 내일부터 67층의 여러 가지 몹들을 부지런힌 사냥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아아앗!!!!!” “크워어어어어어!!!!” 콰아앙!!! 정운과 흑토의 합동 공격이 제대로 상대를 침몰 시켰다. “후우우····. 초원 지대에 있는 몹은 대략 다 잡은 건가?” 요 며칠간 정운은 일단 탐색 위주로 전투를 하고 있었다. 초원 지대를 돌면서 처음 보는 몹들을 상대로 부지런히 전투를 하고 있었다. 웜급 암석 드래곤. 골든 웨어 울프족. 그리고 지금 정운이 잡아낸 배틀 바바리안까지····. 다른 몹들은 종류는 다르지만 아래층에서 잡아본 몹들이었다. 하지만 이 배틀 바바리안은 종류 자체가 처음 보는 몹이었다. 그리고 그게 좀 짜증 났다. ============================ 작품 후기 ============================ 저기 배틀 바바리안은 예전부터 구상하던 몹입니다. 문명 5에 나오는 야만족을 거인화 시켰다고 보면 되는 종족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요즘 신작 치고 올라오는 기세가 무섭네요. 좋은 작품이 늘어나면 독자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일이죠.^^ 98화 <세레나의 휴가> 물론 다른 놈들이 만만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초원지대의 몹들 중에서 가장 생소한 형태의 몹이기는 했다. 겉보기에는 원시인이 가죽만 걸친 것 같은 형태였지만 그 신장은 3미터가 넘었다. 거기다 손에 들린 무기도 고작 돌 도끼일 뿐일텐데 상당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까다로운 것은 이 놈이 무리를 지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10명 정도가 뭉쳐서 다니는데 위험이 닥치면 주변에 소리를 지르고 까딱 잘못하면 수백명에 달하는 동료들을 불러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정운이 ME로 수집한 이 두 몹들의 정보은 대강 이랬다. 골든 웨어 울프족. LV. 85~90 [30~100마리가 한 무리가 되어서 돌아다닌다. 일반 웨어 울프들 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며, 발톱에서 황금색의 강력한 검기를 일으킨다.] 배틀 바바리안. LV. 90~95 [보통 10명 정도가 뭉쳐서 다니며 신장 3미터 정도의 거인에 무기는 곤봉이나 돌도끼를 자주 애용한다. 강력한 완력을 지니고 있으며 전투 스킬이 뛰어나다. 가장 주의할 점은 위급하면 동료를 부른다는 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배틀 바라리안의 동료를 부르는 스킬은 상당히 짜증났다. 입에 손가락을 넣고 미국인들이 콘서트에서 휘파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삐이익!! 하고 부르는데···.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두두두두 하는 효과음과 함께 때거지로 몰려오고는 했다. 놈들의 발이 느린 편이기는 했지만 한 방향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방에서 달려오다 보니 꼭 어그로 트랩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요 일주일간에 초원지대를 꾸준하게 관찰하고 몹들과의 전투를 투닥 거린 덕분에 초원 지대의 삼종류의 몹들을 전 종류 컴플리트 하기는 했다. “후우····. 일단 초기의 목적은 이뤘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돌아가자.”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듣던중 반가운 말이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돌아가는 길에 세 사람은 말 위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슬기 너 유니크 아이템 레벨이 지금 몇이지?” “레벨2요. 어제 막 올랐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예전에 내가 그림자의 망토 올리는 것에 비해서는 빨리 안 오르는 것 같애.” “그런가요? 하긴···. 정운씨는 그걸 워낙에 주력 기술로 많이 사용했으니까요.” “너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 “아무리 유니크 아이템이라고 해도 초반부터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아시잖아요? 가뜩이나 세 명중에 제가 레벨도 가장 떨어지는데 제가 힘을 온전하면서 어떻게 한 명 몫을 해요?” 슬기는 귀엽게 입술을 뾰족하니 내밀고는 말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레벨은 금방 오를거야.” “정말이지···. 정운씨가 그렇게 말하면 그냥 수긍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지?” 슬기의 말에 정운은 싱긋 웃어버렸다. 사실 정운도 그렇고 슬기도 그렇고···. 이레귤러처럼 갑자기 나타난 세레나는 둘째 치고···. 순수하게 유저로서는 이 둘도 레벨을 엄청 빠르게 올린 편이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 5년이 약간 넘었는데 이미 100레벨에 도달한 정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 2년이 약간 넘었지만 이미 85레벨인 슬기. 이 둘의 성장속도는 비정상적이었다. 정석대로 올린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최고속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신수 그 놈이 어떻게 레벨을 올렸는지는 정말 미지수지만 말이야.’ 정운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빙빙 돌렸다. 그런 재수 없는 인간의 생각 따위는 또 하고 싶지 않았다. 정운은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서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유니크 아이템 감정 좀 해 봐도 될까? 내가 스테이터스를 자세하게 보고 싶어.” “알았어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선선하게 유니크 아이템인 주자그이 스태프를 건냈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혈맹으로 묶인 길드원이라고 해도 자신의 중요한 아이템을 상대에게 맡기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아이템을 맡겼을 때 그 상대가 인벤토리에 넣고 안 준다고 개기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실제로 초보들 중에서는 아이템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렇게 파티원들 사이에서 사기나 강탈이라는 트러블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운과 슬기의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일은 절대로 없었다. 슬기는 정운을 믿고 있었기에 선선하게 주작의 스태프를 넘겼다. 주작의 스태프. LV.2 공격력 : 50 마력 : 2,500 무게 : 10 내구력 : 무한 스킬 : 염소접(炎小蝶) (작은 화염의 나비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소화조(小火鳥) (작은 화염의 새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주작의 혼이 들어가 있는 스태프. 화염계 최강의 마법 지팡이며,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다양한 화염의 환수를 소환 할 수 있다.] 정운은 아이템의 속성을 확인한 후에 슬기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흠···. 그래도 이 정도면 저번에 쓰던 드래곤 하트의 스태프 보다는 나은걸?” “예. 그건 마력 보조가 2,000이었는데 이건 2,500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마법의 위력이 제법 늘었어요.” “그렇지···. 일단 그걸 위주로 꾸준하게 사냥하면 많이 늘어날 거야. 그리고 세레나?” “예. 마스터.”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공곤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이 말했다. “최근에 약간 정체기 아닌가? 레벨 오른지 제법 되었는데 여전히 100레벨이지?” “예. 송구합니다. 마스터.” “아무래도 전투 스타일이 어그로만 끌고 대미지를 별로 가하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그것도 좀 연구해 보자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 연구는 집에 돌아가서 ME의 영상을 확인하면서 해도 충분하다. 일단 마을로 돌아간 정운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기로 했다. 일단 초원 지대의 몹들은 모두 클리어 한 상태이니 1차 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ME를 이용한 복기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오면서 정운은 슬기에게 말했다. “내일은 휴일이지···. 슬기야. 어디 밖으로 나갈까?” “그럴까요?” 최상층에 올라온 이후···. 정운과 슬기는 오일에 하루는 휴일로 정하고 자체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실이 팽팽하면 끊어지기 쉽다고···. 십왕들 역시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오일에 하루씩은 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세 사람은 각자의 스타일로 휴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정운과 슬기는 주로 함께 다니면서 데이트를 하면서 보냈다. 여기서는 둘을 고위급 유저라고, 그리고 연예인이라고 귀찮게 구는 인간은 없었다. 뭐, 대신에 슬기의 미모 때문에 가끔씩 날파리들이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것 말고는 비교적 평범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둘은 최근에 연인답게 노는 것에 푹 빠져 있었다. 사귀고 나서 주로 방에 콕 박혀 잇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하던 둘이 아닌가? “정운씨, 좀 떨어진 곳에 캠핑장이 있데요. 낚시랑 취사도 가능한 곳.” “정말? 장비는?” “대여도 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직접 준비해서 가는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정운과 슬기는 당장 내일어디에 가서 하루 쉬도 올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캠핑이라면 당일치기로 즐기는 것은 좀 어려운가? 텐트에서 적어도 하룻밤은 자고 와야 하는데····.” “음···. 그럼 까짓것 이틀 쉬면 안 될까요? 가끔 있는 휴가라고 생각하고····.” 슬기는 아무래도 꼭 정운하고 같이 캠핑에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결국 정운은 슬기의 반짝반짝이는 눈빛에 이기지 못해서 그럼 그럴까? 라는 말과 함께 일박 캠핑을 결정해 버렸다. 슬기는 세레나에게도 함께 가는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저는 됐습니다. 집 근처에서 평범하게 쉬고 있겠습니다. 슬기 당신과 마스터 둘이서 편하게 다녀 오세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뒤로 빠졌다. 정운으로서는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레나하고의 접점은 사냥 때가 아니면 최대한으로 줄여야 돼.’ 정운은 슬기를 울리고 싶지 않았다. 상처 입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절대로 자기 안에 있는 이 감정은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정운은 슬기와 함께 캠핑을 갔다. 초보 주제에 뭔가 이것저것 장비만 엄청 충실하게 갔는데 그게 잘 될지 안 될지는 일단 나중에 알 일이고····. 이야기의 초점을 잠시 세레나에게로 옮겨 가겠다. 왜냐하면 염장 커플 둘이서 캠핑장에서 뻘짓 하면서 ‘하하호호’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세레나에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처음은 평범했다. 세레나는 오랜만에 생긴 이틀 연속 휴일에 잠시 기지개를 펴고는 생각했다. ‘뭘 하면 좋을까····.’ 원래 생전의 그녀였다면 이렇게 무료한 생각은 꿈에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생전의 그녀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녀의 어깨에 구국의 운명과 신명이 걸려 있었다. 보통 여성으로서의 행복. 개인으로서의 평안은 그녀에게 있어서 감히 바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죽고 나서, 그것도 임무로 인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 그녀는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맛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자신을 발견하고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지내다 보니 익숙해 졌다. 하루하루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은 생소한 즐거움이 있었고···. 함께 있는 동료들도 마음에 들었다. 정운도 슬기도 이런 악마의 게임에 들어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선량하고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언제 부터인가 무척이나 평온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TV만 보고 있어도 별 재미는 없네····. 어디 잠깐 나갔다 올까?” 그녀는 TV의 리모콘을 내려 놓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가을바람에 대비해서 간단하게 베이지 색의 코트를 걸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가을에 야영이라니? 춥지 않을까?’ 세레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사람들이 멀쩡한 집을 놔두고 일부러 숲이나 강으로 가서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하면서 즐긴다. 라는 것이 어디가 즐거운 건지 그녀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영은 기본적으로 피곤하기만 한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그것도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특징인 걸까?’ 지독했던 전란의 시기에 태어났던 그녀로서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도시의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고즈넉하게 감상에 잠겼다. ‘·····평화롭다. 이런 평안을 놔두고···. 왜 욕심들을 부리는 걸까?’ 그녀로서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인간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개중에는 나름 진지하고 헌신적인 이유가 있는 인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대부분의 유저들을 자기 개인의 욕망에 지고 넘어온 자들이었다. 자신을 더욱더 풍족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그것도 엄연한 인간의 일면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악마에게 혼을 팔아서 까지 손에 넣는 윤택함에 그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걸가? ‘····이해가 안 가··.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세레나는 그저 피식 웃으면서 가로수 길에 자신의 발걸음에 낙엽이 부서지는 감각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은 세레나에게 집중 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금발의 미인이 코트를 입고 분위기 있게 가을길을 걷고 있는 상황····. 마치 한 폭의 명화가 살아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세레나가 메인으로 들어가는 에피소드입니다. 여기서 세레나에 관한 많은 궁금증이 풀릴 것입니다. 뭐... 이미 눈치채고 계신 분들도 있어서 제가 빨리 댓글을 지웠지만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99화 그저 아름다운 여자들은 참 많았다. 하지만···. 세레나의 경우는 그냥 아름다운 여자라기 보다는 뭐랄까··. 손대기 어려운 고귀하고 세련된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보고만 있어야지. 감히 말을 걸거나 손을 뻗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다. 고고하면서 아름다운····. 마치 성스럽다고 까지 느껴지는 그런 느낌을 주는 여자가 세레나였다. 그렇게 세레나가 남자들의 한숨을 받으면서 걸어가는 와중에 그녀는 문득 발 걸음을 멈췄다. ‘이 느낌은·····?’ 그녀는 의외의 느낌을 받고는 살짝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 게임의 근원을 생각하면···. 아니 물론 파우스트는 천재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이상한 걸?’ 세레나는 지금 자신의 감각에 걸린 느낌을 다시 확인하고는 혼란에 빠졌다. 이상했다. 이 세계에 와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 느껴진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절대로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기운. 바로 신성력이었다. 물론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성기사 같은 클래스가 있고 그들은 신성력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세레나가 알기로 그건 진짜 신성력은 아니었다. 신성력이라는 효과를 발휘하는 마력일 뿐이었다. 아마도 게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그저 이름만 신성력이라고 붙었을 뿐.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진정한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세레나 한 명 뿐이어야 했다. 그래야 말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세레나의 감각에는 자신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상당히 강력한 신성력의 파동을 은은하게 느끼고 있었다. ‘확인해 봐야 겠어···.’ 그녀는 이 이레귤러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틀었다. 그녀는 일단 이 파동의 중심지를 향해서 무작정 걸어갔다. 방향을 대강 아니까 하늘을 날아가면 간단하겠지만···.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택하기 위해서 착실하게 걸었다. ‘제법 멀리서 느껴지고 있어··. 한시간 정도는 걸어야 겠는걸?’ ······어째서 택시를 탄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걸까? 정운이 돈도 많이 줬는데····. 세레나는 걷고 걸어서 목적지로 향하다 보니 어느새 뒷골목 같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도시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슬럼일 것이다. 이 스카이 타운은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 속의 세계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슬럼을 충실하게 구현해 놓고 있었다. 세레나는 총총 걸어서 슬럼을 지나가고 있었다. 빛도 잘 들지 않는 좁은 골목. 여기저기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는 쓰레기와 술병···.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손바닥만한 나이프를 들고 나름 폼 잡고 있는 얼간이들이었다. “여어···. 예쁜이 길 일었니? 오빠들이 보호해 줄까?” “············.” 나름 저런 대사를 멋있다고 말하는 걸가? 눈앞에 나타난 갱 같은 복장의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 세레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신성력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쓰레기들이 나오는 걸까? 그녀는 한참 중요한 일을 확인하려는 찰나에 이상한 놈들이 나오자 어이가 없어서 힘이 쭉 빠질 정도였다. ‘상대하기도 귀찮은데 그냥 도망갈까?’ 그녀가 작정하고 휙 달리면 이런 놈들이 따라 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세레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헤헤··. 도망가려고? 그러지 마. 여기는 무서운 놈들 많다고.” “얌전히 우리만 따라와. 그럼 안전하게 보내줄게. 응?” “천국으로 말이지···. 킥킥···.” 이미 뒤편에도 몇몇 남자들이 나타나서 길을 막고 있었다. ‘···앞에 두 명, 뒤에 세 명. 후우···.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세레나는 생전에도 무척이나 바르게 또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흉내도 내기 힘들 정도로 결벽하게 살아왔다. 그런 그녀였기에 이런 양아치들은 근본적으로 경멸했다. 보통은 그녀의 눈에 띤 것 만으로도 해충을 눌러 죽이는 것처럼 죽여 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던 것은 지금은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일단은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죽다 살아난 행운을 손에 거머쥐고도 이 양아치들은 세레나의 성질을 건드렸다. “헤헤헤···. 깔면 죽이겠는데?” “나 일빠.” “시끄러워. 새끼들아. 형님 먼저···.” 놈들은 자기들 끼리 멋대로 지껄이기 시작했고 세레나의 아름다운 미간에 주름이 진하게 잡혔다. 그리고····. 그게 놈들의 인생 최대의 패착이었다. 콰지직!!! 세레나는 인벤토리에서 자신의 검을 꺼내서 그대로 콘크리트 벽에 확 박아 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 “·············.” “·············.” 희희낙락 거리던 양아치들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사방은 쥐죽은 듯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세레나는 콘크리트 벽에 박았던 자신의 검을 꺼내서 양아치들을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놀아달라고? 좋아. 놀아주지.” “············.” “············.” “············.” 양아치들은 이제 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지만···. 세상 상다 보면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10분 뒤. “끄응····.” “으으··· 으····.” 양아치들은 뒷골목에 대가리를 박고 진땀을 끙끙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세레나가 있었다. 세레나는 우선 놈들을 10초 만에 사뿐하게 제압하고···. 그 다음 9분 50초 동안 인생갱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처맞고 대가리 박는다고 인생이 변할지는 의문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 이 양아치들의 운수가 사납다는 것이다. 세레나는 놈들의 대가리가 바닥에 제대로 심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난 잠시 어디 좀 갔다 오지. 그리고 내가 다시 여기 왔을때···. 너희들이 이 자세 이 상태 그대로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않는다면?’ ‘않는다면?’ 양아치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무시무시한 불안감이 떠올랐다. 저 괴물같이 강한 여자가 어떤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때는 기대 해도 좋을 거야. 참고로···. 난 언제 어디서 불쑥 찾아올지 몰라.” 세레나는 그렇게 한 마디를 남기고는 다시 자신의 볼일을 보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 뒤에 골목에는 양아치 다섯이 동시에 대가리를 밖고 부동 자세로 땀만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난 언제 어디서 불쑥 찾아올지 몰라.] 세레나가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가 그들의 뇌리에서는 몇 번이고 메아리를 치고 있었다. 양아치들을 가뿐하게 훈계한 후에 세레나는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서 계속해서 신성력의 근원지로 찾아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슬럼가의 뒤편에 있는 작고 낡은 성당이었다. 성당은 여기저기 상당히 낡고 오래된 건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성당의 안에서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근원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어디, 한 번 확인해 볼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성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삐걱 거리는 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낡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청소를 하고 있는 티가 나는 청결한 예배당이 안에 있었다. 그녀는 들어가자마자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이며 크리스찬으로서의 예를 다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신부복을 입은 한명의 남자가 다가와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자매님. 기도하러 오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 남자군···. 이 남자가 신성력의 주인이야.’ 세레나는 눈앞의 신부에게서 상당한 신성력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것은 성인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주교급의 신성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혹시 어떤 성구 같은 것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눈앞에 있는 신부의 전신에서 훌륭한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단 성당에 온 이상 신에게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것을 최우선했다. “·············.” 기도를 다 하고 난 후에 그녀는 일단 의문점을 하나하나 생각해 갔다. ‘이 그라운드 제로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를 봉인하기 위해서 만든 게임의 세계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살짝 혼란 스러웠다. 그녀가 알기로 이 게임을 만든 건 파우스트지만 그 파우스트는 반쯤 악마 같은 존재다. 물론 근본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메피스토와의 계약으로 인해서 반 정도는 악마에 가까운 자인 것이다. 그런 자가 만든 게임에 어떻게 신을 찬미하는 성당이 있을 수 있을까? 그냥 성당이라는 건물만 있다면 혹시 모르겠다. 성당은 아니지만 일반 마을에서도 신전이라는 것은 있었으니 그냥 게임의 설정이려니 하면 된다. 하지만 눈앞의 신부는 현실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청명한 신성력을 온몸에서 뿌리고 있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저것 혼란 스러운 정보가 혼재하면서 아귀가 전혀 맞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세레나가 그렇게 반쯤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성당의 문이 열리고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쪼르르 들어왔다. “신부님 배고파요···.” “밥 주세요···.” 아이들은 입고 있는 옷이나 행색을 척 봐도 빈민가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신부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알았다. 잠시만 기다리 거라. 거기 자매님.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잠시 저를 도와 주시겠습니까?” “예? 저··· 말씀이십니까?” “예. 아··. 초면에 무례했을까요?” “아닙니다. 마땅히 해 드려야죠.” 그녀는 신부의 부탁을 받아서 그를 도와서 움직였다. 신부는 익숙하다는 듯이 커다란 냄비를 꺼내서 거기에 쌀과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죽을 끌이기 시작했다. 마른 멸치에 야채와 작은 두부를 넣어서 아이들의 몸에 필요한 영향소를 다 포함한 죽이었다. 그가 그렇게 요리를 하는 동안 세레나는 아이들이 앉을 간의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서 상을 차리는 것을 도왔다. 잠시 후 아이들은 신부가 다 됐다. 라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들었다. “신부님 많이 주세요.” “신부님···. 더 주세요.” 아이들은 평소에 먹을 것이 부실했던지 신부가 나눠주는 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많이 있으니 천천히 체하지 않게 먹으렴···.” 그런 아이들에게 죽을 한 그릇 한 그릇 나눠주는 신부의 모습은 한 점의 가식도 없이 자애로웠다. ‘········일단, 내버려 둘까?’ 세레나는 그런 신부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파우스트가 대악마 메피스토펠리스를 봉인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이 그라운드 제로. 이런 세계에 어째서 저렇게 신앙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광경이 있는지는 그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저 아름다운 광경을 두고 뭔가를 의심 한다거나 하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아이 중에 한 명이 세레나에게 와서 말했다. “누나···. 누나는 어디서 왔어요?” “응? 으음···. 약간 떨어진 동네에서 왔단다.” “그래요? 왜 여기까지 왔어요?” “글쎄···. 주님이 인도해서 기도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너희들 어린 아이들을 돌봐 주라고 보내 주셨지.” 세레나의 말에 아이는 해 맑게 웃으면서 세레나의 품안에 안겼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린 애들은 성인 남자보다는 성인 여성을 더 잘 따르는 경우가 많다. 세레나가 아이들을 안아 주고 같이 놀아주자 아이들은 금방 세레나를 따랐다. 세레나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속에서 한참을 어울리면서 행복한 기분에 젖었다. ‘음····. 뭔가를 잊어버린 기분인데···.’ “세레나 누나·· 빨리요. 패스!!” “응? 아····.” 세레나는 아이에게 공을 차주면서 그냥 별것 아니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각···. “끙···. 으으으····.” “아···. 뭐··· 뭔가가 보여···.” “참아···. 죽기 싫으면 모두 참는 거야.” “으으으····. 그냥 죽고 말래.” “참으라니까!!!!!” 세레나가 손 봐줬던 양아치들은 머리 박기로 기네스북이라도 세울 기세였다. ============================ 작품 후기 ============================ 잘못 걸렸다. 라는 말은 저럴때 쓰는 말이죠. 몹 정보 보내주신 분들에게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몹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 오르시면 언제든지 쪽지로 보내 주십시오.^^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0화 <세레나의 정체> 아이들은 세레나와 땅거미가 깔릴 정도로 늦게까지 뛰어 놀았다. 그리고 한창 뛰어논 아이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하나 둘 씩 돌아갔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집으로 가지 않고 성당의 안으로 들어갔다. 세레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고 신부에게 말했다. “저 아이들은 신부님이 돌보시는 건가요?” 세레나의 말에 신부는 웃으면서 말했다.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축복이죠.” “········그렇군요.” 세레나는 이 신부가 참 마음에 들었다. 정체는 알수 없지만 신앙심이 투철하고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거나 거만한 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신에게 봉사하고 주변에 베푸는 삶을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신앙인으로서의 거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멘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린 아이가 우물쭈물 하면서 신부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신부님···. 무서워요. 저 안 자면 안 되요?” 아이가 배게를 품에 안고 무섭다고 하는 말에 신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잘 먹고 잘 자야 내일 또 친구들하고 같이 놀 수 있단다.” “하지만····.” 아이는 뭔가가 정말 무섭다는 듯이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윽고 신부를 향해서 눈물을 글썽 거리면서 말해다. “그러다가··. 또 나쁜 사람이 잡아가면 어떻게 해요? 민철이 오빠도, 재영이 언니도····.” “······소영아···. 걱정하지 마렴. 아무 일도 없을 거란다.” 신부의 말에 소영이라는 아이는 울먹 거리면서도 신부의 품안에 안겨서 잠들기 시작했다. 세레나는 둘의 대화를 듣고 나서 신부에게 말했다. “혹시···· 아이들 사이에 뭔가 안 좋은 일이라고 있었나요?” 세레나의 말에 신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워낙에 동네가 험하다보니···. 가끔씩 아이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고는 합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그게 정말입니까?” 세레나는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화악 올라와서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냉철한 것 처럼 보이지만 원래 그녀는 정이 많은 여성이다. 정이 많은 여성이었기에 생전에도 그녀는 항상 손해를 봤다. 왕을 구하고, 국민을 구하고, 나라를 구했다. 그런 그녀를 왕이 버렸을 때도····. 그녀는 무엇하나 원망하지도 못했고 쓸쓸하게 죽어갔다. 비록 잠깐 함께 있었을 뿐이지만 아이들에게 정이 듬뿍 든 세레나에게 있어서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는 이미 적이었다. 신부는 분노한 세레나에게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돌보던 아이들과··. 빈민가의 아이들 몇몇이 유괴 되고는 했습니다. 그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요.” “···그랬단 말이죠? 경찰에는 말 했습니까?” 세레나의 말에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일단 신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신고를 했어도 경찰은 빈민가의 일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워낙에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서····.” 세레나는 제대로 열이 받았다. “그랬단 말이죠····.” 세레나는 스산한 목소리를 하고는 속으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휴일이지만 이 휴일을 다 투자해서라도 그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놈들을 잡아넣겠다고 말이다. 일단 그렇게 결심한 세레나는 성당을 나와서 아이들을 어떻게든 유괴범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는 강하고 용맹하고 청렴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게 범죄를 멀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도 범죄자를 잡는 것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레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도둑으로 도둑을 잡게 하라···. 마침 잘 됐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으··· 으으···.” “나··. 나 이제 정말 착하게 살 거야.” “제길··. 그 마녀 이제 안 오는 것 아니야? 우리 바보짓 하는 것 아니냐고?” 강렬한 공포를 새겨 놓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공포가 사그라드는 법이다. 세레나의 엄포는 강렬한 공포를 양아치들에게 새겨 놨지만···. 이제 슬슬 그 약발이 다 되 가려고 했다. “씨발···. 그년이 뻥친 거야.” “여기 오기는 누가 또 와?” “개 같은 년. 확 가랑이를····.” 놈들의 기세가 분노라는 지팡이를 부여잡고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들려고 하는 그 순간···. 양아치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을 대마왕, 아니 대마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오···. 기세등등 한 걸?” “············.” “············.” “············.” 분위기 급속 냉각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전부 배꼽을 하늘 높이 올리고 일명 거꾸로 박기를 하고 있는 5인의 양아치를 볼 수 있었다. 세레나는 이 녀석들을 다시 한동안 이 상태로 내버려 둘까 싶었지만···. 일단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미루는 것이다. 나중에 하기는 하겠다고 생각하는 세레나였다. “일어서.” 세레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간단한 말 한마디가 이 양아치들에게는 천상의 복음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런 놈들을 보고 세레나가 말했다. “너희들 중에 최근···. 아니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린이 유괴 사건에 관해서 아는 사람은 있나?” 세레나의 말에 양아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한 놈이 조심 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누님.” “누가 누님이야?” 세레나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하자 놈은 순간 왕창 쫄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으음···. 그 놈은 우리 거리에 골칫덩어리입니다. 우리도 몇 번인가 잡으려고 했지만 그게··. 워낙에 신출귀몰한 놈이라서···.” 세레나는 놈들의 말을 들으면서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잡아? 너희들은 유유상종인 종속 아니었나?” 세레나의 말에 놈들은 천부당 만부당 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적어도 어린애들한테는 손 대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어린애들한테는 앵벌이 한 번 시킨 적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 거리 밖에 있는 놈들에게서 빼앗을 뿐입니다.” “··········.” 세레나는 그건 자랑이라고 말 하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고 들었다. “우리는 적어도 ···········.” “맞습니다. 적어도 ···········.” 결코 이 놈들을 용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이기에 때때로는 약간의 변명이나 개인적인 사정에 악인을 간단하게 용서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악인들도 그런 점을 십분 악용하는 경우가 만연하다. 하지만 세레나는 그런 무른 성격의 용의자는 결코 아니었다. 사실 이 놈들이 처음에 세레나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이 놈들의 눈에는 짐승 같은 욕심이 가득했다. 아마도 세레나가 아무런 힘없는 여성이었다면 지금쯤 어떤 끔찍한 짓을 당했을지 안 봐도 뻔했다. 여자로서의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당하고 가진 돈은 모두 빼앗겼을 것이다. ‘죄는 죄다.’ 그게 세레나의 간단한 정의감이었다. 죄인의 사정 하나하나를 감안해주고 들어주다가는 그 죄인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수가 있었다. 그러니 세레나는 죄인에게는 연민도 동정도 가능하면 품지 않으려고 냉엄하게 선을 그었다. 결코 이런 양아치들의 핑계에 마음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 다만····. 지금만큼은 더 중요한 목적이 있으니 이 양아치들의 변명을 들어주는 척 하는 것 뿐이다. 놈들은 한참을 장황하게 우리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더 나쁜 놈들이 무척 많다. 우리도 먹고 살다 보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떠들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세레나가 원하는 정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 빈민가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그저 제법 오래전부터 아이들이 한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가져가는 유괴범은 실로 신출귀몰했다. 가끔씩 사람들의 눈에 띠기는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목격담은 검은색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붉은 안광만이 번뜩이는 괴인이라는 것 뿐이었다. “놈이 움직이는 주기와 이동경로는?” 세레나의 말에 양아치들 중에 한명이 말했다. “제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놈이 아이를 한 명 낚아채더니 그대로······.” 놈의 설명을 들어가던 세레나는 듣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정말···이냐? 거짓은 아니겠지?” 세레나의 말에 양아치들은 고개를 격렬하게 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감히·····.” “절대 아닙니다. 이 놈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놈이 사라지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는 아무도 얼씬도 안 하는 겁니다.” “·······알았다. 이제 꺼져.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얼굴 비치지 말아라.” 양아치들은 세레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그대로 부리나케 사라졌다. 세레나는 홀로 골목에 남아서 중얼 거렸다. “빨리는 끝나겠군···. 빨리는····.” 여차하면 이 일이 끝날 때 까지 정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몇 주 정도 휴가를 얻으려고 했던 세레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일 자체는 빨리 처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끼이익.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방의 문이 열리고 동시에 그 문으로 누군가가 살며시 들어왔다. 들어온 자는 검은색 망토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고 그 눈동자는 핏빛처럼 붉어져 있었다. 그 괴인은 아이들 중에 한명에게서 손을 서서히 뻗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후우······.” 정체불명의 괴인은 흥분한 것처럼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그 괴인의 손이 아이의 몸에 막 닿으려는 순간····. “거기까지다.” “··········!!!!” 조용히 끼어든 한 마디에 괴인의 전신은 얼음처럼 얼어버렸다. 괴인을 단 한마디로 멈춘 것은 달빛에 차가운 얼굴을 비치고 있는 세레나였다. “밖으로 나가자.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원하지 않겠지?” “··········.” 괴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세레나를 따라 나왔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성당의 마당···. 낮에는 세레나와 함께 공을 차고 뛰어놀던 아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두운 적막과 달빛에 비치는 두 인형만이 다였다. “···아니기를 바랬는데···. 세상사라는 것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군····. 그렇지 않나? 타락한 신부.” 세레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괴인을 가리고 있던 망토가 벗겨지고···. 달빛에 낮에 아이들에게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던 신부의 얼굴이 보였다. 다만···. 똑같은 인물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신부의 얼굴은 사악하고 난폭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신부를 보고 세레나는 자기 검을 꺼내면서 말했다. “사정이 뭔지는 물어보지 않겠다. 신앙을 버린 변절자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심판은 어차피 하나 뿐이니까.” 세레나가 그렇게 말한것과 동시에 신부를 향해서 질풍처럼 움직였다. 후우웅!!! 단칼에 베어버리려고 한 세레나의 검격은 아쉽게도 허공만을 갈랐다. 신부는 그대로 위로 크게 점프하더니 바닥을 향해서 하강했다. 그리고는····. “으아아아아아아!!!!” 마치 광인과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신부의 주먹이 세레나를 노렸다. 세레나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 적의 공격을 피했다. 콰아앙!!! 그리고 직격 1미터에 달하는 크리에이터가 생길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 지면에 작렬했다. 세레나는 옆으로 피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면서 신부의 상태를 관찰했다. ‘····지금은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에 마력이 느껴지고 있어. 어떻게 된 걸까?’ 지금 신부가 하고 있는 것은 마족과 계약한 이교도들이 종종 사용하는 술법이었다. 간단한 신체 강화와 육체의 고통을 잊게 하는 간단한 기술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01화 인간은 원래 약한 존재다. 말이나 소를 부려 먹고는 있지만 동물로서의 피지컬 성능은 소 말은 고사하고 개에게도 미치지 못하는게 보통인다. 그런 인간이기에 그 신체능력의 상승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더 컸다. 신체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게 하는 것 만으로도···. 대부분의 달인은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세레나에게 먹힐 정도는 아니다. 이미 세레나 역시 인간의 한계 같은 얕은 물에서 노는 존재는 아니니 말이다. 붕붕!! 후웅!! 적의 공격을 침착하게 피하던 세레나는 그대로 차분하게 적의 공격을 살폈다. 그렇게 1분 정도 상대의 공격을 살피던 세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적의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왼손의 방패를 이용해서 크게 휘둘러 신부의 안면을 후려쳐 버렸다. 파아앙!!! “크으으으····.” 신부는 세레나의 방패에 얼굴의 옆면을 그대로 얻어 맞고는 저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간 신부는 그대로 골목의 구석까지 날아가서는 처박혀 버렸다. 세레나는 쓰러진 신부를 향해서 저벅저벅 다가가면서 차가운 시선을 하고 말했다. “네 정체가 뭔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산더미처럼 많다만····.” 잠시 말을 끊었던 세레나는 차가운 시선을 유지하면서 신부에게 말했다. “그 무엇보다 악마를 향한 심판이야 말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레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이제 내려치기만 하면 눈앞에 있는 신부의 탈을 쓴 악마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망할 썅년이····. 짜증나게 하는 군.” 신부의 입에서 굉장히 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세레나와 신부를 중심으로 공간이 변했다. 울렁 거리는 것 처럼 공간이 굴절 되었다. 그리고 그 공간이 세레나와 신부를 동시에 집어 삼켜 버렸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미 신부와 세레나 둘 다 흔적도 없이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이건····?” 세레나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흘러나왔다. 사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당혹감이라기 보다는 무척 의외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설마 이 세계에서 이런걸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세레나가 살짝 중얼 거리듯이 말했다. “데빌필드···. 지저분한 악마의 식탁이군..” 세레나는 주변을 슬며시 돌아보면서 말했다. 지금 그녀는 붉은 땅과 붉은 바위, 그리고 저 멀리 은은하게 불타오르고 있는 헐벗은 산이 보이는 공간에 있었다. 그녀는 이게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악마들이 인간의 영혼을 잡아 먹기 위해서 만든 장소다. 모든 악마들이 자신들만의 데빌필드를 가지고 있다. 크던 작던 간에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악마들은 핀치에 몰리면 종종 이곳으로 적을 끌어당겨서 싸우고는 했다. 여기라면 모든게 자신들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펼쳐졌다는 것은···. 세레나가 생각하는 가설이 어느 정도 맞다는 것이다. 쿠구구구. “이 망할 XXX, 여기서 다시 한 번 싸워 보자.” 지면이 갈라지면서 나타난 것은 붉은 피부에 산양의 뿔을 하고 있는 한명의 악마였다. 그 악마는 나타나자 마자 세레나를 두고 거칠게 욕설을 뿜어내면서 증오를 드러냈다. 세레나는 그런 적을 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네가 그 신부의 안에 있던 악마인가? 조무래기로군.” “닥쳐!! 이 X 같은 XXX아!!!” “악마들 입은 왜 그렇게 더러운지····.” 세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직자들의 안에 파고 들어서 기생하는 종류의 악마가 있다는 애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저 악마가 그런 종류일 것이다. ‘저게 왜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악의 주구가 나타난 이상 내가 할 일은 하나 뿐이지.’ 세레나는 그렇게 담담하게 마음 먹었다. 하지만 담담한 세레나와 반대로 악마쪽은 있는 대로 열이 받았다. ‘어디서 이런 년이···. 내 정체까지 알고 있는 것 같잖아? 도대체 어떻게····.’ 이 악마의 입장에서는 미칠지경이었다. 사실 그는 별로 이름 없는 중급 악마일 뿐이었다. 인간계에서 인간을 유혹해서 그 인간을 타락 시키고 악행을 저지르게 하는게 주 업무(?)였다. 그런 놈이 이렇게 된 것은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한 신부 때문이었다. 신부는 강력한 신성력과 악마에 대한 제대로 된 퇴마술을 가지고 있는···. 전 세계를 다 돌아봐도 몇 없는 진정한 엑소시스트였다. 무엇을 숨길까? 낮에 세레나와 함께 아이들을 돌봐준 그 자애로운 신부가 바로 악마를 위기로 몰았던 엑소시스트였다. 숙련된 퇴마술이라고 해도 중급 악마는 쉽지 않은 상대라서 신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악마 역시 만만치 않은 진짜 엑소시스트를 상대로 고전했고···. 결국 악마는 신부의 퇴마술에 당해서 지옥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 순간 악마는 물귀신처럼 신부에게 들러 붙었고 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오류가 일어났는지 악마와 신부는 지옥으로 떨어 지는게 아니라 그라운드 제로안의 스카이 타운 안으로 들어왔다. 악마의 계약으로 들어온게 아니라 마치 바이러스처럼 스카이 타운의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 안에 들어온 악마는 신부의 몸 안에서 암약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린아이의 영혼을 잡아 먹음으로 힘을 키우고 있었다. 절대로 신부가 느끼지 못하도록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힘을 모아서 신부가 악마의 흔적을 느꼈을 때는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세네나에게 걸리기 까지 시간만 하염 없이 흐른 것이다. “망할 X 같은 년!! 사지를 찢어서 개먹이로 주고 말 테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모으면 이 지겨운 신부새끼의 몸에서 나갈 수 있었는데···.” 악마는 거대한 몸으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화를 내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런 악마를 태연하게 바라봤다. 악마의 말에는 가능하면 귀 기울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아야 한다. 악마를 상대할 때의 철칙을 세레나는 잘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레나에게 악마가 말했다. “좋다. 어차피 이렇게 된것···. 애새끼들의 영혼은 슬슬 질리던 참이다. 네년 비린내가 풀풀 날리는게 남자를 모르는 처녀로군.” 악마는 입술로 자기 송곳니를 핥으면서 징그럽게 말했다. “잘 됐군. 순결한 처녀의 영혼도,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과는 다른 의미로 별미지. 클클클···.” 악마의 말이 다 끝나도록 세레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여기저기를 빙빙 둘러보면서 뭔가를 확인하는 듯한 태도만 보였다. 그런 세레나의 태도가 악마에게는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공포와 절망, 하다못해 분노와 적의라도 있어야 흥이 나는 법이다. 악마에게 있어서 세레나의 담담한 태도는 심히 거슬렸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하지 그래? 이 XXX년아.” 악마의 말에 세레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악마에게 질문하듯이 말했다. “····데빌 필드를 폈다는 것은, 네가 파우스트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인가?” “···뭐라고?” 사탕 먹다가 이라도 부러진 어린애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악마에게 세레나의 말이 이어졌다. “하긴 잡히면 그냥 두지는 않겠지. 너 같은 중급 악마가 파우스트의 눈에 띠면 그 순간 죽도 살도 못하게 될 테지.” 세레나의 말에 놈은 눈썹을 꿈틀 거리면서 말했다. “···너 정체가 뭐냐?” 데빌 필드를 아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악마를 상대하는 것이 능숙한 엑소시스트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파우스트에 관해서 알고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파우스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인간은 지극히 한정 되어 있었고···. 그런 인간들 중에 저런 인간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너··. 인간이 아니구나?” 악마는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세레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악마에게는 무엇 하나 협조하지 않는다. 그게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세레나의 그런 태도를 보고 악마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세레나의 정체는 나중의 일이다. “좋다··. 어차피 머리뼈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 네년의 기억도 읽을 수 있겠지. 이대로 잡아 먹어 주마!!!”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몸을 더욱더 거대화 시켰다. 마치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거대해진 놈의 몸은 이곳 데빌 필드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듯 했다. 세계를 발아래에 두는 거인처럼 변한 놈을 보고도 세레나는 담담했다. “크군.” 그런 세레나를 보고 악마는 광소를 터트리면서 말했다. “흐·· 흐흐흐···. 너 역시 그라운드 제로에서 어느정도 힘을 손에 넣은 모양인데···. 절망적인 정보를 알려줄까? 지금 나를 상대하려면 너희들이 말하는 레벨로는 200레벨이 되어도 모자랄 것이다.” “············.” 악마의 말에 세레나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치 너는 짖어라. 나는 안 짖는다. 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런 세레나를 보고 놈은 이제 질렸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쥐포로 만들어 주마!!” 그리고 놈은 거대한 발을 들어서 세레나의 머리위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아래로 내리 찍어 버렸다. 쿠우웅!!!! 지축을 울리는 듯한···, 아니 듯한이 아니라 정말로 지축을 울린 강력한 일격이 세레나를 찍어 눌렀다. “크크크···. 제길, 오랜만에 계집···. 한참 공포와 절망으로 물들여서 가지고 놀고 싶었는···. 응?” 말을 하던 악마는 자신의 발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뜨거···. 으아아아!!!” 퍼어어엉!!! 놈이 자기 발바닥이 뜨겁다고 느낀 순간···. 놈의 발밑에서 황금빛 성광이 터졌고 놈의 발에서 무릎 위 허벅지 까지가 한 방에 날아갔다. “크···. 크으윽···. 이건···? 이건 말 도 안돼.” 놈의 얼굴에 경악과 그 좋아하는 공포와 절망의 감정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런 놈의 코앞에 10쌍의 날개를 펼치고 전신에 황금빛 갑옷을 걸친 세레나가 천천히 떠 올랐다. “내 인생에 악마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고맙다고 해야 겠군. 네가 데빌 필드를 펼쳐준 덕분에 나도 여기서는 본연의 힘을 다 발휘 할 수 있다.” “너···. 너 천사냐?” 악마는 눈앞의 세레나에게서 성력, 아니 천사의 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천사도 악마도 그 나름의 격이 있는 법이다. 눈앞의 이 악마는 나름 잔뼈가 굵은 중급 악마이다. 하지만···. 그런 악마의 눈앞에 있는 세레나는 천사로서의 격이 전혀 다른 존재였다. 천사의 계급은 보통 9단계다. 일반 천사부터 대천사, 권천사, 능천사, 역천사, 주천사, 좌천사, 지천사, 그리고 최고위 천사인 치천사까지···. 지금 눈앞에 있는 천사의 등 뒤에는 10쌍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그것은 지천사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고위급 천사라는 말이었다. “너··. 너 도대체 누구냐? 내가 알고 있는 지천사 중에 너 같은 년은 없어!!!” 경악 섞인 악마의 말에 세레나는 처음으로 악마의 말에 선선히 대답해 줬다. “나야 아직 생긴지 1,000년도 안 된 천사니 그렇겠지.” “···········.” 겁에 질린 악마에게 세레나가 가슴을 펴고 담담한 목소리로 선언하듯이 말했다. “내 존명은 잔 다르크, 세상에서는 나를 오를레앙의 성처녀라고 부르며 성인의 위를 받았다. 그리고 치천사 미카엘님에게 너희들 악마의 음모를 분쇄한 명령을 받고 여기에 왔지.” 세레나의 말을 들은 악마는 경악한 얼굴을 하고는 중얼 거렸다. “미··· 미친·····. 인간을·· 그것도 성인을 천사로 만들어? 이 망할 놈들····.” “이제 너에게 해 줄 말은 없다. 운 없는 악마여···. 주의 자비 앞에 회개하라.” 세레나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의 온몸에서 성광이 터졌다. ============================ 작품 후기 ============================ 예. 잔다르크 맞습니다. 맞고요.... 원래 스포댓글은 삭제 한다고 했지만... 워낙에 뻔한 스포이고 예측한 분들도 많아서 별 의미도 없어서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사실 세레나가 처음 등장했을때 예견했던 분도 있었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2화 생전에 살아서는 신의 계시를 받아서 나라를 망국의 위기에서 구했던 영웅이었고···. 안타깝게 19세라는 어린 나이로 죽었지만 죽고 나서는 그 누명을 벗고 성인의 칭호를 받은 성처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에 와서는 그라운드 제로에 악마의 음모를 부수기 위해서 이렇게 천사로서 들어온 것이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중급 악마 나부랭이가 나타난 것 부터가···. 이미 운이 없다고 해도 좋았다. “끄··· 끄아아아아악!!!!” 화려한 싸움이나 공방 따위는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세레나가 자신의 힘을 개방한 것만으로도 악마는 그대로 고통 속에서 불타 올라갔다. 애당초 격이 달랐다. 사자와 토끼가 싸운다고 그게 싸움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세레나와 중급 악마의 힘은 그 차원이 달랐다. 완전히 악마를 쓰러트리자···. 악마가 있던 자리에는 한명의 신부만이 남았다. 마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쓰러져 있는 신부를 보고 세레나가 천천히 다가갔다. “·····정신이 들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세레나의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하는 신부는 쓰러진 상태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만이 흘러 나왔다. 악마에게 몸을 빼앗겨서 이 세계에 들어온 이후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이 이제 모든 기억이 돌아옴과 함께 돌아온 것이다. 그는 멍한 시선으로 허공만 바라보다가 세레나를 향해서 말했다. “····저의 죄를 심판하여 주시겠습니까? 성처녀시여.” 그런 신부의 바람에 세레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죄를 심판하는 것은 주의 몫입니다. 무력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레나의 말에 신부는 절규했다.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이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아직 제 심장이 뛰고 있는 지금 가르쳐 주십시오.” 세레나는 서서히 먼지가 되어서 흩어지는 신부의 몸을 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알고 있겟지만, 이미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습니다. 지금 꼭 하고 싶은 일을··, 가장 바라는 일을 하십시오.” 악마와 계약한 자의 말로.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 신부는 악마와 계약을 하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그것과 다름없는 공생 관계를 다년간 지속해 왔다. 그러니 그 말로가 이렇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계약의 주체가 되는 악마가 소멸했으니 그 영혼만은 자유로우리라. 그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었다. 세레나는 다 쓰러져 가는 그를 자신의 무릎에 눕히고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신부는 세레나의 호수처럼 맑은 눈을 보면서 말했다. “·····용···· 용서를···. 구합니다. 이 죄인이 감히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 신부의 참회를 들으면서 세레나는 그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추고는 말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가련한 엑소시스트 신부는 인생의 마지막에서나마 웃으면서 생을 마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부가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세레나는 자신이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옴을 느꼈다. 신부도 없고, 악마도 없다. 이제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라운드 제로의 뒷 골목일 뿐이었다. 세레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등을 돌리려고 했다. ‘뒷맛이 좋지 않은 일이었어····. 음!?’ 하지만 그런 세레나의 발 걸음을 붙잡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하나의 로자리오였다. ‘이건·····. 신성력? 그 신부의 마지막 성유물인가?’ 세레나는 로자리오를 손에 쥐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을 구해준 세레나를 위해서 그 신부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모두 이 로자리오에 담은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큰 힘을 쓸 수 없는 세레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언젠가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주의 품에서 평안하길.” 그렇게··. 고작 하루뿐이었지만 굉장히 많은 일이 벌어진 세레나의 휴가는 끝이 났다. 사람의 적응력이라는 것은 정말로 무섭다. 한층 한층을 올라갈 때 마다 더 강해지는 몹들 때문에 항상 허덕이지만···. 그래도 인간은 살아남고 또 살아남기만 하면 적응하기 마련이다. 정운의 팀은 이제 초원에서의 레벨업에 상당히 익숙해 져 가고 있었다. 사냥의 속도가 어지간한 십왕들의 파티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을 때 정운은 슬슬 본격적으로 레벨을 막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시기에 정운의 일행에게 호출이 떨어졌다. “이민지 누님이 부른다고요?” “그래. 언니야의 호출이니까 꼭 와.” “예. ···뭐 그러죠.” 정운도 이제 십왕들과 상당히 친해져서 스스럼 없이 누님 형님 하는 사이가 되었다. 뭐, 고참이라고 텃세 부리는 것도 없고 뭔가 이미 이룬 자들의 특유의 넉넉함이 있는 십왕들이었기에 어울리기는 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두를 호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일까?” “글쎄요···. 그거야 가보면 알겠죠?” 슬기도 정운만큼 궁금했지만 가보지 않으면 이유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민지의 집으로 가니 거기에는 이미 모일 사람들은 다 모여 있었다. 십왕 중에서 이민지보다 상위 서열인 배대호와 박추성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모두 모여 있는 것이었다. 기다란 테이블에 십왕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이 들어가자 한중겸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이런···. 막내가 제일 늦게 왔네? 빠져가지고··.” “죄송합니다.” 한중겸의 장난기 섞인 핀잔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정운까지 다 자리에 앉자 이민지가 본격적인 대화를 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으니 말할게. 이번에 이 멤버로 레이드를 할 생각이야.”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순간 이들의 모인 목적을 알았다. 십왕이 이만큼 모여서 할 레이드라면 하나 밖에 없다. 67층 돌파. 그것을 위해서 정운들까지 모두 호출한 것이다. “모두들 알다 시피···. 이제 67층도 돌파 할 때가 됐어. 신참도 들어왔고 전력도 증강 되었으니···. 한 번정도는 해 볼만 해.” 이민지의 말에 다른 십왕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정운이 올라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미 자기들 끼리 말을 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기다린 것은 정운이 어느정도 67층에 적응을 하게 내버려 뒀던 것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대강 끝난 것 같자 서서히 67층의 레이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정식으로 물을게. 67층의 레이드에 반대하거나 빠지고 싶은 사람은 거수 해. 내가 박살 낼 테니까.” “·········.” “·········.” “·········.” 있을 리가 없었다. “민지 언니야. 그런 말 안해도 여기 죽 치고 싶은 사람 없다니까요. 그보다 대호 오라버니하고 추성이 오라버니는요?” “그 둘은···. 파티는 맺어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도움은 주지 않겠다고 해.” “쯧, 저번에 신참 올릴 때 대호 형님이 도와 주시는 것 가지고 좀 마음이 바뀌었나 싶었는데····.” “내 버려 둬. 워낙에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잖아?” 십왕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정운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 대화는 마치 배대호와 박추성은 이 레이드에 관심이 없다는 듯한 말로 들리지 않는가? “저기···. 두 분은 레이드에 참가 안 하는 건가요?” 정운의 궁금증에 직접 질문을 한 것은 슬기였다. 슬기의 말에 한중겸이 팔짱을 낀 체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사실···. 그 둘은 더 이상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에 의욕이 없다.” “···어째서죠?” 슬기는 어이없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와있는 모든 유저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유저들의 최전선에 있는 NO.1,2가 게임 클리어에 흥미가 없다니? 이 사실은 이제까지 십왕들이 하위 유저들에게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긴 숨긴다기 보다는 그냥 입방정만 떨지 않으면 소문날 일은 없지만 말이다. “어째서 두 분은 클리어에 흥미가 없다는 겁니까?” 정운의 말에 이민지는 잠시 한 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제 너도 알기는 알아야지···. 좋아. 말해 주마.” 그리고 이민지는 박추성과 배대호가 게임의 클리어에서 한 발 물러난 것을 말했다. 그 둘은 약간 비슷한 시기에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다. 박추성이 배대호 보다 약간 일찍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둘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다. 즉, 일제 강점기였다. 박추성의 경우 악마에게 바랬던 소원은 다름 아닌 대한독립이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독립의용군이었던 그는 청산리 전투에 직접 참가를 했을 정도로 열혈적인 독립투사였다. 독립만 얻어 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자기 혼을 파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했지만···. 언제 부터인가 그에게는 동기가 사라졌다. 바로 연속으로 이 세계에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들은 정보 때문이었다. 일본의 패전, 그리고 이어진 대한 독립. 그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가 여기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악마의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동안····. 현실에서는 이미 나라의 독립이 이뤄진 것이 아닌가? 이래서야 싸우는 의미가 없어졌다. 결국 그는 차차 게임을 클리어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라졌고····. 레벨이 이미 200을 넘긴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다 시피 한 것이었다. 박추성의 경우는 동기의 상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배대호는 다른 의미였다. 그가 무슨 소원 때문에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는지 아는 사람은 십왕 중에서도 거의 없다. 박추성은 알고 있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도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다. 어쨌든 원래 천재 학자였던 그에게 있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마법이라는 것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아무리 파고들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방대한 학문의 바다의 장인 마법. 거기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면 수명도 없다. 영원히 학문을 연구하고 연마 할 수 있는 곳. 어떤 의미로는 천생 학자고 연구자인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바로 이 그라운드 제로였다. 그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마법을 연구하는 것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역시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박추성하고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그라운드 제로 최강의 유저 1위와 2위가 게임의 클리어에서 손을 때고···. 사실상 지금 게임 클리어를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은 십왕 서열 3위인 이민지 그녀였던 것이다. 설명을 다 들은 정운이 말했다. “저기··. 하지만 저번에 제가 67층에 올라오기 위한 레이드에는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내가 부탁해서 그래. 예전에 내가 귀중한 연구 재료를 준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때 내 부탁 사소한 것 하나 정도는 들어 준다고 했었지.” “···········.” 정운은 그제야 십왕들이 오랜 세월 동안 67층에서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박추성이 싸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배대호의 싸우는 모습에서만 해도 그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런 둘이 작정하고도 이길 수 없는 67층의 보스몹은 도대체 어떤 놈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 보니 십왕의 최강자인 1위 2위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둘의 전력은 나머지 십왕을 합한 것을 충분히 상회 하리라. 그런 상황이니 67층의 레이드가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상황을 다 파악한 정운은 이민지에게 말했다. “제 힘이라도 필요하시다면,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이제 본격적으로 최상층 레이드를 준비하는 주인공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3화 <67층 레이드> 정운이 대답을 하자 이민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사실 배대호와 박충호가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숨기고 싶었던 것은 정운의 사기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그 둘의 불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운이 레이드에 나서준다고 하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설명은 다 끝났으니 이제 67층의 보스몹인 싸이클롭 히어로의 사냥에 관해서 말해 보자.” 그렇게 말하면서 이민지는 자신의 ME를 꺼내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예전에 십왕들 끼리 67층의 보스몹 레이드를 했던 영상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영상을 재생 시키면서 모두에게 말했다. “예전에 레이드 했을 때의 정보야. 신참들은 집중해서 잘 봐. 그리고 예전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다시 한 번 잘 보고.” 그렇게 이민지는 예전에 십왕들의 실패로 돌아갔던 싸이클롭 히어로에 관한 영상을 재생했다. 싸이클롭 히어로 LV. 180~190 [신장 30미터의 거인에 전신에 갑옷을 입고 있으며 양손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다. 마법 저항력이 뛰어나고 한쪽 눈으로 석화 마법을 걸기도 한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이민지의 ME에 저장 되어 있는 놈에 대한 정보였다. 정보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덩치가 크고 석화 마법을 건다. 무기는 거대한 도끼. 이걸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한정 되었다. 그나마 정운에게 있어서 한가지 정보는 반가운 것이었다. ‘신장 30미터라···. 거구군. 차라리 좋을 지도···.’ 보스몹들은 대부분 큰 경우가 많다. 그리고 레이드를 할 때는 차라리 그렇게 표적이 큰게 좋았다. 거구에 어울리는 공격 반경의 넓음은 귀찮았지만, 그래도 일단 표적이 크면 집중 공격을 하는게 쉽지 않은가? 이전의 자이언트 모스키토가 까다로웠던 것도 너무 작아서 표적을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뭐 그 경우는 좀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도 보스 몹 중에는 작은 덩치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놈들이 종종 있었고, 그런 경우는 거대한 괴수형태 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편이 대부분이었다.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영상이 재생되어 갔다. 그리고 영상을 관찰하는 정운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강하다. 자이언트 모스키토 따위하고는 비교가 안 돼.’ 당연한 얘기였지만 67층의 보스몹은 강력했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진작에 누가 공략해도 공략 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영상으로 확인한 놈은 한층 더 강력해 보였다. 우선 주목할 점은 파괴력과 스피드. 영상에서 놈의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한중겸과 명주호, 그리고 이보영와 이지영까지 안간힘을 썼다. 두 자매는 같은 클래스의 무투가였고 그 합동 공격은 최상급의 발레리나 둘이서 호흡을 맞추는 것 만큼이나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합공에도 불구하고 공격은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싸이클롭 히어로가 너무 빠르고 능숙했다. 놈은 그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폭풍처럼 휘둘리는 놈의 공격은 그야말로 도끼의 폭풍 같았다. 그 도끼질을 뚫고 공격을 적중 시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놈의 도끼질에 걸리자 한중겸이 소환한 소환수들도 맥을 못 추고 토막이 나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치고 빠지는 식으로 싸우려고 했지만···. 싸이클롭 히어로는 그 거대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너무 빠르게 대응했다. 기본적으로 근거리 공격의 대미지가 제대고 잡히지 않으니까 원거리 공격 유저들이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레이드는 실패로 돌아갔다. 마지막에는 놈의 석화 스킬에 십왕들 중에 몇몇이 일부가 돌로 변하면서 공격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결국은 후퇴를 감행했다. 후퇴를 하기 시작하자 배대호가 나서서 마법으로 살짝 도움을 줬고···. 결국 사망자 없이 도망 갈 수는 있었다. “이게···. 저번의 4차 싸이클롭 히어로의 레이드 영상이야. 누구 의견 있는 사람? 이민지의 말에 손을 들고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정운이었다. “이게 4차라고 하셨죠? 그럼···. 혹시 이 전의 레이드에서라도 좋으니 놈의 옐로우 크리스탈을 본 적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이민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미지를 입히는 적이 없어서 본 적이 없어.” “그렇군요···.” 놈의 피통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긴 그냥 맷집이 좋거나 방어력이 좋은 것을 넘어서···. 방어스킬 자체가 너무 좋았다. 양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면서 십왕들을 절묘하게 갈라 놓으면서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은 마치 태풍 같았다. “내 의견인데···. 일단 저 놈을 잡으려면 저 움직임을 어떻게 할 필요가 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에 신참에게 무한한 기대를 한 번 걸어볼까 싶군요.” 한중겸의 말에 김수민은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동시에 주목을 받은 정운은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십왕들이 노리는 것은 뭔지 알겠다. 아마도 자신의 구속 스킬로 싸이클롭 히어로의 움직임을 멈추고 그 다음에 전력으로 딜을 한다. 위급 상황에 놈이 어떤 스킬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쓸 틈도 없이 바로 박살을 내 버릴 생각인 것이다. 정운이 생각해 봐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했다. 다만 문제라면···. “제 구속력으로 저걸 얼마나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정운의 특기가 거대몹을 구속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싸이클롭 히어로에게 직접 시험해 본 적은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오로지 해 봐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구속 스킬은 초반부터 쓰지 않고 어느 정도 몹의 체력을 소모시킨 다음에 써야 했다. 초반에 구속했을 때는 워낙 팔팔하게 날뛰기 때문에 구속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왕들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싸이클롭 히어로를 구속하는 것일 것이다. 십왕들의 딜이 강력한 것이야 잘 알지만···. 그래도 저 싸이클롭 히어로의 피통도 한계치를 모르는 이상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는 해 봐야 안다. ‘시간의 승부인데····. 관연 내가 얼마나 잡을 수 있을까?’ 정운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쉐도우 아미를 동원해서 구속력을 열배 늘린 쉐도우 체인에 쉐도우 홀을 동원하고···. 그리고 상점에서 그물도 사서 던지면 어느 정도 구속력이 생길 것 같았다. 이 상위층에는 한 개에 100만 골드를 넘게 했지만 미스릴 그물이라는 것도 팔았다. 이전에 쓰던 강철 그물은 소용 없다. 저 놈에게는 아마도 거미줄 정도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스릴 그물이라면 아무래도 약간은 구속력을 기대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대답하였고 십왕들도 그런 정운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일단 발만 멈추면 아주 극딜로 조져 버릴 테니까.” “컵라면에 물 붓고 불기 전에 끝낼게.” “차라리 술 데우고 그거 식기 전이라고 해라. 체면은 신경도 안 쓰냐?” “형님도 참···. 체면이 몹 잡아주쇼?” 십왕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레이드의 준비를 했다. 이제 세부적인 상황 설명과 각 포메이션의 설정. 그런것들을 세세하게 토의 하면서 레이드의 일정을 잡아갔다. ‘할 수 있을지도···. 이 멤버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67층의 레이드에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스카이 타운의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운과 슬기의 침실. 거기서 정운은 슬기를 품에 안고 습관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네요?” “그래···. 슬기야. 너 가능하면···.” “싫어요.” 정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슬기는 단칼에 잘랐다. 정운이 무슨 말을 할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이미 요 며칠 사이에 수도 없이 했던 말이 었다. 이번 레이드에는 빠져. 라는 말이었다. 슬기는 정운의 말을 다르고 그의 가슴에 자기 이마를 비비면서 말했다. “부탁해요. 짐이 되지는 않을게요. 나 없는 곳에서 혼자만 위험을 무릅쓰지는 말아요.” 슬기의 그런 말에 정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슬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만 쓰다듬었다. 필드에서 같은 동료인 이상 슬기를 필요이상으로 배려 하는게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많이 무서웠다. 자신의 죽음 이상으로 슬기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전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런 정운에게 슬기가 말했다. “만약···, 내가 없는 장소에서 당신이 죽는다면···. 나도 바로 따라서 죽어요.” “슬기야·····.” “그러니, 하다못해 함께 있어줘요. 언제가 되어도 그 마지막이 되었을 때 내 곁에 있어줘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가만히 그녀를 끌어 않았다. 결국 자신도 슬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간인 둘임에도 사실 한 목숨이다 다름없었다. 둘 중에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하나도 남은 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이미 하나가 아니라 반쪽이 되어 버린 서로였다. “·····알았어. 함께 가자.” “정운씨···.”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할 둘이라면···. 그게 지옥이건 천국이건 함께 가는게 좋았다. 정운은 자기 품안에 있는 슬기의 체온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반드시 그녀를 지켜보겠다고 말이다. 다음날. 정운을 비롯한 십왕들은 싸이클롭 킹을 잡기 위해서 산악 지대로 이동했다. 산악 지대로 가는 길에 몇 가지 몹들이 있었지만··. 정운과 십왕들은 가능하면 전투를 피하기 위해서 다른 경로를 사용했다. 바로 십왕의 5위에 있는 윤정철이 가지고 있는 탈것인 콘술을 소환해서 타고 간 것이다. 거대한 독수리 형태의 영수인 콘술을 타고 일행은 바로 보스몹인 싸이클롭 히어로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다행이도 산악 지대에 비행형 몹은 없었다. 덕분에 일단 불필요한 전투는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일행이 도착한 곳에 가니 거기서는 싸이클롭 히어로가 거대한 바위? ····랄까? 거의 동산 정도 되는 크기의 암석을 쿠션 삼아서 쿨쿨 자고 있었다. “자는 중이네···. 운이 좋다로 해야 하나?” “그렇게··. 일단 한 방 먹이고 시작하자고.” “정운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단 뒤로 빠져 그리고 대호 오라버니하고 추성이 오라버니는···.” “돕지는 않아. 그래도 정든 너희들 죽을 것 같으면 살려는 주마.” “····후우, 알았어요.” 이민지는 여기까지 따라온 둘에게 뭔가를 기대했지만 박추성은 단호하게 잘라서 거절했다. 저 둘은 결국 이들이 위험에 처하면 후퇴하는 것 정도만 도와줄 것이다. 일종의 생명보험이랄까? 전력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 작전 시작한다. 우선 초반에 깎을 수 있을 만큼 깎아보자. 나서는 사람은···. 주경택, 이지영, 이보영, 김수민, 명주호까지···. 어그로를 잡을 수 있다면 잡아도 되지만 무리는 하지 마.” “알겠습니다. 누님.” “다녀 올게요. 언니야.” “··········.” “우리 먼저인가?” “설치지들 마. 조심들 하라고.” 십왕중 6~10위까지의 다섯 명이 먼저 나가기로 했다. 전력을 한 번에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 전력도 만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자···. 기상!!!!!” 콰아아앙!!! 선제타를 날린 것은 이보영이었다. 그녀는 콘솔에서 뛰어내리면서 그대로 빙글빙글 돌더니 싸이클롭 히어로의 머리를 향해서 발뒤꿈치 찍기를 작렬 시켰다. “크르르르····.” “쳇. 여전히 예민한 놈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그녀의 공격은 싸이클롭 히어로의 팔에 의해서 막혔다. 무방비 상태에서의 기습이었는데도 통하지 않은 것이다. 놈은 거대한 덩치답지 않게 자신을 향해서 떨어지는 공격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대로 팔을 들어서 공격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놈은 다른 손으로 땅에 놓아둔 도끼를 들어서 그대로 이보영을 향해서 휘둘렀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면서 날아가는 도끼는 한 방이라도 맞으면 이보영의 가녀린 몸 정도는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카아앙!!! “그렇게는 안 되지.” 그런 싸이클롭 히어로의 도끼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궤도가 아래로 틀어져 버렸다. 날아오는 도끼의 옆면을 이지영이 발차기로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영아. 페이스 올린다. 확실히 따라와.” “·····하기나 해.” 그리고 동시에 두 자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보영 레벨 110. 이지영 레벨 109. 직업은 둘다 전설의 권성이라는 무투가 계열의 최강자들이었다. 그 두자매가 작정하고 합공을 시작하나 환상적일 정도로 완벽한 합공술이 펼쳐졌다. 마치 하나의 피아노에 1류 피아니스트 두 명이 협주를 하는 것처럼 완벽한 호흡을 보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67층 레이드 시작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4화 이보영의 움직임은 바람이었다. 거칠고 빠르고 역동적이었다. 이지영의 움직임은 물과 같았다. 부드럽고 끊임이 없고 그리고 무게가 있었다. 이렇게 대조적인 두 자매의 움직임이었지만 그 대조적인 움직임이 하나가 되어서 움직이자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을 만들어내고 잇었다. 그런 환상의 콤비네이션을 유지하고 있는 두 자매는 서로 대화는 고사하고 신호하나 보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커버하며 완벽한 협공을 하고 있었다. 싸이클롭 히어로의 쌍도끼는 매서웠다. 하지만 그 매서운 도끼도 물을 끊는 것도, 바람을 멈추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때로는 동생이 언니의 사각을 커버해 주고··. 또 때로는 언니가 동생이 만들어 놓은 빈틈에 날카로운 공격을 뻗었다. “오랜만에 보는걸? 싱크로 댄싱.” 정운의 옆에 앉아 있던 이민지의 말에 정운이 물었다. “저거 기술인가요?” 정운의 질문에 이민지는 여전히 가면으로 가린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유니크 스킬이지. 그것도···. 그라운드 제로에 딱 하나뿐인 2인용 유니크 스킬.” 싱크로 댄싱. 이민지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합동술의 유니크 스킬이라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합동술이라고 해도 그 호흡이 100%일수는 없다. 서로를 철썩 같이 믿는다고 해도 두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잡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저 싱크로 댄싱이라는 스킬은 다르다. 저 둘이 저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두 사람의 의식은 트랜스 상태로 들어간다. 그리고 둘의 의사는 하나가 되어서 서로의 감각을 공유하면서 서로서로 보완해 간다. 둘 중에 한 명이 실수를 해서 삐끗하는 일이 생겨도, 나머지 한 명이 자연스럽게 그 실수를 커버한다. 두 개의 몸에 하나의 의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합공을 하기 위한 스킬인 것이다. 또한 유니크 스킬답게 보조 버프 효과도 뛰어났다. 저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 유저의 모든 공방력이 1,000%올라간다. 이보영, 이지영 자매가 진짜 강적을 만났을 때만 쓰는 최강의 유니크 스킬인 것이다. “쿠워어어어어!!!!” 싱크로 댄싱이 대단한 기술이기는 하지만··. 그것 만으로 상대 할 수 있을 정도로 싸이클롭 히어로는 만만하지 않았다. 자매의 귀신같은 합공에도 놈은 두 자루의 도끼를 맹렬하게 휘두르면서 흔들림 없이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두 자매가 커다란 공격을 하려고만 하면 어느새 놈의 도끼가 날아가서 맥을 끊어 버렸다. 저건 그냥 마구 날뛰는 짐승의 동작이 아니다. 전투라는 것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존재에게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자매의 공격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놈의 덩치는 크고 때릴 곳은 많았다. 명주호의 도와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김수민역시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정운에게 있어서 타란툴라 길드장인 김수민의 전투 장면은 처음이었다. 그의 무기는 특이하게도 기다란 한 자루의 채찍이었다. “저건···? 채찍을 무기로 쓰는 겁니까?” “그래. 직업명은 웹 마스터라고 하지. 그리고 가지고 있는 저 채찍도 특제다. 타란툴라 웹이라고 하는 유니크 아이템이지.” “유니크 아이템··. 저게.” 정운은 중얼 거리면서 김수민의 전투를 지켜봤다. 보통 채찍을 무기로 쓰는 유저는 별로 없다. 길고 강력한 파워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쓰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검이나 창처럼 고정된 형태의 무기에 비하면 10배는 다루기 어려운 무기가 채찍이었다. 원래는 김수민도 활과 단도를 중점으로 쓰는 레인저라는 직업에 있는 유저였다. 하지만 어떤 퀘스트를 통해서 저 타란툴라 웹을 손에 넣고는 자신의 클래스를 바꿨다. 유니크 아이템 하나로 자신의 성향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사실 흔한 일이었다. 정운도 원래는 개마무사였는데 그림자의 망토를 손에 넣었던 시기에는 쉐도우 워리어라는 직업 군으로 잠시 직업 명칭이 바뀌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정운은 그런 명칭을 손에 넣고도 계속해서 개마무사로서 싸워왔기 때문에 다시 직업군이 개마무사 쪽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보통 잠시 명칭이 바뀐다고 해도 그렇게 다시 원래의 직업 군으로 돌아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김수민은 달랐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애용하던 활과 단검을 접고 과감하게 유니크 아이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리고 직업군도 웹 마스터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까지 키우던 직업의 방향성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은 큰 모헙이었지만···. 그는 모험에 성공했고 큰 성장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십왕의 7위에 들어갈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난무(亂舞)!!!” 그가 크게 소리치자 그의 전방으로 어지러운 채찍질이 사납게 흩어지면서 작렬했다. 퍼퍼퍼퍼펑!!! 싸이클롭 히어로도 이것만은 도끼로 다 막아내지 못했다. 커다란 쌍도끼를 이용해서 전신의 급소는 가렸지만 다리와 어깨쪽의 일부에 공격을 허용했다. 이 레이드가 시작되고 벌어진 첫 공격인 것이다. 그리고 싸이클롭 히어로가 이를 갈면서 김수민을 향해서 공격했다. 영리한 놈은 자신이 직접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도끼의 면을 이용해서 바닥을 긁어서 암석 더미를 날려 보냈다. “크아아아아아!!!” “쳇···. 편막(鞭膜)!!” 보통 채찍이라는 것은 검이나 도는 물론이고 하물며 창에 비해서도 방어에 쓰기는 어려운물건이다. 하지만 웹 마스터 쯤 되니 확실히 달랐다. 채찍이 뱀처럼 휘리릭 하고 휘둘리더니 그의 전신을 감싸고는 원형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싸이클롭 히어로가 날린 돌맹이는 어디까지나 놈의 입장에서 돌맹이었지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무게 200kg 이상의 거암들이었다. 하지만 김수민은 여유있게 막아냈다. “그쪽에만 신경 쓰지 마라!!!” 그리고 그런 빈틈을 이용해서 무신 명주호의 날카로운 검격이 싸이클롭 히어로의 발등을 찍어 버렸다. “쿠워어어어!!!!” 놈은 자신의 발목에 올라타 있는 명주호를 행햐서 도끼를 횡으로 휘둘렀다. “흠····.” 명주호는 서둘러 검을 빼고 놈의 발등에서 떨어졌다 떨어지자마자 자신이 있던 자리를 후웅 하고 바람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도끼에 전율했다. “고얀 녀석···. 여차하면 그 무식한 도끼로 자기 발목도 좀 찍어 줄 것을····.” 놈의 도끼는 그 거대한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완벽하게 자신의 발등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그것 말고도 주경택의 마법이 연속으로 작렬했다. “파이어 볼트, 아이스 볼트, 체인 라이트닝, 파이어 볼, 스톰 컷터, 라이트닝 미사일.” 십왕의 가장 말석에 있는 주경택은 마법사다. 일단 직업명은 대마법사였지만 같은 십왕의 초마도사인 배대호하고는 역시 마법의 질에 차이가 났다. 그래서 그는 질 대신에 양으로 싸우는 편이었다. 어마어마한 캐스팅 속도··. 그야말로 슬기의 열배는 될 법한 캐스팅 속도로 마법을 연사하고 동시에 갈렸다. 10초 만에 서른 발의 마법을 날릴 수 있는 속사포 마법사가 바로 그였다. 그 혼자서 90레벨 마법사 100명 몫의 화력은 한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뭐···.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안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큰소리치는 만큼의 위력은 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본격적으로 다섯 명의 공격이 쏟아지고···. 약간이지만 싸이클롭 히어로도 대미지를 중첩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놈은 갑자기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웅크렸더 놈은 갑자기 번개같이 날렵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주경택을 향해서 달려갔다. “크오오오오!!!” 콰아앙!!! 놈의 공격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주경택의 머리위에 작렬했다. 다섯 겹으로 중첩해둔 실드 덕분에 그 한방이 먹히지는 않았지만··. 다섯 겹 중에 세 겹이 한 방에 박살이 나 버렸다. “쿠워오오오오!!!” 싸이클롭 히어로는 그대로 다른 한 방으로 주경택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주경택은 재빨리 다음 수를 썼다. “블링크!!” 주경택의 몸이 재빨리 단거리 순간 이동으로 빠졌다. 전사들에 비해서 메이지 계열의 유저는 몸이 둔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그들의 둔한 몸은 공격시에는 별 상관이 없지만 수비 시에는 약간 문제가 되었다. 그런 메이지들에게 있어서 수비시의 최대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마법들이 바로 실드와 블링크였다. 이 두 가지 마법이 법사들에게는 생명줄이라고 해도 좋았다. “후우···. 죽을 뻔 했네.” 주경택은 한 번 블링크로 놈의 공격을 피했지만 다시 날아오는 공격을 대비해서 불규칙 하역 여기저기로 반복적인 블링크를 했다. 싸이클롭 히어로는 그런 주경택을 신경 쓰는 한 편 다른 네 명을 상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원래 빠르기는 했지만 몸을 살짝 웅크렸다가 폭발적으로 움직이는 그 동작은 정말 빨랐다. 마치 호랑이가 먹잇감을 덮치는 것처럼 벼락같은 속도로 거구가 움직였다. 그렇게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면서 싸우는 싸이클롭 히어로를 상대로 다른 사람들은 서서히 공격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자기를 향해서 달려올지 모르는 섬광 같은 공격···. 워낙에 빨라서 그 순간은 공격의 표적을 잡기도 어려웠다. 저 거구를 상대로 말이다. 저기다가 놈이 본격적으로 석화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쪽이 대미지를 입기 시작할 테고 결국은 후퇴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보고 있던 이민지는 중얼 거렸다. “역시 안 되는군···. 슬슬 작전대로 하자. 내가 움직임을 한 순간 멈출게.” “알겠습니다.” 이민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정령을 불렀다. “노아스!! 잡아. 절대로 놓지 마!!!”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싸이클롭 히어로의 발밑에서 대지의 정령왕인 노아스의 손이 뻗어 나와서 놈을 잡고 늘어졌다. “크아아아아!!!” 싸이클롭 히어로는 자신에게 엉겨 붙는 바위손을 보면서 짜증이 난다는 듯이 도끼를 거칠게 휘둘렀다. 노아스의 손길은 끈질겼지만 단단하지는 못했다. 놈의 쌍도끼질에 흙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지면서 놈을 구속하는 것에 실패했다. 하지만···. 시간으로 치면 2초에서 3초 정도? 그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놈의 발은 확실하게 멈췄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을 정운은 놓치지 않았다. “쉐도우 홀!!!” 쑤우욱···. “크아아아!!!!” 놈은 자신의 발이 갑자기 무릎까지 푹 꺼지자 거칠게 포효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쉐도우 아미, 쉐도우 체인.” 촤르르르륵. 정운의 구속기 콤보가 작렬했다. 지면에서 100개의 체인이 일어나서 놈을 꽁꽁 구속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아!!!!” 놈은 거칠게 포효하며 몸부림을 쳤지만··. 이번 만큼은 함부로 끊어 낼 수가 없었다. 유니크 스킬로 인한 정첩 구속은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는게 아니었다. 거기다 십왕들이 저마다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구술을 꺼내서 던졌다. 촤악!!! 촤아악!! 허공에서 펼쳐진 그것은 다름 아닌 한 개에 100만 골드짜리인 미스릴 그물이었다. 소모품 아이템이 하나에 100만 골드라니···. 저층의 유저들이 알았다면 입에서 거품 물고 기절했을 것이다. 그런게 10개가 넘게 자신을 덮치자 드디어 놈의 움직임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딜해!!!!” 콰콰콰쾅!!! 콰앙!!! 쿠쿵!!! 천재지변으로 어지간한 섬 하나가 사라져도 이것 보다 더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구속에 주력하고 있는 정운을 제외한 전원. 슬기와 세레나까지 온힘을 다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십왕들의 전력으로 공격을 작렬 시키자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대지가 박살난 것 같은 어마어마한 폭발이 연속으로 터졌다. “크으으으으····.” 이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쓰고 있는 것은 정작 공격을 하고 있지 않은 정운이었다. 연쇄적인 폭발로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정운은 쉐도우 체인을 통해서 놈이 날뛰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건 뭐랄까···. 어부가 그물을 던지고 회수하려고 하는데 고래가 걸려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정운은 쉐도우 아미를 컨트롤 하면서 절대로 쉐도우 체인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섰다. “크오오오오오오!!!!!” 정운만큼은 아니지만 극딜을 맞으면서 다른 유저들도 느끼고 있었다. 싸이클롭 히어로가 이제까지 그 어느때보다 대미지를 입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흙먼지 사이로 유저들에게 한가지 반가운 징조가 보였다. “옐로우 크리스탈 떴다!!! 남기지 말고 여기서 다 털어 넣어!!!” ============================ 작품 후기 ============================ 으으음. 어째 페이스가 영 안나네요. 약간 슬럼프 끼가 있는것 같기도 하고... 한 며칠 동안 차기작은 손대지 말고 이거 하나에만 주력해야 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5화 한중겸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딜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80% 정도의 딜이었다.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서 후퇴를 위한 힘을 아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100%의 딜을 하기 시작했다. 레드 크리스탈은 아니지만 옐로우 크리스탈이 떴다는 것은 일단 적의 체력의 바닥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십왕 정도 되면 딜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의 타이밍을 잡는것은 거의 본능적인 수준으로 체화 되어 있었다. 딜을 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 뒷 일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모든것을 쏟아 붓어야 한다. 십왕들 전원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고 모두가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장관이군.” “잘 하면 잡겠는데?” 십왕들이 극딜을 하는 것을 보고 중얼 거리는 것은 십왕의 서열 1위와 2위인 박추성과 배대호였다. 그들은 레이드의 일선에는 물러나 있었지만 그래도 파티를 맺고 대기는 하고 있었다. 여차 할 때에 구명줄 정도는 되어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이번 레이드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잘 해봐야 40%정도? 현실적으로 보면 30%정도 라고 생각했다. 박정운이라는 신참 하나가 들어온 것 가지고 전력의 증강폭이 이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그 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레이드의 일선에 있는 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극딜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것은 이민지였다. 정령술의 정점에 있는 그녀의 힘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장기전에 강하다는 평이 강했고 짧은 기간에 극딜을 하는 파워는 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사대 정령왕을 모두 소환해서 무차별 적으로 폭격을 가하는데···. 만약 현대에서 이런 공격을 퍼부었다면 거짓말 하지 않고 대도시 하나 정도는 10분 만에 생존자 0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막강한 공격력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뒤 생각하지 않고 여기서 다 소모해 버릴 것처럼 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변이 생긴 것은 싸이클롭 히어로의 옐로우 크리스탈이 레드 크리스탈로 바뀌었을 때였다. 가장 먼저 그 이변을 깨달은 것은 쉐도우 체인으로 놈의 행동을 느끼고 있는 정운이었다. “피해!!!!!” 정운은 느꼈다. 레드 크리스탈이 뜨는 그 순간 자신의 구속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는 것을···.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놈이 그 와중에 뭔가 기술을 쓴 것 같았다. 그리고 표적이 풀려난 것과 동시에 놈의 거친 포효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놈의 포효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었다. 어떠한 힘을 담고는 수면의 파문이 번지는 것처럼 그 일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십왕들 중에서 힘의 소모가 특히 컸던 몇몇은 그 영향을 받았다. “크윽··· 이런···.” “석화다··. 모두 피해!!!” 사실 피할 방법은 없었다. 파문처럼 돔 형태로 관통하는 이 스킬은 피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 오로지 저항력가지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보영, 주경택. 이지영··. 이렇게 세 명이 순식간에 완전 석화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서열도 하위이지만 무엇보다 초반부터 싸이클롭 히어로와 너무나 격렬한 전투를 많이해서 체력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저항력도 비례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호 오라버니!!!” 이민지가 그렇게 급하게 외쳤다. 일단 완전 석화가 되면 빨리 치료해야 한다. 약간 개인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완전 석화가 되고 나서 10분에서 15분 정도···. 그 시간을 넘기면 설령 치료한다고 해도 숨이 돌아오지 않는다. 배대호는 재빨리 자신의 마법으로 세 명을 건져서 석화 치료를 시작했다. “애들 저항력을 뚫을 정도면···. 상당한 스킬인걸?” “어쩌면 저항력 무효 스킬이었는지도 모르지.” 배대호의 말에 박충호는 진지한 눈을 하고 대답했다. 사실 레이드에 대한 욕심은 사라진 그들이지만 그 둘에게 다른 십왕들과 든 잔정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죽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도와 줄까····.’ 박추성은 자신의 무기를 슬며시 꺼내면서 생각했다. 지금 그가 마음먹으면 레드 크리스탈이 떠오른 싸이클롭 히어로 정도는 한 방이었다. 다만 이제와서 끼어들려니 동생들 보기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여지기는 했다. “쯧···, 체면 보다는 애들부터 살리고 봐야지. 응?” 고민하다가 막 끼어들기로 결심을 한 박추성의 눈에 보인 것은 뇌전으로 휩싸인 정운의 모습이었다. “구속에 힘을 다 쓴게 아니었나? 아직 여력이 남았어?” 그는 일단 끼어드는 것은 조금 보류하기로 했다. 정운은 온힘을 다 끌어 모았다. “뇌천신공!!! 아스트랄 소드!!!!” 이미 쉐도우 아미는 전개 중이었다. 허공에 떠 오른 300개의 대검은 뇌전을 머금고 싸이클롭 히어로를 향해서 날아갔다. “크워어어어어!!!!” “시끄러!!!!” 정운과 쉐도우 워리어가 정면으로 격돌했다. 정운의 스킬은 대미지도 대미지지만 기본적으로 300개의 대검을 원격조종하는 광역 스킬이기도 하다. 아무리 싸이클롭 히어로가 전투에 능숙해도 이걸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푸푸푸푹!!! 여기 저기에 꽂히는 정운의 대검을 몸으로 막아가면서 싸이클롭 히어로는 거칠게 정운에게 달려 들었다.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를 원격 조종하면서 그런 싸이클롭 히어로와 전력으로 싸웠다. 이제 싸이클롭 히어로도 생각보다 동작이 많이 느려졌다. 하긴 십왕들에게 거의 3분 넘게 다굴을 맞았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사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콰아앙!!! “크으윽···.” 정운은 놈의 도끼질을 막기 위해서 아스트랄 소드를 겹치고 몸에는 쉐도우 아머까지 둘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공격은 정운에게 상당한 대미지를 주고 있었다. “정운씨!!!” 멀리서 슬기가 정운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운은 지금 거기에 답해줄 정신머리도 없었다. 까딱 방심해서 이 공격을 무방비 상태로 맞기라도 하면 바로 끝장이었다. 다른 십왕들의 도움을 바라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놈의 스킬에 전신 석화를 면한 자들도 사지의 일부분이 돌로 변해서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그들이 지금 똑바로 움직이는 사람은 정운 정도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정운은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투지를 뱉어내면서 전투에 집중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산을 따지는 이론이 아니라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악바리 근성이었다.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를 어지럽게 컨트롤 하면서 놈의 정신을 쏙 뺐다. 그리고···. 놈의 의식이 일순간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흑토를 타고 놈의 안면으로 날아올랐다. “기마차지!!!” 한줄기 벼락이 지면에서 하늘로 거슬러 승천하는 것 같았다. 목표는 싸이클롭 히어로의 눈. 놈의 하나 뿐인 눈을 못쓰게 하면 승부는 끝이었다. 그러나··. 놈도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기민하게 손을 들어서 정운의 돌격을 막아냈다. “크으으으·····.” 말은 못 알아듣겠지만 놈의 말은 아마도 어림 없다. 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흑토!!!” “히히힝!!!”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흑토의 입에서 제법 강력한 브레스가 뿜어졌다. 퍼어엉!!! 예전에 흑토에게 장착하 브레스 스킬이 이제는 제법 강력해 졌다. 싸이클롭 히어로의 손가락 사이를 정확하게 통과해서 그대로 놈의 눈에 작렬한 브레스는 눈동자를 완전히 관통해 버렸다. “크워어어어어!!!!” 놈은 흑토의 브레스에 눈을 관통 당하고 그대로 고통 스러워 하며 그게 비명을 질렀다. “됐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운은 드디어 이 레이드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방금 공격은 정말 컸다. 다만···.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정운은 잠시지만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고··. 그 대가를 치뤘다. 덥썩. “이··· 이런!!! 크아아악!!!!” “쿠워어어!!!” 창졸지간의 일이었다. 싸이클롭 히어로는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뻗어서 허공에 있는 정운과 흑토를 꽉 쥐었다. 정운이 공격을 성공 시키고 그 다음 타이밍에 바로 움직여서 빠졌다면 집하지 않았을 테지만···. 정운은 회심의 공격을 먹인 후에 방심하고 있었고 그런 기본적인 일을 게을리 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이렇게 치루게 된 것이다. “크으으··, 흑토··. 돌아가!!!” 정운은 일단 흑토부터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그렇게 해서 바로 생긴 작은 틈에 탈출하려고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싸이클롭 히어로의 거대한 손은 정운을 꽉 쥐었다. “끄··· 아아아악!!!” 정운은 전신이 쥐어짜지는 압력에 고통 스러워 했다. 어린 시절에 곤충을 잡아서 손에 쥐고 있었던 적이 있다. 약간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으면···. 잡힌 손을 풀어준 후에도 곤충은 비틀비틀 거리면서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정운은 지금 그런 곤충이 된 기분이었다. 아스트랄 소드를 이용해서 놈의 팔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유감 스럽게도 이미 아스트랄 소드와 쉐도우 아미를 유지 할 정도의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크으윽·····.” 정운은 전신을 옥죄어 오는 압력과 동시에 오랜만에 찾아온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사실 온몸에 걸치고 있는 장비와 쉐도우 아머라는 방어 스킬이 없었다면 이미 한줌의 핏물이 되었을 것이다. “정운씨!!!” “야!! 신참!!!!!!” 멀리서 정운을 걱정하는 슬기와 다른 십왕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말 만 으로는 힘이 되어 주지 못한다. 정운은 이제까지 지나온 인생이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정운의 눈 앞에 거대한 싸이클롭 히어로의 입안이 보였다. ‘제길···. 이렇게 끝인가?’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홀리 스트라이킹!!!” 세레나의 장기인 돌격기가 정운을 씹어 먹으려고 하는 싸이클롭 히어로의 안면에 적중했다. 콰아앙!!! “세···. 세레나····.” 정운은 상당히 놀랐다. 딜을 하지 않고 떨어져서 구속만 하고 있던 정운이 힘이 남아 있는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초반부터 계속 딜을 하고 있던 세레나에게 어떻게 이런 힘이 남아있는 것일까? 다른 십왕들오 무도 석화의 대미지를 입어서 지금은 원조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사실 정운은 몰랐겠지만 세레나는 처음부터 석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최근에 엑소시스트 신부가 남겨준 성유물인 로자리오. 그것이 세레나를 석화의 위기에서 구한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등록된 아이템이 아닌···. 일종의 버그 아이템 같은 것이었지만 보스몹이 위급시에 쓴 스킬을 막아낼 정도이니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정운은 세레나의 일격 때문에 간신히 탈출 했다. 세레나는 땅에 떨어지는 정운을 받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마스터, 끝내겠습니다. 허가를 내려 주십시오.” “허가···. 아!!!” 정운은 순간 세레나가 뭘 말하는 것인지 알았다. 세레나에게 있는 유니크 스킬. 바로 신의 철퇴를 말하는 것이었다. “해 버려!!!” “알겠습니다.” 정운의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세레나의 손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위에 작은 태양이 생겼다. “저건···. 광역 스킬인가?” “그런가 본데?” 다른 십왕들은 처음 보는 세레나의 유니크 스킬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세레나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신의 철퇴.” 그리고 조용한 심판처럼 그 황금색 구체가 바닥에 떨어졌고····. 일순간 세상에 어둠이 사라졌다. 그 정도로 밝은 빛이 사방을 뒤덮은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이 효과는 여전하군···.’ 정운은 또 눈이 멀어서 신전에 치료 받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세레나의 유니크 스킬인 신의 철퇴. 현재 스킬은 레벨 5였다. 신의 철퇴 : LV.5 (범위 500미터 안에 아군을 제외한 적들에게 대미지 20만의 충격을 가한다. 1주일에 1회만 가능하다.) 주 1회만 가능한 스킬이라서 그녀에게 함부로 쓰게 하지 않았다. 65층에서는 때거리로 달려드는 광폭한 육식소를 잡을 때만 쓰던 기술이었다. 그 놈들이 200~300마리씩 뭉쳐 다녔지만 세레나의 이 스킬 한방이면 끝이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저글링 10부대 모아놓고 핵 한방으로 핏물로 만들어 버리는 광경 같았다. 65층에서 정운은 그날을 날로 먹는 날이라고 불렀다. ============================ 작품 후기 ============================ 제가... 아무래도 정말로 슬럼프가 맞는것 같습니다. 오늘 글을 거의 못 썼습니다. 한 다섯 페이지 정도... 그 정도 밖에는 못 썼습니다. 이상하게도 왜 그럴까요? 제가 슬럼프에 빠질때가 되면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원래 많던 오타가 더욱더 많아진다. 연재 주기가 뜨문뜨문해 진다. 비축분이 있어서 지금 당장은 연재를 하고 있는데... 이 상태가 계속 되지 않게 특단의 수를 한 번 써봐야 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6화 <68층 탐사> 어쨌든···, 정말 오랜만에 세레나의 신의 철퇴가 작렬했다. 생각해 보면 진작 썼어야 했다. 그런데 워낙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보니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다. 원래 이 스킬은 리스크가 크다 보니 정운이 한가지 리미터를 걸었다. 세레나에게 그 스킬을 쓸 때는 항상 자기에게 말하고 쓰라고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레나가 단독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제라도 쓸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빛이 다 사라지고 사람들의 시야는 이제 간신히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전신을 새까맣게 그을린 싸이클롭 히어로 하나 뿐이었다. 다른 사람··. 아군은 물론이고 초목이나 대지에도 어떤 흔적이 없었다. 애당초 마법으로 인한 물리적인 대미지를 주는 스킬이 아니었다. 신성력을 이용해서 적으로 인지한 존재에게만 대미지를 주는 스킬이었다. 그러니 대미지를 입은 것은 싸이클롭 히어로 하난 뿐인 것이다. 쿵!! 쿵!! 쿠우웅!!! 먼저 놈이 양 손에서 도끼가 쓰러지고···. 그리고 따라서 놈의 거대한 거체도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보고 누군가가 중얼 거리듯이 말했다. “···해 냈다.” “해·· 냈다.” “해 냈다고!! 해 냈어!!!!”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해 냈다.'라는 말을 하면서 크게 기뻐했다. 사실 이번 레이드의 성공은 정운 보다는 십왕들이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정운과 달리 십왕들은 상당한 시간을 67층에서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박충호 배대호 이 둘이야 이미 게임 클리어에 연연하지 않으니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만인지 모를 짜릿한 성취감이었다. 위로 돌파해서 올라가는 것에 성공한 순간의 이 달성감, 성취감.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플레이하는 게임이었지만····. 이 순간 만큼은 중독될 정도로 짜릿한 아드레날린이 쏟아지고는 했다. 그러니 모든 십왕들이 오랜만에 67층의 돌파를 해낸 이 레이드의 성공에 크게 기뻐한 거싱다.. 드디어 68층. 아직 게임 클리어까지는 멀고멀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위로 올라가는 짜릿한 손맛을 본 것이다. “····정말로 해 낼 줄이야.” “그러게 말이야.” 그런 십왕들을 보면서 박추성과 배대호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 모습을 보니 오래전에 자신들이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 최전선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모습이 떠 오른 것이다. 어쨌든···. 67층을 클리어 한 일행은 드디어 완벽한 미지의 영역. 68층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김신수는 문득 중얼 거렸다. “한 층 더 올라갔나?” 그리고 김신수의 그 말에 그의 품에 안겨 있던 뉴 웨이브의 NO.2인 최수영도 귀를 쫑긋 세웠다. 김신수와 한 침대에서 알몸으로 안겨 있는 것만 봐도 그 둘이 그냥 부하와 상사 사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최수영이 김신수에게 말했다. “·······? 뭐가 말씀이시죠?” “최전선에 있는 놈들이 68층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김신수의 말에 최수영은 살짝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말했다. “괜찮을 까요? 저희는 아직·····.” “그래. 좀 문제긴 하군···. 역시 저번에 십왕 하나 정도는 죽여 두고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최수영의 사과를 들으면서 김신수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난 이긴다. 중간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든···. 항상 결과에서 난 승자로 남아있지. 쭉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 최수영은 김신수의 오만한 말에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안에 안겼다. “예. 꼭 그러셔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모두도 당신의 도구로 쓰셔도 됩니다.” “·····그럴 생각이야.” 축68층 돌파 파티. 라는 이름으로 먹고 마신지도 벌써 사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신줄 놓고 놀고 난 인간이 정신을 잡고 나면 느끼는 것은 약간의 뻘쭘함이다. “으음····. 이제 슬슬 다시 사냥해야지.” 십왕 중에 누군가가···. 누군지는 아직도 모른다. 모두들 술에 취해 있었기에···. 어쨌든 그 누군가가 한 말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고. 이제 일행은 68층의 사냥 일정을 잡기로 했다. 68층은 완전히 전인미답의 미지역이었다. 오랜만에 박충호와 배대호도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한 번 탐색을 나가보겠다고 했다. 정운을 비롯해서 다른 십왕들이 묻어서 가려고 했지만 그 둘은 자기들 끼리 먼저 쏙 하고 나가 버렸다. 사실 그 둘이서 함께 행동한다면 별 걱정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어디 가서 빠지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68층에서 갑작스럽게 솔로 플레이를 하기에는 좀 그랬다. 결국 십왕들은 오랜만에 두 명, 세 명씩 팀을 짜저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과정에 정운에게 가장 먼저 달라붙은 것은 역시나 그녀. 이보영이었다. “동생···. 이번에는 꼭 같이 가자. 응? 동생···.” “누님··. 다 좋은데 일단 좀 떨어지면 안 되나요?” “응? 더 바싹 붙어 달라고?” “떨어져 달라고요.” “뭐? 오늘 밤에 침대에서 보자고?” “···········.” 세상 살면서 별의 별 여자를 다 봤지만 이보영 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여자는 본적이 없는 정운이었다. 정운의 옆에서는 슬기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는데····. 그 미소가 오히려 정운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무서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운도 매섭게 거절을 하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 다른 사람들끼리는 다 파티를 해서 나가고 남은 것은 이보영, 이지영 자매뿐인 것이다. 결국 더 이상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레나와 슬기만 데리고 가는 것 보다는 이 두 자매를 데리고 가는게 훨씬 편한게 당연했다. 적어도 68층의 수준을 알 때 까지만 이라도 안전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파티의 수준을 높여야 했다. 결국 정운은 항복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조금만 떨어져요. 누님.” “응? 뭐가 알았는데?” “파티 한다고요. 내일 오전에 출발하도록 하죠.” “정말? 고마워····. 답례는 내 몸으로···.” “그건 필요 없습니다.” 정운은 딱 잘라서 거절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여자가 있다. 가까이 해서 행복한 여자. 가까이 있다가는 큰 코 다치는 여자. 이보영은 딱 후자였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십왕들은 날마다 사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 저마다의 취미를 가지기도 한다. 정운이 알기로만 해도 배대호는 PC게임. 한중겸은 낚시. 이지영은 오토바이. 그런 식으로 저마다의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보영의 취미가 뭔지 물으니 그녀는 생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어장관리.” “··········.” 할 말을 잃은 정운에게 이보영이 생긋 웃으면서 해말게 말했다. “엄청 재미 있어.” 그녀의 취미는 이 스카이 타운의 주민들 중에 남자들을 자기 어장에 놓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마치 실사판 여성향 미연시를 즐기는 것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자기 어장에 가두고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상태로 정운에게 말했다. “남자를 유혹했다가 그 남자를 자기 품안에 가둬서 요리조리 교육하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데···. 동생도 나랑 놀래?”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면서 정운은 조용히 대답했다. “사양 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어쨌든, 슬기가 약간 못마땅해 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기색만 그렇게 드러낼 뿐이지 말로 하지는 않았고, 결국 파티는 결성 되었다. 사실 슬기도 이보영의 어필이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신과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정운이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파는 것은 한 번도 본적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가 상대라도···. 정운은 오로지 슬기만을 좋아해주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세레나만 해도 그렇게 아름답고 순종적이지만 그녀에게 한눈을 팔지는 않았다. 뭐···. 슬기가 느끼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애당초 정운은 세레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으니 연애 초보인 슬기는 느끼지 못하는게 당연했다. 어쨌든 슬기처럼 연애가 처음이고 또 이제까지 연애에 대한 환상이 강했던 여성일수록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 이보영이 미인이기는 하지만 정운이 그녀 때문에 흔들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불안할 필요는 없었다. 뭐····. 그거랑 별개로 자기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어필 하는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니 저러니 해도 68층이 미지의 영역인 이상 파티는 필수였다. 다음날. 오전 9시에 일행은 포탈에 모였다. 정운의 파티와 이보영, 이지영의 파티가 모여서 함께 가기로 했다. “이야··. 아름다운 미녀를 넷이나 거느리고··. 완전 하렘인데 동생?” “하하····.” 웃고는 있었지만 이런 부담되는 하렘은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사실 항상 친하게 달라붙는 이보영도 부담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그녀의 동생인 이지영이었다. 정운이 최상층인 스카이 타운에 올라 온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이지영, 그녀와 대화를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니 그녀가 말을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척 봐도 난 네가 싫다. 라는 티를 팍팍내고 있는 그녀였기에 대하기가 이보영 이상으로 어려웠다. ‘하아···. 중겸이 형님 나갈 때 묻어갈 걸····.’ 십왕중에 가장 친한 한중겸이 나갈 때 묻어가지 못한게 이제 와서는 후회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파티에 주경택이 있어서 싫었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주경택은 가끔씩 슬기나 세레나에게 농담 반으로 작업을 걸었다. 정운으로서는 그게 영 별로였지만 이보영이 자신에게 하는 행동을 생각하면 그걸로 슬기에게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사양했다. 어쨌든 이런저런 탈도 많은 일행이었지만 이제는 정해진 파티였다. “그럼 갑니다.” 그렇게 포탈을 타고 68층으로 향했다. 68층에 도착한 정운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황량하다였다. “사막··. 아니 황무지인가?” “그렇게 보이지? 어떤 놈들이 있을려나····.” 일단 황무지라면 말이 나서도 괜찮은 장소다 정운의 파티는 각자 말을 꺼냈다. “히히힝···.” “그래. 오랜만에 필드에 나오니 좋지?” 정운은 흑토의 갈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저번 레이드에서 가장 중상을 입었던 것이 바로 흑토였다. 싸이클롭 히어로에게 잡혔던 순간 재빨리 인벤토리로 집어넣기는 했지만 흑토가 중상을 입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만약 흑토가 평범한 말이었다면 혹은 그때 정운이 약간만 늦었다면 아마도 이제까지 쭉 함께 했던 흑토를 잃었을 것이다. 슬기나 세레나에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흑토 역시 정운에게 있어서 소중한 파트너였다. 영수로 클래스 업 한 흑토의 자유치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돈을 들여서 신전에 데리고 갔다. 그렇게 해서 다 고친 흑토는 오랜만에 넓은 곳에 나오니 크게 기뻐하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정운들이 모두 말을 타자 이보영이 말했다. “헤에···. 말에 타고 있구나? 나하고 지영이는 어떻게 하지?” 그녀의 말에 정운은 의아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누님은 탈것 없나요? 마수든 영수든···.” 보통 고위 레벨쯤 되면 탈것은 기본이었다. 그 탈것을 정운처럼 전투에 이용하고 안 하고는 자기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동시의 탈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달랐다. “흠, 나는 이게 있거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쌍의 장화를 보였다. 평범한 장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유니크 아이템이라고 했다. 헤르메스의 장화. 라는 이름의 아이템으로 착용자의 이동속도를 1,000% 올려준다고 한다. 그리고 허공을 밟고 이동 할 수도 있게 한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아마도 자세하게 살펴보면 유니크 아이템답게 다른 속성들도 있겠지만···. 그것까지 묻는 것은 실례다. 확실히 그런게 있다면 이동을 위해서 소환수를 기를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 이보영씨는···.” “지영이는····.” “난 이게 있으니 말은 필요 없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호리병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서 넓이가 2미터는 될 법한 구름이 보였다. ============================ 작품 후기 ============================ 사실 며칠 정도 연참을 쉴까 생각중이었지만.... 일단 하는데 까지는 해보겠습니다. 이놈의 슬럼프는 한 번 빠지면 언제 끝날지 알 수를 없으니...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7화 “이건···?” 정운은 이지영이 꺼낸 아이템을 보고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만큼 의외의 물건이 튀어 나온 것이다. 보통 마수나 영수 같은 것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지영이 호리병에서 꺼낸 것은·····. “근두운. 내 이동 아이템이다.” 그렇다. 그녀가 꺼낸 것은 바로 구름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도 유니크 아이템은 아니지만 상당히 귀한 아이템이라고 했다. 상점에서 파는 것은 아니고 어떤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었다고 하는데···. 서유기에 나오는 근두운하고 쏙 빼 닮아서 이동에는 무척 요긴했다. 문득 무투가 하지 말고 봉 하나 들리면 어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정운이었지만 굳이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여자한테 손오공 하고 캐릭터가 겹친다고 하면 어째 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근두운을 자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지영을 보고 있노라니 차마 그런 말을 할 생각이 들수가 없었다. “그럼 이동은 괜찮겠네요. 뭐가 문제죠?” 어쨌든 이동에는 문제가 없다. 그럼 이보영은 뭐가 문제라는 걸까? 정운이 그렇게 물어보자 그녀는 갈등하는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으음····. 난 누구 뒤에 타고 갈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지.” “····헤르메스의 장화 있다면서요?” 명색이 유니크 아이템이다. 그 속도 증강치만 해도 흑토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어쩜 그렇게 눈치가 없어? 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어머, 동생····. 동생은 말 타고 가면서 나 같이 가녀린 여성은 두 발로 뛰어가라고? 내 다리가 무다리 처럼 땅땅하게 굵어지면 동생이 나 데리고 살 거야?” “·············.”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대꾸를 할 수 없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이보영은 씨익 웃으면서 은근슬쩍 흑토의 뒤편으로 살살 돌아갔다. “그런고로 난 동생 뒤편에·····.” “언니는 내 뒤에 타!!!” “아얏!! 아. 지영아···.” 이보영은 싱긋 웃으면서 흑토의 뒷자리에 타려고 했지만 그 전에 이지영이 그녀의 귀밑머리를 잡고는 언니를 잡아 당겼다. 이보영은 언니의 위엄은 전혀 없는 얼굴을 하고는 울상을 지으면서 동생의 근두운으로 끌려 갔다. “넌 이 언니의 연애 사업을 그렇게 방해하고 싶니?” “····그럼 출발하지.” 언니의 항의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포커페이스로 무시하는 이지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보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야. 너 언니 말에 대답 안 해? 언니 삐진다? 삐뚫어 져 버릴 거야. 언니 삐뚫어 져도 돼? 운다. 밥도 안 먹어.” “·········.” 이보영이 뭐라 뭐라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지영은 강철의 멘탈로 꿋꿋하게 버텼다. 마치 이런 일은 늘 있다는 것 처럼 익숙한 대응이었다. ‘저 자매는 항상 저런가?’ 정운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지영의 근두운의 뒤를 따라서 흑토의 배를 찼다. “우리도 가자.”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일행은 대략 시속 60km정도의 속도로 30분 정도 이동했다. 작정하고 빨리 달리려고 하면 더 빠르게 이동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확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을때나 그렇게 달리는 것이다. 지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탐사. 천천히 이동하면서 어디에 어떤 몹들이 있는지 찾으면서 이동하는게 중요했다. 그러니 이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행은 마침내 첫 번째 몹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저건···. 뭐지? 처음 보는 건데?” “기대려 봐. ME로 찍어 볼게.” 쓰리헤드 오우거 LV. 100~105 [머리가 세 개인 강력한 오우거. 신장 5미터에 거대한 완력이 특징. 무기는 몽둥이를 애용한다.] 이보영이 찍어본 ME에 나타난 정보는 이게 다였다. 아무래도 아직 미지의 몹이다 보니 정보가 적은 것 같다. 사실 오우거 자체는 많이 봤다. 하지만 쓰리헤드 오우거····. 머리가 세 개나 되는 놈은 처음이었다. 사실 비슷한 걸로 트윈 헤드 오우거는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이 일반 오우거 보다 얼마나 강력한 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자신들이 직접 싸워가면서 몹의 정보를 수집해서 정보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세레나, 나하고 같이 전위로 가자.” “예. 마스터.”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둘 보다 먼저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보영 이지영 자매였다. 그녀들은 어느새 가장 선두에 서서 둘에게 등을 보이면서 말했다. “동생, 무투가가 전위에서 빠지면 우리가 뭐 할까? 손가락 빨면서 구경할까?” “뒤로 빠져.” 이보영과 이지영은 그렇게 말한 다음에 스스로 전위가 되어서 쓰레헤드 오우거에게 돌격했다. “쿠어어어어!!!” 쓰리헤드 오우거는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두 명을 바라보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두 자매를 향해서 몽둥이를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후우우웅!!!! “훗!!” “·····.” 두 자매는 그런 공격을 가볍게 피하면서 파고 들었다. 이보영은 살짝 점프해서 몽둥이를 피했고 이지영은 거의 안면이 지면에 닿을 정도로 낮은 자세를 하면서 미끄러지듯이 피했다. 그리고 그렇게 파고 든 둘은 그대로 선제타를 날렸다. “흡!!!” 뻐어억!! 슬라이딩 하듯이 미끄러지는 이지영의 발차기가 쓰리헤드 오우거의 정강이를 까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가슴팍에 이보영이 한바퀴 빙글 돌면서 돌려차기를 찍어 버렸다. 뻐어억!!! “크오오오!!!!” 둘의 공격에 쓰리헤드 오우거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처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흉성을 꺼트리지 않고 둘에게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쿠워어어어어!!!!” “척 봐도 맷집 좋게 생겼더니···.” “쓰러질 때까지 패면 돼.” 두 자매는 그런 쓰리헤드 오우거를 상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지속했다. 뒤에서 가세할 타이밍을 재고 있던 정운은 일단 대기하기로 했다. “흠···, 트윈헤드 오우거가 전체적으로 더 강해진 것 뿐인가?” 68층 답게 이제까지 봐 왔던 다양한 오우거 중에서고 가장 강한 몹이기는 했다. 십왕 둘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개김성 짱짱하게 소리지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게 다였다. 기본적으로 스피드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에 공격력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조심 하면서 상대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몹. 그게 정운이 쓰리헤드 오우거에게 내린 정의였다. “누님. 한 방에 끝냅니다. 뒤로 빠져요.” “알았어.”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놈에게 구속 스킬을 시전했다. “쉐도우 홀, 쉐도우 체인.” “쿠워어어!!!” 놈은 갑작스럽게 지반이 무릎까지 푹 꺼지고 전신에 열 개의 사슬이 꽁꽁 감기자 크게 당황했다. 쉐도우 아미로 인한 10배 증폭은 필요 없었다. 이것만 해도 충분했다. “슬기야. 세레나. 딜 해.”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세레나와 슬기의 딜이 이어졌다. 정운은 특히 슬기의 데미지가 많이 들어가기를 바랬다. 현재 슬기의 레벨은 91. 많은 발전을 이루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100레벨에 들지 못한 것은 슬기 뿐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유니크 아이템인 주작의 스태프가 레벨 4에 오른 것이 좋은 징조이기는 했다. “소화조, 극염랑, 적염사.”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주작의 스태프에서 작은 크기의 화염의 새와 허리까지 오는 화염의 늑대, 그리고 비단 구렁이를 연상 시킬 정도로 큰 화염의 뱀이 나타났다. 먼저 화염의 새가 날아가서 그대로 적에게 폭발적인 대미지를 가했다. 그리고 이어서 화염의 늑대와 화염의 뱀도 적에게 가서 대미지를 입히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은 화염의 늑대와 뱀은 폭발하지 않고 적을 물고 조이면서 꾸준하게 대미지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이민지가 소환하는 정령처럼 말이다. 쓰리헤드 오우거의 공격에 대미지를 입을 때는 잠깐 흩어지기도 하지만 슬기의 마력을 받으면서 다시 제 모습을 찾아서 다시 싸웠다. 이건 큰 변화였다. 이전에 쓰던 염소접과 소화조의 경우는 대상에 소환수가 닿으면 그대로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위력 면에서는 둘째 치고··. 일단 계속해서 연속으로 소환을 해야 했다. 하지만 적염랑과 적염사의 경우는 일단 한 번 소환하면 그 상태로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이런 소환수가 몇 마리 더 생긴다며 슬기가 60층 대에서 단독 사냥을 해 볼 수도 있었다. 전위를 맡아줄 수환수가 있다면 메이지의 전투 활용성은 훨씬 더 커지는 법이다. ‘주작의 스태프를 좀 더 잘 키우면···. 슬기의 능력도 십왕의 하위급에 버금 갈 지도 몰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슬기의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 구속을 더 단단하게 했다. 사실 슬기가 이렇게 고속 레벨업을 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운이 그녀에게 딜 찬스를 많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일행은 68층에서의 첫 사냥을 가볍게 해치웠다. 쓰리헤드 오우거는 마지막까지 거칠게 날뛰었지만 정운의 구속력을 어찌 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다. 이런 놈이 여럿 나타난다면 좀 골치 아프겠지만 그래도 한 마리씩 나타나면 그렇게 힘든 상대는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강하지는 않네요.” “그럼 좀 더 돌아볼까?” “그러죠.” 그리고 정운의 일행은 근처를 나선형으로 넓게 돌아가면서 일단 탐색을 시작했다. 사실 그냥 몹만 사냥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넓은 지역을 이동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일행은 주변 지형의 지도까지 함께 만들어가면서 사냥중이었다. 일단 처음 올라온 곳이었으니 지형의 정보도 함께 얻어 가는게 당연했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정운의 일행은 두 가지 몹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타났던 쓰리헤드 오우거와 유령 형태로 떠돌고 있는 다크 레이스였다. 다크 레이스 LV. 105~110 [악마의 사기가 뭉쳐서 유령이 된 형태. 물리 공격에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다. 보통 다섯에서 열 마리 정도가 한 무리로 행동한다. 공격패턴으로 다양한 마법을 구사한다.] 처음에 ME를 찍었을 때 놈에게 나온 정보가 이게 다였다. 사실 물리 공격에 내성이 강해서 쓰리헤드 오우거보다 더 강하기는 하지만 크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사실 첫 인상부터 별것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겉보기부터가 하얀 천을 농구공에 뒤집어 씌워 놓은 것 같은 형태가 둥둥 떠다니는 것 뿐인데···. 거기에 얼굴이라고 눈 두 개 입 하나만이 구멍이 뚤려 있다.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기 보다는 코믹하다는 인상이 더 강한 몹이었다. 다만··· 이 놈이 짜증나는 것은 놈들이 여럿이서 뭉쳐 다니는 것. 또 하나는 정말 다양한 마법을 사양한다는 것이다. 파이어 볼트나 아이스 볼트 같은 기본적인 마법에서부터 체인 라이트닝 같은 제법 고위급의 마법도 연발했다. 사용하는 마법도 제법 위력적이라서 보통 LV.7~8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런 마법을 여럿이서 연달아서 연사하니 상당히 귀찮았다. 슬기가 방어를 굳히고 세레나가 신성력을 버프로 걸어서 모두를 강화하고 싸우게 했다. 세레나의 스킬인 신의 조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신의 조력 : LV.4 (자신을 비롯한 아군 전원에게 신성한 공격력을 부과한다. 언데드, 마족, 스피릿 계열의 몹들에 대한 공격력이 대폭 늘어난다.) 원래 이 스킬은 세레나가 그렇게 자주 사용하는 스킬은 아니었다. 대상 몬스터인 악마나 언데드 등이 아닌 이상은 별로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대상이 상대로 나타날 때는···. 정말 큰 힘을 발휘했다. 정확한 상승 폭은 알 수 없지만 세레나의 스킬인 신의 조력에 의한 버프를 받으면 대상 공격력이 30%는 올라가는 것 같았다. 덕분에 다크 레이스를 만나고도 큰 어려움 없이 사냥 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순조롭겠는데?” “그렇게 말이죠. 적어도 이 황야 지대에서는 큰 위험 없이 사냥 할 수 있겠어요.” 아무리 새로운 층이라고 해도 일단 한 층을 올라왔을 뿐이다. 그러니 그 상승 폭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의 파티 두 개를 합쳐서 전력을 두 배로 늘렸으니···. 지금 정운이나 이보영이 느끼고 있는 여유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정운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 여유이게 사냥을 했다. 하지만···. 위기는 황무지 지역의 마지막 몹에서 나타났다. 팬텀 나이츠 LV. 100~110 [황무지를 떠도는 원혼의 기사. 개체로 행동하지만 단체 협공이 가능하고 군세를 이루기도 한다.] ============================ 작품 후기 ============================ 저기 나오는 팬텀 나이츠는 독자 분이 보내주신 몹입니다. 물론 완전히 그대로 쓸 수는 없고 제가 어느정도 간략화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독자분이 쪽지로 보내주신 설정의 몹입니다. 그나저나 이 놈의 슬럼프 안 없어지네요. 일단 크리스마스 휴가는 날라갔다고 봐야 겠습니다.ㅠㅠ 그래도 연재 페이스를 유지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08화 황무지 지역의 끄트머리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몹들을 ME로 찍었을 때 나타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겉 모습을 보고 슬기가 슬쩍 지나가듯이 말했다. “흠····. 정운씨하고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네요.” “그러네···. 내가 더 폼 나기는 하지만···.” “··········.” “··········.” “··········.” 정운의 썰렁한 농담에 웃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팬텀 나이츠의 기본 모습은 정운과 같이 말을 탄 기사였다. 다만 동양식의 개마무사가 아니라 완벽한 서양 중세 양식의 기사였지만 말이다. 플레이트 메일에 랜스와 검 모닝 스타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가끔식은 석궁을 장비하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어쨌든 어떤 놈들인지 알려면 사냥을 해야 한다. “선공 몹은 아닌가? 일단 제가 한 번 가까이 가 보겠습니다.” 정운은 그러게 말하면서 팬텀 나이츠를 어느 정도 경계하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정운은 놈들이 선공 몹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선공 몹이기는 하지만 적을 인식하는 거리가 그렇게 길지 않은 것 뿐이었던 것 같다. 내심 선공 몹이 아니라서 생각했던 정운은 살짝 당황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이고 정운은 이내 마음을 다 잡고 그대로 다가갔다. 정운이 일정 거리를 다가가자 한 마리의 팬텀 나이츠가 본격적으로 정운에게 달려 들었다. 랜스를 앞세우고 달려드는 팬턴 나이츠를 보고 정운도 싱긋 웃었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든 것이다. “누가 쎈지 한 번 볼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애창인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빼들었다. 레플리카라는 설정이기는 해도 명색이 룽기누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무기였다. 공격력만 해도 7,000짜리의 명품 창이다. 거기다 이 녀석의 특수 기능에는 언데드나 스피릿 계열의 몹들에게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정운은 그대로 창을 앞세우고 마치 중세 기사들의 마상창 대결처럼 교차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이 달리는 속도가 점점 교차되고 놈과 정운이 점점 가까워 졌다. 정운은 입술을 살짝 혀로 핥으면서 지금의 긴장감을 즐겼다. 영화로만 봐 왔던 마상창 대결····. 실제 말 위에서 직접 그 입장이 되어 보니 기분 좋은 긴장감과 흥분감이 동시에 올랐다. 그리고 격돌의 순간이 되자 둘의 공격이 찰나의 불꽃처럼 교차했다. 콰칵!! 콰지직!!! 둘 중에 하나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고 난 후····. 두 마리의 기마는 서로 달리던 방향으로 십여 미터를 더 달렸다. 그리고 정해진 승자가 보였다. 털썩. 정운이었다. 정운은 놈이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찌르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순간 흑토의 고삐를 살짝 당겨서 옆으로 한걸음 이동했다. 원래는 말이라는 동물의 구조상 전력으로 달리다가 옆으로 살짝 게걸음을 하듯이 피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하다. 만약 한다고 하면 말이 넘어지거나 발목이 부러지거나 혹은 그 두개 다이거나 그렇게 되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흑토는 이미 평범한 말을 넘어선 영수였다. 보통의 말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묘기에 가까운 동작을 태연하게 해 갔다. 정운은 그런 흑토의 움직임으로 살짝 창을 피한 후에 그대로 자신의 창을 뻗었다. 그 일격으로 말채로 놈의 목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크리티컬 대미지로 한 방에 승부가 결정 되었다. “히히히힝···.” 흑토는 마치 자신이 훨씬 더 강하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사실 기술은 저쪽이 더 위였지만 말의 성능 차이로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흑토가 뽐내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운은 정운대로 슬쩍 미소를 지었다. “호오···. 이거 재미있는 걸?” 즉흥적으로 해봤을 뿐인 마상 창 대결이었는데 해 보니까 살짝 전신이 짜릿해지는 희열이 있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한 마리의 팬텀 나이츠를 잡은 시점에서···. 주변의 다른 팬텀 나이츠들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다. 안광에서 섬뜩한 붉은 빛을 내면서 그 시선이 정운에게 모두 몰렸다. “어어···? 이건 혹시···?” 혹시가 사람 잡는 법이다. 놈들은 정운과 그 일행을 향해서 단체로 기마 차지를 해 왔다. “쳇···. 그러고 보니 단체 공격도 한다고 했지?” 정운은 혀를 차면서 일단 뒤로 물러났다. 일대일로 기마 창대결을 하는 것은 제법 재미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무리를 상대로 차지 대결을 할 생각은 없었다. “슬기야!!” 정운이 일단 일행에게 돌아가면서 외쳤다. 그러자 슬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을 썼다. “파이어 월!!!” 슬기가 파이어 월을 삼중으로 펼쳤다. 높이 8미터의 불의 방벽이 길게 펼쳐졌다. 화르르륵!!! 정운은 높게 타오르는 불의 장벽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이정도면···. 이런!!!” 퍼퍼퍼펑!!! 놈들은 기마차지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슬기의 파이어 월을 그대로 돌파해 버렸다. ‘제길··. 하긴 슬기보다 레벨 자체가 높은 놈들이지···.’ ME에 놈들의 레벨은 100~110으로 나왔다. 가뜩이나 몹은 같은 레벨이라도 전체적인 공방력이 유저보다 훨씬 높은 법이다. 자신들 보다 레벨이 낮은 슬기의 파이어 월에 막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천폭성(地天爆城)!!!” 이보영이 한 발로 진각을 밟으면서 기술을 쓰자 정운의 바로 뒤편에 투기의 장벽이 생겼다. “호오····. 이런게 있었나?” 십왕쯤 되면 스킬도 많고 사용법도 천차만별이다. 이보영에게 이런 스킬이 있는 줄은 몰랐다. 투기의 장벽은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슬기의 파이어 월 보다 훨씬 더 강력해 보였다. 팬텀 나이츠 몇 마리가 뚫으려고 공격 했지만 그렇게 쉽게 뚫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놈들이 대미지를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안심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두두두두두두····. “빌어먹을···. 이건?” “일단 튀어!! 하늘로 날아!!!” 정운을 비롯한 파티의 사냥은 일단 그 시점에서 종료했다. 파티원은 일단 전원 후퇴를 감행했다. 거의 수백에 달하는 팬텀 나이츠가 군세를 이뤄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아군이 한 번 당하면 연달아서 위기를 감지하고 몰려오는 몹 같았다. 레벨 100이 넘는 몹 수백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보스몹 공략에 버금갈 정도로 힘들었다. 아니 딱 잘라 말해서 철저한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는 절대 무리였다. 정운들은 비행 스킬을 써서 도망 갔지만 팬텀 나이츠는 누가 유령 아니랄까봐 하늘 정도는 여유있게 날아서 따라왔다. 아무래도 지면에서 싸우는게 익숙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날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일행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다. 팬텀 나이츠의 추적은 집요했다. 아니···. 그냥 집요한 것을 넘어서 치밀하기까지 했다. 마치 사자의 사냥 같다고 해야 할까? 사자가 먹잇감을 추적하고 한편으로는 길목을 막고 숨어 있다가 먹잇감의 숨통을 끊는 것까지 치밀하게 역할 분담을 하는 것 처럼····. 팬텀 나이츠는 수십기로 무리를 지어서 군세를 이루며 정운의 일행을 완벽하게 포위 추적해 갔다. 세레나의 유니크 스킬인 신의 철퇴가 아직 쿨 타임이 끝나려면 이틀은 더 있어야 했다. 골치 아프게도 놈들은 상당한 속도가 있었고 결국 정운이 수를 썼다. “쉐도우 아미!!” 정운이 그림자의 분신 9기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 9기에게 명령했다. “저것들이랑 붙어!!” 원래 쉐도우 아미를 부리는 것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자동 조작과 직접 조작. 말 그대로 자동으로 명령을 내리고 방치하는 것과 동작 하나하나를 정운이 조작하는 것 같은 것이었다. 이 두 가지 타입중에서 정운은 주로 직접 조작을 선호했다. 보통 완전한 분신으로 만들어낸 쉐도우 워리어를 조작하는 것을 어렵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역시 게임이라는 배경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그라운드 제로라서 그럴까? 마치 시야도 아홉 개로 늘어나고 감각도 아홉 개로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동 조작은 다르다. 싸워라. 막아라. 저쪽으로 가라. 그런 식으로 간단한 명령만 내린 이후에 완전히 방치하는 것이다. 전투 패턴이 아주 간략화 되기 때문에 정운은 이제까지 그런 전투 방식은 그렇게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딱이었다. 도마뱀이 도망치기 위해서는 꼬리를 잘라야 할 필요가 있는 법이었다. 결국 그 수가 먹혔다. 소환된 정운의 쉐도우 아미들이 팬텀 나이츠들과 싸우는 사이에 정운의 파티는 모두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포탈을 타고 무사히 스카이 타운으로 돌아온 정운의 일행은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난 개때처럼 몰려 다니는 놈들이 정말 싫어.” 이보영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차라리 한 마리가 압도적으로 강한게 좋았다. 그럴 경우에는 그 한 마리의 약점을 공략한다거나 하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몹들이 저렇게 숫적 우위를 앞세워서 달려들기 시작하면 약점이고 나발이고 별 의미가 없었다. 한 두 마리의 약점을 찔러서 잡아 봤자 다른 놈들이 계속해서 덤벼들지 않는가? 그러니 약점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소위 말하지 않는가? 다구리에 장사 없다고····. 그나마 가장 보편적인 해결책은 압도적인 화력을 보유하고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게 수이긴 한데···. 팬텀 나이츠가 저 레벨의 몹도 아니고 그건 좀 힘들어 보였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각자 집에 가서 좀 쉬고··. 그 망할 것들에 관한 대책을 마련해 보자고.”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희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죠. 아!! 그 전에 팬텀 나이츠가 출몰하지 않는 지역에서 쓰리헤드 오우거와 다크 레이스를 잡는건 괜찮겠네요.” “그건 동생 마음대로 해.” 이보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지영과 함께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지영은 헤어지는 와중에도 정운들을 향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인간을 싫어하는 것 같아···.’ 정운은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되었든 나름 얻는 이익은 있었다. 팬텀 나이츠는 둘째 치고 나머지 두 가지 몹은 정운의 팀원만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놈들이었다. 특히 다크 레이스. 그 놈들은 세레나의 신성력만 있으면 사실상 거의 밥이었다. 65층보다 더 쉽게 사냥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경험치와 보상은 훨씬 더 많이 주니···. 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정운은 일단 황야 지대에서 쓰리헤드 오우거와 다크 레이스를 집중 적으로 사냥하면서 팬텀 나이츠의 영역을 적당히 관찰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정운의 일행들은 일주일에 닷세는 꼬박꼬박 나가서 사냥을 하고 왔다. 팬텀 나이츠에 대한 해답은 다른 십왕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듣기로는 배대호가 한 번 거하게 날려 버린 것 하고 박추성이 싹쓸이를 한 것. 그리고 이민지와 한중겸이 역시 자신들의 소환수와 정령으로 쓸어 버리기는 했다고 한다만···. 그것 그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00레벨이 넘는 몹들이 치밀한 다구리를 놓는 것은 다른 십왕들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대신이 그들은 하늘 높이 날아 올라서 팬텀 나이츠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을 택했다. 팬텀 나이츠는 선공 몹이었지만 적을 인식하는 거리는 좁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하늘로 날아서 올라가자 놈들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도 쉬웠다. 그렇게 넘너가고 나서 자신들에게 맞는 사냥감을 물색한 십왕들도 차근차근 사냥하면서 자신들의 전력을 올려갔다. 지금 정운과 십왕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두 가지. 하나는 자신들의 레벨을 좀 더 올릴 것. 레벨이라는 게 올리면 올릴수록 위로 올라가기가 힘들다. 200레벨이 넘은 박추성이나 배대호는 도대체 몇 년이나 여기에 있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였기에 그렇게 높은 레벨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마냥 쉬고 있는 다고 레벨이 오르는 것도 아닌 이상···. 꾸준하게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과제는 보스몹의 탐색이다. 68층은 말 그대로 전인미답지였다. 보스몹이 어디에 있는지 그 보스몹이 어떤 몹인지도 전혀 몰랐다. 보통 보스몹이 있는 곳은 대강 티가 나기 마련이다. 필드의 정중앙이라던가···. 혹은 미궁이나 성을 지어 놓고 그 안에 부하들과 함께 있다던가···. 그런데 이 68층의 보스몹은 그런 티가 나지 않고 있었다. 딱히 68층 전부를 뒤져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보스몹을 발견 했다는 얘기를 하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두 가지 다 서두른다고 빨리 될 일은 아니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으음... 후기에 쓸 내용이 없어질 정도로 슬럼프 기가 진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비축분도 다 떨어져 갑니다. 연참하면서 원래 페이스대로 비축분 쌓으려면 한달 정도는 있어야 할 텐데....ㅠㅠ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09화 <갑작스런 퀘스트.> “쉐도우 컷터!!” 촤아아악!! 정운의 말에 날아가는 그림자의 칼날에 다크 레이스 세 마리가 동시에 토막이 났다. 세레나의 버프로 인해서 정운의 공격이나 슬기의 마법도 모두 신성력을 품고 있다 보니··. 다크 레이스는 정말 만만한 몹이었다. 어디까지나 세레나의 신성력이 보조를 해 준다는 전제가 붙어야 하기는 했지만···. 그것만 있다면 다크 레이스는 거저 먹기였다. 신성력으로 보조를 받으면 다크레이스의 공격도 절반 정도로 공격력이 팍 줄었다. 방어력은 더 해서 세레나의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급소 크리티컬이 터지만 한방에 훅 보낼 수도 있었다. 덕분에 순조롭게 68층의 사냥을 하고 있는 정운의 팀이었다. 물론 정운의 일행도 비행 스킬은 있다. 팬텀 나이츠를 넘어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해서 사냥 하는 것도 가능은 했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그럴 이유를 느끼지를 못했다. 현 단계로서는 다크 레이스를 잡는 것 보다 더 좋은 사냥터는 없었다. 보상도 괜찮았고 경험치도 제법 주는 놈들이었다. 무엇보다 몇 마리씩 몰려서 다니는 놈들이기에 여러번 찾으러 가야 할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그래서 정운의 파티는 일단 여기서 죽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정운의 일행에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한중겸이 가져온 소식 때문이었다.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정운에게 한중겸이 찾아왔다. “중겸 형님··. 무슨 일입니까?” “좋은 소식이 있어서 왔지. 일단 한 잔 하자.” 한중겸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비싸 보이는 술병에 담겨 있는 술을 가지고 왔다. 양주는 아니고 전통 술처럼 보였는데 정운은 피식 웃었다. 십왕들 하고 안면을 트고 형님 누님 하게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친해진 사람은 한중겸이었다. 원래 십왕중에 가장 처음 만났기에 그랬을까? 한중겸 본인도 정운을 편하게 대해주고 있었고 정운도 한중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십왕들을 대하는 것과 약간 차이가 났다. 어쨌든 거실에 술판을 차리고 주거니 받거니 한 잔씩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정운이었다. “그래···.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형님.” “응? 그냥 술 한잔 하러 왔다고 하면 안 되냐?”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자기 손에 있는 술잔을 싹 비우고 씨익 웃었다. 둘이서 술판 벌이는 적이야 많았지만 이렇게 비싼 술 사가지고 직접 집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정운은 한중겸의 눈을 바라보면서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선수끼리 무슨····. 그냥 술 마시고 싶다고 언제 우리 집에 찾아오신 적 있습니까? 주로 부르거나 어디로 데리고 가셨지.” “···········.”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씨익 웃었다. 이렇게 되면 새삼 빙빙 돌릴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내가 68층에 오고 나서 탐색에 주력하고 있던 것 알지?” “알죠. 무슨 성과가 있었나 보죠?” “있었지.” 정운의 귀가 솔깃해 졌다. “숨겨진 퀘스트라도 찾았습니까?” “선수끼리라 편하긴 하네···. 그래. 던젼형 퀘스트다. 어때? 한 번 해 볼래?”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싱긋 웃었다. “저야 좋죠···. 하지만 어째서 형님 저한테 말하는 겁니까? 형님 혼자 독식하시는게 좋을 텐데?” “쩝···. 나름 사정이 있다.” 한중겸이 정운을 아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퀘스트를 나눌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기본적으로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퀘스트의 보상을 생각하면 자신의 능력 성장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나눈다는 것은 무리다. 십왕들 정도 되면 어느 정도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게 여기서 살아 남은 제 일법칙인 것이다. 하지만···. 한중겸이 그 퀘스트를 독식하지 못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사실 던전형 퀘스트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십왕의 서열 4위인 한중겸에게도 약점은 몇가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던전이나 미궁 같은 곳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특기는 거대 보스몹의 소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반 유저들 수백명 분의 화력을 발휘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순수하게 화력만 따지면 한 단계 위라고 평가 받고 있는 이민지에 버금갈 지도 몰랐다. 하지만···.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종 할 수 있는 정령과 달리 소환수는 크기를 조종 할 수가 없다. 뭐, 자이언트 모스키토처럼 스스로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종 하는게 가능하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은 항상 거대화 한 상태로 소환 할 뿐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주력 소환수를 다룰 수 없는 미궁 형태에서 한중겸의 전력은 대폭 감소되어 버린다. 퀘스트형 미궁 중에는 미궁을 부셔 버리면 퀘스트가 증발해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그거랑 둘째 치고 퀘스트 미궁이 파괴가 가능할지 말지도 불가했다. 저층의 시시한 퀘스트라면 모를까? 68층의 숨겨진 퀘스트였다. 아마도 부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단단하다. 안 단단하다를 넘어서 별개의 문제였다. 퀘스트로 인한 던전이면 그 건물 자체가 파괴 불가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퀘스트로 발견한 던전 중에서는 그런 던전들이 제법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보스몹과의 전투에서 던전이 버티지를 못하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조치였다. 결국 한중겸 전력의 충원을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능력은 강력하지만 좁은 미궁 공략에는 적합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술병을 선수금 삼아서 이렇게 정운의 집에 온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다 들은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한중겸에게 말했다. “그런데 형님···. 왜 하필 접니까? 다름 사람들도 많을텐데요?” “쩝····. 넌 그걸 꼭 집고 넘어가야 겠냐?” 그냥 좀 넘어가자는 듯이 말하는 한중겸이었지만 정운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예. 꼭 집고 넘어가야 제 속이 편하겠습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세요.” “···········.” 정운이 많이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운보다 더 강한 십왕은 얼마든지 있었다.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뭐···. 그냥 어쩐지 네가 생각나더라고. 이런게 사람 사는 정 아니겠냐?” “················.” “왜? 왜 그렇게 의심하는데?” “·········형님.” 정운이 계속 그럴 거요? 라는 듯이 말하자 한중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사실 너 보다는 그 아가씨한테 부탁을 하고 싶다.” “저 말고 라면····. 세레나요?” 슬기는 아직 레벨이 떨어진다. 그러면 정운 말고 다른 여자라고 하면 세레나 밖에는 집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 그 아가씨····. 그 아가씨 클래스가 성기사 계열이지?” “그렇죠. 그리고 그런 세레나가 필요하다는 말은···. 이번에 형님이 얻은 퀘스트는 언데드 계열인가 보죠?” “아니거든.” “·············.” “악마 계열이다.” “형님·····.” 정운은 정말 그러기냐? 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언데드 계열이건 악마 계열이건 세레나의 신성력이 어드벤티지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드벤티지가 있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둘 중에 뭐가 더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말할 것도 없다. 단연 악마 계열이 더 위험하다. 언데드 중에서도 위험한 고위급 언데드 몹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위험도를 보면 악마 계열이 단연 한 수 위였다. 그런 악마 관련 퀘스트에 끌어들이면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좀 그랬다. “끝까지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야. 그냥 퀘스트 내용을 함부로 노출 시킬 수는 없으니 말 안 한거지.” 그건 일리가 있었다. 유저들 사이에서 퀘스트를 발견하면 함께 공략할 파티나 길드원을 제외하면 절대 비밀로 한다. 이건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일단 다 들으려면 어느정도 참가할 마음을 굳힌 후여야 했다.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중겸에게 말했다. “일단 내용부터 다 털어 놓으세요.” “참가는 확실하게 할 거냐?” “···········.” “···········.” 정운은 확답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운과 한중겸의 사이에서 치열한 눈치의 불꽃이 튀었다. 둘이 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니겠는가? 딸린 사람이 있어서 챙길게 더 많은 정운의 고집이 더 깐깐했기 때문일까? 한중겸은 한숨을 쉬면서 자기 퀘스트를 풀어 놓았다. “독한놈···. 이거 읽어봐라.” 그리고 정운에게는 띠리링 소리와 함께 한중겸이 보낸 퀘스트 창이 보였다. 이름 : 타락한 인형술사. 종족 : 악마계약자 항상 인형을 만들고 있다. 그 인행 하나하나가 그의 충복이자 살인병기이다. 원래 실력 있는 인형 기술사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딸이 병에 걸리고 자신의 행복이 부서져 버렸다. 병든 딸을 살릴 방도를 찾기 위해서 악마과 계약을 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바친 대가로 그는 인간의 혼을 인형에게 집어넣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그는 딸이 죽기 전에 딸의 영혼을 자기가 만든 인형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그렇게 집어넣은 딸의 영혼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제물을 악마에게 바쳐야 했다. 그는 자신의 인형들을 살인병기로 만들어서 무고한 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미궁속에서 살인 인형을 생산하면서 새로운 제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타락한 인형술사를 제거하고 무고한 이들을 해방하라. “····뭐 있으나 마나한 스토리는 일단 내버려두고···. 한 마디로 이 퀘스트에 세레나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렇지. 68층 퀘스트야. 보상도 제법 있을 걸?” “·······그건 그렇죠···.” 정운도 최근에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 있었던 참이었다. 68층에 오고 나서 한 번 사냥할 때 수천만 골드를 벌기도 했지만···. 그 만큼 쓰기도 많이 썼다. 예전에 십왕들에게 억대 골드가 왔다 갔다 했던 것이 이제는 이해가 갈 정도였다. ‘68층 퀘스트라····. 하긴 해야 하는 건데····.’ 사실 하고 안 하고의 선택지는 없었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었다.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면 성장 할 수 없다. 고위레벨이던 하위레벨이던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에게는 당연한 순리였다. 박충호나 배대호가 200레벨을 넘은 것은 막대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십왕들 사이에서도 들인 시간의 차이가 특별하게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이라는 단어보다 조선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시대의 인간들이 아닌가? 정운도 원래는 그렇게 시간을 들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그 둘의 소식을 알게 된 후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인간의 의지는 활화산처럼 확 타오를 수는 있지만 그게 은은한 숯불처럼 오래 가기는 어렵다. 배대호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박충호는 대한독립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온힘과 영혼을 다 태워가던 열정적인 남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목적이 퇴색되어 버리자 이제는 그 열정이 이제 사라져 버렸다. 그는 말한다. 대한독립이 저절로 이뤄 졌으니 이제는 내가 할 일이 없다고···. 그래.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직 그것 하나 때문에 모든 의욕이 사라진 걸까? 설사 독립이 이뤄 졌다고 해도 대한독립에 그렇게 온 힘을 다 기울일 인간이었다면 자기 눈으로 그 광복의 순간을 직접 보고 싶은 의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욕심도 없어 보였다. 정운이 보기에 그가 말하는 이유는 거짓은 아니지만 그게 전부도 아니다. 아마도 독립이 됐다는 소식은 그냥 계기에 불과 했을 것이다. 그 스스로가 그라운드 제로에 적응해서 안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본인 앞에서 이 생각을 대 놓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말이다. 그러니 정운도 최근 생각이 좀 변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라운드 제로에 있다가 보면 자신도 이 상황에 적응하고 길들여 져 버릴지 모른다. 지금 정운에게는 안정적인 생활과 사랑하는 여인과 그리고 주변에 교류 할 수 있는 동료들도 있다. 비록 이게 그라운드 제로라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의 일이라고는 해도····. 인간이 길들여지면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조급하게는 아니지만 기회가 왔을 때는 망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할게요. 언제 갈까요.” “그럴 줄 알았지. 빠를수록 좋지.” “그럼 바로 합시다. 내일 바로.” “좋아.” 정운과 한중겸의 손이 굳게 겹쳤다. ============================ 작품 후기 ============================ 슬럼프. 슬럼프. 확실히 연말 증후군인가 봅니다. 빨리 추스려야 하는데...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10화 한중겸이 나가고 나자 정운은 일단 슬기와 세레나를 불러서 한중겸과의 대화에서 결정된 일을 전했다. “퀘스트라고요·····.” 정운의 설명을 들은 슬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정말 오랜만의 퀘스트였다. 모든 유저들이 단체로 했던 비정기 퀘스트를 제외하고는 예전에 정운과 했던 쉐도우 엘프 킹 공략 퀘스트 이후로 처음인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아슬아슬했다. 물론 그렇게 아슬아슬한 위기를 이겨낸 덕분에 보상도 막대했지만 말이다. 정운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 그리고 무엇보다 세레나. 그녀의 가치는 그 어떤 아이템이나 스킬북으로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용케도 나누기로 결심을 했네요? 한중겸씨가····.” “음, 아무래도 퀘스트 내용상 세레나가 있어야 할 것 같은가봐. 그리고 미궁형 퀘스트라서 중겸이 형님의 소환수를 쓰기가 힘들 것 같기도 하고.” “그렇군요···.” 정운의 말에 슬기도 선선하게 동의했다. 이제 그녀도 경력이 있어서인지 돌아가는 상황을 잘 파악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정운에게 다시 확인하듯이 말했다. “그럼 우리 파티하고 한중겸씨하고 그렇게 가는 거예요? 총 네명으로만?” “일단은···. 그런데 모르지. 혹시 다른 사람들이 또 올지.” “다른 사람들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가 중겸이 형님이라면 어느 정도는 보험을 들어 둘 거야. 아무리 퀘스트의 보상이 탐난다고 해도 일단 클리어 자체를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를 무엇보다 우선시 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정운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예상 이상으로 들어 맞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퀘스트 진행을 위해서 필드로 가는 당일. 포탈의 앞에서 정운은 역시나 라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한중겸에게 말했다. “역시···. 이렇게 됐군요.” 정운의 다소 푸념 섞인 말에 한중겸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끼리만 간다는 얘기는 안 했잖냐?” 그런 한중겸이 얄미웠기 때문일까? 정운은 한중겨에게 다시 한 번 따졌다. “다른 사람들도 저하고 비슷한 눈초리를 하고 있는데요? 양심에 가책이라는 것은 받고 계세요?” “아니. 난 이번 일이 모두에게 세상만사는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중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얼굴에 철판 깔았다는 듯이 말했다. 전부터 느꼈는데 십왕 중에서 가장 뻔뻔한 남자를 꼽으면 틀림없이 이 남자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는 한중겸과 정운 이외에도 이보영, 이지영 자매와 거기에 김수민에 명주호까지 있었다. 어쨋든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좋은 면도 있었다. 68층의 퀘스트가 험난하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이면 퀘스트의 진행은 더 안전하게 이뤄 질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성공 실패를 넘어서 사망자가 나올 일은 거의 없을것 같았다. 대신 보상은 더 적어지 겠지만 말이다. 뭐, 원래 같은 보상이 나온다고 해도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면 보상이 더 적을 것으로 대채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나? 68층의 퀘스트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실제로 이 정도의 전력은 필요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미 벌어진 판이고····.’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냥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정운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지 되었든 여기서 뒤로 발을 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가자!!.” 한중겸이 일행을 가장 선두에서 이끌고···. 모든 이들이 포탈을 타고 이동했다. 한중겸이 발견했다는 퀘스트의 던전은 황야 지대를 넘어서 사막 지형에 있었다. 가도 가도 모래 밖에 없어 보이는 이 사막의 어딘가에서 한중겸은 드문드문 있는 바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한 그는·····. “나와라. 그레이트 타이탄.” 그레이트 타이탄을 소환한 한중겸은 소환수에게 명령했다. “저 바위를 옆으로 치워라.” 명령에 따라서 그레이트 타이탄이 바위를 치웠다. 쿠웅!! 집체만한 거대한 바위였지만 그레이트 타이탄이 집어 들자 그저 벽돌 정도의 돌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치워진 바위의 뒤 편로는 지하로 파고들어가는 계단이 펼쳐졌다. 띠리링!! [퀘스트 타락한 인형술사의 퇴치가 진행됩니다.] 일행의 전원에게 퀘스트 진행창이 떴다. “그럼 들어갈까? 진형은···. 주호가 뒤에, 그리고 가장 앞에는 보영이하고 지영이가 서라. 나머지는 중간에 눈치껏 자리하도록 해.” 일단 일행의 리더를 맡고 있는 한중겸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은 진형을 만들었다. 사실 근거리 전투가 특기인 이지영, 이보영 자매가 앞에 서고, 가장 후미에 강력한 근거리 전투가인 명주호가 서는게 중요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원거리 전투가 가능한 자들이었다. 어디에 서도 백업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습기로 축축해진 석벽과 드문드문 달려있는 횃불들이었다. 등간격으로 늘어져 있는 횃불은 통로를 밝힌다기 보다는 통로들 더 음습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딱 전형적인 미궁이네.” “그렇게···. 일단 길 찾기부터 해야 겠어.” 예전에 정운이 클리어 했던 쉐도우 엘프 킹 던전은 그나마 좋은 점이···. 관면형으로 일자 돌파를 하면 되는 던전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길도 찾기 어려울 정도의 미궁은 아니었다. 적어도 길을 잃을 걱정은 없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말 그대로 미궁이었기에 목적지인 보스 룸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보통 미로는 입구에서부터 한쪽 벽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종종 그런 법칙이 통하지 않는 미궁들이 있었다. 중간에 통로가 움직인다거나···. 혹은 환각 물질을 뿜어내서 미궁에 들어온 유저를 환각 상태로 만든다거나···. 실로 여러 가지 패턴이 있었다. 그러니 숙련된 유저는 한쪽 벽을 따라가는 공략은 하지 않았다. 차라리 선입견은 일절 버리고 천천히 모든 지역을 탐색한다는 느낌으로 탐색 하는게 더 중요했다. 갈림길이 나올 때 마다 미리 준비한 스프레이형 락카로 표시를 하면서 되도록 같은 길을 겹치지 않게 이동했다. 치이익····. “쳇. 차라리 벽을 다 부셔 버리고 돌파하면 좀 쉬울지도 모른데···.”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이보영이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옆에서 한중겸이 말했다. “참아라 보영아···. 그게 가능하면 내가 가장 먼저 했을 거다.” 미궁의 벽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 했다. 십왕들이 마음 먹으면 산 하나를 날려 버리는 것도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미궁의 벽은 부술 수 없었다. 아마도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로직에서 이 벽은 파괴가 불가능 하다고 설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정운은 느끼고 있었다. 가끔씩 너무나 리얼한 설정 때문에 착각하고는 하지만···. 여기는 역시 현실이 아니다. 악마의 손바닥 위나 다름없는 세계인 것이다. “······왔다.” 미궁의 미로를 돌고 돌아서 탐색한지 대략 한 시간 정도···. 드디어 일행은 적을 찾았다. 보스몹으로 가는 길에 그 부하몹이 있을 것은 당연했다. 나타난 몹은 인형이었다. 인형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마네킹처럼 보였다. 옷도 입히지 않고 가발도 씌우지 않은 형태의 마네킹 말이다. 어두운 복도 속에서 아무 전조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마네킹 형태의 인형을 보자 이보영이 말했다. “완전 호러네.”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는 듯 했다. “누가 ME로 좀 찍어 봐.”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인벤토리에서 ME를 꺼내서 적을 찍었다. 미완성 킬링 돌. LV. 90~95 [타락한 인형술사가 대충 만든 인형. 대충 만들어서 공격력도 방어력도 낮다.] “이거 참···. 별것 아니네요.” 어차피 초반에 나오는 몹이니까 큰 경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부터가 미완성이고 만든 것도 대충 만들었다고 한다. ME의 정보만 봐도 피라미 티가 팍팍 났다. “그럼 빨리 끝내 버리자.” “음, 방심하지 마.” 이보영, 이지영 자매를 필두로 해서 전위 멤버들이 앞으로 나서서 전투를 시작했다. 퍼퍼퍽!!! 마치 타격의 폭풍이 지나가면 이런 느낌일까? 두 자매가 지나가고 나면 파괴된 마네킹의 잔해만이 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상황은 생각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제길···.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겠네.” “발밑 조심해!!” “슬기야. 너 실드에서 절대 나오지 마. 세레나 슬기를 지켜!!!” 처음에 전위들이 무작정 밀어 붙일 때만 해도 금방 돌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일종의 난전이나 다름 없이 되어 버렸다. 상대의 무장은 작은 단검 하나. 그것 하나만 들고 싸우고 있었고 동작도 다소 뻣뻣했다. 하지만 숫자가 워낙에 많았고 충격에 강했다. 충격에 강하다는 말은 튼튼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놈들을 산산조각으로 파괴된 후에도 다시 조립해서 일어났다. 덕분에 어느새 이 복도는 마네킹들로 가득 차 버렸다. 또 어떨 때는 손목만 남아서 칼날을 들고 발등을 찍으려고 하는 놈들도 있어서 상당히 골치 아팠다. 아비규환 같은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 세레나가 신성력을 써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별 효력이 없었다. 아마도 이 놈들은 언데드도 아니고 악마와 계약한 것도 아닌 그냥 움직이는 인형일 뿐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제길···. 인형도 악마와 계약한 자의 능력으로 움직인다는 설정일 텐데···. 깐깐하기는···.” 누군가의 투덜거림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별 명쾌한 해답은 없었지만···. 적어도 방심하지만 않으면 일행을 위협할 만한 적은 아니었다. 끈질긴 것 하나는 엄청났지만 그것과 별개로 공격력은 기대 이하였다. 일행은 적을 떨쳐가면서 야금야금 적들을 돌파해 갔다. “저쪽의 골목으로 달려가!!!” 명주호는 전투 중에 일행이 빠져 나갈 만한 작은 샛길을 발견했다. 일행은 그 지시에 따라서 달렸다. 중간에 걸리는 적들은 일단 다 해치우고 정해진 장소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해서 일행이 모두 달려서 골목으로 빠져나가자 명주호는 크게 도를 휘둘렀다. “저리 꺼져!!!” 콰콰쾅!!! 그의 도기에 전방에 따라오던 적들이 박살이 났다. 그걸 보고 정운이 슬기에게 크게 외쳤다. “슬기야. 아이스 월!!” “아!!! 아이스 월!!” 정운의 말에 무슨 뜻인지 상황을 파악한 슬기는 바로 마법을 썼다. 쩌저적!!! 그렇게 슬기가 마법을 쓰자 입구를 막는 두꺼운 얼음의 벽이 생겼다. 원래 슬기의 아이스 월은 높이 4미터까지 튀어 오른다. 이런 미궁의 길목을 막는 것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제길···. 한방 거하게 날려 버리면 편한데···. 하여튼 이래서 미궁은 골치 아프다니까···.” 이보영의 말 대로였다. 십왕들의 진짜 힘을 쓰기에는 이런 미궁은 너무 좁았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놈들에게 당할 수준의 유저는 없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자신들의 힘을 마음껏 쓰지 못하는 좁은 지역에서 끈질긴 몹을 마나다 보니 짜증이 난 것이다. “흠·····. 잠깐 여기서 상황 회의 좀 할고 가지.” 명주호의 말에 일행은 잠깐 쉬고 가기로 했다. 이보영은 자기 인벤토리에서 칼로리 바를 꺼내서는 오물거리면서 말했다. “이상 한 걸? 대충 만들었다고 했는데 이렇게 귀찮다고? 제대로 만든 놈이면 얼마나 까다롭다는 거야?” “······뭔가 약점이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슬기가 입을 열었다. 원래 십왕들 사이의 대화에는 잘 끼어들지 않는 그녀였다. 아직 자기 레벨로 그들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입을 열자 다른 십왕들의 시선까지 한 번에 몰렸다. 슬기는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을 보고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원래 아이돌출신 연예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다고 일일이 쫄아 버리는 유리 심장은 아니었다. “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막연하잖아요? 그냥 인형이니까 부서지고 부서져도 계속 재생한다고 하는 설정은····. 이게 게임인 이상 나름 공략법은 있지 않을까요?” “····네 말이 맞아.” 슬기의 말에 가장 먼저 동의하고 나선 것은 이보영이었다. 확실히 슬기의 말 대로였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1화 공략법은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있어야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리얼하게 구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는 어디까지나 게임의 틀을 따르고 있다. 게임인 이상 클리어 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이 있어야 했다. 게임에서 넘기 어려운 벽은 있어도 넘을 수 없는 벽은 없었다. 그건 어떤 의미로 게임의 철칙이었다. 설령 이 그랑운드 제로의 창시자 파우스트라고 해도, 게임이라는 법칙의 아래에서 창조를 하고 있는 이상 클리어의 가능 유무의 한계치 설정은 어길 수 없는 절대법칙인 것이다. 이 던전에서 앞으로 어떤 몹들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이 던전의 배경 스토리를 생각할 때 나오는 것은 점점더 고차원적인 인형일 것이다. 가장 잔챙이인 저 녀석들을 상대할 때 미리 약점을 발견해 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피곤해진다. “약점이라···. 약점····.” “흐음····.” 정운의 파티를 포함해서 일행들 전원은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 세계에 이골이 난 자들이다. 슬기의 말대로 뭔가 허점이 있을 것이라고는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무엇이? 과연 무엇이 약점인 것일까? ‘약점이라···. 강점은 끈질기다는 것인데···. 부서져도 계속 고쳐지고····. 응? 잠깐만···.’ 생각을 하던 정운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고친다.’라는 것에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보통 몹들은 회복 된다. 라고 한다. 재생력이 강하거나 혹은 회복 스킬을 사용해서 자기 몸을 회복하는 몹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저건 인형이다. 살아있는 놈이 아니다. 그러니 정운도 놈에게 ‘회복한다.’ 라는 표현이 아니라 ‘고친다.’ 라는 표현을 써 왔던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회복은 자기가 회복한다고 해도, 고치는 것은 누가 고치지?’ 기계든 인형이든 그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의지가 없는 인형이 스스로를 고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싸우는 건 어차피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세계관이고 어찌어찌 넘어간다고 치자. 사전에 싸워라. 라는 명령을 내린 저주의 인형 정도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런 사기적인 수복능력도 그냥 넘어가기는 무리였다. 저것들의 본질인 이상 부서진 인형을 고치는 것은 누군가에게 수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걸 누가? 어떻게?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해 보던 정운은 뭔가 아슬아슬하게 어떤 결과에 도달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운은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아이스 월 좀 잠깐 해제해 봐.” “지금요?” “그래···.” 아직 아이스 월 너머에서는 인형들이 얼음의 방벽을 바각바각 긁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건너편에 놈들이 있다는 증거였다. “정말 해제해요?” “그래. 어차피 계속 이 자리에 있으면 저 정도의 방어벽을 뚫릴 거야. 그러니 일단 해제제 해봐.” “알았어요.” 정운의 말대로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얼음벽이었다. 슬기는 선선히 벽을 해제했다. 그리고 슬기의 얼음의 방벽이 해제되자마자 정운은 한 마리의 맹수처럼 재빨리 튀어 나가서 인형 하나의 손목을 잡아챘다. 정운에게 손목을 잡힌 인형읕 격렬하게 발버둥 치면서 정운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놈의 유일한 무기인 단검이 들린 손을 제압 당해서 다른 공격 수단이 거의 전무했다. 다른 괴수 형태의 몹들 처럼 물어 뜯을 수 있는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기를 들지 않은 손과 발로 투닥 거려 봤자 정운의 방어력에는 별것 아니었다. 원래 무기라고는 손에 들고 있는 단검 하나 밖에 없는 인형이었다. 일단 손목을 제압하면 공격 수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라는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제압법이었다. 정운은 놈을 확실하게 제압한 수에 단번이 잡아 당겼다. 놈은 의외로 가벼워서 간단하게 끌려 나왔다. 다만 끌어 당겨진 놈을 따라서 다른 놈들도 따라서 정운에게 와서 덮치려고 했다. 하지만 정운이 다시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다시 아이스 월!!” “옛!!” 정운이 말을 하기도 전에 슬기는 이미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삼중으로 아이스 월을 깔아 버리고 일단 시간을 벌었다. 정운은 잽싸게 한 마리 잡아온 놈을 가지고 십왕들의 한 가운데로 끌고 갔다. “동생. 그 놈 가지고 뭐 하려고?”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인형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으면서 말했다. “실험입니다.” 정운의 말에 십왕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말로 이리저리 고민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차분하게 관찰 하는게 좋았다. 인형은 전운에게 제압당한 손목 이외의 부분을 가지고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인형 특유의 딱딱한 동작 때문에 그렇게 효과는 없었다. 여기에 그런 딱딱한 공격에 맞아서 사망할 인간이 있다면 진작에 죽어도 죽었을 것이다. “흐음···. 일단 머리나 심장을 부셔도 다시 재생하는게 이상하단 말이야. 보통 좀비나 언데드 같은 경우는 그러면 죽는데 말이야.” “이 놈들은 인형이니까요····. 흠···. 누님. 이 녀석 복부에 한 대 먹여 보지 않을래요?” “그러지 뭐···.” 퍽!!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간단하게 주먹을 푹 내질렀다. 그녀의 주먹은 어지간한 강철 보다 훨씬 딱딱한 놈의 몸을 간단하게 꿰뚫었다. 사실 그녀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녀가 주먹을 빼자 놈은 다시 수복을 하기 시작했다. 정운은 꾸물꾸물 거리면서 반투명한 막을 만들면서 재생하는 놈의 파괴 부위를 지그시 바라봤다. 역시 정운의 예상대로였다. 놈의 재생하는 모습은 스스로 수복한다기 보다는 파괴된 부분을 재생하기 위해서 외부에서 뭔가를 받아 들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서진 찰흙 인형을 고치기 위해서 새 찰흙을 이용해서 새롭게 팔다리를 만들어 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증거는 없었지만 정운은 상당한 확신을 담아서 주변에 말했다. “이거 꼭 어디서 연료를 주입 받는 것 같지 않나요?” “그게 정답일 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이 놈들은 정말 인형일 뿐인가 봅니다.” “그게 뭐야.” “제 예상입니다만····.” 정운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이 던전의 시스템과 그 공략 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사람들은 그럴 듯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게 가능성이 가장 크지.” “그러게···. 그런데 골치 좀 아프겠는걸?” “역할을 둘···, 아니 셋으로 나누자.” 여기 있는 자들은 모두 수도 없이 경험을 쌓고 역경을 넘어서 지금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다. 정운이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자 거기에 대한 대응책이 막힌 둑이 무너진 것처럼 우르르 흘러 나왔다. “ME의 주파수는 모두 107.5로 맞춰놔.” “알겠어요.” “107.5···. 107.5···.” 한중겸의 말에 십왕들은 ME를 꺼내서 뭔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정운은 순간 멀뚱멀뚱 보다가 말했다. “저기···. 뭐 하시는 거죠? 주파수라니···. 그거 혹시 통신도 되는 겁니까?” 정운의 말에 십왕들은 오히려 이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뭐야? 동생 몰랐어?”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도 못 했다. 라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예. 몰랐죠.” 그러자 이번에는 한중겸이 어이없다는 듯이 정운에게 말했다. “설명서에 써있었잖아?” “설명서···. 아아····. 설명서···. 예. 설명서···. 그런게 있었죠.” 정운은 그제야 ME를 샀을 때 같이 따라온 작은 책자를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때 자신이 한 행동도 같이 생각났다. [“어째 이런것 보면 지는것 같단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휙·····. “······버렸는데요?” “정운씨····.” “마스터····.” 정운의 한 마디에 슬기와 세레나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남자들 중에 꼭 있다. 전자기기 샀을 때 설명서 따위는 필요 없다. 라고 생각하고 생 까는 사람이. 그리고 그런 사람들 열에 아홉은 나중에 기계에 트러블 생기고 나서야 설명서 어디에 놔 뒀지? 라고 하면서 찾는다. 그리고 그 아홉중에 다섯은 설명서를 못 찾는다. 왜? 버렸으니까·····. 정운이 딱 그런 타입이었던 것이다. 정운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미안. 내 실수야.” “············.” “············.” 정운을 바라보는 두 여자의 눈동자가 차가웠다. 결국 정운의 일행은 십왕들에게 잠깐 ME의 사용 법을 배웠다. ME는 적을 탐색하고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지만 때로는 같은 던전이나 필드 플레이에서 다른 동료와 통신을 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통신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떨어진 상황에서 서로의 위치를 탐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여튼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정운이 지금까지 자신의 ME가 개발에 편자 노릇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 오랜만에 아무런 할 말도 없어진 상황에서 정운은 그냥 침묵으로 딴청만 부렸다. 어쨌든 정운이 ME의 사용법도 다 익혔고··. 이제 파티원들은 본격적으로 팀을 셋으로 나눴다. “그럼··. 시작한다.” “예. 알겠습니다.” “흩어져!!!!” 일행은 세 가지 팀으로 나눠졌다. 이보영, 이지영 자매와 김수민이 한 팀. 명주호, 한중겸으로 한 팀. 그리고 원래 파티인 정운과 세레나, 슬기가 한 팀이었다. 이렇게 팀을 셋으로 나눈 후에 일행은 재빨리 흩어져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걸리적 거리는 몹들은 크게 상대하지 않고 일단 불똥만 쳐내는 수준으로 그대로 돌파해갔다. “몹들이 나오는 쪽으로 가보자. 그 편이 성공률이 높을 거야.” “옛!! 마스터.” 정운은 세레나와 슬기와 함께 달리고 달려서 미궁을 공략해 갔다. 중간에 나오는 인형들의 숫자는 더욱더 많아져 갔지만 그래도 아직 큰 위협은 아니었다. “쉐도우 컷터!!!” 정운의 스킬인 쉐도우 커터는 이렇게 미로 형태로 되어있는 좁은 길목에서 더 위력을 발휘했다. 원래 그림자에서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칼날을 날려 버리는 스킬이었다. 직선적으로 돌파하면서 대미지를 주기 때문에 적들이 이렇게 좁은 골목에 몰려 있을 때 효과가 좋았다. 콰콰콰콰콰!!!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대미지를 주면서 적들을 날려 버리는 스킬을 보고 정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빨리 가자.” “옛!! 마스터.” “알았어요.” 세레나와 슬기도 정운을 뒤 따라서 빨리 이동했다. 전방에서 길을 뚫는 정운을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은 ME를 가지고 다른 팀들과의 거리를 체크하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세 팀 모두가 뭔가를 찾는 것처럼 미궁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미궁을 탐색하면서 정운은 내심 자신의 생각이 틀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드디어 정운은 목적지에 해당했다. “오오오!! 찾았다. 슬기야. 연락해!!” 정운은 어떤 방에서 플라즈마 형태의 거대한 구를 발견했다. 그 구에서는 실날 처럼 어떤 것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이게 컨트롤 장치인 거야. 슬기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해.” “이미 하고 있어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ME의 통신 장비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찾던 것을 찾았다고 연락했다. 정운이 세운 가설은 이랬다. 적이 인형이라면···. 그 인형을 조종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 조종자, 혹은 조종 장치를 찾아서 파괴하지 않으면 끝없이 인형들만 계속 상대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자세히 보면 저 구체에서 뭔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저것이 계속해서 에너지원을 공급해서 인형들을 끝없이 복원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 층의 모든 몹들을 하나의 몹이라고 봐야 하는 거군·····.’ 저것이 머리. 그리고 이제까지 지겹도록 상대했던 놈들이 손과 발. 그런 느낌으로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럼···. 찾았으니 부셔야 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마스터?” 세레나의 질문에 정운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정석이랄까? 왕도랄까? 저런 타입은···. 위험을 감지하면 주변에 가디언을 소환하거나 자기가 직접 공격하거나···. 뭐 그런 식으로 나오거든?” “그렇군요···. 그럼 ME로 연락한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그러는게 좋겠지. 아!! ME로 찍어 볼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ME로 저것을 찍어 봤다. ============================ 작품 후기 ============================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2화 <뜻밖의 사태.> 인형술사의 엑토플라즘 LV ? [인형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에너지원.] “······짧네.” 이 짧은 소개글이 한 층 더 의심스러웠다. 꼭 저런 걸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하면 쓴 맛을 보고는 했다. 일단 정운은 일행이 오기 전에 얌전히 기다리려고 했다. 그런데····. 쿠우우우·····. “어···? 저거 갑자기 왜 저래?”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고 있던 엑토플라즘이라는 것이 갑자기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운의 일행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어째서···. 이제까지 안정적이었는데····.” 정운의 이런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반대쪽 통로에서 나온 한 명의 사람이었다. “으음···. 혹시 내가 사고 친 건가?” “·····수민이 형님!!!!” 정운의 눈에 보이는 것은 채찍을 들고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수민이었다. 아무래도 반대편 통로에서 이 동공으로 등장한 그는 나오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엑토플라즘에 한 방 먹인 것 같다. 정운이 그런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자 그는 손을 들어서 살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미안.” “이런···. 나중에 말 합시다. 일단 이 놈부터····. 제길.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저벅저벅저벅····. 놈의 안에서 나오는 것은 이제까지의 마네킹 인형과는 다른 좀 더 전투적인 인형들이었다. 얼굴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인형의 무장은 그냥 단도 하나만 있는게 아니라 칼에 방패에 창까지··. 무기에 갑옷까지 아주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고 있는 인형들이었다. “온다···. 이 놈들은 진짜야.” 긴장된 순간이었기에 ME로 찍어서 확인할 틈은 없었지만···. 이 놈들은 이전의 놈들과는 전혀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중겸이 형님 조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이번 퀘스트 공략인원 중에 가장 강력한 두 사람이 한중겸과 명주호였다. 그 둘을 오기 전에 전투가 벌어진 것은 조금 찝찝했지만 놈들이 그런 사정을 봐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나온 인형은··· 대략 30기. 내가 전위 역할을 해야 되.’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뇌천신공, 쉐도우 아미.” 정운의 전신에 뇌전의 기공이 깃들고 그림자의 병사들이 주르륵 늘어났다. 아스트랄 소드는 쓰지 않았지만 정운의 통상 상태에서의 전력이라고 해도 좋았다. “세레나!! 슬기하고 같이 후위에 남아있어.” “예! 마스터.” 그리고 정운은 곧장 쉐도우 아미들과 함께 인형들에게로 달려갔다. 물론 30기전체를 정운이 감당한 것은 아니었다. 정운의 뒤편에서 이보영 이지영 자매와 함께 김수민도 뛰어 들었다.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둬야지.” 김수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채찍을 거칠게 휘둘렀다. 원래 그의 채찍 역시 미궁의 길목에서 유용한 기술은 아니었다. 채찍이라는게 어느 정도 휘두를 공간이 있어야 파괴력을 살릴 수 있는 무기라서 골목길이 연쇄적으로 이어진 미궁형 던전에서는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다만···. 지금 여기는 커다란 공통 형태의 건물이었고 여기서 라면 그가 자랑하는 타란툴라 웹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었다. “난무!!!” 파파파파팡!! 인형과 더불어서 사방의 석벽을 박살내기 시작하는 그의 채찍은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지지 않고 이보영 이지영 자매도 파괴적이고 유려한 콤비네이션으로 적들의 인형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적의 인형은 초반에 나왔던 마네킹형태의 인형 보다는 좀 나았지만···. 그래도 인형은 인형. 적어도 이들에게 어떻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운은 밀리지 않는 셋의 전투를 보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쉐도우 아미들로 적들의 인형을 상대하면서 정운 스스로는 엑토플라즘 자체를 공격 타깃으로 잡았다. “쉐도우 스피어!!” 촤아악!!! 정운의 명령에 엑토플라즘의 바로 밑에서 창날이 올라와서 엑토플라즘을 가격했다. 엑토플라즘은 정운의 공격에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정운의 공격을 향해서 촉수 같은 줄기를 뻗었다. ‘저건···. 위험하다.’ 문어발처럼 뻗어오는 촉수의 공격을 보고 정운은 한 눈에 그게 위험한 공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쉐도우 월!!” 정운의 앞에 그림자로 된 방벽이 솟아올랐다. 그것으로 잠깐 적의 공격을 막아낸 정우는 그대로 다음 스킬을 병행했다. “쉐도우 무브.” 정운이 쉐도우 무브를 쓰자 본인이 자신의 그림자에 스며들 듯이 스르륵 하고 사라져 버렸다. 잠깐 쉐도우 월에 가로 막혀서 공격 목표를 잃어 버렸던 엑토플라즘의 촉수는 그대로 정운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정운의 그림자는 주인도 없는 상황에서 은밀한 어뢰처럼 지면을 타고 움직였다. 목표는 바로 엑토플라즘의 밑. 거기에 그림자가 도착하자 그림자가 수면처럼 일렁이면서 정운이 튀어 올라왔다. “으아아앗!!!!” 온 몸에 뇌전을 휘감고 자신의 애창인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앞세운 정운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확 튀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공격이 정확하게 엑토플라즘의 사각을 때렸다. 카카카카카····. “이익····.” 정운의 공격을 받은 엑토플라즘은 마치 고무 같은 강한 탄력으로 정운의 공격을 견뎌내고 있었다. 정운은 이대로 적을 한방에 관통해 버리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적의 방어력이 강했다. ‘제길··. 내 룽기누스의 창은 스피릿 계열의 몹들에게는 추가 대미지가 있는데도····.’ 상대적으로 추가 대미지가 들어가는 속성 공격에 사각에서의 일격. 정운은 나름 자신을 가지고 행한 일격이었는데 약간 계산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엑토플라즘의 방어력은 상상 이상으로 두터워서 정운의 공격력에도 끝장이 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버티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운의 공격을 버티면서 엑토플라즘은 그대로 촉수를 뻗어서 정운에게 접촉했다. 그리고 정운에게 접촉한 촉수는 마치 땅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처럼 정운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운은 놈에게 침식당한 다리 부분의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이거 혹시··· 놈이 이런 식으로 인형을 늘린다. 라는 설정인 건가?’ 다리에 감각이 완전히 없어지기 직전에 정운은 재빨리 다음 수를 썼다. “쉐도우 아머!!!” 촤아아악!!! 정운의 전신을 빈틈없이 그림자의 갑옷이 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덕분에 약간이지만 엑토플라즘의 공격도 튕겨냈다. 하지만 놈은 신경 쓰지 않는다. 라는 듯이 그대로 정운을 향해서 더 많은 촉수를 가져가서 접촉했다. 마치 갑옷채로 정운을 삼켜 버릴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크으윽····.” 정운은 갑옷을 뚫고 들어온 촉수에서 타들어가는 화상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괴로운 것은 정운 뿐만이 아니었다. 정운 말고 엑토플라즘도 붉은색이 더욱더 진해지고 발광하는 듯한 느낌이 역력했다. 놈도 명백하게 대미지를 입고 있다는 증거였다. ‘시간 승부인가··.’ 지금 밀어 붙이고 있는 정운의 창날이 놈을 관통하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놈이 정운을 완전히 잠식 하는게 먼저일까? 둘 중에 하나인 것이다. ‘···위험하다. 아스트랄 소드를 쓸까? 하지만 그럼 이제 몇 시간동안 전투를 쉬어야 할 텐데···.’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반가운 원군이 도착했다. 콰아아앙!!! “···어? 주호 형님!!!” “이대로 끝낼 걸세. 밀어 붙여!!!” 어느새 합류한 것일까? 정운과는 반대편인 위쪽에서 엑토플라즘을 찍어 누르는 명주호의 도움에 정운은 마지막 힘을 발휘했다. “질풍신뢰(疾風迅雷)!!! 질풍신뢰 LV.5 (500미터의 거리를 직선 거리를 한 점 돌파한다. 돌파시 공격력을 대폭 상승 시킨다.)원래 정운은 돌격기라면 흑토를 타고 쓰는 기마 차지를 즐겨 사용했다. 때문에 이 질풍신뢰라는 스킬은 잘 쓰는 기술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한줄기 번개로 바꿔서 달려나가는 이 기술도 돌격기로는 충분히 강력한 기술이었다. 찌지지직···. 퍼어엉!! 마치 아주 아주 질긴 가죽공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엑토플라즘은 한계까지 늘어나더니 이윽고 관통 되어 버렸다. 위에서 누르는 명주호와 밑에서 찔러 올리는 정운의 공격에 찢겨 터지는 순간은 마치 대형 타이어가 터지는 것 같은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런 굉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정운의 머릿속에는 알림음이 들렸다. 띠리링. [인형술사의 엑토플라즘을 해치웠습니다. 보스몹인 타락한 인형술사의 방으로 전송 됩니다.] “이건··?” “보스룸 자동 전송? 망할····.” “모두 방어 스킬부터 써!!! 정신 바짝 차려!!!!” 정운에게 알려진 알림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왔다. 어째 지하로 내려가거나 다른 곳으로 통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 수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 하니 자동 보스룸으로 전송되는 타입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가끔씩 보스 몹들 중에 이런 타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만 워낙에 드문 타입이라서 그만 대비를 소흘히 하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당황한 것은 정운이었다. ‘빌어먹을··· 슬기···.’ 정운이 당황한 것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 슬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자기 건사를 할 수 있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슬기가 그럴 수 있을까? 정운은 하다 못해서 슬기와 함께 전송되기 위해서 그녀에게 달렸다. “슬기야!!!” “정운씨!!!!” 슬기도 전운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미처 정운이 도착하기도 전에 슬기는 한 발 먼저 보스룸으로 전송되어 버렸다. “빌어먹을·····.” 정운은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정운도 의식을 잃어 버렸다. 의식을 잃어 버렸던 정운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정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정운이 사방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슬기야!!!!”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 정운에게 누군가의 대답이 들려왔다. “뭐 하는 거니?” 정운의 말에 대답한 것은 슬기가 아니었다. 슬기는 아니었지만····. 어떤 의미로는 슬기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응? 왜 그러니?” 정운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어머니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건강하시다. 혈색도 좋아 보이시고 멀쩡하게 두 발로 서 계신다. 마지막에 봤을 때의 기억은 어머니가 산소 호흡기를 달고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다르다. 멀쩡하게 살아계시는 것이다. 그러보 보니 여기는···. “내방···, 우리집!!?” 정운은 크게 당황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어머니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빨리 밖으로 나와라.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어·····. 음·····.” “뭐 하니? 안 나오고?” “아니요··.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 같아서?” “내가 뭔지 알 것 같구나.” “그게 뭔데요?” “너 오늘도 시험이라고 하지 않았니?” “·····망할.” 정운은 잽싸게 자기 방의 가방에 대강 필요한 책과 물건을 집어넣고는 냅다 달렸다. “애!! 밥은 먹고 가야지.” “한끼 안 먹어도 돼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재빨리 달려갔다. 생각해 보니 오늘 시험인 걸 잊어버린 것이다. 달리고 또 달리고 피 같은 택시비에 약간의 지출이 있기는 했지만···. 정운은 시험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아아아····. 다 망칠 뻔 했다. “여. 정운아. 시험은 잘 봤냐?” “몰라···. 잘 봤겠지. 안 봤으면 그만이고.” 그런 정운의 대답에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퍽이나 못 봤겠다. 맨날 장학금은 꼬박꼬박 타가는 놈이···. 넌 우리 대학 등록금에 관해서 불평한 자격이 없어.” “시끄러···. 머리 아파.” “그보다 시험도 다 끝났으면 이제 한 잔 하러 가자. 선배들이 쏜다고 하더라.” “···난 됐어. 너나 가서 안주발 축내고 선배들한테 욕먹고 와라.” 싱겁게 말하는 정운을 보고 친구가 말했다. “짜식···. 네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내가 여자가 왜 없어. 난········ 어?” 정운은 말하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그녀의 이름이···. 아니 애당초 여자가 있었던가? 망설이는 정운을 보고 친구가 말했다. “뭐야? 너 나한테 보고도 안 하고 여친 만들었냐?” “·····아니. 아니야···. 아닌 것 같아.” “········아니면 아닌 거지 아닌 것 같아는 뭐야? 너 어디 아프냐?” 친구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 하자 정운은 머리를 붕붕 흔들면서 말했다. “이건···. 아니. 아니다. 아무래도 나 오늘 컨디션 안 좋은가봐. 집에 가서 자야겠다. 오늘 나 컨디션 영 아니야.” “그래라. 너 얼굴이 푸르딩딩한게 스머프 같아.” “············.” 정운은 대꾸할 힘도 없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운은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뭔지는 모르겠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어쩐지 목구멍이 까끌까끌 거리는 느낌처럼 이상한 찝찝함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왜 그럴까? 오늘 아침부터 왜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걸까? ‘···난 박정운. 편모 가정에서 자라서 XX 대학의 2학년에 재학 중. 이번 학기까지 하고 군 입대 예정···. 뭐지?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 거지?’ 정운은 멀리를 붕붕 흔들었다. 이상했다. 이상함을 넘어서 뭔가··· 뭔가 짜증이 날 것 같았다.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뭐든지 다 부셔 버릴 것 같은 충동이 생기고 있었다. 다만···.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정운을 한 층 더 까다롭게 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아... 피곤하고 컨디션이 영 별로입니다. 연말증후군일까요? 아니면 크리스마스 증후군일까요? 빨리 추스려야 할 텐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3화 어둡고 거대한 밀실의 공방. 그 공방의 한쪽에는 여덟 개의 커다란 구슬이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슬의 안에는 각각 정운과 슬기, 세레나, 이보영, 이지영, 한중겸, 명주호, 김수민 등이 들어 있었다. “걸렸군. 이대로 내 인형으로 만들어 주마.” 그리고 그런 여덟을 보면서 타락한 인형술사로 보이는 자가 있었다. 그렇다.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말을 한 것이다. 몹인 타락한 인형 술사는 어디까지나 몹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타락한 인형 술사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 까무러치게 놀라운 것은····. 그 타락한 인형 술사의 뒤편에 나타난 한명의 여성이었다. 속이 다 비치는 검은색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전신에 색기가 잘잘 흐르는 그녀는 다름 아닌 김신수의 심복인 최수영이었다. 같은 타입이라도 섹시한 여성이 있고 요염한 여성이 있다. 섹시한 여자는 남자들을 끌어 당기고 주위에 두고 미소 짓는게 어울린다. 하지만···. 요염한 여자는 남자들을 발 아래에 두고 그 위에서 도도하게 콧대를 세우고 있는게 어울리는 타입들이다. 그녀는 명백하게 후자였다. 어설픈 남자들은 그녀에게 말 붙이는 것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 드는 그녀였다. 어쨌든 최수영은 타락한 인형술사에게 말했다. “상황은 순조로운가 보군요.” “물론이죠. 이제 놈들의 정신이 부서지는 그 순간···. 놈들을 절대 복종하는 순조로운 인형으로 만들어서 넘겨 드리겠습니다. 대신에···.” 타락한 인형술사의 얼굴을 보고 최수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약속한 대가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저희는 약속은 지킵니다. 알고 계시겠죠? 이건 엄연한 계약입니다.” “크크큭···. 물론이죠. 그리고 계약이 없다고 해도 저를 깨어나게 해 주신 당신들을 배신 할 수는 없죠. 사실 저는 파우스트 그 개자식에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는 것만 해도 이미 충분합니다..” 최수영의 말에 타락한 인형술사는 이를 드러내면서 증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지금 정운이나 십왕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기절할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 인간과 대화하고 자신의 감정까지 표출하는 몹이라니···. 이런 상황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다만, 지금 정운들은 저 구체에 갖혀서 환상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타락한 인형술사가 지금 정운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꿈은 악몽이 아니었다. 오히려 행복한 꿈이었다. 정운은 자신의 가장 원 했던 평범하고 소소한 가정의 행복을····. 슬기는 건실한 기획사에 들어가서 재능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음악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미래를····. 이보영, 이지영 자매는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어린 시절을···. 김수민은 병으로 다 죽어가던 여동생이 건강해 져서 함께 하고 있는 꿈을····. 명주호는 어린 시절 스승과 함께 무술을 배우며 절차탁마하던 시절을···. 한중겸은 전쟁이 끝나고 모두 무사한 전우들과 함께 사석에서 만나서 술잔을 나누고 있는 꿈을···. 그렇게 모두가 가장 바라던 꿈을 꾸고 있었다. 불행은 인간을 강하게 하지만 행복은 인간을 나태하게 한다. 정상적이고 모나지 않은 인간이 되려면 불행도 행복도 모두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게 보통의 인간이다. 하지만···.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행복 밖에 없는 인생을 계속되면 그 인간은 어떻게 될까? 장담하건데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타락한 인형술사는 정운들의 정신을 뭉게 버리게 하기 위해서 그런 행복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소소한 생복부터···. 나중에는 가면 갈수록 더욱더 심한 행복으로··. 그야말로 인생의 모든 것인 자기 뜻대로만 돌아가도록···. 그렇게 해서 정신이 무료함의 독에 침식 당해서 죽어갈 때쯤이면····. 훌륭한 인형이 되어서 김신수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게 이 타락한 인형 술사가 김신수와 한 계약이었다. “흥···. 파우스트, 고작 계약자 주제에 나를 이렇게 만들어? 잘못 봤다. 진짜 악마의 사악함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타락한 인형술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신공격의 가속도를 붙여갔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응? 이건··. 왜 이러지? 이 년은 왜 이래?” 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세레나의 구슬이었다. 세레나가 보고 있는 환상은 100년 전쟁에서 프랑승가 대승을 거두고 샤를 왕세자가 그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나라를 지혜롭게 다스린다. 라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세레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세레나는 일단 흐름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단 한번도 자신의 의지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강철 보다 더 단단하고 황금보다 더 고귀한 멘탈의 소유자가 바로 그녀였다.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 전부를 바치고 신을 위해서 자신의 혼까지 바칠 수 있는 그녀였기에···. 악마의 유혹에도 한 점의 흔들림 없이 자신을 유지했다. 샤를 왕자가 그녀를 왕비로 맞이하기 위해서 그녀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눈을 떴다. “여기까지····. 이제 더 이상은 없다.” 쩌저적···. 그리고 그녀는 눈을 떴다. 지고의 권력도, 만인이 선망하는 명예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행복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애당초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고 앞장서서 역경을 짊어지는 것에서 긍지를 느끼는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무리 달콤하다고 해도 악마의ㅣ 유혹이 통할 리가 없었다. 세레나는 그대로 두 눈을 뜨고 그의 앞에는 타락한 인형술사가 있었다. “네가 이 술법의 술자냐?” “·····너, 너 정체가 뭐냐?” 타락한 인형술사는 경악하고 말을 떠듬거렸다. 그런 놈을 보고 세레나가 눈초리를 날카롭게 했다. “··이상하군. 의지가 완전히 봉인 당하고 이 세계의 로직에 순종해야 할 뿐인 네가···· 어째서 말을 하고 있는 거지?” “·················.” 순간 타락한 인형 술사는 아차 싶었다. 이건 큰 미스였다. 여기서 자신이 정신을 되찾았다는 것을 파우스트나 다른 외부의 악마들이 알아채기라도 하면···. 놈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런 놈을 흘깃 보고는 세레나는 주변에 봉인되어 있는 다른 동료들을 바라봤다. “···마스터. 당하신 건가?” 그녀가 보기에 정운은, 아니 정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들이 정신 공격에 정면으로 당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행이나 역경에 단호하게 맞서는 용사들도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에 무너질 때가 있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저기 있는 인간들은 대부분의 인간들 보다 훨씬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의 정신공격을 이겨내는 것은 무리였다. 인간의 약점을 찌르고 그 점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라는 점에서 악마를 따를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보통 이겨내지 못 하는게 정상이었고···.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이겨낸 세레나가 비정상 적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세레나는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이 퀘스트의 보스몹인 타락한 인형술사 하나 밖에 없어 보였다. 그 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세레나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알기로 이 그라운드 제로에 이용되고 있는 몹, 혹은 보스몹들의 영혼이 악마나 하급 마수들의 영혼을 가공한 것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파우스트에 의해서 영원히 그라운드 제로라는 봉인의 파수꾼으로 이용되고 있는 그 악마와 마수들은 평생 자기 의지를 찾을 수 없다. 적어도 세레나 그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타락한 인형술사는 틀림없이 악마로서의 자기 의지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대악마 메피스토를 봉인하기 위해서 그 파우스트가 만들어낸 대규모 봉인 시스템. 그게 이 그라운드 제로의 정체였다. 인간이면서 악마를 능가하는 두뇌를 지녔다고 알려진 그 천재 파우스트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낸 장치인 것이다. 저런 이름도 없는 중급 악마 따위가 자력으로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의지를 되찾는다. 라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세레나는 타락한 인형술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에게 말했다. “누구지? 누가 너를 깨운 거지?” 세레나의 질문에 놈은 움찔 했다. 놈은 이 순간 확신했다. ‘저년은 위험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야 돼.’ 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기 힘을 개방했다. “알바 없다···. 네 년은 그냥 여기서 죽어라!!!”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타락한 인형술사라는 몹으로서의 형태를 벗어 버리고 원래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갔다. 신장 5미터 정도의 거대한 체구에 전신은 검은색 피부를 하고 있고 한 손에 붉은 삼지창과 얼굴은 산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놈의 모습은 지옥의 많고 많은 악마중에 하나의 모습이었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세레나가 보이게 놈은 그렇게 강력한 몹 같지는 않았다. 세레나가 본신의 힘을 개방한다면 놈을 이기는 것은 충분했다. 다만···. 데빌 필드도 아니고 그냥 그라우드 제로의 세계일 뿐인 지금의 상황에서 세레나가 힘을 개방한다면 그녀의 존재를 파우스트나, 혹은 메피스토의 부하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것만은 절대로 피해야 했다. ‘오로지 유저로서의 힘만으로 이겨야 한다는 건데····. 무리야. 저걸 유저로서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진퇴양난에 빠진 세레나에게 놈이 말했다. “크크크···.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필요 없다. 죽어랏!!!” 콰아앙!!! 놈의 거대한 삼지창이 세레나를 향해서 덮쳤다. 세레나는 일단 자신의 검을 들어서 공격을 피하면서 생각했다. ‘하는데 까지는 해 보는 수밖에···.’ “홀리 스트라이크!!!” 콰아아앙!!! 세레나 그녀의 고독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정운아. 너 슬슬 결혼 안 하니?”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고 지극히 원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정운에게 그의 모친이 말했다. “결혼요?” “그래. 남자도 나이 서른 넘으면 혼기 지나는 것도 금방이다. 너도 빨리 생각 좀 해보렴.” “글쎄요···. 결혼은 그다지···.” 정운은 신기할 정도로 결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여자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스스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를 그다지 강하게 원하지를 않았다. 마치···. 그냥 여자가 아니라 딱 집어서 원하는 여자가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안 되겠다··. 너 어디 아가씨 없으면 선 좀 보자.” “선요? 요즘 세상에 제 나이에 선은 무슨····.” “엄마 말 들어. 언제까지 엄마하고 같이 살래?” “···········.” 결국 모친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서 선 자리에 나가기로 한 정운이었다. 그리고 날짜가 되어서 선 자리에 가자··. 거기에는 정운이 보기에도 아무런 흠이 없는 아가씨가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정화입니다.” “박정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가씨는 직업은 영어 교사였고 성격도 모나지 않고 좋은 아가씨였다. 왜 연애 결혼하지 않고 선 자리에 나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좋은 아가씨였다. ‘그냥···. 결혼할까?’ 아마도 좋은 배필감이라는 말은 이런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두 세 번의 만남을 가지고 이제 슬슬 결혼 얘기를 꺼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결국 정운은 청혼할 날짜를 정했다. 미리 반지를 준비하고 적당한 레스토랑에서 식사 초대를 하고 정운은 그녀에게 말하려고 했다. “정화씨. 저하고·····.” “·········예? 왜 그러시죠?” “아니···. 잠시만요····.” 프로포즈를 하기 직전에 정운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아가씨의 얼굴에 노이즈가 생기는 듯 하면서 다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정운씨···.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가요?” “················.” 정운은 대답하지 못했다. 머리는 또렷했다. 하지만 뭔지 모를 이물감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프로포즈하고 결혼하려는 눈앞에 있는 여성은 나무랄 곳 없는 좋은 여성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절대로 그녀에게 프로포즈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슬기, 세레나···.”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그저 정운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두 단어가 정운의 의식을 확 바꾸기 시작했다. ‘이건···. 이건 현실이 아니야.’ 정운이 그것을 확신하는 순간···. 정운의 발밑부터 시작해서 세계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운이 두 눈을 떴을 때···. “세레나!!!!” ============================ 작품 후기 ============================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모두들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전 글 써야 됩니다.ㅠ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4화 <그라운드 제로의 변화> 거대한 악마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세레나를 보고 정운은 크게 소리치면서 달려갔다. 콰아앙!!! 정운의 공격은 그대로 한 줄기의 벼락이 되어서 악마의 안면에 작렬했다. “크으으···. 이 놈이··. 인간 주제에 어떻게···.” “닥쳐!!! 이 X 같은 새끼··· 죽여 버리겠어!!!” 정운은 오랜만에 정말 크게 화가 났다. 어째서 몹이 말을 하고 있을까? 이 이상한 악마의 정체는 뭘까?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그런 당연한 의문이 들 법도 했다. 아니 보통 들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떠 올리기에는 지금 정운의 분노가 너무나 컸다.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논 상대에 대한 분노와··.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서 검을 지팡이 삼아서 겨우겨우 견디고 있는 세레나의 모습에 있는대로 열이 받은 것이다. 눈앞에 있는 악마를 박살내 버리겠다는 생각이 가득했고, 다른 자잘한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정운은 부상당한 세레나를 보고 다시 눈앞에 악마를 보면서 이를 뿌드득 갈며 외쳤다. “쉐도우 아미!! 아스트랄 소드!!!” 이미 뇌천신공은 쓰고 있는 상태다. 여기서 쉐도우 아미와 아스트랄 소드의 콤보는 원래 정운에게 있어서 마지막 비장의 수여야 했지만····. 지금 독이 잔뜩 오른 정운은 뒷 일은 생각하지 않고 거칠게 달려들었다. “죽어. 이 X 같은 새끼야!!!!” 콰지직!! 콰직!! 퍼어엉!!! “크으읏···. 이이··· 인간 주제에····.” 악마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정운의 갑작스런 공격에 밀렸다. 사실 이 악마는 중급에도 들지 못하는 하급 악마였다. 예전에 세레나가 휴가중에 처치했던 녀석보다도 급이 낮았다. 하지만···. 악마는 악마. 원래 같으면 인간이 맨 몸뚱아리로 어떻게 해 볼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그나마 정운이 100레벨이 넘어서는 고레벨 유저이기에 이렇게 악마와 정면으로 대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근본적인 힘의 차이가 상당히 나는 상태였다. 정운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에 선수를 잡았던 기세가 살아있었던 때 뿐이었다. “이 건방진 인간 놈이!!!!” 악마는 이내 자신의 붉은 삼지창을 맹렬하게 찌르면서 정운을 압박해 갔다. 어느 정도 자세를 회복한 후에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운이 수세에 몰려 버렸다. “크으윽····.” 정운은 쉐도우 아미들과 300자루의 아스트랄 소드를 이용해서 놈과 맞서 싸웠지만 적의 공격이 워낙에 거셌다. ‘이 놈·····. 나보다 훨씬 강하다.’ 머리끝까지 피가 올랐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공방을 나눠보니 상대가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 패배는 허락되지 않는다. 살고 싶다면····.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법칙은 딱 하나.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것 뿐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정운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악마를 향해서 달려갔다. 지금은 생각보다 행동할 때였다. 기적은 바라는게 아니다.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정말로 정운에게 있어서는 기적과도 같은 반가운 일이 생겼다. “폭연격!!!” 콰콰콰콰쾅!!! 수십발의 채찍이 동시에 날아오는 것 같더니 그대로 한방 한방이 강력한 폭발력을 발생 시켰다. 그걸 시작으로 뒤에서 다른 공격이 이어졌다. “파이어 월!! 정운씨!!!” “동생 괜찮아!!!!” 정운의 뒤편에서 슬기와 십왕들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정운이 그쪽을 흘깃 보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세레나를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저들을 해방 시킨 것이다. 사실 세레나는 거의 만신창이었다. 정운이 깨어나기 전에 본신의 힘을 쓰지 않고 오로지 유저로서의 힘만으로 악마를 상대해야 했으니···. 그녀가 아직 죽지 않은것만 해도 용하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나마 정운이 정신을 차리고 합류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때 그녀는 정운에게 합류해서 도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차라리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이 싸울 힘은 없어도··. 악마의 주의가 정운에게 팔린 지금이라면 정신공격에 봉인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을 해방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남은 힘으로 슬기와 십왕들을 해방했고, 이제는 그들이 힘을 합쳐서 정운과 함께 악마를 몰아 붙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다. 충분히 할 수 있어.’ 정운은 이를 악 물고 나머지 힘을 모두 발휘했다. “아아아아!!!!!” 정운을 비롯해서 다른 고위급 유저들의 휘몰아치는 공격에 악마는 크게 당황했다. “크윽···. 이 망할 인간 놈들이····.” 본래 악마보다 강한 인간은 지극히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거친 세계에서 시련과 역경을 넘어서 연마된 이들은 하나하나가 악마에게도 위협적인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연달아서 공격을 해오자····. 악마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죽는다···. 그것도 고작해야 인간에게···.’ 악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의 아니 소멸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만약 그 자신이 아직까지 몹이었다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번 무찔러진다고 해도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 영혼을 구속당한 이상····. 죽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법칙에 의한 행위일 뿐. 그 영혼은 또다시 같은 형태로 부활하게 된다. 그러니 유저들이 같은 몹들을 계속해서 공략하고 몇 번이나 반복된 레이드를 계속하는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악마는 이미 타락한 인형술사. 라는 악마의 형태를 버리고 완전한 악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상태에서 죽으면···. 그때는 끝장이었다. 악마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혼의 소멸. 즉, 자신의 존재가 완벽한 무로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안 돼!!! 안 돼!!!!!!” 놈은 그 순간 몹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행위. 즉 도망을 선택했다. 어떻게든 몸을 피하고 어딘가로 숨을 생각이었다. 갑자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려고 하는 놈을 보고 다른 유저들이 순간 당황했다. “저거····.” “어떻게 된 거야?” 사실 십왕들도 중간부터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정운이 거대한 악마와 싸우고 있는게 보였고···. 그 순간 바로 합류해서 전투에 참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악마가 절규하면서 도망가려고 하자····. 그제야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상하다는 의문이 든 것이다. “아니··. 어쨌든 도망가게는 두면 안 되지.” “···맞아!! 편막!!!!!” 십왕들은 악마의 도망 행위에 잠깐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대로 놈에게 추가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십왕들의 공격은 놈에게 닿지 않았다. 그 공격이 닿기 전에 공간을 가르고 거대한 낫이 나타나면서 놈을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콰지직!!!! “커··· 커어억·····.” “여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 빌어먹을 XXX 새끼야.” “하···. 하하··· 하몬···. 헬게이트····.” “고작 하급마 주제에 나한테 말 까면···. 뒈지는 거다. 이 X 같은 하급마 새끼야!!!” 공간을 가르면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그라운드 젤로에 들어오는 계약 과정에서 만났던 악마. 바로 하몬 헬게이트였다. 놈은 그대로 악마를 낫으로 들어 올려서는 자기 입을 크게 벌리더니···. 그대로 잡아 먹어 버렸다. 흡수했다거나 하나가 되었다거나··. 뭐 그런 식의 판타지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동물이 동물을 잡아 먹어버리는 것처럼 먹어 버린 것이다. “크아아!!!! 아아악!!!!” 우적! 우적! 쩝쩝····.“ 그 광경은 뭐랄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모공이 쫙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리부터 으적으적 씹히면서 먹혀 들어가는 악마의 모습에 정운과 다른 유저들도 차마 나설 수가 없었다. “꺼억·····. 더럽게 맛 없는 새끼군. 완전 똥 맛이야.” 하몬 헬게이트는 불과 10여초 만에 악마 한 마리를 우적우적 씹어 먹어 버렸다. 그리고 정운들을 보고는 슬쩍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흐음········. 이건 아무래도···. 어떤 X 같은 새끼가 수를 쓴 것 같네···. 그럼 개 같은 인간 새끼들아, 너희들은 일단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하몬 헬 게이트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부웅 하고 흔들자 정운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모두가 사라져 버렸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그야말로 마술사의 트릭처럼 훅, 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몬 헬 게이트는 그렇게 정운들을 처리한 후에 주변을 돌아보면서 자기 코를 킁킁 거리면서 뭔가의 냄세를 맡았다. 그리고는 이를 드러내며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악마의 미소보다 기분 나빴고, 악마의 분노한 얼굴보다 섬뜩했다. “파우스트····. 그 개새끼의 냄새다.” 후일 정운은 생각한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그라운드 제로에는 크나큰 변혁이 생겼다. 라고 말이다. 잠시 사라졌던 정운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스카이 타운의 포탈 앞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운의 파티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사냥을 나갔던 유저들도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때 정운은 몰랐겠지만···. 1층부터 68층까지 모든 층의 필드에는 일시적으로 유저들이 모두 강제 귀환 당했다. 그리고 그때 모든 유저들에게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공지사항. 현재 그라운드 제로에 어떤 개자식이 버그를 심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개자식을 잡아서 뼈채로 씹어 먹어 버리기 전에는 내 분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계약자들은 잠시 동안 사냥을 멈추고 대기하도록 하라. 지금부터 그라운드 제로의 전체에 걸쳐서 버그에 관해서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개자식들에게····. 하몬 헬게이트 씀.] 공지는 여기까지였다. 뭐, 공지라기 보다는 하몬 헬게이트의 협박문 같았지만 말이다. “이건····? 버그?” “어떻게 된 거지?” “글쎄···. 일단··. 당분간 사태를 지켜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정운을 비롯해서 다른 십왕들도 이 갑작스런 사태에 관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뭔가 명쾌하게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김수민이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아. 넌 가장 먼저 그 악마같이 생긴 몹하고 싸우고 있었지? 뭐 아는 것 있냐?” 사실 가장 먼저 그 악마와 싸우고 있던 상대는 세레나였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것은 정운 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한참 싸우는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다만, 그 놈이 이상한 놈이기는 했어요. 말하는 몹이라니···. 전 처음 봤습니다.” “·····아마도, 그 악마에 관련된 어떤 버그가 일어난 모양인데··. 일단 상황을 살펴보자. 모두들 몸들 사리고 있어.” “알았습니다.” “조심들 하죠.” 십왕들은 그렇게 대화를 마쳤고 정운은 일단 세레나의 일을 비밀에 붙였다. 그리고···. 이 시각에 가장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정운과 십왕들이 살고 있는 스카이 타운의 초호화 아파트만큼 호화로운 건물···. 그 건물에 연회장으로 쓰이는 층에 100여명 정도의 인물이 모여 있었다. “야··. 이건?” “그래. 우리 들킨 것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에 모여 있는 인물들은 다름 아닌 뉴 웨이브의 인간들. 즉, 김신수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에게도 하몬 헬게이트가 내린 공지는 도착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다른 유저들과 달리 그들은 이 공지에서 말하는 버그에 관해서 집히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부하들이 이렇게 동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김신수였기에···. 이렇게 소집을 건 것이다. 그리고 동요하는 부하들 앞에 나타난 김신수가 말했다. “모두 모이느라고 수고 많았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저희는 괜찮은 겁니까?” “자칫 잘못해서 악마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죽는 것은 아닙니까?” 평소에 김신수에게 절대 복종하던 부하들이었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겁이 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마치 파산하기 파산 소식이 들린 기업의 주식을 산 투자자들처럼 불안 해 하고 있었다. 그런 부하들을 보고 김신수가 말했다. “어차피 빠르고 늦고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동요하지 마라.” ============================ 작품 후기 ============================ 예전에 제가 지웠던 스포 댓글까지 포함해서... 이 앞으로의 내용이 짐작가시는 분들이 있어도 잠깐 스포를 자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만큼 중요할 때니까요.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5화 김신수는 부하들을 일단 진정시켰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할 가장 중요한 일. 그 첫번째는 무엇보다 부하들을 안심 시키고 괜찮다고 믿음을 주는 것이다. 단순하고 별것 아닌것 같았지만 이게 정말 중요하다. 선악의 유무를 떠나서 어떤 조직이던 위기 상황에서 그 조직의 리더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끝장이다. 그런 리더를 밑의 사람들이 어떻게 따라 올 수가 있겠는가? 정말로 묘안이 있든? 아니면 그냥 허세든? 지금 김신수는 그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일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김신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부하들에게 말했다. “아마도 이제까지 하고는 많은 것이 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 믿고 따라와라.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내 곁에 있는 자가 될 것이다.” 이렇다 할 근거나 설명은 없었다. 그저 날 믿고 따라와라. 이 말 하나가 다였지만···. 그래도 승리를 약속하는 자신감 넘치는 리더는 대중에게 신뢰감을 주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뭐··. 길드장님이 그렇게 말하신다면···.” “어차피 이제 와서 발 뺄수 있는 방법도 없는 것을···.” 결국 동요하던 뉴 웨이브의 길드원 들은 마음을 다 잡은 것 같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미 올라탄 배였고 침몰하든 신대륙을 발견하던 이게는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김신수는 그런 부하들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분간 필드에는 나가지 못 할 테니 푹 쉬어라. 내가 허락하마.” 그리고 그가 딱 하고 손을 튕기자 연회장의 한쪽에 아름다운 여인들이 술과 요리를 가지고 입장해서 파티장의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아라비안 문화의 무희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유저는 아닌것 같았지만 평범한 NPC로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말하고 생각하는 스카이 타운의 주민들하고 비슷한 존재로 보였다. 그런 그녀들은 일부러 부하들을 연회장에 소집한 이유는 이런 사태를 대비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부하들은 김신수가 이런 여유를 보이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는 술에 취하고 여자에 취했다. 그리고 김신수는 어느 정도 분위기를 맞춰 주다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원래 이런자리에서 간부는 적당한 시기에 빠져 줄 줄을 알아야 한다. 김신수는 적절한 타이밍에 소리없이 사라졌다. 여기까지는····,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아무런 나무랄 곳이 없는 훌륭한 무리의 리더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다일까? 자기 방으로 돌아간 김신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수영.” “예. 부르셨습니까?” “···········.” 퍼어억!!! 최수영을 부른 김신수는 그대로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아악·····.” 가녀린 여성인 최수영은 그 한방에 그대로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거기서 멈춘것도 아니었다. 쓰러진 그녀에게 다가간 김신수는 그대로 발로 그녀를 짓밟아 버렸다. 콰직!! 콰악!! “아악··. 악!!” 김신수의 발길질에 신음하고 엉망이 된 최수영은 한 마디 용서도 감히 구하지 못했다. 그저 주인에게 철저하게 순종하는 노예처럼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력을 온전히 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김신수는 냉혹한 눈을 하고 최수영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더해갔다. 한참 동안 김신수의 발길질에 유린당한 그녀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후우··.” 그녀가 거의 만신창이가 되도록 폭력을 가한 김신수는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난 시키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개는 필요가 없다. 알고는 있겠지?” “····죄·· 송 합니다.” 용서를 비는 최수영에게 김신수가 말을 이었다. “너 때문에 그 빌어먹을 악마가 폭주해 버렸고···, 그리고 우리의 계획도 대폭적으로 수정을 해야겠지. 이 잘못을 어떻게 보상할 거지?” “··········.” 김신수의 말에 최수영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마치 김신수의 처분에 모든걸 맡기겠다. 라고 하는 듯한 절대 순종. 아니 절대 굴종의 의지만을 표현할 뿐이었다.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최수영을 보고 김신수는 그녀의 뺨을 다시 한 번 강하게 후려쳤다. 짜아아악!!! “아악!!!” 그리고 쓰러진 그녀를 보고 김신수는 싸늘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난 관대한 사람이다. 부하의 실책에 대한 욕서 정도는 할 수 있지. 다만 두 번은 없다. 그러니 이번 실패에 대한 교훈은 두고두고 잊지 마라. 알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김신수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간신히 대답한하는 그녀를 보고는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집어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벗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벌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그녀를 범하려는 걸까? 아니다. 이건 그냥 범하고 싶어서 범하는 것 뿐이다. 그냥 보통 사람이 자기 물건을 자기 좋을 대로 사용하는 것 처럼···. 자기 소유인 최수영을 범하는 것에 이유 따위 일일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최수영 역시 그런 김신수의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폭행한 남자가 자신을 범하기 위해서 다가오는···. 그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최수영은 웃고 있었다. 마치 김신수가 이 와중에라도 자신을 안아주는게 기쁘다는 듯이 말이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세상에는 가지가지의 연인이 있고···, 그 커플마다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고는 하지만···. 이 김신수와 최수영이라는 남녀는 심각할 정도로 삐뚤어져 있었다. 아니 애당초···. 이 둘을 연인이라는 부류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왜냐하면···. 세레나가 잔다르크라는 본신의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 처럼···. 저 최수영이라는 여자도 그냥 평범한 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래의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도 아깝지 않은 그런 여자였다. 십왕들과 헤어진 후에 정운은 피곤한 슬기를 먼저 재우고 자신은 몰래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정운이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세레나의 방이었다. 세레나의 방에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갔지만 세레나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정운을 맞이했다. 마치 첫날밤 새색시가 신랑이 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셨습니까?” “자···. 이제 얘기 좀 해 볼까?” 정운은 이제는 세레나에 관해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의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번 퀘스트의 실패로 인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 커다란 흔들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100년이 넘는 시간을 있었다는 박추성 배대호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이 흔들림의 원인을 세레나가 알고 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레나는 그런 정운에게 말했다. “우선···. 마스터가 묻고 싶은 것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 “예. 아마도 악마들은 이번의 버그를 알아내기 위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를 전체적으로 검사할 것입니다. 그··· 퀘스트 몹을 원래의 악마로 되돌린 것은 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악마들이 행하는 검사의 과정에서 제가 걸릴 확률이 무척 높습니다.” “너도···.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관에서 보면 이물질. 즉,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언제 어떻게 서치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선 거기에 관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조치를 다 하고 나면 제가 마스터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것도 가능해 질 것입니다.” “············.” 세레나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호수를 연상 시키는 청아한 푸른 눈이다. 하지만···. 그 청아한 호수에 오늘은 파문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운이 세레나를 알고 지낸지도 시간이 좀 지났지만···. 감정의 동요가 적은 그녀가 이렇게 확실한 망설임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뭐를··· 뭐를 이렇게 망설이는 거지?’ 정운이 그녀가 이렇게 동요하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할 때····. 세레나는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정운에게 말했다. “마스터, 부디····. 부디 저를 안아 주십시오. 저의 신성을 더럽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라고?” 세레나에게 들은 마른 정운이 미처 생각도 하지 못할 황당한 일이었다. 정운이 말하다가 혀라도 깨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자 세레나가 말을 이었다. “부탁 드립니다. 이유는 나중에 모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저를 안아주는 것만 해 주십시오. 그것만 해 주신다면, 저를 어떻게 취급하시든 원망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무슨···.” 원래 이것저것 따질게 많아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세레나의 뜻밖의 공격에 완전히 멘탈이 무너지고 허둥지둥 거리기 바빴다. 이렇게 당황한 것은 그라운드 제로··. 아니 정운의 인생에 있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았다. “···세레나, 그냥 안아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제 처녀성을 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그게 어느 정도 먹힐지 모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제발 부탁 드리겠습니다. 마스터.” “···········.” 정운으로서는 난감하고 거듭 난감했다. 정운은 세레나에게 반했다. 반한 여자와 살을 겹치고 싶은 것은··. 사실 남자의 당연한 본능이다. 서로 마음이 끌리면 함께 하고 싶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녀와 더 친밀한 관계가 되고 싶어지고···. 뭐, 인류사 어디를 가도 당연한 일들이었다. 다만···. 정운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지금 여기서 약간만 떨어진 방에 가면 지금 정운이 사랑하고, 또 정운을 사랑해 주는 연인이 자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믿고 있고··. 그녀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억지로···. 그야말로 안간힘을 다해서 억지로 세레나에 대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슬기도 사랑하고 세레나도 사랑하고···. 이 두가지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기가 나쁜 놈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버려진 여자로서의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환멸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유일한 구원이 있다면···. 이 마음을 절대로 행동으로 옮길 날은 오지 않게 하겠다고 굳건하게 억누르고 지내왔다는 것이었다. 세레나를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다. 대신에····. 평생, 절대로··, 그녀에게 아니 그 누구에게도 이 마음을 들키지 말자. 그렇게 정하고 또 그렇게 행동해 왔다. 그게 정운의 마음속에 죄책감을 덜어주는 유일한 최종 방어선이었다. 그런데 세레나의 저런 말은···. 정운의 그 방어선을 거침없이 짓밟고 들어와서 다시 정운의 마음과 영혼을 뒤 흔들고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마스터····. 시간이 없습니다.” 세레나의 간곡한 말에 정운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내가 지금 너를 안는 것은······. 그냥 필요에 의해서 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거지?” “예. 이 일로 마스터와 제 친구인 슬기의 인연에 금이가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겠습니다.” 남자의 이기심일까? 정운은 어쩌면 처음부터 세레나의 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레나의 확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이건 게임의 클리어를 위해서 강한 전력인 세레나에게 협조하는 거야. 절대로 슬기를 배신하는게 아니야.’ 사실 이미 이건 생각이 아니었다. 정운의 욕심이 빗어낸 자기 합리화일 뿐이었다. 다른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보다 욕심에 초탈해 보이는 정운이었지만···.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소유욕은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정운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거친 정운은 세레나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가는 허리에 조용히 손을 얹고는 끌어 당겼다. “딱 하룻밤···. 넌 내 여자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운의 입술이 세레나의 입술에 겹쳤고 그것을 시작으로 정운의 이성은 날아가 버렸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6화 <세레나에게서 듣는 진실> 세레나를 침대로 데려가서 그녀의 옷을 벗기는 정운의 손은 일생일대의 대표작을 빗어내는 도공처럼 정중하고 섬세했다. 정운은 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딱 한번뿐인 일탈에 모든 공을 들이는 것처럼 세레나를 정중하게 대했다. 세레나는 남자의 손길에 처음으로 자신을 맡기고 있었기에 그런 정운의 손길에 오로지 순종했다. 정운의 손길이 향하는 데로 일절의 반항도 없이 그저 맡길 뿐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어스름한 달빛의 아래에 세레나의 아름다운 나신이 드러났다. 정운은 드러난 세레나의 나신을 바라봤다. 여성의 나신은 아름답다. 그건 그냥 성적인 의미로 남자에게 그렇게 느껴지는게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여성의 나신은 아무런 음심없이 바라봐도 예술적이 미를 품어내는 법이다. 잘 단련된 남자의 몸도 마찬가지였고, 기본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생물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격이 다르다. 정운으로서는 정말 그런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여성의 나신을 보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정운에게 있어서 세레나의 몸은 정말로 미의 극한을 보여주는것 같았다. 베이글이니 콜라병이니 그런 식으로 어느 한 부분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조화가 너무나 훌륭해서 어디를 어떻게 봐도 흠을 찾을 수가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특정적인 어떤 미가 두드러지는 것이 아닌 미. 세레나의 미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결점이었다. 그렇게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잡티하나 없는 피부와 황금 비율을 넘어서 다이아몬드 비율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극상의 조화를 표현하고 있는 그녀의 나신에서는 흠 자체를 찾는게 불가능 했다. “············.” 정운은 말 없이 세레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고 세레나는 정운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남자의 품안에 안긴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세레나 본인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소극적인 방어만을 한 것이겠지만····. 그런 그녀의 행위는 오히려 정운의 가슴에 더욱더 거친 불을 당겼다. 정운은 손을 뻗어서 세레나의 나신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막의 모래를 가볍게 스치는 바람처럼 정운의 손길은 세레나의 백옥 같은 피부를 쓸었다. 정운은 자신의 손길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따스한 체온에 머리끝까지 짜릿한 전기가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정운은 이런 감각을 알고 있다. 그냥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봤을 때는 얻을 수 없는 충족감. 간절하게 바라고 사랑하는 여자를 느낄 때만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었다.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 슬기와 살을 겹칠 때나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을 지금 세레나에게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슬기야···. 미안해.’ 정운은 순간 슬기에게 속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죄책감을 떨치기 위한 남자의 본능인지 정운의 손길이 약간 거칠어 졌다. 이제까지 피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지나가던 정운의 손길이 이제는 거칠게 세레나의 살결을 파고 들었다. 그녀의 피부 밑에 여체가 만들어내는 탄력적인 감촉을 자신의 손길로 느끼면서 정운은 세레나의 여자로서의 성감을 자극했다. “으음····.” 세레나는 자신의 몸의 여기저기서 간질거리면서 일어나는 감각에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런 그녀에게 참는 것도 허락해 주기 싫었을까? 정운은 자신의 옷도 벗고 그대로 세레나의 나신에 자신의 몸을 겹쳤다. 그저 손으로 그녀의 몸을 만지던 때와 다르게 온 몸의 살결을 서로 겹치면서 체온을 나눴다. 두 사람의 몸이 서로 다라 붙어서 겹치고····. 정운은 그대로 그녀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은 그저 사람의 점막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남자를 매혹시키는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으음·····.” 세레나···. 그녀는 이제 정신이 까마득해 질것만 같았다. 잔다르크. 오를레앙의 성처녀라 불리는 그녀는 유럽사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여성중에 한 명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인생 전반에 걸쳐서 그녀 개인의 행복따위는 없었다. 나라를 구하고, 신을 찬양하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그녀에게 있어서 여자로서의 행복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녀의 몸도 마음도 그녀의 신앙과 나라와 국왕과 백성을 위해서만 있었다. 그 어떤 남자도 감히 그녀를 독점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성처녀. 모두가 칭송하는 구국의 영웅. 모두가 동격하는 영원한 성인.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죽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처음으로 한 남자에게 여자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과 겹칠 때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길이 자신의 몸의 구석구석을 만질 때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낮선 감각을 느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이미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호흡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의 손길이 자신의 부푼 가슴을 만지고··. 또 한쪽의 가슴 끝에 있는 유실을 정운이 입에 머금자 그녀는 허리를 비틀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남녀간의 행위는 정신적인 교감의 일종일 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성처녀라 불린 그녀지만 남녀간의 행위를 음란하다고 경멸하거나 더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것도 인간이 생명을 이어가는 당연하고 아름다운 과정중에 하나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성적인 생각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해도 정작 자신에게 그 일이 닥치면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격하게 실감하는 법이다. 지금 그녀가 그런 격차를 실감하고 있었다. “흐읏····. 음····.” 그녀는 아랫 입술을 꼭 깨물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좀처럼 생각대로 자신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었는데···. 그래야 했는데····.’ 그렇다. 애당초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악마들이 그라운드 제로를 전체적으로 검사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신성력도 걸릴지 모른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에게는 세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하나는 임무를 포기하고 그라운드 제로를 떠나는 것. 또 하나는 임무를 계속하기 위해서 신성력을 완전히 버리고 일반 유저로 있을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신성력은 유지하되 일시적으로 그것을 저하 시킬 것. 그녀가 선택한 것은 세 번째 였다. 오를레앙의 성처녀. 이건 그냥 별칭이 아니다. 그녀의 근간인 성인으로서의 신성력을 발휘하기 위한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즉, 그녀가 처녀성을 버리면 일시적으로 그녀의 신성함은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흩어지고 약해질 뿐. 스스로가 타락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라면 신에게 죄를 짓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력이 사라지는 것은 잠시 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양심이 신성함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신성력은 돌아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서 정운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바칠 뿐이다. 임무를 계속하고 악마의 음모를 부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위한 일.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의 손길에 여자로서의 감각이 하나하나 깨어나면서···. 그녀는 더 이상 이 일을 그저 임무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그녀의 양 팔이 정운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정운을 향한 애원의 말이 나왔다. “제발····. 이제 그만····.” 그녀는 머리를 흔들면서 더 이상 자신을 애태우지 말라고 정운에게 애원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남자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녀를 배려하면서 정운은 천천히 그녀를 안아갔다. “읏····· 으!!” 세레나는 자신의 생살이 갈라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전쟁터를 누비면서 고통에는 익숙해졌다고 느낀 그녀였지만···. 고통의 종류가 달랐다. 점점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일부가 자신을 아프게 했다. 정운은 고통으로 눈썹을 크게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배려해서 천천히 그녀를 안아갔다. 자신의 일부를 감싸는 그녀의 몸 안은 정운에게 미칠 것 같은 쾌락을 선사하고 있었지만···. 그런 욕망보다 자신의 품안에 있는 세레나의 고통을 더 우선시해서 최대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하윽!!” 그리고 마침내 전운은 완전히 그녀와 한 몸이 되었다. 세레나의 질끈 감은 눈에서는 한 방울의 눈물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정운은 그녀를 완전히 품에 안고 다시없을 행복과 쾌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그녀의 숨소리를 듣고·····. 그녀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이 모든 것이 정운에게는 감동이었다. 정운은 그녀의 황금빛 금발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제···. 좀 아플거야.” “····예.” 세레나는 정운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순종했고···,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를 품안에 안고 몸을 움직였다. 다시 없을 시간···. 이제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일···. 정운은 마치 지금 이 순간에 세레나에게 자신이라는 남자를 새기는 것처럼 행동했다. 부드럽지만 집요하게···. 느리지만 강하게··. 마치 이 순간이 그녀에게도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녀를 안아갔다. “세레나···. 세레나····.” “·····저··· 정운······.” 세레나의 입에서 처음으로 마스터라는 말 대신에 정운의 이름이 불렸다. 정운은 그 순간 세레나를 거칠게 밀어 붙이면서 그녀를 거칠게 안아갔다. “세레나!!!” “으읏···. 아·····.” 그리고···. 그렇게 달빛과 두 사람만이 알아야 할 비밀의 밤이 완성되어 갔다. “··············.” “이제 돌아 보셔도 됩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세레나는 정운과 떨어져서 옷을 입었다.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정운은 일단 뒤로 돌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을 섞고 있었던 남녀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이상했지만···. 이건 일종의 선언이기도 했다. 하룻밤의 일탈은 끝이다. 이제 원래의 우리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 라는 무언의 선언인 것이다. 옷을 다 입고 난 후에 세레나가 정운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이제···. 전 신성력도 사라졌고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오기 전에 걸렸던 금제도 없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말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줘.” “예···. 먼저, 저의 정체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세레나는 깊게 한 숨을 내쉬고 정운에게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프랑스 동레미 출신으로 본명은 잔 다르크라고 합니다. 마스터께서 생각하시는 그 백년전쟁의 잔 다르크가 바로 저입니다.” “·········그랬군.” 정운은 순간 크게 놀란 듯이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내 진정했다. 어차피 그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잔 다르크라는 이름 그 자체는 놀라운 무게를 가져왔지만····. ‘내게 있어서 세레나는 세레나일 뿐이지.’ 그녀가 위인이기에 그녀를 향한 마음이 변하지는 않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세레나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사후 성인으로 추앙 받았고···. 천계의 부름을 받아서 천사로서의 위임을 받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것은 악마들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서입니다.” “악마들의 음모라····. 어떻게?” 정운의 말에 세라는 잠시 호흡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우선···.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 아니 봉인에 관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레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의 본질과 그 목적에 관해서 말이다. 시작은 한 인간의 생각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의 이름은 파우스트. 바로 지금의 그라운드 제로를 만든 인간이다. 세상에 인류가 도래하고····. 수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악마와 천사들이 인정하는 한 가지 진실이 있었으니····. 그 어떤 천재를 데리고 와도 파우스트와 비교하면 아둔하다는 비평을 피할 수 없다. 라고 할 정도로 파우스트는 격이 다른 천재였다. 그리고 그런 파우스트에게 주목을 한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악마 중에서도 지혜와 감교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악마. 바로 메피스토 펠리스였다. 이 둘의 만남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세레나와의 관계는 슬기와의 관계보다 훨씬 더 은은한 느낌으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잘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7화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인간과 한 악마는 계약을 맺었다. 메피스토 펠리스는 파우스트에게 그가 내킬 정도로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 즉, 수명을 제공한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그렇게 얻어낸 진리와 정보를 메피스토 펠리스에게 제공한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 같은 이 둘의 만남은 완벽한 조화 같았다. 하지만···. 이 조화는 천길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타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함을 동반하고 있었다. 아무리 공생관계라고 해도····.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위험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파우스트와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 악마 메피스토 펠리스. 이 둘은 서로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는 둘 중에 하나가 서로를 배반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보통 메피스토 펠리스 정도 되는 대악마가 인간 하나를 두려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성인도 아니고 신앙의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닌···. 오로지 일신에 천재성 밖에 없는 그런 인간 하나를 말이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을 정도로 파우스트는 천재였다. 그리고····. 그런 천재인 파우스트는 이윽고 악마의 지식을 재해석하고 거기에 자신이 연구한 진리를 덧붙여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기까지 이른다. 세계는 의지. 의지를 짜서 세계를 구현하고 거기에 혼을 담는다. 라는 연구 기반의 결과로 만들어낸 세계. 그것이 바로 그라운드 제로였던 것이다. 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의 성공은 메피스토 펠리스마저도 깜짝 놀라게 했다. 인류가 달에 도달하는 것 보다도 1,000배는 위대한 이 업적을 달성한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 펠리스는 이제 두려움 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는 결심했다. 설사 계약의 파기로 인해서 악마로서의 자신의 권위에 흠집이 난다고 해도 파우스트를 이 이상 방치해 둘 수는 없다. 라고 말이다. 그는 파우스트의 제거를 시도했지만 현명한 파우스트는 이미 자신의 연구자료와 함께 그가 창조한 그라운드 제로로 피신한 후였다. 메피스토 펠리스는 자신의 군세를 이끌고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파우스트를 잡기 위해서 출진했다. 그 그라운드 제로가 자신을 잡기 위해서 만들어둔 봉인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체로 말이다. 메피스토 펠리스의 영구 봉인. 이 그라운드 제로는 애당초 그런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메피스토가 들어온 순간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 들어온 메피스토는 바로 봉인 당했다. 그가 이끌고 온 악마의 군세 역시 영혼을 봉인 당하고 파우스트의 충실한 호위병이 되었다. 이 사실을 나중에야 파악한 메피스토의 부하들은 난리가 났다. 지옥의 여섯 군주 중에 일각을 담당하는 메피스토의 부재는 이제까지 그의 군세에 있던 소악마들에게 재난이나 다름없었다. 루시퍼를 필두로 해서 바알, 베르제블, 아스모데우스, 레비아탄 등이 언제 메피스토의 영역을 넘볼지 몰랐다. 메피스토 펠리스의 심복부하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들 역시 악마 제일의 두뇌인 메피스토 펠리스의 두뇌. 그리고 이제까지 파우스트가 넘겨준 자료들도 있었다. 그들은 즉각 조치에 들어갔고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외부에서 엑세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저 그라운드 제로에서 악마의 힘은 반감되었다. 세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마력이 자신들의 주군인 파우스트였기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행사 할 수 있었지만····. 역시 파우스트를 죽이고 메피스토 펠리스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저 세계에 직접 들어가서 싸워야 했다. 그런데 악마들에게는 그게 불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악마를 보내도 저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 자체가 악마의 영혼을 빼앗고 그 악마를 파우스트의 부하로 만들었다. 그게 바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저들이 상대하는 몹이라는 형태의 근간이었다. 결국 악마들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새로운 악마. 하몬 헬게이트라는 악마를 만들어 냈다. 이 악마를 만든 목적은 단 하나였다. 악마가 들어가서 싸울 수 없다면····. 인간을 들여 보내면 된다. 계약한 인간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은 원래 악마들에게 있어서는 정석일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파우스트를 무찌르고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를 붕궤 시킬 수 있는 인간을 들여보내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악마. 그게 바로 하몬 헬게이트였다. 악마들은 계약한 인간들에게 파우스트를 죽이기 위해서 능력을 주기 시작했고···. 파우스트는 그런 인간들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파수꾼들을 개조했다. 그리고 그런 공방이 이어져 가는 중간에 파우스트는 인간의 영혼에게서 외부의 정보를 얻고 또 죽은 인간들의 영혼을 거두어서 그라운드 제로의 주민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무수한 NPC들···. 그들 대부분은 악마들이 밀어 넣은 인간의 영혼, 혹은 계약자들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파우스트가 유리했다. 악마들이 나름 힘을 준다고 해도 애당초 인간의 혼을 개조한 것과 악마의 혼을 개조한 것에는 성능의 차이가 너무 났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인가 변화가 생겼다. 악마와 인간의 혼이 그라운드 제로에 포화 상태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그라운드 제로의 근간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PC가 바이러스 공격을 받는 것처럼 세계 자체가 붕궤할 위험에 처했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최대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그라운드 제로가 부서지는 것을 도저히 묵과 할 수 없었다. 파우스트는 이 세계를 유지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악마와 인간의 혼이 이 세계에 조화롭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법칙과 순환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물이 흘러서 강으로 바다로 다시 구름이 되어서 비가 되어 땅을 적시기까지의 구조처럼····. 혼의 순환이 필요하고 의지의 유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파우스트는 그라운드 제로에 게임의 법칙을 집어넣었다. 관리자의 권한을 무작정 휘두르기에는 악마들의 개입이 너무 강했다. 결국 자신의 최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그라운드 제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계에 게임의 형태를 만들고 난이도를 조종해서 인간들이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실날같은 가능성을 남겨두면서···. 그는 그렇게 세계를 조종했다. 그리고 악마들은 인간들에게 능력을 주면서 이 세계에서 파우스트가 만든 파수꾼. 즉 몹을 잡고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구조에 적응 시켰다. 그렇게 해서···. 지금 정운이 있는 세계인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가 완성되고 오늘날까지 흘러온 것이다. “·······뭐랄까····. 엄청 방대한 얘기군.” 세레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진실을 모두 들은 정운의 감상이었다. “예···. 그렇죠.”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결국 악마와 그 악마와 계약한 인간의 얘기잖아? 어째서 천사들이 끼어든 거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악마의 행위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이 음모를 분쇄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에 이 상황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변화····?” “예. 일방적으로 공격만 당하던 파우스트가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 정운은 세레나의 말을 언 듯 이해하지 못했다. 반격이라니? 이 그라운드 제로의 최상층이 100층에 있는 파우스트의 반격이라니? “어떻게 된 말이야?” “김신수····. 라는 인간 생각 나십니까?” 정운은 세레나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그가 상황을 바꿨습니다. 전에 그가 주인님에게 한 말은····. 태반이 거짓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뭐라고?” 그리고 세레나는 김신수의 진실에 관해서 그녀가 아는 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신수의 일에 관해서 가장 큰 거짓은···. 놈이 이 그라운드 제로에 그냥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포인트를 이용해서 자기 형들을 물리친 후에 김신수는 그라운드 제로에 대한 욕심을 느꼈다. 이건 사실이었다. 이 힘을 이용하면 정말 세계의 왕도 꿈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리 미끼가 달콤하다고 해도 그냥 막 달려들 정도로 놈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충분한 포인트를 남겨둔 포인트를 이용해서 그라운드 제로에 소원을 빌었다. 그 소원의 내용은····. [그라운드 제로의 창조자와 만나게 해 달라.] 라는 소원이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를 사전에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그런 시도를 했고·····. 그것은 결국 김신수와 파우스트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파우스트를 만났다고? 그 새끼가!!!?” 정운은 이제까지의 일 중에서 가장 크게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큰 소리를 내서 옆방에서 자고 있는 슬기가 듣고 깨지는 않았을까? 라며 아차 싶을 정도였다. 그런 정운에게 세레나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예.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김신수는 마스터가 하고 있는 것과 정 반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 반대라고?” “예. 그는·····.” 장소를 바꿔서···. 누군가의 입에서 문득 독백이 흘러 나왔다. “그때 파우스트와의 만남은 내게 있어서 다시 없는 행운이었지····.” 우연의 일치일까? 김신수 역시 최수영과의 관계를 가진 후에 홀로 술잔을 홀짝이면서 그때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었다. 바로 파우스트와의 만남의 순간을 말이다. “여기까지 찾아온 인간은 처음이군. 계산하고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호기심의 발로인가?” 자신이 있는 장소로 온 김신수를 본 파우스트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앞에 인간이 오지 않았는가? “당신이···. 그 어플의 개발자인가?” “어플? 아아···. 그거? 아니 그것은 악마들이 만들었지. 하지만···. 이 세계와 시스템을 만든 것은 나다.” 김신수는 거기서 파우스트와 대화를 했고 정말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 인간····. 얼마나 대단한 거지?’ 김신수가 파우스트에 관해서 느낀 감정은 끝없는 경외감이었다. 한 인간이 세계를 창조하고 악마를 농락한다. 고작해야 재벌가 사생아라는 환경에 도전하고 있던 자신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오만함의 결정체 같던 김신수에게 있어서 파우스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순수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던 존재였다. 그는 장시간의 대화 끝에 파우스트와 계약을 했다. 계약의 조건은 그가 파우스트의 부하가 되어서 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하는 것. 다만···. 그 클리어의 방식이 다른 유저들과는 전혀 달랐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구조는 1층부 100층 까지의 탑. ····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구조는 1층부터 100층까지의 탑 말고도 지하 100층 까지의 공간이 따로 있었다. 극 과 극.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파우스트가 지상 100층에 군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봉인된 메피스토가 지하 100층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신수가 파우스트와 계약한 조건은 지하 100층에 있는 메피스토를 물리치는 것. 그게 성공하면 파우스트로서는 야금야금 기어올라오는 유저들의 공격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메피스토 펠리스를 죽이고 그의 힘만을 온전히 이 세계에 흡수 시킬 수 있다면···. 그러면 그의 주구인 하급 악마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의 주도권은 온전히 파우스트에게 돌아온다. 파우스트가 그라운드 제로를 지배하고···. 그 대가로 김신수에게는 무한한 포인트를 영구적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김신수는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되는 것이다. 정운은 김신수가 세계의 왕을 노리니 뭐니 하는 말을 허풍이나 중2병 같은 상병신의 개소리로 들었지만····. 절대 그게 아니었다. 김신수로서는 철저한 보증과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만 하면 세계가 자신의 것이 된다. 라는 확신이 말이다. 놈은 게임을 클리어 하는 와중에도 파우스트의 조력을 많이 받았다. 악마들이 유저들이 더 성장 할 수 있도록 퀘스트를 만들어서 게임에 집어 넣는것 처럼···. 파우스트 역시 손쉽고 경험치가 많이 들어오는 퀘스트를 김신수에게 부과했다. 뉴 웨이브를 만들어서 부하를 100명을 만든 것도 그것과 같은 일이었다. 길드원을 만들고 그 인원이 100명을 넘길 것. 그것이 언더 그라운드 시티 라고 하는 도시의 개방 조건이었던 것이다. 정운을 비롯한 십왕들이 최상층 플레이를 하면서 스카이 타운에 사는 것 처럼···. 김신수와 그 부하들도 언더 그라운드 시티라는 특수한 거주구에 머물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언더 그라운드의 장점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층의 몹 들은 지상층의 몹들 보다 훨씬 약한 주제에 경험치는 몇 배는 더 주고 있었다. 김신수의 빠른 렙업의 비밀도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실제 게임에서 마치 에디터나 치트키를 쓰는 것처럼 일종의 반칙이었다. 지금은 필드가 봉인 당했지만 최근까지 뉴 웨이브의 길드원들도 그런 식으로 지하층에서 사냥을 하면서 경험치를 올리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쉽게쉽게 레벨을 올린 덕분에 정운이다 다른 십왕들처럼 치열한 위기 상황을 이겨내는 강단이나 임기응변은 좀 부족했다. 그게 예전에 정운에게 밀려서 후퇴한 이유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그라운드 제로 지하층의 존재는 김신수에 관한 숨겨진 설정중에서도 최고 중요사항이었죠. 절대로 눈치 못챌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분 눈치채신 분이 계셨죠. 그때는 크게 놀랐습니다. 서둘러서 댓글은 지웠지만 엄청 놀랬죠. 이제와서 공개하고 나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기분입니다. 그나저나 페이스가 영 안돌아오네요. 이런저런 일들로 요즘 시간이 흐트러져서 연재에 집중을 못하고 슬럼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올해 남은 시간동안 쭉 휴재를 하고 새해에 다시 찾아뵐까? 라고 생각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쉰다고 페이스가 돌아올것 같지는 않다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면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전에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베스트 셀러가 있었죠. 솔직히 책 제목부터가 공감은 전혀 가지 않았습니다.^^;;;(전 공부가 무진장 어려워서... 책 읽는건 좋아했습니다.)하지만 그 분의 책에 이런 부분이 생각납니다. 입시 공부를 하는 요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라고 하더군요. 내일부터 내일부터 라고 하루하루 변명하면 그놈의 발동이 수능 끝날때까지 안 걸린다. 라고 하던... 그 대목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저도 오늘 내일 글쓰고 말기로 한 놈도 아니고... 글써서 먹고 살기로 작정한 놈이니.... 계속 계속 써야겠죠? 그게 맞는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18화 <그라운드 제로 ver 2.0> “그때는 실패했지···. 사실 상층부의 플레이어를 죽여서 저쪽의 클리어 속도를 늦추고 싶었는데 말이야···.” 김신수는 한 숨을 내쉬었다. 현제 지하층의 최전선은 59층. 68층을 클리어하고 있는 정운들에 비하면 아직 많이 느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빠르게 돌파한 것이기도 했다. 파우스트가 악마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지하층의 몹의 난이도를 낮추고 경험치를 덤핑해서 줬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최상층을 68층까지 뚫는데 수백년이 걸린 시간을 10년도 안 되는 시간으로 단축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그런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김신수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뒤지고 있다는 결과가 가져온 조바심이었을가? 이번에 김신수는 정운을 비롯한 십왕들이 67층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알고는 그는 조금 동요했다. 역시 최상층을 플레이하고 있는 십왕의 숫자를 줄여둘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이쪽으로 끌어 들이면 더욱더 좋다. 그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이번에 한중겸이 우연히 발견한 퀘스트. 타락한 인형술사의 토벌인 것이었다. 사실 우연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좀 그랬다. 그것은 김신수가 최수영에게 시켜서 만든 함정으로 일부러 발견되게 했던 퀘스트니까 말이다. 그게 성공했다면···. 그랬다면 결과는 최고였을 것이다. 68층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전력을 마이너스 시키고 그 전력을 그대로 언드 그라운드의 공략에 투입 시킬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변수는 두 가지···. 하나는 김신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세레나라는 존재였다. 그녀에게 악마의 정신 공격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당연히 세뇌도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설마하니 각성한 악마가 그렇게 본격적으로 큰 힘을 쓸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김신수는 파우스트에게 상당한 권리를 얻었다. 유리한 사냥터와 언더 그라운드 시티,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능력을 받았었다. 최상층의 행동을 정찰 할 수 있는 능력이나, 혹은 파우스트에 의해서 몹으로 봉인되어 있는 악마나 마수를 해방시키는 능력도···. 모두 김신수가 파우스트에게 받은 능력이었다. 일종의 치트키 같은 반칙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반칙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이 게임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는 파우스트에게 편애를 받으면서 플레이한 김신수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힘들 것이다. 이 세계를 만든 것은 파우스트지만 메피스토의 부하들 역시 상당한 개입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 파우스트의 편애를 받으면서 김신수가 발휘하고 있었던 수많은 치트키들을 악마들이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앞으로는··. 정말로 정면승부를 해야 겠지···.’ 김신수로서는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딱히 그는 정면 승부를 하고 싶은게 아니었다. 이기는 승부만을 하고 싶은 것이지···. 한편···. 다시 장소를 바꿔서 정운과 세레나가있는 장소···. 거기서 세레나에게 그녀가 알고 있는 대강의 정보를 모두 들은 정운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 “마스터···. 어딘가 불편하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생각할게 너무 많아서·····.” 정운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관계. 김신수의 정체. 그라운드 제로의 구조. 생각 할 게 너무 많았다. 어질어질한 머릿속을 진정 시키면서 정운은 문득 생각난 것을 세레나에게 물었다. “잠깐···. 그럼 세레나, 당신은 어째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거야.” 정운이 들은 것은 파우스트와 김신수의 계약으로 인해서 변화된 정세 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세레나가 나올 구석은 없어보였다. 그런 정운의 질문에 세레나가 말했다. “저는 천계에 속한 몸으로서···.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거대한 힘이 악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악용?” “예. 그렇습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는 지금까지 수많은 악마와 인간의 영혼을 집어삼켜 왔습니다. 거기에 축적된 힘은····, 천계에서 보기에도 위험하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럼 세레나···. 네가, 아니 천계가 노리는 것은 뭐야? 파우스트? 메피스토?” 사실 말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세레나가 말했다. “파우스트입니다.” “역시···. 메피스토를 노렸다면 김신수쪽으로 있었겠지····.” 씁쓸하게 말을 하는 정운에게는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세레나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제 개인적으로는···. 메피스토도 대악마이고, 파우스트 역시 그 악마와 계약을 한 타락한 인간일 뿐입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별개로 하고 천계에서 내린 판단으로는 파우스트가 더 위험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세레나는 나름 위로라고 한 말인 것 같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정운이 실망한 것은 천계의 판단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게 아니었다. 세레나가 자신의 곁에 있는 이유가 그저 임무상의 편의에 의해서일 뿐이다. 라는 사실에 실망을 했던 것이었다. ‘···그걸 티내면 안 되지. 내가 뭐 하는 거냐.’ 서로 몸을 한번 섞었을 뿐이다. 그것도 그저 필요에 의해서일 뿐. 적어도···. 세레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어야 했다. 정운은 생각을 추스르고 세레나에게 말했다. “그럼 세레나···. 내가 원하는 것은 최상층으로 가서 파우스트를 소멸 시키면 되는 거야? 잠깐···. 그렇게 되면 악마들의 속셈대로 메피스토가 풀려나는 것 아니야? 그래도 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제가 들은 명령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이후에 메피스토에 관해서는 아마도 별도의 조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결국 대강의 해답은 나왔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대립. 거기에 끼어든 인간과 뒤 늦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개입하기 시작한 천계까지···. ‘개판이로군.’ 정운으로서는 이런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마치 고래 등 사이에 끼인 새우가 된 심정이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저라고 불리는 자들의 대부분의 목적은 하나다.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가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것. 그런데 대악마니, 그 대악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노는 천재니···. 거기에 천계의 천사들 까지···. 나름 그라운드 제로에서 이름난 유저의 위치에 있는 정운이었지만 순식간에 우물안의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정운이 세레나에게 말했다. “세레나···. 만약 내게임을 클리어하고 네가 파우스를 죽이는 것에 성공한다면···. 나와 슬기의 소원은 어떻게 되는 거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와서 마스터를 고른 기준은 그 인간의 영혼이 맑을 것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아니 됐어. 계속해.” 스스로 자기 영혼이 맑다고 하니 좀 쑥쓰러웠지만···. 그거랑 별개로 일단 세레나의 말을 계속 들었다. “사특한 마음이 없는 두 사람의 소원은 이뤄질 것입니다. 그라운드 제로의 포인트가 아니라 천계에서 직접 이뤄줄 것입니다.” 세레나의 말을 들은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결론을 내렸다. ‘일단···. 변하는 것은 없군. 난 계속해서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플레이하면 되는 거야.’ 정운은 그렇게 사태를 정리했다. 얻은 정보는 많았지만 그런 정보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조금은 변했다. 적어도 앞으로 있을 김신수의 방해에는 충분한 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결국 결과는 하나였다. 여전히 게임을 한층 한층 클리어 해나가야 할 뿐이었다. 정운은 옷을 다 입고 세레나의 방을 나가면서 말했다. “세레나·······.” “왜 그러시죠? 마스터.” “······아니 됐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나가 버렸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슬기에게는 비밀이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그녀에게 있어서 오늘 밤의 일이 정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었는가? 까지···. 묻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지만 그 무엇보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후우우·····. 오늘은 한 잔 해야 겠네···.” 술 없이는 도저히 잘 수 없는 밤이었다. 필드가 봉인되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유저들은 몰랐겠지만 악마들은 이 잡듯이 그라운드 제로의 버그를 검색했고···. 이윽고 파우스트와 계약해서 게임에 잠입한 김신수의 존재를 알았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악마들은 기겁을 했다. 설마하니 이제까지 방관만 하고 있던 파우스트가 이런 묘수를 뒀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단 김신수를 제거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 써봤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했다. 자신들과 계약한 인간도 아니고, 파우스트와의 계약으로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 있는 인간이다. 외부에서 손을 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그들은 우선 김신수가 이제까지 누리고 있던 특혜. 즉, 게임의 유리함부터 모두 없애는 것에 주력했다. 언더 그라운드에서 나가는 지하층의 필드몹들의 수준을 높이고, 그리고 보상도 원래대로 돌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런 꼼수가 벌어지고 있는줄을 차마 몰랐던 악마들이었고····. 이미 김신수를 비롯해서 뉴 웨이브의 많은 유저들이 해택을 누린 후였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손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되돌리는 것 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악마들이 너무 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가지 수를 더했다. 점검이 끝나고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에게 떨어진 공문이 그것이었다. 공문에는 우선 김신수와 뉴 웨이브가 이제까지 써 온 꼼수들과 그라운드 제로의 지하층에 관한 정보를 자세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부분이었다. [앞으로 그라운드 제로의 지하층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이하 언더 플레이어라고 하는 자들을 사냥하는 자들에게는 보스몹에 준하는 경험치와 그들이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과 스킬북을 지급한다. 이 조건은 언더 플레이어들이 일반 플레이어들을 사냥 했을 떄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공지의 내용을 읽은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을 모두들 크게 놀랬다. 언더 그라운드 라는 것에도 놀랐지만 그곳의 유저를 잡았을 때 나온다는 보상도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PK를 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같은 혈맹으로 끌어 들이고 이런저런 조작을 가해서 죽인다면 얘기는 별개였지만···. 그게 아닌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PK를 하는 것 보다는 그냥 필드에서 몹을 잡는게 훨씬 이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몹을 잡는 것 보다 훨씬 더 막대한 보상을 주는 PK대상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상대들의 입장도 그랬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앞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앞으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반 플레이어들은 언더 플레이어들을···. 언더 플레이어들은 일반 플레이어들을 사냥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악마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전체적으로 머리수가 더 많은 일반 유저들이 빨리 언더 그라운드의 유저들을 학살해 버리기를 바란 것 같았다. “언더 그라운드라····. 어때? 우리도 한 번 가볼까? 동생.” 공지를 다 읽은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누님. 거기서 유저들 잡아서 경험치하고 보상 얻고 싶어요?” “으음···. 그냥 재미로 가보자는 거지 뭐···.” 언더 그라운드 유저들이 어느 정도의 보상을 주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십왕 정도의 유저가 직접 쳐들어가서 얻을게 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입을 여는 한명이 있었다. “난 갈 거다.” “주호 오라버니···.” “주호야.” 입을 열어서 언더 그라운드로 내려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명주호였다. 정운은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명주호가 왜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주호 형님. 혹시 김신수 잡으러 가는 겁니까?” “그때는 내가 비겁하게 기습을 당했지. 이번에 가서는 진정한 힘의 차이를 보여주고 오겠다.” “········하아.” 역시나가 정답이었다. 최상층의 유저들 중에 김신수하고 가장 길게 엮이 것은 정운이었다. 하지만 가장 굴욕적이 처사를 당한 것은 명주호였다. ============================ 작품 후기 ============================ 게임에서 버그 잡는 김에 악마들이 이런저런 패치를 좀 했습니다. 세계의 여기저기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19화 이번에 악마들이 공지를 내리면서 김신수와 뉴 웨이브가 어디서 어떻게 사냥을 해서 반칙처럼 경험치를 올렸는지에 관한 설명도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는 격분했다. 다른 사람들이 정직(?)하고 묵묵하게 플레이하는 동안 김신수와 그 부하들은 반칙이나 다름 없는 수단으로 쉬운 환경속에서 더 큰 보상을 얻으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흔히 하는 말로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게 사람이다. 김신수와 뉴 웨이브의 행보가 알려지고 나서는 수많은 이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명주호보다 더 크게 분노한 사람은 없었다. “감히···. 그 따위 수단으로 나를 농락했단 말이지···. 이런 쓰레기가····.” 명주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미 말리기는 글렀다는 느낌이 팍팍 들 정도로 이를 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패한것도 분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을 패배시킨 상대가 비겁하게 꼼수를 쓰고 있는 상대였다는 사실에 더욱더 분노했다. ‘···파우스트와의 계약으로 인해서 어쩌고 저쩌고 까지 말하면 아주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는데?’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정운은 가능하면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보에 의하면 뉴 웨이브는 치트키 급의 반칙이나 다름 없는 상황에서 꾸준한 사냥을 했다고 한다. ‘놈들의 레벨은···. 아마도 대부분이 슬기 정도는 되겠지. 80~90정도는 될 거야. 어쩌면 또 다른 100레벨 이상의 존재가 있을 지도 모르고···.’ 적의 전력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쳐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악수였다. 정운은 가능하면 며칠간은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 필드에도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주호가 언더 그라운드로 내려가겠다고 하면 그냥 방관 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의 의리도 있고···. 또 무엇보다 명주호 정도의 전력을 잃으면 앞으로 68층을 공략하는 것에도 많은 애로사항이 있을 테니 말이다.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대신····. 무리하지 말고 제가 돌아오자고 하면 돌아오는 겁니다.” 정운의 말에 명주호는 도움은 필요 없다.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정운이 먼저 선수를 쳤다. “김신수, 그 개자식하고의 인연은 제가 먼저입니다. 그러니 거부하지는 마십시오.” “···음, 어쩔 수 없지.” 보통 인연이 어쩌고 저쪼고 하는 말은 정운에게 있어서 진심도 아니었지만····. 이 명주호라는 고풍적이고 고지식한 남자에게는 아주 잘 먹히는 말이었다. 실제로 정운도 그걸 노리고 한 말이고 말이다. “그럼 나도 가세하지.” 정운이 명주로를 따라 간다고 하자 한중겸도 끼어 들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이 이상 전력을 잃을 수는 없지. 나도 간다.” 이민지가 일어섰고 그 뒤를 이어서 이보영과 이지영 자매도 끼어 들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나도 가지. 지하층이 어떤 곳인지 흥미가 생긴다.” 십왕의 서열 2위인 배대호가 끼기로 했다. 사실 그가 낀다고 하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게임 클리어에는 거의 흥미가 없던 그이지만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는 흥미가 있는 사람이 배대호였다. 그라운드 제로에 지하층이 생겼다고 하니 거기에 호기심이 든 모양이다. “오라버니는 어쩔래요? 따라갈래요?” 배대호가 온다는 말을 듣자 이민지가 십왕의 일인자인 박추성에게 말했다. 그러자 박추성이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곤란한 듯이 대답했다. “난···. 됐어. 그냥 집이나 지키고 있지 뭐··.” 그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들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추성의 존재가 계속해서 공백을 지킨다는 것은 역시 아쉬웠다. 물론 그도 가끔씩은 필드에서 사냥을 한다고 알려려 있다. 가끔씩 쥐도 새도 모르게 혼자 필드에 나가서 조금씩 사냥을 하는 것 같은데···. 그가 싸우는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십왕들 중에서도 박추성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 있는 사람은 상위 세 명. 배대호, 이민지, 한중겸 이 사람들 뿐이었다. 그들은 오래전에 박추성이 아직 현역으로 있을때 같이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밑으로는 십왕들이라고 해도 박추성의 전투 장면 자체를 본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싸우는 건지···.’ 정운은 솔직히 박추성이 어떤 모습으로 싸우는 건지 궁금했다. 그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200레벨대인 배대호는 클래스 명은 초마도사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르에 부끄럽지 않게 초특급 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마법사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추성의 클래스명은 ‘궁극의 암살자.’라고 한다. 어떤 스타일로 싸우는지 전혀 감이오지를 않았다. 암살자라고 하면 보통 쓰는 무기가 다양하다. 단검을 시작으로 해서 함정이나 독, 그리고 입으로 부는 바람총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암살자였다. 그러다 보니 그냥 클래스 이름만 들은것 가지고는 박추성이 어떤 모습으로 싸우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정운을 포함해서 십왕들중에 박추성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명 전원이 지하층의 필드에 가보기로 했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는 일단 집에 남아있으라는 말을 했다. 두 사람은 따라오려고 했지만 정운은 딱 잘라서 거절했다. 두 사람은 일단 스카이 타운의 집에서 기다리게 했다. 말로는 전력은 충분하니 필요 없다. 라는 말로 잘라서 거절했지만···. 진짜 속내는 세레나와 슬기가 지하층에 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지하층에 데리고 갔을때 김신수를 만났을 때 그 재수 없는 인간의 망막에 슬기와 세레나가 비춰지는 것 자체가 극도로 싫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랬다. 현재 최하층의 개발된 층은 59층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다행이도 포탈의 출입권은 개발된 층까지 자동으로 개통되고 있었다. 지상 60층까지 출입이 허가된 유저들은 지하 60층 까지 통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68층까지 돌파가 가능한 정운과 십왕들이 지하 59층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단, 지상 68층까지 돌파한 정운과 십왕들도 지하 68층에 가지는 못했다. 아마도 최대 돌파가 된 층이 59층이기에 거기서 멈춘 것 같았다. 어쟀든 정운을 비롯한 십왕들은 지하 59층에 도착했다. “여기가 지하층인가? ···겉 보기에는 별것 없는데?” “그렇게···. 혹시 우리 능력이 반감되거나 하는 그런 시시한 설정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정운과 십왕들은 지하의 59층에 내려오자마자 일단 주변을 둘러본 후에 자신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다들 오랜만에 나온 필드였지만···. 일단 크게 변한 상황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쩔까요··. 여기 레벨이 지상 59층하고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텐데? 일단 흩어져서 정찰이라도 해 볼까요?” 김수민의 말에 명주호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뉴 웨이브 자식들 만나거든 나한테 바로 연락해.” 아무래도 그는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일행은 ME의 주파수를 바꾸고 일단 뿔뿔히 흩어졌다. 이 층의 수준이 59층하고 비슷하다면··. 보스몹이 아닌 이상 여기서 이들이 위험을 느낄 수준의 몹은 없었다. 그러니 함께 행동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동생···. 나하고 같이 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에게 찰싹 달라 붙어서 행동하는 여자는 있었지만 말이다. “누님···. 꼭 저하고 같은 방향으로 가셔야 합니까?” “응. 왜? 싫어?” “····좀 부담되는 데요?” 정운도 이제 이보영의 성격을 대강 안다. 쫀쫀하게 싫은 말 한 두 마디 듣는다고 삐뚤어진 대응을 할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그냥 덤덤하게 대응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보영의 태도가 좀 달랐다. 슬기와 세레나라는 야신급 키퍼가 없는 상황이라서일까? 그녀의 눈에는 먹잇감을 노리며 숲 속에 숨어있는 야생의 암표범 같은 집념이 맴돌고 있었다. “흐음···. 너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할 말도 있고 말이야.” “····마음대로 하십시오.” 정운은 오늘따라 평소보다 이보영이 좀 더 끈질기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별 상관없었다. 이제 그녀의 이런 장난끼도 많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자와 자동차의 공통점이 있다.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을 때 꼭 사고나기 쉽다는 것이다. “동생. 뭐 하나 물어 봐도 돼?” “예. 뭔데요.” “세레나라는 아기하고 잤지.” “············.” 마치 아침에 밥 뭐 먹었어? 라는 듯이 태연하게 말하는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순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대로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어떻게····.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운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설플 정도로 자기 목소리가 떨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저히 평정을 유지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이보영은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예전부터 동생이 그 예쁜 아기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거야 뻔히 보였지.” “·········.” ‘그게 뻔히 보였다고? 이 사람은 어디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 정운은 나름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생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 이보영이라는 여자의 눈에는 정운의 마음이 손금 보듯이 다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야··. 최근에 동생이 세레나라는 아기를 대할때의 태도가 좀 더 조심스럽게 변했더라고, 그리고··. 세레나 그 아이도 뭐랄까? 처녀티가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그거 티가 나거든?” “티가 날 리가 없잖아요!!?”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어깨를 으쓱 올리면서 말했다. “어째서인지 어려서부터 그런걸 잘 알겠더라고···. 아마도 이게 내 초능력인가 봐?” “···········.” 정운은 이제 할 말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슬기에게 다 말할 생각입니까?” 정운은 애써 태연하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무척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슬기에게 말하고자 한다면···. 그때는 말릴 수단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날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해. 동생 나 너무 나쁘게 보는 것 아니야?” “············.” “뭐, 내가 좀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고 또 동생한테도 약간 쿨한 여자로 보이기는 했을지 몰라도···. 난 여자 눈에 눈물 나오게 하는 짓은 안 해. 그렇게 하는 사내놈들은 목을 꺾어 버리지만 말이야.” 마지막에 사내놈들 목을 꺾어 버린다는 말을 할 때는 순간적으로 섬뜩한 감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남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개방적인 여자들 중에는 과거에 남자에게 풍족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강한 배신을 당했던 여자들이 많다. 과거에 대한 반동으로 남자들에게 더 강하게 어필하고 접촉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절대로 열지 않고 꽁꽁 닫아두는 여자. 이보영이라는 여자가 그런 여자였다. 쉽게 남자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무뚝뚝한 여동생인 이지영하고 똑같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정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동생. 알고 있지. 남자는 여자 천명을 안아 줄 수는 있어도··. 그 천명의 여자들은 하나하나 가슴에 대못이 밖히는 것.” “····알고 있습니다.” 왜 모르겠는가? 정운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홀로 정운을 키워내지 않았는가? 정운 역시 여자를 노리개 취급하고 농락하는 남자에게는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그럼 여기서 물어볼게. 슬기하고 세레나, 둘 중에 누가 진심이야.” “그걸 왜 누님에게 말해 줘야 합니까?” “첫째, 말 안하면 말 할 때까지 지금 여기서 나한테 맞을 거야. 진지하게 말이야····.” 지금의 정운이라면 이보영하고 싸운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패배할 레벨은 아니다. 어쩌면 역으로 이보영이 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보영은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여차하면 한 바탕 해버릴 생각이 만만한 것 같았다. “둘째, 나한테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고도 말 안한다면 그 불쌍한 두 아기는 내가 보호할 거야. 남자의 욕정에 유린당하게 하기에는 너무 착한 아기들이거든.” “···········.” 정운이 바라본 이보영의 눈은 진지했다. 정말로 진심이라는 느낌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누님이 만든 메두사 길드는 여자들에 대한 규율이 엄격했지.’ ============================ 작품 후기 ============================ 위기입니다. 제가 내일 글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크윽... 앤더슨 실바하고 크리스 와이드먼 시합을 못 보면 두고두고 후회 할 것 같은데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지.... 어떻게든 오늘 많이 써야 할 텐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20화 이건 여담이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수많은 길드 중에서 여자들에게 가장 관대한 길드는 다름 아닌 메두사 길드다. 예전에 정운에게 박살났던 말벌파 같은 소규모 길드에서는 하위레벨의 유저들은 착취당하는 쪽에 있기 일쑤였고···. 특히 여성 유저들은 여성으로서의 성적인 노리개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삼대 길드 정도의 거대 길드가 되면 그런 부조리함은 상대적으로 줄어 들었지만···. 그래도 라이온 길드나 타란툴라 길드의 경우 알게 모르게 여성 유저들에게 은은한 압력을 가하는 길드원들이 있다고 한다. 물론 길드장 귀에 들어가면 초전 박살이 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다른 길드와 다르게 메두사 길드는 여성 유저에 관한 보호가 철저했다. 길드장이 여성이라서 그런다는 말도 있지만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대한 금지 조항이 아애 길드가입시의 혈맹 조건에 추가되어 있다. 나중에 길드내에 커플이 나오면 그때는 그 둘만 혈맹 조건을 수정해 주기도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길드내에서 여자들을 함부로 건드리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바로 끽이다. 그만큼 이보영은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상처 받는 것을 싫어하고 여성유저들을 지켜주는 것이다. 지금 정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래 그녀가 정운에게 장난처럼 대시를 하는 겨우에도 한편으로는 슬기와 정운의 사이가 돈독한 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예리한 촉에 세레나와 정운의 사이에서 뭔가가 느껴진 후에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벼르고 벼른 것이다. 여기서 정운이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녀가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도 바뀔 것이다. “자···, 동생 말해봐. 슬기야? 세레나야? 둘중에 누구를 좋아하는 건데?” 정운은 생각 같아서는 쓸데없는 참견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긁어 부스럼 밖에는 되지 않을 상대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는···. 슬기를 사랑합니다.” “···좋아. 모범적인 대답이군. 그럼, 세레나하고의 썸씽은 뭐야? 그냥 술이라도 취해서 하룻밤 사고라도 친 거야? 그럼 봐 줄게.” 그녀의 말에 정운은 순간 ‘예. 그랬습니다.’ 라고 말할 뻔 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녀의 성격을 고려하면 아마도 저 용서해 줄게라는 말은 함정이다. 여기서는 눈앞의 미끼에 낚이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세레나를···. 세레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그날 하루로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걸 누님이 슬기나 세레나에게 말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운은 거기까지 솔직한 심정을 말하고는 이보영의 판결을 기다렸다. 꼭 산신령한테 자기 도끼 어떤 도끼인지 말하고 제멋대로의 판결을 기다리는 나무꾼의 심정이었다. “······엉터리네. 결국 바람 핀 거야.” “그렇긴 하죠.” 정운은 순순히 동의했다.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그런 정운에게 이보영의 날카로운 추궁이 연이어서 이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바람 필 가능성이 농후하고 말이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정운은 이번에는 순순하게 긍정하지 않고 이보영에게 반박했다. “····정말?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반복 될수록 점점 쉬워지는 데?” “그럴일은 없습니다. 세레나와의 관계는···. 이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필요성에 의해서 했던 것입니다. 다시 또 이어질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팔짱을 끼고는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면서 고심하는 얼굴을 했다. “·······‘거의’라는 말이 좀 거슬리네.” “·············.” “하지만, 동생이 지금 하는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은 알겠어.” “············.” 이보영은 팔짱을 풀고는 최종 판결을 하듯이 말했다. “동생의 비밀을 지켜줄게. 하지만···. 동생을 위해서가 아니야. 그 예쁜 아기들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해서야.” “고맙습니다.” “그래. 알면 동생도 잘 처신해. 난 여자 눈에서 눈물 뽑아내는 남자가 제일 싫더라····. 보고 있으면 살심이 돌거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몹시 진지했다. 누가 봐도 그녀가 100%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님···. 혹시 남자에 관해서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어요?” 정운은 스스로 말을 하고도 아차 싶었다. 서로의 과거를 함부로 묻지 않는 것은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간의 암묵적인 룰이다. 한중겸 처럼 선선히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말하기를 극도로 꺼려했다. 이보영은 화내는 대신에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의 과거를 궁금해 하면 인기 없어.” “····예. 알았어요.” 그냥 그렇게 적당히 얼버무리는 그녀의 말에 정운은 그냥 동감했다. 어차피 꼭 캐물어서 알아야 하는 일도 아니었다. 이보영과 정운은 그럭저럭 필드를 돌아봤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은 볼 수 없었다. 지하 59의 몹 들은 볼 수 있었지만 적당히 상대해본 결과 지상의 몹들과 큰 수준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흠···. 패치가 된 건가?” “아무래도 그랬겠죠. 공지에는 김신수와 뉴 웨이브가 상대할 무렵에는 엄청나게 난이도가 하양 조정 되어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그 치사한 놈.” “훗···. 난 만난적 없는데 동생이나 주호 오라버니처럼 만나본 사람은 김신수라는 애 엄청 싫어한다.” “누님도 보면 알 겁니다.” “어떤 놈인데?” “재수 없는 놈이죠. 한 눈에 보면 이 새끼 재수 없다. 라고 느낄 겁니다.”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그저 웃고 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 말을 안 믿었지만···. 훗날 김신수와 만났을 때는 정운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사실 필드에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둘은 지하층의 언더 플레이어···. 그러니까 뉴 웨이브의 길드원이라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필드를 뒤지고 뒤졌지만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ME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신을 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지하층에서 놈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역시 아무도 오지 않은 걸까?” “당연하지···. 놈들도 생각 있다면 몸을 사라지 않겠어?” “혹시 지상층으로 간 것은 아닐까? 놈들이 역공을 취해서 다른 유저들을 사냥 할 수도 있지 않아?” 윤정철의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명주호가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제가 길드원들에게 연락을 해서 지상의 1층부터 59층 까지 모든 포탈에 경계병을 세워서 꽁꽁 지키라고 했으니까요. 무단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과연···. 그럼 역시 놈들은····.” “잠수 탄 것 같군요. 망할 자식들···.” 명주호는 이를 갈면서 분해했다. 사실 이들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김신수를 비롯한 뉴 웨이브의 인간들이 당분간은 자숙하면서 몸을 사리기로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말이다. 당연했다. 모든 전모가 드러난 이상···. 거기다 자신들을 사냥했을 시에는 두둑한 보상도 얻을수 있다는 공지가 내려진 이상 자신들을 노리고 위에서 일반 유저가 내려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직까지 일반 플레이어와 언더 플레이어의 세력을 비교하면··. 일반 플레이어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질적으로는 반칙급의 레벨업을 계속한 언더 플레이어들이 뛰어났지만···. 기본적으로 숫적 우세도 무시 할 수 없었다. 고작 100명이 약간 넘는 언더 플레이어들에 비해서 일반 플레이어의 숫자는 제대로 파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그러니 전체적인 세력면에서는 비교 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명주호와 김수민, 이보영은 자신들의 길드의 간부들에게 다른 50층대의 탐색을 맡겼다. 뭔가 이변이 생겼다면 보고가 올 테지만···. 아직까지 그런 보고는 전혀 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놈들은 당분간 몸을 사리겠지···. 그보다 방금 든 좋은 생각인데····.” “뭡니까? 중겸이 형님.” 정운의 질문에 한중겸이 말했다. “지상층의 포탈뿐만이 아니라 지하층의 포탈도 모두 점거하고 입구를 틀어막으면 놈들의 행방을 감시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중겸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 전원의 입에서 동시에 ‘아!’라는 말이 나왔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그렇게 모든 포탈을 틀어 막아 버리면 뉴 웨이브의 행동을 완벽하게 파악 할 수 있다. “바로 움직일게요.” “좋은 생각이야.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너무나 단순한 생각인데 가끔씩 사람은 등잔 밑을 보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십왕이 자신들의 세력인 삼대 길들을 총 동원해서 포탈을 틀어 막은지 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삼주일의 시간이 지나도록 십왕들 전원이 사냥도 가지 않고 뉴 웨이브의 행동에 주의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포탈의 감시 인원들에게서 보고가 올라오면 언제라도 상관없으니 출동해서 놈들을 박멸 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십왕들의 행동에 다른 유저들도 적극 동참했다. 알아서 보초를 서주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그들은 이미 언더 플레이어들을 사냥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사실 일반 유저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협조를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입장이 달라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겠지만···. 보통의 유저들이 이렇게 십왕의 언더 플레이어 사냥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그냥 질투나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키고 언더 플레이어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정운이나 십왕들과 달리···. 일반 유저들은 그들에게 심각한 안위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언더 플레이어들이 일반 플레이어들을 사냥하는 사태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김신수가 레벨 50이상의 유저들만을 데리고 만든 것이 뉴 웨이브고···. 그런 유저들이 1년이 훌쩍 넘도록 치트키를 쓰면서 반칙같은 렙업을 했다. 십왕이나 삼대길드의 간부 클래스가 아니면 감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를 않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안위에 위협을 느끼지 않겠는가? 마치 옆집에 이사 온 이웃이 호랑이를 키우고 있다. 라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십왕들이 적극적으로 그 호랑이를 퇴치해 준다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포탈 봉쇄 후 한 달···. 이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방심을 하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십왕들과 삼대 길드의 삼엄한 경계로 놈들은 이미 싸울 의지를 잃었다. 라는 이상한 여론이 고개를 들고 유저들의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사냥을 하지 못하고 있던 유저들은 하나둘씩 필드에 나서기 시작했고···. 그리고 사냥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악마들이 공지를 하고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한 것은 거의 두 달이 다 되고 나서인 지금이었다. 그리고 사냥을 갔다 온 유저들은 깜짝 놀랄 소식을 알려 줬다. 필드에 나가서 사냥을 해서 얻는 보상이 전체적으로 조금 늘었다는 것이다. 확 늘어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10~20%정도 경험치와 골드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악마들이 패치를 하면서 어느 정도 수정을 한 것 같았다. 큰 폭의 상승은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사냥을 못한 유저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특히 두 달 가까이 사냥을 쉬면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도 얻지 못하고 있는 유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이제 무조건 필드로 나가야 했다. 십왕들과 삼대 길드가 포탈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이상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사냥당할 걱정은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플레이어들은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주일도 되지 않아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다시 활기가 돌았다. 소폭이지만 늘어난 경험치 덕분에 사냥에 탄력이 붙은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십왕도 삼대 길드도 아닌 정운도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다시 사냥에 복귀했다. “홀리 스트라이킹!!!” 퍼어엉!!! 한방에 다크레이스를 관통해 버린 세레나는 오랜만에 몸을 푼다는 듯이 상쾌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딱히 정운에게 나가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가만히 관찰해 보면 그녀도 아웃도어 파다. 방에 가만이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는 체질인 것이다. 무조건 밖에 나가서 자신의 일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완수해 가야 만족하는 타입인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그녀가 생전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났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수고했어···. 이제 오늘은 돌아갈까?” “예. 정운씨.” “알겠습니다. 마스터.” 항상 그렇지만 정운이 오늘 사냥의 끝을 고하면 거기서 끝이었다. 슬기와 세레나도 그런 정운의 말에 따라서 말에 올랐다. 요즘 들어서 정운을 제외한 슬기와 세레나 둘간의 콤비네이션도 종종 연습하고 있어서 정운이 나설 일이 없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사냥의 시작과 끝을 알릴 때는 정운이 이 파티의 리더라는 것이 표가 났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항상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21화 <순찰을 돌다.> 사냥을 마치고 셋이서 말을 타고 가는 길에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했다. “마스터···. 다크 레이스가 쉽고 편하게 잡을 수는 있지만 이제 슬슬 다른 영역도 돌아 보는게 어떨까요?” 세레나의 말에 슬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찬성했다. “맞아요. 혹시 다크 레이스보다 더 좋은 몹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세레나와 슬기가 정운에게 다른 사냥터로 가는게 어떠냐? 라는 말을 했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사실 팬텀 나이츠를 뚫을 방법이 있는 이상 그것도 슬슬 고려해 봐야 했다. 사실 다크 레이스가 경험치와 골드는 아낌없이 주고 있었다. 경험치와 골드, 그리고 레벨업만을 위해서라면 계속 다크 레이스를 잡는게 최고로 좋았다. 잡기도 쉽고 보상도 좋으니 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느 재료 아이템이었다. 다크 레이스를 잡아도 재료 아이템은 나오지만 항상 같은 것만 나오지 않는가? 다크 레이스만 잡아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소재 아이템이 사냥터를 옮겨야 하는 주된 이유였다. 원래 정운은 최상층에 올라와서 스카이 타운에 왔을 때부터 장비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말 억 소리 나오는 스카이 타운의 물가에 꼬리를 말고 깨갱하면서 일단 한 번 물러났다. 물론 포기한 것은 아니다. 스카이 타운의 물가는 비샀지만 그 대신에 최상층에서 사냥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골드도 막대하게 늘어났다. 비록 한동안 모아야 하기는 하겠지만 일단 골드를 꾸준하게 모으면 아이템 업그레이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니 빨리 최상층에서 열심히 사냥을 해서 골드를 많이 모아서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상층에서 돈을 많이 모으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수십억 골드에 달하는 돈은 부담이었다. 정운 하나라면 모를까? 정운의 팀에는 슬기와 세레나의 장비까지 업그레이드 해야 하지 않는가? 사냥의 효율은 두배 정도이지만 아이템을 맞추는 효율은 세 배다. 하지만···. 그 수십억 골드의 지출을 그래도 십수억 골드 정도로 줄여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게 바로 아이템의 소재가 되는 재료 아이템들이었다. 사실 스카이 타운의 상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상점의 당연한 법칙이었다. 그냥 생 골드를 퍼부어서 사는 것 보다는 소재 아이템을 사용하면 제작 단가가 대폭 내려가고는 했다. 그건 쭉 그래왔던 것이었다. 우선 지금 슬기가 가지고 있는 소울 로브도 그랬다. 소울 로브 방어력 : 300 마력 : 5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현계의 물체가 아닌 유계의 영체를 실로 짜아서 엮어낸 로브. 마법 공격에 막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루에 한 번 소울실드라는 방어마법을 발동한다.] 슬기가 최근에 업그레이드 시킨 장비다. 이 로브는 이전에 쓰고 있던 피닉스의 로브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뛰어났다. 훨씬 더 비싸기도 했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메이지 아이템의 최대 중요 포인트인 마력 보조만 해도 그렇다. 전에쓰던 피닉스의 로브는 200이었는데 이제는 500으로 늘어났다. 거기다 드물게도 물리 방어력이 300이나 되었다. 이건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다. 보통 메이지 계열의 유저들의 방어 장비가 다 그렇지만 방어력이 약하다. 이전에 쓰던 피닉스의 로브도 방어력은 고작 70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울 로브는 놀랍게도 방어력만 300이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후진 갑옷보다 더 나을 정도였다. 거기다 하루에 한 번이지만 자동 방어인 소울실드라는 마법도 자동으로 작동한다고 하니···. 정운의 파티중에서 가장 약한 슬기로서는 만의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서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 아이템을 가장 먼저 업그레이드 시킨 것에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다크 레이스를 잡았을 때 가끔씩 나오는 재료 아이템인 소울 드래드라는 재료 아이템이 이 소울 로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슬기의 소울 로브를 순수하게 골드로 만들려고 하면 5억 8,000골드가 들었다. 하지만 재료 아이템인 소울 드래드를 20개를 지참해서 사용하니 그 가격이 1억 5,000골드로 확 내려갔다. 그게 슬기의 아이템을 가장 먼저 업그레이드 한 이유였다.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스카이 타운에서 생돈을 다 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였다. 여기서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 아이템을 얻어서 골드의 소비를 줄여야 했다. 그러니 정운도 최근 들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다크 레이스 말고 다른 몹을 잡아야 할 때가 되어간다. 그러니 사냥터를 옮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흠···. 세레나.” “예. 마스터.” “신의 철퇴의 쿨 타임은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35시간 남았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하루는 쉬고 모래 사냥에 나가자.” “알겠습니다.” 정운은 팬텀 나이츠를 뚫기 위해서 세레나의 유니크 스킬인 신의 철퇴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팬텀 나이츠의 무서운 점은 하나하나가 상당히 강력하면서도 단체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개 때 러시가 아니라 아주 수준 높은 합공을 구사한다. 완벽한 포메이션에 여러 가지 패턴으로 합동 공격이 오고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개개인의 방어력과 맷집의 한계를 생각할 때 세레나의 신의 철퇴면 충분히 격퇴가 가능했다. ‘최대한 끌어들인 다음에 한방에 훅···. 잘하면 다크 레이스 이상으로 훌륭한 사냥이 될 지도 몰라. 쯧, 그 세레나의 신의 철퇴라는 스킬이 쿨 타임만 없었어도 좋았을 텐데.’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세레나의 유니크 스킬인 신의 철퇴에 쿨 타임이 없으면 그건 스킬의 존재 만으로도 김신수에 버금가는 반칙이었다. 연발로 펑펑 갈기면 보스 몹도 견디지 못할테니 말이다. 어쨌든 그런 사냥은 내일부터이고··. 일단 오늘과 내일은 쉬기로 한 정운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스카이 타운에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다. “···PK 당했다고요? 언더 플레이어들 한테요?” “그래····. 필드에서 일반 유저들이 대규모로 당했다고 하더라···. 간신히 살아서 도망쳐온 사람에게 들었어.”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PK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나서 정운은 크게 놀랐다. “포탈은 다 감시하고 있었잖아요? 혹시 어디가 뚫렸나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게 아닌 모양이야···. 오늘 알게 된건데···. 이거 혹시 본적 있냐?” 한중겸은 정운의 앞에 작은 탁구 라켓정도 되는 크기의 원반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나도 몰랐는데··. 최근 상점에서 한 개에 10만 골드에 팔기 시작한 아이템이다. 간이 포탈이라고 하더군.” “간이 포탈?” “그래···. 이게 있으면 미리 자신이 지정해둔 필드의 위치로 개인적인 포탈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하더군. 아마도···. 이번에 패치를 하면서 나온 것 같아.” “제길····. 파우스트가 손을 썼군요.” “파우스트? 그 이름이 왜 나와?” “아···. 아니 그냥요···. 이 게임의 보스몹이 파우스트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정운은 내심 미심쩍어하는 한중겸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그를 못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에 관해서 얽힌 얘기에 관해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세레나에 관한 진실도 다 털어놔야 하지 않는가? “어쨌든···. 포탈 봉쇄는 의미가 없다는 거군요.” “그래. 얼마 전부터 필드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유저들이 종종 있었는데···. 아마도 그 유저들도 모두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당한 건지도 모르지.” “망할·····.” 정운은 입맛이 썼다. 포탈의 봉쇄가 풀린 이상···.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은 저쪽은 더욱더 거칠게 공격에 나설 것이 뻔했다. 숫적 우위도 언제까지고 일반 플레이어들이 우위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어쩌면 좋을까요?” “나도 몰라···. 그래서 오늘 밤에 다 모여서 회의라고 해 볼까 한다. 너도 나올래?” “·····나가야죠. 김신수 그 놈은 생리적으로 마음에 안 들어요.” 그렇게 해서···. 그날 밤. 오랜만에 최상층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새삼 스럽지만···. 모인 이유는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 망할 놈의 언더 그라운드 놈들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 가장 쌓인게 많은 명주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보영이 말을 받았다. “사실, 포탈봉쇄가 풀린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아요?” “하지만 이대로 가면 전체적이 세력권에서 확 밀려 버릴 거야. 놈들이 먼저 지하층을 클리어 하는 일이 생기면 어쩔 거야?” 명주호의 말에 주경택이 손사레를 치면서 말했다. “에이···.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이제 58층에 있는 놈들인데?” “아니지···. 혹시 몰라. 놈들이 언젠가 세력을 키워서 우리 수준을 위협할지도···. 세력이 대강 비슷해지기 시작하면 이미 늦어.” “흠···. 싹을 뽑지 않으면 나중에는 도끼가 필요한 법이지···. 결국 지금 어떻게든 눌러야 한다는 것은 모두 동의하는 거지?” 이민지의 말에 십왕들을 비롯해서 정운의 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가장 일차적으로 놈들이 필드에서 유저들을 사냥하지 못하게 격퇴해야 하는데···. 누구 좋은 생각 있는 사람?” 이민지의 말에 김수민이 손을 들고 말했다. “우리가 어딘가에 매복하고 낚시하듯이 기다려 보는게 어떨까요? 그래서 운 좋으면 놈들이 낚일 수도 있잖아요?” 김수민의 말에 한중겸이 고개를 저으면서 반대했다. “너무 운에 의존하는 거야. 지상 68층에 지하 58층···. 확률이 몇 분의 몇이냐?” “으음···. 하긴 필드도 좀 넓으니····.” “그럼 놈들이 혹할만한 미끼를 뿌리면 어떨까요? 한 40층쯤에 레이드를 간다거나 하는 소문을 내는 겁니다.” “흐음···, 그런 노골적인 미끼에 낚일까?” “해 봐야 알죠?” “하지만······.” 회의장에서는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포탈 봉쇄가 가장 정확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이미 유저들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파우스트가 그에 대항 할만한 아이템을 만들어서 뿌린 것이다. 이제 포위망은 무너졌다. 그물 밖으로 뛰쳐나간 물고기를 어떻게 다시 잡을지는 고민하고 고민해도 이미 그물이 찢어지고 난 후였다. 여기서 좋은 대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나만 가장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답은····. “순찰을 도는게 어떨까?” 바로 이것이었다. 이게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고 해결책에 가까운 방안이었다. 정운의 파티와 십왕들과 삼대길드에서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유저들을 조로 묶어서 불규칙하게 필드를 돌면서 순찰을 도는 것이다. 수수한 방법이었지만 사실 이것이상으로 좋은 해결책도 없는게 사실이었다. 정운과 십왕들이 적당한 로테이션을 정해서 무작위로 아무 층에나 가서 순찰을 돌았다. 물론 이들만이 아니라 삼대길드의 간부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사실 아무리 그래도 순찰중에 걸린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예방 효과는 있을 수 있었다. “후우···. 게임 플레이하기만 해도 바쁜데···. 이제는 그런 놈들까지 상대해야 하다니···.” “불평하지 마. 어쩔 수 없잖아. 다행이도 이번 일에는 대호 형님하고 추성이 형님도 나서주신다고 하니까 다행이지 뭐.” 그렇다. 의외였지만 이 순찰 로테이션에는 박추성과 배대호까지 끼어들기로 했다. 비록 열흘에 한 번 정도였지만 그 둘이 적당한 주기로 순찰을 돌아주는 것만 해도 큰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유저들은 일주일에 최저 한 번 이상씩 순찰을 돌아주기로 했다. 딱히 주기를 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무작위로 순찰을 도는 편이 언더 플레이어들의 예측을 피하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 나온 대응법은 좀 더 삼대 길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하위 유저들을 육성시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어차피 쭉 해오던 일이었고 좀처럼 결실을 거두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나 막 키워주기에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인간성이 썩은 쓰레기들이 너무 많았다. 가끔씩 삼대 길드의 안에서도 간부들의 눈을 피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놈들이 나오지 않는가?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더하면 더 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꼼수와 꼼수가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누가 뒤통수 맞을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거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22화 며칠 후. 정운은 원래 사냥을 가려고 했지만 마음을 바꿔서 첫 순찰을 향하기로 했다. 정의감에 불타서 언더 플레이어들의 위협으로부터 일반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혼신을 다하는 것. 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 그냥 정운의 성격상 싫은 일 부터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신경 끄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니 정운은 변경된 예정을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순찰이라고요?” “그래. 일주일에 최저 한 번 이상씩은 하기로 했으니까···. 한 번 가보자.”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적당한 층으로 가서 자잘한 사냥을 하고 거기에 순찰까지 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간다·····.” 어느 층으로 언제 순찰을 갈지. 그건 오로지 순찰을 도는 사람의 자의에 맡겨 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불확실성이 높아서 언더 플레이어들이 순찰의 존재를 알아도 함부로 행동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층으로 갈지 정운이 고민하는 사이에 옆에서 슬기가 다가와서 말했다. “정운씨, 우리 오랜만에 54층에 가보지 않을래요?” “54층? 거기는 왜?” 정운이 반문하자 슬기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는 듯한 질책의 시선이 가득했다. “거기는 왜라니? 정운씨에게 거기가 그렇게 하찮은 곳이었어요?” “···응? 으음····. 좀 클리어하기 힘든 층이기는 했지.” “·····됐어요. 바보····.” 슬기는 삐졌다. 그런데 문제는 정운이 슬기가 왜 삐졌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씩 여자들은 남자들이 신경도 안 쓰고 지나가는 세세한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는 한다. 도대체 그걸 왜 기억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세세한 일들을 말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이유를 자기가 기억하는데 남자가 기억하지 못하면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운은 슬기가 삐진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 슬기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아직···. 지금 생각하면 웃으면서 당연히 알지. 라고 하면서 넘어 갈 수 있어.’ 정운은 머리를 팽팽 돌렸고 결국은 5초 정도 걸려서 한 가지 가능성에 도달했다. “장난이야. 당연히 알지. 어떻게 54층을 잊겠어.” 정운의 말에 슬기는 뒤로 돌아서 샐쭉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아니야···. 54층은···. 우리가 처음 만난 층이잖아?” 정운은 말하면서 이게 맞지? 맞아라? 제발 맞아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헤에··. 용케 기억하고 있었네요?” “당근이지···.” ‘빙고!!!’ 오랜만에 찍은게 맞았다는 생각에 정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든···. 정운은 오랜만에 54층으로 가서 옛 추억을 되살리면서 순찰을 돌기로 했다. “아아··. 그립다. 여기쯤이죠? 정운씨가 절 구해 줄게.” “그래···. 그때 로브로 전신을 꽁꽁 싸매고 있었던 널 발견 한게 여기쯤이었지···.” 정운은 사실 속으로 여기 말고 좀 더 떨어진 장소 아니었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사람이 눈치가 있지 않은가? “으음···. 정운씨 순찰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냥 막 돌아다니기만 하면 되나요?” “글쎄···. 나도 순찰을 해 본적이 없어서··. 일단 최대한 넓은 범위를 서치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렇군요··. 그럼 하늘을 이용해서 돌아 다니는게 좋겠네요.” “그렇지···. 흑토.” 정운이 흑토를 부르자 흑토는 영수화 해서 하늘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럼 백설아. 우리도 날자.” 슬기가 백설에게 말하자 백설 역시 등 부분에서 커다란 날개를 펄럭 하고 펼쳤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세레나가 타고 다니는 세인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다. “그럼 간다. 뒤쳐지지 말고 따라와.” “예.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스터.” 그렇게 해서 정운을 시작으로 다른 두 명도 말을 타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소개는 하지 않았지만···. 원래 구입시에 그냥 명마 클래스였던 백설과 세인트 역시 꾸준한 레벨업을 거쳤다. 그래서 지금은 두 마리 다 영수의 레벨에 도달한 것이다. 비행 스킬도 가능했다. 다만 흑토와는 나는 방식이 달랐다. 흑토의 경우 배행스킬인 비상이라는 스킬을 이용해서 하늘을 날았다. 사실··. 이 스킬은 하늘을 난다라고 하기 보다는 하늘을 달린다. 라고 말 하는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에어 워킹을 하는 것처럼 공중을 밝으면서 날아가는 것이 흑토의 비행 스킬이었다. 거기에 비해서 백설과 세인트는 전설속에 나오는 페가수스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늘을 날 때는 우아하게 앞 다리를 접고 뒷다리를 쭉 편 상태로 날개를 퍼덕이면서 날았다. 사실 이게 흑토의 비행 스킬보다 좋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웠다. 그냥 이동시에는 이렇게 해도 괜찮았지만 전투 시에는 썩 좋지만은 않았다. 날개를 이용해서 바람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급선회라던가 급정지 같은 동작을 하지 못했다. 흑토의 경우 달리다가 90도로 그대로 꺾어서 피한다거나 수직으로 낙하하다가 그대로 180도 반전해서 상승한다거나 하는 묘기를 태연하게 부렸지만···. 백설과 세인트의 경우는 그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세레나는 비행 스킬을 쓰면서 싸울 때는 세인트를 이용 하는게 아니라 본인의 날개를 펴서 싸우고는 했다. 원래 천사인 그녀에게는 그것이 더 익숙했다. 어쨌든···. 전투 중에 쓸 만한 비행능력은 아니었지만 그냥 어딘가로 이동을 할 때는 백설과 세인트 역시 흑토를 충분하게 따라 올 수 있었다. 세 사람은 기분 좋은 맞바람을 느끼면서 54층의 하늘을 선회했다. ‘좋은 기분이다. ····종종 이렇게 나올까?’ 항상 필드에는 사냥을 목적으로 오다 보니 이런 유유자적한 느낌은 생소한 정운이었다. 그때 백설이 날개를 퍼덕이면서 흑토의 옆으로 치고 나왔다. 그리고 슬기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저쪽 아래 좀 봐요.” “응? 이런···. 내려가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슬기가 가리킨 방향으로 말의 고삐를 틀었고 세레나와 슬기도 그런 정운을 따라서 하강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최우선 적으로 확실한 것은 자신이 강해지는 것. 정운이나 십왕들처럼 스스로 강해져서 자신을 보호할 힘을 만들어내면 그게 최고였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살아남는 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무리를 이루는 것이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었다. 길드에 들어가던 파티를 이루던···. 인간은 뭉쳐서 행동하면 기본적으로 훨씬 더 강해지는 존재들이었다. 사실 정운처럼 솔로 플레이를 지속한 것이 이상한 편이었다. 오늘도 한 파티가 또 사냥을 위해서 나왔다. 그들은 최근까지 필드가 봉인되어 있었기에 주머니 사정이 궁핍했다. 하지만 필드에 나갔을 때는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PK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해서 망설였다. 그러던 그들에게 사대 길드의 순찰 조라는 자들이 접근했다. 수익의 5%만 주면 자신들이 호위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최근에 사냥을 나갔을 때 약간이지만 보상이 상향 조정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5%는 별것 아니라는 생각에 허락했다. 하지만···. 필드에 나오고 사냥을 다 하고 정산을 할 때 얘기가 달라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5%가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과 모든 골드들이었다. 당연히 반발했다. 친절한 안내인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양쪽의 레벨차이는 평균 10레벨 이상이 났다. 숫적 으로도 자신들이 다섯 명이나 열세였다. “크윽··. 재철아!!!” “제길. 빨리 튀어!!!” 5대 10의 전투에 레벨도 딸리는 상황이다 보니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어디를 도망가려고!!!” 상대는 마치 고양이가 쥐 때를 포위 한 것처럼 완벽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절대 놓치지 마!! 마을로 보내면 안 돼!!” “나도 알아!!!” 사실 처음부터 잘못 걸린 것이다. 이들은 최근 들어서 본격적으로 유저를 사냥해서 경험치를 올리는 PK전문 파티였다. 최근 들어서 업데이트가 된 이후로 PK시에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훨씬 커졌다. 예전에는 랜덤으로 얻어지는 아이템이나 스킬북 정도였는데···. 이제는 소지하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스킬북도 다섯 여섯 개가 수두룩하게 떨어졌다. 거기다 경험치의 보상도 상당해서 30레벨의 유저를 잡으면 30레벨대의 보스몹을 잡은 것처럼 막대한 경험치를 줬다. 이런 방식은 일반 플레이어들과 언더 플레이어들의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눈을 두지 않는 PK에 시선을 돌리는 유저들이 나타자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룰이 바뀌면 그 바뀐 룰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려고 하는 자들은 존재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이들의 패턴은 대강 이렇다. 우선 마을에서 사냥을 나갈지 말지 망설이는 자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자신들이 삼대 길드의 순찰조라는 식으로 뻥을 치고 사냥의 5%정도만 주면 호위를 해주겠다고 말을 한다. 여기서 나름 리얼리티를 살린다고 공을 들인 것이 5%의 보상이었다. 어차피 필드에 나가서 다 죽일 생각이었지만 무상으로 호위를 해 준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러니 먹잇감의 의심을 최대한 사지 않을 만큼의 대가를 요구하는 척 한게 바로 5%였다. 그렇게 해서 호위를 한다는 명목으로 일행을 안내하고 그들을 필드에 유인한다. 그리고 미리 필드에서 대기 중인 동료들과 합류한 순간 이렇게 본색을 드러나는 것이다. 그들은 요 근래에 이런 패턴으로 벌써 50명 가까운 유저들을 자신들의 제물로 삼았다. 패치 이후로 PK에서 얻어지는 보상은 어마어마해서···. PK한 번만 잘 하면 한 달 동안 성실하게 사냥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발휘 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다 대박 아이템이라도 하나 얻으면 그것 1년 치의 효과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눈이 뒤집히는 것도 당연했다. “절대 놓치지 마!!! 마을에 절대 알려지면 안 돼.” “나도 안다니까!! 빨리 끝장이나 내 버려!!!” 놈들은 먹잇감인 상대들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그렇게 끝장을 내려고 했다. “이 개자식들!!! 다 죽여 버릴 테다.” “지랄하고 있네···. 사낭 한다고 다 지친 주제에··. 얌전히 뒈져!!!” 먹잇감들의 발악을 보면서 히죽거리면서 웃고 있는 놈들은 이미 인간의 피와 살을 빨아 먹는 인간 백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간 몰래몰래 저지른 이들의 악행도 오늘까지였다. 오늘로 운이 다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콰아앙!!! “거기까지다. 전원 동작 그만.” 하늘에서 슬기와 세레나를 대동하고 나타난 정운은 일단 지면에 한 방 강하게 밖아 넣었다. 한참 싸우던 일행들의 모든 시선이 정운과 두명의 여성들에게 집중 되었다. “저건····. 누구지?” “잠깐···. 옆에 여자 두명···. 저거 박정운 아니야.” “정말···? 최상층의 박정운?” “그 양다리의 박정운?” 정운은 동요하던 놈들 중에서 마지막에 한 놈이 한 말에 관해서 심각하게 따지고 싶었지만···. 일단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일단····, 상황 설명 좀 들어볼까? 언더 플레이어인줄 알고 왔는데 이제 보니 전부 일반 플레이어잖아? 어떻게 된 거지?”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공격당했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생존자의 설명에 의하면 놈들의 머리위에는 검은색 크리스탈이 둥둥 떠 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크리스탈이 있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유저들 사이에 보이는 식별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유저들 사이에서 그런 표식이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즉,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의 PK이인 것이다. ‘이걸 어쩌지? 도와 줘? 말아?’ 정운은 살짝 망설였다. 도리적으로 생각하면 도와 주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상대가 언더 플레이어도 아닌 이상은 그냥 오지랖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애매한 상황이다 보니 정운은 살짝 망설였다. 그리고 정운의 망설이는 표정을 보고 PK를 하던 놈이 재빨리 정운의 앞에 가서 털썩 하고 무릎을 꿇었다. “박정운님. 처음 뵙겠습니다. 전 스틸 파이어라는 신흥 팀의 파티장인 김명훈이라고 합니다. 평소부터 몹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응? 아아···. 그래. 뭐하는 중이야. 상황 설명 좀 해봐.” 정운의 말에 놈은 혼신의 연기력을 작렬 시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올해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모두들 남은 한해 잘 마무리 하시고 편안한 송년 되세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23화 <초보들 한 번 키워주기.> “사실 우리가 필드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아마도 저 놈들은 이번에 PK에 대한 보상치가 늘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전문적으로 PK를 시작한 악당들인 것 같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몇 겹으로 깔면 저렇게 거짓말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듣고 있던 정운으로서는 혹시 이게 진짜인가? 라는 생각이 혹할 정도였다. 보통 거짓말이라는게 하면 적든 크든 티가 나기 마련인데 놈은 그게 너무 자연 스러웠다. 마치 거짓말의 스킬이 만렙을 찍은 달인 같았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저 거짓말에 기가 막힐 정도였다. “거짓말입니다!!! 오히려 저 놈들이 우리를 공격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숫자도 적지 않습니까!!!?” 함정에 빠져서 공격을 당하고 있던 다른 파티원이 심각하게 억울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사실 그로서는 정말 억울했다. 완전 작정하고 함정을 파고 유인한 주제에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라니···. 하지만···. 문제는 중간에 끼어든 정운으로서는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확신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좀 어렵다는 것이다. “흠···. 그러고 보니 저쪽이 숫자가 더 적네···. 장비를 보아하니 레벨도 좀 처져 보이고···.” 정운의 말에 김명훈이라는 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생각해둔 말을 했다. “거짓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개의 조로 나눠서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편이 경험치의 효율이 좋기 때문입니다.” “웃기지 마!! 너희들이 마을에서부터 우리를 여기까지 유인해 왔잖아!!!” “거짓말입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아닙니다. 저희가····.” 양쪽의 의견이 시장판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꼴을 보고 있는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시장판을 내가 정리해야 되는 거야? 내가 무슨 솔로몬도 아니고····. 아니 그런데 내가 왜 해야 하는 거지?’ 사실 정운의 촉은 숫자가 적은 쪽이 억울한게 사실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촉은 그냥 촉이다. 확신도 증거도 없는데 막 결정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누가 거짓말 하는제 잘 모르겠는데···. 쯧, 왜 내가 이런 판결 따위를 해야 하지? 그냥 생 까고 가던 길이나 가면 안 되나? 싸움은 말렸으니 지들끼리 마을에 가라고 하면 그만이지. 안 그래?’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을 뺄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 발을 빼지는 못했다. 자신의 뒤편에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슬기와 세레나 때문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자기 여자 앞에서는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는 본능이 있다. 결국 정운은 이 사태를 기피로 해결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양쪽 모두 떨어져. 내 허락 없이 공격하는 놈이 나오면 그쪽부터 내가 박살낸다.” 정운이 그렇게 말을 하자 양쪽을 서로 이를 갈면서 일단은 떨어졌다. 정운은 잠시 머리를 굴리면서 누가 진실이고 누가 거짓일지 생각해 봤다. “흐음·····. 으음······.” 그리고 5분 후······. ‘모르겠다. 제길,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헷갈리잖아.’ 그렇다. 원래 생각이 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하기 마련이다. 수학 공식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생각을 많이 한다고 정답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처음에 촉이 왔을 때만 해도 포위망의 안쪽에 있던 소수가 공격당하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쪽의 변명을 들어보니 자신들이 흩어져 있다가 나중에 합류해서 이렇게 자신들의 숫자가 더 커졌다고 말하니···. 그것도 그럴싸해 보이기는 했다. ‘쯧, 나 경찰은 못 할 성격이네. 어쩔까? 그냥 확 다 묻어?’ 정운이 이렇게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슬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운씨····. 저····. 어쩌면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 알 것 같은데요?” “응? 정말이야. 슬기야.” “예. 잘 하면 확실한 증거를 찾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확실해.” 정운의 물음에 슬기는 확신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범인은 이 안에 있어요.” “········당연이 이 안에 있지.” “당연한 얘기지 않나. 슬기.” 그녀의 말에 정운과 세레나가 대꾸를 하자 슬기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그냥···. 한 번 흉내 내 본 건데···. 됐어요. 어쨌든 거기 당신들··. 잠깐 나 좀 볼까요?” 슬기는 얼굴을 붉히더니 그대로 사람들을 불렀다. 그 사람들은 슬기의 앞에 오더니 나란히 섰다. “크흠···. 당신들의 공통된 주장은 착실하게 사냥하고 있었는데 공격당했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일행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 자들을 보면서 슬기가 재차 확인했다. “확실하죠? 거짓말은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이쪽은 거짓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입니다.” “이게···.” “자··. 진정해요. 금방 밝혀질 거니까···.” 슬기는 또 싸우려는 양쪽을 진정 시키면서 양족을 향해서 다시 말했다. “여기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면···. 이 54층의 필드에 나오는 몹들이 주는 재료 아이템을 가지고 있겠군요. 한 번 보여주실래요?” 슬기의 말에 한쪽은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고 다른 한쪽은 얼굴이 푸르딩딩해 졌다. “여기 있습니다. 미노타우르스이 뿔과 오우거의 가죽, 다른 것도 보여 드릴까요?” 공격당하고 있던 쪽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아이템을 꺼내서 내밀었다. 슬기는 그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반대편에게 말했다. “자, 꺼내 보시죠. PK가 목적이 아니고 사냥을 하기 위해서 나왔다면···. 재료 아이템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게 당연하지 않나요?” “···········.” 슬기의 말에 상대는 뭐라고 대꾸하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눈치를 봤다. 정운은 그런 놈을 보고 허공에서 검을 꺼내면서 말했다. “결정났군. 네놈들이 인간 백정들이다.” 정운인 그렇게 말하는 순간 PK조의 놈들은 발악을 했다. “제길!!! 쳐!!!” “씨발!!!!” “개 새끼들아!!!!” 쥐가 궁쥐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아까 정운에게 싹싹하게 존댓말을 하면서 존경하니 마니 지껄이던 김명훈이라는 인간은 정운을 향해서 자기 무기를 들고 달려 들었다. 정운은 그런 놈들을 보고 말했다. “간이 부었군····. 뇌천신공.” 파지지직!!! 정운이 기운을 불러 일으키고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크허억!!!” “으아악!!!!” 고작 한 방이었다. 뇌기가 실린 검기가 날아가서 전방에 달려오던 유저 다섯 명에게 동시에 작렬했다. 공격이 넓게 퍼져나가면서 공격이 다섯명에게 동시에 작렬했다. 덕분에 대미지도 골고루 분산 되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섯 명은 자신들의 피통이 반피 이상으로 줄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히··· 히익····.” “괴···. 괴물이다!!!” “도망가!!!” 놈들은 단 한방에 발악을 멈추고 도주를 택했다. 용감하게 싸우는 것도 최소한의 희망이 있어야 택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정운과의 실력차이를 생각 할 때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그냥 미친 만용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파이어 월. 트리플.” 화르륵!! 슬기가 간단하게 주문을 외우자 삼중의 파이어 월이 길게 늘어지면서 도망가려는 놈들을 완전히 포위해 버렸다. “어엇····.” “마··· 망할····.” 놈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고, 정운은 그런 놈들을 보면서 말했다. “포기해라. 이미 걸린 시점에서 끝났어.”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놈들은 전원 의지를 잃고 전투 의욕도 잃어 버렸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정운은 여기서 더 반항하면 용서 없이 베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런 와중에 더 반항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전원 무기를 버리고 항복 하는 수밖에···. 사태를 정리한 후에 정운은 삼대 길드의 진짜 순찰조를 불러서 놈들을 넘겼다. “박정운 부길드 장님. 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알아서 잘 처리해.” “알겠습니다.” 정운이 최상층으로 올라간 후에 삼대길드의 간부들도 이제는 정운을 깍듯하게 대했다. 그리고 실제로 정운은 라이온 길드의 명예 간부로 부길드장도 맡고 있었다. 워낙에 부길드장이라고 하는게 없어서 정운 스스로도 가끔씩 잊어 버리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덕분에 정운이 완전 하대를 하도 뭐라고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전에 정운이 그냥 좀 잘 나가는 상위급 유저중에 하나였을 때에는 그래도 상호간에 공생관계 정도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갑을 관계···. 아니, 갑을을 넘어서 직속 상하의 계급이 성립되어 버린 것이다. 슬기는 순찰조에서 PK범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 정운에게 물었다. “정운씨··.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라운드 제로에는 감옥도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나름 방법이 있어.” “······어떤 방법요?” “얼마전에 나온 방법이야. 지금······.” 정운은 슬기에게 저들이 어떻게 될지 설명했다. 슬기는 몰랐겠지만 최근에 삼대길드가 몇몇 인원을 공통으로 빼서 하나의 길드를 만들었다. 길드의 이름은 형무소 였다. 그 이름 그대로 길드가 형무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PK나 스틸 같은 행위로 그라운드 제로의 전력을 깎아 먹는 놈들을 일일이 죽여 봤자 별 이득도 아니고 찝찝하기만 하다. 뭐··. 이제는 PK로 얻는 경험치가 대폭 상승해서 어느 정도의 이득은 되었지만···. 그래도 정운이나 십왕들 수준에서 봤을 때는 레벨 60정도는 잡아봐야 간에 기별이 갈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언더 플레이어들이라면 잡아서 경험치로 삼겠다. 하지만 일반 유저를 그렇게 해 봐야 전체적인 전력만 조금 내려갈 뿐이었다. 그래서 만든게 형무소라는 길드였다. 이 형무소라는 길드는 길드원들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의 혈맹을 강요한다. 절대복종은 물론이고 일체의 반항도 용서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키는 대로 사냥을 하고 정찰을 하고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먹을 것 입을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길드에 바쳐야 한다. 사실 일종의 강제 노동인 것이다. 스스로 자살도 금지하게 했고 명령에는 절대 복종하게 해 놨다. 자신의 죄 값을 완전히 치르기 전에는 완전히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악당들을 죽여도 찝찝하기만 하고 얻을 것은 없으니 차라리 두고두고 부려 먹자라는 생각으로 만든 길드였다. 이번에 순찰을 돌기로 시작하면서 만들었는데 아마도 저 놈들은 수감자 1호들이 될 것이다. “잘 됐네요···. 죽이는 것 보다는 그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스터. 죄는 죽어서 값는 것 보다는 살아서 값는게 더 정석입니다.” 두 여자의 말에 정운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수긍했다. 그렇게 악당들을 삼대길드의 순찰조가 모두 연행해가고 습격당했던 자들이 정운에게 다가와서 정식으로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저기···. 박정운님. 감사합니다.” “···음··. 별것 아닙니다.” 정운은 그냥 간단하게 대답하고 등을 돌리려고 했다 어째 말하는 폼이 딱 무슨 말을 할지 티가 나는 것 같았다. “저기 정운님··. 평소에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괜찮으면 저희들하고 파티 플레이라도 한 번 하면서 많이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쯧.” 정운은 살짝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지···. 물에서 구해 놓으면 보따리 내 놓으라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최근에 대범하고 간이 큰 십왕들하고 주로 붙어 다니고 있어서 많이 부드러워 진 것 같은 정운이었지만···. 사실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의 대부분의 유저를 보면 경계심부터 가지는 습관이 있었다. 슬기나 십왕들 같은 경우는 몹시 예외적이었지만 그 이외의 유저들을 대할 때는 일단 경계부터 했다. 사실 이건 신중함을 넘어서 거의 조건반사나 다름없는 현상이었다. 정운이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에서 이런 인간들이 널리고 널릴 정도로 많았다. 우리 함께 하자···. 좀 도와 다오. 같이 팀 만들지 않을래? 이런 기타 등등의 떨거지들이 널리고 널렸었다. 사실 이 인간들의 심정도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압도적일 고레벨의 유저들의 도움 한 번만 받으면 한 달을 혼자 사냥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고레벨의 유저들과 접촉을 할 기회가 생길 때 마다 안면 몰수하고 그저 도와 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구걸을 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올해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아... 이번 달 연참 페이스를 계속 유지 할 수 있을지... 사실 오늘 글을 많이 썻어야 했는데 앤더슬 실바 시합에서 완전 충격 받아서 거의 못 썼습니다. 그 부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바의 나이를 생각하면..... 실바 다리는 부러져도 제 손가락이 안 부러진 이상 글은 써야 겠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24화 저레벨의 파티원들이 정운에게 로비하는게 좀 비굴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나마 지금은 좀 점잖게 로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정운의 옆에 슬기와 세레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참고 있는 것이겠지만 보통 이럴 때 꼭 빠지지 않고 감초처럼 따라오는게 여성 유저들의 성로비였다. 은근하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성접대의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게 가장 잘 통했기 때문이다. 저레벨의 유저가 고레벨의 유저에게 줄 수 있는 골드나 아이템이라고 해도 고레벨들이 보기에는 대부분 급이 떨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그리고 실제로 그런 아이템이나 돈으로 지불하면 도와준다고 해도 손해가 더 커서 본말 전도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여자가 몸이나 주고 말자. 라는 생각을 하는 여성 유저들이 많았다. 오히려 거기서 정이라도 들면 지속적인 원조 도 받을 수 있다. 라는 계산속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실제로 지금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여성 유저 한 명이 정운을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인간들 귀찮아···.’ 정운은 딱 잘라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정운에 앞서서 슬기가 살짝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정운씨···. 그냥 레이드 한 번만 해주고 가죠?” “슬기야···.”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슬기는 정운에게 다가와서 그의 다른 사람들이 못 듣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불쌍하잖아요.” “········알았어.” 결국 슬기가 너무 착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운은 허락해 버렸다. 슬기라고 저 인간들의 속셈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착하기는 해도 그렇게 둔한 아가씨는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악의를 가지고 있건 말건 선의로 대하는 순둥이가 슬기라는 여자였다. 정운은 저 간사한 인간들이 아니라 자신의 착한 연인인 슬기를 위해서 저들을 한 번 도와주기로 했다. “레이드 한 번 뛰어줄 테니 거기에 만족들 하쇼.” “감사합니다.” “이 보답은 꼭 하겠습니다.” 정운이 레이드를 해 주겠다고 말하자 상대들은 크게 감사한다는 듯이 연신 허리를 숙이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달아 했다. 정운이 보이게 눈앞에 있는 파티의 전력으로 다크엘프 퀸을 잡는 것은 한참 이를 것이다. 대략 평균 레벨이 40~50정도 되는 유저들 다섯명 정도의 파티였는데··. 다크엘프 퀸은 레벨만 90이고 거기에 보스몹이었다. 정운의 도움 없이 이 사람들만의 실력으로 부딪히면 100% 몰살이었다. 그러니 레이드 한 번만 해준다고 해도 이들이 감지덕지인 것은 당연했다. 일행과 이동하는 내내 그쪽의 파티는 정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이런저런 아부를 했지만···. 사실 정운으로서는 귀찮을 뿐이었다. ‘빨리 레이드나 해 주고 나가야지.’ 정운은 그런 마음으로 한쪽 귀와 한쪽 귀 사이에 하이패스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완벽하게 관통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을 데리고 오랜만에 도착한 다크엘프 퀸의 성에 도착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요.” 슬기가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정겹게 바라봤다. 다크엘프 퀸은 던전형 몹으로 존재하는 보스몹이라서 그 위치가 특정되어 있었다.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크엘프 퀸의 부하들이 다크엘프 전사들이 득달같이 달려 들었다. 정운은 살짝 뒤로 물러나면서 이제까지 따라만 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해 봐요.” “예? 저희가···.” “저희들 아직 이 놈들은·· 으왓!!!” “크윽···.” 정운이 자신들에게 맡겼지만 다크 엘프 전사들의 공격에 연신 밀리고만 있는 그들을 보고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로 먹으려고 작정을 했었군···. 싸울 생각 자체가 거의 없었어···.’ 역시 정운은 이렇게 의욕 없이 묻어가는 자들에게 거저 도움을 주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애당초 이런 사람들은 무리하게 위로 올려 보낸다고 해도 제대로 사냥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뭐, 그거야 내 알바 아니지.’ “세레나. 버프 걸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이 말을 하자 세레나는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서 그들을 보조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하자 연신 밀리고만 있던 그들은 나름대로 어느 정도 싸워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정운이 말했다. “급소 맞고 한 방에 죽어버리지만 않는다면 회복은 해 줄 테니까 스스로 좀 해봐요. 그럼 보스몹은 내가 잡아 줄 테니까.”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해 볼만 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열심히 싸우기 시작했다. “으아아앗!!!” “받아랏!!!” 전체적인 공격력과 방어력이 올라가고 거기다 회복 스킬까지 후방지원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뒤로 빠진다면 경험치 쌓을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름 힘내서 싸우는 자들을 보면서 정운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구경했다. ‘···되게 못 싸우네.’ 한 10분 정도 그들이 싸우는 장면을 구경하던 정운이 자기도 모르게 든 생각이었다. 레벨이 높고 낮고를 떠나서 전투적인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표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게 없었다. 무장은 평범했다. 검과 방패, 그리고 도끼나 활 등으로 무장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뜨고 봐도 절도나 규칙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막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가장 심각한 건 저기 검과 방패로 무장한 삼인조들···. 저렇게는 몹이 아니라 길거리 대모 시위대도 못 막겠다.’ 파티로 플레이 할 때 전위. 특히 방패로 무장한 전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후방의 동료들이 공격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탄탄하게 방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게 안 되고 있었다. 커다란 라운드 실드로 무장을 하고 있는 자들이 줄 지어서 세 명이나 앞에 늘어서 있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왜 적의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쫄아서 움츠리느냔 말이다. 심지어는 공격을 받고 뒤로 점점 밀리기까지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저래서야 뒤에서 배틀 엑스를 들고 있는 공격조가 제대로 공격을 하기 힘든 것도 당연하다. 그나마 어느 정도 제 구실을 하는 것은 유일하게 원거리 무기인 활로 무장한 여자였지만···. 그녀의 공격도 썩 명중률이 높지는 않았다. 개개인의 센스가 영 없었고 그렇다고 팀웍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저런 팀이 용케 54층에는 올라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아마도 다른 길드나 파티의 레이드에 뭍어서 왔을 수도 있었다. ‘저런 팀의 가장 이상적인 공격 패턴은 방패로 적의 공격을 튼튼하게 막고 활로 대미지를 깎아내고 어느 정도 피통이 닳으면 방패로 막으면서 한 명씩 안으로 들여 보내서 도끼로 찍어 버리는 건데 말이야.’ 이 치들 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런 고도의 팀웍을 바라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초등학생 농구팀한테 앨리웁을 요구하는 격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애 충고도 그만 둬 버렸다. “하···아암·····.” “정운씨··. 실례잖아요.” “····슬기 너도 눈가에 눈물 자국이···.” “크흠····.” 정운의 하품을 들으면서 슬기가 살짝 질책을 했지만 그녀도 정운 몰래 살짝 지루함에 하품을 했던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거북이 걸음이기는 했지만 천신만고 끝에 일행은 다크엘프 퀸의 방에 도착했다. “저···. 이제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정운은 이제 슬슬 지루하던 차에 드디어 보스룸에 도착했다는 말에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중간에 차라리 내가 했던 말을 집어 치우고 전면에 나설까? 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어느새 오기는 왔나 보다. “오오오오오····.” “시끄러!!!” 다크엘프 퀸이 얼음색의 드레스를 휘날리면서 뭔가 폼을 잡으며 등장하려고 했지만···. 지금 심기 불편한 정운에게는 귀찮을 뿐이었다. 콰아앙!!! 그대로 한걸음에 달려가서 일격을 먹인 정운은 그대로 무장을 창에서 검으로 바꾸면서 공격을 가했다. “백뢰참 (百雷斬)!!” 파파파파파파파파!!! 정운의 손에 들린 애검 혈광참마도에서 뇌전의 다발이 쏱아져 나가는 것처럼 섬뜩한 참격들이 날아가서 다크엘프 퀸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백뢰참 (百雷斬) LV.5 (뇌전을 머금은 참격을 백번 날리는 기술. 계속할 수록 추가 대미지를 입는다.) 정운이 자주 애용하는 기술은 아니지만 근거리에서 검으로 싸울때는 쓸모가 많은 기술이었다. 예를 들어서 상대가 꼼짝달싹도 못 하도록 그대로 말살해 버릴 때라던가? 말이다. “하아앗!!!!” 콰아앙!! 백번의 참격이 다 끝나고 나자 다크엘프 퀸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런 다크엘프 퀸의 머리위에는 어느새 옐로우 크리스탈을 넘어서 레드 크리스탈이 떠 있었다. “용케 안 죽었네····. 54층이기는 해도 보스몹이다 이거지···.” 예전에는 홀로 이렇게 다크 엘프 퀸을 몰아 붙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운도 점점 강해지고 이제는 다크 엘프퀸 정도는 혼자서도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역시 기술 한 번에 순살 시켜버리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쩌···· 쩐다. 순식간에····.” “말도 안 돼···. 괴물이야.” 예전에 정운이 비정기 퀘스트에서 십왕의 한중겸을 봤을 때 느끼던 감정···. 그것을 지금 다른 유저들이 정운을 보면서 느끼고 있었다. 고작 2년 남짓한 시간일 뿐이지만 그만큼 정운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로 지금 정운에게 동무을 받고 있는 플레이어들 중에는 정운보다 그라운드 제로의 경력이 더 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살아남기만 급급했던 자와 위험을 무릅쓰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치열한 투쟁에 자신의 몸을 단련한 자···. 그 두 가지 차이가 이런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슬기야. 끝장내.” “예. 알았어요.” 정운은 스스로 끝장을 낼까 싶다가 슬기에게 약간 경험치가 가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슬기에게 말했다. “염소접, 소화조.” 슬기가 주작의 스태프에서 화염의 나비 네 마리와 작은 화염의 새 세 마리를 소환해서 다크 엘프 퀸에게 날렸다. 다크 엘프 퀸은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비장의 스킬인 정령의 통곡과 여왕의 저주를 쓰려고 했지만··. 그 전에 슬기의 공격이 먼저 작렬했다. 콰콰쾅!! 콰앙!!! 화려하게 폭발하는 슬기의 공격을 보고 정운은 살짝 휘파람을 불었다. “전보다 더 강해졌네. 아!! 끝났다. 띠리링. 이라는 소리와 함께 다크엘프 퀸의 사망을 확인하는 알림창이 열렸다. “와아아!!!” “이제 우리 55층에 갈 수 있다.” “만세!!!!” 자신들은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일단 윗층으로 올라갈 기회를 잡았다는 것에 기뻐하는 일행들이었다. 정운은 그런 자들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아이템을 챙겼다. 아무리 보스몹이라고 해도 54층의 몹 하나를 잡아서 올릴 수 있는 경험치와 보상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저들에게 양보할 생각도 없었다. 뭐가 예쁘다고 양보하겠는가? 실제로 저들의 입장에서는 레이드를 해준 용병비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어야 했다. “정운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앞으로는 없어요. 그럼 우리는 갑니다.” 정운은 은근슬쩍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라는 진부한 대사와 함께 은근슬쩍 잘 아는 사이로 묻어가려는 상대의 말을 딱 잘랐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짬밥이 얼마인데···. 사람 중증 호구 취급하나···.’ 정운은 그렇게 딱 잘라서 거절하고는 그대로 던전의 밖으로 나갔다. 던전의 밖으로 나와서 정우는 오늘 정찰을 그만두고 일단 스카이 시티로 돌아갔다. 이제 예전과 달리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간이 포탈을 이용해서 마을로 돌아 갈 수가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포탈을 바닥에 세팅하고 스위치를 켜자 윙··. 거리는 기계 소리와 함께 포탈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아마 사냥중에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겠지···. 실제로 전투중이거나 몹이 가까운 지역에 있으면 못 쓴다고 하더라 “그렇군요···. 아, 열렀다.” 포탈은 5분 정도의 작동 시간을 거쳐서 열렸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운은 일단 샤워를 하고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면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쇼파에서 첫 순찰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에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 피곤해라····. 한 것도 없이 지치네.” “수고하셨어요.” ============================ 작품 후기 ============================ 이제 올해도 하루 남았습니다. 모두들 올 한 해도 많은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25화 <뜻 대로 되지 않는것.> 정운의 말에 슬기가 피식 웃으면서 음료수를 챙겨 줬다. 그런 슬기를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넌 안 피곤해? 난 어쩐지 정신적으로 꽤 지쳤다는 느낌인데?” “별로요····. 정운씨가 지친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서 그런 것 아니에요?” “으음····. 그럴지도.” 원래 정운은 게으른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진취적으로 위를 향해서 도전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성격이었기에 오늘 있었던 순찰처럼 생산성이 낮은 일에는 지루함을 느끼고 또 정신적인 피로를 겪하게 느끼는 것이다. 차리리 쉬면 쉬는 거고 싸우는 거면 싸우는 거지, 오늘은 어쩐지 이도 저도 아닌것 처럼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정운을 제법 잘 아는 슬기였기에 그런 정운의 옆에 앉아서 사근사근하게 정운의 기분을 달랬다. “그래도 오랜만에 저층에 가니 기분 좋지 않았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 슬기의 애교에 정운은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뭐···. 가끔씩 이렇게 저층의 사냥도 괜찮기는 하네···. 순찰 할 때는 종종 이렇게 해야겠어. 아무래도 그냥 순찰만 하는 것 보다는 그 층의 보스몹이라도 한 두 마리 잡는게 좋겠지.” 정운의 말에 슬기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것처럼 손뼉을 찰싹 치면서 말했다. “그럼···. 지하층의 레이드를 해 볼까요?‘ “지하층?” 정운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듣고 보니 살짝 흥미가 동했다. 순찰을 돈다고 해도 꼭 지상층에서 일반 플레이어들을 지켜만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지하층에 가서 언더 플레이어들을 찾아서 머리수를 줄일 수 있다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었다. 정운이 호의적으로 보이자 슬기의 설득이 이어졌다. “예. 언더 플레이어들도 아무래도 지상층 보다는 지하층에 많지 않겠어요? 그리고 지하층의 보스몹은 우리가 잡아본 경험이 없는 몹들이니 새로운 재료 아이템을 줄 지도 모르잖아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정운은 슬기의 말대로 다음에는 지하층을 순찰하고 거기에 보스몹을 잡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그것도 다음 순찰때의 일이지···. 일단 오늘하고 내일은 좀 쉴까? 그 후에 저번에 미뤄두고 있던 사냥을 가야 겠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은근슬쩍 슬기를 잡아서 자기 품으로 끌어 당겼다. “정운씨···. 아직 저녁도 안 먹었는데···.” “뭐 어때?” “아니····. 아이참···. 하다 못해 방으로 들어가요···.” 정운은 슬기의 볼에 살짝 키스를 하고는 그대로 슬기를 가뿐하게 안아 올려서는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에 슬기를 사뿐하게 내려 놓고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살내음에 취하기 시작했다. “정말····. 요즘 너무 자주 이러는 것 아니에요?” 슬기는 자기 품안에 아기처럼 파고 들어오는 정운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싫어?”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싫지 않아요. 조금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순종적으로 정운에게 자기 몸을 열었다. 남자에게 약간 결벽증 초기증상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지만····. 정운과 연애를 하고 나서 그런쪽이 굉장히 많이 나아졌다. 세상에 그 어떤 심리 치료사 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이 가장 큰 약이라는 것일 것이다. 정운은 저녁도 거르고 슬기를 한참 동안 사랑한 대가로···. 문득 이른 새벽녘에 깨 버렸다. 슬기는 자기 품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지만 조금 이른 시간에 깨 버린 것이다. 정운은 그대로 자세를 조심스럽게 틀어서 자기 품안에서 안심하고 자고 있는 슬기를 바라봤다. “·············.” 그저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행복한 느낌이 그냥 예쁜 여자이기에 따라 오는게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슬기를 향한 정운의 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정운으로서는 슬기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게 평생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 세레나와의 그날 밤의 비밀을 생각할 때 마다 그리고 그날을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때 마다···. 슬기에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미안해····. 그래도 두 번은 없을 거야.” 정운은 슬기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사과하듯이 말했다. 사실···. 이것조차도 남자의 이기심일 뿐이다. 한 번이 되었든···. 두 번이 되었든····. 슬기가 그 사실을 안다면 상처 받고 아파할 것은 자명했다. 비록 이유가 있었다고는 해도 정운은 세레나를 안았고···. 그리고 그날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마음 한 편으로는 그리워 하고 있었다. 그런 정운의 마음을 안다면 이 마냥 착하기만 한 여자가 얼마나 상처 받을까? 그걸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진신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최근 들어서 슬기와 살을 겹치는 횟수가 특히 더 많아졌다. 이것도 어떤 의미로는 그저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다잡기 위해서 이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와 살을 겹치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레나에 대한 기억도···. 슬기에 대한 죄책감도 그만큼 희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구나···. 나란 놈도 어지간한 놈이야····.’ 정운은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슬기의 뺨을 쓰다듬는 손에 애정을 더했다. 꼬르륵····. 정신이 슬프던 죄책감에 쩔든···. “이런 와중에도 배는 고프구나.” 정운은 피식 웃었다. 저녁도 안 먹고 이른 시간부터 슬기하고 한 침대에서 계속 있었다. 어중간한 시간에 잠이 깨고 나니 이제야 배가 고픈 것이다. 정운은 슬기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슬기의 머리를 바치고 있는 자기 팔을 빼고 거기에 배게를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마찬가지의 요령으로 조심스럽게 슬기를 깨우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으음···.” 정운이 나가고 나자 슬기는 없어진 정운의 허전함을 달래려는 듯이 정운의 배게를 끌어 안았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목까지 이불을 덮어줬다. 그리고 부엌으로 나간 정운은 일단 냉장고를 여기저기 뒤져봤다. 요리재료는 참 많은데 뭔가 만들어 먹기가 귀찮았다. “메이드 들을 깨울까? 아니 그것도 좀 그런데····.” 집에 가사 일을 하고 있는 메이드들을 새벽 4시에 깨워서 밥 달라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한 진상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산기슭을 뒤지는 하이에나처럼 부엌을 뒤적뒤적 거리던 정운은 결국 득템을 하고 말았다. “이거···. 엄청 오랜만에 먹는 것 같은걸?” 정운이 득템한 아이템. 그건 바로 인스턴트 봉지 라면이었다. 항상 가사 메이드들이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있었기에 언제 부터인가 라면을 먹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알겠지만 때로는 이런 몸에 안 좋고 합성 조미료가 만땅으로 들어있는 음식이 당길 때가 있는 법이다. 정운은 바로 냄비에 물을 받아서 신중하게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딱 손가락 한 마디까지만···. 그게 정량이지.” 정운은 마치 연금술이라도 할 것 같이 물을 맞추고는 그대로 냄비를 불에 올렸다. 그리고 스프와 건더기 스프를 모두 물에 넣었다. “그렇게 해도 되나요? 설명서에는 물이 끓고 나서 집어넣으라고 되어 있었는데?” “응? 아아····. 그렇기는 한데 어차피 면 빼고는 처음부터 넣어도 별 차이는 없어. 거기서 거기···. 세레나?” 정운은 언제부터인가 자기 옆에 다가와 있는 세레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마스터.” “으응···.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아직 새벽 4시 밖에 안 됐는데? 혹시 나 때문에 깬거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전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날 뿐입니다.” “······그거 굉장하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생활이라니···. 정운은 스스로 그런 생활은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자라고 하면 그렇게 할 자신은 있었다. “한 개 더 끓일까?”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마스터에게 그런 수고를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괜찮으니 혼자서 드십시오.” “으응···. 그러지 뭐.” 하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것중에 하나가 남이 빤히 지켜보는 와중에 혼자 뭐 먹는 것이다. 정운은 차마 혼자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고 세레나에게 말했다. “역시 혼자 먹기는 좀 그래. 이리 와서 같이 먹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작은 그릇 하나를 꺼내서 세레나에게 라면 반을 덜어 줬다. 새벽에 라면 하나를 둘이서 나눠 먹으니 이건 이것대로 정취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취를 슬기가 아니라 세레나하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 정운은 아무 말 없이 라면을 먹으면서 세레나가 먹는 것을 흘깃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라면을 먹는다. 라는 행위에서 우아함을 깃들일 수 있는 것일까?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에 오기 전에 어떤 웹툰에서 나온 캐릭터가 하는 것을 보고 말도 안 돼. 라고 했던게 지금 정운의 눈 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라면 회사에서 봤으면 참 좋아했겠다. CF모델로 최고겠지.’ 정운은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세레나를 바라봤다. 별로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런 시간에 단 둘이서 있다 보니 역시 의식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운의 눈에 보이는 세레나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평온함과 무뚝뚝함이 어우러진 그녀 특유의 쿨한 표정이었다. 도저히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운은 안다. 그녀가 항상 저런 표정만을 짓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날 밤. 자신의 품 안에서 안기던 그녀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도 아니었고 성인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사랑스런 여인의 얼굴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가식이 아니었다. 어쩌면···, 생전에 잔 다르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을 살 때····. 그녀는 모든 것을 억눌러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보통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당연하고 소소한 행복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오를레앙의 성처녀라는 호칭에 깃들어있는 존경과 경외는 그녀가 개인으로서의 행복을 모두 포기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녀가 평화로운 세상에서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랬다면···. 좀 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정운은 세레나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평범하게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정운에게 자연 스럽게 떠올랐다. 국가의 위기를 구해내는 오를레앙의 성처녀 보다는 그런 모습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정운의 시선을 느낀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해다. “마스터, 뭔가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은 정운이었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운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사적인 접점은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망설이는 정운에게 세레나가 말했다. “마스터··. 내일 사냥을 위해서 외출을 잠시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외출? 세레나 당신이 사냥을 위해서라고?” “예. 장비를 조금 업그레이드 할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 장비를···. 장비를!!!?” “·········.” 정운은 깜짝 놀랐고 세레나는 그런 정운을 보면서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정운이 이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운이 알고 있는 세레나는 장비의 우위를 앞세워서 자기 힘을 증신 시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 같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고 이제까지 쭉 그랬다. 그래서 그녀의 장비를 항상 정운이 옆에서 맞춰주고는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먼저 장비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떻게··. 가지고 싶은 장비라도 생긴 거야?” “그런건 아닙니다. 다만, 마스터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있는 동안, 아이템을 그냥 도구 취급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과연····. 알겠어. 사냥은 내일이니까 오늘은 얼마든지 갔다 와.” “감사합니다. 마스터.” 정운이 보기에 세레나의 이런 변화는 고무적인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딱딱함을 버리고 조금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상황에 순응해 주는 유연함이 생긴 것이다. “마스터께서는 어쩌실 겁니까?” “응? 나? 오늘?” “예. 그렇습니다.” “흐음····. 별것 없는데? 그냥 뒹굴뒹굴 거릴거야.” ============================ 작품 후기 ============================ 올해도 이제 마지막 하루 입니다. 으으으. 이제 오늘만 연재를 잘 하면 이번달은 쭉 연참으로 마무리를 짓게 되는 거군요. 여러분들이 항상 응원해 주셔서입니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26화 정운이 한가하다는 말에 세레나는 조금 생각하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되신다면, 저와 같이 상점으로 가서 아이템을 고르는 것을 지켜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으음····. 이제 혼자서도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정운은 이제까지 세레나가 아이템을 고를 때 마다 자신이 가서 직접 아이템을 세팅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세레나가 이제까지 아이템 세팅에 전혀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레나도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세팅하기 시작한다면 거기에 자신이 꼭 끼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세레나하고 단 둘이 어디로 가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고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레나에게 거절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가지 그래요? 하암····.” 막 거절의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방문을 열면서 슬기가 나타났다. “슬기야···. 일어났니?” 정운은 순간 뭐 잘못 한 것도 없는데 가슴이 출렁 거렸다. 이런걸 보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걸까? 슬기는 정운에게 다가와서는 볼에 살짝 키스를 하면서 말했다. “어차피 그냥 쉴 거면 잠시 시간 내줘서 아이템 세팅 좀 봐 줄 수 있잖아요?” “아니 그거야····.” 정운이라고 왜 안 그러고 싶겠는가? 하지만 애써 거절하려고 하는데 저 착한 슬기는 눈치도 없이 정운을 세레나와 또 단둘이 만들려고 한다. 아무런 위기감도 없이 말이다. 슬기는 허리에 손을 얹고 쇄기를 박듯이 말했다. “귀찮아하기 없기. 갔다 오세요. 내가 맛있는 것 해 놓고 기다릴게요.” “·······알았어.” 결국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알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슬기가 자신과 세레나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진실을 고백할 배짱은 없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세레나를 흘깃 바라봤다. 좌불안석인 자신과 달리 세레나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세레나만 보면 둘이서 있었던 그 날 밤의 일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던 허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자는 다 요물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말 한 놈은 현자야.’ 정운만 그렇게 한 숨을 내쉬었다. 스카이 타운의 아이템 상점은 커다란 백화점의 안에 있었다. 보통 스카이 타운의 주민들은 이 그라운드 제로의 게임에 관해서 모르고 자연스런 주민으로서 지낸다. 하지만 이 백화점 안에 있는 점원들은 다르다. 그들은 아이템에 관해서 알고 있고 필드에 출몰하는 몹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성기사 계열이라면 이 아이템이 어떠신가요? 지금 입고 계신 장비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아이템이랍니다.” 점원은 세레나에게 붙어서 사근사근하게 로비를 했다. 세라는 점원이 내미는 아이템을 살피면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세레나는 셋 중에서 장비 자체는 가장 나빴다. 하지만 그건 장비 하나하나만 봤을 때의 일이다. 지금 세레나가 장비하고 있는 대천사의 성검, 대천사의 갑옷, 대천사의 방패는 하나한의 수준은 100레벨의 유저가 아니라 80레벨 후반, 혹은 90레벨 초기의 유저에게 어울릴 수준이었다. 하지만 성기사인 세레나가 이 세 가지 아이템을 동시에 착용하면서 발생하는 세트 아이템 효과가 장비의 떨어짐을 충분하게 메우고 있었다. [대천사의 가호 발동] 공격력을 300% 올린다. 방어력을 300% 올린다. 저주에 강한 내성을 지닌다. 언데드나 악마들에게 강한 공격력을 지닌다. 천사의 날개로 하루 20시간 비행이 가능하다. 이 정도의 보조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비의 불리함을 충분하게 커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슬슬 수정해야 할 때다. 아무리 세트 아이템의 효과가 좋아도 이제는 슬슬 장비 자체의 질이 떨어져서 사냥에 문제를 가져오는 시기였다. 그러나 계속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세트 아이템 효과가 가져오는 보조 효과 중에 있는 비행능력 때문이었다. 천사의 날개를 이용해서 싸우는 스타일은 세레나가 자신의 강함을 가장 강력하게 이용 할 수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비행 자체에 메리트를 두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세레나 본인에게 비행 스킬이 생겨 버렸다. 홀리 윙 : LV.1 (등 뒤에서 신성한 날개를 만들어서 하늘을 날 수 있다. 레벨이 오르면 비행 속도도 빨라진다.) 이 스킬 덕분에 세레나도 이제 자유롭게 아이템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비행 자체는 앞으로도 쭉 가능해 졌다. 그렇다면 아이템을 바꾼다고 해서 전투 스타일이 변할 필요는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상 정운이 보기에 세레나의 아이템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바꿔야 하는 것은···. “세레나, 갑옷 말고 검으로 하자.” “검··.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 상황에서 너에게는 방어력보다는 공격력이 더 시급해. 슬기도 이제 어느 정도 자기 몸은 지키잖아?” “음···. 알겠습니다. 그대. 나에게 검 종류의 아이템을 보여 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고객님.” 점원은 전혀 짜증나지 않는다는 듯이 생긋생긋 웃으면서 갑옷 대신에 검의 카탈로그를 꺼내기 시작했다. 정운과 세레나의 전체적인 능력은 비슷했지만··. 아마도 싸운다면 틀림없이 정운이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세레나에게는 정운의 방어력을 뚫고 큰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세레나의 공격 스킬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유니크 스킬인 신의 철퇴이지만···. 이건 함부로 막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스킬을 제외하고 나면 세레나는 막강한 방어력에 비해서 공격력이 좀 떨어지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었다. 사실 세레나가 그렇게 방어 중심으로 성장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원래 방패를 장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초창기의 세레나는 방어가 굳건 하다기 보다는 공수 양면의 균형이 잘 잡힌 성기사 캐릭터였다. 하지만 정운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점점 더 변해갔다. 전투중에 정운에게 가장 많이 듣는 명령이 하나 있다. 바로···. [세레나, 슬기 좀 지켜 줘.] 였다. 위급한 순간. 혹은 정운이 앞으로 나가서 용맹하게 돌진하기 전에는 항상 정운은 세레나에게 슬기의 가드를 맡겼다. 실제로 정운이 여차할 때 용감하게 앞으로 돌진 할 수 있는 것은 세레나라는 굳건한 방패가 슬기를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세레나의 기술도 점점 방어 위주로 생겨난 것이다. 비행 스킬을 이용해서 공격을 할 때도 치고 빠지는 아웃 파이팅 스타일로 싸우는 것은 적을 몰아 붙일 공격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레나의 아이템 중에서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방패나 갑옷이 아니라 검이었다. 세레나는 점원이 보여주는 다양한 무기의 카탈로그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가능하면 현물을 보고 싶은데···.” “아!!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기 아이템 시험실로 가시죠.” 점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를 데리고 이동했다. 정운 역시 세레나를 따라서 이동했고 둘은 허공에 검과 무기들이 가득한 무한한 방에 도착했다. 까마득한 숫자의 무기가 허공에 붕붕 떠 다니고 있었고 그 외에는 사방에 지평선 밖에 보이지 않는 이 황야가 무기의 성능을 시험하기위한 시험실이었다. ‘꼭 어디 일본 애니에 나오는 세계 같은걸····.’ 활 잘 쏘는 백발의 남자가 최종 오의로 쓸 법한 기술에 나오는 세계가 문득 생각나는 광경이었다. “우선 손님이 지금 쓰시는 검 보다 상위 클래스의 검이라면 대강 이정도 겠네요.” 점원은 그렇게 말하자 샐 수도 없이 많았던 검들이 한 10분의 1 정도로 줄어 들었다. 하지만 아직 무기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점원이 좀 더 범위를 좁히기 위해서 세레나에게 다시 말했다. “혹시 준비하신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요?” 점원의 말에 대답한 것은 세레나가 아니라 정운이었다. “5억 골드 안으로 보여줘.” “알겠습니다. 5억 골드 말씀이시죠?” 그러자 다시 수많은 검들이 팍 줄어서 세레나의 앞에 대략 20자루 정도의 검들이 늘어섰다. 그 이외의 검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거기까지 상품을 간추린 점원은 세레나에게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가 추천 상품이 되겠습니다. 시험해 보실 몹을 소환해 드릴까요?” 상점 점원의 말에 역시 정운이 다시 대답했다. “필요 없어. 내가 직접 상대 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자리를 비울 테니 필요한 일이 있거든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점원이 나가고 세레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검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그녀도 검을 보는 안목은 있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의 상점에서 파는 물건은 그냥 롱소드 한 자루라고 해도 검으로서의 질은 상당한 명검의 수준에 들어가는 것들이다. 그립의 감촉, 검의 중심, 날의 예리함 등등··. 모두 최상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세레나처럼 무기를 보는 안목이 없어도 재수 없게 꽝을 뽑을 일은 없다. 평범한 일반 유저들은 그냥 무기의 속성이나 공격력이 적혀 있는 검을 살펴보면서 신중하게 결정 하는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건 남의 일이고 세레나는 항상 꼼꼼하게 검 자체의 성능부터 한참 살핀 후에 무기를 선택 했다. 정작 그 무기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으로서의 성질에는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그녀가 그렇게 검 자체의 성능은 의심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일종의 모순처럼 느껴졌다. “·····이것과 이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스터. 둘 중에 뭐가 더 어울리는지 골라 주시겠습니까?” 엄격함 심사를 통해서 최종 후보 두 개를 압축한 후에 세레나는 정운에게 선택을 맡겼다. ‘점수라도 매길까···. 쩝.’ 정운은 세레나가 가져온 두 자루의 검의 성능을 살펴봤다. 데몬 브레이커 공격력 : 5,000 무게 : 100 내구력 : 400 [전설의 엑소시스트가 사용하던 대 악마 전용의 검. 악마들에게 치명적이 효과를 발휘하며 악마 한 마리를 해치워서 봉인할 때 마다 데몬 스트라이크라는 기술을 쓸 수 있다. 한 번 사용한 데몬 스트라이크를 다시 충전하기 위해서는 악마를 또 잡아야 한다. 한 번에 한 마리 이상의 악마를 봉인해 둘 수는 없다.] 능천사의 성검 공격력 : 4,500 무게 : 50 내구력 : 700 [천사 중에서도 전투계열인 능천사의 성검. 악마나 언데드 등에게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신성력을 보조하고 사용자는 독과 저주에 강한 내성을 지닌다.] 두 무기의 속성을 확인한 정운은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중얼 거렸다. “어째···. 상당히 대조적인 무기를 골랐네.” “예. 데몬 브레이커라는 무기는 제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능천사의 성검은···. 비록 레플리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 손에 익은 천사의 무기이고요··.” “두 가지 다 시험해 보자. 내가 상대해 줄게.”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정운은 쉐도우 아머를 입고 자신의 무기를 들고 세레나와 대치했다. 예전이라면 세레나와 일대일 대결을 했을 때 스킬 없이는 거의 상대가 안 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가르침으로 인해서 이제는 스킬없이도 세레나와 충분히 대련을 할 수 있게 성장했다. 애당초 세레나는 정운에게 부족한 부분을 살짝 보오나 했을 뿐. 정운 본인이 이미 그라운드 제로에서 사선을 넘으면서 확고하게 단련된 전투 스타일은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스킬을 곁들이면··. 오히려 정운이 세레나를 압도 할 수도 있었다. “으아아앗!!!!” “쉐도우 월!!!” 콰아아앙!!!! 세리나의 돌진이 정운의 방어 스킬에 의해서 막혔다. 그대로 적의 기세를 막은 정운은 쉐도우 월을 해제하는 것과 동시에 세리나의 품안으로 파고 들어서 어깨로 가슴을 강하게 쳤다. “흡!!!” 심장이 턱 막힐 것 같은 충격에 세레나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물러나려는 세레나를 뒤 따라 가는 정운은 그대로 한쪽 발을 낫처럼 뻗어서 세레나의 발목 부분을 걸었다. 콰당!! 세레나는 그대로 쓰러졌고 그 위에 정운이 살짝 검 끝을 내밀었다. “후우우···. 졌습니다. 역시 스킬을 써가면서 싸우면 제가 상대가 안 되는 군요.” “당신이 스킬을 너무 안 쓰는 거야. 비행 스킬 말고는 활용을 안 하니 그런 거지.” “필요할 때는 씁니다. 하지만 역시 대 인간의 대련에서는 좀처럼 그 필요한 순간을 찾지 못하겠더군요.” 둘은 대련을 마치고 일단 무장을 해제했다. ============================ 작품 후기 ============================ 해 냈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연재 입니다. 이제... 내일의 새해의 첫 해 연재를 준비해야 겠죠.ㅠㅠ;;; 1월 4일에 한국인 UFC 시합을 보려면 부지런히 비축분을 준비해야 합니다. 새해가 되어도 계속 글 써야 겠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27화 두 가지 무기를 다 이용해서 대련은 해 봤다. 그리고 정운은 세레나에게 결과를 말했다. “데몬 브레이커 보다는 능천사의 성검이 더 좋은 것 같아. 그 검의 특수 능력이 좀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발동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차라리 항상 일정한 힘을 발휘하는 능천사의 성검이 더 좋을 거야.” “역시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레나는 검을 대천사의 성검에서 능천사의 성검으로 바꿨다. 세트 아이템 효과는 사라졌지만 가장 중요한 검의 기본 공격력이 3,000에서 4,500으로 늘어났다. 원래 버프는 세레나의 특기이기도 하니···. 이 정도면 이제 세레나의 공격력도 충분히 업그레이드 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점원의 배웅을 받으면서 상점을 나온 정운과 세렌나는 어쩐지 어중간한 시간에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라···. 배 고픈데?” “근처의 식당에서 뭔가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뭐.” 아이템을 생각보다 빨리 구입한 덕분에 세레나와 정운은 어디선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둘은 간단하게 때울 생각으로 가까운 패스트 푸드점에 들어갔다. 세레나는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시대에 없었던 이런 음식들을 참 좋아한다. 라면이라던가? 햄버거라던가···. 지금도 디럭스 더블 버거에 양념 감자튀김에 치즈 스틱과 레몬에이드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햄버거를 그렇게 먹어도 살 안 찌는게 신기하단 말이야.” 여자에게 먹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은 금기였다. 하지만 정운의 말에도 세레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제 입장에서는···. 살을 빼기 위해서 식사를 굶는다는 것이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긴····. 당신의 경우는 그랬겠지.” 정운은 순순하게 납득했다. 그녀가 살던 시기에 프랑스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나라였다. 식량 사정이 좋았다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녀는 전쟁터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이렇게 풍요로운 식탁은 그녀에게 있어서 굉장히 행복한 광경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정운은 자기 몫의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세레나에게 말했다.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시 사냥에 나가야 하는데···. 새삼스럽지만 잘 부탁해.” “말 그대로 새삼스럽게군요. 저는 마스터의 명령에 절대 복종합니다. 저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은 어폐입니다.” 정운은 피식 웃었다. 세레나가 말하는 절대 복종이라는 것은···. 일종의 계약에 가까운 말이다. 그녀가 천계의 밀명을 받아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개입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미 유저로 활동하고 있는 인간과의 계약이 필요했다. 그랬기에 가능하면 욕심이 없고 영혼이 맑은 인간을 구해야 했고···. 퀘스트의 형태로 정운과 슬기를 시험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말하는 절대복종이라는 것은 정운이 결구 자신에게 내려진 천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운에게 복종하는 것 뿐이다. 그녀 본인이 정운에게 뭔가 충성을 다 할 의무는 없었다. ‘···문득 여기까지 생각하니···. 좀 신경 쓰이네. 세레나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정운은 본인이 세레나늘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잘 알고 있었다. 슬기에게 절대로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운은 세레나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세레나는? 세레나는 정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마스터? 동료? 이용수단? 계약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서 세레나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세레나. 당신 날 어떻게 생각해?” 말을 하고 나서 정운은 스스로 ‘아차’ 라고 하면서 자신을 자책했다. 그걸 알아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하지만 말이라는게 한 번 입 밖으로 내면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통용되는 공통점이었다. 세레나는 정운의 질문에 곰곰하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는 마스터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운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뭐···. 거의 내일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라는 말하고 비슷한 투로 말을 하는게 아닌가? 완벽한 포커 페이스로 햄버거를 먹으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 순간 이게 진심은 진심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세레나, 지금 네가 말하는 사랑은, 자애··, 그러니까 모든 이들에게 베푸는 공평한 사랑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아니면 뭡니까? 마스터.” 여전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있는 세레나를 보면서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여자는 신경이 없는 건가?’ 오히려 자신이 버벅 거리게 만드는 세레나의 포커페이스에 정운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남녀간의 이성적이 사랑을 말하는 거야?” “···········.”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처음으로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입은 쉬지 않고 감자 튀김을 먹고 있었지만 그거랑 별개로 표정은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듯한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했다. “만약. 제가 여자로서 남자인 마스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슬기와 헤어지고 저와 연인이 되시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정운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렇다. 만약 세레나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어쩌겠는가? 세레나와 사귀기 위해서 슬기와 헤어지고 버린다? 말도 안 되는 개자식이다. 그럼 뭔가? 일단 마음만 들어두고 만약 슬기와 잘 안되거나 할 때의 보험으로 잡아둔다? 말도 안 되는 궁극의 개자식이다. 뭐가 되었든 간에···. 이미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니 없어야 하는 것이다. 정운에게는 슬기 같이 착한 여자를 버리고 상처 입힐 선택지가 없었고···. 세레나에게도 자신의 친구인 슬기를 불행하기 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이기심은 없었다. 뭐가 되었든 간에 결과는 같은 것이다. 세레나는 정색을 하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마스터. 얼마 전의 ‘그 일’ 이후로 마스터께서 많은 동요를 하고 계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역시 티가 났나?” “고의로 저를 멀리하려고 하시는게 다 보였으니까요. 슬기가 저에게 몇 번인가 말하더군요. 혹시 밉보일 일이라도 했느냐? 아마도 오래가지는 않을테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 그런 식으로 수도 없이 말했죠.” “··············.” 정운으로서는 미처 몰랐던 일이다. 자신이 세레나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일에 오히려 슬기가 세레나를 위로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대체···. 슬기 넌 어디까지 착해야 하니···. 차라리 네가 좀 나쁜 여자였다면·····.’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만약에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만약에였다. 그리고 세레나의 말이 정운에게 이어졌다. “마스터,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리고 마스터가 저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던, 어차피 우리 사이에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당신의 눈앞에서 숨쉬고 말하고 움직이고 있지만, 본래 저라는 여자는 마스터가 태어나기도 전인 까마득한 과거에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여자입니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건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슬기를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말 전부입니다.” “·······그래····야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마스터.” 세레나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고, 정운은 홀로 남아서 의자 뒤에 몸을 기대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세상 살기 참 지랄 맞지····.” 슬기라는 연인이 있고 그녀와 충분한 행복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끝없는 욕심은 세레나를 쉽게 놔 주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에 돈이나 권력 같은 개인적인 욕망을 목적으로 해서 들어온 자들을 한편으로 경멸했고···. 또 한편으로는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너희들 하고 달라. 최소한 난 너희들처럼 자기 욕심 때문에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을 하고 있지는 않아. 본인 스스로 대 놓고 말 한 적은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런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우월감이···.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했던 근간이···. 오늘 다 무너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도 욕심 투성이의 추하고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 뿐이지······. 다를건 아무것도 없었어.” 정운은 스스로가 너무 웃겨서 헛웃음이 나왔다. 욕심이 없는 인간은 없다. 다만 그 욕심의 목적이 선이냐? 악이냐? 인해서 그 인간의 성향이 갈릴 뿐이었다. 모든 인간들이 그런 욕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현실이든 그라운드 제로든 별로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정운씨 안 오네···. 세레나, 정말 괜찮은 거에요?정운씨가 당신 먼저 보낸지도 한참인데···?” 슬기는 거실에서 세레나를 보면서 안절부벌 못하면서 말했다. 그런 슬기를 보고 세레나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필드에 나간 것도 아니고 마을 안에 있는 겁니다. 뭐가 걱정입니까?” “너무 늦으니까 그렇죠····. 혹시 나가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이템을 맞추고 저는 먼저 오고, 마스터는 좀 더 늦게 오기로 한 것 뿐입니다.” 세레나의 말에 슬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오늘 하루만 몇 번째 한숨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나 왔어···.” 정운이 현관의 문을 열고 도착했다. 슬기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도대체··. 읍··. 술 냄세···.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정운에게 화를 내려던 슬기는 그대로 정운의 부축부터 했다. 정운과 알고 지낸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그가 이렇게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처음 보는 슬기였다. 정운은 슬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별 것 아니야. 오늘은 좀 마시고 싶었어.” “····식사는요?” “술 먹으면서 대강 먹었을 걸? 그보다 슬기야.” “······왜요?” “사랑해.” 정운이 갑작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을 끌어안자 슬기는 순간 당황했다. 로맨틱해서? 그럴 리가 있나? 갑자기 술에 취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를 뿐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들어가서 씻고 자요. 술 냄새 때문에 지금은 키스도 못 하겠어요.” “진짜? 나 섭섭해 할라.” “정말····.” 슬기는 정운과 지내오면서 정운이 이렇게 취한 것도···. 이렇게 취해서 주사를 부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술 취한 남친 혹은 남편 달래기는 오래전부터 여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짜증나는 행위중에 하나였다. “자!! 빨리 씻고 들어가서 자요!! 어서!!!” “알았어···. 화 내지 마····.” “빨리요!!!” “···········.” 슬기는 낑낑 거리면서 정운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 “어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세레나 혹시 뭔가 짐작가는 일이라도······. 세레나?” “그걸···. 저에게 묻지 말아 주십시오. 슬기.” “·······세레···나?” “················.” 슬기는 자신과 눈을 마주한 세레나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분노와 짜증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긴 여자의 얼굴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순하고 둔하고 순하고 둔하고 순하고 둔한 슬기의 가슴 속에·····. 처음으로 작지만 의심의 싹이 텄다. 아직은 작은 싹일 뿐이지만···. 어쨌든 싹은 틔운 것이다. ============================ 작품 후기 ============================ 2014년 새해에도 복 많이들 받으시고 하는 일 다 잘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28화 <68층 본격 탐사> 순찰이다. 아이템 세팅이다···. 이런저런 일들은 많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68층의 사냥을 할 시기가 되었다. 68층에서 이제까지 제일 많이 잡았더 것은 다크레이스였지만 오늘의 목표는 달랐다. 이전에 한 번 사냥에 실패했던 몹인 팬텀 나이츠가 목표였다. “세레나. 신의 철퇴 준비는 문제 없겠지?” “물론입니다. 마스터.” “슬기야. 너도 작전 포인트는 잘 숙지했니?” “예. 문제 없어요.” “좋아. 집중들하고··. 계획대로 움직여 줘. 시작한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오랜만에 몰이 사냥에 들어갔다. 슬기도 세레나도 어젯 밤에 정운이 술에 취했던 추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어젯밤의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운도 마음을 다 잡았다. 어찌 되었든 여기는 필드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현장인 만큼 준비에 소흘함은 없어야 했다. “쉐도우 아미.” 정운은 우선 쉐도우 아미를 아홉기 전원 소환했다. 그리고 그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들과 함께 팬텀 나이츠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대한 끌어 모아야 겠지····. 시작하자. 기마 차지!!!” “히히힝!!!”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흑토가 거칠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정운을 포함한 아홉기의 쉐도우 아미들이 동시에 열을 지어서 달렸다. 콰콰콰콰콰!!!! 열기의 기마대가 열을 지어서 진군하는 형태는 겉으로 보기만 해도 대단했다. 스킬로 인한 돌진력 때문에 중간에 걸린 팬텀 나이츠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릴 뿐이었다. 이거 한 방으로 팬텀 나이츠를 잡는 것은 사실 무리다. 하지만 주의를 끄는 것에는 충분히 성공했다. 주변의 팬텀 나이츠들이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정운들을 잡으려고 작정을 했다. “이쯤하면 되었나···. 시작하자!!”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횡대로 늘어서서 정운의 옆을 달리던 쉐도우 아미들이 흩어졌다. 그리고 정운은 ME를 귀에 대고 세레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마스터, 오른쪽에 20기 정도의 일개 소대가 우회하면서 포위망을 구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좌측에서도 30기 정도가 동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케이. 계속 상황 전달 부탁해.” 세레나의 지시를 듣자마자 정운은 쉐도우 아미 중에 두기를 보내서 위치한 곳의 기마대를 공격하게 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죽자 살자 공격 하는게 아니라 치고 빠지는 식으로 성질만 건드리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적들의 포위망을 구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정운만 이렇게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복잡한 고도의 지시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슬기였다. -슬기. 포인트 A-3에 파이어 월. A-5에 어스 핸드. 10초 후에 연달아서 A-5와 A-5에 파이어 월. “알았어요. 세레나.” 화르륵!! 콰르릉!! 세레나의 지시에 따라서 슬기의 마법이 절묘하게 끼어 들었다. 둘은 사전에 지형의 위치에 관해서 포지션을 정하고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슬기가 쓰는 마법은 직접 공격 계열이라기 보다는 간점 공격기들이었다. 불의 벽이나 대지의 마법으로 적의 발목을 잡고 진로를 방해하면서 거기에 걸리면 대미지를 주는 형식의 그런 마법들이었다. 강력한 공격 마법을 쓰면 슬기도 팬텀 나이츠 몇 기 정도는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세레나의 일사 분란한 지휘를 방해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작전에서 팬텀 나이츠의 어그로를 끄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운이어야 했다. “··할 수 있겠어···. 상상 이상으로 잘 될지도 몰라.” 쉐도우 아미들을 이용해서 팬텀 나이츠의 어그로를 잔뜩 끌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전체적인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잘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 팬텀 나이츠를 잡기 위해서 정운이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팬텀 나이츠를 잔뜩 끌어 모아서 세레나의 유니크 스킬인 신의 철퇴로 잡는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얼마나 어그로를 잘 끄느냐? 에 관해서 문제가 봉착했다. 팬텀 나이츠는 65층의 광폭한 육식소와는 달랐다. 광폭한 육식소는 그저 일직선으로 달려올 뿐이ㅣ었다. 그 파괴력과 돌진력은 어마어마했지만 그게 다였다. 육식소를 다소 무리해서라고 한곳에 끌어만 오면 세레나의 신의 철퇴로 싹쓸이가 가능했다. 그런데 팬텀 나이츠의 경우는 끌어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놈들은 막무가내로 움직이지 않고 사냥감을 잡는 사자무리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뒤쪽에서 쫒아오는 상대를 신경쓰고 있으면 어느새 앞에 툭 튀어나와 있는 또 한 무리를 만나게 한다. 거기다 하늘까지 날고 때문에 함부로 위로 도망 갈 수도 없었다. 결국 놈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포위망을 잘 파악하고 도망가야 했다. 그렇다면···. 그걸 누가 어떻게 하느냐? 정운은 이번 몰이 사냥에 한해서 파티의 지휘권을 세레나에게 넘겼다. 그녀는 생전에 잔 다르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실제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뭐, 잔 다르크가 제갈공명이나 손자처럼 전쟁터에서 신묘한 전략을 구사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적이 없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평지에서 군의 흐름 정도는 셋중에 누구보다 더 잘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지휘를 맡기고 정운은 쉐도우 아미들을 이용해서 직접 어그로를 끌고··. 슬기 역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마법으로 보조하면서 팬텀 나이츠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거기에 관해서도 세레나가 많은 준비를 했다. 미리 끌어오기 위한 평야지대에 세레나가 지도를 작성해서 미리 위치마다 포인트 이름을 지어서 기민한 마법 전개가 가능하도록 했다. 정운은 땅에서 세레나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몸과 쉐도우 아미들을 움직였다. 슬기는 하늘에서 세레나가 작성해준 지도를 보면서 부지런히 마법을 쓰기만 했다. 실제로 이 사냥에서 최고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세레나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는 세레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이 맺힐 것 같았다. 세레나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포인트대로 팬텀 나이츠의 무리를 완전히 몰아넣는 것에 성공했다. -마스터. 방어 상태로 십초만 견뎌 주십시오. “알았어. 빨리 해!!” 세레나의 지시가 떨어지자 정운은 바로 쉐도우 아미들을 자기 주변에 둘러 둥글게 원진을 만들었다. 카캉!!! 콰지직!! 팬텀 나이츠들이 사방에서 거센 공격을 퍼부었지만 10초 정도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성스러운 태양이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여전하구만···.” 정운은 같은 파티였으니 대미지는 없었지만 눈부신 섬광 때문에 시야가 새하얗게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나자 세레나와 정운 슬기, 이 세명의 레벨이 모두 한 단계씩 올랐다. 정운과 세레나의 경우 경험치 바가 간당간당한 상태였으니 그렇다 치고··. 슬기의 경우 아직 경험치 바가 10분의 1은 넘게 남아 있었는데 한 번에 그만큼의 경험치가 들어올 줄은 미처 몰랐다. “호오··. 셋의 레벨이 동시에 오른 건 처음이네.” “확실히 68층의 몰이사냥은 얻을 수 있는게 많은가 봐요. 재료 아이템이나 다른 골드의 이득을 봐도 1억은 넘게 챙긴 것 같아요.” “이걸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한 다는게 좀 아쉬운걸?” “그렇군요···. 제가 신의 철퇴를 좀 더 쿨 타임 없이 쓸 수 있었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워낙 반칙 같은 기술이라서 쿨 타임이라도 길지 않으면 게임의 밸런스가 맞지 않을 거야.” “그건 그렇죠. 그래도 아쉽기는 하네요.” 정운을 뿐만 아니라 슬기와 세레나도 무척이나 아쉬워 했다. 그만큼 팬텀 나이츠의 몰이 사냥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컸던 것이다 “자···. 이제 팬텀 나이츠 사냥은 끝났으니··. 슬슬 다음 지역으로 가서 다른 몹들을 좀 찾아보고 탐색해 보자. 무브 무브.”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재촉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까지 있던 황야 지대를 지나서 계속해서 이동하니 숲이 나왔다. 그런데···. 숲인 그냥 숲이 아니고 대나무 숲. 소위 말하는 죽림이었다. “분위기 좋은 죽림이네요···. 갈 때 죽순이라도 캐 갈까요?” “몹이 안 나오면 그거라도 가져 가는게 좋을 지도 모르지···.” 정운과 슬기는 그렇게 실 없는 농담을 하면서도 사방에 대한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죽림은 다른 숲들 보다 나뭇가지가 무성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가시거리가 어느정도는 확보 되고 있었다. 다른 숲에서처럼 갑작스럽게 가까운 숲풀에서 맹수형 몹이 확 튀어나오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여기는 뭐가 나오는 건지····.”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팅!! 뭔가가 날아와서 일행을 감싸고 있는 슬기의 실드에 부딪혔다. “음····? 이건····. 단창?” 정운은 날아와서 부딪힌 무기를 보고 살짝 놀랐다. 길이가 1미터 정도 될 법한 짧은 단창이 날아와서 자신들에게 부딪힌 것이다. 날아온 각도를 봐서는 위쪽에서 날아온 것 같았다. 정운은 일단 앞으로 나서면서 쉐도우 아머를 걸치며 말했다. “위쪽에 신경 써. 비행형이나 대나무에 붙어서 이동하는 놈일 가능성이 커.” “예. 정운씨.” “알겠습니다. 마스터.” 지금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정운에게는 어쩐지 적이 아직 멀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은신형 몹인가···. 오랜만인 걸?’ 정운이 보기에 이 놈들은 예전에 싸웠던 쉐도우 엘프들 하고 같은 타입으로 보였다. 숨어서 공격하는 은신형의 몹.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쉐도우 엘프들은 비교적 은신이 쉬운 울창한 숲에 숨어서 단번에 달려 들었다. 그런데 이 놈들은 숨기도 어려운 죽림에 숨어서 기다리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몰래 원거리 공격을 하고 있었다. 척 봐도 쉐도우 엘프들 보다는 훨씬 더 고단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깐···, 오랜만에 그거나 해 볼까?’ 정운은 상대의 공격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 보다는 직접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종종 잊어버리지만 자신에게는 탐색 스킬이 있지 않은가? “쉐도우 서치.” 정운이 말하자 조용하게 그림자가 원형으로 지면을 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위쪽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선명하게 정운에게 감지되었다. 이건 무척 신기한 감각이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의 숫자까지 정확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감각의 지배였다. 그리고 정운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찾았다.” 정운은 그대로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건곤파천궁을 꺼내서 그대로 잡아 당겼다. 물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활 시위를 당긴 정운은 과녁을 조준하고 그대로 시위를 놨다. 끼이익··. 파앙!!! 그대로 당겨진 화살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날아가서 정확하게 박혔다. “으으으····.” 허공에서 피가 번지기 시작하더니 온몸을 칠흑 같은 검은색에 착 달라붙는 복장을 하고 있는 인물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이건···. 뭐지?” “제가 ME로 찍어 볼게요.” 슬기가 떨어진 검은색 타이즈의 복장을 입고 있는 남자를 ME로 찍었다. 죽림의 암살자 LV. 100~110 [완벽한 은실술로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하는 존재. 체력은 약한 편이지만 공격력이 강하고 독을 즐겨 사용한다.] “·····라고 적혀 있네요.” “그렇군··. 암살자라. 꼭 사이비 닌자 처럼 생겼는데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쓰러진 놈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정운이 가까이 다가가자 놈이 불현 듯 일어나서 그대로 정운에게 비호처럼 날아들었다. “쉐도우 월!!” 하지만 정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 발 먼저 스킬로 자기 앞에 장벽을 만들어서 놈을 막았다. 그리고 그대로 스킬을 연달아 시전 했다. “쉐도우 홀, 쉐도우 체인.” 정운의 구속 스킬 콤보에 의해서 놈의 무릎까지 잠기는 늪에 빠진체로 사슬에 꽁꽁 구속당했다. 완벽하게 구속을 한 후에 정운은 놈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복면을 창끝으로 벗겨냈다. “호오···. 잘 생겼잖아? XXX 닮았는 걸?” 얼굴을 벗겨보니 거기에는 상당히 잘 닮은 미남이 있었다. 얼굴만 봐서는 어쩐지 영화배우 필이 충만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어.” 촤아악!!! 정운은 놈을 그대로 한 칼에 베어 버렸다. 사실 호기심에 어떤 이 종족이 아닌가 싶어서 복면을 벗겨 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상당히 잘 생긴 남자의 얼굴이 나오자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울컥해 버렸다. 질투. 그것은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새해도 그 힘으로 열심히 집필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29화 처음에는 경계 했지만 일단 상대의 정체를 알았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공격이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그것 뿐이다. 그것도 공격력 자체가 강력한 게 아니라 무기에 사용되는 독 때문이었다. 독이라는 점에서는 애당초 큰 걱정도 할 필요 없었다. 정운의 팀에는 든든한 백업이 있기 때문이다. “세레나, 버프 부탁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신의 호보, 신의 자비, 신의 숨결.” 세레나가 방어형에 중첩된 버프를 삼중으로 걸었다. 신의 보호 : LV.9 (자신을 비롯한 아군의 방어력을 90% 강화 시킨다.) 신의 자비 : LV. MAX (자신을 비롯한 아군의 체력을 분당 10%씩 회복 시킨다.) 신의 숨결 :LV.5 (자신을 비롯한 아군 전원에게 독과 저주에 강한 저항력을 부여한다. 레벨이 오를수록 저항력은 강해진다.) 정운은 자신의 몸에 들어오는 세레나의 버프를 느끼면서 안심했다. 이 정도의 버프를 걸고 있으면 저 죽림의 암살자라는 놈들의 독이 얼마나 강하던 간에 일격에 즉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즉사만 피하면 세레나와 슬기의 회복 스킬에 얼마든지 회복 할 수 있었다. 다크 레이스에 이어서 죽림의 암살자 역시 세레나 같은 성기사 캐릭터가 천적관계에 있는몹 같았다. ‘잘하면····. 이거 다크 레이스 이상 가는 호구겠는걸? 여기서 보상만 좋다면····.’ 정운은 이 죽림을 좀 더 탐방해 보고 쓸 만한 몹이 없으면 이 죽림의 암살자라는 몹을 집중해서 사냥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잡기 쉽고 아이템도 섭섭치 않게 주는몹이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로서는 피할 이유가 없었다. 정운은 그대로 쉐도우 서치를 발동 시킨 상태로 이동했다. 어떻게 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의 은신술은 육안으로는 확인하는 것도 힘들었다. 방금 전에 활로 쏴서 맞출때만 해도 처음에는 허공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었다. ‘전에 자이언트 모스키토 잡을 때 이후로 처음인걸? 이 스킬이 유용하게 쓰이는 건····.’ 정운의 쉐도우 서치의 최대 탐색 범위는 100미터 남짓이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습격에 대비하기에는 충분하고 넘쳤다. 그리고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슬기도 계속해서 실드를 키고 있는 상태였다. 이 정도면 놈의 공격에 의한 대비는 만전이었다. “그런데···. 이 놈들 영 오지를 않네.” 한참을 걸었다. 거의 40분 정도 이동하면서도 처음에 잡았던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를 않고 있었다. 틀림없이 이 구역에 죽림의 암살자들이 있을 텐데도 전혀 공격이 없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심지어는 정운의 탐색에도 거릴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이건 뭔가 이유가 있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정운에게 슬기가 조심 스럼게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혹시···. 이쪽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습격을 포기 하는게 아닐까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몹들이 거기까지 생각을 한다고?” “그럴 수도 있죠. 생각해 봐요. 팬텀 나이츠들도 우리를 포위 공격할 때 상당히 조직적으로 포위망을 펼쳤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요. 우리하고 대화가 안 될 뿐이지···. 이 정도 윗 층으로 올라오면 몹들도 나름 생각을 하면서 치밀하게 움직이는 것인지도 몰라요.” “·············.” 슬기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몹들이라고 머리를 못 쓰리라는 법은 없다. 그라운드 제로는 게임의 법칙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몹들이 인공지능으로 막연하게 움직이는 존재들은 아니다. 세레나의 설명에 의하면 몹이나 NPC의 존재들도 원래는 인간이나 악마처럼 사고가 가능한 영혼에 틀을 두고 있는 존재라고 했다. 사고를 가두고 세뇌한 것 같이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했지만 그 세뇌의 꼭지를 아주 조금만 느슨하게 한 것이라면···. 그럼 적을 공격할 때 생각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죽림의 [암살자]였지. 타깃에게 빈틈이 보이지 않는데 무작정 달려드는 암살자는 없는 법이지····.’ 결국 이렇게 완전 대비 상태를 하고 있으면 적의 공격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기 보다 정운의 탐색 스킬에도 잡히지 않는 것을 봐서는 적들이 오히려 정운보다 더 넓은 탐색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쩔까요? 조금 방어를 약하게 하고 유인해 볼까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사냥 보다는 이 죽림의 탐색이 우선이야. 일단 다른 몹들이 뭐가 있는지 한 번 살펴 보자.”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의 파티는 그 후로도 1시간 넘게 죽림을 천천히 탐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의 몹을 찾았다. “호오···. 저건···.” “상당한 거물 같군요···.” “그렇지···.” 우지끈, 우지직.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갈 때마다 죽림의 대나무들이 어스러지고 부러지는 육중한 체구. 그리고 그런 거대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사뿐하다는 느낌이 드는 발걸음. 날카로운 안광과 사람의 팔뚝보다 더 굵은 어금니. 정운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덩치가 20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호랑이였다. “크르르르······.” 놈은 잠시 목을 크기 비틀면서 으르렁 거렸다. 그 과정에서 꿈틀 거리는 놈의 두꺼운 목 근육만 봐도 놈이 대단한 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본 몹들 중에서 가장 멋진 것 같은걸? 중겸이 형님 데리고 왔으면 테이밍 하겠다고 난리쳤겠다.” “그러게 말이에요. 어쩔까요? 한 번 잡아 볼까요?” “일단 ME로 찍어 보고···.” 정운은 상대의 수준을 알기 위해서 ME를 찍었다. 대왕호 LV. 110~130 [거대한 덩치의 호랑이. 신체 능력이 매우매우 높다.] “····이게 다인가? 신체 능력이 매우매우 높다? 이게 다라고?” “정보가 단순하다는 것은 그만큼 특징이 있다는 말일까요?” “글쎄····. 어쨌든 좋아. 세레나. 내 옆으로 와. 슬기는 하늘로 올라가서 백업을 맡아. 일단 한 번 건드려 보자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조심하십시오.” “당신이야 말로 조심해···.” 정운과 세레나는 그렇게 무장을 꺼내고 적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슬기야. 마법 공격은 바로 엄호하지 말고 일단 기다려 봐. 초반에는 우리끼리 해 볼 테니까.” “예. 알았어요.” 정운은 혹시 슬기에게 어그로가 튈 까봐 주의하고 이제 슬슬 사냥을 위해서 호랑이에게 다가갔다. 호랑이는 기분 좋게 죽림을 거닐고 있었는데 그 여유로운 자태는 여기가 놈의 영역이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였다. 아마도 설정상으로는 준보스급 정도는 되는 놈일 것이다. 그런 놈과 정면으로 마주한 정운은 우선 놈을 보고 가볍게 목을 꺾으면서 몸을 풀었다 “크흐응!!!”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정운을 보고 놈은 흘깃 시선을 줬다가 그대로 콧방귀를 꼈다. 그리고 마치 피라미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호오···. 생깐다. 이거지··. 비선공은 오랜만이네.” 정운은 자신을 무시하는 대왕호의 태도에서 은근 슬쩍 열이 받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흑토를 꺼내서 올라타고 바로 뇌천신공을 일으켰다. 파지지직!!! “히히힝···.” 정운의 몸에서 뇌전이 흘러 넘쳤고 흑토 역시 오랜만에 만만치 않은 적을 느끼고는 명령을 받지도 않았는데 영수화 했다. 화염을 온몸에 두른 흑토와 전신에 뇌전을 두른 정운의 모습은 묘하게 어울렸다. 그 상태로 흑토가 앞발굽을 달그락 거리면서 지면을 골랐다. 그리고 정운은 창을 뽑아 들고··· “자··. 시작해 보자.” 콰아앙!!! ‘보자.’ 라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흑토와 정운의 돌격이 그대로 대왕호의 몸에 직격했다. 보통 말이라는 생물은 달리고 가속도가 붙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지만···. 영수화한 흑토에게 그런 조건 따위는 필요 없었다. 고양이과···. 아니 거의 곤충급의 순발력으로 단번에 최고 속도로 적에게 돌격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그리고 둘의 강력한 공격을 받자 마자 대왕호는 크게 울부 짖었다. 그것도 그냥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띠리링!! [대왕의 분노가 작렬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30% 감소합니다.] [공격력이 30% 감소합니다.] [방어력이 30% 감소합니다.] “이런···. 엿 같은···.” 정운은 오랜만에 자신을 덮쳐 오는 디버프 공격에 이를 갈았다 “상쇄하겠습니다. 마스터.” 세레나는 대왕의 분노라는 디버프에 대항하기 위해서 자신의 버프를 집어넣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상쇄는 되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놈을 상대 할 때는 세레나의 버프로도 큰 재미를 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어디 해 보자!!!” “히히힝!!!” 정우는 그대로 흑토와 한 몸이 되어서 달려갔다. 아무리 준 보스급이라고 해도 1대1이면 그렇게 쉽게 질 생각은 없었다. 정운과 흑토가 한 몸이 되어서 달려간 공격은 말 그대로 한줄기의 섬광이나 다름 없다. 일단 한 번 돌격하면 다음 순간에는 바로 콰앙 하고 작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후우웅!!! “이럴수가···? 저 덩치로?” 정운이 깜짝 놀랐다. 자신과 흑토의 돌진 골격을 대왕호가 완벽한 몸놀림으로 피한 것이다. 순간 정운은 ME로 찍었을 때 대왕호의 정보를 떠 올렸다. [신체 능력이 매우매우 높다.] 매우매우·····. “제길, 아무리 그래도 저 덩치로 어떻게···. 사기 아니야?” 정운의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저런 거대한 덩치를 하고 있는 괴수형들은 일단 피통은 보장이었다. 거대한 덩치는 곧 막대한 체력으로 이어지는 공식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거대한 덩치는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과녁이 넓으니 맞추기 쉽지 않은가? 하지만 적은 그런 거대한 덩치를 하고도 정운의 공격을 아주 사뿐하게 피했다. 저 거대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과 특유의 운동신경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길···. 힘을 아낄 상대는 아닌가?’ “쉐도우 아미!!” 정운은 일단 쉐도우 아미를 전원 소환했다. 보스몹도 아닌 몹을 상대로 쉐도우 아미를 전원 소환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쉐도우 홀!! 쉐도우 체인!!” 정운이 그대로 잡아서 놈을 제압하려고 했다. 300개의 사슬이 놈의 몸을 발목부터 뱀처럼 감아갔다. 하지만 놈은 위기 순간을 느끼고 자기 몸이 쉐도 홀에 빠지기 전에 재빨리 몸을 점프해서 피했다. 그 거대한 덩치가 힘껏 점프하니 죽림의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커허허엉!!!” 놈은 그 상태로 이빨을 앞세우고 정운을 한입에 삼켜 버리려고 했다. 정운은 그 공격을 일단 피하고 착지한 놈에게 다음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육중한 무언가가 정운과 흑토를 옆으로 후려쳤다. 퍼어억!!! “크으윽····.” 정운은 그대로 몇 미터 정도 옆으로 날아갔다. 잠시 흑토가 휘청 거리면서 바닥을 구를 정도로 멀리 날아간 것이다. 보통 말이 이렇게 쓰러지면 다리가 부러져야 정상인데···. 흑토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런 흑토와 정운의 눈에 보이는 것은 커다랗게 벌어져 있는 대왕호의 입안이었다. “칫!!” 정운은 있는 힘껏 창을 찔러서 대왕호의 이빨이 자신에게 닿는 것을 막았다. 콰지직!! “카하항!!!” 정운의 입장에서는 일어나자마자 대왕호의 이빨이 보이길래 무의식중에 막 찌른 공격이었다. 그런데 그 막 찌른 공격이 온이 좋았다. 처음으로 대왕호의 입에서 고통의 소리가 나온 것이다. 놈의 이빨 하나가 정운의 창에 정확하게 맞고 부러진 것이다. 정운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놈의 잇몸 부분에 창을 밖아 넣은 상태로 크게 외쳤다. “기마차지!!! 힘차게 밀어. 흑토야!!” “히히힝!!!” 정운과 흑토가 창끝을 대왕호에게 박아 넣고는 그대로 놈을 밀어 붙이려고 했다. “크하하아앙!!!” 대왕호 역시 그런 정운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힘을 쓰려고 했지만···. 그래서는 자기 잇몸 부분에 박힌 정운의 창끝이 더 깊숙하게 들어갈 뿐이었다. “크하아아앙!!!” 대왕호는 고통에 밀리면서 연신 뒤로 밀렸다. 전장 2미터가 조금 넘을 것 같은 정운과 흑토가 전장 20미터가 넘는 대왕호를 일직선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무작정 힘으로 밀어 붙이는 것은 아니다. 엄연한 목적지가 있었다. “쳐 들어가!!!!” 정운이 대왕호를 밀어낸 것은 아까 시전해서 검은 그림자의 늪이 되어 있는 쉐도우 홀이었다. ============================ 작품 후기 ============================ 새해에도 열심열심. 힘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30화 대왕호는 뒤로 연신 밀리다가 결국은 그 구덩이 아래에 몸을 담궜다. 푸욱!! 놈의 몸이 진흙에 빠진것 처럼 그대로 발목 부분까지 푸욱 파고 들었다. 정운은 그 빈틈을 놓치짖 않고 다시 쉐도우 아미들과 함께 합동 공격을 펼쳤다. “쉐도우 체인.” 촤르르르륵!!! 이번에는 기필코 잡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사슬이 뻗어 나갔다. 좀 전에는 재빨리 빠져 나갔지만 두 번째에는 어려웠다. 발목부터 어깨, 허리, 목가지 탄탄하게 구속하는 그림자의 사슬에 대왕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크하아아앙!!!!” 300개의 사슬에 꽁꽁 묶힌 대왕호는 온몸을 몸부림 쳤다. 하지만 정운의 구속 스킬 콤보는 보스몹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풀어 낼 수 있는게 아니었다. 적을 완전히 구속하는 것에 성공한 정운은 크게 외쳤다. “딜해!!!” “홀리 이레이져. 홀리 스트라이킹!!” “염소접, 소화조, 극염랑, 적염사!!!!” 콰콰콰콰쾅!!! 콰아앙!!!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세레나와 슬기의 합동 공격이 퍼부어졌다. 물론 정운 역시 쉬지 않고 화살을 당겼다. 딜의 파워는 근접 공격이 더 좋았지만 아직 앞발로 크게 몸부림 치고 있는 대왕호의 기세를 생각하면 근접해서 위협을 무릅 쓸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활로도 위력은 충분했다. 쉐도우 아미 아홉 기와 동시에 화살을 속사로 당기기 시작하자 마치 사방에서 헬기가 기관총을 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속 시킬을 병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운의 딜이 슬기와 세레나의 딜 보다 훨씬 더 강력한게 그 증거였다. “커허어어엉!!!” 대왕호는 크게 포효하면서 몸부림 쳤지만 구속이 너무 단단했다. 그렇게 1분 정도 집중 공격을 받고 나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최후의 단발마와 함께 죽어 버리는 대왕호였다. “후우우····. 잡긴 잡았네.” “수고 많았어요. 정운씨.” “수고 하셨습니다. 마스터.” 대왕호를 잡고 나서 슬기와 세레나는 정운에게 감사를 표했다. 졸직히 대왕호를 잡는데 가장 큰 공언을 한 것은 정운이었다. 세레나가 버프를 넣어서 약간 디 버프를 상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몹의 구속은 정운이 했다. 둘이 한 일은 그 후에 집중적으로 딜을 했던 것 뿐이다. “흠···. 예전에 막 암석 드래곤 잡을 때 생각나네···. 일반 몹을 잡으면서 이정도 공을 들인건 오랜만이야.” “그렇죠···. 그대도 보상은 좋은 편인 것 같은데요. 경험치도 많이 들어오고 무엇보다···. 아이템이 상당히 충실한 것 같아요. 한 마리 잡았는데 재료 아이템을 다섯 종류나 줬어요.” “어디 보자···. 대왕호의 심장, 대왕호의 발톱, 대왕호의 가죽, 대왕호의 송곳니, 대왕호의 피. 확실히 많이 주네.” “그렇죠. 잡기는 어렵지만 보상이 박한 몹은 아닌 것 같아요. 위치만 잘 잡고 작전만 잘 세우면 우리 단골로 해도 되겠는데요?” “·····뭐, 그건 나중의 일이지. 일단 오늘은 한 마리 잡았으니 또 나와도 안 잡을 거야. 선공 몹도 아닌 것 같고···. 일단 죽림의 탐험을 마저 마치자.”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해서 정운과 슬기들은 그날 죽림을 걷고 걸어서 다른 몹들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몹들의 그림자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대왕호는 그 후에도 두 마리나 더 찾았지만 그 이외에는 죽림의 암살자들도 찾지 못했고 다른 몹은 전혀 보지 못했다. “음···. 어쩔 수 없지. 해도 지는 것 같고 오늘은 돌아가자.” “알겠어요. 그래도 다행이죠? 간이 포탈이 생겨서 탐색도 이렇게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가능하고.” “그렇긴 하지.”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바닥에 간이 포탈을 깔았다. 이제 한 10분 정도 기다리면 간이 포탈이 열릴 것이다. 예전 같으면 탐색을 하다가도 포탈까지의 이동 거리를 계산데 두고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포탈까지 가면서 상대할 몹들과의 전투도 생각해서 여력은 남겨야 했고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다음날 다시 탐색을 하려고 해도 포탈에서 다시 전날 탐색을 했던 위치까지 다시 오는데 또 시간이 걸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포탈이 곳에 고정되어 있으니 많은 불편함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간이 포탈이 생김으로 인해서 이제 탐색의 유용함은 더욱더 커졌다. 비록 이것 때문에 언더 플레이어들에 대한 포위망이 망가진 것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좋은 점은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포탈 다 열렸네. 이제 돌아가자.” “예. 알았어요.” “빨리 씻고 싶군요··. 요 근래 들어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사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운의 파티는 스카이 시티에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상42층. 정운의 파티가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평화롭게 쉬려고 하는 이 시간에 지상 42층에는 거창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닥치고 죽어. 병신들아.” “X도 아닌 것들이···.” 전투는 30대 5의 인원수였지만···. 놀랍게도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은 다섯 명의 숫자 쪽이었다. 그리고 밀어 붙이고 있는 다섯 명의 머리위에는 검은색 크리스탈이 둥둥 떠 있었다. 언더 플레이어들이라는 증거였다. “빨리 죽이고 자리 뜨자.” “너무 시간 안 끌게 조심들 하자고···. 길드장님한테 들키면 골치야.” “나도 알아. 제길···. 괜히 겁 먹고 허락을 안 해줘서···.” 투덜 거리는 말을 들어보니 이들은 김신수가 PK를 금지 시켰는데도 무리해서 사냥을 나온 것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거기에 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단 최근에 뉴 웨이브의 언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벌어진 근황을 알아 봐야 한다. 우선 여기 있는 이들은 원래 뉴 웨이브에 가입하기 전만 해도 50레벨 초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90레벨 초반까지 레벨을 올렸다. 고작 1년 남짓한 시간에 그만큼 레벨을 올리게 된 것은 역시 김신수가 만들어낸 반칙 같은 환경이 크게 영향을 발휘했다. 그렇게 편하게 레벨을 올리던 그들이었지만 최근에 패치가 되면서 이제 지하층에서의 사냥으로도 크게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게 몹시 불만족 스러 웠다. 원래 자전거 타던 사람이 차를 사게 되면 자전거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어진다. 그거랑 같은 원리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쉬운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었다. 지하의 몹들을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경험치는 막대하게 줄어 들었지만···. 대신에 유저를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대폭 오르지 않았는가? 30레벨 유저를 잡으면 30레벨의 보스몹을 잡은 것 만큼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거기다 얻을 수 있는 아이템과 스킬북 등등의 부가 보상까지····. 언더 플레이어들은 바로 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십왕과 삼대 길드가 재빨리 움직여서 포탈을 막았을 때는 골치가 아팠다. 전력을 기울이면 포탈에 진치고 있는 병력을 뚫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모든 포탈에 십왕들이 진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삼대 길드의 간부들이 만들어둔 포위망 정도라면 언제든지 뚫은 자신이 있는 언더 플레이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편한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업데이트가 되고 남녀서 생긴 간이 포탈 아이템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있었던 층으로 가서 사냥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처음에 길을 뚫을 때는 아직 지상에 있는 몇몇 끈들을 이용해야 했지만···. 그 후에는 간단하게 간이 포탈을 이용해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 달이 채 가지를 못했다. 어떤 팀이 PK를 하다가 실패한 것이다. 실패했다고 패배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사냥감의 일부를 놓쳤다. 그 일부의 사냥감이 마을에 가서는 유저들 사이에서 소문을 쫙 냈다. 그리고 십왕들과 삼대 길드도 간이 포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고심하던 끝에 일단 포탈의 포위망은 철수시켰다. 대신에 다음부터는 일정 주기로 정예 멤버를 꾸려서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김신수는 잠시 고민했다. “순찰이라····. 십왕들이 직접 돌고 있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탐색 조가 먼 발치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게 나오는 군. 주기나 패턴을 알아낼 수는 있겠나?” “그건····. 죄송합니다.”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최수영에게 보고를 다은 김신수는 곰곰하게 생각했다. 원래 랜덤 순찰이 목적이라면 꼭 걸린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걸리지 않을 보장이 더 컸다. 하지만···. 아직 숫자가 적은 언더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적은 숫자의 손실이라도 치명적이었다. 뉴 웨이브의 현재 길드원 숫자는 104명. 사실상 뉴 웨이브의 길드원 숫자는 곧 언더 플레이어 숫자라는 말이었다. 한 명당 일반 플레이어 1,000명을 죽인다고 해도 수지가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를 일이었다. “확실한 수단이 생길 때 까지 일단 사냥은 금지한다. 길드원들에게 그렇게 공지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해서 김신수는 뉴 웨이브의 길드원들에게 사냥의 금지를 명령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조직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누르면 튀는 놈이 생기는 법이다. 선한 자들의 조직이던 악당들의 조직이던 이건 항상 그랬다. 몇몇 유저들이 김신수의 사냥 금지 명령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몰래몰래 PK 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간이 포탈의 존재 때문에 김심수라고 해서 모든 길드원들이 필드에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를 관리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렇게 해서 몰래 사냥을 나온 놈들은 여기 42층에서 풍족한 사냥감을 발견한 것이다. 척 봐도 레벨이 40대 정도는 되어 보이는 인간들이 다서 뭉쳐 있었다. 저렇게 많은 유저가 뭉친 것은 아무래도 자신들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인가? 싶었지만···. 고작 40~50대 유저 30명이 뭉쳐 다니는 것 가지고 90대 레벨 5인의 공격에 대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언더 플레이들은 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다만 놓칠까봐 조심조심했을 뿐이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포위망은 완벽했고 이제 놈들을 사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아아····. 새끈한 여자 한 명 없네···.” “자식···. 길드본부에 가면 얼마든지 있잖아? 그런데 부족하냐?” “응? 그년들은 너무 고분고분해서··. 난 좀 튕기는 여자를 좋아하거든?” “튕기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너처럼 제 멋대로인 놈이?” “원래 극과 극이 끌리는 거야.” “놀고 있네···.” 둘의 잡담을 듣고 있던 동료 한 명이 말했다. “야. 이 새끼들아!! 빨리 돕기나 해. 놓치면 X 된다고!!!” “쯧, 알았어 성질은····.” 놈들은 그렇게 일반 유저들을 일방적으로 사냥해 갔다. “제길··. 제발 살려줘··. 장비건 골드건 다 줄게···.” 누군가가 싸우다가 도저희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애원했다.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이 그냥 무릎 꿇고 빈 것이다. 하지만 언더 플레이어들은 그런 꼴이 우습다는 듯이 조소하면서 말해다. “너 바보냐? 넌 사냥하면서 몹들이 울고 불고 애원하면 그냥 놔 줄래?” “그런······.” “우리한테 너희는 같은 인간도 아니거든? 그냥 사냥감이지. 알겠냐? 이 벌레들아.” 일반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는 언더 플레이어들의 얼굴에는 우월감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놈들 대부분이 상당히 삐뚤어진 인간성을 가지고 오는 놈들이지만···. 저 언더 플레이어들은 그 평균치를 사뿐하게 초월할 정도로 정신이 뒤틀린 것 같았다. 사실 그것도 끼리끼리 모인다고···. 김신수 같은 미친놈이 이끄는 길드에 오랫동안 몸을 담구고 있으니 이렇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같은 인간을 태연하게 사냥감이라고 부르는 이 놈들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구원의 가치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에게 있어서 오늘은 인생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너희들이 죽어도 별 불만은 없겠군.” “누구···. 허걱!!” 퍼어엉!!!!“ 조용하게 들린 목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막대한 공격이 날아왔다. 다섯 명의 언더 플레이어 유저들은 막을 틈도 없이 그 공격을 그대로 맞고 멀리 날라갔다. “···다··· 당신은···?” “어···? 설마?” 죽음의 위기에 몰려있던 일반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나타난 구원자를 보고 반색을 했다. 이건 최고이자 최강의 구원자였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상대하지.” 십왕의 NO.1 박추성의 등장이었다. ============================ 작품 후기 ============================ 두둥!! 둥! 둥! 한 번쯤은 이 타이밍에 최강의 인간이 등장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뭐, 상대가 워낙에 형편없는 피라미(?)들 이지만 말이죠. 사실상 박추성을 상대로 슬기 다섯 명이서 덤비는 것 하고 비슷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될 지는 다음화에....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31화 <최강자의 위용> 박추성과 직접 만나본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를 못 알아볼 사람은 이 그라운드 제로를 다 뒤져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시간으로 백년이 넘게 싸워온 사람이 아닌가? 거기다 그라운드 제로 최강의 유저라는 화려한 명함도 있고 말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박추성의 사진 한 두 장 정도 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더 플레이어들도 박추성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놈들은 순간 사자를 마주한 하이에나들처럼 바싹 얼어 붙었다. “일단···. 너희들은 이제 가라.” 박추성은 우선 공격당하고 있던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가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왕은 박추성이었다. 그의 허락을 도망도 퇴장도 싸우는 것도 오로지 그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사람들은 박추성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부리나케 도망갔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라운드 제로 최강자의 전투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들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을 말로 꺼낼 정도로 간이 큰 인간은 없었다. 일단 죽다 살아난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그렇게 죽을 고비에서 벗어난 일반 플레이어들은 걸음에 불이 나도록 뛰어서 사라졌다. 아마도 마을에 도착하면 안도하면서 오늘의 일을 곱씹으며 두고두고 얘기 거리 삼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언더 플레이어들은 어떨까? “자···. 그럼 이제 너희들 차례인가? 내가 묻고 싶은게 많다.” 박추성은 다섯이서 펭귄처럼 꽁꽁 모여 있는 언더 플레이어들을 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더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그런 박추성의 말이 마치 염라대왕의 선고처럼 들리고 있었다. 박추성이 처음 나타나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들은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고 빈틈을 찾고 있었다. 다섯 명이 다 제각기의 방향으로 도망가면 한 놈 빼고는 살지 않을까? 라는 죽음의 복불복 같은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그걸 실행하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박추성의 공격 무기가 뭔지. 아니 공격 방법이 뭔지도 전혀 모르겠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간 그 놈이 가장 먼저 죽는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박추성은 꼼짝도 안하고 얼음처럼 얼어있는 놈들을 보면서 손을 슬쩍 움직였다. 별로 대단한 움직임도 아니었다. 마치 어부가 낚시 줄을 당기는 것처럼 간단한 동작이었다. 그러자····. “어··· 어어어!!!” 놈들 중에 가장 전방에 있었던 한 놈이 발목을 질질 끌면서 박추성에게서 끌려갔다. 아마 이 놈이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운 없는 놈이 되리라. 박추성에게 끌려간 놈은 그대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박추성의 앞에 대령 되었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박추성이 말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 성실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군. 알겠지?” “··········.” “대답을····.” “엿이나 먹어!!!” 콰아앙!!!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놈은 마침 가까이 있는게 호기라고 여겼다. 한방 크게 먹여서 급소 크리티컬이라도 터지만 대박도 초 대박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놈은 혼신을 기울여서 자신의 무기를 크게 휘둘러서 박추성을 후려쳤다. 참고로 놈이 쓰는 무기는 워 해머였다. 근거리에서의 파괴력은 어느 무기에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흠, 곱게는 말 못하겠다 이거군.” “··빌···· 빌어먹을···.” 상대가 너무나 좋지 않았다. 놈이 휘두른 워 해머는 박추성에게 맞지 않았다. 나름 회심의 공격이라고 날린 공격은 박추성에게서 한 뼘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멈춰 버린 것이다. 그 상태에서 박추성은 상대에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고문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어디 한 번 해 볼까?” “무슨···, 으··· 으아아아악!!!!!!” 순간 놈은 갑자기 전신을 뒤틀면서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은 그냥 아프다. 정도를 넘어서 통각으로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박추성은 놈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놈의 입장에서는 미칠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발광하고 있었다. 놈은 바지가 축축해 지도록 소변을 지리고 눈은 흰자위만이 드러날 정도로 까뒤집혀 졌다. 척주를 활처럼 한계까지 잔뜩 휘어진 상태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경련을 거듭했다. 그런 놈을 보면서 박추성이 말했다. “일단 넌 잠시 그러고 있어라. 이제 네 친구들하고 얘기해 봐야겠다.”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머지 네 명을 바라봤다. 흠칫!! 나머지 네 명은 박추성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닿은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은 철렁함을 느꼈다. “이리 오렴.”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네 명의 언더 플레이어들이 역시 낚시줄에 꿰인 생선마냥 끌려와서는 눈앞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너희들에게도 물어보자. 저기 저 친구 보다는 그래도 협조적이었으면 한다. 난 고문은 취향이 아니거든.” “으······.” “제·· 제발 살려줘···.” 놈들은 박추성의 말에 비 오듯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애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강자의 입장에서 일반 유저들을 사냥감 취급하고 있던 놈들이었지만···. 이제는 반대의 입장에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우선 너희들의 길드인 뉴 웨이브에 관해서 말해 볼까? 인원과 전체적인 레벨, 그간의 행보까지 전부.” “제길···. 제발 그만···.” “살려줘. 살려 달라고···.” “흑··· 흑흑··. 이런 것 싫어···. 제발···.” 박추성의 말에 놈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 모습을 보고 박추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흠···. 이건 말 안한다고 개긴다기 보다는 말 못한다에 가까운 것 같은데····.’ 사람이 척 인상을 보면 인간으로서의 격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선인이건 악인이건 줏대나 근성의 강약에서 격의 차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비슷비슷했다. 그리고 박추성이 보기에 이 놈들이 그렇게 근성있는 인간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면 동료정도는 언제라도 배신 할 수 있는 인간의 전형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은···. “혈맹으로 묶여 있는 건가? 비밀 엄수의 조항이?” 박추성의 말이 나오자 마자 네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말은 할 수 없어도 그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괜찮은 모양이다. 박추성은 한 숨을 내쉬면서 손을 휘저었다. 쿵!! 쿠웅!! “크윽··. 으으··.” “어····?” 박처성이 손을 쓴 순간 허공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네 명의 남자들은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한쪽에서 고통에 부들부들 떨고 있던 놈도 일단 고통이 멈춘 것 같았다. 여전히 눈물 콧물 범벅으로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고통은 멈춘 것 같았다. “하아··. 헛수고 한 건가? 듣던 것 보다 훨씬 용의주도한 놈이군.” 박추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운이나 다른 십왕들처럼 게임의 클리어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다. 이미 자신의 소원이었던 대한독립은 이뤄졌으니 말이다. ‘뭐, 그 후에도 분단이다. 전쟁이다. 이런 저런 비극이 많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건 내 알바 아니지.’ 박추성이 보기에 자신은 이미 과거의 인물이다. 자신이 소원을 이루는 것은 이미 소원의 성취가 아니라 역사의 변혁이다. 만약 게임을 클리어하고 자신의 시대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꾼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라는 보장이 있을까? 더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더 최악의 결과가 있을 수도 있었다. 결국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둥글어 진다고···. 그는 게임 클리어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유유자적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제 자신의 인생에 더 바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최근에 생긴 김신수와 언더 그라운드 유저들의 행동은 상당히 불쾌한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그라운드 제로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인간들은 무척이나 불쾌했다. 이제까지 다른 유저들이 서로 지지고 볶든 자신은 그냥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지만···. 김신수와 뉴 웨이브 때문에 여러 가지가 크게 변해버리자 불쾌함이 저절로 든 것이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가 느끼는 원초적인 불쾌함을 느끼고 있는 박추성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머리가 집힐 때 까지는 부지런히 순찰이나 도는 수밖에···.”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가버렸다. 졸지에 뒤에 남은 언더 플레이어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나··. 나 산건가?” “하하··. 하하하··· 살았다. 살았어.” “살았어!! 우하하하하!!!” 인간은 참 간사한 생물이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인간처럼 보였던 이들이 이제는 단순히 살아남았다.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행복한 인간일지 모르다. 툭. 투툭. “어··. 어어?” “내··. 내 손이···.” 행복한 상태로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창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웃고 떠들던 놈들은 먼서 손 발 부터 시작해서 바닥에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수십 조각으로 해체되어서 그래도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레벨 90정도가 되면 방어력도 상당할 텐데 그런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마치 두부가 조각이 나는 것처럼 그렇게 수십 조각이 나서 죽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뒤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운의 68층의 탐색은 순조로웠다. 팬텀 나이츠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만 몰이사냥을 하기로 하고 주 사냥감은 대왕호로 바꿨다. 하루에 대왕호 다섯 마리만 잡아도 다크 레이스 50마리를 잡는 것 보다 훨씬 더 이득이었다. 뭐, 그만큼 잡는데 걸리는 시간도 더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쪽이 효율이 더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왕호는 재료 아이템을 많이 주기 때문에 부가 수입도 많았다. “세레나!! 그쪽으로 간다!!” “예. 홀리 버스터!!” 퍼어엉!! “크하아앙!!!” 세레나의 공격이 대왕호의 미간에 정확하게 작렬했다. 그리고 놈의 주의가 세레나에로 돌아가는 와중에 슬기의 공격이 이어졌다. “염소접!!” 다섯 마리의 화염의 나비들이 펄럭이면서 대왕호에게 날아가서 그대로 폭발했다. 퍼퍼펑!!!! 이전보다 공격력도 훨씬 강력해진 슬기의 공격이 대왕호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슬기의 진짜 공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폭렬우(爆裂牛)!!!!” 슬기의 말에 전장 3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화염의 소가 생겨났다. 난폭하게 앞발을 구르면서 코에서는 화염이 뒤섞인 숨결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최근에 주작의 스태프가 레벨 5에 오르면서 새롭게 생긴 스킬 폭렬우였다. 폭렬우(爆裂牛) (화염으로 된 큰 소를 소환한다. 대상에게 돌격해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이 스킬이 생기고 처음 썼을때는 슬기도 깜짝 놀랐다. 지금 슬기가 쓸 수 있는 모든 화염 마법을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강력한 마법이었다. “음무어어어어어어!!!” 소는 거칠게 포효하면서 자기보다 훨씬 거대한 대왕호를 향해서 돌격했다. 대왕호는 그런 소의 돌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을 정운이 아니었다. “얌전히 있어. 천뢰지망!!!” 퍼퍼퍼펑!! 하늘에서 사방에 내려치는 번개의 빗줄기 같은 뇌전의 화살 공격이 쏟아졌다. 피할 곳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는 대왕호에게 슬기의 기술이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앙!!!!! 폭렬우가 한 번 터지면 사방 20미터 안에 있는 모든 물체가 커다란 대미지를 받았다. 그 대미지의 총량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상태에서의 대왕호도 폭렬우에 다섯 방을 맞으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대왕호의 체력의 총량이 거의 준보스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대미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주작의 스태프도 유니크 아이템 티가 나는걸?” “그러게요···. 이제 짐 덩어리는 면한 것 같아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추면서 말했다. “난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치··. 거짓말은···.” 그래 거짓말이야. 라고는 차마 말 할 수 없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공력력 하나 만큼은 크게 상승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 작품 후기 ============================ 박추성의 전투 스타일이나 무기가 뭔지 짐작가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네타는 자제해 주시기를... 사실 너무 뻔한것 같기도 하니 많은 분들이 눈치 채시겠지만요. 그리고 슬기도 이제는 공격력이라는 면에서는 한건 해야 겠죠. 그래서 집어넣은 기술이 저것입니다. 커다란 소가 돌진해서 펑!! 하는 기술입니다. 예전 스타에서 나오는 인페스티드 테란에서 영감을 얻었죠. 프로 시합에서 그 기술 보는게 하늘에 별 따기였는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32화 <시련의 던전> 뭐, 정운이 하는 칭찬이 빈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최근 들어서 은근히 애교가 더 많아진 슬기였다. 원래 애교가 없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세레나나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에는 좀 자중하고 있었다. 일부러 내숭을 떤다기 보다는 아이돌 출신이라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거의 몸에 새겨졌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슬기가 레벨의 애교가 더욱더 커졌다. 그리고 그때···. “마스터. 위험합니다.” 땅!! 어디선가 날아온 짧은 단창을 세레나가 재빨리 방패로 막아냈다. “죽림의 암살자··. 하여튼 이 놈들은 분위기 파악을 거의 못해··. 쉐도우 서치!!” 정운은 재빨리 탐색 스킬을 썼다. 이 죽림의 암살자들은 작정하고 대비하고 있을 때 공격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약간의 빈틈이 보인다거나 하면 주저 없이 공격을 하고는 했다. 정운의 파티에는 독에 관해서 강한 저항력 버프를 내려주는 세레나가 있었기에 놈들의 공격에도 어느 정도는 대처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덤비는 것은 상당히 골치 아팠다. 심지어는 대왕호를 잡기 위해서 싸우는 와중에 공격해 오는 경우도 있었다. 말 그대로 암살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몹인 것이었다. “저기!! 슬기야.” “예. 정운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확인한 슬기는 바로 마법을 난사했다. “파이어 붐. 트리플!!!” 펑펑펑!! 화염계 마법인 파이어 붐은 범위 공격이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마법의 공격 범위도 넓어진다. 현재 슬기의 레벨은 7. 반경 50미터에 걸쳐서 강한 화염의 폭발을 일으킨다. 정운이 가리킨 방향에 그런 마법을 세 발이나 갈기자 결국 은신하고 있던 놈들 중에 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은신이 드러난 죽림의 암살자는 적에게 달려들어서 자살수준의 공격을 시도한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알게 되었지만 정말 자살성 공격이었다. 자신의 방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달려드는 것이다. “홀리 버스터!!!” 물론 그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지만 말이다. 세레나의 고운 손에서 강한 광선이 발사되어서 날아오는 죽림의 암살자를 덮쳤다. “크아아!!!” 놈은 그대로 한방에 나가떨어졌고 지면에 총 맞은 비둘기처럼 떨어지는 놈을 보고 정운은 조용히 중얼 거렸다. “잘 가라. 쉐도우 스피어.” 놈이 떨어지는 위치에 정확하게 준비된 그림자의 창날을 보면서도 놈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푸푸푹!! “음··. 항상 그렇지만 보기가 좀 그래요···.” 창살 함정에 꼬치가 된 것 던전 공략자 같은 모습이 된 암살자를 보면서 슬기가 말했다. “다른 몹들이 나한테 이렇게 당하는 것도 많이 봤잖아?” “예. 그런데 이 몹은 인간 같은 형태라서 그런지 보기가 좀 그렇네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 다른 몹들 처럼 거대한 괴수의 경우와 달리 죽림의 암살자 같은 완벽한 인간형의 몹이 이렇게 당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만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몹이고 이 게임의 플레이 과정인 것을···. 그때 아이템을 챙기던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했다. “마스터. 인(人)의 구슬이 나왔습니다.” “뭐? 정말? 드디어 나온건가?” 정운은 반색을 하면서 달려왔다. 여기서 말하는 인의 구슬이라는 것은 죽림의 암살자를 잡았을 때 가끔씩 나오는 푸른색 구슬에 사람 인자가 적혀 있는 구슬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 말고도 천(天)의 구슬. 그리고 지(地 )의 구슬도 있었다. 이 구슬들은 처음에는 아이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상점에서는 가공도 구입도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이 구슬의 정체는 죽림을 탐색하던 와중에 알게 되었다. 넓은 죽림을 탐색하던 정운의 팀은 며칠 전에 커다란 기와 건물을 발견했다. 한국식? 중국식? 일본식? 다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동양식의 건축 양식이라고 해야 할 법한 이상한 기와 건물은 총 5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딱 감이 왔다. 이건 던전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던전에 들어가서 공략을 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불가능 했다. 던전의 입구에는 구멍이 세 개 있었고 거기에는 각자 천(天), 지(地,), 인(人) 이라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이쯤 되면 딱 감이 왔다. 아주 전형적이 패턴이 아닌가? 이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열쇠를 찾아서 문을 열어야 한다. 라는 전형적인 던전 플레그였다. 다행이도 이전에 잡았던 죽림의 암살자에게서 지의 구슬이 나왔었다. 혹시나 싶어서 구슬을 구멍에 끼워 보니 딱 이었다. 그리고····. 일단 한 번 끼운 구슬은 다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없어져 버렸다. “제길. 이거 먹튀잖아!!!” 정운은 크게 분해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 것을···. 나중에 알고 보니 십왕들 중에서도 그 던전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고 그들 모두 한 번씩은 먹튀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것은 나만 당할 수 없다. 라는 쓸데없는 심술보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운은 던전의 입성을 위해서 최대한 많이 죽림의 암살자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죽림의 암살자는 잡는 것 보다는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놈들은 타깃이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있을 때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가 약간만 빈틈이 보이면 그때에 공격해 왔다. 그렇다 보니 사냥에 어려움이 많았다. 거기다 이상할 정도로 인의 구슬은 주기 않았다. 천의 구슬이나 지의 구슬은 제법 줬다. 죽림의 암살자를 다섯 번 정도 잡으면 그 중에 하나는 구슬을 줬는데···. 그 대부분이 천의 구슬 아니면 지의 구슬이었다. 인의 구슬은 죽어라 나오지 않았기에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된 이상 천과 지의 구슬이라도 한 번 넣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 또 먹튀 당하면 짜증 날 것 같아서 일단 참고 있는 정운이었다. “이제 구슬을 다 모았네···. 바로 던전에 들어가 보자.” “괜찮을까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괜찮아. 이게 간이 포탈도 있잖아? 일단 문을 열어보고 안에 들어가서 분위기만 살핀 후에 간이 포탈을 열고 나오지 뭐.” “알았어요. 그럼 뭐···.” 간이 포탈이 생긴 이후로 정말 편해진게 많다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예전 같으면···. 일단 던전을 발견하며 그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고 거기다 던전의 난이도를 재가면서 공략의 과정을 치밀하게 준비 했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정운의 경우는 혼자서 플레이 했었지만 보통 다른 유저들의 경우는 던전을 발견하면 혼자서는 공략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여럿이서 나눠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던전 공략이 간이 포탈이 생기면서 이제는 많이 편해진 것이다. 정운은 일단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던전형의 기와 건물에 도착했다. “5층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데 과연 안에 들어가서는 어떨지.” 겉으로 보는게 5층 건물이라고 실제로 안에 있는 던전도 5층짜리 탑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여기는 현실이 아니고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 그리고 던전의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하면 알 수 없었다. 정운은 구슬 세 개를 꺼내서 구멍에 끼우면서 말했다. “이번에도 먹튀 하면 나 정말로 화낼 거야.” 정운의 푸념에 옆에서 보고 있던 슬기가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구멍에 구슬 세 개가 다 들어가자····. “··········.” “··········.” “······젠장, 결국 또 먹튀냐!!?” 정운이 막 짜증을 내려고 하자 문이 끼이익 이라는 낡은 소리와 함께 열렸다. “····사람 머쓱하게 하네.” 정운은 괜히 무안한 듯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동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벽면에 까마득하게 횃불이 걸려있는 커다란 방이 있었다. 바닥은 나무로 만든 바닥이었고 벽의 여기저기에는 검이나 창 같은 무기가 걸려 있었다. “이건···. 던전이라기 보다는 도장인걸?” 정운은 일단 안에 들어온 상태에서 전체적인 모습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이 던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다. ‘일단 넓은 장소에 아무도 없다. 라···. 이건 함정인가? 저기 중간으로 가면 바닥이 훅 꺼진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겠지?’ 정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여기에 있어. 일단 내가 탐색해 볼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중앙으로 가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적어도 함정 같은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후욱!! “엇!!” 정운은 깜짝 놀랐다. 바람이 훅 하고 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자신의 눈앞에서 어떤 남자가 불현 듯 나타났기 때문이다. “···········.” 마치 유령과도 같이 말 없이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검은색 도복을 입고 꿈틀 거리는 강철 같은 근육을 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안내역 같지는 않았다. 구리빛 피부 밑으로 꿈틀 거리는 핏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남자는 척 봐도 한 주먹 하는 무투가처럼 생겼다. “이걸 쓰러트리라는 건가?” 정운은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면서 무기를 겨눴다. 아마도 정운이 보기에 이 던전은 관문형 던전 같았다. 예전에 슬기와 같이 클리어 했던 쉐도우 엘프 킹의 던전과 같은 타입이었다. 한 관문 한 관문 돌파 할 때마다 다음 관문으로 통과 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마지막 층에 최종 보스가 기다리는···. 그런 형태의 관문형 던전으로 보였다. “정운씨. 도와 드릴까요?” 정운이 전투 태세를 취하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슬기가 말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 말을 거부했다. “아니. 일단 지켜보고 있어. 필요하면 부를게.”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것 보다는 일단 상대의 전력을 정탐하는게 정석이었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무기를 겨누고 상대를 차분하게 지켜봤다. ‘···이상한 걸? 좀 위화감이 들어.’ 정운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겪어 본적 없는 위화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정운은 그 감정의 정체를 이내 알아챘다. “살기가···. 전혀 없군.” 그렇다. 지금 정운이 상대하고 있는 적은 명백하게 정운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정운에게 전혀 살기를 뿜어내지 않고 있었다. 보통의 게임들과 달리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살아있는 인간이나 악마들의 영혼을 사용한다. 그러니 몹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와 투기는 두 말 할 것 없는 진실인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살의를 항상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적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경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중한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할 만큼은 해야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대로 검을 꽉 잡았다. 무기를 창으로 교체 할까?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정운은 상대가 맨손인 것을 보고 검을 고수하기로 했다. 개마무사라는 직업군을 가지고 있는 정운은 검, 창, 활을 모두 잘 썼다. 그리고 잘 쓰지는 않지만 단검을 투척하는 기술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쓰는 무기는 단연코 창이었다. 흑토의 위에서 올라타서 싸울때의 궁합도 좋았고 그리고 실제로 창이라는 무기는 초보자가 사용해서 바로 위력을 발휘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기이기도 했다. 일단 사거리가 길다. 사용하기가 쉽다. 이 두 가지 이 점 만으로도 창의 유용함을 잘 알 수 있었다. 정운은 거기에 다년간의 경험을 곁들여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류 창술을 자신의 몸에 익혔다. 하지만····. 상대가 맨손이라면 창의 메리트는 대폭 감소한다. 공격 거리의 우위는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나다. 하지만 창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 즉, 창을 잡히는 상황이 펼쳐 질 수가 있었다. 창날의 자루 부분이 맨손에 잡혀서 제압당하면 그때는 창이라는 무기의 효용성이 크게 반감 되어 버린다. 오히려 잘못 하면 상대에게 역이용 당할 가능성도 컸다. 그에 반해서 검의 경우 그럴 일은 거의 없다. 날카로운 검날을 맨손으로 잡아서 끄는 일은 없을 테고, 근거리로 파고든다고 해도 검이 창보다는 훨씬 대응 패턴이 다양했다. 적어도 맨손을 상대 할 때는 검이 창보다 훨씬 더 유리했다. “후우우····. 안 오는 건가···. 그럼, 내가 먼저 가야지!!” 파앙!! ‘지’라는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정운이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노리는 부위는 피하기 힘든 가슴팍이었다. 목을 노리는 검격과 달리 상체를 숙여서 피하는 식으로 피했다가는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공격이었다. 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정석은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뒤로 물러나는 것.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33화 후웅!!! 정운의 날카로운 검격이 그대로 바람을 갈랐다. 적은 정운의 예상대로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공격을 피했다. 아마도 그 상태로 정운의 검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카운터 공격을 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운도 거기까지는 읽고 있었다. 적의 카운터 공격이 오기 전에 정운은 그대로 회전하는 기세를 살려서 하체 베기를 날렸다. 부우웅!!! 비스듬하게 아래로 자세를 낮추면서 무릎과 허벅지 사이를 정확하게 노리고 아까보다 더 길게 뻗어오는 검격은 적에게 회피할 틈도 주지 않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첫번째 공격의 기세를 원심력으로 그대로 살려냈기에 공격의 기세는 오히려 더 날카로워 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물러난 것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카운터 공격을 위해서 하체에 실어두고 있던 여분의 힘이 뒤로 더 이상 뒤로 물러날수 없게 하였고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정운은 내심 이 공격이 맞을 것 같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스킬 없이 날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먹힌 기술이었다. 하지만 적도 만만치 않아서 적은 그대로 하체의 힘을 위로 살려서 몸을 점프했다. 그리고 거기서 내려찍기로 정운의 정수리를 노리면서 공수의 입장을 역전시켰다. “칫!!!” 정운은 체면 차리지 않고 그대로 옆으로 구르듯이 몸을 날려 적의 공격을 피했다. 콰지직!!! 강력한 뒤꿈치 내려찍기는 정운의 머리 대신에 지면의 탄탄한 견목을 부셔 버렸다. “···골치 아프게 하는군···.” 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 이런 관문형 던전은 최초의 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가 나타나기 쉽다. 하지만 1층부터 이런 놈이 상대면 앞으로가 어떤 놈들이 나올지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적의 공격이 연달아서 쏟아져 왔다. 카이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 말이다. 퍼퍼퍽!! 퍽퍽!! 쩌엉!!! “망할····.” 정운은 적의 집요한 공격에 연신 뒷걸음질 치면서 밀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몹과 유저를 통틀어서 주먹을 가장 잘쓰는 존재는 이보영, 이지영 자매라고 생각했다. 그 자매의 특기는 합동 공격이었지만 개개인의 무투술도 충분히 강력했다. 하지만···, 지금 정운의 눈앞에 있는 정체 불명의 격투가는 스킬만 없을 뿐이지 이보영 이지영 자매의 격투술을 훨씬 상회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강적이었던 것이다. 고전하고 있는 정운을 보면서 슬기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정운씨··. 뭐하는 거예요? 검술로만 싸우지 말고 스킬을 써요.” 슬기의 말대로 스킬을 써서 싸움을 정운의 페이스대로 몰아가면 싸움은 한층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슬기. 진정해요.” “세레나.” “이걸 봐요···. 홀리 버스터.” 세레나가 정운과 싸우는 무투가를 노리고 원거리 스킬을 썼다. 하지만 뻗어 나가던 광선은 어느정도의 거리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이건···?” “스킬 무효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난입도 불가능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아마 저기는 순수하게 스킬 없이 기술로만 이겨야 하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제가 가는 것을····.” 정운이 많이 늘었기는 하지만 스킬 없이 순수하게 대련하면 역시 세레나가 아직은 반수 정도 위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교체도 난입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지금은 발만 동동 구르면서 지켜 볼 수밖에···. “빌어먹을····. 스킬을 못 쓰면 나 이렇게 까지 약해지는 건가?” 정운은 연신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 정도로 약해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치 초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허둥거리는 정운의 전투 스타일은 여기저기가 빈틈투성이었다. ‘저러면··. 좋지 않아. 가뜩이나 만만치 않은 적인데···.’ 떨어져서 정운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세레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정운이 평정을 잃고 있는 것 같아서 영 불안했던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라운드 제로가 게임의 시스템을 따르는 이상 강력한 공격이나 마무리 피니셔를 결정지을 때는 항상 스킬로 싸워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그런데 그 당연한 힘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지금 여기저기가 헝클어지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도 세레나와의 아침 수련으로 어느 정도 다져진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퍼억!! “크으윽····.” 이리저리 치명적인 공격을 피하고 있던 정운이었지만 결국은 적의 중단 뒤돌려 차기를 복부에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상단을 노린 공격인 줄 알았는데 중단으로 찌르듯이 날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 실수였다. “망할···. 나 갑옷 입고 있는데····.” 정운은 배 속이 뒤집히는 파괴력에 전율했다. 정운이 입고 있는 드래곤 리빙 아머는 4,000만 골드 짜리 명품 갑옷이다. 방어력만 5,000이었고 거기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각각 20%씩 올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갑옷을 입은 정운이 뒤 돌려차기 한 방 맞았다고 체력 게이지의 10분의 1이 뭉텅 떨어졌다. “제길, 스킬도 아닌데··. 뭐 이런 놈이 있지.” 정운은 일단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뱉어내고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추가타를 허용하는 것 만큼은 피해야 했다. 회복 스킬은 쓸 수 없지만 드래곤 리빙 아머에는 착용자의 체력을 분당 5%씩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다. 평소에 워낙에 대미지를 잘 입지 않는 정운이었기에 그동안은 별 상관 없는 기능이었지만 오랜만에 그 기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슬기나 세레나의 회복은 받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유일하게 정운의 체력 게이지를 회복 시켜주는 수단이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전으로 가보는 수밖에.’ 정운은 상대의 빈틈을 찾을 때 까지는 장기전을 각오하기로 했다. 모든 신경을 방어에 돌리고 버티기 작전으로 나가면서 적의 빈틈을 찾아야 했다. 퍼퍼퍽!!!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상대는 채찍처럼 유려하게 휘어지는 발차기를 정운에게 사정없이 퍼부었다. 정운이 방어하기 위해서 휘두르는 검에 걸리면 오히려 자신의 몸이 대미지를 입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유려하고 완벽한 궤도의 아름다운 발차기는 정운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정운에게 공격을 적중 시키고 있었다. 방어에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소용 없었다. 오히려 정운이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것들 간파한 것처럼 적의 맹공이 더 격렬해질 뿐이었다. ‘이거···. 정말 위험한데?’ 탈출도 불가능. 스킬의 사용도 불가능. 아군의 조력도 불가능. 그런 상황에서 적은 자신보다 더 강했다. 정운은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위축은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그렇게 산만해진 정신은 육체를 둔하게 한다. “하압!!!” 정운의 빈틈을 알아챈 상대가 그대로 한방에 정운에게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품안으로 파고들어서 정운의 심장에 손바닥을 얻는 것과 동시에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쿵!!! 그리고 적이 진각을 밟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정운은 강력한 충격이 자신의 등까지 꿰뚫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퍼어엉!!! 쿠웅!!! 대포를 발사한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정운은 그대로 슬기와 세레나가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근거리에서 스킬도 쓰지 않고 오로지 기술만으로 터졌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장벽까지 날아가서 부딪힌 정운은 그대로 큰 대자로 쓰러졌다. “크윽····. 쿨럭···.” 정운이 자신의 체력 게이지를 살펴보자 거의 바닥까지 떨어져서 깜빡 깜빡 거리고 있었다. 정운은 그것을 보고 각오를 다졌다. ‘체력 게이지가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오랜만이군····. 좋다. 어디 죽기 살기로 해 보자····.’ 다리를 부들부들 거리면서 일어나는 정운을 보고 뒤편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정운씨!!! 정운씨!!!!!” “마스터!!!!!!!” 슬기는 물론이고 평소에는 쿨 했던 세레나까지 목이 찢어져라 정운을 부르고 있었다. ‘하··· 하하···. 죽어가는 와중에 아름다운 미녀 둘이거 애타게 기다려 준다라···. 이 와중에도 이건 좀 기분 좋은걸···.’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운은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그냥은 죽지 않겠다. 앞으로 슬기와 세레나를 위해서 마지막 한 방 정도는······. 응?’ 몸을 간신히 일으킨 정운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에게 추가타를 날려서 끝장을 날릴 줄 알았던 적이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쓰러진 사람은 공격하지 않겠다. 라는 듯이 태연하게 말이다. “···이건 혹시····. 마스터!!! 패배를 인정 하십시오.” 그런 상대를 뒤편에서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던 세레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패배··?” “빨리 인정 하십시오. 어서!!!” 세레나의 다급한 말에 정운은 일단 전후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우선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어서 항복의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내가 졌다.” 그렇게 말하자 상대는 절도 있는 자세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정운과 슬기들을 가로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도 사라졌다. “정운씨···. 이런 퀵 힐링!!!” 슬기는 서둘러서 정운의 체력 게이지를 회복 시켰다. 자칫 잘못하면 정운이 죽을 뻔 했다는 것에 그녀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평소의 예쁜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녀를 안심 시켰다. “걱정 시켜서 미안해.” “정말···. 미안 한 줄은 알아요!!!?” 슬기는 울상이 되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런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쓰게 웃었다. 슬기와 팀을 결성하고 나서 위험에 처한 적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예전에 쉐도우 엘프 킹을 공략하면서 한 번 죽을뻔 했던 위기 이후에 처음인 것이다. 그 후에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의 위기에 정운 본인 보다 슬기가 더 놀란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정운이 세레나에게 말했다. “세레나, 어떻게 내가 패배를 인정하면 적이 물러날 것이라고 안 거야?” 정운의 물음에 세레나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몹은 적의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마스터와 무술 대련을 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건···. 확실히 그랬지.” 일대일로 나타나서 타인의 방해를 용서하지 않고 스킬도 쓰지 않은 상태로 오로지 기술만으로 싸웠다. 정운 혼자만 스킬을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정운과 달리 저쪽의 몹도 마찬가지 조건이었다면 확실히 이건 전투라기보다는 대련이었다. “전투나 결투가 아니라 대련인 이상···. 상대의 죽음까지 갈 일은 없죠. 마스터께서 패배를 인정하면 적도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랬군.”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 아마도 이 던전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대신에 죽음의 위협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던전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라운드 제로의 각 던전에는 던전 마다 던전 나름의 배경 스토리나 테마가 있기 마련이다. 함정이기는 했지만 예전에 타락한 인형술사의 던전도 그랬듯이 말이다. 보통 던전에 입장 할 때 배경 스토리가 알림창에 뜨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보통 던전의 분위기나 나오는 몹의 종류등을 보고 던전의 테마를 알아차려야 했다. 그냥 테마일 뿐이지만 그걸 알고 모르고에 따라서 공략의 방향이 확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던전의 테마는·····.’ “수련···? 일까?” 정운의 중얼 거림에 눈물이 조금 멎은 슬기가 말했다. “수련요?” “그래···. 아마도 경험치고 뭐고 없이 순수하게 실력의 신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수련의 던전일 가능성이 커. 끝장을 볼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과연 일리는 있겠군요.” “그렇지. 아마도 이 던전은 사냥으로는 얻을 수 있는게 거의 없을 거야. 오로지 클리어 했을 때만 어떠한 보상이 주어지겠지.” 정운은 대강 이 던전의 형태를 알 것 같았다. 이런 던전이라면 할 만하다. 죽음의 리스크가 없는 이상 얼마든지 반복해서 도전 할 수 있다. 난이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말이다. ‘이 던전은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일부터 이 던전의 공략에 공을 기울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임현규 선수, 강경호 선수, 방태현 선수의 동시 출전이 오늘입니다. 부디 이기기를....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34화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정운들은 간이 포탈을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세레나. 내가 그 몹하고 싸우는 것 ME로 찍어 뒀지?” “물론입니다. 마스터.” “좋아····. 같이 연구를 좀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정운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세레나와 함께 ME의 영상을 보면서 적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전투에서 승리 할 수 있는 법. 정운은 우선 적에 대한 연구를 철저하게 하기로 했다. “········대단해. 내 움직임을 완전히 예측하고 있어.” 개관적으로 ME의 영상으로 관찰하고 나니 정운은 자신과 상대의 실력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고수가 몇 수 아래의 하수를 상대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정운을 요리하는 적을 보면서 정운은 내심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고심했다. 하지만···. 막상 연구를 거듭해 보니 점점 더 절망적인 결론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 이 부분···. 대단하군요. 킥의 중간에 마스터의 검에 걸릴 것 같으니 무릎을 한 번 접어서 검을 피한 후에 다시 무릎을 펴서 타격을 했습니다.” “···신기·····. 라는 말은 저럴 때 쓰는 거겠지.” “그렇군요. 사실 기술로는 저도 이길 확신이 없는 고수입니다.” “·······어쩌면 좋을까?” 정운의 질문에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세레나가 말했다. “순수하게 기술로 이길 수 없다면···. 상성을 이용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성?” “예. 마스터께서는 검으로 싸우셨죠?” “그랬지. 다른 무기로 싸우라는 말이야.” “아닙니다. 맨손의 적을 상대로는 공격의 패턴이 다양한 검이 최적입니다. 다만···.” “다만?” “방패를 착용해 보시는게 어떠십니까?” “방패?” “예. 적에게 섣불리 먼저 공격하지 말고 방패로 선제 공격을 막은 후에 빈틈이 생긴 상대에게 그대로 카운터 공격을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연습 해야겠죠. 다행이도 몇 번이고 도전이 가능한 상대가 아닙니까?” “그렇군···. 그럼 그렇게 하자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세레나와 정운은 몰랐다. 세상만사 그렇게 뜻대로 돌아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음날. “···이게 뭐야?” “·····던전의 입구군요.” “그래·······. 으아아아아!!! 이 새끼들 사람 짜증나게 한다 이거지!!!!!!” 정운을 개짜증 나게 한 이유···. 그것은 다음날 간이 포탈을 타고 찾아간 곳이 던전의 밖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결론이다. 이 던전에서 한 번 패배한다고 죽는 일은 없다. 다만 다시 던전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간이 포탈을 쓴다고 해도 결과는 같다. 다시 던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또 천, 지, 인의 구슬을 다 모아 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또 도전했을 때 던전의 공략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번도 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겨야 한다. 라는·····. 실로 어렵고 어려운 클리어 조건을 가지고 있는 던전인 것이다. “망할···. 빌어먹을····.” 정운은 허무함에 욕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 정도 핸디캡은 당연한 던전이었다. 던전안에서 죽을 일이 없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런 던전은 흔하지 않다. 죽음의 위협이 없는 이상 클리어의 난이도라도 왕창 올라야 한다. 그래야 평행이 맞는 것이다. 아무리 숨겨진 던전이 아니라고 해도 명색이 던전인 이상 이 정도의 리스크는 당연한 것이었다. “망할···. 처음부터 다시라니···. 구슬 모으기도 엄청 짜증나는데·····.” 어쨌든···.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고 해도 다시 구슬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정운은 허무함이 밀려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게 아닌가? 세레나에게서 빌린 방패를 내 팽겨쳐 버리고 싶었다. 그런 정운에게 세레나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이 던전은 포기 할까요?” 그녀의 말에 정운은 내심 스멀스멀 뭔가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포기···. 절대 안 되지.’ 정운은 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포기라는 것을 한 적은 없었다. “구슬 모으자.” 그렇게···. 정운의 던전 노가다가 시작된 것이다. 던전 공략을 위해서 구슬을 모으기 위해서 정운의 팀은 힘껏 노력했다. 일단 구슬을 주는 죽림의 암살자는 발견하는 것 부터가 어려웠기에 주 사냥감의 타깃은 여전히 대왕호였다. 다만 예전과는 달리 대왕호를 사냥다가가도 죽림의 암살자를 만나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죽림의 암살자들이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것이 보통 대왕호와의 전투가 끝난 직후이거나 혹은 전투 중간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난 후에는 상관없지만 전투 중간에 기습해 올 때는 상당히 골치 아팠다. 그럴 때 마다 정운은 일산 대왕호의 상대를 슬기와 세레나에게 맡기고 자신이 속공으로 돌격해서 죽림의 암살자를 사냥해 왔다. 대왕호를 잡는 것에 익숙해지기는 했다. 그러나 익숙해 졌다고 해서 놈이 결코 만만한 몹이라는 말은 아니다. 워낙에 공격력이 강하고 스피드가 빨라서 한 순간의 방심이 치명적인 사고를 불러 올 수도 있었다. 그런 몹을 슬기와 세레나에게만 맡겨 두는 것은 정운으로서도 결코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쉐도우 서치라는 탐색 스킬은 정운에게만 있었다. 놈이 공격 시에도 항상 은신을 하고 있는 이상 죽림의 암살자를 가장 빠르게 잡을 수 있는 것은 정운뿐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죽림의 암살자를 잡은 후에 대왕호의 사냥에 합류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5분 정도···. 그 시간동안 대왕호의 상대는 세레나와 슬기가 같이 해야 했다. 이게 위험하기는 하지만···. 슬기와 세레나는 정운의 걱정이 괜한 걱정이라는 듯이 잘 해내고 있었다. 보통 대왕호의 어그로는 세레나와 정운이 번갈아 가면서 끄는게 이상적이었는데···. 이럴 때는 세레나 혼자서 대왕호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슬기의 경우 대왕호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일격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방어 마법에 전력을 기울였을 때의 일이다. 세레나의 경우 급소 크리티컬만 피하면 얼마든지 대왕호의 공격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몇 번이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그만큼 메이지와 성기사간의 방어력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다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무리 세레나가 능숙하다고 해도 대왕호의 사기적인 운동 능력과 시작하자마자 퍼트리는 디버프를 생각하면 역시 혼자 상대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래서 정운은 죽림의 암살자를 상대 할 때는 최대한 빠르게··.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상대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거기까지다!!” 정운은 흑토를 타고 날아올라 죽림의 암살자를 추적했다. 마치 날 다람쥐를 추적하는 표범과도 같은 동작으로 죽림을 헤치면서 흑토는 돌진했다. 그리고 도망가면서 단창을 날리려는 죽림의 암살자와 간격이 좁혀지자 정운은 주저 없이 놈의 심장에 치명적인 일격을 꽂아 넣었다. “커어억···.” 다른 몹들과 달리 이 죽림의 암살자는 항상 죽을 때도 인간과 같은 신음 소리를 낸다. 뭐, 몹의 구조 베이스가 인간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스터. 이 쪽도 끝났습니다.” 정운이 죽림의 암살자를 서둘러 해치우고 도와주려고 귀환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슬기의 연속 마법이 대왕호를 잡은 후였다. “용케 둘이 끝냈네.” 정운이 칭찬하자 슬기가 웃으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정운씨가 이탈하는 순간 이미 거의 끝난 상태였는 걸요? 피니시만 먹이면 되는 상황에서 별것 아니었어요.” “그래도 잘 한거야.” 정운은 슬기의 머리를 토닥토닥 거리면서 그녀를 칭찬했다. 사실 시간은 좀 걸릴지 몰라도 지금 슬기와 세레나의 콤비 만으로도 대왕호를 사냥하는 것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제법 고전했던 몹이었지만 결국 공격 패턴이 익숙해지면 잡기도 한 결 쉬워진다. “그나저나···. 구슬은 뭐 나왔어요?” “응? 구슬···. 오? 인의 구슬이 나왔어.” 정운은 인벤토리를 확인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드디어 인의 구슬이 나온 것이다. 죽림의 암살자를 거의 50번 이상은 잡아야 한 번 구할 수 있는 인의 구슬이다. 평범한 몹이라면 몰라도 발견부터가 어려운 죽림의 암살자를 50번이나 잡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천과 지의 구슬은 이미 모인 상황이었고 이제 다시 인의 구슬이 모였다. 다시 한 번 저 던전에 도전할 권리를 손에 넣은 것이다. “좋아···. 이번에야 말로···.” 띠리링!! 그때 갑자기 정운의 머릿속에 알림창과 함께 한가지 문장이 떠올랐다. [24시간 후에 비정기 퀘스트 진행. 퀘스트의 내용은 당일 통보하겠음.] “····망할.” 비정기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창····. 생각해 보면 슬슬 때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걸로 던전 공략은 잠시 미뤄둬야 할 것 같았다. 비정기 퀘스트는 그때 그때 마다 내용이 변한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모든 유저들이 전원 참가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이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번에 다가오는 비정기 퀘스트에서 모든 유저들의 관심은 한 가지에 집중 시켰다. 바로 언더 플레이어들의 존재들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뭘요?” 술병 하나 출입증 삼아서 집에 놀러온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시침 뚝 때고 말했다. 비정기 퀘스트가 앞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에 정운은 바로 집으로 귀환해서 24시간 후에 있을 퀘스트를 대비해서 힘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아직 내용은 어떤 내용인지 전혀 통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힘을 비축해 두는 것 정도는 미리 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상대로 한중겸이 놀러온 것이다. 한중겸은 과일 안주를 먹으면서 정운에게 다시 말했다. “뻔 하잖아? 언더 플레이어들, 그 놈들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글쎄요···. 되 봐야 알겠죠.” “그런 대답은 누구나 하겠다.” 정운의 말에 핀잔을 주는 한중겸을 보고 정운이 반대로 말했다. “그럼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되 봐야 알겠지?” 그라고 해서 뭔가 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오랜세월 동안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한중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 있는 상황에까지 명쾌한 해답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었다. “일단 퀘스트 내용부터가 궁금하네요. 보통 이렇게까지 정보가 없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확실히, 정보가 너무 없지.” “그러니까요. 이번 퀘스트가 어떤 조건인지는 몰라도···. 아마 정보를 미리 알건 나중에 알건 별 차이가 없는 경우일 가능성이 커요.” “흠, 그건 그렇지·····.” 정운과 한중겸은 비정기 퀘스트에 관해서 좀 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그냥 탁상공론. 아니 주정공론일 뿐이었다. “난 이만 갈련다. 내일 퀘스트에서 보자.” 술이 얼큰하게 오른 한중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운도 현관까지 배웅했다. “내일 봐요.” “그래. 그래····.” 한중겸이 그렇게 나가고 나니 거실에는 한중겸과 정운이 벌였던 처참한 술판의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뒹구는 술병들. 널부러진 안주들. “음···. 내일 메이드에게 치우라고 하지 뭐.” 직접 치울 생각은 조금도 없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일단 술판의 흔적을 내버려 두고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슬기가 침대에 기대서 혼자서 무슨 책을 읽고 있었다. “응? 다 끝났어요?” “미안. 지루했지?” “아니요. 별로····.” 여자가 ‘아니요. 별로’ 라고 하면 그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라는 말로 해석해야 했다. 내일부터 비정기 퀘스트라는 중요한 일정이 있으니 사실상 오늘이 한동안의 마지막 휴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애인이 아는 형님하고 술판 삼매경이면···? 나쁜 여자면 남자를 뻥 차버리고, 보통 여자는 빡치고 착한 여자는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정운은 침대로 슬금슬금 기어들어가서 슬기를 품에 안았다. 한 손을 뻗어서 슬기의 책을 조심스럽게 접어버리는 정운의 행동에 슬기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같이 한 시간이 얼마인데 여기서 분위기를 못 읽겠는가? “내일부터 중요한 퀘스트잖아요? 이래도 되요?” “응. 네 품 에서 좀 기분을 진정 시키고 싶어.” “·····이리 와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원한다고 하자 슬기는 주저 없이 팔을 벌려서 정운을 자기 품안에 안았다. ============================ 작품 후기 ============================ 사실 어제 말하려고 했지만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선작수가 9,000이 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모두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사실 어제 말하려고 했는데 어제 잠깐 9,000을 넘었다가 다시 8999로 되었다가 다시 9000이 넘었다가 또 8998이 되었다가... 결국 오늘에서야 이 말을 씁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35화 <갑작스런 비정기 퀘스트> 다음날 아침. 정운은 눈부신 아침 햇살이 눈을 떴다. “으음···. 음? 아침 7시····. 이제 다섯 시간 정도 남았나?” 이제 몇 시간 후면 비정기 퀘스트를 위해서 어디론가 단체 이동이 될 것이다. 정운은 자신의 품안에 안겨 있는 슬기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남자란 원래 자기 품안에 여자가 안겨 있기만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끼는 생물이다. 그게 그냥 여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라면 그 성취감은 더욱더 커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게 그냥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리고 그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품안에서 안심하고 무방비한 상태로 몸을 맡기고 있는 상태라면···. 그때는 그냥 성취감이나 우월감을 초월한 진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정운처럼 말이다. ‘아아····. 가능하면 이대로···. 시간이 멈출 수만 있다면····.’ 가끔씩 슬기를 품안에 안고 그녀의 향기와 체온에 취하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수십 번 도 넘게 들고는 했다. 모든게 완벽한 느낌. 지금 이 순간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그런 느낌에 취하면서 시간이 흐르는게 안타까워 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운의 한숨을 느꼈는지 슬기는 살며시 눈을 떴다. “····정운씨···. 지금 몇 시에요?” “아침 7시. 좀 더 자도 돼. 두 시간 후에 깨워 줄께.” 정운의 말에 슬기는 그대로 정운의 품안으로 더욱더 파고 들어왔다. 마치 새끼 토끼가 어미 토끼의 품안에 젖을 찾기 위해서 파고 들 때와 같은 어리광을 부리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시간 후에 깨워 준다고 말을 했지만···. 정운 역시 자신은 없었다. 아침 햇살, 포근한 이불의 감촉, 사랑하는 여자의 향기. 이 모든 것이 너무 행복하고 따뜻해서일까? 정운의 눈도 다시 한 번 스르륵 감기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이 다시 눈을 뜬 것은 9시를 넘어서 오전 10시가 된 것이었다. 12시가 되면 비정기 퀘스트를 위해서 이동해야 하니 이제 별로 남은 시간도 없었다. “어쩌죠? 너무 자 버렸는데?” “진정해. 중요한 아이템은 어제 인벤토리에 다 챙겨 뒀잖아? 옷 입고 대기만 하면 돼.” “그래도····. 어째 불안해요.” 뭔가 좀 더 필요한게 없나 꼼꼼하게 체크하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피식 웃었다. “아침이나 먹자. 아니 지금은 아점인가?”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를 데리고 식당으로 나오자 거기에는 세레나가 이미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마스터.” “응. 컨디션은 어때?” “심신 모두 완벽합니다. 기사 된 몸으로 전쟁에 앞서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세레나의 말은 어쩐지 어젯밤에 몸을 겹친 정운과 슬기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아니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정운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던가 말이다. “하하···. 나도 아침만 먹으면 완벽해. 적당히 먹고 준비 할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된장찌개에 몇 가지 나물 반찬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한식이었다. 원래 양식이던 한식이던 가리는 것은 없는 정운이었지만 아침을 먹을 때는 빵보다 밥을 더 좋아했다. 항상 먹는 아침이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를 비정기 퀘스트를 앞두고 있어서일까? 정운은 한층 더 꼭꼭 씹어서 맛을 보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자신을 발견하고 생각했다. ‘나 긴장한 건가? 처음도 아닌데····.’ 정운은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긴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심호흡을 하면서 정운은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 곧이다. 이제 곧····.’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흘러서···. 드디어 비정기 퀘스트의 시간이 되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슬기와 세리나까지···. 모든 유저들이 정체모를 어느 성벽으로 둘러쌓인 장소에 나와 있었다. 띠리링! 그리고 모두의 머릿속에 알림창과 함께 이번 비정기 퀘스트의 내용이 떴다. [배지 사냥. 이번 퀘스트의 내용은 몹을 사냥해서 최소 10개 이상 모으는 것이다. 10개 이상의 배지를 모으는 시점에서 성의 중앙에 있는 포탈을 타고 귀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배지를 10개 이상 모아서 탈출할 때는 그에 어울리는 보상이 있을 것이다. 필드에는 배지를 품고 있는 몹들이 있다. 이 몹들을 잡고 배지를 많이 수집하는 유저들이 이번 비정기 퀘스트의 우승자가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헌팅 콘테스트인가?” “그렇게 보이는 군.” “이거라면 공평하게 경쟁 할 수 있어···.” “그렇게 말이야.” 유저들은 알림창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비정기 퀘스트의 경우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경우도 있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위험 부담 없이 자기 능력에 걸맞게 적당한 보상을 받아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 비정기 퀘스트이기도 했다. 이번 퀘스트가 딱 그랬다. 하지만 내용이 거기서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띠리링!! 모두의 머릿속에 다시 한 번 알림음이 울리면서 다시 알림창이 떠 올랐다. [추가사항. 1. 본 비정기 퀘스트에서는 유저간의 공격이 가능하며 공격 성공시에 그 유저가 가지고 있는 모든 배지를 빼앗은 것이 가능하다. 2. 일반 플레이어가 언더 플레이어들을 죽였을 시에는 두 배의 배지 보상이 있을 것이다. 3. 언더 플레이어가 일반 플레이어를 죽였을 때에도 같은 조건이 주어진다. 4. 본 퀘스트에서 일반 플레이어와 언더 플레이어의 진형은 나눠지며 총 배지량의 숫자가 많은 쪽을 최종 승자로 한다. 5. 열 개의 배지를 다 모아서 이탈한 사람들의 경우 그 배지는 최종 집계에서 집계되지 않는다. 6. 본 퀘스트의 승자 진형에서는 최대 유공자의 의지에 따라서 약 열 개의 층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을 수 있다. 7. 적의 영역이 된 층에는 다음 비정기 퀘스트까지 출입을 할 수 없게 된다. 8. 영역을 선포 할 대는 상대의 개발 충인 최상층은 영역으로 선언 할 수 없다. 내용을 다 읽어본 정운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건···. 아무래도 김신수 그놈이 파우스트에게 징징거려서 뭔가 수를 쓴 것 같은데····.’ 정운의 예상은 비교적 정확했다. 정운과 십왕들이 정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것은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주었다. 일단 걸리기만 하면 99% 죽음이다. 그런 위험이 필드에 무규칙 적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사냥이 가능할 리가 없다. 원래 김신수는 업데이트 이후에 즉시 당분간 상황을 지켜본다. 라는 명복으로 사낭 금지령을 내렸었다. 하지만 그런 김신수의 명령에 불복하고 몰래 필드로 나가서 유저 사냥을 하면서 레벨을 올리는 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놈들 중에 몇 명인가가 십왕들의 순찰에 걸리거나 삼대 길드의 순찰에 걸리고는 했다. 삼대 길드의 순찰은 그나마 나았다. 어느 정도 고전은 했지만 그래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긴적도 있었고 여차하면 도망가는 것 정도는 90레벨쯤 되니 어찌어찌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는 십왕들의 레이드였다. 그동안 지하층에서 레벨을 대폭 올린 언더 플레이어들은 내심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설령 십왕이라고 해도 하위 레벨 정도는 여럿이서 덤비면 어찌어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박추성, 배대호, 이민지, 한중겸 같은 상위 십왕들에게는 어림도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경택이나 이보영, 이지영 자매 정도라면 내심 승산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 스럽게 하는 놈들도 있었다. 결과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었다. 몇 명인가가 팀으로 이보영이나 주경택을 발견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덤볐지만···. 결과는 대 패였다. 언더 플레이어 열 명이서 이보영, 이지영 자매에게 덤볐다가 전원 격퇴 당하고 죽을 뻔 했다. 그나마 두 명이 죽은 시점에서 최수영이 구해주러 오지 않았다면 그 열 명은 전원 사망했을 것이가. 그 외에도 주경택을 십왕의 최고 아래라고 보고 당당하게 결투 신청했다가 5초만에 즉사한 머저리도 있었다. 가장 결정타는 박추성에게 걸린 다섯 명이 처참하게 죽어 버린 것이었다. 최수영은 그때 멀리서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서 나서려고 했지만 박추성이 싸우는(?) 것을 보고 그 다섯명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것을 싸운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이나 할지 의문이었다. 어쨌든 박추성의 앞에 나선다는 것은 그냥 자살행위 밖에 되지 않았고, 그 대신에 그녀는 그 영상을 ME로 찍어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부하들에게 보여 주면서 경각심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실로 발군이었다. 그렇게 해서····. 적어도 김신수의 명령을 무시하고 멋대로 사냥을 하러 필드에 나가는 놈들은 사라졌다. 김신수의 부하들도 이제는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열 명이나 멋대로 사냥을 나갔다가 사망을 당한 후였다. 숫자가 적은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열 명은 거의 10%에 달하는 숫자였다. 어쨌든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긴다. 더 이상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고 해도···. 사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냥을 해서 지하층을 거침없이 통과하지 않으면 게임을 클리어 할 수가 없다. 아니··. 이대로는 길드의 존폐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김신수는 파우스트에게 이 사실을 성토했다. 이번에 악마들이 대규모 패치를 하고 이런저런 버그를 수정하면서 수많은 이점들이 사라졌지만 그 와중에 파우스트와의 통신은 여전히 남겨둔 김신수였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김신수의 특권이기도 했다. 파우스트는 김신수의 말을 듣고 이번 비정기 퀘스트를 손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파우스트라고 해도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룰을 멋대로 주무를 수는 없다. 그라운드 제로는 파우스트가 40% 악마들이 30% 나머지 30%는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 자체가 짜 놓은 로직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회사로 치면 대주주는 틀림없는 파우스트였지만 그래도 자기 마음대로 막 붕붕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김신수의 레벨이라도 한 500으로 찍어 줬을 것이다. 어쨌든 파우스트가 비정기 퀘스트를 만들고 악마들이 그것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고, 그리고 또 파우스트가 수정하고···. 그런 식으로 시소게임을 하면서 어느 정도 균형의 추를 맞추면서 만들어진 비정기 퀘스트가 바로 이것이었다. 유저들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대부분의 시스템은 조금이라도 더 유저들이 불리하게 하려는 파우스트와 조금이라도 더 공략을 쉽게 하려는 악마들 간의 줄다리기로 진행되는 것이다. 뭐, 그런 사정으로 인해서···. 파우스트가 이번 비정기 퀘스트에서 노린 것은 언더 플레이어들이 일반 플레이어들 보다 더 많은 배지를 얻어서 자신들이 안심하고 사냥 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비정기 퀘스트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파우스트도 만에 하나 졌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 만들어 놨다. 적의 최상층은 영역으로 선포 할 수 없다. 라는 조항이 그것이었다. 악마들도 그 점에는 동의했다. 최상층. 그러니까 지상 68층과 지하 59층이 상대의 영역으로 봉인되면 다음 비정기 퀘스트까지는 영원히 공략 플레이가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은 악마측에서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반 플레이어들이 이긴다면 그때는 악마들에게 훨씬 저 유리했다. 사냥이 위축된 것은 일반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도 안심하고 사냥 할 수 있는 영역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유저들에게 내려진 플레이어는 이 퀘스트에서 이기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을 유지 할 수 있는 2분의 1확률의 게임인 것이다. 다만 유저들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더 유리해.” 퀘스트의 조건이 주어진 후에 십왕들의 회의에서 이민지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배지를 더 많이 모으는 쪽이 승리라고 했지? 그럼 간단해. 일반 플레이어까지 동원해서 대규모로 사냥 하면 돼.” “누님 말이 맞습니다. 물량에서 앞서는 이상 우리가 훨씬 더 유리합니다.” “언더 플레이어들의 공격에만 주의하면··. 충분히 사냥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낙관은 금물이야. 필드의 몹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그건 그렇죠··.”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36화 십왕들은 자기들 끼리 격렬하게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십왕들의 회의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일반 유저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딱히 십왕들이 우리 회의 끝나기 전 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눈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십왕들이 꼼짝 안고 있으니 삼대 길드의 간부들도 꼼작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그 밑의 삼대 길드의 멤버들도 자동 대기 상태였다. 그리고 삼대 길드가 앞으로 나서서 총대를 매지 않자 다른 유저들이 일단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십왕들은 격렬한 회의를 거친 끝에 일단 100명 단위로 팀을 이끌고 한 번 밖으로 나가보자. 라는결론을 내렸다. 100명이라는 단위는 혹시 언더 플레이어들의 습격이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커버 하면서 보호 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치였다. 수만명이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십왕들에 정운까지 더해서 100명씩 조를 꾸리면···. 많이 꾸민다고 해도 1,100명 정도였다. 정운과 슬기가 찢어져서 각각 조를 이끌면 100명 추가 할 수 있겠지만 정운은 그것 만큼은 결단코 거부했다. 세레나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그녀를 옆에서 떨어트리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조를 꾸리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그 이득을 보는 것은 삼대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사대 길드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용병 거래로 꾸준한 우호를 유지했던 유저들이고 말이다. 그들은 십왕이 이끄는 팀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더 쉽고 안전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100명이 한 조씩 되어서 사냥을 나가서 배지를 대량으로 모으면···. 일인당 10개 정도는 금방 모으리라···. 라는 생각을 하고 필드에 나간 정운과 십왕들이었다. 하지만, 세상만사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가 않았다. “천뢰지망!!!” 콰콰쾅!!! 정운의 화살 비가 땅으로 떨어지면서 지면을 초토화 시켰다. 그 강력한 공격에 정운의 주변에 개때처럼 몰려 들었던 오크들은 단체로 절멸했다. 이번 공격 한 번에만 해도 거의 50에 가까운 오크들이 죽은 것이다. 정운은 그렇게 오크들을 학살한 후에 인벤토리를 확인해 봤다. “···여전히 여섯 개···. 슬기야. 넌 어때?” “전 아직도 다섯 개에요.” “세레나, 당신은?” “저 역시 아직 다섯 개입니다.” “····제길, 이거 뜻대로 안 돌아가는 걸?” 정운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배지의 숫자 때문이었다. 정운이 처음에 필드에 나올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몹의 수준이었다. 너무나 강한 몹들이 단체로 나오면 사냥을 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이 발생 할 수 있었고, 거기다 언더 플레이어들의 기습이라도 있으면 많이 곤란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몹의 수준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약했다. 아니 뭐···. 엄밀히 말해서 아주 약한 것은 아니었다. 한 40층 대의 필드에 나오는 몹 수준? 딱 그 정도였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느끼기에는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해 볼 만한 수준일 것이었다. 약한 초보레벨의 유저들이라고 해도 파티를 이뤄서 덤비면 어찌어찌 해 볼만한 수준의 상대들이었다. 그러니 정운의 수준에서 봤을 때는 너무나 약한 몹이라고 느끼는 것 뿐이었다. 난이도 다음으로 걱정 되는 것은 숫자였다. 숫자가 적으면 배지를 얻는데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몹의 숫자도 무척 풍부했다. 오크때, 늑대때, 가고일 무리. 대부분의 출현 몹들이 여럿이서 몰려서 다니는 몹들이었다. 많이 몰려 다닐때는 수백마리가 몰려 다니는 경우도 즐비한 몹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풍족하게 널려 있었으니 정운은 내심 안심했다. 이제 일방적으로 몹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면서 배지를 금방 쓸어 모을 수 있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인당 배지를 10개씩만 모아주고 그대로 조원을 바꿔서 다시 배지를 10개씩 모으고···. 그런 식으로 사냥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분명 퀘스트 알림창에는 일인당 10개씩 배지를 모으는 유저는 이번 퀘스트에서 조기 이탈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그 사실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유저들은 너무 쉽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일인당 배지의 숫자가 다섯이 되는 순간부터 배지가 잘 쌓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몹을 잡고 나면 인벤토리에 자동적으로 쌓이기에 편리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마 처음부터 수작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인벤토리에 자동적으로 싸인 배지는 서로간의 양도도 불가능했다. 즉, 다섯 개 부터는 극악할 확률로 나오지 않는 배지 때문에 쉽게 10개를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거군.’ 악마인지 파우스트인지. 혹은 둘 다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퀘스트를 만든 메이커가 노리는 바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메이커가 노리는 것은 유저들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전일 것이다. 정말이지 어지간히 기대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피차간에 서로의 세력을 눈엣 가지로 여기는 사이니까 어쩌면 파우스트와 악마들 양쪽 다 이런 조항에는 동의 했을지 모른다. “쯧···, 여기서 더 사냥 해 봤자 별 의미는 없으려나···. 일단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그렇게 팀을 이끌고 일단 진지로 귀환했다. 그리고 정운 이외에 다른 십왕들의 팀도 일시적으로 귀환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들로서도 별 반 다를 바는 없었다고 한다. 배지 숫자가 다섯이 되는 순간부터는 극악할 정도로 배지가 쌓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많은 배지를 얻은 사람도 여섯 개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여섯 개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십왕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했다. “어떻게 할래? 일단 내일은 다른 팀을 이끌고 사냥을 나갈까?” “그건 일단 그래야죠. 다만···. 10개를 채우지 못하는 이상 퀘스트에서 탈출 하는 유저들이 거의 없을 테니···.” “다섯 개 씩이라도 꾸준히 모으는 수밖에···.” “그래야겠죠.” 그때 한중겸이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기는 하지. 하지만 난 다른게 걱정이다.” “뭐가요?” 한중겸의 말에 정운이 반문하자 그는 무거운 얼굴 표정으로 말했다. “PK.” 한중겸의 말이 너무 짧아서 정운은 언듯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PK, 그게 왜요? 언더 플레이어들의 습격에는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잖아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내 말은 언더 플레이어들의 얘기만 하는게 아니야. 일반 플레이어들 끼리의 PK를 걱정하는 거야.” “일반 플레이어···. 아!!” 정운은 한중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갔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인당 다섯씩 가지고 있다면···. 어찌어찌 한 명씩만 해치우면 자신은 이 퀘스트에서 탈출해서 안전한 마을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거군요.” 이보영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쯨···, 이거 골치인데. 삼대 길드의 길드원들은 몰라도 일반 플레이어들이 우리말에 절대적으로 협조 할까요? 자기 몸도 버려가면서.” “····기껏해야 그렇게 복종하는 놈들은 형무소 놈들 뿐일걸?” “제길····.” 일반 플레이어들 입장에서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퀘스트의 보상도 언더 플레이어와 일반 플레이어 진형의 싸움의 승패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보전이었다. 이번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어내는 영역의 수해는 같이 받을 수 있찌만···. 그렇게 끝까지 퀘스트에 남아서 같이 위험을 무릅 써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솔직히 말해서 거의 없을 것이다. “골치군요. 눈 딱 감고 유저간에 PK 한 번하면 실제로 퀘스트에서 이탈 가능하니····.” “내 말이····. 이랬다가 대규모 PK가 성행하면 일반 플레이어들의 전체적인 전력만 떨어지는 것 아니야.” “···이 진지 내에서의 공격도 가능한 거죠?” “아아···. 확인해 봤는데 아무 문제 없더라고.” “·····빌어먹을 파우스트.” “응? 파우스트는 왜?”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운의 말에 한중겸이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지만 정운은 그냥 얼버무렸다. 정운이 보기에 파우스트는 어떻게 해도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선택한 것이다. 이 퀘스트에서 언더 플레이어들이 이겨서 자기 영역을 공고히 해도 OK. 그리고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해도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대규모 PK가 일어나기만 해도 그걸로 OK. 둘 다 일어나면 더욱더 좋다. ‘사악한 놈이군···.’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다른 유저들에게 팀 사냥을 이끌어 주는 것도 위험했다. 그들이 배지가 다섯 개가 되는 순간부터 살고자 하는 욕심에 무차별 적으로 PK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를 위해서 자신의 욕심을 억누를 수 있는 인간들이었다면···. 애당초 이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일도 없었을 인간들이 바로 유저들이었다. 그들이 욕심을 버리고 PK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더구나 가뜩이나 최근에 들어서 PK시의 보상도 커지지 않았는가? 최상층에서 사냥하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일반 플레이어들이 활동하는 층에는 자체적인 PK가 은근이 늘어난 추세였다. “····어쩔 수 없지. 팀 사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삼대 길드의 길드원들에게 한정 시키자.” “그러는 수밖에 없겠죠?” “음····. 나머지 유저들에게는 알아서 하라고 하는 수밖에···.” 십왕들의 회의 결론은 그것이었다. 지금 일반 유저들에게 팀 사냥을 이끌어서 배지를 다섯 개씩 쥐어주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마치 어린애한테 현찰을 들려주고 범죄자들 사이를 걷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위험했다. 무분별한 PK를 막기 위해서라도 삼대 길드 이외의 유저들을 더 이상 팀사냥으로 배지를 편하게 가지게 해 주는 것은 위험했다. 아마도 불만은 많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밤. 정확히 12시가 되자 모두의 머릿속에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5612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흐음···. 이런게 발표 되나?” 정운은 자신의 천막안에서 슬기와 함께 있으면서 중얼 거렸다. 중간 성적 발표라는게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슬기 역시 그 옆에서 정운과 함께 알림창을 보면서 말했다. “언더 플레이어들 0개. 라는게 좀 마음에 걸리네요.” “글쎄···. 김신수 그 놈이 그냥 포기 할 생각은 없을 테고···.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지.”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여기서는 안되요.” 방음도 안 되는 천막 안에서 정운이 자신을 끌어안자 슬기는 미리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정운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냥 끌어 안고만 자려고 하는 거야.” “····못 믿을 말인데요? 수많은 여자들이 그런 말에 속았을 걸요?” “뭐,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난 믿어.” “······그 말도 수많은 여자들이 속았을 말이네요.” “···········.” 듣고 보니 정말로 그랬다. 쌍팔년도 멜로물에나 나올법한 전개가 아닌가? “으음····. 그냥 나 다른 천막 갈까?” “어디요? 세레나 천막에 가려고요?” “···········아니. 아니 그냥. 여분 천막 있잖아?” 슬기가 딱히 쏘아대듯이 말한 것은 아니다. 그냥 '어디 가요?' 라는 듯한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가슴이 철렁 했던 정운이었지만 이내 말을 돌렸다. 괜히 화내서 변명이라도 하거나 역정을 내면 확신 범이다. 그냥 약간 놀란 것 정도로는 그래도 아직 괜찮았다. “흠···. 알았어요. 그냥 한 농담이에요.” “농담도···. 아니 됐어.” 정운은 그냥 슬기가 넘어가 주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최근 들어서 슬기와 세레나의 사이가 조금 이상한 것을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제발 아니어야 돼. 라고 하면서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알아야 한다. 미뤄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종종 있다는 것을 말이다. 뭐, 지금 정운이 그걸 알리는 없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37화 <인간의 욕심> 다음날···. 유저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십왕들이 보호해 주면서 사냥을 가는 팀 사냥이 삼대 길드원들에 한해서만 주어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이거···. 너무 하잖아?” “우리는 어쩌라는 거야?” “몰라. 다 죽으라는 건가?” “박정운은? 그 인간은 뭐래?” “똑같겠지. 다 한통속이야.” “빌어먹을·····. 그 놈들 위에 서는 의무 따위는 다 어디로 내 팽겨치고···. 개 자식들···.” 여기저기서 정운의 팀과 십왕들을 원망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정운은 물론이고 십왕들도 그런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체 했다. “마스터···.” “너무 신경 쓰지 마. 하나하나 상대하면 끝이 없어.” 세레나가 뭐라고 말했지만 정운은 그녀의 걱정을 일축시켰다. 세레나의 경우 어느 정도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녀는 생전에 민중들에 의해서 오를레앙의 성처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받들음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권력자의 질시와 루머로 인해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마녀로서 화형을 당해야 했다. 다수의 민중이 보내는 원망의 눈초리는 그녀에게 있어서 생전 최후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는데···. 하여튼 슬기도 그렇고, 난 마냥 순하고 착한 여자가 타입인가?’ 정운이 보기에 저 놈들은 어차피 타인에게 기댈 생각밖에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그런 놈들의 눈초리 때문에 세레나가 위축되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슬기한테 가 봐. 내 막사에 있을 거야. 난 십왕들과의 회의에 갔다 올게.” “알았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함께 있게 하고 자신은 십왕들의 회의에 참석했다. “오, 늦었네?” “좀 일이 있어서요···. 밖에 분위기 쩔던데요?” 막사에 도착한 정운의 말에 다른 십왕들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들 역시 정운과 마찬가지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의 생리를 잘 알았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라는 인간들의 100에 99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원성 좀 산다고 흔들릴 정도라면 애당초 십왕의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중겸이 어깨를 으쓱 하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너야 말로 어때? 우리야 십왕. 십왕. 하면서 단체로 욕 먹지만 넌 꼭 집어서 이름이 나오더라.” “인기있는 거죠. 신경 안 쓸래요?” “하하···. 그런데 왜 우리는 계속 십왕이고 정운이는 정운일까? 언제 십일(十一)왕 같은 것으로 변경해야 하지 않나?” 주경택의 말에 김수민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원래 시간이 좀 지나야 바뀌더라고. 예전에 경택이 너하고 보영이 지영이까지 오기 전에는 7대천왕이라고 불렸잖아?” “우와···. 촌스러···.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정운으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런 정운의 말에 이민지는 먼 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7대천왕이라···. 사천왕 보다는 나았지····.” 가면 때문에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격하게 쪽팔려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 말을 말지···.’ 어쨌든 이런저런 잡답을 마치고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했다. “사실상 어지의 몰이사냥으로 삼대 길드의 멤버들은 대부분 배지를 다섯 개 이상씩은 챙겼습니다. 이제 몰이사냥은 그만 둬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럼 남은 9일 동안 어떻게 할까?” 이민지의 말에 주경택이 씩씩하게 일어나서 말했다. “정해져 있지 않겠습니까? 언더 플레이어 놈들을 족쳐야죠?” “····어디 있는 줄 알고?” “그건···. 차차 알아보면 안 될까요?” 주경택은 자기가 말하고도 민망한지 뒷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뭐···. 일단 놈들이 어떻게 나설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기는 하지.” “그렇죠. 그럼···. 어떻게 할 까요? 필드를 샅샅이 뒤져 볼까요?” “뒤진다고 해도 말이야····. 이 놈의 필드 좀 넓어야지. 대호 형님. 혹시 뭔가 커다란 전투의 흔적 같은 것 찾아 본 적 없습니까?” 명주호가 배대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배대호는 스킬화 되지 않은 독자적인 마법을 구사 할 수 있는 진짜 마법사이다. 그런 그였기에 전투의 파동이랄까? 힘의 움직임이랄까? 그런 것을 민감하게 느끼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정운인 쉐도우 엘프 킹을 이기고 그림자의 망토와 세레나를 손에 넣었던 퀘스트. 그때 수련중이던 배대호는 우연히도 그때 지하에서 느껴진 힘의 파동을 캐치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보영에게 말해서 한 번 탐색이나 다녀와 보라고 권했던 것이다. 뭐, 지금은 다 지난 일이고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지만···. 작정하고 서치를 시작하면 가장 넓은 탐색 범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배대호였다. 뭐, 범위가 넓은 대신에 너무 작은 힘은 느낄 수 없었지만 커다란 힘의 유동은 놓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뉴 웨이브의 리더인 김신수. 놈의 움직임이라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 배대호였다. 그런 배대호가 모두에게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못 찾았어. 조금도···. 어제 집계에서도 확인했겠지만 놈들은 아직까지 아무런 힘도 쓰지 않았어.” “과연···. 그렇단 말이군.” 이제까지 모두 듣고만 있던 박추성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놈들이 노리는 것은 역전승일 거야.” “역전승··. 초반은 버리고 후반에 뭔가 일을 벌일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상대를 죽였을 때 두 배 되는 숫자의 배지를 얻을 수 있잖아? 그렇다면···. 막판 이틀쯤에 전력을 다하는게 더 효율이 좋을 지도 몰라. 애당초 우리보다 숫자가 떨어지는 놈들이 몹을 잡아서 배지를 모은다고 얼마나 모을까? 100명 남짓에 최근에 좀 죽기까지 했지? 많이 모아봐야 500개 남짓이겠지.” “확실히···. 그래서는 게임이 되지 않는군요. 그래서 PK로 승부를 본다는 거군요.” “그렇지···. 뭐, 일단 정신 바짝 차리고 주의 하자고. 특히 우리중에 놈들에게 당할 놈들은 없겠지? 안 그러냐? 주호야.”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명주호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김신수에게 쓴맛을 본 적이 있는 것이 바로 명주호였다. 프라이드가 높은 그였기에 그게 영 마음 한 구석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회의의 결과는 대강 나왔다. 우선 지금 킵해 놓은 배지의 숫자를 최대한 유지 할 것. 그리고 적의 거점을 찾기 위해서 꾸준한 정찰을 시행 할 것. 이렇게 결론을 지은 정운은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정운은 곰곰하게 생각했다. ‘내가 김신수 그 재수 없고 재수 없고 재수 없는 놈이라면 어떻게 움직일까?’ 세 번이나 재수 없다. 라고 되새기는 것을 봐서는 어지간히 재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간 정운은 눈에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자신의 천막에서 세레나와 슬기에게 달라 붙어서 뭐라뭐라 지껄이면서 거칠게 몰아 붙이는 유저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뭐. 하. 는. 거. 냐.?” 오랜만에 머리 끝가지 불이 나는 정운이었다. 잠시 시간을 돌려서···. 정운이 회의를 위해서 자리를 비우고 슬기와 세레나 만이 막사에 남았다. “·············.” “·············.” 그리고 그 막사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사실 요즘 들어서 이 둘의 사이가 참 미묘했다. 먼저 슬기의 경우···. 그녀가 아무리 착하고 의심이 없다고 해도 여자 특유의 본능이 있고 최소한 인간된 도리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촉 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사실 아직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 하는게 이상한 것이었다. 눈치 100단이라는 것을 접어두고 옆에서 떨어져 보고 있는 이보영도 정운과 세레나 사이의 썸씽을 눈치 챘는데 말이다. 보통 여자들이라면 슬기 정도의 단계가 되었을 때 이미 확인을 하기 위해서 한 바탕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딱히 그게 ‘나쁘다.’ 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무리다. 오히려 그게 ‘보통이다.’ 라고 말하는게 맞는 말일 것이다. 다만 슬기의 경우 심증만으로 상대를 몰아붙인다거나 독한 여자처럼 구는 것은 무리였다. 연애도 초보인 그녀 였지만 무엇 보다 정운이나 세레나를 의심하는 것은 더욱 더 싫었다. 다만···. 의심이라는 감정은 싫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작은 싹을 틔우면 콘크리트도 뚫고 튀어나올 정도로 끈질긴게 오히려 의심이라는 놈이었다. 슬기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 된 심정이었다. 세레나와 뭔가 말만 하면 정운과 무슨 일이 있었냐고 캐 물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너무너무 싫엇다. 세레나의 경우는 슬기보다 오히려 더했다. 슬기와 세레나의 결정적인 차이. 그것은 세레나가 절대적으로 자부하고 있는 정신력이었다. 생전에 단 다르크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세레나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왔다. 왕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을 위해서. 항상 그렇게 해 왔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스스로도 타인들도 생각해 왔다. 그게 오를레앙의 성처녀 잔 다르크였다. 그랬던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지를 못하고 있다. 인내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그녀가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 정운에게 안길 때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고작 살 한번 겹치는 것 가지고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라고 말이다. 구급 상황에서 인공호흡을 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딱 한 번의 행위였을 뿐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다 잡으려는 세레나였다. 하지만 그날 밤 후에 정운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마음 한편에서는 자신 역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 그 사실을 자각 했을 때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자신에게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한 적이 없는 그녀였다. 신에게 봉사하고 세상에 헌신 할 수만 있다면···. 개인의 행복 따위는 자신에게 인연이 없어도 좋다. 그녀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사후에 세상 사람들이 그녀를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도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세상은 성인 잔 다르크를 좋아했고···. 그녀 역시 사람들이 원하는 데로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한 번의 생이 끝나고 임무를 위해서 환상처럼 얻어낸 이 생명에서····. ‘설마하니 내가 남녀간의 사랑을 느낄 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애당초 머릿속으로 냉철하게 계산하고 이해 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닌 것을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자신이 생전과 현재를 통틀어서 처음으로 얻어낸 사랑은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이었다. 이미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해서 뭘 어쩌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절제심으로 철저하게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고 했다. 다행이도···. 정운 역시 세레나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커져만 가는 마음에 세레나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슬기가 정운과 함께 다정하게 있는 장면을 본 것 만으로 질투를 했던게 도대체 몇 번인지 모를 정도였다. 결국은 그 순진하고 둔한 슬기가 세레나의 마음을 어렴풋이 눈치 챌 정도로 세레나의 질투심은 커져만 갔다. 결국···. 슬기와 세레나의 사이에 흐르고 있는 냉기류를 생각할 때 둘만 있는 것은 사실 무척 어색했다. 결국 참지 못한 슬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게요.” “같이 가죠.” 그리고 그런 슬기의 산책에 세레나가 따라오려고 했다. 잠시 멈칫했던 슬기는 세레나에게 다시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혼자 갔다 올게요.” 생각 같아서는 당신이 불편해서 잠시 자리를 피하려는 거예요. 그런데 따라오면 어쩌자는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은게 슬기의 본심이었다. 다만 너무나 순둥이었기에 그런 본심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 슬기에게 세레나가 말했다. “슬기 당신을 지키라는 마스터의 명령입니다.” “······알았어요.” 결국 슬기와 세레나가 동시에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둘이 밖으로 나오자 주변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원래 그녀들의 미모 자체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다른 이유로 인해서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그녀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십왕과 정운의 팀이 더 이상 팀 사냥을 해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 사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유저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 작품 후기 ============================ 임현규 선수 정말 끝내 줬습니다. 패배하기는 했지만 투혼이라는게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줬죠. 진정으로 존경 스럽습니다. 강경호 선수도 좋은 시합을 했고 UFC첫 승리까지 했는데 임현규 선수가 워낙 강한 인상을 남겨서 상대적으로 약간 묻혀 버렸네요.... 이겼는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38화 사람이란 참 간사한 동물이다. 엄밀히 말해서 십왕이나 정운이 팀 사냥을 해줄 의무는 없었다. 사냥을 해서 배지를 모으고 싶으면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사냥을 하는게 정석이었다. 다만 언더 플레이어의 위협에서 그들을 보호해주기 위해서 십왕과 정운들이 자발적으로 제의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정운의 막사 주변을 서성 거리는 유저들은 그런 자발적인 제의를 마치 자신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빼앗기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분노했다고 해서 마구 항의를 할 용기가 있는 인간은 없었다. 십왕은 물론이고 정운 역시 한 성깔 하기로 유명했다. 예전에 흑곰파와 말벌파라는 그럭 저럭의 길드 두 개가 정운과 부딪혔다고 박살이 난 전력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일들이었다. 다만···. 지금 그 한 성깔하는 정운은 십왕들과의 회의에 갔고 눈앞에 있는 것은 슬기와 세레나 뿐이다. 물론 그녀들 역시 상당한 고위급 유저였지만 아무래도 아름다운 여자들은 위압감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 중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면서 슬기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슬기씨···. 저 기억하시죠?” 슬기에게 다가와서 재깍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의 얼굴을 슬기는 잠시 바라봤다. “·····아!! 전에 함께 사냥 했던 분이시군요.” 슬기는 3초 정도 걸리기는 했지만 상대가 누군지 기억났다. 얼마 전에 정운과 함께 순찰을 돌다가 PK당할 위기에서 구해주고 레이드 까지 해 줬던 팀. 그 팀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누군지 얼굴은 기억이 난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이름을 듣기는 들었었나?’ 슬기는 잠시 기억을 검색해 봤지만 이 남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 그대 이 남자의 이름을 소개 한 적은 없었다. 그들은 그때 간신히 살아나고 난 후에는 한 번 정운의 팀에게 업혀 보고자 눈치 보기 바빠서 자기 소개도 안 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딱 한 번의 파티 플레이. 정말 그것뿐인 인연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굉장히 친한 척을 하면서 슬기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실 어제 찾아 뵀어야 했는데 삼대 길드에서 우리를 컷트 하더라고요. 하하하···.” 남자는 은근히 큰 목소리로 자신이 슬기와 친한 티를 냈다. 하지만 슬기는 그 남자의 내밀어진 손을 슬쩍 바라보기만 할 뿐. 자신의 손을 마주 내밀지는 않았다. ‘이 사람···. 척 봐도 뭘 노리는 거야···.’ 둔하고 순진한 슬기가 한 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상대의 태도는 뭔가를 노리는 티가 났다. 슬기는 자기 혼자라면 몰라도 자칫 잘못하면 정운에게도 해가 갈 까봐 조심스럽게 거리를 뒀다. 그런데 상대인 남자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모야잉다. 그는 무시당한 자신의 손을 어색하게 내리면서 슬기에게 말했다. “저기···. 별것은 아니고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그게 뭐죠?” 슬기는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애당초 이런 타입의 인간과는 말을 섞지 않는게 최선이었지만···. 그렇게 매몰차게 굴기에는 슬기가 너무 순둥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그런 슬기의 순한 기색을 눈치 챘는지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십왕분들과 정운님이 팀 사냥을 안 해주신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만····. 혹시 그것은 진짜 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슬기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결국 진실을 얘기할 뿐이었다. 애당초 능숙하게 거짓말을 지어낼 정도로 그녀는 약지 못했다. 하지만···. 슬기가 말한 진실은 주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야··. 이거 진짜야?” “제기랄···. 망할 개자식들, 자기들 끼리 해 먹겠다 이거지.” “삼대 길드 외에는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개새끼들이야.” “X 같은 새끼들····.”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슬기는 순간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에게 악플을 달던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 위축감을 느끼는 슬기를 보고 눈앞의 남자가 따지고 나섰다.“ “그거 너무 무책임 한 것 아닙니까? 여기 있는 유저들 전원이 정운님이나 십왕분들을 보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외면하시겠다고요?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정운씨는····.” 슬기가 뭐라고 정운의 입장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남자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아니면 뭡니까? 우리는 사냥을 나갔다가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죽어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우리 목숨은 무슨 파리 목숨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하찮은 존재들입니까!!?” 남자는 이제 주변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소개하는 거지만 이 남자의 이름은 이재호. 레벨은 40대 중반이고 이렇다 할 특이점은 없는 남자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이유도 취업에 실패하고 백수로 5년 정도 뒹굴뒹굴 거리다가 쉽게 돈 버는 방법으로 그라운드 제로를 접했고, 오로지 더 큰 돈을 벌 욕심으로 그라운드 제로에 낚인 인간일 뿐이다. 이 게임의 정체가 이런 험악한 서바이벌 게임인줄 알았다면 애당초 들어올 배짱 같은 것은 있지도 않은 소인배였다. 사실···. 정운이나 슬기 같은 타입들이 희귀한 것이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유저라는 인간들의 95%정도는 대부분 이런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런 이재호에게도 굼벵이 급의 구르는 제주 정도는 있었다. 바로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주변을 잘 선동하는 능력이었다. 음···. 뭐라고 비유하면 좋을까? 학교 다닐 때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보통 두 가지 타입의 인간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타입과 뒤로 물러나서 흐르는 상황에 묻어가는 타입. 그런데 이 이재호라는 남자는 제 삼의 타입이었다. 중간에 끼어서 앞에 나서있는 자를 견제하고 방해하면서 사람들을 이끌지만 그 후에 전면에 앞장서서 자신이 이끌 용기는 없는 타입인 것이다. 학급 반장이 하는 말에는 항상 토를 달고 반대를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서 뭐라고는 하지 않는···. 딱 그런 인간의 전형, 아니 완전체라고 해도 좋은 인간이었다. 그는 그런 재능 하나로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초보 시절부터 비슷비슷한 인간들을 끌어 모아서 팀을 만들고 그 사이에 끼어서 눈치 좋게 기생하면서 살아왔다. 물론 이런 인간이 있는 팀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리더가 약간만 실수해도 모든 잘못을 리더에게 덤터기 씌우고 자신은 잘못 한 것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존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팀의 약발이 다 떨어질 것 같으면 다시 물러나서 다른 팀을 만들고 또 그 팀이 와해 될 것 같으면 또 다른 팀에 달라붙고···. 그야말로 기생충 같이 살아가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기생충이 오늘 제대로 왕건을 물었다. 정운의 여자로 알려진 슬기가 순진하다는 것을 알고 몰아 붙여보니 아주 효과가 만점인 것이다. 슬기 뿐만 아니라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세레나라는 금발의 여자도 독하고 모진 구석은 없는 것 같았다. 이재호 같은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인간은 칼 같이 선을 확실하게 긋는 인간이다. 그리고 반대로 가장 호구로 보고 골수까지 빨아 먹기 위해서 달라 붙는 인간은 슬기나 세레나 같이 모질게 타인을 뿌리치지 못하는 호인인 것이다. 그는 오랜만에 봉을 물었다고 생각하고 놓치지 않았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단결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밑에서 열심히 받쳐주고 있으니 그들이 최상층에서 안심하고 플레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옳소!!!” “십왕들은 우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권리만 챙기고 의무를 져버리는 것은 부정부패다!!!” “팀 사냥을 계속해라!!! 우리를 보호하라고!!!” 군중의 폭동···. 아니 이건 폭동이라기 보다는 그냥 군중의 진상에 가까운 상황이다. 논리도 없고, 명분도 엉망진창이다. 그냥 우리가 손해 보기 싫다는 그 한마음을 이런저런 주워들은 말로 미화 시키면서 화를 내고 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해서···. 일반 유저들이 밑에서 열심히 떠 받쳐서 십왕들이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다는 말은 아무런 근거도 없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 그들이 십왕들에게 정기적으로 세금이라도 상납해서 사냥에 조력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런건 이 상황에서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말이라는 것이다. 유리한 말은 믿고, 불리한 말은 거짓이라고 매도한다. 폭주한 군중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의 일면이기도 했다. 원래 인간은 단체로 뭉치면 용감해지고 강력해지지만···. 그것과 비례해서 단순해지기도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좋아···. 이거면 충분해. 이 정도로 모이면 십왕들도 함부로 묵살 할 수 없을 거야.’ 이재호는 자신이 했지만 정말 잘 된 결과에 만족하면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눈앞에 쩔쩔매고 있는 슬기와 세레나를 좀 더 몰아붙여서 어떻게든 뭔가를 얻어내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뭐. 하. 는. 거. 냐.?” 그리고 그때 살벌한 음성과 함께 정운이 귀환한 것이다. 정운이 잔뜩 열이 난 상태로 나타나자 활활 타오르던 군중의 분노는 순간 블리자드라도 한 개 맞은 것처럼 싸늘하게 식었다. ‘이런···. 이러면 안 돼.’ 이재호는 앞으로 나서서 자신이 정운과 맞서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자신에게는 군중의 힘이 있다. 그러니 정운에게 나서서 당당하게 요구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라고 되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정운씨. 저는 이재호라고 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너냐?” “예. 제가··. 예? 뭐가···? 커억!!!” 퍼어억!!!“ 말을 하던 이재호는 그대로 복부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입에서 핏물을 토했다. 정운이 창날의 반대편 부분으로 복부를 찍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몸이 ‘ㄱ’자로 꺾인 놈의 안면을 그대로 창자루로 들어 올렸다. 쩌어억!!! “쿱····. 쿨럭····.” 놈은 그대로 하늘로 1미터 정도 떠올랐다가 그대로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이빨이 뭉텅이로 나간 놈을 바라보면서 정운이 천천히 내려갔다. “네놈이···. 감히···.” 정운의 분노는 그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애당초 이재호는 잘못 나선 것이다. 한참 화가 난 정운의 앞에 어떻게 나와서 뭐라고 지껄인 순간 정운에게 그가 하는 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운의 머릿속에 판단된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핍박한 놈의 대표가 이 놈인가? 좋다. 죽이자. 이 정도가 다였다. 화가 난 맹수 앞에 논리적인 의견 따위를 말한다고 이빨을 거두는 맹수는 없지 않은가? 이재호는 정말 잘 못 걸렸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 아임····. 아마마····.” 아마도 ‘타임, 잠깐만.’ 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옆에서 보기에는 추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한 장면이었지만 누구도 웃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정운이 조장하고 있는 공포 분위기에 제대로 조장된 것이다. 이재호는 그토록 믿고 있던 군중의 힘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자 잔뜩 얼어 버렸다. ‘이런···. 이러면··. 이러면··· 죽을지도 몰라.’ 그는 뒷목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제대로 맞은 것도 아닌데 단 두 방에 체력 게이지가 4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한 방만 더 맞으면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놈은 엉망이 된 얼굴을 닦을 틈도 없이 즉각 정운에게 넙죽 엎드렸다. “에옹하이아!!!! 아여 우에요!!!!!” “·················.” 발음은 엉망이었지만 너무나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을까? 그 뜻은 제대로 전달되었다. 아마도 ‘잘못 했습니다. 살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리라···. 정운도 그 뜻은 제대로 알아 들었다. 하지만 놈을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다가가는 정운의 눈에는 그런 자비를 베풀 용의가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네놈이···. 감히····.” 정운은 지금 제대로 열이 올랐다. 논리? 명분? 다수의 의견을 향한 존중? 지금 정운에게는 이빨도 안 들어갈 개소리일 뿐이었다. 정운에게 있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소중한 이는 슬기와 세레나였다. 십왕 중에서 가장 친한 한중겸이라고 해도 이 둘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감히 그 둘을 여럿이 몰려서 몰아붙이고 매도하고 있었다. 이 순간 정운에게 있어서 이재호는 이미 사형 확정이었다. ============================ 작품 후기 ============================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 이번 화 쓰면서 그런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39화 “죽어라.” 듣는 사람이 완벽한 진심이라고 느낄 정도로 진심이 뚝뚝 떨어지는 말과 함께 정운의 창날이 이재호의 심장을 겨눴다. 이재호는 전신에서 비오는 듯한 식은땀을 흘리고 다리사이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부끄럽지도 않았다.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었다. 이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후회 뿐이었다. 애당초···. 그는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강단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다수라는 아군의 힘을 등에 업어야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 다수라는 힘이 통하지 않는 정운의 분노 앞에서는 더 할 나위 없는 초라함을 느꼈다. 이제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다 허사였지만 말이다. ‘죽··· 죽는다.’ 이재호가 죽음을 실감하고 인생 최대의 공포를 느낀 그 순간···. “그만해요. 정운씨.” “마스터께서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습니다.” “···········.” 천사의 도움은 이런 것일까? 아니면 운 하나는 엄청 좋다고 해야 할까? 이재호는 용케 죽을 위기에서는 벗어났다. 정운의 손이 사형 판결을 위해서 움직이려고 할 때 슬기와 세레나가 앞으로 정운을 막은 것이다. 자신을 꼭 껴안아서 말리고 있는 두 여자의 체온을 느끼면서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지만 눈에 핏발이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알았어. 그만 할 테니까 놔 줘.” 정운의 말에 슬기는 눈물을 글썽 거리면서 정운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녀도 알고 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이 몇 번인가 살인이라는 업을 쌓았다는 것을···. 심지어 그녀가 보는 앞에서 말벌파를 박살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진흙탕에 몸을 담군 유저들은 누구나 몇 번씩 겪어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슬기는 이왕 버린 몸이니 얼마든지 해도 된다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정운이 손에 피를 묻히는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는 사실만큼은 정말 받아들이기 싫었다. 이미 그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정운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정운씨의 손이 나 때문에 더러워 질 거라면···. 제가 하겠어요. 제가 지옥에 떨어지겠어요. 그러니 정운씨는 그러지 말아줘요.’ 슬기는 겉으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정운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염원했다. “·····후우·····.” 정운은 길게 한 숨을 내쉬고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 정운의 눈길과 마주한 사람들은 급하게 고개를 숙이거나 옆으로 돌렸다. 마치 눈빛으로 파도타기를 시키는 것처럼 주변을 침묵 시킨 정운은 그대로 주변에 선언하듯이 말했다. “한 번만 더 이런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이 진지 안에서 대규모 PK가 벌어질 거다. 알았으면 5초 줄 테니 꺼져!!!!” 후다닥!! 우당탕탕!!! 콰당!! 만약 지금 이 순간을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업로드라도 했다면 굉장한 조회수를 기록했을 것이다. 5초는 아니지만 천명은 족히 넘을 인간들이 정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주변을 허허벌판으로 만든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자신의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이 일로 인해서 더 이상 정운이나 십왕들에게 팀 사냥 가지고 징징거리는 인간들을 사라졌다. 목숨은 최우선으로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첫째 날이 지나고 두 번째 날···. 정운은 어쩐지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진지에 있었지만 십왕들은 모두 진지 밖을 나가서 언더 플레이어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하지만···. 언더 플레이어들의 진지를 찾는 것에 성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필드의 전부를 탐색하는 것도 불가능 했다. 이번 비정기 퀘스트의 몹은 상당히 넓었다. 한국으로 치면 도 두 개 정도를 합친 것만큼은 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십왕들의 능력이 출중해도 이 넓은 범위를 샅샅이 수색하는 것은 무리였다. “뭐··. 그래도 꾸준하게 수색하는 수밖에 없지만 말이야. 내일은 너도 밖으로 나올거지?” 수색을 마치고 막사로 찾아온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야죠. ····그보다 죄송합니다. 제가 낮에 일으킨 일로 이리저리 곤란하실 텐데···.” 정운이 사과의 말을 하자 한중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그건 아니지···. 애당초 그런 꼴이면 너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도 누군가는 폭발 했을 거다. 너 대호 형님 화내는 것 본적 있냐? 아니면 주호라던가····.”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명주호 형님이 화내는 거야 봐죠. 김신수 이름 석자만 들어도 빡치는 자연 스러운 현상을 지니고 있잖아요.” “키킥···. 그건 그렇지···. 그럼 대호 형님은?” “······글쎄요. 그냥 항상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만 보여서······.” “그래··. 그렇지···. 이거 알고 있는 사람은 나하고 민지 누님. 그리고 정철이까지인데···. 한 가지 알려 줄까?” 한중겸은 마치 특급 기밀을 말하는 것처럼 조용하게 말했고, 정운은 그런 한중겸에게 무슨 큰 일을 말하려고 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뭔데 그래요? 사람 궁금하게····.” “예전에···. 아직 십왕이라는 말도 나오기 전이지 아마? 대호 형님 레벨이 아직 130대 정도일 때일 텐데···. 그때 대호 형님하고 추성이 형님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왕창 싸웠거든.” “·····싸웠다고요? 그 둘이요?” “그래. 이유는 나도 아직까지 몰라. 당시 난 스카이 타운에 막 들어온 시기였고···. 어쨌든 그런 시기에 둘이 한 판 붙었던 적이 있었지.” “····어떻게 됐는데요?” “나도 몰라.” “····그게 뭐에요?” 한창 흥미가 동하던 참인에 중요한 부분에서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이래서야 궁금증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한중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몰랐지···. 스카이 타운 안에서 벌어진 싸움기긴 했는데 워낙에 큰 싸움이라서 난 일단 도망쳤거든.” “··········.” 생각해 보니 그 둘이 서 부딪혔으면 그렇게 될 법도 하다. 라는 느낌이 드는 정운이었다. “하여튼···. 당시에는 고작 130~140정도의 유저들이었는데 그 둘이서 부딪히니까 스카이 타운 중심가가 폭삭 날아가 버리더라. 어쨌든 그 이후로 난 알게 됐지.” “뭘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대호 형님 빡치면 엄청 무섭다. 라는 것을 말이야.” “··········.” “으하하하하하····. 웃기지···?” “····형님 술 끊는 것 진지하게 생각해 봐요.” 정운으로서는 한중겸이 약간 애처로울 뿐이었다.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5720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둘째 날의 중간발표가 나왔다. 일단 아직도 리드하고 있는 것은 일반 플레이어들이었다. 하지만···. 이 퀘스트의 특성을 생각하면 단 한 번의 대량 PK만으로도 결과가 확 바뀔 수 있었다. 언더 플레이어가 일반 플레이어 중에 배지를 다섯 개 가지고 있는 유저를 사냥하면 단순하게 배지의 숫자만 해도 두 배가 된다. 즉, 한명을 PK하면 상대에게 -5의 효과를 주는 것과 동시에 아군에게 +10의 효과를 가져 온다는 말이다. 합계 15의 효과를 지니고 있으니 100명만 한 방에 잡는다면 단번에 1,500 효과를 지니게 된다. 90대 렙레의 고레벨 유저들이 단숨에 사냥 할 수 있는 숫자가 일인당 50으로 잡아도 뉴 웨이브의 고레벨 숫자를 생각하면······. 역시 지금은 안심 할 수 있는 수준의 점수 차이가 아니었다. ‘아마도···. 얌전하게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은 후반에 역전을 위해서겠지.’ 정운은 천막에 슬기와 함께 누워서 중간 발표는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슬기는 정운의 품에 기대서 말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응? 아아···. 아무것도. 그냥 김신수 그 놈이 뭔 노리는 지가 좀 신경 쓰여서···. 얌전히 포기 할 놈은 절대 아니니까.” 정운의 말에 슬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정운씨. 너무 혼자서만 걱정하지 마요.” 슬기의 걱정스러워 하는 얼굴을 보면서 정운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그랬나?” “예. 그것도 항상.” “·············.” 정운으로서는 슬기와 세레나는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세레나 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슬기의 경우는 그런 마음이 더욱더 강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슬기 역시 곧 100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는 고레벨의 유저이다. 그녀는 정운에게 있어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싸워갈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게 이제까지 그라운드 제로에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여기까지 키워 준 정운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슬기의 경우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정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에 더욱더 사랑하는 사람의 힘이 되고 싶었다. 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의타적이거나 약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게 이슬기라는 여자였다. 정운은 자기 품안에서 눈을 반짝이는 슬기가 사랑스러워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는 슬기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치고 있었다. 원래 장소는 철저하게 구분해서 요구하는 정운이었기에 슬기는 이런 정운의 모습에 약간 의외였다. 지금 여기는 비정기 퀘스트 중인 진지의 안이었다. 진지의 안이라고는 해도 딱히 공격 금지 설정이 되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얼마든지 공격이 가능한 장소였고, 다만 몹이 들어오지 않는 것 뿐이었다. 어지간한 미친놈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가 정운을 노리고 PK를 시도 할 수도 있었다. 불가능과 가능을 구별 못하는 머저리들은 항상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장소에서 정운이 자신에게 키스를 할 줄은 몰랐다. 정운은 그대로 입술을 겹친채로 슬기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에 손을 뻗었다. “음···. 으음··.” 슬기는 부끄럽고 여기서 이러면 안 된느것 같기도 해서 정운의 손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운의 손은 기어코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익숙한 슬기의 가슴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따듯하고 익숙한 탄력을 정운은 자신의 손으로 마음껏 만끽했다. 그리고 슬기는 마침내 정운의 입술에서 벗어났다. “음···. 파하···. 정운씨···. 여기서는 안 되요.” 슬기는 기어코 입술을 때고 정운에게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정운은 슬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좀 때와 장소를 분간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어쩐지 이대로 여기서 물러나기도 굉장히 억울(?)했다. “우리 천막에 아무도 안 들어올걸? 중겸이 형님도 술 마시고 자기 천막으로 돌아갔잖아?” “그래도요···. 지금은 안 되요.” “····절대 안 돼?” “···읏·······.” 정운이 슬기의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확인하듯이 말했다. 사실 말이 확인이지 안 된다고 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나 마찬가지였다. 정운으로서도 이제 와서 물러나기는 싫었다. 일종의 오기가 생겨난 것이다. “아니···. 정말 안 되는데···.” 슬기는 정운의 눈길에 결국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이미 거기서 끝이다. 정운은 슬기의 상의를 슬금슬금 들어 올리면서 그녀를 자기 품안에 가둬 갔다. “가끔은···. 응?” “·····알았어요.” 뭐가 ‘가끔은···. 응?’ 이라는 건가? 그리고 슬기는 또 뭐가. ‘······알았어요.’ 란 말인가? 전혀 두서없는 대화를 하는 이 커플의 진상 염장이 시작되려는 그 찰나···. “마스터. 들어가겠습니다.” 정운과 슬기가 광속으로 후다닥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천막의 안으로 들어온 세레나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천막이 부서진 관계로···. 일단 오늘은 여기서 머물렀으면 합니다.” 세레나의 말에 정운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천막이 부서져? 왜?” “그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럴까요?” “··············.” 정운은 뭐라고 대답 할 수 없었다. 세레나의 천막이 부서진 이유를 세레나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정운이라고 알 턱이 있는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오늘은 글렀다는 건가···.’ 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세레나의 부서진 천막은 아주 깔끔하게 부서져 있었다. 마치 예리한 무언가로 베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뭐, 지금 정운이 알 수 있는 일은 아니다. ============================ 작품 후기 ============================ 예. 아니기를 바라셨겠지만 예상대로 슬기와 세레나가 말렸습니다. 다만 슬기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 설정상 말린 이유는 죽을 사람이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때문에 정운이 손에 피 묻히는게 싫은거죠. 왜 이런 캐릭이 나왔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에 슬기는 그냥 강짜만 좀 있지만 마냥 착한 캐릭으로 잡았는데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제 작품안의 슬기도 세레나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뭐, 작품 쓰다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죠. 전 이걸 캐릭터가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소설가가 느낄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40화 <뉴 웨이브의 노림수> 셋째 날이 되어서···. 정운은 십왕들과 함께 언더 플레이어들을 찾기 위해서 수색을 나섰다. 정운의 탐색 기술인 쉐도우 서치가 빛을······ 발하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쉐도우 서치의 탐색 범위는 너무 좁았다. 고작 100미터 남짓한 범위를 가지고 어떻게 이 넓은 필드에서 언더 플레이어들을 찾는다는 말인가? 거기다 정신력의 소모도 많아서 너무 오랫동안 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최대 한 시간 정도가 한계였고 그 후에는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쉬어야 했다. 그런 기술이다 보니 정운도 전투 도중에 은신하고 있는 적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면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삼 일째가 되어서 정운과 십왕들은 본격적인 탐색에 나섰고 아직까지 배지가 하나도 없느 유저들은 진지에 틀어 박혀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필드에 나가서 사냥을 해서 배지를 모아야 정석이었다. 퀘스트에서 중도 이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해도 비정기 퀘스트의 기간인 열흘의 시간이 끝났을 때 가지고 있는 배지의 양에 따라서 보상이 차등되지 않는가? 아니 보상은 둘째의 얘기다. 최악의 경우 배지가 하나도 없는 유저들에게는 페널티가 내려 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필드에 나가서 사냥을 하는게 옳기는 했지만···. 목숨 걸고 필드에 나서기에는 언더 플레이어들의 너무 부담 되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 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삼일째가 지나고···. 그날 밤 중간 발표가 나왔다.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5800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여전히 언더 플레이어들의 배지 숫자는 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조금이지만 늘었다. 몇몇 배짱 있는 일반 플레이어들이 필드에 나가서 사냥을 한 것이다. 또 언더 플레이어를 정찰하면서 정운이나 십왕들이 조금씩 사냥을 한 것이 추가된 숫자였다. 그리고 삼일 연속으로 언더 플레이어들이 움직이지 않자 조금씩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은 위험하다는 것을 머리로 알아도 그 위험의 너머에 달콤한 유혹이 있다면···. 혹은 현재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면··. 그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한다. 지난 삼일동안 언더 플레이어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자 적어도 이 진지 주변에는 언더 플레이어가 없다. 라는 생각을 한 유저들이 주변에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토끼가 자기 동굴 앞에 몰래 나와서 조심스럽게 풀을 뜯는 것처럼 유저들은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망설이는 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일단 사냥을 해야 한다. 라는 여론이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사흘째의 중간 발표가 되었다.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8452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상당한 숫자의 유저들이 배지를 획득했다. 언더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0개였고 말이다. 그리고 닷새째의 날이 밝았다. 능력이 되는 유저는 홀로···. 그리고 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파티를 이뤄서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움직이지 않고 극소수에 붙어 있는 자들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다. 십왕들과 정운은 혹시 일반 유저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면 언더 플레이어들이 거기에 낚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몰래 유저들을 지켜봤다. 하지만 여전히 언더 플레이어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더 플레이어가 아니라 일반 플레이어간의 PK가 조금씩이지만 적발 되었다. 최근 들어서 PK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거기다 몹을 몇 십 마리 잡는 것 보다 배지를 다섯 개 가지고 있는 유저 한명을 PK하는 것이 더 보상이 크다는 매리트가 주어지자 상당한 유저들이 몰래몰래 PK를 하기 시작했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이 새끼들아!!” “선택해라. 형무고 길드에 들어가던가? 아니면 여기서 죽던가?” 여기저기서 십왕들이 적발한 PK 플레이어들을 제압했다. 사실 십왕들이 이렇게 치안유지(?)를 할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치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런 일을 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또 한중겸이 술병을 들고 정운에게 찾아왔다. “크으···. 나참···. 원래 형무소 길드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이렇게 숫자가 불어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한중겸의 말에 문득 궁금해진 정운이 말했다. “지금 형무소 길드의 숫자가 몇인데요?” “200명 좀 넘지? 아마···.” “200!!? 그 만큼이나 있다고요? 내가 거기 보낸 숫자는 고작 30명 정도인데·····.”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잡아 넣었잖냐···. 그 정도로 많아질 줄은 몰랐지.” “이거 참····. 나중에 가면 삼대 길드보다 더 커지는 것 아니에요? 그 놈들 레벨도 제법 있죠?” “그렇지. 어느 정도 힘이 있으니까 PK 하겠다고 설치던 것 아니겠냐?” “그건 그렇죠···. 적어도 레벨 30이상은 되어야 설칠테고 중간 중간에 50레벨도 한 두 명씩 있다고 하면····. 그거 제법 큰 힘이네요? 관리하는 사람은 누구래요?” “삼대 길드 간부들이 돌아가면서 관리하는 모양이더라.” “흠·····. 확실한 사람들이에요?” “응? 아아····. 삼대 길드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돌봐온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믿을만 하데.” “···뭐, 그럼 상관없지만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중겸과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형무소의 설립은 애당초 이렇게 강한 무력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법도 없고 감옥도 없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종의 규제수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무력을 이용할 방법도 강구한 일거양득의 묘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큰 효과를 발휘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닷새째의 중간발표가 나왔다.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10251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흠···. 생각보다 좀 적은걸?” “이탈자가 제법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우리가 없는 상황에서 PK에 성공해서 은밀하게 탈출한 자들이 제법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 뭐, 사실 우리가 그것까지 막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냅두자.” “그래야죠.” 십왕도 정운도 딱히 일반 플레이어들을 딱딱한 룰에 가두고 관리할 생각은 없었다. 그게 쉽게 될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렇게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은 자기 실력이어야 했다. 마지막에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이제 엿새째가 되었다. 비정기 퀘스트의 기간은 열흘이 기본. 이제 반이 지나간 시점에서 아직 배지가 다섯 개 밖에 없는 유저들은 초조했다. 진지안의 분위기는 냉랭하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느낌이 공기를 무겁게 했다. “사람들이···. 참 무섭네요.” 정운의 옆에서 걸으면서 진지 안의 분위기를 살피던 슬기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타인의 불행의 나락으로 태연하게 떨어트릴 인간들이 너무 많은걸?” 정운의 말에 슬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증오를 받는 사람은 그 증오의 독에 오염되기 쉽다. 그래서 자신도 타인을 태연하게 증오하게 된다.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연쇄적인 죄의 확산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슬기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인간의 증오라는 독에 지독하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선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냥 순하다, 착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슬기의 선함에는 자신은 꼭 이래야 한다. 라는 듯한···. 일종의 신념까지 느껴졌다. ‘뭐···, 그래서 내가 반한 거지만····.’ 때로는 그런 그녀가 너무 답답한 구석이 있을 때도 있지만 정운은 확실하게 그런 슬기의 면모에 반한 자신을 잘 알았다. 보통 사람은 자기한테 없는 것을 많이 바란다고 하는데 정운에게 있어서 슬기와 세레나의 절대적인 선함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오늘은 북쪽으로 사냥을 나가보자.” “알았어요. 정운씨···.”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여전히 어디에 있을지 모를 언더 플레이어들을 찾기 위해 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렇게 지루한 사이클이 계속해서 흐르기 시작했다. 엿새째····.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12111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칠일 째·····.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13985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팔일 째·····.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14411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0개 획득.] 구일 째····. [중간 성적 발표. 일반 플레이어 : 배지 15121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50개 획득.] “어!!!?” “움직인 건가?” “이건···. 독단? 아니면···· 몇 놈들이 명령을 위반하고 움직인 건가?” 십왕과 정운들은 긴급하게 모여서 회의를 열었다. 비정기 퀘스트를 하루 남긴 오늘에 와서야 갑작스럽게 언더 플레이어들의 배지 숫자가 올랐다. 물론 고작해야 50개일 뿐이었다. 열 명의 유저가 사냥을 나가서 다섯 개씩 채웠다고 치면 별것 아닌 숫자이기는 했다. 하지만···. 언더 플레이어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놈들이 공격해 올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고작 50개 정도의 배지를 수집한 이유는 뭘까요?”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그 놈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명주호의 말에 한중겸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정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어.” “그건···. 뭐, 그럴수도 있지.” “아니 잠깐만요···. 혹시··. 정보가 그래도 미리 샜다는 보장이 있다면 어떨까요?” 십왕들의 대화를 얌전히 듣고 있던 정운이 말했다. 그리고 정운의 말을 듣고 이민지가 말했다. “말도 안 돼···. 공평하기 못하잖아? 그런····.” “아니죠. 사실 이 퀘스트가 플레이어와 언더 플레이어간의 경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머리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언더 플레이어들이 훨씬 더 불리한 거죠. 그러니 사전에 정보 한 두 개 정도는 쥐어 주는게 진짜 공평한 것일수도 있어요.” “그건····. 뭐, 그럴지도 모르겠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으음···. 가능성은 있는 건가?” 정운의 말에 십왕들은 흔들렸다. 사실 정운은 김신수가 미리 이 퀘스트의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운이 방금 말하는 것처럼 공평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악마들이 김신수에게 주어진 버그를 다 잡았다고는 해도···. 파우스트와 김신수의 연락 수단이 다 끊어졌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 그렇다. 정운이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수많은 특혜를 누리면서 사냥을 했던 김신수였지만 그런 김신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권은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의 창조자인 파우스트와 연락이 닿아있다는 것이었다. 이 연결책이 어떻게 되었을까? 김신수로서는 다른 특권은 다 빼앗겨도 그것 하나 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파우스트 역시 노골적으로 시스템을 만지면서 도움을 줄 수는 없다고 해도 김신수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연락수단 만큼은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런 귀중한 핫라인이 끊어졌을까? ‘그럴 가능성은 아무래도 적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고, 김신수와 파우스트의 연락책이 남아있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확률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이번 빚정기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였다. 뭔가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같은 언더 플레이어들을 보면서 확신을 했다. 김신수 그 재수없는 놈이 도박을 할 리는 없다. 놈은 뭔가를 알고 있다. 파우스트에게 정보를 미리 들었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흠···. 그럼 어떻게 한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마지막 날에 뭔가가 일어난다고 생각 하는게 옳겠지?” 배대호의 말에 이민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뭐가 일어 날지야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타당하겠죠. 그럼 모두들 컨디션 최상으로 하고 기다리자고요.” “그렇게 하지····.” 결국 적의 흉계가 있을 것이다. ····라는 지극히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준비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하고 적들이 어떤 행동을 하던 간에 최고로 준비를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불길한데···. 뭔가 불길해····.’ 정운은 단순히 이것만 가지고는 뭔가가 불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41화 다음날···. 중간 발표가 나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알림창이 울렸다. 띠리링!! [보스몹 등장. 보스몹을 잡는 자가 속한 진형으로 이제까지 정산 된 상대방의 배지를 모두 내림. 단, 지금 이 시점부터 습득되는 배지는 별도로 정산함. 또한 보스몹을 잡는 자에게는 개인적으로 단 한 개의 층을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김. 그 영역의 선포는 길드 퀘스트 보상 영역보다 먼저 선택 할 수 있음.] “망할···. 이거였나?” 약간 비몽사몽하던 정운은 정신이 확 드는 것을 느꼈다. 속으로는 이건 반칙이야. 라고 외치고 싶었다. 언더 플레이어들이 배지를 고작 50개 밖에 사냥하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막판 뒤집기. 애당초 언더 플레이어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배지를 사냥해도 마지막에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안 좋아···. 이건 정말 안 좋아.’ 이 퀘스트에서 이기면 기껏 막아놓은 언더 플레이어들의 숨통이 다시 트기 시작할 것이다. 십왕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사냥 할 수 있는 영역을 손에 넣을 테니 말이다. “제기랄···. 빌어먹을···.” 정운은 서둘러 무장을 갖추고 천막을 나왔다. 천막을 나오자 이미 다른 십왕들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알림창 들었지? 그럼 설명을 필요 없겠다.” “예···. 그 재수 없는 자식, 마지막 보스몹 레이드에 모든 것을 걸었던 거예요··. 제기랄. 보스몹이 어디서 나타나는지도 모르는데····.” “잡아야 돼. 그 놈들이 한 층이라도 자기 영역으로 선포하면··. 그럼 우리의 감시망을 벗어나서 언전하게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긴다는 거야.” “그런데 어디로 가죠? 누구 범위 넓은 탐색 스킬 가진 살마 없나요?” “모두 침착해라.” 우왕좌왕하는 십왕들을 진정 시킨 것은 십왕의 NO.1,2인 박추성과 배대호였다. “대호야···. 위치는 대강 알겠지?” “그래. 여기서 남서쪽으로 500km 떨어진 장소다. 모두들 이동하자.” “대호 형님···.” “장거리 이동에는, 정철이의 소환수가 가장 빠르지? 500km정도면 얼마나 걸리겠냐?” 윤정철은 자신의 소환수인 콘술을 꺼내면서 생각했다. “시간을 재본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 다 태우면 1시간··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좋아. 모두들 들어. 내 탐색에 의하면 놈들은 이미 보스몹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기필코 놈들이 레이드를 끝내기 전에 도착한다. 알겠나?” “도착하기만 하면 나한테 맡겨라···. 오랜만에 나도 한 번 실력 발휘하지.” 배대호와 박추성이 듬직하게 앞으로 나서자 실로 믿음직 스럽기 짝이 없었다. “옛!!!” “옛!!!” “옛!!!” 십왕들은 정말 오랜만에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운과 십왕들을 태운 콘술은 바람을 가르면서 질풍처럼 날았다. ‘이거 몇 km지···. 한 시속 300은 가볍게 넘는 것 같은데···.’ 체감 속도로 얼마나 빠른지는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굉장히 빨랐다. 전방에 배대호가 공기를 막는 실드를 치고 있기 때문에 멀쩡했지만 안 그러면 바람에 대미지를 입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질풍처럼 날아서 도착한 곳에는 언더 플레이어들이 한참 레이드 사냥을 하고 있는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보니 놈들이 싸우는 몹은 전형적이 거인족이었다. 양쪽의 팔에 커다란 망치와 방패를 장비하고 있었고 그 덩치는 못해도 50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굉장한 놈들이군. 그러데····. 아직 옐로우 크리스탈도 안 떴네.” “지금 끼어들까요? 아니면 좀 더 지켜보다가···.” “이 놈들····.” 십왕들의 대화는 의미가 없었다. 가장 이를 갈면서 먼저 뛰어내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명주호였다. 그는 한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도에 화염과 냉기를 두르고 그대로 지상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명주호의 공격은 보스몹이 아니라 언더 플레이어들을 먼저 노렸다. 너무나 화려한 공격이었기에 사전에 알아챌 수는 있었지만 그 공격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그래서 그의 공격에 미처 피하지 못한 두 명의 언더 플레이어들이 그대로 명을 달리해 버렸다. 거기다 윤정철이 콘술의 위헤서 화살을 당기면 정운에게 말했다. “박정운, 너 그거 할 수 있지?” “···그거 말이죠?” “그래. 준비해라.” 정운은 씨익 웃으면서 자신의 활을 꺼내서 윤정철과 함께 당겼다. ‘생각해 보니 이 건곤파천궁도 이 사람이 준 거였지?’ 제법 오래 돼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박정운과 윤정철이 동시에 화살을 놨다. “천뢰지망!!” “템페스트 샷!!!” 퍼퍼퍼퍼퍼퍼퍼펑!!! 이지스함에서 폭격기가 다 출격해서 폭격을 퍼부으면 이렇게 될까? 정운과 윤정철의 합동 공격은 그 일대를 거의 초토화 시키듯이 갈겼다. 물론 범위 공격이기에 한방 한방의 파워는 강하지 않다. 하지만 이 공격에는 두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보스몹의 거대한 덩치에 상당한 대미지가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방금 공격에 죽은 언더 플레이어는 없었지만 모두들 적지 않은 대미지를 입었다는 것이다. “제길···. 후퇴한다!!!” “후퇴!! 후퇴하라!!!” 언더 플레이어들이 후퇴하기 시작했고, 그런 언더 플레이어들을 보면서 쌓인게 많은 명주호가 다시 뒬를 쫓았다. “어디를 도망가느냐!!!? 이 비겁한 놈들아!!!” 그런 그를 보면서 정운은 새삼스럽지만 예전에 김신수에게 당한게 어지간히 억울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더 플레이어들을 명주호가 쫓으려고 했지만 그 전에 한중겸이 외쳤다. “주호야!! 쫒지 마라. 지금 더 중요한 건 보스몹 레이드야!!!” 한중겸의 말에 명주호는 멈칫했다. “········.” 한 5초 정도···. 갈등하는 듯한 표정을 하는 명주호였지만 이내 이를 갈면서 등을 돌렸다. 확실히 말해서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저 보스몹을 잡는 것이다. 만약 지금 도망치는 언더 플레이어들 사이에 그 원망스러운 김신수라도 보인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그 놈은 자기 몸을 보전하기 위해서일까? 역시 보이지 않았다. 김신수가 보이지 않는 이상 지금 잡아야 할 것의 우선 순위는 보스몹이었다. 저 레이드를 가로채는 것만 해도 충분히 언더 플레이어들의 음모를 분쇄 할 수 있었다. “칫····. 망할···.” “이쪽으로 와라. 일단 옐로우 크리스탈까지 떨어트리자.” “알고 있습니다.” 십왕 + 정운의 팀. 지금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 아니 그라운드 제로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드림팀일 것이다. 그런 팀으로 레이드를 시작했다. “으아아아앗!!!!!” 콰아앙!!! 마치 언더 플레이어들을 놓친 것에 관해서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명주호는 화려하고 강력한 공격을 날렸다. 다른 십왕들도 본격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역시 가장 열을 올리는 것은 명주호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무!!!!” 십왕 서열 7위이자 웹 마스터인 김수민. 그가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상대는 덩치는 크고 공간은 광활할 때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의 유니크 아이템인 타란툴라 웹은 무한하게 늘어나는 채찍으로 상대의 덩치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더 잘 싸울 수 있었다. 퍼퍼퍼퍼퍼퍼펑!!! “쿠오오오오!!!!!” 그의 공격에 거인은 크게 소리치면서 달려오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채찍이 얼마나 강력한지 한방 한방을 맞을 때 마다 그 거대한 거인이 묵직하게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방을 날린 것은 역시 그 사람이었다. “어디···. 정말 오랜만에 레이드인데···. 이런 타입이면 약점이 너무 뻔하지.” 박추성이 드디어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동생들이 공격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생긋 미소짓더니 그대로 손을 슬쩍 움직였다. 촤아악!!! 그리고 그가 손을 움직이자 거인의 거대한 몸에서 대규모 출혈이 생겼다. “웃···. 저건···? 뭘 한 거죠?” 정운은 갑자기 거인의 사지에서 발생한 출혈을 보고 말했다. 정운은 마침 한중겸의 바로 옆에서 활을 당기고 있었기에 더욱더 이 상황을 잘 파악 할 수 있었다. 박추성은 아무것도 안했다. 그러데···. 감자기 그가 손을 뻗자마자 거인의 사지에 거대한 출혈이 생겼다. 이래서는 뭐가 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런 정운에게 박추성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흠····. 궁금한가 보지?” “예. 뭐····.” 정운은 무의식중에 대답을 하고서도 순간 아차 싶은 느낌이 들었다. 상대의 전투 스타일은 중요한 정보다. 그런데 그걸 막 묻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례였다. 하지만 박추성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내 무기는 별것 아니다. 딱 하나 뿐이지···. 이 무한(無限)의 영사(靈絲)가 내 유일한 무기지.” “영사····. 사검인가요?” “뭐, 그런거지···. 사실 그냥 실이야. 좀 굵게 해서 보이게 해 줄까?”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고 나자 정운은 박추성의 손끝에서 아주 가는 실이 뻗어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좀 굵게 한 거라고 했지···. 그럼 평소에는 얼마나 가늘게 할 수 있다는 거야.’ 감탄하는 정운에게 한중겸이 말했다. “이거 유니크 아이템 치고는 별로 좋지는 않아. 보통 유니크 아이템이라면 뭔가 스킬 같은게 붙어야 하는데 이건 스킬이 없거든.” “스킬이 없다고요? 그런데도 유니크 아이템?” 깜짝 놀라서 반문하는 정운에게 박춧성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냥···. 내 뜻에 따라서 무한하게 뻗어가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엄청 질긴 정도? 아! 실의 굵기도 조절 가능하지. 마음먹으면 두께만 2미터까지 하는 것도 가능하고 아니면 분자 단위로 얇게 하는 것도 말이야.” “·····그거·······.” 정운은 정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그 말대로만 된다면 엄청난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 그런 것 필요한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와이어 형태의 무기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무적이었다. 굵기를 조종하면 눈에도 보이지 않고 그리고 저기 보스몹을 구속하고도 끊어지지도 않는다. 이 이상 뭘 바라겠는가? ‘이 인간도 괴물이군····.’ 괜히 그라운드 제로 최강이라고 불리는게 아니었다. 정운은 잠시 자기가 만약 이 박추성이라는 남자와 싸우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머릿속으로 몇가지 시물레이션을 해본 결과···. ‘안 되는군. 어림도 없어····.’ 어떻게 해도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운의 전투 스타일은 강한 공격력과 빠른 회피력에 있었다. 그런데 공격력은 둘째 치고···. 보이지도 않는 치명적인 칼날을 날려대는 상대에게 회피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쉐도우 아머를 전신에 두르면 조금은 버틸지 모르지만···. 일단 구속 당하면 거기서 끝이니····.’ 정운은 문득 고개를 돌려서 거대한 거인이 발버둥 치는 것을 봤다. 미처 ME롤 찍어 보지도 않아서 이름도 모를 몹이지만···. 겉보기에만 봐도 딱 맷집 좋고 힘 좀 쓰게 생겼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놈이 꼼짝도 못하고 있다. 그 정도로 질긴 와이어에 몸이 꽁꽁 묶이면 정운으로서는 더 할말도 없을 것이다. “뭐··. 싸울 일은 없을 테니까?” “응? 뭐라고?”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운은 속으로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그만 입으로 말이 나와 버렸다. ‘내가 긴장했나···.’ 정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 하던 실수를 하는 것을 봐서는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음····. 다 됐나?” 거인의 사지를 무한의 영사로 꽁꽁 구속하고 있던 박추성은 그대로 양손을 좌우로 슬쩍 불렸다. 그러자····. 촤아아악!!!! 거인의 사지가 좌우로 쩍 벌어지면서 영사가 파고든 사지에서는 핏물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렸다. “자른다!!! 떨어지는 팔 다리 조심해.” 박추성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기어코 거인의 사지가 잘려 버렸다. 아니 잘렸다. 라는 표현은 좀 그랬다. 이건···. 마치 뭉개졌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날카로운 와이어라고 해도 일단 꽁꽁 묶어서 구속하는 형태에서 날카로운 예기를 대상에게 전달 할 수는 없었다. 와이어를 그렇게 쓰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단숨에 베어내거나 와이어를 풀어내면서 마찰을 일으켜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거인의 팔 다리를 소시지 끝부분처럼 뭉개면서 잘라 버린 것이다. “크오오오!!!!” 거인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그대로 싸우려고 했다. 어마어마한 투지라고 칭찬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42화 “··············· 블리자드 스톰!!” 놈이 사지를 잃고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캐스팅을 마친 배대호의 마법이 작렬한 것이다. 놈의 팔 다리의 절단면에 뿜어진 마법은 놈의 사지에 집중적으로 뿜어졌다. 얼음의 눈보라가 집중적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하자 대상이 그대로 얼어 버렸다. 이것 역시 일반 스킬이 아니라 배대호가 만들어낸 오리지널 스킬. 대상에게 대미지를 주는 것 보다는 대상을 얼음에 얼려 버리는 것에 중점을 둔 스킬이다. 덕분에 이제 거인의 몸이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몸을 재생 시키거나 사지를 붙이고 싶어도 절단면이 얼어서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뭐···. 여기까지 하면 될까? 이제는 차려논 밥상이지.” 박추성의 말에 다른 십왕들 역시 한 숨 돌렸다는 듯이 여유를 가졌다. 거인이 맹렬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날뛰었지만 사실상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짧아진 사지를 발버둥 치면서 난폭하게 울부 짖는 것 밖에는 말이다. “빨리 끝내자. 누가 할래?” “아무나 하죠? 보스몹이라고 해도 그렇게 강한 놈도 아니었는데 경험치도 고만고만할걸요? 경택아 네가····.” 그때였다. 십왕과 정운까지···. 모두가 방심하고 있는 바로 그때를 노리고 있는 약탈자가 있었다. 최종 공격을 가하기 위해서 한중겸이 자신의 소환수를 불러서 마무리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거기까지. 이제부터는 내가 맡지.” 정운으로서는 정말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돔 형태의 방어막이 생기면서 정운과 십왕들을 밀어냈다. “크윽····. 김신수!!! 너 이새끼!!!!” 정운이 이를 갈면서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바로 김신수가 있었다.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신수는 마치 이때를 노리고라도 있었다는 것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나타난 것과 동시에 거인과 자신만을 돔 형태의 방어막에 남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밀어내고 말이다. “김신수!!! 너 이 새끼 잘도 우리 앞에 나타났구나.” 정운은 놈을 향해서 이를 갈면서 말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김신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박정운···. 지금 너 같은 조무래기하고 얘기할 생각은 없다. 뭐··. 이 몹은 일단 다 잡아놓은 상태니까···.” 김신수는 바닥에서 꿈틀꿈틀 거리고 있는 거인을 잠깐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놈의 시선은 십왕들 전원을 하나하나씩 둘러보고 있었다. “흠····. 익숙한 얼굴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직접 보는 것은 초면인가? 정식으로 소개하지. 내가 뉴 웨이브의 길드장. 김신수다.” 김신수의 소개에 십왕들은 어이가 없어했다. 이 와중에 자기 소개? 자신들을 어지간히 호구 취급한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간도 크군···. 이 알량한 방어막을 믿는 건가?” 명주호는 자신의 검과 도에 기를 잔뜩 불어 넣으면서 말했다. 그의 도와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과 냉기가 마치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솟구쳤다. 하지만 그런 광경을 보면서도 김신수는 여유가 만만했다. 마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엷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물론. 이 방어막을 믿고 있지. 이거 내 유니크 스킬이거든.” “아···. 그래? 그럼 어디···. 받아봐라!!!” 명주호는 받아보라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명주호의 음양회천격이 최대 출력으로 방어막에 작렬했다. ‘이거라면·····.’ 명주호는 그야말로 온 힘을 다했다. 지금은 힘을 온전할 필요도 없었다. 이 방어막만 부수면 그 다음에 저 놈을 족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도 할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호오···. 멋진걸? 전에 나하고 싸울 때도 그렇게 좀 하지 그랬어? 그럼 그렇게 지지는 않았을 텐데?” “···········.” 김신수의 비아냥 거림에 명주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이거··. 평범한 방어막이 아니다.’ 명주호는 몰랐겠지만··. 이 방어막의 이름은 마이너스 실드라고 한다. 마이너스 실드 LV.0 (레벨을 1레벨 떨어트림으로 인해서 30분 동안 절대적인 방어막을 만들 수 있다. 30분 동안은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하지만 자신도 외부를 공격 할 수는 없다. 24시간 동안 한 번만 사용 할 수 있다.) 척 보면 알겠지만 정상적인 스킬이 아니다. 다름 아닌 파우스트가 김신수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 만든 스킬이니 당연했다. 모든 공격을 절대적으로 30분 동안 막아낸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사실 거의 사기였다. 그나마 저기 부가적으로 붙어있는 디메리트 조항은 이번에 악마들이 업 데이트를 하면서 붙인 것들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런 강력한 기술 완전히 없애 버리고 싶은게 악마들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 했고, 대신에 스킬의 유용함을 없앨 조항들을 잔뜩 붙이는게 다였다. 한 번 사용할 때 마다 레벨이 1씩 떨어진다. 다른 실드와 달리 내부에서 외부를 공격 할 수는 없다. 24시간 동안 딱 한번만 사용 할 수 있다. 이렇게 하고 나니 그나마 좀 사기성은 많이 사라졌다. 김신수도 이렇게 스킬이 수정된 이후에는 거의 사용 한 적이 없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레벨이 1씩 떨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큰 디메리트였다. 하지만···. 뭐든지 때와 장소가 있는 법. 십왕들을 단체로 엿 먹이고 이번 퀘스트에서 승리 할 수만 있다면 레벨이 1떨어지는 것도 충분히 감수 할 만 했다. “후후후·····. 뭐, 그렇게 된 거야?” 김신수는 완전히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완전히 방심하고 자기 목적을 미주알 고주알 다 말했다. “····제길, 이 새끼 처음부터 숨이 있는줄 만 알았다면···.” 정운의 중얼 거림은 십왕들도 충분히 공감했다. 한편, 김신수는 십왕들을 다 관찰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나같이···. 나 잘났다. 라고 확신하는 인간들 뿐이군. 스카웃 하려고 해도 무리겠어.” 김신수의 말에 명주호가 당연하다. 라는 듯이 말했다. “미친놈은 미친놈끼리 놀아라.” “흠···. 너무 하는 걸? 뭐, 좋아···. 언젠가는 당신들 전원이 내 밑에 무릎 꿇게 될 거야. 그때를 기다리지 뭐.” ‘놀고 있네····.’ ‘저 새끼 어떻게 죽일 방법 없나?’ ‘방심하고 있을 때가 최고 적기이기는 한데··. 이 방어막 정말 거슬리네.’ 자기 승리에 도취된 김신수와 달리 십왕들은 호시탐탐 김신수의 생명을 취할 찬스를 엿보고 있었다. 이민지가 박추성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영사로도 불가능 한가요?” “무리. 지면으로 파고 들어봤는데 그래도 무리. 저거 완전 구체의 방어막인 것 같아.” 둘은 자신들끼리 알아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소근 거렸다. 박추성이 안 된다면 십왕중에서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배대호가 나서야 할 장소다. 박추성보다 배대호가 확실하게 나은 점이 바로 화력이라는 부분이었다. 순수하게 공격력만 따지만 나머지 십왕을 다 끌어 모아도 비슷비슷 할 정도의 괴물이 배대호였다. 하지만···. 그런 배대호도 고개를 저었다. “저거···. 아무래도 공격 자체를 완전 무효화 시키는 것 같아. 이러면 공격이 강하고 약하고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배대호까지 항복을 하자 결국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십왕들 전원이 다 모여서 김신수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제기랄····.” 주경택이 이를 갈면서 김신수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신수는 씨익 웃으면서 거인에게 다가갔다. “많이 아프냐? 걱정하지 마라. 금방 편하게 해 주마.” 김신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검에 검기를 끌어 모았다. 이번 기회에 김신수가 노린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의 눈으로 십왕들을 모두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다 잡은 몹을 스틸하는 것이었다. “템페스트 소드!!” 촤아아아악!!!“ “크오오오오!!!!” 김신수의 난격이 맹렬하게 거인을 썰어가기 시작했다. 거인은 몸부림치면서 김신수에게 반격 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박추성과 배대호의 콤비네이션에 사지가 모두 없어진 상황이었다. 이래서는 아무리 보스몹이라고 해도 별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점점 닳아가고 있는 거인의 체력이 정운과 십왕들을 몹시 불쾌했다. 다 잡아놓은 먹잇감을 빼앗기는 꼴이 아닌가? 그래도 이들이 다른 유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다 끝난 상황에서도 포기 하지 않고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절대방어라고 해도 뭔가 약한 곳이 있지 않을까?” “그건 그냥 추측이지. 그리고 있다고 해도 어딘지 어떻게 찾아?” “제길···. 그냥 마구잡이라고 공격해 볼까?” “누가 이거랑 상극 되는 유니크 스킬이나 아이템 있는 사람 없어? 보상 섭섭지 않게 할 테니 그냥 지금 써라.” 십왕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세레나는 자신도 모르고 자기 목에 매달려 있는 로자리오를 바라봤다. ‘이거라면 혹시·····. 아니야. 버그로 치부 될지도 몰라. 지금 쓰는건 너무 위험해.’ 세레나가 목에 걸고 있는 로자리오는 엄밀히 말해서 아이템이 아니다. 전 엑소시스트인 신부가 죽으면서 자신의 신성력을 모두 담은 이른바 성구인 것이다. 지금 김신수가 사용하고 있는 절대방어막이 어떤 로직으로 이뤄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라운드 제로의 로직이라면 악마의 힘일 것이다. 상극이 되는 신성력으로 상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섣불리 나설 수는 없는 세레나였다. 지금 이 싸움은 아마도 파우스트나 악마들도 모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이 나서서 신성력을 사용한다면···. 그때는 버그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더 이상 마스터와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려····.’ 세레나는 그 점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게 있었다. 원래의 그녀라면 신성력을 사용함에 있어서 망설이는 이유로 임무의 속행을 할 수 없다. 라는 이유를 들었을 것이다. 천계에서 받은 명령이야 말로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정운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선시 하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는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큰 변화였다. 그렇게 모두가 전전긍긍하는 동안 슬기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정운씨의 스킬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까 명주호 형님 공격에도 버티는 것 봤잖아. 내 공격력으로는 무리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공격력 말고 그거요···. 그걸로 공격하면 가능해요. 저 마이너스 실드가 빛까지 막아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과연··. 어쩌면···.” 정운은 즉시 태양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태양을 등지고 김신수의 마이너스 실드에 최대한 바싹 붙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가 실드의 안으로 들어가서도 무리 없이 비치는 것을 확인했다. “딱 걸렸다. 쉐도우 아미!!!!” 이것이야 말로 회심의 한 수라고 해도 좋은 방법이었다. 김신수의 마이너스 실드는 외부에서의 공격은 철저하게 막아낸다. 공격력이 강하든 약하든 상관없다. 외부에서 공격 자체를 완전히 제로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 유저에게 있어서 생명 다음으로 수종한 자기 레벨을 희생 시키면서까지 사용하는 유니크 스킬인 만큼 방어력 하나 만큼은 최고로 설정된 것이다. 하지만 내부에서의 공격은? 물론 그것은 가능하다. 애당초 내부에서의 공격이 불가능 했다면 지금 김신수가 저 거인을 공격하고 있는 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정운이 마이너스 실드의 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가능해 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쉐도우 아미를 마이너스 실드의 안에서 소환 하는게 가능해 지는 것이다. “가라!!!!” 정운이 명령을 하자마자 아홉 기의 쉐도우 아미들이 달려 나갔다. “큭····. 이건 무슨····?” 김신수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쉐도우 아미들을 보면서 크게 당황했다. 그는 모든걸 철저하게 준비하고 자기 손바닥 안에서 춤추게 하는 것에 익숙한 인간이다. 이렇게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되면 바로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김신수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장 자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박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김신수 : 넌 왜 날 자꾸 괴롭히는 거야? 박정운 : 악당을 못살게 괴롭힌다. 그게 주인공의 사명이다. ....옛날부터 생각했는데 이분법이라는게 참 잔인한 면이 있습니다. 그쵸?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43화 <승리? 패배? 무승부?> 정운은 쉐도우 아미를 자동 조작으로 돌리지 않고 일일이 자기가 조종하면서 김신수를 공격했다. “안 놓친다.” 정운의 쉐도우 아미들이 기마차지의 형태로 김신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김신수 본인의 레벨은 정운보다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했기에 순간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정운의 뒤편에서 상황을 파악한 십왕들이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다섯 기는 김신수에게 붙이고 나머지 네 기로 거인을 공격해!!!” “퀘스트 보스 몹부터 잡으라고!!! 이 멍청아!!!” 정운은 십왕들의 훈수를 들으면서 짜증을 벌컥 냈다. “좀 시끄러워요!!!” 원래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은 훈수 받는 사람을 극도로 짜증나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짜증은 짜증이고 말은 옳은 말이었다. 정운은 쉐도우 아미들을 더욱더 강하게 강화시켰다. “뇌천신공!! 아스트랄 소드!!!” 정운과 연결 되어 있는 쉐도우 아미들에게서도 정운과 똑같은 뇌전과 아스트랄 소드가 생성되었다. “가라!! 박살을 내 버려!!!” 정운은 쉐도우 아미들을 조작하면서 김신수를 더욱더 거칠게 공격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십왕들이 시킨 대로 네 기로 거인을 공격했다. 뇌전을 머금은 거대한 거검들이 거인을 빠르게 난자해 갔다. 어느새 거인은 옐로우 크리스탈을 넘어서 레드 크리스탈이 되었다. “이놈! 박정운!!!!!” 김신수는 제대로 열 받았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돌풍이 몰아치면서 자신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다섯기의 쉐도우 아미들을 떨쳐냈다. “저건···. 꼭 내 뇌천신공하고 같은걸?” 정운이 뇌전을 둘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김신수는온 몸에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두른 상태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날카롭게 돌진 하면서 거인에게 강력한 일격을 먹였다. “스톰 스트라이크!!!” 콰콰쾅!!! 강력한 바람의 폭발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렸다. “저건····. 내 질풍신뢰하고 비슷한 기술인가?” 정운의 말대로 김신수의 기술은 정운의 돌진기인 질풍신뢰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모습에서는 최종보스몹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했나?” “빌어먹을····.” 결국 최후에 김신수의 일격에 보스몹이 죽었다고 생각한 십왕들은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상황을 파악할 틈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약간의 안이함과 방심으로 인해서 결국은 퀘스트에 실패하고 말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 몰라···.” 정운 한명을 빼고 말이다. 띠리링!! 정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림창이 떴다. [퀘스트 보스몹, 분노의 거신병 클리어 완료. 클리어 유저, 박정운.] “····오오!!!” “짜식 해 냈구나!!” “좋았어!!!!” 십왕들은 모두 정운에게 달라 붙어서 정운을 크게 칭찬하며 환호했다. 주로 남자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마치 9회말 투 아웃에 역전 홈런을 때린 타자를 칭찬하는 것처럼 크게 말이다. 이민지나 슬기, 세레나 이보영, 이지영 자매 등은 저렇게 얼싸안고 기뻐할 생각은 없는지 그냥 얌전히 뒤에서 지켜 보기만 했다. “····망할·····.” 한편 보호막 안에서는 김신수가 한 숨을 내쉬었다. “잠깐만요···. 저 새끼랑 할 말이 있어요.” 정운은 푸념하는 김신수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잠시 물렸다. 두 남자는 보호막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봤다. 정운은 문득 아직 쉐도우 아미로 김신수를 공격하는게 가능할까? 라는 가능성을 타진해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쉐도우 아미에, 뇌천신공, 거기에 아스트랄 소드까지···. 이미 정신력이 거의 한계였다. 이 상황에서 김신수를 잡아내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대신에 묻고 싶은게 있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김신수. 너 아직도 파우스트와 연락이 되는 거냐?” “·····그렇다고 하면? 왜. 치사하다고 할 생각인가?” 김신수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냥 한 마디 전언만 전해라.” “·············.” “목 닦고 기다려라. 이 X 같은 새끼야!! 라고.” 그리고 정운이 말하는 것과 동시에 이번 퀘스트가 정식으로 종료 되었다. 모든 유저들이 자신들의 거주구로 돌아가고 모두에게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비정기 퀘스트 결과 알림. 보스몹 클리어 : 박정운. 배지 집계 최종 스코어. 일반 플레이어 : 배지 9001개 획득. 언더 플레이어 : 배지 12290개 획득. 최종승자. 언더 플레이어.] “·····이건 무슨···. 어떻게 된 거야!!?” “말도 안 돼····.” “크윽···. 설마···.” 최종 결과가 나오자 십왕들은 저마다 입술을 깨물며 침음성을 내뱉었다. 설마하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이쪽이 원래 습득하고 있던 배지가 확 줄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적에게 대규모 PK를 당했다는 것이 가장 타당한 결론일 것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십왕들은 서둘러 일반 마을로 내려갔다. 스카이 타운에서는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일반 타운에 가서야 보통의 유저들 태반이 부상을 입은 것을 보고 깨달았다.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말이다. “····빌어먹을····.” 명주호의 욕설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어···. 저기······.” 십왕들 전원의 앞에 나와 있는 타란툴라 길드의 간부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초호화 멤버들이 주는 중압감을 떨치고 그냥 평범하게 말하기에는 그의 뱃속에 있는 간이 너무 작았다. “편하게 말해라.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추궁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타란툴라 길드의 길드장인 김수민의 말에 간부는 일단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예···. 그럼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십왕 여러분들과 박정운님이 보스몹을 잡기 위해서 움직이고·····.”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보스몹을 잡기 위해서 십왕과 박정운들이 진지를 떠난 후에···. 남은 인원들은 일단 진지 내부에서 외부를 감시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십왕들이 떠나가기 전에 삼대 길드에 단단하게 명령을 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자신들이 없을 때 적의 공격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사실 십왕들이 없다고 해도 삼대 길드의 저력을 생각하면 김신수와 최수영이라는 여자면 빼면 뉴 웨이브의 공격에도 마냥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보스몹을 잡기 위해서 뉴 웨이브가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상황은 미처 십왕들이나 삼대 길드의 간부들이 생각하지 못한 쪽으로 돌아갔다. 바로 형무소의 인간들이 배신을 한 것이다. “형무소의 인간들이 배신!!!? 말 도 안돼!! 그 자식들 혈맹으로 꽁꽁 묶여 있잖아? 관리자는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잘은 모르겠지만 살해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살해? 잠깐··. 관리자가 살해당하면 형무소의 인간들도 모두 살해당하는 걸로 되 있을 텐데!!?” 이보영의 말에 타란툴라의 간부가 말했다. “그게··. 이상하게도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놈들은 이미 형무소 길드의 혈맹에서 벗어나서 언더 플레이어로 전향 했습니다. 싸우는 와중에 놈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검은색 크리스탈을 제가 분명히 봤습니다.” 간부의 보고를 들으면서 이보영은 이마를 손으로 가리면서 힘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0 “···돌겠군. 김신수라고 했나? 그 자식 아직도 수겨진 뭔가가 남아 있었나? 하지만 혈맹의 조건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니··. 어떻게?” “주인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이보영의 의문에 답하는 사람은 플레이어들 중에 없었지만···. 언더 그라운드에서 김신수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최수영은 그 답을 줄 수 있었다. “잘 했다. 이전의 실책을 조금은 씻은 셈이구나.” “감사합니다.” “너의 그 능력··. 배신의 세례라고 했나? 그런 능력이 있다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나?” 김신수의 말에 최수영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사특한 능력····. 차마 주인님에게 말하면 미움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최수영의 말에 김신수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괜한 걱정을 했구나. 난 네가 악녀든? 성녀든?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로지 나에게 도움이되는 여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이지.”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흠···. 네가 남자에게 버림받은 추억이 강한거야 알겠지만···. 똑똑히 알아둬라. 넌 그저 나에게 복종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신경 쓰면 되는 거다. 설마 또 다시 원래의 너인 메데이아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김신수의 말에 최수영은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저는 머라카락 한올 부터 영혼 한 조각 까지···. 모두 주인님의 도구이자 소유물일 뿐입니다.” 극도로 공격의 예를 표하는 최수영. 그녀 역시 세레나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상당히 유명한 인간이었다. 다만···. 세레나가 오를레앙의 성녀라고 불리는 여자였다면··. 이 여자는 배신의 마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메디이아···. 아는 사람이 많겠지만 바로 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콜키스 왕의 딸이자 이아손의 연인이었던 여자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아버지를 배신하고 친동생을 죽인 여자. 그리고 마침내 이아손에게도 배신당하고 나자 이아손은 몰론이고 그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까지 죽인 악녀중에 악녀. 실로 마녀 중에 마녀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바로 최수영이라는 이름을 받고 김신수에게 귀속 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에 김신수가 파우스트와 계약하고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그녀는 최수영이라는 이름을 하고 김신수를 호위하고 있었다. 원래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 그녀의 영혼은 스스로의 죄업과 후세의 모멸에 의해서 지옥의 구렁텅이 속에서 불타고 있었고···. 그녀의 그런 영혼을 수집해서 가지고 있던 것은 바로 대악마 메피스토 펠리스였다. 그리고 그 후에 메피스토를 봉인하면서 파우스트가 보기 드물 정도로 강력한 마녀의 영혼인 메데이아를 자신의 것으로 수집했고···. 그런 그녀를 김신수와 계약을 하면서 호위겸 시종의 역할로 넘겨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능력인 배신의 세례라는 기술이야 말로 이번에 김신수가 내린 작전의 핵심이었다. 배신의 세례 LV.0 (상대의 혈맹을 무효로 돌린다. 그 대신에 교환으로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하는 종으로 만든다.) 최수영의 기술인 배신의 세례는 유니크 스킬이기는 하지만 딱히 공격 기술이나 버프, 혹은 디버프도 아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저주? 엄밀히 말해서 유저 자체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게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어쨌든 이 배신의 세례는 원래 배신의 마녀라고 불리는 그녀에게 있어서 자연스럽게 각인된 기술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스킬이 아니라 메데이아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인 것이다. 세레나의 신성력처럼 말이다. 원래는 인간에게 약속을 어기게 하고 배신의 유혹을 부추기는 기술이다. 메피스토의 경우 이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타락 시키고는 했다. 청렴한 정치가가 자기 스스로 한 약속을 어기게 해서 타락시키고···. 정숙한 유부녀를 음탕한 유혹에 빠트리고 결혼이라는 서약을 어기게 해서 타락 시키고····. 신에게 봉사를 맹세한 선성한 사제에게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밀면서 신을 배신시켜 타락하게 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배신을 하게 해서 타락의 첫 걸음을 내디디게 하는···. 실로 악마들 입장에서는 훌륭하기 그지 없는 기술이었다. 이랬던 배신의 세례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와서 유니크 스킬이 되면서 내용이 좀 변했다. 바로 혈맹의 배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스킬이 된 이상 디 메리트는 있다. 혈맹을 강제적으로 배신해도 되는 이상 그 대신에 혈맹이라는 약속에서 해방 시켜준 자. 즉 최수영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배신의 세례는 스킬이지만 막 쓸 수는 없었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배신의 세례를 내린다고 해도 그 스킬을 받은 사람이 거부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즉, 상호간의 합의가 이뤄져야 사용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디 메리트를 먹인 악마들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퀘스트가 끝나고... 얻은게 많은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고 많은게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운의 경우 보스몹을 잡아서 개인적으로 승리했고, 김신수는 뒤통수 쳐서 비정기 퀘스트에서 팀 승리를 챙겼습니다. 난타전이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데 승자가 누군지는 말하기 애매한 상황인 거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44화 사실 배신의 세례에 대해서 악마들은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애당초 자신이 가입된 혈맹에 아무리 불만이 많다고 해도 그 대신에 상대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해야 한다면 누가 받아 들이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라운드 제로에 생긴 형무소 길드는 달랐다. 그 길드의 길드원들은 모두 죄를 짓고 복역(?)중인 죄인들이었다.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고, 사대 길드의 길드원들은 그들을 거의 노예 부리듯이 했다. 십왕들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애당초 죄 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 만든 길드다. 거기서 친절하고 살뜰하게 챙겨 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웃기지 않겠는가? 그러니 형무소 길드의 길드원들의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대우···. 넌 죄인이다. 죄인이니 이렇게 해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 왜? 넌 죄인이니까····. 형무소 길드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다른 유저들의 멸시와 조롱은 결국 그들을 한계까지 몰았다. 그래서 김신수는 일반 플레이어 중에 자신과 끈이 닿아있는 유저들을 이용해서 그들과 접촉했다. 그리고 최수영에게 그들에게 배신의 세례를 내렸고, 그들은 삼대 길드의 뒤통수를 정통으로 때리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30인 정예로 추린 언더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언더 플레이어들이 일반 유저의 진지를 공격했다. 그리고 언더 플레이어들이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형무소의 길드원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갑작스런 기습. 갑작스런 배신. 안과 밖의 양쪽에서 이어진 급습에 결국 일반 플레이어들에게는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다. 대열이고 뭐고 없이 형편없이 무너진 일반 플레이어들은 어마어마한 대규모 PK를 당했다. 총 희생자의 숫자는 1114명····. 그라운드 제로가 생긴 이후에 PK로 이만한 숫자의 유저가 죽은 적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이만큼의 희생자가 나왔고, 그들 대부분이 끝까지 남아있었던 만큼 배지를 다섯 개 이상은 가지고 있던 자들이다. 거기다 언더 플레이어들과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PK시에는 배지가 두 배로 나오는 법칙이 있었으니····. 이래서는 스코어가 역전되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보스몹을 내가 잡지 못한게 좀 아쉽군. 그것까지 내 뜻대로 되었다면 최고로 완벽했을 텐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김신수가 고개를 저으면서 푸념했다. 사실 보스몹이 있는 장소로 정운과 십왕들을 모두 꿰어낸 시점에서 이미 작전의 8할은 성공이었다. 마지막에 박정운의 특이한 기술에 자신의 절대 방어인 마이너스 실드가 뚫리지만 않았다면 모든게 자신의 예상대로 되었을 것이다. “박정운····. 이제 슬슬 그 놈도 거슬리는군···.‘ 한때는 그냥 스카웃의 대상이었을 뿐이지만···. 이제 와서는 세 번이나 중요한 자신의 거사를 가로 막았다. 처음은 명주호와 라이온 길드간의 길드전. 그때 박정운이 끼어 들어서 명주호를 죽이지 못했었다. 두 번째는 악마를 각성 시켜서 십왕들 다수를 세뇌하려고 했지만···. 그때도 결국은 실패했다. 사실 그때 실패의 주요 원인은 세레나였지만 그래도 현장에 없었던 김신수로서는 박정운을 탓했다. 실제로 이때의 실패는 뼈 아팠다. 덕분에 악마들에게 자신의 유리함을 모두 들키고 그라운드 제로는 대규모 업 데이트를 했지 않은가? 그래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이 대폭 사라졌다. 이제 와서는 당초 계획했던 것 보다 클리어의 시기가 뒤로 훅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뭐, 김신수의 입장에서 위안이라면 박정운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퀘스트는 언더 플레이어들이 이겼고···. 결국 자신들의 뜻대로 다섯 개의 층에 영역을 선포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 한 개의 층은 박정운에게 넘겨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80%의 성공이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역시 그 놈은 거슬려.’ 김신수는 언젠가 박정운을 죽이기 위해서 뭔가 수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어느 때 보다 난장판 그 자체였던 비정기 퀘스트는 끝이 났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많은 변화를 남기고 말이다. 비정기 퀘스트가 끝나고···. 얻은 것이 많은 자와 잃은 것이 많은 자들이 분명하게 나뉘었다. 우선 얻은 것이 가장 많은 것은 뉴 웨이브의 언더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비정기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손에 넣었다. 그 영역의 범위는 지하 59층, 60층, 61층, 62층, 63층이었다. 이것이 말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현재 최고 개발층인 지하 59층을 시작으로 해서 앞으로 63층까지의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정운이나 십왕들의 순찰이 두려워서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사냥도 이제는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만약 보스몹까지 잡았다면 놈들은 64층까지 자기 영역으로 손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게 자기 뜻대로만 굴러가지는 않는 법. 정운이 김신수를 상대로 보스몹 스틸에 성공했고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이로 인해서 일반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박정운 한 명만이 영역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정운은 이 영역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었다. 생각 같아서는 현재 놈들의 최전방 영역인 59층을 영역으로 선포 하는게 최고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는게 상대의 최전방 층은 영역으로 선포 할 수 없다. 라고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의 공략 자체를 방해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정해놓은 것 같은 룰이었다. 결국 정운은 지상 60층을 영역으로 선포했다. 처음에 정운이 60층을 영역으로 선포 했을 때 많은 유저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틀림없이 정운이 자신의 주 활동 무대인 68층을 영역으로 선포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혹시나 있을지 모를 언더 플레이어들의 공격에서 안심하고 싸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운이 고른 영역은 일반 플레이어들의 사냥에 가장 평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층인 지상 60층이었다. 지상 60층의 공략 레벨은 초보자가 꿈꾸기에는 어림도 없는 레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독으로 골약할 때의 일이다. 길드에 가입해서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유저들이 잘 이끌어 주기만 하면 충분하게 성장 가능한 장소이기도 했다. 정운이 그런 배려를 한 덕분에 그라운드 제로의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정운의 이름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기본적으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 천지인 그라운드 제로였지만···. 이번에 정운이 보인 호의는 정말 큰 호의였고 그들로서도 감사 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여론이 그렇게 흘러가고 유저들은 고마워하면서 삼삼오오 길드를 형성하거나 기존의 길드에 들어갔다. 특히 정운이 명예 부길드장으로 있는 라이온 길드의 길드에 많은 인물들이 들어갔다. 사실 이번에 형무소 길드의 배신으로 인해서 큰 타격을 입었던 삼대 길드로서는 뜻하지 않게 많은 전력을 충원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정운이 그것까지 노리고 했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정운은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아앗!!!” “흡····.” 카아앙!!! 검격과 검격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두 사람의 검 사이에서 찰나의 불꽃이 튀었다. 세레나와 정운이 대련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스킬 없이 오로지 기술만 가지고 대련을 하는 것으로 이제까지 이런 대련을 하면 정운이 반수 정도는 밀리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결과가 다르다. 오히려 정운이 세레나를 역으로 밀어 붙이고 있었다. 파워와 스피드로 막 밀어 붙이는게 아니었다. 정운은 지금 세레나의 검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그 빈틈을 정확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핫!!!” 정운이 짧은 기합성과 함께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세레나는 그 검을 피하고 반격하려고 했지만 위로 올라가는 검은 끝까지 올라가지를 않고 중간에 궤도를 바꿔서 세레나의 어깨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으읏!!!” 세레나는 이 뜻밖의 공격 궤도에 당황하면서 허리를 비틀며 검을 피했다. 그 가는 개미 허리로 잘도 그런 역동적인 동작을 취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레나의 허리는 유려한 버들가지 처럼 휘면서 정운의 공격을 가까스로 흘렸다. 하지만 그렇게 상반신이 크게 흔들린 상태에서는 하반신이 뻣뻣해 질 수밖에 없었다. 정운은 세레나의 앞으로 나온 축발의 뒤편에 자기 발을 가져다 놓고는 그대로 어깨로 세레나의 가슴팍을 밀었다. “아앗!!!” 세레나는 그대로 뒤로 밀리면서 중심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뒤로 콰당 넘어졌다. 서둘러 일어나려는 그녀를 향해서 정운이 스윽 검을 겨누면서 말했다. “계속 할까?” “····아니요. 제가 완전히 졌습니다.” 그렇게 정운과 세레나가 검을 거두고 두 사람의 연습 대련은 끝났다. “그 스킬 정말 굉장하군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 날아오고는 합니다.” “그래? 사실 처음에는 쓰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야. 덕분에 나도 강해 질 수 있었지.” 세레나와 정운의 대화에는 이상한 이물감이 있었다. 스킬? 지금의 대련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검술 대련이 아니었단 말인가? 사실 여기에 관해서 말하기에는 정운이 최근에 비정기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보상에 관해서 말을 해야 한다. 비정기 퀘스트에서 마지막 보스몹을 잡은 정운에게는 몇 가지 보상이 내려왔다. 골드와 경험치는 별도였고 몇가지 쓸만한 아이템과 함께 스킬북이 내려왔다. 그것도 놀랍게도 유니크 스킬북이었다. 유니크 스킬의 유용함을 잘 알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크게 기뻤다. 사실 언더 플레이어와 일반 플레이어 진형간의 승패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챙긴 것은 아마도 정운일 것이다. 더구나 놀랍게도 이번에 습득한 스킬은 유니크 스킬 중에서도 희귀한 케이스인 패시브 스킬이었다. 액티브 스킬처럼 일일이 사용 할 필요가 없이 자연 스럽게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사용 가능한 패시브 스킬이 유니크 스킬로 나오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집중력 : LV.2 (체감 시간을 20%정도 느리게 조종한다.) 처음에 입수했던 이 스킬의 레벨은 1이었지만 지난 1주일간 세레나와의 꾸준한 대련을 통해서 레벨이 2로 올랐다. 처음에는 이 스킬의 의미를 잘 모르는 정운이었다. 체감 시간을 어느 정도 느리게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게 유니크 스킬이 맞기는 맞는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체감 시간이라고 해도 어차피 본인의 감각일 뿐. 육체의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정운의 생각을 수정해 준 것은 세레나였다. “마스터께서 크게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하고 대련을 해 보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운은 그녀와의 대련에서 체감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의 장점이 전투중에 엄청나게 대단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 선수들의 경우····. 아주 가끔씩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두뇌의 인식이 육체의 반응을 능가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야구의 타자가 시속 160km로 날아오는 야구공의 실밥이 선명하게 보인다거나···. 축구 선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 있는 동료의 움직임을 파악하거나···. 혹은 격투기 선수가 마치 예지라도 한 것처럼 상대의 움직임을 1초 앞 까지 꿰뚫어 보거나···. 그렇게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한 인간은 5감을 초월한 어떤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정운의 집중력 스킬은 그것을 체감 시간이라는 영역에서 발휘하고 있었다. 세레나가 날리는 검격이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문제가 있었다. 느려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체감 시간일 뿐. 자신의 동작도 상대와 마찬가지로 느려지는 것이다. 마치 근육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 같은 이물감을 정리하고 수정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연습에 연습이 있을 뿐이었다. 이 스킬이 끝까지 오르면···. 어쩌면 그때는 지금의 정운과는 차원이 다른 강자로서 자리 매김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약간만 더 수련하면 스킬 레벨이 3에 도달할 것 같아. 그럼 다시 한 번 그 던전에 도전하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다. 정운으로서는 일단 가장 앞에 있는 관문이 던전의 공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유니크 스킬이자 동시에 패시브 스킬. 이거라면 그 탑의 안에서도 충분히 사용 할 수 있었다. “그럼··.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이제 집에 가자. 나 배고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와 함께 집을 올라가려 했다. ============================ 작품 후기 ============================ 정운에게 체감 시간을 줄이는 집중력 스킬을 줄까? 아니면 미래시 능력을 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패시브 스킬인 집중력 스킬이 좋을것 같았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45화 <흔들리는 마음... 타들어 가는 심정...> 지금 정운과 세레나가 수련을 한 곳은 정운이 머물고 있는 호화 아파트의 수련층이었다. 이 안에서는 십왕들이 마음 놓고 스킬을 써도 부서지지 않는 파괴 불가 속성이 있었다. 외부에서 공격을 하면 부서지는데 신기하게도 이 수련층에서 스킬을 쓰면 절대로 부서지지가 않았다. ‘이런걸 보면 게임이라는 티가 나기는 난단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레나와 함께 수련을 마치고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어머? 동생··. 뭐하는 거야? 데이트? 슬기한테 이른다.” “이보영 누님···. 수련실에는 무슨 용건입니까?” “응? 나야 오랜만에 동생하고 수련하려고 왔지. 아!! 동생 말고 내 친동생, 우리 귀여운 지영이.” 이보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친 자매인 이지영을 꼭 껴안았다. “언니. 더워.” 그런 언니의 스킨쉽에도 여전히 시크하게 대답하는 이지영이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집으로 가겠습니다.” “흐음···. 온 김에 같이 놀고 가지 그래?” “············.” 이보영의 놀고 가라는 말은 대련이라도 한 바탕 하자는 얘기인데··. 정운은 눈치를 살짝 봤다. 입가에 갈려 있는 미소는 평소와 다름 없었지만 그녀의 눈초리는 반쯤 진지했다. 마치 너 슬기가 있는데 여전히 세레나한테 흔들리는 거냐? 그럼 지금 패줄 테다. 라는 눈빛이었다. 지금 그녀랑 대련을 하면 그냥 대련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절대로 말이다. ‘후우····. 이걸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하나···.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둘 다 라고 해야 할까?’ 정운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넘겼다. “아니요. 우리는 그냥 올라갑니다.” 지금 그녀와 싸워서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괜한 참견하지 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심정은 있었지만···. 단 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는 눈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기도 어색했다. 그래서 그냥 몸을 피하는 그녀를 보고 이보영이 뒤에서 말했다. “흐음·····. 그래. 알았어. 오랜만에 몸이나 좀 풀까 싶었는데. 여자가 무서워 도망가다니··. 동생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겁쟁이네.” 웃으면서 슬쩍 넘기는 이보영의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엄연한 도발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정운은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 무시하니 못하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보영씨. 방금 그 말은 그냥 들어 넘기기 힘들군요.” “····호오··. 네가 나한테 말 거는건 처음인걸? 세레나.” 이보영이 정운을 겁쟁이라고 한 말을 그냥 넘기지 못한 것은 바로 세레나였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순간 날카로운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이보영은 다소 노골적인 말로 세레나를 도발했다. “흠, 자기 남자한테 손대지 말라 이건가? 슬기가 너무 불쌍한 것 아니야?” 이보영의 말에 세레나는 고운 눈을 살짝 치켜뜨면서 말했다. “무례한 말이군요. 그리고, 우리 팀의 일에 관해서 외부인인 당신이 뭐라고 나서서 할 말은 없을 텐데요?” “그렇기는 하지. 너희들이 수라장을 만들던, 아니면 침대에서 셋이서 뒹굴든 나야····.” “입 다물어라. 음탕한 계집.” 이보영의 말에 세레나가 드디어 폭발했다. 정운으로서는 세레나의 입에서 이렇게 과격한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세레나의 말에 이보영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호오····.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하지만···. “너 지금 내 언니한테 뭐라고 했다. 이보영 그녀가 마을 다 끝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이지영이 세레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 평소에도 차갑고 시크 하던 그녀가 세레나를 향해서 노골적으로 살기를 뿌리자 주변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세레나가 말했다. “먼저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 우리를 모독한 것은 그대의 언니입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네가 내 언니한테 시비를 걸었다는 거야.” 이지영의 말은 철저하게 자기 입장에 충실해 있었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니? 말았니? 같은 문제는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기한테 맞서는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레나 역시 그런 그녀의 기세를 깨달았을까? 눈을 살며시 반만 뜨고 이보영과 이지영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말이 안 통하는 자매로군.” 화아악!!! 세 여자의 사이에서 뭔가가 확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쯧···.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정운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태까지 치달은 지금의 상황을 보고 속으려 혀를 찼다. 보통 이런 상황은 남자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났다. 별것 아닌 한 마디가 불씨가 되어서 그것이 점점 커지고는 결국에는 자존심 때문에 서로 물러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남은 것은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그런 오기 하나로 시작해서 주먹질로 끝나는 상황은 남자들의 사이에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이라고 자존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이야 말로 남자들 이상으로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지영의 말대로 시작이 뭐였는지는 둘째 치고··. 이제는 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의 철저한 자존심 싸움일 뿐이었다. ‘제길···. 이걸 어쩌지? 어떻게 할까?’ 정운은 속으로 욕만 할 뿐이었다. 세상 누군가가 말했다. 싸움 구경 중에 가장 재미있는 싸움 구경이 여자들 싸움이라고···. 하지만 정운은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말해보고 싶었다. 어디 여기 와서 똑같이 말해 보라고 말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100레벨이 넘은 여성 유저 세 명이서 싸운다고 하면 삼대 길드 중에 하나가 총력을 기울여도 그 싸움을 말릴 수 있을 확신이 없었다. 이미 그것은 전쟁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그래도 어쩌지···. 말리지 못한다면 일단 세레나의 편을 들어야 하나···.’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은근히 몸을 긴장 시키고 있는 그 순간····. “그만!!!” 다행이도 이 순간 딱 알맞은 사람이 끼어 들었다.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을까? 세 사람의 파동을 느끼고 나선 것은···. 이 상황에서는 어떤 의미로 최강인 조력자였다. 박추성 배대호 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사람인 것이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의 이름은 이민지. 소위 말하는 그라운드 제로의 여성들의 최고 왕언니라고 불러야 할 여자였다. 왕언니의 등장이라는 것이 이렇게 믿음직 스러웠던 것일까? 남자가 나서서는 아무리 해도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여성들이었지만··. 이민지가 나서서 한 마디를 하자마자 그녀들의 기세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별 것 아니에요. 살짝 교육 좀 시키려고 했는데···. 조금 흥분했나 보네요.” “·····보영이 너 또 뭔가 했지?” “언니야는 참···. 꼭 내가 사고 뭉치인줄 알겠네.” 이민지의 말에 이보영은 애교를 부리면서 적당히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민지는 그런 그녀의 애교에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애당초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으니 그런게 표가 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너 사고뭉치 맞아. 이것아····. 쯧, 내가 남 일에 참견 좀 작작하라고 수도 없이 말했는데····.” “··········.” 자기 애교가 통하지 않자 결국 이보영은 고개를 돌리고 딴청만 피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좀 봐주고 넘어가 달라는 애교의 의미였다. 결코 이민지에게 맞서서 뭔가를 해보려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이민지와의 까마득한 차이를 인정하고 무조건 숙인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일단 이보영이 고개를 숙이고 수긍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세레나에게 말했다. “세리나라고 했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까? 난 피곤한 것 싫은데?” “··········.” 세레나는 이보영과 달리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대로 물러가기는 싫다는 느낌이 강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정운이 모독을 당했다. 그녀로서는 마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쯧···. 하여튼 고집은··.’ 정운은 그런 그녀의 심기를 눈치 채고 재빨리 끼어들었다 “제가 잘 말 할게요. 민지 누님.” “····알았다. 괜히 우리끼리 전력 깎아 먹을 일은 피하자.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정운은 이민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에 세레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도 참 느리게 올라간다. 라고 느끼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옆에서 세레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알면 됐어.” 정운은 길게 말하지 않고 그냥 짧게 대답했다. 딱히 세레나 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잘못한 사람은 쓸데없는 오지랖 대마녀인 이보영이었다. 그녀는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를 사이에 두고 갈팡질팡 하고 있는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것 자체는 정운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여자 둘을 사이에 두고 갈대마냥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이보영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공공연히 그 점에 관해서 불쾌감을 드러내고 참견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결국 오늘에 와서는 그것 때문에 마찰이 일어날 뻔 하지도 않았는가? 하지만 정운은 굳이 그 점을 지적해서 세레나의 편을 들지 않았다. 세레나와의 점접은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정운 나름의 노력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보영의 행동은 정운에게 있어서도 골치였다. 앞으로 종종 최상층 플레이를 위해서 함께 파티를 맺을 일도 있을 텐데 얼굴 마주 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정말이지··. 누가 그 누님한테 뭐라고 잔소리 한 번 해주지 않을까?’ 정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언니····.” “알았어. 알았어. 내가 나쁜 년이야··. 이제 그거 가지고 얘기하기 없기.” 물론 이보영에게 잔소리 하는 사람은 있었다. 그녀의 여동생인 이지영이었다. 이 세상에 이보영이 꼼짝도 못하는 사람이 네 정도 있다. 박추성, 배대호, 이민지,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이 자신의 여동생인 이지영이었다. 이민지의 경우는 그녀가 유일하게 자기 윗줄로 인정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자신의 위로 인정하는 박추성과 배대호의 경우도 자연스럽게 인정했다. 하지만 이 셋과 달리 이지영의 경우는 그녀가 자신보다 위라고 해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자신이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여동생. 이 세상에 자매 둘만 남은 그녀에게 있어서 동생이 이지영은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여동생이 핀잔을 주자 황급하게 화재를 돌리며 얼버무렸지만···. 여동생과 싸우는 것 만큼은 정말로 싫은 그녀였다. 다만 이지영의 경우 이보영이 더 이상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는 것을 말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일을 마무리 지어놔야 했다. “정말 이해한 거지? 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참견이 종종 지나쳐.” “나도 알아. 내 천성이라서····.” “덕분에 시비도 자주 붙잖아?” “나도 알아. 내 천성이라서····.” “오늘 아침에 뭐 먹었어?” “나도 알아. 내 천성····. 미안.” “언니·····.” 이지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여튼 이 언니는 고집이 황소고집이다. 어려서부터 하나도 변하지를 않았다. 이런 고집과 뚝심이 어떨 때는 참 믿음직스러운데 또 어떨 때는 세상살이를 필요 이상으로 고달프게 하기도 했다. “하아아·····. 나도 모르겠다.” “에이··. 삐지지 마. 언니가 뽀뽀해 줄게. 우움·····.” “대련이나 준비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성격을 바꾸는게 죽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하던가? 결국 그녀들은 그녀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고수할 뿐이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너무나 스무스하게 지나가기는 했는데... 역시 최수영의 정체가 메데이아라는 것은 아무도 놀라워 하지 않으시더군요. 마치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게 다 페이트 시리즈 이후에 메데이아가 너무 유명해 져서 그래요.ㅠㅠ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46화 정운은 그날 저녁 잠이 오지를 않았다. 자신의 품안에 안겨 있는 슬기의 따뜻한 체온도 오늘은 정운의 심란한 마음을 잠재우지 못했다. ‘하아····. 언제까지 이렇게 흔들릴래?’ 정운이 지금 가장 탓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이보영의 행동은 쓸데없는 오지랖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 두 명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자기 행동이 옳은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할 도리가 없다. 이렇게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스스로 생각할 때 남자라는 것이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세레나와 슬기가 다른 남자에게 눈길만 준다는 생각을 해도 혈압이 솟구치는데 그런 자기 자신은 두 여자를 모두 원하고 있다. 차라리 그게 그냥 아름다운 여자를 원하는 소유욕이라면 얘기는 좀 달랐을 것이다. 그냥 자기가 쓰레기가 되면 그만인 얘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운은 정말로 두 사람을 모두 다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두 사람의 몸도 마음도 모두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기심이다. 자신의 안에 이렇게 추한 면이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정말 잠 안 온다···. 술이나 한 잔 할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요즘 들어서 부쩍 술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밤이 많아지고 있는게 골치였다. 정운은 조심 스럽게 슬기가 깨지 않도록 몸을 일으켰다. “으음····.” 슬기는 살짝 몸을 뒤척였지만 정운은 그런 그녀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줬다. “···미안해. 절대로···. 절대로 널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야. 그것만큼은 내 영혼을 걸어도 좋아.” 정운은 슬기가 듣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야 그녀에게 자기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다만···. 나도 모르겠어. 미안해····.” 그나마 그 진심도 반 밖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정운이 새벽에 일어나서 술을 꺼내서 자작하려고 하는데···. 이미 선객이 있었다. “···세레나?” “마스터도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세레나는 거실에서 스카이 타운의 야경을 안주 삼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술 취향은 코냑이다. 그것도 40도가 넘는 독한 코냑을 얼음이나 물도 타지 않고 오로지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빨리 마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독한 술을 모두 비워가고는 했다. “····나도 한 잔 줄래?”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찬장에서 얼음을 꺼내와서는 정운에게 온더락 형식으로 술을 만들어 줬다. “···천하의 잔다르크와의 대작이라····. 일국의 왕도 못 누릴 호사 같은걸?” “그 이름은···. 없는 것으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손안에 있는 술을 비우면서 말했다. “왜 그러지? 그 이름····. 당신에게는 영광이잖아? 오를레앙의 성처녀이자 구국의 영웅. 죽어서는 성인으로 추앙도 받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그 이름으로 손에 넣을 수 없죠.” 세레나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정운의 어깨에 자기 머리를 살짝 기댔다. 순간 그 작은 스킨 쉽 만으로도 정운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그냥 세레나면 족합니다.” “취했어?”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그대로 어깨에 머리를 기댄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취하지 않고는···. 이런 말을 할 용기도 없죠.” “···············.”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겠는가? 정운으로서는 무슨 대답을 하던 세레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슬기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위태위태한 관계. 마치 외줄 위를 빙글빙글 휘청휘청 거리면서 돌고 있는 팽이처럼 위험한 관계 속에 있는 둘이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를 그런····. 그런데···, 오늘은 그런 관계 속에서도 세레나가 많이 취했던 모양이다.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연속으로 시도했다. “마스터····. 제 방으로 오시겠습니까?” “··············.” “와 주세요···. 제발·····. 안 그러면 나는···.” “·······세레나····.” 정운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세레나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자신의 가슴을 따뜻하고 촉촉한 무언가가 적시고 있었다. 천하의 세레나가···. 그 구국의 영웅이라고 불렸던 위대한 여자가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과연 누가 봤을까?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그게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단 말인가? 정운은 세레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그녀의 턱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가서 그녀의 고개를 들어올릴 뿐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둘의 입술이 겹쳤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밤은 그 누구도 모르는 둘 만의 비밀로 지나가야 했으니···. 이런저런 일들이 끝나고···. 다시 게임 클리어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물론 순찰도 꾸준하게 돌기는 하겠지만 당분간은 그 순찰도 큰 효용을 발휘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전과 달리 언더 플레이어들의 영역이 된 지역에는 더 이상 정운이나 십왕들이 들어 갈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형무소 길드의 유저들이 언더 플레이어로 전향한 것을 생각하면 놈들의 레벨 업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형무소 길드의 숫자는 대략 200명 이상. 이제까지 십왕들의 순찰로 인해서 그 숫자가 100명 이하로 줄었던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이 200명의 숫자 충원은 전력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될 터였다. 김신수가 머리가 있다면 그 전력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서 당분간 내실을 다지는 것에 집중 할 것이다. 안전한 사냥터는 그래서 손에 넣은 것이 아닌가? 물론 역으로 지상 60층은 정운에 의해서 일반 플레이어들의 사냥터로 지정 되었지만 말이다. 그 덕분에 지상 60층의 필드는 사냥을 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로 시장판이라고 한다. 어쨌든 십왕들이나 정운의 팀과는 상관 없는 얘기다. 그들은 저마다 아직 개발 단계인 68층의 사냥에 주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층에 언더 플레이어들이 기습을 올 수도 있지만····. 애당초 그런걸 신경 쓰고 있을 정도면 순찰은 돌지도 못했을 것이다. 언더 플레이어들이 나타난다면 역으로 사냥해 버릴 뿐이다. 그것이 최상층 플레이어들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운과 슬기, 세레나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던전의 도전에 나섰다. 이전과는 달리 충분한 승산도 있다고 판단되었다. 정운의 새로운 유니크 스킬인 집중력이 패시브 스킬로서의 몫을 똑바로 하느냐? 마느냐? 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승산이 큰 것은 확실했다. ‘뭐···. 내 마음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생각 없이 도전 하는게 더 편하지.’ 요즘의 정운으로서는 차라리 그라운드 제로를 공략중인 이런 상황이 차라리 더 편했다. 이 순간 만큼은 번민에서 벗어나서 그냥 눈 앞의 일에만 집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끼이익···. 던전에 천, 지, 인의 구슬을 다 끼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갔을 때 정운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세레나와 슬기와 함께 중앙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전에 정운이 들어갔을 때와 달리 셋이서 함께 들어가니 던전은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일대일이란 말이지····. 좋아. 두 사람은 물러나도록 해.” “알겠어요. 정운씨.” “조심 하십시오. 마스터.” 두 여자의 응원을 받으면서 정운은 차분하게 호흡을 정돈했다. 그리고···. 던전의 중앙부에 정운 혼자서만 남자 홀연히 유령처럼 한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전에 정운에게 패배를 안겨 줬던 그 무투가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우리 오랜만이지? 인사 할까?” 정운이 반갑게 손을 들어 올렸지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자기 자세를 잡아갈 뿐이었다. “뭐···. 애당초 열린 대화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너무 시크한 것 아니···. 웃!!!” 파앙!!! 정운이 말을 하는 사이에 이미 상대가 한 걸음에 거리를 좁혀서 정운의 안면을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정운은 그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상대를 노려봤다. “쳇···. 말 도 못하게 하냐?” “마스터!! 방심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 해 주십시오.” “····나도 알아. 나름 준비해 온게 있으니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무장을 꺼냈다. 애당초 정운은 저 무투가를 상대하기 위해서 한손에는 검을 다른 한손에는 방패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을 채택했던 것은 정운에게 상대의 공격을 포착할 동체시력과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집중력이라는 유니크 스킬이 생긴 지금에 와서 정운은 계획을 수정했다. “데뷔전이지? 잘 부탁한다. 애들아.” 정운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무기··. 그것은 두 자루의 짧은 쌍칼이었다. 군인들이 쓰는 나이프를 조금 길게 해 놓은 형태의 이 쌍칼이 이번에 사용할 내 비장의 무기였다. 용각의 단도. 공격력 : 2,500 무게 : 5 내구력 : 200 [용의 뿔을 깎아서 만든 단검. 사용자의 민첩성을 50% 업그레이드 해 준다. 공격력은 약하지만 민첩한 연속 공격을 하는데 용이함.] 정운이 원래 쓰던 혈광참마도에 비하면 공격력이 반 밖에 되지 않는 무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2,000만 골드나 했지만 말이다. ‘쌍검의 실전 투입이 처음이긴 한데···. 연습 한 만큼만 잘 되면 승산은 충분해.’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원래 정운은 쌍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유저들 중에서도 쌍검을 쓰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양손에 검을 들고 있는게 보기에는 멋있고 공격하는 모습도 화려하기는 하다. 하지만···. 묵직한 한방이 없었다. 빠르게 연속 공격을 날리고 그 액션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양손검을 쓰는 사람들의 한 방만큼 해 먹으려면 세 방, 네 방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뿐이었다. 실제로 양손검을 쓰는 사람중에 가장 정점에 있는 사람은 십왕의 일인인 명주호 정도였다. 그의 경우는 좀 예외라고 봐야 한다. 명주호가 익히고 있는 유니크 스킬인 태극음양신공이라는 것 자체가 쌍검을 상대로 쓰는 기술이고···. 그 덕분에 그만은 쌍검 사용자는 공격력이 떨어진다. 라는 공식에서 예외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뭐, 그런저런 이유로 정운은 이제까지 쌍검을 손에 들지 않았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상대는 정운보다 기술이 훨씬 더 뛰어는 달인이라고 해도 좋을 격투가였다. 저런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큰 것 한 방 보다는 확실하게 맞출 수 있는 스피드가 필요했다. “후우우····. 시작해 볼까?” 정운은 양손에 들린 쌍검을 앞으로 내밀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집중력 스킬이 정운을 보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와의 간격을 쟀다. 최근에 세레나와의 연습으로 어느 정도 손에 익은 쌍검이기는 하지만 역시 다른 무기들 보다는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신중하게···. 어디까지나 신중하게 상대해야 한다. 고양이과의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정운과 상대의 사이에서는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그리고 둘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지고···. 마침내 정운의 검격 안으로 상대가 들어왔다. “훗!!!” 정운은 우선 가볍게 왼손의 검을 찔러서 적의 안면을 노렸다. 상대는 그것을 뒤로 살짝 물러나서 피했다. 정운은 그대로 다시 한 번 왼손을 뻗어서 적을 찔렀다. 이번에는 상대의 복부 쪽을 노린 것이다. 상하로 찔러서 상대가 함부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쩌억!!! “크윽···.” 상대는 정운의 공격에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차기를 들어 올려서 정운의 왼 손목을 후려쳤다. 정운이 손목이 시큰 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이미 정운의 왼손은 위로 크게 올라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상대는 정운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추가타를 날리려 왔지만···. ‘어림없다.’ 이전 같으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상대의 공격들이 똑똑히 보였다. 정운의 집중력 스킬로 인해서 상대의 동작이 20%는 느리게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전보다는 침착하게 대응을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주 잠깐... 로맨스 파트가 쉬어 갔지만 이제 다시 본격적인 던전 공략입니다. 이보영에 관해서 그런 여자가 어디 있냐고 말하시는 분이 있는데... 저 캐릭터는 제가 10대 시절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봤던 누님이 모티브입니다. 남의 연애에 관심이 지대하고 참견하기 좋아하고... 마지막에 가면 항상 그 커플들을 깨 버리더군요. 그 알바 두달 하면서 세 커플 박살내는것을 실제로 봤습니다. 신기할 정도더군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47화 <슬기와 세레나의 뒷 바라지.> ‘보인다···.’ 정운은 상대의 반격을 보면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한 손이 묶였지만 아직 완전히 수세로 밀린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쌍검을 든 것이 아니겠는가? 피잉!!! 정운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쌍검이 그대로 세로로 날카로운 참격을 날렸다. 접근하려던 상대는 그런 정운의 공격에 그대로 멈칫 하면서 공격을 포기했다. 날카로운 정운의 공격은 그 상대의 이마를 살짝 스쳤는지 상대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과연···. 연습한 보람이 있는걸?’ 정운이 무기를 쌍검으로 든 이유는 그냥 속도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공격 무기를 양쪽에 들게 되면 지금처럼 상대에게 빈틈이 생겼을 때에도 쓸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난다. 한쪽 공격을 피하고 파고들면 다른쪽 공격이 그 뒤를 받쳐주는 식으로 말이다. “흠···. 이게 통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 정운이 ‘까’라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전진 스텝을 밟으며 접근했다. 좌우로 몸을 흔들면서 적에게 접근한 정운은 그대로 좌우의 쌍검을 예리하게 휘둘렀다. 휭!! 후웅!! 예리하게 공기를 가르는 정운의 쌍검술에 상대는 공격을 피하고 때로는 뒤로 흘리기도 하면서 잘 방어해 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정운의 공격을 피하고 날카롭게 뻗어오는 반격기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쌍검을 쓰는게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먹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대로··. 페이스를 잘만 유지하면 승리를 바라 볼 수 있어.’ 스킬이 없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다. 양손에 칼을 들고 몰아붙이는 정운의 몸놀림에 상대도 오로지 기본적인 격투술로만 대응을 하고 있지만···. 애당초 민첩하게 움직이는 쌍검술에 대응하기에는 무투가는 상성이 좋다고 하기는 좀 무리였다. “하아앗!!!!” 상대를 코너에 몰았다고 생각한 정운은 그대로 양손의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마치 새의 날개처럼 펼쳐진 좌우에서 상대의 목과 허리 양쪽을 향해서 동시에 날아간 검격은 상대에게 피할 길을 완전히 봉쇄했다. ‘걸렸다···.’ 이 순간 정운은 승리를 확신했다. 둘중에 하나만 들어가도 성공이었다. 상대의 방어 장비는 그냥 도복 한 벌 뿐. 무투가 다운 장비이기는 했지만 방어력이라는 측면해서 강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마주 타격을 찔러 온다고 해도 정운의 입장에서는 살을 주고 뼈를 깎아내는 일격을 구사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흡!!!” 상대의 입에서 처음으로 기합성이 흘러 나왔다. 기합이라기 보다는 호흡을 정돈하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나온 리액션이었다. 그리고····. 후웅!!! 후웅!!! 정운의 공격은 양쪽이 모두 빗나갔다. 상대가 놀랍게도 허리와 목을 향해서 날아오는 공격을 모두 피하기 위해서 중간 가슴 위치로 가로 점프를 한 것이다. ‘이런····.’ 중력과 근육을 완전히 무시한 고도의 액션을 보고 정운은 순간 탄성을 질렀다. 남의 일이라면 크게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큰 공격을 날린 지금의 정운은 빈틈 투성이었다. 텅···. 퍼억!!! “크윽···.” 상대는 그대로 뒤편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뒷발로 차고는 옆으로 한 바퀴 회전을 하면서 정운의 정수리를 노리고 발꿈치 찍기를 날렸다. 검을 크게 휘두른 정운은 검을 회수해서 방어 할 수 없었다. 그나만 급하게 고개를 돌려서 정수리를 피하기는 했지만 그 대신에 어깨에 강력한 일격을 먹어 버렸다. 거기다 적은 다시 한 번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서 정운의 머리에 주먹을 가져다 대었다. ‘이건····?’ 정운은 급하게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콰앙!! 부우웅!!! 정운은 소름이 쫙 끼쳤다. 자신이 피하는 것과 동시에 진각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자기 머리에 닿아있던 상대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전진한 것이다. 촌경, 혹은 1인치 펀치라고 불리는 근거리 타격이었다. 다만···. 집중력이 빛을 발해서 그 공격을 피해낸 정운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좀처럼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적이 드디어 큰 공격을 했고 반쯤 운이었기는 하지만 그 공격을 피해내는 것도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반격이다. 푸욱···. “크으····.” 상대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성이 나왔다. 정운의 오른손의 검을 역수로 고쳐 잡고는 그대로 진각을 밟은 축발의 허벅지를 찔러 버린 것이다. 상대는 정운의 검을 빼고 연속 공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정운은 그런 적을 추적했다. “지금 놓치면 안 됩니다!!! 마스터!!!” 세레나가 뒤편에서 황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알아···.’ 세레나가 말 할 것도 없었다. 이번이 최고의 기회였다. “으아아아앗!!!!” 정운은 쌍검을 거칠게 좌우로 휘두르면서 적을 압박해 갔다. 상대는 한쪽 다리가 다쳐서 서 있는 것도 고작인 상태이다. 킥은 엄두도 낼 수 없고 스텝도 없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바보다. “후웃!!!” 정운은 쌍검을 찔렀다.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더 완벽한 공격을 해야 한다. 첫수의 목표는 어깨···. 푸욱···. 상대의 어깨를 노린 칼은 그대로 상대의 팔을 꿰뚫었다. 적도 끈질겼다. 어깨를 줄 바에는 팔 하나를 줄 생각으로 맨팔로 공격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래봤자 장군까지 수가 좀 늘어날 뿐···. 정운은 그대로 반대편의 검을 휘둘러서 그 팔을 노렸다. 서걱!! 완벽하게 잘린 한쪽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상대는 정운이 스윙을 한 기회를 노리고 마지막으로 혼신의 정권 찌르기를 내질렀다. 팡!!!! 관통상을 당한 다리를 축발로 삼은 순간 그의 다리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찔러진 일격은 완벽한 공격이었다. “빗나가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어느새 그의 공격을 피해서 품안에 파고든 정운의 말이었다. 정운은 몰랐겠지만 적이 공격을 뻗기 직전에 유니크 스킬인 집중력의 레벨이 LV.2에서 LV.3으로 변했다. 체감속도가 20% 느려지는 것에서 30%느려지는 것으로 변한 것이다. 이 10%의 차이가 없었다면···. 상대의 마지막 공격을 맞았을 지도 모른다. “잘 가라···.” 촤아악!!! 촥!! 촤악!!! 목, 가슴, 안면을 노린 삼 연격이 완벽하게 들어갔다. “····커으으······.” 털썩···. 이윽고 상대는 쓰러지고 정운의 머릿속에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시련의 탑 1층을 통과 했습니다. 비급을 손에 넣고 2층으로 올라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만족 스런 미소를 지었다. “좀 아슬아슬하긴 했네····.”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다. [오행신공(五行神功) 수(水)의 편.] “···이건 또···. 뻔 하다면 뻔 한 전개인가?” 첫 번째 층을 클리어 한 후에 정운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 비급이라는 것을 확인해 봤다. 오행신공이라는 말은 다섯 가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신공일 것이다. 그리고 수의 편이라는 것은 아마도···. “수풍지화금(水風地火金)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겠지···. 즉, 저런 놈을 다섯 번이나 더 이겨야 한다는 건데···. 쯧, 골치네.”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얻는게 비급이면··. 아마도 보상은 유니크 스킬 같은데? 어쩌실래요? 경험치를 주는 폭이 너무 작은 것을 생각하면 포기도 고려해볼 옵션이기는 한데요?” “흐음····. 경험치와 골드를 너무 안 주는게 좀 그렇긴 하네····.” 난이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중간에 공략하던 던전을 포기하는 것은 정운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 세상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그것과 같은 의미로 그라운드 제로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다 레벨 올리자고 하는 일이다.] 라고 말이다···. 즉, 아무리 유니크 스킬이 탐난다고는 해도 유니크 스킬 하나만을 바라보고 무한정 시간을 들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공략 기간을 엄청나게 오래 잡고 다른 사냥을 하면서 이 시련의 탑을 공략하는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일단, 1층은 공략했으니 한 동안 쉬면서 다른 사냥에도 주력 하는게 좋기는 하겠····.” “안 됩니다. 마스터.” 그런 정운의 말을 말린 것은 평소에 사냥에 관해서는 큰 의견을 내지 않던 세레나였다. 사실 이 팀의 리더는 정운이었고 사냥의 일정이나 장소 등을 정하는 것은 모두 정운의 독단이었다. 슬기와 세레나는 거기에 다소 의견을 더하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쥐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세레나가 정운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세레나가 반박을 했다. “마스터께서 지금 던전 공략을 망설이는 것은 골드와 경험치의 습득 때문이시죠?” “그래···. 이 탑에서 주는 보상중에 그 두 가지는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아니 경험치는 제법 주지···. 다만 나 혼자 먹어야 되니 그것도 문제는 문제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해결은 간단합니다. 당분간 일반적인 사냥은 저와 슬기에에 맡겨 주십시오.” “·····뭐라고?” 세레나의 말에 정우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이제까지 쭉 3인 1조의 팀으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마스터께서 던전 공략을 위해서 활동하시는 동안 필드에서의 사냥은 저와 슬기 둘이서 하겠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나쁘지···는 않지만···.” 정운은 머릿속으로 계산이 복잡해 졌다. 미처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세레나의 의견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은 정운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사냥은 세레나와 슬기에게 맡기고 정운은 던전 공략에 치중하면···. 그게 최선의 결과이기는 하다. 뭐, 모양세가 어째 남친 고시 공부시키기 위해서 수발드는 여자 같은 형태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던전은 기본적으로 1대1의 공략 형태인 이상 세레나와 슬기는 그냥 구경꾼 정도의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한다. 공략에 대한 회의라면 ME로 찍어둔 영상을 보면서 집에서도 할 수 있고···. 이 둘이 끝까지 정운을 따라와서 던전에 죽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세레나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정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아니. 그건 없던 말로 하지.” 라는 말이 나왔다. “어째서 입니까? 마스터.” “이유는···. 위험하니까.”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물론이고 슬기도 눈을 살짝 치켜떴다. “정운씨····. 지금 정운씨가 말하는 위험하다는 말은 저나 세레나씨가 정운씨가 지켜주지 않으면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건········. 그래.” 뭔가 돌려서 완만하게 말하고 싶은 정운이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슬기가 너무 정곡을 콕 찔렀기 때문이다. 그런 정운을 보고 세레나가 말했다. “마스터. 저 역시 100레벨이 넘겼고 슬기 역시 얼마 안 있으면 100레벨에 도달 할 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마스터께서는 저희를 짐짝 취급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저희를 버려 주십시오. 마스터에게 전력이 안 되는 짐짝으로 있어야 한다면 제가 더 이상 마스터의 곁을 지킬 의미가 없습니다.” “···········.” 그녀의 말에 정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만을 지켰다. 짐짝 취급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세레나는 물론이고 슬기도 훌륭한 전력이었다. 그녀들에 대한 정운의 개인적인 감정을 차지하고 냉정하게 전력만을 분석해도 그 둘만한 동료를 얻는 것을 삼대 길드의 간부를 싹 다 뒤진다고 해도 무리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48화 몇몇 유저들은 세레나와 슬기를 보고 말한다. 정운에게 여자로서의 자신을 팔고 레벨을 올리고 있는 가벼운 여자들이라고 말이다. 사실 그런 말에 근거는 없다. 그냥 질투하고 지례짐작해서 루머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정운의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은 없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입방정을 떠는 인간들은 모른다. 이 두 사람이 작정하고 콤비네이션을 펼치면 십왕들 중에서도 하위급들은 위협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세레나 하나 만으로도 이보영 까지는 어찌어찌 잡아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은 자존심에 심각하게 상처를 받았다. 정운이 자신들을 지켜주려고 한다는 말은 알았지만···. 그래도 위기 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동료가 무슨 동료란 말인가? “마스터, 결정해 주십시오. 저를 버리거나 저의 청을 받아들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해 주십시오.”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정운씨. 저는···. 정운씨의 곁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운씨가 저를 핸디캡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럼 저는····.” “··········.” 정운은 어쩔 줄을 몰랐다. 결의를 다지고 날카로운 안광을 쏘아 보내는 세레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 거리면서 제 딴에는 무섭게 하지만 정운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찡하게 노려보고 있는 슬기까지····. ‘····어쩔 수 없나.’ 두 사람이 자기 눈앞에 없는 것은 몹시 불안한 정운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집을 부린다면 그때는 이 둘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주는 꼴이 될 것이다. “····알았어. 두 사람 말 대로 할게.” 결국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다음날 부터···. 정운의 팀의 사냥 방식이 실로 오랜만에 변했다. 원래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이 상위급 유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솔로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 후에 슬기가 합류하고 정운은 자신의 백업을 해 줄 수 있는 메이지를 키워냈다. 처음에는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그냥 골드랑 시간만 잡아먹는 수준이었지만····. 차츰차츰 성장함에 따라서 슬기는 점점 강해졌다. 본격적으로 팀 사냥이 시작된 것은 세레나의 합류 때부터였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사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합류 할 때부터 이미 레벨이 73이었던 세레나의 등장은 정운에게 본격적인 파티 플레이를 하게 했다. 탄탄한 방어력과 다양한 버프를 가지고 있는 세레나는 정운의 팀에 있어서 훌륭한 전력 증강이었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파티의 강함이 두 배는 넘게 올랐다고 봐야 했다. 버프로 인한 강화 뿐만 아니라 슬기의 방어를 전담하게 하면서 슬기의 마법 공격과 정운의 전위로서의 활약도 더 커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해 져 있던 솔로 플레이의 습관을 버리고 정운은 자신의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옛날 생각 나는군···.” 슬기나 세레나와 별도의 간이 포탈을 타고 시련의 탑에 도착한 정운의 첫 대사였다. 이제 오늘부터 홀로 솔로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난 것이다. 사실 많이 불안했다. 자신이야 어차피 일대일 던전 공략이니 상관 없지만 그 둘은 어찌 한단 말인가? 둘은 오늘부터 죽림 지역을 떠나서 황야지대에서 쓰리헤드 오우거와 다크 레이스를 주로 사냥한다고 했다. 원래는 그 둘도 죽림지역에서 사냥을 하겠다고 했지만···. 정운이 그것 만큼은 절대 허락하지 않고 안전하고 경험을 많이 한 지역에서 사냥을 하게 했다. 다크 레이스야 세레나에게 있어서 상극 관계에 잇는 몹이니까 잡기 쉬울 테고···. 쓰리 헤드 오우거 역시 공격력이 강하기는 하지만 세레나의 방어력과 슬기의 마법 공격이라면 능히 잡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팬텀 나이츠를 건드려서 어그로만 끌지 않으면 그 둘이 황야 지대에서 위험을 당할 확률은 실로 작고 또 작겠지만····. “그래도 걱정 되는 것은 어쩔 수 없군.” 그렇다. 정운으로서는 그게 걱정일 뿐이었다. 걱정. 그냥 걱정. 마치 물가에 어린애를 내 놓은 것 같은 그런 심정 뿐이었다. 두 사람이 들으면 여전히 기분 나빠 하겠지만, 정운에게 있어서 그 둘은 여전히 지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아니 억에 하나라도··. 만약 정운이 없는 상황에서 그 둘이 몹이나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당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운 스스로도 자신이 어떻게 미쳐 버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를 만든 파우스트건 메피스토 펠리스건····. 그 무엇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죽여 버릴 뿐이다. ‘뭐···. 그렇게 하기 싫으면 일단 최대한 빨리 이 던전을 클리어 할 뿐이지.’ 정운은 자신의 온 몸을 휘감은 살기를 환기 시키면서 그렇게 시련의 탑의 2층으로 올라갔다. 지금은 지금의 일에 집중해야 했다. 반년 후····. 지하 최하층이었던 59층은 공략 되었고 현재 언더 플레이어들은 지하 62층에서 사냥중이었다. 지상 플레이어들의 최상층이 68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제 그 차이는 고작 6층의 차이로 좁혀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낀 최전선 공략의 실질적인 리더인 이민지는 박추성과 배대호에게 공략의 도움을 수시로 청했지만···. 그럼에도 그 둘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결국 버티다 못한 김수민이 이민지에게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우리끼리 합시다. 누님.”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기는 하지···. 그래도 좀 도우면 될 것을···. 쯧.” “생각해 보면 두 형님도 아애 안 돕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68층에 올라 온지도 반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필드의 탐색에 주력한다고 참았지만 이제는 공략을 위한 레이드에 주력해야죠.” 김수민 뿐만 아니라 윤정철도 이제 보스몹 레이드를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으음·········.” 이민지는 곰곰하게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표정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마침내 그녀의 말문이 열리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공략하자.” “좋았어!!!!” “시작 합시다. 누님. 보스몹의 타입에 따라서는 한 방에 공략 가능 할 수도 있어요.” 십왕들은 오랜만에 보스몹 공략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한중겸이 회의장 한 구석에 얌전하게 침묵하고 있는 세레나와 슬기를 보면서 말했다. “너희들도 참가 할 거지?” “예. 물론이죠. 저도 이제 100레벨이 넘었는데요?” “물론입니다. 다만 마스터는····.” 세레나가 뒤의 말을 흐리자 한중겸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 녀석 아직 안 돌아 왔냐?” “예. 저번에 왔을 때 한 달치 식량을 인벤토리에 챙겨 가서는 아직····.” “그 녀석···. 벌써 반년 동안 술 한 잔 안 마셔 주네···. 섭섭하게 스리···.” 그렇다. 십왕 중에 정운과 가장 친한 한중겸이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로 그 동안 정운은 던전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열심히 도전하고, 그리고 가끔씩 도전에 실패하면 또 혼자서 천,지,인의 구슬을 모으고···. 사실 정운 말고도 다른 십왕들도 그 시련의 탑에 면 번인가 도전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2층을 넘지 못하고 그만 뒀었다. 보통 십왕들 정도 되면 스킬이 워낙에 빵빵하고, 또 전투 스타일도 스킬에 의한 의존도가 강했다. 오히려 기본기만 보면 세레나와 정운이 가장 탄탄하다고 해야 했다. 그리고 어려움은 스킬을 못 쓰는 것만이 아니었다. 십왕들이 시련의 탑의 공략을 포기하게 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보상이 어느 정도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스킬의 보상은 오행신공이라는 유니크 스킬일 것이다. 스킬의 이름이나 분위기를 볼 때 명주호의 태극 음양신공과 비슷하거나 좀 더 상위의 스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십왕 정도 되면 유니크 스킬 정도는 얼마든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일반 유저들 중에서도 레벨이 60정도 넘어가기 시작하면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게 유니크 스킬이 아닌가? 차라리 유니크 스킬 보다는 유니크 아이템이라면 좀 더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삼 유니크 스킬 하나 얻기 위해서 공략하기 어려운 시련의 탑에 시간을 낭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지금 최상층의 플레이어 중에서 시련의 탑에 도전 중인 것은 정운 한 명 뿐이었다. 그리고 정운이 일단 시련의 탑에 도전하면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ME를 통한 통신도 시련의 탑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닿지 않았다. “어쩔까요? 정운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는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한 명 기다리자고 다 시간을 허비 할 수는 없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어차피 슬기랑 세레나도 이제 충분히 성장했고, 전체적인 우리 수준도 올랐으니, 충분하겠죠.” 한중겸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새로운 층을 개척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냥 경험치만 높아진다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퀘스트, 던전 공략 등을 통해서 한방에 경험치를 쑥욱 상승 시킬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원래 67층에서 활동하던 시절 한중겸의 레벨은 175였다. 그 수준에서 오랜 세월 답보하고 있던 한중겸이었지만 반년동안 68층에서 다섯 개의 퀘스트를 해결하고 경험치를 축척한 결과 이제는 177의 레벨오 도달했다. 174에서 175로 레벨을 올리는 데 6년이 넘게 걸렸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한중겸이었다. 그런데 고작 반년 만에 175레벨이 177레벨이 되었으니 얼마나 최상층의 개발이 중요한지를 반증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한중겸 뿐만 아니라 다른 십왕들 사이에서도 작고 크지만 다 일어났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면··. 주경택. 십왕 중에 최고 막내였던 그의 레벨은 원래 107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128에 도달해 있었다. 한중겸이 다섯 개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2레벨을 올리는 동안 그 역시 일곱 개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21레벨을 올렸다. 퀘스트 숫자는 고작 두 개 더 많이 클리어했지만 상대적으로 저레벨이었기 때문에 그가 더 많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외의 십왕들도 오랜만에 정체기를 깨고 많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정운과 독립해서 사냥하고 있던 슬기와 세레나도 말이다. 슬기의 경우는 레벨이 101에 도달했고, 세레나의 경우 현재 레벨이 110에 도달해 있었다. 전체적인 레벨의 향상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제 레이드를 도전해 볼 때이기는 했다. “민지 누님. 그런데 레이드 몹이 어떤 놈인지 간은 본겁니까?” 레이드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김수민의 질문에 이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가 한 10분 정도 투닥이다가 나왔다. 지금부터 영상을 보여 줄 테니 잘 보고 의견을 내도록 해.” 이민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ME에 들어있는 영상을 공개했다. 백호. LV. 120~130 [사신수 중에 하나. 맹수의 제왕이며 강력한 포효가 산천을 뒤흔드는 왕중의 왕. 그 포효는 사냥감을 위축 시킨다. 그리고 그 발톱에 한 번 닿으면 모든 것을 찢어 버린다.] ME의 몹 소개란을 보고 주경택이 가장 먼저 말했다. “백호? ····저거 저번에 비정기 퀘스트에 나온 놈 아닌가?” “그렇게···. 그때는 별로 강력하지 않았는데?” 십왕들의 말대로 예전에 비정기 퀘스트 때는 사신수라는 컨셉으로 백호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때 나온 것은 이벤트용으로 다운 그레이드 시킨 걸 꺼야. 내가 가서 살짝 싸워 봤는데 나 혼자서는 답이 안 나오더라.” ============================ 작품 후기 ============================ 뒷바라지의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 말이죠... 가끔 가다가 남편 공부 시킨다고 뒷바라지 하시는 분들 얘기가 들리는데 그럴때 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에는 추신수 선수 아내분 얘기도 듣고 대단하다고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게 보통 멘탈로 되는게 아닌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49화 <68층 레이드.> 이민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영상을 재생 시켰다.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자··. 이민지가 소환한 정령들이 백호를 상대로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보는 다른 십왕들의 얼굴은 진지해졌다. “·······쯧, 장난 아니군.” “저 포효 거슬리는데···. 본신의 공격력과 방어력도 장난이 아닌 것 같았는데 저런 스킬까지···.” 영상에 보면 백호의 포효는 찌릿찌릿한 충격파와 함께 상당한 디버프를 포함한 것 같았다. 놈이 포효를 터트리는 것만으로도 정면에 있던 불꽃의 정령왕 이프리트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냥 단순한 포효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리고 놈의 발톱이 한 번씩 휘둘러 질 때마다 정령왕들이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고 있었다. “쯧···. 내 소환수 중에 누구를 꺼내도 저 놈을 상대로 답이 나올 것 같지가 않네····.”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이번에는 어그로 끌지 말고 오로지 공격력에 치중하도록 해. 어그로는 내 정령들이 끌 테니까.” “알겠습니다. 누님.” 이민지와 한중겸. 이 둘의 전투 스타일은 상당히 비슷하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싸우는게 아니고 소환수를 앞세워서 전투를 하는 타입이니 말이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한중겸은 자신이 테이밍한 몹을 앞장 세우고··. 이민지의 경우는 자신이 계약한 정령을 앞장 세운다. 공격력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한중겸이 공격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좋다. 하지만 그의 소환수는 막대한 대미지를 입으면 역소환 당하도 한 동안은 소환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정령은 좀처럼 대미지를 입지 않는다. 한 번 맞으면 쓰러질 때도 있고 흩어질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환자인 이민지의 정신력이 멀쩡하게 남아 있는 이상은 다시 일어나서 싸우게 되어 있다. 즉, 이민지라는 여자의 진가는 한방의 화력보다는 장기전으로 갔을 때 그 진가를 발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먹으면 60층 초반대의 레이드 정도는 혼자서도 가능한 유저가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그녀라고 해도 현재 최상층인 68층의 보스몹을 상대로는 무리인 것 같았다. 정령들이 계속해서 소멸했다가 다시 소환 되었다가를 반복하고는 결국에는 백호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이민지는 후퇴했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보다시피···. 난 아직 놈의 히든 스킬이 뭔지도 끌어내지 못했어. 하지만 중겸이 너는 짐작 가는게 있지?” “나 보다는···. 정운이가 가까이서 제대로 봤다고 했는데 말이죠. 뭐···. 드래곤들의 브레스 같은 거라고 합니다.” 예전에 비정기 퀘스트에서 한중겸은 정운과 함께 저 백호를 상대 해 본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의 백호는 지금보다는 훨씬 약했다. 이민지의 말대로 아마 이벤트 용으로 다운 그레이드 시킨 놈이었던게 틀림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약화를 시켰다고 해도 몹이 동일한 이상 그 스킬이나 전투 방식은 동일한 것이 틀림 없었다. “브레스라···. 최수의 한 방만 조심하면 괜찮다는 건가?” “그렇겠죠····. 뭐 하기로 한 이상 합시다. 죽기야 하려고요? 형님들도 우리 뒤 정도는 봐 준다고 했잖아요.” “····그래. 해야지.” 정보가 좀 많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없는 정보가 징징 거린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전원이 한 몫이 되어서 보스몹인 백호를 잡기 위해서 움직였다. 백호는 풀 한포기 없는 거친 황야의 중앙 지대에 군림하고 있었다. 정운들이 팬텀 나이츠를 잡고 있던 그 필드와는 다른 지역에 있는 황야로. 이 필드에 있는 몹은 백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이 넓은 지역 하나를 백호가 독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잔챙이들하고 푸닥거리 안 해서 편하다면 편하다고 해야 하나?” 주경택의 푸념이 별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보스몹이 부하들이 없다는 것은···. 그런 부하들에 대한 강함까지 모두 보스몹에게 추가 되어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날로 먹는 레이드는 없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레이드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자··. 그럼 시작한다. 각자 위치로 움직여.” 백호를 눈앞에 두고 이민지가 부지런히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민지가 정령으로 어그로를 끌고···. 다른 사람들이 몹을 공격한다. 이게 일단 정해진 순서기는 했다. ‘뜻대로 될지 안 될지는 해봐야 아는 거지만 말이야····.’ 이민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이 지경이 되어도 도와주지 않고 위에서 해탈한 표정으로 있는 박추성과 배대호가 몹시 얄미웠지만 어쩌겠는가? 암행어사도 저 싫으면 못 시키는 것을····. “그럼 시작한다!!! 이프리트, 실피드, 노아서, 엘라임!!!” 이민지는 자신의 사대 정령을 모두 소환했고 그 정령들에게 명령했다. “백호를 공격해.” 그녀의 명령에 따라서 거대한 정령들이 백호를 향해서 덤비기 시작했다. 백호는 잠자코 엎드려 있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령들을 보고는 이빨을 으르렁 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하찮은 사냥감에게 도전을 받은 백수의 왕 같은 모습이었다. “크허어어어엉!!!!!” 백호의 포효가 찌릿찌릿하게 공기를 울렸다. 그것과 동시에 십왕들 전원에게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백호의 포효를 맞았습니다.] [공격력이 50% 떨어집니다.] [방어력이 50% 떨어집니다.] [민첩이 50% 떨어집니다.] “제길···. 세레나, 전체 버프 걸어.” “알겠습니다.” 세레나는 자신의 버프로 아군을 지원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의 상쇄는 되었지만 백호의 디버프가 너무 강력해서 전체적인 전력은 평소의 80%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어쨌든 80%면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다소의 위화감은 있겠지만 말이다. “크허어엉!!!” 백호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를 앞발로 후려갈겼다. 퍼엉!!! 공중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프리트의 전신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정령들도 지고는 있지 않았다. 쿠웅!!! “크하앙!!!” 땅의 정령왕 노아스가 양 주먹을 크게 들어서 백호의 머리를 내려쳤다. 백호는 자신의 머리를 때린 노아스의 거대한 몸에 통째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정령왕 중에서 가장 방어력이 강한 노아스지만 백호의 몸통 박치기 한 방에 몸이 허물어져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틈에 불의 정령와 이프리트는 꾸물꾸물 거리면서 재생을 시작했고···. 아직 멀쩡한 물의 정령왕 엘라임과 바람의 정령와 실피드는 백호를 연신 공격했다. “어그로는 일단 잡혔다. 딜해!!!” 한중겸의 말에 아직까지 지켜만 보고 있던 주변의 유저들은 단체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콰쾅!!! 퍼퍼펑!!! 백호의 강대한 공격력을 알고 있기에 근거리 공격은 피했다. 그 대신에 멀리 떨어져서 원거리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크하아아앙!!!” 백호는 자신의 몸을 비틀면서 사납게 날뛰었다. “잘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몰라. 방심하지 마.” 십왕들은 원거리 공격을 하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저 백호의 공격을 한 방이라도 맞으면 십왕들이라고 해도 훅 가는 수가 있었다. 그만큼 공격력이 무서운 것이었다. 그렇게 원거리 공격을 하는 유저들 중에 특히 빛을 보고 있는 유저는 궁신인 윤정철이었다. 원래 클래스가 궁수인 그는 원거리 기술에 관해서는 십왕 중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뭐, 박추성이나 배대호는 좀 반칙이니까 차지하고 말이다. “레퀴엠 샷!!!” 퍼어어엉!!!! 궁신 윤정철의 최강의 공격 레퀴엠 샷이 오늘만 두 번이나 작렬했다. 10분이나 충전해야 하고 체력의 절반을 소비하는 기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파괴력 하나 만큼은 확실했다. “제길···. 나 빨리 힐 해줘!!” 그는 자신의 회복 아이템을 쓰면서도 회복 마법을 걸어달라고 말했다. 레퀴엠 샷은 원래 자신의 체력을 절반이나 소모시키는 기술이었기에 중간 중간에 회복을 받아가면서 하지 않으면 자폭기 처럼 자기가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아직 괜찮으세요. 잠깐 뒤로 빠지실래요?” 슬기는 윤정철에게 다가와서 고속으로 힐을 퍼부으면서 말했다. 그런 슬기의 말에 윤정철은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3분 만에 회복 부탁한다.”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윤정철은 잠깐 슬기와 함께 뒤로 빠졌다. 이 타이밍에 휴식을 취해두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에 여력이 부족해질지도 몰랐다. 윤정철이 빠지는 것과 동시에 이보영 이지영 자매도 뒤로 빠졌다. 그녀들은 원래 근거리에서 싸우는 무투가인데 이번에는 상대의 공격력이 신경 쓰여서 원거리에서 비주류 기술만 남발해야 했다. 나름 딜은 했지만 그거랑 별개로 정신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전투 시작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세 명이 휴식을 가지고 있네···. 이거 안 좋은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중겸은 속으로 치열하게 계산을 하면서 결과를 예측했다. 백호의 공격력을 생각 했을 때 어그로를 끌 수 있는 것은 이민지와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이민지와 달리 자신은 꾸준하게 어그로를 끄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정령과 달리 소환수는 대미지를 입으면 24시간은 지난 후에야 소환이 가능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민지가 두 번, 자신이 한 번 정도가 한계라는 것인데····. ‘민지 누님이 40분···. 내가 20분 끌고 그 사이에 민지 누님이 회복해서 다시 끌면 대강 30분 정도 끌까? 합계가 1시간 30분인데··. 아직까지 저 놈이 너무 쌩쌩해.’ 한중겸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안 좋은 결과만 예상 되었다. 이번 레이드는 실패다. 보스몹 레이드가 한 방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패라는 결과를 예측하고 나자 영 기분이 우울했다. 이렇게 된 이상 하다 못해 이번 레이드에서 놈을 옐로우 크리스탈까지 밀어 붙여서 히든 스킬이라도 뭔지 확인해야 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뭔지 정확하게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있지 않은가? 한중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기 소환수에게 명령했다. “더 빨리!! 더 빨리 공격해!!!” 한중겸의 명령에 데몬 엠페러는 용감하게 파고들어서 낫을 휘둘렀다. 사실 비교적 작은 몹을 소환한 것이지만 데몬 엠페러만 해도 신장 5미터의 거구였다. 전장 100미터가 훌쩍 넘어갈 것 같은 거대한 백호의 앞에 있으니 작아 보이는 것 뿐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딜은 문제없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백호의 어그로도 큰 문제는 없었다. 이민지가 한 번 정신력이 다 떨어져서 빠지고 한중겸이 들어갔다. 하지만 미리 정해둔 대로 한중겸이 펜닐과 그레이트 타이탄과 자이언트 스네이크를 꺼내서 역으로 어그로를 잡았다. 비록 시간은 오래 끌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회복한 이민지가 정령을 소환해서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간중간에 교대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어중간한 보스몹이었다면 죽었을 수준의 딜이 들어갔다. 하지만····. “커허어엉!!!” 시작할 때와 비교해도 백호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용맹하게 싸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 놈 피통이 도대체 어느 정도야?” “이건 피통을 운운할게 아니라 저 놈 방어력이 문제인 것 같은데? 들어간 대미지의 총량이 순순히 먹혔으면 어지간한 보스몹 두 마리는 잡았을 걸?” 주경택의 불평에 김수민이 한 대답은 그저 감에 근거한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추측이 정답을 지적할 때도 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십왕들이 집어넣은 공격력은 어마어마했다. 정통으로 들어갔다면 피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백호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호의 가죽은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얼마나 방어럭이 막대한지 이제까지 집어넣은 공격력의 대미지의 총량으로 계산하면···. 그 총량의 70%정도를 무효화 시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보스몹 중에 제일 짜증나는 타입을 때려도 때려도 안 죽는 놈들이죠. 여러분들의 응워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50화 원래 백호의 디버프로 어느 정도 공격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런 백호의 방어력 까지 겹쳐지자 십왕들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큭···. 어쩔 수 없나? 히든 스킬 하나 구경 못하고 물러가야 하나·····. 제길····” 명주호는 자신의 검과 도를 휘두르면서 이를 갈았다. 하지만···. 너무 흥분했던 것일까? 아주 짧은 순간···. 그 짧은 순간에 우연히도 생기고 말았다. 이민지가 정령으로 안정적으로 백호의 주의를 끌고 있었는데···. 명주호의 날린 참격의 일격이 백호의 정수리를 강하게 후려친 것이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정수리를 맞고 나서 백호가 크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 명주호는 직감했다. 방금 전에 자신이 공격한 곳이 바로 백호의 급소라는 것을 말이다. 이건 귀중한 정보였다. 귀중한 정보였지만····. “커허엉!!!” “크윽···. 염빙난무(炎氷亂舞)!!!” 염빙난무(炎氷亂舞) LV. MAX (화염과 얼음의 참격이 어지럽게 섞이면서 전방에 방어막을 만들어 낸다.) 백호가 자신에게 강하게 돌진하는 것을 보고 명주호는 황급하게 방어기술을 펼쳤다. 하지만····. 콰아아앙!!!! “커어억·····.” 명주호의 방어 스킬과 백호의 돌격이 부딪힌 순간 명주호의 방어벽은 너무나 허무하게 깨졌다. 마치 종잇장으로 대포를 막으려고 한 것처럼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쿨럭·····.” 명주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레이드 중에 이 정도의 대미지를 입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런 명주호를 보면서 한중겸이 말했다. “모두 피해!!! 이번 레이드는 실패다!!!” 한중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십왕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이민지와 한중겸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백호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 “이프리트, 실피드, 함께 춤 춰라!!!” “가루라!!!!” 화염과 바람의 토네이도를 만들어서 백호를 공격하는 이민지와 최근에 손에 넣었던 65층의 보스몹을 꺼내는 한중겸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최상층 레이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희생자를 내면서 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명주호가 죽기라도 하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얼마나 큰 손실이란 말인가? 콰콰콰····. 콰앙!!! 이민지와 한중겸의 합동 공격이 백호에게 작렬했다. 하지만 백호는 그런 둘의 공격에도 주의를 돌리기는커녕 오로지 명주호 한 명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커허엉!!!!” 백호의 머리위에는 드디어 예로우 크리스탈이 떠 올랐지만····. 지금 그게 기쁘지는 않았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백호의 거체가 명주호를 향해서 비호처럼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안 돼!!!!” 십왕중에서 명주호와 친분이 두터웠던 김수민은 자신의 채찍으로 백호의 돌진을 막으려고 했지만···. 백호의 돌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콰아아앙!!!! “빌어먹····. 엇!!” 명주호의 최후를 예감하고 욕을 씹어 내뱉던 한중겸의 안색이 변했다. 돌진해 갔던 백호가 뭔가에 부딪히기라고 한 것처럼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그리고····. “주호 형님····. 왜 꼭 이렇게 운이 없습니까?” “···정운이 너····.” 먼지 구름이 사라지고 나니 거기에는 백호의 돌격을 막아낸 정운이 보였다. 정운은 오늘 막 시련의 탑의 공략에 성공한 참이었다. 사실 이 지랄 같은 난이도의 탑의 공략에는 몇 번인가 포기 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고작(?) 유니크 스킬 하나 얻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난이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더러워서 안 한다. 안 해.’ 라고 생각했던 적이 몇 번이나 아니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작 유니크 스킬 하나 때문에 이렇게 난이도가 높을까? 그라운드 제로의 철칙 중에 하나가 고생 한 만큼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거저먹는 것은 없다. 뭔가···. 뭔가가 있다. 이 시련의 탑의 끝에는 뭔가가 있는게 틀림없다. 딱히 증거는 없었지만 정운은 확신했다. 이 68층에서 다른 퀘스트 열 개를 해결하는 것 보다 명백하게 가장 어려운 이 퀘스트 하나를 해결 하는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끈기를 가지고···. 마치 맨손으로 암벽 등반을 하는 등산가의 심정이 되어서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정운은 시련의 탑에 도전했고 그리고 결국은 오늘 클리어에 성공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보상은 엄청났다. 거의 반년 동안 퀘스트 하나에만 매달린 보람이 있었다. 지난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큰 보상을 받은 당장 이 기쁨을 슬기와 세레나에게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정운을 반기는 두 사람은 없었다. 대신에 가사 메이드가 두 사람이 남긴 쪽지를 넘겨줬고···. 거기에는 최상층의 레이드를 하러 간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런····. 빨리 가야겠군.” 정운은 서둘러 필드로 나가서 흑토를 타고 보스몹이 있는 중앙 황야 지대로 날아갔다. 그 동안 시련의 탑에서 얻어낸 보상을 드디어 시험해 볼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목격한 명주호의 위기를 보고 일단 몸을 날린 것이다. 척 봐도 공격력에 범상치 않은 놈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막아 낼 수 있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정운은 백호의 공격을 사뿐하게 막아낸 후에 명주호를 어깨에 들쳐메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갔다. 가장 먼저 인사한 것은···. “마스터. 던전을 클리어하고 오신 것입니까?” “그래.”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정운씨···.” 세레나와 슬기의 축하를 받으면서 정운은 명주호를 우선 바닥에 내려 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인사는 나중에 하죠. 제가 어그로 잡을 테니 눈치 봐서 딜하세요.” “야···. 정운아!! 저거 맨 몸으로 어그로 잡는 건 어림도···.” 한중겸이 정운에게 뭐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정운은 몸을 날렸다. 그리고 날아가면서 흑호의 등에 올라탄 상태로 백호의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기마 차지!!!” 콰아앙!!!! 화염과 뇌전의 폭죽이 백호의 옆구리에서 정통으로 터졌다. 그리고 동시에 백호의 머리 위에 있던 옐로우 크리스탈이 레드 크리스탈로 변했다. “저··· 저놈····?” “저게 약을 먹었나? 아니면 버그를 빨았나···.” “말도 안 돼···. 어떻게 한 방에···.” 물론 옐로우 크리스탈이라고 해도 이미 레드로 넘어가기 위한 단계에서 간당간당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전장 100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백호가 한 대 맞은 것 만으로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갈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 아닌가? 지금 정운의 공격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전의 정운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정운의 주특기 기술도 쓰지 않고 있는 상태였는데 말이다. “커허어어어엉!!!!” 그 순간 백호가 다시 한 번 크게 포효를 터트렸다. 전투의 시작시에 알린 백호의 디버프 포효와 비슷한 것 같았다. 띠리링!!! [백호의 절규가 터졌습니다.] [30초간 이동이 금지 됩니다.] “뭐!!? 이런 염병!!!” “피··. 아니··· 제길 막아!!!” 30초 동안 이동이 금지 된다는 말을 들은 십왕들은 크게 경악했다. 이건 어떤 의미로는 어지간한 디버프 10개를 합한 것 보다 더 골치였다. 몸의 전투력이 떨어진게 아니라 위치가 고정 된다는 말은···. 그 다음에 올 백호의 공격을 그대로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백호의 입이 크게 벌어지고 그 안으로 주변의 대기가 모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백호의 입안에서는 눈부신 백광의 뇌전이 일렁 거리기 시작했다. “호오···. 저건···. 해보자 이거지?” 정운은 탑에서 얻은 힘을 본격적으로 시험해 볼 찬스라고 생각했다. “쉐도우 아미!!” 정운이 명령을 하자 그림자에서 쉐도우 아미들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이전과는 쉐도우 아미들의 모습이 명백하게 달랐다. 원래는 그냥 검은색 그림자의 모습일 뿐인게 쉐도우 아미들이었다. 공격력 만큼은 본체인 정운에 필적하지만 그래도 방어력이 약해서 한 방 맞을 때 마다 다시 소환해 줘야 했는데··. 이제는 쉐도우 아미들이 저마다 다른 무기를 들고 있었고 황금빛의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하게 보면 개개인의 모습도 약간씩 달라져 있었다. 들고 있는 무기도 조금씩이지만 달라져 있었다. 누구는 창을, 누구는 화극을, 또 누구는 언월도를 들고 있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그림자의 형태가 기반이라서 얼굴의 윤곽은 알 수 없었지만 체형이라던가 그런 면에서 하나하나가 조금씩 차이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척 봐도 훨씬 더 강력해 것은 틀림 없었다. 심지어는···. -쉐도우 1호. 주군의 명령을 받듭니다. 심지어는 쉐도우 아미들이 나타난 것과 동시에 정운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까지 하지 않는가? 원래 그림자의 망토가 레벨의 끝을 찍으면서 쉐도우 아미는 더 이상 발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쉐도우 아미들의 모습이 변했다. 어떻게 된 걸까? 그 의문은 나중에 풀기로 하고···. 일단 정운의 싸우는 모습으로 다시 넘어가겠다. “저기 보이는 백호의 공격 보이지. 모두 힘을 합쳐서 막고 난 후에 끝장낸다.”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정운이 말을 하자마자 쉐도우 아미들은 고개를 숙이면서 동시에 대답했다. 그 모습은 마치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장수들의 모습처럼 절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백호의 공격이 작렬했다. “크하아아아아아아앙!!!!!!!” 백호의 입에서 거대한 광선이 터져 나왔다. 마치 산이라도 증발 시켜 버릴 것 같은 강력한 공격이 정운에게 정통으로 작렬한 순간···. “정운씨!!!!!” “마스터!!!!!!” 슬기와 세레나의 입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달렸다. 하지만 그런 둘의 비명이 백호의 공격을 막아주지는 않았다. 그걸 막아주는 것은 정운의 눈앞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는 아홉기의 쉐도우 아미들이었다. -백호라···. 진짜는 아니겠지만···. -상대하기에 부족함은 없겠지····. 쉐도우 아미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장비를 꺼내서 백호의 돌격은 나눠서 감당했다. 그리고 그런 쉐도우 아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십왕들은 경악을 했다. “도대체····. 쟤 그 탑 안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민지의 말에 대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쉐도우 아미들이 저마다 다채로운 병장기를 휘두르면서 백호를 몰아 붙여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 -고양이 탕을 끓여주마!!!! -죽어랏!!!! 콰쾅!!! 콰아앙!!! 십왕들도 정운의 쉐도우 아미라는 기술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기술 덕분에 김신수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떄릴 수 있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이 알기로 쉐도우 아미라는 기술을 정운의 분신을 만들어서 공격력을 늘리는 것 정도의 효과 밖에 없었다. 저렇게 아홉기의 분신이 다채로운 공격을 퍼붓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운은 그런 십왕들의 의문을 뒤로 하고 자신의 전투에 주력했다. 아무래도 백호는 더 이상 브레스를 또 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계속해서 연발하는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좀 대미지를 입기는 입었는걸? 쉐도우 아미들 중에서 7,8,9호의 움직임이 굼떠···.’ 워낙에 자존심이 강한 존재들이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과의 계약으로 묶인 정운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빨리 끝내야 겠군···. 뇌천신공!! 2단계!!!” 정운이 스킬을 쓰기 시작하자 정운의 전신에 뇌전이 둘러졌다. 다만···. 이전의 뇌전과는 전혀 다른 뇌전이었다. 이전의 뇌전이 푸른빛이었다면 지금 정운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것은 황금빛의 뇌전이었다. ============================ 작품 후기 ============================ 창민 : 너도 이제 나와 같은 먼치킨의 길을 걸어가는 구나? 정운 : 댁은 뉘쇼? 민재 : 먼의 길을 갔던 남자지. 나도 그랬고... 정운 : 그러니까 누구냐고? 댁들은? 우진 : 네놈들은 날로 먹는 놈들이야!!! 마법이고 뭐고 없이 고대 로마에서 직싸게 굴러본 내 심정을 알아!!!!? 이제 슬슬 정운도 주인공으로서의 본격적인 무력을 지닐때가 되어서 본격적인 강화 과정을 거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느낀 건데 때때로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서 우진이 조금 많이 고생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51화 <정운이 터트린 대박의 정체> 보고만 있어도 위엄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황금색 뇌전을 두른 정운이 자신의 창을 꼬나쥐고 흑토에게 말했다. “화려하게 한 방 갈거야···. 할 수 있지?” “히히힝···.” 흑토는 맡겨 두라는 듯이 정운에게 대답했다. “좋아··. 가자!!!” “히힝!!!” 쉐도우 아미들이 백호의 주의를 끄는 동안 흑토와 정운이 한 몸이 되어서 돌진했다. 마치 황금빛 섬광이 질주하는 것 처럼···. 고속으로 달려간 그 섬광은 그대로 백호의 아가리를 통해서 들어갔고···. 푸화아악!!!! 나올 때는 백호의 등뼈를 뚫어 버리고 그대로 튀어 나왔다. “커허어어엉!!!!” 백호는 거대한 몸에서 구슬픈 마지막 단발마와 함께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놈에게는 유감이었겠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띠리링!!! [68층의 보스몹을 잡았습니다. 69층으로 출집할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습니다.] 68층에 진출한지 고작 반년이 조금 넘은 그 시점에서····. 이미 69층의 출입권이 주어지고 말았다. 68층 돌파. 이 말도 안되는 사실에 가장 경악한 것은 그 누구보다 언더 플레이어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김신수였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왜 그러십니까? 주인님?” “지상의 플레이어들이····. 69층으로 돌입했다. 68층에 돌입하고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넌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냐?” “··········죄송합니다.” 김신수가 역정을 내자 최수영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하지만 김신수는 그런 최수영에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노예 한명이 아니라 자신이 예상도 하지 못한 이레귤러적인 사태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최상층이 69층에 돌파하려면 못해도 3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근거는 있었다. 다름 아닌 파우스트가 직접 해준 얘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서 다음층으로 돌파당해 버렸다. 이건 뭔가 이유가 생긴게 틀림 없었다. 다만···.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게 영 불안했지만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정운에게 일어난 변화에 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십왕들은 68층 돌파를 기뻐하면서 오랜만에 모두 모여서 술판을 벌였고···. 그리고 술이 몇 잔 돌기 시작하면서 한중겸이 정운에게 말을 꺼냈다. “···뭐가요? 형님.” “뭐가요는···? 어쩌다가 그렇게 강해졌냐고 묻는 거야? 아니··. 너 지금 레벨은 몇이냐?” “제 레벨요? ········172요.” “뭐···. 나하고 거의 차이가 안 나잖아?” 한중겸은 깜짝 놀랐다. 현재 한중겸의 레벨은 177. 정운과 고작 5레벨 정도 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처음 이 둘이 만났을 때의 레벨 차이를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봐야 했다. “너···. 그 탑이 그렇게 대박인거야? 나도 도전해 볼까?”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제 그 탑 없어요. 제가 클리어하고 나서 그 목적을 다한 후에 사라졌습니다.” “쯧, 선착순이었던 거냐? 어지간히 대박 던전이었나 보다····.” “저도 처음에는 유니크 스킬 하나만 주는 건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던전의 난이도가 너무 높더라고요. 3층에서 부터는 제가 도전해서 1분도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니까요.” “헤에···. 그래서, 그 던전의 보상은 뭐였는데? 너 여러 가지로 많이 변했더라. 싸우는 모습도 그렇고 소환한 쉐도우 아미들도 그렇고····.” 한중겸의 채근에 정운은 그냥 술잔을 비우면서 허허롭게 말했다. “그냥··. 좀 대박이었어요. 자세한 스포일러는 생략합니다.” “야·····. 사람 궁금하게만 하고····.” 한중겸은 정운에게 좀 더 말해 달라고 채근했지만 정운은 그냥 술만 비워갈 뿐이었다. 어쨌든 십왕들 전원이 인정하고 있었다. 지금의 정운은 한중겸 이민지하고 동급···. 어쩌면 그 위에 있는 배대호와 박추성에 접근한 힘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축하 파티가 끝나고···. 자신들의 집에 들어오자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앞에 두고 말했다. “자···. 그럼 이제 궁금한 것 좀 풀어볼까?” “정운씨··. 우리한테는 말해 줄 거에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너희들은 내 가족이나 다름 없는 존재들인걸? 너희들에게라면 정보를 유출 당하든 말든 아무 상관없어.”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앞에서 정운이 시련의 던전을 클리어 하면서 벌어진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시련의 던전의 난이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죽음의 위기는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인내가 필요했다. 최초의 1층의 난이도를 봤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정운으로서는 상대도 하지 못할 레벨의 강자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런 강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부딪혀 가면서 정운도 조금씩 조금씩 더 강해져 갔다. 경험도 늘어났고 정운 스스로의 전투 센스도 점점 날카로워 져 갔다. 특히 유니크 패시브 스킬인 집중력은 큰 도움이 되었다. 정운의 집중력의 레벨은 현재 MAX. 집중력 :LV. MAX (체감 시간을 300%정도 느리게 조종한다.) 의 상태인 것이다. 체감 속도를 300%로 느리게 볼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 생각해도 속도가 삼분의 일로 보인다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라. 스포츠를 예로 들어서 야구 선수면 시속 150km의 공이 시속 50km로 보이는 것이다. 아마 홈런을 때리고 싶은 만큼 뻥뻥 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반칙 같은 상황이다 보니··. 정운으로서는 점점 더 고수들의 움직임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고 또 강해져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5층의 초고수까지 클리어한 정운에게 보상이 주어졌다. 그 보상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 묶인 아홉명의 영혼들이었다. “영혼들···? 저 같은 존재들이 또 있다는 겁니까?” 세레나가 깜짝 놀라서 하는 질문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조금 달랐어.” “다르다···. 어떻게 다르다는 겁니까?” 정운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세레나, 당신은 천계의 밀명을 받고 악마들과 파우스트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잠입한 거지?”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게 제가 이 세계에 온 목적입니다.” “그래···.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달라. 애당초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를 만들 때 파우스트가 그들의 영혼을 제물의 일부로 이용한 거야.” “그건····. 그건 수많은 인간들이 그렇게 이용당했지 않습니까? 당연한 것을····.”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녀가 알기로도 이 그라운드 제로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재료로 이뤄져 있다. 필드의 몹이나 보스몹들···. 스카이 타운이나 하층구의 마을에 있는 NPC들 까지····. 그들 모두가 저마다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인간, 마물, 악마 등의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 보통 그렇게 영혼을 재료로 해서 이 세계의 일부가 된 이들은 그 자아를 유지 할 수 없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 “그렇죠. 잠깐···. 마스터, 마스터의 말씀은····.”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는 거야.” “····놀라운 일이군요··. 혹시 뛰어난 엑소시스트이기라도 한건가요?” 세레나는 예전에 자신이 발견했었던 신부의 경우가 떠 올랐다. 그는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이물질 같은 경우이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 세계에서 어느 정도 자아를 유지하면서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악마에 잠식 당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척 이레귤러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혹시 그런 존재가 또 있었던 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존재는 아니야. 하지만···. 프라이드가 무척 강하고, 무엇보다 보통 인간들 보다 훨씬 더 정신력이 강한 위인들이기는 하지.” “위인들···. 정운씨. 혹시 역사에 알려진 사람들인가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직접 소개해 줄게. 쉐도우 아미.” 정운은 두 사람의 눈 앞에서 쉐도우 아미들을 모두 소환했다. “이들 모두 상당히 유명한 존재들이야. 이름만 말해도 세계에서 거의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들이지.”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요?” 소환까지 하고도 자꾸 뜸을 들이는 정운을 보고 슬기가 재촉했다. 그녀의 재촉에 정운은 씨익 웃으면서 정답을 알려줬다. “1번부터 9번까지 순서대로 소계할게. 1번 관우, 2번 여포, 3번 조운, 4번 장비, 5번 전위, 6번. 황충, 7번. 마초, 8번 손견. 9번 태사자.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부연 설명은 안 해도 되겠지?”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설마하니···. 아무리 그래도 설마하니 그런 이름들이 이 상황에서 튀어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씨···. 정운씨 말은 이 사람들이··. 그 삼국지에 나온느 장수들이라고요?” “응, 엄밀히 말해서 삼국지 중에서도 한을 품고 죽었던 장수들이지.”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과연····. 원래 생전에 업적을 크게 남긴 자들은 성인, 혹은 영웅의 칭호를 받고 그 영혼이 승화되는 경우가 있지요.” 세레나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본인만 해도 화형당해서 죽을 시에는 마녀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상태였다. 그러나 후일 그녀의 누명이 벗겨지고 성인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그녀의 영혼은 성인의 것으로 승화 되었다. 아마도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전에 세운 수많은 전승들이 입으로 문헌으로 기록으로 전해지고 그들에게 더해진 수많은 인간들의 선망과 동경 같은 염원들이 그 영혼을 영웅의 그것으로 승화 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이들이 정운과 함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레나가 그 점에 관해서 물어보자 대신 답을 한 것은 1호, 즉 관우였다. -거기에 관해서는 우리가 대신 답하겠소. 서양의 여장수여. 관우가 세레나에 관한 인식은 둘째 치고···. 일단 관우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관우, 장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있는 여포나 전위등도 모두 동시대에 활동하는 장수들이었고, 누군가는 전우, 또 누군가는 적이었던 사이였다. 심지어는 적이었다가 동맹이었다가 다시 적이 된 관계도 있었다. 누군가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째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는냐? 그것은 그들의 원념을 높이 산 파우스트의 수작이었다. 파우스트의 연구 테마중에 하나가 인간의 영혼이었다. 가꾸기에 따라서 성스럽게도 변하고 더럽히기에 따라서 사악하게도 변하는 인간의 영혼은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영원한 연구 테마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있어서 이들의 영혼은 좋은 연구자료였다. 영웅으로서 추앙 받으면서 각자 편안한 휴식 속에 잠들어 있던 이들은 파우스트에 의해서 반 강제로 그라운드 제로에 끌려오게 되었다. 세레나 처럼 천계의 비호를 받고 있다거나 하면 혹 모를까···. 그저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고 있는 이들은 파우스트가 만든 그라운드 제로에 속수무책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원래 파우스트는 이들의 영혼을 연구해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보스몹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관우 여포, 조운 장비 등등···. 출신 성분도 다르고 생전에 이념도 다른 이들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자존심 하나는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번층에서 앞으로 있을 몇가지 힌트를 캐치하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일단 스포일러 댓글은 부디 자제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52화 파우스트는 그들의 영혼을 자신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 거의 고문 수준의 강도 높은 세뇌를 했지만····. 결국 이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파우스트는 이들을 68층에 탑을 만들고 거기에 봉인해 버렸다. 일단 못쓰게 되어 버린 물건을 잠시 보관해 두는 것처럼 그냥 버려둔 것이다. 그게 바로 정운이 공략했던 시련의 탑인 것이다. 파우스트에 의해서 모진 고생을 당하고 시련의 탑에 봉인당한 아홉의 장수들은 자신들끼리 대화를 했다. 원래 생전에는 철천지 원수 취급하던 사이였던 자들도 있지만····. 역시 누군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어쨌든 지금에 와서는 그들에게도 공통의 목적이 생겼다. 자신들의 편안한 숙면을 방해한 파우스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힘을 모아서 시련의 탑에 관문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파우스트에게 봉인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거의 신장 급의 영웅들이 아홉이나 모여 있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발버둥은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시련의 탑에서 저운을 시험하던 무인들이었다. 사실 그들은 현존하는 무인들도 아니었다. 아홉의 장수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무인들이었지··. 그 무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이 최상층에 접근한 자에게 복종해서 그를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자. 그리고 그 주군의 아래에서 파우스트를 물리치고 스스로의 영혼들을 자유롭게 하자. 그게 그들의 협의 내용이었다. 사실 그런 내용이었기에 그 시련의 탑에서는 유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스킬을 금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장수들도 바라는 바였다. 그런 요사스런 행위에 복종하고 싶지는 않았다. 명장은 살아서 두 장수를 섬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죽어서 다시 섬기는 남자 정도는 정정당당하게 자신들에게 대장부였으면 했던 것이다. 뭐···. 이들이 생전에 섬긴 군주 중에 못 말리는 만렙의 우유부단이 있었기에 그런 한이 쌓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역시 누군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정운은 시련의 탑을 클리어하고 그 꼭대기 층에서 이들을 마났다. 오행신공··· 이라는 것은 없었다. 애당초 그건 그냥 미끼였던 것이다. 대신에 최상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홉의 영혼들이야 말로 정운에게 내려진 진정한 보상이었다. 클리어한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정운에게 귀속 시켰다. 그를 진짜 주군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그 순간···. 정운의 130이 넘을락 말락 하던 레벨은 172에 도달했다. “한 번에 그만큼 레벨이 올랐다고요?” 정운의 설명을 들은 슬기는 어이가 없었다. 고레벨 일수록 단순하게 1레벨 올리는 것만 해도 아득하게 힘든 법이다. 그런데···. 100레벨이 넘은 정운이 그 정도로 광폭한 폭렙을 하게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된다는 건가? 그때 그런 슬기의 의문을 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3번 쉐도우 아미인 조운 자룡이었다. -주모,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역사에서도 잘 생긴 미남 장수로 유명한 그이기에 그런 걸까? 여자인 슬기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정중하고 예의 발랐다. -원래 파우스트가 우리를 데려왔던 목적은 70층 이상의 던전에서의 보스몹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주군은 그런 저희 아홉을 혼자서 쓰러트린 것과 같은 효과를 몸소 겪은 것이죠. “아아···. 그러면····· 과연, 그렇군요···.” 슬기는 조운의 말에 납득을 했다. 확실히 그런 말대로라면 어느 정도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70층 이상 대의 보스몹 아홉을 혼자서 잡아서 그 경험치를 독식했다면····. 그렇다면 충분히 그만큼 폭업을 하는 것도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슬기가 납득을 한 것 같자 정운이 말을 이었다. “뭐···. 그렇게 해서···. 레벨이 대폭 오르고 스킬들도 한 차원 진화했지. 이제 남은것은 이 영혼들을 거두는 것이었는데···. 문제가 생겼지.” -내가 주군의 몸에 머물겠다. -허튼 소리!! 내가 주군의 몸에 머물러야 한다. 호로관에서 나한테 쫓겨나던 기억을 잊어 버렸나? -삼대 일이었지. 지금 여기서 일대일로 해 볼테냐?“ -둘 다 입 다물지 못할까? 여기는 명문가의 후손인 나 손견이···. 이 아홉의 장수들의 문제점. 그것은 바로 이들의 육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혼만 있는 상태에서 불려 와서 원래 같으면 파우스트가 만들어준 육체에 몸을 머물렀어야 했었다. 그게 되지 않은 이상 이들이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정운의 육체를 빌려서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정운이 생활을 하고···. 때와 장소에 맞춰서 자신들이 전투를 담당한다. 라는게 이들의 원래 계획이었다. ‘엿장수가 김칫국 피쳐로 원샷 때리는 소리 하고 있네····.’ 물론 정운은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을 집어 넣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운은 서로 싸우고 있는 장수들에게 제의했다. “여기에 들어오는게 어때? 마침 딱 아홉기 있는데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시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쉐도우 아미를 소환했다. 정운에게 이런 스킬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장수들은 크게 기뻐했다. 안 그래도 주군이라고 해서 자신들과 몸을 공유한다는 것은 좀 그랬던 자들이다. 아무래도 자기 육체는 온전하게 자신의 것인게 좋지 않겠는가? 마침 숫자도 딱 아홉이니 금상첨화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운의 쉐도우 아미에는 후한 말 삼국 시대의 무장들의 영혼이 깃들었다. 이미 한계까지 이르렀던 스킬이 쉐도우 아미였지만····. 이제는 한 층 더 강해졌다고 봐야 했다. 그 영혼 하나하나에 영혼이 부과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냥 그런 영혼이 아니다. 본인들의 전과만으로도 시대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의 영혼이다. 지금 쉐도우 아미 한기 한기가 십왕의 하위급 레벨이 이보영 이지영하고 맞 먹는다고 하면 믿겠는가? 그것도 세레나 때와 마찬가지로 이들이 아직도 본 힘을 다 되찾지 못했다. 라는 가정 하에서의 일이니····. 지금 정운의 힘은 명백하게 한중겸과 이민지를 능가하고 있었다. 배대호 박추성과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정운은 오랜만에 슬기와 한 침대에서 서로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음·····. 이런 것 굉장히 그리웠어.” 정운은 슬기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좋은 향기를 맡으면서 말했다. 슬기는 그런 정운을 보고 미소 지으며···. “저도 그랬어요. 정운씨가 지난 반년동안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겠다고 각방까지 썼잖아요?” “하하···. 사실 그 말하고 하루 만에 후회했지만 말이야.” 정운은 자기 품안에 있는 슬기를 끌어 안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슬기의 매끄러운 등의 감촉이 너무 좋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와 그녀의 날개뼈와 등의 매끄러운 라인이 손의 촉각을 통해서 그대로 전달 되었다. 실로 얼마나 그리워했던 감촉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로 곁에 두고도 그녀를 안지 못한다는게 정말 괴로웠던 정운이었다. ‘뭐···. 슬기와 세레나가 내 몫까지 열심히 번다는 이유로 내가 독하게 마음 먹고 시련의 탑에 공략했으니 지금의 보상이 있었던 거지만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기를 품안에 안고 다시 한 번 그녀를 자기 아래로 이동 시켰다. “아이···. 정운씨···. 나 너무 오랜만이라서 좀···.” “안 돼?” “····그런 말은 안 했어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혀를 살짝 내밀면서 애교를 떨었다. 세상 그 어떤 남자도 아니고 오로지 사랑하는 저운에게만 보여주는 표정과 애교였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사랑스러워 하면서 그날 밤을 뜨겁게 불태웠다. 69층. 68층에서 이런 저런 퀘스트로 재미를 톡톡하게 본 십왕들은 69층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사실 거기에는 정운의 탓(?)도 있었다. 68층에서 누구보다 더 크게 재미를 본 것이 정운이 아니었던가? 스킬도 대폭 강화되었고 레벨도 크게 올랐다. 정운의 발전에는 사실 배대호와 박추성도 크게 놀랄 정도였다. 그런 둘의 반응을 보고 십왕들은 살짝 자극을 받았다. 사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안주를 하고 있었던게 사실이었다. 안주라고 해서 박추성이나 배대호처럼 게임의 클리어를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다. 진정으로 게임의 클리어는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고 있었던 것은···. 각자간의 경쟁이었다. 예를 들어서 한중겸의 경우···. 그의 현재 레벨은 177이고 바로 위에 있는 이민지의 레벨은 184이다. 하지만···. 한중겸은 이민지를 추월 하겠다거나···. 그녀보다 더 강해지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처음에는 있었을지 모른다. 아직 그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아마 여기서 가장 강해지겠다. 그리고 반드시 게임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가겠다. 라는 열망에 불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지와의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그는 속으로 반쯤 포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난 이민지는 이길 수 없다. 추월할 생각은 하지 말고 나 자시의 분수를 알자. 스스로 그렇게 다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납득을 하고 포기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중겸의 밑의 십왕들 뿐만이 아니었다. 한중겸의 바로 위에 있는 이민지 역시 그녀 스스로 배대호나 박추성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게 지속되다보니···. 십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후에 이들 10명의 순위가 뒤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비슷비슷한 위치에서 서로 열 맞춰서 전진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운이 대박을 터트렸지 않은가? 내심 자기가 이제 막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주경택을 비롯해서···. 다른 십왕들도 큰 자극이 된 것이다. 위를 노리고자 하는 마음. 1등이 되고자 하는 마음. 누가 보면 유치하고 너무 속물적이라고 생각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1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진심이 되면 옆에서 뭐라고 하든지 간에 신경쓸 겨를조차 아까울 뿐인 것이다. 이전 같으면 며칠 쉬고 팀을 결성해서 서서히 69층으로 돌입한 십왕들이 바로 한꺼번에 들어온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다. 처음 69층에 올라오자 마자 보인 위치는 거대한 늪지대였다. “이런····. 나 늪지대는 싫은데···.” “나도야. 여기는 발 쓰기가 어려워···.” 십왕들은 저마다의 탈 것을 꺼내거나 혹은 비행 스킬을 써서 바닥에서 살짝 떠올랐다. “그럼···. 난 먼저 간다.” 박추성은 가장 먼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어딘가로 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오라버니···. 모처럼 인데 같이 안 가고요?” 이민지가 박추성에게 말해 봤지만 애당초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난 혼자가 편해. 너희들도 조심해서 다니면 자기 몸 정도는 건사하겠지. 그럼····.” 그리고 그는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령 처럼 허공을 횡 하고 날아가 버렸다. “그럼····. 나도 단독 행동이 편해서···.” 박추성이 나가자 그 뒤를 이어서 배대호도 나가 버렸다. 그런 배대호를 보고 이민지가 뭐라고 투덜투덜 거렸지만 배대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정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래? 어디 또 따로 갈사람 있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럼, 난 지영이하고 경택이하고 삼인일조로 다녀 올게요.” 이보영과 아이들이 그렇게 떨어졌고···.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53화 <그녀들의 발전.> “주호 형님. 이번에 저하고 같이 합시다.” “그럴까?” 명주호와 김수민 역히 한 팀이 되어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쯧···. 어쩔 수 없군. 정운이 넌 네 팀으로 움직일 거지?” “예. 그렇죠.” 한중겸의 말에 정운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럼···. 난 정철이하고 둘이서·········.” “·····씨이······.” “음····. 누님도 올래요?” “씨이·····너희들····.” 가면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민지는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다. 하긴, 평소에 레이드 할 때에는 실질적인 리더 역할도 하는데···. 이렇게 왕따 당하는 분위기가 되니 몹시 억울한 모양이다. 그나마 사교성이 좋은 한중겸이 챙겨 주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팀이 흩어지고 나서···. 정운도 본격적으로 지역 탑사를 시작했다. 포탈에서 69층에 들어온 이후 파티의 일원은 대략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뉘어 졌다. 늪지대를 걸어서 탐색하기 시작한 무리···. 그리고 비행 스킬로 훌쩍 떠나서 먼 거리를 탐색하기 시작한 무리····. 그렇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졌다. 정운의 팀은 일단 걸어가면서 늪지대를 탐색하자는 분류였다. 말의 위에 올라타서 질퍽질퍽한 늪지대를 천천히 걸어서 탐색하고 있는 일행은 몹시 여유로웠다. 마치 유람이라도 나온 것 같은 이런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정운이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슬기도 이제 주작의 스태프의 레벨이 MAX에 오른 거지?” “예. 저도 이제는 한몫을···. 응? 전방에 뭐가 나왔네요?” 일행의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난 몹은 거대한 리자드 맨이었다. 리자드 맨은 원래 다른 층에서도 흔히 나오는 몹이었지만····. 이 놈은 정말로 거대한 리자드 맨이었다. “어디어디····.” 정운은 ME로 놈의 정보를 찍어 봤다. 빅 리자드맨 LV.110~115 [보통의 리자드맨들 보다 훨씬 더 거대한 변종. 무기는 삼지창이나 시미터를 주로 사용하고 입에서는 이따금씩 독을 뿜어낸다.] “리자드 맨 치고는 레벨이 높네? 110~115? 하긴 그래봤자 그냥 필드 몹이지만···.” “정운씨. 여기는 저희들이 처리할게요.” “응? 그래도 돼?” “예. 정운씨 없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콤비네이션을 많이 했는데요? 잘 봐줘요.” “그럼, 마스터께서는 잠시 뒤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가 정면으로 나섰다. 정운은 잠시 그녀들을 도와주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는 동안에 발전했을 그녀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녀들이 지난 반년동안 얼마나 강해졌는지···. 그리고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말이다. “세레나. 가요.” “알았어요.” 빅 리자드맨을 상대로 먼저 시작한 것은 전신에 풀 버프의 오로라를 날리면서 전진한 세레나였다. 그녀는 전신에 여러 가지 오로라가 겹쳐서 성스러운 휘광을 뿜어내면서 리자드맨에게 가서 일격을 날렸다. “흡!!!” 콰앙!!! “크아아아아!!!” 높이가 5미터는 훌쩍 넘는 녀석이었기에 세레나의 공격은 놈의 정강이 부분을 그대로 때려 버렸다. 상대는 고통에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거대한 삼지창을 찔렀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면서 날카롭게 날아간 삼지창을 보고 세레나는 그대로 방패를 들어서 공격이 오는 순간 옆으로 쳐내 버렸다. 카아앙!!! “크워어어어어!!!!”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자 놈은 점점 더 화가 난다는 듯이 삼지창을 찔렀다. 하지만 세레나는 놈의 공격을 탄탄하게 가드하면서 그 공격들을 무위로 돌리고 있었다. ‘흐음·····. 방어가 단단해 졌군. 이전과는 달라.’ 예전의 세레나는 날개를 이용해서 하늘을 날며 한 마리의 매처럼 우아하고 날렵하게 싸우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자처럼 바닥에 두 다리를 붙이고 상대의 공격에 탄탄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의 눈이 세레나 말고 옆에 있는 슬기를 향했다. 슬기는 전신에 실드를 한 겹 두른 상태로 마법을 캐스팅 중이었다. ‘전형적인 창과 방패의 공식인가?’ 2인 파티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형태가 창과 방패 같은 타입이다. 앞에 서 있는 방패 역할의 탱커가 주의를 끌고··· 뒤에서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메이지가 커다랗게 한 방을 먹인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전형적이지만····. 그만큼 많이 믿을 수 있는 패턴이기도 했다. “파이어 볼트, 파이어 볼, 파이어 스톰!!!” 슬기의 마법이 삼중으로 작렬했다. 콰콰콰콰쾅!!!!! 원래 불의 마법에 특화 되어 있는 슬기였기는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더욱더 특화되어서 이제는 거의 스페셜 메이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녀의 마법이 작렬한 순간 화염계 마법이 해일처럼 밀려 들어가서 거대한 리자드 맨을 통째로 구워 버렸다. “쿠워어어어어!!!!” 놈은 그대로 죽으면서 크게 단발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운이 막 슬기와 세레나늘 칭찬하려는 순간···. 퍼퍼퍼퍼퍽!!! 늪지대의 사방에서 빅 리자드맨들이 연달아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연동해서 무리 공격을 하는 놈들이었나?” 정운은 자기 무기를 꺼내면서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슬기가 그런 정운을 말렸다. “정운씨.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해요. 세레나!!! B 패턴으로 해요.” “알았습니다. 슬기.” 그녀들은 자신들끼리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뒤에 남은 정운은 잠시 얼떨떨했지만 이내 그녀들을 따라서 후퇴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슬기에게 지시를 받는 것은 처음인걸?’ 격세지감이라는게 이런 걸까? 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둘이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정운은 일단 슬기의 지시를 따라서 이동했다. 여차하면 나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둘을 보아하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쿵!! 쿵쿵쿵!!! 뒤편에서 신장이 5미터가 넘을 것 같은 리자드맨들이 지축을 울리면서 뛰어왔다. 늪지임에도 불구하고 놈들의 발걸음은 전혀 거침이 없었다. 아마도 발바닥에 있는 물갈퀴들이 놈들의 육중한 체중이 늪지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냥 게임의 세계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좋아···. 충분히 일어섰어. 파이어 월!!!!” 슬기가 파이어 월을 펼치자 그 높이가 10미터가 훌쩍 넘을 정도로 거대한 파이어 월이 펼쳐졌다. 원래 슬기의 파이어월이 특기 마법이기는 했지만 이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정도로 저 놈들의 발을 멈추지는 못할 텐데?’ 파이어월은 불의 장벽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물리적인 방어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가까이 오는 몹 들에게 뜨거운 불길로 화염의 대미지를 주면서 적을 물려내는 것이다. 즉, 피통이 큰 몹 이라면 그냥 ‘앗 뜨거.’ 하면서 어느 정도 대미지를 각오하고 넘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거대한 빅 리자드맨들은 충분히 그게 가능해 보였다. “쿠워어어어!!!” 놈들이 파이어월에 접근한 순간···. 슬기가 스태프로 바닥을 쿵 찍으면서 말했다. “파이어 웨이브!!! 레퍼티션!!!” 그러자 슬기의 파이월이 변형했다. 하늘 방향으로 솟구쳐 있던 불의 벽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면서 빅 리자드맨들을 덮쳤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이어 월이 연속적으로 파도를 치듯이 계속해서 발사되면서 빅 리자드맨들에게 엄청난 대미지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저건···· 어떻게 한 거지?” 정운은 두 눈을 부릅뜨고 크게 놀랐다. 지금 슬기가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위력도 물론 놀라웠지만 그것보다 스킬이 중간에 변형을 했다. 슬기가 여러 가지 스킬을 연달아서 사용했다면 별로 놀라울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갔고 마력이 더 강해졌구나. 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한 번 사용한 스킬을 수정해서 변형 시키는 것은···· 정운이 알기에 저런 묘기가 가능한 사람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 한 명 밖에 없었다. ‘혹시······.’ 정운이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슬기에 이어서 세레나 역시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홀리 익스플로젼 소드!!!” 세레나의 검에 찬란한 백광과 함께 길이가 10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검기가 생성 되었다. 홀리 익스플로젼 소드 LV. MAX (공격력에 특화된 신성력을 검에 담았다. 아군에게는 무해하지만 적에게 닿으면 치명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으아아아앗!!!!!” 세레나가 거대한 거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그녀의 검이 전방에 있는 빅 리자드맨들을 단 한번의 검격으로 쓸어버리듯이 후려치자···. 퍼퍼퍼퍼펑!!! 세레나의 검기에 닿았던 리자드맨들은 거대한 폭발과 함께 그대로 엄청난 대미지를 받았다. 이제까지 세레나가 쓰던 방어적인 신성력이 아니라 공격에 특화된 스킬. 그게 이 홀리 익스플로젼 소드인 것이었다. ‘대단하군···. 이미 슬기에게 대미지를 입은 상태에서는 저걸 버틸 수 없어.’ 정운은 둘의 콤비네이션을 보고 새삼 스럽지만 크게 감탄했다. 둘은 오늘 처음으로 69층에 올라왔다. 상대에 따라서는 상당히 고전을 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전력으로 적을 말살 시키고 있었다. 그냥 힘만 강해져서는 이런 결과를 낼 수 없다. 그녀들 끼리 서로를 신뢰하면서 호흡을 맞춰 왔기에 이런 훌륭한 팀플레이가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탑에 틀어박힌 사이에 다시 많이 친해진 모양이네···. 어떤 의미로는 다행인가?’ 원래 둘의 사이가 미묘해 진 것은 정운 때문이었다. 정운을 사이에 두고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이 벌어졌었는데····. 그러던 차에 다툼의 원흉(?)인 정운이 사라져 버리니까 둘의 사이가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원래 이 둘의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둘의 사냥이 끝나고···. 정운은 이동을 하면서 슬기에게 물었다. “슬기야. 넌 마법을 사용 하는게 좀 변했던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없는 동안 누구에게 배운거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눈치 챘어요? 사실은····. 배대호님에게 조금 배웠어요.” “역시·····. 잘도 가르쳐 줬네? 그 사람이?” “성실하게 부탁했죠.” 정운은 사실 슬기가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마법을 스킬로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 진정으로 유일한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배대호였다. 그가 아니라면 슬기에게 마법을 가리치는게 가능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정운이 탑의 공략에 들어가고···. 슬기는 세레나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욱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운이 있을 때는 몰랐지만 정작 둘이서 사냥을 하기 시작하자 세레나의 발목을 잡는 느낌이 팍팍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대 여자의 자존심을 걸고라도 세레나의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하던 슬기는 되든 안 되든 부딪혀 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배대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배대호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슬기가 계속해서 끈질기게 부탁하자 조건부로 허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일주일에 딱 한 시간만 가르칠 것. 그리고 수강료로 자신이 원하는 재료 아이템을 계속해서 수집해와 줄 것. 이 두가지 조건을 만족 시키는 대가로 슬기는 간신히 배대호의 강습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재료가 워낙에 구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일주일에 한 시간이 아니라 이 삼주에 한 시간씩 듣기도 버거웠었다. ============================ 작품 후기 ============================ 큰일이군요... 최근 들어서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로 예정에 없던 휴식을 하루 취했더니 간신히 복귀되어가든 비축분이 다시 쫑나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올해 설에 연재가 가능할지 안 할지 불투명해져 버렸습니다. 이대로 가면 설에는 연재량을 반으로 줄이든가? 아니면 설에는 휴재가 되어 버릴것 같습니다. 쩝~, 그렇게 안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54화 하지만····. 슬기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머릿속에 배대호의 마법 이론을 때려 박았다. 처음에는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슬기가 아둔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영특한 천재도 역시 아니었다. 그에 비해서 배대호는 두 말 할 것 없이 천재였다. 파우스트에는 비교 할 수 없지만 지식의 습득과 활용이라는 면에서는 다른 누구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배대호 같은 천재들에게는 공통점이랄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배우는 것에 비해서 가르치는게 너무 서툴다는 것이다. 배우는 자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보니 보통 사람을 가르치는게 영 어려웠던 것이다. 슬기는 배대호에게 배움을 청하고 그 광경을 영상으로 녹화 하면서 될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또 들으면서 이해를 더해갔다. 배대호의 마법 이론을 완전히 익히는 것은 불가능 했다. 유감 스럽게도 슬기는 그 정도의 천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천재적인 지능이 없는 슬기에게는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이 있었고···. 차츰차츰 배대호가 가르치는 이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이론을 배웠지만 결국 슬기가 어느 정도 활용이 가능한 것은 자신의 특기인 화염계 마법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슬기는 엄청나게 강해졌다. 소위 같은 수준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그 무기의 사용법을 잘 알고 있는 숙련자와 막 휘두르는 초심자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메이지의 경우조 마찬가지였다. 그냥 스킬로서 마력만 때려 붓고 있는 다른 메이지들은 엄밀히 말해서 마법사가 아니다. 그냥 마법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유저에 불과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유일한 마법사. 원리를 알고 그것을 재구축해서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재형성 할 수 있는 진정한 마법사는 배대호와 그의 제자인 슬기 뿐인 것이다. ‘나 없는 동안···. 많이 노력했구나···.’ 비록 일부라고 해도 천재인 배대호가 만들어낸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슬기가 얼마나 애를 썼을 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뻔히 보일 정도였다. 정운은 슬기의 이 마음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슬기와 세레나의 콤비네이션을 확인한 정운은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해서 탐색에 나섰다. 몇 번인가 빅 리자드맨들이 덤비기는 했지만 사실 세레나와 슬기의 적은 아니었다. 좀 더 많이 몰려올 때는 정운도 한 손 거들었다. 슬기와 세레나가 둘이서 싸울 때는 그래도 좀 전투 같은 느낌이 났지만···. 정운이 작정하고 한 손을 거들자 전투라기 보다는 그냥 학살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그 정도로 정운이 크게 강해진 것이었다. 예전에는 쉐도우 아미를 소환하고 싸우는 것이 가능한 시간이 짧았다. 길어봐야 10분에서 30분 정도? 그러나 지금은 그 제한 시간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세세한 컨트롤에 신경을 써서 정신력을 소모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알아서 자신들이 잘 움직이기 때문이다. 일단 소환하고 풀어주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척척 싸우면서 경험치와 골드가 쌓인다. 정작 정운 본인은 거의 할 일이 없을 정도였으니····. ‘이민지 누님이나 중겸이 형님이 이런 기분일까? 소환만 하고 날로 먹기····.’ 정운은 내심 너무 편하니까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였다. -주군, 전방에 새로운 몹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멀리 나갔던 조운이 돌아오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새로운 몹인가? 가보도록 하지.” 정운은 슬기들과 함께 말을 타고 새로운 몹이 나타난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 가는 커더란 슬라임 같은 것을 상대로 손견과 태사자가 발을 묶어두고 있었다. “저건 뭐지? 처음 보는 타입인데?” 정운은 일단 ME를 꺼내서 놈을 찍어 봤다. 늪 아메바 LV. 110~120 [평소에는 늪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갑자기 덮쳐서 먹잇감을 사냥한다. 전신이 강한 산성으로 이뤄져 있고 유독 가스를 내뿜는다.] “늪 아메바라·····. 거대한 슬라임 같은 놈으로 생각하면 되는 건가?” “슬라임? 슬라임에는 제가 딱이죠.” 슬기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나서서 주작의 스태프를 내밀었다. “광염조(狂炎鳥)!!”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주작의 스태프에서 날개 길이를 합하면 5미터는 될 것 같은 화염의 매가 나타났다. “가라!!!” 그녀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자 화염의 매가 그대로 날아가서 늪 아메바에 부딪혔다. 콰아아앙!!! “으읏···. 이거 예전에 폭렬우보다 더 강력한 것 같은데?” 강력한 폭발에 놀라면서 정운이 말하자 슬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죠. 폭렬우 보다 더 상위 몹인데····.” “그러고보니···. 주작의 스태프를 만렙까지 키웠다고 했지? 좀 볼수 있을까?” “예. 여기 보세요.” 슬기는 전투 중임에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주력 무기를 정운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정운은 만렙으로 변한 주작의 스태프를 차분하게 살펴봤다. 주작의 스태프. LV. MAX 공격력 : 50 마력 : 10,000 무게 : 10 내구력 : 무한 스킬 : 염소접(炎小蝶) (작은 화염의 나비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소화조(小火鳥) (작은 화염의 새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극염랑(極炎狼) (중간 크기의 화염 늑대를소환 한다. 대상을 공격하며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적염사(赤炎蛇) (중간 크기의 화염뱀을 소환한다. 대상을 공격하며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폭렬우(爆裂牛) (화염으로 된 큰 소를 소환한다. 대상에게 돌격해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광염조(狂炎鳥) (커다란 매를 소환한다. 대상에게 닿으면 화염을 작렬 시킨다.) 흑염호(黑炎虎) (검은색 화염을 두른 호랑이를 소환한다.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화룡(火龍) (온몸에 화염을 두른 화룡을 소환한다.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주작(朱雀) (주작을 소환한다.) [주작의 혼이 들어가 있는 스태프. 화염계 최강의 마법 지팡이며,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다양한 화염의 환수를 소환 할 수 있다.] “이건····. 어마어마하잖아? 화룡에 주작까지···. 이거 실제로 다 소환해 본 거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일단 소환은 해 봤어요. 그런데···. 흑염호 부터는 정신력이 너무 많이 소모해서 잘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주작도 딱 한번 소환해 봤는데···.” 말해 줄까? 말까? 를 망설이고 있는 슬기를 보고 세레나가 말을 이었다. “그때 슬기가 한 번 소환하고 그 대가로 다섯 시간동안 정신을 잃어야 했습니다. 위력은···. 확실히 대단했습니다만 그만큼 정신력의 소모가 강해서야····.” 세레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젖는 것을 보고 정운은 엄한 표정을 하고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약속해. 나하고 있을 때는 절대 함부로 주작을 쓰지 말 것.” “예. 하지만····. 그냥 두기만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슬기의 항의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주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써야 할 순간을 잘 가리지 않으면 네가 무방비해 지잖아. 들어보니···. 세레나의 신의 철퇴보다 더한 자폭기 같은데···. 내가 쓰라고 한 순간까지는 절대로 쓰지 마.” “····알았어요.” 결국 슬기는 정운의 말에 알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안전에 관해서라면 정운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슬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도 정운의 쉐도우 아미들은 열심히 늪 아메바를 공격하고 있었다. 물리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 아메바였지만···. 정운의 쉐도우 아미들은 저마다 정운의 스킬을 그대로 사용 하는게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즉···. -뇌천신공!! -뇌천신공!! -뇌천신공!! 쉐도우 아미들이 저마다 전신에 번개를 두르고 아메바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물리 공격에는 끄떡도 없던 놈이 스폰지 케이크 마냥 한 방 한 방에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다. 정운은 뒤에서 팔짱을 끼고 여유있게 그 광경을 보면서 말했다. “흐음····. 69층 레벨도 별것 아닌데?” “정운씨가 너무 괴물 같이 강해진 거에요. 역시 필드 몹에서는 그다지 재미를 못 보려나···. 퀘스트를 찾아 볼까요?” “그게 좋겠지····. 잘하면 시련의 탑 같은 또다른 대박 퀘스트가 있을지 모르고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 정도의 대박 퀘스트는 어지간하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순수하게 얻어진 보상치만 보면 예전에 세레나를 얻었던 쉐도우 엘프 킹의 공략 때 보다 얻은게 많을 정도였지 않은가? 하긴···. 그때 그림자의 망토를 손에 넣어두지 않았다면 지금 같이 강력한 효과는 바라기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정운은 늪 지대를 계속해서 전진해 갔다. 중간에 걸리는 놈들은 정운이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쉐도우 아미들과 슬기의 마법, 그리고 세레나의 버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전진해 가던 정운은 이윽고 늪지대를 벗어났다. 철썩···. 철썩····. 눈부신 태양과 새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그 모래사장을 때리면서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하얀 파도 거품······. “이건···. 해변인가?” “바닷가 지형은 흔하지 않은 곳인데 말이죠. 여기서는 뭐가 나올까요?” “글쎄····. 일단 한 번 돌아보지 뭐.” 정운은 슬기들과 함께 말을 타고 해변을 천천히 이동했다. 말을 타고 해변을 이동하니 이것도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필드에서 이런 여유를 찾기는 어려웠는데····. 내가 강해지기는 정말 강해졌나봐.” “당연하죠. 내심 우리는 우리가 너무 강해져서 이제 정운씨가 우리보다 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슬기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 체면에 그건 좀·····.” “어머, 그거 남녀 차별이에요.” “미안미안····.” 정운과 슬기가 그렇게 시덥잖은 대화를 하면서 해변을 걸어가고 있을 때···. 드디어 해변지형에서 첫 번째 몹이 나왔다. 캉!!! 캉!!! 두꺼운 껍질에 커다란 집계발 위로 툭 튀어나온 두 눈····. “게네···.” “게네요. 그런데····. 좀 크네요.” 슬기와 정운이 감탄하는 사이에 세레나가 ME를 꺼내서 나타난 몹을 찍었다. 대게 LV. 110~120 [거대한 게. 평소에는 바닷가에 숨어 있다가 사냥감이 나타나면 습격한다. 거품을 뿜어내며 커다란 집개 발은 상당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흐음···. 어째 맛있어 보이는 놈인걸?” “농담은 무슨···.” 슬기와 정운은 그런 대화를 하면서 전투 준비를 했다. 사실 정운의 경우 전투 준비 라기 보다는 그냥 자신의 소환수인 쉐도우 아미들을 소환한게 다이지만 말이다. -큰 놈이군····. -이놈의 세계는 왜 이렇게 큰게 많아···. 마음에 안 들게 스리···. 정운은 일단 가볍게 두 기만으로 소환했다. 9번 태사자와 8번 손견. 이 둘은 나타나자마자 눈앞에 있는 대게를 보고 대검과 철창을 꼬나 잡았다. “신속하게 끝내도록.” -옛, 주군. -옛, 주군.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기의 쉐도우 아미들이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원래 생전에도 무위로 이름을 날렸던 전설의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수많은 전설의 추앙을 받으면서 한층 더 신격화 되었고····. 이제 와서는 정운의 스킬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서 눈앞에 있는 거대한 대게도 별것 아니었다. 말 그대로 큰 게딱지일 뿐···. -하앗!!!! 콰아아앙!! 태사자의 창날이 한 방에 대게의 복부를 찔러 넣었다. 대게는 그런 태사자의 창날에 뒤로 몇 걸음 밀리더니 그대로 벌러덩 뒤집혀 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55화 <오토 돌리기.> -죽어랏!!! 그리고 넘어진 대게에게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서 손견이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대게도 레벨이 100이 넘는 몹이라는 듯이 이름값은 했다. 커다란 집게 발을 휘둘러서 자신에게 공격이 닿기 전에 먼저 손견을 쳐내버린 것이다. 카아앙!!! -쳇····. 손견은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약간 아쉬운 듯이 물러났다. 대게는 그 틈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흐음···. 생각보다 강한 걸?’ 정운은 겉보기에는 쪄 먹었을 때 먹음직해 보이는 저 대게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때? 몇 명 더 소환해 줄까?”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손견과 태사자가 질색을 하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군. 둘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 대게를 향해서 돌격했다. 정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절대적인 복종을 선언한 무장들이다. 심지어는 그 오만하다고 전해지는 여포나 관우도 정운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운에게였다. 원래 자존심이라면 파우스트에게도 숙이지 않던 이들이 아닌가? 자신들이 무능해서 다른 이들이 더 나온다는 것은 몹시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한층 더 격렬하게 대게를 향해서 돌격했다. 콰앙!! 카카가각!!! 그들의 병장기와 대게의 집게 발이 서로 부딪히면서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대게는 두 개의 커다란 두 개의 집게 발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 놈이····. -빠득····. 죽여주마. 인간도 아니고 고작 커다란 게 따위가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상황이 둘에게는 상당한 짜증을 불러 온 것 같다. 둘의 무기가 이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화려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허공을 가르면서 그들의 무기가 빛살이 되어 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카카카카카카카!!! 이제는 공격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마치 쇠막대기를 분쇄기에 갈아 버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역시 진짜는 다른단 말이야···.” 정운은 이미 몇 번인가 보기는 했지만 고대 무장들의 무예에는 연신 감탄을 할 뿐이었다. 정운도 오랫동안 그라운드 제로에서 실전을 경험했고, 또한 세레나와 시련의 탑을 통해서 단련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고대 무장들의 무술을 볼 때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긴 이렇게 감탄을 하는 것 자체가 정운이 어느정도 안목이 생겼다는 증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저 둘은 좀 나은 정도다. 쉐도우 아미중에 가장 공격속도가 빠른건 조운인데···. 그 조운이 작정하고 창을 내지르면 집중력을 300%풀로 가동 시켜도 그저 섬광이 번뜩이는 것 밖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윽고 둘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대게의 집게발이 빈틈을 보였다. 손견의 대검이 집게 발의 연결 부위를 날려 버린 것을 시작으로 태사자의 장창이 놈의 눈을 찔렀다. “~~~~~~~~~.” 대게는 초음파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크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입에서 거품을 뿜어내더니 이내 그 거품속에 자기 몸을 숨겨 버렸다. “흐음···. 저건 저렇게 쓰는 건가?” ME의 정보에서 거품을 뿜어낸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거품으로 어떻게 적을 공격 할지 궁금했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거품은 공격용이 아니고 도주용 스킬이었던 모양이었다. -쳇···. 거기 서라!!! -이 망할 놈이·····. 거품은 그냥 시야만 가리는 거품이 아니라 어느정도 물리적인 저항감이 있는 것 같았다. 두 무장들이 거품을 연신 쳐내면서 전진했지만 저래서는 대게를 놓칠 것 같았다. 정운은 옆에 있는 슬기를 불렀다. “슬기야.” “예. 알았어요. 물에는 벼락이지···. 체인 레이트닝!!!” 파지지지직!!!! 슬기가 마법을 작렬 시키자 거품 속에 숨어있던 대게는 그대로 마법을 맞고 죾어 버렸다. 드러난 놈의 모습이 반쯤 땅에 묻혀 있던 것을 봐서는 아마도 땅을 파고 들어서 도망가려고 했던 것 같다. -주모께 수고를 끼쳐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둘은 슬기에게 다가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그런 예의 바른 둘의 말을 듣고 슬기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아니요. 파티 사냥에서 당연한 일인데요. 뭐····.” “그래··.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저 사람들은 이게 영 안 된단 말이야.” 정운은 슬기의 말을 들으면서 일단 둘을 돌려 보냈다. 슬슬 해도 지고 있고 해서 이제 돌아가려는 것이다. “세레나 간이 포탈 열어.”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세레나가 간이 포탈을 열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클리어를 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간 슬기와 세레나는 그날 해물 전골을 해 먹었다. 대게를 잡고 나온 아이템 중에 게맛살이라는 아이템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식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걸 이용해서 삶아서 전골을 끓여 먹으니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담백하면서도 아련한 단맛이 한입 깨물면 가득 베어 나오는 것이 정말로 진미라고 할 만 했다. 정운은 순간 이 놈을 좀 많이 잡을까? 중독 되겠는데?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쨌든 대게의 맛은 둘째 치고···, 일단 더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래···. 두 사람이 생각하기에 무장들의 실력은 어떻게 보여?” 밥을 먹으면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먼저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그라운드 제로에 적응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전의 저 같다고 해야 할까요?” “세레나의 말 대로에요. 아까전에 대게도 정운씨의 뇌천신공을 곁들였으면 금방 잡았을 텐데···. 굳이 힘으로 하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아메바를 잡을 때는 사용하길래 잘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두 사람의 감상은 정운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었다. 이 후한말의 무장들은 너무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정운의 경우 스킬이 전투 스타일의 80%를 좌지우지 하고 있을 정도로 스킬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무장들은 자신들의 무위이 자신감이 너무 강해서 스킬은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아메바의 경우는 아마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물리 타격으로는 아무리 때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였으니 뇌천신공을 사용했다. 하지만 대게는 어떤가? 그것도 뇌천신공을 사용했다면 더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형체가 있고 물리적으로 공방이 가능한 존재를 상대로 판명되자 무조건 힘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스킬을 사용하는게 분명이 더 편한데도 말이다. “아마도···. 과거의 저처럼 스킬이나 아이템에 의존하는 것은 자존심에 거슬리는 것인지도 모르죠.” 세레나의 말은 아마도 정답일 것이다. 정운 역시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레나의 경우는 스킬에는 거부감이 없었지만 과거에 아이템에 관해서는 거의 무신경할 정도였다. 그런것에 의존하는게 스스로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 이유였다. 무장이라기 보다는 성인인 세레나가 그 정도였다. 자존심 하나로 죽고 살고 하던 무장들의 경우에야 오죽할까? “세레나 당신의 경우도 고치는데 시간이 제법 거렸었지?”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필요성을 인식하고 제 생각을 고치는게···. 말로 하는 것 만큼 쉽지는 않더군요. 전 스스로 겸손한 성격이라고 생각 했는데 말이죠.” 세레나가 스스로 겸손한 성격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에 관해서 할 말이 좀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삼국 시대의 무장들에 비하면 자존심이라는 면에서는 그래도 많이 부드러운 편인게 틀림 없었다. 손견과 태사자가 저 정도였다. 관우나 여포 같은 타입들이 말로 한다고 들을 리가 없었다. “으음····. 걱정이네. 빨리 버릇을 제대로 잡아두지 않으면····.” 정운의 말에 슬기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혹시 필요성을 강제로 인식 시키면 어떨까요?” “강제로? ·····어떻게?” 정운이 흥미를 보이자 슬기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간단한 얘기죠, 뭐···. 스스로 한계를 알 수 있을 때까지 밀어 붙여 보는 거에요. 내일 사냥에는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정운씨의 쉐도우 아미만으로 한 번 사냥해 보게 하죠.” “아무것도? 세레나의 버프까지도?” “그래야 의미가 있을 걸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나쁘지 않은데?” “그렇죠? 어차피 쉐도우 아미라는 소환수 상태에 있는 이상은 죽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그런 슬기 네 말대로 해 보자.” 그렇게 해서 슬기는 자신을 깍듯하게 주모로 모시는 쉐도우 아미들을 위기로 몰아갈 사악한 생각을 꺼내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정운은 침대에서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아침 햇살이 슬기의 나신을 눈부시게 때리는 광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항상 슬기가 나보다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눈요기지····.’ 정운은 빙긋 웃으면서 슬기의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자태를 잠시 감상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보고 있다가는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일이라면 모를까? 오늘은 사냥을 나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힘 빠지게 해서는 곤란했다. 정운이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슬기도 눈을 뜨면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약간 부스스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예쁜걸 보아하니 정운도 단단히 콩깍지가 씌인 모양이다. “일어났어?” “예····. 오늘 사냥 가죠?” “그래. 씻고 준비해. 먼저 나가 있을게.” 정운은 살짝 슬기에게 키스하고 그대로 이동했다. 식탁에 가니 항상 부지런한 세레나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은 든든하게 먹는 주의였다. 원래는 빵과 소세지, 계란 프라이와 우유를 즐겨 먹었는데 그 양이 어느 남자 못지 않게 잘 먹었다. 그래도 부족할 때는 사과나 오렌지 같은 과일 한 두 개를 후식으로 곁들였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한식도 즐기기 시작했다. 세레나는 특히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물론 그녀의 성격상 본인이 김치찌개를 좋아한다고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전시에 태어나서 일까? 그녀는 음식을 가리는 습관을 부끄럽게 여기는 습관이 있었다. 보통 프랑스인 = 미식가 라는 약간의 편견 섞인 인식이 있던 정운으로서는 의외의 일이었다. 어쨌든 셋이서 아침을 먹고 다시 어제 갔던 장소에 이어서 사냥을 하기 위해서 나갔다. “그럼···. 오늘은 어제 정했던 대로 하는 거지?” “예. 그렇게 하죠.” “그럼···. 쉐도우 아미!!!” 정운은 시작부터 쉐도우 아미를 소환했다. 그것도 아홉기 전원을 소환한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믿음직스럽기는 했다. 여기서 쓸데없는 자존심만 없고 스킬만 조화롭게 사용 할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을 정도였다. “오늘 할 일은 자율적인 사냥이다.” 정운이 쉐도우 아미들을 향해서 명령하자 황충이 말했다. -주군의 말씀은 저희들 보고 알아서 주변을 토벌하고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런거지. 왜 겁나나?” 정운이 살짝 자존심을 긁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겁나냐고요? 아닙니다. 오히려 흥분으로 떨릴 정도입니다. -범위의 제약 없이 마음껏 날뛰고 오라고 명하신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모두 쓸어 버리고 오도록 하죠. ============================ 작품 후기 ============================ 오토 알바 돌리기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 알바들끼리 실적 경쟁까지... 주인공이 살짝 사악하게 보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56화 정운이 던진 한 마디에 무장들은 저마다 크게 흥분했다. 얼마나 노골적으로 흥분했는지 그들의 고양감이 정운에게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이런 결과는 좀 의외인데···. 혹시 내가 호랑이한테 술 먹인 것은 아니겠지?’ 정운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고대 무장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무용을 마음껏 떨칠 수 있는 기회는 곧 명예로 직결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지금 정운이 부리고 있는 장수들 중에서 가장 얌전한 성격이라고 알려진 조운. 그는 평생 사사로이 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인격자였으며 침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가 딱 한번 제갈량의 명령에 거부를 한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공명 출사표때의 일이었다. 당시 제갈량이 위나라 정벌을 위해서 대군을 이끌고 출정을 하려고 하는데 그때 제갈량은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조운을 정벌군에서 제외 시켰다. 당시 조운의 나이가 더 이상 젋다고 할 수 없어서 제외한 것이다. 그 사실을 들은 조운은 처음으로 항명을 하면서 제갈량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고 한다. 기록에는 제갈량의 앞에서 칼춤을 춰서 무위를 뽐내고 화살 세대를 한 번에 꺾어서 자신의 근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렸다고 한다. 제갈량도 그런 조운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정벌군에 조운의 출전을 허락했다고 한다. 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조운조차 그 정도라는 것은 후한말의 무장들에게 있어서 전투의 기회라는 것은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목마른 영예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쟁쟁한 무장들이 한꺼번에 출진한다면···. 그건 꿈에도 바라던 화려한 드림팀이 아닌가? -그럼 주군. 다녀 오겠습니다. -여기서 제 승전보를 기다려 주십시오. -누가 가장 많은 성과를 올릴지는 이미 정해져 있지. 이럇!!! -어림 없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무장들을 보고 정운은 순간 아차 싶었다. “아니 함께 팀으로 행동····. 아니 그냥 댁들 좋을 대로 하셔····.” 정운은 마지막에 김 빠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차피 자신들의 한계를 알게 하기 위해서 지시한 것이었다. 차라리 따로따로 행동하면 더 좋을 지도 몰랐다. 합동으로 전투를 하게 되면 스킬이 없다고 해도 여유있게 사냥에 성공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까?” 정운의 말에 슬기는 인벤토리에서 돗자리와 파라솔을 꺼내면서 말했다. “혹시나 해서 가져 왔어요.” “·····그래. 까짓것.” 언제 어디서 몹이 나올지 모르지만 까짓것 아무렴 어떠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운은 돗자리를 펴고 파라솔을 펼쳤다. 그리고 어느새 세레나가 한쪽에 간이 탈의실을 만든느 것까지 봤다. “·····세레나 당신까지···?”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이기도 하고····.” “···········.” 많이 뻔뻔스러워 졌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라는 아름다운 미녀들과 함께 해변의 바캉스를 즐기고 있을 무렵···. 쉐도우 아미의 몸을 가지고 있는 아홉기의 무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 밖에는 없었다. 더 많은 전공(사냥)을 올려서 큰 전과(골드와 경험치)를 주군에게 바치는 것. 정말 그것 하나 뿐이었다. 원래 고대의 장수들은 전공 = 은상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그런 개념을 초월해 버렸다. 생전에도 별로 은상에 연연하지 않는 무장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은상에는 초연해져 버렸다. 애당초···. 은상으로 뭘 받겠다는 것인가? 쉐도우 아미의 몸을 빌렸기는 했지만 이미 입는 것 먹는 것 무엇 하나 필요 없는 몸이다. 이런 몸으로 금은보화니 비단이니 받아서 어디다 써 먹겠는가? 결국 한번 죽은 몸인 그들이 바라는 정운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순수한 상찬과 이 게임이 클리어 되었을 때 파우스트로부터의 자유뿐이었다. 뭐··. 그것 말고 다른 여덟보다 앞장서서 많은 정공을 올리고 싶다는 경쟁 심리도 약간은 작용했지만 말이다. -찾았다!!! 말을 달려서 해변의 자락에 도착한 장비는 거대한 대게를 발견했다. -흥, 저런 것 하나 잡는데 둘이서 덤벼? 한심한 놈들···. 평소에 쉐도우 아미들은 정운의 영혼의 안에 귀속 되어 있는데···. 그 안에 자신들이 지낼 공간이랄까? 가상의 심상 풍경 같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어제 손견과 태사자가 자신들 둘이서 대게를 잡았다는 전공을 다른 이들에게 자랑했다. 사실 마지막에 놓칠 뻔 한 것을 슬기가 마무리 지었지만 이들에게 있어서는 잡고 못잡고를 떠나서 이겼느냐? 졌느냐? 도 충분히 전공의 일부로 삼을만 했다. 그래서 자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꽤나 심기가 불편했던 장비였다. 원래 아홉명 중에서 성질머리 하면 자기보다 더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자부(?)하는 장비가 아니던가?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장비는 크게 목청을 터트리면서 대게에게 달려갔다. 손견과 태사자 둘이서 쓰러트렸던 놈을 자신은 혼자서 싸워서 이기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콰아아앙!!! 그리고 장비의 장팔사모와 대게의 집게 발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시작했네.” “응? 뭐가요?” 정운은 현재 수영복을 입은 슬기의 피부에 선 오일을 발라주고 있었다. 참 팔자 좋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만···. 어쨌든 어쩌겠는가? 부하가 뺑이 칠 때 상사는 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든 통하는 진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 것을···. “전투가 시작했어. 장비하고···, 조운, 그리고 전위까지 세 명인가?” “헤에···. 그게 떨어져도 캐치가 되요?” “응. 어차피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육신은 내가 스킬로 만들어준 것이니까···. 정신을 집중하면 1인칭으로 보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그래서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데요?” “···············.” “정운씨?” “아아··. 미안. 잠깐 정신 좀 집중하느라고···. 쯧, 생각보다는 잘 하네···.” 정운의 말에 슬기는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그럼 좋은 것 아닌가요?” “아니···. 오늘은 사냥 그 자체 보다는 이번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스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게 주 목적이었잖아?” “아···. 그랬죠.” 슬기는 자기 등을 누비는 정운의 손길을 느끼면서 기분 좋은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어째···. ‘우리 주 목적은 해변에서 하루 쉬는 거에요?’ 라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에이 설마요····. 주변에 칼 같이 호위도 세워 놨잖아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주변을 가리켰다. 확실히 지금 정운의 일행의 주변에는 슬기가 소환해둔 극염랑이 열 마리가 순찰을 돌 듯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것도 그림이 되는데?’ 정운은 문득 슬기의 수영복은 처음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몸도 본 사이였지만 수영복은 처음 본다는 것은 참 의외였다. 다만···. 옆구리 부분이 시원하게 트인 붉은색 원피스에 주작의 스태프를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신선한 매력을 주고 있었다. 붉은색 패션 수영복을 입은 여마법사. 어쩐지 판타지 게임의 화보 같은것에 잘 나올 상황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 슬기와 마찬가지로 정운에게 처음으로 수영복을 보이는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세레나였다. 세레나는 흰색의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상 수영복을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고, 심지어 비키니를 입을 것이라고는 더욱더 생각하지 못했던 정운이엇다. 그리고 그런 캡의 차이가 정운에게는 한층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 비키니라고 해도 무척 수수한 디자인의 비키니였다. 그저 흰색에 아무런 장식도 무늬도 없는 그런 비키니였다. 이런 비키니면 사실 어지간한 원피스 보다 더 얌전하게 보이거나, 혹은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역시 옷이 무엇이든 간에 원판의 차이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수수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세레나의 화사한 미모는 그 수수한 수영복을 최신 화보로 만들었다. 정말로 잡지에서 모델이 튀어나와서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운이 몸매 자체가 너무 완벽해서 더하고 빼고 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그녀였다. 웃기는 것은 정작 수영복은 준비했지만 바다에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안전한 해변이라면 몰라도 바다 속에서 어떤 적이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지 않은가? 필드에서 바캉스를 연출할 정도로 대범해진 슬기와 세레나라고 해도 바다속으로 들어갈 배짱은 없었다. 그건 배짱이 아니라 그냥 만용이다. ‘뭐···. 눈에는 영향이 가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고전하는 걸?’ 정운은 자신과 감각이 연결된 쉐도우 아미들을 통해서 무장들이 싸우는 것을 바로 자신이 싸우는 것처럼 감상 할 수 있었다. 어느새 아홉 기의 장수들 전원이 전투를 시작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대게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여포만 다른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ME가 없어서 몹의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여포가 상대하고 있는 몹은 마치 망둥이 같은 얼굴에 비늘이 꼼꼼하게 달린 어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장은 삼지창으로 통일되어 있었는데···. 그 숫자가 상당했다. ‘여럿이서 활동하는 몹이다 이건가? 이거 잘하면 여포는 역 소환 되겠는걸?’ 정운은 여포가 물고기 인간들을 상대로 돌격하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저렇게 무턱대고 돌격해서는 곤란했다. 몹에 포위 당한 순간 등 뒤를 지켜줄 동료도 없는 상황에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으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정운의 이런 우려를 우습다는 듯이 여포는 크게 고함을 지르며 놈들을 헤쳐 나갔다. 콰콰콰콰콰!!!! 과연 여포 라고 해야 할까? 해변의 모래밭이 여포가 달려간 후에는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파괴 되어갔다. 물고기 인간들이 그런 여포를 잡기 위해서 무기를 뻗어봐도 누구 하나 닿는 자 조차 없었다. 한 자루 화극을 귀신처럼 다루면서 사방을 유린하기 시작하는데 실로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과연···. 이러니 생전에는 그 격동의 시대에서도 최강이라는 이름을 쟁취 할 수 있었겠지.” 후한 말, 흔히 삼국 시대라고 하는 이 시대는 의외로 엉터리 역사가 많다. 워낙에 격동기였고 남아있는 기록 자체를 뒤틀어서 왜곡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역사가들이 공통으로 남기는 자료들도 있기는 있다. 그 중에서도 여포에 대한 무위는 정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일개 장수로 있을 때도 동탁의 오른팔로서 그 명성을 날렸고 스스로 군주가 되고 나서도 이렇다 할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무력 하나만으로 천하를 누볐다. 흔히 소설 속에서 난폭하고 아둔한 이미지로 종종 묘사되고는 하는데···. 그건 변방 출신인 여포를 깎아 내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얘기들이라는 설이 많다. 여포의 무위를 직접 경험해 보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그가 왜 무적이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다른 무장들도 대단했지만 여포는 그 중에서도 차원이 한 단계 다른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후한말의 삼국 시대가 아니라 그라운드 제로라는 것을 알아야 해. 안 그러면 큰일 나지.” 정운은 여포가 무쌍닥돌을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중얼 거렸다. 그리고 마침 그런 정운의 말이 증명되기 시작했다. -큭···. 이 놈들이····. 여포의 화극이 조금씩 어지러워 지기 시작했다. 물고기 인간들의 삼지창이 조금씩이지만 여포의 몸을 스치기 시작한 것이다. 후한말의 전쟁터와 그라운드 제로의 사냥터. 정운의 말 대로 그 두 가지의 차이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이 적일 경우 여포가 화극으로 베고 찌르면 보통 죽거나 하다못해 어디 한 군데 못 쓰게 되기라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인간이 상대가 아니라 몹이 상대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57화 몹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 그것은 바로 일격 필살이 가능한가? 불가능 한가? 에 있었다. 몹들의 경우는 각각 체력 게이지라는 것이 있어서 그게 다 떨어지기 전에는 베고 찔러도 죽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는다. 이따금씩 크리티컬 대미지나 급소 크리티컬이 터질 때가 있기는 있지만 그게 마냥 펑펑 터질리는 없지 않은가? 지금 여포는 자신의 화극에 맞고도 끈질기에 덤벼오는 물고기 인간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 놈들이···. 감히!!!!! 여포는 이를 뿌드득 갈면서 화극의 끝 부분을 잡고 한 손으로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퍽!!! “호오오·····.” 정운은 여포의 신위를 보고 크게 감탄했다. 저 무거운 무기의 가장 들기 힘든 끝 부분을 잡고 마치 가벼운 갈대를 휘두르는 것처럼 가볍게 휘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운씨? 아까부터 혼자서 뭐 보는 거에요?” “으음···. 혼자 보기는 아까운 것?” 정운은 슬기의 말에 그렇게 대꾸하면서 계속해서 여포의 무위를 감상했다. 스킬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무력만으로 거의 스킬에 버금가는 효과를 발휘하는 무술이라니···. 마치 보고 있으니 ‘인간이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파워가 뒤 따라 가기 힘들다. “흠····. 그만 고집 부리고 뇌천신공을 곁들이면 금방···. 어?”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누군가가 정운의 정신력을 약간 소모시켰다. 스킬을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누구지···? 헤에. 의외인걸?” 가장 먼저 자존심을 버리고 스킬을 사용한 무장. 그의 이름은 바로 마초였다. 마초는 다른 무장들처럼 대게를 상대로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역시 다른 무장들과 같이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오로지 힘만으로 싸웠다. 마초의 창술은 확실히 대단했다. 명문가의 출신이라서 그런지 다른 장수들 보다 기술에서 훨씬 더 절도 있는 느낌이 났다. 마치 이게 바로 정통 창술의 극한이다. 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느낌···. 하지만 그런 마초도 대게를 잡는 것에는 실패했다. 집게 발을 자르는 것 까지는 성공 했지만 그 후에 놈이 게거품을 뿜어내면서 도망가 버리는 통에 실패한 것이다. 그런 과정으로 두 번이나 대게를 잡는 것에 실패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마초는 다음 대게를 만났을 때 훨씬 더 격하게 몰아 붙였다. 이번에는 거품을 뿜어내고 도망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격하게 몰아 붙였다. 하지만 조급함은 마초의 무술의 최대 장점인 절도에 미묘한 균열이 나게 만들었다. 마초의 창끝이 살짝 무뎌진 그 틈을 타고 대게의 집게발이 날아왔다. -큭······. 카아앙!!! 마초는 다급함에 창을 들어서 막았지만 강한 일격을 먹고 말았다. 창졸지간에 당한 강한 일격에 마초는 그만 말에서 떨어졌고 그런 마초를 끝장내기 위해서 대게가 달려 들었다. 그 순간···. 마초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쉐도우 월!!! 퍼어엉!!! 다가오던 대게는 마초가 펼친 그림자의 방어벽에 그대로 부딪혀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마초는 그 틈에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마초는 속으로 갈등했다. 그러다가····. -이 스킬이라는 것도···. 주군이 나에게 내려주신 은혜. 그렇다면····. 사용 하는게 도리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한 순간 마초의 몸에 황금빛 전류가 흘렀다. -뇌천신공!! ·····자, 이제 끝장을 보자.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대게를 향해서 한 마리의 성난 사자처럼 달려갔다. 그리고···. 그때 부터는 일사 천리였다. 대게는 마초의 창을 열 번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과연, 주군이 우리를 따로따로 경쟁을 시킨 것은 이것을 깨달으라는 말이었나? 마초는 가장 먼저 정운이 의도한 바를 깨달았다. 확실히 자신도 이렇게 필요성을 격하게 느껴보지 않았다면 스킬이라는 것을 그냥 요사스러운 잡술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정운이 상황에 맞춰서 사용하라고 하면 그 명령에는 복종하겠지만···. 스킬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주군의 뜻을 알았으니 됐다. 다른 장수들이 자존심에 굴종하고 있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전공을 올려야 겠군. 그래야 그들에게도 자극이 될 거야. 마초는 정확하게 정운이 의도한 바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마초는 무장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냥감을 잡았다. 시간이 다 되고 해질녘이 되었다. “으음···. 잘 놀았다.” “엄밀히 말해서 놀러 온 것은 아닌데 말이야···.” “뭐 어때요? 가끔씩은 이런 것도 좋잖아요?” 슬기는 정운에게 팔짱을 끼고 해변으로 태양이 저무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바다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석양의 붉은 빛이 은은하게 녹아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크흠···. 확실히 아름 답군요.” 그리고 그런 정운의 반대쪽에는 세레나 역시 팔짱은 못 끼고 있었지만 정운의 옆에 자기도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운이 아름다운 여자들과 함께 석양을 다 감상할 무렵···. -주군. 지금 귀환했습니다. “음···. 수고 했어.” 가장 먼저 황충이 돌아온 것을 기점으로 해서 하나 둘 씩 무장들이 귀환하기 시작했다. 무장들이 다 돌아오자 정운은 그들을 모아두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대단하군. 생각보다 훨씬 더 잘했어.” 정운의 말에 대부분의 무장들은 심각한 수치심을 느꼈다. 만약 이들이 쉐도우 아미라는 그림자 장수의 상태가 아니라면 얼굴이 석양처럼 붉어졌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주군···. 생각보다 많은 전공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벌을 내려 주십시오. -벌을 내려 주십시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이 와중에 찌질하게 변명하지 않고 차라리 벌을 내려 달라고 하는 것은···. 뭐, 답다면 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정말로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난 사실 오늘 안에 반 정도는 죽어서 나에게 역 소환 당할 거라고 생각했었지.” -··········. -··········. -··········. 정운의 말에 무장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까지 생각했단 말인가? 라는 푸념이 절로 들었다. “특히 여포의 경우 중간에 상당히 위엄했는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빠져 나오는 것에 성공까지 했고 말이야.” -면목 없습니다. 여포는 중간에 물고기 인간들에게 잡혀서 거의 죽을 위기에 처했었지만 막판에 저력을 발휘해서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피하는 것에 성공했다. 뭐···. 덕분에 전과는 가장 적었지만 말이다. 정운은 무장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대부분 대게 한 두 마리 잡는게 다였는데···. 이 중에 딱 한명 대게를 여덟 마리나 잡은 사람이 있다.” 정운의 말에 무장들은 순간 서로를 돌아 보면서 누가 그랬는지를 찾았다. 물론 그들이 찾기 전에 정운이 먼저 이름을 호명 했지만 말이다. “마초, 앞으로 나와라.” -예. 주군. 마초는 다른 장수들에게 여 보란 듯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수고 많았다. 앞으로도 많은 활약을 기대한다.” -감사합니다. 주군. 정운이 직접 마초를 치하했고···. 그런 둘의 분위기 속에서 다른 장수들은 은연중에 경쟁심을 느꼈다. 이들 모두 생전에 마초보다 더한 전과를 올린 자들이 상당했다. 사실 마초의 경우 서량에서 조조와 싸우던 시절이 전성기였고, 유비 밑으로 들어온 이후로는 이렇다 할 전과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초가 가장 많은 활약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그들은 과연 마초가 무슨 수를 썼는지 궁금해 했다. 정운은 딱히 말로 하지 않아도 그런 눈치가 자연 스럽게 생성 되고 있는 분위기에 만족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내일 다시 한 번 개인적으로 토벌을 허락 하겠다. 그때까지 자신에게 뭐가 부족했는지 잘 생각해 보도록. 이상.”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은 쉐도우 아미들을 역소환 시켰다. 이제 저들이 안에서 알아서 지지고 볶으면서 뭔가 답을 도출해 낼 것이다.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지간하면 그런 고집을 부리기 보다는 그냥 스킬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했다. “그럼, 우리도 갈까?” “예. 정운씨.”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그렇게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함께 집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다음날···. 집에서 준비를 마치고 간이 포탈을 통해서 어제 사냥을 했던 해변으로 다시 나온 정운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장수들에게 같은 명령을 한 번 더 내렸다. “어제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째는 더 쉬울 것이다. 모두 분발 하도록.” -예. 주군!!! -예. 주군!!! -예. 주군!!! 쉐도우 아미들은 그렇게 일제히 부복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럼···. 오늘은 우리도 탐색이나 할까?” “예. 그렇게 해요.” 정운은 쉐도우 아미들을 따로 흩어지게 해 놓고 자신은 슬기와 세레나를 대동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단순한 사냥은 쉐도우 아미들을 오토 돌려서 경험치와 보상을 얻고 자신은 슬기와 세레나들과 함께 퀘스트 돌파에 주력한다. 이게 정운이 당초에 세운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만약에 퀘스트 시에 전투력의 전력을 투입할 필요성이 생기면···. 그때 다른 쉐도우 아미를 자신이 있는 쪽으로 소환 해도 충분하다. 이미 실험해본 결과 그게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다른 쉐도우 아미들을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슬기는 그래도 약간 걱정이 되는지 정운에게 우려의 말을 했다. 하지만 정운은 괜찮다는 듯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어차피 내가 지켜본다고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어제 한 번 해봤으니 자신들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있을 거야. 잘 하겠지.” “그건 그렇지만 전 다른 의미로 걱정 됩니다. 마스터.” 정운의 말에 세레나가 의문을 달았다. “다른 의미? 무슨 의미로 말하는 거야?” “그들이 소환하고 스킬을 사용 할 때 그들은 마스터의 정신력을 소모해서 싸우는 거죠?” “그렇지. 일단 내 스킬이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지금 마스터께서는 쉐도우 아미를 제외하고도 일신의 전투력을 완전히 발휘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세레나의 말은 상당히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정운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뭐···. 조금은 떨어지겠지. 사실 얼마나 떨어질 지는 잘 몰라. 장기간 전투는 좀 힘들까나?”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신력이라는 것은 스테이터스에 수치로 나오는 힘이나 마력과는 다른 것이다. 그 스킬을 유지하고 사용하기 위한 말 그대로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력이다. 보통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초보 유저들이 종종 착각 하는게 있다. 이 정신력이라는 것도 힘이나 마력, 민첩 처럼 레벨이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올라 갈 것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이 정신력이야 말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사이에서 1류와 2류를 가르는 중요한 장벽이다. 스킬을 얼마나 많이 사용 할 수 있느냐? 라는 것은 전투 중에 화력으로 바로 직결된다. 즉 같은 레벨이라고 정신력이 뛰어난 자는 더 많은 스킬을 사용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레벨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는 수밖에 없다. 현실에 보면 쌀알에 글자를 새기는 기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런 현기증 나는 작업을 처음부터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집중력을 올리고 그렇게 집중력이 단련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독자 분들 중에 작품 초반에 나왔던 캐릭터 스테이터스나 아이템 창을 다 보여달라는 분이 계신데... 사실 지금 설정이 굉장히 많이 불어났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걸 본지에 적으면 그것만으로 한 화는 가뿐하게 넘을 겁니다. 아마 그렇게 했다면 많은 분들이 드디어 이놈의 작가가 미쳐서 날로 먹으려고 하는 구나. 라고 생각 하실 테죠^^;;;; 따로 설정을 정해서 올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워낙에 너무 자주 업데이트가 되는 설정이다 보니 그냥 지금은 공개를 안 하겠습니다. 나중에 다 완결되면 그때나 한 번 총정리를 해서 공개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58화 <해저 던전.>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신력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력이다. 그것 만큼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게임의 시스템으로 단련 되는게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수도 없이 많은 수라장을 거치면서 스스로 단련되어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십왕이나 정운 정도의 수준이 되면··. 이미 일반인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운이라고 해도 기마장군 아홉기를 오토로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전력을 모두 발휘 할 수 있을리는 없다. 세레나는 어서 똑바로 말하라는 듯이 정운을 채근했고, 그 옆에서 슬기도 난 지금은 세레나 편이야. 어서 불어요. 라는 듯한 시선으로 정운을 바라봤다. “으음····. 아마도 50%정도··. 아니 좀 더 많이 잡으면 70% 정도는 될 거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전위는 제가 하고 마스터께서는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하면서 후위를 맡아 주십시오.”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아니요. 일단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건 경험치의 분배에 관한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습니다.” “아아···. 뭐 그렇다면야···.” 결국 경험치의 분배까지 얘기가 나오자 정운도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정운의 경우 지금 이 순간도 아홉 기의 기마장수들이 경험치를 차곡차곡 몰아주고 있지 않은가? 잠깐 정신을 집중해 보니 이번에는 모두 스킬을 사용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마초의 일이 제대로 자극제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저기에 팀 플레이까지 익히면 더 할 나위가 없을 텐데···. 뭐, 차근차근 가는 거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얌전하게 슬기와 세레나의 뒤를 따라갔다. 탐색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대게를 비롯해서 어제 여포를 고전 시켰던 물고기 인간들 까지 상대해 봤지만 별로 어려울 것은 없었다. 세레나가 전방에서 탄탄하게 방어를 맡고 그 뒤에서 정운이 쉴새없이 원거리 공격을 날리면서 적을 몰아 붙였다. 그리고 한 방 한 방 강렬하게 터지는 슬기의 마법으로 인한 결정적인 대미지···. 사실 이들 삼인 파티라면 이게 최고의 형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참고로 이제가지 물고기 인간이라고 불렀던 놈들을 봤을 때 일단 ME로 찍어서 정보를 알아봤다. 머메인맨 LV. 100~110 [삼지창을 무기로 쓰는 남성 인어. 포악한 성격을 하고 있으며 무리를 이뤄서 행동한다. 상당히 난폭해서 적을 발견하면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해도 물러나지 않고 흉폭하게 덤빈다.] 사실 무리로 이뤄서 움직인다. 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것 아닌 놈이었다. 어쨌든 정운의 팀의 탐색은 순조로웠다. 해변 지역을 끝에서 끝까지 완전히 주파하면서 상당한 사냥을 했고, 마침내 해변 지역을 모두 순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찾고 있는 퀘스트 플레그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 한걸···? 이 정도의 지역인데 하나도 없다니?” 정운의 말에 슬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먼저 채갔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개도 안 남았다는 것은 좀·····.” 69층은 전인미답의 지역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퀘스트가 다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상층에 가장 먼저 올라왔을 때 가장 좋은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퀘스트를 발견해서 먼저 클리어하는 것. 보통의 게임과 달리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그대로 그 퀘스트 포인트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 층에 퀘스트 포인트를 찾는게 어려운 이유도 그래서였다. 먼저 손을 대고 지나간 사람들이 있으니 좀처럼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뭐, 나중에 랜덤하게 생성되는 퀘스트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압도적으로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찾는다고 해도 경쟁률은 더욱더 거세고 말이다. 그러니 미답지인 69층에 왔을 때는 일단 퀘스트 탐색부터 하는게 당연한 순리인 것이다. 그런데 한 지역을 통째로 탐색했는데 퀘스트 포인트가 하나도 발견 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정운과 슬기가 고민에 빠지자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세레나가 나섰다. “혹시··. 해변 지역에 없다면 저기 바다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다 속? 설마 저기에?” “예.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위험하기 때문에 저런 곳에 퀘스트 포인트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으음····. 일리는 있군.” 정운은 일단 세레나의 말에 동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미처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바다속에 들어가는게 위험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흐음···. 그래도 직접 들어가기는 좀 위험해. 어디 보자·····. 조운, 태사자!!” 정운은 두기의 쉐도우 아미를 자신에게로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음, 잠시 시킬일이 있어서 말이야.” 정운이 이 둘을 부른 것은 별 다른 이유가 아니다. 다른 장수들은 모두 전투중이었는데 이 둘은 전투를 마치고 다음 사냥감을 찾아서 이동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둘에게 정운이 명령을 내렸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탐색을 해라. 전투 보다는 정찰이 주목적이다.”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그렇게 두 기의 장수들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뭔가 수확이 있을 까요?” “글쎄? 하지만 저 둘이라면 호흡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바다 속을 탐색하는 것에는 최고일 거야.” “그렇군요····.” 정운은 두 기의 정찰을 보내놓고 한 시간 정도 바다 가에서 기다렸다. ‘마냥 기다리는 것도 좀 지루한데···.’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바다 속에서 둘이 올라왔다. -주군. 바다 속에 특이한 문을 하나 발견 했습니다. “문?” 정운은 드디어 플레그 포인트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바다 속에 있는 문이라면 역시 던전일 가능성이 크다. “문이라···. 열어 봤나?” -시도는 해 봤지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알았다. 일단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정운은 두 장수를 돌려 보내고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문의 위치로 다가갈게. 그러니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마스터 혼자서는 보낼 수 없습니다.” 세레나가 정운의 지시에 반항했다. 이 의외의 반항에 정운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정운에게 세레나의 말이 이어졌다. “마스터, 상황을 파악해 주십시오. 지금 마스터의 전력은 평소의 반 정도로라고 스스로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마스터께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레나의 말에 슬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세레나의 의견이 맞아요. 평소의 정운씨하고는 다르잖아요? 우리가 함께 가든가? 아니면 쉐도우 아미들도 잠깐 돌려서 정신력을 회복하고 가는게 좋겠어요.” “으음····. 그건 그렇지만·····.” 정운도 슬기와 세레나의 의견이 맞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이제까지 쭉 앞장서서 둘을 보호하던 버릇이 있어 놓으니 역시 그 위치에서 쉽게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마냥 무시하고 억지를 부리기에는 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알았어. 그럼 모두 함께 이동하자.” 그렇게 해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해저에 발견한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의 입구에 가기 위해서 바닷속에 들어가는 방식은 슬기에게 일임했다. 일행을 중심으로 지름 10미터 정도의 방어막을 만들고 거기에 사방에 라이트 마법을 써서 주변을 밝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해저로 들어가니···. “호오, 이건 또 뜻밖의 절경인걸?” “······멋지군요.” 해저에 들어오니 아름다운 산호초들과 아기자기한 물고기들이 해엄치는 광경이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TV나 수족관으로 봐서 바다 속이 이렇게 생겼다. 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것과 직접 눈으로 이 감동을 지켜보는 것에는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었다. 정운은 물론이고 슬기와 세레나 역시 크게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마치 인어가 바다 속의 풍경을 관람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흠···. 해저 관람도 멋지기는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던전으로 먼저 가자.” “알았어요. 방향은 정운씨가 안내해 줘요.” “알겠어. 저쪽···. 저기 서쪽으로 좀 더 가서···. 그래 이 방향으로 쭉 내려가. 대각선으로 쭈욱.” 정운의 내비게이션에 따라서 슬기는 이동했다. 해저로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광경은 사라져 갔고 대신에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몹이라도 나오면 좀 골치 아프겠는데?’ 물속에서의 전투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다. 한다면 뇌천신공으로 바싹 구워 버리겠다. 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공격 자체를 받지 않는게 최선이었다. “으음···. 저건가?” 3분 정도를 내려가자 그림자 장수들이 발견했다는 던전의 문을 찾았다. 그렇게 깊은 심해는 아니고 비교적 얕은 해저 부분에 있는 던전이었기에 찾기는 쉬웠다. 바다 속을 탐험 한다. 라는 생각만 하면 말이다. “문 한번 되게 크네.” 정운은 높이가 10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문 앞에 서서 중얼 거렸다. “이 안에 들어있는 몹도 이만큼 크다는 걸까요?” 정운의 말에 슬기가 대답했다. “음···. 있을 수 있지. 보통 퀘스트에 나오는 보스 몹들은 대부분 한 덩치 하니까 말이야.” 사실 그렇게 덩치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 차라리 싸우기는 편했다. 덩치가 크던 작던 어차피 보스몹인 이상 어느정도의 강력함은 있을게 뻔하니 말이다. “아까는 안 열렸다고 했지?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한 번 두들겨 볼까?”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문에 손을 살짝 대자···. 끼이익····.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그 문안에서 강렬한 빛이 터졌다. “앗!!! 이건····?” 정운은 문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순간 깨달았다. 이건 함정이다. 문에 유저가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적으로 그 문안으로 사람을 끌어 들이는 타입인 것이다. ‘아까 그림자 장수들이 멀쩡 했던 이유는 쉐도우 아미들이 스킬이지 유저가 아니었기 때문이야. 제길···. 아직 곤란한데··.’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이미 정운과 슬기들은 그 던전의 빛무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행을 다 집어 삼킨 던전의 문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닫힌 상태로 돌아갔다. 해저에는 다시 컴컴한 어둠과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으음····. 제길. 하필이면 이런 타입이었을 줄이야?” 잠시 정신을 잃었던 정운은 투덜거리면서 눈을 떴다. 어차피 공략할 생각이었기는 하지만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빨려 들어갈 줄은 몰랐다. ‘제길···. 좀 찝찝한데?’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옆을 돌아보니 슬기와 세레나 역시 쓰러져 있었다. “슬기야. 세레나.” 정운은 그녀들에게 다가가서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쓰러져 있던 두 사람들도 서서히 눈을 떴다. “정운씨···. 여기는?” “던전의 안이야.” “함정 이었군요····.” 슬기와 세레나도 이제는 정운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지 않아도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렇게 예정에 없었던 던전에 갑작 스럽게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컨디션은 어때?” “괜찮습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하군요.” “저도 괜찮아요. 정운씨는 어때요?” 그녀들은 오히려 정운을 걱정했다. “흐음··. 쉐도우 아미들은 모두 역소환 당한 상태고···. 나도 괜찮아.”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두 사람을 안심 시켰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던전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 상황의 체크였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59화 지금 어느 정도의 여력이 있는지? 앞으로 싸울 수 있기는 있는지? 그것을 파악하고 상황 여부에 따라서는 온전히 회복에만 힘을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다행이도 일행은 모두 무사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골치네. 세레나 간이 포탈을 열어봐.” “예······. 안 되는군요.” “역시나···. 들어온 이상 무조건 클리어해야 한다 이거지?” ‘귀찮게 됐군····.’ 겉으로는 덤덤한 듯한 정운이었지만 속으로 푸념을 늘어 놓고 있었다. 사실 간이 포탈을 열어보라고 말 하면서도 별로 열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런 던전의 경우는 일종의 함정의 역할도 같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니 일단 한 번 들어오면 던전을 완전히 클리어 하기 전에는 빠져 나가는 것도 불가능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모두 정신 바짝 차려. 전진한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예. 정운씨.” 두 여성은 다부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훌륭한 모험자의 얼굴 같은 그녀들을 보면서 정운은 정말 믿음직해 졌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레나는 그렇다 치고···. 사실 슬기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크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물론 그런 생각을 속으로만 해야 했다. 겉으로 말 했다가는 슬기가 많이 섭섭해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정운의 팀은 던전의 안쪽으로 향해 갔다. 이제 와서야 라는 상황이었지만 던전의 구조는 전형적인 외길이었다. 주변은 말끔하게 정형된 벽돌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석벽에 이따금씩 횃불과 조각들도 모였다. 조각은 주로 바다 생물들을 조각했는데···. 아마도 이 던전의 특성이 바다 라는 테마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놈이 적일까? 설마 수중에서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 하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정운은 오만가지 상황에 대한 생각을 다 하면서 천천히 전진했다. 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렇다 할 적이나 함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편한 전진도 여기까지. 드디어 정운의 눈앞에 커다란 문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부터라 이거지···. 어쩔까? 관문형 던전? 아니면 이것도 함정? 설마 바로 보스몹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겠지?” 생각 해 볼 수 있는 상황은 다 생각해 보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사실 무슨 생각을 다 가정한다 하더라도 별 의미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을 테니 말이다. “후우···. 그럼 간다. 모두 전투 준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마스터.” “예. 정운씨.” 각오를 다지고 정운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을 살펴보고 정운은 경악했다. 그 안에는 정운이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수가····. 형님 뭐해요?” “어···? 어어? 너희들 여기 어떻게 왔어.” 그 안에는 한중겸이 어떤 미모의 여성과 키스하고 있었다. 누가 그런 광경을 상상이나 했을까? 중요한 문제니까 한 번 더 그리고 좀 더 디테일하게 지적하겠다. 정운이 문을 열었을 때 한중겸이 어떤 미모의 여성과 키스를 하고 있었다. 둘은 몸을 커다란 로브로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드러난 어깨를 봐서는 알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정운의 등장으로 인해서 한중겸은 크게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얼굴을 황급하게 돌린 여성은 정운에게 외쳤다. “고개 돌려!!! 뭘 빤히 보는 거야!!?” “그 목소리는···. 민지 누님?” 정운은 이제 진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찌되었든···. 저 커플들이 옷을 입기 위해서는 잠시 자리를 비켜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우리는 묻 닫고 나갑니다. 끝나면 불러요.” 정운이 그렇게 문을 닫고 나가는 길에 뒤에서 한중겸이 외쳤다. “야 인마!! 뭐가 끝나면 불러야!? 이미 진작 끝났··· 으윽···.” “이 멍청이가····. 애들한테 뭘 말하는 거야!!?” 정운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옷 입고 얘기 하자고요.” 그리고 정운은 문을 닫고 나갔다. 약 10분 후····. 옷을 다 입은 한중겸과 이민지는 정운들을 눈 앞에 두고 몹시 어색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뭐, 이민지의 경우는 가면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분위기 상으로 어쩐지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먼저 말 문을 연 것은 한중겸이었다. 그는 몹시 어색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녀서 말했다. “크흠····. 그래, 너희들도 여기 왔냐?” “············.” “나 정말 깜짝 놀랐지 뭐냐? 바다 속에 던전을 발견한 것은 좋은데···. 이야. 다가가니까 안으로 갑자기 쑥 빨아 들여서 말이지.” “············.” “일단 첫 번째 관문은 클리어는 했는데····. 이 앞으로 나가기를 좀 망설이고 있었지. 그러던 차에 너희들이 왔으니 잘 된 거지.” “·············.” “·············.” “뭐라고 말 좀 하지?” “둘이 언제부터 사귀었는데요?” “그거 말고 다른 말.”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바로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뜻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둘이 언제부터 사귀었는데요?” 얼굴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똑같은 말을 하는 정운을 보고 한중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시비 거는 거지!!?”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어디 있어요!!!?” 정운은 그런 한중겸에게 오히려 성을 냈다.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정운과 한중겸은 형님 동생의 인연은 잠시 접어두고 서로 멱살을 잡으면서 한 판 붙을 기세일때···. 슬기와 세레나는 오로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민지를 바라볼 뿐이엇다. 정말이지 한중겸의 경우는 좀 나았다. 이민지의 경우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지만 평소 동생들로 있던 슬기와 세레나의 시선에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광경을 들킨게 몹시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러면서 막상 변명을 하면 뭔가 더 꼬일것만 같고···. 결국 말없이 얼굴의 홍조와 온도만 올리고 있었다. “애들아·····. 우리 던전 공략에 집중하자.” “싫은데요.” 이민지가 간심히 어렵게 꺼낸 말에 정운은 단박에 거절했다. 능글맞게 웃고 있는 정운의 얼굴은 누가 봐도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 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운은 이민지의 고개를 푸욱 숙이게 만들어 놓고 한중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민지 누님 얼굴은 처음 봤는데 엄청 미인이네요. 중겸이 형님이 반한 것도 이해가 가기는 가네요.” “그건 그렇지? 아니 그게 아니라····. 던전 공략에 집중하자니까? 이것 보다 더 중요한게 어디 있어?” “여기 있네요.” “너 진짜 한 판 붙을 래!!?” 한중겸은 여차하면 이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소환수라도 꺼낼 기세였다. 정운은 일단 지금은 그만두고 앞으로 두고두고 놀려 먹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둘이 언제부터 이런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사내 연애하는 커플을 잡아낸 것처럼 재미있었다. 원래 인간은 남의 일은 다 재미있게 느끼는 생물인 것 같다. 그게 행복이든 불행이든 말이다. “뭐···. 일단 던전 공략에 관해서 얘기는 해 보죠. 그래··. 두 사람이 먼저 해치운 이 관문의 몹은 뭐였습니까?” “······여기 나타났던 것은 공중을 헤엄치는 거대 상어무리 였어. 꼭 죠스 같은 놈들이더라.” “헤에···. 그 놈을 어떻게 잡았는데요?” “우리 민지가 정령으로 구속한 후에 내가 소환한 데몬 엠페러로···.” “헤에··. ‘우리 민지’ 라····.” “꼭 그걸 사족을 잡아야 겠냐?” “아니요. 계속 하세요.” 정운의 얼굴에는 미소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자고로 남의 연애만큼 놀리기 재미있는 것도 드문 법이다. 그리고 그동안 한중겸이 툭하면 집에 술판 벌이면서 슬기를 귀찮게 굴었던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도 되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중겸이 형님도 민지 누님도 보통 나이로 치면 상당히 지긋한 나이인데····. 역시 인간은 육체가 젊은 상태면 정신도 젊은 상태로 유지되는 건가?’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중겸은 말을 이었다. “말로 하면 쉽지만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나하고 ····민지누님이 같이 덤벼서 제법 고전을 했을 정도니까 말이야.” “흐음···. 두 사람이 원래 던전 같은 좁은 형태에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타입이기는 해도··. 대놓고 고전을 했다? 이건 좀 의외인 걸요?” “그래···. 그리고 무엇보다··. 놈들을 잡았을 때 이런걸 주더라고.” 한중겸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그 약병에는 작은 알약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를 꺼내서 정운에게 보여줬다. “확인해 봐라.” “이건····?” 정운은 상태창으로 알약이 뭔지 확인했다. 귀식환(貴息丸) [물속에서 호흡 없이 움직이게 해 준다. 지속 효과는 한 알에 한 시간.] “····이걸 이만큼 줬다고요?” “그래. 무슨 의미인지 대강 알겠지?” “다음에 전투 지역에···. 이게 꼭 필요하다는 거죠. 즉 물속에서 싸워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다. 물 속이면 민지의 정령도 물의 정령 말고는 제대로 된 녀석을 쓰기 어렵잖아? 기껏해야 해저 지형을 살리면 대지의 정령은 쓸 수 있을까?” “그렇군요···. 불과 바람의 정령은 아무래도 못 쓰겠죠.” 정운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한중겸과 이민지가 앞으로 나가기를 꺼했는지 대강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다 속이 되면 정운의 파티에도 전력의 저하가 생긴다. 행동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둘째 치고···. 슬기의 주력 마법은 화염계 마법이다. 하지만 수중에는 그 주력 마법이 완전히 봉인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한다····. 외부에 조력을 요청할 방법도 없는데···. 며칠 더 기다려서 누가 올 때까지 기다려 볼까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씁쓸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사실 우리가 선택한 방법도 그거야. 하지만 너희들이 온 시점에서 우리 식량은 다 떨어졌네.” “그렇군요·····.”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침음성을 삼켰다. “너희들은 어때? 간이 식량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거야?”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잠시 인벤토리를 살펴 보고 말했다. “형님이랑 누님까지 먹어야 할 테고···.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는 마냥 아껴 먹을 수는 없죠? 대략 3일 정도가 한계겠네요.” “쯧···. 간이 포탈이 생긴 이후로 식량을 많이 안 챙기는 습관이 생겼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3일 정도면 이 던전을 정면으로 돌파했을 때도 간당간당한 시간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가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너희들도 조심 해라.” “알고 있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에게도 단단히 당부를 시켰다. ‘만에 하나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내가 방패가 되어서라도 이 둘은 지킨다.’ 물론 지금의 정운에 한중겸과 이민지까지 있는 상황이니 어지간한 적이라면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만큼은 적도 적이었지만 수중이라는 환경이 꺼림칙했다. 일행은 귀식환을 사람 수대로 나눠서 가지고 안으로 돌입했다. 관문을 통과해서 한동안 계속해서 걸어가는 와중에 정운이 말했다. “수중의 전투가 발생하면 일단 전위로는 저하고 제 쉐도우 아미들이 나갈 겁니다. 형님하고 누님은 세레나와 슬기와 같이 후방으로 나가 주세요.” “알았어. 어차피 나하고 민지는 그렇게 전방에 나서서 싸우는 타입도 아니니까.” 말에서 민지 누님이라는 말과 민지라는 말이 자꾸 오가는 한중겸이었다. ============================ 작품 후기 ============================ 뜻밖의 스캔들입니다. 사실 십왕들 사이에는 스캔들이 하나 더 숨어 있죠. 그게 누굴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자각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60화 <보스몹 공략.> 한중겸와 이민지의 러브라인. 이건 너무너무 재미있는 스캔들이었다. 평소의 정운이라면 그런 것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렸겠지만 지금은 일단 넘어갔다. 예측불가의 위험한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지금은 장난기를 접어두고 있었다. 물론 일시적으로 접어두는 것 뿐이다. 절대로 잊어 버리지는 않겠다고 두고두고 다짐하는 정운이었다. “도착했다. 이게 두 번째 관문이네요.” 정운의 눈 앞에는 역시 커다란 관문이 보였다. “형님. 혹시 저번 전투에서 전투 중에 관문 이탈은 시도해 보셨나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퇴로 확인은 기본이니까. 다행이도 가능은 하더라.” “그렇군요···. 그럼 여차하면 스캘핑으로 잡을 수는 있겠네요.” “그렇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예전에 정운과 슬기가 단 둘이서 하던 스캘핑하고는 좀 다르다. 그때는 슬기의 정운도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고, 슬기의 회복 마법도 더뎠다. 하지만 지금 이 멤버라면 훨씬 더 빠르고 안전한 스캘핑 사냥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힘으로 통과 할 수 있는 상대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끼이익···. 정운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일행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바다사자들의 무리였다. “이 놈들이 적이라는 건가?” “그렇게 보이는 군.” 보통의 바다사자보다 훨씬 더 커보이는 놈들은 어금니 역시 거대했다. 어금니만 해도 거의 1~2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런 놈들이 수백마리가 넓은 동공에 뭉쳐 있는 것을 보고 정운과 한중겸은 동시에 말했다. “다행이다. 만만한 놈들이라서···.” “다행이다. 만만한 놈들이라서···.” 그렇다. 사실 만만하다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쿠웡? 쿠워어엉!!!” 그때 정운과 한중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바다사자들이 날뛰듯이 정운과 한중겸에게 달려 들었다. 보통의 바다 사자들은 육지에서 느린게 정석인데 이 놈들은 보통 인간이 달리는 것 하고 비슷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덩치가 커서인가? 하지만 역시 느려. 쉐도우 아미!!!” 정운은 단 번에 아홉기의 그림자 장수를 동시에 꺼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질 새라 한중겸도 자신의 소환수를 소환했다. “펜닐!! 그레이트 타이탄!!!” 쿠웅!! 쿵!! 둘이 그렇게 전투 상황에 들어가자 달려오던 바다 사자들은 순간 크게 놀란 것처럼 뿔뿔히 흩어졌다. “어쭈? 근성도 없어.” “이건 진짜 호구구만···.” 정운과 한중겸은 그대로 놈들을 향해서 거칠게 공격을 시작했다. “다 쓸어 버려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정작 본인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자신들이 소환한 소환수와 그림자의 장수들만 고생 시키는 두 사람이었다. 어쨌든 바다 사자들은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했지만 도주에 성공하는 놈들은 거의 없었다. 몇몇 놈들은 필드의 외각으로 가더니 스르륵 하고 사라지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그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모처럼 만난 쉬운 상대가 아닌가?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한다. 두 사람은 외각 지역부터 상대를 몰이 사냥하듯이 꼼꼼하게 사냥해 갔다. 마치 펼친 그물에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담으려는 어부처럼 신경써서 몹들을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뒤에서 슬기가 말했다. 세레나와 이민지에게 말했다. “좀 번잡해 보이네요. 우리도 도울까요?” “아니····. 그냥 전력을 온전하고 있자고.” “이민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전력은 아낄 수 있을 때 아껴두는 게 좋습니다.” 이민지와 세레나의 말에 슬기는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빠졌다. 사실 자신들이 없어도 잘 싸우고 있지 않은가? 정운과 한중겸을 뒤에서 바라보며 팔짱 끼고 있는 이 여성진이야 말로 진정한 갑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세레나가 ME를 꺼내더니 놈들의 정보를 찰칵 하고 찍었다. 횽폭한 바다사자 LV. 90~95 [한 마리 한 마리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하지만 수중에서 만나면 상당히 민첩한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집단행동을 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상할 정도로 약한 걸?” ME의 정보를 확인한 이민지가 중얼 거리듯이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슬기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약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그런 슬기의 말에 이민지는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약하면 좋기는 좋지. 사냥하기도 편하고··. 하지만 레벨을 봐. 90~95? 69층에 그것도 던전의 안에 있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 이민지의 말을 듣고 보니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대량으로 모여 있다고 해도 솔직히 저 정도의 수준이라면 정운들에게 위협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ME의 설명에 의하면 물속에서는 한 층 더 강해진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약했다. “저 놈보다는 차라리 첫 번째 관문에서 싸웠던 거대 상어가 훨씬 더 강했어. 보통 관문이라는 것은 깊숙이 가면 갈수록 더 강해져야 하는데···. 이건 어째서 그 반대인 거지?” 이민지의 말에 세레나와 슬기는 더욱더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해서 뒤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 던전은 탈출이 불가능 한 던전이니 말이다. 그녀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사이에 한중겸과 정운은 이미 사냥감들을 절멸 시킨 후였다. “후우···. 별것 아니네?” “숫자만 많았어요. 사실 이 정도로는 몸 풀기로 딱일 정도 밖에는 안 되네요.” “그렇게 말이다.” 전투중에 여유가 넘쳐서 둘이서 누가 더 많이 잡는지 내기를 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런 둘에게 다가와서 이민지가 자신이 생각한 이상한 점을 말해 줬다. 생각해 보니 이민지의 말에 이상함을 느낀 한중겸과 정운이었다. “·····이상한걸? 일차 관문보다 약한 몹이 나오는 던전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어.” “그렇게 말이죠. 뭔가 이유가 있을까요?” “으음···. 던전의 난이도와는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그보다는···. 이 던전의 테마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던전의 테마요?” “그래. 원래 각 던전 마다 테마나 백 스토리가 있는 법이니까···. 이 던전의 테마와 관계가 있을 수 있지. 뭐 짐작 가는 것 없어?”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쯧,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짐작은 가는게 없네···. 이렇게 되면 무작정 돌진해 보는 수밖에 없나?” 한중겸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남아있는 식량이 별로 없었다. 간이 포탈도 열리지 않는 이 상황에서 망설일 틈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바다 사자들을 해치고 바로 달려간 다음 지역에 있는 것은···. 신장이 2~3미터 정도 되는 펭귄들이었다. 자이언트 펭귄 LV. 80~90 [다수가 모여서 집단행동을 하는 펭귄. 물속에서는 더욱더 강해진다. 하지만 육지에서는 겁쟁이라서 적을 만나면 도망가려고 한다.] “이번에는 더 많은데요? 거의 천 마리는 되겠어요.” “골치 꽤나 아프게 하는군···. 최대한 빨리 정리하자.” “알았어요. 슬기야. 이번에는 너도 도와줘.” “알았어요 정운씨··.” 숫자는 거의 천 마리에 가까웠지만 대량의 몹들을 상대로는 역시 메이지의 대규모 마법이 제격이었다. “파이어 스톰!!!” 슬기가 마법을 작렬 시키자 불의 폭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꿰에에엑!!!” “쿠웨에엑!!” 펭귄들은 불의 폭풍을 피하기 위해서 난리를 쳤다. 실제로 커다란 펭귄들이 다수 대기하고 있던 이 필드는 충분히 넓었지만···. 그래도 끝내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1시간 후···. 슬기의 마법에 힘입어서 자이언트 펭귄들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아까보다 오히려 더 약하네···. 이유가 뭘까?” “글쎄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유가 뭐든 간에 우리는 그냥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제길···. 이거 영 찝찝한데···.” 일행은 순조로운 진행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있다. 이건 분명이 뭔가가 있다. 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네 번째 관문···. 거기에 있는 몹은 한층 더 심했다. 망령 해적들 LV. 40~50 [바다를 떠돌다 죽은 해적들의 영혼이 시체에 깃들었다. 좀비이면서도 물에서 활동이 가능한 특이한 좀비들.] “레벨이 40~50? 장난 하나?” “어떻게 69층 레벨에 이런 놈들이 나오지? 이 던전 도대체 정체가 뭐야?” 숫자는 많았다. 정말이지 속된 말로 우라지게 많았다. 세지는 못하겠지만 이전에 있던 펭귄들 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슬기의 파이어 월 한방에 마치 파도에 부딪히는 모래성처럼 쓰러지는 존재들이 아닌가? 40~50레벨의 몹이라서 이 놈들이 주는 경험치도 정운들에게는 별것 아니었다. 간에 기별도 안가는 경험치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숫자는 점점 많아져 가는데 레벨이 이렇게 떨어져서야···.” “쯧, 모르겠습니다. 다음 지역으로 가보죠.” 정운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연 그 순간···. 띠리링!! 일행의 모두에게 알림창이 떴다. [69층 보스몹 캡틴 존 존스의 해역에 도착했습니다. 캡틴 존 존스를 쓰러트리기 전에는 이 지역을 벗어 날 수 없습니다.] “보스몹!!?” “이런 망할····.” 일행은 순간 짜증이 팍 났다. 어째 이제까지 편하게 왔더니 설마하니 이 던전이 69층의 보스몹의 영역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새 일행은 깊숙한 해저 지역으로 이동 되어 있었다. 뽀글!! 갑자기 물로 변한 상황 때문에 몇 명이 순간적으로 물을 마셔 버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귀식환을 입에 집어넣었다. 귀식환을 먹고 나자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지상과 똑같이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동에는 역시 약간의 불리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호흡이 정돈 된 것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 “말은··. 어? 할 수 있네?” “그렇게···. 물 속인데도 신기하네요.” 원리는 모르겠지만 말은 평범하게 할 수 있었다. 뭐, 이것도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세계니까 가능한 어떤 이유일 것이다. 자세한 원리가 살짝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한중겸이 날카롭게 외쳤다. “모두 준비해. 보스몹의 행차다.” 그리고 일행의 앞에 드디어 보스몹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나왔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거대한 해적선이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돗대와 파손된 선체···. 그리고 무엇보다 물 속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신기하고도 거대한 해적선이었다. 그리고 그 해적선은 한 척만이 아니었다. 총 열 척의 해적선이 모두 위풍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나타났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저기 좀 봐요.” “망할······.” 한중겸과 정운의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는 이유는 그 해적선을 둘러싸고 있는 대량의 몹들 때문이었다. 자이언트 펭귄과 흉폭한 바다 사자들이 함께 있었는데 놈들은 좀 전에 필드에서 상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유려하고 날랜 몸놀림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해적선 움직이는 것은 아까 죽인 해적 언데드들인 것 같은데요?” “그렇군···.잠깐 혹시···.” 정운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ME를 찍어서 가장 선두에 있는 해적선을 찍었다. 그러자 거기에 관한 정보가 나왔다. 캡틴 존 존스 LV. 130~140 [바다의 해적이자 언데드 킹의 반열에 이른 존 존스는 자신의 주변에서 죽은 짐승과 인간들을 자신의 부하로 만들어서 부릴 수 있다. 강력한 해적단의 선장인 존 존스는 항상 그런 부하들로 자신의 신변을 지키고 있다.] ============================ 작품 후기 ============================ 좀 갑작스럽지만... 사실 이게 69층의 보스몹이었습니다. 일행은 그걸 모르고 차근차근 공략해 왔던 거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61화 “제기랄····.” 정운의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이제야 이 던전의 컨셉을 알 것 같았다. 설명에 존 존스라는 저 보스몹은 자신의 주변에서 죽은 짐승과 인간들을 자신의 부하로 만들어서 부릴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이 던전에 약하지만 숫자만 더럽게 많은 몹들의 정체. 그 놈들은 애당초 적도 뭣도 아니었다. 저 캡틴 존 존스라는 보스몹을 강화시키는 제물일 뿐이었다. 놈들이 많이 죽으면 많이 죽을수록 최종 보스몹인 캡틴 존 존스도 더 강해진다. 이래서는 애당초 그 몹들이 강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기를 쓰고 잡았으니···.” 해적선 주변을 빙글빙들 돌고 있는 망령이 된 몹들을 보면서 정운은 살짝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망령이 된 이후로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언데드인 이상 세레나의 신의 철퇴를 사용하면 한 방에 정리하는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세레나. 혹시 신의 철퇴 쿨타임이····?” “죄송합니다. 마스터. 얼마전에 써서··. 아직 이틀은 더 있어야 합니다.” “그래···. 그렇지····.” 정운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고민에 빠졌다. ‘장기전으로 가면 저 물량에 파 묻혀서 죽어 버릴 거야. 그렇다면···.’ 정운은 아주 짧은 순간에 머리를 굴려서 대비책을 생각했다. “세레나.” “예. 마스터.” “양동으로 갈 거야. 우선 방어는 당신에게 맡길게. 그리고 민지 누님. 저하고 같이 공격조로 와 주세요.” “뭔가 계획이라도 있는 거니?” 자신있게 나서서 지시를 하는 정운을 보고 이민지가 말했다. 그런 이민지를 보고 정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계획···. 이라고 할 정도로 치밀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기는 해 봐야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즉흥적으로 떠오린 작전을 말했다. 그리고 정운이 작전을 모두 말하자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 이면서 동의했다. “즉흥적으로 만든 작전 치고는···. 상당히 그럴 듯 해. 이거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닥치고 닥돌 하는 것 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약간 수정하자.” 한중겸은 정운의 계획에 토를 달았다. “미끼는 내가 한다.” “형님!!!” 한중겸이 가장 위험한 미끼 역할을 한다고 하자 정운이 살짝 놀랐다. “어쩔 수 없잖아? 위험성 없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너 하고 나 정도인데···. 네가 어택쪽으로 가면서 양동을 하는니 내가 하는게 나아.” “·········알겠습니다.” “자, 다른 사람은 의견 없지. 계획이 정해 졌으면 이제 후다닥 해치우자고.” 보스몹이 무조건 닥돌을 하는 선공몹이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고작 2~3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최소한의 작전을 짤 시간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시작하자. 내가 먼저 간다. 데몬 엠페러!!! 자이언트 스네이크!!!” 한중겸은 자신의 소환수 중에서도 물에서 쓸만한 놈들 두 마리를 꺼냈다. 데몬 엠페러는 소환수 치고는 경량급이었기에 대부분의 지형에서 어울리는 주력 소환수였다. 물론 그래도 신장이 5미터는 되고 고대한 대 낫도 무지막지하게 컸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이언트 스네이크. 원래는 63층의 보스몹이었던 이 놈은 물속에서 나타나자 마자 마치 바다 물뱀처럼 물속을 해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원래 뱀이라는 생물이 물에 제법 강한 편이다.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물살을 매끄러운 몸으로 가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우오오오오오!!!!!” “적이다!!! 쏴라!!” “공격하라. 유린하고 약탈하라!!!” 캡틴 존 존스의 해적단은 거대한 자이언트 스네이크와 데몬 엠페러를 상대로 거칠게 공격을 퍼부었다. 지상에서는 느릿느릿했던 펭귄과 바다사자들도 지금은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면서 한중겸의 소환수를 공격했다. 거기다 거대한 상어들과 해적선 함대에 타고 있는 해적들의 집중포화가 한중겸의 소환수들에게 떨어졌다. 콰콰콰콰쾅!!!! 물 속에서 어떻게 대포를 쏘고 어떻게 폭발이 일어나는 걸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정운은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슬기야. 화염계 마법 쓸 수 있겠니?” “으음···. 파이어 볼!!” 정운의 말에 슬기는 일단 시험해 보기 위해서 간단한 화염계 마법을 시도해 봤다. 그러나···. 꼬르륵···. 슬기가 시도한 마법은 불속에서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그대로 물거품만 내고 사그라들었다. 그 안타까운 광경을 보고 정운은 씁쓸하게 혀를 찼다. “쳇, 우리편만 안 된다는 건가? 저쪽은 되는데 좀 치사하군.” 정운의 탄식을 들은 이민지가 대답했다. “어쩌면 저 폭발은 화염이 아니라 영적인 마법 공격일 지도 몰라. 설정도 언데드고 말이야.” “···일리 있군요. 그렇다면 세레나.” “예. 마스터.” “예정대로 돌격시의 방어는 당신이 맡아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레나는 믿음직하게 일행의 앞으로 나서서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아직은 대기야. 내가 신호하면···. 그때까지는 기다려.” 정운은 전투를 보면서 때를 기다렸다. 지금 한중겸의 소환수들이 미친 듯이 존 존스의 함대와 싸우고 있었다. 사실 싸운다기 보다는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거의 다구리 맞고 있는 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나마 데몬 엠페러의 경우는 적당히 공격을 피하기라고 하고 있었지만··. 자이언트 스네이크의 경우는 그 덩치가 너무 커서 적의 공격 대부분을 몸으로 때우고 있었다. 대신에 그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서 더 많은 적들을 해치우고는 있었다. 콰지직!! 한 입에 거대 상어를 씹어 버린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그대로 몸에 감고 있던 해적선 한척을 으스러 트려 버렸다. “죽여라!!! 저 뱀새끼를 죽여라. 이 X 같은 새끼들아!!!” “물러서지 말라. 캡틴 존 존스의 명령이다.” “우오오오!!!” 멀리서 지켜보는 정운은 전투 장면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이상하군.” “뭐가요?” 슬기가 반문하자 정운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저 몹들···. 말을 하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하지만 말을 하는 몹은 종종 있었잖아요?” “그래. 하지만 그건 대부분 퀘스트 플레그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필수적으로 대화가 필요했던 케이스들이었지···. 저 놈들이 하나하나 퀘스트를 줄까?” 정운의 말에 슬기는 그러고 보니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 놈들은 어떻게 된 걸까? “생각은 나중이야. 정운아. 지휘는 너한테 맡긴다. 하지만 절대 실패하지 마.” 이민지가 상념에 빠져 있던 정운에게 말했다. 평소와 달리 약간 조바심에 달아있는 그녀를 보고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남자는 살아야 한다 이거죠?” “·····나이 먹은 사람 놀리는 것 아니야.” 대답하는 이민지의 목소리는 부끄러움으로 약간 떨리고 있었다. 어쨌든···. 친한 형님과 친한 누님이 서로 잘 되고 있다면 좋은 얘기다. ‘마른 가지에 기껏 핀 꽃인데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만들 수는 없지. 그런건 좀 젊은 애들이 해야 그림이 되는 거야.’ 정운은 그렇게 시덥잖은 생각으로나마 각오를 다졌다. 한중겸이 맡은 역할은 미끼.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했다. 데몬 엠페러와 자이언트 스네이크가 죽어라 노력하면서 캡틴 존 존스의 선단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한중겸의 소환수도 장난이 아니었다. 한중겸은 10척의 함선들 중에서 이미 두기의 함선을 침몰 시켰고, 쓰러트린 바다 몬스터들의 숫자는 샐 수도 없었다. 캡틴 존 존스의 망령으로 다시 태어나서 다소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중겸이 아주 상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중겸에게 캠틴 존 존스의 해적 함대의 모든 주의가 집중된 그 순간····. “좋아. 가자. 세레나!!!” “옛!!! 세이크리드 존!!! 홀리 실드!!!” 세레나의 스킬이 발동 되자 사방에 넓게 신성력이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일행을 감싸고 지름 5미터 정도의 원형의 방어막이 생겼다. 세이크리드 존 : LV. MAX (사방 1키로미터를 신성한 영역으로 만든다. 언데드들의 모든 능력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홀리 실드 LV.7 (강한 신성력의 보호막을 만든다. 방어력에 특화 되어 있으며 언데드 몹들의 공격은 반사해서 적에게 대미지를 안겨준다.) 두 가지 스킬 모두 언데드들에게 특히 치명적인 능력이었다. 사실 언데드 몹인 캡틴 존 존스에게는 같은 레벨의 어떤 유저들 보다도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세레나 같은 타입의 유저가 누구보다 천적이었다. 세레나의 세이크리드 존이 펼쳐진 순간 존 존스를 비롯한 모든 언데드 몹들의 능력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거기다 홀리 실드를 두르고 세레나가 돌진을 하자 몹들은 미친 듯이 공격을 했지만····. 콰콰쾅!! 쾅쾅!!! “좋았어. 이거 끝내 주는데···.” 정운은 무척 흥분했다. 고위급 언데드 몹을 사냥 하는게 무척 오랜만이라서 잠깐 잊어 버리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세레나는 언데드 몹이 상대라면 슬기 다섯 명의 몫은 너끈히 하는 여자였다. 그녀의 방어막에 공격을 한 언데드들은 자신들의 공격을 맞고 그대로 자폭하기 일쑤였다. 물론 홀리 실드의 내구도는 생각만큼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에 공격성을 지니고 있는 실드였다. 아군을 호위하면서 돌격하기에는 이거보다 더 좋은 타입의 스킬도 없었다. 마침 한중겸이 대부분의 주의를 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시작한 건가···? 그럼 나도 화려하게 피날레를 날려 볼까? 가루라!!!” 한중겸은 자신의 소환수 중에서 가장 강한 가루라를 소환했다. 한때는 65층의 보스몹으로서 정운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그 놈이었다. 하지만 그런 놈도 이제는 한중겸의 소환수였다. 원래 가루라는 새다. 물 속에서 소환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한중겸은 가루라에게 기대하는 다른 공격이 있었다 “화끈하게 날려 버려!!!” “삐이이이이이이이!!!!!!” 돌고래의 초음파 같은 소리를 내면서 가루라는 자신의 날개깃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리고 놈을 중심으로 정운의 뇌천신공과 같은 전류가 방전했다. 파지지지지직!!!! “크아아아!!!” “으아아아!!!” 가루라의 공격에 두 척의 함대가 연달아서 터져 버렸고, 수 많은 몹들이 연쇄적으로 터져 버렸다. 그리고 한중겸은 이제 한쪽으로 몸을 피하면서 자신의 몸을 실드로 둘렀다. “앱솔루트 실드.” 한중겸은 테이머로서 싸우고 있지만 원래의 클래스는 메이지 계열이었다. 당연하지만 마법도 사용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최후에 남은 힘을 모아서 자기 몸을 보호하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남은건 저쪽의 상황이 잘 돌아가기를 믿을 수 밖에···.” 한중겸은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화끈하게 해 주시는군. 땡큐입니다. 형님.” 정운은 한중겸이 있는 쪽을 보고 중얼 거렸다. 비록 가루라의 경우 커다란 한 방을 날린 후에는 물 속에 빠진 치킨처럼 허우적 거리면서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다. 최소한 가루라의 체력 게이지가 다 닳을 때가지 어느 정도의 어그로는 끌어 주지 않겠는가? ‘그 사이에 여기를 정리한다.’ “세레나!!! 밀어 붙여!! 모함이 코 앞이다.” “예. 마스터!!!” 세레나는 온 힘을 다해서 일행을 캡틴 존 존스의 모함까지 이끌었다. ============================ 작품 후기 ============================ 아아아... 비축분이.. 간신히 간신히 하루 쌓아놨던 비축분이 또 한 방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제 글을 못 써서....ㅠㅠ설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어찌 해야 할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62화 캡틴 존 존스의 모함은 다른 해적선들 보다 몇 배는 더 큰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덕분에 찾기는 편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까? “크윽····.” 실드를 치고 언데드들의 공격을 견뎌내던 세레나가 입에서 피를 살짝 흘렸다. “세레나!!!” “괜찮습니다.” 걱정하는 정운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세레나였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민지 누님. 세레나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세요.” “알았···.” “하지 마십시오!!” 이민지가 물의 정령왕을 불러서 도우려고 했지만 세레나가 그 전에 그녀를 말렸다. “이번 레이드는 뒤로 물러날 길이 없습니다. 길은 제가 열 테니···. 다른 사람들은 전력을 온전해 주십시오.”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캡틴 존 존스의 모선을 향해서 날아갔다. 그녀의 굳은 결의를 확인한 이민지는 소환하려던 물의 정령왕을 물렸다. 생각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확실히 세레나의 말이 맞았다. 이미 보스몹까지의 길을 뚫는데만 해도 한중겸과 세레나라는 전력을 소모했다. 보스몹의 앞에 도착했을 때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이 이상 전력을 소모 할 수 없었다. “······아아아아아!!!!!” 세레나의 입에서 그녀답지 않은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콰콰쾅!!! 드디어 세레나가 일행을 이끌고 캡틴 존 존스의 모함에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지금이다!!! 슬기야!! 민지 누님!!” “트리플 아크 실드!!!” “물의 정령왕 소환!! 해류로 적들을 막아라!!!” 정운이 신호를 보내자 슬기와 이민지가 거대한 장벽을 쳐서 주변 언데드들의 공격을 완전 격리 시켰다. 생각 같아서는 김신수의 절대 방어라도 있으면 한 결 편하련만···. 그것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쾅!! 쾅쾅!!!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공격의 집중 포화가 두 사람이 만든 방어막을 때렸다. “어림없지····.” “정운씨!!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고··. 빨리 해요.” 이민지와 슬기는 방어에 온 힘을 더했다. 여기까지 일행을 끌고 온 세레나는 간신히 두 발로 서 있기는 했지만 전력은 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 모든게 예상했던 작전의 테두리 안이었으니 말이다. 정운은 자신의 무기를 꺼내서 호흡을 정돈했다. 그리고 쉐도우 아미들 전원을 꺼내서 눈앞의 적을 상대로 준비했다.. ‘모두가 힘을 다 썼다. 하지만···. 내 힘은 온전히 남아있지. 슬기와 민지 누님의 방어가 언제까지 버틸지는 몰라. 그러니···.’ “기필코 그 전에 끝낸다. 따라와라. 쉐도우 아미!!” -충!! 명령을 받듭니다. -충!! 명령을 받듭니다. -충!! 명령을 받듭니다. 정운과 쉐도우 아미들은 갑판의 문을 지나서 선장실로 보이는 곳으로 쳐들어갔다. 콰앙!!! 문을 날려 버리고 안에 들어가자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넓은 거대한 방 안에 한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손님이군.” “네놈이 캡틴 존 존스냐?” 정운의 말에 앉아 있던 남자는 느릿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 내가 캡틴 존 존스····.” 콰앙!!! “맞으면 됐다.” 캡틴 존 존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운의 날카로운 일격이 놈에게 작렬했다. 갑작스런 기습에도 캡틴 존 존스는 정운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성질 급한 놈이군. 잠깐 얘기 할 시간도 없다는 거냐?” “없다. 그러니 빨리 죽어!!!” 콰아아앙!! 다시 한 번 정운의 검격이 캡틴 존 존스에게 작렬했다. 이번에는 상대도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느새 뽑았는지 해적들이 자주 쓰는 칼인 커틀러스를 들고 정운의 공격을 막았다. 물론 정운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오랜만에 말을 하고 있는 보스몹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자신의 궁금증 보다는 슬기와 이민지의 방어막이 견디는 시간 안에 놈을 잡아 내는게 우선이었다. ‘다행이도··. 이 놈은 가진 능력에 비해서 크게 강한 것 같지는 않아. 속전속결···. 단숨에 끝냈다. “뇌천신공!!! 아스트랄 소드!!! 쉐도우 아이들도 어서 전원 합세해!!!” -예. 주군!! -예. 주군!! -예. 주군!! 정운의 말에 쉐도우 아미들이 전원 자신들의 무장을 꺼내 들고 황금빛 뇌전과 거대한 거검을 꺼냈다. “어마어마하군···.” 그런 광경을 보면서 캡틴 존 존스는 이를 드러내고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놈의 펄션에서는 귀곡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다른 한 손에는 어느새 클래식 디자인의 권총이 손에 들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정운들을 향해서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말했다. “와 봐라···. 70층에 가기 전에 세례를 내려주지.” “닥치고 죽어!!!!” 콰콰콰콰쾅!!!!! 양쪽이 본격적으로 격돌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캡틴 존 존스의 선장실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콰앙!!! 쿠르릉!!! 퍼엉!!! 선장실을 박살내고 밖으로 나온 정운과 캡틴 존 존스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전투를 지속했다. 슬기와 이민지는 그 파괴력의 여파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안에 새로운 실드를 둘러야 했다. 파티로 등록 되어 있는 정운의 공격은 괜찮았지만 캡틴 존 존스의 공격의 여파는 둘에게도 대미지를 안겨 주기 때문이었다. “굉장해···. 화력면에서는 이미 나를 훨씬 넘어서고 있어.” 이민지는 정운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새삼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실감이 나는 것이다. 캡틴 존 존스라는 저 해적은 69층의 보스다. 그나마 보스라고 해도 부하들을 이끌고 싸우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강력함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69층의 보스로서의 어울리는 힘은 충분하게 가지고 있었다. 저런 넘을 상대로 정운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정운 본인의 강함과 그 주변에서 날뛰고 있는 업그레이드 된 쉐도우 아미들이 오히려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화력은 한 수 위로 압도하고 있어. 중요한 것은 이제 저 화력이 지속 되는 시간 안에 적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야····.” 이민지는 안타깝게 상황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바다 속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평소에 그녀의 주력이었던 다른 사대 정령왕들을 묶어 두고 있었다. 다른 정령왕들을 못쓰고 물의 정령왕 엘라임 하나만으로는 방어만으로도 벅차고 있었다. 지금 이건 시간의 싸움이었다. 슬기와 이민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다른 부하 몹들을 격리 시켜 둘 수 있나? 정운의 저 파워가 언제까지 지속 될 수 있나? 그때까지 보스몹인 캡틴 존 존스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의 싸움이었다. -아아아아아!!!!!! -받아랏!!!!! 콰쾅!!!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정운의 그림자 무장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캡틴 존 존스를 후려치고 있었다. 이미 그들의 몸에는 진화한 뇌천신공의 황금빛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일격 일격이 대게 정도는 한 방에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들이 캡틴 존 존스를 때리고 있었다. 역시 기본 무술의 가닥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정운의 공격 보다는 그들의 공격이 오히려 더 캡틴 존 존스에게 많이 적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존 존스는 수많은 타격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멀쩡하게 싸우고 있었다.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몸이 두 동강이 나도···. 심지어는 장비의 사모창이 놈의 몸을 열십자(十)로 갈았을 때도 놈은 멀쩡하게 다시 형태를 되찾아서 싸우고는 했다. 한 10분 정도 그런 전투가 지속되자 정운은 살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전투중에 놈에게 들어간 대미지의 총량은 어지간한 거인형 보스몹이라고 해도 두 번은 죽을 정도였다. 그 정도의 대미지가 들어갔으면 하다 못대 옐로우 크리스탈 하나라도 떠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놈은 멀쩡하게 싸우고 있고 무엇보다 대미지를 입은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딱히 그거는 없었지만 정운은 지금 자신이 뭔가를 크게 잘못 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았다. “제길···. 뭐가 문제지?” 정운은 다시 한 번 놈의 머리를 자신의 검으로 날려 버리면서 중얼 거렸다. “전부····.” 그리고 정운의 참격에 의해서 날아간 캡틴 존 존슨의 머리는 그대로 조소하듯이 중얼 거렸다. “닥쳐!!!” 정운은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러서 놈을 뇌전의 칼날로 잘게 썰어 버렸다. 파파파파팟!!! 수십 조각으로 찢어진 놈을 보고 정운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저 놈의 말대로 뭔가 전부 잘 못 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뭐가 잘못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이상 자신이 이길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비키십시오 주군!!!! 관우가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자신의 청룡언월도에 뇌전의 기를 잔뜩 실어서 수직으로 떨어졌다. -오오오오오!!!!! 마치 지상으로 내리 꽃이는 한 줄기의 벼락같은 관우의 공격은 강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수염 바보가····.” 정운은 혀를 찼다. 관우의 커다란 일격은 강력했지만 너무 뻔히 보였다. 저걸 누가 맞겠는가? 콰아앙!!!! “어림 없다.” 캡틴 존 존스는 관우의 참격을 그대로 막았다. 그리고 그대로 펄션을 휘둘러서 관우의 참격을 튕겨내는 캡틴 존 존스를 보면서 정운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 왜 받아낸 거지? 그거야 놈의 맷집이 어마어마하기는 하지만 방금 같은 공격은 피하는게 순리 아니던가? 대미지를 입고 안 입고를 떠나서 별개의 문제였다. 저 정도의 커다란 공격은 피하고 상대의 자세가 흐트러 졌을 때 카운터. 그게 전투의 정석이 아니던가? 그런데 캡틴 존 존스는 굳이 관우의 일격을 막았다. 왜? 어째서? 왜 피하지 않고 막았을까? “답은···. 막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를 움직여서 공격했다. 단 공격 목표는 캡틴 존 존스가 아니라 배의 갑판이었다. 콰지지직!!! “안 돼!!!!” 캡틴 존 존스는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가 선체를 해집는 것을 보고는 처음으로 비명을 질었다. 그리고 그런 캡틴 존 존스의 모습을 보고 정운은 이제야 자신의 가설이 맞았음을 알았다. “역시···. 이런 시스템이었다 이거지?” 뱃속의 선체를 뒤집어엎자 그 밑에는 나무로 만든 선체 대신에 꿈틀 거리는 근육과 내장 그리고 커다란 심장이 있었다. “이 선체야 말로 너의 진정한 몸이었어. 그렇지 않은가?” 정운의 말에 캡틴 존 존스의 얼굴을 확 뒤집혀 버렸다. 정운의 가설은 맞았다. 캡틴 존 존스의 진짜 몹은 저 해적 선장의 아바타가 아니라 이 해적선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인상이 똥 씹은 표정처럼 구겨진 캡틴 존 존스를 보고 정운이 비웃으면서 말했다. “방금 공격해 보고 알았지. 이 배는 생각보다 무척 약하다는 것을 말이야. 그 증거로··. 저기를 보면 알 수 있지.” 정운이 가리킨 곳은 선체의 마스트 부분이었다. 거기에는 뚜렷하게 옐로우 크리스탈이 떠 올라 있었다. 방금 전에 정운의 한 방으로 옐로우 크리스탈이 떴다는 것은···. 이 선체의 강도가 그냥 일반 범선 수준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운은 캡틴 존 존스를 보면서 말했다. “넌 내가 만나본 몹들 중에서 가장 사기꾼인 놈이다. 수많은 언데드 부하들로 자신을 보호하고····. 마지막에는 그냥 아바타로 자신을 위장하고. 이렇게 많은 위장이 필요한 것은 네놈 본인이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이지.” ============================ 작품 후기 ============================ 캡틴 존 존스는 설정상 여러가지 특수한 스킬로 부하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자신이 별로 강한 몹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원피스의 광대 버기에서 모티브를 땄죠. 원래는 좀 더 등장할 예정이었는데 슬슬 끝내야 겠습니다. 이 다음에 좀 더 중요한 에피소드가 있어서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63화 <월드 서버 개방> 정운의 말에 캡틴 존 존스는 어딘지 모르게 체념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래···. 모두 정답이다. 이런 나이기에···. 난 69층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지.” “··········.” “어서 날 죽여라. 그리고····70층에 올라가 봐라. 거기에 가면 깨달을 것이다. 이제까지 너희들이 해 왔던 것이 그냥 어린애 장난질일 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캡틴 존 존스의 말에 정운은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허세···? 같지는 않아.’ 정운은 캡틴 존 존스에게 묻고 싶은게 무척 많았다. 이 놈은 의식이 무척이나 뚜렷해 보였다. 그리고 70층이 어쩌고 저쩌고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봐서는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세계도 똑바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놈과의 대화에서 많은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묻는다고 똑바로 대답해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겠지···. 그리고 이제 시간도 없고.” 정운은 흘깃 슬기와 이민지가 유지하고 있는 방어막을 살폈다. 이제 방어막도 거의 한계였다. 저기 외부에는 아직도 캡틴 존 존스의 부하들이 널리고 널렸다. 저 놈들이 합세한다면 이쪽으로서도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몰랐다. 우세를 점했을 때 욕심을 부리다가 상황을 망칠 수는 없었다. “네놈 말대로···. 궁금한 것은 70층에 올라가서 풀어 보도록 하지. 잘 가라!!” 정운은 ‘잘 가라.’ 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혼신의 일격으로 해적선, 캡틴 존 존스의 본체를 박살내 버렸다. 콰자직!! 콰아앙!! 콰앙!!!! 이윽고 캡틴 존 존스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정운과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리링!!! [그라운드 제로 70층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월드 서버 이동을 위해서 최상층의 모든 플레이어들을 일시 소집하겠습니다.] 알림창의 내용을 보고 정운과 다른 플레이어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오로지 세레나 만큼은 담담하게 있는 것을 보고 정운은 뭔가가 있다. 라는 것을 알았다. 잠시 후···. 주변의 시야가 훅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정운과 일행들은 학교 교실 하나 정도 되는 크기의 방안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어느새 전원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정운의 파티뿐만이 아니라 다른 십왕들도 모두 함께 있었다.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글쎄···. 난 집에서 밥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69층 보스몹을 잡은 것 같은데··. 누구야? 그런 간 큰 짓 한게?” “아!! 그건 우리에요. 저하고 정운이 하고 민지··· 누님하고···.” “정말? 그렇게 해서 잡았다고?” “운이 좋았죠.” “····세상에 보스몹을 누가 운으로 잡는다니?” “대단·· 한 걸? 69층에 돌입한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십왕들은 정운을 크게 칭찬했다. 그때 한쪽 벽에 있던 모니터가 켜지면서 그 안에 어떤 소악마가 나타났다. 붉은색 피부에 손에는 삼지창. 머리에는 작은 뿔이 있는 전형적인 소악마였다. 놈은 정운과 십왕들을 보면서 말했다. [축하 합니다. 여기 계신 13인이 한국 서버의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운과 십왕들은 이게 무슨 소린지 바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너무나 얼떨떨한 경우였다. 갑자기 한국 서버라니? 그럼 다른 나라 서버도 있다는 말일까? ‘아니 잠깐만···. 충분히 있을 법 해. 오히려 한국에만 그라운드 제로가 퍼져 있다는 게 이상한 거지. 혹시 70층이라는 건·····?’ 정운은 상황을 어렴풋하게 이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운이 추론을 할 필요도 없었다. 모니터 속의 소악마가 정운과 그 일행들이 처한 처지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궁금한게 많겠군요. 그럼 제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죠. 먼저 여러분들 중에는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라운드 제로에는 한국인만 있을까? 라는 의문을요?] “그거야·····. 그냥 그러려니 했지 뭐···.” 주경택의 말에 소악마는 키득키득 비웃으면서 말했다. [생각 없이 사는 인간 답군요.] “뭐야!!!?” 주경택이 모니터 속의 소악마를 향해서 화를 냈다. 그런 주경택을 명주호가 슬쩍 말리면서 말했다. “화내지 마라. 모니터 속에 있는 악마에게 뭔 어쩌겠다는 거냐?” “끄응···. 그래도 형님.” “참아. ····그러니까 넌 자꾸 철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야.” “············.” 주경택은 결국 입이 삐쭉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악마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 그라운드 제로는 당신들 인간들이 구분하는 나라라는 것을 토대로 각각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말 안해도 대강 아시겠지요?] “전혀 모르겠다.” 주경택이 그렇게 말하자 소악마는 다시 한 번 키득 거리면서 말했다. [당신 머리 정말 나쁘군요.] “일로 나와. 너 진짜 나하고 한 판 붙자.” 주경택아 다시 길길이 날뛰기 전에 윤정철이 싸늘한 눈으로 주경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경택아. 중간에 말 끊지 마라.” “하지만 형님···.” “경택아····.” “······예.” 윤정철은 십왕 중에서 가장 말수가 적고 누군가와 친하게 어울리는 것도 거의 없는 남자였다. 그래서일까? 십왕의 막내인 주경택은 그런 그가 좀 대하기 어려웠다. “얘기 계속 하지.” 주경택을 조용하게 만든 윤정철이 말하자 모니서 속의 소악마는 계속해서 키득키득 거리면서 말을 계속했다. [뭐, 간단한 얘기죠. 우리 악마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지면 당신들 인간은 나라가 다르거나 민족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도 부모 원수 보듯이 적대하는 경우가 흔하잖아요? 뭐, 그런 인간들을 한 군대 모아놓고 있으면 그게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죠.] 악마의 말에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나라, 같은 민족, 이라는 말로 소속감을 주고 유대감을 강하게 이끌어내는 것은 사회 구조의 기본 시스템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유대감은 때로는 강한 적대감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스코틀랜드, 구 소련과 미국.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종교, 사상, 그것 외에도 정치가의 한마디나 스포츠 시합의 결과 같은 작은 행동도 적대감의 방아쇠가 되고는 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 가는 것은 국가간에 과거에 있었던 전쟁의 상흔이 만들어낸 증오심. 국가간의 적대감 중에서도 이게 가장 길고 오래간다. 어쨌든 그런저런 이유로 타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막연한 증오심이 생기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신들이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파우스트를 무찔러야 하거든요? 그런데 시시한 이유로 자기들 끼리 제 살 깍기를 하면 영 얘기가 되지 않아서 말이죠.] 소악마의 말은 그럴 듯 했다. 놈들은 악마다. 그런 악마들이 인간들 끼리 싸우는게 보기 싫어서 갈라놨다? 철지난 개그도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최대의 목적인 그라운드 제로 클리어라는 목적을 위해서 유저들의 전력을 온전 시켰던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상하군. 쭉, 그렇게 갈라놓으면 되지 않나? 그런데 왜 70층부터는 합한다고 하는 거지? 난 개인적으로 쪽바리들 따위하고는 같은 공기도 마시고 싶지 않아.” 소악마의 말을 자르면서 말한 것은 평소에는 온화한 이미지였던 박추성이었다. 이제까지 십왕의 일좌였고 그라운드 제로 최강··. 아니 엄밀히 말해서 한국 서버의 최강이었던 남자가 이렇게 날을 세우는 모습은 처음 보는 정운이었다. ‘그러고 보니···. 박추성 형님 청산리 전투 참가했던 독립투사였다고 했지? 일본이라면 이를 갈 만도 하지.’ 박추성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살기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숨도 쉬기 거북하게 할 정도였다. “추성아. 진정해라.” “가재는 게 편이다. 이거냐? 배대호.” 박추성의 말에 배대호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 말은 안 하기로 했을 텐데?” “··············.” 박추성과 배대호의 사이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튀었다. 그 둘이 정면으로 부딪히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머지 십왕들이 전원 달려 든다고 해도 말릴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모니터 속의 소악마가 말했다. [정보 필요 없나 보죠? 그냥 월드 서버로 보내 드릴 까요?] 소악마의 말에 박추성과 배대호는 모니터를 째려 봤지만 악마는 여유만만 했다. 모니터 속에 있는데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남자가 노려보거나 말거나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자···. 일단 진정하시죠? 형님들.” 박추성과 배대호의 사이에 끼어 들어서 분위기를 환기 시킨 것은 정운이었다. 십왕 중에서 서열 3위인 이민지와 4위인 한중겸도 이 둘이 작정하고 살기를 튀기자 끼어 들지를 못했다. 하지만 정운은 거기에 유유히 끼어 들어서 그 둘을 말린 것이다. 이 한 순간····. 십왕들 사이에서 정운의 격이 한중겸과 이민지와 동급에서 한 수 위로 격상 되었다. 시시한 눈치 싸움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힘이 곧 생존으로 이어지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이런 것도 무척 중요했다. “···········.” “···········.” 정운이 중간에서 말리자 일단 박추성과 배대호도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그리고 정운이 다른 십왕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이 소악마와의 대화는 제가 주도할게요. 더 이상은 말 끊기 없습니다. 알겠죠?” “좋아. 그렇게 해.” “가장 나중에 들어온 동생이 최신 사정도 많이 알 테니····.” “안심하고 맡길게.” 정운은 그렇게 십왕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소악마와 1대1 토크를 시작했다. “자, 그럼 계속해서 물어볼까? 아까 박추성 형님이 말한 것처럼···. 어째서 70층을 넘으면 각국의 서버가 합쳐져야 하는 거지?” [그건···. 70층 부터는 파우스트가 직접 관리하는 최상층 서버이기 때문이죠. 1층부터 69층 까지는 그래도 우리 악마들의 간섭력이 강한 세계입니다. 그러니 여러 세계를 복사해서 각국에 고르게 분배 할 수 있었죠.] “그렇군····. 그럼 70층부터는 그게 안 된다. 이건가? 파우스트가 직접 관리하는 세계니까?” [그런거죠. 인간 치고는 이해가 빠르군요. 거기에 가면 보스몹들도 파우스트의 직속 부하들입니다. 어디 보자··. 한국 서버면 캡틴 존 존스 기억하죠?] “그래····.” [그렇게 명백하게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는 보스몹들이 각 층을 지키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놈들 전원이 생전에는 제법 유명했던 인간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정운은 대강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그러고 보면 지금 정운의 휘하가 된 그림자의 무장들도 원래는 파우스트가 길들여서 70층대의 보스몹으로 써 먹으려고 했던게 주 목적이었다. 자존심이 너무 꼿꼿해서 차마 그렇게 써 먹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70층부터는 그런 놈들이 즐비하다는 건가? 쯧, 클리어하기 골치 꽤나 아프겠군.’ 이제야 왜 캡틴 존 존스가 쓰러지면서 그렇게 조소를 했는지 이해가 갔다. 이제부터 펼쳐질 70층의 필드부터야 말로 진정한 그라운드 제로의 상층부였던 것이다. ‘쯧···, 골치 좀 아프겠군····.’ 정운은 앞으로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제까지 익숙해 졌던 시스템에서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 라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두는게 중요하다.’ 정운은 모니터 속의 소악마를 향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물어봤다. “보스몹을 클리어한 것은 내 팀과 이민지 누님. 그리고 한중겸 형님이지. 그런데 어째서 다른 사람들 까지 모두 한국 서버 대표로 70층에 올라간다는 거지?” [응? 아아아···. 그건 제가 약간 유도리 있게 손을 좀 봤습니다. 어차피 당신들 전부가 한 팀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 작품 후기 ============================ 많은 분들이 물으셨죠? 어째서 그라운드 제로에는 한국인 밖에 없냐고... 이제야 대답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래서 였습니다. 월드 서버가 따로 있었던 거죠. 어제 말했던 더 중요한 에피소드가 바로 이 얘기 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64화 소악마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엿 장수 마음대로긴 하지만···. 약간은 땡큐기도 하군.” 위층으로 올라갈 전력은 최대한 많은게 좋았다. 정운으로서는 악마들이 나중에 딴 소리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 다짐을 받아 두는게 중요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정보를 얻어내기 시작했다. “월드 서버에서 최상층은 몇 층이지? 80층? 혹시 90층 대까지 나갔나?” 정운의 질문에 소악마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그라운드 제로를 너무 얕잡아 보시는 군요. 현재 최상층은 73층입니다. 다행이죠? 너무 뒤처지지 않아서?] “73층? 고작 그거라고? 어째서···?” 정운의 말에 소악마는 허리에 두 손을 척 얹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아까도 말했죠? 당신들 인간은 어리석어서 다른나라 사람들하고 투닥 거리기 바쁘다고? 정말 당신들 인간은 병신 짓이 종특인 것 같다니까요?] “············.” 거기에 관해서 반론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지만 딱히 소악마하고 입씨름 하면서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몇 개나 되는 나라가 월드 서버에 진출 한 거지?” [총 8개, 아니 이제 당신들 까지 합하면 9개 나라군요.] “자세하게 설명 좀 해봐.” [으음···. 설명 보다는···. 그냥 보시는게 좋을거 같네요.] 띠리링!!! 그리고 정운과 십왕들에게 알림창이 나오면서 인벤토리에 텍스트 한 장이 생겼다. 그것을 열어서 확인해 보자 월드 서버의 진출자에 관한 정보가 쫘악 나왔다. 미국 : 17명. 중국 : 25명. 러시아 : 19명. 영국 : 10명. 프랑스 : 22명. 일본 : 19명. 독일 : 21명. 이탈리아 : 15명. 한국 : 13명. “······과연.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건가? 각 유저의 수준은 최고 레벨과 최저 레벨에 관해서 알려줘.” 정운의 요구에 소악마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아아아··. 인생 그렇게 날로 먹으면 곤란하죠. 그런 중요한 정보는 당신들이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알아 내는게 기본 아니겠습니까?] “···········.” 비교적 순순하게 대답한다 싶었더니 모든 정보를 다 알려 주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들의 거주지는 어떻게 되지? 다시 옮겨지나? 혹시 거주지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하고 겹치는 건가?” [응? 그건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당신들이 최대한 부딪히지 않게 하고 싶어서 말이죠. 잠 정도는 편히 주무시죠?] “눈물 나게 고맙군····.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걸 물어보지. 이건 꼭 말해 줬으면 좋겠어.” 정운의 말에 소악마는 빈정 거리면서 말했다. “우리가 70층에 진출한 지금····. 언더 플레이어 놈들은 어떻게 되지? 혹시 원드 서버에도 김신수 이외에 언더 플레이어들이 있나?” 정운의 말에 소악마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다행이도···. 그 파우스트의 개자식들은 다른 서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들에 대한 통제권의 대부분을 파우스트가 가지고 있어서 우리로서도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없군요.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놈들에게 파우스트가 뭔가를 해 주기는 할 거라는 거죠.]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정보군.” 정운이 신경질을 내자 소악마는 어깨를 다시 으쓱 하면서 재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정보를 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세요. 배은망덕한 인간놈아.] “···········.” [그럼. 저도 이제 인간 따위하고 더 말하기는 귀찮아 졌습니다. 그러니···. 안녕히들 가십시오. 벌레같은 인간들이여.] “잠깐 아직 질문이····.” 정운이 계속해서 말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일행은 스카이 타운의 포탈 앞으로 이동 되어 있었다. “···망할 개 자식···.” “악마야.” “망할 악마 자식····.” “·········.” 정운은 잔뜩 화가 났다. 하지만 유감 스럽게도 불평 한다고 뭔가가 변하는 것은 없었다. 저 마다 다른 장소, 그리고 같은 시각. 띠리링!! 알림창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월드 서버에 진출 되었던 여덟 개 국가의 148명의 인간들이 같은 내용의 알림창을 받았다. [한국 서버에서 13명이 월드 서버로 진출 했습니다.] 라는 소식을 말이다. 그 소식을 들은 세계 각국의 유저들의 의견을 제각각이었다. 미국. “한국이라····. 우리 미국하고 동맹국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가능하면 협력적으로 ‘이용’ 할 수 있으면 좋겠죠.” “그래···. 접선을 시도해 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중국. “한국이라···. 그 조그만 나라에서 잘도 월드 서버에 진출했군. 그것도 13명이나 말이야.” “어떻게 할까요?” “····그 나라는 예로부터 우리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 없던 나라야. 최근 들어서 좀 건방져 지기는 했지만···. 자기 주제를 알게 해 줘야지.”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주군.” 러시아. “한국이라···. 칫, 골치 아프군.” “어떤 인간들인지 모르겠지만 13명이면 지금의 균형이 무너 질 수도 있는 숫자입니다.” “그것도 수준에 따라 다르지···. 일단 실력 테스트를 해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파더.” 영국. “여왕 전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상황을 지켜봅시다. 단, 다른 7개국의 움직임에도 감시를 멈추지 말도로 하시오.” “예스, 유어 그레이스(Your Grace).” 프랑스. “한국이라···. 거기 뭐 하는 나라였지?” “저희하고 큰 관계는 없습니다. 중국의 북쪽···. 남쪽인가? 그 쯤에 있는 나라입니다.” “뭐, 13명이면 전력은 되겠지. 일단 한 번 순서를 밟아 보자고.” “알겠습니다. 공작 각하.” 일본. “크크크···. 조센징들 주제에 이런 것도 하고 있었나? 의외로군.”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 까요?” “숙이고 복종하던가? 아니면 죽던가? 둘 중에 하나지.” “옛!!!” “조센징들에게 주제를 알게 해 줘라. 위대한 천황 폐하의 이름 아래에 복종 할 수 있는 영광을 거부한다면 지옥불에 던져 버릴 따름이다.” “옛!!! 각하!!” 독일.(동독) “제길···. 이 상황에서 또 추가 인원인가? 서독의 머저리들은 어떻게 한다고 하지?” “당장 회유 작업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쯧···, 더러운 아시아의 황색 원숭이들 따위와 손을 잡으려 들다니··. 같은 게르만 족이라는게 부끄러운 놈들이다. 독일.(서독) “바로 회유한다. 우리하고 같이 분단 국가의 아픔을 알고 있는 자들이야. 절대로 동독 놈들의 꼬임에 넘어가게 둘 수는 없어.” “알겠습니다. 총독 각하.” 이탈리아. “러시아 놈들에게 뒤처지지 마라. 한국의 13인의 레벨을 확인하고 우리 편으로 받아 들인다.” “레벨이 낮으면 어떻게 할 까요?” “우리하고 수준이 맞으면 동맹. 수준이 틀리면 복종 시킬 뿐이다.” “알겠습니다. 파더.” 세계 각국의 전력들은 모두들 한국의 13인의 전력을 보고 크게 흔들렸다. 현재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운과 십왕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를 시작하고 있었다. “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 하는데····. 먼저 의견 있는 사람?” 이민지의 말에 가장 먼저 의견을 말한 사람은 의외로 이제까지 회의에 거의 의욕이 없던 박추성이었다. “너희들에게 지금 미리 한 마디 해 두마.” 박추성은 평소의 설렁설렁한 모습이 아니라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말했다. “너희들 중에 일본하고 손을 잡겠다는 놈이 나온다면 지금 말해라. 더 정들기 전에 지금 내 손으로 목을 쳐 줄 테니.” 그렇게 말하는 박추성의 모습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옆에서 배대호가 그런 박추성을 보고 콧방귀를 꼈다. “또 나왔군···. 네 생각을 모두에게 강요하지 마라. 박추성.” “세상에는 양보 할 수 없는게 있는 거다. 배대호.” “누가 말려···.” 배대호는 그렇게 말하고 팔짱을 끼고는 난 상관 안하겠다. 라는 듯이 물러났다. 그리고 남은 동생들은 박추성의 시선을 받으면서 말했다. “뭐···.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에 따라서 바뀌기야 하겠지만···. 일단 형님 눈살 찌푸릴 일은 안 만들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죠.” “저도··. 그러니까 오라버니. 슬슬 분위기 좀 환기 시키면 안 될까요? 우리 착한 지영이 숨 쉬기도 버겁다는 표정인데?” 이보영이 애교를 떨면서 말하자 박추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겁 줘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해해 주기 바란다.”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으로 의견을 낸 것은 한중겸이었다. “뭐···. 사실 다른 나라 유저들의 상황도 잘 모르면서 우리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해 봤자 변하는 것은 없지 않겠어? 일단 저쪽의 상황을 파악해야지.” 한중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른 나라의 유저들이 적대감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새로운 전력이라고 호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모든 상황을 알고 대처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런 한중겸에게 정운이 말했다. “형님 말은 맞습니다. 저쪽의 대응을 알아보고 우리쪽의 상황을 정하는게 옳겠죠. 대신···. 그 전에 우리끼리 정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그게 뭐냐는 듯이 바라봤다. 아니 한중겸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런 모두를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여기 있는 13인의 대표의 선출입니다.”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아!’ 라는 탄성을 동시에 질렀다. 그런 사람들에게 정운이 말했다. “우리가 필드에 나가는 순간 저쪽에서도 접촉해 올 테죠. 그때···.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쪽에서도 의견을 통일해서 주장할 대표가 없어서야 얘기가 되지 않습니다.” 정운의 말은 듣기에는 간단하지만 무척 예민한 주제였다. 십왕이니 뭐니 불리고 서열까지 붙어 있는 이들이었지만···. 사실 그들에게 공식적인 상하 관계 같은 것은 없었다. 정운까지 포함해서 13인 전원이 형님, 누님, 언니, 동생 하면서 호칭하는 것은 이들이 서로에게 지나친 관섭을 하지 않는 프리 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프리고···. 나쁘게 말하면 의견이 통일 되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다. 사실 이런 모습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소악마의 말대로 이들이 한 나라 한 민족의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는 소속감이 이들을 동네 형제 동생 같은 사이로 만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제 타국의 인간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오합지졸의 상태로 상대한다면 초장부터 얕잡아 보이기 딱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은 아직 신참이다. 하다 못해서 하나로 뭉친 모습을 보여서 만만하지 않다라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우리 중에 리더를 뽑아서 그 리더의 말에 절대 복종할까?” “절대 복종까지는 좀 그래도···. 최소한 어느 정도의 협조는 해야겠죠.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는 박추성 형님이 좀 수고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잠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이제까지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그냥 동생들이 하는 것을 살짝 보조해 주기만 했던 그였다. 자신은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기에 그런 태도를 고수한 것이다. 하지만 월드 서버라는 변수가 생기고 나자 이제는 마음이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본이 있다. 독립군에 소속되었을 정도로 일본과 적대 관계 있던 그로서는 일본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리더의 자리를 고수하면 적어도 그런 쪽으로는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65화 <월드 서버로 진출하다> 박추성이 리더의 자리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그때, 배대호가 갑자기 나서서 말했다. “난 반대다.” 배대호는 박추성을 리더로 추대하는 것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그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다. 그는 그런 시선 속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리더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리고 누가 되든 상관도 없지만···. 박추성 만큼은 예외다. 너무 극렬적이야.” 배대호의 말에 박추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내가 극렬적이라는 말은 납득 할 수 없지만··. 굳이 반대 의견에 맞서 가면 너희들 위에서 대장 노릇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박추성도 뒤로 물러났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세 명으로 몰렸다. 이민지, 한중겸, 박정운. ‘대강 저 세 명중에 하나가 적당할 것 같은데···.’ ‘사실 추성이 형님은 너무 외골수고 대호 형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람이야.’ ‘민지 언니가 우리를 쭉 이끌었으니··. 민지 언니라면 모두들 납득하지 않을까?’ ‘정운이가 쭉 자기 팀을 이끌었으니···. 리더를 맡겨 놓으면 잘 적응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실질적으로 십왕의 NO.3로 평가 받으면서 오랫동안 실질적인 레이드의 지휘를 도맡아 왔던 이민지. 그리고 실력은 NO.4로 한 단계 아래였지만 남녀 모두에게 인망이 있고 성품이 좋은 한중겸. 마지막으로 가장 막내였지만 무서운 속도로 실력을 상승 시켜서 이제는 그 수준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박정운. 사람들의 시선은 이 세 명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정운이 말했다. “자···. 이렇게 눈치만 보면 끝이 없어요. 그러니 제가 제안하겠습니다.” 정운은 모두를 보면서 말했다. “유기명 투표. 무기명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밝히고 리더에 투표를 하도록 하죠.” “유기명? 왜 무기명으로 하지 않고?” “무기명 투표는 투표자의 익명성을 지켜주는 대신에 자신이 던진 표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집니다. 규모가 한 100명 정도 이상이 된다면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무기명으로 해야겠지만 고작 10명 남짓이잖아요? 그럼 그냥 유기명이 나아요.”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었다. 반 정도는 정운의 설명이 길어지자 그냥 어려운 말을 하는 구나? 그럼 맞는 말이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끄덕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기명 투표와 유기명 투표. 사실 투표하면 대부분 무기명 투표를 떠올릴 것이고 열에 아홉은 그게 공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당당하게 지지를 해야 하는 유기명 투표가 더 좋은 결과를 발휘 할 수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에 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투표에 대한 근본적인 목적을 한 번 살펴보자. 투표라는 것은 몇 가지 의견 속에서 가장 많은 인간. 즉, 다수를 만족시키기 위한 시스템이다. 듣기로는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이 투표가 다수의 폭력이나 무책임한 책임 전가로 악용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무기명 투표가 그렇다. 예를 들어서 A라는 무리에서 갑 이라는 대표가 무기명 투표로 뽑혔다고 보자. 그 갑이라는 대표가 A라는 무리를 잘 이끌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그 A라는 대표가 무리를 이끄는데 트러블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A라는 대표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까지 모두 불평불만을 하기 십상이다. A라는 대표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A에게 표를 준 사람들 까지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자신이 A에게 표를 줬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는 익명성 때문이다. 하지만 유기명 투표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준 표에는 자신의 이름이 계속해서 따라 다닌다. 자기가 뽑은 대표의 결정에는 암묵적으로 따르고 협조해야 할 책임이 따라 붙튼 것이다. 물론 유기명 투표에는 이런 장점 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 소수자에 대한 주변의 보복이나 격리 행위. 이름을 밝힘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정직하게 할 수 없는 불공정성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유기명 투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략 두 가지 정도의 조건이 클리어 해야 한다. 하나는 자기 이름을 밝히고도 당당하게 그 주장을 할 수 있을 것. 즉, 투표자 전원이 어느 정도 강단과 고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지금 한국 대표 13인은 충분히 그 자격이 있었다. 이들 전원 그라운드 제로라는 수라장에서 맨 몸뚱아리 하나로 기어오른 자들이다. 설령 막내인 주경택이라고 해도 박추성이 협조를 하면 따라도 협박을 하면 따르지 않는다. 차라리 싸우다 죽고 말지···. 그런 자들이었기에 유기명 투표라고 해서 남의 눈치를 봐서 자기 의견을 바꾸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뒤끝이 없을 것. 유기명 투표는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떨어졌을 경우 그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의 이름도 당연하게 밝혀진다. 당선자와 그 당선자의 지지자들이 그들에게 보복, 혹은 따돌림을 행사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야 했다. 이 조건도 한국 대표들에게는 클리어 되는 조건이었다. 고작해야 13인의 팀이다. 이런 소수인 상황에서··. 그것도 하나하나가 중요한 전력인 이 상황에서 따돌림이나 보복인사 같은 것을 했다가는 제 살 깎아먹기 밖에 되지 않는다. 또 그런 대우를 받고 그냥 참고 있을 사람도 이 팀에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유기명 투표면 그냥 말래 해도 되는 거지? 그렇다면···. 난 중겸이 형님에게 한 표 던지지.” 막내인 주경택을 시작으로 해소 투표가 시작 되었다. “이유는요?” 정운이 말하자 주경택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이유라···. 그것도 말해야 하나?” “유기명이잖아요? 그냥 말해봐요.” 정운의 말에 주경택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냥···. 중겸이 형님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 쾌활하고 사람도 호탕하고, 저런 사람이 리더로 어울릴 것 같아.” 주경택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중겸이 형님이 한···. 아니 두 표입니다. 저도 중겸이 형님에게 던지죠. 이유는···. 주경택씨가 말한 것하고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렇게 시작하자마자 한중겸이 2표를 받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이보영과 이지영 자매가 표를 던졌다. “우리는 민지 언니야로 할래.” “민지 누님 말이죠? 이유는요?” “그냥···. 이제까지도 사실상 대호 오라버니하고 추성 오라버니가 손 놓고 있는 동안 우리를 이끌었던건 민지 언니야잖아? 하던 사람 하는게 낫다 싶었지 뭐.” 그렇게 이민지가 두표를 얻어서 한중겸하고 동률이 되었다. 그때 이민지가 나서서 말했다. “잠깐··. 난 공식적인 리더 역은 아니야. 어쩔 수 없이 앞에서 잔소리는 좀 했지만 리더는 역시 듬직해야지. 그러니 난·····. 정운이 네가 해라.” 이민지의 말에 박정운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저요?” “그래··. 누구에게나 표를 던질 수 있는 거지? 저번 레이드에서 캡틴 존 존스하고 싸우는 것을 보고 알았어. 너 확실하게 나 보다 강해. 대호 오라버니하고 추성 오라버니가 포기한 이상···. 사실상 그 다음으로 강한 네가 하는게 옳다.” “예··. 뭐 그럼 일단 제가 한 표 받죠. 그럼 다음으로···.” “나도 정운이 너를 지지한다.” 정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중겸이 박정운에게 한 표를 던졌다. “어? 형님!!!” “놀란 표정 짓지 마. 애당초 리더를 뽑아야 한다 라는 의견을 제시 한 것도 너잖아? 말 꺼낸 사람이 책임 져야지.”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표는 동률로 2대2대2가 되었다. 남은 표는 일곱 표인 상황에서 정운은 자신이 리더가 되지 않기를 바랬다. ‘말이야 내가 꺼냈지만 앞에서 나서서 이끄는 것은 싫은데···.’ 하지만 그런 정운의 바램은 아주 정확하게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남은 일곱 표 전부가 정운에게 몰표로 온 것이다. 완전 동률인 상황에서 나머지 후보 둘이 동시에 정운을 지지했다. 이것 만으로도 사람들은 정운을 지지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보였다. 한중겸이나 이민지를 지지한 사람들도 정운이 리더를 맡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애당초 자신들이 지지했던 한중겸과 이민지가 정운에게 표를 주지 않았나? 그렇다면 자신들의 지지도 간접적으로 정운에게 옮겨가는게 맞다고 받아 들인 것이다. 결국 투표가 끝난 후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좋은 건지 나쁜건지 전혀 모르겠네···.’ 어쨌든 뽑힌 이상은 어쩔수 없었다. 한중겸의 말대로 리더가 필요하다고 가장 처음에 말했던 것은 정운 자신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다 할 뿐이었다. “그럼···. 부족하지만 제가 리더를 맡겠습니다. 리더로서의 제 목적은···. 최소한의 마찰과 적극적인 게임 클리어입니다.” 정운의 말에 배대호가 말문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줘. 머리 나빠서 이해 못하는 애들 있다.” 배대호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형님 그러기요?’ 라는 시선으로 배대호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자 정운은 배대호의 말대로 자신의 취지를 설명했다. “최소한의 마찰이라는 것은 가능하면 외국의 유저들과는 부딪히지 않겠다는 겁니다. 물론···. 그들이 우리에게 공격을 하거나 시비를 건다면 그때는 대응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나서서 시비를 걸 일은 없습니다. 상대가 설사 추성이 형님 특히 잘 들으세요. 일본이라고 해도 말이죠.” “···········일단은 알았다.” 정운의 말에 시큰둥 하는 박추성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리더로 뽑힌 이상 그런 시큰둥한 대답에 그냥 넘어 갈 수는 없었다. 뭐든지 초반에 선을 확실하게 그어 놓는 것이 중요했다. “형님. 형님도 저 뽑아 주셨잖아요? 그러니 가능하면 협조 부탁 드리겠습니다.” “············.” “추성이 형님. 남자가 한 입으로···.” “알았어. 내가 먼저 쪽바리 새끼들한테 시비 거는 일은 없을 거다.” 결국 박추성은 정운에게 항복했다. 유기명 투표는 이럴 때 제대로 힘을 발휘했다. 자신이 지지했으니 지지에 걸 맞는 협조를 요구 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투표의 당선자라도 무기명으로 뽑힌 당선자와 유기명으로 뽑힌 당선자는 그 영향력에 큰 차이가 들어나는 법이었다. 지금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그리고 클리어의 적극성. 지금 최상층이 고작 73층이라고 하는데···. 십왕급 유저가 100명 넘게 고작 3층 더 개발했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들끼리 견제하느라고 제대로 된 클리어가 불가능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그렇지···.” 이민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들 느끼고 있었다. 다른 구각의 유저들의 수준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판단 했을 때 고작 73층이라는 것은 너무 작은 전진이었다. 적어도 80층대에는 진출 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정운은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제대로 공략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이 게임의 클리어를 위해서 움직일 겁니다.” 짝··· 짝짝짝···. 정운의 말에 한중겸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네 결정에 완전히 따르마. 확실하게 해라.” “나도 이견은 없어.” “나도···.” 그렇게 모두의 지지를 받아서 정운의 리더 추대가 결정 되었다. 정운 본인은 약간 어떨떨하기도 했지만 이왕 자리를 맡았으니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며칠 후···. 일행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필드에 나가기로 했다. “걱정 돼?” “설마요···. 정운씨하고 같이 라면 어디라고 괜찮아요.” 슬기는 정운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고 오히려 걱정하고 있던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 작품 후기 ============================ 흑토 :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말의 해가 된지도 20일이 지나고 나서야 인사드립니다. 제가 이 작품의 주인공 말. 흑토입니다. 작가가 이번에 후기에 한 번 나가보라고 해서 나왔습니다.(꾸벅)흑토 : 이번에 저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를 내 주시 분이 있습니다. 저도 이제 슬슬 인간화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대사가 좀 있었으면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슬기보다 더 오래 나왔는데 말이죠. 작가 : 그럼 인간화 시켜줄까? 흑토 : 당연하지. 작가 : 참고로 말하면 너 인간화 되면 여성화다. 그렇게 해서 정운에게 완전 반한 골빈 머리의 절대순종의 여캐로 만들거다. 이름도 흑순이라고 개명해주지. 흑토 : ...........히히힝.(그냥 평생 말로 살아가겠습니다.)작가 : 이렇게 흑토가 말로 계속 있겠다고 말하네요. 올해가 말띠 해라서 한 번 준비해본 후기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66화 ‘쫄았었나? 한심하기는····.’ 정운은 스스로를 살짝 비웃으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이제 자신은 한국 팀의 리더다. 아마 필드에 나가면 기다리고 있을 세계 각국의 유저들하고 당당하게 맞서서 의견을 개진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때도 이렇게 긴장해서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정운은 살짝 뒤를 돌아봤다. 슬기와 세레나만이 자신의 곁을 지키던 때와는 다르다. 이제는 오히려 정운 보다 더 강한 사람들 까지 정운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었다. ‘이런 호화멤버를 이끌면서 쫄 수는 없지. 어디 한 번 해보자.’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일행에게 말했다. “그럼 가죠.” “음···.” “목 빠지겠어.” “나가자.” 그렇게 한국 팀이 최초로 월드 서버의 필드에 발을 내디뎠다. 한국 팀이 필드에 나가가 거기에는 커다란 텐트가 아홉 개 쳐져 있었고 그 텐트의 앞에는 한명, 혹은 두 명씩이 대기하고 있었다. “일본····? 이 아니군. 한국팀인가?” “이제야 왔나 보군.” 그들은 한국 팀의 등장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다행이도 말은 알아 들을 수 있군.’ 정운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어와 독일어 같은 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정운은 그들의 말을 태연하게 알아들었다. 아마도 그라운드 제로의 악마, 혹은 파우스트가 뭔가 손을 썼을 가능성이 컸다. 정운은 그들을 쭉 둘러보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의 유저들입니다. 혹시 우리한테 할 말 있는 사람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세계 각국의 정찰자들은 잠시 서로간에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일단 우리는 정찰이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면 우리 미국의 리더가 올 거요.” “우리 중국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일단 기다려 달라는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우리도 첫 날의 목적은 월드 서버의 유저분들과의 인사가 목적이었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단 기다렸다. 사실 정운은 지금 나오자마자 치열하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들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서 달렸지만··. 일단 정운의 모토는 받은 대로 돌려주기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받은 것에 이자까지 더해서 돌려 주는게 정운의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인생 모토였다. 그러니 일단은 상대가 어떤 대우를 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개 같이 군다면···. 정말 개 대하듯이 만들어 주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단 각국의 대표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아마도 세계 각국의 대표들도 한국 팀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서 세계 각국의 유저들이 모두 모였다. “고위급 유저가 100명 넘게 모이니 제법 바글바글 한걸?” “그렇죠···?” 정운의 뒤에서 한중겸과 이보영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정운은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기 위해서 여념이 없었다. 자세하게 보면 저들 사이에도 사이가 어느정도 괜찮은 나라들이 있었고, 또는 부모 원수 보듯이 노려 보는 사이도 있었다. ‘알력 다툼이 있다는 거군···. 중립을 지키는게 가장 좋기는 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 아니 저긴 이미 글렀나?’ 중립 노선을 고민하던 정운의 눈이 향한 곳은 일본 쪽이었다. 거기에는 19명의 인간들이 모여서 깃발을 펄럭이고 있는게 보였다. 그게 그냥 일장기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냥 일장기가 아니라 일본의 전범기라고 할 수 있는 욱일승천기였던 것이다. ‘추성이 형님은····. 눈에서 광선 쏠 기세군.’ 슬쩍 박추성의 쪽을 본 정운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지금 일본쪽에 있는 19명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정운이 일단 박추성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정운보다 한발 먼저 선수를 친 사람이 있었다. “진정해라. 지금은 참아.” “············.” 정운이 나서기 전에 박추성의 어깨에 손을 얹어서 말리는 사람은 놀랍게도 배대호였다. ‘둘이서 사이 나쁜 것 아니었나?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사이군.’ 정운은 이 뜻밖의 상황 속에서도 일단 박추성이 조금은 진정한 것이 기쁠 뿐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다 모이자 미국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우선···. 모두 모였으니 간단하게 회의를 위해서 모이는게 좋겠군. 그러고 보니 모두 모이는 것은 오랜만인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원탁을 꺼냈다. 거기에는 정확하게 10개의 의자가 있었다 “모두 앉지.” 미국 대표의 말에 러시아의 대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상황을 왜 네가 주도하는 거지? 여기서 미니UN이라도 만들 생각인가?” “하하하···. 근본도 없는 레드 마피아 나부랭이가 사라지면 그렇게 될 지도 모르지.” “·····죽고····.” “진정해라. 지금 전쟁 할 생각은 없잖아? 얘기 하자고 얘기. 보드카에 쩔어 사는 머저리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 화를 내려던 러시아의 대표는 미국 대표가 싸늘한 미소를 짓자 살짝 기세를 죽였다. 이 순간 정운은 알 수 있었다. 개인의 차이인지 팀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 러시아 보다는 조금 더 힘이 강할 것 같다. 라는 것을 말이다. 미국과 러시아를 시작으로 모든 국가의 대표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정운도 원탁의 한 곳을 잡고 앉고 한국의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정운의 뒤편에 시립하듯이 섰다. 물론 다른 국가의 팀도 만찬가지 상황이었고 말이다. ‘····내 생애 가장 살벌한 원탁을 보는 것 같아.’ 원래 원탁이라는 것은 상석이 없는 평등한 회의장의 대명사인 법인데···. 이 원탁은 살벌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고 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미국 대표였다. “우선 자기 소개부터 할까? 난 미국 대표. 블레인 허드슨이라고 한다.” 그를 시작으로 각국의 대표들이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장한이오.” “러시아의 알렉세이 찌모페이.” “영국의 다이앤 알렉산더 메리입니다.” “프랑스의 쟝 그레고리 공작이오.” “도조 마사토.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다.” “독일의 베르너 프리치다. “진짜 독일의 콘러드 크라우스입니다.” “콘러드 너···.” “일단 넘어가지?” “쯧,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다.” 하도 한꺼번에 여러사람이 소개를 해서 다 외우지는 못한 정운이었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 이름 외우기가 특히 어렵다. 그러나 한명은 알았다. ‘도조 마사토라고 했지? 넌 두고 보자.’ 정운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중하게 좌중을 향해서 말했다. “부족하지만 한국의 리더를 맡고 있는 박정운이라고 합니다.” 일단 시작은 정중하게···. 비록 마음 속에서는 ‘도조라고 했지? 저 새끼 뒈졌어.’ 라고 마음 먹고는 있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은 정중하게 시작하는 정운이었다. 사실 이건 그냥 예의상 이러는게 아니었다. 아직 정운은 중요한 정보를 모른다. 그것은 먼저 월드 서버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 라는 것이었다. 선악의 유무와는 완전 별개로 인간이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를 따져보면 각 시대마다 가장 정의로운 국가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힘이 곧 정의. 나라간의 주장에서는 이것이 진리라고 해도 좋았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힘이 없는 자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못한다. 시비를 걸 때 걸어도 일단 승산을 재봐야 했다. 그냥 앞뒤 가리지 않고 미친개처럼 물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이제 정운의 결정에 운명이 흔들리는 것은 정운 하나만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운이 저 자세로 나오면 상대는 얕잡아 보고 어느 정도의 방심을 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운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뭐···. 방심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로 적어도 머리 나쁜 놈 안 나쁜 놈이라도 알아 낼 수는 있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정운이 자리에 앉자 서로간에 조금 눈치를 보던 각국의 대표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중국의 대표인 장한이었다. “우선, 본격적인 그라운드 제로에 진출한 것을 축하하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돌아가 주게.” “···········.” 장한의 말에 정운은 겉으로는 조용히 침묵했지만 속으로는····. ‘이 새끼 시비 건다 이거지···.’ 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개가 물었다고 자신도 따라서 덥썩 물 수는 없었다. 우선은 이성적으로 얘기를 해야 했다. “의외로군요. 적어도 최상층의 클리어를 위해서 전력이 추가 되는 상황을 반길 줄 알았는데 말이죠.” 정운의 말에 중국의 대표인 장한이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런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머리가 나쁘다고 해야 할지····.” “훗····.”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정운과 한국 팀을 우습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운은 그들의 안색을 살짝 살피다가 영국의 대표를 보면서 말했다. “다이앤 알렉산더···· 메리씨라고 하셨죠?” “씨!!?” “무례한····.” 정운의 말에 다이앤이라는 여성의 뒤편에 있던 남자들이 순간 눈에 불똥을 튀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운은 신경쓰지 않고 할 말을 계속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해 못하는 상황이 있는 것 같은데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마냥 물러나라는 의견을 받아 들이기 버겁군요.” 정운의 말에 다이앤은 손을 들어서 뒤의 부하들을 조용히 시켰다. “진정들 하시오. 그는 나를 모르오.” “하지만 전하···.” “명령입니다.” “···알겠습니다.” 자신의 부하를 조용히 시킨 다이앤은 정운의 쪽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부하들이 흥분한 것을 용서해 주시오. 모두 나에 대한 충성심에서 발로된 것이오.” 다이앤의 말에 정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운이 다이앤에게 질문을 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방금 전에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비웃는 와중에 유일하게 그녀만은 표정에 변화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비웃는 자부터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하는 자까지 가지가지였지만 그 중에서도 저 다이앤 알렉산더 메리라는 여자는 전혀 그렇지 않고 우아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단 가장 적의가 적어 보이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게 정운이 그녀에게 질문을 한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제법 미인이기도 하네.’ 정운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살짝 감탄했다. 서양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인형 같은 미인은 많은데 그녀는 서양인의 이목구비임에도 어쩐지 서글서글하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보고 있으면 굉장히 착하고 선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그녀가 정운에게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죠. 다이앤 알렉산더 메리. 방계중에서도 방계이지만 일단 영국 왕실의 핏줄을 잇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말에 정운은 특별히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부하들이 전하 어쩌고 하는 순간부터 혹시 영국 왕실쪽의 인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21세기에 왕실의 핏줄이 남아있는 나라는 아직도 의외로 제법 있다. 물론 그 왕실이 실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거의 전무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왕실은 보통 자국의 자존심이고 국민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영국 왕실은 영국인들에게 있어서 어떤 스타보다도 더 뛰어는 인기 스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국민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뭐···.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인간들 대부분이 답 없는 인간들이라서 똑같은 대우를 받을지 말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야.’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67화 <텃세를 부리겠다고?>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이앤을 향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미처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사과 드립니다.” “음···. 그럼 계속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 월드 서버로 온다고 해도 당신들에게 돌아갈 사냥터가 없습니다.” 다이앤의 말에 정운은 살짝 눈을 치켜뜨면서 말했다. “그건···. 지금 있는 사냥터를 열러분들이 모두 선점하고 계시다는 건가요?” “얘기를 알아 듣는게 빠른 분이시군요. 그 말대로입니다. 여기 지도를 보여드리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 준비해 둔 지도를 부하를 통해서 정운에게 건내 줬다. 지도를 받아든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의외의 득템인걸?’ 지도는 총 네 장. 70층부터 73층까지의 모든 지형이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물론 자세한 정보는 없이 전체적인 지형만 실려 있었지만 그것만 해도 도움은 되었다. 그리고 그 지도에는 출몰하는 몹이나 퀘스트에 관한 것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 대신에 미리 진출해 있는 각국들의 영역이 똑똑히 표시 되어 있었다. “흠···. 과연 빈틈없이 여러분들이 모든 사냥터를 나눠서 분할하고 있군요.” 정운은 지도를 보면서 마치 감탄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아까 콧 웃음을 쳤던 중국의 대표인 장한이 말했다. “그렇다. 그리고 확실히 말해서 어느 나라라고 해도 너희들에게 사냥터의 영역을 나눠줄 생각은 없다.” 장한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도조 마사토가 말했다. “그렇지만··. 너희들 조센징들이 주제파악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면 우리들의 부하로 받아 줄 수는 있다. 너희들에게 천황폐하의 신민으로서 봉사할···.” 콰앙!!! 도조 마사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력한 일격이 도조 마사토의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예의 없는 놈이군.” “네놈 입으로 예의를 말해? 미친놈···.” 도조 마사토의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간 화살. 그것은 정운이 전광석화처럼 뽑아서 날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화살을 도조 마사토의 뒤편에 있던 부하가 거북이 등껍질 같은 방패를 꺼내서 막아낸 것이다. ‘흠···. 정탐으로 가볍게 날린 공격이기는 했지만 전혀 무리 없이 막아냈어. 적어도 레벨 150이상이라는 건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거북이 방패를 들고 있는 자를 향해서 말했다. “제법이군.” “한 번만 더 각하에 관한 무례를 저지르면 그냥 두지 않겠다. 조센징.” “한 번만 더 조센징이라고 말하면 너희들 쪽바리들 전원 거꾸로 매달아서 주리를 틀어주지.” 정운의 말에 뒤편에 있던 박추성이 말했다. “나한테 맡겨라. 길게 시간 끌 것도 없어. 지금 여기서 끝장내 주겠다.” 박추성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사실 그는 이미 속은 분화 직전의 화산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정운이 먼저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면 그가 진작에 폭발 했을 것이다. 천황폐하, 신민, 조센징. 박추성을 빡치게 하기 한 키워드 톱 3리가 다 나왔다고 해도 좋았다. “추성이 형님. 일단 참으세요. 우리가 선전포고도 안 하고 무작정 공격하는 야만인도 아니지 않습니까?”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씩씩 거리면서도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의 인간들은 정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일본의 도조 마사토와 중국의 장한은 정운의 말이 무슨 뜻이지 잘 알았다. “예전에 조선하고 일본이 큰 전쟁을 했을 때 일본이 그렇게 했지. 선전포고도 없이 무작정 쳐들어왔었어. 그것도 우리 중국을 공격할 테니 길을 열어라. 라는 병신 같은 이유로 말이야. 결국 우리가 나설 것도 없이 그 병신 같은 원정은 실패 했지만 말이야.” 장한은 마치 일본의 도조 마사토를 망신시키기로 작정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 장한을 보고 도조 마사토가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입 조심 하는게 좋을 거다. 목 날아가기 싫다면 말이야.” “사람 말로 지껄여라. 섬나라 원숭아.” 화르륵!!! 정운은 이 대화(?)를 들으면서 중국팀과 일본팀이 사이가 몹시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 저쪽편, 중국 우리편. 이라는 얕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정운이 보기에 저 중국 대표의 눈에서도 자신들을 얕보고 멸시하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아까 도조 마사토가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했던 것도 정운이 보기에는 놈이 말하지 않았다면 저 장한이라는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을 것이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본은 이제 적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다. ‘어차피 추성이 형님 생각해서라도 일본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말이야···. 뭐 그게 아니라고 해도 저 새끼는 싸가지가 없었어.’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좌중을 향해서 말했다. “여러분들도 보셨겠지만···. 일본의 도조 마사토는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한 정운은 잠시 말을 끊어서 주목을 끌어 올린 다음에 다시 말을 이었다. “사냥터가 없으니 우리보고 돌아가라고 했죠? 그건 거절하겠습니다. 대신에···. 저 일본팀의 영역을 우리가 접수하기로 하죠. 여기에 관해서 뭔가 하실 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앞으로 나오시죠. 모두 한꺼번에 상대해 드릴 테니.” 정운은 이제까지의 예의 바른 모습을 버리고 광오할 정도로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변한 정운의 태도에 세계 각 팀의 대표들은 잠깐 페이스를 잃었다. 이제까지 순한 양처럼 굴던 정운이 갑자기 늑대의 탈을 쓴 것처럼 바뀐게 아닌가? ‘혹시···.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이제 막 올라온 주제에····.’ ‘한국인들이 원래 일본하고 사이가 나쁘기는 하지만····. 설마 허장성세는 아니겠지?’ 세계 각국의 대표들은 정운의 말에서 진의를 읽어내기 바빴다. 결국 러시아의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나야 전혀 상관없는 제 삼자이지만····.” 그는 일단 그렇게 적당한 선을 그어둔 다음에 정운에게 다시 말했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월드 서버에 올라 왔던 나라는 당신들 까지 포함해서 이렇게 아홉 국가만이 아니다.” “····무슨 말입니까?” 악마에게 이미 진출한 국가와 그 인원수까지 정확하게 듣고온 정운으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그런 정운에게 알렉세이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도 몇몇 나라들이 진출은 했었지. 하지만 부족한 힘을 가지고 미리 진출한 자들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정운을 바라보는 알렉세이의 얼굴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것들···. 설마?’ 정운은 알렉세이의 말이 뭘 뜻하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눈치 챈 것 같군. 그렇다. 힘이 부족한 것들은, 우리가 모두 잡아먹었다.” “······과연, 약육강식이라 이거군요.” 정운은 겉으로는 꿀리지 않는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연···. 그랬단 말이지···.’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미소와는 다르게 속으로는 이런저런 계산을 하기 바빴다. 확실히 월드 서버의 진출 국가가 고작해야 아홉 개 뿐이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라운드 제로가 전 세계에 뿌려 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더 많아야 했다. 결국 아홉이라는 숫자는 월드 서버에 진출한 숫자를 말하는게 아니었다. 진출하고 그 후의 경쟁에서도 살아 남은 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놈들···.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걸까? 이렇게 되면 우리도 어딘가와 손을 잡는게 좋을까?’ 정운이 손익계산을 부지런히 했다. 현재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갑인지 을인지부터 확실하게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힘이 부족하다면 그 부족한 힘을 커버할 때 까지는 일단 굴종의 굴욕을 견딜 각오도 해야 했다. 그때 도조 마사토의 말이 이어졌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십 여년 전에 인도에서 20명의 인간들이 진출을 했었지. 그 놈들 전원을 처리한게 우리 일본이다.” “·····어지간히 약한 상대를 골랐나 보군.” 정운의 말에 도조 마사토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완벽한 힘의 차이를 보일 기회가 왔다는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그때 진출했던 20명 중에는 10명이 100레벨 이상이었다. “·······뭐라고?” 정운은 순간 사탕 먹다가 이빨이 부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정운의 얼굴을 보고 도조 마사토는 심각한 오해를 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 하는게 속이 편하겠지.” “············.” 정운은 다른 의미로 거짓말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0명이 100레벨이 넘겨? 그럼 나머지 10명은? 설마 그 열 명은 200레벨이라도 넘겼다는···. 그건 아무래도 아니겠지?’ 정운이 그런 심각한 생각을 하느라 인상을 구기고 있는 것을 보고 도조 마사토는 자기 한 말을 이었다. “그런 놈들을 모두 처리한게 우리 일본이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면···. 아까 네 공격을 막아낸 내 심복의 이름은 사쿠라바 고로. 우리 일본의 NO.2지. 레벨이 얼마일 것 같나?” “········.” 정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정운에게 도조 마사토가 놀라지 마라는 듯한 눈을 하고 말했다. “무려 151이다. 너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할 레벨이지.” “········.” ‘그래··. 꿈도 못 꿨다. 설마 151일 줄은···.’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조 마사토는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서 말을 이었다. 놈은 지금 정운인 자신의 말에 완전히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쿠라바를 부하로 두고 있는 내 레벨은 172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겠나?” “···············.” 정운은 완전 침묵했다. 다만 그 침묵의 의미는 도조 마사토가 생각하는 것처럼 겁에 질려서 할 말을 잃은게 아니었다. 그냥 허탈감에 전신에 힘이 쭉 빠진 거지···. ‘이건··.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정운은 순간 굉장히 아플 것 같은 주사를 막상 맞고 보니 ‘어? 별것 아니네?’ 라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의 느낌이 격하게 떠올랐다. 그런 정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조 마사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뭔가 개소리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사실 도조 마사토의 행동은 정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이없는 행위였다. 자신의 레벨은 중요한 정보다. 그런 정보를 그냥 막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는 건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1년만 굴러도 알 만한 인간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조 마사토는 그런 레벨을 주절주절 자랑 스럽게 지껄였다. 이건 기본적으로 도조 마사토의 편견 때문이 컸다. 애당초 한국인··. 아니 도조 마사토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조선인에 대해서 그는 심각한 편견이 있었다.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열등하다. 조선인은 미개하고 더럽다. 조선인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 도조 마사토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시절의 인간이다. 그리고 당시의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자신들이 지배하고 관리하는게 당연한 미개한 인간으로 인식하게 자국인들에게 꾸준한 편견을 시켰다. 일본의 만엔짜리 지폐에 나오는 위인인 후쿠자와 유키지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남긴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라는 말이었다. 언 듯 이 말만 들으면 무척 평등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같은 일본인들, 혹은 일본에 순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하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조선에 관해서 남긴 말들 중에는 여러 가지 과격한 말들이 있다. 조선 왕조에 관해서는···. [조선의 멸망은 그 나라의 인민을 위해서 축하할 일이다.] 라고 했으며··. 조선에서 1894년 동학농민군이 봉기 했을 때는 그들을 보고···.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같다.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라고도 했다. ============================ 작품 후기 ============================ 이번 챕터에 관한 내용은 소제목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에 대한 설명은 당시 일본인들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 다음 화에도 조금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68화 결국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은 뭐랄까? 굉장히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사상인 소위 개혁, 개화. 이 두 가지를 순순히 따라오는 사람은 좋은 사람.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죽여도 괜찮은 개, 돼지들. 이라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조선은 아니지만 중국인에 관해서도···. [중국인은 장구벌레, 개돼지, 거지, 오합산적이다. 일본군이 벌레와 짐승을 죽이는데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중국인들은 지금도 후쿠자와 유키치를 몹시 싫어한다. 당시 일본은 넘치는 힘을 침략에 쏟기 바빴고··. 그런 침략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것에 있어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당시의 일본인들, 특히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선인이나 중국인들을 미개한 인간들도 치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완전히 자기 아래로 바라보는게 습관이 되었기에 도조 마사토 역시 정운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깔보고 자신의 전력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서툰 협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꿈에도 모른체 말이다. “하아·····.” 정운은 한 숨을 내쉬면서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한국 팀원들이 정운을 바라보고는 뜻대로 하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도 이제 상당히 안심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저 재수바리에게 고개 숙일 일은 없겠네.’ ‘레벨 172? 놀고 있네···.’ ‘유니크 스킬이나 아이템을 좀 봐야 알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저건 내 밥이다.’ 타국 팀의 수준을 몰라서 은근히 긴장하고 있던 것은 정운 뿐만이 아니었다. 박추성 배대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긴장이 풀렸다. 한국에는 200레벨만 둘에 정운의 레벨도 172였고 한중겸 177, 이민지는 184였다. 숫적으로 조금 열세이기는 하지만 질적으로는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질의 차이면 작은 숫적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본의 레벨이 이 정도라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될까? 다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정운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일본의 도조 마사토는 자기 잘난 맛에 지껄이던 말을 다 끝낸 모양이다. “·····. 그러니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무슨 기회?” 정운은 탁 풀린 긴장 때문에 도조 마사토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그런 정운에게 도조 마사토는 얼굴을 붉히면서 외쳤다. “대 천황 폐하에게 충성을 바쳐서 영광스런 신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너희들 조센징들에게 말이다.” “아···. 그거? 필요 없어. 어디 너희들하고 우리하고 둘 중에 누가 죽나 한 번 해보자.” 정운은 여기서 일본하고 끝장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결정에 한국 팀도 아무런 동요 없이 받아 들였다. 오히려 박추성은 크게 반기면서 말했다. “정운아. 나한테 바로 말만 해라. 지금 당장 다 쓸어 버릴 테니.” 잔뜩 흥분한 박추성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기회는 드릴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우리는 이만 갑시다. 형님.”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추성은 이왕 하는 것 오늘 이 자리에서 다 해치워 버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정운의 결정에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정운이 자신들의 리더였고 또 그런 정운이 일본과 확실하게 적대 관계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운의 명령에 최대한 협조하고 순종하기로 마음 먹는 박추성이었다. 오히려 정운이 물러나는 것에 역정을 내는 것은 도조 마사토였다. “기다려라!! 어차피 싸운다면 뭐 하러 기다리지? 우리 대 일본 제국의 사무라이는 항상 마음먹은 그 순간 정정당당하게 정면으로 싸운다.” “놀고 있네···.”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비웃었다. 사무라이는 정정당당하게 정면으로 싸운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헛소리였다. 일본의 국내 전쟁사를 보면 중국의 병법을 따라해서 별의 별 전략을 다 구사한다. 때로는 상대방 쇼군의 어린애를 볼모로 잡아서 인질극을, 또 때로는 동맹을 맺어 놓고 뒤통수치는 배신까지 가지가지였다. 그런데 무슨 얼어 죽을 정정당당이란 말인가? 정운은 도조 마사토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 여기는 한국과 일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팀들도 함께 있다. 무엇보다 모두가 모인 이유는 회의를 위해서였지?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창칼로 싸운다고? 너희들은 기본적인 예의도 없나?” 정운의 말에 도조 마사토는 있는 힘껏 분개해서 외쳤다. “죽여 버리겠다. 이 더러운 조센징!!!!” 그는 그렇게 외치면서 자신의 검을 꺼내서 뽑았다. 정운은 그런 놈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흥분하는 놈이군. 그건 좋은 일이지만 여기서 전력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데···.’ 정운은 흘깃 다른 나라의 팀들을 봤다. 그들은 오히려 이 상황을 반기는 기색이었다. 자신들의 출혈 없이 한국의 전력을 파악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쯧, 역시 여기서 제대로 싸우는 것은 득책이 아니야.’ 일본의 전력은 대강이지만 파악을 했다. 하지만 아직 다른 나라는 아니다. 일본의 수준을 생각하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까 지도를 봤을 때 일본의 영역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는 것을 봐서는 일본팀 보다 강한 나라들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가능하면 그런 상황 속에서는 자신들의 전력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저 일본의 도조 마사토라는 극우 병신은 물러날 생각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최소한으로 감수해 볼까? 어느 정도 살짝만 편린을 드러내는 것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도조 마사토에게 말했다. “정히 망신 당하는게 소원이라면 그 소원 들어주지.” “그 주둥아리 짓뭉개 버리겠다. 전군 준비하라. 눈앞에 있는 조센징들을····.” “잠깐!!!!” 그때 정운과 도조 마사토의 사이에 끼어 들어서 상황을 냉각 시킨 사람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공작이라는 남자였다. “장···. 네놈은 무슨 일이냐?” 도조 마사토는 장 그레고리를 보며 이를 갈면서 말했다. 그런 도조 마사토에게 장 그레고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도조, 네 방식은 아름답지가 못해.” “···········.” 장 그레고리 공작의 말에 도조 마사토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 얼굴은 마치 ‘이 자식 또 지랄이다.’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눈살은 찌푸리면서도 정작 앞에 나서서 뭐라고 말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봐서는 장 그레고리가 적어도 도조 마사토가 우습게보지 못할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중간에 둘을 중재한 장 그레고리가 말했다. “이렇게 많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단체로 어지럽게 치고받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이왕이면 좀 더 우아한 방식으로 흑과 백을 가리는게 좋지 않겠나?” 장 그레고리 공작이라는 남자의 말을 듣고 슬기는 세레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프랑스 남자들은 다 저렇게 느끼해요?” 그녀의 말에 세레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몇몇 안 좋은 예를 보고 전부를 판단하지 말아줘요. 하아·····.” 말은 조국을 옹호하고 있었지만 저 장 그레고리라는 남자에 관해서는 세레나도 한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세레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장 그레고리가 말했다. “내가 입회를 하지. 양 팀의 한 명씩이 나와서 일대일 결투를 함이 어떤가?” 장 그레고리의 말에 도조 마사토는 살짝 흥분이 가라앉은 것 같은 얼굴로 고민했다. ‘생각해 보면···. 저 놈들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는 하군. 특히 저 리더로 보이는 박정운이라는 놈은 어쩌면 150정도는 되는 레벨일지도 몰라.’ 도조 마사토는 정운의 레벨을 한참 잘못 보고 있었다. “좋다. 우리 쪽에서 한 명을 보내지? 저쪽에서 받아들일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도조 마사토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나올 거냐? 네놈이 직접 나올 테냐? 그럼 내가···.”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그런 것은 하나도 재미 없어.” 정운의 말을 자르면서 중간에 나선 것은 자칭 공작이라고 하는 장 그레고리였다. 그는 정운에게 쯧쯧 혀를 차면서 손가락을 까닥 거리면서 말했다. “그렇게 갑자기 클라이맥스로 가서야 쓰나? 자네도 흥취를 모르는 남자군.” “············.” ‘넌 어쩐지 구타의혹을 부르는 남자고 말이야.’ 입이 근질근질 거렸지만 그래도 일단은 속으로만 말하는 정운이었다. 여기서 괜한 적을 또 늘릴 수는 없지 않은가? 거기다 상대는 어쩐지 정신상태도 정상하고는 거리가 먼 인간으로 보인다. 장 그레고리 공작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는 의미가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것 약간의 도박성을 섞어보면 어쩔까?” “무슨 말입니까?” 정운의 말에 장 그레고리 공작은 정운과 도조 마사토를 향해서 말했다. “신의 은총과 자신의 운에 모든 것을 걸어 보자는 말이다.” “············.” “············.” 정운과 도조 마사토가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센스 없는 친구들이군. 내 말은 그대들이 상대편에서 한 명씩을 지명해서 그 사람들 둘이서 각 팀의 긍지를 짊어지고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서 결투를 하게 하자는 말일세.” 말하는 센스는 둘째 치고····. 일단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알 것 같았다.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서로 간에 상대를 지명한 다라···. 나쁘지 않군.” 정운이 먼저 그렇게 말하자 도조 마사토는 뒤로 빼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이 꿀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막 월드 서버에 올라온 주제에···. 주제도 모르는 것을 같으니라고···.’ 도조 마사토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월드 서버에 막 올라온 팀들의 평균 레벨은 보통 110~130 정도였다. 그리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반 정도는 아직 100레벨에도 이르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한국처럼 철저하게 소수 정예로 해서 올라오는 경우는 그라운드 제로에 있어서도 처음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째서 한국은 이렇게 평균 레벨이 높은 걸까? 그것은 한국의 서버가 오랜 세월동안 게임의 클리어를 거의 포기하고 장시간 게임을 플레이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추성과 배대호가 게임의 클리어에 의미를 두지 않기 시작하면서 다른 플레이어들도 약간의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그 정체기는 박정운이라는 새로운 활력제가 최상층에 합류하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민지와 한중겸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레이드를 했다면 정운이 오기 전에 70층까지 돌파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신들의 휘하에 있는 삼대 길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레이드 때마다 희생을 감수하면서 싸우는 식으로 했다면 말이다. 실제로 다른 서버에서의 레이드는 항상 그랬다. 최상층을 한 층 한 층 돌파 할 때마다 막대한 희생이 발생했다. 특히 중국의 레이드 팀은 항상 희생이 발생 할 것을 사전에 염두해 두고 아예 희생조를 따로 추려 놓고 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부하 유저들을 제물로 바쳐서 어찌어찌 앞길을 여는 그런 방식의 레이드를 고수한 것이다. 그런 레이드를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힘만으로 희생자 없이 깔끔하게 레이드를 성공 시킨다. 라는 생각으로 올라온 것은 오로지 한국 팀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팀은 다른 팀과 다르게 어렵게 올라온 셈이었지만 그만큼의 성과는 있었다. 다른 팀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다면 한국은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계단을 직접 오른 만큼 한국은 튼튼하고 강해진 것이다. 한국이 그런 우직한 방식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다른 팀들은 그저 한국팀이 막 올라온 신참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우어어어어어어!!!! 이제 눈치 챈건데 예약 아이템 시간 잘못 설정했습니다. 연달아서 두 편 올라갔어요. 이러면 추천수 줄어 들어서 안 하고 있었는데....ㅠㅠ 169화 <운 지지리 없는 인간.> 결투를 위한 넓은 공간이 마련되고··.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한국 팀과 일본 팀이 마주섰다. 그들의 사이에는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공작이 심판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지.” 팅!! 장 그레고리 공작은 동전을 위로 던져서 손등에 엎었다. “앞면? 뒷면?” 그의 말에 정운이 먼저 말했다. “앞면.” “난 뒷면으로 하지.” 둘의 선택이 끝나고 장 그레고리는 동전을 공개했다. 그러자 동전은··. “앞면이군. 한국의 박정운이 먼저 선택하지.” 정운은 그 말에 일본 팀을 쭉 둘러봤다. ‘도조 마사토하고 아까 그··. 뭐라고 했더라? 다이몬 고로? 그 둘은 피하는게 좋겠지?’ 사쿠라바 고로였다. 어느 게임에 일장기 머리띠를 두른 게임 캐릭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일단 그 둘은 피했다. 정운의 팀에서 가장 약한 슬기의 레벨은 현재 101, 그리고 세레나 110, 주경택 128등. 아직은 150이상의 유저를 상대하기에 버거운 상황이 종종 있었다. ‘뭐, 슬기가 지명 당하면 바로 패싸움으로 몰고 갈 거지만 말이야.’ 애당초 슬기에게 1대1 결투를 시킬 생각은 없는 정운이었다. 나머지 인원을 쭉 둘러본 정운은 입맛이 썼다. ‘생각해 보니 본다고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를 알 수가 없지. 이건 게임 시스템으로 강해지는 세상이니 말이야.’ 현실의 세계라면 골격이나 근육의 양으로 어느 정도 강함과 약함을 구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스테이터스와 스킬, 아이템으로 강함과 약함이 나뉜다. 그것은 겉 보기로는 판단이 불가능했다. 결국 정운은 아무나 한명 찍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 제일 왼쪽에. 그래··. 찌질한 욱일기 머리띠 한 놈. 네가 나와라.” 정운의 말에 한 명의 남자가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감히 우리 신성한 대 일본 제국의 영광스런····. “시끄러!! 도조 마사토. 네 차례다. 골라라.” 정운은 어쩐지 뻔하고 뻔한 말을 하려는 놈의 말을 사전에 잘라 버렸다. 정운이 박추성이나 배대호 처럼 일제 강점기를 격은 인간은 아니지만 자꾸 대 일본 제국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들으니 은근히 짜증이 났다. “고바야시 아키라 중사라···. 불쌍한 놈. 그는 우리 대 일본 제국으니 팀에서도 10위권 안에 드는 강자이다.” “빨리 고르기나 골라라.” 정운은 이제 슬슬 이 일본 극우들의 종특은 이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으니 빨리 고르기나 고르라는 정운의 태도에 도조 마사토는 순간 울컥 했지만 애써 평정을 되찾으면서 말했다. “흥, 내가 누구를 고를지는 이미 정해 놨다. 아까부터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놈. 바로 저 놈이다.” “·············미친놈.” 정운이 이렇게 말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도조 마사토의 손끝이 다름 아닌 박추성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정운이 어이없어 하는 것을 보고 도조 마사토는 오히려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원래 사람은 행동 거지에서 어느정도 격이 드러나는 법이지. 아까부터 섣불리 흥분하기 일수에 작은 도발에도 넘어오고····. 아주 피라미라고 대 놓고 표를 내더군. 내 안목은 정확하다. 넌 틀림없이 조센징들 중에서 가장 피라미가 틀림없어.” 도조 마사토의 명추리(?)를 들은 나머지 한국 팀원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겼다.’ ‘거저 이겼군.’ ‘저 놈 생각은 하고 사나?’ ‘슬슬 불쌍해지려고 하네.’ ‘어쩐지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왜 졌는지 알 것 같아. 저런 근자감 쩌는 놈들이 군의 간부면 핵 없어도 졌을 거야.’ 이렇게 한국 팀원들의 승리의 확신을 한 몸에 짊어지고 박추성이 앞으로 나왔다. 다만 싸우기 전에 정운이 그를 찾아서 말했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도 안다. 걱정하지 마라.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 주마.” “····그게 아니고···.” “알았다 본보기가 되도록 산채로 찢어···.”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제 말 좀 들어줘요.” 정운은 박추성에게 당부의 말을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운은 보고 도조 마사토가 말했다. “빨리 시합 하지 않고 뭐 하려는 거냐? 설마 도망살 생각이냐?” “좀 시끄러!!! 여기 작전 짜는 중인 것 안 보이냐?” 정운은 그렇게 도조 마사토의 헛소리를 일축 시켰다. “저 놈이····.” “각하 고정하십시오. 제가 본때를 보여 주겠습니다.” “음···. 너만 믿겠다. 고바야시.” “예. 각하!!!” 그렇게 일본인들이 대화하는 동안 정운과 박추성의 대화도 끝났다. “할 수 있겠죠? 형님.” “······꼭 그래야 하냐?” “꼭은 아니지만 형님, 가능하면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았다. 그럼 그렇게 하마.” 그렇게 정운과 박추성의 작전(?) 회의도 끝나고 마침내 두 선수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양쪽 모두 이름을 밝히도록 하라.‘ 장 그레고리의 말에 일본쪽의 선수가 먼저 말했다. “대 일본 제국의 충성스런 천황폐하의 창칼인 고바야시 아키라 중사라고 한다.” 자기 이름보다 사족이 더 많은 소개였다. “박추성이다. 너희들이 각하라고 부르는 머저리 말대로 한국팀에서는 가장 피라미지.” 물론 거짓말이다. 박추성은 눈앞의 고바야시 아키라를 보면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너 같은 쪽바리 상대하는 데는 나 같은 피라미도 과분해.” “감히·····.” “자자··. 죽고 죽이는건 금방 하게 해 줄 테니 지금은 좀 참지?” 장 그레고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촉즉발 사태인 두 사람을 때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주변을 향해서 선언했다. “그럼···. 지금부터 한국의 박추성과 일본의 고바야시 아키라의 결투를 시작하겠다. 이 결투는 일본과 한국의 전초전으로 취급될 것이다. 이 결투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지금 앞으로 나오라.” 당연하지만 그런 인간이 나올 리가 없었다.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여기서 체면 구길 수는 없었고, 타국의 입장에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럼···. 결투 시작!!!” 장 그레고리 공작의 시작 소리와 함께 고바야시 아키라가 박추성을 향해서 돌격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양손에 짧은 단도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소태도라는 건가? 만화에서 본 적 있는데···. 생각 보다 빠르군.’ 정운은 경이적인 집중력 스킬을 이용해서 상대의 동작을 똑똑히 바라 볼 수 있었다. 정운의 집중력 스킬은 체감 시간을 300% 떨어트린다. 즉, 상대의 동작을 세 배나 느리게 관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바야시 아키라라는 상대의 공격은 상당히 빨라 보였다. ‘스피드에 특화된 타입인가? 하지만··. 그걸로는 추성이 형님을 못 잡지.’ 정운이 생각하는 대로였다. 박추성은 상대가 날카로운 참격을 전방위적으로 날렸지만 그것을 유유히 피해냈다. 애당초 박추성의 클래스 명은 궁극의 암살자다. 속도면으로는 집중력 스킬을 풀로 끌어올린 정운이라고 해도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고작 레벨111짜리 검사의 쌍검 정도에 잡힐 리가 없지 않은가? “칫!!” 파앙!!! 고바야시 아키라는 자신의 선제공격이 통하지 않자 일단 거리를 벌렸다. ‘나와 같은 속도 중시형인가? 제법 빠르군.’ 고바야시 아키라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열 번이 넘는 참격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공격을 유유히 피해냈다. 고바야시 아키라는 상대가 생각 만큼 피라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나하고 비슷한 수준의 레벨이겠지. 오랜만에 강적이군.’ 그렇다고 박추성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편 박추성이 유유히 고바야시 아키라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보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야. 정운아. 형님 배라도 아픈거냐? 왜 피하기만 하는 건데?” 한중겸이 정운에게 말했다. 사실 한중겸이 알고 있는 박추성의 실력이라면 최초의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역공을 가해서 상대를 서른 조각으로 잘게 썰어 버렸을 것이다. 원래 일본이라면 이를 갈고 있는 그였기에 더욱더 화신하고 있었다. 아주 시작하자마자 극 초살로 한 방에 끝나 버릴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박추성은 계속해서 방어 일변도로 나오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잘 피해내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다였다. 전혀 반격을 하지 않고 있는 박추성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정운이 아까 뭔가 말을 할 때 뭔가 지시를 했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었다. 정운은 궁금해 하는 한중겸에게 말했다. “추성이 형님에게는 무한의 영사의 사용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어요.” “뭐···? 왜?”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여기서 모든 전력을 드러낼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요. 추성이 형님 실력으로 설마 지기야 하려고요?” “그건··. 그렇지만···.” “일단 지켜보자고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정 위험하다면 그때는 써도 좋다고 사족을 달아 두기도 했으니까요.” “···········.” 정운의 말에 한국 팀은 다시 한 번 박추성의 전투를 지켜봤다. ‘이거···. 생각보다 영 어색한 걸?’ 정운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박추성은 상대의 공격을 계속해서 피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정운이 전력을 숨기기 위해서 무한의 영사의 사용을 봉인하자고 했다. 듣고 보니 보는 눈이 많은 상황이라서 그럴 듯한 의견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박추성 본인도 예전에는 검을 무기로 썼지만 언제부터인가 무한의 영사만을 계속 써왔다. 거의 100년이 넘게 그 무기 하나만을 썼던 것이다. 검술의 스킬도 있기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썼던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정운에게 빌린 아이템인 검을 손에 쥐고는 있었지만 영 어색했다. ‘쯧, 꼭 차,포 때고 장기 두는 기분이란 말이야.’ 박추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설령 차, 포가 아니라 차, 포, 상, 마를 다 때고 싸운다고 해도 이건 이겨야 되는 싸움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상대한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이기느냐? 라는 것이었지··. “칫···. 진짜 미꾸라지마냥···. 기공술!! 잔상술!!” 박추성이 야금야금 잘도 피하자 고바야시 아키라는 은근히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려는 것처럼 놈도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진짜 스피드의 극한을 보여주마!!” 놈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부터 놈의 검에 아주 찐한 검기가 맺혔다. 그리고 박추성을 향해서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아아아아아아!!!!!!!” 파파파파팟!!! 날카로운 참격이 연달아서 박추성을 베기 위해서 날아왔다. 물론 거기에 맞을 박추성이···. 스팟!! “어? 이건··?” 놀랍게도 살짝 베였다. 물론 몸에 직접 베인 것은 아니었다. 공방을 흘리는 와중에 살짝 이지만 적의 참격에 소매자락이 베인 것이다. 박추성은 옷의 소매의 일부분이 살짝 잘리자 놀랐다. 분명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이지만 손목 쪽이 베인 것이다. “····이건? 어떻게 한 거지?” 박추성은 자신의 잘린 소매를 보고 살짝 놀랐다. 그런 박추성을 보고 고바야시 아키라는 외쳤다. “알 것 없다!!! 죽어서 염라대왕에게나 물어봐라!!!”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박추성에게 연달아서 검격을 날렸다. 그리고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놈의 공격을 차분하게 감상하던 박추성은 어떻게 놈의 공격에 자신이 맞았는지 알았다. “흠···. 재미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군. 잔상술이라고 했던가?” “칫···. 용케 눈치 챘군.” ============================ 작품 후기 ============================ 상호 지명제인데 하필이면 고른게 박추성.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글 쓰고 보니 격투기를 전혀 모르는 내 친구가 케인 얼굴만 보고 너무 순둥이처럼 생겨서 약해 보인다고 했던 경우가 생각나더군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현재 비축분 없습니다. 이러다가는 설 전후로 연재가 간당간당하고 있습니다.ㅠㅠ 170화 고바야시 아키라가 용케도 자기 기술을 눈치 챘다고 하자 박추성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상대까지 해 봤는데 모르는게 이상하지. 그것도 모르나? 어지간히 머리 나쁜 놈이군.” “·············.” 박추성의 말에 고바야시 아키라는 그저 얼굴만 붉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바야시 아키라의 잔상술. 그것은 참격에 잔상을 남기는 기술이었다. 허공에 참격을 가하면 보통은 그대로 참격이 지나가는 순간에 검광이 잔상을 남기고 그것이 참격의 상태로 허공에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대략 10초 정도? 그 정도 지나면 참격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응용을 잘만 하면 상당히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놈은 멀었어. 저런 스킬을 방어에만 사용하다니···.’ 박추성이 라면 같은 스킬이라도 다르게 사용했을 것이다. 빠른 발을 살려서 상대방을 전방위에서 포위하면서 참격으로 포위망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빠른 발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검기의 잔상을 방어에만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주변에 빼곡하게 검기의 잔상을 둘러서 방어에 응용하면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기껏 열심히 만들어 놓은 빠른 발도 멈춰 버린다. 검기의 잔상은 적에 대한 방어도 되지만 자신의 발을 묶는 감옥도 될 수 있는데··. 놈은 그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방어를 튼튼하게 하는 쪽을 선택 한 것 같다. 어느 쪽이든 현명하다고 말 하기는 어려웠다. ‘좋아··. 어떻게 이겨야 할지 대강 그림이 나오는 군.’ 박추성은 자신의 검에도 검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수동적인 태도와 달리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가서 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이놈이!!?” “뭘 허둥거리고 있나? 검술에 자신 있는 것 아니었던가?” 박추성의 갑작스런 공세에 고바야시 아키라는 허둥 거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일방적인 수세로 몰리던 자가 갑작스럽게 공세로 전환하자 자신의 리듬이 깨진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허둥거리면서 생긴 빈틈을 박추성은 놓치지 않고 교묘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자자자자·····. 이거 엉망이군. 빠릿빠릿하게 움직여라. 애송이!!” “크윽····.” 고바야시 아키라는 박추성의 조롱에 이를 악 물었다. 한편 이걸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정운은 살짝 감탄한 듯이 중얼 거렸다. “추성이 형님 검 잘 쓰네요. 스킬도 거의 안 쓰면서 센스가 있어요.” “당연하지. 너희들 저 녀석을 뭐라고 생각한 거냐? 무한의 영사라는 아이템 하나 잘 만나서 대박친 운수 좋은 놈?” 정운의 그 말에 대답한 것은 한국의 NO.2라고 할 수 있는 배대호였다. 평소에 말 수가 적은 그가 이렇게 먼저 나서서 누군가의 말에 대답하는 것은 드물었다. 배대호는 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말했다. “애당초···. 무한의 영사가 있든 없든 저 놈은 강했어. 전투에 관한 센스가 남달랐지. 레벨 20일 때 레벨 40의 유저와 정면 대결을 벌여서 이긴 적도 있었지.” “20일 때 40을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주경택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하고 중얼 거렸다. 사실 주경택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초보 시절을 다 거치고 자수성가한 자들이 대부분이다. 슬기 같은 경우는 정운이 좀 키워준 타입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슬기도 레벨20과 레벨 40 사이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습도 아니고 일대일 정면 대결에서 당당하게 이겼다니···. 그게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동생들의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배대호는 담담하게 말했다. “보면 알 거야. 왜 내가 저 녀석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 받아도 얌전히 있는지를 말이야.”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박추성과 고바야시 아키라의 전투로 다시 집중되었다. “아아아아아아!!!!!!” 파파파파파팟!!! 박추성의 공세에 당황하던 고바야시 아키라는 반격을 가하기 위해서 거칠게 칼 부림을 날렸다. 박추성은 그런 상대의 공격을 유유하게 피했다. 마치 물살을 차고 흘러가는 낙엽처럼 박추성의 움직임은 흔들림이 없고 고요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틈틈이 상대에게 날카로운 반격을 날리는 박추성은 고바야시 아키라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고바야시 아키라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추성의 검격을 막아내기 위해서 미친 듯이 쌍검을 휘둘렀다. ‘빌어먹을··. 인정하기 싫지만 속도는 나보다 한 수 위다.’ 사실 한 수 정도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싸우면서 박추성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 고바야시 아키라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미 자신이 박추성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스팟!! “아앗!!!” 그는 자신의 등짝이 살짝 베이는 것을 보고는 신음에 비명을 질렀다. “이 비겁한 조센··· 으읏··!!?” 그는 처음에는 그 등에서의 공격을 한국 팀의 암습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휘둘렀던 참격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공격에 자신이 베인 것을 보고 크게 놀란 고바야시 아키라였다. 오랫동안 이 스킬을 사용해 왔지만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어디를 보지? 날 상대하면서 여유가 넘치는군.”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고바야시 아키라를 몰아 붙였다. 고바야시 아키라는 다시 허둥지둥 박추성의 공격을 막으려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스팟!! 스팟!! 이번에는 오른쪽 종아리와 왼쪽 팔꿈치가 역시 자신이 남긴 참격의 잔상에 당했다. “이런···.” “아까부터 알아봤지. 보통의 스킬이라면 사용자를 공격하지 않지만 네 경우에는 아닌 것 같더군.” 박추성은 고바야시 아키라를 연신 밀어 붙이면서 조소했다. 만약 고바야시 아키라의 스킬이 사용자를 상처 입히지 않는 스킬이었다면 놈은 활씬 더 과격하게 공격 했을 것이다. 참격을 남기면서 그걸 방패막으로 사용해서 치고 빠지는 식의 공격을 한다면 그건 정말 까다롭다. 하지만 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참격의 잔상을 오로지 방어의 개념으로만 쓰고 있었다. 왜 그럴까? 간단하게 가설을 세워봤다. 저 참격은 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대미지를 안긴다. 그러니 방패막으로 밖에는 사용을 못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가설은 정답이었다. 고바야시 아키라의 스킬인 잔상은 상당히 강력한 유니크 스킬이었다. 제대로 활용만 하면 그 효과는 정운의 유니크 스킬인 뇌천신공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보통 그런 스킬에는 패널티가 있기 마련이다. 사용 시간? 정신력의 소모? 혹은 쿨 타임이 있을 수도 있다. 당연히 놈의 스킬에는 패털티가 있었던 것이다. 허공에 남긴 참격의 잔상은 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공평하게 작용한다. 라는 최소한의 약점이 말이다. 말은 쉬웠지만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 차분하게 적을 관찰하고 그 약점을 깨닫는 것은 보통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전투중에 냉정하고 침착하게 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다. 인간은 낭떠러지에서 흔들다리를 건널때도 긴장하고 몸이 굳어 버리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전투 중에는 오죽하겠는가? “큭···, 이 비겁한 놈!!!” “비겁? 놀고 있네.” 박추성으로서는 원래 힘으로 눌러 버리면 편한 상대였다. 마음 먹었으면 10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기껏 봐주면서 싸우느라고 약점을 발견해서 공격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비겁? ‘이 자식 확 서른 조각으로 해체해 버릴까?’ 박추성이 무한의 영사를 쓸까? 말까? 근질근질해 하는 와중에도 이미 적은 한계에 도달했다. “제길···. 잔상 해제!!!” 놈은 결국 자기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잔상 스킬을 해제했다. 놈의 주변에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는 잔상의 참격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놈!! 용서하지····. 웃!?” 고바야시 아키라는 잔상을 사라지게 하고 이제 다시 박추성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놀랍게도 놈의 시선에서 박추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으읏···. 이건·· 커억!!!” 푸욱!!! 영문을 몰라서 허둥거리는 고바야시 아키라의 심장을 꿰뚫고 박추성의 검이 삐져 나왔다. “커어억····. 네··· 네놈이···?” “하도 안 쓰고 있어서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나 이런 스킬도 있었더라고.” 박추성이 일순간 고바야시 아키라의 눈에서 사라진 스킬. 순영(瞬影) 이라고 하는 기술이다. 순영 LV. MAX : 적의 시야에서 일순간 벗어나서 배후를 점한다.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적의 기척에서 잘 벗어날 수 있다. 암살자 계통의 은신술 중에 하나인 순영. 박추성이 무한의 영사라는 유니크 아이템을 손에 넣기 전에만 해도 주력으로 종종 사용하던 스킬이었다. 박추성은 심장의 바로 윗부분을 관통 당한 상태로 다 죽어가는 고바야시 아키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잘 가라. 라는 말 따위는 안 한다. 내 전우들의 몫까지의 고통. 충분히 만끽해 봐라!!!!” 파파파팟!!! 그리고 박추성의 검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동시에 적의 몸이 열 조각이 넘게 잘게 썰려 버렸다. 콰앙!! “크윽···. 바보같은 놈!! 조센징 같은 열등한 존재에게 대 일본 제국의 중사라는 놈이 지다니!!!” 도조 마사토는 검집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려 치면서 분개해 했다. 같은 일본팀에서도 그런 도조 마사토의 역정에 숨을 죽이고 눈치를 봤다. 사실 도조 마사토가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고바야시 아키라 대 박추성? 이건 애당초 게임이 안 되는 승부였다. 차라리 스쿠터로 F1머신을 이기기를 바라는게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었다. 승부가 길어진 것은 어지까지나 정운이 박추성에게 무한의 영사를 쓰지 말고 힘을 아끼라고 했기 때문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법 치열(?)한 속도 중시형 전사들의 승부로 보였겠지만···. 한국 팀원들에게는 고양이가 쥐를 앞발로 툭툭 치면서 가지고 노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박추성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고바야시 아키라의 머리를 들어서 그대로 일본 팀 쪽으로 집어 던졌다. “한 번 졌다고 포기하기는 이르지? 또 도전할 놈은 없나?” 손가락을 까딱 거리면서 일본팀을 도발하는 박추성에게 도조 마사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다!! 네놈 목으로 죽은 고바야시 중사의 넋을 위로해 주마.” 그렇게 말한 후에 도조 마사토는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추성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런 놈을 보고 정운은 동료들에게 말했다. “패싸움이 되면 동시에 모두 나갑니다. 메이지인 슬기와 주경택은 후위에서 마법 공격. 세레나는 중위에서 전체 버프와 후위의 방어. 나머지는 모두 전위로 돌립니다.” 정운은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진형을 바로 발표했다. 애당초 박추성이 진다. 라는 선택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던 정운이었기에 일본이 지고 나서 단체로 열 뻗혀서 덤벼들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하고 있었다. ‘뭐, 추성이 형님이 도발할 것도 어느 정도는 생각 했지만 말이야.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나?’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잠깐!! 도조 마사토!!!” 도조 마사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또 너냐?” “그렇다. 또 나다. 장 그레고리 공작이다.” “············.”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공작이 다시 한 번 도조 마사토의 앞을 가로 막았다. “지고 나서 화풀이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아. 그렇지 않은가?” “이대로 물러나라는 말인가? 네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장 그레고리!!!”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71화 <어차피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하하하하···. 이보게 도조···. 난 말이지··.” 쩌적···. 장 그레고리 공작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의 땅이 갑자기 갈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그의 몸에서는 상당한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상태로 도조 마사토를 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말이지···. 한 번도 자네한테 ‘부탁’이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네. 물론 앞으로 할 생각도 없고 말이야.” “··········.” 도조 마사토는 장 그레고리 공작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지금 이 와중에 함부로 치고 나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인원은 19···. 아니 이제 한 명이 사망 했으니 18명이다. 거기에 프랑스의 인원은 22명이다. 전체적인 레벨은 그저 그런 편이었지만 리더인 장 그레고리 공작은 도조 마사토 본인보다 더 강했다. “칫····. 돌아간다!!!” 도조 마사토는 결국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 도조 마사토의 등을 보고 박추성은 다행이라기 보다는 아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양코배기 자식이 초를 치고 있어····. 제길, 쪽바리 새끼가 쫄아서 도망가 버렸잖아?’ 박추성은 장 그레고리를 보고 이를 빠득 갈고 있었다. 정운이 말리고 있었기에 참고 있는 것은 박추성의 쪽이었다. 그래도 기껏 약을 올려서 도조 마사토를 낚았는데 중간에 장 그레고리가 초를 쳐 버린 것이다. “칫···.” 결국 박추성도 일단 등을 돌리고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 어차피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번이 아니라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돌아가는 박추성의 모습을 보고 세계 각국의 대표들은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저 남자가 한국 팀 중에서 가장 약해? 절대 그럴리는 없다.’ ‘저 정도 수준이면 못 해도 150대는 넘어. 아마도 NO.2 혹은 NO.3 정도는 되겠지.’ ‘한국이라···. 이제 막 올라온 것 치고는 상당한 수준이야.’ ‘인원은 고작 13명이지만···. 주의 하는게 좋겠군.’ ‘어차피 일본의 영역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있을 것이다. 그때 저울의 추를 어느 쪽에 올려두는 가를 선택하면 돼.’ ‘한국이라·····.’ 월드 서버는 확실히 말해서 국가간의 처절한 전쟁이다. 그런 전쟁 속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없었고 영원한 적도 없었다. 가장 사이가 나쁜 동독과 서독도 예전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어쩔 수 없이 힘을 합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번에 한국이 진출하면서 그들은 대부분 이 기회에 전력을 증강 시키려고 했다. 힘으로 복종 시켜서 아군으로 만들면 가장 좋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PK로 잡아서 경험치와 아이템으로 보상을 얻어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얼마전에 PK에 대한 패치가 되면서 PK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대폭 커진것도 그들에게 그런 양자 택일을 선택하게 하는 큰 이유였다. 정작 그 대규모 패치의 이유가 한국 서버에서 김신수와 정운의 마찰로 해서 일러났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국 팀의 등장은 시작부터 태풍의 중심으로 떠올라 버렸다. 일행은 일단 스카이 타운으로 돌아왔다. 우선 시작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현재 월드 서버의 상태와 돌아가는 모습을 어느 정도는 파악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박추성 배대호는 월드 서버에 오고 나서도 여전히 괴물이다. 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박추성 배대호라는 핵병기를 구비하고 있는 한국 팀이 어째서 물러났느냐? 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운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어느 정도 납득 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리더로서의 리더쉽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초반이 팀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필수였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죠. 먼저 질문 있는 분은 얘기해 주시죠.” 정운이 그렇게 말을 하자마자 주경택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얘기했다. “어째서 일본을 그냥 보낸 거야? 모였을 때 한꺼번에 처리해 버리면 되잖아? 들어보니 그 놈 레벨도 고작 172라며?” 그렇게 말하는 주경택의 레벨도 아직 128이었다. 슬기나 세레나에 비해서 높기는 하지만 십왕들 중에서는 가장 막내인 그였다. 하지만 정운은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주경택 말고도 정운이 일단 물러나서 사태를 지켜보기로 한 것에 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잔뜩 있었다. 정운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질문에 답했다. “우선···. 우리 전력을 온전한 이유는 적을 최대한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전에 말했죠? 마찰은 최대한 피하겠다고.” 정운의 말에 이보영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저기···. 내 생각에 마찰을 피하는 방법 중에는 적을 만들지 않는 것도 있지만 존재하는 적을 아애 싹 박살내 버리는 것도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그건 안 되는 거야?” 이보영의 말은 어떤 의미로는 옳은 말이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보면 압도적인 화력으로 존재하는 적을 섬멸하는 것도 틀림없이 하나의 방편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온화한 성격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정운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최악의 결과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이다. “확실히 우리 쪽에는 추성이 형님과 대호 형님이 있죠. 하지만 말이죠···. 이 두 사람의 실력이 공개되면 다른 국가의 팀들은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정운의 말에 이보영이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어떻게 하다니···? 우리한테 이제 쓸대 없는 시비는 안 걸 것 같은데?” “아니, 그건 그렇지 않아.” 이보영의 말에 대답을 한 것은 정운이 아니라 타란툴라 길드의 길드장인 김수민이었다. 그는 십왕 중에서도 호탕한 성격이었지만 그런 성격과는 별개로 생각이 깊었다. 이보영이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지 않다니?” “난 정운이가 무슨 걱정을 한지 알 것 같아. 대 한국 동맹이라고 해야 할까?” “대 한국 동맹?” “그래···. 만약 거기서 추성이 형님하고 대호 형님이 제 실력을 내 보이면···. 일시적으로 각국의 팀들은 두려움을 보이고 숙일지 몰라.” “그럼 좋은 것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는 그럴 거라는 말이야. 놈들이 계속해서 우리한테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볼 리는 없지. 아마도 세계 각국이 똘똘 뭉쳐서 우리에게 대항하려고 할 걸?” 김수민의 말은 정답이었다. 정운이 생각하고 있던 최악의 사태도 바로 그것이었다. 기존의 월드 서버의 진출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 만 큼은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일이 굉장히 피곤하고 귀찮아 지는 수가 있었다. 정운은 김수민의 대답에 부연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서···. 만약에 세계 각국의 NO.1과 NO.2가 최소한 중겸이 형님이나 민지 누님 수준의 힘을 갖추고 있다고 봤을 때 그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여러 가지로 위험합니다.”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팔짱을 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 정도일까?” “으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까 그 도조 마사토라는 놈도 레벨은 정운이하고 동급이었고···.” “장 그레고리라는 느끼 공작은 그것보다 좀 더 강해 보였지?” “이거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전력이잖아? 거기에 머릿수도 우리보다 적은 국가는 영국 뿐이야.” “그렇군···. 그들 모두가 연합을 해서 우리를 적대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로 피곤하겠어.”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납득하기 시작했다. 박추성과 배대호는 확실하게 강력하다. 하지만 숫 적인 차이도 어느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에 그들이 박추성 배대호를 피해서 따로 별동대를 운용하는 식으로 한국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될까? 숫적 우위를 앞장 세우고 공격한다면 한국 팀에서도 피해는 나올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한국 팀의 목표가 게임의 클리어인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의 온전이다. 타국의 팀과의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희생을 내는 것은 절대로 한국 팀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 속에서 명주호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아. 네 생각은 잘 알겠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적으로 돌렸더구나? 그건 네가 생각하기에 상정 범위 안이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우리의 힘을 다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만만치 않다는 것은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봐도 그 새끼들은 마음에 안 들어요. 대일본 제국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봐서는 추성이 형님하고 비슷한 시대에 온 것 같은데····. 박살을 내 버립시다.” “물론이지. 나한테 맡겨라. 이목이 모이지 않는 장소에서는 무한의 영사를 써도 상관없는 거겠지?” 정운의 말에 가장 많이 의욕을 불태우는 것은 박추성이었다. 그는 일본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다. 뭐, 일제 강점기에 살던 사람이고 또 대한독립을 위해서 독립군에 몸을 투신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사람이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열정도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냥 식어 버렸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 와서 월드 서버에서 욱일기를 본 순간 식었던 열정에 다시 한 번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물론입니다. 형님. 그리고···. 아까는 저만 본 지도이지만 이걸 좀 보시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영국의 다이앤 여왕이라는 여자가 보여준 지도를 펼쳐보였다. 거기에는 대략적인 지도와 함께 각 국의 세력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70층은 일본과 중국, 영국, 이탈리아, 서독과 동독이 세력을 분간하고 있었다. 71층에는 중국 일본, 이탈리아, 동독, 프랑스, 러시아, 미국등이 영역을 분간하고 있었다. 그리고 72층에는 중국, 러시아. 미국, 프랑스가 영역을 분간하고 있었고···. 가장 최상층인 73층은 훨씬 더 심플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대부분의 영역을 차지하고 일부 지역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걸 보면 대략적인 세력 구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죠?” “그렇군···. 잠시 이리 줘 봐라. 내가 수치로 정리해 주지.” 배대호는 정운에게 지도를 받더니 적당히 눈대중으로 세력 분할도를 표로 만들기 시작했다. “흠····. 음····.” 배대호는 지략가는 아니지만 산술이나 통계의 정리 같은 것에는 천재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능했다. 지도의 영역 분할도만을 보고도 어느새 슥슥 자료를 정리해서 모두에게 보여줬다. “일단 층별 영역도를 보고 대충 만든 거라서 크게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놈들 간의 세력의 상하 관계를 파악하는 것 정도라면 가능 할 거다.” 배대호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형님. 깔끔하게 정리 잘 하셨는데요?” “그래요. 이것만 봐도 대략적인 놈들의 세력권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대호가 정리한 층별 세력도를 살펴보면···. 70층의 세력도. 일본 : 20% 영국 : 10% 이탈리아 : 40% 서독 : 10% 동독 : 20% 71층의 세력도. 중국 : 30% 일본 : 10% 이탈리아 : 20% 동독 : 10% 프랑스 : 20% 영국 : 10% 72층의 세력도. 중국 : 40% 러시아 : 20% 미국 : 30% 프랑스 : 10% 73층의 세력도. 미국 : 60% 러시아 : 30% 중국 : 10% 이런 형식으로 지도상에 표시된 영역상의 표시를 보고 정리를 해 뒀다. 사실상 지도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간략하고 정확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다. 막상 지도로 볼 때는 약간 중구난방이었지만 배대호가 간략하게 숫자로 표시해 놓고 보니 훨씬 알기 쉬워졌다. ============================ 작품 후기 ============================ 조아라 소설에 그림을 올릴 수 있으면 어느정도의 지도를 그림판으로 만들어서 올릴 텐데... 그게 안 되는게 아쉽네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72화 “자···. 대호 형님 지도를 보면 대략적으로 강한 팀, 약한 팀이 나뉘는 군요.” “그렇군···. 가장 강한 팀은 최상층인 73층에 진출해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인가?” “그것도 격의 차이가 좀 나기는 하네··. 미국이 최상층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있잖아? 중국은 고작 10%인데 말이야.” “프랑스도 생각보다는 강팀인가봐? 그 세나라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72층에 자기 영역이 있잖아?” “그렇게 따지면 가장 약한건··. 영국하고 서독 정도인가?” “확실히 그쪽은 머리수도 유일하게 우리보다 적었지? 영역도 70층에 10%, 71층에 10% 정도 뿐이고···.” “서독 보다는 동독이 약간 더 강한가봐?” “그래도 몰라? 결국은 같은 나라라고 힘을 합 할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배대호의 자료를 보면서 세력의 총합을 대강 정리해 봤다. 정확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각 국가별 영역으로 팀의 우열 순위를 매기면····. 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중국 4위. 프랑스 5위. 이탈리아 6위. 일본 7위. 동독 8위. 영국 9위. 서독 정도였다. 물론 이것도 정운과 다른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영역의 분할도만 보고 판단한 기준일 뿐이었다. 실제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순위에 관해서는 의견이 나뉘었다. “실제 영역의 크기는 이탈리아가 더 크잖아?” “하지만 프랑스는 72층에 영역이 있다고? 그게 10% 정도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확실히···. 그건 그렇지. 그렇게 따지면 영국과 동독도 영역의 크기는 비슷한데 말이야.” “어차피 참고로만 파악해야 되. 이 자료를 맹신해서는 안 돼.” 한국 팀은 서로간에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면서 적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이끌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서로간의 영역이 표시되기만 한 지도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실제로 이것도 많이 이끌어 낸 것이다. 정확도에는 약간의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달랑 지도 네 장에서 이끌어낸 정보 치고는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우리가 상대하는 일본은·····.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약체는 아니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어째서 우리보다 훨씬 더 먼저 월드 서버에 올라온 놈들이 우리보다 더 약한 걸까요? 전 여기 올라오면 추성이 오라버니나 대호 오라버니 같은 괴물들이 득실득실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말이죠?” 이보영의 말에 한중겸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우리보다 먼저 올라와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이야?” 한중겸의 엉뚱한 대답에 이민지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예전에 정운이가 올라오기 전에 상당한 정체기를 겪었던 시기가 있었잖아? 그런 것 처럼···. 놈들도 먼저 올라와서 서로간에 견제하면서 세력 싸움을 하느라고 정작 사냥이나 레이드에는 그만큼 집중을 하지 못한 걸 수도 있어.” 한중겸의 설명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럴 듯 하군요··. 특히 레이드 중에 뒤통수라도 맞으면 바로 전멸 할 수도 있으니···.” “내 말이···. 그러니까 오히려 한국 서버에서 착실하게 시간을 들여서 레벨을 올린 우리의 평균 레벨이 더 높은 걸 꺼야? 특히 그 도조 마사토라는 놈의 존재가 내 가설을 뒷받침 한다고?” “어떻게요?” 이보영이 되 묻자 한중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생각해 봐. 그 놈 하는 말을 들어보면 척 봐도 추성이 형님하고 비슷한 시기에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것 같잖아?” “그래서요?” “그런데도 아직 172레벨이라고 했지? 거의 같은 시간을 플레이 했고 똑같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게임에 집중을 하지 못한 시기가 길었다는 거야. 이거야 말로 피할 수 없는 증거지.” 한중겸의 조리 있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월드 서버에 진출을 하지 못했던 한국 팀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오랫 시간동안의 고행이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었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때로는 돌아갈 때도 있어야 하는가 보다. 짝짝···. 한중겸이 손뼉을 쳐서 사람들을 집중 시키고 말을 이었다. “자, 어쨌든 일본팀 정도의 놈들을 못 이겨서야 얘기가 되지 않지. 그럼 시작은 어떻게 할까?” 한중겸의 말에 명주호가 대답했다. “그거야 뻔하죠. 70층에 있는 일본의 영역에서 놈들을 찾아보자고요.” “사냥터 접수라···. 예전에 아직 하층부에서 놀 때 길드기리 영역 싸움하던 것 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면 되겠는 걸?” 스카이 타운에 진출하고서는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하층부에서 치열하게 길드를 이끌고 영역 싸움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기를 겪었기에 지금 당장 세력 싸움을 한다고 해도 별로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애당초 팀별로 나눠져 있을 때부터 이런 패턴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모두 알고들 있었다. 정운은 자신의 팀원에게 말했다. “내일 정오···. 일본의 영역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에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에게 당부드릴 말은 오직 하나입니다.” 정운은 잠시 말을 끊어서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 시킨 다음에 일행에게 말했다. “봐 줄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팀에 대한 제재의 수위는 완전 섬멸을 목표로 합니다.” “알겠어. 대장.” “그렇게 하지.” “바라던 바다.” 그렇게 내일의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내일부터는···. 전쟁인 것이다. 그날 밤. 정운은 슬기와 한 침대에 누워서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정운씨···. 괜찮아요?” “뭐가?” “전쟁 말하는 거에요. 정말 괜찮아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슬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 우리가 이길 거야. 추성이 형님하고 대호 형님이 나서면 놈들에게 질 리가 없어. 그리고 나 역시 그 도조 마사토라는 놈과 싸운다고 질 거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를 않아.”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사르륵 거리면서 쓸려 내려가는 슬기의 머릿결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 하지만 정운의 안심 시키는 말에도 슬기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정운씨····. 내가 걱정하는 건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는 것 알잖아요?’ 슬기와 정운도 어느새 함께 한 사이가 제법 되었다. 결혼 하지 않았고 둘 사이에 아이만 없을 뿐이지···. 사실상 둘의 정신적 교감은 연인을 넘어서 부부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기에 슬기는 정운의 정신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위급 유저들은 정운을 보고 냉정하고 차가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슬기는 그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자신을 도와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도와준다고 해도 그에 어울리는 복종이나 대가를 요구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시궁창에 발을 들인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그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에 슬기를 도왔던 것에 관해서 정운은 말했다. 그냥 변덕이었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슬기는 말한다. 그건 거짓말이다. 라고 말이다. 슬기는 정운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자들 대부분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악마의 유혹에 낚인 자들이지만···. 정운은 달랐다. 보통 현실 세계에서도 보기 힘들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더욱더 보기 힘든 사람. 즉, 정운은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사람이었다. 그런 정운이 냉철하고 차가운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몇 번이고 그라운드 제로에서 욕망과 배신과 악의를 마주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문시영이라는 여자에 관해서···. 슬기도 정운에게 들었다. 정운에게 있어서 문시영의 배신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당한 최초의 배신이었고 최초였던 만큼 가장 위험했고 충격적인 배신이었다. 자칫잘못 하면 그때 죽을 수도 있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때 이후로 정운은 여자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다른 유저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고···.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죽을 위기에서 헤쳐 나가면서···. 정운은 점점 강해져 갔지만···. 속으로는 달랐다. 마음 한 구석이 점점 상처 받아 갔고 곪아갔다. 스스로 마음을 닫고 차갑게 얼리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걱정하지 마. 슬기야····. 넌 내가 지켜줄게.” “········예. 알아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더욱더 그에게 밀착했다. ‘불쌍한 사람····. 너무 착해서··. 너무 선해서···. 타인을 상처 입힐 때 마다 자신도 점점 상처 입혀가는 사람····.’ 슬기는 정운의 몸을 꼭 끌어안으면서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다. 지금 자신의 얼굴을 정운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자신이 우는 모습조차 정운에게는 불안감과 상처로 남을 수 있으니····. ‘세상 모두가 정운씨를 비난하고 원망해도···. 난 영원히 당신을 사랑 할 거예요. 설사 내 영혼이 부서진다고 해도···.’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의 맹세를 잊지 못했다. 정말 영원히 말이다. 다음날···. 한국팀의 전원이 포탈의 앞에 모였다.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하겠습니다.” 정운은 모두를 모아두고 그들의 앞에서 말했다. 오늘부터 일본의 영역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새삼스럽지만 망설일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단 하루를 만나서 월드 서버의 유저들과 대화를 했을 뿐이지만 모두들 뼈저리게 상황을 파악 할 수 있었다. 악마들이 각국을 나눠 놓은 이유가 조금이지만 이해가 갈 정도였다. 확실히 말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서버가 국가통합의 설정이었다면 하위시절부터 서로 잡아 먹기 바빴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올라온 이상 피할 도리는 없다. 월드 서버의 실상은 국가별 전쟁이라고 봐야 했다. 이 월드 서버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선택권을 두 가지 뿐이다. 잡아 먹든가? 잡아 먹히든가? 물론 정운을 비롯한 한국 팀은 잡아먹힐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팀은 세 개로 나누겠습니다. 1팀은 팀장은 저 박정운. 그리고 팀원은 슬기, 세레나, 한중겸, 이민지. 2팀은 팀장은 박추성 팀원은 주경택, 이지영, 이보영. 3팀은 팀장은 배대호. 팀원은 김수민, 명주호, 윤정철. 이상입니다. 의견 있는 분 계십니까?” 정운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체적으로 전력을 평준화 시켜서 3개의 팀을 만들었다. 여기에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정운은 사람들에게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팀을 세 개로 나누는 이유는 그만큼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추성이 형님하고 대호 형님이 질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운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모두의 주목을 받으면서 비장하게 말했다. “일단 전투가 발생하는 이상··. 절대 봐주지 말고, 또 절대 놓치지도 마십시오. 우리들의 전력을 숨기기 위해서 우리 전력을 최대한 숨겨야 합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겠지.” “난 애당초 봐 줄 생각은 없었다. 쪽바리 새끼들하고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 해도 기분 나빠.” 정운의 말에 2팀과 3팀의 조장을 맡은 배대호와 박추성이 대답했다. 사실 이 둘이라면 팀을 이루지 않아도 지지는 않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악마의 게임도 드디어 선작수가 10,000에 도달했습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73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둘의 괴물 같은 전력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이 둘의 전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운은 이번 전투에서 일단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면 생존자를 남겨줄 생각은 없었다. 일견 잔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그냥 일본에 이기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타국의 팀에게도 경고를 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우리와 싸울 때는 끝장을 볼 각오를 하고 와라. 라는 경고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 들어갑니다. 포탈을 타고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는 바로 일본 쪽의 영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알겠다.” “독하게 마음 먹고 가자고···. 독하게···.” 그렇게 해서 한국 팀원들이 모두 70층의 그라운드 제로로 이동했다. 한국이 일본팀의 영역을 침공하려고 할 때···. 한국 팀만이 아니라 일본 팀에서도 한국 팀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어제 선전포고를 하고 전초전인 대결에서 이긴 한국이다. 기세를 살려서 오늘 당장이라도 쳐들어 올 거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도조 마사토는 부하들을 모아서 출정식을 하고 있었다. “한국팀이 오늘이라도 공격해 올지 모른다. 모두들 무장을 하고 영역 내에 매복을 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대일본 제국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우리 대일본 제국에 맞 서는 자에게는 오로지 죽음의 재제만이 있을 것이다!!!!” “천황 폐하 만세!!!!” “대 일본 제국 만세!!!!” “만세!!!!” 무슨 싸이코 신흥 종교 같은 광경이었다. 개중에는 감격에 겨워서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환경에 따라서 크게 망가 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보다. 다만···. 모든 일본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조 마사토는 세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핵을 맞았을 때 그것에 분개해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자였다. 그리고 몇몇 측근들도 그 시대의 인간들이었다. 개중에는 731마루타 부대에 있던 전범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은 소위 말해서···. 머릿속이 약간 돌았다. 아니 약간이라는 말도 필요없다. 완전히 돌았다. 맹목적인 군국주의의 망령. 전 세계에 위협을 가하고 수많은 시체를 쌓아올린 그 군국주의에 미쳐서 패전한 전쟁을 뒤집기 위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자들이었다. 일본팀 19명 중에 일전에 박추성에게 죽은 고바야시 아키라라는 남자를 포함해서 10명 정도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아홉 명은 아니었다. 그들은 비교적 뒤쪽의 시대에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다. 이유는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 이었다. 그들에게 대일본 제국 같은 것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도 천황도 아닌 개인의 영달뿐이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가 이런 지옥인줄 알았다면 들어올 배짱도 없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은 예전에 살기 위해서 도조 마사토의 혈맹에 들었고···. 결국 살기 위해서는 그에게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라운드 제로에 있지도 않은 천황폐하 따위 보다는 그냥 눈앞에 있는 도조 마사토가 더 무서웠다. 왜냐 하면 도조 마사토는 미쳤으니까 말이다. 이전에 몇몇 일본인들···. 특히 그 중에서도 극좌에 있는 사람들이 도조 마사토에게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도조 마사토는 군국주의의 망령이었다. 모든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 그렇지만··. 도조 마사토에게도 클리어시에 원하는 소원은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그 소원으로 전 세계를 대일본 제국의 발 아래에 둔다. 라는 소원인 것이다. 같은 일본인들이 봐도 제 정신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도조 마사토의 싸이코짓에 견디지 못한 일부 일본인들이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도전했지만···. 그 결과는 비참했다. 도조 마사토는 그들을 영광스런 천황폐하의 은혜를 배반한 어쩌고 저쩌고라고 하면서 잔혹하게 죽였다. 일본 서버의 모두가 볼 수 있게 크게 선전하면서 죽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일본 서버에는 감히 도조 마사토에게 도전한다거나 하는 인간은 없었다. 모두들 눈치만 볼 뿐이지···. 일본팀에 있는 아홉 명이 바로 그 눈치만 보고 있는 인간들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눈치만 본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항상 주변을 살피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들은 어젯밤에 몰래 도조 마사토의 눈을 피해서 만났다. “어떻게 생각해? 한국팀과의 전쟁.” “글쎄···. 솔직히 말해서··.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 어제 박추성이라는 놈 봤지? 고바야시를 거의 일방적으로 썰어 버렸어.” 어제 박추성의 행위는 이들에게 상당한 공포를 안겨 줬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바야시 아키라는 자신들이 두 셋 정도는 달라붙어야 이길 수 있는 강자였다. 그런데 그런 고바야시 아키라가 박추성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적중 시켜보지 못하고 패하지 않았는가? “그 놈이 한국 팀에서 가장 강한 놈일 수도 잇어.” 누군가가 희망이기를 말해서 한 말은 정답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마도 그 놈보다 더 강한 놈이 적어도 다섯은 있을 거야.” 그건 착각이다. 뭐, 어제의 박추성 보다 강한 사람은 좀 있었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어제 박추성 본인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적었다. “으음···.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 한국팀은 강해? 예전에 막 올라왔던 인도나 스위스의 팀과는 수준이 달라. 틀림없이 우리 중에 희생자가 나올 거야. 그것도 예전보다 더 많이.” “··········.” “··········.” “··········.” 그들의 사이에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인도와 스위스.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에 올라왔다가 일본 팀에 의해서 잡아 먹혔던 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할 때 도조 마사토가 썼던 전략은 자신의 측근들을 배제한 나머지 인간들을 앞장 세워서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별로 레벨이 높지 않은 하수들을 먼저 적 진형에 던져서 적의 힘을 뺀 다음에 자기 자신과 그 측근들이 적을 공격해서 쓸어버린다. 라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끌어 왔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방식이 효과는 있었다. 일본 서버에 가면 그가 운영하고 있는 대형 길드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항상 양성 중이다. 레벨 90대 정도의 유저라면 몇 년에 한 두 명 정도는 나오는 것이다. 거기서 더 자라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건 정운이 슬기를 키울 때처럼 헌신적으로 양성할 의지가 있을 때의 일이다. 소모품으로 생각하면 거기서 더 키울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도조 마사토는 자신의 후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미덥지 못했다. 얘기를 들어보면 뭔가 경제적으로 엄청 부흥했다고는 하는데 도조 마사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사력이 없는 것이 마음에 안 든 것이다. 도조 마사토가 생각하는 일본은 군사 강국이어야 했다. 그것도 세계에 맞설 나라가 없을 정도로 강대한 군사 강국이어야 직성이 풀렸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나라를 패전으로 말아 먹고 그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일본은 많은 노력을 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무기 판매나 한국의 6.25전쟁에서 공개적으로 잇속을 챙기는 수작이 들어갔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일본의 일반 시민들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후손들이 노력으로 일궈낸 경제대국 일본이 도조 마사토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에 혼을 팔아넘기고 미국에 아양을 떠는 간신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사실 도조 마사토의 이런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그가 미쳤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였다. 여담이지만 이런 문제는 도조 마사토 만이 아니라 21세기 일본의 극우세력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다른 타국과도 마찰이 끊이지 않는 일본의 골칫거리인 극우 세력들은 일본 내부의 입장에서 봐도 민폐였다. 그런 그들의 최종 목표는 일본의 자위대를 일본군으로 바꾸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종종···. [군사가 없는 나라가 어떻게 정상적이고 멀쩡한 나라인가?] 라는 소리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건 솔직히 핑계일 뿐이다. 이런저런 말썽은 많지만 21세기의 일본이라면 전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경제 강국이다. 지구 어디를 가도 약소국 취급받을 나라는 아닌 것이다. 군사력도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일본의 자위대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게 어디 자위대인가? 해군력만 따지면 전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자국의 군사력만 해도 그 정도이고 또한 미국을 비롯해서 여러 나라와 방위협정이 체결되어 있어서 사실상 외국의 침략에 관해서는 거의 걱정이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군사를 원하고 거기에 타국들은 관여하지 말라고 한다. 주변국, 특히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다. 한국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라는 두 번의 재앙을 겪었다. 일본이 군사력을 가졌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나라가 바로 한국이고 그 다음이 중국 정도였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한국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도 그들의 야욕에 가장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디 대학교수나 정치가가 나서서 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 총리가 망언 한 마디만 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들불처럼 확 일어나서 민감하게 반응 하는게 한국인이다. 전범국인 일본이 군사력을 갖추고 그걸 국제 사회에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주변국들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한국의 민심은 일본 극우 세력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인 것이다. 뭐··. 어쨌든 그건 현실에서의 일이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오로지 힘만이 모든 것을 주장하는 세계이다. 도조 마사토는 오로지 한국 팀을 섬멸하기 위해서 눈이 뒤집혀서 날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투에서 가장 많이 희생될 것은 일본팀에서 소모품 취급 받고 있는 아홉명의 유저들이라는 것을···. 그 아홉명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았다. “스즈키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 몰래 비밀회의를 열고 있는 이들의 시선은 단 한명에게 집중 되었다. 그의 이름은 스즈키 슈고. 레벨은 100이며 일본 팀에서 이들 아홉 명 중에서는 가장 고참 격인 남자였다. 일본 팀을 대략 두 부류로 나눴을 때 맹렬 극우파인 도조 마사토와 그 측근들 열 명.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 아홉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 스즈키 슈고는 유일하게 100레벨에 도달해서 이들 아홉 명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대표격인 위치에 있는 남자였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도조 마사토는···. 우리가 죽어도 신경도 쓰지 않을거야. 기껏해야 대 일본 제국을 위한 영광스런 죽음 어쩌고 하는 개소리나 하겠지.” “그건 그렇죠····.” “이번 한국전은···.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다.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된 건지도 몰라.” “그렇군요····. 드디어 하는 겁니까?”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야. 하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목숨은 스즈키씨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전쟁을 하루 앞에 두고 일본팀에서 소모품 취급 받던 아홉 명의 인간들도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서 뭔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대 일본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더러운 조센징들을 모두 칼의 녹으로 만들어라!!! 나가자. 대 일본 제국의 위대한········.” 어쩌고 저쩌고 되도 않은 이상한 말로 자아 도취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도조 마사토의 연설과 함께 일본 팀 역시 필드로 나갔다. 바야흐로 전쟁의 시작인 것이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으로 일본의 극우 정치가들이 하는 행동을 볼 때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사람들에게 선동되는 순진한 일본인들 입니다. 독일로 치면 나치를 신봉하는 자들하고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인데 거기에 선동되서.... 어느 통계에서는 사회적으로 불만이 높은 국가일수록 극우파로 치닫기 쉽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극우파의 강경한 주장은 매력적으로 들리나고 합니다. 언듯 보면 사이비 종교하고 상통하는 점이기도 하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항상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74화 <영국의 사정> 포탈을 통해서 들어간 한국팀이 일본의 영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의 영역을 지나야 했다. 정운은 일단 필드에 도착하자마자 팀원들에게 말했다. “루트는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독과 영국을 지나는 루트. 또 하나는 이탈리아와 동독을 지나는 루트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지?” 박추성이 진로를 물었다. 팀을 셋으로 나누기는 했지만 일본의 영역에 도착하기 전에는 일단 함께 행동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서독과 영국의 영역을 지나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쪽이 낫겠지···. 서독은 세력도를 봐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고···. 영국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야.” 배대호의 말은 정답이었다. 정운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서독과 영국을 지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적의 영역을 지났을 때 싸움이 벌어지지 않게 조심할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싸움이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약한 쪽의 세력을 지나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 편이 전투가 벌어질 위험도도 낮았고 만약에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힘의 손실은 적을 테니 말이다. 루트를 그렇게 잡고 이동을 시작한 한국 팀은 우선적으로 서독의 영역에 들어갔다. 서독 팀의 영역은 극한의 빙하지대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북극이나 알래스카가 생각날 정도로 차가운 동토의 땅이었다. 서독은 이 빙하지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이 빙하지대를 양분하고 있는게 서독과 영국인 것이다. 정운은 이 빙하지대를 지나서 일본의 영역 쪽으로 이동한 생각이었다. “추운 동네군···.” “그러게 말이야. 몹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글쎄···? 아마도 극한 지대에 어울리는 몹이 아닐까? 설인이라던가 거대 북극곰이라던가?” “혹은 펭귄일 수도 있지.” “크큭····.” 시덥 잖은 대화를 하면서 이동하는 한국 팀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존재는 똑바로 한국 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몹은 아니었다. 인간 형의 몹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것은 틀림없이 유저였다. “모두 정지!!” 정운은 일단 일행을 정지 시켰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기 위해서 정운은 차분하게 상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윽고 상대가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독의 샤른 슈바이호퍼라고 합니다.” “한국의 박정운입니다.” 정중한 인사를 가장한 간 보기는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야 할 때였다. “일단 묻겠습니다. 어떤 용무로 저희 영역에 들어오신 것입니까?” “짐작하고 계시겠죠? 저희 한국은 어제 회의에서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역에 들어간 적이 없는 저희들로서는 정규 루트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정중하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일본의 영역까지 이동하기 위한 길을 열어 주십시오.” 정운의 말을 듣고 뒤에서 이보영이 한중겸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저렇게까지 정중하게 말 할 필요 있나요?” “기다려 봐.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는게 상수라는게 정운이의 생각이었잖아?” 둘이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 서독의 샤른 슈바이호퍼라는 남자가 말했다 “어제 저에게 명령에 떨어졌습니다. 일단 우리 영역에서 한국 팀을 발견하면 안전하게 우리 영역의 반대편으로 안내하라고 말입니다.” “그 말씀은···?” “길은 열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 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생각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길은 열어준다. 하지만 단 한번 뿐이다. 이 말의 뜻은 일본과의 전쟁으로 인한 불똥을 여기까지 튀기지 말라는 말이었다. ‘어차피 그를 생각은 애당초 없었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 하면서 얌전히 서독의 안내인의 안내를 받아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멀리 있는 빙하지대의 몹을 보기도 했다. 거대한 북극곰처럼 생긴 몹을 보고 정운이 말했다. “저 몹은 뭐죠? ME로 찍어봐도 될까요?” “상관 없습니다.” 허락을 받고 정운은 멀리서 한가롭게 하품하고 있는 신장 10미터짜리의 북극곰을 ME로 찍어 봤다. 대설웅(大雪熊) LV.120~125 [빙하지대에 살고 있는 거대한 백곰. 입에서는 강력한 냉기의 브레스를 뿜어내고 그 강력한 힘은 드래곤의 발톱에 비견 될 만 하다.] ‘흐음···. 레벨이 120~125라···. 이게 70층의 레벨인가?’ 몹의 정보를 확인한 정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69층 보다 더 강해지기는 했다. 69층에서 주로 잡았던 대게의 레벨이 110~120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20~125라면 그렇게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월드 서버라고 해서 일반 몹들이 엄청나게 강해졌다거나 하는 그런 전개는 아니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행이도 대설웅은 선공몹은 아니라서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사실 이 정도 멤버가 모여서 보스몹도 아니고 일반 몹 한 마리 정도에 밀릴 일은 없다. 하지만 정운은 다른 의미로 전투를 꺼렸다. 그냥 조용히 지나만 가기로 했는데 남의 영역에서 전투를 하면 나중에 뒷말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하늘을 날아 갈 걸 그랬나? 그런데 이미 안내가 붙었으니 그러기도 좀 그런데···.’ 사실 안내가 붙을 줄은 몰랐다. 그냥 허락만 받으면 그 다음에는 하늘로 휘잉 하고 날아가 버릴 생각이었는데····. 이래서 쓸데없는 과잉 친절은 오히려 폐가 되는 법인가 보다. 아니면 애당초 저 안내역이 감시도 겸하는 역할일 수도 있고 말이다. 일행은 빙하지대를 빠른 속도로 이동해서 어느새 서독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이만···.” “수고 하셨습니다. 서독의 대표인 콘러드 크라우스씨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서독의 안내역인 샤른 슈바이호퍼가 사라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영국의 인원이 나타났다. 영역의 경계에서 바로 한국 팀을 마중 나왔다는 말은 미리 서독과 이쪽으로 안내하겠다고 말을 맞춰둔 것일 것이다. “한국의 박정운입니다.” “영국의 마이클 핸더슨이라고 합니다.” 정운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탄탄한 체격의 남자였다. 전형적인 서구인의 외모로 갈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분위기가 있군. 제법 강해 보이는데···.’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외형으로 상대의 강함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정운은 이 마이클이라는 남자와 눈을 마주친 순간 어쩐지 감이 왔다.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그의 눈동자에는 자신의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 되어 있었다. 어쨌든 할 말은 하나 뿐이었다. 정운은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일본과 싸우러 가기 위해서 영역을 비켜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이클 핸더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거기에 관해서는 이미 여왕 전하께서 허락을 하셨습니다. 대신에 조건을 다셨습니다.” “조건?” ‘서독은 그냥 보내줬는데 영국은 조건을 요구하는 건가? 쳇···. 쩨쩨하기는···.’ 정운은 영국에 대해서 속으로 투덜 거렸다. 하지만 어떤 조건인지 일단 들어는 봐야 했다. “조건이 뭡니까?” 정운의 말에 마이클 핸더슨은 정운에게 말했다. “저희 영국의 여왕 전하께서 여러분들을 정식으로 초청하셨습니다. 한 번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조건입니까?” “그렇습니다.” “···········.” 정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조건이었다. 영국의 영왕이 자기를 왜 불렀단 말인가? ‘·······음, 동맹의 제의일까?’ 정운은 혹시 동맹의 제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세력도를 봤을 때 이 영국은 현재 진출한 나라중에서도 상당한 약소팀이었다. 심지어 인원은 이제 막 올라온 한국 보다도 더 적었다. 다이앤 여왕이라는 리더를 포함해도 고작 10명이 다였다. 물론 막강한 소수 정예일 수도 있지만 일본 팀의 수준을 볼 때 소수정예라고 해도 박추성이나 배대호 수준의 괴물이 있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쯧, 내가 여기서 혼자 생각해 봐야 아무 소용 없지. 일단 만나 보는 수밖에···.’ 정운은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마이클 핸더슨에게 말했다. “안내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동은 말로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충분합니다.” 마이클 핸더슨이라는 남자가 말을 꺼내고 한국 팀도 탈것을···. 모두 꺼내지는 않았다. 이지영이 근두운을 꺼내고 윤정철이 콘솔을 꺼내면 끝이었다. 뭐 하러 다 꺼낸단 말인가? “그럼 달리겠습니다.” “히히힝!!!” 마이클 핸더슨이라는 남자가 꺼낸 말도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평범한 말은 아닌 듯싶었다. 말이라는 생물이 원래 얼음 바닥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생물은 아닌데 그 말은 거침없이 빙하지대를 고속으로 질주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 팀이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좀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도 여유 있게 따라오는 군. 역시 여왕 전하의 말씀이 맞았어. 한국은 강하다.’ 마이클 핸더슨은 달리면서도 흘깃 한국팀을 보고 정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일행은 20분 정도를 달려서 어느 저택에 도착했다. “여기는··?” “우리 영국의 영역인 버킹검 1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헤에···. 던전이 아니고 영역··. 필드에 건물을 세우신 겁니까?” “예. 월드 서버의 진출자들에게만 가능한 기술이죠··.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은 일본 팀과의 전쟁을 하신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유리한 정보를 얻어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은가요? 중립을 어기는게 될 텐데요?” “그건······.” 말을 하던 마이클 핸더슨은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여왕이 동맹에 관해서 말을 하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동맹을 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군. 그라운드 제로에서 저런 사람은 보기 힘든데 말이야.’ 정운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굳이 따지고 들어서 그를 더 이상 곤란하게 하지 않고 화제를 바꿨다. “여왕님은 바로 뵙는 건가요? 아니면 어디서 좀 더 기다릴 까요?” “대표 한 분만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분들은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마이클 핸더슨의 말에 배대호가 슬쩍 나서서 말했다 “그건 좀 불공평하게 들리는데?” 배대호가 나서서 불공평이라고 말하자 마이클 핸더슨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뭐가 말씀이십니까?” “우리 팀의 리더를 우리하고 때어 놓고 혼자서 어딘가로 유인한다? 그걸 우리보고 얌전히 따르라고 하는건 좀 언페어라고 생각하지 않나?” 배대호의 말에 마이클 핸더슨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영국이 귀하들의 대표를 암살하기 위해서 함정이라도 꾸몄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무례하군. 우리 영국의 기사단은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다.” ‘····데자뷰?’ ‘····데자뷰?’ ‘····데자뷰?’ 순간 한국팀은 어제 일본의 도조 마사토가 사무라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재수 없다고 느꼈고 지금은 어이없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배대호는 한숨을 쉬면서 마이클 핸더슨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지? 역으로 묻지? 당신은 날 믿을 수 있나?” “·······그건·····.”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최근 순위가 올라서 의욕이 상승해서일까요? 조금이지만 비축분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잘 하면 설에도 연재가 가능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175화 배대호의 말은 느닷없이 급소를 찔렀다. 마이클 핸더슨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운은 피식 웃었다. ‘정직한 사람이 말싸움 할 때면 이런 국면에서 종종 손해보고는 하지.’ 여기서 거짓말쟁이라면 그냥 거짓말로라도 당연히 믿지.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 마이클 핸더슨이라는 남자는 너무 정직해 보였다. 어째서 이런 순진한 사람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심지어는 월드 서버에 진출할 정도로 레벨을 쌓을 수 있었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정운은 배대호를 보고 말했다. “대호 형님··.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별 일은 없을 겁니다.” “정말 괜찮겠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어.” “저도 여차하면 제 한 몸 정도는 뺄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시간 정도는 끌어 보이죠. 뭔가 소란이 일어나면 형님들이 구해 주러 오겠죠.”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깜빡하고 있었지만 정운은 강했다. 아직 박추성 배대호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중겸, 이민지의 레벨은 반수 정도 상회하고 있었다. 한중겸의 레벨 177. 이민지의 레벨 184.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 172인 정운이 이 둘보다 더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직접 싸우면 또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적어도 공격력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정운은 이 둘을 확실하게 넘어서고 있었다. 만약···.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박추성이나 배대호라고 해도 정운을 죽이려고 마음먹는다면 상당히 치열한 전투를 각오해야 할 정도이다. 적어도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정도는 격렬하게 싸워야 정운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정운의 수준은 그 정도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군···. 여기서는 리더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거겠지.’ 배대호는 그렇게 납득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네 뜻대로 해라.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이해해 줘서 감사합니다. 형님.” 그렇게 정운을 제외한 일행은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한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쯧··. 빨리 쪽바리들 쳐 죽이러 가야 하는데··.”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서는 박추성이 가장 아쉬워 하고 있었다. 그는 모처럼 의욕이 솟구치는 와중인데 자꾸 다른 용무가 생기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정운의 결정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일단 팀의 대표로 있는 정운의 위치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정운이 떠나서 다른 일행들은 응접실에서 한가롭게 기다렸다. 마이클 핸더슨의 안내를 받아서 정운이 도착한 곳은 고풍스런 디자인의 집무실이었다. 다이앤 여왕이 집무실의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부하들이 다이앤 여왕과 함께 정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운은 순간 정말로 함정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환영합니다. 박정운씨.” “초청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다이앤 여왕님.” 영광이라기 보다는 귀찮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지만 말로는 예의상 영광이라고 말했다. 정운이 도착하자 다이앤 여왕은 일단 주변의 부하들을 모두 물렸다. “단 둘이서 대화하고 싶습니다. 모두들 물러나 주세요.” “알겠습니다. 여왕 전하.” 그렇게 다이앤 여왕의 명령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자 다이앤 여왕은 책상에서 일어나서 정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한 번 제 초청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것 아닙니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쁜 상황이라 가능하면 허례 없이 바로 용건을 들었으면 합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앉으시죠. 그래도 차 한 잔 정도는 대접해야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정운을 쇼파에 앉히고는 본인 스스로 직접 홍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홍차를 우려낸 그녀는 정운과 자신의 앞에 찰를 가져다 놓고 본인도 앉았다. ‘독은···? 아니겠지? 그래도 가능하면 마시지 말아야지.’ 정운은 찻잔에 입술을 축이기만 하고 실제로 들이키지는 않았다. 독에 관한 저항력은 상당히 높은 정운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다이앤 여왕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조심성이 많은 분이시군요.” 전혀 줄어들지 않은 홍차를 보고 다이앤이 지적했다. 순간 정운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태연한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겁쟁이 라서요···. 이제 정말 본론으로 넘어가도 될 까요?”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자신의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 놓고는 정운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용건은 다른게 아닙니다. 저희 영국은 한국과 동맹을 맺기를 원합니다.” 정운은 다이앤 여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 사실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라고 대강 생각하고 있었다. “동맹이라····. 이제 막 올라온 우리의 무엇을 믿고 동맹을 맺는다는 겁니까? 더구나 우리는 올라오자마자 일본이라는 적도 만들었습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일본과의 관계는 우리 영국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국팀의 힘에 관해서는 일전에 박추성이라는 분이 보여주신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 정운은 다이앤 여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추성이 형님의 힘은 거의 발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힘을 보고 만족한다고?’ 가능성은 두 가지다. 본신의 힘에 반에 반도 발휘하지 않은 박추성도 강해 보일 정도로 영국이 형편없거나? 혹은 박추성의 존재를 한국 팀에서도 중간 정도로 봤거나···. 어쨌든 영국은 한국의 전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지 그것만으로 동맹을 제기한다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했다.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다이앤 여왕에게 말했다. “동맹을 맺는 것이라면··. 이번에 우리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라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이렇게 성급하게 동맹을 신청하는 이유가 있나요?” “정의를 위해서죠? 일본팀의 비인도 적인행위는 예전부터 저희들이 보기에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 정운은 순간 입맛이 썼다. ‘이 여자도 여우군····.’ 겉으로 듣기에는 좋은 말로 하고 있지만 저게 본심일 리는 없다. 저건 어디까지나 눈가리고 아웅 하는식의 명분이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마냥 순둥이는 아니라 이거지? 하긴···. 그라운드 제로에서 1년만 구르면 순둥이도 슬슬 여우 꼬리가 돋아나는 법이니까····.’ 정운은 다이앤 여왕에게 지극히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마치 난 당신 의도는 전혀 모른다. 라는 듯이 순진한 말투로 말이다. “여왕님의 뜻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희 전쟁에 다른 팀을 끌어 들이는 것은 내키지 않는 군요. 일본과의 전쟁은 저희 힘으로 수행하겠습니다.” “····저희는 순수한 호의로 귀하의 팀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만?” 다이앤 여왕이 다시 한 번 매달려 봤다. 하지만 정운은 끄떡도 하지 않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도움은 그다지 필요치 않습니다. 길만 열어 주시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정운의 말은 정중했지만 말의 뜻은 절대적인 거절이었다. 다이앤 여왕은 정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 통하는 건가·····? 어쩔 수 없군.’ 그녀는 정운을 상대로 정말로 동맹을 맺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얼굴로 전운에게 말했다. “정직하게 말 하겠습니다. 지금 월드 서버에 있는 각국의 팀 중에서···. 우리 영국이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이미 알고는 있었다. 서독과 영국이 가장 최약체가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특히 영국은 숫자도 고작해야 10명이었다. 그 10명이 전부 소수정예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역시 강한 팀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영국이 한국과의 동맹을 원하는 이유는 뭘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아마도 약한 영국을 잡아먹기 위해서 어딘가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있을 것이다. ‘그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영국은 아군이 필요한 것일 테고 말이야.’ 정운의 예상은 매우 정확했다. 다이앤 여왕은 약간 힘이 빠진 목소리로 정운에게 말했다. “최근에··. 우리 영국에게 중국이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중국이요?” “예···. 원래 우리 영국이 월드 서버에 진출 했을때는 총 인원이 30명이 넘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정운으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정운은 살짝 놀란 듯이 말했다. “대단하군요.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 10명밖에 없는 거죠?”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이제 다 털어 놓기로 결심을 했는지 정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 원래 영국이 월드 서버에 진출 했을 때의 총 인원은 35명. 이들 중에서 90대의 레벨은 15명 뿐. 나머지 20명이 모두 100레벨이 넘는 강팀이었다. 비록 한국 팀들처럼 200레벨이 넘는 고레벨의 괴물은 없었지만 그래도 신참 치고는 충분히 월드 서버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강팀이었다. 영국은 70층에 자리를 잡고 71층에까지 무난하게 진출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신참이 승승장구 치고 올라오는 것을 주변국이 용납 할 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올라온다는 것은 이제까지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는 비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몇몇 팀들이 영국 팀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 음모를 꾸몄다. 그리고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다. 필드에서 사냥 중이던 영국의 유저들 다섯 명이 죽어 버린 것이다. PK를 한 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생존자가 한 명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봤을 때 몹이 아니라 유저가 상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사망한 다섯 명 중에는 90대 레벨이 두 명. 나머지 세 명은 100레벨이 넘는 주력 멤버였다. 그 정도의 인원 손실은 영국에게 있어서 큰 로스였다. 영국은 자신의 필드에서 PK를 한 적을 찾기 위해서 타국에 경고장을 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였다. 사실 경고장을 본낸다고 해서 타국이 협력을 하거나 혹은 범인이 자수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순진함을 넘어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이앤 여왕이 경고장을 보낸 것은 이 이상의 도발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라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그 경고장이 트집의 이유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영국의 경고장은 자신들을 범인 취급하는 무례한 짓이다. 라고 화를 내면서 중국, 일본, 동독이 삼국 연합을 해서 영국의 영역에 전쟁을 걸었다. 심지어는 그 전쟁을 건 시기도 몹시 절묘했다. 영국 팀이 71층의 1차 레이드에 도전한 직후에 선전포고를 하고 바로 기습을 했던 것이다. 71층의 보스몹이 어떤 종류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정찰식의 레이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이드는 레이드다. 소모가 없을 수는 없었고 영국의 주력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삼개국이 협공을 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영국팀은 크게 패배했다. 그 후에 영국도 어떻게든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서 삼국 연합과 싸웠다. 하지만 한 번 기운 전력의 차이를 다시 만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영국은 거의 전멸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절체절명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영국은 위기에 처했었다. ============================ 작품 후기 ============================ 영국은 굉장히 절박한 상황에 처해져 있습니다. 원래 국가라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거나? 아니면 멸망하거나 둘 중에 하나죠. 국가의 저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런 상황에서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도 옛날부터 위기 상황이 되면 특출난 영웅들이 나타나고, 전국에서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죠. 국민성, 역사성 등등이 다 모여서 그런 저력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76화 <동맹? 해 줄까? 말까?> 그때 영국이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동독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방관 할 수 없었던 서독의 개입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러시아와 미국이 직접 개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전멸의 위기만은 피한 영국이었지만 그 피해는 컸다. 인원은 고작 10명이 남았을 뿐이고, 열심히 확장했던 영역의 상당 부분을 중국과 일본, 동독에게 넘겨야 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지금 그라운드 제로 월드 서버에서 서독과 함께 가장 약소한 세력으로 밀려난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그런 영국을 향해서 중국의 압력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삭초제근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들에게 강한 원한을 가지고 있을 영국을 계속 내버려 두기에는 중국 입장에서도 찝찝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덕분에 영국에서는 지금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대로 가면 영역을 모두 포기하고 그라운드 제로에서 철수를 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팀의 등장. 그리고 그 한국과 일본의 갈등. 영국팀의 입장에서는 이건 한줄기의 빛과 같았다. 한국과 동맹을 맺어서 일본을 몰아내고 중국의 압박해서 벗어난다. 라는 시나리오를 그린 것이다.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고 있던 일의 전부입니다.” “················.” 정운은 다이앤 여왕의 말에 침묵했다. 영국의 사정은 대강 알았다. 솔직히 말해서 불쌍하다고 약간의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월드 서버에 올라와서 3분의2가 넘는 동료들을 잃고 이제는 중국의 압박으로 인해서 완전히 물러나야 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하지 않았는가? 일단 한 번 물러나면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는 영원히 불가능 하다고 봐도 좋았다.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 수십 년··. 길게는 백년이 넘는 세월을 싸워온 유저들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잔인한 처사는 없었다. 하지만···. ‘불쌍하다고 다 도와줄 수는 없는 법이지. 우리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한국이 영국과 동맹을 맺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마찰을 줄이고 게임에 집중하기가 어려워 질 뿐이다. 영국과 동맹을 맺는 즉시 중국이라는 적이 생기지 않는가? 영국의 불쌍하다고 해서 쓸데없는 적을 만들어서까지 도울 수는 없었다. “죄송하지만 다이앤 여왕님. 영국과의 동맹 제의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 겠습니까?” 다이앤 여왕은 안타까운 한 숨을 내쉬었다. “동맹을 거절 하는게 아니라 그 제의를 없던 것으로 하는 것. 그리고 당신들을 공격했던 일본을 우리가 끝장내 주는 것. 이 정도가 여러분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의 한계 같습니다.” “··········.” 다이앤 여왕도 알고 있었다. 동맹의 제의 자체를 없던 걸로 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어디 가서도 영국이 동맹을 제의 했다는 말을 퍼트리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국의 체면을 세워주고 중국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막아주겠다. 라는 사소한 배려였다. 그리고 일본을 끝장낸다는 것도 영국에는 도움이 된다. 어차피 한국팀과 일본팀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팀이 일본 팀에게 승리하면 일단 영국의 입장에서는 바로 옆집에 있던 적이 사라지는게 아닌가? 그것만 해도 큰 메리트였다. 하지만 정운이 약속한 도움은 딱 거기까지···. 정말 딱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 이상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당초에 예정도 없던 적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 불필요한 수고를 하면서까지 영국을 도와 줄 의리는 없었다 “그럼···. 저희는 갈 길이 바빠서 이만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려고 하자 다이앤 여왕은 벌떡 일어나서 정운에게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습니다.” “···············.” 정운은 입맛이 썼다. ‘쯧, 난 이런 것에 약하단 말이야.’ 우연일까? 아니면 타고난 감이었을까? 다이앤 여왕은 정운의 약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그라운드 전체를 다 뒤져봐도 최단 시간 172레벨 도달의 박정운. 아마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박추성이나 배대호의 수준에도 틀림없이 이를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에게 약점이 있다면 아마도 정에 무른 마음일 것이다.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하는 인간이나 정면으로 살기를 뿜어내면서 거칠게 다가오는 상대에 관해서는 강한 정운이었다. 하지만 슬기의 경우를 봐도 알겠지만 그냥 스트레이트로 애원하는 상대에게 정운은 약한 모습을 종종 보이고는 했다. 하지만 정운은 이번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정이야 딱하지만 이제 정운은 솔로 플레이이어가 아니다.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동료 12명이 있지 않은가? 자기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행동 할 수 있는 시기는 이제 지난 것이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만 일어나십시오. 이런 동양인들의 방식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정운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있는 다이앤 여왕을 몸소 일으켰다. 아무리 그래도 가녀린 여성이 그렇게 비굴하게까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광경이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만 하고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알아주십시오. 저희와 동맹을 맺지 않아도 타국은 한국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순간 움찔 했다. 정운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은 대이앤 여왕은 말을 이었다. “저희 영국도 그랬지만···.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기존에 위를 선점하고 있는 자들에게 도전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되었든 러시아가 되었든···. 당신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당신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 정운은 그녀의 말에 뭐라고 대답 하지 못했다. 일본과의 전쟁에 집중하느라고 생각하지 못해지만 확실히 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정운의 안에서 작은 망설임이 생기자 다이앤 여왕은 그 작은 희망의 끈을 꽉 잡고 놓치지 않았다. “일단 오늘은 저희 영역에서 머물고 가십시오. 어차피 이동과 회의로 인해서 시간을 많이 소모했지 않습니까? 푹 쉬고 내일 베스트 컨디션으로 일본의 영역으로 가는게 좋을 겁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정운은 그녀의 호의를 일단은 받아 들였다. 확실히 이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여기서 푹 쉬고 내일 출발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영국의 영역에 세워져 있는 이 버킹검 1호라는 건물을 화려한 저택과 같았다. 방은 부족하지 않아서 한국 팀은 한 명당 한 개씩의 넓은 방이 배정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팀은 모두 하나의 방에 모여 있었다. 정운이 긴급 회의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영국으로부터 동맹 제의를 받았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다이앤 여왕에게 들었던 동맹 제의에 관해서 동료들에게 알렸다. 다이앤 여왕에게는 동맹 제의 자체를 완전히 없던 걸로 하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물고 늘어진 이상 최소한 동료들에게는 말해야 했다. 정운의 말을 다 들은 박추성은 눈살을 찌푸리고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군···. 그냥 빨리 가서 쪽바리들이나 쳐 죽이면 안 되는 건가?” 그런 박추성에게 배대호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세상만사 그렇게 쉽게 돌아갈 리야 없잖아? 영국의 제의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나도 알아···. 그냥 답답하니까 말 해 본거지.” 박추성과 배대호의 대화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정운은 여차하면 투표로 향방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견이 미묘하게 갈리면 향후 갈등을 초래 할 수 있는게 투표다. 9대1 정도의 비율로 결정 나면 별 잡음은 없다. 하지만 6대4 정도의 비율로 결정이 나면 소수의 의견도 결코 무시 할 수 없다. 오히려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한 결정이 잘못 되었다는 결과가 나면 그때는 소수자들의 분노가 더 거세게 불타오르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다수결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이기도 하다. “동맹이라···. 일단 아군이 생기면 좋기는 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뒤통수 안 맞을 보장이 있을까?” “우리보다 약한 상대인데 설마 뒤통수 맞기야 하려고요?” “생각이 짧아. 우리보다 약하니까 뒤통수를 갈기는 거야. 생각해 봐.” “으음······.” 일행의 의견은 분분히 나뉘고 있었다. 그때 슬기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나? 나 말이야?” 슬기의 말에 정운은 잠시 당황했다. 자신이 독단으로 결정하기 애매해서 동료들과 상담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서 슬기가 자신에게 의견을 묻자 당황한 것이다. “음····. 사실 난 잘 모르겠어. 동맹을 맺어도 안 맺어도 장단점이 너무 뚜렷해서···. 사실 50보 100보라고 생각해.” “자세하게 말해 주세요.” 슬기는 정운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이목도 모두 정운에게 모여 있었다. 정운은 자신을 똘망똘망하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곤란해 했다. 이렇게 자신을 위기로 몰고 있는 슬기가 살짝 얄미울 정도였다. ‘왜 여자들은 항상 자세하게 말해 보라고 할까? 가끔은 대강 말하고 넘어가면 안 되나?’ 거기에 관해서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이니 넘어가기로 하자. 어쨌든 정운은 슬기의 요청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영국과의 동맹에 대한 장단점의 결과를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동맹을 맺으면 좋은 점은 영국이라는 아군이 생긴다는 거야. 그들이 우리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월드 서버를 선점하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을 거야. 여기 이 필드에 세워둔 안전한 건물만 해도 우리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잖아?” 정운의 말에 이보영이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냥 간이 포탈 타고 집에서 다니면 되는데 이런게 중요할까?” “누님. 이것 하나만 보고 판단하기는 이르죠. 아마도 이것 말고도 월드 서버에만 있는 여러 가지 정보가 있을 거예요. 동맹이라는 긴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타국의 팀이 그걸 공짜로 가르쳐 줄 일은 것의 없을 걸요?” “············.” 정운의 말을 들은 이보영은 듣고 보니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라운드 제로의 베테랑들이었다.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단점은 역시 중국이네···. 아마도 이 월드 서버에서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혹은 거기에 버금가는 세력을 자랑하고 있는게 중국일 거야.” 정운이 단점을 말하자 이민지가 한숨을 내 쉬면서 말했다. “그 중국이 영국과 동맹을 맺는 순간 바로 자동적인 적이 된다는 건가?” “그렇죠. 다만···. 여기서 다이앤 여왕의 말이 중요해 집니다.” “어떤 말?” “그녀가 말했어요. 설사 자신들과 동맹을 맺지 않는다고 해도 기존에 윗층을 점령하고 있는 나라들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요.” “··············.” “··············.” “··············.” 정운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 의견에는 동감하고 있었다. 이전에 원탁회의에서···. 한국에 가장 먼저 시비를 걸었던 것은 일본이었지만 그 전에 양보할 영역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 했던 것은 중국의 대표인 장한이었다. 아마 거기에 정면으로 한국이 반발하는 순간 중국은 한국에 선전포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 작품 후기 ============================ 월드 서버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한국 팀은 아직까지 월드 서버의 룰에 관해서 모르는게 많습니다. 그 점은 차차 밝혀질 것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77화 <동맹의 담보.> 정운은 모두를 보면서 얘기했다. “말을 하면서 조금이지만 생각이 정리 된 건데····. 어차피 우리가 73층을 돌파하는 과정에서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이 세 개의 나라 중에 하나와 마찰을 빗을 수밖에 없을 거야.”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 “그건 그렇죠····. 그 삼개국이 73층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으니····.” 73층은 미국이 60%를, 그리고 러시아가 30%, 중국이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73층에 올라가는 그 순간 바로 이 삼개 국가의 팀 중에 최소한 하나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운은 결정이 났다는 것처럼 모두를 보면서 말했다. “전 월드 서버에 나오기 전에 리더를 맡으면서 말했습니다. 마찰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게임 클리어에 집중 하겠다고 말이죠.” “그랬지. 그랬으니 네가 오늘 서독과 영국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 한 거잖아?”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알아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했다. 그리고 모두를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들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최소한의 마찰을 겪어야 한다며···. 그 첫 번째 대상은 일본, 그리고 중국, 미국, 러시아 삼개 국가의 팀 중에 하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정운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전 차라리 그들에게 찍히기 이 전에 우리가 알아서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국과의 동맹을 맺고 거기에 더해서 중국과의 앞으로 있을 전쟁에 관해서 잠재적인 가능성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차피 난 쪽바리 새끼들만 쳐 죽일 수 있으면된다. 그것만 네가 바꾸지 않는다면 네 말에 내가 거역하는 일은 없다.” “감사합니다. 대호 형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네 말대로 어차피 벌어질 마찰이라면 우리쪽에서 몸 사릴 필요는 없겠지. 마냥 만만하게만 보이면 먹잇감 취급 받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박추성 배대호가 찬성을 하자 정운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다. “영국과의 동맹 체결에 혹시라도 반대하시는 분이 있으면 지금 말해 주십시오.” 정운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그런 사람은 어지간하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하러 박추성, 배대호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 봤겠는가? 일단 이 둘의 동의만 얻어내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따지고 드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팀에서 박추성, 배대호의 존재감은 큰 것이었다. 그때, 딱 한명이 손을 들었다. 정운은 그런 그를 보고 말했다. “윤정철 형님. 형님은 반대입니까?” 정운의 말에 손을 들었던 윤정철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반대는 아니다. 그런데 걱정 되는게 있어서 말하려고 한다.” “그게 뭡니까?” “영국이건 아니면 다른 나라건···. 동맹을 맺었을 때 가장 주의할 것은 배신에 대한 안전장치다. 만약에 영국이 우리를 이용만 하고 배신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 윤정철의 말은 지당했다. 정운이 보기에 영국이 지금 상황에서 한국 팀을 배신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게 다수가 뭉쳐 있는 단체간의 동맹이라면 더욱더 그랬다. “거기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영국이 우리에게 등을 돌릴 리가 없으니···. 정식으로 동맹을 맺으면서 거기에 관한 얘기를 해보죠.”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래도 부디 신중하게 진행해 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철이 형님.” 정운이 감사의 말을 하자 윤정철은 그냥 자기 모자를 푹 집어 쓰면서 얼굴을 가렸다. 항상 냉철하고 쿨한 이미지의 그가 저렇게 어색해 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정운은 자신의 의견이 정해지자 마자 바로 다이앤 여왕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운의 요청에 다이앤 여왕은 바로 자신의 방으로 정운을 불렀다. 오전에 집무실에서 봤을 때와 달리 그녀는 약간 편한 이브닝 가운을 입고 있었다. 속은 비치지 않았지만 하늘하늘하고 부드러운 온감으로 자기 몸을 감싸고 있는 다이앤 여왕을 보자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생각했다. ‘····내일 찾아올 걸 그랬나?’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이앤 여왕은 정운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 시간에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게 반가운 징조였으면 좋겠군요.” 그녀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 동료들과 영국과의 동맹에 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다행이도 다이앤 여왕님이 좋아하실 만한 답변이 나왔습니다.” “그럼····?” 다이앤 여왕이 반색을 하자 정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예. 저희는 영국과의 동맹 제의를 환영합니다. 앞으로 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든든한 동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말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감사를 표하면서 귀하와 귀하의 동료들이 보여준 호의에 감사를 표합니다.” “····예. 뭐···.” 그 정도의 감사는 역으로 부담 스럽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그녀에게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이 있었다. “동맹을 맺는것에 있어서···. 저희 동료들 사이에 한가지 의견이 나온게 있습니다.” “어떤 의견입니까?” “먼저 말씀 드리는데···.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고 냉정하게 들어주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정운은 먼저 다이앤 여왕에게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안전선을 깔아둔 다음에 윤정철이 말했던 상호간의 배신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했다. 다이앤 여왕은 화 내지 않고 정운의 말을 차분하게 들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걱정이군요····. 그렇군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다이앤 여왕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정운은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차분한 눈길로 지켜봤다. 그러기를 5분 가량 지났을까? 그녀는 결심한 듯이 눈을 뜨고 결연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박정운님. 실례지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질문입니까?” 다이앤 여왕은 정직하게 대답하라는 듯이 정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한국 팀에서 귀하는 절대적인 신뢰와 존중을 받고 있습니까?” “예!!?” 다이앤 여왕의 뜬금없는 말에 정운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했다. “제가 형님 누님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이긴 합니다. 하지만····. 예. 일단 제 결정에 팀원들 대부분이 적극적으로 동의해 주시고 있습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부족하지만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 대답을 하는 정운은 다이앤 여왕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운이 이해를 하거나 말거나 다이앤 여왕은 계속해서 자기 말을 이어갔다. “타 국가 팀과의 전쟁에서 다른 나라로 이적을 한 배신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저와 함께 끝까지 가 주기로 결정한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정운은 순간 타국으로 이적도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다이앤 여왕님. 여기서 그 말을 하는 의미····가······.” 말을 하던 정운은 그대로 입이 굳어 버렸다. 눈앞에 너무나 뜻밖의 상황이 벌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뭐 하자는 플레이?’ 정운은 순간 상화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당황했다.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다이앤 여왕이 자신의 이브닝 가운을 벗어 버렸다. 그녀의 몸을 타고 가운이 스르륵 하고 내려가자 남은 것은 정갈한 디자인의 속옷 차림인 그녀의 세미 누드뿐이었다. 그대로 그녀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이제야 그녀의 목적이 뭔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다이앤 여왕님? 지금 혹시····?”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운의 말에 대답했다. “고래부터···.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맹은 혈맹이죠.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자식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가능합니다.” “············.” 정운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게 말이····. 되긴 되나?’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양 팀의 리더끼리 각별한 사이가 되면 그만큼 신뢰도는 올라간다. 그 팀에서 리더가 확고한 지위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일단 그 조건만 클리어 하면 상호간에 배신에 대한 안전장치로는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이 선택의 장점은 다른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배신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혈맹이라는 수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혈맹의 경우 누군가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 그 전에 정운은 타국가 서버에 있는 사람과 혈맹이 가능한지 불가능하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다. 강제적인 조항을 함부로 만들었다가 그게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나중에 분위기만 험악해질 뿐이다. 특히 아직 월드 서버에 관해서 정보가 적은 한국으로서는 영국이 무슨 수작을 꾸밀지 불안해서라도 그런 강제력이 있는 조항은 체결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비해서 정운과 다이앤이 결혼··· 아니 굳이 결혼까지 가지 않아도 둘 사이가 특별한 사이가 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동맹은 한 층 더 공고해 진다. 아무런 리스크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내가 팀원들에게 신뢰 받고 있는지에 관해서 물었던 거군···.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무늬만 리더와 맺어져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야.’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운의 입장에서는 얘기가 이런 식으로 꼬이면 많이 곤란했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다이앤 여왕의 생각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기는커녕 아주 합리적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정운이 그 합리적인 생각에 동참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이앤 여왕이 어느새 자신의 속옷까지 벗기 위해서 브레지어의 훅을 풀려고 했다. 정운은 황급하게 그녀를 말렸다. “잠시만요. 잠깐 멈추십시오. 다이앤 여왕님.” 정운의 말에 반쯤 속옷을 벗으려고 했던 다이앤 여왕은 그대로 몸을 멈췄다. “·····제가 마음에 안 드나요?” “·····아니요. 절대 그건 아닙니다.” 정운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사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다이앤 여왕은 소위 말해서 벗기면 굉장한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무척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얼굴은 청순하고 행동 하나하나에서 정갈한 느낌이었는데 정작 그녀의 세미 누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남자의 시선을 확 빨아들일 정도로 섹시했다. 정운으로서는 뜻하지 않게 눈 보신은 잘 한 셈이다. ‘나중에 슬기한테 잔소리 좀 듣겠군.’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이앤 여왕에게 말했다. “다이앤 여왕님의 생각은 좋은 생각이지만···. 저에게는 이미 연인이 있습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 관계는 우리 영국과 한국 사이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관계입니다.” “아니 꼭은 아니죠. 엄밀히 말해서···.” “이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아시나요? 배신에 대한 리스크가 두려운 것은 저희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 정운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좀 미묘한 곳에서 끊게 되는 군요. 분량을 맞추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설 비축분을 쌓고 있기 때문에 반량 조절은 스스로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자각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78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누군가가 뒤통수를 친다면 더 크게 맞을 수 있는 쪽은 영국인데···.’ 정운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영국으로서도 한국과 동맹을 맺었다가 배신을 당하면 그 대미지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현재 영국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는 약소 세력이었다. 인원도 고작 10명밖에 없는데 이 중에서 3~4명만 잃으면 자체적으로 레이드 하는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 영국에 비해서 한국은 인원도 레벨도 훨씬 압도적이었다. 누가 누구를 더 두려워 할 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어떻게 하지? 결국···. 뭔가 하기는 해야 하나?’ 정운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 정운을 보고 다이앤 여왕이 말했다. “그 여성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를 구할 수는 없겠습니까? 이것은 양 팀의 동맹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그건 무리입니다.” “혹시 연인이라는 여성분이 질투심이 많은 성격인가요?” 다이앤의 질문에 정운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제 연인의 성격이전에 제 성격에서 이미 문제입니다. 전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이해 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각별한 사이군요····. 부러울 정도입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이런 수단은 오히려 역효과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브닝 가운을 다시 입었다. 정운은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살짝 아쉬운 감정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군····.’ 정운이 사랑하는 것은 슬기와 세레나다. 이미 두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그녀들을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정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런 감정이 모순이라는 것을 말이다. 애당초 세레나에 대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슬기에 대한 배신이지 않은가? 하지만 딱 거기까지···. 스카이 타운의 수많은 NPC들 중에서 아름다운 여성들도 많았다. 실제로 이보영이나 주경택 같은 타입은 그런 NPC들하고 적당히 즐기는 연애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진지한 연애는 입장의 차이도 있고 해서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냥 양심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간단한 게임 정도는 즐기고는 했다. 엄밀히 말해서 이보영의 경우는 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유지하고 있다. 취미가 어장 관리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는 아주 대놓고 즐긴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런 쪽으로는 절대 한 눈도 팔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 슬기와 세레나가 꽉 차서 다른 여자에게 허락할 공간이 없었다. 그게 뒤탈이 전혀 없는 NPC가 상대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정운 조차도 순간 다이앤 여왕이 다시 옷을 입자 살짝 이지만 남자로서 아쉬움이 들었다. 그 정도로 다이앤 여왕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정운의 아쉬움을 동반하며 다이앤 여왕은 옷을 다 입고 몸을 정갈하게 가다듬었다.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조차도 우아해 보일 정도로 그녀의 행동에는 기품이 있었다. 옷을 다 입은 그녀는 정운에게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제가 그 여성을 직접 만나고 담판을 짓고 싶지만···.” “다이앤 여왕님.” 정운이 그건 곤란하니 제발 참아 줬으면 싶었다. 찔리는게 없다고 해도 다른 여자하고 이런 썸싱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슬기에게 알려지기 실었다. 정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다이앤 여왕은 살풋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훗···,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정운님이 싫어하시겠죠. 그러니···. 다른 수단을 내겠습니다. 제가 담보를 맡기죠.” “담보?” “예.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다이앤 여왕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어떤 아이템을 꺼내서 맡겼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정운에게 맡기는 것 보다 차선으로 선택할 정도로 아끼고 아꼈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을 확인한 정운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설마···. 이거····?” 천하의 박정운도 이번만큼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하니 이게 담보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떤가요? 이걸 담보로 맡기면 부족할 까요?”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충분하고 말고요.” 정운은 아직도 약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다이앤 여왕이 자신의 몸 보다도 더 아꼈을 이유가 충분했다. 아이템의 가치로 따지면····. 지금 정운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이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박추성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영사도 이것에 비하면 잡동사니일지도 모른다. ‘설마 이런걸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나?’ 정운은 월드 서버에 먼저 진출했던 영국에 대한 평가를 약간 상향 조정했다. 현재의 힘이 어떻든 간에 저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이앤 여왕은 정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어디까지나 담보입니다. 하지만···. 그걸 주는 이유는 잘 아시겠죠? 이 동맹에 대해서 그만큼 우리가 진심이라는 겁니다.” “믿겠습니다. ·····안 믿을 수가 없군요.” 정운은 다이앤 여왕과 손을 마주 잡았다. 이렇게 해서 한국팀과 영국팀의 동맹이 결성 되었다. 한편, 일본의 영역에서는·····. 도조 마사토의 측근이자 오른팔인 사쿠라바 고로가 도조 마사토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각하!! 전 영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조센징들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칫···. 그 겁쟁이 놈들. 겁먹고 물러난 건가?” “그럴수도 있지만···. 혹은 우리의 방심을 유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있을 수 있군. 워낙 더러운 종자들이라서 무슨 치사한 수작을 부릴지 몰라.” “어떻게 할 까요?” 잠시 생각하던 도조 마사토는 문득 생각 난 것처럼 말했다. “·······혹시 놈들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간류섬에서 사사키 코지로에게 쓴 작전을 따라하는 건지도 모른다.” 전혀 잘못 짚었다. “우리가 조바심을 내기를 기다려서 우리가 흥분하기를 기다린다는 말씀입니까?”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혀 잘못 짚었다. “흐음···. 그런 수작이라니···. 조센징들이 나름 머리를 쓰는 군요.” 세 번 째다··. 전혀, 전혀, 전혀 완전히 잘못 짚었다. 지금 한국 팀은 영국의 영역에서 푹 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도조 마사토와 사쿠라바 고로의 망상은 브레이크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놈들의 음모에 걸리면 곤란하지····. 병사들의 사기를 파악하고 모두들 조바심을 내지 않게 하라.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진정 시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상을 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뜻대로 하라.” 도조 마사토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일본팀은 사자가 아니다. 잘 해봐야 늑대 정도? 그리고 한국 팀은 더더욱 토끼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월드 서버의 최정점에 서 있는 미국이나 러시아라고 해도 함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진정으로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을 가진 호랑이인 것이다. 호랑이가 여우를 사냥하는데 작전 따위를 짜지 않는다. 그냥 힘으로 덮쳐서 물어 죽여 버릴 뿐이지···. 하긴 그걸 알지 못하니까 한국 팀에게 전쟁을 건 것이겠지만 말이다. 도조 마사토의 허락을 받은 사쿠라바 고로는 부하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우리 일본의 서버로 돌아가서 스카이 타운에서 푹 쉬고 내일 오전에 다시 돌아온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 오늘 밤은 술과 여자를 마음껏 허락한다고 하셨다. 마음껏 즐겨도 좋다.” “옛!! 감사합니다!!!” “옛!! 감사합니다!!!” “옛!! 감사합니다!!!” 대답 소리가 확연하게 달랐다. 일본 팀에는 팀원들은 노고를 풀게 하기 위해서 일종의 봉사조라는 것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봉사조라는 곳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의 지하에 있는 커다란 홀로···. 거기에 가면 기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있다. 술, 도박, 여자는 기본이고···. 24시간 음악이 흐르고 있고 그 음악에 맞춰서 아리따운 여성들이 춤을 추고 있다. 보통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군국주의라고 하면 굉장히 고지식하고 체면을 중요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일본의 군국주의라는 것은 퇴폐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직 까지도 큰 갈등으로 남아있는 위안부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봉사조에 있는 미주와 아름다운 여자들은 일본 서버의 스카이 타운에 있는 NPC들이다.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잡아와서 이 지하에서 자신들을 위해서 봉사하게 하고 있는데···. 이 사실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 유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환경의 폐해라고 할까? 아니면 어차피 NPC 나부랭이일 뿐이니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절대적으로 자기 아래의 위치에 있는 인간이 있으면 인간은 한없이 잔인해진다. 이 봉사조에 잡혀온 NPC들은 차마 필설로 형용 할 수 없는 고통을 다 겪고 있었다. 차라리 죽음을 당했다면 그 고통은 순간일 것이다. 어차피 그라운드 제로에 묶인 이상 영혼은 돌고 돌아서 다시 동일인물로 환생할 뿐이니까···. 하지만 일본의 스카이 타운의 봉사조들은 죽음도 아니고 영원한 고통만을 받고 있었다. 월드 서버 진출자 정도 되면 나름의 정보를 얻는 법이고 적어도 이 NPC들이 그냥 프로그램의 수열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 모두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고 엄연한 에고가 있는 존재인 것인데도··. 그런 그녀들을 학대하고 유린하는 것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일본 유저들은 도조 마사토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 그라운드 제로의 봉사조들이 있는 홀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타락의 끝을 내달리고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의 대가로 종말을 맞이했다면····. 여기 있는 자들도 틀림없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영국팀의 영역인 버킹검 1호에서 하룻밤을 푹 쉰 한국 팀은 영국 팀의 배웅을 받으면서 출발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가 돕지 않아도?” “당분간 한국과 영국의 동맹은 우리들만의 일로 합시다. 적어도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는 날 까지는요.” 정운의 말에 배웅을 나왔던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손을 돕는다면 그 순간 한국과 영국이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일본 쪽에도 누군가가 붙을 텐데···. 아마 누가 붙어도 영국 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 적어도 한국과 일본과의 전쟁이 끝날 때 까지는 동맹은 비밀로 하는게 피차간에 좋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일본에게 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믿고 기다리도록 하죠. 하지만 저희도 할 수 있는 도움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이걸 가져가시죠.” 다이앤 여왕은 정운에게 얇은 책자를 건냈다. 책자는 표지도 없었고 안의 내용물도 그냥 손으로 적은 핸드메이드의 물건이었다. 정운은 물건을 살펴보고는 다이앤 여왕에게 말했다. “이건 뭡니까?” “이 월드 서버에만 있는 몇 가지 룰에 관해서 적어놓은 것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이런게 필요 했습니다.” ============================ 작품 후기 ============================ 결국 동맹은 성사 되었습니다. 다만 무분별한 히로인 늘리기는 작품을 엿가락처럼 줄줄 늘릴 뿐이라서 자제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월드 서버의 모든 국가를 적으로 돌려봐야 좋아하는 건 파우스트하고 김신수 정도 뿐이니.. 챙길 수 있는 전력은 챙기는제 현명한 처사겠죠. 그리고 담보에 관해서는 짐작가는게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일단 스포일러는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79화 <일본 섬멸전> 영국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들이 직접적인 무력으로 한국 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 해도 한국팀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꼭 승리하기를 빌겠습니다.” 한국 팀은 이번에는 안내도 없고 해서 바로 자신들의 탈것을 소환해서 빠르게 이동했다. 이런 저런 일로 시간을 많이 지체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더 시간 끌 일도 없이 바로 일본팀과의 전쟁인 것이다. 정운이 한국 팀을 이끌고 멀리 이동하자 버킹검 1호에서 지켜보고 있던 영국팀에서 한명이 말했다. “여왕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들이 일본에 지면 우리는 역으로 곤경에 처할 지도 모릅니다.” 부하의 염려에 다이앤 여왕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국 팀은 이길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죠? 70층에 영역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와 서독, 동독의 움직임을 체크하세요. 일본과 협조하는 분위기가 있으면 우리도 바로 한국 팀에 가세합니다.” “알겠습니다. 여왕 전하.” 한편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멀어진 한국 팀을 보면서 다이앤 여왕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역시 좀 더 어프로치 할 걸 그랬나? 동맹건과 별개로 봐도 놓치기 아까운 남자인데 말이야.” “여왕 전하!!!!?” “통촉해 주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여왕의 뜬금없는 중얼거림에 피를 토할 것 같은 영국팀의 유저들이었다. “그럼 추성이 형님. 대호 형님. 여기서 갈라집니다. 그리고 말했죠?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알겠다.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내가 쪽바리 새끼들을 한 놈이라도 놓치면 성을 갈아 버릴 테니.” 박추성은 의욕이 완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정운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일본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정운의 팀원은 슬기와 세레나, 그리고 한중겸과 이민지였다. 정운에 이민지, 한중겸. 실질적은 한국의 무력 순위 3,4,5위를 한 팀에 몰아넣은 강팀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별로 힘이 불균형하게 배치된 것은 아니었다. 박추성과 배대호가 그만큼 강하니까 말이다. “대호 형님은 동쪽으로 갔고···. 추성이 형님은 남쪽으로 갔으니 우리는 북쪽으로 진로를 잡아 보죠.” “그렇게 하지. 민지 누님. 바람의 정령으로 주변에 광역 정찰 좀 부탁 드립니다.” “알았어.”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는 바람의 정령을 꺼내서 광역 정찰을 했다. 꼼곰하게 세세한 것은 살피기 힘들지만 그래도 상당히 넓은 범위를 캐치 할 수 있으니 기습의 염려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막 이동을 시작한 순간에 정운이 한중겸에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밖에 없는데 민지 누님한테 누님 소리가 나옵니까?” “응? 그러고 보니···. 잠깐 너 설마 팀 짤 때 일부러?” “일부러는 아닙니다. 그냥 전력을 균등하게 나누다 보니 이렇게 되었군요.” “···········.”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이 정운을 바라봤다. 정운은 그런 한중겸을 능글맞게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상황은 재미있게 되었군요. 둘이서 언제부터 사귀었는지부터 차분하게 불어 보실까요?” “너 진짜 죽는다!!!” 한중겸은 길길이 날뛰며 화 냈고 이민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늦은 나이게 핀 꽃이 어지간히도 부끄러운가 보다. 정운과 한중겸은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면서 서서히 이동을 시작했다. 일본의 영역은 아주 조금의 빙하지대와 그리고 나머지 지역은 울창한 숲 지대였다. 이동 중에 세레나가 수풀을 해치면서 말했다. “매복할 곳이 많군요? 조심 해야 겠습니다.” “그렇게요··. 한 편으로는 여기는 어떤 몹이 살지도 궁금하네요.” 슬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앞에 한 무리의 몹들이 나타났다. 나타난 무리는 흉측한 외모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으며 딱딱한 질감의 초록색 피부를 하고 있는 신장 3미터의 거한이었다. “트롤?” “여기 나탄나 이상 그냥 트롤은 아니겠지. 세레나 ME로 찍어 봐.” “옛!!” 다크 트롤. LV.130~140 [흥분하면 몸에서 검은색 안개를 뿜어내는 다크 트롤. 보통의 트롤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난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후각 범위 안에 적이 나타나기만 하면 무척 난폭하게 공격한다.] “무척 난폭하게 공격한다. 라는 부분이 좀 걸리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적대 반응은····.” “크워어어어어어!!!!!” 일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크 트롤은 괴성을 지르면서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놈의 몸에서는 ME에서 나온 정보와 같이 검은색 안개가 무럭무럭 피어나기 시작했다. ‘쳇···. 전쟁하러 와서 갑작스럽게 사냥이라니···.’ 약간 불편은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빨리 끝내 버리는게 좋았다. “뇌천신공!! 세레나!! 후위 부탁해. 다른 사람들은 대기하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가장 신속하고 조용하게 끝내기 위해서 세레나와 단 둘이서 움직였다. 상대는 레벨이 130~140이었다. 이 정도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레나와 정운이 함께 하다면 10분 이상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크워어어어!!!!” 콰앙!! 놈이 휘두른 돌 도끼질에 지면이 움푹 패였다. 트롤들의 주무기는 돌도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작 나무에 돌덩어리를 얼기설기 묶었을 뿐인 그 도끼가 경악할 정도로 튼튼했다. 보통 돌도끼라는 것은 그렇게 튼튼한게 아니다. 전력으로 몇 번 휘두르면 돌이 부서지던가? 나무가 부서지던가? 그것도 아니면 돌을 묶고 있는 줄이 끊어지면서 돌만 앞으로 휘익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트롤이 휘두르는 돌도끼는 검기에 정통으로 맞아도 멀쩡하게 버텼다. 솔직히 말해서 말이 되지 않았다. ‘하긴 그것도 게임의 세계이기에 발생하는 일종의 설정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야.’ 정운은 재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트롤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전신이 황금빛 뇌전을 두른 정운의 행동은 한 줄기의 섬광이 돌격하는 것 같았다. 다크 트롤은 그런 정운의 움직임에 거의 대응하지 못하고 품안을 내주고 말았다. “흡!!!” 정운은 바로 크리티컬 대미지를 노리기 위해서 세로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촤아아악!!! 정운이 휘두른 검은 단 일격에 3미터짜리 다크 트롤의 몸을 세로로 양분 해 버렸다. 아무리 트롤이 재생력이 좋은 몹이라고 해도 이런 대미지가 터지면 크리티컬로 바로 즉사였다. 그런데···. “크워어어어어!!!” 다크 트롤은 세로로 쪼개진 몸을 금방 붙여서 다시 정운에게 달려 들었다. “이런···?” 정운은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이레귤려에 당황할 짬밥은 아니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여유있게 트롤의 돌 도끼를 피했다. “크리티컬이 터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하아앗!!!!” 정운의 말이 끝나기 전에 뒤편에서 질풍처럼 날아든 세레나가 트롤에게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스팟!!! 그녀가 트롤을 스치고 지나간 순간 날카로운 참격이 트롤의 목을 쳐 버렸다. 순간 정운은 트롤의 머리가 위로 솟구치는 광경을 봤다. 이번에야 말로 크리티컬 대미지가 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건?” 정운이 눈을 살짝 치켜뜨면서 놀란 관경은 다크 트롤의 날라가던 머리가 다시 붙는 과정이었다. 어느 정도 위로 솟구치던 머리는 다크 트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색 안개에 잡히더니 그대로 다시 몸에 달라 붙기 시작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조하는 다크 트롤의 검은색 안개는 마치 끈끈이와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저렇게 재생한다 이거지?” 정운은 놈의 재생 능력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재빠르게 크리티컬 대미지를 터트려 죽이기 위해서 참격을 구사하는 자신과 세레나가 나섰던 것이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트롤에게 크리티컬 대미지를 얻어 내려면 날카로운 참격으로 몸을 양분하거나 머리를 날려 버리는게 가장 쉽다는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저 다크 트롤은 오히려 참격에 더 강한 모습을 보였다. 저 검은색 안개 때문에 완전 절단이 된다고 해도 다시 몸이 붙어 버리는 것이었다. “칫···. 이런 놈이 상대라면 오히려 검보다는 이게 좋지.” 정운은 자신의 혈광참마도를 집어 넣고 인벤토리에서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꺼냈다. 참격을 구사하는 검보다 찌르기를 구사하는 창은 재생력이 좋은 트롤에게는 오히려 더 좋지 않은 무기였다. 단,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싸울 때의 얘기다. 정운의 창을 들고 적의 허벅지 부분을 겨냥했다. 그리고는···. “회천공!!!” 콰아아앙!!! 거대한 뇌전의 소용돌이가 다크 트롤의 허벅지를 산산조각으로 날려 버렸다. 허벅지 뿐만이 아니라 하 복부의 일부분까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쿠워어어어어!!!!” 다크 트롤은 그대로 괴성을 지르면서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외다리로 서 있기에는 균형 감각이 영 좋지 않은가 보다. 이쯤 되면 사실상 게임은 끝난 거다. 재생력? 아무리 좋은 재생력이라고 해도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 몸을 어떻게 재생 하겠는가? 아니 트롤이라면 그것도 시간만 주면 해 내기는 해 낸다. 팔 다리 한 두개 정도는 재생해 내는 재생계의 아이콘(?) 같은 존재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운이 바보도 아니고 전투 중에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잘 가라···. 회전공, 삼연격!!!” 퍼퍼펑!!! 쓰러진 놈의 몸에 두 발. 머리에 한 발. 정운의 공격은 다크 트롤을 그냥 육편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다크 트롤이라고 했던가? 레벨이 있으니 이런 놈도 만만치 않네.” “그렇군요. 전체적인 공방력이 상당해 보였습니다.” 정운과 세레나가 그런 말을 하는 사이···. 정운은 뭔가 날카로운 일격이 세레나를 노리는 것을 알아챘다. “피햇!!!” 정운은 재빨리 그 공격과 세레나의 사이에 몸을 날려서 적읜 공격을 막아냈다. 채애애앵!!!! 맑은 쇳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아온 짧은 표창은 정운의 창대에 맞아서 튕겨 올랐다. “이건···. 적이다. 전원 준비!!!” 정운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방금 정운을 노렸던 것 같은 공격이 날아왔다. 하지만 그 공격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앱솔루트 실드!!!” 한중겸이 재빨리 방어막을 펼쳐서 동료를 감쌌다. 정운이 준비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먼저 방어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 경험에서 일어나는 훌륭한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팅··. 팅팅팅팅팅···. 사방에서 소나기 같은 공격이 쏟아졌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가 버렸다. 애당초 기습으로 날린 투척용 무기일 뿐이다. 무방비 상태로 맞으면 모를까? 대처하고 있으면 두려울 것은 없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공격자들도 그 정도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다음 대응을 했다. “나가자!!!!” 첫 번째 원거리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마자 수풀의 사방에서 일본팀의 인간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가장 앞에는 정운에게 익숙한 얼굴인 도조 마사토가 보였다. “전원 포위망을 펼쳐라!!!” 도조 마사토가 일본도를 높게 들고 명령을 하자 일본 팀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정운의 팀을 포위했다. 그렇게 포위망을 완성하고 나서 도조 마사토는 정운에게 의기양양하게 일본도를 겨누면서 말했다. “어리석은 놈. 가뜩이나 우리보다 숫자도 적으면서 병력을 삼등분으로 나누다니. 병법의 병자도 모르는 놈이구나.” “···········.” ‘병법 같은 소리하고 있네.’ ============================ 작품 후기 ============================ 여러가지 사이드 스토리가 들어갔지만 이제 본격적인 일본과의 전쟁씬입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투베1위에 올라서 기쁩니다. 이거 다 여러분들이 항상 응원해 주신 덕분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80화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도조 마사토를 보면서 정운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저걸 나름 멋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걸까? 센스가 지극히 의심 스럽다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애당초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저간의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유저의 질이었다. 단 한명의 초고수가 어마어마한 학살을 자행 할 수도 있는게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관이었다. 정운이 셋으로 나눈 팀은 그 팀 하나하나가 일본 팀 전체와 전면전을 벌여도 충분히 섬멸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했기에 태연하게 팀을 나눴던 정운이었다. 다만 그걸 일일이 변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말 섞었다가 저 머리 나빠 보이는 미친놈하고 같은 수준으로 전락할까봐 두려웠다. ‘그나저나···. 팀을 셋으로 나눈걸 용케 알았군. 그러고 보니 이민지 누님의 정탐에도 용케 걸려들지 않았고 말이야.’ 정운은 생각보다는 제법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만큼은 놀랄 만 했다. 아마도 저쪽에는 탐색과 은신에 관해서 거의 유니크급의 스킬, 혹은 아이템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민지의 탐색 스킬에도 걸려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민지의 탐색은 범위는 광범위 하지만 대신에 그 정밀도가 다소 떨어지니까 말이다. 어쨌든 상관없었다. 그래도 기습은 막아냈고 이제부터는 정면으로 싸울 뿐이다. 뚜둑··. 뚝··. 정운은 어깨와 목을 풀면서 도조 마사토에게 여유만만하게 말했다. “하나만 물어 보지?” “·····뭐냐?” 정운의 여유만만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도조 마사토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정운에게 반문했다. 그런 도조 마사토에게 정운이 주변을 흘깃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 인원을 여기에 집중 시킨 거냐? 보아하니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흥? 내가 그걸 왜 대답해 줘야 하지?” “·········그건 그렇네.” 정운은 처음으로 도조 마사토의 생각에 순순히 순응했다. 생각해 보니 적인데 그걸 왜 가르쳐 준다는 건가? 언 듯 새어보니 적의 숫자는 대략 13명 정도···. 하지만 팀을 나누기에는 애매한 숫자였다. ‘뭐, 안 가르쳐 주면 내가 직접 알아보면 되는 거지.’ “쉐도우 서치.” 정운이 자신의 탐색 스킬을 발동 시켰다. 이민지의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탐색과 달리 그 범위는 좁았다. 탐색 범위는 고작 10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대신에 정밀도는 놀랍도록 높았다. 일단 탐색 범위안에 있는 상대라면 모래알 만큼 작은 적이라도, 설사 은신 스킬을 쓰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정운의 탐색에서 벗어 날 수는 없었다. “···거기 있었냐? 쉐도우 붐!!” 퍼퍼퍼펑!!! 정운이 말을 하자마자 사방의 숲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고 숨어 있던 일본의 유저들이 모습을 들러냈다. “크윽····.” “쿨럭···. 제길···.” 은신중에 갑작스런 공격으로 인해서 제법 대미지를 입은 일본의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쉐도우 붐. (상대의 그림자를 폭발 시켜서 공격한다.) 정운이 자주 애용하는 스킬 중에 하나였다. 숨어있는 적이라고 해도 그림자는 있는 법. 쉐도우 서치와 같이 사용하면 한 방에 매복자를 색출해 낼 수 있었다. 애당초 정운에게 매복 따위는 일절 통하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열여덟. 다 맞군.” 정운은 숫자를 다 세어보고 적들이 모두 여기로 몰렸다는 것을 확인 했다. ‘좋군···. 여기서 놓치지만 않으면 되겠어.’ 원래 일본팀의 인원은 열아홉이었다. 하지만 저번에 박추성의 손에 한 명이 죽고 이제는 열여덟로 줄었다. 그러니 여기 있는 인원수가 일본팀의 총력이 맞은 것이다. ‘아마도···. 대장인 내 목만 따면 승리라고 생각한 거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도조 마사토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네 이놈····. 무슨 비겁한 수작을 부린 거냐?” “은신하고 있다가 기습할 생각이었던 놈들 입에서 비겁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냐? 머릿속에 뇌는 들어있냐? 생각은 하고 살아?” “···········.” 뿌드득···. 정운의 도발에 도조 마사토는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저런···. 치아 건강에 안 좋게 시리···. 뭐, 상관없나? 어차피 여기서 죽을 테니까!!!!” 콰쾅!!! 정운이 ‘까!!!!’ 라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달려가서 도조 마사토와 격렬했다. 둘의 레벨은 같은 172. 하지만, 도조 마사토와 정운은 거쳐 온 수라장의 수준이 달랐다. 선수를 쳐서 유리한 고지를 잡은 정운은 혈광참마도를 휘두르면서 도조 마사토를 거칠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죽여주마.” “이 더러운 조센징이!!!!!” 그렇게 정운이 도조 마사토에게 돌격하자 다른 일본의 유저들은 서둘러서 도조 마사토를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고 있을 한국 팀들이 아니었다. “파이어 월!!!” 화르르르륵!!! 정운과 도조 마사토를 완전히 분리 시키기 위해서 슬기의 불의 장벽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들이 멈칫한 순간에 세레나가 공격을 더했다. “홀리 이레이져!!!” 피융!! 피융!! 피융!! 일본 팀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10개의 광구가 타깃들에게 광선을 다발적으로 뿜어냈다. 홀리 이레이져 LV.MAX : 열개의 광구가 타깃의 주위를 맴돌면서 집중적으로 광선을 발사한다. 원래 세레나에게 가장 처음에 생겼던 원거리 기술이 이것이었다. 한방 한방의 대미지는 크게 늘지 않았지만 전방위에서 연속으로 날아오는 광선을 상당히 거추장 스러웠다. “이····. 망할 양년이!!!!” 일본 팀의 NO.2인 사쿠라바 고로가 세레나의 공격에 분개하면서 돌격했다. 놈은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것 같은 방패로 세레나의 광선을 막아내면서 세레나에게 돌격했다. 콰아앙!!! 놈의 한 손에 들려있는 짧은 단창과 세레나의 방패가 부딪혔다. 놈은 그 일격으로 세레나를 해치울 생각이었지만 세레나는 놈의 공격을 방패로 정확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오히려 적의 공격을 흘리고 난 후에 세레나의 검격이 놈의 목을 노리고 날카롭게 날아 들었다. 휘이익!!! “크윽····.” 놈은 허리를 뒤로 크게 휘어서 세레나의 검격을 피했다. 하지만 코끝을 살짝 스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놈은 자신의 코끝에서 살짝 흐르는 피를 보고 눈에 핏발을 세웠다. 그리고는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세레나에게 말했다. “이 망할 양년이···.” “나한테 무슨 유감이라도 있나?” 세레나가 태연자약하게 대꾸하자 놈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옛날부터 십자가 들고 믿으라 믿으라 하는 양놈들은 마음에 안 들었어. 네년 가랑이를 벌려서 XXX하고 XXX해서 XXX XXXX XXXX XXXX······.” “그만 됐다.” 콰아아앙!!! 세레나는 사쿠라바 고로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강한 검격으로 놈을 내려쳤다. 놈의 거북이 등껍질 방패와 세레나의 검격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평소에 전투중에 화를 내거나 냉정을 잃는 경우가 극히 드문 세레나다. 하지만···. 지금 사쿠라바 고로는 세레나의 앞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기를 범했다. 바로 크리스찬 전부를 모독한 것이다. 죽어서 성인으로 추앙 받고 지금은 천계의 천사로까지 승천한 세레나의 앞에서 말이다. 세레나는 검을 한 차례 휘둘러서 적을 떨쳐 버리면서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더러운 입은 그만 놀려라. 듣는 내 귀가 더러워 진다.” 물론 사쿠라바 고로가 그 말에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 할리는 없다. 둘은 적이고 지금은 전투중인 것이다. “이 망할 XXXXXX!!!!!!” 놈은 더 크게 소리치면서 세레나에게 달려 들었다. 그리고 세레나 역시 오랜만에 화가 났다. 콰아아앙!!! 그렇게 세레나가 적과 일대일로 돌격했다. 세레나와 사쿠라마 고로. 둘의 무장은 비슷비슷했다. 카이트 실드와 롱소드 스타일의 검을 장착한 세레나. 거북이 등껍질 방패와 짧은 단창을 장착한 사쿠라바 고로. 하지만 비슷한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레벨에서는 제법 차이가 났다. 현재 세레나의 레벨은 110. 사쿠라바 고로의 레벨은 151.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세레나의 승리를 점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세레나는 거기에 괘념치 않고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신을 모독하는 자에게 그녀는 물러나는 법을 몰랐다. 전투가 시작하고 현장은 급박하게 변화했다. 먼저 정운이 도조 마사토와 격돌했다. 양팀의 대장전인 것이??. 그리고 세레나가 일본 팀의 NO.2인 사쿠라바 고로와 격돌했다. 일본 팀의 NO.1과 NO,2가 발이 묶인 상황에서 나머지 열여섯 명은 이민지와 한중겸, 그리고 슬기가 모두 상대해야 했다. “크크큭····. 십육 대 삼이라····.” “여자 두 명은 살려둘까? 가면 쓴 년은 얼굴에 어지간히도 자신 없어 보이지만 몸매는 좋아 보이잖아?” “그렇군. 정 눈뜨고 못 볼 정도의 추녀면 그냥 가면 쓴체로····. 커억!!!” 콰아아앙!!! 이민지의 얼굴에 관해서 뭐라고 말하던 놈은 그대로 몸이 짜부라지는 것 같은 공격을 받고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 강력한 공격의 정체는 한중겸이 소환한 그레이트 타이탄의 집체만한 주먹이었다. “···············.” “···············.” “···············.” 갑작스럽게 나타난 커다란 보스몹을 보고 일본 유저들은 잔뜩 얼어 버렸다. 그제야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보면서 한중겸이 은은한 분노를 표출했다. “살 생각은 버려라. 그게 속은 편할 거다.” 평소에 쾌활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유명한 한중겸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광경은 흔치 않았다. 세상에 남자를 가장 화나게 하기 쉬운 것은, 그 남자의 여자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 팀으로서는 사자의 콧 털을 건드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자이언트 스네이크!! 데몬 엠페러!! 가루라!!!!” 엄청 화난 사자의 분노를 말이다. 콰콰콰콰콰!!!! 마치 불도저가 F1머신처럼 질주하는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빽빽하게 우거진 수풀을 작살내면서 정운은 도조 마사토를 거칠게 몰아 붙여 갔다. 만약 이걸 지구의 환경주의자들이 봤다면 거품을 물고 나무 살려 내라고 정운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공격에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도조 마사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길···. 일이 꼬이는 군.’ 도조 마사토는 지금의 상황이 영 탐탁치 않았다. 초반에는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황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운의 예상대로 일본에는 굉장한 탐색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와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었다. 특히 탐색 스킬이 대단했다. 그 탐색 스킬이 얼마나 굉장하냐 하면 일본 팀의 모든 영역을 충분하게 커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런저런 사전 준비를 많이 해야 하기는 했다. 무작위적으로 탐색이 가능한게 아니라 천리안이라고 불리는 물체를 스킬로 소환해서 어느 지점에 밖아 넣어야 했다. 그렇게 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굉장히 넓은 지역을 자세하게 관찰 하는게 가능했다. 일본 팀의 영역 전체에 걸쳐서 그 천리안이 등간격으로 빼곡하게 깔려 있었다. 덕분에 한국 팀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오자 마자 일본팀은 한국팀의 행방을 바로 캐치 할 수 있었다. “흥, 느림보 놈들···.” 도조 마사토는 그렇게 불평을 하면서도 한국 팀의 행방을 꼬박꼬박 보고 받았다. 그리고 한국 팀 중에서도 리더인 정운이 있는 곳으로 총력을 이끌었다. 다른 팀들과의 거리는 충분히 멀어진 상황에서 리더를 잡으면 남은 놈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 작품 후기 ============================ 전투는 세가지 시점에서 치뤄 집니다. 대장전인 정운과 도조 마사토. 세레나와 일본의 NO.2인 사쿠라바 고로. 그리고 나머지 일본은 슬기와 이민지와 빠친 한중겸이 상대입니다. 누가 제일 불쌍한 걸까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81화 <정운 VS 도조 마사토> 비록 박추성 배대호의 존재에 관해서 잘 모르기에 한 판단이었지만 그래도 리더를 먼저 제거한다는 생각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도조 마사토의 오산은 일본팀의 총력을 기울인 전투가 너무 쉬울 거라고 방심한 것이었다. 원래 도조 마사토의 계획은 이랬다. 한국 팀을 기습해서 혼란시킨 다음에 팀의 하위서열에 있는 유저들에게 정운을 공격하게 해서 힘을 뺀다. 이 와중에 다소의 손실이 생길 수 있지만 그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도조 마사토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은신해 있던 팀의 주력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서 체력을 소모한 적들을 공격해서 물리친다. 이게 도조 마사토가 세웠던 당초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 돌아가지가 않았다. 정운은 마치 도조 마사토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처럼 간단하게 도조 마사토의 계획을 분쇄해 버렸다. 탐색 스킬을 사용해서 바로 은신해 있는 적들을 해치운 정운은 그 상태로 바로 도조 마사토와 일대일에 들어갔다. 도조 마사토는 야간만 버티면 부하들이 가세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정운의 공격에 밀려서 일행과 까마득하게 멀어져 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빌어먹을 자식!!!” 콰아앙!! 거칠게 휘두른 일격으로 일단 정운을 때어낸 도조 마사토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거리를 벌리고 몸을 추스르고 있는 정운을 보고 바득바득 소리쳤다. “이 가사한 노!!!! 나를 부가들하고 털어트리는게 목저기었군아!!!? ·····콜록.” “······사람 말로 다시 말해라.” 자욱한 먼지 때문에 발음이 엉망인 도조 마사토였다. “이 간사한 놈!!!! 나를 부하들하고 떨어뜨리는게 목적이었구나!!!” ‘·····정말로 다시 말 할 줄이야.’ 전혀 쓸데라고는 없는 굳은 심지라고 감탄하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정운은 혈광 참마도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여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지. 그리고 훌륭하게 성공했고 말이야.” 정운의 하는 대답에 도조 마사토는 검을 바로 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건방진 놈····. 1대1이면 나한테 이길 수 있다 이거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자신 없으면 이렇게 1대1 상황으로 만들었겠냐?” “············.” 정운의 말을 듣고 보니 순간 ‘그러고 보니 그렇군.’ 이라는 생각이 드는 도조 마사토였다. 정운은 그런 놈을 보고 정말 페이스에 잘 넘어오는 놈이라는 생각을했다. 저런 놈을 대장이랍시고 믿고 따르고 있을 일본팀이 살짝 불쌍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도조 마사토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운에게 말했다. “건방진 조센징 놈·····. 네놈 목을 쳐서··. 아니 먼저 사지를 토막내고 눈을 뽑고 혀를 지져서 네놈 동료들에게 보여주마. 그때의 반응이 궁금하군.” “뭐,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온몸에 황금빛 뇌전을 둘렀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도조 마사토 역시 정운의 몸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힘을 느끼고는 긴장했다. ‘이게 막 월드 서버에 올라온 놈의 힘이라고? 말 도 안 돼····.’ 도조 마사토는 자존심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운의 힘이 자신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여기서 약세를 보일 수는 없었다. 이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투였다. 이기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이건 미친놈이건 정상인이건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제로썸 게임에 뛰어든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도조 마사토의 일본도에서 아스라한 연기가 뿜어녀 나오기 시작했다. 하얀색의 무색 불투명한 연기는 점점 도조 마사토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쉐도우 아머!!” 정운은 적의 능력을 몰랐지만 일단 방어력을 강화 시켰다. 전신에 빈틈없이 그림자의 갑옷을 두르고 적의 공격에 대비한 정운에게 도조 마사토가 말했다. “내가 예고하나 하지. 넌 지금부터···. 나한테 단 일격도 맞추지 못할 거다.” “그런 대사···. 시시한 악역들의 항상 깨지는 공약이라고.” 정운은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살짝 긴장했다. 도조 마사토의 레벨은 172. 지금 정운하고 같은 레벨이었다. 어떤 스킬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스킬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요함. 어떤 의미로 유저는 보스몹 이상으로 까다로운 상대이기도 했다. 푸슈우우우욱!!! 도조 마사토의 몸을 완전히 감싸고 있던 연기는 갑자기 증기가 폭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증폭하기 시작했다. 도조 마사토의 몸에서 나운 하얀색 연기가 거의 1km에 달하는 범위를 까마득하게 덮어 버린 것이다. 띠리링!! 그리고 그 순간 정운에게 알림창이 떴다. [중독 상태가 되셨습니다. 체력이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독인가? 시시한 수작을 부리는 군.” “시시한 수작인지 아닌지는 네놈이 직접 겪어보면 알 거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의 비장의 기술인 이 ‘죽음의 안개’ 속에서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도조 마사토의 말에 정운은 두 눈을 부릅 뜨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런······?” “훗··. 이제 와서 겁먹어도····.”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런 촌스럽고 막 지은 티가 팍팍 나는 기술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네 정신머리에 감탄한 거다.” “네 이놈!!!!” 카아앙!!! 정운의 도발이 끝나자마자 도조 마사토의 강력한 일격이 날아왔다. 안개 속에서 갑작스럽게 날아온 일격이었지만 정운은 혈광참마도를 꺼내서 그대로 공격을 막았다. “흥···. 어딜··. 백뢰참!!!!” 정운의 참격 스킬인 백뢰참이 작렬했다. 뇌전을 머금은 참격을 한 호흡에 일백 번 날리는 기술이다. 적어도 바로 코앞에 있는 상대에게 몇 대 정도는 맞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슈슈슈슈슛!!!! 정운의 참격은 거칠게 안개만을 갈랐을 뿐이다. “···········.” ‘이상한 걸? 그 짧은 시간에 피했다고?’ 정운은 어쩐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공격이 날아온 방향의 공격을 막고 그 다음에 공격을 했다. 하지만 손에 걸리는 느낌은 제로였다. 정운보다 더 속도가 빠른 박추성이라고 해도 방금전의 공격을 이렇게 깔끔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뭔가 트릭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한편, 도조 마사토는 그런 정운을 보고 조소하면서 말했다. “크크크크····. 고통 속에서 독으로 죽어가던가? 아니면 그냥 내 공격에 순순히 몸을 맡기던가? 서택은 네놈의 자유다.” “···········.” ‘싸우면서 무슨 말이 저렇게 많은지····.’ 정운은 더 이상 도조 마사토의 도발을 상대하지 않고 오로지 전투에 정신을 집중했다. ‘현재 상황을 정리해 보자. 집중령 스킬 덕분에 적의 공격은 막아낼 수 있다. 그런데 독 때문에 계속 대미지가 쌓이고 있단 말이야. 이건 좀 문제네···.’ 정운의 독 저항력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거기에 정운이 착용하고 있는 드래곤 리빙 아머는 착용자의 체력을 분당 5%씩 회복시킨다. 하지만 그런 정운이 조금씩 대미지를 입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도조 마사토의 독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평범한 90레벨의 유저였다면 이 안에서 10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정운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장시간 계속 이 안에 있다면 결국은 독에 쓰러질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일단 상황을 벗어나 볼까?’ “흑토!!!”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벤토리에서 흑토를 소환했다. “히히힝!!” “흑토, 비상이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거야.” 흑토를 소환한 정운은 그대로 흑토의 몸에 올라타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정운은 금방 이 안개를 떨쳐 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정운의 예상을 비웃기라고 하듯이 안개는 계속해서 정운을 따라왔다. “크크큭···. 무의미한 발악이다. 조센징.” “···········.” ‘인정하기는 싫지만···. 속도로 떨칠 수 있는 타입은 아닌가?’ 흑토를 타고 순식간에 20km정도를 내 달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을 둘러쌓고 있는 짙은 안개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운은 다시 정지해서 다른 수단을 써 봤다. “천뢰지망!!!” 하늘 높이 솟구친 화살은 그대로 사방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마치 융단폭격을 하는 것 처런 정운의 광범위 스킬이 작렬했다. 안개 어디에 숨어있던 간에 도조 마사토는 도저히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 없다고 했다!!!” 카아앙!!! “칫!!” 정운은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날아오는 일격을 재빨리 막았다. 이번 공격은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력했는지 정운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크하하하하하!!! 이제 발악은 다 끝났나?” 뒤로 밀려난 정운의 입가에 살짝 핏물이 나오는 것을 본 도조 마사토는 광소를 터르렸다. 그건 정말 광소(狂笑)로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정운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제 다 끝났다.” “포기가 빠르군.” “아니. 네놈의 이 어줍잖은 스킬이 다 끝났다는 말이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혈광참마도를 높이 들었다. 혈광참마도에서는 정운의 특기인 황금색 뇌전이 아니라 은은한 붉은 강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미지의 기술가 마주 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기술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거지? 만약 이게 비장의 기술이라면···? 네놈은 너무 빨리 사용했어.” “············.” 정운의 말에 도조 마사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운의 말에서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 스킬의 비밀을 알았다고? 아니야···. 그냥 허세일 것이야.’ 정운의 혈광참마도에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서리면서 정운은 사방을 경계했다. 가까이 오면 강력한 일격으로 그대로 베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러면서 정운은 말을 계속했다. “원래는··. 네놈이 이 안개로 대미지를 주면서 그 안에 숨어서 공격을 하는 스킬인줄 알았지. 척 봐도 그렇게 보이잖아?” “··············.” “하지만 고속으로 이동해서 계속해서 따라오는 안개, 그리고 카운터성 난격과 광범위 스킬로도 전혀 적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꿨지.” “·············.” 도조 마사토는 속으로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이 기술을 썼을 때 대부분의 상대는 비슷비슷한 대응을 보였다. 발악하면서 날뛰거나, 혹은 목숨을 구걸하면서 제발 봐 달라고 하거나···. 저 박정운이라는 한국인도 처음에는 그런줄 알았다. 미쳐서 발악하듯이 무의미한 공격을 이리저리 반복할 뿐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정운은 마치 이런 일은 다반사라는 듯이 태연하게 이런저런 가능성을 실험해 봤을 뿐이다. 어떤 상황이든 냉철하고 침착하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는 마지막까지 생각하기는 멈추지 않는 사람 뿐이었다. 정운의 혈광참마도에서는 어느새 하얀색의 안개를 붉게 물들일 정도로 강력한 붉은색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킬의 정체를 알면 약점도 대강 짐작이 가는 법이지. 네놈의 이 스킬의 정체는 네놈 자신이 안개로 변하는 거다. 그리고 공격을 할 때만 살짝 신체의 일부를 실체화 시키는 것 뿐이야. 어때? 틀린가?” “···········큭.” 도조 마사토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 나왔다. 정운의 예상은 완벽한 정답이었다. 죽음의 안개 : LV. MAX (자신의 몸을 안개로 만들어서 적에게 달라 붙는다. 반경 1km에 달하는 영역을 지배하며 그 안에 있는 적을 천천히 독살 시키거나 안개 속에서 공격해서 죽인다.) 스킬 자체는 유니크 스킬 중에서도 상당히 좋은 축에 들어가는 스킬이었다. 대인전부터 단체전까지 광범위하고 폭넓게 사용 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어떤 스킬이라고 해도 정체가 밝혀지면 대응책도 드러나는 법이다. ============================ 작품 후기 ============================ 일단 대장전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틀 연속 1위를 해서 기쁩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82화 <세레나 VS 사쿠라바 고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정운이 선언하듯이 말했다. “네놈이 안개 그 자체로 변했다면···. 안개로 변하 몸 전체에 대미지를 주면 되는 거다. 멸마광참(滅魔光斬)!!!!!” 퍼어어어엉!!!!! 정운이 커다란 일갈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순간 혈광참마도에서 붉은색의 빛이 광범위하게 뿜어져 나왔다. 혈광참마도 공격력 : 5,000 무게 : 100 내구력 : 700 [붉은 도신에 마를 베는 참마의 검. 평소에 살아있는 존재를 베어서 피에서 힘을 비축한다. 비축한 힘을 한 번에 소진 할 수 있는 멸마광참(滅魔光斬)을 쓸수 있다. 한 번 쓰면 비축한 힘은 제로로 돌아간다.] 정운이 오랫동안 사용한 애도인 혈광참마도였지만 정작 이 무기에 붙어있는 스킬인 멸마광참을 사용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이 기술의 경우 힘을 꾸준하게 비축해야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쓰기만 하면 그 스킬의 파워는 정운이 쓸 수 있는 모든 스킬을 상회하고 있었다. 물론 지속적인 대미지는 아스트랄 소드나 쉐도우 아미들이 훨씬 더 뛰어나다. 어디까지나 한 방의 대미지만을 선택했을 때이다. ‘크으윽··. 안·· 안개로는 버티지 못한다···.’ 도조 마사토는 반경 1km로 퍼져있던 자신의 안개가 샅샅히 흩어지려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흩어져 버리면 바로 사망이었다. 도조 마사토는 필사적으로 몸을 추슬러서 안개로 변한 몸을 인간의 몸으로 되돌렸다. “허억··· 허억···.”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도조 마사토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몸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지만 안개 상태에서 멸마광참을 먹은 대미지는 전신에 남아 있었다. “크윽····. 고작 이 정도로 내가 죽을 것 같으냐!!!?” 도조 마사토는 그렇게 외치면서 분연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게 일어난 도조 마사토의 눈에 보여야 할 정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고개를 휙휙 돌려서 사방을 살펴본 도조 마사토는 정운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위로 확 들었다. “하늘····· 에도 없다. 도망간 건가?” 도조 마사토는 순간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적은 자신에게 강력한 일격을 날리고 그 틈에 도망간 것이다. “망할···. 이제 부하들하고 합류해서···. 커억!!!” 푸욱!!! “방심은 절대 금물이지··.” 완전히 풀어진 상태에서 방심하고 있던 도조 마사토는 정운의 강력한 일격을 배후로부터 무방비하게 맞아 버리고 말았다. “커억····. 네놈··? 어떻게?” “그걸 주절주절 떠들겠냐?” 정운은 추가타를 날리기 위해서 혈광참마도를 다시 휘둘렀다. “크윽···.” 카아앙!! 도조 마사토도 썩어도 준치라고 배에 바람구멍이 난 상태에서 용케 정운의 일격을 막았다. 자세히 보니 놈의 상처 부위는 금속 형태의 결정이 붙어서 상처를 서서히 회복 시키고 있었다. ‘회복 스킬인가? 그걸 그냥 쓰게 놔 둘리가 없지?’ “흐읏!!!” 콰아아앙!!! 이전 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워의 일격이 도조 마사토에게 작렬했다. 도조 마사토는 필사적으로 검을 들어서 공격을 막아는 냈다. 하지만 막아냈을 뿐. 정운의 힘을 못 이겨서 몇 미터 정도 뒤로 밀리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흐음····. 그만 포기하지. 발악할 생각인가?‘ “····쿨럭····.” 도조 마사토는 입에서 핏물을 한 움쿰 뱉어내면서도 정운을 아득바득 노려봤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가득했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배후에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라는 의문이었다. 사실 정운은 안개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도조 마사토가 실체화 하는 것을 포착했다. 쉐도우 서치를 계속 활성화 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도조 마사토의 몸이 실체화 되는 것을 알아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순간 자신의 스킬을 사용했다. “쉐도우 무브.” 쉐도우 무브. (그림자에 자신을 숨겨서 이동한다.) 정운이 그림자의 망토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에서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한 기술이 이것이었다. 원래는 쉐도우 서치가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가지고 있으니 탐색 스킬이라는 것은 쓸데가 많았다. 하지만 정면에서 힘과 돌격력으로 승부하는 타입인 정운에게 있어서 쉐도우 무브를 별 쓸모가 없는 스킬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가지고 있으니 요긴하게 쓰이는 순간이 있었다. 정운은 그대로 그림자에 스르륵 녹아들어서 도조 마사토의 배후로 잠입했다. 그리고 도조 마사토가 방심한 순간 기습적으로 일격을 가했던 것이다. 콰앙!! 콰쾅!!! “크윽····. 쿨럭····.” 정운의 거친 공격이 거듭됨에 따라서 도조 마사토의 체력 게이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원래 정운에게 처음 당했던 일격이 이미 그라운드 제로가 아니고 현실이라면 두 발로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상이었다. 그런 치명상을 당한 도조 마사토에게 더 이상 승기는 없었다. 연속되는 정운의 공격을 받으면서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비틀 거리면서 자세가 무너진 순간···. 정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뇌광섬(雷光剡)!!!!” 콰콰콰!!!! 정운이 있는 힘껏 뇌전의 섬광이 담긴 공격을 날렸다. “크윽·····.” 뇌광섬(雷光剡) LV.5 (뇌전의 힘을 날카롭게 가다듬어서 한 점에 집중된 참격. 위력이 500% 올라간다.) 정운이 날린 공격의 빗살에 도조 마사토는 간신히 받아낸 냈지만····. 콰지직!! “크윽····.” 도조 마사토가 들고 싸우던 일본도가 그대로 바스라져 버렸다. 내구도가 다 된 상태에서 받은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렇게 되면 돈 무진장 들여서 수리하거나 아니며 버려야 한다. 하긴 이제 그럴 기회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제 싸울 무기도 없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도 있나?” “이 비겁···.” “아, 생각해 보니 유언 따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릴 거야. 그냥 죽어라.”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마무리 공격을 날렸다. 순간 도조 마사토는 그럼 묻지나 말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박에 내기 전에 정운의 일격이 자신의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크으으····.” 몸이 스르르 허물어지면서 도조 마사토는 생각했다. ‘이···. 이 더러운 조센징 따위에게 죽을 수는 없다···. 이이····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을 ··· 기필··· 코 죽이겠다.” 도조 마사토가 저주의 말을 남기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운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다 죽어가면서 무슨 헛소리야?” 정운은 도조 마사토의 원념 섞인 저주를 들으면서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어차피 원망과 저주로 죽었을 몸이라면 죽어도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정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 죽은 도조 마사토의 유해 위로 푸른색 불꽃 같은 구슬이 잠시 떠 올랐다가 그대로 스르륵 하고 사라졌다. 정운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놈이 마지막으로 한 발악이 뭔지 알게 되는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다. 전투 직후··. 띠리링!! “호오··? 레벨이 올랐는데? 어디? ····이 만큼이나?” 인터페이스를 확인한 정운은 크게 놀랐다. 도조 마사토를 PK로 죽이고 레벨업을 한 것은 반가웠지만 이 정도로 큰 보상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전의 패치로 인해서 PK시의 보상은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한 순간에 정운의 레벨이 172에서 178로 올랐다. 대규모 패치가 된 이후로는 처음으로 해본 PK였기에 정운은 설마 이 정도의 보상이 있을지는 몰랐다. 172에서 178로 올라갈 정도의 경험치가 들어온 것은 정운으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아이템들도 확인해 보고 싶지만···. 뭐 그건 다 끝나고 나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한국 대 일본. 그 일차전인 박정운 대 도조 마사토의 일전은 정운의 압승이었다. 레벨은 동급이었다. 하지만 거쳐 온 수라장의 차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솔로 플레이어로 시작해서 수많은 사선을 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에 오른 정운과···. 시작부터 혈맹을 만들고 부하들의 발판으로 써서 자신은 온전하면서 올라온 도조 마사토. 그 경험치가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정운이 승리한 그 시간. 장소를 옮겨서 다른 장소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진행중이었다. “으라라라라라!!!!” ‘시끄러·····.’ 세레나와 사쿠라바 고로의 일전. 이 전투는 한국 대 일본의 전쟁···, 뭐 세레나가 프랑스 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한국 팀이니 거기에 태클 걸지는 말자. 어쨌든 그 전쟁에서 가장 불리한 전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쿠라바 고로가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세레나는 방어에 치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세레나가 굉장히 잘 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둘의 레벨 차이를 생각하면 세레나가 10분도 버티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더구나 순수한 전사 클래스의 사쿠라바 고로에 비해서 세레나는 순수한 전사 타입의 클래스가 아니었다. 성기사라는 클래스의 진가는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생긴다. 다양한 버프로 동료들을 보조하면서 전체의 힘을 한 단계 끌어 올린다. 8, 8, 8, 8, 8의 힘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을 버프로 끌어 올려서 10, 10, 10, 10, 10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자신 혼자를 강화해서는 2의 효과 밖에 없지만 동료가 다섯만 있어도 전체적으로 10의 상승효과를 가져 온다. 그게 성기사 클래스의 진정한 진가였다. 애당초 일대일에 특화된 클래스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세레나는 사쿠라바 고로에게 치명타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순전히 경험의 차이였다. 같은 레벨인 정운과 도조 마사토의 사이에서도 승부를 가른 분수령은 경험치였지만···. 세레나의 경험치는 정운이라고 해도 비교할 바가 아니다. 생전에도 아직 소녀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전쟁터를 달리던 그녀였다. 사쿠라바 고로의 창술은 그녀가 본 적 없는 변칙적인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방패는 철벽처럼 그 창끝이 자기 몸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냈다. 이렇게 방어를 계속하면서도 그녀는 반격의 틈새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카칵!! “어림없다!!!” “····쯧.” 이렇게 세레나가 날리는 회심의 일격들이 번번이 저 거북이 등껍질 방패에 막힌다는 것이다.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연속으로 공격을 해도 적은 자연스럽게 막아냈다.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의 공격도···. 자세가 무너진 상황에 날림 카운터도···. 기습적으로 날아드는 변칙적인 공격도····. 저 방패는 놓치지 않고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이쯤 되니 세레나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후진 창술에 비해서 방패술이 너무 달인인데?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 세레나가 보기에 저 방패 자체가 뭔가 특이한 아이템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세레나의 예측은 정답이었다. “후후후···. 네 년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내 심안의 방패를 뚫을 수는 없다.” “심안의 방패?” “그렇다. 적의 모든 공격을 막아주는 나의 보물이다.” 놈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런 사쿠라바 고로를 보고 세레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결국 자기 능력이 아니라 아이템 덕분이라는 거잖아?’ 세레나도 오랜 세월동안 그라운드 제로에 있으면서 인식에 변화는 있었다. 아이템이라는 것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하게 된 세레나였다. 하지만 역시 저런 광경에는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아이템의 능력을 과신해서 자만에 빠진 모습. 세레나가 가장 경멸하는 형태중에 하나였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83화 무기의 성능에 취해서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고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단련을 게을리 한다. 세레나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은 우수한 무기가 아니었다. 기사를 나태함에 젖어들게 하는 독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레나가 어떻게 생각 하던 간에 사쿠라바 고로가 가지고 있는 방패가 대단한 물건이기는 했다. 심안의 방패. 방어력 : 무한 무게 : 0 내구력 : 무한 [무한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 또한 적의 공격을 자동으로 서치해서 주인을 위험에서 구한다.] 단순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유니크 아이템 답게 그 단순한 면에서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방어력 무한. 즉, 이론적으로는 이 방패로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가? 거기다 자동방어라니? 이래서는 세레나가 아무리 공격해도 맞을 것 같지가 않았다. “후후후···. 어떠냐? 이제 살려 달라고 애원이라도 해 볼 테냐? 알몸으로 교태라도 부리면 이 어르신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지.” ‘태어난 연도로 보면 내가 너 보다 훨씬 연상이다.’ 세레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다시 굳건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런 세레나를 보고 사쿠라바 고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쿠라바 고로가 자기 아이템의 성능을 자신있게 밝힌 이유는 그냥 허세가 아니었다. 경험상 이제까지 자신이 이렇게 심안의 방패의 성능을 밝히면 적들은 대부분 전의를 잃고 도망가거나 애원했기 때문이다. 사쿠라바 고로는 세레나의 미모를 보고 죽이기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세레나를 보면 볼수록 소유욕이 들어서 전의를 잃게 만들고 항복을 받아 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세레나가 조금도 전의를 잃지 않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읏!” 카앙!!! 놈이 말을 하는 사이에도 세레나의 날카로운 공격이 날아 들어서 놈을 공격했다. 물론 사쿠라바 고로가 아무리 방심을 한다고 해도 심안의 방패는 알아서 세레나의 공격을 막아 줬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세레나는 다시 거리를 벌리고 적의 빈틈을 찾았다. 그렇게 포기를 모르는 세레나를 보고 사쿠라바 고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좋다···. 아무래도 호된 맞을 봐야지. 주제파악이 되는 모양이군.”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창을 높이 들어 올리고 말했다. “아스트랄 랜스!!!” “····뭐라고?” 세레나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쿠라바 고로의 몸 주변에 열 개의 거대한 창이 생겼다. 길이가 5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열 개의 창은 허공에 둥둥 떠올라서 세레나를 향하고 있었다. “후후···.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 이게 바로 무적의 조합이라는 거다.” “············.” 사쿠라바 고로는 세레나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노은 착각하고 있었다. 딱히 세레나는 위기감을 느끼고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게 아니었다. ‘검과 창의 차이는 있지만 이건····. 기분 나쁜걸?’ 세레나가 기분 나쁜 이유는 이게 정운이 사용하는 아스트랄 소드와 같은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인 정운과 같은 기술을 눈앞에 있는 재수 없는 인간이 쓴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자···. 이제 끝장을 내 주마. 가랏!!!” 세레나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누가 쓰던 간에 유니크 스킬은 유니크 스킬이었다. 사방에서 강력한 거창들이 찔러 들어오자 세레나는 상당한 위협을 느꼈다. 카카캉!!! 하지만 그때 갑자기 끼어들어서 사쿠라바 고로의 공격을 막은 검은 그림자들이 있었다. “···당신들은?” -주군께서 위기 상황이 아닌 이상 지켜 보라고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서야 할 것 같군요. -여기서 부터는 함께 하겠습니다. 세레나를 중심으로 호위라도 하듯이 홀연하게 나타난 것은 정운의 그림자 무사인 쉐도우 아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금 나타난 것은 조운, 장비, 전위 이렇게 세 명이었다. 정운이 도조 마사토와 싸우면서 가장 주력 스킬이면서 부담도 적은 쉐도우 아미를 쓰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셋은 세레나에게 붙이고 나머지 여섯은 슬기와 다른 팀원들에게 붙여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정운으로서는 쉐도우 워리어 뿐만 아니라 정신력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 아스트랄 소드도 자제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핸디캡을 가지고도 동레벨인 도조 마사토를 쓰러트린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정운도 이제 명실상부 괴물 클래스인 것은 틀림없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세레나를 호위하듯이 나타난 그림자 장수들을 보고 사쿠라바 고로는 크게 당황했다. ‘원군····. 아니 스킬인가? 하지만 본인의 스킬 같지는 않은데?’ 놈이 그렇게 생각 하는 사이에 어느새 세 명의 그림자 무사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포위했다. “············.” -삼대 일 같은게 취미는 아니지만···. -장 장군. 주군의 명령이 최우선입니다. -알고 있네. 각오해라. 애송아. 사쿠라바 고로도 레벨이 151이고 나름 귀중한 유니크 아이템과 유니크 스킬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잔뼈가 굵은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었기에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이 단순한 소환물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강하다··. 그것도 상당히···.’ 사쿠라바 고로는 순간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 세레나가 끼어들었다. “당신들은 빠져요. 이건 제 전투입니다.” 세레나는 그림자의 무사들을 말렸다. 몹을 대상으로 한 전투라면 모를까? 인간을 대상으로 일 대 다수의 전투는 해도 다수 대 일의 전투는 내키지 않는 세레나였다. 그런 세레나의 말에 세 명의 그림자의 무사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들 그림자 장수들은 정운의 일부나 다름 없는 이들이다. 당연하지만 정운과 세레나의 관계가 범상치 않음도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물론 그걸 겉으로 퍼트리지 않는 정도의 센스는 있었지만 말이다. 한 가지 예로 주모라는 말은 오로지 슬기에게만 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세레나를 대하는 태도도 상당히 정중한 것을 봐서는 결국 이들도 정운과 세레나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레나가 자신들에게 물러나라고 하자 그들은 살짝 갈등했다. -‘일단 물러나죠.’ 결국 그림자의 무장들 중에서 조운이 말했다. -‘괜찮겠나?’ -‘괜찮을겁니다. 어차피 위험해 지면 끼어들라고 한 거니···. 지금은 물러나고 상황을 지켜보죠.’ -‘그게 좋겠지···.’ 이들은 자신들끼리 몰래 상의를 한 후에 세레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일단 뒤로 물러났다. 세레나는 그들이 물러나고 나자 사쿠라바 고로를 보면서 말했다. “자···. 다시 시작하자.” “···저들이 다시 끼어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나?” “없다.” “··············.” 너무나도 당당하게 없다고 말하자 사쿠라바 고로는 순간 할 말이 궁색해 졌다. 보통 이럴 때는 내가 보장한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말 하는게 수순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세레나는 그냥 순순히 그런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당연했다. 기본적으로 쉐도우 아미가 세레나의 스킬도 아니고···. 세레나는 자신이 지키지도 못할 말은 거짓말로라도 말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사쿠라바 고로의 입장에서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제길···. 좋다!! 네놈들 모두가 덤빈다고 해도 모두 죽여주마!!!”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그런 놈의 결의가 무색할 정도로 세레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 전투 스타일의 약점은 다 찾았다.” “···뭐라고?”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사쿠라가 고로에게 세레나가 선언하듯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일방적으로 공격할 뿐이다” 그리고 세레나의 몸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비행 스킬? 흥!! 아스트랄 랜스!!!” 세레나가 등에서 날개를 펼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놈의 창들도 미사일처럼 날아올랐다. “비행 스킬 따위··. 내 아스트랄 랜스의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다.” 사쿠라바 고로는 새를 사냥하는 것처럼 하늘 높이 오른 세레나를 찔러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세레나는 유려한 비행으로 아스트랄 랜스를 유유하게 피했다. 세레나의 비행은 날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보통 새들의 비행과는 격이 달랐다. 마치 매의 날카로움과 돌고래의 유려함이 적절하게 조화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움직임이었다. 열 개의 창이 사방에서 세레나를 노렸지만 단 한발도 세레나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창을 피하면서 세레나는 중얼 거렸다. “그럼 그렇지····. 컨트롤이 엉망이야.” 사쿠라바 고로가 사용하는 아스트랄 랜스는 정운이 사용하는 아스트랄 소드와 비슷한 스킬이었지만 완전히 같은 스킬은 아니었다. 형태만 해도 한쪽은 검이고 한쪽은 창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겉보기를 제외하고도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정운의 스킬인 아스트랄 소드에 비해서 사쿠라바 고로가 사용하는 아스트랄 랜스는 컨트롤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차로 치면 오토와 스틱 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세레나는 사쿠라바 고로가 아스트랄 랜스를 소환한 이 후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그 점을 알아챘다. 정운과 비슷한 스킬이었지만 상대는 이 스킬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스킬 자체가 비슷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는 컨트롤은 굉장히 세세하지만 그 대신에 정신력의 소모도 상당했다. 사용 시간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지만 보통 10분에서 30분 정도가 한계였다. 그리고 이걸 다 사용하고 나면 2시간 동안은 어떤 스킬도 사용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정운이 아스트랄 소드를 사용 할 때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단기간에 자신의 모든 화력을 집중 시켜서 적을 죽일때만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사쿠라바 고로에게는 조급함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컨트롤이 후진 대신에 그만큼 정신력의 소모는 크지 않은 것일 것이다. 일장일단의 스킬인 것이다. ‘이게 공격의 단점····. 마음 먹고 피하려고 하면 못 피할 것은 없지.’ 아무리 강력한 스킬이라고 해도 안 맞으면 그만이다. 이건 절대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세레나가 발견한 약점은 수비에 관한 것이다. 사쿠라바 고로의 입장에서는 이게 훨씬 더 치명적일 것이다. “간다···.” 중얼 거린 세레나는 그대로 수직으로 낙하 하면서 외쳤다. “홀리 버스터!!” 세레나의 손에서 성스러운 광선이 발사 되었다. “흥!! 그런게 맞을 것 같으냐?” 사쿠라바 고로는 심안의 방패를 자동으로 들어서 막았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함으로써 놈은 자신의 시야를 가렸고 세레나가 어디에 있는지 놓치고 말았다. 피퓽!! 쾅!! “크윽···.” 갑자기 전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공격이 날아와서 사쿠라바 고로의 등짝을 때렸다. “일단 한 방···.”‘ 세레나가 살짝 중얼 거렸다. 둘의 전투에서 세레나가 적에게 공격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레나는 심안의 방패의 약점을 확실하게 활용한 것이다. 지금 심안의 방패는 세레나의 강한 공격인 홀리 버스터를 막고 있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그 잘난 자동방어 기능도 쓸모없었고 방심한 순간 사쿠라바 고로에게 공격이 적중한 것이다. “제길···.” 사쿠라바 고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표정으로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봤다. 그러자 거기에는 둥둥 떠 있는 빛의 광구들이 있었다. “이건···?” 사쿠라바 고로는 자신의 등짝을 날린 공격의 정체를 알았다. 세레나의 원거리 스킬인 홀리 이레이져였다. ============================ 작품 후기 ============================ 세레나 VS 사쿠라바 고로의 전투는 사실상 일본이 유일하게 승리를 바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전투이기도 하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84화 <선택의 기로.> “건방진···. 이런 수작이 몇 번이고 통할 것 같으냐? 이 정도의 공격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솔직히 아프기는 아프면서 허세만 부리는 사쿠라바 고로였다. 세레나는 그런 사쿠라바 고로에게 말했다. “이미 말 했을 텐데? 네 약점은 다 드러났다고?” “··············.” “방금 전은 내 가설을 시험해 봤을 뿐이다. 이제부터가 진짜지.”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홀리 이레이져를 모두 소환했다. 현재 세레나의 홀리 이레이져 레벨은 MAX. 허공에 열 개의 광구를 허공에 띄워서 타깃을 집중 공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여기서 사쿠라바 고로에게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이 공격이 세레나가 컨트롤 하는게 아니라 소환한 광구가 자동으로 한다는 것이다. “받아랏!!!” “크윽····.” 피융!! 피융!! 피융!!!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심안의 방패의 자동 방어기능은 신들린 것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게 세레나가 발견한 문제였다. “으으으····.” 사쿠라바 고로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방패로 막으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전방위에서 다발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몸이 빙글빙글 돌면서 멋대로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래서는 시야도 제대로 확보하기 힘들었다. ‘저럴 줄 알았지.’ 세레나는 상대가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런 그림을 예상하고 있던 것은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그림자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의 공격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방패? 내가 살아 있을 때 그런게 있었으면 진작 갔다 버렸다. -그렇게 말입니다. -어리석음의 극치지. 이들 세 명은 무예에 대한 경험치가 세레나보다도 훨씬 더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었기에 심안의 방패가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모두 막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설사 무한한 방어력을 갔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막지 말고 피할 줄도 알아야 하고, 또 심지어 어떨 때는 차라리 몸으로 때우면서 과감하게 들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 전투라는 것은 때때로 살을 주고 뼈를 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었다. 자동으로 발동하는 절대방어? 그런건 고수들간의 싸움에서는 방해만 될 뿐이다. 그 증거로 몸으로도 충분히 때울 수 있는 세레나의 공격을 사쿠라바 고로는 ‘강제’로 막고 있지 않은가? 홀리 이레이저가 대미지가 큰 기술도 아니고 둘의 레벨 차이를 생각하면 몸으로 때우고 세레나를 공격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안의 방패의 자동 방어 때문에 계속해서 공격을 막아야 했다. 그 덕분에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가뜩이나 컨트롤에 애 먹고 이던 아스트랄 랜스들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세레나는 그런 사쿠라바 고로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는····. “끝이다···. 홀리 커튼 콜!!” 그러자 하늘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그녀의 검 끝에 눈부신 백광이 맺혔다. 멀리서 보면 꼭 한 줄기의 유성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홀리 커튼 콜 : LV.1(신성력을 모두 공격력으로 변화 시켜서 검에 집중 시킨다. 신성력을 소유하지 않은 적들에게 치명적이다. 스킬을 사용하는 시점에서 모든 버프 스킬이 중단 된다.) 홀리 커튼 콜. 정말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세레나의 유니크 스킬이었다. 보통의 유저들은 유니크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는 스킬북을 얻거나 퀘스트를 클리어해서 얻어야 했다. 하지만 세레나는 달랐다. 그녀는 레벨이 오르면 자신의 스킬을 자신이 창조 할 수 있었다. 다른 유저들이 보면 사기라고 말하겠지만 원래 그녀의 정체를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는 김신수 이상 가는 버그가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강력한 한 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신의 철퇴가 있기는 했지만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다. 1주일에 1회만 사용가능한 스킬이라서 아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공격 범위는 적어도 되니 좀 더 적은 리스크로 쓸 수 있는 스킬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최근에 레벨이 오르면서 만든 유니크 스킬이 바로 홀리 커튼 콜이었다. 커튼 콜이라는 이름 그대로 전투를 한 방에 끝장내기 위해서 공격력 하나에 특성을 올인화 시킨 것이다. 이 스킬을 사용할 때 버프를 겸용으로 사용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래 신성력이라는 것은 공격력에 특화된 성질의 힘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레나는 이 스킬을 통해서 신성력의 성질 자체를 공격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 공격의 대미지는····. 콰아아아아앙!!!! -대단하군····. -그렇게 말이야. -스킬이라····. 저거 우리도 좀 연구를 해 봐야 겠습니다. -으으음···. 주군의 스킬을 쓸 수는 있지만···. -그게 참 어색하단 말이야. 그림자의 장수들이 이렇게 감탄을 할 정도로 세레나의 공격이 가져온 결과는 대단했다. 마치 실제로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진 것처럼 세레나의 공격지점을 중심으로 지름 20미터가 넘을 것 같은 크리에이트가 생겼다. “끝났군.” 세레나는 태연하게 검을 갈무리하면서 일어났다. 상대에게 공격이 적중하는 모습을 최후까지 확인한 세레나였다. 시체 하나 남기지 않고 죽은 상대에게 별 감흥은 없었다. 애당초 아이템의 성능에 취해서 스스로의 단련을 게으르게 한 인간을 상대로 이긴 것 뿐이다. 스스로가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별루 적에게 보일 애도도 없었다. 띠리링!! 그것과 별개로 세레나의 경험치는 레벨업이라는 희소식을 가지고 왔지만 말이다. ‘124레벨···. 마스터가 좋아하시겠군.’ 스스로의 승리 보다는 이것으로 정운이 기뻐할 일이 더 기대되는 세레나였다. 생전에는 여자로서의 삶은 꿈도 꿔 본적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남자에게 헌신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바지런한 여성이었다. 정운이 승리하고 세레나가 승리했다. 사실상 이 두 전투가 유일하게 일본이 기적을 승리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전투였다. 동료들을 배려해서 쉐도우 아미를 배치하느라 전력을 다 하지 않았던 정운. 유일하게 자기보다 상위 레벨을 상대로 일대일을 했던 세레나. 이 두가지 전투가 일본이 유일하게 이길 수 있었던 가능성이 있던 전투였다. 나머지 일본인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한국 팀의 이민지와 한중겸 이 둘이었다. 박추성 배대호에 가려서 존재감이 조금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둘도 일본 팀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괴물이었다. 정운도 처음에 한중겸이 싸우는 것을 봤을때는 커다란 수준 차이를 실감해야 했다. 물론 그때의 정운은 지금의 정운하고 비교하면 그냥 애송이일 뿐이지만···. 그래도 한중겸이 강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민지는 그런 한중겸 보다도 한 차원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둘만 해도 절망 적인데 여기에 덤으로 고레벨 메이지인 슬기까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일본 팀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뻔뻔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조금····. 아니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비켜!!! 빨리 안 비키면 네놈들 까지 한꺼번에 박살내 버리겠다.” “호오···. 감히 그따위로 지껄인다 말이지?” “이 놈·······. 감히!!!” “추성이 형님. 일단 진정하세요.” “추성이 오라버니. 잠시만 진정···. 부탁이니까 제발요.” 상처입은 일본팀의 유저들을 감싸고 있는 한 무리의 인간들. 그리고 그 무리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박추성. 또 그 박추성은 말리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는 한중겸과 이민지. 자··. 그럼 이 상황이 어째서 펼쳐 졌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시간을 조금만 뒤로 감아 보자. 정운과 세레나가 각각 일본의 NO.1과 NO.2를 데리고 간 직후···. 한중겸과 이민지, 그리고 슬기는 남은 일본팀 전원과 단체전투를 벌였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 이민지의 정령과 한중겸의 소환수. 그리고 슬기의 마법에 일본팀은 거의 천재지변을 겪는 듯한 느낌이었다. “으아아아아!!!” “사람 살려!!!” “아아아아악!!!!” 이건 이미 전투가 아니라 단순한 학살이었다. 고양이가 쥐··. 아니 사자가 쥐를 사냥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특히 이민지를 두고 한중겸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큰 실수였다. 그 말을 했던 놈들은 한중겸이 일차적으로 가장 먼저 잡아 죽였다. 그레이트 타이탄이 양 손에 쥐고 그대로 쥐어짜 버린 것이다. 뿌찌직!! 평소에 호탕하고 밝은 성격으로 인품이 좋다고 알려진 한중겸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좋은 호인으로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동료로 인정한 사람들에 한해서이다. 적이라고 인식한 존재들에게 자비 따위를 베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민지를 가지고 모독한 놈들에게는 더 잔인하고 처참한 죽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금방 종결 될 줄 알았던 일방적인 전투가 멈춘 것은 중간에 개입한 누군가들 때문이었다. “멈춰라!!! 거기서 더 공격하는 것은 우리가 좌시하지 않겠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무리의 인간은 인원만 해도 10명이었다. 한중겸은 그 중에서 가장 선두에 있는 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일본팀하고 전쟁중이다. 그건 월드 서버의 모든 팀에게 선포 했을 텐데? 그런데 지금 끼어든다는 건가? 중국은?” 한중겸은 자신의 앞에 있는 자들이 중국 서버의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일전에 있었던 원탁회의에서 낮을 익혔던 이들이 몇 명 보이고 알아본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전쟁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한중겸의 말에 중국에서도 한 명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언행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군. 설명은 해 주겠지?” 한중겸은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날이 선 얼굴을 하고 상대를 바라봤다. “··········.” “··········.” 두 남자는 잠시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다가 중국 쪽의 남자가 먼저 한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난 중국의 연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한중겸이다. 자기 소개는 길게 할 것 없으니 이제 슬슬 본론으로 얘기해 주실까?” 한중겸의 말에 연문은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일본팀에서 몇 명의 유저들이 우리 중국 쪽으로 망명을 요청했다.” “망명? ·····그게 되긴 되나?” 한중겸의 말에 연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가능하다. 그리고···. 저들은 평소에 도조 마사토의 악행을 견디지 못해서 우리 중국으로 망명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 한중겸은 현 상황을 차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일본팀이 중국 팀하고 짜고 음모라도 꾸미고 있나? 아니야··.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한중겸은 슬쩍 일본팀의 유저들의 얼굴을 살폈다. 현재 일본 팀의 생존자는 여섯 명. 원래 열 여섯 명이 있었는데 3분도 안 되는 전투에 열 명이 죽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살아남은 유저들 중에서 현 상황을 이해하고 안도하는 자는 네 명 뿐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듯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과연···. 내부 분열로 인한 배신. 아니 이탈이라고 봐야 할까?’ 한중겸의 예상은 정확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일본 유저들은 크게 봤을 때 두 파벌로 나뉠 수 있었다. 도조 마사토와 그 측근. 그리고 그 밑에서 소모품 취급당하고 있는 100레벨 이하의 유저들···. 그 중에서 소모품으로 취급당하고 있던 유저들이 한국팀과의 전쟁을 눈앞에 두고 상황의 심각함을 파악하고 자기들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게 바로 중국이었다. ============================ 작품 후기 ============================ 한중겸 깜냥으로 판단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상황이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85화 <정운의 결정> 망명이라고 하면 굉장히 인도적으로 들리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망명이라는 선택지는 그렇게 편하지가 않다. 다른 팀에 있다가 자국의 팀에 오는 유저를 이제까지 자신의 원래 팀에 있던 유저들과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평등하게 대할 이유가 없다. 애당초 자기 팀을 배신하고 온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어떻게 믿는다는 건가? 받아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게 만들고 혈맹의 조약으로 묶어서 개처럼 부러 먹는다. 그나마 예외가 있다면···. 망명하는 유저가 굉장히 강하고 유능하거나··? 혹은 뭔가 커다란 선물을 들고 오거나 할 때 정도이다. 그게 아니라면 망명자가 좋은 선택지를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본팀의 경우 망명을 선택한 것은 이제 죽느냐? 사느냐? 의 상황에서 가능한 도박을 했던 것일 것이다. “·············.” 한중겸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저 일본팀의 생존자들을 살려두면 한국 팀의 손해였다. 저들은 한중겸 자신과 이민지의 능력과 수준을 몸소 체험했다. 아마도 저들이 살아서 중국에 가면 그 정보는 중국에 고스란히 들어갈 것이다. 이제까지 정운이 한국 팀의 정보를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그 노력의 일부가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과 한 바탕 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일본의 경우 일본 팀의 리더인 도조 마사토의 수준을 보고 팀 자체의 수준이 한국 보다 훨씬 아래라는 것을 파악했기에 자신 있게 전쟁을 걸었던 것이다. 중국도 과연 그럴까? 잠재적으로 월드 서버의 팀 서열 3위에 있는 중국이다. 일단 일본 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은 틀림 없었다. 한국 팀이 앞으로 월드 서버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부딪힐 수도 있지만···. 여기서 분쟁의 씨앗을 만드는 것은····. ‘역시 현명하지 못한 처사지····.’ 한중겸은 한 숨을 내쉬면서 중얼 거렸다. 일본팀을 놓치고 자신들의 정보가 일부 풀리는 것은 유감이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감수 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추성이 형님이나 대호 형님 정보가 풀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낫겠지.’ 한중겸은 그렇게 생각하고 중국의 연문이라는 남자에게 말했다. “저것들의 망명을 받아준다고 한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당신들이 저쪽의 바통을 이어 받는 것은 아니겠지?” 한중겸의 말에 연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물론이지. 이 전쟁은 한국의 승리로 끝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 중국팀이 된 망명자들을 받아가면 그만이야.” 그렇게 연문이 말하는 순간 일본 팀의 생존자들 중에 네 명이 쪼르르 달려왔다. “스즈키!!!? 네놈이 감히 배신을 해!!?” “시끄러. 이 전쟁에 미친 놈들아!!! 이런 괴물 같은 놈들하고 전쟁? 그딴건 너희들이나 해!!?” 하위팀의 이탈을 주도한 스즈키 슈고는 이제까지 자신들을 소모품 쓰듯이 한 일본팀의 유저들에게 빽 소리쳤다. 사실 한국과의 전쟁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의 결정에 갈등이 많았던 스즈키 슈고였다. 나름 선물을 준비해서 어느 정도는 중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만에 하나 일본이 한국을 이기면 그 후에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도조 마사토의 배신자에 대한 재제에 대한 집념은 광적일 정도였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고 나서는 지금의 결정에 한 점의 후회도 없었다. 오히려 후회가 있다면 진작에 빨리 발을 뺄걸? 이라는 선택지였다. 한국 팀은 괴물이었다. 한중겸과 이민지가 한국 팀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는 모르는 스즈키 슈고였지만···. 이 둘에게 맞설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원래는 어느 정도 싸우면서 시늉만 하다가 빠질 계획이었는데···. 한국팀이 너무 강하다 보니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도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해 버렸다. ‘어쨌든···. 살았다. 살아남은 것이다.’ 죽은 부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스즈키 슈고도 그렇게 의리가 깊은 성격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부하들의 죽음으로 인한 애통함 보다는 자신의 생존에 더 기쁜 감정을 느끼고 있는게 그 증거였다. 졸지에 중국에서 받아 주지도 않고 괴물 같은 한국 팀을 상대로 남은 일본 유저 두 명만 불쌍하게 되었다. 놈들은 울상을 지으면서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서 머리를 굴렸다. “잠···. 잠깐, 스즈키!!!” “왜 그러지?” 스즈키 슈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고개도 함부로 들지 못할 정도로 비굴하게 굴던 상대를 보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그런 스즈키 슈고를 보고 상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부탁···입니다. 저희도 받아 주십시오.”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놈들은 넙죽 엎드리면서 스즈키 슈고에게게 애원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와중에 일단 살기 위해서 자존심을 버리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소인배들에게는 말이다. “흥, 살려 달라고? 내가 왜?” “아니···. 제발 어떻게든···?” “그래도 동족이 아닙니까? 스즈키씨···.” 그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비굴하게 스즈키 슈고에게 매달렸지만 그런 놈들을 보는 스즈키 슈고의 눈은 냉철했다. 지금 그는 눈앞의 놈들을 보면서 통쾌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수많은 레이드에서 자살 돌격대 같이 부려먹고는 자기 목숨은 아깝다고····? 개새끼들···.’ 일본팀이 레이드를 할 때 스즈키 슈고는 간부들의 명령만 떨어지면 무조건 무모한 공격을 하며 앞으로 나가서 보스몹들의 어그로를 끌어야 했다. 죽어도 상관없다. 일단 보스몹의 빈틈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죽든 살든 아무 상관도 없었다. 스즈키 슈고의 경우 운이 좋아서 용케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소모품 취급 받으면서 쌓였던 울분은 장난이 아니었다. 스즈키 슈고는 놈들을 발로 뻥 차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잠깐? 너희 두 놈. 레벨이 어떻게 되지?” 중간에 끼어든 연문의 말에 두 놈은 잽싸게 대답했다. “저는 132입니다.” “전 더 높습니다. 135입니다.” 둘은 자신들을 노려보는 스즈키 슈고 보다는 흥미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연문이 더 자신들을 구해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흐음···. 스즈키. 너 레벨이 100이라고 했지?” “·······예.” “전력은 되겠군.” 연문의 말을 듣고 스즈키 슈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이게 아닌데···.’ 이대로 저 둘이 중국 팀에 망명을 한다면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자신이 또 저 놈들 보다 밑으로 취급 받을 수도 있다. 어차피 중국의 입장에서는 같은 일본인일 뿐이니 레벨이 더 높은 쪽에게 더 높은 지위를 내리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 더러운 지나(일본인들이 중국을 멸시하면 부르는 말.)놈들···. 그러니 네놈들은 못 믿을 놈들 취급 당하는 거야.’ 스즈키 슈고는 이를 갈며 있는 욕 없는 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속으로만 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하늘이 이런 스즈키 슈고의 욕념(?)을 들었던 걸까? 다행이도 그 두 명이 중국 팀에 합류할 일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스팟!!! ·····푸화악!!! 누군가가 등장하면서 갑작스럽게 두 명의 목이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남자는 스즈키 슈고에게도 이롭지만은 않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쪽바리 새끼들은 어디에도 못 간다.” “추성이 형님·····.” 한중겸은 인상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여기서 박추성이 나타난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미묘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박추성은 자신의 아이템인 무한의 영사를 넓게 펼쳐서 일본팀을 탐색했다. 절대 끊어지지 않고 무한하게 늘어나면서 주인의 의지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 이 무한의 영사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탐색에도 무척이나 용이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에 한국 팀과 일본 팀의 전투 현장을 찾았다. “한 곳에 다 모인건가? 난 바로 간다. 너희들은 천천히 따라와라.” 박추성은 그렇게 간단한 한 마디를 남기고는 질풍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가는 길에 그는 전투의 현장을 무한의 영사를 통해서 도청하면서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가기 전에 내 몫이 남아야 하는데 라는 초조함뿐이었다. 사실 한중겸이나 이민지가 다 죽여 버린다고 해도 그냥 한 두 마디 투덜거릴 뿐이지 거기에 대고 미친 광견처럼 날 뛸 생각은 없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꽉 막힌 인간은 아니지····.’ 요즘 들어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 할 때마다 동생들이 폭탄 다루듯이 조심조심 하는 것을 보고 살짝 이지만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긴 박추성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한 것은 한중겸과 연문의 대화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절대 안 돼!!!!” 피이이이이잉!!!!!! 중국의 개입으로 인해서 일본 유저를 몇 명인가 놓치게 생긴 상황이 생기자 그는 제대로 열이 받았다. 한 걸음에 날아간 그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도착해서 일단 두 명의 일본인들 목부터 날리고 시작한 것이다. 그 후에는 중국보고 쪽바리들을 내 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시작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다시 현재·····. “어서 내 놔!!!! 어디서 중간에 끼어들어서 가로채기야!!!?” “이제는 우리 팀이다. 그런데 내 놓으라고?” “웃기지 마!! 너희 팀이었으면 진작에 이 전쟁에서 발을 뺐어야지? 그런데 이제 와서 끼어들어서 뭐가 어쩌고 저째?” “형님···? 제발 일단 진정하세요.” “추성이 오라버니. 일단··. 일단 중겸이한테 맡겨 봐요.” “저도 부탁 드립니다. 박추성님.” 박추성은 잔뜩 흥분했다.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이 한 번 미치면 말릴 방도가 없다고 하던가? 한중겸과 이민지에 슬기까지 나서서 말렸지만 그래도 박추성은 요지부동이었다. 박추성의 안에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은 확고하기 짝이 없었다. 어지간하면 동생들 부탁은 다 들어주는 편인 그였지만 이번 건에 관해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비켜라. 안 비키면 내가 너희들에게 까지 손을 댈지도 모른다.” 박추성의 말에 한중겸은 난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박추성을 말릴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팀의 회의도 없이, 심지어 리더도 아닌 박추성 개인의 폭주로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득책이 아니었다. ‘제길··. 이걸 어떻게 하지?’ 한중겸이 한참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그의 입장에서는 반갑기 짝이 없는 구원자가 도착했다. “추성이 형님. 일단 참으시죠?” 박추성을 말리는 제 삼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어느새 세레나와 함께 현장으로 복귀한 정운이 있었다. “····정운아!!! 너 이 새끼 왜 이제 왔어!!?” 한참 진땀 빼고 있던 한중겸은 단번에 화색이 되었다. ‘상황이···. 좀 꼬이는 걸?’ 정운은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대강의 상황을 알았다. 동료들에게 심어놓은 그림자의 무사를 통해서 보고를 받은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동맹? 그리고 박추성의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발광? 광란? 폭주? 미친개 되기 3초전? 어쨌든 박추성도 평상시의 박추성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운은 리더로서 팀을 향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도착한 정운을 보고 하중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박추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제길···. 정운이가 오기 전에 처리해 버리려고 했는데···.’ 박추성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정운이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결국 저 네 명의 일본인들도 살려 보낼 수밖에 없어진다. “제길·····.” 결국 박추성은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안타까움의 한숨만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모두모두 맛있는것 많이 드시고 해피 설 되세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86화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것일까? 중국의 연문이라는 남자는 정운이 오자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상황은 대강 파악하고 있는 것 같군요. 우리 중국하고 충돌을 각오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각오라면 이미 했다.” “·····뭐···라고?” 연문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정운이 한 말을 듣고 연문은 순간 말하다 혀라도 깨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이전에 원탁 회의에서 봤을 때는 온건한 성격으로 보였던 정운이 지금은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놈 설마····?’ 연문이 망설이는 사이에 정운이 다시 한 번 거칠게 말했다. “남의 전쟁에 갑자기 끼어들어서 우리 적을 옹호하면서 우리보고 얌전히 물러나라?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하던 정운의 말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는····. “죽어!! 이 개새끼들아!!!!!” 콰아아아앙!!!! 놀랍게도 선빵을 날린 것은 정운이었다. 흑토를 타고 기마 차지로 가장 선두에 있던 연문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렸다. “크으윽···. 네 이놈!!!” 연문은 정운의 공격을 용케 막아냈다. 어느새 자신의 무기인 커다란 대도를 꺼내서 정운의 창끝을 정확하게 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서 정운을 크게 밀어냈다. 촤아아아악!!! ‘흠···. 제법 힘이 있군.’ 정운은 자신의 갑작스런 공격을 막아내고 그 후에 떨쳐 버리기까지 하는 연문을 보고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받았으니 돌려 줘야지. 먹어랏!!!!” 콰콰콰콰!!!! 연문이 힘차게 검을 내려치자 사나운 검기의 폭풍이 정운을 향해서 휘몰아쳤다. 정운은 그런 공격을 보고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운이 굳이 나설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군에게는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어느새 정운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전위가 쌍철극을 들고 천신처럼 우뚝 서서 연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각각 흩어져 있던 쉐도우 아미들이 전원 튀어 나왔다. 정운은 그들 전원에게 명령했다. “눈앞에 보이는 놈들은 모두 적이다. 박살을 내 버려라!!!”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그리고 정운의 명령을 시작으로 중국과 한국의 전투가 시작 되려고 했지만···. “쯧···. 일시 후퇴한다!!!” “연문 조장님!!?” “빨리!!! 명령대로 움직여라!!!” 중국의 인간들은 재빨리 물러날 준비를 했다. 뭔가 머리 두 개 달린 용과 말을 합한 것 같은 소환수를 소환하더니 그대로 거기에 타고 날아오른 것이다. “딴건 몰라도 저 새끼들은 안 되지. 추성이 형님!!” 정운은 후퇴하는 놈들을 보면서 박추성에게 외쳤다. “응? 아아····. 응? 왜?” 갑자기 과격하게 나선 정운 때문에 박추성은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정운이 부르자 그제야 약간 정신이 들었다. “뭐 합니까? 도망가는 놈들 중에 일본놈들 네 놈 목은 따야죠!!! 그냥 보낼겁니까!!?” 정운이 오히려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자 박추성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럴 수는 없지!!!” 박추성이 양손을 놈들이 있는 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중국인들의 뒤에 타고 후퇴하던 일본인 네 명이 목줄이라도 걸린 것 처럼 뒤로 휙 처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네 명의 일본인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으아아아!!!!” “사··· 사람 살려!!!” 떨어지면서 소리치는 일본인들을 보고 중국인들이 연문에게 말했다. “조장님.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잡혔습니다.” “·····무시한다. 일단 후퇴에 주력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중국인들에게도 버림받은 일본인들 네 명을 떨어지면서 중국인들을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이 새끼들!! 이 더러운····. 커억!!” “으아악!!!” 하지만 그들은 그 저주의 말조차 끝까지 해 내지 못했다. 지면에 떨어지기도 전에 박추성이 날린 무한의 영사가 놈들의 몸을 수십 조각으로 썰어 버렸기 때문이다. “네놈들은 그냥 그 입을 닥쳐라. 영원히····.” 박추성은 피 묻은 무한의 영사를 회수하면서 그렇게 중얼 거렸다. 이 순간을 기해서···. 일본의 월드 서버 진출자 19명이 전원 사망했다. 한국과 일본의 전쟁은 한국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것도 일본팀의 전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말이다. 다만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도 입맛이 개운하지 않은 자들이 몇 명 있었다. 스카이 타운으로 돌아온 후에 한중겸은 정운에게 찾아왔다. “야. 정운아. 얘기 좀 하자.” “그렇게 하죠. 뭐.” 정운은 한중겸과 함께 거실의 쇼파에 마주 앉았다. “형님이 우리 집에 술 안가지고 찾아오는 것은 오랜····. 아니 그냥 처음이네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순간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아까는 네 체면 때문에 말 못했지만···. 괜찮은 거냐? 정운아?” “뭐가요?” 천연덕 스럽게 대꾸하는 정운을 보면서 한중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몰라서 묻냐?” “아아아····. 알았어요. 화 내지 말고 들어요. 다 설명 해 줄게요.” 정운은 결국 한중겸에게는 모든 속내를 털어 놓기로 정했다. “원래··. 중국과 이 단계에서 적대를 할 생각은 저도 없었어요.” “그랬겠지. 그래서 나도 너 없을 때 그냥 중국인들에게 일본인들을 넘겨주고 끝내려고 했던거야.”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죠···. 상황이 참 미묘하더란 말이죠.” “상황이 미묘해? 어떻게?”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술 대신에 슬기가 가져온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사실상 중국이 뛰어든 타이밍이 그렇잖아요? 우리를 완전히 호구로 보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타이밍에 끼어들어서 우리한테 시비를 걸었잖아요?‘ “그건··· 그랬지? 설마 정말로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싸웠던 것은 아니겠지?” 한중겸이 생각하는 박정운이라는 인간은 상당히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의 인간이다. 어지간해서는 분노에 이성을 잃는 일은 없었다. ‘뭐, 평소에 한 번 그러니 만큼 일단 빡치면 나도 감당이 안 되지만 말이야···.’ 하지만 같이 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름 많이 친해진 한중겸이 보이게 아까 중국과 싸울때의 정운은 진짜로 화가 난 것 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정운이 진짜로 화를 내면 그렇게 크게 소리치면서 불같이 화를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차갑고 냉정해지면서 서늘한 분노를 보여준다. 독이 잔뜩 오른 뱀처럼 말이다. 즉, 중국의 팀에게 보여준 모습은 일종의 연기였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왜 그런 연기를 하면서 중국과 적대를 했느냐? 였다. 한중겸의 날카로운 시선에 무언의 재촉을 받으면서 정운은 말을 이어갔다. “만약···. 우리가 거기서 물러난다고 해도 중국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시비를 걸려고 했을 겁니다.” “그건······. 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시간은 좀 벌수 있지 않았을까?” “글쎄요···. 제가 독심술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쪽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약세를 보이면 놈들이 자비를 베풀까요? 아니면 만만하게 보고 바로 집어 삼키려고 할 까요?” “아······.” 한중겸은 살짝 탄성을 질렀다. 너무 오랫동안 최상위층에서 유저간의 갈등을 겪어 본적이 없는 한중겸이었다. 그래서 잠시 망각하고 있었지만 원래는 그도 알고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적에게서 바랄 것은 동정이나 자비가 아니었다. 그래서는 만만한 먹잇감 취급 밖에는 받지 못한다. 진정으로 분쟁을 피하고 싶다면 적에게 심어줘야 할 것은 만만치 않다는 경계심과 두려움이어야 했다. 진정으로 분쟁을 피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 난 만만치 않다. 오면 끝장을 보겠다. 나하고 싸우려면 너도 각오를 하고 와라. 이런 느낌의 강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철저한 적자생존.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지만 원래 이 그라운드 제로는 그런 세계였다. “·····내가 실수했던 거군.” 한중겸은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던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역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정운은 그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뭐,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형님의 선택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미리 말했지만 제가 놈들 생각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 말은 한중겸을 위로하는 정운이었지만 한중겸은 정운의 말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한중겸에게 정운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제가 중국과의 적대를 선택한 것에는 두가지 정도는 이유가 더 있습니다.” “두 가지나?” “예. 우선은 영국의 존재죠.” “아아··· 그렇군. 거기가 원래 중국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지?” “예. 일본과의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영국의 다이앤 여왕은 월드 서버 전체에 한영동맹에 관해서 알릴 겁니다. 영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중국과 척을 진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우리도 만만치 않은 힘이 있다는 것을 각인해 줘야죠. 그래서 연문이라는 놈에게 선빵을 갈겼죠.” “헤에···. 그러고 보니 그 놈 네 공격을 막아냈지? 좀 봐 준거냐?”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뒷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글쎄요. 사실 그거 한 방으로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정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설마하나 깔끔하게 막아낼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요. 그 놈 하나만 척도로 봐도 중국팀은 일본 팀보다는 훨씬 더 강할 겁니다.” “···········.”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문이라는 남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강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뭐, 그래도 추성이 형님이나 대호 형님만 하지는 않겠죠. 사실 중국하고 적대한 이유중에 마지막 이유는 추성이 형님 때문이기도 하고····.” “아아아···. 역시 그거냐?” “그거죠. 뭐····.” 정운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한중겸이었다. 이번 일본 섬멸전에서 가장 의욕을 불태우던 박추성이었다. 하지만 그때 정운이 중국에게 순순히 일본인들을 넘겨 줬다면···. 아마 지금 당장은 무슨 일이 없겠지만 박추성은 더 이상 정운을 리더로서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 할 수도 있었다. 인간이 무리를 이뤘을 때 내부 분열 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외부의 강력한 적은 싸울 수라도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면 싸우기도 마딱치 않다. 결국은 제 살 깎아 먹기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가 일본인들 놔 줬으면···. 추성이 형님 장난 아니게 삐졌을 걸요?” “그건 그렇지···. 그 형님 워낙에 일본인이라면 이를 가니까·····.” “결국 선택지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왕 해야 한 다면 화끈하게 해야지. 라고 생각했죠.” “쯧, 듣고보니 네가 왜 그랬는지야 대강 알겠다. 어찌 됐든··. 이제 네가 할 일은 했으니 이제 중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보자.” “그래야죠. 머리 나쁜 놈들이면 앞 뒤 가리지 않고 바로 달려들텐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머리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죠?” 정운과 한중겸은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 시각 중국에서는····. “당장 전쟁이다!!!!” 중국의 장한은 머리 나쁘게도 바로 전쟁을 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도조 마사토만큼은 아니지만 이 장한이라는 남자도 별로 현명한 편은 아닌것이다. 그리고 머리나쁜 리더가 있으면 부하들이 고생한다고 하던가? 장한을 말리기 위해서 그 부하들이 생고생을 하고 있었다. “진정하십시오. 주군.” “이게 진정할 일이냐!!?” 조장인 연문의 만류에도 장한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 작품 후기 ============================ 이달 분량도 이제 거의 다 채워가는군요. 일단 1월달에 저 스스로 정한 분량은 다 채울 수 있을것 같아서 안심입니다. 저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켜서 일일 2회 연재를 꾸준히 했고, 덕분에 많은 분들이 부족하지만 제 글을 응원해 주셔서 최근에는 제법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두 응원해 주신 덕분이며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87화 <월드서버의 첫 레이드> 장한은 분이 안 풀린다는 듯이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중얼 거렸다. “이 건방진 놈들이!!! 감히 동쪽 끄트머리에 코딱지만한 땅에 아등바등 살고 있는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뭐가 어쨌다고!!!!?” 연문에게 한국과 있었던 일을 보고 받은 장한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미친 듯이 화를 내고 있었다. 부하들은 그런 장한을 일단 말리고 있었다. 중국은 장한을 주군이라고 칭하면서 톱으로 올려두고 그 밑에 세 명의 조장을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조장은 연문, 주원, 홍린 이라고 하는 세 명의 인간이었다. 연문은 정운이 처음에 만나서 한 합의 공방을 나눴던 남자였고 레벨은 166이었다. 한 자루의 대도를 잘 썼고 작정하고 싸우면 그 실력은 상당한 강자였다. 그리고 주원은 무투가 캐릭터로 이보영이나 이지영처럼 맨손으로 싸웠다. 레벨은 175로 세 명의 조장 중에서 가장 강했다. 실질적으로 중국 팀에서는 장한의 뒤를 이어서 NO.2나 다름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있는 홍린이라는 조장은 여자다. 동양인 치고는 상당히 큰 키에 늘씬한 체형을 하고 있는 그녀는 차이나 드레스를 평소에 즐겨 입고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일견 보기에는 그저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자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한 번 채찍을 들고 전투를 시작하면 어지간한 사내들 보다 훨씬 더 사납게 날뛰었다. 일단 전투가 시작하면 중국팀의 유저들 중에서도 가장 난폭하고 잔혹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의 레벨은 165였다. 사실 조장이라고 불리는 이들 셋의 레벨만 봐도 알겠지만 중국팀의 강함은 일본팀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팀이 일본팀보다 훨씬 더 팀으로서 우월한 것은 도조 마사토가 독주하던 다른 일본팀과 달리 중국의 경우 세 명의 조장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 명의 레벨이나 존재감을 생각하면 설사 중국의 톱인 장한이라고 해도 이들 세명을 마냥 무시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장한이 고의로 바란 결과는 아지만 권력의 분산화는 결국 중국 단체에게 더 이롭게 작용했다. 단 한명의 폭주 보다는 그래도 여러명의 의견을 나름 취합 하는게 좀 더 신중한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주군. 진정하십시오. 한국 팀은 일본팀을 단시간에 부셔 버렸습니다. 그건 놈들이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맞습니다. 한국팀의 리더··. 박정운과 제가 한 합을 겨뤄 봤지만 놈의 실력은 제 아래가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상당히 까다로운 소환술 까지 사용하더군요.” 연문은 정운이 쉐도우 아미들을 소환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스킬을 보자마자 바로 후퇴를 결정해서 전력을 온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건 그가 몹시 신중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건 현명한 결정이었다. 정운도 정운이지만 그때 한중겸까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놈이 튀지 않았다면····. 아마 중국은 전멸했을 것이다. “흐음····. 쯧, 그럼 어쩌자는 건가? 그냥 내버려 두라는 거냐?” 세 명의 조장들 중에서 두 명이 만류를 하자 일단 장한도 뒤로 슬쩍 물러났다. 그런 장한에게 연문이 말했다. “우리가 공격을 당한 이상···. 그냥 내버려 두면 나쁜 선례가 생기겠죠.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럼···. 다른 세력을 부추기자는 거냐?” “그렇습니다. 한국은 아직 이렇다 할 동맹세력이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타국에 사신을 보내서 고립시킨 다음 여러 팀들과 힘을 합쳐서 한국 팀을 공격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군.” 장한도 바보는 아니었다. 서둘러서 무모한 전투를 하는 것 보다는 좀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손실 없이 전투를 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상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중국의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군!! 급한 전갈입니다.” “전갈···? 뭐냐? 급한 일이냐?” “영국이 월드 서버 전체에 선포를 했습니다. 여기 이것을 보십시오.” 들어온 중국의 유저는 장한에게 한 장의 서신을 보여줬다. 영국의 다이앤 여왕이 세계 각국에 전달한 서신으로 그 서신의 내용을 본 장한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 년이 감히·····.” “주군 무슨 서신이기에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직접 봐라.” [월드 서버의 모든 팀들에게 알립니다. 오늘 이 순간을 기해서 한국 팀과 영국 팀은 상호간의 동맹을 선언합니다. 만약 영국, 혹은 한국 한 쪽에 적대 행위를 표출할 시에 영국과 한국은 서로 협조해서 적대 행위를 표출하는 팀에게 대응 할 것입니다. 이 점을 향후 명심하고 부디 평화로운 미래를 향핸 결정들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영국의 다이앤 알렉산더 메리 여왕] 서신의 내용을 돌아가면서 들은 “·····이건, 우리에게 시비거는 거군요.” “그 미친년····.” “진작 밟았어야 했는데···. 섬멸이 아니라 흡수 합병을 위해서 시간을 들인게 실수였나?” “이제와서 그걸 푸념해 봐야 소용없지.” 중국의 회의장은 다시 한 번 논쟁에 빠졌다. 사실 중국은 영국이 약해진 후에 그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을 많이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영국이 이제 막 월드 서버에 올라온 한국과 동맹을 체결해 버릴 줄은 몰랐다. 한국과 껄끄러운 분위기가 막 생성된 중국으로서는 영 불쾌한 소식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생각들인가? 대답을 해 보게.” 장한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중국의 회의장은 다시 한 번 논쟁의 소용돌이에 잠겼다. 중국뿐만이 아니라 한영 동맹은 월드 서버의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을 섬멸하고 그 자리에 들어온 한국과 그 한국과 동맹을 체결한 영국. 이게 앞으로 월드 서버의 세력 판도에 어떤 지각 변동을 일으킬 지는 아직 예측불허였다. 정보도 너무 적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타국의 반응과는 별개로 한국과 영국은 서로간의 영역을 공유하며 70층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중요한 일을 위해서 양국의 주력들을 모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이앤 여왕님.” “예. 늦었지만 일본팀에게 승리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 영역이 생기고 정식으로 월드 서버에서 활동 하실 수 있겠군요.” “그건 그렇지만···. 아직 반쪽밖에 접수하지 못했죠. 우리는 아직 71층에 올라갈 자격이 없으니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오늘 저희들이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살포시 웃으면서 말하는 다이앤 여왕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양 팀의 세력을 생각할 때 갑을을 가린다면 한국 팀이 갑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이앤 여왕이 정운을 바라 볼 때 짓는 미소는 마치 남동생을 생각하는 상냥한 누나의 미소 같이 포근했다. ‘계속 같이 있다가는 슬기나 세레나가 싫어할 것 같은걸?’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빨리 일 관계로 넘어가겠다고 했다. 오늘 양국의 주력이 모인 이유는 70층의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팀 전원이 모였고 영국팀도 다이앤 여왕을 위시해서 주력 다섯 명이 모였다. 70층에 올라오고 아직 본격적으로 사냥도 탐색도 하지 못한 한국 팀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하루 빨리 71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일본 팀의 영역이 71층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일본 팀은 70층의 20%, 그리고 71층의 10%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고 있었다. 일본팀과 전쟁을 하고 승리한 한국 팀은 그런 일본팀의 영역을 접수했다. 하지만 정작 접수한 후에도 71층의 영역에는 아직 손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아직 한국 팀이 71층에 올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맹인 영국의 유저와 파티를 맺은 다음 포탈을 타고 이동하는 식으로 갈 수는 있었지만···. 번번이 그런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70층 레이드를 성공 시켜서 자력으로 71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권리를 손에 넣어야 했다.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 팀이 이동하는 길에 영국팀은 한국팀에게 70층의 보스몹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다 들은 한국 팀은 크게 놀랐다. “잠시만요···. 방금 뭐라고 했죠? 70층 보스몹이 뭐라고요?” “놀라셨겠지만 사실입니다. 70층의 보스몹은 알 카포네, 소위 스카페이스라고 불리는 그 남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알 카포네 맞습니까? 미국의 갱스터 두목인?” “예. 맞습니다.”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이제까지 보스몹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많은 몹들을 상대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갱스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팀원들을 보고 다이앤 여왕은 설명을 덧 붙였다. “파우스트가 영혼으로 몹이나 NPC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시죠?” “예. 알고는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다이앤 여왕은 말을 이었다. “그런 영혼들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유명해서 영혼의 격이 높은 자들··. 혹은 지나친 악행으로 인해서 영혼에 사기가 짙은 자들···. 그런 자들의 경우 평범한 몹이 아니라 보스몹으로 만들어서 각 층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잠깐, 그렇다면 혹시 놈들은 자신들의 의지가 있습니까? 생각하고 말하고 그렇게 한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정운은 순간 골치가 아팠다. 보스몹들이라는 것들은 원래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력한 놈들이다. 하지만 그런 보스몹들 대부분에는 공통적인 약점이 있었다. 인간처럼 고도의 사고가 불가능해서 전체적으로 멍청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약점이 사라진다면? ‘꼭 게임 회사에서 이벤트로 만든 보스몹을 직원이 직접 조종한다는 말과 같은 거잖아?’ 정운은 파우스트의 면전에 쌍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임 클리어를 막기 위해서 이따위 수작을 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69층의 캡틴 존 존스라는 놈부터 이상하기는 했어.’ 문득 정운은 캡틴 존 존스를 생각해 냈다. 69층에서 놈은 수많은 부하들을 부리면서 자신의 실체를 숨기는 꼼수를 부렸다. 약점이 있었기에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위험했을 놈이었다. 앞으로 월드 서버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싸우는 놈들 뿐이라는 말이었다. ‘레이드가 한층 더 힘들어 지겠군. 생각해 보면···. 내가 부리고 있는 그림자의 장수들도 원래는 그런 용도 였을 지도····.’ 정운의 예상은 정확했다. 원래 파우스트가 거물들의 영혼을 수집한 것은 보스몹으로 만들어서 자신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포가 보스몹으로 보정 받아서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생전에도 강력했지만 보스몹 보정을 받아서 더욱 강력해진 여포가 말이다. 그런게 앞을 가로 막으면 골치 아파도 보통 아픈게 아니다. “그래도····. 알 카포네 정도면 어려운 상대는 아닙니다. 저희들이 앞장 설 테니 뒤에서 잘 따라 오시기 바랍니다.” “부탁 드리죠···.” 영국의 다이앤 여왕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앞으로의 레이드에 관해서 걱정이 태산인 정운이었다. 다이앤 여왕의 안내에 따라서 한국 팀이 도착한 곳은 어떤 거리였다. “여기는····? 서양식 마을?” “금주법 시대의 시카고를 재현한 것으로 보이는 도시입니다.” “여기가 알 카포네의 영역입니까?” “예. 그럼 이 안에 도착하기 전에 일단 레이드 방식에 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다이앤 여왕은 한 장의 지도를 펼쳤다. 그 지도에는 저 알카포네가 지배하고 있는 도시의 대략적인 지형이 그러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게임 클리어 장면입니다. 너무 세력 전쟁만 나오면 흥미가 떨어지는 법이니 종종 이렇게 강중약 조절을 해야 작품이 안 물리는 법이죠. 월드 서버의 보스몹에 관해서는 예상하신 분들도 있지만 모두 의지를 가지고 있는 몹들입니다. 실제 게임으로 치면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보스몹이 아니고 사람이 실제 조종하는 몹인 셈이죠. 실제 역사에 등장했던 악인들이 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혹시 등장을 희망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쪽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88화 다이앤 여왕은 진지한 얼굴로 한국 유저들을 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이 레이드의 시작은 알 카포네를 찾는것부터 시작됩니다.” “있는 위치가 불확정 한가요?” 정운의 말에 다이앤 영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그것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갱들이 저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갱? 실제로 갱입니까?” “글쎄요···. 말도 하고 있으니···. 그래도 죽여서 시간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 일단 갱이라는 형식의 몹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그렇군요·····.” 일종의 부하몹이 있다는 얘기였다. “어쨌든 도시에 있는 갱들을 잡으면서 알 카포네를 찾는게 일차적인 순서입니다.” “찾는건 금방 찾을 수 있겠군요. 탐색 스킬을 쓰면····.” “아니요.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알 카포네는 수많은 갱들 중에 하나로 숨어 위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놈을 찾기 위해서는 탐색 스킬이 아니라 수많은 갱들을 모두 잡으면서 찾아 보는 수박에 없습니다.” “흠···. 공격을 받아야 정체를 드러낸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광역 공격기로····.” “그것도 소용 없습니다.” 다이앤 여왕은 정운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광역 공격기로는 저 건물 안에 있는 갱들에게 대미지를 줄 수 없습니다. 저 건물은 파괴 불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시작은?” “무조건 저 건물 하나하나를 뒤지면서 그 중 어딘가에 있을 알 카포네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노가다 영 별로인데···. 어쩔 수 없나?’ 가능하면 꼼수로 해치우는게 편하고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꼼수가 통하지 않는 상대가 상대라면 정공법으로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 팀은··· 한 팀에 적어도 안내역으로 영국의 유저가 한 명씩은 들어가야 할 테니 여섯 팀이 한계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팀을 나누죠.” 정운은 한국 팀의 13인을 적당히 나눴다. 그런데 팀을 나누다 보니 정운 자신은 슬기와 세레나와 끼에 다이앤 여왕을 안내역으로 하게 되었다. “····양손에 꽃, 그리고 덤이라는 건가?” 한중겸이 히죽 거리면서 놀리자 정운은 쓰게 웃었다. “자꾸 그러면 저도 입이 가벼워지는 수가 있습니다. 형님.” “······자, 레이드 하자. 레이드. 우리 모두 진지하게. 자자. 출발!!” 약점 하나 잡은 이후로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놀림 당하지만은 않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한중겸이 놀리지 않아도 상황이 조금 그렇기는 했다. 슬기와 세레나는 원래 정운의 팀으로 고정(?)이니 그렇다 쳐도···. 영국의 다이앤 여왕이 이렇게 자신의 안내로 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녀는 이전의 드레스가 아니라 지금은 입기 편한 가죽 갑옷에 허리에는 얇은 레이피어 한 자루를 달고 있는 편한 차림이었다. 몸에 착 달라 붙는 패션 덕분에 그녀의 굴곡이 가감 없이 보이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눈 둘 곳에 좀 애매했다. 예전에는 그녀의 속옷 차림도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단 둘 뿐이었지 않은가? 지금은 옆에 슬기와 세레나 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어쩐지 약간, 아니 상당히 곤란한 정운이었다. “자, 그럼 가도록 하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이앤 여왕은 정운의 손을 잡고 씩식하게 필드로 이끌었다. “···예. 갑니다. 가니까 일단 여기 손 좀···.” “·············.” “·············.” 뒤에서 은근히 노려보고 있는 슬기와 세레나의 시선이 따가운 정운이었다. 알 카포네의 영역은 을씨년스러운 거리에 3층, 혹은 5층 짜리의 낡은 건물이 즐비한 건물이었다. 알 카포네를 찾기 위해서는 그 건물 하나하나를 다 뒤져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운의 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수많은 갱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치 미국 금주법 시대의 갱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의 장면이 대부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다. “적이다!!!” “아버지를 지켜라!!!” “쏴라!!!” 자기들 끼리 분위기 있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갱들은 어디서 꺼냈는지 순간적으로 품에서 기관단총을 꺼내서 갈기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 날아오는 총알들을 보고 정운은 거의 반사적으로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읏!!! 쉐도우 월!!!” 티티티티팅!! 다행이도 적들의 공격은 그렇게 강력한 것은 아닌지 정운의 방어막을 뚫지는 못했다. 정운은 일단 방어막 속에서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갱이라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총을 쏠 줄이야····.’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 온 지도 제법 되었지만 총을 사용하는 몹은 처음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몇 발은 맞았는데 대항이도 그렇게 공격력이 강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공격력과 별개로 저 인원의 저 연사력은 상당히 위험했다. “총이라···. 인정사정 없군.” 정운의 중얼 거림에 옆에 있던 다이앤 여왕이 대답했다. “원래 저런 놈들입니다. 심지어 저 총은 총알의 제한도 없죠.” ‘······총알 떨어지기 기다리는 것은 소용없다는 거지?’ 그 말은 이대로 방어막 속에서 적의 총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정운은 살짝 한 손을 내밀어서 ME로 갱들을 찍어 봤다. 갱 LV. 110~130 [알 카포네의 부하몹. 한 마리 한마리가 호전적이고 알 카포네를 지키기 위해서 무작정 공격을 한다. 공격력 방어력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대신에 총기를 사용하면서 공격의 연사력이 좋다. 집중사격을 당하면 상당한 대미지를 입을 수 있다.] ME의 정보를 확인한 정운은 살짝 미소 지었다. 총기 라는게 좀 꺼림칙하기는 해도 그걸 제외하면 그렇게 어려운 몹 같지는 않았다. “공방력이 약하다···. 라는게 치명적이지. 그래도 숫자가 많은 것은 좀 거슬리는 군.” 아무리 총기라는 무기가 사기템이라고 해도 공격력과 방어력이 약하면 큰 의미는 없다. 정운의 말대로 숫자가 많기 때문에 좀 걸리적 거리기는 해도 크게 위협적인 대상은 아니었다. “정운씨. 제가 방어를 맡을게요.” 슬기도 갱이라는 몹을 어떻게 사냥해야 하는지 대강은 알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하루 이틀 같이 한 것도 아니고 이제 이 정도는 척 하면 척인 것이다. “알았어. 그럼 공격은 내가 맡지.” “예. 트리플 실드!!!” 슬기가 일행을 방어막에 보호하자 정운도 공격 수단을 선택했다. “쉐도우 붐!!!” 퍼퍼퍼펑!!!! “크아아악!!!” “아버지!!!” “아아악!!!!” 정운의 스킬 한 방에 적들은 모두 쓰러져 버렸다. 상대의 그림자의 밑에서 강한 폭발력을 일으키는 쉐도우 붐. 원래 한 방에 죽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저 갱이라는 몹들은 인간형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체력 게이지도 낮은데 거기다 방어력도 허접했다. 이런 타입이라면 정운의 스킬에 직빵이었다. 밖으로 나온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편은 아니야. 하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하면서 한층 한층 확인해 가자.”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거기서 부터는 일사천리였다. 2층부터 방 하나하나를 뒤지면서 그 안에 있는 갱들을 잡아갔다. 건물 하나를 다 뒤져서 안에 있는 갱들을 전멸 시키는데 30본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 정운들을 보고 가장 감탄하고 있는 것은 다이앤 여왕이었다.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란 말인가? 아니면 동맹 관계에 있는 내 기를 죽이기 위해서 일부러 이 팀에만 정예를 추린 건가?’ 다이앤 여왕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 지금 영국의 전력으로 이 영역에서 보스몹인 알 카포네를 찾기 위해서는 며칠 정도 꾸준하게 노가다를 해야 하는게 보통이었다. 건물 하나 소탕하는데 못 해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는 걸리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갱들은 총기와 나이프, 그리고 주먹질과 간간히 폭탄을 쓰는 놈들까지 있었다. 그런 놈들이 건물에서 철저하게 농성하듯이 싸우고 있기 때문에 건물을 하나하나 뒤져야 했고···. 이 영역에는 그런 건물이 100개는 넘었다. 정말 재수가 끝장나게 없으려면 그 100개가 넘는 건물을 다 뒤져야 하는데 그게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 팀은 한 건물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뚝딱뚝딱 해치우고 있었다. 그것도 전혀 위험 없이 말이다. “이제 다음 건물로 가지. 다이앤 여왕님? 아직 더 볼일이 남아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살짝 놓았던 정신줄을 다시 잡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다음 건물로 가죠. 이 페이스대로 가면 오늘 내일 안에 알 카포네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무조건 오늘 안에 찾아야죠.” 정운이 결의에 차서 말하자 다이앤 여왕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한 순간···. 정운의 ME에서 통신이 왔다 [정운아!!! 알 카포네 찾았다. 당장 튀어 와!!] “알았어요. 바로 갑니다. 모두 가자!!!!” “············.” 정운과 한국팀들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 나갔고 그 뒤에 남은 다이앤 여왕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아직 필드에 들어온지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찾았다니····. ‘운이 좋은 거겠지? 그럴거야····.’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너무 약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다이앤 여왕이었다. 정운보다 먼저 알 카포네를 찾은 것은 다름 아닌 배대호였다. 그는 애당초 건물 하나하나를 뒤질 생각도 없었다. “탐색 스킬로 찾을 수 없다····. ‘스킬’은 그렇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눈을 감고 차분히 명상에 잠겼다. “····저기 저 사람은 뭘 하시는 겁니까?” 길안내로 온 영국의 유저가 배대호의 기행을 이해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이지영이 대답했다. “그냥 지켜보면 안다.” “··········.”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남자. 얼굴은 예쁘지만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여자. ‘왜 내가 안내를 맡은 조만 이따위지···.’ 영국의 유저는 그냥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배대호는 착실하게 알 카포네를 찾고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최상층에서 하층부에 있는 정운의 퀘스트의 흔적도 캐치해 냈던 배대호였다. 그의 탐색 스킬은 사실 스킬 자체가 아니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스킬을 재해석해서 자신의 마법을 만들어내는 배대호의 경지는 월드 서버에서도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그는 지금 하나하나의 몹들이 품고 있는 힘을 살펴보면서 그 중에서 보스몹을 찾고 있었다. ‘외형이나 생김새는 설정으로 숨길 수 있다. 하지만 보스몹인 이상 안에 들어있는 힘까지 숨길 수는 없어.’ 배대호는 그렇게 마음먹고 진득하게 앉아서 주변을 탐색했다. 그의 감각이 수면을 퍼지는 파문처럼 넓게 넓게 퍼져갔다. 그리고 순간····. “찾았다.” 배대호는 망설임 없이 한 건물로 들어갔고 들어가는 순간 바로···. “플레임 토네이도!!!” 콰콰쾅!!! 거하게 한 방 날렸고 그 순간 알카포네는 대미지를 입고 보스몹으로 각성한 것이다. “누구냐!!? 또 나에게 덤비는 자는!!?” 얼굴에 흉터가 있고 강단 있게 생긴 중년의 남성. 머리에는 중절모를 쓰고 있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완전히 금주법 시대의 갱의 표상 같은 의상이군.’ ============================ 작품 후기 ============================ 종종 작품에 대한 질문을 댓글에 남겨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질문에 관해서는 제 뜰에 Q&A계시판을 만들어 두고 있습니다. 가끔씩 답변이 늦을때가 있기는 하지만 질문이 있으면 답은 다 하고 있습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댓글보다는 그쪽에 글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89화 <알 카포네 공략> 오래된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저 중년의 갱이 바로 70층의 보스몹인 알 카포네였다. 연락을 받고 바로 도착한 정운은 보스몹인 알 카포네를 보더니 손을 들어서 일단 공격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알 카포네를 향해서 말을 걸었다. “알 카포네.” “·····못 보던 애송이군? 어디서 온 놈들이냐?” 알 카포네는 정운을 흘깃 보더니 시가를 씹으면서 위압적으로 말했다. 누가 생전에 갱단 두목 아니랄까봐 위압감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여 있었다. 물론 거기에 쫄 정운은 아니지만 말이다. 정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알 카포네에게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가 있다고 들었다? 내 말을 알아 듣고 있나?” 정운의 말에 알 카포네는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했다. “건방진 놈이군···.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그 옆에 있는 암캐는···. 영국산 왕실 암캐였던가? 기억에 있군.” 다이앤 여왕은 알 카포네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나한테 목 날아가던 것은 전혀 기억 못하는 모양이지?” “크크큭···. 목 한 두 번 날아 가는게 대술까? 난 이미 너희들이 말하는 죽음을 뛰어 넘은 존재다.” 알 카포레는 자신의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유저들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정운은 저렇게 유창하게 말하는 알 카포네를 보고 있으니 과연 저게 몹이 맞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슬쩍 ME를 들어서 찍어 보니····. 알 카포네 LV.150~160 [자신이 지배하는 도시에 숨어 있으면서 부하들을 부린다. 본인도 무척 강력하고 두 자루의 쌍권총과 나이프 주먹 등등.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 ‘얄짤 없이 찍히는군.’ 적어도 몹이 맞기는 맞는 것 같았다. 어쨌든 모처럼 말을 할 수 있는 몹을 만났다. 예전에 캡틴 존 존스 때는 아무런 성과도 얻어내지 못했지만 이런 기회가 온 이상은 최소한의 정보를 얻어내고 싶은 정운이었다. “잠깐 뭐 좀 물어보지.” 정운의 말에 알 카포네는 가소롭다는 듯이 정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얘기? 나하고? 너희들 목적은 내 목을 따고 위로 올라가는 것 밖에 없을 텐데?” “그건 그렇지···. 하지만 너는 어떻지?” “나? ·····무슨 말이냐? 애송이.” 알 카포네의 의문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지금 이렇게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체로보스몹 캐릭터나 연기하는 것에 만족하느냐는 말이다.” 정운의 말에 알 카포네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대강 무슨 말 하고 싶은지는 알겠군.” 그렇게 말의 운을 땐 알 카포네는 정운 쪽으로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면서 그의 입은 계속해서 정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지극히 담담한 목소리로 극상의 악의를 담아서 말이다. “네가 할 말 대강 맞춰 볼까? 파우스트에게 영혼이 구속당한 내가 불쌍하다. 그러니 협조해라. 그럼 너의 영혼은 구원 될 거다. 라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거겠지. 음음···. 너희들이 흔히 하는 말이지.” “···········.” 알 카포네의 말에 정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 없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이게 아닌데···. 생각보다 훨씬 더 까칠한 걸?’ 당연했다. 미국 최대 최악의 갱단의 두목의 성격이 사근사근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원래는 알 카포네의 설득 까지는 무리라도 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정보를 끌어낼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 알 카포네의 모습은 뭔가 좀 달랐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끼어들지도 못할 정도로 짜릿한 살기를 사방으로 날리고 있었다. 알 카포네는 그 살기를 가득 담아서 말했다. “네가 하는 그런 말은 말이지···. 저 영국의 암캐를 포함해서 너희들 전원이 하는 말이다. 혼의 구원? 지랄하고 있네. 개소리도 작작해야지 말이야.” “············.” 알 카포네의 말에 정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근처에서 듣고 있던 세레나가 울컥 했다. ‘저 놈이······.’ 알 카포네가 하는 말은 크리스찬을 넘어서 종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나 거의 다름 없었다. 이윽고 정운의 지척까지 다가온 알 카포네는 정운과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말을 계속 했다. “난 말이지···. 너 같은 새끼들이····.” ‘위험하다!!!’ 순간 정운은 전신에 솜털이 바짝 일어서는 것 같은 오싹함을 느꼈다. “가장 싫다!!!!!” 콰아아앙!!!! 알 카포네가 갑자기 후려친 주먹은 그대로 정운에게 정면으로 격돌했다. “크윽····.” 정운은 현재 쉐도우 아머를 두르고 있는 상태였고 적의 공격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제대로 가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대미지라는 건가?’ 정운은 자신의 체력 게이지의 10분의 1이 닳은 것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제대로 막았는데 이 정도라면 한 방 맞으면 최소 반피 이상은 날아간다는 말이었다. 평범하게 말을 하고 있어서 잠시 잊어 버렸지만 상대는 보스몹이다. 그것도 70층의 보스몹. 생전에는 그냥 잔악무도한 갱단의 두목일 뿐이었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알 카포네는 초인···. 아니 초인을 넘어선 괴물이었다. 알 카포네는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날 동정하지 마라!!! 나는 알 카포네. 시카고의 왕이다. 이 버러지 새끼야!!!” 알 카포네는 다시 한 번 거칠게 외치면서 정운을 향해서 달려왔다. 초인적인 능력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알 카포네에게 정운은····. ‘물러서면 안 돼!!!’ 정운은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받아쳤다. “쉐도우 랜스!!!” 달려오는 상대의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창날이 솟구치면서 적의 대시를 막았다. “칫···. 다 죽여주마!!!” 알 카포네는 자신의 판 안에서 리볼버 권총을 꺼내서는 사방으로 갈기기 시작했다. 탕탕탕탕탕!!! 이제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었다. 정운이 뭘 하는지 처음에는 지켜만 보던 다이앤 여왕이었지만 일단 전투가 시작한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피해요!!! 맞으면 안 됩니다!!!” 알 카포네가 총알이 주는 대미지에 관해서는 다이앤 여왕도 잘 알고 있었다. 저건 그냥 총알이 아니다. 일반 몹인 갱들이 쏘는 충알 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으로 영국에서 저것을 노 대미지로 막을 수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피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런 다이앤 여왕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척력실드.” 미리 대비하고 있던 배대호가 자신의 몸에 우유빛깔의 하얀 방어막을 씌웠다. 그러자 거기에 맞은 총알이 역으로 알 카포네를 향해서 튕겨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퍼어엉!! “크윽····.” 자신이 쏜 총알에 한 방을 맞은 알 카포네는 허벅지 부분이 크게 터져 나갔다. “저놈이···? 건방진 것.” 알 카포네는 실드를 치고 있는 배대호 쪽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이 월드 서버에서 70층의 보스몹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유저들과 싸워봤던 알 카포네였다. 물론 그 중에는 자신을 이겨낸 유저들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인 총격을 막아낸 놈은 배대호가 세 번째였다. ‘이놈들···. 막 올라온 수준이 아니구나.’ 알 카포네는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면서 냉정을 되찾으로겨 했다. 사방으로 눈동자를 굴리면서 혹시 자신의 총격을 막아내는 사람이 또 있나 봤지만···. 다행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피하는 것에 주력했지 공격을 막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저 놈이 가장 강하다는 거군.’ 알 카포네는 바로 배대호의 위험성을 인식했다. 사실···. 이게 레이드 몹이 의지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이었다. 힘도 약하고 발톱도 이빨도 변변치 않은 인간은 생각을 한다는 기능으로 인해서 맹수들을 사냥하고 세상을 지배했다. 이제까지 저층에서 상대하던 몹들은 아무리 강력해 봤자 그 강력한 힘을 무작정 휘두르는 것이 한계였다. 하지만 월드 서버의 보스몹들은 달랐다. 생각을 하고 정탐을 하고 꾀도 부린다. 오랫동안 괴수들에게만 익숙해져 온 한국 팀에게 이런 알 카포네를 레이드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이 레이드에는 한국 팀에 유리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근거리로 가야 합니다. 알 카포네의 최대 무기는 총기에요. 근거리에서는 나이프와 주먹으로 싸우지만 그건 총기만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영국 팀의 존재였다. “저 망할 년이····.” 다이앤 여왕의 말이 들리자 마자 한국팀들은 즉각적으로 대응했고 알 카포네는 이를 갈면서 다이앤 여왕을 노려봤다. 오래전에···. 그러니까 지금처럼 영국 팀이 쇠락하기 이 전의 일이었지만 영국팀에게는 알 카포네를 공략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이 지금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저 암캐가·····.” 알 카포네는 이를 갈면서 다이앤 여왕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총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세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력한 총알이 발사 되었지만 이미 다이앤 여왕은 그 공격을 피한 후였다. 그리고 알 카포네의 발치에서는····. “쉐도우 체인!!!” 촤르르륵!!! 일단 동작을 멈추기 위해서였을까? 정운이 소환한 그림자의 사슬이 알 카포네를 구속하기 위해서 뱀처럼 기어올랐다. “날 구속하겠다고? 감히!!!!” 알 카포네는 몸을 날려서 사슬을 피했고 쉐도우 체인은 안타깝게도 허공만 스쳤다. “칫···. 역시 소형 몹에는 안 좋다니까···.” 정운은 쓰게 중얼 거렸다. 쉐도우 체인은 원래 대형 몹을 구속하기에 적합한 스킬이었다. 몸이 날렵하고 작은 인간형 몹들에게는 그게 잘 통하지를 않았다. “받아랏!!!!” “·······흡!!!” 대신에 인간형 몹들에게 잘 통하는 공격은 따로 있었다. 오랜만에 물 만난 것처럼 이보영 이지영 자매가 최선두로 나갔다. 정운의 스킬을 피하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사격을 멈추고 있던 알 카포네는 자신의 지척으로 다가온 이보영, 이지영 자매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내 총을 집어넣고 대신에 나이프를 꺼내고 주먹을 불끈 쥔 산태로 말했다. “죽여주마.”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죽엇!!!” 다이앤 여왕의 어드바이스 대로 일단 근접전의 스페셜 리스트인 이보영, 이지영 자매가 전투를 주도하기로 했다. 약간 떨어져서 두 자매가 알 카포네에게 협공을 가하는 것을 보고 정운이 중얼 거렸다. “이보영 누님 언제 왔지?” “방금 막요. 끼어들까요?” 슬기가 옆에서 말하자 정운은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모두 방어 굳히고 일단 근처에서 대기!!! 두 사람의 콤비네이션을 방해하지 말고 자신의 방어에 주력 하라. 시간을 봐서 교대하겠다.” 정운은 이 레이드의 성공을 위해서 장기전을 각오했다. ‘····저 둘에게 도움을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 정운이 흘깃 바라본 곳에는 박추성과 배대호가 너희들 끼리 해 봐라 라는 듯이 팔짱만 끼고 있었다. ‘쯧···, 하여튼 팔자만 좋으셔····.’ 월드 서버에 나온 이후로 이전처럼 마냥 방관만 하지 않고 어느 정도 게임에 참여를 하고 있는 박추성과 배대호였다. 특히 박추성의 경우 일본 섬멸전에는 누구보다 더 의욕을 불태우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도 레이드에 관해서는 한 발자국씩 물러나서 관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저게 맞을지도 몰라.’ 정운은 잠시 팀 리더 로서의 권위를 내 세워서 둘에게 알 카포네 레이드에 힘을 빌려줄 것을 청할까? 싶었지만···. 이내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박추성 배대호가 꼭 필요하다면 모를까? 힘을 온전 할 수 있다면 온전하는 편이 훨씬 상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2월 한달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90화 ‘영국이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한국팀의 최대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저 두 사람의 정보는 숨길 수 있으면 숨기는 게 좋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구태여 두 사람에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두 사람이 끼어들지 않는편이 좋은 점도 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사냥을 할 때의 경험치는 공헌도에 따라서 다르게 분배된다. 박추성 배대호가 나선다면 경험치가 그 둘에게 대폭적으로 쏠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리끼리 한다. 그리고···. 실제로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운은 다시 시선을 돌려서 알 카포네와 싸우고 있는 이보영 이지영 자매에게 집중했다. “이 망할 XX들이!!!!” 알 카포네는 짧은 나이프와 주먹을 붕붕 휘두르면서 격하게 화를 냈다. 그렇게 날뛰는 알 카포네의 동작은 빠르고 강력하고 결정적으로 날뛰는 맹수처럼 사나웠다. 하지만 그래도 정운은 안심하고 볼 수 있었다. “핫!!” 퍼억!!! “읍!!!” 콰직!!!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한 이보영과 이지영의 합동공격을 보면서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보는군···. 그래도 여전히 완벽해.” 정운의 말을 듣고 옆으로 다가온 다이앤 여왕이 물었다. “저 두 사람의 전투···. 좀 비정상 적인 것 같은데 혹시 스킬인가요?” 다이앤 여왕도 제법 눈썰미가 있었다. 이보영, 이지영 자매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완벽한 콤비네이션을 보고 저게 스킬이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다. “예. 싱크로 댄싱이라는···. 이인조가 펼치는 유니크 스킬이죠.” 싱크로 댄싱 LV.MAX (서로 의지를 합해서 두 개의 몸을 하나의 의지로 통괄해서 움직인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1,000% 올린다.) 정운도 무척 오랜만에 보는 스킬이지만 이보영 이지영 자매의 비장의 스킬인 저 싱크로 댄싱은 상대가 작을수록··. 그리고 인간형태일수록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알 카포네처럼 기술도 없이 그냥 무작정 날뛰기만 하는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마치 사자의 발톱을 유유히 희롱하며 피하는 나비처럼 움직이는 두 자매의 움직임에 알 카포네는 있는 대로 짜증을 냈다. 금방 잡아 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두 여자에게 공격을 전혀 적중 시키지 못하니까 짜증이 난 것이다. 오히려 자신만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자 이제 이렇게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비겁한 놈들!!!!!!” 타타타타타탕!!!! 확실히 의지가 있으니 이런 경우가 골치 아팠다. 알 카포네는 두 자매의 합공을 무시하고 있는대로 주변으로 난사를 한 후에 어딘가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쉐도우 아미!!!” 정운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그림자 장수들을 전원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나타난 그림자의 장수들은 충성 스럽게 부복을 하면서 정운의 명령을 기다렸다. “저놈의 퇴로를 막아랏. 놓치지 마!!”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그림자의 장수들은 서둘러서 다가가서 알카포테의 퇴로를 막았다. 그리고 정운만이 아니라 소환수를 다루는 한중겸과 이민지도 나서서 정령과 소환수로 알 카포네를 포위했다. “크윽···. 제길··, 누가 괴물인 거냐?” 알 카포네는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는 다양한 소환수들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거대한 괴수들과 정령와, 그리고 정체불명의 그림자의 장수들까지···. 알 카포네가 이를 가는 것도 당연했다. 차라리 자신을 포위하기 위해서 앞을 가로막은게 유저라면 용감하게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알 카포네의 공격력을 경계한 유저들은 될 수 있는한 멀리 떨어져서 알 카포네에게 원거리 공격만 하고 있었다. 근거리 전투에서 유일하게 접근했던 여자 두 명은 알 카포네가 도저히 잡을 수 있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공격하라!!!!” 정운이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알 카포네를 향해서 그림자의 장수들이 달려 들었다. -뇌천신공!! -뇌천신공!! -뇌천신공!! 이제 그림자 장수들에게도 뇌천 신공은 기본이었다. 다른 스킬들에 비해서 자신들의 무술을 펼치는 것에 가장 무리가 없는 스킬이었기에 애용들 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정운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스킬들을 다 쓰면 더 좋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바라기에는 이들의 센스가 게임 시스템과 너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그림자의 장수들이니 말이다. -아아아아아!!!! 장비가 장팔사모를 들고 알 카포네를 완전히 쪼개 버리려는 것처럼 내리쳤다. “이 새끼가!!!!” 콰직!! 퍼엉!!! 방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둘의 공격이 서로에게 적중했다. 알 카포네의 주먹이 말채로 장비의 몸을 으깨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장비의 뇌전의 기가 가득 깃든 장팔사모가 알 카포네의 머리에 작렬했다. “크윽····.” -돌 대가리군. 자신의 장팔사모를 정면으로 맞고도 멀쩡한 알 카포네를 보고 장비가 중얼 거렸다. “누가 돌대가리냐!!!!?” 보스몹 특유의 방어력이 있었기에 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삼국시대 단순무식의 대명사중에 하나라고 알려진 장비에게 돌대가리라고 불리는 것은 일종의 굴욕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알 카포네가 장비가 누군지 모르는 것 정도가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어쨌든 문제는 장비만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 -끝이다!!! 하나하나의 이름이 1,000년의 시간을 넘어서 후세까지 명장으로 칭송될 정도의 장수들이 지금 정운의 그림자에 깃들어 있다. 그들의 합공은 이보영, 이지영 자매들처럼 완벽한 콤비네이션은 아니었지만 한방 한방은 훨씬 거칠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자의 무장들은 치명적인 한 방을 허용한다고 해도 정운의 그림자에서 다시 부활했다. 물론 그때마자 정운의 정신력을 막대하게 소모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정운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충분해···. 이 페이스대로 가면 충분해.”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옆에서 다이앤 여왕이 말했다. “정운씨, 알 카포네의 머리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면 주의하십시오. 스킬이 발동합니다.” “스킬요?” “예. 그때가 되면 일단 멀리 떨어지는게 좋습니다. 스킬이 발동하면 최대한 건물을 엄폐물 삼아서···.” “우오오오오오!!!” 콰아앙!!! 다이앤 여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중겸의 소환수인 그레이트 타이탄의 강력한 주먹이 알 카포네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알 카포네의 머리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떴다. “크크크···. 모두 죽여주마!!! 블러디 발렌타인!!!!” 알 카포네는 드디어 자신의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자 히든 스킬을 발동했다. 그가 스킬을 발동하자 허공에 수백··. 아니 수천개는 될 것 같은 톰슨 기관총이 생겼다. “저건···?” “모두 피해!!!” “대호 형님!!!” 정운은 재빨이 배대호를 불러서 유저들의 보호를 요청했다. 레이드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는 배대호 박추성이었지만 그래도 신변의 안전 정도는 월드 서버에 오기 전에도 챙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 카포네가 거칠게 외쳤다. “다 죽어라!!!!”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수천자루의 톰슨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뭐랄까? 정운의 스킬중에 가장 넓은 광역 스킬인 천뢰지망이라는 기술이 있지 않는가? 그 천뢰지망을 수십배는 더 거창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스킬이 알 카포네의 히든 스킬이었다. 위력도 그리고 공격의 범위도 몇 단계는 위였다. 다행이라면····. “어림없지.” “제법이긴 하네. 하지만 충분하군.” 한국 팀에는 배대호와 박추성이라는 양대 괴물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둘은 미처 건물의 사각 지대로 피하지 못한 유저들을 자신들의 곁으로 끌어 들여서 알 카포네의 공격을 여유있게 막아냈다. 배대호는 자신의 오리지널 실드를 펼쳐서 아군을 감싸줬고, 박추성 역시 특이하게 반투명한 실드로 자신과 아군을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저 실드는 작은 실을 꼼꼼하게 엮어서 만든 실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한의 영사를 촘촘하게 짜서 돔 형태로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한 것이다. 한국 유저들은 그런 둘을 보고 워낙 괴물들이니 그러려니 라고 생각했지만···. 영국의 유저들은 상황이 달랐다. “알 카포네의 히든 스킬을 막아내다니····.” “저게 막을 수 있는 스킬이었나? 난 방어 불가능인줄 알았는데····.” “··················.” 영국 유저들 중에서도 처음에 저 알카포네를 상대하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었다. 총기와 강력한 공격력도 문제였지만 그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저 히든 스킬이었다. 블러디 발렌타인 원래 알 카포네가 일으킨 사건 중에 가장 유명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 사건을 스킬화 한 것이다. 알 카포네가 생전에 밀주 산업에서 라이벌 조직의 보스였던 조지 벅스 모렌을 죽이기 위해서 발렌타인 데이에 그의 본부를 급습해서 대학살을 벌였다. 당시에 시카고 경찰과 시민들은 그것이 알 카포네의 짓이라는 거을 알고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고 무엇보다 당시 시카고에서 알 카포네가 가지고 있던 공포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서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 사건을 스킬화 시킨 것이 블러디 발렌타인 이라는 스킬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톰슨 기관총은 당시의 대학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거의 10여분 정도동안 기관총은 총을 난사했다. 보통 총알이 많이 쏟아지면 비 오듯이 쏟아진다라는 말을 하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총알이 하늘에서 비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거친 폭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거친 폭우에 맞아서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게 알 카포네의 입장에서는 문제였다. “이 놈들은 도대체····.” 알 카포네는 자신의 힘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도 없이 막 놀아나는 다른 몹들과 달리 명백하게 의사를 가지고 있는 몹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내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내려면 적어도 레벨이 200은····. 설마?” “거기까지··. 넌 입 다물어라.” 알 카포네가 말해서는 안 될 정답에 도달하려고 하는 순간···. 그의 바로 아래에 있는 그림자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알 카포네는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으면서 자리를 회피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그림자는 결국 주인을 따라오는 법이니 말이다. 정운은 쉐도우 무브로 알 카포네의 바로 발치까지 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대로 위로 튀어 오르면서 창으로 한 방 먹였다. 카앙!! “크윽···.” 알 카포네는 정운의 창 끝을 자신의 나이프로 정확하게 막았다. 나이프로 창날을 막아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찌르는 창 끝을 나이프의 날로 잡아냈으니 거의 신기라고 해도 좋았다. 당연하지만 원래의 알 카포네에게 이런 무술 시력이 있었을리는 없다. 아마도 보스몹으로 보정된 이후에 생긴 인간같지 않은 신체 스팩의 결과이리라. ‘뭐, 별로 상관없어. 공격을 맞추는게 주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창 끝에 힘을 더 줘서 상대를 밀어 붙였다. “가사 로운 놈.” 우드득···. 뿌득···. 알 카포네가 힘을 잔뜩 주고 정운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정운이 노리는 것이었다. 정운은 그 상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스킬을 시전했다. “쉐도우 체인!!” 촤르륵!! “엇!!!” 알 카포네의 입에서 순간 당황하는 소리가 나왔다. ============================ 작품 후기 ============================ 월드 서버의 보스몹에 관해서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꼭 악인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운이 중간에 스틸한 삼국지 무장들을 보면 알겠지만 자신의 인생에 한이 많고 미련이 많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나올 예정입니다. 중요한것은 네임밸류가 있느냐? 없느냐?겠죠. 명색이 보스몹을 하려면...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191화 <축하 파티> 레이드가 시작하고 알 카포네가 당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정운의 쉐도우 체인의 위험함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도 이것은 재빨리 피한 것이다. 지금도 평소와 같은 상황이라면 재빠른 몸놀림으로 쉐도우 체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정운의 창을 가드하기 위해서 발이 멈춰 있었고 전신에 힘도 잔뜩 들어가 있었다. 결국 알 카포네는 그림자의 사슬이 자신을 칭칭 휘감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적의 구속을 확인하자마자 정운은 주변의 인물들 전원에게 외쳤다. “딜해!!!” 대형 몹들도 일단 묶이면 쉽게 풀지 못하는 정운의 구속 스킬이다. 아무리 보스몹이라고 해도 알 카포네의 사이즈를 생각하면 쉐도우 체인에 대한 구속력은 절대적이었다. “이 새끼들이!!!!” 알 카포네는 체인에 둘둘 둘러쌓인 와중에도 총을 꺼내서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자신에게 날아오는 무수한 공격들이 먼저였다. 콰콰쾅!! 쾅쾅!!! 한국팀 영국팀이 가리지 않고 있는대로 퍼붓는 공격에 알 카포네는 순식간에 옐로우 크리스탈에서 레드 크리스탈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때 가장 마지막에 터진 공격은 슬기의 한 방이었다. “주작 소환!!!!” 보통 레드 크리스탈이 뜨면 몹이 더 격렬한 공격을 하기 전에 단번에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서 최대의 공격을 가하기 마련이다. 정운도 쉐도우 아미에 자신의 아스트랄 소드를 연계해서 알 카포네를 박살 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슬기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을 가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 주작이 나타나는 그 순간 하늘도 땅도 모두 붉어졌다. 보스몹으로서 주작이라는 몹을 만나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 주작은 그것보다도 훨씬 더 커 보였고, 그리고 전신에 휘감고 있는 깃털은 그냥 붉은 깃털이 아니고 화염의 깃털이었다. 그런 주작이 알 카포네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붉은 섬광이 모두의 시야를 빼앗아 버렸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아군에게는 대미지를 입히지 않는다. 하지만 슬기의 공격이 뿜어내는 너무나 밝은 빛에 유저들은 순간 시야를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모습이 드러났을 때는····. 치지지직····. 털썩. 알 카포네는 새까맣게 숯 덩어리가 되어 있었고 그대로 뒤로 털썩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한국 유저들 전원에게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70층의 보스몹 알 카포네를 쓰러트렸습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실 권리가 생겼습니다.] “해 냈다···.” “생각보다는 훨씬 까다로웠어.” “보스몹에게 지능이 생기면 이렇게 까다로울 줄은 몰랐어. 어디로 튈 줄을 모르겠으니···.” “나도야··. 그래도 어떻게든 해 냈잖아?” “앞으로 29층···. 29층만 더 하면 되.” 상당한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단 한명의 사망자도 없이 성공시킨 레이드였다. 영국의 유저들은 한국의 그런 성과를 무척 부러워 하고 또 감탄하고 있었다. 예전에 자신들이 이 알 카포네를 잡을때는 몇 명이나 되는 희생자가 나왔었다. 하지만 한국팀은 아무런 희생 없이 아주 담담하게 알 카포네를 잡아내는 것이 아닌가. ‘역시···. 한국 팀과 손을 잡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어.’ 다이앤 여왕은 한국팀과의 동맹이 자신들 영국팀이 게임 클리어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어렵풋한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이번 레이드를 통해서 확신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런 확신은 그녀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했다. ‘한국과의 동맹을···. 좀 더 공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안고 한국팀의 월드 서버 첫 레이드는 대성공이었다. 레이드를 마치고 한국팀은 항상 그렇듯이 축하 파티를 열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장소와 인원이 좀 색달랐다. “여기가 한국팀의 필드 기지인가요?” “예. 일단 전에 말씀하신대로 만들었습니다.” “음···. 고풍스런 디자인이 무척 좋군요. 같은 기와 건물이라도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독창성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건축에 조예가 깊으신 줄은 몰랐네요.” “별 것 아니랍니다.” ‘제발 그러기를 바랍니다. 이 건물을 한국의 대표적인 미로 착각하지 말아 줬으면 하니까···.’ 정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들의 전진기지를 설핏 바라봤다. 정운은 71층에 차지한 영역에 자신들의 전진 기지를 만들고 나서 영국팀을 초대했다. 필드에 만드는 전진기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원래 이것은 월드 서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냥 필드에 만들어두는 영역을 넘어서 건물의 안에 포탈을 만들고 고정 시킬 수 있다. 그로 인해서 정규 포탈을 통하지 않고도 이 건물을 통해서 자신들의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냥터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전진기지의 역할이 이제 와서는 많이 퇴색되었는데 사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한국 서버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 서버에서 김신수가 언더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사고를 친 후에 그라운드 제로에 대규모 패치가 있었지 않은가? 이런저런 패치가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패치는 PK시의 보상이 커졌다는 것과 간이 포탈의 존재였다. 원래 그 패치가 있기 전에는 간이 포탈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간이 포탈이 없는 상황에서 이 전진기지의 효과를 생각해 보라? 전진기지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정규 포탈을 통해서 자신들의 영역으로 다시 가야 했고, 그 과정에 다른 팀의 영역을 침범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야 가지에 바람 잘 날 없을게 뻔했다. 그러니 전진기지를 어디에 어떻게 만드냐는 것은 각 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다만···. 패치 이후로 생긴 간이 포탈이 생긴 후에도 전진기지는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전진기지는 기지를 중심으로 넓은 탐색스킬을 자동을 발생하는데···. 범위는 10km 정도에 불과하지만 마치 군사 레이더처럼 그 안에 들어온 타 국가의 팀원들을 캐치해 내고 신호를 준다. 그러니 이 안에서 사냥하면 혹시나 모를 다른 팀원들의 기습에서 대응 할 수도 있었다.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있어서 각 국가의 서버에 있는 스카이 타운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진기지에서 생활하는 유저들도 종종 있었다. 참고로 전진기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월드 서버의 각 팀의 유저들이 얼마씩 골드를 지불해서 스카이 타운의 건축사에 의뢰하면 지정한 장소에 뚝딱뚝딱 하고 지어준다. 정운은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는데 아무도 없는 공간에 건물 한체가 뚝딱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역시 게임의 세계는 게임의 세계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어째서 정운은 이렇게 훌륭한 기능을 지니고 있는 전진기지를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일까? 혹시 건물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아니다. 전혀 이상이 없다. 그렇다면 생활하기 불편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생활공간도 충분히 배려했고 기본적으로 없는게 없어서 스카이 타운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정도이다.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디자인이었다. 한국 팀의 전진기지인 건물의 디자인은 조선시대의 기와집······. 하고 비슷한 건물이었다. 기와집이 아니고 기와집 비슷한 물건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그냥 평범한 기와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뭐랄까? 무늬만 기와집? 기와의 끝판왕? 세상에 이런 기와집이? 어쨌든 절대로 다이앤 여왕이 생각하는 독창성이 한국 고유의 멋과 미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기본적으로 전진기지의 설계는 주문하는 사람의 이미지대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영구의 건물이 버킹검 궁전을 닮은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한 사람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이미지를 다 합쳐서 만들었다. 그 결과 만들어 진 것이 바로 50층짜리 기와건물이었다. 기본적으로 높이 5미터는 될 법한 높은 돌담에 정원은 한국식의 정원에 드문드문 정자와 연못이 있었고 뒤뜰에는 몇 개의 건물이 따로 있었다. 건물의 용도는 다양했는데 스킬을 연습할 수 있는 수련실부터 온천에 스파, 평범한 웨이트 체육관까지 가지가지였다. 그리고 동양적인 건물의 이미지와 달리 내부는 의외로 또 서양식이었다. 건물의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점부터 한국의 미는 사실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건물의 내부 장식 여기저기서 약간 조선, 신라, 고려 등등의 이미지가 뒤섞여 있었지만 어쨌든 편의 시설은 완벽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개인마다 한 층을 통째로 자기 생활공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뭐···.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좀 중구난방이기는 하지만 이제와서 물릴 수도 없었다. 한국팀 13인의 이미지를 다 통합해서 만들고 나니 그렇게 되었는걸 어쩌겠는가? 아마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사례중에 하나로 남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기본적으로 없는게 없어서 생활하기에는 정말 편리하다는 것이었다. 그 공간에 오늘은 영국의 유저들까지 초대했다. 한영 동맹을 공고히 하는 한편 한국의 71층 진출을 축하하는 파티. 라는 명목이었다. 예전에 한국팀들만 있을 때와 달리 타 국가의 팀까지 합류하자 그래도 파티라는 티가 좀 났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자신들끼리 유익한 혹은 무익한 시간을 보내고는 있었다. 예를 들어서 이민지와 한중겸은···. “오오····. 정령술사는 우리 서버에도 있지만 정령왕을···. 그것도 넷이나 다루는 유저는 처음입니다.” “운이 좀 좋았죠. 주변에 동료들도 좋고···.” “아니요. 이 그라운드 제로에 운이란 없는 법이죠.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겸손하기까지 하니 동양의 미라는 것이 실감이 나는 군요.” “아니요. 그런 과찬을···. 저 보다는 슬기나 지영이가 훨씬 예쁜 아이들인걸요?” 영국 남자들과 이민지의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작가의 농간인지) 한국 서버에서 진출한 여성 유저들은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아이돌 출신인 슬기는 말 할 것도 없고 이보영, 이지영 자매도 겉으로 보면 늘씬한 키에 쭉 빠진 몸매가 모델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영국 유저들의 관심을 특히 더 받고 있는 것은 이민지였다. 그녀 역시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그 중에서도 그녀를 한 층 더 아름답게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하얀 가면이었다. 왜··.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왠지 뒷모습이 예쁘면 얼굴도 당연히 예쁠 것 같은 효과··. 긁지 않은 복권에서 어쩐지 대박의 스멜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고 있다고 착가하는 효과··.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여자들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저 여성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런 생각을 하고 몇 명의 영국 유저들이 이민지의 주변에 달라 붙었다. 사실 외국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대시하는 것은 한국 남자들 보다 훨씬 더 직설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들 중에 몇몇은 이민지에게 아주 제대로 매료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일까요? 그 신비스런 가면의 뒤편에 있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제 심장이라도···.” “예? 심장에 안 좋다고요? 어쩌죠? 누님? 이 사람들은 누님 얼굴이 심장에 안 좋을 정도로 보기 싫다는데. 어디 밖에 나가실래요?” “··········.” “··········.” 물론이지만 한중겸은 그 사태가 마음에 안 드렁서 찬물을 확 들이 부었다. 그렇게 해서 의외로 영국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이민지와 그런 인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한중겸이었다. ============================ 작품 후기 ============================ 레이드 했으니 세력전쟁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시 잠깐 분위기를 쉬어가는 파트가 들어가겠습니다. 누차 말하지만 작품은 파도를 잘 태워야 하는것 같습니다. 강약조절을 잘 하면서 작품을 잘 이끌어가는게 장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92화 한중겸은 이민지에게 대시하는 남자들로 인해서 불쾌해하고 있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보영의 경우···. “어머··? 기사라고 불리신다고요? 멋진데요? 전 그런 서양의 로망을 동경했거든요.” “아···. 예. 감사합니다.” “어쩜···. 확실히 서양 남성 분들은 수염을 길러도 지저분한 느낌 보다는 댄디 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예···. 그게··. 예. 아니···.” “호호호·····. 혹시 부끄러우신가요?” “···········.” 이보영은 영국 유저중에 한 명을 붙 잡고는 그에게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상대는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시궁창 게임에 들어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진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이보영의 말대로 그의 얼굴을 확실히 서양 중년 남성에게서 느낄 수 있는 중후한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아무 상관 없었다. 외모에 관해서는 이보영의 스트라이크 존이 무척 광활하게 넓기는 했다. 평소에 그녀의 어장을 살펴보면···. 가녀린 미소년 타입. 남자다운 터프가이 타입. 지적으로 생긴 인텔리 타입. 겉보기에는 남루하지만 여성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80년대 시인 타입 등등···. 실로 여러 가지 타입의 물고기들을 편식하지 않고 참 많이도 가지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오늘 또 월척을 발견하고는 입질을 살살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NPC도 아니고 유저인 남자가 이렇게 순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레어를 넘어서 유니크 일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이렇게 저렇게 각자 시간들을 잘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상황이 곤란한 사람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그렇다. 바로 한국팀의 리더인 박정운이었다. 그는 지금 여성 세명, 정확하게 말하면 슬기, 세레나, 그리고 다이앤 여왕까지 포함한 세 명을 사이에 두고 말로 할 수 없는 미묘한 중압감을 받아내고 있었다. “제법 이군요···.” “그쪽이야 말로···.” “이제 그만 포기들 하시죠?” 그리고 그런 정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세 여성은 얼굴을 사과처럼 붉게 물들이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참고로 얼굴이 붉어진 것은 뭔가 부끄럽다거나 혹은 화가 나서는 아니다. 감정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그녀들의 테이블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독한 술병일 것이다. 현실에는 없는 술로 스카치의 일종이었는데 하나에 1만 골드나 할 정도로 굉장한 명주였다. 참고로 굉장히 독하기도 하다. 그 술병이 그녀들의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한 원인인 것이다. 그냥 이렇게만 말해서는 상황이 어떻게 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를테니···. 일단 여기서는 잠시전으로 시간을 좀 돌려 보도록 하겠다. 한영동맹을 축하하는 사이인 만큼 파티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음식과 술을 나르는 NPC메이드와 집사들의 접객은 완벽했고 파티 홀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감미로웠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시간과 이 장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이앤 여왕이 꺼낸 말이 시작이었다. “무척 오랜만이네요···. 이런 좋은 분위기. 어떤가요? 정운님. 한곡 어울려 주시겠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에게 살짝 손을 내밀었다. 보통 남녀가 반대이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척 봐도 정운이 자신에게 댄스 신청을 할 것 처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밀어서 안 되면 당기고 당겨도 안 되면 흔들어야지.’ 왕실의 여자라고 하면 보통 조신한 이미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뭐, 실제 왕실이라면 그게 맞을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왕실의 조기 교육이라는 것이 보통 답답한게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다이앤 여왕은 원래 영국 왕실의 먼 방계였다. 그녀가 여왕이라고 내 새우고 있는 것도 같은 영국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서 그녀의 부하들이 추대한 것뿐이다. 원래는 평범하게 자랐던 여성일 뿐이었기에 남자에게 대시하는 것에 수줍음 따위는 지구 반대편 한국까지 날려 버린 여성이었다. 그녀의 내민 손을 보고 정운은 곤란하게 생각했다. ‘사교댄스 같은 건 정말 전혀 배운 적 없는데···.’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할 줄 모르는 것. 그리고 해 본적 없는 것을 여자 앞에서 하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망설이는 정운에게 구원자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다이앤 여왕님. 그건 거절해야 겠는데요?” 정운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니라 생글생글 웃고 있는 슬기였다. ‘슬기야···. 다행이다.’ 정운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운씨하고 춤은 제가 출 거라서요.” ‘슬기야····. 너까지 왜 그러니····.’ 다른 의미로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오는 정운이었다. 슬기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웃는 얼굴 그대로 표정이 굳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가 봐도 지금 내 미소는 영업용일 뿐. 난 당신이 싫다. 라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얼굴이었다. 그런 슬기를 보고 다이앤 여왕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과연···. 이 아가씨가 골키퍼다 이거군.’ 다이앤 여왕은 미소에는 미소로 화답하면서 말했다. “으음···.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먼저 신청했는데요? 그리고 일단 양 팀의 우호를 위해서도 저하고 정운님이이 춤을 추는게 어울릴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이··· 이 여자가···.’ 슬기는 다이앤 여왕의 말에 잠시 주춤해 버렸다. 말은 예의 바르고 애매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계산한 말들뿐이었다. 우선 뻔히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슬기와 정운의 사이를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를 때고 거기 다 자기가 먼저 신청 했다는 식으로 우긴 다음에 마지막에는 한영동맹의 관계까지 살짝 들먹였다. 슬기는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더 고단수라는 것을 파악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날 수도 없었다. 사랑을 쟁취하고 싸워서 지키는 것은 남자들 만의 특권이 아니다. “크흠···. 소개가 늦었네요. 전 정운씨하고 결혼한 이슬기라고 합니다.” “결혼?” “결혼?” 다이앤 여왕과 정운이 동시에 말 했다. 그리고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정운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말했다. “음···. 어째 신빙성이 떨어지는 데요?” “어머? 사실이랍니다. 그렇죠. 세레나.” 슬기는 정운을 보고 ‘나중에 봐요.’ 라고 생각하면서도 지원군으로 세레나를 끌어 들이는 수를 썼다. 하지만 그것은 악수였다. “결혼····은 아니지만 연인인 것은 사실입니다. 결혼은 아니지만 말이죠. 예. 결혼은 아니군요.” “···········.” 한 번만 아니라고 해도 충분한 것을 굳이 세 번이나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세레나···. 당신 포기한게 아니었단 말이죠.’ ‘다이앤 여왕이라····. 사특한 의도로 마스터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그냥 둘 수 없지.’ ‘이런, 골키퍼가 둘이야? 그런데 하나는 비공인 같은데?’ 아름다운 여자 세 명이 모여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광경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무··· 무서워. 어디 도망가고 싶다.’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정운은 몹시 무서울 뿐이었다. 여자들은 정운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기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거기서 얘기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여자들답지 않게 술 대결로 판이 옮겨진 것이다. 사실 술 대결이라고 정식으로 누가 말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다이앤 여왕이 갑자기 준비해온 술을 꺼내더니 갑자기 술술 마시기 시작했고, 슬기와 세레나도 괜히 지지 않겠다는 듯이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 “이제 슬슬 포기 하시죠?” “아니요. 전 멀쩡해요. 그보다··. 여왕님 안색이 안 좋은데요?” “전 원래 술 기운이 좀 빨리 돌아서···. 하지만 정신은 멀쩡하답니다. 그쪽 분은 어떠신가요? 세레나라고 하신 분.” “술로 인해서 흐트러질 정도로 나약한 정신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디 한 잔 더···.” “주시죠.” “저도···.” 이제는 주변에 갤러리들까지 모여서 세 여성들의 술대결을 관람하고 있었다. “슬기 쟤 저렇게 술을 잘 마셨나?” “글쎄요. 마시는 걸 본 적은 없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오기로 들이 붓는 것 같아요.” “세레나도 거의 한계 같지?” “여왕님이 술이 강한 편이 아닌데····.” 한국 유저들도 영국 유저들도 이 상황을 말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누구 하나 다칠 걱정도 없고 재미있는 구경거리인데 왜 말리겠는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술 먹다 죽은 인간 같은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유저들이었다. 이 상황이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정운 뿐이었다. ‘세레나는 몰라도 슬기는 술도 약한데···.’ 정운이 알기로 슬기의 주량은 결코 강하지 못했다. 맥주로 두병? 소주로 치면 한병 정도? 고작 그 정도 주량으로 도수도 제법 있는 스카치를 무작정 들이키고 있었다. 이래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깡으로 악으로 마신다고 해도···. 결국 주량에는 한계가 오는 법이다. “··········.” 털썩. 슬기가 얼굴을 창백하게 하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버리자 정운이 재빨리 슬기를 받았다. “어째 많이 마신다고 하더라니····.” 그게 누구 때문일까? 어쨌든 정운은 슬기를 부축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희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계속해서 즐겨 주세요.”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장 어이없는 것은 다이앤 여왕과 세레나였다. ‘····내가 뭐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술만 마시고 있는 거지?’ ‘지는게 이기는 거라더니···. 이게 그런 경우인가?’ 가장 먼저 쓰러진 슬기가 정운의 부축을 받으면서 퇴장하는 것을 보고 진한 패배감을 느끼는 두 사람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쫓던 닭은 지붕위로 올라가 버린 것을···. “으쌰···.” 정운은 슬기를 데리고 와서 자신의 침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슬기와 자신의 침실에 눕혔다. “으으응·····.” 슬기는 답답하다는 듯이 몸을 뒤척였다. 빈속에 독한 술을 많이 마셨더니 이제야 괴로움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슬기야. 옷 벗긴다.” 정운은 슬기가 편하게 자게 하기 위해서 원피스 형태의 드레스의 지퍼를 풀고 옷을 벗겼다. ‘딱히 음흉한 생각으로 이러는 것은 아니긴 한데·····. 약간 두근거리긴 하네.’ 서로 한 이불 덥고 살 비비면서 산지도 제법 시간이 된 정운과 슬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처럼 푹 늘어진 슬기의 옷을 벗겨주는 정운은 약간 두근거리는 감각이 들었다. 무저항으로 자신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고 있는 슬기에게서 이전에 없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하긴 무저항으로 몸을 맡기고 있는게 아니라 그냥 술 먹고 골아 떨어진 것이지만 말이다. ‘····음, 역시 안 되겠지?’ 정운은 은근히 지금 슬기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인사불성이 된 슬기와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나중에 슬기를 보기가 껄끄러웠다. “어쩔 수 없지···.” 정운은 속옷차림이 된 슬기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자신도 옆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했다. “·············.” 옆에 나란히 누운 정운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슬기를 옆에 두고 그녀의 몸을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잘··· ‘잠이 안 오네.’ ···수가 없었다. 남자도 여자도··. 때때로는 못 견디게 사랑하는 사람의 살결이 그리울 때가 있는 법이다. “슬기야···. 자니?” 정운은 은근히 슬기의 어깨를 흔들면서 슬기에게 수작을 부렸다. “으음····.” 슬기는 그런 정운의 손길에도 몸만 뒤척일 뿐이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평소의 정운이라면 슬기가 이렇게 반응이 없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포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슬기에게 마음이 동하고 있었다.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꼭 슬기하고 일을 치르고 싶은 느낌이었다. ============================ 작품 후기 ============================ 미묘한 곳에서 자르게 되는군요. 분량을 나누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93화 <민감해지는 월드 서버의 정세> 참고로 그 시각···. 정운이 잠 못이루고 슬기에게 집적거리고 있는 그 시각에 파티 홀에는 다이앤 여왕이 한숨 섞인 독백을 중얼 거리고 있었다. “으음···. 비싼 물건인데···. 나중에 다시 살까?” 다이앤 여왕은 손가락 두 마디만한 작은 크리스탈 병에 있는 약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여왕전하. 그게 뭡니까?” 옆에서 질문하는 기사에게 다이앤 여왕이 피식 웃으면서 약병을 품안으로 갈무리 했다. 그리고 살짝 윙크를 하며···. “비밀이에요. 굳이 말하자면 한영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비밀의 물약이랄까요?” “···········?” “그냥 그렇게만 알아두면 되요.” 다이앤 여왕은 그렇게 말하고 말았지만····. 그 약병의 표면에는 작은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강력 페르몬 물약]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신 후에 사랑하는 이성에게 다가가세요. 당신의 몸에서 뿜어지는 페르몬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 층 더 뜨겁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정운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오늘 원래 다이앤 여왕이 가장 처음에 비우기 시작한 술병에는 이 약이 타져 있었고 당연하지만 그 술마시기 경쟁의 대상이었던 슬기와 세레나도 그 술을 마셨다. 정운은 정말 꿈에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시 장소를 옮겨서··. 정운의 침실. “슬기야···. 슬기야? 정말 자?” “·······으응····.” 정운은 곤히 자고 있는 슬기를 계속해서 흔들었다. 슬기는 억울하겠지만 슬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페르몬이 정운의 마음을 자꾸 흔들고 있었다. 사실 페르몬이라고 해도 다른 여자였다면 정운이 이렇게 질척거리면서 미련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 고 레벨이고 저항력도 높은 정운인데 페르몬이 효과를 발휘해 봐야 얼마나 발휘하겠는가? 하지만·····. (원래 자기여자 + 조금의 술기운 + 페르몬) 이라는 공식이 정운을 이렇게 만들고 있었다. “슬기야····. 자꾸 안 일어나면 나 이대로 한다? 그래도 돼?” “·········.” 당연하지만 슬기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정운은 아무래도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정운도 살짝 이지만 페르몬에 취해서 자기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의 손이 익숙하게 슬기의 속옷을 벗겨갔다. 너무나 익숙한 손길에 슬기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슬기야····.” 정운은 슬기의 붉은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쳤다. 슬기의 입술은 항상 그렇지만 정운에게 달콤한 느낌을 전해줬다. 사람의 입술에 당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달콤한 맛이 날 리가 없다. 오히려 지금 슬기는 독한 술을 많이 마셔서 역한 알콜의 냄새가 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의 입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운은 그 안에서 어떤 감로주 보다 더 감미로운 느낌을 만긱할 수 있었다. “으····으음···.” 이윽고 정운의 입술이 떨어지고 슬기와 정운의 입술 사이로 서로간의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정운은 그대로 슬기의 입술에서 천천히 내려와서 그녀의 매끄러운 목선에 키스를 했다. “으음····. 음···.” 슬기는 술에 취해서 비틀 거리는 와중에서도 익숙한 정운의 손길에는 무의식중에 반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잘 길이 든 악기가 주인의 손에 의해서 선율을 연주하듯이···. 슬기 역시 익숙한 정운의 애무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목선을 지나서 볼록하게 솟아오른 쇄골을 살짝 빨고 그 밑에 있는 슬기의 가슴에 도착한 정운은 기어코 슬기의 부드럽고 따뜻한 젖가슴에 도착했다. 정운은 우선 눈으로 슬기의 아름다운 가슴을 감상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티하나 없는 옥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정운은 그대로 슬기의 젖가슴에 있는 앙증맞은 유두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아기처럼 빨아들였다. “으음·····. 음!!” 슬기는 한쪽의 가슴은 유두를 강하게 흡입당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쪽의 가슴은 강하게 주물리는 감각에 허리를 살짝 비틀며 몸을 틀었다. 정운은 그러다가 행여나 그녀가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의 몸을 놓치지 않게 꼭 잡고는 애무를 계속했다. 다이앤 여왕이 수작을 부린 페르몬 때문일까? 아니면 슬기가 의식이 없다는 사실에 스릴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정운의 손길은 평소보다 확실하게 거칠었다. 평소에 정운과 슬기가 사랑을 나눌 때 정운은 자신의 욕심을 무작정 채운다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여자와 교감을 나누는 것에 더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슬기를 배려하는 부드러운 애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살짝 과격한 터치도 있었다. 슬기의 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슬기의 봉긋한 가슴 끝에 있는 예쁜 유두만을 간질인다거나···. 입으로 빨던 유두를 앞니로 살짝 씹어서 자극을 준다거나··. 평소에 정운이 슬기에게 하던 애무보다는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이윽고 스스로 흥분을 참지 못한 정운은 그대로 슬기의 몸을 열고 그 안으로 진입했다. “아아····. 앗!!!” 슬기는 자신의 은밀한 곳에 남자가 들어오자 순간 살짝 이지만 눈을 떴다. 정운은 순간 슬기가 깼나 싶었다. 하지만····. “·····하아······ 하아····.” 슬기는 살짝 떴던 눈을 그대로 감고는 다시 차분한 호흡으로 잠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정운은 여기까지 도달해도 결국 다시 잠들어 버리는 슬기를 보고 순간 어이가 없었다. 정운은 순간 여자가 술에 취하면 이렇게 감각이 마비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이런저런 여자들을 거쳐 왔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한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게 자신이 목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는 여자라는 것은 약간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쨌든···.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행위 같아서 슬기에게 살짝 죄책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멈출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슬기였다. “미안 슬기야···. 그래도 사랑해.”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본격적으로 슬기의 배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기는 정운의 행위에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 졌고 입술에서 약간의 달뜬 숨소리가 흘러 나왔다. “하아····· 하아····· 아·····.” “슬기야····.” 정운은 슬기의 양손을 자신의 양손과 겹쳐서 깍지를 끼고는 그대로 그녀의 몸 위에서 절정에 달했다. “하아····. 하아·····.” 슬기는 거친 숨결을 몰아 쉬었고 정운은 그대로 슬기의 가슴에 쓰러지듯이 안겨서 쾌감의 여운에 젖어서 중얼 거렸다. “후우···. 슬기야. 미안··. 그래도 사랑해.” “·····사랑은 하는 거 맞죠?” “당연하지. 안 그러면··. 슬기야!!?” “···········.” 정운은 슬기의 가슴팍에 밖았던 자신의 머리를 들어서 급하게 슬기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약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는 슬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깼어?” “그게 중요해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사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런 사이이기에 이런 일로 더 소원해 질 수도 있다. 여자는 자신의 남자가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 할 때도 상처 받지만 그냥 성적이 대상으로만 여겨질 때는 상처를 넘어서 모독감을 느낄 때도 있다. 뭐···. 극소수는 그걸 즐기는 여성들도 있다고 하지만 슬기가 그런 극소수의 취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으음···. 슬기야. 저기 이건 그러니까····.” “···········.” “미안. 오늘 어쩐지 못 참겠더라고. 그래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운씨···. 내가 자고 있을 때 이러는건 좀···.” 슬기가 살짝 푸념을 하자 정운은 그저 자기가 잘못 했다고 무조건 숙였다. “미안.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냥···. 오늘 네가 너무 예뻐 보이고 그리고 뭐···. 좀 어쩌다 보니까···.” “···········예쁘긴요. 이제 슬슬 지겹기도 할 텐데?” 슬기는 정운의 말에 슬쩍 빼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 목소리에서 살짝 이지만 들뜬기분을 눈치 챘다. 이제 하루 이틀 함께 한 세월도 아니고 이 정도는 기본이었다. 정운은 보스몹 레이드 중에 약점이라도 발견 한 것처럼 그녀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질리기는···. 어떻게 하면 너한테 질릴 수 있어? 하루하루 새롭게 가슴만 두근 거리는데····.” “거짓말은···. 아부해도 안 통해요.” 아니다. 아부는 통하고 있었다. 정운은 슬기를 그대로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 “거짓말 같아? 아닌데?” “········정말요?” “그래··. 여차하면 증명해 줄까? 내가 널 볼 때마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지····.” “어떻게 증명···. 아···. 정운·· 씨.” “여기도···. 그리고 여기도··· 모두 너무너무 아름다워···.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라니까···.” “아니··· 정우·운··· 으읏···. 말로만 해도··· 되··· 아앗····.” 정운이 어디를 어떻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슬기는 마치 땅에 올라온 미꾸라지처럼 전신을 꿈틀꿈클 거렸다. 정운의 손길이 자신의 성감대를 골라가면서 자극하고 있었고 거기에 다시 한 번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는 슬기였다. 그리고 정운 역시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불이 붙어 버렸다. “슬기야. 넌 정말 예뻐. 이리 와···.” “정말이지···. 방금 전에··· 하고···· 읍!!!” 결국 슬기는 다시 한 번 정운의 품에 안겨서 격렬하게 사랑을 나눠야했다. 다만 이번에는 맨 정신으로 말이다. 좀 전에 했던 약간 격렬했던 행위에 맛 들인 걸까? 평소와 달리 정운의 행위는 좀 더 거칠었고 슬기는 그런 정운에게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모든 행위가 끝난 후···. 슬기는 정운의 품에 안겨서 한쪽 가슴에 손을 얹고는 안겨서 말했다. “가끔은···. 이렇게 정운씨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쿡···.” 슬기가 얼굴을 사과처럼 붉게 물들이고 꺼낸 앙큼한 한 마디에 정운은 그만 웃어 버렸다. 평소와 다를 격렬한 행위에 흥분했던 것은 자신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 정운의 실소를 듣고 슬기는 정운의 가슴팍에 부끄럽다는 듯이 더욱더 파고들 뿐이었다. 한국이 일본의 영역을 접수하고도 몇 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세계 각국의 팀들은 일단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이제까지 일본이었던 팀을 한국 이었던 팀으로 교체 되었다. 정도로 인식한 것 같았다. 약간 거슬리는 것은 한영 동맹이라는 것이었는데···. 한국과 영국은 동맹을 맺은 후에 사냥터 공유라는 미증유의 결정을 내렸다. 이제까지 동맹을 맺었던 나라들도 자신들의 사냥터를 공유한 적은 없었다. 동맹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타국가 팀에게 대항하거나 혹은 레이드를 위해서일 때뿐이었다. 사냥터를 공유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영역에 타 국가의 유저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건 사실 심각한 위협이었다. 예전에 한국팀이 서독의 영역을 지나갈 때를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서독 팀은 그냥 지나갈 뿐인 한국을 줄곧 감시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통과 시켰다. 사실 그게 보통이었다.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전진기지 안까지 초대를 했던 영국이 파격적인 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세계 각국의 다른 팀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타국가 팀이 들어오는 것을 몹시 꺼려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사실 거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원래 실제 온라인 게임에서도 길드끼리 영역을 다투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대부분 사냥터에 나오는 몹들을 독점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 월드 서버는 예외였다. 우선 유저의 숫자에 비해서 영역은 상당히 넓은 편이었고, 몹의 숫자도 풍족했다. 다만···. 문제는 그 넓은 영역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요즘 순위가 좋아서 의욕이 많이 셈솟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응원해 주실때 더 열심히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194화 영역이 너무 넓다 보니까 감시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상당히 많았다. 그나마 자신들의 전진기지가 있는 부근에는 레이더가 있어서 타국가 유저를 파악 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타국가의 유저가 온다고 해도 그것을 알아챌 방도가 개인의 탐색 스킬 이외에는 전무했다. 그러니···. PK의 심각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팀원이 완벽하게 PK당하기만 하면 증거는 없다. 예전에 영국도 거기에 한 번 당했지만 증거가 없어서 섣불리 적을 자극했던 결과로 영국 팀은 제법 중간 축에 들어가는 강팀에서 최약소 팀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모든 침들은 자기 영역에 다른 국가의 유저가 오는 것은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막말로 몰래 죽이고 그냥 도망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이 월드 서버에는 타국가의 팀원의 전력을 깎아 먹지 못해서 안달이 난 팀들이 있었다. 혹은 우리도 예전에 당했으니 갚아야 한다. 라고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팀들도 있고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과 영국이 상호간의 영역을 공유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행위였다. 하지만 효과는 지대했다. 일단 이렇게 함으로써 70층의 30%, 그리고 71층의 20%를 한영 동맹이 차지하게 되지 않았는가? 양 국가의 팀원들을 다 합쳐서 23명이니까 그들에게는 충분한 활동 범위가 되었다. 이렇게 한영동맹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사냥에 주력하고 내실을 다지는 동안···. 타국가의 팀들 중에서도 특히 이 한영 동맹을 주시하는 팀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이었다. “한영동맹이라···.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겠는걸?” 중국의 대표 장한은 마치 황제의 옥좌처럼 화려한 자신의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중얼 거리면서 말했다. 그런 장한의 곁에는 중국의 조장들인 연문, 주원, 홍린이 모두 있었다. 그 중에서 주원이라는 남자가 장한에게 말했다. “주군···. 한국과 영국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장한이 도로 되묻자 주원은 미리 생각이라도 해 둔 것처럼 말했다. “일단 그들에게서 손을 때고 잠깐 지켜보는 것도 상수라고 생각합니다.” 장한도 생각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조금 우습게 봤는데 막상 한국과 영국이 힘을 합치고 나니 이제는 중국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영국은 그 숫자는 정지만 다이앤 여왕과 그 친위기사단은 알짜배기들이었다. 그리고 한국 역시 최근에 70층 레이드를 로스 없이 성공 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생각보다 훨씬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아직도 장한은 자신들이 한국과 영국을 상대로 싸운다고 해도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래서는 예전처럼 막 싸우려는 것은 좀 꺼러졌다. 여기서 중국의 전력이 줄어들어봤자 러시아와 미국을 이롭게 할 뿐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문제는·····. “으음····. 글쎄. 놈들은 우리 중국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텐데?” “사실 원한까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영국은 몰라도 아직 한국과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은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장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중국과 한국의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양쪽에 피해는 전무했다. 굳이 말하자면 중국 쪽에서 영입하려고 했던 일본 유저들이 사망했으니 피해를 보기는 했는데···. 사실 명분으로 따지면 전쟁중에 상대국의 유저를 영입한다고 난입했던 것은 중국이니 거기에 관해서 뭐라고 말하기는 애매했다. 그러니···. 그건에 관해서라면 장한도 이제 한 발 물러날 생각이 있었다. 예전에 그 일이 있고난 직후에는 노발대발 했었지만 그건 한국 팀의 저력을 미처 다 알지 못했던 때의 일이었다. 이제 한국 팀의 전력을 대부분 파악 한(어디까지나 장한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상태에서는 그런 사소한 일로 한국과 전쟁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어떤 의미로 보면 국제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야 할까? 똑같은 대사. 똑같은 행동. 똑같은 결과라고 해도 그 국가가 강대국이냐? 약소국이냐?에 따라서 가져오는 파장은 완전히 다르다. 국제사회의 정의와 논리는 기본적으로 강자의 의견을 따르면서 흘러가는 것이 인류사의 대체적인 흐름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서 한국팀과의 과오는 없던걸로 해도 좋은 장한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팀도 중국을 굳이 적대 관계로 몰고 가고 싶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장한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영국은 달랐다. 영국은 중국 때문에 대부분의 힘을 잃고 자칫 잘못하면 월드 서버에 다시는 진출하지 못할 뻔 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꾸준하게 중국은 영국에 압력을 넣었다. 심지어는 다이앤 여왕에게 자신의 부하인 연문의 첩으로 들어오라는 말도 했다. 자신의 첩도 아니고 부하인 연문의 첩이다. 이건 확실하게 격의 차이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고 사실상 영국팀을 모독하기 위한 제의였다. 그렇게 다년간의 시간동안 중국에 모도과 핍박을 받아온 영국이 이제와서 중국에 관한 원한을 잊어 버릴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겠지?’ 장한은 영국의 다이앤 여왕이 그 알량한 미모로 한국의 팀 리더인 박정운을 구워삶아서 치마폭에 돌돌 말아가지고 자기 뜻대로 조종하면서 중국에 덤벼드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 년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그리고 한국팀의 리더라는 놈이 거기에 넘어가면····. 쯧, 역시 그냥은 내버려 둘 수 없는데····.’ 장한은 영국의 원한 때문에 결국 언젠가는 한영 동맹과 전쟁을 벌여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영동맹 하나라면 별 문제가 아닌데····.” 아니다. 그건 큰 문제다. “문제는 놈들을 상대하는 틈을 타서 미국과 러시아가 우리를 밀어내려고 할 게 뻔하단 말이야.” 사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한영동맹. 아니 한국하고 전쟁이 벌어지면 그 후는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한국팀의 힘을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장한으로서는 아직까지 한국팀을 얕보고 있었다. 이길수는 있지만 건드리자니 찝집한 상대. 장한의 안에 있는 한국 팀에 대한 평가는 딱 거기서 멈춰 있었다. 그게 큰 착각이라고 지적해줄 사람은 장한의 곁에 없었다. 어쨌든 장한에게 있어서 한영동맹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 장한을 보고 연문이 말했다. “주군. 이렇게 된 이상···. 한영 동맹에서 영국만 솎아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능하겠나?” 연문의 말은 성공만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였다. 한영동맹을 경계하고 있는 이유는 영국이 중국에 가지고 있을 강한 원한 때문이었다. 그러니 영국만을 따로 솎아내서 처리 할 수 있다면 상책중에 최상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한단 말인가? 한영동맹에는 틀림없이 앞으로 있을 외부의 적대 세력에는 양국이 힘을 합쳐서 대응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말이다. 영국만 따로 건드릴 방법이 사실상 없어 보였다. 연문은 장한에게 귓속말로 자신이 생각한 계책을 설명했다. “·······어떻습니까?” “·····음. 적어도 실행할 가치는 있어 보이는 군.” 설명을 다 드른 장한의 반응은 생각보다 호의적이었다. “성공한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그럼 진행하도록 하라. 작전의 책임자는 너로 하겠다. 다른 조장들도 이 작전에 한해서 연문에게 적극 협조하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한이 한국과 영국을 향한 음모를 꾸미고 있을 시기에···. 정운은 평화롭게 사냥을 하고 있었다. “으으으····. 깜빡 졸았나?” 전진기지에서 흔들 의자에 앉아서 솔솔부는 바람을 즐기고 있는 정운이었다. 참고로 모습은 이래도 정운은 사냥 중이었다. “으하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흔들 의자에 자기 몸을 기대고 있는 와중에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정운은 정말로 열심히 사냥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전진기지의 정원에 앉아서 책보고 낮잠 자고 심심하면 맥주나 한잔 하고 있었지만···. 이 와중에도 아홉명의 그림자의 무장들은 부지런히 사냥에 주력하고 있는 상태였다. 즉, 오토 돌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 뭘 숨기겠는가?? 남들이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데 정운은 오토 돌리고 전진기지에서 놀고 먹고 편하게 쉬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나마 현장에서 어느 정도 대기라도 하고 있었다. 어차피 포탈을 타고 이동하깅 위해서는 정운인 직접 필드에 나와야 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필드에 와서도 전진기지가 있다. 즉, 이 안에서 그림자 장수들을 소환한 다음에 자신은 이 기지안에 그냥 늘어져 있기만 해도 그림자의 장수들이 알아서 척척 사냥을 해오는 것이다. 이런니 전진기지가 생긴 이후로 완전히 그림자의 장수들에게 맡겨두고 땡땡이 삼매경이었다. 사실 그림자 장수들도 점점 스킬에 익숙해 지면서 사냥에 효율이 올라가서 들어오는 경험치와 골드도 상당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옆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여···. 정운아. 좋은 것 가져왔는데 같이 할래?” “좋은 것? 결국 술이잖아요?” “그래서 안 하려고?” “해야죠. 주세요.” 정운에게 술병을 가져오는 남자 역시 편한 차림을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마치 바캉스라도 나온 것 같은 패션의 남자였다. 눈치 챘겠지만 이 남자는 바로 한중겸이다. 두 사람은 이윽고 바로 정원의 한쪽에 있는 정자에서 자기들끼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어디서 메이드 NPC가 날라서 가져온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쯤되면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한중겸도 지금 ‘사냥’ 중이다. “크으·····. 팔자 좋다.” “우리 이래도 되나 몰라요.” “으음···. 양심에 좀 찔리기는 한다만···. 사실 어쩔 수 없지. 뭐.” “실제로 이게 효율이 좋으니까요.” “그러게 말이다····. 심심한데 술 마시고 고스톱이나 칠래? 점당 만골드.” “관둬요. 우리 거기까지 망가지지는 말자고요.” 전진기지가 생긴 이후로 가장 편하게 사냥하는 사람은 아마 정운과 한중겸일 것이다. 이 둘은 소환수와 그림자의 무장을 이용해서 오토 돌리고 자신들은 안전한 전진기지에서 편히 쉬고만 있었다. 이 편히 쉬는 것도 그냥 편히 쉬는 것은 아니다. 술자의 정신력이 오래 가려면 심신이 쾌청해야 하고···. 뭐 그 핑계김에 아주 늘어져서 신선놀음의 만렙을 찍고 있는 두 사람인 것이다. 사실 정운은 그림자의 무장으로 오토를 돌리기는 돌려도 자신 역시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사냥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슬기와 세레나는 자신들끼리 사냥을 가는 일이 많아졌다. 두 사람과 정운의 사이에 레벨의 차이가,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능력의 차이가 좀 나기 시작했지 않은가? 그래서 정운과 함께 사냥하면 정운에게 경험치가 너무 몰리는 경향이 있었다. 예전에 슬기가 완전 초보일 때는 일부러 배려라도 하면서 경험치를 몰아줬지만···. 아무리 그래도 월드 서버에서의 사냥을 그렇게 까지 하기에는 어려웠다. 몹들의 수준이 상당하기 때문에 레이드가 아니라고 해도 함부로 봐주면서 싸우다가는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슬기와 세레나는 정운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결국 둘은 따로 사냥을 해서 레벨업에 주력하기로 했다. 정운은 둘과 따로 떨어지니 막상 혼자 사냥하기도 그렇고 해서···. 결국 전진기지에서 오토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사냥 효율은 아홉 배에 달했으니 충분하다고 봐야 했다. ============================ 작품 후기 ============================ 쉐도우 아미 + 전진기지 = 오토사냥제가 만든 설정이긴 하지만.... 주인공이 많이 날로 먹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95화 <각국의 처세> 한중겸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이민지와 한 팀이 되어서 사냥중인 한중겸이지만 한중겸과 이민지의 경우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민지의 정령은 강력하고 맷집이 거의 무한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강하지만···. 그 대신에 술자가 곁에 있어야 했다. 정운이나 한중겸처럼 일단 소환하고 정신력만 계속해서 지속하면 되는게 아니란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정운이나 한중겸처럼 오토를 돌리는 사냥은 불가능 했다. 처음에 한중겸은 그래도 이민지와 같이 활동 하려고 했지만···. 혼자서 전진기지를 지킨다. 라는 미명아래에 늘어져 있는 정운이 몹시 부러웠지만 그래도 이민지를 혼자 두기는 미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민지는 되려 한중겸보고 집이나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한중겸하고 같이 움직이느니 차라리 혼자 다니는 편이 경험치도 많이 먹고 편하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남자를 뻥 걷어차 버렸고 한중겸은 하루하루를 술판과 나태함으로 보내고 있었다. 사실 그 내막에는 사실 사냥중에 시시때때로 달라붙는 한중겸의 치근덕거림이 원인이었지만···. 그것까지는 정운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서 두 사람은 마치 인생의 나태함의 끝은 어디인가? 라는 주제를 깊게 연구하는 것처럼 나태일로를 깊이깊이 파고 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너무 심심한 나머지 두 사람이 우리 인생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라는 고민에 빠질 정도에 이르렀을 때 쯤···. “정운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전진기지에 고용되어 있는 집사 NPC가 정운에게 와서 말했다. “손님? 누군데?” “다이앤 여왕님과 다른 한 분은 미처 알지 못하는 분입니다.” “····알았어. 그럼 응접실로 안내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정운은 집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라는데 형님도 가실래요?” “여기는 술이 있고 응접실에 가면 손님이 있다라···. 내가 어떻게 할 것 같냐?” “····저 혼자 갔다 올게요.” 저 술병의 내용물이 텅텅 비기 전에는 정자에 불이 나도 벼락이 떨어져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한중겸은 그런 남자였다. 응접실에 가자 정운의 눈에 익숙한 다이앤 여왕과 함께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남자를 보고 정운은 잠시 생각했다. ‘으음····. 누구더라?’ 생각 날 것 같으면서 안 나는 정운에게 그 남자가 먼저 일어서서 다가오더니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서독의 대표인 콘러드 크라우스입니다.” “예···. 한국팀의 리더인 박정운입니다.” 정운은 속으로 ‘아, 그래. 서독의 리더였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이제 알아봤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인사를 했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자리에 앉고 정운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이앤 여왕님이 손님을 데리고 오신 것에는 뭔가 용건이 있어 보이는데···. 어떤 용무신가요?” 직설적으로 바로 질문하는 정운을 보고 다이앤 여왕은 여우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호호호··. 전 그냥 중간다리일 뿐이랍니다. 여기서부터의 용무는 두 분이 알아서 하셔야 할 거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난 이제 몰라요. 라고 하면서 살짝 뒤로 빠졌다. ‘쯧, 하여튼 여우라니까···. 어차피 무슨 용무인지는 대강 짐작이 가지만 말이야.’ 정운의 예상대로 서독의 대표는 상당히 절박한 표정을 하고는 정운에게 말했다. “박정운님. 부탁 드립니다. 우리 서독을 한영 동맹에 끼워 주십시오.” “··········.” ‘역시 그거냐?’ 정운은 겉으로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속으로는 혀를 찼다. 애당초 서독이 왔을 때부터 이런 상황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라운드 월드 서버에서 최대 양고 세력을 꼽으라면 영국과 서독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서독의 사정은 영국보다 한층 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독일은 제법 강팀이다. 총 팀원이 21명이고 그들 중에 150이상의 고 레벨도 제법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독일이 양팀으로 내부 분열을 일으켜서 갈라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동독에 10명. 그리고 서독에 11명이 배정되어 있다. 머릿수만 보면 서독이 동독보다 더 강해보지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국가별 영역을 살펴보면 서독은 70층에 10%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동독은 70층의 20%, 그리고 71층에도 10%의 영역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 동독이 서독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서독이 밸런스를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이 하나 되기를 원하지 않는 타국가의 팀들이 절묘하게 밸런스를 조종해 왔기 때문이다. 다른 팀들의 입장에서는 강팀인 독일팀 하나가 경쟁자로 있는 것 보다는 약소팀인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개의 경쟁자가 있는편이 더 좋았던 것이다. 주로 동독은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손을 잡는 일이 많았고···. 서독은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과 손을 잡는 일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서독은 최근에 자주 동맹관계에 있으면서 가장 비슷한 처지였던 영국이 한영동맹을 체결하고 슬슬 재기의 기지개를 펴는 것을 봤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자신들 하고 비슷했던 이웃이 갑자기 잘 나간다 싶으니 어떻겠는가? 우리도 저렇게 해 볼까? 라고 생각할 것은 뻔했다. 한영동맹에 한자리 끼어서 삼국연합체재를 만들고 싶은게 아마 서독의 심정일 것이다. 문제는···. ‘그게 우리 한국에 무슨 이득이 있느냐 라는 거지?’ 영국과 동맹을 맺음으로 인해서 이미 중국이라는 잠재적이 적팀을 만든 한국이다. 여기서 서독과 동맹을 맺으면 일단 동독이 걸거치고···. 거기에 동독과 중국이 손을 잡고 대항하면 아마도 그 기세에 편승하기 위해서 한 두 개 정도는 또 다른 팀들이 가세할 것이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일도 아니고···. 그런 피곤한 짓은 사양하고 싶군.’ 정운은 여기서는 좀 야속하더라도 딱 잘라서 거절하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서독까지 우리 세력에 합류하면 타국가의 팀들이 위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운님····.” 서독 대표가 정말로 불쌍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은 냉정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역시 그 얘기는 못 들은걸로 하겠습니다.”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다이앤 여왕도 미처 예상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 사실 서독의 대표인 콘러드 크라우스와의 안면을 생각해서 정운에게 소개는 시켜줬다.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동맹을 끌어내는가는 그녀가 알바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서독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 ‘나도 한영동맹을 채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귀중한 담보를 맡겼는데····.’ 그녀는 자신은 그렇게 큰 대가를 치뤘는데 서독에서는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덥썩 동맹을 맺는다면 그때는 오히려 자신이 불쾌할 것 같기도 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양국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서독의 대표는 동맹에 들기만 하면 뭐든지 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콘러드 크라우스를 보고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최근에 전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깔끔하게 끝났고···. 지금 월드 서버의 상태는 안정적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리와의 동맹에 그렇게 목을···. 음, 적당한 표현을 모르니 실례하겠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목을 매시는 겁니까?” 정운의 말에 콘러드 크라우스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저희들은···. 다른 국가들하고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다른 나라의 팀들은 하다 못해서 자신들의 서버에라도 가면 안전하지만 우리는····.” “아···.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눠져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서버는 하나죠?” “예. 그렇습니다.” “····듣고 보니 조금 궁금한데··. 어째서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눠져 있습니까? 혹시 그 시대에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신 분들이 현실 세계의 영향을 받은 겁니까?” 정운의 말에 콘러드 크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반쯤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저를 비롯해서 동독의 베르너 프리치도 그 시절의 인간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동족상간이나 다름없는 분쟁을 벌이는 건가요?” 사실 정운도 월드 서버에 북한 사람이 올라오면 어떻게 할지 몰랐다. ‘아마 그 북한 사람이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만약 소원이 김씨 일가 정권 붕궤 같은 것이라면 적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말 시작부터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 어쩌고 저쩌고 한다면 그때부터는 매우 피곤해 질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다 온 박추성이 일본인들이라면 이를 갈았던 것처럼 한중겸은 6.25참전자였다. 북한 사람들이 올라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긴···, 북한은 스마트 폰이 적어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 자체가 적을지도 모르지.’ 정운이 잠시 그렇게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콘러드 크라우스의 설명이 시작 되었다. 원래 독일 서버에는 두 개의 길드가 심각한 분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때는 동독길드와 서독길드가 아니었다. 그때는 독일연맹과 나치당 길드라는 길드였다고 한다. 독일 서버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지고 원망을 가지고 들어온 히틀러의 추종자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거의 박추성하고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자들인데 그들이 뭉쳐서 거대한 길드를 만든게 나치당 길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길드에 맞서기 위해서 여러 개의 길드가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 독일연맹이라는 것이었다. 역사인식의 차이라는 것일까?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을 옹호하는 역사 교육을 했던 일본서버에서는 도조 마사토의 폭주를 막을 사람들이 적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래도 상당수가 나치당이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비교적 후기에 들어오는 사람일수록 나치라는 말을 그저 모독으로 받아 들였고···. 결국 처음에는 다서 열세였던 세력을 점점 역전시켜가던 독일연맹 길드는 나치당 길드를 몰아내고 독일 서버를 통일 시켰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사람이 모여서 체재를 만들고 그걸 관리하기 시작하면 그건 이미 작은 정치나 다름 없다. 그리고 정치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이 세상의 모든 정치세력은 자신들이 정의에 편에 있기 위해서 반대편에 악당이 있어야 한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이 세상에 정치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착하고 쟤들이 나빠요.’ 라는 명분을 달고 시작 하는게 99.9%의 모습이었다. 크고 작고 약간 지저분하던가? 많이 지저분하던가? 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정치 라는게 그랬다. 독일연맹 길드의 간부들은 나치당을 몰아내고 나서 적이 없어지자 자신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동독 출신들은 동독으로···. 서독 출신들은 서독으로···. 그렇게 양편으로 나뉘어서 싸워져 왔고 그들은 그 상태로 월드 서버에 진출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상황에 오기는 했는데 솔직히 우리 서독이 너무 열세입니다. 부디 도와 주십시오.” 정운은 서독 대표인 콘러드 크라우스의 설명을 다 들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사람은···. 바보인가? 아니면 어리숙하게 보여서 날 방심시키기 위해서 책략이라도 꾸미고 있는 걸까?’ 정운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다. 자기 욕망이 최우선인 인간들이 즐비한 이 장소에서 그냥 무작정 불쌍하니까 도와 달라니··. 그렇게 해서 용케 월드 서버까지 올라왔다면 그건 기적이었다. ‘아무래도 고도의 책략이거나, 아니면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상황이 절박하다는 거겠지···.’ ============================ 작품 후기 ============================ 김신수의 행방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신수는 잘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96화 사실 어느 쪽이든 정운의 결정은 바뀌지 않는다. 그냥 불쌍하다고 해서 남의 폭탄을 자기가 들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정운님···.” 콘러드 크라우스가 인상을 불쌍하게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정운은 미간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좀 냉정하게 말해서···. 자기 불똥은 자기가 쳐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정히 동맹을 원하신다면 하다못해 우리에게 뭔가 반대급부를 가져 오십시오. 저도 한 팀을 이끌고 있는 입장인데 그저 남의 사정이 딱하다는 이유로 적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 결국 콘러드 크라우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래도 물러나 버리고 만다. 콘러드가 나간 이후 정운은 다이앤 여왕을 보고 말했다. “혹시 이 일로 불쾌하시다거나 앞으로 양팀간의 우호에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길까요?” “아니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이앤 여왕은 전혀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찻잔을 살짝 내려놓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그보다는 조심하십시오. 어느 정도 눈치는 챘겠지만 저 남자는 그냥 순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것도 월드 서버에서 한 팀을 이끄는 입장까지는 올라오지도 못했겠죠.” 정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오늘 내 앞에서 보인 모습은 일종의 연기겠지···. 저렇게 순진하고 마냥 선한 인상의 인간일 리가 없어.’ 정운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확신은 맞았다. 서독의 영역····. “돌아오셨습니까? 총독각하.” “음···. 역시 상대도 바보는 아니더군.”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온 콘러드 크라우스는 부하들을 보면서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부하들 앞이라도 태도가 달라진 정도가 나이었다. 역시 정운의 앞에서 보였던 애걸복걸하는 모습은 연기였던 것이다. “뭐, 크게 상관은 없다. 최소한의 목적은 이미 이뤘으니····. 우리는 앞으로 있을 풍랑에서 우리 몫을 챙긴다. 알겠나?” “예!! 총독각하!!” “예!! 총독각하!!” “예!! 총독각하!!” 과연 콘러드 크라우스는 뭘 어떻게 꾸미고 있는 것일까? 서독의 대표가 가고 다이앤 여왕도 바로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최근 자국의 서버인 영국 서버에서 새로운 후보자를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잇는 중이었다. 일단 영국 최대의 약점인 적은 머리수를 커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이앤 여왕이 나간 직후에 기가 막힌 타이마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중국에서···?” “예. 그렇습니다. 주인님.” 집사 NPC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고개를 까딱였다. “쯧, 오늘 따라 무슨 날인가? 손님이 왜 이렇게 많은거야?” “어떻게 할 거야?” “여기로 바로 안내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집사의 안내를 받아서 중국의 유저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중국의 홍린이라고 합니다.” 정운의 앞에 나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것은 몸에 착 달라 붙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박정운입니다.” 정운은 대답을 하면서 상대를 슬쩍 관찰했다. 늘씬한 키에 착 차이나 드레스의 굴곡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몸매는 동양인의 규격을 확실하게 뛰어넘은 볼륨이었다. 얼굴은 예쁘다기 보다는 뇌쇄적이다. 라고 말하는게 어울릴 것 같았다. 척 봐도 기가 강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런 여성이 앞에서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더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몸에 착 달라붙은 차이나 드레스와 드레스의 트임 사이로 보이는 허벅지와 늘씬한 다리는 남자의 시선을 자석처럼 빨아 들였다. ‘미인계는 아니겠지?’ 왜 아니겠는가? 굳이 세 명의조장 중에서 가장 약한 홍린이 한국에 온 이유는 그녀가 아름다운 여성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대화의 장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미모는 날카로운 칼 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다만 홍린의 미모가 돌파하기에는 정운의 방어력이 더 강했을 뿐이다. ‘······· 싸구려가 아닌 남자군.’ 홍린은 자신을 보고도 냉정하게 말하는 정운을 보고 미인계가 통하지 않는 것을 확신했다. 혹시나 통하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자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여기에 온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다. 홍린은 자신이 가져온 서찰 하나를 정운에게 건내 줬다. “이것은 저의 주군께서 박정운 님에게 보낸 서찰입니다. 확인하여 주십시오.” 정운은 봉투를 받아서 안의 내용을 확인해 봤다. 그리고 서신의 내용을 다 읽어본 정운은 담담하게 말했다. “별로 큰 용건은 아니군요.” 일본과의 전쟁에서 한국과 중국이 벌였던 작은 분쟁에 관해서 사과를 표하고 앞으로 척을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라는 식의 내용을 길게길게 늘여서 써 놓은 편지였다. 정운의 담담한 말에 홍린은 살살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우린 중국에서는 한국과 적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여기 배상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배상금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아이템을 늘어 놨다. 검과 창, 그리고 갑옷과 방패까지···. 수북하게 쌓인 아이템을 보고 정운이 말했다. “이게 배상금이라고요?” “예. 골드로 화전하면 못해도 10억 골드는 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맙게 받도록 하죠.” 10억 골드면 월드 서버의 유저들에게는 그렇게 많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지 않은 금액이었기에 부담없이 받을 수 있기도 했다. “그럼 저희들의 사과는 받아 들인 것으로 알겠습니다. 혹시 부족하시다면 천녀의 몸도 드릴 수 있는데 어쩌시겠습니까?” 하위급 유저라면 모를까? 월드 서버, 그것도 중국팀의 핵심 간부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정운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질 나쁜 농담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호호····. 과연 농담일까요?” “·············.” 정운은 굳이 더 말을 늘이지 않았다. ‘이 여자하고 대화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해.’ 결국 홍린은 선물만 한 가득 남기가 돌아갔다. 서독에 이어서 중국도 한국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았는데···. 과연 일이 어떻게 될지는 향후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한국 팀이 월드 서버에 올라오고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딱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정운은 일단 영역내를 산야 하면서 탐색을 했지만 수확은 제로였다. 사실 새로운 층을 개척했을 때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퀘스트의 발굴이었다. 퀘스트로 인해서 얻는 보상은 1년치 사냥에 필적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퀘스트의 발굴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중에 하나였다. 다만···. 70층과 71층은 이미 기존에 진출했던 나라들,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집중적으로 훑고 지나간 후였다. 이제 와서 숨겨진 퀘스트를 발견하는 것은 사실 무리였다. 결국 중운은 당초의 예정이었던 게임 공략에 집중하기로 했다. 원래는 중국을 비롯해서 다른 나라들의 대응을 관찰하기 위해서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이제 잠잠하게 시간도 좀 흘렀으니 슬슬 71층의 레이드를 준비해야 했다. 정운은 이번에도 영국과 공동으로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 영국 유저들을 불렀다. “영국 유저분들은 71층의 레이드에 도전해 보신 적 있습니까?” 회의실에서 정운이 질문을 하자 다이앤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딱 한번이지만 레이드를 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법 오래전의 일이군요. 그리고 그때는 슬쩍 정찰이나 해 볼까 하면서 찔러본 정도였기 때문에····.” “그다지 자세한 정보는 없다 이거군요.” “예. 다른 국가라들이라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레이드에 관한 정보는 워낙에 공유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악마들이 세계 각국의 인간들을 나라별로 찢어 놓은 이유가 실감이 팍팍 났다. 하여튼 협조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월드 서버의 유저들이었다. ‘어쩔 수 없지··. 없으면 없는 대로 해 보는 수밖에····.’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영국이 가지고 있는 정보만이라도 일단 받았다. 다이앤 여왕은 자신의 ME에 있는 71층의 보스몹에 관한 정보를 공개했다. 빌리 더 키드 LV. 160~165 [두 자루의 권총을 잘 쓰는 총술사. 굉장히 빠르고 그의 총알을 일단 발사되면 적에게 빗나가는 법이 없다.] “···빌리 더 키드? 이거 실존 인물이었나?” 정운은 빌리 더 키드가 영화속에만 나오는 인물인줄 알고 있었다. 그런 정운의 생각을 다이앤 여왕이 정정해 줬다. “예. 그렇다고 하더군요. 영화에서는 좀 의적처럼 묘사될 때가 있지만···. 실제는 그냥 도적이죠.” “그런 인간이 왜 의적 캐릭터가 되었는데요?” “어릴 때 자기 어머니를 범하려던 놈을 죽인게 생애 첫 살인이었거든요. 그걸 시작으로 무법자 인생을 살기 시작했는데 그게 동정표가 좀 모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인간이 한을 품고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이 되었단 말이지···. 골치 아프겠는걸?” 정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캡틴 존 존스와 알 카포네를 상대하면서 인간형의 보스몹이 얼마나 짜증나는 존재인지는 충분히 알았다. 괴수 형태의 보스몹들은 아무리 강력해도 힘이 강한 짐승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놈들은 명백하게 자기 의사를 지니고 싸우고 있는 놈들인 것이다. 어디서 무슨 짓을 어떻게 할지를 모르기에 더 짜증이 났다. “빌리 더 키드라···. 어떤 놈이던가요? 아니 싸우는 지형은요? 알 카포네가 금주법 시대 도시였으니 이 놈은 어디 목장에서 싸우나요?”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목장은 아니지만···. 서부 개척시대 배경의 마을이기는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역시 그 안에 부하들이 가득하고요.” “아니요. 부하들은 없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바로 빌리 더 키드의 영역이죠.” “부하들이 없다고요?” “예. 알고 계시겠지만 부하들이 없다는 얘기는···.” “그만큼 보스몹이 더 강하다는 얘기죠.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비록 보스몹이 강하다고는 해도 공략이 불가능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73층까지 올라간 팀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이미 빌리 더 키드를 공략했다는 애기다. 다만··. 빌리 더 키드를 상대하면서 가능하면 인원에 손실을 가져오고 싶지 않은 정운이었다. 한영 동맹의 숫자를 다 합쳐도 23명. 이들 전원을 희생자 없이 잡기 위해서는 가능한 최선을 다하고 만전을 기울여야 했다. “······공격 패턴은 어떤가요? 혹시 놈의 스킬을 보셨습니까?”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유감 스럽게도 스킬은 본 적 없습니다. 다만··. 거기 ME에 있는 설명대로 빌리 더 키드의 총알은 절대로 빗나가지를 않았습니다.” “빗나가지 않으면··. 막아야 한다는 건가요?” “예. 제 부하중에 재레미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영국의 유저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빨라서 질풍의 재레미라고 불렸었죠.” “············.” 유치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거기에 관해서는 집고 넘어가지 않는 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보스몹에 관해서 여러분들이 많은 의견을 주셨죠. 여전히 추가 접수중이고 감사합니다. 히틀러나 진시황을 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뭐 사실 이 정도 네임밸류면 70층 언저리 보다는 좀 더 위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직 아끼고 있습니다. 잭 더 리퍼는 70층대에 맞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놈이 빌리 더 키드나 알 카포네 보다 유명세가 높을까요? 낮을까요? 애매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97화 <71층 레이드 도전> 다이앤 여왕의 말은 이어졌다. “그 재레미가 분명히 빌리 더 키드의 총알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피한 총알이 어째서인지 그대로 재래미의 몸에 적중하더군요.” “···유도탄이라는 건가요?” “그거하고는 좀 달라 보였습니다. 어쨌든 그 한 방으로 재레미는 자신의 체력이 3분의 2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어진 공격에 그대로·····.” 다이앤 여왕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정보의 공유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충실한 자신의 부하가 죽었을 때를 떠올리는 기분이 우울한 것이었다. “당시 그 사람의 레벨은 얼마였습니까?” “당시에 134였습니다.” “방어력은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렇게 방어력이 탄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속도 중시형이었기에····.” “그렇군요.” 정운은 거기까지 들은 정보를 일단 정리해 봤다. 상대의 공격은 절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강력한 방어로 막아내야 한다. 그런데···. 레벨이 134인 기사 캐릭터의 체력 게이지를 한 방에 3분의 2까지 깎아 버리는 공격력이라니···. 알 카포네의 공격력도 강했지만 그것보다 더 강하다고 봐야 했다. 그런 놈의 공격을 몸으로 때워야 한다니····. ‘다른 놈들은 어떻게 71층을 돌파한 걸까? 혹시 하위 레벨의 유저들을 데리고 와서 무작정 희생양으로 바친 것은 아니겠지?’ 정운은 설마하면서 생각했지만 그게 정답이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공격. 누군가는 몸으로 때워야 하는 공격. 그렇다면 가장 쓸모없는 인간을 총알 받이로 써 먹자. 라는 생각을 하고 이 71층을 돌파한 팀들이 제법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돌파했다. 프랑스만은 다른 방식으로 돌파했지만 그건 프랑스에 상당히 특수한 유저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자. 어땠든 정운은 그렇게 레이드에거 다수의 희생자를 낼 생각은 없었다. 한국팀의 레이드는 어디까지나 안전 제일주의였다. 레이드에 실패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거기서 사망자가 발생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그러니 정운으로서는 레이드는 최대한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운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정보가 너무 적군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딱 한번 싸워본 상대일 뿐이라서···.”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여왕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정찰을 겸하면서 정보를 더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응법은 거기서 찾아 보도록 하죠.” 어차피 여기서 회의만 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벽이 부딪힌 상태에서 계속 엉덩이만 의자에 붙이고 있는다고 좋은 생각이 날리도 없고····. 결국 71층 레이드는 약간의 리스크를 짊어지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날. 한국팀과 영국팀은 빌리 더 키드의 영역에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다이앤 여왕이 정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정운에게 속삭였다. “정운님. 아시겠지만···.” “예. 미행이 붙었군요. 어디인지 아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짐작은 감니다만····. 은신술로 따라오고 있어서요. 어떻게 할 까요? 잡아 볼까요?” 정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저 정찰 인원을 달고 가느냐? 아니면 잡느냐? 잠시 생각하던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놔 두죠.” “괜찮을까요?” “어쩔 수 없지요.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 가는 곳은 중립지대이니····. 그저 따라만 오는 것을 가지고 까칠하게 굴었다가는 무슨 트러블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건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팀원들에게 몰래 전달해 두세요. 미행자가 있다고.”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일단 순순하게 따랐다. 한영동맹은 대등한 관계 속에서 맺어져 있지만 한국과 영국, 어느쪽에 파워 밸런스가 치중 되어 있는 지는 서로간에 잘 알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얌전히 순종한 다이앤 여왕을 뒤로 하고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어디일까? 중국? 지금으로는 거기가 가장 짚히기는 하는데····.’ 정운은 자신들이 지금 가장 적대하고 있는 중국을 미행자 1순위에 올렸다. 하지만 꼭 중국이라고 생각 할 수만도 없었다. 한영동맹이 70층 레이드를 무혈로 성공 시킨 다음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시 레이드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어느 나라라고 해도 정찰 한 두 명 정도는 보낼 법 했다. 결국 레이드 전에 괜한 다툼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단 모른체 외면했다. 어차피 그저 혼자서 따라오기만 해봐야 심각한 위협은 줄 수 없었다. ‘지금은 눈앞에 레이드에 집중하자. 어차피 적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강 정해져 있으니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벅저벅 걸음을 재촉했다. “저기가 빌리 더 키드의 영역입니다.” 현장에 도착한 한국 팀에게 다이앤 여왕이 말했다. 황야지대의 한 가운데에 있는 300미터 정도의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을. 거기가 바로 빌리 더 키드의 영역이었다. “우선은···. 간단한 정찰을 해 보죠. 쉐도우 아미.” 정운이 그림자의 무장 아홉 명을 전원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최근 들어서 자기는 놀고먹고 부하들만 고생시킨 못된(?) 주군이지만 그래도 충성스러운 그림자의 무장들은 정운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정운은 그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안에 들어가면 빌리 더 키드라는 보스몹이 있을 거다. 싸울 수 있는 만큼 싸우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와.”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림자 장수들은 정운에게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리고 빌리 더 키드의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운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좀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 절 공격하지 못하게 신경 써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스터.”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듬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은 안심하고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최근에 그림자 장수들을 통해서 오토를 돌리면서 정운에게도 몇 가지 발전이 있었다. 우선은 쉐도우 아미를 지속가능한 시간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원래 쉐도우 아미에 그림자 장수들이 깃들면서 대폭 시간이 늘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24시간을 다 꺼내놓고 있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게임으로 치면 풀 오토라고 할까? 정운이 전진기지에서 밥을 먹던? 잠을 자던? 뭘 하고 있던 간에 그림자의 장수들이 소환되어서 전투를 하고 있는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어느정도는 원격 조종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림자 무장은 정운이 가지고 있는 쉐도우 아미의 자동조작에서 시작 되었다. 원래 그림자의 무장이 깃들기 전에 쉐도우 아미에는 두가지 모두가 있었다. 정운이 직접 조종하는 수동 조작과 무조건 적을 공격하게 하는 자동 조작이 말이다. 그림자의 장수들이 깃들고 나서 자동 조작에 가까워 졌지만····. 이제는 정신을 집중하면 그림자의 장수들에게 잡간 정운의 의지를 깃들게 해서 약간의 조종을 할 수 있었다. 아직 한 두명을 동시에 조종하는 것만 해도 10분만 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정신력의 소모가 막대했지만···. 그래도 장족의 발전임에는 틀림 없었다. 또 마지막으로 의외의 수확이었는데 시선 공유가 자연스러워 졌다는 것이다. 원래 쉐도우 아미의 콘트롤을 무장들에게 넘긴 후라고 해도 약간의 간섭이나 혹은 시야의 공유는 가능했다. 하지만 그걸 집중해서 보려면 한 명, 혹은 두 명정도가 한계였다. 생각해 보라. 시점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 시점을 해석해서 이해하는 뇌는 하나 뿐이다. 시야가 셋 이상으로만 늘어나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사냥을 그림자의 무장들에게 일임하고 그들의 사냥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야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정운은 그들 전원의 시야를 동시에 파악 할 수 있었다. 그건 상당히 신기한 감각이었다. 보통 한 명의 인간이 살아가면서 평생 보는 시야는 하나 뿐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눈으로 보는 시야 하나로 평생을 살아가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정운은 무려 아홉의 시야를 공유해서 그걸 동시에 관찰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익숙해진다고 해도 보통 인간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운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에는 정운의 유니크 패시브 스킬인 집중력이 한 몫을 했다. 최대 집중하면 체감 시간을 300% 느리게 하는 집중력 덕분에 여러 개의 시야가 들어와도 머릿속으로 어찌어찌 이해가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문제라면 아홉 개의 시야를 모두 공유하면 정운의 정신력이 그야말로 한계치에 가깝기 때문에 정운 자신은 완전히 무방비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동료들이 몸을 맡아주지 않으면 정운으로서는 도저히 써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약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정찰이 목적이라면 최고의 스킬이기도 했다. ‘어디 보자····. 누가 먼저 발견할까?’ 정운은 빌리 더 키드의 영역안에 들어간 부하들의 시점에서 차분하게 관찰했다. -·····이상하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그림자의 무장들은 정운에게 명령 받고 하나하나 떨어져서 조심스럽게 마을을 수색하고 있었다. 마을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육감을 총 동원한 그림자의 무장들은 개미의 발자국 소리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하지만 마을을 수색하고 나서 10분···. 적의 기척은 고사하고 그 어떤 생물의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탕!!! -크윽····.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수색중이던 마초의 머리가 날아갔다. 물론 머리가 날아간다고 해도 본체가 그림자로 이뤄져 있는 마초는 금방 부활했다. 마초는 금방 재생한 몸을 가지고 총알이 날아온 방향쪽으로 달렸다. 콰지직!!! 다행히 이번 마을의 건물은 파괴 불가속성이 아니었던 것일까? 마초는 일직선으로 마을의 헛간을 부수고 총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렸다. 하지만 마을의 경계 끝까지 달려도 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마초는 틀림없이 적의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적이 보이지 않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 적의 기척을 놓쳤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애당초 적은 이쪽 방향에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격은 틀림없이 여기서 날아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 큭!! 탕탕!! 이번에도 다시 마초를 향해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한 발은 마초의 다리를 또 한 발은 마초의 심장을 꿰뚫었다. 마초는 그대로 날아간 다리 때문에 중심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크윽····. 수치군···. 갑작스런 기습이기는 하지만 마초로서는 큰 수치였다. 살아 생전에도 전쟁터에서 무릎을 바닥에 대어 본적은 없는 마초였다. 그런데 설마하니 죽고 나서 이런 일을 겪게 될 거라고는 본인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보통 총알이면 이렇게 그림자의 무장을 하고 있는 마초가 쓰러질 리가 없다. 하지만 빌리 더 키드의 총알은 알 카포네의 그것처럼 보통 총알은 아닌 모양이다. 놈의 총알 한 방이 맞을 때 마다 수박만한 구멍이 났다. 처음에는 머리가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지금도 다리 한 짝이 떨어지고 배에도 수박만한 구멍이 뚫어져 버렸다. ============================ 작품 후기 ============================ 자칫 잘못하면 며칠 정도는 연재를 못 하거나 하루 일연재로 지낼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가족중에 어머니의 발목이 편찮으셔서 며칠 정도 어머님 집에 가서 병수발을 좀 들어야 할 예정이라서... 가능한만큼 쓰기는 쓰면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하루 2연참 페이스가 잠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히며 사과 드리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198화 마초가 일단 쓰러진 것을 확인하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까? 확인사살을 위한 추가타가 날아왔다. 탕!! 탕탕탕!!! -제길······. 마초의 입에서 욕지기가 흘러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의 실체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여러 발의 총알이 연달아서 발사 되었고 마초는 그대로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한계 이상의 대미지를 입은 쉐도우 아미는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운의 곁으로 돌아가서 다시 재소환해야 했다. “····마초가 순식간에···?” 정운의 중얼 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옆에서 슬기가 말했다. “무슨 일 있어요? 오빠?” “어떻게 된 건데? 정운아 설명 좀 해봐.” 슬기에 이어서 한중겸도 정운에게 상황을 물었다. 마을 밖에서는 총성 소리만 들렸을 뿐이지 상황이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은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상태이기에 사람들의 궁금증에 대답해 주지는 못했다. 대신에 정운은 쉐도우 아미들을 통해서 명령을 내렸다. ‘기습으로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정운은 나름대로 묘책이라고 생각한 묘수를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과연, 알겠습니다. 주군. -그런 수가 있었지. -과연 주군이시다. -당장 시행하도록 하지. 정운에게 명령을 받은 그림자 장수들은 그대로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정운의 명령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콰쾅!!! 콰앙!!!! 콰콰콰콰쾅!!! 그림자 장수들은 그대로 미친 듯이 날뛰면서 마을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알 카포네의 영역처럼 파괴불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마을 자체를 부셔서 엄폐물을 만들면 적을 끌어 낼 수 있을것이라고 정운은 생각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으랏챠!!!! -크하하하!!! 다 부셔져 버려라!!!!! 평소에 스트레스라도 쌓인 것일까? 몇몇 장수들은 정말로 신명 난 것처럼 마을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부수던 무장들 중에 한 명이 흘깃 검은 그림자가 부서진 벽 뒤로 보이는 것을 느꼈다. -누구냐!!!? 그 그림자를 발견한 장수는 황충. 정운의 그림자의 무장들 중에서도 특히 원거리 공격에 통탈한 남자였다. -칠성섬시(七星閃矢)!!! 칠성섬시(七星閃矢) : LV.5 (일곱 발의 화살을 연달아서 발사한다. 첫발 이후로 한 발 한 발 추가타를 맞을 때 마다 중첩 대미지를 발생 시킨다.) 후한말 삼국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알려진 황충은 활을 즐겨 사용했다. 사실 다른 무장들도 활을 못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여포, 조운 등등···. 다른 장수들도 스킬 없이 그냥 활 쏘기를 하면 자신들의 주인인 정운보다 더 높은 명중률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그 중에서도 황충은 격이 달랐다. 원래 정운은 궁술을 애용하기는 하지만 그 빈도가 높지는 않았다. 초보 시절에는 원거리에서 적에게 강한 대미지를 줄 수 있는 활이 주력공격이던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성장하는 것에 따라서 공격의 패턴도 바뀌어 갔다. 지금에 와서는 창 40% 검30% 활20% 정도의 비율이라고 할까? 창을 가장 많이 사용했고 검이나 활을 살짝 보조라는 느낌으로 살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충의 궁술은 전혀 달랐다. 이 황충이라는 무장은 정운도 익히기만 하고 잘 활용하지 못하던 궁술의 스킬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방금 전에만 하도 섬광처럼 날아간 일곱 발의 화살 중에서 두 발이 적에게 맞았다. 원래 표적을 조준하기가 어려워서 정운은 이런 스킬을 잘 쓰지 않았다. 천뢰지망처럼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폭격 스킬이라면 모를까? 한 발 한 발 꼼꼼하게 조준하는 스킬에는 좀 약했던 것이다. 그것을 황충은 아주 자연 스럽게 사용해서 그 중에서 두 말이나 적중 시켰다. 보통 일곱 발 중에 두 발이면 그게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상대는 정말 소름 끼치게 빨랐으니 말이다. -이놈!!! 어디를 도망 가느냐!!!? 황충은 발견한 적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함을 지르면서 쫓아갔다. 흐릿한 그림자는 두 발의 화살로 대미지를 받은 영향은 전혀 보이지 않는 민첩한 동작으로 황충을 따돌려 갔다. 황충도 충분히 빠른 편이데 놀랍게도 저 흐릿한 그림자는 그것보다 더 빨랐다. 하지만···. -잡았다!!! -여기서 놓칠 쏘냐!!? 그림자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은 여기를 장판파로 창각한 것 같은 장비와 그 옆에서 수염을 휘날리고 있는 관우였다. 황충이 적을 발견하고 교전하는 즉시 정운은 이미 그림자의 무장들에게 지시를 내려서 그 교전 지역으로 무장들을 모은 것이다. “···건방진 것들.” 어느새 자신의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적들을 보고 흐릿한 그림자처럼 생긴 그것은 처음으로 말을 했다. 그걸 보고 여포가 자신의 방천화극을 겨누면서 적에게 말했다. -난 네놈이 누군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여봉선의 이름은 들어 봤겠지? “알게 뭐냐? 미개한 노란 원숭이 따위.” -감히····. -죽여 주마!!! 그림자 장수들이 막 화를 내려고 하는 순간···. 빌리 더 키드는 자신의 몸을 둘러쌓고 있는 흐릿한 장막을 걷어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권총을 뽑아서는···. “죽어!!!” 탕탕탕!!!! 그걸 시작으로 빌리 더 키드 대 삼국시대 무장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안 되겠군. 우리도 가세합니다. 적의 공격은 충분히 주의 하세요. 워낙에 속사니 처음부터 피하지 못하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싸워요. 전신에 방어 스킬을 두르고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알겠죠?” 정운은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동료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렸다. “잠깐만 정운아. 상황 설명 좀···.” “시간 없어요. 포위망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가야 합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토를 타고 바로 달렸다. 그리고 그 뒤로 다름 사람들도 한 박자 늦게 따라오기 시작했다. ‘쯧, 생각보다 더 귀찮을 놈이야.’ 처음에 정운은 빌리 더 키드의 총알이 빗나가지 않는다는 정보를 알고···. 그리고 마초가 순식간에 당하는 것을 보고 뭔가 특이한 스킬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빌리 더 키드는 말 그대로 엄청나게 잽싸게 움직이고 그리고 엄청나게 정확하고 빠른 속사 스킬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초가 죽을 때 그걸 깨달았다. 어느 정도 엄폐물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적은 그저 초고속으로 사격을 한 이후에 몸을 이동했을 뿐이다. 샷 & 무브. 시가전에서 저격의 기본이었고 빌리 더 키드는 그 기본에 충실했을 뿐이다. 사실 그게 더 까다롭다. 스킬이면 뭔가 빈틈이라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빠르고 그저 강할 뿐이다. 이런 경우는 이쪽도 정공법으로 압도하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었다. “칫···. 방어에 확실히 신경들 쓰면서 싸워요!! 전 먼저 갑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토에 올라타고 먼저 현장으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하니 빌리 더 키드를 상대로 여덟의 장수들의 분전하고 있었다. “마초!!!” -옛!!! 정운은 우선 아까 역소환 당했던 마초부터 다시 소환했다. 정운의 스킬이 된 지금에 와서 마초는 정운이 재 소환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초가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정운도 빌리 더 키드에게 접근했다. ‘총이 무기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근접전이 수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빌리 더 키드에게 접근했다. 빌리 더 키드는 정운을 보자 마자 자신에게 공격을 날리는 그림자 장수들을 무시하고 바로 총구를 향했다. “쉐도우 월!!!” 탕탕탕!!! 정운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알 세발을 모두 막아냈다. 이미 놈이 총구를 향하는 그 순간에 바로 스킬을 시전 했기에 간신히 늦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달리면서 놈에게 외쳤다. “쉐도우 붐!!!” 콰아앙!!! 빌리 더 키드의 발밑이 살짝 폭발하면서 놈이 위로 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운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쉐도우 컷터!!! 천뢰지망!!!” 촤촤촤악!!! 퍼퍼퍼펑!! 하늘에서 쏟아지는 벼락의 빗줄기와 땅을 가르면서 쇄도하는 그림자의 칼날을 보고도 빌리 더 키드는 전혀 피할 것 같은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던 흐릿한 망토를 온몸에 둘렀다. 그러자···. 콰콰쾅!!! 놈에게 막대한 공격이 적중했지만 그런 공격도 놈에게 큰 대미지를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저 망토···. 방어 장비였나?’ 은신같은 계통의 장비로 보였지만 이제 보니 저것은 방어 장비였던 모양이다. 그것도 방금 전에 정운이 향한 공격을 거의 노 대미지로 막아냈으면 상당히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무기라는 말이다. 대신에 정운은 놈이 자기 공격을 막는 동안 그 틈을 타서 품안까지 접근했다. “받아랏!!!” 정운의 손에 들린 혈광참마도가 황금빛 뇌전을 가득 머금고 빌리 더 키드의 목을 날려 버리려고 했다. 콰아앙!!! “제길··. 방어력 쩌는군.” 정운의 공격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하지만 목에 절단 대미지가 뜨기는 고사하고 후려친 정운의 손목이 뻐근할 정도의 반동이 돌아왔다. 적에게 심각한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정운은 그래도 거리를 벌리지 않고 놈에게 접근해서 추가 타를 먹이려고 했지만···. 탕!!! “크윽···.” 정운은 자신의 다리에 총알이 한 발 날아와서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내 방어력으로도 완전히 상쇄 못한 건가?’ 다리에는 탁구공 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허벅지의 건너편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선명한 관통상이었다. 정운의 방어 장비인 드래곤 리빙 아머는 방어력만 5,000이다. 거기다 본래 정운의 방어력과 쉐도우 아미로 인한 추가 방어력까지···. 대 괴수 형태를 한 보스몹이라고 해도 스킬이 아닌 일반 대미지로는 정운에게 반피 이상의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다리에 맞은 밀리 더 키드의 총알이 정운의 체력을 4분의 1이나 떨어트렸다. ‘이거 급소에 맞으면 즉사다.’ 정운은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빌리 더 키드가 말했다. “네놈이 이 검둥이들의 소환자구나. 죽어랏.” 빌리 더 키드는 그대로 정운의 머리를 쏘기 위해서 총구를 들어 올렸다. 정운은 몸을 날려서 어떻게든 급소는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정운을 구해준 사람이 있었다. “어딜 감히!!!!” 그 사람은 천사의 날개를 등에 두르고 황금빛 금발을 두르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바로 세레나가 뛰어 들어서 빌리 더 키드의 팔을 베어 버린 것이다. “쳇····.” 빌리 더 키드는 떨어진 팔을 버리고 일단 거리를 벌렸다. 그걸 보고 정운은 이 빌리 더 키드의 약점을 한 가지 알아챘다. ‘방금······. 과연, 저 망토 밖으로 나온 부분은 사기적인 방어력이 아니다 이거지.’ 세레나의 공격이 깔끔하기는 했지만 보스몹에게 단 번에 절단 대미지가 뜨는 것은 어려웠다. 아마도 빌리 더 키드의 방어력은 저 흐릿한 망토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슬로우!!! 홀드!!!!” 세레나를 비롯해서 정운의 동료들이 하나하나 돌아오기 시작했다. 슬기는 오면서 슬쩍 본 빌리 더 키드의 사기같은 스피드를 보고 일단 적에게 디버프를 먼저 걸었다. 슬로우 : LV.MAX (적의 움직임을 10% 느리게 한다.) 홀드 : LV.MAX (10마력의 힘으로 적을 구속한다.) 둘 다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중첩해서 걸면 적의 움직임을 20% 정도는 느리게 만들 수 있었다. “물의 정령!!! 후려쳐 버려라!!!” 그리고 이민지가 소환한 물의 정령왕이 거대한 수압대포로 빌리 더 키드를 날려 버렸다. 콰아앙!!! “칫···. 이 버러지들이!!!” 빌리 더 키드의 입에서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그로서도 지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199화 <레이드의 결과> 일단 포위 상황을 풀기 위해서일까? 빌리 더 키드는 주변을 향해서 무차별 난사. 아니 속사를 했다. 탕탕탕탕탕탕!!!! “크윽···.” “아악····. 빌어먹을···.” “컥··. 제기···일···.” 그의 허리춤에서 불꽃이 튀긴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는 이미 누군가가 총알에 맞은 후였다. 빌리 더 키드의 속사는 정말로 단 한방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정운이 신신당부를 했기에 무방비 상태로 맞은 사람은 없었지만 방어 스킬로 막아도 한 방에 체력이 뭉텅이로 떨어졌다. “대미지가 큰 사람은 뒤로 물러나!!! 회복하고 다시 오라고!!!” 정운은 급해서 반말로 마구마구 소리쳤다. 정운의 말대로 몇 명의 인간들이 뒤로 물러났다. 주경택, 이지영, 그리고 영국의 유저 다섯 명이 단 번에 리타이어였다. “크윽··. 10분 만에 회복하고 올게. 버텨!!!” 이지영은 일단 물러나면서 평소에 냉철한 그녀 답지 않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는게 분한 모양이다. “오오오오오!!!” 한중겸의 소환수인 펜닐이 한 입에 빌리 더 키드를 삼켜 버리겠다고 입으 쩍 벌리고 달려 들었다. “개 새끼가····.” 탕탕탕!!! “캐캥!!!” 펜닐도 60층의 보스몹이다. 하지만 71층의 빌리 더 키드에게는 역시 어림도 없다는 것일까? 그가 단 세발의 총성을 울렸을 뿐인데 펜닐이 깨갱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자세히 보니 네 개의 송곳니 중에서 세 개가 부러져 버렸다. 저래서는 아플 만도 했다. 펜닐을 격퇴한 빌리 더 키드는 질풍처럼 움직여서 포위망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잡아랏!!!” “절대 놓치지 말라!!!” 유저들은 빌리 더 키드가 도망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공격을 했지만 빌리 더 키드는 다소의 공격이 맞는 것은 망토로 방어해 가면서 무조건 포위망 돌파를 위해서 달렸다. 지금처럼 다수에게 포위당한 상태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쉐도우 체인!!!” 촤르르륵!!! 정운이 쉐도우 체인으로 빌리 더 키드를 잡으려고 했다. 그림자의 사슬이 빌리 더 키들르 잡기 위해서 뱀처럼 뻗어나갔다. ‘될까?’ 스킬을 쓰면서도 정운은 반신반의했다. 슬기의 디 버프가 걸려있는 지금이라면 어떻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 카포네도 못 잡았던 쉐도우 체인이다. 알 카포네보다 몇 배는 빨라 보이는 빌리 더 키드를 잡기란 요원했다. 빌리 더 키드는 유유히 포위망을 벗어나서 뒤쪽으로 돌아가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크윽!!” “아악!!!” 총 세 발의 총알 중에 한 발의 총알은 영국 유저에게 맞았고 두 발은 불행이도 슬기에게 맞았다. 슬기의 체력 게이지는 순식간에 바닥 직전까지 떨어졌다. “잡았다!!!” 빌리 더 키드는 다 죽어가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슬기에게 총알을 겨눴다. 하지만 그때····. “너 이 XXX 새끼야!!!!!” 정운이 이제까지 없던 것처럼 거칠게 화를 내면서 빌리 더 키드와 슬기의 선상을 가로 막았다. 슬기가 위험에 처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과 몸이 움직였다. 탕탕탕!!! 정운은 그리고 한 몸에 세 발의 총알을 모두 밖아냈다. 원래 정운의 체력이 풀인 상태라고 해도 빌리 더 키드의 총알은 4~5발 정도 맞으면 죽는다. 거기다 아까 한 발을 맞았으니···. 사실상 드래곤 리빙 아머의 자체 회복 기능이 없었다면 지금 죽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정운의 체력 게이지가 거의 간당 간당하다는 것이었다. 정운은 누구보다 더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겪은 적 없었지만 종종 겪었던 일이다. 이른바 죽음의 위기라는 놈을 말이다. 정운은 죽음을 직감했다. 여기서 단 한방만 더 맞으면 그 순간이 끝이다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으아아아앗!!!” 파앙!!! 정운은 그대로 빌리 더 키드를 향해서 돌격했다. 돌진시에 공기의 파공음이 들릴 정도로 일직선으로 한 줄기의 황금색 뇌전이 뻗어나갔다. 일견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돌격. 하지만 위기의 순간 정운은 항상 이랬다. 뒤로 물러 나는게 아니라 앞으로 돌격해서 활로를 열었다. 생즉사 사즉생. 근거도 없고 무모해 보이기 짝이 없지만····. 이게 정운이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터득한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죽어랏!!!” 물론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빌리 더 키드는 아니었다. 빌리 더 키드는 자신에게 돌격하는 정운을 향해서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백발백중인 그의 총구가 발사되기 일보 직전···. “죽엇!!!!” 콰직!!! 세레나가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빌리 더 키드의 왼쪽 어깨를 찔러 넣었다. 방어 장비인 망토가 정운의 돌격으로 인해서 말려 올라간 부분을 정확하게 노린 일격은 빌리 더 키드의 팔에 강한 대미지를 줬다. “크윽···.” 빌리 더 키드는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일단 발사하면 백발백중인 명사수라고 해도 발사 자체를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었다. 그리고 정운은 세레나가 살려준 그 작은 순간의 가치를 죽이지 않고 살렸다. “아아아아아!!!!” 정운은 그대로 빌리 더 키드의 앞으로 와서 창을 힘차게 내질렀다. 퍼어억!!! 망토의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 빌리 더 키드의 몸에 깊숙하게 박혔다. “큭···. 이 놈이···. 이까짓 것 먹힐 것 같으냐!!?” 빌리 더 키드는 창날이 자신의 몸에서 더 움직이지 않게 한쪽 손으로 창대를 강하게 움켜 쥐었다. 원래 보통 인간이라면 있을 수 없는 행위였다. 배에 창이 박혔지 않은가? 이렇게 멀쩡하게 움직이고 힘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미 공격은 치명적인 중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빌리 더 키드는 인간이 아니다. 보스몹인 그는 심장에 창 한 두대 꽂힌 것 가지고는 죽지 않았다. 물론 정운도 그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공격을 준비한 것이다. “회천공!!!” “크으윽····.” 빌리 더 키드는 자신의 복부에 박혀 있는 창날에서 거대한 힘이 회전하면서 부푸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풍선처럼 부푸는 것을 느끼는 빌리 더 키드는 황급하게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도망가게 둘 것 같으냐!!!?” 세레나는 아직도 어깨에서 검을 빼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깊숙하게 박아서 적을 고정 시켰다. 그리고 이윽고 정운의 공격이 빌리 더 키드의 안에서 폭발했다. 퍼어어엉!!!! “커어억····.” 자신의 내부에서 터진 강력한 공격에는 빌리 더 키드도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단번에 놈의 머릿속에 옐로우 크리스탈을 넘어서 레드 크리스탈이 떴다. 뿌드득····. “이 놈들!!!!” 빌리 더 키드는 이를 갈면서 외쳤다. 그러자 순간 놈에게 무기를 박고 있던 정운과 세레나가 떨어졌다. “모두 죽여주마!!!!” 그리고 빌리 더 키드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보스몹으로서의 히든 스킬이 발동한 것이다. 놈이 두르고 있던 망토가 그대로 자신의 몸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동화된 놈은 거대화를 시작했다. “쳇···. 쉐도우 체인!!!” 정운은 바로 쉐도우 체인으로 놈을 구속하려고 했다. 촤르르륵····. 알 카포네 같은 작은 인간형 몹에는 정운 혼자만 쉐도우 체인을 써도 충분한 구속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은 이미 전장 20미터가 넘어갈 정도로 거대화 해졌다. 거기다 아직도 거대화를 멈추지 않았고 말이다. “빌어먹을···. 전원 구속해!!!” 정운이 그림자 장수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스킬을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하는 능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운이 명령이 떨어진다면 두 말 할 거도 없다. 그림자의 무장들을 포함해서 열명의 쉐도우 체인 스킬이 거대화하는 빌리 더 키드를 구속해 갔다. 마치 거대한 코끼리를 칭칭감고 올라가는 구렁이처럼 그림자의 사슬이 꼼꼼하게 빌리 더 키드를 휘어 감았다. 그러나····. “제길···. 멈추지를 않아. 이거 설마···?” 정운은 빌리 더 키드의 심상치 않은 스킬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망토와 거대화 하더니 그냥 거대화만 되었는데 이제는 둥근 열기구처럼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마치 지금 당장 터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정운은 빌리 더 키드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그건 뭐랄까? 감? 오랜 세월 동안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르면서 생긴 위험본능에 가까운 감이었다. 그런 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빌리 더 키드의 모습의 의미를 말이다. “자폭이다!!! 모두 도망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토를 타고 슬기의 허리를 낚아챘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폭발의 범위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텅!! 터텅!!! “큭···? 이건?” “결계? 망할···?” 도망가려던 유저들은 일정 거리 이상에서 보이지 않는 반투명한 방어막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도망가는 것도 힘들어진 것이다. “큭···. 폭발한다!!!” 누군가가 외친 순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빌리 더 키드가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콰아아아아앙!!!! 마치 세레나의 신의 철퇴와 같은 느낌의 어마어마한 공격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신의 철퇴와 달리 저것이 심판하는 것은 몹이 아니고 유저들이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거대한 폭발이 터진후···. 띠리링!! [71층의 보스몹인 빌리 더 키드를 잡았습니다. 72층으로 올라갈 권리를 손에 넣었습니다.] 71층의 레이드가 성공했다는 알림창이 울렸다. 그리고 살아남은 유저들이 하나 둘 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한국팀의 박추성과 배대호였다. “크윽····. 뻐근하구만···.” “이 정도 대미지를 입은 것은 무척 오랜만이야.” 이 둘은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아군을 끌어 당겨서 즉시 방어로 몸을 돌렸다. 무한의 영사를 촘촘하게 둘러서 돔 형태로 방어한 박추성. 그리고 자신의 오리지널 스펠정에 최대급의 방어 실드를 펼친 배대호. 이 둘은 빌리 더 키드의 히든 스킬. 그것도 자폭기를 막아낸 것이다. 역시 괴물은 괴물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모두 괜찮으냐?” “예. 괜찮습니다. 형님.”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추성과 배대호의 영역 안에 있던 유저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사를 표했다. 특히 영국 유저들은 빌리 더 키드가 자폭을 하고 밖으로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죽음을 각오했었다. 그나마 몇몇이 다이앤 여왕의 앞에 방패를 들고 어떻게든 여왕이라도 살려 보겠다고 객기를 부리고 있었지만 모두들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추성이 그들을 감싸서 보호를 한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여분의 목숨을 하나 더 얻은 것 같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배대호의 방어막 안에 있던 한중겸이 말했다. “설마 자폭을 할 줄이야···.” “어차피 레드 크리스탈 상태였잖아? 생각해 보면 작폭이라는 것도 무척 합리적인 수단이지.” 이민지의 말에 다른 유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보스 몹의 상태로 있는 빌리 더 키드는 지금 죽는다고 해도 다시 부활한다. 오히려 다 죽어가는 순간에 자폭 스킬로 유저들을 대량으로 죽일 수 있다면 71층 문지기로서의 소명은 할 만큼 한 것이다. 자폭기를 쓰는 몹은 월드 서버에 올라오기 전에도 제법 있었다. 자폭기의 특징은 공격 범위가 제법 넓다. 그리고 무척 강력하다. 라는 두 가지였다. 일반 몹일 때도 그런데 자그마치 월드 서버 71층의 보스몹인 빌리 더 키드는 어땠겠는가? 사실 이제까지 71층을 클리어한 팀들은 옐로우 크리스탈 상태에서 재빨리 빌리 더 키드에게 극딜을 퍼부었기에 이런 사태를 면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정운의 공격은 절묘했지만... 너무 절묘했기 때문에 바로 레드 크리스탈까지 떠버렸던 겁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00화 <세레나의 선택> 한영동맹의 불행이라면 정운의 공격이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해서 옐로우 크리스탈이 아니라 단번에 레드 크리스탈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박추성 배대호는 상황 점검을 했다. “누구 놓친 사람은? 아무도 없나?” “영국팀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뭉쳐 있어서··. 모두 있습니다. 한국 팀은?” “우리는··. 망할, 정철이 하고 정운이 그리고 세레나하고 슬기가 없다.” “큭···. 설마 죽은건 아니···.” 한중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쪽에서 돌무더기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인간이 일어났다. “크윽····. 멋대로 죽이지 마십시오. 형님.” “정철아!! 정운이 너하고 슬기 세레나까지···.” “간신히 살았습니다. 저 세레나라는 아이가 우리를 살렸어요.” 윤정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빌리 더 키드의 자폭기가 작렬하는 순간 이 네명은 다른 일행들과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배대호와 박추성이 미처 챙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기에 이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망할··. 슬기야. 세레나. 내 뒤에 와!!! 쉐도우 월!!!!!” -쉐도우 월!!! -쉐도우 월!!! -쉐도우 월!!! 정운은 다른 그림자의 무장들 까지 모두 방어능력을 동원해서 아군을 보호했다. 마친 원거리 공격 위주로 활동하는 윤정철도 그 순간 기지를 발휘해서 정운의 방어막 뒤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폭발이 터진 순간···. 열 겹이나 되는 쉐도우 월이 3초 정도를 버티는게 고작이었다. 그 다음의 공격을 막은 것은 슬기의 방어 마법이었다. “펜타곤 실드!!!” 정운의 방어가 깨지기 무섭게 슬기의 오중 실드가 펼쳐졌다. 원래 정규적으로 있는 스킬이 아니고 같은 실드 마법을 중첩해서 오중으로 펼치는 기술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무 메이지들이나 다 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이해하고 개발할 능력이 있는 배대호의 가르침을 받은 슬기였기에 할 수 있는 재주였다. 하지만 이것도 불과 2초 정도를 견디는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모든 방어막이 깨진 순간 정운은 죽음을 각오했다. 쉐도우 아머로 몸을 감싸고는 있지만 이미 빌리더 키드에게 입은 대미지를 생각하면 절대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게 끝인가?’ 극히 짧은 순간에 정운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현실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과 그라운드 제로에서 있었던 일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고마운 사람들. 한국 팀의 동료들과 무엇보다 사랑하는 여자인 슬기와 세레나까지···. 그리고 그 순간···. “마스터어어어어!!!!” 세레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열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저건···? 세레나!!” 정운은 세레나가 발휘하고 있는 힘의 정체를 짐작했다. 저것을 사용하면 절대로 안 되었다. 천계의 천사로서의 힘을 사용하면 그라운드 제로를 감시하고 있는 악마들에게 발각 될 지도 몰랐다. 그런데 세레나는 그 힘을 쓴 것이다. 천계에서 받은 임무가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는 정운을 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갈등도 없이 그녀는 정운을 선택한 것이다. 후일 이 일로 인해서 그녀가 천계에서 문책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일로 인해서 파우스트나 악마들에게 그 존재를 발각 당해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레나는 오로지 정운을 살리는 것만을 선택했다. 그게 그녀의 선택이었다. “세레나···. 고맙다. 네 덕분에 살았어.” 세레나가 정운을 살리는 김에 덤(?)으로 산 윤정철이었다. 아무리 냉정함의 대명사 같은 그라고 해도 생명의 구함을 받은 감사는 표했다. 세래나는 그런 윤정철에게 고개를 간단하게 숙이면서 말했다. “그럴 것 없습니다. 동료를 구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윤정철은 자기답지 않게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 팀에서 가장 냉철한 남자라고 불리는 그 답지 않은 태도였다. 하지만 그 훈훈한 분위기와는 별개로 다급한 사람이 있었다. “세레나 괜찮아?” 바로 정운이었다. 정운은 세레나가 천사로서의 힘을 사용한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황급하게 상황을 물었던 것이다. 그런 정운을 보고 세레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마스터.” “정말 괜찮은 거야? 내가 무슨 말 하는 지는 알지?” “·········.”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일단 침묵했다.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후회는 없다. 다시 시간을 돌려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마스터를 구할 것이다. 하지만····.’ 세레나가 아쉬운 것은 만역 여기서 들켜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더 이상 정운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아쉬운 세레나였다. 그때 그녀가 정운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마스터···. 사실은 그 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단 둘이서 드릴 말씀입니다. 잠시 후에 스카이 타운에서 뵐 수 있으면 합니다.” “알았어.” 정운은 역시 세레나가 천사로서의 힘을 쓴 것 때문에 뭔가 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망할···. 날 지키기 위해서····.’ 정운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자 슬기가 다가와서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요? 정운씨? 세레나는···. 무슨 일 있는 것은 아니겠죠.” “잘 몰라···. 하지만 안심하고 있어. 여차하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레나를 지켜줄게.” “····알았어요.” 슬기는 정운과 세레나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른다. 아직은 말이다. 하지만···. 대략적인 분위기로 세레나가 정운을 바라볼 때의 눈빛이 자신과 같은 눈빛이라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무척 예민해질 때도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세레나와의 관계만을 생각한다면 그녀는 슬기의 전우였고 친구였다. “부탁해요···. 어떻게 해서든.” “알았어.” 정운은 그렇게 슬기를 안심 시키고 한중겸에게 말했다. “형님. 저하고 세레나는 잠시 볼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그러니····.” “알았다. 분위기 보니 급한 일 같은데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리 가. 나머지 사람들은 임시로 내가 챙길 테니까.” “알았습니다.” 그리고 정운이 세레나와 간이 포탈을 타고 이동하려는 순간····. “정운아. 너 어디 가냐?” “정철이 형님.” 정운은 윤정철이 자신에게 먼저 마을 거는 것은 오랜만이라서 살짝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예.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정철이 형님.” “왜?” 정운은 말이 나온김에 윤정철에게 막음해 둬야 할 사항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아까 세레나가 보인 유니크 스킬은 될 수 있는 한 비밀로 해 주십시오.” “·······뭔가 사정이 있는 거냐?” “그냥 그렇게만 해 주십시오.” “잠깐만···. 혹시 세레나가 위험하기라도 한 거냐?” “형님.”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동료라고 해도 스킬에 관해서 꼬치꼬치 캐 묻는 것은 실례였다. 박추성이나 배대호처럼 태연자약하게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기 스킬의 정보는 절대적인 기밀이었고 그걸 묻는 건 자칫하면 칼 부림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윤정철 같은 신중한 남자가 그걸 모를 리가 없는데 어째서 이런단 말인가? 그는 숫제 정운의 팔을 잡고 이미 열린 간이 포탈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말했다. “대답하고 가라. 세레나는 괜찮은 거냐?” “형님. 지금 바쁨······. 형님····.” 정운은 윤정철의 얼굴에서 조급함과 분함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평소에 이지영과 더불어서 차가운 냉기를 쌩쌩 날리면서 항상 포커 페이스만 유지하던 이 남자가 완전히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세레나에 관해서 묻고 있었다. 순간 정운의 목구멍까지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형체를 가진 무언가가 아니다. 그런 것 보다 훨씬 더 불쾌한 어떤 것이었다. 정운은 팔을 강하게 빼내면서 윤정철에게 말했다. “형님이 관여하실 바는 아닙니다. 그녀는 제 팀원입니다.” “···············.” 윤정철은 지그시 정운을 노려봤다. 정운도 그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봤다. 정운은 슬기와 공개적으로 사귀고 있다. 슬기의 입에서 결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진득하게 사귀고 있는 사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정운의 마음 속에는 슬기 못지 않게 세레나도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최근 어느 정도 잠재웠다고 생각한 그 마음이 윤정철의 자극으로 인해서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질투, 소유욕, 독점욕. 이런 감정들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에서 태어나는 인간의 본질 중에 일면인 것이다. 정운이 그대로 팔을 뿌리치자 윤정철은 다시 팔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말리는 손이 있었으니··. “그만 하세요 정철오빠.” 의외로 그 손은 슬기의 손이었다. 슬기는 윤정철을 말리면서 정운에게 빨리 가라는 눈짓을 했다. 그리고는 윤정철을 향해서 말했다. “정말 급한 일이에요. 정 궁금하시면 나중에 세레나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알겠다.” 슬기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윤정철은 일단 물러났다. 정운 하나만이라면 모를까 정운의 여자이기도 한 슬기가 스스로 나서서 세레나와 달 둘이서 보내는 것을 봐서는 정말 급한 일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무슨 일인지는 꼭 알아내겠어.’ 포탈로 사라지는 정운과 세레나를 보면서 남몰래 다짐하는 윤정철이었다. 그리고 슬기 역시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포탈 너머를 바라봤다. 그녀는 과연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스카이 타운으로 돌아온 정운과 세레나는 바로 문제에 관해서 말했다. “어떻게 됐어? 네 힘이 캐치 당한거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제 본연의 힘을 사용했고···. 악마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어쩌면···. 아직은 신성력의 근원이 저라는 것 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전에도 대규모 서치를 했을 때 제 안에 신성력을 잠시 없는 상태로 만들어서 은신했으니 말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그때하고 똑같이 해야 하나?”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방법 밖에 없다면···. 그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아니 여기는 위험하지? 자리를 옮기자.” 정운은 우선 자신들의 거주구에서 벗어났다. 이 건물은 슬기를 비롯해서 동료들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 근처의 호텔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정운은 급하다는 듯이 세레나를 품에 안으려 했다. 그런데 세레나가 말했다. “마스터····. 이렇게 성급하게는·····.” 그녀는 정운의 어깨를 살며시 밀어내면서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세레나. 시간 없잖아? 파우스트나 악마들이 서치를 하기 전에 어서 네 신성력을 지워야 하잖아?” 정운의 말은 타당했다. 하지만 세레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가듯이 말했다. ============================ 작품 후기 ============================ 뭐라고 했는지는 다음 편에.... 고의는 아니지만 분량을 나누다 보니 여기서 딱 끊어지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01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그저 욕정을 풀듯이는····.” “아니 목적이 그게 아니기는·····.” 정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레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면서 처연하게 말했다. “저는····. 저를 슬기처럼은 해 줄 수 없는 건가요?” “············.” 순간 정운은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 같은 철렁함을 느꼈다. 세레나의 눈가에···. 전생에 잔 다르크라고 불리며 프랑스의 구국의 영웅이라고 불리던 이 강철 같은 여성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이다. 그 눈물을 너무나도 처연하고 슬펐고···. 또 그 슬픔의 깊이만큼이나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한 방울의 눈물에 담긴 의미는 천 마디의 말보다 절절했다. 결국 정운은 세레나의 요구에 순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정운은 세레나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성급하지 않고 부드럽고 사랑이 듬뿍 담긴 키스···. 그 키스를 받은 세레나는 그제야 정운의 품안에 스르륵 안기면서 자신의 입술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운의 숨결을 느꼈다. ‘···마스···· 아니··· 정운씨····.’ 세레나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할 그 말을 속으로만 중얼 거렸다. 둘은 서서히 서로를 껴안고 키스하면서 충분히 사랑의 전희를 나눴다. 이 순간 만큼은 이 둘이 오히려 사랑하는 연인인 것처럼 보였다. 정운은 부드럽게 세레나를 침대에 눕혔고··. 그 녀의 몸 위에 올라가서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을 감상했다. 그리고 정운은 이내 넋을 잃어 버렸다. 완벽함. 세레나의 나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이 말 말고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여러 가지 미사여구를 덧 붙이는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진정한 초일류의 예술품은 전문가 뿐만이 아니라 문외한들마저 압도하는 깊이와 미가 있다고 한다. 세레나의 아름다움이 꼭 그랬다. 완벽한 조화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몸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 해도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있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 상태로 천년이고 만년이고 영겁의 세월동안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넋을 잃고 돌이 되고 싶은 정운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의 정신을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기···. 너무 그렇게 보기만 하면 부끄러운데요···.” 사과처럼 얼굴이 붉어진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그대로 세레나의 품안으로 미끄러지듯이 파고 들었다. “····미안. 너무 예뻐서 눈을 못 때겠더라고.” “···········.” 세레나는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만 붉히고 있는게 아마도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요령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태도도 충분히 귀여웠다. 정운은 세레나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면서 옆으로 돌아서 세레나의 귓불을 입술로만 강하게 물었다. “흐읏·····.” 세레나는 손을 들어서 급하게 자신의 입을 막았다. 정운이 자시의 귓불을 무는 순간 귓불만이 아니라 목덜미와 가슴까지 짜릿한 느낌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난 것이다. 부끄러운 나머지 입을 막은 그녀였지만 정운의 능숙한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귓불을 좀 더 강하게 자극하는 한 편 다른 한손으로 세레나의 겨드랑이를 파고 들어서 등의 척추 부분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하읏····. 으으······.” 세레나는 눈물이 찔끔 날 것만 같았다. 정운의 손길이 닿는 곳 하나하나가 그녀의 혼을 빼놓고 있었다. 딱히 자신이 성감대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부분들이 정운의 손길이 닿을 때 마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전신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그녀는 전신을 잔뜩 긴장하고 몸을 단단하게 굳히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저 정운의 목을 부드러운 팔로 꼭 끌어안고 정운에게 자비를 애원할 뿐이었다. “제발···. 그만 부끄럽게 해주세요···.” 그녀의 애원에 정운은 빙긋 웃으면서 알았다는 듯이 손의 움직임을 바꿨다. 좀 전의 애무가 세레나를 흥분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이번에는 긴장을 풀게 할 차례였다. 생전 처음 겪는 느낌덕분에 몸이 잔뜩 굳어진 세레나를 조금 편하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정운은 그녀를 자기 품안에 끌어안고 바싹 밀착했다. 정운의 탄탄한 가슴에 세레나의 부드러운 가슴이 일그러지면서 밀착했다. 두 사람의 몸과 몸이 완전히 겹치고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의 귓아게 속삭였다. “너하고 내 심장소리를 들어봐··. 천천히 천천히··. 하나의 소리로 겹쳐 갈 거야.” “··········.” 세레나는 정운의 말대로 자신과 정운의 두근 거림이 점점 겹치는 소리를 들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냥 고동 소리가 하나 되는게 아니라 마음이 하나 되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그리고 편안했다. 자연스럽게 세레나의 호흡이 안정되고 그녀의 몸이 나른하고 편안해 졌다. 정운은 그녀가 긴장을 풀었다고 생각하자 그대로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으읏····.” 세레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그것 뿐이었다. 별로 아프지 않은 건가? 아니면 아파도 참고 있는 걸까? 그건 정운이 알 수 없었지만 이 순간 정운은 세레나와 몸을 겹치면서 황홀경에 젖어 있었다. “세레나·····.” “··············.” 세레나는 눈을 꼭 감고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운은 이제까지의 부드러운 애무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라는 듯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으읏····.” 세레나는 정운의 움직임에 흔들리면서 평소의 그녀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흐트러진 얼굴을 하고는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냥 사랑하는 사람의 품안에 안겨 있는 여자일 뿐이었다. “···아아·······.” “세레나·····.”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세레나는 정운의 품안에 안겨서 감고 있던 눈커플을 살며시 떴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세레나는 몸을 일으켜서 자고 있는 정운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오늘 세레나는 생전에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을 했다. 거짓말. 바로 그것이었다. 예전에 정운에게 처녀성을 바치고 그로 인해서 신성을 일시적으로 부셨던 것은 정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 한번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당시에 세레나의 신성력은 그녀의 호칭이자 상징인 오를레앙의 성처녀라는 명칭에 매겨져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처녀성을 버림으로 인해서 신성력을 일시적으로 파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 한번만 쓸 수 있는 일종의 편법이었다. 그녀가 처녀성을 버린 후에도 그녀의 몸은 본질인 천사로서의 신성력을 차곡차곡 모아왔다. 그로 인해서 그녀는 어느새 예전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신성력을 갖추게 되었다. 한 번 그릇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에서 그릇이 더 커진 것처럼 그녀에게 더 강한 신성력이 깃들은 것이다. 그건 그녀로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만 어쨌든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문제는 그 신성력은 더 이상 세레나가 처녀이든 아니든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오를레앙의 성처녀 잔 다르크로서 쌓은 신앙심으로 만든 신성력이 아니었다. 세레나 본인이 새롭게 쌓아간 신성력인 것이었고 그것은 처녀성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정운과 다시 한 번 살을 겹친다고 해서 세레나의 신성력이 일시적으로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더 이상 세레나가 악마들이나 파우스트의 서치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레나는 정운에게 안겼다. 그 사실을 굳이 알려주지 않고 정운이 오해하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자신을 안게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정운에게 안긴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그저 이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니까···. 그런 마지막의 순간이 왔으니 그 전에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기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정말 그것 뿐이었다. “안녕히·····.” 세레나는 정운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하고는 침대에어 완전히 일어났다. 몸을 일으켜서 옷을 입고는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온 세레나는 자신의 손에 끼워져 있는 작은 반지를 이용해서 천계와 교신을 시도했다. -잔인가? 반지 속에서 세레나의 본명을 알고 있는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세레나는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브리엘님 보고 드릴 사항이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가브리엘. 수태고지(受胎告知)에 나오는 천사로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알린 천사로 유명하다. 성경에서 나오는 천사중에 유일하게 여성형이라고 나와 있는 천사이기도 했다. 천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직책은 미카엘이었지만 가브리엘은 가장 성스러운 천사라고 불리는 천사중에 하나였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세레나의 직속 상관 격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교신을 자제하라고 했을 텐데? 중요한 일인가? “예. 중요한 일입니다.” 세레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가브리엘에게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말했다. 모든 사정을 다 들은 가브리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어리석은 일을 했구나. 넌 이미 인간이 아니라 천사가 되었다. 그런데 사랑이라니····. “죄송합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세레나의 목소리에는 결의마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런 그녀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후회가 없을 리가 없지 않느냐? “저는·······.” -정녕 미련은 남지 않느냐? 가슴의 상처는 아프지 않느냐? 영혼을 에이는 번민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느냐? “···········.” 가브리엘의 말에 세레나는 대답 할 수 없었다. 정운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애당초 정운에게 슬기가 있는 이상 자신은 정웅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애당초 자신이 천사인 이상 인간인 정운과 영원히 있을 수 없었다. 애당초···. 지금의 자신은 살아있는 인간도 아니다. 그저 살아있는 인간처럼 꾸며놓은 허상의 존재일 뿐이다. 그런 백일몽 같은 자신이 정운에게 사랑 받는다고 해서 함께 할 미래가 생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제 아픔도, 상처도····. 모두 그에게 바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 가브리엘은 세레나의 마음에 더 이상의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 할 수 있는 여자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잔 아니 세레나, 딱 하나 너하고 그 남자가 앞으로도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브리엘님.” 세레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은 규율을 어겼다. 임무보다 자신의 사랑을 먼저 선택했다. 그녀가 가브리엘에게 연락을 한 것은 소멸의 명령을 받고 그것을 벌 삼아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악마들이나 파우스트에게 발각 되어서 더 험한 꼴을 겪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소멸의 명령은 고사하고 세레나에게 돌파구를 열어주려고 했다. “가브리엘님···. 천계의 명령은···.” -세레나, 하나만 말해 주마. “···········.” -네가 품기 시작한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 천사들이 가장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선이기도 하다. 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워 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랑이니라. “가브리엘님·····.” -너란 아이는 생전에 나라를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는 것만을 선택했지. 그것은 숭고한 삶이다. 하지만 너 자신의 사랑은 없었다. “·············.” ============================ 작품 후기 ============================ 으음... 최선을 다해서 페이스 유지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일신상의 이유로 연참을 못하거나 더 하면 연재 자체를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부디 이해를 구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02화 세레나의 눈에서는 조금씩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자신은 천계의 명령을 거부하고 항명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은 선처를 하려고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가브리엘의 선처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가브리엘님.” -우선은 지금의 네 처지부터 해결해 주마. 천사로서의 신성력을 발휘한 것이 문제라고 했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주마.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그 정도의 대비는 이미 해 놓았다. “예. 알겠습니다.” 가브리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세렌나의 가블리엘에 대한 신뢰는 절대부동 할 정도로 확고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세레나에게 한 가지 충고를 남겼다. 앞으로 세레나가 정운과 함께 하기 위한 방법을 말이다. -···············해서 하면 너와 그 남자는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설명을 다 들은 세레나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브리엘님··.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까?”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원래라면···. 너와 그 인간은 만날 인연도 운명도 없는 사이였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 세레나는 망설였다.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정운이 과연 그 선택을 해 줄까? 그러기에는 이미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하지만 그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세레나의 고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런 세레나에게 가브리엘이 말했다. -그를 설득하는 것은 온전히 너의 몫이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힘내거라. 나의 아이야···. 그렇게 가브리엘과 세레나의 통신은 끊어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세레나는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좋은 걸까?’ 가장 큰 고민이 해결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고민이 생긴 세레나였다. 천계. “후우·····.” 세레나와 통신을 막 마친 아름다운 미모의 천사는 한숨을 내쉬면 빙그레 웃었다. 황금을 녹여서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금발. 성스러운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마치 아기를 바라보는 귀부인의 인상 같은 미모. 그리고 등 뒤에 나 있는 12장의 천사의 날개는 그녀가 천계 최고위 천사인 가브리엘이라는 증거였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세레나의 영혼은 번민하고 있었지만 그 번민은 세레나가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 같은 것이었다. 자기 부하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가브리엘로서는 세레나의 그런 성장이 대견하기도 했다. 그때 그녀의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이라····. 역시 천사로 화했다고 해도 인간의 영혼에게 너무 막중한 임무를 맡긴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엘···. 무슨 말씀입니까?” 가브리엘의 뒤편에 나타난 천사의 이름은 우리엘. 가브리엘과 같은 치천사였다. 현재 천계에 있는 치천사는 총 네명. 미카엘, 가브리엘, 우리엘, 라파엘. 이들 네 명이 천계의 정점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같은 치천사라고 해도 이들 네 명은 각각 상징하는 수호의 성질이 달랐다. 미카엘은 천계의 지휘를 맡고 있으며 신의 우편에 있으며 신을 찬양하는 천사이다. 가브리엘은 지혜와 격려의 천사로 절망에 빠진 자에게 꽃을 건내고 지혜의 말을 건내는 천사이다. 라파엘은 인류의 수호자이고 에덴 동산에 있는 생명의 나무를 지키는 수호자이다. 그리고 지금 나타난 우리엘은 태양과 천계를 수호하는 천사로서 치천사 가운데서 가장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천사인 만큼 사악한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맺고 끊음이 확실한 성격이라서 융통성이 다소 없다. 그게 가브리엘과는 결정적인 차이일 것이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우리엘?” 가브리엘의 말에 우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전부입니다. 그걸 당신이 모르실 리는 없을 텐데요?” “············.” 우리엘은 전부터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간의 영혼을 천사로 만들어서 그라운드 제로에 잠입 시키는 것을 싫어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은 너무 나약했다. 선할 때는 그 영혼이 너무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지만···. 어떨 때는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도 사악하게 물들도록 변할 수도 있었다. 너무나 변화무쌍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의 영혼을 천사로 격상 시키는 것 자체가 그는 싫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은 지키고 보살펴줘야 할 것이었지 절대로 같은 반열로 올려서 대등하게 봐야 할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레나··, 그러니까 잔 다르크의 그라운드 제로 잠입은 이미 다른 천사들까지 모두 동의하에 펼쳐진 일이었다. 이제 와서 그가 불평을 표한다고 해서 그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기껏 잠입시켜 놓은 세레나가 배신을 했다. 가브리엘은 온건하게 봐 줬지만 우리엘의 눈에는 어림도 없었다. 천사가 신의 임무를 두 번째로 행하는 그 순간부터 그의 기준으로는 이미 충분히 타천이었다. “가브리엘. 그 천사에게는 소멸을 명하는게 좋겠습니다. 아직 그녀가 천사로서의 긍지를 유지하고 있을 때 스스로 끝을 낼 수 있도록 하는게 유일한 자비라고 보입니다.” 우리엘의 말에 가브리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지금 중요한 성장의 고비를 겪고 있습니다.” “·····이미 신계를 버렸습니다. 인간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약해지는지 당신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더 강하게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 “그 아이는 저의 날개 아래에 있는 아이입니다. 지금은 제 결정을 따라 주십시오.” 우리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후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 아이에게 소멸을 명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천계에서는 세레나를 두고 가브리엘과 우리엘이 살짝 의견의 차이를 벌이고 있었다. 한편, 악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라운드 제로에서 천사의 기운이? 천계의 그 망할 비둘기 들이 잠입했다는 말인가?”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기운이었습니다.” “망할···. 당장 수색해!! 하몬 헬 게이트에게 천사를 찾아서 바로 먹어치워 버리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악마들은 세레나의 존재를 깨달았다. 정확하게 어디서 어떻게 발현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 신성력이 발휘되었다는 것 자체는 확실하게 서치했다. 바로 지시를 받은 하몬 헬 게이트는 그라운드 전체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월드 서버의 한 층에서 신성력의 근원을 찾아냈다. 다만···. 찾기는 찾았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마력으로 칭칭감싸서 봉인하듯 결계에 담아서 옮겨온 것의 정체를 보고 악마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신성력의 근원이라고?” “그렇습니다. 무슨 심산이었을까요? 이런 혐오스런 무구를 숨겨 두다니····.” “망할 하늘나라 비둘기 들이 생각하는 바는 도저히 알 바 아니지만··. 이건 확실히 의외로군.” 하몬 헬 게이트가 그라운드 제로를 샅샅이 뒤져서 찾은 것은 바로 주먹 만한 나뭇조각이었다. 낡고 오래된 나뭇조각은 무언가의 파편으로 보였는데···. 악마들은 차마 그걸 오래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만진다. 라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저 나뭇조각은 성물. 그것도 급수로 따지면 최강클래스에 있는 성물이었다. 골고다의 언덕에서 예수가 못 박혀 한 번 죽었을 때의 그 십자가··. 그 십자가의 무수한 파편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흘린 그리스도의 성혈이 깃들어 있는 나뭇조각이었다. 이제까지 봉인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갑자기 봉인이 풀려 버린 것이다. “망할···. 저 보기만 해도 아프군···. 빨리 저걸 어디로든 치워라!!!” “어디로 치울까요?” “어기로 치우긴!!! 저런 것 마계에 가져다 놓으면 마계의 일대가 정화되어 버릴 거다. 인간계의 바다 심해에라도 던져 넣어!!!” “예. 알겠습니다.” “망할 비둘기 놈들···. 아주 작정하고 시비를 거는 구나····.” 악마들은 그 강대한 성물의 신성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 버렸다. 어지간한 성물이라면 봉인하거나 더럽혀서 타락의 무구로라도 다듬어 보겠는데 저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악마라고 해도 저기에 살짝 닿기만 하면 몇천년은 정양해야 할 정도였다. 결국은 그냥 버려 버리는게 악마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였다. 그리고···. 그 강대한 성물의 신성력 덕분에 세레나의 신성력은 묻혀 버리고 말았고, 덕분에 세레나는 악마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세레나의 정체가 들킬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둔 가브리엘의 한 수가 통한 것이다. 비록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해지만···. 어차피 저 성물은 인간들의 죄를 사하기 위한 성물이었기에 천계에 놔둔다고 해도 천사들이 어떻게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런 물건을 나름 유용하게 사용했으니 가브리엘도 꽤나 지략가인 셈이다. 유저들이 모르는 사이에 천계와 마계의 분쟁이 한 바탕 있었던 그때····. 유저들 사이에서도 마냥 평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영동맹이 71층의 레이드를 마치고 전진기지로 돌아가는 길. 한무리의 인간들이 한국팀을 가로 막았다. 그 무리는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나는 동독의 베르너 프리치라고 한다. 한국 대표인 박정운은 바로 나오라.” 놀랍게도 한영동맹을 가로막은 인물은 동독의 인간들 열명이었다. 고작 열 명이었지만 마냥 얕볼수는 없었다. 한영동맹은 지금 71층 레이드로 제법 소모를 했다. 그리고 주력멤버라고 할 수 있는 정운과 세레나도 자리를 비웠다. 물론 그렇다고 동독 10명에게 진다고 누구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뭐···. 추성이 형님하고 대호 형님이 비교적 멀쩡히 있기는 하니까···.’ 한중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우리 팀의 리더는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무슨 용건인지는 나에게 말하시죠?” 한중겸이 앞으로 나와서 말하자 베르너 프리치는 잠시 한영동맹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리더에게 할 말인데····. 없다니 어쩔 수 없군.” 그는 한중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영국 대표에게 선전포고를 하려고 한다. 거기에 관해서 한국 대표가 빠져 주기를 권고한다.” 베르너 프리치는 다짜고짜 핵심을 꺼냈다. ABC 다 건너뛰고 바로 XYZ로 가는 베르너 프리치의 말에 한중겸은 어이가 없었다. “····각 팀에 고지한 걸로 아는데? 한영동맹은 앞으로 외압에 관해서 함께 대응한다. 라고?” 한중겸의 말은 반존대에서 완전한 평대로 바뀌었다. 그런 한중겸을 보고 베르너 프리치는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보고 그냥 당하고만 있으라는 말이냐!!!? 좋다. 정 그렇다면 우리도 동맹을 끌어 들여서 싸우겠다. 한국이 끝까지 영국 편을 든다면 우리는 러시아와 이탈리아, 그리고 중국을 등에 업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두겠다.” 베르너 프리치의 말에 한중겸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대대적으로 시비를 거는군···. 그런데 당하고만 있다는건 또 무슨 소리야.’ 한중겸은 슬쩍 다이앤 여왕을 바라보며 눈치를 줬다. 혹시 짐작 가는게 있느냐? 라는 제스쳐였다.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부정했다. ============================ 작품 후기 ============================ 천계쪽의 사정도 살짝 나오게 했습니다. 하긴 저 천사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마도 2부에 가서일 테지만... 뭐 아직 2부는 구상 상태이니 뭐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것도 모르죠. 그리고 제가 연중한다는 것은 한 2~3일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구 연중이 아니고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03화 <도발? 아니면 음모?> 다이앤 여왕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했다. 그녀는 최근에 71층 레이드 준비로 바빴다. 타국 팀과 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말이다. 한중겸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쪽에서 설명 좀 해주지 그래?” 한중겸의 말에 베르너 프리치가 길길이 날뛰려고 하는 순간 동독에서 다른 사람이 한 명 앞으로 나왔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당신 이름은?” 한중겸은 상대의 이름을 물었다. 그래도 동독의 성질 급한 리더 보다는 좀 더 얘기가 통할 것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토마스 스타인호펠이라고 합니다.” “좋아···. 그럼 설명 좀 해주실까? 영국이 당신들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그건 그러니까 바로 이틀 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영역에서 4인 1조로 사냥을 하고 있었죠.” 토마스 스타인호펠이라는 남자의 말에 의하면···. 동독팀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사냥하던 도중에 몇 명의 복면을 뒤집어 쓴 남자들이 자신들을 갑자기 습격했다고 하는 것이다. 습격 인원은 총 세 명. 그들 하나하나가 제법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놈들!! 정체를 밝혀라!!!” 토마스를 중심으로 독일팀의 네 명은 적의 숫자가 자신들보다 적고 질적으로도 크게 우위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용감하게 반격했고 결국 그들을 격퇴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격퇴하는 와중에 적중에 한명의 복면을 날려 버리고 그 밑에 있는 얼굴일 드러났다고 한다. 그 얼굴이 바로····. “저기 있는 영국의 크리스찬 홀트입니다.” “거짓말 하지 마라!!” 동독의 토마스 스타인호펠의 지목을 받은 크리스찬 홀트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펄쩍 뛰면서 크게 놀라고 있었다. “내가 동독팀을 습격했다고? 거짓말이다. 완전 모함이야.” 그러자 동독팀의 토마스 스타인호펠이라는 남자가 스산한 눈을 하고 말했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냐?” “내가 거짓말하는게 아닌 이상···. 당연한 것 아닌가?” “말 다했나?” 영국팀과 동독 팀들 사이에서 싸늘한 기류가 흘렀다 저마다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그때···. 화르르륵!!! “좀 진정들 하지. 당신들이 그렇게 바보 같인 굴지 않아도 남자들 성질 급한건 아니까 말이야.” 양 무리의 사이를 불꽃의 벽으로 갈라 버리면서 분위기를 제압한 것은 이민지였다. 그녀가 불꽃의 정령왕을 불러서 양측을 일단 때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한중겸을 보면서 눈짓을 했다. ‘자, 이제 어떻게든 해봐.’ ‘···뭘 어떻게요?’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되지.’ ‘나한테 어떻게든 해 봐. 라고 말하는 건 되고요.’ ‘그래.’ ‘··········.’ 뭔가 심각하게 억울한 느낌이 드는 한중겸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정운이 자리를 비우면서 일행의 인솔을 자신에게 맡겼다. 그렇다면 일단 이 자리를 책임지는 것은 자신이어야 했다. 한국팀의 동료들 뿐만이 아니라 영국팀의 팀원들 까지 자신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한중겸은 앞으로 나서서 그냥 순리대로 풀어가기로 했다. “먼저 물어보겠습니다. 거기 동독의····?” “토마스 스타인호펠이라고 합니다.” “그래. 당신에게 한 번 더 물어보죠. 정말로 습격자의 얼굴이 영국의 크리스찬 홀트였습니까?” “잘못 볼 리가 없죠. 그와는 몇 번이가 검을 나눈 적도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요. 그럼 크리스찬 경.” “한중겸씨, 혹시 저를 의심하는 겁니까?” “아직 말 도 안했습니다.” “···········.” “그럼 크리스찬 경. 이틀 전의 알리바이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정말 의심하는 겁니까?” “의심하는게 아니라 당신의 결백을 증명하라는 겁니다.” 그게 그거긴 하지만 크리스찬도 더 이상 파고들지는 않았다. “이틀 전이면····. 레이드 준비를 위해서 우리 서버의 상점에서 아이템을 새로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아이템의 시물레이션을 하고 있었죠.” “그렇다는 군요.” “그게 증거가 되지는 않지 않소!!!” “뭐···, 영상이 남아있다고 해도 그게 영국 서버의 일인 이상 증거 조작은 있을 수 있지. 하지만···.” 한중겸은 단호한 얼굴을 하고 동독의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양측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증거도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우리들의 동맹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소.”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한다. 이겁니까?” “그렇게는 말 안했소. 하지만 뭔가 오해가 있을 수는······.” “이 XX새끼가···. 다 집어쳐!!!! 어디서 눈 가리고 아웅이야!!!” 동독의 리더인 베르너 프리치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는 한중겸을 죽일 듯이 노려 보면서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간단하게 말하겠다. 영국팀에 붙을건가? 아닌가?” “붙을 거라면?”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도 연합을 결성해서 한영동맹을 밟을 뿐이다. 장담하건데 후회하게 해 주지.” “···············.” ‘쯧, 이런 무대포 타입이 협상하기 가장 힘든데···.’ 한중겸이 보기에 베르너 프리치는 신중함이나 뛰어난 통찰력으로 팀을 이끌어온 리더는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저돌성과 선두에 서서 날뛰는 용맹함으로 팀을 이끄는 타입으로 보였다. 오히려 신중함은 좀 전에 얘기하고 있던 토마스 스타인호펠이라는 남자가 더 깊어 보였다. 어쨌든 중요한건···. 이런 타입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자기 들을 말만 듣는다는 거다. 말로 설득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타입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고민할 문제도 안니가?’ 결국 어떻게 할 지는 뻔하게 정해져 있었다. 얕잡아 보이면 끝이다. 그게 이 그라운드 제로의 철칙이었다. “마음대로 해봐. 우리 한국팀은 외압이 두려워서 동맹을 파기하지는 않는다.” 한중겸의 말에 영국팀들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개중에 몇 명은 한중겸을 향해서 슬쩍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기도 했다. 한국팀원들도 별 동요는 없었다. 어차피 동독팀의 저 성질 급한 남자가 그냥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쪽이 약세를 보일 수는 없었다. 강팀도 아니고 동독팀 정도가 두려워서야 어떻게하겠는가?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동독팀의 대표는 확고하게 맞서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한영동맹을 보고 이를 갈았다. 원래 그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한영동맹의 숫자와 질을 생각하면 동독팀의 자력만으로 어떻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하지만···. 그래서 이 시기를 노렸다. 레이드를 마친 직후에 소모된 상태를 노려서 한영동맹을 위협해서 한국과 영국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 다음에 영국만을 타깃으로 해서 복수를 완료하고 영국의 영역까지 모두 접수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설마 한영동맹이 이렇게 공고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이 숫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한영 동맹은 원래 23명이다. 거기에 지금은 정운과 세레나가 없기에 일단 21명이다. 하지만 그래도 동독보다 두 배는 더 많았다. 비록 레이드를 통해서 소모한 상태라고 해도 지금쯤이면 30% 정도는 회복 되었을 테고···. 역시 숫적 차이를 무시 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오늘은 일단 선전포고만으로 끝낸다. 하지만···.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끝장을 보겠다.’ 베르너 프리치는 성질이 급하기는 해도 그래도 도조 마사토처럼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한중겸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임시리더라는 자와 얘기해서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으니····. 며칠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영국의 잘못을 인정하고 영국에서 손을 때지 않는다면 그때는 대가를 치루게 하겠다.” “지금이나 그때나 결과가 변하지는 않아. 아애 지금 하지 그래?” “······돌아간다.” 한중겸의 도발에 베르너 프리치는 잠깐 노려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무리는 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한중겸의 태도에서 위험을 느낀 것이다. 사실 그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분명 71층의 레이드에서 빌리 더 키드의 자폭기 때문에 상당한 대미지를 입은 한국 팀이기는 했다. 그러나···. 박추성 배대호라는 괴물들은 아직도 비교적 멀쩡했다. 이 둘만 해도···. 아니 이 둘중에 하나만 해도 동독팀 전원을 그라운드 제로에서 지워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베르너 프리치가 그걸 알고 자리를 피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이 현명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음날. 정운은 한중겸에게 동독팀과 있었던 트러블에 관해서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된 거야.” “그렇군요······. 영국팀에서 안 그랬던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까?” “뭐? 자기들 입으로 아니라고 하기는 하는데 증거는 없지.” “형님이 생각하기에는 어때요?” 정운의 질문에 한중겸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영국은 아닌 것 같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유가 없어요.” “그렇지?” 정운과 한중겸의 생각은 정확하게 겹쳤다. 그들이 생각하기로는 아무래도 영국이 동독을 습격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최근 영국은 상태가 좋았다. 한때는 월드 서버에서 발붙이기도 버거운 상태까지 몰렸었던 영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영동맹을 계기로 해서 서서히 세력을 다시 일으키고 있었다. 한국팀과 사냥터를 합치면서 영역도 넓어졌고 무엇보다 이제 71층의 레이드도 성공 시켰다. 그건 무엇보다 큰 성과였다. 월드 서버에 진출하고 나서 십수년간 막혀 있던 71층의 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 아닌가? 더구나 얼마 후에는 영국 서버에 있는 신입들을 영입해서 인원을 늘릴 계획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예전에는 동독 서독보다도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월드 서버 최약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과거의 얘기일 뿐이다. 그렇게 최근 상황이 좋은 영국이다. 적어도 지금시점에서 다른 팀들에게 시비를 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동기가 없었다. “그럼 동독의 대표라는 사람이 생트집을 잡고 있는 걸까요?” “글쎄····. 순리대로 생각하면 그게 가장 유력하기는 한데··. 어째 우리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정운도 동의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어쩐지 상황이 좀 찝찝했다. 짝! 한중겸은 손뼉을 쳐서 잠깐 얘기를 끊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관해서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 살펴보자. 일단 동독은 영국과 전쟁을 하려고 한다. 여기까지는 맞지?” “예 하지만 영국도 동독도 지금 시점에서 전쟁을 할 이유는 없죠.” “그래··. 동독도 약체인 주제에 무작정 전쟁을 벌일 이유는 없지. 서독이라는 잠재적인 적도 있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양팀에 모두 동기가 없다면 이 전쟁에 동기를 지닌 자들은 누구일까?”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머릿속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ㅏ “동기가 있는건···. 이 전쟁으로 인해서 피해가 아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겠죠.” “맞아. 즉···.” “서독.” “서독.” 둘의 의견이 동시에 일치했다. 확실히 둘의 예상대로 서독이라면 동기는 충분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동독이 한영동맹과 전쟁을 한다면 서독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서 동독이 전멸하거나 세력이 크게 약해진다면 서독은 누구보다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예약 아이템의 존재가 이렇게 고마울때가 없습니다. 덕분에 연재 페이스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군요. 그래도 간당간당하기는 하다만 말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항상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04화 오히려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이나 영국은 별로 얻을 수 있는게 없었다. 동독의 영역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곧 주력 사냥터를 72층으로 옮겨야 하는 한영동맹이었다. 동독의 영역은 70층과 71층에 모여 있는데 거기를 얻어서 뭐 한단 말인가? 영국이 새롭게 신참들을 끌어 올렸을 때 써 먹을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별로 매력적이지는 않다. 한국과 영국의 사냥터를 합하면 이미 70층, 71층에서의 사냥터는 충분하다. 그에 반해서 서독은 어떤가? 원래 독일은 유일하게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져서 대치중인 특이한 상황이다. 이건 서독에게도 동독에게도 눈엣 가시였다. 만약 서독에게 있어서 동독이 없어진다면···. 일단 서버 하나를 온전히 자신들이 독점 할 수 있는 결과를 가지게 된다. 그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서버에서 적이 없어지고 다른 팀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얘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이상한 점이 아직 몇 가지 더 있다. 바로 서독의 태도에 숨어있는 저의가 뭐냐? 라는 것이었다. “서독이 우리하고 동맹을 제기했던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정운의 질문에 한중겸은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 거리면서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건···. 어쩌면 그건 진심이 아니었을까? 동독을 몰아내기 위해서 시비를 걸기로 작정했다면 든든한 우방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야.” “역시 그럴까요····? 그럼 지금 동독을 건드려서 한영동맹과 이간책을 벌이는 수작이 서독의 차선책이었다는 것이 되겠죠?” “틀림없이 그럴 거야. 동독이 우리한테 자신들의 힘만으로 덤빌리는 없어. 누군가를 끌어 들이겠지.” “그건 그렇죠.” 정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동독이 한영동맹을 상대로 자국의 전력만 가지고 쳐들어온다는 것은 그냥 계란을 판채로 바위에 꼴아 박는 것이나 다른 없었다. 그러니 전에도 이탈리아나 러시아, 중국 등을 등에 업고 함께 싸우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을 했던 것일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쪽에서도 이미 입김이 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 놈들 우리한테 우호사신을 보내기는 했지만···. 사실 그걸로 술술 털어 버리고 잊어버릴 사이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아, 망할 자식들···.”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독에 동독에 중국까지···. 예전처럼 그냥 사냥에만 주력하고 게임의 클리어에만 신경을 쓰던 시절에 비교하면 모든게 너무 복잡해 졌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눈앞에 허들이 가로막고 있으면 넘어야 앞으로 갈 수 있는 법이다. “일단···. 증거가 없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의 가정이 옳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쪽에 설 아군을 찾아야 겠지.” “그 대상은 서독이 1순위 일테고···. 서독 놈들 참 좋아하겠죠? 전에 우리가 뻥 차버렸는데 이제는 우리가 고개 숙이고 같이 싸우자고 청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죠.” “그건 그렇지····. 그런데 너 서독에 동맹신청 할 거냐?” “아니요? 누구 좋으라고.” “그렇지···. 그게 서독의 오판이야.” 서독이 음모를 꾸미면서 동독과 한영동맹의 충돌을 일으킨게 사실이라면···. 서독은 틀림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영동맹에서 제의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운과 한중겸의 예측은·····. 모두 사실이었다. 정운과 하중겸이 대화하고 있는 그 시각···. 우연히도 서독의 전진기지에서도 서독의 리더인 콘러드 크라우스가 부하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인 즉·····. “곧 한국팀에서 동맹이 올 텐데···. 협상 조건으로는 뭐가 좋을까?” 라는 것이었다. 콘러드 크라우스의 말에 측근 부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71층 레이드부터 시작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필수지.” “그리고 이번 기회에 동독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그것도 그렇지··. 그리고 또····. 뭔가 추가적인 부수입이 있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서독팀은 이미 김칫국을 양푼이로 끓여서 드링킹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이미 앞으로의 흐름이 자신들의 예상대로 흘러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원숭이 한 마리를 손바닥위에 올려두고 ‘왓섭! 거기 내 손바닥 이지롱?’ 이라고 하는 기분인 것이다. “후훗···. 한국팀이 강함은 제법 놀랐지만 역시 힘만으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죠.” “그래··. 어느 시대건 최후에 웃는 자들은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인 거야. 이건 인류사 절대 진리지.” 콘러드 크라우스는 피식 웃었다. 이전에 정운의 앞에서 다이앤 여왕과 함께 가서 보인 비굴한 태도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서독은 영국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한국팀에 감정도 없다. 하지만···. 팀에 이득을 가져올 계책이 있다면 감정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는 얽이고 설긴 관계. 그렇다면 무조건 자신들의 팀의 이득만을 추구하자는게 콘러드 크라우스의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팀에 동맹을 제의할 때 이미 그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필요 이상으로 간절하게 매달렸던 것도 지금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쇼의 일환이었다. 한 번 거절했던 상대가 다시 제의하는 만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한영동맹에 은근슬쩍 끼어들고 거기에 더해서 부수적인 이익들을 최대한 얻어낸다. 그게 그가 생각한 결과였다. “그런데 총독각하. 동독을 공격한 유저들은 정말 어떻게 되신 겁니까?” “응? 그게 궁금한가?” “예. 사실 거기에 관해서는 저도 잘···.” “뭐. 동양인들 속담에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일단 기다리게. 나중에 때가 되면 모두 알게 될 거야.” 콘러드 크라우스의 말에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리더의 말발이 잘 먹히는 것을 봐서는 그도 나름 팀 내에서 통솔력은 있는 인간인 것이다. 부하들과의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방에 들어간 콘러드 크라우스. 그는 방에 도착하자 주변을 탐색 스킬로 잘 확인한 후에 인벤토리에서 한 장의 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그 거울을 통해서 어딘가와 통신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당신들의 생각대로 일은 풀리고 있소. 동독이 한영동맹에 이빨을 들이댔지.” -그렇군요···. 잘 됐습니다. “이제 한영동맹에서 우리에게 동맹을 제의할 텐데··. 그때도 뭔가 좋은 생각이 있소?” 콘러드 크라우스의 말에 거울 속의 상대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난 당신에게 한국팀을 고립 시켜서 한꺼번에 공격을 하게 만들라고 했는데? 그런데 정말로 한영동맹과 손을 잡을 생각이오? “하하하···. 내가 당신이 시키는 데로만 움직일 인간으로 보이오?” -··········. “이미 당신이 중국팀에도 손을 넣어서 뒤에서 뭔가 조종하는 것을 알고 있소. 우리한테는 ‘비밀’로 하고 말이지.” -····토라졌다 이건가? “글쎄··, 다만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자의 말에 끝까지 따를 생각은 없다는 거요. 김신수씨.” 거울속의 남자. 김신수는 콘러드 크라우스의 말에 잠시간 침묵했다. 배신감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이 정도는 예상했던 걸까? 어쨌든 콘러드 크라우스는 김신수를 배신하겠다고 여기서 선을 긋고 떠났다. 김신수는 그런 콘러드 크라우스에게 말했다. -··········뭐, 당신 좋을 대로 해 보시오. 하지만 경고해 두겠는데···. 쨍그랑···. 김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콘러드 크라우스는 거울을 깨 버렸다. “충고 같은 건 안 듣는 주의라서 말이야.” 그리고는 깨진 거울의 파편만을 보면서 비웃었다. 그런데···. 서양에는 틀림없이 거울을 깨면 7년은 재수 없다는 미신이 있는데···. 과연 콘러드 크라우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언더 그라운드의 김신수의 방···. “흐음···. 역시 말로 하면 가르치기 힘들다니까···. 개라는 동물은 말이야.” “어떻게 할 까요? 주인님.” 김신수의 중얼 거림에 최수영이 옆에서 말했다. 김신수는 그런 최수영에게 슬쪽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일단 상황을 보도록 하지. 박정운 그 놈하고 엮여서 공든탑이 무너진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니····. 후우, 이번에는 심혈을 기울여야지.” 그렇게 말하는 김신수의 얼굴에는 예전에 보이는 여유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사실 그는 최근 많이 초조해진 상태였다. 박정운이 이끌고 있는 한국팀은 월드 서버에 진출해서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정말로 파우스트에게 도달할 정도로 말이다. 김신수로서는 어떻게든 그런 그들을 막아야 했는데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내고 있지 못했다. 하다못해 언더 그라운드의 공략도 악마들의 치열한 방해 공작으로 인해서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결국 그런 그에게 파우스트가 최후의 통첩을 건냈다. 다음 작전에 실패하면 그때는 나와의 인연은 끝인줄 알라고 말이다.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난 반드시 세계의 왕이 될 거야. 그렇게 되기 위해서 태어난 인간이야.’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는 김신수의 눈에는 뱀 같은 집념이 보이고 있었다. 동독은 며칠 후에 예정대로 한영동맹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 전쟁에 러시아와 이탈리아까지 끼어들었다. 사실 동독은 중국에도 서신을 보냈지만 중국은 아직까지 거기에 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러시아와 이탈리아를 끌어들였고 거기에 동독 자신들의 세력까지 더하면 한영동맹이라고 해도 충분히 상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한영 동맹쪽에도 서독이 끼어들겠지만···. 그리고 분위기가 불편해 지려고 하면 미국 놈들도 끼어 들 수 있지. 중국이 러시아가 중간에 눈치를 보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최대한 대미지를 주겠다.’ 동독의 베르너 프리치는 속으로 치열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처럼 평소에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종종 범하는 실수가 있다. 그건 자기 계획이 꼭 뜻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총독각하!! 한영동맹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가지고 와라.” 그는 부하에게 받은 서신에 한영동맹이 뭐라고 써 있는지 확인해 봤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디 와 봐라. 다 박살내 줄 테니. 한영동맹 대표] 지극히 짧고 지극히 무성의 한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 타국가와 동맹을 맺었다거나 이 전쟁은 당위성이 없으니 그만 두자는 식의 얘기를 예상하고 있던 베르너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했다. “크큭······. 그래··. 해 보자 이거지····.” 뿌드득···.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질 급한 사람들의 약점 중에는 이것도 있다. “좋다!! 어디 해 보자!!!” 적의 도발에 너무나 쉽게 넘어간다는 것 말이다. “괜찮겠습니까? 우리 한영동맹만 가지고 전쟁을 한다는 것을?” 전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한국의 전진기지에 모여 있는 다이앤 여왕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운은 그런 다이앤 여왕을 보면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되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물론 지금 한영동맹에 서독이나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는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생존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정운은 다이앤 여왕의 말을 단번에 부정했다. 너무나 단박에 거절해 버렸기에 다이앤 여왕은 순간 살짝 할 말을 잃었다. 그런 다이앤 여왕에게 정운은 설명을 덧 붙였다. 나중에 두고두고 딴 소리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확실하게 못을 박아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05화 <전쟁의 기운> “우리 한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라는 말이죠.” “····배가 산으로··· 좋은일 아닌가요? 수륙양용이군요.” “···············.” 순간 정운은 그게 그렇게도 해석 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그 말의 뜻은 리더가 여럿이면 조직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군요···.” 여전히 속담은 납득 못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정운이 하는 말은 이해한 다이앤 여왕이었다. “지금 한영동맹은 제법 괜찮은 상태입니다. 잡음도 없고 양팀의 유저들 사이도 원만하고 말이죠.” “그렇죠···.” 다이앤 여왕이 봐도 한영동맹의 내부 결합 상태는 상당이 이상적인 상태였다. 하긴 영국은 한국팀이 떠나면 다시 약소팀이 되는 상황이었고 한국팀 역시 월드 서버에 딱 하나뿐인 동맹을 두고 서운하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상황이다 다른 팀들처럼 서로 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 싸움 같은 것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거야···· 어떻게 될지를 모르겠죠.” “정확합니다. 뭐, 더 좋아질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죠.” “전력 자체는 더 강해질 수 있는데 말이죠.” 다이앤 여왕이 살짝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일전에 서독을 안내했던 것도 그렇고··. 아마도 다이앤 여왕은 좀 더 전력을 증강 시켜서 강한 연합체재를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정운은 어렴풋이 그런 다이앤 여왕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아무리 강한 전력을 갖춘다고 해도 내부에 분열을 조장하면서 까지 전력을 증강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정운의 단호한 말에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좀 더 전력을 증강 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토끼가 욕심난다고 해서 이미 손에 쥐고 있는 토끼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토끼 정도가 아니었다. 영국의 입장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한국과의 동맹을 공고하게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었다. “뭐···. 상대는 러시아 이탈리아 그리고 동독이라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보다 정보는 확실한 거죠?”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살짝 미안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탈리아는 대강 알고 있지만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그 정보조차 없지만 적어도 이탈리아 보다 확실하게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뭐···. 정보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해보는 수밖에요.” 정운은 전쟁에 앞서서 다른 국가의 전력을 알아 볼 수 있게 최소한의 전력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각 팀의 전력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유저의 숫자와 레벨이다. 하지만 숫자는 몰라도 레벨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신에 각 팀의 리더의 레벨을 알려달라고 했었다. 한국팀은 아니었지만 다른 팀들은 모두 최고레벨에 도달한 자가 리더를 맞고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본인의 힘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사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도조 마사토라는 모자란 놈이 리더를 맡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리더의 레벨을 알면 적어도 팀의 어느 정도의 힘은 판별이 나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영국이 준 자료에는 삼개 국의 팀의 정보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동독 인원 : 10명. 리더 : 베르너 프리치 LV.151 (팀원의 평균레벨은 110~140 사이로 추정 됨. 팀으로서의 힘은 서독보다 근소하게 우위에 있음. 숫자는 적지만 평균적으로 고레벨인 편임.) 이탈리아 인원 : 15명. 리더 : 프란체스코 갠돌피니 LV.170(추정치)(팀원의 평균 레벨은 90에서 150 사이로 추정 됨. 전체적인 전력은 프랑스보다 조금 약한 수준으로 파악 됨. 평소에 동독과 약간 우호적인 상황에 입장에 자주 있음. 러시아와는 자주 적대적인 입장에 있음. 스스로 마피아라는 조직을 칭하는 만큼 여차하면 비열한 수단도 망설이지 않는다.) 러시아 인원 : 19명 리더 : 알렉세이 찌모페이 LV.180이상으로 추정. (월드 서버에서 미국과 더불어서 최강의 국가로 불리는 세력임. 팀원의 평균적인 레벨은 110~170사이로 추정 됨. 이탈리아와 사이가 약간 나쁘며 미국과는 사이가 몹시 나쁘다. 평소에는 주로 프랑스와 사이를 좋게 지냈다. 같은 마피아라는 호칭을 써도 이탈리아 팀이 음모파라면 러시아팀은 과격한 무력주의 파라고 할 수 있다.) 자료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강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여기 보면··. 러시아하고 이탈리아하고 사이가 나쁜가 보죠?”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사실 이탈리아 팀도 러시아 팀도 서로를 마피아라고 칭하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들었죠.” “같은 색깔끼리 편하게 지낼 법도 한데 그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한해서는 힘을 합쳤다. 라····? 거기를 파고 들 수는 없을까요?”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잠시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약간 생각한 후에 정운에게 말했다. “힘들지 않을까요? 바보도 아니고···. 일단 힘을 합치기로 했다면 충분한 합의를 거쳤다는 것일 텐데···. 거기를 파고 드는게 가능할까요?” “············어렵겠네요.” 정운은 결국 잔꾀를 부리는 것은 그만뒀다. 괜한 잔꾀를 부리는 것 보다는 훨씬 더 편한 방법이 있었다. “어쩔 수 없죠. 정면으로 승부합시다.” “정말 괜찮을까요?” “걱정 마세요. 오히려 이번 기회에 더 이상 시비거는 놈들이 사라지면 게임 클리어에 더 집중 할 수 있겠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이앤 여왕을 안심 시켰다. 한영동맹 23명. 동독, 이탈리아, 러시아 연합군. 44명. 더구나 이번에는 상대들도 제법 강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운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우선 한영동맹에는 괴물이 두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정운 역시 이제는 그 괴물 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강해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월드 서버에 올라오고 나서 날마다 나 혼자 경험치 × 9라는 것을 계속한 결과···. 현재 정운의 레벨은 188에 도달해 있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얻은 경험치와 월드 서버의 짱짱한 몹들을 상대로 24시간 풀 오토를 돌린 대가가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월드 서버에 올라온 후로 조금은 레벨을 올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운의 레벨업은 탁월했다. 같이 오토를 돌린 한중겸의 경우 정운만큼 레벨이 오르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소환수는 명령이 없으면 본능대로 싸울 뿐. 정운이 사용하는 쉐도우 아미에 깃든 그림자 무장들하고는 격이 달랐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몹을 효율적으로 사냥하는 그림자 장수들의 사냥 속도는 정운이 봐도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런 무장들이 무려 아홉이 아닌가? 레벨이 안 오르면 이상한 것이었다. 원래 정운은 레벨 상으로는 한중겸이나 이민지보다 약했지만 전투력만은 그 둘을 위협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백하게 레벨 면에서도 그 둘을 확실하게 넘어섰다. ‘여차하면···. 내가 가장 강해 보이는 러시아의 리더를 잡아내고 거기서 전투를 사실상 끝내 버리겠어.’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투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 한국의 공격과 일본의 수비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한영동맹이 수비를 하고 있었고 삼국연합군이 공격에 나섰다. 예전에 몇 개로 나눠서 갔던 한국팀과 달리 삼국연합은 모두 뭉쳐서 행동하고 있었다. “이동속도로 봐서는···. 여기서 한 시간 거리 정도에서 천천히 오고 있군.” 박추성이 무한의 영사로 적을 색적하는데 성공했다.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추성이 형님. 그리고 대호형님. 제가 한 말은 기억하시죠.” “그래. 걱정하지 마라.” “나이값은 해야 겠지.” 박추성과 배대호는 정운의 당부의 말을 기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은 둘에게 사전에 부탁해었다. 레이드 때와는 다르게 적어도 어느 정도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달라고 말이다. 단, 실력을 다 보이지는 말고 조금은 숨기라는 말도 했다. 왜냐하면 이번 전쟁은 일본 섬멸전 때처럼 적을 완전 전멸 시켜 버리는게 목적은 아니었다. 그건 이미 한 번 해봤지만 결국 별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른 수단으로 다른 결과를 얻도록 해 봐야 했다. 이번에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보여줄 것이다. 대신에···. 이번에는 생존자를 일부러 남겨서 다른 국가의 팀. 특히 숨죽이고 있으면서 눈치만 보고 있는 중국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한영동맹, 아니 한국 팀의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마중하러 갑시다.” “오케이.” “슬슬 시작할까?” 그때 한국팀원들 중에 윤정철이 손을 들고 정운에게 말했다. “한 가지 질문.” “···뭡니까. 정철이 형님.” “슬기하고 세레나는 어디로 간 거냐?” “·······둘은 조금 컨디션이 안 좋아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 둘만큼의 몫은 하겠습니다.” “···········.” 정운의 말에 윤정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와 정운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정운은 윤정철을 보고 말했다. “형님. 제 결정에 불만이 있으시면 일단 전쟁이 끝난 후에 말해 주시겠습니까? 지금 와서 따진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알았다.” 그렇게 윤정철과 정운의 사이에 일어날 뻔한 트러블은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일단은 말이다. ‘제길···. 안 그래도 그 둘의 일은 골치 아픈데 여기에 정철이 형님까지 끼어들면 골치 아파.’ 정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슬기와 세레나의 컨디션이 나쁘다? 그건 거짓말이다. 지금 그 둘의 상태를 설명하려면 그냥 컨디션이 나쁘다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정운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아무리 유리한 전쟁이라고 해도 동료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데 자리를 비우면 나중에 무슨 뒷말을 들을 줄 모른다. 그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둘을 전쟁터로 끌어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전쟁 이전에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지금 상황은 그만큼 최악인 것이다. ‘젠장, 차라리 전쟁이나 계속 하는게 속은 편하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삼국연합군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아갔다. 한영동맹의 매복을 염려해서일까? 삼국연합군은 최단거리가 아니라 멀리 돌아서라도 매복을 하기 힘든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드넓든 황야 지대에 드문드문 바위가 있을 뿐인 이 지역에서 습격을 받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은신의 스킬이라는 것이 있지만···. 거기에 관해서도 충분한 대응은 하고 있었다. “정찰 결과는?” “괜찮습니다. 이상이 생기면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삼국연합군은 한영동맹의 은신 스킬에 대비해서 탐색 스킬이 있는 자들을 주변에 꼼꼼하게 깔아서 삼중 사중으로 감시망을 펼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이나 땅속은 물론이고 겉으로 봤을 때 눈에 보에는 지역도 꼼꼼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 지나칠 정도이기도 했다. 그 지나친 탐색 덕분에 이동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었고 러시아의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그런 느린 속도가 상당히 불만이었다. ============================ 작품 후기 ============================ 저 속담에 관한 트러블은 예전에 외국친구와 어플로 펜팔 하다가 일어난 실화입니다. 제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라고 하니.. 제 번역이 어설펐던 걸까요? 그 친구가 '소 쿨!!' 이라고 보내더군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06화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닌가? 차라리 고속으로 적의 전진기지로 날아가서 요격을 가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말에 동독의 대표인 베르너 프리치가 대답했다. “방심하지 않는게 좋을 거요. 적들은 우리들의 전력을 보고도 다른 팀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신들 끼리 맞선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힘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베르너 프리치의 말에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본을 무혈로 집어 삼켰고, 올라오자마자 바로 70층과 71층의 레이드를 성공 시켰다? 뭐, 확실히 동독보다는 훨씬 강하겠지.” “············.” 베르너 프리치는 뭐라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애당초 동독의 힘만으로 충분했다면 뭐 하러 이렇게 같이 있으면 불편한 상대를 한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겠는가? 이들을 끌어들인 것은 한영동맹. 특히 한국팀의 전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점을 대 놓고 지적하는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말은 동독팀 전체의 위신을 정면으로 뭉게는 행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걸 따지고 들기에는 동독과 러시아 사이의 힘의 차이가 너무 강했다. 결국은 속으로 분만 삭히는 수밖에···. “쯧, 곧 있으면 전투기 시작될 텐데 쓸데없이 잘난체는 그만하지? 알렉세이.” “호오··.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프란체스코?” “못할 말 한건 아니잖아?” “과연 그럴까?” 이탈리아 대표인 프란체스코 갠돌피니가 딱히 동독과 사이가 좋아서 이렇게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러시아와 사이가 안 좋을 뿐이었다. 둘의 사이에서 살짝 불꽃이 튀기기 시작했을 때···. 장거리 탐색 스킬을 사용하고 있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적을 찾았습니다. 정면에서 발견···.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적을 찾았다고? 숫자는? 몇 명이나 오고 있나?” “숫자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다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고?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 러시아 대표인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추궁하고 있는 남자는 동독의 인간이었다. 당연하지만 소속이 다른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는 것은 큰 실례다. 하지만···. 그런 실례임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확고한 힘의 차이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독의 베르너 프리치는 부하의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 몹시 불편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전쟁은 이제 금방이다. 조금만 더 참자.’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참고 또 참았다. 한국팀의 접근 소식이 전해지자 삼국연합의 인간들은 순식간에 전투체재로 돌입했다. 적이 정면에서 온다고 해도 기습이 없다고 장담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양동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국연합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적을 기다렸다. 뭐···.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아무 의미 없는 짓이었다. 한영동맹은 정면승부를 할 생각이었고 기습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삼국연합은 별 필요도 없이 돌다리만 두드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영동맹이 지금 삼국연합군과 마주쳤다. “정면에서 당당하게라····. 간이 부었군.”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중얼 거림을 들은 정운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못할 것 있나?” 정운의 대응에 순간 알렉세이는 할 말을 잃었다. 상대는 확실하게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혹시 이 와중에 다른 국가가 끼어드는 것은····.’ 알렉세이는 탐색 스킬을 쓰고 있는 자신의 부하에게 눈짓을 했다. 알렉세이의 뜻을 알아들은 부하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지금 주변에는 여기 있는 인간들 말고 다른 유저는 보이지 않았다. 먼 거리에 몇몇 몹들이 돌아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투에 연관성이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정면승부란 말이지···. 간이 부었군.’ 알렉세이는 이를 드러내고 한영동맹을 향해서 말했다. “·······만용인지 용기인지는 제쳐두고···. 그럼 시작하자.” 알렉세이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신호만 하면 당장이라도 삼국연합군이 한영동맹을 향해서 돌격할 태세였다. 정운은 그런 삼국연합군을 보고 언 듯 생각했다. ‘역시 숫적 열세는 좀 그런가····? 저걸 상대하기 위해서는 추성이 형님이나 대호 형님의 밑천이 제대로 까발려 질 것 같은데···.’ 정운은 여기서는 조금이지만 머리수를 줄이고 기세를 꺾어볼까 생각했다. “잠깐!!” 정운이 말을 꺼내서 맥을 끊어 놓자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일이냐? 겁먹은 것 아닌 것 같고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 그보다···. 여럿이 피 흘릴 필요 있을까 싶어서 말이야.” 정운의 말에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대표전이라도 하고 싶은거냐? 미안하지만 그런 정정당당은 그다지 관심 없는데?” 삼국연합은 한영동맹보다 숫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다. 그런데 뭐 하러 일대일 대표전 같은 짓을 한다는 말인가? 다구리라는 메리트가 있는데 뭐 때문에 그걸 포기한단 말인가? 하지만 정운의 다음 말은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고민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쪽의 대표는 나다. 몇 명이건 얼마든지 어울려 주지.” 정운의 말 한마디가 삼국연합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한영동맹의 리더는 박정운과 다이앤 알렉산더 메리. 두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팀간의 밸런스를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한국의 리더인 박정운이 더 중요한 인물이다. 갑작스럽게 킹이 최전선으로 나오는 상황이라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제법 자신이 있다 이거군.”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말에 정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야 확인해 보면 알 일이지. 거기는 누가 나올거냐? 알렉세이, 당신이 직접 나올 건가?” 정운은 이미 일대일 대결로 자연스럽게 결정된 것처럼 앞으로 나왔다. 원래 한영동맹은 23명이었지만 슬기와 세레나의 부재로 인해서 21명. 거기에 비해서 삼국연합은 44명. 이 머릿수의 차이는 좀 골치가 아프다. 승패를 떠나서 아군에게 피해가 발생 할 수 있는 숫적의 차이인 것이다. ‘가능하면 줄일 수 있을 만큼은 줄여 봐야지.’ 정운이 그렇게 앞으로 나온 상황에서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동독의 베르너 프리치에게 말했다. “일의 발단은 너희들이지? 선수를 칠 기회를 주마.” “··········.”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말에 베르너 프리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말은 기회를 준다고 하지만 사실상 너희가 나가서 희생해라. 라는 말하고 같았다. 월드 서버에서 최근 나타나서 일본을 무너트리고 72층 진출에 성공한 한국팀. 그 한국팀의 리더가 약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박정운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동독팀이 희생을 해라. 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망할 개자식···. 보드카에 절여 버릴까 보다.’ 베르너 프리치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차마 그렇게 말 할수 없었다. 러시아가 여기서 발을 빼기라도 하면 동독은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마이어 클라인.” “····예.” “너한테 명령하겠다. 한국팀의 리더와 싸워라.” “··········.” “마이어!!”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마이어 클라인은 인상이 죽을상이었지만 그래도 명령에 거부하지는 못했다. 그라고 왜 지금 베르너 프리치의 말 뜻을 모르겠는가? 말은 나가서 싸워라. 이지만 그걸 직역하면 나가서 싸우고 죽어라. 라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마이언 클라인 그의 레벨은 고작해야 112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동독의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멤버였다. 그런 자신을 밀어 넣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뻔하다. 박정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밝혀라. 가능하면 힘도 좀 빼 놓아라. 대신, 승리는 기대하지 않으니 죽어도 상관없다. 라는 의미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제길···. 나도 기분 좋지는 않다고, 그딴 식으로 원망 섞어서 바라보지 마라.’ 부하의 시선에 베르너 프리치는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마음이 편할 리야 없을 것이다. 쌓인 정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동독의 인간은 고작해야 10명뿐이었다. 레벨의 고하를 넘어서 한명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지목을 한 이상 일단 이쪽에서 총대를 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약한 상대를 지목하는 것은 조직의 리더로서 당연한 일이다. 라고 베르너 프리치는 생각하고 있었다. 뭐··. 그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정운의 앞에 마이언 클라인이 나타났다. 놈의 얼굴에는 이미 살 생각은 버렸다는 듯이 자포자기한 느낌이 강하게 떠올라 있었다. ‘꼭 내가 나쁜놈 같은걸? 하지만 어쩌나···. 난 좀 더 나빠져야 하는데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무기중에 혈광참마도를 꺼내 들었다. “흠····. 검? 아니 도인가?” “생각보다 얆은데? 파괴력 보다는 속도 타입일 수도 있겠군.” 정운이 무장을 꺼내자마자 삼국연합의 유저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도를 얻어내기 위해서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진짜 유저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외면만으로는 절대로 모른다.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것은 외관이나 적당히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이어의 레벨은 112. 이 정도면 적어도 10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베르너 프리치는 이왕 마이어가 죽는다면 적어도 제 몫을 다하고 죽기를 바랬다. 그리고 마침내 마이어가 자신의 무기인 커다란 츠바이헨더를 꺼내들고는 정운에게 돌격했다. “으아아아아아!!!!!” 원래 양손으로 휘두르는 츠바이헨더는 철저하게 파괴력이 집중한 공격무기였다. 그리고 그 말이 뜻하는 것은····. “장난치냐!?” 정운에게는 호구라는 뜻 밖에는 되지 않았다. 상대의 강력한 공격이 날아오기도 전에 정운의 참격이 세 번은 적을 베었다. 파팟!! “크윽···.” 단 한수의 교환으로 마이어의 체력 게이지는 반 이상이 닯아 버렸다. 자신의 방어를 도외시하고 맞교환 할 생각으로 날린 자신의 공격은 맞지 않고 그 사이에 자신만 세 번이나 되는 공격을 맞은 것이다. ‘상대가 안 돼····.’ 혹시나, 어쩌면, 그래도···. 상대가 한국팀의 리더라고 해도 싸우기 직전에는 어느정도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절망 밖에는 없는 법이다. 대부분의 현실은 그런 법이었다. “····각하.” 마이어 클라인은 뒤편에 있는 자신의 리더를 바라보면서 울상을 지었다. 이건 도저히 자신이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제라도 그만 하기를 바랬지만 베르너 프리치는 독한 마음을 먹고 시선을 돌려 버렸다. ‘어차피 죽어야 할 상황이라면 명예롭게 죽어라.’ 듣는 입장에서는 개소리였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을 말이다. “크윽···. 아이언 임팩트!!!”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유니크 스킬일까? 마이언 클라인의 검에 회색의 검술을 검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흠···.” 정운은 상대의 스킬이 뭔지 살짝 궁금해 졌다. 이제까지 자신이 본 적 없는 스킬이었다. 역시 월드 서버에 올라올 정도가 되니 피라미라고 해도 나름 비장의 수단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가 보다. “받아랏!!!” 적은 다시 한 번 정운에게 다시 한 번 공격을 날렸다. ============================ 작품 후기 ============================ 일대일전 부터 시작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07화 <전쟁의 시작은 일기토> ‘이건····?’ 정운은 적의 검격을 받으려고 하다가 급하게 계획을 변경하고 그 공격을 피했다. 콰아앙!!! 적의 검격은 바닥에 작렬했다. 그리고 공격이 작렬한 지면에는 쇠로 된 결정들이 크리스탈 처럼 꽃으로 피어났다. “흐음···. 저런 스킬인가?” 피하지 않고 막았다면 약간은 대미지를 입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를 한다고 해도 적의 몸에 저 쇠로 된 결정들이 달라 붙어서 점점 더 적을 구속해 가는 스킬인 모양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쾅쾅쾅!! 연속된 공격이 지면에 작렬할 때 마다 지면에는 쇠로 된 결정의 꽃이 피었다. 정운의 예상은 정확했다. 아이언 임팩트 LV.MAX (공격이 적중한 곳에는 금속으로 된 결정을 경화 시켜서 동작을 느리게 하거나 정지 시킨다. 결정은 신체의 내부로 파고 들어가서 추가적인 대미지를 입힌다.) 마이어 클라인은 공격력에 특화된 캐릭터이기 때문에 스피드에는 문제가 좀 있었다. 그런 그가 얻은 유니크 스킬이 바로 아이언 임팩트라는 스킬이었다. 이 스킬을 사용함으로 인해서 그는 자신의 속도를 빠르게 하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적의 속도를 느리고 하고 또한 자신의 공격력도 올라갔다. 그렇게 해서 보스몹의 레이드 시에도 어느 정도 제 몫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고 해도 전혀 맞출 수 없는 상대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제 그만 됐다. 잘 가라!! 뇌천신공!!” 정운은 자신의 전신에 황금빛 뇌전을 둘렀다. 그리고 그대로 적의 배후로 파고 들어서 칼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폭뢰참(爆雷斬)!!!” 폭뢰참(爆雷斬) LV.7 (강력한 뇌전을 칼날에 집중 시켜서 한 방에 터트린다.) 퍼어엉!!! “커어억····.” 단 한방으로 승부가 끝이 났다. 원래 정운의 기본 공격력 자체도 높았지만 대인 스킬로서 위력도 상위권에 있는 폭뢰참이 정면으로 적중했다. 그 한방으로 독일의 마이어 클라인의 목숨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정운은 삼국연합을 향해서 검끝을 겨누고 말했다. “간 보지 말고 본격적으로 와라. 부하들을 앞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겁 먹은게 아니라면 말이다.” 정운의 말에 삼국연합의 인간들을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건방지군···.” “감히····.” 특히 러시아의 리더인 알렉세이 찌모페이와 이탈리아의 리더인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좋다···. 그럼 내가 상대해 주마.” 바로 앞으로 나선 것은 이탈리아의 파란테스코 갠돌피니. 바로 이탈리아의 리더였다. ‘좋아 걸렸다.’ 정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애당초 머릿수를 줄인다고 해도 피라미 몇 마리를 잡아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좀 더 제대로 된 월척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삼국연합군 중에서도 중간에 있는 위치인 이탈리아의 리더. 말 그대로 제대로 걸린 월척이었다. “와 봐라···.”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리는 정운을 보고 프란테스코 갠돌피니는 목을 뚜둑 꺾으면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정운을 향해서 마치 사냥감을 보는 맹수과 같이 으르렁 거리면서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까불 수 있는지 보겠다.” “보든가? 말든가?” 정운은 무심하게 상대의 도발을 넘겨 버렸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고 프란체크소 갠돌피니는 키득 거리면서 자세를 잡았다. 자세는 측위. 옆으로 자연스럽게 서서 상체를 약간 숙이고 앞손은 아래로, 그리고 뒷손은 턱 밑에 붙인 상태였다. 주먹을 살짝 말아쥐고 있는 상대를 보고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권법가? 보영이 누님 같은 타입인가?’ 정운은 무장을 활로 바꾸고 원거리에서 싸울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단 그건 보류하기로 했다. 적을 상대해 봐야 알겠지만 역시 가능하면 정운의 실력은 최대한 숨기고 싸우고 싶었다. 일단 무장은 검만으로, 그리고 유니크 스킬은 뇌천신공 하나만 가지고 상대 하는게 바람직한 결과였다. ‘뭐···.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결과일때이지만 말이야···.’ 정운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탐색에 나섰다. “·········.” “·········.” 정운과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서로 거리를 두고 견제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서로를 견제하면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가 도발하듯이 말했다. “속도에 자신이 있던 것 같은데···. 나한테는 다른 밑천을 보이는게 좋아.”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지.” “뭐···. 그건 그렇··· 군!!!” 파팡!!! 프란체스코 갠돌피니가 말을 마치는 시점에서 둘의 간격이 좁아졌다. ‘빠르다!!’ 정운은 순간 적이지만 감탄했다. 잔상을 남길 정도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서 그대로 정운을 공격한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에 몇 합의 공방이 오갔고···. 한차례 격돌했다가 그대로 떨어졌다. 떨어지고 나서 누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호오···. 눈이 좋은걸? 팔 하나 정도는 베어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 미소를 짓고 있는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에 비해서 정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0.몇초 대의 공방속에서 순간 적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그 결과 정운의 오른 팔에는 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고 상대는 멀쩡했다. “정운이가 속도에서 뒤졌다고?” “우리중에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추성이 형님 정도 뿐인데?” “저 놈 대단하군···.” 한국팀의 팀원들은 순순히 감탄했다. 아직 위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운을 상대로 근접 전투에서 속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대는 흔하지 않았다. ‘선빵 맞으니 기분이 영 별로인데?’ 정운은 팔의 통증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의 상처는 정운이 가지고 있는 자연 회복력으로 곧 나을 것이다. 하지만 적에게 깔끔한 한 방을 먹었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불쾌했다. ‘선수에서 뒤진게 얼마만이지?’ 집중력 스킬이 생긴 이후로 정운은 상대의 동작을 300%나 느리게 볼 수 있었다. 거기다 시련의 탑에서의 수행으로 인해서 이제는 순수한 무술 실력만으로도 거의 달인급이라고 해도 좋았다. 현실세계에 인간문화제니 몇 백대 계승자니 하는 사람들이 진검으로 달려 들어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도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움직임을 놓쳤다. 순간 무슨 스킬을 쓴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기색도 없었다. 답은 하나다. 집중력 스킬로 인해서 체감 속도가 300%로 느려지는 와중에도 동작을 놓칠 정도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가 빠르다는 것이다. 그 단순한 사실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정운이 이 전투의 공방에서 속도에서 불리함을 짊어진 상태로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 자신보다 확실하게 빠른 상대와 싸우는 것은 정운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나마 첫 번째 공방에서 수확이 있었다면···. “클로··· 인가?” “호오···. 눈 정말 좋군? 그걸 봤어?” 정운의 중얼 거림에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정말로 놀랐다는 얼굴을 했다. 보통 자신의 무기가 뭔지도 모르고 죽어나간 적들이 부지기수였다. 자신의 목이 날아가고 심장이 꿰뚫리는 순간까지 무엇에 죽었는지 모르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정운은 예리한 시선으로 적의 무기의 형태를 자각했다. 이제 숨길 필요가 없어진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당당하게 자기 무기를 공개했다. “베히모스 클로. 나의 유니크 아이템이다.” “흐음····.” 드러난 장비는 길이 30cm의 날카로운 손톱에 팔꿈치까지 탄탄하게 장비가 되어 있는 건틀릿 형태의 무기였다. 디자인은 검은색 짐승의 가족으로 만들고 검붉은 쇠사슬을 팔뚝 부분에 칭칭 감고 있었다. ‘유니크 아이템···. 중에서도 제법 상위 클래스겠지.’ 정보에 의하면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레벨은 170이락 했다. 그 정도의 유저가 주력으로 사용할 유니크 아이템이라면 상당한 물건일 것이다. 아마도 정운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물건일 수도 있다. “그럼··. 계속 간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프란체스고 캔돌피니가 돌진했다. 퍼엉!!!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돌진력을 그대로 공격력으로 살린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공격은 강력했다. “크윽···.” “느리다!!!” 촤아악!!! 정운이 정면의 공격을 막고 옆으로 빠지려는 순간 적은 이미 정운의 후면으로 돌아와서 손톱을 휘둘렀다. ‘위험!!!’ 자세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정운은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시련의 탑에서 수련할 때 종종 받았던 느낌이었다. 정운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팔을 뒤로 뻗어서 등 뒤에 일격을 막았다. 콰앙!! 상대의 공격을 혈광참마도로 막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힘에 저항하지 않고 앞을 뛰었던 정운은 큰 대미지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기를 그대로 기회로 살리기 위해서 일격을 날렸다. “백뢰참!!!” ‘맞는다!!’ 정운은 스킬을 날리면서 속으로 확신했다. 백번의 참격을 쉼 없이 연달아서 날리는 스킬. 정운이 가지고 있는 검기 중에서는 가장 빠른 기술이었다. 하지만····. “느려!!!” 휙휙휙휙휙!!! “이런!!?” 정운은 크게 놀랐다. 이제까지 중에서 자신의 백뢰참을 막아내거나 견딘 적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공격을 다 피한 인간은 정운도 처음이었다. ‘거짓말···.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정운이 경악한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는 파고 들었다. 한쪽의 양손에 클로 중에서 한쪽으로 정운의 무기인 혈광참마도를 잡아서는 발톱에 끼워서 구속했다.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 정운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 “죽어랏!!!” 스킬도 아닌 주제에 동작이 아주 물 흐르듯이 자연 스러웠다. 아마도 한 두 번 해본게 아닌 필승 패턴 중에 하나인 모양이다. 하지만 정운도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베테랑이었다. “훗···.” 순간의 기지를 발휘한 정운은 그대로 손에 들려있던 혈광참마도를 놔 버렸다. 무기를 버리고 대신에 운신의 자유를 얻은 정운은 손톱이 닿지 않는 거리로 뒤로 날았다. 상대의 무기의 사정거리가 짧다는 것을 알고 순간적인 기지를 보인 것이다. 보통 무기를 주저없이 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서의 검투에서의 일.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다. 무기를 놓쳐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가 재소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투중에 무기를 손에서 놓아 버린다는 대답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운의 그런 기지도 소용이 없었다. “어설퍼!!!!!” 정운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클로의 손톱 부위가 쭈욱 늘어났다. 푸우욱!!! “정운아!!!!” “정운님!!!!” 한영동맹에서 팀 동료들과 다이앤 여왕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순간 정운의 심장이 적의 클로우에 그대로 관통당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쿨럭····. 괜찮아요.” 정운은 그런 그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손톱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톱 부분을 꼭 잡았다. 심장 부분을 정통으로 찔렸으면 크리티컬 대미지로 즉사가 뜰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적의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에 정운이 허리를 비틀어서 심장을 피하는 것에 성공했다. 적의 공격은 정운의 폐 하나를 꿰뚫었을 뿐이다. 현실이라면 그것도 충분히 즉사에 이를 수 있는 치명상이었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머리가 날아가거나 심장이 꿰뚫리거나 몸이 양분되지 않는 이상은 크리티컬 대미지는 뜨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일단 일기토로 전투의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싶었습니다. 초반에 한명은 간보기고 두번째가 진짜배기인 셈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자각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08화 “이 놈이····.” 뿌드드득!!!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그대로 힘을 줘서 정운의 몸에 박힌 손톱으로 정운을 양분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힘은 정운이 더 우위였던 걸까? 일단 정운의 손에 잡힌 손톱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쉐도우 붐!!!” 퍼어엉!! 정운의 스킬 공격으로 인해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어쩔 수 없이 손톱을 줄이면서 뒤로 빠졌다. 워낙에 빠른 몸놀림이기도 하지만 폭발이 터지기 직전에 자연스럽게 몸을 뺀 덕분에 놈은 전혀 대미지를 받지 않았다. 그저 거리를 벌리고 조금 아쉬워 할 뿐이었다. “쳇····.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나?” 뒤로 물러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확실한 승기를 놓쳤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지금 놓친 건 승기가 아니다. 그의 구명줄이었다. “제길····. 어쩔 수 없군.” 정운의 입에서 작은 욕지꺼리와 함께 뭔가를 포기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런 정운을 보고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피식 웃었다. “이제와서 포기한다고 하면 살려 줄 거라고····.” 말을 하던 프란체스코는 그대로 말을 삼켰다. 정운의 그림자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한 아홉기의 그림자 장수들을 보고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 170레벨 대의 유저를 상대하면서 힘을 대부분 숨긴다는 것은 말이야.” “···········.” 정운의 말에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이 나를 상대로?’ 그는 몰랐겠지만···. 좀 전에 정운의 몸에 자신의 무기가 박혀있던 순간은 그에게 있어서 천금과도 같은 찬스였다. 그 찬스를 고작 반격 한 번 당하기 싫어서 놓친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악수였다. 정운은 완전히 무장을 갖추고 자신의 몸에 쉐도우 아머를 한겹 더 둘렀다. 이미 드래곤 리빙 아머의 자체 회복도 시작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 상태로 선언했다. “자···. 라운드 2.” 콰쾅!!! 화려한 제 2막의 시작이었다. 정운이 제대로 작정하고 싸우기 시작하자 공방의 선후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운과 그 소환수인 그림자의 무장들이 사납게 공격하고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필사적으로 정운의 공격을 피했다. “질풍신뢰!!!” 정운이 거칠게 적을 몰아 붙였다. 콰콰카카카카···· 카앙!!! “크윽···. 무식한 놈···.” -나의 주군에게 무례하다!! 콰아앙!!! “쿨럭···.” 정운의 공격을 피하고 하늘로 날아오른 파란체스코 갠돌피니에게 태사자의 창격이 작렬했다. “빌어먹을···..”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상당한 대미지를 입고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무작정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운과 그림자의 장수들을 향해서 거칠게 손톱을 휘둘렀다. “클로 웹!!!” 촤촤촤촥!!! 놈의 클로가 남긴 참격이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펼쳐지면서 정운과 그림자의 무장들을 견제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지 놈의 공격은 정운은 물론이고 그림자의 무장들에게도 심각한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괴물 같은 놈····.”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이를 갈면서 중얼 거렸다. 이 정도로··. 정말 이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스피드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한 수 위였다. 그렇기는 한데···. 그 스피드 말고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구석이 아무것도 없었다. 공격력, 방어력, 힘. 그리고 스킬의 다양성까지···. 그 모든 방면에서 적이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처음에 숨겨진 실력이 있다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허세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정말이었던 것이다. “정신 줄 놓고 뭐 하지?” 이를 갈고 있는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를 보고 정운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공격했다. “천뢰지망!!!” -천뢰지망!!! -천뢰지망!!! -천뢰지망!!! 정운 혼자서 펼쳐도 빽빽한 범위에 뇌전의 화살 비를 내리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정운 뿐만 아니라 그림자의 무장들까지 같이 펼치자···. 정말로 피할 틈 자체가 없었다. 그냥 공격에 비틈이 있다. 없다. 를 떠나서 물리적으로 사람 하나가 빠져나갈 공간과 타이밍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크윽··. 클로 돔!!!” 갠돌피니는 머리 위로 손톱을 교차 시켰다. 그러자 지면에서 거대한 손톱들이 뻗어 나와서 돔을 형성해서 공격을 막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쿨럭····. 제기랄···.” 연기가 걷히고 나자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상태가 드러났다. 놈은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던 것인지 약간의 대미지를 입은 모습이었다. “흐음···. 역시 이런 공격은 사전에 캐치하지 못하나 보지?” 움찔!!! 정운의 작은 중얼 거림을 들은 프란체스고 갠돌피니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놈을 보고 정운이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설마하니 내가 눈치 못챌 줄 알았나? 너한테 몇초 후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스킬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운의 말대로였다. 예고시점 LV. MAX. (적의 공격이 닥치기 직전에 그 영상을 보고 미리 대비 할 수 있다.) 정운이 가지고 있는 집중력과 같은 패시브 유니크 스킬이었고 프란체스코의 비장의 기술중에 하나였다.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장점은 소름끼치도록 빠른 스피드였다. 스피드에 대부분의 스텟을 집중시킨 덕분에 다른 스텟이 다소 소흘한 편이었다. 특히 공격력은 그럭저럭 평균이라도 되지만 방어력은 절망적일 정도로 약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자신을 키운것도 이 예고시점이라는 스킬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적의 공격을 사전에 캐치 할 수만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가 80레벨 정도일 때 우연히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이 스킬을 손에 넣었던 덕분에···. 그는 자연스럽게 방어력 보다는 속도를 우선시 하게 된 것이었다. 어떤 공격이라도 피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스텟을 키워 왔겠지만··. 설마 정운 같이 자신에게 공격을 적중 시킬 수 있는 유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방금 같이 무식할 정도로 빽빽한 공격을 하는가 하면 아홉기의 소환수를 이용해서 숨쉴틈 없이 파상 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공격을 미리 예상한다고 해도 그 공격에 대처할 상황이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상황을 격어 본적이 없는 프란체스코 갠돌피니 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미치도록 짜증났다. “으아아아아아!!!! 블러디 피니셔!!!!” 결국 이성을 잃어버린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폭주했다. 그의 무기인 베히모스 클로에서 선명하게 붉은 강기가 형성 되었다. 그 공격기는 놈이 할 수 있는 최대 파괴력의 공격기이기는 하지만···. 강기를 형성하는 것 만으로도 체력게이지의 50%를 소모시켜야 하는 기술이기도 했다. 콰콰콰쾅!!! 지면을 두부처럼 해치면서 날아오는 참격을 보면서 정운은 피하지 않았다. 무장을 창으로 바꾸고 그대로 적에게 겨냥하고는 집중했다. “와 봐라···.” 속도가 최대의 장점이었던 놈이 이성을 잃고 큰거 한 방으로 만회하기 위해서 속도가 느려졌다. 안 그래도 미꾸라지 마냥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적에게 은근히 몸이 달았던 정운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정운이 겨냥하고 있는 창에 황금빛 뇌전이 휘감기면서 맹렬하게 돌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잉!!! 마치 F1머신의 엔진이 최대 회전을 하는 것처럼 굉장한 굉음을 내면서 정운을 중심으로 강력한 뇌전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정운이 최근에 익힌 스킬로 레벨은 고작 2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공격의 대미지 중에서는 순위권에 들어가게 된 스킬이었다. “천뢰파(天雷破)!!!!” 콰콰쾅!!!!! 두 남자의 최대급의 파괴력이 기어코 정면에서 충돌했다. 힘과 힘의 격돌. 그렇다···. 순수한 힘의 우열을 겨루는 격돌이었고 거기에 승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드러났다. “크으윽···. 괴물··· 같은 놈.”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길고긴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생활을 마쳤다. 사라지기 직전에 드러난 놈의 모습은 머리 아래가 완전히 날아가 있었다. “너도 강하기는 충분히 강했다.” 정운은 사라진 적을 보고 조용하게 중얼 거렸다. 승부의 행방을 가른것은 기본적인 공격력에 더해진 스킬의 성능 차이였다. 상대의 스킬도 강력하기는 했지만···. 천뢰파(天雷破) LV.2 (뇌전의 기운을 모았다가 한 방에 쏟아 붓는다. 관통과 분해의 대미지 효과를 동시에 발휘한다.) 정운의 스킬은 완전히 격이 달랐다. ‘고작 레벨2에 이정도 위력이라니···. 하여튼 뒤에 생기는 스킬이 더욱더 효과가 좋다니까···.’ 정운도 천뢰파를 작정하고 유저에게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마하니 이정도의 파괴력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기쁜 오산인 셈이었다. 띠리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적의 아이템과 스킬의 일부가 스킬북으로 왔습니다.] 정운에게 알림창으로 경험치가 오르고 아이템까지 귀속 되었다는 정보가 알려졌다. 이것을 보고 정운은 곳으로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레벨이 170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레벨이 오르고도 남지···.’ 고레벨이 되면 될수록 레벨은 잘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170짜리 유저를 PK시켰는데 1레벨도 오르지 않았다면 솔직히 섭섭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운이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기쁜 것은 레벨업으로 인한 회복 효과였다. 예전에 쉐도우 엘프 킹을 상대하면서도 한 번 이덕을 봤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는 한 벌 레벨업을 하면 모든 상태가 완벽한 상태로 돌아간다. 즉, 정운도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에게 입었던 대미지와 소모되었던 정신력이 완전히 회복 되었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레벨업 했잖아?” “망할···. X 같은···.” 당연하지만 정운이 레벨업을 한 것은 삼국연합의 유저들도 알았다. 기껏 좀 갉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시 그게 원상복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악재도 이런 악재가 없었다. “자 다음은···. 응?” “죽어랏!!!!” 콰아아앙!!! 정운이 다음 상대를 지목하려고 하는 찰나에 강력한 일격이 날아들었다. 그 일격의 주인은 다른 아닌 러시아 대표인 알렉세이 찌모페이였다. 그는 정운이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와 싸우는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운도 헛소문도 아니었다. 한국 대표는 정말로 엄청나게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운이 레벨업을 한 순간··. 더 이상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전원 공격하라!!!!” 정운에게 추가 공격을 하면서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외쳤다. 그 명령을 받은 삼국연합의 유저들은 단체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모두 죽여라!!!!” 비겁? 그래. 비겁하다. 질 것 같으니 기습을 했고 그건 무척 비겁한 행위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비겁이건 정당이군···.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는군.” “시작하자.” “데몬 엠페러!!! 자이언트 스네이크!!!” 한영동맹도 어차피 이런 상황은 예측했다. 정운이 머릿수를 둘이나 줄여두고 그리고 거기에 한술 더떠서 이탈리아의 최강자인 프랑체스코 갠돌피니를 잡았다.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는데 거기에 한 숟가락 더 떠서 이제는 러시아 최강자인 알렉세이 찌모페이와의 일전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더 몸을 사리면 정운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와랏!!!” “다 죽여주마!!!” 퍼펑!! 콰아아앙!!! 일기토 타임은 이제 끝이다. 이제 진짜 전쟁의 시간인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초반의 밀림은 후반의 반격을 위한 정식일 뿐. 주인공들의 왕도 승리패턴중에 하나죠. 일기토는 이번편까지. 다음 편은 난전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09화 <알렉세이 찌모페이와의 결투> “아아아아아!!!!” “죽엇!!!” 콰아아아앙!!!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이후···. 전투는 실로 치열했다. 월드 서버에 진출한 유저들 하나하나가 자기 서버에서는 일반 유저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때거리로 몰려서 전투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 정도 되면 전투의 규모는 이미 실제 전쟁터에서 폭격기가 융단 폭격을 하고 있는 것 보다 더 심각했다. “크윽····. 밀리지 마라!!!” “빌어먹을 우리 머릿수가 몇인데!! 밀어 붙여!!”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전체적이 승패는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영동맹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전투를 끌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고 10분 정도 흐른 지금 시점에서 한영동맹의 사망자는 제로였다. 하지만 삼국연합에서는 이미 10명이 넘게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전투 전에 정운에게 죽은 두 명을 제외하고 난전중에만 일어난 자들의 몫이 그 정도였다. 삼국연합의 입장에서는 악몽이었다. 난전이 시작되고 나서 전투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흐를 것이라고 예측 했다면 차라리 정운과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일기토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뭐···. 뚜껑 열어보면 그것도 50보 100보이겠지만 말이다. 전투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에는 암암리에 아군을 서포트하고 있는 배대호의 영향이 컷다. 그는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대신에 후방에서 한영동맹의 아군에게 다양한 버프를 실어주고, 삼국연합에는 디버프를 걸고 있었다. 원래···. 이 세계에서 버프는 성기사나 사제 같은 캐릭터들의 전유물이다. 메이지는 약간의 디버프는 걸 수 있지만 사실 그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슬기 역시 슬로우라는 스킬을 만렙까지 찍었지만 고작해야 적의 동작을 10% 느리게 하는게 고작이었지 않은가? 하지만 배대호는 달랐다. 그는 스스로 마법을 창조하는 자. 이 그라운드 제로를 통틀어서 유일한 진짜 마법사라고 해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세레나보다 오히려 더 능숙하고 강력한 버프를 아군에게 걸어주고 있었다. 거기다 적군에게 걸어버리는 강력한 디버프는··. 적의 능력치를 전체적으로 30% 가까이 다운 시키고 있었다. 특히 가장 눈부신 것은 오토 역장이라는 스킬이었다. “죽어랏!!!!” 영국의 마이클 핸더슨은 뒤를 잡히고 말았다. ‘큿···.’ 전방의 적을 상대하는 것 때문에 뒤의 공격을 몸으로 때워야 할 순간이 되었고 그는 순간적으로 대미지를 각오했다. 하지만···. 퍼어어엉!! 공격을 하려던 상대가 마치 덤프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뒤로 뻥 하고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무슨····?”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멋대로 날아가 버리는게 아닌가? 그런 그를 스쳐 지나가는 이보영이 말했다. “신경쓰지 말고 싸워요. 대호 오라버니가 뭔가 해 준거에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상대를 찾아서 바람처럼 움직였다. 맨손으로 무기를 들고 있는 상대들의 사이를 누비면서 이보영은 거침없이 싸우고 있었다. 영국유저들도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한국 유저들은 용감함을 넘어서 능숙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한국 유저들 중에서도 주경택이나 이지영, 이보영은 영국 유저들과 그다지 실력 차이가 없지만 훨씬 더 잘 싸우고 있었는데 그건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에 박추성 배대호라는 괴물들이 있는 이상은 절대로 질 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직접 전투를 자제하고 있는 배대호.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은근슬쩍 세 명이나 목을 날려 버린 박추성··. 이 둘의 전투능력에 대한 한국팀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원래 사람이란 승리가 눈앞에 보이면 없는 힘도 솟구쳐 오르는 법이다. 한국 팀은 영국 유저들과 달리 그런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전투에 대하는 자세도 달랐던 것이다. “편막!!!” “염빙난무!!!” 단체전에서 특히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있는 것은 김수민과 면주호였다. 이 둘은 십왕이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6위와 7위로 랭크되던···. 뭐 사실 좀 어중간한 위치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흥이 올랐다. 거대한 소환수를 다루는 한중겸과 정령왕을 소환해서 거하게 싸우고 있는 이민지를 막기 위해서 삼국연합에서 15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거기에 몰렸고 그 틈을 타서 이들이 프리해 졌기 때문이다. 둘은 마치 자신을 무시한 것을 갚아주기라고 하겠다는 듯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다 덤벼!!!” “호된 맛을 보여주마!!” 적들의 중앙에 파고 들어서 치열하게 혼전을 이끌어내고 있는게 이 둘이라면··. 혼자서 다섯이나 되는 삼국연합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자는 다름 아닌 윤정철이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혼자서 접전지역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5km는 떨어진 장소에서 화살을 이용해서 한명 한명을 정확하게 저격해 내기 시작했다. “코브라 샷!!!” 코브라 샷 LV. MAX (한번 발사된 화살은 적을 향해서 유도 추적을 한다. 적중한 화살은 독의 대미지를 중첩적으로 입혀간다.) 저격용 스킬 중에서도 유저들에게 특히 잘 먹히는 기줄이었다. 보통 보스몹들 같은 경우는 워낙에 피통이 크다 보니까 독으로 인한 대미지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저는 일단 피통이 작았고 독에 대한 저항력이 높거나 정운처럼 자체적인 체력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서서히 독에 중독 되어서 죽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난전중이 아니라면 회복 아군의 회복을 받으면서 회복 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난장판인 상황에서는 그것도 바라기 어려웠다. “커억···.” 결국 또 한명의 유저가 죽어 나갔고 삼국연합의 유저들은 착실하게 죽어나갔다. 한편 이렇게 전투가 한영동맹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을때···. “빌어먹을···. 비켜!!!” “먼저 덤벼놓고 너무 박정한 걸? 그러지 말고 천천히 놀고 가자고···.” 알렉세이 찌모페이와 정운은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자신의 무기인 크리스를 거칠게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검은 화염과 냉기를 동시에 뿜어내면서 정운에게 밀려갔지만···. 정운은 이미 능숙해진 상태였다. “이런거 주호 형님하고 많이 해 봤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숙하게 화염과 냉기를 피하면서 거리를 벌렸다. “크윽···. 이 망할 개자식···.” “먼저 멋대로 덤비고 그렇게 토라지면 골치 아프지. 넌 나하고 좀 더 놀자고.” 정운은 별로 승부를 볼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피식 웃으면서 적을 도발했다. 사실 정운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작전이었다. 여유롭게 보이고 있었지만 실제로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상당히 강했다. 추정 레벨이 180에서 190사이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것보다 더 강해 보였다. 실제로 정운의 예상대로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레벨은 191. 레벨만 놓고 보면 정운보다 한 수 위일 정도였다. 무장은 물결무늬의 단도인 크리스 한 자루 뿐이었는데 거기서 화염과 냉기의 힘을 동시에 발현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놈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검은색 까마귀들···. “가랏!!!” 쉐에에엑!!! 검은색 까마귀는 정운에게 달려들었고 정운은 그걸 직접 상대하는 대신에···. “막아!!” -옛!! 주군!! 그림자의 무장들을 지시해서 날아오는 까마귀를 막았다. 퍽!! 퍽퍽퍽!!! 그림자의 무장 중에서도 관우를 꺼내서 막았다. 관우는 능숙하게 청룡언월도를 풍차처럼 휘둘러서 공격을 막았지만 자신도 갑자기 대미지를 입고 허물어져 버렸다. 한 대도 맞지 않았는데 말이다. 처음에 정운이 곤란함을 느낀것도 저것이었다. 저 까마귀는 아마도 주술적인 저주와 관련된 스킬로 보였다. 저 까마귀를 죽일 때 마다 정운 자신도 대미지를 입었다. 그러니 저 기술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막지 말고 끝까지 피해야 하는 것이다. 허공에 수 백마리나 떠 다니고 있는 까마귀 무리를 말이다. “흐음···. 정말 치사한 기술이야.” “네놈이 할 말이냐!!! 저 그림자 전사들은 도대체 뭐냐!!?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은 없는 거냐?”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저 까마귀 정체는 뭐야? 저거 열 마리를 죽이니까 내 체력 게이지가 왕창 닳았었다고.” “이익····.” 둘 다 레벨이 최상위권 이다 보니 다른 유저들이 보기에는 반칙 같아 보이는 스킬들이 종종 있었다.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스킬도 사실 충분히 반칙소리 들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이쪽은 공격 못하고 저쪽만 공격 가능한 소환수라니?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정운의 경우 직접 공격으로 막는게 아니라 그림자의 무장으로 막고 다시 재소환하면 그만이라지만 다른 유저들 같으면 무척 곤란했을 것이다. “·············.” “·············.” 정운도 알렉세이 찌모페이도 서로를 바라보면서 치열하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실 정운도 알렉세이 찌모페이도 알 고 있었다. 아직 상대가 진짜 비장의 무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운은 자신의 최대 화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트랄 소드를 쓰지 않고 있었고··. 알렉세이 찌모페이 역시 아직 숨겨둔 비장의 기술이 있었다. 다만···. 이들 정도 되는 유저들이 쓰는 비장의 기술이라는 것은 정말 비장의 기술이어야 했다. 사용하고 나면 상당한 리스크를 반동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 역시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다시는 2시간 동안 아무 스킬도 쓸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지 않는가?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둘 사이의 차이점이라면···. ‘크윽····. 저 바보 같은 놈들·· 머릿수 차이가 몇인데 밀린단 말인가?’ ‘저럴 줄 알았지. 저기에는 나 보다 더한 괴물이 둘이나 있단 말이야.’ 한영동맹이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는 입장의 차이였다. 정운은 얼마든지 장기전으로 어울려 줄 수 있었지만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달랐다. 그는 절대 장기전으로 가서는 안 되었다. ‘쓸까? 하지만···. 그랬다가 실패하면 모든게 끝인데···.’ 그는 자신의 무기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그가 쓰는 비장의 기술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 반동은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가면 팀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 뻔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휴전을 청하고 싶었지만 이제와서 휴전을 청한다고 상대가 순순히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다. 적어도 알렉세이 찌모페이 본인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인데 뭐 하러 받아들인단 말인가?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하고 놀면서 정신을 딴데 팔아? 여유가 만만인데?” 콰아앙!!! 정운의 공격은 어느세 알렉시이 찌모페이의 몸통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커억····.” 한참을 싸우면서도 정타만큼은 필사적으로 피했던 알렉세이 찌모페이였다. 하지만 정운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자 자신의 체력 게이지의 3분의1이 닳아 버리는 것을 보고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힘을 아껴서 될 상대가 아니다.’ 목숨의 위기를 겪은게 얼마만일까? 워낙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잠자고 있떤 위기감이 다시 눈을 뜨고 주인에게 경고를 날렸다. 위험하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 위기를 해쳐나가라. 라고 말이다.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각오를 다졌다. 그 역시 월드 서버에서 미국과 함께 투톱을 달리던 강팀을 이끌던 유저였다. 진짜 비장의 기술은 아직 숨겨두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그래도 러시아 대표는 제법 강한 상대입니다. 월드 서버에 미리 진출했던 유저들 중에서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실력인 셈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10화 “····박정운이라고 했지?”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비장한 얼굴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싸우던 중에 갑자기 왠 통성명이야?” 진지한 상대와 달리 정운은 혈광참마도로 어깨를 통통 두드리면서 비아냥 거리면서 말했다. 다분한 도발이었고 이제까지 초조함이 극에 달했던 알렉세이 찌모페이에게는 잘 통했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경우는 달랐다. “너, 내 클래스가 뭐라고 생각했지?” “몰라. 그걸 꼭 알아야 하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운은 사실 좀 궁금했다. 적의 클래스명을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적의 공격패턴의 일부분은 대강 짐작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공격은 크리스를 이용한 검술과 소환한 수백마리의 까마귀들···. 사실 이것만 봐서는 뭔지 알기 어려웠다.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크리스로 자신의 손끝을 베어서 크리스의 물결모양의 날에 자기 피를 묻히기 시작했다. “가르쳐 주마. 내 클래스명은 저주술사. 적을 저주해서 지옥으로 떨어트리는 직업군이다.” “찌질한 클래스군. 내 클래스는 비밀이다.” 정운의 말에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울컥할 법도 했지만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 나의 최고의 저주술을 보여주지.”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크리스의 날에서 귀곡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검신에서는 붉은 아우라가 스멀스멀 일어나더니 그 아우라는 이윽고 거해한 해골들로 변해서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뭐 하려는 거지?’ 정운은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타입의 몹들과 그리고 유저들과 싸워봤다. 하지만 저주술사라는 클래스명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싸우려는 걸까? 저건 뭘 하려는 걸까? ‘지금 공격할까? 아니··· 하지만 그게 함정이면 어떻게 하지?’ 정운은 알렉세이 찌모페이와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페이스를 상대에게 빼앗겼다. 적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공격을 하는게 함정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정운이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몸에서 솟구치는 붉은 아우라는 이제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해 졌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지옥의 연회.” 화아아아아아악!!!!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붉은 아우라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정운을 집어 삼켰다.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비장의 스킬. 유니크 스킬 중에서도 최상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지옥의 연회가 시작되었다. “·····뭐지?” 붉은색 아우라가 자신을 덥친 그 순간 정운은 일단 전신을 방어자세로 잡았다. 하지만 정작 대미지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정운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공간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는···, 던전? 아니 미궁인가?” 정운은 자신이 어떤 미로속의 길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게 상대의 스킬과 상관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골치 아프게 되었군.”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리는 시간동안···. 한영동맹과 삼국연합의 전투는 끝이 났다. 삼국연합이 전멸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운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알렉세이 찌모페이도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윤정철의 화살이 동독의 대표인 베르너 프리치의 머리까지 날려 버렸다. 이탈리아의 대표인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정운과의 일기토에서 죽었고···. 이렇게 되자 일시적으로 삼국연합의 톱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 부하들도 서서히 눈치를 보다가 하나 둘 씩 항복을 하기 시작했다. 한 두 명이 항복을 하자 연달아서 너도 나도 항복을 하기 시작했다. 다만···. 항복을 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동독이나 이탈리아의 유저였다. 러시아의 유저들은 아직 항복을 하지 않고 이를 갈고 있는 자들과 항복을 한 유저들이 반반정도씩 섞여 있었다. “이 배신자들···. 파더께서 돌아 오신다면 네놈들도 모두 죽여 버릴 것이다.” “시끄러!!! 일단 살고 봐야지. 그리고 누가 살아서 나올줄은 끝에 가봐야 아는 거잖아!!?‘ 러시아 유저는 원래 19명이었다. 하지만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사라지고 아홉명이 죽고 이제는 살아남은 인원이 아홉명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들 중에 네 명은 알렉세이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한영동맹과 배신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의 전력으로 함부로 덤벼드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일시적이지만 전투는 한영동맹의 승리 상태로 정지된 것이었다. 배대호는 아직 반항의 의지가 강한 러시아 유저들을 격리시켜서 마법으로 구속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유저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정운이하고 너희들 대장은 어디에 간거야?” 배대호의 말에 러시아의 유저는 굽신 거리면서 말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사실 저희도 잘은 모릅니다.” “뭐라고···?” 배대호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하자 놈은 크게 죄송하다는 듯이 굽신하면서 말했다. “그게··. 지금 사용한 기술은 지옥의 연회라고 해서 알렉세이님··. 아니 놈의 비장의 기술입니다. 저희에게도 잘 알려주지 않는 기술이라서··.” “그래··. 그랬단 말이지?” “예. 다만 저 기술을 쓰면 상대와 알렉세이는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항상 살아 돌아온 자는 알렉세이였습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정보군. 다른 정보는 없는 거냐?” 한중겸이 인상을 쓰면서 말하자 놈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기억의 타임캡슐을 필사적으로 파냈다. “그게···. 일단 잘은 모르지만 저 스킬은 함부로 쓸수 있는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준비 조건도 있고···.” “준비 조건?” “예. 일단 자신의 체력 게이지의 3분의1 이상이 대미지를 입을 것. 그리고 저주를 걸 상대에게 자신의 클래스명을 말 할 것. 그리고···. 그것 말고도 한 두 개 더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저희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쯧.” 한중겸은 혀를 찼지만 내심 납득은 갔다. 비장의 기술에 대한 정보는 원래 함부로 나에게 털어 놓는게 아니다. 실제로 한국팀에서도 다른 사람은 모르는 비장의 기술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게 보통이었다. 러시아 팀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부하들이 이렇게 재깍 배신을 하는 것을 봐서는 그렇게 친밀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아!!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말에 한영동맹의 이목이 모두 몰렸다. 이목을 집중 받은 상대는 러시아의 살아남은 유저들 중에서 유일한 여성유저였다. 금발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상당한 미모였는데 그녀는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첩이기도 한 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재깍 배신한 것을 봐서는 별로 마음이 통한 사이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예전에 저한테 술에 취해서 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 스킬은 양날의 검이라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시작하면? 빨리 말 해.” 한중겸의 말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일단 사용하면···. 상대와 나 둘중에 하나는 꼭 죽어야 끝나는 기술이다. 라고 했습니다.” “제길, 그런건 뻔한 거잖아? 그런거 말고 우리가 외부에서 간섭할 방법이 뭐 없냐고!!!?” 결국 한중겸의 짜증이 폭발했다. 그러자 상대 여자는 잔뜩 겁을 먹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건···, 없습니다.” “제길!!······도대체 뭐하는 기술이야?” “골치 좀 아프겠군.” “무사 할까요?” “몰라. 하지만 정운이 그자식 워낙에 끈질기니까··. 일단 믿고 기다려 보자.” 결국 동료들은 외부에서 걱정해 주는 것 밖에는 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후우···. 골치 아프군.” 정운은 한참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런 미궁에 갑작스럽게 끌려 들어갔을 때 가장 간단한 대처법은 일단 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짐작컨대 이 미궁의 존재 자체가 적의 스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디 보스몹도 아닌데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스킬을 쓰는 유저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의심할 수도 없었다. 너무 뻔하니까 말이다. 정운은 한참동안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쉐도우 서치를 발동 시키고 대기하고 있었다. 미궁이라는 것은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위험한 법이다. 만약 이게 적의 스킬이라면 자신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외부의 동료들이 알아서 뭔가 해 줄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뭔가가 움직여지는 느낌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정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기다려보려고 했지만 이 미궁에서는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자력으로 뭔가를 해야 했다. “혼자서 미궁탐색이라···. 꼭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군···.” 정운은 중얼 거리면서 혼잣말을 했다. 슬기가 같이 생기고 세레나가 함께 하고···. 문시영에게 배신당하고 나서부터 혼자 솔로 플레이만 계속하던 정운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오히려 혼자인게 어색해 졌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항상 슬기나 세레나가 있었고··. 심심치 않게 술 병들고 찾아오는 한중겸이나 다른 동료들도 생겼다. ‘뭐야···? 나 쫄았나?’ 정운은 순간 자신이 혼자가 된 것을 느끼고 고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자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약해진 일면을 발견했지만··. 그럼에도 그런 자신이 싫지 않았다. ‘기다려 줘. 슬기야. 세레나, 내가 얼굴을 손톱자국으로 도배되어도 좋으니 꼭 너희들 곁으로 돌아갈거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궁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정운이 미궁을 탐색하고 나서도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정운은 약간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한 걸? 함정도 몹도 그리고 관문도 보이지 않아.” 미궁에 들어오면 보통 침입자를 처리하기 위해서 수많은 함정이나 사나운 몹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해도 뭔가 커다란 홀이나 관문이라도 나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런게 없었다. 그저 끝없는 미로만이 계속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 심지어는···. “확실하군. ·····망할.” 정운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 이유는 눈앞에 보이는 양 갈래 길 때문이었다. 양쪽의 길 모두에 길쭉하게 칼 자국이 엑스자로 나 있었는데···. 이건 정운이 만든 작품이었다. 미궁 탐색의 기본은 같은 길을 여러번 가지 않기 위해서 갈림길에서 표시를 하면서 가는 것이다. 정운도 그런 기본을 충실하게 지켰다. 하지만 이렇게 양쪽 다에 엑스자가 나왔다는 것은 정운이 길 없는 장소에 들어와서 헤매고 있다는 증거였다. “후우···. 귀찮게 됐군···.” 이럴바에는 차라리 강력한 몹이 나오는 던전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이렇게 빙빙 돌기만 해서는 체력만 소모할 뿐이다. 식량이라고는 인벤토리에 마침 넣어뒀던 작은 칼로리 바이트 두 개 뿐이었다. 컨디션 유지를 생각하면 마냥 아껴서 먹을 수만도 없었고···. 결국 정운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 봐야 길어야 삼사일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빙빙 돌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정운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체력을 좀 더 소모하기는 하겠지만 이 미궁의 경우 파괴불가 속성은 아니었다. 던전의 벽에 검으로 표시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증거였다. “훗!!!” 콰아앙!!! 정운의 강력한 일격이 벽을 부셨다. 우수수 떨어지는 돌 조각과 함께 부서진 벽 너머로 다른 길이 등장했다. “좋아··. 일단 직진해 볼까?” 정운은 작정하고 혈광참마도를 휘두르면서 눈앞에 벽들을 연달아서 부셔갔다. 콰아아앙!!!!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11화 <정운의 위기> 벽을 부수면서 직진을 거듭한지 여섯 시간. 정운은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방법으로도 안 통하는 건가? ···사람 돌게 하는군.” 정운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이 처음에 벽을 부셨던 공간이었다. 정운은 똑바로 직진만을 거듭했는데 어느새 또 같은 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한 바퀴 일주 한 건가? 도대체 어떻게···. 설마 이 미궁은 무한 루프라도 하는건가?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정운은 체력이 상당히 소진된 상태로 한숨을 내쉬었다. 심신 모두가 이렇게 핀치에 몰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몰래 바라보고 있는 상대가 있었다. “훗···. 결국은 내가 만든 개미지옥에 빠졌군.”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정운의 상황을 일거수 일투족 관찰하고 있었다. 이 지옥의 연회로 만들어진 던전은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손발이고 눈과 귀였다. 당연하지만 정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알 수 있었다. “가능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듯 한데···. 그래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찾을 수 없을 거다. 이제까지 모두가 그랬으니····.”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자신의 비장의 한수라고 할 수 있는 이 지옥의 연회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약점이 뚜렷한 기술이었고 적이 그 약점을 눈치체면 그때는 오히려 핀치로 몰리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함부로 남발할 수는 없었다. 대신 일단 스킬이 성공적으로 먹힐 때의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예전에 120레벨일 때 이 스킬을 이용해서 같은 서버에 있는 180레벨의 유저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일로 인해서 그는 러시아의 최고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었다. “놈도 별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2단계로 올리자.”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정운이 서서히 지쳐가는 것을 봤다. 40시간 후···. “후우····. 후우····.” 정운의 입에서는 호흡이 다소 거칠게 나타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를 조건반사적으로 돌고 또 돌았지만···. 아무리 돌고 또 돌아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운의 눈에도 슬그머니 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걸음은 반사적으로 움직였지만 점점 더 지쳐가는 체력과 끝없이 펼쳐져 있는 미궁은 정운을 계속해서 지치게 만들어갔다. 중간에 쉐도우 아미를 써서 그림자의 무장들을 탐색으로 이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괜한 정신력만 소모했을 뿐이다. ‘지금 컨디션이 어느 정도지? 평소의 80%라도 유지하고 있는 건가?’ 더 이상 쉐도우 아미 스킬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쳐간 정운은 이제 아무대책 없이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지쳐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신을 멀쩡하게 챙기고 있었다. 인간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팽겨쳐 지면 불안감과 공포로 24시간을 못 버티고 광란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그라운드 제로에서 단련된 정운은 그 몇 배의 시간을 잘 버티고 있었다. ‘난 포기하지 않아···. 절대로.’ 정운은 스스로 마음을 굳게 다 잡았다. 그로부터 다시 30시간 후····. “·············.” 털썩···. 걸음걸이에서 힘이 빠진 정운은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고 쓰러져 버렸다. 이미 인벤토리에 조금 있던 식량을 사라졌고··. 그 후로도 걷고 또 걸었다. 적의 습격이 있을까봐 수면 시에는 그림자 장수를 한 명만 세워놓고 두 시간에 15분 가량만 짧은 수면을 취했다. 하지만··. 그렇게 체력을 최대한 온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운은 이제 거의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육체적 피로를 운운하기 이전에 긴장감과 눈앞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 때문에 점점 지쳐만 가고 있는 정운이었다. 무엇보다 이 던전은 뭔가 이상했다. 정운의 체력을 마치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운을 점점 더 지쳐가게 하고 있었다. 정운은 결국 지쳐서 그대로 지면에 쓰러져 버렸다. “····후우······.” 일단 쓰러진 몸을 뒤집은 정운은 미궁의 천장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희망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이 스킬에 걸린 시점에서 이미 나에게 반격의 수단은 없는게 아닐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일지도 몰라.’ 사람은 상황이 어려우면 점점 비관적인 생각으로 사고가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정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쳐 쓰러져 있는 정운을 보고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훗···· 후후후····.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사실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완벽한 사기 스킬로 보이는 이 지옥의 연회에도 결정적인 약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스킬을 시전하고 있는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정신력 소모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고 레벨인 만큼 그 역시 상당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정운이 너무 끈질기게 버티는 바람에 알렉세이 찌모페이도 조금씩이지만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정운이 한계를 보이자 마음 한구석에서 조마조마하던 숨통이 이제야 트이는 기분이었다. “후우····. 그럼, 이제 슬슬 마지막 단계로 진행 시켜도 되겠군.”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이 미궁의 최종 단계를 드디어 발동 시켰다. 정신력의 소모가 만만치 않은 기술이라서 함부로 쓰지는 않았다. 써야 할 타이밍을 신중하게 계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의 발버둥도 모두 끝났다. 힘이 빠진 먹잇감에 독니를 박아 넣을 차례인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웅····. “···이건?” 쓰러져서 반쯤 자포자기하고 있던 정운은 미궁에서 진동을 동반한 울림이 울리는 것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이게 어떤 변화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변화라고 해도··. 그 변화 자체가 반가울 정도였다. 정운은 몸을 일으키고 스킬을 발동했다. “쉐도우 서치.” 일단 뭔가 변화가 생겼다면 정운의 주변에 뭔가 이변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정운은 탐색 스킬로 자신과 약간 떨어진 장소에 뭔가가 생성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찾았다!!” 정운은 마치 사막에서 조난당한 자가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뛰쳐나가는 것처럼 한 걸음에 달려갔다. 거기 있는게 무엇이든 간에 이 상황을 타계할 뭔가의 열쇠가 될지도 몰랐다. 달려간 정운은 그 자리에서 뭔가 흐리멍텅한 어떤 것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봤다. “슬라임?” 마치 슬라임 같은 젤리의 형태를 하고 있는 물체를 보면서 정운은 중얼 거렸다. 상당히 많은 거대한 양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결국 슬라임은 슬라임이다. 이렇게 거창한 미궁에 등장한 몹 치고는 너무 약골이었다. 어쨌든 며칠 만에 간신히 발견한 몹이었다. 이 놈들을 잡으면 이 미궁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몰랐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정운은 자신의 무기중에서 검이나 창이 아니라 원거리 무기인 활을 꺼냈다. 고작 슬라임이라고 해도 어떤 이상한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저층의 슬라임 중에서 예전에 정운을 애먹였던 놈은 대미지를 입으면 강한 폭발을 하면서 자폭하며 유저에게 큰 대미지를 입히는 놈이 있었다. 이 놈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정운이 신중하게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일다 화살을 한 대 매겨서 그대로 날렸다. 퍼억!! 화살이 맞자 거대한 슬라임은 그냥 그대로 맞고는 잠시 꿈틀 거릴 뿐이었다. “별 것 아닌가? ····응?” 정운은 그냥 슬라임인가 싶었는데 그 순간 슬라임이 몇몇 덩어리로 분해 되면서 형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거리면서 형체를 바꾸는 슬라임은 결국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제는 슬라임이 아니라 완벽한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저마다 제각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 같은 형체가 된 것이다. ‘도플갱어하고 같은 타입인가? 하지만 내 모습을 하고 있는것도 아닌데···. 전부 제각각이군.’ 정운은 경험이 풍부한 유저답게 일단 미지의 적이 눈앞에 보이면 차분하게 관찰하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습관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적은 인간형. 슬라임의 모습이었던 것은 이 모습으로 돌아가는 도중의 단계였던 것 뿐이었다. 이 놈들을 모두 죽이면 그때는 뭔가 상황이 변할지도 몰랐다. “좋아···. 그럼 속전속결로 끝냈다. 쉐도우 아미!!” 정운은 그림자의 장수중에 둘을 꺼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정운이 소환한 장수는 관우와 조운. 가지고 있는 장수들 중에서도 특히 돌진력이 좋은 장수들이었다. 좁은 미궁의 안에서는 이들만큼 적임도 없었다. “중앙돌파하면서 적들을 섬멸시킨다. 좌우를 맡아라.”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정운은 자신도 흑토를 꺼내서 올라타면서 말했다. 그리고 양옆에 관우와 조운을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끝낸다.’ 뿌드득··. 컨디션이 최악의 상태인 정운으로서는 전투를 무조건 단번에 끝내야 했다. “아아아아아아아!!!!” “히히힝!!! 정운과 흑토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과 동시에 미궁의 좁은 길에 삼기의 기마가 돌진했다. 콰콰콰콰콰콰콰····. 다행이도 형태를 갖춘 몹들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너무 약했다. ME로 정보를 찍었을 때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서 살짝 긴장했었지만···. 정작 싸우니 놈들의 레벨은 고작해야 30~40대 정도가 고작이었다. 중간 중간에 60정도 되는 놈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한 번의 돌격으로 적을 완전히 박살낸 정운은 이제 뭔가 미궁에 변화가 생기기를 바랬다. ‘제발···. 제발 뭔가 좀 생겨라···.’ 하지만 그런 정운의 바램과는 다르게 이 미궁에서 나타난 몹들을 해치워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방금전에 박살을 낸 몹들이 다시 꿈틀 거리면서 재생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정운은 신경질 적으로 이를 갈았다. 월드 서버에 진출하고 나서 이렇게까지 핀치에 몰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강한 적이 나타나도 이겨왔고 돌파해 왔는데···. 여기서 이런 절망을 맞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제길···. 관우, 조운. 너희는 돌아가.”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적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림자 장수들을 쓰는 것은 정신력 낭비다. 평소라면 별 상관 없었겠지만 지금 정운은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멘탈도 까칠해 졌고, 정신적 밸런스도 위태위태했다. 지금은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보고 악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갈지 몰랐다. “어디 죽어보자····.” 정운은 평소의 신중함이나 계산하는 버릇을 완전히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면··. “아주 한껏 미쳐주마!!!” 정운은 그렇게 위치면서 정면에 보이는 몹들을 향해서 돌격했다. “으아아앗!!!” 콰지직!! 정운의 일격이 다시 한 번 정면에 보이는 놈의 몸을 양분패 버렸다. 상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면서 물렁하게 변해 버렸다. 정운은 놈이 빨리 재생하지 못하도록 발로 한 번 짓밟아 버린 다음에 다음 놈들을 계속 상대했다. 흑토도 돌려 보내고 스킬도 쓰지 않고 순수하게 검 한 자루로 놈들을 상대하는 정운은 완전히 이성을 잃어 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육체적인 피로보다는 스킬을 사용 할 수 있는 정신력을 더 온전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런 스타일로 전투 방식을 바꾼 것이다. ============================ 작품 후기 ============================ 알렉세이 찌모페이도 명색이 레벨이 191인 유저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운이라고 해도 한방에 초살시켜 버릴 수는 없죠. 둘의 전투는 조금 더 이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정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12화 <새옹지마> “망할 개자식들···. 끝이 없군.” 정운은 몇 번인가 뇌천신공으로 적을 완전히 분해 시켜 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천장에서 슬라임들이 뚝뚝 떨어져서는 다시 한 번 몹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애당초 이 몹들은 뭐야? 약한 주제에 왜 이렇게 형체만 다양한 거야?’ 정운은 이를 갈면서 적들을 계속 도륙했다. 이 놈들은 이상할 정도로 약했다. 하지만···. 그렇게 약한 주제에 끈질기게 정운을 향해서 달려 들었다. 마치 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하긴 몹들이 다 이렇지···. 내가 무슨 생각··· 음!!’ 정운은 순간 싸우다가 이상한 것을 봤다. 싸우던 몹 중에서 한 마리가 몹시 마음에 걸린 것이었다. “······저건?” 정운은 순간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다 베어내고 자신이 발견한 몹의 앞으로 다가갔다. 놈에게 접근하자 놈은 무투가 캐릭터처럼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정운은 놈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무투가 캐릭터는 몹으로도 유저들도 많이 상대해 봤지만···.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쿵푸돼지 같은 캐릭터는 아주 오래전에 한 명밖에 못 봤다. ‘이건···. 혹시?’ 정운의 머릿속에서 흩어진 퍼즐이 하나가 되는 것처럼 서서히 모여 들었다. 그리고 정운의 입술이 달싹 거리면서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구민구?” 움찔!! 정운의 한 마디에 그 말을 들은 놈은 갑자기 몸이 굳었다. 그리고 성대도 없는 몸으로 입을 뻥긋 거리면서 말했다. 정운은 그 입모양을 대강 읽을 수 있었다. [····박정운······ 죽···어.] ‘확실히 구민구다.’ 정운은 자신의 가설을 확신했다. 구민구. 정운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르면서 수많은 유저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특히 문시영에게 배신당하고 솔로 플레이어로 살아가던 시절에는 까칠한 성격으로 여기저기서 많은 마찰을 일으켰었다. 그 중에서도 구민구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놈의 이 체형. 가로와 세로가 같은 너비에 있는 이 극도의 비만체형에 무투가라는 캐릭터를 유지하는 특이성.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놈이 슬기를 노리던 놈이었고 한때 어그로 트랩으로 정운과 슬기를 동시에 공격했었던 놈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때 그 어그로 트랩 덕분에 세레나를 얻을 수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놈은 분명히 죽었었다. 하지만 지금 놈은 여기서 몹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건··· 혹시?” 정운의 머리가 냉정하게 식으면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운은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하나의 증거를 더 찾았다. 눈앞에 보이는 구민구의 몸을 양단해 버린 다음에 정운은 탐색 스킬을 발동 시켰다. “쉐도우 서치!!” 정운의 감각이 주변을 지배하면서 그 공간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감각에 정운은 또 하나의 증거를 찾고 확신했다. “비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그 증거물을 향해서 정운은 거칠게 돌격했다. 팔 다리가 천근만근이기는 했지만 만약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이제야 간신히 희망이 보일 지도 모른다. 정운은 이윽고 그 증거물의 앞에 도착했다. “····문시영···.” [···········] 상대는 뭐라뭐라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운이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성형의 체형에 로마의 중장보병식의 무장을 갖춘 캐릭터. 정운의 오랜 기억 속에 묻어두고 있던 문시영이라는 여자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과 처음으로 동료가 되었던 여자. 그리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처음으로 정운의 뒤통수를 쳤던 여자이기도 했다. “··········어쨌든··. 할 일이나 하자.” 정운은 순간 감상에 빠졌지만 지금 중요한 일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정운은 일단 몹들에게서 살짝 멀어졌다. 그리고 품안에서 ME를 꺼내서 다시 한 번 적들을 찍어 봤다. 찰칵!! “····역시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 군. 어떤 몹이라도···. 설령 월드 서버의 보스몹이라고 해도 이 ME에는 정보가 떠야 하는데 말이야.” 정운은 하나하나 이 상황에서 얻은 정보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ME에 찍히지 않는 이유는 적이 몹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당연했다. 지금 정운이 돌파하고 있는 미궁의 주체는 유저가 만든 스킬이니까. 정운이 과거에 만난 유저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죽인 유저들이 적으로 나온 것은 왜일까? 그것도 당연했다. 적인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클래스명은 저주술사라고 했다. 즉, 저것은 정운에 대한 저주인 것이다. 저주술사라는 캐릭터를 처음 상대하는 정운이지만··. 이것도 스킬이라는 틀 안에 있는 공격이라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을 리가 없다. 뭔가··. 뭔가 허점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왜 몹이 완전히 부서 졌을 때 적은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슬라임으로 재생하는 걸까? 보통 정석은 아니지만 이런건 땅에서 스멀스멀 올라오지 않나?’ 적어도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이 상대한 언데드 몹들을 나타날 때 지면에서 스르륵 하고 솟아오르는 패턴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그냥 훅 하고 나타나거나 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천장에서? “저주의 주체가 되는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거기 있으니까. 찾았다. 이 X 같은 새끼!!!” “헉!!!!” 정운의 말을 들은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조마조마하던 심장이 철렁 내려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적은 완전히 지쳤고, 조금만 더 소모 시키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다 죽어가던 놈이 이제와서 다시 회생하려고 한다. 이건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입장에서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악몽은 정운에게는 승리를 향한 희망이었다. “흑토!!” “히히힝!!” 정운은 흑토를 소환했다. 그리고 애창인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꺼내서 장비했다. “여기서 승부다. 이게 실패하면 내 패배다.” “히히힝··.” 정운의 말에 흑토 역시 알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뇌천신공!! 흑토 신수화!!” “히힝!!” 파지직!! 화르르륵!!! 정운의 몸에서 황금빛 뇌전이 흑토의 몸에서 검은색 흑염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한명과 한 마리는 그렇게 인마일체가 되어서 비스듬하게 천장을 향해서 돌격 자세를 취했다. “기마차지!! 풀 파워로 가자!!!” “히히힝!!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정운과 흑토가 한 몸이 되어서 장렬하게 천장으로 비스듬하게 돌진했다. 그 사이에 걸린 원령들이 산산조각으로 갈리면서 정운은 두꺼운 천장을 박살을 내고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거기서 정운은 발견했다. 투명한 구체의 보호막에 둘러 싸여서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를 갈고 있는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말이다. “찾았다. X 같은 새끼야.” 평소 욕을 안 하던 정운이 이렇게 이를 갈 정도면 정말 핀치는 대핀치였던 것일 것이다. “···용케 찾았군.” 정운은 보고 크게 당황했던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정운은 담담하게 굳은 표정으로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바라봤다. 그런 정운을 보고 알렉시이 찌모페이는 거만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여기까지 온건 네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 기술의 진짜 무서움은 여기서 부터지. 아주 조금만 선택을 잘못 하면···.” “지랄 하지 마.” “············.” 정운은 단번에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확신을 담아서 놈에게 말했다. “네 기술은 여기까지야. 이제는 뭔가 더 할 수 있는게 없어. 안 그래?” “····무슨 증거로 그렇게 말하지?” “뭔가 할 수 있다면 주절거리기 전에 진작에 했을 테니까.” “·············.” 정운의 말에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는 것을 느꼈다. 정운의 말 대로였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한 번 허세를 부려 보기는 했지만 이미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옥의 연회라는 기술은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가장 자신하는 비장의 기술이었다.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일단 걸리기만 하면 이 기술의 비밀을 풀지 못하는 이상 이길 수 없다. 어쩌면 한국 서버의 박추성이나 배대호가 상대라고 해도 통할지 모를 그런 기술인 것이다. 다만, 원래 자기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술인 만큼 보스몹들에게는 사용 할 수 없다는 약점과 함께···. 적에게 이 스킬의 정체를 들키면 끝장이라는 약점도 있었다.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미궁의 천장의 위에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미궁안의 적을 저주하고 지치게 만들어서 죽여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저주술사의 치명적인 약점. 그건 주살(呪殺)의 의식은 술자의 현장이 들통나면 모든게 허사라는 것이었다. 주술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는 저주술사는 정작 자신을 지킬 수단이 전무한 법이다. 지금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저 방어막 하나 뿐인 것이다. “이제 끝이다··. 아스트랄 소드.” 정운은 싸움을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서 자신의 최강의 기술을 썼다. 10미터짜리의 거대한 거검 30자루가 허공에 소환되자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펼친 허세까지 결국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박정운!!!!” “그냥 죽어.” 퍼퍼퍼퍼퍽!!!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십 개의 검날. 그게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살아서 보는 마지막 광경이 되었다. 띠리링!! 정운이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해치운 그 순간 정운에게 알림창이 떴다. [숨겨진 퀘스트인 지옥의 연회 공략을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뭐야? 이거 퀘스트였나?” 몹을 정리한 것도 아니고 유저를 해치운 것 가지고 퀘스트 보상이 주어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정운이었다. 정운은 서서히 허물어지는 공간 속에서 보상을 확인해 봤다. 유니크 스킬이나 혹은 유니크 아이템이 아닐까 생각하고 보상을 열었던 정운은 순간 눈을 부릅떴다. “이건····? 기뻐··. 해야 하는 거겠지?” 정운은 씁쓸하게 웃었다. 큰 보상이기는 하지만 정운의 입장에서는 꼭 계륵을 뽑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간이 무너지고 정운은 원래 있던 71층의 필드로 나왔다. 필드에 나온 정운은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왔다····.”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허물어지는 정운의 몸은 그대로 지면에····. “정운씨!!!” “마스터!!!!” 추락하지 않았다. 대신에 정운을 받쳐준 것은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두 명의 미인들이었다. “····다녀왔어.” 그 말 한마디를 간신히 하고 정운은 그대로 의식을 잃어 버렸다.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에서 비롯된 사자성어로 세상 살다 보면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갑자기 꺼내는 이유는 정운의 지금 상황이 그야말로 새옹지마였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찌모페이와의 결투에서 실로 오랜만에 사선을 넘은 정운이다. 과연 191레벨의 유저라고 해야 할까? 알렉세이 찌모페이와의 결투는 근래 정운이 겪었던 전투중에 가장 치열한 것이었다. 시련의 탑에서의 전투는 힘겹기는 해도 죽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 위기 속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정운에게 신이 보상이라도 준 것일까? 정운이 가장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마스터. 스프를 만들어 왔습니다.” 세레나가 침대에 누워 있는 정운을 향해서 스프를 들고 왔다. 메이드 NPC에게 시켜서 만들어 온게 아니라 세레나 본인이 직접 만들어 온 것이다. “그렇게 안 해도 돼. 내 몸은 이미 완벽하게 회복 됬다고. 이렇게 병자취급은···.” “그냥 하는 말 들어요. 정운씨.” ============================ 작품 후기 ============================ 미묘한 곳에서 자르게 됐네요. 이제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슬기와 세레나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설명할 타임인것 같습니다. 다음화에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13화 <두 여자의 마음> 정운의 말을 중간에 자른 것은 세레나보다 한 박자 늦게 들어온 슬기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세레나도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몸의 대미지와 달리 마음의 대미지는 오랫동안 가는 법입니다.” “···········.” 두 여성의 엄중한 말에 정운은 그냥 얌전히 찌그러졌다. 사실 자신이 아픔으로 해서 이 둘이 계속해서 이렇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면 장애 한두개 정도는 달고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운이 이렇게 안도하는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번에도 시간을 좀 돌려봐야 한다. 어디까지 돌려야 하나면 한영동맹과 삼국연합의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으로···. 그러니까 정운이 세레나를 두 번째로 안아 버린 직후까지 시간을 돌여야 하겠다. 정운이 세레나를 두 번째로 안고 나 후에···. 세레나는 정운에게 말했다. “슬기에게 정직하게 다 말할까 합니다.” “그건····. ···그래···. 그 수밖에 없나?” 정운은 세레나의 말에 순간 망설였지만 이제와서 비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이상은 슬기에게 죄책감이 들어서라도 숨길 수 없었다. 정운은 슬기에게 모든걸 말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슬기가 정운과 세레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자지 않았는지 부엌의 식탁에서 잠들어 있었고 그녀의 머리맡에는 지금은 식어버린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죄책감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사망하겠지.’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고 가슴이 아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빌리 더 키드와의 레이드전을 마치고 정운이 세레나와 함께 있는 동안 슬기는 집에서 혼자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죄책감을 느낌다고 해서 슬기에게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더욱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뿐이었다. 정운은 슬기를 흔들어서 깨웠다. “슬기야.” “으음····. 어, 정운씨.” “할 말이 있어.” 아직 잠결에 정신이 살짝 몽롱한 슬기에게 정운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예.” 슬기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잠을 깨고 정운과 세레나와 함께 응접실에 앉았다. “····자, 이제 준비 됐어요. 말해요.” 슬기는 분위기가 정말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마스터. 제가 말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해야지. 이 이상 비겁해 질 수는 없어.” 정운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서 정직하게 모든걸 털어놓기 시작했다. 슬기와 이전에 있었던 일. 그리고 바로 전날 밤에 있었던 일까지 모두···. 정운의 설명을 듣는 동안 슬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양손을 꼭 쥐고 있었다. 얼마나 꽉 쥐었는지 그녀의 손에 핏기가 싹 가실 정도였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있었고, 그녀의 눈가는 붉게 충혈되고 있었다. 정운은 그런 슬기에게 말을 잔인한 현실을 말하면서 자기 심장에 못이 박히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와서 숨길 수도 없는 진실들···. 정운은 결국 모두 말했다. “······그렇게 된 거야.” 정운은 말을 다 하고 슬기의 말을 기다렸다. 어떤 이유를 댄다고 해도···. 정운이 한 일은 배신이었다. 이 상황에서 슬기에게 용서를 바란다는 것은 그냥 정운의 이기심일 뿐이다. 하지만··. 설령 이기심이라고 해도 정운은 그런 용서를 바랬다. 이런 것도 어떤 의미로는 남녀관계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설령 비겁해도, 자신이 잘못 하고 있는걸 알아도 상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기심. 지금 정운이 딱 그런 심정인 것이다. “······정운씨···. 그게··· 세레나하고 있었던 일이 의미가 있었던 일이었어요?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필요에 의해서 한 거에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망설였다. 지금 슬기가 한 질문은 정운에게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순간 정운이 그건 어쩔 수 없이 신성력을 지우기 위한 행위였을 뿐. 남녀로서의 감정적인 교류는 없었다. 라고 말한다면 혹시나 슬기를 조금 진정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운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세레나를 품에 안을 때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슬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운의 마음에 그녀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정운은 흘깃 세레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모든걸 정운의 결정에 맡긴다는 순종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슬기에게 거짓말을 하면 슬기를 다시 한 번 속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세레나에게까지 못할 짓을 하게 되어 버린다.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니. 난 세레나를 사랑해. 너 만큼이나.” 짝!!! 정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슬기의 손바닥이 정운의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 정운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슬기의 손을 맞았다. 입이 열 개가 아니라 백 개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아도 쌌다. 짝짝짝짝····. 슬기의 손이 연속으로 사정없이 날아왔다. 하지만··. 담담하게 맞고 있는 정운과 달리 슬기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어느새 슬기의 손끝이 갈라지고 피가 나고 있는 것을 봤다. “슬기야. 그만···, 그만 해.”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슬기는 거칠게 몸부림 쳤다. 메이지인 슬기의 따귀 정도···. 사실 정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순간순간 따갑다 정도? 오히려 정운의 방어력을 생각하면 슬기의 손이 다치는게 지극히 정상이었다. 맨손으로 돌벽을 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것도 가녀린 여자 손으로 말이다. “슬기··. 이제 그만해 주십시오. 차라리 나를····.” “당신도 저리 가!!! 뭐야? 둘 다 뭐냔 말이야!!!?” “·············.” “·············.” 슬기는 흐느끼면서 울었고 그런 슬기를 보고 정운도 세레나도 뭐라고 대꾸 할 말이 없었다. 정운보다는 좀 덜할지 모르지만 세레나 역시 슬기에게 미안한 감정은 가지고 있었다. 원래 슬기와 정운 사이에 끼어 들어서 풍파를 일으킨 것은 그녀가 아닌가? 그런 그녀를 향해서 슬기는 친구로서 우정으로서 대해줬다. 그건 세레나가 정운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미묘한 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이내 마음을 바로 잡았다. 아무리 세레나가 미인이라고 해도 정운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배신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기는 배신당한 것이다. 철저하고 확실하게···. “두··· 두 사람다··. ····흑····.” 슬기는 차마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런 슬기의 뒷모습을 복고 정운은 그대로 힘이 빠진 것처럼 털썩 쇼파에 주저 앉았다. “마스터. ·····죄송합니다.” “당신이 죄송할 일은 아니야. 이 중에서 가장 나쁜 놈은 나지·····.” 정운의 자조 어린 말에 세레나는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정운을 자신의 품안에서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슬기의 마음을 생각하면 세레나도 섣불리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슬기가 화를 내고 우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각하게 된 일이지만···. 세레나의 안에서 이슬기라는 인간도 친구로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전에 세레나가 잔 다르크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전우라고 할 만한 자들은 있었고 그들과의 유대오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웃고 함께 얘기하던 여성의 친구는 슬기가 처음인 것이다. 그런 슬기가 자신을 원망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세레나도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한 마음의 충격을 받았다. ‘후우·····. 천사라고 해도···. 이럴 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구나····.’ 생전과 지금을 통틀어서 가장 무력한 느낌이 드는 세레나였다. 평소에 얌전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 라는 말이 있다. 그냥 시중에 도는 낭설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평소에 화를 내는게 익숙한 사람들은 금방금방 끓어 올라서 주변에 폐를 끼치기는 하지만···. 그 대신에 가라앉는 것도 빠르고 아주 막나가는 성격만 아니라면 최후의 선은 지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를 낸 뒤에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평소에 화를 내 본적 없는 사람은 사정이 좀 다르다. 그런 사람들은 평소에 참고참고 또 참다가 화를 터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좀처럼 화가 가라안지를 않는다. 또 평소의 자신에게 익숙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언제 화를 풀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거기다 가장 최악은 한 번 엉클어진 관계를 어떻게 다시 수복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긴··, 지금 슬기의 경우는 화를 풀 생각도 관계를 다시 수복할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슬기는 그냥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어떻게 할 마음도 없었다. 그저 슬퍼서 울고 배신감에 짓눌려서 울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고 거의 하루 동안 전혀 접근을 못했다. 지금 자신이 나서서 무슨 말을 해도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정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하지 않은가? 위로의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정운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세레나가 몇 번인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슬기가 발작적으로 외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결국 사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슬기도 정운도 세레나도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 정운은 한영동맹을 상대로 삼국연합이 전쟁을 걸어온 일 때문에 전장에 나가야 했다. “마스터, 정말 저희가 가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내가 두 사람 몫까지 다 할 테니까.”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정운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습니다. 저라도···.” “세레나, 당신은··· 슬기를 지켜줘.” “············.” 아무래도 세레나는 정운을 혼자 전쟁에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 모양이다. 하지만 정운의 입에서 슬기를 지켜달라는 말이 나오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운 만큼···. 아니 어떤 의미로는 세레나가 더욱더 슬기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은 뜻대로 움직이는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세레나가 슬기의 우정을 져버린 것이 아닌가? 정운과 종류는 좀 다르지만 세레나 역시 슬기에게 상당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운은 침묵하는 세레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알잖아? 내가 당신한테 시키는 일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해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남겨두고 자신만 전장에 간 것이다. 물론 정운도 알고 있다. 전쟁터에서 자신의 여자라는 이유로 슬기와 세레나를 뺀다고 하면 다른 팀원들이 곱게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슬기는 도저히 전력이 되지 않는 것을 말이다. 아니··. 전력이 되고 안 되고의 차원을 넘어서 지금의 슬기는 위험하다. 화재현장에 들어가면서 화약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위험했다. 그리고 그런 슬기를 절대로 혼자 남겨 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세레나를 같이 남긴 것이다. “이기고 오십시오. 마스터.” “걱정하지 마. 너 보다는 더 쉬운일을 하러 가는 거니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전쟁터로 나갔다. 세레나는 그런 정운의 뒷 모습을 그저 죄송하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이 에피소드는 조금 더 이어집니다. 슬기가 어떻게 해서 마음을 바꿨는지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이번 편에는 슬기가 어떻게 해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표현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서투르다는 평가를 많이 받아서....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14화 전쟁은 정운의 예상대로 압승이었다. 이쪽의 피해는 제로인 상태에서 적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그러니 대승도 이런 대승이 없었다. 적은 러시아가 아홉 명이 남았고 동독은 세 명만이 남았고 이탈리아 역시 다섯 명만 남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일단 한국팀의 전진기지에 구속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처우는 일단 뒤로 밀어줘야 할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게···. 정운이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스킬에 걸려서 연락이 두절되었기 때문이다. 한국팀은 하루를 꼬박 기다렸다. 하지만 정운은 끝내 귀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운의 저력을 믿고 기다리던 한국 팀도 정운의 귀환이 점점 늦어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알렉세이 찌모페이 역시 귀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포로들의 말에 다르면 저 지옥의 연회라는 스킬은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고 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승자만이 원래의 그라운드 제로로 귀환한다고 했다. 귀환하는 장소는 처음에 들어갔던 장소와 동일하다는 정보까지 모두 입수한 한국팀원들은 적어도 지금이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적어도 아직은 지옥의 연회라는 스킬의 안에서 정운과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결투가 지속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쨌든 누군가는 이 소식을 세레나와 슬기에게 전해야 했다. 그리고 이민지가 가서 세레나와 슬기에게 이 사실을 정했다. “뭐라고요!!!?” “마스터께서·····.” “진정해. 아직 죽었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위험한 것은 사실이야.” “그런·····.” “···········.” 이민지의 말을 다 들은 세레나와 슬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들은 내심 전쟁터에 홀로 보낸 것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안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박추성 배대호까지 함께 있었고 정운도 이제 충분히 강했다. 그런 정운에게 뭔가 이상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민지가 가져온 비보는 그녀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특히 슬기의 쇼크는 컸다. “정····. 정운씨····.” 그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넋이 나간 그녀의 하얀 뺨을 타고 하염없이 눈물이 주르륵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마지막에 정운씨에게 한 말이 뭐였지? 마지막에·····.’ 슬기는 기억을 더듬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정운은 슬기에게 한 번 더 찾아왔었다. 그리고 그때 슬기는····. “배신자!!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미안해. 하지만····.” 뭔가 변명하려는 정운이었지만 슬기는 그 변명마저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귀를 막고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같은 것 필요 없어요!!!” “············.” “결국 당신은 내 몸만 목적이었죠? 좋았겠네요. 그것도 모르고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제가 퍽이나 재미있으셨겠죠? 쉬운 여자처럼 보였을 거예요. 바보 같은 여자라고 보였을 거예요. 아닌가요!!!?” “············.” 정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슬기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말로 뭔가 해결이 될 상황 자체가 아닌데 무슨 말을 한든 소용이 있을까?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픈 얼굴만 하고 있는 정운에게 슬기는 옆에 있는 램프를 집어 던졌다. 와장창!! 정운의 얼굴에 날아간 램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걸로 다칠 정운은 아니지만 그래도 슬기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도 보기 싫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저리가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어차피 이제 나 따위는 아무래도 좋잖아요!!!!” “···다녀올게.” 정운은 슬픈 표정으로 그냥 물러났다. 슬기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비이성 적으로 반쯤 미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를 자신만은 절대로 탓할 수 없었다. 이게 다 누구 탓이겠는가? 어차피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을 배신한 것은 자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그것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정운은 쓸쓸하게 등을 돌리고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그게 슬기가 기억하는 자신과 정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 아아···.” 슬기는 목이 메는 느낌을 받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슬기도 알고 있다. 정운이 자신의 몸만 목적으로 하는 그런 남자는 절대로 아니었다. 정운이 이제까지 자신을 대함에 있어서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는 슬기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정말로 그녀 연예인 이슬기라는 여자를 한 번 안아보고 싶었다면 훨씬 더 쉬운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 말벌파의 쓰레기들이 그녀에게 그런 방법을 동원하려고 했고, 그때 죽을 뻔한 그녀를 구해준 것이 정운이 아니었던가? 만약 정운과 만나지 않았다면 슬기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진작 죽었거나···. 어쩌면 여자로서 죽기보다 더 비참한 환경속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정운이 절대로 자신이 매도한 것 같은 그런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레나와의 일을 들었을 때 슬기는 이성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진한 배신감을 느꼈다. 자기 목숨보다 더 믿고 사랑했던 남자였는데 그 남자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다. 믿었던 감정이 큰 만큼 배신감도 더욱더 커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 이라는게 참 미묘한 것이다. 그렇게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가득했던 슬기의 안에서도 정운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운이 죽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슬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절박한 위기 상황이 되면 욕심이 사라진다. 오직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최악의 사태만큼은 꼭 피하고 싶어질 뿐이다. 슬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배신당한 것이어도 좋으니까···. 자신이 정운에게 버림받아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정운이 살아만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강했다. 그것만 있다면···. 세상 무엇도 필요 없었다. 지금 당장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었다. 그런 슬기의 손을 옆에서 살며시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슬기···. 마스터를 믿으십시오.” “세레나····.” “꼭 살아 오실 겁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서 기다리기로 하죠.” “·············.” 슬기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미웠던 세레나였다. 세레나 때문에 정운이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의 행복을 훔쳐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옆에서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세레나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두 여성은 정운이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이기고 귀환할 때까지 필드에서 서로를 다독이면서 정운을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정운이 귀환했을 때···. 더 이상 과거의 일로 정운을 추궁 할 마음은 사라졌다. 아니··. 마음이 사라졌다기 보다는 그냥 가장 소중한 것을 찾고 보니 다른 일은 일단 뒤로 넘어간 것이다. 그야말로 새옹지마. 만약 정운이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상대로 핀치에 몰리지 않았다면 슬기와 세레나의 문제는 정운을 파국으로 몰고 같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알렉세이 찌모페이한테 고마운 마음까지 생기네···.’ 정운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제 둘의 문제도 완전 해결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웠지만 일단 최악의 사태는 피한 것 같았다. 정운은 우선 공적인 일을 모두 처리하고 이 둘의 일에 관해서도 확실하게 매듭을 짓겠다고 결심했다. 슬기와 세레나의 간호··. 사실 간호는 필요 없었지만 어쨌든 간호를 받은 정운은 한국팀의 전진기지로 향했다. 거기에 도착하자 이번 전쟁에서 잡은 포로들은 모두 전진기지의 감옥안에 들어가 있다고 들었다. “용케 감옥에 순순히 갇혀 있군요. 어지간한 감옥이라면 유저들이 부수고 나올 수 도 있을 텐데요?” “이런? 제가 정운님에게 설명한다는 것을 깜빡 했군요. 전진기지에 있는 감옥은 평범한 감옥이 아닙니다. 일종의 조건분 혈맹조약 같은 것이죠.” 정운에게 싱긋 웃으면서 답을 한 것은 찻잔을 한손에 들고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다이앤 여왕이었다. 그녀는 정운이 귀환했다는 얘기를 듣고 포로들의 처우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한국팀의 전진기지에 방문한 것이다. 정운은 그녀에게 물었다. “감옥이 조건부 혈맹조약 같은 것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겁니까?” 정운은 순순히 다이앤 여왕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다. 사실 아직 정운은 월드 서버에 모르는 문제가 많았다. 자신의 전진기지에 필수적으로 딸려있는 지하 감옥 역시 어떤 용도로 쓰는 것인지 몰랐을 정도이니 말이다. 정운의 질문에 다이앤 여왕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마디로··. 감옥에 넣기 전에 수감자에게 약속을 받아내는 거죠. 이 감옥에서 절대로 탈출을 하지 않겠다. 라고요.” “호오···. 그렇게 하면 탈출을 못하나요?” “예. 전진기지의 감옥이라는 것은 그런 로직으로 묶여 있거든요. 레벨의 고하를 넘어서 유저라면 절대로 그 법칙에서 벗어 날 수 없죠.” “그렇군요···.” 정운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수단이 두 개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 가지 중에 하나는 확실한 수단이기도 했다. 우선 배대호. 그는 이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마법을 창조하는 자다. 감옥의 조건부 혈맹조약이라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배대호라면 해석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두 번째로 최수영. 이 경우는 배대호 보다 좀 더 확실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유니크 스킬인 배신의 세례. 그 스킬은 모든 혈맹을 무효로 돌린다. 아마도 감옥안의 유저를 빼돌리거나 탈출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뭐··, 포로중에 그런 거물들은 없겠지?’ 배대호는 인간 버그 같은 사기였고 최수영은 파우스트의 입김이 닿은 인물이었다. 포로중에 그런 거물들이 있었다면 진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포로에 대한 처분을 두고 얘기해야 하는데···. 보통 포로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찻잔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내숭떨지 않고 정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보통은 포로라고 잡은 자들에게 충성심이나 협동심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니····.” “··············.” 잠시 말을 끊었던 다이앤 여왕은 약간 거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런 자들은 보통 레이드시에 전방에 내세워서 소모시켜 버리는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일종의 총알받이···. 아니 인신공양이다. 하지만 확실히 포로로 잡힌 자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협조를 구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애당초 원한을 잔뜩 가지고 있을게 뻔하지 않은가? 겉으로는 잠시 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그 뒷면에는 잔뜩 독을 품고 빈틈만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상대를 바로 지척에 오래 두는 것은 승자들 입장에서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 다이앤 여왕께서는 이번에 잡은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정운은 슬쩍 운을 땠다. 상대가 먼저 의향을 묻기 전에 다이앤 여왕에게 먼저 총대를 짊어지게 하려는 약간의 꼼수가 묻어나는 한마디였다. 다이앤 여왕은 그런 정운을 흘깃 보다가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가정(?)문제는 일단 급한 불은 껐고... 이제 회사 일을 일단 처리하는게 우선이겠죠. 이래서 가장은 피곤한 법인가 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15화 <전쟁의 뒷 처리> “정석은···. 이제까지 별 탈이 없었기에 정석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말은 완곡하게 돌렸지만 결국은 레이드에서 소모 시켜 버리는게 좋겠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그렇게 하기는 좀 찝찝했다. “우리 한국팀의 레이드의 최대 모토가 뭔지 알고 계시죠.” “희생자 없이 성공 할 것. 말이죠···.” 다이앤 여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정운이 반대 할 것이라고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사실 정운이라고 딱히 포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전쟁에 졌다면 그때는 한국 팀의 동료들이 포로가 될 수도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제네바 협정이 있는것도 아니고··. 포로가 무슨 짓을 당하든 그건 오로지 승자의 몫일뿐이었다. 거기에 관해서 뭐라고 말 할 인간들도 없는데 뭘 거리끼겠는가? 하지만···. 정운은 레이드의 소모품으로 죽여 버리는 것에는 반대였다. 이제까지 한국팀은 박추성과 배대호라는 양대 괴물을 최후의 안전선 삼아서 최대한 안전하게 레이드를 해 왔다. 하지만 이제 와서 희생자를 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뭐든지 처음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점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이제까지 잘 해오던 레이드의 스타일을 바 꿔야 한다는 것 부터가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박추성과 배대호의 심경에 변화라도 불러온다면···. 그때는 최악이었다. 정운의 계획으로는 지금은 박추성 배대호가 레이드 시에 뒷짐이나 쥐고 있지만 언젠가는 주력으로 나서야 할 때가 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 빌리 더 키드를 잡을 때 그 둘은 오랜만에 대미지라는 것을 입었다. 물론 둘에게 있어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둘의 체력게이지가 약간이나마 닳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더 강한 보스몹들이 있을 테고··. 결국은 그 둘도 본격적으로 레이드에 참가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이상 그 둘을 한가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차라리 레이드의 희생양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구속을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식이라면···. 어떻게 말입니까?” “글쎄요···. 전에 타국의 유저를 강제적으로 제약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셨죠? 거기에 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종속의 계약 말씀이시죠···. 그건 사실 페널티가 있어서 좀처럼 잘 쓰지를 않습니다.” “종속의 계약이라고 하나요? 거기에 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종속의 계약이라는 것에 관해서 설명했다. 종속의 계약. 혈맹으로 맺어지는 조약이 거래라면 종속의 계약은 완벽한 굴종. 아니 거의 소유에 가까워지는 개념이었다. 같은 국가 서버의 유저끼리는 불가능 하고 오로지 타국의 유저에게만 쓸 수 있는 계약이었다. 상호간에 계약을 함으로써 주인과 노예가 지정되는 것이었다. 노예가 되면 보통 다음과 같은 조건이 성립된다. 1. 노예는 주인을 절대 공격 할 없다. 2. 노예는 주인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단 예외적으로 주인이나 노예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명령을 수행 할 수 없다.) 3. 노예는 주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경험치나 골드, 혹은 아이템으로 지불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자유를 다시 살 수 있다. 4. 주인은 노예에게 노동력을 확보 할 수 있는 대신에 노예를 지켜야 할 의무가 생긴다. 노예가 만약 죽으면 그때는 주인의 레벨이 1 내려간다. 5. 위와 같은 종속의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주인의 레벨이 노예보다 반드시 높을 경우여야 한다. “····이상의 조건입니다. 왜 다들 잘 쓰지 않는지 잘 아시겠죠?” “예. 4번하고 5번이 좀 거슬리는 군요.” “그렇죠···.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이 종속의 계약을 모두들 적극 활용 했을 텐데 말이죠.” 다이앤 여왕은 어깨를 으쓱했고 정운은 고민에 빠졌다. 1번과 2번의 조건은 어차피 뻔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주인에게 몹시 유리한 조건에 있다. 3번의 조건도···. 뭐 별로 나쁘지는 않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노예들이 재산을 모아서 자신의 자유를 사는 것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희망은 있어야 노예일에 있는 자가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의욕이 샘솟는 법이다. 문제는 4번과 5번이었다. 앞의 세 가지 조항만 보면 완벽하게 중인에게 유리한 룰이지만···. 이 4번과 5번은 주인에게 있어서도 커다란 패널티로 작용한다. 우선 4번의 조약. 노예가 하나 죽을 때 마다 그 주인의 레벨이 1씩 내려간다. 이 말은 190대의 유저가 노예 열 명을 데리고 있다가 그 열 명이 모두 죽으면 레벨이 180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건 어마어마하게 큰 페널티였다. 180에서 190까지 올리는 경험치는 1레벨의 유저가 100레벨에 도달하기 위한 경험치 보다도 훨씬 더 많다. 그런 경험치를 다시 쌓아야 하는 것이다. 유저의 레벨이 고 레벨이면 고 레벨일수록 패널티는 더욱더 큰 법이다. 여기서 5번 조약이 잡힌 발목에 아애 쇄기를 박고 있다. 주인의 레벨이 노예의 레벨보다 반드시 높아야만 한다. 라는 조항이 말이다. 즉 180 레벨의 노예를 부리려면 주인의 레벨은 적어도 181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주인이 가져야 할 패널티를 저 레벨 유저에게 넘길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5번의 조항이 없다면 그때는 적당하게 자국의 서버에서 90대 정도 레벨의 유저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주종의 계약을 맺게 하면 된다. 90대 레벨의 유저로서도 좋은 일이다. 자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100레벨대의 고위급 유저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레벨이 1씩 떨어지는 패널티 정도는 충분히 감수 할만하다. 그렇게 되면 고위 레벨에게 명령을 내려서 강제로 사냥에 협조만 받아도 패널티를 충분히 상쇄 하고도 남았다. 5번 조항만 없다면 틀림없이 모든 국가의 월드 서버에서 이런 방식으로 노예를 잔뜩 늘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에는 굳건하게 4번과 5번 조항이 있는 것을 말이다. 생각을 다 마친 정운은 턱을 괴고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흐음···. 어렵군요.” “예. 어렵죠. 지금 포로들의 레벨을 확인했을 때 가장 높은 레벨의 소유자가 145, 그 다음이 135, 그리고 그 밑으로는 대부분 130전후에서 110레벨까지 정도 더군요.” “그렇습니까?” 정운은 차분하게 생각했다. 레이드의 희생양으로 써먹고 소비해 버리기에는 아까운 전력이다. 생각 같아서는 노예로 삼아서 자신들의 편으로 삼고 싶었다. 처음에는 노예라고 해도 노예로 있는 동안에 한영동맹이 위로 쭉쭉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나중에 자유를 손에 넣고 난 후에도 결국 한영 동맹에 남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레벨 다운의 위협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큰 패널티야. 한 두명이면 내가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짊어지겠는데····.’ 잠시 생각하던 정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포로의 인원을 다 합하면 러시아 아홉 명, 이탈리아 다섯 명, 동독 세 명이다. 다 합하면 17명인 것이다. 이번에 정운은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잡고 그 보상으로 아이템과 스킬북, 거기에 레벨도 올라서 이제는 정운의 레벨이 195에 도달했다. 이제 정말로 200대가 눈앞에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자칫 잘못하면 레벨이 17이나 내려갈 폭탄을 떠 않는 것은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팀원들에게 이런 위험성을 안겨 줄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이번에 전쟁에서 슬기와 세레나를 뺀 것 때문에 한동안은 조심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지 않은가? ‘역시···. 방법은 하나 뿐이야. 눈앞에 보이는 영국에 떠넘기는 수밖에····.’ 사악하다면 사악한 생각이지만···. 정운은 영국을 설득 시켜서 영국 유저 10명이 포로들을 나눠서 관리하게 하기로 결심했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영국이 중요한 동맹이기는 하지만 동맹은 동맹. 결국 자기 식구들하고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챙겨야 했다. “다이앤 여왕님. 가능하면 영국의 유저들이 분산해서 주종의 계약을 해서 포로들을 관리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눈썹을 움찔했다. “···············.” 그녀는 한참을 침묵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운의 부탁은 어려운 일이었다. 주종의 계약이 짊어지고 있는 레벨 다운의 패널티는 월드 서버의 모든 유저들이 가장 꺼리는 일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이 그렇지만 레벨은 곧 생존과 관련된 최고 중요한 조항이다. 일반 서버에 있는 저 레벨의 유저들 조차 레벨이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온갖 신경을 다 쓰고 있었다. 거기에 월드 서버쯤 되면 100이 넘어가는 레벨의 유저들이 수두룩 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1레벨이 내려간다는 것은 몇 년의 노고가 한 순간에 리셋 되어 버린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누가 그걸 좋아하겠는가? ‘다만···. 마냥 거절 할 수만도 없는가?’ 영국의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동맹은 꼭···. 정말 꼭 챙겨야 할 최 중요 사항이었다. 이번에 삼국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한국팀의 힘의 중요성은 더욱더 강하게 드러났다. 그런 한국팀의 리더인 정운의 부탁. 토씨 하나 안 틀린 같은 말이라도 누가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서 부탁이 될 수도 있고 협박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정운은 정중하게 부탁조로 말했다. 하지만 듣는 다이앤 여왕의 입장에서는····. ‘결국 남일 뿐이라 이건가? 이걸 거절하면···. 안돼. 거절해서는 안 돼. 패가 더 나빠지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받아야 하는 카드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운의 말은 다분한 협박이었다. 정운이 뭐라고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부탁을 거절했을 때에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한영동맹이 파기되고 한국이 다른 국가를 동맹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간신히 일어나기 시작한 영국의 세력도 다시 물거품처럼 사그라 들지도 몰랐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은 하나뿐이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앞으로 더욱더 포로를 늘리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예. 그건···. 노력하죠.” “·············.” 정운이 확답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 보자는 말을 하자 다이앤 여왕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한국과 영국의 힘의 상화 관계를 따지면 뭐라고 따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포로가 늘어나면 그때는 영국의 고레벨들에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 정운이 다이앤 여왕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 말했다. “제 부탁을 들어주셨으니···. 우선 이것들을 받아 주십시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인벤토리에서 몇 가지 아이템을 꺼내서 넘겨줬다. 그 중에는 예전에 영국이 담보로 맡겼던 물건도 같이 있었다. “이건···? 돌려 주시는 겁니까?” “예. 사실상 이번에 영국이 짊어져 주시는 위험 부담을 생각하면 더 이상 우리 한영 동맹에 담보 따위는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 채찍 다음에 당근. 그것도 그냥 당근이 아니라 아주 달달한 당근이었다. 정운이 다이앤 여왕에게 일전에 받았다가 지금 돌려주는 담보. 그것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귀한 아이템 중에 하나였다. 푸른색의 마름모꼴로 신비한 빛을 내는 이것은 바로 이탈의 크리스탈. 이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를 포기하고 중도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최고 희귀 아이템이었다. 정운이 내민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탈의 크리스탈 이외에도 영국이 혹할 만한 물건을 따로 내밀었다. ============================ 작품 후기 ============================ 동맹과 동료. 딱 한 글자 다른데 생각보다 대우가 많이 다르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16화 “이건 덤이랄까···. 영국에 틀림없이 클로를 쓰는 사용자가 있었죠?” “예···. 이건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가 쓰던···.” “예. 베히모스 클로입니다. 유니크 아이템이죠. 우리 한국에는 클로 사용자가 없으니 받아 주십시오.” “·········.” 어떨 때는 사람 마음이 참 가벼운 것 같다. 불과 몇 초의 간극을 두고 이렇게 들었다 놨다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 쓸 때는 팍팍 써야 약발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리더였던 남자가 쓰던 유니크 아이템으로 그 위력은 어디에 가도 빠지는게 아니었다.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너무 속도 위주로 세팅된 남자였지만 이 클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좀 더 균형잡힌 사용자가 좋을지도 몰랐다. 잠깐 속성을 확인해 봤던 정운이지만 이 아이템의 포텐셜은 정운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 보다 아래가 아닐 정도였다. 베히모스 클로 LV.3 공격력 : 4,5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스킬. 클로 웹 (전방에 넓이 50미터의 참격의 그물망을 펼쳐서 적을 공격한다.)클로 돔 (지면에서 손톱을 겹겹히 소환해서 자신을 중심으로 견고한 돔을 형성해서 공격을 방어한다.)포이즌 클로 (공격에 독 속성의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전설의 초마수인 베히모스의 발톱을 가공해서 만든 무기. 잔혹하고 강력한 파괴적인 기술들을 쓸 수 있다.] 원 주인이 죽고 MAX까지 올라갔던 무기의 레벨이 3까지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물건 자체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한 다이앤 여왕은 솔직히 말해서 놀랐다. 설마 정운이 그 정도의 물건을 내 놓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결국 다이앤 여왕은 정운의 협박(?)으로 인해서 서운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호의의 선물은 감사합니다. 그럼, 포로들의 처분은 저희 영국에서 구속하겠습니다. 그들에 대한 활용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느 정도 제약은 둬야 겠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당근을 주면서 함께 사냥에 데리고 다니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한국팀에도 몇 명인가 보내는게 좋겠군요.” “저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중에서는 전위나 후위로 팀 메이트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관해서는 제가 한국 팀에 말해 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정운과 다이앤 여왕의 회담은 상호간에 좋은 결과를 남기고 끝났다. 정운이 약간의 아이템. 그리고 특히나 이탈의 크리스탈이라는 엄청 귀중한 아이템을 양보하기는 했지만 별로 아깝지는 않았다. 덕분에 한영동맹에 노예의 계급이기는 하지만 일단 열일곱 명의 전력이 추가 되었고 말이다. 그리고 이탈의 크리스탈이 그다지 아깝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다. 애당초 그게 영국에서 담보로 맡긴 물건이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 개 더 있으니 말이야.’ 이번에 알렉세이 찌모페이의 유니크 스킬인 지옥의 연회를 깨고 나서 얻어진 보상. 거기서 이탈의 크리스탈이 나왔던 것이다. 막상 나왔을 때는 이걸 어떻게 사용하나? 싶었던 정운이었다. 일단 정운 본인은 게임 클리어를 하기 전에는 절대로 사용할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개 뿐이었던 이탈의 크리스탈이 두 개가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영국에 이렇게 생색을 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한영동맹도 더욱더 공고해 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그게 아니라고 해도 이번에 정운이 삼국연합과 전쟁을 하면서 얻은 것은 충분했다. ‘이제 남은건···. 슬기하고 세레나의 일을 확실하게 매듭 짓는 것 뿐인가···.’ 정운은 며칠 동안 쉬면서 나름 생각을 정리한 것은 있었다. 그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몰라도···. 솔직히 이대로 우유부단하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불렀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은····. “미안해.” 일단 사과부터 하고 보는 정운이었다. “··········.” “··········.” 정운의 사과를 받은 슬기와 세레나는 일단 침묵했다. 사실 세레나는 별로 사과 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운이 슬기를 놔 두고 자신과 마음을 통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것에 관해서는 세레나도 공범이었다. 그녀로서는 친구인 슬기에게 미안할 수는 있었지만 정운에게 사과를 받을 입장은 아니었다. 다만 슬기는 좀 달랐다. 아마 이 삼각 관계에서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피해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슬기일 것이다. 슬기와 정운은 연인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정운이 슬기의 친구인 세레나와 바람이 났다. 만약 평범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한 수라장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슬기 역시 어느 정도는 화가 풀린 상태였다. 정운이 죽을 뻔 했다는 위기 상황을 겪고 나자 그때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겪거야 했다. 설령 양다리를 걸치던···. 아니 자신이 버림을 받는다고 해도 정운이 살아 있기를···. 슬기는 바랬다. 어쨌든··. 이 일에 관해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그녀들이 그걸 원하고 안 하고를 넘어서 정운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니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사과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바로 수습이다. “먼저 말해둘게····. 너희들이 화를 내도 어쩔 수 없고, 내가 나쁜 것도 알아. 하지만···. 난 너희 둘 모두를 사랑해.” 이 타이밍에서 슬기의 얼굴에 약간 그늘이 생겼다. 머리로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다시 한 번 직접 듣고 보니 그게 기분이 좋을리는 없었다. 옛날부터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여자는 남자에게 소유되어 온 경향이 강하다. 어떤 나라든 어떤 문명이든 사회적으로 위치가 있거나 권력을 쥐고 있는 남자들은 다수의 여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인간의 사회가 점점 발달하고 그런 것이 잘못 되었다는 개념이 점차 점차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래도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는 존재라는 개념이 은근히 자리하고 있는 것은 여전했다. 하지만···. 사실 남녀평등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슬기의 분노는 지당하고도 몹시 지당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말 할 것도 없다. 간단하게 뒤집어서 생각만 해 보면 된다. 슬기가 만약 바람을 폈다면? 그럼 정운이 어떻게 화가 날지 감당도 안 될 것이다. 어쩌면 상대를 죽여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슬기의 입장에서는 정말 정말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를 않는 것을 말이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너희들이 나에게 기회를 줘. 만약 너희들 중에 한 명이라도 날 버리겠다면·····.” 정운은 탁자에 두 가지 물건을 올려놨다. 한 개는 정운의 애검인 혈광참마도였고 또 하나는 이제 하나밖에 없는 이탈의 크리스탈이었다. 정운은 그 두 개를 올려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너희들 둘 중에 하나만 없어져도··. 난 죽은것과 같아. 그러니 내 생명을 끊어놓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탈출하기 바래. 세레나 당신은 이게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마스터!!!!” 세레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드물게도 진심으로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운씨···. 이런··. 우리가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내 손으로···.” 슬기 역시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고 얼굴을 새파래졌다. 그런 둘을 보고 정운은 진지하게 말했다. “난 나쁜 놈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어. 우리 어머니가 숨겨진 여자로서 힘들게 살아온 걸 보고도 결국 두 여자 모두를 욕심내 버렸지.” “············.” “············.” 침묵하는 두 사람에게 정운의 말이 이어졌다. “수도 없이 바랬어. 이 마음이 둘 중에 하나라도 정리되기를···. 아니 하다 못해 내가 차라리 슬기가 전에 매도했던 대로 짐승 같은 놈이기라도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생각했지. 결과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여전히 너희 둘을 진심으로 사랑할 뿐이지. 난·····. 난 그런 놈이야. 자기 마음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못난 놈이야.” 정운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을 담고 있었다. 뭔가 달변을 토론한 것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어서 상대의 동정심을 자극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로지 진심 하나만을 담아서 말한 것이 슬기와 세레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녀들은 그제야 정운이 얼마나 지독한 번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슬기의 소원을 이뤄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난 너희 둘이 없다면 절대로 살아 갈 수 없어. 그러니···. 이제 너희들이 결정해줘.”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처연하게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 슬기나 세레나가 자신의 심장을 찌른다고 해도 그녀들을 원망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생각하니 우습네···.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기본적으로 자기 욕망이 최우선이 인간들 뿐인데···.’ 사람이 모든걸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정운은 지금 후회도 번민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이제는 운명의 칼 자루를 가장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와 닿은 것은 차갑고 예리한 칼날이 아니라 두 개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마스터··. 제가 마스터를 죽이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설령 마스터께서 저를 버리신다고 해도 저는 제 영혼의 마지막 한 조각이 타버릴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비겁해요···. 우리가 당신을 못 죽이는 것 뻔히 알면서 목숨을 거래의 칩으로 걸다니···. 이래서는 이렇게 해 줄 수밖에 없잖아요?” “··············.” 정운은 자신을 안고 있는 두 명의 여자를 보면서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 많이 비겁하지····. 그래도 이번 한 번만 좀 봐줘. 이렇게 비겁한 것은 마지막으로 할테니까.” 두 여자는 정운의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정운의 품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 정운은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두 여자를 손에 넣고 그녀들을 그럭저럭 납득 시켰다. 세레나와 슬기의 동의를 구한 다음··. 정운은 최대한 조심해서 두 여자들을 배려했다. 원래 정운이 여자에게 특히 슬기와 세레나에게는 엄청 친절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한도를 넘었다. 이전에는 공주님 취급이었다면 이제는 거의 여왕님 취급? 그 정도로 떠받들고 있었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다. 정운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일국의 왕이라고 해도 처첩의 침소를 따로 떨어트려 놓고 있었다. 왜? 붙여 놓으면 감당이 안 되니까···. 하지만 슬기와 세레나는 한 집에서 정운과 같이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정운은 두 여자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이 두 번째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전쟁이 끝나고 며칠 동안 필드에는 나가지도 않고 오로지 두 여자를 사랑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그럭저럭 사흘 정도 지났다. “마스터, 슬슬 다시 필드에 나가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운의 품안에 안겨 있는 세레나가 정운에게 건의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입술에 살짝 키스하고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서 말했다. “으음···. 며칠 정도 더 쉬고 가면 안 돼?” “마스터··. 이미 며칠 동안 이렇게 시간을 무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큼, 제가 사랑한 남자는 여자에게 빠져서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그런 약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 ============================ 작품 후기 ============================ 슬슬 전후 처리도 끝났고... 가정 문제도 정리했으니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다시 사냥하러 가야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17화 <72층에서의 사냥> 내가 빠져있는 여자는 너하고 슬기잖아? 라는 말을 하고 싶은 정운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그렇게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다물지는 않았다. 세레나의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의 첨단을 입에 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흐으음····.” 세레나의 성감대를 자극하면서도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이제 슬슬 필드에 나가봐야 할 시기이기도 하지.’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슬기와 세레나의 문제가 해결 된 직후라서 사랑하는 여자들의 품속에서 너무 행복에 허우적 거린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선은 지켰다. 침대에서 여자 둘에 남자 하나. 라는 공식을 절대로 쓰지 않았다. 남자들이 그런 행위에 어느정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적인 대상으로 그저 즐기고 말 그런 관계 속에서의 일이었다. 두 여자 모두가 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 받는다기 보다는 그저 쾌락의 대상으로만 보일 수 있지 않은가? 그건 여자들 입장에서 봤을 때 자존심에 심각한 일이었다. 특히 연예인 출신인 슬기는 그런 쪽으로는 무척 민감했다. 연예인 이슬기가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여자 이슬기를 사랑해 주기를 원하는 것. 그게 슬기의 바람이라는 것은 정운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운은 세레나의 봉긋한 가슴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생각하다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한뼘도 되지 않는 가느다란 허리에 도착한 정운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살짝 혀로 간질이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내일부터 필드에 나가자.” “으음··. 마스터··· 내일부터가 아니라··· 읏!? 오늘도 아직 아침입니다만···.” 세레나는 자신의 몸을 악기처럼 연주하는 정운의 애무에 온몸을 비틀면서도 꿋꿋하게 할 말은 다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저항도 정운에게는 별 소용 없는 듯 했다. “아니, 아직은 아침이 아니야. 어젯밤의 연장이지.” “마스··· 흡!!” 정운이 어디를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레나의 입에서 호흡이 다시 가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는 정운의 손길에 모든걸 맡겼다. 그리고 침실에는 다시 정운과 세레나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다음날···.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와 나란히 팔짱을 끼고 필드에 나왔다. 전진기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어!! 변태다.” “··보영이 누님···.” “말 걸지 마. 아니면 나 까지 노리는 거냐?” “··········” 아무래도 단단히 찍힌 것 같다. 정운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눈치인 거야. 아직 밝히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이보여은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전진기지의 포탈을 나오는 광경을 우연히 보자마자 2초 만에 깨달았다. 지금 슬기와 세레나가 동시에 정운의 여자가 되기로 한 것을 말이다. 그녀는 그게 몹시도 마음에 안 들었다. 원래 그녀 자신도 상당히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는 편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는 남자들이 여자를 소유하고 여러 여자를 데리고 있는 것을 몹시도 싫어했다. 그건 그녀의 과거 때문이지만··. 거기에 관해서는 정운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한 알던 모르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정운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그 다음에 그녀가 한 말이었다. “슬기 넌 좀 더 자존심 강한 애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남자한테 아양이나 떠는 애였구나? 좀 실망이다.” “보영이 누님···.” 정운의 몸에서 살며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웃····.’ 이보영은 순간 전신을 꽉 옥죄어 오는 위압감에 숨통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녀석···. 이렇게 강해졌나?’ 이보영은 정운이 자기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마음먹으면 어느 정도 대응은 할 수 있는 정도인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정운이 힘을 뿜어내자 그 기세만으로도 전신이 뻣뻣하게 굳을 정도였다. 마치 사자를 근거리에서 마주한 초식 동물의 심정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에 이보영이 정운을 만났을 때는 그냥 귀여워 해줄까? 싶을 정도의 귀여운 아기 강아지 정도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정운은···. 어느새 그녀가 감당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맹수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제까지 정운에게 이런 위압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정운이 항상 그녀에게 누님, 누님 이라고 하면서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녀가 시비를 걸었지만 정운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슬기를 걸고 넘어지자 정운도 그냥은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정운이 이보영에게 제대로 뭔가 하려는 그 찰나···. “분위기가 왜 이렇게 험악해?” 이보영의 입장에서는 하늘에서 뻗어온 구원자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민지 누님.” “정운아. 무슨 사정인지는 대강 봤다. 내 얼굴 봐서 그냥 넘어 갈 수는 없겠니?”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슬기를 뭐라고 한 것에 관해서는 이보영에게 확실히 뭔가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민지가 스스로 얼굴을 봐서 물러가 달라고 하는데 물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이민지의 실력이 어쩌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민지는 한중겸의 연인이다. 정운하고 가장 친한 동료이고 사실상 거의 의형제나 다름없는 한중겸의 연인이라는 말은 정운에게 있어서도 이민지는 형수뻘 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적어도 정운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로 박추성 배대호 보다 훨씬 더 함부로하기 힘든 사람이 이민지였다. 정운이 물러가고 나자 이민지는 한숨을 쉬면서 이보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꽁! “이 천방지축 맹꽁아.” “아얏··. 언니야 아파····.” 이보영은 자신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 이민지를 향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 이보영에게 이민지가 말썽꾼 동생을 나무라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니? 그것도 정말 천성이라면 천성이다.” “언니야 말 대로 천성이지 뭐···.” 이보영이 한 마디도 안지고 꼬박꼬박 대꾸하자 이민지는 한 번 더 꿀밤을 먹였다. “앞으로 조심해. 괜히 네 개인 감정 때문에 팀 분위기 흐리지 말고····.” ‘언니야는 나만 갖고 그래····.’ “어째 표정이 너만 갖고 그런다는 것 같은데?” 움찔!! 이보영이 움찔하자 이민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너 아니면 누가 평지풍파를 일으키냐? 이 말괄량이야···.” 이민지는 그렇게 한숨을 내쉬면서 이보영에게 잔소리를 한가득 쏟아 넣기 시작했다. “정운씨···.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이보영과 헤어지고 나서 슬기가 정운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운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원래 이보영이 쓸데없을 정도로 남의 일에 참견을 많이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고 또 같은 팀의 동료이기도 하니 그냥 한 발 물러나서 참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걸 슬기에게 화풀이 한다면 그때는 정운으로서도 더 이상의 인내는 불가능 했다. “하아··. 뭐, 오랜만에 사냥이나 갈까?” 정운은 결국 기분전환으로 오랜만에 셋이서 동시에 사냥을 나가기로 했다. “응? 정운씨는 오토 돌리려고 했던 것 아니에요?” “오토는 오토대로 돌릴 거야.” 예전에는 오토를 돌리고 자신은 정신력을 온전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기분 전환도 할 겸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싶어졌다. “알았어요. 그럼 마침 72층의 첫 사냥이기도 하니 같이 가요.” “적당한 사냥터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셋은 필드에 나갔다. 한영동맹이 러시아와 이탈리아 동독을 격파함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72층에 있던 러시아의 영역도 접수 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영역은 72층의 20% 정도와 73층의 30%를 아우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73층으로 올라갈 권리가 없는 한영동맹으로서는 일단 72층의 사냥터에 주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72층의 러시아의 사냥터. 그곳은 뜨거운 태양과 황금빛 모래가 가득한 사막지대였다. “난 어째서 러시아의 영역이라고 해서 툰드라 같은 곳을 상상했던 걸까? 사실 그라운드 제로와 현실에서의 영토가 상관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여기 파다보면 석유라도 나올 것 같은걸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 “어떤 몹이 나올까요? 샌드 웜이라던가? 사막의 리자드 맨 같은게 나올까요?” 샌드 웜도, 사막의 리자드 맨들도 사막지형의 필드에서는 종종 나오는 몹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게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뭐, 가보면 알겠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흑토를 소환했다. 보통 말이라는 생물이 사막을 달리는데 적합한 생물은 아니지만 흑토를 비롯해서 슬기의 백설이나 세레나의 세인트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모두 신수, 혹은 영수의 반열에 오른 생물들이었으니 말이다. 일행은 그렇게 러시아의 영역에 첫 발을 디뎠다. 참고로···. 지금 일행이 타고 이동한 포탈은 이전에 러시아의 팀원들이 쓰던 포탈이었다. 꼭 크렘린 궁전을 다섯 배 정도 뻥 튀겨둔 것 같은 디자인의 건물이 러시아의 전진기지였는데···. 한영동맹은 러시아의 남은 생존자를 종속의 계약으로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그들의 포탈도 자연스럽게 사용가능해진 것이다. 사막 지형이 나가고 나서 정운의 일행이 처음 마주한 몹은···. “···저거··? 그거지? 동그랗게 되는 것.” “아르마딜로 말하는 거죠? 귀엽게 생겼네요?” “몹 맞기는 한가? 혹시 그냥 야생 동물은 아니겠지?” “일단 공격해 볼까요?” 일행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사막을 뽈뽈 기어다니고 있는 아르마딜로였다. 정운은 처음에는 이게 몹이 맞기는 맞는지 의심 스러웠다. 덩치도 작았고 뭔가 위협적인 구석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ME로 놈의 몸을 한 번 찍어 봤다. 그러자···. 잔혹한 아르마딜로. LV.150~155 [무척 난폭한 아르마딜로, 사막 지대에 있으며 한 번 화가 나면 적이 죽을 때 까지 쫒아오는 끈질긴 성격을 하고 있다.] 라는 프로필이 떴다. “잔혹한? 저게?” 뽈뽈뽈뽈뽈····. 이동 속도가 아마도 시속 2km정도 되는 것 같은 저 평화로운 생물의 어디가 잔혹하다는 걸까?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레벨이 150이 넘는 몹이었다. 방심은 금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전위로 나설게. 둘은 뒤에서 백업 부탁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알았어요. 정운씨.” 그렇게 둘에게 지시를 한 후에 정운은 잔혹한 아르마딜로를 향해서 화살을 매겼다. “일단 이거 한방부터····.” 파앙!!! 정운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하지만···. 퍼어어엉!! 뇌전을 머금은 화살은 아쉽게도 흉폭한 아르마딜로에게 아무런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빠른걸?” 정운은 봤다. 뛰어난 집중력 스킬로 인해서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본 것이다. 기어다닐 때는 뽈뽈뽈 거리면서 느리게 기어다니던 흉폭한 아르마딜로가 정작 공격이 날아오자 재빠른 속도로 몸을 똘똘 감아 버렸다. 보통 현실의 아르마딜로라는 동물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도 어느정도는 틈이 있다. 완전히 공처럼 보이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저 놈은 일단 몸을 말자 그야말로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체가 되었다. 거기다 정운의 공격에도 그다지 대미지를 입지 않은 것을 봐서는 방어력도 상당하다고 봐야 했다. “과연, 그렇게 방어한다 이거지? 그럼 공격은 어떻게 할까나?” ============================ 작품 후기 ============================ 정운이 직접 사냥하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오토는 꾸준하게 돌리고 있지만 말이죠. 여러분들 중에 로맨스 파트가 지루하니 빨리 게임공략 스토리로 나가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란 요리와 같아서... 완급 조절이 있고 짠맛, 단맛, 쓴맛이 다채롭게 들어가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다 달기만 하면 맛을 버리는 법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18화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린 순간···. 퍼퍼펑!!! 하늘에서 불의 화살이 세 발 떨어져서 정운을 노렸다. 정운은 자신에게 공격이 날아오기 직전에 그 공격을 캐치하고 재빨리 피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한 발이 살짝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때문에 조금의 대미지를 입었다. “마스터. 치료 하겠습니다.” 정운이 상처를 입자 세레나가 제빨리 회복의 버프를 걸었다. 그 옆에서 슬기가 내가 힐링 걸어도 되는데? 라고 중얼 거렸지만 세레나가 한 박자 빨랐다. 사실 정운이 가지고 있는 자체 회복력 만으로도 이 정도의 대미지는 금방 회복 하는데 말이다. “땡큐. 직접 공격으로 인한 엄호는 일단 참아. 어떤 놈인지 좀 더 알아볼게.” 그래도 일단 정운은 세레나에게 감사했다. ‘요즘 오토만 돌렸던 부작용인가? 감이 좀 둔해진 것 같은걸? 되돌리자.’ 정운은 스스로를 바싹 긴장 시키면서 전투에 집중했다. 일단 72층에서 만난 첫 번째 몹이다. 좀 더 적의 공격을 알아보기 위해서 가까이 접근해 갔다. 흉폭한 아르마딜로는 정운인 접근해 오자···. 화르륵··. 쩌정···. 불의 화살과 얼음의 화살이 흉폭한 아르마딜로의 주변에 생성 되었다. 적어도 수십발은 될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공격한다 이거지?” 정운은 과연 150대 레벨의 몹이라고 살짝 감탄했다. 겉 보기에는 펫샵의 진열장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외모였는데··. 이제 보니 상당한 방어력과 그 방어력을 유지한 상태로 마법 공격을 할 수 있는 몹이었다. 확실한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적이었고 이건 의외로 상대하기 까다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펑!! 피융!! 정운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 공격들을 유유히 피하면서 생각했다. ‘공격은 화염과 얼음의 화살이라····. 단순하기는 하지만 파괴력을 그럭저럭 있군. 마법 저항력과는 별개로 물리 공격력을 지니고 있어. 그럼·· 저 방어력은 어느 정도일까?’ 정운은 무장을 검에서 창을 바꿨다. 그리고는····. “질풍신뢰!!!!” 콰콰콰콰콰!!!! 질풍신뢰(疾風迅雷) LV.7 (700미터의 거리를 직선 거리를 한점 돌파한다. 돌격시 공격력을 대폭 상승 시킨다.) 원래는 다수의 적이 모여 있을 때 돌파하거나 길을 열기에 적합한 기술이다. 하지만 공격의 적중 포인트를 잘만 맞추면 그 대미지를 오로지 한 개체의 한 점에만 집중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콰쾅!!! 정운의 공격은 사막의 저쪽에 있는 바위 하나를 박살낼 정도로 적을 몰아 붙였다. “흐음···. 아직도 꿈틀 거리네?” 정운은 살짝 감탄했다. 적은 아직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몸을 감싸고 있는 철갑의 방어력은 상당해서 정운읜 창도 뚫지 못했다. 하지만 스킬의 충격이 주는 대미지. 그리고 뇌천신공으로 인한 뇌전의 대미지. 이 두 가지 대미지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인지 흉폭한 아르마딜로는 반 죽음 직전이었다. “뭐, 대강 알겠네. 공격력은 그럭저럭 쓸만 하지만 방어력은 너무 물리 방어력에만 치중되어 있어. 마법 공격으로 딜을 하는게 좋겠는데?” 이 몹은 메이지 캐릭터인 슬기가 상대하기에 오히려 좋아 보였다. 아마도 슬기가 실드를 치고 마법을 연속적으로 연사하기 시작하면 혼자서 흉폭한 아르마딜로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레벨에 비해서 주는 경험치는 그저 그런걸? 보상도 별로고···. 이거 말고 다른 사냥감을 찾아 보는게 좋겠어.”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슬기와 세레나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정운에게 말했다. “그런가요?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타당한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스터.” “응? ····정말?” 그녀들의 반응을 받으면서 정운은 오히려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 같은데요? 아··. 몰이 사냥을 못하는 것은 좀 아쉽네요.” “예. 그런 식으로 따지면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상을 박하게 주는 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스터.” 둘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72층 사냥터인데 이 정도 가지고는···. 뭐, 어차피 곳 72층 레이드도 할 테고 사냥터도 옮기기는 할 거니까 상관없나?” 정운은 별로라고 느낀 보상을 슬기와 세레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걸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제까지 정운의 사냥 방식. 정운은 전진기지에서 컨디션 관리만 하면서 오토 사냥을 해도 혼자 사낭하는 것 보다 아홉 배에 달하는 경험치가 들어왔다. 원래 사람이 앉으면 일어나기 싫고 누우면 앉기도 싫어진다. 한번 편한길로 가면 어려운 길로 다시 가는게 몹시 귀찮아 지는 것이다. 사실 정운은 지금도 오토를 돌리고 있지 않은가?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는 그림자의 장수들이 부지런히 사냥을 해서 정운에게 경험치를 헌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렇게 쑥쑥 들어오는 경험치에 비해서 정운이 직접 사냥을 해서 얻는 경험치는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레벨의 차이였다. 현재 정운의 레벨은 195레벨. 그리고 슬기의 레벨은 131, 세레나의 레벨은 141인 상태이다. 이 둘도 정운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장족의 발전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운에 비해서는 레벨의 차이가 꽤 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티 플레이를 하다 보니 경험치를 공동분배 한다고 해도 정운에게 돌아가는 경험치가 적은 것은 당연했다. 일단 정운들은 그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오랜만에 삼인 일조가 되어서 사냥에 주력했다. 그러기를 2시간 가량····. “안 되겠다. 이렇게 하다 보면 너희들 레벨 오르는게 너무 오래 걸리겠어.” 2시간 정도 사냥을 같이 해본 정운은 바로 문제점을 깨달았다. 정운은 일단 파티를 해제하고 슬기와 세레나만이 파티를 맺게 했다. “난 순수하게 몸빵만 할게. 너희 둘이서 날 이용해서 경험치를 쌓도록 해.”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세레나가 미안한 듯이 말했다. “그건 좀···. 원래 마스터를 지키는 것은 제 역할입니다. 그 반대라는 것은 어쩐지 굴욕적이기 까지 합니다.” 슬기 역시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세레나 말이 맞아요. 어차피 어그로를 잡기 위해서는 정운씨도 어느 정도 공격을 해야 할 텐데··. 그럼 분산되는 경험치는 어차피 비등할 거예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하고 세레나 둘이서 다시 사냥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건·····. 그런가?” 슬기의 말을 듣고 보니 타당한 것 같기도 했다. 정운은 결국 뒤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슬기와 세레나가 사냥을 하면서 위험한 것을 발견하면 그때만 도와주기로 했다. 정운의 경우 어차피 지금도 그림자의 무장들이 부지런히 사냥을 해서 경험치를 끌어다 주고 있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철저하게 백업으로만 남아 있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사냥도 제대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세레나!! 10초만 잡아줘요.” “알겠습니다. 슬기.” 세레나가 전위로 나서서 탄탄한 방어막을 구축하고 뒤에서 슬기가 마법 공격을 준비했다. 슬기의 주변에는 혹시나 모를 기습을 대비해서 2중의 방어 마법과 화소접이라는 공격 스킬이 항시 대기중이었다. 그리고 세레나는 몹들의 어그로를 자신에게 집중 시키기 위해서 공격을 받아주면서도 절대로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적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적이 슬기를 공격하는 일 없도록 살짝살짝 귀찮게 해 주고 있었다. ‘····잘 하네?’ 한 발 물러나서 슬기와 세레나가 사냥하는 것을 보고 있는 정운은 살짝 감탄했다. 두 번의 전쟁과 월드 서버에서의 사냥으로 인해서 둘의 레벨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이 감탄한 것은 슬기와 세레나의 개개인의 발전때문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호흡이 상당히 잘 맞잖아?’ 그렇다. 둘의 호흡은 이제 거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예전에는 전위에 세레나, 후위에 슬기, 그리고 멀티 플레이어인 정운. 이렇게 세 명이 한조가 되어서 부지런히 사냥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련의 탑을 돌파하기 위해서부터 슬기와 세레나가 정운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단 둘이서 팀을 맺어서 사냥을 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정운이 시련의 탑을 클리어하고 난 후에도 둘이서 사냥을 하는 일이 많아졌었다. 결국 지금은 정운이 없는 이인일조 형태가 오히려 더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둘이서 호흡이 잘 맞는다면 정운이 끼어드는 것은 오히려 효율면에서 좋지 않았다. ‘으음···. 뒤에서 얌전히 구경만 하려니 심심한데? 아무리 72층이라고 해도 일반 필드에서 슬기나 세레나가 위험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단 말이지.’ 결국 정운은 심심했다. 오랜만에 필드에 나왔는데 이래서는 전진기지에서 오토 돌리는 것 하고 별 차이도 없지 않은가? 정운이 그렇게 심심함에 몸부림 치고 있는 사이에 뭔가 필드의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영국팀의 유저인데?” 정운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영국팀의 유저였다. 그는 말을 타고 정운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가까이 와서는 멋지게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운을 향해서 90도로 허리를 숙이고는···. “영국팀의 마이클 핸더슨입니다. 박정운님에게 보고 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는 정운에게 익숙한 남자였다. 예전에 한국팀이 영국팀의 영역을 지나갈 때 안내를 했던 사람이었고, 틀림없이 실력 면에서는 영국의 NO.2라고 알려져 있는 남자였다. 한국팀의 인물도 아니고 영국의 유저가 이렇게 급하게 올 정도면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게 틀림 없었다. “보고라고요? 무슨 일입니까?” “예. 지금 71층의 전진기지에 중국과 서독의 사신이 왔습니다.” 타국의 사신이, 그것도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국가가 두 개나 왔다는 사실을 듣고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영국의 NO.2가 헐레벌떡 뛰어올 만한 일이기는 했다. “······알겠습니다. 슬기야. 세레나. 들었지?” “예. 저희 걱정은 마십시오. 마스터.” “아니면 우리도 따라가 드릴까요?” 세레나와 슬기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사신이야. 나 혼자 갔다 올게. 둘은 이대로 사냥하도록 해. 혹시 모르니 이 위치로 그림자의 장수 두기를 호위로 붙여줄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림자 장수중에서 전위와 조운을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두기는 한창 사냥 중이었다가 소환 되었기 때문인지 무기를 그대로 들고 있었고 몸에도 여기저기 피가 튀어 있었다. 정운은 그 둘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여기서 슬기와 세레나를 호위해. 둘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지시에 따라라.”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전위와 조운. 둘 다 뭔가 지키는 것에 특화된 호위 무장들이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라면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호위를 맡겨 뒀다. 이걸로 경험치가 아홉배에서 잠시 일곱 배로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 “·············.” 71층에 있는 한국의 전진기지. 거기에는 지금 양국의 사신이 앉아서 조용하고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신으로 온 자들은 중국은 조장중에 한 명인 홍린과, 또 한명은 서독의 리더인 콘러드 크라우스가 직접 움직였다. 이 둘은 서로가 이 날짜에 사신으로 올 줄은 몰랐던 것인지 응접실에 마주하고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가 아니라 내 와이프들이 달라졌어요. 라고 해야 할까요? 이제는 정운이 안 도와줘도 알아서 척척 잘 사냥하는 슬기와 세레나였습니다. 정운은 레이드나 퀘스트, 그리고 전쟁 말고는 이제 직접 움직일 일은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이죠. 말하고 보니 완전 군의 간부 필이네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19화 <거래는 거래다.> 양국의 사신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눈치를 보면서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사신이라···. 어떤 용무인 거지?’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 저 인간은 세력의 강함 약함을 넘어서 완전 능구렁이인데···. 무슨 속셈일까?’ 마치 호랑이 굴에 들어온 여우와 늑대가 서로 눈치를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사실 이 둘의 속셈은 각자 달랐다.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 그의 목적은 이번에야 말로 어떻게든 한영동맹에 한 다리 걸치는 것이었다. 원래 그의 목적은 동독을 자극해서 한영동맹을 공격하게 하고 거기서 서독은 자연스럽게 한영동맹에 끼어든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월드 서버에 올라 온지 시간이 오래 되지 않았고 영국은 딱히 호의적인 세력이 없었다. 그렇게 고립되기 딱 십상인 상황에서 서독이 한영 동맹의 편을 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향후에 협상을 통해서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100% 그의 생각은 아니었다. 원래는 한국 서버의 김신수라는 남자가 콘러드 크라우스를 뒤에서 부추긴 것이다. 동독과 한영동맹간의 전쟁이 발생하면 그때는 한영동맹의 뒤를 쳐라. 그리고 박정운의 목을 노려라 라고 말이다. 그런 조건으로 김신수는 동독과 영국의 사이에 분쟁을 만들어 줬던 것이다. 다만··. 김신수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이 콘러드 크라우스라는 남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의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책사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쉽게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법니다. 콘러드 크라우스는 김신수에게 받을 것만 받고 계획은 역으로 진행 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사실 김신수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판단한 것 까지만 해도 그의 생각은 어느 정도 옳았다. 주변 사람은 모두 자신의 도구라고 생각하는게 김신수의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고···. 콘러드 크라우스는 김신수라는 인간의 성격에 관해서는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오산이라면···. 한영동맹, 아니 한국 팀이 그렇게 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동독, 이탈리아, 그리고 러시아라는 삼개 국을 상대하면서 사망자 제로의 압승.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김신수가 한국 팀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충고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 말을 다 믿는 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거짓말. 이라고 판단했던 콘러드 크라우스였다. 결국 그렇게 잘못된 판단이 그의 계획을 모두 그르치게 만들었다. 한국 팀은 정말로 강했다. 삼개 국가를 상대하면서 전혀 도움은 필요 없다는 듯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유유히 정리해 버린 것이다. 더구나 한국 팀의 리더 박정운. 이탈리아의 리더인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와 러시아의 리더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해치운 것은 그 혼자라고 들었다. ‘도대체 어느정도의 고수인거야?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왜 이렇게 늦게 월드 서버에 올라온 거고····?’ 콘러드 크라우스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월드 서버에서 한 개의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이기는 하다. 하지만 만약 그 알렉세이 찌모페이와 싸웠다면 이길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한다면···. 그 결과는 99.9% 그의 패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가 상대라고 해도 승률은 잘해야 10%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둘을 동시에 상대해서 이겼다는 것은 박정운이라는 남자다. 그가 어마어마한 괴물이라는 증거였고, 결국 한영동맹, 아니 한국과의 동맹의 중요성만 더욱더 커지고 말았다. ‘어떻게든···. 한영동맹에 끼어야 해. 설사 머리를 낮추는 한이 있더라고 말이야···. 어쩌면 영국은 이미 우리가 동독을 부추긴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자국의 주변에 약소국이 있으면 힘으로 누른다. 자국의 주변에 강대국이 있으면 어떻게든 친하게 지내려 노력한다. 너무나 간단한 행동 원리였지만 이건 고래부터 외교의 기본이었다. 그리고···. 콘러드 크라우스 만큼이나 다급한 것은 중국 쪽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좀 더 미묘한 사정이 있었다. 원래 중국은 이번 한영동맹과 삼국연합의 전투에 끼어들려고 했다. 실제로 동독은 중국에도 연락을 했었다. 사실상 중국과 한국의 사이에 한 번 마찰이 있었던 것도 있고···. 또 영국의 세력을 꾸준히 집어 삼키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던 중국이었다. 그런 중국이라면 기꺼이 한영동맹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힘을 빌려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독의 예상과 달리 중국은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서 방관했다.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물러난 것이다. 그렇게 한 것에는 중국의 리더인 장한의 독단적인 결정이 컸다. 그는 어째서인지 이번에 한영동맹과의 전투에서 절대로 끼어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조장들이 마침 좋은 기회가 왔으니 이 기회에 한영동맹을 밀어 떨어트리자고 간언했지만···.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전쟁을 무조건 피했다. 그 이유는 부하들도 알 수 없었지만···. 오히려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만은 알 것 같았다. 중국의 멤버들 중에 한 명을 매수해서 꾸준하게 정보를 전달 받고 있었던 콘러드 크라우스는 중국에도 김신수의 입김이 닿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김신수는 서독에게 한 것처럼 한국 팀의 전력에 대한 경고를 중국에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독과 달리 중국은 그 충고를 진실로 받아 들이고 몸을 사렸던 것이고 말이다. 다만 그런 중국이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 왔는지는 콘러드 크라우스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저 여자 미인계로 꼬실 생각인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한데···. 쯧, 그런 걸로 통한다면 나도 차라리 편하게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콘러드 크라우스는 한번 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정운이 미인계로 흔들릴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되면 그 누구보다 다이앤 여왕이 먼저 몸바쳐 접근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팀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 할 수 있는 여자였으니 말이다. 양국의 대표가 이런저런 계산을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굴리고 있을 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필드에서 귀환한다고 조금 늦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정운이 도착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각국의 대표들을 향해서 정운은 동시에 인사했다. 사실 이런 경우 어떤 비밀 얘기가 나올지 모르니 일대일로 만나서 얘기 하는게 더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운은 일부러 그런 것을 피하고 양쪽을 동시에 만나는 것을 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우리는 아쉬울 것 없다. 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정운은 옅은 미소를 띄고 있는 얼굴로 둘에게 말했다. “양쪽 다 익숙한 얼굴이군요. 어떤 일로 찾아왔는지 물어볼까요?” 바로 본론을 꺼내는 정운의 말에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와 중국의 홍린은 서로 살짝 눈치를 봤다. 홍린을 김신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중국이 한국을 은연중에 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자각 정도는 있었다. 서독은 말 할 것도 없이 한영동맹을 노골적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말이다. 여기서 자칫 잘못 하면 한국에게 뿐만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상대에게도 약점이 노출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침묵만 지키고 있을 수도 없었다. “별 볼일도 없이 저를 불렀습니까?” 정운이 살짝 삐딱하게 말을 꺼내자 결국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우선은···. 한영동맹이 이번에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도 거기에 한 발 걸치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 우리 도움은 필요도 없었던 거군요.” “뭐, 그런 셈이었죠.” 철저하게 저자세로 나오는 콘러드 크라우스의 태도를 보고 정운은 일부러 삐딱하게 대응했다. ‘이 인간···. 전형적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인간들 대부분이 뱃속에 능구렁이 한 두 마리는 패시브로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레벨이 오르고 고수가 되면 능구렁이는 사라지고 대신에 사자나 호랑이 같은 당당한 위엄을 지니게 된다. 결국은 힘이 최우선. 상대의 눈치를 보고 불리한 입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하수들과는 달리 고수들은 그런걸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콘러드 크라우스라는 남자는 월드 서버에 진출하고 또 자신도 한 개의 팀을 이끌고 있는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뱃속에 능구렁이가 다발로 꿈틀거리는 것 같은 인간이었다. 서독이 약소팀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월드 서버에서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팀이고, 콘러드 크라우스 본인도 상당한 강자일 텐데 말이다. ‘이런 인간일수록 조심해야 하지.’ 정운은 상대가 오히려 화를 내면서 본심을 드러내기를 바랬다. 그래서 상대를 일부러 도발해서 코너로 몰아 보기로 했다. “호의는 고맙습니다. 하지만 고작해야 그런 입에 발린말을 하기 위해서 왔을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군요. 아무리 서독이 클리어를 포기하고 유유자적하게 안주한 팀이라고 해도 나름 할 일은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신랄하시군요.” 정운의 도발에도 콘러드 크라우스는 조금도 불쾌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웃어 넘겼다. 물론 속마음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전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 정운은 그런 그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고··, 콘러드 크라우스는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우면서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기를 원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 서독을 한영동맹에 끼워 주십시오.” 변화구가 안 통하면 직구 승부. 단순하지만 의외로 잘 통하는 수이기도 했다. 다만 정운은 그 직구를 스탠드로 뻥 날려 버렸다. “싫습니다.” “··········.” 이유도 없고 망설임은 더더욱 없었다. 정운은 단칼에 서독과의 동맹을 거절했다. ‘망할····.’ 물론 콘러드 크라우스의 입장에서는 안 된다고 해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서독의 입장에서는 꼭 한영동맹이라는 기차를 타야 했다. 아마도 서독이 게임 클리어를 하기 위해서는 이게 마지막 막차일 것일 확률이 높았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희도 할 수 있는 한은 꼭 힘이 되겠습니다.” “그 힘이라는게 무척 미미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죄송하지만 저희는 여기서 더 전력을 증강 시킬 필요성이 없습니다.” 정운의 말은 지극히 정설이었다. 한영동맹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힘도 상당했지만 이번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다수의 포로까지 손에 넣었다. 이제 정운은 더 이상은 타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는 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 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타국들의 움직임을 신경 쓰면서 움직였지만···. 이제 와서는 그럴 필요도 거의 없었다. 러시아의 영역을 접수하면서 최고 개발층인 73층에도 영역이 생기지 않았던가? 이제 곳 72층 레이드를 하고 그 다음에는 73층 레이드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인미답의 74층에 진출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서버의 팀들 따위는 안중에도 둘 필요 없었다. 원래대로 하는 것처럼 오로지 게임의 클리어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쓸데없이 서독을 왜 데리고 가겠는가? 이쪽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말이다. 정운이 딱 잘라서 칼 같이 거절을 하자 콘러드 크라우스는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어쩔 수 없군. 내가 저쪽의 입장이라도 우리를 배려하지는 않겠지.’ ============================ 작품 후기 ============================ 콘러드 크라우스 같은 경우... 스스로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게 엄청 똑똑한 인간은 아닙니다. 그냥 보통 사람보다 약간 신중한 편일 뿐이죠. 하지만 자기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 신중함도 반감되기 마련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20화 만에 하나···, 아니 억에 하나 통할까? 싶어서 정에 호소해 보기는 했지만 역시 이건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라운드 제로에서 통상의 거래와 같은 조건으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기브 앤 테이크,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자.’ 콘러드 크라우스는 정운이 원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혹시 김신수라는 남자에 관해서 아십니까?” “······그 이름은 어떻게 아십니까?” 운을 살짝 던졌을 뿐이지만···. 정운의 반응은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 그 반응을 보고 콘러드 크라우스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최근 그런 남자가 우리에게 접선해 왔습니다. 한국 서버의 인간이라고는 하는데···. 사실 그의 정체에 관해서는 우리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박정운 님을 몹시도 적대시 하고 있던 것 같더군요.” “그 새끼 나한테 쌓인게 많거든요.” 정운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한동안 안 나타나서 그냥 죽었으면···. 이라고 바랬던 이름이다. 가끔씩 한국 서버에 있는 삼대길드의 간부들과 연락을 해서 상황을 물어도 최근에 언더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은 지극히 미미하다. 라는 말 뿐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최상층을 공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정운은 그 놈들이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애써서 언더 플레이어를 사냥할게 아니라 그냥 자신들이 최대한 빨리 최상층을 플레이해서 게임을 클리어하는게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월드 서버에 진출한 유저는 비정기 퀘스트에서도 자유 참가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알림창을 통해서 연락이 오기는 하지만 참가하고 말고는 자유인 것이다. 한국 팀은 혹시 모를 언더 플레이어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 항상 3~5명 정도는 참가하고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정운은 제발 이 상태로 김신수가 찌그러져 있기를 바랬다. 그놈 자체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파우스트가 어떤 짓을 할 때마다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애당초···. 언더 플레이어인 놈이 어떻게 월드 서버에···. 하긴, 파우스트가 어떻게든 손을 썼겠지.’ 악마의 설명에 의하면 월드 서버는 최상층에 가까운 탓에 파우스트의 지배력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신수 하나 정도 반칙으로 올려주는 것 정도는 파우스트에게 일도 아닐 것이다. “망할····.” 정운의 입에서 살짝 욕이 나오면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자 콘러드 크라우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희 서독을 한영동맹에 끼워 주신다면 놈에 대한 정보를 모두 넘겨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정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신수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독을 한영동맹에 끼워서 잡음이 생기는 것을 감수하면서 까지 필요한 건가? ‘으음······.’ 정운의 머릿속에서 저울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어느 쪽으로 기울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일단···. 서독의 의견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중국의·····.” “홍린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만남인데 저를 기억해 주시지 않다니···. 슬퍼서 눈물이 나올 것 같군요.” 살포시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홍린을 보고도 정운은 냉정했다. “별로 그렇게는 안 보입니다만···. 중국측은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정운의 말에 홍린을 늘씬한 다리를 꼬면서 자세를 바꿨다. 차이나 드레스의 트임 사이로 매끈한 다리의 각선미가 그대로 보이고 또 얼굴에는 고혹적인 미소가 가득했다. 누가 봐도 지금 정운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물론 정운의 입장에서는 허공에 삽질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슬기하고 세레나가 100배는 예쁘구만····. 이 아줌마는 왜 주책이야.’ 물론 홍린도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슬기나 세레나에게 없는 요염한 색기는 그녀에게만 있는 독특한 매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정운의 마음 속에 더 이상은 어떤 여자도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두 여자를 거느린 남자는 두 여자가 세 여자, 네 여자로 종종 늘어나기도 한다고 하지만···. 정운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슬기와 세레나로 끝이었다. 더 이상은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기로 스스로 굳건하게 맹세했다. 결국 홍린이 하고 있는 유혹은 돌부처 앞에서 그라비아 모델 포즈 잡기에 지나지 않았다. ‘쯧, 재미 없는 남자네···.’ 홍린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제가 가지고 온 용건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번에 러시아를 이기고 접수한 영역 중에 73층의 영역 있지 않습니까?”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아직 한국은 72층 까지 밖에 출입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영역을 한국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우리 중국이 관리하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 정운은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일본을 이겼을 때도 아직 71층에 올라갈 권리가 없어서 일본의 영역을 영국이 잠깐 관리해 주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한영동맹이 성립된 상태였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영역의 관리를 맡긴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칫 잘못해서 뭔가 분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잇었고 말이다. “저희는 곧 73층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중국팀의 호의는··. 마음만 받는 걸로 하죠?” “어머? 그런가요? 미국이 러시아의 영역을 집어 삼키려고 노리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미국이? 미국은 이미 73층의 60%를 자기 영역으로 하고 있을 텐데요?” 정운의 말에 홍린은 입가를 살짝 가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죠. 60%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40%는 안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은 법 아니겠습니까?” “···········.” 홍린의 말은 미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손을 빌려 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나중에 중국과 한국의 사이에도 뭔가 밀접한 점접이 생길 수도 있고 말이다. ‘왜 이렇게 까다로운 일만 잔뜩 가지고 온 거야?’ 정운은 혀를 차면서 속으로 골머리를 썩었다. 그리고 홍린에게 말했다. “용건이 하나 더 있다고 했죠? 다른 용건은 뭡니까?” “아···. 간단합니다. 만약 우리 조건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한영동맹이 최대한 빨리 72층의 레이드에 도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힘이 부족하다 싶으면 우리가 72층의 레이드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도 함께 전하록 했습니다.” “중국이 72층의 레이드를 도와 준다고요?” “예. 정보공유부터, 여차하면 인원 증원까지···. 얼마든지 도움을 주겠다는 저희 주군의 뜻입니다.” “············.” ‘무슨 속셈이지?’ 조건이 너무 파격적일 때는 그 뒷면에 숨어있는 진의를 읽어야 한다. 정운이 보기에 중국의 조건은 너무나 파격벅인 제안이었다. 레이드에 대한 정보의 공유나 유저 파견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일반 서버에서도 중요한 거래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는데 월드 서버에서는 오죽 할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뭘 노린다는 걸까? ‘생각해 보자. 생각·····. 중국이 제시한 조건은 두가지. 하나는 영역의 관리를 대신할 것. 그리고 또 하나는 73층까지의 진출을 돕겠다. 라는 것. 이 두가지가 가지는 공통점이 뭘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 것은 두 가지 조건 중에 뭘 제시해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중국이 노리는 목표는····. “미국을 향한 견제를 하자는 겁니까?” “········저는 주군의 말을 그대로 전할 뿐. 그 속에 숨어있는 진의는 모릅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말. 정운의 말에 홍린은 말을 살짝 돌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녀의 얼굴에 계속해서 걸려있던 배시시한 미소가 일순간 사라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과연··. 그렇다 이거지?’ 정운은 중국의 진의를 알아냈다. 73층의 전체 영역은 미국이 60%, 그리고 중국이 10%, 러시아가 30%를 가지고 있었다. 세력권을 보면 중국과 러시아가 은근히 손을 잡고 미국을 견제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 상황에서 러시아가 사라졌으니 73층의 세력권은 급속도로 미국에 유리하게 흘러갔을 확률이 높았고···. 중국은 일단 그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한국과 손을 잡아야 했다. 그러니 한국팀의 영역을 관리하는 식으로 한국팀과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혹은 한국 팀이 어서 73층으로 올라와서 미국을 견제하는 것에 한 발 도움을 주기를 바랬다. ‘흐음···. 혼자서는 호랑이를 상대하기 두려우니 같은 편을 부르겠다. 좋군···. 이건 이용 할 수 있어.’ 정운은 홍린에게 말했다. “두 번째 조건인 72층 레이드를 도와 주시는 조건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군에게는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사실 이 상황은 조금 이상한 것이었다. 레이드를 도와준다는 쪽이 감사하고 있고, 도움을 받는다는 한국 쪽이 갑처럼 ‘그럼 까짓것 한 번 도움 받아줄게.’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뒷면에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 때문에 일어난 이레귤러적인 사태였지···. 보통은 이렇게 갑과을이 반대가 되는 상황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정운으로서는 별 상관 없었다. 중국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던 상관도 없었다. 정운이 이 거래에서 노리는 이득은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정운이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반대로 애가 탄 것은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였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어떻게 되지? 가뜩이나 곤란할 지경인데····.’ 서독은 지금 누가 뭐라고 해도 월드 서버 최고의 약체 국가팀이다. 영국은 한영동맹을 계기로 강팀으로 거듭나고 있었고··. 동독은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약체팀이 세 개일 때와 한 개뿐일 때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세 개일 때는 어느 정도 줄타기를 하면서 여기저기 붙으면서 최소한의 권리는 챙길 수 있었다. 강팀들의 입장에서도 표정이 하나에서 셋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협의 정도도 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약소팀이라고는 서독 하나 밖에는 없었다. 그 말은 다른 강팀들이 보기에는 서독이 가장 만만하고 가장 집어삼키기 쉬워 보이는 상황이란 말이다. 가뜩이나 한국팀이라는 강팀의 등장과 그 거침없는 행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팀들이 많았다. 서독을 집어 삼켜서 그 안전책으로 삼으려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결국 서독의 살 길은 하나 뿐이었다. 아예 작정하고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일순위가 바로 한국이었다. 이미 영국이라는 선례가 있었지 않은가? 다른 국가보다는 믿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영국이 한 것처럼 한국팀이라는 호랑이의 등을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게임의 클리어는 절대로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김신수에 대한 정보까지 내밀었다. 그 정보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운의 반응을 봐서는 그렇게 가치가 낮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중국쪽은 됐고···. 이제 서독의 입장을 살펴 볼까요?” 정운이 말의 운을 때자 콘러드 크라우스는 마치 재판장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긴장했다. 그런 그에게 정운이 말했다. “동맹의 제안은···. 일단 나중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김신수의 정보는 원합니다.” “그런···.” 콘러드 크라우스는 말 도 안 되는 일이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둑놈 심보도 이 정도면 거의 만렙 도둑놈이다. 정운은 상대의 사정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내 놓으라고 협박 하는게 아닌가? 아무리 서독이 약소팀이라고 해도 이런 조건에 마냥 따를 수는 없었다. “박정운님. 그건 너무합니다. 한국팀은 정의와 도리를 아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렸던 겁니까?” ‘놀고 있네.’ 정운은 피식 웃었다. ============================ 작품 후기 ============================ 간 보는 것도 상황 봐가며 봐야 합니다. 안 상황만 불리하게 돌아갈 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21화 눈 가리고 아웅도 정도가 있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김신수의 정보를 거래의 대상으로 써먹을 리가 없었다.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서 정의라는 단어를 이용하고 있는 것 뿐이다. 너희들이 손해 봐도 우리를 도와 줘야지? 왜? 너희는 정의잖아? 실제의 국제 관계에서도 가끔씩 나오는 외교 수단중에 하나다. 이게 의외로 잘 먹히기도 한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강국일수록 자국의 여론의 눈치도 봐야 하기에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실제 국제 관계에서의 문제이고,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정운은 한국의 대표가 아니라 한국 서버의 팀의 대표일 뿐이다. 내부의 여론? 서독 좀 쪼았다고 분열될 만큼 유리같은 단결력은 아니었다. 정운은 오히려 위압적으로 콘러드 크라우스에게 말했다. “당신···. 그 김신수라는 놈이 어떤 놈인 줄은 아시오? 정말 알고 그 놈하고 손을 잡은거냐는 말이오?” 정운이 역으로 강하게 나오자 콘러드 크라우스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손을 잡았다고 까지는·····.” “아느냐고 물었소?‘ “···········.” 정운은 여차하면 여기서 베어 버리겠다는 느낌으로 위협을 팍팍 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콘러드 크라우스는 그런 정운의 압박을 받으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이건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생각한 흐름은 이런게 아니었다. ‘이건···. 도대체 왜 이렇게···.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콘러드 크라우스는 정운이 심상치 않은 기세로 자신을 압박하자 김신수라는 남자의 정체에 관해서 할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처음에 자신과 접속해 온 것은 최수영이라는 여자였다. 그 여자를 통해서 김신수를 만나고···. 그는 자신의 한국 서버의 또 다른 세력이라고만 소개했다. 독일도 같은 서버 내에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개의 세력으로 나눠서 냉전중인 상태였고···. 그때 콘러드 크라우스는 김신수를 월드 서버에 진출한 한국 팀의 대항마 정도는 될 거라고 여기고 일단 손을 잡은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놈에 관해서 뭘 알고 있지?’ 스스로 자문해본 결과 콘러드 크라우스는 소름이 쫙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머리 좋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일수록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맹점을 보이기 쉽다. 그는 이제까지 김신수를 박정운의 대항마. 한국 서버의 정보를 전해주는 정보망.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느낌은 들었고 아무리 봐도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는 기색이 강해서 못 믿을 놈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의 정보만 빼내고 놈과 단칼에 손을 끊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박정운의 바로 앞에서 김신수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것 자체가 실수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똑똑한 인간들은 자기 생각에 자기가 빠져들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원래의 흐름대로 빠져 나오는 것도 어려워 진다. 소위 말하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 라는 상태인 것이다. ‘빌어먹을···, 그 놈 도대체 한국 서버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콘러드 크라우스는 박정운에게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무조건 숙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그 놈이 어떤 놈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지나친 오해는 참아 주십시오.” 콘러드 크라우스의 말에 박정운은 얼굴 표정을 굳히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살짝 미소지으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김신수 그 놈이 자기 입으로 파우스트와의 연결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은 모양이군. 하긴···. 그건 놈으로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야 할 비장의 정보겠지.’ 정운은 일단 안심했다. 김신수가 자신에 관해서 정보를 숨겼다면, 아마도 서독에도 파우스트의 손길이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월드 서버에 진출해 있는 팀이 김신수를 통해서 파우스의 입김이 닿으면··. 그때는 정말 골치 아파진다. 일단 그런 기미가 없다는 것은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정운은 이제 위압감을 슬며시 거두면서 말했다. “일단···. 당신의 말을 믿어 보겠습니다. 그러니 김신수에 대한 정보를 모두 넘겨주시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전부 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거짓 정보를 넘겨 줄 생각은 마시오. 우리도 확인해볼 방법은 있소.” 사실 확인해 볼 방법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의 정확성을 위해서 한차례 허세를 부려야 할 시기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다만···. 저희 서독도 얻은 정보를 그냥은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 오해 하지 마십시오. 제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 대가도 없이 정보를 넘겼다가는 우리 팀원들이 납득을 하지 않을 겁니다.” “············.” 정운은 콘러드 크라우스를 지그시 바라봤다. ‘하긴··. 저 놈도 한 팀의 대장으로서 부하들 볼 면목이 필요하기는 하겠지? 생색낼 정도로는 특혜를 베풀어 줄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콘러드 크라우스에게 말했다. “동맹은 불가합니다. 대신···. 우리 한영동맹이 가지고 있는 70층과 71층의 영역에서의 사냥을 허락하죠.” “그게 정말입니까?” 콘러드 크라우스는 크게 눈을 떴다. 정운의 제안은 이제까지 이 회담의 테이블에서 채찍만 주구장창 맞아오던 그에게 있어서 꿀을 잔뜩 바른 당근이나 다름없었다. “허언은 하지 않습니다. 약속하죠.” “감사합니다. 그럼. 김신수에 관한 정보는 제가 곧 서면으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서면으로요?” 정운은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할 필요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콘러드 크라우스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놈과의 대화는 항상 기록을 해두고 있었습니다. 그 대화록을 기록해둔 문서가 있습니다.” “·····당신 보통은 아니군요.” 정운은 처음으로 콘러드 크라우스를 다시 봤다. 그냥 자기 똑똑한 줄 아는 허당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용의주도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약한 자의 몸부림이려니 하고 가볍게 봐 주십시오.” 그렇게 정운은 갑자기 찾아온 중국과 서독의 사신을 상대로 회담을 종료했다. 양쪽 모두, 정운에게 있어서는 큰 이득을 가져온 회담이었다. ‘서독에서 일단 김신수 그 망할 자식의 정보를 얻었고, 그리고 중국은 뭐 노리는지 대강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노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뒤통수 치기의 카운터를 보여주지.’ 정운은 모두를 보내고 의자에 앉아서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그 미소는 주인공임에도 악당처럼 보이는 걸까? “72층 레이드를 한다고? 그것도 중국하고 같이?” 정운이 오래만에 회의를 열고 의제를 발표하자 한중겸이 가장 먼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맞아요.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명주호가 턱을 쓰다음으면서 말했다. “잘못···. 까지야 아니겠지만 너무 이르지 않나? 71층에 올라 온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잖아?” 명주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한 층에 올라가면 적어도 석 달에서 다섯 달 정도는 사냥을 하면서 그 층에서 힘을 비축하고 다음에야 시험적으로 레이드를 해보기 시작한다. 물론 한국팀은 이례적일 정도로 고속적인 레이드 전을 연달아서 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레이드를 연달아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해 보였다. 정운은 동요하고 있는 팀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너무 빨리 73층으로 올라가는게 아닌가? 염려하는 거겠죠.” 정운은 여기까지 말하고 살짝 말을 끊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72층에 오래 머무는 것에 별 의미는 없습니다. 위로 올라 갔을때의 최고의 장점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퀘스트 플레그를 찾아서 클리어하는 것인데··. 여기서 그걸 찾을 수 있을까요?” 정운의 말에 한국팀의 유저들은 과연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월드 서버에 오고 나서 퀘스트 포인트를 찾은 유저는 한국팀에 하나도 없었다. 사실 그건 당연했다. 이미 사전에 월드 서버에 진출했던 팀들이 퀘스트 포인트는 샅샅이 뒤져서 싹쓸이를 했으니 말이다. 대신에 다른 팀과 전쟁을 하면서 레벨업에 관해서는 저마다 제법 재미를 봤지만 말이다. “으음···. 확실이 퀘스트 포인트를 찾지 못하는 이상 72층을 계속해서 탐색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운의 말에 박추성과 배대호가 가장 먼저 동의했다. 월드 서버에 나오고 나서 확실히 이 둘의 게임 플레이가 적극적이 되었다. 예전 같으면 회의장에 나오기는 해도 지금처럼 의견을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냥 한쪽 구석에서 분위기만 잡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게 다였지··. 그런데 월드 서버에 와서는 예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적극적인 협조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은 여전히 한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점점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박추성 배대호가 동의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뭐···. 정운이도 다 생각이 있겠지.” “일단 네가 리더다. 우리는 믿고 따르마.” “정운이 네 뜻대로 해봐.” 정운에 특히나 호의적인 멤버들, 한중겸과 명주호, 그리고 이민지까지 동의하자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모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또 하나의 비밀사항인데···. 작전 당일까지는 동맹인 영국에게도 비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뭔데 그래?” “그건·······.” 정운은 중국의 ‘한국팀을 방패 삼아서 미국 견제하기.’ 계획의 뒤통수를 후려칠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흠···. 정말 할 생각이냐?” “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월드 서버에 오고 나서 쓸데 없는 마찰이 너무 많아요.” “·····틀린 말은 아니야. 그리고··. 성공했을 때의 성공 보수도 크고 말이야.” “그건 그렇죠····.” 한국팀의 유저들은 저마다 정운의 계획에 관해서 깊게 생각해 봤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반대로 쪽박이 될 수도 있는 계획이었다. 정운은 90% 이상의 성공을 예상하고 진행하고 있었다. 적어도 최악의 사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 정도의 이레귤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하지만 애당초 결과는 정해져 있기는 했다. “에잇···. 생각하기 귀찮아서 리더를 남에게 떠 맡겼는데 이제 와서 골치 아프게····.” 한중겸이 가장 먼저 정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까짓것 하자. 나도 이제 슬슬 푸닥거리하기는 지겹다.” “중겸이 말이 맞아. 정운이 네가 리더고, 아직까지 실책도 없었지? 그럼 네 계획에 따르는 것이 순리겠지.” 한중겸에 이어서 이민지도 동의했고 다른 사람들도 결국 하나 둘 씩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하지 않은 정운의 리더 경력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믿음을 줬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계획이라고 해도 리더의 인망과 능력에 따라서는 팀의 일원들이 적극적인 협조를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모두 감사합니다. 영국팀에는 제가 다이앤 여왕에게만 미리 언질을 주겠습니다. 만에 하나의 사태가 있을 수 있으니 모두 비밀로 해 두십시오.” “걱정하지 마.” “주둥이 나불거릴 인간이 누가 있다고···.” ============================ 작품 후기 ============================ 다음화? 혹은 다다음 화 쯤에 논쟁거리가 있는 미묘한 얘기가 올라 갈 수도 있습니다. 정말 많은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으니 미리 말해 두겠는데 작가는 중립입니다. 그보다 양쪽 다 싫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22화 <윤정철의 과거> 그렇게 정운은 모두의 동의를 얻어서 자신의 계획을 안심하고 진행 할 수 있게 되었다. ‘72층 레이드는 사흘 후로 하면 되겠지? 중국에서도 나름 준비는 해야 할 테니···.’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정운아. 잠시 나하고 얘기 좀 하자.” 정운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있었다. “···정철이 형님?” “할 말이 있다. 얘기 좀 하자.”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말 거는 일이 거의 드문 윤정철이 정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런 상황은 드문 일이었지만 정운은 대강 무슨 용건인지 감이 왔다. “····좋습니다. 자리를 옮기죠.” “···필드로 나가자.” 정운과 윤정철의 분위기에 살짝 이지만 냉기가 돌았다. 그런 둘을 보고 이민지가 한중겸에게 말했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니야?” “저런 일에는 끼어드는 것 자체가 골치죠. 둘 다 애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 둡시다.” “·····하긴. 둘 다 애도 아니고···.”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을 걸고 부딪히는 남자들은 브레이크가 안 걸리는 법이었다. 정운과 윤정철은 넓은 필드로 나왔다. 그냥 얘기만 할 거면 전진기지의 안에서 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렇게 필드로 나왔다는 것은····. 둘 다 얘기만으로 안 끝낼 생각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쯤이면 되겠지.” 윤정철은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휙휙 둘러보면서 중얼 거렸다. 그리고 뒤에 따라 나온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남자 대 남자로 말이야.” “그렇게 하죠.” “세레나하고 어떻게 된 거냐?” “제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정운은 거두절미하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쓸데없이 만약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여지를 나길 틈도 주지 않았다. 슬기와 세레나에게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기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두 여자 모두를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정운에게 있었다. “····슬기를 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세레나를 버릴 생각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입니다.” “············두 여자는 모두 거기에 납득 한 거냐?” “·············.” “대답 해. 납득 한 거냐고 물었다. “납득···. 이라기 보다는 허락을 해 줬다고 봐야 겠죠.” “그래···. 그랬단 말이지····.” 윤정철은 자신의 무기인 활을 꺼냈다. 그의 클래스명은 궁신. 지금에 와서는 레벨이 167에 도달한 궁수 계열의 정점에 있는 자였다. 정운도 활을 쓰기는 하지만 사실 윤정철하고 비교하면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같은 편인 정운의 앞에서 활을 꺼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윤정철은 활을 꺼내서 정운을 향해서 겨누고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자. 세레나를 포기해라.” “개소리 하지 마십쇼.” “·······그렇게 들리나?” “그렇게 들립니다.” 정운과 윤정철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윤정철은 지금 정운에게 세레나와의 관계에 관해서 깨끗하게 정리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은 이보영도 비슷하게 했었지만···. 윤정철의 경우는 훨씬 더 직설적이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정운은 자신도 무장을 꺼내며 말했다. “제가 역으로 묻죠?” “말해라.” “어째서 형님이 저하고 세레나의 사이에 끼어듭니까? 형님은 그럴 자격도 입장도 아니지 않나요?” 정운의 질문에 윤정철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세레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간단하게 인정하는 군요.” “뻔히 알면서 물어놓고 이제 와서 딴 소리 하지 마라. 아니면 내가 어린 소년처럼 쑥스러워서 제대로 말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냐?” “아아···. 형님 나이가 생각보다 많죠?”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는 나이를 세는걸 잊어 버렸지만···. 한국에 살 때는 대통령이 OOO였지.” “·····나이차 실감나게 하내요.” “우리집은 시골이었는데···. 그때 나라가 이것저것 시끄러웠거든. 여기저기서 온통 시위였고, 그런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서 군대가 툭하면 총질하는··. 뭐, 그런 시대였지.” “그 문제는 아직도 시끄럽습니다. 아! 혹시 형님도 그때 시위장에서 목소리 좀 높였나요?” “아니. 난 그냥 시골에서 농사짓고 가끔 취미로 활 들고 산에서 꿩 사냥이나 하던 놈이었지. 좌익? 우익? 내가 보기에는 똑같은 병신들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어?” 아무래도 윤정철은 그다지 역사적인 문제와는 상관없이 살던 인간인 모양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사람이 이렇게 그라운드 제로라는 악마의 게임에 들어온 걸까? “·····잠깐 옛날 얘기 좀 해줄까?” 정운이 궁금해 하는 것이 표가 난 걸까? 윤정철은 자신의 과거에 관해서 풀어 놓기 시작했다. 윤정철은 자신이 말하는 대로 지극히 평범한 시골의 농사꾼이었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가꾸고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에는 취미로 활로 사냥을 좀 하고는 했다. 사냥은 특이하게 올무나 덧이 아니라 활을 이용했다. 그건 그가 어려서부터 궁술을 배워서 였다. 그의 아버지 말로는 예전에 자기 집이 무과에 급제했던 어쩐 장군의 자손이라고 했다. 뭐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불명이다. 그래도 그의 집에 편전을 날릴 수 있는 국궁이 있었고 어린 시절 아버지는 그걸 다루는 법을 하나뿐인 아들에게 알려 주고는 했다. 그렇게 성장한 윤정철은 평범하게 농사를 짓는 한편 겨울에 농한기가 되면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운 국궁을 가지고 산에서 꿩이나 산토끼 따위를 사냥하고는 했다. 별 의미는 없었다. 그냥 활을 쏘는게 즐거운 취미였고 사냥감은 나이 드신 노모에게 가져다 드리면 좋아했었다. 그는 그렇게 마음씩 착한 시골 청년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도시로 시집을 간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여동생이 어느 날 애들과 남편까지 데리고 시골로 돌아온 것이다. 이미 시집 간지 몇 년이나 된 여동생이 명절도 아닌데 갑자기 찾아온 것에 그는 의아했다. 더구나 그가 있던 시골은 겨울이 되면 정말로 사람이 왕래하기도 어려운 그런 산골이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오빠···. 부탁이니까 우리 좀 숨겨줘.” 여동생은 아무 말 말고 자신들을 좀 숨겨달라고 했다. “····알았다. 푹 쉬고 가라. 네 방은 아직 있다.” “고마워 오빠···. 정말 고마워.” 무슨 용건인지는 몰랐지만 윤정철은 동생의 간절한 부탁에 일단 동생을 숨겨 주기로 했다. 여동생의 가족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고, 그런 피붙이를 외면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나중에 물어보자.’ 그때 윤정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생의 내외를 숨겨줬다. 그러기를 일이주가 지났을까? 윤정철은 다시 겨울 산에 올랐다. 여동생과 매제의 가족들까지 모두 먹일 사냥감을 찾기 위해서였다. “한창 클 나이의 애들이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지···.” 윤정철은 얼마 전에 찾았던 멧돼지의 발자국을 쫒아서 산으로 올랐다. 원래 멧돼지를 화살로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토끼나 꿩 따위와는 다르게 멧돼지는 공격을 받으면 도망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발작적으로 반격을 하기도 한다. 화살 한두 대 맞아도 끄떡도 하지 않고 달려와서 어금니로 받아 버리면 건장한 장정도 저승길로 가는 수가 있었다. 하지만 윤정철의 경우 전에도 멧돼지를 화살로 잡아 본적이 있었다. 한발로 안 되면 두 발, 세 발, 네 발···. 나무 위나 바위 위처럼 안전한 장소를 먼저 찾고 멧돼지에게 화살공격을 해서 잡은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그가 주로 꿩이나 토끼를 잡는 것은 멧돼지 보다 잡기 쉬워서가 아니었다. 노모하고 자신이 먹기에는 그것도 양이 충분했고, 무엇보다 멧돼지 보다는 집까지 나르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식구가 많으니까 오랜만에 거물을 노려보려고 했다. ‘으음···. 발자국이 점점 선명해지는 걸 보니 다 따라 잡아 가는 것 같은데···.’ 윤정철은 자신의 밭에서 남은 고구마를 캐 먹으려고 내려왔던 멧돼지의 발자국을 쫒아서 드디어 실물을 잡았다. “저 놈이군···. 제법 큰걸?” 윤정철이 발견한 멧돼지는 멀리서 봐도 100kg은 넘어 보이는 거물이었다. 놈은 나무 뿌리를 파해 치면서 뭔가를 킁킁 냄새 맡으며 찾고 있었다. ‘조심조심···.’ 겨울의 멧돼지는 먹을게 부족해서 신경이 예민한 놈이 많다. 바짝 마른 화약처럼 조금만 자극해도 금방 반응해 버리는 것이다. 윤정철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굵은 나무로 올라가서 우선 자신의 안전을 확보했다. 확실한 한 방의 파괴력을 지닌 총으로 사냥하는 엽사와 달리 활로 사냥을 하는 윤정철은 자신의 몸에 안전을 확보 하는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나무위로 올라간 윤정철은 등 뒤에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서 활에 매겼다. ‘그대로 움직이지 마라····.’ 끼이이익···. 윤정철의 활이 화살을 당기는 소리가 나면서 멧돼지는 고개를 들고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킁!! 킁킁!!!” 놈은 뭔가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 주변에 뭔가 있다고 느낀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쉬이이익!!! 퍼억!! “꾸웨엑!!!” 멧돼지는 윤정철이 첫 발이 정확하게 앞발의 겨드랑이 밑에 맞았다. 가죽이 얇고 심장이 가깝고 또 화살이 끼이면 앞다리를 움직이기도 힘든 장소이다. 윤정철은 멧돼지를 노릴 때 첫 발은 항상 거기를 노렸다. “쿠웨엑!!” 멧돼지는 발광을 했지만 나무 위로는 시야가 닿지 않았던 걸까? 화살이 날아온 윤정철을 발견하지 못하고 뱅뱅 돌면서 주변만 경계했다. “좋아··. 그대로 있어라.” 윤정철은 그대로 화살을 연달아서 날렸다. 퍼억!! 퍽퍽퍽!!! “쿠웨에엑!!!” 멧돼지는 네 발의 화살 중에 세 발이나 몸 뚱아리에 맞았다. 마지막 한 발은 피했지만 이미 화살 네 대가 정확하게 몸통에 박힌 후였다. 놈은 미친 듯이 발광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에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속 있으면 아픈꼴을 당한다는 것은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뭐···. 손바닥 안이지. 천천히 가볼까?” 윤정철은 나무에서 내려와서 천천히 멧돼지의 흔적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적중된 네 발의 화살 중에 한 발은 치명적인 급소에 꽂혔고, 두 발도 내장에 도달했을 정도다. 아무리 야생 동물의 생명력이 강해도 저건 못 견딘다고 확신했다. 윤정철은 발자국과 핏자국을 유유히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흔적을 따라서 20분 정도 이동하니···. “푸우··· 푸우····.” 바위 구석에 쓰러져서 거칠게 숨을 고르고 있는 멧돼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그만 가거라···.” 윤정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놈에게 근거리로 다가가서 화살로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쿠웨엑!!!” 결국 멧돼지를 잡아내는 것에 성공한 윤정철은 즉성에서 멧돼지의 내장을 처리했다. 내장은 가지고 가기도 무거우니 여기서 버려 버리는게 편했다. 그나마 멧돼지의 내장 중에서 쓸만한 쓸개만 챙겨서 눈에 꽁꽁 싸맨 후에 준비해온 봉지에 담고 나머지는 버렸다. 그리고 역시 먹을게 별로 없는데 무게만 많이 나가는 부위를 정리했다. 준비해온 손도끼로 발끝을 자르고 머리를 잘랐다. 콰직!! 콰지직!! 먹으려고 하면 못 먹을 것 없는 부위들이다. 하지만 살도 별로 나오지 않고 이 덩치를 짊어지고 걸어서 두 시간은 넘을 거리를 가야 했다. 무게는 최대한 가볍게 하는게 좋았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23화 “좋았어··. 이제 가 볼까?” 여기저기 최대한 덜어내고 나니 100kg은 넘을 것 같은 멧돼지가 상당히 가벼워 졌다. 그렇게 무거운 멧돼지를 짊어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윤정철은 집에 돌아갔다. 이때 까지만 해도···. 이때 까지만 해도 그는 순박한 시골 청년일 뿐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오고 나서도 윤정철은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때 차라리 멧돼지한테 받혀 죽었다면··. 산에서 낙사라도 했다면 차라리 그런 더러운 꼴은 보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집에 멧돼지를 짊어지고 돌아가던 윤정철은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에 늘 한적하던 동네였는데 그 동네에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던 것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는 그대로 짊어지고 있던 멧돼지를 팽겨치고 활만 들고 집으로 달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고 뭔가 목구멍이 까끌 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육감이 불길함을 경고하고 있었고 어서 뛰어간 자신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게 본 것은 자신의 가족의 시체들이었다. 노모에 여동생, 그리고 몇 년 만에 얼굴을 본 조카들 까지···. 특히 여동생은 찢어진 옷과 나신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죽기 전에 욕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후우····. 후우·····.” 집으로 힘껏 달려온 다른 의미로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좀 멀리 떨어져 살던 이웃의 김노인이라는 사람이 윤정철에게 왔다. 그 노인도 머리에 붕대를 대강 감고 있는게 폭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보게. 정철이···. 큰일 났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르신···.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김노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설명을 들은 윤정철은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우리도 어쩔 수 없었네···. 정말이지 어쩌다가 우리 마을에 이런 일이···.” 김노인의 설명에 의하면 어디서 갑자기 몇 명의 덩치들이 나타난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척 봐도 건들건들 거리는게 아무리 봐도 성실한 인간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놈들이 윤정철의 집에 들이닦쳤다. “씨발새끼!! 여기 있었어?” “너 때문에 먼걸음 했다!! 이 빨갱이 새끼야!!” “도망가면 못 잡을 줄 알았어!!?” 그 남자들은 윤정철의 매제를 잡기 위해서 이 마을에 왔다고 했다. 놈들의 행패를 말리는 윤정철의 노모를 밀쳐내고 그 딸과 딸의 남편을 끄집어내서 폭행하기 시작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려 했지만 무리였다. “뭘 봐!! 절로 안 꺼져!!?” “이 새끼들이···. 다 같이 묻어줄까!!?” 쇠파이프로 위협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자들에게 꼼짝하지 못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대부분도시로 떠나고 마을에 있는 주민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그것도 한 평생을 순박하게 시골에서 땅 파며 농사짓는 것 밖에 보르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자기 나이 반도 안되는 젊은 놈들이 눈을 부라리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광경 자체가 그 사람들에게는 공포였다. 사실 노인들로서는 이런 깡패들에게 맞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도 몇몇 노인들이 말리려고 했지만 놈들은 그런 노인을 밀치고 발로 차면서 위협했다. “이 새끼들 누군지 알기는 알아? 빨갱이들 돕는 새끼들은 다 빨갱이야. 이 X도 모르는 새끼들아!!!” 마을에 쳐들어온 인간들은 당시 사회적 혼란을 틈타서 강자에게 기생하고 약자들에게 들러붙는 깡패들이었다. 경찰도 뭣도 아니고 사실 정치적 사상 같은 것도 없다. 그저 뭔가 건수를 잡아서 약자들을 괴롭히려고 하는 놈들인 것 뿐이었다. 사실 윤정철의 매제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냥 그의 친구 중에 하나가 운동권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윤정철은 그 친구와 인연이 있다는 것만으로 인해서 조사 대상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정치 깡패들이 그를 쫓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지금 도회지에 살고 있는 윤정철의 매제가 살고 있는 집의 권리였다. 곧 가격이 오른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그 땅을 뺏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다. 사실 빨갱이 운운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자신들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윤정철의 매제가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어야 편했기에 그렇게 몰아갔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건 통했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정부에 협조하지 않으면 모두 빨갱이라고 몰아가던 암흑의 시절이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도 도와주지를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된 건지 경찰의 정보망이 놈들에게 넘어가서 더 위험해지기 까지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위협에 처하자 그는 일단 시골에 있는 윤정철의 집으로 몸을 피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여기까지 놈들이 따라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크윽····. 흑···으윽·····.” 윤정철의 매제는 놈들에게 폭행당해서 망신창이로 끌려가면서도 분함에 피눈물을 흘렸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런 놈들에게 아내는 욕을 당하고 아이들도 모두 죽어 버렸다. 증오로 사람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는 지금 자기 주위에 있는 짐승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싶었다. “빌어먹을···. 이 마을은 어떻게 된게 차도 못 다녀?” “어쩔 수 없지···. 그냥 여기 어디 묻어 버리고 가 버릴까?” “그럴까? 어차피 이 새끼 도장 없어도 죽여 버리면 문서야 꾸미면 그만이지.” “그게 낫겠다. 어차피 경찰에 데리고 가 봐야 고문당하다 죽을 텐데····. 야. 넌 차라리 우리한테 고마워해라.” “네 마누라가 끝내 줬기에 이런 자비도 베풀어 주는 거지. 크크큭····.” “그러고 보니. 그 년 괜찮았지? 중간에 혀만 안 물었으면 어디 팔아 버리는 건데 말이야.” “크하하하····. 원래······.” 더 이상 놈들은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인간이기에 이런 걸까? 세상에 인간이라는 동물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는 동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인간을 제외하고도 살생을 범하는 동물은 많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생존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쾌락과 욕망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생물은···. 지구 전체를 뒤져봐도 인간뿐인 것이다. “자··, 그럼 잘 가라.” “크으윽·····.” 사회적인 불안과 시대의 암흑기에는 항상 그 어둠에서 약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쥐새끼들이 창궐하기 마련이다. 곧 자신의 머리를 깨부수기 위해서 떨어질 쇠파이프를 보면서 윤정철의 메제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놈들이 윤정철의 매제를 향해서 쇠파이프를 높게 들어올린 그 순간····. 퍼억!!! 어디선가 화살 하나가 날아와서 쇠 파이프를 들고 있던 깡패의 머리를 꿰뚫었다. “어··?” “무슨·····?” 퍼억!! 깡패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또 하나의 화살이 날아와서 역시 다른 깡패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이제 둘 남은 깡패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해고 몸을 급하게 숙였다. “이!! 씨발!! 누구야!!? 어떤 빨갱이 새끼야!!?” “이러고도 무사할··· 커억!!!” 또 한 놈의 목에 역시 화살이 꽂혔다. 이제 하나 남은 깡패는 다리가 덜덜 떨렸다. “으아아아아아!!!!” 놈은 사방을 향해서 미친 듯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난동을 피웠다.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를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도회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겨울 설산이라는 것은 그냥 하얀색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에 익숙하고 종종 눈산에서 야생의 동물을 사냥하기도 하는 윤정철에게 있어서 저런 깡패들 따위는 토끼를 쏘는 것보다도 훨씬 쉬운 일이었다. 끼이이이이···. 바위 뒤편에 앉아있는 윤정철의 활의 시위가 다시 한 번 당겨졌다. 표적은 미쳐서 발광하고 있는 짐승 하나. 자신의 여동생을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아직 어린 조카들 까지 죽였다. 놈을 향해서 활 시위를 놓는 것에 죄책감이 들 여지가 없었다. 세상을 살면서 첫 살인이라는 행위를 하면서도··. 놀랄만큼 냉정하게 활을 당기는 윤정철이었다. 그리고···. 피융····. 퍼억!! “으아아아아···· 아악!!.” 윤정철의 마지막 화살이 날아가서 미쳐서 날뛰는 깡패의 머리를 눈알에 정면으로 박혔다. 그리고 비틀 거리는 놈을 보고 윤정철의 매제가 이를 악물면서 몸을 날렸다. “같이 죽자!!!!!” 그는 양팔이 묶인 채로 놈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둘의 몸이 그대로 겨울의 차가가운 눈살의 비탈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저들은 아마도 계곡까지 떨어질 것이었다. 거기에 빠지면 봄에 눈이 녹기 전에는 시체도 건지기 어려운 곳이다. “···············.” 화살을 다 쏘고 현장에 온 윤정철은 허무함에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결국 매제까지 죽어 버렸지만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매제에 관해서는 놀랄 정도로 냉정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동생을 데려가기 전 날 밤에 고생 안 시킨다는 말은 못해도 평생 아끼고 지켜주겠다고 했던 남자였다. 그런데 그 때문에 오히려 동생에다 나머지 가족까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매제라는 남자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슬프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원수를 갚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비롯해서 나머지 가족들에 관해서만큼은 아직도 원한이 사무쳐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의 앞에 악마가 나타났고, 그는 거기서 선택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소원을 이루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된 거다. 내가 이렇게 내 얘기를 주구장창 한 이유를 알겠나?” “글쎄요? 어렴풋이는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형님 입으로 직접 말 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윤정철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여자를 사랑하면···. 그 여자를 행복해 주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그 여자 곁에서 꺼져.” “············.” 정운은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형님 말···. 조금은 이해를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남자 하나 잘 못 만나서 남들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을 살아왔으니 말이죠.” “그럼····.” “하지만, 그래도 전 세레나와 슬기의 곁에 있을 겁니다.” “너····.” “애당초,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설득당할 정도였으면 제가 진작에 세레나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게 왜인지 아십니까?” “···········.” 이번에는 윤정철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윤정철에게 정운이 말을 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게··. 좀처럼 정리가 잘 안되더군요. 모두 그런건지? 아니면 저만 좀 심각한 건지····. 뭐, 어쨌든 그렇습니다.” “····너무 뻔뻔한 것 아니냐?” “뻔뻔한 것 맞습니다.” “·····좋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말로는 안 된다 이거지?” “그러니 필드로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정운과 윤정철은 서로 자세를 잡았다. 윤정철은 활을 들고 정운을 겨눴고 정운은 혈광참마도를 들고 윤정철을 노려봤다. “네 마음이 확고하면 나도 말로는 안 하겠다. 어차피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자신의 주장은 힘으로 관철 시키자고.” “그래야겠죠. 다만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뭐냐?” “좀 전에 말한 것처럼 사람 마음이라는게 뜻대로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형님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여기서 내가 이기면 더 이상 나하고 세레나의 사이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대신에 내가 이기면···. 넌 세레나한테서 떠나라.” “전 죽어도 이길 겁니··· 다!!!” 파아앙!! 정운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한 걸음에 거리를 좁혔다. ============================ 작품 후기 ============================ 윤정철의 그라운드 제로 합류 순서를 생각하면 저런 격동의 시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여당이 옳니 야당이 옳니 라고 하면서 싸우는 분들이 나올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필요에 의해서 이 장면을 넣었습니다. 가능하면 논라의 여지가 없도록 정치판에 기생했던 깡패들의 잔혹함을 부각 시켰고 몇화 전에 말한 것 처럼 작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백지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양쪽 모두 실망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실망 투성이의 정치가들을 감싸주기 위해서 죽일놈 살릴놈 하면서 싸우는 뻘짓은 단 번도 이해해 본적이 없습니다. 차라리 자기가 좋아하는 걸그룹 갖고 싸우는 십대 애들이 더 나을 정도입니다. 걔들은 동기라도 분명하고 순수하죠. 어쨌든 저는 정치판을 싫어해서 가능하면 작품에 안 넣고 싶지만.. 그래도 필요할 때에는 넣을 수밖에 없어서 넣었습니다. 이걸 보고 제가 너무 오버하는게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요즘 세상이 워낙에 이런 문제로 시끄러운 일이 많아서... 관우나 아더왕을 여성화 시켜 버리거나 저 처럼 잔 다르크나 클레오파트라를 히로인으로 등장 시키는 것도 가능한 장르문학의 자유로움인데 이런 문제로 눈치를 봐야 하다니... 뭐, 세상의 시류에는 따라가야 겠죠.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뭐가 옳으니 뭐가 나쁘니 같은 시시한 논쟁은 제 댓글에서 일절 금지합니다. 쪽지 없이 바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장르문학 속에서라도 골치아픈 오늘쪽 왼쪽 문제 같은 것은 생까 버립시다. 즐감하십시오.^^ 224화 <결투의 결과> 윤정철의 무기는 활. 거리를 좁히는게 최우선이었다. 정운도 활을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운의 궁술은 윤정철하고 도저히 맞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근거리로 접근해서 참격으로 끝냈다. 그게 필승 공식이었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윤정철도 그런 정운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자신의 회피를 최우선시 해야 했다. “멀티 블링크!!!” 파파파파팟!! 윤정철의 몸이 수십개의 잔상을 남기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멀티 블링크 LV.MAX (10~20미터의 거리를 1초에 10번 이상 이동한다) 정운도 알고는 있는 기술이었다. 다만 이 기술은···. “이건 메이지의 기술인데? 형님 궁수 아니었습니까?” “말이 많다.” 무수한 잔상들이 동시에 말하면서 화살을 날렸다. 팅팅팅·····. 정운은 날아오는 화살들을 집중력 스킬로 확인하면서 하나하나 쳐냈다. 단 한 번의 공격일 뿐이었지만 23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아니··. 24개군.’ 탱!!! 정운은 보이지도 않는 각도에서 정수리를 찍기 위해서 수직으로 떨어진 화살을 혈광참마도로 쳐냈다. “····용케 피했구나? 안 보이는 각도였을 텐데 말이야.” 윤정철은 23개의 화살은 정운을 향해서 똑바로 날리고 다른 하나는 하늘로 날렸다. 그리고 높게 올라갔던 화살은 앞의 23개와는 시간 차를 두고 정확하게 수직으로 정운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 것이다. 인간의 시야는 좌우로는 제법 넓은 편이지만 상하로는 좁다. 특히 바로 머리위로 떨어지는 물체에 관해서는 거의 감지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정운은 태연하게 그 공격을 읽어낸 것이다. “숨겨진 비장의 한수···. 랄까? 최근에 손에 넣은 기술입니다. 그러는 형님이야 말로 이런 스킬이 있다는 것은 본적 없는데요?” 멀티 블링크는 메이지들 중에서도 회피를 우선시 하는 메이지들이 자주 쓰는 기술이다. 하지만 고위급 메이지들은 잘 쓰지 않는다. 슬기나 주경택 수준의 메이지만 되어도 마법 방어에 상당한 힘이 생긴다. 그렇다면 방어를 굳히고 한 자리에서 공격에 최선을 다하는게 표준적인 스타일이었다. 저 멀티 블링크라는 기술은 아직 마법에 의한 방어력이 취약한 중간 상태의 메이지들이 종종 써먹는 기술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궁수 클래스인 윤정철이 쓸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메이지들이 쓰는 것처럼 단순히 이동 스킬로 쓰는게 아니었다. 꾸준히 잔상을 남기고 있고 잔상의 위치도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덕분에 윤정철 혼자서도 정운을 향해서 10명의 궁사가 포위하고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스킬이 아니고 어떤 아이템으로 가져오는 효과 같은데····.’ 정운은 속으로 윤정철의 전투 스타일에 관해서 쉼없이 분석을 하고 있었다. 윤정철이 이제가지 보이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생각 많아 보이는 구나? 무슨 생각하는지는 대강 알겠지만 말이야.” “·············.” 침묵하는 정운에게 윤정철이 다시 활을 겨냥하면서 말했다. “일대일 PK시에만 쓰는 전투 스타일 정도는 따로 가지고 있었지. 너 설마 나 정도는 간단하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냐?” “············.” 정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좀 섭섭하군. 나 이래보여도 PK라면 중겸이 형님이나 민지 누님하고도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확실히···. 맨날 조용하게 후방 지원만 하던 사람이 이런 걸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정운은 윤정철에 관해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 레이드나 전쟁중에는 궁수라는 클래스체 걸 맞게 후방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화살로 지원 공격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운은 내심 거리만 좁히면 윤정철의 활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오산이었다. 오히려 윤정철이라는 남자는 일대일이 되니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운은 여기서 져 줄수는 없었다. 이 시합에 걸린 것은 정운에게 있어서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속공으로 갑니다. 쉐도우 아미, 아스트랄 소드!!!” 정운은 전투의 초반에 아스트랄 소드를 꺼냈다. 어차피 상대는 자신의 기술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상대였다. 그렇다면 어설프게 전력을 온전하기 보다는 차라리 한 번에 모든걸 쏟아 버리는게 더 의외성이 있어서 좋을지 몰랐다. 정운이 비장의 카드를 초반에 꺼내자 윤정철은 순간 당황했다. 그림자의 무장들 것 까지 더 해서 총 300개나 되는 아스트랄 소드가 사방을 점거했다. “이런···.” 윤정철은 서둘러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그의 특기는 회피와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 방어력 면에서는 많이 빈약했다. 정운의 괴물 같은 공격력을 생각할 때 한 번만 걸리면 그대로 게임 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퍼퍼퍼펑!! 콰앙!! “으아아앗!!!” 정운과 그림자의 무장들, 그리고 길이 10미터짜리의 거검 300개가 단번에 윤정철을 노리고 쇄도했다. “크윽···. 템페스트 샷!! 승룡시!!” 윤정철은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번의 활 시위를 당겼다. 템페스트 샷은 정운도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템페스트 샷 LV.MAX (광범위하게 화살을 쏟아 붓는다. 화살이 허공에서 분열하면서 불어난다.) 정운의 천뢰지망하고 비슷한 기술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정운의 공격은 하늘에서 비처럼 쏱아지지만 이건 수평으로 날아온다는 것이다. 둘 다 피하기 까다로운 기술이기는 했지만 파워쪽에서는 정운의 천뢰지망이, 그리고 화살의 속도는 윤정철의 템페스트 샷이 더 뛰어났다. ‘무시하고 간다!!’ 정운은 자신의 몸을 두르고 있는 쉐도우 아머의 방어력을 믿고 그대로 돌진하려고 했다. 이번 공격을 마주 바꿔도 승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다만 그때···. “흡!!!” 콰아앙!!! 정운이 허리를 한껏 비틀면서 그대로 몸을 틀어 던졌다. 그리고 그러기를 무섭게 정운이 있던 자리에서 강력한 폭발과 함께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오로라를 두른 공격이 올라왔다. 정운은 그 공격을 마치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피하는 몸을 날려서 윤정철의 목에 검날을 들이밀었다. 승부가 난 것이다. “승룡시라··. 두 번째 공격이 이거였군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비장의 기술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냐?” 승륭시(乘龍矢) LV.MAX (지면을 통해서 이동하다가 적의 발밑에서 강력한 폭발과 함께 솟구치는 화살 공격) 윤정철의 PK전용의 비장의 한수 같은 기술이었다. 화살이 지면을 통해서 이동한다는 의외성 때문에 이 공격을 당하고도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였다. 이걸 피한 건 정운인 처음이었다.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실 이번에 PK하면서 얻은 새로운 스킬이 있었습니다. 그게 제몫을 했네요.” 예고시점 LV. 3. (적의 공격이 닥치기 0.3초 직전에 그 영상을 보고 미리 대비 할 수 있다.) 정운이 한 번도 본적 없는 윤정철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정운이 이번에 전쟁에서 얻은 스킬 중에서는 갖아 유용한 스킬이기도 했다. 이 스킬은 원래 레벨이 MAX일때는 1초 후의 일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운이 새롭게 익히면서 스킬의 레벨이 3으로 떨어져 버렸기에 0.3초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정운에게는 체감 속도를 300% 느리게 해 주는 집중력 스킬이 있었다. 이것 덕분에 사실상은 적의 공격을 사실상 0.9초 전에 캐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운 정도의 전투 경험치가 있으면 0.9초의 딜레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이점이다. 거기다 나중에 이 스킬의 레벨이 MAX가 되고 나면 사실상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3초나 된다는 얘기다. 호랑이가 날개를 얻고 덤으로 제트 엔진까지 단 것 같은 경우인 것이다. 어쨌든 승부가 나고 윤정철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너라는 녀석 정말 징그러운 정도로 발전이 빠르구나. 나하고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직 한참 애송이였는데 말이야.” “예···. 그랬죠.”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정운이 100레벨도 되기 전에 비정기 퀘스트때 만났을 때는 윤정철에 비하면 정운은 정말 애송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입장이 역전 되어서 일대일 대결에서 정운인 승자가 된 것이다. 사실 정운 스스로가 십왕들과 비교해도 이제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완벽하게 그 생각을 확인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운으로서는 굉장히 묘한 감각이었다. 흑토를 타고 솔로 플레이를 하던 시절에만 해도 십왕은 손에 닿지 않는 하늘위의 존재 같은 자들이었는데···. 이제는 십왕 중에서도 상위 멤버중에 한명인 윤정철이 자신에게 지다니 말이다. “형님····. 약속하신 대로···.” “아아··. 포기하마.” “············.” “왜? 못 믿겠냐? 너무 간단하게 포기하는 것 같아서?” “아니 그건····.” 정운은 윤정철이 이렇게 간단하게 세레나의 일에 관해서 물러난다고 하자 사실 살짝 어안이 벙벙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결투까지 했단 말인가? 당황하고 있는 정운에게 윤정철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모두 가지가지인 거야. 너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러날 줄도 알아야지.” “·······.” “그리고. 어차피 이 결투에서 이긴다고 세레나가 내 여자가 되지는 않겠지? 그 여자 무조건 강한 남자라고 따르는 그런 여자는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죠. 그런데···.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거창하게 결투까지 신청한 겁니까?” 오히려 여기서 자기가 없는 상황에서 자기들 멋대로 내기의 상품으로 삼았다고 화를 낼지도 몰랐다. 아니, 세레나의 성격이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다. 윤정철은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좀 처럼 뜻대로 되야 말이지. 포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납득시킬 핑계거리가 필요할 때도 있는 거야.” 정운은 어쩐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정운을 향해서 윤정철이 쇄기를 박듯이 말했다. “이제는 정말 미련을 버려야지.” 윤정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물러났다. 그의 말대로···. 사람 마음이라는게 저마다 제각각인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는 죽어도 포기하지 못하고, 누구는 아주 간단하게 사귀고, 누구는 애당초 좋아한다는 감정도 가지지 않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성에 관해서 상당히 금욕적인 윤정철에게 있어서는 세레나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갔던 여자였다. 다만, 남녀의 인연이란 항상 마음 따라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날짜가 되었다. 중국의 지원을 얻어서 72층의 레이드를 한 날이 되었고 정운은 팀원들에게 중국팀과의 마찰을 치대한 피할 것을 당부했다. “계획은 알고 있죠? 가능한 힘을 온전해야 합니다. 중국쪽에서도 레이드를 앞에두고 괜한 도발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당부 드립니다.” 정운의 말에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정운이 새운 작전에 관해서는 사전에 모두 고지 받은 상태였다. 정운이 이렇게 거듭해서 신신당부를 하는 것도 납득이 가기도 했다. 오늘 있을 작전은 앞으로 월드 서버의 판도 자체를 바꿀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전진기지에 다이앤 여왕이 영국팀을 이끌고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다이앤 여왕님.” “예. 드디어 오늘이군요.” “예. 뭐···. 일단 오늘 작전이 성공하기만 하면 앞으로 바빠질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는 노예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모두 빼놓고 왔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자유를 얻었을 때 이 권리까지 같이 가져가면 곤란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걸 미처 생각 못 했군요. 잘 하셨습니다.” “별 말씀을···.” ============================ 작품 후기 ============================ 결투가 너무 빨리 끝난것 같이 느낄 수도 있지만 애당초 같은 편끼리의 결투였는데 너무 장절하게 꾸미는 것도 넌센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정철은 뒤끝 없는 상남자 캐릭으로 처리마감 했고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25화 <미끼 작전.> 다이앤 여왕의 꼼꼼한 센스에 정운은 칭찬했다. 확실히 여자가 남자보다는 좀 꼼꼼할 때가 많다. 정운이 미처 생각을 못했었지만 오늘 있을 작전에 포로로 노예가 된 자들까지 끼워주는 것은 좀 힘들었다. 그들의 경우 부지런히 사냥을 하고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될 지도 모를 자들이 아닌가? 아직 동료라고 부르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였다. “그럼, 영국팀까지 왔으니 일단 중국팀이 사전에 넘긴 보스몹에 대한 정보를 넘기겠습니다. 우선 이게 ME에 들어있는 72층 보스몹의 정보입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ME의 정보를 공개했다. 잭 더 리퍼 LV. 160~170 [두 자루의 나이프를 잘 쓰고 얼굴을 후드로 가리고 있다. 두 눈동자에 사기를 띄고 있어서 일단 눈을 마주하면 강제마비에 걸린다. 필드는 런던의 축소판인 도시이며 도시에는 안개가 흐르고 있으며 이 안개 자체가 디버프와 독의 대미지를 가지고 있다. 옐로우 크리스탈이 쓰면 히들 스킬로 광기의 악마로 변한다. 광기의 악마 스킬을 쓰면 잭 더 리퍼는 신장 20미터가 넘는 거인이 되며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상승한다.] “헤에···. 역시 이미 공략에 성공한 자들이 주는 정보라서 그런 걸까? 정보가 상세한 걸?” “그러게요··. 그런데 잭 더 리퍼? 저거 실존인물이었나? 난 무슨 도시 전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난 여러 사람이라고 들었어.” “영화에서 만든 가공의 인물 아니었어?” 잠시 잭 더 리퍼는 진짜? 가짜? 라는 얘기로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자자··. 여러분. 이게 무슨 UFO도 아니고 그게 뭐 중요합니까?” 정운이 정리를 하자 배대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일단은 마찬가지로 마을에 들어가서 찾는게 최우선이겠군.” “예. 형님 전에 알카포네를 찾았던 것처럼 탐색 스킬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해 봐야 알지.” 배대호의 마법은 그 대부분이 그의 오리지날 스킬들이었다. 그러니 상황에 맞춰서 미묘한 조절이 필요했다. 탐색스킬 같은 미묘한 컨트롤이 필요한 스킬의 경우 얼마나 효용을 볼지는 직접 그 상황이 되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렇군요···.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단 이번 보스몹이 있는 지역에는 안개가 꾸준하게 독의 대미지를 준다고 합니다. 독 저항력이 있는 포션을 모두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어. 그런데 대호 형님의 탐색 스킬이 안 통하면 어떻게 하지? 샅샅이 뒤져야 하나?”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머리로 안 되면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다만 중국의 정보에 의하면 이번 필드는 상당히 넓다고 했다. 비록 보스몹에 딸려있는 부하몹은 없지만 필드 자체가 워낙에 넓어서 탐색으로 잘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정운도 확신이 없었다. ‘으음··. 잘못하면 찾는것에만 해도 적지 않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어.’ 정운이 그렇게 염려하고 있을때···. “거기에 관해서는 대응책이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딱 맞춘듯한 타이밍에 도착한 중국팀의 리더인 장한이 정운에게 말했다. “당신은··? 오셨군요.” “예.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중국의 장한은 예전에 원탁에서 맍났을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하게 정운을 대했다. 그때는 한국팀을 막 월드 서버에 올라온 약소팀 정도로 봤었다. 하지만 이제는 월드 서버에서도 그 강함을 증명했고 정운은 그 강팀의 대표인 것이다. 간사하다만 간사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전혀 번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위상이 변했을 때에는 주변의 반응도 확실하게 달라지는 법이다. 현실에서는 주로 동창회에서 그런걸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똑같은 교실에서 같은 급이었던 친구들이었는데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만나면 그동안 서로 간에 달라진 위치 라는게 생기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장한은 이전과는 달리 확실하게 정운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어차피 마찰을 피할 생각이었던 정운에게는 이런 장한의 태도가 오히려 잘 되었다. “잭 더 리퍼의 수색에 좋은 생각이 있다고 하셨죠? 그게 뭡니까?” “아! 알고 보면 간단한 얘기입니다. 우리쪽에서 찾기 보다는···. 놈을 끌어 들이는 방법이죠.” 중국팀에서는 아무래도 잭 더 리퍼를 유인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잭 더 리퍼는····.’ 정운은 어렴풋이 중국팀의 방식을 알 것도 같았다. 그때 장한의 곁에 연문이 다가와서 말했다. “주군, 준비를 마쳤습니다.” “으음···. 알겠지만 이미 한 번 성공했던 레이드다. 이번에는 희생자를 내지 않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주군.” “그럼 가시죠. 이제 곧입니다.” “예. 모두 출발입니다.” 한국, 영국, 중국. 세 팀이 모두 인원을 합하니 그 인원만 해도 상당한 대군단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댕!! 댕!! 댕!!! 잭 더 리퍼의 영역에 가까이 오자 은은히 들리는 것은 시계탑에서 울리는 거대한 종소리였다. “다 왔습니다. 저기가 잭 더 리퍼의 영역, 우리는 리틀 런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흠····.” 멀리서 보이는 잭 더 리퍼의 영역은 상당히 넓은 크기의 도시가 안개에 감싸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강이 흐르고, 런던 브릿지에 저기 시계탑은 빅벤인가? ····얼추 런던 같기는 하군요.” 몇 번 공략해 보고 정운이 알게 된 것이 있다. 보스몹이라는 자들은 생전에 강한 미련을 지니고 죽은 자들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생전의 본질이 제법 남아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아마도 이성을 남겨두기 위해서 남겨둔 생전의 기억이 그렇게 만든 것일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저렇게 보스몹의 필드였다. 각 필드마다 보스몹으로 선택받은 자들의 특징이 뚜렷하게 들어났었다. 예를 들어서 알 카포네의 경우는 미국의 금주법 시대의 도시 분위기가 배경이었다. 그리고 빌리 더 키드는 서부 개척시대의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꼭 서부개척시대 영화라도 찍으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랄까? 잭 더 리퍼의 보스 몹 필드는 런던이었다. 물론 실제의 런던만큼 크지도 않고 지형도 많이 다를 것이다. 어디까지나 런던을 이미지해서 만든 가상의 도시였다. 하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런던이라는 느낌의 이미지는 잘 드러나 있었다. 여담이지만··· 원래 잭 더 리퍼는 런던을 공포로 주름잡던 살인마였다. 그러니 런던이 배경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세상에 살인마는 많다. 심지어는 잭 더 리퍼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 대부분이 미친놈들이었고 상당수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살인마는 역시 잭 더 리퍼였다. 그의 사건은 미제. 즉 실제로 검거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잭 더 리퍼의 존재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주로 런던의 매춘부들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이 희대의 살인마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몇 가지 추론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중에 하나는 어떤 의사가 죽기 직전에 자신을 잭 더 리퍼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잭 더 리퍼의 잔혹한 살인 흔적은 해부학적인 지식이 있는 자이기에 가능했다는 말이 있었던 만큼 그 의견은 상당히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증거는 없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증명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영국 왕실의 왕족중에 한 명이라고도 했다. 당시 여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알버트 왕자가 범인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도 증거는 없고 그냥 소문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심지어 좀 더 후대에는 잭 더 리퍼 가공의 인물 설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건은 진실이지만 인물은 가공이라는 얘기였다. 원래 런던의 치안이 나빴는데 자신들의 무능함을 덮기 위해서 영국 경찰들이 미제 사건중 공통점이 있는 것들을 몰아서 잭 더 리퍼라는 가상의 살인귀를 만들었다. 즉, 일종의 변명거리라는 말인 것이다. 뭐, 그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둘째 치고··. 일단 지금 그라운드 제로의 72층에 보스몹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현실에 있는 잭 더 리퍼 연구자(?)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쨌든 지금 공략의 대상으로 잭 더 리퍼를 마주해야 하는 유저들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대호 형님.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정운은 우선 잭 더 리퍼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 배대호에게 물어봤다. 배대호는 이미 탐색을 시작하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안 되는군. 저 안개 때문에 무리야.” “안개가 왜요?” “저 안개에서 몹과 같은 기척이 느껴진다. 어쩌면 저것 자체가 잭 더 리퍼의 일부분으로 연결 되어 있는지도 모르지.” 결국 저 안개역시 잭 더 리퍼의 일부분이고, 그 안에 숨어있는 잭 더 리퍼를 찾는 것은 무리라는 말이었다. ‘나무가 숲에 숨은 상황이란 말이지····.’ “뭐 어쩔수 없죠.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래. 원래 안 둔다.” 배대호는 쿨하게 인정하고 물러났다. 정운은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중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한씨, 당신들에게 뭔가 방법이 있다고 했었죠? 이제 그것만 믿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홍린.” “옛. 주군.” 장한의 부름에 홍린을 공손하게 대답했다.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주군.” 그리고 장한이 준비를 하라고 하자 홍린은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간이 탈의실 같은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럼,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는 그대로 간이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거기서 잠시 후에 옷을 완전히 갈아입고 나왔다. “오오오····.” 순간 한국, 영국 할 것 없이 몇몇 임자 없는 남자들에게서 탄성이 나왔다. 간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녀의 모습이 엄청····. 뭐라고 표현할까? 그래. 뭐, 그냥 엄청 야했다라고 해야 겠다. 섹시하다거나 요염하다거나 하는 단계를 확실하고 명백하게 넘어섰다. 이건 그냥 야하다고 표현해야 할 모습이었다. 우선은 옷차림. 원래 그녀가 입고 있는 옷 자체가 섹시한 느낌의 차이나 드레스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층 더 하다. 검은색 실크 광택의 차이나 드레스에 붉은 장미 무늬가 화려하게 감겨 있었다. 슬립도 이전에는 무릎 위로만 살짝 올라와 있는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거의 골반 위로 올라와 있었다. 허리라인에 맨살이 슬립 사이로 보일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티는 보이지 안는다는 것은 아애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말이다. 거기다 상의에도 속옷을 입지 않았는지 그녀의 가슴의 윤곽에 유두의 위치까지 완벽하게 드러났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연예인 중에 누가 시상식이나 시사회에서 이렇게 입었다가는 며칠간은 온갖 스포츠 신문에서 떠들썩하게 떠들 것이다. 그리고 뼛속 국물가지 우려먹을 것이고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으로 그녀의 분위기를 야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화장이었다. ‘여자는 화장발로 저렇게까지 변하나?’ 정운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홍린의 화장은 엄청 야했다. 붉은 입술과 진한 아이 쉐도우, 그리고 창백할 정도로 뽀얀 피부톤까지···. 보통 여성이 섹시하거나 요염한 매력을 뿜으면 남자들의 시선에는 어느 정도 선망과 동경의 시선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홍린의 매력은 나 언청 쉬운 여자에요. 라는 느낌 밖에는 들지 않았다. “저건···. 매춘부를 묘사한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전에도 이렇게 해서 잭 더 리퍼를 유인했죠? 어때요? 저하고 놀아 볼 생각 있나요?” 홍린은 정운을 향해서 이리 오라는 듯이 요염한 손짓을 하면서 찡긋 윙크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데로 잭 더 리퍼가 보스몹으로 등장했습니다. 사실 잭 더 리퍼는 72층 보다는 좀 더 위에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알 카포네가 70층 대에 나온 이상 이 쯤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73층에는 누가 좋을까요? 네임 밸류로 치면 한 두면 정도 더 떠오르기는 하는데 그게 좀 처럼 확신이 안 드네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26화 “없습니다.” “일이나 하시죠.” 그런 그녀에게 대답한 것은 정운이 아니라 세레나와 슬기였다. 그녀들은 정운을 흘깃 보고는 저기에 표정만 풀어져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운은 쓰게 웃었다. 정운도 남자고 섹시한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렇게까지는 사실 정운의 수비 범위를 벗어났다. 뭐든지 정도 라는게 있지 않은가? 막 나간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자··. 그럼 방침은 다 정해졌고, 이제 일 합시다. 나머지 멤버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주변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으면 됩니까?” 정운의 말에 장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소, 뭐··. 우리는 될 수 있는한 거리를 좀 두고 있는게 좋겠죠. 잭 더 리퍼는 상당히 예민합니다.” 어째 보스몹 수색 하는게 아니라 예민한 야생조류 관찰이라고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너무 떨어져 있으면 보스몹이 습격해 왔을 때 희생이 생길 위험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정운의 말에 장한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렇게 보여도 채찍 하나만 들면 우리 중국 팀에서도 남자들이 설설기는 여자라오.” “그렇다면 뭐···.” ‘그러보 보니 저 여자가 중국의 세 명뿐인 조장이라고 했었지? 우리 팀으로 치면 민지 누님 정도 되는 위치인 건가? 그럼 쉽게 당하지야 않겠지?’ 정운이 홍린을 빤히 바라보자 홍린을 다리를 살짝 꼬면서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새삼 생각이 나셨다면···.” “아니 그건 아닙니다. 일이나 하죠.” 홍린은 미인이다. 미인이고 아름다운 여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운의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완전 내 타입인데?” 한국 팀에서 주경택이 홍린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인간 술집 아가씨한테 한 번 걸리면 끝장 날 때까지 빨아 먹힐 체질인군···.’ 주경택을 바라보는 정운의 시선이 은근히 불쌍한 무언가를 보는 듯 했다. 어쨌든 미끼 작전은 시작되었다. 홍린은 홀로 미끼가 되어서 필드의 안에 들어가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다른 멤버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홍린을 따라가면서 한국의 한중겸이 말했다. “정말 이런 방식으로 낚일까?” “글쎄요···. 하지만 언듯 일리는 있습니다. 잭 더 리퍼의 피해자는 매춘부들이었고··. 결국 자신의 생전의 버릇을 자극하겠다는 거니 말이죠.” “그건 그렇지···.” “무엇보다 이미 중국에서는 이 레이드를 성공 시킨 실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서는 믿고 한 번 따라보죠.” “그래야겠지···.” 그렇게 한영동맹은 중국 유저들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가 지났다. “이상한데···? 왜 안 낚이지?” 장한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일어났다. 예전에는 이렇게 했을 때 길어야 30분이면 입질이 왔다.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남아있다고는 해도 잭 더 리퍼라는 놈 자체가 그렇게 이성이 강한 타입의 생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접 싸워본 중국 유저들의 기억에 의하면 형체만 인간이지 사실상 거의 짐승이나 다름없는 느낌의 상대였다. 살인 충동에 중독된 인간이라고나 할까? 살인귀라는 말은 그야말로 이런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놈이 전혀 미끼에 낚이지를 않고 있었다. “주군, 유저들 중에 체력 게이지가 30% 이상 닳은 자들이 나왔습니다.” “으음···. 홍린에게서 연락은 아직도 없나?” “예. 그렇습니다.” 부하의 보고를 들은 장한은 짜증이 난다는 것처럼 뒷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태세를 바로 잡는다. 전투가 시작도 되기 전에 대미지를 필요 이상으로 입고 시작 할 수는 없지.” 그렇게 장한은 후퇴를 결심했고 일단 미끼역인 홍린을 포함해서 유저들 전원이 잭 더 리퍼의 영역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유저들은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키면서 잠시간의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각 팀의 대표와 간부들은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이상하군요. 틀림없이 전에는 이렇게 해서 잡았었는데···.” 장한은 눈썹을 찡그리면서 중얼 거렸다. 그런 장한을 보고 정운이 말했다. “어쩌면···. 제 예상이지만 전에 한 번 써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 번 써먹었기에?” “예. 알 카포네 때도 느낀 것인데 여기 보스몹들에게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건 놈들이 생각을 한다는 거죠. 우리가 레이드 할 때 놈은 다이앤 여왕님을 상대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랬죠. 그런데 그게 지금 상황하고는 무슨 상관입니까?” 다이앤 여왕의 물음에 정운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놈은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이전에 중국의 홍린 유저를 습격하려고 하다가 역으로 당했던 기억을 말이죠.” “아아····. 그래서?” “일 리가 있군요.” 정운의 말은 정답이었다. 상대가 물고기도 아니고 한 번 걸렸던 낚시 바늘을 또 덥썩 물리는 없지 않은가? 잭 더 리퍼는 홍린을 캐치하고도 그게 위험한 미끼라는 것을 알고 습격하지 않은 것이다. 잭 더 리퍼는 중국 유저들이 기억하는 대로 이성이 흐릿한 살인귀였지만 그래도 살인이라는 행위에는 어느 정도 용이주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생전에도 결국은 경찰들이 잡지 못하고 그의 사건이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지 않았는가? 적어도 한 번 걸렸던 미끼를 또 쓰면서 다시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다소 안이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겠죠. 그리고 가능하면 여럿이서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장한은 흘깃 다이앤 여왕을 바라봤다. 다이앤 여왕은 상당한 미인이고 미끼로서는 충분하다. ‘어울리려나?’ 정운도 순간 장한의 말에 다이앤 여왕이 홍린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꾸민 모습을 상상해 봤다. “·····상상이 안 되네?” “호오···? 그건 어울린다는 건가요? 안 어울린다는 건가요?” 정운의 속 마음이 무심결에 밖으로 나온 것을 다이앤 여왕이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어어···. 그게 그러니까···.” 정운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어쩐지 여기서는 어울린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둘 다 지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정운을 구원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내가 할게. 정운아. 나한테 맡겨.” 그녀의 이름은 바로 이보영이었다. 이보영은 한 발 물러서서 체력을 회복하면서 정운과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들으면서 미끼역으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그녀는 바로 결심했다. 이건 나다. 내꺼다. 느낌 아니까. 라고 말이다. 그녀의 결심은 한쪽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홍린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이····. 너무 그렇게 뚫어지게 보지 마세요.” 그녀는 겉으로는 곤란한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그건 누가 봐도 내숭이었다. 사실은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고 거기에서 다른 여자들에게 ‘내가 제일 예쁘지?’ 라는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이보영이 더욱더 열 받게 하는 것은···. “죄송합니다. 그런데 언제 시간 되면 같이 식사라도···.” “글쎄요···. 그건 일단 레이드 끝난 후에 차분하게 얘기해 보도록 하죠.” “하하하··. 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고만 있었지만 유독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한 명이 있었다. 바로 한국팀의 주경택이었다. 자신이 평소에 알고 있던 남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노골적으로 헤롱헤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불타오르지 않으면 어장의 여신(자칭)이라는 이름이 아까웠다. ‘흥? 내가 훨씬 더 섹시하거든?’ 그녀의 어장관리혼이 활활 불타 올랐다. 별로·····. 한,중 양팀의 최고 핫걸은 누구인가? 라는 이벤트도 아닌데 자기 멋대로 경쟁심을 무럭무럭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보영이 누님이 한다고요?” “그래. 왜? 나는 못할 것 같니?” “아니 못 할 것 같다기 보다는····.” 정운은 순간 이보영 말고 다른 사람이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순간 이보영 말고는 누가 하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성 유저들 중에 여성 유저는 몇 명인가 더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미모가 되는 여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우선 슬쩍 장한이 눈치를 준 다이앤 여왕. 그녀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일단 영국팀의 리더이기도 하고 그녀를 우상시 하는 영국 유저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도저히 무리였다. 영국에는 여성 유저가 다이앤 여왕 하나 뿐이니 자동적으로 영국에서는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중국에는 홍린을 제외한 여성 유저가 세 명이 더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중에 한 명은 굉장히 다부진 체격에 이목구비도 각이 딱 잡힌게···. 사실 정운은 그녀가 처음에는 여장인줄을 몰랐을 정도였다. 너무 건장하고 씩씩해 보였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면 케인 벨라스케즈하고 좌웅을 겨룰 호걸로 봤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뭐 그 정도로 씩씩하게 생긴건 아니다. 아니지만···, 그냥 뭐랄까? 평범녀? 모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예쁘지도 않은 그런 여자들이엇다. 어쨌든 미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슬기나 세레나에게 남녀 차별 소리 들을까봐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정운만이 아니었다. 원래 중국에서도 한 번 생각했다가 실험해 보고 실패했던 일이었다. 애당초 그녀들이 미끼역할을 수행 할 수 있다면 어째서 조장인 홍린이 나섰겠는가? 미끼 역할이 되기만 한다면 진작에 그녀들이 나섰을 것이다. 자, 이제 이렇게 해서 중국에서도 모두 아웃이다. 이제 남은건 한국 팀에서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우선 슬기와 세레나는 아웃이다. 정운이 목숨 걸고 반대 할 것이다. 리더쉽이라던가 대장으로서의 입장은 일단 저 멀리 날려두고 무조건 아웃이다. 그렇게 두 명이 아웃이면 이제 남은 여자 중에서 이민지는 어떨까? 그녀 역시 몹시 미인이다. 하지만 정운과 같은 이유로 한중겸이 몹시 반대할게 뻔했고,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항상 쓰고 있는 저 하얀 가면이 미스였다. 엄청 섹시하게 차려입고 창녀처럼 꾸미고 있는··. 가면을 쓴 여자. 잭 더 리퍼가 어지간히 머리 나쁜 놈이거나 아니면 특수한 취향이 아닌 이상 거기에 낚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이제 남은건 이보영과 이지영 뿐이다. 그런데 이지영은 아마 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쿨 한 인상의 그녀는 특히 남자를 몹시도 싫어했다. 그래서 정운이 리더가 되고도 가장 말을 섞지 않는 관계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창녀처럼 꾸미고 미끼역을 한다.? 차라리 팀을 탈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성격상으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남는 것은 이보영 뿐이었다. 취미가 당당하게 어장관리라고 말하는 이보영. 자신은 그냥 게임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 연애는 무조건 진지해야 한다는 이보영. 자칭 한국 팀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라고 주장하는 이보영. 그녀만이 오로지 미끼로 성립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누님에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슬기나 세레나가 하는게 싫은 정운은 재빨리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이보영은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 내가 미끼를 하면 5초 만에 낚을 수 있을 거야. 전화번호도 따 줄까?” “··········.” 정말 오랜만에 몹시 이보영이 믿음직해 보였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27화 <보스몹 색적> 잠시 후···. 이보영은 자신이 준비한 의상을 꺼내서 입었다. 홍린의 의상이 엄청 퇴폐적인 차이나 드레스였는데 이보영은 다른 방향으로 노선을 잡았다. “어때? 섹시하지? 그치?” 그녀는 차려입고 나와서 정운을 비롯한 남성 유저들에게 어필했다. 그녀는 초미니의 빨강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짙게 했다. 그리고 역시 빨간 하이힐을 신고 다리는 진한 커피색의 팬티스타킹을 올려 입고 있었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할까? 대한민국 현실에서 나이트에 가면 나 오늘 정신줄 놓고 놀 거야. 라고 온 몸으로 호소하는 듯한 여자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여자들하고 비슷한 느낌이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나마 아직 술 냄새는 안 난다는 것 정도일까? “뭐···. 괜찮지 않나요?” “그렇게. 어차피 야하게 보이면 되는 거니까··.” “충분해.” 한국팀의 남자들은 반응이 생각보다 썰렁했다. 역시 항상 보던 사람들에게는 큰 반향에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의 유저들과 영국의 유저들에게는 상당한 호응이 있었다. “오오오····.” “다리 완전 쭉 뻗었어···.” “원피스도 몸에 착 달라 붙었고···. 찜.” 영국의 한 유저가 찜을 말하는 순간 이보영의 콧대가 살짝 높아진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벌어졌다. ‘무슨 피노키오도 아니고···. 설마 저런 모습에 질투하는 여자가···. 있다.’ 정운의 눈에는 한쪽에서 손톱을 잘근잘근 물고 있는 홍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암캐가···. 완전 노출로 간다 이거지? 좋다 이거야. 그러면 나도 정도를 버리고 사도를···.”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는 걸까? 홍린은 이보영을 자신의 라이벌로 인식한 것 같았다. ‘뭐··. 아무래도 좋은가? 미끼 역할만 충실하게 하면···.’ 그렇게 해서···. 다시 한 번 잭 더 리퍼 유인하기 2차 작전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1시간 후···. “호호호호···. 이보영씨라고 했나요? 이거 아무래도 불발 같은데요?” “이익···. 이 눈구멍을 안 쓰는 옵션으로 달아놓은 놈 같으니라고···.” 홍린은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어 재끼고 있고 이보영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분해하고 있었다. 그렇다. 다시 한 번 미끼 작전을 썼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실패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익··. 웃지 마요!!! 어차피 당신도 실패 했잖아요? 이 실패녀!!” 홍린의 웃음이 몹시 거슬린 걸까? 결국 이보영은 폭발하고 말았다. 물론 홍린도 한 성깔 하는지 절대 지지 않았다. “흥, 나만 실패한 것도 아니잖아? 이 노출녀? 허벅지가 꼭 씨름 선수 같은걸?” “뭐··. 뭐라고? 말 다했다 이거지? 이 짜리몽땅녀!!” “난 짜리몽땅 아니야? 네가 큰 거지. 이 전봇대 같은 여자. 가슴도 칼슘으로 이뤄 진거 아니야. 이 전신 칼슘녀!!” “전··. 전신 칼슘녀? 이게··· 해 보자 이거지? 이 흔한 얼굴 녀!!” “패션센스 평균치 이하 녀!!” “떡 화장 최고봉 녀!!” “잔주름 녀!!” “머릿결 돼지털 녀!!” 정운이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안중에도 없는 이보영과···. 장한이 될 수 있는 한 한국팀의 신경을 거스르지 말라고 했는데도 꽥꽥 소리를 지르는 홍린. 그녀들은 이미 자신들의 팀원의 입장은 신경 쓰지 않고 추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뭐, 저기는 내버려 두고···.” “음, 다음 작전을 짜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일을 계속했다. “이렇게 된 이상 노골적은 미끼 작전은 오히려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겠군요. 잭 더 리퍼는 단단히 학습을 한 것 같네요.” 다이앤 여왕이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까요? 저 곳을 다 찾아 보려면 시간 좀 걸릴 걸요?” 배대호의 탐색 스킬이 통하기만 하면 한방인데···.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거기에 통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박추성 역시 무한의 영사를 뻗어서 잭 더 리퍼를 탐색하고 있었지만 애당초 박추성의 탐색 스킬은 배대호의 것보다도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건 이제 정석 밖에 없었다. “팀을 나누죠. 정석대로 탐색과 정찰을 반복하면서 적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과 장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게 좋겠죠.” “전에 통한 방법이 또 통할 거라고 생각한게 너무 안이했던 걸까···? 아니 하지만 그때는 분명히 통했는데···.” 장한은 아직도 좀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원래 작전에 미련이 남아서 둘에게 말했다. “이왕이면··. 팀을 나눌 때 각 팀마다 한명씩은 여자를 끼우는게 좋겠소.” “미끼의 의미입니까?”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렇게 해서 몇 명씩 팀을 나눠서 작전을 쓰기 시작했다. 중국은 조장 세 명을 중심으로 홍린, 연문, 주원 이렇게 세 팀을 꾸렸다. 중국 팀의 리더인 장한은 그 주에서 홍린의 팀에 들어가서 잠복했다. 여전히 그 쪽에 습격이 올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영국은 팀을 두 개로 나눴다. 하나는 다이앤 여왕을 중심으로 한 팀이었고 나머지 다섯 명은 한국 유저들을 백업하기로 했다. 한국 팀은 이민지를 중심으로 한 팀. 그리고 이보영을 중심으로 한 팀. 이지영을 중심으로 한 팀을 꾸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각자의 팀에 유저를 골고루 분산시키고 영국에서 지원받은 유저들도 거기에 더했다. 마지막으로 한 팀은 정운, 슬기, 세레나 삼인조였다. 정운 혼자만 양손에 꽃이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운은 이 둘을 가능하면 자신의 눈이 닿는 곳에 두고 싶은데 말이다. “ME를 통한 연락은 되는 것 같으니··. 각각 5분 간격으로 연락하면서 정찰하도록 하죠. 1시간이 지나도 발견하지 못하면 일단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저 영역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서 탐색. 이 싸이클을 반복하면서 정탐하겠습니다. 질문있는 사람 있습니까?” 정운이 모두에게 지시를 내리고 질문을 권했다. 당연하지만 장사 한 두 번 하는 초짜들도 아니고 질문 따위는 없었다. “그럼, 탐색을 시작하겠습니다. 루트는 자유에 맡깁니다. 이상.”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 역시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다시 한 번 잭 더 리퍼의 영역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다른 팀들도 본격적으로 보스몹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15분 후··.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이 가짜 런던의 거리를 신중하게 걷고 있었다. 아직까지 잭 더 리퍼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정운씨···. 유독 긴장한 것 같은데 조금은 어깨에 힘 좀 빼세요.” 슬기가 정운에게 권했지만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 이건 내 예상인데 잭 더 리퍼가 습격해 온다면···, 아마 우리팀이 가장 확률이 높을 거야.”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그게 무슨 말이야는 듯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세레나가 말했다. “뭔가 근거라도 있는 겁니까? 마스터?” “물론 있지?” “정말요? 어떤 근거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어떻게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놈이 정말로 여자의 미모를 보고 덮친다면···. 가장 예쁜 여자가 둘이나 뭉쳐 있는 곳으로 오는게 당연하지 않겠어?” “·········.” “·········.”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이가 없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창녀처럼 보인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냥 창녀들 보다 더 예쁘다는 얘기···. 음, 비교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좀······.’ 여심이란 복잡 미묘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들이 뭐라고 생각하던 간에 정운은 몹시 진지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도 슬기와 세레나는 정말 예뻤다. 원래 연예인 출신이었던 슬기는 두 말할 것도 없고 세레나 역시 그런 슬기에게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 다웠다. 이런 두 여자가 있는데 다른 곳을 노린다면 잭 더 리퍼가 장님이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때···. “음!!” 정운은 자신이 발동 시키고 있는 쉐도우 서치에 뭔가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저 골목의 끝. 거기에 뭔가가 갑자기 안개들이 뭉쳐서 뭔가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호오···. 저래서 아무도 못 찾았던 것인가?’ 정운은 저것이 잭 더 리퍼가 수색망을 피해 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깨달았다. 배대호는 탐색을 하면서 이 도시를 감싸고 있던 안개 전체에서 잭 더 리퍼의 기척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이유가 납득이 갔다. 정말로 이 안개는 잭 더 리퍼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쨌든 적은 나타났다. 다만 여기서 성급하게 낚시대를 당기는 것은 초보나 하는 직이다. 안개로 변해서 숨어 있었다는 것은 또 안개로 변해서 도망 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무슨 뱀파이어도 아니고···.’ “크흠····. 그런데 배 고프지 않아?”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에게 갑자기 배고프지 않냐고 묻자 두 여자는 잠시 간극을 두고 대답했다. “예. 배고프네요.” “잠시 나가서 뭐라도 입에 대고 올까요?”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주변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냐? 라는 말은 혹시나 싶어서 사전에 정해둔 암호였다. 보스몹이 이제 자신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 만큼 표를 내지 않고 적의 색적이 되었다는 신호로 사전에 정한 것이다. 정운은 눈짓으로 앞의 골목을 슬쩍 가르켰다. 척하면 척이라고 세레나와 슬기도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10미터···. 5미터···. 3미터···.’ 정운은 쉐도우 서치의 감각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적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조심조심···. 어디까지나 이쪽에서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하게끔···.’ 그리고 골목의 사각으로 한 발자국이 나온 순간···. 쇄애액!!! 바람을 가르고 한 자루의 단검이 정운의 목을 노리고 꽂혔다. 텁!!! 정운은 재빨리 왼손을 들어서 상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적의 동작을 구속하고 오른손에 들고있던 혈광참마도를 휘둘렀다. 카아앙!!! 하지만 적도 만만치 않았다. 한쪽 손목에 잡혀 있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다른 한손에 들려있는 나이프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단 일합의 공방이었고 그 동안 흐른 시간은 0.5초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고속 공방 속에서도 둘의 공격은 모두 불발이었다. 그렇게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는 것을 시작으로 정운은 씨익 웃었다. “찾았다. 잭 더 리퍼····.” 정운은 그대로 적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추가타를 날렸다. 쿠우웅!!! 다리로 진각을 밟으면서 그대로 체중을 검에 실었다. 원래 태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정운의 혈광참마도에 비해서 상대의 무기는 군용 잭 나이프일 뿐이었다. 정운의 공격에 무게가 실리자 날이 뒤로 처졌고 정운의 혈광참마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힘으로 적의 방어를 돌파했다. 촤아악!! 정운의 공격은 정확하게 적의 몸통을 갈랐다. 하지만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대신에 허무하게 안개처럼 흩어져 버릴 뿐이었다. “쿡···.” 잭 더 리퍼의 입에서는 가사롭다는 듯이 작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놈은 정운의 왼손에 잡혔던 팔도 안개로 바꿔서 정운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칫···. 중국놈들 이런 정보는 ME에 없었는데···.” 아마도 중국 쪽에서도 정운에게 어느정도는 정보를 숨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이번 기회에 빚을 지워두고 싶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세한 정보만 가지고 정운이 독자적으로 레이드를 하면 곤란했을 테니 말이다. 잭 더 리퍼는 그대로 안개로 변해서 몸을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스르륵 사라지는 잭 더 리퍼의 모습을 그냥보고 있을 정운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세상에 악당은 많은데 보스몹으로 써먹을 악당이 좀 처럼 없네요... 으음. 굳이 악당이 아니라도 한을 품고 죽은 악당이면 되기는 한데... 어느정도 네임드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게 어렵네요. 네임드가 너무 큰 인물은 좀 더 후반에 등장 시켜야 할 테고.. 역사책을 좀 더 꺼내서 찾아봐야 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28화 “슬기야!!” “예. 실드!!” 슬기는 실드를 썼다. 척하면 척이라고 슬기는 정운이 뭘 원하는지 알았다. 지금 펼친 실드는 슬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실드가 아니었다. 정운과 잭 더 리퍼를 감싸는 뚜껑의 역할로서의 실드였다. “먹어랏!!!! 뇌천신공, 최대 출력!!!” 파지지지지직!!!! 정운은 전신에 황금빛 번개를 최대 출력으로 방전 시켰다. 안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은 수분의 입자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한 마디로 전류가 매우 잘 통한다는 것이다. “그그극·····.” 잭 더 리퍼는 정운의 공격에 상당한 대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안개 상태로는 더 큰 대미지를 입을 것 같았던 잭 더 리퍼는 일단 몸을 인간의 형태로 바꿨다. 안개 상태로는 정운의 뇌전에 더 큰 대미지만 입는다는 것을 알고 바로 몸을 인간으로 바꾼 것이다. 온전한 인간의 형태가 된 잭 더 리퍼의 모습은 후드가 달린 검은색 롱코트를 걸치고 신장은 190이 훌쩍 넘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후드를 깊숙하게 눌러쓰고 있었기에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슬쩍 드러난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죽어.” 놈은 그렇게 짧은 말을 하고는 양손에 나이프 두 개를 들고 정운을 향해서 귀신같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쉬쉬쉬쉬쉭!!! “웃···.” 정운은 혈광참마도를 휘둘러서 잭 더 리퍼의 두 자루의 나이프를 받아냈다. 카카카캉!!! 정운과 잭 더 리퍼의 사이에 불꽃이 튀기고 무수한 검격이 허공에 빛의 수를 놓았다. 정운은 본격적으로 공방을 주고 받으면서 생각했다. ‘이거 그냥 살인귀의 갈질이 아니다. 제대로 된 나이프술. 군에서 쓰는 것 같은데?’ 정운 역시 세레나와의 수련, 그리고 시련의 탐에서의 수련을 통해서 검술에 관해서는 제법 조예가 생겼다. 잭 더 리퍼의 나이프는 정확하게 단검의 특성을 살려서 급소를 빠르고 정확하게 노려왔다. 이건 막 휘두르는게 아니라 제대로 된 검술이었다. 처음에 공방은 그냥 반사신경과 전투 센스라고 쳐도··. 이렇게 물 흐르는 공방은 센스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었다. 제대로 베워야 가능한 형태의 공격들이 물흐르듯이 연달아서 나오고 있었다. 원래 잭 더 리퍼가 이런 고도의 나이프 전투술이 가능하다는 정보는 없었다. 아마도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이 되면서 얻어진 능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스터!!!” 카아앙!! 정운과 잭 더 리퍼의 사이에 세레나가 끼어들면서 강한 검격을 날렸다. 어느새 둘을 가두고 있던 슬기의 실드는 풀렸다. 잭 더 리퍼가 실체화 한 순간 좁은 공간이 정운에게 불리하게 작용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슬기가 일단 푼 것이다. 세레나는 일격으로 잭 더 리퍼를 떨어트린 다음에 정운에게 말했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마스터는 창으로 무장을 변화 시켜서 백업해 주십시오.” “알았어.” 정운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상대는 날카로운 나이프 두 자루를 귀신같이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짧은 칼을 상대하는 것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탄탄한 세레나가 제격이었다. “파앗!!!” 퍼어엉!!! 세레나는 자신의 방패를 앞에 세워서 어깨로 숄더 차지를 하는 것처럼 잭 더 리퍼를 밀쳤다. “크으으으····.” 잭 더 리퍼는 그 일격을 그대로 몸으로 때워야 했다. 애당초 나이프라는 무기는 짧고 가볍기는 했지만 방패로 인한 쉴드 어택 같은 무거운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앗!!!” 세레나의 정중하고 위압적인 정통 검술이 잭 더 리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카앙!! 캉!! 카카카···. 정운이 혈광참마도를 재빠르게 휘두를 때는 어느정도 공방이 성립되던 잭 더 리퍼였다. 하지만 방패로 사각을 보호하면서 정중하고 무거운 공격만을 날리는 세레나에게는 오히려 밀리고만 있었다. 전투력의 차이 이전에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전투의 분수령을 중요하게 판가름 하는 것은 검술이나 무술의 실력만이 아니었다. “스모그 소드!!” 잭 더 리퍼가 단도를 크게 휘두르면서 외쳤다. 그러자 대기중에 떠돌던 안개가 뭉쳐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서 세레나를 덮쳤다. 카카칵!! “크윽···.” 세레나는 약간의 대미지를 입고 뒤로 물러났다. 몇 개나 되는 칼날이 날아와서 그녀를 정방위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세레나!!! 이 새끼가!!” 퍼어억···. 정운의 공격이 잭 더 리퍼에게 작렬···. 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스모그 쉴드.” “이 놈이···.” 정운의 창끝을 막은 것은 안개가 뭉쳐서 만들어낸 작은 방패였다. “이까짓 것!!!” 파지지직!!! 정운의 온몸에서 다시 한 번 뇌천신공의 뇌전이 작렬했다. 어지간한 안개라면 뇌전으로 다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스모그 토네이도!!” 하지만 그것도 오산이었다. 잭 더 리퍼는 아무래도 이 안개를 자유자재로 조종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정운의 뇌전을 머금은 안개는 강력한 나선의 소용돌이가 되어서 그대로 정운을 공격했다. 퍼어엉!!! “쿨럭···.” 정운은 오랜만에 상당히 강력한 일격을 먹었다. 적통으로 먹는 않았고 쉐도우 아미를 두른 팔로 공격을 막았음에도 순간 뱃속에 든 것을 게워 낼뻔 했다. 그리고 정운의 체력 게이지도 한 방에 3분의 1이 떨어졌다. “정운씨!!!. 폭렬우!!! 광염조!!” 콰콰쾅!!! 콰앙!!! 폭렬우(爆裂牛) (화염으로 된 큰 소를 소환한다. 대상에게 돌격해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광염조(狂炎鳥) (커다란 매를 소환한다. 대상에게 닿으면 화염을 작렬 시킨다.) 둘 다 슬기의 유니크 아이템인 주작의 스태프에 딸려 있는 기술들이고 강력한 화염계의 대미지를 주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상대인 잭 더 리퍼는 자신의 몸 앞에 안개의 방패를 만들어서 다시 한 번 막았다. 그리고 슬기를 향해서 한 걸음에 달렸다. “죽어라···.” 촤아아악!!! “아아악!!” 슬기는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몸으로 직접 대미지를 입었다. 체면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날려서 급소는 피했지만 잭 더 리퍼의 나이프는 그녀의 어깨를 길게 스친 것이다. 단순히 스친 일격이라고 해도 보스몹의 공격이었다. 거기다 슬기는 메이지다. 실드로 사전에 공격을 막는다면 몰라도 메이지의 빈약한 방어력에 보스몹의 공격은 치명적이기까지 했다. 단 번에 슬기의 체력 게이지가 80% 정도 떨어져 버렸다. 보통 항상 전위에서 정운이나 세레나가 지켜주던 슬기였기에 직접 이 정도의 대미지를 입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잭 더 리퍼는 그대로 슬기를 다시 한 번 공격하려고 했지만··. “백뢰참!!!” 정운이 그걸 지켜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무수한 뇌전의 참격을 날려서 적을 견제했고 잭 더 리퍼는 어쩔 수 없이 슬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정운은 그대로 잭 더 리퍼를 밀어붙이면서 세레나와 슬기에게 말했다. “체력 회복에 전념해. 특히 슬기 너는 풀피 차기 전에는 전투에 다시 참가 하지 마!!!”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세레나는 급하게 회복의 버프를 걸었고 슬기 역시 자신에게 힐을 걸기 시작했다. 정운은 둘이 완전히 회복 할 때까지 시간을 걸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잭 더 리퍼를 몰아 붙였다. 하지만 잭 더 리퍼도 폼으로 72층의 보스몹을 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놈은 정운의 공격을 받으면서 또 하나의 스킬을 발동 시켰다. “스모그 도플갱어.” 놈이 그렇게 말하자 허공에 돌고 있는 안개들이 뭉치면서 무수한 잭 더 리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열 명, 스무 명, 그리고 더 해서 새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많은 잭 더 리퍼가 생겼다. “칫, 쉐도우 아미!!!”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정운은 자신도 머리수를 늘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다섯은 슬기와 세레나가 완전 회복 할 때까지의 보호. 나머지 네 명은 날 따라와라!! 저걸 끝냈다.”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분신술의 모든 공통점, 그건 아무리 분신이 정교하고 강력해도 결국은 본체만 잡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정운은 좀 더 강력한 공격으로 적을 몰아 붙여갔다. “으아아아아아아!!!” 뇌전을 잔뜩 머금은 정운의 공격과 그런 정운을 보좌하는 그림자의 무장들의 공격이 잭 더 리퍼에게 약간의 대미지를 주기 시작했다. 역시 안개를 테마로 하고 있어서일까? 잭 더 리퍼에게는 뇌전의 대미지가 가장 잘 먹히고 있었다. -받아랏!!!! 퍼어어엉!!! 여포의 화극이 뇌전을 잔뜩 머금고 잭 더 리퍼의 몸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조운의 창이 번쩍이더니 순간 잭 더 리퍼의 몸뚱아리에 다섯 개나 되는 주먹만한 구멍을 만들었다. 손견의 대도가 그 뒤를 이어서 잭 더 리퍼의 허리를 양단해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공격을 해도 놈의 신체 베이스가 인체가 아니라 안개인 이상 크리티컬 대미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깔짝깔짝 갉아가야 하나?’ 정운은 싸우면서 흘깃 고개를 돌려서 슬기와 세레나를 확인해 갔다. 그녀들 역시 무수한 잭 더 리퍼의 분신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주변에 정운이 붙여준 그림자 장수들을 전위 삼아서 차근차근 체력을 회복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세레나와 슬기가 각각 등을 맞대고 완전히 방어 태세로 돌아서 있었다. 다행이도 분신들을 보아하니 본체만큼의 내구력은 없어 보였다. 그림자의 무장들의 공격을 받을 때 마다 그래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게 그 증거였다. ‘버틸 수는 있겠는데···. 이게 다라면 좀 곤란한걸? 이쪽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정운의 계획을 위해서는 72층 돌파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곤란했다. 최대한 여력을 남기고 사냥을 해야 했는데 이래서는 계획에 지장이 생길 지도 몰랐다. 그때····. “바람의 정령왕, 안개를 흩어 버려라!!” 정운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정운의 팀과 잭 더 리퍼의 전투가 시작된 것을 멀리서 캐치하고 이민지와 한중겸이 합류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몇 명의 유저들도 같이 합류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것은 역시 이민지였다. 안개의 천적은 역시 바람. 그 어떤 안개도 강력한 태풍 앞에서는 흔적을 유지 할 수 없는 법이다. 후우우우우웅!!!! 이민지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가 강력한 토네이도를 만들어서 안개를 샅샅이 흔들어 버렸다. “크으윽···.” 흩어지는 분신들 사이에서 본체인 잭 더 리퍼는 자신의 몸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완벽하게 실체화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운의 지시가 떨어졌다. “전원 공격!! 퍼부어 버려!!!” “데몬 엠페러!!!” “낙천타(落天打)!!!” “홀리 버스터!!!” “폭렬우, 폭렬우, 폭렬우.” “천뢰지망!!!” 콰콰콰콰콰쾅!!! 콰아앙!!! 정운을 비롯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의 공격이 작렬했다. 그리고 그 폭발 속에서 잭 더 리퍼의 본체 위로 드디어 예로우 크리스탈이 뜨는 것을 발견했다. “광기의 악마!!” 그리고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자 잭 더 리퍼는 비장의 기술을 발동했다. 이 가공의 런던 전부에 흩어져 있던 안개들이 잭 더 리퍼를 향해서 밀물처럼 밀려갔다. 그리고 잭 더 리퍼는 그 안개를 흡수해서 점점 더 거대화되기 시작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운님이 찾았군요.” “벌써 광기의 악마를 발동하다니··. 전원 방어태세로 흩어져라!!!” 잭 더 리퍼가 히든 스킬을 사용하자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저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전원 진형을 갖춰라!!! 적의 공격에 주의하라!!” 잭 더 리퍼를 클리어 한 적이 있는 장한은 일사분란하게 지시를 내렸다. 정운은 그런 장한에게 가서 말했다. “적의 공격 패턴은 뭡니까?” “거대한 대 낫을 이용한 공격과 하늘에서 안개비 처럼 쏟아지는 바늘 공격이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29화 <72층 클리어> 장한의 설명을 들은 정운은 바로 대책을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과연···. 메이지 계열들은 실드를 써서 안전 지역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은 교대로 어그로를 끌면서 싸운다. 세레나, 회복조에 들어가. 그 외에도 회복이 가능한 사람들은 안전지역에 들어가!!” 정운은 일사분란하게 지시를 내렸다. 적의 공격중에 거대한 대낫은 어느정도의 대미지인지 모른다. 하지만 안개비처럼 쏟아진다는 공격은 대강 짐작이 갔다. 아마 그 정도로 오밀조밀한 공격이라면 피하는 것은 불가능 하 것이다. 다만 대미지 그 자체는 크지 않고 대신에 꾸준한 공격으로 유저의 체력을 갉아 먹는게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전투 중에 안전한 지역을 만들어서 횝고이 가능하도록 하는게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어택조가 돌아가면서 회복하면서 보스몹을 상대한다. 정운의 계획은 짧은 시간에 즉흥적으로 세운 것 치고는 좋은 편이었다. 한가지 단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잠깐, 보스몹이라고 해도 자기 의지가 있다고, 어그로 같은게 끌려!!?” “···이런. 그걸 깜빡했다.” 이보영의 지적에 정운은 순간 아차 싶었다. 여전히 일반 필드에서 보스몹 사냥하던 버릇이 남아있었던 정운은 어그로가 안 잡힌다는 사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정운이 작전을 잘못 세웠다고 잭 더 리퍼가···. 그래? 그럼 너 작전 다시 짜렴. 이라고 봐 줄 리가 없었다. 어디 히어로 변신 기다려주는 특촬물 악당도 아니고 말이다. 후우우웅!!! 완전한 변신을 마친 잭 더 리퍼는 그대로 거대한 대낫을 휘둘러서 정운을 공격했다. “쉐도우 월!!!” 공격은 거대하고 강력했지만 정운이 공격을 막을 틈은 있었다. 콰지직!!! 다만 너무나 강력한 공격이라서 정운의 쉐도우 월도 그대로 막아내지를 못했다. 정운의 쉐도우 월이 잠깐 공격을 막아주는 사이에 몸을 피하는게 한계였다. “저 낫···. 한 번 정통으로 걸리면 150대 이하는 원샷 원킬이다.” 정운은 등골로 살짝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그리고 잭 더 리퍼는 허공에 입을 벌리고 그 입에서 연기를 뿜어냈다. 그 연기는 이내 허공에서 넓게 퍼져서 비구름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 비구름에서는 장한이 말한것과 같이 바늘같이 가는 공격이 쏟아졌다. 촤아아아아아!!! “망할···.” “이걸 어떻게 피해!!!” 이건 그야말로 비였다.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고운 입자가 빽빽하게 내리는 보슬비 같은 느낌의 비 같은 공격이었다. 약하게 내리고 있었지만···. 그만큼 더 피하기는 힘들었다. 아니 방어막으로 막는 것 말고는 사실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피할 공간이 없으니 말이다. 유저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의 체력 게이지가 닳아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강력한 낫으로 인한 큰 한방. 그리고 절대로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비의 칼날. 이 두 가지 콤비네이션을 깨지 못하는 이상은 클리어는 불가능이었다. “무조건 덤벼!!! 이렇게 된 이상 갈대 까지 가는 거다.” 중국의 장한은 서둘러 딜을 할 것을 지시했다. “저런···. 아니 저게 오히려 정답인가?” 정운은 장한의 행동이 무모하게 보였지만 순간 저게 오히려 옳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야 말로 상책이었다. 다만 정운은 이 상황에서도 상대의 약점을 생각하다 보니 그쪽으로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정운의 약점이 중에 하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솔로 플레이를 많이 해서 그런지 과감한 도전을 하면서도 항상 살아남기 위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엄밀히 말해서 약점이라기 보다는 장점이다. 하지만 때로는 장점이 약점이 되는 순간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저 생각하지 않고 힘 대 힘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가장 피해를 적게 입는 방법이기도 하다. 장한의 경우 아마도 이 잭 더 리퍼를 한 번 클리어 해 봤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일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니다. 중국팀이 잭 더 리퍼의 레이드를 시도한 횟수는 총 21회. 탐색에만 실패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잭 더 리퍼가 일단 저 상태가 되면 뭔가 꼼수를 부리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장한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쪽의 대미지가 더 커지기 전에 상대를 끝장낸다. 해결책은 오로지 그것 뿐이다. “오오오오오!!!” 잭 더 리퍼는 한곳에 실드를 치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대 낫을 휘둘렀다. 다른 유저들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었지만 잭 더 리퍼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일단 방어막 안에 있는 사람들부터 노렸다. 놈의 대낫이 휘둘러지고 방어막과 놈의 대낫의 칼날 사이에 불꽃이 튀겼다. 카카카카카칵···. 놈의 일격은 슬기와 주경택의 보호막을 순식간에 부셨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배대호의 방어막을 뚫지는 못하고 유리 긁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 졌다. 하지만 그 한방으로 배대호의 실드도 상당한 소비가 된 상태였다. “제길··. 어그로가 안 잡히는 놈들은 이래서 피곤하다니까····” 배대호는 자신의 실드를 뚫기 위해서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잭 더 리퍼를 보고 실드 안에서 다음 수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응? 이건···?” “안 움직인다?” 배대호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도 잭 더 리퍼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춘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 명이 외쳤다. “뭐 해요!!? 빨리 딜들 해요!!!” 정운이 어느새 잭 더 리퍼의 전신을 쉐도우 체인으로 꽁꽁 묶어두고 있는 것이었다. 정운 혼자서 하는게 아니라 다른 그림자의 장수들 까지 모두 동원해서 수많은 사슬이 잭 더 리퍼를 완전히 구속했다. 요즘 들어서 인간 크기의 몹들을 상대 하느라고 잘 사용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원래 거대한 적들을 상대하는 것에는 정운이 구속하고 다른 사람들이 극딜을 퍼붓는다. 이게 정석이었다. “편막!!” “음양십자격!!!” “화룡!!!” 정운의 지시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오랫동안 손 발을 맞춰온 한국팀들의 유저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한국팀들의 유저를 따라서 중국의 유저들도 정운에게 구속당한 잭 더 리퍼를 딜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죽어랏!!!!” 아직 바늘같은 칼날의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거대 보스몹이라는 것은 두들기기 좋은 샌드백일 뿐이다. 순식간에 잭 더 리퍼의 머리위에 레드 크리스탈이 떴다. 그리고 더 이상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멤버들의 극딜이 쏟아졌다. “난무!!” “패왕삼중권!!!” 레드 크리스탈 상태가 되었을 때 상대가 무슨 짓을 할지는 미지수이다. 월드 서버의 보스몹일수록 절대로 레드 크리스탈 상태에서 뭔가를 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이전에 알 카포네의 레이드를 하면서 그 점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깨달았던 한국팀들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잭 더 리퍼는 그림자의 사슬에 꽁꽁 묶인 채로 절규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한영동맹의 유저들에게 한 가지 알림창이 떠 올랐다. 띠리링! [72층의 보스몹 잭 더 리퍼를 쓰러트렸습니다. 73층으로 올라갈 권리를 얻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였다. “후우우·····.” “드디어 성공했네.” “아아···. 힘들어라···.” 사람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안개도 모두 걷히고 각자의 뺨에 와 닿은 태양의 햇살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역시들 많이 지쳤군···. 사망자는 없었지만 정신력의 소모는 제법 되는 것 같아.’ 정운은 그런 팀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역시 72층 정도 되니 레이드가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도 성공했다. 이제 계획의 반은 성공한 것이다. “이제 73층으로 올라갈 권리를 손에 넣었군요. 축하드리오.” 장한이 정운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정운은 그의 속셈이 뭔지는 대강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중국팀의 호의는 기억해 두겠습니다.” “예. 그리고 미리 말해두겠는데··. 73층에 오신다면 미국팀을 주의하십시오.”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고 있었지만 미국을 주의하라는 말은 자신들과 손을 잡으라는 말이었다. 정운은 그에게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하고 말았다. “자··, 우리는 이제 우리 영역으로 돌아간다. 모두 일어서라.” 장한은 부하들을 챙기고 그대로 물러났다. 그리고 중국팀이 돌아가고 나서 잠시 후···. “다이앤 여왕님. 준비는 다 됐습니까?” “예. 이미 모두 회복 했습니다.” “체력 게이지와는 별개로 정신력의 소모는 그렇게 쉽게 되는게 아니지만···. 어쩔 수 없죠. 가는 길에 회복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지금이라면 아직 없던걸로 할 수 있습니다. 착실하게 다음을 도모하겠습니까?” “····아니요. 이미 결심한 일입니다. 더 이상 월드 서버에서 각국의 사정에 휘둘리는 것도 귀찮고··. 결심 했을 때 해 치워야죠.”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다이앤 여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월드 서버에서의 가장 큰 장애물은 보스몹들의 변화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큰 장애물이기는 하지만 더 큰 장애물은 항상 어디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타국의 유저들이었다. 예전에 영국도 레이드 직후의 빈틈을 노려서 선제 공격을 당해서 약소팀으로 전락했지 않는가? 월드 서버에 간신히 올라온 팀이 결국 기존에 있던 팀의 텃세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번에 한국처럼 급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오히려 비정상 적일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이제 정운은 그런 타국과의 경쟁에서 한 발 멀어지려고 한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73층의 레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정보다 없고 성공 가능성도 미지수이지만··.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한영동맹의 전력만으로 73층 레이드. 이게 정운이 중국팀의 속내를 떨쳐 버리기 위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계획은 한국팀을 73층까지 끌어 올린 후에 미국을 견제하는 것에 있었다. 원래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73층에서 은연중에 미국을 견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러시아가 한국팀의 손에 사실상 괴멸 당하면서 73층의 파워 밸런스가 급속도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어서 그 밸런스를 바로 잡기 위해서 한국팀을 72층에서 73층으로 끌어 올리려고 한 것이었다. 안 그러면 뭐 하러 땀 흘려서 남의 레이드를 돕겠는가? 하지만 정운은 중국과 손을 잡고 미국과 적대 할 생각은 없었다. 중국이나 미국이 좋고 싫고의 문제를 떠났다. 왜 그렇게 하겠는가? 기본적으로 정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월드 서버에서 보스몹들을 공략하고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꾸 타국의 서버의 인간들과 경쟁을 하는 바람에 그게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중국과 손을 잡고 미국과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정운은 결심했다. 중국의 호의(?)를 받아서 72층 공략에는 이용하자 하지만 그 후에 바로 73층을 클리어해서 다른 월드 서버의 팀들을 따돌려 버리자는 생각이었다. 74층은 아직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신천지이다. 거기에는 아직 아무도 발을 들인 적이 없었고 숨어있는 퀘스트도 잔뜩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팀의 수준도 올라갈 테고···. 게임의 클리어에도 점점 가까워져 갈 것이다. ============================ 작품 후기 ============================ 예상하신 분들도 계셨더군요. 예. 맞습니다. 연속 레이드의 시작입니다. 중국과 미국 다 따돌려 버리고 우리는 천장에서 따로 놀거다. 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자각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30화 <73층의 도전> 마지막으로 결심을 마친 정운은 모두를 향해서 말했다. “그럼. 갑시다. 바로 73층의 보스몹에게로.” “예. 알겠습니다. 우리 영국팀의 운명. 당신에게 걸어 보죠.” 다이앤 여왕은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정운의 결정에 동의했다. 사실 그녀로서도 이번 행위는 도전이었다. 아무도 클리어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보스몹에게··. 그것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도전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 남자라면 충분히 해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월드 서버에서 보스몹을 찾는 방법은 간단했다. 모든 필드의 중앙에 보스몹의 영역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보스몹이 어떤 몹인지도 모르는 체로 싸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핸디캡이 너무 컸다. 그래도 정운은 꼭 오늘 안에 73층의 보스몹을 클리어 할 생각이었다. 자신과 한국팀을 이용해 먹으려고 한 중국을 닭 쫒다 멍 때리는 개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게 가장 효율적이었으니 말이다. “73층의 보스몹이라··. 그동안 서로 견제하느라고 전력을 다 쏟아 붓지 못했다고 해도 이제까지 그 누구도 공략하지 못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겠지.”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리는 말에 다이앤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아시아 쪽의 누군가라고 들었습니다.” “아시아? 으음···. 그것만 가지고는 짐작 가는게 너무 많은데요?”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다이앤 여왕의 말을 들어도 아시아라는 범위는 너무 넓었다. 보통 유럽과 북미대륙이 지구의 선진 국가 지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유럽과 북미 대륙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고작해야 500년도 되지 않는다. 문화, 군사력, 역사···. 그 무엇을 비교해 봐도 유럽은 아시아에 비하면 꾸준히 뒤쳐져 왔다. 고대 유럽사에 있어서 가장 화려한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도 동시대의 아시아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간단하게 군사력 하나만 보고 비교해 봐도··. 유럽에서 대군이란 10만이 넘는 단위였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멀리 갈 것도 없이 고구려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만 해도 소모된 병력이 100만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역사가 깊은게 아시아 문명이었다. 보스몹으로 나올 조건은 두 가지. 영혼의 격이 어느 정도 있을 정도로 유명하거나 강할 것. 그리고 사망자 본인이 한을 품고 죽었을 것. 그런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부합 시키는 자는 아시아 역사를 뒤져보면 너무나 많았다. “뭐··· 누가 됐던 간에. 일단 보면 알겠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보스몹의 필드로 향했다. 73층을 횡단해서 정운은 드디어 보스몹의 영역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한영동맹의 유저를 보고 몇몇 몹들이 공격을 하기는 했지만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의 대인원이 모여서 필드몹에게 고전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웃기는 일일 것이다. “저건···? 뭐지? 어디인 거지?” 정운은 보스몹의 영역에 도착해서 의문을 품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은 커다란 궁전 같은 것이었다. 한국식···. 이라기 보다는 명백하게 중국식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흠···. 이건 뭐지?” 정운은 처음 보는 건물을 보고 일단 그림자의 장수중에 관우를 꺼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이 건물 뭔지 알겠어?” 정운의 말에 관우는 건물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제가 있던 시기보다 더 앞의 건물 같습니다. “한 나라 이전이라고?” -그렇습니다. 다만···. 시대는 다르다고 해도 궁전의 곳곳에서 왕궁만의 표식과 위엄이 보입니다. 아마도 누군가 왕족이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중국이고 한나라 이전의 왕····. 설마 진시황은 아니겠지?” 정운이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진시황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해서 최초의 황제로 오른 진시황. 하지만 사실 이런저런 안 좋은 소문도 엄청 많았다. 분서갱유(焚書坑儒)부터 시작해서 불로불사를 향한 막연한 동경으로 무리한 주문을 많이했고···. 만리장성도 업적이라면 업적이지만 솔직히 당시의 기술로는 정말 무리수였다. 덕분에 공사중에 수많은 이들이 죽었고 결국 그는 수양제와 더불어서 대규모 토목공사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제왕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뭐···. 그런 진시황이 불로불사의 미련 때문에 파우스트에게 붙잡혔다. 그 정도의 스토리가 되려나?” 옆에서 다른 사람들도 토를 달지는 않았다. 정운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 했던 것이다. “진시황이라면 스킬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 할 수 있겠군요. 만리장성을 형상화한 스킬이라든가?” “또는 대량의 군사를 소환할 지도 모르지···. 쯧, 골치 좀 아프겠는걸?” “뭐, 어때. 피라미를 아무리 많이 소환해도 피라미는 피라미야. 난 오히려 보스몹 하나가 강력한 편이 더 짜증나더라.” “아니 피라미도 피라미 나름이지··. 이름난 장수라도 대거 소환하면 어떻게? 정운이 업그레이드 판이잖아?” “그렇고 보니····.” 사람들은 삼삼오오 얘기하면서 대 진시황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짝!! “자··. 거기까지.” 하지만 정운은 박수를 쳐서 흐름을 끊었다. “제가 말하고 이러기는 좀 그렇지만 아직 진시황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설픈 선입관을 가지고 들어가기 보다는 그냥 들어가서 눈으로 확인해 보죠.”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한영동맹의 73층 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뭐라고? 한영동맹이 뭐 어쨌다고?” 정운이 73층의 보스몹 레이드를 위해서 보스몹의 영역에 들어간 그 순간···. 중국의 전진기지에 들어와서 한 숨 돌리고 있던 장한은 깜짝 놀랐다. 한영동맹이 그대로 73층의 레이드데 도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 미친놈들···. 방금 소모된 상태에서 다시 레이드를··. 그것도 73층? 다 죽을 생각인가?” 장한은 이전에 세 번 73층에 도전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비록 미국을 경계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전체 전력의 50%만으로 들어간 레이드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설령 100%를 다 쏟아 붓는다고 해서 클리어가 가능할지 못 할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장한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영동맹이 어째서 이렇게 성급하게 73층에 도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혹시 그냥 어떤 보스몹이 있는지 파악만 하려는 건가?” 장한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조장중에 주원이라는 남자가 말했다. “주군.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다릅니다.” “다르다? 어떻게 다르다는 건가?” “만약 주군의 말씀대로 그냥 정찰을 겸하고 싶었다면 우리에게 정보를 요구했을 겁니다. 그리고 굳이 지금 정찰을 할 필요는 없지요. 주군의 말씀대로 이미 상당한 전력을 소모한 후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뭐냐? 설마 기세가 올랐으니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도전했다는 건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놈들은 클리어가 목적인 것 같습니다.” “클리어? 그거야 당연···. 아!!” 말을 하던 장한은 그제야 정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표정이었다. “아시겠습니까? 놈들이 노리는 바를····.” 뿌드득···. “망할 놈들···. 우리하고 손을 잡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는 거군····.” 한국팀이 이대로 73층의 레이드에 성공해 버리면 그대로 74층으로 올라갈 권리가 생겨 버린다. 즉···. 한국팀을 올려서 73층에 미국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중국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완전히 자신이 물 먹었다는 것을 안 장한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런 장한에게 주원이 다시 말했다. “주군,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뭐가 말이냐?” “한 번 소모가 된 상태에서 73층 레이드를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거기에 누가 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레이드는 틀림없이 실패 할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장한의 목소리는 조금 차분해 졌다. 그리고 그런 장한에게 주원이 계속해서 속삭였다. “이렇게 된 것···. 동맹이 아니라 복속을 시켜 버리는게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놈들이 레이드에 실패하고 패잔병처럼 후퇴하는 시기를 노려서 급습을 하죠.” “·········.” 주원의 생각을 들은 장한은 눈을 감고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 있었다. ‘주원의 생각대로 된다면 좋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평소 성질이 급한 장한치고는 굉장히 신중하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주군의 모습이 생소한 주원이었지만 그는 일단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던 장한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잠시 혼자서 생각을 해 보겠다. 모두들 내가 혼자 있게 나가라.”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부하들을 모두 내보낸 장한은 한참 생각하다가 인벤토리에서 어떤 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서···. 누군가와 통신을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군요. 지금 저를 찾는걸 봐서는 한국팀··. 아니 박정운에게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모양이죠? “·····사정을 짐작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떤 수단으로 직접 알고 있는건지 모르겠군.” -하하하··. 당연히 짐작이죠. 전 원래 당신들이 있는 70층 대에는 갈 권리가 없습니다. 말했지 않습니까? “···········.” ‘말이야 했지. 하지만 너처럼 한 없이 수상한 놈이 하는 말을 곶이 들으란 말이냐?’ 장한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박정운이 우리하고 손을 잡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군. 지금 바로 73층 레이드에 도전중이다.” -그 다운 짓이군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여기서 73층 레이드에 실패한 이후의 박정운을 공격하면··. 승산은 어느 정도일까?” -몇 가지 수정할 게 있군요. 장한의 말을 들은 김신수는 잠시 제동을 걸었다. “뭘 수정하겠다는 거냐?” -일단, 박정운과 한국팀은 73층 레이드에 성공할 것입니다. “뭐라고? 거기 뭐가 있는지 알기는···.” -뭐가 있던 간에···. 한국 팀의 저력을 생각하면 놈들은 승승장구 레이드에 성공할 겁니다. 아마도 80층까지는 가야 슬슬 막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김신수의 말에 장한은 설마 그렇게까지야···.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장한에게 김신수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전에도 삼국연합이라는 머저리들이 싸울 때도 제가 말했죠? 거기 가담하면 박살이 날 거라고···. 제 말이 틀렸던가요? “우리 중국이 거기에 가담했으면 승패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하하··· 하하하하하하···. 그거 혹시 진심입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장한의 말에 김신수는 마치 웃기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음·····.” 그런 김신수를 보면서 장한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엄청 기분나쁜 박장대소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한 말이 억지라는 것을 장한도 알고 있었다. 그라고 왜 모르겠는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사실은 중국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삼국연합이 사국연합으로 변한다고 해도 한영동맹을 이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삼국연합을 상대하면서 한영동맹은 고전을 고사하고 사망자 하자 발생하지 않았다. 이건 전력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중국이 거기에 끼어들어 봤자 저울의 기울기가 역전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끄응···. 할 말만 하지. 네 말을 믿을 테니 말이다.” -음, 좋은 태도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정말로 저를 신뢰하신다면···. 틀림없이 월드 서버의 톱으로 올라설 것입니다. “··········.”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31화 콘러드 크라우스도 그랬지만···. 장한도 김신수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김신수의 최대 약점은··. 아마도 비호감 덩어리인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 정운과 만났을 때도··. 콘러드 크라우스를 길들이려고 할 때도···. 그리고 지금 장한의 앞에서도···. 김신수 나름은 친절(?)하게 대한다고 하는 것 같지만 그런 김신수의 친절함은 항상 같은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 자식 정말 재수없어.] 라는 결과를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상이 전체적으로 엄청 안 좋은 것이다. 어지간히 생각없거나 욕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아닌 이상은 김신수를 보자마자 어째서인지 의심부터 들었다. 어쩌면 김신수의 스테이터스의 안에는 호감:-999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사기꾼이라면 참 사기치고 살기에는 불리한 인상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완전히는 못 믿어도 김신수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밀도를 생각하면 믿을 수 있는 일은 믿어야 했다. 정말로 한국팀이 73층을 클리어 가능하다고 하면··. 중국 팀으로서도 방향을 전혀 바꿔야 했으니 말이다.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지금부터········. 김신수는 일단 장한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간신히 내 꼭두각시 줄이 걸리기 시작 하는군···. 성질 급해서 이용해 먹기 쉽다고 생각했는데 하여튼 자존심만 쩔어서 애 먹였단 말이야.’ 거듭된 실패나 반쪽짜리 성공만 거둬 왔던 김신수로서는 다음에는 꼭 정운의 목을 치고 싶었다. 김신수의 입장에서는 정운 때문에 다된 밥에 재뿌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한 함정의 하나하나가···. 지금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장소를 바꿔서 한영동맹으로···. 한영동맹은 보스몹의 영역인 궁전에 들어왔다. 궁전의 안쪽에 들어오니 거기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위엄있는 소나무와 탐스럽게 열매를 맺은 복숭아 나무. 그리고 연못과 잔디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중겸이 말했다. “음···. 이거 혹시?” 한중겸은 갑자기 일행에서 떨어지더니 연못으로 향했다. “형님. 뭐 하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 한중겸은 그렇게 말하고 연못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 손으로 연못물을 살짝 퍼서 입에 대었다. 그러더니····. “····역시·· 이건 술이다.” “술요?” “그래. 내가 술 냄새를 못 맡을 리가 없지.” “자랑입니다.” “자랑이지. 어쨌든··. 이 연못 전체가 술인 것 같다.” “연못전체가 술···. 잠깐 저기 나무에 뭐가 걸려 있는데? 혹시···.” 정운은 약간 떨어져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뭔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이 뭔지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 나무 위로 한걸음에 뛰어 올랐다. 그리고 거기서 정운은 봤다. “웃···. 제기랄···.” 정운은 순간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정운의 눈에 보인 것은 껍질이 벗겨진 인간의 시체였다. 양손을 위로해서 묶여 있고 껍질이 벗겨지고 소금에 절여진 인간은 원래대로라면 젊은 여성의 것으로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런 인간의 염장육괴가 한둘이 아니고 즐비했다. 마치 숲처럼 말이다. “술의 연못에 고기의 숲···. 이거 혹시···. 주지육림(酒池肉林)인가?” 정운이 주지육림이라는 답을 도출해 내자 한국 유저들은 이 영역의 보스몹이 누구인지 대강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주지육림이면··. 젠장 보스몹은 아마 둘 중에 하나겠지?” “그렇겠죠···. 어느 쪽이 더 까다로울까?” “가장 까다로운 건 둘 다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둘 다 한을 품고 죽었을 법 하잖아?” 한국 유저들이 짐작이 가는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시아 역사에 많이 어두운 영국 유저들은 아직 감이 오지를 않고 있었다. “뭔가 짐작가시는 인물이라도 있습니까?” 다이앤 여왕은 근처에 있던 슬기에게 물었다.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남자 한명하고 여자 한명···. 아시아에서는 유명한 왕과 요부에요.” “누구죠?” “주왕, 그리고 달기. 아마도 그 둘 중에 하나일 거예요.” “혹은 둘 다 일지도 모르고 말이죠···.” 슬기의 말에 이보영이 한 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주지육림. 이건 거의 결정적인 힌트였다. 굳이 중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아시아 사람이라면 이 일에 관해서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고사가 아닌가? 한때 고대 중국에 살았던 인생 막장으로 치달아 보자던 왕과 애첩. 그게 바로 주왕과 달기였다. 주왕과 달기에 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약간은 짚고 넘어가겠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엄청 잔인한 왕과 그런 왕을 부추기는 나쁜 요부. 그게 바로 주왕과 달기의 관계였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잔인한 왕도, 그리고 왕을 미몽에 빠트리는 요부도 한 둘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격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는게 바로 주왕과 달기였다. 그 둘이 대표격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수많은 잔혹성 때문이었다. 주지육림을 만들고 거기에 나체의 남녀를 짐승처럼 풀어 놓고는 남자가 여자를 범하게 했다던가? 충언을 하는 신하의 심장을 꺼내서 감상했다는 설과···. 길 가던 임산부의 뱃속이 궁금해서 잘라서 확인했다는 기록 등···.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왕과 그 왕의 여자라는 자가 행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행위들이 즐비했다. 혹자는 이것이 승자인 무왕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꾸며낸 애기라고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악명을 뒤집어씌울 수있었다는 것 자체가 주왕이 그렇게 좋은 왕이 아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뭐···, 주왕이 있는지? 아니면 달기가 있는지는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죠. 건물의 안으로 들어갑시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며 일행들과 같이 궁궐의 안으로 들어갔다. 궁궐의 안은 왕이 신하들과 국무를 보는 대전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 대전의 위에 옥좌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군···. 여기쯤에 누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한중겸은 척 봐도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보스몹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때···. 띠리링··. 띠링···. 어디선가 비파현의 울림이 울렸다. 그리고 대전의 위쪽에서 오색의 빛이 오로라의 커튼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는 아리따운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 명이라···. 가운데 유독 화려한 여자가 보스몹 같은데····. 저 여자가 달기인가?’ 정운은 세 명의 여자가 하늘에서 쓸데없이 화려한 연출과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팀원들에게 수신호로 경계 사인을 보냈다. 적어도 여자가 나왔다는 말은 주왕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소거법으로 자연스럽게 이번 층의 보스몹은 달기라는 말이 되었다. 다만 어째서 세 명이나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운은 섣불리 덤비지 않고 우선은 세 명의 여성들을 천천히 관찰했다. 가운데 있는 여성은 붉은색과 분홍색이 조화된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미모가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세레나와 슬기에게 콩깍지가 씌여있는 정운이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면 정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편에는 검은머리에 눈을 감고 있는 지적인 미모의 여성이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선율이 아름다워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의식이 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여자는 화사한 흰색 옷에 등에는 세 쌍의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오른편에 있는 여성이 지적인 이미지라면 이쪽의 여성은 상당히 귀여운 이미지였다. 입가에 생긋 걸려있는 미소는 발랄해 보였고 발목에 달려있는 방울이 귀여운 이미지를 더 해줬다. “흠····. 달기와, 왕귀인과 호희미라는 건가?” 한영동맹의 유저들 중에서 배대호가 가장 먼저 세 여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배대호의 말에 달기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면서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호···. 아직도 나와 내 동생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남자가 있구나? 좋은 일이야.” “정말 당신이 달기인가? 난 당신이 가상의 인물인줄 알았는데 말이야.” 배대호는 신기한 역사속의 인물을 발견한게 신기한 것처럼 말을 걸었다. 확실히 위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적으로 보면 중요한 자료(?)이기는 한 달기였다. 달기는 배대호의 말에 태연하게 받았다. “실례되는 말을 하는군····. 보다시피 본녀는 이렇게 존재한다. 그대들의 눈앞에 있지 않은가?” 달기는 이윽고 옥좌에 앉아서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유저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환영한다. 나의 노예들이여.” 그녀의 말에 이보영이 가장 먼저 울컥했다. “누구더러 노예라는 거야!!?” 그녀의 말에 달기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말했다. “응? 모든 인간은 나의 노예일 텐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을 노예라고 말하는 달기의 표정에는 오만도, 고집도, 비아냥도 없었다. 그건 마치···. 해는 원래 동쪽에서 뜨잖아? 물은 원래 밑으로 떨어지는 거잖아? 라는 식으로 당연한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태연자약 했다. 그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태연자약한 그녀의 말에 한 성깔 하는 이보영 역시 순간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이보영이 그러고 있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화를 내기 이 전에 어이가 없다는 생각들이 먼저 드는 유저들이었다. 유저들이 넋을 잃든 말든···. 달기의 옆에 있는 호희미는 깡충깡충 뛰면서 달기에게 말했다. “언니. 새 노예들이 언니를 섬기게 되어서 너무 기쁜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인단 말인가? “당연히 그렇겠지?” 절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자기 페이스를 절대로 잃지 않는 굳건한 마이페이스들이 종종 있다. 달기와 호희미가 딱 그런 타입인 것이었다. 호희미가 달기에게 매달리면서 말했다. “언니. 예쁜 여자 아이들은 저한테 주세요. 제가 가지고 놀래요.” 달기는 호희미의 말에 마치 곤란한 장난을 치는 어린애를 보는 듯한 눈으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넌 또 여자아이들의 껍질을 벗겨서 소금밭에 던질 생각이구나? 이런 장난꾸러기 같으니라고···.” “헤헤··. 예쁜 여자애들이 고통에 비명 지르면서 발버둥 치는게 너무 귀엽더라고요.” “귀여운 녀석···. 세상에 너 보다 귀여운 아이는 없을 것이다.” 달기와 호희미의 말을 듣고 있는 유저들은 어이가 없었다. ‘미친년들의 최종 버전을 보는 것 같애···.’ ‘어떤 환경에서 키우면 저렇게 되는 거지?’ ‘정신과 의사들이 보면 참 희귀샘플로 좋아할 만한 인간들일세····.’ 실제 역사 속에서의 달기가 원래 저렇게 맛이 갔던 것일까? 아니면 파우스트가 보스몹으로 개조하면서 뭔가 한 층 더 정신이 나가게 하게끔 손을 본 것일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저 여자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 하는 만큼 손해군. 전원 전투 대형으로!!” 달기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거슬렸던 것일까? 다이앤 여왕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영국의 유저들은 다이앤 여왕을 중심으로 지형을 짰다. 그리고 정운도···. “시작합시다. 뭔가 정보를 얻어내기에는····. 무리네요. 저 여자 미쳤어요.” “동감이다.” “오른쪽에 비파 든 여자는 내가 맡지.” 한국팀의 유저들도 무기를 꺼내고 달기와 그 두 동생들에게 대적할 준비를 했다. 아직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고, 어떤 스타일로 싸우는 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첫 수는 신중함에 신중함을 더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달기는 현실에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주병으로 설정 했습니다. 실제 달기 성격이 어땠는지야 둘째 치고 왠지 그게 어울릴것 같아서 말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32화 <본격적인 레이드> 자신과 싸우려고 무기를 꺼내는 한영 동맹의 유저들을 보고 달기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상하군. 저들이 꼭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 “아마도 머리가 나쁜 애들인가 봐요. 제가 잘 교육 시켜 볼까요?” “그래···. 희미와 귀인이 수고하렴.” “예. 언니.” “············.” 발랄하게 웃으면서 앞으로 나오는 호희미와 그 옆에서 비파를 들고 있는 또 한명의 여성이 침묵하면서 앞으로 나왔다. “우선은 부하들부터라는 건가?” 정운은 흘깃 옥좌에 앉아있는 달기를 봤다. 권태로운 표정을 하고 옥좌에 비스듬히 기댄 그녀는 그대로 옆에 있는 쟁반에서 다과를 꺼내서 한입에 먹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그저 유희일 뿐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의 보스몹들과 달리 노골적으로 유저를 깔보는군.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거지?’ 정운은 달기의 유독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거슬렸다. 알 카포네나 빌리 더 키드, 잭 더 리퍼와 달리 자신의 목을 노리고 온 유저를 무슨 장난감 취급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제까지의 보스몹들과 달리 여유가 너무 넘쳤다. 사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다른 보스몹들과 달리 73층의 보스몹인 달기는 아직 한 번도 공략당한 적이 없었다. 패배를 모르고 연전연승만 하던 그녀였으니 본래의 오만한 성품과 맞 물려서 방심의 극치를 달리는 것은 당연했다. 뭐···. 원래 성격 자체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만렙 미친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한영 동맹을 상대로 자신은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고 오로지 두 동생만 보낸 것만 봐도 그 오만의 극치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템페스트 샷!!!” 윤정철이 기습적으로 시위를 당겼다. 템페스트 샷 LV.MAX (광범위하게 화살을 쏟아 붓는다. 화살이 허공에서 분열하면서 불어난다.) 수십개의 화살이 호희미와 왕귀인은 물론이고 옥좌에 앉아있는 달기에게까지 쏟아졌다. 하지만 달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호희미를 불렀다. “희미야.” “예 언니!!” 달기의 명령에 호희미가 자신의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꺄하하하 이 정도로는 안 돼. 안 돼.” 그녀가 웃으면서 날개를 펄럭이자 날개에서 요란하게 떨어져 나간 무수한 깃털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깃털들이 화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막아냈다. 파파파파팍··. “나하고 안 놀고 언니하고만 놀려고? 그럼 안되지. 우리 화낸다. 그치 귀인 언니.” “··········.” 띠디딩···. 호희미의 말에 왕귀윈은 입을 여는 대신에 손가락으로 비파를 튕겼다. 그러자···. 퍼펑!! “크윽···.” “윽··.” 동시에 사방에 있던 유저들이 보이지 않는 강력한 충격파에 대미지를 입었다. 마치 덤프트럭이라도 날아와서 부딪힌 것 같은 충격에 유저들은 일제히 대미지를 입었다. “음파를 이용한 공격이다. 메이지들은 방어 마법을 한시도 풀지 마!!” 정운은 서둘러서 외쳤다. 방금 왕귀인의 공격은 체력 게이지가 약한 메이지 게열의 유저들에게는 연속적으로 적중하면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운의 말이 끝나기를 무섭게 왕귀인이 다시 한 번 비파의 현을 튕겼다. 띠딩·· 띵띵!! 퍼펑!!“ “크윽··. 이거··· 실드가 잘 안 돼?” “어떻게 된 거지?” 주경택과 영국의 게일 홀릭스라는 메이지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왕귀인의 비파현이 울리자 그들은 순간 머릿속에서 찌잉 하는 이명이 들리고 동시에 정신력이 흐트러져 버렸다. 덕분에 이 둘은 실드가 사라져 버렸고, 슬기 역시 유지하고 있던 실드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일렁거리면서 상당한 대미지를 받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메이지들 중에서 멀쩡하게 노 대미지를 받은 배대호가 말했다. “음파가 뇌속에 대미지를 주고 있다. 모두 소리를 듣지 마!!” “말은 쉬워도 말이지··.” “일단 대호 형님 옆으로···.” 체력이 약한 자들은 재빨리 배대호의 실드 안으로 들어갔다. 왕귀인의 비파 소리를 이용한 음색 공격도 배대호에게는 흔들림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한국 유저들은 왕귀인의 공격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공격을 거듭했다. “패왕권(敗王拳)!!” “난무(亂舞!!” “폭염참(暴炎斬)!!” 패왕권(敗王拳) LV.MAX : 집채만한 거대한 주먹이 날아간다. 난무(亂舞) LV.MAX :(채찍의 공격이 전방 100미터 안에 빼곡하게 펼쳐진다.) 폭염참(暴炎斬) LV.7 (화염을 집중시킨 도격으로 반경 7미터에 달하는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콰쾅!! 콰아앙!!! 한국 유저들 중에서도 파괴력에 나름 자신이 있는 이보영, 김수민, 명주호가 동시에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연합 공격도 호희민가 쳐 놓은 깃털의 방어막을 뚫지는 못했다. “꺄하하하···. 약해 약해. 그렇게 약한 공격으로는 희미의 만익천벽(萬翼天壁)을 뚫지 못해.” 호희미는 마치 절대 불가능한 일에 무모한 시도를 하는 자들을 보는 것처럼 깔깔 재미있게 웃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왕귀인인이 계속해서 비파를 튕기며 한영동맹의 유저들을 공격했다. 파파팡!! 파팡!!! “크윽·····.” “망할···. 꼭 참호속에서 쏟아지는 총격 같잖아···.” 유저들은 자신들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만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큰 대미지를 입은 자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상태가 계속해서 이어지면 위험했다. 이게 호희미와 왕귀인의 콤비네이션이었다. 호희미가 만익천벽이라는 방어막으로 철벽을 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왕귀인이 음파를 이용한 무차별 공격을 한다. 완벽한 방패와 창이라고 할까? 중국은 처음에 이 단계에서만 해도 돌파하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났어야 했다. 달기가 나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밑에 있는 호희미와 왕귀인 만으로도 상당한 난이도였던 것이다. 하긴···. 이 경우는 당연했다. 알카포네도 부하몹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알 카포네가 데리고 있던 부하들은 수준이 뻔했다. 머리수는 많았지만 그다지 무서울 것도 없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호희미와 왕귀인은 달랐다. 이들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달기와 관련된 전승에 나타나는···. 엄연히 이름값이 있는 자들인 것이다. 어쩌면 이들만 가지고도 보스몹으로서의 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들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제까지 다른 팀들이 애를 먹는 것도 당연했다. 강력한 보스몹에 준 보스몹 둘···.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등이 계속해서 실패했던 것도 이래서였다. 하지만··. 한국 팀의 수준은 중국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람 열 받게 하는 꼬마로군··. 비켜요.” 정운은 호희미의 웃음이 싹 가시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흑토를 소환해서 올라탔다. “혹토. 신수화.” “히히힝··.” 혹토의 온몸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정운 역시 뇌천신공으로 전신에 황금빛 뇌전을 둘렀다. “꺄하하··. 그걸로 뭐 어쩌게?” 호희미가 깔깔 비웃는 것을 보면서 정운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잔재주 따위 필요 없다···. 힘으로 뚫어주지.” “히힝···.” 정운이 이를 드러내면서 말하자 흑토 역시그 렇다는 듯이 발굽으로 땅을 차면서 투레질을 했다. “흥···. 흥이다. 그렇다고 내가 겁먹을 줄···.” 호희미의 떨리는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기마차지!!!” 콰아아아앙!!! 황금빛과 칠흑빛이 섞인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 후에야 굉음과 함께 강력한 폭염이 터져 나왔다. 좀 전에 세 명의 합체 공격 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격이 호희미의 방어막을 때렸다. “으윽···. 이익··. 너 이게···. 그런다고 내가 뚫릴 줄 알아?” 호희미의 방어막은 놀랍게도 이번에도 버텨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확실하게 어느 정도 깎인 느낌이 들었다. 허공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던 깃털의 숫자도 좀 줄어 들었고 호희미의 이마에서도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일단 막기는 막은 것이다. 상당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막은 것은 틀림 없었다. 그런 호희미에게 정운이 말했다. “제법이군.” “흥, 당연하지.” “하지만 이 열배는 어떻게 버틸 거냐?” “뭐? 무슨···. 엇!!?” 호희미는 정운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내 그 의미를 알았다. “쉐도우 아미.”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나하고 같이 간다. 모두 준비해!!”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소환된 아홉 기의 무장들 전원에게서 정운과 같은 황금빛의 뇌전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호희미의 안색이 변했다. “어··? 어어?” 방금 전의 공격도 상당히 위태위태했던 호희미였다. 그런 공격이 아홉 개 더 늘어나면···. “돌격!!!” 콰콰콰콰콰콰쾅!!!!! 정운과 그림자의 장수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동시에 돌격했다. 마치 뇌전을 두른 황금의 기마들이 일제히 돌격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굉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호희미의 방어막이 무너졌다. “크윽··. 너··· 이개!!!” 호희미는 자신의 깃털을 정운에게 날렸다. 하지만 그런 호희미의 공격은 정운에게 닿기도 전에 세레나의 탄탄한 방패에 막혀 버렸다. “어림없다.” “이게, 이게 이게 이게···.” 호희미는 마치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어린애처럼 억지를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때쓴다고 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다. 방어막이 사라진 호희미에게 슬기의 공격이 날아갔다. “염소접. 소화조, 화룡!!” 염소접(炎小蝶) (작은 화염의 나비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소화조(小火鳥) (작은 화염의 새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화룡(火龍) (온몸에 화염을 두른 화룡을 소환한다.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쾅!! 콰아앙!! “꺄아악··. 이게··. 머리 다 탔잖아··. 아앗!!!” 슬기의 유니크 아이템인 주작의 스테프에 깃들어 있는 화염의 환수들이 동시에 소환 되었다. 그리고 먼저 화염으로 되어 있는 작은 나비와 작은 새가 호희미에게 대미지를 주었다. 하지만 그건 슬기가 노리는 바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폭발로 시선을 가리는게 먼저였다. 진짜 공격을 상대가 피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쿠오오오!!!” 허둥거리고 있는 호희미에게 거대한 화룡이 다가가서 한입에 그녀를 물어 버렸다. “꺄아악!!!” 초고열의 화염으로 되어 있는 화룡에게 지속적인 대미지를 입으면서 호희미는 절규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왕귀인이 돕기 위해서 움직였다. 띠리리링!!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격렬한 음색과 함께 공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격렬하게 요동 쳤다. 그리고 거대한 공기의 충격파가 슬기의 화룡과 일행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실피드!!! 중간에 진공지대를 만들어!!”” 이민지는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서 왕귀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소리의 파동이라는 것은 결국 대기중에 있는 공기를 통한 울림이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서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진공의 상태를 만들어 버리면 그 충격은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안 됐군. 넌 무척 강한 타입인데····. 나하고는 상성이 너무 나빠!! 엘라임!!” 이민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왕귀인을 향해서 물의 정령와 엘라임을 통해서 공격했다. 진동으로는 쳐낼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물의 수압포가 왕귀인을 후려쳤다. “꺄아악!!!” 왕귀인은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한중겸의 공격이 더해졌다. “자이언트 스네이크!! 꼼짝도 못하게 쥐어짜 버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33화 한중겸의 명령을 받은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그대로 왕귀인을 향해서 덮쳐졌다. “으읏····.” 자이언트 스네이크에게 꼼짝달싹 못하게 봉인된 왕귀인을 보고 한중겸이 말했다. “흠···. 이건····. 모두 이 여자는 나한테 맡겨!! 내가 길들여 보겠어.” 한중겸은 오랜만에 보스몹을····. 비록 메인은 아니지만 거의 준 보스몹 급인 왕귀인을 인프린팅 시켜 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잠깐··, 형님?” “괜찮아. 할 수 있어.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어!!” 한중겸이 그렇게 외치자 정운은 순간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나중에 전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되는 건가?’ 정운이 보기에 한중겸이 월드 서버에서 보스몹을 인프린팅 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여기서는 보스몹 자체가 파우스트에게 직접 관리되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그라운드 제로의 룰에 따른다고 해도 한중겸의 인프린팅이 파우스트에게 관리되고 있는 보스몹에게 직접 통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준 보스몹이라면 어떨까? 아주 불가능 까지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될지 안될지를 떠나서 시도할 가치는 있다고 봐야 겠군. 저기는 형님에게 맡기자.’ 어쨌든 왕귀인은 한중겸, 이민지에게 맡기면 된는것 같았다. 정운과 슬기, 세레나는 호희미를 상대했고···. 나머지 한국팀은 두 팀의 백업에 있었다. 그렇게 한국팀이 호희미와 왕귀인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에 영국팀이 다이앤 여왕을 필두로 해서 옥좌를 향해 돌격했다. “받아랏!!!” 가장 먼저 도달한 마이클 핸더슨은 한 걸음에 옥좌까지 뛰어 올라서 검을 내리쳤다. 그의 검격이 달기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서 맹렬하게 내려쳐 졌다. “무례한····.” 달기는 그런 공격을 보고 몹시 불쾌하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그리고는·····. 퍼엉!! “크윽···.” 검격이 달기의 머리에 닿기 직전이었던 마이클 핸더슨이 뒤쪽으로 크게 튕겨져 왔다. 마치 해머에 정통으로 후려쳐진 것처럼 그의 흉갑은 금이 쩌적 가 있었다. “내 원탁의 아머가·· 한 방에 내구도가 거의 다 되다니···.” 마이클 핸더슨은 긴장감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가 입고 있는 방어장비는 유니크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방어력 하나만을 보면 정운이 입고 있는 드래곤 리빙 아머 못지않은 물건이었다. 원탁의 아머 방어력 : 6,500 무게 : 30 내구력 : 300 [아더왕의 충복이던 원탁의 기사들이 쓰던 갑옷의 레플리카. 대현자 멀린의 마법이 깃들어서 보통의 갑옷들보다 훨씬 탄탄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정운이 착용하고 있는 드래곤 리빙 아머의 방어력이 5,000이니 순수하게 방어력만 보면 원탁의 아머가 더 높다는 말이었다. 그런 원탁의 아머가 한방에 금이 쩌적가기 시작했다. 내구력이 거의 다 되어 간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닭 모가지 하나 비틀 힘이 없어 보이는 가녀린 여성이었지만···. 실제로는 73층의 보스몹으로서의 어울리는 힘을 파우스트에게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지금은 그 힘이 무엇인지도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 라는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달기는 권태롭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말했다. “하아···. 희미, 귀인, 너희들 둘 다 똑바로 못하겠니?” 달기의 채근에 호희미는 슬기의 화룡과 악전고투를 하면서 울먹이며 말했다. “하지만 언니···. 이 놈들은 이제까지 왔던 놈들보다 훨씬 더 강해요.” “···죄송합니다. 큰언니. 크윽···.” 화룡과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호희미는 물론이고, 왕귀인 역시 이민지에게 구속을 당한 상태에서 한중겸의 인프린팅을 견디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크윽···. 으으윽···.” “좀···. 그냥 항복 해라···. 좀····.” 한중겸은 오랜만에 부하로 삼고 싶은 몹이 생겨서 안간힘을 다해서 인프린팅을 각인 시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충격파를 남발하고 소리를 다루는 몹. 이건 확실히 앞으로를 위해서 큰 전력이 될 것 같았다. 월드 서버로 올라온 이상 한중겸의 보스몹들이 점점 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층의 수준 차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힘의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좋든 싫든 월드 서버에 있는 강력한 몹을 찾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보스몹이 안되면 퀘스트 포인트를 찾아서 그 퀘스트에서 나오는 몹이라도 길 들이려고 했던 한중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나온 왕귀인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고 말 테다.” 한중겸은 이제 오기가 생겨서라도 왕귀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 옆에서 이민지가 찝찝한 표정을 하고 있는것도 모르고 말이다. 일단 몹이기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왕귀인이었다. 그런 여자를 어떤 의미로는 세뇌(?)시키면서 열정을 불태우는 남자···. 연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보기는 힘들었다. ‘나중에 한 소리 해야겠군.’ 가면 쓰고 있는게 이럴 때 좀 불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민지였다. 어쨌든···. 달기가 보기에는 아무리 해도 두 동생들이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군···. 가끔씩은 스스로 움직여 볼까?” 그렇게 말한 달기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서 공격해 오는 영국 유저들을 보면서 우습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하찮구나. 감히 너희들 따위가 본녀에게 칼을 겨누다니····.” 달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살짝 휘저었다. 그러자···. 후우우웅!!! 마치 서유기에 나오는 나찰녀의 파초선이 이런 느낌일까? 강력한 바람과 함께 영국 유저중에 다섯 명이 뒤로 날아갔다. “크윽···.” “제기랄···. 여왕님. 괜찮으십니까?” 영국 유저들은 다이앤 여왕을 보고 안위를 물었다. 다행이도 다이앤 여왕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자신의 검을 지면에 박아서 달기의 바람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에서는 몇 명의 영국 유저들이 그녀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어머? 넌 여자가 뭐 그렇게 수수하게 입고 있니? 아! 천한 것이구나?” 달기는 날아가지 않고 있는 다이앤 여왕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감히···?” “죽여 버리겠다.” 다이앤 여왕을 향해서 천한 것이라는 말을 듣자 그녀의 심복들이 불같이 화를 냈다. “쉽게 화내는 사내들은 흥취가 떨어지니라···.” 달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자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바람이 일행에게 몰아쳤다. 다만··. 이번에는 다이앤 여왕도 그냥 있지만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 촤아악!!! 바람을 갈랐다. 아니 베었다. 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이앤 여왕의 검에는 어느새 눈부신 순백의 검기가 서려 있었다. “어머? 재미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네?” “내 유니크 스킬이지. 정령의 수호라는 스킬이다.” “흐음···. 형체 없는 바람을 베었다. 라···? 어디 이것도 벨 수 있을까?” 달기는 다시 한 번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자 부채에서 이번에는 바람 대신에 불길이 파도처럼 밀려갔다. 그러자 이번에도 다이앤 여왕은 강하게 검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녀의 순백의 섬광은 불의 파도를 베었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것처럼 그녀를 향해서 몰려오는 불의 파도가 그대로 갈라져 버렸다. “호오··. 어디 이건 어떤가?‘ 다시 달기가 부채를 휘두르자 이번에는 그 부채의 끝에서 수많은 짐승들이 뛰쳐 나와서 다이앤 여왕을 물어 뜯으려고 했다. “소용 없다!!!” 하지만 그 짐승들 역시 다이앤 여왕이 자신의 검을 휘두르자 그대로 갈라졌다. 다이앤 여왕을 지나쳐간 짐승들은 마치 환상이었던 것 철머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공격이 연달아서 빗나가자 달기는 살짝 감탄하면서 말했다. “흐음···. 아까하고는 종류도 다르고 힘도 더했는데···. 아무래도 그런건 상관없는 기술 같군.” 달기는 다이앤 여왕의 스킬이 뭔가 특수하다는 것을 알았다. 정령의 수호 LV.MAX (정령의 수호를 검에 깃들게 해서 모든 공격을 가르고 막아낸다. 적에게 주는 대미지는 늘어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공격을 검으로 베어낼 수 있다.) 공격력에 특화된 검술이 아니라 방어술에 특화된 기술. 일단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해도 모두 베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말하기에 따라서는··. 정운의 공격은 물론이고 박추성의 무한의 영사나 배대호의 독자적인 마법까지 막아 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직접 싸워볼까?” 다이앤 여왕은 검을 휘둘러서 자세를 바로 잡으면서 달기를 노려봤다. 원래 직접 전투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다이앤 여왕은 폼으로 영국팀의 리더를 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그녀가 원래 영국왕실의 방계 혈통이기는 했지만··. 사실 영국에 왕실의 방계 혈통은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인간들 태반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었는데··. 그런 인간들이 그녀를 단순히 왕실의 방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접을 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가 영국팀의 톱으로 있는 것은 그녀가 영국 서버 전체를 다 뒤져도 가장 강했기 때문이다. “아아앗!!!” 콰아앙!! 최강의 방패인 정령의 수호는 방어적인 성질 이외에도 공격적인 참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즉, 그 말은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가르면서 적을 공격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이런···.” 달기는 자신의 뒤편에 있던 옥좌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네 목숨 1,000개를 가져온다고 해도 본녀의 손길이 닿은 조약돌 하나 만큼의 가치도 없거늘···. 본녀의 궁전을 훼손한 대가를 어찌 치를 것이냐? 천한 것.” “알게 뭐야!!” 콰쾅!!! 성격 좋은 다이앤 여왕도 이 달기라는 캐릭터의 앞에서는 가시가 설 수 밖에 없는 걸까? 그녀는 다시 한 번 거칠게 달기를 향해서 검격을 휘둘렀다. 직선적인 다이앤 여왕의 검격을 달기는 사뿐사뿐한 발놀림으로 여유 있게 피해냈다. “못생기기는 했지만···. 명색이 여자라면 좀 더 우아하게 움직일 줄 알아야지. 어찌 그렇게 멧돼지처럼 움직일까? 수치심도 없는 건가?” 달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다이앤 여왕을 비웃었다. 하지만 달기는 몰랐다. 방심이야 말로 전투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최대 죄악이라는 것을 말이다. “훗!!!!” 다이앤 여왕의 몸이 순간적으로 쭈욱 늘어났다. 아니 실제로 늘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아무런 예비동작 없이 단숨에 초고속으로 돌진한 동작 때문에 그렇게 착시현상이 보인 것이었다. 촤아아악!!! 다이앤 여왕의 강력한 일격인 그대로 달기에게 쇄도했다. 달기는 이전보다 확연하게 빨라진 다이앤 여왕의 그 검격에 크게 놀랐다. “크읏···.” 달기의 입에서 처음으로 곤혹스런 신음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기는 일단 다이앤 여왕의 검격을 무사히 피해내는 것에 성공했다. 급한 소리를 낸 것과는 달리 그녀는 사뿐하게 위로 뛰어 올라서 다이앤 여왕의 검격을 피해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공격을 피한 후에 달기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조소했다. “후후···. 이건 좀 놀랐는걸? 진짜 속도는 감추고 본녀에게 재롱을 떨고 있었구나?” 달기는 오만하게 다이앤 여왕을 내려다보면서 말했고, 다이앤 여왕은 그녀대로 회심의 일격이 빗나간 것에 조금 안타까워했다. “나름 잘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이앤 여왕이 갑자기 가속한 것은 한가지 자체 버프를 발생 시켰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한중겸이 길들일 몹이 나왔습니다. 한중겸의 경우 레벨도 레벨이지만 역시 소환수를 뭘로 두느냐가 큰 차이가 되니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34화 엑셀 LV.MAX : 공격 속도를 단계별로 상승 시킨다. 총 10단계의 기어가 있으며 최종 기어가 되면 속도는 10배로 빨라진다. 단, 가속의 후유증은 유저의 몸에 그대로 남게 된다. 이것 역시 다이앤 여왕이 가지고 있는 유니크 스킬이었다. 정운의 집중력의 경우 체감 속도를 느리게 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원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정운 스스로가 원래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체감 속도가 느려지는 것만으로도 효용은 충분하다. 하지만 다이앤 여왕의 엑셀은 정반대의 개념인 것이다. 체감 속도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엑셀을 사용하는 그 순간 바로 사용자의 속도 그 자체만이 엄청나게 상승하는 것이다. 방금 전에 다이앤 여왕이 사용했던 엑셀은 3단계. 그것만으로도 속도가 세 배로 올라갔다. 공격이 순수하게 세 배는 빨라지니까 그것만 해도 대단한 효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우선은 속도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진다. 자기 속도에 휘둘려 버린다고 할까? 까딱 잘못해서 초반부터 10단계의 엑셀을 쓰면 자멸해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시속 300km로 달리는 F1머신. 그 머신에 아무나 탄다고 제대로 머신이 주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속 300km의 속도 속에서도 머신을 뚜렷하게 조종 할 수 있는 동체시력과 드라이빙 기술이 있는 드라이버가 필수적인 것이다. 그저 주행을 하는 머신만 해도 그 정도이다. 전투스킬을 사용해야 하는 유저의 경우는 오죽 하겠는가? 더구나 순수하게 속도만 비교해도 다이앤 여왕의 엑셀 스킬의 가속은 F1머신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가속 후에는 사용자의 몸에 대미지를 주기도 했다. 강제적으로 몸을 몇 배로 움직이다 보니 그 대미지가 온 몸의 근육과 관절에 그대로 남는 것이다. ‘대미지를 최소로 하고 그럭저럭 써먹을 수 있는 가속은 원래 3단계 정도까지···. 하지만 역시 이걸로는 무리인가?’ 다이앤 여왕은 회심의 공격이 빗나간 것에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이 완전히 빗나간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호호····. 어쨌든 다시는·· 응?” 말을 하던 달기는 자신의 시야에서 뭔가가 사르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뭔지 확인해 보니 자신의 머리카락이 한 줌이나 잘려서 눈앞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예리하게 잘려서 이제야 떨어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 달기는 안색이 파래졌다. “이이··· 이일··· 이런···.” 꼭 삼손이 머리 잘렸을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달기는 자신의 떨어진 머리카락을 마치 귀중한 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에 들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 하는 거냐? 고작 머리카락 가지고!!!” 달기의 태도에 다이앤 여왕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외쳤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입장에서 고작 머리카락 따위에 저렇게 쇼크를 받다니? 아무리 여자가 머리카락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다고 해도 저 정도가 되면 적에 대한 모독이다. “이이··· 감히···. 감히 이 천한 것이 본녀의 몸에 훼손을 해?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라.” 달기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웃기지 말라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머리카락 가지고 우는 소리하면··. 조금 있다가 목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 까!!!” 파아앙!!! 다이앤 여왕의 입에서 ‘까’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공기가 떨리는 소리가 났다. 엑셀 4단계. 시전자의 속도를 4배로 올리는 기술이었다. ‘한 번에 최종기어까지 올리면 몸이 못 견뎌··. 조금씩 올리면서 최대한 빨리 끝냈다.’ 다이앤 여왕은 그렇게 마음 먹고는 달기를 향해서 날카로운 검격을 날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고속으로 이동하면서 휘두른 휭 베기는 달기의 가는 허리를 베었다. 아니···. 벤 것처럼 보였다. “어리석은 지고···.” 베어진 것은 달기의 잔상. 진짜 달기는 허공으로 살며시 떠올라서 공격을 피했다. 콰앙!! 엑셀의 약점은 너무 빠른 속도로 인해서 스스로 급 브레이크나 선회가 불가능 하다는 것도 있었다. 다이앤 여왕은 있는 나름 컨트롤은 했지만 뒤쪽에 있는 기둥에 그대로 쳐박혀 버렸다. 그런 다이앤 여왕을 보고 달기가 웃었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자기도 주체 못하는 속도로 돌진다하니···. 정녕 멧돼지나 다름 없는 천한 것이구나···.” “저 년이!!! 아이스 애로우!! 멀티 싸이클!!” 영국의 하나뿐인 메이지 캐릭터인 게일 홀릭스가 마법으로 달기를 공격했다. 허공에 냉기의 구체를 띄우더니 거기에서 수십개의 아이스 애로우가 연속으로 날아갔다. “흥, 천한 것···.” 달기는 그런 공격에 피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부채를 살랑 흔들었다. 그러자 날아오던 아이스 애로우가 그대로 방향을 회선해서 다른 영국의 유저들을 노리고 날아갔다. “큭···.” “칫···.” 카카캉!!! 여기저기서 영국의 유저들은 자신에게 날아온 마법 공격을 쳐냈다. “마법을 돌려 보낸다면··. 게일, 저 년한테 마법은 함부로 쓰지 마!! 오히려 이용 당한다.” “옛!!” 달기라는 저 보스몹의 진짜 힘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법 공격에 대해서 더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역시 근거리에서 물리 공격으로 공격하는게 더 잘 먹힐 것이다. 실제로 마법 공격에 비해서 다이앤 여왕의 물리 공격은 다 피하고 있지 않은가? 피이이잉!!! “어림 없다. 다시는 본녀의 몸에 내 검이 닿지 않을 것이야.” 달기는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다이앤 여왕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사뿐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다이앤 여왕의 공격의 속도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크윽····.” 다이앤 여왕은 어느새 엑셀의 기어를 6단계로 올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기를 스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심 알고 있었다. 달기에게 무술 실력은 없다. 아마도 지금 보이고 있는 회피는 어떠한 스킬일 것이다. 자신의 공격이 빠르면 빠를수록 상대의 회피도 점점 거기에 맞춰서 민첩해 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후우···. 후우·····.” 호흡이 거칠어지고 전신에 엑셀의 대미지로 인한 여파가 발생하고 있는 다이앤 여왕을 보면서 달기는 오만하게 웃었다. “왜 그러지? 벌써 끝인가?” “···········.” “아니면 이제라도 주제를 파악한 건가? 본녀의 풍류엽무(風流葉舞)는 너 같은 천한 멧돼지 소녀가 어찌 할 수 있는게 아니란다.” “풍류··· 뭐?” “풍류엽무.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의 춤처럼 아름답고 고고한 본녀의·····.” “아, 됐어. 넌 그만 닥쳐. 아시아 비치(bitch)년아.” 다이앤 여왕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이전에 정운이나 다른 사람들을 향할 때와는 전혀 달라졌다. 항상 예의 바르고 기품 있었던 언행은 사라지고 이제는 눈에서 굶주린 늑대를 연상케 하는 사나운 투지가 일렁였다. 실제로 달기의 말을 중간에 끊은 그녀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런 다이앤 여왕을 보고 영국팀의 유저들은 자신들끼리 수근 거렸다. “어이···. 저거 혹시···.” “음···. 오랜만에 불이 붙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하도 오랜만에 보는데 영국 유저들에게 있어서 지금처럼 날이 바짝 선 다이앤 여왕의 얼굴은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뭐···. 최근 들어서는 그다지 저런 적이 없었지만 원래 다이앤 여왕은 전투중에 상당히 호전적이 성질이었다. 왜? ····어째서 영국 유저들이 그녀를 여왕이라고 부를까? 그녀가 방계 혈통이기는 하지만 영국 왕실의 피를 이어서? 아니다. 그건 사실 핑계일 뿐이었다. 원래 월드 서버에 진출하기 이 전부터 다이앤 여왕의 저 불같은 성미는 영국 유저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주변에 측근들이 아무리 말려도 잘 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 꾀를 썼다. 자고로 사람이란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 맞게 자신을 바꿔가는 생물이다. 그래서 여왕님 여왕님 하다 보면 뭔가 품격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작전은 제대로 통했다. 처음에는 쪽 팔리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던 다이앤 여왕이었지만···. 그래도 점점 주변에서 그렇게 부르면서 깍듯하게 대하자 자신도 조금씩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실제로 몸에 교양과 품격이 붙기 시작하자 정말로 여왕님 다운 느낌도 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본래의 거친 성격은 사라지고 이제는 정말로 영국 유저들의 여왕이나 다름없는 다이앤 여왕이 되었다. 하지만···. 달기라는 강적을 상대로 고전을 하고 상대의 거듭된 도발이 결국은 다이앤 여왕의 성질을 건드린 것 같았다.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나뭇잎? 그럼···. 난 그 바람도 갈라주마!!!” 피이이잉!!! 엑셀 7단계. 이쯤 오면 이제 스킬을 사용하는 것만 해도 다이앤 여왕의 몸에 적지 않은 대미지를 줬다. “흐음··. 안 돼. 안 돼.” 달기는 유유히 눈을 감고 다이앤 여왕의 공격을 사뿐하게 피했다. 어차피 달기의 경우 눈을 감든 말든 상관 없었다. 풍류엽무라는 스킬은 일종의 오토 회피 기술인 셈이다. 스킬의 발동만 멈추지 않는다면 달기 본인은 눈 감는 정도가 아니라 자고 있는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으드득····. ‘8단계···.’ 다이앤 여왕은 모세 혈관이 충혈 되어서 눈에 핏발이 섰다. 어느새 코에서도 혈관이 터져서 코피가 슬러 나오고 있었고··. 평소에 잘 정돈 되었던 금발도 묶었던 끈이 터지고 산발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이제까지의 교양적이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마치 자유롭게 초원을 달리는 아름다운 야생마를 보는 듯한···. 그런 자유로운 아름다움이 그녀에게 깃들기 시작했다. 피핏···. “응?” 달기는 자신의 뺨에서 따가운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따가운 느낌이 느껴지는 곳에 무의식 적으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손에 묻어나는 붉은 피를 확인하더니···. “이··. 이 멧돼지 녀가!!!!” 달기는 대노하면서 자신의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포락(?烙)!! 돈분(?盆)!!!” 콰아앙!!! 달기가 스킬을 쓰자 다이앤 여왕의 발 밑이 푹 꺼지면서 깊이가 20미터가 훌쩍 넘을 것 같은 구덩이가 생겼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온갖 독사와 독충들이 독니를 드러내고 다이앤 여왕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크윽···.” 독사와 독충들에게 발목을 잡힌 다이앤 여왕의 입에서 순간 곤혹스런 신음소리가 나왔다. 이제 간신히 달기에게 공격이 적중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스킬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직이다. 내가 말했지? 곱게는 죽여 주지 않겠다고····.” 화르르르···. 달기의 주변에는 벌겋게 불에 달궈진 뜨거운 기둥들이 연달아서 소환 되었다. “호호호··. 죽어랏!!!” 콰콰콰콰쾅!!! 달기의 손짓 하나에 구덩이 아래에 있는 다이앤 여왕을 향해서 불에 달군 기둥들이 미사일처럼 쏟아졌다. 포락과 돈분. 이 두 가지 모두 달기가 생전에 주왕과 함께 죄인들에게 행하던 형벌들이었다. 쇠기둥을 불에 달궈서 거기에 죄인을 태워 죽이는 포락. 구덩이에 독사와 전갈 등을 집어 넣고 거기에 죄인을 집어 던져 버리는 돈분. 중국에는 수많은 형벌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는 인권 따위하고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을 잔인한 형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포락과 돈분 만큼은 중국의 역대 제왕들도 함부로 행하지 않았다. 이 형벌들의 잔인함도 잔인함이지만 그것 보다는 이 형벌을 시행 했던게 폭군 주왕과 요녀 달기였다는 것 자체에서 저항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역사상에 폭군으로 남아있는 자들의 형벌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역시 내키지 않지 않겠는가? ============================ 작품 후기 ============================ 다이앤 여왕의 액션씬입니다. 한 번쯤은 이것도 넣고 싶었습니다. 활약이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월드 서버에서 한팀의 리더를 맡고 있습니다. 마음 먹으면 정운이라고 해도 호구로 보기는 힘든 힘을 가지고 있다. 라는 설정을 초반부터 잡아놓고 한 번도 보여 드린적이 없었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35화 <레이드의 클라이막스> 그러니··. 이 두 가지 형벌은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 와서 달기를 상징하는 스킬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흥··. 호호호호···. 꼴 좋다. 본녀에게 대항하는 년은 그 누구라도···. “엑셀··. 10단계.” !!!!!!!!!!!!!!! 공기가 순간 떨렸다. 초인의 레벨에 이른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 초고속으로 움직이거나 공격을 하면 공기가 터지는 굉음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그저 아주 잠깐··. 그야말로 0.00000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공기가 떨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순간이 지나간 후····. 후우우우웅!!!! 공격이 지나간 후에서야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그야말로 바람을 가르는 검격. 다이앤 여왕의 혼신의 일격이 그녀의 호헌을 그대로 이뤄낸 것이다. “크으윽····. 이·· 이런 말 도 안 되는···.” “날 우습게 보지 마라···.” 달기의 뒤편에는 어느새 다이앤 여왕이 지나가 있었고 달기는 왼쪽 허리에서 오른쪽 어깨까지 길게 검상이 나 있었다. 다이앤 여왕은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꼴 좋다는 듯이 그대로 의식을 잃고 떨어져 버렸다. “여왕전하!!” “이런··· 위험하다!!!” 영국의 유저들은 하늘에서 무방비하게 떨어지는 다이앤 여왕을 보고 그대로 받으려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선수를 친 사람이 있었다. “내숭떨던 모습은 다 연기였나 봅니다.” “····당신은?” “윤정철입니다. 일단 안심하시죠.” 영국 유저들 보다 한 걸음 먼저 다가와서 다이앤 여왕을 받쳤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별개 아니었다. 공격 직후에 그가 가장 다이앤 여왕과 가까이 있었다. “크흠···. 감사를 표합니다.” 다이앤 여왕은 남자에게 이렇게 정중하게 안겨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내숭 떨고는 있었지만 근본이 한 터프 하는 성격이고 주변에는 항상 자신을 여왕님 여왕님 이라고 하면서 부추기는 사람들 뿐이다 보니 당연했다. 그래서 일까? 약간 붉어진 얼굴로 감사를 표하는 다이앤 여왕의 얼굴은 상당히 부끄러워 하는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정철은 특유의 담담하고 쿨한 얼굴로 대답했다. “별 것 아닙니다. 그보다···, 이제 당신은 물러나는게 좋겠습니다. 이 정도를 했으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뒤는 당신들에게 맡기죠.” 다이앤 여왕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사실 그녀의 지금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체력 게이지는 평소의 5% 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정신력도 모두 소모 되었다. 엑셀의 최종 기어인 10단계를 사용한 여파였다. 이제까지 월드 서버에서 가장 빠른 유저는 정운조차 속도로 따라잡지를 못했던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였다. 하지만···. 이제까지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진짜 고수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비록 여파가 너무 커서 상시 사용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순수하게 한 순간 낼 수 있는 스피드의 극한점만 본다면··. 다이앤 여왕. 그녀는 진정한 스피드 퀸이었다. “이이···. 이 놈드으으을!!!” 다이앤 여왕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은 달기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까지 우아하고 고고하게 내숭 떨고 있던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사실 달기 본인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유저들의 눈에는 달기의 머리위에 떠 있는 옐로우 크리스탈이 선명하게 보였다. 체력이 어느정도 궁지에 몰렸다는 증거였다. “가만두지 않겠다.” 달기는 크게 외치면서 양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한국팀과 싸우던 호희미와 왕귀인에게 변화가 생겼다. “꺄아악··. 어·· 언니!!” “으읏····.” 호희미와 왕귀인의 몸에서 연한 녹색의 빛이 달기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둘의 힘··. 아니 둘의 존재 자체가 달기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웃···. 더·· 더 이상은··.” 호희미와 왕귀인은 비명을 질렀다. 특히 먼저 변화가 온 것은 왕귀인이었다. 그녀는 가뜩이나 한중겸의 인프린팅에 반항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달기가 자신의 존재까지 흡수하려고 하자 더 이상 인프린팅에 버틸 여력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잡았다!!” 한중겸은 오랜 시간 동안 낚시줄에 걸려 있던 거물이 드디어 힘이 빠진 것을 알았다. 당길 타이밍은 지금이었다. “인프린팅 완료!!!” 한중겸의 스킬이 왕귀인의 안에 새겨지고 왕귀인은 한중겸에게 귀속 되었다. 하지만 한중겸에게 귀속된 왕귀인과 달리 호희미는 그대로 달기에게 흡수되어 버렸다. “모두 죽여 버리겠다!!!” 호희미를 흡수한 달기는 절규하듯이 외치면서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개나 소나 거대화···응?” 달기가 거대화 되는 것을 보고 말하던 유저들은순간 달기의 거대화는 그냥 거대화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운 피부에서 금색의 털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얼굴도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이빨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변화를 마친 달기의 모습은····. “구미호?” “이따위로 나온단 말이지···?” 한영연합의 유저들 눈 앞에는 꼬리 아홉 개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구미호가 앞에 있었다. 일본에는 타마모노마에라는 대요괴의 전설이 있다. 왕을 현혹하고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여자가 있어서 음양사가 그 정체를 밝혀보니 거대 구미호였다는 얘기에 나오는 구미호가 바로 타마모노마에라는 이름의 거대 구미호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요괴얘기에서는 그 타마모노마에는 중국의 달기와 동일인물로 여기는 얘기도 같이 전해져 오고 있다. 물론 실제 역사는 물론이고 얘깃거리 자체로만 봐도 그런 연관성은 없다. 주왕과 달기의 얘기를 이야깃거리로 꾸민 봉신연의에서도 달기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애기는 없다. 아마도 [타마모노마에 = 달기] 설이 붉어진 것에는 일본인들의 상상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아시아의 중심이고 세계 최강국이었던 중국에서도 어쩌지 못한 요괴를 일본에서 봉인했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꾸미면 그 격도 한 층 더 올라가지 않는가? 어쨌든···. 실제로 달기가 구미호혔는지?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달기는 달기의 영혼을 가지고 파우스트가 가공을 더해서 만들어낸 보스몹. 아마도 파우스트로서는 달기를 구미호로 만들면 더 강력하고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뿐일 것이다. “죽어라!! 이 벌레 놈들아!!!” 콰아아아앙!!! 완전히 변화를 마친 달기는 자신의 꼬리를 거칠게 휘둘러서 주변을 후려쳤다. 달기의 꼬리는 화려한 궁전을 다 부수고 있었다. “실내에서는 싸우기 힘들어!! 밖으로 나가자.” 윤정철이 화살을 날리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 역시 동감이었다. 여기서는 무너지는 궁전의 잔해가 신경 쓰여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전원 탈출!!!” 정운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유저들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 궁전은 파괴 불가 속성은 아니었던 것인지 손쉽게 부수고 탈출 할 수 있었다. 모두가 탈출하고 나자 궁전에서 뛰쳐나온 거대한 구미호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 망할 인간놈들····. 모두 죽여 버릴테다!!!” 달기는 구미호로 변하고 나서는 성격도 완전히 변해 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칠어진 성격의 다리는 꼬리 아홉 개에서 맹렬한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그리고 뿜어진 꼬리들은 화염의 고리처럼 맹렬하게 회전을 하면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웃···.” “대단해···.” 달기의 화염은 진짜 초고열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해도 온몸이 후끈 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염에 가장 가까이 있는 달기의 모습은 고열로 일그러진 공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모두 죽어랏!!!!” 퍼퍼퍼퍼퍼퍼퍼펑!!!! 달기의 화염의 꼬리가 만들어내던 불의 고리가 사방으로 팽창하며 유저들을 공격했다. 마치 허공에서 준 핵급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공격이 오는 것과 동시에 정운을 비롯한 한영연합의 유저들은 전원 방어에 주력했다. 하지만···. “커억····. 쿨럭···.” “으윽····.” 몇몇 유저들은 달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전투 불능 사태에 빠져 들었다. 심지어 영국 유저 간운데 한명은 정말로 절명하기 직전의 사태에 직면했다. “안 돼!!!” 그런 영국유저를 구해준 것은 재빨리 날아가서 그 남자에게 힐링을 걸고 있는 슬기였다. 조금만··, 정말 1~2초만 늦었더도 죽을 뻔 했다. 하지만 슬기의 힐링을 덕분에 조금씩이지만 희생의 기미를 보이는 남자였다. “다행이다····.” 슬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그라운드 제로니까 힐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어떤 명의에게 데리고 간다고 해도 살기는 글렀을 것이다. 고오오오오오····. 하지만 방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달기의 꼬리에서는 다시 한 번 화염이 충전되기 시작했다. 한 번 더 그런 공격이 더해지면 그대로 끝이었다. 한국 팀에서도 주경택, 이보영, 이지영 등이 전투 불능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이번만큼은 배대호나 박추성도 완벽하게 동료를 지켜내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달기의 공격은 강하고 빨랐다. “크윽···. 주작!!!” 슬기는 결국 비장의 기술을 썼다. 슬기가 가지고 있는 유니크 아이템인 주작의 스태프에 있는 최고의 환수. 주작을 소환한 것이다. “끼이이이이이이이····.” 하늘에서 붉은 서광을 동반하고 나타난 주작은 그대로 거대한 구미호로 변한 달기를 덮쳤다. “크으윽···. 이 노오오옴!!!!” 달기는 주작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했지만 지금 슬기가 소환한 주작은 환수. 순수한 불꽃의 정화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모두 고개 숙여요. 잘못하면 시력이 날아갑니다.” 슬기의 주작이 어떤 스킬인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세레나가 주변에 경고했다. 그리고 그녀의 경고가 터진 직후···. 파아아아아아아아·······. 주작의 불꽃이 작렬했다. 주작의 불꽃은 달기의 화염과는 달리 거칠고 강력하게 폭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은은하고 절대적인 위엄을 동반하며 퍼져 나갔다. 마치 여명의 햇살처럼 사방을 은은한 붉은 빛으로 물들여가는 주작의 불꽃은 아름답지만 그 근원이 되는 곳에는 엄청난 초고온과 섬광을 동반하고 있었다. “크윽····. 저걸로는 부족해. 쉐도우 아미, 아스트랄 소드!!” 정운은 슬기의 주작이 달기에게 작렬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봤다. 주작의 한 방에 상대는 그대로 레드 크리스탈 상태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레드 크리스탈의 상태에서의 몹은 한 층 더 위험한 짓을 할 수도 있는 법이다. “뇌천신공!!! 단 번에 끝낸다!!!” 정운이 그림자의 장수들과 함께 300의 거검을 조종하면서 달려갔다. 파파팍!! 쾅!! 콰앙!!! 정운의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작렬했다. 황금빛 뇌전을 머금은 300개의 거검이 사정없이 거대한 구미호의 몸을 난자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 상황에서 달기의 몸이 점점 부풀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안 돼···. 이건 또 자폭한다.” 전에 빌리 더 키드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월드 서버의 보스몹은 레드 크리스탈이 되면 모두 자폭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저번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파괴력이 유저를 덮치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그 전에 끝장을 내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 전에 먼저 폭발이 일어날 것 같았다. ‘제길, 늦었어···.’ 정운은 폭발의 대미지에 각오를 굳혔다. 이렇게 된 이상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넓은 범위에 걸쳐서 방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결국 한중겸은 그녀를 겟 했습니다. 그게 나중에 어떤 수라장을 몰고 오는지는 말 그대로 나중에 따져 보기로 하고... 일단은 전투신으로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36화 정운이 자폭에 의한 피해를 각오한 그때····. 쉬리리릭!!! 정운이 자폭의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갑자기 굵은 밧줄 같은 것이 달기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리고 달기에게 날아간 밧줄은 단번에 달기를 꽁꽁 묶어 버렸다. “이건···?” 정운이 알기로 이런 솜씨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정운아!! 내가 누르고 있는 사이에 계속 딜 해!!!” 달기의 자폭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박추성이었다. 자폭의 범위를 다 억누를 수 없다고 생각한 박추성은 역으로 자폭의 근원이 되는 달기를 억누르기로 한 것이었다. 극히 짧은 순간에 이런 결단력을 내릴 수 있다는 것만 봐도 박추성의 전투 센스는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무한의 영사를 꼬고 또 꼬아서 굵은 밧줄 같은 형태로 만들어낸 박추성은 그걸로 점점 부풀어 오르는 달기를 마치 누애고치처럼 꽁꽁 묶어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정운은 박추성이 만들어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남은 전력을 모두 쏟아 부었다. 뇌전을 머금은 300개의 거검이 거대해진 달기를 난자했고, 거기에 뒤 늦게이긴 하지만 다른 동료들의 공격도 달기를 공격했다. 슬기의 주작과,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극딜까지 이어지자 드디어 누구에게도 공략당한 적이 없는 난공의 보스몹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자폭 직전이었던 달기의 몸이 드디어 터져 버렸다. 자폭으로 터진 것은 아니었다. 유저들의 공격에 드디어 한계가 온 것이다. 그리고 터지는 달기의 잔해 속에서 모든 유저들의 머릿속에 알림창이 울렸다. 띠리링!! [73층의 보스몹인 달기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74층으로 올라갈 권리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드디어 진정으로 그라운드 제로인 전인미답지에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고 나서 10년이 넘어서 생긴 일이었다. “정말로 돌파 할 줄이야····.” 한영동맹의 73층 돌파 소식을 들은 중국의 장한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김신수에게 정보를 듣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한영동맹이 강하다고 해도 실패 할 것이라는 마음도 있었다. 이제 막 73층에 올라왔는데 바로 레이드를 하는 것은 역시 무모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인가 싸워봤기에 중국팀도 달기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달기뿐만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호희미와 왕귀인만 해도 엄청나게 강했다. 이제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그렇게 고전을 했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영동맹··.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팀은 이제까지 고전하고 있던 다른 유저들이 우습다는 듯이 가뿐하게 레이드를 성공 시켰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월드 서버 최강의 팀은 한국인 것이다. 그런 한국의 잠재능력을 미리 알아보고 거기에 줄을 섰던 영국의 입장에서는 대박도 다시없는 초대박이 터진 것이고 말이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군···. 남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다.” 장한은 그렇게 말하고 홍린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그래. 지금 당장 내 서신을 미국팀에 보내라.” “알겠습니다.” 장한의 서신을 시작으로 해서 오랫동안 고착 상태에 이었던 월드 서버의 상태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74층에 진출을 성공한 한영동맹. 그들은 한창 사냥에 열중하면서 한 편으로는 퀘스트 포인트 탐색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정운과 다이앤 여왕은 양팀의 리더로서 한 가지 처리해야 할 사안이 있어서 만났다. “그럼···. 노예 신분에 있는 자들에게도 일단 74층을 어느 정도는 개방 하겠다는 거군요.” “예. 단, 순차적으로 우리에게 적극 협조를 하는 자들에게 우선 적으로 일부 지역만 개방하는 걸로 합시다.” “그게 좋겠죠. 당근도 채찍도 넘치지 않게 필요한 만큼만 주는게 길들이기에 좋으니···.” 한영동맹은 명실공이 그라운드 제로의 최선봉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가장 미묘하게 된 것인 지금 반쯤 포로 상태로 있는 삼국연합의 포로들이었다. 정운은 다이앤 여왕에게 말해서 영국 유저들이 그들과 종속의 계약을 맺을 때 일정 이상의 공헌을 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다짐 했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던 포로들이었지만···. 사실 믿건 안 믿건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종속의 계약을 거부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적으로 남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호인이라고 해도 적을 계속 살려두는 짓을 하는 유저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 없었다. 그러니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종속의 계약을 맺고 부지런히 자신들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 열심히 플레이 하는 수밖에 없던 포로들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포로들에게 비인도적인 대우도 없고, 사냥에 희생양으로 세우는 것도 아닌 것을 보면서···. 포로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적어도 약속은 지킬 상대로 판단한 것이다. 몇몇 포로들은 아애 월드 서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영동맹에 빌붙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생존책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전에 적대를 하던 세력에 빌 붙는게 마음에 걸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박쥐같은 상태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그들에게 쇄기를 박은 것이 이번에 성공한 73층 레이드였다. 이제까지 아무도 돌파하지 못한 73층의 레이드를 성공 시켰다는 것은 앞으로 한영동맹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잘만하면···. 아득하게 멀리만 보였던 게임 클리어의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박쥐처럼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던 그들이 한 마음으로 마음을 바꾸고 어떻게든 한영동맹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그냥 공헌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로비를 하고 있는 유저들도 상당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이제 한영동맹에서도 포로들의 향후 처분에 관해서 대략적인 방향을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일단 정운은 포로들 중에 몇몇 일부만을 74층에 올라오는 것이 가능하게 하기로 했다. 포로들의 입장에서는 아쉽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만 해도 포로들은 감사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레이드에 나서서 돌파한 한영동맹의 유저들에 비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74층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비록 일부 협조적인 유저들 두 셋 정도를 시험적으로 올리는 것 뿐이지만···. 그래도 그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워 할 일이었다. 그래서 포로들 사이에서는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경쟁이 치열했던 모양이다. 다이앤 여왕은 그 중에서 신중하게 심사를 해서 몇 명을 선택했다. 오늘은 정운이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심사를 하는 날인 것이다. “그럼. 세 명을 모두 부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운은 다이앤 여왕의 소개로 나타난 세 명의 유저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독일 출신의 맥 크라우스입니다. 레벨은 105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탈리아 출신의 피란츠 안드레아입니다. 레벨은 104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러시아 출신의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라고 합니다. 레벨은 120입니다.” 정운은 세 명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봤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친절하게 대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냉정하게 대할 때가 있어야 했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다르게 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조직을 이끄는 장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 정운에게 있어서 지금은 최대한 냉정하게 대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 정운의 눈앞에 있는 상대들은 팀원도 동맹원도 아니다. 그저 포로들일 뿐이었다. 그런 포로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대한다면 그때는 자상하게 보이기 보다는 만만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처음에 상하 관계를 바로 잡지 않으면 두고두고 피곤해 지는 법. 정운은 이들에게는 냉정하게 선을 그어야 했다. 정운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세 명에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이번에 74층에 오게 되는 조건은 모두들 알고 있겠지?” “예.” “예.” “예.” 이번에 올라오는 세 명은 74층에 올라오는 조건으로 지니고 있는 의무적인 부채를 훨씬 더 늘렸다. 애당초 자원자를 뽑을 때부터 이미 그런 조건을 고지했다. 74층에 올라오는 자들은 자유를 찾기까지의 부채를 훌쩍 늘릴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그런 고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로들은 서로서로가 74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미 자유로 풀려나는 것 보다는 한영동맹에 묻어가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74층에서 사냥하면 그만큼 효율도 올라갈 테니까 결국 이득은 이득이다. 정운은 긴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에게는 어렵게 보이는게 목적이었지 친하게 지내는게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활약을 기대하겠다. 하는 것에 따라서는 자유를 줄 수도 있고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줄 수도 있다.” 정운의 말에 세 명의 포로들의 눈에는 기이한 열망이 보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는 이제 별 매력이 없었다. 원래 러시아와 이탈리아는 상당한 강팀이었지만··. 이제 와서는 그렇게 강한 팀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정운이 완전히 다 뭉개 버렸기 때문이다. 때로는 뱀의 머리보다는 용의 꼬리가 더 팔자가 좋을 때도 있다. 자유를 얻어서 약소팀으로 떨어지느니 포로가 아니라 동료로 인정받아서 강팀에 남아 있는게 100배는 나았다. “꼭 기대에 부흥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필요 하신게 있으면 뭐든지 불러 주십시오.” 세 명은 정운에게 절대적인 복종의 자세를 보였다. 특히 여자인 러시아 유저는 은은하게 정운에게 추파를 던지기까지 했다. 뭐, 정운이 그 정도 추파에 통할 정도면 진작 옆에 있는 다이앤 여왕하고 사고를 쳤을 것이다. 미모만 봐도 그녀가 훨씬 낫지 않은가? “물러가라.” “옛.” “옛.” “옛.” 정운은 세 명을 물러나게 하고 다이앤 여왕에게 말했다. “일단 저들 세 명에 관한 신병은 영국에 여전히 맡기겠습니다.” “예.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한국 팀에도 사람 수가 필요하지 않나요?” 다이앤 여왕은 정운의 말에 동의 하면서도 혹시나 싶어서 의향을 물었다. 영국도 최근에 느낀 것이지만 사냥시에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것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폭으로 전력이 올라갔던 것이다. “필요는 하겠지만······. 역시 괜찮습니다.” 한국 팀에도 사람이 충원되면 나름대로 쓸모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이너스 요소도 있을 수 있다. 이미 팀이 이뤄져 있는 한국팀에게 있어서 갑작스럽게 인원이 충원되면 팀웍에 교란이 올 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팀이다. 한영동맹의 진정한 주축이 되는 한국 팀하고 접선할 기회가 되면 포로들은 필사적으로 로비를 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정운은 팀원을 믿었고 한국팀원들 중에 거기에 흔들려서 정운에게 곤란한 청탁을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가능성은 애초에 완전히 없애 버리는게 좋았다. 어쨌든 이제 할 말은 거의 다 끝냈다. 다이앤 여왕은 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좀 더 함께 있고 싶지만 저도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가 있어서···.” “아! 너무 오래 잡아두면 실례겠군요.” 정운은 다이앤 여왕을 정중하게 배웅했다. 74층은 전인미답지 답게 여러 가지 퀘스트들이 즐비했다. 이미 상당수의 유저들이 퀘스트 포인트를 찾아서 클리어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찾아 놓은게 있었지. 빨리 클리어해야겠다.’ 정운은 다이앤 여왕을 보내고 자신도 오랜만에 필드에 나가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가진게 성실연재 밖에 없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는 한데 최근 들어서 페이스가 좀 떨어졌네요. 허둥거릴 일 없도록 미리미리 잘 준비해 둬야 하는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37화 <74층의 첫 필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대동하고 오랜만에 필드로 나섰다. 사냥만 하는 것이라면 전진기지에서 그림자 장수들을 통해서 해도 충분했다. 그것만 해도 사실상 경험치가 아홉 배가 아닌가? 하지만 퀘스트는 다르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본인이 직접 자리에 있어야 했다. 공략 가능한가? 아닌가? 가 문제가 아니었다. 공략을 했다고 해도 본인이 없으면 포상이 없어질 수도 있다. 어떤 퀘스트에 어떤 보상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템이나 스킬 같은 경우 유저가 아닌 이상 습득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도 의문이고 말이다. 결국 정운은 그림자 장수들이 찾은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 슬기와 세레나를 대동하고 필드로 나왔다. “여기에요? 퀘스트 포인트라는 곳이?” “응? 아직 뭔지 확인은 안 했지만··. 플레이하던 중에 손견이 우연히 찾은 곳이야.”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커다란 고목나무 앞이었다. “이 나무가 뭔가 있나요?” “응, 원래는 비가 오는 날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슬기야. 물 좀 뿌려볼래?”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법을 썼다. “크리에이트 워터.” 크리에이트 워터 LV.MAX (허공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마법. 레벨에 따라서 생산 할 수 있는 물의 양이 달라진다.) 크리에이트 워터는 그냥 단순하게 물을 만들어내는 마법일 뿐이었다. 극한 상황이 오면 몇날 며칠 동안 한곳에 갇혀 있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가장 시급한 것은 식수였다. 그래서 일단 모든 마법사들이 가단하게 익혀는 두는 스킬이었다. 레벨도 금방금방 오르고 익혀둬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 말이다. 슬기의 손에서 물줄기가 졸졸졸 솟구쳐서는 나무를 저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에 물이 다 적셔지자 나무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으지직. 우직. 나무가 변화하더니 몽통에 사람의 얼굴과 같은 형상이 생겨났다. 그리고는···. -누구냐? 숨겨진 문을 열기 위해서 나를 깨운자가? 시건방지게도 나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공포 영화의 배경에 나올 것 같은 나무처럼 생겨서는 제법 유창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뭐, 새삼 그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숨겨진 문?” “그런 설정이겠죠. 어쨌든 계속 들어 보자고요.” 세레나와 슬기가 서로 귓속말을 하고 그 사이에 정운은 말하기 시작한 나무를 상대했다. “숨겨진 문은 뭐야?” -나의 힘을 숨겨 놓은 시련의 장소로 가기 위한 문이다. 그 문을 열겠는가? “유치한 설정하고는···.” -문을 열겠는가? “그래. 문을 열겠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재료를 모아 와라. “그걸 먼저 말하라고.” “그걸 먼저 말하라고.” “그걸 먼저 말하라고.” 정운과 슬기 세레나가 동시에 말했다. 하여튼 파우스트의 취향일까? 아니면 이 나무의 취향일까? 유치하게도 무게를 잡고는 있지만 사실 이제까지 그라운드 제로에서 잔뜩 이런 일을 겪어온 정운ㅇ로서는 전혀 놀랍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74층의 퀘스트니 난이도는 각별하겠지? 주의 하는게 낫겠다.’ 정운은 방심해서 해이해 지려고 하는 자신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나무가 말했다. -숨겨진 문을 열고 싶거든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날개와 보석 장미를 가지고 와라. “별에 별걸 다 가지고 오래···. 그게 어디 있는데?” -그건 나도 모른다. 너희들이 직접 찾아야 한다. “····싸가지 없기는···.” 정운은 일단 한숨을 쉬면서 물러났다. “아무래도 좀 시간이 걸릴 퀘스트 같아. 관문으로 진입하는 것만 해도 아이템을 두 개나 찾아와야 하고···.”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원래 퀘스트라는게 까다로우니까···. 일단 보석 장미는 몰라도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는 뭐지 알 것 같아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눈을 살짝 치켜뜨면서 말했다. “정말? 알고 있는 거야?” “예. 전에 배대호 스승님에게 마법 배우로 갔을 때 들었어요.” “아아··.” 정운은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지만 슬기는 아직도 배대호에게 틈틈이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원래 정운이 없는 사이에 세레나와 단 둘이 사냥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 했던 수행이었지만···. 정운이 돌아온 지금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아직 배대호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슬기 역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마법을 응용하고 있었다. 창조까지는 무리라도 기존의 스펠을 살짝 비틀어서 응용하는 것에는 성공한 것이다. “큼···. 얼마 전에 스승님에게 았을 때 74층의 북쪽 숲에 날개가 무지개 빛깔인 나비가 있어다고 들었어요.” “그래··.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는 그거겠군. 알았어. 당장 잡으러 가자.” “예.” 정운은 일단 북쪽의 숲지대로 가서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를 잡기로 했다. 흑토를 꺼내서 타고 가는 길에 정운은 의외의 조합을 만나게 되었다. “어? 정철이 형님? 그리고···. 다이앤 여왕님” 정운의 눈에 보인 것은 의외의 조합으로 사냥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윤정철과 다이앤 여왕. 그 둘이서 단독으로 사냥을 하고 있었다. 둘은 정운과 마주치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진정했다. “정운이 넌 오늘 동쪽으로 간다고 안 했냐?” “예. 그런데 볼일이 있어서 북쪽으로 진로를 바꿨죠. 형님은 여기서 뭐 하십니까?” 정운의 말에 윤정철은 몹시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뭐 하기는? 사냥하지? 다이앤 여왕님이 나하고 사냥을 하자고 하시더라고.” “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조심해라.” “형님도요.” 평범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진 정운과 윤정철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 둘의 입장이고···. 슬기와 세레나는 싱긋 웃으면서 다이앤 여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표정을 받으면서 다이앤 여왕은 이전에 없다는 듯이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흐음···. 의외네? 이 둘이?’ ‘어울린다면 어울리려···나? 아직 윤정철씨는 의식이 부족한 것 같지만····.’ 둘은 이미 다이앤 여왕이 윤정철을 지명(?)했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0.2초 만에 상황을 파악했다. 일전에 달기와의 전투에서 힘을 다한 다이앤 여왕을 윤정철이 받쳐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 뭔가 플레그(?)가 선 모양이다. 원래 다이앤 여왕은 정운을 노리고 있었지만···. 그건 정운에게 마음이 있다기 보다는 정운과 자신이 이어지는 것이 영국 팀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라는 계산적인 속셈이 더 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정운이 속셈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뭐, 괜찮겠지?’ 정도의 감정이었다면···. 이번에 느끼는 감정은 ‘이 남자 잡아야지.’ 라는 헌터 본능이었다. 슬기와 세레나의 눈에는 윤정철이 사탕 줄테니 누나랑 놀래? 라는 말에 낚여서 쭐레쭐레 따라가는 어린애처럼 보이고 있었다. ‘뭐···. 정운씨 한테서 떨어진다면 잘 된 거지.’ ‘마스터에게서 떨어진다면 이득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둘이 윤정철에게 그걸 말해줄 리는 절대 없지만 말이다. “슬기야. 세레나, 가자. 뭐 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스터.” “가요. 지금 가···.” 그렇게 짧고 소소한 만남을 지나서 일행은 북쪽의 숲지대로 향했다. “숲이라기 보다는···. 꼭 사탕수수 밭 같은걸?” “숲 전체에서 엄청 달작지근한 냄새가 나요. 공기가 끈적거릴 정도인 걸요?” “혹시 독이 섞였을 지도 모르니 주의하며 전진하는게 좋겠습니다.” 74층의 북쪽 지역은 이제까지 봐 왔던 어떤 필드와도 다르게 약간 독창적이었다. 나무의 숲이라기 보다는 커다란 갈대나 거대 잔디 같은 풀들의 숲이었다. 군대군대 사람 몸통만한 커다란 꽃이 좀 보이기는 했는데···. 약간 가까이 콧속에 비공이 끈적끈적해 질 정도로 단내가 확 풍겼다. 달콤한 향기도 이렇게까지 농도가 진하니 거의 악취나 다를바 없었다. “으읏···. 에어 실드.” 결국은 슬기가 바람 속성의 실드를 만들어서 공기를 정화 시켰다. 원래는 구름 형태의 독을 뿌리는 적의 공격을 막기에 적합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향기가 너무나 강렬해서 결국 이걸로 독을 걸러내듯이 냄새를 정화한 것이다. “일단은 안심인데 싸울 때는 어떻게 하죠?” 슬기의 말에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별 수 있나? 참아야지.” “역시 그런가요···?” 슬기는 한숨을 폭 쉬었다. 냄새가 강하다고 대미지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 냄새는 너무 어지러워서 의식이 훅 날아갈 것만 같은 레벨이었다. 전투중에도 주의력이 산만해 질 수 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빨리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라는게 나왔으면 하는데 말이야.” 정운의 말에 다른 두 사람도 동감했다. 그리고 그때···. 마친 저 멀리서 무지개 빛 날개를 펄럭이면 날아다니는 나비가 보였다. “저거다!!” 누가 봐도 저게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딱 겉모습만 봐도 완벽하게 무지개 빛 날개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운은 ME를 꺼내서 몹의 정보를 찍어서 확인했다. 레인보우 버터플라이. LV.160~165 [독이 포함된 인분을 날리고 바람을 공방일체로 자유자제로 이용한다. 날개는 아름답지만 직접 보면 상당히 섬뜩하다.] “좋았어!!” 정보는 정확했다. 저 녀석을 잡아서 이제 날개를 가지고 가기만 하면 사건의 반은 확인된다. “자, 준비하···. 응?” 정운은 말을 하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처음에는 눈치 못 챘는데···. 점점 가까워지면 가까워 질수록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몰랐는데 점점 가까워지니 드러난 사실. 그것은···. “뭐 이렇게 커!!!?” 레인보우 버터플라이가 엄청 크다는 것이었다. ME의 설명에 의하면 직접 보면 상당히 섬뜩하다. 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를 확실히 확인 할 수 있었다. 나비는 아름다운 곤충의 대명사 중에 하나로 꼽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엄밀히 말해서 아름다운 것은 나비의 날개 뿐이다. 나비의 얼굴을 자세하게 클로즈업 해보면 파리나 모기보다 더 기분 나쁠 정도로 그로테스크하다. 지금 정운의 앞에 나타난 나비는 몸체의 길이만 해도 10미터는 넘어갔다. 덕분에 나비의 얼굴과 털이 복슬복슬한 몸체도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이래서야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으아··. 기분 나빠라··. 쉐도우 스피어!!” 정운은 바로 처리해 버리기 위해서 즉각 공격 태세에 나갔다.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발 밑에 있는 그림자에서 그림자의 창들이 뻗어 나오면서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를 공격했다. 하지만···. 후우웅!!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는 날개를 크게 펄럭이더니 저닌에 강한 바람의 막을 만들어서 공격을 견뎌냈다. “쳇···. 그러고 보니 바람을 쓴다고 했던가? 슬기야.” “예. 저한테 맡기세요.” 적이 바람에 의지한 방어를 한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바람은 불을 더욱더 강하게 할 뿐. 불을 다루는 마법은 슬기의 특기였다. “파이어 월. 스파이럴!!” 화아아아악!! “오!!? 이거 뭐야? 슬기야?” “별 것 아니에요.” 슬기가 지금 펼친 마법은 정운도 처음 본 마법이었다. 원래 파이어 월은 높은 불의 벽을 길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슬기가 펼친 파이어 월은 둥글게 나선을 그리면서 적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마치 불로 쌓은 탑의 안에 갖힌 것처럼 되어 버린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는 그대로 슬기의 마법이 자작하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놈의 바람의 방어막은 예상대로 슬기의 불의 마법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바람을 타고 불이 더 크게 번져가기만 할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슬기도 많이 업그레이드 했죠. 처음 등장했을때만 해도 민폐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안티도 많이 사라지고 히로인으로 안착을 했습니다. 여전히 싫다는 분들도 계시지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38화 적을 완전히 구속한 슬기는 거기에 뒤치지 않고 마법을 이어서 작렬 시켰다. “염소접. 적염사.” 염소접(炎小蝶) (작은 화염의 나비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적염사(赤炎蛇) (중간 크기의 화염뱀을 소환한다. 대상을 공격하며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콰쾅!! 화르르륵!!! 열 마리나 되는 불의 나비는 작지만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아나콘다 같은 크기로 소환된 불의 뱀은 그대로 불의 탐을 타고 넘어가서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를 칭칭 감아서 땅에 떨어트려 버렸다. “크에에에에엑!!!” 나비가 어떻게 비명을 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는 매케한 연기를 내뿜으면서 그대로 사라져 갔다. 뭐 하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슬기의 마법의 연계에 죽어버린 것이다. “이건···. 와우·· 와···.” 정운은 그냥 ‘와’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슬기가 강해진 것은 알고 있다. 이번에 나온 놈이 상성상 불의 마법을 쓰는 슬기에게 약한 존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요리가 가능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정운이나 세레나는 나설 틈도 없이 슬기 혼자서 다 해치워 버린 것이다. 정운은 슬기에게 물었다. “슬기야. 너 마법을 어떻게 한 거야? 내가 알기로 그런 마법 쓰는 메이지는 본적이 없는데?” 휘어지면서 나선형의 탑을 만들어 적을 가둔 파이어 월은 처음 봤다. 염소접도, 적염사도 이전에 정운이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염소접의 폭발력도 강해졌고 원래 적염사는 길이 3미터 정도의 구렁이 정도였는데 이제는 길이기 20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거대 아나콘다처럼 변하지 않았는가? 한 번 레벨이 극한에 이른 마법이 거기서 더 업그레이드를 한다니? 이런건 정운도 처음 본 일이었다. 정운의 물음에 슬기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별 것 아니에요. 스승님처럼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내는 경지는 아니라도···. 최근 들어서 조금씩이지만 저도 스펠을 만지기 시작했거든요.” “정말?” “예. 덕분에 이 정도의 개조나 강화는 가능해진 거죠.” “···········.” 슬기의 말에 정운은 솔직히 감탄했다. 배대호에게 배웠으니 잘 해다. 라는 말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았다. 배대호는 자신의 마법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간단한 제자를 둬서 마법을 가르쳐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배대호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냥 스킬로서 마법을 익히고 스펠을 외우기만 하면 아이큐50이라도 마법을 쓸 수 있다. 그게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이었다. 쉬운 길이 있는데 누가 배대호처럼 어려운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겠는가? 이내 배대호는 자신 정도의 천재가 아니면 마법을 학문으로 익히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포기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대호의 예상을 깨고 슬기가 미약하게나마 싹을 티웠다. 물론 아직 슬기가 마법사라고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기 보다는 아직 배대호에 비하면 독수리와 병아리 만큼의 수준 차이가 났다.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슬기가 배대호 만큼의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대호는 천재다. 그 천재적인 두뇌는 지략이나 음모에 강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지식의 습득과 이해에 관해서는 한 국가에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수준의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슬기에게 그 정도의 두뇌가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웠다. 학창시절의 성적은 평범에도 약간 미치지 못했던 슬기였으니 말이다. 뭐, 그게 예능계와 양다리를 걸치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어쨌든 천재는 아니다. 기껏해야 범재 정도이지···. 하지만 그런 슬기가 배대호의 이론의 극히 일부나마 이해하고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슬기의 머리가 갑자기 좋아져서?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학창 시절에 공부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람은 성적은 오를 수 있어도 머리가 갑자기 좋아질 수는 없는 법이다. 좀 잔인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99%의 경우 그렇다. 슬기가 배대호의 마법 이론을 따라간 것은···. 정말 순수하게 근성이었다. 오로지 근성만으로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슬기가 그렇게 근성으로 한계까지 따라간 이유는 오직 한다. 정운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일념뿐이었고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랑에 눈이 멀면 엄청난 짓을 하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공통이라는 얘기인 것 같다. 어쨌든 사냥은 슬기 혼자서 다 했고··. 세레나는 잡은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보상을 확인하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마스터. 유감스럽지만 날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람의 인분이라는 것은 나와는데 말이죠.” “그래? 어쩔 수 없군 나올 때 까지 잡아보자. 슬기야 이 필드는 너한테 맡길게.” 정운은 그렇게 말했고 슬기는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맡겨 주세요.” 슬기는 평소와는 달리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갔다. 사실 슬기가 이렇게 사냥에서 주도적인 핵심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원래 올라운더인 정운과 달리 슬기나 세레나의 경우 상성상 유리한 상대가 있었다. 성기사인 세레나에게 있어서는 악마나 언데드 계열의 몹들에게 강했다. 그리고 슬기의 경우는 화염에 약한 식물계열의 몹들에게 특히 더 강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둘에 비해서 레벨이 부족한 슬기는 평소에 사냥의 전면에 나설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드물게도 슬기가 전면에서 활동하는게 가능한 몹이 나온 것이다. 항상 후방에서 정운이나 세레나에게 도움만 줘 왔던 슬기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앞으로 나서는게 감회가 새로울지 몰랐다. 슬기는 부지런히 사냥을 시작했고 정운과 세레나는 그런 슬길 보조하면서 이따금씩 튀는 어그로만 좀 잡아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어그로가 튀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새롭게 74층으로 올라 왔다는게 거의 실감이 가지 않을 정도로 사냥은 순조로웠다. 유일하게 문제가 있다면 후각을 넘어서 촉각까지 마비시키고 있는 이 지독한 단내들이었다. 어쨌든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고··. 그렇게 되기를 3시간 정도 지났을까? 거의 50마리가 넘게 레인보우 버터플라이를 잡았지만 좀처럼 날개는 나오지 않았다.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촉각, 인분, 꿀 등은 종종 나오고 있었지만 끈질기게 날개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60마리 째 쯤인가? 드디어 원하건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날개가 나왔다. “드디어 해 냈다. “길었어요···.” 예전에 정운이 시련의 탑을 클리어 할 때도 그랬지만 퀘스트에 진행하기 위해서 아이템이 필요한 경우는 굉장한 끈기를 필요했다. 일단 퀘스트에 도착하는 것 만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아이템 같은 경우 잘 나오지를 않는다. 지금처럼 하루 종일 사냥해도 한 개? 두 개? 어떨때는 몇날 며칠을 사냥해도 한 개도 안 줄때도 있었다. 정운은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날개를 인벤토리에 집어 넣으면서 다른 둘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가자. 보석 장미라는 것에 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지금은 무리야.” “알겠습니다. 마스터.” “예. 알았어요.” 슬기와 세레나도 은근히 정운의 결정을 반겼다. 솔직히 이번 사냥에서는 다른게 아니라 이 피부에 들러 붙는 듯한 달작지근한 공기가 가장 난적이었다. 사람이 더우면 습도가 올라가고 불쾌지수도 덩달아서 올라가지 않는가? 이 숲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높은 습도와 끈적한 공기는 사람을 가만히 있어도 짜증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여기서 좌선하면 간디도 화딱지 나서 누군가의 멱살을 잡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짜증나는 숲에서 계속 사냥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행은 전진기지로 가지 않고 오랜만에 스카이 타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아··. 살 것 같다.” “정말요···.” 샤워하고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 꺼내서 들이키고 나니 모든게 만족스러운 정운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온몸에 엄청나게 불쾌하고 찝찝한 느낌이 들고 있던 정운이었다. 마치 바닷물에 장시간 들어갔다가 그대로 몸을 말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씻어내고 나니 맑은 공기가 한없이 고맙게 여겨졌다. 어쨌든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날개는 얻었다. 이제 남은 것은 보석 장미라는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보석 장미라? 그건 어디서 어떻게 찾는다.” 정운이 맥주를 홀짝이면서 말하자 옆에서 슬기가 말했다. “일단 꾸준하게 탐색하는 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수배라도 걸던가요?” “으음 그래야겠지? 상점의 NPC에게 물어봐서 별 해답이 없다면 그때는 그렇게 하는 수밖에.” 보통 뭔가를 찾는것에 있어서 보편적인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보의 매수. 상점의 NPC들이나 다른 유저들에게 있어서 정보를 사는 경우다. NPC들의 경우 게임에 관해서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적당한 대가만 치르면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NPC들에게 없는 정보라고 해도 유저들 중에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수배. 뭐를 찾습니다. 라는 식으로 주변의 동료들에게 현상수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보를 가져온 사람에게 얼마간의 사례를 하고 정보를 취득한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꼬박꼬박 사례를 하면서 흘러가는 것은 일반 유저들의 경우다. 월드 서버쯤에 올라온 유저들의 경우 아주 큰 정보가 아니라면 일일이 사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박정운이면 한국팀의 리더가 아닌가? 이번에 74층에 올라온 포로들이나 영국팀의 유저들이라면 무조건 무보수로 정운에게 정보를 제공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일 정운을 좋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운에게 빚을 만들어 두려고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세상에 공짜만큼 비싼 대가는 없다고 한다. 특히 그게 정운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더 그렇다. 뭐··. 어찌 되었든 두 가지 다 해 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는 남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무조건 나올 때 까지 찾는 것이다. 다분히 노가다성이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도해도 안 되면 마지막 수단으로는 그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발 마지막 수단은 피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림자의 장수들을 동원한다고 해도 직접 탐색 같은 것은 시간이 언제까지 걸릴지 모른다. 가뜩이나 월드 서버의 필드는 지랄 맞을 정도로 넓은데 말이다. 가능하면 앞의 두 가지로 어떻게든 답을 보고 싶은 정운이었다. 며칠 후····. “다 실패네요.” “으음···. 그렇네··.” 정운은 집에서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지난 며칠 동안 보석 장미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정보를 탐색 했지만 결국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모했다. NPC들에게 물어봤지만 정보는 고사하고 힌트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모두들 74층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신들의 사냥에 주력하기 바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의 정보를 손쉽게 얻은 것만 해도 충분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쩔 수 없군··. 우리가 직접 찾는 수밖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NPC들에게 구입한 74층의 지도를 펼쳤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39화 <그 남자의 수라장> “보석 장미···. 말 그대로 보석이니까 산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겠지? 그럼 이 부근을 탐색해 보자.” 정운이 가리킨 곳은 74층의 동북쪽에 있는 산악지대였다. 높은 고산지대고 나오는 몹들도 산악지역에 관련된 몹들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일단 이 부근을 집중적으로 탐색해 보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합니까?” “그렇고 싶기는 한데···. 중겸이 형님에게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 그것보터 해결하고 가자.” “한중겸씨에게 부탁요?” 정운의 말이 뜻밖으로 들렸던 걸까? 슬기가 살짝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그런 슬기에게 저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번에 중겸이 형님이 언더 그라운드의 순찰을 도는 주간이잖아? 그런데 뭔가 사정이 안 좋아서 못가겠다고 우리보고 대신 좀 가 달래.” 말을 하는 동안 정운은 계속 우습다는 듯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런 정운의 말에 슬기가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뭔가 사정이 안 좋다라니···. 뭐가 어떻게 안 좋다는 거죠?” “응? 아아···. 그건 뭐, 자업자득이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정운이 말을 했지만 슬기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정운도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한중겸이 그런 상황이 되어 있는지 몰랐으니 말이다. “다다익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거지. 뭐···, 역시 내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말이야.” “······” “······” 정운이 그렇게 말해도 슬기와 세레나는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시점을 바꿔서 슬기와 세레나가 모르고 있는 한중겸의 사정이란 뭘까? 그것에 관해서 알기 위해서는 약간 시간과 장소를 바꿔 보겠다. 한영동맹이 73층 레이드를 성공한 직후.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층인 74층의 사냥과 탐색을 나섰다. 물론 한중겸과 이민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이 둘이 평소와 달라진 것은 이 둘의 사이에 새로운 사람(?)이 한 명 끼어들어 있는 것이었다. 눈을 살짝 감고 있기는 하지만 장님은 아니다. 여자치고는 약간 큰 키와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의 미인은 엄밀히 말해서 인간이 아니라 몹이었다. 바로 한중겸이 새롭게 손에 넣은 소환수인 왕귀인이었다. 왕귀인을 손에 넣은 한중겸에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두 개 생겼다. 하나는 왕귀인이 제 멋대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중겸이 소한수로 손에 넣었던 몹들은보스몹이라고 해도 자신의 의지가 있는 몹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인프린팅 되어 있는 한중겸의 명령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하지만 왕귀인의 경우에는 의지가 있었다. 한중겸의 명령에 제 멋대로 불복종하고 항상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이다. 물론 소환수인 이상 모든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그때그때 한중겸이 내리는 명령에는 절대 복종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때그때 뿐인 것이다. 가서 싸워라. 적의 공격을 막아라. 그런 명령에는 복종하지만 멋대로 밖으로 나오지 마라. 좀 어딘가로 가 있어라. 같은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아 지려나 했다. 별로 다른 소환수들 처럼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몹도 아닉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니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중겸 뿐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한중겸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이민지의 입장에서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이민지의 경우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그걸 입 밖으로 표현하는 성격도 아니고··. 인상을 찡그려 봤자 항상 가면을 쓰고 있으니 표정에 드러나지도 않았다. 결국 몇날 며칠이 지나도록 한중겸은 이민지의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런 한중겸의 태도가 수라장을 불러온 것이다. 그것은 어느 날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운은 보석 장미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한중겸에게 찾아왔고···. 한중겸은 오랜만에 찾아온 정운을 그냥 보내지 않고 술병을 꺼내서 둘이서 병째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던 정운이었지만 한중겸의 앞에서만큼은 마음을 놓고 술을 마시는 편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작정하고 좀 들이켰더니···. 이내 둘 다 정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다음날 아침 거실의 쇼파에서 누워 자고 있던 정운은 머리를 지끈 거리는 느낌과 함께 일어났다. “으으···. 슬기에게 가서 힐링 해달라고 해야지···.” 숙취에는 힐링이 직빵 이기는 했다. 일단 숙취라는 상태 자체가 일종의 중독에 가까운 상태니까 말이다. 몸에 남아있는 잔류 알콜이 혈관과 내장에 대미지를 주고 있는 상태가 숙취인 것이다. 힐링 한방이면 말끔하게 나아진다. 그렇게 정운이 쇼파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현관에서 누군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응? 정운이 있었니?” “어? 민지누님? 오셨어요?” 정운은 마치 아는 형님 집에서 술 마시다가 형수님에게 신세 좀 지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이민지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또 그 사람이 마시게 했지? 너무 어울려 주지 마라. 버릇될라?” “뭐, 어제는 저도 좀 잘 받더라고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겸이 형님 깨워 올게요. 아마 방에서 자고 있을 거예요.” “응. 난 아침 차려줄게.” 정운이 그렇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는 사이에 이민지는 부엌의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서 바지런하게 뭔가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얼굴에 가면만 없으면 완전 현모양처의 표상 같은 장면인데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중겸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형님. 민지 누님 오셨어요. 이제 일어···. 오··· 젠장.” 한중겸의 이불을 걷은 정운의 입에서는 절로 욕이 나왔다. 한중겸의 이불속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체로 함께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지는 새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한중겸의 소환수이기도 한 왕귀인이었다. 그녀도 나체고 별로 보고 싶지는 않지만 한중겸도 나체인 것이다. 그렇게 두 남녀가 나체로 있는 상황에 정운은 저절로 욕이 나왔다. 한편 정운의 목소리를 들은 한중겸도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음···. 정운이냐? ····어?” “···지금 어? 가 나옵니까?” “·····어어?” “나오는 모양이네요. 알기 쉽게 간단하게 말할게요. 지금 밖의 부엌에는 민지 누님이 밥 만들고 있어요. 알겠죠? 손에 칼 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 젠장.” 진심으로 동정이 가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동정은 동정이고 이런 수라장에 발 담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럼 이제 형님이 알아서 하십쇼. 저는 할 도리를 다했으니 빠집니다.”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빠져 나가려고 하자 한중겸이 재빨리 정운을 잡았다. “야. 이 치사한 놈아. 위기에 빠진 동료를 버리는 거냐?”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비정한 세계입니다.” 동료애 따위는 저 멀리 집어 던져 버리는 정운이었다.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그냥 깔끔하게 형님 혼자 죽어요!!” 정운과 한중겸이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왕귀인이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으음····.” “제길··. 어째서 네가 홀딱 벗고 나하고 같이 누워 있는 거야? 야!! 대답해?” 한중겸이 왕귀인에게 말을 하자 왕귀인은 약간 잠이 덜 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어제 당신이 저를 침대로 끌어 들였습니다. 명령에 복종했을 뿐인데 저에게 책임을 묻는 건가요? 무책임한 남자군요.” 왕귀인의 말에 환중겸은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내가 그랬을 리가 있나? 야, 정운아 너 난 믿지? 민지한테 변호 좀····.” “그라운드 제로에 경찰이 없는걸 다행으로 여기십쇼.” 정운의 얼굴에는 믿음 따위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야. 인마!!! 날 못 믿냐?” “어째 형님이 기를 쓰고 저 여자를 소환수로 하려고 하는 것 부터가 수상하기는 했습니다. 예··· 이런 용도였군요.” “아니라니까!!!!!” 한중겸은 이제 머리를 쥐어감싸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다큰 사내가 알몸으로 그런 리액션 취하는 것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눈 지대로 버렸네.’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때···. 똑똑··. “정운아. 중겸씨. 이제 밥 다 되가니 나와요.” 평범한 노크 소리가 마치 천둥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한중겸은 바로 패닉에 빠져서 허둥 거렸다. 그리고 그건 정운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여기 있다가 불똥이라도 튀면 그게 무슨 재난이란 말인가? “뭔 밥을 이렇게 빨리 차려!!?” “나도 몰라요. 전 튑니다.” 정운은 아애 창문으로 튀려고 했지만 그런 정운을 한중겸이 결사적으로 붙잡았다. “안 돼!! 지금 너까지 없으면 이 오해를 누가 풀어!!?” “그걸 제가 알바 아니죠!! 이거 놔요.” “못 놔!!!” 정운과 한중겸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기어코 문이 열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월드 들어온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월드 서버의 어느 보스몹들 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뭐 하는 거야? 밥·········.” 문을 열고 들어온 이민지는 그대로 쩌저적 하고 굳어 버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한중겸과 정운은 몹시 긴장해서 서로 눈치만 봤다. 평소에 가면을 쓰고 다니기 때문에 얼굴의 표정을 알아 볼 수 없는 이민지다. 하지만 지금은 신기하게도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그녀가 심상치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여자가 태연할까? 침대에 이불로 몸을 가린채로 나체인 상태로 앉아 있는 왕귀인. 급하게 창문을 통해서 도망가려고 하는 정운. 그리고 그런 정운을 막으려고 하는 역시 나체 상태인 한중겸. 이 상황에서 어떤 여자가 태연하겠는가?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이민지였다. “먼저 변명 할 사람?” 가면 덕분에 표정이 없어야 할 이민지였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뒤편에 분노한 염라대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마을 한 것은 왕귀인이었다. “어제 밤에 잔뜩 취한 주인이 나를 보고 침대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흑. 흑. 흑.” 마지막에 흑흑흑은 누가 봐도 국어책 정독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민지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호오···. 과연 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자기 소환수로 만들었다는 말이지?” “저도 막 그렇게 추궁한 참입니다. 민지 누님.” “정운이 너!!!?” 타이밍을 살펴서 정운이 이민지에게 착싹 달라 붙었다. “그래··. 정운이 넌 어젯밤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확실하지?” “예. 전 어제 중겸이 형님이 강제로 먹인 술에 완전히 취해서 나가떨어진 터라····.” “야!! 내가 언제 강제로 먹였어!!!?” 한중겸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지만 지금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래···. 알았다. 정운이 넌 그만 가렴. 그리고 왕귀인, 당신도 일단 꺼져.” 그렇게 이민지는 정운과 왕귀인을 보낸 후에 한중겸을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아니··. 오해라니까. 완전 오해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알잖아? 평소에 저 왕귀인이라는 소환수가 내 말을 죽어라 안 듣는 것? 그러니까 내 말을 믿어!!!!!” “실피드, 이프리트, 노아스, 엘라임.” 콰아앙!!! 그날 스카이 타운에는 사대 정령왕이 모두 나타났다. ============================ 작품 후기 ============================ 짧은 에피소드이기는 하지나 이 얘기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것 같아서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40화 <때로는 느긋하게...> 어쨌든···. 그런저런 이유로 정운의 팀이 이번에 한중겸의 몫까지 언더 그라운드의 순찰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퀘스트도 잠시 막힌 상태인데 잘 됐지 뭐. 기분 전환하는 샘으로 밑에 저층이나 돌아볼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언더 그라운드로 내려갔다. 그 옆에는 슬기와 세레나가 붙어서 함께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의 전력으로 언더 그라운드에 내려간다고 하면 그때는 언더 플레이어들이 불쌍할 정도였다. 최근 언더 플레이어들은 가능하면 몰래몰래 숨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언더 플레이어들의 사냥 층은 최대 지하 68층까지 파고 들어가 있었는데···. 예전에 62층에서 68층까지 내려갔으니 그들도 나름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주요 사냥감은 여전이 몹 보다는 유저들이었다. 일반 플레이어들이 언더 플레이어를 잡았을 때 두배가 넘는 보상을 얻을 수 이는 것 처럼··. 언더 플레이어드이 일반 플레이어를 잡았을 때의 보상도 컸다. 하지만 역시 쉽게 들키면 곤란하니 몰래몰래 유저 사냥을 하고 있는 언더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삼대 길드의 간부들의 순찰조···. 레벨 90대의 유저들이 힘을 합쳐서 비정기적으로 여기저기 순찰을 도는 그들은 언더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중간정도의 고수들은 손쉽게 정리 할 수 있었다. 언더 플레이어들도 레벨은 상당했지만 삼대길드의 순찰조에는 월드 서버에서 직접 공수해준 아이템들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우위에 서 있는 것이다. 다른 서버에서는 레벨이 90정도 되면 서서히 월드 서버로 끌어 올리려고 하는 시도를 하지만··. 한국 서버에서는 그런 그들을 이용해서 일반 서버에서의 언더 플레이어들의 견제에 이용하고 있었다. 고수들이 전부 월드 서버에 가 버리면 정작 한국 서버는 순식간에 언더 플레이어들 천지가 되어 버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강력한 아이템으로 무장한 삼대길드의 순찰조들이라고 해도 언더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간부급이 나오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가끔씩 무작위로 월드 서버에서 정운이나 다른 사람들이 내려와서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절망적일 정도로 지옥을 안겨 주는 것이다. 언더 플레이어들의 톱에 있는 김신수와 그 측근인 최수영이라면 혹 모를까? 다른 언더 플레이어들는 도저히 월드 서버의 유저들을 이길 도리가 없었다. “오셨습니까? 정운님. 슬기님. 세레나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정운이 일반 서버에 내려가자마자 일단 삼대길드의 간부들이 쫙 늘어서 정운을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모두 수고····.” 정운은 간단하게 손을 들어서 그들에게 답례를 하고 간단하게 보고를 받았다. “최근에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 다섯 개 정도를 무작위로 뽑아와.”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얼마나 머물러 계실 것입니까?” 삼대 길드의 간부의 말에 정운은 잠시 생각했다. ‘중겸이 형님 몫에·· 아마도 민지 누님 몫까지 하면 2주일 정도인가?’ “한 2주일 정도는 있을거야. 예전에 내가 살던 집에 있을 테니 뭔가 보고 할 것이 있으면 거기로 찾아 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정운은 삼대길드의 간부들에게 그렇게 전달을 한 후에 예전에 자신이 슬기 세레나와 일반 서버에서 살던 저택으로 향했다. “아아···. 되게 오랜만이네요. 거의 반년 만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여기서 살던 시절도 때때로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현대적인 분위기인 스카이 타운에 비해서 여기 일반 서버의 마을은 약간 현대적인 물품만 갖춰 놓은 중세 같은 느낌이 강했다.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정취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현대적인 도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스카이 타운 쪽이 더 익숙했다. 다만, 가끔씩이라면 잠깐 시골에 들려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스카이타운에서는 없었던 노천온천이라든가 말이다. “아아아···. 이것도 오랜만이니까 좋은데?” 정운은 온천에 몸을 지그시 담그고는 그대로 노곤함에 젖어 들었다. 예전에 솔로 플레이어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사냥 마치고 이렇게 온천물에 피로를 푸는게 정해진 일과였다. 사실 이렇게 노천 온천에서 몸을 담그는 것은 그다지 취향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정운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하니까 감회가 새삼스러웠다. “좋다····.” “정말요? 그럼 전진기지에 있는 노천온천도 사용하지 그랬어요?” “아니 거기는 좀···. 우리 식구만 쓰는 것도 아니고 누가 들어올지 모르는데···.” “흐음, 그래서 안 쓰고 있었어요?” “의외로군요. 마스터께서는 동료들과의 관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거랑 이건 별개···? 응? 슬기야? 세레나?” 정운은 그제야 자신이 몸을 담그고 있는 노천온천에 따라서 들어온 슬기와 세레나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가슴까지 몸을 온천물에 담구고 그대로 정운의 옆으로 접근했다. “어어··? 너희들?” 정운이 약간 당황하자 슬기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요? 그냥 가족탕 같은 개념으로 들어온 거니까···.” “그렇습니다. 마스터. 설마 여기서 저희 둘을 동시에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욕구가 생긴 것은 아니시겠죠?” 슬기와 세레나가 그렇게 말하자 정운은 살짝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아니 꼭 그런건 아니긴 하지만·····.” 정운은 그 동안 슬기와 세레나를 한 침대에서 어떻게 한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둘에게 실례라는 생각도 들었고 진짜 사랑하는 여자들이라면 그렇게 직업여성 상대하듯이 가지고 놀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온천에 두 여자가 동시에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어쩌란 말인가? 정운이 성인군자도 아니고 둘 다 자기 여자인데 그런 여자들이 모두 자기 지척에 알몸이 되어 있다. 눈 딱감고 욕구에 충실할 생각만 하면 두 여인들도 크게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냉정을 유지 할 수 있겠는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여기서 냉정하게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말이다. “················.” 정운은 자꾸만 둘에게 눈이 갔다. 슬기의 발그스레해진 뺨. 세레나의 매끈한 목덜미. 뿌연 온천물 때문에 보일락 말락 감질맛 나는 두 사람의 매끈한 피부···. 여기에 있는게 둘 다가 아니라 둘 중에 하나였다면 진작에 사고를 쳤을 것이다. ‘이런··· 어쩌지? 일어나고 싶은데?’ 정운은 이제 번민과 뜨거운 탕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일어나면 체면이 왕창 깎일 것 같은 느낌. 아니 확신이 들었다. “하아·····.” “으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여자라는 생물은 목욕과 쇼핑을 엄청나게 오래 할 수 있는 이상한 특기를 지니고 있다. 정운은 슬슬 나가고 싶은데 슬기와 세레나는 아직도 온천이 주는 따뜻함에 젖어서 푹 취해 있었다. 정운이 확신하건데 지금 이 둘이 일어나려면 앞으로 한 두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어쩌지? 그냥 무시하고 확 일어날까?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180도 턴을 해서 등을 돌면 신체의 이변은 들키지 않을지도 몰라.’ 정운이 그렇게 쓸데없는 작전을 짜고 있는 사이에 슬기는 서서히 정운에게 접근하더니 그대로 정운의 한 팔을 부여잡고는 자기 머리를 정운의 어깨에 기댔다. “가끔씩은 이런 것도 좋네요.” “응···. 좋지.” 정운은 곤란했다. 좋기는 좋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체온과 온천의 안락함이 하나 되어서 정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는 것 빼고는 말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비어있는 왼쪽으로 세레나도 접근해 왔다. “크흠···. 실례하겠습니다.” 슬기에 비해서 애정 표현 하는게 서툰 세레나였지만 그녀도 정운의 한쪽 어깨에 자기 머리를 살며시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두 여자가 그렇게 자신의 양어깨를 점령해 버리자 정운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이건 고문이야····.’ 남들이 들으면 참 행복하다고 할 만한 고문이기는 했다. 다음날. 정운은 본격적으로 순찰을 돌 준비를 했다. 이란 필드는 월드 서버만큼 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운이 한 층을 다 커버해서 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삼대 길드의 간부들에게 언더 플레이어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우선시해서 지명을 받았다. “그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정운님.” “으음···. 알았어.” 정운은 삼대 길드의 간부들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순찰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45층의 필드였다. 지하 45층이 아니라 지상 45층이었다. 보통 40층대에는 여러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언더 플레이어들도 그런 유저들을 노리고 PK를 하기 위해서 자주 출몰하고는 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처음 언더 플레이어들의 존재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다시는 필드에 나가지 못할 것처럼 빌빌 거리던 유저들이 이제는 언더 플레이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필드에 나가고 있었다. 어차피 그라운드 제로를 플레이하면서 노 리스크로 게임을 플레이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뻔뻔한 행위였다. 수준이 떨어지면 숫적으로 매우는 법. 요즘은 일반 플레이어들도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서 언더 플레이어들의 기습에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파티원을 증강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애당초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사냥을 해서 혹시라도 습격이 오면 조명탄을 터트려서 서로서로 힘을 함쳐서 대항한다거나···. 혹은 일부러 약한 파티원들을 미끼로 써서 언더 플레이어들을 유인하기까지 하는 등···. 여러 가지 대응책이 나와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한 결과···. 이제는 언더 플레이어들도 일반 플레이어드를 사냥할 때 나름 조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누를 수 있었던 사냥감들이 이제는 제법 반항을 하니 경계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 된다고 해도 나름대로 적응하는 법을 알아내는 생물인지도 모른다. 아스팔트를 비집고 피어나는 잡초 따위는 인간에 비하면 아주 야들야들한 풀 쪼가리일 뿐이다. 물론 그렇게 일반 플레이어들이 자구책을 마련했다고 해도 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여전히 언더 플레이어들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게 정운을 비롯한 다른 월드 서버의 유저들이었다. 언더 플레이어들이 도저히 대항 할 수 없는 절대 강자들. 그들이 가끔씩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 내려와서 순찰을 돈다. 그것만 해도 효과는 지대하다. 그렇게 해서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잘못 하면 똥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니까 말이다. “으음····. 한가하네요.” “그러게····.” “방심은 금물입니다. ····하지만 한가하기는 하군요.”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필드를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사실 중간에 몹들이 좀 나오기는 하지만 정운이나 슬기들이 뭔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히히힝!!!” 퍼엉!! “쿠웨에엑!!!!” “쿠어억!!!” 흑토가 입을 열어서 브레스를 쏴서 등장한 오크떼를 한 번에 쓸어 버렸다. 흑토의 브레스는 월드 서버에서 통할 정도의 위력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서버의 45층에 나타난 몹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흑토 만이 아니라 슬기와 세레나의 말인 백설과 세인트도 싸울 수 있었다. 흑토와 백설 세인트. 이 세 마리의 탈것만 해도 45층 정도의 몹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흑토는 신수의 반열에 들었고, 세인트와 백설도 이미 최상급의 영수로 분류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리니다. 즐감하십시오.^^ 241화 이 충직한 말들은 자신들의 주인을 등에 태우고 마치 45층 관광 패키지라도 안내하는 것처럼 안락한 이동을 책임지고 있었다. “야··. 저기 저 사람은?” “모르냐? 박정운이야. 박정운.” “그 십왕과 동급이라는 박정운?” “십왕 이상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삼대 길드에서도 박정운이라고 하면 간부들도 고개를 꾸벅 숙인다더라.” “진짜? 제기랄····. 우리는 삼대 길드에 한 번 들어가 보려고 골드 모으기도 바쁜데····.” “괜히 부러워하지 마라····. 우리 배만 아프다.” 주변에 몇몇 유저들은 정운을 보고 수근 거리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유저들 중에 50% 정도는 하루하루를 살아남기 바쁘다. 그리고 30%정도는 안정적인 길드에 들어가거나 해서 그래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크게 여유 부릴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나머지 19%정도가 삼대길드 같은 거대 길드의 이름을 등에 업고 좀 편하게 플레이를 하고 있고 말이다. 그리고 남은 1% 정도가 그래도 고수 소리 들으면서 주위의 선망을 좀 받고 산다. 그리고··. 정운은 그 1% 중에서도 다시 1%, 아니 그 이상의 존재였다. 한국 서버의 존재들은 모르겠지만 한국서버에서 뿐만 아니라 월드 서버 전체를 뒤져봐도 정운 정도의 위치를 가진 존재는 거의 없었다. 만약···. 만약 여기서 정운이 주변의 아무 유저에게 동정심이 솟구쳤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안 쓰는 아이템 하나만 던져준다면 어떻게 될까? 정운에게 있어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냥 인벤토리에 공간만 차지하는 잡템이다. 하지만 그 유저의 입장에서는 잘만 하면 몇 년 치 사냥에 해당하는 대박이 터지는 것이었다. 그만큼 지금 정운의 주변에 있는 일반 플레이어들과 정운의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나고 있었다. 보통 고수가 지나가면 하수들은 어떻게든 떡고물 하나 얻어 보려고 안달이 나야 정상이지만···. 지금 필드에서 정운을 바라보는 유저들은 그저 멀리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 거리며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독기가 많이 빠졌지만···. 하지만 원래 정운은 일반 서버에 있을 때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유저였다. 정운하고 부딪힌 길드는 반드시 해체 되었고····. 예전이 비정기 퀘스트 때 슬기와 세레나를 상대로 유저들을 선동하던 놈은 죽을뻔 했다. 슬기와 세레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법도 뭐도 없는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강자라는 것은 절대자나 마찬가지다. 죽는다고 해도 어디에 하소연 할 때도 없는데 누가 정운에게 말을 걸겠는가? 성질 더럽기로 유명하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주변에 있는 것은···. 어떻게든 콩고물이나 좀 떨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멀리 떨어지자니 아깝고 가까이 다가가서 말이나 붙여보자 싶으면 무섭고···. 유저들은 정운을 마치 걸어다니는 계륵 취급하고 있었다. 결국 그런 유저들의 행동이 정운의 심기를 살짝 거슬렀다. “좀 거슬리는데····?” 정운은 자기하고 일정 거리를 두고 은근히 따라오는 유저들을 보고 중얼 거렸다. 이건 꼭 하멜른의 피리라도 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닌가? 정운이 거슬린다고 말 하자 세레나가 정운에게 마했다. “쫒아 낼까요?” “아니. 그보다는 우리가 멀어져 버리자. 45층 정찰은 빨리 끝내야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흑토의 배를 찼다. “히힝!!!” “달려라.” 정운이 간단하게 명령하자 흑토는 알겠다는 듯이 대답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딱히 신수화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달리는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파파파파파팟!!!! 그런데 도저히 말이 달리는 효과음이 아니었다. 점점 가속하더니 종국에는 지면에서 지뢰라도 터져나간 것처럼 터지면서 흑토는 맹렬하게 달렸다. 그 옆에는 슬기의 백설과 세레나의 세인트도 열심히 달려서 따라가고 있었다. “으읏···.” “뭐 저렇게···. 빨라?” 약간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유저들은 이내 완전히 떠어져 버렸다. 이동을 위해서 마수를 타고 있는 유저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차마 흑토를 따라갈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무슨 놈의 말이 거의 시속 400km는 넘게 달리고 있는게 아닌가? 저런게 현실에 있으면 경마장이 아니라 F1레이스에 나가야 할 것이다. 흑토를 타고 달려서 한참을 이동한 정운은 45층의 인적이 드문 필드로 들어왔다. “이런··. 이러면 순찰의 의미가 없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너무 이동했나 봐요.” “뭐, 천천히 돌아보지 뭐.” 정운이 순찰을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언더 플레이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유저도 없는 곳에 언더 플레이어가 있을리가····. “거기 서라!!!” “이 X 같은 년이!!!!!” “······있네?” 정운은 한명의 여성 유저를 뒤 쫒아가는 일단의 무리를 바라봤다. 아직 정운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상대들은 사냥감인 여성 유저를 쫒아가기 바빴다. 그리고 놈들에게는 언더 플레이어의 표식이 선명하게 보였다. “운이 좋군. 놈들에게는 나쁘고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놈들과 도망가는 일반 유저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콰아앙!!! 지면을 박살내면서 등장한 정운을 보고 언더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누구냐!!?” “저승사자지.” 정운은 태연하게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대답했다. 흙먼지가 어느 정도 걷히고 정운의 모습이 나타나자 언더 플레이어들은 기겁을 했다. “박·· 박정운?” “크윽····.” “망할···. 이건 꿈이야. 악몽이야.” 사람 얼굴이 저렇게 파래 질 수 있다는 것도 어떤 의미로는 경이적이다. “꼭 내가 역신 같은 취급일세? 하긴 너희들에게는 그렇기도 하지.” 정운은 태연하게 목을 풀면서 말했다. 정운의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언더 플레이어들은 흠칫 했다. 언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월드 서버에 진출한 유저들은 최고 경계 대상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들에 관해서도 인상착의 같은 간단한 정보와 함께 방침이 내려왔다. 주경택, 이지영, 이보영, 김수민. 이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잽싸게 치고 빠져서 도망갈 생각을 해라. 그렇게 하면 이기지는 못해도 50% 정도의 확률로 살아 남을 수는 있을 것이다. 명주호, 윤정철, 한중겸, 이민지를 만나면 아무생각 하지 말고 무조건 사방으로 흩어져서 미친 듯이 튀어라. 그렇게 하면 적어도 10명에 두 세 명 정도는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박정운, 박추성, 배대호를 만나면····. 용감하게 싸워라. 어차피 도망가기는 글렀다. 라는 방침이 모두 내려와 있었다. 참고로, 슬기와 세레나에 관한 방침은 따로 없었다. 그 두 명은 정운과 찰싹 달라붙어서 행동 하는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그냥 정운의 덤 정도로 여긴 것이다. 어쨌든 지금 정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언더 플레이어들 다섯은 심각했다. 매뉴얼대로 라면 죽기 살기로 그냥 다 포기하고 덤벼야 했다. 로또 연속으로 99번 정도 맞출 행운이 따라준다면 뭔가 기적이 발생해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뭐, 간단하게 말해서 현실적으로 절대 못 이긴다는 말이지만 어차피 죽는다면 발버둥이나 쳐보고 죽는게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말은 자기일이 아닐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직접 그 상황이 되어보라. 똑같은 말이 나오나? 실질적으로 정운에게 덤비는 것은이 사실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살고자 하는 집념이 끈적끈적한 인간에게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놈들은 이미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어떻게든 살길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런 언더 플레이어들을 내버려 두고 정운은 쫒기고 있던 여성 유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정운의 말에 상대는 고개를 넙죽 숙이면서 말했다.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는 상대는 이제 보니 엄청 어렸다.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애였다. ‘이런 꼬맹이까지···. 하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인간들이 나이 가려가며 받는 것은 아니니까···.’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넘어진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아서 일으켜 줬다. “별로 감사는···? 혼자 여기서 사냥하고 있었던 중이야?” 정운의 말에 여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동료가 있었나? 어디에 있는데?” “그건······.” 울먹이면서 말을 못하는 것을 봐서는 대강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만 했다. 아마도 저 언더 플레이어를 만나서 모두 죽었을 것이다. 언더 플레이어들의 무기에 묻어있는 피만 봐도 대강 알 것 같았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정운은 다시 뒤를 돌아서 언더 플레이어들을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지. 살기는 포기해라.”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검을 꺼내자 결국 발작적으로 가장 앞에 있던 언더 플레이어가 덤볐다. “죽어랏!!!!” 쥐가 궁지에 모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한다. 하지만···. 보통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비면 그냥 발톱에 걸려 죽을 뿐이다. 촤아악!!! 지금처럼 말이다. “하나···.” 정운이 한 명을 해치우고 나머지 네 명을 처리하려고 하자 다른 네 명은 미친 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한 명이 주의를 끌자 다른 네 명은 어떻게든 최고속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사전에 받은 매뉴얼에도 나와 있듯이 정운하고 부딪혔을 때 도망가는 것은 포기하는게 좋았다. “천뢰지망!!” 정운이 활을 당겨서 하늘로 쐈다. 콰콰콰쾅!!!!! 콰왕!!! 일대에 뇌전으로 된 화살의 비가 내렸다. “크아악!!!” “아악!! 사·· 사람 살··· 커억!!!” “아아악!!!!” 일반 플레이어들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언더 플레이어들이라고 해도 정운의 입장에서는 새끼 고양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마음 머고 발로 퍽 차면 죽어 버리는 연약한 새끼 고양이 말이다. 단 한 번의 스킬로 언더 플레이어들을 전멸 시킨 정운은 쫒기고 있던 애한테 가서 말했다. “여기서 마을까지 가려면 위험하겠지. 도와주마.” “예? 아니···· 저기····.” “응? 왜?” 당황하는 애를 보고 정운이 뭐 문제 있냐는 듯이 말하자 상대는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기·····, 사례로 드릴게 없어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애의 얼굴은 사과처럼 붉어져 있었다.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렴 내가 너한테 사례를 바랄까? 그냥 무상으로 도와주는 거야.”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여자애는 다시 한 번 크게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 여자애의 레벨로 여기서 마을이 있는 포탈까지 이동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캐릭터를 보아하니 검사·· 그것도 레벨이 30이 조금 넘어가는 캐릭터 같아 보였다. 혼자서 사냥이 거의 불가능한 메이지나 궁수 캐릭터 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마을까지 가는 길은 거으 도박이나 다른 없을 것이다. 정운은 그 소녀를 세레나의 뒤에 태우면서 마을로 천천히 돌아갔다. 오늘은 일단 언더 플레이어 다섯을 해치우기도 했으니 정찰의 의미는 충분히 성공했다. 돌아가는 길에 슬기는 정운을 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왜 그래? 뭐 묻었어?” 정운은 자꾸 슬기가 자신을 보면서 미소를 머금고 있자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슬기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말 할 뿐이었다. “·············?” 정운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슬기는 지금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이 뿌듯하냐 하면 작지만 분명한 정운의 변화가 슬기를 기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전에 쓰던 노트북이 2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열심히 노력하다가 결국 맛이 갔습니다. 다행이 습관화된 백업 덕분에 작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대신 새로운 노트북이 필요해서 새로 구입을 했죠. 느끼는 점은 세가지 있습니다. 1. 백업은 중요하다. 2. 새 노트북 키감이 좀 별로다. 3. 윈도우8은 엄청 불편하다ㅠㅠ. 요 며칠간의 작업은 전부 새로운 노트북으로 하고 있는데 어째 영, 키감이 안 좋네요. 가뜩이나 많았던 오타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항상 더 좋은 글로 보답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242화 <슈퍼 럭키걸.> 정운의 성격은 확실하게 변했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예전의 날이 선 분위기는 사그라 들고 대신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슬기가 정운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정운은 몹시 차가운 성격이었다. 슬기 역시 구해 주기는 했지만 마을까지는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 그런 정운을 슬기가 설득해서 결국 마을 태워 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랬던 정운이 이제는 별 말도 안 했는데 이름도 모를 여자애를 도와주는 것이다. ‘많이 변했어···. 그리고 좋은 변화야.’ 슬기는 정운의 이런 변화가 자랑스러웠다. 슬기 자신이 발전 한 것 보다 정운이 나아진 것이 슬기는 더욱더 기뻤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꿈꾼다. 어느 날 멋진 남자가 나타나서 자신을 사랑하고 그 남자와 행복을 손에 넣는···. 뭐 좀 유지하고 현실에서는 차라리 복권을 사라.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흔하지 않은 스토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자들은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며 행복에 젖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평강공주 스토리를 꿈꾸기도 한다. 내조 잘하는 여자. 자기 남자를 자기가 육성(?)하고 발전 시켜서 출세시키는 스토리도 종종 여자들은 꿈꾼다. 그건 그것대로 여자들이 느낄 수 있는 행복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로 왕자님에게 유리 구두 하나를 ‘목표 발견. 전방에 투척’ 해서 간택 받는 것 보다는 바보 온달을 사람 만들어서 출세시키는 경우가 확률은 조금 더 높기도 하다. 애당초 문시영이라는 여자에게 상처 받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온통 날이 서있었던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이 이제 슬기와 세레나로 인해서 이만큼이나 부드러워 졌다. 결국 사람으로 인해서 입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만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여자애를 마을에 데려다 준 정운은 애를 그냥 마을에 내려다 줬다. “자. 다 왔다.” “예.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조심해라. 이런 행운이 계속 되지는 않아.” “예.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운은 여자애의 감사를 받으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일단 여기까지만 해야겠지.’ 정운이 마음만 먹으면 이 아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었다. 정운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실로 치면 한국 사람이 월에 2~3만원정도 아프리카로 송금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도의 봉사활동일 뿐이었다. 한국 사람에게는 그냥 호프집에서 술자리 한 번. 친구들하고 식당에서 밥 한끼 사는 정도일 뿐인 돈이 아프리카의 극빈국의 아이들에게는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귀중한 양식이 되는 것 처럼···. 정운이 조금만 신경 쓰면 이 여자애를 위해서 정말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 정운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 하나하나를 모두 도울까? 아무리 정운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 하다. 무엇보다 정운이 돕는 사람이 선인인지 악인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인간들 80% 정도가 대부분 제멋대로의 글러먹은 인간들 투성 이었다. 그런 인간들까지 돕고 싶은 마음도 없는 정운이었다.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애든 어른이든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하는 편이 좋았다. 그때 여자애가 정운에게 한 가지 물건을 내밀었다. “저기···. 별것 아니지만 이거라도 가져가 주세요.” 그녀는 사례라고 하면서 정운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사례는 필요 없어.”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래요. 이거··. 비싼건 아니고 마을의 상점에서 파는 건데··. 취미로 키우셔도 되요.” “·········?” 정운은 일단 그녀의 아이템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아이템을 확인한 정운은 순간 움찔 했다. 보석 장미의 씨앗. [화분에 심고 물을 뿌리자. 그럼 몇주 후에는 예쁘게 피어있는 보석 장미를 볼 수 있다.] “············보석 장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정운은 순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단서 하나 찾지 못해서 일단 뒤로 미루고 정찰이나 할까 싶어서 내려온 일반 서버였다. 그런데 설마 거기서···. 그것도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국면에서 지금 꼭 필요한 아이템을 찾을 줄은 몰랐다. ‘아니 그런데 어째서····. 이걸 월드 서버도 아니고 일반 서버의 유저가···. 그보다 이걸 상점에서 판다고?’ 정운은 여러 가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점이라면 월드 서버의 온갖 무기 상점과 특급 재료 상점까지 다 뒤져 봤었다. 그런데 일반 서버의 상점에서 구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정운은 소녀에게 직접 물어봤다. “이거 파는 상점이 있다고? 어디서 팔았는지 가르쳐 줄래?” 정운이 심상치 않은 말투로 말하자 여자애는 순간 바짝 쫄았다. “저기··. 제가 예쁜걸 좋아해서···. 그건 팬시점에서 파는 거예요. 한 개 2실버 짜리···.” “··········한 개 2실버······.”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드는 정운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필드나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어봐도 없더라니···. 설마하니 팬시점에서 파는 취미용 식물일줄은 정운도 꿈에도 몰랐다. ‘74층의 퀘스트에 필요한 아이템이 팬시점에서 파는 2실버 차리····. 이런 맹점을 노렸던 걸까?’ 이쯤 되면 허탈감에 화도 나지 않는 정운이었다. “팬시점이 뭐에요?” 세레나의 물음에 슬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으음···. 애들이 잘 가는 가게 있어요. 그나저나··. 꼭 우리가 바보 됐네요. 이러면 필드에서 아무리 뒤져도 나올 리가 없는데···.” 슬기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거기 꼬마야.” “예? 예····.” 중학생이면 꼬마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정운에게 간 크게 말대꾸는 하지 않는 소녀였다. 정운은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내가 너한테 빚을 하나 졌구나.” “예? 제가요?” “그래···.” 정운의 말에 소녀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정운은 이 행운의 소녀에게 뭔가 갚음을 하고 싶었다. 이미 정운이 그녀의 목숨을 구해줬으니 그걸로 샘샘···. 아니 그 이상으로 정운이 답례를 할 필욘ㄴ 없었다. 하지만 좀 전에도 말했다 시피 정운이 아주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이 소녀의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아이템? 아니면 골드··. 으음···.’ 정운은 뭘 해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라. 세레나, 슬기야. 애 하고 같이 좀 있어.”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소녀를 맡기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저기···. 제가 뭔가 도움을 드렸나요?” 정운이 나가고 나자 상대적으로 말을 하기 편한 같은 여자들에게 말을 하는 소녀였다. 그러자 슬기가 웃으면서···. “그래. 네 덕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단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라. 해롭게는 안 할 거야.” “예·····.” 슬기의 말에 소녀는 대답을 하면서도 주눅이 들었다. 해롭게는 안 한다는 말은 소녀도 믿었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어린 소녀라고 해도 방심을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미성년자라고 봐주거나 하는 일은 일절 없으니 말이다. 소녀는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불과했지만 그런 소녀라도 좋으니···. 아니 오히려 그런 소녀이기에 더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거래나 위협을 하는 상대는 잔뜩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소녀도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의심하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이번에는 격이 달라도 너무 다른 상대였다. 박정운이라고 하면 한국 서버에서는 엄청난 유명인이다. 하늘위에 있는 존재나 다름없는 존재가 자신에게 뭔가를 하려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뭔가를 하려고 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왜? 당연하다. 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현실로 치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고삐리 삥뜯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가 아닌가? 당연하지만 현실에 그런 대기업 회장은 없다. ‘혹시 다른 남자들이 했던 것처럼 자신을 성의 대상으로 보고·····, 는 절대 아니겠군.’ 소녀는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슬기와 세레나를 보고 다시 한 번 자신을 바라봤다. 머릿속에서 어느 소쿠리 장수가 ‘네 주제를 알아라.’ 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예쁠 수도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피부도 매끈매끈하고 머릿결도 얼마나 부드러운지 산들바람만 불어서 살랑 거리고 있었다. 저런 여자들을 둘이나 곁에 두고 있는데 자신을? 문득 고개를 숙여보면 발끝이 아니 발끝만이 아니라 발등에 무릎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고개만 숙였을 뿐인데 시야를 가리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야말로 스트레이트하게 너무나 잘 보인다. ‘하·· 하하···. 야!! 이겼다. 저 두 사람은 절대 안 보이겠지·····. 특히 금발 쪽은····.’ 슬픈 승리를 속으로 자축하는 소녀였다. 그렇게 소녀가 자괴감에 빠져서 혼자 놀고 있을 때 드디어 정운이 도착했다. “오래 기다렸지? 여기 얘에요. 각별하게 신경 좀 써 줘요.” “예. 알겠습니다. 정운님.” 정운은 혼자서 돌아오지 않았다. 옆에 다른 사람 한명을 데리고 왔다. “저기··. 이 분은?” “응? 아아··. 타란툴라 길드의 간부중에 한명이야. 앞으로 널 도와줄 사람이지.” 정운은 이 소녀의 행운에 대해서 보답으로 삼대 길드 중에 한명에게 연줄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예!!!? 저··· 정말요?” 정운의 말에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랐다그런 소녀에게 정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 사람 밑에서 꾸준하게 플레이하면 80레벨 까지는 충분히 오를 거다. 열심히 해라.” 정운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소녀는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졌다. 자신이 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정운은 그런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의 은혜를 베풀었다. 일반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삼대 길드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삼대 길드 안에서 간부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이미 신분이 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삼대 길들의 간부 중에 한 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앞으로 큰 변화를 불러올 중대한 일이었다. 소녀는 몇 번이고 정운에게 고개 숙여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새로운 보호자를 따라갔다. 정운들은 그런 소녀를 보내 주면서 피식 웃었다. “정운씨가 직접 말해서 맡겼으니 길드 안에서도 각별히 신경 쓰겠죠?” “글쎄? 난 그냥 저 애한테 이게 보답이 되었으면 할 뿐이니까···. 이제는 앞으로 저 애 하기 나름이지 뭐.” 정운은 이렇게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저건 정운이 저 소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호의였다. 어설프게 아이템이나 골드를 준다고 해서 이 애가 제대로 쓴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다거나 자칫 잘못해서 탕진해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삼대 길드의 간부라는 든든한 보호자를 만들어주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정운이 저 아이의 성장에 쓰라고 수고비도 두둑히 찔러 줬으니 각별히 신경 써서 육성을 해 줄 것이 틀림 없었다. 앞으로 저 아이가 크게 실수하거나 게으름 피우지만 않는다면 그라운드 제로에서 어엿이 한 몫을 할 수 있는 유저가 될 것이다. “훗···, 정운씨.” “응?” “사랑해요.” “새삼스럽게····.” 오늘 따라 슬기의 애정 표현이 적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저 소녀는 엄청 운 좋은 편인거죠. 사실 퀘스트 하나 해결한 단서를 찾은 정운보다 저 소녀가 훨씬 더 행운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참고로 여러분들이 조금 착가하시고 계신것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제가 쓰고 있는것은 윈도우8이 아니라 윈도우8.1입니다. 윈도우8과 윈도우 8.1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윈도우 8.1이 더 짜증난다는 겁니다.ㅠㅠ 243화 <떄로는 뒤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온 정운은 당장에 화분을 하자 가져와서 보석 장미를 심었다. 심고 물을 뿌리자 마치 컵라면처럼 금방 싹이 돋아났다. “이대로 몇주일만 돌보면 된다고 했지? 그럼 그 동안 일반 서버의 정찰이나 하고 있지 뭐.”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럼 내일은 몇 층으로 가실 건가요?” “그러고 보니 언더 플레이어의 최하층에는 한 번도 안 가봤지? 한 번 가보자.”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언더 플레이어들의 최전선인 지하 68층. 정운은 거기에 가서 적극적으로 언더 플레이어들을 몰아 붙이려고 했다. ‘어지간한 인간들이라면 신경을 끄겠는데 김신수 그 놈은 파우스트하고 연줄이 닿아 있는게 정말 거슬려···. 어떻게든 끝장을 내야 하는데 말이야.’ 정운이 최근 들어서 가장 후회하고 있는게 예전에 김신수를 끝장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놈이 진작에 파우스트하고 연줄이 닿아있는 놈인줄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장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때는 그렇게까지 엄청난 백이 있는 인간인 줄 몰랐다. ‘그러니····.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정말로 끝장을 내줘야지.’ 정운은 굳게 결심했다. 참고로···. 정운 스스로는 자각했지만 이제까지 정운이 잃게 찍어 놓고 끝장을 못 낸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으음······.” 한밤 중···. 정운은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별 이유도 없이 그냥 잠에서 깨어난 정운의 품안에는 향긋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새근새근 잠들어 이었다. 보통 정운의 품안에서 이렇게 아기처럼 잠들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슬기, 혹은 세레나. 지금 잠들어 있는 사람은 눈부신 태양 같은 금발을 지니고 있는 세레나였다. 정운은 잠시 피식 웃으면서 세레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가녀린 여성이 생전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을 이끌고 싸웠다는 것이 믿기지를 않았다. 갑옷을 입고 구국의 무게를 이 가녀린 어깨에 짊어지고 싸우던 그녀는 과연 행복 했을까? 후일 나라에 버림받고 마녀로서의 누명을 쓰고 불길의 업화에 타올라야 했던 그녀가? ‘어울리지 않아····.’ 정운에게 세레나는 그냥 세레나다. 잔 다르크의 운명이나 과거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세레나는 그냥 프랑스의 여느 시골 처녀들이 하는 것처럼 수확된 포도를 모아둔 통에서 발랄하게 맨발로 춤추고 노래 하는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언젠가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면 그녀가 그렇게 행복에 젖어있는 것도 꼭 보고 싶은 정운이었다. ‘적어도··. 적어도 지금 내 곁에서라도 네가 행복했으면····.’ 정운은 세레나의 이마에 살짝 키스한 후에 자리에서 조심 스럽게 일어났다. 별 이유는 없지만 오늘은 어쩐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세레나의 나신을 꼼꼼하게 이불로 덮어준 다음에 정운은 간단하게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오늘은 기분이 저조했다. 이런 날은 혼자서 술이라도 마시면서 그저 취하고 싶었다. 집에도 술은 있었지만 슬기나 세레나가 깰까봐 구태야 밖으로 나오는 정운이었다. 얼굴이 알려지면 골치 아프기에 인벤토리에서 간단한 가발과 선글라스를 꺼내서 변장을 한 후에 정운은 평범한 주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혼자서 조용히 마시고 싶어. 접대도 필요 없으니 술만 가져와.” 정운이 골드를 던져 주면서 말하자 점원 NPC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안내 하겠습니다.” 점원은 정운을 창가의 자리로 안내했다. 창가에 길게 늘어서서 밖의 야경을 안주 삼아서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명당이었다. ‘NPC에게도 팁이 통한다는게 신기하단 말이야. 하긴 저 사람들도 하나하나는 원래 사람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니까 당연한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로는 마을의 야경이 보이고 있었다. 현대의 야경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불빛들이 어둠에 수를 놓으며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저것도 전부 가짜일 뿐이지만 말이야.’ 정운은 오늘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정운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제까지 달려온 길을 살펴보면 때로는 이렇게 무거운 상념에 짓눌릴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참···.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을 테고 말이야.’ 정운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상념에 빠졌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기 전의 정운은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던 보통 사람이었다. 그거야···. 집은 좀 가난했고, 나름 숨겨진 진실은 있었지만 아버지 집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방해하기 전만 해도 그런건 상관없이 그냥 평범한 일생을 보내고 있었다. 대한민국 4,000만 중에 1. 그게 평범한 박정운이라는 남자였다. 그런 자신이 이제는 그라운드 제로라는 제로섬 게임에 들어와서 현재 최고 선두에서 달리고 있다. 일반 플레이어들 태반은 정운을 보고 부러워했다. 언더 플레이어들은 정운을 보기만 하면 야생에서 사자를 마주한 새끼 사슴처럼 부들부들 떤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가 되어야 끝날까?’ 일반 플레이어들은 정운을 보고 엄청 부러워 한다. 그랑운드 제로의 유저들 사이에서는 사실 왕이나 다름 없는 위치에 있지 않는가? 정운이 나눠주는 손톱만한 해택이라도 나눠 받을 수 있다면 뭐든지···. 정말 거짓말 하지 않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인간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게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정운의 위치였다. 만약 정운이 권력의 정점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타입의 인간이라면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자신의 아래에서는 선망을, 적에게서는 두려움을, 확고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서 누구보다 먼저 앞에서 달리고 있다. 그로 인해서 발행하는 우월감, 달성감.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정운이 원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좀 더···. 좀 더 소소해도 좋으니 평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게 정운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와서 멈출수도 없었다. ‘이제 74층, 100층까지는 앞으로 26층 남았다. 앞으로 26층만 해내면····. 그럼···. 모두 끝나는 거야.’ 앞으로 남은 26층. 그게 아무리 지독한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정운은 가야 했다. 이제 와서 뒤로 물러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적당히 술을 마신 후에 정운은 슬기나 세레나가 깨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정운은 오랜만에 진기한 광경을 겪게 되었다. “어이··? 거기 형씨. 잠시 우리 좀 보지?” “············나?” 정운은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자 정운을 부른 상대는 나름 위압적인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이씨···. 너 말고 누가 있어. 이 XXX야.” “XXX가 XXXX해 버릴까 보다.” “일로 안 와? 이 XXXX야.” 정운은 이 참신하기까지 한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가끔 이런 놈들이 있기는 하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마을 내부에서의 전투는 페널티가 있다. 그러니 함부로 전투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그런 방심을 노리고 이렇게 공격을 하는 놈들이 있었다. 상대는 네 명. 정운은 슬쩍 놈들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흠····. 사냥에 실패해서 겁을 잔뜩 먹고 결국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 도박장에서 가진 돈을 다 꼴아 박고 이제는 어떻게든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 페널티고 뭐고 안중에도 없이 골드를 모으자. 라는 상황인 건가?” 정운의 말에 놈들은 크게 당황했다. 정운이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당연하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XX새끼가!! 알면 당장···.” “하나 물어보자.” 정운은 놈들을 향해서 뜬금없이 질문을 하나 했다. 사실 이런 녀석들 위협은 전혀 되지 않는다. 하룻강아지 네 마리가 호랑이에게 멍멍 짖어대고 있는 것 뿐이다. 술취한 호랑이의 시각에서는 귀엽다고 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정운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질문을 하자고 하니 놈들은 오히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런 놈들에게 정운이 질문했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너희들 무슨 소원 빌려고 여기에 왔지?” “이 새끼가 정말!!! 야 확···.” 띵!!! 정운은 놈들의 눈앞에 골드 하나를 던지면서 말했다. “대답하면 주마.” “·················.” “·················.” “·················.” 정운의 말에 놈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그러가다한명이 말했다. “뭐····. 난 나중에 부자 될려고···.” “나도, 난 부자에 나중에 예쁜 여자도···.” “난 정치판에 진출하고 싶은데··. 그렇게 해서 권력이라는 것도 좀 휘둘러 보고··.” “난 대기업 회장같이 출세 한 번 해보려고 했다. 이제 됐냐?” 정운은 놈들의 판에 밖힌 대답을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러냐?” 눈앞에 있는 놈들이 원하는 것은 세속적인 부귀영화였다. 뭐.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넣고 싶은 것들이기는 하다. 실제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녀석들 대부분이 이 놈들하고 비슷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말이다. “뭐···. 열심히 해 봐라. 자, 이건 약속한 돈이다. 치료비로 써라.” 정운은 놈들에게 10골드씩을 건냈다. 그걸 보고 놈들은 순간 반색을 했다. 하지만 놈들 중에 한명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치료비? 그게 무슨···.”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말을 하던 놈이 본 것은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서 거꾸로 들고 있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 후에는 그저 작신나게 맞았다는 것 밖에는 기억에 없었다. 정운은 애송이들을 야들야들하게 다져놓고 집으로 가면서 중얼 거렸다. “부귀영화 따위를 악마의 힘으로 이루려고 하지 마····. 이 멍청한 놈들아···.”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는 정운의 뒤편으로는 양아치 네 명이 처참한 몰골로 누워 있었다. 여담이지만···. 정운이 놈들에게 준 돈은 정확하게 치료비로 딱 맞게 날아갔다고 한다. 실로 신기에 가까운 구타 능력이라고 하겠다. 몇 주일 후····. “그럼···. 이제 퀘스트 진행하러 갈까?” “예. 여기 보석 장미도 준비 됐어요.” 정운은 이전에 찾아둔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보석 장미를 가지고 말하는 나무를 찾아갔다. 슬기가 다시 한 번 물을 불러서 나무를 푹 젖게 하자 나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한 재료는 모두 가지고 왔나? “그래. 여기 레인보우 버터플라이와 보석장미. 두 개다 고생했다고.” 하나는 사냥하는 사냥터 자체가 불쾌했고, 또 하나는 설마하니 팬시점에 팔고 있는 잡템인 줄은 몰랐던 정운이었다. 팬시점 같은 곳··. 그라운드 제로를 100년을 플레이 한다고 해도 정운인 제 발로 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등잔 밑 중에서 등잔 밑이었던 것이다. -음, 수고했다. 두 가지 재료를 나에게 다오. 그럼 문을 열어주지. 나무는 그렇게 말 하면서 입을 쩌억 열기 시작했다. 정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 아이템 두 개를 말하는 나무의 입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나무의 입에서 포탈이 생성 되었다. 이제야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장소로 들어갈 자격이 생긴 것이다. “좋아. 가자!!”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대동하고 퀘스트의 안으로 들어갔다. 퀘스트의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커다란 돔의 안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척 봐도 100개는 넘을 것 같은 문이 있었다. “이건···. 이 중에 하나를 골라. 라는 건가?”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리는 순간 정운에게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퀘스트 양산박의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08개의 문중에서 일인당 다섯 개의 문에만 도전 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의 문을 동시에 여러 명이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각 문을 지키고 있는 시험관에 따라서 시험의 내용과 보상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양산박 아이디어 주신분에게 감사하니다. 다만 양산박의 경우 보스몹으로 하는것 보다는 퀘스트로 하는게 더 좋을것 같았습니다. 사실 송강을 보스로 하고 그 부하 108명을 돌파해야 하는 보스몹도 생각은 해 봤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건 좀... 캐릭터가 너무 많으면 비중 맞추기도 어려워서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244화 <양산박 퀘스트.> 알림창을 다 읽은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과연···. 그렇단 말이지? 양산박의 호걸들이라··. 그럼 이 문의 숫자도 딱 108개 겠군.” 정운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슬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세어 볼 필요도 없겠네요.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람들을 좀 많이 불러올 걸 그랬어요.” 슬기의 말에 정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사실 일회성 퀘스트만 아니라면 지금 나가서 새롭게 사람들을 불러도 괜찮은데 말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마스터. 지금 안에 들어온 우리만이라도 최대한 퀘스트를 잘 클리어 하는 수밖에는····.” “그건 그렇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의 문을 주욱 둘러봤다. 일단 겉보기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었다. 그냥 모두가 평범한 문일 뿐이었다. ‘이럼 완전 복불복인데···. 어쩌지? 자칫 잘못해서 꽝만 뽑으면 골치 아픈데?’ 정운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사실 수호지의 호걸들이라고 해도 다 쓸모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들만은 아니었다. 전투에 있어서 특화된 자들도 있지만 사실 별 다른 특기가 없는 인간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수호지의 수령의 자리에 앉아있는 급시우(及時雨) 송강만 해도 그렇다. 그 남자는 사실 양산박의 수령의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벼로 할 줄 아는 것은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처럼 인덕이 많고 그냥 좋은 사람이었다. 라는 것 정도의 특징만 있을 뿐이다. 뭐, 하나의 조직을 이끌고 있는 인간에게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는 것도 큰 조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인덕 같은걸 그라운드 제로에서 어디다 써 먹겠는가? 아무런 쓸모도 없다. 뭐, 송강이 어떤 보상을 줄 지야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쓸모 없는 인간은 송강 뿐만이 아니다. 지다성(智多星) 오용 이라는 자는 책사다. 뭐, 그 시대에서 군대가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직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능력이다. ‘가능하면 좀 난폭해도 거친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좋겠는데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문에서 무너가 특징이나 신호를 찾아내기 위해서 신중하고 꼼꼼하게 문을 살폈다. 그러기를 30여분 가량 지났을까? “무리. 절대 무리. 아무런 특징도 없어. 그냥 복불복으로 찍는 수밖에···.” 정운은 포기했다. 뭔가 실마리 하나라도 잡았다면 이렇게 두 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 문들에게서는 아무런 힌트도 없었고 아무런 특징도 없었다. 그냥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일단 먼저 들어가 볼게. 두 사람은 여기서 기다려 줘.”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당부하고 눈앞에 있는 문 하나를 잡고 들어가려고 했다. “조심해서 다녀 오십시오. 마스터.” “절대 방심하면 안 되요.” 세레나와 슬기는 그런 정운을 다서 걱정되는 표정으로 배웅했다. 정운이 강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게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의 안이었다. 절대 방심은 금물이었다. 하긴 그건 정운이 더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금방 돌아 올거야. 대신에 내가 오기 전에는 절대 두 사람끼리 아무 문에나 도전 하지 마.”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쾅! 정운이 안에 들어가고 나자 잠시 후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알아서 문이 닫겼다. 문이 닫히고 나서 정운의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 뿐이었다. “이대로 계속 있는 것은 아니겠지? 뭔가 변화가 있을 텐데····.” 정운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주변이 환해지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사라지고 주변의 환경이 변했다. “여기는··? 절인가?” 정운은 변화한 주변을 보고 지금 여기가 어느 경내의 안뜰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호지에 절이라··. 누군지 대강 알 것 같은데 말이야.” 이렇게 대 놓고 힌트를 주는데 알아채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아미타불···. 시주가 나의 시험을 받기 위해서 온 자이요?” 정운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건장한 체구의 스님이 한명 서 이었다. 불제자 치고는 무척 위압감 있게 생긴 얼굴, 커다란 체구와 한 손에 들려있는 선장은 척 봐도 상당히 두꺼운 것이 한 무게 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노지심입니까?” 정운의 말에 노지심이라고 불린 남자는 합장을 하면서 말했다. “그렇소. 본인이 화화상(花和尙) 노지심이오.” “흠···. 척 봐도 그렇게 보이는 군요.” 정운이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의 호걸 108명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지심의 경우는 이름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어다. 노지심. 본명은 노달이라고 하며 광시 출신이다. 그는 원래 위주 경략부에서 제할(提轄)이라는 직위에 있었다. 제할이란 치안 유지가 본업으로 오늘로 보면 경찰의 서장 정도하고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직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정도라는 악인을 때려서 죽이고 그 후에 살인자로 쫓기게 되었다. 그렇게 쫓기던 중에 오대산의 문수원이라는 절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고 거기서 지진장로라는 주지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승려가 되었다. 하지만 천성이 거칠고 난폭한 노지심은 불계를 거듭 범하고 결국은 불상을 파괴하기까지 했다. 스승인 지진장로는 노지심을 감싸주려고 여러 가지로 손을 썼다고 하지만 결국 사람 이라는게 제 갈 길을 가는 걸까? 노지심을 결국 그 후에 표자두 임충과 연이 닿고 이리저리 인연이 흐른 끝에 양산박의 호걸에 합류하게 된다. 뭐··. 한 마디로 말하면 성질 무진장 급한 스님겸 산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정운은 노지심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절 시험한다고 했죠? 뭘 어떻게 할 까요?” “허허···. 성격이 화급한 시주로군. 이렇게 만난 것도 부처님의 인도인데 얘기라도 좀 더 하고 시작하는게 어떠한가?” “노 땡큐.” 정운은 단칼에 거절했다.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이라고 하면 역사적으로 봐도 엄청 유명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만난 것 치고는 정운의 대응은 너무나 평범했다. 얼굴에 심드렁 이라고 써져 있는 정운의 표정에는 감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당연했다. 역사적 유명인이라면 이미 잔뜩 만나봤다. 월드 서버에서 상대한 잭 더 리퍼, 빌리 더 키드, 알 카포네, 그리고 달기까지···. 이미 역사적 위인이 나온다고 해서 신기하다. 라고 바라볼 짬밥은 한참 전에 지났다. 아니, 애당초 월드 서버의 보스몹까지 갈 것도 없다. 정운이 부하로 데리고 있는 그림자의 장수들만 해도 후한 말에 활동한 명장들이 아닌가? 하나하나가 이름만 말하면 세상에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 그런 자들이다. 심지어 정운이 품에 안고 사랑을 하는 여자는 잔 다르크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제와서 노지심 정도야 뭐···. 그냥 길거리 일반인이나 다름 없게 느껴지는 정운이었다. “뭐, 시험을 바란다면 그렇게 하지.” 정운이 무덤덤하게 시험이나 하자고 하는 통에 노지심은 조금 심통이 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대답 없는 정운을 향해서 말을 이었다. “내 관문에서는 시주의 불심을 시험해 보기로 하겠네.” “불심? ········어떻게 말입니까? 좌선이라고 합니까?” 정운은 종교가 불교도 아니고···. 당연히 불심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없었다. 그런데 없는 불심을 어떻게 시험한다는 건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운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후우웅!!! 노지심은 자신의 선장을 양손으로 잡고 크게 휘둘러서 정운을 겨누면서 말했다. “자!! 덤비게 나의 수미신장으로 그대의 불심을 시험해 보겠네.” “······뭘로 뭘 어쩐다고요?” 정운은 반쯤 얼이 빠진 얼굴로 말했다. “못 들었는가? 나와 나의 수미신장을 상대로 자네의 불심을 보여주게. 자 와라!!!!” “··············.” 한 마디로 싸워서 이기라는 건데 그게 불심하고는 무슨 상관일까? 눈과 머리를 동시에 반짝반짝 거리고 있는 노지심의 얼굴은 몹시 진심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척 봐도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인데···. 차라리 싸우는게 낫지.’ 정운은 노지심이 요상 야릇한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차라리 싸우는게 더 쉬웠다. 정운은 자시의 창인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들어서 노지심을 겨누고 자세를 잡았다. “하하하···. 내 말을 이해 한 모양이군.” “아니. 이해는 전혀 못했지만···. 어쨌든 합시다.” “좋다. 간다!!!!” 콰아아앙!!!! 노지심은 정운을 향해서 거칠게 소리 지르면서 선장을 내리쳤다. 두 사람의 거리는 한참 떨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지심의 일격은 지면을 가르면서 정운에게 날아왔다. “쉐도우 월!!” 정운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방어막을 세워서 막았다. 콰앙!!! 적의 공격을 막아낸 정운은 그대로 옆으로 돌아서 노지심을 향해서 돌격했다. “뇌천신공!!!” 정운의 몸에서 황금빛의 뇌전의 기운이 일어났다. 그걸 보고 노지심은 반색을 하면서 말했다. “헛!! 뇌신이냐!? 좋구나!!!” “으아아아!!!!” 콰콰쾅!!!! 정운과 노지심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음···? 시작한 모양이에요.” “그렇군요. 그나마 전투를 시작한 흔적이라도 여기서 알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정운이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간 이후에 슬기와 세레나는 문 밖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지만 정운과 노지심이 격돌하기 시작하자 그 굉음이 두 사람이 있는 곳까지 전해졌다. 덕분에 정운이 전투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의 모습은 꼭 아내가 아이 낳으러 병실에 들어간 후에 병원 복도에서 기다리는 남자들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정운의 실력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정운의 실력을 걱정하는 것은 쥐가 고양이 생각하는 격일 것이다. 그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 이라는게 어디 그렇게 쉽게 안심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렇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안에 들어가서 자신이 싸우는게 속 편하지 않을까? 싶은 두 사람이었다. ‘제발 무사하세요····.’ ‘이기십시오. 마스터····.’ 두 여자는 애간장만 태우고 있었다. “아아앗!!!” “핫!!!” 콰쾅!! 쾅!!!! 정운과 노지심이 정면에서 격돌한지도 50여 합이 흘렀다. 그렇게 공방이 지속 되어도 두 사람은 전혀 지칠줄을 몰랐다. 공격은 점점 빠르고 정교해져 갔다. 닿는 것은 다 으깨버릴 것 같은 노지심의 선장이 정운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바위라도 꿰뚫어 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정운의 창이 노지심의 가슴팍을 아깝게도 빗 맛췄다. 콰아아앙!!! 한 차례 강력한 공격을 서로 교환한 후에 정운과 노지심은 서로 거리를 벌리고 떨어졌다. “후후후···. 하하하하하하···. 과연, 대단한 불심이로군. 그런 실력은 어디서 쌓았나?” “불심하고는 아무 상관···. 아니 됐지. 알 것 없습니다. 그냥 실전에서 익힌 정도입니다.” 정운의 말에 노지심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도장에서 얌전하게 배우기만 해서는 그런 실력이 안 나오지. 무른 진정한 불심이란 목숨을 걸고 모든걸 부딪히는 실전에서 쌓을 수 있는 거야.” “·············.” 전 세계의 불제자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 물고 항의할 헛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는 노지심이었다. ‘아무래도 파우스트에게 개조 당하면서 뭔가 심각한 조작을 당한 것 같아.’ 정운은 노지심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감탄도 하고 있었다. 저 이해 할 수 없는 정신 구조는 어찌 되었든 간에··. 노지심의 실력은 진짜인 것이다. 정운은 중국식 창술이나 봉법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상당한 자신이 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2월 분량도 휴재 없이 계획하고 있던 페이스로 연재가 가능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월달도 잘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45화 허구 헌날 대련 상대로 삼아서 연습 하는게 여포, 장비, 관우, 조운, 전위 등등의 쟁쟁한 무장들이었다. 이런 자들과 대련을 하면서 중국식 무술에 관해서는 상당히 익숙해진 정운이었다. 만약 지금 현실에 가서 중국 무술의 달인이라는 자들과 대련을 해 보면 눈 감고 한손으로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사실상 자신의 그림자에 깃들어 있는 장수들 수준이 아니면 누가 상대라도 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노지심이라는 남자는 실질적으로 후한 말 무장들에 비해서도 크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장비보다 좀 약하지만 관우보다는 강한 힘. 조운보다는 좀 느리지만 여포만큼은 빠르다. 전위 보다 연속 공격은 느리지만 태사자 보다는 더 기술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 정운의 그림자에 있는 장수들 중에서도 이 남자에게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여포 정도 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후우···. 내가 무인이고 당신하고 일대일 대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즐거울 텐데 말이죠.” 정운의 말에 노지심은 이해 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그대는 즐겁지 않은가?” “미안하지만 난 이 퀘스트의 클리어에 관심이 있을 뿐. 과정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습니다. 그러니···. 장비, 관우.” 정운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더니 거기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응? 방금 뭐라고·····.” 당황하는 노지심에게 정운이 쇄기를 박듯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무인간의 결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저인 제가 몹인 당신을 쓰러트릴 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며 동시에 관우 장비와 함께 노지심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크윽··. 이런 사술을···.” “사술이건 뭐건!!!?” 노지심은 억울하겠지만 이건 무인의 결투가 아니다. 이기면 그만이다. 이기면 말이다. 정운은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섬광처럼 뻗었다. 노지심은 그걸 피하기 위해서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리위로 올려놓은 선장을 휘둘러서 정운을 후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부웅!!! 카앙!!! 바람을 가르며 내려가던 노지심의 선장은 장비의 사모창에 가로 막혔다. -놈···. 힘 꽤나 쓰긴 하는구나. 장비는 자신의 사모창에 걸린 묵직한 감각에 살짝 감탄했다. 장비가 상대의 완력에 이렇게 감탄한 것은 생전에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형님인 관우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여포, 그리고 무승부로 그쳤던 마초 정도였다. “으으윽····.” 노지심의 팔뚝에 핏줄이 선명하게 솟구쳤다. 그래도 장비의 사모창을 눌러서 정운을 공격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그걸 정운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핫!!” 다시 한 번 빠르게 뻗은 창은 이번에 노지심의 목을 노렸다. 노지심은 힘을 주는 와중에도 그걸 보고 한손을 뻗어서 정운의 창을 맨손으로 잡아냈다. 푸우욱!!! 비록 한 손으로 잡기는 했지만 정운의 창의 기세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 노지심이었다. 정운의 창은 노지심의 어깨에 깊숙하게 박혔다. 그리고 어깨에 창을 박은 정운은····. “뇌천신공!! 최대출력!!!” 파지지직!!!!!! 노지심의 몸속에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박은 상태에서 뇌천신공의 전력을 최대로 올렸다. “크아아악···· 으아앗!!!” 노지심은 자신의 몸 안에서부터 타오르는 뇌전의 대미지에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최후의 역전승을 노리고 집념으로 몸을 움직였다. 부우웅!!!! 거의 선장이 육중한 무게감을 자랑하면서 정운의 머리를 노리고 내려쳐 졌다. 몸속에 창을 박아두고 있는 지금이라면 정운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운이 자신의 공격을 보면서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노지심은 승리를 확긴했다. ‘이겼다.’ 하지만···. -날 너무 무시하는 군. 서걱!! 정운은 피할 수 없는게 아니라 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관우의 언월도가 허공에 섬광을 번뜩였고···. 그 섬광은 노지심의 허리를 반으로 절단해 버렸다. 정운의 뇌천신공에 의한 대미지에 이어서 터진 크리티럭 대미지. 노지심도 거기에는 버티지 못했다. 띠리링!!! [노지심의 시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운의 머릿속에 알림창이 울리고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인대 무인의 결투로 했다면 이렇게 간단하게는 못 이겼겠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난 그런 행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정운의 목적은 오로지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이거 졌구만 졌어. 설마하니 관왕과 그 의제인 장비까지 수호신으로 가지고 이을 줄이야. 이래서는 내 불심도 미처 못 미치는게 당연하지.] 눈앞에 흐릿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 노지심을 보고 정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삼대일로 졌는데 별로 분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응? 전혀···. 승패에 번잡하게 이견을 말할 정도로 졸장부는 아닐세.] “·····뭐 좋습니다. 그럼, 약속하신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지. 자네의 불심에 대한 보답으로 나의 힘을 자네의 무기에 담아주겠네.] “불심은···. 아니 됐습니다.” 세상에는 말 해서 통하는 사람이 있고 말 해도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 척 봤을 때 알아야 했다. 노지심은 말해도 절대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전에 이 인간에게 경전을 가르칠 생각을 했던 스님이 굉장하다.’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노지심은 자신의 손에서 옥색의 구체를 만들어서 정운의 무기인 룽기누스의 레플리카에 집어 넣었다. 띠리링!! [무기가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룽기누스의 레플리카가 항마신창(抗魔神槍)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정운의 알림창에 무기가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건····. 호오, 무기 업그레이드는 오랜만인 걸?” 정운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이건 정운으로서도 뜻밖의 호재였다. 월드 서버에 올라오고 나서도 정운은 무기를 딱히 업그레이드 하지 않았다. 지금 쓰고 있는 장비보다 좋은 장비는 간간히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이 쓰고 있는 장비도 충분히 좋은 장비라서 그렇게 큰 폭으로 뭔가 변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손에 익은 무기를 버려서 전투 스타일을 바꾸기에는 정운이 지금 너무 절정기였다. 그래서 장비 체인지를 망설이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장비의 업그레이드가 될 줄은 몰랐다. 정운은 인벤토리를 열어서 무기의 속성을 자세히 확인해 봤다. 일단 겉보기에는 변한게 거의 없었다. 창 전체에 은은한 백광이 서려있기는 했지만 무게 중심이나 길이 등은 전혀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항마신창(抗魔神槍) 공격력 : 8,000 무게 : 50 내구력 : 500 스킬 : 대치유 (하루에 한 번 모든 대미지를 무효로 돌린다. 사용하고 나면 24시간 동안 쿨 타임을 지닌다.) 천계 (하루에 다섯 번 강력한 방어막을 사용 할 수 있다.)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업그레이드해서 항마의 힘을 깃들게 한 신창. 언데드, 데몬, 스피릿 계열의 적들에게 이명적인 위력을 발휘하면 착용자의 체력을 분당 5%씩 회복 시킨다.] “좋군···. 훨씬 좋아졌어.” 전체적인 공격력이 1,000이나 올랐다. 거기에 유니크 아이템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킬도 두 개나 붙어 있었다. 심지어 원래 룽기누스의 레플리카가 가지고 있던 이점도 그대로 살아있었다. “슬기하고 세레나가 걱정하겠다. 빨리 가야지.” 정운은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슬기와 세레나가 정운은 기다리고 있었다. “정운씨!!!” “마스터, 다녀오셨습니까?” 두 사람의 인사를 받으면서 정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덕분에 무사히····.” 정운은 두 사람에게 안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서 설명했다. “일단··. 퀘스트의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아. 보상도 쓸만한 것 같고 말이야.” “그렇군요···. 제가 동양의 역사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노지심이라는 남자는 기본적으로 양산박에서 서열이 높은 자였던가요?” “글쎄···. 사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크게 낮지는 않다고 알고 있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면서 한 번씩 시도 해 보기로 하죠.” “그래···. 최소한 적의가 있는 자들로는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그래도 주의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특히 슬기야. 넌 메이지 계열이기 때문에 일대일에서 약한 면을 보이기 쉬워. 그러니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슬기는 정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운은 그래도 슬기가 몹시 걱정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해 주고 싶었다. ‘양산박의 호걸들은 내가 처음에 삼국지의 무장들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약점을 자지고 있어. 스킬에 약하지. 시련의 탑에서는 액티브 스킬을 일절 사용 할 수 없었기에 고전했지만···. 여기서는 그래도 그런 페널티가 없어서 다행이야.’ 만약 그런 페널티가 없었다면 정운은 절대로 슬기와 세레나가 이 퀘스트를 진행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정운들은 순조롭게 돌아가면서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시작했다. 정운이 노지심을 클리어 한 후에 세레나가 도전한 문에 있던 사람은 쌍창장(雙槍將) 동평이라는 남자였다. 원래 수호지에서도 풍류를 즐기기로 소문난 남자였고 여자에 대한 집착도 강한 편이었다. 그 남자는 세레나를 보자 한눈에 반했다. 죽어도 제 버릇 못준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는 바로 세레나에게 승부를 빙자한 작업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이기면 나의 아내가 되어서 여기서 함께 살아 주시오.” 당당하게 두 자루의 창을 겨누면서 말하는 모습은 자기 딴에는 호쾌하고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에 대한 세레나의 대응은····. “······죽어.” 세레나가 그라운드 제로에 오고 나서 작정하고 열 받은 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잠시후에····. “누님, 평생 따르겠습니다.”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동평은 세레나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승부는 일방적이었다. 동평이 약한 상대는 아니지만 상성이 너무 나빴다. 세레나의 방패는 동평의 두 자루의 창을 막고는 순식간에 제압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화풀이로 작신나게 밟아버린 것이다. 결국 쌍창장 동평은 세레나에게 귀속 되어 버렸다. 맞는 도중에 뭔가 신세계(?)에 눈을 뜨는 것처럼 반응하더니 통째로 자기 자신을 세레나에게 던져 버린 것이다. 보상 운운하는게 아니라 아애 자신이 세레나에게 소환수로 귀속되어 버렸다. 세레나는 얼떨결에 정운이나 한중겸처럼 소환수가 생겨 버렸다. 소환계열의 스킬이나 유저가 엄청나게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레나로서는 럭키였다. 세레나 다음 차례는 슬기였다. 슬기가 들어간 장소는 어떤 의미로는 꽝이었다. 신기군사(神機軍師) 주무라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원래 양산박에 들어오기 전에도 소화산의 첫째 도령으로 산적이었다. 하지만 산적답지 않게 머리를 잘 썼으면 특히 진법에 관해서는 따를 자가 없다고 했다. 후일 양산박에 지다성 오용과 더불어서 양대 책사로 활동하게 되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는 슬기에게 장기 승부를 청했다. 슬기는 장기 따위는 둘 줄도 모르는데 말이다. “저기···. 다른 것 하면 안 될까요?” “다른 승부는 흥미 없소.” “·········예.” 결국 슬기는 졌다. 장기말의 움직임도 모르는 상태로 막 배워서 장기를 뒀는데 이기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다만, 목숨이 걸린 승부가 아니었기에 큰 페널티는 없었다. 그저 쓸쓸히 돌아올 뿐이었다. “하아···. 죄송해요.” “아니. 별 피해 없으면 됐어. 앞으로 네 번이나 더 있잖아.” 정운은 풀이 죽어서 돌아온 슬기를 위로했다. ============================ 작품 후기 ============================ 수호지 팬인 저로서는 항번쯤 양산박의 인물들을 다뤄 보고 싶다고 생각 했습니다. 3월달에도 열심히 성실연재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46화 일단 한 바퀴가 돌았고 다시 정운의 차례가 되었다. 다음에 정운이 들어간 장소를 지키고 있는 자는 낭자 연청이라는 남자가 지키고 있는 장소였다. ‘···여자인 줄 알았네···.’ 연청을 봤을 때 정운이 느낀 것은 정말 정말 엄청난 미소년이라는 것이었다. 연청. 이 아름다운 청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만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노준의가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년을 거둬서 종으로 삼았는데 너무 총명해서 자기 자식을 키우듯이 정성을 쏟아서 키웠다고 한다. 그에 관해서는 문무를 겸비하고 일을 처리함에 빈틈이 없다. 라는 평가가 있었다. 양산박이 중대한 전략을 펼칠 때는 예외 없이 꼭 한 다리 걸쳤다고 할 정도의 남자이다. “제 시험을 받으실 상대가 당신입니까?”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저는···. 당신과 음율을 겨루도록 하죠.” “음···율?“ “예.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연청의 말에 정운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기 밖에 있는 다른 사람 불러오면 안 될까요?” 정운은 제발 이 시험에서 슬기가 나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연청은 서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것도 운명이죠. 당신의 음율이 저를 감동시킨다면 당신의 승리입니다.” “··············.” “자 시작하죠.” 결국 승부는 시작되었다. “응? 이건···?” “초음파? 아니 마치 지옥의 망자가 누군가를 저주하는 듯한 소리군요.” “적의 공격일까요? 정운씨가 걱정되는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서운 공격이기는 하지만 마스터라면 능히 견뎌낼 것입니다.” 정운이 관문에 들어가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여자는 뭔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운은 졌다. 낭자 연청이 화나서 다시 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을 정도였다. 뭐, 어차피 다시 재도전도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제길···. 차라리 힘으로 밀어 붙이는 시험이 좋겠다···.” 정운이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오자 슬기와 세레나가 정운을 위로했다. “졌어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맞습니다. 밖에서 듣고 있던 저희도 괴로울 정도의 공격이었는데 용케도 버티셨습니다.” “·················.” 오해는 거듭해서 깊어져갔다. 어쨌든 다시 슬기의 차례가 와다. 슬기가 다음으로 들어간 장소에 있는 사람은 슬기로서는 행운이었다. “난 신화장군(神火將軍) 위정국이라고 하오.” 슬기가 마주한 상대는 수호지에서도 화공의 대가라고 불린 남자였다. 불을 워낙에 잘 다뤄서 신화장군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화공에 뛰어난 자였다. 그는 원래 조정쪽의 인물로 원래는 양산박을 공격하는 관군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 대도 관승에게 설득 당해서 양산박의 일원이 된다. “나는 불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오. 그러니 어디 한 번 겨뤄 봅시다.” “···장기보다는 훨씬 제 취향이군요.” 그렇게 두 사람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슬기는 주작의 스태프에서 불의 환수를 소환해서 상대하기 시작했고 위정국은 자신의 주변에 500개의 불씨를 소환했다. 그것 하나하나는 생전에 그가 화계를 다루기 위해서 철저하게 훈련 시켰던 500의 부하들을 상징하는 힘이었다. 쾅!!! 콰콰쾅!!! 불과 불의 결투. 모든걸 태워 버릴 것 같은 결투는 30여분 동안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승부가 났을 때···. “대단하군···. 그대는 이미 나 보다 불을 잘 다뤄.” “과찬입니다.” “여기 나의 힘을 가져가게.”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의 정수를 모아서 하나의 반지를 만들었다. 띠리링!! [신화장군의 수호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화염 속성의 공격에 대한 강력한 내성을 얻었습니다.] 슬기는 예쁜 홍옥으로 이뤄진 반지를 잡아서 상태를 확인해 봤다. 신화장군의 수호. 방어력 : 500(불 속성 공격 방어력 : 50,000) 무게 : 5 내구력 : 200 [신화장군의 불에 대한 수호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맨몸으로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아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불에 대한 저항력이 올라간다.] “와····. 불 속성에 대한 방어력이라고는 해도 방어력 50,000이라는 건 처음 봤어.” 정운의 드래곤 리빙 아머의 방어력은 5,000이다. 즉 이 반지의 방어력은 화염 속성에 관해서는 그 열배에 달하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슬기로서는 이전의 실패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큰 대박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커다란 폭음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정운도 크게 기뻐해 줬다. “다행이야. 그리고 그 아이템은 앞으로도 크게 쓸모 있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정운이 슬기의 성공을 기뻐하는 사이에 세레나 역시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좀 정상적인 인간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 전에도 그녀는 강력한 소환수를 하나 손에 넣었지만····. 어쩐지 마음에는 안 들었다. [“누님. 더 야멸 차게 바라봐 주세요.”] [“누님. 밟아 주세요.”] [“아···. 누님····.”] 부르르르·····. 세레나는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었다. 생전의 수많은 전쟁터에서도 느껴 본적 없는 생소한 공포였다. ‘제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인물이기를····.’ 세레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 안에 들어갔고 그녀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냐!!? 나하고 한 판 붙으려고 하는 놈이? 아니 년이!!!?” “···········하아···.” 한숨부터 나오는 세레나였다. 검은 피부에 양손에 들려있는 쌍도끼. 그리고 괄괄한 성격까지···. 세레나는 척 봐도 사대가 정상(?) 하고는 거리가 무척 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 이름은?” “내가 바로 흑선풍 이규다. 어디 둘 중에 하나가 죽을 때 까지 싸워보자!!!” 세레나가 걸린 상대는 양산박 최대의 또라이였다. 흑선풍 이규. 주로 삼국지의 장비에 비유되기도 하는 남자인데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또라이다. 송강에 대항 충성심이 뛰어난 이 남자는 행동이 너무나 거칠고 술버릇이 고약해서 양산박에서도 자주 트러블을 일으켰다. 송강이 죽을 때 자신이 죽으면 이규의 난폭함을 다스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독주를 나눠주며 같이 죽었다고 한다. 이규는 그런 송강의 말을 듣고도 기꺼이 독주를 마셨다고 할 정도로 송강에 대한 충성심이 맹목적이었다고 한다. 뭐, 한마디로 나쁜 쪽 으로나 좋은 쪽으로나 장비보다 더 막나가는 인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놈은 쌍도끼를 거칠게 휘두르면서 세레나를 향해서 달려 들었다. 세레나는 다짜고자 달려드는 이규의 공격을 보면서 방패와 검을 들고 맞서 싸웠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죽어랏!!!!!!!” 콰쾅!! 쾅!! 쾅쾅쾅쾅쾅!!! “·····뭐 이런 인간이···?” 이규의 공격을 막으면서 세레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생전에도 이 그라운드 제로에 오고 나서도 이렇게 난폭한 공격을 본적은 없었다. 형식도 없고 절도도 없다. 짐승의 발톱처럼 사납게 휘둘리는 도끼질은 무술이라기보다는 그저 폭력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무술의 도나 예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오로지 순수한 폭력. 이규의 쌍도끼는 세레나로서도 생전 처음 감당해 보는 공격이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이렇게 싸우는 남자가 또 있을까?’ 세레나는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감탄했다. 난폭한 폭력도 이 정도의 영역까지 승화시키니 어설픈 무술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세레나는 적을 얕보지 않고 방패에 힘을 주고 공격을 막아갔다. “으아아아아아!!!!!” 콰콰쾅!!! 콰앙!!! 극도의 공격성대 최강의 방어력. 세레나와 이규의 공방은 엄청나게 오래 끌어가기 시작했다. 100합. 300합. 이윽고 500합이 넘어갈 무렵····. “헉·····. 헉·····.” 쉬지 않고 공격하던 이규의 공격이 드디어 끝났다. 어깨로 거칠게 숨을 쉬고 있는 이규의 모습을 보면서 세레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잘 살리지를 못하다니···. 아쉽군.”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의 검이 지친 이규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서 떨어지려는 찰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누님!!!” 세레나의 아공간에서 급하게 동평이 나타나서 세레나를 말렸다. “왜 그래?” “이 녀석 이래보여도 친해지고 나면 나쁜 녀석은 아닙니다. 누님. 저하고 같이 거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동평은 여자를 밝히고 다소 촐랑거리는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리는 깊었다. “동평 형님?” “그래. 이규야. 나다. 네 황급한 성격은 죽어서도 안 고쳐지는 구나.” “형님? 지금 그 계집 밑에 있는 거요?” “계집이라니. 내가 누님으로 모시기로 했으니 너에게도 누님이시다.” 동평이 엄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세레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말이 통할리가····.” “누님. 이규라고 합니다. 철우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 통했다. 세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동양의 의형제라는 개념이 잘 이해가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레나는 두 번 연속으로 소환수를 손에 넣었다. 그것도 동평과 이규라는 강력한 소환수를 말이다. 각각 두 번씩 양산박의 관문에 도전한 후에 정운과 슬기는 1승1패. 그리고 세레나만이 2연승을 했다. “대단하잖아? 소환수는 그 존재만으로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정운이 그림자의 무장으로 날마다 9배의 경험치를 쓸어 담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세레나도 그런 소환수를 둘이나 손에 넣은 것이다. 뭐, 정운처럼 그림자를 베이스로 하는 불사신은 아니었고 정신력의 소모도 상당하겠지만 그래도 대단히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뭐···. 가능하면 좀 더 정신머리가 제대로 밖힌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누님. 제가 어때서····.” “누님. 다음에는 송강 형님한테 갑시다. 송강 형님요.” “······하아.” 세레나는 소환수의 주인이 아니라 애 둘 떠맡은 보모가 된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제는 다시 내 차례다.” 정운은 세 번째로 도전을 했다. 그 문안에 있는 상대는 이번에는 소이광(小李廣) 화영이라는 남자였다. “화영이라고 하오.” “아···. 박정운입니다.” 만나자 마자 정중하게 포권을 하면서 인사를 하는 상대를 보고 정운도 일단 예의를 차렸다. 화영의 모습은 무장일기 보다는 절개가 꼿꼿한 선비 같은 모습이었다. 등에 매고 있는 활과 입고 있는 무복이 아니라면 무장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정도였다. 척 봐도 남자다움이 물씬 풍기는 인상을 하고 있는게 남자가 봐도 멋있는 남자였다. 어떤 의미로는 이제까지 만났던 상대들 중에서 가장 제 정신인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치를 시험은 뭡니까?” “저는 궁술로 시험을 보고자 합니다.” “궁술····. 하나만 물어 보죠.” “말하시오.” “그거 꼭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거요?” “·····무슨 말이오? 여기는 나하고 당신밖에는 없소.” “아니 내 말은···. 황충!!” -부르셨습니까? 주군. 나타난 황충을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여기 있는 삼국지 최고의 명궁하고 겨룰 배짱이 있으냐는 말이오.” 정운의 말에 소이광은 이를 드러내며 크게 만족하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죽어서 호강을 하는군. 후배가 인사드립니다.” -음···. 소이광이라면 작은 이광이라는 뜻인가? 이름을 보아하니 자네도 활 꽤나 쏘는 모양이군? “한수 배워 보겠습니다.” ‘내 예상대로 되어가는 군.’ 정운은 대강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산박의 호걸들이라면 삼국지가 크게 유행하던 송나라 시대의 인물들이다.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그림자에 깃들어 있는 장수들을 잘 활용하면 큰 이득을 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따. 이번에는 그게 정통으로 통한 것이다. ‘어차피 궁술 시험에서는 황충이 못 이기면 나도 못 이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247화 그렇게 해서 시대를 초월한 후한 말 최고의 명궁과 양산박 최고의 명궁이 승부를 겨루기 시작했다. 승부의 심판은 정운이 공정하게 보기로 했다. 이 둘에게 있어서 가만히 있는 과녁에 화살을 맞추는 것 정도는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가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그래서 정운은 현대의 클레이 사격을 응용해서 난이도를 높였다. “총 열 개의 과녁을 발사하고 둘이 동시에 활을 당겨서 맞추면 이깁니다. 열 개 중에서 더 많이 맞춘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하죠. 둘 다 불만은 없겠죠?”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렇게 승부는 시작되었다. 과녁은 정운이 직접 던졌는데 지금 정운의 괴물 같은 운동능력으로 던지는 과녁은 시속 300km를 가뿐하게 넘어갔다. 콰앙!!! 쾅!! 그런 괴물 같은 속도의 과녁을 둘은 한 발도 놓치지 않고 모두 맞추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홉 개의 과녁을 던졌을 때 스코어는 황충 5개 화영 4개였다. ‘여기서 하나만 더 맞추면 이기는데 말이야.’ 정운은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과녁을 던졌다. 파팡!!! 과녁이 던져지고 두 번의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화영이 황충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제가 졌습니다. 이제까지 내심 궁술에 자신이 있었는데 선배님 궁술을 보고 나니 하늘위에 하늘이 있다는 거을 알 것 같습니다.” -··············. 과녁에 화살을 두발이 맞았다. 하지만 먼저 적중된 것은 황충의 화살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충은 그다지 승리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황충은 갑자기 정운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주군, 장수된 도리로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죽어 마땅한 실책이나···, 정직하게 양심을 걸고 말해서 제가 졌습니다. “····화살은 당신게 맞았는데요?” 정운이 이해 못하고 되묻자 황충이 대답했다. -그 마지막 화살에서 저 친구가 먼저 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보를 했습니다. 적에게 동정을 사고 말았으니 저의 패배입니다. 황충의 말에 정운은 순간 씁쓸하게 웃었다. ‘하여튼 자존심들은·····.’ 삼국지에서 자존심하면 관우지만 관우 말고도 자존심 하라로 살아가던 존재들이 많았다. 황충 역시 생전에 누구에게 구차한 변명을 해 본적 없는 남자였다. 정운은 화영의 보상이 아까웠지만 여기서는 부하의 체면을 한 번 살려주기로 했다. “오케이···. 우리가 진 걸로 하지.” 정운은 깔끔하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차하게 매달려서 부하의 신망을 잃는니 이게 나았다. -감사합니다. 주군. 제 혼이 닳을 때 까지 충성하겠습니다. 황충은 정운의 배려에 크게 감격했다. 그렇게 정운이 승부를 포기하고 나가려 하자 화영이 뒤에서 정운을 불렀다. “잠깐!!!!” “무슨 일입니까?” 정운이 뒤를 돌아서 말하자 화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동정은 받을 수 없습니다. 승부는···, 승부는 무승부로 하죠. 대신에 제 힘은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쓰는 활을 줘 보시겠습니까?” 화영의 말에 정운은 기꺼이 자신의 활인 건곤파천궁을 내밀었다. “흠···. 이 활에는 금제가 걸려 있군요.” “아··· 뭐 풀기 위해서는····.” “지금 풀었습니다.” “··············.” 띠리링!! [건곤파천궁이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진(眞) 건곤파천궁을 얻었습니다.] 정운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런 단서도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던 정운이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간단하게 풀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럼 잘 가십시오.” 정운은 화영의 배웅을 받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변화한 건곤파천공의 상태를 확인해 봤다. 진(眞) 건곤파천궁 공격력 : 2,000 무게 : 20 내구력 : 200 스킬 : 건곤파천시(양과 음의 힘이 합쳐진 화살을 발사한다. 일반 활에 비해서 공격력이 500% 올라간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1시간의 쿨타임이 필요하다.) [화살이 필요 없으며 양의 힘과 음의 힘을 지난 화살 두 개를 나눠서 쏠 수 있다. 두 가지 힘을 합성한 건곤파천시를 쏠 수 있다.] “좋아!!” 정운은 몹시 흡족했다. 활의 공격력이 2,000이라는 것은 처음 봤다. 이전에 쓰던 건곤파천궁의 공격력이 1,200이었으니 무려 800이나 오른 것이다. 활의 공격의 특성은 빠른 연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800의 상승폭은 상당히 커다란 것이었다. 이로서 정운의 전적은 3전 2승 1패다. 다음으로 슬기가 들어간 방은 또 꽝이었다. 운이 없다고 해야 할까? “헤헤헤···. 소인은 시천이라고 합니다. 저하고 승부를 겨루시겠다고요?” “·····예. 뭐···.” 간사한 얼굴상 베스트를 뽑으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직행 할 것 같은 인상의 남자가 슬기를 기다리고 있어다. 고상조(鼓上蚤) 시천 한 마디로 말해서 도둑이다. 양산박의 서열에서도 상당히 아래쪽에 있는 남자였고 벽 타기 지붕 기어가기 같은 특기를 지니고 있다. 도둑질의 명수를 넘어서 도둑질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당연하지만 그는 슬기에게 도둑질 승부를 제안했다. “저기···. 도둑질 승부라면?” “서로 가진 것을 훔쳐서 이긴 쪽이 승리인 것입니다.” “···········.” “아, 참고로 말하면··. 이 승부는 이미 소인이 이겼습니다. 여기 보시죠.” 시천이 손을 펴자 거기는 슬기의 이마에 있어야 할 불꽃의 서클릿이 있었다. “·····언제?” “아? 이 방에 들어오면서 부터였죠.” 승부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훔쳤다는 말이다. 슬기는 그냥 두 손 들고 포기했다. 이로서 슬기의 전적은 3전 1승 2패. 앞으로 남은 두 번의 도전 기회를 잘 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세레나의 세 번째 시도. “정상적인 인간. 정상적인 인간, 정상적이 인간.” 두 번 다 이겼지만 어쩐지 두 번 다 꽝이라고 생각하는 세레나는 제발 이번에는 정상적인 인간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그런 세레나의 앞에 나타난 것은···. “허허허····. 이건 또 어쩐 일로 이리 귀여운 처자가 나타났을꼬?” “·····다행이다. 정상이야.” “···응?” 세레나의 앞에 나타난 인물은 힌 수염에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바로 지다성(智多星) 오용이다. 책사가 나온 이상 꽝이라면 꽝인 상황인데도 일단 안도하는 이상한 세레나였다. 오용은 원래 운성현이라는 시골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서당이었다. 그는 송강의 선임(?)이라고 할 수 있는 조개와의 인연 덕분에 자연스럽게 양산박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에 양산박의 군사로 활양했다. 하지만 후에 송강과 이규가 죽은 후에 그의 무덤에서 화영과 함께 나무에 목을 매달라 자살했다. “흠····. 승부라, 어찌 하겠나? 처자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지략 뿐인데? 바둑이라도 한 번 둬 보겠나?” “그건 할 줄 모릅니다. ·····체스라면 조금 할 수 있습니다.” “체스?” “장기와 비슷한 겁니다. 그러니····.” 세레나가 룰을 설명하자 오용은 흥미를 보였다. “흠, 그런가? 재미있어 보이는 장기군. 좋네. 그럼 그걸로 하지.” 오용은 즉석에서 돌을 준비해서 체스팔과 말을 만들었다. 지금 이 공간은 양산박의 호걸들을 위한 공간. 이 정도의 준비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막 익히고 나하고 승부를···. 너무 오만한걸?’ 세레나는 딱히 체스를 엄청 잘 두는 편은 아니었다. 생전에 전우중에 체스광이 한 명 있어서 그냥 옆에서 보고 배우다 조금씩 어울렸던 것 뿐이다. 전쟁터라는게 워낙에 긴장감이 팽팽하기 때문에 종종 그렇게 느슨하게 이완시켜줄 뭔가가 필요한 법이었고 나중에는 세레나도 제법 잘 두는 편이 되었던 것이다. ‘이겼다.’ 세레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승리를 장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장군, 아! 배운 대로라면 체크 메이트라고 했던가?” “·······말도 안 돼.” 세레나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체스에 아주 깊은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세레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는가? 이제 막 룰을 배운 사람에게 첫 판부터 져버리다니····. “무례를 범하고 하나만 묻겠습니다. 정말로 이게 처음이십니까?” 세레나의 말에 오용은 허허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네. 생각보다 재미있는 놀이로군.” “············.” 할 말이 없는 세레나였다. 상대는 척 봐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졌습니다.” “즐거웠다네. 그럼 또 보세.” 그렇게 세레나는 쓸쓸하게 패배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로서 세레나의 전적은 3전 2승 1패. 하지만 세레나 자신이 점수를 매기기로는 3전 전패였다. 동평과 이규라는 강력한 소환수를 얻기는 했지만 그게 그다지 내키지는 않는 세레나였다. “좋았어!! 다시 내 차례다.” 정운은 힘차게 다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양산박 퀘스트의 경우 그래도 크게 위험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 정운이 노지심을 상대했을 때. 그리고 세레나가 동평과 이규를 상대했을 때에는 나름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연청이나 오용을 상대할 때에는 별 다른 위협은 없었다. 뭐···, 정운과 세레나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는 입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운으로서는 이번에 네 번째 시도였다. “이제 귀찮은 것들은 다 싫어. 차라리 이규처럼 전투적인 인간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운인 그렇게 말한 바램은 제대로 이뤄졌다. “표자두(豹子頭) 임충이다.” “·····박정운입니다.” “복잡한건 질색이니 간단하게 가지.” 스르릉···. 임충은 자신의 허리에 메여있는 칼을 뽑았다. “음···. 좋습니다.” 정운도 마찬가지였다. 표자두 임충. 정운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인간이다. 당시 송나라의 80만 금군의 무술 교관의 직위에 있던 남자. 무예로 치면 엘리트 중에서도 초 엘리트인 남자였다. 그런 그가 양산박에 들어가게 된 것은 자신의 아내의 미모를 탐내는 고위 간부의 양자 때문이었다. 태위의 직에 있던 고구의 양자인 고아내가 임충의 아내의 미색을 노렸고··. 결국 두 번에 걸친 미수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후에 오히려 귀양을 간 것은 임충이었다. 권력이 흰 것을 검게 만들고 검은 것을 희게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비교적 흔한 일이었다. 어쨌든··. 양산박의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도적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남자. 그게 바로 표자두 임충이었다. 원래 양산박의 108호걸들 중에는 강한자가 몹시도 많다. 관우에 비교될 정도로 위명을 떨친 대도 관승. 문무를 겸비한 옥기린 노준의. 그 외에도 노지심, 무송, 장청, 이규 등등···. 강자는 정말로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통 무술에 가장 정통한 사람은 바로 이 표자두 임충이 라고 할 수 있었다. “검이라···. 특기는 창봉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칼로 승부하시려는 거요?” 정운의 말에 임충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금군 교우가 되려면 모든 병기에 정통해야 하는 법. 내가 검에 약했다고? 후세 놈들 멋대로 지껄이기는····.” “············.” ‘딱히 검에 약했다고 한 건 아닌데····.’ 정운은 굳이 그걸 바로 잡지는 않았다. 이 남자 척 봐도 너무 까칠한 성격이라서 노지심과는 다른 의미로 말이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상대가 검으로 싸운다면 난 창으로 거리를···. 잠깐.’ 정운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정운은 무기를 거두면서 임충에게 말했다. “하나만 확인해 둡시다.” “뭘 말인가?” “제가 이기면 보상은 뭘로 해 줄겁니까?” “··············.” 그건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하는 임충을 보고 정운이 씨익 웃었다. 그건 뭔가를 노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양산박 퀘스트를 스킵할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 하나하나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중간중가에 허무하게 끝나는 장면은 몇번 있지만 말이죠. 모든 관문이 다 다이나믹 하면 그냐 늘어지는 거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48화 “이거···. 제가 가지고 있는 칼입니다.” 정운이 혈광참마도를 꺼내서 보여주면서 말했다. 임충은 흘깃 그 검을 보고는····. “명도군. 그래서 뭔가?” “이기면 이 칼을 강화해 주십시오.” 정운이 노리고 있는 것은 이것이었다. 노지심이 창을 강화해 줬고, 화영이 활을 강화해 줬다. 이제 임충이 혈광참마도를 강화해 주기만 하면 정운이 쓰는 주력 무기 세 개가 모두 강화된 것이었다. “····좋겠지. 그렇게 하지.” 임충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자 정운도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시작하죠!!!” 콰아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운의 몸이 한줄기 빗살이 되어서 돌진했다. 쉐도우 아미를 써서 이기면 임충이라고 해도 10합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이 남자와는 정면으로 단독 승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딱히 비겁이니 정정당당이니 하는 일이 연연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이라는게 타입이 있지 않은가? 저 임충이라는 남자의 꼿꼿함을 보아하니 정당한 일대일 대결이 아니면 쉽게 승복할 타입이 아니었다. ‘저렇게 꼬장꼬장한 인간이 원래 뒤끝이 많은 법이지. 뭐, 좋다고. 정면으로 눌러주지.’ “백뢰참!!!” 정운의 참격이 무수한 빗살을 그리면서 임충을 공격했다. “너무 난잡하군.” 하지만 임충은 그런 정운의 공격을 하나하나 보고 침착하게 피해냈다. 때로는 검으로 막고, 때로는 흘리고, 그리고 때로는 유유히 피해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정운은 실망하지 않았다. 상대는 진정한 달인중에 달인. 이런 것 하나하나에 놀랐다가는 끝이 없었다. 삼국지의 무장들도 그랬지만 무술을 본격적으로 익힌 인간들은 스킬로 정형화된 공격에 크게 당황하지를 않았다. 자신들의 몸에 익은 기술이 이미 그라운드 제로의 스킬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정운도 이런 달인들을 상대하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 졌다. “쉐도우 붐!!” 콰앙!! “엇!!! 하앗!!!” 임충은 자기 발 밑에 그림자가 폭발한 것을 보고 당황했지만 이내 몸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있을 수 없는 형태로 몸을 비틀더니 그래도 정운을 향해서 날카로운 일격을 날렸다. 목, 어깨, 머리를 동시에 노리는 삼단 공격. 다 피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각도와 타이밍을 파고 들었다. 하지만 집중력 스킬로 인해서 300%의 체감 속도를 지니고 있는 정운은 그 공격에 대항 대처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폭뢰참!!!!” 콰쾅!!!! 강력한 뇌전으로 세 개의 참격을 동시에 날려 버렸다. 임충은 손목이 순간적으로 찌릿찌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이를 두고 다시 정운이 파고 들었다. “받아랏!!!” 파파파파파팟!!!! 정운의 연속 공격이 임충에게 쇄도했다. 임충은 아까와 같은 난격이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신정한 결정이 아니라 방심일 뿐이다. 이번에 날린 연속 공격은 스킬이 아니었다. 정운이 직접 하나하나 신경 써서 날리는 연속공격들이었다. ‘다르다. 절도도 검로도····.’ 방심하고 있던 임충은 정운의 검격들이 완벽한 절도와 절묘한 각도로 찔어 들어오자 이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승기를 잡은 정운은 계속해서 검격을 더해갔다. 그동안 그림자 장수들과의 대련. 그리고 집중력 스키로 인한 300% 느리게 보이는 체감 속도···. 이 두 가지가 21세기의 인간인 정운을 송나라 최고의 엘리트 무인을 무술로서 압도하게 만들고 있었다. “큭···. 만파천격(萬波天擊)!!” 위기에 몰리고 있던 임충은 자신의 기술을 썼다. 아마도 이 기술은 임충의 무예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 오면서 만들어진 스킬일 것이다. 하늘에서 파도처럼 파상적으로 밀려오는 검격을 보고 정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걸 기다렸다.’ “쉐도우 월!! 쉐도우 체인!!!” 정운은 두 개의 스킬을 동시에 써서 임충의 공격을 막고 다른 한쪽으로는 임충의 움직임을 구속했다. 거대한 몹이라면 모를까? 인간 형태의 그것도 임충처럼 날샌 동작의 인간을 쉐도우 체인으로 구속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임충이 위기에 몰려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스킬을 쓴 그 순간···. 그 순간 만큼은 무술의 달인인 임충이라고 해도 빈틈이 보일것이라고 정운은 믿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한 것이다. 스윽··. “계속 할 겁니까?” 정운의 검날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자 임충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진 걸로 하지.” 임충은 그렇게 말했고 승부는 거기서 끝났다. “약속대로 자네의 검을 상화시켜 주지. 내 전신전령을 거기에 쏟으면 어찌 될 것이야.” “감사합니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약속을 지키는 임충을 보면서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이다. 고지식한 사람이라서···.’ 사실 아까전의 승부는 정운의 꼼수가 대량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었다. 스킬을 사용해서 빈틈을 만들고 상대가 아직 익수하지 않은 그라운드 제로의 로직을 이용해서 당황하게 했던 것 까지는 뭐···. 작전이면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마지막 꼼수는 정운이 검을 찌르지 않고 임충의 목에 가져다 대기만 했다는 것이다. 임충은 그게 정운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진짜 꼼수였다. 여기는 그라운드 제로. 크리티컬 대미지만 터지지 않는다면 목이 검에 찔려도 체력 게이지만 좀 닳고 마는 세상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정운은 굳이 찌르지 않고 살짝 가져다 대기만 한 것이다. 임충이 스스로 충분한 여력을 남기고도 항복을 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약간 치사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승부는 승부지.’ 정운은 그렇게 꼼수로 임충을 함락 시켰다. 임충은 노지심이 한 것처럼 자신의 몸에 있는 기운의 정수를 뽑아내서 정운의 혈광참마도에 집어 넣었다. 혈광참마도는 임충의 기운을 받더니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대신에 고고한 푸른빛이 도신에 돌기 시작했다. 띠리링!! [혈광참마도가 월광멸마도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이걸로 그대의 무기는 나의 힘을 모두 받았네. 앞으로 자네의 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감사합니다.” 정운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임충의 방을 나왔다. 나가는 길에 정운은 새롭게 변한 무기의 속성을 알아봤다. 월광멸마도(月光滅魔刀) 공격력 : 8,500 무게 : 200 내구력 : 700 스킬 : 월광만파(月光滿波) (하루에 한 번 강력한 참격으로 주변의 적들에게 대미지를 입힌다. 마족이나 언데드에게 더욱더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푸른 도신에 달빛의 힘이 깃든 고고한 성검. 그 존재 자체가 주변의 마를 물리치고 시전자에게 성스러운 힘을 더한다. 달빛의 기운을 모아서 한번에 쓸 수 있는 월광만파를 쓸 수 있다.] “좋군···. 아니 좋은걸 넘어서 최고야.” 정운은 이제까지의 무기 업그레이드 중에서 가장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원래 혈광참마도의 공격력은 5,000이었다. 그런데 그게 3,500이나 올라서 8,500이 되었다. 그리고 내심 없어지면 아깝다고 생각했던 혈광참마도의 스킬인 멸마광참. 그것도 이름만 다르지 여전히 건재했다. 아니 오히려 업그레이드되었다. 위력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스킬의 효용성이 예전보다 압도적으로 올라갔다. 원래 멸마광참을 쓰기 위해서는 거의 천 마리에 가까운 몹을 잡고 피를 묻혀야 했다. 최근 오토로 재미를 보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그게 생각보다 모으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 월광만파의 경우 시간만 지나면 이전과 같은 스킬을 쓸 수 있도록 되었다. 하루에 한 번 뿐이지만 비장의 한수로 사용하기에는 이거면 충분했다. “좋아··. 이제 무기 업그레이드는 끝이다.” 정운으로서는 아직 한 번 더 도전할 기회가 남았지만 이미 이번 퀘스트로 인해서 도, 창, 활이라는 자신의 주력 무기 세 가지를 모두 업그레이드 했다. 이것만 해도 이번 퀘스트는 정운에게 있어서 충분히 최고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와. 절대 방심하지 말고.” 정운의 배웅을 받으면서 슬기도 네 번째 도전을 하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까지 슬기의 경우 승률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처음에 신기군사 주무를 상대로는 패배했고···, 그 다음에 들어갔던 신화장군 위정국의 방에서는 불에 관한 강력한 방어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고상조 시천의 얍삽이(?)에 걸려서 또 허무하게 져 버렸고 말이다. 원래 이번에는 세레나의 차례였지만 슬기는 자신이 먼저 나가기로 했다. 3번중에 두 번이나 실패를 하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슬기가 들어간 방은···. 제대로 들어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본인은 혼세마왕(混世魔王) 번서라고 한다. 그대의 이름을 밝혀라.” “이슬기라고 합니다.” “그래···. 주술을 쓸 줄 아나? 모른다면 얌전히 나가라.” 번서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훗···. 제대로 왔다. 무식하게 칼이나 휘두르는 놈들이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야.” “···········.” “자, 그럼 어디 목숨을 걸고 주술을 겨뤄보자.” 번서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품안에서 돌로 된 석검을 꺼냈다. 그리고는 뭐라 뭐라 웅얼거리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역시···. 실드!!! 염소접!!!” 슬기는 상대가 마법사라고 확신하자마자 우선 방어를 두텁게 하고 자신의 주변에 불꽃의 나비들을 소환해서 대기했다. 상대의 실력을 모를때는 일단 수비부터 견고하게···. 슬기는 정석에 충실했다. 혼세마왕 번서. 수호지에 보면 도술이나 주술을 다루는 인물이 종종 나온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입운룡 공손승이고,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인 이 혼세마왕 번서였다. 주모도 자신의 진법으로 주술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하지만 양산박에서 진정한 도술이나 주술을 부리는 것은 공손승과 번서였다. 본래는 양산과 적대하던 망탕산의 사적이었던 번서는 세력이 커지자 양산박을 넘보고 도전했다. 거기에 양산박은 사진, 주무, 진달, 양춘을 보내서 막았지만 번서의 주술을 이기지 못해서 고전했다. 하지만 그 후에 번서를 상대하기 위해서 공손승이 나섰고···. 공손승과의 도술 대결에서 완패한 번서는 그 후에 양산박에게 포로로 잡혔고 후에는 양산박에 들어가고 공손승의 제자가 되게 된다. 뭐···. 실제로 도술이라는게 있는지 없는지는 제쳐두고···. 그라운드 제로의 몹으로 부활한 번서는 정말 혼세마왕이라는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진정한 주술사였다. “지저의 망자들이여. 일어나서 나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라. 백귀행군(百鬼行軍)!!!” 번서가 석검을 땅에 박으며 외치자 지면에서는 좀비처럼 썩어 문들어 지고 있는 시체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어설픈 갑옷과 손에는 검이나 창을 들고 있었는데 꼭 전쟁터에서 죽은 군사들 같았다. “진짜 주술···.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 파이어 월! 더블!!!” 화르르륵!!! 슬기의 정면에 불의 장벽이 길게 일어났다. 그러자 슬기를 향해서 전진해 오던 적들은 불의 장벽에 걸려서 그대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의 기운이 강한 자로군. 하지만 그 걸로는 부족하다.” 번서는 다시 한 번 성검을 길게 휘두르고는 품속에서 염주 같은 것을 꺼내서 주먹에 쥐고 하늘 높이 쳐들어서 외쳤다. “내 비장의 기술을 보여주지. 망자들의 혼이여. 모여라. 뭉쳐라. 하나가 되어서 사나운 어금니로 적을 물어뜯어라!! 원념만만(怨念滿滿) 흉룡초래(凶龍招來)!!!!!” ============================ 작품 후기 ============================ 미묘한 장소에서 끊기게 되었네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앗!!! 김동현 선수 승리에 한창 감동받고 조아라에 들어왔는데 하필 또 예약 아이템 시간 잘못 설정 했습니다. 이러면 추천이 줄어서 순위가 떨어지는데.....ㅠㅠ 249화 번서가 주문을 외우자 불길에 불타오르고 있던 망자의 군사들에서 보랏빛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한군데로 모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사악한 이빨을 가진 흉악한 용이 되었다. 크워어어어!!!! “네크로맨서 같은 공격을···. 화룡!!!” 슬기는 자신을 향해서 달려오는 검은색의 흉룡을 보면서 대항하기 위해서 화룡을 소환했다. 콰콰쾅!! 콰앙!! 원념으로 이뤄진 용과 화염으로 이뤄진 환수의 용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허!! 정말 제법이군. 나하고 이 정도로 싸운 사람은 네가 두 번째다.” 번서의 표정에는 신이 올라 있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주술사이면서도 자신의 주술을 마음껏 사용해서 싸우는 것을 즐기는 성격인 것 같다. 하긴 그러니까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산적질을 하고 있었겠지···. 흉룡과 화룡이 치열하게 싸움을 거듭하고 있는 순간에도 번서는 자신의 성검을 들고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흉룡을 더욱더 강화하기 위한 주술이었다. 다만 슬기가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더 이상 선수를 빼앗기면 안 돼.’ 슬기는 원래 정운이나 세레나 처럼 전투에 타고난 센스가 있는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슬기에게는 그런 센스를 보충하고도 남을 경험이 있었다. “소화조, 극염랑!!!” 슬기는 화룡을 컨트롤 하면서 한편으로는 번서를 직접 노리고 공격을 했다. 화염의 새와 늑대들이 번서를 향해서 쇄도했다. “흡!!! 불은 물로 막으라. 오행상극(五行相剋). 화극수(火剋水)!!!” 번서는 공격적인 주술에 비해서 방어적인 주술에 약한 면이 보이고 있었다. 급하게 주문을 외워서 슬기의 공격을 강철의 방어막으로 막기는 했지만 상당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방어에 약하단 말이지?” 슬기는 상대의 약점을 발견하지 거기에 관해서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이어 볼트!!” 슬기는 한 손으로 불의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번서는 강철의 방어막을 더욱더 강력하게 강화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흉룡에 대한 신경을 쓸 수 없었고···. 결국 그 틈을 타서 슬기의 화룡이 흉룡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렸다. “쿠워어어어어!!!!!” 흉룡은 우렁찬 단발마를 남기고 그대로 허공에서 스르륵 하고 사라져 버렸다. “크으윽····.” 번서는 흉룡이 사라지자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는 슬기를 향해서 말했다. “이제 그만하지···. 내가 졌다.” 번서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원령을 다루는 술법의 경우 술법이 깨졌을 때에 시전자에게도 대미지가 역류한다. 손쉽게 강한 위력을 발휘 할 수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양날의 검과 같은 위험성이 있는 술법인 것이었다. 번서로서는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번서가 패배를 시인하자 슬기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번서의 주술은 강력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을 상대할 때의 일이었다. 슬기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고레벨의 메이지. 마법을 사용하는데 이어서 번서처럼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었고 또 연속해서 사용 하는게 가능했다. 무기로 비유해서 보면 이건 리볼버 대 개틀링건의 승부인 것이다. 화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슬기가 신중하게 나갔기에 승부가 길어졌을 뿐. 원래 번서에게 너무 불리한 승부였다. 어쨌든 패배는 패배. 번서가 슬기를 향해서 말했다. “자···. 내가 패배했으니 승자에게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뭐가 좋은가? 내 특기인 망자와 원념을 다루는 주술을 가르쳐 줄까?” “········아니요. 그건 됐어요.” 슬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운이나 다른 사람들하고 싸울 때 자기가 네크로맨서처럼 망자들을 일으켜서 레이드를 한다고 생각하니 영 내키지를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보상이라는 것은 그것 말고는···. 아!! 좋은 보상이 있었지.” 번서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한 장의 부적을 써줬다. “이건 뭐죠?” “그건·············. 알겠나?” 번서의 설명을 들은 슬기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확실히 도움이 될까요?” “물론. 다만, 기회를 잡을지 말지는 네 선택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슬기는 번서의 제안을 받았다. 그녀가 과연 무슨 제안을 받았을까? 슬기가 이기고 온 다음에는 다시 세레나가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세레나는 이제 뭐가 나오든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녀가 들어간 방에는···. “구문룡 사진이요!!” 등에 아홉 마리 용의 문신을 멋지게 새기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세레나는 그를 보고 살짝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왜 웃옷은 벗고 있는 거죠?” “·········큼, 시험을 시작하겠소.” 별로 의미는 없는 모양이다. 구문룡(九紋龍) 사진. 방금 세레나의 한 마디로 스타일은 좀 구겼지만 이 남자 역시 양산박에서 무예로 따지면 그 누구에게도 쉽게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젊은시절 임충과 같은 금군교두 왕진을 만나서 무예18반을 익히고 그 후에 관군의 공격에 집을 잃고 방랑하다가 후에 노지심과의 인연으로 양산박에 들어간다. 양산박의 기병군 팔표기중 비표기를 이끌던 인물로 양산박의 주력 장수중에 하나인 것이다. 사진은 자신의 창을 꺼내서 세레나를 겨누면서 말했다. “승부의 내용은 간단하오. 나를 이기면 그대를 나의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겠소.” “제가 지면요?” “그때는 목숨을 내 놔야 할 것이오.” “····좋군요. 하죠.” 처음에 웃통을 벗고 전신에 괴상한 그림(세레나의 기준으로)을 새기고 있어서 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세레나였다. 하지만 얘기를 해보니 강직한 성격에 딱 부러진 말버릇까지··. 세레나가 결코 싫어하지 않는 인간상이었다. 여기서 정운이라면 이미 소화수로 손에 넣은 동평과 이규를 꺼내서 삼대일로 싸울 것이다. 아니 그럴 것도 없이 동평과 이규가 말만 잘하면 알아서 이쪽으로 넘어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세레나 역시 사진만큼이나 꽉 막히고 꼿꼿한 사람이었다. “그럼 진지하게···.” “겨뤄 봅시다.” “·············.” “·············.” 두 사람의 시야의 사이에 낙엽 한 장이 살짝 시야를 가린 그 직후···. 카앙!!!! 사진의 창과 세레나의 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구문룡 사진 대 세레나. 이 둘의 결투는 길어지기 시작했다. 원래 생전의 무술 솜씨로 보면 구문룡 사진이 한수 위였다. 세레나가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잔 다르크라고 불리던 시절의 세레나는 결코 최강의 무력이나 신묘한 지력으로 군사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경우 민중의 지지와 신의 계시로 군사의 사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그리고 시기를 적절하게 살피는 안목으로 승리를 이끌었었다. 물론 검도 전략도 기본만큼은 할 줄 안다. 오히려 상당이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진과 비교하면 몇 단계 처지는 실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레나가 사진과 대등한 결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세레나가 그동안 정운에게 부탁해서 삼국지의 무장들과 꾸준한 대련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들과의 대련으로 세레나는 동양 무술에 무척이나 익숙한 상태였고, 자신 스스로의 무력도 상당히 올라갔다. 그러니 이규를 상대로 승리를 얻어내고 동평도 완벽하게 제압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뭐, 동평의 경우는 반쯤 본의 아닌 미인계도 섞여 있었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구문룡이 공격하고 세레나가 방패로 그 공격을 방어하면서 간간히 카운터 공격을 노리는 그런 전투가 지속되었다. 두 사람 다 스킬은 사용하지 않고 지속적인 전투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렇게 싸움을 계속한 결과··. 결국은 사진도 이규와 같은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후우·····. 후우····. 그대는 지치지 않소?” 숨결이 거칠어진 사진의 말에 세레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정당한 결투에 이런 건 좀 죄송하다고 생각하지만 제 경우 자체적으로 회복이 가능해서요.” “···········.” 세레나가 버프중에는 액티브 버프 말고 패시브로 항시 걸려있는 버프도 있었다. 결국 체력의 한계를 봤을 때 사진은 한계가 있지만 세레나의 경우는 무한하다고 봐도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되다 보니 결국은 장기전에서 세레나에게 승리가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승부가 나자 세레나의 아공간에서 동평과 이규가 멋대로 뛰쳐나왔다. “사진동생, 동생도 우리하고 같이 하지?” “동평 형님읨 말이 맞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동평 형님? 이규 형님?” 사진은 서열상으로 동평이나 이규보다 더 낮았다. 순위를 따지면 동평, 이규, 사진의 차례가 될 것이다. “음····. 알겠습니다. 두 형님이 이미 따르고 있다면 저도 거기에 동참하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누님.” “별로 누님이라고 불릴··. 아니 멋대로 해.” ‘왜 나는 능력이나 아이템이 아니라 통째로 소환수로 귀속 되는 거지?’ 세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세레나는 졸지에 의동생이 셋이나 생겨 버렸다. 하지만···. 과연 셋으로 끝일까? “자, 이제 마지막이다.” 정운은 다섯 번째의 문을 열었다. 마지막 문을 앞에 두고 정운은 결의를 다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사실 허무하게도 정운에게 있어서 가장 마지막 관문은 가장 손 쉬운 상대였다. 어떤 의미로 가장 쉬우냐 하면····. “내가 대도 관승이다.” “······빙고.” 긴 수염을 휘날리며 관우와 같은 얼굴에 옆에는 거대한 청룡언월도를 끼고 있는 모습··. 그가 바로 관우의 직계 자손이라고 하는 관승이었던 것이다. 그를 본 순간 정운의 입에서는 ‘빙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관우.” -옛. 주군!! “저 친구하고 잠시 얘기 좀 해주지?” -알겠습니다. 흠···. 네가 내 후예라고? “·············.” 그걸로 서열 정리는 끝이었다. 한나라 이후로 중국인의 가장 저변에 깔려있는 사상은 유교사상이다. 그리고 이 유교사상에서는 효를 덕의 으뜸으로 여기고 있었고, 특히 조상에 대한 공경을 극진히 하게 했다. 거기다 관우다. 중국의 길고 치열한 역사속에서 수많은 명장들이 있었지만 중국인들이 토속 신앙으로까지 여기는 장수는 흔하지 않았다. 그런 유명한 선조를 눈앞에 두고 관승이 뭘 어쩌겠는가? 실제로 양산박의 108호걸들 중에서도 실제 무력만 놓고 보면 가장 강할지도 모른다는 이 남자는 결국 정운에게 자신의 힘을 바쳤다. “이것이 저의 정수가 깃들어 있는 힘입니다.” 관승은 자신의 힘을 정운의 무기가 아니라 정운 본인에게 바쳤다. 세레나처럼 소환수로 받아 들일까 싶기도 했던 정운이지만 그것은 관승에게 거절당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자신의 혼에 귀속 시킨 그 세레나라는 분이 굉장해 보이는 군요.” 관승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갸웃 했지만 어쩌겠는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사실 정운은 몰랐겠지만 한중겸 처럼 스킬로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반 유저가 소환수를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정운이 삼국지의 무장을 그림자에 가둬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미 쉐도우 아미라는 스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안 그럼면 수많은 유저들이 소환수를 여기저기 만들고 끌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테이머라는 스킬이 엄청나게 귀중했던 것이다. 다만 세레나의 경우···. 그 영혼의 그릇이 일반 인간인 정운과는 격이 다르다. 생전에 성인으로 추대될 정도의 업적, 그리고 천사로서의 전생. 이런 세레나의 영혼이었기에 파우스트의 제약도 물리치고 간단하게 상대를 귀속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과 천사는 영혼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퀘스트 자체가 세레나를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정운으로서도 관승의 힘을 흡수 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띠리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197레벨에서 198레벨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정운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는가? 오토로 날마다 아홉 배의 경험치를 쓸어 담는 정운으로서도 레벨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드디어··. 앞으로 두 개만 다 오르면····.” 정운은 이제 정말로 200레벨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양산박 퀘스트가 좀 길죠? 사실 스킵해 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이왕 하는 김에 다 묘사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붙여서 연참을 하면 항상 추천이 줄어들어서 문제입니다. 그것만 아니라면 어제처럼 붙여서 연참해도 좋을텐데 말이죠. 250화 “정운씨, 축하해요.”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정운이 퀘스트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세레나와 슬기가 정운을 축하해 줬다. 오랫동안 정체되고 있던 레벨이 드디어 올랐다. 역시 퀘스트를 클리어 했을 때에는 레벨업이 따라주지 않으면 섭섭하다는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니었다. 더구나 정운의 레벨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유니크 스킬이나 유니크 아이템 이상 가는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저도 이제 마지막 도전을 할 게요.” “잠깐만요. 슬기. 이번에는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세레나는 슬기를 말라며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예? 뭐···. 좋아요. 아!! 대신에 문은 지금 제가 고를게요.” “예? 뭔가 이유라도 있나요?” “예. 잠시만요···.” 슬기는 품안에서 번서가 준 부적을 꺼내더니 그걸 접어서 종이학으로 만들었다. “후우····.” 그리고 종이학에 입김을 불어넣자 종이학이 날아가서 여기저기를 떠돌더니 한 곳에 정착했다. “음···. 전 이 문으로 할게요.” “슬기? 그 문에 뭔가 있나요?” “아마 저에게 가장 적합한 문일 거예요. 그러니 이제 세레나 당신이 골라요.” “····예. 그렇게 하죠.” 결국 세레나도 한곳의 문을 골랐다. “이게 마지막이니 둘이 동시에 들어가죠. 정운씨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다녀오겠습니다. 마스터.” “잠깐, 나 혼자 기다리라고? 나 혼자····.” 정운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두 여자는 들어가 버린 후였다. “···삐뚤어져 버릴까 보다.” 살짝 삐진 정운이었다. 세레나가 들어간 문안에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느끼하게 작업하는 남자도 아니었고··. 인간과 고릴라의 중간 정도 개념이 되는 난폭한 남자도 아니었다. 그리고 구문룡 사진과도 달랐다. 이번에 들어온 방에 있는 사람은···. “호삼랑이라고 합니다.” 여자였다. 그것도 세레나에 비교해서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경국지색의 미인 말이다. 일정청(一丈?) 호삼랑. 양산박의 호걸들 중에서도 이름난 여걸이며 해당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원래 양산박과 적대하는 가문인 축가장의 아들인 축표의 정혼자였다. 그래서 정혼자의 가문이 양산박과 대립할 때 호가장의 식구들을 이끌고 나섰다. 평소에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여성으로서도 무예에 통달해서 평소에도 쌍검을 소지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무예솜씨에 양산박 왕영이 생포 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후에 송강을 습격하다가 임충에게 패하고 사로잡히기는 하지만 그래도 80만 금군교두였던 임충이 감탄할 정도로 대단한 무예라고 했다. 후일 가문이 멸망하고 자신이 사로잡았던 왕영을 남편으로 맞이했다. 그 후에는 양산박에서 혁혁한 활약을 했지만 목주 공략전에서 남편인 왕영이 죽는 것을 보고 분개해서 이성을 잃고 싸우다가 적장에게 죽었다고 한다. 아름답고 가련한 해당의 꽃은 그렇게 전쟁터에서 저물었다. 중국의 양가집 규슈들이 입는 비단 궁장을 입고 있는 호삼랑은 세레나를 데리고 조용한 정자로 안내했다. 이전의 사내들과는 달리 그녀는 적의도 보이지 않았고 승부에 관한 내용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레나에게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저는 더 이상 검을 잡지 않습니다. 그러니 별 도움이 될 것도 없을 것 같군요. 그러니 그냥 물러나 주시지 않겠습니까?” 호삼랑은 아애 승부 자체를 거부했다. 세레나는 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추스렸다. “····알겠습니다. 저 역시 굳이 승부를 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보상을 하나 통째로 날려버리는 겪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레나는 담담하게 호삼랑의 청을 받아 들였다. 하지만 그때···. “잠깐만요. 누님. 그건 안 됩니다.” 또 멋대로 공간에서 동평이 나왔다. 그리고 동평을 따라서 이규와 사진도 함께 나왔다. “흠···. 오랜만들이군요. 오라버니들. 삼랑이 인사 올립니다.” 호삼랑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동평, 이규, 사진에게 인사했다. 이들 세 명은 모두 호삼랑보다 서열이 위였다. 다만, 겉보기만 보면···. 만렙의 느끼남. 쌍도끼를 든 블랙 고릴라. 웃통 노출 문신남. ‘····아무리 봐도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란 말이야.’ 세레나는 차라리 호삼랑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겉 보기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저 셋은 속도 사진을 제외하고는 좀····. 어쨌든 그런 와중에 동평이 호삼랑에게 말했다. “천하의 일장청이 이렇게 시들어서야 될 일이 아니지. 나오게. 그대 손에는 찻잔보다는 검이 더 어울려.” 동평의 말에 호삼랑을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전 이미 생전에 싸움에서 끝을 보고 실의에 빠졌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이제와서 다시 오라버니들하고 함께 하겠습니까? 이제 일장청은 죽은 것으로 해 주십시오.” 호삼랑의 말에 동평은 안타깝게 혀를 찼고 이규는 여자한테 뭐라고 말해야 될지를 몰라서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그때 시진이 호삼랑에게 말했다. “호삼랑. 그대의 생각은 잘 알겠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생각이라면···. 왕영의 영혼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겠군.” 시진의 말에 호삼랑은 고운 눈썹을 움찔 거리면서 말했다. “제 남편의 영혼이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겁니까?” “자네는 아직 모르겠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럴테지? 하지만 난 여기 누님에게 영혼이 귀속 되면서 모든 기억이 돌아왔네. 우리 양산박의 형제들을 농락하고 있는 악의 근원을 말일세.” “형제들을 농락···. 사진 오라버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저희는 이미····.”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사진의 말에 호삼랑은 움찔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뇨? 여기는···? 여기는·······.” 생각을 하던 호삼랑은 갑자기 머리를 잡고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파우스트가 걸어놓은 금제가 발동하는 것이다. 양산박의 108호걸의 영혼을 잡아서 파우스트가 걸어놓은 금제. 생전의 기억을 그대로 살려두면서도 현재의 상황에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말게 하는 암시가 호삼랑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동평이나 이규는 원래 생각이 짧아서 세레나에게 귀속된 후에도 잊어버리고 있었겠지만···. 사진은 비교적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었고 세레나에게 귀속된 이후에 바로 파우스트에게 세뇌 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상황을 보아하니 자신 하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의 영혼까지 모두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 사진은 파우스트에 대한 복수의 원념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력이 필요했다. ‘가능하면 좀 더 강력한 형제가 손을 잡기를 원했지만 여기서 호삼랑을 못 본척 할 수도 없다.’ 사진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괴로워 하고 있는 호삼랑에게 말했다. “그대로는 영혼이 깨져 버릴 거야. 우선은 세레나 누님에게 영혼을 맡기게. 누님 부탁드립니다..” “음···. 알았어요.” 세레나는 일단 괴로워 하는 호삼랑을 품에 안아서 그 영혼을 진정 시켰다. 천사로서의 힘을 쓰지 않아도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세레나였다. “음···. 동평 형님. 어째 우리를 복종 시켰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수?” “이규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사실 나도 그렇다.” 옆에서 동평과 이규의 대화가 정신을 조금 산만하게 했지만 그래도 세레나는 집중했다. 눈앞에 괴로워하는 영혼이 있으면 구원한다. 이건 그녀가 천사로서 가지고 있는 당연한 임무였다. 한참을 세레나의 품안에서 고통 스러워 하고 있던 호삼랑의 눈이 날카로워 졌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파우스트.” “이제 알겠나? 우리 형제들의 영혼을 농락한 자의 이름을?” 사진의 말에 호삼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래···. 그 놈이····.” 호삼랑의 눈에서 싸늘한 살기가 맴 돌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만 해도 벌레 한 마리 죽일 수 없을 것 같은 양가집 규슈 같은 느낌의 여성이 이제는 차가운 얼음의 칼날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사진 오라버니와 다른 오라버니들은 이 분을 따르기로 한 겁니까?” “그게 파우스트 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말이야.” 사진의 말에 호삼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단···, 저 역시 한때는 일장청이라고 불렸던 여자.” 호삼랑의 몸에서 환하게 빛이 나더니 그녀의 차림새가 변했다. 양가집 규슈다운 하늘하늘한 궁장이 사라지고 대신에 몸에 착 달라붙는 늘씬한 갑옷을 입고 양손에 쌍검을 들고 있는 여성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그대로 세레나에게 검을 겨누면서 말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고 해도 저 보다 약한 자의 밑에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절원하시거든···. 어디 복종시켜 보십시오.” 결국 한판 붙자는 말이다. 세레나는 그런 호삼랑을 보며 싱긋 웃었다. “좋겠죠···. 합시다.” 세레나로서도 여자와의 일대일 결투는 생소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묘한 호승심과 함께 동질감이 얼굴에 미소를 맺히게 했다. 호삼랑은 양손의 쌍검을 고쳐 잡으면서 세레나에게 말했다. “그럼····.” “시작 하죠·····.” 말이 끝나고 두 여성의 눈이 서로 마주친 그 순간··· 카카칵!!!!! 호삼랑의 강력한 공격을 시작으로 세레나와 호삼랑의 결투가 시작 되었다. 둘 다 스킬은 쓰지 않고 순수한 무예로 겨루고 있었다. 사진과 동평, 이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림이 되는군.” “그렇지? 그런데 누가 이길 것 같나?” “그거야 당연히 세레나 누님이 이기겠지? 동평 형님은 뻔한 걸 왜 물으쇼?” “하긴, 그런가?” 이규의 말에 동평은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레나는 자신들을 모두 이겼다. 호삼랑의 무력은 양산박의 호걸들 중에서도 이름이 높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양산박 최강의 무력을 지니고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었다. 포박술에 능했고, 전투에 있어서 두려움을 모르는 훌륭한 장군이기는 했지만···. 임충에게 패한 것을 비롯해서 엄연히 한계는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있는 동평, 이규, 사진들만 해도 호삼랑보다는 한수 위의 기량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을 제압한 세레나가 호삼랑에게 진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 동평의 경우 그거랑 별개로 꽃 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들이 화려하게 검격을 교환하는 것은 그림이 된다고 생각하고들 있었지만 말이다. “아아아앗!!!” 호삼랑은 자신의 쌍검을 사납게 휘두르면서 세레나에게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공방이 50합을 넘어가면서 호삼랑은 깨닫고 있었다. 지금 세레나의 방패를 넘어서기에 자신의 쌍검은 아직 기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순간 찌르기를 노리고 다른 한손으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호삼랑의 가슴팍이 열렸다. 세레나는 그 안으로 자세를 낮게 파고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레나의 어깨가 호삼랑의 명치를 때렸다. “커억····.” 호삼랑은 순간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몹으로 있는 이상 이게 치명적인 대미지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명치에 강력한 일격을 먹자 호흡에 약간의 곤란을 가져오는 것은 없었다. 그 상태로 세레나는 호삼랑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파고 들어서 방패로 높이 들어 버렸다. 콰당!!! “크윽····.” 호삼랑은 그대로 한 바퀴 허공을 돌아서 지면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호삼랑에게 세레나가 한손에 들린 검을 겨누면서 말했다. “계속 할까요?” ============================ 작품 후기 ============================ 모두가 원하시고 또 저도 꼭 넣으려고 했던 해당의 꽃 호삼랑입니다. 다만 이미 슬기와 세레나가 있는 이상 여성캐릭터로서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을것 같지만 말이죠. 그래도 이 늠름하고 아름다운 꽃은 있는것 자체만으로도 작품에 플러스가 될 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51화 세레나의 말에 호삼랑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아니요. 그만 두죠. 제가 한 수 아래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호삼랑도 지금은 그라운드 제로의 몹으로 있는 몸이었다. 여기서 한 방 거칠게 먹는다고 해도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순수한 무예의 수준 차이를 인정해 버린 것이다. 호삼랑은 그대로 흐트러진 옷 차림을 바로 하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세레나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 일장청 호삼랑.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저의 새로운 주군인 당신을 위해서 견마지로를 다 할 것을 맹세합니다.” “잘 부탁해요. 호삼랑.” 세레나는 싱긋 웃었다. 이 양산박 퀘스트에서 총 네 명의 소환수를 얻은 세레나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아름다운 해당의 꽃이었다. 세레나가 그렇게 호삼랑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슬기는 이제까지 그 어떤 퀘스트 보다 훨씬 더 고전을 하고 있었다. 정운이 봤으면 눈을 뒤집고서라도 반드시 뛰어 들었을 정도로···. 그렇게 슬기는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게 다인가? 고작 이 정도가 다라면 내 힘은 넘겨 줄 수 없네만?” “···········.” 슬기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장신의 키에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번서가 들고 있던 것 보다 더 심상치 않은 주술의 검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이 남자가 바로 양산박의 입운룡(入雲龍) 공손승. 그가 끼어든 전투에서 양산박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하며 최강의 도사라고 여겨지는 남자였다. 그리고 슬기는 이 남자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원래 번서가 슬기에게 졌을 때 번서는 그 대가로 자신의 힘을 바쳐야 했지만 슬기는 그것을 거부했다. 힘의 상성도 맞지 않고 여러 가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에 번서는 자신의 힘의 일부를 실은 부적을 슬기에게 줬다. 번서는 원래 양산박에서 공손승의 제자이기도 했다. 즉, 자신의 주력을 실은 부적을 이용하면 공손승이 어디에 있는지도 찾을 수 있다고 슬기에게 말한 것이다. 양산박의 공손승이라고 하면 수호지에서 최강의 도사로 묘사되는 남자였다. 물론 그 스승인 나진인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세속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곤송승이 최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슬기는 공손승의 힘을 손에 넣으면 앞으로 정운에게 더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만난 공손승은 슬기에게 차분하게 도술 대결을 신청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저 평범하게 당신의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혼은 파우스트의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군요. 일단은 저를 이기십시오.” 생전에 뛰어난 도사였기 때문일까? 그는 영혼을 제압한 상황에서도 다른 양산박의 호걸들과 달리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파우스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가 그 증거였다. 하긴, 그 덕분에 파우스트에게 더 강한 영혼의 금제를 당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양산박의 호걸들 같은 경우 시험의 내용은 자신들이 직접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손승은 오로지 시험의 방식을 오로지 최선을 다한 힘 대결으로만 가능했다. 상대에게 쉽게 져주지 못하도록 파우스트가 그에게 걸어놓은 금제였던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슬기와 공손승의 도술 대 마법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슬기는 맨 처음에 번서에게 한 것처럼 물량 공세로 끝장을 내려고 했다. “염소접, 소화조, 극염랑!!! 염소접(炎小蝶) (작은 화염의 나비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소화조(小火鳥) (작은 화염의 새를 날린다. 대상에 닿으면 강하게 폭발한다.) 극염랑(極炎狼) (중간 크기의 화염 늑대를 소환한다. 대상을 공격하며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슬기가 가지고 있는 주작의 스태프에 있는 기술들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쓸 수 있는 세 가지 기술들이었다. 슬기는 그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출력으로 공격했다. 무려 스무 마리의 나비와 열 마리의 새, 그리고 다섯 마리의 늑대들이 공손승의 사방을 포위하고 단 번에 불태워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흠, 너무 단순하군. 화생토(火生土) 불은 땅을 강하게 한다.” 공손승의 발 밑에서 흙의 벽이 일어나더니 슬기의 불꽃을 막으면서 점점 더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콰콰쾅!! “칫····. 아이스 애로우!!!” 슬기는 불의 마법이 막히자 그 다음에는 바로 얼음 마법을 날렸다. 슬기의 특기는 불의 마법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공격을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특기는 특기. 하지만 메이지인 이상 할 수 있는 마법은 다 익혀두겠다고 생각했던 슬기였다. 얼음의 화살이 다발이 되어서 공손승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공손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생목(水生木) 수기는 목기를 강하게 한다.” 촤아악!!!! 공손승이 쌓아둔 흙의 벽에서 나무들이 튀어나와서 슬기가 발사한 얼음의 화살을 막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공손승의 공격은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목생화(木生火) 목기는 화기를!! 화생토(火生土) 화기는 토기를!! 토생금(土生金) 토기는 금기를!! 금생수(金生水) 금기는 수기를!! 수생목(水生木) 수기는 목기를!!! 오행이 순환하고 그 힘을 더해가니. 오행상승!!!!” 우우우우우웅!!! “윽····· 으윽····.” 슬기는 공손승을 중심으로 엄청난 힘이 뻗어오는 것을 느꼈다. 공손승의 발밑에서 오행의 진법이 생기더니 거기를 중심으로 엄청난 힘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것이다. “폭렬우!!!” 슬기는 상대의 공격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 거대한 화염의 소를 두 마리 소환해서 그대로 들이 박았다. 콰아앙!!! 쾅!!! 하지만 그런 슬기의 공격도 공손승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공손승의 발 밑에 있는 방어마법은 그대로 방어를 겸하는 것 같았다. 슬기의 공격을 화려하게 터지기는 했지만 공손승의 마법진에 그대로 불꽃이 되어서 흡수되어 버렸다. ‘저건······.’ 슬기는 자신의 마법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흡수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했다. 마법을 흡수하는 방어진이라면 섣불리 화력을 앞세워서 공격하는 것도 불리했다. 하지만 그냥 있을수도 없었다. 상대의 공격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는게 좋을 것이오!!” 공손승이 진언을 외우자 그의 주변에서 오대 속성을 상징하는 화, 수, 목, 토, 금의 힘이 솟구쳐서 오색빛의 영롱한 고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기서는 거대한 괴조가 태어났다. “나와라 봉황(鳳凰).” “오오오오오오!!!!!” 공손승이 소환한 것은 거대한 위엄을 온몸에 두른 것 같은 거대한 신수였다. 중국의 신화에는 수많은 신수들이 등장하고 그 신수들 마다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봉황의 경우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해서 사실 봉황이라고 같이 부르는 것은 자웅일체의 완벽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봉황은 모든 새들의 수장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신조들 가운데서도 으뜸이라도 쳐서 신성시 했었다. 엄밀히 말해서···. 슬기가 소환 할 수 있는 주작보다도 한 단계 격이 높은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 봉황은 마치 통곡하는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슬기를 향해서 공격해 왔다. 그 거대한 몸체가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고 슬기는 이를 악물었다. ‘쓸까?’ 순간 슬기는 자신도 주작을 써야 하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작으로 봉황을 이길 수 있을까? 없을까?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길 수 없는 경우 문제는 심각해 진다. 주작을 한 번 쓰고 나면 슬기는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을 기약 할 수 있을까? “앱솔루트 실드!!! 트리플!!!” 결국 슬기는 일단 방어를 택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막인 앱솔루트 실드를 삼중으로 쳤다. 이 정도면 60층 클래스의 보스몹들의 공격에도 견딜 자신이 있는 방어막이었다. 그런데···. 끼기긱···. 끼긱···. 앱솔루트 실드에서 금이 쩌적 가는 소리가 나면서 슬기의 방어막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런····?” 슬기는 설마하니 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 나올줄은 몰랐다. 삼중의 방어막 중에 이미 한 개가 깨지고 두 번째 방어막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이대로는 내 힘을 얻을 수 없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공손승이 호통을 치면서 도검을 휘두르자 봉황은 구슬픈 통곡 같은 소리를 내면서 더욱더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슬기는 두 번째 방어막도 깨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어쩌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그녀가 그라운드 제로에 와서 이렇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에 처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 처했을 때 혼자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이런 위기상황에도 정운이 있었고, 또 세레나가 있어줬다. 슬기는 메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전위는 맡겨야 한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슬기 본인도 평범한 메이지가 아니라 초 고위급 메이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마냥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정운씨·····.’ 슬기는 이를 악물었다. 항상···. 항상 항상 항상···. 항상 이럴 때 마다 정운이 자신을 도와주고 구원해 줬다. 하지만 여기서 정운이 자리에 없다고 그냥 절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자신이 정운의 힘이 되어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노력을 거듭해 온 것이 아니던가ㅑ? ‘이럴 때 정운씨라면···?’ 슬기는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그리고 정운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슬기가 처음으로 진정으로 홀로 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콰장창!!! “멀티 블링크!!!” 슬기는 자신의 방어막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몸을 피했다. 윤정철이 정운과 결투를 할 때 사용했던 기술. 당연하지만 그건 원래 메이지들이 쓰는 기술이었고 슬기도 사용 할 줄 알았다. “으음·····.” 공손승은 자신의 주변에서 수많은 슬기의 분신이 보이자 처음으로 난감한 느낌의 침음성을 뱉었다. ‘난 바보였어···. 왜 상대와 정면으로 힘 승부를 했을까?’ 슬기는 자신의 전투 방법이 근본부터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정운의 전투법은 항상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타인의 약점을 찌르는 것이었다. 척 봐도 저 공손승이라는 남자는 슬기보다 더 뛰어나다. 저 남자와 정면으로 주술대결을 하려면 아마도 배대호가 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여우가 사자를 상대할 때 꼭 사자처럼 싸워야 할 필요는 없다. 여우에게는 여우의 싸움법이 있는 법···. “봉황!! 바람이다!!!” “오오오오오!!!!” 공손승이 명령하자 봉황이 거대한 날개를 펄럭였다. 그 날갯짓은 마치 태풍과도 같은 강풍을 만들어냈고, 슬기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빈틈!!!” 슬기가 빈틈을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공손승이 도검을 가지고 슬기를 향해서 가리켰다. 콰아앙!!! 그러자 슬기의 몸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슬기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이렇게 끝인··. 음!!” 공손승은 자신의 공격을 맞고 땅에 떨어지는 슬기의 얼굴이 싱긋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뒤편에서는···. “여기까지 오면 역시 못 피하겠죠?” “···환술이었나?” “일루전이라는 스킬입니다. 화룡!! 더블 캐스팅!!!” 콰아아아아앙!!!! 환상으로 공손승을 속인 후에 바로 지척까지 접근한 슬기의 손에서 두 마리의 화룡이 소환되어서 터져 나갔다. 공손승은 미처 방어에 관한 주술을 외울 겨를도 없이 그대로 슬기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맞아 버렸다. “크억·····. 쿨럭···. 대단하군. 내가 만든 오행방진을 뚫고 들어오다니····.” 쓰러진 공손승은 슬기를 향해서 말했다. 슬기는 웃으면서 그런 공손승에게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별 것 아닌 속임수입니다. 땅 속으로 파고 들어왔죠.” “그래···. 하하··. 그랬군.” 공손승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방어막이 너무 단단하니까 마법을 이용해서 땅 속으로 파고 들어와서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멀티 블링크를 이용한 분신술도 사실은 일루전으로 만든 환술이었던 것이다. 마법 자체는 그렇게 고난이도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책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이야 말로 전투에 있어서는 가장 바람직한 일. 땅굴을 파고 접근한다는 것은 어린애의 지혜와도 같은 사고방식이었지만···. 그런 어린애의 지혜에 당한 공손승 자신의 입장에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패배는 패배일 뿐. “나의···. 힘을 넘겨주겠네.” 공손승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도검에 자신의 힘을 불어 넣어서 슬기에게 넘겨줬다. “부디···. 우리 양산박 형제들의 영혼을 모독한 발칙한 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슬기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겼다는 성취감 때문일까? 슬기는 여기서 앞으로에 있어서 중요한 얘기를 듣고도 그냥 흘려버리고만 말았다. 그리고 그건 나중에 슬기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한 가장 후회되는 일로 기억된다. ============================ 작품 후기 ============================ 길고 길었던 양산박 퀘스트는 이렇게 끝입니다. 제가 수호지 팬이었기도 했고 소재가 풍부했기에 좀 길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사실 양산박의 108명 중에서 몇명만을 뽑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많이 어려웠습니다. 옥기린 노준의 라던가 청면수 양청이라던가? 몰우전 장청등... 아쉬운 캐릭터가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일단 양산박 퀘스트편은 이렇게 종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52화 <수련하는 여자들 정운의 정찰.> 양산박 퀘스트가 끝난 후···. 정운과 슬기, 세레나는 잠시 동안 각자의 힘을 갈무리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지녔다. 사실 정운의 경우는 별 상관없었지만 세레나와 슬기의 경우는 필수적으로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정운의 경우 자신의 주력 무기 세 개가 모두 업그레이드 되었다. 월드 서버에 진출하고 나서도 지금 이상으로 만족스런 무기를 찾지 못해서 고전하고 있던 정운으로서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적응하는 것도 쉬웠다. 외관적인 모양이나 사용법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에 약간의 실전을 거쳐보면 금방 적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레나와 슬기의 경우는 달랐다. 세레나의 경우···. 네 명이나 되는 소환수가 생겼다. 이로서 그녀도 정운이나 한중겸처럼 오토를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상 부하들에게만 일을 시키고 자신은 뒤편에서 뒷짐 쥐고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포함해서 오인 일조의 파티를 만들어서 필드에서 부지런히 사냥을 하고 있었다. 74층 필드는 물론이고 일반 서버로 내려가서 종종 레이드까지 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팀원의 궁합은 상당히 좋은 편인 것 같았다. 원래 세레나의 캐릭터는 성기사. 아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타입이다. 네 명이나 뒤는 강력한 전사들이 부하로 생기자 세레나의 버프가 본격적으로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정운이나 슬기와 함께 할 때도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제는 월드 서버의 유저들 중에서도 그녀와 소환수들을 동시에 상대 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 서버에서도 한중겸 밑으로는 이제 세레나와 정면 대결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다만 소소한 문제가 조금 남아있기는 했다. 그 문제란····. “이규!! 폭주하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누님····.” “동평!! 쓸데 없이 폼 잡지 마!! 간결하고 간단하게 싸워!!! 할 수 있잖아!!?” “사진!!! 옷 입으라고 몇 번 말해야 알겠어!!!?” “호삼랑···· 너 꼭 화장해야 하니?” 이렇게 세레나의 목청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양산박의 호걸들···. 이라고 하면 뭔가 멋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이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문제 일으키고 한군데 모였던 자들이다. 그 후에 공적이 크고 여러 가지 군사적인 면에서 뛰어남을 보여서 영웅 취급 받기는 하지만···. 하나하나가 개성이 워낙에 강하고 사람 말을 무진장 안 듣는다. 덕분에 세레나로서는 팀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엄청나게 시험받고 있었다. 생전에도 잔 다르크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군을 이끌었던 그녀였지만···. 사실 그때의 기억이 세레나를 더 힘겹게 하고 잇었다. 생전에 잔 다르크라고 불리던 시절의 부하들은 세레나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했다. 구국의 계시를 받은 성처녀의 명령에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말 안듣는 부하들이 한층 더 버거운 세레나였다. ‘후우···. 마스터께서는 용케도 후한말의 무장을 아홉이나 데리고 있는군····.’ 세레나는 네 명만 데리고 있음에도 혈압으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확실히 정운이 초반에 서로 경쟁을 시키면서 확실하게 길을 들인게 주효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세레나가 그렇게 필드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사이····. 슬기 역시 누구보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으음····. 그러니까···. 음양오행, 그리고 오행상극과 오행상생····. 또····. 음과 양의 상성을······. 아하···. 머리 아파.” 슬기는 최근 칼 한 자루를 들고 낑낑 거리고 있었다. 송문고정검 공격력 : 100 마력 : 12,000 무게 : 50 내구력 : 무한 스킬 : ? [입운룡 공손승의 모든 주력과 도술에 관한 지식이 들어있는 주술검. 마법이나 주술의 위력을 높여주고 공손승의 도술에 대한 지식을 착용자에게 알려준다.] 이것이 슬기를 하루 종일 낑낑 거리게 하고 있는 원인이었다. 공손승의 힘은 이 검에 고스란히 들었다. 그것만 해도 사실 큰 힘이기는 했다. 주작의 스태프의 마력이 10,000, 거기에 송문고정검의 마력이 12,000이다. 이것만 해도 마력 효과만 총 22,000이었다. 송문고정검이 주작의 스태프와 병행해서 들 수 있는 작은 소검이었기에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만 해도 슬기는 충분히 강해졌지만···. 사람 마음 이라는게 눈 앞에 당근이 아른 거리고 있으면 꼭 잡아야 직성이 풀리지 않는가? 더구나 스킬에 있는 ‘?’ 표시도 마음에 걸렸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라고만 되어 있다는 것은 저것이 그라운드 제로의 이치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운의 오토 돌리기에 버금가는 사기 꼼수가 발생 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슬기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최근 며칠 동안 슬기는 송문고정검의 안에 있는 공손승의 도술에 관해서 이해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배대호같은 천재도 아니고 평범한 일반인 정도의 지능밖에 없는 슬기였지만···. 끈기와 근성의 열쇠를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도술의 문을 열어가고 있었다. 만약 공손승의 도술을 10분의 1만큼이라도 쓸 수 있게 되면 슬기는 지금까지의 슬기와는 완전히 다른 힘을 사용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슬기 본인도 그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슬기와 세레나가 각각의 일에 바쁜 와중에···. 결국 정운은 또 한번 무료함에 몸부림 쳤다. 다른 사람이랑 손잡고 다른 퀘스트에 한 다리 걸쳐볼까 싶었지만···. 그것도 힘들었다. 사실 74층의 퀘스트도 대강대강 눈에 띄는 것은 슬슬 정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귀찮게 하던 한중겸은 일전에 왕귀인 사건 때문에 이민지의 마음을 되돌리게 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바빴다. 결국 정운은 혼자서 심심하게 솔로 사냥을 했다. 그림자의 무장으로 오토를 돌리고 있기에 가만히 있어도 경험치는 착착 들어왔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서 사냥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정운은 문득 이렇게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것 보다는 74층의 보스몹이라도 정찰하고 오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레이드 가면 알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사전에 정보를 캐치해 두는게 좋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을 하자마자 혼자 몸으로 보스몹이 있는 중앙지대로 움직였다. 어디까지나 정찰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정운 혼자서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보스몹의 지역은 유럽의 중세를 생각나게 하는 고성이었다. “이전에는 달기였지? 이번에는 서양의 인물이라는 건가?” 건축에 문외한인 정운으로서는 고성을 척 보고 연대까지 파악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성의 분위기는 척 봐도 웅장하다기 보다는 칙칙한 느낌이 강했다. ‘설마 드라큘라 백작의 성은 아니겠지?’ 드라큘라라는 종족에 관해서는 진위여부를 확신 못하는 정운이었다. 원래는 없다고 해야겠지만 악마가 있고 천사가 있는데 드라큘라만 없다고 하면 그것 그것대로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냥 불확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남자가 실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알고 있었다. 루마니아에 있었던 귀족으로 적에게 잔인한 형벌을 펼쳐서 악명을 쌓았던 귀족이었다. 정도 뿐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뭐가 나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정운은 본격적으로 보스몹 탐색을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보스몹 지역에 혼자 들어가기는 좀···. 조운, 마초.”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정운은 그림자의 장수들 중에서도 조운과 마초를 불렀다. “너희들은 저 안으로 들어가라. 다만··, 목표는 어디까지나 정찰이다. 보스몹이 누군인 지만 파악해도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조운과 마초는 정운의 명령을 받고 보스몹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운은 안전한 장소에서 눈을 감고 둘의 시야를 공유해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림자의 장수들이 당하면 정신력에 약간의 손실은 오지만 기본적으로 대미지나 손해는 없다. 이게 정운이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정찰 방법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꼭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들인데···.’ 조운과 마초가 성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변을 천천히 수색하는 모습까지 정운에게 모두 눈에 들어왔다. 성안은 먼지가 자욱하게 쌓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화려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그림. 사냥감을 박제한 전리품. 무기를 들고 있는 갑옷까지···. ‘영화 같은 장면에서는 이럴 때 갑옷이 움직여서 공격을 하는데 말이야.’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끼기긱·· 끼긱···. 주변에 있던 갑옷들이 녹슨 관절을 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딱 정석이냐? 조운 마초!! 돌파해!!!” 정운이 명령을 내렸고, 조운과 마초는 전투 모두로 변화했다. -뇌천신공!! -뇌천신공!! 이제 스킬을 쓰는 것에도 많이 익숙해진 둘은 정운의 특기인 뇌천신공을 운영하면서 앞으로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비켜라!! 이 양철 껍데기들아!!! -너희들 따위한테 죽을 정도면 장판파에서 죽었을 것이다. 조운과 마초. 둘 다 돌파력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남자들이었다. 조운이야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장판파에서 아두를 안고 돌파한 일화는 아시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였다. 뭐, 결과적으로 아두를 안 구하는게 촉 나라의 미래에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조운이 당시에 그것까지는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리고 마초. 마초는 예전에 조조와 적대하면서 패배할 때 오로지 자신과 방덕을 비롯한 자신의 측근들과 조조군의 포위망을 뚫어낸 경험이 있다. 조조군이라는 것이 원래 질 때도 있고 이길때도 있었지만···. 한 번 이길 때면 적을 확실하게 끝장을 내는게 특기라면 특기였다. 그런 조조군에게 패배하면서도 무력으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남자는 여포를 제외하고는 마초가 유일했다. 그런 둘이 힘을 합쳐서 전진하기 시작하자 움직이는 갑옷들 따위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갑옷들의 방어막을 완전히 돌파한 마초와 조운은 그대로 가장 위층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간 순간···. -이건···? -천인공로할·····. 이미 육신도 없고 세속에서도 벗어난 마초와 조운의 몸이 분노로 덜덜 떨렸다. 그만큼 그들의 눈앞에 있는 광경은 엽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체··. 그것도 그냥 시체가 아니라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갈기갈기 찢긴 어린소년들의 시체였다. 개중에는 머리를 잘라서 박제로 해서 벽에 일렬로 나란히 걸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아무리 해도 이 방의 주인공이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것 같았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도리도 정의도 눈꼽만큼도 없는 놈이겠지. 조운이나 마초는 모두 영웅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남자였다. 전쟁터에서 서로 죽이거나 속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욕보이는 행위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상식으로는 절대로 용납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진정해. 둘 다 진정하고 안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가 봐.” 정운은 흥분한 두 장수를 진정 시켰다. 정운도 저 엽기적인 방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 시체가 진짜일 리는 없다. 보스몹이 어디에 가서 어린애들을 납치해 와서 저렇게 만들겠는가? 아마도 저건 보스몹의 생전의 기행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 것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53화 “어린애들로 만들어진 시체···. 그것도 전부 어린 소년이라? 누구지?” 정운은 서양에 이렇게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인간이 누구인지 아직 감이 오지를 않았다. 몇 명인가 짚이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냥 예상일 뿐. 뭔가 확신을 하기에는 아직 단서가 많이 부족했다. 정운의 지시를 받은 마초와 조운은 방안에 있는 문을 열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마초와 조운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은····. -···이런? -하필이면····? 마초와 조운이 둘 다 난색을 표했다. 차라리 강대하고 엄청난 적이 나타났다면 이 용맹한 장수들이 이렇게 난처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이렇게 난처해하는 것은 눈앞에 있는 상대가 아직 어린애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들이 갑옷을 입고 손에는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두 장수의 앞을 가로 막았다. “돌격 앞으로!!!” “오오오오오!!!!!” “푸른 수염 기사단 만세!!!!” 어린애들은 광신도 같은 눈을 하고는 둘에게 돌격했다. 정운은 거기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조운, 마초, 최대한 상대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라!!”‘ -예. 주군!! -예. 주군!! 조운과 마초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린애들을 무기로 쳐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둘 도 전란의 시대에 태어난 남자였다. 전쟁터에서는 때때로 어린 소년들이나 늙은 노인들이 병사로 징집되어 오는 경우도 있었고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싸우기도 했다. 노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전쟁터에서는 아군을 위해서, 주군을 위해서 스스로를 수라로 바꿀 수 있어야 했다. 둘은 독한 마음을 먹고 소년들을 상대로 돌파를 감행했다. 하지만···. “으아아아!!!” “죽어랏!!!” 콰앙!! 쾅쾅!!! -크윽····. -이런? 조운과 마초는 난색을 표했다. 지금 자신들 둘만 가지고 돌파를 하기에는 상대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도저히 어린애들의 무력이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었다. 한방 한방을 막을 때 마다 조운과 마초도 손목이 저릿저릿해질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전달 되었다. “망할···. 그라운드 제로란 말이지····.” 정운은 상황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머릿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어린애들이 조운과 마초를 저렇게 몰아붙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도 저 아이들 자체가 보스몹의 부하로서 어떤 보정을 받았을 것이다. “죽어!! 죽어라!!!” “푸른 수염 만세!!!!!” “죽여라!! 침입자를 죽여라!!!” 소년들의 광적인 공격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공격 일변도만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조운의 창날에 몸통이 관통당한 소년도 그대로 팔 다리를 허우적거리면서 조운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건 이미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광기서린 광경이었다. -큭···. 주군 죄송합니다. -죄송····. 결국 조운과 마초는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괴물 꼬마들의 다수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역소환 되어 버렸다. “음···. 둘만 보낸 게 실수군. 결국 보스몹의 얼굴은 구경도 못 했어···. 하지만 상관없지. 보스몹이 누군지는 알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정운은 역소환 되는 조운과 마초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번 보스몹을 정찰하러 온 것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타이밍에 나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단 말이야.’ 정운이 보스몹의 정체를 알 수 있는 힌트는 충분했다. 어린 소년들의 엽기적인 시체. 소년 기사단. 그리고 마지막은 결정적이었다. 푸른 수염.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은 동화속의 가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 푸른 수염의 모델이 되는 인물은 실존인물이었다. 질 드 레. 잔 다르크의 부관이었고 영웅에서 엽기 살인마로 이름을 바꿔서 역사에 새긴 남자였다. ‘그 남자가 틀림없어. ····제기랄.’ 정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상대가 질 드 레라면 정운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프게 된다. 질 두 레. 원래 이름은 질 드 몽모랑시-라발이라고 한다. 원래는 잔 다르크의 부관이자 전우로 이름 높은 군인이었고 훌륭한 귀족의 본보기 같은 남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잔 다르크가 마녀로 몰려허 화형을 당한 후에 그의 타락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죄목은 고문, 강간, 동성애, 시간 등등··. 워낙에 엽기적인 항목들이 많아서 기록을 다 남기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악명을 남겼다. 결국 그는 한세기 뒤쯤에 나타나는 헝가리의 귀족 에르제베토 바토리와 함께 근대 연쇄 살인범의 전조로 여겨지게 될 정도로 악명을 남겼다. 구국의 영웅이라는 이름이 무색해 질 정도로 비참한 말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수염이라는 것은 잔혹 동화로 가상의 얘기였지만 그 모델이 되는 사람은 질 드 레라는 얘기가 있었다. 정운도 그래서 적의 정체를 짐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의 정체가 질 드 레라면 정운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꼭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세레나의 존재였다. 질 드 레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정신이 멀쩡한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세레나가 그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정운이 스스로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 레이드에 세레나를 빼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했다. “하아····. 골치 아프네····.” 레이드의 난이도 운운하기 이 전에 일단 한숨부터 나오는 정운이었다. “세레나,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정운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세레나에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세레나를 불러서 일단 얘기를 꺼내기 전에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세레나의 성격상 무작정 질 드 레의 얘기를 꺼냈을 때 어떤 반응이 올지는 모른다. 그러니···. 그 전에 살살 달래서 기분을 풀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성적표 나오기 며칠 전부터 갑자기 효자가 되기 시작하는 고등학생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밖에 나왔는데·····. 오랜만에 둘이서 데이트나 할까?” “····예. 뭐···.” 세레나는 정운이 먼저 이렇게 자신과 함께 하자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에 일단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뭔가 미심쩍어 했다. 정운은 그런 세레나를 데리고 근처의 스카이 타운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평소에 한식, 혹은 중식을 즐겨 먹는 정운에게 있어서 양식은 별로였지만 오늘은 세레나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서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고 보니 세레나는 생전에 프랑스에서 어떤 생활을 했지? 문득 궁금한데?” 정운이 요리를 먹으면서 하는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야.” 잔 다르크의 일생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대단한 일생을 살았다는 걸까? 그녀가 남긴 업적은 전 세계에 이름을 남겼고, 수많은 시인이나 예술가들이 그녀를 모티브로 삼아서 자기 작품을 남겼다. 세레나의 말은 겸손의 레벨을 초월해서 초 겸손의 경지에 도달한 망언이었다. “뭐···. 정말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계시를 받기 전만 해도····. 전 그냥 평범한 농부의 딸이었으니까요. 다만···.” “다만?” “당시 우리 나라는 오래된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힘겨웠던 시기였습니다. 사실 여기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이게 고국의 음식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를 않네요. 그때는 이렇게 화려한 음식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응? 아니 하지만···. 당신은 전쟁에서 이기고 축하 연회에도 들어갔을 것 아니야? 그럴때는 왕족도 귀족도 모이는 호화로운 연회가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정운이 의뢰라는 듯이 말하자 세레나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연회에 참가한 적은 몇 번인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일반 백성들은 빵 한조각이 없어서 난리였는데····.” “하긴···. 당신 성품상 그게 마음에 들리는 없지.” “예.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회장에서 음식을 먹을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응? 그건 어째서?” “저는·····. 음,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성처녀였으니까요.” “아아아······.” 정운은 이해가 갔다. 연회장에 차려놓은 화려한 산해진미는 사실 반쯤은 폼이다. 자, 이렇게 많은 음식을 차려놨으니 엄청 호화로운 파티다. 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허세인 것이다. 물론 먹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자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인기 없는 귀족이라던가···? 혹은 사업상의 얘기를 차분히 진행하고 싶은 중년의 귀족이라던가···? 그런 자들은 음식의 테이블에 앉아서 적당히 요리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저 홀에서 포도주만 홀짝이거나 아니면 댄스홀을 누비면서 서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기에 바쁘다. 프랑스의 연회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클럽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게···. 하룻밤 즐기기 위한 젊은 남녀들이 서로를 탐색하고 파트너를 찾아서 욕정에 불타오르는 일은 비교적 흔했다고 한다. 어쨌든···. 세레나의 경우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천하의 잔 다르크가 연회에서 음식에 달라붙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래도 보기에 좋지 않았을 것이다. 세레나는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이 아련한 시선으로 말했다. “그때···. 샤를 전하의 곁에는 여러 가지 신하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아아···. 역사에 대강 남아는 있어.” “예. 사실 제 목을 바치는 일은 쉬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고 나면 제 군단에 있던 휘하들까지 나쁜 일을 당할 수 있었죠. 그래서··. 저도 나름 성처녀라는 지위를 공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의 전우들 중에 딱히 기억나는 사람은 없어?” 정운은 은근슬쩍 중요한 얘기를 물었다. 세레나는 정운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순순히 얘기를 했다. “사실···. 그 후에 걱정된 남자가 있었습니다. 질 드 몽모랑시 라발이라는 남자를 아십니까? 소위 질 드 레라고 이름을 남긴 남자였는데?” “아아···. 알고는 있지? 당신하고는 다른 의미로 유명한 사람이잖아?”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제가 사후에 천사가 되고···. 가장 놀랐던 것은 질 백작의 행위였습니다. 그가···. 그가 그렇게 타락할 줄은 몰랐습니다. 때로는 저도 답답하다 여길 정도로 신앙심이 깊고 고지식한 남자였는데····.” 세레나의 말에 의하면 질 드 레는 원래 굉장히 신실하고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우수한 귀족이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는 우수한 부관이었고, 부하들에게 있어서 신망도 두터웠다. 신분이 높은 자를 대할 때도 낮은 자를 대할 때도 항상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예의를 다할 정도로 예의에 철저한 남자였다고 한다. 그런 남자가 시대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엽기 살인마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세레나는 크게 놀랐다고 한다. “정말이지····. 그에 관해서는··· 저도 아직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진작에 그의 영혼을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 “아니요. 제 잘못입니다.” “············.” 단호하게 자신을 자책하는 세레나를 보면서 정운은 속으로 곤란해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처음에 정운이 생각하기로는···. 세레나가 질 드 레에게 별 감정이 없으면 가장 베스트였다. 하지만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해도 차라리 그에게 격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럼 그것대로 최악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세레나는 질 드 레의 영혼을 구하지 못한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최악.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 작품 후기 ============================ 질 드 레는 너무 티가 났나 봅니다. 쩝, 뭐 어차피 쭉 리퀘스트 되던 캐릭터고 전 편에 달기가 나왔으니 이쯤에는 나와야 하는 캐릭터죠. 다만 어떻게 풀어갈지는 나름 독창적으로 살려봐야 겠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54화 세레나가 질 드 레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이겨도 져도 세레나의 마음에 상처가 남는다. 정운으로서는 그런 결과는 정말 바라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이럴 때는 속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지···.’ 정운은 이 순간 이번 레이드에서 세레나를 어떻게든 빼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을 납득 시키는 것은 큰 문제였지만 그래도 저런 마음가짐의 세레나가 레이드에 참간한다고 해서 꼭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마스터? 뭔가 불쾌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정운은 세레나와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 잠깐 걸을까? 근처에 공원이 있는데?” “그럴까요?” 정운은 세레나와 함께 공원까지 산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걸어갔다. 가는 길에 스카이 타운의 정경은 누가 봐도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연인끼리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커플. 그리고 엄마 손을 꼭 잡고 가는 어린아이까지··.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꼭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드는 정운이었다. 그래서 일반 서버의 마을 보다는 이렇게 스카이 타운에 있는 것이 좀 더 마음이 안정되는 정운이었다. “큼····.” 세레나는 헛기침을 하더니 정운의 팔에 슬며시 자기 팔을 끼워 넣었다. “응? 세레나?” “괜찮겠죠? 가끔은····.” “····그래.” 정운은 세레나가 먼저 이렇게 스킨쉽을 해오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상당히 반가웠다. 슬기도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세레나의 경우는 정말로 애정표현이 서툰 타입이었다. 자연스럽게 애정표현을 하지는 못하고 아주 격하게 어프로치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한 걸음 물러나서 전전긍긍하고 있는게 다였다. 그런 그녀가 먼저 이렇게 다가온다는 것은 나름 긍정적인 진보라고 할 만했다. 공원에 도착한 정운은 세레나와 함께 공원의 풀밭에 앉았다. “옷 더러워 질겁니다.” “괜찮아. 가끔은····.” 정운은 풀밭에 드러누워서 그대로 세레나의 무릎에 자기 머리를 얹었다. “마스터···.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부끄러워?” “·····조금은요.” 세레나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고 정운은 그냥 피식 웃었다. 프랑스인은 연애에 상당히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편인데···. 역시 개인차가 있는 걸까? 세레나의 경우는 이렇게 조금만 놀려도 신선한 반응을 부였다. 정운으로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더 귀여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잠깐만 잘게. ···나중에 깨워 줘.”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세레나의 무릎을 베고 그대로 눈을 스르륵 감아 버렸다. 세레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정운의 머리를 치우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내 체념한 것처럼 정운의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마스터····. 나중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당신의 행복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세레나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다. 생전에 자신이라면 남녀간의 사랑은 평생 자신과 연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했을 것을···. 이제 와서 이렇게 격정적인 사랑이 자신에게 찾아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브리엘은 세레나에게 사랑의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위대한 감정이라고 했지만·····. 때때로는 익숙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느끼고 깜짝깜짝 놀라는 세레나에게는 아직도 사랑은 신기한 감정이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하고 모든게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능하면 좀 더 오랫동안 이런 행복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세레나였다. “응? 세레나?” 정운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니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세레나의 얼굴이 보였다. 나무에 살짝 기댄 형태로 눈을 감고 조용히 졸고 있는 그녀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부드러운 무릎에서 머리를 든 정운은 세레나를 조용히 깨웠다. “세레나, 일어나.” “으음···. 마스터.” 정운이 깨우자 세레나의 눈꺼플이 파르르 떨리면서 그녀가 눈을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이 웃으며서 뺨에 입을 맞웠다. “덕분에 잘 잤어. 많이 피곤했지?” “아니요 별로···. 전쟁중인 야전에 비하면 이런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정운은 씁쓸하게 웃었다. 거기에 비교를 해도 그다지 기쁘지 않다고 할까? 정운은 세레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날씨가 흐려지더니 거기에 비까지 내리기 시작 하는게 아닌가? “우산도 없는데···. 할 수 없나?” 정운은 세레나를 데리고 근처의 호텔로 들어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집으로 가는 것도 귀찮았다. 오늘 하루는 온전히 세레나에게 하루 봉사하는 걸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슬기도 요즘 연구하느라 바쁘고 말이야···.’ 한 번 연구에 빠지면 근성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 슬기였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요즘 슬기하고 거의 잠자리를 하지 못한 정운이었다. 정운은 호텔에 들어가서 세레나에게 말했다. “옷이 많이 젖었네? 같이 씻을까?” 정운의 장난기 어린 말에 세레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마스터···. 저기···.” “응?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정운은 그런 세레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눈에 어지간히 콩깍지를 씌인 모양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행동 하나 말 하나하나가 어떻게 해도 사랑 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 세레나는 정운의 반 고집에 이끌려서 은근슬쩍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세레나는 거품을 잔뜩 낸 욕조에 몸을 담구고 가능하면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정운은 그런 세레나를 보고 심통이 났다. 모처럼 단 둘인데 너무 뒤로 빼니까 심술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세레나? 오늘은 어땠어?” “예? 으음··. 좋았습니다. 그런데 마스터····.” “응? 왜?” “아니···. 가능하면 이런건 침대에서····.” 세레나는 어느새 자신에게 접근한 정운인 몸을 바싹 밀착하는 것을 느끼고 온몬이 굳었다. 정운을 밀어내지는 않았지만 표정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아무래도 많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역시 이런걸 보면 세레나가 많이 순진하다는게 느껴졌다. 차라리 예전에 어쩔 수 없이 정운과 관계를 지닐때는 저이렇게까지 부끄러워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정운에게는 더 사랑스럽게 드러났다. 정운의 곁에 있는 것은 성인 잔 다르크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 세레나라는 것이 실감이 났던 것이다. 결국 정운은 세레나를 그대로 욕조에서 들었다. “꺄악···. 마스터.” 정운이 갑자기 들자 물기에 촉촉하게 젖어있는 세레나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정운은 그대로 그녀의 나신을 감상하듯이 바라봄녀서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싫다고 했지? 그럼 이대로 침대로 옮겨줄게.” “마스터 수건, 아니 물기도 안 닦았는데···.” 세레나는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려고 했지만 정운은 그것도 여의치 않게 했다.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를 데리고 욕실을 나가면서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다시 젖을 테니까.” “그런····.”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를 품에 안고 침대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날 세레나는 정운과 함께 호텔에서 밤을 꼬박 지새워야 했다. 아침 햇살이 정운의 뺨을 따뜻하게 비추고···. 정운은 슬며시 눈을 떴다. 어제따라 세레나가 한 층 더 사랑스러워서 거의 해뜰 무렵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정운은 세레나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가끔은 이런것도 괜찮지?’ 처음에는 세레나에게 질 드 레에 관해서 말하려고 했던게 목적이었던 정운이었지만 어느새 그냥 세레나를 위로하는 데이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동안 세레나와 이런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 잠들어 있는줄 알았던 세레나가 살며시 눈을 떳다. “깼어?” “깼다기 보다는···. 자지 못했다고 하는게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었다. “미안···. 그래도 한마디만 해도 돼?” “····뭡니까?” “어제 정말···. 윽···.” 말을 하던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의 가벼운 주먹을 명치에 맞고 말을 멈췄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끄럽다는 듯이 정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불속에서 아침을 알콩달콩하게 보내는 둘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했다. “음··. 마스터. 고맙습니다. 최근 들어서 이렇게 편하게 쉬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정운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세레나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세레나는 정운에게 안겨서 얌전히 그 손길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정운의 손길을 느끼던 세레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마스터, 그런데···. 혹시 저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응? 무슨····?” “전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마스터께서 저를 향해서 보여주신 사랑도 저를 충분히 위로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마스터의 용건을 말해 주십시오.” “세레나·····.” 정운은 순간 자신이 세레나를 너무 쉽게 본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보면 정운과 세레나도 함께 한 세월이 제법 된다. 그런데 어떻게 완전히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사이가 된 후에도 정운이 먼저 세레나에게 이렇게 위로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정운이 세레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슬기와 세레나를 가급적 차별한다고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대한 자신을 절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이 이렇게 세레나에게 따로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은···. 세레나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증거였다. 세레나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면서 그저 정운의 말을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말이 나오지 않자 세레나가 결국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말 할게.” 정운은 질 드 레의 일은 세레나에게 말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십시오. 설사,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해도 저는 모두 이해하겠습니다.”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말했잖아. 그 문제로 다시는 너도 슬기도 상처 입히지 않겠다고.” 정운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설마하니 그런 쪽으로 오해 할 줄은 물랐다. ‘날 그렇게 못 믿나? 아니면 내 캐릭터가 여자를 두루 거느려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으로 찍힌 건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세레나가 말했다. “제 경우···. 슬기와 마스터의 사이를 알면서도 그 사이에 끼어든 책임이 있습니다. 새삼 스럽게 다른 여자가 는다고 해도 뭐라고 말 할 자격은···.” 딱!! “아·····.” 세레나는 말을 하던 자신의 이마에 아픈 통증을 느꼈다. 정운이 딱밤으로 세레나의 이마를 가격한 것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아팠다. “마스터······.” 세레나가 눈을 글썽 거리면서 말하자 정운이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말했잖아? 당신도 물론 슬기도 잘 못 한 것은 없어. 모든 잘못과 책임은 나한테 있어.” 엄밀히 말해서···. 커플 사이에 끼어 들어서 비집고 들어갔다는 점에서는 세레나에게 약간의 책임이 있는게 도리상 사실이다. 하지만 정운은 항상 그 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잘못과 악역을 자신이 떠 맡으려고 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55화 <세레나의 각오> “마스터····.” “내가 너희 둘을 동시에 사랑했어. 욕심만 많은 나쁜 놈이지···. 하지만 그래도 내가 마음을 포기 못하고 결국은 너희 둘 다 손에 넣은 거야. 그러니···. 넌 아무것도 나쁘지 않아. 나쁜건 나. 이걸로 결정이야. 넌 절대로 죄책감 가지지 마. 알겠어?” “··············.” “그리고, 몇 번이고 하는 말이지만 더 이상 내 곁에 여자는 필요 없어. 정말로, 너희 둘이 마지막이야. 더 이상 내 마음이 흔들릴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 “···············.” 세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운의 마음에 감사하면서 품안으로 더 기어들어갈 뿐이었다. 정운은 지금 감동한 세레나라면 혹시 자신의 말이 통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운은 세레나에게 조심 스럽게 말했다. “세레나···, 사실 내가 말 하려는 것은 다른 거야. 그러니까 실은·····.” 정운은 세레나에게 질 드 레의 일에 관해서 설명했다. 세레나는 설마 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었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정운에게 모든 설명을 다 듣고 나서는···. “설마··· 설마 정말로 그 남자가 여기에 있었다니······.” “예상 못했던 거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사실···. 사실 그의 악명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제 부관으로 있던 시절의 그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그게 진실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설마 그 남자가 그렇게까지 타락할 거라고는····.” 세레나는 한 편으로 질 드 레의 악명이 자신을 싫어하던 귀족들이 꾸며낸 흉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소는 누명이 있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생각해 봐. 성실한 사람일수록 진흙탕에 발을 담구면 더 크게 더렵혀지는 법이야.” “·············.” “이건 내 예상일뿐이지만···. 세레나 당신이 마녀로 몰려서 화형 당했던 것도 질 드 레에게 있어서는 큰 쇼크였겠지. 그게 신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말이야.” “결국···. 저 때문이군요.”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때문은 아니야. 다만···. 시대의 탓이라고 해야 겠지.” “···········.” 정운의 위로에도 세레나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런 세레나에게 정운이 말했다. “세레나···. 내 생각이지만 가능하면 이번 레이드에서는 당신은 빠져줘.”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게 말 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가능하면 말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소용 없습니다. 마스터. 생각해 보십시오. 마스터께서 한 번 클리어를 한다고 해도 질 백작은 결국 74층의 보스몹 에어리어에 그대로 있겠죠? 제가 그를 정녕 찾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이번에는 정운이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월드 서버의 보스몹을 한 번 클리어했다고 해서 그걸로 쫑일 리가 없었다. 결국 질 드 레는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고 세레나가 그 남자를 안 만날 리가 없었다. “으음·····.” 곤란함을 느끼는 정운에게 세레나가 말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마스터···. 저를 그에게 보내 주십시오. 그의 혼을 구원하겠습니다.” “저기 세레나····. 이미 질 드 레는 당신이 알고 있는 질백작하고는 전혀 다른 인물일 수도 있어.” “그렇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 후세까지 퍼져버린 악명에 의해서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제가 구원하지 않으면 누가 구운 할까요?” “하지만 세레나····.” “마스터. 전 절대 전우를 버리지 않습니다. 제가 스스로의 긍지를 지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정운은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굳건한 의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가능성은 있는 거야?”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제 예상이 맞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도 없이 74층을 돌파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세레나의 목소리에는 더 할 나위 없는 확신이 가득해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면 정운도 그냥 양보해 줄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정운은 74층의 레이드를 선언했고 한영동맹의 모든 유저들이 모였다. “74층에서 퀘스트를 서서히 마무리 짓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빠르지 않나요?”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경우는 좀 특수한 경우라서 말이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레이드의 경우는 일단 시범적인 것이니까.” “그런 클리어는 목적에 없는 건가요? 정찰이 목적인가보죠?” 그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닙니다. 만약 잘 풀리기만 한다면···. 이제까지 봤었던 어떤 레이드 보다 더 손 쉬운 레이드가 될 것입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모두가 모이자 정운이 일행에게 말했다. “그럼··. 74층 레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우선 저와 슬기, 그리고 세레나가 안에 들어가서 전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약 거기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후방의 지원부대가 모두 진입해 주기 바랍니다.” 정운의 작전을 들은 배대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그렇게 하는 거지? 선발대를 밀어 넣으려면 좀 더 전력을 충원하지 그래?” “아니요. 이번에는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는···. 죄송합니다. 대호 형님. 비밀입니다.” “········그래. 뭐·····.” 배대호는 이유가 살짝 궁금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크게 캐묻지는 않았다. 정운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평소에 정운이 아무 승산없이 마구 움직이는 인간은 아니었다. 믿고 신뢰 하고 기다리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다행이다···. 많이 캐묻지 않아서···.’ 그동안 쌓아둔 신뢰가 제 몫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사실 그렇게 세 명만 들어가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이번에 들어가면 세레나는 질 드 레와 대화를 시도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필연적으로 세레나의 정체가 잔 다르크라는 것도 드러날 태고 말이다. 결국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정운과 슬기를 제외하고는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아직 세레나의 정체는 동료들에게도 절대 비밀이었다. 동료들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비밀이라는 것은 원래 그렇게 엄수하는 것이었다. 믿고 못 믿고를 떠나서 무조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저 고성의 내부에서 강한 폭발음이 들리면 그때 후속 부대도 개입하세요. 지휘는 대호 형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알았다.” 정운은 그렇게 후속 부대에게 지시를 내리고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다. 단 세 명이서 보스몹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좀 도박이 강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저 세명은 그냥 세 명이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쉐도우 아미!!”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정운은 처음부터 그림자의 무장 아홉 명을 전부 불렀다. “전원 호위 대형으로 가장 전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에게 대응해라.”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그림자의 장수들은 정운의 명령에 충직하게 이행했다. 그리고 세레나 역시···. “동평, 이규, 사진, 호삼랑. 내 곁을 지켜라.” “예 누님.” “맡겨 주십시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레나가 소환한 네 명은 후방을 맡았다. 전방을 정운과 그림자의 장수들이. 그리고 혹시나 싶은 후방을 세레나와 양산박이 호걸들이 맡은 것이다. 이로써 정운이 아홉 명을, 그리고 세레나가 네 명을 수환했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강력한 시대의 영웅들로 이름을 남긴 자들이었다. 이 정도면 이미 완벽한 진형이라고 할 만 했다. 그런데 여기에. 슬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큼···. 잠시만요.” “응? 슬기야 왜 그래?” 정운이 슬기를 바라보자 슬기는 싱긋 웃으몃너 말했다. “놀라지 마요. 홍신대(紅神隊)!!!” 슬기가 새로운 스킬을 쓰자 그녀의 주변으로 50개의 불씨가 나타났다. “이건···? 새로운 스킬이야.” “예. 저번 퀘스트에서 신화장군 위정국이라는 사람을 이기고 받은 능력이에요.” 홍신대(紅神隊) LV.1 (소환자의 의지에 복종하는 화염의 정화를 소환한다. 소환 가능한 숫자는 스킬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변한다.) “흠···. 위 오라버니의 능력이군요···.” “과연, 그 친구가 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썼죠.” “그러게 말입니다.” 양산박의 일원들은 슬기가 소환한 불씨가 양산박의 동지인 위정국의 능력이라고 하자 어쩐지 정겹다는 느낌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참구로 위정국의 서열은 호삼랑보다는 높았지만 다른 이규, 동평, 사진 보다는 낮았다. 그래서 호삼랑만이 위정국을 오라버니라고 부른 것이다. 어쨌든 슬기는 위정국의 능력으로 이런 스킬을 만들어 냈다. 물론 원래 슬기가 받았던 보상은 아이템이었다. 신화장군의 수호라는 반지였다. 그 반지의 능력은 불에 관한 강한 내성이었고 말이다. 그 반지에서 위정국의 능력을 이끌어 낸 것은 어디까지나 슬기 개인의 능력이었다. 배대호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생긴 능력중에 하나엿다. 하지만 슬기의 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슬기는 송문고정검을 들고 주문을 외웠다. “목생화!! 화기는 목기를 두르고 타오른다.” 화르륵!!! 슬기가 그렇게 말하자 불씨들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슬기가 최근에 익힌 오행의 기술중에 하나로 목기를 불어 넣어서 화기를 더욱더 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불씨들은 그냥 커지기만 하는게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어설프지만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병사로 변했다. “호오···. 이건?” 정운은 주변에 나타난 50명의 화염 병사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메이지에게 있어서 스스로 전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2류 메이지들에게 있어서는 솔로 전투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를 가르는 것이 전위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슬기의 수준이 되면 사실 전위가 없다고 해도 솔로 전투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다수의 전력이 더해지는 것은 대단한 발전이었다. “소환계열은 아니지만 저도 이제 정운씨나 세레나씨 처럼 전력이 생겼어요? 어때요?” 슬기가 자랑 스럽게 어깨를 펴고 말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잘 했어. 이거··. 오리지날 스킬이지?” “예. 맞아요. 위정국 장군에게 받은 능력을 스스로 응용해서 불씨를 만들고 그걸 공손승 도인의 능력으로 강화했어요. 그라운드 제로에는 없는 제 오리지널 스킬이죠.” “······대단해. 이제 대호 형님 못지 않은 능력이라는 거잖아?”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슬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손사레를 쳤다. 완전히 무에서 유의 법칙을 만들어내는 배대호의 마법 개발에 비해서 슬기는 기존에 있던 것을 조금 개량했을 뿐이다. 비유하면 배대호는 실을 뽑는 것부터 시작해서 천을 만들고 그걸 옷으로 가공까지 할 수 있지만···. 슬기의 경우는 누가 만들어둔 천을 재단해서 그걸로 옷을 만든 것 정도다. 비록 차이는 있었지만 그녀가 스스로 메이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 작품 후기 ============================ 으아아아... 슬럼프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글을 쓰는 시간에 비해서 분량은 안 나오고 쓸 것은 많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런 기간에는 미칠것 같네요. 몇번을 극복해도 다시 찾아오는 슬럼프....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56화 어쨌든 슬기에게 자체적으로 소환 살 수 있는 전위가 생겼다는 것은 의미가 컸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그녀가 정운에게 독립을 해도 된다는 말과 같았다. 뭐, 숫자에 비해서 질이 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50이나 되는 숫자 하나하나가 질 까지 뛰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정운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면 어제 말한 것처럼 두 개의 장애물이 있을 거야. 그러니 잘 따라와.” “예. 정운씨.” “알고 있습니다. 마스터.”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말하면서 스스로 앞장을 섰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역시 이전과 같은 갑옷 기사들이었다. 번쩍이는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공격해 오는 갑옷들을 보면서 정운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단번에 정리해 버려!!!”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그림자 장수들은 눈앞에 있는 껍데기들을 철저하게 도륙하기 시작했다. 콰왕!! 와장창!!! 쿠웅!! -꺼져라. 이 허수아비들아!!! -감히 어디를····. 그림자의 장수들 입장에서는 속도 텅텅 비어 있는 이런 적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형편없는 상대들이었다. 동작도 느리고 기술이라고 할 것도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좀 뛰어난 점은 방어력도 끈질김이었다. 몸통이 반으로 갈라져도 끈질기게 공격해 오는 갑옷기사들의 공격에 그림자의 장수들은 아주 박살을 내 버리겠다는 심산으로 거칠게 공격했다. “이제 다음 문이다.” 그림자의 장수들이 갑옷 기사들을 박살내는 데는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슬기나 세레나가 나설 것도 없이 오로지 그들만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원래 강했던 그림자의 장수들이었지만 기본적이 힘이 최근 들어서 눈에 띄게 올라갔다. 아마도 주인인 정운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게 그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다음 문에서는···. 전에도 말했지만 소년 기사단이라는 놈들이 덤빌 거야. 실제 애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심하지 마.” 정운은 다음 관문으로 향하기 전에 슬기와 세레나에게 단단하 경고를 했다. 이미 다음 관문에 관해서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달리 표정이 굳어있는 세레나와 슬기였다. 아무리 독한 여성이라고 해도 어린애들에게는 독하게 굴기가 어렵다. 여성의 모성본능이라는 것은 그렇게 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운은 두 사람에게 단단히 당부를 하고 다음 문을 열었다. “이런····?” “너무해·····.” 세레나와 슬기는 정운에게 사전에 듣기는 했지만 역시 다음 문을 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세레나는 분노한 표정을 지었고 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난자당한 어린애들의 시체와 머리만 베어서 박제처럼 벽에 장식해둔 이 방은 아무리 봐도 제 정신을 가지 놈이 만들었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둘 다 정신 차려. 온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경고를 하고 흑토를 소환했다. 그리고 다른 부하들에게도 말에 올라탈 것을 명령했다. “전원 기마차지 준비!!!”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아홉기의 그림자 장수들이 저마다 정운처럼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러기를 무섭게 사방에서 아직 어린 소년으로 구성된 소년 기사단이 달려 들었다. “적을 죽여라!!!” “푸른 수염 만세!!! 이미 조운과 마초의 시야를 공유하면서 한 번 눈으로 본 정운이었지만 역시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니 한 층 더 이가 갈렸다. 어린애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광기어린 눈으로 돌격해 오는 장면이 이렇게 짜증 날 줄은 몰랐다. “망할····. 전원!!! 기마차지!!!! 콰콰콰콰콰콰콰콰!!!!! 좁은 실내에서 아홉 기의 기마들이 사방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푸른 수염 만··· 아악!!! “크아악!!!!” 이전에 마초와 조운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겉으로만 보기에 아이들이고 사실은 하나하나가 상당히 강력한 몹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신없어서 ME로 찍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들 하나하나가 아마도 180 레벨대의 몹들일 것이다. 보스몹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강력한 놈들이었다. 지금 정운과 그림자의 무장들에게 당하면서도 어느정도 버티고 있는게 그 증거였다. “····모두 싸워라!! 애들을 편하게 해줘.” 이제까지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세레나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옛!!! 누님.” “그렇게 하죠.” “··········.” 세레나의 명령에 양산박의 호걸들도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어린 소년들과 싸우는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광신도처럼 달려들고 있는 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이미 이 아이들을 편하게 해 주는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했다. “홍신대!!! 모두 태워라!!!” 슬기도 독한 마음을 먹고 홍신대에게 명령했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몹은 아니지만 50이나 되는 숫자가 사방에서 설치기 시작하자 그리 넓지 않은 이 방이 불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크아악!!!” “이 침입자 놈들·····.” 소년 기사단은 거의 아에 받쳐서 싸웠지만 그래도 정운과 세레나, 슬기를 이기지는 못했다. 애당초···. 머릿수와 광기만으로 어떻게 해 보기에는 정운의 팀이 너무 강했다. 10분도 되지 않아서 방안에 있는 적들을 다 정리한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부터는 이제 미답지역이야. 그러니 한 층 더 각오를 단단 해 두도록 해.”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세레나와 슬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부하몹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았어···. 아마도 대부분의 힘은 보스몹인 질 드 레에게 집중되어 있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음 문을 열었다. 한 번 정도 더 보스몹이 나올까? 그런 정운의 예상은 틀렸다. 이전의 정신나간 방과 달리 아주 고풍스럽고 고급스런 인테리어의 방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한명의 남자가 창밖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오랜만에 손님이군. 아니 내가 여기 있고 나서는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 “너냐? 밖에 있는 정신 나간 행동을 한 놈이.” “그렇다. 나다.” 정운의 말에 뒤를 돌아본 질 드 레는 정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네가 도전자인가? 흠·······.” “·············뭘 보지?” “아니. 아무것도 그냥 네가 어떤 인가인지 한 반 바라본 것 뿐이다.” “그걸 본다고 아냐?” 정운의 심드렁한 대꾸에 질 드 레는 단호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아아···. 난 알지. 알고 말고.” “·············.” 너무나 확신에 찬 말이라서 정운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내가 악마와 거래를 해서 얻어낸 능력이다. 다시는 인간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시덥 잖은 능력이군. 어쨌든···. 너하고 오랫동안 말할 생각은 없다. 난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두편에 있던 세레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질 드 레를 보면서 말했다. “질 백작. 날 기억하나?” “········넌 누구냐?” 질 드 레는 세레나를 보고도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일 뿐. 점점 질 드 레의 얼굴이 변해갔다. 처음에는 설마하는 표정에서 점차점차 경악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잔····. 정녕···. 정녕 잔 다르크인가?” “그렇다. 나다. 질 백작.” “···················.” “···················.” 세레나와 질 드 레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서로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세레나였다. “어째서 여기에 있지? 설마···. 정말로 당신이 역사에 남은 것처럼 진짜로 악행을 저질렀나?” 세레나의 말에 질 드 레의 얼굴에는 순간 고뇌를 넘어서 고통의 감정이 떠올랐다. “대답해라. 명령이다. 질 백작!!!” 세레나는 마치 아들의 잘못을 나무라는 어머니의 엄한 태도로 질 드 레를 질책했다. 질 드 레는 얼굴에 고통스런 표정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시험? 무엇을 말이냐?” 세레나의 반문에 질 드 레는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던 진심을 꺼냈다. “과연 신이 과연 존재하는지를 말입니다.” “뭐라고····?” 세레나의 눈꼬리가 확 올라갔다. 그런 세레나를 보면서 질 드 레는 처엲나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하고···, 그리고 그 신이 정녕 우리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지 저는 시험해 봤습니다.” “········질, 그런·····.” 질 드 레의 말에 세레나는 기가 찬다는 얼굴을 했다. 크리스찬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그저 따르고 순종할 대상이다. 신을 시험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경의 대상이었다. “질 백작···. 누구보다 신실했던 그대가 왜 그런 불경을 저질렀나?” “············.” “답하라. 경우에 따라서는 여기서 단 칼에 베어 버리겠····.” “그걸 몰라서 물으십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성처녀여, 가장 고귀하고 성스러웠던 소녀여, 정녕 내가 왜 그렇게 타락 했는지 모른단 말씀이십니까?” 질 드 레의 얼굴에는 이제 고통을 넘어서 분노와 억울함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내가 뭘 어쨌다는 건가?” 세레나는 여전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정운과 슬기의 경우는 오히려 질 드 레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꾸며낸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던가?’ 사람들이 질 드 레에 관해서 하는 말 중에는 그의 기행에 가까운 악행의 이유가 잔 다르크의 죽음과 관련 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운과 슬기는 그게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아하니 오히려 그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질 드 레는 세레나에게 본격적으로 성토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신을 따랐고, 누구보다 신을 위했던 당신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당신은 자신을 태워가는 형장의 불길 속에서도 신을 찬양했습니까?” “그게 우리의 의무다!!!” “개 소리!!!!!” 세레나의 말에 질 드 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그렇게 모독적으로 죽었을 때. 난 신을 저주하고 모독했습니다. 그걸로 모자라서 신에게 나를 벌해보라며 악행의 극치를 내달렸죠. 내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 어린 소년을 죽이고 범하고, 그 시체를 유린했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인간의 도리들 저버렸습니다. 그런 저에게 신이 벌을 내렸습니까?” “·············.” “아니죠. 신은 저를 방관했습니다. 그저 무력하게 저에게 짓밟히는 어린 영혼들을 내버린 것입니다. 저를 벌 한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재산을 탐했던 위정자들이었습니다. 놈들이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어서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 갔죠, 내가 형장에서 죽어갈 때 나를 바라보면서 놈들이 짓는 조소를 나는 봤습니다. 그런 지옥 속에서도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지킨다고 말 할 수 있습니까?” “·············.” 질 드 레의 목소리에는 한을 넘어서 원념이 서려 있었다. 신을 저주하고 자신의 인생조차 그 신을 모독하는 것에 모두 소비했다. 세레나의 기억속에 있는 신실하고 성실했던 남자의 모습과는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질 드 레는 침묵하는 세레나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개소리입니다. 성처녀여, 우리는 배신 당했습니다. 신을 따를 의무 따위는 없습니다. 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자신의 욕망과 유열에 생명을 불태워 갔어야 했습니다.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신에게 배신당한 당신이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 할 수 있습니까?” ============================ 작품 후기 ============================ 제 소설의 질 드 레의 캐릭터는 페이트 제로와 비슷하게 잡았습니다. 가장 공감이 가는 설정이었고, 딱히 정의로운 남자였는데 모함을 뒤집어 썼다기 보다는 이 편이 더 느낌이 팍 왔었습니다. 배신당하고 절망해서 삐뚫어진 캐릭터.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57화 악에 받힌 질 드 레를 보고 세레나는 찹찹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신도는···. 신도는 신에게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섬기고, 따르고, 순종하고, 그리고 죽어서 영혼을 신의 발치에 바치는 것이다.”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제 영혼은 더 이상 신에게 바치지 않습니다. 차라리 악마에게 물어 뜯기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잘 못된 선택을 했군.” “제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질 드 레는 자신의 검을 꺼내서 세레나를 겨누면서 말했다. “당신이 여전히 신을 따르겠다면···. 전 여전이 신을 모독하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저를 설득할 생각 하지 마십시오.” 질 드 레는 그렇게 말하면서 온 몸에서 붉은색의 오로라를 두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질 드 레가 두른 오로라에서는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고성 전체가 진동을 하면서 천장에선느 돌가루가 떨어질 정도였다. 그저 힘을 개방했을 뿐인데 말이다. 정운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살짝 긴장했다. ‘강하다. 역시 74층 보스몹을 할 만큼의 힘은 있어.’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 발작국 나아갔다. 혹시나 세레나가 질 드 레를 설득해서 75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쉽게 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는 정석대로 힘으로 해결 하는 수밖에 없었다. “슬기야. 준비해.” “예. 알았어요.” 정운은 슬기에게 밖의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낼 준비를 시키고 스스로의 몸에 뇌천신공을 최대로 올렸다. 상대는 척 봐도 만만치 않다. 처음분터 전력을 다해서····. “세레나!!?” 정운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세레나가 무방비하게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질 드 레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그 상태로 정운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 “마스터, 저를 믿어 주십시오.” “아니···. 세레나.” “마스터, 부탁입니다.” “············.” 세레나는 정운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너무나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차마 뭐라고 나서지 못했다. 눈 앞에 있는 상대는 질 드 레. 생전의 악명에 어울리게 74층의 보스몹이 되어 있는 인간이었다. 생전의 무위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과 별 개로 보스몹이 되면서 파우스트에게 받은 힘은 진짜였다. 그런데 세레나는 무방비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정운의 이성은 그런 세레나를 말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의 세레나에게서는 평소와 달리 위엄 같은 것이 풍겨서 정운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게 세레나가 아니라 잔 다르크로서의 그녀의 모습일지도·····.’ 정운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생전에 그녀는 저런 위엄과 품격을 가지고 수많은 병사들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을까? 라고 말이다. 세레나는 그대로 질 드 레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어느새 얼굴도 흉악하게 변한 질 드 레는 세레나의 목전에 검을 겨누고 말했다. “뭐 하자는 겁니까? 가까이 오면 목숨은 없습니다.” 세레나의 목전에 살짝 닿아있는 검은 세레나의 목을 아주 조금의 상처를 입혔다. 질 드 레의 검신을 타고 자신의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면서도 세레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왜 아직도 그대의 검이 내 목을 꿰뚫지 않은 거지?” “·······적의가 없는 자를 벨 수는 없습니다. 검을 드십시오. 성처녀여.” 질 드 레의 말에 세레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신을 모독하고 모든걸 저주하려고 한게 아니었나? 아니면 그런 와중에도 기사도를 찾는 건가?” “············.” 질 드 레는 세레나의 얼굴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신을 모독하고 악에 떨어지겠다고 하는 자가 하는 변명 치고는 너무 궁색했다. “그대는 악으로 떨어졌지만, 결코 악에 물들 수는 없는 인간이야. 그래서 한 층 더 악에 물들었겠지.” “··············그런 말 도 안 되는·····.” “나의 죽음이 그대에게 절망을 주었다면 그것은 사과하지. 하지만 믿어줬으면 해. ·····난 행복했다고.” “········개 소리도 정도껏 하시오.” “그렇게 들리나?” “행복? 행복이라고? 당신이 영국의 재판에서 마녀로 몰려서 화형 당하고 있을 때 샤를 국왕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간신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소.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민중의 지지를 받는 당신이 거슬렸겠지.” “그랬나? 그랬나 보군.” 세레나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 질 드 레의 입장에서는 그게 한 층 더 열 받는 모양이다.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나라를 구한 것은 당신이었는데 그 명예가 찬탈당하고 당신의 업적 위로 배부른 돼지들이 뒹구는 꼴이 정녕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입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세레나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질 드 레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그 말을 자르면서 말했다. “애당초···. 뭔가를 바라고 검을 손에 들었던 적은 없다. 오를레앙의 성처녀? 듣기는 좋지. 하지만 난 한 번도 날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한 적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세레나의 말에 질 드 레는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세레나의 말이 먼저였다. “저기 저 사람 보이나?” 세레나는 정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남자가 어쨌다는 겁니까? 당신이 마스터라고 부르는 남자가 뭘 어쨌다고?” “생각도 못하겠지? 하긴····. 나도 때로는 얼떨떨하니까····. 저 사람은 나의 영혼이 이 그라운드 제로에 잠입하기 위한 매개체. 그리고·····. 나의 연인이기도 한다.” 세레나의 폭탄 발언에 질 드 레의 얼굴에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커다란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연인이라고 했다. “···········.” 세레나의 말을 들은 질 드 레의 표정은 마치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을 목격한 것처럼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농···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무슨 이유로 그런 농담을 하시는 지는·····.” “내가 농담 하는 걸 본적이 있나?” “·············.” 질 드 레의 얼굴은 이제 아애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는 세레나와 정운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런 질 드 레에게 세레나가 계속해서 말했다. “정말이다. 저 사람은 나의 하나뿐인 사랑이다.” “········농담이 아니시군요. 그런···. 당신은 오를레앙의 성처녀입니다. 절대 더럽혀지지 않아야 할 순수하고 고결한····.” “난 저 남자와 동침했다.” “뭐···. 뭐라고요?” “이상한가? 내가 사랑하는 연인과 몸을 섞었다는 것이?” “다··· 당신 스스로를 알고는 있는 겁니까? 당신은 고결하고 순결한 신의····.” “난 그를 사랑한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몸과 마음 전부를 바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의 품안에서 행복을 느꼈고, 그의 사랑을 받으면서 충족감을 느꼈다. 그게 잘못인가?” “··············.” 질 드 레는 이제 눈앞에 있는 여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잔 다르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생전에 그녀는 오로지 신의 계시와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었다. 수많은 젊은 귀족들이나 유력자들이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기는 했다. 하지만 고귀한 그녀의 눈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적어도 질 드 레가 알고 있는 세레나라는 여성은 그런 여성이었다. 그런데 태연하게 남자와 사랑을 하고, 그 남자와 살을 겹쳤다고 까지 하니···. 이제까지 질 드 레의 안에 있었던 세레나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질 드 레가 세레나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일방적인 환상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에 감수성 예민한 10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가지고 있는 그런 감정 말이다. 자기가 멋대로 좋아하고···. 자기가 멋대로 환상을 가지고···. 그 우상의 일생이 실망할 일이 생기면 배신감에 젖어서 상처 받고···. 정작 그 연예인은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질 드 레의 경우가 딱 그랬다. 잔 다르크라는 너무나도 고귀하고 완벽한 여성을 보고···. 거기에 강한 환상을 품었다. 그리고 그 환상이 비열한 음모에 희생 되었을 때에 세상에 실망하고 실의에 빠져서 인생이 막장으로 치달은 것이다.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스캔들이 터져서 학교 가기 싫다고 우기는 유치한 애들하고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약간 스케일이 뻥 튀겨 지기는 했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레나가 거기까지 질 드 레의 본질을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레나는 지금 질 드 레에게 자신이 우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살아생전에는 완벽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꼭 완벽할 필요는 없었지. 고작 인간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당초 한정 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질 백작.” “잔···. 저는···. 당신은····. 아니 우리는····.” 이제 질 드 레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했다. 이제까지 자신이 믿었던 것. 옳다고 생각했던 진실의 첨탑이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또 다른 진실이 머리위로 쏟아지는 와중에 질 드 레의 의식은 이리저리 휘청 거리고 있었다. “질 백작····.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쓸데없는 허세를 어깨에서 내려놔라. 그냥 신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라.” “··············.” “더 이상 너 자신을 스스로 힘겹게 하지 마라.” 세레나가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질 드 레의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스스로에게 옭아맨 족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띠리링!! [74층의 보스몹인 질 드 레를 영구 클리어 했습니다. 더 이상 74층에서는 질 드 레를 볼 수 없습니다. 이제 75층으로 올라가실 권리가 생겼습니다.] 정운을 비롯해서 파티를 맺었던 한영동맹의 모든 유저들에게 알림창이 떴다. 그리고 정운의 눈앞에 있던 질 드 레의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잔느.” “피차 마찬가지다. 질 백작.” 사라져 가는 질 드 레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다.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용서하고 구원한 것이다. 완전히 사라지는 질 드 레를 보고 정운이 세레나에게 말했다. “영구 클리어라면···. 저 남자의 영혼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요···. 원래 같으면 자신의 악업에 대한 대가를 짊어지고 환생하거나 그 업을 다 벗기 위해서 오랜시간 형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스스로를 용서했다고 해도 지금 그의 영혼은 파우스트의 손아귀 안에 있습니다. 정해진 절차를 밟아서 혼을 정화하려고 해도 일단 파우스트의 주박에서 벗어나야 겠죠.” “그렇군····.” 결국 누군가가 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기 전에는 질 드 레의 영혼은 여전히 정체 되어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때 세레나의 손바닥에 작은 단검이 한 자루 생성 되었다. “그건···?” “질 백작의 가문의 보검이군요. 예전에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 “아마도 저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것 같습니다.” 세레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 단검을 갈무리했다. ============================ 작품 후기 ============================ 결국 질 드 레는 세레나에게 설득 당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뛰어넘는 층도 있어야죠. 계속 똑같이 싸우기만 하면 너무 식상할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58화 <남겨진 자들의 동맹.> 정운과 세레나는 인벤토리에 갈무리한 아이템의 속성을 확인해 봤다. 질 드 레의 속죄. 공격력 : ? 무게 : ? 내구력 : ? [## 속성을 지니고 있는 보검, ####를 #### 위해서 ### ### 사용 가능 하다.] “이건···? 뭐라고 하는 거야?” 정운으로서도 이런 아이템은 처음이었다. 전부 ? 표시에 아이템 설명에도 드문드문 누락된 부분이 있었다. “질 백작이 마지막에 자기 힘을 다 담아서 만들어 준 것 같기는 한데···. 아직은 사용법 자체를 모르겠군요.” 세레나는 그렇게 한숨을 쉬면서 그 작은 단검을 갈무리 했다. 언젠가는 사용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세레나는 정운을 향해서 처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마스터···. 저에게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그래····. 나도 도와줄게.” 이렇다 할 전투는 없었지만···. 한영동맹은 74층을 클리어하고 75층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돌아온 정운에게 다이앤 여왕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보스몹을 영구 클리어 한 것인지 물었지만···. 정운은 그 점에 관해서는 적당히 얼버 무렸다. 그리고 다음 층에서는 이런 행운은 바라기 힘드니까 다시 똑바로 클리어 해야 한다는 것 까지 말이다. 어쨌든 이제 남은 층은 25층. 앞으로 25번만 더 클리어하면 모든게 해방 될 수 있었다. 정운이 75층에 진출한 이후···. 월드 서버의 다른 국가의 팀들이 한곳에 모였다. 미국, 중국, 프랑스, 서독. 지금 월드 서버의 선두에 있는 한영 동맹을 제외하고 멀쩡한 세력을 지니고 있는 네 개의 국가들이 모두 모였다. “오늘 모두를 모여 주셔서 감사하오.” 회의를 주관한 중국의 장한이 주변의 대표들을 보면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차피 부른 용건이 짐작이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형식상 물어보죠. 우리를 부른 용건이 뭡니까?” 프랑스의 대표 장 그레고리 공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장한은 속으로는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 이라고 욕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지만···. 한영 동맹이 74층을 클리어 했습니다.” “으음·····. 그랬지.” “제길···, 우리는 아직도 달기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게 인간이다. 경쟁 상대였던 한국과 영국이 자신들을 멀찍이 떨어트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게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우리보다 훨씬 아래에 있던 영국이 한국과 힘을 합치고 이제는 그라운드 제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드시는 분은 거의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장한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의 질투는 추하지. 그런 아름답지 못한 감정에 나를 동참 시키지 말아줬으면 합니다만?” “················.” “················.” “················.” ‘기생오라비 자식.’ ‘게이 자식.’ ‘콱 길가다 뒤로 넘어져서 죽어 버려라.’ 자고로 타인의 뒷담화를 깔 때 ‘난 아닌데.’ 라고 말하는 사람은 왕따의 표적이 되기 마련이다. 인간의 추한 일면 중에 하나일 것이다. “큼···.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장한의 말에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가 턱을 괴면서 말했다. “장한님의 말씀은····. 이제 우리끼리 서로 견제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것은 그만 두자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서로 견제하고 발목을 잡느라고 게임의 클리어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죠.” “엄밀히 말해서···. 예전에는 그럴 이유가 있었지. 일본의 도조 마사토, 그 미친놈 기억하오? 그 새끼 소원중에는 우리 미국에 원폭 3,000발을 떨어트리는 것도 있었어. 미친놈····.” 미국 대표인 블레인 허드슨의 말에 다른 대표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은 죽었지만 도조 마사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월드 서버에 진출한 유저들도 대부분의 소원은 자기 개인의 소원에 치중 되어 있는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유독 도조 마사토 그 제국주의의 미친놈은 대일본 제국 만세에 미쳐서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지구 전체를 욱일기로 뒤덮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의 인간이었다. 한국팀이 일본을 이기고 도조 마사토가 죽었을 때 월드 서버의 대부분의 유저들은 미친놈 하나가 드디어 사라지는 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큼···. 블레인 허드슨 님의 말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건 이제 지나간 일이죠. 결국 일본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죠. 하지만 그런 미친놈이 또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뭐, 하긴 그렇게 미치기가 좀처럼 힘들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 모르지 않소?” 블레인 허드슨의 말에 장한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걱정하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자존심 상하지만 한영동맹처럼 말입니다.” “··············.” “··············.” “··············.” 장한의 말에 나머지 세 개 국가의 팀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고작 두 국가가 전폭적인 동맹을 맺는 것 만으로도 비약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물론 이들은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한국팀의 강한 잠재능력도 포함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이제 이들도 동맹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자신들이 서로 견제하고 발목 잡으면서 낭비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이제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문제는····. “동맹의 주축은 누가 한다는 말이오? 설마 공평하게라는 바보 같은 의견을 말하지는 않겠지?” 블레인 허드슨의 말에 콘러드 크라우스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내심 납득은 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 미국인들은 한상 자기들이 앞에 나서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멍청한 놈들···.’ 블레인 허드슨은 사전에 공평한 동맹은 불가능 하다. 그러니 가장 세력이 강한 우리를 따라라. 라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한영동맹만 해도 겉으로는 공평한 동맹으로 보이고 있지만 현실적인 파워 밸런스는 한국이 쥐고 있지 않은가? 레이드 날짜도 한국이 정하고···. 이전에 포로들 받아들이는 조약에서도 영국이 리시크를 짊어지고···. 그 외에도 대부분의 중요한 일은 대부분 한국팀이 결정하고 영국팀이 맞춰주고 있었다. 딱히 정운이 다이앤 여왕을 핍박해서 그렇게 되는게 아니었다. 한국팀이 영국팀보다 훨씬 더 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말 하는 사람의 입장과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말이 될 수 있다. 그건 어디를 가도 변하지 않는 대인관계의 진리중에 하나였다. 일국의 왕이 자신의 아내의 미모를 칭찬하는 것과···. 길가의 건달이 자신의 아내의 미모를 칭찬한다면 그게 똑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니지 않는가? 그것과 같은 원리였다. 결국 서로서로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 중국팀의 장한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여기 모여 있는 네 명이 회읠를 해서 일을 정하는 방식으로 하되···. 그 회의의 의장으로는 미국의 블레인 허드슨님이 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전 부회장에 만족하죠.” ‘저 치사한 인간···.’ ‘아름답지 못하군.’ 장한의 말에 이번에는 콘러드 크라우스와 장 그레고리가 침음성을 냈다. 미국을 의장으로 올리고 그 옆에 자신은 슬쩍 부의장 자리에 있겠다고 했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힘이 가장 강하니까 서독과 프랑스는 양보를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다만 여기서 서독과 프랑스의 입장에서 거지같은 것은····. 그 무언의 압력에 굴복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영동맹이 쭉 치고 올라가고···. 그리고 여기서 남은 네 개의 국가가 동맹을 체결하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꼴찌 확정의 말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것만이라면 차라리 낫다. 더 최악의 경우 나머지 세 개의 국가에게 공격을 받아서 월드 서버에서 완전히 퇴출 될 수도 있었다. 한국과 영국팀이 실질적으로 저 위로 올라간 상황에서 월드 서버의 경쟁 구도에 있는 것은 이들 네 개의 팀들 뿐이다. 거기서 하나만 동맹을 거절하면 그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은 하나를 배제하려고 할 것이다. 기껏 동맹을 결성했는데 뒤통수가 근질근질해서야 어떻게 안심하겠는가? “알겠습니다. 거기에 따르죠.” 누구보다 상황 파악이 빠른 콘러드 크라우스가 먼저 동의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는····. ‘개인적으로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군.’ 아무리 독특한 성격의 그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 까지 분위기를 파악 못하지는 않았다. “우리 프랑스도 동의합니다.” “하하하···. 잘 됐군요. 이제 우리 네 개의 팀들이 힘을 합쳐서 한영동맹을 따라잡아 봅시다.” 장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술잔을 높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어딘지 모르게 뒷맛이 많이 씁쓸한 사국동맹이 결성 되었다. 과연 이 배가 어디로 향할지는 좀 더 나중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75층으로 진출한 후에 세레나는 한 동안 어딘지 모르게 약간 멍해 하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척 하려고는 했지만 그녀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질 드 레의 일이 충격이 컷던 모양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녀도 이내 자기 페이스를 되찾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사냥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기분을 완전히 풀어주기 위해서 준비를 했다. “같이 사냥을 가자고요?” “응, 우리끼리 같이 사냥 할 법한 몹이 있거든.” 정운의 말레 세레나와 슬기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들어서 정운의 팀은 강해졌다. 얼마나 강해졌냐고 하면 파티플레이를 하는 것보다 솔로 플레이로 사냥 하는게 효율이 더 좋을 정도였다. 오토까지 돌릴 수 있는 정운은 물론이고···. 네 명의 양산박 호걸을 소환수로 두고 있는 세레나는 혼자서 네 명을 이끌고 사냥을 하는 편이 효율이 더 좋았다. 잡는 페이스는 그대로였고 그러면서도 경험치와 보상은 자신이 독식하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슬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월드 서버의 몹들은 무척 강력했고 전위가 없는 메이지는 상대적으로 혼자 사냥하기 좀 버거웠다. 그래서 주경택도 항상 다른 사람과 같인 사냥을 했다. 주록 이지영과 사냥을 함께 가는 일이 많았고, 그게 아니라도 영국 유저들과 손을 잡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까? 한국 유저들 중에 영국유저들과 가장 많이 친해진 사람은 아마도 그일 것이다. 하지만 슬기는 그런 도움이 필요 없었다. 이번에 손에 넣은 홍신대의 스킬로 인해서 50이나 되는 화염의 병사를 손에 넣었다. 정운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장수들이나 세레나가 가지고 있는 양산박의 호걸들에 비하면 하나하나는 약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애당초 정운이나 세레나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는 실제 역사에서도 장군 클래스의 소환수였다. 거기에 비해서 슬기의 소환수는 어디까지나 병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50이라는 숫자가 그것을 충분히 커버했다. 스스로 강력한 전위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슬기 역시 홀로 사냥을 하는 편이 더 쉬웠다. 앞으로는 레이드 할 때를 제외하고는 따로따로 사냥하는게 더 낫다는 것이 정운의 팀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런 결론을 내린 정운이 파티 사냥을 제시하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아직 월드 서버에서 다른 국가들의 등장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저들은 앞으로도 나올 겁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59화 <75층의 몰이사냥> 슬기가 고개를 갸웃 하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올라 온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퀘스트 포인트라도 찾은 거예요?” “아니···. 퀘스트는 아니야. 하지만·· 뭐, 보면 알아. 어쩔 거야? 안 할 거야?”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아니요. 할래요. 해서 손해 볼 것도 없는데요. 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스터.” “좋아. 그런 내일 아침에 함께 떠나자. 내가 안내할게.” 그날 밤····. “정운씨···. 내일 어디로 가려는 거예요?” 슬기는 정운의 품안에 안겨서 정운의 팔을 베고는 말했다. “내일이 되면 알 거야.” “뭐···. 어디든 상관은 없죠. 오랜만에 우리 셋이서 사냥함으로 인해서 세레나가 좀 기운을 차릴 수만 있다면····.” “············.” 슬기의 말에 정운은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면서 말했다. “뭐에요? 내가 아무것도 눈치 못 챌 줄 알았어요?” “아니···. 하지만···. 저기, 괜찮아?” 정운은 슬기에게 자기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누에 띄게 당황했다. 그런 정운에 비해서 슬기는 무척이나 담담한 목소리를 하고 반문했다. “뭐가요?” “그러니까···. 그거 말이야.” 정운은 차마 직설적으로 말을 꺼내기는 조금 꺼려져서 말을 돌렸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슬기가 생긋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하고 세레나하고 둘 다 사랑한다고 한 주제에 세레나가 침울한 것 때문에 기분 풀어주려고 준비하는걸 눈치 채고도 난 기분 나쁘지 않냐고요?” “···········그래. 그거.” 불행인지 다행인지 슬기는 완벽하게 정운의 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한 이불 덥고 산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이제는 척 하면 척아니겠는가? “저기···음····.” 정운이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과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과 하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 지금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 거지? 오만감정이 다 들고 있는 정운에게 슬기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정운씨···. 지금 우리 둘 뿐이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되요?” “응. 얼마든지.” 가뜩이나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당황하고 있던 정운은 슬기가 말을 해준다고 하니 오히려 그게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정운의 허락이 떨어지자 슬기는 바로 전방에 수류탄 한 발을 투척하는 말을 했다. “나 아직도 당신이 세레나하고 나하고 양다리 걸치고 있는 것 마음에 안 들어요.” “···············.” 이미 끝난 일이잖아? 라고 말하기에는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그 건에 관해서는 정운이 슬기에게 진 마음의 빚이 너무 컸다. 내용의 핵심만 짚어보면···. 정운이 슬기와 사귀고 있다가 결국 바람 피고 한술 더 떠서 공개적으로 양다리까지 걸치지 않았는가? 슬기가 화가 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연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 슬기 아니라도 대부분의 여자들이라면 화 낼 것이다. 슬기는 대답없는 정운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정운으니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마음에 안 들어요. 정말 마음에 안 들죠. 하지만 말이죠····.” 슬기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도 제가 한 발 양보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으음·····. 미안, 모르겠어.” 엄밀히 말해서 이유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짐작 가는 사유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잘못 짚었다가는 두고두고 피곤해질 것 같으니 일단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도, 그리고 세레나도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만큼, 또 당신이 날 사랑하는 것 만큼 말이죠.” “슬기야·····.” 정운은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슬기의 입장에서는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도 세레나의 심정을 이해는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세레나하고 먼저 사귀고 있었고 내가 뒤에 끼어든 입장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도 무슨 수를 써서든 당신과 세레나의 사이에 끼어들었을 거에요.” “···········.” “결국 나하고 세레나의 차이는·····, 누가 먼저였냐? 라는 것 정도뿐인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조금 그녀와 당신의 마음을 이해 할 수는 있어요.” “·········미안해.” 뭔가 화려한 미사여구로 달래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이상으로 지금 정운의 심정을 더 이상 표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결국원인은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를 둘 다 사랑해 버린 결과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죄인이기는 하네···.’ 그런 정운을 보면서 슬기가 말했다. “그러니···. 나도 완전히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무리지만···. 그래도 가능한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할게요. 그러니 세레나를 챙겨주는 것에 관해서 망설임은 말아요.” “그래도 돼?” “애당초···. 당신이 끼어들기 전에만 해도 저하고 세레나는 최고의 친구였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리 우정이 이상해진 것은 당신 때문이라고요.” “···········.”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는 정운이었다. 여기서는 그냥 슬기의 관대한 결정에 감사할 뿐이었다. “슬기야. 약속할게.” “뭘요?” “네 말대로, 난 너도 세레나도 둘 다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어. 하지만···. 항상 너희 둘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거야.” “예···. 알아요. 그런건 약속 안 해도 알아요.” 슬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의 품안에 안겼다. 적어도 이렇게 단 둘이서 살을 맞대고 있는 순간 만큼은 정운은 자신만의 남자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75층의 동쪽. 거기는 대초원 지역이었다. 다만 초원이라고 해도 몽골지역에 있는 푸른 목초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사자와 얼룩말이 뛰어노는 그런 초원같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여기서 사냥감으로 정한 몹이 한가지 있었다. “저걸 잡으려고 해.” 정운은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서 세레나와 슬기에게 ‘저거’라고 말한 것을 가리켰다. 처음에 세레나와 슬기는 과연 저게 뭔지 알지 못했다. 정운이 말한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보이기는 보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곳만 풀의 생갈이 달랐다. 다른 곳은 황갈색의 갈대 같은 풀들인데 저 곳만 검은색의 풀들이 돋아나 있는 것이다. “정운씨, 뭘 말하는 거예요? 안 보이잖아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씨익 웃으면서 망원경을 슬기에게 건내줬다. “이걸로 자세히 봐봐.” 정운이 건내 준 만원경으로 살펴본 슬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무슨····?” 어이가 없는 슬기를 보고 세레나가 옆에서 말했다. “뭔데 그래요?” “여기 봐 봐요.” 세레나 역시 슬기에게 망원경을 받아서 저 검은 풀밭을 살폈 봤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다. 거기엔 있는 것은 검은 풀밭이 아니었다. 검고 커다란 소 때가 왕창 뭉쳐서 있는 것이었다. 이제 보니 풀들이 바람에 날리는게 아니라 소 때들이 뭉텅이로 뭉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블랙 스톰 카우. LV.160~165 [최소 1,000마리에서 최대 20,000마리까지 뭉쳐서 단위생활을 하는 몹. 하나하나의 행동 패턴은 단순하지만 단체로 모이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하늘을 날 수도 있으며 몰이사냥에 익숙하다.] 정운은 자신의 ME에 들어있는 정보를 둘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어때? 이 정도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잡을 만 하지?” “하하···. 엄청나네요.” “말만 소지 거의 개미처럼 모여 있네요. 현실에 저런 애들이 있으면 풀밭이 순식간에 말라 버리겠어요.” 세레나와 슬기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정운의 말대로 저 정도로 모여 있는 몹들이라면 세 명이 모두 모여서 잡을 만 했다. 한 마리 한 마리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숫자를 보라. ME의 정보에는 최소 1,000마리부터 시작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저건 아무리 봐도 10,000마리는 넘었다. 저걸 다 잡으면 경험치도 제법 들어올 것 같았다. “이제까지 몰이사냥은 제법 했지만····. 저 정도로 커더란 몰이사냥은 처음인 것 같아. 자, 그럼 작전을 짜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한 곳에 모아야 하니까···. 내가 먼저 몰이를 해볼게.” “몰이라기 보다는 유인이겠죠. 그럼 제가 파이어 월로····.” “제 부하들에게 정운시의 보조를 맡기고···.” 슬기와 세레나도 오랜만에 정운과 함께 하는 사냥에 살짝 들뜬 것 같았다. 특히 세레나는 작전에 진지하게 몰두하면서 요즘 들어서 약간 늘어졌던 인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일행은 30분 정도 작전의 수립에 들어갔다. 그리고 30분 후···. “좋아. 그럼 작전대로 가자. 내가 먼저 움직일게. 두 사람은 따라서 와.” “예. 마스터.” “알았어요. 정운씨.” 그렇게 해서 정운의 팀이 사상 최대의 몰이 사냥. 소 10,000마리 잡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쉐도우 아미!!”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정운의 부름을 받고 그림자의 장수들이 몰려왔다. “먼저 우리가 시작한다. 너희들 모두 내 지시대로 움직여.”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주군!! 정운은 미리 준비한 위치에 장수들을 배치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마 차지!!! -기마 차지!!! 먼저 단 두기의 기마들이 블랙 스톰 카우들을 향해서 돌격했다. 온몸에 황금빛 뇌전을 두른 두기는 관우와 장비였다. 둘은 마치 대군을 가르고 적장은 어디 있느냐? 라고 하는 것처럼 강력한 돌진력을 보이면서 소때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쿠워어어어!!!” “움머어어어!!!!!” 소때들도 만만치 않았다. 멀리서 보기에는 워낙 다수가 모여 있어서 몰랐겠지만 이 블랙 스톰 카우라는 놈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엄청 거대했다. 생김새는 버팔로 같았지만 뿔은 버팔로보다 훨씬 더 길고 뾰족했다. 그리고 이빨은 날카롭게 삐져나와 있었고 두 눈에는 붉은 빛이 감도는게 소위 말하는 미친소의 전형으로 보였다. 더구나 그 미친소가 서 있을 때는 높이만 해도 2.5미터, 길이는 거의 4미터가 넘어가고 있는 거구였다. 이 정도면 무늬만 소지 사실상 좀 작은 코끼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런 놈들이 단체로 몰려서 방해를 하기 시작하자 관우와 장비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형님!! 이쯤에서 작전대로 합시다. -음····. 장비의 말에 관우는 갑자기 말의 고삐를 잡아채고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비켜라!!! -이 놈들 안 비키면 다 잡아 먹어 버릴 테다!!! 장비와 관우는 어느 정도 소 때 속을 파고들었다가 그대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 때들은 올 때는 그냥 가도 갈 때는 그렇게 못한다. 라고 하듯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이미 둘이 돌입하면서 뚫렸던 길들은 다시 소들로 인해서 빽빽하게 메워졌었다. 하지만 그때···. -기마 차지!!! -기마 차지!!! -기마 차지!!! 관우와 장비가 파고들었던 장소에 다시 한 번 세 기의 기마가 파고들었다. 어느 정도 메워 놓았다고는 해도 이미 한 번 뚫렸던 장소에 다시 세 기의 기마가 강제로 밀고 들어오니 막혔던 퇴로가 다시 한 번 뻥 뚫렸다. -좋아!! 이대로 가자!! -명령하지 마라. 손견!!! 관우와 손견이 조금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그대로 다섯 기의 기마가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퇴로가 완벽하게 뚫린 상태이기에 다섯기가 그대로 퇴각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 좋을대로 공격하고 도망가는 적을 보고 블랙 스톰 카우 무리가 그냥 있을리가 없었다. 이 거대한 소때들은 그야말로 진노했다. ============================ 작품 후기 ============================ 이제 충분히 혼자서도 사냥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정운의 일행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 호흡을 맞춰보는 것도 중요한 법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60화 “음모오오오오!!!!!” “쿼어어어어어!!!!!” 저 말을 번역하면 아마도 ‘저 새끼들을 죽여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소들은 발광해서 다섯 기의 기마를 쫒아왔다. “좋아. 낚였군.” 정운은 네 기의 기마와 함께 기다리는 위치로 소들을 유인해 오는 것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몰려오고 있는 소떼의 숫자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10,000마리 이상···. 저걸 한 번에 잡는건 무리다. 일단 숫자를 좀 줄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황충!! 깃발을 흔들어서 신호를 보내라.” -옛!! 주군!!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황충은 붉은 깃발을 들어서 좌우로 힘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 신호를 받은 다섯 기의 기마가···. -산개!!!! -산개 하라!!!! 그 다섯 기의 기마가 뿔뿔히 흝어져 버렸다. 그걸 보고 무리의 앞쪽에서 달리고 있던 소들은 순간 당황했다. 눈에 불을 켜고 추적하고 있었는데 그 목표가 갑자기 흝어져 버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누구를 쫒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리고 그렇게 망설이면서 속도가 느려진 소떼들은 정말 좋은 목표였다. 미리 대시하고 있던 정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활을 높이 들어서 겨냥하고 외쳤다. “천뢰지망!!!!” 파파팟!!! 하늘로 올라가 화살은 수십, 수백개로 뿐열해서 벼락의 낙뢰가 되었다. 그리고····. -천뢰지망!!! -천뢰지망!!! -천뢰지망!!! 거기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운 혼자만이 아니었다. 미끼로 나섰던 다섯 기를 제외한 나머지 네 기가 정운의 옆에서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운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네 기의 그림자 장수들 까지 하늘높이 활을 들어서 화살비를 쏟아냈다. 콰콰쾅!! 쾅콰쾅!!! 하늘에서 뇌전을 동반한 화살의 비가 쏟아지고 전방의 소떼들은 커다란 대미지를 입었다. “음모어어!!!?” “쿼오오오!!!” 전방에 소들 중에 상당수가 죽고 역시 상당수가 발이 멈추자 뒤쪽의 소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마도 이번의 울음소리를 번역하면···. ‘앞에 안가고 뭐해 이 새끼들아!!!’ ‘갑자기 서면··· 으아아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열 맞춰서 달리던 무리에서 앞쪽이 갑자기 서면 뒤쪽은 연달아서 들이박기 마련이다. 이건 진리다. 안 그러면 왜 한국교통공사에서 안전거리 확보를 주구장창 주장하겠는가? 뭐···, 한국 운전자들은 그걸 어지간히도 잘 안 지키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수의 질주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경우에는 이게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정운은 선두의 소떼들을 노려서 대미지를 줬을 뿐인데 그것만 가지도 소떼들의 5%정도가 자멸해 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대열이 완전히 무너져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대열이 무너졌다는 말은···. 이제부터 놈들이 외부의 공격에 기민하게 반응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화생토(火生土)!! 화기는 토기를 강하게 하니, 대지여 일어나라.” 거기서 슬기의 한 수가 진행되었다. 슬기는 송문고정검에 불길을 잔뜩 불어 넣더니 그걸 땅에 박았다. 그러자····. 그그그극·····. 콰콰콰!!!! 지진이라도 진행되는 것처럼 땅이 진동을 하더니 소떼들의 주변에 흙으로 된 높은 성벽이 솟구쳤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홍신대!! 화룡!! 적들을 태워라!!!” 슬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공격패턴 중에 주작을 제외한 최대의 공격패턴 두 가지를 살려서 적을 공격했다. 콰앙!! 콰쾅!!!! 소떼들 사이에서 불길이 터지고 화룡이 날뛰기 시작했다. 생지옥, 아니 불 지옥이라는게 있다면 아마 이런 광경일 것이다. 홍신대는 원래 50의 병사들이었지만 최근에 그 숫자가 80으로 더욱더 늘었다. 스킬이 늘어나면서 병사들의 숫자가 더욱더 늘어난 것이다. 지금의 홍신대 스킬은····. 홍신대(紅神隊) LV.2 (소환자의 의지에 복종하는 화염의 정화를 소환한다. 소환가능한 숫자는 스킬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변한다.) 로 변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변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숫자가 50에서 80으로 변했다. 원래 위정국이 부리던 직속 병사들의 숫자가 500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슬기의 스킬도 최종 단계까지 진화하면 500으로 늘어날 것이다. 두꺼운 흙의 벽에 감싸여서 도망갈 구석도 없는 불지옥···. 여기까지 몰았으면 거의 끝이라고 해도 좋았다. 거기다 그치지 않고 어느새 모두 돌아온 정운의 그림자의 장수들과 세레나의 양산박 출신 부하들도 그 불지옥에 뛰어 들었다. 슬기의 공격은 같은 파티로 등록되어 있는 일행에게는 아무런 대미지도 주지 않았다. 이런걸 보면 그라운드 제로가 게임은 게임이랄까? 덕분에 그림자의 장수들과 양산박의 호걸들을 뜨거운 불길에서 날뛰는 블랙 스톰 카우들을 일방적으로 도륙 할 수 있었다. “으하하하하!!! 다 죽어라!!!!” 특히 가장 신난 것은 흑선풍 이규였다. 그는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쌍도끼를 휘두르면서 소들을 토막을 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큰 전과를 올리고 있었지만 이규의 경우는 이 상황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것으로까지 보였다. 하지만···. “쿠워어어어어!!!!!” “음모오오오!!!!” 아무리 그림자의 장수들과 양산박의 호걸들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많은 소떼를 다 전멸 시킬 수는없었다. 몇 마리의 소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다른 소들도 하나 둘 씩 하늘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원래 이 블랙 스톰 카우라는 몹들은 비행이 가능한 몹들이었다. 다만 하늘에서는 움직임이 상당히 느려졌지만 말이다. 일단 슬기가 독안에 가둔다고 해도 솟아날 구멍만 있다면 도망 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거기는 사형 코스지다.” 정운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소떼들을 보고 중얼 거렸다. 여기까지도 이미 정운의 작전 범위 안이었다. 정운과 슬기의 공격에 상당한 대미지를 입고 도망치는 소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날개를 펴고 대기하고 있는 세레나였다. “이제 남은 숫자는 절반 정도인가? 이 정도로 숫자가 줄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신의 철퇴!!!” 그걸로 끝이었다. 하늘에서 땅으로 태양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한곳에 뭉쳐있던 블랙 스톰 카우들 전원이 폭사 해 버렸다. “쿠워어어어!!!” “음모오오오!!!!!!” 마지막 말은 번역하면···. 음···.모르겠다. 소떼들이 죽으면서 무슨 생각 하는지야 알게 뭐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작전에 걸린 소요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 그 정도 시간으로 획기적일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경험치를 쌓은 슬기와 세리나였다. 띠리링!! “어? 나 레벨 올랐어요.” “저도군요. 확실히···. 75층, 거기다 사냥감의 숫자까지 더해지니 엄청난 레벨업이 군요.” 200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정운을 제외한 슬기와 세레나를 레벨이 올랐다. 이제 세레나의 레벨은 135, 슬기의 레벨은 121이었다. 정운도 이 둘처럼 레벨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경험치를 얻었다. 뭐···. 지금의 정운에게 상당한 경험치라고 해 봐야 경험치 파가 찔끔 하고 움직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실로 오랜만에 눈에 띄게 경험치 바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만 해도 반가운 정운이었다. “음··. 이 몹은 리젠이 되려면 며칠은 있어야 되는 모양이고···. 세레나 역시 신의 철퇴 쿨 타임이 있으니 이 몰이사냥은 1주일에 한 번만 하자.” 정운의 말에 슬기와 세레나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1주일에 한 번만 해도 충분했다. 들어오는 경험치만 보면 어지간한 퀘스트보다 한 수 위일 정도였다. 그렇게 그날은 대량의 경험치도 얻었고 해서···. 세 사람은 오랜만에 일찍 사냥을 마쳤다. 사냥을 마치고 집에 일찍 들어온 세 사람은 한숨 돌리면서 쉬고 있었다. 그리고 슬기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세레나, 우리 쇼핑가지 않을래요?” “예? 쇼핑요?” “예. 내일은 쉬는 날이고 오늘 백화점에서 세일한데요.” “····가도록 하죠. 마스터도 함께 가겠습니까?”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약간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으음···. 쇼핑이라 꼭 가고 싶지만····.” ‘가기 싫은 거군.’ ‘가기 싫은 거야.’ 정운의 태도는 아무리 해도 쇼핑은 따라가고 싶지 않다. 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태도였다. 나름 숨긴다고 숨기려 하고 있었지만 두 여자가 보기에는 너무나 표가 났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역시 무리야. 이제 막 생각났는데 중겸이 형님이 날 불렀어.” “정말요?” “응. 물론이지.” “어떻게요? 우리 이제 막 스카이 타운으로 돌아왔고 정운씨가 누군가와 연락하는 모습은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말이죠.” “·············.” 평소에는 관대한 슬기였지만 오늘따라 조금 깐깐하게 굴기 시작했다. 자로고 여자가 남자를 괘씸하게 여길때가 세 가지 있다. 자기 친구들한테 소개 시켜주려고 하는데 싫어할 때. 자기 집에 놀러 와서 부모님 소개하려고 하는데 싫어할 때. 그리고 쇼핑하러 가는데 안 따라갈 때. 뭐, 개인차가 있기는 하고 세 가지 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 관해서는 따지지 말도록 하자. 그냥 보편적으로 이렇다는 말이다. 어쨋든 정운은 슬의 날카로운 추궁에 궁색한 변명을 했다. “음······, 텔레파시로?” 정말정말 궁색한 변명이었다. “그냥 쇼핑가기 싫다고 말해요.” 슬기의 한숨에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말하면 싫어할 거잖아? 나라고 바보라서 이런 변명을 할까?’ 그때, 정운의 입장에서 보기에 기적이 일어났다. 덜컥!! 갑자기 문이 열리고 거기서 지금 정운이 가장 반길만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정운아!! 너 뭐해!!! 빨리 와봐!!!” “어!!? 중겸이 형님!! 예. 지금 갑니다. 가고 말고요. 그럼 슬기야···. 쇼핑 잘해. 그리고 참고로 알아 둬. 이게 남자들 간의 텔레파시라는 거야.” “빨리 오라니까!!!!” 한중겸은 뭔가 엄청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정운의 손을 끄잡고 데리고 갔다. 그리고 정운은 뒤에서 슬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올라갔다. 콰당!! 문이 닫기고 슬기가 중얼 거렸다. “하여튼 운도 좋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한중겸씨는 뭐 때문에 마스터를 불렀을 까요?” “글쎄요? 항상 하는 것처럼 술이라도 마시려는 거겠죠. 우리는 가요. 오늘 최대 40%까지 세일이래요.” “가죠.” 슬기와 세라는 비장한 표정을 하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참고로···. 이 둘이 버는 돈을 생각하면 굳이 세일따위 노리지 않아도 사고 싶은건 사고 싶은만큼 살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세일이라는 단어에 투지(?)를 불 태우는 것은 왜일까? 혹시 세일이라는 단어는 여자들의 본능에 잠재되어 있는 그 어떤 투쟁 본능을 자극하기라도 한 걸까? 21세기 여성인 슬기는 물론이고 세레나까지 저렇게 전의를 보이다니···. ······인류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큰일이야. 이건 정말 큰일이야.” “형님. 뭐가 큰일인데요.” “엄청 큰일이라고!!!” “진정해요. 도대체 왜 그래요!?” 정운은 한중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그러자 한중겸은 한 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저기 내 방에 들어가 봐.” 한중겸의 손가락 끝이 자기 방을 가리켰다. 그리고 정운은···. “싫은데요.” “····좀, 이 형이 말하면 들어라. 좀!!!” “저 번에 형님 방에 들어갔을 때 본 것은 알몸으로 형님하고 형님 소환수가 뒹굴고 있는 장면이었다고요!!!” 다시는 또 보기 싫은 광경이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왕귀인은 둘째 치고 한중겸의 나체에 에프터의 흔적····. 그걸 한 번만 더 보면 과감하게 눈을 뽑아 버리겠다고 반쯤 진심으로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잠시 쉬어가는 코너로... 한중겸 이민지의 스토리입니다. 이 둘의 에피소드도 원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61화 <그남자의 사정.> 정운의 절대 거절하는 말투에 한중겸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 라는 듯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인마!!! 너 그때 결국 날 버리고 도망갔잖아!!?” “당연하죠!! 그럼 내가 거기서 형님 변호하면서 민지 누님한테 죽어야 겠어요?” “그게 의형제 간에 당연히 지켜야 할 브로도(bro道)지.” “····브로도가 뭔데요?” “그런게 있어. 황재민이라는 저자가 쓴 책인데···. 최근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더라. 나중에 너한테도 보여줄게.” “······뭐, 그건 됐다 치고···.” 어떤 책인지는 몰라도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잠시 한중겸의 방을 바라봤다가 다시 한중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 형님이 허둥 거리는 이유가 저 방안에 있는 거죠?” “그래.” “그리고 나 보고 저기 저 방을 들여다 보라는 이유는 나보고 해결책을 찾거나 혹은 도움를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범이 되거나 셋 중에 하나겠군요.” “그냥 좀 봐라!!!” “아니 나도 마음의 준비가!!” 결국 정운은 한중겸에게 헤드락이 걸린 상태로 그 문까지 끌려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본 정운은···. “오······. 형님 드디어 미쳤군요.” “아마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건데요?” “나도 몰라!!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셨는데···. 정신 차리고 나니 이렇게 되어 있었어.” “아니 그보다···.” 정운은 흘깃 다시 문 안쪽을 바라봤다가 다시 한 중겸을 보면서 말했다. “왜 늘었는데요?” “그건····. 사정이 있었지.” “어떤 사정이 있기에 형님 침실에서 여자가 다섯이나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 건데요? 어디 말해 보시죠!!!? 예!!!?” 그렇다. 정운이 바라본 광경은 한중겸의 침실 안에 왕귀인과 또 보지도 못한 여자들 네 명이 잠들어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녀들 전원이 누드라는 것도 정운이 비판하고 있는 중요한 골자가 될 것이리라. 비록 이불에 덥혀서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드러난 어깨와 다리만 봐도 어차피 뻔할 뻔자 아니겠는가? 무슨 누드 화보 찍는것도 아니고 저 안에는 수영복입니다. 라는 개그가 이 상황에서 작렬할 리도 없었다. 이건 명백한 에프터의 상황이었다. “왕귀인 빼고는 처음 보는 여자들이 잖아? 형님. 설마 또 여자 소환수를 늘렸습니까?” “아니!! 그건 절대 아니지. 내가 또 여자 소환수를 늘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죽을 때거나 망령날 때다.” “실제 형님 나이를 생각하면 둘 다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내 말의 핵심을 이해해. 무슨 말 하고 싶은지 대강 알잖아!!?” “···········.” 애매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정운에게 한중겸이 깊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저기 저 네 명의 여자는···. 다름 아닌 민지야.” “····예?” “아니 엄밀히 말해서 민지들 이라고 해야 할까?” “··········예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며칠 전으로 시간을 좀 돌려봐야 겠다. 75층으로 올라온 후에 이민지는 커다란 퀘스트를 하나 잡았다. 이제까지 그녀가 잡은 수많은 퀘스트 중에서도 가장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퀘스트였다. 퀘스트 명은···. [정령신의 임무] 라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퀘스트였는지는 한중겸도 잘 몰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민지는 그 퀘스트를 자기 혼자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민지로서는 조급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러니까 한국 서버에서 십왕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그녀는 한국 서버의 NO.3로 확고하게 있었다. 실질적으로 NO.1,2과 파업 중인 상황이었기에 그녀가 한국 서버의 리더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정운이 올라와서 확 치고 올라오더니 이제는 누가 봐도 한국의 진정한 실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어느새 부터인가 리더쉽도 실력도 이민지와 정운과의 사이에서는 큰 차이가 나 버렸다. 거기다 월드 서버에 올라오고 나서 박추성과 배대호도 조금씩이지만 현장에 복귀를 하고 있었다. 원래 박추성은 일본 서버와의 마찰 때문에 끼어들기 시작했고, 배대호 역시 월드 서버에서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인지 예전처럼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활동을 재계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정운의 공인 것이다. 거기에 자극을 받은 다른 십왕들도 크고 작은 발전들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러던 와중에 이민지는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레벨이 워낙 고 레벨이기도 했지만 이민지의 경우 이미 정령술 스킬이 MAX에 도달한 상태였다. 사대 정령왕을 모두 소환하는게 가능한 그녀에게 있어서 이 이상의 경지는 전혀 꼬투리가 잡히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발전을 위해서 근접 전투 스킬을 익혀서 전투 스타일을 정령 마법사 스타일에서 정령 검사 스타일로 바꿔 볼까 생각도 했지만···. 사실 그녀는 근접 전투에 관해서는 센스가 지독하리만큼 없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정체기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던 그녀에게 있어서 정령신의 임무라는 퀘스트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잘만 하면 이제까지 정체되어 있던 그녀의 정령술이 한 번에 진보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퀘스트는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다. 단독 도전에 비밀 엄수까지···.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민지는 정령신의 임무라는 퀘스트에 돌입했다. 그 결과·····.. “아아아···. 심심해····.” 한중겸은 심심해져 버렸다. 정운은 정운대로 바쁘다고 하고 연인인 이민지는 한중겸에게서 왕귀인을 빌려서 퀘스트를 하러 갔다. 유저의 도움은 받을 수 없지만 그 유저가 소환한 자율형 소환수에게는 괜찮다. 라는 맹점을 시험해서 찔러본 결과 그게 잘 통했던 모양이다. 결국 한중겸은 스스로 심심함에 몸부림 치면서 게으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한중겸은 ME를 통해서 왕귀인의 연락을 받았다. “주인님, 큰일 났는데 필드로 보실래요?.” “큰일? 무슨 큰일.” “정말 큰일이죠. 일단 필드로 나와 보세요.” 왕귀인이 허둥지둥 부르는 것을 보고 한중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일단 필드로 나가보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이지 뭐.’ 그렇게 지정한 필드로 나간 한중겸을 왕귀인이 불렀다. “여기입니다. 주인님.” “너 또 이상한 장난····. 이건 뭐야?” 현장에 도착한 한중겸에게 보인 것은 빨강, 녹색, 파랑, 갈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들이었다. “이건····? 누구야? 민지는?” 뭔가 심각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한중겸을 향해서 왕귀인이 말했다. “정령신의 임무라는 퀘스트를 클리어 한 결과입니다.” “클리어 했다고? 아니···. 그럼 이게 클리어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한중겸의 말에 왕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제나처럼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소녀들은, 모두 이민지 본인입니다.” “·····뭐시라!!?” 한중겸은 놀라서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런 한중겸에게 왕귀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정령신의 임무라는 퀘스트는 이민지가 가지고 있는 정령왕을 좀 더 강력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제까지처럼 외부에 불러서 소환하는게 아니라 정령을 정령술사 본인의 몸에 집어 넣어서 정령과 정령 술사가 하나가 되어서 그 위력을 증폭 시킨다. 라는 설정의 스킬이었던 모양이다. 정식 스킬 소개로는···. 정령합일(精靈合一) LV.1 (소환한 정령을 술자의 몸에 합체 시켜서 위력을 강화 시킨다. 모든 정령술의 위력이 순간적으로 1,000%가량 올라간다. 단 사용 시간은 1분이 한계이며 시간을 넘기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사용 시간은 더욱더 커진다.) 라는 스킬이었다. 원래 이민지가 가지고 있던 정령술은 장기전에는 엄청 유리했지만 단숨에 폭발적인 화력을 발휘하는 것에는 약했다. 그러니 이민지가 목을 매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정령의 힘을 10배로 뻥튀겨 준다는 말이 아닌가? 사용하기엔 따라서는 한국 팀의 딜의 에이스로 등극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부작용? 여기 말하는 부작용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거야? 왜 설명이 부족한 건데?” 한중겸의 말에 왕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주인님의 여자인 이민지가 한 말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전투중에 리스크를 알려면···.” “설마·····.” “반드시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 빌어먹을. 제발 일부로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기 몸으로 시험해 봤다고 말하지 말아줘.” “스스로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기 몸에 시험해 봤습니다.” “망할!!! 하지 말라고 했잖아?” “진실은 잔혹한 거죠.” 왕귀인은 마치 약 오르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중겸을 바라보면서 낼름 비웃었다. 그건 진심으로 쌤통이다. 라는 표정이었다. 한중겸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그럼 지금 이 소녀들의 모습은···. 민지의 부작용의 결과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무식하게도 사대 정령 전원과 합체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일단 깨우고 봐야겠다. 민지야. 민지···들아!! 일어나. 애들아.” 어색하게 여친들을 깨우는 한중겸이었다. “으으····. 제길, 머리아파.” “음····? 여긴···. 이건···. 뭐 아무렴 어때?” “흠·····? 과연···.” “흑···. 흐흑····.” 머리 색깔에 따라서 정령의 성격도 전염된 것일까? 이민지들은 저마다 성격도 바뀐 것 같았다. 붉은 머리카락의 이민지는 척 봐도 ‘나 한 성깔 하는 여자다.’ 라는 듯한 태도였다. 척 봐도 불의 정령왕과 동화한 것 같았다. 그리고 연두색 머리카락의 이민지는 마치 지금의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바람의 정령왕과 동화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살피고 있는 파란 머리의 이민지. 그녀는 아마도 물의 정령왕과 동화된 것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좀 의외였지만 대지의 정령왕과 동화한 것 같은 갈색 머리의 이민지는 흑흑 거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들의 다체로운 반응을 보면서 한중겸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일단 하나 물어볼게. 나 아는 사람?” 한중겸의 말에 모든 이민지들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일단 기억은 있다는 거네···. 그럼··. 아, 울지마. 자자···.” 한중겸은 울고 있는 갈색 머리의 이민지에게 가서 다독 거려 줬다. 그러자·····. “야!!! 너 뭐하는 거야!!?” “작전이었나? 호오··. 만만치 않은데. 갈색 이민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여친 차별하면 뒤가 골치 아플걸?” “·········하아, 이미 골치 아파지기 시작했어.” 이렇게 한중겸의 내 여친 분열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한중겸은 일단 모든 이민지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전진기지가 아니라 아주 완전히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의 이민지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어린 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뻔했기 때문이다. “야!! 중겸아!! 자꾸 왜 눈치 보고 그래?” 붉은 머리의 이민지가 투덜 거렸다. 그러자 파란 머리의 이민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 치고는 머리가 나쁘네···. 척 봐도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는 거잖아?” “호오···. 나 치고는 말하는게 싸가지 없네. 거기 다시 한번 말해봐 퍼랭이 머리야.” “넌 말하는 것에 품위도 없구나. 빨갱이 머리야.” “너 죽는다!!!?” “어디 해 봐!!” 붉은 머리의 이민지와 파란 머리의 이민지가 우리는 불 과 물이라는 듯이 부딪히려고 했다. “잠깐···. 둘 다 좀 참아!! 왜 같은 사람이면서 못 참는 거야?” “난 저 기지배가 싫어!!” “난 저 기지배가 싫어!!” 동시에 고개를 팩 돌리면서 말하는 것을 봐서는 같은 사람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잠깐···, 둘 다 진정 좀 해봐!! 다른 사람들 도 좀 말려.” 한중겸은 다른 이민지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흑··. 흐흑···. 으아앙!! 나한테 중겸이가 소리쳤어!!” 마음이 약한 걸까? 갈색 머리의 이민지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어쩔 줄 모르는 한중겸의 어깨를 연두색 머리의 이민지가 두드렸다. “아무렴 어때? 애들은 다 싸우면서 크는 거야.” “·············.”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만 뒤집어 진다고 해야 할까? 한중겸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 소환수인 왕귀인을 바라봤다. 이렇게 된 이상 누구다로 좋으니 좀 도와·····. “저한테 뭘 바랍니까? 주. 인. 님.” “·············젠장.” 손톱에 매니큐어 칠하고 후후 불면서 말리고 있는 왕귀인을 본 순간 한중겸은 털썩 하고 쓰러져 버렸다. ============================ 작품 후기 ============================ 한중겸이 점점 개그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음... 처음 등장일때는 나름 카리스마 있는 형님 캐릭터였는데... 이게 주인공 옆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캐릭터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오늘부로 장기 휴재중이던 '끝장난 세계의 히어로'가 연재 재계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바짝 연재할 계획이니 많은 사랑 부탁 드립니다. 262화 한중겸은 아련한 시선을 하고 말했다. “······정말 지옥이었지. 울고 불고 때 쓰고 싸우고···. 그런 여친이 넷 이나 있었고 소환수는 말도 안 들어 먹고····.” 한중겸의 푸념을 들으면서 정운이 말했다. “뭐··, 대강 사정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해서 저렇게 온 방안에 하렘을 벌여놓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여친들 뒤치닥거리 하다가 문득 깨달았지.” “뭘요?” “이렇게 된 이상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나름 즐길 건 즐겨야 한다고.” “설마 형님·····?” 정운은 이제야 한중겸이 무슨 짓을 했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뭐, 하나로 네 가지 맛.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리고 은근슬쩍···. 평소하고는 색다른 느낌일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넷이나 있는데 이건 어쩔 수 없구나 싶었지.” “··············.”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하고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 했을 거야. 그리고 난 술에 취했단 말이야.” “아니 그럼 민지 누님이야 누님이니 그렇다 쳐도 왕귀인은 또 왜요?” 백번 양보해서 민지들은 민지니까 그냥 그렇다 치자. 하지만 왕귀인은 왜 또 건드린다는 말인가? 안 그래도 저번에 그것 때문에 한 번 크게 혼나지 않았던가?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말했다. “술에 취했었다고 말했잖아!!!!!” 궁색하기 그지 없는 변명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애당초 민지 누님이 그걸 허락할 리 없잖아요?” “나 혼자 자작했을 리가 있냐?” “··············.” 정운은 모든 상황파악이 끝났다. 말인 즉, 이민지들도 모두 같이 마셔서 완전히 골아떨어지게 만든 다음에 저렇게 하렘을 만들어 놨다는 뜻이다. “형님,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그거 소위 말하는 데이트 강간인 것 알아요?” “그게 뭔데? 네가 있던 시대에 있는 신종 범죄냐?” 정운이 마치 벌레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한중겸은 몹시 억울하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생각해 봐. 바람 안 피고 하나로 네 가지 맛이 잖아? 그런 기회를 놓치고 싶겠냐?” “나중에 후 폭풍도 네 배라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그건 그때지.” “형님····.” “브로도 일장 육절. 후환은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내일은 오지 않는다.” “············.” 아무리 생각해도 동정의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럼 저도 이 상황에서 하나 물어 봅시다.” “뭘?” “이 수라장에서 나 보고 뭘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합니까?” 정운의 말헤 한중겸은 잠시 잊어 버렸던 본연의 목적이 기억났다. “그래. 네가 할 일은 간단해.” “·············.” 절대 간단해 보이지 않았지만 일다는 참고 들어보려는 정운이었다. “이제 곧 민지들이 정신을 차릴 거야.” “그리고 형님을 죽이려고 하겠죠.”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예. 계속 해봐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민지는 마음이 넓은 여자야.” “과연 그럴까요?” “내가 하나로 네 가지 맛 같은 이벤트를 생각한 것은 관대하게 넘어 가 줄 거야.” “정말? 정말 과연 그럴까요?” “좀, 내 말을 들어라!!” “듣고는 있어요. 납득을 안 하고 있는 거지.” “브로도에 적힌 말이 맞았어. 말이 많은 남자는 베스트 브로로 적합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 책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쓴 거에요?” “몰라. 저자의 이름은 황재민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꼭 다른 세상의 책 같았어.” “그렇군요···. 그럼 전 가도 되나요?” “아니 그건 아니지.” 한중겸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정운을 다시 잡아서 앉히면서 말했다. ‘쳇, 은근슬쩍 화제 돌리고 빠져 나가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일차 시도는 실패했다. “민지는 하나로 네 가지 맛은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거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계속 하세요.” “하지만 왕귀인의 얘기는 조금 달라.” “조금? 많이 다르죠. 내년에 제사상 받을 각오를 하는게 좋을 겁니다.” “전에는 간신히 용서 받았는데·····.” “그런 용서 받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아십쇼.” “넌 아주 대 놓고 양다리잖아!!?” 정운의 계속되는 태클에 한중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정운도 조금 찔린 것일까? 약간 언성을 높이면서 대답했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대 놓고 양다리 보다는 어떻게든 둘을 납득 시키는게 낫거든요?” “아니 네가 더 최악이야. 내가 더 나아.” “웃기지 마십시오. 형님이 훨씬 더 최악이에요. 어떻게 저하고 비교를 합니까?” “아니야 내가····.” “웃기지 마요. 내가····.” 개관적으로 한 걸음 떨어져서 제 삼자의 시각으로 보면···. 그 놈이 그놈이다. “····그런데 얘기가 왜 이리 샜지?” “저야 모르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왕귀인의 처사야.” “왕귀인? 아아···. 그래 그렇겠네요. 거기서부터 샜지····.” 하나로 네 가지 맛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일은 일단 집어 치우고···. 이번까지 포함하면 왕귀인하고 술 먹고 사고친 것이 두 번째인 한중겸이다. 이민지의 성격상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다. “거기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도움요.”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드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한중겸이 하하 웃는 얼굴로 말했다. “왕귀인하고는 네가 한 걸로 하면 커억!!! 너 쳤어!!!?” “당연히 치지!! 인간아!!!” 형님이고 나발이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이 형님을 위해서 그것도 못하겠냐?”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한중겸와 정운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호오···. 그런 생각을 했다고?” 어느새 문을 열고 나온 걸까? 한중겸과 정운의 옆에는 몸을 이불로 돌돌감고 있는 이민지가 있었다. 참고로 진짜 이민지였다. 알록달록 힘을 합쳐서 캡틴 플래X 부를 것 같은 이민지들이 아니고 진짜 검은 머리의 이민지 말이다. “어어···. 민지야.” “민지 누님. 어디서부터 보셨나요?” “하나로 네 가지 맛부터.” 핵심은 다 봤다는 말이다. “하·· 하하····.” “그럼 전 이만···.” 정운이 재빨리 튀고 한중겸은 그런 정운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 얘기 좀 할까?” “얘기만··. 아!! 그러고 보니 몸이 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네? 다행이야.”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하나로 네 가지 맛? 거기다 소환수까지 붙었으니 플러스 원까지 붙어서 좋았나봐?”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정운이 어느새 완전히 도망가고 한중겸은 완전히 핀치에 몰렸다. ‘이 상황에서 정직하게 대답하면 죽을까? 언젠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죽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게 이런 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한중겸에게 이민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뭐···, 복잡하게 생각 안 해도 돼. 나도 그렇게 꽉 막힌 여자는 아니니까.” “응? 아아···. 그래. 그렇지···.” “그래. 솔직히 말해서 궁금하기까지 한걸? 어제는 좋았어? 내가 넷이나 되었고··.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나 몸매도 좀 변했지? 불의 정령왕과 대지의 정령왕과 합체한 나는 원래의 나보다 가슴도 크던데?” “엄밀히 말해서 불의 정령왕은 비슷했고 대지의 정령왕은 확실히 컸지.” “헤에···. 그랬어? 그래서 좋았어?” “으응···. 뭐··. 하하··. 좋은 편이었지. 말이 나와서 그런데 그럼 우리 앞으로 자주자주 그런 이벤트를····. 응?” 말을 하던 한중겸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민지의 몸에서 뭔가 이상한 오로라가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민지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다행이다. 인생 마지막 추억이 좋았다니····.” “어?” “죽어. 이 나쁜 놈아!!!!!!” 콰콰콰콰쾅!!!!!! 당연하지만 자기 남자가 저러는 것을 용서하는 여자는 거의 없는 법이다. 그날도 스카이 타운에서 갑자기 정령왕들이 대거 등장했다고 한다. 저번보다 훨씬 더 성대하게···. 75층으로 올라오고 난 후 한영 동맹은 꾸준하게 사냥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운의 귀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뭐? 사국연합이 73층을 뚫었다고? 달기를 이겼다는 말이야.”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한영동맹의 포로 중에 한명인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의 보고였다. 그녀는 갑자기 정운에게 면회를 요청하고는 사국연합이 73층을 돌파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정운은 팔짱을 끼면서 생각했다. “으음···. 네 개 국가가 힘을 합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너무 빠른 걸? 그동안 73층에서 그 고선을 해 놓고는····.” 정운은 73층을 클리어하고 그라운드 제로의 최전선에 올라온 이후로 아래층의 유저들과의 연락을 딱 끊어 버렸다. 중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정운과 애타게 만나고 싶었지만 정운은 아애 연락 가능한 수단 자체를 완전히 소멸 시켜 버렸다. 전진기지도 74층으로, 75층으로 계속해서 옮겨갔고 다른 유저들에게도 아래층의 유저들과 연락을 하는 것은 엄중에 금지했다. 꼭 빚쟁이들에게서 도망치는 채무자 같은 방법이었지만 이게 잘 먹히기는 무진장 잘 먹혔다. 실제로 중국 유저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72층에서 도와준 것을 생색내면서 정운에게 빚을 받아내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국연합이 힘을 합쳐서 73층을 돌파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74층의 경우 세레나 덕분에 영구 클리어를 했고···. 결국 곧 사국연합은 74층을 거쳐서 75층으로 올라올게 뻔했다. “곧 만나겠군···. 쯧, 지금 와서 75층 레이드를 한다고 해도 늦겠지?”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탈리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게 상황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응? 뭐가?” “모르셨습니까? 74층에는 새로운 보스몹이 생겼습니다. 뭐···. 그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요.” “응? 뭐가 그런데?” 정운의 말에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는 보조개를 살며시 파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에 제가 꾸준하게 아래층을 정찰하면서 얻은 정보였습니다. 74층에 새롭게 생긴 보스몹···. 그건 우리가 다들 알고 있는 몹이더군요.” “그게 뭔데 그래?” 정운이 재차 묻자 나탈리아는 웃긴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여기 ME로 찍어온 정보가 있습니다. 한 번 직접 보시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74층의 새로운 보스몹의 정보를 넘겼다. “···하!! 하하하····.” 그리고 고개를 갸웃 하면서 그걸 확인한 정운은 실소가 절로 나왔다. 도조 마사토. LV. 170~180 [원래 일본의 유저였으며 사망 후에 그 원념을 높이 사서 보스몹으로 환생함. 성격은 엄청나게 배배꼬였고 제정신이 아니다. 또한 유저중에 박정운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다.] “·····하하··· 아··. 배 아파··. 이 자식 보스몹으로 환생했어. 그것도 없어진 층을 메우기 위한 땜빵으로····?” 정운은 오랜만에 제대로 웃기게 웃었다. 몹의 설정에 자기한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웃겼다. “아아····. 오랜만에 실컷 웃었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정운님의 능력이라면 가서 만나는 것 정도는···.” 나탈리아의 말에 정운은 손 사레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 됐어. 별로 보고 싶은 쌍판도 아닌데 뭐 하러··. 그보다 나탈리아라고 했지?” “예. 정운님.” “시키지도 않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캐와서 고마워. 상을 줘야 겠는데···. 뭔가 원하는 것 있어?” 한영동맹을 이끌고 있는 것은 정운과 다이앤 여왕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누가 실세인지는 포로들도 잘 알고 있었다.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가 이렇게 힘들게 입수한 정보를 가지고 정운에게 쪼르르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작품 후기 ============================ 일단 도조 마사토 재등장입니다. 별로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가 딱일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서 새삼 엄청 강력한 힘을 손에 넣어서 주인공의 앞을 가로막는 그런 역할이 어울리는 비중도 아니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63화 <러시아 꽃 뱀> “그저 팀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대가를 어떻게 바라겠습니까?” 나탈리아는 일단 한 번 뒤로 뺏다. 상대가 미끼를 덥썩 물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밀당이 필요한 법이었다. 정운은 오랜만에 유쾌한 기분이었고, 또 상대가 완벽하게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서 방심했던 것일까? 평소라면 하지 않을 허세와 호기를 부렸다. “그러지 말고 말 해보지 그래?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라면 뭐든지 들어 줄 테니 말이야.” 정운의 말에 나탈리아는 두 눈을 반짝였다. “정 그렇다면··.· 제 소원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래. 얼마든지.” ‘그 말을 듣고 싶었지.’ 정운의 말을 들은 나탈리아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한영동맹에 포로로 잡힌 후부터···. 정운의 눈에 들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써가면서 어떻게든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열심히 사냥하고 한영동맹에 최대한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 정도는 나탈리아 말고 다른 포로들도 알아서 다 했다. 하지만 나탈리아의 목적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의 레벨은 120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레벨보다 더 귀중한 능력이 있었다. 태양을 반사시키는 눈부신 백금발. 설국의 눈밭을 연상 시키는 뽀얀 피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연상시키는 눈동자. 그리고 갸름하고 얼굴에 아름다운 이목구비.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도 환상적인 비율의 황금 몸매. 즉, 미모였다. 그라운드 제로의 여성 유저들 중에 상급 유저들 중에는 은연중에 미모가 좋은 편인 여자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 첫걸음. 그것은 초보시절을 얼마나 잘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은 그 미모 하나만으로도 이미 상대에게 호감을 받기 쉽다는 얘기이기도 한다. 오래전에 문시영이 정운에게 거리낌 없이 성접대를 제시했던 그런 경우까지가 아니라도···. 아름다운 여자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약간 세상살이가 편한 것이 사실이다. 뭐, 그 대신에 예전에 슬기가 말벌파에 당했던 것처럼 오히려 안 좋은 쪽으로 표적이 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생각하면 문시영의 경우 자기 외모를 활용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 되었다. 가볍게 몸을 줘봤자 가볍게 보일 뿐이다. 하긴 그녀의 경우는 그 전에 질 나쁜 길드에 찍혀서 노예 생활을 했던게 원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미인들 중에서도 진짜로 요령 좋은 여자들은 함부로 몸을 굴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남자에게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거래를 쏙쏙 성사시켰다. 한국 서버에서는 이보영이 특히 그런걸 잘 했다. 마찬가지로··. 이 나탈리아라는 여자도 작기 미모를 120%까지 활용 가능한 여자였다. 미모 자체에도 자신 있었지만 절대로 함부로 아무 남자에게나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고 자신 정도 되는 여자라면 완벽하게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전에 고른 남자는 러시아의 리더였던 알렉세이 찌모페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지난 일이다. 결국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졌다. 한국팀의 리더 박정운과의 결투 끝에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만약 여기서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가 알렉세이 찌모페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정운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 슬기나 세레나의 경우 정운이 누군가에게 죽는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으로 최강의 남자를 골랐던 것 뿐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미 패배하고 죽은 알렉세이를 위해서 뭔가를 해줄 의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에 그녀는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최고의 남자를 다시 골랐다. 그게 바로 박정운이었다. 물론 그녀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서 알 고 있었다. 이미 정운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별 상관 없었다. 자신은 별로 정운에게 있어서 하나뿐인 소중한 여자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게 아니니까 말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이라는 여자를 정운에게 주고, 그 대신에 자신은 박정운이라는 강력한 배경을 손에 넣는다. 그것뿐인 관계를 원했다. 첩이 아니라 그냥 노리개나 같은 취급이라도 상관없었다. 자고로 종도 정승집 종을 해야 목에 힘이 들어가는 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운과 따로 연이 닿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지간한 한국팀이나 영국팀의 유저들 보다 더 높이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다. 그만큼 지금 정운이 한영동맹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독보적인 것이니까 말이다.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공을 들였어. 목숨 걸고 아래층을 정찰하고 74층의 보스몹 지역에도 들락날락하고····. 이제야 기회가 왔다.’ 나탈리아는 정운을 향해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했으니 감히 말하겠습니다.” “뜸들이지 말고 그냥 말 해.” “저하고 같이 저녁이라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능하면 제가 원하는 장소에서···.” “····뭐라고?” 정운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말이 나오자 살짝 당황했다. 유니크 아이템을 원했다고 해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능하면 호텔의 레스토랑이 좋겠군요. 어떠신가요?” 얼굴에 살포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나탈리아의 얼굴은 노골적인 것 보다 더 아찔한 유혹의 의사가 전달되고 있었다. 이걸 보고 진의를 모르면 바보다. ‘이 여자···. 그래. 생각해 보면 노릴 법 하기도 하지···.’ 정운은 한 박자 뒤 늦게 자기 위치를 깨닫고 나탈리아가 원하는 것도 깨달았다.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포기해.” “포기 하라고요? 무슨 말씀이시죠?” 나탈리아는 시침을 뚝 때고 그게 무슨 말이냐? 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다만 정운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세월이 있는데 그런 얼굴에 쉽게 속기야 하겠는가? 지금이야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 솔로 플레이어 시절에는 문시영처럼 정운에게 여자로서의 자신을 걸고 접근하는 여자들이 제법 있었다. 정운은 나탈리아에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탈리아. 넌 아름다워.” “고맙군요.” “하지만 내 타입은 아니야.” “·············.” 사실 타입이 아닌건 아니다. 그렇다기 보다···. 남자들은 종종 여자들 보고 타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어떤 의미로 봤을 때 거짓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문명 어느 시대를 가도 남자들의 타입의 99%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미인 = 타입. 안 미인 = 안 타입. 좀 잔인하기는 이게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슬픈 본능인 것을···. 정운도 그런 99%의 남자들 사이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아니다. 그러니 나탈리아 정도의 미인을 보고 타입이니 아니니 하는 말은 사실 거짓말이다. 다만···. 정운이 지금 슬기와 세레나에게 마음이 꽉 차서 다른 여자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틀림없는 진심이기는 하다. 아마도 지금 같아서는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가 세트로 온다고 해도 타입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포기할 정도면 나탈리아도 얘기 자체를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피식 우승면서 심심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저 식사 한 끼에요. 뭐, 약간 사심을 섞자면 제가 그만큼 박정운씨하고 친하다고, 혹은 인정 받았다고 주변에 과시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 은근슬쩍 말을 정운님에게서 정운씨로 바꾸는 나탈리아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대화의 흐름도 매끄러워서 정운은 미처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정운은 살짝 망설이기 시작했다. ‘음···. 어떻게 하지?’ 확실히 자신이 먼저 뭐든지 말 해 보라고 했는데 여기서 더 뒤로 빼기도 좀 그랬다. ‘그냥 식사 한 끼 라면····. 괜찮을까? 어차피 그녀의 말 대로 포로들 사이에서 나하고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은 것 뿐이 라면 그거로 충분하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군··. 그럼 그렇게 하자고. 아!! 잠깐 그런데··. 어디서 만나지?” “어디서라뇨?” “그러니까··. 호텔의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거기서 만나려면 한국 서버든 러시아 서버든 한쪽으로 가야 하잖아? 잠깐 그게 되기는 되나?” 정운의 말에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는 웃으면서 말했다. “보통은 안 되죠. 하지만 제 경우 지금 종속의 계약 때문에 타국 서버에 일정부분 종속되어 있으니··. 타국의 서버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페널티는 있지만요.” 정운은 미처 몰랐겠지만 월드 서버의 유저들이 타국의 서버에 들어가는 거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 하면 타국의 서버에 들어가는 유저는 유저로서의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봉인당하기 때문이다. 레벨도 1로 떨어지고 스킬도 쓸 수 없고 아이템도 쓸 수 없다. 그냥 평범한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누가 타국의 서버에 들어가겠는가? 설령 레벨이 200이 넘는다고 해도 타국의 서버에 들어가는 순간 무력화 되어 버린다. 그런 약점을 안고 들어갈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탈리아가 들어온다는 말을 들으니 정운은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일단 유저로서의 능력을 완전히 봉인되는 것을 감수하고서 들어온다면 이상한 사심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긴···. 남자들도 아니고 여자가 자존심이 있지, 그렇게 달라 붙을려고?’ 뭐···. 딱 잘라 말해서 여자의 집념을 전혀 모르고 한 허술한 생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에게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와 식사 약속을 잡은 것을 얘기했다. 물론 슬기와 세레나는 단번에 눈이 가늘어졌다. “정운씨 설마···.” “마스터···. 저기··· 제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둘 다 진정해.” 정운은 둘을 서둘러 말렸다. 그리고 이번의 식사 약속은 그냥 제법 쓸만한 정보를 물어온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를 치하하기 위한 행위일 뿐이라고 말했다. “애당초 내가 바람 피는 거면 너희들에게 이렇게 사전에 말 해둘 리가 없잖아? 몰래 나가지.” 정운이 그렇게 말했지만 슬기도 세레나도 안심하지는 않았다. ‘정운씨야 믿죠. 하지만 그 나탈리아라는 여자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고요.’ ‘마스터···. 평소에는 냉철하고 신중하던 분이 이렇게 개인사에 관여될 때는 허술하신 겁니까?’ 둘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슬기가 정운에게 말했다. “그럼 알았어요. 가도 좋아요.” “정말? 너희들이 정 안된다고 하면 안 갈려고 했는데····.” “그래요··. 하지만 가도 좋아요. 우리는 정운씨를 믿어요. 그렇죠 세레나.” “·······예·····예. 뭐····.” 세레나는 여기서 못 믿는다고 차마 말만 할 수 없었을 뿐. 전혀 안 믿는 얼굴이었다. 슬기는 그런 세레나에게 정운이 볼 수 없는 각도로 한쪽 눈을 살짝 감아서 윙크하며 말했다. “어쨌든 중요한 정보임에는 사실이잖아요? 도조 마사토가 74층 보스몹으로 나온다니···. 이 정보는 서둘러 공개 하는게 좋겠네요.” “그렇지? 아마 보스몹이 된 이상 유저일 때 보다는 훨씬 더 강해졌을 거야.” “예. 뭐···. 우리는 이미 74층을 클리어 한 상태이니 별 상관은 없겠네요.” 슬기의 말에 세레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마스터에게 원한을 가지고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맡겼을 텐데 마스터는 이미 지나간 후···.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 뭐라고 하죠? 닭··· 쪼던 지붕. 개··· 쳐다 본다?” “닭 쫒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 에요. 지붕에 어떻게 봐요?” “······아직 한국 속담이 익숙하지 않더라고요.” ============================ 작품 후기 ============================ 요번 에피소드 나간 다음에 슬슬 본 스토리 진행에 또 들어갈 겁니다. 완급 조절을 하기가 많이 어렵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이 작가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64화 슬기와 세레나가 시덥잖은 잡담을 하는 것을 보고 정운은 완전히 안심했다. ‘역시···. 두 사람은 날 믿어주는 구나. 그러니 이렇게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슴이 뿌듯해 졌다. 그러나····. 남자가··, 그것도 이미 한 번 바람핀 전력이 있는 남자가 명백하게 사심이 있을게 뻔 한 여자와 호텔 레스토랑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데 의심을 안 한다? 꿈도 크셔라. 그런 여자 없다. 있다면 천사거나···. 아니 이 경우는 세레나가 천사지만 천사라도 무리다. 그냥 없는 것으로 하자. 약속 날짜가 되었다. 정운은 한국 서버의 스카이 타운에서 나탈리아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오래 기다리셨죠?” 나탈리아는 스카이 타운에 있는 포탈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색 실크 드레스에 베이지 색의 숄을 거치고 나타났다. 보통 키가 큰 여성들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을때는 아름답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너무 큰 키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경우가 있다. 나탈리아 역시 낮은 힐을 신고 정운과 거의 비슷한 키를 자랑하고 있으니 결코 낮은 키는 아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다 그런 신장도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승화 되었다. 여자든 남자든 옷과 화장으로 꾸밈으로 인해서 인상은 얼마든지 변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타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등을 곧게 펴는 것. 그게 최우선 사항이었다. “그럼 갈까?” 정운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자 나탈리아는 은근슬쩍 정운의 옆으로 다가와서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설마하니, 저 보고 그냥 뒤에 시종처럼 따라가는 것은 아니겠죠? 여자의 프라이드가 와장창 깨진답니다.” “아니··. 그··· 뭐, 좋아.” 정운은 생각해 보니 슬기나 세레나 이외의 여인과 팔짱 끼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볼륨이 아니라 생소한 불륨이 느껴져서 순간 살짝 당황했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탈리아를 에스코트해서 호텔로 데리고 갔다. 지금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무력한 일반 여성. 정운은 그것 때문에 상당한 방심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그게 레벨 120의 유저로서 오는 것 보다 더한 메리트일 수도 있었다. 정운을 자연스럽게 방심 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정운은 나탈리아를 데리고 스카이 타운의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뭐, 금방 먹고 가지 뭐···.’ 정운은 사실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오래 있어봤자 이상한 오해만 받기 마련이고 말이다. 자리에 앉은 나탈리아는 정운을 보면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와···. 제법 좋은 레스토랑이네요?” “그런가?” “예. 거기다 창가의 전망이라니? 고마워요. 신경 많이 써 주셨는데요?” “그런가···? 뭐,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고···.”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식전주와 함께 요리의 에피타이저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순간 정운과 나탈리아를 지켜보고 있는 세 쌍의 눈이 있었다. “호오···. 저것도 선수인 걸?” “정말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데요?” “말하는 법, 앉은 자세, 웃는 타이밍 등등. 모든 걸 봐서 알 수 있어. 저 여자 역시 나와 같은 어장의 혼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고.” “·····그거 믿어도 되는 겁니까?” “세레나. 너하고 슬기가 나를 믿었잖아? 자매는 항상 자매의 말을 믿을 것. 이게 시스도(sis道)의 기본이라고.” “·············.” “·············.” “최근 중겸이 오라버니가 빠진 브로도의 여성 버전 같은 거야. 내가 만들었지.” “·············.”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곧 그라운드 제로에 걸쳐서 유행 할거니까. 그때 가서 끼워 달라고 울고 불어도 안 끼워준다?”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슬기와 세레나였다. “어쨌든··. 저 여자는 선수야. 이건 내가 보장할게.” 말을 재빨리 돌리는 이 여자의 이름은 예상하고 있겠지만 이보영이었다. 정운이 나탈리아와 저녁 식사를 하러 간다고 하는 말을 듣고 슬기와 세레나가 도움을 청한 것은 한국 서버에서 연애에 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즉, 만렙 어장관리녀인 이보영 밖에 없었다. 그녀는 둘의 말을 듣고 흔쾌히 따라와 줬다. “그 놈은 너희 둘이 있는데도 만족을 못한다디? 확 짤라 버려.” “언니!!!” “이보영씨!!!” 둘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보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뭐 어때? 잘라서 반으로 나누면 너희들 이제 싸울 일도 없을 것을····.” 정운이 들었다면 모골이 송연해질 한 마디였다. 어쨌든 그런 그녀는 나탈리아를 관찰하고 30초 만에 자신과 같은 계열의 여자라는 것을 느꼈다. “흠···. 남자가 자기를 위해서 준비한 레스토랑, 식사, 그리고 전망까지···.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칭찬하면서 리액션도 매번 달라. 이건 1급품이군···.” “1급 품?” “아아···. 1급품 꽃뱀이라는 거야. 참고로 그 위에 특급품과 아나콘다급이 있지.” “·····그거 누가 정하는 겁니까?” “물론 내가.” 이보영의 말에 세레나는 순간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보영은 자신의 할 말을 계속해 갔다. “남자든 여자든···. 유혹하고 싶은 이성이 있으면 가장 든든한 무기가 뭔지 알아?” “으음···. 외모···일까요? 일단 첫인상으로···.” “마음입니다.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슬기와 세레나의 말을 들으면서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래서 아마추어는·····.” 울컥!! 슬기와 세레나가 상당히 울컥했지만 이보영은 말을 이었다. “이성을 유혹할 때 가장 큰 무기. 그건 칭찬이야.” “칭찬····?” “그래. 외모의 경우··. 뭐 강력한 무기이기는 하지. 하지만 아무리 외모가 좋아도 사람마다 타입이라는게 있잖아? 100% 통한다고 볼 수 없어. 하지만 칭찬은 다르지. 세상에 칭찬 받고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칭찬이야 말로 최고의 무기지. 상대가 고른 레스토랑. 상대가 골라준 메뉴. 그날 입고 온 옷. 그날 고른 데이트 코스 등등···. 끊임없이 나 즐거워요. 라고 내숭 떨면서 칭찬하는 것이 최고의 무기란 말이야. 다 통하지. 확 넘어온다니까.” “·············.” “·············.” 뭔가 반박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새삼 그러기도 애매한 슬기와 세레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보영은 다시 정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흐음···. 정운이 녀석 상당히 무방비군. 저래서는 안 되는데···.” “위험한가요?” “위험한가요?” 아무리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해도 지금 와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보영 뿐이었다. 슬기와 세레나가 동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이보영은 어디서 꺼냈는지 셜록 홈즈 모자를 쓰고 피지도 않는 파이프 담배를 물면서 말했다. “그래···. 정운이 녀석 표정 봐서는 별로 바람피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건 일단 좋은 거지.” “그렇죠.” “다행이네요.” “하지만!!!!” 이보영은 안도하는 슬기와 세레나를 향해서 말을 탁 끊으면서 말했다. “안심하기는 아직 일러. 바람필 생각은 없지만 지금의 정운이는 굶주린 암 호랑이의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콜콜 안심하고 자고 있는 커다란 소와 같아. 먹히기 일보 직전이라고···.” “그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까?” 이미 이보영의 말에 완전히 말린 슬기와 세레나였다. 나중에 현실 세계에서 아이들 엄마한테 학습지 세일즈 같은 것 하면 굉장히 잘 할 것 같은 이보영이었다. 이보영은 정운의 자세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말했다. “저기 봐. 얼굴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나타나 있어. 하지만 그래도 상대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고 있지. 저러면 안 돼.” “아아····.” “그렇군요.” 슬기와 세레나는 마치 좋은 것을 배웠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 아까 중간에 저 여자가 와인이 아니라 좀 더 독한 브렌디로 술을 바꿨지. 그리고 아주 절묘한 타이밍과 적절한 화술로 인해서 이미 정운은 다섯 잔 째의 브렌디를 비웠어. 하지만 저 여자는 사실 중간에 실수로 잔을 두 번이나 깨고 그 외에도 한 번의 버림으로 인해서 두 잔밖에 마시지 않았지.” “···········.” “···········.” 슬기와 세레나는 그걸 다 보고 있었냐? 라는 듯한 시선을 하고 이보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똑똑한 걸? 그라운드 제로의 최상급 유저인 정운에게 독 같은 것은 사실 통하지 않지. 그러니 차라리 술로 절여 버리겠다. 라는 방식이라····.” 이보영은 감탄하면서 정운과 나탈리아를 보고 있었다. 그런 이보영과 달리 세레나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하려는 거야?” “가서 말리려는 겁니다. 마스터는 데리고 오고 저 여자는·····. 한 대 때려주죠.” 세레나의 말에 이보영은 머리에 손을 얹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하아···. 세레나, 세레나···. 어째서 그렇게 단순한 거니. 일단 진정해.” “이게 진정할 일입니까?” “시스도 일장 삼절, 자매는 항상 자매의 말을 믿어야 한다. 날 믿어.” “···········.” 세레나는 여전히 납득 못 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자리에 앉았다. 그런 세레나를 보면서 이보영이 진정 시키면서 말했다. “지금 네가 가서 저 여자 머리 끄댕이를 잡아 당겨 봤자 그건 역 효과야.” “전 결코 그런 추태를 부리지는 않을 겁니다. ····주먹으로 패지.” “·········.” 명색이 성인의 칭호까지 받았고 현재는 천사이기도 한데···. 역시 사랑으로 인해서 발생한 질투에는 답이 없는 모양이다. “으음····.” “괜찮으세요?” “예. 뭐·····. 괜찮네요.” 정운은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괜찮은 시기는 한참 전에 끝났다. 원래 술에 취한 사람은 자신이 취했다고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태인 것이다. “아무래도 힘든 것 같네요. 제가 부축하죠.” 나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을 부축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계산을 하고는 호텔 점원에게 넌지시 팁을 주면서 말했다. “제 애인이 많이 취했네요. 쉬고 갈 방 하나 준비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원래 레스토랑 코너의 점원이 숙박 업무까지 보는 일은 없지만···. 두둑한 팁은 모든걸 다 가능하게 하는 전능함이 있었다. ‘좋아. 됐어.’ 나탈리아는 술에 취해서 자기 어깨에 기대서 골아 떨어진 정운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자 체면은 좀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타입에게는 이게 잘 먹힐 거야.’ 나탈리아는 평소라면 쓰지 않을 강경수단을 동원했다. 처음에는 정운에게 추파를 던져서 유혹하려고 했었던 나탈리아였다. 하지만 이내 약간의 대화를 나눠보니 그게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알기로 남자라는 생물은 힘이 생기고 위치가 생기면 아주 자연스럽게 여자에게 눈이 돌아가는 법이었다. 어느 국가 어느 민중이건 대부분 비슷했다. 그리고 정운이 실질적으로 두 명의 연인을 두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세 번째를 노리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고 순종적이고 도움이 되는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면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큰 오산이었다. 연인이 두 명인 것 치고는 박정운이라는 남자는 여자에 관해서는 별로 무분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연인이 둘 이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었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인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공략해야 할 상대의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65화 물론 좌절은 아니었다. 나탈리아는 남자를 꼬시는 일에 있어서는 좌절이라는 단어를 취급하지 않는 불굴의 여인이었다. 어떻게든 얘기를 꼬고 꼬아서 식사 자리로 끌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업. 화술로 방심하게 하고 술을 연거푸 마시게 하면서 정운을 취하게 했다. 그 작업은 놀랄 만큼 쉬었다. ‘이상하다··. 이 남자 이 위치에 있으면서 여자들에게서 작업을 전혀 못 받았나? 왜 이렇게 쉽지?’ 나탈리아가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정운을 취하게 하는 것은 쉬웠다. 물론 정운의 경우 여러 여자들의 대시와 유혹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다. 슬기를 만나기 전에 정운은 나름 이름을 날리던 솔로 플레이어였고 그런 정운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접근하던 불여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여자로서의 자신을 무기로 삼아서 생존하는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슬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정운에게 그런 여자들의 유혹은 아무도 통하지 않았다. 원래 문시영의 유혹으로 인해서 입은 대미지가 컸던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이 여자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뭔가 작업을 해 보려고 해도 이빨이 들어가야 작업을 할 것 아닌가? 정운이 아애 여자들이 접근만 해도 노골적으로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정운이었기에 오히려 여자들이 뭔가 유혹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정운은 다르다. 그런 정운의 얼음을 슬기가 녹이고 세레나까지 가세하면서 이제는 여자에 대한 날카로운 가시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한 마디로 작업하기에는 최적의 상태가 된 것이다. 다만, 월드 서버쯤에 오고 나니 그래도 남자 하나 잡아서 어떻게 편해져 보려는 그런 여자는 없었기에 정운이 여자의 유혹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다이앤 여왕 정도? 하지만 그녀 역시 나탈리아처럼 고도의 유혹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간의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략적 연인 관계를 제시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이제는 시들시들해져서 모든게 없었던 것으로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운에게 있어서 나탈리아의 이런 작업은 내성이 없는 것이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상대는 아무 힘도 없는 포로에 타국 서버에 온 유저일 뿐이니 방심해 버린 것 인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평소 정도의 경계심만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정운은 방심했고···. 이제는 그 대가로 정조(?)의 위기에 처했다. “으쌰···. 생각보다 무거운데···.” 나탈리아는 정운을 침대에 내려다 놨다. 그리고는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면서 말했다. “후훗···. 천국을 체험하게 해 줄게요.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나탈리아는 확실하게 정운과 관계를 가질 생각이었다. 이렇게 절제심이 강한 남자는 오히려 책임감도 비례해서 강하다. 일단 관계만 가지면 그 나름의 책임감을 가질 것이다. 물론 본처(?)들에게 시끄러울 정도로 연관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되었다가는 남들 구수설에 정운의 입장도 곤란해지기만 할 것이고···. 그건 나탈리아 본인에게 있어서도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녀가 노리는 자리는 첩. 아니 그냥 엔조이 정도의 상태였다. 정운에게 자신의 몸을 제공하고 자신은 정운에게서 한영 동맹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제공 받는다. 완벽한 성접대식 거래였지만 그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기브 앤 테이크는 똑같지 뭐···.’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이제 와서 여성으로서의 소중함이나 그런걸 따질 생각은 없었다. 알렉세이 찌모페이. 그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200살이 훨씬 넘은 늙은이였다. 현실 세계의 나이도 있었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먹은 나이도 있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이 지긋한 남자도 몸이 젊으니 항상 여자를 탐했다. 그런 남자에게 거의 노리개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하면서도 자기 챙길 것은 다 챙겼던 여자가 바로 이 나탈리아라는 여자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몸뚱아리를 아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샤워를 다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 된밥이니 숟가락만 얹으면 그만인 상황이다. 그러나····. “얘기 좀 할까요?” “···········이런.” 나탈리아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곤란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침대에는 정운이 누워 있는게 아니라 슬기와 세레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다 된밥에 코 빠트린 시추에이션일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렇게 무거운 녀석을 업고 가야 하는 거지?” “으으·····.” 이보영은 술에 취해서 완전히 기절한 정운을 등에 업고 스카이 타운을 경이적인 신체 능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빌딩의 옥상에서 옥상으로 마치 스파이더 맨처럼 말이다. 다만 스파이더 맨 과의 차이점이라면····. 휙!! “야야····.” “왜? “나 지금 미니스커트 입고 검은색 팬티를 입은 여자가 남자 하나를 등에 업고 저 멀리 이동한 것을 봤어.” “······미친놈, 그냥 UFO를 봤다고 해라.” 그날 스카이 타운 여기저기서 NPC들의 사이에 비슷한 얘기가 맴돌았다. 검정팬티의 미니스커트 우먼이라고 말이다. 다음날 아침. “으음···. 어?” 잠을 깬 정운은 자신의 몸이 이상한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이상한 곳은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천장은 다름 아닌 자신의 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어째서 자신이 자기 방에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어제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왕창 마셨던 기억이 나기는 하지만 그 후로는 필림이 끊어진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설마 무슨 실수한 것은 아니겠··. 음?” 정운은 문득 몸을 일으키다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자신의 양 옆에 두 명의 여자들이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냥 여자는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명의 여자들이었다. 문제는····. “나 어제 뭘 한 거야?”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잠에서 깬 슬기와 세레나는 정운에게 대강의 사정을 설명했다. 물론 거짓말로 말이다. 그녀들의 스토리에 의하면 정운은 어제 과음을 했고 그 결과 나탈리아가 슬기와 세레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래서 두 여자는 정운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이렇게 셋이서 사이좋게 누워서 잤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많이 마셨나? ·····머리야. 슬기야 힐링 걸어줘.” “예. 알았어요.” 슬기는 평소보다 훨씬 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정운에게 다가와서 힐링을 걸어줬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세레나가 꿀과 생강으로 끓인 차를 한 잔 가지고 왔다. “이것도 좀 드세요. 아침 바로 차려 드릴게요.” 그리고 그녀들은 오랜만에 자신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서 아침을 차리기 시작했다. “···········.” ‘무슨 일이지?’ 오늘따라 유난히 친절하고 서로간에 사이도 좋은 두 사람을 보고 정운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을 몇 시간만 뒤로 돌려보자. 정운을 빼돌린 후에 슬기와 세레나는 나탈리아를 가볍게 조짐···. 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적당한 해결을 봤다. 나탈리아는 슬기와 세레나에게 솔직하게 정운을 노렸다고 말했고 사과했다. 슬기와 세레나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이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은 이보영은 그녀의 그런 태도를 듣고 시스도의 규칙으로 지정하겠다고 할 정도로 크게 감탄했다고 하지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고··. 중요한 것은 나탈리아는 정운을 두고 다시는 수작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슬기와 세레나는 나탈리아에게 정운의 비호 대신에 자신들이 어느 정도 뒤를 봐주겠다고 했다. 사실 정운 만큼은 아니지만 슬기도 세레나도 한영 동맹에서 확고한 지위가 있었다. 한영동맹의 수뇌라고 할 수 있는 박정운의 연인들, 그리고 그녀들 자신의 실력도 이제는 절대 무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들이 자시의 뒤를 봐준다고 하니 나탈리아도 크게 감사하면서 돌아갔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죽다 살아난 심정이었다. 자신이 슬기나 세레나의 입장이었다면 자신을 살려 두지 않았을 거라고까지 생각하고 마음 한 구석으로 각오까지 하고 있었던 나탈리아였다. 하지만 죽음은 고사하고 앞으로도 한영동맹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하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나탈리아를 정리하고···. 그녀들은 이제 정운에게로 향했다. 이미 이보영을 통해서 집으로 보낸 후이기는 하지만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바람 필 생각은 없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그녀들의 입장에서 변명이 되지는 않았다. 생각이 없으면 뭐 하나? 이미 사고는 일어날 뻔 했는데 말이다. 그녀들이 감시의 눈길을 늦췄다가는 틀림없이 뭔가 사고가 났을 것이다. 슬기도 세레나도 잔뜩 화가 났다. 정운의 부주의한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 이상은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녀들은 정운과 동시에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동시에 열이 받았고 바가지 더블 임팩트를 시전 할 생각이 만만했다. 집에 들어온 두 사람은 침시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골아 떨어져 있는 정운을 보고는 기세등등하게 다가갔다. “정운씨, 일어나요. 우리 얘기 좀 해요.” “마스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기세가 퍼런 둘이 정운을 불렀지만 정운은 완전히 골아 떨어져서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순간 신경질이 난 슬기는 정운을 흔들며 말했다. “일어나요. 빨리!!! 정말····.” 하지만 그때····. “으음···. 슬기야. 세레나····. 사랑해. 둘 다··· 떠나면 안 돼.” 잠꼬대인지 술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 “··········.” 정운의 입에서 둘을 향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고 거기에 떠나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까지 한방을 떨어졌다. 우습게도 그 한마디에 기세 등등했던 두 여인네의 살기가 눈 녹듯이 사르륵 녹아 버렸다. 자면서도 저렇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말한다면 그만큼 정운이 자신들을 향한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뭐···. 정운씨의 실수는 이번처럼 우리가 챙겨주면 되지.’ ‘마스터께서 마음만 안 변하신다면····.’ 그렇게 해서 슬기와 세레나는 정운에 대한 분노가 녹았고···. 처음으로 그녀들 둘이서 정운과 한 침대에서 누워서 밤을 보냈다. 살을 섞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침대에서 세 사람이 동시에 누워서 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불행이도 정운은 그걸 모르고 그냥 골아 떨어져 있었지만 말이다. “75층도 슬슬 공략해야겠어.” 정운이 갑자기 꺼낸 이 한마디에 한중겸은 눈을 살짝 치켜뜨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최근에 사국 연합이 74층으로 올라온 것 아시죠?” “그래, 그건 들었다.” “예. 사실 그게 어떤 의미로는 형님 때문이더라고요.” “뭐? 내가 왜?”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 한중겸에게 정운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형님이 달기의 힘을 상당수 가지고 있는 왕귀인을 소환수로 만들었잖아요?” “그게 왜···? 아아····.” 한중겸은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래 왕귀인과 호희미를 앞세운 전투 패턴도 강력하기는 했지만···. 그 후에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가려고 하면 달기가 어떻게 하는지 아시잖아요?” ============================ 작품 후기 ============================ 이제 다시 본 스토리로 들어갑니다. 사이드 스토리는 이제 당분간 없고 다시 탑 공략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66화 <바토리 에르제베트 공략> 정운이 갑자기 달기의 전투 패턴에 관해서 말하자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지. 잘 알지. 그야말로 한끗 차이로 내가 스틸했으니 말이야.”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왕귀인을 귀속 시키던 순간을 기억해 냈다. 그때 달기는 왕귀인과 호희미를 동시에 흡수해서 자신의 힘으로 만들려고 했다. 어쩌면 애당초 왕귀인과 호희미는 달기의 힘의 일부를 화신으로 만든 존재일수도 있다. 그런 힘의 일부가 없는 상태이니···. 달기의 힘 그 자체가 아마도 예전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중겸이 납득한 것 같자 정운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74층의 새로운 보스몹은 도조 마사토, 그 머저리잖아요?” “그렇지.” “그 놈 설명 자체에 나한테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날 엿 먹이기 위해서 그냥 사국연합을 통과 시킬 수도 있습니다.” “에이···. 설마 그럴까?” “모르죠. 물론 파우스트에게 보스몹으로서의 역할을 강제 받았다거나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찌 될지는 그때 되 봐야 아는 거죠.” “그건 그렇지····.” 중얼 거리는 한중겸을 보고 정운이 말했다. “전 가능하면 지금의 형태를 깨트리고 싶지 않습니다. 타국가 팀과의 경쟁 없이 온전히 한영동맹의 힘만으로 그라운드 제로의 위로 향해가는 지금의 형태 말이죠.”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중겸도 정운의 생각에 동의했다. 월드 서버가 이제까지 부진했던 이유는 서로 서버가 다른 팀원들이 항상 견제하고 발목 잡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정운이 한영동맹을 월드 서버의 단독 톱으로 끌어올린 이후로 그런 걱정거리 없이 느긋이 공략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예전과 같은 수라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형님이 제 생각에 동의하신다니 다행입니다. 팀원들에게는 형님이 말씀해 주십시오. 다이앤 여왕에게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정운아.” “예?” “장 받아라.” “··········이런? 외통이네.” 이상 어느 화창한 날씨에 오토 돌리면서 장기 두고 있던 정운과 한중겸의 대화 내용이었다. ······남들 열심히 사냥하고 있는데 말이지. 75층 레이드의 결정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영국에서도 다른 월드 서버의 팀들이 자신들을 따라잡기 전에 한 층 위로 진출해서 멀찍이 따돌리고 싶은 것은 동감이었다. “사국연합이 결성된 이후로 안 그래도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예. 그래서 75층 보스몹에 관해서 정찰도 하고 왔죠.” “아, 그러십니까?” 정운은 다이앤 여왕이 미리 정찰을 하고 왔다는 말이 반색을 표했다. 안 그래도 영국이 동의하는 그 순간 정운 역시 저번에 질 드레를 정찰했던 것처럼 이번 층의 보스몹이 누군지 정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이앤 여왕이 수고를 했다니 귀찮은 일을 덜은 샘이었다. “75층의 보스몹은···. 여기 ME의 정보를 넘겨 드리겠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정운은 다이앤 여왕이 건내주는 ME의 정보를 받아서 확인했다. 거기에는······. 바토리 에르제베트 LV. 180~185 [헝가리 귀족 출신이며, 최악의 연쇄 살인마. 특히 대상으로는 여자를 좋아하며 아름다운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거나 그 피를 마시는 기행을 저질렀다.] “·····바토리. 이름만 들어봤지만····.” 이름은 들어봤다. 하지만 아시아권인 정운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냥 옛날옛날 유럽에 미친년이 하나가 있었다. 그 정도? “우리 유럽에서는 최악의 살인마 중에 하나로 꼽히는 여자죠. 전 영국인이지만··. 사실 잭 더 리퍼보다는 바토리가 더 끔찍합니다.” 다이앤 여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뭐, 일단 정보는 알겠습니다. 이건 아무리 그래도 힘으로 돌파 할 수밖에 없겠네요.” “알겠습니다. 유저들을 모으죠. 포로들은···. 어떻게 할 까요?” “흐음······.”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깊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서 말했다. “일부 믿을 수 있는 포로들은 참가 시키도록 하죠. 단 어디까지나 화살 받이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 시키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영동맹의 75층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한영동맹과 일부 포로들까지 포함한 일행은 보스몹의 지역에 도착했다. “상당히 고풍스런 고성이군요.” “예. 아마도 그녀가 살고 있던 체이테 성을 구현한 것이겠죠.” 바토리가 온갖 끔찍한 죄상을 저지른 장소가 바로 체이테 성이었다. 그 성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처녀들을 잡아서 그 피로 목욕을 하고 마셨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 여자였다. 현대에는 그녀가 질 드 레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남녀의 차이점은 있었지만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둘 다 막대한 권력이 있었고, 범죄에 그 권력을 이용했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로는 이성이 아니라 동성을 노렸다는 것 등등···.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바토리의 경우 정말로 권력이 엄청났다는 것이다. 그녀의 가문인 에르제베트는 실로 막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바토리로 인한 희생자가 귀족 평민을 가리지 않고 1,000명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를 사형 시키는 것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일족들이 타원서를 제출했고 바토리는 사형 대신에 종신금고형을 받았다. 대신에 분노한 민중들을 납득 시키기 위해서 바토리의 하수인들은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근처 마을에서 처녀들을 수집하던 야노시라는 작은 몹집의 사내, 그리고 바토리의 측근이고 공범이기도 했다는 일로너와 도르커라는 여자들이었다. 그렇게 졸들만 죽이고 정작 바토리는 종신금고형에 그쳤다고 하니····. 아무리 중세라고는 하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끝판 같은 형태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하고도 반성은 고사하고 원한을 가지고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팔다니····.” “반성? 그런걸 할 인간이면 애당초 그렇게 미친짓은 하지도 않았겠죠.” 일행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이전과 달리 정운과 슬기 세레나만 향하는게 아니었다. 모든 전력이 진형을 갖추고 신중하게 한걸음 한걸음씩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바토리의 눈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화려한···. 정말 정말 화려하다 못해서 천박하다는 느낌마저 드는 화려한 방의 안. 그 방의 안에 누군가가 거울을 통해서 한영동맹의 일행들을 보고 있었다. “왔군···. 드디어 내 손님들이 왔어.” 누군가는 거울 속에 있는 인물들을 보면서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으로 군림한지 수백 년···. 드디어 자신의 영역에 손님들이 온 것이다. 그녀는 이 사실이 기쁘다 못해서 온 몸을 흐르고 전율이 흐를 정도였다. 특히 그녀는 거울 속에서 몇몇 인물을 확대하면서 한층 더 기뻐했다. 그 대상은···. 세레나, 슬기, 다이앤 여왕, 이보영, 이지영, 나탈리아, 이민지 등등···. 한 마디로 아름다운 여자들이었다. “후후후···. 후훗···. 어서 오렴. 어서 와서 내게 그 피와 살을 바치렴····. 그럼 난 더욱더 아름다워 지겠지····.”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광기의 인물. 이게 바로 바토리 에르제베트.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인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희대의 광년이었다. “아얏···.” “따가워라····.” “응? 방금 뭔가 따가운 느낌이 들지 않았나요?” “그렇죠? 저도 갑자기···.” 한영 동맹에서 갑자기 몇몇 여자들이 뒷목이나 손등에서 따가움을 느꼈다. 그건 마치 피부속으로 뭔가가 기어들어간 것 같은 기분 나쁜 감촉이었다. 특이하게도 남자들은 아무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오로지 여자들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것도 이상했다. 정운은 일행을 향해서 말했다. “무슨 스테이터스에 문제는 없어? 독에 중독이 되었다거나? 아니면 저주가 걸렸다거나?” 정운의 말에 여자들은 잠시 확인을 하고는 말했다. “난 멀쩡해.” “저도요.” “나도 멀쩡.” 여자들이 아무 이상 없다고 했지만 정운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한꺼번에 모든 여자들이 동시에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아무래도 좀·····.’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해도 함부로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악마의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다. “대호 형님.” “왜 불러?” “아무래도 찝찝합니다. 형님이 여성 유저들을 모두 데리고 밖으로 나가 주시겠습니까?” “······그래. 그러는게 좋겠다.” 정운이 여성 유저 후퇴를 결정하자 배대호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 역시 방금전에 여성들의 말을 그냥 흘려듣지는 않았다. 다만··. 그 말을 듣고 있는 여자들은 정운의 결정에 동의를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우리보고 빠지라고요!?” “이거 남녀 차별 아니야!!!?” 여자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정운의 태도는 단호했다. “바토리의 생전 행적을 보면 여자에게 특화된 어떤 스킬이 있을지 몰라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여자들은 이번 레이드에서 빠지는게 좋겠습니다.” 정운의 말을 들은 여자들은 나탈리아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하지만···.” “그건 그냥 예상이잖아?” “맞아. 아직 어떤 이변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너무 과민하는 것 아니야?” 여자들의 반응에 정운은 굳은 얼굴로 딱 잘라서 말했다. “이런 리더로서의 명령!! 민지 누님이나 다이앤 여왕님이라고 해도 제 말이 따라 주십시오.” “···········.” “···········.” “···········.” 정운이 너무나 단호하게 말하자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한걸음 물러났다. 정운이 저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올 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만, 그녀들도 최후의 자존심이 있었다. “호위는 필요 없어요. 설마 그냥 영역 밖으로 나가서 대기하는 것도 제대로 못할까 봐요?” “그건···. 아니 알았어. 다만 방심하지 말고 조심해서 가.” “알았어요. 무슨일 생기면 방범 벨이라도 울릴게요.” “아니면 경찰에 시고하든가···.” “잘 해 보세요.” 여자들은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월드 서버까지 진출할 정도로 힘을 쌓은 여자들은 그 자존심이 각별했다. 초보 시절에 남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양보하던 여자들도 상위권 유저가 되면 이제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우선시하기 마련이었다. 자고로 남자는 체면에 살고 여자는 자존심에 산다고 했던가? 뭐··. 그게 그거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자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남자에게 잘못을 지적당하거나 얕보이는 것은 몹시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자기 주변에 항상 보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런 경향이 강하다. 전부라고는 말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경향을 약간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말로 싸우면 남자가 여자를 이기기 힘든 법이고 말이다. 어쨌든···. 여자들이 물러가고 남은 남자들은 성의 안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성의 내부는 좀 음침한 분위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청 화려한 장식들이 빼곡했다. 넓게 깔려있는 페르시아 양탄자. 섬세한 세공이 되어 있는 장식들···. 빛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천장에 달려있는 샹들리에는 수정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엄청···. 호화롭기는 한데 어쩐지···.” “센스는 후지네요.” “그렇지?” ============================ 작품 후기 ============================ 사실 바토리에 관해서는 저도 자세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가면서 파악해 봤는데.... 그냥 미친년이라고 밖에는 캐릭터를 잡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그냥 만렙의 광년으로 만들까 합니다. 다음층 보스몹은 조금 카리스마 있는 캐릭을 넣는게 좋겠죠? 누가 좋을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67화 한영동맹의 유저들이 바토리의 성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느낀 감정은 천박할 정도의 화려함이었다.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해야 할까? 이건 그냥 그저 비싼 장식품을 성내에 덕지덕지 처바른 느낌일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성의 인테리어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성의 주인인 보스몹이었다. “위로 올라갑시다. 신중하게···.” 정운은 일행을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보스몹의 필드에는 보통 부하몹 들이 따라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바토리의 경우 부하몹을 전혀 데리고 있지 않은걸까? 아무런 부하몹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 다름 아닌 75층의 보스몹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강함을 지니고 있을 거야.’ 정운은 절대로 긴장의 끊은 놓지 않았다. 사실 부하몹이 없는게 더 까다로울 수도 있었다. 원래 보스몹의 힘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나눠 받은 것이 바로 부하몹이었다. 그래서 부하몹의 경우 숫자가 많으면 하나하나의 강력함이 없었고···. 대신에 부하몹의 숫자가 적으면 그 부하몹이 어지간한 준 보스몹 급의 강력함을 자랑했다. 달기가 데리고 있던 호희미와 왕귀인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하몹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보스몹으로서의 모든 힘이 보스몹 자신에게 집중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그게 더 공략 난이도가 노피도 했다. 결국···.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행은 최상층에 있는 보스의 방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한영동맹의 유저들이 보스방에 들어가자···. “환영한다. 도전자들이여. 내가 바토리 에르제베트다.”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만···. 들린 것은 목소리일 뿐. 바토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환영한다고 하면 얼굴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상에 이름을 남긴 미친년의 얼굴이 어떤건지 궁금한데 말이야?” 정운은 일부러 상대를 도발했다. 그러자····. “호호호호····. 여전히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군. 그대들은 내가 죽고 나서도 수백 년 후의 시대에서 왔는데도 날 이해 못하는가?” “널 이해하는 시대가 오면 세계 멸망의 망조가 든거지.” 백번 옳은 말이었다. 정운의 말에 바토리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 좋다. 항상 시대는 아름다운 것을 질투하는 어리석은 인간들로 가득한 법이지. 난 여기서 그대들과 말을 하는 것은 그만 두겠느니라? 이제 그만 죽도록 하라.” 바토리가 그렇게 말한 순간 성벽의 사방에서 일행의 적들이 나타났다. “부하몹····. 이런, 빌어먹을····.” “호호···. 내 접대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제기랄···.” 정운은 레이드를 하면서 이제까지 그 어떤 순간보다 지금이 가장 최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먼저 돌려보낸 여성 유저들이었기 때문이다. 슬기, 세레나, 이민지, 다이앤 여왕 등등··. 다수의 유저들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들의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멍해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닌 것이다. “세뇌··. 도대체 어떻게···.” “아마도 정운이 네가 걱정한 바토리의 고유 스킬이겠지. 여성에게만 통하는 어떤 것이 있는지 몰라.” “빌어먹을···. 그런 예감 안 맞아도 되는데···. 전원 준비해!! 절대로 죽이면 안 돼!!!” 정운은 평소와 달리 일행에게 과격한 반말로 지시를 내렸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초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운이 그렇게 지시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다이앤 여왕이 초고속으로 정운을 향해서 돌격해 왔다. 콰쾅!!!! 그 일격을 시작으로 한영동맹의 남녀간의 유저 전쟁이 벌어지기 되었다. 정운이 당초에 애상한 것은 맞았다. 바토리의 가장 강력한 스킬. 그것은 레벨의 고하에 상관없이 여성들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는 스킬이었다. 원래 바토리는 자신의 타깃을 만들기 위해서 여자들을 위한 귀족학교를 만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자신의 광기의 희생물로 만들었다. 그런 행적을 스킬로 만든 것이 바로 바토리의 스킬인 피의 세뇌였다. 여성들의 몸에 아주 작은 벌레를 심어서 그 벌레들이 여성들의 피를 가지고 온다. 그럼 그 피를 바토리가 자신의 체내에 심는 것으로 인해서 그 여자들을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강력하고 일단 걸리면 천사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세레나 조차도 거부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약점은 있었다. 생전의 행적을 스킬화 시킨 스킬이기에 이 스킬의 대상자는 오로지 여자이어야 했다. 정운의 예상은 맞았던 것이다. 바토리는 여자에게 특화된 강력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정운의 실수라면 두 가지. 그런 짐작을 좀 더 빨리해서 아애 영역 내부에 여성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는 것. 그리고 후퇴 시킬 때 여자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배대호를 붙여서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약간의 안이함과 실수가 부른 대가는 쓰고 썼다. “젠장!! 세레나!! 정신 차려!!!” “············.” 콰앙!!! 정운이 애타게 불렀지만 세레나는 묵묵하고 냉정한 얼굴을 하고 그 검을 휘둘렀다. 정운은 어떻게든 막고는 있었지만 차마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의 세레나는 이성을 잃고 오로지 공격 일변도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평소의 방어적인 검술이 아니라 자기 몸을 도외시하는 이판사판식의 공격이었다. 반격할 빈틈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빈틈이 보인다고 해도 세레나를 공격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운이 세레나를 검으로 막고 있는 동안···. 콰앙!! “커억···.” 정운은 옆구리에 무릎으로 인한 정타를 맞았다. 초고속으로 돌격한 다이앤 여왕이 정운에게 정타를 날린 것이다. 이 정도로 완벽한 정타를 맞은 것은 정운도 오랜만이었다. 세레나와 다이앤 여왕. 여성 유저들 중에서도 강력한 근접 전투의 달인들을 상대하면서 정운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슬기가 캐스팅 한다!! 못 하게 말려!!!” “나한테 맡겨라!!!” 여성 유저들 중에 평균적인 화력이 가장 강한 것은 슬기였다. 그런 슬기가 마법을 캐스팅 하려고 하자 재빨리 앞으로 나가서 막은 것은 배대호였다. “속 썩이는 제자로군···.” 배대호는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슬기의 캐스팅을 무효화 시켰다. “스킬 캔슬, 이건 아직 가르쳐 준 적 없지?” 배대호는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냥 스킬을 쓰는게 아니라 그 스킬을 자신이 해석해서 재구축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배대호였다. 그리고···. 재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은 일단 그 스킬을 무효화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보는 스킬의 경우는 로직을 몰라서 무리이지만 슬기의 스킬은 상당히 익숙한 배대호였다. 그녀의 마법을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켜준 것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배대호는 이제 슬기는 완전히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화력이 가장 강한 메이지 하나를 묶었으니 그것만 해도 충분히 상황은 유리하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돕자. 라고 생각했했다. 하지만 그건 슬기를 너무 얕본 생각이었다. “목생화(木生火)!!! 목기를 두르고 불이여 타올라라!!!!” 슬기 역시 최고위급의 메이지. 최근에는 배대호가 미처 모르는 공격들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는 화려한 화염들을 보면서 배대호는 혀를 찼다. “쯧···. 어쩔 수 없나!!! 본격적으로 받아주는 수밖에···. 사이킥 미사일!!” “극염초래(極炎招來)!!!” 콰아앙!!! 배대호와 슬기의 마법들이 정면으로 격돌하면서 커더란 폭발음을 냈다. 사실 아직 슬기는 배대호의 영역에는 한참 모자란다. 하지만 동료 겸 제자인 슬기를 제대로 공격 할 수 없는 배대호에 비해서···. “염炎!! 바람을 품고 춤을 춰라. 선풍염(?風炎).” 슬기는 정신력의 한계에 한계를 넘어서까지 격렬한 공격을 다하고 있었다. 거대한 불의 회오리가 슬기의 전신을 휘감는 것을 보고 배대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러면 금방 제압하지는 못하겠는데?’ 배대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일취월장한 제자의 실력이 이 순간만큼은 참 곤란했다. 이런 식으로···. 여자들과의 전투는 상당히 남자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했다. 죽일 듯이 공격하는 여자들에 비해서 남자들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운도 방어 일변도로 상대하면서는 세레나와 다이앤 여왕을 묶어두는 것도 간당간당할 정도였다. 가장 압권은 한중겸과 윤정철 둘이 달라붙어서 상대하고 있는 이민지였다. 여성 유저들 중에서 아마 가장 강한 사람이 바로 그녀일 것이다. 사대 정령왕을 모두 불러서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는데 한중겸이 모든 전력을 다해서 상대 하고는 있었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원래라면 정령사든 소환술사든 그 본인을 공격하는게 가장 직빵이기는 한데···. 한중겸은 절대로 이민지를 공격 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해서 이민지는 한중겸을 마음대로 공격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빌어먹을···. 이대로는 위험해. 일단 후퇴···. 제길 그것도 안 되나?” 한중겸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면서 곤란해 했다. 보통 레이드 중에 곤란함을 느끼면 후퇴하고 다시 정비해서 온다. 하지만···. 이번 경우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여성 유저들은 바토리의 부하몹이 동시에 부하로 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후퇴를 하겠는가? 바토리가 여성 유저들을 애지중지 하면서 자기 부하로 데리고 있을까? 어림없는 얘기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고 마시던 희대의 광년이다. 그런 여자에게 여성 유저들을 버리고 가는 것은 다시 말해서 여성 유저들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길···. 이거 완전 진퇴양난이잖아.” 일행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모두 각오를 다져라.” 고전하는 동료들을 보고 드디어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만밀밀(滿滿密密).” 촤아아아아아악!!!! 순간 실내에 하얀 비가 내렸다. 아니 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처럼 쏟아지는 가늘고 예리한 와이어였다. 만만밀밀(滿滿密密) LV.MAX (일정 공간 안에 빼곡하게 무한의 영사로 인한 찌르기 공격을 내리게 한다. 공격 범위는 500미터에 달한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무한의 영사의 주인이고 실질적으로 한영동맹의 최강자. 박추성이었다. “꺄아악!!!” “아악!!!” 박추성의 공격에 여성 유저들 대부분이 막대한 대미지를 입었다. 특히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나탈리아와 이지영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넓다고는 해도 피할 곳도 거의 없는 실내에서 빽빽하게 내리는 예리한 와이어의 빗줄기를 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 했다. 거기에 여성 유저들은 한 방에 무력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추성이 형님!!!” 정운은 순간 박추성의 공격에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그런 정운을 보고 박추성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면서 말했다. “마음을 비워라. 때로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 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서 또 손을 들었다. 과연 그라운드 제로 모든 유저들 중에서도 최강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고 해야 할까? 비록 방어 일변도이기는 했지만 한영동맹의 모든 남자들이 애먹고 있던 상대를 단번에 정리해 버렸다. “그만두지 못해요!!!!?” ============================ 작품 후기 ============================ 자기는 솔로라고 막나가는 박추성입니다. 정운이 빡칠만도 하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68화 정운은 박추성에게 한걸음에 달려가서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놔라.” “놓겠냐? 이 망할 자식아!!!!!” “··············.” 정운도 상당히 흥분했다. 방금 공격에는 슬기와 세레나도 적지 않은 대미지를 입었다. 한 번더 공격을 받으면 그건 두 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정운은 처음으로 박추성의 앞에서 제대로 이빨을 세웠다. 그런 정운을 보고 박추성은 담담한 시선을 하고 말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냐?” “············.” “없지. 나도 생각해 봤지만 없었다. 그렇다면, 모두가 죽는 것과 일부가 죽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모를 리가 없을 거다. 그렇지 않냐?” “알아. 안다고. 형님 말이 맞아. 하지만·····.” 정운은 박추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강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안 돼. 절대!!!!” 정운의 말은 억지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논리적인 결과만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박추성의 말이 맞았다. 대를 위해서 소를 버려야 한다. 그래. 맞는 말이기는 하다. 서글프기는 하지만 둘 다 손에 꼭 쥐고 있다가 모든걸 잃어 버리느니 적어도 한쪽이라도 살려야 하는게 올바른 선택이다. 박추성의 말대로 정운도 머릿속으로는 그게 옳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그 상황이 되었을 때 냉정하게 그걸 실행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버려야 하는 이가 자신이 목숨보다 더 싸랑하는 여자인데 말이다. “절대 안 됩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구해야 되요. 제발···. 좀 어떻게 좀 해야 한다고요!!” 정운은 논리도 없고 하는 말도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하고 싶은 심정은 너무나 찐하고 정확하게 박추성에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제가 형님 말에 거역한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정운이 편입니다.” 한중겸이 정운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형님. 아직 포기하기 이릅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놀랍게도 한국 유저들 중에 가장 논리적이고 냉철하다고 생각되고 있던 윤정철도 박추성을 말리고 나섰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시선을 한쪽에 쓰러져서 검을 지팡이 삼아서 다시 일어나고 있는 다이앤 여왕을 보고 있었다. 몇 십년··, 아니 거의 백년 가까이 함께 한 동생들이 이렇게 말리고 나서자 박추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 나도···. 하지만 그 방법이 뭐냐?” “그건···. 음!!?” “저게 방법 같군.” 일행은 순간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박추성의 공격에 의해서 막대한 대미지를 입은 여성 유저들이 어디론가 흡수되고 있었다. 그것은 방의 한쪽에 걸려있는 거대한 거울 속이었다. 순간 그 거울로 빨려 들어간 이지영과 나탈리아는 2초쯤 후에 멀쩡한 상태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한영동맹의 남자 유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저건···?” “아무래도 그렇겠지?” 정운과 한중겸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고른 세월이 얼마인데 지금 상황에서 버벅 거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보스몹. 세뇌당한 동료. 그리고 거울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는 완전히 치료된 동료들까지··. 이 정도 정보가 있다면 거의 해답지나 마찬가지였다. 바토리는 저 거울의 안쪽에 있다. 그리고 이런 스킬의 경우 시전자 본인에게 대미지를 주면 그 모든 게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뇌천신공!!!!!!!” 파파파파파팟!!!!! 정운은 전력으로 뇌천신공을 운용했다. 온몸에 황금빛 뇌전을 두른 정운의 모습은 이제까지 그 어떤 경우보다 화려한 뇌전을 방전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한중겸 역시···. “가루라!! 저 거울을 꿰뚫어라!!” 거대한 신조인 가루라를 소환했고 그 가루라는 거울을 향해서 초음속으로 돌격했다. 동시에 정운 역시 한줄기 뇌전이 되어서 가루라와 함께 돌격했다. 파아아아앙!!!! 음속을 돌파하는 소닉붐이 터지면서 사람들의 고막이 아플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그보다 한 박자 늦게 굉음이 터졌다. “멀티플 실드!!!” 배대호는 자신의 보호막을 여기저기에 복합적으로 걸어서 동료들을 보호했다. 쓰려져 있는 여성 유저들 까지 함께 말이다. ‘최근에 개발한 스킬인데 유용하게 쓰여서 다행이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행을 보호했다. 어마어마한 섬광과 굉음이 터져나간 직후···. 바토리의 고성은 박살이 났다. 하지만 정작 바토리의 저 거울은 멀쩡했다. “호··· 호호호···. 안됐군. 실망한 표정이야.” “······망할.” “·············.” 바토리의 조소를 들으면서 한중겸과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둘의 합공을 받고도 저 거울은 금하나 가지 않고 멀쩡했다. 아니 그보다···. 저게 바토리의 일부이기라도 하면 방금 전의 공격에 부서지지는 않아도 최소한 내구도가 닳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했다. 하지만 저 거울은 아주 멀쩡했다. 즉, 이 상황에서 짐작하면 저 거울은 파괴 불가 속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호호호호호호····. 어리석은 존재들이구나··. 사내들을 항상 그렇지.” 울컥!! 바토리의 비웃음은 남자들 전원을 어쩐지 울컥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토리는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나는 애당초 그대들처럼 야만 스럽게 싸우는 취미는 없느니라. 그러니 파우스트 님에게 애당초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무기를 받았지. 그게 바로 이 영원의 거울이었다. 이 거울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나의 요새이며, 그대들의 연인은 나의 충직한 병사이자····. 맛있는 먹이이기도 하지.” 순간 바토리의 마지막 말에 상당수의 남자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켰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열을 내면서 폭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더 냉정해 져야 했다. 패배는 항상 이성을 잃고 날뛰는 자에게 돌아가는 법. 진짜로 이기기 위해서는 무조건 냉정함을 유지해야 했다. 그게 그라운드 제로에서 승리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방법은 있을 거야. 무적은 없어. 이 그라운드 제로가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상 뭔가 방법은 있어. 반드시···.’ 정운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포기는 없다. 이미 이런 위기 상황은 수도 없이 겪었던 정운이었다. 고작해야 75층이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절대로 없었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상황을 최대한 살폈다. ‘저 거울은 파괴 할 수 없다. 하지만··. 바토리가 저 안에 있는 이상은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어. 어떻게든 끌어내야 하는데····.’ 그때 정운은 저 거울의 안으로 다이앤 여왕이 끌려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좀 전에 자신이 돌격했을 때는 뭔가 강력한 반발력을 느끼면서 튕겨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 다이앤 여왕이나 좀 전에 이지영 나탈리아 등이 끌려 들어갔을 때에는 아무런 위화감도 없었다. ‘가설을 하나 세워 보자····.’ 정운은 한참 부활한 이민지와 싸우고 있는 한중겸에게 다가갔다. 가는 길에 세레나가 정운의 발목을 잠깐 잡았지만 정운은 그런 세레나를 뿌리치며 명주호에게 그녀를 맡겼다. “주호 형님. 부탁 드립니다.” “음····. 맡겨라.” 명주호는 양손에 검과 도를 동시에 들고 세레나를 굳건히 가로 막았다. 정운을 제외하면 순수한 무술 실력은 한국 팀에서도 명주호가 톱이다. 그라면 세레나를 충분히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운은 그대로 한중겸에게 가서 이민지를 한바탕 밀어내고는 말했다. “형님. 저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뭐? 무슨 생각?” “그러니까 ··········할 수 있겠어요?” 정운의 설명을 들은 한중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 확률은 거의 반 이하···. 하지만 그만하면 시도 해볼 가치는 있다!!’ 한중겸은 결심을 굳혔다. “나와라 왕귀인. 저 거울을 공격해!!!” 한중겸은 이제까지 소환하지 않고 있던 왕귀인을 소환했다. 그리고 왕귀인이 소환되어 비파현을 튕기자 강력한 음파가 거울을 덮쳤다. 띠링!! ····콰쾅!!! 왕귀인의 음파 공격을 거울에 아무런 대미지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바토리가 왕귀인을 보면서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호오···. 그런 아기도 있었나? 나에게 바쳐라!!” 아름다운 처녀를 향한 무한한 욕망. 그게 이 바토리라는 희대의 요녀의 집념이었다. 거울에서 왕귀인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왕귀인은···. 놀랍게도 순순히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바토리는 일단 거울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왕귀인을 충분히 세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바토리의 큰 착각이었다. 아마도 바토리로서는 이게 최초로 도전자들을 받아들이는 싸움이기에 범한 실수일수도 있다. 상대가 바보도 아니고 일부러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연출 할 리가 없다. 바토리가 경험이 좀 더 많았다면 왕귀인이 굳이 나온 시점에서 상대의 의도를 의심해 봐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것이 정운의 술책에 걸려드는 지름길이 된 것이다. “자···. 이리 오렴. 너 역시 나의 것이 되어야지?” 거울 안으로 들어온 왕귀인에게 바토리가 음험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왕귀인은····. “달기 언니가 정상처럼 느껴지다니····.” 그렇게 한숨을 쉬면서 그녀는 비파현을 튕겼다. 띠링···. 퍼퍼퍼펑!!!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지면서 바토리는 저 멀리 튕겨져 버렸다 “꺄악····. 크윽···. 어떻게···. 넌 어떻게 내 세뇌에 걸리지 않는 거냐!!!?” “·····난 이미 임자 있거든.” 왕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정운의 예상대로였다. 왕귀인은 여자이기는 하지만 이미 소환수로서 한중겸에게 귀속된 존재. 그렇다면 세뇌가 이중으로 거리지 않는 이상은 바토리의 세뇌에 벗어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반쯤은 도박이었지만···. 그 도박은 적중했다. 그리고 일단 적중한 이상 바토리쪽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었다. “내 임무는···. 이 기분나쁜 공간을 날려 버리는 거다. 그럼 해볼까?” 디링!! 디리리링!!! 왕귀인의 손이 평소보다 더 어지럽게 피바편을 누볐다. 그리고는···.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수십발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연쇄적으로 터졌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바토리가 목이 텨저라 외쳤다. “안 돼에에에에에!!!!!!!”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외부에서 철썩 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바토리의 거울도 내부에서의 공격에는 약했다. 거울이 깨지면서 온몸을 칭칭 로브로 감은 바토리와 함께 왕귀인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거울이 깨짐과 도잇에 여성들의 세뇌도 풀려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이제야 내 뜻대로 몸이 움직이네····.” “저 망할년이····.” 여자들은 한군데로 시선을 모아서 바토리를 바라봤다. 세뇌된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녀들의 정신은 멀쩡한 상태였다. 성질이 가장 불같은 이보영이 단번에 달려가서 바토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확 젖힌 순간····. “웃···.” 그리고 바토리의 얼굴이 드러난 순간 오히려 이보영이 질려 버렸다. 피의 여백작이라고 불리는 바토리의 기행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자신의 지병인 간질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이었다. 두 가지 다 말도 안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토리 자신은 그걸 굳게 믿고 있었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달기 VS 바토리. 누가누가 더 광년도가 높을까요? 제 작품에서는 일단 바토리로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누가 더 미쳤을지는 영원이 미제로 남겠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69화 <정세의 변화.> 그런데···. 보통 자기 미모를 지키기 위해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 그 범죄자 본인도 상당한 수준의 미모가 있어야 얘기가 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정석에서 왕창 벗어나 버렸다. 유저들에게 드러난 바토리의 얼굴은 지독할 정도로 추했던 것이다. 매부리코에 비부는 버석버석 갈라졌고 눈은 툭 튀어 나왔고, 입가는 기형적으로 찢어졌다. 보는 순간 혐오감이 강하게 들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추했다. 이보영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을 정도니 말 다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바토리는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자 얼굴이 붉어지면서 소리쳤다. “이···. 보지 마!! 보지 말라고!!!!!!” 바토리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는 것을 보고 한영동맹의 유저들은 기가 찬다는 얼굴을 했다. “마음과 얼굴이 저렇게 일치하기도 힘든데 말이야.” “뭐라 할 말이 없네····.” “저런 얼굴로 자기 아름다움을 위해서 수많은 여자들을 죽였다고?” “아니 저런 얼굴이기에 겠죠.” 유저들이 하는 말을 듣고 바토리는 있는대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웃기지마!! 날 보고 수근 거리지 말라고!!! 이게 다 저런 여자들 때문이야. 뭐야? 왜 너희들만 그렇게 행복하다는 듯이 남자들한테 선망의 시선을 받냐고!!? 난 남편도 전쟁터에서 죽었는데!!!?” “나라도 와이프가 저런 얼굴에 저런 성격이면 차라리 전쟁터로 가고 싶을 거야.” “극히 공감이야.” “미 투····.” 유저들이 말에 바토리는 이제 흉악한 얼굴을 한층 더 격하게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정운의 의문 하나는 풀렸다. 왜 바토리는 그렇게 미친 짓을 했을까? 집안도 빵빵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사실 공주나 다름없는 집안으로 태어난 인간이 말이다. 그녀의 기행의 원인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였던 것이다. 자신의 미모를 위해서···. 뭐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평균 이상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 여자들을 전부 죽여 버리면 자기 미모의 평균치도 올라갈 테니 말이다. 그녀의 일을 돕던 두 시녀가 추녀였던 것도 이런 이유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했다. “네놈들····. 네놈들이 감히···.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다. 절대로···.” 바토리는 몸을 부를 떨면서 일행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바토리를 보고 유저들은 방어 자세를 갖췄다. 너무나 임팩트가 강한 얼굴 때문에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상대는 75층의 보스몹이었다. 그에 어울리는 강함이 있을게 틀림 없었다. “제길, 이미 충분히 골치 아픈 능력이 있었는데····.” 영국 유저중에 누군가의 중얼거림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미 상당히 지쳐있는 유저들은 잔뜩 긴장했다. 박추성과 배대호는 이번에는 자신들이 본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게 아닌가? 라고 살짝 고민할 정도였다. 그러나····. “·············.” “·············.” “·············.”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바토리는 그저 부들부들 떨면서 유저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정운은 그런 바토리를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이상하다. 뭘 하려는 거지? 그 정도의 아이템을 다루던···. 음!!?” 순간 정운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가설이 있었다. ‘어쩌면······.’ 정운은 자신의 생각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윤정철에게 말했다. “형님. 간단하게 한 방 부탁 드립니다.” “음···.” 윤정철은 그저 활시위를 당겨서 그대로 바토리의 다리를 겨냥해서 쐈다. 그리고···. 파악!! “아악!!! 아파··. 아·· 아파아아······.” 바토리는 자기 다리에 화살이 한 대 맞고 나자 그게 아프다고 뒹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머리위로는 대미지가 상당했음을 증명하는 옐로우 크리스탈이 떠 있었다. “응?” “저거···. 뭐 하는 거지?” “함정인가?” “아니 하지만 옐로우 크리스탈이 떴는데···.” 어리둥절해 하는 한영동맹의 유저들을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아니···. 함정이 아닙니다. 저건 진짜로 대미지를 입은 거예요.” 정운은 일행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다리의 화살 한 대가 아프다고 뒹굴고 있는 바토리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바토리···. 저 여자 보스몹으로서의 능력을 거의 지니고 있지 않은거야.” “에엑!!?” “설마····.” 정운의 말에 다른 유저들은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는 듯이 정운을 바라봤다. 하지만 정운은 확신하고 있었다. 바토리가 지니고 있던 능력··. 미리 알았다면 모를까 자칫하면 전멸까지 갈 수 있었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최강이라고 해도 좋았다. 만약 박추성이나 배대호가 여자였다고 생각해 보라? 오늘 틀림없이 한영동맹은 전멸했을 것이다. 정운이나 간신히 살아남을까? 그 이외의 인간들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정운이 왕귀인을 적절하게 잘 활용해서 이겼지만 바토리의 능력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이 전의 층의 질 드 레와는 전투를 하지 않았지만 그 전에 있는 다른 월드 서버의 몹들과 비교한다고 해도 그 난이도가 너무 달랐다. 그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개인이 지녀야 할 보스몹으로서의 능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전투중에 스스로 전투에는 관심이 없어서 이런 능력을 파우스트에게 받았다는 말도 스스로 했었으니 말이야.’ 정운의 그런 예상은 정확했다. “으으으····. 이 놈들이···.” 바토리는 이를 갈면서 유저들을 노려봤지만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공략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능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다. 보스몹으로서의 바토리는 그냥 무능력한 보통 여자일 뿐이었다. 뭐···. 봤을 때 혐오스럽기까지 한 저 외모로 할 수 있는 심리 공격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쨌든 끝내지. 잘 가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화살을 당겼다. “산탄사.” 산탄사 LV.MAX (지름 10미터의 공간에 무수한 화살을 뿌린다.) 이런 상대라면 유니크 스킬도 아까웠다. “아아악!!!!” 바토리는 그대로 정운의 화살에 벌집이 되어서 절명했다. 그게 진짜 끝이었다. 월드 서버의 보스몹이라고 하기에는 본인 스스로는 허무할 정도로 약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행에게는 알림창이 울렸다. 띠리링! [75층 보스몹을 클리어 했습니다. 이제 76층으로 올라 갈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습니다.] “하아···. 됐다.” “중간에 많이 위험했어····.” “이겼으니 됐지 뭐····.” 한영동맹의 유저들은 모두 동시에 안도했다. 이번 레이드는 상당한 위기가 있었다. 특히 잘못하면 여성 유저들은 전멸의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남녀 유저들 대부분이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특히 여자들의 정신력 소모는 상당했다. “이제 진짜 좀 돌아가서 쉬자.” “그렇게 말이야.” 일행은 76층의 진출을 기뻐할 틈도 없이 이제 쉬기 위해서 자기 서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잠깐!! 우리하고 얘기 좀 하지 않겠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영동맹의 유저들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있었다. 한영 동맹의 레이드 직후에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인간들. 바로 사국연합의 유저들이었다. “장한··,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마침 우리도 지금 막 도조 마사토를 물리치고 75층에 진출한 시점이오.” “··········.” 장한을 바라보는 정운의 얼굴은 영 반갑지 않았다. ‘마침? 지금 막? 그럴 리가 있냐? 도조 마사토 새끼 결국 내 뒤통수를 제대로 때리고 싶었나 보군.’ 정운은 겉으로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푹 쉬고 있었다. 정운뿐만 아니라 한영동맹의 모든 유저들이 정운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연이라는 말을 실제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영동맹이 바토리의 공략을 막 마치고 지쳐있는 지금에 와서 나타난 사국연합.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적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한영동맹이 레이드를 한다는 것을 알고 바로 74층을 클리어하고 올라와서 지금 나타난 것이 뻔했다. 74층의 레이드는 아마도 도조 마사토와 사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ME의 소개에 노골적으로 정운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도조 마사토. 놈은 정운은 곤란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늘 사국연합을 통과 시킨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사국연합이 한영동맹의 앞에 나타난 이유는····. ‘협박이다. 이건가? 골치 좀 아프게 됐군.’ 정운은 주변을 흘깃 둘러봤다. 보아하니 사국연합의 유저들이 총집합 한 것 같았다. 이건 여차하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정운은 자신의 편을 살짝 바라봤다. 오랜만에 격렬한 전투였고 사실 제대로 된 전투가 불가능한 사람도 몇 명인가 있었다. 그리고 숫적으로도 상대가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 생각은 전혀 들지가 않는군.’ 한영동맹의 대부분의 유저가 다 드러누워 있다고 해도 딱 세 명만 멀쩡하면 사국연합을 충분히 상대 할 수 있다. 박추성, 배대호, 박정운. 이렇게 세 명만 멀쩡하면 충분했다. 다만, 저쪽의 사국연합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덤빈다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결국 쓸데없는 마찰일 뿐이지. 아군도 많이 지쳤는데 어지간하면 좋게 좋게 해결하도록 하자.’ 정운은 지극히 짧은 시간동안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장한을 보고 말했다. “대화를 원한다고요? 좋아요. 합시다.” 정운의 말에 장한은 얼굴에 미소를 떠 올렸다. 아마도 놈은 정운이 드디어 한발자국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확 들이 받아 버릴까 보다.’ 그리고 정운의 입장에서는 그런 장한의 미소가 상당히 재수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단 회담의 테이블은 마련되었다. “우선 74층으로 진출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해 내셨군요.” 정운의 축하의 말은 사국연합의 수뇌들의 귀에 비꼬는 걸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런 정운의 말을 받아주는 것은 독특한 정신세계에 있는 프랑스 대표 장 그레고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지금 정운의 말을 넉살좋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이미 이 만남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쯧, 아름답지 않은 방식이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못마땅해 했지만 한 팀을 이끌고 있는 이상 팀원 전원이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즉, 이 흐름에서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큼···. 우리야 말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75층을 클리어 하셨으니 76층으로 올라가겠군요.” “그래야죠. 여러분들도 금방 올라오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정운은 시침 뚝 때고 너희들이 알아서 올라올 수 있지? 라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장한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예전에 72층 돌파에는 우리를 이용해 먹고 냉큼 나른 놈들이·····.’ 하지만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장한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하하···. 그래야죠.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쉬운 방법이라····. 글쎄요? 전 달리 떠오르는 방법이 없는데요?” 정운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시침을 뚝 땠다. 사국연합이 원하는 것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몹시 싫고 귀찮았다. 그래서 절대로 정운의 입에서 먼저 그 말이 나오려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은 장한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원하는 것은 뻔했지만 암시만 할 뿐이지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자고로 실제로 아쉬운게 누구든 간에 협상의 테이블에서 먼저 본론을 꺼내는 쪽이 더 아쉬운 취급 당하는 법이다. 장한이 몇 번이고 정운에게 계속해서 눈치를 줬지만 정운은 그럴 때 마다 의뭉스럽게 그냥저냥 넘어가 버렸다. 그러자 결국은 미국의 블레인 허드슨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 작품 후기 ============================ 많은 분들이 예상하고 계셨더군요. 예. 도조 마사토가 찌질하게 나름 뒤통수를 친다고 적절한 타이밍에 사국연합을 하이패스로 통과 시켰습니다. 다만 그게 통할지 말지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270화 “간단하게 본론을 꺼내죠. 우리 사국연합은 월드 서버의 모든 국가가 힘을 합쳐서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했으면 합니다.” “··········그런가요?” ‘몹시 싫다.’ 정운은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엄청 싫다고 생각했다. 지금 한영동맹이 별 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은 정운의 연속적인 성공과 그런 정운에게 별 트러블 없이 숙이고 들어와 주는 다이앤 여왕의 양보 덕분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네 개의 국가가 더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배에 사공이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가 무려 여섯이 된다. 기전에 한영동맹을 이끌고 있던 한국,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드 서버 최강의 전력이라고 불렸던 미국. 자존심이라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중국. 뱃 속에 능구렁이가 열 마리는 넘게 든 것 같은 서독.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도 호구 노릇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국 역시 마찬가지다. 다이앤 여왕은 한국이 상대이니까 어느 정도 숙이고 들어왔던 것이다. 포로들과 새로운 신입들을 영입해서 조금씩 예전의 성세를 되찾아가고 있는 영국이 이제 와서 프랑스나 서독에 양보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중국 미국에도 굴러온 돌 취급 하면서 시비가 붙을 수 있었다. “으음···. 고민이군요. 여섯 개 국가의 연합이라···.” 고민하는 정운을 보고 중국의 장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마찰을 염려 하는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게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너희들 존재 자체가 트러블이다.’ 정운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흘깃 동료들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민주제라서···. 제 독단으로 결정하기는 어렵군요.” 이제까지 한영동맹의 대부분의 일을 정운이 독단으로 결정하고 동료들이 따라주는 형태였다. “제 경험상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장시간에 걸쳐서 회의를 해보지 않고는 답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장시간에 걸친 회의 같은 것은 한영동맹에 거의 없었다. 대부분 정운의 결정에 순한 양처럼 잘 따라 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한영동맹의 사정을 알 리가 없고, 또 설령 안다고 해도 지금 정운의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시간은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글쎄요···. 사실 기약은 잘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저희 쪽의 인원 한명을 전령으로 남기겠습니다. 익숙한 얼굴이 좋겠죠? 홍린.” “옛. 주군.” “앞으로 24시간 동안 떨어지지 않고 여기 한국의 박정운님의 곁에 붙어 있어라. 그리고 저 분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절대 복종하라. 설령 밤시중을 들라고 해도 기꺼이. 알겠나?” “옛. 주군.” “그럼. 믿고 좋은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장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홍린을 정운에게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떠나 버렸다. “어어····?” 정운은 대강 자신의 예상대로 돌아가던 회담의 테이블 마지막에 혹이 따라온 것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난 아무말도 안 했는데···. 저 인간 무진장 급하기는 급했구만.’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정운에게 홍린이 요염한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와서 말했다. “들으신 대로 앞으로 모시는 동안은 모든 명령에 절대 복종하겠습니다. 이전처럼 손님 취급은 필요 없으니 그저 하나의 도구로 여기고 좋으실 대로 무려 주십시오.” “········젠장.”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슬기와 세레나의 지긋한 시선이 느껴지는 정운이었다. 남들이 보면 섹시한 미녀가 철썩 달라붙어서 행운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정운의 입장에서는 그냥 혹일 뿐이었다. 복 터진 놈····. “하아····. 귀찮아. 차라리 받아 버릴걸.” 후회는 항상 늦다고 하던가? 정운은 전진기지로 돌아와서 의자에 몸을 눕히면서 중얼 거렸다. 홍린은 정말로 정운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오려고 했다. 마치 이번에도 한국팀이 다시 도망갈지 모르니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럴 생각이었던 정운이었기에 너무 강하게 뿌리치지도 했다. 결국 그녀에게 절대로 도망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거듭하고 나서야 약간이지만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들과의 동맹제의를 받아 들일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힘들죠.” 정운은 그렇게 딱 잘라서 말했다. 전력을 무작정 충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삐걱거리는 거대함선 보다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각배가 더 안전하게 멀리 가는 법이다. 기껏 틀이 잡혀있는 한영동맹인데 다른 이물질을 끼워 넣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사국연합과 전쟁을 하는 것도 내키지는 않았다. 월드 서버의 전력이 줄어 들어봤자 좋아 할 것은 파우스트 하나 뿐이고 또 그 푸닥거리를 하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 결국 다이앤 여왕과 정운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까 정운이 장한에게 말한 것처럼 정말로 대규모 회의를 열었다. 한영동맹의 모든 유저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정운은 문제의 장단점을 설명하면서 의견을 구했다. “······그렇게 해서··. 사국연합 놈들이 우리한테 빌 붙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정운이 말을 꺼내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말한 것은 주경택이었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아니야? 어차피 영국하고도 잘 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이라고 못 받아들일건 없잖아?” “··············.” “··············.” “··············.” 순간 주변의 한영 동맹 유저들이 주경택을 몹시도 생각없는 인간을 바라보듯이 봤다. “경택아. 영국하고 우리가 잘 해오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서로 필요성이 있었고, 또 그 후에도 쭉 실적을 남겨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그렇게 될 거라고는 장담 할 수 없어. 아니 오히려 안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서 이민지가 설명을 해주자 주경택은 머쓱한 표정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경택이 자리에 앉고 다이앤 여왕이 입을 열었다. “그들의 목적이 뭔지는 뻔합니다. 우리 한영동맹과 합류한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진짜 목적은 흡수겠죠.” “가당찮은 것들····.” “확 받아 버릴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오만한 놈들에게는 자기 주제를 알게 해줘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한국 유저들뿐만 아니라 영국 유저들 역시 대부분이 사국 연합에 적대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한국팀의 진정한 힘을 말이다. 만약 마음먹으면 사국연합을 힘으로 밀어내는 것은 충분할 것이다. 미국, 중국, 프랑스, 서독. 이 정도의 조합이라면 예전의 영국은 도저히 맞설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영국도 단독으로 프랑스나 서독을 충분히 상대 할 정도로 강해졌고 한국팀의 힘도 잘 알고 있다. 물러설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여론은 서서히 힘으로 사국연합을 배제하자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나?’ 정운은 만사를 힘으로 해결하자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았지만 여론이 그렇게 기운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난 힘으로 하는 것은 반대야.” 일행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를 표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이 한국팀의 실질적인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배대호의 의견이었다. “대호형님. 그럼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운이 물어보자 배대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내가 힘으로 하는 것을 반대라고 하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배대호의 말에 한중겸이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형님하고 추성이 형님. 그리고 정운이까지 가기만 해도 사국연합을 충분히 상대 가능 할 것 같은데요?” “나도 알아. 내 말은 사국연합을 상대로 했을 때가 아니다.” 배대호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이목을 모으고 말을 이었다. “우리 목표는 사국연합이 아니라 이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지. 그렇다면···. 클리어를 위한 전력을 모아야 타당하지. 안 그래?” “그건···. 그렇네요.”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번 바토리 전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처음으로 월드 서버에서 한 레이드 중에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특히 가장 무서운 것은 바토리가 결코 강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약을 떠나서 무서운 것은 바토리의 능력이었다. 그 능력은 약점을 알면 공략 방법이 있을지 몰라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치명적인 능력이었다. 그만큼 본신의 능력은 허무할 정도로 약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그런 적들이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배대호는 모두를 향해서 말했다. “이건 내 예상인데···. 아마 70층대까지는 나하고 추성이가 있는 이상 희생자 없이 클리어 할 수 있을 거야.” 배대호의 말에 대부분의 유저들인 동의했다. 그런 유저들에게 배대호읨 라이 이어졌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잖아? 그 위로 갔을 때 어떤 괴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 “···············.” “···············.” 배대호의 말에 모두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무거워 졌다. 연속으로 희생자 없이 레이드를 성공 시키고 있는 한영 동맹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은 그렇게 물렁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여기 있는 누군가는 시체가 되고 또 누군가는 그 시체를 밟고 넘어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전력은 확충 할 수 있을 때 하는게 좋아. 이건 절대적이다. 다들 월드 서버에 올라오고 나서 그 간단한 룰을 잊어버리고 있어.” 배대호의 말에 한국 서버의 유저들은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예전에 한국 서버에서 십왕들은 정운의 팀이 올라올 때 오히려 서포트 해주면서 끌어올려 주기도 했다. 전력을 확충해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그라운드 제로의 지옥 같은 난이도를 생각하면 설령 박추성이나 배대호라고 해도 단독으로 클리어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클리어 가능한 수준까지 전체적인 전력을 끌어 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배대호의 말대로 월드 서버에 올라오고 나서부터는 일본을 시작해서 다른 국가의 팀들과 마찰이 끊이지 않다보니 이렇게 패쇄적으로 변했던 것이다. “배대호님의 의견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순순히 동의하기 좀 어렵군요.” 배대호의 말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한국 서버의 유저들과 달리 다이앤 여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국 서버의 유저들 보다 더 오랫동안 월드 서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다른 국가의 팀들의 음모에 당해서 오랫동안 약소팀으로 간간히 생존하기도 했다. 배대호가 말하는 전력 증강을 위해서 타국가 서버의 팀들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래도 꺼려졌다. “중국팀과 미국팀은 욕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미국팀의 블레인 허드슨. 그 남자는 이 게임 클리어의 목적이 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소원은 어쩐지 자기 개인에 국한된 소원은 아니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개인의 바람으로 인한 소원이라면 모를까? 뭔가 거국적인 소원이 있다면 그런 자는 절대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해서는 안 된다. 이건 그라운드 제로의 월드 서버 모든 유저들의 암묵적인 불문율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71화 <새로운 판도> 왜 거국적인 소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소원을 이루면 안 되는 것일까? 그것은 세상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게임을 클리어한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크게 변해 버린다. 예를 들어서 도조 마사토 그 미친놈이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했다고 생각해 보라? 그 미친놈은 핵으로 세계를 도배한 다음에 빌보드 어워드에 일본 군가를 집어넣어 버리고도 남을 놈이었다. 한영 동맹이 서로 부딪히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도 이들의 소원이 모두 개인적인 사유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다이앤 여왕에게 질문했다. “개인에 국한된 소문이 아니면요? 뭔가 거국적으로 일을 벌이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도조 마사토 처럼?”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니 뭐라고 확답은 못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뭔가요?” 정운의 재촉에 잠시 말을 끊었던 다이앤 여왕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유난히 도조 마사토를 싫어했고 러시아나 중국과 손을 잡는 것도 꺼려 했습니다.” “으음···. 국민감정이 강하다. 라는 거군요.” 만렙 극우파인 도조 마사토를 싫어하는 거야 정상적인 인류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치고 넘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꺼림은 미국이 경계하고 있는 타국가에 대한 견제에서 우러나온 국민감정일 수도 있었다. 자기 말에 공감하는 정운을 보고 다이앤 여왕은 말을 마저 이었다. “그리고 우리 영국이 월드 서버에 진출하기 전의 얘기인데···.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월드 서버 초창기 시절에 실질적으로 타국가 팀들을 견제하는 분위기를 가장 먼저 조장한 것도 그라고 알고 있습니다.” “쯧···. 미국팀하고는 별로 부딪힌 적이 없어서 무시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폭탄이란 느낌이군요.” “그런거죠.” 정운이 순순히 자기 말에 동의하는 것 같자 다이앤 여왕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로서는 절대 미국과 손잡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오기 전에는 그 팀이 실질적으로 월드 서버의 톱이었다고 했죠?” “예.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 형태였죠.” “·····그 러시아는 우리한테 사라졌고, 사실상 중국은 미국에 머리를 살짝 숙이고 있는 상태라는 건데·····.” 정운은 상황을 파악하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지금 방법은 중책과 하책이 나왔다. 하책은 사국연합과 순순히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일단 쓸데없는 전투를 피할 수 있고 전력의 증강도 할 수 있다. 다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중국이나 미국과 트러블이 발생 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고확률로 맞을 수 잇는 예상이었다. 그리고 중책은 그냥 힘으로 사국연합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사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게 뒤탈은 없다. 다만····. 배대호의 말 대로 월드 서버의 전력을 줄여 버리는 것은 이 시점에서의 전력 증강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 서버나 영국 서버에서 신입들을 키워서 올리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다른 나라의 서버에서 역시 신입들이 올라 올 수도 있었지만 어떤 인간들이 올라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쯧, 고민 되네요·····.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정운은 두 눈을 감고 고심에 빠졌다. ‘전력 증강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은 역시 내키지 않네···. 어떻게 하지?’ 고민하고 있는 정운을 보고 그때까지 잠잠하게 있던 세레나가 말했다. “저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세레나? 무슨 생각인데?” “결국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계륵이라면···. 그 살만 발라 먹고 나머지는 버려 버리면 되는 거죠.” “응?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한중겸은 세레나의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다시 반문했다. 그런 한중겸에게 세레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간단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세레나는 자신의 생각을 모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게 생각하던 한영동맹의 유져들은 세레나의 생각이 계속되자 그 생각에 서서히 동의하기 시작했다. “그거····. 좋은데? 싸우지 않고도 전력 증강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사국연합 놈들이 더 이상 시비 걸지 못하게 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군요. 어떻습니까? 다이앤 여왕. 저 로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인 것 같은데 말이죠?” 정운은 다이앤 여왕을 바라보면서 동의를 구했다. 보통 한영동맹의 중대사는 정운이 결정하고 다이앤 여왕이 순순히 따르는 편이었다. “흐음·······.” 하지만 이번 일에 관해서 만큼은 다이앤 여왕도 생각을 좀 깊게 해봐야 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심에 빠졌다. ‘일단···. 세레나의 생각이 최선인건 사실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잘만 된다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득과 실을 따져보던 다이앤 여왕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 영국도 동의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움직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세레나. 이 건에 관해서는 당신이 직접 수고를 좀 해줘. 중국과 미국 쪽은 내가 감당할게.”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해서 한영동맹은 사국연합을 향해서 한가지 계책을 발동 시켰다. 작전명은···. 계란 노른자만 쏙 빼먹기. 작전이었다. 과연 그 작전의 목적은 뭘까? 며칠 후. 정운은 홍린을 불러서 사국연합과 자리를 마련했다. 이전과 달리 정운이 직접 초청을 했고 사국연합의 수뇌들 뿐만 아니라 그 연합의 유저들까지 모두 모였다. 정운과 다이앤 여왕은 그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회담을 시작했다. “우선 일전에 사국연합 여러분들이 제시하신 동맹의 건에 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운은 처음부터 주목적을 얘기했다. 딱히 질질 끌 이유도 없었다. 이미 사전에 포석은 다 던져 놨으니 말이다. “거절하겠습니다.” “··············.” “··············.” 정운의 단호한 말에 중국의 장한과 미국의 블레인 허드슨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는 어쩐지 흥미로운 얼굴로 정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장한이 정운에게 말했다. “거절이라···. 그건 우리하고 한 배를 타기는 싫다는 걸로 해석해도 되는 겁니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동맹은 거절하겠습니다.” “동맹은··· 이라? 그렇다면 뭔가 다른 대체 안이 있다는 말입니까?” “예. 우선 이전에 중국이 저의 레이드를 도와주신 적이 있죠?” “그랬죠. 무척 중요한 레이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장한은 일부러 생색을 냈다.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빚을 확실하게 받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유치한 발언도 필요했다. “그 빚은 지금 갚겠습니다. 75층의 보스몹인 바토리에 대한 정보를 드리죠.” 정운의 말에 장한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얼굴을 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고작 정보? 레이드에 같이 참가를 한다면 정보의 제공만으로 빚을 갚았다고 하기에는 무리 아닙니까?” 장한의 말에 정운은 속으로····. ‘되게 징징거리네. 어차피 너희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72층은 충분히 자력 돌파 가능했다. 조금 시간이 단축된 것 뿐이지.’ 라고 생각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정운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장한이 절대로 인정을 안 할거니까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운은 겉으로는 불쾌한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선선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72층의 보스몹과 75층의 보스몹은 그 격이 다릅니다.” “그거야····.” 말은 바른 말이었다. 고작 3층 차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월드 서버 최전선의 3층은 하위 서버에서 말하는 3층과는 격이 완전히 달랐다. 망설이는 장한을 보고 정운은 쇄기를 박듯이 말했다. “그리고 바토리에 대한 정보를 들어보면 아실 겁니다. 이번 층의 보스몹은 정보를 알고 있느냐? 없느냐? 에 따라서 공략의 난이도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한의 물음에 정운은 뜸을 잔뜩 들이면서 상대를 더욱더 안달나게 했다. “아직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만 뭡니까? 너무 답답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글쎄요···. 굳이 설명하지면, 이제까지 있었던 그 어떤 월드 서버의 몹들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단 정보만 알면 이제까지 그 어떤 보스몹 보다 더 쉽게 공략 할 수도 있다. 라고 밖에는 말 하지 못하겠군요.” “············.” “············.” “············.” 정운의 확신에 찬 말에 사국연합의 수뇌들은 입을 다물었다. ‘허세····는 아니지?’ ‘어차피 금방 들통 날 얘기를 진실로 하지는 않겠지. 그보다···. 정보가 뭘까?’ ‘이제까지 어떤 몹들보다 더 쉽게 공략 할 수 있다고 확연한 약점이라도 있는 건가?’ 이들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를 만큼 구른 인물들이었다. 상대가 하는 말이 허세인지 진짜인지 정도는 감으로 대략 때려 맞출 수 있었다. 정운의 태도를 봐도, 그리고 현재 정황을 봐도 정운이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도 75층을 공략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동맹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를 꺼낼 기회가 있을 거야.’ ‘가뜩이나 76층으로 도망가 버리면 곤란하기도 하고 말이야.’ 사국연합의 수뇌들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정운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동맹에 관해서는 거절 이라기보다는 보류로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보류라····. 예. 그렇게 하죠.” 정운은 순간 유보라는 말도 거절하려고 했지만 잠깐 생각해 보니 다음 계책을 위해서도 그게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오늘 회담은 여기까지 하죠. 바토리 공략에 대한 정보는 여기 서면으로 정리해 왔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국연합에 바토리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 여성 유저에 관해서 압도적··. 아니 거의 절대적인 능력을 지니고는 있지만 바토리 자신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했다. 어떻게든 거울 밖으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때는 한방에 해치울 수 있었다. 정운의 계책에 한 번 당해서 불가능 똑같은 해결책은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정보를 아는 이상 사국연합에서 어떻게든 공략할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76층에서 천천히 플레이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 거지.’ 사국연합에서 작전을 짜고 레이드를 실행하려면 아마도 열흘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사국연합은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당했다는 것을 말이다. 보름 후····. 신중에 신중을 더했던 것일까? 사국연합은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바토리의 공략에 성공했다. “그래···. 드디어 성공했다고? 어떻게 했는지 혹시 알아?” 정운은 사국연합을 관찰하고 있던 나탈리아에게 보고를 받으며 되물었다. 그러자 나탈리아가 대답했다. “예. 그게···. 좀 비인간 적인 방법을 썼던 모양입니다.” “비인간 적?” “예. 사국 연합의 레이드는 총 삼차에 걸쳐서 이뤄 졌습니다. 처음에 1차와 2차 레이드에는 여성 유저를 데리고 가지 않고 오로지 남자 유저만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흠···. 그랬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거울 속에 있는 바토리를 공략하기 어려웠을 텐데?” “예. 꼬박 하루가 넘게 공격을 해도 거울이 깨지지 않아서 포기 했다고 하더군요. 2차 레이드 때는 사국연합의 수뇌들이 동시에 전력을 퍼부어도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 작품 후기 ============================ 바토리의 경우 사실 마음만 좀 독하게 먹으면 공략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정보의 공개가 무척 중요한 법이죠. 최근 추천이 갑자기 줄어 들어서 슬픕니다.ㅠㅠ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272화 거울이 절대 깨어지지 않았다는 나탈리아의 설명을 들은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그 거울 파괴불가 속성이었어.” 정운은 바토리의 거울에 직접 돌격 공격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투덜거렸다. “그리고 3차 레이드에서 사국연합은 여성 유저를 한 명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한 명? 누구를 데리고 갔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홍린이나 미국의 에이미 리베라는 아니라고 합니다.” “에이미 리베라? 그건 누구야?” 홍린은 누구인지 알았지만 에이미 리베라는 누군지 잘 모르는 정운이었다 “미국의 여성 유저입니다. 그리고 월드 서버에서 가장 강한 여성 유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실질적인 미국의 NO.2로 그 실력은 블레인 허드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헤에···. 그래? 바토리한테 데리고 갔으면 골치 좀 아팠겠는데?” 정운도 바토리에게 세뇌된 다이앤 여왕이나 이민지 등이 얼마나 골치 아팠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정운이 빚을 제대로 갚아준 것이다. 그만큼 바토리의 정보는 효용성이 컸다. “아, 얘기가 좀 샜네. 그래서, 바토리는 어떻게 잡았다고?” “무명의 여성 유저를 데리고 가서 그녀가 대미지를 입자 바토리는 치유를 위해서 그 유저를 거울 안쪽으로 불렀다고 하더군요.” “흠, 그리고···?” “거기서 그 여성 유저를 자폭 시켰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미국에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런 처음부터 그런 방법으로 잡으려고 했는데 프랑스 대표가 강하게 반발했다는 소문입니다. 아름답지 못한 방식이라면서····.” 나탈리아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한숨을 푹 쉬었다. “강제 자폭스킬이라····. 하여튼 그 놈들 나하고는 안 맞는군····.” 정운은 씁쓸한 얼굴을 했다. 무명의 유저라는 것을 봐서는 아마도 미국의 서버에서 적당한 여자 한 명을 월드 서버로 올려서 그렇게 인간 폭탄으로 써먹은 모양이다. 전력도 잘 되지 않는 단 한명의 여자를 희생자로 내서 75층을 클리어 했다면···. 효율 면에서는 무척 좋은 편일지 모른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는 것 정도? 대미지를 주는 본인이 자폭해 버리는 상황이니 경험치를 먹은 본인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는 아무도 경험치도 보상도 손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보스몹 레이드의 가장 큰 목적이 다음 층으로 가는 돌파라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득이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손익만 계산했을 때는 말이다. 하지만 논리를 떠나서 평범한 시각으로 보면 사국연합의 전략은 인간적으로 봤을 때는 너무 비인도 적이었다. ‘악마의 게임이니 뭐니 해도····. 결국 가장 잔인한 것은 사람이지.’ 정운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수고했어. 그나저나 이런 정보는 어떻게 손에 넣는 거야?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정운의 말에 나탈리아는 살짝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미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인생에 여러 가지 유리함이 동반한다는 것이 랍니다” “·····아, 그래···.” 무슨 말인지 대강 알 것 같은 정운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고대 중국에서는 미인계라는 것을 써먹었고, 과거 세계 대전에서도 유명한 미인 스파이들이 활약했던 거겠지?’ 정운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쪽으로 이미지가 박힌 나탈리아였다. 나탈리아가 물러가고 정운은 다이앤 여왕에게 ME로 연락을 했다.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뻐꾸기가 둥지를 떠날 시간입니다.” “벌써요?” “예. 오히려 제 예상보다는 늦은 편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대로 움직이죠.” 혹시나 누가 엿듣고 있을 것을 생각해서 굳이 암호로 대화하는 정운과 다이앤 여왕이었다.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국연합의 뒤통수를 때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하하하····. 이제 드디어 따라 잡았다.” “이게 모두 주군의 공입니다.” “훗, 그렇지. 미국 놈들은 자기 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상 우리 중국이 한국팀에 빚을 만들어 눴기에 바토리를 효율적으로 공략 할 수 있었던 거겠지?” “물론입니다.” 중국의 장한은 75층을 돌파한 기념으로 부하들과 함께 거하게 취하고 있었다. 황제의 식사라고 하는 만한전석을 차려두고 양옆에는 아리따운 여자들을 끼고 있었다. 여자들은 유저들은 아니었다. 여성 NPC들을 돈으로 고용해서 이렇게 술을 따르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딱히 인권 존중이니 뭐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고··, 그냥 NPC들 중에 미인이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자, 마셔라!! 오늘은 즐기고 앞으로도 우리 중국팀을 위해서 노력하라!!”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장한과 부하들은 그렇게 한참 흥이 올라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로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한의 기분을 나락 끝까지 떨어트리는 소식이 들려왔다. “주군!! 주군 큰일입니다.” 허겁지겁 들어오는 사람은 미국과의 전령 역할을 하고 있는 홍린이었다. “홍린? 뭘 그렇게 허둥거리고 있는 거냐?” 홍린은 장한에게 전에 없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국연합에서 이탈자가 생겼습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지?” 순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장한이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홍린이 농담이었다고 웃으면서 말해줬으며 했다. 하지만 홍린은 다시 한 번 잔혹하게 현실을 말했다. “연합에서 이탈자가 생겼습니다.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가 이제 사국연합과 연을 끊겠다고 정식으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뭐? 뭐라고? 잠깐···. 우리하고 연을 끊는다면 설마·····?” 장한의 머릿속에서 최악의··. 정말정말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큰일입니다. 주군!! 주군!!” 그때 또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면서 중국의 조장중에 한명인 연문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장한의 속이 발칵 뒤집어질 소식을 전했다. “한영동맹이 프랑스를 받아 들여서 한,영,프 동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했다.” 술이 확 깨는 장한이었다. 사국연합이 75층을 올라오고 나서 한창 기세가 오른 그 타이밍에서 일어난 프랑스의 이탈.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얘기의 전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숨겨진 비화를 모두 알아야 한다. 사실 사국연합의 수뇌들은 모두 정운과 세레나가 합작으로 꾸며낸 계획에 놀아난 것이다. 세레나의 계획. 그것은 사국연합 중에서 가장 따로 놀고 있는 프랑스를 빼오자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가 그런 계획을 입안한 것에는 조국의 후예들과 적대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본다고 해도 프랑스를 빼오는 것은 나이스 아이디어였다. 사국연합 중에 하나를 빼와서 한영동맹에 더하면 사실 숫자만 해도 3대3이 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질은 한영동맹이 더 위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사국연합에서도 이제 알아서 숙일 수밖에 없다. 싸우는 것은 중책, 싸워서 이기는 것은 상책, 하지만 싸우지도 않고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은 최상책이었다. 정운도 다이앤 여왕도 그래서 세레나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빼오느냐? 사실 사국 연합에서 누군가를 빼온다면 사실 프랑스 밖에 없었다. 중국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아웃이었다. 그 트러블 메이커들만 빼올 바에는 차라리 통째로 사국연합과 연합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면 남는 건 서독과 프랑스인데···. 사실 서독은 이전에 동독과의 마찰 문제 때문에 정운에게 찍혀있었다. 증거는 없다. 하지만 심증은 뚜렷하게 그때 동독을 습격해서 영국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 서독이라고 정운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랬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건 정운도 아직 모른다. 뒤에서 김신수가 움직였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정운이니 당연했다. 뱃속에 능구렁이가 든 콘러드 크라우스. 머릿속이 4차원 꽃밭인 장 그레고리. 사실 정운의 입장에서는 안 좋은 것 VS 상당히 안 좋은 것. 중에 하나를 고르는 심정이었다. 장 그레고리 그 사람도 어쩐지 그다지 내키지 않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일본과의 전초전에서 한국팀을 편들어준 전적도 있고···. 머릿속이 꽃밭이고 사차원이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사리분별은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레나가 강력하게 원하기도 하니···. 결국 상당히 안 좋은 것 보다는 그냥 안 좋은 것인 프랑스를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정운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세레나는 프랑스의 전진기지로 가서 장 그레고리 공작과 만나게 됐다. 프랑스의 전진기지. 파리에 있는 베르사유의 궁전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곳이었다. 의외로 루브르 궁이 아니라 베르사유 궁을 모티브로 한 것은 아마도 장 그레고리 공작의 취향일 것이다. 거기서 세레나는 장 그레고리 공작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세레나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첫 인사를 건냈다. “하하···. 이거 우리 궁전의 꽃들이 질투로 고개를 숙일 정도로 아름다운 손님이 찾아오셨군요.” “················.” ‘느끼해····.’ 직계는 아니지만 같은 나라의 후손을 만났는데 처음으로 세레나에게 든 감상은 느끼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세레나가 살던 생전의 프랑스에는 이렇게 느끼한 남자는 별로 없었다. 생각해 보라. 자그마치 100년 전쟁이었다. 전쟁 중인 국가에서 나고 자란 남자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억세고 무뚝뚝하게 자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평민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귀족가의 자제라고 해도 전란으로 인해서 무력을 중요시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전신을 버터로 도배한 것 같은 느끼남은 그 시대에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정운에게 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저희 한영동맹을 대표해서 귀국에게 제안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흠···. 안으로 들어오시죠. 더 이상 밖에 계시다가는 꽃이 고개를 숙이다 못해서 시들어 버리겠습니다.” 말인 즉, 밖에서 할 얘기는 아니니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좀 덜 느끼하게 돌려 말할 수는 없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세레나였다. 어쨌든 세레나는 장 그레고리의 안내를 받으면서 기지의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응접실로 들어가는 길에 세레나는 차분하게 주변을 살펴봤다.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건물의 화려함이나 인테리어 따위가 아니었다. 어차피 그런 쪽으로는 관심도 없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군데군데 보이는 프랑스 유저들의 얼굴이었다. ‘····적어도 아주 싹이 노란 것은 아닌 것 같군.’ 세레나는 프랑스의 전진기지를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 이렇게 장 그레고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그건 바로 프랑스 유저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유저들이 장 그레고리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예의는 보였지만 두려움이나 극도의 어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세레나는 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적어도 장 그레고리라는 남자가 리더 노릇을 허투루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될테니 말이다. 이건 그녀가 생전에 알아낸 그녀만의 방식이다. 어느 군단을 평가하는 것에 있어서 그녀가 가장 깊숙하게 평가하는 것은 병사들의 표정이었다. 지휘관이나 기사들의 허풍 섞인 무용담이나 허풍 따위를 들어서는 그 군의 잠재력을 알 수 없다. 진짜 제대로 정돈된 군단이라는 것은 병사들의 얼굴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73화 살고자 하는 희망. 출세를 위한 야망. 국를 위한 충성심. 그 무엇이 이유가 되어도 좋으니 싸워서 살아남겠다는 근성이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데리고 있는 군단이 진짜 제대로 된 군단이었다. 병사들의 얼굴이 살아있는 군단이라면 지휘관도 아주 엉망은 아니다. 최소한 제 몫은 하거나 혹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세레나가 보기에 이 장 그레고리라는 남자는 평가하기가 영 어려웠다. 머릿속이 꽃동산 사차원인 사람을 뭘 가지고 평가하겠는가? 하지만 부하들의 얼굴을 보아하니 적어도 엉망진창으로 부하들을 부려먹는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뭐로 하시겠습니까? 커피? 홍차? 동양의 차도 있습니다.” 장 그레고리는 테이블로 세레나를 안내해서 직접 차를 준비하려고 했다. “그럼 커피로···.” “알겠습니다.” 능숙하게 커피를 끓여서 세레나에게 바치는 장 그레고리의 태도는 정중하기까지 했다. ‘···근본은 괜찮은 인물인가? 음!!’ 세레나는 한 모금 커피를 마셔보고 살짝 놀랐다. 그녀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들어온 후에 이용한 기호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커피였다. 처음에는 별로 맞지 않았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니 이제는 직접 배전부터 드립까지 다 하기에 이르렀다. 커피에 대한 안목도 제법 까다로워 졌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봐도 지금 이 커피는 전에 없을 정도로 훌륭한 명품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나쁘지 않군요.” 세레나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요.” 장 그레고리는 세레나의 반대편에 앉아서 웃는 얼굴로 세레나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 찾아온 용건은 뭡니까? 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사랑의 고백이라도 마음 먹었다면 대환영입니다만?” “···········.” 갑자기 커피 맛이 극도로 느끼하게 느껴지는 세레나였다. 어쨌든 이제 용건을 얘기해야 할 때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사국 동맹에서 이탈해 줬으면 합니다.” “·····좀 무리한 요구 같지 않습니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그쪽에 지켜야 할 의리라도 있는 건가요?” 세레나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름다운 분이 예리하기까지 하군요.” “···········.” 장 그레고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세레나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시류에 거스를 수 없으니 일단 올라탄 차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잘 됐군요. 사국연합을 나오면 그 후에는 한영동맹으로 오시면 됩니다.” 세레나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왕 말을 할 거면 좀 빨리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장 그레고리의 얼굴은 정말로 약간의 원망까지 섞여 있었다. 세레나는 그런 장 그레고리에게 말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볼모나 담보가 잡혔다거나···.”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번 결정한 사안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방식이라고 생각되는 군요.” “··········.” 지금의 한 마디로 인해서 세레나는 이 정신머리가 없는 느끼한 남자가 조금이지만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좋든 싫든 자기가 한 말은 지키겠다. 라는 의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이런 남자와 적으로서 싸우고 싶지가 않았다. 세레나는 이런 남자를 어떻게 끌어 들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신념으로 뭉친 자는 협박이나 회유는 역효과만 낼 뿐이다. 이런 남자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부합되는 명분을 줘야 한다. “정직하게 말하죠. 만약 당신이 사국연합을 떠나지 않으면 한영동맹에서 다음 대체안으로 전쟁을 할 생각입니다.” “······과연, 그렇다는 거군요.” 장 그레고리는 약간 얼굴이 굳어졌다. 반대로 세레나는 지극히 평온한 얼굴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피와 피로 이어지는 전쟁이 계속 되겠죠. 미리 말해 두겠는데···. 적당히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일방적인 학살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쪽은 사개국의 팀이 뭉쳤습니다. 거기에는 두 개 국가 박에는····.” “뭔가 오해하고 계시군요.” 세레나는 눈앞에 있는 커피를 한 번 더 음미하면서 말했다. “사국연합을 뭉게 버리는 것에 한영동맹은 필요 없습니다.” “········?” 의문어린 장 그레고리를 보면서 세레나가 확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팀이면 충분합니다.” “··············.” ‘거짓말이 아니다.’ 장 그레고리는 세레나의 얼굴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허세도 협박도 아니었다. “····의리를 지키면서 함께 죽던가? 아니면 자신의 명예를 희생하면서 무익한 전쟁을 피하던가? 당신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 장 그레고리의 얼굴에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만약 정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여자는 모두 여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평소에 고지식했던 세레나에게 이런 말발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명예를 희.생. 해서 무.익.한. 전쟁을 피하던가?] 이 말은 장 그레고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 틀어 박였다. 세레나는 장 그레고리의 얼굴을 살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답을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답을 주기 바랍니다.”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에 홀로 남은 장 그레고리의 얼굴에는 심각한 고뇌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장 그레고리는 세레나와의 만남 이후에 감정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역시 배신은 아름답지 못하다. 라는 그만이 이해 할 수 있는 이상한 감정이 있기도 했다. 그런 장 그레고리의 마음이 변했던 것은 레이드때에 일어났다. 미국에서 자폭을 이용한 레이드를 계획했고 장 그레고리는 그런 결정에 전폭적으로 반대했다. “그런 아름답지 못한 방식은 용납 할 수 없소!!!” 정신머리야 어찌 되었든 장 그레고리는 결사적으로 자폭 작전에 반대했다. 하지만 다른 삼국에서는 이것보다 좋은 대안도 없는데 무작정 장 그레고리가 우기기만 한다고 대응했다. 결국 자폭 작전은 완전히 강행 되었고 그리고 장 그레고리는 주저 없이 사국연합을 떠나기로 했다. 결국 그렇게 해서···. 프랑스와 한국, 영국이 연합을 맺었고 이제는 사국연합이 거기에 맞서게 된 것이다. 숫적 으로만 해도 삼 대 삼. 거기다 한국팀의 수준은 너무나 미지수였다. 미국은 서둘러서 중국과 서독을 불러서 회의를 열었다. 일단 지금 더 이상의 전력을 빼앗기기 전에 손을 쓰기 위해서 단속의 의미로라도 불러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번의 일에 관해서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했고 말이다. 일단 남은 세 개 국가의 인간들이 그렇게 한 자리에 모였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미국 대표인 블레인 허드슨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장한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프랑스의 수준을 생각할 때···. 그리고 최근 부활하기 시작한 영국, 그리고 한국을 생각하면···.” “할 말만 하시오!!!?” 블레인 허드슨이 소리를 버럭 지르자 장한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힘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겁니다. 대신에 우리가 오히려···. 저들의 압박을 걱정해야 할 위기일지도 모르오.” “제기랄······.” 블레인 허드슨의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그라고 모르지는 않는다. 더 이상 상대 쪽에 압력을 가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월드 서버의 실질적은 통일을 꿈꾸고 있었던 그로서는 혈압이 팍팍 솟구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중국의 장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일단 미국의 블레인 허드슨에게 양보를 하고 한발자국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지만···. 이게 본심은 아니었다. 지금은 와신상담하는 심정으로 참고 있을 뿐. 나중에 한영동맹을 흡수했을 때의 세력권을 어떻게 다시 짜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신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헛일이었다. 한영동맹 + 프랑스. 프랑스는 원래도 그렇게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한국이 오기 전에도 팀으로서의 힘은 이탈리아보다 더 위로 평가 받았다. 실질적으로 미국, 러시아, 중국 이 삼개국가 다음이 바로 프랑스였던 것이다. 가뜩이나 강력한 한영동맹에 그런 프랑스가 들러붙어 버리니 이제는 힘으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인상을 팍팍 쓰고 있는 장한과 블레인 허드슨에게 서독의 대표 콘러드 크라우스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노선을 완전히 달리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노선을 달리 해?” “그게 무슨 말이오?” 둘의 질문에 콘러드 크라우스는 잠시 둘을 바라보다가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이어갔다. “월드 서버가 사실상 이강체재에 돌입했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우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먼저 우위에 있는 것이라니?” “간단한 얘기입니다. 실제로 지구에서 예전에 있었던 냉전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가 팽팽하게 부딪히던 그 시절 말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오?” 장한의 시큰둥한 대답에 콘러드 크라우스가 말을 이었다. “그때 냉전 시대의 승자는 민주주의. 즉 미국의 편이었습니다.” “그랬지.” 블레인 허드슨은 그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블레인이 기분이 좋은 틈을 놓치지 않고 콘러드 크라우스가 말했다. “그때 미국은··. 아니 민주주의는 어떻게 해서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었던 걸까요?” “그거야········. 아! 그렇군.” 블레인 허드슨은 이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을 했다.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긴 이유. 그것은 지극히 간단한 이유였다. 민주주의라는 체재가 공산주의라는 몽상적인 체재에 비해서 훨씬 더 우수했기 때문이다. 뭐··, 민주주의라고 해서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고 군데군데 빈틈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인류가 나라를 만들고 씨족사회, 봉건주의, 절대왕권, 제국주의, 군사정권 등등··. 정말 수많은 시스템들이 나타났고 또 사라지고를 반복했지만 현 단계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가장 우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딱히 학자가 앞에 나와서 어려운 말로 민주주의의 우수성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으로 실적이 명백하게 드러났고 현재에도 미국을 비롯한 다수의 강대국들이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즉··. 공산주의라는 시스템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기에 붕궤했던 것이다. 만약 공산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들 보다 훨씬 잘 사는 일이 벌어졌다면 지구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난립하고 그들이 시대를 이끌어 갔을지도 모른다. 콘러드 크라우스는 그걸 빗대서 지금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월드 서버는 완벽하게 스타트 라인에 섰습니다. 전원이 같은 층에 있죠.” “그건 그렇지···. 우리가 좀 늦기는 했지만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야.” “예. 그러니 우리가 저쪽보다 더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렇다면 저쪽이 우리에게 알아서 숙이고 들어올 것입니다.” “············힘으로 압박 하는게 아니라 우수성으로 완전히 떨쳐 버려라···. 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콘러드 크라우스의 말을 다 들은 블레인 허드슨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저쪽과 전면 전쟁을 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사실 위험 부담이 큰 정도가 아니라 그냥 자살 행위다. ‘어차피 최종 목표는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 그렇다면 굳이 우물을 두 개로 파지 말고 한 우물을 깊게 파는것도 방법이겠지.’ 블레인은 생각을 완전히 굳혔다. “한영동맹··. 아니지 저쪽은 이제 삼국연합인가?” “우리도 마찬가지로 삼국연합이니··. 차라리 따로 이름을 짓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블레인의 말에 콘러드가 말했다. 그러자 블레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겠소. 그럼 우리는····. 유니버스 연맹이라고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블레인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콘러드와 시큰둥 한 장한이었다. 장한의 입장에서는 블레인이 선두로 계속 나서는게 몹시도 불쾌했지만···. 이미 올라탄 호랑이 등에서 이제 내릴 수는 없었다. 유니버스 연맹은 정운에게 사신을 보내서 프랑스의 이탈에 아무런 감정이 없으면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식으로 의사를 표했다. ============================ 작품 후기 ============================ 이렇게 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월드 서버는 한동안 이강 체재로 돌입합니다. 그게 언제까지 가냐 하면.... 설명하려니 스포일러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좋은 신작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문제는 집필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ㅠㅠ 274화 <공략> 그리고 그 의사를 접한 정운은····. “····이것들이 단체로 광우병 엑기스를 나발로 드링킹 했나? 왜 이러지?” 라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들의 의사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적어도 적의는 사라진 것 같군요. 한 단계 숙이고 들어오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다이앤 여왕이 하는 말을 듣고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우리도 일단 알겠다고 전하도록 하죠. 잡음 없어서 잘 됐군요.” “예. 그리고 저쪽이 유니버스 연합이라고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니 우리도 뭔가 이름을 짓는게 좋지 않을까요?” “아···. 그걸 그렇네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정운이 고심을 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장 그레고리 공작이 말했다. “뷰티풀 선 샤인 연맹이 좋을 것 같군요. 아름다운 햇살처럼 우리 연맹도····.” “기각!!!” “기각!!!” 장 그레고리 공작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정운과 다이앤 여왕이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렇게 정신 나간 이름의 연맹에 이름을 올렸다가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거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수치심과 최소한의 센스만 있어도 저런 이름으로는 못 지을 텐데···.’ 장 그레고리 공작은 자기가 생각한 이름이 거절당하자 진심으로 슬퍼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정운이 말했다. “한우리 연맹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우리? 한국쪽의 단어죠?” 다이앤 여왕은 한우리라는 단어에 살짝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외국어도 자동 통역이 되기는 하지만 자국의 언어의 뜻만 전달되고 그 발음은 그대로 전달되는 단어들도 있었다. 너무 독창적인 그 나라 고유의 언어 같은 경우들이 그랬다. 정운은 웃음을 띠고 다이앤 여왕에게 말했다. “예. 한우리, 말 그대로 우리가 한 울타리에 있다. 라는 뜻입니다.” “············좋군요.” 잠시 생각하던 다이앤 여왕은 순순히 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건 작고 사소하기는 하지만 정운과 다이앤 여왕의 사이에 일어난 기 싸움이었다. 일부로 연맹의 이름을 한국의 단어로 한다는 것은 일단 이 연맹의 주축이 우리 한국이라는 것을 어필하려고 한 것이다. 엄연한 사실이기도 했고 그리고 다이앤 여왕도 그런 면에서는 쭉 정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구성원도 추가되고 하니 정운이 살짝 선수를 쳐서 기세를 잡은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쭉 순종적이고 협조적이었던 다이앤 여왕의 기를 잡아서 뭘 하겠는가? 처음부터 정운의 목표는 이제 막 손을 잡고 합류한 장 그레고리 공작이었다. 정운은 그대로 장 그레고리 공작을 보면서 말했다. “공작께서는 어떠십니까? 한우리라는 이름은 마음에 드십니까?” “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만?” 정운이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앞으로 피곤해지는 건가? 세레나가 별로 욕심 많은 인간은 아니라고 했는데?’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장 그레고리 공작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저는 슈퍼 어썸 그레이트 레인보우 뷰티풀 플라워 연맹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각!!!!!!!!!!!” “기각!!!!!!!!!!!”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 그게 장 그레고리 공작이었다. 아무도 없는 밀실. 거기서 한 남자가 최수영과 단 둘이 독대를 하고 있었다. “분부하신 대로 월드 서버를 양분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분에게도 그렇게 전해주시죠?”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지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아무도 없는 밀실에서 벌어진 짧은 대화였다. 월드 서버가 2강 체재로 돌입한 이후··. 한우리 연맹도 유니버스 연맹도 가급적이면 마찰없이 자신들의 사냥에 주력했다. 서로 발목을 잡아봤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우리 연맹과 유니버스 연맹은 서로 개 고양이 보듯이 하면서도 별 마찰 없이 사냥에 주력했다. 기본적으로 따로따로 클리어를 하면서도 가끔씩은 레이드에 대한 정보 교환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연합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월드 서버의 전 유저가 클리어에만 주력한 결과는 상당히 놀라웠다. 2년 만에 76층부터 79층까지를 클리어 한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마냥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위기도 있었고 힘들기도 했다. 먼저 76층의 보스몹은 드라큘라 백작의 원형이 되는 블라드 체페슈였다. 루마니아의 용장으로 오스만 제국을 물리친 용감한 장수였지만 공포적인 전략을 구사한 것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실제로 사람의 피를 빨았다는 얘기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많이 두려워 했다고 한다. 사실 그가 무슨 연유로 파우스트에게 원한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는 76층에서 유저들을 가로 막았다. 그는 순수하게 힘으로 승부하는 타입의 보스몹이었다. 바토리처럼 이상한 잔꾀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파우스트에게 받은 보스몹으로서의 힘을 충분히 써서 일행과 맞서 싸웠다.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렇다 할 약점도 없이 강했다. 하지만 클리어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박추성과 배대호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결국 체페슈는 클리어 되었다. 77층의 보스몹은 고대 중국의 명장인 백기였다. 그의 경우는 체페슈와 달리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충분히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으로 있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원래 그 역시 체페슈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전쟁터에서는 명장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제가 많았다. 장평에서 40만에 달하는 포로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생매장 한 일화는 유명했다. 그런 그의 최후는 결국 자진이었는데 죽으면서 자신이 장평에서 행한 악행 때문에 벌을 내린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백기와의 전투에서는 유독 정운의 부하들인 후한말의 장수들이 애를 썼었다. -죽어랏!!! -백기 네 이놈!!!!! 백기에 대한 악명은 같은 중국인인 그들에게 더 와닿은 것 같았다. 후한말의 무장들을 기필코 자신들이 징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던지 평소에 잘 안쓰던 스킬까지 남발해 가면서 백기와 싸웠다. 정운의 정신력이 휘청할 정도로 힘을 썼으니 말 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백기는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코너에 몰렸다. 그리고 레드 크리스탈이 떴을 때 자폭하려고 했지만 여포의 화극이 그럴 열십자로 가르는게 먼저였다. 그렇게 해서 77층도 클리어 되었다. 78층의 보스몹은 처음으로 한국인이 나왔다. 처음에 그가 나왔을 때 정운을 비롯한 한국인은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나왔던 것이다. 78층의 보스몹은 스스로를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밝혔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정말로 엄청나게 강했다는 것이었다. 76층의 체페슈와 77층의 백기를 합한 것 보다 더 강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냥 싸울때는 그저 그랬다. 오히려 백기보다 약간 약하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면 얘기가 달라졌다. 그렇게 되면 그 충무공은 거북선을 소환하고 그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문제의 거북선의 화력은 어마어마했다. 배대호가 긴급하게 실드를 치지 않았다면 한우리 동맹의 과반수 이상이 전사 할 뻔 했었다. 물론 공격도 했지만···. 그 거북선은 방어력 또한 엄청났다. 최고의 방패이자 최고의 화포. 그게 조합된 결과가 거북선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것이었다. 오죽하면 한중겸이 싸우는 와중에 임진왜란때 저거랑 싸우며 벌벌 떨었던 왜군들 심정을 알겠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일해은 후퇴를 결정했다. “이쪽이다!!” “뇌천신공!! 아스트랄 소드!!!!” 콰쾅!!! 콰아아앙!!!! 정운과 박추성이 어떻게든 발목을 잡는 사이에 한우리 연맹은 간신히 도망쳤다. 월드 서버의 레이드 중에 최초로 실패를 했던 경우였다. 그 후에 다시 도전을 하기 위해서 한우리 연맹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나날이 회의가 이어졌고 어떻게든 약점을 찾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모집했다. 그러던 와중에 다이앤 여왕이 한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일차 레이드 실패 이후로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순신의 생애에 관해서 조사를 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던 것이다. “정운님. 기록에 의하면 이 이순신라는 장수는 키가 작다고 알려져 있죠?” “아! 그랬죠 아마도?” 정운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키가 작은 이순신 장군이었지만 칼은 엄청나게 긴 칼을 썼기 때문에 허리에 매고는 칼을 뽑지 못해서 칼을 들어주는 부하가 따로 있었다. 라는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얘기도 기억이 났던 것이다. 뭐,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키가 작다기 보다는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의 대부분 키가 작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양인 자체가 원래 골격이 작았고 예전의 영양상태를 고려하면 큰편이 이상했던 것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은 그 중에서도 좀 더 작은 편이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때 다이앤 여왕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에 본 사람 적어도 180은 넘어 보이지 않았나요?” “···········.”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혹시····?’ 다이앤 여왕의 말 한마디에 이상함을 느낀 한국 유저들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아무리 작은 단서라고 해도 그 작은 단서가 커다란 댐의 구멍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순신 장군이 파우스트와 계약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장수로 칭송 받고 있고, 그 본인도 청렴한 성품이었다고 하는데 왜?’ 거기서 정운이 세운 가설은 이랬다. 누군가가 충무공의 이름을 사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가?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그렇게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질투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사고가 도달했다. 충무공 레이드 2차전···. 정운은 적의 정체를 면전에서 밝혔다. “당신은 이순신이 아니야.” “뭐····? 뭐라고?” 거북선 안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자 정운의 심증은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당신의 정체는 충무공의 라이벌, 혹은 임진왜란의 무능한 장수 역을 도맡아서 하고 있는 원균이다. 아닌가?” “··············.” 정운의 말이 상대방의 가슴 깊숙한 곳을 후펴판 것 같았다. ‘정답인 모양이군.’ 정운은 상대가 원균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조선은 문관 위주의 나라였고 임진왜란 때 무능한 장수는 많았다. 임진왜란 초기에 배수진 치다가 정규군 싹 다 말아먹은 신립이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신립의 경우 일생에 걸친 전쟁터에서의 실적은 승률이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왜란의 초전에서 정규군을 싹 다 말아먹은 실수는 그의 커리어 전체를 먹칠하는 대패전이었다. 원균도 유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제 그의 평가에 관해서는 이순신 장군을 띄워주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했다는 얘기가 강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지도 않고 전공만 부풀려서 보고하던 쓰레기들이 넘치던게 그시대 전쟁터의 현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적어도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원균이 무능한 장수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한반도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을 질투 할 남자로 가장 적합한 것은 역시 원균밖에 없었다. 충무공과 한 시대에 태어나서 목숨을 바쳤지만 명예는 얻지 못한 비운의 남자. 그라운드 제로의 영혼들 중에 상당수가 후세의 평가로 인해서 악당으로 몰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영혼이라면 파우스트에게 넘어간 것도 그리고 충무공을 사칭한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 작품 후기 ============================ 소소하지만 조금은 스킵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완전 스킵은 아니고 약간 하이 페이스로 설명을 하기는 하겠습니다. 사실 원균 설정은 공 좀 들였던 건데....ㅠㅠ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75화 콰직···. 콰지직···. 정운이 원균의 정체를 밝히고···. 사실상 그걸로 레이드는 끝이었다. 원균의 히든 스킬이었던 가짜 거북선이 너덜너덜해 지더니 알아서 파괴 되었다. 아마도 그 사기 같은 화력과 강력함은 충무공을 사칭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이었던 것 같았다. 즉, 정체를 밝혀지는 것 만으로도 그 힘이 떨어지고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리 리턴. 정체만 밟혀지지 않으면 진심을 다한 박추성의 공격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가짜 거북선이었지만 진실의 한 마디에 허무하게 쓰러져 버린 것이다. “············.” 사라져가는 원균은 아무말도 없었고 한국 유저들도 굳이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알림창에는 그가 질 드 레와 같이 영구 클리어 되었다는 알림창만이 나왔다. 그렇게 78층은 돌파 되었다. 곡절은 좀 있었지만 78층도 훌륭하게 클리어 한 것이다. 다만 문제는 월드 서버에 올라오고 나서 처음으로 한 번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점점 레이드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79층은 어떤 의미로는 78층 보다 더 까다로운 곳이었다. 그곳의 보스몹은 스파르타쿠스였다.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의 노예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자유와 투쟁의 카리스마인 그는 후세 사람들에게 악평보다는 존경 받는 편이었지만···. 그의 인생 자체는 원한과 미련이 안 남는게 이상할 남자였다. 어찌 되었든 보스몹으로 나타났다면 무조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스파르타쿠스를 공략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곤란한 것은 오로지 1대1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의 안에서 무조건 1대1로 말이다. 사실 그것 뿐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스킬도 쓸 수 없고 아무런 아이템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스파르타쿠스도 조건은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유저로서의 능력을 모두 봉인당하고 오로지 인간 대 인간으로 싸워야 한다는 건데···.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에 익숙해진 고위급 유저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조건이었다. 일단 도전을 하면 아레나에서 자동으로 글라디우스 한 자루가 주어진다. 무기는 오로지 그것 하나 뿐이었다. 그것만 가지고 스파르타쿠스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먼저 도전했던 것은 유니버스 연맹이었다. 항상 한우리 연맹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것이 거슬렸던 것일까? 그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이 먼저 돌파를 시도했다. 그 결과···. 다섯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거기다 레이드도 실패했다. 한우리 연맹은 당시 그런 유니버스 연맹의 실패를 교훈삼아서 신중하게 도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수단을 썼다. 일단 한 번 도전하면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한 스파르타쿠스를 유저가 직접 클리어 하는 것은 아무래도 리스크가 컸다. 정운은 자신이 예전에 시련의 탑에 도전했던 것처럼 직접 도전해 볼까 싶기도 했지만 주변의 동료들이 말렸다. 사실 정운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에게 익숙한 무기라면 모를까? 익숙하지도 않은 글라디우스를 들고 순순한 검투만으로 스파르타쿠스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결국 한우리 동맹은 꼼수를 썼다. 정운의 쉐도우 아미들을 이미 스킬 화 된 소환수라서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자체 소환을 할 수 있었던 세레나의 양산박의 호걸들은 다행이도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도전하느냐 하는 건데····. 동평은 창이 주무기였고 자신도 자신 없어 했다. 사진도 마찬가지로 짧은 글라디우스는 익숙하지 않은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호삼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소거법으로 가니 남는 사람은 하나 뿐이었다. 양산박의 호걸들 중에서도 이규가 스파르타쿠스와 한판 붙었다. “할 수 있겠어?” 세레나의 물음에 이규는 자기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저 놈 목을 따오면 되는 거죠!!! 나한테 맡기십시오. 누님.” “아니 말은 잘 들은거야? 네 도끼도 못 쓰고 그리고···.” “우어어!!!! 저 놈 모가지가 참 탐스럽다!!!!!” “···········.” 말은 전혀 듣고 있지 않은 이규였다. 어쨌든 이규 말고는 스파르타쿠스를 상대 할 만한 인간이 거의 없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이규가 스파르타쿠스를 상대하기 위해서 나갔다. “네가 이번 도전자이냐?” “그렇다.” “이름을 밝혀라.” “흑선풍 이규다. 네놈 모가지를 바쳐라!!!!” 이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마치 화난 버팔로처럼 씩씩 거리면서 스파르타쿠스에게 돌격했다. 스파르타쿠스는 그렇게 달려오는 이규를 보고 침착하게 마주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이규가 자기 칼을 집어 던져 버렸다. “웃!!” 당황한 스파르타쿠스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 이규는 그대로 박치기? 혹은 태클에 가까운 것을 하면서 스파르타쿠스와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그리고는····. “목을 바쳐라!!!!!!” 거의 얼부 짖듯이 달려드는 이규를 보면서 스파르타쿠스는 크게 당황했다. 생전에 별의 별 인간들과 다 싸워 봤지만 이렇게 사나운 인간은 처음이었다. “이 놈이!!!” 결국 스파르타쿠스도 이규에 응전하기 시작했고···. 그 싸움은 무술이나 검투라기보다는 마치 야수들의 투쟁을 보는 것 같이 흘러갔다. “과연···. 저렇게 하면 되는거군.” 이규가 싸우는 것을 보고 정운은 살짝 감탄했다. 정운은 자신의 검술과 스파르타쿠스의 검술을 비교해가며 승산을 따졌다. 그것은 정공법이었다. 하지만 이규는 전혀 다르게 대응했다. 원래 도끼를 쓰는 이규였지만 사실 그에게는 무기라는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주력 무기가 없어도 무조건 개싸움으로 물고가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 근성으로 헤쳐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전설의 검투사이자 신화적인 카리스마로 승화된 스파르타쿠스로서도 아마 이규 같은 남자는 처음인 것 같았다. 투구를 쓰고 있는 스파르타쿠스를 상대로 맨 머리로 박치기를 하지를 않나···. 목덜미를 짐승처럼 물어 뜯으려고 하지를 않나···. 저 전투에 제목을 붙인다면 ‘수단방법 가릴 것 없다.’ 라는 말이 딱일 것 같았다. 그 전투를 보던 장 그레고리가 말했다. “난 절대로 저 남자하고는 안 싸워. 저건 아름답지 않아····.” 라고 말했다. 뭐, 아름답고 안 아름답고를 떠나서···. 겨룩 한우리 동맹은 일단 79층 레이드에 성공했다. 이규가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스파르타쿠스를 간신히 잡아낸 것이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콜로세움의 아레나에서 피투성이로 있는 이규가 크게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발 밑에는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도 못한 스파르타쿠스의 시신만이 있었다. 차라리 이규가 도끼를 들고 제대로 일기토를 했다면 결과는 또 달랐을지 모른다. 개싸움으로 가면 이규는 양산박 중에서도 천하무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유니버스 연맹이 79층에 발목이 잡히는 와중에 한우리 연맹은 드디어 80층에 도달하게 되었다. 사실 유저들 간의 마찰이 없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경이적인 속도가 발생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기존의 월드 서버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이 한 세력싸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한우리 연맹은 드디어 80층 레이드를 향한 첫 도전을 하게 되었다. “자. 주목!!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합니다.” 정운은 모두를 모아두고 작전의 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운의 옆에는 영국의 다이앤 여왕과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공작이 좌우에 서 있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정말 많단 말이야.’ 정운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예전에는 단독으로 솔로 플레이를 하던 정운이었지만 이제는 상당한 대 인원을 통솔하게 되었다. 한국 13명, 영국 17명, 프랑스 22명, 그리고 아직 정확한 소속은 아니지만 예전에 전쟁때 받아들인 포로들도 15명이나 있었다. 다 모아놓고 보면 67명이나 있었다. 이 정도의 인원이 있으면 정운으로서도 여러 가지 작전을 짤 수 있었다. “····자, 이미 말했지만 일단 이번 보스몹에 관한 정보는 아직 밟혀진게 없습니다.” 정운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미리 정찰조를 꾸려서 간단한 정찰을 하기는 했는데 실패했다. 이번 보스몹 필드는 말 그대로 지하 던전이었다. 구조도 워낙에 복잡하고 어디가 어딘지 모를 던전 이라서 정찰조는 길만 잔뜩 헤매다가 나와야 했다. 결국 사람 수가 더 늘어야 한다고 판단한 정운은 이번에 대규모로 인원을 동원한 것이다. “우선 이번 돌입은 정찰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3~5인씩 조를 짜서 저 던전에 돌입합니다. 가능하면 전투는 피하고 던전의 전체적인 지형을 파악하면서 들어가십시오. 일단 지도의 제작, 즉 맵핑을 먼저 합니다.” 던전형 미로를 공략할 때는 그 던전의 지형이 그려져 있는 지도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천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난이도의 차이가 난다. 거기까지 목적을 설명한 정운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질문 있는 사람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영국의 마이클 핸더슨이 손을 들어서 말했다. “예. 마이클씨.” “정찰이 주 목적이면 어디까지 들어가는 것입니까? 미리 들어간 정찰조의 보고에 의하면 안에서 통신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관해서는 여기 추성이 형님이 해결해 줬습니다. 모두들 이걸 가지고 가십시오.” 정운이 모두에게 건내 준 것은 플라스틱 컵이었다. “···그게 뭡니까?” “실 전화라는 겁니다. 여기 끝에 추성이 형님이 무한의 영사로 연결을 할 겁니다. 무한의 영사는 끝없이 늘어나고 사용하기에 따라서 소리의 전달도 뚜렷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실 어린애 같은 아이디어이기는 했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박추성은 던전의 안에 들어가지 않고 일단 밖에서 실전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몇 십 개로 조를 나눈 한우리 연맹은 안으로 들어갔다. 정운역시 슬기와 세레나와 한 조가 되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정운과 슬기, 세레나, 이들은 각각 조를 하나씩 꾸려서 안으로 들어가야 전략적 평균이 맞았다. 하지만 정운은 그 점에 관해서만큼은 완고했다. 이 팀으로 계속 손발을 맞춰 왔으니 이게 베스트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도 세레나의 정체를 비밀로 해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우리 연맹에서 정운이 그렇게 하자. 라고 하면 대부분 그렇게 되는게 보통이었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보스몹의 영역이 던전이라···. 도대체 어떤 놈일까?”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주변의 벽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딘지 모르게 던전이라기 보다는····?” “보다는?” “···뭔가의 소굴 같은 느낌이 더 강합니다. 벽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흔적이라기보다는 짐승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군요.” 세레나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정말로 일행의 앞에 짐승이 나타났다. “우우움····.” 일행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배틀 액스를 들고 있는 거대한 황수 머리의 괴수였다. “미노타우르스. 오랜만에 보네.” “그러게요.” 정운과 슬기는 나타난 적을 보면서 담담하게 전투를 준비했다. 현실에서 보통 여자들의 눈앞에 신장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소머리 괴물이 날카로운 배틀 액스를 들고 나타나면 기절하거나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슬기도 이제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경력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사실 미노타우르스 정도면 매우매우 평범하게 생긴 것이다. ============================ 작품 후기 ============================ 스킵은 이번편 까지입니다. 70층 개방이 되었을때 월드 서버가 나왔듯이... 80층에서도 변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PS. 근데 원균 미화라뇨? 억울합니다. 엄염히 충무공에 대한 질투심에 불타는 악역으로 등장시켰는데 몇가지 사족만으로 미화라니....ㅠㅠ역시 우리나라 인물 등장시키는 것에는 조심에 조심을 더해야 겠습니다. 276화 “무워어어어!!!”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의 도끼를 휘두르며 거칠게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 공격에 정운이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슬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실드!!” 카아앙!!! 불꽃이 튀면서 미노타우르스의 배틀엑스가 그다로 뒤로 튕겨져 나왔다. 놈은 다시 거칠게 도끼를 휘둘렀지만 그래도 슬기는 담담하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대신에 슬기는 자신의 품에서 ME를 꺼내서 놈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미노타우르스 1세대. LV. 180~185 [최초의 미노타우르스들의 후예. 보통의 미노타우르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교활한 지혜를 갖추고 있다.] “이게? 레벨이 180이 넘는다고?” 슬기는 ME의 정보를 확인하고 살짝 놀랐다. 사실 그 정도로 강력한 몹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움우워어어어!!!!” 눈앞에 미노타우르스 1세대의 배틀 엑스의 날에 선명한 검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웃!!” 슬기는 그대로 몸을 뒤로 날렸다. 콰아앙!!! 슬기가 있던 자리에 실드를 그대로 쪼개고도 남을 엄청난 파괴력의 공격이 작렬했다. “슬기야. 방심하지 마.” “괜찮아요. 안 도와줘도 되요.” 슬기는 그렇게 말하고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일반 몹인데 유니크 스킬인 기공술을 쓴다 이거지? 그렇다면 어디 방어력은 어느 정도인지 볼까? 폭렬우!!” 폭렬우(爆裂牛) (화염으로 된 큰 소를 소환한다. 대상에게 돌격해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던전에 커다란 화염의 소가 두 마리나 소환 되었다. 슬기는 그대로 소환수들에게 명령했다. “가라!!” 퍼퍼엉!!!! 그대로 작렬한 화염의 소는 미노타우르스에게 작렬했다. 하지만···. “음무어어어어어!!!!” 미노타우르스는 그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는 듯이 거칠게 돌격했다. “맺집도···. 그럭저럭인가?” 슬기는 적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고작해야 일반 몹 따위를 처리하면서 정운이나 세레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홍신대!!” 화르르륵···. 여기저기서 화염의 불길들이 솟구치면서 불꽃의 병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홍신대(紅神隊) LV.8 (소환자의 의지에 복종하는 화염의 정화를 소환한다. 소환 가능한 숫자는 스킬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변한다.) 원래 레벨이 2였던 스킬도 이제는 레벨8에 도달했다. 소환 가능한 병사들의 숫자도 크게 늘어서 이제는 300명의 병사들을 소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300명 전부를 소환할 필요는 없었다. 지형도 그렇게 넓지 않고 그냥 10기 정도면 충분했다. “가라!!” 슬기가 명령하자 홍신대 병사들 하나하나가 미노타우르스에게 달려 들었다. “움모어어어!!!!” 미노타우르스는 배틀 엑스를 휘두르면서 거칠게 공격했지만 사방에서 이어지는 공격에 차츰차츰 당해가면서 무릎을 꿇어가기 시작했다. “음머어어어!!!” 아무리 공격해서 해치워도 다시 일어나는 홍신대의 병사들을 보면서 미노타우르스는 열세를 느꼈는지 그대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헤에··. 도망을 간다? 머리 좋은데?” 정운은 그걸 보고 살짝 감탄했다. 이제까지 다른 층에서 나타났던 미노타우르스라는 놈들은 대체적으로 단순무식하고 광폭했다. 둘중에 하나가 끝장을 볼 때까지 죽일 듯이 달려 들었다. 저렇게 열세를 느끼고 도망가는 몹들은 거의 없었다. “뭐···. 도망도 못 가겠지만 말이야.”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미노타우르스의 뒤편으로 한 마리의 검은 화염을 두른 호랑이가 거칠게 달려 들었다. “흑염호, 물어 뜯어라.” “크허어엉!!!” 검은색 화염으로 둘러 쌓인 호랑이는 그대로 미노타우르스의 뒷덜미를 물어 뜯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검은 불길로 미노타우르스를 흔적도 없이 태워 버렸다. 흑염호(黑炎虎) (검은색 화염을 두른 호랑이를 소환한다. 화염 대미지를 추가로 입힌다.) 원래 슬기가 주작의 스태프로 소환 할 수 있는 소환수 중에서도 주작, 화룡 다음으로 강력한 것이 이 흑염호였다. 화룡이 여러 개체의 몹을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에 용이하다면 흑염호는 일대일에 강하다. 그래서 화룡 만큼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흑염호가 물어 뜯은 장수에는 그대로 검은색 화염이 불타올라갔고 이내 미노타우르스는 새까맣게 숯 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흠···. 생각보다 강한걸요? 유저 레벨이 150이하라면 일대일로 상대하기는 어렵겠어요?” “그렇지? 실 전화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해야 겠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실 전화를 통해서 박추성에게 연락을 했다. 그럼 박추성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다시 해서 주의 사항을 알렸다. 미노타우르스가 생각보다 좀 강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탐색에 영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한우리 연맹은 순조롭게 던전을 탐색해 가기 시작했다. “흠···. 이거 혹시 보스몹은 미노타우르스 아닐까?” 탐색을 하면서 계속 미노타우르스 1세대라는 몹들만 나오자 정운이 혹시나 하면서 말했다. “미노타우르스요? 예전에 나온적 있었잖아요?” 슬기가 기억하기로 예전에···. 그러니까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월드 서버에 진출도 하기 전의 층에서 미노타우르스 히어로라는 몹이 나온적이 있었다. “아니 그런 것 말고···. 원래 미노타우르스도 신화속에 나오는 사연있는 괴물이잖아? 그런게 나오지 않을까 싶은 거지?” “아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부하몹으로 미노타우르스 1세대만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가고요.” “그렇지?” 정운이 말하는 것처럼 미노타우르는 원래 나름 신화에 나오는 거물 괴수중에 하나다. 원래 신화상의 미노타우르스는 흉폭한 생김새와 달리 왕족이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라는 왕이 신의 분노를 사서 그의 아내가 신의 저주로 인해서 소의 아이를 지녀서 태어난게 미노타우르스였다. 원래 이름은 아스테리오스라고 하지만 미노스왕은 소라는 뜻으로 미노타우르스라고 불렀다. 나중에 아테네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테세우스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는···. 나름 유서 깊은 전설의 괴수인 것이다. 다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이미지로는 꼭 트롤 이상 오우거 이하 같은 느낌으로 취급 받고 있는 것 뿐이었다.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강하겠죠?” “80층 보스몹인걸? 약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뻔뻔한 일이지. 앗!!” 말을 하던 정운은 자신의 발목에서 뭔가가 날카롭게 물었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함정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 작은 뱀이 발목을 문 것이었다. “몹이 아니고 뱀···? 뭐 있을법 하긴 하지.” “회복 걸어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내 독저항력 알잖아?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뱀 시체 같은게 좀 있네. 둘 다 조심해.” “예. 걱정마세요.” “뱀 정도야 뭐···.” 보통 여자들이라면 뱀이라면 질색을 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여기저기 구르면서 별의 별 꼴을 다보다 보니 이제는 뱀 정도는 길에서 참새 한마리 보는 정도의 감흥밖에 생기지 않는 슬기와 세레나였다.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다시 앞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때, 실전화로 박추성의 연락이 왔다. [전원집합. 보스몹의 방으로 추정 되는 곳을 찾았음.] “어!? 찾았다고 하는데?” “정말요?” “그래. 일단 전원 집결이니까 던전 밖으로 나가자.”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한우리 동맹 전원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작성하고 있떤 지도를 합쳐서 미궁의 대략적인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 거기 길이랑 여기 길도 이어지는 거였나?” “우리가 아까 만났던 장소가 여기 세갈래 길이었죠? 그러니까···.” 사실 던전 속에서 대략적인 거리 측정을 통해서 지도를 만들면서 전진하기는 했지만···. 그게 아주 정확할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측량장비는 물론이고 흔한 줄자 하나 없이 발걸음으로 쟀다. 이래서는 지도 합치지 작업에 난항을 격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특유의 하면 된다. 정신으로 머리를 꽁꽁 싸매면서 고민을 하다 보니 결국 보스룸으로 가는 최단거리의 지형이 보였다. “음····. 이 정도면 되겠네.”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40분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오늘 시도 할까요?” “·····유니버스 연맹에서 스파르타쿠스 공략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죠?” “예. 그들의 계획으로는 일반 서버의 유저들 중에서 검투에 뛰어는 인재를 캐스팅해서 클리어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쉽게 나올 리가 없죠.” “멍청한 놈들···.”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파르타쿠스의 강함은 정운도 직접 두 눈으로 봐서 잘 알고 있었다. 이규가 이기기는 이겼지만 사실 그건 너무 야만적이고 짐승 같은 이규의 기세에 스파르타쿠스가 좀 당황했던 경향이 강했다. 실제 실력으로 검투를 겨루면 그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이 현대인들 중에서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실제로 시련의 탑 공략 이후로 후한말의 장수들에게 꾸준한 무술 수련을 받은 정운도 스파르타쿠스를 상대로 순수한 검투로 싸우면 승산은 50%정도가 고작이라고 생각 되었다. ‘뭐···. 당분간은 유니버스 연맹에서 올라올 일은 없겠지? 일행 중에 정신력의 소모도 좀 큰 사람들도 종종 있는 것 같고····.’ 정운이 흘깃 살펴보니 포로들 중에서는 사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많았다. 정운의 팀에서는 한명 한명이 미노타우르스 1세대 보다 강한 사람들이었으니 별 소모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팀들 중에서는 제법 지친 사람들이 보인 모양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오늘은 후퇴하자.”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단 오늘은 후퇴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 날. 한우리 연맹의 일원들은 모두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던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가야 할 루트가 뚜렷했고, 또 전력도 충분히 온전한 상태였다. 그렇게 일행은 거대한 문의 앞까지는 순조롭게 도착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일행의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흠···. 분위기 있는걸?” “대마왕의 방 같아···.” 일행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 앞에서 마지막 긴장을 풀었다. “자, 그럼 들어갑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향하는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모두의 귀에 알림창과 함께 한가지 메시지가 떴다. 띠리링!! [80층 보스몹의 영역에 진입합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뭐지? 이건?” “이제까지 이런 것은 없었는데?” 일행은 당황했다. 이제까지 보스몹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메시지가 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아무래도···. 80층에 와서 뭔가 변한 모양이죠?” “그렇군요.” “어떻게 할까요? 이런 경우 보통 무턱대로 예스라고 대답하면 뒤가 감당하기 어려운데?” “···············.” 정운은 고심에 빠졌다. 인간은 익숙한 상황에 강하다. 반대로 말하면 이제까지 없던 상황이 갑자기 나타나면 당황하고 허둥거리기 마련이다. 갑작스런 선택지. 답은 예스와 노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다못해 힌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런 조짐도 없는 그냥 뜬금없이 떨어진 질문이다. 여기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한중겸이 말했다. “어차피 보스몹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잖아? 예스라고 하자.”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공감했다. 위험할 거야 뻔하다. 80층의 보스몹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공략은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여기서 노라고 말했을 때의 패널티였다. 만약 노라고 하는 순간 보스몹에 대한 도전권이 상실 된다면···. 그럼 정말로 최악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77화 <변화한 룰>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앞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단단히 각오해요. 선택합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모두를 대표해서 예스를 선택했다. 그러자····. 띠리링!! [보스룸 진입을 선택하셨습니다. 보스몹의 이름을 말하시오.] “이름?” “보스몹의 이름을 말해?” “이건 무슨 말이야?” 일행은 이어지는 질문에 당황했다. 정운은 순간적으로 이 선택지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일행을 보면서 아까 세레나와 세웠던 가설에 관해서 말했다. “······ 그러니 우리가 보기에는 이 층의 보스는 미노타우르스일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생각 있는 사람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의견을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들도 정운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의 동의를 얻은 정운은 일단 심증이 있는 이름을 말했다. “미노스왕가의 왕자였던 미노타우르스.”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띠리링!! [오답입니다. 패널티로 레이드 시에 인질을 한 명 잡겠습니다. 레이드 실패시에 인질은 죽음에 처해집니다.] “뭐!!!?” “이런···?”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크게 놀랐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행들이 진정할 틈도 없이 일행은 보스룸의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홀의 안에서···. 한 명의 검은색 베일에 가려져 있는 자가 있었고 그 의 머리위에는 한명의 익숙한 사람이 새장 같은 창살에 들어있었다. “망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창살에 감금당한 사람은 바로 한우리 연맹 최강의 고수인 박추성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설마 이런 상황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빌어먹을···. 전원 전투 준비!!!” 정운은 일행에게 크게 외쳤다. 아까 알림창의 내용대로라면 이 레이드에서 후퇴는 용납되지 않는다. 후퇴 하는 순간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박추성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콰콰콱!!! “제길···. 역시 안 되나?” 박추성은 혹시나 싶어서 무한의 영사로 창살을 자르고 나가려고 해 봤지만 실패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한의 영사로 창살의 사이로 통과 시켜서 뻗어 보려고 해도 역시 실패했다. “빌어먹을···. 이건 핸디가 너무 큰데···.” 박추성은 불안한 표정으로 동생들을 바라봤다. 그라운드 최강의 유저라고 불리는 그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숨을 동료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베일에 둘러 쌓인 적은 아무 말도 없이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쉬이이익!!! 몇 십 개의 가는 끈 같은 것들이 화살처럼 날아와서 유저들을 공격했다. “피해!!!” 한우리 연맹은 재빨리 흩어져서 적의 공격을 피했다. 정운은 흘깃 고개를 돌려서 적이 날린 공격의 정체를 확인했다. 손가락만한 굵기의 작은 뱀들이었다. 하지만 크기가 작다고 우습게 볼 것은 아니었다. “아악!!” 한 명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뱀에에 어깨를 물렸다. 포로 신분의 한명이었는데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날아오던 뱀은 공격이 막히려는 순간 휘리릭 휘어지며 검과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단번에 어깨죽지를 콱 하고 물어 버린 것이다. “크윽···. 빌어먹을···.” 그는 급하게 뱀을 잘라서 떨쳐 냈지만 이미 상당한 대미지를 입었다. 물린 순간 이미 체력이 반으로 뚝 떨어였고 거기다 지금도 빠른 속도록 체력 게이지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힐링!! 포이즌 캔슬!!” 슬기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서 회복과 해독을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슬기씨···.” “괜찮으니까 회복에 집중해요. 트리플 실드!!” 슬기는 실드를 삼겹으로 쳐서 외부의 공격을 완전 차단하고 아군의 치료에 주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낫지를 않았다. 누가 보스몹 아니랄까봐 보통 독성과는 다른 아주 지독한 독인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정운은 크게 외쳤다. “절대로 맞지 마!! 막지도 말고 가능한 공격을 피해!!!! 혹시라도 맞으면 바로 전선 이탈하고 해독에 들어간다!!!!” 정운은 동료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자신의 무기인 활을 당겼다. 빠른 속도로 강력한 독사의 다발을 날리고 있는 적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웠다. 이럴때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데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천뢰지망!!!” 콰콰콰쾅!!!! 적의 보스몹을 향해서 정운의 화살이 뇌전의 비가 되어서 날아갔다. 베일에 가려져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공격을 피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을 보고 정운은 공격의 명중을 확인했다. ‘방어를 위한 움직임이 별로 없다. 이건 혹시···.’ 정운은 적이 가만히 서서 자신의 공격을 받는 것을 보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적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공격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쉐도우 아미!!!” 정운은 바로 그림자의 무장들을 전원 소환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기마차지!! 일점 집중!!!”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림자의 무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는 동시에 적을 향해서 기마 차지를 실행했다. 콰아아아앙!!! 아홉기의 황금빛 섬광이 적에게 작렬했다. 마치 폭죽이 거꾸로 터지는 것 같은 광경과 함께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렸다. 하지만···. -커억!! -크윽····. 오히려 대미지를 입은 것은 그림자의 무장들이었다. 적의 보스몹은 기마 차지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대미지를 입지 않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자의 무장들이 저마다 뱀에게 물려서 대미지를 입었다. ‘쉐도우 아미들을 독이 토하지 않는다. 애당초 크림자가 본체니까···. 그래도 저 정도의 대미지인가?’ 그림자의 장수들이 입은 대미지는 정운의 정신력을 순간 휘청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거기에 비해서 적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캔슬!!” 정운은 일단 대미지를 입은 그림자의 장수들을 전원 캔슬 시켰다. 정신력을 온전 시키기 위해서 일단 잠시 거둬 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정운은 생각했다. ‘이상해···. 왜 공격을 전혀 피하지 않은거지?’ 물론 보스몹인 인상 어느정도 큰 피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아무리 피통이 크다고 해도 공격을 전혀 피하지 않는 것은 수상했다. 마치 칠 테면 얼마든지 쳐 보라는 듯한 태도가 아닌가? 아마도 적은 지금 대미지를 전혀 입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왜? 어째서?’ 보스몹 중에 가끔씩 이런 느낌의 놈들이 있기는 있다. 예전의 바토리도 그랬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뭔가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의 안에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정운은 계속해서 적을 공격하면서 적에 관해서 생각을 했다. ‘뭔가···.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어떤 방법이···.’ 정운이 그렇게 멀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에 작은 빈틈이 생겼던 걸까? 쉬이익!!!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적이 뿌린 뱀의 다발이 정운을 향해서 날아왔다. “위험!!!” 그런 정운을 감싸기 위해서 윤정철이 잽싸기 엄호 사격을 했다. 파파파파팟!!!! 윤정철의 특기인 템페스트 샷이 허공을 날아오던 뱀들을 모두 떨어트려 버렸다. 템페스트 샷 LV.MAX (광범위하게 화살을 쏟아 붓는다. 화살이 허공에서 분열하면서 불어난다.) 템페스트 샷을 쓸 수 있는 궁사들은 많았지만 방금 윤정철이 보여준 신기 같은 짓을 할 수 있는 궁사는 월드 서버 전체를 뒤져도 찾아 볼 수 없다. “고맙습니다.” “넋 놓고 뭐하는 거야? 제길···. 원균 이후로 이런 위기는 오랜만인데?” “·········!!!” 윤정철의 말을 듣고 나니 정운은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원균···. 그래 그 놈도 대책 없었지. 처음으로 우리가 후퇴를 해야 하기도 했고 말이야.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면 그 놈을 클리어 하는 것은 힘들었을 거야.’ 정운은 차분하게 생각했다. 저 보스몹을 공략하는 것에 대한 힌트는 이제까지의 레이드에 있었다. 예전에 70층의 월드 서버로 올라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보스몹인 캡틴 존 존스. 놈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보스몹이었다. 그래서 상대하기도 까다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월드 서버를 위한 예방 주사 같은 개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80층의 저 보스몹도 뭔가 이제까지 보스몹과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도 그건·····. “정체!!! 정체를 밝혀야 해!!!” 정운이 그렇게 소리치자 한우리 연맹 내부에서도 눈치 빠른 몇몇이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과연···. 정체를 밝히기 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지?” “그럼 정체를···. 잠깐 미노타우르스가 아니면 저 놈 뭐지?” “나도 몰라!! 그래도 알아내야지!!!?” 한우리 연맹의 유저 중에 한명이 이판사판으로 집어 던졌다. “파시파에!!! 미노타우르스의 어머니인 파시파에다!!!” 누군가가 급하게 소리쳤다. 파시파에는 미노스 왕의 왕비로 신의 저주를 받아서 수소의 아이를 자지게 된 비운의 여성이었다. 즉 미노타우르스의 친모인 것이다. 영국 유저중에 한명이 한 말에 주변은 잠시 침묵했다. 순간 유저들도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띠리링!! [오답입니다. 인질을 한 명 늘리겠습니다.] “빌어먹을!!!” “읏!!!” 오답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또 한 명의 인간이 인질로 잡혔다. 이번에 인질로 잡힌 것은 윤정철이었다. “크윽·····.” 창살을 활로 내려치면서 분해하는 윤정철은 입술을 피가 나올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다. ‘빌어먹을 이럴 때····.’ 정운은 윤정철이 인질로 잡히는 것을 보고 주변에 소리쳤다. “막 지르지 마!!! 오답을 말하면 인질이 늘어난다!!!” 정운의 말에 아까 실수를 한 영국 유저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제길···. 하필이면 이런 시스템이라니····.” 오답은 자신이 말했는데 인질은 다른 사람이 잡혔다. 아마도 인질의 간택은 제멋대로 막 일어나는 것 같았다. “제길··. 이거 큰일인데···.” 배대호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사방을 살펴봤다. 자신은 전혀 대미지를 받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유저들을 공격하는 보스몹. 그리고 그런 보스몹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는 전혀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없는 아군들까지···. 상황은 최악이었다. ‘앞으로 80층 이후로의 모든 레이드는 이렇단 말인가? 골 때리게 하는군.’ 생각해 보면 70층을 기점으로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이 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80층부터 또 다른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배대호는 냉철하게 멀리를 굴려서 상황을 파악했다. 하나, 적의 정체를 알지 못하면 인질이 잡힌다. 둘, 적의 정체를 레이드 중에라도 밝히지 못하면 적에게 대미지를 줄 수 없다. 셋, 적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오답을 말하면 그때는 인질이 늘어난다. ‘·······미친, 사람 돌게 하는군.’ 생각하다 보니 욕이 저절로 나오는 배대호였다. 원래 보스몹이 강력한 것만 해도 충분히 극악한 난이도의 그라운드 제로였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까지 추가되다니···.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최악이라고 아니 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박추성에 윤정철까지···. 한국팀의 최강 전력과 원거리 공격의 에이스 포대 같은 사람들이 인질로 잡혔다. 절대 포기는 할 수 없었다. 저 둘을 포기 한다는 것은 한국팀의 전력의 40% 가량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 작품 후기 ============================ 80층 부터는 보스몹 공략이 더욱더 어려워 졌습니다. 이제 그냥 보스몹 보다 강한것 만으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수수깨끼에 쌓여있는 보스몹의 정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격 자체가 먹히지 않는 설정인 거죠. 음... 캐릭터들이 이게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작가인 저를 저주 할 것 같네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278화 ‘누구지? 도대체 누구인 거야?’ 정운도 이 레이드를 절대 중도 포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적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했다. ‘미노타우르스에 관해서 벗어나 보자. 그건 애당초 힌트가 아닌지도 몰라. 아니 시대적인 관련은 있겠지만···. 그 이상의 관련은 없을 거야.’ 정운은 부하몹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보스몹에 관한 정보를 직접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적의 공격패턴은 하나 뿐이었다. 엄청난 맹독을 지닌 독사를 던져서 아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독사는 독도 독이었지만 던져질 때의 기세가 무척이나 날카로워서 맞는 순간에 이미 대미지가 상당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적의 공격은 그것 하나 뿐이었고 이제 유저들도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정운도 약간은 여유있게 적의 정체를 파악 할 수 있었다. ‘····뱀, 그리고 미궁···. 잠깐 저건····?’ 정운은 문득 이 동공을 관찰하다가 천장에 그려져 있는 문양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페가수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미노타우르스는 함정이었다고 생각하자. 지금 여기에 있는 정보만 생각하면····.’ 정운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뱀, 미궁, 페가수스. 딱 하나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다만, 그걸 입으로 말 할 용기는 잘 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인질이 늘어날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정운의 옆으로 슬기가 다가와서는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운씨···. 알아낸 거죠?” 슬기는 정운의 표정을 보고 이미 정운이 정답을 알아냈다고 확신했다.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생긴 감이라는 걸가? 정운이 말도 하기 전에 표정만 보고 용케 알아낸 것이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야.” “어차피 확실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말해 버려요.” “하지만 실패하면····.” “이대로 시간만 보내면 정신력이 다 소모되는 순간 우리가 죽어요. 아무도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을게요. 그러니 말해요.” 슬기의 눈에는 정운을 향한 강한 신뢰가 새겨져 있었다. 정운은 거기서 용기를 얻고 결심했다. ‘슬기의 말이 맞아. 어차피 망설이고 있을 시간도 없다.’ 정운은 자신의 마음 속에 확신하고 있는 단어를 외쳤다. “페가수스, 미궁, 그리고 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보스몹의 정체는 메두사다!!!!” 정운이 외친 순간····. 띠리링!! [정답입니다. 보스몹의 절대 보호인 베일의 장막이 벗겨 집니다. 이제부터는 유저들의 공격이 보스몹에게 통용합니다.] 그렇게 알림창이 울리고 드디어 검은색 베일 너머로 메두사의 얼굴이 드러났다. “흐음···. 이제야 말을 할 수 있겠군.”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는 메두사를 보면서 일행은 순간 말을 잃었다. 포세이돈의 연인. 여신 아테나조차 질투하던 절세의 미인. 신화속에서 메두사의 미모는 원래 엄청 아름다웠다고 종종 묘사되고는 했다. 순간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 전원이 남녀를 불문하고 메두사의 맨얼굴을 보는 순간 전투중이라는 것도 잊고 넋을 일었을 정도였다. 입고 있는 하얀 드레스 너머로 알 수 있는 가녀린 몸매. 신이 만들어낸 것 같은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태양을 담은 것 같은 황금빛 눈동자와 황금으로 짠 것 같은 황금빛 머리카락. 무엇보다 이 세상 모든 남자를 도도하게 아래로 깔아보는 시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예전에 달기도 저런 시선을 하고 있었지만 공주병 말기 같은 느낌이었지만··. 메두사가 저런 시선을 하고 있자 오히려 무척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미모에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것도 순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정운이 안타까워했다. “제길···. 처음부터 알았다면···.”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전원 산개 포위형태!!!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레이드라고 생각해라!!!!” 배대호가 전면에 나서서 일행들을 지휘했다. 보통 박추성이 공격을 맡고 배대호는 아군의 수비를 전담해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추성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 오랜만에 배대호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공격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운 역시 좀 이르지만 승부수를 걸기로 했다. “쉐도우 아미, 뇌천신공, 아스트랄 소드!!!” 파지지지직!!! 커다란 동공에 뇌전을 잔뜩 머금은 거검들이 무수하게 나타났다. 보통 상대가 옐로우 크리스탈이라도 뜨지 않으면 아스트랄 소드는 자제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적의 강력함도 강력함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미 상당한 정신력의 소모가 있었다. 이제는 좋든 싫든 단기 결전이 아니면 답이 없다고 봐야 했다. “전원 공격!!!!” “우오오오오오!!!!” “죽여 버려라!!!!” 달려드는 유저들을 보면서 메두사는 도도한 시선을 하고 차갑게 중얼 거렸다. “···와라.” 콰콰쾅!!!! 한우리 연맹과 메두사의 레이드는 처절했다. 한우리 연맹에서도 중상자가 잇달아 나왔지만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장점을 살려서 돌아가면서 메두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베일의 장막이 벗겨진 후에 메두사는 방어스킬을 쓰면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완전히 상쇄 시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특히 정운의 아스트랄 소드와 배대호의 마법은 메두사의 방어막을 완전히 찢어 버리고 그대로 박살을 내려고 했다. “··추성이 형님. 될 것 같은데요?” “아직 몰라. 적은 옐로우 크리스탈도 뜨지 않았다. 아직 히든 스킬이 없다는 거야.” 인질이 된 상태로 동료들의 전투를 보고 있는 박추성과 윤정철은 동료들의 전투를 보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메두사의 히든 스킬이라면···. 역시 그거겠죠?” “그래···. 아마도 그거일 거다.” 보통 보스몹과 싸울 때 그 보스몹의 히든 스킬이 뭐인지에 관해서 예상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게 뭔지 감이 왔다. 메두사는 아직도 소매 속에서 소환한 뱀들만 부려서 싸우고 있었지만····. 신화속에 나오는 메두사의 진짜 전력은 저런게 아니었다. “떴다!!! 모두 떨어져!!!” 메두사의 머릿속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자 정운이 크게 외쳤다. 정운도 싸우면서 이미 메두사가 무슨 스킬을 쓸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파아앗!!! 메두사의 황금빛 눈동자가 순간 회색빛 안광을 발휘하더니 그 시야의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돌로 만들어 버렸다. “크윽··. 내 발이···.” “아아··· 으으·····.” 영국 유저중에 한 명, 프랑스 유저 중에 두 명이 그 빛을 피하지 못하고 신체의 일부, 혹은 전신이 석화 되어 버렸다. “저 사람들은 피난시켜!! 보스몹을 해치우면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이민지가 바람의 정령을 움직여서 셋을 가뿐하게 회수했다. “석화의 빛을 조심하면서 싸워!! 범위가 좁으니까 가능하면 원거리 공격으로 싸운다!!!” 상대의 히든 스킬이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면 거기에 대한 대응도 할 수 있다. 원거리 공격의 대가인 윤정철이 없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정운은 다른 유저들에게 약간 떨어져서 공격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실 윤정철이 인질로 잡힌 지금 한우리 연맹에서 원거리 공격이 가장 특기인 것은 정운과 또 한사람····. “아이스 샤이닝 로즈 프라워!!!!” 쩌저정!! 쩌정!!! 바로 프랑스의 대표인 장 그레고리 공작이다. 그가 자신의 레이피어를 한 번 휘두르자 냉기의 고드름이 수백 개가 생겨서 그대로 메두사에게 날아갔다. 참고로·····. 저 스킬의 원래 이름은···. 프로즌 샤워 LV.MAX (냉기의 고드름을 만들어서 적을 공격한다. 공격에 적중한 부분은 금방 얼어 버리며 고드름의 개수는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늘어난다.) 라는 기술이다. 절대로 아이스 샤이닝 로즈 프라워라는 마법 소녀들이 지팡이 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쓸 기술이름이 아니었다. 그냥 장 그레고리가 그렇게 부를 뿐····. 왜 그러는지는 본인만이 알 뿐이다. 어쨌든 메두사에게 멀찍이 떨어져서 원거리 스킬을 난사하는 것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메두사의 석화 같은 경우 강력하기는 했지만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안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의 빛이 유저에게 닿아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멀리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메두사를 중심으로 20미터 정도가 한계였다. ‘저 여자···. 기동력이 거의 없다.’ 정운이 보기에 메두사의 최대 약점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방어도 회피보다는 방어막으로 막기만 하는 케이스였고···. 아마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동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정운은 아스트랄 소드로 적을 원거리에서 공격하면서 드디어 상대를 레드 크리스탈로 만들었다. “극딜!!! 끝장낸다!!!” 정운은 이 길고 험난한 레이드가 드디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드 크리스탈이 되어 버리자 메두사는 자신의 몸 주변에 강력한 방어막윽 치고 최종 히든 스킬인 자폭을 시도했다. “빨리!!! 자폭하기 전에 끝장내야 되!!!” 월드 서버의 보스몹의 자폭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빌리 더 키드 때 잘 알게 되었다. 거디다 메두사는 80층의 몹이다. 자폭의 파괴력도 훨씬 더 강력할게 뻔했다. 유저들은 저마다 신들린 듯이 공격했지만 메두사가 미리 쳐둔 방어막이 대미지를 자꾸만 경감 시키고 있었다. “이런··· 늦겠어.” “큭···. 터지기 직전이다.” “그렇게 둘까 보냐!!!?” 한우리 연맹이 위기에 빠져서 메두사의 자폭을 각오한 그 순간···. 누군가가 이판사판으로 메두사의 자폭에 제동을 걸었다. “···중겸이 형님!!!” “지금이다. 빨리 딜 해!!!!” 메두사의 자폭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다름 아닌 한중겸이었다. 그는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약해진 메두사에게 인프린팅을 걸었다. “될까!!?” “몰라 하지만···. 지금 가릴 것이 없지!!!” 콰앙!!! 콰콰쾅!!!! 일행은 메두사를 향해서 극딜을 하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레드 크리스탈이 뜬 상태에서는 메두사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아악!!!” 메두사가 비명을 지르는 그 순간에 한중겸은 바로 그물을 끌어 당기는 어부의 심정으로 외쳤다. “인프린팅!!!” 순간 메두사의 이마에 인프린팅 완료를 의미하는 문장이 떠 올랐다. 그리고····. 띠리링!!! [80층을 영구 클리어 하셨습니다. 81층으로 올라갈 권리를 손에 넣었습니다.] 라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그리고 인질로 구속되어 있던 박추성과 윤정철의 구속도 풀렸다. “정철씨!!! 괜찮아요!!?” 윤정철이 구속에서 풀려나자마자 다이앤 여왕이 주변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괜찮아요. 수고 많았어요.”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다이앤 여왕의 옆에는 박추성이 머리를 긁적 거리며 중얼 거렸다. “····뭐지? 어째 기분이 좀·····.” 항상 그렇지만 솔로는 서러운 법이었다. 그리고 더 서러운 사람이 있었으니····. 정운이 이번 레이드의 마지막 위기를 해결한 한중겸에게 가서 말했다. “형님 수고 했습니다” “그래···. 얼떨결이기는 하지만 80층의 보스몹이야. 틀림없이 도움이 되겠지.” “그러게요·····. 그런데·····.” 정운은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형님 뒤에 민지 누님은 어쩔 생각이유?”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작은 목소리로 정운에게 물었다. “화 만이 나 보이냐?” “가면 쓰고 있어서 안 보이지만··. 뭐 안 봐도 뻔하죠.” “········어쩌지?” “나도 몰라요.” 레이드 끝나면 동료애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버리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이민지가 무럭무럭 분노와 찝찝함의 오로라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여자만 두 명···. 그것도 엄청 아름다운 여자만 두 명····.’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한중겸의 전과를 생각하면 찝찝할 만도 했다. ============================ 작품 후기 ============================ 일단 80층의 첫 레이드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새로운 정보와 귀중한 경험과 그리고 한중겸의 서드(?)가 생기면서 끝났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79화 <앞으로의 방침> 81층으로 올라온 이후로 한우리 연맹은 잠시 동안 휴지기를 가지기로 했다. 이번 80층의 레이드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기도 했으니 한 숨 돌리자는 의미였다. 그리고 라이벌 단체인 유니버스 연맹은 스파르타쿠스 공략에 아직도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두 층 이상으로 따돌린 상황이니 잠시 동안은 느긋하게 한 숨 돌려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런 의미로 한우리 연맹은 크게 파티를 벌여서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파티라고 해도 딱히 격식 따위는 없었다. 그냥 평범한 놀자판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팀의 전진기지에 술과 NPC웨이터들이나 요리사들을 잔뜩 데려다 놓고 즐기는 정도였다. 다른 팀들이 하는 것처럼 딱히 여자들을 데리고 유흥에 취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한우리 연맹에는 파워가 센 여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게 그리운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들 끼리 따로 모여서 나름대로 즐길 것이다. “그래도···. 정말 큰일이었어.” “그렇게 말이에요. 형님이 인질로 잡혔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운은 박추성과 대화를 하면서 그때를 생각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박추성을 잃는다는 것은 한우리 연맹으로서도 뼈 아픈 출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질을 잡는 기준은 뭘까? 처음에는 나였고··. 그 다음에는 정철이였지?” “····랜덤 아닐까요? 처음에 형님이 잡혔을 때는 가장 강한 순서대로 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정철이 형님이 잡히는 것을 보고는····.” “그래. 나 다음이면 너나 대호가 잡혀 갔겠지.” “저는 아니죠····. 대호 형님일 겁니다.” “아니, 너도 이제 우리 아래가 아니야. 너 이제 200레벨 얼마 안 남았지 않냐?” “이제 199입니다. 그런데 이 지랄 맞은 경험치가 끝장나게 안 오르네요.” “그럴거다. 너처럼 오토 돌리는 애가 그렇게 느끼는데 나는 어땠겠냐?” “············.” 갑자기 무척 미안해지는 정운이었다. 그렇게 정운과 박추성이 대화를 하는 사이에 음산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자기들 끼리 훈훈한 분위기 연출하지 말고 나도 좀 도와주지 그래요?” 음산한··. 마치 언데드 몹으로 착각할 것처럼 축 처져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한중겸이었다. “중겸아. 넌 왜 그러냐?” “왜 그러겠습니까?” 한중겸이 그걸 몰라서 물으십니까? 라는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박추성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대강 사정이 짐작이 갔다. “민지 누님이 뭐라고 합니까?” “그래···. 그리고 왕귀인도.” “왕귀인? 걔는 왜요?” 정운의 말에 순간 한중겸은 아차 싶은 표정을 했다. “왕귀인이 왜? 걔가 뭐? 아무 일도 없었는데?” “형니이임····.” 정운은 한중겸을 보고 안쓰럽다는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한중겸이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저기····.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대화를 하다 보니 애가 그렇게 모난 애는 아니더라고···.” “오···. 형님.” “중겸이 넌 도대체 뭐가 문제냐? 나이도 지긋한 녀석이···.” 정운과 박추성이 동시에 타박을 했다. 그러자 한중겸은 몹시 억울하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왜 저한테만 그럽니까? 여기 정운이 녀석도 여자가 둘인데?” “저는 왜요?” 정운이 역정을 내자 옆에서 박추성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정운이는 너처럼 무절제 하지는 안지? 하여튼 넌 예전부터····.” “아니 형님 예전 얘기는 뭐 하러····.” “예전에 너 다크 엘프 퀸을 소환수로 키우던 시절 기억 안 나냐?” “아니 그때는···. 여러 가지로 힘들 때고 여자 살결에서 위안을 찾기도 하는····.” “사내가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넌 좀 무절제 해···. 특히 술만 마시면 분간을 못하지.” “형님은 동생들 보는데서 체면을 뭉게고 그러쇼?” 한중겸은 투덜투덜 거렸지만 정운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중겸이 형님.” “······뭘?” “애당초 형님 카리스마는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와서 체면 걱정 안 해도 되요.” “오냐, 어디 한 판 해보자!!” 한중겸과 정운이 잠깐 서로 헤드락을 걸면서 놀았다. 다른 사람들은 저 둘이 뭘 하나 싶었지만 그냥 워낙 친한 사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신경 꺼 버렸다. 그렇게 잠시 투닥 거리고 난 후에 정운이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진지하게···. 도대체 왕귀인 하고는 어떻게 된 거에요? 정말···.” “아니···. 그게 애가 뭐···.” 정운의 말에 얼렁뚱땅 넘기려고 하는 한중겸이었지만 그 태도로만 해도 충분했다. 아마도 한중겸은 정말로 왕귀인을 세컨드로 들인 모양이다. “····민지 누님이 뭐라고 그래요?” “뭐, 잔소리는 좀 했지.” 좀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라고 정운은 생각했다. “하지만···. 나하고 민지 사이의 일이고 적당히 인정하기로 했어. 일단 첫째가 자신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했고 말이야.” “········그거면 되는 거예요?” 정운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사실 정운도 슬기와 세레나라는 여자 둘을 데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 정운의 경우는 상당히 파란만장 했다. 원래 슬기뿐이었는데 어떤 연유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세레나와 인연이 생겼고··. 그 인연이 발전해서 진짜 마음이 싹을 틔워 버렸다. 그리고 난 후에 슬기에게 세레나에 대해서 인정 받는 것에도 상당한 삐걱거림이 있었다. 지금은 어찌어찌 괜찮게 되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아슬아슬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중겸은 뭐 그게 대수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라는 태도를 하고 있었다. “뭐···. 정운이 네가 온게 21세기라고 했지? 나나 민지하고는 차이가 좀 있는 거다.” “····아니···. 그럴··· 그런가?” 정운은 생각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가? 싶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생각의 진화는 어떤 의미로는 문명의 바전 만큼이나 빠르다. 원래 같으면 정운과 한중겸의 사이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아니라····. 명절 때 조상님 절 받으십시오. 라고 해야 할 정도의 세대 차이가 난다. 그리고 한중겸이 살던 시대에는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였지만 그래도 아직 남자들이 여러 여자 거느리는것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식의 사고 방식이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의 시골에는 본처가 아이를 낳지 못해서 씨받이. 즉,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의 후처를 들이는 것이 비일비재하기도 했다. 사실 씨받이는 후처도 아니다. 그냥 아이를 낳기 위한 일종의 대리모 같은 개념의 여성인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말하면 아들을 낳기 위한 여성이다. 딸을 낳으면 그냥 논이나 몇 마지기 주면서 씨받이하고 같이 내보내 버리는게 보통이었다.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인권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기. 같은 행동이었지만··. 예전에는 사대부니 양반가니 하는 집안에도 흔한 일이었다. 심지어 씨받이와 남편이 합방을 하는 날에는 본처의 정성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방문의 바로 앞에 앉아서 기도를 하거나 경을 읽기도 했다고 한다. 뭐···. 현대인의 기준으로는 절대 용납이 안 되는 행위인 것이다. 만약 지금 그렇게 한다고 하면 어엿한 범죄다. 사실 현대에도 이런 세대차에 따른 인식의 범위는 약간이지만 남아 있다. 대도시와 떨어진 시골의 마을에는 인구가 고령화가 되어 있고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깜짝 놀랄만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가끔씩 있다. 정운과 한중겸 정도의 세대차가 나면 오죽 할까? 거기다 이민지도 한중겸 보다 더 윗세대의 사람이니 말이다. “사실···. 민지 누님을 본처로 한다고 하기만 하면 왕귀인 정도는 봐 주겠다고 하더라고? 이미 매정하게 내칠 수도 없지 않냐고 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는 한중겸을 보면서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내 일 아니니까 뭐라고 말은 안하겠습니다. 그럼 이번에 메두사를 소환수로 만든 것 때문에 민지 누님하고 왕귀인···· 형수님?” “그냥 너 편한대로 불러라.” “으음····. 음···. 예 형수님들이 뭐라고 한다고요?” 정운이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형수 소리를 붙여주자 한중겸은 입가에 미소를 씨익 띠웠다. “뭐··. 그런 거지. 아니··. 내가 세 번째 첩을 들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데?” “그건 형님이 어떻게 할지 뻔하니까 그렇죠.” “그건 네가 어떻게 할지 뻔하니까 그렇지.” “·············.” 정운과 박추성이 동시에 말했다. “···뭐가 뻔 한데요?” “몰라서 물어요?” “몰라서 묻냐?” “·············.” 몹시도 억울한 표정을 하는 한중겸이었다. 하지만···. 별로 억울할 일은 없었다. 모두들 언젠가 일어날 뻔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메두사한테 듣고 싶은 말들이 많은데요?” 정운의 말에 옆에서 박추성이 눈을 살짝 치켜 뜨면서 말했다. “너도 관심 있냐?” 정운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그런 의미 아닌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무슨 의미인데?” “그냥···. 메두사가 파우스트와 어떤 계약을 하고 여기에 있는지를 알면 앞으로의 공략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정운의 말에 박추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럴 듯 하다고 느꼈다. 이번 80층 플레이에는 상당한 위험이 있었다. 까딱하면 이번에야 말로 사망자가 나올 수 있었다. 그것도 박추성, 윤정철이라는 주력 멤버가 말이다. 앞으로 그런 일은 사전에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보는 꼭 필요했다. “그럼···. 한 번 대화해 볼까? 메두사.” 한중겸이 메두사를 소한하자 메두사는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척 봐도 날 건드리지 마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성깔 있다 이거군····.’ 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메두사. 잠깐 우리하고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얘기? 무슨 얘기. 너희들 사내놈들이 단체로 날 범하기라도 하기 위한 시작이냐?” 메두사의 말에 정운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랬다가는 난리칠 사람들이 우리 일행 중에 몇 명이나 있거든····. 그리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 “믿을 수 없다.” 딱 잘라서 말하는 메두사를 보면서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 한중겸을 바라봤다. “나 보고 어쩌라고?” “형님 소환수잖아요.” “난 이미 왕귀인 때문에 내 말 안 듣는 소환수라는 것에 익숙해 졌거든.” “··········.” 후한말의 무장들에게 깍듯하게 주군 소리 들으면서 확실하게 군기를 잡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한중겸이 불쌍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메두사한테는 듣고 싶은 정보가 많았다. 정운은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말했다. “어쨌든 너한테는 묻고 싶은게 있어. 성실하게 대답해 주면 우리도 널 거칠게 대하지는 않을 거야.” “거짓말 하지 마라.” 메두사는 마치 가당치도 않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정운이 오히려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운의 반문에 메두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정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희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소유하고 싶어 하고, 그리고 더럽히고 싶어 하지.” “아니 그건 좀 과한 편견이라고 보이는데?”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난 그저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에게 사랑받고, 신에게 저주 받았다. 여신도 질투하는 미모? 이런건 가지고 태어나고 싶지도 않았어!!!” ============================ 작품 후기 ============================ 3월달도 벌써 반이 넘게 지났네요. 정신없이 글만 쓰다 보니 날짜 감각도 가물가물합니다. 이 달도 부디 페이스를 지킬 수 있기를 스스로 바래 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0화 메두사는 아무래도 쌓인게 많은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정운은 대화를 하는 와중에 이상한 것을 눈치 챘다. 메두사의 신화에 그녀가 포세이돈에게 사랑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해서 아테나에게 신의 사랑을 받은 대가로 저주를 받았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워낙 유명한 얘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한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아니···. 지극히 간단한 질문이야. 메두사 당신···. 실존 인물인가? 신화속에 나온 가상의 인물이 아닌 거야?” 악마의 게임에 참여한 정운은 악마도 믿었고··, 그리고 세레나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천사도 믿었다. 하지만 메두사가 말하는 올림푸스 신들까지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미처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한 얼굴로 메두사를 주목했다. 그러자 메두사는····. “대답할 의무는 없다.” “제길··. 좀 순순히 협조 좀 하면 어디 덧나나?” 옆에서 중얼 거리는 이보영의 목소리를 듣고 메두사는 날카로운 눈을 하며 말했다. “몸이 인질로 잡혔다고 마음도 인질로 잡힌 것은 아니다. 순순히 네놈들 편으로 돌아 설 것 같으냐!!?” 잔뜩 성이 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는 메두사를 보면서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골치인데요? 왕귀인 때 보다 훨씬 더 골치에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누가 아니래냐···. 젠장, 어떻게 하지?” 한중겸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때 끼어든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내가 말을 해 볼까?” “···왕귀인? 네가?” 한중겸은 또 자기 멋대로 나온 왕귀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귀인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동병상련이라고···. 내가 가장 말이 잘 통할 것 같은데? 어때?” 왕귀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했다. 한중겸은 정운을 보면서 괜찮겠냐? 라는 눈을 했다. 그리고 정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대로 지지부진하게 있는 것 보다는 일단 뭐라고 해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왕귀인은 잠시 일행들과 자리를 달리해서 메두사에게 뭔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약간 멀리 떨어져서 그걸 지켜보던 일행들은 무슨 말인지 궁금했지만 일부러 엿듣지는 않았다. 만약 그러다가 들키면 완전히 신용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인지 참····.” “일단 믿어 보자고요.” 정운과 한중겸은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일단, 최소한의 협조는 하지. 하지만 너희들이 게임의 클리어을 포기하거나 내 몸을 노린다면 이 거래는 전부 없던 거다.” 메두사의 태도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걸 보고 정운은 왕귀인을 보면서 말했다. “무슨 말을 한 겁니까?” “비밀.” “···········.” 괜히 더 궁금해지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메두사에게서 본격적으로 정보를 얻어 내는게 우선이었다. “잠시 자리를 옮기지.” “좋다. 듣는 사람은 적은 편이 좋겠지.” 그렇게 정운은 본격적인 취조를 위해서 일단 자리를 옮겼다. 정운과 한중겸 그리고 메두사만 있는 작은 방으로 자리를 옮긴 정운은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우선··. 메두사. 당신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그 메두사 맞지?” “그래.” “실존인물···· 이고?” 정운의 으문 스러운 말에 메두사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원래의 나라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아.” “그럼 지금 당신은 뭐지?”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메두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인간의 상념이 뭉쳐서 만들어지는 영혼들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이나 갈망들이 뭉쳐서 만들어지는 요괴나 정령들··. 그리고 실존하지는 않지만 전설이나 신화의 전승에 의해서 태어나는 영혼들까지··. 메두사의 경우 원래 존재하는 여성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의 존재를 신화로 만들어내고 그런 신화가 입에서 입으로 전승 되면서 그녀의 존재는 어느새 생겨난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과거까지 모두 말이다. “그렇다면···. 별로 포세이돈이니 아테나에 대해서 증오심 같은걸 가질 일도 없잖아? 어차피 그것도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내 말 제대로 못 들었어? 그건 현실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나에게는 있었던 일이라고, 나라는 존재 자체가 그 신화에서 태어난 존재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으음·····. 알 것 같기도 하긴 하네요.” 사실 잘 실감은 안 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건수에 관해서 입씨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딱 하나면 된다. 앞으로의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으로는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거기에 관해서 충분히 대비를 해 두자. 라고 말이다. “그럼 다음 질문. 파우스트와는 어떤 관계지?” “내 영혼에 족쇄를 채운 존재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일단 내 영혼의 근간이 지배당하고 있는 한은 난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의 룰에 따라야 해.” “과연···. 그렇다면 파우스트에게 지켜야 할 의리나 충성심은···.” “당연히 없지!! 미쳤어!!?” 메두사는 펄쩍 뛰면서 말했다. “내 영혼을 구속하고 있다고, 내가 아무리 인간들의 상상에서 태어났고, 괴물로 불린다고 해도 멋대로 장난감 취급당할 의무는 없어. 그 개자식····.” 메두사가 이를 갈면서 말하는 것을 보고 정운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연기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지. 충분히 동료 취급해도 되겠어.’ 만약 메두사가 파우스트에게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영혼이었다면 앞으로 레이드에 있어서 없느니만 못한 큰 장예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파우스트에 대한 증오심은 진짜인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이제 진짜 중요한 것···. 혹시 앞으로 윗 층에 대한 공략법을 알아? 하다못해 누가 있는지? 약점이 뭔지?” “알 리가 없잖아? 난 내 밑으로 밖에 몰라.” “····망할.” 정운은 가장 기대하고 있던 정보가 꽝이라는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80층부터의 레이드는 엄청나게 힘들어 졌다. 적의 정체를 모르면 일단 인질부터 잡히고 보는 상황인데··. 그게 엄청나게 치명적이었다. “하다못해 인질이 잡히는 법칙에 관해서는?” “그것도 없어. 무작위로 인질이 한 명씩 잡히는 것뿐이야. 일단 도전하기로 하면 그 파티에서 아무나 막 잡히는 거라고.” “그렇군····. 잠깐, 그렇다면····.” 정운은 잠시 생각을 굴려봤다. 뭔가··. 잘만 하면 뭔가 대안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인질이 잡히는 것은 어쩔 수 없얻 최소한 중요한 주력 멤버가 인질로 잡히는 것은 잘하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될까? 아니··. 가능할 거야. 아마도····.’ 정운은 일단 자신의 머릿속에 떠 오른 가설은 나중에 실전에서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하지. 어째서 우리한테 협조하기로 마음을 바꾼거지? 아까 무슨 대화를 한 거야?”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한 거지. 난 자유로워지고 싶어. 적어도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제약 당하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 강제로 붙들려 있는 이 상황은 마음에 안 들어.” “그렇군·····. 그래서 우리가 게임을 클리어 했을 때 영혼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건가?” “그래. 난 그거면 족해. 너희들 살아있는 인간처럼 천박하게 어떤 소원을 빌지는 않을 거야.” “···········.” 애당초 유저도 아니고 그저 한중겸의 소환수일 뿐인 메두사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뭐 어차피 본인이 관심 없다니 잘 된거지.’ 정운은 거기까지 메두사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고 난 후에 떨어지면서 말했다. “일단 우리 중에 그 누고도 게임의 클리어를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그건 약속하지.” “일단 믿겠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당신도 도움을 주기를 바래. 모처럼 생긴 주요 전력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하지.” 그렇게 해서 정운은 메두사에게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다음 레이드의 작전을 차분하게 짜기 시작했다. 81층에 올라 온지도 한 달이 지나가던 무렵··. 한우리 연맹은 필드에서 사냥과 퀘스트를 통해서 착실하게 레벨업을 해가고 있었다. 바뀐 레이드의 시스템은 여러모로 걱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만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개개인의 힘을 올려서 전력을 최대한 증강 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해도 자신의 힘.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바쁘게 레벨 업에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운도 꾸준하게 준비를 했다. 정운이 하고 있는 준비라는 것은 여러 가지였다. 우선 사냥은 오토를 돌리는 것 만해도 충분했다. 81층의 사냥터는 경험치도 보상도 충분했다. 다만 정운이 이제 200레벨을 코앞에 두고 있다 보니 아무리 충분한 경험치도 정운의 레벨업에 그다지 큰 도움이 안 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운은 그것과 별개로 보스몹 지역을 여러번에 걸쳐서 정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하다가 그것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손이 비는 다른 유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최대한 꼼꼼하게 정찰을 계속하고 있었다. 81층의 보스몹의 지역은 황야였다. 커다란 황야에 막사 하나만 차려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접근하려고 하면 수천기의 병사들이 나와서 정운을 공격했다. 정운은 적의 갑옷이나 무기를 봤을 때 중국식의 병사라는 것을 알았다. 정운은 적을 상대하면서 후한말의 장수들을 불러서 적의 연대를 알 수 있겠느냐? 라고 말했다. 그러자 관우가····. -저희들과 거의 비슷한 시기의 복식과 진형입니다. 다만····. “다만?” -저희가 아는 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막사의 배치라던가 병사들의 출동진형을 보면 약간 오래된 정공법을 고수하고 있는게···. 저희 보다는 약간 앞 세대의 인간 같습니다. “약간이라면 어느 정도?” -그것까지는 저도 잘····. 머리 본다면 600년 정도전 까지는 볼 수 있을 것 같스니다. “그 시대면 어느 정도지?” -춘추전국시대···. 말기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정운은 일단 관우의 말을 새겨 들으면서 꾸준하게 정찰을 계속했다. 상대가 누군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관우의 조언과 계속되는 정찰로 인해서 범위는 상당히 좁혀냈다. 1. 상대는 중국 쪽의 인간이다. 이건 거의 확실했다. 쓰는 무기도 그렇고 군대의 막사 디자인도 그랬고 딱 고대 중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2. 연대는 후한시대 이전이다. 관우의 증언을 들어봐도 적어도 후한 시대 이후는 아니다. 틀림없이 그 전시대였다. 3. 영역이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전쟁터의 막사로 되어 있다. 이건 중요하다. 적어도 이번 층의 보스몹이 궁전보다 전쟁터가 더 익숙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즉, 장수중에 한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정도만 해도 범위는 꽤 좁아졌다. 하지만 그 좁은 범위 안에도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이 너무 많았다. “빌어먹을···. 이놈의 중국은 쓸데없이 위인이 이렇게 많아!!?” 스카이 타운의 도서실에서 빌려온 문헌을 조사하고 있던 정운은 책을 덮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범위는 아마도 후한 말에서 진나라··. 아니 춘추전국 시대까지 확대해야 할 거야. 누굴까? 시황제 시대에만 해도 명장 소리를 듣는 인간이 제법 있으니···. 백기는 이미 나왔지?’ ============================ 작품 후기 ============================ 81층의 보스몹은 누구로 할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아끼지 말고 이쯤에서 나와야 할 것 같은 인물이라서 과감하게 지금 써 버리기로 했습니다. 원래 같으면 90층대 초반도 이 사람 네임드면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너무 아끼지 말고 지금쯤에 나와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1화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 한다> 정운은 머리를 감싸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만약 지금까지 조사한 인물을 하나씩 다 시험해 본다면 싸우기도 저에 한우리 연맹이 모두 인질로 잡힐 것이다. 결국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말인데 아직까지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뭔가··. 뭐가 확실한 단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리자 옆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너무 혼자서만 다 짊어지고 생각하려고 하지 마요” “응? 아···. 세레나 오늘 사냥 간 것 아니었어?” 어느새 정운의 옆에는 커피잔을 가지고 다가온 세레나가 있었다. “예. 일찍 왔어요. 이번에 진행중이던 퀘스트도 잘 해결 돼서요.” “그래···. 다행이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의 허리를 붙잡아서 당겼다. “앗!!” 그리고 정운은 당황하는 그녀를 자기 무릎위에 올려두고는 가벼운 스킨쉽을 시작했다. 셔츠 밑으로 슬며시 파고 들어가는 정운의 손길에 세레나는 몸이 살짝 굳었지만 그래도 반항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정운의 여자였다. 대신에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말했다. “많이 고민하고 있었죠? 보스몹의 정체?” “응. 그러니까 위로 좀 해 줘.”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의 옷속의 손을 눔직여서 그녀의 속옷 속까지 슬금슬금 손을 밀어 넣었다. 세레나는 그런 정운을 보면서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더욱더 붉혔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예쁘단 말이야. 순진한게 매력인 여자는 현실에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세레나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저렇게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애써 마주 할 때가 정운이 그녀를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평소에는 냉철하고 흐트러짐 없는 그녀가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약한 모습이 그녀를 한 층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미 연인이 된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그래도 항상 다가갈 때면 이렇게 순진한 아가씨 같은 반응을 하는 그녀가 정운으로서는 가슴 두근거리는 정운이었다. 어느새 정운은 세레나의 옷을 가슴 위로 올려서 드러난 가슴의 앙증맞은 유실에 입을 맞췄다. “저··· 마스터, 하다 못해 침실에서···.” “침실로 가면 금방은 안 끝날 거야? 한참동안 괴롭힐 건데? 그래도 돼?” “············.” 세레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를 품에 안고 옆에 있는 침실로 데리고 가서 눕혔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는 그녀의 몸위에 자기 몸을 서서히 실어갔다. ‘확실히··. 나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자지···.’ 정운은 고마운 사실을 알게 해 준 세레나를 품에 안으면서 그냥 머리를 비웠다. 자기 혼자서 고민해서는 끝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눈앞에 있는 아름답고 사랑스런 연인에게 집중하고 싶을 뿐이었다. 다음날···. 정운은 연맹 회의를 열었다. 연맹 회의라는 것은 레이드의 시기,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퀘스트, 그리고 유니버스 연맹의 움직임 등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누구나 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만···. 누구나 주최 할 수 있도 록은 했지만 실제로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정운이나 다이앤 여왕이 많이 열었고, 가끔씩은 장 그레고리가 열고는 했다. 당연했다. 어지간한 네임드로는 각국의 리더에게 오라 가라고 하기 어렵지 않은가? 박추성이나 배대호라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애당초 앞으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드문 타입들이었다. 어쨌든 정운은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 제가 나눠드린 서면 자료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번 81층의 보스몹은 동양의 인물. 그 중에서도 중국계의 장군들 중에 한명인 것 같습니다.” “범위가 너무 넓은데? 중국에 장수가 한 둘도 아니잖아?”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후한말 이전의 인물. 하지만 너무 고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춘추전국 시대에서 후한 말 정도의 사이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많아.” “앞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자료를 나눠 드리고 혹시나 싶은 힌트가 있을지 알려달라는 거니다.” 정운이 나눠준 자료를 보면서 유저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사실 자료만 봐서는 알 길이 거의 없었다. “흐음····. 많아도 너무 많은데····. 아!! 힌트가 하나 더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유저들 사이에서 한중겸이 말했다. “형님. 힌트가 뭡니까?” “여기는 81층이잖냐?” “그렇죠?” 새삼 스럽지만 당연한 말이었다. “전에 77층에서 백기가 나왔지?” “···그랬····죠.”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럼 적어도 81층이면 이름값이 백기보다는 높지 않겠냐?” “··········예. 아마도 거의····.” 정운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백기는 상당한 명장이었다. 그 이름값만 보면 동시대의 최상급 장수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런 백기보다 확실하게 높은 이름값을 대려면, 아니 실제 전력보다는 아마 대중적인 유명세가 더 중요할 거야. 메두사의 예도 있고····.’ 정운은 자신의 리스트에서 수많은 후보들의 이름에 하나하나 엑스표를 쳐 나갔다. ‘애는 아니고··, 애도 아니야. 이름값이 비슷비슷한 인간은 전부 제외하자. 77층과 81층이면 그 사이에 확실한 격의 차이가 나야 해. 얘까지는 넣어볼까?’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 하면서 백기보다 확실하게 이름값이 높은 장수를 세 명 정도 간추렸다. 정운이 세 명의 이름을 밝히자 유저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흠···. 세 명이라. 이 정도면 사실 레이드에 시도 해 볼만한 숫자 아니야?” “아니··. 100% 확실한 게 아니니까···.” “여기서 100%를 바라는게 말이 돼?” “그렇게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여기 남은 세 명중에 없으면 어떻게 해?”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만큼 인질을 잡힐지도 모른다는 예측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 연맹원 들을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우리 한우리 연맹은 이제까지 단 한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레이드를 클리어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희 연맹이기에 제가 감히 제시 할 수 있는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정운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모아졌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정운은 입을 열었다. “인질에 대한 예측입니다. 그러니까·····.” 정운이 설명을 하자 유저들은 점점 그 말에 빠져 들어갔다. 정운의 설명은 딱히 획기적이다. 라고 할 만한 의견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콜럼버스의 달걀이랄까? 왜 이제까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 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하면 최초의 한명은 랜덤이라도 적어도 그 후에 인질로 잡히는 사람은 조절 할 수 있습니다.” 정운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무작정 랜덤으로 인질이 잡히다가 주력 멤버가 잡히기라도 하면 손해지···.” “아니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최초의 한명은 어쩔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정말 어쩔 도리가 없죠. 하지만 희생은 최소화 시키는게 어딥니까? 그리고 일단 레이드에 성공하기만 하면 인질도 무사 탈환 할 수 있고···.” 유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사실 정운의 의견이 있다고 해서 80층대의 레이드가 쉬워 졌다거나 위험 부담이 크게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난이도가 100만큼 올라갔다면 정운의 아이디어로 그 난이도가 50~70 정도로는 내려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것만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감지덕지이기는 했다. 짝!!! 웅성거리는 연맹원들을 보면서 장 그레고리가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끊었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자, 일단 나올 의견은 모두 나왔군요. 이제 결정할 것만 남았습니다. 좀 더 연구를 해볼 것인가? 아니면 아름답게 도전을 해 보던가?” 아름답게 어쩌고 하는 것은 접어두고··. 장 그레고리의 말이 맞기는 맞았다.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은 이제 남은 것은 결단뿐이었다. 거기에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여장부인 다이앤 여왕이었다. “어차피 100% 안전한 레이드는 없습니다. 만약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인질역의 총대는 제가 짊어져 보죠. 일이 틀어져서 구원받지 못한다고 해도 원망은 안 하겠습니다.” 여자인 다이앤 여왕이 이렇게 배짱 좋게 나오자 다른 남자들이 차마 꼬리를 말 수는 없었다. “다이앤 여왕이 인질 역을 하는 것은 손해죠. 처음에 한 번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다음에는 제가 하겠습니다.” 윤정철이 그렇게 나오자 프랑스의 다른 유저가 고민하면서 말했다. “·····음, 전력으로 따지면 다이앤 여왕전하도, 그리고 윤정철 씨도 아깝죠. 여기서는···. 좀 잔혹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일단 포로 신분인 사람들이 총대를 짊어져야 할 것 같은데요?” “·············.” “·············.” “·············.” 말을 꺼낸 유저는 프랑스의 고위 유저중에 한 명인 피에르 아르네제데 라는 남자였다. 날카로운 인상의 메이지로 평소에는 과묵하지만 실제로 프랑스의 NO.2격인 남자이기도 했다. 그가 인질은 포로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말을 하자 포로들을 나올 말이 나왔다는 듯이 움츠리고 다른 유저들은 침묵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진 와중에 장 그레고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봐. 내 친구 피에르여···. 인질을 강제하다니? 내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방식을 싫어한다는 것 잘 알잖아?” 장 그레고리가 그렇게 말했지만 피에르 아르네제데라는 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 내가 한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아도 누군가의 입에서는 어차피 나와야 할 말이었습니다.” “···········.” 장 그레고리는 입맛을 쓰게 다셨다. 사실 말은 맞는 말이기도 했다. 레이드에서 인질로 잡힌다는 말은 그 레이드에서 아무런 전투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전체적인 안전성을 고려해도 레이드에서 인질로 잡히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포로들이 하는게 맞았다. 사실 다른 유저들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체면 때문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정작 포로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때 정운이 피에르에게 말했다.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피에르씨.” “일리? 엄밀히 말해서 일리 정도가 아니라 제 말이 정답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저처럼 결정 할 겁니다.” “예. 머리로만 결정을 내리면 그렇죠.” “하찮은 휴머니즘 입니까?” “피에르, 말은 가려서 하자고.” 장 그레고리는 날카롭게 가시를 새우고 있는 자기 부하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정운은 괜찮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피에르씨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잠시 말을 끊고 나서 일행에게 말했다. “사실 제가 세운 작전은 아직 실전 투입도 되지 않았고 그게 될지 안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역시 피에르 씨의 말대로 그 작전은 포로 신분에 있는 분들에게 부탁 드리도록 하죠.” 정운인 그렇게 말을 하자 포로들의 얼굴은 벌레 씹은 것처럼 변했다. 아무리 머리로 자신들이 짊어질 총대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 리스크를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운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당근을 하나 제시했다. “단, 이번에 인질로 잡혔다가 풀려나는 사람들에게는 연맹 차원에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골드, 아이템. 적절한 형태로 충분한 보상을 주도록 하죠.” “·············.” “·············.” “·············.” 정운의 말에 포로들의 얼굴에는 살짝이지만 망설임이 생겼다. ============================ 작품 후기 ============================ 총대를 매야 한다면 누가 맬까요? 1. 가장 강하고 용감한 사람. 2. 가장 위치가 약한 사람. 1번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현실에서는 2번인게 보통이죠. 사실 중요 인물을 아껴야 단체의 여력이 충분히 남는다는 관점으로 보면 1번은 오답이기도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2화 대부분의 인간은 어렵고 위험한 길은 꺼리는 법이다. 당연한 일이다. 낭떠러지에 삐거덕 거리며 걸려있는 흔들다리를 보면 누구나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냥 가라고 하면 100명중에 99명은 싫다.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흔들다리 건너편에 황금 덩어리를 가져다 놓으면····? 그럼 100명 중에 50명? 아니 어쩌면 더 많이 건너갈지도 모른다. 같은 수준의 위험이라고 해도 그 위험의 너머에 보상이 있느냐? 없느냐?로 인간의 배짱은 전혀 달라지는 법이다. 위험도 자체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데 말이다. 그때 정운의 대화를 듣고 포로중에 나탈리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자원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인질의 위험을 부담하죠.” 그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두 명 정도는 더 필요한데··. 다른 자원자는 없나?” 정운이 말하자 몇 명이 눈치를 보다가 서서히 손을 들었다. 정운은 선착순으로 두 명을 더 선택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약속하지. 절대로 허무하게 버리지는 않겠어.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좀···.” 한 명이 몹시도 불안해 보이는 시선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중요하 역할 선정은 끝났다. ‘이제 준비는 되었네. 본격적으로 레이드를 준비하자.’ 정운은 그렇게 결심했다. 회의가 끝나고 포로들 사이···. 한명의 남자가 나탈리아에게 말했다. “나탈리아. 너 무슨 생각으로 인질역에 자원한 거야?” “응? 무슨 문제라도 있어?” “···말이라고 해? 죽으면 어쩌려고!!?” “헤에···. 내가 죽는건데 당신이 왜?” 나탈리아의 말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당연히 걱정 되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이름은 바실리 라흐마니노프. 나탈리아와 같은 러시아 출신의 포로 신분의 유저이다. 그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나탈리아는 콧 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하아·····? 당신이 왜?” 나탈리아가 반문하자 남자는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를 보면서 나탈리아는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설마··. 당신 나한테 마음이라도 있는 거야?” “····우리 사이에 마음 하나 없을까?” “우리 사이? 갈수록 가관이네···.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 나탈리아의 기가 찬다는 듯한 얼굴에 바실리는 적지 않게 상처 받은 얼굴을 했다. 그런 그에게 나탈리아가 계속해서 몰아붙이듯이 말했다. “설마 몇 번인가 섹스 좀 한 것 가지고 내가 당신 여자라도 된 것 같았어?” “···············.” “그건 그냥 좀 즐긴거야. 가끔씩 여자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럴 때는 뒤탈 없이 즐길 파트너로 아무나 찍는 거지. 그 이상을 기대한 거야? 나한테? 당신이?” 나탈리아의 말에 바실리는 점점 더 작아지는 듯한 자신을 느꼈다. 그도 알고는 있었다. 나탈리아가 환하게 웃어주는 것은 강자. 즉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있는 남자의 앞에서 뿐이다. 지금 나탈리아의 레벨은 125, 거기에 비해서 자신의 레벨은 107이 다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나탈리아를 지켜 줄 수 있다고 말할 레벨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몇 번인가 살을 겹치고 그녀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와장창 하고 부서진 것이다. 나탈리아는 상처받은 바실리의 얼굴을 보고 귀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못난 남자군···. 뭐야? 당신이 무슨 17살짜리 애야? 여자한테 차인 것 정도 가지고 풀이나 죽고···.” “나는·····.” “됐어. 앞으로 섹스 파트너는 다른 사람으로 알아볼게. 난 질척거리는 남자는 질색이야.” 나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등을 돌려서 자리를 떠났다. 뒤에 남은 바실리 라흐마니노프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건 나탈리아가 알 바가 아니었다. ‘하여튼···. 머리 나쁜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나탈리아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사랑에 목매는 인간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탈리아는 상당히 아름답게 태어났고, 현실에서도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남자들을 쥐고 흔드는 것에 익숙했다. 뭐, 정운처럼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상 남자들 중에 80%정도는 자기 뜻대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여자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자는 두 가지로 나뉜다. 기대서 보호 받을 수 있는 남자. 그 이외의 기타 등등. 정운이나 다른 한국팀의 강자들은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남자들이었다. 그런 남자들이게는 얼마든지 웃어주고 헌신해 줄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남녀관계라는 것은 철저하게 기브 앤 테이크여야 했다. 자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라고 말하는 남자들은 잔뜩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자신의 미모를 본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한다. 그녀는 거기에 관해서 불평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운이 좋게도 자신은 충분히 아름답게 태어났다. 자기한테 세상이 유리하게 굴러가는 것을 보고 불평을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여자를 가지고 싶다면 남자는 당연히 그런 여자를 가질만한 자격. 즉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었다. ‘왜 그런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모두들 마음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지 모르겠어···. 머리 나쁜 것도 정도가 있지.’ 이번에 그녀가 자원한 인질역도 그랬다. 그녀는 오히려 그게 안전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레이드에서 강적이 나타나서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누가 먼저 죽을까? 틀림없이 약한자들부터 먼저 죽을 것이다.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만약 인질로 있는 다면 적어도 레이드가 실패하는 그 순간까지는 살 수 있다. 한우리 연맹의 리더인 정운의 성격을 생각하면 사실상 가장 나중에 죽는다고 봐도 좋았다. 적어도 레이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100% 안전이 보장되는 인질역은 그녀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역할이었다. ‘난 살아남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의미로는 시베리아의 극한 보다 차갑고 냉철하리만큼 강한 여자. 그게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라는 여자였다. 레이드 개시일. 한우리 연맹은 모두 모여서 자리에 함께 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오로지 작전대로 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돌입하도록 하죠.” 한우리 연맹은 보스몹의 레이드를 위해서 막사쪽으로 전진했다. 어느 정도 다가가자 항상 그렇듯이 적들의 병사들이 수천기가 나타났다.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정운이 쉐도우 아미를 소환하거나 슬기나 배대호가 광역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선발대 앞으로!!” 정운이 명령을 하자 영국의 마이클 핸더슨을 필두로 해서 가장 앞쪽으로 포로 유저들을 주축으로 한 유저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다른 유저들은 손을 쓰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이 전투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밀리지 마라!!!” “전진!! 대형을 흩트리지 말고 중앙을 보호해라!!” “돌파가 목적이다. 방어에 충분히 신경 써!!!” 쾅!! 콰아아앙!!! 거친 폭움이 울리고 고함 소리가 난무했지만 정운을 비롯해서 주력 멤버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게 통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나을거야.’ 정운은 원래 최초의 인질이 잡히는 것은 완전 랜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박추성이 잡히기 전에 한 행동이었다. 그때 한우리 연맹은 서둘러서 보스룸으로 가기 위해서 가는 길에 거추장스러운 몹들을 가장 빨리 처리하면서 이동했다. 즉, 미노타우르스 2세대 몹들 대부분이 박추성의 무한의 영사에 잘려나갔던 것이다. 어쩌면 보스몹에게까지 돌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열심히 싸운 상대가 인질로 잡히는게 아닐까? 라는 가설을 세운 정운은 시작부터 주력멤버를 아끼기로 했던 것이다. 덕분에 이동은 좀 느렸지만 그래도 시도 해 볼 가치는 있었다. “으아아아앗!!!” 콰콰콰!!!! 마이클 핸더슨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아무래도 보스몹 돌입하는 과정에서 모든 주력멤버를 빼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딱 한명 고수를 집어 넣은게 마이클 핸더슨이었다. 레벨은 149, 영국의 NO.2이며 탄탄한 방어력에 기초한 중갑기사 캐릭터인 그는 전방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들을 모두 받아내면서 차근차근 전진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럭비공 같은 타원형의 진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는 일행은 기어코 막사의 중앙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마이클 핸더슨이 막사에 손을 대자···. 띠리링!! [81층 보스몹의 영역에 도착했습니다. 영역의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나왔다. 마이클 핸더슨은 뒤쪽에 있는 일행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곧 돌입합니다. 모두 준비 하십시오!!!” 그가 말을 한 것도 없이 모두들 이미 준비는 만전이었다. 마이클 핸더슨을 예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띠리링!! [보스룸 진입을 선택하셨습니다. 보스몹의 이름을 말하시오.] “81층 보스몹의 이름은···. 악의!!. 연 나라의 무장인 악의다.” 정운이 간추린 세 명의 후보 중에 한명의 이름이 바로 악의였다. 악의,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장수중에 한명으로 조, 초, 한, 위 나라의 연합군을 이끌고 강대국 제나라를 징벌해서 거의 멸국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남자였다. 사실상 제나라의 두 개의 성인 거와 즉묵 만을 남겼고 제나라를 풍전등화까지 몰고 갔지만 제나라 첩자의 모함에 의해서 실각해 버렸다. 그때의 모함만 아니었다면 제나라는 세상에서 지워 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일 진시황이 중화를 통일하는 역사와는 다른 타입으로 시대가 흘러갔을 지도 몰랐다. 어쨌든 정운이 생각하기로 명장이면서 백기보다 이름값이 높은 장군. 그 리스트 1번이 악의였던 것이다. “···됐나?” 누군가가 중얼 거린 순간···. 띠리링!! [오답입니다. 패널티로 레이드 시에 인질을 한 명 잡겠습니다. 레이드 실패시에 인질은 죽음에 처해집니다.] “빌어먹을!!! 틀렸었나?” 악의는 틀림없이 명장군이다. 후대에는 그 제갈량조차 자신의 목표로 명재상 관중과 명장 악의로 삼았다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답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모두가 보스룸으로 이동했다. 이동한 보스룸은 커다란 황야였고 거기에는 베일에 감싸인 한 명의 남자만이 커다란 창을 한자루 들고 있었다. 그 남자의 머리 위쪽에는 커다란 새장과 함께 인질로 마이클 핸더슨이 잡혀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정운은 마이클 핸더슨이 인질로 잡힌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답이 나서 인질이 붙잡힌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행인 점을 찾는다면 돌입 과정에서 가장 과감하게 적들을 많이 해치운 마이클 핸더슨이 인질로 잡혔다는 것이다. 역시 인질로 잡히는 것에는 최소한의 법칙이 있었던 것이다.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적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창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는 그가 자세를 잡은 순간···. 정운은 순간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피해!!!!!” 정운이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 실로 섬광처럼 돌진해온 보스몹이 공격을 하자마자 그 순간 바로 두 명의 유저가 적의 공격에 휘말렸다. 그리고···. 바로 즉사였다. 마치 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공격에 두 명의 유저가 피하지 모하고 그대로 흔적도 없이 죽어 버린 것이다. 한 명은 포로였고 또 한명은 프랑스의 유저였다. “레온!!!!” 장 그레고리는 자신의 부하 중에 한명이 쓰러진 것을 보고 절규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3화 <다이앤 여왕의 특공> “이놈!!!!” 장 그레고리의 레이피어가 냉철한 냉기를 두르고 보스몹을 공격했다. 쩌저적···.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는 모든 것을 얼렸지만 보스몹의 베일은 모든 것을 무효화 시키고 있었다. 역시 메두사 때와 같은 일이었다. “적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먼저야!!! 함부로 공격하지 마!!!” 정운은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포로중에 한명인 나탈리아를 향해서 외쳤다 “어서 다음 이름을 말해!!”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나탈리아는 일단 급하게 파티에서 탈퇴를 했다. 같은 파티원중에서 랜덤으로 뽑아가는 것이라면 파티를 탈퇴 시키면 된다. 정말 기발한 생각은 아니지만 사고의 사각에 숨어있었던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은 생각이었다. 어쨌든 파티에서 나온 나탈리아는 바로 다음 리스트에 있는 자의 이름을 불렀다. “예··. 그러니까···. 항우!!!” 정운이 준비한 다음 리스트. 그것은 초패왕 항우였다.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라 한나라 이전 시대의 인물로 중국 역사 중에서 최강의 무용을 자랑하는 남자. 이번에는 제발 맞기를 원했다. 그리고···. 띠리링!! [정답입니다. 절대 보호인 베일의 장막이 벗겨 집니다. 하지만 절대방어의 옵션은 5분 후에 벗겨집니다.] 라는 알림창이 떴다. “5분!!? 이런 미친···.” 정운은 바로 절대보호 옵션이 끝나는게 아니라는 말에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이건···?” “아마도 바로 오답 후에 정답을 말했기 때문일 거야. 예전에 메두사 때도 5분 정도는 지난 후에 말했잖아?” 정운의 말에 재빨리 대답한 것은 한중겸이었다. 그리고 한중겸과 정운이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일단 항우를 둘러싸고 있던 베일의 장막이 벗겨졌다. 그리고 드디어 중국역사 최강의 무장 초패왕 항우가 드러났다. 정체를 드러낸 그는 오연한 시선으로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유저들을 유유히 훝어보고 있었다. “흠····. 이게 나의 적들인가?” “···당신이 항우인가?” 정운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정운은 항우의 전신이 살짝 흐릿해 진다고 느꼈다. 그리고····. 콰아앙!! “크윽····.” 정운은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아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뻗어온 항우의 창을 막아냈다. 다만 공격을 막아냈음에도 정운은 몇 십 미터나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체력 게이지마저 10분의 1이나 달아 있었다. 공격을 틀림없이 막았는데 말이다. “호오····? 내 공격을 막아? 재미있는 놈이군.” 항우는 자신의 창끝을 정확하게 포착한 정운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 기특함을 봐서 나에게 당신 운운한 무례는 한 번 용서해 주마. 하지만 한 번 뿐이다. 다음은 없다.” 항우는 마치 신하를 대하는 왕과 같은 시선으로 정운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항우의 목소리에는 분노나 노기는 없었다. 마치 무례한 어린애를 나무라는 어른의 여유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이런 괴물이····.’ 정운은 상대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정운에게는 속도에 관한 스킬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집중력. 집중력 LV. MAX (체감 시간을 300%정도 느리게 조종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고시점. 예고시점 LV. MAX. (적의 공격이 닥치기 직전에 그 영상을 보고 미리 대비 할 수 있다.)이라는 스킬이었다. 원래 예고 시점은 이탈리아의 리더였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주력 유니크 스킬이었다. 정운은 과거 프란테스코와 결투를 하고 이겼을 때 이 예고 시점이라는 스킬이 스킬북의 형태로 나와서 고맙게 익혔다. 즉, 정운은 지금 체감 시간이 300%나 느리고, 거기에 0.몇 초 이기는 하지만 적의 공격도 사전에 감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조차도 방금 초패왕 항우의 공격은 간신히 막는게 고작이었다. 최초의 일격에 두 명이나 희생자가 나온것도 당연했다. ‘이런 인간이 5분간 절대방어?’ “빌어먹을···. 길고 긴 5분이 되겠군.” 정운이 이를 드러내면서 말하자 어느새 옆에 다가온 한중겸이 말했다. “그래도 해야지···. 왕귀인, 메두사, 가루라!!!” 한중겸은 자신의 주력 소환수를 모두 꺼냈다. “불렀어?” “흠···. 항우라···.” 왕귀인과 메두사는 항우를 보면서 나름대로 싸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소환수인 그녀들로서는 적어도 유저들 보다는 안전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정운은 주변으로 외쳤다. “5분간은 도망치는 것만 생각해!!! 최대한 힘을 온전해라!!!” 정운은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스스로 앞으론 나섰다. ‘나도 저 초고속 공격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대응 못한다. 내가 시간을 끌어야 해.’ 정운은 잠시 전에 쓰러진 남자 두명의 흔적을 바라봤다. 시체도 거의 남지 않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동료의 시체를 바라봤다. 월드 서버에 나오고 나서 처음으로 레이드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그것도 뭐라고 나설 틈도 없이 순식간에 두 명이나 말이다. 또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운은 앞으로 나서서 자신이 주의를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항우는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스스로 나서서 짐의 장난감이 되고자 하는 것은 가상하다. 하지만 조금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항우의 말에 정운은 움찔했지만 이를 드러내면 상대를 도발했다. “결국 초패왕이니 역발산이니···. 당신의 이름은 현대에도 크게 남아있지.” “당연하지.” 항우의 얼굴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자부삼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항우에게 정운이 말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기 말고는 아무도 못 믿어서 측근들에게 다 버림받은 왕따 대마왕이잖아? 역사의 패배자씨?” “·········허··· 허허허허·····.” 움찔! 정운은 항우의 공허한 웃음소리가 들린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강한 상대가 냉정하게 약한 사람부터 공격해서 머릿수를 줄여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그러니 어느 정도 도발을 해서 놈의 분노를 자기에게 집중 시키려고 했었다. 그런데···. ‘도발이 너무 잘 먹혔냐?’ 아무래도 필요 이상으로 적을 도발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다. 죽는게 소원이라면 들어줘야지.” 항우는 그렇게 마하면서 정운을 창 끝으로 겨냥했다. 그것만 가지고도 정운은 전신에 짜릿한 위기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아아앗!!!!!” 아무래도 한우리 연맹에서 정운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한줄기의 섬광이 힘차게 항우를 향해서 돌격해 갔다. 스피드만 놓고 본다면 한우리 연맹 속에서도 최강이라고 불리는 스피드 퀸. 다이앤 여왕이 용감하게 특공을 한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비장의 기술을 썼다. ‘엑셀. 기어 7.’ 엑셀 LV.MAX : 공격 속도를 단계별로 상승 시킨다. 총 10단계의 기어가 있으며 최종 기어가 되면 속도는 10배로 빨라진다. 단, 가속의 휴유증은 유저의 몸에 그대로 남게 된다. 그녀는 단번에 무리를 했다. 처음에 일격은 그녀는 아애 보이지를 않았다. 이런 남자의 발목을 잡으려면 스피드로 자신이 있다고 해도 선수를 잡아야 했다. 정운과 항우가 대화를 한다고 시간을 약간 잡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항우의 절대 보호는 몇 분인가 남아 있다. 그리고 정운이 그런 항우를 상대로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이앤 여왕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자신의 역할이었다. 정운은 절대 보호가 끝난 순간 항우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라도 힘을 온전해 두고 있어야 했다. 그녀는 최단 시간에 모든걸 쏟아 버릴 생각으로 처음부터 기어를 7로 시작했다. 이 레이드의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도저히 힘을 아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키이이이이이잉!!!! 다이앤 여왕과 보스몹이 격돌한 순간 마치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한 순간에 너무나 많은 공격이 부딪힌 결과로 그런 소리가 울린 것이다. 불과 십여초 만의 순간 동안 수배합으 공방이 오갔다. 그리고····. 콰앙!! “크윽···.” 고속 공방속에서도 튕겨나간 것은 오히려 돌진했던 다이앤 여왕이었다. 항우는 한손으로 창자루의 끝을 잡고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다이앤 여왕을 상대했다. 그리고 다이앤 여왕을 향해서 보스몹이 창을 들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끝니다.” 하지만 항우의 공격이 날라오기 전에 다이앤 여왕은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나서 제비처럼 항우를 향해서 돌격했다. “기어8!!!” 콰카카카!!! 그녀의 몸은 한층 더 빠라졌다. 원래 기본 속도의 상승을 꾸준하게 연마했던 그녀였다. 덕분에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몸에 가해지는 부담도 훨씬 더 강해진 것이다. ‘크으으·····.’ 그녀는 전신의 관절과 근육이 뒤틀리고 파열되는 느낌이 이를 악물었다. 잇몸 사이로 핏물이 베어나와서 입에서는 철맛이 났고 눈에서도 모세 혈관이 파열 되어서 피눈물이 흘러 나왔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은 바로 몸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 그녀는 이 스피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체력 게이지가 달고 있었다. 그만큼 오버 페이스인 것이다. “흐음···. 색목 계집이 제법 기골이 있군.” 항우는 자신에게 압도적인 기량차이가 있음에도 용감하게 덤비는 다이앤 여왕을 보면서 살짝 칭찬의 말을 했다. 이 관우보다 백배는 더 오만한 남자의 입에서 이 정도의 칭찬이 나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두꺼운 철창을 무슨 갈대잎 처럼 한손으로 가볍게 휘두르면서 다이앤 여왕의 공격을 막았다. 카카카···. 카카캉!!! 그리고 그렇게 다이앤 여왕을 상대하면서도 항우는 정운을 바라보는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정운에게 조소하듯이 말했다. “계집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덤벼드는데···. 겁 먹고 꽁무니만 빼고 있나? 한심한 쓰레기군.” “···············.” 정운은 자신의 애도인 월광멸마도를 꽉 쥐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 다이앤 여왕이 어떤 각오로 저렇게 단신 특공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 상황에서 다이앤 여왕의 결의가 정운에게는 전해졌다. 이 레이드를 위해서 가장 험난한 초석이 되는 길을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적어도 항우의 절대 방어 옵션이 있는 기간동안은 자신이 발을 멈추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자신이 입 한번 잘못 놀려서 그녀의 용기를 무위로 돌릴 수는 없었다. ‘힘내시오. 다이앤 여왕···.’ 정운이 지금 할 수 있는건 이런 소리 없는 응원 정도였다. ‘···앞으로··· 앞으로 대략 2분····.’ 다이앤 여왕은 항우의 절대 방어기간이 5분을 홀로 책임지기로 한 이상 거기에 모든걸 걸기로 했다. 이미 스스로 손발이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몸은 통각을 넘어서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였고, 그녀의 체력 게이지는 4분의1만이 남아 있었다. 이미 이기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5분 동안 항우를 귀찮게 해서 동료들을 지켜주는 것. 그것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원래는 정운이 하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가혹한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목숨을 건 결의도 누구에게는 귀찮은 날파리의 날개짓과 같았다. 항우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쯧, 한심한 사내들이로군. 여자 하나에게 모든걸 맡기고 자신들은 안전한 곳에서 뒷짐만 지고 있다니···.” 항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이앤 여왕을 향해서 휘두르던 철창에 힘을 실었다. “흡!!!!” 쿠웅!! 항우는 진각을 밟으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속도와 절도로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콰아앙!! “아악!!!” 다이앤 여왕의 몸이 저 멀리 튕겨 나가 버렸다. 마치 마네킹이 커다란 덤프트럭에 치이면 이렇게 날아갈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거하게 날아간 것이다. 털썩····. “············.” ============================ 작품 후기 ============================ 분량 나누기가 애매한 부분에서 떨어져네요. 이럴떄가 가장 골치 아픈데 말이죠.... 그나저나 81층 보스몹은 역시 너무 뻔했나 봅니다. 많은 분들이 정답을 알아내서 스포일러 댓글 삭제 할 수도 없었습니다..ㅠㅠ82층은 잘 안들킬 인물로 잘 정해야 겠네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84화 <본격적인 전투> 날아가서 꿈쩍도 하지 않는 다이앤 여왕을 보면서 정운은 생각했다. ‘여기까지인가?’ 정운은 다이앤 여왕의 분투를 보면서 이제 남은 바통은 자신이 이어 받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항우의 절대 방어 옵션이 끝날 때 까지 시간을 끝까지 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이앤 여왕은 최대한의 힘을 낸 것이다. 실제로 항우도 이제는 장이앤 여왕에게서 눈을 때고 정운에게 눈길을 돌렸다. “흠···. 저 계집은 기특하니 살려주도록 하지. 짐에게 부린 재롱이 기특하니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장난감이다.” 거기까지 말한 항우는 턱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어쩌면 짐의 아이를 낳게 하는 성은을 베풀어도 괜찮겠지? 저만한 계집이라면 쓸 만한 아이가 나올 게야.” 항우의 말에 영국 유저들을 눈에 불을 켰다. “감히!!!” “죽일 테다!!!” 어차피 그라운드 제로에서 아이가 태어나지는 않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영국 유저들은 자신들으 여왕을 노리개 취급하는 항우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영국 유저는 아니지만 윤정철의 눈에서도 싸늘한 한기가 맴돌았다. 그런 남자들을 보고도 항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않았다. 절대적인 자신감.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100% 확신하는 오만의 덩어리. 아니 불순물 하나 없는 오만의 결정체 같은 남자였다. 항우가 본격적으로 주변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움직이려는 그 순간···. “크··· 으윽····.” 다이앤 여왕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검을 지팡이 삼아서 간신히 일어났다. 그런 그녀를 보고 항우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흠··. 아직 할 생각이냐? 용감함에 비해서 머리는 둔하군. 내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겠어.” 그런 항우를 보며 다이앤 여왕은 초점 없는 눈으로 피식 웃었다. ‘5분····. 거의 다 되어 가는 것 같은데···. 그럼, 뒤는 동료들에게 맡길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입에서 중얼 거렸다. 그녀의 분투, 항우의 자만심.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녀의 당초 목적인 5분 버티기는 거의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마지막으로 자기 자존심을 지켜야 할 때였다. 다이앤 여왕의 입이 살짝 달싹였다. “기아 10····.” “응? ······읏!!!” 카아아앙!!!!!! 털썩···. 항우가 처음으로 공격을 맞았다. 그것도 뒤로 밀려서 한쪽 무릎을 꿇을 정도로 정통으로 말이다. ·····후우우우웅!!!! 이번 공격은 그만큼 압도적인 스피드가 실린 일격이었다. 섬광조차 없었고, 소리와 공기의 후폭풍 조차 다이앤 여왕의 공격이 끝나고 몇 초 후에야 한 발 느리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야말로 초고속. 다이앤 여왕의 최고속의 일격이 항우의 목젖을 있는 힘껏 찌른 것이다. “·······감히!!!” 항우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절대 보호의 옵션이 발동하는 와중이라서 대미지는 없었다. 하지만 자존심에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정통으로 공격을 맞은 것은 그로서도 처음이었다. “크윽····.” 그리고 마지막 공격을 적중 시킨 다이앤 여왕은 방금 전의 공격에 모든 힘을 다 동원했는지 그대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항우는 다이앤 여왕이 쓰러진 것을 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이앤 여왕을 자기 창으로 꿰어 죽여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죽여주마.” 그러나 그 역시 도전을 처음 맞이하는 보스몹이어서일까? 유저들을 너무 얕봤다. 이제는 시간이 끝난 것이다. 띠리링!! [절대 보호의 옵션이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유저들의 공격이 유효합니다.] “전원 공격!!!!!” 정운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오자 전원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감히 우리 여왕님을!!” “이 새끼 진짜 죽여 버릴 테다!!!” 연맹 설립 이후로 처음 나온 희생자. 그리고 저 괴물을 상대로 단신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시간을 끌어준 다이앤 여왕의 분투.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펄펄 끓는 마그마처럼 타올랐다. 거기다 마지막 힘을 소진하고 다 쓰러져 가는 다이앤 여왕은 피식 웃으면서 항우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면서 말했다. “꼴·· 좋다.” 그렇게 말하고 완전히 의식의 끈을 놔 버리는 다이앤 여왕이었다. 굳이 한 마디 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면 역시 한 성깔하는 여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이앤 여왕이 만든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공격을 시도한 것은 정운이었다. 다이앤 여왕이 시간을 끌기는 했지만 사실 항우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정운이었다. “쉐도우 아미!!!” 정운이 자신의 그림자 장수들 전원을 소환했다. 관우, 장비, 여포, 조운, 황충, 마초, 전위, 손견, 태사자까지···. 이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무용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들이다. “포위 공격하라!! 움직임을 꽁꽁 묶어!!”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세레나의 부하들까지 더 해졌다. 이규, 사진, 동평, 호삼랑. 이들 역시 충분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중화권의 무장들의 드림팀 같은 멤버들이 항우와 격돌했다. -항우라···. -전설 속의 인물이로군. -주로 나하고 비교 되서 불쾌했는데 말이지. 삼국지의 무장들 중에서도 여포는 특히 항우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대를 달랐지만 각 시대에서 최강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던 자들끼리 의식이 되는 것 같았다. “···건방진.” 항우는 자신에게 포위를 하고 달려드는 장수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창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죽어랏!!!” 퍼퍼퍼퍼퍼퍼펑!!!!!! 항우에게 달려들던 강자들이 전원 뒤로 튕겨져 버렸다. 심지어 무술의 달인인 여포나 관우도 방금전에는 항우의 창끝을 놓쳤다. -칫···. 이런 무슨····. -괴물인가? -뿌드득···. 여포는 자신이 상대의 창끝을 놓쳤다는 것에 크게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아마도 생전과 지금을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무술 실력으로 밀리는 것은 이 남자에게 처음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운은 동요하고 있는 삼국지의 무장들을 보면서 말했다. “당황하지 마!!! 상대는 보스몹으로서의 보정을 받은 상태야. 생전보다 강력한 거야 당연하지!! 무조건 발을 묶는 것에 주력해!!” 여포 뿐만이 아니라 다른 그림자 장수들 까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정운은 일단 그럴듯한 말로 그들을 진정 시켰다. ‘제길···. 강할 줄이야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사실 정운도 지금 항우가 가지고 있는 사기적인 강함이 진짜 생전의 실력인지? 아니면 파우스트에게 받은 보스몹으로서의 사기적인 보정인지는 모른다. 그거야 누가 알겠는가? 생전의 항우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도 잘 모르는데 그걸 알 리가 없지 않은가? 몇몇 사람들은 중국 무인들 중에 최강자의 이름에 항우를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인물은 여포를 올리기도 한다. 혹은 조운이야 말로 진짜 실력자라는 말도 하고 그 외에도 이름을 올리는 사람은 제법 많다. 하지만 이 모든 얘기들의 공통점은 가설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달랐던 인물들을 전해진 전승만 가지고 누가 더 강하고 약했는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 하다. 그저 어느 정도의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 정운에게 중요한 것은 항우가 정말로 생전에 엄청나게 강하냐? 약하냐? 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사기적으로 강하다는 것이다. “흥, 형편없다!!!” 항우는 자신에게 합공을 하고 있는 그림자 장수들과 양산박 호걸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관우의 언월도의 날을 맨손으로 잡아서 그대로 끌어당기더니 한쪽으로 날려 버렸다. -크윽···. -윽···. 날아간 관우는 그대로 전위와 부딪혔고 그 틈을 노리고 조운의 창날이 섬광처럼 뻗어서 다섯 갈래로 갈라졌다. -잡았다!! 다섯 군데의 급소를 정확하게 꿰뚫었다고 생각한 조운이었지만 그것도 짧은 순간이었다. 조운의 섬광 같은 창날은 항우의 잔상만을 꿰뚫었다. 그 대신에 항우의 창날이 양갈래로 갈라져서 폭사하더니 조운의 양쪽 허벅지를 뚫어 버렸다. -크윽···. 그리고 이어서 조운의 오른쪽에 있는 태사자를 향해서 창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면서 날아간 창을 태사자는 창대로 막았다. 하지만 그 공격의 기세를 죽이지 못해서 그대로 밀리기 시작했다. “흡!!” 거기에 항우가 한 번 더 힘을 주자 태사자의 몸이 허수아비처럼 부웅 날아갔다. 거기다 태사자 혼자만이 아니라 중간에 걸린 손견과 사진도 같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으윽···.” -제길···. 한 번에 장정 세 명을 허수아비처럼 날려버린 항우에게 여포의 화극이 날카롭고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여포의 화극의 공격은 그야말로 무술의 진수를 담은 것 같았다. 허점도 없고, 여분의 빈틈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공격이 무섭도록 예리하게 날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완벽한 공격이 항우의 옷깃도 스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난폭하군.” 항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창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제까지 힘으로만 적을 상대하던 이 남자는 마치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라고 하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진 항우의 창대가 마치 물을 유유히 스치면서 지나가는 뱀처럼 민활하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여포의 화극을 비껴 나가면서 유유히 파고들어서 여포의 전신에 바람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크윽····. 여포는 그림자의 몸이 아니라 원래의 육신이라면 진작 열 번도 더 죽었을 공격을 당하고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건 그의 자존심 문제였다. 순수한 무술의 공방으로 이렇게 밀리다니··. 비록 죽고 나서이기는 하지만 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애를 먹는 소환수들과 달리 정운은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발을 묶어두는 것만 해도 최선이다.’ 정운이 걱정하던 최악의 상황, 그것은 그림자의 장수들이나 양산박의 호걸들을 동원해도 항우의 발목을 전혀 잡지 못하는 경우였다. 처음에 멋 모르고 항우의 최초의 일격에 대응하지 못한 한우리 연명은 두 명의 희생자를 냈다. 저 인간의 모습을 한 천재지변 같은 놈이 멋대로 설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히 성공적인 일이었다. 정운은 지금 자신이 직접 공격하지 않고 주변의 동료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면서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저 항우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족쇄를 채워야 한다.’ 그렇다. 정운은 지금 항우에게 쇄도우 체인을 걸려고 하고 있었다. 그 전에는 동료들에게 공격 명령 자체를 자제시키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실수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아직은 참아야 해.’ 정운이 월드 서버의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나서부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첫 번째 도전자에게는 한 가지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당연하지만 적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것. 특히 80층대부터 생긴 변화로 인해서 보스몹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상당한 페널티였다. 하지만···. 그것과 바대로 장점도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보스몹들이 상당히 방심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월드 서버 초반의 보스몹. 알카포네나 빌리 더 키드를 상대하면서 까다로웠던 것은 놈들이 유저들을 극도로 경계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놈들이 이미 몇 번이나 유저들에게 공략을 당해봤기 때문에 자신의 패배라는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심도 하지 않고 교활한 지혜를 짜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다이앤 여왕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평소에는 내숭 떨다가 전투시에만 성깔이 드러난다는 점이 특히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5화 최초 공략자의 최대 메리트. 그건 방심하고 유저를 깔보는 보스몹이었다. 사실 보스몹들이 유저들을 깔보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이라고 있는 것들 대부분이 생전에 상당히 이름을 날리던 존재들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중에 95% 가량은 자기 욕망하나 절제 하지 못해서 악마에게 혼을 판 범인, 혹은 범인 이하의 인간들이다. 사실 혼을 판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기는 했지만 악인이건 뭐건 간에 유명세가 있는 이들··. 특히 90층 대의 클래스의 보스몹들은 스스로 자긍심이 대단했다. 그런 놈들이기에 유저들을 처음 상대할 때는 방심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항우만 해도 그렇다. 사실 항우가 가지고 있는 극강의 무력과 엑셀 스킬을 쓰는 다이앤 여왕에 비견될 정도의 스피드. 이걸 작정하고 살려서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하면 한우리 연맹에는 이미 사망자가 두 자리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항우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자비심이 넘쳐서 유저들을 배려라도 하고 있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지금 항우가 스스로 여유를 부리게 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자만심이었다. 자신이 절대로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강자들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항우의 약점을 정통으로 찌르기 위해서 정운은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정운은 기회를 잡았다. 태사자의 항우의 발등을 찍으려고 했고 항우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비가 자신의 사모창을 버리고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는 항우의 창을 맨손으로 덥썩 잡았다. -중국에서 힘 하면 항상 네놈하고 내 이름이 나오지? 누가 강한지 한 번 해볼까? 장비의 말에 항우는 피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리석은 놈. 태산이 높은지 하늘이 높은지를 재어봐야 안단 말이냐?” 그렇게 말하고 항우는 그대로 창날을 잡아끌어서 장비를 휘둘렀다. -으으읏····. 장비는 자신을 마치 네 살 어린애 어르듯이 휘두르는 항우의 괴력에 전율했다. 물론 정운의 말대로 파우스트의 보정이 들어가서 그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 항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바로 역발산(力拔山) 이라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항우에 대한 시인 해하가(垓下歌))에 관해서 나오는 말이지만··. 그만큼 항우가 힘이 강하다는 듯한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중국에서는 힘이 강한 사람을 두고 흔히 항우나 장비에 비교하고는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항우가 장비를 어린애 다루듯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비를 쥐고 흔드는 그 순간만큼은 정운도 항우의 말이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했다. “쉐도우 붐!!! 쉐도우 스피어!!!” 쉐도우 붐. (상대의 그림자를 폭발 시켜서 공격한다.) 쉐도우 스피어. (그림자에서 창날을 세워서 적을 관통한다.) 순간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정운은 항우에게 공격을 했다. 퍼엉!! 퍼퍼퍽!!! 항우는 자신의 발밑에서 일어난 폭발에 이어서 날카로운 그림자의 창날이 자신의 전신을 꿰뚫기 위해서 뻗어오는 것을 보고도 태연하게 몸으로 받았다. “이게 통할 것 같으냐!!?” 항우는 정운의 공격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그 공격을 몸으로 받았다. 정운의 공격은 항우가 입고 있는 갑옷을 뚫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태연하게 공격을 받은 것은 항우의 실수였다. “안 통하는 것은 알고 있다.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상대의 그림자에서 그림자의 사슬을 만들어 적을 구속한다.) 정운도 애당초 적이 저 정도의 공격에 제대로 된 대미지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발이 살짝 멈추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러면 적을 구속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촤르르륵!!“ “웃····!?” 항우는 그림자의 사슬이 자신을 칭칭 휘감아가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당황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림자의 장수들을 총 동원했다.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평소에 스킬을 정운만큼 능수능란하게 쓰지는 모하는 그림자의 장수들이다. 하지만 정운이 일단 명령을 하기만 하면 그때는 정운과 동일한 스킬을 완벽하게 쓸 수 있었다. “지금이다!! 전원 딜 해!!!” 정운이 크게 외치고 한우리 연맹의 맹공격이 항우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멀티플 파이어!!!” “크리스탈 스트라이크!!!” “염빙십자격!!” “패왕십중권!!!” 정운의 신호만 기다렸다는 듯이 한우리 연맹은 총 공격을 항우에게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특히 이번에 동료들 중에 희생자가 나온 프랑스와 다이앤 여왕의 분투에 자극을 받은 영국의 유저들은 온 힘을 다해서 공격에 공격을 거듭했다. “이이··. 이까짓 것·····.” 항우는 이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놈들이 갑자기 거친 공격을 퍼부으니 크게 당황했다. 원래 한 번이라도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본 보스몹이라면 애당초 이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착실하게 머리수부터 줄여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항우는 그것을 하지 않았고 한껏 방심한 채로 자신의 무용을 뽐내는 것만 즐겼다. 그리고 이제는 방심의 대가를 치르려고 하고 있었따 “이이····· 이이익····.” 끼기기긱··· 끼이익···. 투툭!! “소용없어. 쉐도우 체인!!!” 항우의 괴력은 정녕 무서웠다. 어지간한 대형 보스몹도 쉽게 끊을 수 없었던 쉐도우 체인 중에 몇 가닥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정말 말 도 안되는 괴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끊어진다고 해도 정운은 그때 마다 다시 쉐도우 체인을 추가할 뿐이었다. 항우를 구속하고 있는 쉐도우 체인은 어디까지나 스킬로이다. 몇 번이고 다시 재생 할 수 있는 그림자의 사슬인 것이다. 그걸 그림자 장수들 까지 동원해서 총 열 겹으로 둘렀다. 하나 둘 끊어봤자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항우를 완벽하게 구속하면서 정운은 활을 당겼다. ‘그러고 보니 이 스킬을 처음 쓰는 걸?’ 지금 정운이 쓰려고 하는 기술은 정운의 아이템에 깃들어 있는 스킬. 건곤파천시였다. 진(眞) 건곤파천궁 공격력 : 2,000 무게 : 20 내구력 : 200 스킬 : 건곤파천시(양과 음의 힘이 합쳐진 화살을 발사한다. 일반 활에 비해서 공격력이 500% 올라간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1시간의 쿨타임이 필요하다.) [화살이 필요 없으며 양의 힘과 음의 힘을 지난 화살 두 개를 나눠서 쏠 수 있다. 두 가지 힘을 합성한 건곤파천시를 쏠 수 있다.] 정운이 예전에 양산박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건곤파천궁이 진 건곤파천궁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러면서 건곤파천시라는 스킬도 생겼다. 처음에 정운은 활의 위력이 500%정도 올라갈 뿐이라는 말에 살짝 실망했었다. 그 정도는 정운의 스킬로도 가능했다. 오랫동안 숨겨진 진실이 있는 것처럼 애간장을 태우던 진실이 밝혀지니 그냥 별것 아니네? 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알고 보니 달랐다. 이 기술은 하나의 스킬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서 건곤파천궁에 붙어 있는 부스터 같은 것이었다. 어떤 스킬을 쓰던 그 위력을 500% 상승 시켜주는 효과. 확실히 고위급 유저가 되면 그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는 스킬이나 아이템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건곤파천시 처럼 기존의 스킬에 최종 증폭을 중첩 시키는 것은 없었다. 마치 이미 붙은 이자에 다시 한 번 이자를 붙이는 것 같은 복리 시스템으로 위력이 상승하는 것이다. 즉, 이러 말이다. 지금 정운의 활 스킬 중에 가장 강력한 한방은 천뢰시라는 스킬이었다. 천뢰시 (天雷矢) LV. MAX (화살의 위력이 1,000% 올라간다. 추가로 뇌전의 대미지를 입는다.) 여기에 다시 건곤파천시의 부스터를 쓰면 추가 500% 상승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정운이 순수하게 활을 당겼을 때의 공격력은 대략 3200~3500사이. 거기에 천뢰시로 1,000%를 증가 시켜서 32,000이라고 보면 거기다 다시 건곤파천시로 위력을 500% 추가 증폭 시킨 것이다. 무려 160,000의 대미지. 궁사의 한 발 공격으로 이 정도의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파지직···. 파직···. 요란하게 방전하는 진 건곤파천궁을 다 당긴 정운은 항우를 겨눴다. 노리는 것은 적의 머리위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는 순간. 즉···. “지금이다!!!” 투카아아앙!!!! 마치 전차에서 주포라도 발사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리는 소리가 울렸다. 도저히 활에서 쐈다고는 믿기지 않는 괴음과 함께 적에게 그대로 화살이 날아갔다. 날아가는 귀적 역시 활이 아니라 SF영화에 나오는 거대 전함이 주포라도 발사 한 것 같은 광경이 연출 되었다. 활시위를 놓은 순간 일직선으로 굵직한 광선이 발사된 것이다. 그리고····. 콰아아앙!!!!! 마치 전략병기 수준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강력한 폭발이 났다. 규모는 좀 작지만 원폭이 터질 때 나오는 버섯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정도였다. “콜록··. 콜록···. 끝났나?” 누군가가 정운의 공격에 앞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중얼 거렸다. 하지만 정운은 알고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공격을 늦추지 마!!! 계속 갈겨!!!!” 항우를 잡았다면 그때는 알아서 알림창이 떴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항우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그래서는 곤란했다. 월드 서버의 보스몹들을 레드 크리스탈이 되면 자폭을 했다. 그리고 그 자폭의 위력은 당연하지만 위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더 해지는 법이고 말이다. 81층의 보스몹인 항우의 폭발? 그게 어떤 위력인지는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정운은 화살을 당기고 또 당겼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원거리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먼지 구름이 걷히고 어느 정도 그러난 시야에 비친 것은 정말 폭발하기 직전의 항우의 모습이었다. “제길!!!! 전원 대비!!!! 방어해!!!!” 정운은 이제 적의 자폭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래서는 최악의 상황인 자폭에 대비 할 수밖에 없었다약한 유저들 중에 추가로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따는 것을 알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만월옥강!!!!” 박추성이 무한의 영사를 폭발 직전의 항우를 향해서 부렸다. 그러자 항우의 전신을 무한의 영사가 촘촘하게 둘러싸서 하얀 보름달처럼 만들었다. 만월옥강(滿月玉鋼) LV.MAX (적을 와이어로 빈틈없이 감싸서 봉쇄하는 것과 동시에 공격을 막아낸다.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하지만 대미지의 상당 부분은 와이어를 통해서 시전자에게 흘러간다.) 박추성이 자랑하는 방어스킬 중에서 방어력 자체만 본다면 최강을 자랑하는 스킬이었다. 비록 와이어를 통해서 상당한 대미지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차피 맨 몸으로 때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대미지는 자기 혼자만 받는다는 생각이 그는 주저 없이 동료를 감쌌다. “야!!! 박추성 인마!!!!!!” 배대호가 평소의 그 답지 않게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항우가 자폭했다.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일순간 항우를 둘러싸고 있는 만월이 20배가 넘게 팽창했다. “크으윽·····쿨럭···.” 그리고 동시에 박추성은 전신에 전기라도 감전된 것처럼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레벨215의 그라운드 최강의 유저인 박추성. 그가 받은 대미지는 10분의 1정도일 뿐이긴 하지만 81층 클래스의 보스몹의 자폭 공격이었다. 한국팀의 유저들 대부분은 박추성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을 쓰면서 느낀게 있습니다. 항우가 이 정도면 다음에는 누구를 보내야 하지? 역시 항우는 90층까지 아껴둘걸 그랬나? 라는 생각을요. 으음.... 뭐, 세상이 넓으니 그래도 찬찬히 생각하면 후보가 또 나오겠죠. 82층 보스몹은 지금붙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286화 <정운의 업그레이드> “추성이 형님!!!” “오라버니!!!!!” 한국팀들이 모두 달려갔고 다른 나라의 팀들도 박추성에게 달려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81층을 클리어했다는 알림창이 떴지만 그걸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만큼 박추성의 대미지는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리커버리!!!” 배대호는 가장 먼저 다가가서 박추성에게 회복을 걸어 줬다. 방금 박추성의 체력 게이지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다. 100분의 1정도만 간신히 남아서 그것도 점점 줄어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는 세계 자체가 게임의 룰을 따르는 곳···. 배대호의 회복 스킬이 퍼부어지자 다 죽어가던 박추성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으으····. 오랜만에 죽는 줄 알았네.” 조금 숨이 돌릴 만 해 지자 박추성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가 이렇게 위기에 처한 적은 언제인지 기억에도 안 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무한의 영사를 손에 넣은 이후로는 처음인지도 몰랐다. “하아···. 다행입니다.” 정운은 박추성이 멀쩡한 것을 보고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마지막에 박추성이 항우의 자폭 에너지를 통째로 억누르지 않았다면 적어도 한우리 연맹에서 20명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서 전력적인 면만 살핀다면 그냥 20명이 죽는게 박추성 하나가 죽는 것 보다는 조직적으로 봤을 때 전력의 로스가 적었다. 그만큼 박추성의 존재감은 단연 뛰어났다. “형님··. 다음에는 말이라도 하고 해 주십시오.”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박추성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상황에서? 무리지. 그것보다 일단 이겼으니 다행이다.” 마지막에 박추성이 죽을 뻔한 위험천만한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한우리 연맹은 82층 진출에 성공했다. 81층 레이드 며칠 후···. 정운은 한 가지 사안을 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운을 지금 괴롭게 하는 것은 눈앞에 있는 한 자루의 창 때문이었다. 항우는 그 이름값에 어울리게 여러 가지 아이템을 많이 남겼다. 그 중에서도 월드 서버의 유저들조차도 두 눈을 반짝일 정도로 탐이 나는 아이템이 세 개나 나왔다. 원래 월드 서버의 유저들···. 특히 170쯤이 넘어가기 시작한 유저들은 장비 업그레이들을 가뭄에 콩나듯이 밖에 하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너무나 고성능이기에 그것보다 뛰어난 아니템이 좀처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아이템들은 그런 고위급 유저들 조차 눈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먼저 스킬북이 한 권 나왔다. 패왕신공(?王神功) 기공술의 일종과 같아 보였는데 항우를 잡고 나온만큼 한층 더 특별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자세한 능력을 알려면 직접 익혀 보는수 밖에 없어지만 적어도 이게 꽝 아이템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토론 끝에 이 스킬북은 영국으로 넘겼다. 영국은 이번에 마이클 핸더슨이 돌입 과정에서 인질이 되기도 했고, 또 항우의 절대방어 기간 동안 발목을 잡는 과정에서 영국의 다이앤 여왕이 실력 이상의 투혼을 발휘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초패신갑이라는 갑옷이었다. 초패신갑(楚?神甲). 방어력 : 8,200 무게 : 200 내구력 무한 [초패왕 항우가 걸치던 갑옷으로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스테이터스를 10% 상승시켜 준다. 강인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시전자의 능력도 오려주는 무적의 갑옷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아이템 중에서도 스테이터스 상승 아이템은 귀중한 대우를 받았다. 그 중에서도 모든 스테이터스를 10%나 상승 시켜 준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다. 이것은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공작에게 돌아갔다. 이번에 81층 레이드를 하면서 나온 두 명의 희생자 중에서 한 명은 프랑스 인이었다. 다른 한 명은 포로 신분 중에 한명이었으니··. 뭐 좀 불쌍하기는 하지만 거기는 별개로 치면 이번에는 프랑스에게 당근을 줘야 했다. 프랑스 팀의 리더인 장 그레고리 공작의 약점 중에 하나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방어력이기도 했다. 어차피 전체적인 연맹의 전력 상승을 생각해도 이 갑옷에는 장 그레고리가 어울릴 것 같기도 했기에 그 갑옷은 장 그레고리에게 돌아갔다. 갑옷을 받은 장 그렉리는····. “으음···. 디자인이 좀····. 좀 블링블링 하지 못하군요.” 장 그레고리는 인간적으로 악인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끔씩 사람을 참 열받게 하는 특출난 능력이 있다고 생각 되기는 했다. “·······싫으면 주시죠.” 정운이 손을 내밀면서 말하자 장 그레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형태 변화 서비스를 받으면 되니까요. 음, 등에 날개를 날고 투구에 유니콘 뿔을 달면 어울릴 것 같은데···. 아? 저한테 보라색이 어울릴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은 불쌍(?)한 초패신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게 바로 지금 정운의 눈앞에 있는 창이었다. 패왕극신창(?王克神槍) 공격력 : 9,000 무게 : 100 내구력 : 무한 스킬 : 패왕강림(?王降臨) (사용자에게 5분간 항우와 같은 수준의 능력치를 사용 할 수 있게 한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열흘의 쿨 타임을 지닌다.) [초패왕 항우가 쓰던 창으로 착용자의 모든 스테이터스를 5%상승 시킨다. 적의 방어력을 50% 무시한다.] “으음·····. 어떻게 할까····?” 바로 이 창이 정운을 고민에 빠트리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사실 실제 게임을 할 때도 유저들은 종종 이런 고민에 빠지고는 한다. 새로 얻은 아이템과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성능을 비교하기가 애매할 때 어떤걸 선택할까? 라는 고민을 말이다. 지금까지 정운이 사용하고 있던 창은 항마신창이라는 창이었다. 항마신창(抗魔神槍) 공격력 : 8,000 무게 : 50 내구력 : 500 스킬 : 대치유 (하루에 한 번 모든 대미지를 무효로 돌린다. 사용하고 나면 24시간 동안 쿨 타임을 지닌다.) 천계 (하루에 다섯 번 강력한 방어먹을 사용 할 수 있다.) [룽기누스의 레플리카를 업그레이드 해서 항마의 힘을 깃들게 한 신창. 언데드, 데몬, 스피릿 계열의 적들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면 착용자의 체력을 분당 5%씩 회복시킨다.] 일단 공격력은 패왕극신창이 한 수 위에 있다. 우선 기본 공격력에서 8,000대 9000으로 차이가 난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패왕극신창은 착용자의 스테이터스를 5% 상승 시키고 적의 방어력은 50% 무시까지 한다. 이미 공격력이라는 면만 본다면 두 창을 두고 비교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항마신창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유리함을 보이는 언데드나 데몬 계열의 몹들이 아니라면 공격의 위력은 확실하게 패왕극신창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항마신창은 방어적인 면에서 뛰어는 효과를 발휘하는 무기였다. 창이라는 무기에서 방어적인 이점을 찾기는 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의 얘기이고 이 그라운드 제로의 아이템이 되면 상황은 극단적으로 변한다. 우선 항마신창은 천계라는 강력한 방어막을 하루에 다섯 번 펼칠 수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치유라는 강력한 스킬의 메리트가 너무 컸다. 사실 대치유라는 스킬은 하루에 한 번 다시 살아 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비록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기는 하지만 이건 여분의 생명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정운은 지금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었다. “초 공격적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방어적으로 나가느냐···. 두 가지 문제인가?” 정운은 그렇게 한숨을 쉬면서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정운은 두 가지 모두가 탐이 났다. 하지만 두 자루의 창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힘들었다. “제길···.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교대로 쓰는 수밖에 없나? 그럼 효율이 떨어지는데?” 정운은 그렇게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세레나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마스터, 아이템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레나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현실에서의 일이야. 당신도 이제는 알잖아?” “아이템을 씀으로 인해서 효율이 올라가는 것은 알고 있죠. 하지만 거기에 너무 연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운은 세레나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약간 답답하다면 답답하지만 지금 저것도 세레나에게 있어서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예전에는 아이템을 고르는 것만 해도 매우 귀찮아했다. 그래서 항상 아이템을 맞출 때 마자 정운이 데리고 가서 억지 춘향 수청 들리듯이 맞춰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레나도 자신의 아이템 정도는 스스로 맞추고 있었다. 비록 그렇게 되기까지의 상당한 끈기와 곡절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뭐···, 차라리 내가 데리고 있는 그림자의 장수들이나 세레나 당신의 소환수들에게 장비 착용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 줄 텐데 말이야.”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전 오히려 그게 안 돼서 장비에 드는 값이 줄었다고 보는데요?” 세레나의 말에 정운은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정운이 비록 오토 아홉 배를 돌리고 또 세레나 역시 네 명이나 되는 강력한 소환수를 데리고 있지만 그게 효율이 좋은 것은 그들에게는 일절 장비나 경험치 배분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 모두에게 장비를 맞추려고 하면 적지 않은 골드가 들었을 것이다. 아이템을 그냥 막 맞출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레벨에 어울리는 수준의 장비가 있는데···. “하긴, 거기다 이규 같은 타입은 무기도 자주 가리기는 하지. 오로지 쌍도끼니까···.”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죠. 사실 전 그런식의 난잡한 스타일은 반갑지 않습니다.” “그래? 난 오히려 서양 검술들이 좀 더 거칠다고 생각했는데? 클레이모어라던가? 할버드, 그리고 배틀 액스도 있잖아?”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그건 오해입니다. 배틀 액스를 쓰는 경우도 서양에도 있지만 그걸 양손에 들고는 막 휘두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세레나가 그렇게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쌍도끼···. 이도류, 맞아. 그런 방법이 있었지.” 정운은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생각대로만 된다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싹 사라진다. 정운이 세레나에게 말했다. “세레나, 지금 당장 동평 좀 부러 줘.” “예? ····왜죠?”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지금 당장 불러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세레나는 정운의 요청에 영문을 모르면서도 일단 동평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누님.” 동평은 나오자마자 정운의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세레나를 보면서 인사를 올렸다. 정운은 그런 동평에게 말했다. “당신을 부른건 나야?” “····네가?” 얼굴에 매우 매우 귀찮다. 라는 기색이 역력한 동평을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원래 동평은 정운을 싫어했다. 세레나의 앞에서 눈치를 보느라고 그렇게 대 놓고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서 정운을 싫어하는 것이 티가 났다. 정운도 이렇게 자신을 싫어하는 상대에게 애결하기는 싫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정운은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동평에게 말했다. “나한테 쌍창을 쓰는 방법을 알려 줘.” “····뭐시라?” 정운의 말에 동평은 밥 먹다 돌이라도 씹은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런 동평을 보고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싫으냐?’ 라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7화 쌍창장(雙槍將) 동평. 말 그대로 두 개의 창을 쓰는 남자라는 뜻이다. 평균적인 국민성을 따졌을 때···. 한국인은 대부분의 물건을 빨리빨리 만든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대부분의 물건을 크게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무조건 많이 만드는 습관이 있다. 뭐 하나가 만들어지면 거기에 관련된 수많은 아류들이 무한정 파생하는 것이다. 요리, 건축, 옷, 무술, 심지어 인구까지···. 뭐 하나가 생기면 거기에 따른 종류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파생하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중국 본국에서도 인구 자국의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두손을 들어 버리겠는가? 심지어 현대에 만연한 짝퉁 브랜드의 총산지로 지목당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런 많이 만들자. 식의 이유인지 모른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가서···. 동평이 쓰고 있는 쌍창술도 원래는 그렇게 창술의 아류로 갈라져 나온 변칙적인 기술이었다. 정운의 그림자에 깃들어있는 그림자 장수들만 봐도 무기가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두 개의 창을 쓰는 경우는 특히 더 드물었다. 그걸로 경지에 이르는 인물은 특히 더 드물고 말이다. 동평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여포나 항우보다 더 특이한 인간이라고 봐도 좋을지 모른다. 뭐, ···어디까지나 더 강하다가 아니라 더 특이하다는 말이다. 어쨌든 두 개의 창을 두고 고민에 빠졌던 정운에게 있어서 이 동평의 존재는 마른하늘의 단비와 같았다. 검이나 도끼와 달리 창을 두 자루 쓰는 것은 정운도 미처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동평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고 나니 자신도 쌍창술을 익히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원래 현실의 세계라면 쌍창술을 익히는 것은 사실 득책이 아니다. 창이라는 무기는 원래 두 손으로 한 자루를 다루도록 만들어진 무기이고···. 어지간한 달인이 아니라면 창을 두 자루 쓴다는 것이 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쌍창술로 달인이 되든, 그리고 보통의 창술로 달인이 되든 그 강함에는 큰 차이가 없다. 쌍창술의 달인이 일반 창술의 달인보다 두 배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쌍창이라는 특이점을 살려서 상대를 잠깐 당황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큰 장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서의 일. 이 그라운드 제로는 게임의 룰을 따르고 있다. 쌍창술을 쓴다는 것은 장비 할 수 있는 공격 아이템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아이템으로 인해서 득을 볼 수 있는 점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지는 장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제까지 이 간단한 것을 생각 못하고 있었을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련장으로 가벼운 발걸음은 옮겼다. 이미 형태변환 서비스를 사용해서 항마 신창의 형태를 바꿔 놓았다. 원래 동평의 쌍창술은 한 자루의 장창과 짭은 단창을 써서 싸우는 것. 정운은 공격력이 강한 패왕극신창을 장창으로 쓰고 항마신창을 단창으로 쓰기 위해서 형태변환 서비스를 이용해서 단창으로 바꿨다. 원래 형태변호나 서비스는 아이템이 희귀한 것이면 희귀한 것일수록 거금이 든다. 항마신창을 장창에서 단창으로 바꾸는 것에만 해도 5억 골드가 들었다. 월드 서버의 유저인 정운에게도 그 정도는 상당한 거금이었다. 그래도 아깝지는 않았다. 이걸로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정운이 그렇게 수련장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동평이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왜···? 지금쯤 누님하고 사냥을····. 투덜투덜···.” 척 봐도 몹시 하기 싫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동평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일단 자신이 가르침을 청하는 입장이라서 그런 동평의 태도를 적당히 넘겼다. “동평, 그럼 지금부터 수련을 시작하지. 뭐부터 할까?” 정운이 투덜거리는 동평에게 말하자 동평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청하는 예의가 전혀 되지 않았군.” “····뭐라고?” “무술을 배운다는 것에 있어서 예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 바른 예의에 바름 정신이 깃들고 그래야 무술이 악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정운은 어쩐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 말은 그럴듯하기에 참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럼 뭘 어떻게 할까? 구배라도 올릴까?” “흥, 생각 같아서는 그 천배는 올리라고 하고 싶지만····.” “···········.” 울컥!! 정운은 한 번만 더 참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레나 누님의 특별한 추천이 있었으니··. 일단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고···.” “숙이고?” “부디 부족한 불초제자 박정운이 위대한 스승인 동평님에게 가르침을 청합니다. 부디 개와 말처럼 부려 주십시오. 라고 간청을 해라. 그 다음에 제자로 받을지 말지를 결정···.” 파아악!!! 정운은 한 자루의 창을 집어 던졌고 그 창은 그대로 동평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후후후····. 두 번 참았으면 많이 참은 거지.” 정운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동평은 순간 당황했지만 자신의 쌍창을 꼬나쥐면서 말했다. “흥, 어디 겁먹을 것 같으냐? 이 기회에 사승의 예의라는 것을 가르쳐 주마.” “····좋다. 그럼 여기서의 승부로 깔끔하게 끝장을 보자. 불만은 없겠지?” “좋다. 내가 이기면····.” “이기면?” “넌 세레나 누님한테서 떨어져라. 누님에게는 나처럼 풍류를 아는 귀공자가 어울린다. 너 따위는···.” “쉐도우 아미.” 정운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아홉의 그림자 장수들을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정운의 부름에 나타난 그림자 장수들을 보면서 동평은 크게 당황했다. “잠···. 잠깐, 신성한 일대일 결투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릴 생각이냐?” “후후후···. 누가 일대일로 하겠데? 미친개 패는데는 다구리가 최고야.” “·············.” 평소와 달리 약간의 광기 어린 정운의 태도를 보면서 동평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세레나를 걸고넘어진 것은 동평의 입장에서 접시물에 코 박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겁먹고 엉덩이를 뒤로 슬슬 빼고 있는 동평을 보면서 정운이 명령했다. “밟아.”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이·· 이건 아니야!!!!!!!!” 정운의 쌍창술 수련 첫 날. 동평의 처절한 비명 소리만 길게 울려 퍼졌다고 한다. 다음 날 부터··. 정운은 동평의 전폭적인 협조(?)를 입어서 본격적으로 쌍창술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동평의 쌍창술은 파괴력보다는 속도와 연속 공격에 치중한 창술이었다. 창이라는 무기는 원래 양손으로 잡고 힘차게 앞으로 찔렀을 때 그 위력의 진가가 나오는 무기다. 하지만 동평의 쌍창술은 반대였다. 한 손으로 창을 잡고 찌르기에 아무리 단련한다고 해도 양손으로 찌르는 만큼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창을 잡는 위치를 종종 바꿔가면서 긴 창과 짧은 창을 정신없이 찔러가는 동평의 창술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곤란한 것이었다. 속도만 놓고 보면 정운의 그림자에 깃들어 있는 조운의 창이 더 빨랐다. 조운이 작정하고 찌르면 그 창의 속력은 정운의 눈에도 궤적만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연속적인 공격의 숫자와 거리감으로 인한 변칙적인 스타일은 조운이라고 해도 손쉽게 보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스타일이었다. 정운 역시 이미 순수한 무술 실력 자체가 달인의 경지에 오른지 오래였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세월이 있었고, 그 후에도 세레나에게 기본기를 닦았고, 후에 시련의 탑에서의 공략. 그리고 수시로 행하는 그림자 장수들과의 대련으로 무술에 관한 조예는 상당히 깊어져 있었다. 그런 정운이었기에 쌍창술에 대한 적응도 상당히빨랐다. 처음에는 퉁명하게 바라보던 동평도 정운의 발전 속도에는 내심 놀랄 정도였다. 무엇보다 정운의 쌍창술은 동평의 것과 달리 위력도 몸에 붙기 시작했다. 사실 그건 정운이 쓰고 있는 아이템 덕뿐이었다. 현실 세계와 달리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비록 찌르기의 위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아이템의 성능에 따라서 파괴력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냥 찌르기와 달리 스킬을 병행하면 없던 절도와 파괴력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수련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후···. 정운은 이미 동평의 쌍창술을 완벽하게 몸에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다듬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실전 투입을 해 볼 생각이었다. “정운씨. 이쪽이에요.” “그래···. 여기란 말이지?” 정운은 슬기가 안내한 어느 커다란 동굴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여기에 슬기가 정운이 새로운 전투 스타일을 심험해 보기에 적합한 몹이 있다고 했기에 온 것이다. “그런데 슬기야. 이거 네가 발견한 퀘스트 아니니?” “아니 뭐··. 퀘스트 까지는 아니에요. 뭐, 그냥 중간에 도전권은 내가 획득했지만···.” 슬기는 살짝 당황한 얼굴을 하고 변명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슬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이번에 82층으로 진출하고 나서도 정운은 단 하나의 퀘스트도 클리어 하지 못했다. 한우리 연맹의 리더로서의 역할. 그리고 이번에 동평에게 배운 쌍장창의 스타일 개조 등등··. 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오토로 사냥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슬기는 아마도 자기가 발견한 퀘스트를 하나 정운에게 양보한 것일 것이다. 정운은 이 동굴에 오는 길에 몇 개나 되는 비문 같은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저 비문들 하나하나가 관문이었을 것이다. 즉, 정운의 추리로 봐서는 이렇다. 정운에게 퀘스트를 양보하기 위해서 슬기가 퀘스트의 파이널 스테이지만 남겨두고 그 전에 관문은 싹 다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불러서 이제 쌍창술의 점검을 겸해서 한 번 클리어하게 해서 양보하려는 것이었다. ‘뭐···.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볼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정운의 뒤를 슬기가 따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보조일 뿐. 오늘의 메인은 어디까지나 정운 혼자서 하기로 한 것이다. 한참을 안으로 들어간 정운은 서서히 커다란 소리가 동굴에 울리는 것을 들었다. “이건···. 뭐지? 꼭 자동차 엔진이 고장 났을 때 나는 소리 같은데?” 정운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소음이 더욱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동굴의 공기가 움직이고 있는것도 느껴졌다. “이건···. 뭔가의 숨소리군.” 정운은 동굴 전체에 숨소리가 울릴 정도의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시 쌍창을 꺼내서 경계를 하고 전투태세로 들어간 정운은 서서히 안으로 진입해 갔다. 그리고 이윽고 동굴의 끝에 도달한 정운은 상당히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동공에 커다랗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 두 마리를 발견했다. “흠···. 저게 이 동굴의 보스몹이라는 거지?” 정운은 요즘 항상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형의 보스몹만 보다 저렇게 척 봐도 나 괴수요. 라고 하는 몹을 보자 살짝 정겹기까지 했다. ‘나도 별의 별개 다 정겹네.’ 정운은 그렇게 한숨을 쉬면서 동공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운이 가까이에 오자 거대한 두 마리의 뱀은 동시에 두 눈을 떴다. ‘원래 뱀한테 눈꺼플이 있었나? 없었나? 으음··.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어!!?” 정운은 뱀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자신이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는 두 마리의 뱀이 아니었다. 이제 보니 하나의 몸체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으음... 3월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4월달은 본가에도 다녀와야 하고 시간도 많이 없어서 지금 많이 비축을 해 놔야 하는데.... 한 사흘 정도 큰집에 다녀 왔다가 다시 와서도 다른 친척집에 가야하는 볼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때 만약 하루 일연재, 혹은 휴재가 된다고 해도 미리 이렇게 고지를 드리니 너그럽게 용서를 바랍니다. 뭐... 가능하면 최대한 비축분을 비축해서 그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8화 거대한 머리 두 개가 자신을 향해서 혀를 낼름거리면서 바라보자 정운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흐음···.” 정운은 일단 ME를 꺼내서 상대의 정보를 살펴 봤다. 음양쌍두사 LV.190~195 [두개의 머리에 각각 음과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기형 뱀. 평소에는 온순한 성격이지만 자기 영역을 침범한 적에게는 용서가 없다.] ME의 정보를 확인한 정운은 뺨을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흔한 성격일세. 혹시 너 배가르면 내단 같은 것 나오냐?” 샤아아아아!!!!! 정운의 말에 뱀은 엄청 화를 내면서 그 거대한 혀를 내밀면서 소음을 뿜어냈다. 척 봐도 난 엄청 화났다. 아니면 그게 나오겠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 나오면 말지 뭐··.” 콰아앙!! 정운이 그렇게 말을 한 순간 정운이 있던 자리에 강력한 폭음이 울렸다. 음양쌍두사가 두 개의 머리 중에 하나로 그대로 정운을 덮친 것이다. “성질 하고는···.” 물론 정운은 그걸 유유하게 피했다. 빠르기는 했지만 정운이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음양쌍두사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앙!! 콰앙!! 두 개의 머리를 써서 정운을 교대로 공격하는 음양쌍두사의 공격은 숨 쉴 틈 없이 교차 되었다. 마치 복서가 양손으로 끊임없이 펀치를 뿜어내는 것처럼 음양쌍두사의 공격이 정운을 덮쳤다. 하지만 정운은 그 공격을 유유히 피했다. 굉장히 빠르고 연속된 공격이기는 하지만 사실 정운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흠···. 슬슬 시작해 볼까? 우선은 신참부터.” 정운은 슬슬 본격적으로 자기 무기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먼저 시작한 것은 이번에 첫 실전 투입인 패왕극신창이었다. “하압!!” 퍼어엉!!!! 정운이 있는 힘껏 한쪽 어깨를 뻗어서 패왕극신창을 찔렀다. 별다른 스킬도 쓰지 않은 그냥 평범한 찌르기였지만 상당한 위력과 함께 음양쌍두사의 몸이 크게 튕겨 나갔다. 샤아아아아아!!! 음양쌍두사는 정운의 공격에 상당한 대미지를 입었는지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높게 들고 자신의 급소를 커버하듯이 또아리를 틀었다. 정운은 음양쌍두사가 수세로 돌아가자 자신이 스텝을 밟으면서 치고 들어갔다. 타타타탓··. 갈지자로 지그재그 스텝을 밟으면서 치고 들어가는 정운을 향해서 음양쌍두사가 크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콰콰쾅!!! 놈의 입에서 불과 냉기로 이뤄진 강력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과연, 이래서 음양쌍두사라는 말이지?” 정운은 음양쌍두사의 공격을 피하면서 더욱더 가까이 접근해 갔다. 정운이 입고 있는 드래곤 리빙 아머의 방어력은 강했고 거기에 쉐도우 아머까지 중첩 시켰기는 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주력했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쌍창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원래 창이라는 무기가 공격에 특화된 물건이라서 방어에는 부적합 하다. 거기다 양손에 창을 들고 있으면 더욱더 그랬다. 그래서 동평은 정운에게 쌍창술을 쓰려면 가능한 공격은 피하는 쪽을 택하는게 좋다고 했다. 물론 공격을 피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이 하책. 피하는 것은 중책. 그렇다면 최선의 상책은···. “밧아랏!!!” 퍼퍼펑!!!! 공격이야 말로 최선의 방어. 정운은 한손에 짭은 단창으로 변한 항마신창을 짧게 세 발이나 꽂았다. 샤아아아아!!!! 음양쌍두사는 마치 짓밟힌 지렁이처럼 꿈틀 거렸다. 정운은 그런 음양쌍두사를 보면서 속으로 만족했다. 단창으로 형태를 바꿨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아이템의 성능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정운의 항마신창 역시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정운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콰앙!! 퍼퍼펑!! 콰쾅!!! 짧은 단창과 긴 장창의 연속 공격으로 상대를 숨쉴틈도 없이 만든다. 공격9에 방어1의 비율로 만들어진 초공격적 전술. 이게 바로 정운이 동평에게 배우고 스스로 다듬은 정운만의 쌍창술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샤아아아!!! 콰쾅!! 콰아아앙!!!! 정운의 공격이 계속해서 음양쌍두사에게 적중했고 그리고 어느새 놈도 체력이 거의 다 됐는지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콰콰콰콰콰콰!!! 놈이 몸을 소용돌이 형태로 감더니 맹렬하게 회전을 시작했다. 그러자 화염과 냉기를 동시에 두르고 있는 소용돌이가 맹렬하게 동굴을 휘감았다. “칫···.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에서···.” 정운은 음양쌍두사의 발버둥과 같은 공격을 받아내면서 약간의 대미지를 입었다. “도와 드릴까요?” 공동의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던 슬기가 정운을 향해서 소리쳤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만 받을게. 거기서 보고 있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상대를 보고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화염과 냉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소용돌이. 피할 것도 없는 공간에서 공수를 겸비하고 있는 강력한 기술. 과연 퀘스트의 수준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82층에 있을만한 수준은 있었다. 그럼··. 저 회오리를 어떻게 멈출까? 방법은 많았다. 멀리 떨어져서 활 공격으로 지반을 무너트려서 회전을 멈추거나··. 혹은 쉐도우 체인으로 꽁꽁 묶어 버려도 좋았다. 하지만 정운은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쌍창술에 대한 시험을 하는 날이니까···. 할 수 있는건 다 해봐야겠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흑토!!” “히히힝!!!” 흑토는 정운의 부름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정운이 훌쩍 흑토의 등에 올라타고는 양손으로 항마신창과 패왕극신창을 손에 들었다. 원래 말 위에서 쌍창술을 쓰는 것은 최고급 기술이다. 오로지 하반신의 조절만으로 말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평도 정운이 그렇게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흑토는 평범한 말이 아니라 이미 신수의 영역에 도달한 말이었다. 흑토[신수] 레벨 : 132 체력 : 450 힘 : 250 민첩 : 500 지능 : 99 신력 : 220 [신수로서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전신에 화염과 강철의 가호를 깃들어 있으면 그 다리는 질풍을 앞지르고 가로 막을 것이 없다.] 처음에 정운이 샀을 때는 그저 기동력을 위해서 샀던 1급 전마일 뿐이었던 흑토였다. 물론 당시에는 정운에게도 나름대로 큰돈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 샀었다. 흑토는 슬기나 세레나 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정운과 호흡을 맞춰 왔다. 그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인의 마음을 읽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다. “히히힝···.” 흑토는 발굽으로 땅을 박차면서 눈앞에 있는 거친 소용돌이를 노려봤다. 이미 저것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이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흑토의 전신에 화염이 화르륵 피어났다. 거기다 흑토의 피부도 부드러운 가죽에서 배끈한 광체가 흐르는 질감으로 변했다. 빛을 빨아들이는 피아노 블랙 같은 그 색깔은 순수한 검은색의 금속이었다. 원래 화염의 권능만 발현 할 수 있었던 흑토였지만 최근에 레벨업을 하면서 자신의 전신을 금속으로 바꾸는 능력까지 손에 넣었다. ‘이 녀석 혹시 90대 레벨의 유저라면 이기는 것 아닐까?’ 정운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잡생각은 일단 나중으로 미뤄 두리고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관문을 돌파하는 것 하나 뿐이다. “가자··. 기마차지!!!” “히힝!!!” 순간 흑토와 정운이 한줄기의 황금빛 섬광이 되어서 토네이도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기마차지 : LV.MAX (기마를 탄 상태로 돌격. 직선거리 1,000미터를 뚫고 전진한다.) 아마도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가장 많이 쓴 스킬이 이것일 것이다. 아주 초보 시절부터 월드 서버의 최상위권 유저가 된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적들을 상대로 흑토와 한 몸이 되어서 돌격했었다. 콰콰콰콰콰쾅!!!!! 거친 스파크를 튀기면서 토네이도와 섬광이 정면으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승자는····. 샤아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콰!!!!!! 정운과 흑토였다. 음양쌍두사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을 정운과 흑토가 음양쌍두사를 정면의 힘겨루기에서 날려 버렸다. 흑토의 화염, 금속의 권능, 거기에 플러스로 정운의 뇌천신공과 항마신창과 패왕극신창까지 더해진 공격이다. 아무리 82층 클래스의 퀘스트 몹이라고 해도 이걸 견딜 수는 없었다. 샤····아아아····. 음양 쌍두사는 정운의 공격을 받고 완전히 축 늘어져 버렸다. 너무 강력한 공격에 체력 게이지가 완전히 바닥이 난 것이다. “수고했다.” 정운은 단번에 음양쌍두사의 목을 두 개 다 날려 버리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퀘스트 달성을 알리는 알림창이 울렸다. 띠리링!! [던전 공략을 완료 하셨습니다. 보상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정운은 인벤토리를 열어서 보상을 확인했다. “경험치는 여전히 별로 안 오랐군···. 뭐 어쩔 수 없나? 200되기 정말 힘드네.”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보상을 확인했다. 사실 지금 정운에게 필요하다고 할 만한 아이템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이 음양쌍두사라는 몹으로 만들어진 이빨, 독, 가죽 같은 아이템 뿐이었다. “수고 하셨어요.” 슬기가 다가와서 정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응, 안내 해 줘서 고마워. 쌍창술도 쓸만 하네.” “예. 제가 멀리서 봐도 공격력이 확 늘었어요.” “그렇지? 방어적이 면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차차 익숙해 질 거야. 그리고 설령 정말로 방어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로 강력해.” “그러게요···. 차라리 검도 이도류로 바꿔 보시는 것은 어때요?” “검도? 으음····.” 정운은 슬기의 말에 살짝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검은 예전에 이도류를 써 본적이 있었어. 속도는 빨라졌지만 파워가 떨어졌지.” “그런가요?” “응. 뭐, 파워 중심의 이도류 세팅도 가능은 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됐어. 차라리 작은 라운드 실드를 하나 장비 하는게 낫겠어.” “실드요?” “응. 큰 것 말고 머리 정도 크기에 팔에 찰수 있는 것 마리야.” “흐음···. 한 번 알아볼까요?” “아니 내가 할게. 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 정운은 웃으면서 말하며 슬기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어쨌든 오늘의 실험은 대 성공이었다. 지난 한달 동안 들인 시간이 성과를 냈다는 것이 몹시 기쁜 정운이었다. 한우리 연맹이 81층을 클리어하고 82층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 사실이 엄청나게 배아픈 인간들이 있었으니···. 바로 유니버스 연맹의 간부들이었다. 쾅!!! “도대체··· 언제까지 스파르타쿠스 하나한테 이렇게 발목이 잡혀 있을 거요!!?” 미국의 블레인 허드슨은 탁자를 내려치면서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 “·············.” 그런 그의 말에 중국의 장한과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는 별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팔짱만 끼고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미 진작에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이 상황이 답답하지 않을 리가 있는가? 하지만 문제는 스파르타쿠스를 클리어 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유니버스 연맹의 스파르타쿠스 도전자는 두 자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스파르타쿠스 공략에 실패했을 시의 죽음이 겁나서 정예들이 알아서 몸을 사린 것. 유저로서 싸우는 것에 익숙해진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에게 있어서 스킬도 쓸수 없고 아이템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실전 전투는 두려운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89화 <새로운 변수, 엄청 큰 변수> 뭐, 사실 정예들이 나선다고 해도 별 소용은 없을 것이다. 결국 스파르타쿠스 공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게아니라 개인의 전투력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개인적 전투력으로···. 그러니까 유저로서의 능력이 아니라 순순한 무술 실력이 스파르타쿠스를 압도할 수 있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었다. 일대일에 검투시합.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의 레이드다. 스파르타쿠스보다 강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 통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다름 아닌 그 스파르타쿠스다. 전설의 검투사이며 일개 노예에서 제국을 뒤흔든 카리스마로까지 승화한 남자이다. 그와 일대일 결투. 그것도 상대쪽에 맞춘 글라디우스를 들고 하는 고대 로마식의 검투. 이래서야 이길 건덕지가 거의 없었다. 유니버스 연맹에서는 어렵게 찾은 검도 선수 출신의 유저라던가 펜싱 선수들을 찾아서 월드 서버로 승격 시킨 후에 도전하기도 했다. 적어도 순수하게 유저로서만 강해진 자들에 비해서는 그런 자들이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두 처참한 패배였다. 이규와의 싸움으로 인해서 한 번의 패배를 맛 본 스파르타쿠스는 더욱더 까다로워 졌다. 그때는 이규의 짐승 같은 스타일에 많이 당황도 했지만 이제는 다시 싸운다면 이규가 또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유니버스 연맹으로서는 더욱더 짜증이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렇게 한숨을 내쉬면서 곤란에 허덕이고 있는 순간···. 유니버스 연맹의 회의실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각하!! 급히 보고 드릴일이 있습니다.” “뭐냐? 회의중이다.” “그게··. 월드 서버에 새로운 유저들이 올라와습니다.” “새로운 유저? 어느 국가의 팀이냐?” “그게···. 스스로를 북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뭐? 그게·· 그거 혹시 노스 코리아 말하는 거냐? 북한?” “예. 그렇습니다.” “···············.” “···············.” “···············.” 회의장의 의석에 있던 장한과 블레인 허드슨, 그리고 콘러드 크라우스는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분연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블레인 허드슨이 말했다. “지금 당장 자리를 마련해라!! 빨리 만나야 겠다.” “예. 알겠습니다.” 월드 서버에 또 한 번의 격동이 몰아치려고 하고 있었다. “뭐? 북한이 올라와?” “그렇습니다. 정운님.” “··············.” 나탈리아의 보고를 받은 정운은 턱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북한··· 그래. 북한에도 서버가 있었단 말이지? 아니···. 그래. 거기에 없는게 더 이상하지. 사회에 불만 가득한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을 테니····.” 21세기 최악의 국가 랭킹을 뽑으면 항상 순위권에 드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자유도 없고 인권도 없고···. 사실 거기 국가 틀은 이제 초기 출범했던 공산주의와도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국가의 생산력, 치안력, 주민들의 애국심, 오만가지가 모두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미 나라꼴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 그게 바로 북한이었다. 거기에는 밥 한 끼만 먹여 준다고 해도 악마에게 혼을 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스마트 폰이야 좀 적을지 몰라도 악마들이 나름대로의 수단으로 사람들을 유혹했을 것이다. “······그래서? 올라온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지?” “그게··. 바로 유니버스 연맹이 접촉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뜸 들이지 말고 바로 말 해.” “바로 유니버스 연맹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가?” 정운은 어쩐지 시원 씁쓸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정운은 북한팀이 올라온다고 해도 도와 줘야 할 의무감은 가지지 못했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들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위로 기어 올라가는 잔혹한 게임이 바로 이 그라운드 제로였다. 자기 앞가림이 최우선인 세계에서 다른 팀들을 향해서 헌신적이 도움을 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할 것도 없이 이미 북한 팀도 월드 서버에 올라올 정도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굴렀다면 그 정도의 룰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앞으로 유니버스 연맹의 행보겠군.”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북한팀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사실 한국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늦게 올라왔다고 해서 약하다고 마냥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만약 북한팀이 강하다면···? 그리고 그런 북한팀이 유니버스 연맹에 가입을 한다면··? 그렇다면 월드 서버의 행보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쯧, 골치 아프군. 나탈리아.” “예. 정운님.” “활동에 필요한 지원은 최대한 해 줄 테니 유니버스 연맹의 동향을 놓치지 말고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정운님.”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있을지 모를 변수에 관해서 치열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신중을 기울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유니버스 연맹에 합류한 북한에 대한 정보는 조금씩 조금씩 월드 서버에 퍼져 나갔다. 그 열 명중에 아홉 명이 남자에 여자가 딱 한명.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열 명으로 월드 서버에 도착한 것을 봐서는 상당한 소수 정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북한이 합류하자마자 유니버스 연맹은 스파르타쿠스를 유유하게 클리어해 버렸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탈리아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의 유저중에 한명이 나가서 압도적으로 스파르타쿠스를 압살해 버렸다고 한다. 정운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스파르타쿠스의 실력은 직접 두 눈으로 본 정운이었다. 이규가 이기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 승리는 어떤 의미로는 기습에 가까웠다. 스파르타쿠스가 당황하는 틈에 이규가 특기인 개싸움으로 몰고가서 간신히 잡아낸 것이었다. 만약 다시 실력으로 싸우면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스파르타쿠스를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도대체 누구지? 이름이라도 알 수 없나?” “죄송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알았어.” 정운은 어쩐지 몹시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냥 새로운 강자들이 월드 서버에 올라온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꺼림칙한 느낌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꺼림칙한 느낌의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스파르타쿠스를 클리어 했다는 것은 그 다음에 있는 메두사는 자동으로 프리 패스라는 거지? 쯧, 또 바로 목전까지 쫒아온 건가?” 정운은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항우가 그렇게 쉽게 뚫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일단은 천천히 다음 레이드를 준비하기로 했다. 장소를 바꿔서 미국의 전진기지···. “하하하하····. 드디어 망할 놈의 스파르타쿠스를 통과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 하군요.” “그렇게 말입니다.” 블레인 허드슨을 비롯해서 유니버스 연맹의 간부들은 오랜만에 분위기가 좋았다. 간부들의 분위기가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밑의 부하들도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원래 세계 어디를 가도 아랫사람들의 기분은 결국 윗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린 법이다.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데? 그게 싫으면 출세하든가 그 무리에서 나가든가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뭐,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그것도 거의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그럼 이번 레이드의 최대 일등 공신인 북한팀의 리더는 언제 오지? 보이지를 않는군.” 블레인 허드슨의 말에 부하 중에 하나가 말했다. “그게···. 뭔가 자기들 끼리 회의 할 일이 있다고 축승회에는 빠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흐음·····.” 블레인의 얼굴에 순간 불쾌함의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모두들 마시고 즐겨라!!! 오늘은 우리들의 날이다!!” “와아아!!!!” “유니버스 연맹 만세!!!” 술에 정신 줄 놓은 윗대가리들. 그리고 그런 윗대가리들에게 아부하는 무능한 부하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럴 건덕지가 없는 유니버스 연맹의 현 모습이었다. 한편 북한팀은 자신들끼리 나름의 회의를 열고 있었다. “일단 계획대로 되고 있다. 다만, 언제 어떻게 틀어질지 모르는게 앞날이다. 그러니 모두들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 “············.” “············.” “············.” 북한팀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했지만 거기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모두들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너 따위가 감히 우리에게 명령을 하느냐? 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리더라는 자는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하 중에 하나가 대장에게 말했다. “할 말 다했나?” “·····그래.” “그럼 우리는 가지. 여기 있다가는 멍청한 실패자의 냄새가 옮을 것 같거든.” “·············.” 완벽한 개무시였다. 설령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편안한 한우리 연맹이라고 해도 팀 리더에게 이런 식으로 말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광경이 연출 된다는 것은 이 팀의 진짜 모습이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큭··. 그건 그렇지?” “가자고. 저런 한심한 인간 나부랭이 따위야 아무래도 좋잖아?” “쿠쿡····.” 부하들 중에 남자 여덟 명은 모두 리더를 조소하면서 회의실을 나섰다. 유일하게 혼자 남아있는 여자부하 한명만이 리더를 보면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안 괜찮으면? 그럼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 “제길······.” 리더라는 남자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거듭된 실패로 인해서 결국 이런 조치까지 받게 되다니···. 반드시 이 굴욕을 갚아 줄 테다. 박정운.’ 이를 빠드득 갈면서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이 남자의 눈은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한우리 연맹은 최근 82층의 공략에 힘을 들이고 있었다. 82층 보스몹을 공략하고는 싶었지만··. 아직 보스몹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보스몹이 있을 필드를 향한 정찰을 꾸준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커다란 사막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려고 하면 바로 보스룸으로 진입하겠냐는 문구가 떴다. 이래서는 부하몹이 없는게 오히려 더 힘들었다. 사전에 힌트가 없다면 일단 들어가서 싸우면서 정보를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도박성이 너무 짙었다. 만약 끝까지 맞추지 못한다면 전멸 확정이지 않은가? 그러니 뭔가 사소한 힌트라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 힌트라고 할 만한게 사막 지형이라는 것 하나 뿐이었지만 말이다. ‘제길, 사막에서 싸우는 인간이 한 둘이냐고····.’ 정운은 문헌을 찾으면 찾을수록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이렇게 한우리 연맹이 82층에서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 유니버스 연맹은 거침없이 항우를 클리어하고 82층으로 올라와 버렸다. 그것도 놀랍게도 사망자 한 명 없이 말이다. 물론 정운은 사전에 전체적인 전력 상승을 위해서 유니버스 연맹에 은근히 정보를 흘리기는 했다. 82층 보스몹은 초패왕 항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항우를 그렇게 아무런 피해 없이 클리어 했다는 것은 놀라웠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유니버스 연맹의 전력으로는 불가능해. 그렇다면··. 역시 북한인가?’ ============================ 작품 후기 ============================ 갑작스런 북한 등장에 많이 놀라셨죠? 아꼈던 스토리 라인으로 원래는 90층대에 등장할 예정이었지만 약간 조기 투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82층의 레이드는 이제까지의 레이드와는 전혀 다른 레이드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도 그런 상대거든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90화 정운은 북한팀의 능력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상당히 높은 확률로 박추성, 배대호급의 유저가 있을 것이다. ‘귀찮게 됐는걸? 우리한테 적대감이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고레벨 유저라면 플레이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 시간이 길다는 것은 김정은, 김정일 시대가 아니라 김일성 시대에 왔을 수가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에 대한 우상심리를 향한 세뇌는 엄청났다. 한 국가의 국민을 용케 그렇게도 세뇌 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무슨 고대 국가도 아니고 어떻게 근대 사회에서 그게 가능한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김일성 우상숭배의 인간들 대부분은 남한을 몹시도 증오한다. 나라 취급 자체를 안 하고 거의 괴뢰정부? 혹은 무슨 악의 축 취급한다. 즉, 그들은 한국 서버의 유저들을 몹시도 증오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한국 서버의 한중겸만 해도 북한 서버에서 유저들이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그답지 않게 상당히 흥분했었다. “뭐? 그 빨갱이 새끼들이 올라왔다고? 그 XXX새끼들 전부 다······.” 예전에 박추성이 일본인들을 보고 흥분했던 것 처럼···. 아니 거의 그 이상으로 흥분했다. 하긴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6.25전쟁에서 아버지와 형제를 모두 잃고 자신도 그 전쟁에 참여했던 한중겸이었다. 아니 단순 참가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서 가족 같은 전우들을 모두 다 잃고 그 분노로 인해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다. 북한에 대한 증오심은 한중겸에게 있어서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기 위한 일종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좋았다. 물론 정운이나 다른 한국유저들과 약속을 하기는 했다. 적어도 역사를 바꾸는 소원은 빌지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중겸이 북한을 좋아할 일은 절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칼 물고 자빠지고 말지!!!!” 그는 그렇게 크게 소리치면서 만에 하나라도 북한 팀들과 협조적인 관계를 맺으면 그때는 자신이 한우리 연맹에서 나가겠다고 까지 했다. 뭐, 그게 아니라고 해도 정운은 굳이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일은 없었다. 아니 그보다···. 오히려 멀리하고 싶었다. 남한 북한을 넘어서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강자 무리라는 자들이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던 것이다. 유니버스 연맹이 82층을 클리어 한 직후···. 또 한 번의 소식이 들려왔다. 유니버스 연맹의 일부가 단독으로 82층에 도전을 했다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저냥한 실패가 아니다. 발생한 사망자가 23명. 월드 서버에서 인원 충원하기가 가뜩이나 힘든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큰 로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고 하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그러니까···. 82층 보스몹이 누구인지 그걸 가르쳐 주겠다는 말입니다.” “···········.” 정운은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콘러드 크라우스를 보면서 미심쩍은 표정을 했다. ‘이 인간이 무슨 속셈이지?’ 정운이 기억하고 있는 콘러드 크라우스는 뱃속에 능구렁이를 열 마리는 넘게 키우고 있는 인간이었다. 절대로 무상으로 적에게 유용한 정보를 안겨줄 인간은 아니었다. “···무슨 대가를 원합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81층의 보스몹이 항우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죠?” “·············.” 정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서 정운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슬쩍 정보를 흘려만 뒀다. 그렇게 해서 유니버스 연맹이 계속 위로 올라와야 그만큼 한우리 연맹의 부담도 적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한 번 정보를 슬쩍 흘릴 테니 너희들도 다음에는 갚아라. 라는 심산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 밑져야 본전이려니 하는 심산으로 했던 일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스트레이트하게 직접 와서 가르쳐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좀 의외로군요. 그렇게 함으로서 유니버스 연맹에 무슨 이득이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전 그저 연맹차원에서 결정된 사안을 전달하러 왔을 뿐입니다. 싫으시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 정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어쩌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작정 의심만 하고 뒤로 빼기에는 미끼가 너무 먹음직스러웠다. ‘어차피 이렇게 유니버스 연맹이 먼저 정보를 체득해서 가르쳐 주기를 기대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일이 너무 순순히 풀린단 말이야.’ 일이 너무 순조롭게 풀릴 때는 일단 의심해야 한다. 정운은 오랜 경험으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정보를 들어둬서 나쁠 것은 없겠지?’ 일단 그렇게 결론을 내린 정운은 정중하게 콘러드 크라우스에게 말했다. “정보를 제공해 주신다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콘러드 크라우스는 정운에게 82층의 보스몹에 관해서 알려줬다. 82층의 보스몹. 그건 바로 한니발 바르카스였다. “한니발요? 그 한니발? 카르타고의?” “예. 그렇습니다.” “한니발···. 한니발이라···. 그래··. 그 이름이면 지금 나와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지····.” 정운은 몇 번 속으로 한니발의 이름을 불러보고는 일단 납득했다. 한니발이 항우보다 뛰어나고 안 뛰어나고를 떠나서··.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인지도는 세계적이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명 전략가들이 이었다. 손무, 제갈량, 나폴레옹 등등··. 하지만 그 누구도 한니발 보다 확실하게 한 수 위라고 할 정도의 인물은 없었다. 거의 다 허물어져 가던 카르타고를 이끌고 한때 로마를 공포에 떨게 했던 희대의 전략가. 그게 바로 한니발이라는 남자였다. 만약 동시대에 스키피오라는 대적자가 없었다면 로마의 역사는 한니발의 세대에서 막을 내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의외로군요. 한니발은 본래 전략가. 개인적인 무력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항우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정운의 말에 콘러드 크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뭔가 복잡한 룰이라도 있는 건가요? 스파르타쿠스 때처럼?” 정운의 예상은 정확했다. “엄밀히 말해서···. 스파르타쿠스 때와는 정 반대의 룰입니다.” 그리고 콘러드 크라우스는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쿠스를 공략할 때는 유저로서의 능력을 다 봉인당하고 스파르타쿠스와 일대일 검투를 해서 이겨야 했다. 한니발의 공략은 정 반대였다. 정운은 우선 도전자를 결정하는 것은 같다. 한명의 도전자가 나서서 한니발의 앞으로 나오면 그 순간 한니발과 도전자의 사이에 거대한 필드가 생긴다. 필드의 지형은 때와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바뀐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도전자에게는 로마군단이 주어지고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병사를 지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전투가 시작된다. 이번에도 유저로서의 능력은 완전히 봉인된다. 개인적인 전투력은 의미가 없다. 82층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한니발과 오로지 전략을 겨뤄서 이겨야 한다. “미친······.” 정운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콘러드 크라우스 역시 정운의 말에 순순히 동의했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저희 사망자가 몇 명인지는 들으셨겠죠?” “·····예. 들었습니다.” “한니발의 이름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열 명이 인질로 잡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한 명씩 도전하면서 죽은 사람이 열세 명입니다.” “·············.” 정운은 침음성을 삼켰다. 한니발과의 전술대전. 이런 조건이 나올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도 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전략이라고는 스타크래프트 밖에 배운 적이 없는데····.” 이번 공략에 한해서 자신은 조금도 힘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자책하는 정운이었다. 정운이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면서 콘러드 크라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정보는 사실대로 정했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배웅은 안하겠습니다. 비금부터 좀 바빠질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콘러드 크라우스는 한우리 연맹의 전진기지를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슬쩍 중얼 거렸다. “이걸로 조금은 만회가 되었으면 하는데····. 잘 될지 안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 그렇게 말하는 콘러드 크라우스의 얼굴에는 아까의 진솔한 얼굴은 사라지고 다시 책사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유니버스 연맹이 한니발에게 도전해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정운이 생각하는 것만큼 커다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우선 유니버스 연맹에서 이름을 밝히기 위해서 도전 시킨 것은 오로지 저 렙의 유저들뿐이다. 80층이 되고 보스몹 레이드에 인질이라는 시스템이 생겼지만··. 유니버스 연맹은 거의 동요하지 않았다. 희생자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하는 한우리 연맹과 달리 유니버스 연맹은 주요 전력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희생말로 쓰는 작전을 구사한다. 인질이 필요하면 인질을 던져주면 된다. 주로 레벨이 낮은 저 레벨의 유저. 그것도 자국의 서버에서 좋은 말로 속여서 데리고 온 유저들을 데리고 와서 인질로 써 먹는 것이다. 이번에 한니발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동원한 것도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사실 유니버스 연맹의 주요 전력은 아직도 멀쩡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레이드에는 유니버스 연맹의 신흥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북한팀이 전혀 참전을 하지 않았다. 이번 레이드는 오로지 블레인 허드슨이 자신의 독단으로 북한에 비밀로 하고 움직인 것이다. 왜 그가 그렇게 했느냐고 하면···. 그냥 시시한 질투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북한팀이 스파르타쿠스를 물리쳐 줄때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 후에 항우까지 가뿐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제까지 유니버스 연맹의 맹주는 미국이었다. 물론 실제로 미국이 우리가 맹주다. 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의 장한은 일단 미국에게 세력이 뒤지는 것을 인정하고 한걸음 물러난 상태였다. 서독의 콘러드 크라우스는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뭐라고 나서서 말하기에는 서독과 미국은 팀으로서의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난 북한이 변수로 자리한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를 처리할 때는 그냥 무술을 잘하는 유저가 한명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것은 그냥 특이점일 뿐. 팀의 강함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스킬과 아이템이 우열을 가르는 싸움이 되면 틀림없이 자신들 미국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항우와의 싸움을 지켜봤을 때 그런 생각은 쏙 사라졌다. 북한팀은 진짜 괴물들이었다. 가장 약해 보이는 사람도 블레인 허드슨만큼은 강해 보였다. 놈들이 항우를 일방적으로 사냥하듯이 싸우는 것을 보고 블레인 허드슨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고작 열 명 남짓한 놈들이 어째서 그렇게 강한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대로는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생각했던 블레인 허드슨은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피라미 유저들을 잔뜩 동원해서 한니발에게 도전을 한 것이다. 설사 이기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름을 알아내기만 해도 충분한 공이 되는 것이 80층 클래스의 레이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한니발의 이름을 훌륭하게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알아내고 나니 레이드의 방식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블레인 허드슨은 콘러드 크라우스와 짜고 이 정보를 한우리 연맹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한우리 연맹에 빚을 지우고··. 동시에 그들이 한니발에게 도전을 하게 해서 한우리 연맹의 힘을 깎아내려는 꼼수였다. 뭐···. 그게 얼마나 뜻대로 될지는 나중이 되어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저번에 항우는 너무 쉽게 들켰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안 들키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한니발이라는 힌트를 최대한 숨겼죠. 딱 하나 있는 힌트가 고작해야 사막이었으니... 제가 생각해도 이거 맞춘 분들은 능력자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91화 <슬기의 각오> “한니발? 그리고 전략 승부?” “예. 그렇다고 합니다.” 정운은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해서 연맹원들에게 82층의 한니발 공략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다 들은 연맹원들을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어떤 의미로는 스파르타쿠스 때 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것 아닌가?” “그렇죠···. 한니발과의 전략 승부라··. 제길, 차라리 펠레하고 축구로 승부하라고 하지··.” “그거나 저거나요?” “망할····.” 유저들은 모두들 난색을 표했다. 차라리 한니발이 부하로 10만 대군을 동원했다고 해도 지금만큼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쪽도 상대와 전략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사실 이쪽에는 전략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없었다. 한중겸이나 박추성이 전쟁에 참여하기는 했다. 6.25전쟁과 독립군으로서 청산리 전투 등에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이름없는 일반 병사로서 참여했던 것이다. 뜻은 훌륭했고 용기는 가상했지만 전략에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좋았다. 유일하게 지휘관을 역임해 본 것은 딱 한명 뿐이다. ‘···세레나. 만에 하나 가능성이 있다면 그녀가 아닐까?’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붕붕 휘둘렀다. 세레나를 시키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나 리스크가 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운의 그림자에 깃들어 있는 관우? ‘···아니야. 삼국지에는 문무겸비라고 하기는 하지만 사실 관우가 신묘한 전략으로 누구를 이겼다. 라고 하는 기록은 거의 없어.’ 백번 양보해서 관우가 실제로 전략에 조예가 깊은 문무겸비의 남자라고 해도 승산은 희박하다. 상대는 시시한 2류 전략가가 아니라 한니발이다. 중국에서 저 한니발을 상대하기 위해서 비슷한 이름을 데리고 온다면 손자나 제갈량, 하다못해 주유 정도는 데리고 와야 격이 맞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우로서는 격이 맞지 않았다. “으음·····. 전략 승부라··. 지금부터 전략을 공부함녀 어떨까요?” 영국의 유저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생각할 가치도 없는 무지한 의견이었다. “지금부터? 어느 세월에? 그리고 그렇게 공부한다고 해서 한니발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지?” 전쟁터에서의 전략이라는 것은 노력보다는 재능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 중국에는 손자병법을 비롯해서 수많은 병법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중국의 전략가들은 그런 병법서들을 고시생 법전 읽듯이 줄줄이 읽고 외운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제갈량이나 손무처럼 훌륭한 전략가가 될까? 답은 아니다. 택도 없다. 그들 대부분은 2류에서 3류를 오가는게 보통이다. 에디슨은 말했다. 천재는 99%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 라고···. 좋은 말이긴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여기저기 다 갖다 붙이고 있는데····. 사실 발명가가 한 말은 발명가들에게만 적용하면 된다. 세상에는 99%노력 따위는 1%재능에 비해서 전혀 가치가 없는 분야가 수두룩하다. 좀 잔인하고 냉정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사실이기는 하다. 특히 전략이라는 것은 재능의 유무가 가장 중요한 분야일지도 모른다. 치밀하게 적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능력. 아군의 여력과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냉정함. 지형지물을 비롯해서 수많은 변수를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치밀함···. 전략가에게 필요한 재능이라는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했다. 역사상에 이름을 날린 전략가들 대부분은 자신만의 확고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니발의 이름은 최상위급이었다. 그 남자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한니발 보다 낫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인류사를 통틀어도 거의 없었다. 그 정도로 한니발의 전략은 발군이었다. “후우····. 일단, 모두들 뭔가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뭔가 돌파구가 있을 겁니다.” 정운은 그렇게 연맹의 유저들에게 말하면서 회의를 마쳤다. 다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정운으로서도 다른 이게 가능할지 안 할지는 의문이었다. ‘한니발과의 전략 승부···. 너무 승산이 없어···.’ 정운은 그렇게 속으로 한숨만 쉬었다. “하아····. 하아·····.” “····정운씨····.”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정운은 슬기와 진하게 사랑을 나눈 직후였다. 슬기는 자신의 남자의 품에 안겨서 그 숨소리를 듣고 체온을 느끼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정운에게 말했다. “고민은 좀 풀렸어요?” “·····아니.” “그래요·····.” 슬기는 안쓰럽다는 듯이 정운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미 함께 한 세월이 충분한 정운과 슬기였다. 표정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알고있었다. 정운이 슬기와 살을 겹치는 일이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뭔가 일이 막히고 고민이 있을 때는 평소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슬기는 예민하게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자기 남자가 아닌가? 그럴 때면 슬기는 그저 넉넉한 바다처럼 모든 걸 받아들여주고 정운을 위로해준다. 정운도 그런 슬기의 마음에 더 위로를 느끼고는 했다. 비록 일이 안 풀리더라도 사랑하는 여인의 살내음에서 잠깐의 위안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없어.” 정운은 한니발의 공략에 관해서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슬기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다 잘 될 거에요.” “어떻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그건····, 제가 당신을 믿으니까요.” 슬기의 말은 그냥 억지였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막연한 억지였다. 그러나··. 때때로 살다 보면 그런 억지가 위로가 될 때도 있는 법이다. “고마워···.” 정운은 다시 슬기를 품에 안으면서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슬그머니 움직여서 슬기의 부드러운 가슴으로 향했다. “꺄···. 정운씨, 방금 그렇게···. 앗····.” “방금은 방금, 지금은 지금.”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웅크리고 있는 슬기의 몸을 서서히 열어갔다. “그런게 어디 있어요···. 아··· 정말···. 거기는··.” “거기라고 말해도 난 몰라.” 정운은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끈질기게 슬기의 몸을 여기저기 자극해 갔다. 슬기는 부끄러우면서도 즐겁기도 한 묘한 기분에 정운의 손길에 쓰다듬어졌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한 번 슬기의 품안에 끈질기게 파고드는 것에 성공한 정운이었다. “아···. 정말이지··.” “싫어?” “····몰라요. 치사하게···.” 정운은 슬기의 귀여운 입술이 뾰족하게 튀어나오자 그 입술에 키스를 해서 쏙 집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둘의 몸이 서로 뜨겁게 부딪혀 갔다. 한니발 공략에 관해서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짜냈다. 우선은 정면적인 전략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그러니 예전의 역사에서 한니발에게 통 할 만한 작전을 발견 할 수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여러 가지 역사적인 문헌을 뒤져보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정운이나 세레나가 역사적인 인물을 자기 휘하로 들인 것처럼 혹시 모를 역사적 위인중에 전략가 캐릭터를 찾아서 도전 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는 갑자기 실시간 전략 게임이 유행하기도 했다. 정운은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실제로 행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진지했다. ‘하긴···. 나라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정운은 한숨만이 절로 나왔다. 이제까지 그 어떤 강적을 만났을 때도 이렇게까지 막막하게 막힌 적은 없었다. 유니버스 연맹 역시 한니발의 전략에 관해서는 그다지 답이 없는 것일까? 어쩐지 방관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누군가가 실 날같은 승기를 찾았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슬기였다. “정운씨, 제가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어느 날 갑자기 슬기가 꺼낸 말은 정운을 깜짝 놀라게 했다. “슬기 네가?” “예. 제가요.” “·········아니, 무리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무리 아니에요. 일단 들어봐요.” “싫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등을 휙 돌리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정운을 슬기가 꼭 잡고는 고집을 부렸다. “일단 들어는 봐요. 제발요.” “···········들어만 볼게.” 정운은 슬기의 간절한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슬기는 정운을 눈앞에 두고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설명이 계속되면 계속 될수록 정운의 눈살을 찌푸려졌다. “····그거··, 실험은 해 본거야? 아무런 실험도 없이 그렇게···.” “일반 서버에 가서 삼대 길드의 협조를 얻어서 해 봤어요.” “··········그렇다면 그 작전을 다른 사람이 시행 할 수 있도록···.” “정운씨, 알잖아요. 이 작전은 저 밖에 할 수 없어요.” “···········.” 정운의 미간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정운도 알고 있었다. 이 작전은 상당히 잘 짜여 있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한니발이라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작전을 실행하면 누구도 아니고 슬기가 혼자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거야.’ 정운으로서는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위험을 무릅 쓸 수 있다면 주저 없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심인 것도 알고 연맹의 리더로서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슬기를 위험에 내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슬기라고 그런 정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꼭 정운에게 이 작전의 허락을 받고 싶었다. 다이앤 여왕이나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공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운을 통해서 말이다. “정운씨, 부탁이에요. 절 믿어줘요.” “아니···. 이건 믿고 말고 할게 아니야. 너무 위험해.”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슬기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건 결국 저를 못 믿겠다는 거잖아요? 위험한 다리는 당신도 세레나도 잔뜩 건넜잖아요?” “난·····. 내 경우는····.” 정운은 할 말이 궁색했다. 사실 이번의 경우 논리도 도리도 모두 슬기에게 있었다. 정운이 하고 있는 말은 자기 여자를 위험에 처하게 하기 싫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오판이었다. 이번 뿐 만이 아니다. 정운은 쭉 슬기와 세레나를 자신의 보호 속에 두려고 했다. 그녀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보호하기만 바빴다. 하지만···. 슬기의 입장에서는 그게 달갑지 만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정운이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 것이 몇 번인지 새기도 포기했다. 언제나 무모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리스크를 무릅쓰면서 싸우는 정운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슬기로서도 형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이 정운에게 등을 보이면서 앞으로 헤쳐 나갈 기회가 왔다. 슬기로서는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운에게 항상 보호만 받는게 자신들의 사랑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운씨, 부탁이에요. 절 믿어 주세요. 반드시 이길게요. 정운씨도 항상 그렇게 해 줬잖아요?” “········그건······. 음····.” 정운은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정작 입에서는 궁색한 변명 한 구절도 나올 수 없었다. 며칠 후···. 정운은 한우리 연맹의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통고했다. “내일···. 한니발을 공략합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승산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 한니발을 상대로?” ============================ 작품 후기 ============================ 슬기가 메인으로 나서서 활약하는 레이드 장면은 이게 처음이네요. 결국 정운이 고집을 꺾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92화 정운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승산에 관해서 물어봤다. 정운은 거기에 관해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작전의 시행은 이슬기가 합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할 시에는 연맹은 후퇴 합니다.” 정운의 말을 들은 다른 유저들···. 특히 한국팀의 유저들은 크게 놀랐다. 저 말은 슬기가 실패하면 슬기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그대로 물러나겠다는 말이었다. 정운이 슬기를 얼마나 애지중지 아끼는지는 한국팀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냉철한 배대호와 윤정철도 정운의 결정을 듣고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모두들 넋을 잃은 장소에서 이보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야. 정운이 너!!!!” “언니!!!” 이보영이 뭐라고 말 하려고 하자 그녀를 말린 것은 다름 아닌 슬기 본인이었다. “슬기야···. 너 정운이하고 싸웠니? 쟤가 너 이제 지렸데? 나한테 말해 확 그냥···.” “그런 것 아니에요. 제가 모두 지원한 일이에요.” “그게···. 그게 말이 돼? 이제까지 아무도 희생자가 나지 않겠다고 하던 애가 다른 아닌 너 한테···.” “알아요. 그러니 꼭 이길 거예요. 그러니 절 믿어 주세요.” “··············.” “··············.” “··············.” 슬기의 말에는 확연한 각오가 느껴졌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날 밤····. 정운은 오랜만에 독한 술을 꺼내서 병째로 들이켰다. 하지만··. 아무리 마시고 또 마셔도 술이 취하지를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최악의 사태만이 떠올랐다. ‘이렇게··· 이렇게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진 적이 없었는데····.’ 정운은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모든걸 취소할까? 슬기를 이탈의 크리스탈을 써서 차라리 그라운드 제로에서 내보내 버릴까? 정운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제길····.” 결국 다시 독한 술만 들이키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정운을 껴안았다. “······많이 힘들죠? 그 마음 알아요.” “··············.” 들려오는 목소리는 정운이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 두 여자중에 한명이었다. 슬기는 자기 체온과 자기 목소리로 정운의 노기를 살살 달래듯이 위로하려고 했다. “당신이 항상 위험을 무릅쓰고 싸울때···.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길 때··. 저도 세레나도 항상 두렵고 안타까워 했어요.” “····그래. 그렇게 따지면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건 평소의 업보인가?” 정운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다시 한 번 술병을 들이키려고 했다. 하지만 슬기는 손을 뻗어서 그런 정운의 손을 말리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마시지 마요. 그보다는···. 지금은 저를 달래줘요.” 슬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가슴에 정운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정운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슬기의 심장 박동은 평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저라고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모두의 앞에 서서 저 혼자서 목숨을 걸어보는 것은 처음이니까요···. 당신은 수도 없이 했던 일인데···. 한심하죠?”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정운의 말에 슬기는 정운의 품에 안기면서 말했다. “날 무섭지 않게 해 줘요.” 정운은 자기 품안에 있는 슬기의 턱을 살며시 들어서 그녀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그날 밤···. 정운은 마치 처음에 슬기를 안을 때처럼···. 아니 그때 보다 훨씬 더 격하고 간절하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지금 자신의 품안에 있는 이 체온이··. 이 따뜻함이 내일이 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 흐르는 시간 일분 일초가 미치도록 아까웠다. “정운씨···. 정운씨···.” “슬기야······.” 슬기 역시 정운의 목을 부드러운 팔로 평소보다 훨씬 더 격정적으로 몸부림 쳤다. 내일의 두려움을 모두 떨쳐 버리겠다는 듯이 정운의 품안에 매달리고 매달렸다. 그건 아름다움과 처절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뜨겁고 안타까운 밤이 지나고···. 결국 해는 떠올랐다. 정운은 아침 햇살에 비치는 슬기의 하얀 나신을 보면서 그녀를 꼼꼼히 바라봤다. “····뭐 해요?” “그냥···.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있지.” “핏····.” 슬기는 정운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일어났다. 아마 저 말은 세레나에게도 동시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뭐··, 그렇게 생각하면 공동 1위인가? 그냥 그렇다고 치지 뭐···.’ 슬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옷을 입었다. 이제 망설일 시간은 끝이었다. 각오는 다졌다. 이대로 죽으면 후회가 남을 정도의 미련은···. 잔뜩 있다. 하지만 차라리 좋았다. 절대로 죽을 생각으로 가는게 아니니까. 지금 슬기가 다지는 각오는 죽을 각오가 아니다. 어떻게든 이기고 또 살아남기 위한 각오이다. ‘반드시···. 반드시 돌아오고 말겠어.’ 그렇게 슬기는 그라운드 제로 유저로서의 인생에서 최초로 단독적인 주인공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한니발의 영역. 그것은 그저 드넓은 사막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유저가 들어가면 그때는 알림창이 뜬다. 띠리링!!! [82층 보스룸이 진입하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이 뜨자 슬기는 태연하게 예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82층 보스룸에 진입합니다. 보스몹의 이름을 말해 주십시오.] “한니발.” 슬기가 말을 하자···. [정답입니다. 노 패널티로 82층 보스에게 도전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일행은 거대한 보스룸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흠···. 이번에도 손님인가? 내 이름은 이미 알려진 모양이군.” 한우리 연맹이 안에 들어가자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 당당한 체구의 장군이 한 명 있었다. 저 남자야 말로 한니발 바르커스. 로마를 벌벌 떨게 했던 희대의 명장군이자 카르타고 최후의 거물이었다. 한니발 LV.? [카르타고의 비운의 명장이며 그 전략은 인류 역사상 열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오로지 진략을 향한 공략만이 가능하면 다른 식으로의 직접 공격은 절대 불가능 하다] ME로 찍어본 정보에도 한니발은 기존의 보스몹들과 달리 상당히 특이하게 나왔다. 기본적으로 레벨이 나오지 않았고 오로지 전략을 향한 공략만이 가능하다고 나왔다. ‘제길···.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겉보기에는 평범한 걸?’ ‘확실히···. 무력은 평범해 보여? 항우 때와 달리 위압감은 없군.’ ‘전략 승부만 아니었다면····.’ 한우리 연맹은 그렇게 안타까운 시선으로 한니발을 바라봤다. 그런 유저들을 보면서 한니발이 말했다. “자, 룰을 설명하지. 나와의 전투는 전장에서 군략을 겨루는 것으로 시작된다. 군의 배정은 다음과 같다.” 한니발은 한 가지 정보창을 열어서 유저들에게 보여줬다. 한니발. 카르타고의 보병 43,000명. 카르타고의 기병 3,000기. 전투 코끼리 80기. 도전자. 로마식 보병 34,000명. 로마식 기병 3,000기. 누미디아 기병 6,000기. “이상의 조건에서 나를 군략으로 이기면 패배를 인정하겠다.” 한니발의 설명을 다 들은 이보영이 소리를 빽 질렀다. “총 병력이 당신이 훨씬 더 많잖아. 그래서야 정정 당당이라고 할 수 있겠어!!?” “우는 소리 하지 마라. 같은 조건에서 나에게 패배라는 굴욕을 안긴 자가 있다.” 한니발의 말에 한중겸이 중얼 거렸다. “자마전투··. 스키피오를 말하는 거군.” 한중겸의 말에 한니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편하겠군. 그럼 더 이상 이 전투가 불리하다는 말은 용납하지 않겠다.” 한니발의 선언에 한우리 연맹은 눈살만 찌푸렸다. ‘말이야 쉽지··. 그게 당연히 이기는 전투였으면 스키피오가 영웅 취급 받았겠냐?’ ‘제길····. 순 억지야···.’ 유저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니발의 의견에 동감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 정운은 이 순간 한니발이 어째서 파우스트에게 혼을 팔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만큼 마지막 전투에 한이 맺혔다는 거겠지···.’ 한니발의 사실상 마지막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자마 전투. 한니발의 기발한 전략으로 거의 우세를 점하고 있던 카르타고가 완전히 패색이 짙어진 것이 바로 그 전투에서였다. 82층의 보스몹이 한니발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정운은 각종 자료를 뒤적이면서 한니발에 관한 자료를 찾았다. 그리고 한니발의 자료를 찾으면서 꼭 빼놓을 수 없는 한명을 발견했다. 그 남자가 바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한니발의 숙명의 라이벌이자 대적자라고 할 수 있는 남자였다. 스키피오는 시종일관 한니발에 비해서 한수 아래로 취급 당해왔다. 마치 주유가 제갈량에 비해서 한수 아래로 취급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주유는 끝까지 제갈량을 넘지 못했지만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최후의 최후에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뛰어넘었다고 평가 하는 전투가 바로 이 자마 전투에서였다. 한니발은 어쩌면 자신이 스키피오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에 커다란 좌절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천재들은 일면 유리 같은 면이 있다. 특히 한니발처럼 자신의 재능에 절대적이 자신감이 있던 천재들은 더욱더 말이다. 한 번 깨지고 나면 다시 붙이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프라이드가 강한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무너지고 나면 오히려 범재보다 더 크게 폭삭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담이지만 제갈량이 총애하던 마속이라는 청년은 원래 제갈량이 강유 이전에 자신의 후계자로 보던 천재였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자만과 실패로 아군에게 커다란 피해를 줬고 결국은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허무하게 끝이 안 좋은 천재들의 말로는 상당히 흔했다. 한니발에게 스키피오가 아마도 그런 쇼크를 준 상대일 것이다. 쭉 자신의 발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뛰어 넘었다. 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런 형태로 공략의 모습을 갖춘 것도 그 자마 전투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 어서 나와라. 도전자는 누구냐?” 한니발의 말에 정운이 먼저 한 걸음 나서서 말했다. “그 전에 묻고 싶은게 있다.” “또 뭐냐!!?” 한니발은 계속되는 질문에 살짝 짜증을 냈다. 그런 한니발에게 정운이 말했다. “한 번에 두 명이 도전 하는게 가능하냐?” “···그게 무슨 말이냐?” “어떤 전략이든 군이 있으면 장수가 필요한 법이지. 도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 도전자의 말이 되어줄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다.” “············네놈 제정신인가?” “가능하다는 말이군.” 정운의 말에 한니발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가능은 하다. 단, 알고 있겠지? 반상의 말이 된다는 것은 유저로서 가지고 있는 능력은 모두 잃어 버리다는 말이다. 또, 지휘관이 패했을 시에는···.” 정운은 한니발의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말했다. “아!! 됐다. 졌을때 어떻게 될 거야 뻔하지···. 내가 그저 방관자가 아니기만 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 침묵하고 있는 한니발에게 정운이 말했다. “내가 말이 되지. 도전자는 저 아가씨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를 가리켰다. 슬기는 놀란 얼굴을 하고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정운씨····. 이런 생각 하고 있었어요. 어째서···.” “널 믿어. 더 이상 너를 의심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정운은 슬기에게 미소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함께 걸게 해줘. 네 승리에 내 목숨도 같이····.”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마지막 자마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바로 사막지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막지대에 한 맺힌걸로 만든 것입니다. 293화 <82층 공략> 정운의 말에 뒤에서 누군가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저도 같이 가죠.” “세레나····?” “알죠? 제가 군을 지휘하는 것에 누구보다 익숙하다는 것을·····.” “···············.” 슬기는 코끝이 찡해졌다. 이긴다고, 이길 거라고 스스로를 다스리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승리에 정운과 세레나가 목숨을 거는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이건···? 호승심? 나한테 이런 오기가 있었나?’ 슬기는 스스로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에 크게 놀랐다. “알았어요. 두 사람 목숨은 제가 맡을게요. 힘내야 해요.” “걱정하지 마.”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슬기와 정운, 그리고 세레나의 한니발 공략이 시작되었다. 뭔가가 부웅 뜨는 느낌이 들었던 정운은 이내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사막의 한가운대로 이동했다. 정운은 자신의 갑옷과 장비를 입고 있는 것은 확인했다. “흠···, 이건 혹시?” 정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비를 확인했다. 하지만 평소에 보이던 스킬이나 속성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세레나 당신은 어때? 컨디션은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마스터.” 세레나 역시 오랜만에 유저로서의 능력이 다 봉인당하고 오로지 한명의 기사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렇게 정운과 함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던 세레나에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세레나, 정운씨 들려요. “슬기!!? 넌 어때? 괜찮아?” 정운의 물음에 슬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전 괜찮아요.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위에서 통째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아요. 슬기는 정말 신기한 감각이었다. 마우스도 없고 모니터도 없었지만 전략 게임과 비슷한 광경이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전장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전장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병사들을 움직이는 것도 지시를 내리는 것도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슬기의 말을 들은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 다행이다.” ‘적어도 프로 게이머들이 하는 것처럼 딱히 컨트롤 차이로 밀릴일은 없겠네.’ 그렇게 생각한 정운은 다시 슬기에게 물었다. “그럼 전투는 어떻게 진행 할 거야? ‘그 계획’ 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운의 말에 슬기가 대답했다. -일단··. 거슬리는 코끼리 병력과 저쪽의 기병을 묶어 줘야 해요. “그래···. 알았어. 그 부분은 나하고 세레나가 어떻게 할게. 나한테 로마식 기병을, 세레나에게는 누미디아 기병을 맡겨줘. 보병의 컨트롤은 오로지 슬기 너에게 맡길게.” -알았어요. 개전은 30분 후니까 그때까지 대기하고 계세요. 전 진형을 갖출게요. 슬기는 그렇게 말했고 정운은 세레나에게 말했다. “세레나 들었지. 슬기의 계획을 진행 시키기 위해서는 적을 한곳에 모아야 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발 빠른 기병과 묵직한 코끼리를 다 잡아야 겠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세레나와 정운은 슬기의 지시를 따르면서 방진의 형태를 갖췄다. 슬기에게 주어진 병력은 로마의 군단병이 핵심 전력이었다. 사실 로마라는 나라가 보병의 방어력 하나로 지중해를 호령 했다고 말 할 정도로 보병이 탄탄한 나라였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기병은 소흘하게 대했다. 기병이 필요하면 현지의 원주민들에게 차출, 혹은 협조를 구하는게 보통이었다. 로마인들이 직접 기병대를 본격적으로 꾸리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자바 전투 때만 해도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군세를 상대하기 위해서 기병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간신히 로마기병을 3,000기 동원한 것이다. 고작 기병 3,000기이지만 기병에 대한 가치를 그저 전령이나 지휘관들 전용 정도로만 여기던 로마에게 있어서 3,000기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물론 그러고도 모자라서 카르타고의 속국 취급을 받고 있던 누미디아를 구슬려서 6,000기를 얻어낸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로마인들이 기병을 육성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 당시 남부의 로마인들은 육식을 하지 않았고 체구도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말을 잘 타지 못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위쪽의 갈리아지방이나 트리키아 지방에서는 로마인들을 보고 남쪽의 말 못타는 난쟁이들 이라고 놀렸겠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한니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한니발은 아마도 이 전투를 칸나에 전투처럼 이끌어 가고 싶을 것이다. 칸나에 전투. 그것은 한니발이 기원전 218년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 반도에서 치른 전투였다. 당시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를 급습. 타키누스 전투와 트라시메누스 전투에서 대승을 이룬다. 로마 원로원은 거기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미 한니발의 기세에 힘입어서 수많은 동맹시들이 로마와 한니발의 사이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로마 원로원은 무려 8만 7천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해서 한니발을 요격하기 위해서 나갔다. 가뜩이나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는다는 기행을 저지를 줄을 몰랐서 허를 찔렸던 로마로서 그 8만 7천은 정말 쥐어짜고 쥐어짜서 만들어낸 대군이었다. 바로와 아이밀리아누스라는 장수들이 그 대군을 조직해서 5만의 한니발 군대와 결국 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로마의 대패였다. 로마군은 7만이 죽고 1만이 포로로 잡힌것에 반해서 카르타고 군은 고작 6,000명의 사망자만 나왔을 뿐이다. 그 6,000명도 카르타고 본국의 병사가 아니라 히스파니아와 갈리아의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로마 역사상 그 정도의 대패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패배였다. 충격은 어마어마했고, 이로 인해서 로마는 카퓨아, 타렌툼, 심지어 시칠리아의 시라쿠사까지 여러개의 동맹시들이 로마를 이탈했고 이에 로마는 정말 멸망 직전까지 치달을 뻔 했었다. 그 칸나비아 전투에서 한니발이 사용한 포위 전술은 아직도 포위 섬멸전의 교과서 중에 하나로 사용될 정도로 뛰어난 전투였다. 발이 느린 로마군단병을 초승달 진형으로 감싼 후에 포위 섬멸해 버린 것이었다. 아마 한니발은 이번에도 기동력을 살려서 슬기의 군대를 포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다만, 슬기가 거기에 어떻게 대처 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전황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말했다. “누가 이길 것 같아요?” 다이앤 여왕이 윤정철에게 질문했다. 그녀 역시 결과가 초조한지 윤정철의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윤정철이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아직 시작도 안했으니 알기는 어렵지. 하지만····.” “하지만 뭐죠?” “정운이 녀석 아무 승산 없이 닥치고 도전할 성격은 아니야. 뭔가 승산이 있겠지?” “혹시 직접 장수로 들어간 것도 뭔가 그런 이유일까요? 아!! 하지만 유저로서의 능력도 모두 봉인당했는데····.” “그건 아마도 즉흥적인 거겠지. 아까 슬기의 표정을 보아하니 정운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 애도 모르는 것 같았어.” “그렇군요·····.” 윤정철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만약···. 제가 슬기 같은 선택을 한다면 당신도 저를 위해서 저 안에 들어가 주실 건가요?” “아니.” 단 번에 거절하는 윤정철의 말을 들으면서 다이앤 여왕은 살짝 실망한 얼굴을 했다. 사실 날 위해서 목숨을 걸어줄 거라는 말에 바로 예스라고 대답한다고 몇 명이나 믿을 수 있겠느냐만···. 그래도 빈말이라도 좋으니 그런 말을 듣고 싶은게 여자들의 어쩔 수 없는 심리였다. 그런 그녀에게 윤정철이 말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넌 절대로 목숨 걸게 하지 않아. 무조건.” “·······예.” 윤정철의 한 마디에 다이앤 여왕의 표정이 사르륵 녹아 버렸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면? 그 갈대를 조종하는 바람은 남자다. 슬기와 한니발의 군사 배치는 끝났다. 슬기는 한니발의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서 보병을 전방에 세 갈래로 나눠서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기병대 두 개를 배치했다. 세레나와 정운은 각각 그 기병대를 지휘하는 자리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니발의 군대는····. “어!!?” “저건? 뭐 하려는 거지? 포위 작전을 쓰려는 것 아니었나?” “저건···? 중앙돌파? 로마 군단 보병을 상대로?” 지켜보든 한우리 연맹은 한니발의 공개된 진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앙에 코끼리 부대를 배치하고 거기에 더해서 그 코끼리 부대의 뒤편에 기병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옆에는 보병을 골고루 배치해서 마치 화살과도 같은 진형을 만들었다. 한니발은 자신의 진형을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에 관해서 조사를 많이 한 모양인데···. 오히려 그게 패착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전군 전진!!!” 한니발이 크게 외치자 카르타고의 군단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이건···?” 슬기는 한니발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중앙 돌파진을 갖추고 천천히 전진해 오자. 당황했다. 이래서는 애당초 계획과 많은 것이 틀어진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적이 예상하는 대로 움직이는 지휘관은 무능한 거다. 허를 찌를 줄 알아야 유능한 지휘관이다. 천하의 한니발이 다른 사람들의 손바닥 아래에서 순순히 놀아날 리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보병을 중앙으로 밀집 시키면···. 어!! 정운씨!!!” 슬기가 말을 고민하는 사이에 정운이 자신의 기병대를 이끌고 먼저 출격했다. 그리고 세레나 역시 한 박자 늦춰서 원을 그리듯이 옆으로 돌아서 출전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전방에 서 있는 코끼리 부대를 부순다.”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정면으로 말을 달렸다. 한니발이 저런 중앙돌파의 진형을 취한 것은 정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숫적 으로도 우위에 서 있는 카르타고 군이 그저 힘과 힘의 승부로 전투를 몰아간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발을 멈춰야 하는 것은 저 전방에 있는 코끼리 부대다. “제길···. 스킬 하나만 쓸 수 있어도···, 아니 하다 못해 지금 타고 있는 말이 흑토이기만 해도···.” 정운은 점점 가까워지는 코끼리 부대를 보면서 이를 꽉 물었다. 만약 지금 정운이 유저로서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대로 기마 차지를 해서 다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운도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물론 이때가지 한 수련이 헛되지 않아서 보통의 인간들 보다는 훨씬 더 강했다. 매일같이 후한말의 장수들이나 양산박의 호걸들을 상대로 훈련을 했지 않는가? “하아앗!!!” 정운은 창 한 자루를 들고 그대로 전방의 코끼리를 향해서 집어 던졌다. “뿌오오오!!!!!” 코끼리는 자신의 미간으로 정확하게 날아오는 창을 맞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 분노했다. 하지만 심각한 대미지는 아닌지 제법 멀쩡했다. 사실 멀리서 창을 날린 것 가지고 두꺼운 코끼리의 가죽과 뼈를 뚫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차라리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옆구리 같은 곳에 박혔다면 좀 나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정운 혼자만 던졌을 때의 일이다. 정운이 먼저 창을 던지자 그대로 정운을 뒤따르던 기병대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여분의 창을 집어 던졌다. 휘휘휙!!! 무수한 창들이 허공을 나르고 코끼리 부대를 정중 시켰다. 그리고 정운은 부대에서 창을 다 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갔다 박아!!!!” “우오오오!!!” “돌격!!!!!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창을 다 던진 500기 가량의 기마들이 코끼리 부대를 향해서 용맹하게 돌격했다. 정운은 그런 기병대를 보고 한니발을 향해서 중얼 거렸다. “실제 전쟁을 모티브로 했다고 해도····. 여기는 게임의 세계다. 허를 찌르면 이길 수 있지.” ============================ 작품 후기 ============================ 아아... '로마의 혁명' 쓸때 자료 찾는것에 학을 때고는 다음에는 내 상상력을 살릴 수 있는 게임 소설을 쓰자. 라고 해서 만든게 악마의 게임이었죠. 그런데 때로는 다시 '로마의 혁명'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한니발에 관련된 얘기도 써 보고 싶었고 제가 우리나라 사업가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유일한 선생님 얘기도 써보고는 싶었는데... 항상 부딪히는 난벽은 자료의 장벽이죠. 로마의 혁명때만 해도 자료 수집으로 산 책만 해도 책장 한칸에 가득이었으니... 그래도 또 그런 소설도 언젠가 다시 집필하기는 할 겁니다. 요즘은 킹덤 때문인지 진시황 시대가 땡기더군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94화 정운은 이것이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라는 것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보통 부하들에게 자살 특공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따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병사들은 이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상과 같은 존재들··.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을 불사하고 그대로 달려든다. 콰앙!!! 콰직!! “아악!!!” “으아아악!!! 500기의 기마대가 80기의 코끼리 부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중량의 차이는 압도적이었지만 그래도 500이나 되는 숫자가 앞을 가로막자 코끼리 부대도 일순간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노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측면을 뚫는다!! 전원 돌격!!!!” 세레나가 이끄는 또 하나의 기병대가 좌측에서 활을 쏘면서 코끼리 부대를 향해서 돌격했다. 코끼리 부대라고 해도 그 근본은 내발 짐승. 전진할 때는 강력하고 박력이 있지만 측면과 후면을 잡히면 위력은 반감한다. 세레나는 정운이 정면으로 코끼리 부대를 향해서 돌격하는 것을 보자마자 측면으로 빙 돌아서 우회 돌격을 했다. 정운이 단 한순간이라도 코끼리 부대의 발을 멈추면 그때 옆을 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중했다. “죽여라!!!” “으아아아!!!!!” 세레나의 기병대가 코끼리 부대의 측면을 치기 시작했고 코끼리 부대는 속수무책으로 전멸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걸 두고 보지 않고 좌측과 우측에 대기하고 있던 보병이 달려 들였다. “죽여라!!” “난전이 되면 숫자가 많은 우리가 유리하다!!!” 카르타고의 보병들이 코끼리 부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서 달려왔다. 하지만 그걸 보고 있을 정운이 아니었다. 그대로 정운은 기병대를 돌려서 보병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어림없다!!!!” 정운은 그대로 말 위에서 창을 내려치고 찌르면서 보병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스킬을 쓰지 못하는게 많이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 병졸들을 쳐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외로 정운이 뒤에서 이끌고 있는 병사들이 상당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할 수 있어!!!” 정운과 세레나의 활약으로 인해서 슬기는 이대로 가기만 하면 충분히 승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서둘러 보병을 전진 시켜서 정운과 세레나를 서포트 하려고 했다. 한우리 연맹은 슬기와 한니발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이겼다!!” “완전히 막았어. 중앙 돌파는 원래 발이 멈추면 선두부터 각개격파 당하기 딱 이라고.” 모두가 좋아하는 와중에 딱 한명···. 이 상황을 차분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이상하군.” “대호 형님?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한중겸이 배대호에게 말했다. 그러자 배대호가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현장에서 정운이하고 세레나가 활약을 해줬다고는 하지만···. 너무 쉽게 이기고 있어. 한니발이 이렇게 쉬운 상대라면 진작 유니버스 연맹이 이겼을 거다.” “그건·····.” 배대호의 한 마디에 한우리 연맹에는 다시 불길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건 너무 쉽다는 느낌이었다. 한니발은 반상의 체스판 같은 전황을 지켜보면서 중얼 거렸다. “이건 좀 놀랐군·····.” 그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내 손바닥 위에서 딱 예상한 대로 놀아나 줄줄은 몰랐다. 좀 미안할 정도군.” 그리고 그가 지시를 내리자마자 전황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한니발의 진형이 변하고···. 한우리 연맹은 크게 경악했다. 멀리서 전체적인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그들로서는 끔찍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어!!!!?” “저건···? 초승달 진형!?” “어떻게··? 한참 중앙 돌파진형 중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잠깐!!! 저기 저 기병대!! 후방에 있던 기병대가 어느새 좌우 끝의 날개 족으로 가 있어.” 누군가의 말대로 한니발의 중앙 돌파 진형은 어느새 초승달 진형으로 바뀌어서 슬기의 로마 군단을 모두 포위하기 시작했다. “아···. 당했다.” 슬기의 입에서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정운과 세레나가 정면의 코끼리 부대를 박살냈을 때만 해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병을 전진 시켰는데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양쪽에서 기병대가 그물에 물고기를 가두듯이 포위망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기병만 양측면을 우회한다면 별 부담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기병을 따라서 기다렸다는 듯이 보병들이 초승달 진형으로 슬기의 로마 군단병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활을 쏘며 견제하면서 포위망을 전개하는 한니발의 군대는 그야말로 일사분란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서서히 감싸오는 한니발의 군대를 보면서 슬기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처음에는 중앙 돌파진이었는데···.” 그런 슬기의 말을 듣기라도 했던 것일까? 한니발은 얼굴에 조소를 띠우고 중얼 거렸다. “당황한 티가 뻔 하군. 애당초 코끼리 부대는 미끼였다. 처음부터 난 이렇게 포위 섬멸전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한니발이 칸나에 전투에서 이길 때는 중앙의 약소군을 미끼로 줘서 로마 보병을 끌어 들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미끼로 쓴 것은 코끼리 부대. 가장 강력한 전력을 미끼로 써서 거기에 적들의 주력을 밀집 시킨 것이다. 애당초 중앙 돌파라고 뻔히 보여줬을 때 슬기는 그걸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정운과 세레나가 코끼리 부대를 막아냈을 때 서둘러 보병을 전진 시킨 것이다. 한니발이 보기에는 뻔히 보이는 미끼를 덥썩 무는 물고기로 보였을 것이다. 한니발은 그 즉시 후방의 기마대를 움직여서 양옆으로 진형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거기에 슬기는 속수무책으로 포위망에 감싸이기 시작했다. 총 병력도 적이 더 많은 상황에서 포위까지 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슬기는 야금야금 줄어가는 아군을 보면서 패닉에 빠졌다. 그때 전장에서 정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기야. 정신 차려!!! “정운씨····.” -나하고 세레나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게. 작전에 집중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볼게!!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기마대를 추슬러서 한니발의 포위망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 한쪽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슬기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그래···. 어차피 전략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잖아.” 슬기는 자신의 지시로 병사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세한 병사의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여기서 슬기에게 무척 다행이었다. 이 작전의 핵심은 세세한 병사들의 배치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아앗!!!!” “크악!!” 정운은 자신의 창으로 적의 머리를 갈라 버리면서 숨을 물아 내쉬었다. “후우····. 슬슬 지치는군···.” 유저로서 있을 때는 몰랐지만 보통 인간의 몸으로 전장을 누비는 것에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했다. 그동안 수행한 성과가 있어서 일반 병졸들에게 당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손에 들려있는 창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 한니발의 포위망의 완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여기저기서 다발적으로 포위망을 관통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정운과 세레나의 기마대 덕분이었다. 문제는 그것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또 해야지···. 반전!!! 다시 돌격 준비한다!!!” 정운은 자신의 기마대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또 한 번 한니발의 군대를 향해서 돌격을 시작했다. 막 포위망을 빠져 나온 기마대는 정운의 명령에 충실해서 다시 포위망을 향해서 돌격했다. 벌써 이것이 여덟 번째 돌격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홉 번째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미 거듭된 돌격으로 기마대의 숫자는 심각할 정도로 줄었다. 이제는 200기도 체 남지 않은 기마대로 돌격을 한다고 해도 초반의 파괴력은 나오지 않았다. “죽여라!!!” “우오오오!!!” 여기저기서 보병들에게 발목이 잡혀서 죽어나가는 아군의 기마대가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는··. “잡았다!!” “히히힝!!!” 정운이 타고 있는 말이 병사의 창에 가슴을 뚫리고는 크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정운은 그대로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흑토 진짜 부럽네.” 정운은 말 위에서 떨어지고 지면에 서면서 이를 갈며 말했다. 흑토를 타다가 평범한 전마를 타니 마치 전용기를 가지고 있던 거부가 갑자기 다음날부터 회사에 자전가 타고 출근하는 것 만큼이나 불편했다. 정운이 그렇게 불평을 하거나 말거나 정운을 햐향해서 적들의 창칼이 떨어졌다. “죽여라!!!” “우오오오!!!!” 정운은 사방에서 달려오는 병사들을 보면서 창을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유저로서의 능력이 떨어진 지금 어려운 쌍창장을 쓴다는 것은 무리다. 대신에 후한말의 무장들에게 배운 고대 중국식의 정통 창법을 구사하면서 병사들을 베어갔다. “꺼져!!!!” 퍼퍽!! 정운이 창 한 자루를 휘두를 때 마다 거침없이 병사들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과연 언제까지 갈지는 모를 일이었다. 정운이라고 해도 체력의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끝났군. 생각보다 훨씬 쉬웠어.” 전장의 위에서 한니발은 거의 다 정리되어 가는 전장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평소와 달리 전장에 직접 끼어든 두 명의 유저들이 약간 발버둥 치기는 했다. 하지만 사실 그것 뿐이었다. 자신에게 도전했기에 얼마나 대단한 전략을 쓰는지 궁금했는데··. 그 상대의 수준은 생각보다 형편 없었다. 유인책에 그대로 걸려드는 슬기를 보면서 한니발은 실망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애당초 슬기는 한니발과 전략을 겨룰 생각은 없었다. 아니···. 정운과 세레나가 분전을 할 때는 내심 이대로 이기는게 아닌가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애당초 슬기가 준비한 전투는 전혀 다른 방식의 것이었다. 쿠쿠쿠쿠쿠쿠쿠쿠·····. “음!!!?” 한니발을 다 이겨가는 전장에서 이상한 굉음이 울리기 시작하자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저건!!?” 당황한 한니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슬기가 배치한 병사들의 포진이었다. “저건···? 저건 도대체···?” 한니발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 희대의 전략가가 슬기의 포진을 보고 전혀!! 정말 말 그대로 전혀 그 의도를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했다. 지금 슬기가 만들어서 포진 시킨 진형을 애당초 전략적인 진형이 아니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병사들을 줄을 세워서 다섯 가지 글자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것을 오행의 형태로 배치했다. “전략으로는 이길 수 없어. 그리고 나의 유저로서의 능력도 모두 봉인 당했지. 하지만····.” 슬기는 오행의 병사들의 흐르는 기운을 위쪽에서 느끼면서 병사들을 통해서 영창을 맺었다. “이 공손승에게 배운 도술은···. 유저로서의 능력이 아니야. 내가 직접 사사받은 거야. 오행역행(五行逆行)!!! 지천번복(地天飜覆)!!!” 슬기가 병사들을 통해서 영창을 외치자 마자···. 병사들을 중심으로 원형의 방진이 생기고 전쟁터의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이게 무슨···?” 한니발은 경악했다. 유저로서의 능력은 분명이 봉인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마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뭐, 엄밀히 말해서 마법이 아니고 슬기가 퀘스트를 통해서 공손승에게 전수받은 도술이지만···. 사실 한니발이 보기에는 그게 그거였다. 중요한 것은 이게 천하의 명전략가인 한니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아아... 다시 전쟁 소설 쓰고 싶어지네요. 사실 다음 작품은 이미 컨셉이 정해졌고 다다음 작품 정도로 생각해 볼만 하겠는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95화 <잠시 쉬어가는 일상.> 슬기는 생각했다. 한니발과 전략으로 승부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아니 무리 자체가 아니라 사실 무모했다. 역사상으로 위대한 전략가인 나폴레옹이나 손무 같은 다른 전략가들이 온다고 해도 상대가 저 한니발이라면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다루는 병력도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로마 군단이고···. 애당초 조건 자체가 불리하기 짝이 없었다. 지형이나 다른 조건도 아무리 봐도 한니발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판이었다. 그래서 슬기는 어떻게든 전략 이외의 승부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러던 슬기에게 공손승의 도술은 한줄기의 빛이 되었다. 예전부터 중국의 진법이라는 것은 도술과 같은 이치를 병행해서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문과 사문. 자연의 이치를 이용해서 군사적 진법을 발휘하고는 했다. 그리고 때때로는 이미 군사적 효율보다는 오로지 진법이 가지고 있는 이치만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갈량의 팔괘팔진도(八掛八陣途)가 가장 유명한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진짜로 팔괘팔진도가 백만 대군에 필적할 위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공손승의 주술 중에는 진법의 배치로 인해서 도력을 발휘하는 것들이 있었다. 슬기는 바로 그것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일반 서버로 가서 삼대 길드의 협조를 구해서 인원을 대량으로 모았다. 그리고 시험해 본 결과···. 대성공이었다. 슬기가 딱히 도술을 쓴 것도 아니고 높은 망루에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라는 식으로 배치만 한 후에 그들에게 영창을 시키자 실제로 도술이 발동한 것이었다. 슬기는 한니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바로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계산은 정확하게 맞아 덜어졌다. 지면이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면서 슬기가 배치한 군이 있던 부분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있는 병사들이 천재지변으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으아악!!!” “아아아!!!!!!”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면서 한니발을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이건·····. 후우·····. 어쩔 도리가 없군.” 전략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싸움인 전쟁터에서 효용을 발휘하는 것이다. 천재지변과 같은 이런 일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한니발의 군대는 궤멸했고 한니발은 두 눈을 꼭 감고 쓰디쓴 한 마디를 말했다. “내가 졌다.” 한니발이 그 한 마디를 한 순간····. 띠리링!!! [82층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83층으로 올라갈 자격을 손에 넣었습니다.] 한우리 연맹의 모두에게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 창이 떴다. “오오오오!!!!!” “됐다!!” “슬기가 해 냈어!!!!!” “좋았어!!!!” 한우리 연맹은 잔치 분위기였다. 절대로 앞이 보이지 않던 막막하던 한니발의 관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한니발은 슬기를 보면서 씁쓸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자바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한 나였지만···. 이렇게 어린 계집에게 또 질줄은 몰랐다. 나도 이제는 한 물 갔나 보군.” 한니발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도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명장군중에 한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스키피오보다 더 높이요.” “······내가 패배자인데?” “예.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보여줬던 그 기적 같은 전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안심하고 기다리세요.” “···기다려? 뭘 기다리라는 거지?” 한니발의 물음에 슬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가 파우스트를 이기고 나면 그때는 당신의 영혼도 자유로워 질 겁니다. 그러니 믿고 기다려 주세요.” 슬기가 그렇게 말하자 한니발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의 상냥한 말은 위로가 되는 법이지. 그게 미인이면 특히 더 말이야.” “·············” 쑥스럽게 얼굴을 붉히는 슬기를 보고 한니발이 말했다. “날 이긴 보상이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권능을 강화시켜 줄 테니 가져가라.” 그리고 한니발은 슬기를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한니발의 안에 있던 녹색의 기운이 슬기에게 스며 들어갔다. “이건···.” 띠리링!! [소울 로브가 강화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니발의 가호로 진화했습니다.] 한니발의 가호 방어력 : 1,000 마력 : 700 무게 : 10 내구력 : 무한 스킬 : 리플렉스 (적의 공격을 방어한다. 한 번 사용하면 쿨타임 24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니발의 가호가 깃들어 있어서 어지간한 공격은 자동으로 방어해준다. 하루에 한 번 적의 공격을 반사 할 수 있다.] “어머? 이건···?” 이미 한니발을 클리어하면서 생긴 보상은 따로 나왔었다. 이건 순수하게 한니발이 슬기에게 호의를 가지고 준 선물이었다. 덕분에 슬기는 오랜만에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다. 메이지가 두르는 로브 치고는 방어력이 1,000이나 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건 어지간한 갑옷들 보다 더 좋은 방어력이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적의 스킬을 반사 할 수 있다는 것도 메리트가 컸다. ‘보스몹들과 상대할 때 유니크 스킬을 상대로 쓰면···. 경우에 따라서는 잘 먹힐 거야.’ 슬기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이미 사라진 한니발을 향해서 중얼 거렸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그렇게 82층의 레이드는 끝이 났다. 미국의 전진기지. 거기에는 유니버스 연맹의 사개국 팀의 대표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한우리 연맹이 82층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정보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할지는···.” “··············.” 팔짱을 끼고 있는 북한팀의 리더 리영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간신히 다라 잡았다고 생각한 상대가 또 한 층 위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 명과 달리 리영호는 몹시 담담한 표정이었다. “···리영호씨? 아무런 의견도 없습니까? 아까부터 팔짱끼고 침묵만 지키고 계신데?” 콘러드 크라우스가 리영호에게 말하자 리영호는 지극히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내버려 두시오. 우리가 마음먹으면 82층 정도는 언제든지 돌파 할 수 있소.” “예? ····아니 그럼··. 그럼 어째서···.” “지금은 내 말에 따르시오. 그게 이 게임을 클리어 하는 비결일 테니.” 리영호는 거기까지만 말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어디를 가는 거요!!?” 리영호의 무단이탈을 보고 중국의 장한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리영호는···. “여기서 더 있어봤자 별 소용없지. 난 갈 테니 당신들 끼리 82층 돌파를 해 보려면 해 보시오.” 그리고는 태연하게 나가 버렸다. 그런 리영호를 보고 장한을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했지만 함부로 덤비지는 못했다. 그렇게 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저대로 내버려 둘 거요!!?” 대신에 장한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쪽을 택했다. 장한의 말을 들은 블레인 허드슨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일단··. 일단 지켜봅시다.” 장한만이 아니라 블레인 허드슨이 보기에도 리영호와 북한팀의 존재는 부담이었다. 약간 촉이 좋은 콘러드 크라우스는 북한 팀이 과연 정말로 북하인지 아닌지도 의심하고 있었다. ‘팀원 전체가 따로따로 놀고 있었지··. 그리고 리더에 대한 존중심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저 놈들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숨기는게 너무 많아.’ 한우리 연맹을 거의 다 따라 잡아간다고 생각한 유니버스 연맹이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런저런 문제점이 산재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문제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게 새롭게 합류한 북한 팀이었고 말이다. 연맹 회의에서 돌아온 리영호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회의 결과를 말했다. “흥···. 성급들 하군.” “인간들이 그렇지 뭐···.” 콧 웃음을 치는 부하들을 보면서 리영호가 말했다. “적어도 그들을 잡득 시킬 핑계는 필요해. 알고 있잖아?” 리영호의 말은 부하들에게 명령 하는게 아니라 거의 상전에게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부하들은····. “그걸 알아서 잘 처리 하는게 네 역할이잖아?” “우리를 너무 피곤하게 하지 마라. 잡아먹어 버리는 수가 있다.” “크크크····.” 이리보고 저리 봐도 리더에 대한 존중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보이는 것은 경멸과 조소의 감정들 뿐이었다. “·······알았다. 최대한 시간을 벌지. 하지만 명심해라. 당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지시에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을 하던 리영호는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어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김··. 아니 지금은 리영호지?” 그 남자는 자기 팀 리더를 상대로 마치 길거리에서 양아치가 삥이라도 뜯는 것 같은 껄렁한 태도로 말했다. “·············.” 리영호는 그런 굴욕을 당하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표정만 가득 굳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상대의 말이 이어졌다. “한 마디···. 정말 앞으로 네가 목숨 붙이고 살려면 꼭 필요한 한 마디를 해주마. 네놈 영혼 깊숙이 새겨라.” “············.” “자기 주제를 알아라. 인간.” “············.” “다시는 우리한테 지시 어쩌고 하는 단어를 쓰지 마라. 네 하찮은 목숨이 아깝다면 말이다.” “············.” 리영호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덤비면 그 순간 자기 영혼은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완전히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놈 들은 그렇게 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 자들이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이 북한팀의 진정한 정체를 정운이 알았다면···. 그렇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밟았을 것이다. 82층 돌파 후···. 정운은 오랜만에 퀘스트 하나를 물어서 진행 중이었다. 그렇게 큰 건수는 아니었다. 간단한 채집 퀘스트였는데····. 포 헤드 키메라. LV. 190~195 [사자, 드래곤, 산양, 늑대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흉폭한 마수. 자신의 가시거리 안에 적이 들어오면 무차별 적으로 공격한다.] 이 포 헤드 키메라라는 몹을 잡아서 키메라의 심장 100개를 모으는··. 그런 지루하면서 꾸준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퀘스트였다. 처음에는 그림자의 무장을 쓰면 간단하게 해결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받은 퀘스트였다. 그런데 받고 보니 자신이 직접 처리한 포 헤드 키메라가 아니면 심장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래서 정운이 이렇게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커어어어어헝!!!!!” “시끄러!!!” 최후의 단발마와 함께 스러지는 포 헤드 키메라를 처리하면서 정운은 쌍창을 거뒀다. “어디 보자, 인벤토리에····. 들어왔다. 이제 남은 숫자는 34개····. 이렇게 다 잡아갔는데 보상이 별것 없으면 나 정말 화낼 거야.” 정운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다시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갔다. 요즘 슬기는 새로운 도술인 진법에 관해서 심취해 있고, 세레나 역시 뭔가 커다란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쓸쓸하게 솔로로 사냥을 하고, 또 실생활에서도 두 여자와 함께한 시간이 극도로 줄어든 정운이었다. “아····. 사냥하면서 이런 느낌 드는 건 정말 오랜만 이다만···. 심심하네.”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기분이 안 나서 안 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어차피 천천히 진행해도 상관없는 퀘스트··. 이왕 천천히 하는 것 조바심 내서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실제로 정운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과 별도로 그림자의 무장을 이용한 오토는 꾸준하게 돌리고 있는 상태였다. 적어도 남들 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경험치가 꾸준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한동안은 말 그대로 잠시 쉬어가는 일상입니다. 뭐... 쉬어가는 김에 잠시 복선 떡밥 하나 주워 두고 가려고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니다. 즐감하십시오.^^ 296화 전진기지로 돌아온 정운은 한중겸과 함께 만나서 술이나 한 잔 할까? 싶었다. ‘평소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부르던 형님이 요즘은 거의 부르지를 않는단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중겸의 집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들어갈 것은···. 정운과 한중겸은 엄청 친하다는 것. 그래서 한중겸의 집에 들어갈 때 초인종 따위는 누르지 않고 그대로 열쇠로 열고 간단하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중겸이 거실의 쇼파 에서 왕귀인과 메두사와 동시에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 것을 본다는 우연이 발생 할 수 있는 것이다. “어!!!? 형님!!!!!” “우왓!!! 야 임마 노크는!!!?” 한중겸은 황급하게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지금 할 말이 그게 다입니까?” 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한중겸을 바라봤다. 그리고 메두사와 왕귀인은 급하게 쇼파 뒤로 숨더니 이제는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이미 볼 것 다 봤지만 그래도 저러고 있는 꼴을 보니 마치 뭐랄까····? “당신들은 무슨 참호 속에서 전쟁합니까? ···아니 그보다 메두사!!! 당신 남자 싫은 티 팍팍 내지 않았어!!!?”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메두사가 벌떡 일어나서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왜!!? 불만 있어? 내가 너희들한테 호의적으로 변하면 좋은 일이잖아!!!” 메두사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건 고맙긴 하죠. 하지만····.” “하지만 뭐!!!?” “다시 앉는게 좋지 않을까요?” “········꺄아악!!!!!” 메두사는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고는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정운은 이 철지난 에로개그 같은 상황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이 상황도 면역이 된 것 같았다. “하아···. 뭐, 중겸이 형님이 알아서 하겠지···. 전 그냥 가렵니다” “뭐 용건 있어서 온 것 아니야?” 한중겸의 말에 정운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술이나 한 잔 할까 해서 온겁니다. 그런데····. 형님 용건이 더 급해 보이네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방에서 나갔다. “저 형님은 재주도 좋아····.” 한중겸과 술 마시면서 시간 때우기에 실패한 정운은 스카이 타운의 1층의 로비로 나왔다. “이렇게 된 것 그냥 혼자서 청승맞게 마실까? 왠지 그러기는 싫은데····.” 정운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누군가가 정운을 불렀다. “정운아!! 너 거기서 뭐해!!” “····어? 보영이 누님?” 정운을 부른 것은 한쪽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보영이었다. 정운이 가까이 가보니 거기에는 이보영과 그녀의 동생인 이지영, 그리고 이민지까지 있었다. “민지 누님은 커피 마실 때 가면 쓰면 안 불편 합니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자 이민지는 빙긋 웃으면서 가면의 아랫부분을 살짝 분리했다. “짠, 이렇게 하면 먹는데 아무 불편 없지. 안 그래?” “··············.” ‘아니 그러니까··. 가면을 애당초 안 쓰면 되잖아?’ 하고 싶은 말은 많은 정운이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여자들 셋이 모여서 뭐 해요? 남자들 뒷담화?” 심심했기 때문일까? 정운이 슬쩍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보영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추성이 오라버니하고 대호 오라버니 차례 끝나고 지금은 한창 너 씹고 있었다.” “이런···. 제가 어때서요?” “넌 여자가 둘이잖아?” “누님은 남자가····. 몇 명인가요?” 자세히 생각하니 몇 명인지 까지는 모르는 정운이었다. 이보영은 깔깔 웃으면서 손 사례를 했다. “에이···. 그걸 알 리가 있나?” “········자랑 스럽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응? 뭐라고?” “아니요. 오늘따라 누님이 참 예쁘다고요.” 정운이 작게 중얼 거리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보영이었다. 정운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대호 형님 다음에 제 차례는 아니죠. 중겸이 형님이야 말로 민지 누님이 있는 대도 하나로 네 가지···.” “정운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운아.’라고 말하는 이민지의 발음이 평소보다 약간 소프라노에 가까웠다. 그녀로서도 ‘하나로 네 가지 맛.’ 사건은 비밀로 하고 싶은 흑역사였다. “큼···. 어쨌든 내 차례는 아니죠. 바로 지금도 중겸이 형님이 왕귀인하고 메두사를 동시에···.” “뭐? 메두사!!?” 이민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운아. 뭐라고 했니? 메두사가 어쨌다고?” “어········· 전 아무말도 안 했어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 말 실수. 그것은 항상 하고 나서 후회한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미안 애들아···. 난 잠시 볼일이 있어서···.” 이민지는 그렇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정운은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원 샷 한 후에 이보영, 이지영 자매에게 말했다. “자리 옮길까요? 여기는 곧 시끄러워 질 테니.” “그래. 그게 좋겠다.” “············.” 그렇게 세 사람이 자리를 옮기고 난 직 후···. 콰아앙!!! 스카이 타운 최상층에 테러라도 난 것 같은 폭음이 울렸다고 한다. 모로 가도 도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되는 법이라고 했던가? 정운은 한중겸과의 술잔은 못 만들었지만 이보영, 이지영 자매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냥 심심하다는 이유로 정운과 이보영이 뭉쳤고 언니 따라서 강남 간다는 이유로 이지영도 함께 따라온 것이다. 이보영은 어장관리 만렙 완전체답지 않게 술집은 소박한 집으로 골랐다.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해물 파전에 동동주 항아리에 표주박 동동 떠있는 집. 이라는 길고 긴 이름의 술집은 말 그대로 해물 파전과 동동주를 메인으로 하는 술집이었다. 거기에서 정운은 이보영, 이지영 자매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 멤버로 어울리는 것은 처음이네···.’ 정운은 이번 기회에 이보영과의 관계를 좀 개선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러니까 일반 서버에서 정운인 그냥 저냥한 상급 유저고 이보영이 까마득한 위치에서 십왕이라고 불리던 시절···. 그때 정운은 이보영에게 크고 작은 은근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뭐, 그리고 유혹도 좀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유혹에 안 넘어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때는 아직 이보영의 어장력을 알지도 못하던 시기였지만 그래도 뭔지 모를 위기감을 느끼고 피했던 것 같다. 어쨌든 십왕중에서 가장 먼저 알았고 개인적으로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를 동시에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지조 없는 남자로 찍힌 모양이다. 뭐··. 엄밀히 말해서 그거야 이보영이 알 바 아니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랬다. 하지만 그것도 요즘은 많이 느슨해 졌다. 아마도 정운의 곁에서 슬기와 세레나가 함께 행복한 것을 보고 자기만 계속 화내고 있기도 우스워 진 모양인다. 아니면 한중겸이 하는 행동을 보고 거기에 비하면 박정운 정도는 양호하다고 생각 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아마도 후자가 맞을 것 같아. 중겸이 형님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정운이 그렇게 고마워하는 한중겸은 이 시각 정운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어쨌든 술이 한 잔 두 잔 돌고 분위기는 제법 괜찮게 흘러갔다. 그러던 와중에 정운이 이지영에게 말했다. “그런데···. 지영이 누님은 저하고 평소에 말을 안하는데 혹시 제가 실수라도 했나요?” 정운이 이지영을 알고 지낸지도 시간이 수년이 흘렀다. 그런데 서로 나눈 대화라고는 오로지 필드에서 사냥할 때 하는 대화들 뿐이었다. 그것 외의 대화는 모두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정운의 말에 이지영은 가만히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보영이 대신 대답했다. “아···. 네가 뭐 잘못한 것은 아니야. 내 동생은 대부분의 남자들하고 대화를 안 하거든.” “예···. 그거야 지켜보면 알아요. 그런데 왜요?” “그건 약간의 개인사가 있지···. 뭐 우리 자매가 남자에게 상처 받았고, 난 그 후에 남자들을 왕창 거느려서 복수하는 것을 택했고, 지영이는 이제 남자라는 생물하고는 손가락 하나 터치 안하기로 정한 거지.” “·····흐음····. 그런데 누님은 딱히 복수 한다는 느낌은 없던데요? 그냥 재미있어서 즐긴다는 느낌이었는데?” “아아···. 초창기에는 복수심이었는데 이게 하니까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됐지 뭐···.” 이보영은 동동주를 마시면서 게속 해서 말했다. “이모!! 여기 한 동이 더요.” “옛!!!” 술은 끊임없이 추가 되고 정운은 얼큰하게 달아오른 술기운에 이지영에게 말했다. “지영이 누님. 누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계속 끙끙 앓아봐야 뭐 좋을 것 있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이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술이 들어있는 사발만 기울였다. 그리고 옆에서 이보영은 깔깔 웃으면서···. “꺄하하···. 안돼. 안돼. 우리 얼음 공주 지영이는 그렇게 해서는 안 녹아.” “얼음공주? 그건 무슨 농담인데요?” “우리 귀여운 동생 별명이지. 내가 붙였다.” “예····. 누님만 그렇게 부르는 것 같네요. 그건 별명이라고 안 하도록 하죠.” “왜에····. 칫, 나 삐진다.” “오케이···. 드디어 누님이 취하기 시작했네요. 그런 이제 슬슬 가죠.” 정운은 이보영이 슬슬 효가 꼬이기 시작한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안 일어나려는 이보영을 간단하게 부축하면서 이지영에게 말했다. “지영이 누님. 제가 보영이 누님 챙길테니 지영이 누님은···.” 스르륵···. 털썩. “·····어, 이런···.” 쓰러져 버리는 이지영을 보면서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니 이보영이 따라주는 족족 이지영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아니 그래도··. 동동주 도수 가지고 취하나?” “난 취해에에에····.” 정운의 옆에 부축 당하고 있는 이보영이 말했다. “·····예. 그런 것 같네요. 그럼 가죠.” 정운은 여자 둘을 동시에 챙겨서 일단 길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 “예.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까요?” 안에 타니 넋살 좋아 보이는 택시 기사가 정운에게 말했다. “중앙 거리의 스카이타운 빌딩으로.” “어이구··. 좋은 곳으로 가시는 군요. 알겠습니다.” 택시 기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을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대한민국에서 20년 이상 살면서 택시라는 것을 적어도 수백 번은 타본 사람들을 알 것이다. 아주 가끔씩···. 정말 아주 가끔씩····. 말이 엄청 많고 친하게 달라붙어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택시 기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정운은···. 말 그래도 딱 걸렸다. “이야···. 좋은 때네요. 남자 하나에 여자 둘 이라. 저도 젊을 때는 잘 나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말이죠.” “제가 아는 누나들입니다. 그리고 자매고요.” “오오오····. 그렇군요···. 자매····. 신호 하나 무시할 때마다 팁 주시면 10분 만에 목적지로 데리고 가 드릴 수 있는데요?” “필요 없습니다.” 정운은 짜증을 팍 내면서 말했다. 저 택시 기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야 알바 아니지만 그 생각이 자기한테 알려지면 그건 기분 나쁜 법이다. “자매라···. 자매. 둘 다 취한 자매···. 으음····.” “말 좀 그만 할 수 없어요!!?” “아···. 죄송합니다. 손님의 프라이버시인데···. ··················혹시 모르니 가는 길에 약국에 안 들려도···.” “그냥 가라고!!!!” 뇌천신공으로 택시를 확 부셔 버릴까 싶은 정운이었다. 잠시후····. 택시를 타고 간신히 도착한 정운은 이보영, 이지영 자매를 데리고 택시를 내렸다. “여기 요금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 내십시오. 파이팅!!!” “··············후우····.” 잠시 후, 정운은 택시에서 내린 후에 인벤토리에서 활 하나를 꺼냈다. “서비스업 교훈 하나, 지나친 오지랖은 서비스가 아니라 민폐다.” 파앙!!! 끼이익···. 콰앙!! 그날 스카이 타운의 택시 한 대가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서 전복했다. ============================ 작품 후기 ============================ 제 경험이지만, 그리고 누구나 저런 경험 한 두번씩 있겠지만... 고객 엄청 불편하게 하는 택시 꼭 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97화 <두 자매의 과거> 정운은 이보영 이지영 자매를 데리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가는 길에 슬기를 만났다. “어!! 슬기야. 나 좀 도와줘.” “응? 어떻게 된 거에요?” 정운이 양옆에 이보영과 이지영을 부축하면서 다가가자 슬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화난 표정은 아니엇다. 정운이 이보영, 이지영과 함께? 그런 스캔들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금 슬기의 얼굴은 상상하지도 못한 광경을 처음 보면 사람은 이런 표정을 하는 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설명하면 복잡해. 그냥 술 마시다가 이렇게 됐다고만 알아줘.” “····알았어요. 자, 보영이 언니 이리 줘요.” “알았어. 자···.” 정운이 이보영을 슬기 쪽에 맡기고 자신의 일단 두 사람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 열쇠가 없는데요?” “괜찮아.” 콰직!! “부수면 되니까···.” “···········.” 정운의 말에 슬기는 어이없어 하다가 뭐 아무렴 어때? 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정운은 슬기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두 자매를 방에 데려다 놓기 위해서 슬기는 이보영의 방으로, 그리고 정운은 이지영의 방으로 향했다. 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 앞에 친절하게 쓰여 있었으니 말이다. “여중생이냐···?” 애들이나 90년대 시트콤 캐릭터들이나 할 자기 방문에 문패 달기를 보면서 정운은 피식 웃었다. 이지영의 방에 들어간 순간 정운의 눈에 가장 만많이 들어온 것은···. “화초? 아니··· 선인장인가?” 방에는 크고 작은 선인장이 거의 백개 가까이 있었다. 선인장이 이렇게 많은 방에 있으니 여기가 꼭 사막이라도 된 것 같았다. “넘어지면 크게 다치겠는걸? 뭐 상관없나? 힐링 한 번만 받으면 그만인 걸?”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이지영을 자기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으음·····.” 이지영의 눈 꺼플이 파르르 떨렸다. “정신 들었어요?” 정운이 그렇게 말한 순간···. 이지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그녀가 정운의 목에 팔을 감고는 그대로 자기 입술을 정운의 입술에 겹쳤다. “읍!!!!” 정운은 깜짝 놀랐다. 순간 이지영의 혀가 자신의 입속으로 거침없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황급하게 밀어냈다. 설마 설마하니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인물에게 기습 공격을 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이지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약간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왜 그래요···? 평소처럼 절 귀여워 해 줘요.” “····누님? 누님 지금 제가 누군지 알겠어요?” 정운은 아무리 봐도 평소와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당황했다. 평소의 냉철한 이지영은 어디에 갔다는 말인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남자 유혹하는데 도가 튼 앙큼한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였다. 평소의 이지영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운은 뭔가 이상한 것을 알아냈다. 지금 이지영의 입은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처럼 촛첨이 안 맞았다. 그 상태로 이지영은 자신의 혀로 붉은 입술을 살짝 햝으면서 말했다. “자···. 이리 와요. 늘 하던 것처럼. 내가 즐겁게 해 줄게요.” 이지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의 바지 지퍼를 열고 얼굴을 그쪽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잠깐···. 누님 스톱!!!!” 정운은 기겁을 하면서 이지영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고위 레벨의 무투가 아니랄까봐 정말 정말 안 떨어졌다. 오히려 그녀는 정운을 침대에 밀어 넘어트리고 거기에 자신이 올라탔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왜 그래요····?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틀림없이 마음에 들 거에요.”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운이 봐도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찔했다. 평소에 이런 모습과는 전혀 동떠어질 정도로 냉정하게만 있던 그녀가 이러니 한층 더 그랬다. 그런데 그때····. “헤에···. 항상 뭐 했는데요?” 정운이 고개를 천천히 돌려보니 거기에는 문에 기대서 슬기가 정운과 이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이런 상황은 보통 중겸이 형님한테 일어나는 건데·····.” 슬기는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후···. 일단 슬기에게 이지영에 대한 오해는 풀렸다. 이지영은 슬기의 마법으로 살며시 잠들었고 잠들기 전에 보인 그녀의 이상한 태도에 슬기도 얼굴을 푼 것이다. “애당초···. 내가 너희들 빼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리가 없잖아?” 정운이 억울하다는 듯이 푸념을 하자 슬기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면서 말했다. “애당초···. ‘너희들’ 이라는 시점에서 안심이 안 된다고요····.” 그녀의 말에 정운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거기에 관해서는 입이 열개라고 해도 정운이 할 말이 없기는 했다. “그런데···. 지영이 누님은 왜 저런 거지?” “지영이가 왜?” “어!!? 보영이 누님? 술 다 깼어요?” 정운은 자신의 뒤편에서 나타난 이보영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거기에 이보영은···. “아니···. 30% 정도만 깼어.” “힐링 걸어드릴까요?” 슬기가 말하자 이보영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30%라고 했잖아? 아직 깨기보다는 다시 취하는 것이 더 쉬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디서 가져왔는지 소주를 병으로 나발 불기 시작했다. “··············.” “··············.” 굉장히 독특한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정운과 슬기였다. “파하···. 그런데 지영이가 왜?” 이보영이 다시 물어보자 정운은 이지영에게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을 설명했다. “····그렇게 된 거에요? 어떻게 된 거죠? 술 취하면 원래 절요?”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술병 모서리로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면서 말했다. “···········뭐, 옛날 일이라도 생각했나 보네.” “옛날 일요?” “왜? 궁금해?” “아니····. 아니요. 누구나 과거 사정이야 있는 거죠. 별로 듣고 싶지는 않아요” “아니야. 말 해 줄게. 어차피 아는 사람도 몇 명 있는데 뭐····.” 그리고는 이보영은 무척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기 과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보영, 이지영···. 원래 가족이 함께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 자매는 나란히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다. 그것은 이 자매에게 동시에 불어 닥친 불행 때문이었다. 원래 이 둘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지극히 평범한 부모들로부터 태어났다. 다만···.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갑작스런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어린 두 자매를 키우다가 결국에는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두 자매만이 이 험한 세상에 홀로 남게 되었다. 당시 두 자매의 나이는 고작 11살이었다. 두 자매는 그대로 거리를 떠돌다가 결국은 고아원에 보내졌다. 다만, 그 고아원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운영하는 양심적인 고아원이 아니었다. 그 고아원의 원장은 아이들을 어떻게든 돈이 많은 부잣집에 보내면서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거금을 챙기는 것만이 목적인··. 그런 말만 고아원이지 사실상 애들을 팔아서 자기 배나 불리는 인간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항상 춥고 배가 고팠다. 그래도 뭐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항상 원장이 매섭게 애들을 매질로 길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이 둘에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진짜 최악의 상황은 그녀들이 13살이 될 때 일어났다. 어느 젊은 남자가 다가와서는 그녀들을 양녀로 입양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남자의 나이는 고작해야 20대 중후반 정도··. 갓난아기라면 모를까? 10살이 넘을 정도로 다 자란 아이들을 입양하는 나이치고는 너무 젊었다. 보통 이럴 때는 엄격한 조사와 함께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만···. 그 남자는 고아원의 원장에게 충분히 만족할 정도의 돈을 주고는 그대로 그녀들을 데리고 가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두 자매는 가지들 보다 고작 열 몇 살 더 많은 남자의 딸이 되어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두 자매는 처음에 상당히 놀랐다. “와아······.” “집 좀 봐····.” 어린 두 자매는 남자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 상당히 놀랐다. 자신들이 나라온 고아원 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호화로운 집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척 봐도 엄청나게 공을 들인 것 같은 정원수들과 연못에서는 어른들 팔뚝만한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좋으니?” “예····? 예···.” “감사합니다.” 두 자매는 약간 겁먹은 것처럼 남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 두 자매를 보고 남자는 말했다. “아직 아버지라는 말은 입에 잘 안 붙지? 그래···. 걱정하지 마렴.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질 테니···”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 자매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몇 년 동안 두 자매는 이제까지 자신들이 살면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된다. 소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두 자매가 정말로 그랬다. 세수 할 때 정도 빼고는 정말로 손에 물 한방울 묻힐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것을 가정부라는 사람들이 와서 해 줬고··. 그녀들이 원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달마다 몇십 벌씩 새 옷이 들어왔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다정했고 생활은 윤택했다. 다만 특이한 점은 몇가지 있었다. 학교를 보내지 않는 점 이라던가? 혹은 매주 체중이나 신체 사이즈를 작성하고 있다는 점이라던가? 외출을 할 때마다 항상 경호원이라는 사람들을 대동 시킨다던가 하는 점이었다. 이 사실에 관해서 양부에게 물으면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공부는 개인 가정 교사를 붙여줄테니 그들에게 배우렴. 특히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익히거라. 그리고 너희들 사이즈를 알아야 신상품 옷을 다 시착해 보지. 아버지 일 때문이니 조금 이해해 주렴.” 그는 그렇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보영과 이지영은 그 말을 모두 믿었다.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했으니 말이다. 이보영과 이지영은 이제까지 자신들에게 있었던 불행의 이유가 오늘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면 충분히 참을 만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의 인생이란 행복도 불행도··· 영원히 계속되지만은 않는 법이다. 두 자매의 인생의 변하는 그녀들이 17살이 되는 해에 찾아왔다. 어느날 그녀들을 양아버지가 불렀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이보영이 물어보자 그녀의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선 여기 이 분들을 소개하마. 이 분은 중국의 장대인이시고, 여기 이 분은 일본의 마사키씨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보영과 이지영은 공손하게 고개 숙여서 인사했다. 평소에 아버지가 뭘 하는지는 몰랐지만 자주 전화로 외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아버지의 사업에 중요한 사람들이다. 라고 둘은 생각했다. 그 다음에 양아버지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는 말이다. “앞으로 너희들의 주인님이 될 사람들이지. 앞으로 잘 따르거라.” “··············.” “··············.” 순간 두 자매를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깜짝 놀라서 지금 자신의 양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실감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두 소녀를 내버려 두고 양부는 두 명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주문하신 대로···. 5년에 걸쳐서 키운 맞춤형입니다. 어지간한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것들하고는 격이 다르죠.” 양부의 말에 두 남자는 크게 만족한다는 듯이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보영과 이지영은 사태를 깨달았다. 그녀들은 황급하게 도망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 작품 후기 ============================ 3월 27일... 이번 달도 앞으로 사흘만 더 지나가면 페이스 유지에 성공입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더 힘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298화 이보영은 중국인에게, 그리고 이지영은 일본인에게 각자 팔려 갔다. 이보영은 중국으로 가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애당초 자신들이 양부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아이들을 예쁘게 키워서 거부들에게 노리개로 납품을 하는 인간 사육사였다. 중국으로 팔려간 이보영은···. 거기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차라리 길거리에서 매춘부로 몸을 판다고 해도 그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이보영을 사서 간 중국 남자는 정말로 이보영을 완전히 자기 물건으로 봤다. 첫 날에 바로 순결을 빼앗기고····. 그 후로는 중국에서 그 짐승은 이보영을 자신의 애완동물, 아니 콜렉션 정도로 봤다. 자신들과 비슷비슷한 짐승들이 있는 모임에 이보영의 목에 목줄을 채운채로 데리고 가서 온갖 모독을 다 주고는 그걸 보면서 즐거워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던 이보영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서 견딘 것은 이대로 자신이 죽으면 동생인 이지영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동생을 생각하는 그 일념 하나로 그녀는 견디고 또 견뎠다. “아····. 정말 그때는 별의 별 더러운 꼴 다 겪었지······.” 말 하던 도중에 옛날을 회상하는 이보영의 얼굴에는 진한 회한이 서려 있었다. 정운과 슬기는 그런 그녀를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둘을 보며 이보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아무리 슬픈 일도, 힘든 일도··. 지나고 나면 다 흘려보낼 수 있어. 난 그런 여자야. 다만·······.” 이보영은 잠깐 슬픈 얼굴을 하고 자신의 동생인 이지영이 잠들어 있는 방을 보면서 말했다. “내 동생은 아니지·····. 원래 참 약하고 여린 아이였거든······.” 그리고 그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17살에 팔려 와서 그녀가 성노예. 아니 그 이하의 애완동물 취급 받은 지도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차곡차곡 탈출의 기회를 살폈다. 사실 탈출은 거의 불가능 했다. 그녀를 향한 감시망은 그만큼 철두철미했다. 하지만 이보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탈출 할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창살이라면 찢어 버릴 뿐. 그녀가 알고 있는 바로 그녀의 주인인 장대인이라는 짐승은 말만 대인이지 사실상 차이니즈 마피아였다. 그것도 매우 질이 나쁜···. 놈은 평소 자신의 부하들에게 충성의 대가로 다양한 포상을 내리고는 했다. 돈, 세력, 더 높은 지위,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보영은 그 차이니즈 마피아의 NO.2에게 접대를 목적으로 안겨야 할 일이 몇 번인가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남자를 최대한 유혹했다. 그에게 진심으로 반한 것처럼 굴면서 남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녀 나름대로 미인계를 쓴 것이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결정을 한 것에는 당시 그 조직의 NO.2가 자신에게 심상치 않을 만큼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건 일전에 NO.2의 남자가 라이벌 조직의 간부의 목을 가지고 왔을 때의 일이었다. “하하하···. 창, 잘했다. 네가 역시 내 오른팔이구나. 뭐든지 좋으니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너라면 구역 하나 정도를 통째로 넘겨도 아깝지 않아.” 오랫동안 적대시 하던 조직의 간부의 목을 가져오자 장대인이라는 남자는 크게 기뻐했다. 이보영은 당시 그의 옆에 엎드려서 알몸으로 목줄을 한 채로 고양이처럼 그 장대임의 발밑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보영은 아직 탈출의 방법을 전혀 찾지 모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시기였다. 저 NO.2인 창이라는 남자는 몇 번인가 접대로 상대한 적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인연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말한 것이다. “거기 발치에 있는 여자를 저에게 주십시오.” “응? 이거?” 장대인은 자기 발밑에 있는 이보영의 얼굴을 팔로 들어서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하하하··. 난 장난감은 질리기 전에는 넘기지 않는다. 창.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 가끔 빌려는 주마.” 그 쫀쫀한 성격머리 가지고 용케도 남들한테 대인이라도 부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보영이었다. 어쨌든 딴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저 창이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희망은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보영이었다. 이보영은 그날부터 몇 번이고 창이라는 남자에게 안겼다. 물론 장대인이라는 남자의 명령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창이라는 남자가 이보영에게 제대로 빠진 것이었다. 이보영은 그를 사로잡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밤마다 그에게 애원했다. “언제쯤····. 당신의 품에만 안길 수 있을까요” “···미안해. 언젠가 보스께서도···.” 창이라는 남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미안해요. 오늘도 보스께서 불러서 가 봐야 해요.” “무슨 말이야. 오늘은 보스께서 널 나에게····.” “제 신세를 아시잖아요? 늦게 가면 그만큼 뒷감당은 제가 해야 한답니다.” “··············.”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결국 전 보스의 노리개일 뿐입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만을 사랑하지 못해서····.” 이보영은 눈물을 뿌리면서 창에게서 돌아섰다. 예로부터 남자라는 생물은 여자의 눈물에 약한 존재라고 했던가? 창이라는 남자에게 여자는 많고 많았지만 이보영은 한명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한 명 뿐인 이보영이 자신의 품안에 있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마치 초선 한명 때문에 동탁과 여포가 파국을 맞이한 것처럼···. 이 조직에서도 이보영의 세치 혀만으로 파국이 찾아왔다. 창이라는 남자는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데리고 보스에게 도전했고···. 결국 그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창이라는 남자는 이보영을 손에 넣었다. 창이라는 남자의 도움을 빌어서 이보영은 어떻게든 동생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조직을 손에 넣은 창은 이보영의 말을 들어줘서 일본에 있던 이보영의 동생을 찾아줬다. 그리고···. 이보영이 이지영을 찾았을 때 그녀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에게 일본에서 보낸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는 짐승들은 있었지만 그 짐승들은 모두 죽었다. 다만 이지영은 말 그대로 남자들을 위한 철저한 암컷이 된 후였다. “··········잠깐만요. 그럼 방금 전에 지영이 누님이 나한테 한게···?” 정운의 물음에 이보영은 한숨을 쉬면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있잖아? 사람이 진정한 절망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 “··············.” 정운도 슬기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답은 이보영의 입에서 말했다. “보통, 절망을 만나면 거기에 굴복하거나, 맞서거나, 둘 중에 하나야. 난 동생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맞섰지. 그리고···. 지저분한 수작을 부리기는 했지만 일단 이겼어. 그런데 내 동생의 경우는 좀 달랐지····.” “·····누님.” “어릴 때부터···. 내가 없으면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던 애였거든. 그래서 일까? 완전히 놈들에게 굴복해 버린 것 같더라고.” “············.” “············.” “그 후로도 이런저런 치료를 병행하면서 여러 가지로 손을 쓰기는 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은 실패했어. 고작해야 지금처럼 입 꾹 다물고 지내게 하는게 고작이었지.” “······누님····.” “제일 개 같은 게 뭔지 알아? 우리 자매는 그 후에 창의 보호아래 차이니즈 마피아 조직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지. 그런데 내 동생이 저런 상태니까···. 남자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대주는 것 밖에 모르는 상태니까····, 남자들이 그걸 이용해서·····.” “누님 그만해요.” 정운은 이보영을 말렸다. 어느새 이보영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말린 것이다. 이 오지랖 넓고 항상 웃고만 있던 여자의 마음 속에 이런 파란만장한 과거와 상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도 지영이도···. 남자를 참 믿기 힘들어. 내 경우는 그나마 낫지. 이미 버린 몸이고 어차피 지금 내 인생도 받아 들이고 있으니···. 하지만 지영이는 아니야.” “··············.” “그 후로는 뻔하지 동생이 상처 받고 망가질 때마다 점점 더 나는 절망해 갔고···. 그런 나에게 악마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난 그 손길을 잡았지.” “그···. 창이라는 분은요?” “····몰라.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 그 남자는 날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난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거든. 그냥 내 동생을 구해 줬으니 그래도 내 몸은 원 없이 즐기게 해 줬었지.” “언니·····.” 슬기가 이보영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말했지. 사실 남자는 싫다고. 그 남자도 남자는 남자야.” “··········.” “내가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면 원하는 소원은 딱 하나야. 내 동생이····. 지영이가 원래대로 돌아가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보영의 말을 다 들은 정운은 그녀에게 다짐하듯이 말했다. “반드시 클리어 할 겁니다. 약속하죠.” 그런 정운을 보고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정운이 넌 미인한테 너무 약해. 슬기 너 더 조심해야 겠다.” “·····저도 알아요.” 그렇게 이보영 이지영 자매의 과거를 들은 정운은 슬기와 함께 밖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지영이 누님도 안 됐지만···. 보영이 누님도 안 됐어.” “그래요·····. 그리고···. 보영이 언니는 그 창이라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뭐···? 어떻게 그걸 알아?” 정운이 깜짝 놀란 것처럼 말하자 슬기가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보면 알아요. 그 창이라는 남자를 말하는 순간 보영이 언니 얼굴은·····. 저나 세레나가 당신을 생각할 때와 같은 얼굴이 되는 걸요?” “그런가···?” 씁쓸하게 웃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이들은 몰랐겠지만···. 지금 이들이 말하고 있는 창이라는 남자는 결코 이보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창이라는 남자의 이보영에 대한 마음은 정말로 진실이었다. 말 그대로 자기 영혼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진심어린 사랑을 했다. 그걸 지금은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말이다. 몇 주 후····. “다 됐다···. 망할. 드디어 백개 모았네.” 정운은 퀘스트인 포 헤드 키메라의 심장을 모두 다 모으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한 열 마리 잡으면 간신히 한 마리가 심장을 줄까? 말까? 한 확률이었다. 평균적으로 대강 계산해 봐도 포 헤드 키메라 1,000마리를 잡았다는 말이다. 한군데 몰려 있는 놈들이라면 모를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놈들이라서 잡는게 또 엄청 큰 일이었다. “제길···. 이거 보상이 뭐인지는 가서 확인해 봐야 알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오랜만에 꽝 퀘스트를 뽑은 것 같단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투덜 거리면서 전진기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운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문틈에 편지 두 장이 꽂혀 있는 것을 봤다. “이건···?” 정운이 편지를 뜯어봤다. 편지는 두 명에게서 온 것이다. 한 장은····. [야!! 인마!! 브로가 브로의 외도를 브로의 애인에게 말하면 안 되지!!! 브로도에 심각하게 어긋나잖아? 난 너 때문에 거의 죽을 뻔 했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찌어찌 허락은 받았다는 거다····. 그래도 다음은 조심해!!! 한중겸 씀] “······다음을 만들지를 말아야지······.” 정운은 중얼 거리면서 또 한 장의 편지를 뜯었다. [그날 집에 바래다 줘서 고마워. 이지영 씀] “······이건 좀 기쁘네.” 언젠가는 정말로 이보영의 바램대로 이지영이 정상적으로 남자와 평범한 사랑을 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이라고 정운도 진심으로 바랬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299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적응하고 대응한다.> “············.” “············.” “············.” 찬 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 지금 한우리 연맹의 회의장에 딱 알맞은 말일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83층 보스몹이 뭔지 전혀 짐작이 가지를 않네요····.” “정말····.” “이런 상황은 아름답지 않아.” 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밑에 있는 유니버스 연맹이 또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우리 연맹은 83층 레이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80층대에 올라오고 나서 가장 중요해 진 것은 보스몹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다. 한니발 때는 유니버스 연맹에서 먼저 알려 줬지만 또 그런 행운을 바랄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자력으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정운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 우선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하나하나 취합해 봅시다. 우리가 중앙 지대에 도착하면 거기에는 커다란 성벽이 보입니다. 성안은 보이지 않지만요.” 정운이 말문을 열자 장 그레고리 공작도 입을 열었다. “저도 봤는데 성벽은 상당히 오래된 양식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느 시대인지는 잘 모르겠단 말입니다.” “서양식 아닌가요? 전 그렇게 봤는데요?” 다이앤 여왕 역시 보스몹의 지역에 가보기는 가봤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운은 다이앤 여왕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동양식 같기도 하던데··?” “서양식도 동양식도 아니면 어니죠? 혹시 인도나 중동의?” 장 그레고리 공작의 말은 일견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신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고고학에 조예가 깊은 세 사람도 아닌데 성벽을 보고 어떻게 그걸 판단하겠는가? “으음·····. 일단 성벽 양식은 넘어 갑시다. 그리고 그 성벽을 공격하면 성벽의 머리위에 체력 게이지가 뜨더군요.” 다음으로 정운이 말을 꺼낸 것은 보스몹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스템이었다. “예. 그리고 성벽에서 거대한 창과 돌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죠.” “수성···. 아니면 혹시 공성이 이번 레이드의 중요 요점일지도 모르겠더군요.” 다이앤 여왕과 장 그레고리 공작의 말을 들은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동료들을 이끌고 성벽의 체력 게이지가 다 떨어지도록 공격을 해 봤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뭔가요?” 다이앤 여왕의 질문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사실 별것 없었습니다. 안에서 기마대라도 나오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냥 보스룸에 진입 하겠는가? 라고 나오더군요. 일단 진입하지 않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결국 보스몹이 누군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주어진 상황 밖에 없다는 거군요.” 조금 생각을 하던 장 그레고리 공작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연맹의 유저들에게 모두 알 리가 짐작 가는 이름을 다 받아 보는게 좋을 것 같군요.” “글쎄요? 그렇게 하면 너무 많은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요? 성벽에 쏟아지는 돌과 창···. 이러면 누가 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수성전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은 많습니다. 한 바가지 나올텐데 그걸 어쩔까요?” “······음, 그건 아름답지 않군요.” 일행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건 너무 두리뭉술했다. 똑똑···. 그때 문에서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한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정운이 말하자 문 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탈리아입니다. 잠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운은 다이앤 여왕과 장 그레고리 공작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상관없죠. 아름다운 여성은 늘 환영입니다.” “회의중에 들어올 정도면 뭔가 힌트를 가지고 왔을지도 모르죠.” 두 사람의 동의를 얻은 정운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탈리아는 회의장에 들어오자마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 회의장에 참석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뭐···” “별 것 아닙니다. 아름다운 여성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해도 모두 용서가 됩니다. 왜냐 하면 아름다운 여성은····.” “됐어요.” 장 그레고리 공작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다이앤 여왕이 말을 끊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정운은 여전히 나탈리아가 처세 하나는 끝장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은근슬쩍 밀고 들어오면서 자신이 회의에 참석 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포로들의 대표격으로 격상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 번이고 중요한 정보를 물어다 준 그녀의 공적 덕분에 포로들 중에서는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이 그녀이기도 하다. “사실 이제까지 몇 가지 정보를 취합해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패턴? 무슨 패턴?” “이번에 80층의 메두사부터 얼마 전의 한니발 까지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점입니다.” “공통점? 그게 뭐죠?” 다이앤 여왕이 궁금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나탈리아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키워드는 ‘왕’입니다.” “······왕?”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항우야 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레이디?” “···아니아니···. 어쩌면···?” 정운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중얼 거렸다. ‘메두사는 모르겠지만···. 한니발의 경우 틀림없이···.’ 정운이 생각에 빠지자 나탈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메두사, 항우 한니발, 이들 네 명이 모두 왕권으로 연결이 되고 있었습니다. 우선 메두사. 그녀는 고르곤 세 자매의 한 명이죠. 그녀들의 이름이 뭔지 알고 있나요?” “그 정도요··. 스텐노, 에우뤼알레, 그리고 메두사이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레이디.”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 뜻은 아시나요?” “··거기까지는 잘···.” “스텐노는 힘센 여자, 에우뤼알레는 멀리 떠도는 여자. 그리고 메두사는 바로···. 여왕을 뜻하지.” 장 그레고리 대신에 다이앤 여왕이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온 항우. 이 경우에는 할 말이 없죠. 상대는 완벽하게 왕 그 자체였으니까요. 동양에서는 초패왕이라고 부를 정도죠.” “그렇군···. 그럼 한니발은 어째서? 그 남자는 왕도 아니고 가문도 장군가일 뿐이 아닙니까?” “아니··. 장 그레고리 공작님. 사실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장 그레고리 공작의 말에 정운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부정했다. “제가 한니발이 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행적에 관해서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던 일인데···. 사실 그는 왕은 아니지만 그의 가문은 카르타고의 최고 유력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란···.” “카르타고는 기원전 308년 이후로 왕정이 아니라 장로회가 국정을 운영하는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한니발의 가문인 바르커 가문은 그의 아버지 대에까지 왕가나 다름 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운의 말을 듣고 나탈리아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맞습니다. 굳이 왕위에 없다고 해도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왕이라는 호칭이나 권위에 걸 맞는 자들이었습니다. 80층대의 세 명 전부가 말이죠. 과연 이게 우연일까요?” 나탈리아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은 곰곰 하게 생각에 잠겼다. ‘한니발의 경우 당시 나라에 왕이 없었으니 그렇다 치고···. 메두사는 그냥 호칭일 뿐인데···.’ ‘아니 하지만···. 원래 메두사는 사람의 상념이 뭉쳐서 생긴 존재. 나라가 없는 이상 호칭이야 말로 왕권을 나타나는 것일지도····.’ ‘일리는···· 있어.’ 세 사람이 모두 망설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나탈리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미리 준비해둔 양식을 꺼내서 세 사람의 앞에 꺼내서 보여줬다. “이것은 이번의 83층의 보스몹 필드를 상공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내부는 보이지 않지만 성벽의 전체적인 모양이 그대로 드러났죠.” “음···. 그렇군.” 그녀의 말대로 성벽의 전체적인 라인이 모두 드러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성벽의 내부는 깜깜한 어둠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어쨌다는 겁니까? 아름다운 레이디.” “설명하겠습니다.” 나탈리아는 어느새 안경을 꺼내서 지적인 인텔리 여성처럼 변했다. 그리고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처럼 본격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83층의 보스몹도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왕권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면··. 이 도시는 그가 다스리던 나라에 가까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죠.” “일 리가 있군.” “그리고 우리가 성벽에 다가갈 때 쏟아져 오는 창과 바위···. 전 그 창 중에 하나를 가지고 스카이 타운의 대학 교수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니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했는데요?” 다이앤 여왕의 말에 나탈리아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창이 아니라 발리스타 전용의 탄환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중세의 것이 아니라 고대 시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연대는 알았군요. 그렇다면 좀 더 범위를 좁힐 수는 없습니까?” 정운의 말에 나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가능했습니다. 이 상공에서 찍은 성벽의 라인을 보고 고대의 도시 중에 여기저기를 닥치는 대로 비교했죠. 그리고 딱 하나 맞아 떨어지는 것을 찾았습니다. 그게 바로 이것 이었습니다.” 나탈리아는 고대 도시의 성벽 윤곽도 중에 딱 하나 맞아 떨어지는 지도를 가지고 와서 나란히 비교해 봤다. 확실히···. 약간의 오차는 있었지만 상당 부분이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 도시의 이름은·····. “로마!!!” “로마였어. 로마의 왕, 혹은 황제···. 그렇다면.” “후보는 대폭적으로 좁혀지죠. 해 봅시다.” 정운을 비롯해서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83층 레이드에도 도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활약으로 인해서 나탈리아의 활약을 빼 놓을 수는 없었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을 줘서 분위기를 고조 시켜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에서 의혹적인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포로 신분에 있는 유저들 중에서 가장 대표격이 되었다. 그녀는 앞으로 그라운드 제로 전반에 걸친 정보를 조사하고 그걸 연맹에게 보고하는 정보 수집반의 리더라는 자리를 생겼다. 정말 어디를 가도 자기 몫을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 있지 않은가? 나탈리아가 딱 그런 타입이었다. 로마의 황제.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자기 인생에 후회가 남고 원한이 짙어서 파우스와 계약을 할 정도의 인물. 정운들은 몇 명의 이름을 생각해서 레이드에 도전했다. 가는 길에 정운은 프랑스의 NO.2인 피에르 아르네제데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발견했다. 평소에 전혀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몇 명인가 보인 것이다. 처음에는 프랑스 팀의 신인들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그들은 어째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남극펭귄들이 꽁꽁 뭉쳐 있는 것처럼 자기들끼리 뭉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 정운은 피에르에게 그들에 관해서 물었다. “여기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정운의 질문에 피에르는 자기 안경을 슬쩍 올리면서 대답했다. “우리 서버에서 데리고 온 지원자들입니다.” “지원자? 팀원이 아니고요?” “아닙니다. 이들은 레이드시에 인질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정운은 피에르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런 방식, 장 그레고리 공작이 허락하던가요?” 정운이 알고 있는 장 그레고리라는 남자는 엉뚱하고 뭔지 모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만 넘치는 이상한 남자였다. 하지만 비열한 수단이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엄청나게 싫어했다. ============================ 작품 후기 ============================ 이번 화는... 챕터 제목이 쓸데 없이 좀 긴 느낌이 드네요. 뭐, 내용은 말 그대로 입니다. 슬슬 촉이 날카로우신 분들은 83층의 보스몹이 누구인지 감이 올 겁니다. 아마도 몇개로 좁혀질 테죠. 한니발이나 메두사의 예를 봐도 알겠지만 굳이 왕이 아니라도 왕권에 가까운 권력이나 칭호를 지니고 있는 자면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고 치면 을지문덕이나 흥선대원군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혹은 중국의... 아니 그건 스포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00화 “보고하지는 않았습니다. 보고한다면 아마도 아름답지 못한 방식이라고 거절하려고 하겠죠.” “그걸 알면서···.” “예. 그걸 알면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굳이 우리팀의 리더인 장 그레고리 공작님이 아니라 정운님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려고 합니다.” 피에르의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왜 저입니까? 제가 연맹의 리더이기는 하지만 당신은 프랑스 팀원입니다. 장 그레고리 공작을 거치지 않고 제가 뭐라고 하는 것은 월권행위에 가깝습니다.” “예. 하지만 장 그레고리 공작님 보다는 이번 사안에 관해서는 정운님이 말이 더 잘 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정운님!!!” 짜증을 내려던 정운의 말을 끊으면서 피에르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의 눈을 정운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마치 내 말을 잘 들으라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비정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포로들을 인질로 쓰는 것 보다 저들 일반 유저들을 인질로 쓰는게 훨씬 더 이상적입니다.” “그거야····.” 알고는 있다. 하지만 효율적인 것도 정도가 있다. 뭐든지 효율만 따지면서 인도적인 점을 잊어버린다면 지금 한우리 연맹의 분위기 자체가 험악해 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정운도 포로들이라고 해도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꺼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피에르는 그 점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포로들이라고 해도 희생자가 발생하면 앞으로 함께 해야 할 이들인데 사기에 영향이 생기겠죠.” “····그렇죠.”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의 사태에 후퇴를 하려고 해도 신속한 결정을 하기 어려울 겁니다. 여기서 후퇴한다는 것은 인질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피에르의 말은 확실하게 맞았다. 어디까지나 냉철하게 논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말이다. “······역시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는 자들을 인질로 세운단 말입니까?” 정운이 일단 거절하자 피에르는 더욱더 열변을 토했다. “당신의 방식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온 자들입니다.” “각오?” “예. 저들의 레벨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잘 해야 30 정도입니다.” 피에르의 말에 정운은 깜짝 놀랐다. “너무 일러요··. 그래서는 여기 필드 몹 하나··. 아니 그보다 관문 돌파를 위한 전투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관해서도 나름 작전이 있습니다. 정운님. 저들이 말 도 안 되는 저 레벨인데 이렇게 도전을 한 이유를 짐작 하시겠습니까?” “··············.” 대답은 하지 않는 정운이었지만 나름 짐작은 갔다. 고작 30대 레벨의 유저에게 있어서 그라운드 제로는 무척이나 고달프고 가혹한 세계이다. 몹들은 강하고 자신보다 강한 유저들도 수두룩 하다. 어느 정도 견실한 길드에 들어간 유저라고 해도 그 안에서 선배들의 텃세와 갈취가 성행한다. 약자라는 것 하나만으로 하루하루가 괴로운 시기인 것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 뿐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있어서 월드 서버의 유저는 하늘위의 하늘이다. 월드 서버의 유저들이 나서서 아주 조그만 아이템 하나만 던져줘도···. 혹은 몇 주 정도 뒤를 챙겨주기만 해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된다. ‘아마도···, 저 사람들은 그 도움을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건 거겠지.’ 정운이라고 해서 그런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래적인 속도로 빠른 렙업을 하기는 했지만 정운 역시 약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도박을 받았죠. 서로의 이해가 일치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뭔가 불만이 있습니까?” “·············.” 정운은 말 문이 막혔다. 확실히 피에르의 말 대로였다. 아직까지 그럴일은 없었지만···. 레이들를 하다가 후퇴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80층대에서 후퇴를 결정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인질로 잡힌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포로들을 인질로 잡다두는 이유는 전력의 온전을 위한 면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후퇴를 결정했을 때의 도마뱀 꼬리와 같은 역할을 맡기는 것이기도 했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정운은 피에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말에 틀린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그에게 따라줘야 한다. ‘일단 레이드가 우선이지···. 인질에 관한 얘기라면 나중에 더 좋은 생각이 나올 거야.’ 잠시 후··. 한우리 연맹 유저 + 약간의 저레벨 일반 유저들은 보스몹의 필드에 도착했다. “저 성벽은 도대체···?” “몰라. 하지만 아마도 고레벨들은 레이드를 저렇게 하나 보지?” “저 성벽이 보스몹이라고?” “아니 난 다른 거라고 들었는데···.” 월드 서버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일반 유저들은 자기들 끼리 수군수군 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피에르 아르네제데가 말했다. “내가 시키는 데로만 하면··. 약속한 대로 너희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갈 것이다. 내가 한 말은 기억하지?” “예.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불공평 한 것도 아니었다. 차곡차곡 한걸음씩 올라가는 다른 유저들에 비해서 한 번에 위로 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83층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공격!!!” “한곳에 모여서 방어를 단단하게 해!!!?” “느려도 좋으니까 천천히 소진 시키는 거야!! 거기 초짜들!! 괜히 나서다 다치지 말고 가만히 보호막 안에 있어!!!” 공격은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했다. 각 팀의 2군 수준들의 유저들과 포로 유저들이 주축이 되어서 로마 성벽을 향해서 공격을 거듭했다. 쾅!!! 콰쾅!!! 연신 스킬이 성벽을 때리는 것을 보면서 성벽 위의 체력 게이지도 조금씩 조금씩 떨어져 갔다. 그걸 보고 일반 유저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고레벨 유저들은 전부 괴물인가?” “·····인간이 아니야····.” “거의 하나하나가 일인 군대네···.” 그들은 그렇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수준··. 하늘위의 하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네 조기 축구에서 뽈만 차던 사람을 갑자기 프리미어 리그 본 시합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 아마 지금 이 사람들처럼 벙찐 얼굴만 하고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이들이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성벽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각 팀 중에서도 가장 바닥의 바닥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증거로 한국에서는 오로지 주경택 한명만이 참가했을 뿐이다. 가장 밑에 계급이라고 해도 그 밖에는 없었다. 어쨌든 단순한 공격 밖에는 할 수 없는 성벽이라서 공략 그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안에 있는 알맹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콰쾅!!! 결국 마지막 굉음과 함께 성벽은 무너졌다. 그리고 모두의 머릿속에 알림음이 울렸다. 띠리링!! [보스룸에 진입 하시겠습니까?] “····자, 그럼 지금부터 돌입··· 아, 그전에··. 피에르씨, 뭔가 방법이 있다고 했죠?” 정운은 피에르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아까 성벽 돌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피에르가 그렇게 말하자 아까 성벽을 두드렸던 사람들이 모두 앞으로 나왔다. 피에르는 그들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번 레이드에서 빠지고 일단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응? ····아!!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정운은 피에르가 왜 저들을 물리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에 들어갈 때는 돌파에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사람이 인질로 잡힌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초보 30레벨의 유저들이 인질로 잡힐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간단하다. 성벽 돌파에 참여했던 전투 인원들 중에서 인질 역을 맡을 생초보 유저들 이외의 인간들을 모두 배제 시키면 된다. ‘설령 파티를 나간다고 해도 같은 국가의 팀이 레이드를 성공 시키면 위로는 올라 갈 수 있지··. 그래. 그러면 되는 것을···.’ 정운은 이제까지 그 생각을 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원래 같으면 세레나가 질 드 레를 설득 시켜서 전원이 위로 올라가는 것에 성공했던 시점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니··. 깨닫고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레이드는 항상 모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라는 상식에 사로 잡혀서 전력을 뺀다는 것을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거 뿐. “자!! 당신들 중에 한 명이 아무나 말해.” 피에르의 말에 프랑스 유저들은 잠시지만 서로 머뭇머뭇 거렸다. 그런 그들에게 피에르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어차피 누가 말한다고 해도 인질로 잡힐 상대는 대강 정해져 있어. 그러니 아무나 말해.” 그의 말에 결국 유저중에 한명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으음···. 83층의 보스몹의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정답은 말했다. 정운과 한우리 연맹의 리더들이 의논 끝에 정한 이름은 카이사르, 속칭 시저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맞을거야. 아마도 틀림없이···.’ 로마의 황제. 라고 하면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 신군 카이사르가 보통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 둘 중에 아우구수투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파우스트하고 거래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그에게 밀려난 안토니우스라면 혹시 거래를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안토니우스는 왕권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이외에 파우스트와 계약을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로마의 황제 중에서 카리큘라와 레오 역시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카이사르와 달리 이름값이 많이 떨어졌다. 이 둘을 다 합한다고 해도 역사에서 이들의 가치는 카이사르의 발 치에도 따라가지 못했다. “······틀린건가?”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리는 순간··. 띠리링!! [정답입니다. 바로 보스룸으로 진입합니다.] 라는 말이 들렸다. “예스!!!” “됐다!!!!” “좋았어!!!!”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크게 좋아했다. 한니발 이 후로 상대의 이름을 한 번에 알아맞춘 것은 처음이었다. 그나마 한니발의 경우는 유니버스 연맹에서 알려줘서 맞춘 것이고···. 자력으로 한 번 만에 정체를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과 달리 일반 유저들은 뭐가 잘 된 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뭐지···?” “좋은건가? 레이드 끝났나?”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레이드가 끝났냐? 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그럴리는 없다. 레이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실 인질로 잡혀서 안전을 보장 받을 수도 없는 지금 이들의 운명은 정말 풍전등화라고 할 망했다. 정운을 그것을 배려해서 배대호에게 말했다. “형님. 저 초보들 안전 좀 부탁 드립니다.” “알았다. 신경쓰지···. 너희들, 꼼짝하지 말고 내 곁에···.” 배대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일행은 필드의 어딘가로 이동을 했다. 이제 본격적인 레이드의 시작인 것이다. ============================ 작품 후기 ============================ 그 본격적인 시작은 다음화 부터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01화 <83층 레이드 공략> “여기는····?” “황야인 것 같은데?” “그렇군. 그럼 저기 보이는 저건···. 오, 이런···.” 유저들은 말을 하다가 상황을 파악했다. 이번 상대가 카이사르라는 것을 파악하고 상대가 어떻게 나올까? 라고 어느 정도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사실 그게 딱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상대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뛰어난 정치가이기도 한 카이사르다. 하지만···. 모든게 뛰어나다는 것은 딱히 두드러지는 한 점이 없다 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카이사르가 어떻게 나올지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보는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인해전술···. 척 봐도 20만은 되어 보이는데?” 박추성이 높은 바위위로 가서 황무지를 빼곡히 메운 적들을 보면서 말했다. “로마 군단병 20만이라···. 그리고 평범한 20만도 아닌 것 같은데?”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배대호의 말에 한중겸이 엄청 불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배대호는 대답 대신에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ME를 꺼내서 적의 병사중에 몇 명을 찍어봤다. 그리고는···. “역시···. 각각 특이한 힘이 느껴져서 혹시나 했는데 말이야···.” 배대호는 ME의 데이터를 모두에게 공개했다. 로마 군단병 LV. 50~70 [로마 시민으로 이뤄진 충성스런 군단병. 그들은 상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로마 군단 백인장. LV. 70~80 [로마 군단의 백인대를 다루는 백인장. 일반 병사들 보다 훨씬 노련하고 강력하다. 또한 주변의 부하들을 이용해서 협공을 하는 것에 능하다.] 로마 군단 대대장. LV. 80~90 [여섯개의 백인장을 아래에 두고 있는 대대장. 상당한 영향력과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개인적인 강함도 상당하다.] 로마 군단 군단장. LV. 90~120 [총 열 명의 대대장을 거느리고 있는 군단장. 개개인이 상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군단 전체를 효율적으로 지휘하면서 적을 섬멸한다.] “이런···. ···이건?” ME의 데이터를 확인한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알겠냐? 내가 왜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지?” “···하나 하나가 몹? 20만이? 빌어먹을···.” “그것도 그냥 몹들이 아니야. 개중에는 레벨 100이 넘는 몹들도 있다. 이래서는 애 좀 먹을 거야.” “한니발 때하고는 다르단 말이죠.” “그런거지? ·····그런데···?” “또 뭡니까?” “별 건 아니고··. 저 놈들 왜 안 덤비는 거지?”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그제야 이상한 것을 확인했다. 적들은 질서정연하게 도열하고 폼만 잡고 있을 뿐. 전혀 덤비지를 않고 있었다. “설마 저건 장식이라거나··?” “그런 행복한 일은 없지···. ME에 데이터 찍히는 것 봤잖냐?” “그랬죠···. 그럼 왜?” 정운의 의문을 이민지가 발견한 거대한 물체를 발견하고 나서야 풀렸다. “정운아. 여기 이런게 있는데?” 이민지가 말한 곳에는 사람 몸체만큼 커다란 주사위가 한 개 놓여져 있었다. “····이걸 던지라는 걸까요?” “그렇겠지? 흠··. 과연, 주사위는 던져졌다. 인가?” 카이사르가 로마의 패권을 두고 숙적 폼페이우스와의 전투를 앞에 두고 루비콘 강을 건널 때 한 말이다. “도박을 하라면···. 받아주지. 보영이 누님.” “음··. 나한테 맡겨.” 이보영은 일행의 앞으로 나와서 거대한 주사위에 서더니···. “하압!!!!” 퍼어엉!!! 있는 힘껏 주먹으로 주사위를 올려쳤다. 그러자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붕 떠올랐던 주사위가 한참 후에야····. 콰아앙!!! 무거운 굉음을 울리면서 떨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주사위의 눈은···. [4] “4라··. 그래서? 이제 뭘 어쩌라는 거지?” 띠리링!! [주사위의 눈금이 4가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전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유저들은 20만의 로마 대군들은 상대로 도전합니다. 그리고 네 시간 안에 보스몹인 카이사르를 찾아내서 없애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레이드는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유저는 필드 밖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인질이 잡히지 않았다면 감수하지 못할 용건은 아니군.”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렸다. 만약 인질이 잡혔다면 모르겠지만 인질이 잡히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타임어택 정도는 그렇게 가혹한 조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뒤에 나오는 말을 듣지 못했을 때의 일이었다. 아직 메시지는 다 끝난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 레이드에서 실패할 시에는 앞으로 40년간 레이드에 도전할 권리를 박탈당합니다.] “············장난하냐!!!!!!!!!” “이 자식 파우스트!!!!” “죽인다 이 새끼!!!!!” “아름답지 못하잖아!!!!!!” 정운을 시작으로 한우리 연맹의 모두가 빡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말 그대로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는 것을···. 척척척척척·····. 로마의 군단병들이 드디어 발을 맞춰서 한걸음씩 전진해 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밀물 때 갯벌이 차오르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빌어먹을···. 모두 조를 짜서 흩어져!!! 그리고 무조건 카이사르를 찾으면 연락해!!!!” 자세한 작전을 짤 시간도 아까웠다. 정운은 바로 일행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에 본인도 흑토를 타고 전투를 시작하려고 했다. “흑토!!! 비상이다.” “히힝!!!” 정운은 흑토의 배를 차면서 위로 날아오르려고 했다. ‘저것들을 하나하나 상대해서는 끝이 없어. 위에서 한 번에 내려다보면 대략 대장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하지만 그런 정운의 생각 정도는 미리 알았다는 것일까? 띠리링!! [비행 스킬 이용 불가 지역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떴다. “진짜 장난 하냐!!!?” 정운은 이를 갈며 외쳤다. 비행 스킬 이용 불가 지역? 그런건 정운도 처음이었다. 정운 뿐만 아니라 하늘 위에서 적을 한 번에 관찰하고 날아가려고 했던 유저들 대부분이 허탈한 얼굴을 했다. “마스터!! 어쩔 수 없습니다. 무조건 돌파하는 수밖에···.” “맞아요. 우리도 빨리 가요. 정운씨!!” 정운의 옆으로 다가온 세레나와 슬기가 말했다. 이미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박추성은 자신의 무한의 영사를 닥치는 대로 휘두르면서 로마 군단병을 도륙하며 전진했다. 그건 마치 작은 토네이도가 로마 군단병을 휩쓸면서 전진하는 모습 같았다. “죽기 싫은 놈들은 모두 비켜라!!!!” 박추성은 그렇게 외치면서 전진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뒤지지 않게 다른 유저들도 사방으로 흩어져서 카이사르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자이언트 스네이크!!! 메두사, 왕귀인 가자!!!” “명령 하지 마!!!” “주인 따위 확 죽어 버리면 될 텐데···.” 한중겸이 자기 소환수를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고 다른 유저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로마군단병을 상대로 싸워 나가기 시작했다. “쯧···. 어쩔 수 없지. 무조건 정공법으로 하는 수밖에···. 슬기야. 세레나!! 확실하게 내 뒤에 붙어!!” “옛!!!” “옛!!!” “기마 차지!!!” “히히힝!!!” 콰콰콰콰콰콰!!!!! 정운도 한 줄기의 거친 질풍이 되어서 로마 군단의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길고 긴 83층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꺼져!!!!” 콰앙!! “커억····.” 적을 하나 날려 버린 정운은 이를 갈면서 중얼 거렸다. “빌어먹을···. 꼭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아.” 정운은 이 순간 자신이 꼭 사형 직전의 형을 구하기 위해서 정예군단에 도전하는 어떤 캐릭터가 된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정운씨!!” “괜찮아. 회복만 꾸준히 넣어줘.” “마스터!! 아무래도 이 군단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빠져 나가죠?” “알았어!!! 바싹 붙어서 따라와. 기마 차지!!!” 정운은 이 군단안에서는 카이사르가 보이지 않자 일단 빠져 나가기로 했다. 사람은 항상 최악의 위기에 처하면 이전의 위기를 떠올리게 된다고 했던가? 정운은 지금 로마 군단을 상대로 분전을 하면서 차라리 한니발 때가 더 쉬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정운이 유저로서의 능력을 봉인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대하는 인간들 역시 하나하나가 보통 병사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하나하나가 몹으로서의 스킬을 구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철벽!!!” “철벽!!!” “철벽!!!” 까아앙!!! “크윽···. 빌어먹을···.” 정운의 앞에 로마 군단병들이 두꺼운 사각 방패를 서로 겹치면서 스킬을 썼다. 그러자 한창 달리고 있던 정운의 기마 차지가 막혀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고작 레벨 50~70이라는 놈들 스킬이 무슨···.” 정운이 말하는 것처럼 로마 군단병의 레벨은 고작 50~70이다. 이런 놈들이 아무리 모여 있다고 해도 정운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냥 피라미나 다름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피라미들이 하나로 모여서 스킬을 쓰면 레벨 200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정운의 돌격이 막힐 정도의 막강함을 드러내고는 했다. “쏴라!!!!” 푸푸푹!!! “칫!! 슬기야!!” “실드!!!” 거기다 정운이 발길을 조금만 멈추면 후방에서 발리스타 화살과 캐터펄트의 낙석들이 발사 되었다. 콰쾅!! 콰앙!! 당연하지만 저것들도 그냥 평범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몹들에게 배정된 아이템? 그런 느낌으로 받아 들여야 할 것 같은 물건이었다. 보통 발리스타 라는게 날아와서 폭발을 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지 않는가? 정운은 결국 이를 갈면서 다시 최선을 다해서 하나하나 길을 뚫었다. “비켜!! 비키라고 이 자식들아!!!!” 콰쾅!! 콰아앙!!! 정운은 쌍창을 부지런히 찌르고 휘두르면서 군단병들의 철벽 스킬을 뚫기 위해서 연속 공격을 가했다. “마스터. 제가 신의 철퇴를 쓸까요?” “안 돼!! 적어도 지금은···.” 정운은 세레나가 쓰려는 신의 철퇴를 말렸다. 확실히 대군을 상대하는 것에는 세레나의 스킬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 스킬은 쿨 타임이 너무 길었다. 만약 썼다가 허무하게 막히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난처했다. ‘원래 조커는 최대한 마지막에 보이는 법이지.’ 정운은 지금은 일단 노가다 식으로라도 열심히 정면을 뚫기로 했다. 정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들이 로마 군단의 힘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로마 군단이 유저들을 싸우는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기본적으로 창과 방패의 방식이었다. 로마 군단병들이 단체로 몰려서 쓰는 철벽의 스킬은 아무래도 사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높은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수백 수천명이 모여서 동시에 사용하면 그 강력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예전에 정운의 뒤통수를 치다가 죽은 문시영이 쓰는 스킬도 저것이었다. 그때 정운과 문시영이 콤비로 활동하면서 쓰던 작전은 단순했다. 문시영이 저 철벽 스킬을 이용해서 전방에 방어로 나가고 뒤에서 정운이 활로 공격하는 패턴이었다. 정말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공수의 분담을 딱 나눠서 효율이 좋았던 사냥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로마 군단이 사용하는 방법은 그때의 패턴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수백 수천 명이 하나의 벽이 되어서 철벽 스킬을 쓰면 정운과 흑토의 기마 차지라고 해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견고한 벽이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화살비와 발리스타, 그리고 캐터펄트의 공격은 방심하고 맞으면 적지 않은 대미지를 주기도 했다. “빌어먹을···. 이러다가는 언제 카이사르를 찾지?” 네 시간의 제한 시간 안에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이 레이드에 실패하면 앞으로 40년은 레이드에 도전 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무한한 그라운드 제로라고 해도 40년 동안이나 죽치고 있을 생각은 조금도 없는 정운이었다. ‘무조건 성공 시켜야 해.’ ============================ 작품 후기 ============================ 사실 카이사르 아니라 네로나 카리큘라도 동기는 충분한데... 아무래도 그 치들은 네임드가 떨어지죠. 사실 저보고 김일성 김정일 등장 시키라는 분들이 많은데 그 치들은 등장을 시키기 어렵습니다. 악역이라고 해도 나름 네임드가 있어야죠. 그 인간들을 등장 시켜서 어떻게 써 먹습니까? 부하몹으로 기쁨조라도 깔아야 하나요? 쩝, 역사적으로 한을 품고 죽은 군주는 많은데 그 중에서도 카리스마를 겸비한 폭군은 의외로 적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02화 정운은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점점 초조해 졌다. ‘차라리 전력을 다해서···. 아니 하지만 카이사르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미지수인데···.’ 정운은 지금 쉐도우 아미나 아스트랄 소드는 물론이고 뇌천신공 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용하고 있는 전력은 평소의 30% 정도로 낮추고 일반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카이사르를 상대하기 위해서 힘을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운이 좀 더 본격적으로 힘을 쓴다면 설마 수만의 대군이라고 해도 정운이 폭풍처럼 휩 쓸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카이사르를 찾기 위해서 지금 최선을 다할지··. 아니면 나중을 기하기 위해서 지금은 힘을 온전해 둘지··. 정운은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다. 그때·····. 콰콰콰콰콰!!! 뭔가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것이 정운쪽으로 다가왔다. 정운은 저 폭풍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화염과 냉기를 동시에 동반한 저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한정 되어 있었다. “주호 형님!!!” 그렇다.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한 명주호였다. 처음에 정운과 만났을 때 그의 레벨은 125정도였다. 그래도 충분히 강력했지만 월드 서버에서 두드러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봐서는 상당히 강해졌다. 레벨을 말해 준 적은 없지만 척 봐도 레벨이 150은 넘은 것 같아 보였다. 명주호가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아, 나하고 수민이 그리고 정철이는 여기서 완전 소모한다.” “형님···.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카이사르를 못 찾으면 모든게 끝이야 하는데 까지 해 볼테니. 뒤를 부탁한다.” 명주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최고 기술인 태극음양신공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렸다. 화르륵···. 쩌정···. 그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아지랑이가 생길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왼쪽은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생성 되었다. 그는 정말로 이 로마군단을 향해서 모두 소모해 버리려는 것이다. “음양폭연격(陰陽爆連擊)!!!” 음양폭연격(陰陽爆連擊) LV.MAX (냉기와 화기를 동반한 연속 공격을 전방으로 날린다.) 콰콰쾅!!!! “으아아악!!!” “크아악!!!” 명주호가 작정하고 날리자 로마 군단의 철벽같은 방패의 방어라인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반드시 찾고 만다···.” 명주호는 이를 갈면서 앞으로 돌격했다. 명주호 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유저들이 어떻게든 카이사르를 찾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명주호, 김수민, 윤정철, 이보영, 이지영, 그리고 다른 나라의 2진급 멤버들 까지···. 그들 모두가 자신의 힘을 다 써가면서 싸우는 것은 일단 카이사르를 찾기만 하면 다음에는 다른 정예 멤버들이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길···. 이런 난전은 화력이 강한 내가 제격인데····. 혹이 딸려서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겠군.” 배대호는 혀를 차면서 동료들이 분전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의 말대로 일대다에 있어서는 최고의 마법사인 그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피에르가 데리고 온 인질 후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미 이번 레이드에는 이용 가치가 다 한 자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팽겨 칠 수도 없었다. 인도적인 면으로 봐서도 그렇지만 다음에도 또 동원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지켜준다는 확신과 믿음을 줘야 했다. 원래 단발로 끝날 거래가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될 거래에서는 서로간의 존중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배대호 정도의 주력이라면 카이사르가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서 힘을 아끼고 있어야 하기도 했다. “·····응? 어기!! 보호막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냥 있어!!!” 배대호는 자신의 보호막 안에 있던 일반 유저 몇 명이 슬그머니 나가서 보호막 앞에 있는 로마군단 병사를 공격하려는 것을 막았다. “예? 하지만···.” “저희도 싸우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작은 힘이나마···.” “시끄러!! 그냥 찌그러져 있어!!” 배대호는 그들의 제안은 단번이 일축했다. 사실 그들이 하는 생각이야 뻔하다. 월드 서버의 유저들에게는 일반 병사 한 둘 따위는 피라미였지만 레벨 30의 일반 유저들에게는 그 병사 한명도 상당한 경험치 덩어리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 레이드에서 공격을 하지 못하면 경험치는 전혀 배분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병사 한 둘이라고 힘을 합쳐서 잡으면 큰 경험치와 보상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대호는 그 심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묵살했다. ‘너희들 전원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병사 한 명 잡기 힘들거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는게 좋아.’ 그렇게 배대호는 말 안 듣는 삐약삐약 병아리를 챙기는 엄마 닭 같은 심정으로 초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여러 명의 유저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힘을 아끼지 않고 싸우면 로마군단이라고 해도 유저들을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윤정철이었다. “물러나지 마라!! 물러나는 놈은·· 컥!!!” “대대장님!!” “저격이다··. 커억!!” 대대장의 이마가 화살에 꿰뚫리는 것을 보고 다른 군단원들이 저마다 몸을 사렸다. 하지만 그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 전체 지역에 무시무시한 화살의 피가 쏟아졌으니 말이다. 콰콰콰콰쾅!!! “쳇··. 저기도 아닌가?” 윤정철은 혀를 차면서 다음 군단으로 타깃을 바꿨다. 윤정철의 싸우는 방식은 일단 그 부대의 지휘관 급, 그러니까 백인장을 시작으로 해서 대대장이나 군단장들을 저격으로 없애고 그 주변의 후방 병력을 산탄시로 쓸어버리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누구보다 더 빠르게 로마 군단의 핵심을 부수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미 그가 혼자서 부순 로마 군단은 세 개가 넘었다. 한 군단에 대략 6천 명 정도이니 그 혼자서 1만 8천 정도의 부대를 와해 시켰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이제 두 시간 정도···. 이제 반 남았나? 빡빡한데··?’ 윤정철은 다시 한 군단을 발견하고 거기를 향해서 화살을 매겼다. “어디 보자··. 독수리 독수리 독수리···.” 윤정철은 독수리 장식을 들고 있는 지휘관을 찾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마 군단의 군단장은 항상 독수리모양의 자휘봉의 곁에 있었다. 기어코 표적을 찾은 윤정철은 다시 한 번 화살을 당겼다. “코브라 샷!!!” 코브라 샷 LV.MAX (한번 발사된 화살은 적을 향해서 유도 추적을 한다. 적중한 화살은 독의 대미지를 중첩적으로 입혀간다.) 그가 쏜 화살은 살아있는 뱀처럼 중간중간의 장애물을 피해가면서 목표를 향해서 날아갔다. 윤정철의 스킬 중에 저격에 있어서는 최고로 성공률이 높은 공격 스킬이었다. 일단 적중률이 높았고 설령 상대가 한 방에 절명하지 않아도 차츰차츰 더해져 가는 독의 대미지는 결국 적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결과가 평소와는 달랐다. “막아랏!!!” “마르스의 가호!!!” 퍼어엉!!! 군단장의 주변에 갑자기 솟아나듯이 나타난 병사들은 척 봐도 일반 병사들 보다 두 배는 더 커다란 덩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 방패보다 세 배는 더 큰 방패를 들고 윤정철의 화살을 막았다. 윤정철은 자신의 화살이 막혔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이제까지의 다른 군단장들과 다르게 자신의 공격이 막았다는 것은···. “빙고···.” 드디어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어떻게 공략 할지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윤정철은 화살을 하늘 높이 날렸다. 그리고는···. 퍼어어엉!!! 하늘 높이 비상한 화살은 불꽃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내렸다. 이 넓은 전장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저건····?” “찾았다!!” “저쪽으로!! 여기는 빨리 정리해!!!”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정철은 자신이 먼저 카이사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움직였다. “멀티 블링크!!” 멀티 블링크 LV.MAX (10~20미터의 거리를 1초에 10번 이상 이동한다) 윤정철의 몸이 빠르게 텔레포트를 반복하면서 목표에게 다가갔다. “어엇!!” “막아랏!!!” 로마군단은 순식간에 다가오는 적을 보고 당황했다. 하지만 막으라고 해도 멀티 블링크로 이동하는 윤정철을 막는 것은 보통 군단의 병사들에게 무리였다. ‘지근 거리에서 한 방 먹인다.’ 보통 궁사는 먼저 적에게 다가가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적을 격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가 활이 아닌가? 하지만··. 모든 일은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다른 법. 저 커다란 떡대들에게 둘러싸인 카이사르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는 근거리에서 커다랗게 먹이는 게 가장 빨랐다. 윤정철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먹어랏!! 템페스트 샷!!!” 템페스트 샷 LV.MAX (광범위하게 화살을 쏟아 붓는다. 화살이 허공에서 분열하면서 불어난다.) 퍼퍼퍼퍼펑!!!! 바로 코앞에서 터진 화살의 산탄을 다 피할 방법은 없다. 적은 그 공격을 그대로 맞고 뒤쪽을 약간 밀려 났다. 하지만 윤정철은 알 수 있었다.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어···. 그런데 대미지가 별로 없군.“ 뿌연 연기가 걷히고 정체를 드러낸 적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사람을 만났는데 첫 인사가 이런 화살비라니? 좀 쇼크인걸?”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남자는 금발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중년의 중후한 이미지를 하고 있었다. 보통 자신의 절정기인 젊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보스몹들과 달리 이 남자는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시기를 자신의 절정기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윤정철은 만에 하나의 사태를 염두해 두고 적의 데이터를 ME로 찍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LV. 230~235 [로마의 신군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걸출한 인물. 무수한 공적을 세우고 로마가 지중해의 패자로 등극하는 것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정치적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고 항상 위를 노리고 행동하는 진취적인 인물. 하지만 그 최후는 믿었던 측근의 배신으로 인해서 안타깝게 죽었다.] ME의 데이터에 나온 이상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제대로 찍었군. 당신이 카이사르?” “그렇다. 내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길어. 그냥 카이사르라고 해.” “무례한 친구군···.” 윤정철은 다시 한 번 화살을 당겼다. 자신 혼자서 83층의 보스몹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할 정도로 윤정철은 어리석지 않다. 하지만 동료들이 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은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크류 샷!!!” 퍼어엉!!! 윤정철의 활에서 드릴처럼 회전하면 날아간 화살이 대포 같은 굉음을 내면서 날아갔다. 스크류 샷 LV.MAX (화살이 회전을 더하면서 위력이 100%올라간다. 화살에 관통의 속성이 추가된다.) 가능하면 좀 더 강력한 화살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힘의 소모가 너무 심해서 이것도 간신히 였다. “별 것 아니군.” 카이사르는 가볍게 몸을 피해서 화살을 피했다. 하지만 윤정철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음!!?” 옆으로 피한 카이사르는 자신의 발밑이 불룩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앙!!! 화려하게 폭발하면서 화살이 지면에서 솟구쳐 올랐다. “피할 거라고는 생각했지. 그래서 승룡시를 미리 날려 둔거다.” 윤정철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승륭시(乘龍矢) LV.MAX (지면을 통해서 이동하다가 적의 발밑에서 강력한 폭발과 함께 솟구치는 화살 공격)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03화 <신의 아바타를 뚫어라>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강력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느냐? 라는 것은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에게 곧 강함의 척도가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 말고 또 하나 강함의 우열을 결정하는 요소가 있다. 아이템이나 스킬처럼 스테이터스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게 꼭 필요한 것. 바로 전투센스라고 할 수 있었다. 윤정철은 그게 탁월했다. 항상 한 수 앞이 아니라 두 수 세 수를 내다보고 화살을 던지는 그의 방식은 장기판에서 적을 외통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치밀했다. 방금 전에 사용한 두 개의 화살도 기초적인 스킬들일 뿐이지만 약간의 잔머리를 굴려서 적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한 수라고 해도 파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이다. “제법이기는 하군···. 하지만 고작 이걸로는 무리지.” “나도 안다. 멀···. 읍!!!” 콰앙!! 화살을 당기던 윤정철은 그대로 강력한 충격을 받고 뒤쪽으로 저 멀리 날아갔다. 카이사르는 별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파리 쫒듯이 윤정철을 향해서 휘둘렀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윤정철은 저 멀리 깡통처럼 날아가서 바닥을 뒹군 것이다. “쿨럭···. 무슨 파괴력이···.” 궁사 클래스인 윤정철의 맷집이 훌륭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단 일격에 체력 게이지가 4분의3이나 닳은 정도면 이 공격은 심각한 것이었다. “넌 이제 충분히 즐겼다. 그만 하는게 좋겠어.” 카이사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펴서 윤정철을 향했다. 적의 공격이 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한 방 더 먹으면 확실히 사망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때····. “괜찮습니까? 형님!!!” 정운이 달려와서 윤정철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정운에게도 어마어마한 충격이 몰아 닥쳤다. “크윽···. 까불지 마!!!!” 콰아아앙!!! 정운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충격이 자신을 때리는 것을 확인했지만 뒤로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받아냈다. “칫···. 방금 공격은 뭐지?” 정운의 중얼거림에 윤정철이 비틀 거리면서 몸을 이르키며 말했다. “나도 몰라. 하여튼 나머지는 너한테 맡긴다.” 윤정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재빨리 멀티 블링크를 이용해서 몸을 피했다. 근접 전투가 가능한 정운이 온 이상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다. 최대한 몸을 피해서 일단 물러 나는게 좋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대미지와 정신력을 회복하면 그때 다시 전투에 참여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쉽게 끝날 상대는 아닌 것 같으니 말이야.’ 윤정철은 잠깐 상대해 봤지만 카이사르가 강력한 적이라는 것을 한 번에 알아봤다. 정운이라고 해도 그렇게 쉽게 우위를 점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흠····. 네가 이들의 리더냐?” 카이사르는 정운을 위아래고 천천히 훑어보더니 대뜸 정운을 리더라고 지목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 한 무리의 리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말이야.” “···············.” ‘감인가? 그런 것 치고는 무척 확신에 차 있는걸?’ 정운은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카이사르는 명 지휘관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뛰어난 정치가이기도 하다. 아직 젊다 못해 어린 시절····. 당시 로마 정계의 톱이었던 술라가 자신 스스로 딕탁토르(독재관)의 자리에서 내려오자 약관의 카이사르가 ‘술라는 정치를 눈꼽만큼도 모르는 자다.’ 라고 비웃었던 일화는 상당히 유명하다. 당시에는 고작 흔하디흔한 군복무 중인 젊은이였을 뿐이었던 카이사르였다. 술라가 말 한마디만 하면 바로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카이사르가 로마 최고 권력자를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그의 정치적 잠재력의 그릇을 알게 해 주는 일화였다. 실제로 카이사르의 말대로 술라는 스스로 독재관의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권력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카이사르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어쨌든····. 어느 시대건 어느 나라건 간에 뛰어난 정치가들에게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항목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을 판단하는 눈이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뛰어는 정치가들은 모두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촉이 엄청 예리했다. 사람을 봤을 때 적인지? 아군인지? 도구로 쓸모가 있는 인간인지? 그렇지 않은지? 그런 것을 한눈에 보고 감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정치가들에게 있어서 귀중한 능력이었다. 카이사르는 정운이 오자마자 주저 없이 뒤로 도망가는 윤정철을 보고 바로 정운이 이 팀의 리더. 혹은 거기에 준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 놈을 처리하면 다른 놈들에게도 큰 대미지를 줄 수 있다는 말이지.’ 카이사르는 그렇게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자기 힘을 개방했다. “군신 마르스여!! 나에게 강림하소서!!!” 시저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뒤편으로 커다란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손에는 거대한 창을 들고 또 한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으며 몸은 갑옷으로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는 굳건한 전사의 형상이었다. “마르스···? 카이사르의 종교가 저거였나?” 정운은 모르겠지만 카이사르의 시대까지만 해도 마르스는 로마에 가장 널리 퍼진 신중에 하나였다. 원래 마르스는 농업과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와 동일시되고 있는 신이다. 하지만 로마의 영토 확장 전쟁이 지속되면서 전쟁의 신이 특히 더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결국 마르스는 어느새 전쟁의 신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딱히 카이사르 뿐만이 아니라 로마의 모든 이들이 마르스를 널리 믿었던 대중적인 신앙이었다. 특히 그 아우구수트수 역시 적을 진압한 기념으로 마르스의 신전을 건립하기도 한다. 그러니 여기서 카이사르가 마르스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는 것은 그가 생전에 이용했던 전쟁터의 공적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카이사르는 거대한 군신을 앞세워서 우진을 공격했다. “죽어라!! 로마의 적!!” “내가 뭘 했는데 로마의 적 이래!!!?” 정운은 그렇게 외치면서 적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그냥 달려 드는게 아니라 뇌천신공을 운영한 상태였다. 정운이 한줄기의 황금색 섬광이 되어서 적과 격돌했다. 콰아아앙!!!! 정운이 뇌천신공을 운영한 채로 흑토와 함께 있는 힘껏 돌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스의 모습을 한 신장을 뚫지 못했다. 오히려 뒤로 밀려났다. “쳇···. 슬기야!! 회복 부탁해!!” “옛!!” 정운과 함께 따라온 슬기는 정운에게 회복을 꾸준하게 걸었다. 그리고 세레나는 그런 정운과 슬기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의 로마군단들을 계속해서 쳐내고 있었다. “저리 썩 꺼져!!!” 퍼엉!!! 세레나의 검격에 로마 군단들은 제대로 덤벼 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로마 군단 중에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가 세레나를 향해서 마을 몰아서 달려왔다. 입고 있는 표식을 보아하니 군단장 정도의 직위에 있는 자 같았다. “제법이구나, 어디 이 카시우스와···.” “꺼지랬지!!!?” 콰아앙!!! “커헉····.” 뭐, 군단장이라고 해 봤자 90~120정도의 레벨의 몹일 뿐. 세레나가 작정을 하고 싸우면 별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위기에 몰려있는 것은 본격적으로 카이사르가 소환한 마르스와 싸우고 있는 정운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 콰쾅!! 콰아아아앙!!!! 정운의 공격은 거친 뇌신이 되어서 마르스를 공격했다. 하지만 적은 전혀 거기에 동요하지 않고 정운의 공격을 정확하게 받아치고 있었다. 아무런 대미지도 받지 않는 적을 보면서 정운은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이상하다··. 아스트랄 소드로 두들겨 볼까? 아니 그래도 노대미지면····.’ 아무리 강력해도 이 정도로 몰아붙이면 뭔가 대미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마르스는 그런게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애당초 대미지 따위는 전혀 입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혹시····.’ 정운이 문득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운과 마르스의 사이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고르곤의 저주!!!” 파아아앗!!! 둘 사이에 끼어든 것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 바로 메두사였다. 그녀는 마르스를 향해서 석화의 저주를 걸었다. 하지만 상대는 잠깐 멈칫 했을 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창을 찔렀다. 파아앙!!!!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창을 보면서 메두사는 자신의 곁을 뱀으로 둘러서 막았다. “칫··. 만만치 않단 말이야. 고작해야 아바타 주제에···.” 메두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정운은 메두사가 등장한 것을 보고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자 예상한 인물들이 보였다. “이프리트, 실비드, 적을 공격해라!!” 한중겸과 이민지가 등장해서 정운에게 아군으로 가세했다. 이민지가 소환한 두 정령왕은 거대한 이프리트를 바싹 구워 버릴 것처럼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 틈에 정운은 일단 뒤로 빠졌다. “다행이다····. 저기 추성이 형님하고 다이앤 여왕도 오는군···.” 정운은 이제 서서히 유리하게 돌아가는 전황을 보면서 이 싸움이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걸 보고 시저는···. “적이 만만치 않군. 좋다. 어디 해 보자!!!”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 스스로가 마르스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스며들 듯이 마르스의 화신의 안으로 들어가자 마르스의 몸이 훨씬 더 커지면서 신장 10미터의 거인으로 변했다. “흥이다!! 덩치 큰 놈들은 우리한테도 잔뜩 있어!!! 그레이트 타이탄!!!” 한중겸은 거대화한 마르스의 화신 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레이트 타이탄을 불러서 적을 공격했다. “우워어어어!!” “아라라라라라!!!!!” 콰아아앙!!! 마치 괴수 대격돌을 보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두 육중한 거구가 부딪혔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보면서 메두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말입니까?” 정운은 메두사에게 반말을 했다가 급하게 존댓말로 고쳤다. 일단 한중겸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이상 메두사에게도 형수님 취급 정도는 해 줘야 했다. 안 그러면 두고두고 뒤통수가 시끄럽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메두사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저건 진짜 마르스의 영혼은 아니지만 카이사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깃든 진짜 아바타란 말이야.” “·····좀 알기 쉽게 설명해 주면 안 됩니까?”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처럼 인간의 상상력이 뭉쳐서 태어나는 존재들이 있어. 올림푸스의 신들도 그런 존재들 중에 하나지.” 메두사의 설명을 들은 정운이 대답했다. “그럼 저것도 사람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이란 말입니까?”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 그랬다면 카이사르의 부하나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저건 아바타야. 신의 권능과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실체는 없지.” “····그럼 좋은것 아닙니까? 신 그 자체는 아니라면···?” “그렇기는 하지만····. 아바타라고 하면 일단 절대로 대미지를 입지 않아. 저것 자체가 신이 자기 힘을 보내서 원격 조정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소환의 매게가 되는 소환에게 직접 대미지를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메두사의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 말은···. 카이사르가 저 마르스의 안에 들어가 있는 이상 절대로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그래!! 어떻게든 끄집어 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못이겨!!!” “제길··. 뭐 그런 사기가····.” 정운은 초조한 눈으로 동료들과 싸우고 있는 마르스의 아바타를 바라봤다. 저 안에 카이사르가 있는 이상 직접 대미지를 주는 것은 힘들다. ============================ 작품 후기 ============================ 아아... 자꾸 카이사르를 시저라고 쓰는 손가락이 밉습니다. 덕분에 자꾸 고쳐써야 하네... 로마의 혁명과 차별을 두기 위해서 일부러 시저와 카이사르를 별개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은근이 어렵네요. 심지어 정운이 우진으로 나오기도 합니다.ㅠㅠ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04화 “저 기술 다른 약점은 없습니까? 사용 시간에 지한이 있다거나··. 아니면 뭔가 아바타를 역 소환 시킬 수 있다거나?” 정운의 말에 메두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용 시간이야 당연히 한계가 이겠지. 하지만 이 전투 우리에게도 시간제한이 있다. 잊었냐?” “·····개 같은····.” 정운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주변의 군단들을 대강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몇 만은 남은 것 같지만 지휘관 급들은 대부분 처리한 덕분에 일단 남아있는 자들은 오합지졸들이다. 그리고 오합지졸들을 상대로 밀릴 한우리 연맹의 정예들도 아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적을 공격해서 쓰러트리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적을 공격할 수단이 전무하다니···. 마치 다 이긴 장기판에서 갑자기 빗장이 걸려서 비길 수밖에 없는 상황 같았다. 다른 레이드 같으면 인질도 안 잡혔으니 일단 포기하고 다음 대책을 세워서 나중에 다시 찾아오면 된다. 하지만 이 레이드는 사정이 다르다. 한 번 실패하면 다음 도전은 적어도 40년 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안돼···. 무조건 지금 이긴다.’ 정운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쌍창을 높이들었다. 지금 같아서는 어떻게든 싸우면서 활로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트리플 기가 파이어 볼!!!” 콰콰쾅!!!! 거의 축구장 정도 되는 크기의 화염의 구가 세 발이나 동시에 적에게 작렬했다. 원래 화염계 최강의 마법인 기가 파이어볼이었다. 그걸 혼자서 세 발이나 쓸 수 있는 남자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배대호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공격도 마르스의 아바타에게 큰 대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아니 대미지 자체를 주지 못한 것 같았다. “쯧,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싶었는데 상대가 이따위 버그 캐릭터야?” 배대호는 어느 정도 로마군단이 정리되고 나자 본격적으로 전투에 뛰어 들었다. 이제는 주경택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병아리들의 보호를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병아리들에게서 해방된 배대호는 첫방으로 자신있는 강력한 공격을 한 방 날린 것이다. 하지만 한국팀 최강의 화력을 지니고 있는 그라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마르스의 아바타는 정말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막아 낸다기 보다는 공격 그 자체가 효용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흠····. 일단 공격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기는 한데····.” 배대호는 한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박추성과 정운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르스의 아바타와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자기까지 저기에 가세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이 상황을 해결할 묘안을 생각 하는게 먼저라고 배대호는 생각했다. 마르스는 모든 공격을 견뎌내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 본인의 공격력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신의 아바타. 라는 설정이기에 그런 것일까? 절대적인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공격력에는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근거리에서 상대하고 있는 정운이나 박추성이 공격을 너끈하게 막아내고 있는게 그 증거일 것이다. 보통, 이런 상태라면 시간을 들여서 상대의 힘을 빼는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무리지.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인가···?” 배대호는 어떻게든 그 안에 마르스의 아마타 안에 있는 카이사르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저렇게 사기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본인 자체는 그렇게 강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바토리도 그랬듯이 지금 이 상황은 카이사르라는 남자의 특성을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무수한 군사와 군신의 아바타로 인해서 절대 보호를 받고 있는 로마의 신군 카이사르. 그리고 그런 카이사르를 시간 내에 공략하지 못하면 그 끝은 막대한 패널티···. 이 모든게 정확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만 보내고 나면 결국 한우리 연맹의 패배인 것이다. ‘빈틈은 있을 거야····. 완전 공략이 불가능 하게 만들어 놓지 않은 이상 뭔가 빈틈은····.’ 배대호는 무분별한 공격을 그만두고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는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분석하는 두뇌는 최상급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절대적인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적. 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배대호는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그리고는···. 드디어 머릿속에서 반짝 했다. “보영아!!!!” “예? ···대호 오라버니 왜요?” “아까 네가 던진 주사위 어떻게 됐냐!!?” “예? 그건····. 저쪽에 있는데요?” “다시 한 번 던져봐.” 배대호의 말에 이보영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건 왜요?” “빨리 해 봐!! 그럼 어떻게 될지 알 테니까!!!” 배대호는 그렇게 서둘러서 외쳤다. 이제 이미 남은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은 모든 걸 다 해봐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이것이야 말로 유일한 홀로가 될지 몰랐다. “어쩔 수 없나?” 이보영은 주사위로 가서 다시 한 번 커다란 주사위를 굴렸다. 그러자·····. [3] [레이드 시간이 세 시간 연장 되었습니다. 주사위를 다시 던진 사람은 인질로 추가 되었습니다.] “앗!! 이런·····?” 이보영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자신은 새장 같은 철창에 갇힌 것을 알고 체념했다. “쳇··. 이런 사태까지 예상하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물어 보고···. 일단 동료들이 이기기나 바라자.” 그녀는 그렇게 한숨 섞인 푸념을 내쉬었다. “좋았어!!!!” 배대호의 가설이 가져온 결과에 박추성을 비롯한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인질을 한 명 잡힌 것은 로스였지만···. 기본적으로 이 레이드의 공략법이 은근히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모자라면 그 시간을 추가하면 되는 것. 메두사도 말 했었다. 저렇게 신의 아바타를 유지하는 것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용케 그런 생각을 했구나.” 박추성이 잠깐 배대호의 곁으로 와서 말했다. 그러자 배대호는 자기 머리를 톡톡 건드리면서···. “너하고는 이게 다르거든.” “잘 난 척은···.” 피식 웃는 박추성을 보면서 배대호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간단한 얘기였지···. 주사위를 던져졌다. 라는 말 그대로라면···. 그 주사위를 다시 던지면 되는 거야.’ 생각의 맹점을 찌르는 함정이기는 했다. 주사위를 한 번 던졌으면 끝이다. 라고 생각하게 해서 적을 안타깝게 발버둥만 치다가 끝나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 시간을 추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이상 카이사르의 전략도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한참 후····. “기마차지!!!!!” 콰아아앙!!!!! 정운의 공격 한 방에 마르스의 아바타가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뒤로 밀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노이즈처럼 치지직 거리면서 약간 모습이 흐려지고 있었다. “됐다!!” “조금만 더!!!”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공격의 피치를 올렸다. 드디어 저 마르스의 아마타가 흔들린 것이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마르스의 아바타 내부에 있는 카이사르였다. “····이거 안 되겠군.” 카이사르는 십 수 시간이 흐르도록 교대로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서로 돌아가며 휴식과 공격을 교대로 하고 있는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신의 아바타는 강력한 기술이지만 그 힘의 대부분은 방어적인 면에서 특출났다. 공격력도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적들은 그런 신의 아바타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교대로 공수를 전담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힘을 아끼는 적들···. 이미 주변의 로마군단들은 모두 전멸을 한 후였다. 이제는 정말 자기 혼자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몇 시간이나 이 신의 아바타를 유지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잘해 봐야 두 시간 정도가 한계로 보였다. 적들은 주력을 남기고 하나 둘 씩 인질을 바쳐가며 시간을 벌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정신력 보다는 저쪽이 벌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즉,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업성ㅆ다. “····후우우·····.” 카이사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마르스의 아바타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우리 연맹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졌다.” “····무슨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거냐?” 정운의 말에 카이사르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설마? 이미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은 것 뿐이다.” “············.” 정운은 순간 적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어차피 믿든 말든 택할 길은 하나 뿐이었다. “그냥 항복 선언으로는 끝장이 안 나지. 정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다면 거기서 움직이지 마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활을 원거리에서 당겼다. 그런 정운을 보고 카이사르는 피식 웃었다. “꽤나 겁쟁이로군. 좀 더 가까이 와서 검으로 목을 친다고 해도 반항하지 않을텐데?” “그 말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믿으라는 것이 무리지. 네가 뭘 하든 우리가 할 일은 안전하게 널 공략하는 것 뿐이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활의 시위를 놨다. “천뢰시!!!” 천뢰시 (天雷矢) LV. MAX (화살의 위력이 1,000% 올라간다. 추가로 뇌전의 대미지를 입는다.) 정운의 한방이 그대로 적에게 들어갔다. 퍼어엉!!! 카이사르는 그대로 심장에 바람구멍이 뚫리고는 절명했다. 옐로우 크리스탈이나 레드 크리스탈이 뜨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스스로 패배를 받아 들이고 크리티컬 대미지를 입은 것이다. 띠리링!! [83층 보스몹을 공략했습니다. 이제 84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정운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카이사르의 함정을 의심했다. 하지만 알림창에서 공략 성공을 인정하는 말이 뜨자 그제야 확신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마지막이 너무 허무했네····.” 정운의 말 한 마디가 이번 레이드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83층 레이드가 끝난 이후···. 뒷풀이의 연회에서 정운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했다. “마지막에 카이사르가 왜 그렇게 허무하게 포기 했을까요?” 정운의 말에 약간 술기운이 돌고 있는 한중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렴 어때? 이겼으면 그만이지. 안 그래?”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하단 말이죠.”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술잔을 슬쩍 기울이면서 말했다. “아마도 그런 타입의 인간이겠지.” “그런 타입? 어떤 타입을 말하는 겁니까?”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자기 술잔을 비우면서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이 막판에 몰렸을 때···. 사람은 발버둥을 종종 치고는 하잖냐?” “그렇죠.” “그걸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근성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쓸데없는 추태라고 보느냐? 이 부분에서 인간이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뉘지.” “그건···. 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정운이 언 듯 듣기로 일리가 있어 보였다. 카이사르는 군인으로서의 공적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 본질을 따지면 역시 정치가에 가깝다. 군인 특유의 악바리 정신 보다는 정치가들의 체면을 중시하고 대세에 순응하는 성질이 더 강할지도 몰랐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발버둥 친다. 하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없다면···. 그 발버둥은 무의미한 추태일 뿐이다. 정치가라는 존재는 그렇게 철저한 계산으로 행동하는 자들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건 거의 변하지 않은 정치판의 습성에 가까운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05화 <84층의 퀘스트> “카이사르도 그런 인간이었단 말이군···. 그런데 대호 형님은 그런 카이사르 심정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합니까?” 한중겸의 말에 배대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내가 놈하고 같은 타입의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대호 형님이요··? 형님 정치하다 왔습니까?” “그럴 리가 있냐? 그냥 인간적으로 생각 같은게 비슷한 타입이라는 말이다.” 배대호는 그렇게 핀잔을 했고 정운은 문득 자신은 어떤 타입의 인간일까 생각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의 발버둥····. 글쎄? 상황에 따라서는 할 것 같기도 한데····.’ 정운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위기라면 0%의 상황에서 포기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위기에 슬기나 세레나가 연류된다면···. 그때는 설령 확률이 제로라고 해도···.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얼마나 덧없고 미련해 보인다고 해도···. ‘그래도 끝까지 해 보겠지.’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는 변덕 덩어리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84층 진출 후····. 정운은 가능한 한 사냥에 주력하고 퀘스트의 습득에 열심이었다. 카이사르를 상대하면서 경험치를 상당히 획득했기 때문에 경험치 바가 간당간당했다. 이대로 잘만 하면 84층 레이드를 하기 이전에 200레벨이 된 상태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호 형님하고 추성이 형님이 말은 안 해 주는데··. 아무래도 200레벨이 되면 뭔가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정운은 200레벨을 기점으로 유저에게 뭔가가 주어진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박추성과 배대호. 월드 서버 전체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200레벨을 넘긴 이 둘은 사실 정운과는 그렇게 큰 레벨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실력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나고 있었다. 정운의 실력은 현제 월드 서버 NO.3이다. 하지만 NO.2와 NO.1과의 차이가 너무 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차이로 보였지만 정운의 입장에서는 박추성 배대호와의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고작해야 레벨 차이가 얼마 난다고 날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뭔가··. 뭔가 200레벨이 넘는 시점에서 어떤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운이 그 점에 관해서 박추성 배대호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지만···. 둘은 그저 웃기만 할 뿐 별 대답은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면 박추성이 되면 안다. 그 전에는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 줄 수 없다. 라는 말로 애만 태웠을 뿐이다. 결국 200레벨이 되었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고 싶어서라도 정운은 무조건 사냥에 주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쯧, 그나마 카이사르 잡았을 때 나온 아이템 중에서 쓸 만한 것도 모두 다른 팀으로 넘어가고··. 하긴 어느 정도는 챙겨 줘야겠지?” 정운은 이번에 카이사르를 잡고 나서 나온 아이템의 대부분을 거의 포기했다. 나온 아이템은 상당히 훌륭했다. 처음에 나온 아이템은 목걸이였다. 아니 목걸이라기 보다는 메달이 가까운 디자인이었는데 군단의 가호라는 아이템이었다. 군단의 가호. 방어력 : 300 무기 : 10 내구력 : 무한 [가지고 있으면 전신에 활력이 넘치고 항상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게 된다. 또한 크리티컬 대미지를 50%의 확률로 막아준다.] 악세사리 아이템의 방어력이 300이면 거저나 다름 없었다. 거기다 크리티컬 대미지, 즉 한방에 즉사할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큰 이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이템은 글라디우스 형태를 하고 있는 검이었다. 신군의 검. 공격력 : 7,000 무게 : 120 내구력 : 1,000 스킬 : 마르스의 일격 (군신 마르스의 힘이 담긴 공격을 날릴 수 있다. 상대의 방어력을 영으로 만들어서 모든 대미지를 완벽하게 들어가게 한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하루가 지나야 다시 사용 할 수 있다.) 이것도 상당한 아이템이었다. 공격력 7,000에 방어력 완벽 무시. 이 말은 아무리 강력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는 적이라고 해도 마르스의 일격에 당하면 일정 이상의 대미지는 무조건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레이드 보스몹을 상대로 끝내기 일격을 할 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사실 정운은 이 두 가지 아이템이 그렇게 탐나지는 않았다. 정운이 가지고 있는 월광멸마도만 해도 공격력 8,500에 강력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무기였다. 악세사리 아이템 정도는 뭐··. 있으면 나쁘지 않겠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절실할 정도는 아니었다. 검의 경우 프랑스 유저중에 한명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메달의 경우 이벌 레이드의 사전 정보 취득에 많은 힘을 준 나탈리아에게 배정 되었다. 포로 신분이라고 해도 열심히 하면 큰 이익이 돌아간다. 라는 것을 유저들에게 알려주려고 그렇게 배정한 것이었다. 다만··. 이 두 개의 아이템 말고 그 다음에 있는 아이템은 정운도 상당히 탐이 났다. 그 아이템은 정운으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트수 아이템이었다. 이른바 운명의 주사위라는 아이템이었다. 운명의 주사위.(특수 아이템)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숫자에 따라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변한다. 1. 공격력과 방어력이 100% 떨어져 버린다. 독 대미지가 분당 5%씩 들어간다. 민첩이 50% 떨어져 버린다. 10분 동안 스킬을 쓸 수 없게 된다. 2.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떨어져 버린다. 독 대미지가 분당 1%씩 들어간다. 민첩이 30% 떨어져 버린다. 3.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떨어져 버린다. 민첩이 10% 떨어진다. 4.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상승한다. 회복력이 20% 올라간다. 특수 스킬로 바람의 가호가 붙어서 민첩이 30% 상승한다. 5. 공격력과 방어력이 100% 상승한다. 지금까지 입은 모든 대미지가 100% 회복된다. 특수 스킬로 풍신의 가호가 붙어서 민첩이 50% 상승한다. 6. 공격력과 방어력이 300% 상승한다. 지금까지 입은 대미지가 100% 회복된다. 특수 스킬 풍신의 강림으로 인해서 민첩이 200% 상승한다. 30초 동안 절대 무적의 상태가 되어서 대미지를 받지 않는다.] 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아마도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말 한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말로 인해서 생기 아이템 같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도박성이 짙은 아이템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어지간한 버프 수십 가지를 합한 것 보다 더 강력할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었다. 사실 정운은 이게 탐이 났다. 도박은 하지 않는 타입의 정운이었지만 이판사판의 상황이 된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주사위의 눈이 1과2만 나오지 않으면 적어도 최악은 아니었다. 1과 2는 패널티가 너무 컸다. 하지만 3의 패널티 정도는 뭐···. 감당 할만 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정도 떨어지는 것 정도는 적의 디버프를 받을 때도 자주 있는 일이다. 민첩도 10% 감소 정도라면 큰 리스크는 아니다. 다만 1과 2의 패널티는 너무 커서 레이드 시에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아이템이 매력적인 것은 6의 눈이 나왔을 때의 일 때문이다. 4와 5도 훌륭한 버프다. 하지만 6의 눈이 나오면 대박중에 대박이다. 공격력과 방어력, 민첩력이 다 올라가고 거기다 30초 동안 무적 상태. 일단 이게 성공하면 레이드 시에 비장의 한수가 될 수도 있었다. 주사위라는게 무슨 눈이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 맹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운은 이 아이템이 몹시 탐이 났다. 하지만 정운만큼 이 아이템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싫어!! 내가 가질 거야. 나한테 딱이란 말이야.” “···보영이 누님. 정말 이러깁니까?” 정운은 오랜만에 다른 사람하고 아이템을 두고 언쟁을 벌였다. 다른 사람들은 리스크가 너무 커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이보영은 이 운명의 주사의를 가지고 싶다고 빠득빠득 우기는 것이었다. 그것도 팀의 리더인 정운에게 정면으로 땡깡을 부리면서 까지 말이다. 결국 주사위의 소유권을 두고 투표가 벌어졌다. 그리고 투표의 결과···. 정운을 포함해서 딱 세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전부가 이보영을 찍었다. “됐다!! 이제 내꺼야!!” 정운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팀 동료들을 바라봤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죠?” 정운의 말에 한중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도박을 할 때 몫 돈을 걸 수는 없잖아?” “········제길.” 정운은 단번에 한중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저 운명의 주사위는 쓰기에 따라서 나쁜 결과도 좋은 결과도 나올 수 있었다. 만약 정운이 저 주사위를 던져서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사실상 그 레이드에서 정운은 전력외로 쳐야 한다. 사실상 박추성 배대호 다음 가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정운의 전선 이탈은 너무나 뼈 아팠다. 거기에 비해서 이보영의 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근접전의 스페셜 리스트고 그녀의 힘은 한국 팀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에 카이사르의 공략에서 그녀가 인질로 잡히고도 훌륭하게 레이드를 성공 시킨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렇게까지 큰 비중은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레이드에서 이탈한다고 해도 그 정도의 로스는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박을 쳐서 5나 6이라도 나오면 그것도 그것대로 횡재였다. 결국 이런 말이다. 정운이 저 주사위를 가지고 있으면 중요한 도박이지만 이보영이 가지고 있으면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심정인 것이다. 즉, 동료들은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저 주사위를 정운이 가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아···. 다시 생각해도 아깝단 말이야···. 나중에 보영이 누님한테 빌려 달라고 한 번 해볼까?” 아직도 정운으로서는 그 주사위가 포기가 되지 않았다. 리스크가 크기는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얻는 것도 굉장히 큰 아이템 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물 건너 간 것을···. 이제 눈앞에 있는 200레벨을 먼저 찍는 것부터 생각하고 싶은 정운이었다. “84층쯤 되니 이제는 필드 몹도 강하구나···. 한 마리 한 마리가 일반 필드의 보스몹 같아··.” 정운이 지금 잡은 몹의 이름은 리자드맨 그레이트 히어로라는 놈이었다. 리자드맨 그레이트 히어로. LV. 190~200 [리자드맨들 중에서도 특출난 그레이트 히어로. 하나하나가 몹시 강력하고 홀로 생활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아군이 공격을 받으면 주저없이 도와주는 정도의 동족애는 남아있다.] 무슨 이란 몹 주제에 검기를 상당한 경지로 구사하는 놈이었다. 이 놈을 오늘 하루에만 100마리 넘게 잡은 정운은 이제 괴물이라면 괴물이었다. “오늘은 이정도로 하고 그만 둘까?” 정운은 슬슬 해도 지고 있어서 이제 그만두고 갈까 싶었다. 그런데 그때···. “응?” 정운의 옆에서 부스럭 거리를 소리가 들리더니 거기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 정도의 크기··. 또 리자드맨 그레이트 히어··. 너무 길다. 리그히로 줄이자. 어쨌든 놈인가?” 멋대로 몹의 이름을 잘못된 센스로 줄여 버리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이왕 나타난 것 마지막 한 마리를 잡고 물러나려는 정운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크윽···. 살려·· 주세요.” 거기에 나타난 것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뾰족한 귀를 하고 있었다. 즉 엘프인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년간 구르다 보면 이 시점에서 딱 촉이 와야 정상이다. “···이건··? 퀘스트 포인트인가?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정운은 마치 퇴근 하려고 하다가 발목 잡힌 직장인 같은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퀘스트를 놓칠 수는 없었다 “또 노가다에 보상 안 좋은 퀘스트이기만 해 봐라.” 정운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엘프에게 다가갔다. ============================ 작품 후기 ============================ 이번 퀘스트 줄거리는 약간 가벼운 느낌으로 진행해볼까 합니다. 주인공이 성장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아아.. 결국 3월 한달도 이렇게 다 끝나갑니다. 이제 한 편만 더 올리면.. 그럼 이제 이달도 제가 스스로 약속한 1일2연참 페이스로 종료가 가능합니다. 4월달도 가능하지는... 사실 4월은 정말 바쁩니다.ㅠ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06화 정운은 우선 엘프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유형의 퀘스트는 먼저 말을 걸어야 작동하는게 보통이었다. “무슨 일이야?” 정운의 물음에 그 엘프는 고통스런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제 동생을 구해 주세요.” “······진짜? 꼭 그런 설정이어야 하는 거냐?”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알았어. 구해줄 테니까 사정을 설명 해 봐.” 띠리링!! [퀘스트 엘프의 구조를 수락 하셨습니다.] “알거든.” “···무슨 말씀이죠?” “아무것도 아니야. 빨리 사정이나 얘기 해 봐.” “예···. 저는···.” 그리고 엘프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퀘스트의 스토리는 즉···. 어느 날 숲속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엘프 가족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엘프들에게 무서운 오크부족이 쳐들어왔다. 그 이유는····. 사실 이 부분을 정운이 대강 흘려 들었기 때문에 기억은 잘 안 난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서 엘프 가족의 부모는 살해당하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오크족의 족장에게 잡혀갔다고 한다. 결국 유일하게 도망친 언니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조력자를 구해서 여기까지 왔다. 라는 진부한 스토리였다. “뭐···. 대강 알겠어.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까 우리 전진기지에 가서 쉬고 내일 가자.” 정운의 말에 엘프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너무 늦어서 제 동생이 어떻게 되면 어쩌죠?” “걱정하지 마. 이 퀘스트창에 시간제한 따위는 없었어. 아무리 늦게 가도 내가 가기 전까지는 네 동생은 아무런 일도 안 벌어질 테니까.” “············?” 그라운드 제로의 NPC에게 퀘스트 운운하면서 설득해도 그게 통할 리가 없다. 그 말 자체를 이해 못 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뭐···. 한 마디로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이야. 내일 도와 줄 테니까 가자.”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불안해하는 엘프를 데리고 자신의 전진기지로 돌아갔다. 오늘은 이미 정신력도 제법 소모했고 지쳤다. 그러니 퀘스트 공략은 내일 하기로 하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가는 길에 엘프를 흑토의 뒤에 태우고 이동하면서 말했다. “너 이름이 뭐지?” “예? 제 이름은 왜요?” 엘프는 반사적으로 자기 몸을 팔로 가리면서 말했다. 아마도 당신 나한테 관심 있냐? 라는 듯한 방어행위 같았다.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계속 ‘너’ 라고 물러줄까?” “··일리나라고 합니다.” “그래. 알았어. 일단 오늘은 가서 푹 쉬어. 그리고 내일 오크 부족인지 뭔지에 안내 해줘.” “···정말 오늘 안 가도 괜찮나요?” “응. 괜찮아. 라기 보다 가기 귀찮아.” “·············.” 정운의 말에 일리나라는 엘프는 몹시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사람을 잘못 골랐나? 라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전진기지에 도착한 정운은 일단 일리나를 어디 적당한 방에 데려가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정운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야··. 정운아 사냥 갔다 오냐? 어? 뒤에는 누구야?” 정운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걸면서 다가오는 이 사람은 한국 팀의 실질적은 NO.5라고 할 수 있는 약간 어중간한 위치의 남자. 한중겸이었다. “중겸이 형님. 일단 이쪽으로 너무 가까이 오지 마요.” 정운은 한중겸을 잔뜩 경계했다. “응? 왜?” “일단 오지 말라면 오지 마요. 내 뒤에 있는 사람은 일리나. 보다시피 여자고 엘프죠.”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형님은 숨 쉬는 여자라면 다 작업 들어가잖아요. 내 퀘스트까지 뺏길 수는 없어요.” “야 인마!! 내가 언제 그랬냐!!?” “이미 형님 하반신이 어디서나 막 터지는 광대역 LTE 하반신이라고 연맹 내부에 다 소문났거든요!!” “그거 네가 냈지!!!?” “당연하죠!!!” 정운과 한중겸은 잠시 티격태격 했지만 일단 일리나를 안전한 빈방에 데려다 놓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나서야 한중겸을 만난 정운은 퀘스트에 관해서 설명했다. “어째···. 엄청 진부한 퀘스트네.” “그렇죠. 뭐, 큰 보상은 기대 안 합니다. 그냥 일반 사냥하는 것 보다 좀 더 잘 나오는 정도면 충분해요.” 정운은 그렇게 속편한 말을 하면서 눈앞에 술잔을 들었다. “흐음··. 도와줄까?” “왜요?” “나 얼마 전에 진행하던 퀘스트 어제 끝났거든. 한가한 거지 뭐.” “어여쁜 엘프 아가씨가 끼어서 도와주려는 것은 아니고요?” “그건 아니거든!!! ······85%정도의 확률로 그건 아니야.” “남은 15%는 도대체 뭡니까!!? 좀 작작해요.” 정운과 한중겸은 그렇게 티격태격 했고 결국 한중겸은 빠지는 걸로 했다. 사실 정운은 조력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을 부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단독으로 진행하는 편이 더 경험치를 많이 얻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바빴다. 슬기와 세레나까지 자신들의 퀘스트를 따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정운은 이 퀘스트를 혼자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운은 출발 준비를 하면서 일리나에게 물었다. “그래···.. 오크 부족까지는 멀어?” “예. 여기서 이동하면 다섯 시간 정도는····.” 다섯 시간이라는 말에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가다가 날 새겠다. 방향은 어디야?” “예. 방향은·····. 저쪽입니다.” 일리나가 가리키는 곳을 보면서 정운은 흑토를 소환했다. 그리고 일리나를 태우고는··. “흑토, 15분 안에 가자.” “히히힝!!!” “15분이라니···. 어어엇!!!?” 일리나는 흑토가 작정하고 달리자 정운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다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한편 정운이 가고 난 후····. “응? 중겸이 오라버니. 혹시 정운씨 어디에 갔는지 봤어요? 어제 집에 안 들어왔던데?” 슬기가 전진기지에 와서 한중겸에게 물었다. 그러자 한중겸이 말하기를···. “어제 그 녀석 아리따운 여자 엘프 한 명을 데리고 오더니···. 집에 안 갔어?” 한중겸의 얼굴에는 정운이 너도 한 번 당해봐라. 라는 악감정이 가득했다.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브로도는 저 멀리 날려버린 것 같았다. “·····안 왔네요? 지금 어디 있어요?” “몰라. 아까 그 엘프 흑토 뒤에 태우고 저쪽으로 가던데?” “그래요········.” “뭐야? 혹시 질투?” “그럴리가요. 전 질투 같은 것 안 해요. 세레나의 예가 있기는 하지만 정운씨를 믿어요.” 슬기의 말에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으음··. 민지가 네 반만큼만 나를 믿어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 슬기는 속으로 내가 민지 언니 입장이면 지금쯤 사단이 나도 진작 났을걸요. 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굳이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럼 전 오늘은 오랜만에 사냥이나 좀 할게요. 연구만 하다 보니 좀이 쑤셔서···.” 라고 말하면서 필드로 나갔다. 정확하게 좀 전에 한중겸이 가리킨 방향으로 말이다. 왜 그쪽 방향일까?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 “여기!! 여기에요. 이제 세워요!!!!” 정운의 등 뒤에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던 일리나는 정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마치 매미처럼 정운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과년한 처녀가 남자의 몸에 이렇게 밀착 해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귀를 스치는 바람이 무서워서 등에서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었다. 흑토가 작정하고 속력을 내자 어지간한 제트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라고? 밑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더 가야 하는 것 아니야?” 정운의 말에 일리나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요. 절대 여기에요. 무조건 여기!!! 제발 내려가 줘요.” 무섭기는 어지간히 무서운 모양이다. 결국 정운은 밑으로 내려갔다. 밑은 완전한 숲 지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오크족의 부락의 입구에요. 걸어가죠.” “흑토 안 타고?” 일리나는 흑토를 바라보면서 뭔가 무서운 것을 보는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절대요. 무조건 걸어 갈 거예요.” 흑토를 보는 일리나의 얼굴은 생전 처음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완전히 질려버린 간 작은 여자들과 비슷해 보였다. 정운은 뒷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러지 뭐.” 굳이 억지로 흑토에 태울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정운은 일리나와 함께 착실하게 걸었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바위의 앞이었다. 절벽의 앞쪽을 틀어막고 있는 바위를 보면 일리나가 말했다. “여기 이 바위가··.” 콰아앙!!! “오크 부족으로 가는 입구라고? 안 봐도 뻔 하지 뭐···.” 정운은 일리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위를 부셔 버렸다. 우수수 떨어지는 돌가루와 함께 집채만했던 커다란 바위는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 멍 때리고 있는 일리나를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뭐 해? 안 따라 와?” “아니요···. 지금 가요.” 그녀는 그렇게 허겁지겁 정운의 뒤를 따라왔다. 정운은 바위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주변을 천천히 탐색했다. ‘보통 이럴 때는 뭔가가 나와야 하는데····.’ 이게 오크 부족으로 가는 입구라면 그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나 동굴에 서식하는 몹이 있는게 고정적인 패턴이었다. 정운의 예상대로···. “푸우우·····.” “헤에··. 이건 또 뭐야?” 정운의 눈앞을 가로막고 나타난 것은 멧돼지였다. 그냥 오크가 아니라 멧돼지였는데 그게 그냥 멧돼지는 아니었다. 모양만 멧돼지일 뿐이지 사실상 사이즈는 거의 코끼리와 맞먹는 놈이었다. “조심하세요. 그 놈은 오크 부족에서 사육하는 몬스터에요.” “그래···. 나도 알아. 아마 그렇겠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ME를 꺼내서 놈의 정보를 살폈다. 타이탄 멧돼지 LV. 190~195 [비정상적일 정도로 거대한 멧돼지. 거대한 크기와 엄청난 흉폭함을 드러낸다. 잡았을 때 나오는 육질은 아주 맛이 좋다.] 놈의 정보를 확인한 정운은 입맛을 다지면서 중얼 거렸다. “호오···, 오랜만에 먹을 수 있는 놈인가?” 정운은 ME의 정보를 보고 반색을 했다. 예전의 대게도 그랬지만 가끔씩 그라운드 제로의 몹들 중에는 먹을 수 있는 식용 아이템을 주는 놈들이 있었다. 식용 아이템을 먹는다고 해서 뭔가 스테이터스에 변화가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에게 식용 아이템은 상당한 인기였다. 그만큼 엄청나게 맛있기 때문이다. 특히 식용 아이템은 그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더 맛있다. 레벨 190이상의 식용 아이템은 정운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다. “좀 잡아가야 겠군.” “쿠워오오오오!!” 정운이 자신을 고깃덩어리로만 본다는 것을 알아챈 것일까?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나 지금 엄청 화 났다. 라고 주장하듯이 울부 짖었다. 그렇게 타이탄 멧돼지는 분노의 괴성을 지르면서 정운을 향해서 돌진했다. 우두두두두····. 동굴의 종유석을 다 부수면서 돌진하는 놈을 보면서 정운은 씨익 웃었다. “미련한 놈일세····.” 그리고 놈이 거의 다 왔을 때···. “쉐도우 스피어!!!” 촤촤촥!!! “쿠웨에엑!!!” 정운의 발 밑의 그림자에서 사선으로 그림자의 창날이 솟구치면서 멧돼지를 그대로 찔렀다. 돌진하던 기세를 그대가 그대로 자신의 대미지로 이어지자 타이탄 멧돼지는 몹시 고통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맷집은 좋게 생겼다. 그러니···. 안 봐주고 제대로 쳐주마!!!” 콰콰쾅!!!! 정운이 뇌천신공을 일으키고 그대로 쌍창을 번갈아 가면서 찔러갔다. 한 발 한 발이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타이탄 멧돼지를 박살내 갔다. “쿠웨에에에엑!!!” “하하하하··· 고기 내 놔!! 인마!!!” 멀리 떨어져서 구경하던 일리나는 어쩐지 자신이 데리고 온 정운이 훨씬 더 나쁜 악당 같다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고기 도둑 박정운... 3월 분량 완료입니다. 하아.. 다행이다. 그런데 4월의 경우 정말로 며칠 정도 연재를 쉴 수도 있습니다. 소설 이외의 일로 본가에 가고 이리저리 움직여서 많이 바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07화 <정운 도달하다> 잠시 후···. 정운은 타이탄 멧돼지를 잡고 살짝 실망해 하고 있었다. “쳇, 그 커다란 덩치를 잡았는데 고작 이걸 주냐?” 정운은 자신의 손안에 있는 고기를 보면서 말했다. 거기에는 총 세 덩어리의 고기가 들여 있었다. 타이탄 멧돼지의 삼겹살. [소주와 잘 어울린다. 쫄깃한 육질에 향긋한 고기냄세가 일품이다. 엄청나게 맛있다.] 타이탄 멧돼지의 목살. [두툼하게 썰어서 직화로 구운 다음에 마늘을 곁들여 먹으면 예술이다. 부드러운 육질이 아무리 두껍게 썰어도 쫀득한 식감을 유지한다. 환상적으로 맛있다.] 타이탄 멧돼지의 갈빗살. [예술적인 맛이다. 양념을 너무 진하게 하지 말고 뼈채로 통째로 오븐이나 화덕에 굽자. 한조각씩 들고 맥주를 곁들여서 잡아 뜯으면 굉장히 행복해 진다.] 뭐··. 한 마디로 다 먹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건 좋다. 아이템 설명이 어째 요리 레시피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양이었다. “그 커다란 놈을 잡았는데 고작 요만큼만 나오다니····. 이건 사기야. 과자 성분의 50%가 질소 라는걸 15살 때 깨달은 이후로 이런 상실감은 처음이야.” 실제로 고기의 양은 적었다. 다 합해서 10kg이 조금 될까 말까한 양이었다. 좀 많이 나오면 연맹원들까지 불러서 거하게 회식이나 하려고 했는데 그럴 양은 나오지 않았다. “슬기하고 세레나하고 사이좋게 먹어야지 뭐··. 봐 가면서 삽겹살은 좀 남으면 중겸이 형님하고 같이 소주나 까먹고···.” 그렇게 나름의미있는 득템을 하고 난 후에 정운은 다시 일리나에게 말했다. “자··. 이제 가자.” “예. 알겠어요.” 일리나는 이제 정운의 힘에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된 것처럼 뒤에서 얌전히 따라왔다. 이 남자라면 틀림없이 자신의 동생을 찾아주고 부모님의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둘은 한참동안 동굴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인가? 흠···. 잘 해 놓고 사는데?” 정운은 동굴을 빠져 나와서 어떤 분지 지형에 도착했다. 하늘은 뻥 뚫려 있었지만 사방이 절벽으로 삥 둘러싸인 이 분지가 오크들의 부족인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부족의 천막들 사이로 작은 시냇물도 흐르고 있어서 마을이 있기에는 최적의 위치로 보였다.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겠냐?” 정운이 일리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일리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정령을 불러서 동생을 찾고는 있지만 아직···.” “그래? 알았어. 그럼 내 방식으로 해야 겠네.” “당신 방식이··· 뭔데요?” 살짝 불길한 느낌이 드는 일리나였다. 이제까지 이 파격적인 인간이 하는 행동을 봐서는 결국 만사를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예상은 정답이었다. “싹 뒤집어엎다 보면 나오겠지 뭐···.” “예? 그게 무슨···.” 일리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정운은 그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냈다. 그리고는····. “천뢰지망.” 정운을 활을 높이 쐈다. 그리고 높게 솟구친 화살은 무수한 뇌전의 벼락이 되어서 떨어졌다. 콰콰콰콰콰쾅!!! 천뢰지망 (天雷蜘網) LV.MAX (사방 1,000미터에 걸쳐서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쳐진다.) 바로 얼마 전에 스킬 레벨이 맥스에 도달한 천뢰지망이었다. 평화롭던 오크 부락 전체에 쏟아지는 뇌전의 줄기에 여기저기서 아비규환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이러면 어떻게 해요!!?” “어쩌긴 뭐 어째? 싸워야지.” 일리나의 말에 정운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싸··. 싸운다니 저 오크부족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는 해요?” “몰라. 어쨌든 어차피 결국은 싸울 텐데 뭐.” 정운의 말에 일리나는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저기 내 동생이라도 맞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정운이었다. “우오오오오!!!!” “적이다!!!!” 그때 부락에서는 수많은 오크들이 정운의 공격에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럼 난 싸우러 갈게. 넌 여기 있어.”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분지의 밑으로 뛰어 내렸다. 마침 할 말도 궁색한 참에 잘 된 것이다. “크우우우···. 네가 적이냐!!?” 퀘스트에 관련된 몹이 라서일까? 상대 오크는 유창하게 말을 했다. “그렇다.” 정운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놈이 정운에게 말했다. “건방진 놈··. 살아갈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는 놈의 몸이 갑자기 거대화를 시작했다. 정운은 살짝 놀랐다. 그냥 평범한 오크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여기는 84층이고 저 놈들은 퀘스트 몹이지.” 정운은 ME를 꺼내서 놈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타이탄 오크. LV. 195~199 [평소에는 평범한 오크들이지만 전투시에는 최대 20미터까지 거대해지는 거인족 오크. 평범한 오크들과는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강하며 보통 인간 수준의 지혜는 가지고 있다.] “····그래. 너희들 잘 났다.” 정운은 타이탄 오크들의 정보를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입구에서 잡은 멧돼지의 이름도 타이탄 멧돼지였다. 아마도 이 놈들과 연관된 몹인것 같다. 이윽고 다 자란 오크들은 정운을 짓뭉게 버리겠다는 듯이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우오어어어!!!” “적을 죽여라!!!” “타이탄 오크 만세!!!!!” 족히 50은 되어 보이는 거대 오크들의 공격을 보면서도 정운은 씨익 웃었다. “여럿이서 공격한다면··. 나도 봐주지 않겠다. 오랜만에 진짜 몸 좀 풀어볼까? 뇌천신공, 쉐도우 아미, 아스트랄 소드!!!” 콰콰콰콰콰콰콰·····. 정운을 위시로 해서 아홉 기의 그림자의 장수들과 무려 400개의 아스트랄 소드가 생성 되었다. 원래 레벨 3이었던 아스트랄 소드 역시 얼마 전에 바로 레벨이 4로 올랐다. 덕분에 일인당 40개의 거검을 소환 하는게 가능했고, 거기에 더해서 그림자의 무장들까지 합하자 거검이 400개가 생성된 것이다. 그리고 정운이 그림자의 장수들과 함께 외쳤다. “돌격하라!!!” -우오오오오!!!! -쓸어 버려라!!!!! 정운과 50의 타이탄 오크족··. 분지 안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들썩였다. 콰콰콰콰콰쾅!!!! “아!! 저기 있구나?” 정운과 타이탄 오크족의 전투지역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장소. 거기에는 슬기가 자신의 애마인 백설을 타고 유유히 이동 중이었다. 대략 정운이 있는 방향으로 오기는 했는데 역시 자세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긴 점쟁이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찾겠는가?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뉘전의 다발들··. 하늘의 기상이 저곳만 변화할 정도로 커다란 규모의 전투를 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정운이 저기에 있다는 것을 안 슬기는 그대로 백설에게 말했다. “설아··. 우리도 저기에 가자.” “히히힝···.” 슬기의 명령에 백설의 주변에 하얀색 바람이 일렁거리더니 그대로 슬기를 태우고 위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우웅·····. 마치 UFO가 이런 식으로 비행할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비행을 보여주는 백설이었다. 흑토의 비상과는 다른 타입이지만 백설도 하늘을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원래 정운이 사서 슬기에게 줄 때는 고작 1급 명마 정도였지만 거듭된 전투를 겪으면서 이제 백설도 영수의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현재 백설의 스테이터스는···. 백설 [영수] 레벨 : 101 체력 : 380 힘 : 150 민첨 : 300 지능 : 99 영력 : 80 [영수로서 주인을 보좌한다. 온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주인의 심기를 잘 이해하며 대기를 조종하는 것이 가능한 천마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흑토보다 전체적으로 격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전력이 되는 탈것이었다. 그런 백설을 타고 슬기는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이동했다. ‘여자 엘프라····. 아니겠니? 중겸이 오라버니도 아니고···. 아니 하지만 세레나의 경우가···.’ 슬기는 은근이 초조함을 느끼면서 이동했다. 슬기가 바람필까봐 걱정하고 있는 정운은 그 순간 타이탄 오크들과 열심히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아아아앗!!!!” 콰아앙!!! 정운이 아스트랄 소드를 이용해서 눈앞에 있는 타이탄 오크를 통째로 절단해 버렸다. 적들은 84층의 퀘스트 몹을 하고 있을 만큼 강력하기는 했다. 한우리 연맹에서도 이걸 단독으로 공략 가능한 것은 박추성, 배대호, 그리고 정운까지일 것이다. 치고 빠지는 스캘핑으로 야금야금 갉아가는 방식이라면 장 그레고리나 이민지, 한중겸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뭐, 사실 그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중겸과 이민지의 경우 전투 스타일이 정운만큼 화려하고 눈에 띄기 때문에 치고 빠지기는 힘들다. 그리고 장 그레고리 공작은 아마도····. [“훗, 그건 좀 아름답지 못한 방식이군.”] 이라고 말하면서 안 할 것이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어쨌든···.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전투의 결과는 드러났다. 정운의 압승이었다. -주군, 대승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주군. -크하하하···. 오랜만에 몸 한 번 제대로 풀었다. 그림자의 무장들은 오랜만에 화끈하고 통쾌한 전투에 흥이 난 것처럼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수고들 했다. 들어가 있어.”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그렇게 그림자의 무장들을 모두 들여다 보내고 정운은 일리나에게 말했다. “이제 나와!! 동생 찾아야지.” “옛··? 예····.” 일리나는 정운의 부름에 쭈뼛 거리면서 다가왔다. 그녀가 정운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슨 대마왕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어쨌든 무서운 오크들은 모두 죽었다. 이제 동생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언니!!!” 마치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건물의 잔해에서 일리나의 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나타났다. 고작 15~17세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소녀였지만 설정이 엘프이니 아마도 나이는 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정운과 타이탄 오크들이 그렇게 크게 전투를 벌였는데 저 소녀는 눈꼽 만큼도 다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 분지에 멀쩡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 전투였는데 말이다.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아마도 퀘스트의 특성상 때문일 것이라고 적당히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이제 저 자매가 감동의 상봉을 하면 퀘스트는 종료하고 자신은 보상을 받는다. 그게 중요한 정운이었다. 그런데 그때···. “우어어어어어!!” 다 쓰러진 줄 알았던 타이탄 오크 한 마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리나 자매를 순식간에 덮치려고 했다. “이런!!!” 정운은 순간 머리에서 반응하기 이 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놈의 두꺼운 손이 일리나 자매를 짓누르기 직전···. 정운의 몸은 빠르게 돌진해서 이미 그 타이탄 오크의 팔을 날려 버렸다. “이 자식이··. 깜짝 놀랐잖아!!?” 콰아아앙!!!! 정운은 다시 한 번 아스트랄 소드를 날려서 놈의 전신을 책형에 처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운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이건····.” 띠리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레벨이 되었습니다. 창조의 방으로 이동합니다.] “잠깐? 창조의 방이라니? 거기··· 어이!!!?” 정운은 자신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바로 어딘가로 이동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 부서진 오크 부락에는 일리나 자매만 남았다. “어어···? 음··. 이건?” “어떻게 해야 하지?” 망설이는 두 자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이 허공에서 연기처럼 휘잉, 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래서야 당황하지 않는게 더 이상했다. ============================ 작품 후기 ============================ 4월 스타트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열심히 집필 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308화 <성취, 그리고 시련> 그리고 그런 두 자매의 앞에 한명의 여인이 하얀 백마를 타고 나타났다. “이상하다···. 정운씨는 어디에 갔지?” 바로 슬기였다. 슬기는 정운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하고 왔는데 보이지를 안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눈앞에 있는 두 엘프 자매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온몸에 황금빛 뇌전을 두르고 싸우던 사람 있었죠?” 슬기의 말에 일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어디 갔죠?” 슬기의 말에 일리나는 어색한 목소리로 떨면서 대답했다. 꼭 뭐 잘못한 애가 선생님한테 이실직고 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보답도 아직 못 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요.” 일리나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생각했다. ‘설마 나 오는걸 알고 튄 것은 아니겠지?’ 슬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일리나는 안절 부절을 못했다. “어떻게 하지···? 아직 보답도 못 했는데?” “언니····.” 자매는 몹시 불안해했다. 사실 그녀들이 이렇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리얼하게 평범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는 있지만 그녀들의 존재 기반은 어디까지나 퀘스트에 두고 있었다. 그 말은 그녀들이 말하는 보답. 즉 퀘스트의 보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들의 존재 기반이 비틀어져 버린다. 갖 태어난 사슴이 필사적으로 일어나서 어미의 젖을 찾듯이···. 물고기가 자연스럽게 헤엄을 치듯이··. 새가 자연스럽게 하늘을 날듯이··. 그녀들도 이 퀘스트를 클리어 한 정운에게 보상을 주지 않으면 존재의 기반이 완료되지 않는 것이다. 슬기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불안해하는 그녀들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보상은 저한테 주세요. 제가 정운씨에게 전해줄게요.” 그녀의 말에 일리나는 곤란한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보답은 꼭 본인에게 해야 해요.” “·····왜죠? 제가 받아서 줄게요?” “아니 하지만····.” 망설이는 일리나를 보며 슬기는 의아해 했다. 보통 이럴 때 퀘스트의 대상은 딱히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하위 층에서는 누가 거의 다 클리어 해 놓은 퀘스트를 중간에 가로채서 보상만 쏙 독식하는 퀘스트 스틸이라는 것도 있었다. 참고로··, 퀘스트 스틸은 보통 둘 중에 하나가 죽을 때 까지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퀘스트라는 것은 귀하니까 말이다. 다만 이렇게 대상 자체가 보상을 망설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슬기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하나 물어보죠.” “예? 예·····.” “보상으로 뭘 주려고 했죠?” 슬기의 말에 일리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부모님을 잃고···. 저하고 제 동생에게 남은 것은 우리 둘 뿐이에요.” “···········.” ‘설마·····.’ 슬기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일리나가 말했다. “은인을 위해서 드릴 거라고는···. 저희 몸뚱이라 밖에는···. 혹시 당신이 그런 쪽의 취향이 있다면···.” “필요 없습니다. 반품합니다.” 슬기는 부리나케 거절했다. “정말요? 조금도 없나요?” “없어요!! 가까이 오지 마욧!!!!” 슬기는 서둘러 백설에 타고 도망치듯이 날아갔다. “정운씨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결국 두 엘프 자매만 낙동강 오리알처럼 버려져 버렸다. “여기는 어디지? 창조의 방··. 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정운이 두 눈을 뜬 곳은 땅도 하늘도 모두 하얀 공간이었다. 딱히 응시할 만한 것이 없는 모든 것이 백색인 공간. 가만히 어딘가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 지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공간의 한 구석에서 균열이 생기면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넌?” 그 누군가는 정운도 잘 알고 있는 상대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운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박정운이라는 남자가 나온 것이다. “···넌 누구야?” “진부한 설정이지만···. 난 너다.” “그건·········· 진짜 진부하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말 하면서 나도 쪽 팔린다고 생각한다.” 두 정운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창조의 방에 온 것을 환영한다.” “창조의 방이라··. 레벨이 200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에 온 것인데··. 뭘 창조하는 건데?” 정운의 말에 또 다른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창조해야 할 것은 너다. 박정운.” “난 이미 있는데?” “좀··. 알잖아? 새로운 너를 창조 하라는 말이야. 그냥···. 좀? 응?” “·············.” 정운은 또 다른 정운의 추궁을 들으면서 성격이 자기 답지 않게 성급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정운이 말했다. “크흠···.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야겠지. 나는 한마디로 말해서···. 네가 버린 나다.” “버린 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별로 놀랄 것도 없어. 이 세상에는 무수한 인간이 무수히도 많이 자신을 버리지. 선택을 한다. 라는 것은 선택 이외의 것을 모두 버린다. 라는 말이거든.” “················.” “그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줘서 고맙다. 자식아.” 또 다른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에 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살면서 무수한 갈등을 한다. 그리고 그 갈등은 대부분 선택의 강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현실을 예로 들면···. 학창시절의 진로. 사회생활에서의 첫 직장. 사랑하는 여자에게 하는 프로포즈 등등·····. 지금의 나라는 것은 항상 여러 가지 선택지를 거쳐서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버러지는 나’가 있다. 만약 그때 다른 학교로 갔다면? 만약 그때 다른 직장으로 갔다면? 만약 그때 다른 여자에게 프로포즈 했다면? 등등의 여러 가지 내가 버려져 있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게임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선택지를 하고 여러 가지 경우를 거치면서 항상 단 하나의 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무수한 내가 버려져 있었다. 지금 정운이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그 부수하게 버려진 박정운의 모습이 뭉쳐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흠···. 그거 언 듯 듣기로는 네가 더 굉장하다. 그러니 알아서 모셔라. 라는 말로 들리는 걸?” 정운의 말에 또 다른 박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뭐···, 모셔라. 같은 말은 안 해. 하지만 너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모여 있는게 나기는 하지.” “과연···.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내가 할 일은···.” “나한테 이기는 거야.” “그래··. 역시 그렇군.” “···············.” 둘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는···. “엄청 진부한 걸?” “그래. 엄청 진부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또 다른 정운은 정운을 향해서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아···. 그리고 말하지 않았는데···. 진부한게 하나 더 있어.” “·····그게 뭔데?” “이 창조의 방의 시간으로 앞으로 240시간. 즉 열흘 동안 날 이기지 못하면···, 너 대신에 앞으로 내가 박정운으로서 산다.” “··············.” 정운은 그런 또 다른 정운의 말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그냥 200레벨이 되면서 생기는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리스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설마, 추성이 형님과 대호 형님도 이런 절차를 거쳤다고?” “하하하··. 설마. 그 둘은 그냥 여기서 스킬 업그레이드만 하고 갔지. 이건 오로지 너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다.” “그따위 특혜는 필요 없어. 아니 그보다 왜 나만···.” “그건 나중에 알아도 돼. 미리 말해두겠는데···. 난 너보다 훨씬 더 쎄·····다!!!!” 콰아아앙!!!!! 또 다른 정운이 ‘다’라는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검은색 흑염을 전신에 두르고 돌격했다.k 그리고 두 정운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정운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예.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집에도 안 들어오고··. 그리고 전진기지나 필드에서의 소식도 안 들려오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정운이 귀환하지 않자 슬기는 크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필드에서 당하기라도 한 것은 아닌지? 뭔가 난이도 높은 트랩성 퀘스트에 참가해 버린 것은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라면 정운과 심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세레나가 정운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슬기는 여기저기 상담을 했다. 그리고 배대호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정운이 녀석 얼마 전에 레벨 199에서 간당간당하다고 했지?” “예···. 그랬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운이의 행동을 파악한 것은 퀘스트 중이었고?” “예···. 그랬는데요?” “그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배대호는 정운의 레벨이 200레벨이 되어서 창조의 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창조의 방은 박추성과 배대호도 들어갔다 나온 방이었다. 그 안에서 이제까지 자신의 전투에서 놓치고 있던 것을 천천히 살펴보고··. 그리고 여러 가지 스킬들을 합성해보고 아이템을 강화도 시켜보고··. 방을 나올 때쯤에는 훨씬 더 강해져서 나올 수 있는 빅찬스인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은 있다. 우선 창조의 방에 관해서 다른 유저들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말을 못하는 것이다.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고 말이 나오지를 않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배대호와 박추성이 기억하기로 창조의 방은 몹시 안전한 지역이었으니 말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리스크 없이 순순하게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지.’ 배대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기를 안심 시켰다. “뭔지 말을 못해줘··.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앞으로 열흘 안이면 무조건 돌아올거다.” “정말요.” “그래. 오히려 좋은 일이니까 그때가 되면 축하해줄 생각이나 하고 있는게 좋아.” 배대호는 그렇게 슬기를 안심 시켰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정운의 경우··. 결코 창조의 방에서 안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커억····.” 자신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는 검은색 불길을 보면서 정운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바라보는 상대는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좀 재대로 움직여 봐라. 너무 심심하잖아?” “크윽···. 쿨럭···.” 정운은 또 다른 정운의 공격에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크리티컬 대미지로 인한 즉사. 지난 사흘 동안 벌써 몇 번째인지 샐 수도 없었다. 여기가 창조의 방이 아니고 실제 필드였으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너···. 정말 나하고 같은 나냐?” 정운은 회복되는 몸을 느끼면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또 다른 정운은 그런 정운을 내려다보면서···. “아니. 전에 말했잖아? 난 너하고 전혀 다른 ‘나’라고···. 네가 버린 수많은 ‘나’중에서 알짜배기들만 뭉쳐서 탄생한 최고 품질의 물건이 바로 ‘나’지. 네가 아니고 말이야.” 또 다른 정운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제 일주일도 되지 않아.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난 봐줄 생각이 눈꼽 만큼도 없다. 룰 자체도 나한테 충분히 불리한데 봐주기는 뭐 봐주겠어?” “···제길.” 또 다른 정운은 정운을 보면서 피식 웃으면 말했다. “무조건 이겨라. 네 인생을 사수하고 싶다면 말이야.” 또 다른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한쪽 구석에 가서는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4월 한달도 잘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내일 하루 휴재합니다. 309화 결투 직후···. 정운은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서 이번 대결을 복기했다. ‘상대는 나보다 확실히 강해···. 하지만 스펙이나 다른 스테이터스가 앞서는 것은 아니야. 다른 것은 스킬의 종류와 그걸 활용하는 센스···.’ 정운은 차분하게 이번 결투에 관해서 복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정운이 파악한 이 싸움의 룰은 대강 이렇다. 먼저 정운이 먼저 적의를 보이거나 하지 않는 이상 또 다른 정운이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다. 다만, 맨 처음의 일격은 자기가 먼저 공격했는데 그 후에는 한 번도 그런적이 없었다. 그 말은 적이 공격을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정운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두 번째··. 정운은 지금 이 방이 왜 창조의 방인지 알게 되었다. 이 방에서 정운은 자신의 스킬을 마음대로 창조 할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없는 스킬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금 정운이 가지고 있는 재료. 즉,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정운을 상대로 싸워서 이겨야 한다. “···········좋아. 다시 한 번 하자.” 정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정운을 보고 또 다른 정운도 씨익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불리하단 말이야··. 넌 몇 번이고 다시 재도전 할 수 있는데 난 한 번만 지면 끝장이라니 말이야.” “··············.” 정운은 농담 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서서히 자세를 잡고는 준비를 했다. “아스트랄 소드!!”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정운의 주변으로 아스트랄 소드가 생겼다. 단··. 이전처럼 수십 개가 생기는게 아니고 단 두 자루만이었다. “아스트랄 소드!!” 정운의 앞에 있는 또 다른 정운도 두 자루의 아스트랄 소드를 소환했다. “훗···. 이 따라쟁이 자식··.” “특허라도 냈냐!!!?” 콰콰쾅!!! 다시 한 번 두 명의 정운이 돌격했다. 원래 아스트랄 소드는 강력하지만 뇌천신공이나 쉐도우 아미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아스트랄소드 LV.4 (40개의 검을 조정해서 적을 공격한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2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된다.) 이렇게···. 자유롭게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리스크가 컸다. 그러다 보니 정운도 함부로 쓰지 않고 어디까지나 적을 확실하게 끝장낼 때만 썼던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정운은 그런 아스트랄 소드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비결은 출력의 조절이었다. 한 번에 몇 십 개의 거검을 꺼내서 사용하지 말고 필요한 만큼만···. 두 개에서 다섯 개 정도로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조금씩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식은 짧게짧게 사용하는 것이다. 보통 아스트랄 소드를 소환하면 30분에서 길면 40분 정도의 전투가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른 정운은 필요한 순간에만 모든 아스트랄 소드를 소환했다가 금세 스킬을 캔슬었다. 아마도 그런 방향으로 스킬의 발전성을 지향하면서 발전해 온 것 같았다. 정운처럼 끝내기 기술이 아니라 엄연히 주력 기술로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결투가 시작하고 나서 20번이 넘는 패배는 모두 아스트랄 소드의 컨트롤 능력에서의 차이에서 진 것이었다. 그래서 정운도 순순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원래의 그라운드 제로의 필드라면 설령 저런 방법을 안다고 해도 다시 스킬의 방향성을 잡으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이 창조의 방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눈앞에는 또 다른 나라고 하는 견본과 허들이 있었고··. 그리고 이 방의 안에서는 스킬의 변형이 자유롭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정운은 조금씩 조금씩 강해져 가고 있었다. 창조의 방에서의 결투가 닷새가 지나갈 무렵··. 정운은 드디어 조금씩이지만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원래 또 다른 정운과의 결투에서 50합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가던 정운이 처음으로 100합을 넘게 버텼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차이는 컸다. 다만 빠르게 그 차이가 줄어들 뿐···. 6일 째 날···. 총 12번의 결투가 있었고 최고 신기록은 150여합이었다. 상대와의 차이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정운 역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7일 째 날···. 총 9번의 결투가 있었다. 그 모든 결투의 평균 공방이 200합을 넘었다. 그리고 이날 처음으로 정운의 공격이 또 다른 정운에게 적중되서 대미지를 주기도 했다. 다만 그것 뿐. 결국 아직도 정운은 눈앞에 보이는 또 다른 정운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8일 째 날···. 정운은 그날 다섯 번의 결투를 했다. 결투를 다섯 번 밖에 하지 못했던 것은 한 번 한 번의 결투가 점점 길어져 갔기 때문이다. 평균 공방은 이제 500합이 넘어가기 시작했고 정운의 공격도 또 다른 정운에게 제법 대미지를 주었다. 하지만···. 그 날도 승리를 얻어내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 둘 사이에는 작지만 확고한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9일째 날···. “자, 시작할까?” “····너도 어지간히 괴물이다.” “내가 너고 너도 나 잖아?” 정운의 말에 또 다른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럼 이제 나도 좀 살아보게 네 인생을 양보해 주지 그래?” “그건 거절하고 싶은데? 그냥 내 안에서 살아.”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쌍창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정운의 주변에는 황금빛 뇌전을 머금은 거대한 거검이 다섯 자루 붕붕 떠 있었다. “이미 내 아래가 아니군··. 좋다. 와라!!” 화르륵!!! 또 다른 정운은 흑염을 전신에 불러일으키면서 정운을 도발했다. 그의 주변에서도 다섯 자루의 아스트랄 소드가 허공에 떠 있었고··. 그 거검 들에도 흑염이 맺혀 있는 것은 똑같았다. 둘의 전투 스타일은 이제 거의 똑같았다. 다만···. 똑같은 전투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는 이상 후발 주자인 정운이 오리지널인 또 하나의 정운을 이기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러니···. 정운이 이기기 위해서는 오로지 상대방을 뛰어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콰!!!!! 이미 두 사람의 싸움은 검은색 흑염과 황금빛 뇌전의 폭풍이었다. 실제로 천재지변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공방들이 오고 갔다. ‘미리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역시 제법이란 말이야···. 나한테 그런 지령이 떨어질 만 해···.’ 또 하나의 정운은 정운을 상대하면서 한편으로는 크게 감탄했다. 오랜 실전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정운의 전투센스는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한참 전에 벗어나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위장을 하고 들어올 가치가 있었다. 라고 또 다른 정운은 생각했다. 치열한 전투는 막바지에 도달했고, 양쪽은 모두 만신창이었다. “후우···. 후우····.” 정운은 호흡을 정돈하면서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언듯보면 막상막하로 보이지만··. 모든 공방에서 조금씩이지만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승리라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한 조각이 부족했다. 그 한 조각을 맞추기 위해서 정운은 이제 도박에 나서 보려고 했다. “후우우우·······.” 호흡을 깁게 정돈한 정운은 적을 똑바로 보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모방으로 따라 잡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적에게 없고 이제까지 자신에게도 모자란 무언가를 해야 했다. 어느 정도 짐작가는 것은 있었다. ‘아무리 다른 나라고 해도 나인 이상 기본적인 약점은 있는법···.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대. 내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상대는····.’ 파지직···. 파지지지직····. 정운의 몸에서 황금빛의 뇌전이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또 다른 정운은 살짝 긴장을 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드디어 상대가 뭔가 하려는 것을 안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대는····. 나보다 빠른 놈!!!’ “······어?” 퍼엉!! 정운이 생각을 마친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이 또 다른 정운을 스치고 지나갔다. 또 다른 정운은 자신의 한쪽 어깨가 터져나가고 나서야 정운이 공격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칫···. 조준이 빗나갔나?” “너···. 방금 뭘 한 거냐?” “알아서 뭐 하게····. 한 방 더 간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 번 자세를 잡고 준비를 했다. 그걸 보고 또 다른 정운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정운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분명 지금 나의 몸은 저 놈의 몸과 스팩면에서는 비슷할 텐데··. 방금 그 속도는 절대로 이 스팩으로는 낼 수 없는···.’ 퍼어엉!!! 한 번 더 정운이 또 다른 정운에게 격돌했다. 얼마나 빠른 돌격인지 이번에도 굉음은 정운이 날아오고 난 후에야 났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정운은 그런 정운을 보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이 정확하게 몸이 반토막이 나 버렸다. “쿨럭···. 멋지군.” “어우···. 내 몸이 허리가 반토막이 난 상태로 말을 하는 것은 멋지지 않아.” “훗···. 쿨럭··. 그런가···. 걱정하지 마라 곧 죽어 줄테니···.” “가능하면 지금 죽어줘.”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사실 정운은 지금 온몸이 쩌릿쩌릿한 상태였다. 신 기술을 단 두 번 썼을 뿐인데 이 지경이다. ‘제길···. 죽겠네. 그나저나 예전에 인터넷에서 딱 한번 봤을 뿐인데 내가 했지만 용케 잘 했어···.’ 정운은 스스로 ‘그 기술’을 해 낸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또 다른 정운 역시 정운의 그 공격에 관해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이·· 죽기 전에 소원 들어준다 치고 알려주지 않겠나? 아까 한게 뭐지?” “······레일건이라는 거다. 어디까지나 원리는 말이야.” “····뭐라고? 레일··· 그 현실에 개발 중인 병기 말이냐?” “그래··. 뭐 원리만 따라 한 거지만 말이야.” 원래 레일건의 원리는 이렇다. 플레밍 왼손의 법칙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전류는 +에서-로 흐른다. 이때 플레밍 왼손 법칙이 적용되어서 물체를 밀어내는 힘이 생성되는 것이다. 실제 레인건은 두 개의 코일에 자기장을 반대로 흐르게 하며 탄토의 뒤편에 자기장의 압력을 생성 시켜서 탄도를 밀어내는 것이다. 정운은 그걸 응용해서 뇌천신공을 운영했다. 전류의 흐름을 세밀하게 컨트롤 하는 것만 해도 원래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아득한 수행이다. 무엇보다, 정운은 레일건에 관해서 추상적인 이미지와 극히 원론적인 몇가지 이론 밖에는 몰랐다. 그걸로 레일건을 펑펑 찍어 낼 수 있다면 현실에서는 육군부대에 K-2대신에 레일건을 지급했을 것이다. 그러니 정운도 이제까지 그런 행동을 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스킬의 창조는 어디까지나 배대호 정도의 식견이 있어야 할 수 있는것이라고 포기해 온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창조의 방. 유저의 상상력이 뒷받침되기만 하면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체득을 해 준다. 그렇게 해서 정운은 자신의 주변에 두 개의 전압을 만들어낸 것이다. 눈에는 단순한 전류의 방전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그 흐름은 무척 정교하고 세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압에서 발생하는 힘이 밀어내는 탄환. 그게 바로 정운인 것이다. “····그렇게 된 거야. 뭐, 인간 레일건이라고 해야 할까? 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귀여운 여자 아이하고는 좀 다르지?” “······너, 생각보다 훨씬 더 무모한 인간이군.” “뭐, 사실 했을 때 될지 안 될지는 미지수였지. 그나만 여기가 좀 특수한 장소니까 성공한 거지···. 그리고 나도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뭘 말하는 거지? 이제 곧 죽을 사람을 꼭 피곤하게 하고 싶은 거냐?” “너 누구지?” “············.” 정운의 말에 상대는 다 죽어가면서도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 작품 후기 ============================ 으음...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절단이 들어가기는 하는군요. 여기서 더 이으면 내일 분량이 좀 간당간당해서...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휴재는 만우절 장난이었습니다. 리얼을 더하기 위해서 7분 업로드를 17분으로 조종하기까지 했습니다. 죄송....^^;;; 하지만 4월달에는 정말로 휴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많은 이해를 바랍니다. 310화 <레이드의 준비> “···········언제부터 알았지?” “바로는 아니야. 한 사흘 정도 굴러보니 알겠더군. 넌 내가 아니야.” “그 근거는?” “그런거 필요 없어. 거울을 보고 자기가 비치는지 안 비치는지 정도는 모두 알 수 있잖아? 굳이 말하자면 그냥 감이지 뭐···.” 정운의 말에 또 다른 정운··. 아니 그는 정운을 보며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 하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넌 충분히 합격이다.” “오···. 그래? 다행이네.” “····잠깐, 설마 뭐가 합격이지 알고 말하는 거야?” 그의 말에 정운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아니··. 사실 몰라.” “········그런데 왜 그렇게 순순히 좋아하는 거냐?” “원래 한국인들은 합격이라는 말에 약하거든.” “················.” 상대는 어이없는 표정을 했지만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어쩌라고? 네가 스펙 대국 대한민국에서 한 번 자라봐라. 나처럼 안 되나.” 정운의 말에 상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더 이상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은 없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에 관해서 설명을 해 줘야 했다. “설명해 주지. 나는 사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누구이고, 또 무슨 목적으로 정운에게 접근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정운은 그 설명을 다 들은 후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쪽 동네도 참 여러 가지로 뒷 공작을 하는 모양이군.” “중요한 작전이니까··. 쓸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다 써두자는 거지.” “그렇군········. 알았어. 최소한 나한테 나쁜 조건은 아니군.” “의외로 흔쾌하게 허락하는 걸?” “손해 볼건 없으니까. 당신 말대로 나 역시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써둬야지.” “좋아. 그럼 거래는···.” “성사 되었어.” 그렇게 정운은 창조의 방을 클리어 함과 동시에 중요한 패를 하나 접수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써 먹을 중요한 조커 한 장을 손에 입수한 것이다. 정운이 귀환하고···. 슬기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했다. “정운씨··.· 정운씨, 정운씨····.” 슬기는 정운의 품안에 안겨서 울고 또 울었다. “어··. 슬기야. 난 괜찮은데··. 대호 형님이나 추성이 형님한테 아무 말도 못 들었어?” “················.” 정운의 말에도 슬기는 대답없이 정운의 품안에서 그냥 루기만 했다. 오히려 그런 슬기 덕분에 정운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리고 슬기만큼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세레나 역시 무척이나 안도한 것 같았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마스터.” “음···. 걱정해 줘서 고마워.”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두 여자를 안심 시켰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박추성과 배대호가 다가왔다. “많이 얻었냐?” 박추성의 말에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예. 충분히요.” “그래. 다행이다. 스테이터스랑 스킬 창 확인은 했고?”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아차 싶었다. 돌아온게 너무 기뻐서 그 당연한 일을 깜빡한 것이다. “어? 아니요···. 그러고 보니···.” “빨리 해 봐라. 많이 변했을 거다.” 정운은 박추성의 말대로 자신의 스킬과 스테이터스를 체크해 봤다. 박정운 종족 : 인간(뇌신) 레벨 : 200 나이 : 19 체력 : 320 힘 : 215 민첩 : 305 지능 : 70 매력 : 80 무력 : 500 뇌신력 : 300 스킬 트리창이 아니고 오로지 스테이터스만 해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큰 상승의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뇌신력이라는 이상한 스테이터스가 생겼다. ‘흠··. 이게 뭔지는 나중에 싸우면서 알게 되겠지. 아무래도 내 호칭이 뇌신으로 변한 것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정운은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일단 스킬 창으로 넘어갔다. 사실 스테이터스 보다는 그쪽이 더 큰 기대가 되었다. 스킬창은 그렇게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보통 액티브 스킬들은 대부분 그대로였고 패시브 스킬도 전체적으로 레벨이 오르기는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유니크 스틸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정운이 액티브 스킬 중에 유니크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뇌천신공과 아스트랄 소드였다. 주력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 계열 기술은 아이템인 그림자의 망토에서 나오는 것이고··. 체감 시간을 300%느리게 만들어주는 집중력 스킬은 액티브 스킬이라서 그대로 있었다. 변화한 것은 그 두 개의 유니크 스킬. 뇌천신공과 아스트랄 소드였다. 그 두 개의 스킬이 없어지고 대신에 다른 스킬이 생켰다. 뇌신강림이라는 스킬이었다. 뇌신강림(雷神降臨) LV.1 (뇌신력을 소모하면서 싸우는 전투형태. 모든 공격력이 5,000% 상승하며 수많은 하위 스킬을 포함하고 있는 스페셜 유니크 스킬이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공격력의 상승은 더욱더 커진다.) “····이건 무슨····. 공격력 5,000%? 오십배? 영이 하나 많은 것 아니야?” 정운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예전에 뇌천신공도 일산 사용하면 공격력이 3,000퍼센트 증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아직 스킬 레벨도 1일 뿐인데 말이다. 거기다 기존에 뇌천신공에 기초해서 사용하던 스킬들도 그대로 있었다. 아니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스킬들의 레벨이 전부 맥스를 찍으면서 더욱더 강력해 졌으니 말이다. 거기다 새로운 스킬도 하나 생겼다. 그 스킬은 레벨의 유일하게 맥스가 아니라 1이었다. 이제 막 생긴 신생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뇌광(雷光) LV.1 (몸에 전류를 방전시켜서 레일건과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속력과 활용성이 더 올라간다.) “좋았어!!! 생겼구나.” 정운은 자신이 마지막에 했던 레일건 응용 이동술이 정식으로 스킬로 생긴 것을 크게 기뻐했다. 사실 창조의 방에서 성공 시키기는 했지만 그건 그 방이 좀 특별한 공간이라서 가능했던 것이다. 상상력만 뒷받침되면 그 다음 자잘한 것은 정신력을 집중하기만 해도 알아서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드에서 그걸 또 해보라고 하면 절대 무리다. 전류의 세밀한 조정과 그걸 이용한 신체의 컨트롤까지···. 무리. 절대 무리였다. 그런데 그게 스킬로 생긴 것이다. 더구나 레벨이 올라가면 더욱더 강해질 수 있는 조건까지 덧 붙여서 말이다. 정말이지··. 이건 강력하다 말다 하는 수준을 훌쩍 넘었다. 정운은 이제야 자신이 박추성 배대호와 진정으로 같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파악했다. “·····형님들도 이런 괴물 같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레벨을 100을 기점으로 유저들의 힘의 차이가 제법 크잖아? 200레벨은 그 이상으로 확실하게 뚜렷하지.” “네가 무슨 힘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말 하지 마라. 어차피 말 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슬기나 세레나에게 200레벨이 되었을 때의 일을 참고하라고 알려주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아마도 일종의 금제가 걸려있는 것 같았다. ‘많이 아쉽군···. 일행에게 알려주면 좋은 동기 부여가 될텐데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아쉬워 했지만···. 사실 그게 되면 진작에 박추성이나 배대호도 알려 줬을 것이다. “뭐···, 어쨌든 오늘은 푹 쉬어라. 너 없는 동안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했다.” “준비라뇨?” “84층 레이드.” “아아····.” 정운은 자신이 없는 동안 이미 한우리 연맹에서 84층의 레이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뭐···. 나 없이도 제법 굴러 가는걸?’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날 밤···.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와 같이 잠자리를 했다. 그냥 한 침대에 같이 눕기만 한 것이다. 살은 섞지 않았다. 정운은 둘을 그냥 여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었고··. 아름다운 두 여자를 상대로 동시에 어떻게 즐겨 보자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녀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이미 정운과 그녀들의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를 한참 초월했다. 물론 사랑을 나눌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에 흔들림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다 보면··. 관계는 저절로 두터워 지게 되어 있었다. 정운의 양쪽에 누워서 한쪽 팔을 차지한 상태로 슬기는 정운의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요? 우리는 괜찮은데?” “마스터께서 원하신다면····.” 슬기와 세레나가 그렇게 말했지만 정운은 피식 웃었다. “오늘은 그냥 있고 싶어. 너희들하고 그냥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 정운은 자신의 팔이 두 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양쪽 팔로 사랑하는 여자들이 둘 다 동시에 안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 만족하는 정운과 달리 두 여자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다른 것 같았다. “················.” “················.”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술, 어쩐지 책망하는 것 같은 눈빛, 슬기는 볼까지 빵빵하게 부풀었다. 사실 정운 보다는 걱정을 잔뜩 했던 슬기나 세레나가 오늘밤은 좀 몸이 달았다. ‘바보 정운씨·····.’ ‘바보 마스터·····.’ 그녀들은 하다못해 상대방이라도 오늘 밤은 좀 양보를 했으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둘 다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 정운이 마음을 먹어야 일이 진행되는 상황인데 그 정운이 요지부동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차려진 밥상도 못 떠먹는 시추에이션? 대강 그것과 비슷했다. 바보 같은 놈····. 84층의 보스몹은 누구일까? 이제까지의 경향을 살펴보면 역시 어딘가의 왕. 혹은 그것에 준하는 존재일 것이다. 한우리 연맹의 나탈리아는 정보는 내 담당이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열심히 조사에 조사를 거듭했다. 보스몹의 지형은 강이었다. 그것도 그냥 저런 지형의 강이 아니라 엄청나게 넓은 강이었다. 그 강은 전체적으로 안개가 끼여 있었고 가까이 가면 수군들이 와서 활을 쏘면서 공격했다. 배의 형태는 자세히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상당한 대 선단으로 보였다. “흐음·····. 일단 서양식 같지는 않군요. 동양식. 그것도 상당히 오래된 것입니다.” 정운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스몹의 지역을 정찰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그리고 정찰을 하는 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일단 중국식의 배로 보이기는 했는데 정운이 함선에 관해서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도저히 그냥 보기만 해서는 연대를 알 수가 없었다. “···흠··. 관우. 손견.” -부르셨습니까? 주군. -부르셨습니까? 주군. 정운이 부르가 두 충성스런 장수들이 나타났다. “저 배들의 연대를 알 수 있겠나?” 정운의 말에 둘은 차분하게 저 배를 살펴봤다. 그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차분하게···. 그리고 의외로 약간 놀란 기색까지 보이면서 배를 살폈다. -주군···. 저것은 제가 있던 시대의 배로 보입니다. “네가 있던 시대? 잠깐 그러면···?” -예. 이번 적은 저와 같은 시대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관우의 말에 정운은 곰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한말의 무장 중에 한 두 명 정도는 나올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나오느냐? 였다. 정운은 관우를 향해서 말했다. “관우,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만약 네 의형인 유비 현덕이 보스몹으로 나온다면····. 너 싸울 수 있겠나?” -···············. 정운의 말에 관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심에 빠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슬슬... 그 인물도 아끼지 말고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아끼다가는 더 이상 나올 기회가 전혀 없을것 같아서... 사실 이 인물이 카이사르보다 더 늦게 나오면 안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 쯤에 보내는 것이 가능하면 위화감이 적을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11화 정운은 대답 없는 관우를 내버려 두고 옆의 손견에게 말했다. “손견, 네 두 아들 역시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아들들이 나온다면····.” -파우스트 따위에게 혼을 판 대가로 다리를 부러트려서라도 훈계 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다행이고····.” 손견의 경우는 별 걱정할 것 없어 보였다. 다만 관우나 장비의 경우 유비가 나온다면 도저히 공격하기 힘들 것 같았다. “뭐···. 적어도 이번 상대가 유비는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필드가 강이잖아? 유비하고의 연관점은 없어 보이는 군.” 정운의 말에 관우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아무래도 도원결의의 약발은 죽어서도 가는 것 같았다. ‘후한 말, 그리고 강이라···. 쯧, 몇 명 생각나는 인간들이 있기는 한데····.’ 정운은 레이드를 하면서 정확하게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후한 말···. 그렇다면 몇 명의 인물들이 추려지기는 했다. 정운은 이제 한우리 연맹원 전체와 레이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인질역을 자처할 일반 유저들도 준비했고 공략조의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다. “이미 전에 참가한 사람들도 있고 처음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설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팀의 팀장의 말을 잘 듣는 겁니다. 거기에 불복하는 자는 팀장 권한으로 현장에서 즉결도 가능합니다.” 정운은 연맹의 분위기를 조금 바꾸기 위해서 팀을 여섯 개로 나눴다. 각 팀의 팀원은 그때그때 레이드마다 유기적으로 바꾸기로 했지만 여섯 명의 팀장을 뽑은 것이다. 팀장은 정운 본인을 비롯해서, 박추성, 배대호, 다이앤 여왕, 장 그레고리 공작, 그리고 이민지까지였다. 사실 한중겸까지 포함해서 일곱 개의 팀을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중겸이 나는 그런 역할은 내키지 않는다. 라는 말로 고사했다. 사실 정운이 보기에는 팀장 역할이 내키지 않는다기 보다는 이민지를 보좌하는 역할을 버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다음 팀장 후보는 프랑스의 NO.2인 피에르 아르네제데였다. 그의 냉철한 성격과 뛰어난 전투 능력은 충분히 팀장의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고사했다. 여섯 개 이상으로 팀을 만들어도 전력의 분산을 가져올 뿐이라고 거절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팀장은 여섯 명만으로 정한 것이다. 우선 공격시에 각 팀의 하위 멤버들만 추려서 보낸 돌입조가 공격을 시작했다. “뚫어라!!!” “밀리지 마!! 무조건 가는 거다!!!” 정운을 비롯한 다른 정예들은 뒤에서 대기만 하고 있고 돌입시에 싸우는 것은 인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자원한 일반 유저들과 몇몇 하위급 유저들이었다. “흠···. 생각보다 애 먹는걸? 몇 명 더 보낼까?” 뒤에서 지켜보던 박추성이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이 보기에도 이번에는 돌입시에서부터 상당한 애를 먹고 있었다. 보아하니 눈에 보이는 상대 선박을 다 박살내야 하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쯧, 84층쯤 되니까 일반 돌입도 쉽지 않군요. 어쩔 수 없죠. 각 팀에서 준 주력 멤버를 하나씩 더 내보내도록 하죠.” “그렇게 해야겠지?” “말 나온 김에 바로 움직이죠.” 정운의 말에 각 팀장들은 한명씩 더 멤버를 풀었다. 한국팀에서도 이보영과 이지영 자매, 그리고 윤정철까지 나갔다. 윤정철은 이번 레이드에 배대호의 팀이었는데 배대호는 다른 외국 유저가 아니라 상당한 전력이 되는 윤정철을 돌입조에 보낸 것이다. 그걸 보고 박추성이 살짝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정철이가? 다른 애들 있지 않아?” 그러자 배대호는 팔짱을 끼고 무심하게 전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찔끔찔끔 하나씩 푸는 것 보다는 그냥 한 번에 강력한 패를 보이는게 좋아.” “뭐··. 그건 그렇기도 하지.” 윤정철의 가세는 확실하게 전선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살라만더의 가호!! 템페스트 샷!!” 윤정철이 활이 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거기서 무수한 불화살들이 날아가서 선단에 작렬했다. 콰콰쾅!!! 쾅쾅!!! “어!? 못 보던 기술인데? 아니···그보다··. 활 바꾼 건가요?” 정운은 윤정철의 변화한 공격에 정운이 깜짝 놀랐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중겸이 말했다. “몰랐냐? 저 녀석 이번에 83층에서 대박 퀘스트 하나 물어서 유니크 아이템 챙겼는데?” “어? 정말요?” “그래. 뭐라더라··. 정령신궁이라고 하던가? 활 아이템으로는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하더라.” “헤에···. 정철이 형님이 전에 쓰던 활을 버리고 선택할 정도면 확실히 굉장한 활이겠죠.” 그라운드 제로에서 활을 가장 잘 쓰는 유저는 윤정철이었다. 그 다음은 정운이고 그 다음은 영국의 로빈슨 해서웨이라는 남자였다. 그 중에서도 윤정철이 쓰고 있던 전의 활은 상당한 명품으로 윤정철이 벌써 10년 가까이 바꾸지 않고 애용하고 있던 물건이었다. 정운이 쓰고 있는 진(眞) 건곤파천궁보다 더 좋은 물건이라고 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바꿀 정도면 저 활은 엄청나게 좋은 활이라는 말이었다. “아이템 속성 가르쳐 달라고 해 볼까?” 문득 궁금해진 정운의 말에 배대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안다.” “정말요? 어떻게요?” “그 퀘스트 클리어를 도와준게 나하고 다이앤 여왕이니까. 그 녀석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챙겨 주더군.” 투덜거리는 배대호는 정운에게 정령신궁이라는 활의 속성을 가르쳐 줬다. 정령신궁(精靈神弓) LV.1 공격력 : 3,0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스킬 : 살라만더의 가호(활에 살라만더의 기운을 실어서 화(火) 대미지를 중첩 시킨다.)운디네의 가호(활에 운디네의 기운을 실어서 수(水) 대미지를 중첩 시킨다.)실프의 가호(활에 실프의 기운을 실어서 풍(風) 대미지를 중첩 시킨다.)노움의 가호(활에 대지의 기운을 실어서 지(地) 대미지를 중첩 시킨다.) [활에 사대 정령의 가호가 깃들어 있는 정령의 활. 활의 위력도 강하지만 모든 화살에 사대정령의 기운을 자유롭게 실을 수 있다. 활의 레벨이 올라가면 다양한 스킬이 동시에 개봉된다.] “·······우와···. 탐 난다.” 정운이 자신도 모르게 탐이 난다고 말할 만큼 정령신궁은 굉장한 무기였다. 사실 유니크 아이템 중에서도 활 아이템은 처음 보는 정운이었다. 고작 레벨이 1인데 이미 공격력이 3,000이다. 지금 정운이 쓰고 있는 진(眞) 건곤파천궁의 공격력이 2,000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것이었다. 거기다 아이템의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더 강력해지는 것이 유니크 아이템이다. 이 아이템의 레벨이 MAX에 도달하면 어쩌면 활 아이템의 공격력이 최초로 5,000이 넘어가는 결과가 나올지도 몰랐다. 거기다 다양한 스킬의 개방까지···. “이거 아이템 자체만 보면 제 그림자의 망토 만큼이나 좋은 건데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쩝, 진짜 탐나네···.” 정운은 윤정철이 정령신궁으로 멋지게 활약하는 것을 보고 정말로 탐난다는 듯이 입맛을 다졌다. 남의 아이템을 보고 부럽다고 느낀 것은 박추성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영사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좋은 아이템을 유니버스 연맹의 누군가가 아니라 같은 팀의 동료인 윤정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다른 편에 있는 것 보다는 아군의 전력 강화에 있는게 백배는 좋지 않은가? ‘하지만 탐은 정말 난다····.’ 정운이 그렇게 부럽게 생각하는 사이··. 윤정철의 활약으로 인해서 드디어 강에 늘어져 있는 함선들이 모두 완파 되었다. 그리고···. 띠리링!! [84층 보스룸에 진입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가 떴다. 당연히 진입한다. 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보스몹의 이름을 말하십시오.] 인질로 지원한 자들 중에 한명이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내가 말해도 되요? 라는 눈을 하고 있었다. “빨리 말 해.” 피에르의 말에 인질 중에 한 명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손권.” 한우리 연맹이 생각하는 제 1순위는 손권이었다. 정운은 사실 이 시대가 후한말의 시대라는 것을 짐작했을 때부터 이 강을 보고 떠오르는 전투가 있었다. 적벽대전. 후한말의 수많은 전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투였고 이 전투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조조의 독주가 주춤하고 유비가 삼국의 기틀을 마련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 적벽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주역을 꼽으리면 두 명이다. 제갈공명과 주유. 이 둘이야 말로 실질적인 적벽대전의 주역들인 것이다. 뭐···.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거의 다 꾸미고 주유는 약간 돕기만 한 걸로 나오지만···. 사실 그건 틀린 말이다. 오히려 전투적인 작전의 도입과 준비는 주유가 90% 이상 했다고 봐야 한다. 삼국지를 보면 종종 관우나 유비, 혹은 제갈량을 띠우기 위해서 약간의 조작을 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적벽대전에서의 주유의 역할도 그렇게 해서 약간 축소된 경우이다. 사실 말이 되지를 않는다. 제갈량의 경우 어디까지나 타 세력의 객이었던 입장이다. 그런데 손권이 마약이라도 상습 복용하지 않은 이상 자신의 충신이자 형의 친우이기도 한 주유를 내버려 두고 제갈량에게 작전의 지휘권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세운 최고의 공적은 전투에서 꾸민 계략이 아니다. 조조의 침공을 눈앞에 두고 주전파와 화친파가 팽팽하던 오나라를 주전파 쪽으로 기울게 손권을 설득한 것이야 말로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일으킨 진짜 기적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큰 공적이다. 어쨌든 적벽대전에서의 주인공은 이 둘이다. 만약 여기까지만 알았다면 정운도 이 둘 중에 한명을 불렀을 것이다. 만약 이 둘이 틀리다면 그 다음 주자로 방통 정도를 준비해 뒀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80대의 보스몹들은 모두 왕, 혹은 일국의 왕권에 해당하는 절대 군주들이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오나라의 당시 군주였던 손권을 선택했던 것이다. “····맞나?” 정운이 초조하게 중얼 거린 순간···. [오답입니다. 인질을 한명 접수합니다. 보스룸으로 이동합니다] “망할····.” 정운은 오랜만에 오답이 나온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행은 인정사정없이 보스룸으로 진입되었다. 일행이 사라진 이후···. 그 자리에 남은 돌입조들은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레이드에서 이제 할 일이 끝났다. 다만, 마지막에 오답을 말하고 안에 들어가는 동료들을 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 중에 한명이 윤정철에게 말했다. “괜찮을까요? 시작부터 오답이 나왔는데?” “흐음····. 뭐, 괜찮을 겁니다. 준비하 대답이 하나 뿐은 아니니. 그래도 애는 좀 먹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걱정하는 영국의 유저를 보며 윤정철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믿읍시다. 우리가 여기서 초조하게 있는다고 뭔가 변하는게 있는 것도 아니니···.” 윤정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얌전히 동료들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제길···.” “손권이 오답이면 역시 정답은 그 녀석인가?” “쯧···. 생각해 보면 손권은 그렇게까지 한이 맺혀서 죽을 인간은 아니었어.” “망할····.” 보스룸으로 들어온 한우리 연맹은 일단 대형을 잡고 주변을 파악했다. 역시 아직도 전장은 강의 위였다. 다만···. 상황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강 위의 배 한척에 올라타 있는 일행들을 두고 주변에서는 무수히 많은 함선들이 활시위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쏴라!!!” 저쪽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무수한 화살이 날아왔다. ============================ 작품 후기 ============================ 어느덧 사월이 시작되고도 3일... 참고로 지금 글을 쓰는 저는 3월의 마지막인 31일입니다. 3월 한달을 열심히 글 써서 비축분을 모아뒀기에 가능한 거죠. 하지만 이래도 4월에 계속해서 1일 2연재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12화 <레이드의 준비> “제길···. 앱솔루트 실드!!!” 배대호는 화살이 날아오기를 무섭게 배를 통째로 실드에 감싸 버렸다. 퍼퍼퍼펑!!! 배대호의 실드에 부딪히는 화살은 평범한 화살이 아니었다. “큭···. 이거 제법 무거운데···.” 배대호는 이 화살비를 막아내면서 상당한 공격력이 깃든 화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운을 비롯한 다른 유저들에게 말했다. “빨리 우리 쪽도 뭔가 대응해!! 배를 움직여서 일단 좀 피하라고, 포위되어 있잖아?” “알았·······.” 배대호의 말대로 급하게 배를 움직이려고 하던 정운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혹시····· 이중에 고대 중국식 전함 움직이는 법 아는 사람?” “···············.” “···············.” “···············.” 있을 리가 없었다. 선박조종도 가능한 사람이 드문 현대인중에 고대 중국의 전함을 조종가능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마치 홍대 사거리에서····. ‘건담 파일럿을 찾습니다.’ 라고 모집하는 격이었다. “빌어먹을··. 까짓것 배 같은 것 없어도 날아서···.” 띠리링!! [비행금지 구역입니다.] “또냐!!?” “망할···.” 일행은 허둥 거렸다. 일단 배대호의 방어 마법 덕분에 버티고는 있었지만 상황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때 박추성이 말했다. “잠깐··. 일단 보스몹의 다음 이름부터 말해야지.” “아차!! 빨리 해!!” 배대호의 말에 깜빡하고 있던 정운은 인질예비군 중에 한명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어서 이름을 밝혔다. “조조!!!” 적벽대전에 얽힌 두 명의 군주. 그건 손권과 조조였다. 사실 손권은 후방에서 안전하게 나라만 지키고 있었으니 본격적으로 얽힌 것은 조조라고 봐야 했다. 안 그래도 조조를 먼저 말해야 하는게 아니냐? 라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띠리링!! [정답입니다. 5분 후에 보스룸 전투 지역으로 전개됩니다. 그때까지는 적의 공격에 대응 하며 살아남아야 합니다.] “제길···. 또 5분 후인가?” “한 번 틀렸으니까····.” 안타까워하는 연맹원들을 보고 배대호가 버럭 외쳤다. “됐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좀 도와!! 빡셔 죽겠다!!!”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공격이 어지간히 힘든 모양이었다. 하긴···. 이 경우 위력보다는 어마어마한 숫자 때문에 골치가 아픈 경우였지만 말이다. “방어가 안 되면 공격이다!! 반격해!!” 박추성의 말에 일행들은 전원 반격을 시작했다. 다행이도 공격이 어느정도 먹히기는 먹혔다. 콰아앙!!! 쾅!! 쾅!!! 정운을 비롯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자들은 공격을 하고 메이지 계열의 유저들은 방어에 주력했다. 사실 원거리 화력전이야 마로 메이지들의 주력 무대이지만 지금 그들이 빠지면 방어쪽으로 손을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비행 불가 지형에서 배를 잃으면 모두 강에 빠져야 했다. 최악의 경우 저 물에 빠졌을 때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면 끝장이었다. “어떻게든 5분만 버텨!!!” 정운은 일행을 독려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지금은 반격을 가할 수단이 없어서 이렇게 해메고 있기만 해야 하지만 그래도 5분이 지나면 뭔가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길····. 조조라고 했지? 이거 한 명은 못 써 먹을 지도···.” 정운은 싸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조조라면 정운의 주요 전력인 쉐도우 아미중에 한 명이 몹시 곤란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바로 전위다. 원래 정운이 데리고 있는 장수들 중에 여포는 자기 주군이 없는 인물이니 괜찮았다. 뭐, 동탁의 밑에 있었던 시절이 있기는 했지만 여포가 오히려 동탁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미련이 있을리는 없었다. 그리고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는 유비의 신하들이다. 하지만 유비가 이 적벽의 대전에 나올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손견과 태사자의 경우···. 의외로 협조적이었다. 태사자는 지금의 주군이 정운에게 충실하겠다. 라고 했고 손견의 경우 약해빠진 아들이 파우스트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자기 손으로 박살을 내 놓겠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전위였다. 조조가 원래 인재 욕심이 많았고 그는 많은 인재를 아꼈다. 그 중에서도 전위는 한 층 더 특별하다. 조조가 자기 아들보다 아끼는 맹장이었고 실제로 죽었을 때 아들이 죽은 것 보다 더 아까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로 전위 역시 조조를 위해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던 충신이었다. 조조라는 인물은 원래 의심이 많고 변덕도 다소 있었다. 그래서 아끼던 인재라고 해도 가끔씩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말년에는 자신을 평생 보필해온 순유나 순욱을 홀대하는 모습도 보인 것 이라던가? 혹은 자기 속내를 읽었다고 양수를 쳐낸 계륵의 고사가 대료적인 일화였다. 하지만 그런 조조도 절대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부하들이 몇 명은 있었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사촌이기도 한 하후돈, 그리고 천재 곽가, 그리고 자신의 충실한 호위 무사였던 전위와 허저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정운은 그 전위를 이 전투에서 아애 빼버릴 생각이었다. 싫은 마음으로 억지로 싸우게 하는 것 보다는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전력이 약간 줄기는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설령 전위가 여기서 싸워서 승리에 일조를 한다고 해도 문제다. 저 전위라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충성심이 흔들리고 앞으로의 공략에 있어서 장애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거야 부하로 있는 이상 명령에는 복종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음으로 복종해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운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마침내 5분의 시간이 다 끝났다. 띠리링!! [보스몹 공략을 위한 필드로 이동하겠습니다.] 알림창이 울리자 끝없는 공격에 지쳐가고 있던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성공이다···.” “제길··. 이래서 한 번에 맞춰야 한다니까···.” 연맹의 유저들 중에 상당수가 적의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도 힘의 소모가 컸다. 그만큼 적의 공격이 거칠었던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바로 보스몹이 나타난다면 곤란하다. 지금 연맹의 전력은 평소의 60%정도에 불과했다. 체력과 정신력의 고갈이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특히 적의 무수한 공격을 90% 이상 혼자서 감당해낸 배대호는 그 답지 않게 상당히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럭저럭···.”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어쩌겠냐? 안 죽었으면 괜찮은 거지.” 배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다행인 점은 이동한 필드는 지금 당장 전투를 치러야 하는 지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는···. 또 배위?” “이번에는 뭐 어쩌라는 거지?” 일행이 이동한 장소는 마찬가지로 배 위였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 배는 다른 배와 널빤지 등을 통해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연환계다 이건가?” “이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조조라고 바로 말했을 텐데 말이죠.” “그렇군···. 쯧.” 박추성의 처음에 한 말대로 이 작전은 연환계. 조조가 방통의 조언(?)을 들어서 자신의 배들을 모두 연결한 계책이었다. 이 작전이 오히려 화계에 정통으로 걸려들어서 나중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뭐 어쨌든 지금 이 상황은 연환계로 묶여져 있는 선단의 어딘가. 였다. 어디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다른 배는 뿌연 안계에 휩싸여서 어떤 배인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띠리링!! [84층 공략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보스룸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어딘가의 배 위에 있는 보스몹 조조 맹덕을 찾아야 합니다. 각 배위에는 그 배를 지키는 몹들이 있으며 그 배를 완전히 제압하기 전에는 다음 배로 건너 갈 수 없습니다. 비행은 불가능 하면 다른 배에서 다른 배를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 합니다.] 설명을 다 들은 유저들을 대강의 룰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건···. “기본적으로 카이사르 때와 같은 건가?” “아니지···. 그때 보다는 나아. 적어도 시간 제한은 없잖아?” “그렇군·····. 대호 형님.” 정운이 배대호를 불렀다. 그러자 배대호는 배 한쪽에 앉으면서 말했다. “나도 안다. 여기서 푹 쉬고 갈 거야.” 시간제한이 없고 이 배에 있는 동안은 공격을 받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푹 쉬어서 체력을 온전 하는게 정답이었다. “대호 형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좀 쉬죠. 지금부터 20분간 휴식해서 몸과 마음을 최고 컨디션으로 돌립니다.” 정운의 지시에 따라서 한우리 연맹은 전원 휴식을 취했다. 전투시에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간단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 배대호처럼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서 심신을 편하게 하는 사람들···. 혹은 인벤토리에서 간단한 초코바를 꺼내서 먹고 있는 한중겸 같은 타입도 있었다. 한중겸은 초코바를 우물우물 거리면서 정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아.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뭘 말입니까?” 한중겸은 될 수 있는한 표정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챈 것 같은데···. 이번 레이드···. 조건만 보면 카이사르 때 보다 오히려 더 쉽지 않냐?” “·····그렇죠.” 정운도 이상하게는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84층···. 카이사르보다 더 높은 층에 나타났으면서 쉽다. 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렇지.” “그렇군요. 아마도 뭔가 숨겨진 함정이나 위협이 있을 겁니다.”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운에게 당부하듯이 말했다. “·····절대 방심하지 마라.” “형님도입니다.” 정운과 한중겸은 서로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를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사이였다. 둘은 서로 간단하게 충고를 한 다음에 각자의 팀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전력을 회복한 한우리 연맹은 각각 팀을 만들어서 배를 공략하기로 했다. “제한 시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사태가 있으니 너무 여유를 부리지 말아 주세요.” 정운은 그렇게 각팀에게 주의를 주고 자신의 팀을 이끌고 자신도 공략을 향해서 다른 배를 향한 널빤지를 건넜다. 참고로 정운의 팀은···. 세레나, 이슬기, 김수민. 그리고 영국의 마이클 핸더슨과 크리스찬 홀드, 존 아브라함이 합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는 여성 유저인 크로디 지젤, 마찬가지로 프랑스 유저인 마자랭 콜베르까지···. 이렇게 해서 총 아홉 명이었다. 그렇게 정운의 일행은 널빤지 하나를 골라서 다른 배로 건너갔다. 그리고 다른 배에 도착하자 마자···. “적이다!!!” “공격하라!!!” 적군이 성대하게 환영해 줬다. “세레나!! 전위로 막아!!” 몰려오는 적을 보고 정운은 바로 세레나에게 대응하게 했다. “옛!! 모두 나와!! 대형 3번!!!” “옛. 누님!!” “알겠수다!!” “알겠습니다.” 세레나의 소환에 양산박의 호걸 네 명이 세레나의 곁으로 소환 되었다. 그 동안 꾸준하게 호흡을 맞춰온 것이 있어서일까? 이제는 제법 일사분란하게 세레나의 수족이 되어서 움직이는 양산박의 호걸들이었다. 세레나를 중심으로 오른편에 시진과, 호삼랑, 왼편에 이규와 동평이 나란히 서서 전위에서 적을 맞이했다. 일단 그렇게 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밀리지 마라!!!” “이런 잡졸들 따위 다 죽여 버릴 테다!!!” “이규!!! 흥분하지 말라고 했지!!?” 세레나는 자신의 부하들을 잘 조종해 가면서 전위에서 적들의 공격을 착실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정운이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근거리 공격이 특기인 자는 전위에 가세. 나머지는 후방에서 원거리 공격으로 적을 공격하라!!!” “옛!!!” “옛!!!” “옛!!!”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13화 세레나를 중심으로 적을 막고 있는 전위 대열에 다른 나라의 유저들도 합류했다. 마이클 핸더슨과 존 아브라함은 기사 클래스의 인간이었다. 두꺼운 갑옷을 입고 전위에 가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치열하게 공격에 참가했다. “이 놈!!!” “여기는 아무도 못 지나간다!!!” 다섯에서 둘이 더 늘었을 뿐이지만 그것만 해도 벽이 상당히 더 넓어졌다. 벽이 넓어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군의 안전지대를 더 넓게 확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100% 살리는 자들이 바로 프랑스 유저들이었다. 프랑스의 여성 유저인 클로디 지젤은 레이피어가 특기였다. 그리고 마자랭 콜베르는 커다란 할버드를 사용하는 남자였다. 그런데 이 둘이 쓰는 무기는 둘 다 장병기였다. 마자랭 콜베르가 사용하는 할버드는 원래 도끼창의 형태로 장병기였으니 그렇다 치고··. 클로디 지젤이 쓰는 레이피어는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뽑아서 싸우기 시작하니 레이피어가 2미터가 훌쩍 넘게 길어졌다. 아마도 뭔가 특수한 기능이 있는 무기인 것 같았다. 그 둘은 본격적으로 전위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전위의 뒤편에서 긴 병기를 이용해서 보조를 맞춰서 싸우고 있었다. 아군의 사이사이로 날카롭고 강력한 공격을 뿜어내면서 적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슬기의 마법과 김수민의 채찍, 그리고 영국 유저인 크리스찬 홀드의 석궁이 불을 뿜었다. 보통 궁사는 제법 있어도 석궁을 쓰는 석궁병은 별로 없는 그라운드 제로였다. 석궁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워낙 드물어서 그렇다. 그런데 저 크리스찬 홀드라는 남자는 초보 시절에 운 좋게 석궁 아이템 중에서 상당한 가치의 물건을 얻었다. 아이템의 속성은 정운도 잘 모른다. 아이템의 ???성이나 스킬의 내용은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묻는 것 자체가 실례인게 그라운드 제로의 불문율이었다. 그냥 상당한 아이템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는 그 후로 클래스 자체를 석궁병으로 바꿔 버린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다 죽어라!!!” 파파파파파파····. 마치 경기관총을 발사하는 것처럼 무한대로 발사되는 석궁을 보고 있노라니 자기 몫은 충분히 하는 남자 같았다. 정운의 팀은 순조롭게 병사들을 쓰러트려 가고 있었다. 정운은 혹시나 해서 ME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조조군 LV.60~80 [조조군의 병사. 평소 엄중한 군기로 잘 훈련 받아서 싸울 때는 용맹하고 일사분란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장점은 없다.] “말 그대로 병사들이군··. 로마군은 하나하나는 별것 아니라도 뭉쳐 있을 때는 엄청난 스킬을 사용했는데 말이야.” 정운은 순조롭게 적이 괴멸 되는 것을 보면서 안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카이사르가 83층이고···. 조조가 84층이라는 말은 조조에게 더 주어진 힘이 강하다는 뜻이다. 뭐, 카이사르와 조조 둘 중에 누가 더 뛰어난 인물인지는 별개로 하고 무조건 조조가 더 상위층에있는 이상 더 강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만 해도 조조를 클리어하는 과정이 카이사르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뭔가···. 뭔가 다른 난해한 점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정운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조군의 사이에서 한명의 거한이 나타났다. “비켜라!!! 감히 누가 주군에게 도전을 하느냐!!!?” 나타난 거한은 보통 병사들 보다 머리가 두 개는 더 컸으며 어깨는 쩍 벌어져 있었다. 정운은 순간 ME를 들어서 놈을 찍어 봤다. 장패 LV. 180~185 [조조 휘하의 부하 장수. 원래는 도겸의 부하였고 후에 여포의 부장으로 등장하여 조조와 싸웠다. 그 후에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장패··. 내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잠깐··. 이거 설마?” 정운은 순간 조조 공략의 가장 난해한 부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정운과 다른 팀원들이 있는 곳에서도 비슷비슷한 모양들이 나타났다. 다이앤 여왕의 앞에··. “내가 여건이다.” 박추성의 앞에도··. “한호라고 한다.” 배대호의 앞에도··. “조휴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여기저기서 한우리 연맹을 가로 막는 것은 생전에 조조군의 장수로 활약했던 맹장들이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정운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확실히 이렇다면 조조군을 공략하는 것은 카이사르를 공략하는 것 보다 난이도가 더 높아진다. 카이사르 군단의 가장 까다로운 점은 철통같은 군기로 다져진 일반 병사들의 군기였다. 하지만 조조군의 장점은 범같이 강력한 장수들인 것이다. 가뜩이나 위, 촉, 오 중에서 인재풀이 가장 방대했던 나라가 위나라, 그것도 조조 시대였다. 그 조조의 장수들이 모두 등장한다고 하면이건 정말 까마득하다. ‘거기다 장패··. 저 인간은 내가 이름도 가물가물한 놈이 레벨이 180대라고? ····하후돈 같은 놈은 몇 레벨로 나온다는 거야?’ 정운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이래서야 마치 수십 개의 레이드를 하루 안에 해치우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로마군이 다수의 단결을 우선시 하는 것이라면 여기는 중간 장수급을 다수 들이부은 상태다. 즉 최정예는 아니라도 상당한 수준의 다수정예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이 장수들이 모두 한꺼번에 덤벼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진짜로 공략할 방법이 까마득했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콰아앙!!! 정운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장패의 공격이 프랑스의 마자랭 콜베르에게 떨어졌다. “흡!!!” 그는 자신에게 떨어진 공격을 커다란 할버드를 이용해서 막았다. 하지만 마자랭의 레벨은 138. 거기에 비해서 준 보스몹으로 등장한 장패의 레벨은 180이 넘었다. “이 놈이···.” 힘을 못 이기고 그대로 밀려 버린 마자랭은 자신의 체력 게이지의 5분의1이 뚝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이 놈!!!!!” 아군이 밀리는 것을 보고 꼭지가 돈 이규가 커다란 쌍도끼를 휘두르면서 장패에게 달려 들었다. “흡!!! 네놈은 누구냐!!?” 장패는 사납게 도끼를 휘두르면서 달려드는 이규를 보면서 뒤로 살짝 밀리며 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나 철우다. 이제 죽어랏!!!!!” 이규는 그렇게 거칠게 소리치면서 장패를 향해서 돌격했다. 그건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불도저가 폭주하는 것 같았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이규는 정신없이 쌍도끼를 휘두르면서 장패를 몰아 붙였다. 하지만 장패는 처음에 야간만 밀릴 뿐이지 이내 역으로 공격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 이놈이!!!!” “시끄럽다 검정 원숭아!!!” 이규는 이를 악물고 덤볐지만 상대가 생각보다 더 강했다. 사실····. 원래 실제 이규의 전투력은 장패보다 약간 더 강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게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이고 또 레벨의 차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84층 보스몹 조조의 부하로 나온 장패의 레벨은 180이상. 거기에 비해서 세레나의 소환수인 이규의 경우 레벨이 172였다. 세레나의 레벨이 현재 172였기에 그 레벨을 뛰어넘을 수 없는게 소환수의 슬픈 한계인 것이다. 그래서 이규는 전체적인 힘과 속도에서 장패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나마 이규의 타고난 투쟁심과 전투본능으로 전투를 이거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건 이규 혼자서 덤볐을 때의 일이다. “우리 아우를 괴롭히지 마라!!!”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조무래기가 우리 형제를 핍박하느냐!!!?” “죽여 버리겠다!!!” 이규가 밀리는 것을 보고 같은 양산박의 호걸인 동평, 사진, 그리고 호삼랑이 동시에 장패에게 달려들었다. “큭···. 이 놈들이····.” 장패는 준 보스몹으로 그라운드 제로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조조에게 특별한 스킬을 받은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오로지 생전의 무위와 몹으로서 강화된 스테이터스만을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과연···. 저러면 그래도 할 만 하지.’ 정운은 장패가 별 스킬 없이 오로지 무술만으로 맞서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준 보스몹이 저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조조에게 받은 힘의 차이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장패 정도는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정운의 안에서 뭔가가 꿈틀 거리는 것을 느꼈다. 정운은 그것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여포!!”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군. 여포는 나오고 싶어서 근질근질 하고 있었다. 그 기분을 정운이 느끼고 소한을 해 주니 땅에 있다가 물에 풀린 물고기 마냥 생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ME의 소개에는···.” -예. 제 부하였습니다. 정운은 장패가 여포의 부하였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여포에게 짧고 강하게 말했다. “해치워.” -옛!!!! 모두 비켜라!!!!!! 여포는 양산박의 호걸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장패에게로 한 걸음에 다가갔다. 그리고 강대한 힘이 실린 여포의 화극이 장패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웃!!!!” 장패는 황급하게 그 공격을 막으려고 창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까아앙!!! 촤악!!!! 여포의 화극은 창대를 단번에 잘라 버리고 그대로 장패의 한쪽 어깨를 깊숙하게 베어냈다. 그리고 그런 여포의 공격에 당황한 장패는 뒤로 성급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그제야 그림자의 형태를 하고 있는 여포의 실루엣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다··· 당신은?” -네 주인을 잊어 버리지는 않았구나. 여포의 목소리를 들은 장패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여··. 여장군····?” -왜 배신했느냐? 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 “···············.” -별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말이야. 여포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선고를 내리듯이 화극을 내리쳤다. 여포의 경우는 무술 수준뿐만이 아니라 그 레벨도 장패보다 훨씬 더 높았다. “크윽···.” 장패는 서둘러서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여포의 화극은 마치 뱀처럼 쫓아와서 장패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띠리링!! [장패가 있는 함선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다음 배로 넘어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정운은 여포의 일격으로 인해서 이 배의 클리어를 확인 받았다. “후우···. 배 하나 클리어 하는데 걸린 시간이··· 한 시간이 훌쩍 넘었네” 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페이스는 반갑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이겼고 이제는 피해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부상자 있습니까?” 정운이 미리 부상자의 존재유무를 물었다. 그러자 몇 명의 유저들이 약간의 상처를 입은 것을 확인했다. “슬기야. 치료해 줘.” “예. 알았어요 정운씨.” 정운은 슬기에게 부상자의 치료를 부탁하고 자신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했다. “일단 부상을 치료하고 정신력도 회복한 후에 이동합니다. 모두 푹 쉬어요.” 시간제한이 없는 이상 빠르게 전진하는 것 보다는 안전하게 전진 하는게 중요했다.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에 들어가려고 하는 그 순간···. 띠리링!! [배를 클리어 한 시점에서 다음 배로 10분안에 이동해야 합니다. 이미 한 번 클리어 한 배로는 다시는 돌아 올 수 없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떴다. “······빌어먹을, 이렇게 중요한 것은 진작 말하라고···. 이 치사한 새끼들···.” 정운은 이를 갈았다. 이건 어째 상황이 더 심각해 져다. 원래 생각대로는 정신력의 소모를 막기 위해서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클리어하고 다음 배로 넘어갈 때는 최대한 회복을 한 후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 했졌다. ============================ 작품 후기 ============================ 조조를 카이사르보다 어렵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주제로 머리를 좀 굴렸습니다. 차라리 조조가 먼저 나오는게 맞지 않았을까? 라고 할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문득 생각났죠. 조조하면 인재. 인재 오타쿠라고 할 정도로 인재 욕심이 과했던 조조의 그 인재 풀이야 말로 조조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조군의 장수들 전원이 호위하는 시스템을 한 번 만들어서 적벽대전하고 맞물리게 만든 것입니다. 뭐... 이만하면 카이사르보다는 난이도가 높아 보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14화 체력은 몰라도 정신력의 소모는 아이템이나 회복 스킬로 어떻게 되는게 아닌데 말이다. “어떻게 할까요? 마스터.” 세레나가 정운에게 말하자 정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휴식 시간은 8분. 그 안에 쉴 수 있는 만큼은 쉬어들 둬. 그리고 다음 배에서 부터는 팀을 반으로 나눠서 반은 수비를 겸한 휴식, 나머지 반은 본격적으로 공격에 가담한다.” 정운은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휴식을 취하고, 그리고 다음 레이드부터는 전력을 온존하는 방식으로 싸우기로 했다. ‘망할··. 휴식 시간제한이라··. 연속된 레이드로 유저들을 지쳐서 나가 떨어지게 하겠다는 건가?’ 방식 자체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무척 효율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이 레이드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강적들을 피해서 최대한 빠르게 조조를 잡는게 최선이었다. 조조를 잡기 위해서 정운은 휴식 후에 다시 다음 배로 이동했다. 다음 배에서도 역시나 조조군이 장수가 한명 나왔다. “누구냐!!? 감히 내 영역에 들어온 놈이!!!” 후한말의 장수들은 등빨로 뽑았던 걸까?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다음 장수도 상당한 거구였다. 동양인 치고는 커다란 체격으로 190은 넘어 보이는 시장이었다. 정운은 바로 적의 정보를 ME로 찍어봤다. 고람 LV. 190~195 [원래 원소군의 장수로 상당한 용장이었다. 다만 곽도의 모함으로 인해서 주군에게 내쳐질 위기에 처하자 장합과 함께 조조군에 귀순했다 후일 유비군의 유벽을 쓰러트렸으나 그 후에 따라온 조운에게 패하야 죽었다] “호오···. 약점을 알아서 알려주니 편한걸? 조운.” 정운은 바로 조운을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저 놈을 기억하나? 너한테 졌다고 나오는데?” 정운의 말에 흘깃 고람을 바라보다가 아리송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전장에서 싸운 상대가 워낙에 많아서····. 조운의 말을 듣고 정운은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람에게는 억울하겠지만 후한 말에 조운하고 싸우다 죽은 무장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다만 고람은 그걸 듣고 엄청 화가 났다. “네 이놈 조운!!! 죽어서도 날 욕되기 한단 말이냐!!!?” 고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큰 칼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정운은 그런 고람을 보면서 조운에게 말했다. “30분 안에 처리해라. 할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주군. 정운은 그렇게 조운에게 고람을 맡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변의 잡병들을 처리해 갔다. “저리 꺼져라!!!” “일기토에 끼어들지 마라!!!” 이 레이드의 조조군은 이 전의 로마 군단처럼 강력한 연합 스킬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만··. 무척 끈질겼고 포기를 모르는게 짜증이 날 뿐이었다. 더구나 이 배라는 한정된 공간의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병사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병사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아마도 장수를 쓰러트리기 전에는 계속해서 병사들을 상대해야 하는 시스템인 모양이다. 고람은 이전의 장패 보다는 좀 더 강한 장수 같았다. 하지만 그것 뿐. 조운이 섬광처럼 창을 쓰기 시작하자 이내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실제 세계라면 몇 방이나 치명상이 될 공격이 적중 되면서 점점 체력 게이지가 달아갔다. “크으윽···. 조운!!!!!” -미안하군. 난 정말로 네가 기억나지 않아. 조운은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면서 마무리 공격을 찔러 넣었다. 이제까지 흐릿하게 보이던 조운의 창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저 고람의 몸에 공격이 작렬하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퍽!!!! “크윽····. 으으····.” 결국 고람은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살아서 당하지 못한 상대를 죽어서 한 번 더 만회할 기회를 얻었으나···. 그 기회를 잡을 실력이 그에게는 부족했다. “우와····. 방금 몇 발이 들어간 거야?” “글쎄···? 다섯 발 까지는 샜는데···.” 휴식을 겸하면서 몇몇 지켜보고 있던 유저들은 조운의 창이 말 고람의 몸을 벌집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방금 조운은 한 호흡에 12번의 창을 찔렀다. 지금 그걸 다 확인한 유저는 정운과 세레나 정도 밖에는 없었다. 영국의 NO.2인 마이클 핸더슨도 방금 그 공격을 다 보지는 못했다. ‘···저기 그냥 소환수라고··. 박정운 저 사람은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군····.’ 마이클 핸더슨은 자기 팀이 아니라 다른 팀인 정운이 점점 더 강해져가는 것을 보고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붕붕 흔들며 그런 생각을 지웠다. 팀은 다르지만 정운은 한우리 연맹의 리더다.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면 지금은 아군의 전력 상승을 순수하게 기뻐해야 한다. 라는 마음을 먹었다. 애당초 누군가를 질투하고 미워하기에는 이 마이클 핸더슨이라는 남자가 너무 고지식할 정도로 올발랐다. 고람을 클리어하고 들어간 다음 배에 있는 사람은 전예라는 남자였다. 부하는 주군을 닮아간다고···. 조조군의 장수들 중에 반절 가량은 조조처럼 미래 지향적이고 스스로의 입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야망가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반절은 조조라는 희대의 군웅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추종자들이었다. 다만 이 전예라는 남자는 그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초기에 유비가 의병을 일으켰을 때 잠시 유비의 밑에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 후에 공손찬을 섬기면서 실적을 쌓았다. 그리고 공손찬이 멸망한 후에야 조조를 섬겼는데 딱히 뛰어난 공적을 세우거나 조조의 눈에 들어서 한 번에 출세 하는게 아니라 현령부터 시작해서 태수까지 차근차근 역임하며 그 임무를 다했다. 조비의 즉위 이후에는 지방의 반란을 토벌하기도 하고 흉노족을 토벌해서 변방을 안정시켰다. 자기 관할의 백성들에게 인망이 높았고 후일 여남태수 겸 중랑장까지 출세했다. 뭐랄까···. 일평생 그른 일을 하지 않았고 자기 관할의 백성들을 자기 자식처럼 챙긴 의로운 자였다. 조조군의 장수들 중에는 조조의 명령이라면 황후의 머리채도 잡아끌어 오는 장수들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조군의 장수들 중에는 상당히 드문 타입이었다. 전란의 시대에 태어난 무장 답지 않게 향년 82세로 상당히 장수하기도 했다. 그는 정운을 보면서 말없이 자기 창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와라!!!” “···그러고 싶지만 힘을 아껴야 해서 말이야. 대신 이 친구가 대접해 줄 거다. 관우!!” -옛. 주군!! 그렇게 전예는 정운이 소환한 관우와 10여 합을 겨루다가 청룡언월도에 목이 날아갔다. 레벨이 170 언저리였던 것을 생각하면 10여 합도 잘 버틴 것이다. 전예를 쓰러트리고 유저들은 짧은 휴식을 가지면서 말했다. “이거 그렇게 심각한 상황 같지는 않은데?” “그렇지? 준 보스몹인 장수들이 레벨은 높은데 가지고 있는 스킬이 거의 없어.” “스킬이 없다면···. 사실 그 레벨에 어울리는 강함이 없는 거지.” “그렇게 말이야.” 아군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속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방심했어···.’ 정운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운의 부하인 그림자의 장수들이 대활약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저렇게 방심해서는 의미가 없다. 솔직히 지금까지 나온 장수들 자체가 조조군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수들이 아니었다. 장패, 고람, 전예···. 그들이 나쁜 수준의 장수인 것은 아니지만 그 격동의 전란기에서 이들이 초일류로 이름을 남긴것도 아니었다. 조조군의 진짜 초일류 장수들인 장합, 허저, 하후돈, 장료 등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정운은 가능하면 그들을 안 만나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두 피해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좀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회의적인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다음 배로 갔을 때···. 정운의 앞을 가로 막은 장수는 이제까지의 장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름값을 가지고 있는 장수였다.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빛. 쓸데 없이 엄청 크지는 않지만 척 봐도 탄탄한 근육으로 똘똘 뭉친 체형···. 그리고 무엇보다 분위기 자체가 이제까지의 장수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리고 그는 정운의 팀을 보자마자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장합이다. 덤빌 녀석은 누구냐?” 부하들을 데리고 한 자루의 긴 장창을 꼬나든 장수의 이름은 장합. 조조군의 장수들 중에서도 순위권에 들어 있는 진정한 에이스급인 장수였다. “이런 클래스가 언젠가는 걸릴 줄 알았지···.” 역사에 자세한 정운은 아니지만 그런 정운도 장합이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마속을 울면서 참하게 만든 기정 전투에서의 상대를 사마의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다. 제갈량의 라이벌 역할인 사마의를 더 띄워주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 뿐. 실제로 그 기정 전투에서 마속을 패배시킨 것은 이 장합이었다. 일신의 무위에 부족함이 없으며 지략에도 재능이 출중한 장수였다정운은 일단 ME를 찍어서 상대방의 레벨을 살펴봤다. 장합 LV. 190~210 [원래 원소군의 휘하였지만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책사인 곽도와 대립해서 홀대 당한다. 후에 원소의 패전 이후로 곽도가 장합이 원소의 패배를 기뻐했다는 헛소문을 퍼트리자 결국 주인을 바꾸기 위해 조조군에 항복한다. 그 후 조조군의 휘하로 들어가서 맹활약 하였다. 마초와의 전투와 장로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한중에서 장비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그 후에도 조조의 신임이 흔들리지 않아 한중과 장안의 길목에 있는 진창에 주둔했다. 실질적으로 위나라에 있어서 촉의 공세를 막는 최전선의 방패 역할을 수행했으며 유비가 가장 두려워했고 제갈량이 가장 경계하는 장수중에 한명이다.] “·····역시, 괴물이다 이거군.” ME에 드러난 정보만 봐도 이제까지 상대했던 장수들과는 격이 달랐다. 레벨만 해도 190에서 210사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림자의 장수들을 불러도 이제까지처럼 압도적으로 레벨의 차이로 누르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정해져 있지. 장비!!” -옛!! 주군!!! 장비, 한중 전투에서 장합을 이긴 전과가 있는 장수가 정운에게 있었다. 정운은 단번에 장비에게 명령했다. “저 놈을 쳐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비는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장팔사모를 꼬나쥐고 장합에게 달려들었다. -네 이놈 장합아!!!! 생전에 혼쭐이 덜 났구나!!!? 장비가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드는 것을 보고 이제까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장합의 얼굴이 변했다. “그 목소리는···. 장비 익덕!!?” -바로 맞췄다!!!! “···죽어랏!!!!” 콰아아앙!!!! 장팔사모와 장합의 장창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장합과 장비의 일기토가 시작되고··. 주변의 병사들은 이내 유저들을 향해서 물밀 듯이 밀려왔다. 당연하지만 그걸 그냥 보고 당할 리는 없었다. “끼어들지 못하게 막아랏!!!” “일기토를 유지하게 하면서··. 병사들을 상대해라!!!” 정운이 그림자의 장수를 써서 적장인 장합을 상대하는 동안 다른 유저들도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 병사들을 상대하랴. 전력을 온전하기 위해서 한걸음 물러서서 쉬고 있는 아군을 보호하랴··. 이리저리 바빴다. 하지만 그런 주변 상황들은 상관없다는 듯이 장합과 장비는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자신들만의 세계에 젖어 들어갔다. 둘은 악에 받힌것 처럼 서로를 향해서 죽일듯이 다려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둘은 오로지 상대 밖에 보이지 않는것 같았다. “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앙!!!! 장합의 경우 이제까지의 장수들과는 달리 명확하게 스킬이 있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15화 <위기속의 만남> 장합의 장창에는 붉은 기운의 기공이 서려져 있었는데···. 장비가 정운의 스킬인 뇌신강림을 사용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진작 승부가 났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아마도 이제까지의 장수들과 달리 장합 정도의 클래스가 되니 나름 유니크 스킬 급의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장합이 장창을 거칠게 휘두르면서 장비에게 말했다. “네 술주정뱅이야!!! 죽어서도 내 앞에 나타나다니!! 지겹지도 않느냐!!?” -내가 할 말이다. 이 놈아!!!!! 장비의 장팔사모와 장합의 장창은 거칠게 굉음을 내면서 부딪쳤다. 원래 이 둘은 한중 전투에서 서로 질리도록 싸워본 사이였다. 실제 삼국지에서는 장비가 장합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략으로 이겼다고 나오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 되었고···. 마지막에 장합이 진형을 잘못 선택한 것이 패착이 되어서 패배했을 뿐이었다. 장합이 산간 지역의 높은 고지대를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먼저 차지했다. 그러자 장비는 그 산간 지역을 모두 포위해서 보급로를 끊어 버렸다. 그게 이 둘 간의 한중에서의 전투에서 승패를 가른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결국 보급이 끊어진 상황에서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장합은 평소라면 절대 낚이지 않을 장비의 유인책이 걸려들었고···. 그 한 순간의 판단으로 장합은 장비의 계략에 당한 대표적인 장수. 라는 약간 불명예 스러운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사실 이때의 패전은 장합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최악의 패전이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촉에게 한중이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 처했었다. 실제로 그는 군령에 의해서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있었지만···. 장합의 재능을 믿은 조조는 승패는 그때의 운이라고 위로하면서 직접 장합의 사면령을 내렸다. 결국 그로 인해서 장합은 생명을 이어나갔고 후일 조조의 아들인 조비를 거쳐서 조예에 이르기까지 현역으로 활동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좀 아이러니 한 것은····. 후일 장합의 상대가 되는 마속 역시 기정 전투에서였다. 그 전투에서 마속은 먼저 고지대의 유리함을 점하려고 진지를 차렸고, 그때 장합은 오래전에 자기가 당했던 것을 그대로 활용했다. 적을 포위해서 말려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인생에 최대 최악의 패배라고 할 수 있는 전투에서조차 교훈을 얻고, 기필코 그 교훈을 살리는 남자. 그게 장합이라는 장수였던 것이다. 정운도 그렇게 장합이라는 장수의 전략의 우수성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개인의 무위조차 장비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상대일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군···. 하나 더 붙일까?” 가능하면 정신력의 소모를 아끼기 위해서 하나의 관문을 돌파할 때는 하나의 장수만 쓰려고 했던 정운이다. 하지만 상대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자 다른 장수를 덧붙였다. “관우, 마초!! 끝장을 내라!!” -옛!! 주군!! -옛!! 주군!! 정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 장수는 주저 없이 장합을 향해서 덤벼들었다. -어디를 보느냐!!? -나도 있다!!! 범 같은 장수들이 세 명이나 덤벼들자 이윽고 장합의 팔 다리도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비겁한 놈들!!!!!” 소리치는 장합을 보며 장비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전쟁터에서 정정당당을 찾느냐? 나하고 싸울 때 넌 뒤통수 치는게 특기였어!!!! -백 번 맞는 말!! -이건 무인간의 결투가 아니다!!! 그림자의 장수들은 의외라고 느낄 정도로 합공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 그리고 장합 역시 그 말에 별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을 봐서는 별 이견은 없는 모양이다. 사실 하나가 안 되면 둘이서··. 둘이서 안 되면 셋이서···. 예전에 여포가 호로관에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협공을 당한 사례가 있는 것 처럼··. 전쟁터에서 협공은 비겁도 뭣도 아니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이다. 전위와 허저 역시 여포를 상대로 협공을 했던 전과가 있었고 조운을 상대로 장판파에서 달려들었던 장수는 몇 명인지 샐 수도 없었다. 후 한말의 전쟁터에서 유일하게 합공을 해보지 않은 장수는 아마 여포 정도일 것이다. “크으···. 제길.” 확실히 관우, 장비, 마초의 합공은 장합 혼자서 감장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장합은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적의 칼날이 스치기 시작했다. “크윽···. 좋다!!! 네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장합의 온 몸에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서리기 시작했다. “저건···. 설마?” 정운은 저게 어떤 기운인지 알고 있다. “빌어먹을··. 모두 숙여!!!!” 정운은 그렇게 소리치고 자신은 직접 장합에게 달려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받아랏!!!!!” 퍼어어어엉!!!! 눈부신 붉은 빛과 함께 장합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졌다. 장합은 그대로 자폭을 해 버린 것이다레벨 200대의 보스몹··.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준 보스몹이지만 어쨌든 장합은 자폭해 버렸다. 정운은 그 전에 장합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나마 자신에게 밀려오는 공격의 여파를 다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크으윽······.” 정운은 온몸이 뻐근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대미지는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큰 대미지를 받은 정운이 이 정도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모두 괜찮아!!? 대미지 크게 입은 사람!!?” “괜찮습니다.” “저도요.” “우리도 무사해요.” 정운의 확인 질문에 일단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몇 명의 유저들은 상당한 대미지를 입은 것 같았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슬기에게 말했다. “쯧···. 슬기야. 부상자들 치료 해 줘.” “예. 정운씨.” 슬기는 치료를 시작했고 정운은 주변을 향해서 말했다. “앞으로 9분간 휴식. 그 후에 다시 전진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정운 자신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본격적으로 쉬기 시작했다. ‘이런 페이스로 괜찮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이번 전투에서는 정운도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했다. 아마도 평소를 100으로 본다면 지금 정신력의 잔량은 80정도 될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 이런 전투가 계속된다면 좀처럼 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레이드를 할 수 있을까? “후우···. 최악의 상황에서는 후퇴도 생각을 해 봐야····. 음!!!” 그 순간·····. 정운은 몹시도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인질이 한 명 잡혀있기는 하지만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후퇴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다. 다만···. 그 후퇴를 염두해 두기 시작하자 깨달은 것인데···. 이 전투에서 후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빌어먹을·····. 왜 그걸 이제야····.” 정운은 자신이 커다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배위에서 후퇴하는 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뒤로 돌아가려고 해도 어느 널빤지를 건너왔는지는 이미 잊어 버렸다. 한 번 지나오고 나면 마찬가지로 다른 배들은 모두 뿌연 안개에 감싸인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찌어찌 최초의 배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른다. 즉, 이 레이드는····. ‘후퇴가 불가능해. 도전한 이상 무조건 클리어하던가? 아니면 다 죽던가다.’ 정운은 마치 미지근한 물에 삶아지고 있는 개구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레이드 초반까지만 해도 정운은 조조의 레이드 조건은 카이사르보다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장수들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힘을 들이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리고 조조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고 그 와중에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힘이 빠지는 사막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거기다 이제 막 깨달은 절망적인 사실은 이제 후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팀을 나누지 말고 모두 몰려서 싸우는게 나을 뻔 했어.’ 그랬다면 정신력의 소모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무의미 한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이제는 어떻게든 차근차근 전진해 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정운은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가장 중요한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레나에게 귀뜸은 해 줬다. “세레나, 당신은 힘을 최대한 온전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렇게 해서 정운은 다시 한 번 정처 없이 다음 배로 다음 배로 이동을 거듭했다. 레이드가 계속 되면서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상당히 지쳐갔다. 이 놈의 조조군은 장수라는 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장합을 이기고 나서 도합 여섯의 장수를 더 클리어했다. 그들 모두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자들이었고 공략의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놈들이라고 해도 준보스몹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계속해서 그런 놈들과 싸우다 보니 정신력의 소모가 계속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저인 마자랭 콜베르가 말했다. “제길···. 차라리 한꺼번에 나오는게 나을지도···.” 그러자 듣고 있던 영국의 존 아브라함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레벨 180이상의 장수들이 한꺼번에 수백씩 밀려오면 이길 리가 없잖아?” “그냥 해 본 말이야. 그만큼 지금 상황이 답답하잖아?” “뭐야!? 지금 시비···.” “그만해요!! 남자들이 듬직하지 못하게 뭐 하는 겁니까?” 서로 부딪히려는 두 남자를 말린 것은 프랑스의 여성 유저인 클로디 지젤이었다. “·············.” “·············.” 남자라면 몰라도 가녀린 여성에게 그런 말을 듣자 두 남자도 일단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한 번 경직된 분위기는 풀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연맹의 유저들은 상당히 날카로워 져 있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의외로 속이 좁아서 자신이 핀치에 몰리면 그때는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이 잦다. 정운은 그런 유저들을 상대로 별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럴 때 내가 뭐라고 말해 봤자 역효과만 날 뿐이지.’ 자고로 윗사람이라고 해도 나설 때와 말아야 할 때를 잘 파악해야 했다. 무조건 자신이 나서서 다 해결하려고 하는 윗사람은 전체적으로 엄청 피곤하게 느껴질 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운의 간섭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희망이었다. 유저들 전원이 상당히 지쳐있는 지금··. 더 이상 조조가 나오지 않고 계속 부하들만 나온다면 그때는 절망감만이 더 진해질 뿐이다. 그리고···. 천우신조라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다음 배에서 일행은 처음으로 희망을 만났다. 그 배에 들어가자 상황 자체가 이제까지와 달랐다. 보스몹이 유유히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게 아니라··. 이미 한참 전투중인 것이었다. “제길!! 놓치지 마!!!” “박추성님!! 그쪽으로 갑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한창 전투중인 한우리 연맹의 박추성 팀이었다. “이건···?” “어··. 그러니까···?” 망설이는 동료들을 놔두고 정운은 바로 몸을 움직였다. “뇌신강림!!! 뇌광!!” 순간 다른 유저들은 정운의 몸이 번쩍 거리린다고 생각했다. 퍼어엉!!! 그리고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정운의 손에 의해서 완전히 박살이 난 한명의 장수였다. “언제·····?” “안 보였어. 아니 낌새도·····.” “······괴물이군.” 같은 편인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이 넋을 잃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이것이 바로 뇌광. 굉음이 울리는 것도 뒤늦은 절대 최속의 공격이며, 레일건의 원리를 기반으로 둔 정운의 신기술 뇌광의 한수였다. ============================ 작품 후기 ============================ 으워어어어..... 비축분 모아야 하는데.. 곧 본가 가야 하는데..... 진짜 아슬아슬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16화 “어!!? 정운아!!?” “···살았다. 다른 팀이다!!!” “하아···. 죽다 살았네···.” 정운의 합류를 한 박자 늦게 알아낸 박추성의 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적장의 목을 친 정운이 박추성에게 가서 말했다. “이 녀석은 누구였습니까? 제법 애 먹고 있던 것 같던데?”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금이라고 하더라. 정면으로 싸우면 금방인데 날 피해서 요리조리 도망치면서 아군을 노리더라고. 덕분에 애 좀 먹었지.” 우금, 이 남자도 조조군의 장수들 중에서도 상당한 이름값을 지닌 맹장중에 한명이었다. ‘그렇게 거물이었나?’ 박추성이 어느 정도 대미지를 입혀 놓은 상황이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한방에 잡혔기에 그런 거물인줄은 몰랐던 정운이었다. 어쨌든 잡았으니 다행이었다. 정운은 이제 박추성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사망자는 없나요?”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명.” “····그렇습니까?”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면서 설명했다. “후우···. 한 명은 이 전의 전투에서 하후연하고 싸우면서 발생했고 또 한명은 이번 전투에서 발생했다. 모두 인질을 하기 위해서 일반 필드에서 자원한 자들이야.” “그렇군요····.” 정운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 알았다면 일반 유저들은 그냥 처음의 배에 내버려 두고 오는게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박추성이 강해도 일반 유저들을 다 지켜주는 것은 불가능 했다. 사자들끼리 싸우는 와중에 병아리를 지켜가며 싸우는 격이 아닌가? 살짝 발톱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 병아리를 짓밟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령 거기 남겨 두고 온다고 해도 거기가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정운은 고개를 흔들어서 후회 가득한 상념을 떨쳐 버리고 박추성에게 말했다. “···지금 남은 전력이라도 잘 추스르죠.” “음··. 역시 지금부터는 함께 행동 하는게 좋겠지?” “예. 형님은 몇이나 쓰러트렸습니까?” “이번에 우금까지 포함하면··. 열 명 조금 넘나?” “저희도 그 정도 됩니다. 조조군의 장수라고 해도 나온 놈이 또 나오는게 아니라면 슬슬 한계가 올 거에요.” “···너하고 내가 번갈아가면서 쉬며 준비하자.” “예.” 정운과 박추성의 팀은 그렇게 함께 만나서 조조를 향해서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정운은 애당초 이번 레이드의 작전 구상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운은 이번 레이드부터 정식으로 팀을 나눠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전력을 분산 시켜서 싸우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팀을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팀을 나눠서 지휘권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전력을 평균화 시킨다. 그게 정운이 팀을 나누면서 생각한 이유였다. 한곳에 많은 전력을 집중 시키는 것 보다는 그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정운의 경험상 맞았다. 그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작전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는가? 이 조조전 레이드를 위해서는 차라리 전력을 집중 시켜서 힘껏 돌격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평소와 같은 대응법으로 대응하려고 한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제라도 정운의 팀은 박추성의 팀과 만났다. 중간에 다른 팀과 또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확신 할 수 없는 행운에 계속 기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운과 박추성이 합류한 후로 일행의 전진은 비교적 순조로웠던 것이다. 일단 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박추성과 정운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힘을 온존 할 수 있었다. 또 전투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고 그로 인해서 다른 유저들도 어느 정도 힘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정운의 팀과 박추성의 팀이 서로 만났을 때 정신여력의 여력은 50%정도였다. 하지만 서로 힘을 합해서 적장들을 돌파하면서 조금씩이지만 여력을 모아서 힘을 회복했고··. 이제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평소에 비해서 80% 정도의 여력은 회복했다. 보스몹 레이드를 하기에는 좀 부족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회복한 편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아아앗!!!” 정운의 칼날이 가규의 목을 날려 버리는 것과 동시에 다음 배로 넘어갈 권리를 손에 넣었다. “후우···. 이제 좀 적당히 하고 나왔으면 하는데 말이야.” “일단 가 보죠···.” 정운과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배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배로 넘어간 순간···. 띠리링!! [보스몹의 영역인 조조의 공간에 들어왔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우렸다. “전원 전투 준비!!!” “방어를 최우선으로 해라!! 병아리들은 뒤로 숨어!!!” 정운과 박추성은 재빨리 팀원들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그런 일행의 앞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있는 한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내가 조맹덕이다.” “········.” “········.” 정운과 박추성은 그대로 조조를 보면서 몸을 긴장 시켰다. 겉보기에는 약간 키가 작은 평범한 남자로 보였다. 하지만 그 인상은 어딘지 모르게 예리한 나이프를 연상 시켰다. 잘 정련된 무인을 보면 그 무인은 한자루의 칼 같은 이미지를 품고 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멋지다. 강하다. 훌륭하다. 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조조라는 남자는 무기는 무기라도 강함을 드러낸 검이 아니라 작지만 날카로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나이프 같았다. 보고 있으면 강하다. 멋지다. 가 아니라·····. 위험하다. 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아마···, 저런 남자를 보고 말하는 거겠지? 카리스마가 있다. 라고···.’ 정운은 일단 살짝 ME를 꺼내서 조조의 데이터를 확인해 봤다. 조조 LV.240~250 [위나라의 기틀을 마려한 희대의 간웅. 후한이 힘을 잃어가던 시대에 태어나서 두각을 드러내고 수많은 군웅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으로 떠오른다. 스스로 군략에 조예가 깊었고 인재를 아꼈다. 무엇보다 야망이 강하고 현실을 바라볼 줄 아는 시각과 미래를 꿈꾸는 이상의 균형이 탁월한 전형적인 군주형의 인간이다. 냉정하지만 사리를 알고 잔혹하지만 도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흠··· ME의 평가가 이렇게 불분명한 인가은 처음인데?” 악인이니 선인이니 분류 하는게 이상할 정도의 인물이 바로 조조였다. 삼국지에는 비교적 유비가 선역, 조조가 악역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조조를 마냥 악당 정도로 몰아가기에는 이 남자의 발자취가 너무 커다랗다. 그나마 동탁이나 이각 곽사 정도라면 악역으로 몬다고 해도 별 이견이 없겠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조조는 자기 나라를 제법 잘 다스렸다. 헌제를 향한 핍박이 있었고 그것이 조조의 악역 이미지를 확고하게 하는 기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걸로 조조를 마냥 악당 취급하는 것은 어렵다. 어차피 한은 망해가고 있었고··. 조조가 아니라 누가 되어도 한의 황제를 진짜 황제 취급 할 군주가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천하에 유표, 유장을 비롯해서 수많은 황실의 종친들이 자기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들 황실의 고난을 나 몰라라 했을 뿐이다. 그런 시기에 넓은 영역을 평정하고 그 영역 안에서 국력을 강성하게 하는 행위는 일개 폭군 따위가 할 수 있는 성과는 아니었다. 이 조조라는 남자는 그저 진취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패자(覇者)였을 뿐이다. 그 패도를 가로막는 자들에게야 악인이었겠지만 백성들 입장에서는 전란의 시대에 자국의 군주가 강력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일 뿐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중요한 것은 이 남자가 보스몹으로서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 가야?’ 정운은 아무말없이 싱긋 웃고만 있는 조조를 보면서 긴장했다. 카이사르의 경우를 봐도 알겠지만 생전의 행적은 약간의 연관성이 있을 뿐. 실제 보스몹으로서의 역량은 어떤 것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뭐 하지? 하루 종일 이렇게 눈싸움만 할 건가?” 조조각 정운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그러자 정운은 순간 울컥해서 튀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렸다. ‘도발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 뭔가 이유가···.’ 정운은 상대의 페이스를 자신에게로 끌어 들이기로 했다. 마침 정운에게는 좋은 패도 하나 있었다. “사람 하나 소개 시켜 줄까?” 정운이 빙긋 웃으면서 말하자 조조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무슨 극상의 미인이라도 있나?” “흥, 그거면 소개 시키겠냐? 그보다는 반가운 얼굴이기는 할 거야? 그렇지 않나? 관우.”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이오. 조승상. “··········그대인가?” 조조는 관우가 눈앞에 나타나자 처음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관우에 대한 조조의 집착은 유명했다. 원래 인재 욕심이 많은 조조였지만 그 조조가 끝끝내 손에 넣지 못한 인재가 있었다. 그게 바로 관우였다. 문무를 겸비한 능력, 우직한 성품,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 관우의 모든 것이 조조에게는 탐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조조가 관우를 손에 넣은 적은 없었다. 이 둘이 직접 얼굴을 마주했던 것은··. 공교롭게도 지금 조조가 구현화 시킨 적벽대전의 마지막 말미였다. 거기서 관우는 조조의 목을 거둘 기회가 있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놓아줬다. 그게 둘이 살아서 만난 마지막 면담이었던 것이다. -조승상. 이제 항복 하시오. 천하의 간웅이라고 불리던 자가 고작해야 파우스트 따위의 부하라니? 부끄럽지도 않소!!! 관우의 호통에 조조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여전하군···. 하긴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했지. 그 흔들리지 않는 신념. 강직함. 참으로 탐이 났어····.” -승상!!!“ “말은 그만하세. 자네들이 오지 않는다면, 좋다. 내가 하지.” 우우우웅!!! 조조의 발밑에서 뭔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떨어져라!!!” “전원 나하고 정운이 뒤로 붙어!!!” 조조의 발밑에서 심상치 않은 힘이 느껴지자 정운과 박추성은 일단 떨어져서 거리를 확보했다. ‘역시 뭔가 함정을 꾸미고 있었어···.’ 정운은 처음에 도발에 걸려들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조조 역시 충분히 뛰어는 전략가다. 눈앞에 무방비로 있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그 미끼를 덥석 물면 곤란하다. 다행이도 함정은 피했지만··. 그걸 뺀다고 해도 조조가 그렇게 만만한 보스몹일 것 같지는 않다. “일어나라. 또 다른 나들이여!!!” 조조가 그렇게 말하자 지면에서 몇십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보면 그 인간들 하나하나가 조조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 시작하자. 본격적인 전투를····.” 조조의 말에 한우리 연맹의 티원의 분위기는 크게 굳었다. 레벨 240이상의 보스몹이 수십? 이런 사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분신술?”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정운은 필드를 가득 매운 조조들을 보고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이건 혹시···.’ 분신술 치고는 하나하나가 너무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도플갱어 같은 소환수로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정운은 조조의 일화 가운데 한가지 생각난 것이 있었다. 바로 조조의 무덤에 관한 것이었다. 조조가 죽을 때···. 그는 유언으로 자신의 의총(疑?), 그러니까 가짜 무덤을 72기 만들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무덤을 파헤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실제로 조조의 무덤은 오랜 세월 동안 미스테리였다. 얼마나 꽁꽁 숨겼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17화 <본격적인 보스전>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는 미스터리는 이런저런 상상력을 부추기는 법이다. 덕분에 숨겨진 조조의 무덤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억측이 많았다. 실제로 조조는 그때 죽지 않고 나중에 죽었다거나··. 혹은 조조는 무덤을 만들지 않고 화장을 했다거나···. 어떤 사람은 조조가 그 무덤에 금은보화를 잔뜩 넣어놨으니 찾기만 하면 평생 써도 다 못 쓸 부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조조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 평생을 갖다 바친 중국인도 꽤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숨겼는지 결국 조조의 무덤은 발견되지가 않았다. 2010년에 와서야 조조의 무덤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무덤 역시 상당한 진위여부를 두고 토론이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랜 시간 동안 조조의 무덤이라는 것은 미스테리 중에 하나였다. 즉, 지금 여기에 있는 수많은 조조들은 가짜··. 72명의 의총에서 일어난 가짜 조조를 상징하는 스킬인지도 모른다. 라고 정운은 생각했다. ‘뭐··. 사실 중요한 것은 연유가 아니지···. 문제는 이게 만만치 않다라는 거야.’ 정운은 뒤편을 향해서 말했다. “쯧···. 세레나, 슬기야.” “예. 마스터.” “왜요? 정운씨.” “너희 둘은 방어와 버프에 주력해!!! 다른 사람들과 뭉쳐서 오로지 방어만 하고 절대 끼어들지 마.” “마스터···.” “정운씨···.” 둘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항의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운은 단호하게 잘라서 그녀들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추성이 형님 빼고는 다 거슬려.” “·············.” “·············.” 정운은 그렇게 둘에게 단단히 못을 박았다. 평소에 둘을 극성스러울 정도로 챙기는 정운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그녀들을 후방으로 돌렸다. 저 조조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아군을 지키려면 방어의 핵으로 슬기와 세레나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격은···. “추성이 형님!!” “음···. 오랜만에 해 볼까?” 박추성이 정운과 발을 맞춰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파지지지직···. 샤르륵····. 정운의 전신에서 황금빛 번개가 방전되었고··. 박추성의 몸을 주변으로 빛을 반사하는 무한의 영사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런 둘을 보고 조조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멋지군····. 와라!!!” “오지마라고 해도····.” “간닷!!!!!” 콰아아앙!!!!! 그리고 정운과 박추성이 72인의 조조들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조조라고 하면 후한말의 군주들 중에서도 만능형의 인재로 평가 받는다. 원래 군주라는 자들은 신하보다 뛰어날 필요가 없다. 그저 뛰어난 신하들을 잘 다스리는 것이 훌륭한 군주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다른 군주들과 달리 상당히 전면에 나서서 직접 일을 처리하는 편이었다. 유비가 제갈량이 시키는 일이라면 일단 뭐든지 하고 보는 타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둘은 정말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조조는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도 지략이나 인재를 다루는 카리스마에 관해서는 삼국지의 군주들 중에서는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조조의 무위에 관해서는 그만큼 높게 평가받고 있지 않다. 사실 조조는 원래 장군 출신이다. 유비와 같이 황건적 토벌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기에 무장으로서의 공적도 의외로 낮지 않다. 특히, 그는 자신에게 투항한 무장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등용하는 것에 능숙했다. 무술에 전혀 문외한인 자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원소의 밑에서 홀대 당하고 있던 장합이나. 조조에게 투항하기 전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서황 등을 생각하면 조조의 무술에 대한 안목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것은··. 소위 말하는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는 조건이 이뤄 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조조 자신이 어느 정도 무인으로서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홀대 받던 무장들의 능력을 한 눈에 알아본 것이다. 물론 조조가 이전에 싸웠던 항우처럼 엄청난 무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는 무위도 무위지만 레벨의 고하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레벨 240이상의 보스몹인 조조가 72명? 솔직히 말해서 유저들 중에서 괴물 클래스인 박추성과 정운이라고 해도 상당히 버거웠다. “젠장····. 적당히 해라!!!!!” 박추성은 무한의 영사를 휘둘러서 눈앞에 있는 다섯 명의 조조를 절단 시키려고 했다. 촤아아아악!!! 걸리는 것은 뭐든지 잘라 버릴 것 같은 무한의 영사였지만 조조들의 몸을 가르지는 못했다. 약간의 대미지만 주었을 뿐···. “제기랄···. 저 붉은 오오라. 거슬려. “그러게 말입니다.” 정운도 박추성도 조조들에게 결정타를 쉽게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스킬의 다양성과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한 수 위의 무위로 공격을 적중 시키고는 있지만 조조의 방어력은 상당히 높았다. 특히 정운의 뇌신강림은 이전의 뇌천신공보다 두배는 더 효율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한방에 큰 대미지를 주기는 어려웠다. 그게 모두 조조의 몸에 서려있는 저 붉은 오오라 때문이었다. 오면서 몇몇 장수들이 쓰던 붉은 오오라···. 조조는 그걸 몇 배는 더 강력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었다. 붉은 기공을 전신에 두르고 있는 조조에게는 무한의 영사의 공격도···. 그리고 정운의 새로운 스킬인 뇌신강림으로 인한 스킬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72명의 조조들 중에 이제 고작 10명 정도가 죽었을 뿐이었다. 거기다 진짜 골 때리는 것은 이 다음에 일어났다조조는 정운과 박추성을 바라보면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우고 말했다. “흠···. 정말 제법이군. 내가 살아생전에 너희 같은 부하들이 몇 명만 있었다면 천하를 재패했을 텐데·····.” “시끄러!!!” “사람 짜증나게 하지 마!!” 조조는 정운과 박추성을 향해서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미 눈치챈 놈도 있겠지만···. 이건 내 의총에서 일어난 가짜들이다. 그게 뭘 뜻하는지 아냐?” “·············.” “·············.” 정운과 박추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과 별개로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은 들었다. ‘제길··,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강 예상이 가는게 더 싫다.’ ‘의총, 즉 가짜···. 뻔한 패턴이긴 한데····.’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둘을 보면서 조조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바로 이런 의미다.” 후웅!!! 조조가 다시 손을 들어 올리자 정운과 박추성이 박살을 냈던 숫자만큼의 조조들이 다시 나타났다. “빌어먹을····.” “개 같은····.” 정운과 박추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멀스멀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는 조조의 모습을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다. 역시나···.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뻔한 패턴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세월이 얼마인던가? 무한 재생···. 정석중에 정석이라고 할 만큼 뻔한 패턴이었다. 다만···, 뻔한 패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패턴인 것은 아니다. 아마도 저기 섞여 있는 진짜 조조를 한 방에 죽이거나··. 혹은 모든 가짜 조조를 동시에 박살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클리어가 불가능 할 것이다. 이런 패턴의 적들은 이미 몇 번이고 상대 해 번 정운과 박추성이었다. 다만···. 이런 까다로운 패턴의 적이 200레벨 이상의 보스몹으로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어떻게 할까?” 박추성의 말에 정운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뻔하잖아요···. 할 수 있는데 까지 해 봐야죠.” “그래··. 그렇게 해야지···.” 정운과 박추성은 다시 한 번 전의를 다졌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원래 유저들이 강력한 보스몹을 잡을 때 소모전으로 몰고가는 경향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스몹이 유저들을 상대로 노골적인 소모전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얄미운 것은···. 이게 반대로 당해보니 정말 뭐 같다는 거다. 직접 싸워보니 알겠다. 이 조조라는 적은 항우나 카이사르에 비해서 하나하나가 그렇게까지 막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하다는 얘기도 아니었다. 아마도 170대 이하의 유저들이라면 저 72개체의 몹들 중에 한 명도 상대하기 버거울 것이다. 슬기의 방어 마법과 세레나의 버프로 오로지 방어에만 주력하고 있는 아군을 생각하면 저 조조들은 무조건 정운과 박추성이 막아야 했다. “다시 간다!!!” “어디 끝까지 해 보자!!!” 정운과 박추성은 있는 힘껏 다시 달려들었다. 어쨌든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 할 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의 영사와 뇌신의 화신이 된 정운이 조조들을 상대로 날뛰었다. 거기에 조조들 역시 온 몸에 피처럼 붉은 오오라를 피워 올리면서 싸웠다. 사실 전황은 7대3 정도로 정운과 박추성이 불리했다. 개개인의 전력은 확고하게 이기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정운이나 박추성은 일대일에서 진짜 진가를 발휘하는 타입이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스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진가를 알려면 오로지 한 적에게 모든 전력을 집중 시켜야 했다. 그런 둘이 72명이나 되는 보스몹을 상대로 이렇게 분전하고 있는 것도 용한 일이었다. “·····위험한데···. 슬기, 내가 공격으로 가도 버틸 수 있겠어요?” “다른 분들이 도와주신다면··. 아니 하지만 당신의 공격은···.” “생각이 있어요. 비록 가능성은 50% 정도지만···.” “혹시 당신···?” 슬기는 세레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세레나 역시 일대일에 중점을 맞춘 유저였지만··. 그녀에게는 궁극의 섬멸기가 하나 있었다. 신의 철퇴 LV.7 (범위 700미터 안에 아군을 제외한 적들에게 대미지 30만의 충격을 가한다. 1주일에 1회만 사용 가능하다) 바로 이것이었다. 자주 사용할 기술이 아니라서 레벨의 전진은 더뎠지만 그래도 레이드 전에는 항상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내 신의 철퇴라면···. 저 상황에 뭔가 변화를 줄 수 있을지도 몰라.’ 세레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보스몹을 한 방에 쓰러트릴 정도는 아니었다. 광역기 치고 굉장한 위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보스몹을 상대로는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일격은 아니었다. 다만 일시적으로 모든 조조들의 대미지에 상당한 충격을 주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정운과 박추성의 체력이 고갈되면 만사가 끝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그 전에 뭔가 도박을 해보는 것이 정답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능할까? 신의 철퇴는 꼭 필요한 순간에 써야 효과가 극대화 되는 기술인데···.’ 세레나가 망설이는 것은 평소의 그녀가 이 기술을 쓸때는 항상 정운의 명령이 있었을 때 뿐이었기 때문이다. 독단으로 신의 철퇴를 사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보통 정운과 호흡을 맞춰가며 사용할 때도 신의 철퇴는 가능하면 끝내기나 몰이사냥의 라스트 한 방으로 쓰는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정운도 자신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쓰지 말라고 못을 박아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의 허락을 기다릴b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봐도 상황은 열세였으니···. “어떻게든 해 볼게요.” 세레나의 단호한 결의를 보며 슬기도 동참하기로 했다. “····알았어요. 그럼 나도 그 순간 공격으로 가세하죠. 그렇게 하면···.” “슬기야. 넌 빠져라.” 그때 슬기의 말을 자르면서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어느새 몇 명의 무리들을 이끌고 나타난 남자를 보고 슬기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대호 스승님····.” 그렇다. 한우리 연맹의 또 하나의 괴물. 배대호가 등장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조조의 능력을 어떤걸로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원래는 조조의 곁에 허저나 우금 같은 강력한 장수들을 측근으로 배치해서 장수들을 이용한 전투를 하는 보스몹을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보스몹의 밸런스가 한번에 와장창 무너져 버릴것 같아서 이렇게 분신 무한 소환이라는 설정을 붙였습니다. 근데 만들고 보니 이게 더 짜증날것 같기도 하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그나저나... 바로 오늘... 1부 완결까지 플롯이 완성 됐습니다. 아직 시기는 말씀 못 드리겠지만... 일단 이달 말? 혹은 다음달 중순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아직 조회수는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루즈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318화 배대호는 정운과 박추성과는 별개로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수많은 무장들을 돌파해서 이 자리에 도착했다. 그는 약간 지친 기색이기는 했지만 아직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여력은 있었다. “세레나. 신의 철퇴는 내가 신호하면 날려.” “예? 예····.” 배대호는 나타나자마자 그 명석한 머리로 전황을 단번에 파악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수많은 조조군단을 한 번에 박살낼 광역기였다. 그리고···. 정운이나 박추성과 달리 배대호는 오히려 그쪽이 훨씬 더 전공이었다. 공격의 화력 하나만 놓고 보면 그라운드 제로 최강의 유저. 그게 바로 배대호라는 남자인 것이다. ‘후우우····. 좀 어질어질하군···. 잘 해봐야 화끈하게 한 방 날리는 것 정도가 한계겠어···.’ 배대호는 이미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여기까지오는것만 해도 충분히 힘들었다. 스스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지금 남은 한방은 절대로 함부로 낭비 할 수 없었다. 우우우우웅····. 배대호의 몸이 위로 서서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몸을 중심으로 마력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강렬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저건···? 대호?” “뭐··. 하려는 거죠?” 정운과 박추성은 배대호를 발견하고 그가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다. 박추성은 배대호를 보면서 말했다. “나도 몰라. 저 녀석은 오리지널 스킬이 너무 많아서···. 이크!!!” 잠시 배대호를 보기위해 한눈을 팔았던 박추성을 향해서 조조가 검을 뻗었다. 박추성은 그 공격을 피하고 무한의 영사로 그 조조의 목을 댕겅 잘라 버렸다. “칫···. 한 두 놈이면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그 한 두 놈을 줄여 봤자 금방 또 부활한다는 것이다. 역시 오리지널 조조를 잡거나 아니면 72명의 가짜 조조를 전부 동시에 박살내는 수밖에 없었다. “대호 형님이 합류했으니 문가 큰 거 한방이··. 어? 세레나!!?” 정운은 배대호 보다 먼저 움직이는 세레나를 확인했다. 원래 정운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던 세레나였지만 지금 배대호가 그녀에게 신호를 보냈다. “신의 철퇴!!” 세레나가 섬멸기인 신의 철퇴를 발동 시키자 하늘에서 황금색의 태양이 떨어졌다. “이건···?” “큰 거 옵니다. 놓치지 말고 광역 공격 준비해요!!” 정운은 지시한 적은 없었지만 일단 이 경우 뭘 해야 하는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콰아아아아앙!!!! 황금빛 태양은 지면에 작렬 하자···. 마치 수면에 퍼지는 파문처럼 금빛 오오라로 세상을 뒤 덮었다. 그리고 세레나의 공격에 대부분의 조조의 머리 위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떠올랐다. “크윽····. 이런 걸 가지고 있었나?” 오리지널 조조는 그럭저럭 여력이 있었지만 분신체인 조조들은 모두 심각한 대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그걸 놓치지 않고 정운은 활을 하늘로 향했다. “천뢰지망!!” 천뢰지망 (天雷蜘網) LV.MAX (사방 1,000미터에 걸쳐서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쳐진다.) 콰콰콰콰쾅!!!! 세레나의 공격인 신의 철퇴가 조용하고 장중한 일격이었다면···. 정운의 화살비는 마치 하늘이 분노해서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것처럼 사나웠다. 거기다 정운 한 명만 저러는 것도 아니었다. “만만밀밀!!!!” 만만밀밀(滿滿密密) LV.MAX (일정 공간안에 빼곡하게 무한의 영사로 인한 찌르기 공격을 내리게 한다. 공격 범위는 500미터에 달한다.) 무한의 영사가 빼곡한 안개비가 되어서 촘촘하게 쏟아졌다. “크으윽····.” “아아악!!!” 여기저기서 상당수의 조조가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체인 조조의 머리위에도 드디어 옐로우 크리스탈이 떠올랐다. “한 방 더 부족해!!” “누가 빨리!!!” 정운과 박추성이 안타까워 하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인가? 배대호가 드디어 준비하고 있던 자신의 공격을 발동 시켰다. “라이트닝 허리케인. 멀티 캐스팅!!!!” 그가 그렇게 말하자 손바닥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생겼다. 뇌전을 머금은 날카로운 바람의 소용돌이는 점점 더 강해지더니 이내 거대한 빌딩만큼이나 거대해 지기 시작했다. 웅! 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마치 거대한 믹서기를 돌리는 것 같은 굉음이 필드 전역에 울려 퍼졌다. 더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거대화된 소용돌이는 한 둘 씩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윽고는 거의 반경 1킬로미터 안에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백여 개 가까이 생겼다. “으으읏··. 저 자식 뭘 한 거야!!?” “저도 몰라요!!” 정운과 박추성은 다른 유저들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공격이었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 발동하니 그 범위 안에 있는 조조들이 모두 죽어 나가고 있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본체인 원래의 조조뿐이었다. 정운은 매와 같은 시력으로 그 조조의 머리위에 레드 크리스탈이 떠오르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즉각 온몸에 뇌신강림을 최대 출력까지 올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 파지지지직!!! 정운의 몸에서 황금빛 뇌전이 방전 되면서 주변에 뇌전이 뭉쳐서 생긴 거대한 황금색 거검들이 보였다. 뇌천신공과 아스트랄 소드가 합쳐져서 생긴 스킬의 효과였다. 스킬 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뇌신강림을 사용할 때는 자연스럽게 뇌전으로 이뤄진 거검들을 부리는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물론 위력이 더 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이제는 예전처럼 아스트랄 소드를 쓴다고 해도 그 후에 스킬을 쓰지 못하는 무력화의 리스크는 없어졌다. 뭐, 그거랑 별개로 정신력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함부로 남발 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정운은 손을 위로 들어서 거검을 위로 들었다. 수십 자루의 거검들이 하나로 뭉쳐서 날카로운 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뇌광····. 일섬!!!!” 부우우웅!!! 정운의 손이 뻗어가는 것과 동시에 한줄기의 광선이 발사되었다. 던진 것은 창이었지만 너무나 빠른 공격이 창의 궤도를 한 줄기의 레이저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퍼어어어엉!!! 레드 크리스탈이 뜨고 자폭 직전이던 조조에게 정운의 공격이 정통으로 작렬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전신을 세포 단위로 태워 버리는 정운의 뇌전은 조조역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날아간 뇌전의 창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무시무시한 뇌전을 방전 시키면서 적을 그대로 까맣게 태워 버렸다. “크으으····.” 결국 조조는 자폭이 실패하고 그대로 검은 숯 덩어리가 되어서 바닥으로 떨어져갔다. 정운은 그런 조조에게 다시 한 방을 먹이려고 했지만···. 띠리링!! [84충의 보스몹인 조조를 클리어 했습니다. 85층으로 올라갈 권리를 손에 넣었습니다.] 알림창을 들은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내렸다. 이제 더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잘 가라····.” 파삭!!! 정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조 역시 바닥에 떨어졌고 그 순간 검은 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운은 그렇게 85층으로 올라갈 권리를 손에 넣었다. “와아아!!!” “이겼다!!!” “승리했다!!! 한우리 연맹 만세!!!” 다른 곳에서 고군 분투 중이던 다이앤 여왕과 장 그레고리 공작, 그리고 이민지의 팀은 알림창이 뜨자 그제야 크게 안도하면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후우···.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죽다 살았군···.” 그들이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이번 레이드는 크게 힘들었다는 말이었다. 정말··. 정말 정말 힘든 레이드였다. 한우리 연맹의 84층 레이드. 이건 이제까지 했었던 수많은 레이드 중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 시켰다. 총 사망자 17명. 그 중에서 인질 역을 자청했던 병아리들이 12명, 포로 신분의 유저가 4명, 그리고 한 명은 영국의 유저 중에 한 명이 발생했다.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것도 다이앤 여왕이 이끌던 팀이었는데···. 그 팀에 배정 되었던 인질역의 일반 유저는 전멸하고 말았었다. 보통 레이드때 희생이 나오는 것은 비일비재··. 아니 그보다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월드 서버에서도 희생자 하나 없이 보스몹을 클리어하기도 했던 한우리 연맹으로서는 큰 희생이었다. 오랜만에 다수의 희생자가 나온 것을 생각하며 정운은 일단 연맹의 분위기를 다스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평소라면 85층으로 올라간 것을 축하하면서 연회라도 열면서 사기를 북돋았겠지만··. 이번에는 사망자가 발생한 팀원의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반 유저들을 향한 위로였다. 인질역의 생존자들에게는 그들이 느끼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보상을 해 줬다. 프랑스의 NO.2인 피에르는 그런 쪽으로는 빈틈이 없었다.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해서 잔뜩 겁을 먹었던 일반 유저들이 안면을 싹 바꿔서 만족할 정도라고 하니···. 뭘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하고도 남을 보상을 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은 조조를 잡고 나온 아이템을 정산했다. 조조를 잡고 나온 아이템 중에서는 별로 탐나는 물건은 없었다. 다만··. 위험한 물건은 하나 있었다. 자잘한 보상과 재료 아이템을 제외하고 완전품 아이템으로 나온 것은 세 개였다. 그 중에 하나가 정운이 보기에 엄청 위험해 보이는 아이템이었다. 우선 하나는 군주의 망토 라는 아이템이었다. 군주의 망토. 방어력 : 2,000 무게 : 0 내구력 : 무한 [혼자서 사용 할 때보다 파티를 맺어서 사용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 아이템이다. 파티원를 맺으면 그 파티원의 전원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100% 올라간다] 이 아이템이 누구에게 갈 지는 이견이 없었다. 버프 전문가인 세레나야 말로 이 아이템을 가장 잘 살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물론 세레나는 크게 만족했다. 일단 망토의 방어력이 2,000이라는 것은 드문 일이다. 뭐, 정운이 사용하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는 방어력이 20,000이기는 하지만 그건 정운의 그림자의 망토가 유니크 아이템이고, 또 그 유니크 아이템 중에서도 최상급의 아이템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망토 아이템의 방어력이 2,000이면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파티를 맺는 것만 해도 버프를 자동으로 걸어준다는 것만 해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 위에 세레나의 버프를 이중으로 걸면 더 큰 효과를 기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온 아이템은 무척 조조다운 아이템이었다. 바로 맹덕신서라는 아이템이었다. 맹덕신서 (특수아이템) [조조 맹덕이 직접 집필했다고 하는 병법서. 사용자의 정신력과 마력을 보조해주는 효과가 있다.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만 있어도 마력이 올라가고 정신력이 소폭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도 좋은 아이템이었다. 보통 착용하는 아이템은 동시에 복수를 가지기 힘들었지만 이 맹덕신서는 그저 인벤토리에 넣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 말은 기존의 아이템과의 마찰을 염두하지 않고도 아무 부담 없이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말이었다. 이 아이템도 한국 팀으로 돌아갔다. 배대호 만큼 이 아이템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팀의 메이지를 리스크 없이 강화할 기회가 온다면 현재 가장 강력한 메이지를 강화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 어느 나라의 팀도 이 아이템이 배대호에게 돌아가는 것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금 위험하다고 할까? ···뭐, 하여튼 그런 아이템이 나왔다. 전국옥새(傳國玉璽)라는 아이템이었다. 전국옥새(傳國玉璽) (특수 아이템) [사용하기에 따라서 어떤 상대라고 해도 절대 복종 시킬 수 있는 세뇌 아이템. 사용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대상이 되는 상대의 피를 채취한다. 2. 상대의 피를 전국옥새에 묻힌다. 3. 그 옥새로 상대방의 이마에 인장을 찍는다. 이상의 조건을 완수하면 상대는 진심으로 마음에 일어나는 충성심으로 사용자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다. 이 세뇌를 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 중에 하나를 완수해야 한다. 1. 사용자가 세뇌된 대상을 해방 시킨다. 2. 전국옥새를 부순다. 3. 전국 옥새를 이용한 새로운 주인이 중복으로 설정되면 기존의 주인을 향한 충성심은 부서진다. 이상의 조건이 수행되지 않는 이상 한 번 세뇌 된 사람의 마음은 절대로 변심하지 않는다.] ============================ 작품 후기 ============================ 전국옥새는 전투적인 아이템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로는 가장 강력한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19화 <엘프 자매의 습격> 전국옥새의 아이템 설명을 듣고 나서 정운은 생각했다. ‘이거···. 이거 위험하다.’ 정운의 생각대로 이건 상당히 무서운 아이템이었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성공만 한다면 사용하기에 따라서 레벨 1짜리의 초보가 박추성이나 배대호 같은 극강의 최강자들을 졸로 써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무섭지 않겠는가? 정운은 바로 이 아이템의 무서움을 알아봤고 절대로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자신이····. 혹은 슬기나 세레나가 이 아이템의 표적이 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사실 프랑스의 NO.2인 피에르는 이 전국옥새를 무척 탐냈다. 그는 자신이 연맹을 위해서 이 아이템을 가장 잘 쓸 수 있다고 말했었다. 확실히 냉철하고 이해득실을 분명하게 가르는 그라면 이 아이템을 연맹을 위해서 사용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운은 완강하게 그의 부탁을 부정했다.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넘겨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템의 위험성도 위험성이지만···. 그거랑 별개로 자신이 사용할 마음도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아이템····. 마음에 안 들어.’ 누구나 절대 양보 할 수 없는 도덕적 한계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정운에게는 이 전국옥새가 선을 확실하게 넘은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피에르는 정운의 완강한 저항에 한 발 물러났다. 대신에 그는 이번에 모든 아이템을 한국에서 가져갔으니 다음 85층 레이드에서는 한국팀은 아이템 분배에서 완전히 빠져라. 라는 사족을 다는 것에 성공했다. 사실 한우리 연맹에서 한국팀이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말은 다소 실례이기는 했다. 하지만···. 확실히 보스몹을 잡고 나온 아이템을 모두 독식한 것은 마음에 걸려서 정운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피에르의 말대로 하기로했다. ‘일단 전국옥새만큼은 지켰으니 뭐····.’ 그냥 이걸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도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정리를 다 하고 나서야 정운 자신도 85층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하아···. 연맹의 간부를 맡은 이후로 사냥 할 기회가 줄었단 말이야···. 이러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추월당하는 것 아니야?” 매일 같이 오토 돌리고 이미 200레벨 까지 찍은 주제에 잘도 저런 말을 하는 정운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분노 이전에 가증스러움을 느꼈으리라····. 어쨌든 오랜만에 필드에서 사냥을 하던 정운은 85층에서 사냥을 하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뭐랄까?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이제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어떤 것이 불현 듯 생각나는 그런 현상이었다. 대부분 그런 상황이 있지 않은가? 바쁜일 다 끝내놓고 보니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이 그제야 생각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내 퀘스트·····.” 그렇다. 정운은 84층에서 일리나라는 퀘스트를 다 클리어하고서는 보상만 안 받고 창조의 방으로 이동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다시 84층으로 가 볼까?” 정운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그 퀘스트 자체가 너무 정석적이었고 난이도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퀘스트가 아닌가? 일반 사냥보다는 확실히 뛰어난 보상이 있을 것이다. 라고 정운은 생각했다. “하아···. 어쩔 수 없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니 포탈을 타고 전진기지로, 그리고 다시 84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꼭 집 나오고 목적지에 다 왔는데 휴대폰 놔두고 가서 다시 집에 가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건 슬기의 잘못(?)이었다. 그녀가 정운에게 퀘스트가 어떤 것이었는지 말만 해 줘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정운은 다시 엘프 자매가 기다리고 있는 오크 마을로 이동했다. 결과는···. 헛걸음이었다. “역시 없나? 젠장···. 허공에 붕 떠버린 건가?” 가끔 있다. 보상을 제때 챙기지 않으면 그 보상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퀘스트가 말이다. “하아···. 결국 그 난리를 부리고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건 아닌가?” 정운은 문득 생각이 나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저번에 퀘스트 중에 얻은 돼지고기 삼종 세트가 있었다. 타이탄 멧돼지의 삼겹살. 타이탄 멧돼지의 목살. 타이탄 멧돼지의 갈빗살. “뭐···. 식용 아이템치고 이런 고급품은 처음이었으니까···. 이걸로 만족하기로 할까?” 정운은 고기들을 확인하고는 싱긋 웃었다. 원래 챙길 때부터 먹을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레벨 달성 때의 갑작스런 일로 인해서 인벤토리 한 구석에 가져다 넣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정운이었다. 양이 적어서 모두 함께 나눠 먹기에는 무리였지만···. 그래도 슬기나 세레나와 같이 요리해서 먹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 정운은 그렇게 기분 좋은 회식을 위해서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정운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일리나는 한국팀의 전진기지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즉, 그 말은····. “여기에요? 언니.” “그래···. 전에도 여기서 신세를 졌었어···.” “그렇군요···. 그럼 여기서?” “그래. 은인에게는 꼭 보상을 해야지.” 두 자매가 자력으로 찾아 오는게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일리나와 그녀의 동생 엘레나는 퀘스트의 완료를 성공 시키지 못하나 안절부절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들의 존재는 그녀들에게 부여된 퀘스트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다. 거기에 관한 집착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결국 한동안 쭉 기다리던 일리나는 동생을 데리고 일단 전에 정운과 함께 왔었던 한국팀의 전진기지로 이동했다.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두 자매가 그라운드 제로의 필드를 행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천천히 조심조심 이동을 거듭해서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서 마침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어? 당신은···?” “응? 너는······. 누구더라?” 한중겸은 이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인상 깊지는 않았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당신은 분명····. LTE급 어쩌고를 가지고 계신 분···.” “아아··. 그래. 기억났다. 그때 그 엘프 여자···.” 한중겸은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필 기억해도 그런걸 기억하냐?’ 어쨌든 이제 상대가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한중겸은 다시 한 번 일리나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야? 너희들 누구 소환수라도 된 거야?” 이미 퀘스트로 한 번 만났던 상대가 계속 눈에 보이면 소환수로 들어온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보통의 케이스가 아니었다. “아니요···. 그때 그 분이 도와주신 보답을 아직 하지 못해서····.” “보답? 퀘스트 클리어하고 그 녀석 아무것도 안 받은 건가?” 한중겸은 문득 그때 정운이 한동안 행방불명되었던 것을 생각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운이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 정운이 행방불명이 되었던 것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퀘스트의 보상을 받을 겨를도 없이 뭔가가 일어났던 모양이군···.’ 한중겸도 유저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었다. 약간의 힌트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한중겸은 두 엘프 자매에게 말했다. “알았어. 좀 있다 아는 사람 불러줄테니 일단 안으로 들어와서 기다려.” “예. 감사합니다. LTE급···.” “그거 그만해··. 제발···.” 한중겸은 자기 이미지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추락했는지 한탄했다. ‘아무래도 내 인생사는 법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하겠다.’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한중겸은 일리나 엘레나 자매를 정운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둘에게 말했다. “일단 기다리고 있어. 정운이 불러 올 테니까.” “예.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L····.” “하지 말라니까····.” 한중겸은 그렇게 두 자매를 방에 놔 두고 정운을 데리러 갔다. 한중겸이 정운을 찾아갔을 때. 정운은 마침 스카이 타운에서 전진기지로 바비큐 세트를 옮기고 있었다. “마늘, 쌈채소, 각종 소스, 숯에 불판과 화로까지···. 음, 완벽해.” 정운은 그 모든 것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이제 전진기지로 이동했다. 전진기지의 정운의 방에는 경치가 좋은 테라스가 있다. 거기서 바비큐 요리를 해서 슬기와 세레나와 함께 나눠 먹으려는 것이었다. “쯧, 좀 많이 나왔으면 다른 사람들하고 나눠 먹을 텐데···. 솔직히 너무 적게 나왔던 말이야.” 정운은 그게 좀 아쉬웠다. 잡기는 그 큰놈을 잡았는데 나온건 전체 덩치에 비하면 정말이지 너무 적게 나왔다. ‘이런걸 보면 게임은 게임이란 말이야.’ 원래 식용 아이템의 경우 그 레벨이 비싸면 비쌀수록 어마어마하게 맛있다. 예전에 잡았던 대게만 해도 그렇다. 그때 그 놈의 살맛을 한 번 보고 난 후로는 어지간한 갑각류들은 전부다 곤충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맛있었던 것이다. 당시 대게의 레벨은 110~120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정운이 잡은 타이탄 멧돼지의 레벨은 무려 190~195였다. 그만큼 맛에서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이거 세팅하고··. 그리고 슬기랑 세레나를 부르러····. 어?” 전진기지 안에 자신의 방의 문을 연 정운은 깜짝 놀랐다.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 것이다. “일리나····, 그리고········· 원 플러스 원?” “···············.” “애는 엘리나입니다.” 졸지에 덤 취급 받은 일리나의 동생 엘리나였다. “아···? 그래.” 어쨌든 갑작스런 두 자매의 출연으로 인해서 정운은 살짝 당황했다. 퀘스트를 회수하기 위해서 현장으로 갔지만 못 찾았던 둘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있다는 걸까? 당황하고 있는 정운에게 일리나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때 만났던 분이 친절하게 안내 해 주셨어요?” “그때··? 아아, 중겸이 형님? 뭐 이상한 짓 안 당했어?” 바로 그 말부터 나오는 정운이었다. 친한 형님이고 든든한 전우이지만 여자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엘프 자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아내만 해 주셨어요.” “그래··. 그런데 날 찾아온 용건은 뭐야?” 정운의 말에 일리나와 엘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때 저희 자매를 구해주신 보답으로 뭔가 보상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아··. 그래? 알았어. 줘.” 정운은 엘프 자매가 퀘스트의 보상을 준다고 하자 냉큼 받겠다고 했다. ‘아이템? 아니면 뭔가 가호 같은 것··. 정령이 깃든 아이템 같은게 가지고 싶은데 말이야···.’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스르륵··. 툭. 투툭. 두 엘프 자매의 옷이 그녀들의 살결을 스치면서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리고 정운의 눈앞에 백옥 같은 흰 피부를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두 엘프 자매가 부끄럽다는 듯이 서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입으면 말라 보이는 타입? 아니면 벗으면 굉장한 타입? ·····생각해 보니 그게 그거다.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가녀린 체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벗어보니 스랜더 체형이기는 하지만 결코 빈약하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있어야 할 만큰의 양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었다.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황금비율의 여체가 지금 정운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정운에게 언니인 일리나가 먼저 말했다. “저희들이 들릴 거라고는···. 이것 밖에는····.” “부디 받아 주세요····.” ============================ 작품 후기 ============================ 쉬어가는 챕터입니다. 실실 웃으면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을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320화 아름다운 여성들이 이런 부탁을 하면 보통 남자는 크게 기뻐하거나 아니면 심장이 두근 거리거나··. 뭐, 그런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정운은····. “젠장, 꽝이잖아.” 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아·····. 골치 아프게 하네···.” 정운은 두 자매의 나신을 눈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이템이나 보상스킬···. 아니 차라리 고기 싸먹게 특별한 쌈채소라도 주던지 할 것이지···. 왜 줘도 못 먹는 보상을·····.’ 정운은 속으로 심하게 투덜 거렸다. 현실 세계에서는 톱 모델들도 죽을 정도로 완벽한 슬랜더 바디의 두 미녀가 눈앞에 나체로 있다. 하지만···. 정운은 이미 슬기와 세레나라는 굳건한 골키퍼가 있는 상황이었다. 정운이 만약 여자들을 무차별 적으로 원하고 사랑하는 타입의 여자였다면···. 이 한우리 연맹은 한중겸이 둘이 된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른 남자 유저들이 간단하게 엔조이 정도의 관계를 가지는 경우는 흔했다. 항상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하루하루가 불안했고···. 그런 상황에서 남자를 위로하는 것에 여자들의 체온만큼 효과가 직빵인 것도 없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또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집념을 찾기 위해서 상당히 문란한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정운은 슬기를 만나기 전에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문시영의 배신이 가져온 여파도 있었지만 껏만은 아니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중에 여자에게 배신당하고도 멀쩡한 남자는 널리고 널렸다. 오히려 쓸데없는 복수심으로 더 심각하게 놀아나는 남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운 스스로 그런 식의 엔조이는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그런 종류의 관계는 취향이 아닌 것이다. 결국 지금 이 상황은···. 정운에게 있어서 그냥 꽝일 뿐이었다. 정운은 두 자매를 향해서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그런 보상은 필요 없어. 그보다··. 그냥 옷 입고 가라.”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두 엘프 자매는 몹시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런····?” “···저희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울상을 불쌍하게 말하는 두 자매를 보면서 정운은 담담하게 말했다. “응. 마음에 안 들어.” 너무나 태연하게 말 하는 정운이었다. 마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두 자매는 더욱더 울상을 지었다. 그녀들은 정운에게 보상을 줘야 했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뭔가 보상을··· 보상을 해야 하는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녀들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그라운드 제로에서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캐릭터들이었으니 말이다. “부탁이에요··. 뭐든지··. 뭐든지 시키는데로 할 게요···.” “부디 우리가 당신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예.” 그녀들은 이제 필사적이었다. 사슴 같은 눈망울을 촉촉하게 적시며 부탁하는 그녀들을 보자 정운도 약간은 죄책감이 들었다. ‘어쩌지···? 일단 퀘스트를 완수하지 않으면 계속 이 상태일 것 같은데····.’ 정운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결심은 확고한 거지?” “예.” “예.” “좋아···. 그럼, 너희들을 내가 좋을 대로 쓰기로 하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엘프들을 오연하게 내려다 봤다. 그리고 두 자매는 순간 후회감이 들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만큼 지금 정운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무서웠던 것이다.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밀실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에 섞여서 일리나와 엘레나 두 자매의 눈물 섞인 목소리도 함께 들리고 있었다. “하아····. 제발···. 이제 못 하겠어요····.” “저도··. 이제 그만 봐 주세요···. 흐윽····.” 두 자매는 정운에게 눈물 섞인 애원을 했다. 하지만 정운은 단호했다. “안 돼. 처음에 기회는 줬잖아?” “그건·····? 흑··· 흑흑···.” “너무해·····.” “이제 와서 빼면 어떻게 해?” 정운은 씨익 웃으면서 두 자매에게 말했다. “이거 밑 준비 다하기 전에는 가지 마. 안 그래도 혼자 하려니 피곤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정운은 바비큐에 쓸 양파와 각종 야채를 썰고 있었다. 그리고 두 자매는 고기를 양념에 절이고 식칼로 다지며 칼집을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들은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치만 저희 엘프는 육식을 못 한다고요··.” “맞아요. 거기 두들기는거 너무 힘들어요.” “고춧가루랑 양파 때문에 눈도 매워···. 히잉···.” 그렇다. 정운은 두 자매와 함께 바비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갈빗살은 폭립을 만들기 위해서 양념에 절이고 목살과 삼겹살은 적당히 썰어서 연하게 칼집을 내며 두들기고 있었다. 혼자 하려니 귀찮았는데 마침 일손이 두 개나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뭐··. 안 그러면 적당히 요리사 NPC에게 시키려고 했는데··. 이걸로 떨궈 낼 수 있다면 다행인거지.’ 정운은 그렇게 두 자매를 실컷 부려먹었다. 그리고는 밑 준비를 다 끝낸 정운은 두 자매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이제 보상 안 줘도 되니까 너희들은 그냥 집에 가라.” “·············.” “·············.”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축 늘어져 있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엘프들은 설정 상 육식을 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혐오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 그녀들에게 육요리의 밑 준비를 맡기는 것은 뭐랄까···. 인간 여자로 치면 바퀴벌레와 쥐가 가득한 바구니 안에 손을 집어넣고 10분간 참아.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이 자매들이 이렇게 축 늘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정운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고용주처럼 두 자매를 부려서 바비큐 준비를 마쳤다. “그럼··. 이제 슬슬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러 갈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와 세레나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정운이 나간 후에 정운읜 방에서는 부리나케 손을 씻으로 이동하는 엘프 자매들이 있었다. 한편···. 정운이 두 엘프 자매들과 함께 바비큐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슬기와 세레나는 전진기지에서 누군가와 함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한중겸이었다. 원래 슬기와 세레나가 전진기지의 전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하중겸이 낀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중겸은 태연하게 정운을 찾아서 두 명의 엘프 자매가 전진기지에 왔다고 말했다. “뭐··라고요? 정운씨한테 그 엘프 자매들이 찾아 왔다고요!!!?” 슬기는 한중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런 슬기에게 한중겸이 뭐 그게 놀랄 일이냐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뭐 잘 못 된 것 있니?” “아니··. 그게 그러니까···.” “슬기··. 이상하군요. 뭔가 마스터에게 위험이라도 닥친 건가요? 그런 상황인가요?” 세레나의 말에 슬기는 초조한 듯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말했다. “아니···. 위험이라면 위험일까···. 그게 그러니까···.” 슬기는 얼굴을 붉히면서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세레나와 달리 슬기는 그 두 엘프가 정운에게 눠래 주려고 하는 보상이 뭔지 알고 있었다. ‘설마··. 정운씨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슬기는 불안감 속에서 정운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그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슬기····. 말해 보세요. 뭐가 문제죠?” 세레나의 채근에 결국 슬기는 자기 혼자 감당하기는 문제가 버거워서 세레나까지 끌어들였다. “실은·····.” 슬기는 그 엘프 자매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NPC들이고 그녀들이 말하는 보상이라는 것이 어떤것인지 말했다. “그럼··? 잠깐 그럼 내가 안내한 그 엘프들은···.” “예. 그런 목적으로 온 거죠.” 슬기의 말에 한중겸은 순간 눈앞에 있는 두 명의 눈치를 봤다. ‘혹시 내가 잘못 할 걸까?’ 그걸 이제라도 아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때 세레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마스터를 믿도록 하죠.” 그녀의 말에 슬기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저도 믿고야 싶지만····. 이미 한 번 전례가 있잖아요.” “···········.” 세레나 앞에서 말하기는 좀 무거운 주제이기는 했지만 사실 슬기가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 잠시 생각하던 세레나가 말했다. “큼···.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번에는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마스터는 여자에 대해서는 절제를 할 줄 아는 분입니다. 여기 계신 한중겸씨하고는 좀 다르죠.” “난 왜 걸고 넘어져?” 한중겸은 격하게 항의했다. “분명 정운씨가 중겸 오라버니하고는 다르긴 하죠.” 다만 그게 먹히지 않을 뿐이었다. “슬기 너 까지····.” 슬기는 팔짜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래도 남자잖아요. 어떤 사소한 계기만으로도 중겸 오라버니처럼 그렇게 문란함에 눈을 뜰지도 몰라요.” “나 여기 있거든? 너희들 말 듣고 있거든?” 한중겸이 항의해 봤지만 이니 슬기와 세레나에게 그는 안중의 범위 밖으로 한참 이탈한 모양이다. “분명 인생을 한중겸씨 처럼 살면 문제긴 하죠. 하지만 마스터는 괜찮을 겁니다.” 이쯤 되면 필사적이다. 이제 거의 자존심 문제인 것이다. “나 진짜 여기 있다니까? 나 보이지? 내 목소리 들리지? 그렇지?” “·················.” “·················.” 슬기와 세레나는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졌다. 한중겸은 안중에도 없이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이미지가 참 중요한 모양이다. 세레나는 안절부절 못하는 슬기를 보면서 말했다. “나···. 때문에 좀 불안한건 알지만 걱정하지 말고 진정해요.”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차분한 거죠?” 슬기의 말에 세레나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마스터를 믿는 거죠. 왜냐하면····.” “왜냐하면?” 세레나는 살짝 망설였다가 얼굴에 조금 쑥스러운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상대가 나도 아니잖아요?” “··············.” “····미안해요. 농담이었는데····.” “아아아······.” 세레나의 그라운드 제로의 인생을 통 틀어서 처음으로 한 농담은 제대로 불발했다. ‘쯧, 저렇게 농담 했을 때 안 웃기면 몹시 무안하지.’ 얼굴까지 붉어진 세레나를 보면서 한중겸은 머리만 긁적 거렸다. 그리고 세 사람이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는 테이블로 정운이 찾아왔다. “아!! 여기 있었구나. 슬기야. 세레나.” 정운이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슬기는 정운을 눈앞에서 보자 그제야 약간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정운에게 말했다. “퀘스트 때문에 엘프 두 명이 찾아왔다면서요?” “응? 아아··. 걱정하지 마. 별것 아니야.” 정운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슬기는 그제야 표정이 누그러 졌다. “예······.” 지금 슬기의 눈앞에 보이는 정운의 얼굴은 정말로 찔리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약간 안도하고 있는 슬기에게 정운이 말했다. “마침 그때 퀘스트에서 얻은 보상(고기)이 있거든. 같이 즐기려고 준비를 다 해놨어?” 정운의 말이 나온 순간···. “········예!!?” “········예!!?” 슬기와 세레나가 동시에 총 맞은 비둘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옆에서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와우····. 정운이 너 치고는 굉장히 파격적인데?” “···········?” 정운은 한중겸이 왜 저렇게 말하는지 이해는 못했다. 하지만 그냥 중겸이 형님이니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지금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가 엘프 자매에 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덕분에 그녀들과의 대화에서의 오해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해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 작품 후기 ============================ 오해는 오해를 부르고... 이번 챕터의 주제는 오해로 잡았습니다. 제가 띄워 쓰기를 좀 조작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서 혹시 중간에 오해 하신 분들은 있나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21화 <오해의 끝> “정운씨···. 그 보상(엘프 자매)를··. 가·· 가··· 같이···. 즐기자고요?” 말까지 더듬는 슬기를 보고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마침 (바베큐) 준비도 다 끝내 놨어. 두 사람도 같이 가자.” “··············.” “··············.” “··············.” 정운의 말에 세 사람은 쇼크로 넋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준비? 무슨 준비?’ ‘마스터···? 혹시 도플갱어? 아니야··. 정말로 마스터인데?’ ‘드디어 브로도도 통달했나? 내 진도를 한참 넘은 것 같은데····?’ 이제 오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그리고 슬기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말··. 정말 그럴 생각이에요?” “어···? 어어···. 싫은거야? 뭐, 싫다면 대신에··. 중겸이 형님 같이 가실래요?” “나!? 야. 인마, 너 내 반경 5미터 밖으로 떨어져.” “·····왜요?” “몰라서 묻냐!!? 지금 네가 하려는 행위는 브로도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시추에이션이야. 떨어져. 빠리 떨어져.” “············?” 한중겸은 여차하면 정운과 싸울 것 같은 분위기였다. ‘····왜들 이러는 거지?’ 정운은 여전히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슬기는 이를 악물로 정운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같이 즐기자고요···.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슬기의 결연하기까지 한 말에 세레나는 깜짝 놀랐다. “슬기····.” “어쩔 수 없어요. 세레나, 이미 한 번 겪어봐서 알아요. 이건 여자로서의 전쟁이에요. 물러나지 않아요. 설령···. 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물러나지 않아요.” “····슬기·····. 알았어요. 저도 동참하죠.” “세레나····.” 슬기를 바라보는 세레나의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그녀는 슬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당신을 배신한 것은 한 번이면 족합니다. 그 후에는 절대로 당신을 혼자 싸우게 하지 않아요.” 슬기와 세레나는 이렇게 된 이상 엘프 자매에 맞서서 자기들 끼리 연합을 해서 정운의 마음을 다시 정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정운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의 태도에서 뭔가를 예측한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슬기는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씨···. 그럼, 잠시 후에 방에서 봐요.” “잠시 후?” “우리도 준비할게 있으니까요·······. 잠시 후에 찾아 갈게요.” 그리고 슬기와 세레나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보고 정운은 작은 목소리로 추리하듯이 중얼 거렸다. “여자들의 전쟁? 배신? 혹시······, 두 사람 다이어트 하나?” 오늘따라 눈치가 꽝인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한중겸이 말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보다···. 어? 저기 뒤편에 있는 애들 엘프 자매들 아니야? 너 찾아왔던?” 정운은 한중겸의 말대로 뒤편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일리나, 엘레나 자매가 있었다. “아아···. 그렇네요. 그럼 형님. 전 이만 갑니다.” “·····간다고? 저 자매는?” “·······할 일은 다 했는데요? 그냥 보내죠 뭐····.”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뒤에 남은 한중겸은 심각한 오해를 했다. “아무리 NPC라도 여자를 그런 식으로 다루면 쓰나····. 쯧, 어쩔 수 없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두 엘프 자매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똑똑···. 정운의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슬기니?” 정운의 말에 문 밖에서는 슬기의 못소리가 들렸다. “예. 들어가도 되요?” “그래. 들어와.” 정운은 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슬기와 세라나가 안에 들어온 순간·····. “····어어····? 너희들 왜 바비큐 먹으로 오면서 네글리제를 입은 거야?” 라고 말했다. 그렇다. 슬기와 세레나는 속이 다 비치는 하늘하늘한 네글리제를 입고왔다. 세레나는 눈부신 금발이 확 도드라져 보이는 검은색의 네글리제를··. 슬기는 그녀의 청초한 분위기가 살아나는 흰색의 실크 네글리제를 입고 왔다. 둘 다 정운이 무척 좋아하는 모습들이고 또 흑과 백이 어울어져 있으니 그거야···. 정운의 입장에서는 눈에 보약을 넘어 영약을 부어 넣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 고기 먹으로 와서 저런 모습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두 여자는 방안에 들어와서 테라스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정운을 보고 순간···. 그제야 자신들이 큰 오해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어···? 이건 그러니까····.” “으음··. 마스터 이건······.” 크게 당황한 둘을 보면서 정운이 중얼 거렸다. “····별 상관이야 없지만··. 테라스에서 거워 먹을건데····, 네글리제는 좀 춥지 않을까?” “···········.” “···········.” 정운의 말에 두 여자는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후일 이 사건은 입이 물에 동동 뜰만큼 가벼운 한중겸에 의해서 음란마귀 빙의사건이라고 연맹 내부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참고로····. 여담이지만 그 엘프 자매들이 어떻게 되었냐 하면·····. “하아···· 하아·····.” “아···. 하아····.” 침대에 벌거벗고 누워 있는 남자 하나에 여자 둘.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발은 총 여섯 개였다. 이쯤 되면 상황은 대강 파악 할 수 있었다. “으음···. 이건 민지한테 비밀로 해야 겠지?” 결국 보상(?)은 한중겸이 챙기게 되었다. 어쩌면 애당초 이런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우리 연맹이 85층까지 올라가 있는 동안··. 유니버스 연맹도 서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 했다. 다만···. 그들의 행보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 음산한 구석이 있었다. 우선 그 보스몹들을 상대로 어떻게 이겼는지 정보가 거의 없었다. 정보는 거의 없지만 그들은 한니발을이기고, 그 다음의 카이사르 역시 이겼다. 그리고는 현재 84층에 멈춰서 한우리 연맹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정운은 그들이 일부로 자신들을 앞장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여력이 충분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편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꺼림칙한 느낌은··. 북한팀이라는 자들이 합류하고 난 후부터 받기 시작 했어·····. 어떻게 된 걸까?’ 이런 의문이 생긴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정운은 스스로 북한팀을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접선을 시도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꽝이었다. 이전에는 정보도 교류하던 두 연맹이었지만 지금은 유니버스 연맹이 엄청나게 패쇄적으로 변했다.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꽁꽁 틀어 박혀서 이제는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있어··. 뭔가가···.’ 정운은 유니버스 연맹,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거기에 합류한 북한팀에 뭔가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었다. 뭔가 대응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가 너무 부족했다. 결국 지금 한우리 연맹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빨리 위로위로 올라가는 것 뿐이었다. 이제 80층대의 레이드도 어느 정도 익숙함이 생겼고···. 속력을 내서 본격적으로 레이드에 집중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정운이었다. 정운은 바로 다이앤 여왕과 장 그레고리 공작을 불러서 연맹의 회의를 열었다. 목적은 당연히 85층 레이드였다. “85층이라···.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닙니까? 바로 얼마 전에 84층을 클리어 했는데?” 장 그레고리 공작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우리 뒤에서 바짝 따라오고 있는 유니버스 연맹···. 놈들이 어쩐지 거슬립니다.” “············.” 정운의 말에 장 그레고리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 듯 보면 가벼운 이미지인 그이지만 그래도 의외로 중요한 부분에서는 신중하게 언사를 조심한다. 하지만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85층의 현재 보스몹···. 누구인지 아직 색적이 불가능 하다고 했죠?”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펼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85층의 보스몹···. 사실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확정을 못하고 있었다. 우선 보스몹의 필드는 거대한 신전이었다. 신전의 양식은 영화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 같은 그리스 양식이었고 말이다. 즉, 그 말은 그리스 왕조의 군주중에 한명이라는 말이다. 다만···. 힌트는 그게 다였다. 신전에 들어가려고 하면 보스룸에 진입하겠냐는 말만 나올 뿐. 딱히 보스몹의 호위를 하기 위해서 부하몹들이나 어떤 공격들이 날아오지는 않았다. 사실 그게 더 까다로웠다. 80층 대에 올라오고 나서 중요해진 것은 일단 적이 누구인지 아는데서 부터 시작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만 가지고 범위를 좁히기에는 상대가 너무 많았다. “그리스 왕조라···. 그거 왕, 아니 왕가 자체가 널리고 널린 거죠?” “예. 로마 제국에 밀리기 전에는 지중해 북쪽에서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고 북인도까지 널리 퍼진게 그리스 문화였으니까요.” “그렇군요. 잠깐? 방금····. 뭐라고 했죠?” 다이앤 여왕의 말을 들은 정운은 문득 머리를 스치고 어떤 이름 하나가 지나갔다. ‘잠깐···.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범위가 넓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정운은 어쩐지 85층의 보스모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거의 90% 이상의 확률로 한 명의 이름일 가능성이 높았다. 정운은 주저없이 둘에게 말했다. “레이드를 결정하죠. 아마도 85층의 보스몹의 이름은 ····· 일겁니다.” 정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순간 다이앤 여왕과 장 그레고리는 동시에 ‘아. 그렇구나.’ 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을 듣고 그리고 그 이유를 듣고 나니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역대 수많은 헬레니즘의 군주들 중에서도 지금 85층에 어울리는 것은 오로지 한 명 뿐이었다. 며칠 후···. 일행은 85층의 레이드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동했다. “정운씨···. 85층의 레이드 몹으로 누구를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가면서 묻는 슬기의 말에 정운이 대답했다. “난 사실··. 알렉산드로스 3세를 생각하고 있어.” “알렉산더 대왕? 그 사람 말이에요?” “응. 헬레니즘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그 사람이 정복 전쟁으로 자국의 문화를 여기저기 퍼트리면서 시작 됐거든.” “그런가요···.” “응. 그리고 위대한 전과에 비하면 인생 마지막이 그렇게 행복하지도 않아서···. 파우스트와 거래를 할 이유도 충분하지.” “····하지만 한을 품고 죽은 헬레니즘 문화권의 군주라면 좀 더 있지 않나요?” 슬기의 말대로 한을 품고 죽은 헬레니즘의 군주라면 얼마든지 더 있었다. 하지만 정운이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짐작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확신하는 이유는···. 여기가 그라운드 제로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85층이기 때문이야.” “···········?” 이해를 못하고 있는 슬기를 향해서 정운이 부가 설명을 덧 붙였다. “헬레니즘 군주는 많지만···. 그 중에서 항우나 한니발, 카이사르 같은 인간들과 이름을 견줄만한 사람은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거든.” “아아아····.” 슬기도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은 보스몹 지역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유니버스 연맹의 행동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지금은 일단·····. 응?’ 그때 정운은 자신의 전방에서 어떤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정운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들이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뭐지?” “방금···? 뭐가 일어난 것 같은데?” 유저들은 뭔가 이변을 느끼고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한 곳에는····. “유니버스 연맹?” “언제 여기에····.” 그곳에는 이미 익숙한 얼굴인 유니버스 연맹의 인간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얼굴이 익숙한 중국의 홍린이 정운을 맞이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결국 악마의 게임도 완결플롯을 따라 이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합니다. 1부 완결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두들 응원하시면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22화 <유니버스 연맹과의 마찰> 오랜만에 만난 홍린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해져 있었다. 어쨌든 정운은 내색하지 않고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그렇군요. 무슨 일입니까?” 정운의 말에 홍린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지금 내부에서 우리 유니버스 연맹이 레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홍린 당신 정도의 전력을 뺴놓고··. 아니. 당신뿐만이 아니라·····.” 정운은 주변을 돌아봤다. 주변을 자세히 보니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독도 대부분의 전력을 모두 여기에 대기시키고 있었다. 즉, 안에 들어가서 실제로 싸우고 있는 것은 북한팀과 최상위의 리더들뿐이라는 말이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건가?’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끝난 모양이군요.” 홍린의 말과 동시에 보스몹 지역에서 유니버스 연맹의 인간들이 나왔다. 그리고 정운은 그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장한, 콘러드 크라우스, 그리고 블레인 허드슨까지···. 저 자들은 아는 자들이다. 그런데 나머지는···.’ 정운의 눈에 띠는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민지의 하얀 가면과 달리 칠흑 같이 검은 가면을 둘러쓴 놈들을 본 순간 정운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 놈들··. 강하다. 아니 위험하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년간 구르면서 예민하게 단련된 촉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위험하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해라. 라고 말이다. 그때 유니버스 연맹의 북한 유저 중에 한명이 정운들을 발견했다. “호오···. 이게 누구야?” 쿵. 쿵···.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지면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덩치도 2미터가 가뿐하게 넘는 떡대 같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놈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 마다 위압감이 있었다. “흠···. 고만고만하구만. 이런 놈들이 위로 올라오겠다고? 흥····?” 놈의 말에 정운을 비롯한 한우리 연맹 전체가 울컥했다. 하지만 그때 놈들 중에 한명이 나서서 말했다. “그만둬라. 피라미들 데리고 뭐하는 짓이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눈앞에 놈보다 뒤에서 들린 말이 더 재수 없었다. “이 빨갱이 새끼들이····.” 특히 한국 팀에는 북한에 감정이 몹시 몹시 안 좋은 6.25 참전자까지 있었다. 한중겸은 평소의 넉살 좋은 그 답지 않게 인상을 구기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런 그를 보고 정운은 순간 말려야 하나 싶었지만···. ‘안 되겠군.’ 한중겸의 얼굴 표정을 보고는 바로 포기했다. 사람이 말로 해서 통할 때가 있고 안 통할 때가 있다. 오랜 세월동안 사귄 사이라서 알고 있다. 지금 한중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말리는게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 너!! 프로틴 과다 섭취한 근육 돼지 새끼야.” 한중겸이 앞으로 나서서 일행의 눈앞에 있는 자를 도발했다. “호오···. 나한테 말 한 거냐?”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어디 나하고 둘 중에 하나 죽을 때 까지 놀아볼 테냐?” 한중겸은 적을 태연하게 도발했다. 그리고 그런 한중겸의 도발을 들으면서 놈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하룻강아지 주제에···. 좋다. 나도 오랜만에 싱싱한 인간의····.” “카임!!!!” 놈이 말을 하려고 하는 사이에 뒤에서 누군가가 놈의 이름을 불러서 말렸다. “····카임? 뭐지? 너희들 북한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중겸은 북한의 인간이라는 자에게서 외국계의 이름이 들리자 당황했다. 들린 이름은 꼭 서구 문화권의 인간이 아닌가?“ “·····흥, 네놈이 알 바는 아니다. 그보다···. 잠시 기다려라.” 카임이라는 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편으로 잠깐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들 끼리 뭔가 의견 다툼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곤란···· 내 말····· 제발···.” “웃기지 ······· 어차피······ 시간도 다 됐········.” 간간히 무슨 말이 들리고는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정운은 예리한 눈을 하고 적들을 바라봤다. ‘····파워 밸런스가···. 확실하게 뒤틀렸군.’ 정운이 보기에 북한 팀의 내부은 하나로 단결되지 않은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한명이 어떻게든 통솔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부하들이 그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서독의 대표들은 감히 거기에 끼지도 않고 있었다. 그건 마치 고래 등 싸움을 두려워해서 저 멀리 떨어지려는 피라미 새우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완벽하게 힘의 차이가 난단 말이지···.’ 정운은 그렇게 상황을 대강 파악했다. 그리고 결국은 저쪽에서도 의견이 대강 정해진 모양이다. “빌어먹을··.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고!!!!” 콰아앙!!! 카임이라고 불린 근육 돼지가 발을 크게 구르자 놈을 중심으로 지름이 5미터는 될 것 같은 크리에이터가 생겼다. “······저 놈···?” “음··. 강해···.” 정운과 박추성이 동시에 중얼 거렸다. 방금 전에는 뭔가 스킬을 쓴 것도 아이템을 쓴것도 아니었다. 순수한 발 구름. 즉, 스테이터스에 있는 능력만으로 저런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놈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카임이라는 놈은 한우리 연맹을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말했다. “오래 기다리게 했지? 우리편에 병신이 시끄러워서 말이야.” 놈은 그렇게 말하고 한우리 연맹 전체를 보면서 말했다. “자··, 와라. 한 놈은 싱거우니까 너희들 전원이 덤벼도 좋다.” 그렇게 말하는 놈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실려 있었다. 그 말에 한중겸이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말 잘했다. 자이언트 스네이크!!! 펜닐!!!” 한중겸이 먼저 소환수를 소한해서 놈을 공격했다. 거대한 늑대와 뱀이 놈을 향해서 공격을 쇄도했다. 하지만 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훗!!!!” 퍼어어엉!!!! “커허엉!!!” 놀랍게도 놈은 그대로 한중겸의 소환수인 펜닐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 한방에 펜닐은 그대로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 틈을 타서 자이언트 스네이크가 놈의 몸을 칭칭 감아 버리려고 했다. 저 육중하고 거대한 몸에 감기면 한 순간에 육즙하나 남기지 않고 바싹 말라 버릴 것이다. 라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흐으으···. 핫!!!!” 퍼어어엉!!!! 놈은 사지를 힘차게 튕겨내면서 그대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자이언트 스네이크의 몸을 찢어 버렸다. “···저 두 마리를 한 번에?” “장난이 아닌데?” 한중겸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낸 놈을 보면서 한우리 연맹의 고수들도 눈을 크게 떴다. 한중겸은 팀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력은 팀장급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남자였다. 실제로 소환수를 대량으로 소환하면 이 남자의 전력은 이민지 이상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대를 북한의 카임이라는 유저는 어린애 다루듯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고작 그게 다냐? 그럼···. 내가 간다!!” 놈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 거대한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쑤욱 다가왔다. 그리고는 육중한 주먹을 한중겸을 향해서 뻗었다. “파앗!!!!” 콰아아앙!!!! 한중겸은 서둘러 실드를 쳤지만 놈의 주먹에 부딪히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한참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크으윽····.” 뒤로 20미터는 넘게 날아가서 뒹군 한중겸은 입에서 핏물을 토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적의 결정타가 날아올 뿐이다. “호오··. 근성은 좋군.” 급하게 몸을 일으킨 한중겸을 보면서도 카임이라는 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고양이가 천천히 쥐새끼를 가지고 놀 듯한 태도였다. “한 번에 안 뻗은 것은 칭찬해 주마. 하지만····. 이제 끝이다!!” 그리고 놈의 주먹이 다시 한중겸을 향해서 뻗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중겸과 놈의 사이에 두 명의 인형이 나타났다. “어딜!!” “·········.” 콰아아앙!!! 그 둘은 달려오는 카임의 주먹을 상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막았다. 그 둘은 바로 한중겸의 소환수 겸 애첩이기도 한 메두사와 왕귀인이었다. “흥? 이것들은 또 뭐야?” 카임은 자신의 주먹을 무형의 방어막으로 막아낸 둘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들을 가지고 있군. 보아하니 구속된 영혼들 같은데····.” 놈은 한눈에 메두사와 왕귀인의 존재를 알아챈 것 같았다. “어디, 이것도 막아내나 보자.” 놈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손을 한곳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거기서는 김수민이 쓰는 것과 같은 모양의 무기. 즉, 커다란 채찍이 들려 나왔다. 다만 특이한 것이라면 다른 채찍은 가죽이나 끈으로 만들지만···. 저 채찍은 검은색 빛깔의 가시넝쿨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척 봐도 맞으면 아프다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놈은 그 채찍을 높게 들어올렸다. 후웅!! 후우웅!!! 그저 들어올렸을 뿐인데 놈의 채찍은 살아있는 뱀처럼 허공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카임이라는 놈은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걸 막으면 살려주마. 뭐···. 불가능 하겠지만 말이야.” 우우우우우우웅!!! 놈의 채찍에는 검은색의 진득한 오로라가 서리기 시작했다. “크윽··. 비켜!!” 한중겸은 척 봐도 범상치 않은 힘이 느껴지는 공격에 메두사와 왕귀인을 비키게 했다. 그녀들의 경우 소환수 이전에 자신의 여자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헛소리 하지 마.” “난 못 들었어.” 둘은 제 자리에 서서 전혀 비키지 않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카임이라는 놈의 공격이 떨어지기 직전···. “거기까지.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는다.” 카임의 뒤편에서 한 명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박정운이다. 이 개자식아!!!” 퍼어어엉!!!!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정운의 공격이 놈의 등판에 정확하게 작렬했다. “크으으윽····.” 한중겸의 거대 소환수를 동시에 찢어 버리고 순식간에 한중겸을 핀치로 몰아붙인 카임. 그런 놈이라고 해도 정운의 공격을 무방비 상태로 맞고 노 대미지로 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놈은 저 멀리 튕겨서 땅을 나뒹굴었다. 그리고는····. “네놈···. 감히···. 이 쥐새끼가아아아아아아아아!!!!!!!!!!” “읏!!” “이런····!!!” 카임이라는 놈이 거칠게 포효를 터트리는 순간··. 그 공기의 여파와 살기의 파문만으로도 다른 유저들은 심장이 옥죄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유저들은 어렴풋이 알아가기 시작했다. 저건··. 저건 평범한 유저가 아니다. 뭔가 어떠한 다른 것이다. 라고 말이다. ‘·····한 판 붙어보면··. 좀 더 자세한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정운은 카임이라는 놈을 바라보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적은 강하다. 하지만···. 항상 자신이 싸우는 상대는 강했다. 뭘 망설이겠는가? “후우우우···.” 정운은 마음을 먹고 자신의 온몸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고 카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 놈은 조금 재미 있겠군···. 와라. 놀아주마.” “············.” 정운과 놈의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정운은 온몸에 힘을 쭉 빼고 그대로 놈을 향해서 검끝을 조준하며 차갑게 식힌 머리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초장에 승부를 본다.’ 적의 능력도 힘의 수준도 모르는 이상 질질 끄는 것은 오히려 악수였다. 정운은 초반에 완전히 승부를 부려고 했었다. 그리고 둘이 격돌하려는 그 순간···. “거기까지···.” 정운과 카임의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놈은 같은 편인 카임을 향해서 말했다. “그만 돌아가자.”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23화 중간에 갑자기 방해꾼이끼어들자 카임이라는 놈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한창 재미있으려는 순간이야. 여기서 방해를···. 읍!!!” 말을 하던 카임이라는 놈은 자신의 얼굴을 억누르는 손에 그대로 짓눌려 버렸다. 우직···. 우지직···. 중간에 끼어든 남자는 카임보다 머리가 두 개는 더 작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임의 안면을 잡아 누르는 힘에서는 두 대골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언제···. 전혀 보이지 않았어.’ 정운의 눈에도 놈의 동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임이라는 놈을 한순간에 제압한 남자를 보면서 정운은 깜짝 놀랐다. 방금 전의 동작은 정말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는 것을 넘어서···. 전혀 느껴지지를 않았다. ‘뭔가·· 뭔가 했어. 그냥 빠르다. 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정운은 저 남자에게 뭔가 범상치 않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카임이라는 놈보다는 훨씬 윗 단계에 있는 거물인 것 같았다. 그리고 놈이 카임을 향해서 말했다.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내 말에 거역할 생각이냐?” 놈이 그렇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카임이라는 놈은 붕붕 고개를 저었다. 이전의 당당한 태도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아무래도 정운의 예상대로 놈들 사이에 힘의 관계는 아주 명확한 모양이다. 그리고 북한팀의 한 리더가 한우리 연맹을 향해서 말했다. “미리 알고 왔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85층의 보스몹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뭐 하면 공격 패턴도 가르쳐 줄까?” 놈의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필요 없다. 우리는 오늘 물러나도록 하지.” “···좋을대로····.” 정운은 일단 연맹을 철수하게 했다. 레이드를 하기 위해서 왔지만···. 문제는 레이드가 아닌 것 같았다. 유니버스 연맹의 북한 팀. 저건 상상이상으로 위험해 보였다. ‘북한이라고? 아니야··. 카임이라는 이름도 외래어고 또 저렇게 정확한 표준어 쓰는 북한인이 어디에 있어····.’ 정운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북한팀의 리더에게 말했다. “당신 이름이 뭐지?” 정운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돌려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리영호다.” “흠···. 그거 본명인가?” 북한식 이름이기는 해지만 도저히 북한 사람 특유의 필이 나지 않았다. “············.” 대답이 없는 적을 보면서 정운은 남몰래 확신이 들었다. ‘어째 종요하다 싶었다···. 저 개자식···.’ 정운은 생각 같아서는 지금 확 들이 박아 버릴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고 일단 여기는 물러나기로 했다. 상대는 뱃속에 능구렁이 집단 서식지를 가지고 있는 왕재수의 결정체 같은 인간이다. 그런 놈을 상대하기에는 지금은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 유니버스 연맹과 한우리 연맹의 소소한 충돌은 일단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북한팀의 내부의 징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으으···. 으윽····.” 한중겸과 마찰을 빗었던 카임이라는 남자는 양손을 머리위로 하고 사슬에 묶여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놈의 전신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은 명백한 고문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놈의 앞에는 이전에 카임을 제압했던 남자가 나서서 말했다. “카임···. 내가 말했을 텐데? 우리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함부로 날뛰지 말라고?” “으윽····. 잘못했어··. 그러니 이제 좀··· 봐줘. 워리놈···.” 워리놈이라고 불린 남자는 카임을 향해서 주먹을 한방 날렸다. “커억···.” 옆구리를 한움쿰 파고든 워리놈의 주목에 카임은 입에서 핏물이 저절로 나왔다. 그 상태로 워리놈이 말했다. “함부로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너도 알텐데?” “으으으···· 으윽···.” “그리고 한 번 더 말해 두겠는데··. 같은 임무를 가지고 왔다고 해서 우리가 같은 동급인 것은 아니다. 너하고 나 사이에는····.” “으윽!!!” 말을 하던 워리놈은 카임의 심장으로 손을 푸욱 찔러 넣었다. 우직··, 우지지직···. 그리고 내장을 마치 찰흙 만지듯이 주물럭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절대 같은 급이 아니야. 너도 알 텐데?” “으윽. 으으으····. 으아아·····.” 눈을 까뒤집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카임을 보면서 워리놈이라는 남자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본능을 절제 할 줄 알아라. 참고 있는 것 너만이 아니니까 말이다. 만약 다음에도 내 경고를 무시하면···. 그때는 지옥의 심연조차 편안하다고 느끼게 해 주겠다.” 워리놈은 그렇게 말하고 카임이라는 남자를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줬다. 그리고 고통에서 해방되자 카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두 눈을 희번득 거렸다. “이게····. 이게 다 그 인간 놈들 때문이야···.” 뿌드득····. 이를 갈면서 카임은 생각했다.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말이다. 방금전에 그런 고통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같은 집념은 전혀 사그라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유니버스 연맹은 최초로 한우리 연맹을 뛰어넘고 그라운드 최전선에 올라섰다. 하지만···. 분위기는 결코 밟지만은 않았다. 최근에 유니버스 연맹의 실질적인 권한은 오로지 북한팀에서만 독점하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유니버스 연맹에서도 북한팀이 실제로 북한팀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름은 동양식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놈들의 행동은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의 행포는 날이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조금씩 조금씩 커진 놈들의 횡포는 이미 극에 달했다. 유니버스 연맹의 다른 유저들은 툭하면 놈들에게화풀이 대상이나 심심풀이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조장이었던 연문. 한때는 정운과 공방을 나눈 적도 있는 고수였던 그이지만 지금 연맹 내부에서 그의 위엄은 땅에 떨어졌다. 예전에 북한팀의 유저가 중국의 유저 하나를 죽인 적이 있었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그냥 건방져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공격한 것이다. 같은 연맹의 인간을 포로도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그냥 충동적으로 죽인것도 아니었다. 죽이기 전에 한참을 고양이 쥐새끼 가지고 놀듯이 희롱하면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는 중국의 장한이 오자 그 앞에서 죽여 버렸다. 그걸 보고 연문은 크게 분노해서 덤볐다. 그는 직위가 중국의 세 명밖에 없는 조장이기도 했지만 팀원들에게서 인망도 두터운 편이었다. 왜냐하면 적에게는 냉혹한 그가 아군에게는 무척이나 듬직하고 훌륭한 리더 중에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덤빈 결과···. 연문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박살이 났다. 아니 북한 팀은 실제로 죽이려고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중국팀 따위는 전력이 아니었다. 그냥 다 죽여 버려도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뒤늦게 나타난 북한팀의 리더인 리영호가 나섰고 그리고 중국의 장한이 서둘러서 수습을 했기에 목숨만은 건졌지만···. 그 사건 이후로 유니버스 연맹은 실질적으로 정체불명의 북한 유저들의 노예나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실제로··. 그 결과 중에 하나가 바로 홍린이었다. 원래 중국의 조장이었고 날이 선 칼날같이 위험한 위엄이 있던 여자였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세계건 자기가 소속한 나라나 단체가 기울기 시작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여자들인 법이다. 그녀는 눈에 띠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 것이다. “으으···. 읏····.” 고통 스럽게 남자의 밑에 깔려서 몸부림 치는 홍린을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고통스러워 해도··. 반항하며 몸부림 쳐도 자기 위에서 헐떡이고 있는 짐승을 즐겁게 하는것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이 느낌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강제로 당하는 섹스의 불쾌감을 한참 뛰어넘은 모멸감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상실감에 그녀는 결국 거칠게 몸부림 쳤다. “으으으읏!!!!!!” 입가에 물린 재갈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몸부림 치는 그녀를 보면서 위에서 그녀를 범하고 있는 남자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크크크크····.” 상대는 여체가 주는 쾌락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 분노, 좌절, 그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저 1차원적인 성욕의 배출이 목적이 아니라 어지까지나 상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이너스 적인 감정이야 말로 이들에게는 진정한 미주였던 것이다. “읏···. 으으으···.” 한참을 몸부림 치던 홍린이 이윽고는 온몸에 힘이 다한 것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자 상대가 도착적인 시선으로 말했다. “또 해봐라. 또 해봐··. 어서···” “················.” 하지만 홍린은 이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포기한 것도 체념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기력이 한계까지 떨어져서 아무것도 못하고 축 늘어진 것이다. 결국 남자는 시시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난폭한 짐승의 교미같은 정사를 끝냈다. “흥···. 심심풀이도 안 되는군.” “··············.” 한때는 중국팀의 여왕벌이었고 또 카리스마적인 존재였던 홍린. 하지만 지금은 그저 북한의 유저들이 자기들 좋을 대로 가지고 노는 성노예에 불과했다. 침대에 알몸으로 드러누워서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가 있는 홍린의 모습은 처참하고 무참했다. 그녀가 이런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이런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유니버스 연매에 하나도 없었다. 워리놈에게 고문을 받고 그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찾아온 카임은 홍린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와서 강제로 폭행하고 범했다. 홍린의 하얀 피부 여기저기에는 폭행과 난행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그녀가 원래 정조를 생명처럼 여기고 조신하게 구는 여자는 아니었다. 충분히··. 아니 충분히라는 개념을 넘어설 정도로 남녀 관계에 개방적인 여자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관계는 상호간의 동의가 있어야 즐길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강제적으로 일방적인 겁탈을 당하면서 아무런 굴욕감을 못 느끼는 여자는 아니었다. 볼을 타고 또르르 흐르는 눈물과 손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꼭 쥔 주먹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분하고 원통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카임은 그런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콧웃음만 칠뿐이었다. “크큭···. 절망, 분노 그리고 중오···. 고작 몸 뚱아리 몇 번 놀림당한 것 가지고 이 정도의 순도의 음의 감정이라니···. 너희들 인간은 확실히 재미있는 존재들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홍린은 이렇게 치욕스런 입장에서 계속 살아갈 바에는 차릴 죽어 버릴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흑···. 크흐윽····.” 자존심 빼면 시체라는 말 까지 듣던 그녀가 서럽게 울었다. 그 정도로 분했던 것이다. 한참 동안 배게를 눈무로 적신 그녀는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문득 창문에 어떤 새가 한 말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새의 작은 다리에 감겨져 있는 편지도 뚜렷하게 보였다. “이건····?” 편지를 발견한 홍린은 뭔가를 결심한 것처럼 눈빛이 변했다. “뭐? 방금 무라고 했지?” 카임은 홍린에게서 갑작스런 보고를 받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네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카임의 명령에 홍린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저에게 전서구를 통해서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전진기지에 들키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서 이런 수단을 동원한 것 같습니다.” 홍린의 말에 카임은 편지를 받아서 읽어 봤다. 거기에 쓰여있는 내용은···. ============================ 작품 후기 ============================ 그 편지의 내용은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절단입니다. 부디 다음화에....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24화 <준비된 함정> [북한팀의 병신에게···. 네가 누군지? 그리고 어떤 놈인지 고민이 많았지만 사실 이제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결국 내가 도달한 결론은 네놈을 쳐 죽이면 그만이라는 심플한 해답이었으니 말이다. 연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난리 피울 필요 없이 우리끼리 만나서 해결을 보자. 와라. 죽여 줄 테니. 한중겸 씀.] 편지를 다 읽은 카임은 우습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크···. 크큭···. 그 머저리 제 정신이 아니군···.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해? 그때 힘의 차이를 느끼지도 모했나? 어지간히 돌대가리군.” 카임은 안 그래도 한중겸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워리놈이 단단히 윽박지르기는 했지만 애당초 이 놈의 집념은 그런 협박으로 어떻게 컨트롤 되는게 아니었다. 세상에는 죽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종종있다. 놈의 광기와 집념도 꼭 그랬다. “크큭···. 좋다. 죽고 싶다면 죽여 줘야지. 홍린, 안내해라.” “예.” 그렇게 해서 카임은 한중겸이 불러낸 장소로 남들 몰래 이동했다. 연맹 차원에서는 비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정말로 모래 움직인 것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카임을 기다기로 있는 것은 한중겸이 아니었다. “·····넌? 그때 그····.” “박정운이다.” 카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박정운이었다. “호오···. 이건 조금 의외인걸? 닭 대신 꿩이다 이건가?” “············.” 정운은 눈앞에 있는 카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변을 서서히 돌아봤다. 그리고 이 주변에 있는 것은 홍린과 카임 둘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일단 안심했다. 그리고 카임을 향해서 말했다. “····함정이라는 생각을 못할 정도로 돌 대가리인거냐? 아니면·····.” “함정이라도 상관없다는 거지? 왜? 아닌 것 같나?” 정운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대꾸하는 카임의 전신에서는 상당히 무거운 중압감이 퍼져 나왔다. ‘···역시, 이 자식 평범한 유저가 아니다.’ 정운은 내심 긴장했다. 일대일 싸움에서 박추성 배대호를 제외하고는 누구랑 싸워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보스몹들을 제외한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제 자신도 최강 클래스라고 생각했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상대는 그런 정운의 생각이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 그래도 해 볼 생각이지만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정얼 거리면서 자신의 몸에 뇌신강림의 스킬을 시전 했다. 파지지지직!!! 정운의 전신에서 황금빛 뇌전이 방전되고 몸 주변에서도 수십 자루의 뇌전의 거검이 형성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카임이 중얼 거렸다. “호오·····. 인간 치고는 제법이야. 하여튼 이 세계는 재미 있다니까···.” 놈의 말을 들은 정운이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띠우고 말했다. “꼭 너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너 정체가 뭐지?” “그게 궁금한가? 곧 죽을 놈이?” “곧 죽을 놈한테 한 번 가르쳐 주지 그래? 자신 있다면 손해 볼 것 없잖아?” 정운의 말에 카임이라는 놈으 표정을 굳히면서 말했다. “·····나한테 이기면 가르쳐 주지.” “흠, 그래···. 그 말··· 잊지 마라!!!” 콰아아아앙!!!! 정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몸이 한순간에 적에게 작렬했다. 정운의 최고 레벨의 속도 스킬인 뇌광이었다. “으읏!!!” 설마 그 정도의 속력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던 것일까? 정운의 갑작스런 공격에 상대는 뒤로 몇 걸음인가 밀려났다. ‘쳇··. 회심의 한방이었는데 그걸 막다니···.’ 상대를 밀어내기는 했지만 정운으로서는 그렇게 반가운 결말이 아니었다. 불시의 기습에 상대가 방심한 틈도 제대로 노렸다고 생각했다. 이 한방으로 끝내지는 못해도 적지 않은 대미지를 줄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상대는 용케도 정운의 뇌광을 이용한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적이 몇 걸음인가 뒤로 밀린 틈을 정운은 놓치지 않았다. 페이스를 잡고 본격적으로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아아아아!!!!” 콰쾅!! 콰아앙!! “읏···. 이 놈이···.” 정운의 공격은 거칠게 적을 몰아 붙였다. 상대는 처음에 기선을 빼앗긴 것이 커서 연신 뒤로 밀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놈은 이전에 자신이 쓰던 검은색 가시 넝쿨 채찍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이 호기를 놓치면 바보였다. “쉐도우 아미!!!” 정운은 한창 싸우면서 그림자의 무장들을 모두 불러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총력전이다!! 순식간에 끝장내 버려!!!!”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콰콰쾅!!!! 콰앙!!! 그렇게 해서 정운과 그림자의 장수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카임을 공격했다. “크윽···. 이런 간사한 쥐새끼들이··. 비겁하다!!!” 카임은 자신이 무기를 꺼낼 틈도 주지 않고 파상 공격을 펼치는 적들을 보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씨도 안 먹힐 소리일 뿐이었다. “비겁? 애초에 틈을 만들지 않았어야지. 이 찌질한 새끼야!!!!” 정운의 말에 다른 그림자의 무장들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방심은 최고의 적이다. -형편없는 놈이군. -무인 자격이 없는 놈이야. 그렇게 자신을 향해서 떨어지는 매도의 칼날을 받으면서 카임은 있는 대로 열이 뻗혔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 건방진 인간 놈들이!!!!” 콰아아아앙!!!! 놈의 주변으로 검은색 오로라가 폭발하면서 일순간 모두를 밀어냈다. 그리고 놈은 한손을 아공간 같은 곳에 넣어서 일전에 보았던 자신의 채찍을 꺼내려고 했다. “모두 죽여주마!!!” 놈은 치 채찍을 꺼내서 본격적으로 정운을 도륙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그냥 보고 있을 정운이 아니었다. “웃기지 마라!!” 정운은 그걸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놈을 향해서 손을 뻗으며 외쳤다.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정운의 말을 따라서 그림자의 무장들도 구속 스킬을 썼다. “이런··? 어엇!!!?” 보통 쉐도우 체인은 거대한 괴수형이나 거인형의 몹들을 구속하는 것에 유리했다. 작은 체구의 인간 형태의 적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나름 틈을 노려야 했다. 정운이 노리고 노린 틈이 바로 적이 무기를 꺼내는 그 순간이었다. “크윽··. 이까짓 것···.” 놈은 무기를 꺼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하늘로 몸을 날려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죽엇!!!!” 콰아앙!! 그런 놈의 머리위에서 한줄기의 붉은 공격이 덜어졌다. 이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홍린의 공격이었다. “크윽····”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떨어진 갑작스런 일격에 놈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그렇게 놈이 당황한 순간···. 발목부터 그림자의 사슬이 모두 꽁꽁 감겨가기 시작했다. “으··, 으으읏····.” 칭칭 감겨가는 그림자의 사슬에 전신을 꽁꽁 구속당한 놈을 향해서 정운이 말했다. “네놈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나 보 다도 강할지도 몰랐지.” “이··. 이 놈이···? 저 창녀하고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거냐!!?” “뭐··· 입을 맞췄다고 하는 말은 좀 그렇지만··. 결국 그런거지. 이건 함정이었어.”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일의 전말은 이렇다. 원래 홍린이 북한 유저들에 의해서 성노리개로 전락했다는 얘기는 이미 유니버스 연맹 내부에서 유명한 얘기였다. 남들이 다 보는 상황에서 노골적인 추행을 당한적도 있었으니 새삼 숨기고 말고 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었다. 그리고··· 유니버스 연맹에서 그렇게 유명한 얘기라면 유니버스 연맹의 동향을 항상 조사하고 있는 나탈리아에게도 알려져 있다는 말이었다. 정운은 나탈리아에게서 그 소식을 듣자 바로 작전의 수립에 들어갔다. 먼저 일 단계···. 북한팀에 의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는 홍린을 매수하는 것이었다. 원래 홍린은 중국팀의 핵심 전력이었고 또한 그녀 자신도 상당히 도도한 성격을 하고 있던 여자였다. 원래대로라면 매수가 잘 먹힐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원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 자존심이 무너졌을 때의 상처도 큰 법. 이미 하루하루를 치욕의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홍린에게는 복수의 기회를 준다는 정운의 제안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것이었다. 이미 중국팀에 대한 미련이나 장한에 대한 충성심은 없었다. 그녀가 북한팀의 유저들에게 희롱당하는 옛 동료들이 보인 태도는 배신감에 치를 떨게 하기 충분했다. 자신이 북한팀의 유저들에게 무슨 짓을 당하고 있어도 전혀 도와주지 않은 장한. 그는 그나마 나았다. 진짜 치욕스러운 것은 예전의 부하들이었다. 한때 자신들 위에 있던 여자가 바닥까지 추락한 것을 보고 비웃으며 즐기고 있던 옛 부하들··. [“원래 여자라는게 저런거지”] [“그렇게 말이야. 차라리 저 꼴이 좀 어울리는 걸?”] [“후후후····.”] 그동안 여자인 자신에게 억눌린 것이 자존심 강한 남자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일까? 홍린의 몰락은 오히려 그들에게는 상당 유흥거리였다. 개중에는 북한 팀에 실실 거리며 붙어서 자신을 범한 전 부하들도 있었다. 그것은 어느날 일어난 일이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어어··. 이거 왜 이러십니까? 조장님.” “우리는 이미 북한 분들한테 허락 받았습니다. 조장님의 몸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말이죠.” “가당찮은 반항은 그만두고 다리나 벌리시죠? 넌 그게 어울려. 알겠냐? 이 창녀야.” “크하하하하····. 그래. 그게 어울리는 여자지.” “···············.” 홍린은 배신감에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때는 자신의 눈매만 가늘어져도 사시나무 떨 듯이 벌벌 떨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가면서 자신을 짓누르고 욕망을 배설하면서 쾌락에 떨 때···. 그때 홍린이 느낀 치욕감과 굴욕감은 죽음보다 더한 것이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뒤에 북한의 유저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는 듯이 비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결국 자기 몸을 열어줘야 했다. 홍린이 몸에서 힘을 빼자 옛 부하들은 짐승처럼 달려 들었다. 잔뜩 흥분한 놈들은 금방 홍린의 옷을 찢어 버리고 한놈이 성급하게 자기 물건을 홍린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으읏···. 죽이는데····.” “빨리 해. 다음 사람 기다리잖아?” “알았어. 안 그래도 금방 끝날것 같아. 이 년을 아주····.” 그리고 놈들은 거칠게 홍린을 범하기 시작했다. 물고 빨고 집어 뜯고····. 연인끼리의 관계도 아닌 그저 쾌락만을 위한 일방적인 섹스일 뿐. 자기들만 즐기면 되는 관계이기에 홍린을 향한 배로는 조금도 없었다. 놈들은 홍린을 마치 싸구려 창녀 취급하면서 범했다. 특히 놈들을 꼬박꼬박 홍린을 조장님 조장님이라고 부르면서 범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이 홍린에게 더 큰 모멸감을 주는 것을 즐기는 거처럼 말이다. 그렇게 홍린은 부하였던 놈들의 성욕에 온 몸을 맡기고 놈들이 만족할때까지 노리개가 되어 줘야 했다. 그리고 모든게 끝나고···. 놈들은 홍린의 망가지기 직전까지 범해진 못브을 보고 비웃었다. “크크크··. 평소부터 이 년을 꼭 이렇게 만들어 보고 싶었지.” “나도 마찬가지야.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소원 성취.” “하하하····. 앞으로 종종 부탁드립니다. 조장님.” “크크크····. 종종 놀러 올거니까 말이죠.” 예전 부하 놈들에게 윤간 당하고 놈들의 더러운 체액을 전신에 뒤집어 썼을 때···. 이미 팀을 향한 애착심은 눈꼽만큼도 남아있지 않고 날아갔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바로 정운의 회유에 넘어갔다. 그리고 카임을 몰래 빼내는 것까지 성공한 것이고, 지금의 싸움에서도 계속 빈틈만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25화 사실 원래 한우리 연맹에서는 어차피 함정을 파는 것 다른 사람들을 주변에 대기시켜 두는게 어떠냐는 발언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의견은 기각 당했다. 정운이 생각하기로 적이 범상치 않은 놈이라면 여러 명이 대기하고 있는 함정 따위는 눈치 챌지도 몰랐다. 대신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홍린에게 결정적인 상황에서 힘을 빌려줄 것을 미리 부탁해 뒀던 것이다. 결국··. 모든 상황은 정운이 생각하고 계획했던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모든게 말이다. “크으윽···. 이까짓 사슬···. 이까짓···.” 툭!! 투투툭!!! 카임의 몸에서 검은색 오로라가 진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놈을 꽁꽁 둘러싸고 있는 사슬이 강력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한가닥 한가닥 씩 끊어져 나갔다. “····대단하군. 솔직히 네 정체가 뭐던 간에···. 일대일로 싸웠다면 내가 이기기 힘들었을지도 몰라.”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카임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카임은 정운을 보면서 이를 갈면서 말했다. “고작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가지 아이템을 인벤토리 안에서 꺼냈다. 그리고 놈을 향해서 선고하듯이 말했다. “왜냐하면 이걸 쓸 생각이거든.” 정운이 꺼낸 아이템은 전국옥새. 이번에 조조를 이기고 얻은 세뇌 아이템이었다. “크윽··. 너 이 새끼 뭘 하려고····.” 정운은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걸로 세뇌 시키고 난 후면 모든 걸 알게 될 일이었으니까··. 정운은 정해진 순서대로 놈의 몸에서 피를 내서 그 피를 전국옥새에 적셨다. 그리고 그 인장을 놈의 이마에 찍으며 말했다. “나에게 복종해라.” “으··· 으으으으으윽!!!!!!” 놈의 이마에서 연기와 함께 피의 인장이 새겨졌다. 그리고 뚜렷하게 떠 오른 인장은 놈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한 3분 정도 놈은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고통스러워 했다. “으으으으··· 아악··· 아아아·····.” 어지간한 고문을 당하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러워 하는 놈을 보면서 홍린은 무척 불안해했다. “정운님··. 정말 그게 통하는 겁니까? 혹시····.” “걱정하지 마. 놈의 정체가 뭐던 간에···. 일단 이 세계의 로직에 있는 이상 100% 걸릴거야.” “···어떻게 그걸 확신하십니까? 놈은 분명 인간이 아닌데?” “어떻게냐 하면····. 그건 비밀이야.” 정운은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사실은 이미 전국옥새를 한 명에게 시험해 봤다. 그것도 다름 아닌 세레나에게 말이다. 유저라면 모를까? 그 정신력의 근원이 인간을 초월한 세레나에게 과연 그게 통할까? 만약 세레나에게 통한다면 설령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99.9% 통한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게 생각한 정운은 세레나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에 그녀에게 시험을 해봤다. 사실 사랑하는 여자를 이런 실험에 동원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꼭 필요한 실험이기는 한 것을···. 세레나는 흔쾌히 정운의 말을 들어줬고 실험의 결과···. 천사인 세레나에게도 전국옥새를 이용한 세뇌는 먹혔다. 세레나가 정운을 향해서 공손하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정운은 순간 새로운 어떤 것이 눈이 뜰뻔 하기도 했다. 옆에서 슬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게 아니었다면 스카이 타운에서 메이드 복이라도 공수해 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카임이라는 놈의 정체가 무너지는 모르겠지만···.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이상 이 세계의 로직에는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운의 예상대로 일은 흘러갔다. “주인님께 인사 올립니다.” “·····흠···, 팔 하나 잘라 봐.” “옛!!” 정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임은 바로 자신의 팔을 잡고 뜯어내 버렸다. 우지직!!! 한치의 주저도 없이 자기 팔을 뜯어 버리는 카임을 보고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먹혔군.” 정운은 일단 그림자의 사슬을 모두 풀었다. 그리고 놈을 향해서 말했다. “할 얘기가 아주 많다. 자리를 옮기자.” “옛. 주인님.” 그렇게 해서 정운은 적을 한 명 세뇌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정운은 꽁꽁 숨어있는 적의 정체를 모두 알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장소를 옮긴 정운은 본격적으로 카임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질문 첫 번째, 너희들 정체가 뭐지?” “저희는 악마입니다.” “······역시 그랬나?” 정운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사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북한팀 = 악마 라는 공식은 상당히 상위에 등재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래··. 악마라? 악마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왔지? 그리고··, 너희들 북한 팀도 아니지? 리영호라고 했나? 그 자식 김신수잖아? 목소리와 외모를 바꿔도 그 재수 없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아.” 김신수가 들었다면 참 억울해 했을 것이다. 재수 없는 느낌이라니? 그건 도대체 어떤 느낌이란 말인가? 어쨌든···. 정운의 예상은 맞았다. 카임은 리영호가 김신수고 그 옆에 있는 여자인 한수미 역시 최수영, 즉 메디이아라는 것을 알려줬다. 여기까지는 사실 카임을 사로잡지 않아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들이었다. 알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였다. 도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 그라운드 제로에 대규모로 악마들이 파고들었느냐? 라는 것이었다. “차근차근·· 하나도 빼지 않고 설명해 보실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임은 악마들이 그라운드 제로에 갑작스럽게 적극적인 개입을 하게 된 이유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좀 뜬금 없지만···. 카임의 설명은 일단 마계의 사정부터 해서 시작되었다. 원래 악마들에게도 나름 서열이 있고 파벌이 있다고 한다. 마계의 톱에 군림하고 있는 여섯의 악마들. 그 이름은 위에서부터 루시퍼, 바알, 메피스토, 베르제브브, 레비아탄, 아스모데우스 이렇게 여섯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여섯 중에 한명인 메피스토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한 파우스트에게 속아서 계약을 하게 된 것이 이유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원인이 되어서 여섯 악마들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섯 명의 악마라고 해도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대립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협조하고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여섯 악마의 밸런스를 인간의 정치에 비춰서 비유하자면···. 루시퍼와 바알은 이른바 여당이라고 해야 할까? 오랜 세월 동안 마계를 집권하고 다스려온 쌍두 마차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맞서서 나름 권력과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이른바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인 메피스토를 필두로 하는 나머지 네 악마들인 것이다. ‘악마든 인간이든···. 정쟁이라는 것은 추하고 엿 같은 법이지···.’ 정운은 여기까지만 설명을 들었는데도 어쩐지 일련의 상황이 짐작이 갔다. “설명 계속 해 봐.” “예.” 어쨌든 카임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메피스토 휘하에 있는 악마들은 조금씩 조금씩 그라운드 제로를 공략해 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수년의 사이에 비약적인 공략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루시퍼와 바알이 보기에는 거슬린 것이다. 사실 그들은 메피스토가 가능하면 오랫동안···.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그라운드 제로에 봉인되어 있었으면 했다. 자신들의 정적이 사라지는 것을 반기지 않을 권력자는 인세에도 지옥에도 없었다. 기껏 메피스토의 부재로 인해서 자신들에게 대항하던 악마들의 힘이 약해진 지금의 상황이 최대한 오래 가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데 정운을 비롯한 한우리 연맹이 비약적인 클리어 속도를 보이자 뭔가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루시퍼와 바알은 파우스트와 접선을 시도했다. “파우스트와 접선이라···. 그럼 그렇지····.” 정운은 상황이 어지간히 복잡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들은 상황만으로도 어느 정도 물고 물리는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게 참 복잡한 사슬처럼 엮여 있다는 것이었다. 대립하는 악마들, 그걸 이용하려는 파우스트, 그리고 이 상황이 자신들에게 끼치는 영향까지···. 이제는 단순히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악마계의 정세까지 끼어들어 버렸다. ‘···내가 쥐고 있는 카드를 언제 뒤집느냐가 중요해졌군····.’ 정운은 일단 머리를 차갑게 식히면서 계속해서 카임의 얘기에 몰입해 갔다. 파우스트와 접선을 한 루시퍼와 바알은 파우스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바로 메피스토 말살 작전이었다. 악마들이 메피스토를 구하기 위해서 파우스트의 목을 노리는 유저들을 보내는 것처럼··. 루시퍼와 바알 역시 메피스토의 목을 치기 위해서 원군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다만, 메피스토의 부하 악마들이 직접 개입을 할 수 없어서 자신들과 계약을 한 인간들을 보낸 것에 비해서 루시퍼와 바알은 자신들의 직속 부하들을 보냈다. 루시퍼의 심복이자 1급 전투 악마인 워리놈을 필두로 해서 마르베스, 레오나르, 타무즈, 마르티네, 가마진, 카임까지··. 이들 모두를 인간으로 위장 시켜서 그라운드 제로에 잠입 시킨 것이다. 원래 악마들이 직접 그라운드 제로에 개입 할 수 없도록 금제를 걸었던 것은 파우스트였다. 그 말은 파우스트가 협조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악마들을 그라운드 제로에 잠입 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문제는····. 악마들의 이름이엇다. 악마들은 이름을 함부로 바꿀 수는 없었다. 악마들에게 이름은 존재 그 자체다. 이름은 그들에게 힘이었고 상징이었고 존재를 나타내는 그 모든 것이었다. 그 이름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이상 전면에 나서서 일을 처리 할 수는 없었다. 특히 워리놈의 경우 악마로서의 유명세가 제법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인간들 중에 알아 볼 수 있는 존재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 할 없었다. 그래서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 선택한 인간. 그게 바로 김신수였다. “그럼 그렇지···. 그럼 너희들과 김신수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위장일 뿐입니다. 그런 인간 따위의 부하로···. 윽!!” 퍼어억!!! 말을 하던 카임을 그대로 정운의 발차기에 턱주가리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정운은 카임의 머리를 짓밟으면서 말했다. “나도 ‘인간 따위’다. 입 조심해라. 카임.” “예··. 유념 하겠습니다.” 경멸하는 인간에게 걷어차이고 짓밟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임은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만큼 완벽한 세뇌가 되었다는 증거였다.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정운은 혹시 몰라서 세뇌의 상태를 중간에 한 번 확인해 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전국옥새를 통한 세뇌는 완벽해다. “설명 계속 해 봐라.” “옛.” 카임은 계속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김신수와 그 밑에 위장을 한 악마들은 북한 팀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만들어서 월드 서버에 잠입했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북한서버는 실존한다. 거기라고 왜 악마에게 영혼을 팔 정도로 불만 가득한 사람들이 없겠는가? 하지만 유저의 수준이 너무 적고 워낙에 약해서 도저히 월드 서버에 올라올 수준이 아닐 뿐이다. 지금 북한 서버의 최고 고수의 레벨은 67이라고 한다. 월드 서버는 고사하고 일반 서버에서도 그 레벨로는 50층 언저리가 고작이다. 그런고로 그들이 지금 월드 서버로 올라올 가능성은 전무 하다. ============================ 작품 후기 ============================ 전국 옥새는 바로 이러기 위해서 존재해온 것이었습니다. 플롯잡고 1부 완결을 향해서 달려가 보니 생각보다 페이스가 빠르네요. 어쩌면 좀 더 빨리 완결 소식을 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미 차기작은 스타트 분량이 대기 중입니다. 문제는.... 제목을 뭘로 정하느냐? 라는 건데 말이죠. 뭘로하지.......? 스포를 약간이지만 하자면... 에덴의 우리, 로빈슨 쿠르소, 토리코, 몬스터 헌터, 등을 참고로 한 작품입니다. 제목을 뭘로 할지가 참 고민이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26화 <빠른 공략.> 북한팀의 사정을 들은 정운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거기 레벨이 그렇게 약하다고?” “예. 그렇습니다.” “흠···. 왜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레벨이 너무 적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정운에게 카임이 부연 설명을 덧 붙였다. “제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거기의 인간들 사당수가 그라운드 제로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만족? 언제 정기 퀘스트에서 죽을지 모르는데? 이런 살얼음 판에서 고위 레벨도 아닌 주제에 만족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정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그 사람들도 소원이 있어서 왔을 것 아니야? 그 소원을 향한 열망은 없는건가?” 정운의 말에 카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열망은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 그 열망을 만족시키고 있는게 의욕을 저하 시키고 있었습니다.” “열망을 만족? 그라운드 제로에서?” “예. 그렇습니다. 일단···, 그들 대부분의 소원은 배불리 먹는 것. 고기 한 번 먹어 보는 것, 그 밖에도 자잘하고 평범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그 정도의 편의는 제공하니····.” “·········그래, 그런거군···.” 정운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즉, 북한 사람들에게서는 이 악마의 게임의 세계 조차도 북한 내부보다는 더 상황이 좋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먹는 것 입는 것 그런 기본적인 의식주 정도는 어찌어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설명 계속 해.” “알겠습니다.” 북한 팀의 사정을 알고 악마들은 그 이름을 바로 도용하기로 했다. 우러드 서버로 올라올 가능서이 전무한 북한팀이기에 사칭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다. “흠···. 잠깐, 대강의 사정은 알겠지만 이상한게 있군.” “말씀 하십시오.” 공손한 카임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이 되물었다. “너희들이 노리는 목이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라면··. 지하로 가야 하는 것 아니야? 어째서 위로 올라오는 거지?” 그렇다 정운이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는 위로 올라가면 파우스트가, 밑으로 내려가면 메피스토가 기다리고 있다. 놈들이 노리는 목이 메피스토라면 지하로 가는게 정상이었다. “그건, 루시퍼님과 파우스트 사이에 벌어진 밀약으로 인해서입니다.” “어떤 밀약?”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지하로 진격을 하면 메피스토의 부하들은 위가감을 느끼고 뭔가 조치를 취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하고는 무슨 상관이지?” 카임은 정운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선선히 털어 놓았다. “우리가 99층을 클리어하는 순간··. 파우스트는 99층 진입자 전원에게 모든 층의 출입권리를 주려고 합니다.” “····치사한 자식···.” 정운은 한 번도 만나본적은 없었지만 그 파우스트가 정말로 싫었다. 놈이 만든 세계이니 사실상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놈은 창조주나 다름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반칙만 해 대는 것 같아서 딱 잘라 말해서 재수 없었다. “····그래··. 일단 상황은 알겠군···. 하나만 더 물어보지? 너희들 99층까지는 언제까지 갈 생각이지?” “빠르면 올해 안에 클리어를 성공 시킬 것입니다.” “그게 돼? 너하고 잠깐 싸워 본 것 뿐이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정운은 상상 이상의 클리어 속도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카임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저 보다는 워리놈과 마르베스가 훨씬 강합니다. 그 둘은 사실 게임 클리어가 아니라 메피스토의 목을 노리고 온 자들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정운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굴렸다. 이제 상황은 훨씬 모두 파악되었다. 악마들의 개입으로 인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클리어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제 정운과 한우리 연맹으로서는 한걸음 물러서서 대기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 위험하지만 빠른 시류에 올라 탈것인가? 두 가지 선택권이 남았다. ‘뭐···. 어차피 선택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만 말이야.’ 정운은 카임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잘 들어라.” “예. 명령하십시오.” “넌 지금부터 내 스파이가 되어서 유니버스 연맹에 잠입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행동하되······.” 정운은 그렇게 카임을 완전히 세뇌 시켜서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유니버스 연맹과 한우리 연맹은 간부들의 정상 회담을 열었고···. 몇 가지 조건을 달아서 동맹을 맺는 것에 성공했다. “합류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최선을 다하죠.” 블레인 허드슨과 손을 잡으면서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호랑이 등에는 올라탔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월드 서버의 전 유저의 힘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악마들도 합류했다. 그게 뭘 뜻하는 걸까? 이제까지 유저들을 애 먹이던 월드 서버의 관문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을 클리어 한 후에 86층에서 만난 것은 진시황이었다. 불로불사 못한게 뭐 그리 한이 되었던 걸까? 만리장성을 끼고 대군을 거느리고 유저들을 맞이했지만 악마들이 나서자 그 대군이 밀랍으로 만든 것처럼 녹아 내렸다. 87층의 상대는 비교적 근대사의 인물이었다. 나치의 히틀러가 나왔는데 무시무시한 전차 군단을 이끌고 등장했다. 전차 하나하나의 레벨이 200이 넘는데 그런 놈들이 500기가 넘게 나왔다. 사실 유저들의 힘만으로는 이걸 클리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정운도 싸우는 과정에서 그 탱크를 열 대 정도 감당 하는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악마들이 나서니 역시 달랐다. 놈들은 히틀러의 전차 군단을 장난감 프라모델 부수듯이 박살내고 있었다. 특히 악마들 중에서도 워리놈의 활약은 눈부셨다. ‘저게 악마들의 진짜 실력···. 역시 그 카드는 최대한 아껴 두는게 좋아···’ 정운은 워리놈의 실력을 보면서 한 번 더 속으로 다짐했다. 적의 실력은 그라운드 제로의 레베로 치면 300··· 아니 거의 400에 육박하는 실력으로 보였다. 사실 작정하고 싸우면 정운뿐만이 아니라 한우리 연맹 전원이 덤벼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정운에게도 믿고 있는 카드는 있었다. 최후의 최후에 뒤집을 비장의 카드가 말이다. 87층 클리어 이후 한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정운은 미친 듯이 사냥에 몰두했다. 원래 아홉 배 오토를 24시간 돌리고 있는 정운이기는 했지만 더욱더 사냥에 몰두했다. 마치 지금이 끝물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이다. 너무나 사냥에 몰두하는 모습에 슬기와 세레나는 정운의 모습이 걱정될 정도였다. “괜찮아요?” “응? 뭐가?” 정운의 품에 안겨 있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차분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슬기는 요즘 들어서 특히 더 무리하고 있는 정운을 보면서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근거 없는 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운에 대한 감이 상당히 정확한 편이다. 항상 곁에 있고 항상 함께 있던 두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의 내면에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정도는 안 봐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정운은 그저 웃으면서 슬기를 자기 품안에 꼭 끌어당겼다.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그보다··· 이 기회에 하나만 확인해 봐도 돼?” “····뭔데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으음··. 사실 슬기 너뿐만 아니라 세레나에게도 동시에 물어봐야 하는 거라서··. 잠시만 기다려 줘.”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켜서 옆방으로 가서는 세레나를 데리고 왔다. “마스터, 무슨 일입니까? ···큼, 혹시 슬기하고 저를 동시에···.” 침실에서 이불로 가슴까지 간신히 가리고 있는 슬기를 보고 세레나가 말했다. 그러자 정운이 손사레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 그런 것 아니야” 그리고 정운은 품안에서 작은 상자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나가면 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 확인해 두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은 작은 상자를 슬기와 세레나에게 열어 보이면서 말했다. “나하고 결혼해 줄래?” “··············.” “··············.”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아닌 밤중에 프로포즈? 두 여자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프로포즈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놀란 표정은 금새 사라지고 거기에는 기쁜 표정이 떠 올랐다. “예. 물론이죠. 물론 할게요.” 슬기가 먼저 기쁜 표정으로 정운의 반지를 받고 안기면서 말했다. 그리고 세레나는 약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기쁘기는 기뻤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마스터··. 저는··.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건···.” “그래도 상관없어.” “····마스터의 나라는 일부 일처제라고···.” “나라 옮기자.” “··············.” 거침없는 정운의 대답에 세레나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세레나에게 정운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어떤 고난이 있어도 난 너희들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그런 시시한 장애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네 마음만 대답해줘.” 정운은 잠시 심호흡 하다가 다시 세레나에게 말했다. “나하고 결혼해 줄래?” “·······예.” 결국 세레나도 반지를 받으면서 정운의 품에 안겼다. 그걸 보면서 슬기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면서 말했다. “꼭 한 번에 허락한 내가 손해 보는 느낌이잖아요?” “··········.” 정운은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87층에서 히틀러가 나올 정도면 88층에는 누가 나올까? 악마들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자력으로 보스몹의 이름을 잘도 조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적은 단서로도 추리를 잘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알고 있었다. 저건 파우스트와 커넥션이 있었기에 알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을 말이다. 88층의 보스몹은 칭기스칸.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정복왕이었다. 그가 어째서 파우스트와 계약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몽골 기마병을 형상화 한 그의 부하몹은 정말 끔찍했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준 보스몹이었고, 거기다 끔찍하게 단체로 스킬도 썼다. 정운의 기마차지. 그걸 수만의 기마대가 동시에 쓴다고 생각해 보라. 거의 기마의 해일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사기 같은 악마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결국 악마들은 칭기스칸을 이겼고 89층으로 올라가는 것에 성공했다. 80층 대의 마지막 몹. 사실 칭기스칸이 나온 이상 역사상 어떤 군주가 나와도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았다. 누가 나올지 몇몇 유저들이 얘기를 하다가 배대호가 말했다. “실질적은 공적을 보면 칭기스칸 보다 위에 설 군주는 거의 없어. 차라리 신화나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군주가 나올 가능성이 크지.”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80층대의 마지막 보스. 89층의 보스몹은 사울왕이었다. 세상에 크리스찬이 아니라고 해도 다윗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다윗 이전의 왕이 바로 사울이었다. 다윗을 시기해서 죽이려고 하는 왕으로서 나오는 그는 결국 인생의 마지막을 자살이라는 비참한 결과로 맞이하게 된다. 사울의 돌파는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특히 악마들을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종교적인 의미의 인물들에게는 한 결 더 까다로운 면을 보였다. 수많은 신장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울왕의 군세를 뚫고 들어가서 마지막에 목을 친 것은 의외로 이제까지 숨죽이고 있던 박추성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박추성은 오랜만에 레벨이 올랐다. 악마들과 함께 플레이하기는 했지만 보스몹을 연달아서 격파하면서 얻는 경험치는 실로 막대했다. 박추성, 배대호 그리고 정운처럼 200레벨이 넘는 유저들조차 레벨업을 연달아서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정운이 미친 것처럼 레벨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한우리 연맹의 모든 유저들이 나름대로 사냥에 최대한 힘을 올리고 있었다. 악마들,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난 북한팀을 못 믿고 자신들이 힘을 최대한 비축해야 한다는 것을 정운이 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음... 완결. 완결... 1부 완결 시키려고 하니 많이 아쉽네요.... 그래도 깔끔하게 1부 완결 시키고 2부로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27화 90층 진출. 이제 유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당히 들 떴다. 90이라는 숫자가 피부에 확 와 닿은 것이다.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게임 클리어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한편 정운은 살짝 염려 되는게 있었다. 70층대로 올라가면서 보스몹들은 자신의 의지를 지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80층 대로 올라가면서는 보스몹의 정체를 밝혀야 했고 또 보스몹들은 모두 왕권에 관련된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90층대에도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예상은 맞았다. 90층의 처음에 나온 몹의 이름은 다름 아닌 토르였다. 뇌신 토르.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말 그대로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이 순간 정운은 바로 90층대의 의미를 깨달았다. “제길··. 신을 이기라는 말인가?” 아마도 신이라고 해도 진짜 신은 아닐 것이다. 세레나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메두사의 전례를 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상상력이 뭉쳐서 태어나는 존재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 중에서도 격이 있다. 악령이나 요괴 같은 경우는 상상력으로 태어난 존재 치고는 그래도 조무래기인 편이다. 그들의 근원이 되는 존재의 감정은 고작해야 두려움이나 공포 정도였으니··. 하지만 여기서 영웅이나 신화에 나오는 괴수가 되면 레벨이 한층 더 격상된다. 그냥 시시한 요괴들과 달리 메두사가 한층 격이 다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영웅이나 괴수들 보다 더 상위의 존재들이 있다. 바로 신들이다. 진짜 신은 아닐지언정 신이라고 불리고 신으로 기억되는 존재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권을 지닌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경우 파우스트가 설득할 방법도 전무하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신들은 대부분 파우스트에게 계약 당한 것이 아니라 포획당한 존재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었다. 어쨌든 첫 층의 토르는 강력했다. 토르는 원래 고대 게르만족의 신으로 토르 혹은 도나르라고도 한다. 묠니르라고 불리는 뇌신의 망치를 신구로 쓰면서 거인족들과 싸웠다고 하며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전투적인 신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와의 전투는 정말로 치열했다. 레벨만 해도 300이 넘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보스몹이라고 해도 결국은 파우스트의 룰에 묶인 상태였다. 악마들의 연합 공격에는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이때 워리놈은 살짝 이지만 이제까지와는 타원이 다른 힘을 보여줬다. 가뜩이나 괴물 취급 받고 있던 악마들이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서 유저들 사이에서 북한팀은 인간이 아니다. 라는 인식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걸 이 밖으로 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들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2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정운과 한우리 연맹에게 있어서 지난 2년은 바쁜 시간임에는 틀림 없었다. 90층 진출로부터 2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원래 악마들은 1년 안에 클리어를 목적에 두고 있었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건 정운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자신과 다른 유저들의 레벨을 올려가며 천천히 레이드를 했기 때문이다. 악마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지만 그럴 때 마다 정운은 악마들 사이에 심어놓은 카임을 통해서 악마들을 적절하게 조율했다. 그렇게 해서 2년 동안 정운을 비롯한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최대한 힘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렇게 해서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제 눈앞에는 대망의 99층이 눈앞에 있었다. 토르 이후의 보스몹을 말하자면···. 91층의 인드라. 놈은 무척 강했지만 사실 정운이 토르 묠니르를 입수한 상태라서 뇌전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진 상태였기에 유저들 끼리도 이길 수 있었다. 참고로 묠니르는 뇌전에 대한 저항력과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 오려주는 아이템이었다. 따로 장비할 필요 없이 인벤토리 안에 넣고 있는것만으로도 정운의 뇌신강림의 위력이 두 배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층인 92층에 나온거슨 포세이돈. 놈의 경우 한중겸이 눈이 뒤집혔었다. 지금의 자기 여자인 메두사와 썸씽이 있었던 사이가 아닌가? 자기는 여자가 한둘도 아닌 주제에 자기 여자의 옛 남자에게는 무한한 질투심을 불태우는 한중겸이었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포세이돈은 메두사와 싸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역시 유저들의 손에 죽어갔다. 그리고 93층의 시바. 인도의 파괴신인 시바를 상대로 결정타를 먹인 것은 배대호였다. 악마들이 미친 듯이 활약하는 80층대와 달리 90층대에서는 유저들이 어느 정도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악마들은 그걸 보고 살짝 이지만 경각심을 지녔다. 원래 인간 따위가 강해지면 얼마나 강해지겠는가? 라는 식으로 방심하고 있었던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는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경험치의 보상이 커진다. 이미 한우리 연맹에는 200레벨이 넘어가는 유저만 해도 열 명이 넘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과 박추성 배대호의 레벨은 300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모든게 악마들의 조력(?)덕분이었다. 항상 보스몹을 상대로 막대한 경험치를 안겨주고 그리고 또 상위층에서 퀘스트와 몰이사냥을 폭식하면서 레벨을 올리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악마들은 그제야 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하기 시작했다. 악마들의 힘은 이미 정해져 있다. 거기서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들의 경우 한계가 없다. 이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무한하게 강해 질 수 있었다. 실제로 박추성, 배대호, 그리고 정운의 실력은 악마들에게 거의 접근하고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접근했을 뿐. 아직 대등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악마들 중에서도 엄연히 격의 차이라는게 존재하는 법. 솔직히 말해서 워리놈을 상대 하려면 이들 세 명이 힘을 합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초조해 할 틈은 없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힘을 모아야 할 때였다. 위기일 때야 말로 저력이라는 숨겨진 힘이 드러나는 법이니까····. 94층의 상대는 하데스. 지옥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 답게 엄청나게 강했지만···. 사실 강하다라는 것 이외의 별 특성은 없었다. 95층의 로키. 북유럽 신화의 수많은 신들 중에서고 가장 두려움 받고 그리고 가장 존경 받지 못한 신이 상대였다. 어느 정도 애를 먹기는 했지만 악마와 유저들의 연합군을 상대로는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94층과 95층의 신이 악역이었다면 96층의 신은 전혀 악역 냄새가 나지 않는 상대였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가 바로 상대로 나온 것이다. 전신에 갑주를 걸치고 창과 방패로 무장을 하고 범점 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위엄을 동시에 두르고 나타났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가 90층대의 신들 중에서도 가장 운수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악마들의 연합 공격을 맞고 레드 크리스탈이 뜬 순간···. 한중겸이 테이밍을 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건 장말이지 운명이랄까? 혹은 정해진 패턴이랄까? 악마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한 타이밍에 한중겸의 테이밍이 먹혀 들어간 것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보스몹이 여자라고 들은 순간부터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어.” “················.” 이민지의 한탄에 한중겸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뭐···, 결과적으로 이민지는 제대로 빡쳤지만 한우리 연맹은 엄청난 전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 다름 아닌 96층의 보스몹을 아군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97층의 보스몹은 아수라. 그야말로 싸우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될 정도로 탁월한 전투 센스를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보통의 보스몹들은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전투 센스는 그렇게 탁월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까지 정운이 싸웠던 상대들 중에서 전투 센스가 가장 탁월했던 보스몹은 이전에 나타났던 항우 정도였다. 하지만··. 이 아수라의 전투 센스는 항우를 훨씬 초월하고 있었다. 유저들도 악마들도 한참 애를 먹고 있었지만···. 결국 워리놈이 끝장을 내 버렸다. 아수라가 전투의 신이라면 워리놈은 전투에 특화된 악마였다. 그는 아수라에 비해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발군의 전투센스로 아수라의 목을 쳐버렸다. 그리고 그걸 보고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악마들 중에서도 손 꼽히는 워리놈의 전투란 말이지····.’ 정운은 이미 카임에게 얻은 정보를 통해서 워리놈이 악마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힘과 위치를 가지고 있는 악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6대 악마 중에 들어가지는 모하지만 그 다음 서열에 해당하는 수준의 전투 악마. 그런 위치에 있는 악마중에 하나가 워리놈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루시퍼가 메피스토의 목을 치기 위해서 워리놈을 보낸 것이지만 말이다. 98층의 보스몹은 염제. 치우의 숙적인 황제 헌원에게 패권을 빼았겼던 그 염제였다. 뛰어난 무술과 세상 만물을 부리는 듯 한 능력까지···. 강적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부하몹도 없고 특수한 능력도 크게 없는 상황이었다. 즉, 장기전으로 몰아가면 충분히 상대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교대조 투입!! 전투 조는 회복에 주력해라!!!” “옛!!” 그야말로 정석적인 슬로우 페이스릐 레이드였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월드 서버의 최정예 유저들이었기에 간당간당하게나마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렇게 해서도 염제의 레이드는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은 성공해 냈다. 그리고 대망의 99층. 그곳의 보스몹으로 정운은 사실 제우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답은 다른 신이었다. 북유럽의 주신이 오딘. 그 이름이 마지막 99층의 관문을 틀어막고 있었던 것이다. 오딘의 주무기는 궁니르 라고 불리는 신창이었다. 사실···. 말만 신창이지 그딴 무기를 ‘창’ 이라는 카테고리에 넣는 것은 반칙이다. 라고 정운은 반박하고 싶었다. 무슨 놈의 창이 자유자재로 테레포트를 하면서 날아오지를 않나··. 거기다 한 번 맞으면 레벨이 300이 넘은 정운도 한방에 반피를 넘게 닳았다. ‘이건 사기야····.’ 정운은 혀를 내둘렀다. 이건 절대 피해야 했다. 정운 외의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어쨌든··· 아무리 강한 적이라고 해도 적이 혼자인 이상 공략의 불가능은 없었다. 악마들이 전면에 나서서 오딘을 상대로 본격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거기서 악마들과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춰서 싸울 수 있는 것은 정운과 박추성, 배대호, 그리고 아테나를 소환수로 가지고 있는 한중겸 정도였다. 이민지까지만 해도 거기에 낄 엄두를 못 내고 아군을 지키는 것에만 주력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오딘의 머리위에 레드 크리스탈이 떴을 때···. “지금!!!!” 후우우우우웅!!!!!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운의 뇌광이 오딘의 몸을 반으로 갈라냈다. 그리고 그 순간···. 월드 서버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에게 동시에 한 가지 알림창이 울렸다. 띠리링!! [99층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이제. 그라운드 제로의 마지막 층의 보스몹. 파우스트에게 대한 도전권을 획득했습니다. 이 순간을 기해서··. 한시적으로 모든 층의 모든 필드의 몹들이 사라집니다.] 이 메시지가 뜨자 그라운드 제로의 수많은 유저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뭐지?” “이건···. 무슨 말이야? 누가 99층에 갔는데?” “이건··. 잠깐, 진짜 필드로 게이트가 안 열려.” 그나만 한국을 포함해서 월드 서버의 진출자가 있는 서버는 좀 나았다. 한국서버만 해도 모든 유저들이 다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삼대 길드의 간부들 정도가 되면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었다. “해 내신 건가?” “아니지··. 엄밀히 말해서 한 층 남았어. 하지만···. 멀지 않을지 모르지.” 삼대 길드의 간부들은 그렇게 하나하나 마음을 다잡았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앞에서 말했던 대로 제가 본가에 다녀와야 해서, 며칠 정도 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올라가면 내일 본가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집필을 해서 어찌어찌 올리는 기적이 발생 할 수도 있지만.... 나름 최선은 다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28화 <파우스트의 등장.> 파우스트에 대한 도전권이 생긴 직후··. 악마들은 바로 돌입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운은 카임을 절묘하게 움직이면서 악마들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들어가면 파우스트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우리도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고 가야 하지 않을까?” 정운의 말에 악마들은 순간 움찔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의 목적은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극 소수였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악마들은 그 비밀이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임이 정운에게 세뇌가 된 상황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악마들이 생각하기에 인간은 자신들 보다 열등한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이 놈 들도 정리 하는게 낫지 않을까?’ 악마들 중에서도 실질적인 리더 격인 워리놈은 발목을 잡는 정운을 보면서 정리를 할까 싶었다. 메피스토의 부하들에게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아서 인간들의 무리를 위장으로 쓰기는 했지만···. 사실 그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카임이 말했다. “맞는 말이긴 하군···. 우리 쪽도 힘의 소비가 어느정도는 있었으니···.” “카임!!” 워리놈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경고를 했지만 카임은 고개를 저으면서 워리놈을 진정 시켰다. “진정해. 상대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는 카임을 보면서 워리놈을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냉정하게 머리를 식히고 생각하면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다. 워리놈들이 노리는 목은 악마들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6대 악마중에 하나인 메피스토 펠리스였다. 실질적으로 루시퍼와 바알을 제외하면 마계의 NO.3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거물인 것이다. 비록 봉인된 상태고 어느정도 방심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전의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싸우는 것은 득책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군····.’ 결국 워리놈을 비롯한 악마들은 고집을 꺾었다. 자신들도 컨디션을 완벽하게 되돌리기 위해서 하루간의 말미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하루 동안··. 수많은 유저들은 결의를 다질 수 있는 유예를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결전의 전야···.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 결의를 다지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좋게든 나쁘게든···. 그라운드 제로에서 보내는 밤도 이게 마지막이군.” 배대호의 그런 중얼거림에 박추성은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마주 들었다. 한국 서버에서··. 아니 그 이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이 둘로서는 지금이 무척 특별한 순간이었다.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한 순간이 이제는 끝나는 것이다. 어찌 무덤덤하겠는가? 박추성은 투명한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후회··· 한 적 없냐?” “뭘?” “몰라서 묻냐? 그 일에 관해서 묻는 거다.” “··············.” 침묵하는 배대호를 눈앞에 두고 박추성은 자기 눈앞에 술잔을 단숨에 비우면서 말했다. “천재니 뭐니 해도···. 사실 별것 없지. 보통 사람처럼 실수도 하고·· 보통 사람처럼 후회도 하지···.” “·············.” “그 일에 관해서라면 단 일초도 후회해 보지 않은적이 없어.” 애환에 젖은 배대호의 표정을 보면서 박추성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살아서 돌아만 가면··. 돌이 킬 수 있어.” “글쎄? 나는····. 나는 자격이 없어.” “············나도 그래.” “··············.” 두 남자는 그저 말없이 술잔만 비워갔다. 오늘의 고뇌의 해답은··. 내일 살아남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지영아.” “왜?” 이보영은 자신의 부름에 착한 아이처럼 대답하는 동생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언니가 꼭 지켜줄게. 그리고···. 넌 꼭 행복해 져야 해.” “··············나보다·····.” “너만 행복 하면 돼.” 이보영은 동생의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재빠르게 못을 박듯이 말했다. 너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바라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 언니를 보면서 이지영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 잠겼다. “··················.” “언니는 너만 행복 하면 돼.” “·················.”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그 보상으로 동생이 어두운 과거를 벗어나고 그리고 행복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게 이보영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자신은 내일 죽어도 좋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내가 언니야. 그러니···. 절대 네가 나 보다 먼저 죽는 꼴은 못 봐.’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각오를 짊어졌다. “····진심···. 이에요?” “이런 말을 거짓으로 남발할 정도로 요령이 좋지는 못합니다.” “················.” 얼굴을 사과처럼 붉히고 망설이고 있는 다이앤 여왕을 보면서 윤정철이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하고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윤정철의 손에는 작은 반지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다이앤 여왕은 수줍게 웃으면서 그 반지를 받아서 윤정철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긴장한 윤정철에게 옅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직접 끼워 주실래요?” “·············.”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윤정철이었다. 게임의 클리어에 큰 미련이 살아졌던 윤정철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살아남겠다는 생각이 가득해 졌다. 한중겸과 이민지가 동거하고 있는 침실···. 거기에는 두 남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금의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듯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이민지는 한중겸의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런 것만 하면서 시간 보내도 돼?” 그런 그녀의 말에 한중겸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순간 정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하고 싶어.” 한중겸의 너무나 태연한 말에 이민지는 순간 당황했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민지는 그런 상태로 한중겸에게 말했다. “····흥, 다른 애들 앞에서도 어차피 똑같은 말 할 것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정색을 하고 부정하는 한중겸에게 이민지는 의외라는 듯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중겸은 이민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다른 애들은 소중한 애들, 너는····.” “나는?” “넌, 사랑하는 내 여자. 이 차이는 분명히 있어.” “··············.”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는 그저 그의 품안으로 파고 들어갈 뿐이었다. 사실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고 툭하면 첩을 들임에도 불구하고 한중겸을 이민지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 몰랐다. 원래 이민지라는 여자는 어느 정도의 바람기는 용서 할 수 있었다. 시대 자체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당연한 시대에서 온 사람이고···. 남자가 그 정도의 바람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많은 여자들하고 놀아난다고 해도 결국 가장 특별한 여자는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만이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정운과 달리 한중겸은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칼 같이 선을 그었다. 정운이 슬기와 세레나를 둘 다 평등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한중겸의 경우 처첩의 구분이 명확했던 것이다. “····내일 살자.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 한중겸의 말에 이민지는 그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의 그 한마디로 인해서, 그녀는 살아남아야 할 동기를 손에 넣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죽을 각오 따위가 아닌 살 각오가 있는 이상···. ‘절대로 살아 남아 보이겠어.’ 라고 그녀는 다짐했다. 다음날···. 각자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운명의 도전날이 되었다. 파우스트를 향한 도전이 시작되기 전에··. 정운은 미리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몰래 전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로 놀라지 말 것.] 정운은 이 당부의 말을 쪽지로 남겨서 동료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자신 역시 결의를 단단하게 다졌다. ‘자··· 도박의 시간이다.’ 100층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아주 짧은 순간. 알림창이 울렸다. 띠리링!! [최상층 진입자에게 최하층으로 진입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런창이 뜸과 동시에 워리놈을 비롯한 악마들은 게이트를 열었다. “최하층으로!!!” “메피스토의 목을 치는 거다!!!!” 악마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악마들이 지하로 내려가고 나자 최상층에는 정운을 비롯한 유저들만이 남은 것이다. “이건···?” “어떻게 된 거야? 북한팀은?” “최하층이라니··. 왜 거기로···.” 이미 정운에게 어느 정도 얘기를 들어서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던 한우리 연맹과 달리···. 유니버스 연맹의 입장에서는 팀의 최고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팀이 사라지자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실, 북한팀이 합류한 후로 유니버스 연맹은 철저하리만치 태만했다. 굳이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북한팀, 그러니까 악마들이 다 알아서 클리어를 하는데 무슨 이유로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사냥을 하겠는가? 지금에 와서 유니버스 연맹의 레벨은 한우리 연맹과 까마득하게 차이가 나 버릴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고 있던 북한팀의 이탈. 이제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행을 눈앞에 두고··. 한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나의 백성들이여.” 여기까지 와서 누구인지 정체를 묻거나 ME로 찍어보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었다. 정운의 입에서 상대를 향한 이름이 저절로 나왔다. “파우스트.” “그래. 그게 나다.” 파우스트는 정운을 바라보면서 빙긋 웃었다. 드디어 마지막 스테이지의 보스몹이 등장한 것이다. 파우스트의 첫 인상은··· 뭐랄까? 지극히 평범했다. 약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름이 새겨져있는 얼굴은 중년 남성의 전형적인 것이었다.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리했고, 눈동자는 푸른색에 수염이 턱 부분에 살짝 나 있는···. 전형적인 중년의 서양 남성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모습에 걸 맞는 특이함은 없었다. “처음 보는군. 나의 백성들이여. 비록 편법을 쓰기는 했지만 나에게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 파우스트는 유저들을 보면서 기특한 아이들을 칭찬하는 것처럼 말했다. 마치 심부름을 마친 어린애를 어르는 듯한 말투에 박추성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축하 따위는 필요 없어. 우리는 네 목이 필요할 뿐이라서 말이야.” “내 목이라····. 내 목····.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너희들이 믿고 있던 악마들은 지금 지하로 가 버렸는데?” 파우스트의 말에 박추성은 말 보다는 행동으로 보답했다. “그건··. 해봐야 하는 법!!!” 촤아악!!! 박추성의 무한의 영사가 날카로운 선이 되어서 파우스트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안 돼지···.” 파우스트의 목을 노리고 날아가던 공격은 그대로 파우스트의 바로 앞에 있는 보호막에 막혀 버렸다. 하지만 박추성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어라 혈화(血華)야. 봉화만개(峰華滿開)!!!” 봉화만개(峰華滿開) LV.MAX (적의 발 밑에서 와이어가 폭발하듯이 꽃잎을 피운다. 막강한 대미지를 자랑함과 동시에 적을 포위해서 촘촘하게 난자한다. 절대로 피할 수 없다.) ============================ 작품 후기 ============================ 간신히.. 간신히 올리기는 올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연재주기 마지막에 탈이 났네요. 아슬아슬 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29화 <파우스트의 진의> 박추성의 레벨이 올라가면서 생긴 비장의 기술중에 하나였다. 파우스트의 발밑으로 파고든 무한의 영사는 그대로 꽃이 피는 듯한 형상으로 그대로 화려하게 꽃잎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호오····. 무척 아름다운 기술이군. 와이어 형태의 무기로 이미 자연을 재현하는 것에 도달했는가?” 파우스트는 자신의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공격을 보면서도 여유만만 했다. 하긴···. 실제로 박추성의 회심의 공격조차도 그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런 여유를 부린다고 해서 뭐라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공격의 시작은 박추성이 열었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패왕멸천권!!!!” “북두파멸시!!!” “라이트닝 익스플로전!!!!” 박추성의 공격은 적의 지면에서 공격하는 타입이다. 즉, 이 공격을 막고 있는 동안은 파우스트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전에 이런 작전을 짜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시점에서 극딜을 퍼부였다. 콰콰쾅!!!! 콰아앙!!!! 상대는 그라운드 제로의 창조자이자 마지막 보스몹인 파우스트. 그 어떤 용서나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유저들은 있는 힘을 모두 모아서 적을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특히 정운은··. “뇌신 강림!! 쉐도우 아미!!” 초반에 모든 힘을 소모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정운은 그대로 그림자의 무장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거대한 뇌전의 칼을 만들어 냈다. 파지직··. 파지지지직!!! 그러자 허공에 황금빛 뇌전을 방전 시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검이 나타났다. 거검의 길이는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의 길이였다. 길이만 해도 무려 2km. 이게 작정하고 들어가면 현실에서 제주도 정도 되는 크기의 섬은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극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스킬이었다. “묠니르 소드!!!” 묠니르 소드 LV.MAX (뇌신 토르의 신기인 묠니르의 힘을 이용해서 만든 극강의 섬멸기. 그 위력은 뇌전계 최강의 기술이며 위력은 측정의 범위를 벗어났다.) 전압을 최대치로 올려서 최강의 뇌전계 스킬. 정운이 지금 할 수 있는 최강의 스킬이었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의 규격조차 벗어나는 이 스킬은 정운이라고 해도 하루에 두 번 사용하는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그림자의 무장들과 힘을 합쳐서 사용했을 때의 일. 혼자서는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반칙 같은 기술이었다. 어쨌든····. 이윽고 정운의 공격이 파우스트에게 작렬했다. “모두 숙여!! 정운이의 공격이다!!” “빛을 보면 눈이 먼다!!!” 원래 같은 파티의 공격은 아군에게 대미지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정운의 저 스킬은 예외였다. 직접적인 대미지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격이 적중한 순간에는 엄청난 발광을 하면서 빛을 뿌리기 때문에 아군들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저 공격을 정면으로 직시했던 프랑스의 피에르가 실제로 한동안 실명을 했던 일이 있었을 정도였다. 콰아아아아앙!!!! 핵폭탄의 수십배에 달하는 파괴력의 공격이 파우스트에게 작렬했다. “후우우우·······.” 정운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파우스트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정운은 속으로 약간 초조하게 생각했다. ‘이걸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최소한 대미지 정도는····.’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파우스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먼지가 걷히고 나서 드러난 파우스트의 모습은·····. “대단하군. 역시 인간이야 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야. 고작 100년 남짓한 세월을 단련 시켰을 뿐인데 이런 파괴력이 나올 줄은 몰랐어.” “····빌어먹을···.” 멀쩡하기 그지 없는 파우스트의 모습에 정운은 저절로 욕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우스트는 기특하다는 얼굴을 하고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방금 전에 네가 한 공격은 전격계라기 보다는 이미 플라즈마 형태의 에너지체에 가까웠다. 칭찬해 주마.” “······저 괴물····.” “격이·· 다르단 말이지····.” 드러난 파우스트의 모습은 지극히 멀쩡했다. 그는 마치 정운을 향해서 시험 성적을 잘 맞은 학생을 칭찬하는 교사 같은 말투로 칭찬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저들은 순간 마음이 꺾여 버릴 것만 같았다. ‘정운의 저 공격이 안 통하는 상대라면····.’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을지 몰라····.’ ‘·····빌어먹을, 이거 애당초 클리어가 가능하기는 가능한 건가?’ 유저들의 절망을 읽었기 때문일까? 파우스트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발버둥은 다 친 모양이군. 그렇다면 슬슬···.” 그리고 파우스트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유저들은 잔뜩 긴장하고 몸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처음으로 파우스트가 공격을 하려고 하는 것으로 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얘기 좀 할까?” 파우스트가 하는 것은 공격이 아니었다. 후웅!!!! 오히려 그가 손을 들어서 모두를 향해서 손을 휘젖자 일행은 어느새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그들의 앞에는 이제 막 우려낸 듯한 향긋한 차가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었다. ‘······이건?’ ‘언제?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일행은 파우스트의 행동에 이제는 질려 버릴 것만 같았다. 이건 무슨 치트키 덩어리를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싸워도 도저히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상당수의 유저들에게 전의가 사라지고 거기에 절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저들이 그런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을 읽었을까? 파우스트는 가장 상석에서 유저들을 보면서 말했다. “우선 그대들에게 칭찬과 감사, 그리고 경의를 표하고 싶다.” 파우스트의 말에 박추성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일단 기분 나쁘니까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좀 그만두지 그래?” 박추성의 말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인간의 우수한 점은 뛰어난 인간이 열등한 인간을 지배하고 이끌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전 인류 중에 가장 우월한 내가 그대들에게 하대를 하는게 기분 나쁜가? 아니면 그대가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가?” “이 새끼가····.” 파우스트의 말에 박추성은 울컥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박추성을 옆에서 배대호가 말렸다. “일단 회복이나 하고 있어,” “하지만····.” “앉아. 그리고···. 파우스트. 당신이 우리하고 할 얘기 라는게 뭐지? 우리는 당신하고 얘기할 이유가 없는데?” 박추성을 진정시킨 배대호가 일단 대화에 관한 시도를 하자 파우스트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름 머리가 굴러가는 친구로군···. 하나만 물어보지? 혹시 이 중에 내가 왜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를 만들었는지 이유를 아는 자가 있는가?” 파우스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추성을 시작으로 정운과 한중겸까지 연달아서 입을 열었다. “네가 미친놈이라서?” “네가 재수없는 놈이라서?” “네가 궁극의 중2병이라서?” “네가····. 미안, 나 이제 소재 다 떨어졌다.” 지극히 비협조적인 유저들을 보면서 파우스트는 피식 웃었다. “설명해 주지. 내가 홀로 벌여온 투쟁의 역사를, 우리 인류의 희망을···.” 딱!! 파우스트가 손바닥을 튕겼다. 그러자 일행이 있던 회의실은 공간이 변해서 마치 우주공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우스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태초에 신이 빛과 어둠을 만들었다. 그리고, 빛에서는 천계의 천사들과 요정들이, 그리고 어둠에서는 악마들과 요괴들이 태어났지.” 그의 설명이 시작되는 것에 따라서 세상의 모습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천사들이 천계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부터 악마들이 불지옥에 군림하는 모습까지···. 파우스트의 설명에 따라서 하나하나의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 되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유저들에게 본격적으로 설명을 계속했다. “빛과 어둠의 사이에서 우주가 태어나고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지. 그리고 기적에 기적이 겹친 확률로 만들어진 하나의 행성이 있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다.” 파우스트는 지구의 모습을 보면서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소중한 보물을 어루만지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즉, 이 파우스트라는 남자는 세계 자체를 자신의 소유물 취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 지구에 군림하고 있던 것은 거대한 사이즈의 파충류들이었지. 이들은 오랜 세월 지구에 군림해 왔지만···. 사실 이뤄놓은 업적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 이렇게 풍요로운 기적의 행성에서 수억년 동안 군림하면서 한 거라고는 먹고 싸고 번식하는 것 뿐이었지.” 파우스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을 이었다. “이런 풍요로운 행성에서 그런 무지한 돌대가리들이 수억 년을 낭비했던 거다. 그리고···. 그 돌대가리들이 사라진 이후에 나타난 기족의 생물. 그게 바로 우리들 인간이다.” 파우스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조금씩 빠져 들어갔다. 뻔히 다 아는 내용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내용부터 입에 담는 파우스트의 저의가 궁금했던 것이다. 파우스트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인간이라는 종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 지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발전, 이 평범한 단어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파우스트는 실로 감격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인류들이 신성시하는 천사들도, 그리고 인류가 두려워하는 악마들도··. 실제로는 우리 인간들 보다 훨씬 열등한 존재들이다. 왜인지 아나!!?” 파우스트의 질문에 순간 사람들은 대답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럴 틈도 없이 파우스트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발전!! 바로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존재들은 그저 만들어진 그 상태로 영원한 답보만 하고 있을 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발전이라는 것을 그들은 할 줄 모르지. 우리 인간이야 말로, 유일하게 신을 넘어 설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 순간 세레나가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신실한 크리스찬이며 천사이기도 한 그녀에게 지금 파우스트가 한 말은 신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모독하는 행위나 다른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은 재빨리 손을 잡아서 진정 시켰다. ‘진정해. 세레나···. 아직 때가 아니야.’ 정운이 눈짓을 하자 세레나는 일단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파우스트가 설명을 이어갔다. “인류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결국은 나라는 존재를 만들기까지 되었다. 나는 악마를 이용해서 나의 세계를 만들고 이 세계에 많은 인간들을 끌어 들여서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파우스트의 말에 한중겸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잠깐, 우리하고 계약을 한 것은 악마들이야. 우리는 악마들과 계약을 해서 네 목을 노리고······.” “그래··. 적어도 그렇게 보였겠지.” 말을 하던 한중겸은 파우스트의 여유만만한 얼굴을 보면서 말을 흐렸다. ‘설마····.’ ‘아니··. 설마, 정말로····?’ 순간 이 자리에 있던 유저들은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이제는 진실을 알 자격이 있겠지. 그대들을 끌어들인 것은 나다. 메피스토의 부하들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애당초 그 메피스토 역시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나의 부하일 뿐이다.” 파우스트의 말 한 마디는 유저들 전부에게 커다란 충격을 전해 줬다. 그 말은···. 여기 있는 유저들뿐만 아니라 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모든 유저들이 파우스트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났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 작품 후기 ============================ 어지간한 복선은 여기서 거의 다 회수합니다. 왜 파우스트가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었는가? 부터 파우스트의 진정한 목적까지... 그리고 정운이 쥐고 있는 단 한장의 조커까지.. 언제 어디서 갑자기 휴재가 들어갈지는 미지수입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사태시 휴재는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저 최선은 다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30화 파우스트의 충격적인 선언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들로서는 이제까지 자신들이 해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게···. 정말 모든게 파우스트의 손아귀에 놀아났을 뿐인 것이다. 다만,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정운이 파우스트에게 물었다. “만약···, 모든게 네 뜻 대로였다면, 이 그라운드 제로를 만든 이유는 뭐지? 뭘 노리고 이런 세계를 만들어서 수많은 인간을 이 안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이냐?”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가 바라는 목적은 오로지 하나. 인류의 무궁한 발전과 세계를 인류의 발아래 두는 것뿐이다.” “···············.” “···············.” “···············.” 유저들은 언 듯 파우스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유저들에게 파우스트가 계속해서 설명을 덧붙였다. “모르겠는가? 난 세계를 다시 만들려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정된 자원을 두고 인류가 싸울 필요 없다. 인종이나 역사 신앙의 문제로 더 이상 인류가 충돌할 필요도 없다. 모든 인류가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은 만들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너무 꿈같은 소리에 배대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파우스트가 하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기존의 세계를 지우고,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눈앞에 있는 이 파우스트라는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파우스트가 유저들을 향해서 말했다. “이것을 보아라.” 파우스트는 허공에 세 개의 구슬을 소환했다. 하얀 구슬, 검은 구슬, 그리고 푸른 구슬까지··. 세 개의 구슬을 보여주면서 파우스트가 유저들에게 설명을 계속했다.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세계의 씨앗, 창조의 상징인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슬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왔어, 정말로····.’ 정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면서 겉으로는 태연하게 파우스트를 향해 질문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안에서 포켓몬이라도 나오는 거냐?”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오는 것은 세계다. 새로운 세계. 난 이미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를 창조해 본 경험이 있지.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나의 백성들이 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없이 영혼을 불태우고 피를 뿌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희생이 세계의 창조라는 형태로 보답 받는 것이다.” 정운도 거기까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저 창조의 구슬이야 말로 이 그라운드 제로의 존재이유라는 것을 오랜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인간, 악마들이 영혼을 태워가면서 저 구슬을 제련했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는 저 세개의 구슬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제련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네놈은 모든 세계를 네놈의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거군.”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부정은 하지 않겠다. 기존의 세계의 부조리를 모두 뒤집는 것이니 말이다.” “그 부조리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거지.” “나다.” “네 기준은 뭐지?” “우선 나의 백성들, 즉 너희들이 일차적으로 신인류가 되어서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네놈의 수족이 되어서 말이지.” “··············.”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순간이지만 처음으로 말이 끊어졌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시선을 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그렇다. 세계는 관리를 필요로 한다. 나라는 신과 너희들이라는 새로운 신인류로 신의 사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너에게 따르지 않는 인간들이 나온다면?” “그런 인간은 나오지 않는다. 모르겠나? 난 세계를 다시 짜려고 하는 것이다.” “················.” 한 마디로 파우스트가 만드는 세계는 모든 것이 파우스트가 상상하는 것이 그대로 이뤄지는 세계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를 거역하는 사람은 애당초 생기지를 않는다. 그런 세계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놈,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사실 정운은 어느 정도 파우스트가 이런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창조의 방에서 ‘그’에게 이 사실을 어느 정도는 들었었다. 파우스트의 진정한 목적은 세계의 창조. 그러니··. 정운에게 그걸 막기 위해서 ‘그것’을 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운은 한편으로 생각했었다. 인간이 그렇게까지 어마어마한 짓을 할까? 세계를 다시 만들다니?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적어도 정운이 생각하기로 파우스트는 악마도 속여서 이용해 먹을 정도로 천재였다. 하지만 세계의 재창조 같은 것은 천재라기 보다는 거의 망상의 영역이 아닌가? ‘그걸 인류 최고의 천재라는 자가? 정말 진심이었다니····.’ 여기서 정운이 모르는게 있었다. 원래··. 천재라는 자들이 한 번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극단적으로 삐뚤어지는 수가 있다. 사실 천재라는 것은 보통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 보다 정신적으로 안정적이고 성숙하다는 결론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정운은 결론을 내렸다. 세계를 다시 창조할 생각을 하고 그걸 실제로 이뤄내고 있는 파우스트는 틀림없이 천재다. 하지만···. 이 천재는 미쳤다. 세계를 자기 입맛대로 다시 창조하다니. 현재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민폐일 뿐이었다. 어쨌든 이제는 결정할 때였다. “간단하게 선언하지. 난 네 신하 따위는 되지 않아.” 정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하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뭐가 불만이지? 변화가 두렵나?” “그럴지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누구 하나가 자기 좋을 대로 좌지우지 하는 세계에서 살아야 할 미래다.”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섬 말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건가? 모순이야. 원래 인간은 자유롭게 살 수 없는 존재다. 나라, 가족 등등··.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고 그 집단의 룰에 따르면서 행동하지. 자유는 그 틀 안에서만 누리는 것이다. 내가 하는 짓을 그 틀을 다시 짜는 것일 뿐. 실질적인 자유를 원한다면 나의 세계에 적응하는게 우선일 것이다.” 파우스트의 설명은 듣기로는 그럴 듯 했다. 하지만 정운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나라, 가족, 그건 모두가 공감하고 또는 사랑하는 것이지. 단 한명의 독재자가 멋대로 휘두르는 깃발에 순종하는 것은 사양하겠어.” 정운이 단호하게 거부하자 파우스트는 고개를 적으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안타깝군···. 넌 특히 더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알바 아니지. 즐이다 새끼야.” 인류 최고의 천재, 신을 향해서 도전하는 남자에게 정운은 주저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세웟다. 그리고 정운은 주변의 다른 유저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저하고 같이 뜻을 함께 할 사람은 제 편으로, 그리고 파우스트와 함께 세계를 주물럭 거려보고 싶은 망상자는 저 파우스트의 뒤편으로 가십시오.” 정운이 일어서면서 그렇게 말하자 몇몇 유저들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전 항상 당신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 “저 역시입니다. 마스터.” 가장 먼저 슬기와 세레나가 주저없이 정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박추성 배대호 한중겸 등이 서서히 서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배신 때리는 건 지조가 없지.” “백번 맞는 말···.” “복잡한 건 설명 못하겠지만···. 난 저놈이 몹시 싫다.” 한국 팀을 중심으로 해서 한우리 연맹은 전원이 정운의 뒤편으로 섰다. 심지어는 한우리 연맹에서 가장 약삭빠른 나탈리아 역시 정운의 뒤편으로 섰다. 물론 그녀는 나름 속셈이 있었다.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대는 뭔가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거겠지? 목숨을 건 도박을 하려면 배당이 큰 쪽에 거는게 철칙이지.’ 그녀는 정운이 뭔가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따른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녀가 지켜본 정운은 그저 혈기로 폭주만 하는 어리석은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이런 한우리 연맹과 달리 유니버스 연맹은 은근히 파우스트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방금 전에 모든 유저들의 합동 공격을 견딘 파우스트를 상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우스트가 신이 되면 우리는 그 신의 사자···.’ ‘이제까지 우리가 꿈 꿔왔던 소원들 따위 보다 훨씬 더 큰 영화를 앉게 된다.’ ‘인류의··. 아니 세계의 지배자의 오른팔이라니····.’ 당근과 채찍. 그 중에서도 당근의 효과가 너무 좋았다. 파우스트가 했던 제안은 실질적으로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군림하는 것은 파우스트. 하지만 그 밑에서 세계를 다루는 것은 자신들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그렇게 파우스트의 뜻대로 이뤄지기만 하면 인간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권력과 힘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파우스트나 정운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몇몇 유저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는 콘러드 크라우스가 대표격으로 남아 있었다. ‘줄을 잘 서야 하는데···. 어디가 바른 줄이지? 어디가 썩은 줄인 거야?’ 생각이 많은 인간은 원래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때로는 신중함이 지나쳐서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콘러드 크라우스는 쉽게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서 파우스트가 말했다. “망설이는 자들에게는··. 이게 좀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군.”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메피스토의 목을 치기 위해서 지하로 이동했던 악마들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 한명이 정운의 눈에 띄었다. “저건···. 엉망으로 되었군.” 정운이 중얼 거리면서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김신수가 있었다. 악마들과 함께 리영호라는 이름으로 위장했던 김신수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사슬에 구속을 당한 상태로 나타났다. 그들을 묵고 있는 사슬을 쥐고 있는 것은 신장이 20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악마··. 바로 메피스토 펠리스였다. “저게 대악마····.” “메피스토 펠리스····.” 파우스트 하나만해도 버거운 상황에서 저런 거물까지 나오자 망설이던 유저들 대부분의 마음이 파우스트쪽으로 기울었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괴물 같았던 악마들이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저 꼴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특히 김신수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백발로 변했고, 온몸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이 마치 100살은 먹은 노인의 죽기 지전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런 김신수를 보고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기는 하지만··.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거지?’ 파우스트의 부하 겸, 아바타로 알고 있었던 김신수가 저렇게 된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신에 메피스토의 옆에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있는 최수영··. 아니 이제는 본 모습으로 돌아간 메데이아는 멀쩡하지 않는가? 어떻게 상황이 굴러가서 저렇게 된 것인지 선 듯 이해가 가지 않는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파우스트였다. “수고했다. 메피스토.” 파우스트의 말에 메피스토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 것 아니었다. 이미 독안에 든 쥐들이나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용케 루시퍼와 바알의 속셈을 이렇게 이용할 생각을 했군.” ============================ 작품 후기 ============================ 파우스트와의 전투씬을 바로 길게 진행하는 것을 기대하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파우스트와의 전투는 시작도 안 한 겁니다. 지금은 붙어서 승산도 없고요. 연재 빵구는 안 내고 1부 완결 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31화 메피스토의 말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날 뭘로 보나? 애당초 루시퍼나 바알이 생각하는 바는 뻔하지. 그런데 내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협정을 맺을 리가 없지 않나?” “후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대화를 들으면서 가장 화가 난 것은 악마들이었다. “크윽···. 파우스트··. 네놈이 감히 악마와의 계약을 배신해!!!?” 워리놈이 이를 갈면서 파우스트를 향해서 으르렁 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우스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너희들 악마와의 계약 따위를 내가 지킬 리가 없지. 난 너희 악마들 보다 훨씬 상위의 존재인 인간이다.” “크으으····. 죽인다. 이 인간 새끼!!!!” 철컹!! 철커엉!!!!“ 워리놈은 전신이 사슬에 묶인 사태에서 발악을 했다. 하지만 워리놈을 직접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그 메피스토 펠리스였다. 온힘을 소진한 워리놈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파지지직!!! “크아아아아아!!!!!” “으아아아!!!!” 사슬을 통해서 검붉은 전류가 흘러들어가자 워리놈을 비롯해서 모든 악마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악마들이 파우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증오는 빠지지 않았다. 사실 악마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배했기 때문이다. 워리놈을 앞으로 한 악마들과 김신수는 그대로 지하 100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메피스토 펠리스를 상대로 기습을 해서 속공으로 목을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졌다. “어서와라. 애송이들.” 봉인된 상태는 고사하고 아주 멀쩡한 상태로 악마들을 맞이하는 메피스토를 본 순간··. 악마들은 상황이 크게 틀어졌음을 알았다. “메피스토··· 대공 전하.” “어떻게···. 완전히 멀쩡한 상태로···?” “이건 설마···. 앗····!! 함정이다!!!” 이미 그들이 간 시점에서 메피스토는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파우스트와 함께 공모를 하고 있던 그였으니 모르는게 이상했을 것이다. 거기다 파우스트의 안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으읏··!!. 으아아아아아아아!!!!!!” 김신수가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더니 그의 전신에서 커다란 힘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고 메데이아가 김신수에게 접근하더니 김신수의 등에 손을 대고는 말했다. “폭발하라. 영혼이여..” 그리고는···. 숨 쉴 틈도 없이 거대한 폭발이 이렁났다. 그 폭발은 메데이아와 메피스토를 제외한 모든 악마들에게 엄청난 대미지를 안겼다. “크으으·····.” “크윽··. 배·· 배신 한거냐? 메데이아···.” “저 싸구려 마녀가····.” 악마들은 거대한 폭발에 죽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거대한 대미지를 입었다. 결국 악마들은 메피스토를 상대로 싸울 기회조차 잃어 버렸다. 이 정도 전력이 모여 있으면 멀쩡한 메피스토를 죽이지는 못해도 상당한 손실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 마저도 김신수의 자폭으로 인한 대미지로 인해서 불가능해 진 것이다. 그런 악마들을 보면서 메데이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메피스토에게 다가가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때가 되었다는 주인님의 전언입니다. 새로운 마신이시여.” “훗···. 언제나 빈틈없는 일처리군.” 파우스트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게 되면··, 그 세계에서 모든 마를 아우르는 마신이 되는 존재는 메피스토 펠리스라고 약속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빛이 있으려면 그림자가 있어야 하는 법. 이건 진리였다. 메피스토가 스스로 인간에게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세력을 모두 걸고 도박을 하면서 바랬던 것이 그것이었다. 모든 마의 정점에 서는 마신이 되는 것.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으로 위장하고 직속 부하들을 속이면서까지 파우스트에게 협력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결정짓기 위해서 파우스트의 앞에 왔다. “약속의 때가 되었다. 파우스트.” 메피스토의 엄숙한 말에 파우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메피스토··. 자, 이리로 와라.” “음·····.”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검은 구슬을 내밀었다. 그러자 메피스토는 빨려 가듯이 그 구슬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 그리고 생명이 필요하지. 이제 어둠은 되었다.” 파우스트의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한명의 남자가 배신감에 찌든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파···. 파우·· 스트·····.”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김신수. 한때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언더 그라운드를 아우르면서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지만 이제는 폐인이 되어 버린 김신수였다. 그런 김신수를 파우스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영혼의 핵과 생명력을 모두 폭주시켰는데···. 아직 살아있다니···. 너무 꼼꼼하게 만들었나?” “만들어? 혹시····.” 정운은 파우스트의 말에서 김신수에 대한 한 가지 비밀이 풀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운의 예상대로 파우스트는 김신수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는 숨길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저 놈은 애당초 내가 만든 도구다. 내 세포중에 하나를 복사해서 만들어낸 호문쿨루스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신수는 온 몸을 비틀면서 발악을 했다. “거···. 쿨럭··· 거짓····.” 김신수로서는 파우스트의 말을 절대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입에서는 담담하게 진실이 흘러 나왔다. “거짓말이라고? 하긴···. 너 한테는 외부 세계에서의 기억도 있고, 또 동기도 있지. 그 모든게 너라는 존재를 강하게 뒷받침 하고 있을 것이다.” 파우스트의 말대로 김신수는 자신이 자신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실제로 김신수라는 인간으로서 살아온 시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뒷말이 매정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런 기억조차도 내가 덮어씌운 것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 “·····!!!!” “애당초 너는 내가 만든 도구일 뿐이다. 혹시 모르니 메데이아를 감시로 붙이기는 했지만··. 역시 내 세포를 이용했다고 해서 유능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더군. 실패가 너무 많앗어. 유전자는 그냥 유전자일 뿐이라는 걸까?” “····거··. 저깃··. 쿨럭····.” 파우스트의 한 마디에 김신수의 얼굴은 세상이 끝난 것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파우스트는 흥미로운 소재를 발견한 것처럼 말했다. “흠··. 자아의 근간이 무너질 때 인간의 반응이라는 이런 것인가?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주지. 너라는 인간의 기억, 생명, 영혼까지····.” 파우스트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김신수는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인간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에게 어김없이 종말의 한마디가 찾아왔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조작으로 인한 가짜일 뿐이다.” “······으··· 으읏······.” 김신수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존재. 자신의 모든 것. 그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 아니··· 무너질 것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원래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였으니 말이다.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걸 시작으로 김신수의 칠공에서는 동시에 피가 흘러 나왔다. “끄으으··· 으으··· 윽····.” 너무나 분해서 그 분기를 못 이겨서 죽어가는 김신수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김신수에게 쌓인게 많은 정운조차 연민을 느낄 지경이었다. “후우·····. 저렇게 되고 나면·····, 이제 싸울 가치도 죽일 가치도 없지.” 정운은 그렇게 고개를 저으면서 죽어가는 김신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오랜 악연이었지만 이제 김신수는 나중의 일이다. 이제는 눈앞에 있는 파우스트가 중요했다. “자신의 세포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 치고는 애착이 없어 보이는 걸?” “당연하다. 넌 바닥에 떨어진 자기 머리카락 한 올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 “······뭐, 좋아. 어차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으니··. 그보다 이제 편은 다 나눠진 것 같군.” 정운의 말대로···. 콘러드 크라우스를 비롯해서 망설이던 중간파들이 모두 파우스트에게 향했다. 악마들까지 파우스트에게 완전히 제압을 당하는 것을 본 이상 이제는 파우스트에게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정운의 편에 있는 것은 이제까지 정운의 곁에서 항상 승리를 함께 누린 사람들···. 즉, 한우리 연맹의 인간들 뿐이었다. ‘정운이라면···.’ ‘박정운이라면 어떻게든 활로를 찾을 거야.’ ‘어쨌든 이긴다.’ 오랜 세월동안 한께 해오면서 생긴 실적과 의리가 지금의 정운에게 동료를 만들어준 것이다. 실제로··. 지금 정운에게는 그들에게 보답 할 수 있는 하나의 조커가 있었다. “파우스트···. 당신이 세계를 다시 짜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의 핵이 필요하겠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파우스트가 정운을 바라보는 시선에 처음으로 경계심이 깃들었다. 세계의 창조에 대한 것은 오랜 세월 동안 파우스트가 연구해온 연구물이었다. 그 연구 성과를 알고 있는 것은 아주 극소수의 인물들 뿐 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인 정운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파우스트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보고 정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난 나대로 정보망이 있거든··. 그보다···. 그 빛의 핵이 될 사람은 누구지? 어둠의 핵은 메피스토가 한다고 쳐도··. 빛의 핵이 될 사람은 누구야?” “·············.”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누군지 알고 싶나? 어차피 지금와서 숨길 이유도 없다. 나와라. 우리엘!!!” 파우스트가 말을 하자마자 하늘이 갈라지고 거기세 빛이 강림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12쌍의 순백의 날개를 지니고 있는 천사가 한 명 강림했다. 천계의 사대 치천사 중에 하나인 최고위 천사중에 하나. 바로 우리엘이었다. “우리엘님!!!?” 우리엘의 등장에 가장 많이 놀란 것은 바로 세레나였다. 우리엘은 세레나를 흘깃 보며 말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가브리엘의 수족이여···. 하지만 이제는 필요 없다.” 퍼어엉!!! “꺄아악!!!” 우리엘의 날개가 한 번 움직인 순간··. 세레나는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뒤편으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세레나!!! 너 이 새끼!!!” 정운이 이를 갈면서 우리엘을 바라본 순간···. “머리가 높다. 인간, 그리고 태도도 오만해.” 쿠우웅!! “크윽····.” “이··· 이런····.” 정운뿐만 아니라 인간들 전원의 머리위에서 뭔가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위에서 사람을 짜부러 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까지···.” 우리엘의 행동을 말린 것은 다름 아닌 같은 편인 파우스트였다. “내 백성들의 처우는 내가 결정할 거요. 그렇게 체결된 협정으로 알고 있었는데?” 파우스트의 말에 우리엘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네 말에 따라주마.” 그리고 우리엘이 힘을 거둬들이자 유저들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정운이 우리엘에게 말했다. “잠깐!! 어째서 치천사인 당신이 파우스트 따위와 내통을 하는 거지!!? 그 이유가 뭐야!!?” 정운의 말에 우리엘은 파우스트를 힐긋 바라봤다. 그러자 파우스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할 말 있으면 하라는 식의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 우리엘은 정운에게 말했다. “더 이상 이 세계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뭐?” ============================ 작품 후기 ============================ 우리엘 등장때 배신을 예고하신 분들은 제가 댓글을 다 지웠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신수의 마지막이 되는 비참한 최후와 우리엘의 배신은 이 작품 엔딩의 50%에 달하는 핵심이었기에...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신작 스타트 분량 대기 중입니다. 악마의 게임 1부 종료하고 나면 며칠 정도 휴식을 취할까 싶었지만.... 그냥 달리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에덴에서 살아남는 법' 으로 정했습니다. 얼마 후에 연재 스타트 할 예정이니 많은 사랑 부탁 드립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32화 <반전되는 상황> 정운의 반문에 우리엘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천사들은 악마들을 몰아내고 이 세상을 빛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그러나··. 현 찬사장인 미카엘과 가브리엘, 라파엘들은 악마들과의 영역을 존중한다는 미명아래에 전쟁을 피하고 있다. 천사로서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지.” 우리엘의 말에 세레나가 강하게 나서서 반박했다. “그건 당신의 독단이야. 가브리엘님은 빛도 어둠도 신의 의지가 깃든 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했기에·· 꺄악!!!” 퍼어어엉!!! 다시 한 번 강력한 충격파가 터지고 세레나는 다시 뒤편으로 날아갔다. “쿨럭···. 으윽···.” 이번에는 대응하고 있던 정운이 간신히 세레나를 받아냈지만 그녀는 상당한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세레나 역시 지천사. 제 2계급의 천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천사와 치천사의 사이에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딱 잘라 말해서 세레나가 100명이 된다고 해도 치천사인 우리엘을 이길 수는 없다. 천사로서의 계급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같은 급이라도 상대가 악마이거나 했다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계에서 배신자가···. 분해···. 어째서 난 그것도 모르고····.’ 세레나는 너무 분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이 진작 이런 상황을 알았다면···. 그래서 진작 가브리엘에게 보고를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최악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후회감이 그녀를 자책감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 하지만 정운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면서 속삭였다. “안심해··. 나한테 맡겨.” 그리고 정운은 다시 한 번 우리엘에게 말했다. “악마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악마와 손을 잡은 파우스트와 다시 손을 잡는다? 당신의 말을 스스로 생각해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정운의 말에 우리엘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네가···. 너희 같은 인간들 따위가 뭘 안다고 말하는 거냐!!? 항상 빛과 어둠 속에서 위태롭게 휘청 거리기나 하는 위험 요소들이!!!?” “위험 요소?” “그렇다. 빛도, 어둠도 아닌 놈들이 어째서 세계에 있는 것이냐? 너희들이야 말로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천계에서는 인간들을 존중하고 그 인간들 중에 신앙심이 두터운 자들을 천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까지 책정 되었다. 저기 보이는 저 가증스러운 여자도 그 정책의 혐오스런 결과물 중에 하나란 말이다!!” 우리엘의 말에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순근 거렸다. “세레나가 천사?” “그랬단 말이야?” “한국 팀도 몰랐나요?” “몰랐습니다. 다만··. 뭔가 심상치 않은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정운이 자식 생각보다 거대한 비밀을 숨기고 있었군. 나중에 주리를 틀어야지.” 그렇게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이 수근 거리는 사이 우리엘은 선언하듯이 날개를 쫙 펴고 말했다. “이제 이렇게 회색빛의 탁한 세상은 필요 없다. 내가 새로운 빛의 신이 된다면, 이 세상을 오로지 빛으로 가득 체워 보이겠다. 파우스트!!!” “오시오.” 파우스트는 우리엘을 향해서 하얀 빛의 구슬을 내밀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엘이 들어가려는 그 순간···. 파지직!!! 빛의 구슬이 강하게 방전하면서 우리엘을 밀어냈다. 그것은···. 파우스트도 우리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이건····? 어떻게 된 거냐? 파우스트!!!” “···신성이··. 빛이 널 거부하고 있다. 우리엘!! 너야말로 무슨 짓을 한 거냐!!!?” 우리엘은 물론이고···. 저 파우스트까지 처음으로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오로지 단 한명만이 이유를 알고 있었다. “후···. 후후후·····.” 정운이 웃는 소리를 듣고 파우스트가 고개를 휙 틀었다. “···박정운?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별 것 아니야. 나한테 시킨 사람이 말했거든 천계에 배신자가 있으니 그 증거를 잡으라고.” “천계. 배신자? 설마···. 네놈!!?” 우리엘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정운은 품안에서 작은 깃털 하나를 꺼냈다. 그 깃털은 은은한 백광을 뿌리고 있었는데 그 깃털이 누구의 것인지는 우리엘이 한 눈에 알아봤다. “미카엘!!!!” “그래. 미카엘의 깃털이다. 방금 전에 네가 한 배신은 천계를 통해서 알려졌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우리엘?” “··아··· 아아·····.” 우리엘의 얼굴이 절망과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깃털이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타천의 징조. 신의 사자인 천사가 신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 순간 타천이 이뤄지는 것이다. 유구한 천계의 역사에서 치천사가 타천을 하는 경우는 루시엘이 루시퍼로 타락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빛의 정점에 서고자 하는 열망으로 천계를 배신한 우리엘은 더 이상 천사가 아니게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천사는 천사지만 빛이 아닌 어둠의 천사. 타천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이 다시 한 번 갈라졌다. 그리고 거기서 대량의 천사 군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가장 선두에는 한손에 저울과 다른 한손에는 신성한 검을 들고 있는 천사가 앞장서 있었다. “미카엘!!!” “우리엘, 파우스트, 나 심판의 천사 미카엘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징벌하겠다. 천군은 이 일대를 포위하라!!!” 미카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사들의 대군이 파우스트와 우리엘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행에게는 12쌍의 날개를 화려하게 휘날리고 한손에는 백합을 또 한손에는 화려한 창을 들고 있는 천사가 내려왔다. 다른 천사들과 달리 확연하게 여성형의 모습을 하고 잇는 그 천사를 보자 세레나는 크게 화색이 되었다. “가브리엘님!!!” “수고 많이 했다. 잔·· 아니 세레나.” “가브리엘님·····.” 세레나는 위기 속에서 나타나준 직속상관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한 손에 들고 있는 백합으로 세레나의 이마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화아아악!!!! 세레나에게서 성스러운 백광이 나오면서 그녀의 뒤편에서도 열 쌍의 날개가 솟구쳤다. “세레나·····.” “마스····. 아니 정운씨···. 이게 제 본모습이에요.” 세레나는 자신의 열 쌍의 화려한 날개를 보이면서 정운에게 수줍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과 세레나를 엮어두고 있는 영혼의 끈은 끊어졌다. 지금 세레나는 성처녀에서 성인으로, 그리고 지천사로 변화했던 잔 다르크 그 자체였다. 정운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내 마음은 변함없어.” “저도 알아요.” 세레나는 행복하다는 얼굴을 하고 정운의 어깨에 자기 이마를 살짝 기댔다. 가브리엘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시집가서 행복한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상황을 처리하면 완료군.” 가브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파우스트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이미 어둠의 구슬에서 다시 나온 메피스토까지 포함해서 파우스트, 루시엘, 메피스토 삼인을 모두 포위하고 있는 천사 대군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중겸이 정운에게 와서 말했다. “야. 정운아. 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천사들과···?” “창조의 방에서···. 저를 시험하기 위해서 미카엘이 직접 왔었죠.” 그리고는 정운은 자신이 창조의 방에서 얻은 인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창조의 방에 들어와서 또 다른 정운이라고 말을 했던 상대는 사실 천계의 일인자. 천사들의 장이기도 한 미카엘이었다. 원래 미카엘이 정운의 이름을 들은 것은 가브리엘을 통해서였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딸과 같은 세레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정운의 존재를 인정받게 하고 싶었다. 천사와 인간이 인연을 맺으려면 천사가 천사임을 포기하거나. 혹은 최고의 천사인 치천사중에 두 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가브리엘은 자신과 또 한명의 치천사인 미카엘에게서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에게 말했던 것이다.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천사들을 위해서 공을 세우고 있으니 그를 천사의 반려고 인정해 달라. 라고 말이다. 그리고 가브리엘에게서 정운에 대한 정보를 들은 미카엘은 한 가지 계책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부터 천계의 고위층 중에 파우스트와 내통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미카엘도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있다는 심증은 가는데 이게 좀처럼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꼬리를 잡기 위해서 미카엘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정운의 존재는 미카엘에게 이중 스파이의 씨앗으로 삼기에 딱 절절했던 것이다. 파우스트와 내통하고 있는 천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라운드 제로의 마지막 순간에는 반드시 꼬리를 드러낼 것이다.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정운에게 자신의 깃털을 주고 주변의 상황을 동시에 감시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작전은 제대로 성공했다. 우리엘의 배신을 안 순간 미카엘은 바로 그라운드 제로로 출동했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는 천사도 악마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세계였지만···. 우리엘의 진입을 위해서 파우스트가 일시적으로 그 제한을 풀었다. 그리고 미카엘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정운 덕분에 정확한 위치까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천사 대군을 이끌고 범죄 현장을 덮치듯이 포위한 것에 성공한 것이다. “빌어먹을···. 이래서 천사 나부랭이 따위와 엮이면 일이 안 좋은 거야!! 배신하나 똑바로 못하나!!?” “입 닥쳐라 메피스토!! 네놈의 목부터 치는 수가 있다.” “어디 해 봐라!! 이제 타천도 했으니 거리낄게 없는 모양이지!?” “네놈이 감히····?” 음모에 실패한 악당들이 다음으로 하는 짓은 항상 똑같다. 너 때문에 실패한 거야. 라고 상대에게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천사와 악마의 조합이라고 해도 그런 진리는 별로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메피스토와 우리엘이 싸우는 와중에 파우스트는 주변을 보면서 조용히 침묵에 빠졌다. 지금 이 순간···. 파우스트는 머리를 총 동원하고 있었다. ‘상황은 틀어졌다. 계산을 벗어났어. 어떻게 고치면 될까? 무엇부터 되돌리면 되지?’ 파우스트···. 이 불세출의 천재는 천사들에게 포위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직까지 자기 목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1분 정도의 생각 끝에 파우스트는 결론을 내렸다. “메피스토, 우리엘.” “뭐냐!!?” “무슨 묘안이라도 있는 거냐?” “약속은 지키지 못한다. 대신, 나의 세계의 창조에 일조는 하게 해 주겠다.” “무슨···?”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 네놈·· 읍!!!” 말을 하던 메피스토와 우리엘은 말을 멈췄다. 파우스트가 백색 구슬과 검은 구슬을 내버려 두고 푸른 구슬을 꺼내서 그 안에 메피스토와 우리엘을 우겨 넣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윽···.” “파우스트··. 뭘·· 하려는 거냐!!?” “상황을 되돌리려는 것이다. 너희들은 나의 야망의 거름이 되어라.” 파우스트는 그렇게 말하고 푸른 구슬 안에 우리엘과 메피스토를 우겨 넣듯이 봉인했다. 그리고는 그 푸른 구슬을 자기 머리 위로 던졌다. 그러자 구슬이 허공에서 서서히 빛을 발하면서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거냐!? 파우스트!!?” 미카엘의 질문에 파우스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양손에 불길과 뇌전을 불러일으키며 말했다. “알 것 없다. 그보다 날 심판하고 싶다고 했던가?” 파우스트는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천사 대군을 보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디 한 번 해봐라!!!!” 콰콰쾅!!!! 그리고 파우스트의 손에서 배대호보다 훨씬 강력한 마법들이 작렬했다. 그리고 그 마법들이 천사의 대군을 덮치는 것과 동시에 화려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자, 우선 정운이 떡밥 하나 회수했습니다. 이제 슬기와 세레나 떡밥보 회수 들어갑니다. 모두 이 장면을 위해서 준비했었으니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33화 콰앙!!! 콰쾅!!! “물러서지 마라!!!” “적은 단 혼자다!! 천계의 이름을 걸고 파우스트의 야망을 여기서 부숴라!!!!” 수만에 달하는 천사 대군에 치천사 3인까지 가세한 천사들의 대군. 이 거대한 전력을 파우스트는 힘겹게나마 혼자서 상대해 내고 있었다. “후우····. 아직 멀었나?” 파우스트는 천사들의 대군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푸른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먹 만한 크기였던 푸른 구슬은 어느새 직경이 1미터는 넘게 커졌다. 그리고 그런 구슬을 보면서 파우스트가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앙!!!! 가브리엘이 자신의 신구인 진리의 창을 내세워서 모든 힘을 모아서 일점 돌파를 했다. 정운의 기마 차지보다 수백··. 아니 수천 배는 더 강력한 대미지가 파우스트에게 작렬했다. 하지만 파우스트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유저들 중에 한명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ME로 파우스트의 정보를 찍었는데 거기에 나온 정보는 기가 찼다. 파우스트 LV.무한 [그라운드 제로의 창조자이자 그라운드 제로의 신.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스킬이 통하지 않으며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아이템이 통하지 않는다.] 기가 찬다. 라는 말은 정말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레벨 무한?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스킬이 안 통해? 모든 아이템도 안 통해? 뭘 어쩌라는 말인가? 유저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게임은 결국 보스몹을 공략할 방법이 없었던 망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운이 천사들을 끌어 들이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기지를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결의를 다지고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우리는 나설 공간이 없군.” “음····.” 박추성과 배대호 조차도 파우스트 대 천사대군의 대결은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둘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인 이상 이들의 공격은 파우스트에게 전혀 통하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배대호는 파우스트가 지켜가며 싸우고 있는 저 푸른 구슬의 정체가 몹시 거슬렸다. ‘백색이 빛. 검은색이 어둠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저 푸른색은 뭘 나타내는 거지?’ 배대호는 어쩐지 저 구슬을 빨리 어떻게 하지 않으면 결국은 모든게 파우스트의 뜻대로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푸른 구슬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서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배대호 뿐만이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파우스트가 저 푸른 구슬을 보호하면서 싸우고 있으니 누구라도 저것을 빨리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격!! 반드시 부숴라!!!!” “전군 일제 사격하라!!!” 치천사들을 비롯한 천사군단은 거칠게 파우스를 공격했다. 파우스트 역시 거기에 상당히 버거운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다. 처음의 여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기저기 헝크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파우스트가 필사적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쩌적!! 쩌저적!! 그리고 그때···. 파우스트가 필사적으로 지켜오던 푸른 구슬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파우스트가 감격스럽다는 듯이 외쳤다. “시작한다!! 빅뱅이!!!” 파우스트가 만든 푸른 구슬의 정체. 그것이 뭔지 미카엘은 드디어 알았다. “세계의 틀? 기존의 시계를 잠식 하는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고!!? 저게 정말 인간이란 말인가?” 미카엘은 파우스트의 일 처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류사에 저런 존재가 태어난 것 자체가 신비로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천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파우스트의 천재성에 관해서는 천계 마계를 조함해서 그 어디에서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하니 이 짧은 시간 안에 세계를 다시 창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초의 목적인 세계의 재창조는 실패했다. 이미 우리엘에 타천한 이상 빛의 핵을 이룰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파우스트는 기존의 세계와 별개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말은 쉽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계획을 수정해서 세계의 틀을 다시 잡아서 상상한다는 것은 보통 인간의 두뇌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그걸 해냈기에 파우스트는 보통 인간이 아닌 것이다. 두말 할 나위가 없는 진짜 천재. 그것 만큼은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메피스토와 우리엘을 직접 안에서 세계의 토대로 삼았구나···. 이대로 가면 놓친다.’ 미카엘은 천사들을 통해서 크게 외쳤다. “집중 공격하라!! 이대로 파우스트를 놓치지 마라!!!!” 콰쾅!! 콰아앙!!! 천사 대군이 파우스틀 쉴틈 없이 공격했다. 하지만 어느새 파우스트는 푸른 구슬이 만들어내는 영역권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거기로 들어가는 모든 천사들의 공격은 그대로 무효로 돌아가 버렸다. “소용없다. 일단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이상···, 너희들의 공격은 통하지 않아.” 파우스트의 말에 가브리엘은 이를 갈면서 외쳤다. “파우스트!!! 신을 거역하고 너만의 세계를 만들다니!!? 그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는 있는가!!? 너 스스로 신이라도 될 생각이냐!!!?” 가브리엘이 온화한 성격답지 않게 거칠게 따져 물었다. 그만큼 파우스트의 죄는 큰 대죄였다. 세계의 창조. 그것은 결국 기존의 세계에서 피조물로서의 모든 의무를 벗어 버린다는 말이었따. 파우스트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가브리엘은 오연하게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천사도 악마도···. 결국 어리석은 것들이다. 신이라도 될 생각이냐고? 똑똑히 봐라.” 파우스트는 이 자리의 모든 천사들에게 선언하듯이 말했다. “난 이미 신이다.” “으윽···· 파우스트!!!!!!!” 미카엘이 분노에 차서 파우스트에게 일갈했지만 파우스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유저들을 흘깃 보면서 말했다. “거의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어 갔는데···. 네놈들 덕분에 너무 오랜 시간을 돌아가게 되었다. 신의 행보를 방해한 자들에게는 그 나름의 벌이 필요하겠지?” 파우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에게 손을 스윽 내밀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를 발견했다. “····박정운은 어디에 있지?” 그렇다.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장소에 박정운이 없었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집었다. “!!!!!!” “나 찾나? 신 양반?” 파우스트는 이제까지 중에 가장 크게 경악했다. 그리고 정운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 파우스트에게 말했다. “이 악 물어라. 이 새끼야!!!!” 퍼어억!!!!!! 정운의 주먹이 그대로 파우스트의 안면에 작렬했다. 정운의 주먹이 파우스트에게 작렬하는 그 순간···. 천하의 치천사들 조차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햇다.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었다. “슬기야. 세레나!!!” “너희들··. 뭘 한 거야?” 배대호를 비롯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은 슬기와 세레나가 기진맥진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뭔가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 것 아니에요···. 다만, 공손승 스승님이 이럴때를 대비해서 남겨준 비장의 술법이 있었으니까요··.” “저 역시 이걸 썼을 뿐입니다.” 슬기가 쓴 술법은 공손승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자기 영혼을 맡겨서 사용한 술법. 도력전이(道力轉移)라는 기술이었다. 공손승은 생전에 이름난 도사였기에 알 수 있었다. 원래 어둠에 속하기는 하지만 양산박의 형제들이 모두 파우스트의 손아귀에 넘아 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누군가··. 누군지는 몰라도 어떤 빛에 속한 자가 양산박의 형제들의 영혼을 팔았다. 공손승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서 그 역시 자신의 영혼을 모두 집중 시켜서 최후의 최후에 파우스트를 물리치기 위한 한방을 준비해온 것이었다. 도력전이(道力轉移) LV.MAX (공손승의 모든 도력을 깃들게 해서 시전자의 몸을 일순간 신선의 레벨로 바꾼다. 모든 틀을 초월하고 반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게 한다) 이 능력 덕분에 정운은 파우스트가 만든 세계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시공도 공간도 세계조차 마음대로 초월해서 이동하는 신선의 능력을 일시적이나마 손에 넣은 것이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세레나 역시 정운에게 한 가지 단검을 넘겼다. 바로 질 드 레의 속죄라는 이제까지 수수깨끼 속에 있던 무기였다. 마지막 층에 올라온 순간. 세레나의 인벤토리에 있던 그 무기가 속성을 완전히 드러냈다. 질 드 레의 속죄. 공격력 : ? 무게 : ? 내구력 : ? [## 속성을 지니고 있는 보검, ####를 #### 위해서 ### ### 사용 가능 하다.] 라는 속성이었지만···. 최상층에 올라온 시점으로 인해서 마지막의 아이템 설명창이 변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멸살 속성을 지니고 있는 보검, 파우스트를 공격하기 위해서 마지막 층에서 사용 가능 하다.]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이었던 질 드 레는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아무리 유저로서의 강력한 능력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파우스트에게는 그 능력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자기 영혼을 깎아내듯이 빗어낸 것이 바로 이 질 드 레의 속죄라는 작은 단검이었다. 이 아이템을 지닌 자만은 유저임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를 공격 할 수 있었다. 즉, 슬기와 세레나가 각자 가지고 있는 비장의 수를 정운에게 집중 시켰고···. 그로 인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간, 모든 천사를 통틀어서 오로지 정운 혼자만이 파우스트를 공격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뇌광!!!!!” 퍼어어엉!!!! “크윽····.” 정운의 공격이 처음으로 파우스트에게 통했다. 원래 유저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지만··. 지금 정운은 공손승과 질 드 레의 버프로 인해서 잠깐이지만 그 예외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그 둘의 버프는 오로지 파우스트에게 대미지를 주기 위해서 집중된 기술들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정운은 뇌신강림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현제 정운의 레벨은 345. 작정하고 공격을 하면 그 공격력은 여느 보스몹들 못지 않을 정도였다. 콰콰쾅!!!!!! 강력한 뇌전이 터져 나갔고 정운은 파우스트에게 상당한 대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머리위에 옐로우 크리스탈이 떠오르는 것을 정운은 봤다. “지금이다!!! 쉐도우 아미!! 묠니르 소드!!!” 정운의 주변에 그림자의 무장들이 단체로 나타났고··. 그리고 정운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뇌전의 검이 생성되었다. “가랏!!!” 콰아아아앙!!!!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정운의 공격은 적에게 정확하게 적중되었다. “허억···. 허억····.” 정운의 공격은 제대로 맞아떨어지자 지쳐서 숨을 몰아 쉬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묠니르 소드를 쓰면 사실상 정운의 정신력은 하계였다. 그리고 뇌전의 폭발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확실히···. 확실히 알겠다.” 상당한 대미지를 입고 온 몸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잇는 파우스트였다. 파우스트는 전에 없는 싸늘한 눈을 하고 정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저 기르는 개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아물래도 나의 실수였던 모양이군.” 파우스트는 정운을 비롯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을 한 번 스윽 둘러봤다. 그리고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너희들 유저들은 나를 상상하면서 쭉 준비를 해 왔지. 생각해 보면··. 천사들 따위 보다 너희들이 훨씬 더 나의 적으로서 위험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나의 백성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굳이 늑대를 길들이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겠지.” 파우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휘둘러서 빛을 뿌렸다. 콰쾅!! 쾅쾅쾅!! 파우스트가 뿌린 빛은 지면에 떨어졌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뭔가의 알이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불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모두 피해!!!!” 정운은 즉시 동료들에게 외쳤다. 파우스트는 그런 정운을 보면서 조소했다. “이미 늦었다.” 쩌적!! 쩌저적!!! 그리고 파우스트가 뿌린 알에서 금이 가면서 그 안에서 수많은 보스몹들이 태어났다. 그라운드 제로의 보스몹이 옐로우 크리스탈이 뜨면? 그러면 더 강력한 기술을 쓴다. 파우스트도 그게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제길·· 모두 준비 해!!!” “온다!!!” 1층부터 99층의 모든 보스몹이 등장했다. 심지어는 질 드 레나 아테나처럼 아군으로 돌아선 보스몹들 까지 말이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그들은 아무런 의지가 없는 것처럼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카피들이군···.” 메두사는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파우스트가 소환한 보스몹들은 의지가 없는 카피 덩어리인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보통 추천이 줄어들기 때문에 붙여서 연참은 하지 않지만.. 오늘은 그냥 연참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편이 악마의 게임 1부의 마지막이니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사실 며칠 쉬고 올리려고 했지만.. 바로 스타트하는게 좋을것 같아서 바로 차기작 들어갑니다. 악마의 게임과 연관되는 작품은 아닙니다. 새로운 신작 '에덴에서 살아 남는 법.' 많은 사랑 부탁 드립니다. 334화 <그라운드 제로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보스몹 군단을 보면서 박추성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내가 선두에 간다!! 대호는 수비!! 다른 사람들도 자기를 지키는 것에 집중해!!!” 박추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한의 영사를 온 몸에 휘감고 적을 향해서 돌격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한우리 연맹 대 그라운드 제로 보스몹 연합군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저건··. 절대 안 돼!!!?” 정운은 동료들을 덮치는 보스몹 군단을 보면서 그대로 달려가서 자신도 도우려고 했다. 한우리 연맹은 강해졌다. 아마도 70층 아래의 보스몹들이라면 큰 위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70층 이상 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80층 대의 보스몹이나 90층 대의 보스몹들은 아직도 일대일로는 견적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버거웠다. 하지만 정운의 가세를 가로막는 자가 있었다. “어디를 가지? 날 혼자 내 버려둘 생각이냐?” “파우스트!!!! 비켜!!!” 콰앙!!! 정운은 파우스트하고 다시 정면으로 돌격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정운의 공격은 지금 파우스트에게 통한다. 다만···. “이제 아까 같은 파워는 없군.” “닥쳐!!!” 두 번이나 되는 묠니르 소드로 인한 힘의 소모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정운은 좀처럼 자기 앞을 막고 있는 파우스트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위기에 처하고 있었다. “제길!! 적이 너무··· 커억!!!” 치열한 전투 중에 가장 먼저 희생자가 나온 것은 영국의 메이지인 게일 홀릭스였다. 레벨이 180에 달하는 그였지만··. 그래도 항우의 창에 정면으로 심장이 꿰뚫려 버렸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시작으로 한우리 연맹은 일방적으로 전투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인간들을 도와라!!!” “적들을 죽여라!!” 천사들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도 유저들을 돕기 위해서 보스몹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이상한 힘이 천사들을 밀어냈다. “이건···?” “재밍? 유저가 아니면 이 공간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 천사들은 당황했다. 결국 보스몹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유저들의 힘만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도울 수 있는 천사는 유저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세레나 뿐이었다. “모두 힘내요!!! 어떻게든 견뎌야 해요!!” 천사로서의 힘을 개방하고 쓸 수 있는 세레나는 강력한 전력이었다. 그녀 혼자서 90층대의 보스몹을 일곱이나 상대하면서 그녀는 전력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세레나····. 크윽!!” 정운은 이를 악물고 눈앞의 파우스트에게 집중했다. 이제 방법은 하나 뿐이다. 자신이 저기에 가서 소모전에 어울려서는 방법이 없다. 눈앞에 있는 파우스틀 잡는것에 주력해야 했다. 다행이도 공격이 통하는 이상 정운은 파우스트보다 확실하게 앞서는 면이 하나 있었다. “아아아아아!!!” “웃····.” 콰콰쾅!!! 그것은 바로 전투의 경험치였다. 파우스트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전투에 대한 경험에 관해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운을 뛰어 넘을 수 없었다. 정운의 공격은 미친 듯이 파우스트를 몰아 붙였다. 다만, 묠니르의 소드를 또 쓸 수 없는 이상 이제는 정운에게는 강력한 한방이 없었다. 결국 거인형 보스몹 수십 마리를 합친 것 같은 파우스트의 체력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동료들이 버틸지 안 버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많이 초조한 모양이군.” “닥쳐!!!” 상황을 알고 있는 파우스트는 이제 공격을 거의 그만두고 대부분 방어에만 모든 것을 주력하고 있었다. 그렇게만 해도 충분히 정운을 초조하게 할 수 있었다. “아악!!!!” 드디어 한국 유저중에서도 희생자가 나오려고 했다. 이보영이 포세이돈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며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서 포세이돈이 창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푸욱!!! 사람의 심장을 관통하는 섬뜩한 소리가 났지만··. 이보영에게 충격은 없었다. 다만··. 그녀로서는 차라리 자신의 심장이 뚫리는 것보다 더한 생지옥이 눈앞에 펼쳐졌다. “········언니······.” “지···지영아····.” 이보영의 공격을 대신 막아준 것은 그녀의 하나뿐인 혈육인 이지영이었다. 그녀가 이보영의 공격을 대신 막아주고 그로 인해서 그녀가 대신 목숨을 잃었다. “지·· 지영아··. 지영아!!!!” 이보영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면서 절규했다. 세상에 가장 소중한, 아니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이를 잃은 자의 절규는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이보영을 보고 이지영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한번 정도는···. 언니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어.” 그리고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면서 언니의 몸에 안기며 눈을 감았다. 이지영···. 이 불쌍한 여인은 한 많은 인생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자매의 품안에서 눈을 감았다. 이지영을 시작으로 한국 유저들 중에 상당수가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한국팀에서 가장 약했던 주경택은 카이사르의 칼날에 몸통이 반으로 갈라졌다. “빌어먹을····. 결국 나도 죽네···.” 그리고 그는 차가운 시신을 땅에 눕혔다. 한때는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이었던 명주호는 최선을 다해서 분투했지만 결국 하데스의 공격에 그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 “····쿨럭······.” 그리고 명주호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한중겸이 이를 악물면서 외쳤다. “주호야!! 이 새끼들이··· 비켜!!!” 한중겸은 강력한 소환수를 다수 거느리고 있는 강력한 핵심 전력이다. 하지만···. 그 본인의 능력은 대부분 수비 마법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코 본인이 전면에 나서서 싸워야 하는 타입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겸은 그것을 잠시 잃어버릴 정도로 흥분했다. 그리고 흥분으로 경솔한 행동을 한 대가는 항상 비싸게 돌아오는 법이다. “웃!!!”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상대는 97층의 아수라와 98층의 염제였다. 그 둘이 동시에 한중겸을 후방에서 포착했다. 순간 한중겸은 죽음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이민지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러면 한중겸은 확실하게 죽었을 것이다. “크윽··. 정신 차려!!!” 이민지는 스스로 사대 정령을 모두 온몸에 두르고 싸우고 있었다. 확장적인 공격력은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게 그녀가 쌓아올린 가장 강력한 형태의 스킬이었다. “으아아아아!!!” 이민지는 화염을 두른 팔과 수류를 두른 팔을 동시에 휘둘러서 아수라와 염제를 튕겨냈다. 하지만···. 그 사이를 파고드는 오딘의 궁니르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퍼억!!! “쿨럭······.” “····민지야!!!!” 한중겸은 이민지의 심장을 뚫고 나오는 오딘의 궁니르를 보면서 절규했다. 그리고 서서히 허물어지는 그녀의 몸을 안고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꼭 깨물었다. “제길·····. 빌어먹을!!!!!” 콰콰쾅!!!!!! 한중겸은 절규를 뿌리면서 이민지의 시신을 안고 계속 싸웠다. 동료의 비통한 단말마. 그보다 더 비통한 동료를 잃은 자들의 절규.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뿌드득!!! 정운은 이를 악 물었다. ‘민지누님까지····.’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더 이상 망설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시간만 끌어서는 동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없었다. 이렇게 모든 걸 잃을게 뻔한 전투를 계속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도박을 해야 했다. “으아아아아아!!!!” 정운은 다시 한 번 묠니르 소드를 준비했다.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쉐도우 체인!! 쉐도우 아미들을 모두 소환해서 우선 파우스트의 전신을 구속했다. “흠··, 승부를 보려는가? 하지만 알고 있겠지? 실패하면 너도 끝장이다.” “닥쳐!!!” 파우스트의 비아냥을 들으면서 정운은 온힘을 자신의 묠니르 소드에 집중 시켰다. 하지만···. 파지직!! 파직!!! 정운의 온몸에서 뇌전이 방전되었지만 묠니르 소드는 좀처럼 생성되지 않았다. 묠니르 소드를 한 번 더 사용하기에는 정운의 정신력이 아직 부족했다. “···크윽·····.” 힘이 아직도 부족했다. 여기서 스킬을 캔슬해 봤자 소모한 정신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야 했는데 그게 좀처럼 되지 않았다. 정운의 모세 혈관이 파혈되면서 눈자위가 붉게 물들었다.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대미지가 들었고 실제로 어금니가 부러져버릴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킬은 실패로 돌아갈것만 같았다. “무모한 짓은 항상 실패하는 법이지.” 파우스트는 정운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사실 파우스트는 정운의 행동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가면 동료들은 잃을지 몰라도 안정적으로 대미지를 줘서 파우스트는 물리칠 수 있었다. 비록 그럴 가능성이 적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모 아니면 도라는 도박을 하는 것 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가능성이 있었다. ‘어리석어····. 결국은 열등한 보통 범인인가?’ 결국 파우스트는 무위로 돌아가는 정운의 도박을 그저 비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크윽·····.” ‘역시 안 되는 건가?’ 정운은 빨갛게 물든 시야 너머로 파우스트가 조소하는 것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한계라고 생각한 정운이 쓰러지기 직전····. “뭐 하는 거예요? 정운씨 답지 않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정운의 의식이 또렷해 졌다. “세레나····.” “도와주로 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세레나의 얼굴에는 어디서 다쳤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아니 그보다 여기는 지금 나 밖에는···.” 정운은 하던 말을 흐렸다. 세레나의 날개를 시작으로 그녀의 몸이 서서히 빛의 입자로 바뀌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운은 지금 세레나가 하는 일이 직감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세레나!! 뭐 하는 거야? 그만 둬!!!” “······안 돼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하던 일에 더욱더 가속을 가했다. 세레나가 하려는 일은 지금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신성력으로 바꿔서 정운에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이자 천사인 세레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기에 한 가지 더 조건이 필요했다. 신성력을 정운에게 전해주기 위한 매개체. 그러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물건이 바로 한 개의 작은 로자리오였다. ‘이게 도움이 되었군···. 안 쓰고 아껴둬서 다행이야···.’ 세레나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로자리오를 보면서 작게 미소 지었다. 이제는 기억도 까마득하지만 세레나는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악마에게 빙의당해 있는 엑소시스트를 구해주고 그에게서 작은 성구를 받았었다. 그 신부가 자신의 모든 신성력을 불어넣어서 만든 로자리오···. 이것도 어떤 의미로는 질 드 레의 속죄나 공손승의 도술처럼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관으로 보면 버그 아이템이었다. 이 세계의 창조주인 파우스트를 거스를 힘이 있으니 말이다. 세레나는 거기에 지천사인 자신의 존재까지 모두 신성력으로 변환 시켜서 정운에게 전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만 둬!! 그만 두라고 세레나!!!!” 정운은 자신의 몸에 전에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절규했다. 세레나가 지금 하려는 일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세레나는 이제 거의 빛이 되어서 반투명하게 변해갔다. 그리고는 마지막 힘을 모두 정운에게 전해주고는 그에게 다가가서 마지막 입맞춤을 했다. “············.” 체온도··, 익숙한 부드러움도···, 그녀의 향기도 없는 키스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이겨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세레나가 한 줌의 빛이 되어서 사라졌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정운은 절규하면서 온 힘을 다 해서 묠니르 소드를 만들었다. 길이가 적어도 5km는 될 법한 거대한 뇌전의 거검이 허공에서 생성되었다. 그곳도 한 자루가 아니었다. 두 자루, 세 자루, 네 자루···. 계속해서 늘어나는 뇌전의 묠니르 소드는 하늘을 가득 메웠다. “이건··? 말 도 안 돼!!!?” 파우스트의 입에서 전에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경악의 외침이 터졌다. “죽엇!!!!!!!” 정운의 절규와 함께 강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앙!!!!!! “피해라!!” “인간들을 지켜라!!!” 공격의 여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천사군단들에게도 퍼질 정도였다. 심지어는 미카엘이나 가브리엘 같은 치천사들 조차 몸을 휘청 거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의 여파가 퍼져 나왔다. “이게··. 이게 인간의 힘이라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미카엘의 심정은 다른 천사들도 동감할 정도였다. 그리고··. 정운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된 파우스트의 몸이 드러났다. “크윽··. 쿨럭····.” 이제까지의 여유는 온데 간데없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 직전의 파우스트를 보고 정운은 연거푸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파우스트는 급하게 자신이 만든 푸른 구슬의 세계로 도망가 버렸다. “더 이상 어울려 주는건 사양하겠다.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자.” “파우스트으으으으으!!!!!!!!!!” 정운이 절규했지만 파우스트는 체면이고 뭐고 집어 치우고 무조건 도망갔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가는 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크윽!!!!” 콰앙!!! 지면으로 내려온 정운은 자신의 주먹으로 애꿎은 지면을 후려쳤다. 동료들의 희생. 사랑하는 사람의 희생을 막지 못한 비통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을 놓친 억울함. 그 모든 것이 정운을 절망으로 내몰았다. “정운씨·····.” 오직 슬기만이 그런 정운의 어깨를 감싸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 뿐이었다.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에게 마지막으로 알림창이 떴다. 띠리링!!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가 무너졌습니다. 현실로 돌아갑니다.] 오랜 세월··.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영혼들이 피와 혼을 불태웠던 이 세계가 드디어 무너진 것이다. 파우스트의 야욕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반쯤은 막아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은 희생은 너무나 컸다. “후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박추성의 중얼거림에 그 옆에서 배대호가 말했다. “그건··. 현실에 가 봐야 알겠지. 각 시대의 인간들이 한 시대로 희귀하면··. 그것만 해도 큰 혼란이 될 거야.” “그렇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진 이상···. 이제는 현실로 가야 할 때인 것이다. 다만··. 그들이 돌아간 현실은 더 이상 그들이 알고 있는 현실이 아니었다. <1부 완결.> ============================ 작품 후기 ============================ 1부 완결입니다. 후기로 쓰고 싶은 말이 상당히 많은 관계로... 일단 제대로 된 후기는 다음 화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새로운 신작인 '에덴에서 살아 남는 법'도 많은 사랑 부탁 드립니다. 335화 <작품후기> 악마의 게임 1부가 완결 되었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의 사랑과 응원 덕분에 이렇게 1부 완결까지 쉬지 않고 완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독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마 가장 궁금해 하시는 질문을 제가 몇가지 예상해 보면... 세레나 죽었나요? 이민지는요? 2부는 언제 써요? 2부는 현실편이죠? 등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뭐, 답은 항상 그렇지만 일단 비밀입니다. 작품의 스포일러는 항상 신경써야 겠죠.^^;;;; 우선 악마의 게임은 게임 소설이었습니다. 이 전작인 '로마의 혁명'을 쓸때 가장 열받은것은 시대고증, 자료찾기였습니다. 교보문고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관련 서적을 찾고 인터넷의 바다를 뒤지고... 그럴때 마다 생각했죠. "다음 작품은 꼭 자료 보다는 내 상상력을 100% 살릴수 있는 작품을 쓸 거다." 라고 말이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게 게임 소설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기반으로 게임 소설이 좋아 보이더군요. 뭐, 작정하고 써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지만... 여러가지로 제 필력에 많은 경험치를 쌓게 해준 작품입니다. 고맙다. 정운아, 슬기야, 세레나... 그리고 기타등등 캐릭터들까지.. 2부가 언제 될지는 아직 완전 미정입니다. 플롯을 짜고 스타트 분량을 모으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아마 상당한 장기 휴제가 될 것입니다. 물론 영구 휴제는 아닙니다. 대강의 플롯이 있으니 천천히 작업은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악마의 게임이 완결 된다고 해서 제가 작가로서 활동을 쉬는것 역시 아닙니다. .....흑, 조금은 쉴까? 아니.. 어쨌든 다음 차기작인 '에덴에서 살아 남는 법'이 바로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부디 많은 분들의 사랑과 응원 부탁 드립니다. 작가로서 데뷔한게 2010년 11월이었으니... 저도 어느새 작가로서 만 3년을 넘어서 4년차에 도달했습니다. 제 목표가 평생이니... 아직 좀 많이 남았죠?^^;;; 한국에서 작가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못해 버겁습니다. 글 쓴다고 직장 그만둘때는 친구들이 '너 미쳤냐?' 라고 했습니다. 그럼 저는.. '그럴지도.' 라고 했었죠. 그래도 그 버거운 길을 웃으면서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제가 소설을 좋아하고 세계를 만들고 창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제가 만든 세계를 좋아해 주시는 독자 분들이 계시면 더 바랄게 없죠. 아직까지 스스로를 1류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항상 부족하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더 나아지려고 또 노력할 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스스로 1류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남겨보고 싶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PS. 다음 차기작인 '에덴에서 살아남는 법'은 오늘날짜인 4월 14일 00시부터 연재됩니다. 많은 사랑 부탁 드립니다. 336화 <이계의 침공> 2부 프롤로그 세계는 서서히 변하는 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총기류가 불쑥 튀어나온다거나 어느 날 갑자기 인류가 하늘을 날거나, 어느 날 갑자기 인류가 우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모든 오랜 시간의 노력으로 인한 연구와 준비 끝에 인류는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1월 1일. 인류는 최초로 미증유의 변화를 갑자기 겪게 된다.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 한 가운데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게이트. 그리고···. 그 게이트에서 수만에 달하는 이계인들이 생전 처음 보는 괴수들과 함께 쳐들어 왔다. 그렇다. 인류는 갑자기 변한 것이다. *본편* 공동묘지···. 죽음과 평온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이 땅에 누군가가 무덤 앞에서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바로 박정운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운이 바라보고 있는 무덤의 주인은 바로 정운의 어머니였다. “정운씨·····.” 슬기는 정운을 바라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런 슬기의 목소리에 정운은 고개를 돌려서 씁쓸한 얼굴을 했다. “어쩔 수 없지···. 너도 들었잖아?” “·············.” “어쩔 수 없는 거야. 어쩔 수····.” 정운은 어머니의 무덤을 보면서 한탄 섞인 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진 직후··.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은 천계의 천사들이 만든 어떤 공간에 격리 되어서 동면에 들어갔다. 그들 전원이 갑자기 현실에 돌아가면 큰 혼란이 벌어질 수 있었으니··. 일단 천계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나 쳐내는 식으로 취한 조치가 그것이었다. 다만··. 무작정 동면만 하고 있는 다른 유저들에 비해서 천계에서 의식을 가지고 생활 할 수 있는 유저들이 있었다. 바로 월드 서버의 유저들이었다. 물론 모든 월드 서버의 유저들은 아니었다. 월드 서버의 유저들 중에서도 유니버스 연맹의 유저들은 그 대부분이 파우스트가 수거해 갔다. 그들은 파우스트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파우스트는 아마 그들의 영혼을 어딘가에 사용하기 위해서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유저들··. 그러니까 한우리 연맹의 유저들은 고스란히 천계로 이송 되어서 일단 의식을 가지고 제각각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정운은 천계의 허락을 받아서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거기다 덤으로 슬기까지 끼어서 말이다. 하지만···. 천계에서 해 줄 수 있는 배려는 딱 거기까지 였다. 원래 정운이 사용하려던 소원. 죽어가는 어머니의 생명을 살리는 것. 그것은 천계에서 들어줄 수 없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들어 줘서는 안 될 소원인 것이었다. 수명이 다해서 안식의 품에 안기려는 인간의 생명을 역행 시키는 것은 천계의 천사들에게 있어서 심각한 금기였다. 그랬기에···. 그들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의 사망자들도 살려내지 못했다. 이민지 이지영을 비롯한 수많은 유저들이 안타깝게 죽어나갔고 가능하면 그들도 꼭 살려주고 싶었지만···. 천계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천계에서 할 수 있는 배려로 정운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두 가지··. 하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어머니가 고통스러워 하지 않게 하는 것. 또 하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과 슬기가 어머니의 곁을 지키면서 그녀의 인생이 불행하지 않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 것. 고작 그 두 가지 뿐이었다. 파우스트를 물리치고 그라운드 제로를 파괴한 최강의 유저인 박정운. 그라고 해도 죽어가는 혈육을 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일 뿐이었던 것이다. ‘····정운씨·····.’ 슬기는 그게 슬펐다. 그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도 없이 사선을 넘고 영혼을 깍아가며 고행을 했던 것은 모친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중간부터는 슬기나 세레나를 비롯해서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기본적으로 정운에게 있어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최초의 목적 자체는 어머니의 병의 치료였다. 하지만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고···. 결국 지금은 이렇게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불효자로 서 있었다. “·············.” 침묵하는 정운과 그런 정운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슬기···. 그렇게 두 사람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적막 속에서 한 명의 인형이 끼어 들었다. “박정운씨, 시간이 되었습니다. 준비하시죠.” 정운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말을 한 사람은 금발에 수려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에 완벽한 이목구비, 언 듯 봐서는 남녀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이 가는 미형의 이 상대는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하고는 있었지만···. 실은 인간이 아니었다. 천계에서 정운에게 조수로 붙여준 7급 천사인 권천사. 미카엘이 직접 자신의 날개 한 장을 때어내서 만들어준 미카엘의 분신. 이름은 미하엘이라고 하는 여성형 천사였다. 정운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천계에서 직접 붙여준 비서 겸 연락책인 천사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의 말은 즉, 천계에서 정운에게 전하는 전갈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이라···. 그래.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합류하지?” “파우스트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모두들 지상으로 내려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래···. 알겠다고 전해. 나도 움직이도록 하지.” “예. 그럼···.” 미하엘은 자신의 말을 전한 다음에 그대로 빛의 입자가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정운을 보고 슬기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정운씨, 괜찮겠어요?” “····뭘 말하는 거야?” 피식 웃으면서 말하는 정운을 보고 슬기가 눈물을 그렁그렁 거리면서 말했다. “몰라서 물어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에요?” “············.” 정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슬기의 심정을···.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되요. 그 누구도 당신을 비난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슬기야····.” 정운은 슬기의 뺨에 살며시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 한 방울을 자시의 입술로 빨아 들였다. “누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고 싶었어. 그것 뿐이야.” “··············.” “세레나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도···. 파우스트와의 결착은 지어야 해.”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를 달랬다. 그리고 슬기는 이제 자신이 정운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말릴 수 없다면···. ‘나도 끝까지 함께 하겠어요.’ 그렇게 결의를 다질 뿐인 슬기였다. 여의도 상공에 갑자기 열린 원홀 같은 공간···. 그 공간이 처음 열릴 때만 해도 사람들은 무슨 기상이변이나 방송국의 이벤트가 아닌가 생각했다. “저게 뭐지?” “글쎄···. 홀로 그래픽?” “레이저 쇼 같은데···.” “어디 아이돌 콘서트 홍보하나?” 사람들은 커다란 웜홀을 보고 그게 뭔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문과 시선을 받으면서 게이트는 점점 커졌다. 그리고는 이윽고 직경이 200미터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이제는 여의도 밖에서도 웜홀이 보일 정도였다. “저거 뭐지?” “UFO? 어? 아니다··. 저기서 뭔가 나오는 것 같은데?” 사람들의 눈에 커지기만 하던 게이트에서 뭔가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우오오오오오!!!!!!” “크라라라라라라라!!!!” 안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들을 처음 봤을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다. 거기서 나온것은 그들이 상상속, 혹은 신화에서나 그렸을 법한 거대한 드래곤들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몇 마리의 드래곤들이 나옴과 동시에 그 뒤편에서는 갑주와 창검으로 중무장을 한 무리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군처럼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오!!!!” “완전 쩐다. 어디 이벤트지?” “어떻게 하는지 트릭을 전혀 모르겠어.” 사람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위험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호기심에 두 눈을 초롱초롱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21세기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의 국민들은 보통 평화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저 괴물과 강철 갑옷을 입은 군대는 위험대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어딘가의 이벤트 회장의 행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것이 재앙을 한층 더 부추기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크르르르····.” 드래곤들은 자신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핸드폰으로 플레시를 터트리는 인간들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이빨을 갈았다. 그리고 놈의 입이 벌어진 순간···. “크어어어어어엉!!!” 지옥이 시작 되었다. 드래곤의 입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와서 주변에 가까이 있던 사라들을 모두 태워 버렸다.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보고 잠시 얼이 빠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으··· 으아아아아!!!” “도망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드래곤들의 불길과 뒤편의 기사단으로 보이던 자들의 칼날이 떨어졌다. “모두 죽여라!! 이 세계를 우리들의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예스!! 마이 로드!!!” “예스!! 마이 로드!!!” “예스!! 마이 로드!!!” 누군가의 선창에 기사들로 보이는 자들은 절도있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여라!!” “우리들의 신에게 반항하는 자들을 남겨두지 마라!!!” “올 하일 파우스트!!!!” 쾅!!! 콰콰쾅!!!! 민간인들을 무차별 적으로 학살하는 기사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다. 칼을 한 번 휘두르면 커다란 자동차들도 박살이 났고, 그들이 빛이 나는 창을 찌르면 마치 미사일에 맞은 것처럼 강력한 공격이 작렬했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재앙이었다. 평화로운 대하민국의 중심지 서울. 거기에 막강한 화력과 무엇보다 무자비한 잔혹성을 지니고 있는 무력부대가 공격한 것이다. 차라리 북한이나 다른 외국에서 공격을 했던 것이라면 사전에 캐치라도 하고 대비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여의도 상공에서 갑자기 이런 무력부대가 내려올 거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놈들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자신들의 붉은 깃발을 높이 세우면서 말했다. “야만인들이여!! 복종하라. 우리들의 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재앙도 이런 재앙이 아니었다. “제길··. 경찰··. 아니 군대는 어디 있어?” “누가···. 누가 좀 살려줘요!!”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어서 애원했다. 현실감각이 떨어질 정도로 악몽 같은 이 상황을 누군가가 제발 구해 줬으면 했다. “크르르르·····.” “아···. 아아····.” 어떤 아주머니가 어린 아들을 붙잡고 벌벌 떨었다. 그 아주머니의 눈 앞에는 머리 크기만 해도 대향 트럭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지니고 있는 드래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모성애로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듯이 아들을 감쌌다. 단 일초라도 아들의 죽음을 늦추겠다는 듯이 아들을 감싸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공포와 절망이 뒤범먹 되어 있었다. “크르르···. 크아앙!!!” 그리고 드래곤은 모자를 한꺼번에 씹어먹어 버리겠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콰아앙!!!! “입 냄새 난다. 다물어.” 구원자가 등장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2부 시작합니다. 초반 스타트 분량은 일단 대강 모아놨지만 갑작스런 폭참보다는 하루하루 페이스 유지하면서 연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재미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37화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구원자는, 한 자루의 창으로 드래곤의 입을 위에서 찍어서 관통시키고 있었다. “크···. 크르르··.” 드래곤은 황당했다. 자신의 콧잔등과 턱을 한 번에 꿰뚫은 창도 창이었지만 자신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작은 인간이 찍어 누르는 힘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했다.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인간에게는 어마어마한 공포가 깃들었다. 마치 먹이 사슬의 최상위권에 있는 맹수를 마주한 초식동물이 된 것 같은 감각에 드래곤은 혼돈과 모순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놈의 고뇌도 금방 정리 되었다. “뇌신강림.” 파지지지지직!!!! 강력한 뇌전이 놈의 전신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지금 이 드래곤을 한순간에 태워 버린 인간은 바로 정운이었다. 정운은 뒤편에 있는 모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예? ····예. 예···.” 어머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정운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정운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자기 아들을 꼭 감싸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모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금방 정리할 테니···.” 정운이 그렇게 말한 그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상황은 크게 반전되기 시작했다. 쾅!! 콰콰쾅!!! 갑자기 나타난 몇몇의 인간들을 중점으로 해서 게이트에서 공격해 온 적들을 향한 화려한 반격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운은 자신이 직접 앞으로 드래곤 다섯 마리를 한 번에 태워 죽이면서 중얼 거렸다.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군. 레벨로 치면 80정도인가? 그리고 저 기사처럼 보이는 놈들은 하나하나가 고작 50정도고···. 파우스트 놈. 완전히 정찰과 시비의 목적으로 보낸 병력인가?” 정운은 일단 이 병력에 큰 거물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정운의 뒤로 슬기가 다가와서 말했다. “정운씨, 대호 스승님하고 윤정철씨가 광역기를 날릴 거니까 대비하래요.” “알았어. 슬기야. 이미 사람들은 대강 피신했으니 혹시 모를 여파로 주변 건물만 보호해 줘.” “예. 알았어요.” 그리고 정운의 지시로 슬기가 주변 건물에 보호막을 치는것과 동시에···. “템페스트 샷!!!” “블리자드 스톰!!!” 콰콰쾅!!! 콰아앙!!!! 쩌저정!! 쩡!! 윤정철의 화살이 지면을 초토화 시켰고 혹시 남아있는 조무래기들에게는 배대호의 극냉의 눈보라가 작렬했다. 여의도 주변의 한강이 한 여름에 얼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냉기의 공격에··. 이제까지 활개를 치면서 공격하고 있던 게이트 너머에서 온 침략자들이 모두 쓰러져 갔다. “크으윽···. 우리들의 신··. 파우스트에게 영광 있으라.” 마지막으로 쓰러지는 적을 보면서 정운은 중얼 거렸다. “그 새끼한테 돌아갈 영광은 없어. 돌아가는 건 내 복수의 칼날 이지.” 그렇게 말하는 정운의 눈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서울의 여의도 상공에 열린 갑작스런 게이트.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적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저 정신 나간 누군가의 망상벽이나 질 나쁜 장난질 정도로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상 같은 일에서 사망자가 만 단위가 넘게 발생한 이상···. 이걸 장난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부는 어찌해야 할지 몇 시간 동안이나 허둥 거렸다. 하긴,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계에서 갑자기 침략자가 쳐들어 올거라고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당시 정치가들의 행동은 너무 굼떴다. 우선 회의를 소집하고 두 시간이 걸려서야 일단 의원들이 모두 모일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골프치고 있던 의원들 까지 비행기로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나서야 긴급하게 회의를 연 국회는 일단 뭔지는 모르겠지만 치안이 어지러우니 거기에 경찰과 군인을 보내자. 라는 의견을 통일했다. 원래 경찰만 보내려고 했지만 사망자가 만명이 넘어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질겁을하면서 군까지 보낸 것이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회의 소집하고 나서 네 시간가량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사실 이 시점까지만 해도 이들은 이번 일의 주범을 북한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놈들 말고는 할 인간들이 거의 없었으니···. 대부분 범인은 확신하고 있었고,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무슨 수로 여의도 한 가운데에 테러를 했고, 그리고 이 일에 관해서는 누가 책임을 지고, 또 뒷처리는 어떻게 하느냐? 라는 정치적인 상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회에 모여 있는 정치가들의 대부분의 머릿속에는 상대방 정당쪽에 기필코 책임을 전가하고 말겠다. 라는 의무감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단 1초라도 빨리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고 뒤로 손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동시에 한 가지 정보가 들어왔다. “뭐? 영웅?” “히어로···. 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 지금 장난 하나?” 여기저기서 자신들의 보좌관을 닦달하는 정치가들의 노성이 들렸다. 하지만 보좌관들의 입장에서는 사실대로 전할 뿐인데 화부터 내니 억울할 따름이었다. “정말입니다. 시민들의 다수가 목격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일단의 인간들이 초능력으로 적들을 해치웠다고.” “자네 지금 미쳤나? 혹시 이상한 약이라고 했나?.”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웜홀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뭐? 누가 지켜? 우리가 보낸 군은?” “그게···. 그들이 비켜주지를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진짜 장난하나····.” 대한민국 정치가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상식을 가뿐하게 뛰어넘은 난제가 도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 시점을 기해서 세계가 변한 것을···. “큼···.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 “지금 이 시간을 기해서 이 일대는 저희 XX부대의 작전권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민간인 분들은 안전을 위해서 군의 지시에 따라서 조속히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 “저기···. 뭐라고 대답 좀 해주시겠습니까?” 정운은 자신에게 뭐라뭐라 떠드는 군인을 흘깃 보다가 말했다. “꺼져. 윗 대가리 불러와.” “············.” 정운의 짧은 한 마디에 정운에게 말을 걸었던 모 대위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게 할 걸 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라고 괜히 이렇게 답답하게 말로만 풀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군인이 작전을 할 때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사실 자국의 민간인이라고 해도 작전 방해물로 보고 무력으로 배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는 총질까지는 아니라도 병사들을 시켜서 힘으로 끌어내서 후방으로 후송 시키거나 헌병대에 넘기는게 정석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말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여의도 전체를 배대호가 방어막으로 봉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정운은 파우스트가 보낸 침략자들을 일단 물리친 후에 혹시나 다른 여파가 있을까봐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내 보냈다. 사실 정운이 따로 유도 할 것도 없이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 전원이 피난을 하고 있던 길이었다. 정운과 그 일행들은 거기에 약간 더 거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모두 피난 시킨 후에 정운은 배대호에게 말했다. “형님. 일단 저 게이트하고 대한민국을 완전히 격리 시키는게 좋겠습니다.” “알겠다. 아크 실드.” 배대호가 마법으로 여의도 전체를 반투명한 타원형의 실드로 감싸서 봉쇄했다. 이제는 누구도 저 안으로 들어 올 수도 없고, 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정운은 실드의 외각 지대··. 그러니까 마포대교 한 가운데 쯤에 자리를 하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어디 소위라는 사람이··. 그 다음에는 중위··. 그리고 이제는 대위라는 사람이 와서 정운에게 간청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냥 돌하루방처럼 묵묵하게 서서 팔짱을 끼고 한 마디만 하고 있었다. “윗 대가리 불러와.” 라고 말이다. 정운이 이렇게 배짱을 놓고 있는 것에는 일단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하나는··. 설사 정운이 여기에 군인들을 들여 보낸다고 해도 군인들이 게이트에서 몰려올 파우스트의 침략자들을 상대 할 수는 없었다. 현대 문명의 군대가 어느정도의 효력을 발휘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운이 알고 있는 파우스트의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대가리를 생각하면 절대로 현대 문명에 의해서 간단하게 격퇴 당할 군사들을 침략자라고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정운 자신만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 대한민국 군대 전부와 싸움을 해도 압승을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여기를 군인들이 지키겠다고 해서 그걸, ‘아! 그래? 그럼 당신들이 지켜요.’ 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일이 세상이 엄청나게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에는 일단 지금부터 세상에 해방될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과 파우스트가 만든 또 하나의 세계가 중심이 될 것이 틀림 없었다. 그렇다면··. 첫 단추가 중요하다. 지금 여기서 정운이 세상의 권력자들, 그러니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일단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관계를 정립해 두지 않으면 사태가 크게 꼬일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 정부의 졸로 취급 받게 될 수도 있었다. ‘파우스트에게 빚을 갚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그건 안 되지.’ 정운이 세상과 원하는 관계는 잘 해봐야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의 협력 관계. 혹은 완전히 독립된 체제의 인정이었다. 여차하면 정운이 데리고 있는 동료들로만 해도 충분한 전력이 되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정운은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리고 세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차분하게 기다리며 자신이 나타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까지는··. 일단 여기 게이트를 먼저 지켜야지. 최악의 사태는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정운은 그렇게 생각 하면서 게이트를 바라봤다. 저 게이트의 너머에 가증스런 파우스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면 당장이라도 건너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일단 여기서의 할 일을 다 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살펴야 했다. 파우스트. 그 교활한 천재를 이기기 위해서는 생각을 아무리 많이 해도 모자랄 지경이니 말이다. 정운은 여차하면 언제까지든지 버팅기면서 최대한 윗사람이 오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민재를 상대하고 있던 대위라는 사람은 무전으로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크흠···. 국회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정운이 원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국회?” 정운이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자 상대하던 대위도 얼굴에 반색을 했다. “예. 그렇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전 국민에게 정보가 주어지는 상황이라면 좋습니다.” 정운은 말을 조금 높이면서 처음으로 약간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뻣뻣할 때와 부드러워야 할 때는 구분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들어와 보는건 처음인 걸?” 정운은 국회에 들어가면서 중얼 거렸다. 너무나 여유 만만한 정운과 달리 정운을 데리고 가는 군인들은 잔뜩 얼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초 중요 인물을 호송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중요 인물은 마트에 라면 한 봉지 사러 나온 것 처럼 여유롭지 않은가? 진지한 자신들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인간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인 거야?’ ============================ 작품 후기 ============================ 여유가 넘치는 것은 정운이 스스로 갑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38화 <어디 할 수 있을것 같으면 해 봐라> 군인들이나 정치가들이 정운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갑자기 나타난 웜홀과 거기서 쏟아져 나온 괴물들. 그리고 무슨 슈퍼 히어로인 마냥 나타나서 사람들을 구해준 정운과 그 일행. 직접 겪었고 눈으로도 봤지만···. 역시 상식의 벽이 두꺼워서 인지 좀처럼 현실적으로 와 닿지를 않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운은 자신의 생각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차피 곧 천계에 억류되어 있었던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 모두 해방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진실을 말하고 어디까지 거짓을 말해야 할까?’ 정운은 정부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10년만 살아보면 정치판에 신뢰를 가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인이라고 하면 한심하고 밥그릇 다툼에만 치열한 인간들이라는 사고방식이 컸다. 결국 정운은 필요한 진실만 말하고, 필요한 조건만 챙길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정운은 국회의 내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국회의 모든 정치가들이 한눈에 보이는 단장으로 올라가 섰다. “······뉴스에서 보던 것 하고는 좀 다른 걸?” 뉴스에서는 많이 본 광경이다. 여기서 정치가들은 보통 문가 안건을 내고 표결을 하고 고성을 지르고, 가끔은 난투도 했다. 하지만 직접 들어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운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조금도 긴장되지는 않았다. 천계의 천사들이나, 혹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대의 영웅이라고 불리던 거물들과 싸우던 것에 비하면···. 사실 지금 정운의 눈앞에 있는 정치가들에 대한 의식은 ‘너희들 누구냐?’ 정도였다. 그만큼 감흥이 없었다. 그런 정운에게 한명의 정치가가 일어나서 대표로 말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자기소개라····.” 정운은 자신의 앞에 놓인 마이크를 당겨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박정운. 국적은 한국인이고,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 레벨은 345입니다.” “··············.” “··············.” “··············.” 당연하지만 정운의 말의 이해를 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었다. 원래 툭하면 국민들한테 무능한 것들 이라고 욕을 먹는 정치인들이기는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정치가들의 잘못이 아니다. 유능한 정치가라고 해도 지금 정운이 하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레벨? 그라운드 제로?” “무슨 말이야? 요즘 젊은애 들이 쓰는 말인가?” “이건 도대체····.” 여기저기 의석에 앉아있는 정치가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그들로서는 머리속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운으로서는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너무 협조할 필요는 없지. 오히려 내가 쭉 고삐를 쥐고 있는게 좋아.’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연 설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다음 질문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다음 질문으로 뭐가 올지는 대강 뻔한 데도 말이다.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요?” ‘그럴 줄 알았다.’ 정운의 생각 도중에 끼어든 어떤 의원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뭐부터 설명해야 할까·····. 일단 그라운드 제로라는 것에 관해서 설명하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두를 열고 그라운드 제로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천계에서 유저들이 해방될 것이 뻔한데 그들의 입을 하나하나 다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라운드 제로에 관한 진실은 어느 정도 털어놔야 했다. 그라운드 제로는 파우스트가 만든 게임이자 하나의 세계이다. 악마들은 그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인간들을 이용해서 계약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거기서 힘을 얻은 인간들이다. 라는 간단한 설명을 고의로 약간 지루하게 늘여서 설명했다. 그리고 정운의 설명이 다 끝나자 정치가 중에 한명이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지금 여기에 헛소리 하로 온 거야!!? 누구야? 국회에 미친놈 데리고 온 게!!?” 정운은 길길이 날뛰는 의원을 보면서 속으로 콧웃음을 쳤다. ‘상황 파악을 아직도 못해? 머저리···.’ 역시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머저리들이 있다. 정운이 의원들의 의석을 슬그머니 둘러보니 일단 말만 안 할 뿐이지 의심 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의원들이 여러 명이었다. 정운은 그들을 납득시키기로 작정했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한 게 있지.” 정운은 조용하게 중얼 거리면서 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정운이 계속 말했다. “국회 의사당의 저 바가지 모양 장식은 별로다. 라고 말이야.‘ 그리고 손에 뇌전이 불꽃을 튀었다. 그 다음은··. 콰쾅!!! 정운의 손에서 뻗어나간 한 줄기의 벼락이 국회 의사당의 돔 형태의 지붕을 박살내 버렸다. “·············.” “·············.” “·············.” 항상 소란스럽고 때로는 욕설도 오가던 국회의사당이 이렇게 조용해진 적은 없었다. 의원들 중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의사당의 구멍이 날아간 것을 핸드폰으로 찍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인증샷이야?’ 정운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기선 제압은 성공했고 생각하고 말했다. “이래도 못 믿겠다면? 말만 하시오. 뭐 라도 더 날려 드릴 테니?” 물론 리퀘스트에 응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정운의 위력 과시는 일단 먹혔다. 정운은 귀빈? 이라기보다는 위험인물 취급을 받으면서 일단 정부의 보호를 받았다. 사실 보호라는 말은 좀 웃기는 말이었다. 아마도 인간 병기 같은 정운을 보고 감시를 붙인다. 라는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에서인지 정부에서 정운을 위해서 마련해준 장소는 서울의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하룻밤 묶는 용도가 아니라 사실 파티를 열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호화찬란한 룸으로 정운은 들어갔다. “편히 계십시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정운을 여기까지 안내한 정부 요인의 말에 정운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쇼파에 앉아서 몸을 기대고 앞의 테이블에 발을 올리더니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게 여유만만한 정운의 모습에 정부 요인은 속으로 의외라고 생각했다. ‘무슨 전쟁터 같은 지옥에서 귀환했다고 하더니···. 이런 스위트룸이 신기하지도 않나?’ 이 룸은 외국의 대통령급 귀빈들이 묵어가는 숙소였다. 순수하게 돈 주고 묵으려면 하룻밤에 서민들 연봉이 날아갈 수도 있는 방이었다. 그런데도 그냥 태연하게 대응하는 정운의 태도는 약간 의외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뭘 몰라서 하는 오해였다. 그라운드 제로는 확실히 전쟁터였고, 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노력해야 하는 지옥이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 유저들의 입장이고, 정운을 비롯해서 스카이 타운에 입성한 십왕급의 유저들에게 있어서 그라운드 제로라는 곳은···. 비록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하기는 하지만 마음먹으면 이 세상의 모든 호사와 쾌락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실제로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 때에는 이런 호텔보다 훨씬 더 호화로운 장소에서 미스 코리아급의 아름다운 메이드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살았었다. 이 정도의 스위트룸은 정운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의 요인이 물러나고···. 정운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비싼 와인을 꺼내서 그대로 잔을 두 개 꺼내서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대호 형님도 드실 겁니까?” “뭐, 나쁘지는 않지.” 그리고 정운의 뒤편에서 그라운드 제로의 십왕 중에서도 NO.2의 위치에 있던 배대호가 나타났다. 배대호는 정운의 잔을 받아서 와인을 살짝 음미하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정부 반응은 어떻든?” “뉴스로 못 봤습니까?” “뉴스로는 국회의사당 바가지 날아가는 광경 밖에 안 보여주더라.” “쳇, 역시 언론 통제를 했었군.” 정운은 와인잔을 비우면서 중얼 거렸다. 그리고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중얼 거렸다. “아마 지금도 도청이나 도찰 되고 있을 수 있겠죠. 아니 아마 보통 그럴걸요?” “하긴···. 이 경우에는 안 하면 바보지.” 정운과 배대호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이 정부의 입장이라도 도청이나 도찰은 기본 옵션으로 했을 것이다. 그런 뒷 공작은 모르고 당한다면 모를까? 이미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뭐··, 나하고 추성이 같은 인간은 이미 과거의 인간이니. 이 시대의 정치가들과의 교섭은 너에게 모두 맡기마.” 사실 정운과 함께 했던 월드 서버의 유저들은 모두들 천계에서 의식을 가지고 생활했다. 당연하지만 지금의 한국의 정세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해서 알고 있었다. 다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지금까지 전면에 나서서 모두를 이끈 것이 정운인 이상 앞으로도 정운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게이트 쪽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천계에서의 전언이다. “····뭐죠?” “오늘 밤 12시. 그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을 모두 해방 시키겠데.”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좀 더 못 붙들고 있는 답니까?” “그래. 이미 충분히 오래 끌고 있었다고 하더라. 더 이상 붙들고 있는 건 법칙에 어렵다나 뭐라나···.” “·····알겠습니다. 그것도 대비해야겠네요.” “욕봐라.” 배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정운은 손안에 든 와인을 바라보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라운드 제로 유저라는 것들을 내가 다 통제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라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생각나고 있었다. 말로 해서 들을 녀석들이라면 애당초 악마의 유혹에 걸려들지도 않는다. 놈들을 닥치게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힘에 의한 지배로 귀결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 여기는···.” “음···. 현실··? 현실이잖아?” 그날 밤. 12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 모두 전 세계로 귀환했다. 이게 뭘 뜻하나 하면····. 대혼란이라는 말이었다. 정운이 국회에 폭탄 같은 화제를 던진 이후···. 국회는 하루도 조용 할 날이 없었다. 이건 FTA협정 체결이나, 외국과의 군사 협정 보다 훨씬 더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런 문제에 관해서라면 이미 정해진 선례와 경험이라도 있지? 이번 일은 한국 정치가들에게 있어서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전인미답지로 배를 몰아 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치인···, 아니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정치가들은 보통 그런 도박을 싫어한다. 정치판에서 도박은 절대 피해야 할 금기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이 일에 대한 대안을 내야 했고, 만약 그 대안이 엉망이 돼서 일을 망친다면 그 누군가는 정치판에서 자기 커리어에 커다란 실패를 새기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벌어진 일을 방치 할 수는 없으니 의원들은 나름 대안을 가져와야 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여의도 상공에 나타난 웜홀에 대한 경비를 우리 국군으로 바꾸는 겁니다.” “맞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영토이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국군이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퇴거를 명하고 그 자리에 우리 군을 배치해야 합니다.” 여당인 경진당의 의원의 주장에 야당의 의원이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건 너무 성급한 의견입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해서 좀 더 면밀하게 조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 사방에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라는 자들이 귀환해서 현실에서 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에 대한 관리와 처우를 우선하지 않으면 나라 내부에 큰 혼란을 가져 올 겁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합니다.” “그러니 우선은····.” ============================ 작품 후기 ============================ 한번 크게 당해보지 않고서는 파우스트가 어떤 놈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현실의 인간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정치가들은 자신들만의 세계가 확고한 타입의 인간들이죠. 다른 사람 말은 기본적으로 귀에 잘 안 듣습니다. 그리고 연재 페이스가 여전히 하루2연참이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창작 의욕을 돋구는 것은 항상 독자분들의 응원입니다.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 드리며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추천이나 댓글 부탁 드리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PS. 로마의 혁명 E북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표지도 바꿨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 드리겠습니다. 339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익숙하고 또 항상 있는 일이지만···. 이런 와중에도 여야는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대립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 1. 여의도 상공에 나타난 게이트, 국회에서는 웜홀이라고 부르는 그 지역의 경비를 국가가 서야 한다. 2. 그라운드 제로라는 곳에서 귀환한 유저들에 대한 처우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들을 어떻게든 국가의 관리 하에 둬야 한다. 1번 안과 2번 안. 둘 다 중요한 문제이기는 했다. 하지만 둘 중에 뭘 우선시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여당은 우선 게이트의 문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야당은 국내에 귀환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라는 자들의 관리를 우선시 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중요한 문제이지만 여아는 향상 그렇듯이 너희들 말은 듣기 싫어. 라고 서로 징징 거리면서 때 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 정치판 스타일이랄까?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언론을 통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존재는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운을 비롯해서 귀환한 월드 서버의 한국 팀은 굳건하게 실드 안에서 입을 다물고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이외의 일반 유저들을 모두 관리 할 수는 없었다. 한국만 해도 수만 명이 넘는 인간들이 귀환했다. 언론은 그들과 접촉해서 그라운드 제로에 대한 정보를 알아 낼 수 있었다. 심지어는 국민들 중에는 그들에 대한 정보를 매니아 처럼 모으고 있는 자들도 발생했다. 덕분에 국회에서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자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직 있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국회로서는 더 이상 늦장만 부리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다시 박정운을 불렀다. 박정운은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하염없이 양주병만 비워가고 있다가 이제야 부른다는 소리에···. “느림보들···.” 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가기는 가야 했다. 아마도 이번 회담에서 정부와 정운의 사이에서 첫 협상이 오갈 테니 말이다. 정운은 다시 국회 의사당에 출석해서 의원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천장을 문득 바라봤다. ‘그냥 덮어만 놨네. 빨리 고칠 것이지···.’ 자기가 부셔놓고 죄책감은 조금도 들지 않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여당인 경진당의 당대표인 김동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편히 쉬셨습니까? 박정운씨?” “아니요. 지루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정운은 일부러 까칠하게 말했다. 정치가들이 친절하게 뭔가를 말할 때는 90% 이상이 뒤로 뭔가 속셈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운도 한층 더 까칠하게 대응한 것이다. 정운의 대응에 살짝 무안한 표정을 지었던 여당의 대표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먼저···. 우리 정부가 당신들 귀환자에 관해서 정한 조치에 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 ‘귀환자라···. 그렇게 부르기로 했나?’ 정운은 우선 차분하게 들었다. “우선···. 당신들 귀환자들에게 대한민국 국적은 모두 주어질 겁니다.” “··········.” 정운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주는 것을 무슨 상을 주는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계속 떠들었다. “그리고, 국가에 귀속된 이상 그대들도 국민의 의무로 법을 지키고 국민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됩니다. 비록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말이오.” “··············.” “박정운씨? 대답을 하세요. 좋다. 싫다. 대답····. 웃··.” 계속 정운이 침묵하고만 있자 여당의 초선 의원중에 한 명이 나름 충성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칠게 외쳤다. 물론 그러다가 정운과 눈이 마주친 다음에는 그대로 찌그러져 버렸지만 말이다. ‘저게···, 안 그래도 사람 열 받고 있구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운과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일개 조무래기 정치가에게는 너무나 버거웠다. 아주 짧은 순간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심장이 멎을 뻔한 충격을 받은 그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정운은 여당의 대표를 다시 바라봤다. ‘김동호 의원··. 이라고 했었지?’ 그라운드 제로에 오래 머물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대한민국 정치가들 이름은 거의 다 잊어 버렸다. 그래도 지금 와서 얼굴을 보니 다시 기억이 나기도 했다. “계속 말해 보시오.” 정운의 말은 약간 날이 서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김동호는 여기서 물러 날 수는 없었다. 진짜 중요한 용건은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우선··. 당신들 귀환자는 그 신병을 모두 모아서 보호대상으로 등록을 할 것이오. 그리고 당분간 정부의 통제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등록···. 통제라····.” 정운의 눈은 가늘어 졌고 김동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오. 당신들 하나하나가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이상 정부에서는 그대들이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소.”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귀환자라고 칭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을 꼭 정부의 산하로 두고 싶었다. 사실 귀환자는 한국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서 귀환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일전에 정운이 보여준 위력. 뭐··. 사실 귀환자라고 해도 그 힘의 차이는 천차만별이었지만··. 그들은 정운의 힘을 표준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사실 정운이 마음먹으면 국회 의사당이 아니라 서울 전체···. 아니 제대로 전력을 발휘하면 한반도의 4분의1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일전에 보인 것 정도로 정운의 힘을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그리고···. 정운 정도의 유저가 많을 거라고 생각 하는 것은 더욱더 큰 잘못이었고 말이다. 어쨌든···. 정부는 귀환자들을 모두 거둬두고 국가에 충성 할 수 있는 전력으로 활용 하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운으로서는 서서히 혈압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경진당의 당수인 김동호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 현재 여의도 상공에 있는 웜홀··. 당신이 게이트라고 칭한 그것에 관한 방위권은 우리 육군에 넘겨주시오. 지금까지 무단으로 그 위치를 점거하고 있었던 것에 관해서 따지지는 않겠습니다. 당신들 귀환자들도 선의의 의미를 지니고 했던 일일테니 말이오. ······여기까지가 우리 정부가 보여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라는 것을 알아 주시오.” 그는 이제 자기가 할 말은 다 했다는 듯이 정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정부쪽의 의견을 다 들은 정운은 싸늘한 눈을 하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부로서의 최대한의 호의라····.” 정운의 전신에서 넘실넘실 거리는 살기가 오오라가 되어서 일반인인 정치가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네놈들이 감히·····.” 우지직·· 우직···. 살기의 압력만으로도 국회의사당의 여기저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의사당에 모여 있는 의원들 전원이 입도 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살기에 숨이 턱턱 막혀 있는 상황 속에서 정운이 말을 이어갔다. “감히···. 내 앞에서 흥정을 해?” 정운의 말은 결코 크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정치가들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우웃···.” “허억···. 허억····.” 살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치가들 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취재를 온 언론기자들···. 아니 모니터 너머로 이 상황을 생중계로 보고 있는 자들까지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 정운은 그저 묵묵하게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부의 관리는 받지 않는다. 하지만 게이트를 지켜보고 싶다고? 어디 한 번 해봐라.”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단상에서 멋대로 내려와 버렸다. 그리고 누가 막을 틈도 없이 자신이 날려버렸던 국회의사당의 천장을 다시 한 번 뚫고 날아가 버렸다. “···문으로는 못 나가나?” “그러게 말입니다.” 문으로 나가면 틀림없이 못 나가게 붙잡았을 거면서 잘도 뚫린 입으로 지껄이는 말이었다. 정운은 국회 의사당을 나와서 그대로 게이트로 왔다. 정운이 귀환하자 배대호가 다가와서 말했다. “용케 참았다.” “보셨습니까?” “그래. 생방송으로 다 보여주더라.” 정운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확 뒤집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후우···.” “잘 참았다. 그 자식들 성깔 한 번 제대로 뒤집던데? 나라면 그냥 폭발했을 거다.” 배대호와 함께 박추성까지 다가와서 정운을 위로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의 성격을 생각하면 정말로 많이 참은 것이다. “일단···. 정부는 한 번 크게 데어보기 전에는 절대로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뭐··, 어떻게 생각하면 저 놈들이 파우스트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정운은 인내심을 가지고 일단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평화롭게···. 그것도 정치판의 반상에서만 살아온 정치가들이 바로 그라운드 제로와 파우스트의 위험성을 안다면 그게 대단한 것이었다. 상황 파악을 직감적으로 정확하게 하고 최선의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대 정치가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그것을 대한민국의 국회에 바란 것은 정운의 큰 실수였다. ‘어떻게 인물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 있을까? ···그만두자. 생각해봐야 내 혈압만 오르지.’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일단 자신들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먼저 정운은 김수민을 불렀다. “수민이 형님.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이 귀환했습니다. 무슨 말인 줄 아시죠?” “으음···. 삼대 길드 애들 말이냐?” “모조건 우리 통제아래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인권이니 뭐니 따질 만큼 여유 있는 시기가 아니에요. 뭣하면 힘으로 굴복 시켜도 좋으니까 다 복종 시켜 버리세요.” “알았다.” 십왕의 서열 7위였던 김수민은 원래 타란툴라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그리고 호탕한 성격으로 길드원들의 지지도 두터웠으니 타란툴라 길드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다만, 메두사 길드와 라이온 길드의 길드원들이 얼마나 말을 잘 들을지는 미지수이다. 라이온 길드의 길드장이었던 명주호는 그라운드 제로의 최종전에서 사망했고···. 메두사 길드의 부길드장인 이지영은 사망했고, 이보영은 살아는 남았다. 하지만 그때 동생을 잃은 일로 크게 쇼크를 받아서 만사를 포기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운의 작전을 따르지 않고 그저 혼자서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 잠적한 것은 이보영 만이 아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과 가장 친했던 한중겸. 그 역시 잠적해 버렸다. 원인은 이보영과 같았다. ‘민지 누님의 죽음이 대미지가 컸지····.’ 여자가 엄청나게 많은 바람둥이가 한중겸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여자는 이민지 하나 뿐이었다. 다은 여자들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한중겸에게 다른 여자들 모두를 합쳐도 이민지 한명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한중겸의 여자들 중에는 아테나나 메두사 같은 신화에 나오는 지고의 미인도 있었는데···. 그녀들을 전원 가져와도 이민지 한 명을 못 이길 정도라는 것이 말이다. ‘후우···. 언젠가 돌아오겠지.’ 정운도 세레나를 잃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정운의 경우 아직 실날 같은 희망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정운은 일단 삼대길드를 모으기로 했다. 이제 여기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소수의 강자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머릿수를 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윤정철 형님. 영국으로 가 주십시오.” “다이앤 여왕과 말을 하라는 말이냐?” “예. 이동은··. 비행기 없어도 알아서 할 수 있으시겠죠?” “물론이지.” 윤정철은 자신의 탈것이 거대 독수리를 소환해서 이동하면 어지간한 비행기 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동 할수 있었다. ‘중국이나 러시아 쪽에도 연락을 할까? 아니다··. 너무 한 번에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말자.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이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340화 정운이 떠난 후 국회···. 일단 국회의 입장에서는 이 일을 고무적인 성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던 성과는 두 가지. 귀환자들의 통제권과 게이트의 방위를 국가의 이름으로 해내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하나는 실패했다. 귀환자의 관리는 적어도 당장은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게이트의 관리는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 같았다. “의원님, 여의도를 격리시키고 있던 투명한 방어벽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오오오!!!” “해냈다. 놈들이 약속을 지킨 거야.” 의원들, 특히 이번 일을 주도했던 여당의 의원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야당의 의원들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자 거기에 뭐라고 토를 달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육군을 보내고 게이트의 방비를 서두르라고 해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또한 그 게이트라는 것에 대한 연구를 해서 빨리 실체를 밝혀 내라고 하시오. 그 흉물 스러운 것을 빨리 닫아 버릴 수 있다면 최고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국회는 스스로 자축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축의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아직 한참 일렀다. 한국 정부는 게이트의 주변을 철통 같이 봉쇄하고 국민들에게 이제 다시는 거기서 적이 오지 않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특히 여당은 언론의 연줄을 총 동원해서 고무적인 성과를 보인 것처럼 선전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이미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적들로 인해서 상당한 국민들의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여의도라는 수도권이 중심지에서 일어난 피해가 아닌가? 아직까지도 사망자의 정확한 집계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럼 분위기를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반대급부로 사람들의 기분을 들뜨게 하기 위한 뭔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자신들이 게이트를 단단히 틀어막았고 미증유의 재난을 훌륭하게 막아냈다고 선전한 것이다. 이제 게이트의 성질을 연구해서 완전히 게이트를 막아내기만 한다면···. 이번 여당은 최악의 사태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낸 훌륭한 정권으로 공적을 자랑 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미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뭐라고? 게이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어?” “예. 그렇습니다.” 게이트의 성질을 연구하기 위해서 보낸 연구원들은 뜻밖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게이트의 안쪽으로 탐사 카메라를 밀어 넣어본 결과··. 그쪽에서는 넓은 황야가 펼쳐져 있었고 그곳은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토··. 땅이 있단 말이지? 그것도 중국 대륙이나 미국 대륙보다 훨씬 커다란 대륙이···.” “자세한 조사는 해 봐야 압니다. 하지만 일교차의 시간과 태양의 각도 등으로 계산해본 결과···.” “결과만 말하게.” 짜증섞인 반응에 보고를 올리던 자는 재빨리 핵심을 말했다. “저쪽 세계의 행성의 크기는 지구의 다섯 배 가량으로 보입니다.” “다섯 배···. 다섯 배····.” 김동호의 입장에서는 다섯 배라는 단어가 어지간히 감미롭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지구에는 수백에 달하는 나라가 있지만 다행이도 대한민국은 제법 선진국에 들어가는 나라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무슨 선진국이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건 비교 대상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과 비교해서 그렇다. 적어도 한해에 아사자가 수만 명이 달한다거나··. 국민들 99%가 극빈층이라던가···. 혹은 밤에 여자들이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거나···. 그런 나라들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상당히 살기 좋은 나라다. 실제로 지구에는 그런 나라들이 훨씬 다수다. 물론 대한민국도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끝없이 나오기는 할 거다. 그런데 어느 나라인들 안 그렇겠는가? 어쨌든···, 그런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이며 절대로 해결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영토 확장이다. 사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UN이 두 눈을 번뜩이고 있는 지금의 세계정세에서 무작정 전쟁을 일으켜서 타국의 땅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럴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렇게 했다가는 국제적인 지탄을 받고 악의 축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 역시 영토 확장이 아니라 내부 간섭을 통한 이득권을 얻어내는 것으로 적당하게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사가 흐르는 동안 수도 없이 변했던 세계 각국의 국경선은 사실상 90% 이상 고정 되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우 인구 5,000만이 100,000㎢에 바글바글 거리면서 살고 있다. 인구 밀도는 1㎢당 493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건 세계 12위의 인구 밀도다. 심지어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부동산은 대한민국 갑질의 신화가 되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경제상황의 척도를 알 수 있는 한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자기 집이 있는냐? 없느냐? 로 결정 될 수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을 때 마다 사람들은 정부를 원망한다. 이게 말이 되느냐?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꾼다. 어떻게 좀 해 봐라. 하지만 정부로서도 근본적으로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가능한 것은 기껏해야 언발에 오줌 누는 식의 구원책뿐이다. 모든 경제 상황의 기본 조건이다. 수요와 공급. 이 좁은 땅덩어리, 그것도 수도권에 한정해서 아파트를 층층이 올린다고 해도 결국은 가격은 천정부지 치솟기 마련이다. 좁은 땅에 밀집된 인구. 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는 이상은 정부로서도 절대 해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대한민국에서 미국이나 호주의 샐러리맨들처럼 2층 단독주택에 넓은 정원의 잔디밭에 애들이 개 한 마리와 함께 멋있게 뛰어노는 장면을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하지만··· 만약 영토가 확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가분수 관계가 되어 있는 지금의 수요와 공급이 원래대로 된다면? 장담하건데 그걸 해내는 정부는 국민들에게 오래오래 사랑 받을 것이다. 더구나 그저 영토의 확장만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다가 아니다. 그 정도의 넓이라면 틀림없이 있을 수많은 지하자원과 미지의 개발 가능성. 이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파급효과 이상인게 틀림없었다. 김동호는 생각했다. 이걸 손 놓고 있으면 무능함을 넘어서 바보다. 라고 말이다. 그는 비서에게 서둘러 말했다. “지금 당장 당 회원들을 다 소집···. 아니 야당 당수를 먼저 만나지. 이번만큼은 딴지걸게 놔두지 않겠어.” 김동호는 결의에 다졌다. 잘만 하면 수십 년 후에 10만 원권 지폐가 생길 때쯤에는 자기 얼굴이 박힐 수도 있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몇 주 후····. 세계는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난리의 중심에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한국 정부, 게이트 너머의 신천지 발견.] [육해공군 최정예로 탐색대 파견 결정.] [인류사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발견.] [대한민국 NO.1의 시대가 도래하다.] 온 세계의 언론들은 난리였다. 특종도 이런 특종이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국가들의 이목이 여의도 상공에 있는 게이트에 모였다. 저 웜홀의 너머에 지구의 다섯 배에 달하는 신천지가 있다. 이걸 탐내지 않을 나라는 없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나라 건사하기도 버거운 소말리아나 네팔같은 나라들도 여기에 어떻게든 한 숟가락 얹어 보려고 필사적이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정일까? 그들로서도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해도 강대국들이 두 눈을 번뜩이고 있는 이상 그들에게도 큰 몫은 돌아가지 않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들이 한국에 나타난 게이트에 대한 공동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미국을 필두로 해서 수많은 나라들이 한국정부에 여의도를 지구 공동의 영토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서 귀환한 우리나라의 귀환자들 역시 저쪽 땅에서 흘린 피와 시간이 있다. 그러니 그들의 전공을 무시하고 한국 혼자서 신천지를 독점하는 것은 과욕이다.] 라는 것이 근거였다. 뭐···. 사실 근거라고 쓰고 억지라고 써야 할 만큼 창피한 문구이기는 했다. 하지만, 창피하건 뭐건 간에 지금은 안면에 철판 깔아야 할 시기였다. 여의도 상공에 열린 게이트는 그런 수치를 감수 할 만큼의 보물 상자로 보였다. 한국 정부도 처음에는 여기에 완강하게 버티려고 했었다. [게이트의 너머에서 침략한 자들은 우리 나라의 국민 수만 명을 학살했다. 거기에 관해서 합당한 응징을 하기 전에는 그 어떤 나라도 이 문제에 끼어 들 수 없다.] 라고 주장을 했다. 사실 이 주장이 그대로 먹힐 거라고 생각할 만큼 정부는 돌대가리가 아니었다. 다만, 노림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미국이 한국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해 줬다. [한국과 혈맹의 관계인 우리 미국이 어떻게 남일 수 있겠는가? 한국 전쟁에서 흘린 우리 미국의 참전용사들의 피가 한반도에 젖어 있는 한, 우리 미국은 정의의 이름으로 한국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겠다.] 미국 정부의 이 말이야 말로 한국 정부가 노린 노림수였다. 한국 정부는 바로 성명을 냈다. [미국의 의견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 한국 정부는 몇몇 동맹국들에 한해서 이번 게이트 너머 신천지의 탐색에 힘을 빌리겠다.] 이 말 한마디에 과거 한국 전쟁에 남한의 편에서 참전했던 나라들, 그리고 한국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나라들이 일제히 끼어들었다. 물론 그 중심에 미국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한국과 트러블이 많았던 나라, 혹은 과거 한국전쟁에서 남한과 적대국 관계에 있던 나라들이 자연스럽게 이순위로 밀려나 버렸다. 상식적으로 너무나 부자연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은 미국을 비롯해서 몇몇 나라들에게 게이트의 접근을 허용하는 대가로 다른 나라들을 자연스럽게 속아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다 막아낼 수 없다면 최대한 채로 걸러내기는 해야 한다. 라는 선택지였다. 한국과 미국이 쿵쿵짝짝 해서 순식간에 이렇게 일을 처리하니 가장 화가 난 것은 중국과 러시아였다. 인구가 철철 넘쳐나서 미칠 것 같은 중국···. 영토의 대부분이 극한의 동토인 러시아···. 게이트 너머가 가장 탐이 나는 강대국인 이 두 국가는 즉시 반박했다. [우리 중국은 수천 년에 걸쳐서 한국과 이웃해서 살아왔다. 그런데 고작 200년 남짓한 외교로 혈맹을 운운하는 미국의 행태는 가증스럽기 까지 하다.] 수천 년 동안 이웃해서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에 대부분은 그렇게 좋은 이웃 관계였다고는 말하기 어려운게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관계였다. [미국은 다시 냉전을 원하는가? 어째서 구 소련의 잔재를 우리 러시아에 뒤집어씌우려고 하는가? 한국 정부는 누가 진정한 이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에게 구소련과 우리 러시아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단호하게 따져 물었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였다. [나 따돌리지 마. 나도 거기 갈 거야.] ····아빠 따라 캠핑가는 모 예능 프로의 어린 아기나 부릴 생 때를 국가 규모로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체면 차릴 때가 아닌 것을 말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오랜만에? 혹은 거의 처음으로 하는 국제 사회의 갑질에 신이 나 있었다. 게이트가 열렸을 때만 해도 어마어마한 참사가 일어난 웬수 같은 재앙 덩어리로 여겼는데 이제는 국력을 수백 배 신장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를 복 덩어리가 된 것이 아닌가? 국내에서는 게이트의 위험성이나 이번에 사망한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국력의 신장에 우선을 둔 한국 정부는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면서 여론을 잠재웠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을 통제 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통제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천지 탐사? 놀고 있네.” 바로 정운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정치가들의 턴은 여기까지... 일장춘몽에서 깨어나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41화 <한미연합군의 패배> 정운은 인터넷 기사에서 정부의 행동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김칫국을 아주 양푼이에 부글부글 끓여서 입술 데는 줄도 모르고 원샷을 하고 있네.” 정운의 말에 옆에 있던 배대호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어쩌겠냐? 파우스트에 관해서 잘 알지도 못할 텐데?”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혀를 차면서 대답했다. “쯧, 차라리 그 놈이 좀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정부에서도 빨리 정신 차릴지 모르는데 말이죠.”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놈이 그럴 리가 있냐? 아마도 최대한 끌어 들여서 크게 한 방 먹을 생각일 거다.”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희생이라는 것이다. 불은 데여보지 않으면 절대로 뜨거운 줄 모르는 법이다. 정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우리쪽 준비는요?” “일단 80% 정도는 끝났다.” “80%라···. 이탈자가 많던가요?” “조금. 하지만 새롭게 가입하는 자들이 많아서 괜찮았다.” “새롭게 가입? 정말요?” 정운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라운드 제로에서 박정운이라는 이름은 유명한 이름이니 말이야.” “그나마 다행인요. 이제 기다리죠.” “뭘?” 배대호의 반문에 정운은 몰라서 묻느냐? 라는 듯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타이밍이죠. 베스트 타이밍.” 신천지의 탐사. 듣기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는 지구에서 인간의 발자국이 남지 않은 오지는 하나도 없었다. 위성으로 전 세계의 사진을 찍어서 지도로 이어 붙이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아닌가? 콜럼버스가 21세기에 태어났으면 그냥 잉여 백수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21세기의 지구에서 다시 신천지가 발견된 것이다. 이제까지 그 누구의 발도 닿지 않은 신천지를 향해서 한국과 미국이 주축이 되어서 연합군을 꾸려서 게이트 내부로 돌입을 시작했다. 이미 기계장비와 개나 원숭이 등을 이용한 실험은 모두 거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을 밀어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선 보병을 안에 투입하고 위치를 확보한 후에 중장비를 집어넣읍시다.” “그게 좋겠습니다. 전진기지로의 활용을 위해서 우선 참호와 레이더망의 설치가 우선입니다. 혹시 레이더에 잡히지 않을 공작을 막기 위해서는 초소와 방벽도 필요하겠죠.” 한미 공동 연합군의 회의실에서는 활기찬 대화가 진행 중이었다. 사실 그들로서도 가슴 뛰는 일이었다. 어느 시대든 군인이라면 명예에 대한 갈망이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교적 평화로워진 21세기의 지구에서 군인이 역사에 남을 정도의 큰 공적을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하지만, 이번 작전을 잘만 수행하면 자신들의 이름은 역사책에 대대로 남을 것이다. 어쩌면 ‘21세기에 신세계를 가장 먼저 개척한 군의 사량관은 누구인가?’ 라는 문제가 먼 미래의 수험생들을 골치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열의가 대단한 것이었다. 군인들이 하나 둘 씩 안으로 들어가고 그들은 일단 상황을 파악해 갔다. “호오···. 이거 참··.” “생각보다 훨씬 넓은 지대인 걸?” “지평선이 보이네. 아! 저쪽에 있는 산은 만년설이 있는걸 봐서는 표고가 1,000미터는 가뿐하게 넘는 것 같아.” “온도는 27.5도, 습도는 다소 높군요. 초여름의 날씨 정도로 보입니다.” “아직 계절에 관해서 잘 모르니, 좀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겠지.” 군인들이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세계 각지에서 데리고 온 각종 전문가들이 들어와서 서둘러 자신들의 장비로 자잘한 것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날씨와 주변 풍광, 토질에 지면에 있는 풀들까지·····. 그렇게 준비를 하는 한편 군은 서둘러 와서 컨테이너를 설치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부지런하게 전진기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자리를 잡고, 주변 100km정도 정찰을 해 봅시다. 무인 항공기를 보내면 금방이죠.” “그렇게 합시다.” 지휘부는 미국의 최신 무인 정찰기인 신형 드론을 보내서 주변을 정찰하려고 했다. 일단 주변에 위험 요소가 없는지 관찰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일단 주변에 위협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위치는 뒤쪽에는 상당히 거대한 산맥이 있었고 정면에는 한강 정도 되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뒤쪽의 산맥만 경계하면 보초를 세우기에는 최적인 장소군요.” “그렇군요. 산악 지대를 통해서 소수의 게릴라가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만 한다면 기습의 우려가 거의 없는 지형입니다.” 한미 사령부는 현재 상황에 크게 만족했다. 그들은 서둘러 전진기지를 설치했다. 답답하게 건물 기초파고 거기에 철근 짜고 다시 콘크리트 틀을 짜고 거기에 시멘트를 붓는 답답한 건축을 하는게 아니었다. 미리 외부에서 다 만들어둔 컨테이너와 구조물들을 가지고 와서 레고 조립하듯이 척척 조립해 버렸다. 군부의 작전이라는 것은 항상 시간이 승부인 법.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했다. 이미 들어온지 24시간이 되기도 전에 군부는 일단 방벽을 완성했다. 총 둘레가 10km에 달하는 둘레를 높이 3미터의 벽으로 두르고, 100m마다 보초 초소를 세웠다. 그리고 그 초소에 중화기를 배치한 병사들을 배치해서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봅시다.” “그러죠. 우선 통신 장비와 중화기. 전투기와 헬기의 도입이 가장 시급합니다.” “그렇군요. 기동력이 처지는 탱크와 군용차는 일단 뒤로 미루는게 좋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순조롭게 척척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순조롭게 돌아가면 사람은 무심결에 방심을 하게 마련이다. 이 세계를 만든 창조주는 파우스트. 인류사에 다시없다고 할 정도의 대천재였다. 21세기의 현대 문명에 힘없이 밀릴 정도의 약한 세계를 만들었을리는 없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를 모르는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별 소용은 없을 것이다. 불이 뜨겁다는 것은 한 번 데어봐야 아는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르네상스 풍의 양식이 돋보이는 화려한 궁전의 웅장한 대전의 안···. 거기에 옥좌에 앉아서 화려한 금관을 쓰고 손에는 권위를 상징하는 홀을 든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이 세계의 최대 국가인 제국의 황제였다. 그리고 그에게 한명의 신하가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폐하. 신탁대로 이세계에서 사특한 침략자들이 우리들의 땅에 발을 디뎠다고 합니다.” “과연····. 신탁대로인가?” “그렇습니다. 적들은 성지에 자신들 멋대로 집을 짓고 우리들의 존엄을 짓밟고 있습니다.” “제국의 모든 군대에 고한다. 나 황제 그레이엄 가이아 프로이토르 라이오넬의 이름으로 고한다. 태고 적부터 신탁에 내려온 악마들의 우리의 성지를 짓밟았다. 이에 우리 제국은 신탁대로, 성전을 선포한다.” “예스, 유어 마제스티.” “예스, 유어 마제스티.” “예스, 유어 마제스티.” “제국의 손에 닿는 여덟 왕국에 모두 고하라. 성전이 선포 되었다. 서로간의 전쟁을 멈추고 모두들 제국의 깃발 아래로 힘을 합쳐라. 라고 황제의 명을 전하라.” 그렇게 파우스트가 창조한 세계의 인간들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이들이 어떤 힘을 자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진기지가 착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은 전진기지에 거주하고 있는 언론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세계에 중계되고 있었다. 한국 정부로서는 자신들의 공적을 최대한 국민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특히 여당으로서는 이게 모두 자신들의 공적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야당은 그런 여당의 선전이 못마땅했지만 지금 함부로 나섰다가는 역풍을 맞고 크게 다치는 수가 있었기에 일단 입을 다물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생방송으로 게이트 내부의 상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SDS의 김진우 기자입니다. 게이트 너머의 신세계로 진입한지도 오늘로 두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군은 오늘부터 본격적인 외부 탐사를 위해서 정찰대를 추리고 있다고 합니다. 정찰의 주 목적은 이 신세계의 원주민들과의 조우, 그리고 이전에 우리 국내에서 있었던 비극에 대한 책임을 지울 국가를 찾는 것으로····.” 우우우우우우우웅····. 한참 말을 하던 기자는 뭔가 이상한 소음을 느꼈다. 마치 제트기의 엔진이라도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소음에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체불명의 소음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뭐지? 이거 어디서 나는 소리야?” “어디 장비 고장난 것 아니야?” “아니 이건···. 기지 밖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사람들은 그제서야 서서히 자신들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위이이이이이이잉!!!! 이제까지 한 번도 울린적이 없었던 경계 경보가 울렸다. “공격이다!!!!” 그리고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공격이 왔다는 얘기가 들리자마자 한미 양군은 기민하게 대응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안에 적이 있다는 것을 모를리는 없었다. 그런데 적습에 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전군이 응전태세로 들어갔다.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5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 정확했다. 정예 중에 정예 병력만을 데리고 왔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완벽한 대응이 항상 완벽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었다. “저건가? 훗····. 상당히 원시적이군요.” 고배율 망원경으로 지평선 너머에서 몰려오는 적군을 보는 연합군의 미군 지휘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전쟁터에서 약한 적은 반가운 존재일 정도였다. 더구나 저 적들은 공격하는게 미안할 정도로 무장이 빈약했다. 멀리 지평선에서 몰려오는 군대는 제법 커다란 덩치의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놈들의 무장 상태였다. 적들은 숫자만 많을 뿐. 창과 칼로 무장한 병력들인 것이다. 현대적인 무장을 하고 있는 연합군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연습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헬기나 폭격기를 쓰는건 낭비일 정도군요. 전차부대 만으로도 충분히 격퇴 시킬 수 있겠습니다.” 미군 지휘관의 말에 한국군의 지휘관이 말했다. “목표는 전멸이 아니라 격퇴입니까?” “우리는 야만인이 아닙니다. 잘 알겠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여기는 한국땅이었지만 지금 이 작전의 지휘권은 암묵적으로 미군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군의 지휘관은 순순히 그의 말대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K-1전차 부대를 출격 시켜. 압도적인 전력으로 적의 전의를 꺾어야 한다.” “옛. 알겠습니다.” 지평선 너머에서 몰려오는 병력을 상대로 연합군의 첫수는 전차부대였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철갑 기마대의 종말은 총기가 고했다. 그런데 총기보다 한 차원 더 진화한 전차부대가 나간다는 것은 솔직히 너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연합군의 시나리오는 이랬다. 먼저 전차부대로 적군의 원시적인 부대를 종횡무진 유린하면서 적군의 전열을 흐트러트린다. 거기서 만약 적들이 정신차리지 못하고 무작정 돌격한다면 방벽위에 대기하고 있는 기관총이 불을 뿜어서 적을 괴멸한다. 그리고 만약 적이 좀 더 현명해서 후퇴한다면 그때는 적을 추격하는 것 보다는 전쟁터에서 생존자를 생포하는 것에 주력하려고 했다. 아직 이 세계에 알고 있는 것이 전무한 지휘부로서는 무엇보다 정보가 절실했다. 적들을 많이 격퇴해서 전과를 확대하는 것은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 미군 사령관이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다. 21세기 정도 되면 오히려 거대한 전과는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과거 고대에는 적군을 많이 죽이면 위대한 전과로 취급 받았지만···. 21세기의 현대문명에서 그랬다가는 설사 전쟁의 상황이라고 해도 대량 학살자라고 취급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도 왜 적들을 불필요하게 많이 죽였느냐? 라면서 말이다. 전쟁터라는 상황에서 적을 죽인 것을 가지고 따지고 든다. 억지라면 다소 억지이기는 했지만 국제적으로 치솟고 있는 인권단체의 위상을 생각하면 아주 무시 할 수는 없었다. 즉, 어느 쪽이 되었든 지금 지휘부는 전혀 패배라는 것을 염두해 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저쪽 세계의 설정에 관해서 궁금한게 많으시겠지만... 거기에 관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공개한 후에 설정란에 지도와 함께 올려 놓겠습니다. 그때 설정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42화 “출격하라. 섬멸보다는 적군의 전열을 흩트리는 것에 주력하라.”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K1 전차부대가 출격했다. 사실 이 정도면 그저 창칼과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하고 있는 적군의 입장에서는 재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연합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오오오오오!!!!” “오오오오라라라라라라라라라!!!!!” 전차부대가 오는 것을 보는 적군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지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연합군도 그건 적들이 전차가 뭔지 잘 모르니까 그런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전차가 위용을 뽐내면 저 미개한 적들도 상황을 파악 할 것 같았다. “발포해!! 정면에 한 방 먹여!!” “옛. 알겠습니다.” 콰아앙!!! 콰앙!!! K1 전차의 105mm주포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그 포탄은 그대로 적들을 관통··. 터엉!!! 콰앙!!! 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포탄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버린 것이다. “뭐야? 뭐가 있는 거야?” “중령님!! 공격이 듣지 않습니다.” “어··. 적··. 적군이 이쪽으로 다가 옵니다.” “제길, 나도 알아!! 빨리 대응해!! 접근하게 두지 마!!!” “기·· 기관총도 들지 않습니다.” 적군은 K1전차의 철갑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듯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중에 오크족의 전사 한명이 창을 크게 찌르자 눈을 크게 뜨고 휘둥그레질 광경이 펼쳐졌다. 콰아아앙!!! 자주포 한 대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오오오오오오오오!!!!!!” 여기저기서 창과 도끼에 자주포들이 풍성 터져 나가듯이 박살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드는 곳에는 신장 2.5미터에 체중이 500kg은 될 것 같은 거대한 근육질의 초록빛 피부의 거구가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플레이를 했던 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지금 저기 있는 것은 배틀 오크. 오크족 중에서도 전투에 특화된 몹들이었고, 레벨은 50대 중반 정도였다. 주로 저층에서는 보스몹으로 나온 적도 있는 몹이었다. 놈이 지금 여기서 나타난 것이다. “우로오오오오오!!!!” “크라라라라라라라!!!!” 놈들의 도끼질 한 방에 창의 찌르기 한 방에 그대로 자주포가 박살나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적들은 해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아라라라라라라라라!!!!” 박살나는 전차부대와 몰려오는 적들을 보면서 그제야 심각한 상황을 파악한 지휘부는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당장 AH-64 아파치를 띄워!! 그리고 B-2도!! 인정사정 보지 말고 쓸어 버려!!!” 적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파악한 미군의 지휘관은 가장 강력한 카드를 빨리 꺼냈다. ‘제길··,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놈들이다. 하지만 지상에 전력이 집중되어 있다면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뭉게 주겠다.’ 전차 부대의 전멸을 보고 놀란 그는 적들을 완전히 박살내 버리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적의 전력이 지상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었다. “저건···. 뭐야?” 누군가 젊은 장교 한명이 하늘쪽을 가리키면서 넋이 나간 것처럼 말했다. 처음에 그 사람이 가리킨 곳에는 철새 때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광경이 보였다. 하지만 그 철새가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드러난 모습은···. “크워어어어어어어어!!!!” 거기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한 두 마리도 아니고 거의 백 마리에 가까운 드래곤들이 등장한 것이다. 지휘관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척 봐도 전투기 보다 세 배는 더 커다란 몸체를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이 등장한 것이다. “드래곤? 퍼킹 헬···.” “무슨 판타지도 아니고·. 빌어먹을 전투기 빨리 이륙해!!!” 지휘관이 서둘러 재촉했지만 전투가기 이륙하는 것 보다 드래곤의 입에서 불이 뿜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라운드 제로에서 드래곤이라고 하면 일단 시작 레벨이 100레벨부터 정도였다. 그런 놈들이 백 마리 가까이 일제히 브레스를 뿜었다. 그 파괴력은 현대적인 융단 폭격을 가뿐하게 맴돌 정도였다. “이건··. 이건 악몽이야···.” 그게 한미 연합군읠 지휘하고 있던 지휘관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절망적인 궤멸. 하필이면 타이밍도 생방송으로 전진기지의 내부 상황을 전하던 상황이라서 전 국민이 모두 알게 되던 시기였다. 당연하지만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어이··. 저 놈들 또 게이트 너머로 오는 것 아니야?” “설··. 설마? 이번에는 단단하게 대비하고 있는데···.” “그 대비를 위한 전진 기지가 박살이 났잖아? 조금도 못 버티고?” “············.” 국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불안은 적중했다. “사특한 이계의 악마들에게 신의 철퇴를 내리자!!!” “우오오오오오오!!!!” 게이트의 전진 기지를 사뿐하게 밀어붙인 이세계의 군대는 그대로 게이트를 넘어서 여의도로 등장하려고 했다. 한국으로서는 재앙도 이런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에 넘어오는 규모는 이 전보다 훨씬 거대했다. 만약 놈들이 넘어온다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기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각·· 각하!! 당장 게이트에서 이계의 적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 경계경보!! 빨리 전 시민을 피난 시켜!!!!” “이미 늦었습니다. 각하. 서울에 사는 인구가 한 두명도 아니고 지금 경보를 울려서 언제····.” “그럼 그냥 있을까? 어떻게든 해야 할 것 아니야!!!!!!?” 대통령은 버럭 소리 질렀다. 실제로 그의 안색은 사색이 되었다. 이건 그 개인의 정치적인 입지를 넘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망하느냐? 마느냐? 의 존재가 걸릴 정도일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깜냥으로 해결할 범위를 까마득하게 넘어섰다. “제길··. 제길, 왜 이런 일이···.” 대통령은 너무 막막한 상황에서 어린애나 부릴법한 억지를 부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가 이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다면 그 사람의 발바닥이라도 싹싹 핥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통령은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가 여의도 상공에 나타났다. “꾸역꾸역 잘도 나오는 군.” 게이트에서 나오는 적들을 보면서 정운은 심드렁하게 중얼 거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박추성과 배대호가 정운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렇지 뭐··. 어쩔까?” “몰라서 묻습니까? 저걸 그냥 내버려 두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텐데···.”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무기를 꺼내자 배대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다. 정운이 넌 여기서 부하들을 이끌고 적들을 막아라. 나하고 추성이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들을 몰아내고 올 테니.”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형님들이 여기서 막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배대호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앞으로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건 네가 주축이야. 그렇다면 여기서 얼굴을 팔아둬서 나쁠 것 없지.”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슬기야.” “예. 정운씨.” “수민이 형님하고 같이 부하들 준비 시켜. 우리가 나서야 할 때야.” “예. 조심 하세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 놈들 정도한테 죽을 정도면 진작 죽었지.” 경험담이 절절이 묻어나는 한 마디였다. “크아아아아아앙!!!!” 여의도 상공에 나타난 드래곤은 거대한 포효를 터트리면서 주변의 인간들을 바라봤다. “피해!!!!” “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신호 무시하고 밟아. 이 XX 새끼야!!!” 사람들은 아비규환이 되어서 난리가 났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거대한 드래곤의 등장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보였다. 이전에 여의도에서 저걸 구경거리 취급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악몽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일단 드래곤의 가시거리 안에 있는 이상은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 했다. “크르르르·····.” 드래곤의 입안에서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게 브레스의 전조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카하아아앙!!!!!” 퍼어어엉!!! 놈의 입에서 광선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고열의 브레스가 뿜어졌다. “안 돼!!!!!” 누군가가 자신 쪽으로 똑바로 뻗어오는 브레스를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퍼어어엉!!!! 그리고 그 브레스가 그쪽으로 작렬한 순간····. “·····어?” 브레스에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타버릴 줄 알았던 남자는 의외로 자신이 멀쩡하다는 기적에 놀랐다. 자신을 비롯한 이 일대를 그림자로 만들어진 방벽이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들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당·· 당신은?” 그 남자가 바라본 곳에는 얼마전부터 대한민국에서 갑자기 유명해진 누군가가 버티고 서 있었다. “박정운?” 최고의 타이밍에 등장한 정운이었다. 정운은 혼자서 갑자기 등장 한게 아니었다. “드래곤이라···. 이런게 설치면 곤란하지.”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손을 뻗었다. “아스트랄 소드!!” 그러자 허공에서 두 자루의 뇌전의 거검이 생성 되었다. “가라.” 피유융!!!! 그리고 정운인 손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공기를 찢어 버리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뇌전의 거검은 드래곤을 반토막으로 썰어 버렸다. “····오오···.” “살았다!!!!” 정운이 지켜준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다. 이런 현상은 여기만 벌어지고 있는게 아니었다. 이미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게이트 주변에는 항시 대기 시켜두고 있던 인물들이 있었다. 바로 정운과 같은 귀환자들이었다. “1분대와 2분대는 시민들의 안전을 우선시해라!! 나머지는 적들을 다시 게이트 너머로 밀어 넣어라!! 9분대와 10분대는 대기하라!!!” 김수민은 타란툴라 길드라는 거대 길드를 이끌었던 실력을 발휘해서 부지런히 부하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김수민의 옆에서 슬기 역시 간부로서 보좌를 하고 있었다. “메이지 계열은 앞으로 나가지 말고 뒤쪽에서 대기해 주세요. 공격 보다는 적의 공격이 서울에 튀지 않도록 방어에 주력 합니다!!!” 원래 위에서 누군가를 지휘하는 것이 능숙한 그녀는 아니었지만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주변의 귀환자들을 모두 능숙하게 지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많은 귀환자들이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일까? 사실 이들은 정운이 이전의 국회에서의 회담 이후에 쭉 모아온 자들이었다. 국회의 정치가들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게이트를 지키겠다고 했을 때 정운은 속으로 화가 났다. ‘파우스트가 어떤 놈인지 조금도 모르는 새끼들이 겁도 없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나 높은 사람이요. 라면서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선을 하는 정치가들을 보고 정운은 신물이 났다. 이런 놈들은 한 번 호되게 데어보기 전에는 절대로 정신을 차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일단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비켜준 것이다. 안 비켜주고 끝까지 정운들이 게이트를 지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아마 저 정치가들은 정운과 그 동료들을 국가전복을 꿰하는 테러리스트 정도로 몰아갈 것이 뻔했다. 놈들의 그런 빤히 보이는 수작에 놀아나기 싫어서라도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맡긴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게 바로 정운이 기다리고 있던 베스트 타이밍이었습니다. 위기속에서 구해줄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이때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없는 법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추천이나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43화 <영웅 등극> 정부의 정치가들이 했던 행동은 확실히 진상에 밉상이었다. 대 놓고 정운을 자신들의 졸로 이용해 먹으려고 했으니 정운의 성격에 국회의사당 뚜껑 날린 것 정도로 참았으면 많이 참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하는 짓이 밉상이라고 해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망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는 정운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정운은 일단 정치가들에게 잠시 게이트를 맡기는 한편 자신의 힘을 더 공고하게 모으기로 했다. ‘아무리 소수정예라고 해도 숫자가 적으면 한계가 있다. 머릿수는 머릿수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법.’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우선 삼대 길드를 다시 모았다. 삼대 길드를 다시 모으는 과정은 생각보다 쉬웠다. 원래 삼대 길드는 십왕의 산하 단체 같은 성격이 강했고··. 정운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 있는 자들이 많았다. 사실 갑자기 그라운드 제로에서 현실로 내팽겨 쳐지고 나니 초인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라도 불안한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정운이 앞에 나와서 나만 따라오라는 식으로 말을 하자 그들에게는 더 없이 듬직해 보였던 것이다. 삼대 길드를 순식간에 하나로 모아서 재건한 정운은 그대로 그라운드 제로의 한국 유저를 모두 모으기로 했다. 사실 한국 정부로서는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게이트가 열리고 귀환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귀환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각국은 국내 정세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워 졌다. 귀환자들이라고 불리는 자들 대부분은 그렇게 선한 자들은 아니었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곳이 원래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의 모임이 아니었던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이기주의자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한국 서버만 해도 철통같은 규율로 관리되고 있던 삼대길드를 제외한 나머지 유저들은 상당수가 남을 밟고 자신이 살아 남는게 우선이라는 이기주의자들이 상당수였다. 그런 자들이 보통 인간을 뛰어넘은 초인적인 위력을 능력을 지니고 갑자기 현실에 등장했다. 어떻게 될 지는 뻔했다. 세계 각지에서는 경찰들이 어떻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감당 못할 범죄자들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은 유일하게 달랐다. 정부는 그게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아니 아애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다. 자국만 내부가 조용할 정도로 범죄가 안 일어나면 그게 그냥 좋은 일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운과 삼대 길드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정운은 범죄를 막기 위해서 죄를 저지른 인간을 쫒아서 잡는다. 라는 선택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끝이 없었고 일단 벌어진 범죄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정운은 좀 인권을 무시하고 강경하게 나갔다. 일단 귀환자라고 하면 다 잡아서 자신들의 근거지에 감금시켜 버린 것이다. 강원도 산골의 작은 마을···. 실제로 지도에는 나오지 않고 모든 인구가 사라져 버린 마을이었지만 정운에게는 딱 좋은 장소였다. 그 마을에 몇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글바글 거리면서 노숙을 하며 머물고 있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런 취급에 발끈하는 귀환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 놓고 대들지는 못했다. 박정운이라는 이름은 한국 서버의 유저들에게 절대강자의 상징이었고 눈앞에서 자신들을 감금하고 있는 삼대 길드의 길드원들 조차 자신들보다는 훨씬 강자였다. 그렇게 정부로서는 모르겠지만 정운은 삼대 길드를 재건하고 귀환자들을 관리하면서 한국내부의 치안 유지에 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저들 상당수를 자신의 부하로 받아 들였다. 귀환자들 사이에서만 있는 혈맹의 제약. 그것은 현실로 나오고 사라졌다. 하지만 정운은 천계에서 그것에 버금가는 능력을 부여 받았다. 신의 맹세. 라는 능력이었다. 이름은 다르지만 능력 그 자체는 혈맹하고 거의 같았다. 특정 조건을 내걸고 서로 계약을 하고 그 계약을 절대적으로 준수한다. 라는 것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신의 맹세의 정점에는 정운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운이 10명과 계약을 맺고 그 10명이 다시 10명과 계약을 맺어 100명이 되고, 그 100명이 다시 10명과 계약을 맺어 1,000명이 되고···. 그런 피라미드식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의 정점에 정운이 군림하고 있었다. 이건 명백하게 천계에서 정운을 귀환자들의 정점에 올리기 위해서 만들어준 능력이었다. 직접 세상에 개입 할 수 없는 그들로서는 정운에게 힘을 실어 주는게 파우스트의 야욕을 분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운은 삼대 길드의 힘을 늘렸다. 그리고 삼대 길드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유저들은 일단 구금을 계속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을 이유 없이 가둬두는 것은 비인간 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정운은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을 세상에 그냥 풀어두는 것은 양 때 사이에 늑대를 풀어 놓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사고를 안 친 인간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사고 칠게 뻔한 인간들이 열에 아홉인데 그걸 그냥 풀어준다? 정운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었다. ‘적어도 틀이 잡힐 때 까지는 잡아 두고 있어야지.’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동시에 한국의 치안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모든게 정운이 게이트 너머로 진출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차게 밀어!!!” “제길, 여기 탱커 더 들어와!!!”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은 상대적으로 능숙하게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게이트 너머로 밀고 들어오는 상대들 중에 상당수는 오크족과 괴수들, 그리고 갑옷을 걸친 기사 형태의 인간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오크들 따위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질리도록 상대한 놈들이었다. 물론 레벨이 낮은 상태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탈출해서 버거운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위험한 지역에서 한발 벗어나서 백업으로 아군을 돕고 있었다. 약한 자는 약한 대로, 그리고 강한 자는 강한대로 모두 정해진 역할이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작업이었다. 능숙하게 대처한 귀환자들은 점점 더 적들을 절멸 시켜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시민들은 화색이 되어서 크게 환호했다. “세상에···.” “완전히 박살을 내고 있잖아···.” “저게 저렇게 쉽게 되는 건가?” 시민들은 한미 연합군을 밀어내고 한국에 침공한 적들을 도로 밀어붙이고 있는 귀환자들을 보고 감격을 넘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도 조금 오해하고 있는게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라고 해서 모두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총화기와 수류탄 두 개 정도로 무장한 일반 군인이 한명 있다고 하자. 이 군인의 전투력을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의 레벨로 치면 한 20정도 될 것이다. 탱크 한 대면 아마도 30정도, 전투 헬기면 60 정도는 될 것이다. 최신식 전투기는 경우와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레벨이 80~110 정도는 될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중에서도 월드 서버의 유저를 빼면 100레벨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평균 레벨은 20~50 정도였고 삼대 길드에서 한 50층 이상의 공기를 좀 마셨다는 자들은 대략 70~90레벨 정도 될 것이다. 그런 자들은 철저하게 소수파였다. 몰려오고 있는 적들의 평균 레벨이 50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일방적인 전투는 좀 이상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귀환자들이 적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까? “편막!!!” “염소접!!” 콰콰쾅!!!! 김수민의 채찍과 슬기의 공격이 한쪽에 밀집되어 있는 적들의 방어라인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이쪽이 뚫렸다!!!” “밀어 붙여!!!!” 그것은 바로 김수민과 이슬기 같은 고위급 유저들의 존재였다.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한 시점에서 정운의 레벨은 무려 345였다. 마지막에 악마들의 클리어 속도에 편승해서 광업을 했던 것이 제대로 먹혔기에 그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효과를 본 것은 정운 한명만이 아니었다. 우선 배대호의 레벨은 335, 박추성의 레벨은 340이었다. 그리고 지금 부하들을 지휘하면서 싸우고 있는 김수민도 레벨이 201에 도달했고, 슬기 역시 205레벨이었다. 레벨이 200이 넘어가면 이미 기존의 유저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생물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 자들이 요소요소에서 먼치킨 식으로 설치고 있으니 적들로서는 감당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것은 정운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드래곤들을 상대로 단독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정운의 모습은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위엄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주위에 생성되고 있는 뇌전의 대검이 거대한 드래곤들을 썰어버리고 박살을 냈다. 덩치가 학교 운동장만한 거대한 드래곤들이 정운 한명에게 총 맞은 비둘기처럼 픽픽 쓰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광경은 서울의 시민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핸드폰을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후퇴··. 후퇴하라!!!” 결국 열세를 버티지 못하고 이세계의 군대들이 후퇴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네놈들 마음대로 오고 간다고? 여기가 패키지 관광 코스로 보이냐?”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온 몸의 힘을 집중 시켰다. “뇌신강림.” 파지지지직···. 정운을 중심으로 대기의 기압이 변해 버릴 정도로 강력한 뇌전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운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스트랄 소드. 맥시멈!!” 파직··. 파지직···. 열 개 전후로 정운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뇌전의 거검이 수백개로 늘어났다. 길이만 해도 10미터가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뇌전의 거검 수백개가 하늘을 가득 메우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쩐다.” 누군가가 중얼 거린 한 마디는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시민들 전원의 마음을 모두 대변하고 있었다. “죽어라.” 정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결코 크지 않은···. 그저 담담한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 마디가 불러온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콰아앙!! 쾅쾅!!!! 허공에서 드래곤들의 피와 육편이 비가 되어서 떨어졌다. 그 사이에서 황금빛 뇌전을 두르고 오연하게 하늘에 떠 있는 정운의 모습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 그 자체였다. 상황이 변했다. [무능한 정부의 실책.] [신세계에 관한 정보의 부재가 치명적.] [한미 연합군 궤멸.] [박정운을 비롯한 귀환자들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피할 수 없었던 대참사.] 요즘 들어서 인터넷의 기사들의 주요 내용들은 대부분 이런 내용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위기를 기회로 바꿔서 한국을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치켜세우던 언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꿨다. 자칫 잘못하면 서울 시내가 불바다가 될 뻔 했으니 당연했다. 이제까지 목소리를 죽이고 있던 야당은 이때다 싶어서 편승해서 모든게 대통령과 여당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서 비난하기 시작했다. 정치 라는게 참 지저분한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입장에 따라서 정치가의 입에선 나오는 말은 100% 정반대로 변한다. 만약 신세계 개척 프로젝트가 야당이 주도해서 일을 벌였다면 지금 야당은 규탄이 아니라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여당이 주도하던 일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변명? 어림도 없는 말이다. 이 기회를 틈타서 여당을 끌어내릴 기회가 아닌가? 야당은 자신들의 손이 닿는 언론을 총 동원해서 여당을 비판···. 아니 그건 피반도 아니다. 그냥 까내렸다고 말하는게 나을 것이다. 나라를 멸망의 길로 내몬 매국노 취급하면서 강력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아직도 끈질기게 결정타를 날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당은 야당의 공세에 가능한한 무대답(생까기)과 비열한 정치적 공작(상황이 반대면 자기들도 하겠지만)이라면서 야당의 공세에 버티기 식으로 나오고 있었다. 야당은 조바심이 났다. 지금 여당을 끝장낼 기회가 왔는데 좀처럼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결정타를 날리기 위한 최고의 카드가 있기는 있다. 바로 위기의 순간에 나라를 구한 영웅. 박정운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정운의 위상이 확 변했습니다. 사실 정운 자체의 능력이나 힘은 등장했을 때부터 막강했지만 이제야 그 막강함을 세상이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344화 만약,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박정운이 지금 앞으로 나와서····. 야당의 말이 옳다. 전적으로 여당 책임이다.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대통령 하야 & 여당인 경진당 해체’까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여당의 입장에서도 이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해 줄 수 있는 동아줄은 딱 하나 뿐이었다. 바로 박정운이었다. 정운이 앞으로 나서서 여당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뿐이다. 라고 한 마디 하기만 하면 상황을 다시 뒤집을 수 있다. 정치가의 변명이 국민들의 귀에 들어올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영웅의 말은 다르다. 그것은 국민들의 귀에 들어가고 마음에 박혀서 여론을 일시에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카드였다. 유투브를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정운의 영상은 귀환자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그냥 약간 초능력을 지닌 인간들 정도로만 생각하던 귀환자들이었다. 일전에 정운이 국회의사당의 뚜껑을 날려 버리기도 했지만 그건 폭약으로도 가능한 것이었다.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결코 사회의 틀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귀환자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강해봤자 고작 인간 하나가 얼마나 강하겠는가?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미연합군을 밀어낸 이세계의 군대를 귀환자들끼리 힘을 합쳐서 막아내는 것과···. 결정적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정운의 전투 장면은 사람들의 인식을 확 바뀌어 버렸다. 그건 일개 개인이 발휘 할 수 잇는 힘의 틀을 아득하게 벗어난 것이었다. 어떤 군사 전문가는 정운 개인의 파괴력은 핵을 제외한 미국의 전력과 맞먹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정작 정운은 그 평가를 받고···. “내가 그렇게 약하다고?” 라고 콧웃음을 치며 중얼 거렸지만 말이다. 물론 그거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박정운이라는 이름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세상의 중심이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에 배대호는 마침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귀환자들을 관리하고 있음을 넌지시 세상에 알렸다. 그게 또 한 번 파격적인 효과를 발휘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귀환자 범죄. 해외에서는 심각.] [초인들의 범죄 행각에 현실적으로 경찰들도 대책이 없음.] [한국만이 게이트 개방과 거의 다름없는 치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박정운.] [영웅의 남몰래 선행.] 언론에서는 다시 한 번 박정운을 극찬했다. 이 효과는 정운의 영웅화에 맞물려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호응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마음에 확 와 닿은 것은 정운이 귀환자들을 관리하면서 치안을 유지하는 일을 남 몰래 했다는 것이다. 마치 이런 일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런 자랑질도 없이 그저 남몰래 담담하게 말이다. 그게 국민들에게 큰 감명을 준 것이다. 뭐, 사실 정운이 겸손하기 때문에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식으로 그렇게 일을 처리 한 것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팩트만 보면 정운이 항 행동은 강제적인 납치 및 구금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좋게 흘렀으니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원래 법적으로는 범죄였다. 귀환자들 중에 상당수가 대한민국 국적이 말소된 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범죄는 범죄였다. 범죄라고 해서 어디 경찰에 잡혀갈 일은 없다고 생각한 정운이었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잡음은 최대한 피하는게 현명했다. 정운이 귀환자들을 강제로 가둬두고 있다는 것을 알면 별의 별 인권 단체들이 비인간 적이다. 반인륜 적이다. 라면서 비판할게 뻔했으니 말이다. 그게 귀찮아서 몰래 처리했을 뿐이다. 그게 이제 와서는 남몰래 행한 영웅의 선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야···. 정부에서는 이런 사람한테 그따위로 말했단 말이지? 미쳤네.” “그러게··. 이 사람 아니었으면 실제로 우리 다 죽었을 것 아니야.” “하여튼 정치가 새끼들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경우를 못 봤어.” 원래 대한민국 직업군 중에 욕 많이 먹기 부동의 랭킹 1위를 자랑하는 직업이 정치가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신용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여야 따질 것도 없었다. 한 번 국가 멸망의 위기를 겪고 나니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대신 정부가 초래한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정운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급상승 했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결국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가들은 발등이 떨어져서 정운에게 선을 대기 위해서 안달이 났다. 그 결과·····. “볼일이 있다고요?” 정운의 앞에 대통령 & 여 야당의 당 대표들이 모두 집합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척 봐도 겸손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당당한 정운의 태도는 당당함을 넘어 오만의 영역으로 승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압적인 태도에 정치가들은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제길···. 어린 새끼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선을 좀 걸쳐 놓는 건데···.’ ‘이 뻣뻣한 놈을 어떻게 설득하지? 척 봐도 우리가 싫다는 느낌을 팍팍 풍기고 있는데···.’ 정치가들로서는 정운이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 사실 정치가라는 종속들이 겸손해자는 것은 선거철 뿐이다. 그 이외의 시간은 항상 ‘나는 높은 사람이다.’ 라는 권위 의식에 쪄들어 있는게 보통이다. 시점의 차이겠지만 정치가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한 가지가 국민들 입장에서는 만렙 진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운은 게이트를 수보하자마자 처음처럼 다시 실드를 치고 봉쇄에 들어갔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정치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호출했다. 할 말이 있으니 와 봐라.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전에 불렀을 때는 정운이 가기도 했으니 또 부르면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바빠. 안가.] 정운의 짧은 답장이었다. 이걸 그냥 정운이 말로 직접 하기만 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걸 배대호가 인터넷을 통해서 전국민이 보도록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ㅋㅋ청와대 대 굴욕. -이건 아니지. 영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청류의식에 찌들은 정치권 새끼들···. 정신 차리려면 멀었다. -감히 누구한테 오라 가라야? X 같은 새끼들···. -물에서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 놓으란 격일세··. 국민들은 분노했고 인터넷에는 정치가들을 까대는 글들이 홍수처럼 범람했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선이 닿는 언론을 총 동원해서 어떻게든 사태를 진정 시켜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몇몇 언론들이 정치권을 옹호하다가 오히려 호되게 당했다. 국민들에게 홈페이지가 미친 듯이 성지순례당하며 쳐 맞고 다운되어 버렸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국민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몇몇 과격한 시민들이 그 언론사의 사무실에 쳐들어가기도 했다. [국민을 위해야 할 언론사가 정치권의 개가 되어서 국민의 영웅을 모독했다.] 라는 사실에 분개한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수백 수천, 종국에는 수만명이 언론사 사무실 앞에서 진치고 말 그대로 돌 던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 언론사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사과성명? 그런걸 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용서의 기회를 주지도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공격한 것이다. 지금 국민들의 분노는 그만큼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정치가들은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면서 절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몇 가지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태를 뒤집어씌울 몇몇 인사들을 찾아서 책임을 물었다. 결국은 정운을 불렀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관급 인사 세 명과 그 외 기타등등이 도마뱀 꼬리가 되어서 옷을 벗어야 했다. 그 정도 리액션을 취하고 나서야 그나마 국민들의 분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지금···. 정치권을 대표하는 대통령, 그리고 여당 대표와 1야당 대표까지 세 명이 정운의 앞에 나왔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정운은 일단 말은 높여 줬다. 하지만 시선과 어조에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 있었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정치가들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선거철에 쇼하는 것만 빼면 항상 갑의 위치에 있어왔던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나이 반도 살지 않은 젊은 정운이 이렇게 오만하게 나오는 것은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할 정도로 굴욕적이었다. 하긴 실제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세월까지 포함하면 정운의 나이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많지만···. 뭐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이번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주셔서 제가 전 국민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합니다.” 대통령이 먼저 운을 땠다. 그러자 정운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국민을 대표? 그럴 자격은 있소?” “··············.” 대통령은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정운에게 뭐라고 대꾸 할 수는 없었다. 지금 대통령은 정운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생글생글 웃는 낮이어야 한다. 정치라는 것은 때에 따라서 설령 부모의 쌍욕을 듣는다고 해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로 저희들이 당신에게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뭔가 저희가 만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까칠한 태도는 칭찬이나 표창 등으로 풀릴게 아니었다. 결국 대통령은 정말 말 꺼내기 싫었지만 실질적으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금 한 말은 일종의 항복 선언인 것이다. 원하는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라면서 머리를 숙이고 나온 것이다. 정운은 그 말이 나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 장의 서류를 툭 내밀었다. “거기 다 적혀 있소.”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미리 정해둔 조항은 다 있었다. 세 명의 정치권 대표는 그 조항을 하나하나 읽어갔다. 그리고 점점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1. 게이트 너머의 신세계의 개발권과 진입권, 게이트의 진출입에 관한 권리를 모두 이양한다. 2. 귀환자(유저)들에 대한 모든 관리권을 이양한다. 3. 정부는 게이트 너머의 개발에 대한 지원금으로 연간 100조원의 지원금을 뮤조건 지원한다. 4. 게이트 너머의 신세계의 법률적 100% 자치권을 보장한다. 5. ··············. 조항은 아직 한참 더 계속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항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치가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여기에 도장 찍는다면 그건 호구 인증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대통령은 일단 서류를 다 읽고 난 후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눈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달그락··. 달그락···. 없던 수전증도 생긱가 하는 조항 때문에 대통령은 차가 무슨 차인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혹은 안구로 들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전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정운이 제시한 조건은 정치가들의 숨통을 턱턱 막히게 하는 조건들이 즐비했다. 이 조항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불공평 조약의 룰 모델? 까라면 까라? 갑질? 넌 어디까지 해 봤니?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 절대 여기에 순순히 허락 할 수는 없어. 절대로····.’ 라는 것이었다. 만약 여기에 YES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은 국민 호구로 등극 할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세 명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좌우를 돌아봤다. 그러자 여 야당의 당대표들이 당신이 총대 메야 한다. 라는 눈을 하고 있었다. ‘···썩을 것들, 평소에는 내가 하는 말에 모두 딴지 걸기 빠쁘고 청와대는 국회에서 한 발 물러나라고 노래를 부르던 것들이····.’ 대통령은 짜증이 팍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명목상으로는 대통령인 자신이 세 명 중에 가장 대표격인 것을···.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45화 <정치가들과의 거래? 혹은 갑질> “크흠···. 우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게이트의 진출입에 관한 권리를 모두 귀환자 분들에게 이양 한다는 것은···.” “스톱. 그 말은 오해한 겁니다.” 정운이 오해라고 말을 끊자 세 명의 얼굴은 조금 화색이 들었다. “귀환자가 아니라 나한테 이양하라고 한 겁니다.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정운의 말이 이어지자 벌레 씹은 표정으로 변했지만 말이다. 말이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는 하지만 저건 훨씬 더 곤란했다. 이번에 한미 연합군이 대판 깨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게이트 너머에 대한 진출은 전 세계에서 군침을 흘리는 권한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 혼자서도 먹기 버거워서 미국과 나눠 먹으려고 했었을 정도로 큰 먹이였다. 그걸 한 국가도 아니고 개인이 독식하게 하라? 솔직한 심정으로 체면만 안 걸리면 그렇게는 못한다고 바닥에 드러누워서 땡깡 부리면서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솔직히 말해서 무리입니다. 우리 정부의 체면도 있는데··. 하다못해 전권 이양이 아니라 일부 공동····.” “거절합니다.” 정운은 대통령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면서 왜 거절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냥 내 말이 법이다. 알아서 숙여라. 라고 말하는 듯이 철저한 일방통행이었다. 대통령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2번 조항도 그렇습니다. 귀환자들의 모든 관리권한을 이양하라고 하셨는데···. 이들 중에는 아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 더러 국민을 팔라는 말입니까?” “예.” “···············.” 순간 대통령은 정운을 향해서 주먹을 휘두를 뻔 했다. 하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운에게 주먹이 닿는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말이다. “3번 조항···. 대한민국에서 여러분들에게···.” “저에게 입니다.” 정운은 다시 한 번 정전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얼굴은 폭발 직전이라는 듯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을은 자신인 것을···. “····박정운씨에게 100조에 달하는 지원금을 지원하라··. 라는 말은 정말 억지입니다. 그만한 예산을 어디서 가져온다는 말입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100조원이라는 금액은 이 대한민국의 국가 예산의 4분에 1이 넘는 금액입니다. 이걸 내 놓으라니요.” “싫으면 안 줘도 됩니다.” “!!!!!!!” “!!!!!!!” “!!!!!!!” 정운의 말이 처음으로 반갑게 들리는 세 명이었다. ‘역시···. 100조가 어디 개 이름도 아니고···.’ ‘아주 개념이 없는 깡패는 아니었던 건가?’ ‘한 10조 정도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할 것도 같은데 말이야. 이걸 빌미로 잘 구슬려 보자.’ 사방이 꽉꽉 막힌 미로에서 처음으로 출구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세 명이엇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정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스폰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도 많습니다. 개인 기업부터 타 국가 정권까지 받아낼 수 있는 돈은 많습니다.” 정운의 말에 대통령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연간 100조원을 말입니까? 도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그런 금액을···.” “저 안에 석유 유전 발견된 것은 아십니까?” “···········.” “근처에 발견된 것만 매장량이 두바이 세 배 랍니다.” “세·· 쿨럭···. 세 배·····. 라고요.” “그렇습니다.” 마치 어린애가 우리 집에 플레이스테이션4 있다? 부럽냐? 라는 듯이 담담하게 말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듣는 세 명의 입장에서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발견된 것만 두바이의 세 배···. 아니 그런걸 언제 조사하셨다는 말입니까? 거짓말 아닙니까?” 여당 대표인 김동호는 순간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거짓말?”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 분위기가 차가워지자 여당 대표인 김동호는 그제서야 자신의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운에게 거짓말 운운하는 것은 틀림없이 자신의 실수였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그냥 가십시오. 전 당신들이 아쉽지 않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대통령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릎을 꿇었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지만 정운은 싸늘했다. “불쾌하군요. 전 오늘 더 말할 기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정운이 그렇게 나가고 난 후···. “김동호 야. XX 새끼야!!!!!!” 환갑의 나이가 지난 대통령이 마찬가지로 환갑을 코앞에 두고 있는 여당 대표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했으면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따 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정운이 정치권을 대표하는 세 명과 회담을 가졌다는 얘기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게 결렬 되었다는 얘기도 금방 퍼져 나갔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퍼져 나갔나고? “인터넷이라는 것 실제로 써 보니 엄청 편리하네?” “대호 형님 마치 여론 조작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역시 이번에도 배대호가 입 싸게 퍼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대호가 퍼트린 내용의 골자는 이랬다. 정치가들이 정운과 면담을 취했고, 정운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자 [여당인 경진당의 당대표인 김동호]가 정운을 거짓말쟁이라고 모독했다. 이에 씁쓸한 불쾌함을 느낀 박정운은 더 이상 회담을 지속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일어났다. 라는 내용을 적어서 퍼트렸다. 말이라는게 참 요물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진실만 가려서 표현해도 누구 한 명에게 유리하게 진술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배대호는 그런 악의적인 요술을 100% 활용하고 있었다. 저 말에 다소의 과장은 있을지 몰라도 거짓은 없었다. 일단 팩트는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국민들이 들었을 때 정운에게 120%유리할 내용들만 싹싹 간추려서 전했다. 회담 내내 정운이 오만할 정도로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같은 말은 굳이 말 할 필요 없는 내용이었다. ‘저런 사악한 짓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거지? 인터넷을 실제로 접한지도 얼마 안 된 양반이···. 타고 난 건가?’ 정운은 살짝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쨌든 상황은 정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치판 쪽에서는 나름 억울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만 쏙 정해졌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뭐, 비록 이게 정치가들이 항상 자신들이 정적을 공략 할 때 하는 짓이기는 하지만 마리다. 어쨌든 같은 전략이라도 하는 사람의 지지도에 따라서 그 효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정운의 측에서 흘러나온 정보는 국민들에게 열렬한 반향을일으켰다. 특히, 그 중에서도 실명을 노골적으로 강조해서 드러난 김동호 의원의 경우···. 그는 한국을 떠났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살다가는 길에서 칼 맞기 십상일 판이었다. 보통 당 대표가 공격 받고 있으면 그 당에서 커버를 쳐줘야 하는게 보통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경진당의 입장에서도 그럴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까딱 잘못해서 당 대표 두둔이라도 했다가는 여당이 통째로 박살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당 대표고 뭐고 무조건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여당의 당대표인 김동호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결국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국내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나라로 갔는지도 몰랐다. 마치 야밤도주하듯이 남 몰래 해외로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길거리에서 돌 맞아 죽을 판이었다. 일단 제물(?)을 바쳐서 성난 민심에 아주 조금이지만 진정제를 투여한 정치판은 속으로는 여전히 시크러웠다. 국회와 청와대는 겉으로 답답할 정도로 둔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뒤로는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조건들을 다 수용한단 말입니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안 보입니다.” “아니 하지만···. 불공평도 정도가 있지. 그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같을 말이라도 누구 입에서 나오냐에 따라서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요. 쯧, 난 우리 국민들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경우는 처음 봤소.” “확실히···.” 정치가들 입장에서 박정운은 너무나 부러운 존재였다. 자신들은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에게 이미지 좋게 보이게 하려고 온갖 쇼를 다 해야 했다. 멀쩡한 차 놔두고 지하철 타고 다닌다거나. 자신들이 나가서 한다고 별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카메라 대동하고 봉사 활동이나 가거나 하는 각종 이벤트들 말이다. 문제는 이제 그것도 잘 안 먹힌다는 것이다. 국민들 중에 그게 선거철 특수 쇼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1%도 없는 지경이었다. 영화 개봉하기 전에 쇼프로 나와서 홍보하는 배우들의 속내보다 더 뻔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정치가라는 직업은 사기꾼하고 한 끗 차이의 거짓말쟁이에 위선자쯤으로 취급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자신들의 면전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권력이 무서워서일 뿐. 실제로 국민들에게 정치판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정치가는 없었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정치가들에게 있어서 박정운은 거의 무한 치트키의 버그 캐릭터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다 믿어주고 국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정치가들이 꿈꾸는 드림 캐릭터가 아닌가? 모든 정치가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야당인 시평당 소속의, 그것도 아직 젊은 30대의 초선 의원 한명이 말했다. “후우···. 냉정하게 생각할 때··. 우리가 박정운, 그 자의 제안을 거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 불공평 조약에 동의하는 것? 그건 분명 악수죠.” “·············.” “·············.” “·············.” 불평불만 등의 영양가 없는 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일단 방향을 제시하는 의견이 나오자 회의 중이던 야당의 정치가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는 그 시선을 받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악수라고 해서 어쩌겠습니까? 최선의 방법을 도출 할 수 없다면 최악의 방법이라도 피해 가는게 상책입니다. 이대로 우리가 그 불평등 조약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 “··············.” 나이든 고령의 정치가들의 얼굴 표정에는 ‘그럼 어떻게 되는데?’ 라고 써져 있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생각은 없었던 거냐?’ 말을 꺼낸 젊은 의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동의하든 말든. 게이트의 관리가 우리 능력으로는 버겁다는 것을 이미 파악했을 겁니다. 그런 와중에 다시 게이트의 관리권을 우리가 가지겠다는 것은 또 한 번 국가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자주 국방이···.” 한 노회한 정치가의 때 쓰는 말에 그는 속으로 열불이 터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하면 입이라도 다물고 있을 것이지···.’ 그래도 그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어디까지나 예의 바르게 말을 이어갔다. “자주국방이 가장 정부의 체면과 국가적 위신이 서는 일이긴 하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면 무슨 수를 쓰던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죠. 지금 게이트가 열려있는 곳은 어디 지방도 아니고 서울 한 가운데의 여의도입니다. 국회 의사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란 말입니다. 만약 서울이 박살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지금은 무슨 수를 쓰던 일단 지키는 것인 우선입니다. 체면은 잠시 내려 놓을 때란 말입니다.” 그의 열변은 조금씩이지만 주변 정치가들의 머릿속에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뇌에 총기라는 것이 전멸하고 화석으로 변해가며 ‘우리가 이 나라 이렇게 잘 살게 만들었다.’ 라는 근거 없는 권위 의식만 찌들어 있는 원로 정치가들도 지금은 저 젊은 정치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6.25를 겪었던 몇몇 세대들은 국방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했던 자들이었다. 수단이 뭐가 되었든 일단 지키는게 우선이라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원래 정치가들은 영웅이나 성인을 좋아합니다. 단, 죽은 후에야 좋아하죠. 그래야 이용해 먹을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말하면 눈앞에 살아있는 영웅이 나타나면 가장 곤란해할 사람들도 바로 정치가들인 셈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46화 <세계의 설정> “그래도 국가 예산을 매년 100조 씩이나는···.” 현실적으로 봐도 연간 100조는 큰돈이었다. 이세계를 개발해서 큰 이익을 창출 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저쪽 세계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쪽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예상의 범위 안으로만 봐야 했다. 국가 예산이 어디 펑펑 남나도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100조는 불가능 했다. 하지만 그런 의견을 듣고 처음에 의견을 꺼냈던 젊은 의원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국가 예산만으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내의 대기업들에게 조력을 얻죠?” “국내의 대기업?” “예. 해외의 타국가에서 스폰서를 끌어 오느니 일단 국내의 대기업들에게 스폰서를 받아서 지분을 나눠주는 형식이면 국력의 유출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 “················.” “················.” 좋은 생각이었다. 원래 국가의 일이라고 해서 온전히 국가 예산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공공사업도 국가와 민간이 힘을 합쳐서 완공 시키고 그 이익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건수가 너무 크다 보니 미처 그쪽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도 50조는 큰 돈이다. 어지간한 대규모 토목 사업의 두배가 넘는 돈이다. 그래도 100조라는 살인적인 숫자에서 해방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이자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실제로 저 신세계에 유전이 있다면? 50조원을 아껴서 될 사항은 아니었다. 사실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는 젊은 의원의 입장에서는 100조가 아니라 200조를 원한다고 해도, 아니 국가예산 전부를 원한다고 해서 설령 국채를 미친듯이 찍어야 하는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으면서도 식상하게 안전빵 대책만 생각하고 있는 다른 노인네들이 전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저런 인간들도 젊었을 때에는 한 총기 했을 텐데····?’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제 1야당의 대표인 이진수 당대표가 말했다. ‘내 이름도 몰랐냐?’ 젊은 의원은 떨떠름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박진남입니다.” “그래··. 박의원. 자네가 지금 한 말을 한 번 추진해 보게.” “····제가 말입니까?” 답답해서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그대로 이런 거대한 건수를 자신에게 넘길 줄을 몰랐던 박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건 주변에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새 파랗게 어린 놈을···.’ ‘이제 초선인데··. 이의원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야?’ 그들은 박진수가 부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건 속내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시평당의 당수인 이진수의 속내는 사실 좀 달랐다. 아직 젊고 유능한 박진수를 키워 주겠다. 라는 건전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난 이제 그 깡패 같은 새끼 만나기 싫다. 다시는····.’ 라는 심정이었다. 일전에 대통령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여당의 당대표였던 김동호와 자신은 박정운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진리를 남은 평생의 교훈으로 삼기로 정했다. 그때 김동호가 말 한마디 잘 못 했다가 정치적로, 아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완전 매장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절대로 그런 절차를 밟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박정운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박진남 의원, 이런 일에는 젊은 사람이 제격이야. 내가 밀어 줄 테니 한 번 추진해 봐.” “····진심이십니까?” “물론이지. 이 이진수는 정치경력 평생에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본적 없는 사람이야.” 가슴을 탕탕치며 호언장담을 하는 이진수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별로 공감이 가지를 않았다. ‘····하여튼 임만 열면 거짓말이야.’ ‘100% 거짓말이다···. 어지간히 하기 싫은가 보군.’ ‘공약 실천율이 50%도 안 되는걸 다 아는데 무슨···.’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혹시 진심? 노망이라도 났나?’ 당당하게 말하는 이진수였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별개로 일단 당대표가 하는 말이니 그 의견은 존중해야 했다. ‘여차하면 우리도 경진당에서 한 것처럼 당대표 쳐내 버리지 뭐··.’ 비록 대부분의 의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며칠 후··. 한국 정부는 정운에게 본격적으로 게이트 너머의 신세계의 개발권 및. 게이트 방위 관리 협정 조약을 체결했다. 정부쪽에서는 숨기고 있었지만 정운이 제시한 모든 조건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조약이었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 이미 무조건 항복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정부는 이제 정운과 싸울 생각을 포기하고 정운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 첫걸음으로 야당의 대표로 박진남 의원이 정운의 앞에 나가서 거창한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앞으로 정부와 협력의 당위성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귀찮아. 하는 것 봐서 콩고물 떨어트려 줄 테니 그리 알아.” 프리젠테이션은 하지도 못하고 정운에게 쓴 소리만 듣고 물러나야 했다. “알겠습니다. 혹시 찾으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십시오.” “·············.” 그래도 그는 다른 원로 정치가들과 달리 뻣뻣하게 모가지에 보이지 않는 깁스를 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삐딱하게 나갔음에도 끈까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박진남 의원은 현역 정치가중에 최초로 정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물러나는 쾌거(?)를 거두었다. “앞으로 저 인간하고 말해야 겠군. 정치가들 치고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놈이야.” 정운은 박진남 의원이 물러가고 나서 그렇게 중얼 거렸다. 그리고 그 옆에 배대호와 박추성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 정도에서 멈출거냐? 어떻게 할 거냐?” “글쎄요? 사실 정부가 저렇게 순순히 돈을 다준다고 할 거라고는 저도 예상 안 했던 거라서···. 분명 깎아 달라고 징징 거리거나 내 앞에서 간만 보려고 할 줄 알았죠. 이렇게 대범하게 나올 거라고는 사실 생각 못 했습니다.” “어딜 가든 군계일학은 있는 법이야. 수준 차이는 좀 나겠지만, 어쨌든 정부에서 순순히 백기를 든 이상 플랜B는 없어도 될것 같은데?”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으니까요. 우리의 최종 목적인 그 놈을 생각하면 정부랑 실랑이 놀이나 계속 할 여유는 없죠.” 놀이 운운하는 말이 정계에 전해진다면 여러사람 뒷목 잡고 쓰러질 것이다.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뒷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제길, 이럴 줄 알았다면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 어떻게든 파우스트를 끝장냈어야 했는데···.” “누가 그걸 일부로 안 했냐? 못 했던 거지···.” 옆에서 배대호가 말했고 박추성은 투덜 거리면서 대답했다. “나도 알아. 그냥 답답해서 해 본 말이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굳게 주먹을 쥐고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이제 시작이야···. 이제····.’ 말 그대로 이제 복수를 위한 최초의 발판을 마련했을 뿐이었다. 정운의 목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정운이 게이트의 개발권을 손에 넣은 후···. 정운은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게이트 중심으로 해서 방위 시설을 준공하기 시작했고 게이트 내부에서도 귀환자들이 머물 수 있는 도시를 건축 중이었다. 앞으로 거기를 시작으로 해서 신세계로 진출할 처음에 도시는 잘 건설해야 했다. 최종적으로는 지구에서는 여의도 전체를 정운의 관할 하에 두고 관리 하는게 목표였다. 다만 국회의사당이라던가? 방송국이라던가? 지금 당장 옮기기는 무리인 시설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차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게이트 내부에 마련된 정운의 임시 사무실에 배대호가 찾아왔다. 털썩···. 그리고 배대호는 매우매우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정운의 앞에 내밀었다. “····이만큼입니까?” “그래. 오늘 안으로 다 읽어 둬.” 배대호의 당연히 하라는 듯한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형님. 전 형님에게 최대한 간추려 달라는 말을 전했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한 거다.” “············.” 정운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자 배대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다 외우라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 읽어 둬. 그거 만든다고 애 많이 썼다.” “후우··. 알겠습니다.” 정운은 한 숨을 쉬면서 전화번호부를 연상케 하는 두꺼운 파일을 집어 들었다. 사실 이게 필요한 파일이라는 것은 정운도 잘 알고 있었다. 가능하면 외울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외워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 자료는 신세계, 즉 파우스트가 만든 세계의 자료이기 때문이다. 정운이 여의도 상공에서 드래곤들을 능지처참하고 있는 동안····. 배대호와 박추성은 게이트 안으로 돌입해서 꾸역꾸역 몰려있는 적들을 학살했었다. 다만, 그걸 다 죽인 것은 아니다. 상당수를 생포해서 놈들에게 최대한 정보를 얻어내려고 한 것이다. 사실 파우스트에 대한 진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정운들이라고 해도 이 세계에 알고 있는 사실은 파우스트가 만들었다. 라는 사실 말고는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 되어 있는지 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다양한 포로를 잡아서 그 포로를 심문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취합해서 최대한 간추린게 이 지랄 맞을 정도로 두꺼운 서류철인 것이다. “····읽어 볼까?”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서류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서류철의 정보를 축약하면···. 이 세계의 창조주는 파우스트다. 파우스트는 버림받은 영혼들을 거둬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다고 한다. 정운은 이 대목에서 ‘개소리 남발했군.’ 이라고 중얼 거렸지만 일단 그건 넘기도록 하자. 이 세계는 태고적 부터 한 가지 신탁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고 한다. 신탁의 내용은 언젠가 이계의 사악한 자들이 건너와서 이 세계를 침공할 테니 그들을 몰아내는 성전을 수행할 때에는 모든 종족들이 힘을 합쳐서 적을 몰아내라. 라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먼저 쳐들어 와 놓고는···. 하긴. 안 그랬어도 난 쳐들어 왔겠지만···.’ 정운은 내용을 계속 읽어갔다.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틀은 지구와 공통하는 점이 있었다. 나라가 있고, 그 나라끼리 전쟁을 하고, 다시 전쟁이 끝나고, 세계가 발전하고, 또 전쟁을 하고, 새로운 나라가 생기고, 그리고 또 평화의 시기가 흐르고···. 결국 지구하고 별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을 빼 놓고 설명 하는게 불가능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쪽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상에 수많은 나라들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를 반복했지만 지금은 여덟 개의 나라가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1. 크롱크 왕국 주 종족 오크 및 괴수. 강력한 전사의 나라이며 야생의 괴수를 길들여서 사용 하는게 가능하고 샤머니즘 적인 주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국력의 순위는 여덟 개의 국가 중 5위권 정도이다. 2. 라트란 왕국. 주 종족은 엘프와 페어리 등의 요정족들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숲으로 이뤄져 있으며 강력한 궁수들과 정령사들이 주 전력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박해를 많이 받은 요정족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나라로 쇄국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외부와의 교류가 극단적으로 적다. 국력은 여덟 개의 국가 중 6위 정도다. 3. 엘라 왕국. 주 종족은 인어와 머맨 등의 어인족들로 이뤄진 나라. 육지에 드러난 영토는 대부분 군도 현태로 이뤄져 있고 대부분의 영토는 해저에 자리하고 있다. 해상 왕국 답게 바다의 패자이나 육군의 취약점은 고질적인 문제이며 세계의 패권에서는 한 발자국 멀어져 있다. 국력은 여덟 개의 국가 중 4위 정도이다. 4. 성 세인트 왕국. 종족은 인간이 주류이지만 타 종족도 제법 있다. 나라의 전 국민이 신도이고 그 나라의 상류층은 모두 신관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 신성력을 다루는 강력한 신성 기사단인 템플 나이트와 몽크들이 주 전력이다. 국력은 여덟 개의 국가 중 2위이다. 5. 에이프릴 왕국. 오로지 인간 중심의 인간만을 국민을 따지는 인간 중심의 국가. 인간 이외의 이종족은 가축 이하의 노예로 취급 되며 마법을 주 전력으로 삼는 나라. 전 대륙의 마법 전력의 70%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국력은 여덟 개의 국가 중 3위이다. 6. 아이언 왕국. 주 종족은 드워프와 호빗이며,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철통같은 방벽과 요새들, 그리고 무수한 재화가 쏟아져 나오는 광산이 넘쳐난다. 기술력이 풍부하고 개개인의 강력함 보다는 드워프들의 공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배틀 골렘 시리즈 등이 국가의 주 전력이다. 국가의 국력은 여덟 개의 국가 중 7위이다. 7. 브로드 왕국. 온갖 종족이 난립하고 있으며 각 대륙의 온갖 범죄자들과 악당들이 다 모여 든다는 무법 지대 국가. 용병들과 산적 해적 등이 국민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국가. 국가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국가이며 국력은 여덟 개 구각 중에 최하위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을 위한 일종의 진공 지대의 역할을 하면서 각 왕국들은 암묵적으로 노터치로 일관하고 있다. 8. 다크니스 왕국. 대륙의 모든 나라 중에 가장 수수깨끼에 쌓여 있는 국가. 제국과 함께 가장 오래된 국가 중에 하나이기도 하며, 주 국민은 마족이나 악마 등이 이루고 있다. 나라의 전력만 놓고 보면 최강의 국가로 가장 위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능하면 타 국가를 침범하지 않으려 하고 자국의 영토를 고수한다. 단, 한 번 전쟁을 벌이면 그때는 상대 국가가 반드시 멸망했다. ============================ 작품 후기 ============================ 각 왕국의 정보는 제가 작성한 지도와 함께 설정란에 올려 두겠습니다. 사실 저쪽 세계라고 해서 모두 파우스트 광신도로 도배된 것은 아닙니다. 나름 사정이 있지요. 그건 차차 밝혀질 겁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47화 여덟 개의 나라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국력의 고하와 상관없이 명목상으로는 모든 나라의 위에 있는 나라가 있다. 그게 바로 제국이다. 태고적 부터 존재해 왔다는 이 제국은 타국에 침략 받지 않고, 자신들도 침략 할 수 없다. 주신 파우스트를 신봉하는 이 제국은 신권으로 보호 받고 있기에 절대 침공 할 수 없다. 다크니스 왕국과 더불어서 태고적 부터 한 번도 멸망하지 않고 쭉 존재해온 나라이다. 단, 강력한 힘이 없는 이상 명목상으로 제국을 자처하고는 있지만 여덟 개 국가들을 힘으로 억누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은 없다. 그러나 신탁에 대한 지휘권이 제국의 황제에게 있기에 그 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이번에 크롱크 왕국의 오크 군단과 브로드 왕국의 용병단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쳐들어 온 것이라고 한다. “후우우·····. 다 읽었다.” 정운은 빡빡한 파일을 다 일고 한숨을 내 쉬면서 덮었다. 사실 그 안에 자잘한 정보들이 많았지만 내용을 간추려서 핵심만 파악하는 것이 한계였다. “흠····. 생각했던 대로인 부분도 있지만 좀 의외인 부분도 있는데? 어째서 전 세계의 인간을 파우스트 그 놈이 광신도로 만들지 않을 거지? 그럼 신탁 같은 귀찮은 방법 쓰지 않아도 훨씬 더 편했을 텐데?” 정운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 부분이었다. 파우스트 놈의 목적이야 뻔했다. 이쪽 세계도 자신의 지배에 넣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진정한 신이 되겠다. 라는 가당찮은 생각을 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렇다면 왜? 어째서? 일일이 나라 따위를 만들고 서로 대립하게 만들어서 힘을 빼게 만들었느냐? 라는 것이다. “목적이 뭘까?” 정운의 이 중얼거림에 대답을 준 것은 다음에 나타난 미하엘의 대답이었다. “그건 창조자의 의무와 피조물의 권리 때문입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깔끔하고 세련된 미모를 하고 있는 미하엘은 정운에게 와서 말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운은 마치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보험 약관을 들은 고객처럼 되물었다. 그러자 미하엘의 말이 이어졌다. “어제 박정운님에게 그 사실을 듣고 저 역시 천계에 보고를 하러 갔습니다.” “그래. 그랬지.” 미카엘의 분신이자 정운의 비서를 겸하고 있는 미하엘은 천계에 상황을 전달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그거야 정운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다만,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말이 언 듯 들어서는 이해가 가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래?” “천계의 치천사 분들께서 회의를 하신 결과···. 그건 창조주의 의무와 피조물의 권리로 인한 괴리 때문에 온 한계라고 했습니다.” “다시 물을게.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데?” 정운이 답답하다는 듯한 말에 미하엘은 세련된 미모의 얼굴을 살짝 고뇌로 물들였다가 다시 대답했다. “예를 들어서···. 정운님. 정운님은 창조주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에서 살고 계신 피조물입니다. 알고 계시겠죠?” “알지.” “그럼 지금 여기서 묻겠습니다. 정운님은 창조주님의 의지대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살고 있습니까?” “그거야···. 그래. 그런 거란 말이군.” 막 대답을 하려던 정운은 그제야 미하엘이 말하는 의무를 알 것 같았다. 창조주는 부모다.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에 수많은 생명을 풀어 놓은 부모다. 하지만 부모라고 해도 자식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의 이끌어주는 것이나 방향성의 제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자신의 생명을 소모하며 인생을 살아갈지는 피조물들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그게 세계인 것이다. 즉, 파우스트가 만든 세계라도 해서 그 세계의 모든 피조물들이 파우스트의 말에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게 하는 것은 세계의 창조 룰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신탁이나 자신의 말을 전달 할 수 있는 제국을 만들어서 약간의 조종은 하고 있지만···. 파우스트라고 해서 자신의 세계의 인간들을 아바타 부리듯이 모두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저쪽 세계의 국가들을 포섭해서 굴복 시키는 것도 생각해 봐야 겠군.” 저쪽 세계의 모든 생물을 적으로 염두 해 두고 있던 정운으로서는 이 정보는 귀중한 것이었다. 적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중책이다. 애당초 필요 이상으로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야 말로 상책 중에 상책이다. 정운은 조금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쾅!!! “전멸!!! 전멸 했다고?” 제국의 황제는 자신의 옥좌를 두드리면서 분노에 고성을 질렀다. 대전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황제의 고성에 신하들은 급하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신탁에 나올 정도로 강력한 악마들입니다. 그들의 힘을 애당초 가볍게 보시면 아니 되옵니다.” “짐이 그 악마들을 가볍게 보았다는 말이냐? 짐은 틀림없이 전 대륙의 힘을 모두 집결 시켜서 적을 공격하라고 했다. 하지만 짐의 결정에 따른 것은 고작 두 개의 나라뿐이지 않은가?” “·············.” “·············.” “·············.” 황제의 그게 내 잘못이냐? 라는 식의 질책에 신하들은 입을 다물었다. 황제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전 대륙의 모든 국가의 전력을 총 동원해서 대륙 연합군을 만들어서 게이트로 군대를 진격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국가가 거기에 난색을 표했다. 원래 제국은 세계의 정점에 있는 국가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였지 실제로 최강의 국가인 것은 아니었다. 그 결과···. 라트란 왕국은 누가 엘프들 아니랄까봐 침략을 싫어하는 국조를 우선시하기 위해서 일단 내부 회의를 거쳐서 군을 움직일지 말지를 정하겠다. 라는 의견을 내었다. 그리고 엘라 왕국은 해군이 주전력인 자신들이 육지로 병력을 보내 봤자 별 도움이 안 될거라고 은근히 한 발 뺐다. 마도 왕국인 에이프릴 왕국은 세이트 왕국과 전쟁 중이었기에 전력을 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성 세인트 왕국 역시 자신들과 전쟁 중인 에리프릴 왕국이 병력을 빼지 않고 있는데 자신들의 국토를 비울 수는 없다고 표명했다. 아이언 왕국은 원래 제국이 하는 말은 다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신탁이니 어쩔 수 없다. 라는 식으로 약간의 전쟁 물자만 지원했다. 누가 봐도 하기 싫은데 억지 춘향으로 도와주는 것이었다. 브로드 왕국은 제국이 유일하게 힘으로 억압 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들은 결국 제국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용병단 중에서 약한 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약간의 병력을 추렸다.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제국의 말에 동조한 것은 크롱크 왕국이었다. 호전적이고 전쟁을 하나의 축제 정도로만 여기는 오크족들의 국가인 크롱크 왕국은 신탁으로 인한 성전을 피의 축제라며 크게 환호했다. 자신들의 주력 전사들로 이뤄진 대군과 사육하고 있던 배틀 들래곤들을 다수 동원해서 이계로 침략해서 마음껏 피를 즐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는 다크니스 왕국은····. “답장도 주지 않았다. 아무리 신에게 버림받은 마족의 국가라고 해도 황제인 짐의 서신에 답신조차 주지 않다니!!!? 그들이 그러고도····. 이익····.” 황제의 씩씩 거리는 분노의 음성을 들으면서 제국의 신하들은 아무 말도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제국이라고 이름을 대고는 있지만 사실 타국가들 사이에서 제국은 왕따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게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대륙의 가장 중앙 지대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 뿐인 나라가 제국인 것이다. 신권의 보호를 받고 있기에 침략을 할 수는 없었지만 반대로 그들이 타국가를 침략하는 것도 불가능 하다. 그래도 먼 과거에는 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직 인간이 주신(파우스트)에 관한 신앙이 신실한 시대에는 제국의 황제는 곧 주신의 대변인이었다. 그의 인가를 받고 옥쇄를 받지 않으면 어떤 나라의 국왕도 왕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국의 위상은 흐려졌고, 이제는신성국가라 불리는 성 세인트 왕국조차 제국의 황제를 주신의 신관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시기였다. 오히려 세인트 왕국은 자신들이야 말로 신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신성국가라고 표명하고 있을 정도였다. 한 마디로···. 제국의 황제의 명이라고 해도 신탁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이라고는 애당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묵묵부답인 신하들을 보면서 제국의 황제는 말을 이었다. “2차 정벌군을 꾸리겠다. 그대들은 각국에 사신을 보내라.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주신의 신탁을 성실하게 수행하라고 전하라.” 그렇게 황제는 자기 할 말만 전하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황제가 사라져 버린 대전에는 신하들의 시름만이 깊게 남았다. “왕국들을 설득 하라고 해도····.” “말을 들을 리가 없으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오.” “음·····. 일단 사신단을 꾸려는 봅시다. 그리고 게이트 부근에 진을 치고 있는 이계의 악마들에 대해서도 정찰을 해 보고 말이오.” 그렇게 제국의 신하들은 가능한 한 범위 안에서라도 움직여 보기로 했다. 황제의 불벼락이 또 떨어지기 전에 뭔가 하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운이 게이트의 관리를 시작한지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건물이라는게 생각보다 금방금방 안 올라가네요.”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그래도 근처에 상수도로 써먹을 수자원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뭐.” 배대호의 말에 민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대호 형님하고 추성이 형님에게 좀 맡기겠습니다. 전 오늘 볼일이 좀 있어서···.” “오늘? 아아···. 그쪽에서 오는 날이 오늘인가?” 정운의 말에 박추성은 뭔가 생각이 난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배대호도 말을 이었다. “강한 전력이 되면 좋겠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박추성과 배대호를 뒤로 하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물러난 정운은 자신의 집무실에 가서 식계를 쳐다봤다.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시간이 비네. 30분만 자자.’ 요즘 들어서 거의 쉬지를 못하고 바쁘게 움직이던 정운이었다. 자신이 나폴레옹도 아니고 하루에 네 시간도 안 자고 있었다. 털썩···.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그대로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 정운은 그대로 잠깐 선잠에 들었다. 그리고 정운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뭔가 부드러운 것이 자신의 무릎과 가슴까지 덮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건···.” “깼어요?” 정운이 덮고 있는 것은 슬기가 몰래 와서 덮어준 작은 담요였다. “슬기야··. 왔으면 깨우지 그랬어?” “조금 더 주무세요. 손님들은 잠시 주변 시설을 둘러보고 있어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씁쓸하게 웃었다. 최근 들어서 너무 바쁘게만 지내다 보니 슬기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낸 적도 거의 없을 정도였다. 아니 그보다···. ‘세레나를 잃은 이후로 슬기와 함께 한 시간이 거의 없었지···.’ 그라운드 제로의 마지막 전투··. 거기서 세레나를 잃은 정운은 가슴에 뻥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기와 함께 있으면 위안이 되었다. 세레나를 잃은 상처가 일시적으로나마 따뜻하게 치유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래서 오히려 슬기와 함께 있는게 더 죄책감이 들었다. 이대로 슬기의 품안에서 따뜻하고 안온하게 있으면 그때 세레나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 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슬기와 함께 있는 것을 피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자신은 행복해져 버린다. 세레나는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사라져 버렸는데 자신이 슬기와 함께 단 둘이서 행복해 진다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슬기는 쭉 곁에 있어 줬다. 정운이 자신과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러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원망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정운의 곁에서 그를 위로하면서 그냥 곁에 있었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고맙고 또 사랑스러웠다. ============================ 작품 후기 ============================ 창조주는 피조물들에게 있어서 부모나 다름 없는 존재지만... 원래 자식들이라는게 부모들 말에 100% 순종하는 존재는 아니죠. 파우스트고 그 부분은 어쩔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오늘 오전에 은행갔다가 엄청 신기한걸 봤습니다. 제 바로 옆에서 어떤 할아버지 한 명하고 머리를 빨강색으로 염색한.. 처음에는 딸인줄 알았는 여성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적금이며 뭐며 다 깨면서 여자가 더 이율이 좋은데를 찾았다. 라고 말하면 돈을 다 찾는 겁니다. 농협 은행들의 대화를 언듯 들어보니 일억이 넘는 금액을 막 해약하며 찾고 있는데... 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은행 점원이 둘의 관계를 물으며 딸이냐? 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아니 동거녀다. 라고 하더군요. 약간 노망끼가 있으신듯한 할아버지를 두고 농협 직원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적금을 닥치는대로 깨고 있는 여성이 딸도 아니고 동거녀? 농협 직원들이 한 세명이서 달라 붙어서 지금 찾으면 손해가 크다. 라고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것 같더군요. 그리고 이상한 기색을 느낀 여자는 다시 할아버지 옆에 와서 직원한테 무슨말 했어요? 라고 물어보길래 농협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고 하고 그 여성은 계속 괜찮다고 찾으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보는 저도 그렇고 농협 직원들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어도 그 단계에서는 신고할 방법이 없더군요. 어쩌면 제가 오해를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몇 십년의 연령차를 넘어서 사랑하는 사이이고 할아버지의 연금을 잘 굴려서 좋은 쪽으로 사용 하려고 하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솔직히 현장에서 은행원들 다그치는 모습에서 그런 스토리를 생각하기는 소설가인 저라도 좀 어렵더군요. 오후에 은행에 불일 좀 보러 갔다가 참 무서운걸 봤다는 느낌입니다. 348화 <다시 뭉친 한우리 연맹> 슬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님을 불어 오려고 했다. “손님들 불러올···. 어멋···.” 정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슬기를 붙잡아서 그대로 뒤에서 끌어안았다. 콧 끝에 아련하게 그녀의 향기가 났다. 정운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녀린 턱을 살며시 붙잡고 그녀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부드럽게 겹쳤다. 그리고 길고 긴 키스가 이어졌다. “··으음···· 음!!·········하아·····” 키스가 끝나고 살짝 떨어진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길게 타액이 늘어졌다. 그 상태로 정운인 슬기에게 말했다. “사랑해. 그리고 항상 고마워.” “저도 그래요.” 슬기는 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정운의 입술에 다시 한 번 자기 스스로 입술을 겹쳤다. 그녀의 살내음과 달콤한 입술이 정운을 흥분 시켰지만 정운은 일단 억눌렀다. 오늘은 중요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그들과의 일이 먼저였다. “오늘 밤은 일찍 들어갈 거야. 먼저 기다려 줘.” 정운은 슬기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정운이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봅니다. 세 사람 모두 건강해 보이는 군요.” “정운씨 만큼은 아니죠. 활약상은 잘 봤습니다.” “여기서 보니 한층 더 반갑군요.”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정운의 앞에 나온 사람들은 한국 서버에서 활동하던 같은 팀원들은 아니었지만 동맹 관계로 함께 활동했던 아군들이었다. 영국의 다이앤 여왕.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공작. 중국의 홍린. 한우리 연맹의 동료들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최후의 결전 때··. 유니버스 연맹과 한우리 연맹을 두고 파우스트는 회유를 하려고 했다. 그때 끝까지 정운의 곁에서 편을 들어준 타국의 동료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물론 이들 말고 다른 부하들도 있었지만 일단 대표로 따라온 것은 이들 세 명 뿐이었다. “게이트 내부라···. 여기의 환경은 어떻죠?” 다이앤 여왕이 먼저 정운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죠. 다만, 약간 판타지 풍 이랄까요?” “그라운드 제로랑은 많이 다른가 보죠?” “거기서는 아무래도 게임의 로직이 살아있었으니까요··. 필드에 나가면 죽이고 또 죽여도 또 살아나는 몹들이라거나? 여기저기 퍼져 있는 숨겨진 퀘스트··. 그걸 기대하는 것은 무리죠.” “과연. 이전에 있던게 게임 판타지라면 이 세계는 리얼 판타지라는 거군요.” 다이앤 여왕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정확한 판단입니다. 다이앤 여왕님.” 정운의 말에 다이앤 여왕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이제 여왕이라는 말은 그만둬 주지 않겠어요? 많이 쑥스럽군요.” 그녀가 영국 유저들에게 영왕이라고 불리고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리더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다. 실제로 그녀가 여왕이라서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 그렇게 불렀던 정운으로서는 그럼 이제 그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가 어색했다. “그럼 앞으로 뭐라고 불러 드릴까요?” 정운이 되 묻자 다이앤 여왕은 잠시 얼굴을 붉히다가 대답했다. “큼···. 한국식으로 말하면····. 형수님···. 정도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잔뜩 붉어진 모습을 보고 정운은 순간 웃어 버렸다. “정철이 형님하고 잘 된 모양이죠?” “············.” 그녀는 얼굴만 붉힌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하나면 반응은 충분했다. ‘역시 정철이 형님을 영국에 사신으로 보낸 것은 정답이었나? 여러 가지로 말이야.’ 원래 다이앤 여왕은 정운과 정략적으로 혼약을 하려고 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한국 서버의 최강 궁수였던 윤정철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현실에서 결국 연이 닿은 모양이다. “축하드립니다. 다이앤 형수님.” “감사합니다. 그럼··. 그런 그거고 일 얘기를 계속 해 볼까요? 정운님. 정운님이 제시한 의견을 저희들 전원이 저희들 기반을 들고 이쪽으로 이주를 해오라는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나요?” “맞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례지만 듣기로 최근 자국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고 들었습니다. 아닙니까?” 정운의 말에 장 그레고리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확실히··. 요즘 들어서 우리 귀환자들 동료 중에서 아름답지 못한 짓을 하는 놈들이 종종 적발되고는 하지요.” ‘여전하구만···.’ 장 그레고리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피식 웃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사실 귀환자들이 현실에 적응하기는 많이 힘들 겁니다. 그나마 우리처럼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고레벨 유저들은 좀 낫지만 별 힘이 없는 저레벨 유저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흘러갈지?” 정운의 말에 세 사람은 과연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귀환한 자들 중에는 이미 사망 처리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혹은 악마와 거래를 할 정도로 인성이 썩어빠진 인간들도 있었다. 특히 그런 악인들 중에 상당수는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 이미 살인을 겪어서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자들이었고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현실에 적응하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얘기가 도리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이미 유저로서의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은 쓰고 싶어지는 법이다. 비싼 돈을 주고 슈퍼카를 산 슈퍼카의 오너가 그 차를 그냥 차고에 처박아 두지만은 않는다. 도로 위에서 신나게 밟아봐야 직성이 풀리지··.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에 넣은 여성이 그걸 보석함에 두고만 있지는 않는다. 손에도 껴 보고 아는 지인들에게 보여주며 자랑도 하고···.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게 인간이다. 세계 각국은 귀환자들에게 초능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제재를 가하고 있다. 개중에는 법적으로 강력한 형벌을 내리겠다고 선포한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먹힐 리는 만무했다. 힘을 지니고 있는 자들은 힘을 써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다. 물론 국가들도 그런 강경책만 쓴 것은 아니다. 나름 귀환자들의 초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 할 수 있는 자구책들도 마련하고 있었다. 군, 경찰, 그 이외의 각종 관공서에서 그 능력을 살릴 수 있는 길들도 마련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운이 드래곤들을 학살하는 영상이 퍼져 나간 이후에는 귀환자들에게 대한 대우고 한층 파격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100레벨··. 아니 50레벨만 넘어가도 국가에 주요 능력자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의 유저들은 어떻게 될까? 너무 큰 힘을 지니고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한 존재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들이 국가 공무원 정도로 만족할까? 애당초 그렇게 자기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았다면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가지 않았을 인간들이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이었다. 물론 정운이나 슬기처럼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간절한 소원 때문에 들어간 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 90%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그런 어중간한 위치에서 만족할 리가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범죄적인 길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개중에는 조직을 만들어서 귀환자로 이뤄진 마피아가 생성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귀환자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개인으로 있는 동안은 약점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정운이나 다른 한국팀의 유저들처럼 월드 서버 급의 괴물이 아닌 이상 귀환자들을 죽일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정면 승부로 총탄세례를 쏟아 부어도 20레벨 이하는 잡을 수 있다. 그 이상의 유저라고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방비 상태의 유저에게 저격이라던가? 혹은 식사에 독을 이용한 암살 이라던가···. 현대의 문명으로도 제재를 가하려고 한다면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아직 그런 과격한 수단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몇몇 독재 국가에서는 귀환자를 위혐분자로 보고 강력하게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정운은 세 사람을 보면서 강하게 말했다.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대한 뭉쳐야 합니다. 거기에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운의 말에 세 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국팀과 절친한 사이인 다이앤은 물론이고, 중국의 홍린도 정운의 말에 거스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홍린의 경우 다이앤 처럼 정운과 순수하게 의리로 따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원래 중국 팀 내에서 악마들 때문에 바닥에 떨어졌던 그녀를 정운이 구해주면서 시작한 인연이었다. 하지만 홍린은····. 은혜를 받았으니 갚아야 한다. 그러니 내 온몸과 마음을 다 받쳐서 충성하자. 그런 타입의 인간은 절대 아니다이 차이나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섹시한 여성은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운은 그녀를 믿을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인 이상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지.’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적인 관계. 이건 어떤 의미로는 의리나 충성보다 더 견고한 관계이기도 했다. 그녀의 프라이드에 어울리는 적당한 위치와 권력이라는 달콤한 꿀만 준다면···. 홍린은 절대로 배신할 여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꿀을 얻어내기 위해서 정운에게 적극 협조할 여자가 그녀였다. “저희 중국에서는 안 그래도 귀환자들이 가장 많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 덕분에 최근에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시끄럽게 돌아가기도 했죠.” 그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인터넷으로 보니 몇몇 귀환자들이 반정부 단체를 설립하고 독립을 부추기고 있다고 하더군요. 많이 시끄러운가 보죠?” 정운의 말에 홍린은 부정하지 않고 순순히 사실대로 대답했다. “이전에는 힘이 없어서 정부의 억압을 어떻게 벗어나지 못했던 소수민족들중에 반정부 사상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귀환자라는 힘을 이용해서 일어나려고 하더군요. 덕분에 중국 정부는 골머리를 좀 썩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알바 아닌 그녀이기도 했지만··. 원래 중국이라는 나라는 오랜 시절 아시아의 최강국이자 세상의 중심으로 있어왔지만··. 결국은 끝없이 많은 나라들이 교체되어 온 나라이기도 했다. 전란이 소용돌이치던 전국 시대도 있었고, 한 나라가 통일을 해서 다스리다가 다른 나라가 또 들어서는 경우도 있었고··. 외적이 침입해서 또 새로운 나라를 세운 적도 있었다. 결국 중국이라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족들이 짬뽕처럼 섞여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권 속에서 뒤섞인 나라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한족을 생각하지만··. 사실 내몽고인이나 남방인을 비롯해서 수많은 민족들이 뒤섞여있는 다민족 국가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 정부는 저에게 다른 귀환자들을 관리할 권한을 주면서 회유하려고 하더군요.” “당신에게?” “예. 월드 서버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은 저하고 연문이니까요.” “연문···.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살아있었나?” “예. 그리고 그는 중국 정부에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흠, 그렇단 말인지?” 정운은 의외라는 듯이 중얼 거렸다. 원래 한국팀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월드 서버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강한팀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게 장한이라는 유저였다. 그리고 그 밑에서 조장이라는 이름으로 세 명의 유저들이 2인자의 자리를 공고이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홍린과 연문, 주원이라는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네 명의 강자들 중에 최고 고수였던 장한은 파우스트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면서 유니버스 연맹과 함께 흡수되어 버렸고···. 세 명의 주장 중에서도 주원은 최후의 결전에서 사망했다. 결국 살아서 현대로 귀환한 것은 연문과 홍린 정도뿐이었다.. “연문 그 사람이 중국 정부에 협조하겠다면 그거야 그 사람 뜻이니 좋습니다. 하지만 홍린, 당신은 어떻죠?” 정운은 다시 홍린에게 되물었다. 간은 그만보고 빨리 본심을 말하라는 것이었다. 홍린은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씨익 미소 지었다. 그저 미소를 지었을 뿐인데도 보는 남자들이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색기가 가득한 미소가 되는 그녀였다. 그녀는 그런 미소를 지은 상태로 공손하게 무릎을 꿇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저 홍린 휘하. 홍린대 5만2천명은 이 순간을 기해서 당신의 산하로 들어가겠습니다.” ============================ 작품 후기 ============================ 홍린의 경우는 처세의 여왕이죠. 다만 안정적인 처세를 한다기 보다는 다소 위험이 있다고 해도 대박을 칠 수 있는 곳에 배팅하는 타입의 처세를 합니다. 여성형 야심가라고 해야 할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49화 홍린이 정식으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보고 정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군.”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홍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저 같은 부하가 꼭 필요할 겁니다. 여차하면 침대에서도 즐겁게 해 드릴 용의가 있지만···.” “크흠···.” 정운의 옆에서 가만히 비서처럼 있던 슬기가 헛기침을 하면서 싸늘한 눈으로 홍린을 바라봤다. 그러자 홍린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애첩은 포기하고 도움이 되는 충성스런 신하 정도로 남도록 하죠.” “제발 그렇게 해 줬으면 해.” 정운은 홍린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완벽하게 말을 놔 버렸다. 그리고 다이앤 여왕은···. “난 부하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팀에 협조적인 입장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영국의 유저들을 최대한 모아보죠.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모이기는 할 거예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이앤 형수님. 그럼 이제 남은 건 딱 한명인데···.” 정운은 그렇게 말 하면서 장 그레고리를 바라봤다. “··········.” 장 그레고리는 팔짱을 끼고 눈을 지그시 감은 상태로 깊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남자만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을 수가 없단 말이야?’ 정운은 속으로 입맛이 쓰게 웃었다. 장 그레고리. 프랑스 팀의 최고위 유저. 정신상태가 약간 상 또라이 같기는 한데 묘하게 같은 팀의 유저들에게 인망이 있다. 좋아하는 것? 아름다운 것. 싫어하는 것? 아름답지 못한 것. 평소에는 항상 상 또라이에 아름다움 오타쿠 처럼 행동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의외로 깊게 생각을 할 줄도 안다. 유니버스 연맹을 버리고 한우리 연맹으로 갈아탔던 것도 순수하게 그가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그의 결정은 몹시 현명한 것이었다. 장 그레고리는 한참 생각하다가 정운에게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거짓으로 저를 속이지는 말아 주십시오.” “···말 하시죠.” 정운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게이트 너머의 신세계에 자리를 잡는 것은 정말 우리 귀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는 의미뿐입니까? 아니면 그건 겸사 겸사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겁니다.” “···············.” ‘하여튼 쓸데없는 데서 날카롭다니까?’ 정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하면 지금은 말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장 그레고리의 눈을 보아하니 이미 심증적으로 80%정도 정운의 진심을 예측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 또 다른 목적··. 이랄까? 주목적은 파우스트 그 개자식에게 한 방 먹이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정운은 정직하게 본심을 다 보였다. 여기서는 무조건 돌직구다. 쓸데없이 미사여구나 진심도 아닌 대의명분 따위를 들먹여서 상대의 귀에 잡음을 넣을 필요는 없다. 오로지 돌직구로 상대에게 모든 걸 오픈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실제로 정운의 돌직구는 제대로 통했다. 장 그레고리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으니 말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결의, 이 장 그레고리가 잘 봤습니다. 누가 당신을 비난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남자는 모두 돈키호테인 법입니다. 무모하고 어리석죠. 천사와의 사랑. 더구나 그 천사가 우리 프랑스의 구국의 영웅인 잔 다르크라니···. 전 오히려 당신을 존경 합니다. 자고로 남자가 사랑을 위해서 고난의 길을 걷는다면 이 장 그레고리는 그걸 외면할 정도로 낭만을 모르는 차가운 남자가 아닙니다.” 장 그레고리의 말을 듣고 나서 정운은 벌레를 한사발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돕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짧게 말해 주세요.” 이렇게 해서···. 다시 21세기의 현실에서 한우리 연맹이 결성 되었다.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공고하게 말이다. 한우리 연맹이 결정되고 정운은 일단 세 사람을 돌려보냈다. 지금 당장이라도 게이트 너머로 세 사람의 전력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대량으로 움직였다가는 아직 건설 중인 게이트 안쪽의 도시에 사람을 다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을 다 수용할 정도로 도시의 형태를 갖춘 다음에 사람들을 불러 와야 했다. “그럼···. 그때까지는 별로 할 일도 없는 건가?”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서 일어났다. 그런 정운을 보고 슬기가 다가와서 말했다. “조금 쉬실래요? 요즘 너무 과로···.” 슬기는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슬기의 허리를 정운이 한 손으로 감아서 끌어 당겼기 때문이다. “아니. 쉬는건 나중에···. 지금은 너한테 집중하고 싶어.” “····아직 해도 안 졌는데···.” “여차하면 해도 떨어트려 줄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기를 집무실 한쪽의 쇼파로 데리고 갔다. “커튼이라도····.” “알았어.” 정운은 바로 커튼을 치고는 그대로 슬기의 품안으로 다시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정운의 품에 안기는 슬기도 정운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정운을 받아 들였다. 정운은 키스를 하면서 그대로 슬기의 상의를 벗겨냈다. 오랜만에 보는 슬기의 뽀얀 피부가 정운의 시야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슬기를 안지 않았던 정운이었다. 결국 연장 시키지 못한 어머니의 목숨과 세레나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정운의 상심이 컸기 때문이다. 슬기는 그런 정운을 그저 기다렸다. 시간만이 치유해 줄 수 있는 상처라 믿고 그저 곁에서 정운이 다시 기운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실제로 어머니의 경우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천계의 배려로 임종은 지켜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세레나의 경우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정운은 슬기에게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정운은 슬기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미안해···.” “괜찮아요. 난 괜찮아요.”; 슬기는 정운은 포근하게 다독이면서 정운을 자신의 품안으로 받아 들였다. 두 사람의 몸이 오랜만에 겹쳐지고,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이 둘은 서로를 끝없이 갈구했다. “아아!!!!” 정운의 일부가 자신의 안으로 오랜만에 들어오자 슬기는 순간 아프다는 듯이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많이 아파 보이는데?” “오···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봐요. 괜찮으니까····.” 슬기는 정운의 목에 자신의 부드러운 팔을 두르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정운은 그 말에 허락받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앗!!! 아아····· 아····· 으읏·······.” 슬기는 정운이 자신의 안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고통에 신음했다. 그러다가 정운의 눈치를 보고는 이윽고 입술을 앙 다물고 정운의 몸에 바짝 밀착했다. 오랜만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많이 아픈 슬기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겼는데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통을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으로 참으면서 정운에게 몸을 맡겼다. “슬기야 많이 아프니?” “으읏···. 읍····.” 슬기가 아무리 참는다고 해도 정운이 모를 일은 없었다. 슬기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은 둘이서 처음으로 살을 겹치던 그날 밤 정도였다. 그 후로 이렇게 아파하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이렇게 아파할 정도면 오늘은 그냥 참아도 괜찮은 정운이었다. 오랜만에 겹치는 슬기의 살결이 참기 어렵게 욕정을 불러일으켰지만 슬기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건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운과 반대로 슬기는 오히려 정운이 그만 두기를 바라지 않았다. “············.” 정운이 움직임을 멈추자 슬기는 입술을 꼭 다물고 정운의 목에 팔을 감고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에서 입술을 앙 다물고 애써 태연한척 하려는 그녀의 의도는 분명했다. 자신은 괜찮으니까 계속 하라는 말이었다. 슬기는 엄청나게 아픈 와중에 혹시 정운이 참기 어려울까봐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정운은 그런 슬기를 보면서 최대한 빨리 끝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괜찮···. 으읏·······.” 정운은 슬기를 꼭 끌어안고 이전보다 더 거칠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기는 그런 정운의 움직임에 마치 안간힘을 쓰면서 꼭 버티고 있었다. “하악·····. 하아···.· 하아아아···. 아아···.” 행위가 계속 되면서 슬기는 이제 손톱이 정운의 피부를 붉게 할퀼 정도로 아파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보다 더 강렬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익숙하고 포근한 슬기의 몸이었지만 오랜만에 안아서일까? 신선할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오늘 하루 종일이라도 슬기를 사랑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슬기가 아파하는 정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정운은 최대한 빨리 슬기를 고통에서 해방 시켜주기 위해서 오히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리 살살 움직여도 고통스러워 하는 슬기를 보면서 차라리 빨리 끝내 버리기 위해서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으읏····. 으으으··. 아아·· 아아······.” 슬기는 이제 고통에 신음 소리를 참지도 못하고 그저 정운에게 온 몸을 맡기고 흔들릴 뿐이었다. “슬기야!!!” 이윽고 정운이 슬기의 몸을 꽉 끌어안으면서 그녀의 품안에서 폭발했다. “하아아·····. 하아·····.” 슬기는 정운을 끌어안고는 거칠게 호흡을 몰아 쉬었다. 그런 슬기를 보고 정운이 말했다. “괜찮아? 정말 많이 아파하던데?” “····미안해요.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왜 이랬는지 모르겠어요. 이상할 정도로···. 어멋?” 슬기는 몸을 일으키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누워 있던 자리 밑에 피가 뭍어 있는 것이다. “···이건? 슬기야. 너 혹시 오늘?” 정운도 그걸 보고 혹시 슬기의 생리 주기가 아니었나? 라고 해서 물었다. 하지만 슬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런데··. 이거 혹시···?” 정운은 슬기의 말을 듣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처녀···. 였던 것 아니야?” 정운은 말을 하면서도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기와 함께 살을 겹친 횟수가 도대체 몇 번인지 샐 수도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에서 이미 수도 없이 서로를 사랑했던 두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슬기의 몸에서 나온 피를 해명할 다른 말이 없었다. “혹시···,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경험은 현실과는 별개라는 걸까요?” 슬기의 말을 듣고 보니 정운은 순간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을 계약해서 들어가는 것이니··. 어쩌면 실제 육체가 아닌 영혼의 상태로 생활 하던게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생활이었을 수도 있어.” “그래서···. 그럼 저기 방금 저는····.” “처녀 였던 거지? 그런데 이걸 첫 경험이라고 해도 되나?” “·····풋··.” 정운의 말에 슬기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다행이네요. 제 처음을 두 번이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바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아··. 그런데 오늘은 또 하지 말아요. 지금 많이 아파요.” 아픔의 원인을 알고 나니 역시 또 하기는 무서운 슬기였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귀엽다는 듯이 안아서 뺨에 키스했다. “그럼 그냥 함께 있기만 하자. 난 그것만 해도 충분히 행복해.” “···········.” 정운의 말에 슬기는 수줍게 웃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품안에 안겼다. 그저 체온을 나누고만 있어도 행복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역경을 넘어서 지금에 도달한 두 사람의 사랑은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 정렬과 오래된 부부들의 애틋한 애정을 같이 가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세레나나 이민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스포일러라서 함부로 대답할 수는 없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50화 <신세계는 대박> 한우리 연맹. 정운은 자신의 조직을 전 세계에 정식으로 공표했다. 딱히 기자회견을 열지는 않았지만 귀환자들이 게이트 너머에서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먼저 동조한 것인 중국의 홍린, 영국의 다이앤,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였다. 이 세 사람은 이미 자국의 유저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었다. 사실 일반 유저들은 그라운드 제로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 서버에 관해서 잘 모른다. 월드 서버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은 이미 일반 유저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는 존재들이었기에 함부로 다가오지를 못했다. 하지만 타국의 월드 서버 유저는 몰라도 자국의 월드 서버 유저는 알고 있다. 비록 월드 서버 자체를 모른다고는 해도 비정기 퀘스트나 여러 가지 이벤트의 루트 등을 통해서 자신의 서버에 가장 최강자가 누구인지 정도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는 홍린처럼 사전에 준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걸자 수많은 유저들이 일단 그 밑으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대량의 유저를 게이튼 너머로 이송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이 들어야 했다. 월드 서버의 유저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자력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운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서 받은 든든한 예산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서 세계 각지에서 한우리 연맹에 들어오겠다는 유저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로 중국,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였지만 가끔씩은 타국의 귀환자들도 정운의 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유튜브로 통해서 본 정운의 능력을 보고 앞으로 정운의 밑으로 들어 가는게 길게 살길이라고 판단하며 밀이 들어온 자들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무척 현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신생 한우리 연맹의 숫자는···. 한국 20,000명. 영국 8,000명. 프랑스 12,000명. 중국 52,000명. 기타국가 1,000명. 이 정도였다. 월드 서버의 괴물들을 제외하고 총 머릿수만 해도 9만 명이 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숫자는 앞으로도 더욱더 늘어날 예정이었다. “이 정도 숫자면 저쪽 신세계의 인간들과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그리 밀리지는 않겠지.” 정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골칫거리를 떠 맡아준다고 생각하고 그저 방관하던 타국의 정부들도 정운의 곁에 모여든 막대한 숫자를 보자 조금씩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운 한명만 해도 엄청난 괴물인데 그 밑에 9만명이 넘은 초능력자라니··. 이 정도면 군사력만 봤을 때도 어지간한 나라들 못지않을 정도였다. 세계 어느 나라도 갑자기 나타나는 신흥 강자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국의 귀환자들이 함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제재를 가하는 한 편···. 한국 정부를 통해서 정운에게도 살며시 압박을 가했다. 물론 정운은 콧 웃음만 쳤지만 말이다. “꼬우면 내 앞에 직접 나와서 말하라고 하던가?” 각국 외교관들의 의견을 가지고 온 한국 정부의 인물에게 정운이 한 말 한마디에 외교부의 직원들 전원이 10년은 늙었다고 한다. “사이에 낀 우리가 무슨 죄라고····.” 외교부의 공무원 한 명의 말이 외교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운이 게이트 안에서 만들고 있는 도시는 하루하루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원래 도시를 하나 만든다. 라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돈이면 다 된다. 예산을 들이 부으면서 일단 주거시설을 짓고 전기와 상하수도 설비를 만들어 가면서 도시는 하나하나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건물 안에서 살고 있었지만···. 서서히 제대로 된 건물들과 거리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물론 정운을 비롯한 귀환자들도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을 꾸준하게 정찰하면서 이 일대를 조사하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안전한 지역인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등등을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온 성과품이 정운의 앞에 나온 거대한 지도였다. “항공사진으로 찍어서 이은 사진인가요? 되게 디테일 하네요?”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주변의 정보는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데···. 여기는 거의 미개발 지역이라고 하더라.” “어째서 미개발로 나 뒀다는 거죠? 뭔가 위험한 몹···이 아니라 몬스터라도 있나요?” 아직은 몹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배대호가 말했다. “그런건 아니고··. 제국과 마찬가지로 이 일대는 신탁의 땅이라고 하더라?” “신탁의 땅?” 정운은 그게 무슨 말이냐? 라는 표정을 했다. 그러자 배대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먼 훗날 이 땅에서 악마가 강림해서 세계를 모두 태워 버릴 테니 그때가 되면 전 대륙의 피조물들은 힘을 합쳐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거 말이야.” “아아···. 그래서 아무도 못 만들게 했다는 거에요?” “그래. 여기에 나라를 세우면 전 대륙에 공적으로 찍힌다고 하더라.” “놀고 있네····.” 정운은 피식 웃었다. 어쨌든 정운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여기서 차분하게 자리를 잡아 나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정운은 지도를 차분하게 살펴봤다. 거기에는 대륙의 전체적인 지형을 그린 간략한 지도와 자신들이 있는 위치까지 나와 있었다. 항공 사진으로 디테일하게 나와 잇는 것은 자신들이 있는 부근 뿐이었고 나머지 부분은 대략적인 선으로만 표현되어 있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붉은 점이 하나 찍혀 있는 곳이 바로 자신들이 있는 곳이었다. “저희는 남쪽에 있군요. 그리고 브로드 왕국하고 접경하고 있고요.” “엄밀히 말하면 그 안에 있는 거지.” 배대호가 정정해 주자 정운이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에 나라 세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그런데 저 브로드 왕국이라는 곳은····. 전에 준 나라 프로필 봤지?” “예. 대강요. 엉망인 나라라고요?” “그래. 전 국민의 80%가 범죄자라고 하는 나라다. 대륙에서는 쓰레기통이라고 불리고 있지.” “그러니까 신탁이건 뭐건 내 알바 아니다?” “그런거지 뭐···. 하지만 최소한의 룰은 지키려는지 적어도 이 부근에는 도시나 마을을 세우지 않았어. 거기 굵은 회색 라인 보이지?” “예. 이게 저희 세력권입니까?” “그래. 적어도 그 안으로는 어떤 마을도 보이지 않더라.” “흠···. 전체적인 지형은요?” “일단은 초원지대, 하지만 평탄한 지역이 아니라 넓은 구릉지대가 연속적으로 파도 타듯이 펼쳐져 있어. 그래서 전에 한미 연합군도 적들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몰랐던 거지.” “그렇군요·····. 뒤쪽은 바다인가 보죠?” “그래. 우리 뒤쪽에 있는 산맥을 넘어가면 바다 더라.” “적들이 침입하기 좋겠군요. 바다로 대량 드랍쉽 해도 산맥이 가려질 테니 잘 들키지 않을 테고 말이죠.” “그러니 파우스트 그 놈이 여기에 게이트를 만든 거겠지.” “개자식···. 누구는 여의도 한 가운데에 갑자기 열어서 대 참사를 조장해 두고 이따위로 게이트를 열어.” 정운은 짜증을 팍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처사였지만 어쩌겠는가? 게이트를 연 것은 오로지 파우스트의 선택인 것을···. ‘대륙의 남쪽 구석에 밖아 놓으셨다 이거지···. 뭐 상관없어. 어디에 있던 결국은 잡아낼 테니···.’ 정운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기는 것을 보고 배대호가 충고하듯이 말했다. “정운아. 알겠지만 서두르다 넘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타이르듯이 두 번 연달아서 말하는 정운의 모습을 보면서 배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된 말로 꼭지가 좀 돌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냉정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어.’ 사람이 화가 난다고 해서 모두 미친 황소처럼 발광하면서 날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말 극한까지 화가 나면 더욱더 차분하고 냉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정운의 경우가 지금 그랬다. 자신과 동료들을 농락한 파우스트에 대한 복수심과 세레나를 되찾고 말겠다는 집념. 이 두 가지가 정운의 안에서 복수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는 있었지만 결코 그것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조용하지만 결코 꺼지지 않을 불길처럼 분노는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뭐, 일단···. 우리쪽의 내실을 다지고 전력을 정긍하는게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 몇몇 대기업에서 너 얼굴 좀 보자고 하더라.” “기업에서요? 왜요?” “최근에 이 근방에 지하자원 탐방한 것 알고 있지?” “예.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해 보라고 했었죠.” 정운은 정부에게 이 게이트 안에 석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두바이의 세배는 넘는 양이 이미 발견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정부의 정치가들이 들으면 뒷목 잡고 끄러질 진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뻥이었다. 뭐, 엄밀히 말해서 정운은 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땅이 이렇게 넓은데 설마 석유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석유가 발견 되었다는 것은 것짓말이었다. 그냥 정치가들 입 닥치게 하는데 그게 좋은 카드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하자원을 찾으라고 한 것은 뒤편의 넓은 산맥을 생각하면 설마 석탄 한 쪼가리 안 날까?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예요?” 정운이 다시 물어보자 배대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선, 축하한다. 넌 거짓말쟁이를 면했어. 실제로 가까운 황무지 지역에 유전을 찾았다.” “···정말로요?” “그래. 그리고 약간 떨어진 장소에 천연가스도.” “····진짜 정말로요?” “그래. 참고로 아직 뒤편의 산맥은 찾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많은게 발견되었지. 한 번 볼래?” 정운은 배대호가 가지고 온 서류철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에 석회석은 애교고···.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알루미늄에 우라늄까지? 이거 정말이에요?” “대기업 조사위원들도 너하고 같은 질문을 했지. 그리고 면밀한 조사결과···. 그래. 사실이다. 여기는 노다지였어.” “·············.” 정운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정도 환경이면 노다지라는 말도 부족하다. 슈퍼 울트라 스페셜 노다지라고 불러야 했다. “제길, 연간 100조는 너무 작았어.” 이렇게 되면 연간 1,000조는 뜯어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어차피 정부에 다 줄 것도 아니잖아? 정부나 대기업에는 일정 지분을 때어줄 뿐이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죠. 그리고 그 지분 분배는 오로지 저희가 하고 말이죠.” 정운과 배대호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정운이 너 지금 엄청 사악한 표정 짓고 있는 것 빤히 보인다.” “형님? 아마도 거울을 보고 계신가 봅니다. 형님도 그렇거든요.” 한 몫 단단히 뜯어낼 심산인 정운과 배대호였다. 게이트 부근에 묻혀 있는 엄청난 지하자원. 이건 한국 정부의 대기업들에게 있어서 미친 듯이 가지고 싶은 것이었다. 한국이 세계 순위권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없는 것은 대부분의 원자재와 에너지를 수입해 와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술은 아무것도 없지만 땅에서 석유 하나만 나도 엄청나게 잘 사는 나라들도 있지 않은가? 정부로부터 비공식 적으로 석유가 난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그 정도로 엄청나고 다양한 자원이 매장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생각지도 못한 대박에 정계의 인물들이 모두 정운과 간절하게 만나기를 원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들을 한 자리에 모두 모아서 만나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실제 현실에서는 알루미늄 광맥 하나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죠. 그런걸 생각하면 신세계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51화 현재 게이트 너머의 개발을 위해서 돈을 투자하고 있는 기업은 총 다섯 기업. 사실 지원한 기업은 더 많았다. 신세계의 개척에 한 다릴 걸치고 싶은 기업은 정말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한 발 빠진 것은 소위 국내에서 오대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거물들이 이미 영역 표시를 하고 텃세를 부렸기 때문이다. 진성, 금화, 나주, 신화, 강산이 다섯 그룹이 정부에서 발행한 지분을 다 사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연간 100조원을 요구한 정운의 요구에 정부는 자신들이 50조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50조원을 기업에서 원조 받게 했다. 그 결과 진성그룹이 50조원의 안에서 40%의 지분을 감당하고 금화그룹이 25%, 나주 그룹이 12% 신화 그룹이 12% 강산그룹이 11%를 감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기 위해서 정운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정운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오자 다섯 회장은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했다. “큼··. 진성 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보성이오. 그리고 이 친구들은····.” “금화 그룹의 추민수요.” “나주 그룹의 박지훈이요.” “신화 그룹의 이복수요.” “강산 그룹의 이기백이요.” “박정운입니다.” 정운은 지극히 태연한 표정으로 다섯 그룹의 회장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런 정운을 보고 다섯 회장들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당당하군···. 아니 일부로 오만하게 행동하는 거야.’ ‘이런 젊은이는 요즘 거의 드문데 말이야.’ ‘손녀 사위로 삼으면 최고로 든든하겠어. 이렇게 대가 쌘 남자가 처가를 외면 못하는 법이지.’ 정계의 톱에 위치해 있던 정치가들은 전에 정운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운은 국민들이 지지하니 어떻게든 이용해 먹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물론 그런식으로 다루다가 큰코 다치고 이제는 정운이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바짝 쫄아 버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치가들과 재계인들은 좀 틀렸다. 국내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조금만 방심하면 밑에서 젊은 인재들이 치고 올라오고··. 해외에서는 툭하면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친 젊은이들이 나온다. 마트에서 캐셔하던 젊은이가 아이디어 하나 잘 만들어서 몇 년 만에 갑자기 조 단위의 재벌에 올라가는 일이 툭하면 일어났다. 그런 재계에 군림해온 이 다섯 영감님들은 바짝 마른 몸속에 온갖 너구리와 여우가 한가득한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보자마자 정운을 똑바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뜨인 것은 당당함이었다. 대한민국의 재계의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자신들이 눈앞에 있으면 어떤 젊은이들이라고 해도 일단 허리와 머리부터 숙이고 본다. 그리고 안색 하나하나 살피면서 자기 아버지에게도 챙기지 않을 정도로 극진하게 예의를 다한다. 언제 부터인지 그럼 삶이 너무나 당연해진 이 회장님들에게 있어서 정운의 뻣뻣한 고개는 신선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다 뒤진다고 해도 이런 광경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재계의 거인들은 그런 정운에게 흥미와 동시에 경계심을 같이 갖추고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찾아오신 용건은 뭡니까? 라고 말해도 대강 짐작은 가는군요.” 정운의 말에 가장 먼저 말을 했던 진성 그룹의 김보성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짐작하고 계시면 말하기가 편하겠군요. 저희들이 신세계의 개발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자선 사업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와 자선 사업의 의미를 혼동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 갈 수 있을까요?” 용건에 접근하기 전에 견제 잽을 치열하게 날리는 노회한 사업가를 보면서 정운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권력보다는 돈 버는게 머리가 더 좋아야 하는가 보다. 저번 정치가들이 하던 것에 비하면 많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아니면 전에 정치가들이 나한테 당한게 어느 정도 귀에 들어갔는지도 모르지.’ 사실 정운의 예상은 정확했다. 국민들에게는 정운에게 정치가들이 얼토당토 않을 정도로 무례한 짓을 했다고 퍼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상위 0.1% 정도들 사이에서는 자기들 만의 카더라 정보망이 있는 법이고···. 그 결과 그럭저럭 진실에 가까운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소문을 요약하면···. 정운이 일부러 정치가들을 긁었다. 라는 말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왜곡이긴 하지만 그래도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방정 맞게 나불 거릴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소문을 SNS 따위로 크게 떠들었다가는 이미 매장된 경진당의 당 대표인 김동호 의원의 전철을 따라갈 뿐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들은 사전에 정운이 한 성깔 한다는 정보를 미리 캐치하고 왔다. 사업하면서 상대에 대한 면밀한 조사는 필수를 넘어서 기본이었다. 그리고 정운이 본론을 꺼내라는 말을 하자 그제야 김보성 회장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지하 자원의 발견양의 정확한 양은 모르겠지만··. 최대한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았으면 합니다.” “흠············.” 정운은 차분한 눈으로 다섯 명의 회장님들을 바라봤다. 보통 이 사람들이 이렇게 을의 포스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박정운이다. 국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가 어디어디 그룹 참 나쁘더라. 한 마디만 하면 주식이 반토막 10분의 1토막, 아주 뭉텅이로 잘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국민들의 신망을 뺀다고 해도 정운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무기는 바로 일신의 무력과 10만에 가까운 귀환자들이었다. 이미 정운의 위상은 막 귀환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회의사당의 뚜껑 폭발 시켰을 때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그런 정운을 적으로 돌릴지도 모를 위협을 무릅쓰고 갑의 냄새라도 풍겼다가는 병풍에서 향냄새 풍기는 수가 있다. 정운은 나이가 환갑이 넘은 노인내들의 뒤편에서 밥 달라고 입 쩍 벌리며 짹짹 거리고 있는 새끼 새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정운은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하나의 파일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이걸 확인해 보십시오.” 정운이 던진 파일을 향해서 다섯 회장은 독수리 손을 하고 동시에 손을 뻗었다. “큼···.” “허험····.” 그리고 자기들도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결국 가자 연장자인 진성 그룹의 김보성 회장부터 파일의 내용을 확인해 가기 시작했다. “···허!! 이건·····?” “예. 보다시피 지금까지 발견한 지하 자원의 매장량을 예정해서 산출한 것입니다. 좀 되죠?” “···········.” 정운의 말에 김보성 회장은 할 말을 잃었다. ‘좀 되죠? 장난하나···. 어지간한 유전 10개를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겠다.’ 김보성 회장이 발견한 지하 자원은 석유나 천연 가스를 제외하고도 각종 희토류와 순수하게 보석이나 귀금속 광맥들도 즐비했다. 그냥 가공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 자원만 돈으로 바꿔도 진성 그룹을 열 개는 사고도 돈이 남을 것 같았다. ‘국제 유가가 철렁 하겠군. 중동 새끼들 잘 됐다···.’ 그동안 사업하면서 기름 값에 맺힌 게 많은 김보성 회장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이 중에 저희들 비중은 50%인 것입니까?” 그의 말에 정운은 몹시 미안하다는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들의 몫은 대략 2.5%정도입니다. 그 안에서 각자 투자한 만큼 받아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뭐··.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들이 모두 합해서 이 신세계의 개발에 관한 투자금을 50% 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섯 회장들이 모두 얼굴을 잘 익은 대추처럼 붉히면서 말하는 것을 보고 정운의 눈이 살짝 가늘어 졌다. “저희들 귀환자의 몫을 빼 놓은 것 같더군요.” 정운의 목소리가 살짝 싸늘해 진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언성을 높이던 다섯 회장들은 다시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크흠···. 정운···. 호칭을 뭐 라고 불러야 할까요?” 말을 하던 김보성 회장은 문득 정운의 호칭을 두고 고민했다. 보통 정운대의 젊은이를 부르는 호칭은 정운군 이었다. 하지만 간댕이가 팅팅탱탱 붓지 않고는 차마 그렇게 부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척 봐도 젊어 보이고 또 적당한 호칭도 말하지 않은 정운을 상대로 뭐라고 불러야 할지 살짝 햇갈리는 것이었다. 정운은 고민하는 김보성 회장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편한대로 부르십시오.” “으음··········” ‘저 말이 가장 싫은데····.’ 정운의 말에 김보성 회장의 고민은 더욱더 깊어졌다. 누구나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식당가서 뭐 먹을래? 라고 하면 꼭 아무거나.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그리고 이 대답이 가장 까다롭다. 식당 매뉴 중에 ‘아무거나’라는 세트 매뉴가 있지 않은 이상 이 아무거나는 오로지 주문자의 안목에 따라서 결정되고 그렇게 해서 시킨 매뉴가 맛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시킨 사람의 잘못이 되는 것이다. 주로 여친이나 직장 상사 같이 자신의 대인 관계에서 갑에 위치한 자들과 함께 있을 때 발생하는 이것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무거나의 딜레마.’ 라고 부른다. 보통 이건 갑에게는 인연이 없는 고민인 경우가 많은데···. 설마 나이 환갑이 넘은 대기업의 회장이 이런 딜레마에 빠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는 약 30초 정도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박정운 대표님으로 해도 되겠습니까?” “대표님이라·····.” 정운은 살짝 생각해 봤다. 뭘 대표한다는 걸까? 한우리 연맹? 아니면 귀환자 그 자체? 뭐 어쨌든 무난한 호칭인 것 같기는 했다. “예. 그렇게 하시죠.” “감사합니다.” 정운의 말에 김보성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재력가인 진성 그룹의 회장이 아직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정운의 안색을 살피고 있는 광경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존심 보다는 실익. 이건 기업가들에게 기본중에 기본이었다. 무릎 좀 꿇고 머리 좀 숙여서 이익을 창출 할 수 있다면 엄청 남는 장사였다. 돈 안들이고 돈 번 것이 아닌가? 적어도 이런 기본 중에 기본을 몰랐다면 지금의 진성 그룹은 없었을 것이다. 김보성 회장은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정운에게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의 말씀은···. 이 신세계의 개발권에 대한 지분으로 귀환자 분들의 몫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죠. 이해가 빠르시군요.” 정운의 말에 김보성 회장은 혀에서 쓴맛이 나는 것 같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신세계에 직접 거주하면서 개발과 동시에 게이트의 방위까지 하고 있는 귀환자들은 엄연히 자신의 몫을 주장할 권리가 있었다. 다만 그게 얼마냐? 라는 것이 문제였다. ‘정부와 귀환자의 몫이 최대로 따져서 5대5라고 보면··. 그 정부의 몫 중에서 다시 50%인 총 25%는 우리의 몫이라는 건데···. 생각보다 적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엄청난 매장량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충분히 엄청나기는 하지만···.’ 김보성 회장이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계산은 사실 다 필요 없는 예상이었다. 그의 귓가에 정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고로 저희들 귀환자들의 몫은 전체의 95%입니다.” 정운의 말에 금화 그룹의 추민수 회장이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 그건 너무나·····.” “너무나 뭐죠?” “············.” 말을 하던 추민수 회장은 정운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것 같았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의 눈····.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수라장을 겪은 눈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갑질에 익숙하신 회장님들도 필요하면 을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52화 추민수 회장도 나이가 나이고 위치가 위치다 보니 별의 별 사람들을 다 겪어봤다. 잔혹한 마피아부터 권력에 절대 굴하지 않는 고고한 성인들··. 심지어 한 번은 사람 목숨을 파리보듯이 하는 모 독재 국가의 독재자와 단 둘이서 회담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운의 눈을 마주한 순간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겪었던 그 어떤 악당보다도, 그리고 어떤 거물들보다 훨씬 더 깊고 깊은 심연을 느꼈다.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저런 인간을 적으로 돌리면 안 된다. 라고 말이다. 이건 그가 80평생 살아오면서 겪은 진리 중에 진리였다. 저런 자들과 적이 되면 둘 중에 하나가 끝장을 보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젊은 날에 패기 넘치던 시절에는 그걸 알면서도 마주 부딪혔던 적도 있었다. 다행이 그럴 때 마다 이긴 것은 자신이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혈기와 패기가 철철 흘러넘치던 젊은 시절의 얘기다. 지금와서 또 그런 무모함을 보이기에는 나이도 많이 들었고,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도 너무 많아서 무모하게 굴 수가 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다행인지도 몰랐다. 만약 그에게 젊은 만용이 남아 있어서 정운을 적으로 돌렸다면? 그렇다면 금화 그룹이 통째로 끝장 났을 테니 말이다. 정운은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를 하고 말했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저희들 몫에 양보는 없습니다. 혹시 이게 적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은 그저 돈을 냈을 뿐입니다. 물론 큰 금액이기는 하죠. 하지만 제 동료들은···.” 정운은 잠깐 다섯 명을 향해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목숨과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 “···········.” “···········.” 정운의 말은 이제까지 했던 그 어떤 말보다 확실한 진심을 담고 있었다. 이것만큼은 그냥 유리한 협상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의 진심이었다. 이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어본 다섯 노인들은 정운의 말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고집을 읽어낼 수 있었다. 결국 다섯 명은 모두 항복했다. 암묵적으로 가장 대표 격인 김보성 회장이 정운에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후우···. 5%, 그 안에서 다시 저희 몫이 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충분히 있습니다. 우선 그 점을 정직하게 인정하겠습니다.” 정운의 말을 꺼낸 김보성 회장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기업가가 말하는 정직하게 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김보성 회장은 조금이지만 허울을 벗고 정운에게 최대한 정직하게 사정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계속하시죠.” “예··. 분명 이익은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가의 기본은 좀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노력 하는것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 정운은 가만히 들었다. 일단 상대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을 얘기하고 있으니 끝까지 들어줄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희들은 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입니다.” 등산가가 산에 올라가듯이, 축구 선수가 골을 넣듯이, 사업가는 돈을 버는 것을 자기 인생의 의무로 여기는 자들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일반인들과 기업인들의 차이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그냥 호화롭게 먹고 사는게 목적이었다면 저 노인네들은 진작 모두 은퇴했을 것이다. 돈을 번다. 라는 것은 이미 이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목표였던 것이다. 정운은 상대의 말에서 논리는 느끼지 못했지만 적어도 진실성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진실성은 정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좋습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사실상 원하는걸 말해도 좋다는 허락의 말이었다. 그러자 바로 김보성 회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95%의 지하 자원···. 아무리 막대한 자원이라고 정제할 방법과 판매할 루트가 없으면 그건 그냥 흙덩어리죠.” “뭐,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판매 루트나 개발을 맞길 하청 업체를 찾고는 있죠.” 정운의 말에 다섯 명의 눈이 동시에 반짝 거렸다. “부디 그걸 저희에게 진성에 맡겨 주십시오. 맹세하건데 어디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하청을 받아서 충실하고 정직하게 수행 하겠습니다.” “아니, 저희 나주 그룹에게 맡겨 주십시오. 정직과 신뢰가 저희 기업의 60년 모토입니다.” “원래 대한민국 석유 유통망의 판매루트 50%를 가지고 있는게 우리 금화 그룹입니다. 그러니···.” “잠깐··. 지금 새치기 하자는 거요?” “이 사람들이 정말····.” 살살 눈치만 보고 있던 여우들이 결국은 눈이 돌아 버렸다. 그만큼 정운이 제시한 먹잇감이 너무나 군침 도는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 정운은 잠시 다섯 명의 재계의 거물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다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진정 좀 하시죠.” “··············.” “··············.” “··············.” 정운의 한 마디에 일단 다섯 명의 노인들은 모두 진정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부에게서 얻어낸 지분에서 얻는 이익은 달걀의 흰자··. 아니 껍데기에 불과해져 버렸다. 진짜 대박을 얻어내려면 정부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정운의 대답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일단, 어디에 맡길지는 조금씩 조금씩 조율해 보도록 하죠. 단, 계약 기간은 모두 1년 단위로 합니다.” “1년 단위··. 왜 그렇게 짧게 잡으시는 겁니까?” 김보성 회장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제 마음이라고 말 할까요? 아니면 제 입에서 진실을 말 할까요?” “··············.” “··············.” “··············.”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정운의 의도는 뻔했다. 이건 일종의 목줄이다. 개를 키우면서 먹여주고 산책 시켜주고 다 해줘도 제대로 된 충견을 만들려면 목줄은 매어둬야 하는 법이다. 1년 단위로 계약을 매년 갱신해 나가겠다는 이유는 뻔하다. 계속 순종하면서 착하게 있는 동안은 꾸준하게 계약을 갱신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자기 분수를 넘어선다면 그때는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고 쫒아내겠다는 것이다.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계약 기간을 짧게 잡은 것이다. “큼···. 지하자원의 채취와 정제를 위한 기반 설비를 만드는 것과 그 이외의 자잘한 작업만 해도 족히 1년은 넘게 걸릴지 모릅니다.” “그 기간은 제외해 드리죠. 하지만 계약 기간은 무조건 1년 단위로 갱신해 나갈 겁니다.” “최소한 10년, 아니 5년 단위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1년입니다. 제가 거래할 루트가 여러분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운의 말에 오대 그룹의 회장들 전원은 입맛이 쓰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허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 ‘어쩔 수 없기는 하지····.’ ‘그래도 잘만 하면 우리 그룹이 세계 유수의 대기업으로 남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그들은 머리를 숙이며 정운과의 계약에 응했다. 그나마 정치가들과 다르게 뭔가 얻어가기는 한 기업인들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익을 얻은게 정운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기업인들이 모두 나가고 난 후에 배대호가 정운에게 와서 말했다. “일단 원하는 대로 진행하면 되겠냐?” “예. 모두 우리 쪽에 유리하게 세팅해둔 밥상이에요.” “돈 독이 올랐구나.” “어쩔 수 있나요? 앞으로 들어갈 돈이 한두 푼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돈을 얻기 위한 방법은 간단했다. 필드에 나가서 사냥 좀 하면 골드는 얼마든지 벌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가진게 많다고 해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가진 것을 돈으로 환산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 일차적인 대상으로 일단은 정부에게서 뜯어낸 100조원, 그리고 다음으로 오대 기업을 통해서 신세계의 막대한 자원을 팔아넘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모아서 그 돈은 모두 신세계의 개발과 정복에 이용될 것이었다. 파우스트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놈이 만든 이 세계를 정복한다. 그게 정운이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목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운이 넌 귀환자들의 왕이 되어야 한다.” “왕이라·····. 그런건 취미 없는데 말이죠.” “왕 정도로 쫄아 서는 곤란하지. 넌 신이 되어버린 또라이의 목을 따려고 하잖아?” 배대호의 말 정운은 피식 웃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기는 했다. 게이트 너머의 신세계를 정복할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정운이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았다. 게이트 너머의 도시의 건립. 신세계의 정보 수집. 게이트의 방위. 지구에 남아있는 귀환자들의 관리. 한우리 연맹의 연맹원들의 관리. 열거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은 지금 슬기와 함께 포근하게 햇살을 쬐면서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평화롭네···.” “그러네요. 이러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날아가는 것 같아요.” 정운에게 자기 무릎을 베개로 빌려주고 있는 슬기는 정운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으면서 미소 지었다. 정운이 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많았다. 하지만 그걸 꼭 정운이 직접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걸 혼자서 다 하라고 하면 사실 몸이 열 개라도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정운은 자신의 일을 대신처리해 줄 유능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었다. 한국의 배대호나 박추성은 그 강력한 힘과 유능한 리더쉽으로 정운을 잘 보좌했다. 외국 출신이 다이앤이나 홍린, 장 그레고리 등도 유능한 동료들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장 유능한 업무 능력을 보이는 동료가 있었으니···. “정운님. 여기 오늘 보고 사항을 가지고 왔습니다. 간략하게 추려 왔으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등에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면서 내려온 세련된 미모의 여성형 천사인 미하엘이었다. 그녀의 업무능력은 그야말로 경이적이었다. 원래 그녀는 천계의 치천사인 미카엘이 자신의 날개 한 짝을 때어서 정운에게 붙여준 비서겸 연락책이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정운은 그녀의 가치를 단순히 천계와의 연락책 정도로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슬기와는 다른 의미지만 그녀 없이는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로 필요한 오른팔이 되어 버렸다. 정운이 처음에 자잘한 업무를 시작 했을 때는 솔직히 너무 만만히 봤었다. 서류 업무 라는게 미묘하게 겹치는게 많았고, 결제하기 애매한 것들도 많았다. 결국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서류에 투자해도 일거리는 점점 쌓여만 가는 악순환이 시작 되었다. 결국 정운의 짜증이 극에 달했던 그 순간 정운을 구원 한 것이 바로 미하엘 그녀였다. “제가 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정운의 옆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뭐랄까? 고속 서류 결재기? 업무의 여왕? 무한의 결제? 그녀의 경이적이 업무 처리 능력은 정운의 10배. 아니 100배는 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살짝 예리한 엣지의 안경을 쓰고 일을 모두 처리한 그녀는 정운에게 두 세장의 서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여기에 제가 처리한 사안의 중요한 안건을 정리해 놨습니다. 이것만 읽어 주시고 혹시 고치고 싶은게 있다면 명령해 주십시오.” “········할렐루야.” 정운은 그녀가 진짜 천사처럼 보였다. 뭐, 정말 천사 맞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후로 미하엘은 정운의 전속 비서가 되어서 한우리 연맹의 대부분의 내정 업무를 살피고 있었다. 요즘은 몸에 착 달라붙은 여성용 정장에 세련된 엣지의 안경을 쓰고 금발을 단정하게 틀어 올려서 패션까지 완전 비서 패션으로 만들었다. 원래 세련되고 깔끔한 미모의 그녀였는데 최근에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트한 여성용 정장을 입고 있으니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까지 더해져서 남자들의 시선을 무한대로 빨아드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가장 많이 곁에 두고 있는 정운은 그녀를 그냥 비서로만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정운은 미하엘이 주는 서류를 쭉 훑어봤다. 언제 봐도 중요한 핵심만 쏙쏙 추려서 자신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이건 이미 보고서가 아니라 예술품이라고 불러야 하는게 아닐까?’ 어려운 내용을 잔뜩 적어서 두툼하게 만들어 놓는 보고서는 결코 유능하다고 볼 수 없다. 상대방을 확실하게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오히려 얇고 간결한 것이 백배는 더 좋았다. 지금 그녀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작품 후기 ============================ 미하엘도 은근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 입니다. 사실 미카엘의 분신이라는 설정인 만큼 전투 능력도 사실 그럭저럭 있는 편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53화 <천계에서의 의뢰> 정운은 보고서를 다 읽고 서류를 돌려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언제나 고마워. 미하엘. 별도의 보고 사항은 없어?” “예. 있습니다. 천계에서의 전갈입니다.” “천계에서?” “그렇습니다. 직접 연락이 왔기에 보고서가 아니라 여기에 직접 왔습니다.”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가슴에 달려있는 로자리오를 벗어서 거기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우우웅···. 로자리오에서 빛이 나더니 홀로그램처럼 입체 영상이 떠 올랐다. -안녕한 것 같군요. 정운. “가브리엘 님.” 정운은 누워 있다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계에 있으면서 다른 치천사들에게는 몰라도 가브리엘에게 만큼은 상당히 예의를 차린 정운이었다. 그녀가 이제 셋만 남은 천계의 최고위 천사인 치천사 중에 한 명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세레나의 양모 같은 위치에 있는 여성형 천사였기 때문이다. 직접 장모? 라고 말하는 것은 어색했지만 그래도 세레나를 생각하면 차마 그녀에게 건방지게 굴 수는 없었다. 미카엘을 대할 때는 지극히 냉정한 태도였고, 심지어 라파엘하고는 천계에서 대판 붙은 적도 있는 정운이었지만···. 가브레일한테 만큼은 자기 고집을 다소 꺾으면서 지냈다. 사실 다른 두 명과 다르게 온화한 성격의 가브리엘에게 막 대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 가브리엘이 정운에게 말했다. -최근 지상은 어떤가요? 미하엘의 보고로는 이미 한 차례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별 것 아닌 전투였습니다. 적들도 최대한의 전력을 다 동원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더군요.” -방심하면 안 됩니다. 서둘러도 안 됩니다. 용감함 보다는 신중함을 사랑해 주세요. 그대는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진심어린 걱정이 가득 묻어나는 그녀의 배려에 정운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오늘은 무슨 볼일입니까?” 정운의 말에 가브리엘은 약간 정색을 하고 업무얘기를 하듯이 말했다. -천계에서 정식으로 당신에게 의뢰를 하려고 합니다. “의뢰? 말씀입니까?” -예. 지구를 안정 시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가브리엘의 말에 정운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가브리엘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했다. -사실은····. 천계에서 내린 의뢰의 내용은 귀환자들의 소란을 최대한 진정 시켜 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귀환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풀려난 이후로 치안이 엉망으로 무너진 나라가 엄청나게 많았다. 어떤 곳은 국가의 원수가 암살당하기도 했다. 귀환자들의 능력은 일종의 초능력이었고 어떤 능력이 있는디 알 수 없는 이상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자잘한 범죄부터 굵직한 테러부터··. 귀환자들로 인해서 골치를 썩고 있는 나라는 한 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세상이 시끄럽고 범죄율이 치솟는 것은 천계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인간 세상에 좋지 않은 음의 감정이 많아지면 그 영향은 천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가뜩이나 파우스트의 반란을 막아낸다고 많은 힘을 소모한 천계에 있어서 이런 사태는 꼭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천계에서 직접 세상에 관여 하는 것은 금기였고, 결국 천계는 정운을 통해서 귀환자들을 최대한 안정 시켜 보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운은 천계에서 시키기도 전에 한국의 귀환자들의 99%를 제압해서 안정시킨 전력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방법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세상에 치솟는 근심을 좀 덜어보세요. “····말은 쉽게 하십니다만····.” 정운은 살짝 난색을 표했다. 그런 정운을 보고 가브리엘이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많이 어려운가요? 당신은 이미 한국의 귀환자들을 대부분 통합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랬죠. 하지만 그건 제가 한국 서버의 유저들에게 이름이 먹혔기 때문입니다. 한국 서버의 유저들에게 제 이름 석자는 공포와 경외심을 동시에 심어주니까요.” 그렇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는 법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한국 유저들에게 있어서 박정운의 말은 거의 법이고 진리였다. 그렇다 보니 아무도 무모한 반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드 서버의 존재도 모르고 한우리 연맹이나 박정운의 이름도 모르는 자들에게 정운의 명령이 먹힐까? 그건 솔직히 의문이었다. ‘어려운 일이지. 외부의 강적을 이기는 것 보다 내부의 치안을 단속하는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야.’ 고민하는 정운은 천계의 의뢰를 거절할까 생각 중이었다. 근데 문득 옆에 있던 슬기가 말했다. “가브리엘님. 천계에서는 의뢰라고 하셨죠?” -예. 그렇답니다. 슬기. “그렇다면, 그 의뢰를 달성 했을 때의 보수도 있는 건가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문득 그건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브리엘은 슬기와 정운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면서 말했다. -음, 세상의 평화를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했다는 성취감 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요? “···············.” “···············.” 가브리엘의 말에 정운과 슬기는 그저 담담한 시선으로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가브리엘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뭔가 원하는게 있나요? 항복 선언이었다. 아무리 정운이 가브리엘을 잘 대접해 준다고 해도 연맹 차원으로 부하들을 총 동원해야 할 지도 모를 퀘스트를 받으면서 무보수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정운과 슬기는 가브리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서로 귓속말로 소곤소곤 의논했다. “·····그거 어때?” “그거 말이죠? 하지만 ·······더 낫지 않아요?” “확실히 그거도 포기하기 아쉽네. 그럼·······.” 두 커플은 약 10분 정도 서로 뭔가를 의논하더니 이윽고 보상을 결정한 듯이 말했다. “음, 가브리엘님. 천계에 있는 나무를 몇 그루를 얻을 수 있을까요?” -나무? 그냥 나무가 소원이란 말인가요? 그 정도라면 그냥 드릴 수 있답니다. “·············” 순진하게 그냥 나무라고 생각하는 가브리엘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면서 정운은 어째 죄책감이 들었다. ‘이대로 속이고 등 쳐먹으면 내가 너무 나쁜 놈이겠지?’ 정운은 속으로 가브리엘만 아니면 그냥 속여 먹겠다고 푸념하면서 진실을 말했다. “평범한 나무를 말 하는게 아닙니다. 진리의 정원에 있는 진리목을 말하는 겁니다.” -아·····. 안 됩니다. 진리목이라니? 그건 세상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천계의 보물입니다. 가브리엘은 얼토당토 않다는 듯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정운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까지 저처럼 천계와 직속으로 연결된 인간이 없었으니까 그랬던 것뿐이죠. 실제로 나무는 아니지만 열매가 세상에 나간 적은 몇 번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모두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만 아주 작은 진리를 품은 나무들이면 충분합니다.” -으음·····. 약디 약은 인간과 거래를 하기에는 천사라는 종족은 너무나 순진한 걸까? 아니면 천사 중에서도 가브리엘이 한층 더 순진한 천사인 걸까? 어쨌든 그녀는 치열하게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쯤에서 정운이 원하는 진리목이라는게 뭔지 설명해 보자. 진리목. 그것은 정운이 천계에 있을 때 본 것으로 진리의 정원에 있는 나무이다. 원래는 에덴동산에 나오는 선악과를 품은 나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말 그대로 이 세상의 진리를 품고 있는 열매를 맺는 과실수이다. 이 열매의 종류는 나무마다 다양했고, 그 열매를 먹은 사람은 거기에 해당하는 진리를 얻게 된다. 선악과가 인간에게 선과악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했던 것처럼 이 열매를 먹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진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원래는 인류가 엄청난 발전을 하는 단계에서 이 열매가 암암리에 활약을 했었다. 천사들이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들이나 선지자들에게 이 진리의 열매를 몰래 나눠주면서 세상을 살짝 살짝 이끌었던 것이다. 물론 남발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실제 마지막으로 진리의 열매를 베풀었을 때는 그 열매의 대가로 세상에 핵이라는 괴물이 태어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아주 조금씩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 적어도 천계에서는 앞으로 500년은 인간들에게 진리의 열매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정운인 아애 나무를 통째로 요구하자 펄쩍 뛰는 것도 당연했다. -안되겠습니다. 역시 진리목을 너무 커요. 제 역량으로 열매 한 두 개 정도라면 가져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걸로는 안 될까요? 가브리엘은 나름 중간쯤에 해당하는 타협안을 내 놨다. 사실 진리목의 열매도 충분한 보물이다. 하지만 정운은 지속적으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나무를 원했다. “큰 진리를 품고 있는 놈을 원하는게 아닙니다. 과학이나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치는게 아니라 다른 분야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언어라던가? 혹은 예술이라던가?” 정운의 말에 가브리엘은 곰곰하게 생각해 봤다. -확실히, 그 정도의 진리라면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그게 당신에게 필요한 건가요? “예. 뭐든지 쓰기 나름이죠.” 사실 엄청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일부러 별것 아닌 것을 받는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언어의 경우 그 진리의 열매를 먹는 순간 이 세상에 모든 언어를 사용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들은 지그의 언어를 전부 사용 할 수 있었지만···. 저쪽 세계의 언어는 그렇지 않았다. 공용어라고 하는 언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다른 종족의 언어중에는 못 알아듣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니 언어의 진리를 품고 있는 열매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술. 예술은 어떤 의미로 봤을 때 창칼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신세계의 인간들이 모두 파우스트의 광신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들에 대한 회유책도 생각을 해 봐야 했다. 예술은 그런 회유책으로 봤을 때 훌륭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설령 그게 실패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지구에서만 해도 훌륭한 아티스트가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것만 해도 정운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 인간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순진한 가브리엘은 잠시 고민했다. 진리목을 인간 세계로 직접 유출한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안 된다는 규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요구하는 나무들이 그렇게 중요한 진리를 품은 나무들이 아니라는 것에 마음이 흔들렸다. -알았습니다. 지금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다른 치천사들과 함께 긍정적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저대로 최선을 다해서 보답하겠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계와의 회신을 끊었다. 그리고 미하엘을 보면서 말했다. “미하엘. 간부들 다 소집해 줘. 긴급 회의야.” “알겠습니다. 정운님.” 그리고 미하엘에 가는 것을 보면서 정운은 중얼 거렸다. “현실에서 퀘스트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정운이 긴급히 소집한 회의에는 지금 한우리 연맹의 간부들이 모두 모였다. 정운을 중심으로 해서 좌편과 우편에 박추성과 배대호가 함께 하고···. 그 외에도 슬기와 윤정철, 김수민 등의 오리지날 한국 서버의 팀원들과, 영국의 다이앤,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그리고 중국의 홍린까지···. 여기 있는 전원이 한우리 연맹의 최고 간부들이었다. 이들이 모두 모이자 정운은 자신이 천계에서 받은 퀘스트(?)를 설명했다. 그러자····. “꽤 어려운 일인걸?” “치안의 안정 유지라··. 치안의 안정 유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닥치는 대로 다 잡아 와서 가두면 되나?” 박추성의 말에 배대호가 핀잔을 주면서 말했다. “네 평생을 바쳐봐라. 잡아오다가 늙겠다.” “누가 몰라서 묻냐? 그냥 답답해서 하는 말이지.” ============================ 작품 후기 ============================ 현실이라고 퀘스트가 없는것은 아닌법이죠. 평범한 인생이라고 해도 결국은 수많은 퀘스트의 연속이니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54화 박추성과 배대호의 대화에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사상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각 시대마다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는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도 치안의 안정 유지를 완벽하게 하는 것은 몹시 어려웠다. 세상에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면 꼭 착한 사람만 모이는 법은 아니니··. 사실 어쩔 수 없는 사회의 일면이다. 그런 악인들이 없다면 왜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경찰이나 검찰을 만들겠는가? 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해결책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홍린이 입을 열었다. “이거··. 마냥 어렵게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잘만 하면 저희들 한우리 연맹이 각국에 엄청난 위상을 발휘 할 수도 있습니다.” 처세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홍린은 아까부터 한참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상당히 흥분한 표정을 하고는 말을 꺼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이 발언의 기회를 주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봐요.” “예. 그러니까, 천계에서 원하는 것은 귀환자들로 인해서 혼란해진 치안의 안정이죠?” “그런 셈이죠.” “그건. 지금 세계 각국이 모두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즉, 우리는 하나의 임무를 완수 하면서 천계와 세계 각국이라는 이중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그건·····. 그건 그러니까·······. 그런가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정운은 듣고 보니 그럴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운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가 타국의 치안에 관여를 어떻게 하지? 라는 것이었다. 그건 명백하게 내정 간섭이었다. 정운이 국내에서는 영웅 취급을 받고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지만 해외에서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세계 각국에 내정 간섭을 했다가는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게 고민이었다. 그런데 홍린의 말을 듣고 보니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그 나라의 고민 거리를 해결해 준다. 즉, 거기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요구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라는 말이군요.” 정운의 말을 들은 홍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연맹 차원에서 귀환자 전용 감시 경찰등을 만들어서 아애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우리가 찾아가서 부탁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이런 사업을 시작했으니 의뢰할 국가는 돈 내라. 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는 겁니다.” 홍린의 말을 들은 다름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정운이 입을 열었다. “····그건·····. 나이스 아이디어인데?” “그렇게만 된다면 최고지?” “정말. 돈 벌고 명성 쌓고 일석이조 잖아?” “아름다운 생각이군요. 연맹 차원에서 큰 힘이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홍린의 발상을 신선하다며 크게 칭찬했다. 홍린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정운의 뒤편에 있는 미하엘에게 말했다. “미하엘 비서. 디테일한 업무 작업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시간 얼마나 걸리죠?” 홍린의 말에 미하엘은 안경을 살짝 끌어 올리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두 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두 시간이라는 미하엘의 말에 말을 꺼낸 홍린이 오히려 당황했다. “두 시간? 그거면 되겠어요? 연맹원 개개인의 레벨과 숫자를 파악하고 배치하는 것만 해도···.” “그런건 머릿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 “··········.” “··········.” 사람들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미하엘이었다. 과연 업무의 여왕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하게 두 시간 후···. 미하엘은 컬러차트까지 깔끔하게 만들어 와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우리 연맹원의 숫자는 약 9만 3천여 명.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추세이지만 현 단계에서는 이 정도입니다.” “9만이라··. 그걸로 전 세계의 모든 유저들을 관리하는 것은 좀 힘들어 보이는데? 머릿수가 부족해.” 배대호의 말에 미하엘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시험적으로 몇몇 나라들을 선택해서 먼저 거래를 제시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손을 들고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저희 영국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름답게 프랑스로 하도록 하죠.” 둘은 말을 꺼낸 직후 서로를 바라보면서 살짝 스파크를 튀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동시에 홍린을 바라봤지만···. “아!! 전 됐어요. 별로 애국심은 없어서 말이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냥 손사레 치고 말았다. 그러자 다시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은근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첫 시범 국가잖아요? 당연히 여기서는 먼저 한우리 연맹에 들어왔던 우리 영국 쪽에 양보 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먼저 들어왔다고 텃세라? 훗, 아름답지 못한 방식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군요.” “이 인간이···.” “다이앤 진정해.” 다이앤 여왕의 성질이 폭발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윤정철이 그녀의 손을 잡아서 말렸다. “정철씨···. 하지만··.” “참아. 원래 저런 사람이잖아?” “·····이익····.” 여유만만한 장 그레고리와는 달리 원래 한 성깔 하는 타입이던 다이앤은 금방 달아오르려고 했다. 비록 옆에서 자기 남자인 윤정철이 말리니 일단 가라앉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게 뻔히 보였다. “자자···. 두 사람다 진정하시죠.” 정운은 일단 둘이서 부딪히지 못하게 말렸다. 저 둘이서 작정하고 격돌하면 기껏 만들어 놓은 회의장···. 아니 이 건물을 통째로 다시 지어야 할 것이다. “미하엘. 영국과 프랑스 양 국가를 동시에 시범 모델로 삼는 것은 무리일까?”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두 개 국가 정도는 충분히 여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는 그럼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지. 라는 표정을 하며 서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중국이 끼어들었다면 그 나라 하나를 감당하는 것도 버거웠을 테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의 국토 면적을 생각하면 한 국가 당 2만 명 정도의 인력을 동원해서 귀환자들의 치안을 바로 잡는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2만명? 그만큼이나 들어야 하나? 게이트의 방위 문제도 있는데?” 미하엘의 말에 배대호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미하엘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언제 적의 공격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이 게이트 방위의 전력의 95%이상은 이 방에 모여 있는 여러분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음···. 그건 그렇지.” 전력의 집중화. 이 방에 있는 10명 남짓한 사람들 전원에게 한우리 연맹의 모든 무력이 거의 다 집중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치안의 유지를 위해서는 강력한 일인보다는 다소 힘은 부족하다고 해도 다수의 머릿수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게이트에서 한 국가당 2만ㅍ명. 영국과 프랑스를 다 합해서 4만ㅍ명을 동원한다고 해도 게이트의 방위력이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미하엘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4만이라는 숫자는 다소 부담이었다. “4만이면 우리 연맹원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지. 그리고 나름 치안을 위해서라면 그래도 레벨이 50대가 넘는 인간들을 각각 1,000명씩을 보내야 할 테고···. 앞으로 전 세계를 통해서 영업을 해야 할 텐데 그래서는 몇 국가 감당 못하는 것 아니야?” 배대호의 말에 미하엘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초기 투입 숫자만 많이 잡은 것입니다. 치안이 안정되는 대로 치안의 안정이 되찾아 지면 그때는 서서히 인력을 줄여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 작전으로 일석 사조의 효과를 노리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설명···.” “여기를 주목해 주십시오.” 미하엘은 따로 준비한 차트를 펴며 설명했다 *각국의 치안 유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 1. 치안을 유지시켜 주는 것을 대가로 경제저긴 실익을 얻을 수 있음. 2. 세계 각국의 귀환자들을 게이트 안쪽의 신세계로 이동 시켜 연맹원으로 흡수. 전체적인 전력을 증강 시킬 수 있음. 3. 천계의 의뢰를 완성함으로 인해서 천계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음. 4. 한우리 연맹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올라감. “이상이 우리 한우리 연맹이 얻을 수 있는 이익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두 번째 조항을 주목해 주십시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연맹원으로 흡수? 범죄자들을 잡아와서 우리 연맹에 복속 시킨다는 말이야? 미하엘은 그런 정운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 한우리 연맹에는 꾸준하게 귀환자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그래도 인력이 더 필요합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범죄자로 잡아와서 우리 전력으로 삼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뒤통수치려고 안달난 놈들이 태반일 텐데?”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안경을 스윽 올리면서 말했다. “잊으셨습니까? 우리 한우리 연맹의 정점에 있는 정운님에게는 천계의 비호인 신의 맹세가 있습니다.” “아아!!!!” 정운은 잠시 깜빡하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신의 맹세. 그라운드 제로에서 있었던 혈맹과 같은 것으로 일단 맹세를 받아내면 감시를 붙이지 않아도 강제력을 행사 할 수 있다. “그렇군···. 그걸 깜빡하고 있었어.” “어떻게 보면, 가장 무서운 능력인 걸? 정운이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니. 모든 맹세의 정점에 정운이 있는 거잖아?” “그렇군요···. 이거면 범죄자를 잡아와서 연맹원으로 만드는 것도 충분하겠는데요?” 한우리 연맹의 간부들은 크게 들떴다. 사실 천계에서는 정운에게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서 신의 맹세라는 능력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운이 천계와 연줄이 닿아 있으니 정운에게 약간의 특혜를 베풀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능력은 결국 정운을 이 세상 모든 귀환자들의 지배자로 만들수도 있었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이 우연치 않게도 천계의 의뢰라는 것을 알면 나중에 치천사들이 골머리 꽤나 썩을 것이다. 그들은 정운이 자신들의 조력자이자 파우스트의 적수가 되기를 원했지. 정운이 귀환자들의 왕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주어진 능력을 회수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자세한 세부 사항은 미하엘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가장 중요한 사항 하나. 누가 외국까지 직접 가서 치안유지 관리를 하느냐? 라는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각 2만에 달하는 능력자를 보낸다고 해도 그걸로 끝은 아니다. 설령 월드 서버에 진출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과거 삼대 길드 간부 정도 되는 능력자는 있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도 아니고 영국과 프랑스의 고수들 중에 99%는 대부분 장 그레고리나 다이앤의 부하들이었고 그들은 지금 한우리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정운처럼 어디에도 끼지 않고 고고히 혼자서 사냥하면서 고수의 영역에 도달했던 존재들도 있기는 했다. 뭐, 일반 서버에서 고수라고 해 봐야 70~90레벨 사이 정도이고 월드 서버의 유저들이 보기에는 하룻강아지일 뿐이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생각하면 상당한 위협이었다. 레벨이 70대 이상이 되면 거의 인간 폭탄이라고 봐야 한다. 한 번 작정하고 터지면 한국의 광역시 규모의 도시 하나 정도는 반나절 안에 폐허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순식간에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나름 고수를 대동하기는 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일석이조? 아니 삼조? 아니 사조? 사실 좋은 점이 너무 많아서 몇 조인지 햇갈릴 정도입니다. 능력자의 필수적인 사회적 치안유지. 라는 설정은 사실 고수가 갑이다 시절에 잡은 설정이었습니다. 나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신 작품이라서 그 설정 자체를 여기에 적용 시키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55화 <미하엘의 협상 능력> 간부 중에 최소한 한 명은 각 국가에 파견을 가야 한다는 미하엘의 말에 김수민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굳이 우리가 가야 하나? 그냥 밑에 애들 보내도 될 것 같은데? 월드 서버에 진출도 못한 유저들 중에 100레벨 이상은 없을 것 아니야? 원래 연맹 출신 애들 중에 100레벨 약간 넘는 애들 보내면 적어도 지는 일은 없을걸?” 김수민의 말에 미하엘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제압만 생각하면 그렇게 해도 될 겁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 건데?” 김수민의 질문에 미하엘은 조리있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만약 100레벨의 유저가 90레벨의 유저를 제압하기 위해서 전투를 벌인다고 가정했을 때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 이상이 될 겁니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100레벨에 근접한 유저가 2시간이나 싸우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건···. 난장판 나겠지 뭐···.” 김수민은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한 명 정도는 압도적인 강자가 나가서 한동안 주변 정리를 하고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줄곳 그곳에 계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 까지면 됩니다. 거기에 계속 상주하고 계실 필요는 없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홍린이 대답했다. “영국과 프랑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장 그레고리씨와 다이앤씨가 직접 가면 되지 않나요?” 홍린의 말에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는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불만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자기 조국을 위해서 의무를 다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 두 사람은 홍린의 의견에 선선히 허락했다. 하지만 거기에 관해서 미하엘이 뭔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 배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게 좋은 의견이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죠?” 배대호의 말에 다이앤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배대호가 팔짱을 낀채로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면서 말했다. “다이앤 당신이나 장 그레고리가 자국에 가서 정당한 보수를 받고 치안을 유지한다···. 그거 자칫 잘못하면 매국노 소리 듣기 딱일 걸?” 배대호의 말에 미하엘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은 각각 영국인이고 프랑스인입니다.” “그게 뭔가 문제인가요?”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만?” 둘이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미하엘이 설명을 덧 붙였다. “이해해 주십시오. 두 분은 자국의 국적 이전에 우리 한우리 연맹에 몸을 맡긴 연맹원입니다.” “음···. 그거야 뭐···.” “그래도····.” “만약 두 분이 자국에 돌아가셔서 보수를 받고 연맹차원에서 일을 한다면 두 분을 흠짐내기 위해서 움직일 여론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후우··. 정말 그럴까요?” “쯧, 그런 아름답지 못한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는 하겠군요.” 한숨을 내쉬면 안타까워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미하엘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반드시 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죠.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는 두 분 뿐만이 아니라 우리 한우리 연맹 전체에 비판의 화살이 날아올 수도 있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는 일단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 만이라면 몰라도 자칫하면 연맹원 전체의 이름값에 흠이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자국으로 가 부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간다···. 누구 지원자 있어요?” 정운의 말에 굳이 지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치안 유지라고 하니 어쩐지 자잘하고 귀찮은 일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제가 지명합니다. 영국은 윤정철 형님이 가시고 프랑스는 김수민 형님이 가 주십시오.” 정운의 말에 지명 받은 둘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지만 별로 토를 달지는 않았다. “영국이라··. 알았다.” “가면 되는 거지? 언제?” 둘은 순순하게 수긍했다. 귀찮기는 했지만 한국팀의 리더로 월드 서버에서도 팀을 잘 이끌어 왔던 정운에게 굳이 반발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가야 할 일이었는데 자기가 지명 당했다고 귀찮다고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음··. 자세한 일정은 미하엘에게 물어 보세요. 미하엘. 일을 최대한 신속하고 차질 없도록 진행해 줘.” “알겠습니다. 정운님.” 그렇게 해서 한우리 연맹의 해외 치안 유지 사업이 시작되었다. [세계 평화를 위한 한우리 연맹의 결단] [귀환자들의 범죄로 골치를 안고 있는 세계에 구원이 되나?] [정부의 외교부는 적극적인 협조를 표명.] 정운이 천계의 의뢰를 받아서 행한 퀘스트(?)였을 뿐이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여론은 정운의 행동을 극찬했다. 하긴 지금 한국에서 정운의 인기를 생각하면 정운이 길가에서 쓰레기 하나만 주워 버려도 그걸 가지고 미담으로 만들어낼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정운의 결정은 국민들에게 이미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무임봉사도 아니고 적절한 대가를 지급 받고 일하는 것인데 사람들의 여론은 정운의 행동을 슈바이처 + 간디 + 테레사 수녀 정도로 미화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인류의 구원자 박정운. 그의 위대한 한 걸음 한 걸음에 세상은···. 어쩌고 저쩌고···.] 라고 떠들어대는 언론도 있을 정도였다. 보고 정운이 낮이 간지러워서 직접 경고를 했을 정도다. “사람 바보 만드나? 내가 무슨 우민정치의 달인이야? 사람 놀리는 것도 작작 해야지.” 정운은 그렇게 짜증을 냈지만 이미 정운의 우상화는 스스로도 멈출 수 없을 정도였다. 그냥 단순한 지지자를 넘어서 광신도들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였다. 정운 본인이 나서서 내가 신이다. 나를 따라라.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영웅 주의라는게 이래서 악용되기 참 쉽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국내의 열광적인 정세와 달리 해외에서는 정운의 제시를 듣고 반신반의 하고 있는 정도였다. 사실 지금 해외 국가의 치안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귀환자들이 오기 전에 비해서 범죄율이 500% 이상 치솟은 나라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면서도 귀환자들에 대한 검거율은 바닥을 기고 있으니 세계 각국의 정부들 입장에서는 정말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 증거 중에 하나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얼마 전에 한미 연합군이 게이트 내부에서 전멸하는 치욕을 당했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일을 겪었다면 그냥은 넘어가지 않아야 정상이다. 원래대로라면 핵이라도 끌고 다시 게이트 너머로 군대를 보내고도 남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운이 한국 정부와 담판을 지어서 게이트 내부를 완전히 점거할 때까지 미국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왜 그럴까? 한국 내부사정이니 우리는 내정 간섭 하지 말고 한 발 물러나 있어야지? 라는 기특한 심정으로? 절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정답은 지금 미국도 귀환자들로 인해서 무너진 치안 상태를 바로 잡는다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세계 최고의 치안을 유지하는 나라는 아니었다. 오히려 치안은 상당히 나쁜 편에 속하는 지역이 수두룩했다. 그런 나라에 귀환자들이 대량으로 들어오다 보니 난리가 난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어떤 귀환자는 사회에 불만을 품고 미국의 백악관에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내부 깊숙한 곳은 아니었지만 백악관의 한쪽 격벽이 박살난 사건은 미국 전역에 충격을 가했다. 결국 미국은 타국에 정신을 팔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심정은 대부분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갈수록 귀환자들의 범죄 행각은 심해졌고 이제는 귀환자 범죄에 관해서는 경고 없이 바로 사살을 해도 괜찮다는 지령까지 내릴 정도였다. 보통 강대국일수록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서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지시도 하지 않는다면 현장 경찰들에게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아오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바로 발포가 가능하게 한다고 해도 그게 통하지 않는 괴물들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그런 와중에 정운이 제시한 조건은 솔직히 솔깃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게 귀환자들의 범죄에 위협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정운 때문이라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을 비롯한 몇몇 정권들은 귀환자 중에서 고수들을 회유해서 귀환자 전용 검거단체를 만들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미한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이미 한국에서 치안의 안정이라는 실적을 낸 적이 있는 정운이 저렇게 직접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니····. 효과만 확실하다면 상당량의 예산을 지불할 용의가 가득한 나라들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그 첫 대상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선택 되었다. 영국의 수상과 프랑스의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화사한 금발을 틀어 올리고 아름답고 세련된 미모를 뽐내고 있는 미하엘이 자리했다. “안녕하십니까? 한우리 연맹의 대표로 자리에 온 미하엘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수상을 역임하고 있는 데이빗 카메론이오.” “프랑스의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란드입니다. 한우리 연맹의 대표로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분이 올 줄은 몰랐군요.” 영국과 프랑스의 정계 최고 톱들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하엘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하긴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치천사 미카엘의 분신이기도 한 고위급 천사이다. 사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면 오히려 이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경예를 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천사로서가 아니라 한우리 연맹의 대표인 정운을 대신해서 온 것이었다. 그러니 천사 티는 내지 않고 오로지 일에 관해서만 처리하기로 했다. “우선 저희쪽에서 보낸 기획서에 대해서는 양국 모두 생각 해 보셨습니까?” 미하엘의 말에 영국의 수상인 데이빗은 말했다. “귀환자 2만 명을 보내서 우리나라의 치안을 안정 시켜 주겠다. 라는 조건은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쪽에서는 귀환자들을 상대 하는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다만 뭐죠?” “몇 가지 의문이 드는 조항들이 좀 있기는 합니다. 우선 여기 이것···.” 데이빗이 가리킨 조항은 마하엘에 보낸 기획서의 일부분이었다. -귀환자에 대한 신병을 인수한 순간부터 그 귀환자는 소속 국적을 상실하며 오로지 한우리 연맹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처우를 결정한다. 라는 조항이었다. 데이빗 수상은 그것을 가리키면서 미하엘에게 말했다. “이것은, 사실상 우리 국민을 타국에 팔아넘기는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여기에 순순히 납득을 해서는 제가 국민들에게 볼 낮이 없습니다.” 데이빗 수상의 말에 미하엘은 지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한 가지 말하자면, 우리는 귀환자들을 무력화 시켜서 구금할 수단이 있습니다.” 벌떡!!! 미하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정치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미하엘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앉아서 들어 주시겠습니까?” 누가 천사 아니랄까봐 상냥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뭐라고 거절하기 어려운 힘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무례하게 보였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둘은 바로 미하엘에게 사과했다. 정치가로서 사과를 남발하는 것은 자존심을 떠나서 그다지 좋은 벼릇이라고 말 할 수 없었지만···. 이들은 미하엘에게 순순히 사과를 했다. 그만큼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포근함과 위엄이 둘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어머니를 대하고 있는 장난꾸러기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허허···. 이거 혹시 내가 늦게 다시 사랑이라도 든 건가?’ ============================ 작품 후기 ============================ 어릴때 했던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육성 게임이 있었죠? 그 게임에서 당시 이해가 안 가던게 있었습니다. 왜? 가정교사 알바를 시킬때 매력 수치가 높아야 보수가 좋은 거지? 라는 거였습니다. 지금은 이해를 합니다. 어디 광고를 따라 말하면... 예쁘면 다 되는 거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56화 둘은 몰랐겠지만 지금 둘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인간이 천사를 대할 때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귀환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인 그들에게 천사인 미하엘에게서 느껴지는 은은한 신력은 이 둘을 무의식중에 공손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미하엘은 그런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면서 회담을 유리하게 진행해 갔다. “귀환자를 구속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가르쳐 주신다고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래도 가르쳐 주시는 것은 무리이겠죠?” “예. 일단은 기밀입니다. 다만, 가르쳐 준다고 해도 여러분들에게 불가능 할 것이라는 것만은 말해드리겠습니다.” “·············.” “·············.” 두 정치가는 꼭 듣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해도 그 정도의 기밀을 쉽게 말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귀환자들의 범죄가 문제인 이유는 구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범죄자를 잡았다 치자.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관리를 한다는 말인가? 감옥에 가둔다고 해도 공격 스킬 하나만 쓰면 벽 부수고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범죄의 관리에 있어서 범인을 찾고 죄를 판가름 한 다음의 수순은 범인을 가둬서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격리가 불가능 한 것이다. 가뜩이나 전에 영국에서는 교도소에 수감 시켰던 귀환자가 그대로 교도소를 박살내고 멀쩡한 다른 죄수들까지 부하로 끌고 나간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섣불리 가두기도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귀환자를 완벽하게 구속해서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방법이 있다니 어떻게 안 반갑겠는가? 그건 그냥 치안 유지를 넘어서 잘만 하면 국가에 절대 복종 할 수 있는 귀환자 전용 부대를 만들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어차피 신의 맹세에 관해서 말 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정보는 최대한 독점하고 있는게 유리한 거지.’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두 정치가에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죄인을 완벽하게 구속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게 저희들이니··. 그들에 대한 신병을 우리가 받아 가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자국의 국민을 타국에 넘긴다는 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다못해 형기의 구형이라도 우리가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기의 구형을 해당 국가에서 정할 수 있다면 설령 지금은 신병을 넘겨 준다고 해도 언젠가는 돌려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영국의 수상을 보면서 미하엘은 안경을 살짝 올리면서 말했다. “좀 가혹한 말씀이 될지 모르겠지만 왜곡 없이 말하겠습니다.” “············.” “············.” 잠시 말을 끊었던 미하엘은 두 정치가의 주목을 받면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귀환자들은 자국의 국민이기 이 전에 여러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폭탄이라는 것을 먼저 인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물에 빠진 여러분을 적절한 보수로 건져주는 것까지입니다. 보따리까지 바라시면 좀 곤란하군요.” “················.” “················.” 두 정치가는 할 말이 없었다. 원래 정치가는 타국과 교섭을 할 때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도록 행동해야 한다. 상호간에 윈 윈? 그것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 하는 거다. 모든 상황에 그게 다 통용되면 인류사 이렇게 전쟁으로 점철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외교 교섭은 무조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뤄 지는게 99%다. 미하엘의 눈은 단호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정 되어 있다. 그 이상은 바라지 마라. 라고 완곡한 경고를 한 것이다. “큼···. 알겠습니다. 그럼 그 부분에 관해서는 인정하겠습니다.” “저희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가장 시급한 것은 치안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니까요··.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지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결국 영국의 수상도 프랑스의 대통령도 교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마지노선을 내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귀환자의 구속 여부가 아니라 자국의 치안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안심 하셔도 됩니다. 사인만 하시고 우리가 활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원만 해 주신다면? 그렇다면 저희 연맹원들이 귀국의 귀환자들이 더 이상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아줄 것입니다.” “좋습니다. 사인하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하엘은 둘에게 한 장씩 서류를 내밀었다. -한우리 연맹 치안 유지 방위계약서- 1. 귀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귀환자들의 범죄에 관해서 치안 안정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며 아래의 조항들을 준수한다. 2. 귀환자들의 범죄가 발생 할 시 한우리 연맹은 그들을 억제 구속할 의무가 있으며 구속 순간부터 해당 범죄자는 국적의 효력이 상실되며 연맹의 내부 규칙에 따라 처벌 된다. 3. 해당 국가의 검찰과 경찰은 적절한 이유가 없다면 연맹의 협력 조사에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 4. 해당 국가는 한우리 연맹에게 업무 착수 및 활동 자금을 포함하여 년간 70억 유로에 해당하는 보수를 지불한다. 5. 계약 후 1년 이내에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한우리 연맹은 계약을 해지함과 동시에 두 배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6. ··············. 자잘한 조항까지 포함해서 30여개의 조항들이 즐비한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은 두 정치가는 정식으로 사인을 했다. “이로써 여러분들은 우리 한우리 연맹과 자국의 치안 안정을 위한 협정을 맺었습니다. 우리 연맹은 최선을 다해서 귀국의 안녕을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제발 그랬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비싼 보수가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별로 안 비싼 것 다 알면서····.’ 미하엘은 속으로 약간 쓰게 웃었다. 70억 유로면 한국 돈으로 하면 10조원이 약간 안 되는 금액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지금 두 국가의 무너진 치안 상황을 제대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지극히 타당한 가격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어디 가난한 나라도 아니고 이 정도 금액은 충분히 낼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나라였다. 사실 정운의 입아에서는 돈을 버는게 주목적이 아니라 퀘스트 중에 나오는 겸사겸사 부 목적일 뿐이기에 이렇게 저렴한(?)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뭐, 다른 국가에서도 이렇게 저렴하게 해 준다는 보장은 없었고, 또 계약 국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들어오는 돈은 더욱더 커지겠지만 말이다. 한우리 연맹이 치안안정을 위한 협정을 체결한 소식은 바로 다음날부터 세계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세계의 눈과 귀는 영국과 프랑스에 집중 되었다. 그들로서는 주목 할 수밖에 없었다. 귀환자로 인해 무너진 치안은 자국에서도 심각한 문제였고··.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적절한 효과를 발휘하기만 한다면 그 다음에는 자신들이 다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작 계약을 한 영국과 프랑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런던의 한 항구···. 그 항구를 백여 명의 사람들이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쾅쾅쾅!! “문 열어!! 한우리 연맹이다!!!” “···············.” “안에 있는 것 다 안다. 열어!! 마약밀매 및 은행강도, 그리고 기타 범죄 행위로 체포한다!!!” “············.” 창고의 문을 아무리 크게 두드려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연맹원은 뒤편에 있는 윤정철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까요?” 윤정철은 무심한 표정으로 부하에게 명령했다. “돌입해. 하나도 놓치지 마라.” “옛!!! 전원 돌입!!!” 콰콰쾅!!! 여기저기서 벽과 창문이 박살이 나면서 한우리 연맹의 연맹원들이 창고 안으로 투입해 들어갔다. “이 개자식들이!!!” “왜? 우리 나라에까지 와서 지랄··· 커억!!!” 자신들의 근거지가 들킨 영국의 귀환자 무리들은 나름 발악을 했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현격했다. “얌전히 꿇어라. 썅노무 새끼들아!!!” “어디서 레벨도 30레벨 언저리의 쩌리 새끼들이···.” “쳐 맞기 싫으면 국으로 엎드려!!! 새끼들아!!!” 한우리 연맹원들은 이제 익숙하게 된 몸놀림으로 적들을 제압해 갔다. 범죄의 길로 빠진 귀환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찾아서 작신나게 두들겨 패면서 제압한다. 요즘 들어서 질리도록 하고 있는 일이었다. 보통 경찰이 범인을 잡을 때도 무작정 폭력을 행사하면 인권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잔소리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연맹원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맹수나 다름없는 귀환자를 상대하면서 미란다 원칙이라도 읊으라는 말인가? 일단 무작정 패서 고분고분하게 받은 다음 정운에게 신의 맹세를 받은 연맹원이 다시 맹세를 강요해서 받아낸 후 구속한다. 그게 정해진 수순이었다. 한우리 연맹과 영국이 협정을 체결한지 한 달. 그 한 달 동안 한우리 연맹에서 잡아넣은 귀환자 범죄자들의 숫자는 2,000명이 넘었다. 처음에는 무자비한 체포 방식과 너무 무분별하게 체포 하는게 아니냐? 라는 개소리들이 좀 넘쳤지만··. 그런 머저리들이 깨갱하게 찌그러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한 달 만에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상황이 확 변했던 것이다. 귀환자들이 돌아오고 나서 한동안 경찰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밤에 돌아다닌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디 아프리카의 극빈국도 아니고 그래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인 영국이 말이다. 그런 처참한 상황에서 한우리 연맹원이 나서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자 서서히 자신들의 생활이 예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한우리 연맹과 협정을 체결한 수상의 인기가 하늘로 솟구칠 정도였다. 그리고 동시에 또 유명해진 사람이 있었으니··. 콰쾅!!! “크윽···. 저 새끼는 좀 하는 놈인가?” “조심해!!! 추정 레벨은 60대다.” 한창 체포 작전에 열을 올리던 연맹원들을 애먹이고 있는 상대는 두 자루의 숏소드를 쓰면서 반항하고 있는 한 귀환자였다. “으아아앗!!!!” 파파파파팟!!! 놈은 제법 사납게 날뛰면서 한우리 연맹의 연맹원들에게 격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검격 하나하나에 창고의 건물과 주변 집기가 두부 썰리듯이 절단되고 있었다. 놈은 그렇게 격렬하게 반항하면서 주변의 연맹원들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개새끼들!!! 내가 잡혀 갈 줄 알아!! 이 쌍칼의 잭님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놈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연맹원들을 공격하면서 도주로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놈이 도망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 “저 놈이 이 조직의 리더인가? 60? 저건 70은 되 보이는데?” “대장님!!!” “물러나라. 내가 처리하지.” 왜냐하면 이 자리에 윤정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정철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우리 연맹의 영국 지부 대표로 얼굴 마담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이따금씩 나타나는 부하들이 상대하기 위험한 놈들을 대신 처리해 주는 것이다. “이익··. 넌 윤정철?” “그새 나도 좀 유명해 졌군. 그냥 꿇을래? 아니면···. “죽어!!!” 퍼퍼퍽!!! 윤정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놈은 발악하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즉시 사람의 생살이 꿰뚫리는 섬뜩한 소리가 났다. “말은 다 듣지 그랬냐?” “으으···. 으아아악·····.” “엄살은··. 전신에 화살 수십 발 박힌 정도로 엄살 부리지 마라.” 귀환자의 질긴 생명력만 아니면 진작 죽었을지 모를 중상이었지만 윤정철은 시큰둥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6월 한달도 다 끝나가는 군요. 이제 2014년도 반이 지나갔습니다. 남은 반년도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57화 <당근과 채찍, 그리고 술> 쓰러져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놈을 보면서 윤정철은 익숙하게 명령했다. “저 놈 잡아. 맹세 받기 전까지는 완전 무력화 시키는 것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이 다가와서 그 쌍칼의 잭인지 뭔지 하는 놈을 구속했다. 최근 들어서 영국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로 부상한게 바로 윤정철이었다. 시내에서 몇 번인가 활로 범죄자들을 잡아내는 광경이 인터넷을 통해서 퍼지면서 그의 인기는 크게 높아졌다. 특히 연인이 다이앤이라는 영국 방계 혈통의 여성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난 후에 그 인기는 더욱더 커졌다. 런던 사람들은 윤정철을 동양의 로빈 훗이라고 부르면서 크게 환영했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상황은 프랑스에 부임한 김수민에게도 일어나고 있었다. 시민들이 피부로 확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치안 상황을 바로 잡아주니 당연히 고마워 할 수밖에 없었다. 1년 동안 눈에 뜨이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역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했었던 한우리 연맹이었다. 하지만 따질 건덕지가 없다. 1년이 갈 것도 없이 이미 확고한 성과를 발휘한 것이다. 서툴게 트집이라도 잡았다면 역풍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덕분에 한우리 연맹의 명성은 세계에서 더욱더 높아졌다. 아울러 정운을 살짝 귀찮게 하는 일도 벌어졌지만 말이다. 한국의 여의도, 안에 있는 게이트 너머에 건립중인 신도시에 정운의 집무실. 거기서 정운은 두꺼운 서류철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다 협정 체결을 희망하는 나라들이라고?” “그렇습니다. 정운님.” “············.” 다이앤이 가져온 서류를 보면서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독일, 사우디 아라비아, 브라질··· 뭐. 샐 것도 없네. 나라란 나라는 다 열거하면 되겠어.” 정운은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내려놨다. 그리고 미하엘에게 말했다. “미하엘.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물을게. 지금 우리 전력으로 얼마나 더 커버 할 수 있지?”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안경을 슬쩍 올리면서 대답했다. “게이트의 방위와, 국내의 치안 유지,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에서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 놓고 온다고 해도···. 투여 할 수 있는 인원은 5만 정도입니다.” “빠듯하게 하면 국토 면적이 프랑스 정도 되는 나라 세 개를 커버 할 수 있는 숫자군.” “미국이나 중국 같이 국토 면적이 넓은 나라라면 하나도 커버하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거참····. 어떻게 한다···.” 정운의 고민은 역시 인력의 부재였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치안 유지를 실행하면서 다수의 범죄자들을 연맹으로 잡아오고는 있지만 놈들을 바로 연맹원으로 활동하게 할 수는 없었다.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절대적인 복종을 받아냈다고 해도 놈들은 범죄자다. 그런 범죄자들을 바로 세상에 풀어 놓으면 벌이 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놈들에게는 일단 외부 세계로는 보내지 않고 게이트 내부에서의 일을 시키고 있었다. 감시자를 붙여서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벌을 겸한 임무를 수행시키고 있었으며, 주 임무는 경계와 정찰 등이 주업무였다. 만약 남 다른 성과를 낸다면 형기를 줄여 주기도 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역시 아직은 세상에 풀어 놓기에는 시기 상조였다. “결국 아직은 머릿수가 많이 부족한가?” 정운의 푸넘에 미하엘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우리 연맹으로 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우리 연맹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자 귀환자들 중에 상당수가 우리도 연맹에 가입하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국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이들로 인해서 연맹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다만, 그들도 연맹의 일원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부족한 것은 시간인가? 쯧, 그것만큼은 어찌 할 도리가 없는데···.” 정운이 푸념하는 것을 들으면서 미하엘이 말했다. “조바심을 가지지 말고 기다려 주십시오. 적어도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정운은 너무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세계의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연맹을 움직이고 아직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이 정도의 성과를 발휘했으면 사실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기만 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 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이것 만큼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자잘한 일은 미하엘, 너에게 맡길테니 알아서 잘 처리 해 줘.” “알겠습니다. 정운님. 그래도 타국 중에 어디를 먼저 시행 할지는 지금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정운이 일을 다 맡기고 자신은 빠지려고 하지 미하엘이 일단 중요한 문제를 말했다. 그러자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한된 인력, 넘치는 오퍼. 이럴 때는 인력은 적게 들면서 보수는 많이 줄 수 있는 나라를 우선 하는게 좋지 않을까?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지.” 정운의 의견은 경제적인 관념에서 봤을때는 충실하게 맞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물망에 올리겠습니다.”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고 업무실을 나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중얼 거렸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되려 귀찮은 사람들이 꼭 있다니까··. 아니, 그녀는 천사인가?” 어쨌든 빨리 게이트 내부의 문제에 관해서 집중하고 싶은 정운이었다. 정운이 미하엘에게 귀찮음으로 일관하는 것은 정말 귀찮아서는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서 정운은 지금 게이트 내부의 사정에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만 집중하기도 모자란데 지금 다른 곳에까지 신경 쓰기에는 여유가 부족했을 뿐이다. “브로드 왕국이라···. 말만 용병 국가지 사실상 범죄 국가나 다름 없다고 했지. 이걸 어떻게 공략 할 수는 없을까?” 정운은 신세계의 지도를 펴고는 고민했다. 아직 자세한 정보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해로를 거치지 않고 육로를 통해서 대륙으로 이동하려고 한다면? 자신들이 우선적으로 거쳐야 할 나라는 브로드 왕국이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브로드 왕국. 속칭 대륙의 쓰레기통.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살 수 없는 낙오자들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가는 나라가 이 나라라고 한다. 쓰레기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나라의 주 사업 역시 대부분 범죄에 관련되어 있다. 마약의 재배와 밀매 정도는 귀여운 정도였다. 주변 국가의 국경지대 약탈은 물론이고 거기서 잡은 무고한 사람들을 통한 노예거래 등등···. 도저히 일국의 주력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인 사업들이 이 나라의 주력 사업인 것이다. 전체적인 국력은 대륙의 모든 국가들 중에서도 최하위이지만 이 나라가 아직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대륙의 타 국가들이 이 나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브로드 왕국을 정벌한다 치자.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나라의 국민들 태반이 거친 범죄자인 나라를 점령해서 어디다 써 먹겠다는 말인가? 거기다 브로드 왕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대륙 최강의 다크니스 왕국. 혹은 전쟁광인 오크족의 나라 크롱크 왕국을 넘어야 했다. 해로를 통해서 이동하지 않는 이상 육로로 갈 수 있는 최단 루트는 그 두 가지가 다였다. 유일하게 다크니스 왕국과 크롱크 왕국을 거치지 않고 접근 할 수 있는 라트란 왕국은 주 종족이 엘프인 나라다. 타국을 침략한다고 하는 것 자체를 상상 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 결국 대륙의 범죄자들을 한 곳에 몰아두기 위한 용도로··. 말 그대로 쓰레기통 취급 받고 있는 나라가 브로드 왕국인 것이다. 그런 나라가 지금 게이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정운은 우선 이 나라를 적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구워삶을 여지가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흠···. 지도와 주변 평판만 본다고 해서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단 말이야. 결국 직접 부딪혀 봐야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더니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어디론가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정운이 가는 길에 연맹원들은 정운을 보자 90도로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한국 서버 출신의 유저들이야 원래 정운의 평판이 한 성질 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알아서 숙인다 쳐도··. 타국 서버의 유저들도 이렇게 깍듯하게 대한다는 것은 정운이 한우리 연맹의 대표로 완벽하게 인정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정운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부하들 군기 상태가 아니었다. 부하들의 인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서 척척 걸어갔다. 그렇게 정운이 향한 곳은 이 게이트 너머의 신도시에서도 가장 엄중하게 지어진 장소. 바로 포로 수용소였다. 콘크리트로 한 겹. 강철로 또 한 겹을 싸서 만든 넓은 담장의 안에는 포로들이 엄중하게 가둬져 있었다. 사실 이전의 전투에서 배대호와 박추성이 잡은 포로들의 숫자는 대략 1,000명 정도였다. 그렇게 많이 잡았지만 사실 그들 대부분은 포로로써 쓸모가 없었다. 오크족 포로들 경우는 포로가 되는 것을 죽는 것 보다 더한 수치로 여기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포로로서 취급을 하려고 하자 말도 안 통하는 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미친 듯이 발광하면서 대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간 포로들··. 그들은 모두 브로드 왕국의 용병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소드 유저나 소드 익스퍼트 같은 존재들이었다. 정운에게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소드 유저는 그라운드 제로로 비교하면 레벨이 20~40정도 되었고 익스퍼트는 50~80정도는 된다고 했었다. 이 놈들은 포로로 잡고 초반에 실수를 좀 했다. 놈들이 벽을 부수고 탈출 하려고 하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평범한 죄수 취급했다가 범한 실수였다. 다행이 금방 제압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포로의 상당수가 사망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남아있는 포로들은 숫자는 대략 100명 정도··. 이들은 대부분 힘도 별로 없고 그냥 콘크리트 벽에 가둬 놓기만 해도 가둬 둘 수 있는 자들이었다. 예전에 한미 연합군이 괴멸 했을 때에는 이들 모두가 무슨 초인인지 안 모양이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초반 화력을 막기 위해서 오크 부족의 주술사들이 전방에 강력한 광범위 실드를 치고 최전방에서 배틀 오크족의 전사들이 광란해서 날뛰었기에 그렇게 일방적인 패배를 겪었던 것이다. 만약, 그때 한미 연합군이 상대 군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면···. 어차피 실드를 깰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아마 지기는 졌을지 몰라도···. 최소한 그렇게 허무하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현대 군대가 신세계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불리한 것은 메이지들의 방어 마법일 것이다. 그런 실드의 경우는 강하고 약하고를 넘어서 물리력으로는 깨지지가 않는다. 마법이나 기 같은 무형의 힘으로 직접 부딪혀야 깨지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만 아니라면 현대적 장비를 동원해도 적을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파우스트는 애당초 그걸 노리고 실드에 완전 물리내성을 심어 놓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후우··. 그 골치 아픈 자식···.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파우스트에 관해서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르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정운은 포로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헛!! 대표님. 오셨습니까?” 간수를 맡고 있던 귀환자 한 명이 정운에게 와서 깍듯하게 인사했다. “포로들과 얘기 하고 싶다. 한 명씩 자리를 만들어 줘.”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 작품 후기 ============================ 6월분 연재는 이게 끝입니다. 7월 한달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58화 간수는 정운을 한쪽에 있는 작은 심문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거기에 정운이 앉아있고 잠시 기다리자 포로 한 명이 쭈뼛 거리면서 다가왔다. 척 봐도 잔뜩 쫄아있는 그를 보고 정운이 짧게 말했다. “앉아라.” 정운이 앉으라 말했지만 그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뒤쪽에 있는 간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빨리 안 앉아!!!?” 후다닥!!! 간수가 으르렁 거리자 그는 전광석화 같이 자리에 앉았다. ‘제대로 잡았나 보군.’ 포로의 모습에서 간수를 향한 진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정운은 간수에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가서 술 한 한 병만 가져오지. 약간 독한 걸로.” “예? 술 말씀입니까?” 정운이 워낙 뜻밖의 말을 하자 간수는 자신도 모르게 대꾸했다. 그런 간수를 향해서 정운이 짧게 반복했다. “가져 와.” “예. 알겠습니다.” 간수는 군기가 잔뜩 들어서 그대로 술을 가지러 달려갔다. 그리고 간수가 간 사이에 정운은 피식 웃는 얼굴을 하며 포로에게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아나?” 정운의 질문에 상대는 한참 망설이는 얼굴을 하고 고민했다. 척 봐도 간수 보다는 훨씬 높은 사람 같은데 말 한마디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넙죽 엎드리면서 애원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철저한 약자의 모습을 보이는 상대를 보고 정운은 최대한 관용적으로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책망하지 않을 테니····. 난 이 한우리 연맹의 대표. 즉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옛!!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정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포로의 얼굴은 한층 더 잔뜩 굳어 있었다. “오늘은 너한테 묻고 싶은게 있어서 왔다. 제대로 대답한다면 너에게 나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알겠지?” “예. 뭐든 물어만 보십시오.” 정운이 그렇게 운을 때는 사이에 간수는 어디서 져 왔는지 제법 독한 브랜디를 가지고 왔다. 정운은 그걸 포로에게 직접 따라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가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얘기부터 시작해 볼까? 하나하나 다 말해 봐라. 사소한 것까지 최대한 놓치지 말고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 포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술잔을 눈치껏 홀짝 거리면서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말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간수가 보기에는 정운이 왜 이렇게 포로에게 친절한가? 약간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금방 풀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먹고 살려다 보니 브로드 왕국까지 도망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정말 약한 놈은 먹잇감 취급당하는 곳이라서 저도·······.” 처음에는 좀 쭈뼛 거리던 놈이 이제는 고향에 아는 형님이라도 만난 것처럼 주절저줄 자기 인생사를 털어놓고 있었다. 이게 바로 채찍과 당근, 거기다 술 까지 겸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였다. 원래 정운은 포로라고 나긋나긋하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여차하면 고문을 해서라도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미 간수가 포로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이 당근 역할을 해서 살살 달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갑자기 변경한 것이다. 이제까지 쭉 억업되어 있던 포로에게 있어서 정운이 사근사근하게 대하며 거기에 술까지 곁들이면···. 지금 이 포로처럼 자신이 물레방앗간에서 첫 경험 했던 것 까지 주저리 주저리 떠들게 되는 것이다. 이 남자의 인생 얘기는 사실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냥 그저 그런 인생사라고 해야 할까? 자신은 나름 파란만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듣는 정운읭 입장에서는 진부하기까지 했다. 마치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봐야 하는 것 같은 지루함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무거운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도망갔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살길이 막막하니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브로드 왕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거기에 간 것도 가고 싶어서 간게 아니라 몇몇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것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나라에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도망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브로드 왕국에 들어오고 나서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서 결국 어느 용병단에 자신을 팔았고, 거기서 짐꾼 겸, 말단 병사 겸, 요리사 겸····. 뭐 한 마디로 쫄다구로 전락하면서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제 인생 얘기의 전부입니다. 뭐 더 궁금하신 것 있습니까?” 술기운이 제법 올랐기 때문일까? 포로는 이제 제법 대범하게 정운에게 말하고 있었다. 정운은 거기에 괴이치 않고 대신에 놈에게 포로에게 물었다. “네가 있던 용병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지? 숫자는? 인원은? 가장 강한 전사의 수준은?” “뭐··.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냥 500명 정도··. 좀 많을 때는 1,000명을 찍을 때도 있다고 했지만 용병 조직이 좀 커지려고 하면 위에서 거물 조직이 찍어 누르고··. 혹은 NO.2가 갈라서 나가고··. 그렇게 하다 보니 그렇게 커지는 일은 잘 없습니다.” “그런가? 뒤통수 치는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이지?” “···예. 비일비재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많습니다.” “·········.” 파우스트가 만들면서 고사성으를 완전히 분리한 걸까? 아니면 이 놈이 무식해서 못 알아 듯는 걸까? ‘어쨌든 중요한 얘기는 아니니까 그냥 봐 준다.’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고 포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술을 계속 마시면서 주절주절 떠들었다. “그리고 우리 용병단에서 가장 강한건··. 역시 단장이었습니다.” “단장이라? 어느정도의 실력이었지?” “예. 익스퍼트 중급에 달하는 실력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보는 앞에서 강철을 서걱서걱 베어 버리고는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브로드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용병단은 어디지?” “예. 그거야 레어 스테이크죠.” “스테이크?” “아··. 죄송합니다. 레드 스네이크입니다. 하하하··. 웃기죠?” “···········.” 술이 사람 간을 참 팅팅 붓게 하는 모양이다. 놈의 뒤에서 간수가 뭐라 나서려고 했지만 정운은 눈짓으로 만류했다. ‘레드 스네이크라··. 그러고 보니 보고서에 나왔던 이름 같은데···.’ 정운은 그때 대략적인 정보를 우선시 한다고 해서 각국의 세부 정보는 그냥 한 번 읽고 말았었다. 워낙 두꺼운 파일이라서 그냥 그렇게 넘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관해서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 레드 스네이크라는 용병단에 관해서 아는 대로 말해 봐라.” “예. 레드 스네이크는 브로드 왕국의 최대 용병단으로, 그 산하 용병단체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사실 산하 용병단의 또 다른 산하 용병단 까지 합하면 몇 개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인원은 레드 스네이크만 해도 10만 명이 넘고 산하 용병단 까지 다 합하면 100만 명은 우습게 일어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듣고보니 레드 스네이크라는 용병단이 브로드 왕국의 실세로 보였다. 정운은 턱을 매만지면서 다시 물어봤다. “흠···. 국내에 그런 강력한 조직이 있으면 국가에서 싫어하지 않나?” “아닙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레드 스네이크의 단장이 브로드 왕국의 국왕인걸요?” “·····뭐라고? 용병단 단장이 국왕?” “예. 브로드 왕국은 워낙 그런 나라라서·····. 최강의 용병단 단장이 국왕을 역임 하는건 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름도 모른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암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공식 석상에는 항상 가짜들과 함께 가면을 쓰고 나타나고·····. 이름도 모르고 가족이 누구인지도 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설명을 들은 정운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일국의 국왕이 암살에 그렇게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그 나라 암살이 그렇게 많았나?” “역사상으로 많았던 시기에는···. 예. 한 달에 국왕이 열 번이 넘게 바뀌었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미치겠군.” 나라꼴을 유지하고 있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인 니라였다. 정운은 일단 이 포로에게서 들을 말은 거의 다 들은 것 같았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다 얻었군.’ “수고했다. 넌 돌아가 봐도 좋다. 그리고 간수.” “예. 대표님.” “이 친구 앞으로 조금은 편하게 지내게 해 줘. 조금은?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정운의 말을 어떻게 해석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수의 얼굴에는 뭔지 모를 굳은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렇게 정운은 사소한 배려를 하나 남긴 후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오늘은 포로들을 더 많이 만나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한 명과의 면담만으로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대강은 정해진 것 같았다. “내부에서 무너트리는 방식은 언제 해도 잘 먹히는 법이지.” 정운의 머릿속에서 모종의 작전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나날이 높아지는 한우리 연맹의 위상···. 다만 단체의 위상이 높아지면 항상 좋게만 작용하지 않는게 슬픈 사실이기도 하다. 어떤 조직이든 간에 인간이 조직을 만들고 나면 그 안에서 썩은 사과가 안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대부분 게이트 안에서 상주하는 연맹원이지만 가끔식 휴가를 통해서 게이트 밖의 지구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는 보통 한우리 연맹의 연맹원이라는 간판이 무척 잘 먹히는 법이다. 특히 여자들에게 말이다. “어머? 한우리 연맹에서 나왔다고요?” “그래. 여기 신분증 보여줄까?” 클럽에서 화장을 떡칠한 여자를 꼬시고 있는 연맹원은 득이양양하게 자신이 한우리 연맹의 일원이라고 여자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연맹원의 신분 구별을 위해서 따로 발급한 신분증은 요즘 들어서 한국에서 여자 꼬시기에 아주 좋은 아이템이었다. 아무 여자나 막 꼬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자는 얼굴보다 조건. 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여자들에게는 잘 먹혔다. 클럽에서 원나잇 상대 물색해서 하룻밤 즐기기에는 딱인 것이었다. 정운이 신의 맹세로 건 제약은 사람을 죽이거나 먼저 공격하거나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서로 합의하에 즐기는 행위라면 거기까지 브레이크가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여자들에게 둘러 싸여서 하룻밤 상대를 물색하고 있던 연맹원들은 순간 침묵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쪽을 향해서 동시에 시선을 집중 시켰다. 거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이 세 명이나 움직이고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늘씬한 모델 체형의 긴 다리가 쭉 뻗은 도도한 느낌의 동양인 여성으로 그녀는 약간 개량한 듯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매끈한 백금발을 하고 있으며 몽환적임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성은 대조적으로 무척 약간 소매가 낙낙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옷의 색깔은 보라색과 금색이 뒤섞인 화려한 컬러로, 어지간한 미모로는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이었지만 그녀가 입으니 마치 그녀를 위해서 만든 것처럼 완벽하게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한명은 이런 클럽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귀한 분위기를 온 몸에서 뿜어내고 있는 약간 웨이브진 금발을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옷차림은 무척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그러면서도 결코 화려하지는 않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고귀한 여성. 마치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앞에 두고 책 한권을 쥐고 있으면 루브루에 걸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예술적 풍광을 자아 낼 것 같은 우아한 여성이었다. 이 세 명의 여성이 동시에 있는 것 만으로 이 클럽안의 남자들의 시선을 다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들은 주변을 슬쩍 돌아보다가 자기들 끼리 뭔가 수근 거리더니 2층의 룸으로 이동했다. ============================ 작품 후기 ============================ 7월 분량 스타트입니다. 항상 작가의 의욕을 복돋아 주는 것은 독자 여러분들의 응원입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59화 <잠자는 사자의 콧털> “어어··? 간다. 가면 안 되는데··?”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연맹원들은 자신들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눈앞에 보고 그냥 보내는 불운을 자청하고 싶지는 않았다. 숫자도 딱 3대3으로 잘 맞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들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을 내 팽겨치고 재빨리 목표한 여자들에게로 향했다. “앗!! 뭐 하는 거예요? 아프잖아요?” “시끄러!! 집에 가서 화장 두께로 기네스북이나 도전해!!” 좀 전까지 쿵짝이 잘 맞던 사이었지만 이제는 철갑 화장녀 취급 하면서 떨쳐 버리는 연맹원들이었다. 눈 앞에 최고급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길바닥에 있는 널린 돌맹이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들은 다른 라이벌들을 제치고 일 순위로 여자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자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우··. 내가 살면서 본 여자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이네요. 저희는 한우리 연맹에서 휴가나온 연맹원인데···. 우리가 술 한잔 사드려도 될 까요?” 남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카드인 연맹원이라는 신분을 어필했다. 그 결과····. “꺼져.”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벙 쪄버린 그들을 두고 여자들은 스치듯이 남자들을 무시하고 이동했다. “여기 있는 것 확실해요?” “일단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찾아봐야죠.” “후우···. 내가 뭐 하는 짓인지···.” 여자들은 뭔가 푸념을 하면서 뭔가를 찾는 것처럼 움직였다. 남자들은 순간 여자들의 과격한 발언에 잠깐 먼칫 했지만 이내 다시 달라붙었다. 한 번 채였다고 떨어지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그냥 하룻밤 원나잇 대상을 넘어서 그녀들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인생 전부를 가져다 바친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걸 넘어서···. 그녀들에게 단 하룻밤만 사랑 받을 수 있어도 자신들의 목숨이 아깝지 않을 것처럼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같은 인간에 여성일 뿐인데도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들이었다. 그녀들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다른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였다. “잠깐··. 아주 잠깐만 시간을 내주면 안 될까요? 제발요.” 남자는 거의 예원하듯이 달라붙었다. 정운이 제약한 신의 맹세가 건재한 이상 힘으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그러니 그저 애원하며 달라 붙는게 최선이었다. 보통 이렇게 하지 않아도 한우리 연맹의 연맹원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의사, 변호사 이상 가는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었지만···. 이 여자들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효과는 고사하고···. 짝!!! “꺼지라고 그랬지? 어디서 천한 것이 함부로 앞을 가로 막는 거냐?” 고귀한 분위기를 전신에서 뿜어내던 웨이브진 금발의 여성은 유저들의 뺨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완전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남자들을 내려다보면서 무척 불쾌하다는 시선으로 내려다 봤다. 그리고 남자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자신은 레벨이 30대이다. 그런데 여자가 따귀를 날리기까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 귀환자?” 한국의 귀환자들을 95%이상 반 강제로 한우리 연맹에 가입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100%를 달성 할 수 있겠는가? 아주 작지만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귀환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혹시 이 여자들이 귀환자이고 자신들 보다 고레벨 출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낭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헛소리 작작하고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내 자비에도 한계가 있다.” 여자가 그렇게 말했지만 남자는 이미 여자가 귀환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약간 얘기는 쉬워질 수도 있었다. ‘이 여자 하나만 귀환자라면 우리 셋이서 공격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정운이 내건 신의 맹세의 조건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을 상대로 건 제약들이다. 상대가 귀환자라면 연맹원들이 더 위험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제약을 걸겠는가? 그러니 이 순간 남자들은 여자들을 강제로 잡아가서 어떻게 해 볼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자신들은 한우리 연맹의 연맹원이고 실제로 정운은 어지간한 귀환자들은 모두들 한우리 연맹의 테두리 안에 두려고 했다. 자신들만 해도 초반에는 거의 반 강제로 삼대 길드의 유저들에게 끌려오지 않았는가? ‘할까?’ ‘하자. 이건 땅에 떨어진 돈이야. 줍는 사람이 임자라고.’ 그들이 그렇게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여자들은 그대로 남자들을 무시하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곳은 바로···. “뭐야? 너희들 왜 왔어?” “정말··.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어떤 남자 한 명이 여자를 두 세 명 정도 끼고 벌이고 있는 술판이었다. 그 남자를 보는 여자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서려 있었다. “이게 당신이 화풀이하는 방식이야? 얼굴 별로인 여자들 옆에 끼고 술이나 진탕 퍼마시기?” 여자의 말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상관할 바 아니야. ···꺼져!!!!” 쨍그랑!!! 남자는 역정을 내면서 그대로 술병을 여자에게 집어던져 버렸다. 술병은 그대로 여자의 안면에 작렬하며 깨져 버렸다. “꺄악!!!!” 옆에 있던 여자들이 기겁을 하면서 떨어졌다. 여자의 안면에 술병을 집어 던지는 남자도 처음 봤고, 그런 남자의 술병에 맞고 피 한방울 안 흘리는 여자들도 처음 봤다. “·····명령이니 꺼지지. 우리는 당신 노예나 다름 없는 여자들이니까···. 하지만 기억해 둬. 지금 당신의 모습을 좋아할 여자는 아무도 없어. 심지어 그녀라고 해도 말이야.” 얼굴에 술을 뚝뚝 흘리면서도 아름답고 고귀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여자는 그대로 눈물을 훔치면서 뒤 돌아섰다. 그리고 그런 여자의 뒤편에서 연맹원들이 기세 등등하게 서 있었다. “이런이런···. 여자한테 이런 대우를 하는 쓰레기에게 당신들 인생을 허비하면 안 되죠. 저 쓰레기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아가씨들.” 그 짧은 순간에 작전을 수행한 걸까? 여자들이 남자에게 모독을 당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착한 남자 캐릭터로 작전을 수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여자들의 분노를 샀을 뿐이었다. “커억!!!!!” 말을 하던 남자는 그대로 목이 한손에 잡혀서 위로 올려졌다. 남자를 한 손으로 대롱대롱 들어올린 상대는 검은 머리를 짤게 숏커트의 늘씬한 체형의 여성이었다. 머릿결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그 짧은 숏커트의 헤어조차도 그녀가 조금만 움직이면 탄력 있게 찰랑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목을 잡혀서 올라간 남자는 단순히 숨이 막히는 것을 넘어서 전신을 휘감는 살기에 세포 하나하나가 완전히 얼어붙은 것 같았다. “너 따위가····. 감히 누구한테 쓰레기 운운하는 거냐? 쓰레기.” 여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진득한 살기가 실려 있었다. 순간 목이 잡힌 연맹원은 실로 오랜만에 죽음의 공포를 실감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초보 시절 멋 모르고 필드에서 무리를 하다가 한 번 겪었던 그 감각··. 지금 난 죽을지도 모른다는 찐한 위기감. 그것이 전신을 휘감았고 그의 다리 사이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때··. “집어 치워. 술맛 떨어지게····.” 뒤편에 있던 남자는 그대로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여자를 말렸다. “············.” 검은 숏커트의 여자는 그대로 추태를 부린 연맹원을 놔 버렸다. 그리고 남자는 그대로 여자들을 데리고 사라지면서 연맹원들에게 던지듯이 말했다. “····정운이 놈 얼굴 봐서 봐줬다. 다만 두 번째는 없을 줄 알아.” 그리고 남자는 그대로 세 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뒤에 남은 세명은 중얼 거렸다. “····정운이? 그게 누구야?” “글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설마 자신들에게 있어서 하늘과 같은 박정운이라는 이름은 언듯 떠오르지 않는 연맹원들이었다. “뭐? 휴가 갔던 연맹원들이 정체불명의 귀환자에게 박살이 났다고?” “예. 그렇다고 합니다.” “상대는 몇 명이었는데?” “남자 한 명에 여자 세 명이라고 합니다.” “네 명이라···. 인상착의는?” “예. 남자는 겉보기에는 아직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용모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나이는 좀 더 많은 것처럼 행동 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여자들은?” “그게···. 한명은 짧은 숏커트의 흑발,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모두 금발의 외국인이라고 했습니다. 한명은 백금발의 스트레이트 헤어. 그리고 또 한명은 살짝 웨이브져 있는 완전 블론드라고 합니다. 체형은 모델 같은 체형에 균형 잡여 있····.” “어째 여자들 묘사만 너무 디테일 한 것 같은데···. 예쁘냐?” “엄청 예쁘다고 합니다.” “그럼 그렇지···. 어쨌든, 우리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귀환자란 말이지····. 흠, 어떻게 한다···.” 보고를 받은 100인장은 고민에 빠졌다. 참고로···. 한우리 연맹의 계급은 정운이 복잡하게 하지 않고 딱 간단하게 숫자로 끊어서 만들었다. 10인 일조로 한 10인대의 조장인 10인장. 그 10인대가 열 개 모여서 만드는 백인대의 관리장인 백인장. 그리고 그 백인장의 위에 있는 천인장. 여기까지가 중간 간부들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임무나 능력에 따라서 좀 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간단하게 숫자로 분류했다. 최근에는 미하엘이 그렇게 간단하게 종적 계급만 만들지 말고 공무원들이 1급부터 9급까지 직급을 매기듯이 연맹원들도 급수가 있게 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급수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 백인장 정도면 공무원으로 치면 지방 군청의 과장이나 계장 정도는 되는 위치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제 한우리 연맹은 국내의 귀환자들을 무작정 잡아들이지 않는다. 처음에 정운이 그렇게 했던 것은 최대한 빠르게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했던··. 일종의 극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연맹원의 숫자도 순조롭게 늘어가고 있는데 굳이 귀환자들을 강제로 끌어 들일 필요는 없었다. 까닥 잘못 하다가는 긁어 부스럼이나 생길 수 있었다. 대신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인되는 귀환자들에 한해서는 얄짤 없이 잡아서 신의 맹세로 복종 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굳이 그들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부하들이 공격당하고 듣자하니 바지를 축축하게 적시는 망신도 당했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냥 놔두기에도 연맹의 체면이 걸리는 것 같았다. “음, 하나만 물어보다. 그 놈들이 먼저 공격당한 것 맞는 것 확실하냐?” “예. 본인들 입으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정말이야? 괜히 작업 걸려고 하다가 역으로 쳐 맞고 와서 화풀이 하는 것 아니야?.” “설마···, 간이 팅팅 붓지 않고는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설마에게 전공이 있다면 아마도 사람 잡는 것일 것이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 놈들이 있는 장소는 알아냈겠지?” “예. 물론입니다. CCTV의 영상을 입수해서 따라따라서 찾아냈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간단하지.” 백인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자신의 직속 부하에게 말했다.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내 밑으로 다 모이라고 그래. 한우리 연맹에 대항한 말로를 깨닫게 해 줘야 겠다.” “예. 알겠습니다. 백인장님.” 그렇게 해서 레벨 50대의 백인장을 포함한 나머지 부하들이 한꺼번에 정체불명의 귀환자에게 향했다. “본때를 보여주마.” 기세등등하게 말이다. 만약 상대가 누군지 알았다면 고작 100명 남짓의 유저들이 싸우러 가지는 않았을 텐데····. ============================ 작품 후기 ============================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누군지 아시겠죠? 아마 알거야..... 복선으로 숨기는게 의미가 있기는 있나 싶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60화 “이것들이 간이 부었나?” “확 게이트 너머로 찾아가서 따져?” 서울의 어느 뒷골목의 건물···. 거기에 여자 두 명이 씩씩 거리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발치에는 수많은 연맹원들이 나가 떨어져 있었다. “으으···. 이 괴물들····.” “크으윽··. 제발 누가 힐 좀··. 내 팔 부러 졌나봐.” “으으으으····.” 백인장이 이끌고 간 부하들은 모두 전멸해 버린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기세등등하게 가장 선두에 있던 백인장은 제일 먼저 뻗어 버렸다. 노리고 있던 적의 집을 알아내고 절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부하들을 다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패. 아니 패라는 말이 들어가기도 쑥쓰러울 정도로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문을 쾅쾅 두드리고 나오라고 경고를 하자 집안에서는 두 명의 여자들만이 나왔다. 금발에 스트레이트 머리를 하고 있는 서양 미인과 짧은 숏커트에 늘씬한 체형을 하고 있는 동양형 미인. 이 둘이 나와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했다. “오늘 아침 일찍 잠들었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일단 맞고 얘기하자.” 보는 순간 본연의 목적을 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들이 눈앞에 나와서 한 말은 어이를 상실하게 하기 충분했다. ‘이 여자들은 분위기 파악도 못 하나? 정신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가?’ 라고 백인장이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인아. 네가 처리해라.” “예. 알겠어요.” 여자들 중에 한 명이 돌로 된 비파를 소환했다. 그걸 보고 상대가 귀환자라는 것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백인장은 머릿속에서 뭔가가 아슬아슬하게 떠 오르려고 했다. “돌 비파? 그걸 무기로 쓰는 사람은 소문으로 딱 한 번····.” 띠리링!!!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돌 비파의 선율이 이어지는 그 순간 그대로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덮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가장 전방에 있던 백인장이 뒤로 날라가고 연이어서 날아간 충격파가 일행을 한꺼번에 덥쳤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마치 CG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인간들이 한 꺼번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쯧, 애송이들이···.” “죽인건 아니지?” “안 죽였어요. 안 그래도 안 죽을 정도로 어중간하게 조절하는게 더 힘든데 말이죠.” 돌 비파를 다시 돌려놓으면서 푸념을 하는 여성은 그대로 백인장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쓰러진 백인장의 턱을 발등으로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잘 들어. 우리 귀찮게 하지 마라.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그때는 게이트 안으로 쳐들어가는 수가 있다. 알겠냐?” “이이익···. 감히 감히 우리가 누군줄 알고···.” 뻑!! 말을 하던 백인장은 그대로 이마에 힐의 굽 자국이 난 상태로 쓰러져 버렸다. “····말이나 마저 하게 해 주지 그래?” “들어봤자 무익해요. 들어가죠. 저 졸려요.” “나도 그래.” 그렇게 담담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들이었고,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린 연맹원들은 완전히 뻗어버린 자신들의 백인장을 들쳐 업고 일단 후퇴했다. “두고보자··. 다음에는 간부님들이 직접 올거다.” “저 망할 마녀들··. 다음에는 절대 그냥 두지 않겠어.” 자신들이 직접 응징할 힘도 없으면서 백만 믿고 설치는 찌질한 인간들 백 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후우···. 사람이 없네. 사람이···.” 정운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브로드 왕국으로 진출하기 위한 작전을 수립하고 그걸 실행할 여건도 대강 마련되었다. 다만 문제는 그 작전을 실행 할만한 지휘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운이 세운 작전은 브로드 왕국을 내부에서 야금야금 갉아 먹기 위한 작전이었다. 작전의 내용은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강자 하나가 구심점이 되어서 연맹원들을 이끌어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정운은 처음에 자신이 직접 이 작전을 실행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운의 말을 들은 연맹원들은 간부는 일제히 거절했다. “넌 연맹 대표라는 자각이 있냐? 없냐!?” 가장 먼저 배대호가 말했다. 그리고 박추성도 말을 덧붙였다. “왜 네가 직접 움직이는데? 넌 여기 신도시에 짱 박혀 있어야 돼. 이 멍청아!!” 심지어 정운에게 가장 예의를 많이 차리는 홍린마저····. “대표님, 제가 대표님에게 단 한 번도 무례하고 군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겁니다. 하지만 지금 대표님이 한 생각은 멍청해요.” 모든 간부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직접 간다는 선택지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 이외에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는 건데···. 사실 이 작전의 지휘관은 90~100레벨 정도 간신히 되고 있는 삼대 길드의 간부 출신들이 대거 투입 되고도 그 이상의 실력자가 한 명은 필요했다. 박추성 배대호. 이들이라면 실력은 나무랄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도 정운과 더불어서 이 게이트의 방위를 책임지는 필두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이 함부로 빠진다는 것은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수민과 윤정철, 홍린, 그리고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도 무리였다. 능력은 나무랄대 없지만 이들은 외국의 치안 유지를 위해서 현재 게이트 밖으로 나가 있었다. 지금 한우리 연맹이 외부에서 치안 유지 의뢰를 받아서 안정시키고 있는 나라는 자국인 한국을 포함해서 다섯 개다.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워싱턴 주, 그리고 중국의 베이징 인근이었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경우는 의뢰금은 빵빵하게 준다고 했지만 그 토지와 인구가 너무 방대해서 도저히 관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과 중국에서 알아서 해결책을 가지고 왔다. 일단 수도 인근만이라도 관리해 달라. 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정도라면 오히려 더 적은 인력으로 확실하게 관리 할 수 있었다. 윤정철이 영국, 김수민이 프랑스, 장 그레고리가 중국의 베이징, 홍린이 독일, 그리고 다이앤이 워싱턴에 상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 지역이 완전히 안정화 될 때까지는 계속 거기에 상주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지금 남아있는 가용 인력은 기껏해야 슬기 정도인데···. 정운은 절대로 슬기가 그런 임무에 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슬기는 항상 자신의 눈이 닿는 곳에 두는 것이 정운의 절대 조건이었다. 자신이 직접 간다면 혹시 모를까? 슬기만 거기에 따로 보낸다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고심 끝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 거렸다. “후우···. 영국팀의 마이클씨나 프랑스의 피에르씨에게 부탁해야 하나?” 영국팀의 마이클 핸더슨, 프랑스의 피에르 아르네제데. 이 둘은 각각 프랑스와 영국의 NO.2로 그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마이클 핸더슨의 레벨은 187, 피에르 아르네제데의 레벨은 191이었다. 이 정도면 임무를 맡기기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이 둘은 한우리 연맹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리더는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각자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를 따라서 중국과 미국으로 떠나 있는 상태였다. 그들을 소환해서 일을 시킨다고 해도 이 중요한 임무에 열성적으로 임할지도 살짝 의문이었다. 명령을 하면 듣기는 들을테고 여차하면 신의 맹세라는 수단도 있기는 하지만···. 고위 간부에게 신의 맹세를 걸었다가는 간부들의 신망을 잃을 수도 있었다. 결국은 작전을 세우고도 그 작전을 진행할 사람이 없어서 고민인 것이다. “쳇····. 정 안되면 그냥 마이클이나 피에르를 불러오는 수밖에···.”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리고 있는 사이에 미하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운님. 보고 드릴게 있어서 왔습니다.” “보고? 무슨 일인데?” “국내에서 누군가가 우리 연맹원들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연맹원을 폭행? 누가? 몇 명이나 당했는데 나한테 보고가 올라와?”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잠시 한 숨을 쉬다가 말했다. “상대는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몇 명이냐 하면···. 백인대 세 개랑 천인대까지 하나 박살 났습니다.” 보고를 들은 정운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국에서 어지간한 귀환자들을 전부 흡수했다. 그런데 천인대를 박살낼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있단 말인가? “·······장난 하는 거지?” “아닙니다. 이걸 보시겠습니까?” 미하엘은 정운에게 태블릿을 내밀어서 하나의 영상을 재생 시켰다. “어떤 시민이 찍어서 인터넷으로 올렸습니다. 빨리 대처해서 퍼지는 것을 막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돌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면 한 개의 영상을 재생 시켰다. 거기에는 한우리 연맹의 연맹원들이 때거리로 박살이 나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도 상대는 단 한 명이었는데 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돌비파를 들고 음파를 이용한 공격으로 연맹원들을 추풍낙엽처럼 박살내고 있는 여자는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영상을 보는 정운의 눈빛이 부릅 커졌다. “이건····? 미하엘!! 이거 어디야?” 정운이 다급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미하엘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시는 분입니까?” “····알다 마다지.” 미카엘에 의해서 얼마 전에 태어난 미하엘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정운의 비서로 배속 되었다. 즉, 그녀는 모르는 것이다. “중겸이 형님, 어디에 숨었나 싶었더니 이제 찾았네.” 한중겸이라는 존재를 말이다. “오늘이야 말로 그 건방진 년들을 박살을 내 줄테다. 이 이상은 우리 한우리 연맹의 치욕이다.” 한국의 서울 치안을 맡고 있는 천인장이 이를 갈면서 부하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전에 있던 토벌 작전이 2분만에 사망 제로, 전원 중상이라는 처참한 결과로 끝난 후 그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연맹 내부의 자신의 연줄을 총 동원해서 경기도 주변에 있는 세 개의 천인대를 모두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걸 가정집 하나를 습격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천인장은 부하들을 모아두고 작전에 앞선 최종 작전을 설명하고 있었다. “적은 음파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 광범위하고 강력한 공격이다. 그러니 초반에는 적의 힘이 빠질때까지 철저하게 방어에 주력한다. 탱커와 힐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라.”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주변의 시민들은 다 대피 시켰으니 전력을 다해라. 상대를 같은 귀환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보스몹을 레이드 한다는 심정으로 임하도록.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천인장의 명령에 부하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천인장의 말에 심드렁한 대꾸가 들려왔다. “관둬라. 너희들이 때거리로 달려든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누가 감히····. 엇!!! 대표님!!!” 무험하게 한우리 연맹의 천인장 정도나 되는 자신에게 무례한 망발을 하는 놈이 누구인지 분기탱천했던 천인장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거기에는 자신이 하늘처럼 생각하는 정운이 있었던 것이다. 천인장으로 임명 받을 때 딱 한 번 보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정운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천인장은 마치 신을 직접 배알한 종교인처럼 넙죽 엎드렸다. “서울지부 천인장 김진수 대표님을 뵙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운은 피식 웃었다. “됐다. 그보다 너희들은 그냥 물러가라.” 정운의 말에 천인장은 고개를 들어서 말했다. “대표님. 저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대로는 믿고 맡겨주신 대표님의 신뢰에 저희가 면목이 없습니다. 대표님의 손을 빌릴 것 까지 없이 저희가···.” “시끄러. 너희들이 만 명이 모인다고 해도 어차피 소용없어.” “하지만····.” “내가 하는 말 못 듣겠다 이거냐?” 정운이 다소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천인장은 황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감히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 작품 후기 ============================ 충성도 지나치면 오히려 불쾌감으로 다가오는 법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61화 “···········.” 정운은 황급하게 사죄하는 천인장을 그냥 지그시 내려봤다. 충성도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다. 괜히 위에 잘 보이려고 무리를 하다가 일을 마치는 지휘관은 절대로 좋은 지휘관이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런 지휘관들은 있었다. 왕에게 칭찬 좀 받아 보겠다고 공적을 탐해서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고 무리를 거듭해서····. 결국은 당연히 이길 수 있는 전쟁을 패배로 몰아가는 무능한 지휘관들이 제법 있었다. 만약 이번 상대가 한중겸이 아니었다면? 만약 파우스트가 어떤 수작질을 이용해서 몰래 파견한 적이었다면?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연맹원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정운은 처음에는 봐 주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집과 고집으로 가득찬 이 천인장에게는 아무래도 약간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정운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난 분명이 말했다. 애당초 너희가 상대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그보다··. 병력을 이렇게 동원하기 전에 상부에 보고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나?” “그것이···. 이런 보잘 것 없는 일로 대표님이 신경을 쓰실 것 까지는 없다고····.” “닥쳐라!!!” “·············.” “신의 맹세에 의거해서 묻겠다. 솔직하게 대답하라.” “··············.” 천인장은 이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 천인장에게 정운이 말했다. “부하들이 당한 것 때문에 오히려 문책 받을걸 겁내서 네 선에서 묻어 버리려고 한 것은 아니냐?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솔직하게 대답하라.” “그···. 그건····.” 입이 바싹 마르는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도 천인장은 감히 거짓을 말 할 수 없었다. 신의 맹세라는 능력에 묶여 있는 그는 정운이 그 맹세에 의거해서 묻는 말에는 무조건 진실만을 대답해야 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감히 연맹에 해가 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결국 천인장은 머리를 바닥에 박고 무조건 정운에게 싹싹 빌었다. 그런 천인장을 보고 정운은 다소 싸늘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넌 천인장에서 해임, 십인장 부터 다시 시장한다. 그리고 근무지도 내일부터 신세계 내부의 순찰 부대로 전출 시킨다. 알겠나?” 정운의 말에 전 천인장은 이제 고개를 바싹 숙이면서 사죄를 거듭했다. “옛. 감사합니다.” 천인장이 십인장으로 강등. 그리고 가장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세계의 내부 순찰 부대로 전출이라는 말은 상당한 중징계였다. 하지만 정운의 심기를 거스르고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에 그는 그저 감사 또 감사할 뿐이었다. 정운은 그렇게 연맹원들을 모두 해산 시키고 자신이 직접 그 집으로 향했다. “····이런 집은 어떻게 산 거지? 사긴 산 건가? 뺏은 것 아니야?” 정운 자신은 국가에서 예산 받고 이런저런 수를 써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6.25전쟁 시대의 인간이었던 한중겸이 갑자기 21세기로 날아와서 1년 만에 자기 집 마련한 비결이 뭔지 궁금한 정운이었다. “뭐, 재주 좋은 인간이니 뭔가 방법이 있었겠지. 그보다 미하엘.” “예. 정운님.” “그건 준비했지?” “예. 준비했습니다.” “좋았어.” 정운은 그렇게 중요한 그것을 확인한 후에 정문으로 가서 문을 쾅쾅 두들겼다. “계십니까? 한우리 연맹에서 놀러 왔습니다.”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잠시 후···. “정말 이 찐드기들은····. 정말 하나 둘 정도 죽어나가야 직성이 풀리겠어? 너희들 안 죽게 조절 하는게 더 귀찮···. 응? 박정운?” 잔뜩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밖에 나왔던 왕귀인은 정운을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랜만입니다. 왕귀인 형수님.” 정운을 한 눈에 알아본 왕귀인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용케 여기 있는걸 알았네?” “그만큼 거창하게 일을 벌이고 모르기를 바라는게 이상한 거죠? 중겸이 형님 안에 있습니까?” “아니 없어.” “알겠습니다. 있다는 말이군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 안으로 척척 들어갔다. 왕귀인은 그런 정운을 보고 한 소리 하려고 했지만 그냥 그만 뒀다. ‘····어차피 지금 그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저 남자 뿐일지도 모르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정운을 따라 들어갔다. 정운이 안에 들어가자 거실에서 사이좋게 TV로 드라마 돌려보기를 하고 있는 메두사와 아테나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봅니다.” “지금 중요한 순간이야.” “············.” 드라마에 잔뜩 몰입한 두 여자는 정운이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브라운관의 세계에 몰입했을 뿐이었다. 정운은 그런 둘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둘 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월드 서버의 보스몹이었는데····.’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서 감자칩이나 아작아작 씹어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한 명은 여신이고 또 한명은 여신도 질투하는 전설의 미인이니 오죽하겠는가? 한숨을 내쉬는 정운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왕귀인에게 말했다. “형님 어디 있어요?” “저쪽 방. 하지만 안 들어 가는게 좋을 걸?” “들어가겠습니다.” 정운은 왕귀인의 말을 무시하곡 그래도 한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왕귀인이 말했다. “난 경고했어.” 정운은 나중에 생각했다. “오····. 빌어먹을····.” 왕귀인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고 말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한중겸이 어떤 여자하고 한창 섹스하는 도중에 들어가서 짜증이 팍 나는 사태는 피했을 테니 말이다. “아아···. 아아····.” 여자는 한중겸의 어깨에 두 다리를 감고는 그대로 한창 쾌락의 절정에 도달해 있었다. 한중겸은 그런 여자의 몸 위에서 한창 섹스에 열중하다가 누가 들어온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후우···. 으음···. 어? 정운이 너냐? 오랜만이다.” “···············.” 한창 행위에 열중하고 있던 한중겸은 자기 목까지 올라온 여자의 다리를 풀어내며 자세를 바꿨다. 그리고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으로 굳어있는 정운에게 말했다. “5분만 기다려. 금방 끝·····.” “기다리겠냐? 인간아!!!!!!!” 정운의 고함 소리가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렸다고 한다. 결국 5분후···. 한중겸은 옷을 입고 정운의 앞에 나타났다. “계속 네 쫄다구들이 귀찮게 하기에 곧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늦었구나.” “좀 더 늦게 올 걸 하며 후회합니다. 그럼 못 볼꼴을 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인간이 오랜만에 찾으니까 하는 꼴이 다시 얼굴도 본적 없는 여자하고 뒹굴고 있는 꼬라지라니···. 정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아가씨는 또 누구입니까? 여자를 또 늘렸어요?” “소개할게. 저 여자는····.” 정운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한중겸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말했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무래도 늘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름도 몰라요?” 정운이 물어보자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게 하룻밤 살 비비는데 필요해?” 너무나 태연한 그의 말에 여자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 이름 어제 말 했잖아요?” “음·····. 아! 미영이?” “한 글자도 안 같거든요!!!!” 여자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걸 보면서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찍기에는 소질이 없나 봐. 그냥 가르쳐 주면 안 돼?” “이익·····. 내가 똥 밟았다 치고 말지.” 여자는 그렇게 신경질을 내면서 현관에서 자기 신발을 신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잘가!!” “죽어버려!! 이 개새끼야!!!!” 좀 전에 사랑을 나누던 모습은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여자였다. 그리고 한중겸은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정운에게 다시 말했다. “이름은 모르겠어. 그냥 삐짐이라고 하자.” “중겸이 형님·····.” 정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원래 여자관계에서 약간 방탕한 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말이지·····.’ 그런데 그라운드 최종전에서 이민지가 죽고 난 후에 이렇게 까지 막 나가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주변을 보아하니 왕귀인이나 아테나, 메두사들도 그런 한중겸의 태도에 반쯤 포기 해 버렸다는 태도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호화 미녀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면서 새삼 원나잇 여자를 헌팅 할 이유가 있기는 한 건가?’ 누구는 여기 있는 여성들과 하루 정도 데이트 할 수만 있어도 수억을 내놔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 인간들이 수두룩 할 것이다. 하지만 한중겸은 그냥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세 명의 여자들도 한중겸이 다른 여자를 안는 것에 별 상관이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운이 그녀들을 바라보자 왕귀인이 한숨을 내쉼녀서 말했다. “묻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아요. 설명하자면···. 포기 했어요.” “그 말 한마디면 대부분의 상황은 설명이 되네요.”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했고, 정운은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진정 시켰다. ‘진정하자. 나한테서 떨어져 나간 후에 어느 정도 실의가 컸을 것은 어차피 예상했던 것이었잖아?’ 그렇게 애써 현재의 상황을 납득 시킨 정운은 한중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중겸이 형님. 제가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신 줄은 대강 예상하고 있죠?” “뭐 대강은. 답부터 주자면 난 이제 골치 아픈 일은 하기 싫다.” “형님····.” “한우리 연맹이라····. 너 결국은 또 파우스트에게 도전할 생각이냐? 또, 너 역시 세레나를 잃어 놓고서는?” 우직!!!! 순간 정운과 한중겸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 물리적으로 일그러졌다. “················.” 정운은 좀 전에는 짜증난다는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살기가 깃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중겸이 건드린 상처는 박추성이나 배대호라고 해도 정운의 앞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 만큼 예민한 구석이었다. 하지만 한중겸은 태연하게 정운의 상처를 후벼팠다. 자신도 그에 못지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말이다. “····아직 세레나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건 민지 누님도 마찬가지일거고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었다. “그래··. 천계에서는 말했지. 영혼이 멀쩡한 이상 파우스트가 만든 세계에 그녀들이 전생 했을 것이라고 말이야.” “···············.” “그런데 말이야. 그게 어쨌다는 거냐?” “전생이라? 환생이라? 그게 정말 세레나냐? 정말 민지야?” “················.” “찾아서 뭘 어쩔 건데? 우린 전생에 연인이었어. 그러니 우리는 다시 사랑해야 해. 왜? 이건 운명이니까? 라고 3류 드라마 대사라도 해 볼 거냐?” 한중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정운의 심장을 후벼파고 있었다. 천계에서 말을 듣기는 들었다. 천사인 세레나나 고위 유저인 이민지 정도의 영혼은 틀림없이 환생을 했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파우스트가 만든 세계의 그릇으로 쓰였으니 환생하는 것도 파우스트가 만든 신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전생 자체를 하는 것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정운은 그 말에 유일한 희망을 느끼고 세레나를 꼭 찾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겪고, 같은 말을 들었지만···. 한중겸은 그 말에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느꼈던 것 같다. 한중겸은 침묵하고 있는 정운을 눈앞에 보고 말했다. “이제 그만 둬라. 편하게 살아. 세레나가 보고 싶냐? 그럼 어디 금발 여자라도 꼬셔서 품에 안아? 너 정도면 줄 설걸? 그것도 아니면 슬기를 금발로 염색 시키고 컬러 콘택트렌즈 라도 끼우게 하든가? 걔는 네가 시키면 할 걸?” “형님····. 더 이상 지껄이면 형님이라도 참아주기 힘듭니다.” 우지직··. 우직···. 정운의 기세가 개방 되면서 이 집이 통체로 삐걱 거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한중겸은 쇼크로 잔뜩 삐뚤어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중겸 보다 더 삐뚤어진 사람도 있기는 있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62화 <한중겸 돌아오다> 지금 한중겸이 한 말들···. 그 한마디 한마디가 설령 일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정운의 앞에서 했다가는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참았다. 정말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은 것이다. 사실 정운이 이렇게 참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상대가 한중겸이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이 아직 월드 서버에도 진출하지 못했던 시절에 한중겸이 준 도움이 정운이 크게 도약하는 것에 큰 힘이 되었다. 그 후에도 거의 의형제나 다름없이 절친한 사이로 함께 지내왔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세레나나 슬기처럼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면 정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한중겸이었던 것이다. 그런 한중겸이었기에 참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정운이 한중겸하고 싸우면 서울이 통째로 작살 날 것이다. 정운하고 한중겸이 싸우면 정운이 이기기는 하겠지만 그냥 끝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단 둘의 싸움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한중겸의 소환수 겸 애첩으로 함께 있는 저 세 명의 여자들. 왕귀인, 메두사, 아테나. 모두들 월드 서버에서 보스몹, 혹은 준 보스급이었던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이 가세하면 정운이라고 해도 주변 상황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서울이 폐허가 되기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흠······.” 정운의 경고에 한중겸 역시 도발을 더하지는 않았다. 그라고 해서 정운하고 싸우는게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한중겸은 정운과 달리 그냥 만사가 귀찮아서일 뿐이지만 말이다. 정운과 한중겸은 한참을 서로 바라봤다. 정운은 자신이 예상하던 것 이상으로 망가져 있는 한중겸을 보고 짜증이 나고 있었고···. 한중겸은 한중겸대로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파우스트에게 맞서고 있는 정운이 답답했다. 마치 친형제처럼 친했던 둘이었기에 지금의 간극은 한층 더 무겁게 다가왔다.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미하엘에게 말했다. “미하엘. 그것 좀 가지고 와.” “예. 알겠습니다. 정운님.” 미하엘이 가져온 것은 007케이스에 든 두 개의 파일들이었다. “하나는 우리 연맹에서 지금까지 수집한 신세계에 대한 자료입니다.” “그래? 어떻게 하면 되는데? 폐품 수거일에 내다 버리면 되는 거냐?” 타국의 첩보 기관에 가져다 팔면 수백억은 너끈하게 넘게 받을 수 있는 정보가 쓰레기 취급 받아 버렸다. 하지만 정운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또 하나는 지금 우리가 다음에 실행할 작전 파일입니다. 이 작전에서 전 형님이 총 책임자의 자리를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할 거라고 생각하냐?”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건 형님 마음이죠. 사실 형님이 거절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는데···. 이렇게 망가진 줄을 몰랐거든요.” “망가져서 미안하네.” 투덜거리는 한중겸을 향해서 정운이 다시 말했다. “하나만 말해 두죠. 형님이 찾지 않아도 전 미리 누님을 찾아내겠습니다.” “·················.” 처음으로 한중겸의 태도에서 유들유들한 태도가 사라졌다. 잔뜩 굳어있는 표정을 하고 있는 한중겸을 향해서 정운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때 형님이 미리 누님을 거부한다면?” “················.” “그때는 제가 형님을 형님이라고 부를 일은 평생 없을 겁니다.” 정운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현관까지 따라 나온 왕귀인이 정운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고마워.” “이제 형수님들 하기에 달렸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한마디 말을 남기고 그대로 떠났다. 그날 밤. 한중겸은 침실에서 몰래 일어나서 거실에서 정운이 남겨준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 자식····. 용케 여기까지 조사를·····.” 한 눈에 알고 있었다. 중간에 쇼크 먹고 리타이어 해 버린 자신과 달리 정운은 아직까지 계속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말도 안 되는 파우스트를 상대로···. 악마도 천사도 자신의 장기말쯤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신이 되겠다는 터무니없는 괴물을 상대로····. 정운은 아직도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그 괴물의 목을 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하고 있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 딸칵. 한중겸이 서류에 너무 집중했기 때문일까? 왕귀인이 거실의 불을 키기 전까지는 한중겸도 그녀들이 모두 깨어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너희들······.” 어느새 왕귀인, 메두사, 그리고 아테나까지 모든 여자들이 깨어있었다. 아테나가 한중겸의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생각 있는 거지?” “·······아니. 그렇지 않아. 그냥 정운이 자식이 하고 있는게 뭔지 궁금해서 봤을 뿐이야.” “나한테 그런 거짓말이 통한다고 생각해? 아무리 가상의 존재라고는 해도 난 여신이라는 격을 지니고 있는 존재야.” “················.” 메두사의 말에 한중겸은 침묵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사실 그녀들을 속이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한중겸은 이들의 소환주고 그녀들은 한중겸의 일부나 다름없는 소환수들이니 말이다. 한중겸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의 변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메두사가 말했다. “아직 싸우고 싶은 거지? 애당초, 아무 의미 없이 하루하루 여자들하고 몸이나 겹친다고 메워질 허무가 아니었어.” “············난, 내가 다시 전쟁터에 서면 그때는 너희들도 함께 서야 해.” “그래서? 그게 무서워? 당신 곁에서 우리까지 사라질까봐?” 아테나의 말은 한중겸에게 핵심을 찔렀다. 정운이 세레나를 잃고 슬기를 한층 더 싸고 돌기 시작한 것 처럼···. 한중겸도 민지가 죽은 후에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세 명의 여인들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슬기와 세레나를 동시에 사랑하던 정운과 달리 한중겸의 경우는 사랑하는 여인은 딱 한명이라고 정해져 있었다. 그게 이민지였다. 다른 여자들과 수시로 몸을 겹치고 툭하면 이 여자 저 여자와 놀아났지만···. 거기에 사랑을 결부 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민지가 최종전에서 죽은 후에는 곁에 남아있는 세 명이 한층 더 소중해진 것이다. 파우스트와 계속 싸우면 그녀들마저 잃을지 모른다. 그런 위험 부담이 그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이민지가 전생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실 한중겸은 속으로 정운과 같은 생각했다.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해도··. 설령 다른 살마이 되었다고 해도··. 자신이 알고 있던 이민지의 아주 작은 편린만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녀를 찾아서 다시 품에 끌어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결국 두려움 때문이었다. 다시 파우스트에게 도전했다가 그나마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 마저 잃어버릴까봐···. 그렇게 겁쟁이처럼 몸을 사린 것이다. 정운에게 한 말은 사실상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었다. 그런 한중겸의 생각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쭉 곁을 지켜온 세 명의 소환수 겸 애첩들이었다. 그녀들 중에 메두사가 한중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를 짐으로 여기지 마요.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강해요. 몸도 마음도, 그리고 당신에 대한 사랑도.” 옆에서 왕귀인 역시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걸 해요. 우리는 당신의 일부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항상 지켜야 할 존재 취급이라뇨? 우리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건가요?” 그리고 정면에 있던 아테나 역시 엄중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고개를 들어. 그리고 이제 그만 일어나. 난 전쟁의 여신이야. 내 남자라는 인간이 만년 패배자로 지내는 것을 봐줄바에는 당신을 죽이고 나도 소멸하고 말겠어.” 평소에는 한중겸이 하는 행동을 반쯤 포기하고 있던 그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한중겸의 안에서 뭔가가 흔들린다는 것을 느낀 세 명은 동시에 나서서 한중겸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라.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 때라고 말이다. 사실 세 명의 여성들 모두가 이런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의에 빠진 한중겸에게 누군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도움 하나만 준다면···. 그렇다면 그 후에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그저 기다렸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한중겸은 세 여인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는·····.” 게이트 안의 신도시. 거기에서 정운은 푸념을 하고 있었다. “제길, 정말 사람이 없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플랜B로 작전을 수행하는 수밖에····.” “플랜B? 그게 뭔데요?” 정운의 말에 슬기가 물었다. “지휘관 없이 삼대 길드의 간부들을 여럿이 투입 시킬 거야. 그렇게 해서 점조직으로 작전을 진행하는 수밖에·····.” “그럼 효과가 떨어지지 않나요? 브로드 왕국에서 명성을 얻는 것이 이 작전의 중요한 점인데···.” “그건 그렇지. 하지만 구심점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결국 점조직으로 시작해서 연합을 이루는 수밖에···.” 콰쾅!!!! 정운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뭐지?” “공격··· 인가요?‘ 정운과 슬기는 날듯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거대한 뱀을 앞에 세우고 있는 몇 명의 인간들과 그 사람들의 앞을 가로 막다가 뻗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연맹원들이 보였다. “제길, 정운이 자식 아랫것들 교육을 전혀 안 시켰어? 내 얼굴도 모르냐?” 투덜거리는 한중겸을 보고 정운은 순간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면 퉁명스럽게 말했다. “형님? 여기는 무슨 볼일입니까? 여자 꼬시려면 다른 장소로 가시죠?” 전에 남은 앙금이 있는 걸까? 시작부터 삐딱하게 나오는 정운을 보고 한중겸이 되 받아쳤다. “아!!? 그래? 오냐? 짜식아. 딴데 간다!! 딴데 가!!” 한중겸은 정운의 말에 그대로 뒤로 돌아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한중겸을 아테나와 다른 두 명의 여인들이 가로 막으면서 말했다. “얘도 아니고 왜 삐지고 그래?” “좀 참아 봐요.” “그냥 튕기는 거잖아요? 연장자다운 아량을 보여 봐요.” 여자들이 열성적으로 말리는 것을 들으면서 한중겸은 퉁명스런 얼굴을 하고는 못 이긴척 정운의 앞까지 끌려갔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온 한중겸을 보고 반긴 것은 정운이 아니라 슬기였다. “중겸이 오라버니. 오랜만에 오셨네요. 반가워요.” 슬기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자 한중겸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 슬기야. 넌 여전히 착하고 예쁘구나. 어떤 남자한테는 아까울 정도로 말이야. 내가 새 남자 소개 시켜 줄까?” “뭐가 어째요?” 정운이 날카롭게 반응하자 한중겸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아까워.” “이 인간이···. 좋습니다 여기라면 서울과 달리 주변 가릴 것도 없지. 오늘 아주 끝장을····.” “그만 둬. 이 화상들아!!!!” 퍼퍽!!!! 정운과 한중겸의 격돌을 막은 것은 소식을 듣고 튀어온 박추성이었다. 박추성이 무한의 영사를 둥글게 뭉쳐서 동시에 둘의 머리를 쥐어박아 버리자 그제야 둘은 진정해 졌다. “아파라···.” “추성이 형님. 우리니까 멀쩡하지 보통 사람이라면 대가리 깨졌을 겁니다.” 둘의 푸념을 들으면서 박추성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하여튼 이것들은····. 나이하고 철드는 속도를 별개로 진행하냐? 왜 뭉치면 애들 짓이야?” “형님이 먼저 시비 걸잖아요?” “얘가 먼저 시비 걸잖아요?” “둘 다 시끄러!!!!” 결국 하는 짓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투닥 거리던 것하고 별로 다를바가 없어진 둘이었다. 이게 두 사람이 하는 식으로 서로 어색함을 없애는 것일지도 몰랐다. 진짜 친 형제들의 싸움처럼 말이다. 한중겸은 오랜만에 정운과 함께 둘이서 술자리를 가졌다. 별 이유는 없다. 원래 둘은 아무 이유없이도 만나면 자주 마셨다. 정운은 한중겸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면서 말했다. “작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글쎄···. 내가 어떻게 생각할 지는 중요하지 않지.” 한중겸은 그렇게 말하면서 술잔을 홀짝였다. “왜 삐딱하게···.” “그게 아니야. 네가 지시한 작전이라면? 그렇다면 난 너를 따른다. 쭉 그렇게 해 왔잖아?”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약간 쑥쓰러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들었다. “······고맙습니다.” “뭐라고? 슬기 나 준다고?” “죽어요!!!” 정운이 철없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이고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형제 같은 존재. 한우리 연맹의 핵심 전력이자. 그라운드 제로 최강의 테이머. 한중겸은 그렇게 한우리 연맹에 복귀했다. ============================ 작품 후기 ============================ 정운하고 한중겸이 싸울것이라고 예상한 분들이 많으신데. 이 둘이서 싸우면 서울이 날라갈 겁니다. 그리고 정운에게 있어서 한중겸은 거의 가족같은 존재라서 어지간하면 힘으로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있는 법이죠.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정이 든 상대가.. 정운에게 한중겸이 그런 존재입니다. 슬기나 세레나하고는 다른 의미로 중요한 사람인 거죠. 그래서 한중겸은 일단 돌아왔습니다. 아직 한 명이 더 있기는 하지만.... 그 한명을 위한 시나리오는 아직 좀 더 진도를 가야 나올 수 있을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63화 <북한의 귀환자들> 제국의 황도. 그리고 그 황도에서도 가장 화려한 방의 안에 한 명의 남자가 연신 홧술을 들이키면서 짜증을 푹푹 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신의 자비도 모르고 하루하루 서로 살 깎아 먹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는 쓰레기들 같으니라고····.”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 남자는 생가 같아서는 오만 욕을 다 하고 싶었지만 성장 환경상 워낙 곱게 자라왔기 때문에 알고 있는 욕이 별로 없는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 남자가 바로 이 제국에서··, 아니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남자인 황제였다. 그레이엄 가이아 프로이토르 라이오넬. 이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은 무능한 신하들과 비협조적인 왕국들이었다. 일전에 게이트에서 한미연합군을 격퇴했다가 그 후에 정운과 한우리 연맹에게 박살이 났던 이계 징벌군이 박살나 버렸다. 그리고 그 후···. 2차 징벌군을 만들기 위해서 황제는 주변 국가에 파발을 띄우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은 엉덩이에 무게추라도 달았는지 꿈적도 하지 않고 있었다. 황제는 제국의 신하들을 닦달하고 그 신하들은 황제의 명령대로 여덟 개의 왕국들을 재촉했지만···. 그럼에도 왕국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요지부동이었다. 제국에서는 주신의 신탁을 들먹이면서 왕국들을 닦달했지만···. 그것도 영 약발이 먹히지가 않았다. 왕국들로서는 신탁대로 게이트가 열렸지만 아직까지 세계에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신탁에 의하면 게이트 너머에 있는 이세계의 인간들은 이쪽 세계를 멸망시킬 악마들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게이트가 열리고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왕국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눈을 피해서 몰래 정찰대를 보내서 게이트에 건립중인 신도시를 정찰하고 있었다. 도시의 핵심 중앙에는 접근하지 못했지만 외부에서 도시의 형태를 관찰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가끔씩 정찰 중에 만난 적들을 마주한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별 위협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물러났을 뿐이다. 정운이 아직 당장은 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연맹원들도 적당한 거리만 두고 경계만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이어진 결과···. 지금 왕국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계의 인간들을 건드렸다가 긁어 부스럼이나 만드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제국 못지않게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성 세인트 왕국이···. [신탁은 전해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나 왜곡을 답고 있을 수 있다. 신의 말은 진실이지만 그 말을 전하는 입은 인간의 입이기 때문이다.] 라는 애매한 주장을 하기 시작하면 게이트의 신도시를 향한 무분별한 공격을 꺼려하는 경향들이 강해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제국의 황제가 아무리 게이트의 신도시를 공격하고 그 너머의 지구를 공격하고 싶다고 한들···.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유일하게 전쟁에 찬성하는 것은 오크들의 왕국인 크롱크 왕국 정도인데···. 그 나라는 원래 전쟁이라면 삼시세끼 밥 보다 더 좋아하는 나라라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크롱크 왕국 하나의 힘으로 게이트의 신도시를 함락 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일이었다. “신탁에 의하면 대륙의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 주신의 반역자들 같으니라고·····.” “폐하···.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옥체에 해로우실까 염려됩니다.” 옆에서 술시중을 들고 있던 애첩의 말에 황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역정을 내며 말했다. “이제는 네 까짓 것도 이 황제에게 잔소리를 하느냐?” 황제의 말에 술을 만류하던 애첩은 크게 당황한 얼굴을 하며 변명했다. “저는··· 그게 아니라 폐하의 옥체를···. 꺅!!!” 짝!!! 진노하고 술기운까지 오른 황제의 귀에 애첩의 변명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도 낳아준 적이 있을 정도로 아끼는 애첩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거슬릴 뿐이었다. 황제는 그녀의 뺨을 후려친 다음에 손가락질을 하며 거칠게 말했다. “시끄럽다!!! 짐이 황제다. 누가 너에게 황제의 결정에 잔소리 할 권한을 줬다는 말이냐!!!?” 평소에는 무척 예뻐하던 애첩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한창 날카로운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를 한 죄로 뺨을 맞은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주저 앉아서 고개를 조아렸다. “나가라!!! 꼴도 보기 싫으니 모두 나가라!! 짐을 혼자 있게 하라!!!!” 황제는 그렇게 고함을 지르면서 방안에 있는 이들을 모두 내 보냈다. 그리고 씩씩 거리면서 의자에 다시 앉으며 중얼 거렸다. “도움이 안 되는 것들 같으니라고····.” 황제는 이를 갈면서 이제는 잔도 집어 치우고 병채로 독한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인간인 황제라고 해도 병나발 부는 자세는 여느 주정뱅이들하고 별 다를바 없었다. 그렇게 술잔을 퍼마시면서 열불을 내고 있는 황제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륙에서 가장 존귀한 황제라는 자가 하는 행태가 왜 이렇게 한심한가?” “누가 감히···. 넌 누구냐!!?” 철통 같이 경비되고 있는 황제의 방에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들어왔다. 이 순간 황제는 화들짝 놀라 버렸다. 그리고 그 침입자는 피식 웃으면서 황제에게 말했다. “난 너에게 희망을 줄 사람이지.” “무슨··. 무슨 말이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진정하고 들어라. 난············.”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지는 것에 따라서 황제의 얼굴은 경악의 감정이 서렸고 마지막에는 환한 미소가 떠 올랐다. 그리고 그 침입자가 방을 나간 후에는····. “하하하하하!!! 됐다!! 이제 됐다!!!!!!” 라고 정체 불명의 환호를 할 뿐이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운은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 신도시의 건설과 천계의 퀘스트인 세계의 치안 안정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제 한우리 연맹원의 숫자는 20만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중에 상당수는 치안유지를 위해서 범죄 단속을 하는 과정에서 데리고 온 자들이었지만···. 그대로 신의 맹세로 복종 시킨 이상은 일단 연맹의 규칙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충실한 전력이었다. 그렇게 충실하게 하나하나 전력이 늘어나는 어느날··. 정부에서 한 명의 남자가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박정운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리 만난 적 있었나요?” “··············.” 정운의 말에 박진남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회에서 이 인간 전담으로 나한테 총대 짊어지게 한 것도 서러운데·····.’ 박진남. 그는 일전에 정운이 제시한 일방적이고 터무니없고 불공평하기까지 한 조항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젊은 초선의원이었다. 그 후에 국회에서는 여야당 할 것 없이 그를 정운 전담의 포지션으로 내몰고 있었다. 말 한마디 까딱 잘못 했다가 정치 생명이 끝장이 날 수도 있는 상대와는 상종하지 않는게 최선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한 명이 독박 쓰게 한 것이고···. 그 독박을 뒤집어 쓴 것이 박진남 의원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전에 두 번이나 정운을 봤지만 정운은 지금도 ‘넌 누구냐?’ 라는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대우를 받으면 한국남자의 표준 성질머리를 고려할 때 빡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대우라고 할 수 있었다. ‘화 내면 안 된다. 화 내면 안 돼.’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박진남 의원은 참아야 했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고 해도 하는 상대와 듣는 상대에 따라서 그 대응은 달라야 하는 법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 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었다. “국회에서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박진남입니다. 전에도 두 번 정도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아···. 그래. 이제 기억이···. 안 나네요.” “··········.” “쏘리.” 하나도 미안한 표정이 아닌 정운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오늘은 정부에서 대표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무슨 부탁입니까?” 이전에 여당 대표라는 인간이 정운의 한 마디에 정치 생명이 끝장난 이후 정치가들은 가능하면 정운하고 상종하지 않으려고 했다. 스포츠 영웅 정도 되면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겠지만 이건 진짜 영웅이다. 그것도 한 성질 하는 영웅. 섣불리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가는 대한민국에서 못 살게 되는 수가 있었다. 그러니 누가 상종을 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정운에게 부탁이라니? ‘어지간히 중요한 일인가 보군?’ 정운은 일단 상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무슨 용건인지 말해 봐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미리 말씀 드리지만 인건 안보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저기····.” “비밀엄수 하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들어보고요.” “···········.”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박진남으로서는 기가 탁 막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덯게든 이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입장은 자신들인데 말이다. “다른게 아니라···. 북한의 일입니다.” “···북한?” 이제야 조금 흥미가 생기는 정운이었다. ‘그러고 보니 거기를 신경 안 쓰고 있었네···.’ 북한. 월드 서버에서 북한팀을 만난 적이 있는 정운이었지만 사실 그건 가짜 북한이었다. 실제 북한의 유저들 중에서는 월드 서버에 진출할 수준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당시 악마들에게 얻은 정보로는 북한 서버의 최고 고수의 레벨이 고작 67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레벨이 낮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월드 서버에 진출하기에는 택도 없는 수준이었다. 월드 서버에 진출했던 북한팀은 악마들이 북한 서버로 위장해서 잠입했던 것뿐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북한과의 인연은 그렇게 거짓된 인연 하나 뿐인 정운이었다. 그런데 그 북한에 관한 말을 꺼내니 정운은 순간 흥미가 살짝 생겼다. “그러고 보니 그 나라 어떻게 됐죠? 워낙 패쇄적인 나라라서 별 소식을 못 들었는데··. 북한의 귀환자들을 어떻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까?” 정운의 말에 박진남은 주변에 혹시나 누가 들을까 싶어서 두리번거린 다음에 말했다. “지금 북한은 내전 상태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하게 설명 좀 해봐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박진남의 설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귀환자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온 이후···. 세계 각국은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이미 주민등록도 완전히 소실된 국민들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이미 심각한 중범죄자였던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귀환자들 중에 상당수가 범죄의 길로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힘이 있으면 그 힘을 쓰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법이다. 더구나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라는 자들은 대부분 자기 욕망에 흔들려서 악마들과 거래를 한 자들이 아닌가? 결국 여러 가지 범죄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덕분에 한우리 연맹이 세계 각국을 상대로 치안 유지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쓸어 담는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귀환자들의 악영향이 큰 것은 상대적으로 극빈국들이었다. 원래 극빈국일수록 범죄에 대한 대처가 약했다. 먹고 살기 어려울수록 국민들은 범죄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고···. 그리고 경찰이나 교도소 같은 시설을 유지하는데 드는 돈도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는 귀환자들이 뭉쳐서 군벌 비슷한 단체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그 결과 나라가 반으로 쪼개져 버린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의 경우···. 역시 그 상황이 상당히 심각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심각한 것은 북한의 정권의 입장에서 심각한 거고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독재 정권을 끝장낼 희망이 생긴 것이다. ============================ 작품 후기 ============================ 보통. 제가 소설을 쓰면서 말하는 지명이나 기타 단체의 이름은 모두 제가 지어낸 100% 가상의 존재들입니다. 우연히 이름이 겹친다고 해도 가상의 존재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한반도 북쪽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불법 세력일 뿐이고 또, 북한 자체에서 원래 저작권 따위는 없는 곳이기에 그냥 북한의 노동당이나 김정은의 이름을 그대로 쓰려고 합니다. 어차피 그렇게 한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가명을 쓰는것 자체가 더 어색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64화 북한의 귀환자들 중 상당수는 그저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갔던 것이다. 마음껏 먹는게 소원이고 하루라도 좋으니 고기 한 번 먹어보는게 소원이었던 자들이 악마와 계약하고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간 것이다. 북한 서버의 유저들이 고레벨이 되지 못한 것에도 사실 그런 이유가 한 몫을 했다. 북한 유저들 소원의 태반이 배부르게 먹어보는 것, 혹은 북한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보는 것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이미 자신들의 소원은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소원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강해지려는 플레이를 하는 타국의 서버들과는 레벨의 차이가 심하게 났던 것이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의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가 사라져서 가장 손해를 본 것이 있다면 그라운드 제로라는 환경에 크게 만족하고 있던 북한 유저들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라운드 제로가 사라지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온 북한의 귀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과연 그들이 다시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개소리에 순응할까? 이미 자유를 맛보고 평범한 생활을 맛 본 그들이 다시 그런 생활로 돌아갈까? 더구나 반항할 힘도 있는데 말이다. 어지간한 호구가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다. 처음에 북한 정권은 귀환자들을 회유해서 이용하려고 했다. 평양의 좋은 주택가에 집을 주고 배급도 넉넉하게 주겠다는 조건을 달고 그들을 회유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회유한 다음에는 대남 공작원으로 써 먹을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처음에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당근이 전혀 기준 미달이었다는 것이다. 평양주민들이 생각하는 고급 아파트라는 것은 사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레벨이 30정도 되면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주거환경하고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배급에 매달려서 주는 것만 받으며 사는 것도 답답했고, 이동의 자유도 없고 북한의 당에서 부르면 재깍 달려가야 하고··. 마음에 안 드는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귀환자들 중에 북한 정권의 당근이 먹힌 것은 그야말로 0.1%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들도 처음에만 조금 있다가 만족하지 못하고 그대로 빠져 나가 버렸다. 그 후에 북한의 귀환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노선을 잡았다. 하나는 탈북. 더 이상 이 미래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 자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쿠테타였다. 더 이상 이렇게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 먹는 돼지들의 지배를 받을 수는 없다. 라는 명분을 내걸고 일어난 귀환자들은 당장 북한의 군기지 중에 다섯 개를 공략해서 함락 시켰다. 철통 같은 독재체재를 완고히 해오고 있던 북한 정권에게 있어서 이런 위협은 처음이었다. 외적이라면 모를까? 내부에서 일어난 적에게는 핵도 통하지 않았다. 자국 영토에 핵을 터트릴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북한 정권은 닥치는 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귀환자들을 잡아 죽이기로 했다. 귀환자라는 존재 그 자체를 기존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이 최악의 결정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 왔다. 귀환자들 중에 중립을 지키면서 상황을 지켜보던 상당수의 인간들이 단 번에 혁명군 쪽으로 기울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북한의 내부는 팽팽한 내전 상태였다. 북한에 정운···. 아니 삼대 길드의 간부 정도만 되는 간부가 있기만 해도 승패는 진작에 갈렸겠지만 북한의 혁명군의 최고 레벨의 유저라고 해도 그 레벨은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았다. 게릴라 전으로 북한 정권을 점점 무너트려 가는 혁명군. 수뇌부는 철저하게 숨어있고 군을 움직여서 무작정 귀환자들을 척결하고 있는 북한의 정권. 그리고, 남한에서는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 우리 남한에 두 개의 서신이 왔습니다. 각각 다른 곳에서 온 거죠.” 정운은 박진남이 보내온 서신을 두 개 꺼내서 읽어봤다. 하나는 북한의 김정은이 직접 보낸 비밀 문서였고, 또 하나는 북한 혁명군인 리민호라는 남자가 본낸 것이었다. 정운은 두 개를 모두 읽어봤다. '요즘 세상에 메일 아니라 종이 편지라니.' 김정은이 보낸 서신은··. 일종의 거래서라고 할까? 그런 것이었다. 전반에 적혀있는 남과 북의 미래를 위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지루한 개소리를 생략하고 본론만 말한다면···. “군사 좀 보내서 도와 달라. 이왕이면 우리 한우리 연맹이 직접 와 주면 고맙겠다. 그 대신에 인산가족 협상하고 유라시아 진출을 위한 철도 건설에 동의하겠다. 라는 거네요.” “예. 그렇습니다. 나머지 하나도 읽어 보시죠.” 정운은 혁명군의 리더라는 자가 보낸 편지를 읽어봤다. [남조선의 동포여러분에게···. 저는 북한 혁명군의 대장직을 맡고 있는 리민호라고 합니다. 우리 북한은 오랜 세월동안 김씨 부자의 삼대에 걸친 착취와 비인간적인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굶어 죽어간 아이들···. 자유를 갈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개적으로 총살을 당해야 했던 수많은 생명들···. 더 이상 그런 억울한 자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저를 포함한 귀환자 동지들이 뭉쳤습니다. 하지만 제 힘이 부족해서 아직도 개 같은 김씨 부자와 그 졸개들을 몰아 낼수가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도와 주십시오. 동포로서의 의리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간절하게 바랍니다. 도와 주십시오.] “흠···. 뭐 준다는 얘기가 하나도 없네요.” “아마, 줄 것 자체가 없을 겁니다.” 박진남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 동의했다. “유라시아 철도라··. 그거 예전부터 정부에서 많이 어필했던 거죠?” 정운의 말에 박진남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사실상 북한의 지하자원이 90%이상 파헤쳐진 지금에 와서 통일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으로 큰 당근은 몇 개 없죠. 대강 추려 보면····. 군 예산 축소와 유라시아 교통망 수립. 그리고 러시아에서 직통으로 연결 할 수 있는 가스관. 뭐 그 정도일까요?” “그렇군요···. 그래서, 정부에서는 내가 어디를 도와 주기를 원합니까?” 정운의 말에 박진남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정운대표님이 우리 정치가들을 싫어하는 것은 압니다.” “그건 틀려요.” “············?” 정운의 말이 뜻밖이었을까? 박진남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운의 이제까지 행동을 보면 정치가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상당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니?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박진남 의원에게 정운의 말이 이어졌다. “전 그냥 보통 대한민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만큼만 정치가를 생각하는 겁니다.” “············.” 결국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가를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꼬며 말한 것이다. “큼, 어쨌든, 저희들 정치판에서 가끔씩 국민들이 보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가끔? 가끔이라는 애매하고 주관적인 단위를 너무 악용하는 것 같은데요?” 정운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은 명백하게 비웃음이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새끼야. 라는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평소 못난 모습을 ‘자주’ 보여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부탁입니다. 일단 지금 하는 말을마저 해도 될까요?” 간절하기까지 한 박진남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었다. 더 괴롭히면 울 것 같았다. “하세요.” 정운의 허락이 떨어지자 박진남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유라시아가 뻥 뚫림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이권이 크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김정은 편을 들어줄 만큼 우리가 호구는 아닙니다.” “···········.” “북한의 혁명군을 도와주십시오. 부탁 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박진남 의원을 보면서 정운이 말했다. “이거 아십니까?” “····뭐를··. 말씀입니까?” “의원님 말대로··. 그럴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하겠지만 만에 하나, 아니 억에 하나라도···.” “············.” “방금 당신이 한 대답이 반대로 돌아왔다면 오늘 당장 대한민국에 인구가 한 300명쯤 줄었을 겁니다.” 정운의 말은 상당히 순도 깊은 협박이었다. 이번 일에 국한 시키지 않고 난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국회를 뒤집을 각오와 무대포 정신이 있는 놈이다. 라는 살짝의 협박을 한 것이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초선 의원이라고 해도 정치판에서 눈치 없으면 못 해 먹는게 정치다. 박진남 의원은 단번에 정운의 의도를 파악했다. ‘까불지 말라는 말이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세 번째지만 겪어본 바에 의하면 박정운은 그렇게까지 막 나가는 인간은 아니었다. 정치가를 다 물갈이 할 힘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운 본인이 직접 정치판에 관여를 해야 할 텐데···. 그런 귀찮고 까다로운 일을 자처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권력. 높은 자리에 욕심이 없어. 지금 있는 한우리 연맹 대표라는 자리조차 그 목적이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서 뭔가 이룰 목적이 있기에 필요로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자는 결코 정치가는 아니야.’ 정운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정치가적 마인드가 있으면 그건 골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조건 엎드리고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가가 아니라면···? 정치에 흥미가 없다면? 그렇다면 그저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최대한 저쪽의 요구에 순응하기만 하면 된다. 집안에 있는 늑대 보다는 집 밖에 있는 사자가 좀 덜 무서운 법이다. 비록 그 사자가 마음먹으면 집 안으로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지만···. 그럴 마음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는게 정치가들 입장에서는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정운은 약간 무거워진 분위기를 털어버리면서 가볍게 말했다. “뭐, 일단 북한쪽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중요한 게 있는데, 정부에서는 이번에 어디까지 보고 있는 겁니까? 거기에 맞춰서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정운의 말에 박진남 의원은 살짝 미간에 골을 잡으면서 말했다. “아직은 논의 중입니다.” “논의 중?” “·····워낙 중요한 일이라서 그게 참·····.”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는 박진남 의원을 보면서 정운은 피식 웃었다. “뭐 하고 있는지는 안 봐도 뻔합니다. 여전히 반으로 나눠서 박 터지게 싸우고 있나 보죠?” “···············.” 대답을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긍정이나 다름 없었다. 역사상 어느 국가, 어느 시대가 되든 정치가들은 항상 반으로 혹은 삼등분으로 갈라져서 정쟁을 쭉 계속해 왔다. 정치가에게 꼭 필요한게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자신들의 말을 지지해주는 지지자. 그리고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상대적 척도가 되어주는 존재. 즉 정적이다. 정치가에게 정적은 필연적이었다. 만약 지금의 여당이나 야당 중에 하나가 파우스트에게 싹 납치되어 사라진다고 해도 싸우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반으로 갈라져서 또 싸우기 시작하겠지···. 정치가라는 종족은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그렇게 쭉 서로 싸워왔고, 지금도 서로 싸우고 있으며 아마 미래영겁에 걸쳐서 계속 서로 싸울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정치판에 싸움이 없어질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에서 여당과 야당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정치가들에게 경쟁이라는 것은 절대 깨끗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아 끌고 혹시라도 약점을 잡으면 철저할 정도로 집요하게 공격한다. 그게 정치가들의 싸움이다. 인정 사정 따위는 없다. 타인을 비판할 때는 얼굴에 철판 까는 것은 기본 옵션이다. 올챙이 시절 따위는 잊어 버려야 한다. 무조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자기들이 하려던 정책도 상대편이 주장하면 순식간에 반대해야 할 정책이 되고 진실성이 없는 정책이 되어 버린다. 인간의 이기심의 극치를 볼 수 있는게 정치가들의 정쟁이다. 뒷골목 조폭들의 세력 다툼 조차도 여기에 비하면 귀여운 애들 장난일 뿐이다. 아마 여야는 지금도 그늘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뭐, 국회에서 어디까지 할지는 내 알바 아니고, 난 북한 정권 지워 버릴 겁니다. 거기에 불만 있나요?” “없습니다.” ============================ 작품 후기 ============================ 난장판 깽판 확 뒤집어 버리려는 정운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자각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65화 <정운 실력을 발휘하다> 가진 건 핵 밖에 없는 주제에 툭하면 진상만 부리던 정권이었다. 사실 통일시에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은 그 진상 김씨 왕조가 없어진다는 것 정도였다. 원래 이웃집에 미친놈 살고 있으면 집값이 뚝뚝 떨어지는 법이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정권이 사라지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이득인 셈이었다. “그럼, 오랜만에 좀 움직여야 겠군요.”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한 정도면 그리 멀지도 않고···. 자신이 직접 움직여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정운이 직접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다. 함경북도 청진. 북한내에서는 나름 규모가 있는 도시 중에 하나인 이 도시의 어느 지하실에 몇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후우·····. 전황은 어떻게 되 가나?” “고조, 좋지만은 안습네다. 함경남도와 양강도에서 인민군 아 새끼들이 귀환자라고 하면 가족이고 뭐고 다 잡아가두고 있습네다.” “간나새끼들····. 언제까지 김씨 돼지들 개로 살아야 직성이 풀리네?” 씩씩 화를 내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리민호. 북한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귀환자들을 규합해서 혁명군을 수립한 남자이다. 사실 그는 레벨이 그렇게 높지도 않았다.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질 시기의 레벨은 고작 41. 한국 서버에서 보면 삼대 길드의 간부는 고사하고, 가입이나 될까 말까한 레벨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김씨 왕조에 대한 증오심은 뿌리가 깊었다. 원래 먹고 살기가 버거워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간 다른 유저들과 달리 그는 평양에서 그럭저럭 살던 남자였다. 대학에도 진학했고, 집안의 이력도 북한에서는 괜찮은 편이었다. 당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던 그가 마음이 변한 것은 당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외국에 유학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외국에 나가기 전부터 살짝 교육은 받았다. 자신들이 이제까지 들어왔던 교육이 약간은 왜곡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마주한 진실은 약간 정도가 아니었다. 0.01%가 살기 위해서 나머지 99.99%를 한계까지 쥐어짜는 나라. 자유도 없고, 인권도 없고, 전 세계의 비난과 지탄을 받고 있는 악의 축 같은 나라. 그런 나라가 자신의 나라였던 것이다. 독일에 유학을 가서 외국의 시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가 느낀 쇼크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어버이 수령의 은혜니 뭐니 하면서 당에 충성하며 살아온 자신의 모든 것이 부끄러워 졌다. 그는 좌절했다가 당시 살아 있었던 김정일 암살을 시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고 실패해 버렸다. 그리고 감옥 속에서 절망하다가 악마와 계약하고 그라운드 제로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원래 현 체재를 무너트려야 한다. 라는 확고한 목적이 있었던 그였기에···. 오히려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졌을 때에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 귀환자들을 모아서 현 정권에 대항군을 결성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좋은 성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10~20대 레벨의 유저들이 대부분이었고··. 30대 레벨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귀환자 유저들이 초반에 강세를 보인 것은 순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저쪽 신세계의 방어 마법은 순순 물리력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내는 것에 비해서··. 귀환자들의 실드에는 그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그렇다보니 군의 물량 공세에 정면 대결을 하면 불리한 것은 귀환자들이었다. 초반 강세로 많은 군기지를 파괴했지만 아직도 인민군은 많이 남아있었고, 귀환자는 금방 숫적 열세에 처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철저한 게릴라전으로만 응전하고 있었다. 정면 대결로는 화력에서 밀려서 필패였기 때문이다. “대장 동무!! 경성에서 3조의 동지들이 포위 당했다고 합네다.” “뭐!!! 조 하나가 통째로!!?” “그렇습네다. 어떻게 된 건지 사전에 발각 되어서 매복에 딱 걸렸다고 합네다.” “빌어먹을···. 더러운 내통자 놈들···.” 전황이 불리해질 때 항상 곰팡이 피듯이 싹을 틔우는 것이 바로 배신이다. 처음에는 혁명군에 충성을 다하던 귀환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다시 변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기는 편에 붙어서 제 한목숨 살고자 하는 인간은 상당히 흔한 편이다. 그게 리민호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뛰도록 분한 일이지만 말이다. “큭···. 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면 절대 안돼!!! 근처에 동지들 날래 모으라우!!! 3조의 동지들을 모으러 간다고 하라우!!” 리민호의 말에 옆에 있던 동료중에 한 명이 말했다. “대장 동무!!! 3조가 아깝기는 하지만 자칫하면 더 많은 동지들이 죽습네다. 여기서는 고저 단장의 아픔을 각오하고···.” 와락!!! 말을 하던 동료는 리민호에게 멱살이 잡혀서 그대로 끌려왔다. 그리고 그의 눈을 마주하고 리민호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고저 아 새끼 죽고 싶으네? 지금 네 한 목숨 아까워서 그리 말하는 거네?” “대장 동무··. 저는 그게 아니고 고저 충심에···.” “지금 3조의 인원이 고저 30명이네. 이거 우리 혁명군의 남은 전력의 20분에 1인 것 모르네?” “고저 아무리··· 큭···.” “닥치고 동지들 모으라우!! 빨리 안 모으면 네놈 모가지를 치갔어!!! 알간!!!” 그렇게 부하를 윽박지른 리민호는 자신이 먼저 주변 부하들을 이끌고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갔다. ‘제길··. 고저 혁명의 불씨를 꺼트릴 수는 없어.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야····.’ 이를 갈면서 달려가는 리민호의 발걸음은 조급함에 바쁘게 움직였다. 리민호가 직속 부하들 50을 모으고 빨리 경성군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귀환자들이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청진에서 경성군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해도 30km 정도는 되었다. 북한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생각하면 30km도 한 시간은 넘게 거릴 거리였다. 저 레벨인 북한 유저들에게 쓸 만한 탈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제길···. 이거 늦는 것 아니네?’ 그래도 자동차가 달리는 것과 버금가는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역시 동지들이 있는 곳에 제시간에 도착할 것 같지는 않았다. 보고가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등을 포함하면 이미 동지들이 모두 주검이 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천행인지···. 리민호가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동지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쾅!!! 타타타탕!!! 탕탕!!! 총성과 박격포의 굉음이 울리고 능력자들의 스킬이 작렬했다. 북한의 귀환자들은 산 하나를 둘러싼 인민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지 못하고 치고 빠지면서 철저하게 버티고 있었다. “벼티라!!! 동지들이 올때까지 버티는 기야!!!” “이 더러운 개새끼들아!!!” 빼곡한 산야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했기는 하지만 저 레벨 귀환자들 치고는 오래 버텼다고 할만 했다. 아마도 필사적으로 버티면서 자신들을 구해줄 동료들의 존재를 유일하게 희마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간절하게 원하던 동지들이 도착했다. “공격하라!!! 적의 뒤를 쳐서 동지들의 활로를 열어줘라!!!” 리민호는 도착하자마자 동료들에게 크게 명령하며 자신이 가장 앞서서 돌진했다. 그는 자신의 품안에서 삼지창 하나를 꺼내더니 그대로 힘차게 인민군의 배후에 찔렀다. “폭염격!!!!” 퍼어엉!!! 창의 끝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것 같은 충격이 터지면서 기관총을 갈기던 인민군 병사들이 그대로 산산이 터져 나갔다. “이 개만도 못한 간나 새끼들!!! 다 죽여 버리갔어!!!!!” 리민호는 용감하게 창을 휘두르면서 싸웠다. 하지만 용감하기는 했지만 너무 무모했다. 가뜩이나 레벨도 따리는데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다고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한 혁명군의 귀환자들은 태반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리민호 혼자서 고군분투 하고는 있었지만 그 하나로는 힘이 너무 부족했다. “저기 반동 대가리다!!!” “쏴라!!! 집중해서 쏴라!!!” 북한의 인민구는 리민호가 나타난 것을 보고 월척이 걸렸다는 듯이 집중 포화를 날렸다. “크으윽···.” 나름 전신에 방어 스킬을 발동 시키고 있는 리민호였지만 총탄 한방 한방이 대미지를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다가는 벌에 쏘여 죽는 것처럼 죽을 수도 있었다. “놓치지 마라!!! 위대한 우리 인민공화국을 외적에 팔아넘기려는 악적이다!!!!” 지휘관이 드디어 대어를 잡는다는 생각에 흥분해서 크게 외쳤다. 그 외침에 리민호는 오히려 더 분기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감히 누구 입에서 나라 걱정이 나오는 거냐!!!!!?” 콰콰콰쾅!!!! 있는 힘껏 창을 휘두르면서 삼지창의 끝에서 상당히 강렬한 화염의 파도가 터져 나왔다. 그 한방에 사방에서 공격하고 있던 인민군의 상당수가 사망했다. “헉···. 헉····.” 하지만 이번 공격이 최후의 발악이었던 걸까? 리민호는 그대로 창을 지팡이 삼아서 숨이나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하하···. 보아하니 이제야 힘이 다 빠진 모양이군. 반동 간나새끼····.” “개·· 새끼····.” 인민군 지휘관의 말을 들으면서 리민호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 지휘관의 옆에 한명의 인간이 더 나타나자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했다. “김일룡!!! 이런 똥물에 튀겨 죽일 배신자 새끼!!!!” 거기에 있는 것은 좀 전에 자신보고 지원군을 보내지 말라고 간언했던 직속 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리민호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저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라요. 원래 세상 사는게 다 이런 것 아니 갔소?” “이 씹어 먹을 간나 새끼!!!!!!!!” 리민호는 다 지친 몸으로 어디서 힘이 났는지 김일룡의 목을 따기 위해서 돌격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다 이루기도 전에 정면에서 날아오는 박격포를 맞아 버렸다. 콰앙!!! “크억····. 쿨럭···.” 뒤로 나가 떨어져 버린 리민호는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대장 동무!!!!” “대장님!!!” 동료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거기에 응해서 일어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죽나? 이렇게····.’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낀 순간 리민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 개 같은 나라의 현실을 바꿔 보겠다고 분연하게 일어났는데···. 결국은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절망한 것이다 “개새끼들····. 너희들이라고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다 죄값을 치를 거다!!!!” 리민호가 그렇게 마지막 저주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으면서 인민군 장교는 비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패배자 새끼가 고조 죽기 전에 무슨 말이 그리 많네? 전원 사격 준비!!!” 처처척!! 인민군의 모든 총화기가 리민호에게 집중 되었다. 그리고 발포 명령이 덜어지기 직전···. “발···.” 콰아앙!!!!! 하늘에서 한 줄기의 벼락이 떨어졌다. 그것도 인민군 장교의 바로 정면에 말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앞에 서 있는 한 명의 남자가 말했다. “거기서 한 마디 더 입 뻥긋 하면 넌 죽어.” “········네놈은 누구래?” “박정운이다. 이제 약속대로 죽어라!!” 촤아악!!!! 몸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인민군 장교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그게 누군데?’ 였다. 정운은 일단 나타나자마자 바로 인민군 장교 하나를 죽여 버리고 투덜거리듯이 중얼 거렸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시간을 맞추나? 내가 고의로 노린 것도 아닌데 왜 항상 위기 상황에 내가 나타나는 거지?” 투덜거리는 정운을 보고 한 박자 늦게 주변의 인민군이 반응했다. “반동이다!!!” “사격 개시!! 죽여라!!!!” 타타타탕!!! 쾅쾅쾅!!! 총탄과 박격포가 비오듯이 쏟아졌다. 이제까지 인민군이 가지고 있는 상식상 아무리 귀환자라고 해도 이런 집중 포화가 쏟아지면 타격을 입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녀석들이네? 나한테 이걸로 뭘 어쩌자는 거야?” 정운은 마치 갓난아기가 던지는 팝콘이라도 맞고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이걸로는 방어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다. 정운 정도의 레벨이 되면 그냥 패시브 방어력만으로도 총알정도는 그냥 막아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운이 느끼고 있는 감각은 동네 어린애들이 물총으로 찔끔찔끔 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프지는 않은데 묘하게 기분이 거슬렸다. “이걸··. 어떻게 갚아준다?”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더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기에서는 뇌전이 스파크를 튀기면서 방전 되었다. “저건··? 저 사람은?” 그제야 정운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왔다. 리민호가 정운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정보 통제가 심한 나라라고 해도 모든 정보가 철통같이 통제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정운이 여의도 상공에서 드래곤 무리를 도륙하는 영상은 유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민호 본인이 남한에 구원 요청을 하지 않았는가? “왔구나···. 와 줬어····.” 감격에 눈물을 흘리면서 리민호는 그대로 의식을 잃어 버렸다. “꺼져라!!!” 콰아앙!!!!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정운을 중심으로 흐르는 뇌전의 쇼크 웨이브가 주변의 인민군을 다 날려 버리는 광경이었다. 정운은 그런 리민호에게 다가와서 투덜 거렸다. “···왜 구해주니 기절하고 난리야? 지가 공주야?” ============================ 작품 후기 ============================ 북한대 정운의 묘사가 그렇게 세밀하게 될것 같지는 않습니다. 호랑이가 쥐를 잡아 죽이는 광경을 세밀하게 묘사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66화 북한에 사실상 내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대외적으로 비밀이었지만···.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에서는 북한을 위성으로 항시 감시하고 있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철부지 십대 양아치나 다를 바 없는 애새끼들이 핵폭탄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자기들끼리 죽든 말든 그거야 알 바 아니지만 저 또라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를 칠지 모르기에 항상 감시의 눈길은 두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내전이 일어난 것을 보고 그냥 있을리는 없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정운이 끼어드는 것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남한에서는 이번 기회에 북한을 끝장 내기로 작정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까지 꽁꽁 비밀로 하고 있던 세계 각국은 언론에 정보를 풀었다. 북한에서 내전이 발생하고 거기에 한우리 연맹이 가세해서 북한 정권을 끝장내기로 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동북아시아의 주변 국가들은 상황을 신중하게 지켜보며 섣불리 성명 발표를 자제하고 있었다. 대한민국과 별개로 귀환자의 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정운의 행동은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세계에서는 정운이 그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힘의 정확한 한계를 모르고 있었다. 추정치로는 일국의 군사력 못지않다. 라고 추정하고 있었지만···. 국가도 국가 나름이지 않은가? 미국의 군사력과 저쪽 아프리카의 이름 없는 극빈국의 군사력을 같은 선상에서 두고 보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행위였다. 그리고 정운의 힘을 파악하기 위한 척도로서 북한이라는 시험대가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경악 스러웠다. 한국 사람들이 홍길동 보고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면서 신출귀몰하다고 하는 말을 흔히 하지 않는가? 사라들은 그 홍길동의 실사판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훨씬 무자비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북한의 그 작은 땅덩어리의 곳곳에는 수십 개가 넘는 굵직한 군사시설들이 있었다. 그게 단 하루··.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운의 개입이 있고 나서부터 다섯 시간 만에 전부 초토화 되었다. 공격을 위한 작전이나 정찰은 필요도 없었다. 북한의 귀환자들에게 물으면 대강 부대의 위치는 알 수 있었다. 그럼 바로 게임 끝인 것이다. 정운이 군사 기지에 가서 한 방에 다 날려 버린다. 그 다음에 또 다른 군사 기지에 가서 또 한방에 다 날려 버린다. 그걸 몇 번인가 반복했을 뿐이다. 사실 다섯 시간 씩이나 걸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부대가 꽁꽁 숨어있었고, 또 정운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중간에 밥 먹고 하자고 해서 다섯 시간이 걸린 것이다. 아마 북한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을 것이다. 이걸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전쟁? 이라는 말이 여기에 들어가도 되기는 되는 걸까? 정운이 흑토를 소환해서 타고 이동하면 그 이동 속도는 백두산에서 제주도 까지도 10분 정도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정운의 행동을 사전에 포착하고 마을 수도 없었다. 뭐가 뭔지도 모를 상태에서 그대로 증발해 버린 군부대가 대부분이었다. 스타로 치면 맵 핵 킨 상태에서 드랍쉽을 텔레포트 시키는 것과 같았다. 심지어 드랍쉽에 태운 것도 그냥 마린 탱크가 아니라 핵이다. 게임이라도 이건 밸런스 붕괴 소리 들을 형상이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이걸 누가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지금 정운이 하고 있는 공격은 북한 아니라 미국이라고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미국의 국방부는 정운의 행동을 위성으로 관찰하면서 입을 쩍 벌렸다. “국방장관···. 하나만 물어보겠네. 혹시 우리가 한국··. 아니 박정운하고 전쟁을 하면 승산은 어느 정도인가?” “···············.”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 그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가 감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하는 행위다. 하지만···. 저건 이미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저걸 도대체 어떻게 대처하란 말인가? “동멸···. 정도는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방장관의 말에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멸···. 그것도 혹시나라····.” 그런 대통령을 보고 국방장관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저 기동력이 문제입니다. 레이더에도 안 걸리는 일개 개인이 멋대로 종횡무진 달리는데···. 사실 위성도 중간에 몇 번이나 놓치고 다시 잡았습니다.” 저 좁은 땅에서 움직이는 정운을 두고 위성도 놓쳤다는 것은 사실 정운이 마음 먹으면 위성이고 뭐고 못 잡는다는 말이다. 감시할 수단이 없다면 당연히 공격에 대비도 못한다. “만약 그가 우리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면··. 저라면 가장 먼저 이 백악관과 펜타곤을 노릴 것입니다.” “으음·····.” 대통령의 입에서 침음성이 절로 나왔다. 미 합중국의 대통령인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현실에 존재하다는 사실에 순간 서늘한 감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국방장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원전을 포함한 국가의 주요 시설을 다 파괴하기 시작하겠죠. 단언하건데 못 막습니다. 방어 불가능의 공격이 미 전역에 쏟아지는 겁니다.” “····절망적인 견해는 잘 들었네. 그렇다면 자네가 말하는 대비책이라는 것은 뭔가? 동멸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말에 국방장관은 대답했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이라면 차라리 우리도 공격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가 미국 전역을 공격하는 동안 우리도 대한민국 본토를 타격해서 동멸을 노리는 것 정도가 유일한 타계책입니다.” 말을 하면서 국방 장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세계 최강국가인 미국의 국방 장관인 자신이 이따위 작전을 타계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서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이런데 듣고 있는 대통령은 어떻겠는가?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후우···. 마치 노 가드로 치고받는 복서들 같은 얘기를 하는군. 하다못해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유리는 한가?” “예. 우리 미합중국은 대한민국 보다 국토가 훨씬 넓고 인구가 많은 만큼 더 유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뭔가?” “그의 실제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게이트 너머의 신도시를 타격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것과 그리고···. 제가 말한 작전은 상대를 어디까지나 한우리 연맹이 아니라 박정운이라는 개인을 잡았을 때의 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한우리 연맹이 다 나선다면 그때는·····.” 국방장관은 하던 말을 차마 끝맺지 못했다. “··············.” 말은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결론은 간단했다. 저 괴물은 감당 할 수 없다. 라는 것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 처음으로 미국이 군사력으로 손을 대지 못할 존재가 지구에 태어난 것이다. ‘아주 적대국에서 저런 존재가 태어난게 아닌 것은 다행이긴 하지만···. 역시 씁쓸하군.’ 그나마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귀환자 같은 경우는 알카에다나 탈레반 소속처럼 미국에 거의 본능 수준에 달하는 반감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 자들 중에 정운 같은 수준의 강자가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미국 대통령이었다. 북한은 거의 끝장났다. 정운이 내전에 끼어들고 하루도 되지 않아서 벌어진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거의 끝나기는 했지만 아직 조금 남아있기는 했다. 군사 시설을 다 박살내고 리민호가 부하들과 함께 평양을 접수하는 것에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끝내 김정은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 돼지는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정운은 의심나는 곳을 수십 군대를 뒤집고 있었지만 좀처럼 김정은을 찾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었다. 독재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했을 때 진정 끝을 고하려면 그 독재자를 잡아서 심판해야 끝나는 것이다. 북한의 정권을 사실상 뒤집고 노동당의 간부들도 대부분 잡아서 구속했다. 정운은 그들을 국제법에 따라서 재판 받도록 했다. 생각 같아서는 북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인민재판을 역으로 당하게 하려고도 했지만···. 그건 그냥 공개처형하고 다를바 없을 것 같아서 그만 뒀다. 리민호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는데 그 정권이 다시 야만적인 모습을 보여서야 국제적으로 득이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은을 잡아야 한다는 건데···. 좀처럼 잡지를 못하고 있었다. “으으음···. 이제 슬슬 귀찮아지는데··. 그만 게이트 너머로 돌아갈까? 평양에서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서 김정은 찾았다. 라는 정보를 기다리고 있는 정운이었지만···. 이제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했다. 사실 김정은 잡는 것에 자신이 직접 나설 필요는 꼭 없어 보였다. 이미 기존의 김씨 정권의 핵심전력이던 군대는 박살이 났다. 이제는 그 돼지를 지켜줄 군대도 없는데 뭐 하러 정운이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야 하겠는가? 게이트 너머에 있을 파우스트를 생각하면 김정은 같은 피라미한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다만, 정운이 그렇게 돌아가면 엄청 불안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대표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김정은 그 돼지를 잡아 오겠습니다.” “···그냥 성인병에 혈압 올라 죽었다고 발표하고 끝내죠.” “아닙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꼭 잡아 오겠습니다.” “··············.” 정운의 입에서 ‘갈까?’ 라는 말이 나올 때 마다 리민호는 경기를 일으켰다. 그는 어떻게든 정운을 붙잡아 두려고 했다. 그 압도적인 힘. 어마어마한 자금력. 세계의 다방면에 뻗어있는 지지도. 무엇보다 한우리 연맹이라는 탄탄한 조직까지···. 리민호는 혁명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자신이 북한 정계의 톱에서 나라를 이끌 그릇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운이라면····. 그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이 나라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정운을 잡아두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정운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 주려고 했지만···. 사실 그건 무리였다. 현역 프리미어 리거를 동네 조기 축구회가 소주에 삼겹살로 매수하려는 격이었다. 평생 무한 리필을 보장한다 한들 잡힐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제 할 일도 없고 난 가야겠습니다”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리민호는 안타까운 시선을 하며 말했다. “하다 못해 일주일, 아니 한달만 더 있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다못해 이 나라의 기틀이라도 잡혀야····.” “한달 지난다고 그 기틀 잡을 수 있나요?” 정운이 심드렁하게 묻자 리민호는 대답하지 모했다. “그건····.” 한 달이 아니라 일년이 지난다고 해도 이 엉망이 된 나라를 바로 잡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리민호는 엄청나게 간절했다. 사실 그도 정운을 잡기 위해서 별의 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 김씨 일가가 누리던 사치품들을 정운에게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진상했지만 정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정운이 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손에 닿지 않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웅호색이라고 해서 여자는 어떨까? 라는 생각에 김씨일가를 모시던 기쁨조들을 그대로 정운에게 선물해 보기도 했지만···. 정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게 군다고 역풍만 맞고 리민호가 식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원래 정운이 금욕적이 남자는 아니었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슬기와 세레나와 인연이 닿은 이후로는 그 둘 말고는 어떤 여자에게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만약 정운이 한중겸처럼 여자라면 일단 품고 보자는 심보였다면 21세기의 의자왕에 등극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이 있는 미하엘에 홍린만 해도 정운이 손짓 하나만 하면 안길 여자들이었고··. 이제는 과거일 뿐이지만 한때는 다이앤도 정운에게 마음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정운에게 미인계가 통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남북한의 미묘한 인식 차이 때문일까? 정운은 별로 예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 작품 후기 ============================ 남북한의 미적 기준 차이는 분명 존재하고 제법 크다고도 합니다. 이것도 분단이 불러온 부작용일까요? 아니면 원래 그런 걸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67화 <돼지 사냥> 결국 리민호가 정운을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있는 당근 자체가 없었다. 정운은 그래도 하던 일을 중간에 내팽겨 칠 수는 없으니 이제까지 있어줬던 것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었다. “뭐, 혹시 곤란한 일 있으면 연맹에 연락하세요. 알아서 적당히 도와 줄 겁니다.” “대표님····.” 정운이 그렇게 적당히 중얼 거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고 리민호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이렇게 보내야 하는 건가?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 리민호는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정말 필요한 인물이고 꼭 잡고 싶은 인물이었다. 북한이 다시 일어나서 하다못해 나라로서의 틀이라도 제대로 갖추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국토는 황폐해 졌고 돈 되는 지하자원은 거의 다 팔아 넘겼고 산야의 대부분은 헐벗은 토산이 되어 버렸다. 김씨 일가의 정권을 무너트린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힘든 것은 여기서 부터인 것이다. 지금 북한의 인민들은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제 자신들을 착취하는 노동당 정권과 김씨 일가가 무너졌으니 자신들도 남한만큼 금방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북한 정권이 해온 우민 정치 때문일까? 북한 주민들 중에 상당수는 현실을 모르고 있었다. 극빈국인 나라가 선진국으로 살게 되는 길은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그냥 정권 물갈이 한 번 한다고 금방 될 일이면 이 세상에 못 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을 거이다. 북한은 이제 막 스타트 라인에 섰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금메달이라도 딴 것 같은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거기다 골수까지 세뇌 되어서 아직까지도 어버이 수령 어쩌고저쩌고 하는 사람들까지 겹쳐져서 지금 북한의 민심은 모닥불 옆의 화약고와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언제 뻥 터질 줄 모른다. 그런 상황을 가장 완벽하게 수습 할 수 있는게 박정운이었다. 남한에서도 정운의 인기는 확고했지만, 북한에서는 전성기의 김일성 우상화 뺨칠 정도였다. 하룻밤에 북한의 인민군을 완벽하게 무력화 시킨 정운의 활약상은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 거의 신격화되기까지 했다. 특히 하이라이트는 인터넷으로도 중계된 영상이었는데 평양에 있는 김씨 부자의 거대 동상을 정운이 한방에 박살내 버리는 장면···. 그 장면에 통쾌함을 느끼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북한 주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건 정운이 북한 정권을 완전히 무너트렸다는 하나의 상징 같은 장면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인터넷은 안 되어서 며칠 정도 늦게야 그 영상을 봐야 했지만 그래도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기에 충분했다. 남한에서 정운의 인기가 영웅이라면, 북한 주민들에게는 거의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신앙 레벨에 도달하기 직전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치켜세워줘도 자기가 싫다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정운은 발코니로 나가서 흑토를 소환하고 그대로 게이트 너머로 가려고 했다. 하지마 그때···. “대표님!! 김정은을 찾았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고는 헐레벌떡 뛰어온 남자의 말은 정운의 발걸음을 살짝 멈추게 했다. “·····그거까지만 해결하고 가도록 하죠.” 그렇게 정운은 아주 조금만 더 북한에 있기로 했다. 귀환자들이 혁명군을 만든 시점부터 김정은은 자기 몸을 숨겼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아버지에서 자신에게로, 북한 정권을 이어받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배운 것은 살고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민들이 몇 십만, 몇 백만이 죽던 그건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 사는 것이었다. 인민군은 얼마든지 소모해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었지만 자기 목숨은 하나뿐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목숨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쓰레기 독재자의 룰 모델 같은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자기 몸 하나 적극적으로 사리는 생각이 득이 되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정운이 인민군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고 바로 평양으로 와서 김정은을 잡으려고 했지만··.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암살에 대한 대비채긍로 꽁꽁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정운은 귀찮다고 해도 두더지 잡기 하는 심정으로 사방에 군부대란 군부대는 다 부셔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북한군은 완전 전멸해 버렸지만 김정은으로서는 일단 자기 목숨은 건진 것이다. 참 명이 길다고 해야 할까? 정운한테 찍히고 바로 죽지 않은 것은 천운이라고 불러도 좋을 행운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졌다고는 해도 사실 지금 김정은은 살아도 산 상태가 아니었다. 독재자가 권력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이제까지 인민들의 고혈을 짜서 누리던 온갖 부귀영화가 이제 대가가 되어서 돌아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과 중국의 교두보라고 할 수 있는 신의주로 몰래 이동했다. 거기서 중국으로 망명을 하려고 한 것이다. 중국이라면 자신을 받아 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중국과 북한의 사이가 좋은 시절도 있었다. 뭐, 사이가 좋다기 보다는 그냥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국에 아양 떨면서 콩고물이나 받아 먹는 사이였지만···. 그 콩고물도 김정은이 북한에 데뷔(?)하면서 사라졌다. 오만함 하나는 자기 아비보다 한 술 더 뜨는 김정은은 중국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핵실험을 연발했고 그 결과 이제 중국에서는 김정은을 개념없는 때쟁이에 말 안 듣는 돼지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중국에서 김정은 하나를 살리고자 정운과 한우리 연맹을 적으로 돌리는 미친 짓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망명신청을 받은 정국 정부는 김정은의 존재를 리민호의 혁명정부에 알려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이제 김정은은 신의주의 한 건물에서 궁지에 몰린 쥐새끼처럼 몰려 버렸다. 다만, 이 쥐새끼를 아직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놈이 지금 골치 아픈 발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가지고 있다고?” 현장에 도착한 정운은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현장 책임자에게 되물었다. “핵을··. 개조형 핵탄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모컨의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저 안에 있는 핵이 터져 버립니다.” 정운은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책임자에게 말했다. “북한에 핵 있는거야 알고 있었지만···. 군 부대에 있는 것 아니었어요? 그건 내가 다 회수했는데?” 정운인 북한의 인민군을 타격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이 핵의 회수였다. 혹시라도 미친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부분을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이다. 하지만···. 설마하니 김정은이 따로 가지고 있는 핵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책망하는 정운을 보며 리민호가 면목 없다는 듯이 송구한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지킬 최후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핵이 무슨 호신용 스턴건도 아니고···. 하여튼 지랄도 가지가지 하네····.”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건물의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가 들렸다. “빨리 내 요구 사항을 수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신의주를 제물로 모두 함께 데리고 가겠다!!!!” 고래고래 확성기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정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게 김정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요구 사항이 뭐랍니까?” 정운의 말에 현장 책임자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한우리 연맹이 북한에서 물러나고 혁명 정부를 해산해라. 그리고 자신을 다시 복귀 시켜라. 라는 요구입니다.” 택도 없는 요구 사항이다. 정운은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쟤 머리 나쁩니까? 해외 유학까지 갔다 왔다더니??” 정운은 생각했었다. 그래도 나름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면 김정은은 내심 머리가 좋은 편, 아니 적어도 평범한 축에는 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김정은 교육에 든 사교육비는 그냥 돈지랄로 썩어 버렸나 보다. 이 와중에 자신이 다시 북한의 톱으로 복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걸 보면 그냥 뇌라고 쓰고 돌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리민호고 고개들 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좋은 머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혈통으로 올라간 돼지라서····.” 정운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돼지의 아이큐가 아니었다. “핵이라·····.”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더니 자신이 스스로 건물의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대표님!!!?” 뒤에서 리민호가 기겁을 해서 정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정운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걸어가며 대답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여차하면 세계에 실황 중계 하게 카메라 하나만 따라오던가요.”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남한에서 올라온 어떤 기자 한명이 따라왔다.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특종은 보장하죠.”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배짱 좋은 기자 한명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운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누구냐!!?” “멈춰라!!!” 정운의 좌우에서 두 명의 남자가 총구를 겨눴다. 하지만 정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둘에게 말했다. “돼지 어디 있냐?” “감히···. 엇!?” 정운의 말에 화를 내려고 하던 남자는 정운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크게 경악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이다. “한 번만 더 물어본다. 돼지 어디 있냐?” 같은 질문이지만 방금 전에 했을 때와는 말의 무게감이 완전히 달랐다. “2···. 2층···입니다.” 정운은 둘을 슬쩍 바라보고는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거기에는 돼지 한 마리가 눈을 벌겋게 하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슨 진상을 부리고 있었는지 주변에 뒹굴고 있는 술병과 나체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여자들까지···. 정운은 어이가 없었다. “미쳤구만?” 옆에 있는 기자만 영상을 촬영하면서 이 대박을 축하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 자신만 이 영상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은 한 박자 늦게 정운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너··· 너는·····?” “여, 미친 돼지. 네 글로벌 진상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소감은 어때?” 정운의 말에 김정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핵폭탄의 리모컨을 쥐었다. “이익···. 박정운, 네놈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나에게 이런 짓을 한 거냐!!!?” 김정은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따져 물었다. 거기에 정운은 태연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응? 원한? 그런거 없는데?” “·············.” “너한테 원한 있는 거야. 북한 주민들이겠지. 내가 알게 뭐야? 다만····.” 정운의 말에 김정은은 두려움과 원망 섞인 표정으로 정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정운의 말이 떨어졌다. “다만, 악당을 벌하는데 이유 같은 것은 필요 없잖아? 너희 일가는 좀 작작했어야 했어.” 정운의 말에 김정은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왜···. 왜 나한테 그래!!? 우리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한 평생 잘 살고 갔는데 왜 나한테 그래!!! 이 나쁜 놈아!!!!” 김정은은 나름 억울하고 쌓인게 많다는 듯이 정운에게 따져 물었다. 정운으로서는 분노 이전에 어이를 상실하는 말이었지만 말이다. “너 한테 나쁜 놈 소리 들으니 어떤 의미로는 굴욕이네.” “이익···.” “뭐, 어쨌든 억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악업을 이어받고 거기에 패악질 한 것도 너잖아?” 정운의 말에 김정은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누가 이런 집안에 태어나고 싶었는줄 알아?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악당 취급이고···. 온 세상에서 우리 일가를 무슨 중범죄자 취급하고····.” 지금 말은 약간 진실성이 섞인 것인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에 약간 울먹 거리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마도 어려서부터 저런 고민을 많이 한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혀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사실인데 뭐. 되게 억울한 것처럼 말한다.” 그렇다. 결국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크윽···. 네 놈이 뭘 안다고·······.” “아아아···. 이제 됐어. 말하기도 귀찮다.” 정운은 손사레를 치면서 김정은의 말을 잘라 버렸다. 말이 안 통하는 무뇌아 하고 말을 섞어봐야 자기 입만 피곤해지는 법이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네 위에 할아버지랑 아버지를 빼도 이미 네가 한 짓만 해도 충분히 악독한 독재자 반열에 이르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정운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면서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포기해라.” ============================ 작품 후기 ============================ 김정은한테 악당 취급 당하면 진짜 억울할 듯 하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68화 정운의 경고에 김정은은 벌벌 떨었다. 상대는 일국의 군대도 하루 만에 무력화 시킨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이 무능한 돼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정은은 자기 생명줄인 것처럼 리모컨을 잡고 정운에게 말했다. “멈춰!!! 멈추라고!! 누른다. 이거 진짜 누를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정운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정운의 행동에 김정은은 이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뒷걸음질만 연신 몰아쳤다. “누른다!!! 정말 누른다!! 다 죽고 싶은거냐!!!?” 김정은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누를거면 누르던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 어느새 정운은 김정은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벌벌 떨기만 할 뿐 실제로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역시 죽기는 아깝지?” “으으···. 으윽···.” 김정은은 리모컨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애당초 이런 소인배에게 자기 스스로 죽을 배짱 따위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 보다는 그냥 안전한 장소에서 거짓된 권위를 내세우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게 없었다. 김씨 일가라는 사치와 향략과 거짓된 영광으로 점철된 사육장에서 사육된 거름구덩이의 돼지. 그게 동북아시아 최악의 독재자의 정체였다. 정운은 그런 김정은을 보고 말했다. “고민 다 끝났냐? 그럼 이제 맞자.” “뭐?” 정운의 그런 말에 김정은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김정은은 나른 센티한 기분에 빠져서 이제 모든게 끝났다. 라는 감상적인 분위기에 빠졌었나 보다. 하지만 정운은 여기서 간단하게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런 글로벌 진상을 부려서 사람 피곤하게 하고 그냥 끝내려고? 꿈 깨라.” “아니, 잠깐··. 어억!” 퍼억!!! 김정은의 지방질 가득한 복부에 작렬한 주먹이 시작이었다. 정운은 그대로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무릎을 꿇은 김정은을 보면서 주먹을 뚜둑 풀며 말했다. “이 악물어. 이제 시작이다.” “변··. 변호사 악!!” “변호사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퍼퍼퍽!! 퍽퍽!! 우지직!! 그리고 정운은 김정은을 작신나게 밟기 시작했다. 전세계에 생중계로 독재자 하나를 구타하는 장면이 공개되는 것은 아마 이게 처음일 것이다. 잠시 후··. “후··. 이쯤 해 둘까?” “으으····. 으···.” 가뜩이나 큰 얼굴의 부피가 두 배로 늘어날 정도로 엄청나게 쳐 맞은 김정은을 눈앞에 두고 정운은 산뜻한 얼굴로 땀을 훔쳤다. “생각 같아서는 이대로 패죽이고 싶지만 내 커리어가 더러워 질까봐 관 둔다.”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주먹을 거뒀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 역사상의 수많은 위인들이나 신화속의 신들까지 상대했던 정운이었다. 그들은 선악을 넘어서 적어도 격이 있었다. 악인이면 악인인 대로 확고한 자신의 인생관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쓰러져서 푸르딩딩한 얼굴로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는 김정은은 그냥 똥 묻은 돼지로 보일 뿐이었다. 아! 실제 똥이 묻었다. 사실 그래서 정운도 그만 패기로 한 것이다. 말 그대로 더 패면 더러워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말이다. 정운은 창밖을 보면서 외쳤다. “상황 끝났으니 이제 들어··.” 탕!!! 정운은 말을 하다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거기에는 한 명의 여자가 김정은을 향해서 총을 쏴 버린 것 같은 광경이 보였다. 주변에 있던 나신의 여자들 중에 하나였는데 그녀는 자신을 욕보인 김정은에게 크게 분노한 것 같았다. “으으···. 으· 으아아·· 저 종간나가···.” 김정은은 아랫배 부근을 총에 맞은 걸까? 복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김정은을 보고 “죽어!! 이 돼지 새끼야!!!!” 탕탕탕!!!! “쯧, 그럼 안 돼지···.”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총을 더 쐈지만 정운은 그녀의 충알을 막아 버렸다. “왜···? 왜 막는 거야!!!?” 여자는 분노로 눈에 보이는게 없는지 정운에게 크게 소리쳐서 따졌다. 정운은 그런 여자에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안 죽여도 이 놈은 죽어. 단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죽어야 세상에 이롭단 말이야.” 정운의 말에 여자는 악을 바락바락 지르면서 대답했다. “저 새끼가 우리 부모님도 죽었어. 나도 납치해서 몇 년이고 계속해서 욕 보였고!!! 비켜 내가 죽일 거야!!!” 여자의 악 소리를 들으면서 정운은 순간 그냥 죽이게 해 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옆에 기자가 따라온 것을 상기하면서 다시 말했다. “안 돼. 저 새끼 죽이고 싶은 사람은 당신 하나만이 아니야. 그 사람들 다 챙겨주면 번호표 뽑아서 기다려 봐야 머리카락 하나 뽑기도 어려울걸?” “흑··. 흐흑···.” 정운의 말에 여자는 털썩 주저앉아서 흐느꼈다. 그녀는 10대 중반 시절에 우연하게 김정은의 눈에 들어서 그 후로 쭉 김정은의 성노리개로 살아와야 했다. 자기 딸을 살려 보겠다고 함께 탈북 시도를 했던 부모님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총살 당했다. 그 모든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도 결국 자신은 죽일 수가 없다니···.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절로 나왔다. 정운은 그런 그녀를 보고 살짝 미안해지기는 했지만 여기서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지, 그럼 죽여.’ 라고 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이런 일은 순리대로 풀어야 뒤탈이 적은 법이다. 그때··. 삐!!!! “응? 어라?” 정운인 살짝 방심했기 때문일까? 김정은이 다시 기어서 핵폭탄의 리모컨 스위치를 눌러 버린 것을 미처 체크하지 못했다. 정운한테 엄청나게 맞고 거기다 추가로 총 맞고 꾸역꾸역 비명만 지르는 돼지를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보니 벌어진 실수였다. “크크큭···. 다··. 다 죽는거야. 나 혼자만 죽으면 안 돼.” 김정은은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쳐 맞다 보니 정신이 나갈 걸까? 아니면 자신이 총에 맞아서 죽을 것 같으니 이제는 다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일까? 어쨌든 아까까지만 해도 스위치를 누를 용기도 없던 놈이 자기 목숨에 위기감이 생기자 이제야 핵폭탄의 스위치를 눌렀다. “별로 죽을 중상도 아닌 것 같구만···. 하여튼 겁은 많아가지고···.” 정운은 그런 김정은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때 안으로 들어온 리민호와 혁명군을 카운터가 돌아가고 있는 핵폭탄을 보고 경악했다. “····대표님!! 지금 당장 도망가셔야 합니다.” 리민호는 이 순간 정운 혼자만이라면 어떻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런 리민호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핵탄두에 다가갔다. “남은 카운터 34초···. 해제는 무리려나?” 원래 핵폭탄 해제하는 법도 모르지만 어쨌든 전문가가 온다고 해도 시간이 이것 밖에 없다면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아까 정운이 김정은을 압박할 때 어차피 누르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한 편으로는 눌러도 별 상관없다는 생각도 했다. “핵이라···. 내가 방어가 전문은 아니라서 별로 깔끔하게 처리는 못하겠지만···.” 만약 이 자리에 있는게 배대호 라면 그냥 실드로 감싸서 그 안에서 터트려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메이지도 아니고 방어 스킬이 전문도 아니라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다른 방법이 있었다. “뇌신강림!!!” 파지지지직!!! 정운의 전신에 강렬한 뇌전의 기운이 서렸다. 그리고 정운은 그대로 핵폭탄을 짊어지더니···. “훗!!!” 퍼어엉!!!! 마치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처럼 정운이 하늘로 힘차게 비상했다. 핵을 가지고 하늘위로 승천하듯이 올라가는 정운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괜찮은 건가?” “히히힝!!!” 리민호의 불안한 중얼거림에 대답한 것은 한쪽에 소환되어 있던 흑토였다. 흑토의 표정은 마치 ‘고작 이거 가지고 걱정이냐? 아마추어들···.’ 이라는 듯 했다. 쌔애애애애애애앵!!!!! 정운이 전력으로 비상하자 몇초 되지 않아서 순식간에 성층권을 넘어서 중간권을 넘어 열권까지 도착했다. “이 이상 올라가면 내 방어력으로도 대미지를 입을지 모르겠어.” 정운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주로 날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무슨 슈퍼맨도 아니고 왜 그런단 말인가? 어차피 여기쯤이면 적당했다. “흡!!!” 정운은 핵을 한쪽에 던지고 자신의 손을 앞으로 뻗었다. 파직···. 파지직···. 정운의 손에서 뇌전의 기운이 플라즈마 형태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이 극에 달한 순간···. “뇌광포!!!” 퍼어어어어어엉!!!!! 지상에서 보일 정도로 선명하고 굵은 푸른색의 광선이 뻗어 나갔다. 정운이 할 수 있는 한 방의 공격력 중에서는 순위권에 들어가는 기술이 바로 이 뇌광포였다. 이미 전격에너지가 아니라 플라즈마 형태의 에너지를 이루고 있었기에 이 공격에 닿는 순간 대상은 소립자 단위로 그 형체가 소멸해 버리고는 했다. 결국 핵폭탄은 터질 겨를도 없이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정운이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와아아아아아!!!!!” “만세!!!. 만세!!!!!” “박정운!! 박정운!!! 박정운!!!” “박정운!! 박정운!!! 박정운!!!” 이미 정운은 살아있는 신 취급 되고 있었다. “····쪽팔리게 뭐 하는 거야?” 정작 정운 본인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정운은 북한의 사태를 해결하고 게이트의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조용히 복귀한 정운과 달리 세계는 정운이 이룬 업적에 시끄러웠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상징. 박정운.] [한반도 비핵화의 영웅.] [박정운 노벨 평화상 확정적.] 여기저기서 정운의 행동을 향해서 요란하게 떠들었다. 특히 요란한 것은 정운이 핵을 무력화 시키는 장면이 전 세계로 펴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정운의 초인적인 무력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가설 중에 하나가 바로 핵 VS 박정운. 이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핵에는 도리 없지 않을까? 아니다. 박정운이라면 핵도 막을 수 있다. 하다 못해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막지는 못하는것 아니냐? 아니 결국 핵이 통하지 않는다는 시점에서는 똑같은 거지. 이런 식의 토론이 인터넷에서 뜨겁게 타오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토론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핵은 통한다. 라고 주장하던 자들이 깨갱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정운이 핵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한국인들은 자국에서 나온 영웅의 소식 하나에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귀찮을 뿐이었다. “나 참····.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침대에 누워서 태블릿에서 기사를 넘겨보던 정운은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다. 노벨 평화상?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성격하고는 완전히 맞지 않았다. 무슨 놈의 평화의 상징이란 말인가?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거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자신의 전력을 생각하면 절대로 안 어울렸다. 아부가 지나치면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고 하던가? 지금 정운의 경우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정운이 별로 딴소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정운의 옆에 누워서 정운을 진정시켜 주고 있는 슬기 때문이었다. “뭐 어때요? 전 당신이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게 좋은 걸요?” “네가 좋다면 뭐····.” 정운은 슬기의 말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별 상관은 없었다. 자신의 여자가 좋아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물론 노벨상 하나 받겠답시고 저 멀리까지 갈 생각은 없으니 그건 고사하겠지만 말이다. “북한쪽은 한동안 시끄럽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도 어린애를 보행기에만 태우면 걷는게 느려지는 법이니까요.” 슬기의 말 대로였다. 정운은 북한의 혁명군 정부에서 거의 손을 땠다. 자신이 나서서 하나하나 챙겨주면 혁명 정부의 입장에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이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던 것에는 노동당 정권이 행했던 세뇌에 가까운 우민 정치가 크게 했다. 그래서 북한의 주민들은 현재 의타적인 구석이 강했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노력해서 제 몫을 챙긴 다기 보다는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국가에서 주는 것을 받아서 생활 하는게 익숙해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북한에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탈북으로 눈길을 돌린게 대부분이다. 지금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먹이 물어주는 아기새 처럼 입만 쩍 벌리고 있으면 되겠지. 라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정운은 아애 북한의 혁명군 정부에서는 손길을 때 버린 것이다. 정운이 챙겨주는 것 보다는 자신들이 직접 일어나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급 북한 정부가 자력으로 일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고···. 결국 북한의 혁명 정부는 남한 정부와 손을 잡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혁명 정부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재기를 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리민호, 이제 혁명 정부 총수라는 명칭을 지니게 된 그는 남한 정부를 택했다. 사실 그가 노린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정운이었다. 그런데 중국이나 러시아와 손을 잡고 기댔다가는 정운과의 끈이 영원히 끊어져 버릴까봐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저없이 한국 정부를 택했다. 한국 정부와 관계를 유지하면 그래도 정운과의 실날 같은 끈이라도 이어지지 않을까? 라는 노림수 때문이었다. 사실 대외적인 명분은 충분했다. 거창하고 복잡한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저 통일. 이라는 단어 하나면 군중을 설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당장 통일을 하는건 절대 무리였다. 가뜩이나 정운 때문에 돈도 많이 든 남한에서 지금 북한 정권을 완전히 감당하는 것은 무리가 컸다. 그러니 앞으로 교류를 가지면서 서서히 관계를 원만하게 하자. 라는 취지에서 남한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북한판은 일단 이 정도로 일단락 정리 했습니다. 사실상 김씨 일가는 망하고 새로운 정부가 섰습니다. 정운이 거기에 지대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본인 스스로 관심은 없습니다. 파우스트에 비하면 북한 정권 정도는 피라미가 아니라 거의 물벼룩인 관계로...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69화 <라이센스 발급은 가장 광대한 갑질이다> 남북한의 교류는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일단 이상가족 상봉이 있었다. 아예 북에 이산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북한에 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좀 차이가 있다면 남한 사람이 북한에 가는 것은 자유로웠지만 북한 사람이 남한에 오려면 체재 기간을 짧게 잡고 신분 보증인도 필요했다. 약간 불공평한 규칙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원 이동의 통제를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올 사람들이 한 가득일 것이다. 그럼 남한에서 감당이 안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중요한 교류로는··. 북한의 개성 공단의 확대. 라고 해야 할까?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북한 땅에 대기업들의 공장이 들어섰다. 운송비를 생각하면 중국이나 대만에 만드는 것보다 더 싸게 들었고, 같은 민족을 돕는다는 명분도 있으니 기업들에게는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아직 갈 길은 많았지만 적어도 이제까지보다는 조금씩 살 형편이 나아질 것 같았다. “뭐, 알아서 하겠지. 난 여기에 신경 쓸 겨를은 이제 없어.”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북한쪽에는 일단 신경을 꺼버렸다. 지금 정운에게 중요한 것은 일단 게이트 내부의 신세계의 일이었다. 슬기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서 업무실로 향한 정운은 미하엘이 올린 보고서를 하나하나 체크했다. 뭐든지 하면 할수록 는다는 걸까? 정운도 이제 서류 작업에 약간 질력이 나기 시작했다. “흠···. 해외의 치안 유지 상승은 순조롭게 되어가는 것 같네.”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안경을 쓱 올리면서 말했다. “최근에는 우리 한우리 연맹을 룰 모델 삼아서 다른 귀환자들이 연맹을 만들어서 비슷한 단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흠···. 특허라도 낼 것 그랬나?” 다른 귀환자들이 짝퉁 연맹을 만들었다는 말은 정운에게도 살짝 의외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귀환자들이 범죄의 길로 나갔던 이유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능력을 합법적으로 쓸 수 없으면 별 쓸모가 없는 법이었다. 국가에서 공무원 비슷한 일을 시켜 준다고는 했지만···. 고작 공무원 취급 정도로는 성에 안 차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우리 연맹이 본을 보여준 것이다. 능력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여전히 범죄적인 유혹에 흔들려서 손 쉽게 돈을 벌려는 귀환자들이 많기는 했지만···. 상당수의 귀환자들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연맹을 만들어서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 규모는 다양했다. 사실 한우리 연맹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는 연맹은 없었다. 한우리 연맹은 솔직히 말해서 넘사벽이었고··. 그래도 간간히 최고위 레벨이 90~110 정도 되는 유저가 있는 곳이면 수백에서 수천 단위의 사람들을 모아서 도시 하나 정도의 치안 유지를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중간 규모의 연맹은 특히 미국에 많았다. 그리고 그런 중간 수준의 연맹이 아닌 자들은 자기들 끼리 수를 냈다. 어디를 가든 용꼬리가 되는 것 보다는 뱀 머리가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있는 법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끼리 뭉쳐서 연맹보다 좀 작은 수준의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명칭을 길드라고 했다. 이 길드들은 서로 연합해서 작은 소규모 도시를 지키는 치안 유지 계약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기업과 계약을 해서 그 기업과 전속 경호계약을 맺거나 했다. 덕분에 이제 한우리 연맹이라는 룰 모델을 삼아서 점차적으로 귀환자들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범죄자나 마피아의 길을 가는 귀환자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귀환자들이 이 세계에 적응할 수단을 마련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귀환자들이 이렇게 적응하고 있다는 것은···. 슬슬 세계의 치안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귀환자 범죄는 초창기에 비해서 70%가량 줄어들었고···. 단속율도 높았다. 다만, 불편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범죄자를 구속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귀환자를 구속 할 수 있는 방법은 신의 맹세 뿐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세계에 한우리 연맹뿐이었다. 결국 타국에서 귀환자 범죄자를 잡으면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우리 연맹에 연락해서 범죄자를 이송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바로 사살해 버리는게 한계였다. 그것 때문에 미하엘은 오늘 정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의 맹세를 나눠 주라고?” “예. 그렇습니다. 정운님.”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신의 맹세는 정운만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고 한우리 연맹이 절대 다른 연맹이 따라 잡을 수 없게 하는 절대넘사벽이었다. 정운으로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굳이 딴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미하엘이 말하기를····. “아무리 좋은 명차라고 해도 도로로 끌고 가지 않으면 그냥 금속 덩어리일 뿐이죠.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오히려 연맹의 위상과 이익을 높일 수 있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미하엘은 한 가지 기획서를 가지고 와서 정운에게 보여줬다. -신의 맹세 발급 계약 자격 조건- 1.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범죄자를 구속 할 수 있는 연맹이나 길드는 그 자격 조건을 한우리 연맹에서 검사 받는다. 2. 자격 조건에 합격한 연맹 및 길드는 한우리 연맹에 매년 이용료를 지불하며 매년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 실적을 보고한다. 3. 계약 기간 도중이라고 해도 길드나 연맹이 한우리 연맹의 감사에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그때는 신의 맹세를 거둬들인다. 이 기획서를 다 읽고 정운은 생각했다. ‘이 여자 정말 천사 맞나? 왜 이렇게 사악해.’ 정운은 몰랐겠지만 막 태어난 천사는 원래 물들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 태어나고 한 거라고는 정운과 천계의 연결망. 그리고 정운의 비서 역할이었다. 다른 순진한 천사들과 달리 인간과 부대끼면서 계속 인간에게 적응을 한 미하엘은 어지간한 인간 보다 훨씬 더 인간 세계에 잘 녹아들었다. 만약 그녀에게 핸드폰 하나만 주고 보이스 피싱으로 먹고 살라고 해도 강남에 빌딩 한 채 정도는 세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그녀는 사업 수단이 발군에 도달한 것이다. 이 기획서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 정운은 신의 맹세를 세계에 공유한다는 것에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기획서를 보니 자신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한우리 연맹이 타 연맹이나 길드에 일종의 라이센스를 발급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고레벨의 유저라고 해도 귀환자를 24시간 철통 감시 할 수 없는 이상 귀환자를 완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구속 능력은 신의 맹세뿐이다. 그렇다면, 그 신의 맹세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연맹의 위상이 아니 유지의 실행 가능 유무가 완전히 달라진다. 트럭으로 짐을 옮길 수 있게 되었는데 계속 봇짐 장수를 한다고 하면 누가 거기에 손님이 오겠는가? 아마 미하엘이 입안한 이 기획서를 세계에 발표하면···. 그때는 세계에서 정운에게 신의 맹세를 나눠 받기 위해서 찾아올 것이다. 종래에는 신의 맹세라는 라이센스가 없는 연맹이나 길드는 아애 장사를 못하게 될 것이 뻔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길드나 연맹은 정운에게 허락을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다 약간의 조항만 덧붙이면 신의 맹세를 통해서 그 연맹이나 길드의 장을 감시 할 수도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사악하고 완벽해.’ 정운으로서는 새삼스럽지만 미하엘의 유능함에 크게 감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한우리 연맹은 지금과는 위상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미하엘.” “예. 정운님.” “앞으로 평생 내 곁에 있어 줘.”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미하엘은····. “무··. 무슨 말씀을···. 그··. 그거야··. 바라신다면··. 물론··. 으음···.” “··········?” 정운은 순간 엄청나게 신기한 것을 본 기분이었다. 한상 쿨하고 냉정하고 또 옷깃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저 완벽한 여성이 얼굴을 붉히고 말을 허둥거리는 것이다. ‘왜 저러지?’ 정운은 그저 미하엘의 완벽한 비서력에 감탄해서 한 말이었다. 앞으로 계속 내 비서를 해 달라. 라는 의미에서 한 칭찬섞인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은 다르다고 그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심지어 정운은 그 차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고 말이다. “큼··. 크흠···. 방금 하진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럼 전 다른 업무가 있으니 이만··.”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더니 아직 결제도 다 안 된 서류를 챙겨서 가다가 한 번 떨어트리고 얼굴을 붉히면서 그 서류를 다시 줍고 황급하게 나가다가 또 문을 여는 걸 깜빡해서 머리를 박고 그 후에야 집무실을 나갈 수 있었다. “···왜 저러지?” 정운은 그런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아마 이게 정운이 한중겸보다 능력적으로 떨어지는 면일 것이다. [한우리 연맹, 신의 맹세라는 능력을 공개.] [귀환자들을 완벽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 그 능력이란 무엇인가?] [세계와의 공유 결정. 박정운 이익을 독점하지 않기 위해서 큰 뜻을 품다.] [한우리 연맹의 결정에 세계 각국은 크게 긍정적인 결과라고 높이 평가하다.] 미하엘의 말대로 신의 맹세라는 능력을 공개한 결과··. 세계는 또 난리가 났다. 요즘 들어서 항상 무슨 일만 터지면 그 중심에는 정운과 한우리 연맹이 있었으니···. 세계 각국의 지도부로서는 그 행동에 눈과 귀를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타국의 연맹이나 길드에 그 능력을 나눠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각국의 지도부는 이내 그 속내를 완벽하게 알아냈다. ‘이건···. 자신들이 이 세상 모든 귀환자들을 관리하겠다는 거군.’ ‘미치겠군.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말릴 방법이 없어.’ ‘예전 같으면 미국이 총대 메고 반대해 줬을 테지만··. 지금 한우리 연맹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럴수도 없나?’ 그들로서는 정운의 속내가 뻔히 보이지만 그래도 무조건 칭찬 하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정운에게··. ‘그건 당신들이 이 세상 모든 귀환자들을 관리하는 정점에 서겠다는 속내가 있는게 아니냐?’ 라고 따져 묻는다면? 아마 정운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런 너희는 하지 마.’ 그걸로 끝이다. 신의 맹세로 인한 완전 구속력을 나눠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 나라에서는 실질적으로 자국의 능력자들로 인해서 치안을 유지 관리 하는게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건 더욱더 최악이다. 그런 최악의 결과가 될 지도 모를 가능성을 무릅쓰고 먼저 총대를 멜 용감한 정부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이 한 발 물러서서 칭찬하기 시작하면 다른 나라도 은근히 따라가야 했다. 자고로 이런 상황에서는 튀면 오히려 좋지 않았으니까····. 한국에는 수많은 연맹이나 길드의 장들이 와서 한우리 연맹에게 신의 맹세의 라이센스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섰다. 당연하지만 지원 한다고 해서 바로 막 찍어내듯이 발급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연한 절차가 있었다. 그것 덕분에 오히려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욱더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 절차는 대강 이랬다. 우선 1차적으로 그들의 이력서를 보고 접수를 한다. 그리고 2차적으로 그들의 심리적 테스트를 한다. 전문적인 정신감정의를 동원해서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나중에 신의 맹세로 적당한 구속을 걸면 큰 일탈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작업도 필요는 했다. 그리고 3차적으로 삼대 길드의 간부 출신들이 직접 능력을 시험했다. 아무래도 귀환자 중에 범죄자를 단속하고 구속하기 위해서는 일단 일신의 힘이 중요한 법이다. 그러니 강함의 검증 유무는 필수였다. 그렇게 3차적인 테스트까지 모두 통과한 사람만이 최종적으로 정운의 앞에 나서서 면담을 보고 정운에게 직접 신의 맹세를 통해서 그 능력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이미 정운은 그 능력의 유효기간을 1년으로 제한해 놓기 때문에···. 다시 능력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또 1년 후에 한국으로 찾아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 때문에 지금 한우리 서울에는 번호표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 능력자들이 널리고 널렸다. 덕분에 서울의 호텔들이나 숙박업들만 때 아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생각했지만 좀 치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갑질입니다. 전 세계 누구든 결국 한우리 연맹에서 허락하지 않느면 길드나 연맹으로서 성립이 되기 어렵다는 건데. 이미 단맛을 본 사람들은 결국 한우리 연맹에 계속 기댈 수 밖에 없게 되는 거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70화 <한중겸의 작전 수행> “그럼, 당신들 LA갈비 길드에 신의 맹세의 권능을 수여 합니다. 부디 이 능력을 힘없고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서 써 주시오.” “감사합니다. 대표님.” 엄숙하게 정운에게 신의 맹세를 받은 한 길드원은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후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난 후에 환호성이 정운에게까지 들리는 것을 봐서는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정운이 기지개를 피면서 말하자 옆에서 정운을 도와주고 있던 슬기가 말했다. “예. 방금 나간 팀이 마지막이에요.” 그녀의 말에 정운은 어깨에서 힘을 빼고 슬기에게 다가가서 그녀에게 살짝 키스하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이제 업무 끝이네. 뭐 할까?” 정운의 손이 살며시 슬기의 허리를 감아가자 슬기는 요령 좋게 빠져 나가면서 말했다. “오늘은 안되요. 나 안 되는 날이에요.” 그녀의 말에 정운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정운에게 슬기는 이걸로 참으라는 듯이 살짝 키스해주고 떨어졌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임신이 안 되니 피임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 현실에 오고 나서는 그녀의 컨디션을 항상 배려해야 했다. 결국 한발 물러선 정운은 슬기에게 다른 얘기를 물었다. “이제 신의 맹세를 나눠준 연맹이나 길드가 몇 개지?” “그게···. 연맹이 103개, 길드가 1204개네요. 덕분에 서울에 온 귀환자들도 많이 빠진 것 같아요.” 매일같이 심사하고 또 능력을 나눠주고를 꾸준하게 반복한 결과···. 이제는 서울에 신의 맹세를 받기 위해서 온 자들은 대부분 처리한 것 같았다. “거참···. 이거 말만 다른 연맹에 다른 길드지··. 사실상 산하 단체가 무더기로 생기는 것하고 다를 바가 없네?” “좋은 일이죠. 덕분에 전력이 확 늘어났잖아요?” “그건 그렇지···.” 연맹의 규모는 대략 100명에서 500명 정도였다. 그리고 길드는 차이가 좀 나기는 하지만 보통 10명에서 100명 정도가 모여서 단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게 뭘 뜻하는가 하면···? 이들 대부분이 사실상 한우리 연맹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나 다른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이 지구에서 정직하게 세계의 룰에 적응하며 살아갈 귀환자들 대부분은 정운의 산하로 들어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천계에서 보상을 줄 법도 한데 말이야.” 정운이 그렇게 중얼 거리는 순간··.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미하엘이 마침 천계의 소식을 듣고 나타났다. -오랜만이군요. 정운. “오랜만입니다. 가브리엘님.” 정운은 그녀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이 타이밍에 맞춰서 나타난다는 것은 그녀 나름대로 뭔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는 말이었다.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정운에게 가브리엘이 말했다. -먼저 감사하다고 말하죠. 당신이 잘 해준 덕분에 천계에서도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원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정운의 말에 가브리엘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거기에 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건의했습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어쩐지 정운은 누가 반대했는지 대강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나 미카엘은 당신에게 두 그루의 진리목을 내려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라파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쯧, 그 쫌생이····.” 정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천계에 있으면서부터 정운과 라파엘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안 맞았다. 정운이 보기에 라파엘은 다른 천사들 보다 훨씬 더 까칠한 느낌이었다. 천계에 가서 알게 된 것인데 치천사는 모두 저마다의 역할이 있었다. 최고위 치천사인 미카엘은 천계를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실질적으로 치천사라고 불리는 존재는 넷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미카엘이 가장 최고위의 천사장을 맡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지금은 파우스트에게 흡수된 우리엘은 마계의 악마들을 감시하고 적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우리엘이 천계를 배신하고 메피스토와 결탁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지금은 미카엘이 그 역할까지 대신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인간들을 보살피고 자애를 상징하는 천사였다. 한 마디로 착한 엄마 같은 역할인 것이다. 그리고 라파엘은···. 천사 중에서도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천사였다. 인간들 중에 악인을 감시하고 그 악인이 죽었을 때 생전의 죄값에 따라 벌을 내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라파엘이었다. 즉, 검찰이나 경찰이라고 해야 할까? 한 마디로 나쁜 인간들과 많이 접하다 보니 인간들이 행하는 나쁜짓에 상당히 빠삭해진 천사인 것이다. 그런 라파엘과 정운은 천계에서도 그다지 마음이 맞지 않아서 결국은 크게 한 판 붙기까지 했었다. ‘제길, 안 그래도 그 인간··· 아니 천사가 걸리기는 했었다만···.’ 정운은 내심 투덜 거렸고 그런 정운을 보고 가브리엘이 말을 이었다. -라파엘이 말하기를 언어의 진리목은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술의 진리목은 얘기가 달라진다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전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정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천사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브리엘은 말을 이었다. -예술이 인간의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합니다. 자칫하면 인간들의 방향성 자체를 잘못 이끌고 갈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던가요? 전 생각도 안 했는데····.” 정운은 어차피 예술의 진리목을텃다. 라고 포기할 단계에 이르렀다. ‘라파엘, 그 쫌생이···. 다음에 얼굴 볼 일이 있으면 한판 더 붙어야지.’ 하지만 그때 가브리엘이 말했다. -예술의 진리를 품은 진리목은 무리입니다. 대신에 이것을 드릴까 합니다. 가브리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정운에게 작은 씨앗 하나와 묘목 하나를 건냈다. 정운은 그것을 받고는 되물었다. “이것들은 뭡니까?” -하나는 당신이 원하던 언어의 진리목입니다. 그 진리목을 잘 키워서 열린 과실을 먹으면 그 복용자는 세상 만물의 언어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그것 하나만 해도 상당히 큰 이익이기는 했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씨앗은 뭐란 말인가? -다른 하나의 씨앗은 진리목의 씨앗입니다. 묘목 이전의 단계인···. 말 그대로 백지 상태인 씨앗입니다. “씨앗? 이걸···. 어떻게 쓰는 거죠?” 정운의 물음에 가브리엘은 살며시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진리목의 씨앗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진리목을 지니고 있는 자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것이죠. 당신이 꼭 원하는 나무가 싹을 틔울 것입니다. “그 말씀은···. 랜덤?” -·············. 정운의 말에 굳이 부정하지 않는 가브리엘이었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씨앗을 바라봤다.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말은 좋지만 결국 무슨 열매가 열릴지는 순전히 운빨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정운의 애매한 얼굴 표정을 보며 가브리엘은 말했다.‘ -정성으로 키우면 당신에게 유익한 좋은 싹이 틀 것입니다. 그럼····. 그리고 사라져 버리는 그녀를 보고 정운은 야속하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나 선인장도 말려 죽일 정도로 식물 못 키우는데····.” 잠시 후···. 천계에 복귀한 가브리엘에게 라파엘이 찾아왔다. “상대의 반응은 어떻던가? 가브리엘.” “라파엘. 당신이 말한대로 하기는 했지만···. 너무 짓궂은 것 아닌가요?” 가브리엘은 그래도 정운을 예쁘게 보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라파엘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가브리엘, 당신은 인간을 너무나 쉽게 보고 있다. 당신하고 내가 역할을 바꿔서 수행했다면 내 심정을 이해했을 것이다.” 라파엘의 말에 가브리엘은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자애와 사랑을 근원으로 삼고 있는 자신에 비해서 라파엘은 천사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악역 같은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 라파엘의 말이기에 믿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천계를 위해서(?) 열심히(?) 그것도 다른 사특한 목적도 없어(?) 헌신적으로(?) 일을 해주고 있는 정운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만약 정운이 지금 가브리엘의 심정을 다 알았다면 그때는 죄책감에 밥도 목구멍으로 안 넘어 갔을지도 몰랐다. “진리목의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박정운 그에게 어울리는 열매를 맺겠지. 그러니 아쉬워 할 것은 없어.” 라파엘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도 속내는 따로 있었다. 사실 진리목은 이 세상에 같은 나무가 두 그루 존재하지 않는다. 즉, 천계에 있는 대부분의 진리목들과 겹치지 않기에 위험한 나무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나중에 이게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 지는 이때의 라파엘은 알 수 없었다. 정운이 지구의 치안을 지키고 천계의 퀘스트를 완수하고, 그리고 게이트의 신도시를 안정시키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게이트의 진출을 위해서 가장 선두에서 서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중겸이었다. “커억!!!” 브로드 왕국에 있는 작은 도시··. 그 도시의 광장에서 어떤 남자가 강력한 음파의 충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남자는 이 도시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던 가장 큰 용병단의 단장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상대 용병단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리다가 일대일 대결로 반격을 노렸다. 하지만··. 그 결과 상대의 일격에 박살이 나 버린 것이다. “흥, 이 실력으로 도전을 해? 가당찮기는···.” 남자를 박살낸 음파 공격을 가한 사람은 아리따운 여성에 돌 비파를 장식처럼 끼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남자들의 넋이 빠져나가 버릴 것 같은 이 미인은 당연히 왕귀인이었다. 남자를 오만하게 깔아보는 그녀의 모습에 상대는 치욕감과 선망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수고했어. 귀인.” “아!! 오셨나요?” 이제까지 냉철한 얼음 여왕 같은 그녀가 뒤에서 나타난 남자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천하의 왕귀인이 이렇게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지는 남자는 당연하지만 한명 뿐이었다. 한중겸이 나타난 것이다. 한중겸은 나타나자마자 왕귀인의 가는 허리를 끌아 당겨서 품에 안았다. 그리고 왕귀인이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은 상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여기 이 구역은 오늘부터 우리가 접수한다. 불만 남아있나?” “크으윽····.” 이를 갈면서 한중겸을 바라보는 상대에게 한중겸이 싸늘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죽기 싫거든 눈 깔아라.” “············.” 진심이 가득 들어있는 한중겸의 말에 상대는 말 그대로 눈을 깔았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힘 있는 강자가 약자를 착취 하는게 너무나 당연한 무법 국가. 그게 바로 이 브로드 왕국이었다. 결국 영역을 모두 넘긴 상대 용병단은 그날 중으로 모두 짐을 싸서 이 도시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한중겸은 부하들을 데리고 호쾌하게 말했다. “자!! 오늘은 파티다!! 실컷 놀고 마셔라!!” “옛!! 대장님!!!” “옛!! 대장님!!!” “옛!! 대장님!!!” 한손에 아름다운 자기 여자를 끼고, 뒤로는 호쾌하게 부하들을 이끌고 이동하는 한중겸은 속으로 생각했다. ‘난 이게 체질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역할에 너무 잘 몰입한다고 생각하는 한중겸이었다. 사실 그는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게 정운이 생각한 작전이었다. 브로드 왕국의 내부에서 세력을 따로 만들어서 점차점차 브로드 왕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만든다. 라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작전의 결과, 브로드 왕국에서 최근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신흥 용병단이 있었다. 그 용병단의 이름은 제로 용병단이라고 했다. 이게 바로 한중겸이 정운의 계획대로 다른 연맹원들과 함께 만든 용병단이었다. 제로 용병단은 나타나자마자 상당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이 브로드 왕국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은 용병단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혹은 분열하며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 생기는 용병단들의 90%는 보통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없어져 버린다. 기존에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용병단이 텃세를 부리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 텃세지 과격한 마피아들의 영역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한 산에 호랑이가 두 마리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들의 영역에 다른 용병단이 생기면 암살, 회유, 협박 등으로 어떻게든 없애기 위해서 안달이 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로 용병단이 생겼을 때도 기존의 용병단들이 텃세를 부렸다. 다만···. 이번에는 반대로 그 용병단이 개 박살이 났을 뿐이었다. 원래 이런 일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흥 강자가 기존의 용병단을 집어 삼키고 그 세력을 불리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단, 이번처럼 파죽지세로 무섭게 세력을 불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슬슬 게이트 너머의 얘기도 스토리를 빼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시작은 한중겸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71화 제로 용병단이 브로드 왕국에 나타난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이미 자신의 근거지가 되는 도시를 지니고 있던 대형 용병단이 몇 개나 없어졌다. 모두 제로 용병단에게 영역을 빼앗기고 해산해 버린 것이다. 용병단이 도시를 소유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이 브로드 왕국에서 나름 한 세력 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용병단은 자신들의 근거지가 되는 도시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 도시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시민들에게 세금을 걷고 그 세금의 일부를 중앙에 있는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에 상납하는 시스템이었다. 사실 말만 용병단이지 결국 평범한 봉건주의 왕국에 국왕과 영주들의 관계와 비슷했다. 다만 차이점은 영주들보다 훨씬 더 원색적이다. 라는 것 정도였다. 영주들도 영지전을 해서 상대방의 세력을 흡수하거나 하기는 하지만 그럴 때 마다 뭔가 핑계가 있어야 했다. 하다못해 어느 날 파티장에서 저 놈에 내 마누라를 음흉하게 봤다. 그러니 귀족의 명예를 걸고 결투를 청한다. 이 정도의 핑계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브로드 왕국의 용병단은 그런 핑계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마치 숫사자들의 영역 싸움이라고 할까? 그저 강하기만 하면 군림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용병단들도 신흥 강자들을 철저하게 경계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미 제로 용병단이 다섯 개나 되는 도시를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미 이 정도 되면 슬슬 중앙의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에서도 제로 용병단의 이름이 귀에 들어갈 정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도 제로 용병단은 중앙에 세금을 전혀 바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들은 중앙의 눈치 따위는 전혀 볼 것 없다는 듯이 말이다. 술집에서 한창 부하들을 데리고 술판을 벌이고 있던 한중겸에게 왕귀인이 술을 따라 주면서 말했다. “최근 들어서 우리 주변에 용병단들이 연합을 하려는 끼미가 보인다고 해요.” “흠····. 그래? 뒤에 누가 중앙의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이 부추기는 건가?” “예. 뻔한 거죠. 뭐. 아아···.” 왕귀인은 과일 하나를 살짝 찍어서 한중겸의 입에 밀어 넣으려고 했다. “어··. 부하들 보는데··?” 바람둥이인 한중겸이었지만 이런 분위기는 약간 어색한 걸까? 살짝 부끄러워했다. 호이려 그런 한중겸을 보고 왕귀인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뭐 눈치 볼 것 있나요?” 왕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과일을 밀었다.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만사에 틱틱 거리는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애교가 상당히 늘어있었다. 한중겸으로서는 기쁜 일이기는 했다. 다른 남자들에게는 차가운 얼음 여왕 같은 여자가 자신에게만 사근사근하게 대해주니 매력이 장난 아니었다. 갭차라고 하던가? 이 여자를 이렇게 상냥하게 만들 수 있는 남자는 나 하나 뿐이다. 라는 성취감과 우월감이 발동한 것이다. 그 결과····. ‘뭐, 다 좋은게 좋은 거지.’ 이제는 그냥 자기 옆에서 새끼 고양이처럼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왕귀인의 사근거림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한중겸이었다. 그런 한중겸에게 술집의 주인이 다가와서 푸짐한 안주상과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술을 대령하면서 말했다. “하하하!! 여기 있습니다. 단장님.” “응? 이런 것 안 시켰는데?” “이건 서비스입니다. 참고로 이 술은 저희 할아버님이 꽁꽁 숨겨두고 있던 술로, 저희 가게에서는 제일 비싼 술입니다.” 술집 주인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것 필요 없다고 전에도 말했을 텐데? 어쨌든 가격은 치르지. 갈 때 계산서에 올려줘.” 한중겸의 말에 술집 주인은 손사레를 치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큰일 날 소립니까? 단장님한테 술값 받았다가는 제가 동네에서 매장 당할 겁니다. 요즘 단장님 덕분에 저희들이 얼마나 이득을 보는데요. 그러니 이 정도는 하게 해 주십시오.” 술집 주인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잘 먹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혹시 필요하신 것 있으면 바로 불러 주십시오.” 한중겸에게 그렇게 알아서 서비스를 하는 술집 주인은 진정으로 한중겸에게 감사했다. 사실 이건 한중겸이 이제까지 접수한 도시들을 잘 관리했기 때문에 생긴 보답이었다. 원래 기존에 도시를 보호하고 있던 용병단들은 사실상 말만 보호지 제대로 된 보호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착취라는 개념에 더 가까웠다. 세금 이외에도 툭하면 장사꾼들의 물건을 멋대로 가져가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시민들 중에 여자들도 마음대로 건드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에 건너온 사람들은 정말 죽지 않는 이상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갖은 수모를 당해도 일단 살고자 하는 집념으로 어떻게든 살아 남았던 것이다. 비록 그게 한 평생 착취와 굴욕으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해도 인간이 살고자 하는 집념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다. 처음에 한중겸이 상대 용병단을 박살내고 가장 먼저 한 작업은 기존의 용병단원들을 싹 다 처벌한 것이었다. 원래 용병단을 흡수한다고 해도 기존의 용병단원들은 대부분 받아들이는게 보통이었다. 머릿수가 늘어나야 세력도 안정적으로 늘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한중겸은 기존의 용병단원들 중에 시민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여자들을 겁탈한 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시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처형했다. 그리고 아주 예외로 죄가 없거나 가벼운 자들은 도시 너머로 추방해 버렸다. 거기까지만 해도 시민들은 통쾌하기는 했지만 그저 일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다 그놈이 그놈이 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제로 용병단을 경계했다. 새로운 용병단이 도시를 차지했을 때 가장 포악하게 날뛰는 것은 보통 초기였다. 막 도시를 차지한 성과를 보상 받기 위해서 용병단원들은 시민들을 착취하고 유린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용병단의 간부들을 그런 대원들을 말리지 않았다. 잘 싸웠으니 그 정도 상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앞장서서 더 심하게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봐야했다. 그래서 도시의 힘없는 시민들은 일단 바싹 엎드려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도시를 점령한 제로 용병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시에 널려있는 고아들을 먹이는 일이었다. 이런 약육강식의 환경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우선 힘없는 아이들과 여자들이었다. 제로 용병단은 거리에서 구걸과 도둑질로 연명하고 있는 아이들을 모두 거둬서 그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기 시작했다. 그건 이 브로드 왕국의 시민들에게는 너무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다른 왕국에 가도 고아들 앞에 가장 먼저 달라붙는 단어는 ‘더러운’ 혹은 ‘비천한’ 이라는 단어들이었다. 이 시대에서 고아라는 존재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위험하고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존재였다. 고아들은 거리에서 멋대로 자라거나 혹은 죽고, 만약 살아남으면 잘해 봐야 좀도둑이나 창녀가 되는게 이 세계의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 고아들을 거둬서 공짜로 먹이고 입히고, 알뜰살뜰하게 보살피는 광경을 보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제로 용병단은 며칠 지나자 아애 도시에 고아원을 만들어서 거기서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로 용병단은 마을의 외각 지역에 커다란 건물을 세우더니 거기를 공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공고를 붙였다. [일할 사람 모집 중. 기본급 50실버. 시급 1실버. 일일 근무 시간 10시간, 초과 근무 시에는 별도로 시간당 1실버 추가 지급함. 숙식 제공 함. 4인 가족까지 포함. 단 이 경우 시급은 20% 삭감하여 80브론즈로 함.] 이 공고는 사람들에게 또 한차래 큰 반향을 불러왔다. “시급? 시급이 뭐지?” “그게··. 일을 하는 시간당 보수를 쳐주는 거래.” “기본급은 뭔데?” “아까 설명할 때 보니··. 시급하고는 별개로 따로 주는 돈이래. 월급의 최저 지급액이라고 하던가?” “뭐? 잠깐만··. 그럼 시급 1실버라는 말은 하루에 10시간 일하면 10실버라는 말이야?” “그런거지··. 그리고 그렇게 열흘만 일하면 1골드라는 말이고.” “거기다 기본급이라고 따로 돈을 50실버를 챙겨 준다고?” “그렇다고 적혀 있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 세계, 그것도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릴 정도로 엉망진창인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실로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파격적인 조건은···. “····허어····? 도대체 뭘 시키길래? 흑마법 생체 실험이라도 하나?” “글세 말이야.” 의심을 불렀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공고를 잘 믿지 않았다. 1실버라는 돈은 이 세계의 환율로 따지면 대략 1만원정도 되었다. 그리고 브로드 왕국의 서민들의 월 평균 수익이 80실버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시급 1실버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함부로 이 공장이라는 곳에 취직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가?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브로드 왕국. 그 중에서도 변경에 해당하는 도시였다. 더 이상 인생이 떨어질 구석이 없는 막장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당장 먹고 살 곳이 없는 마당에 까짓것 한 끼라도 먹고 죽자. 라는 생각을 하고 이 공장에 문을 두드리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기···. 취직을 하려고 왔습니다.” “잘 왔습니다. 여기 서류의 기입사항 작성 하시고 저기 의자에서 기다리십시오.” 깔끔한 안내 데스크에서 말끔한 옷차림의 여직원이 친절한 말투로 접수를 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지만 이 브로드 왕국의 사람들에게는 이게 무슨 일인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자기 인생을 통틀어서 낫선 사람에게 존칭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거지꼴을 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누가 존중을 보여 준다는 말인가? 그리고 잠시 후···. “접수 다 되었습니다. 이름을 호명하시는 분들은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직원은 이름을 불러서 사람들을 한명씩 호명했다. 사실 기본적으로 다 합격이었다. 사람 뽑는 이유는 이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인데 굳이 가려가며 뽑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몇 가지 결격 사유가 있는 자들만 어쩔 수 없이 불합격이었다. 전염병을 앓고 있다거나 마약을 하고 있어서 금단 증상에 시달릴 가능성 있다거나···. 그런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피검사와 간단한 건강검진을 하고 있는 것 뿐 이었다. 검사를 마친 후에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 수근 거렸다. “아까 그거 뭐였지? 따끔 하던 그 바늘 너머로 내 피가 빨려 들어가더라고.” “난 더했어. 이상한 판에 가슴을 대고 있으라고 했던 것 있지? 그게 도대체 뭐지?” “·······오줌은 왜 수집하는 걸까?”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현대인들이야 이게 건강 상태를 보기 위한 검진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그런 지식은 없었다. 귀족들의 경우 주기적으로 자기 건강을 체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이렇게 하는게 아니라 신관을 불러서 그 신관의 신성력을 통해서 몸속에 이상을 살피는 것이었다. 사실 그거 하나는 이 세계가 더 좋았다. 절대 실수도 없고 시간도 안 걸리고 금방 끝나니 말이다. 단, 돈이 엄청나게 드는 검사기 때문에 귀족들이나 왕족이 아닌 이상은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건강 검진이 끝나고 떨어질 사람들은 떨어지고 괜찮은 사람들은 공장의 기숙사 안쪽으로 안내 되었다. “가족이 있으신 분은 오늘 안으로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 첫 달은 외출이 불가능 하고 다음 달부터 외출이 가능하니 그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72화 <레드 스네이크와의 접선> 안내 직원이 외출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자 합격한 사람들이 불안해 했다. “왜 첫 달에는 외출이 불가능 한 겁니까?” 혹시 뭔가 나쁜 일이 생길까봐 겁 먹은 사람에게 안내 직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이 공장의 안에서 일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안상의 이유도 있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 “···········.” “···········.” 하는 말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말끔한 차림의 여성이 사근사근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신뢰감이 생기는 것이 사람의 심리였다. 사람들이 조금 마음을 놓은 것 같자 직원이 다시 말했다. “첫 달이 지나면 그 후에는 자유롭게 행동 하실 수 있으니 안심해 주십시오.” “···········.” “···········.” “···········.” 안내 직원의 말에 사람들은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감히 따져 물을 용기는 따로 없었다. 그리고 떨어진 사람들은···. “이거 다행 아닌가?” “그러게···. 난 오히려 떨어져서 안심이야.” “도대체 피는 왜 가져가는 거야. 우리 저주 받는 것 아니야?” “글쎄···. 사실 시급을 1실버나 준다는 것부터 수상하기는 했지만···.” “차라리 잘 됐어. 빨리 도망가자고.” 그렇게 붙은 사람들은 오히려 불안해하고 떨어진 사람들은 오히려 안심하는···. 그런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가 상황이 역전 되는 것은 바로 한달 후였다. “어이··. 자네들 잘 있었나?” 거리에서 훔친 술에 골목에서 잡은 쥐 고기를 안주 삼아서 홀짝이고 있는 부랑자들에게 한 명이 다가왔다. 푸른색 가죽 같은 바지를 입고 상의에는 얼룩 하나 없는 흰색 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어? 자네는··. 마크? 마크인가?” “마크 자네, 그 수상쩍은 공장이라는 곳에 취직하더니··. 아직 살아 있었군.” “아니. 이건 살아 있는게 아니라··. 자네 무슨 일이 있었나? 이런 옷은 어디서 훔쳤어?” 예전에 거리에서 함께 뒹굴던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마크라는 남자가 한껏 뽐을 내면서 말했다. “거 촌스럽기는··. 이건 우리 공장에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최저 생필품일 뿐이야.” “····이렇게 깨끗한 옷을 판다고?” “아니지. 줬다니까? 그냥 줬어.” 마크의 말에 다른 동료들은 입을 쩍 벌렸다. “옷을 그냥 주다니··. 이건 가죽, 아니 천인가? 이건 무슨 바지인가?” “하하하··. 처음보지? 이건 청바지라는 거야. 어지간한 가죽보다 훨씬 더 탄탄하지.” “청바지? 그건 도대체 무슨···.” “그보다 길거리에서 이렇게 불쌍하게 마시지 말고 근처에 어디 술집이라도 가지. 내가 살 테니.” 그렇게 마크라는 남자는 예전에 동료들이었던 부랑자들을 데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봐··. 여기는··?” “마크, 여기 들어가는 거야?” 동료들은 망설였다. 사실 그들은 이 가기에 자주 신세를 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안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가게 뒤편에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주는 역할이 이들의 역할이었다. 그것도 눈치껏 하지 않으면 더럽다고 얻어맞기 일쑤였던 곳이다. 그러나 마크는 당당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오늘은 내가 살 테니 그냥 들어와.” 그리고 마크는 쭈뼛거리는 동료들을 데리고 술집의 안으로 들어가더니 점원에게 당당하게 명령했다. “일단, 양고기 꼬치구이하고 레몬치킨 두 마리, 그리고 어디보다··. 돼지고기 요리는 뭐가 있나? 갈릭 바비큐 4인분 가져다주게. 그리고 맥주는 일단 통으로 하나 가져오고.” “손님 그렇게 시키시면 다 해서···.” “남는건 팁이야.” 짤랑··. 마크는 남자의 손에 대략 30실버는 든 작은 주머니를 던져줬다. 그러자 점원은 재깍 허리를 반으로 접으면서 말했다. “바로 가져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리가 가져오고 예전의 동료들은 도대체 마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예전에 자신들과 같이 부랑자로 뒹굴 때에는 짠돌이 마크라고 해서 음식물 쓰레기 한 점 양보하는 법이 없었던 자였다. 그런데 그런 마크가 이제는 자신들이 평생 들어와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식당에 들어와서 자신들에게 생전 처음 보는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크으···. 맥주가··. 별로네. 역시 냉장고 없이는 별로구나.” 정작 술을 사주는 마크는 술 맛이 영 별로라는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마크를 보며 다른 동료들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네 무슨 일이 생겼는데? 어디 귀족가의 하인이라도 되었나?” 동료의 말에 마크는 크큭 거리는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공장에 취직한 것은 알고 있지?” “··그렇지. 그리고 우리는 자네가 한 달 내내 안 보이기에 진작 죽었는 줄 알았지.” “죽어? 내가? 헛소리지···. 난 절대로 공장의 정직원이 되어 보기 전에는 안 죽을 거야. 암. 절대 안 죽지.” “····도대체 그 공장이 어떤 곳인데 그래?” “말 좀 해봐. 말 좀!!!” 안달이 나 있는 동료들에게 마크는 공장이라는 곳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장에서 취직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장 내부의 설비를 배우는 거였어. 거기에 신기한게 많더군. 버튼만 누르면 나사를 조아주는 드릴에서부터 상품이 알아서 계속 나오는 컨테이너까지···. 우리는 처음에 반장에게 거기에 관해서 배워야 했지.” “반장?” “응. 아아··. 작업 반장님을 말하는 거야. 우리한테 일을 가르쳐주고 감독하는 선임이지. 어쨌든···. 일에 관해서 좀 베우고 일을 시작했는데··. 이게 정말 천국 같은 거야.” “천국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천국이지. 일 자체도 그렇게 힘들지 않고, 하루에 세끼 꼬박꼬박 주고 식 후에는 한 시간씩 휴식 시간도 있고, 아!! 그것 말고도 오전 오후에 잠깐 30분씩 쉰다네.” “쉰다고? 일 하는 도중에?” “밥을 세끼나 줘? 언제 언제?” 보통 이 세계에서는 서민들도 하루에 두 끼만 먹는게 보통이었다. 그게 양이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순전히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만 말이다. 귀족들의 경우는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거나, 혹은 점심에 다과회를 가지고 그리고 저녁은 연회장에 가거나 혹은 따로 디너를 즐기며 하루 세 끼를 먹었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보통 하루 두끼가 정량인 것이었다.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료들에게 마크가 말했다.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 번이지.” “그렇게 세 번?” “그래. 물론 공짜고, 우리는 식당에 가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밥을 챙겨 줘. 뭐, 젓가락 이라는게 사용하기 좀 불편하긴 한데···. 이제는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어.” “·············.” “·············.” “·············.” 마크의 말을 듣고 있는 다른 동료들 입장에서는 어디 딴 세상의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식사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여기 밥 왜 이렇게 맛없는 거야?” 마크의 투덜거림에 일행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는 이런 식당에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서로 싸움까지 났었던 부랑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마크는 직접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맛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맛없다고? 정말?” “그래.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자네들 주려고 가져온게 있었지. 우리가 간식으로 먹는 건데····.” 간식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어이가 없는 부랑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마크가 내민 것은···. “응? 뭐야? 이건? 부스럭거리는게 천하고 비슷한데?” “비닐이라는 거야. 이렇게 벗기고 그 안에 든 것을 먹는 거야.” “이건? 쇠잖아? 이걸 어떻게 먹어? 뚜껑도 없는데?” “여기 이쪽에 이거 보이지? 이걸 이렇게···.” 푸식!! 캔의 뚜껑을 따서 넘겨준 다음 동료들에게 먹어 보라고 말을 하는 마크였다. 그리고 동료들은 살짝 머뭇거리면서 맛을 보더니···. “어엇!!!?” “이런···. 이런···. 이건 도대체····?” “········귀족들이 먹는게 혹시 이런 건가?” 그들은 크게 놀랐다. 정체불명의 달콤한 파이와 톡 쏘는 맛이 일품인 검은색의 음료는 그들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천상의 맛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크가 말했다. “이 정도는 원하면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어. 난 좀 질려서 자네들 주려고 가져왔지.” 이제 부랑자들은 마크를 거의 귀족 나리 보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들이 먹은 천상의 간식은 초코파이와 콜라였다. 제로 용병단이 운영하는 공장은 도시 내에서 꿈의 직업이 되었다. 이 도시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워낙에 어려웠다. 정직하게 장사를 하려고 해도 도시를 지배하는 용병단이 닥치는 대로 착취해 버리는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로 용병단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럴 걱정이 없었다. 우선 숙식 자체가 제로 용병단이 지켜주는 부지 안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치안이 안 좋은 브로드 왕궁 내부에서도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언젠가 딱 한 번 외출했던 직원 한명이 어던 강도들에게 살해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제로 용병단은 단번에 도시의 문을 걸어 그 누구도 나가지 못하게 한 후에 의심 는 인간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 가두고 심판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 기회에 자신들이 다스리는 도시의 암흑가를 뿌리 뽑겠다는 듯이 악착같이 조사하는 것을 보고 차라리 암흑가의 인간들이 빨리 범인을 잡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협조할 정도였다. 이제 제로 용병단의 공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 도시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신분이 된 것이다. 도시의 치안이 잡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하나하나 늘려가기 시작하자···. 이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도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의 일자리뿐이었지만 제로 용병단이 운영하는 ‘마트’라는 상회가 생기면서 거기에도 일자리가 생겼다. 이제 예전의 공장 때와는 달리 일 자리를 못 얻어서 난리였다. 특히 이 마트에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 자리를 구한다는 말에 여자들은 정말 목숨 걸고 달려들고 있었다. 공장이 생기고, 마트가 생기고 그리고 더러운 하렘가의 판잣집을 밀어내고 거기에 사람들이 살 수 있게 깨끗한 연립주택을 짓고, 거기에도 일자리는 창출 되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사람들의 생활이 변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제로 용병단이 다스리는 도시는 대륙의 쓰레기라고 불리는 브로드 왕국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기 위한 초기 자금은 모두 제로 용병단, 좀 더 엄밀히 말해서 한우리 연맹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지출은 별것 아니었다. 브로드 왕국 전체를 자신에게 우호적인 영토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정운의 작전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투자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이 도시에 많은 돈이 든다는 말이 들자··. 주변의 용병단들이 노리고 쳐들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히려 역공을 받고 주변 다섯 개의 용병단이 모두 박살이 났고, 이제는 제로 용병단이 다스리는 도시가 다섯 개가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도시들도 모두 처음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흠····. 애당초 정운이 명령대로 움직였을 뿐이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네.” 한중겸은 도시의 어디를 가도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미소와 감사에 기분 좋은 피곤함과 훈훈함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한중겸의 이런 훈훈함에 초를 제대로 뿌리는 불청객이 도착해 있었다. “대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누가 왔는데?” “그게, 중앙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레드 스네이크?” “예. 그렇습니다.” 한중겸은 살짝 올라있던 술기운을 머리를 흔들어서 날려 버렸다. “난 집무실에 갔다 올 테니. 손님은 응접실로 안내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장님.” 한중겸은 손님을 기다리게 하고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사실 한중겸이 집무실로 가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여기 어디에 있었는데···.” 용병단을 만들기 위해서 브로드 왕국으로 진출하기 전에 정운이 한중겸에게 말한 것이 있었다. ============================ 작품 후기 ============================ 한중겸의 작전은 슬슬 본격적으로 시동을 겁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73화 “형님. 일단 브로드 왕국에 도착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만약 그때가 온다면 이걸 쓰십시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개의 단말기를 넘겨줬다. “이건···? 게이트 너머에서 폰이 돼?” “안되죠. 이건 폰의 형식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특수한 무전기입니다.” “그래? 통신 거리는 어느 정도인데?” “브로드 왕국의 어디에 있다고 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주십시오.” “브로드 왕국 전역? 그만큼 송신 거리가 된다고? 중간에 중계하는 통신기지도 없이? 정말?”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미군에서도 특수 부대가 쓰는 특제품이라고 해요. 암시장에 나온 걸 샀습니다.” “얼마 줬는데?” “한 200억 정도?”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어이가 없었다. “최신 스마트 폰 몇 개 값이야?” “그러게 말이죠. 그래도 지금 우리한테는 필요한 장비입니다. 잘 써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해서 한중겸은 정운에게서 무전기를 받아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서로 연락해서 일을 잘 처리해 갔다. 제갈공명이 유비한테 쪽지 주던 시기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 이제는 그냥 연락을 하면 되는 것이다. 뚜····. 뚜····. 뚜····. [무슨 일입니까? 형님.] 약간 긴 신호가 가던 정운은 한중겸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다. “여, 정운이냐? 지금 레드 스네이크인지 뭔지 하는 애들 도착 했다고 한다.” [레드 스네이크라. 그게 브로드 왕국의 중앙정부라고 했었죠?] “그래. 어떻게 할까?” 정운은 한중겸의 말에 그다지 놀란 표정은 짓지 않았다. 이미 언제가 되어도 레드 스네이크에서 뛰어들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예상보다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별로 큰 오류는 아니었다. [미리 예상해둔 시나리오는 몇 가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어차피 우리가 하는 회의야 탁상공론이죠. 현장의 판단에 일임 하는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네 말은····?” [형님 하고 싶은 데로 처리하십시오.]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하지. 사랑한다.” [전 안 사랑합니다.] “아니 나도 그건 아니고·. 브로 대 브로로서··. 야!! 여보세요!!?” 이미 정운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린 후였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건가?” “조금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응접실에서 한중겸을 기다리고 있는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의 사신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고 있었다. 이 브로드 왕국에서 레드 스네이크 소속이 된다는 것은 신분이 상승한다는 것과 같았다. 다른 용병단의 단장이라고 해도 레드 스네이크의 평대원 하나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사신의 자격을 가지고 나타난다면? 그때는 정말 어디 왕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레드 스네이크의 눈에 거슬릴까봐 사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주고 혹시나 더 필요한게 있을까봐 눈치를 보는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 제로 용병단이라는 곳은 레드 스네이크 소속이라는 것을 밝혀도 아무런 대접이 없었다.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응접실로 안내 하더니 그냥 기다리라는 것 뿐이었다. ‘이 새끼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안 그래도 그는 좋은 소식을 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레드 스니에크로서는 변방에 어떤 용병단이 세력이 커지고 있는데 전혀 세금을 바치고 있지 않으니 세금을 내게 해라. 라는 명령을 받고 찾아왔다. 그는 그 명령을 받자마자 일단 봉 잡았다고 생각했었다. 세금은 세금대로 받고 자신에게 떨어질 콩고물 까지 완벽하게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안 들게 나온다면? 아주 기둥뿌리를 뽑아 버릴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드디어 한중겸이 나타났다. 한중겸은 혼자 나타나지 않았다. 한중겸의 옆에는 세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함께 했다. 아테나, 메두사, 왕귀인. 하나하나가 보는 순간 넋을 잃어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미인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다 대동하고 나온 한중겸을 보고 상대는 화낼 타이밍도 놓치고 그대로 넋을 잃어 버렸다. 그런 상대를 보고 한중겸이 말했다. “오래 기다려나? 제로 용병단의 한중겸이다.” “아···. 아아··. 그래. 난 레드 스네이크의 사신으로 온 3급 대원 미스티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사신은 한중겸의 말을 듣고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일단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한중겸의 뒤편에 곱게 서 있는 세 명의 여자들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사신을 보고 한중겸은 눈썹이 꿈틀 거렸다. ‘이 새끼 봐라····. 말을 까? 거기다 눈깔 처리하는 것 봐라? 지금 내 여자 보는 거 맞지?’ 자신은 바람 펴도 되지만 자신의 여자들을 바람피면 안 된다. 라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나쁜 남자 한중겸은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야!! 뭐 때문에 왔어?” 예의는 저 멀리 집어치우고 까칠하게 말하는 한중겸이었다. 그리고 어디를 가도 레드 스네이크의 용병단이라는 신분을 밝힌 후에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던 상대는 그런 한중겸의 대응에 당황해 버렸다. “음? 으음···? 잠깐? 지금 내가 한 말 듣기는 한 거냐?” “뭐? 뭘 말하는 건데?” “아니 그러니까·····. 난 레드 스네이크의····.” “용건만 말하고 꺼질래? 그냥 꺼질래?” “·················.” 이번에는 말도 다 꺼내지 못하게 했다. 이쯤 되면 확실해 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레드 스네이크라는 단체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브로드 왕국에서 이런 상대는 처음 접하고 있었다. 보통 이 왕국에서 레드 스네이크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이 상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다. ‘이건··. 이럼 안 되는데?’ 사람은 원래 익숙함에 강하고 생소함에 약한 법이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는 상대를 보며 미스티라는 남자는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한중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기껏 시간 내 줬더니··. 할 말 없으면 꺼져라.” 한중겸이 매몰차게 축객령을 내리자 미스티는 서둘러서 정신을 차렸다. 적어도 이렇게 나갈 수는 없었다. “잠깐··. 잠깐만, 난 중앙의 연락을 가지고 왔다. 이 소식을 들으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별로 안 바뀔 것 같은데?” “일단 들으라니까!!!?” “흥분하기는···. 말해 봐.” 미스티는 시큰둥한 한중겸을 보면서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건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직 자리를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를 수도 있지만··. 이 브로드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것은 우리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이다.” “그래서?” “당연하지만 이 나라의 모든 존재는 우리 용병단에 세금을 바치고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개소리 작작 하셔.” 한중겸이 시큰둥하게 반응을 하자 미스티는 조급한 어조로 말했다. “말로 할 때 듣지 않으면 실력 행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 “실력 행사?” 한중겸은 눈썹을 꿈틀 거리면서 말했다. 그런 한중겸을 보고 이제야 반응이 있다고 생각한 미스티는 한중겸에게 열변을 토했다. “수백만에 달하는 레드 스네이크의 용병단이 너희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설령 대륙의 반대편으로 도망간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런 피의 징벌을 원하는 거냐?” “···············.” 한중겸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팔짱만 끼고 묵묵하게 상대를 바라봤다. ‘어디 지껄이고 싶은 만큼 지껄여 봐라.’ 한중겸의 이런 속 마음을 알 길이 없는 상대는 자기 말에 도취 되어서 일방적으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들어라. 나에게 잘 보이면 나쁘게 하지는 않겠다. 너 역시 이 일대를 계속 지배하고 싶겠지? 그럼 우리 용병단에 세금을 바쳐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가 보고를 좀 잘 올려 줄 수도 있다.” 그렇게 말을 한 미스티는 한중겸의 뒤편에 있는 세 명의 여인들을 음흉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내 기분 좀 풀어 줘야겠지만 말이야. 저기 뒤에 있는 여자들이 내 기분 풀기에 딱일 것··· 커억!!!!” 뻐억!!!! 호랑이 앞에서 깐죽거린 여우의 최후는? “죽어!!! 이 썅노무 새끼야!!!!” 바로 이게 답일 것이다. 원래 메이지 타입의 유저이고 특기는 테이밍인 한중겸이었지만··. 레벨이 무려 280이다. 이런 머저리 하난 정도는 그냥 주먹으로 조져 버릴 수 있었다. 최초의 어퍼컷이 턱주가리를 날려 버린 후에 쓰러진 놈을 향해서 신명나게 밟아 버리는 한중겸이었다. 퍽!! 퍼퍼퍽!! 콰직!! 우지직!! 살이 터지고 뼈가 으깨지는 살벌한 효과음 속에서 미스티라는 놈은 순식간에 인간 걸레가 되어가고 있었다. “으아악!!! 잠·· 잠깐만···. 제발·· 커억!!” 아무리 애원해 봐야 돌아올 자비는 없었다. 원래 가벼운 성격이라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런 한중겸이 한 번 화가 나면 정말 아무도 못 말렸다. “잠깐? 쳐 맞는 중에 잠깐이 어디 있어? 이 병신아!!!!!” “으아아아!! 제·· 커억!!! 크아악!!” 한중겸의 애첩인 세 명에게 노골적인 욕심을 들어냈을 때 부터··. 이미 그의 운명은 이렇게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미스티는 한중겸에게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쳐 맞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수레에 실어서 도시 밖으로 쫒겨 났다. 함께 온 레드 스네이크의 용병단원들은 한중겸의 처우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이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 라고 고래고래 소리 쳤다. 물론 거기에 쫄 한중겸은 절대 아니었다. “너희들도 추가로 쳐 맞고 싶지 않으면 꺼져라.” 그 한 마디에 놈들은 썰물 빠지듯이 멀리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놈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중겸은 중얼 거렸다. “좀 천천히 진도 나갈까 싶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냥 다 쓸어버리지 뭐.” 정운은 분명히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중겸은 아애 레드 스네이크인지 지렁이인지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기로 결정한 것 같다. 그 모든 분노의 원흉은 미스티라는 눈치 없는 쓰레기가 한중겸의 성질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 레드 스네이크는 비상이 걸렸다. 비상이라고 해도 심각한 비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브로드 왕국에서 정식으로 레드 스네이크를 적대하기로 표명한 적이 나타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부동의 최강자로 이 브로드 왕국을 지배해온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 그 위치는 실로 확고해서 이제는 그 누구도 도전하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도전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일단 비상을 걸기는 걸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들의 패배는 전혀 염두해 두지 않고 있는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이었다. 어쨌든 이 보고는 레드 스네이크의 최고위에 있는 단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흠, 제로 용병단이라····. 나타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변방의 도시 다섯 개를 통합. 제법이군. 응? 출신지는 어디인지 적혀져 있지 않네? 보고 올리 놈이 누락 시킨건가? 아니면 조사가 안 된걸까?” 단장의 덤덤한 말에 보고를 올린 단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단장님. 아직 조사가 부족합니다. 워낙 변방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게이트 바로 북쪽에 있는 도시들에서 일어난 놈들입니다. 그 근본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열변을 토하면 변명하는 부하를 보며 단장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보고서는 좀 봐주지. 어차피 문제는 그게 아니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단장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무료한 일상을 자극하기 위한 즐거운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훗, 신흥 강자라? 잘 하면 오랜만에 몸 좀 풀 수 있을까?” 단장이라 불린 남자는 자신의 갈색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중얼 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단장의 전신에서는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스산한 살기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으읏····.” 그 덕분에 보고를 올리던 단원은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꼈다. 살기의 여파를 간접적으로 접했을 뿐인데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지독한 살기였다. ‘설마···. 단장님이 직접 나서시려는 건가? 전설의 그레이 레드가?’ 단원은 단장이 직접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전율했다. ============================ 작품 후기 ============================ 브로드 왕국의 전설 그레이 레드? 그라운드 제로 한국 서버의 실질적인 NO.4였던 한중겸. 누가 이길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74화 <1차전 발발> 그레이 레드. 이 레드 스네이크의 단장이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강자이다. 이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브로드 왕국이 그래도 나라 취급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남자 때문이었다. 겉보기에는 갈색 머리에 수염을 살짝 기른 평범한 중년 남성으로 보인다. 이 남자의 첫 인상만 보면 사람 좋아 보이는 평범한 중년 아저씨로 보이지만 거기에 속아 넘어갔다가는 바로 목이 날아가는 수가 있다. 그는 이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맨손으로 확고한 지휘를 쌓아올린 초강자였고 브로드 왕국의 용병들에게는 동경의 카리스마였다. 사실 40대 정도로 보이는 그의 실제 나이는 이미 200살이 넘었다. 젊은 시절에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던 브로드 왕국···. 수천개의 용병단이 서로 패권을 다투고 영역 다툼을 하던 시절··. 그때는 사실 브로드 왕국도 아니었다. 그냥 브로드 지구라고 불렀다.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훨씬 더 심각한 쓰레기통이었다. 그랬던 브로드 지구를 통일하고 후에 왕위에까지 올라서 나라를 선포한 남자. 그게 바로 그레이 레드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150년이 넘게 이 왕국을 확고하게 지배 해온 괴물이었다. 만약 대륙의 어디 다른 왕국에 가서 출신지가 브로드 왕국이라고 하면 쓰레기 왕국의 쓰레기 취급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남자만큼은 타 국가에서도 가볍게 여기지 못했다. 그랜드 마스터라는 직위는 각 국가에서도 하나 혹은 둘이나 있을까? 말까? 한 초인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랜드 마스터 위의 단계로는 소울 마스터와 소드 갓이라는 경지가 있기는 하지만···. 소울 마스터가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것은 500년 전의 일이었고 소드 갓은 그냥 존재한다고 말로만 전해져 내려올 뿐인 존재였다. 실제로 한우리 연맹에서 검사들의 수준에 맞춰서 자신들의 레벨과 비교해서 정한 비교표가 있었다. 비록 정확한 것은 아니고 추정치에 불과했지만 일단 참고는 될것 같아서 모두에게 배포한 표였다. 그 표에 따르면···. 소드 유저 하급 : LV.20 소드 유저 중급 : LV.30 소드 유저 상급 : LV.40 소드 익스퍼트 하급 : LV.50 소드 익스퍼트 중급 : LV.60 소드 익스퍼트 상급 : LV.70~80 소드 마스터 하급 : LV.90 소드 마스터 중급 : LV.100 소드 마스터 상급 : LV.110 그랜드 마스터 하급 : LV.120 그랜드 마스터 중급 : LV.130~150그랜드 마스터 상급 : LV.150~180소울 마스터 하급 : LV.200~220소울 마스터 중급 : LV.220~240소울 마스터 상급 : LV.240~270 소드 갓 : 비교할 추정치 없음. 아마도 LV.300 이상으로 추정. 이렇게 분류 되어 있었다. 사실 소울 마스터에 대한 정보는 포로들에게 들은 예전의 전과를 근거로 마련한 정보일 뿐이었다. 어떤 소울 마스터가 그랜드 마스터 다섯 명을 200합의 전투 끝에 모두 제압했다느니···. 하룻밤에 성 다섯 개를 동시에 함락 시켰다느니···. 그런 얘기를 듣고 대략 이 정도의 레벨은 되지 않을까? 라는 추정치를 달았을 뿐이었다. 정확한 근거는 아니었다. 실제 존재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최소한의 척도는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고 오랜 시간동안 브로드 왕국을 지배해온 그레이 레드의 수준은 대략 그랜드 마스터 중에서도 상급으로 잡고 있었다. 기록상으로 남아있는 예전의 전투 기록이나 기타 등등의 변수를 따져서 배대호가 계산한 결과··. 그레이 레드라는 남자의 강함은 대략 LV.170 정도는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타국에 가도 충분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의 강함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선천적인 성격 탓이었다.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고 복종하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이 직접 위에 올라서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오만한 성격. 그랜드 마스터라는 경지는 어디에 가도 대접해 줄 수 있는 능력이었지만···. 그래도 왕위를 탐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쓰레기통의 왕이 된다고 해도 다른 나라의 졸 보다는 낫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브로드 왕국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브로드 왕국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말을 거스르지 못했으니 말이다. 단, 사람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하던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전사인 그가 이미 검을 휘둘러 본지가 50년이 넘어갔다. 이 브로드 왕국에서 자신을 위협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나타난 도전자라는 존재는 반갑기까지 했다. “훗···. 내 검을 가지고 와라. 내가 직접····.” “안 됩니다. 전하!!!” 그때 누군가가 등장하면서 그레이 레드의 말을 잘라 먹었다. 그레이 레드가 직접 나서려고 하는 것을 말린 것은 덩치가 2미터는 가뿐하게 넘을 것 같은 신장에 전신을 터질 것 같은 탄탄한 근육의 갑옷을 전신에 두르고 있는 남자였다. 이 거한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이 자리가 꽉 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모두 위압하는 그의 등장에 그레이 레드만은 전혀 위축되지 않은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해리. 중앙으로는 언제 왔나?” “소식을 듣고 오늘 막 도착 했습니다. 전하.” 그는 그레이 레드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고 말을 이었다. “전하. 고작 변방에 나타난 신흥 용병단 따위를 징벌하기 위해서 전하가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해리 레드에게 맡겨 주십시오.” 해리의 말에 그레이는 입가에 여전히 미소를 걸고 말했다. “훗, 네가 내 장난감을 빼앗겠다고?” “그런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저 역시 레드라는 이름을 받은 만큼, 전하의 충실한 검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고 싶은 겁니다. 전하를 귀찮게 하는 날파리 정도는 제가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적절한 아부와 충성심이 뒤섞인 말은 다행이 그레이의 귀에 잘 들어온 모양이다. “흐음···. 막상 그렇게 말하니 귀찮기도 한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다만, ‘레드’의 이름을 걸고 나섰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겠지?” “·············.” 그레이의 말에 해리는 엄숙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숙였다. 참고로··. 이 브로드 왕국에서 ‘레드’라는 성은 특별한 것이었다. 레드 스네이크의 단장인 그레이 레드의 자식들, 혹은 제자들이나 각별한 간부들에게만 레드라는 성을 쓰는 것이 허락된다. 눈앞에 있는 해리 레드 역시 원래는 그레이 레드의 제자이며 지금은 용병단의 간부 중에 한 명인 것이다. 그레이는 해리에게 다시 말했다. “레드의 이름을 내 걸고 네가 대신 처리해 보겠느냐? 부답되면 지금 못 하겠다고 해라.” 그레이의 말에 해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야겠지. 내 제자라는 놈이 날 실망 시키면 그때는 폐기 밖에는 답이 없으니 말이야.” “·············.” 엄격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스승의 말에 제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저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이 너무나 잘 알았다. 그레이 레드라는 남자가 살면서 거둔 제자는 족히 1,000명이 넘는다. 200년이 넘게 살았고 그 동안 꾸준하게 제자를 두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1,000명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자들은 50여 명 밖에는 되지 않았다. 반 정도는 훈련 받는 도중에 죽어 버리고··. 어느정도 훈련이 끝난 후에 실전에 투입된 후에도 죽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 중에는 적에게 쓰러진 자들도 있었지만 패배로 인해서 레드의 이름을 더럽혔다고 그레이 레드가 직접 처벌한 제자들도 상당수였다. 설령 제자라고 해도 자신의 프라이드에 먹칠을 한다면 그때는 용서 없이 자기 손으로 죽여 버린다. 그게 그레이 레드라는 폭군이었다. “절대··. 실망 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럼 믿겠다. 난 여기서 계집들 엉덩이라도 두드리면서 네 보고를 기다리지.” 그레이 레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비웠다. 다만 여기서 그레이 레드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틀림없이 그레이 레드는 레벨로 따져도 170정도에 달하는··. 한우리 연맹의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강자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중겸의 레벨은 280이다. 제자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가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강자인 것이다. 그런데 제자 보내놓고 자신은 시녀들하고 유유자적 뒹굴고 있는다? 이게 어떤 결과로 찾아올지는 지금의 그는 전혀 몰랐다. 그저 오늘은 어떤 여자가 좋을까? 라는 태평한 고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이트 너머의 신도시. 서서히 모양이 잡혀가고 있는 이 도시는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새롭게 생겨나는 도시가 모두 그렇지만 초창기의 성장세가 가파른 법이가. 그리고, 그런 성장세에 반비례해서 정운의 업무실에 쌓이는 서류의 높이도 높아지고 있었다. 유능한 미하엘이 거르고 또 걸러서 꼭 필요한 서류만 주지 않았다면 정운은 진작에 과로사 해 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정운은 오늘도 업무에 충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미하엘이 찾아왔다. 똑똑····. “들어와.” 정운의 허락이 떨어지자 미하엘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공손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정운님. 한중겸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하엘의 보고를 받은 정운은 확인하던 문서에서 잠시 눈을 때고는 기지개를 길게 펴면서 말했다. “으읏····. 그래? 무슨 일인데?” “레드 스네이크는 움직였다. 알아서 대처 하겠다.이상 입니다.” 보고를 받은 정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뭐 그 밖에 필요한 것은 없고?” “도시를 대량으로 점령 할 테니. 자금이 더 많이 필요할 거라고 합니다.” 미하엘의 말을 들은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불우이웃 돕기에 맛 들였나? 뭐, 연맹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원래 브로드 왕국을 안정 시켜서 민심을 얻으라는 지시를 한 것은 정운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한중겸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그만큼 효과도 더 나오고 있었으니 정운으로서는 말릴 이유는 없었다. “레드 스네이크라···. 뭐, 중겸이 형님이라면 알아서 하겠지. 미하엘. 브로드 왕국 다음 시나리오를 천천히 준비해 봐.” “벌써 말입니까?”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너무 이르지 않는가? 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미하엘에게 정운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중겸이 형님은 한다고 하면 하는 남자야. 브로드 왕국 점령에 관한 시나리오는 전부 맡겨도 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정운의 얼굴에는 한중겸에 대한 확고한 신뢰의 감정이 보였다. 레드 스네이크가 굉장한 점은 그레이 레드라는 구심점의 아래에 몰려 있는 엄청난 머릿수였다. 제로 용병단을 공격하기 위해서 해리 레드는 자신이 손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머릿수를 모았다. 자신의 직속 부하들만 해도 정예 병력 1만이었다. 거기에 레드 스네이크의 산하 용병단까지 포함해서 무려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모았다. 사실 정벌군의 숫자를 무작정 많이 모으는 것은 그렇게 좋은 득책이 아니다. 군이 한 번 움직이면 좋든 싫든 돈이 든다. 먹이고 무기 주고 기타 등등의 잡비까지···. 대군이 되면 더 많은 돈이 든다. 이건 당연한 진리였다. 하지만 해리가 최대한 많은 대군을 동원한 것은 만에 하나 실패할 시에는 자기 목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후후····. 이만한 대군이 모이니 장관이긴 하군.” 해리 레드는 자신의 명령 하나에 척척 진군하는 10만 대군을 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로 내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해리의 말에 옆에 있던 부하가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러셔야죠. 오히려 이제까지 해리님의 영역이 서쪽의 끝에 처박혀 있던게 잘못입니다” 부하의 말에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제 나도 동쪽에 영역을 차지하고 싶은데 말이야. 서쪽의 황야는 이제 신물이 나.” ============================ 작품 후기 ============================ 그레이 레드가 직접 오는 것도 아니고 제자가 뚜벅뚜벅 10만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습니다. 그 한중겸에게 말이죠.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75화 해리가 이번 기회에 전공을 세우고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자신의 영역을 동쪽으로 옮기고 싶기 때문이다. 동쪽이냐? 서쪽이냐? 이게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브로드 왕국에서는 동쪽 영역과 서쪽 영역은 천지 차이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강남과 산골 시골만큼의 차이가 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건 이 나라의 지형과 산업 때문이다. 이 브로드 왕국은 북쪽으로 크롱크 왕국이라는 오크들의 나라가 있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북쪽 영역은 최악으로 취급 받았다. 크롱크 왕국의 오크들은 전쟁과 살육을 신성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호전적인 나라였다. 어떤 의미로는 대륙에서 브로드 왕국 이상으로 왕따 당하는 나라였다. 브로드 왕국의 별명이 대륙의 쓰레기통이라면··. 크롱크 왕국의 별명은 대륙의 폭탄이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펑!! 터지고 전쟁으로 번지는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국경 지대의 국지전 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형국에를 정도였다. 만약 심각하게 따지면 클롱크 왕국은 바로 전쟁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원래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미친놈들은 함부로 건드리는게 아니다. 특히 크롱크 왕국의 내부는 사나운 괴수와 활화산 지대, 그리고 개척하기도 어려운 원시의 밀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겨도 영토 관리하기가 엄청 어렵다는 것이다얻을 건 적고 잃을 건 많은 전쟁. 누가 이걸 하고 싶겠는가? 그러니 크롱크 왕국은 그냥 오크들의 나라 정도로만 인식하고 어지간한 국지전 도발은 모두 내버려 두고 있었다. 이쯤 되면 모두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브로드 왕국의 북쪽 국경 지대가 안 좋은지 말이다. 정말 날마다 오크들과의 전쟁이 멈추지를 않는 땅이다. 그 덕분에 무수한 실전으로 단련된 용병단의 전사들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북쪽에 영역을 두는 것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그리고 서쪽. 서쪽은 다크니스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대륙 최강국인 다크니스 왕국. 이 나라는 침공을 하지는 않지만 한번 공격당하면 그때는 철저하게 갚아준다. 즉, 브로드 왕국의 최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약탈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크니스 왕국을 약탈한다? 자살 하려면 그냥 곱게 해라. 라는게 브로드 왕국의 전형적인 여론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알짜배기는 어디일까? 남쪽은 파우스트가 신탁을 내린 금지의 땅이었고, 지금은 게이트까지 열린 상황이다. 그러니 당연히 논외이고···. 가장 알짜배기이며 수많은 용병단들이 자신의 영역으로 하고 싶어 하는 꿈의 영역은 동쪽 지대였다. 동쪽 지대는 라트란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라트란 왕국의 주 종족은 엘프와 페어리 등의 요정족들이다. 이들은 그 존재 자체가 보물이었다. 아름다운 엘프들은 인간들에게 노예로서 인기였다. 법적으로 노예가 불법인 나라들조차 아름다운 엘프족 여성을 성노리개로 가지고 있는 귀족들은 널리고 널렸다. 심지어는 남자 엘프를 성노리개로 이용하는 귀부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페어리족 이들 역시 노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세계의 페어리는 전형적인 요정족이었다. 마치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 처럼 손바닥 만한 작은 몸집에 하늘하늘한 잠자리 날개. 정령을 잘 다루고 신기한 마술을 부릴 줄 아는 이 페어리는 귀족 영애들의 인기 애완동물이었다. 새장에 가둬두고 자신의 페어리를 자랑하는···. 그런 아주 고상하고 구역질나는 취향을 가지고 있는 귀족 영애들이 이 대륙에는 널렸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종족의 공통점은 노예 생활에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래 평균 수명이 500년을 넘는 종족이었지만 인간에게 잡혀서 노예 생활을 하면 10년에서 20년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그렇다 보니 수효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비난 엘프들 본인 뿐만이 아니라. 엘프들이 가지고 있는 미스릴 단검. 요정목으로 만드는 명품 활. 페어리들의 날개에서 채취하는 요정의 가루 등등···. 버릴게 하나도 없는 보물인 것이다. 이 대륙의 노예 상인들은 말한다. 오크족을 사냥하면 폐품 수집이고, 인간을 사냥하면 돈을 주은 것이고, 요정족을 사냥하면 보석을 주은 것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같은 약탈이라도 얻을게 많은 동쪽의 국경 지대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대박인 것이다. 당연하지만 동쪽의 영역은 대부분 레드 스네이크가 직접 다스리고 있었다. 다만 너무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제자 중에 한명인 해리 레드의 손에까지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영역은 브로드 왕국의 서쪽에 있었다. 북쪽 보다는 나았지만 그는 동쪽으로 자기 영역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이번처럼 확실하게 전공을 올릴 기회는 반가운 찬스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레드 스네이크에 도전하는 놈은 워낙 흔하지 않으니···. 다른 제자들이 선수 치기 전에 내가 먼저 쓸어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해리 레드는 점점 더 군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게 지옥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해리 레드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전진한지 열흘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제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은 삼일 정도의 거리밖에 없었다. 이때 해리는 적은 수성전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 성의 안쪽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면 지금쯤 도망갔을 지도 모르지. 그럼 내 전공이 줄어드는데 말이야.’ 유일한 불안이라면 적이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항복을 생각한다면 괜찮았다. 그건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전멸 시켜 버리면 괜찮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리가 김칫국물을 들이키고 있을 때···. “해리 대장님!!! 정면에서 제로 용병단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났습니다.” 막사에 전령이 들어와서 급하게 보고를 올렸다. 그 보고를 들은 해리는 살짝 눈썹을 치켜뜨면서 말했다. “적이라고? 어느 정도나 나온 거냐?” “대략 100명 정도로 보입니다.” “····항복을 위한 사신인가?” 들리는 바로는 제로 용병단의 숫자는 그래도 수천에 달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고작 100명 정도만 찾아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싸우기 위해서 찾아온게 아니라 일부 인원이 항복을 위해서 찾아왔다면 그건 말이 되었다. “잘 됐군. 일단 사로잡아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얻겠다. 단 후퇴하면 추적하지 마라. 함정일 가능성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대장님.” 해리의 지시는 비교적 정확했다. 다만, 그건 상대가 자신들보다 약하다고 생각했을 때의 일이다. “오는군. 흠, 포위망부터 구성이라··. 사로잡을 생각인가?” 한중겸은 자신을 포위하는 상대들을 보면서 중얼 거려다. 그런 한중겸에게 옆에 부하가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경고라도···.” “아니 그렇게 시간 끌 것 없지. 차라리 도망가지 않는다면 이게 편하다.” 한중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뒤편에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일단 대기하고 있어라. 혹시나 잡일이라도 시킬게 있을까?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 별 필요 없는 모양이다.” 한중겸은 그렇게 말하며 혼자 앞으로 나갔다. 그런 한중겸의 태도를 보면 몇몇 대원들은 수근 거렸다. “야··. 우리 대장님 괜찮은 거야?” “십왕의 이름은 들어 봤지만···. 안심해도 되는 거야?” “일단 우리도 뭔가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한우리 연맹 내부에서도 삼대 길드의 간부 출신이 아닌 이상은 십왕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여유 만만한 한중겸의 행동이 신참들의 입장에서는 불안 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이 임무에 투입된 부하들 중에 상당수는 외국의 귀환자들이 상당수였다. 그들은 아애 한중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제까지 있었던 전투에서 주로 나섰덙 것은 한중겸의 소환수 겸 애첩들인 아테나들이 나서서 처리했고··. 한중겸이 직접 전투를 나서는 것은 실로 오랜만인 것이다. 그렇게 불안해하는 부하들을 보면서 부관으로 따라온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머저리들···. 우리가 나서 봤자 방해밖에 안 되니 그냥 찌그러져 있어.” “··············.” “··············.” “··············.” 부관으로 따라나 온 남자는 그래도 원래 삼대길드였던 라이온 길드의 간부 출신이었다. 그러니 그는 일반 귀환자들 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십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괴물들의 수준을 말이다. “불쌍한 것들···. 한 번 죽어나가 봐라.” 그리고 그의 말은 곧장 현실이 되었다. “나와라!! 펜닐!! 그레이트 타이탄!! 데몬 엠페러!! 자이언트 스네이크!!! 가루라!!” “크르를···.” “수리리릭····.” “끼요오오오오오!!!!”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서 갑자기 다섯 마리나 되는 대괴수가 나타났다. “우웃!!!” “저건? 괴수들? 저런 놈들이 갑자기 어디서···.” “전원 경계하라!! 제길!! 쫄지 말라고 새끼들아!! 뒷 걸음질 치는 새끼들은 내가 다 죽여 버린다!!” 레드 스네이크의 용병단원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수들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크롱크 왕국의 오크들이 길들여서 사용하는 드래곤들 보다 훨씬 더 강력해 보이는 이 존재들이었다. 실제로 어지간한 드래곤들 보다는 이 소환수들이 훨씬 더 강. 하나하나가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보스몹이었던 존재들이니 말이다. 60층의 보스몹이었던 펜닐, 61층의 보스몹이었던 그레이트 타이탄. 62층의 보스몹인 데몬 엠페러. 63층의 보스몹 자이언트 스네이크. 65층의 보스몹이었던 가루라까지···. 왕귀인, 메두사, 아네나, 그녀들은 한중겸의 최강의 소환수이기는 하지만 그녀들 하나하나가 독립된 존재이기도 한다. 거기에 반해서 이 다섯 마리는 순수한 전력. 한중겸의 소환수로서의 힘이며 그 존재 자체인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지금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 있을 때 보다 더 강해졌다. 한중겸의 레벨이 200을 넘어가면서 생긴 소환수 강화 스킬. 그것이 이 괴수들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다. 원래 테이머에게 가장 매력적인 장점은 강한 몹을 길들여서 소환수로 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업그레이드는 불가능 했고 오로지 더 강한 몹을 잡아서 사용하는 것만이 더 강해지는 길이었다. 하지만··. 200이 넘어서면서부터 소환수들을 강화 시키는 것까지 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이것 덕분에 이 다섯 마리 중에 가장 약한 펜닐이라고 해도 그 강함을 레벨로 따지면 130 이상은 되었다. 레드 스네이크의 단장인 그레이 레드와 비슷할 정도의 강함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네 마리가 더 강하다는 것은 새삼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해리 레드에게 펼쳐질 악몽은···. 진정한 지옥이었다. “다 쓸어라.” 한중겸의 담담한 명령 한 마디가 지옥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였다. “끼오오오오오오!!!!” 가루라가 크게 울부짖으면서 음속으로 저공비행을 하며 지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아아악!!!” “사·· 사람 살려!!” “으아악!! 내·· 내 다리가···.” 가루라가 저공비행하면서 지면을 스치며 만든 진공의 칼날만으로도 수천 단위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우워어어어!!!!” 콰앙!!! 그레이트 타이탄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검격에 잘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져서 터져나가는 육편은 보고 있는 자들은 전의를 뭉텅이로 깎아 내렸다. “크하아앙!!!” 펜닐의 발톱과 이빨이 찢기고 씹히는 인간들은 얼마나 무서웟는지 최후의 단발마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지옥이었다.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그 거대한 몸을 이용해서 적군의 퇴로를 막아 버리고 야금야금 조여 버렸다. 거대한 그 몸 뚱아리가 한 번 움직일 때 마다 수많은 인간들이 벼룩처럼 터져 나가 죽었다. 가장 압권은 데몬 엠페러였다. 데몬 엠페러의 대낫에 베인 자는 그 피에서 커다란 쥐가 튀어 나왔다. 피로 이루진 쥐는 그대로 적들을 물어 뜯고 잡아 먹깃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죽지도 않 점점 늘어만 가는 흉악한 피의 쥣때들은 병사들에게 재앙이었다. “도··. 도망가!!!” “미친. 이런 괴물하고 어떻게 싸워!!!” “으아아아아아아!!!!” 군대가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해리의 정예 병력 중에는 익스퍼트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한중겸이 소환한 소환수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약해빠진 사냥감일 뿐이었다. 이걸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땅을 기는 개미를 짓밟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개미들 입장에서는 지옥이고 목숨이 오가는 아비규환이지만···. 밟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걸음 거리일 뿐인 것이다. “하···. 하하···. 이건 꿈이야. 꿈이다. 꿈이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저주하며 절규하는 해리 레드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자신의 목을 날려 버리기 위해 시야에 클로즈업 되고 있는 데몬 엠페러의 대낫이었다. 서걱!!! 그리고 그게 제로 용병단과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의 첫 전투였다. ============================ 작품 후기 ============================ 분량 때문에 자르기 애매해서 조금 끌었더니 용량이 평소보다 살짝 늘어났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76화 <정운 끝장을 내기 위해서 오다> 쾅!!! “방금 뭐라고 했지? 전멸?” 항상 유유자적하고 오만한 표정이었던 그레이 레드의 얼굴이 오랜만에 분노로 물들었다. 그 옆에서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있던 아리따운 엘프 노예들은 주인의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술을 따랐다. “으읏·····.”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보고를 하러 온 부하 역시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질 정도였다. 그런 부하에게 그레이 레드가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졌다고? 내 제자라는 놈이 10만 병력을 날려 버린것도 모자라서 전멸? 그게 정말이냐?” 그레이 레드의 물음에 전령은 말을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혓바닥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그···. 그렇다고 합니다. 전하. 커억!!!!” 콰앙!! 보고를 올리던 부하는 그대로 목줄을 잡힌 상태로 벽에 처박혀 버렸다. 당연히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레이 레드였다. 뿌드득····. “10만 병력이 한 번에 날아갔다고? 내 제자라는 놈이 그런 병신 같은 짓을 했다는 말이지?” “큭··. 크륵··. 전··. 전하··. 자비를····.” 우드득!! 목숨을 애걸하던 부하의 바램은 헛된 일이었다. 그레이 레드의 손아귀가 그의 목뼈를 그대로 부스러트려 버렸기 때문이다. 보고를 하러 온 전령이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레이 레드는 엄청나게 분노했고 그 분노를 발산하기 위해서 살인을 한 것이다. 원래 자신의 제자가 간다고 했을 때 실패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말을 한 것은 굳이 제자에게 경고의 의미만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레이 레드는 평소에는 여유로운 성격이지만 한 번 그 분기가 치솟으면 스스로도 제어를 할 수가 없었다. 보통 그랜드 마스터 정도의 달인이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는게 믿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는 정말로 그랬다. “후우···. 후우·····.” 부하 한 명을 죽인 걸로는 분이 안 풀린 것일까? 그레이 레드의 날카로운 안광은 이 방안에서 다음 사냥감을 물색했다. “헙!!!!” “으읏······.” 그레이 레드는 자신이 평소에 시녀 겸 성노예로 아끼고 있던 엘프 시녀 두 명을 포착했다. 그녀들은 그레이 레드의 안광이 자신들을 꿰 뚫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전신에 오싹함을 느끼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레이 레드는 그녀들에게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갔다. “주··· 주인님···.” “자비를 베푸소서···.” 철저하게 길들여진 그녀들은 그레이 레드의 살기에 반항이나 도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엎드려 빌기에 바빴다. 그레이 레드는 그런 그녀들의 머리채를 잡아서 그대로 침대에 인형 던지듯이 던져 버렸다. “꺄악!!!” 그녀들은 난폭한 그레이 레드의 행동에 살짝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레이 레드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 그녀들에게 다가가더니···. 찍!! 찌익!! 그녀들의 옷을 단번에 찢어 버리고 순식간에 뽀얀 나체를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애무도 뭐도 없이 그저 난폭하게 범하기 시작했다. “아아··. 아····.” “으으··. 주인님···.” 남자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폭력성을 발산하기 위한 성행위. 여자의 입장에서는 굴욕과 고통이 공존하는 폭력이었다. 하지만 노예로 길들여진 그녀들은 이 고통 속에서도 그저 주인의 분노가 가라앉기만을 바랬다. 숲의 고귀한 딸이라는 요정족 엘프들도 인간의 난폭한 욕망 앞에서는 그저 성욕의 대상일 뿐이었다. 수십분 후···. 그레이 레드는 몇 번이고 두 엘프를 범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풀었다. 얼마나 난폭한 행위였는지 결국 두 엘프들은 완전히 실신해서 이제는 축 늘어져서 인형처럼 그레이 레드가 잡아 끄는 대로 흐느적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레이 레드는 그런 그녀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마음이 내키는대로 범하고 또 범했다. 하지만 그레이 레드의 분노는 두 엘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난 후에도 풀리지 않았다. 가늘게 숨만 쉴 뿐. 더 이상 반응도 없는 그녀들을 보고 그레이 레드의 눈에는 살기가 맴돌았다. 잠시후···. 그레이 레드가 정상적인 눈을 하고 방을 나갔을 때에는 처참하게 유린당한 후에 목이 꺾여서 죽은 엘프 여인 두 명이 추가로 있었다. 그제야 살심을 조금 가라앉힌 그레이 레드는 자신의 직속 부대를 소집했다. “지금 당장 내 제자들과 자식들, 그리고 간부들 까지 전원 소집하라!!!” “옛. 전하!!” 잽싸게 움직이는 부하들을 보며 그레이 레드는 이를 갈면서 중얼 거렸다. “제로 용병단이라고 했지? 이 대가는 비싸게··. 아주 비싸게 치러 질 것이다.” “으음···. 아, 머리 아파···.” 한중겸은 이마를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일어났다. “으음···. 누가 내 얘기 하나? 귀가 가렵네?” 멀리 떨어진 그레이 레드가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라도 들었던 걸까? 한중겸은 눈을 비비적거리던 손으로 자기 귀를 후벼 팠다. 누가 이 사람을 제로 용병단의 단장이라고 생각할까? 그냥 겉보기에는 10대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어린 인상에 철 없어 보이는 인상까지 언 듯 보면 부모님 폰으로 몰래 게임머니 현질하려는 고딩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보기일 뿐이고, 사실 그의 나이는 이미 세기를 포기할 정도로 까마득했다. 한국 전쟁 시절에 10대였지만 그 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몇 백 년을 보냈고···. 지금 한국에 와서 다시 생활하고··. 나이 계산하기가 참 애매해 져 버렸다. 하지만 나이가 실제로 어떻든 간에 그는 참 왕성한 성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 그의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아리따움 금발의 여인이 그 증거 중에 하나였다. “아테나. 아테나. 일어나. 밥 줘.” “으음····. 나 피곤해. 딴 사람한테 차려 달라고 그래.” 아테나는 한중겸이 흔들어 깨우자 뭄을 뒤척이면서 귀찮다는 듯이 돌아누워 버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한중겸이 삐졌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같이 잔 사람이 아침 차려주기라고 이미 규칙을 정했잖아? 귀인이나 메두사는 오늘 다른데 볼일 보러 갔다고.” “아이·· 씨, 귀찮다니까!!?” 아테나는 확 성질을 내면서 베게로 머리를 감싸고 아애 한중겸을 밀어냈다. “윽!!” 한 번 침대 밖으로 떨어져 나간 한중겸은 이댈 포기···. “할 리가 없지.” 그렇다. 그는 포기 하지 않았다. 불꽃 남자처럼 다시 일어난 그는 아테나를 깨우려고 하다가 뒤척이면서 들어난 그녀의 매끈한 등의 라인을 보더니····. “흐음··. 자꾸 아침 안 차려 주면···.” 슬그머니 아테나의 뒤편에 누워서 그녀를 감싸 안은 한중겸의 손길은 아테나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며 다른 한손은 그녀의 은밀한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럼, 내가 알아서 아침 챙겨 먹는다. 내가 먹고 싶은 걸로?” 한중겸은 품안에 느껴지는 향긋하고 따뜻한 아테나의 여체를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아테나를 안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퍽!!! 베개가 제법 아프게 날아와서 한중겸의 안면을 때려 버렸다. “아파라··. 뭐 하는 거··.” “나 피곤하다고 인간아!! 피곤하다고 했잖아!! 네가 아침 7시까지 나 괴롭혔다고? 좀 잠 좀 자자!! 인간적으로 잠 좀 자자고!!!” 퍽퍽퍽퍽퍽!!! 베개로 인간을 저렇게 신명 나게 팰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테나는 베개로 한중겸을 쥐어 팼다. “알았어. 나갈게. 나간다고.” 한중겸은 결국 아테나의 잠투정 섞인 배개 구타에 쫓겨나서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가면서 한중겸은 중얼 거렸다. “전쟁의 여신하고 결혼하면 밥 챙겨 먹기가 힘들다니까.” 어쩔 수 없이 용병단 내부의 식당이라도 가서 아침을 해결할까? 라고 생각하던 한중겸은 밖으로 나왔다. 한중겸의 저택에서 용병단 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대로 걸어서 용병단에 도착한 한중겸은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이 뭐지? 응? 나 북어국 싫어하는데? 딴거 차려 달라고 할까?” 군대 말년에 할 수 있는 최대 진상 끝판왕. 나 이거 먹기 싫어. 계란 후라이 해줘. 라는 진상이 나오기 직전. “그냥 주는 대로 먹어요. 밑에 사람들 귀찮게 뭐 하는 거에요?” 라고 누군가가 한중겸에게 딴지를 걸었다. 당연히 한중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쪽을 돌아봤다. “응? 누가··? 어? 정운아? 너 여기는 어쩐 일이냐?” 한중겸이 돌아본 곳에는 의외로 정운이 있었다. 정운은 자신도 밥 먹기 위해서 왔다는 듯이 손에 식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중겸에게 말했다. “잠시 용건 있어서 찾아왔죠. 그러다 시간이 이래서 여기서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왔고.” 그런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너 혼자 왔냐?” “아니요. 슬기도 같이 왔는데요? 미하일은 신도시에 남아있고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알겠다는 듯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슬기가 밥 안 차려 주디?” “······많이 피곤 한가 봐요.” “···········.” 그렇게 한중겸과 정운은 제로 용병단의 기지에서 평범하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정운과 한중겸이 식당에서 식사를 시작하고 3분 정도 흘렀을까? 한 번에 500명은 식사가 가능한 이 식당이 조용해져 버렸다. 식사 시간에 이렇게 식당이 텅텅 빈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사실 다른 용병단원들은 지금 식당의 문 앞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서성 거리고 있었다. “야··. 저기 저 두 사람은···.” “그래. 단장님하고, 또 한명은 대표님이잖아?” “왜 저 둘이서 여기··. 혹시 무슨 감찰이라도 나왔나?” “모르지. 그보다 우리도 여기서 먹어도 돼?” “·····네가 먼저 먹어봐라. 그래서 괜찮으면··.” “왜 나한테 총대 매라고 지랄이야!!?” 군대를 비롯한 조직 사회에 있어서···. 윗사람은 그냥 눈에 띄는 것 자체가 민폐라는 얘기가 있다. 정운과 한중겸은 그냥 식당에서 밥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별 다른 이유도 없이 그냥 자기 여자들이 피곤해서 밥 안 챙겨 준다. 라는 별 볼일 없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밑 사람들 입장에서는 괜히 잘못해서 불똥 튀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 식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자약하게 식사를 하던 한중겸은 문득 생각난 것처럼 정운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 왜 왔냐?” 정운은 지금 게이트의 신도시에 있어야 했다. 거기가 한우리 연맹의 최대 근거지인 만큼 함부로 비우지 않으려고 하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단 형님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려고 하니 저도 한 손 거들려고 왔죠.” “별로 필요 없는데? 너 그냥 가라.”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저도 그렇게 말했죠. 그런데 미하엘인 전쟁에 필요는 없어도 이제 슬슬 진실을 밝힐 때도 되어 가니 내 얼굴도 여기 사람들에게 박아두고 오는게 좋을 거랍니다.”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살짝 고개를 갸웃 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말했다. “네 얼굴? 진실? 무슨 뜻이야? 너 선거라도 나가냐? 우세 해?”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게이트 너머의 이계인이라는 진실 말입니다.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잖아요?” “아아아···. 그래. 깜빡했었네.” 한중겸은 별 생각 없이 그러려니 하고 있었지만 이건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제로 용병단은 한우리 연맹의 도움을 받아서 이 브로드 왕국의 도시들을 몰라볼 정도로 크게 바꿔가고 있었다.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이 나라에서도 제로 용병단이 다스리는 도시 만큼은 예외였다. 용병단원들이 자율적으로 순찰을 반복해서 범죄율이 팍 줄었고, 혹시나 행실이 나쁜 자가 도시에서 난동을 부리면 바로 응징했다. 후한 보수의 일자리에 신기한 물건도 잔뜩 가지고 와서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있었다. 덕분에 제로 용병단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하지만···. 그 신기한 물건들이 살짝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초코파이. 탄산 음료. 컵라면. 운동화에 청바지 등등···. 그런 용품들이 어디서 오고 누가 만들었는지? 처음에는 그냥 감지덕지 받기만 하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이 물건들의 출처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결국 언젠가는 이 물건의 출처가 게이트 너머의 이세계라는 것을 밝혀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만약 그런 제로 용병단의 정체가 게이트 너머에서 온 이계인이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이제까지 해온 일이 있으니 바로 등을 싹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로 용병단이 대중의 굳건한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약간의 혼란이 있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브로드 왕국은 한중겸 혼자만 해도 충분히 끝낼 수 있지만 거기에 정운까지 끼어 들었습니다. 그레이 레드는 전혀 상황 파악을 할 수 없겠지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77화 기본적으로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지구의 인간은 평가가 좋지 못하다. 파우스트는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지시를 내렸다. 이계에서 난입한 악마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신앙에 대한 숭배의 정도는 개개인마다, 혹은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국가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브로드 왕국은 대륙의 쓰레기통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엉망인 나라였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겨운 이들이었던 만큼 그다지 신앙에 독실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밥을 오물거리면서 대답했다. “음···. 일단 우리 용병단의 인지도는 확실한 수준이지? 그래도 우리 정체가 밝혀 졌을 때의 반응이 어떨지는···. 막상 까봐야 알지 않을까?” 한중겸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 정도만 남아도 감지덕지입니다. 지구에서만 해도 종교문제가 민감한 법인데 여기는 오죽 하려고요.” “뭐 그런거지····. 그나저나 파우스트 이놈은 왜 이렇게 부족한 세계를 만들었을까?”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부족한 세계라···.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거에요?” “아니 그냥··. 내가 이 세계에서 약간 살아보고 느낀 건데··. 이 세계는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비해서 많이 부족해. 숙성이 덜 되었다고 해야 할까? 뭐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어리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확실히 이 세계는 약간 불균형 적으로 성장했다. 군사력? 그건 확실하게 강하다. 일전에 여의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것과 그 후에 한미 연합군을 박살냈던 것까지 생각하면 절대 약하지 않다. 하지만 문화수준이나 생활수준 등··. 전체적으로 이 세계는 아직 21세기의 지구에 비하면 그렇게 높다고 할 수 없었다. “좀 이상하지 않아? 파우스트 그 치밀한 놈이 어째서 이렇게 세계를 덜 숙성 시킨 상태로 게이트를 연걸까? 세계의 강함은 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 머리 좋은 놈이 모를 리가 없잖아?” 한중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정운 역시 그런 생각을 좀 하고 있었다. 사실 정운은 천계에서부터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파우스트가 만든 세계는 21세기의 지구 정도는 몇 시간 만에 다 정복해 버리는 극강의 세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정도의 세계는 아니었다. 군사력은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실드의 물리 내성이 워낙 지독하게 강해서 21세기 현대 군사력으로는 어떻게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강력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운을 비롯한 그라운드 제로의 강자들은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결국 21세기의 지구를 단 번에 제압 할 수 있는 힘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군사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더 빈약했다. 세계라는 것은 역사 속에서 숙성되면 숙성 될수록 인간들의 인식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지구인들만 해도 21세기의 지구인의 생각과 16세기··. 아니 19세기만 해도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 세계의 인권의식이나 전체적인 지적 수준 등을 생각하면 이 세계의 전체적인 수준은 15세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왜 파우스트는 이렇게 부족한 상태에서 게이트를 연 것일까? 만약 이 세계가 좀 더··. 그러니까 한 1,000년만 다 숙성된 상태라면 정운도 막아내기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거기에 관해서 정운은 천계와 몇 번의 의견 교환을 거쳐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파우스트는 게이트를 지금 연다고 선택한게 아니라, 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는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열었다고?” “예. 천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 한중겸은 깊게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정운이 설명을 덧붙였다. “형님도 알다시피, 파우스트는 원래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영혼을 제물로 바쳐서 자신이 세계의 신이 되는 거였죠. 하지만···. 그게 막판에 좀 꼬였고, 그 결과 이 세계를 만드는 걸로 계획을 선회했죠.” 한중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막판에 계획을 꼬게 만든 원흉 자체가 눈앞에 있는 정운이 아닌가? 이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을 자기 뜻대로 진행해 왔던 파우스트.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도 천사도 자신의 장기말 정도로 밖에는 여기지 않는게 바로 파우스트라는 거물이었다. 그런 파우스트의 계획에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린게 바로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 덕분에 계획을 수정해서 만든게 바로 이 세계였다. 즉, 이 세계는 파우스트에게 처음부터 계획된 세계가 아니라 일종의 땜빵으로 만든 세계라는 것이다. “이 세계를 유지하는 것에 어떤 의미로 한계가 왔다. 라는 거냐?” “뭐, 어디까지나 예측입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이 세계의 빈약함을 설명할 다른 근거가 없죠.”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그럴 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수 파우스트에게 불리한 상황이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파우스트가 무슨 짓을 할지는 몰라도··. 절대 승산 없이 일을 벌일 놈은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지···. 어쨌든 이왕 왔으니 너도 움직일거지?” “그래야죠. 레드 스네이크라는 놈들 언제 또 온답니까?” “글쎄? 나도 모르지.”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정찰도 안 했어요?” “응. 안 했어.” 뭘 그런걸 당연하게 묻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한중겸이었다. 정운은 살짝 골치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정찰을 하든 말든 이미 전쟁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었고, 일단 초반에는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적의 힘을 소진시키기 위해서 처음에는 수비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단, 수비라고 해도 소극적인 수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에게 공격한 적들은 단 한명도 살려 보내지 않고 전멸 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적극적인 방어? 아니다 그걸 뛰어 넘어서 공포를 심어줄 생각이었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 누구라도 자비는 없다. 라는 것을 피로서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근은 형님이 충분히 뿌렸으니···. 공포는 내가 뿌리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는 정운을 보면서 한중겸은 말없이 컵에 든 냉수만 비웠다. ‘본래 이런 성격은 아닌데····.’ 한중겸이 알기로 정운은 그렇게 냉혹하고 무자비한 성격은 아니었다. 한국 서버의 일반 유저들에게는 그렇게 소문나 있지만 함께 오랫동안 같이 해온 한중겸은 알 수 있었다. 정운은 실제로는 잔정이 많은 성격이고 자기 사람을 잘 챙긴다. 그런 정운이 이렇게 주저 없이 대량 학살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자기 사람들을 최대한 지키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제로 용병단의 단원 하나가 한 가지 소식을 가지고 왔다.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의 본체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총 동원 병력은 150만 이상, 그리고 그레이 레드가 직접 나섰다고 합니다.” 부하의 보고를 들은 정운이 중얼 거렸다. “대장이 직접이라···. 어지간히 빡쳤나 보군.” 사실 정운의 말대로 였다. 지금 그레이 레드는 머리 끝까지 분노했다. 전군을 동원한 것도 그런 분노때문이었다. 이 브로드 왕국을 지배하고 나서부터 그동안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승리만을 거듭했던 그레이 레드였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은 아니지만 직속 제자까지 동원되었던 10만 병력이 날아간 것이다. 원래 거친 성격이었던 그레이 레드는 분노가 폭발했다. 이제까지 자신의 이룩한 권위에 도전자가 나타난 것이다. 맹수는 결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 법. 처음에 한 번을 얕보다가 10만을 날려 먹은 그레이 레드는 전력으로 적을 배제하기로 했다. 단 그런다고 승산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정운과 한중겸은 부하들을 데리고 근처의 지도를 펴고 말했다. “150만이 한 곳으로 동시에 온다고 하던가?” 정운의 말에 정찰병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본대가 50만이고 나머지는 20만씩 나눠서 다섯 군대로 나눠서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총 여섯 갈래인가···. 한군데 모여서 오면 전멸 시키기 편한데 말이야.” “그렇긴 하지. 귀찮게 왜 나눠서 오는 거야? 여섯 번이나 싸워야 하잖아?” 정운이나 한중겸이나 패배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귀찮으니 여러 번 싸우지 않고 한 번에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뭐, 어쩔 수 없죠. 형님은 수비에 나서 주십시오. 제가 요격하죠.” “그래. 알았다. 슬기 데리고 갈 거냐?” “아니요···. 형님하고 같이 수비에 좀 치중하게 해 주세요.” “그래. 그렇게 해라.” 정운이 지금부터 할 일을 알고 있는 한중겸이었기에 은근슬쩍 슬기를 빠지게 하는 것이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크게 다르다. 한중겸은 정운이 벌이려고 하는 살육의 장을 하다못해 슬기가 직접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운은 발코니로 가더니 그대로 흑토를 소환하고 올라탔다. “그럼···. 전 갑니다.” “히히힝!!” 흑토의 위에 올라탄 정운을 보고 한중겸이 말했다. “슬기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끝내고 와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운은 바로 적군을 향해서 날아갔다. 그 최초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그레이 레드가 이끌고 있는 50만 본대였다. “후우····. 후우···. 읏!!” “아윽···. 주·· 주인님····.” 그레이 레드는 자신의 밑에 깔려있는 여자를 범하면서 한창 쾌락의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그레이 레드가 전쟁터에서 절대 빼 놓지 않는 것이 세 가지 있었다. 무기, 술, 그리고 여자였다. 검술이라는 것은 각자의 개성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레이 레드의 검술은 전형적인 살검이었다. 그것도 살검의 극치를 이루면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이른 자였다. 그래서일까? 평소의 여유로운 성격이 조금만 자극 받으면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난폭하게 치달았다. 그 난폭함을 적과의 전투에 앞서서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대체품으로 사용되는 것이 술과 여자였던 것이다. 부하들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의 여자들을 부지런히 가져다 바쳤다. 한 여자에게는 금방 실증 내는 것이 그레이 레드의 성격이었기에 매일매일 다른 여자들이 필요했다. 만약 여자를 제때 바치지 못하거나··. 혹은 마음에 안 드는 여자를 바친다면? 그때는 부하들이 직접 피를 봐야 했다. 그레이 레드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는 도도하고 오만해 보이은 여자. 혹은 귀한 집안에서 고귀하게 자란 전형적인 귀족 같은 여자들이었다. 그런 여자들을 자신의 힘과 권력으로 취하는 것을 즐기는 그런 정복욕구가 동반된 섹스를 즐기는 그런 남자였다. 그렇다 보니 그레이 레드의 취향에 맞는 여자를 날마다·· 그것도 바꿔가면서 공수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비싼 엘프 성노예. 혹은 타국의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귀부인이나 영애들···. 그런 비싼 여자들만 공수하느라고 등골이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그레이 레드의 부하들은 이제 그레이 레드의 독특한 성 취향에 맞출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썩을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퍼어어엉!!!!! “적이다!!!!!” “적습이다!!!!” 오늘로 이 전쟁이 끝날 테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정운의 본격적인 등장은 다음화로 이어집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78화 <그레이 레드의 발악> “많이도 모였군.” 정운은 자신을 포위하기 시작하는 적군을 보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처음 등장하자마자 자신의 등장을 알리기 위해서 일단 간단한 공격 하나를 날렸다. 뭐, 그 간단한 공격 하나에 천명이 넘는 생명이 증발해 버렸지만··. 그래도 정운으로서는 정말 가볍게 공격한 것이다. 마음먹었다면 천 단위가 아니라 만 단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반에 살짝 간만 본 것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대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올 때가 됐는데···. 안 나오려나?” 정운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살기등등한 대군을 보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누군가가 당당하게 말을 몰고 날아왔다. 번쩍이는 갑옷에 화려한 백마까지··. 척 봐서는 용병이라기보다는 그냥 기사 같이 보이는 남자였다. “난 빌리오 레드, 레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레드 스네이크의 1대대 대장이다.” 그의 말에 정운은 슬쩍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레이 레드가 아니야? 넌 누군데?” “감히··.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하면서 살기를 내뿜는 애송이를 보면서 정운은 피식 웃었다. 누군가 싶었더니 그냥 아버지 백만 믿고 설치는 애송이였다. 이런 애송이가 눈에 불똥 좀 튀긴다고 해서 쫄 정운이 아니었다. “맞고 엉엉 울지 말고 네 애비나 데리고 와라.” 정운의 말은 상대를 단번에 검을 꺼내서 정운의 목을 베기 위해서 휘둘렀다. “죽어랏!!!!” 제법 절도 있는 자세로 날카로운 검격이 바람을 가르면서 정운의 목을 향해서 날아왔다. 더구나 날아오는 검신에 맺혀 있는 푸른색의 빛은 놈이 검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엑스퍼트 수준의 검사라는 말이다. 좋은 혈통에 그럭저럭 괜찮은 능력까지··. 놈이 먼저 앞으로 나섰던 것은 나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할 일이다. 상대의 일격을 보는 정운의 심정은···. ‘놀고 있네···.’ 이게 다였다. 빠르고 강하고 절도도 있다. 그렇게 훌륭한 검격이었지만··. 정운에게는 너무 느렸다. 오른쪽으로 피할까? 왼쪽으로 피할까? 이걸 진지하게 고민 하고 선택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대의 검이 느리게 보였다. 그리고 정운은 선택했다. 쩡!!! 피하지 말고 날아오는 상대의 검을 잡아서 그대로 부러트려 버리기로 말이다. “엇··? 이·· 이···?” 반으로 부러진 검을 잡고 말을 더듬고 있는 빌리오 레드라는 놈의 얼굴에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 자기 검이 어떻게 부러졌는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그 말은 상대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초강자라는 말이었다. 그레이 레드에게 자식이 많기는 하지만 그 많은 자식 중에서도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있는 자신은 이 왕국의 왕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팔자 좋은 도련님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감당 못할 적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 같았다. 수준 차이를 깨닫자 바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거리면서 뒷 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하지?’ 몸은 뻣뻣하게 굳었는데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갈등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도망 치자니 부하들 보는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자니 그건 그냥 자살해위일 뿐이니···. 어쩔 줄을 모르고 어리버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운은 그런 놈을 보고 뒤편을 향해서 중얼 거렸다. “자식 교육이 영 별로인 걸?”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빌리오 레드가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자기 아버지가 있었다. “아··. 아버지!! 이 놈이·· 엇!!?” 스팟!! 막 아버지를 만나서 살았다 싶은 마음에 안도하던 빌리오는 순간 자신의 몸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자신의 시야에는 목이 없는 자신의 몸뚱아리만 나타났다. ‘내··. 몸····?’ 쿵!! 그리고 그게 목이 바닥에 떨어지기까지 한 빌리오 레드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주저 없이 빌리오의 목을 날려버린 그레이 레드는 싸늘한 표정으로 정운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약간 감탄섞인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강하군.”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막 목을 날려버린 쓰레기 아들 보다는 훨씬 더 강한 상대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그레이 레드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칭찬 고맙군. 그런데 너무 냉정한 것 아니야? 자기 자식 목을 단숨에 날려 버리고 말이야?” 정운의 말에 그레이 레드는 흘깃 저쪽에 구르고 있는 자기 아들의 목을 보고는 미련 없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정운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상관없다. 저딴 쓰레기는 계집을 품다보면 자연 스럽게 나오는 거지. 하나하나에 애착을 가지다가는 끝이 없지.” 그레이 레드의 자식이 몇 명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부인은 없지만 수많은 첩들이 있었고··. 또 그 첩들 말고도 단순한 성노리개 삼아서 안았던 여자들까지···. 200년 동안 살면서 참 왕성하게 놀아났으니··. 아마 지구에 가면 대가족 기네스북 정도는 맡아놨을 것이다. “내 알바는 아니지만···. 뭐 그럼 싸울까?” 정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막 몸에서 기운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그레이 레드가 갑자기 뜻밖의 말을 했다. “잠깐, 그 전에 할 말이 있다.” “할 말? 무슨 말?” 정운의 의문에 그레이 레드가 말했다. “너 내 밑으로 들어와라.” “····뭐라고?”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 아들 목을 날려 버리고 에게 대신 스카웃 제안을 한다? 정운은 이 뜻밖의 상황에 콧 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 정신이냐?” 정운의 도발에도 그레이 레드는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 역시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처음이다. 이게 인재를 노리는 욕심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생소한 감정이군····.” 그렇게 중얼 거리던 그레이 레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보통 내 앞에서 너처럼 무례를 범한 녀석은 사지를 찢어 버린 다음에 개밥으로 줘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넌 예외다. 마음에 들었어.” 그레이 레드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기가 찼다. ‘이 꼴갑이 말 하는 꼬라지 좀 보게····.’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 레드는 계속해서 말했다. “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여기서 날 선택하기만 하면···. 너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영화를 주마. 이 세상 모든 부와 명예를 안겨 줄 테니, 넌 그저 나에게 복종하기만 하면 된다.” 그레이 레드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기가 찼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레이 레드라고 했지? 어떤 인간인가 싶었더니····. 생각보다 너구리군? 아니, 생존 본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는 여우라고 해야 할까?” 정운의 말을 들으면서 그레이 레드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눈썹을 꿈틀 거렸다. “내 물음에 대답부터 해라. 너에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것을····.” “닥쳐, 겁쟁이야.” 정운은 오만하게 위에서 깔아보는 시선으로 그레이 레드를 바라보면 말했다. 그 단호하고 오만한 시선에 그레이 레드는 순간 말 문이 막혀 버렸다. 정운은 그런 그레이 레드에게 말했다. “네놈 손이나 봐라.” “내 손··? 음!!?” 그레이 레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렇게 놀란 적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고 나서는 처음인 것 같았다. 자신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꽉 쥐고 있는 주먹을 살짝 펴 보자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이건···? 이건 설마···?’ 그레이 레드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상대의 도발에 화를 내지 못한 이유를? 그리고 계속해서 회유를 하려고 했던 이유를 말이다. 늑대는 같은 늑대에게 도발을 당하면 분노하며 싸운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도발을 당하면? 그때는 그저 꽁지 빠지게 도망가야 한다. 야생에서 절대 이기지 못할 상대에게 맞서는 것은 그냥 어리석음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레이 레드가 정운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도 그것이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정운은 떨리는 그레이 레드의 주먹을 보고 그것을 눈치챈 것이다. “잔뜩 겁먹은 주제에 나보고 밑으로 들어오라고? 허세 대마왕이라고 불러주랴?” “··············.” 정운의 말에 그레이 레드는 이를 악물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안에서 일어난 이 감정이 두려움이라고 인정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설마 내가···. 내가 저 놈을 두려워한다고? 그래서 싸우기 무서워 계속 회유를 하고 있다고?’ 뿌드득····. 그레이 레드로서는 절대 인정 할 수 없었다. 자신은 그랜드 마스터다. 이 브로드 왕국의 왕이다. 세상 그 누구라도 해도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는 없어야 했다. 그렇게 쭉 살아온 인생이 아니던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 그레이 레드는 궁지에 몰린 짐승이 포효하는 것처럼 울부짖었다. “으읏!!?” “크윽···. 쿨럭···?” “전··. 전하. 진정을····.” 그레이 레드가 포효를 터트린 순간, 가까이 있던 약한 부하들이 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안색이 창백한 체로 쓰러져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레이 레드는 거친 짐승처럼 호흡을 몰아쉬면서 자신의 검을 뽑았다. “후우우···. 후우·····.” 공기가 달라졌다. 숨 쉬기가 버거워 졌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리 떨어진 병사들이나 그레이 레드의 부하들도 감히 접근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 살기의 중앙에서 직접 대상이 되고 있는 정운은 태연자약한 표정이었다. “시끄럽게 소리는···. 이제 남자답게 싸워 볼 거냐?” 콰앙!!!! 정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운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레이 레드의 검이 정운의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일격에 쪼개 버린 것이다. 거기에 거치지 않고 지면에 박힌 검격의 여파는 지면을 길게 쪼개 버렸다. 하지만···. “어디를 내려치냐?” 쩍!! “크윽····.” 쪼개진 것은 결국 정운이 남긴 잔상일 뿐. 실제 정운은 그레이 레드의 옆에서 나타나 그대로 그레이 레드의 안면을 날려 버렸다. 스킬도 뭐도 아닌 그냥 주먹이었다. 하지만 정운의 주먹은 탱크의 장갑도 스티로폼 판처럼 뚫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 레드도 명색이 그랜드 마스터라는 듯이 다시 검을 휘둘러서 정운의 허리를 반토막 내려고 했다. 하지만···. 부웅!!! ···퍼엉!!! “아아악!!!” “크악!!” 이번에도 그레이 레드의 공격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무적의 공격력이라고 알려져 있는 오러 소드라고 해도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가 날린 공격은 애꿎은 부하들만 날려 버렸을 뿐이다. “내 할 일을 도와 주려는 거냐? 조절 좀 하지 그래?” 정운이 뒤에서 나타나 조롱하자 그레이 레드는 이를 악 물고 검에 힘을 잔뜩 불어 넣었다. “으아아아아아아!!!!!!” 퍼퍼퍼퍼퍼퍼퍼펑!!!! 그레이 레드의 공격이 사방으로 날아가서 주변을 초토화 시켜 버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도망가!! 무조건 떨어져·· 커억!!” “크아악!!!” 그레이 레드의 공격은 정운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주변에 포위망을 조성하고 있던 부하들을 날려 버리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부하들이 상당수 죽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레이 레드는 검격을 멈추지 못했다. 명색이 그랜드 마스터인 그레이 레드다. 이 난도질 같은 공격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알 고 있었던 것이다. 정운의 빠른 몸놀림을 포착하지 못한 그레이 레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이것 뿐이다. 무수한 난격. 무작정 휘두르면서 상대가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동시에 운이 좋으면 자신의 공격이 맞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남자가 이런 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정운의 움직임이 빨랐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쿤다라님. 님이 377화에 남겨주신 코멘트가 딱 10,000번째 코멘트입니다. 감사합니다. 379화 뇌신강림을 쓴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운의 움직임은 그레이 레드가 그림자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운이 사납게 날 뛰는 오러의 참격을 피하면서 중얼 거렸다. “게임 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기는 하다만···. 이제 좀 질렸으니 이건 그만 하는게 좋겠다.” 그렇게 말한 정운은 사납게 쏟아지는 그레이 레드의 검격을 여유있게 파고 들었다. “웃!!!?” 그리고 상대의 지척까지 접근한 정운은 당황한 그레이 레드의 안면에 자기 주먹을 꽃아 넣었다. 퍼억!! “크으윽···. 이놈!!!!” 다시 그레이 레드의 검이 더욱더 사납게 휘둘러 졌다. 이쯤 되면 검술이라기 보다는 거의 짐승의 발톱과 같은 사나움이 서려 있는 그레이 레드의 참격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참격들을 파고 들었다. “이제 이건 지겹다니까····.” 그리고 정운은 안으로 파고 들 때 마다 상대의 안면에 사정 없이 주먹을 꽂아 넣었다. 스킬이나 제대로 된 공격도 아니고 그냥 주먹질이엇다. 퍼엉!!! 퍼어엉!!! 그냥 주먹질 치고는 엄청나게 살벌한 소리가 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크윽·····.” 다섯발? 일곱발 정도 들어갔을 때였을까? 결국 그레이 레드가 휘청 거렸다. “맷집 쩌네.” 정운은 오른손을 탈탈 털면서 중얼 거렸다. 정운의 주먹이 얼굴에 작렬 할 때마다 그레이 레드의 안면에서는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런 정운의 주먹을 이만큼 맞고 버틴것만 해도 그레이 레드의 맷집은 대단한 것이었다. 다르게 보면 그랜드 마스터인 그레이 레드를 순수하게 펀치만으로 휘청 거리게 만든 정운이 대단한 것이지만 말이다. “큭···. 장난 하는 거냐!!?” “그래.” 울분에 찬 그레이 레드의 말에 정운이 담담하게 인정하자 그레이 레드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런 상대를 보고 정운이 말을 이어갔다. “엄밀히 말하면 간 좀 본다고 할까? 이 세계에서 말하는 그랜드 마스터라는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이 기회에 한 번 보려고 말이야.” “····뭐라고?” 그레이 레드는 상황을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런 그레이 레드를 보고 정운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고작 여기서 끝이냐? 오러를 사방으로 무작정 날려대는 이게 그랜드 마스터라는 인종의 한계는 아닌 것 같은데? 뭐 다른 것 좀 보여주지 그래?” 정운의 말에 그레이 레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의 인생을 통 틀어서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전 대륙을 통 틀어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강자인 자신이 이렇게 장난감 취급 받다니···. 그레이 레드의 분노는 극에 도달했고 그의 검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쾅!!! 콰앙!!! 검을 감싼 것도 모자라서 일렁이는 오러의 여파는 주변의 지면에 닿을 때 마다 폭발했다. “흠···. 저건 조금 위험해 보이는데?” 해파리의 촉수처럼 흐늘흐늘 거리면서 사방으로 뻗어가는 오러의 힘은 힘의 잔여물이 뿐이다. 저 검신에 집중되고 있는 본체의 힘은 훨씬 더 강맹했다. ‘아마도 비장의 기술을 쓰려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사실 지금 사전에 막는 거야 간단했다. 하지만 정운은 오늘 그랜드 마스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 척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 “기다려 주지.” 그러니 이번에는 특별히 예외로 치고 적의 공격이 올 때까지 그냥 잠자코 기다려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힘의 집중이 끝난 그레이 레드가 말했다. “죽어라.” 쾅!!! 후우웅!!! 그레이 레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른 섬광이 일직선으로 정운을 덮쳤다. 공격의 격돌음이 지나간 이후에야 그레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빠른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레이 레드는 이 싸움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검 끝에서 손맛을 느꼈다. ‘잡았다!!! 멍청한 놈!! 방심의 대가를 치르는 구나.’ 그레이 레드도 중간부터는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가지고 놀듯이 상대하는 정운의 강함을 말이다. 아마 정상적으로 싸우면 절대 못 이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강의 기술로 목숨을 건 도박을 했던 것이다. 아마도 상대는 자신의 공격을 다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이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방심하다가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자신보다 강자에게 쟁취해내는 승리만큼 짜릿한 승리는 또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이겼을 때의 일이다. “이건 약간 놀랍긴 하네···. 이런거 또 있냐?” 그레일 레드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은 정운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그레이 레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로서의 모든 힘을 한 점에 집중 시킨 일격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S클래스의 대괴수라고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최고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상대는 멀쩡하단 말인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정운의 몸을 자세히 본 그레이 레드는 정운의 몸에 생소한 갑옷이 생겨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쉐도우 아머를 쓰는게 참 오랜만이긴 해. 지구에서 이걸 썼다가는 무슨 변신 유닛 같이 취급 받을까봐 잘 못썼는데 말이야.” 쉐도우 아머.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에게 가장 유용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었던 그림자의 망토의 방어 스킬이었다. 이번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에 정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림자의 망토는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쉐도우 아머를 발동 시켰다. 가뜩이나 레벨이 300이 넘은 정운의 패시브 방어력에 쉐도우 아머가 더해지면 방어력이 대폭 올라간다. 그랜드 마스터가 날린 혼신의 일격을 그냥 몸빵으로 견뎌낼 정도로 말이다. “괴··. 괴물 같으니라고··.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그레이 레드는 더 이상 싸울 전의를 잃었다. 이제는 정운에 대한 노골적인 두려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의 본능은 경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무조건 싸움을 피해라. 라고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때때로 본능이 보내는 경고를 묵살하는 법이다. 오랜 세월 동안 브로드 왕국에 군림해온 세월 동안 권위 의식이 더욱더 본능의 경고를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레이 레드가 어떤 선택을 했던 결과는 별로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정운은 독한 마음을 먹고 왔다. 일단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정운은 주변을 슬쩍 돌아봤다. 사방에서는 자신을 두려움이 떨면서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향해서 정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원래 전쟁이라는건 멋있는 게 아니지. 그냥 강자가 약자를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생지옥일 뿐이야. 그러니····.” 정운은 허공으로 두둥실 떠 올랐고 그런 정운의 주변에 뇌전의 거검들이 수백 개씩 생성되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파지직····. “어어···?” “저건? 저건 무슨 마법이지?” “설마? 설마 9클래스의 대마법?”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자들을 보면서 정운은 선고하듯이 말했다. “너희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권리다. 날 마음껏 저주해라.” 그리고 정운의 손이 떨어졌고···. 수백, 아니 수천 개의 뇌전의 거검들도 지면으로 폭우처럼 쏟아져버렸다. 콰콰콰콰쾅!!! 쾅쾅!! 퍼어엉!!! 콰아앙!!!! 인세의 지옥. 보통 이런 말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 정운은 그런 지옥을 스스로의 손으로 연출하고 있었다. “크아악!!!” “사람·· 아악!!!” “흐··. 크악!!!!” 정운의 공격에 시체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적군들을 보면서 정운은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이 이 나라를 지배하면서 한 일이라고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섭리에 따른 약탈 뿐이었다. 그러니 저런 쓰레기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 나라에 해로울 것이야 하나도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기에 정운도 독하게 마음 먹고 손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고 해도 결국 마음의 한 구석에 씁쓸함이 드는 것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우우····. 끝났나?” 약 10여 분간 계속된 정운의 일인 폭격. 그 폭격이 남긴 흔적은 처절했다.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전멸. 10여 분 간의 공격으로 50만이라는 숫자가 전멸해 버린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전멸은 아니다. 딱 한 명의 생존자가 남았으니 말이다. “죽은 척 하지 말고 일어나지 그래?” 정운의 말에 한쪽에 들썩 거리더니 피투성이로 숨을 고르고 있던 그레이 레드가 엉망이 된 상태로 검을 지팡이 삼아서 일어났다. “이···. 괴물이····.” 죽은척 하고 기회를 살피고 있었던 그레이 레드는 정운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그런 그레이 레드를 보고 정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놈한테 집중 시킨 공격도 아니고 광역 공격이었는데···. 그걸 못 막을 정도의 얼간이는 아니지? 안 그래?”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죽을 때 죽더라도 그건 알고 죽어야 안 억울하겠다 싶은 그레이 레드였다. 그런 놈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그냥 네놈이 알아서 생각해.” 그리고 뇌전의 창을 네 자루 만들어서 그레이 레드 쪽으로 조준 시키는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그레이 레드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저 정도의 강자··. 있었다면 소문이 났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머릿속에 떠 오른 정보가 단 한마디로 귀결 되었다. “게이트!!!” “정답이다.” 퍼퍼펑!!!!! 그레이 레드로서는 그래도 궁금증은 풀고 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뇌전의 창이 날아가면서 그레이 레드의 몸을 세포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그대로 분자 단위로 분해 시켜 버렸다. 그렇게 그레이 레드를 처리하고 난 후에 정운은 살짝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저 정도라····. 이거 월드 서버출신이 아니면 상대를 못 하겠는데?” 굉장히 쉽게 이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그라운드 최강인 정운이었기에 있었던 일이다. 삼대 길드의 간부출신들만 해도 그랜드 마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래도 일단 하나···. 가장 쉬운 나라 하나는 접수한다. 기다려라 파우스트.” 그리고 정운은 바로 다음 장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로드 왕국의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의 몰락. 그레이 레드 사망. 150만 대군 대부분 전멸. 이 핫 이슈는 대륙의 전역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정운은 그레이 레드의 본대 50만을 날려 버린 후에 20만씩 나눠서 이동 중이던 다른 분대들도 하나하나 찾아가서 모두 날려 버렸다. 자비는 없었다. 어차피 이 나라가 다시 일어나려면 악명 높았던 레드 스네이크 용병들은 방해만 되었다. 그러니 정운도 독한 마음을 먹고 용서 없이 일방적인 학살을 했던 것이다. 정운이 60만을 날리고 나머지 40만은 한중겸이 쓸어 버렸다. 실질적으로 이제 브로드 왕국에서 레드 스네이크의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남은 잔당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감히 제로 용병단에 대항할 용기는 없었다. 이제 정운이 의도한 대로 제로 용병단의 강력함이 브로드 왕국 전역에 퍼졌다. 그리고 한중겸은 정해진 수순대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브로드 왕국이라는 도시 전부를 손에 넣을 때가 된 것이다. ============================ 작품 후기 ============================ 일단 여덟개의 나라 중에 하나는 접수했습니다. 가장 약한 나라긴 하지만, 일단 기반은 마련한 거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80화 <브로드 왕국 접수> 힘으로 모든게 통하던 나라이기 때문일까? 나라를 접수하는 것은 상당히 편했다. 제로 용병단이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을 이긴 시점에서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제로 용병단의 지배를 인정했다. 제로 용병단의 군이 가는 곳 마다 성문이 열리고 도시와 성벽은 환호했다. 그리고 그제까지 그 도시와 마을을 지배하던 용병단은 제로 용병단의 산하로 들어가기로 충성을 맹세했다. 이세계의 행성 면적은 지구의 다섯 배가 넘었다. 당연하지만 브로드 왕국의 면적만 따져도 중국 대륙이 세 배가 넘는 광활한 토지였다. 비록 브로드 왕국의 땅은 황폐해서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오히려 더 좋았다. 게이트 부근에서 발견한 지하자원만 해도 어마어마했는데···. 이 넓은 땅에서 어떤 노다지가 터질지는 그야말로 미지수였다. 그렇게 제로 용병단이 브로드 왕국의 지배를 천명한 순간···. 제국에서 공식으로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지금 브로드 왕국을 지배하고 있는 제로 용병단은 게이트 너머에 있는 이세계의 악마들이 만든 세력이다. 그들이 드디어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 말은 이전에 그냥 게이트가 열렸다는 정보보다 훨씬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까지 다른 나라에서 알기로 게이트 너머의 세력들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제국의 발표가 맞다면···. 지금 이세계의 인간들이 야금야금 자신들의 영토를 접수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제까지 소 닭 보듯이 하던 다른 왕국에서 위기감을 가지기에 충분한 발표였다. 그리고···. 며칠 후에 제로 용병단의 한중겸이라는 남자의 이름으로 한 가지 발표가 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우리 제로 용병단이 이세계의 인간인가? 아닌가? 이 질문에 진실로 대답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다. 우리는 게이트 너머의 지구라는 세계에서 왔으며 브로드 왕국을 점령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계의 멸망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공존을 원하며 평화를 원한다. 다만, 우리를 적대시해서 공격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때는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정식으로 공표한다. 난 제로 용병단의 단장. 한중겸. 그리고 내 위에 있는 것은 한우리 연맹의 대표인 박정운이다.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그때는 후회 할 기회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한중겸의 발표가 나오자 대륙은 엄청나게 시끄러워졌다. 브로드 왕국의 북쪽에 있는 크롱크 왕국은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 나라였다. “취익···. 남쪽에 악마들이 산다고 한다. 어떻게 할까?” “취익···. 대 족장. 드디어 전쟁입니다. 취익··. 우리 오크족의 전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취익····.” “취익··. 맞습니다. 용감하게 싸웁시다. 전쟁을 선포 합시다. 취익···.” 장로들의 말에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 칸다카는 신장이 3미터는 될 법한 탄탄한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취익···. 모든 부족의 족장들에게 말해라. 성스러운 축제(전쟁)의 시기가 왔다!!!!” “우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항상 전쟁 못 해서 안달이 나 있던 크롱크 왕국은 자신들의 힘을 남쪽으로 쏟아 부을 준비를 마쳤다. 브로드 왕국의 동쪽에 있는 라트란 왕국. 이 나라는 원래 엘프와 페어리가 주축이었고 이제까지 브로드 왕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나라였다. 인신매매와 노예거래가 국가의 주력 상품이었던 브로드 왕국에게 라트란 왕국은 대박을 터트리기 쉬운 사냥감이 즐비한 나라였다. 얼마나 많은 엘프족과 페어리족이 인간들에게 잡혀서 노예로 비참한 생을 마감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 라트란 왕국에게 있어서 브로드 왕국의 주인이 이계의 인간들도 바뀌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논쟁을 가져왔다. “이제 더 이상은 수비적인 태도로 방관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공격해야 합니다. 이계의 인간들이 탐욕스럽게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하지만 우리 엘프가 먼저 선수를 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인간과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그럼 언제 선수를 치겠다는 겁니까? 또 우리 동족이 노예로 잡혀가고 난 후에요?” “일단 기다려 보죠. 어떤 일이 생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이익···.” 라트란 왕국은 매파와 비둘기파가 서로 갈라져서 첨예하게 대립을 하고 있었다. 전쟁을 싫어하는 비둘기 파. 그리고 이계의 인간들이 야욕을 드러내기 전에 자신들의 이웃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파가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아마 이들이 결론을 내려면 약간의 시간이나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국가 외에 유일하게 브로드 왕국하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다크니스 왕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륙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나라가 다크니스 왕국이었다. 거기다 정보가 극단적으로 통제된 나라라서 나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도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이 공식적인 발표를 하기는 하는데, 그때마다 대륙에서는 큰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나라 하나가 없어진다거나. 혹은 종족 하나가 멸망한 적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크니스 왕국은 절대로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자기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아무런 전조가 없다는 것은 다크니스 왕국은 아직도 게이트 너머의 이계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리고 드워프와 호빗의 나라인 아이언 왕국과 해상 왕국인 엘라 왕국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었다. 이계의 인간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자신들의 대륙으로 진출한 것은 눈여겨봐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점련된 국가는 브로드 왕국이 아닌가?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그 나라의 전력은 그렇게 우수한 편이 아니었다. 사실 그레이 레드 하나만 빼면 나머지는 모두 별 볼일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나라였다. 대륙의 범죄자들이 전부 거기에 있으니 일종의 공진 지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모두들 묵인하고 있었을 뿐이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라트란 왕국은 조금 골치를 썩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 라트란 왕국도 국력의 종합치는 브로드 왕국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라트란 왕국이 브로드 왕국의 용병과 노예 상인들에게 종종 약탈 당한다. 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사실 국력을 비교하면 브로드 왕국은 라트란 왕국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브로드 왕국이 라트란 왕국의 국력을 웃돌고 있다면 쩨쩨하게 국경 지대에서 치고 빠지기로 쫌스런 약탈만 하겠는가? 진작에 라트란 왕국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라트란 왕국이 브로드 왕국에 약탈을 당하는 이미지라는 것은 어지간하면 전쟁을 하지 않는 엘프들의 성격 때문에 적당히 넘어갔을 뿐이다. 국경 지대에 순찰을 강화하며 만약 넘어서 약탈을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때는 철저하게 징벌했다. 하지만 순찰이 100% 완벽한게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는 것 뿐이었다. 만약 엘프들의 성격이 약간만 호전적이었고, 또 실제 전쟁이 벌어졌다면 브로드 왕국은 진작에 멸망했을 것이다. 어쨌든···. 아이언 왕국과 엘라 왕국이 생각하기에 레드 스네이크가 지배하던 브로드 왕국은 별로 강하지도 않고 그리고 별로 좋은 나라도 아니었다. 어쩌면 놈들이 먼저 게이트 너머의 이계인들에게 시비를 걸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무작정 상대를 악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견해를 발휘하는 나라가 딱 두 개 있었다. 바로 성 세인트 왕국과 에리프릴 왕국이었다. 종교 국가인 성 세인트 왕국은··. [게이트 너머의 인간들이 대륙에 진출하는 것은 큰 위협이다. 그들이 더 야욕을 드러내기 전에 대륙의 힘을 모아서 견제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신탁의 해석은 전해지는 과정에서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며 제국의 제안을 거절할 때와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세인트 왕국은 브로드 왕국과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 이계인들이 제로 용병단이라는 이름으로 대륙에 진출을 시작하자 극도로 경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성 세인트 왕국과 전쟁을 하고 있던 에리프릴 왕국은 정반대 의견을 냈다. 에리프릴 왕국은···. [성 세인트 왕국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제국과 함께 다른 왕국들에 강제적인 내정 간섭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이 세상의 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고 반대 주장을 했다. 사실 에리프릴 왕국이 게이트 침략에 부정적인 반대 의견을 말한 것은 게이트 너머의 이계인들과의 평화를 추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계속해서 전쟁 중인 성 세인트 왕국이 이계인에 대한 적대적인 발언을 하자 거기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아마도 성 세인트 왕국이 게이트 너머의 이계인들을 옹호 했다면 그때는 에리프릴 왕국이 반대로 이계인에 대한 위험성에 관해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이렇게 점령당한 브로드 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왕국 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을때···. 정작 이제까지 이계인을 가장 적대시 하고 있던 제국의 황제는 태연자약 했다. 제국의 대전. 거기서 황제를 향해서 여러 신하들이 숨까쁘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폐하. 성 세인트 왕국에서 다시 한 번 게이트로 2차 정벌군을 조직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브로드 왕국의 영토에 자신들의 축제를 벌인다고 합니다” 신하들은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면서 이제 황제가 2차 정벌군을 조직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 좀 더 기다리라고 하라. 크롱크 왕국에도 짐의 이름으로 전갈을 올려서 축제의 때를 늦추라고 일러라.” 황제의 말에 신하들은 살짝 당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빨리 2차 정벌군을 조직하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하들을 들들 볶던 황제였다. 덕분에 원형 탈모증이 생기는 신하들도 있을 정도였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제국의 신료들은 모두 대머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황제가 이제 정작 기회가 오니 때가 아니라고 하며 뒤로 빼고 있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인가?’ ‘이럴 거면 뭐 하러····.’ 신하들이 허무한 생각을 하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온화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서며 말했다. “우선 제국의 안정이 먼저다. 나라 안의 살림을 보살피는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라. 알겠느냐?” “예스. 유어 마제스티!!” “예스. 유어 마제스티!!” “예스. 유어 마제스티!!” 어쨌든 제국의 황제. 신하들 입장에서는 까라면 까야 했다. 일단 제국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이상 바로 2차 징벌군을 꾸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 사이에 정운은 한중겸에게 브로드 왕국의 내부를 잘 보살필 것을 당부했다. 한중겸은 거기에 최선을 다해서 움직였다. 브로드 왕국에 부족한 것은 각종 식량과 각종 생필품. 그리고 일자리였다. 이 세 가지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 정운은 한우리 연맹을 통해서 각종 대기업의 공장을 이계에 짓게 했다. 의류, 신발, 자동차 부품 등등··. 여러 가지 공장들이 한우리 연맹에게서 허가를 얻고 이계로 진출했다. 사실 기업으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우선 인건비가 엄청 싸게 들었다. 그리고 이계인들과 행하는 소소한 교역도 큰 이익이었다. 마트에서 생필품을 판다거나 인기 상품으로 등극한 인스턴트 식품을 판다거나 하는 것들이 큰 이익을 남긴 것이다. 가난한 브로드 왕국의 시민들과 교역을 하는게 뭐 그리 이득이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이 세계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낭비가 많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모든 화폐가 금속인 것이다. 그것도 금, 은, 구리 같이 경제적 가치가 높은 금속 말이다. ============================ 작품 후기 ============================ 일단 가장 약한 나라 하나는 비교적 간단하게 접수합니다. 이제 기초공사 정도는 마쳤다고 봐도 될겁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81화 <슬기의 가족> 화폐의 원자재가 금속인게 뭐 그리 대단하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낭비였고 한국 쪽의 기업들로서는 큰 이득이었다. 만약 21세기의 화폐를 그렇게 금속 코인으로 모두 대체하려고 하면···. 장담하건데 전 세계의 경제가 파산할 것이다. 인류의 경제는 지폐를 발행함으로 인해서 크게 발전한 것이다. 만원의 가치를 지닌 지폐를 만들었지만 그 지폐의 실제 가치는 만원이 아니다. 그 만원은 엄밀히 말해서 이 종이에는 만원이라는 금액적인 가치를 인정한다. 라는 신용이 붙어 있는 종이쪼가리일 뿐이다. 실제 그 종이쪼가리에 사회적인 신용을 부가함으로 인해서 그 종이를 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 세계의 경제는 그렇게 신용성을 극도로 활용해서 경제적인 낭비를 크게 줄였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다르다. 모든 국민들이 코인으로 가격을 지불한다. 당연하지만 그 코인의 가치는 금속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높다. 간단하게 1골드짜리 코인을 얘기하면 쉽다. 이 세계에서 1골드는 3인 가족의 1달 생활비에 약간 못 미친다. 한 100만원에서 120만원 정도? 그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코인을 한국으로 가져가서 순수하게 금으로서의 가치를 환산하면? 1골드 짜리는 보통 2냥이 조금 넘는 무게였다. 정제를 해서 순도를 높이면 약간 무게가 줄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300만원 정도는 사뿐하게 넘는 가치가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이쪽 세계에서 하는 교역이 이익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어떻게든 이계에 지점 하나 내보려고 안달이 난 상태였다. 사실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그런 기업들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이계에 공장을 짓는 것은 대한민국, 더 나가서 지구인들의 이계 진출에 앞장서는 것이라는 호의적인 평판도 뒤 따라 왔기 때문이다. 정운 역시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에 한해서는 딱히 수수료를 받지 않고 약간의 조건만을 달고 공장 건설을 허가해 주려고 했다. 사실 지금 한우리 연맹의 풍부한 재정을 생각하면 공장 건설을 위해서 받는 허가비 따위는 받기도 번거로웠다. 하지만 완전 무료로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선례가 아니라고 말하는 미하엘의 주장 때문에 약간의 수수료만 받기로 했다. 그 약간이라는 애매한 단위의 견해 차이에 관해서는 상당한 격차가 발생했지만···. 어쨌든 이건 상호간에 충분한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뭐, 가장 큰 공장 허가비에 교역 관세 등등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인 한우리 연맹이라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운은 한우리 연맹의 힘을 이용해서 최대한 노력했다. 그리고 노력한 보람이 있는 것일까? 브로드 왕국 내부의 혼란은 매우 적었다. 물론 제로 용병단의 정체가 게이트 너머에서 온 이계인이라는 것이 공개된 시점에서는 혼란이 있었다. 하지만 신탁과 정 반대로 자신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제로 용병단의 행동을 보면서 신탁의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 라는 신성 제국의 예전 발언을 핑계 삼아서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옛 말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사람은 일단 배가 고픈 건 못 견디는 법이다. 신탁도 좋고 믿음도 좋지만···. 일단 자신이 살아야 믿음도 있는 것 아닌가? 나라가 다 제로 용병단에게 넘어간 상황인데 여기서 더 개기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인 아니었다. 결국 브로드 왕국에서 제로 용병단의 이름으로 점점 안정되어 갔다. 자신들이 직접 들어본 적도 없는 신탁 보다는 자신들이 직접 보고 느끼고 있는 진실이 그들에게는 훨씬 더 현실 적이었다. 브로드 왕국을 점령하고 한 달 정도 지난 후··. 정운은 한중겸에게 브로드 왕국의 관리를 맡기고 자신은 다시 게이트가 있는 신도시로 돌아왔다. 그런 정운의 집무실에서 미하엘이 보고를 올렸다. “일단, 제로 용병단에 추가 확충 인원 3만 명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3만이라···. 부족하지 않을까?”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실 것 같아서 다시 2차 추가 확충 병력을 모으는 중입니다. 필요하면 해외에 있는 길드나 연맹에 의뢰를 해서 협조를 구하는 방법도 생각 중입니다.” “음···. 일단 우리 길드의 여력으로만 해결 하는게 보기 좋겠어. 너무 여력을 많이 투입하지는 마.” “알겠습니다. 정운님.” 그렇게 미하엘의 보고를 받은 정운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보고를 받았다.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모든 것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우리 연맹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번에 대륙에서 브로드 왕국을 손에 넣으면서 이제는 지구와 이세계. 양쪽 모두에 확고한 기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그렇기에 정운은 몹시도····. “찝찝해····.” 그렇다.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런 정운의 혼잣말을 들은 슬기는 커피를 따라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음···. 모든게 너무 잘 풀리고 있어서 말이야.” “····그게 고민이에요?” 이해 할 수 없다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눈 앞에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우리가 상대하는 놈이 어떤 괴물인지 알잖아? 파우스트. 자신이 신이 되려고 했고, 또 거의 성공 할 뻔 했었던 놈이야. 아니···. 어떤 의미로 이미 그 목적은 이뤘지. 놈은 저쪽 세계에서는 이미 신이니까 말이야.” “···········.” 슬기는 정운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천하의 파우스트를 적으로 돌린 것 치고는···. 너무 잠잠해. 이제까지 놈이 한 거라고는 처음에 여의도 상공에 게이트를 열어서 우리 세계를 공격 했던 것 뿐이야.” “그건···. 그렇죠.” 정운이 나중에 알아낸 것인데···. 처음에 게이트를 통해서 지구를 침략하고 대량 학살을 벌였던 그 적들은 대륙에서 보낸 어느 나라의 군대도 아니었다. 그쪽의 인간들도 게이트가 열리기 전 까지는 지구에 한 반자국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에 지구에서 대량 학살을 했던 이계의 군세의 주인은 누구일까? 뻔했다. 그때 놈들은 자신들의 입에서 스스로 파우스트를 자신들의 신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그 놈들은 파우스트가 직접 손을 써서 보낸 적군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좀 약한 구석이 있었지만··. 아마 놈도 처음부터 진짜 카드를 꺼낼 생각은 아니었겠지···. 그렇다면 놈이 지금 노리는 것은 뭐지? 우리가 이렇게 순조롭게 대륙을 정벌해 가는게 놈에게 이롭게 작용할 리는 없는데 말이야.’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 이제 머리 좀 식혀요.” 슬기는 정운을 등 뒤에서 끌어안아서 다정하게 달랬다. 자신의 따뜻한 품안이 정운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슬기였다. 그런 슬기의 뜻대로 정운은 작지만 약간의 온기를 느끼며 안도했다. 그런 정운에게 슬기가 말했다. “정운씨···. 조금 쉬는게 어때요?” “쉬라고?” “예. 저하고 어디로 잠깐 여행이라도 가 보지 않을래요? 저 마침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보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보고 싶은 사람? 누구?” “제 가족요.” “아····!!” 순간 정운은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죄책감이 들었다. 당연하지만 슬기도 가족이 있다. 그런데 그 가족의 존재를 전혀 신경도 써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바쁜 일들이 많았기는 하지만··. 그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만 해도 슬기는 정운의 어머니를 만나고 정운의 여자로서 그 역할을 톡톡하게 해주지 않았는가? 정운의 어머니가 그래도 편하게 눈 감을 수 있었던 것에는 슬기의 덕이 컸다. 그런데 자신은 슬기의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아니. 슬기의 가족에 대한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 면목이 없다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정운이 하는 사과를 들으면서도 슬기는 착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미안해하지 마요. 사실 정운씨가 아니라고 해도 내가 스스로 가족 만나기가 껄끄러웠어요.” “네가? 어째서?” 정운의 말에 슬기는 예쁜 얼굴에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전 원래 집에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워낙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내가 아이돌을 지망한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그렇게 할 거면 집을 나가라고 했었고···.” 그러고 보니 슬기의 집안 사정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가능하면 상대의 과거를 묻지 않는게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일까? 그녀의 가족사에 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는 정운이었다. 슬기의 집안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집안이었다. 좀 많이 엄격한 아버지와 소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상냥한 어머니. 그리고 슬기와 두 살 터울의 언니와 한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다. 슬기는 그 두 명의 사이에 끼어서 차녀로서 평범하게 자랐다.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슬기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아이돌이 되고 싶어 했다. 보통 그 나이에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십대는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슬기 정도였다. 정식으로 노래를 배운 적은 없었지만 어렸을 때 교회의 성가대로 활동한 적이 있는 슬기는 노래에 관해서는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거기에 당시에 이미 두드러지기 시작한 외모도 있었다. 덕분에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갈 정도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다만 어머니는 허락을 해 줬지만 슬기의 아버지는 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얘기를 하던 슬기는 약간 아련한 표정으로 정운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사람 보는 눈이 있는 분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길러진 안목이랄까요? 절 키워 주겠다는 기획사 사람들이 멀쩡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봤을지도 모르죠.” “········.” 정운은 슬기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 쓰레기들 때문에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닌가? “보통 전 아버지의 말은 대부분 따르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아니었어요. 처음으로 한 반항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슬기의 설명이 이어졌다. 때마침 슬기가 본격적으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 숙소에 들어갈 무렵···. 슬기의 가족은 일본으로 가야 했다. 슬기의 아버지는 그럭저럭 규모가 있는 의료기기 회사의 직원이었는데 승진을 걸고 일본 지부로 전근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키워야 할 아이들이 셋 정도 되면 가장은 자신의 직업에 더욱더 집중해야 한다. 슬기의 아버지는 과감하게 자신의 가족을 통째로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다행이도 회사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집도 알아봐 준다고 했기에 망설일 것도 없이 결정했다. 어쩌면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딸이 아이돌을 그만두고 자신을 따라 올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상은 틀렸다. 슬기는 확실히 착하고 순한 성격이지만···. 그런 사람이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오히려 더 강골인 경우가 보통이다. 슬기는 어차피 기숙사 생활을 할 거니까 홀로 한국에 남아도 상관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제까지 딸의 행동을 못 마땅해 하면서도 크게 역정을 내지 않았던 슬기의 아버지지만···. 그때만큼은 크게 화를 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이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겠다고 했으니··. 냉정하게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그런 냉정하고 당연한 생각을 할 수 없는게 꿈에 눈이 먼 십대인 것일까? 결국 슬기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남았고···. 후일 아이돌에 데뷔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버지와는 껄끄러운 사이가 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슬기의 가족 얘기입니다. 단, 마냥 쉬어가는 페이지는 아닙니다. 여기서도 나름 스토리는 나갈 겁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82화 “그런 이유로 해서···. 저 역시 아직까지 집에 제가 귀환자라고 밝히지도 않았어요. 어쩌면 집에는 제가 실종으로 처리되어 있는지도 몰라요.” “········슬기야····.” 정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슬기의 가족을 챙겨주지 못한 자신도 잘못은 잘못이었지만····. 슬기는 어떤 의미로는 훨씬 더 막나가는 존재였다. 어쩌면 슬기가 가족에 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정운은 슬기에게 가족이 없다. 라고 넘겨짚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글기가 가족의 얘기가 껄끄러워서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은 여전히 일본에 있는 거니?” “제가 알아본 바로는요.” “알았어. 그럼····. 가자.” “정말요?” “그래. 네 가족이라면 나한테도 중요한 사람들이야. 가자. 가서 정식으로 네 부모님에게 허락도 받고 싶어.” “············.” 정운의 말에 슬기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미 반쯤 부부나 다름없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막상 부모님에게 허락 받는다고 하니 다른 의미로 부끄러운 느낌이었다. “가자. 일본으로.” “····예.” 어쨌든, 그렇게 해서 정운과 슬기는 일본으로 향하게 되었다. 일본. 게이트가 열리고 귀환자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혼란을 겪은 나라였다. 사실 일본의 귀환자들은 수준이 북한처럼 낮지는 않았다. 원래 일본도 월드 서버에 진출 했던 서버였다. 비록 그 월드 서버에 진출한 일본팀은 한국팀과 전쟁을 한 결과 완전히 전멸해 버렸다. 하지만 비록 톱들이 전멸했다고 해도 일단 일본 서버 자체에는 월드 서버에 있던 팀들이 키우던 기본적인 세력들이 있었다. 그 레벨은 대략 삼대 길드의 간부 출신들 정도로···. 보통 70~80 정도 되었다. 간간히는 레벨 90짜리의 유저도 있었다. 이런 이들이 동시에 일본으로 귀환하자··. 일본에서는 참 곤란했다. 레벨이 50만 넘어가도 감당하기가 어렵다. 사실 70짜리를 감당하려면 일본의 자위대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대량의 피해를 감당한다고 해도 아슬아슬하게 잡거나··. 혹은 기껏해야 쫒아내는 것 정도가 한계였다. 일본의 귀환자들중에 고레벨 유저들 중에 상당수가 야쿠자로 들어갔고, 그들을 따라서 그 밑에 있는 저 레벨의 귀환자들이 야쿠자로 들어갔다. 덕분에···. 치안이 좋기로 유명했던 일본에는 최근에 야쿠자들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활했다. 섣불리 크게 나라를 어지럽혀서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을 피하고···. 그 대신에 일본의 어둠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야금야금 접수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갔다. 결국 정신차리고 보니 이제는 일본 정부에서도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어두운 세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라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세계 삼대 마피아니 범죄 조직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게 일본의 야쿠자다. 그런 놈들이 한 층 더 흉악하게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데 그걸 그냥 손 놓고 보고 있으면 병신이다. 그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서 대응했다. 한우리 연맹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정운은 일본 정부의 도움을 거절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인원수가 영국과 프랑스를 합한 것 만큼이나 많았기에 치안 유지거래 순위에서 떨어트린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라고 하면 정운이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역사 문제도 있었고 또 그라운드 제로에서 도조 마사토라는 왕재수를 만났던 것도 한 몫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그래도 일본 정부는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고, 최근 들어서는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도 한우리 연맹 때문이었다. 정운이 신의 맹세를 타국에 나눠주면서 라이센스를 발급하는 식으로 연맹의 창설을 돕자 일본에서도 한우리 연맹에게 신의 맹세를 얻어내고 길드나 연맹을 결성한 자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서의 귀환자들의 세력 구도는 야쿠자 7, 연맹이나 길드가 3 정도의 비율이었다. 정운은 사실 거기까지는 알바가 아니었다. 그저 슬기의 가족을 보기 위해서 일본을 향했을 뿐이다. 다만···. 조용한 처갓집 인사가 될지 안 될지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나리타 공항에 내린 정운은 슬기와 함께 도쿄에 도착했다. 사실 정운이나 슬기가 직접 흑토나 백설을 타고 이동하면 금방이었지만···. 둘은 굳이 서두르지 않고 비행기를 이용했다. 이게 휴가의 의미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기야. 너희 집은 어디에 있다고 했었니?” “음··. 우에노라는 지역에 있다고 알고 있어요. 자세한 주소는 여기···.” “음, 알았어. 사람이 마중 오기로 했는데···.” 정운이 공항의 로비를 바라보자 한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정운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정운 대표님. 비룡연맹의 대표인 사토 켄세이라고 합니다.” 이 남자는 정운이 신의 맹세를 대여해 줬던 일본의 비룡연맹이라는 연맹의 대표다. 귀환자로서의 레벨은 65였다. 정운은 일본에 올 때 현지의 안내를 겸해서 한 명만 인원을 좀 빌려달라고 청했었다. 그냥 안내 가이드로 한 명을 청했는데 그 길드의 대표가 직접 나와 버린 것이다. “대표님이 직접 나왔나요? 그냥 현지 가이드로 한 명만 빌려 달라고 했는데?” “박정운님이 오셨는데 부하들에게 맡길수는 없죠.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윗사람이 딱히 뭐라고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숙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뭐···. 상관없나? 어디 요란하게 준비한건 아닌 것 같고 말이야.’ 정운의 이번 일본 방문은 지극히 사적인 일로 비밀리에 온 것이다. 요란하게 준비했다면 정운이 좀 짜증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촐하게 단독으로 마중을 왔으니 별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공항에 마중을 나온 리무진을 본 후에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지만···. 뭐 이왕 탄걸 어떻게 하겠는가? “어디로 모시면 될까요?” 사토 켄세이의 말에 정운은 주소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말했다. “여기로 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기사에게 주소를 불러주고 자신은 눈치껏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슬기와 정운은 뒤에 앉아서 가는 길에 말했다. “처음 가는건데···. 뭔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일단 아빠가 절 반겨줄지 말지부터가 고민이에요. 그런데 선물은 시기상조죠.” “반겨주시겠지.” “과연 그럴까요? 어쩌면 이미 죽은 딸 취급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슬기는 자신이 그라운드 제로에 갔다가 귀환했다는 것 자체를 집에 알리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집은 자신이 갑자기 실종 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슬기는 지금 자기 집에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있었다. 옆에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있는 정운이 아니었다면 그냥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 뻔 한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차가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지?’ 어째서인지 가족이 있을 집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더 불안감만 커지는 슬기였다. 슬기가 불안해하건? 말건? 차는 결국 슬기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이 맨션인가?” “예.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에서 대여해 줬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럼 들어가자.” “············예.” 슬기는 스스로 깊게 호흡을 하더니 정운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가요.” “그래.” 슬기와 정운은 그렇게 해서 슬기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갔다. 자신의 집에 도착한 슬기는 자신의 집 현관에 도착하고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누구세요?” 안에서 일본어로 누가 왔는지 묻는 말이 들렸다. 이 목소리는 슬기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엄···마.” 슬기가 작게 말했다. 그러자 문이 덜컥 열리더니 중년의 여성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타났다. 그녀를 마주한 순간 슬기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 보다 좀 더 여의고 흰 머리고 늘었다. 하지만···. 틀림없는 자신의 엄마였다. “엄마··.” “슬기야. 슬기야. 내 딸아·····.” 슬기와 엄마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두 모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면서 정운은 슬기가 한 걱정이 괜한 걱정임을 알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족이 최고지.’ 슬기와 슬기의 모친이 좀 진정되고 나서 정운은 자신을 소개 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정운이라고 합니다.” 정운이 자기소개를 하자 슬기의 어머니는 정운을 보면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슬기하고는···, 내 예상이 맞나요?” “예. 사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세상도 흉흉한데 당신이 내 딸을 지켜줬군요.” “아니요···. 별것 아닙니다.” 별것 아닌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답이다.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슬기를 지켜주고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이니 말이다. 슬기의 엄마로서는 그냥 딸을 만나고 기뻐서 한 말이었지만 완전 정답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눈가를 훔치고 정운을 바라보다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없던가요?” “아니요. 이번이 초면입니다.” “그런가요? ·····어째서 이렇게 익숙한 거지?” 슬기의 어머니의 말에 정운과 슬기는 동시에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슬기는 입모양으로 정운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TV로 봐서는 사람 얼굴을 잘 구별 못해요.] 슬기의 입모양을 읽은 정운은 쓰게 웃었다. 사실 정운은 어지간한 유명인이나 스포츠 스타보다 훨씬 더 유명인이다. 게이트의 수문장. 한우리 연맹의 대표. 귀환자들의 왕. 정운을 향해서 칭하는 수식어는 많고 많았다. 또 인터넷을 약간만 찾아보면 정운의 사진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유명인이 실물로 있으면 못 알아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 슬기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정운은 자신의 정체를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망설였다. ‘어떻게 하는게 점수 따기 유리할까나···.’ 그때···. 슬기가 먼저 말했다. “엄마, 아빠는? 언니하고 준기는 어디에 있어?” 슬기의 말에 슬기의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준기는 지금 아르바이트 갔고··. 너희 언니도 일하러 갔지.” “둘 다? 그럼 지금 준기가 대학생이었나?” 슬기의 말에 슬기의 엄마는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야 하는데 말이지···.” 슬기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서 뭔가 어색한 점을 발견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슬기의 말에 그녀의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중에 말해 줄게···. 일단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배고프지 않니? 엄마가 오랜만에 뭐든 좀 만들어 줄게.” 그렇게 말하는 슬기의 엄마는 뭔가를 얼버무리는 티가 역력했다. 슬기는 지금 당장 캐묻는 것 보다는 나중에 가족이 다 모였을 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성격에 걱정 거리가 있다고 해도 순순히 말해줄 리도 없고···.’ 그렇게 슬기의 어머니는 정운과 슬기를 집의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슬기에게 손수 식사를 차려 주려고 하는데···. 쾅쾅쾅!!! “계십니까? 안에 있죠? 문 좀 열어 보십시오.” 뜻하지 않게 불청객이 찾아와 버렸다.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순간 정운은 뭔가 감이 안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안색이 싹 변하는 슬기의 어머니를 보면서 그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어머님? 밖에 저 사람들은 누굽니까?” 정운의 말에 슬기의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잠시··. 내가 얘기 좀 하고 올 테니 기다려 줘요.” 그리고 슬기의 어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 작품 후기 ============================ 출판본 작업이랑 이래저래 바쁜데.... 진도가 서서히 떨어져 가네요. 아무래도 슬럼프의 기운이.... 혹시 연재를 쉬게 되거나 페이스를 떨어트려야 하면 그때는 따로 고지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83화 <슬기 화 나다> 엄마가 자리를 비우자 슬기는 정운에게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운씨···. 아무래도 우리 엄마 무슨 일 있는가 봐요.” “그래···. 그런 것 같아. 어떻게 할까?” “일단 지켜봐요. 그리고 무슨일 생기면 그때 도와 주세요.” “알았어.” 정운은 슬기의 말대로 일단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상황 이라는게 상당히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찾아온 남자는 두 명. 비대한 체격에 염색한 짧은 머리. 그리고 옷깃 사이로 슬쩍 보이는 촌스러운 문신은 척 봐도 놈들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줬다. 그런 놈들이 슬기의 어머니를 향해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윽박질렀다. “지금 집에 없다니까요.” “정말이야? 아줌마, 숨겨주면 재미없어!!” “우리가 누군지는 알지? 괜히 거역해 봐야 이 집에 좋은 것 없다고.” “···········.” “다 좋은게 좋은 거니까 그냥 얌전히 승낙하라고? 나쁜 얘기도 아니잖아?” “····얘가 생각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만 포기해 줘요.” “우리가 지금 장난하러 온 줄 알아? 자꾸 그러면 강제로 데리고 가는 수가 있어!? 엉!!” 척 봐도 좋은 인상은 아닌 인간들이 슬기의 어머니를 무작정 윽박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원하는 것을 두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한 사정 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저 놈들을 족쳐서 상황을 알아낼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저 놈들을 박살을 내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어?” 작은 반딧불 같은 붉은 불씨 하나가 민들레 씨앗처럼 가볍게 날아갔다. 그리고 날아간 불씨는 슬기의 어머니를 윽박지르던 남자 두 명의 안면으로 날아갔다. 딱!! 그리고 슬기가 손가락을 튕기자···. 퍼펑!!! “크악!! 으아아····.” “아악!!! 내 얼굴····. 아아···.” 두 개의 불씨가 제법 큰 폭발을 일으키면서 놈들의 얼굴에 부상을 입혔다. “어머··? 어···?” 슬기의 어머니는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야쿠자들이 그 일로 시비를 걸로 오기는 했지만···.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처음이다. 잔뜩 겁먹은 슬기의 어머니 뒤편에서 나타난 것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딸이었다. “감히·····. 감히 누구한테·····.” 슬기는 평소의 상냥하고 순진한 태도를 모두 버리고 굉장히 화가 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늘게 떨리는 몸과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호흡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운도 이렇게 슬기가 노골적으로 화가 난 것은 거의 본적이 없었다. ‘···슬기가 이렇게 화 내는 것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항상 상냥하고 순한 모습만 보이던 슬기였다. 사실 정운은 ‘얘는 화를 안 내는게 아니라 못내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화를 안 내던 슬기였다. 유일하게 화를 낸 것은 정운이 세레나의 일을 공개했을 때 정도였지만···. 그때의 감정도 분노라기 보다는 슬픔과 울분의 표출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정운도 처음 봤다. 그런 슬기의 모습에 가장 놀란 것은 친 어머니였다. “·····슬기야? 너···.” “엄마. 미안··. 일단 나중에 다 설명해 줄게. 그 전에·····..” 슬기는 어느새 자신의 장비 중에 하나인 주작의 스태프를 꺼내서 두 남자를 향해서 겨누며 말했다. “너희들···. 일단 알고 있는 것 다 말해 주실까?” 슬기의 화가 나서 한 말에 야쿠자들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이 XX년···. 그래. 너도 귀환자다 이거지?” “가만 안 둔다!! 우리 뒤에는 고레벨의 두목님이 있다고!!!!” 야쿠자든 마피아든 뒷골목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인간들의 공통점은 악과 허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밥 벌어 먹기 힘든 법이다. 눈앞에 생각지도 못하던 방해꾼이 나타난다고 해도 일단 허세를 부려서 자신들이 더 강하다고 우겨야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세계이니 그게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아···. 그래?” 항상 상냥하던 슬기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저런···. 이제 난 몰라.” 뒤에서 정운은 슬기의 분노를 말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분위기가 그렇게 싸늘하게 변하고 나서야···. ‘제길···.’ ‘이··. 이 년 놈들도 귀환자구나. 잘못 걸렸다.’ 그제야 이 똘마니들도 상대를 잘못 골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라는 것은 항상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슬기의 앞에서 허세를 부렸던 똘마니들을 그 말을 절실하게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으으···. 살려···줘.” “제발 그만····.” 슬기의 어머니를 협박하던 야쿠자 두 놈은 전신의 8할 정도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있었다. 그런 놈들을 보며 슬기는 다시 회복 마법을 걸어주면서 말했다. “이제 순순히 말 해 줄 생각은 들었어?” “············.” “············.” 두 놈은 대답도 못하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겉보기에는 벌레 한 마리 못 죽일 정도로 청초한 인상의 아름다운 여자가 슬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야쿠자들에게 있어서는 지옥의 나찰보다 더 무서운 마녀였다. 슬기는 이들의 몸에서 진물이 나올 정도로 흉악한 전신 화상을 입혔다가 그 부상을 회복 마법으로 치료했다가··. 그리고 다시 전신에 화상을 입히기를 반복했다. 그 횟수가 다섯 번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했다. 정운이 미리 슬기의 어머니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이 다행일 것이다. 방안으로 슬기의 어머니를 데리고 들어간 정운은 자기대로 슬기의 어머니에게 전후 사정을 물어봤다. “어머님,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질문에 슬기의 어머니는 약간 정신이 없는 것처럼 멍한 표정을 하다가 퍼뜩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우리 딸···.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갔던 건가요? 왜요? 그 어린 것이 무슨 모진 사연이 있어서···.” 이 와중에 그녀는 자신의 딸이 무슨 일을 겪어서 악마와 거래를 해야 했는지 그게 걱정인 것 같았다. 그런 어머니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슬기에게 나쁜 점은 없었습니다. 약간의 불행이 있었을 뿐이죠.” “도대체 무슨····.” “그건 슬기 본인에게 직접 들으시는게 나을 겁니다. 하지만··. 예. 저하고 슬기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돌아온 귀환자가 맞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정운이 진실을 말해주자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도대체 왜···?” 한탄을 금치 못하는 슬기의 어머니를 보면서 정운은 일단 그녀에게 사정을 물어봤다. “저 야쿠자들을 뭡니까? 무슨 이유가 있는 겁니까?” 정운의 말에 슬기의 어머니는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슬기의 가족은 일본으로 건너온 이후에도 별 혼란 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럭저럭 능력 있는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고, 한국에서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는 슬기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딸이 잘 있구나. 하는 안도의 감정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슬기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슬기의 가족은 자신들의 딸이 실종 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슬기의 가족들은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지새우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라진 딸, 그리고 원래부터 슬기의 소속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슬기의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슬기의 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몇 번이나 오가면서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딸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쳐가던 가족들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겉으로 드러난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최근에 귀환자들이 현실에 돌아오면서 부터였다. 어떤 귀환자가 슬기의 언니에게 홀딱 반해 버린 것이다. 그 귀환자가 멀쩡한 인간이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놈은 귀환자 중에서 야쿠자 두목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놈이었다. 그럭저럭 능력이 높아서 일본 정부에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던 놈이 슬기의 언니를 찍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집안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야쿠자들이 나타나서 딸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말만 결혼이지 그냥 딸을 내 놓으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당연히 슬기의 가족은 거절했지만··. 놈들을 끈질겼다. 처음에는 별 탈이 없도록 회유를 중심으로 딸을 데려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는지 서서히 협박을 섞어가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된 건지 대강 알겠습니다. 저 한테 맡겨 주십시오.” 정운의 말에 슬기의 어머니는 걱정이 한 가득한 얼굴을 하며 정운에게 말했다. “괜찮나요? 상대는 귀환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이라고 합니다.” “그런가요? 뭐, 상관 없습니다.” 정운은 피식 웃었다. 일본 서버에서 가장 강하던 도조 마사토 조차도 정운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마 야쿠자 두목 나부랭이의 레벨이 강해봤자 70이나 넘어가면 다행일 것이다. 300이 넘어가는 정운에게 있어서는 마음만 먹으면 벌레 하나 눌러 죽이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정운이 직접 나설 것도 없다. 한우리 연맹의 대표 박정운. 이 이름 하나만으로 박살을 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정운이 나설 찬스 자체가 없을 것 같았다. “정운씨···. 잠시 여기서 우리 집 좀 봐주고 있어요.” 슬기가 평소와는 달리 살기가 등등한 모습으로 정운에게 말했다. “괜찮겠어? 내가 함께 가 줄까?” 정운이 슬기에게 말했지만 슬기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제 가족이에요. 제가 처리할게요.” 원래 슬기의 성격상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진지하게 화가 났나 보다. 정운은 그런 슬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능력은 알아. 그러니 말리지 않을게. 다만 걱정 되는 것은 네 착한 성격이지.” “·········.” 정운은 정색을 하고 슬기에게 말했다. “뒷 처리는 내가 확실하게 해 줄게. 그러니 이왕 할 거면 확실히 해야 해. 섣불리 동정을 베풀었다가는 상황이 더 꼬일 수도 있어.” “알았어요.” 정운은 우선 슬기를 믿기로 했다. 사실 능력적으로 봤을 때 슬기가 야쿠자 나부랭이 따위에게 질리는 없다. 야쿠자 두목이라는 놈의 레벨이 몇인지는 몰라도 아마 많아야 80을 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슬기의 레벨은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지던 당시 205였다. 솔직히 말해서··. 순수하게 힘만으로 따진다면 일본의 귀환자들이 전부 덤빈다고 해도 슬기를 이길 수 있을리 없었다. “앞장서, 너희들 두목이 있는 곳으로 안내 해.” “예··. 알겠습니다. 누님.” “누가 누님이야!!!?” 슬기는 자신이 직접 생지옥을 체험하게 해 줬던 야쿠자 나부랭이 둘을 앞장세우고 쳐들어갔다. 그리고 뒤에 남은 정운은···. “당신··. 혹시 한우리 연맹의 박정운··. 이었던 건가요?” “···예. 맞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는 슬기의 어머니를 보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흔한 얼굴인가?’ ============================ 작품 후기 ============================ 원래 순한 사람이 화 나면 더 무서운 법이죠. 순딩이 슬기가 화가 났습니다. 우리 슬기가 달라졌어요. 시즌이랄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84화 슬기가 야쿠자 나부랭이들을 앞장 세워서 쳐들어간 곳은 제법 고풍스런 디자인의 일본 목조 저택이었다. “영화도 아니고···.” 꼭 일본의 야쿠자 영화에 악당 두목의 저택으로 보이는 집을 눈앞에 두고 슬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면서 정운이 한 경고가 떠올랐다. 섣부른 동정을 해도 좋지 않다고··. 손을 쓰려면 확실하게 손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어차피·····. 난 지금 적당히 할 생각이 없어요. 정운씨···.”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가족을 누군가가 괴롭히고 있었다. 슬기는 지금 있는 대로 화가 난 상태였다. “저··. 누님? 저희는 이만 가도 될까요?” “위에서 보면 저희 입장이 좀····.” 옆에서 슬기를 향해서 살살 거리는 놈들의 말에 슬기는 흘깃 옆으로 놈들을 바라봤다. 그 눈빛 하나에 놈들은 그대로 쫄아서 찌그러져 버렸다. 섣불리 말이라도 붙였다가는 불똥이 튈 까봐 더 무서웠다. 슬기는 그대로 문 앞으로 걸어가서는 손을 뻗고 작게 중얼 거렸다. “염소접.” 콰아앙!!!!! 손바닥 만한 나비 하나가 폭발하면서 거대한 정문을 박살내 버렸다. 그리고 슬기는 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갔다. 단기간에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으로 올라선 쿠로야마 구미(흑산파). 그 동안 귀환자출신의 야쿠자들 때문에 경찰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을 정도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의 일이다. 이제는 단기간에 올라간 만큼 단기간에 폭삭 망할 위기에 처해 버렸다. “누구냐!!?” “적의 습격이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슬기의 습격에 반응은 재깍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야쿠자들이 바퀴벌레마냥 기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슬기는 그저 담담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말했다. “야마모토 타쿠야가 누구지?” 슬기는 오면서 똘마니 둘에게 들었던 두목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부하들은 순간 누구 이름을 말하는지 살짝 당황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하··. 지금 두목님 이름 말하는 건가?” “저 년이 죽으려고···.” “응?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그때 누군가가 슬기의 얼굴을 보고 알아본 것 같았다. 항상 웃는 얼굴과 달리 지금은 싸늘하게 굳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슬기는 기본적으로 유명인이었다. “으음···. 저 여자 혹시? 예전에 TV에서 본 적 있는 그 여자 아닌가? 한국의 아이돌인····.” “호오··. 그렇단 말인지?” 슬기를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의 눈길이 먹잇감을 바라보는 늑대처럼 변해갔다. 어디를 가도 뒷골목 쓰레기들에게 여자란 유린의 대상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눈앞에 슬기 같은 아이돌이 등장했으니 오죽할까? 놈들의 눈에는 노골적일 정도로 욕망이 드러났다. 만약 이 자리에 정운이 있었다면 눈깔을 다 파버렸을 것이다. “헤헤··. 우리 조직을 공격한 대가는 네 년 몸으로 받아내도록 할까?” “실종된 줄 알았던 아이돌의 AV 데뷔라? 대박이겠는데?” “크크큭····.” 이 광경을 뭐라고 해야 할까? 호랑이를 포위하고서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 햄스터 군단? 여기에도 귀환자들은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하지만 슬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귀환 후 한우리 연맹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넓게 활동한 정운과 달리···. 슬기는 그런 정운을 뒤에서 보조하기만 할 뿐. 대외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최초에 게이트가 열렸을 때 전투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워낙 정운이 눈에 띠고 있었기에 그다지 슬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에 아이돌 이슬기가 정운의 애인 겸 비서로 한우리 연맹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연맹 내부에 밖에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굴러들어온 호박, 아니 굴러 들어온 아이돌로 밖에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슬기는 자신의 몸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야쿠자들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정운씨····. 당신이 그렇게 당부하지 않았어도···. 난 충분히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슬기는 그렇게 중얼 거린 후에 주작의 스태프를 소환해서 놈들에게 말했다. “그냥 다 포기해라. 그게 마음은 편할 테니···.” 그리고 슬기의 주변에 불꽃으로 이뤄진 화염의 환수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주변에 야쿠자들은 이제야 조금 상황 파악을 했다. “어어···?” “귀환자? 귀환자라고?” “설마··. 한우리 연맹 소속은 아니겠지?” “한국인에 귀환자라면··. 보통은····.” 놈들의 고민은 계속 되지 않았다. “죽어.” 콰콰콰콰콰쾅!!!!! 슬기의 특기인 화염 마법이 사방으로 작렬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귀환자가 이 세상에 돌아오고 나서 마법이라는 것은 그렇게 신기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귀환자들 중에는 상당히 높은 비율로 메이지들이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마법을 쓴다는 것 때문에 신기해하던 그들도 나중에는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메이지라는 존재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다. 원래 귀환자들 사이에서 메이지는 전위를 맡아줄 동료의 서포트가 있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1대1로는 그렇게 적합하지 않았고··. 자기 혼자 나서서 다수의 적을 공격하는 것은 더욱더 힘들었다. 물론 전위를 맡아줄 듬직한 동료 하나만 있어도 얘기는 달라진다. 방어를 맡아주는 동료를 믿고 그 막대한 화력을 발휘해서 여기저기 쾅쾅 마법을 터트려 버리면 그 위력은 동레벨의 귀환자 다섯 명은 상대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위가 없는 메이지는 동레벨의 귀환자 한 명을 상대하기도 버겁다. 작전을 잘 짜서 틈을 노리고 싸우면 이길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봤자 30% 정도의 승률이었다. 그렇다 보니 귀환자들 사이에서도 메이지는 동료로 삼는건 듬직하지만 그렇다고 홀로 적으로 돌렸을 때 큰 위협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보통 메이지들의 경우고··. 슬기는 본연의 레벨만 200이 넘었고, 무엇보다 정운과 함께 그라운드 제로의 끝까지 올라가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 슬기에게 있어서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저레벨의 유저들 따위는···. 솔직히 말해서 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단 한방의 대폭발로 인해서 적들은 모두 쓰러져 버렸다.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한순간에 싸움은 끝난 것이다. “으으·····.” “크으으···. 괴물···.” “쿨럭··. 쿨럭····. 크으으···.” 여기저기서 전신이 바싹 굽혀서 쓰러진 야쿠자들 사이에서 슬기는 날카로운 눈으로 한명을 바라봤다. 대부분의 야쿠자들이 죽거나 죽기 직전의 중상이었지만···. 그래도 딱 한 명 두 발로 서 있는 인간이 있었다. “방금 공격을 막은걸 보아하니··. 그래도 레벨 80 정도는 되나 보군.” 슬기는 정면에 있는 상대를 도도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평소의 그녀와 달리 무척 고압적인 그녀의 태도는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크게 놀랄 일이었다. 원래 조용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더 무섭다. 라는게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화가 제대로 난 슬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남자는 이 쿠로야마 구미의 두목인 야마모토 타쿠야 였다. “큭····. 당신··.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내 조직을 이렇게 만든 거···요?” 거칠게 따지다가 슬기의 눈을 마주치고 나니 살짝 존댓말을 하는 야마모토 타쿠야였다. 슬기는 그런 놈을 보고 말했다. “내 이름은 이슬기야. 뭐 집히는 것 없어?” “이슬기···. 뭐가··. 이?” 야마모토 타쿠야는 순간 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길에서 스치듯이 지나가며 본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서 부하들에게 손에 넣으라고 명령한 적이 있었다. ‘그 여자의 이름도 틀림없이 이나영··. 아니 하지만·····. 한국에 ‘이’라는 성은 무척 흔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야마모토 타쿠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나영··. 하고 뭔가 관련이···.” 퍼엉!!! “크윽····.” 말을 하던 야마모토 타쿠야는 그대로 정면에 일어난 화염 폭발에 뒤로 날아가 버렸다. 슬기는 그런 놈을 오만하게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더러운 입으로 내 언니의 이름을 잎에 올리지 마.” “크으윽···. 언니? ····제기랄.” 야마모토 타쿠야는 순간 자신이 제대로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빌어먹을, 난 그냥 계집이 반반하기에 좀 깔아 보려고 한 것 뿐인데····.’ 야마모토 타쿠야는 자신의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원래 조무래기 야쿠자였던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히트맨 역할에 갈등하다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거기서 운이 좋아서 그럭저럭 레어 아이템을 줍고 고수 레벨이 되어서 나름 떵떨 거리면서 살고 있었다. 물론 월드 서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조 마사토나 그의 부하들에게 거슬리지 않는 정도로 조절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도조 마사토가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그 후에는 정말로 일본 서버 자체가 그의 세상이 된 것이었다. 도조 마사토가 왜 사라졌는지는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사실 월드 서버의 존재도 모르던 그였기에 월드 서버에서 일본팀이 한국팀에게 전멸 했던 말던 별로 알바 아니었다. 다만, 이제 일본 서버내부에서는 자신에게 더 당할 자가 없었기에··. 그래서 위세를 부리면서 살아갔다. 그러다가 그라운드 제로가 끝나고 자신이 일본에 넘어온 후에 다시 야쿠자로 복귀했던 것이다. 단, 이번에는 조무래기 총알 받이가 아니라 자신이 두목으로 말이다. 야마모토 타쿠야의 레벨은 82였다. 이 정도면 월드 서버의 유저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 서버의 수준으로 치면 최상급이라고 해도 좋았다. 당연히 야쿠자 조직을 접수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이전에 자신이 형님이라고 부르며 굽신 거리던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자신이 야쿠자계의 절대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걸 기반으로 크게 해서 전 세계의 뒷골목을 지배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야심을 한 번에 날려 버린게 있었다. 바로 박정운과 한우리 연맹이었다. 정운이 드래곤 때들을 날려 버리는 영상과 핵폭탄을 처리하는 영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영상을 봤을 때 야마모토 타쿠야는 순간 자신과 정운의 사이에 있는 까마득한 격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절대 못 이긴다. 무조건 못 이긴다. 이길 가능성은 0.000001%도 없다. 이건 무조건 숙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일본의 밤거리를 지배하는 것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적어도 일본 서버에는 자신하고 비슷한 수준은 있어도 확실하게 강한 자들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악행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루게 되는 법. 오늘 그는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다. 슬기는 두 번이나 자기 공격을 맞고 살아난 상대를 보면서 제법 이라는 듯이 말했다. “어지간히 튼튼하군. 아마도 탱커 계열의 유저였나 보지.” “············.” 슬기의 말에 야마모토 타쿠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그저 도망갈 찬스를 노릴 뿐이었다. 그런 놈에게 슬기가 말했다. “이걸 맞고 살아있으면 한 번은 살려주지.” “····정말···. 입니까?” 슬기의 말에 야마모토 타쿠야는 그래도 희망을 발견한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런 놈에게 슬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거짓말을 한 적 없다. 단, 살아남았을 때의 일이다.” 그러자 야마모토 타쿠야는 이를 악물고 전신에 방어 스킬을 최대 활성화 시켰다. “철벽, 아이언 스킨, 역장 베리어.”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85화 <남자들의 만렙 보스.> 몇 중으로 방어 마법을 거는 놈은 슬기의 예상대로 철저한 방어 중심의 유저였다. 레벨은 80이지만 방어력만은 100레벨 언저리의 유저의 공격도 몇 번은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슬기의 레벨은 200이 넘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주변에 피해가 갈 것을 염려해서 될 수 있으면 힘을 빼고 공격했던 것이고 말이다. 이제 한 명에게 화력을 집중해서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면 어떻게 될까? “나와라. 홍신대(紅神隊).” 슬기의 유니크 스킬 중에 하나인 홍신대가 소환되었다. 슬기의 레벨이 200을 넘어가면서 한층 더 진화한 홍신대의 모습은 예전보다 더 강력하고 디테일해 져 있었다. 예전에는 그냥 일렁거리는 불꼿 인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보다 선명한 몸에 갑옷을 하고 있으며 활과 창, 칼 같은 무기로 무장까지 하고 있었다. 슬기가 소환한 300기의 홍신대들은 사방을 빼곡하게 포위하더니 전원이 활을 꺼내서 불화살을 메겼다. “어···? 어어···?” 야마모토 타쿠야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300기의 소환수의 공격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아무리 방어력이 강하다고 해도··. 이건 막을 수 없다. 이건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절대 막을 수 없다고 말이다. “사·· 살려···.” “죽어.” 딱!! 슬기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300발의 화살이 단 한 점으로 집중 되어서 쏟아졌다. 마치 분수대의 물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뒤로 감기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운이 충고했던 것처럼 자비는 없었다. 그렇게 무수한 화염의 화살들이 쏟아져 내려갔다. 그 하나하나가 보통 150대 레벨의 유저들의 공격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런 공격 300발이 한곳에 집중 되었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콰콰콰콰콰쾅!!!!!! 화염의 화살이 한곳에 집중되고 그 폭발의 여파는 하늘 위의 구름을 갈라 버릴 정도로 높게 솟구쳤다. 쿠로야마 구미에서 솟구친 불의 기둥은 10km 떨어진 장소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슬기는 흔적도 남지 않고 완전히 타버린 야마모토 타쿠야에게 중얼 거리듯이 말했다. “내 가족을 건드리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아.” 소중한게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일수록 그 소중한 것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다. 지금의 슬기처럼 말이다. “·············.” “·············.” 불편한 침묵. 무거운 공기. 어색한 분위기. 슬기가 야쿠자라는 별것 아닌 가벼운 적과 싸우고 있을 때···. 정운은 야쿠자 나부랭이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적과 싸우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이 야쿠자 박살내러 갈 걸. 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찰칵··. 찰칵···. “아버님. 담뱃불이 안 붙으면 제가···.·” “누가 자네 아버님인가!!!!?” “···········.” 정운이 싸우고 있는 강적은 바로 이 남자였다.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의 최종 보스.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 즉 장인어른이다. 슬기가 자리를 비운 후에 집에는 가족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슬기의 언니인 이나영, 남동생인 이준기, 그리고 슬기의 아버지이자 이 가족의 가장인 이상호까지···. 모든 사람들이 도착한 것이다. 슬기의 형제들은 별 문제가 없었다. 언니인 이나영과 남동생인 이준기는 자신들의 동생이자 누나인 슬기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다음으로 한우리 연맹의 박정운과 연인 사이라는 것에는 크게 경악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운에게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호감을 드러냈다. 특히 남동생인 이준기는 사교성이 좋은 건지 이미 정운에게 매형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잘 달라붙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 쉬웠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딱 한 명 정운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슬기의 아버지이자 정운이 지금 쩔쩔매고 있는 상대인 슬기의 아버지 이상호였던 것이다. 두 사람만 있는 방에서 슬기의 아버지는 뻐끔뻐끔 담배만 피고 있었고···. 정운은 그 앞에서 실로 오랜만에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한우리 연맹의 대표라는 위치면 일국의 대통령이나 왕이라고 해도 함부로 하지 못하건만···. 딸 하나 잘 둔 덕에 그런 한우리 연맹의 대표를 쩔쩔매게 하고 있는 이상호였다. 방 밖에서 그걸 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은 재미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심정으로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슬기의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 왜 저러시는 거니?” “질투 하는 거죠 뭐··. 원래 슬기 누나를 애지중지 했잖아요?” “내가 보기에도 딱 그러네요.”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슬기의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이 다 먹은 양반이 왜 저러나 모르겠다··. 슬기는 아직 안 왔니?” “예.” 딩동···. “아! 지금 왔나봐요.” “누나!!!” 슬기가 집에 돌아오자 엄마와 형제 자매들은 슬기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슬기야··.” “누나!!” 슬기는 오랜만에 만나 자신의 형제들을 끌어안으면서 진한 혈육의 정을 느꼈다. “·····미안해. 그리고 반가워.” 피붙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따뜻해 질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잠시 혈육의 체온을 나눈 후에 슬기의 언니인 이나영이 슬기에게 말했다. “네가 저기 상황 정리 좀 해야 겠다.” “저기라니? 아빠하고 정운씨?” 슬기는 눈을 살짝 높게 치켜떴다. 자신이 기억하기로 정운이 저렇게 저자세로 누군가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라고 저렇게 해 주는 건가?’ 살짝 감격하고 있는 슬기에게 남동생 이준기가 말했다. “누난 재주도 좋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낚았어?” 때 아닌 상황에 끼어드는 남동생을 보며 엄마는 꿀밤을 한 대 쥐어 박으면서 말했다. “넌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하니? 이 철없는 것아.” “궁금하잖아요? 누나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갈대까지 가기는 갔어?” 딱!!! “방에 들어가!! 이 사고뭉치야!!” 결국은 엄마한테 한 대 맞고는 투덜 거리면서 방에 들어가는 이준기였다. 슬기는 전혀 변하지 않은 남동생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그리고 언니의 말대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슬기의 아버지가 슬기를 보고는 눈가를 가늘게 떨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처럼 크게 반가움을 표하지는 않았다. ‘여전하시네···.’ 다소 가부장적인 모습까지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슬기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우선 정중하게 큰절을 올렸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아버지.” “·····돌아왔으니 됐다.” 슬기의 아버지는 입가를 실룩 거리면서 동시에 눈물을 글썽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 만큼은 약간 떨릴 뿐 철저하게 감정의 동요를 숨기기 위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기쁜게 뻔히 보이는데 그래도 저러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체면을 중시하는 남자 같았다. 정운은 그런 와중에 어디에 어떻게 끼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보통 몇 년간 보지 못한 부녀가 헤어졌다가 만나면 이런 모습인가? 이게 맞는 건가?’ 무슨 조선시대에서 타임슬립이라도 한 것 같은 슬기의 아버지를 보면서 정운은 어디서 어떻게 나서야 할지 타이밍을 못 잡고 있었다. 슬기의 아버지는 슬기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아직도 가수 할 거냐?” 아버지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이제는 정운씨 일을 돕고 있어요.” 슬기의 말에 슬기의 아버지는 정운을 흘깃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한우리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는 말이냐?” “예. 그래요.” 사실 소속되어 있다기 보다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부터 가입되어 있던 원년 멤버였다. 하지만 슬기의 아버지에게는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딸이 위험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읽은 슬기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가 무슨 생각 하고 계신지 알아요. 절 걱정해 주는 건 고마워요.” “···········.” 아무 대답 하지 않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슬기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이미 제 인생이 있어요. 아빠가 말리신다고 해도 전 제 동료도, 제 지난 인생도, 그리고···.” 말을 하던 슬기는 정운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지금 제 곁에 있는 사랑도 포기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아빠···. 절 이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 슬기의 아버지는 자신의 둘째 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가 어른이 다 되었구나.’ 예전에 아이돌 하겠다고 반항 할 때와는 눈빛이 달랐다. 당시에는 자기 눈앞에 있는 꿈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게 없어 보이는 어린 아이의 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기 딸은 그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고한 자기 의지를 지니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집 부리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어른의 눈빛이다. ‘언젠가는 자식이 커서 모두 부모 품을 떠나는 법이라지만····. 그래도 씁쓸하군.’ 슬기의 아버지는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슬기 넌 그렇다 치고··. 자네, 박정운이라고 했지.” “예. 아버님.” 슬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 풀어지는 듯 하자 정운은 다시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슬쩍 붙였다. “아직 그렇게 부르라고 한 적은 없네.” 물론 씨도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장인···.” “죽는다.” “··········.” 살짝 장난기로 때우려고 했던 정운은 그대로 찌그러졌다. 천하의 박정운이 이렇게 협박 당하고 깨깽 하고 찌그러지는 모습을 누가 믿을까?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 광경을 봤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이상호를 스카웃 해가려고 했을 것이다. 이상호는 일단 못마땅한 것 같기는 하지만 정운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 세 가지만 부탁하지. 그걸 지켜만 준다면, 내 딸 데리고 가도 좋네.” “뭐든지 명령 하십시오.” 정운의 말에 이상호는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귀환자들은 위험한 일이 많아도 들었네. 하지만····. 무조건 지켜. 어쩔 수 없었다느니. 불가항력이었다느니··. 그따위 헛 소리 하지 말고 무조건 지켜야 해.” 그 말에 정운은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상호가 뭐라고 말 할 것도 없이··. 이미 정운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둘째, 내 딸 가끔씩이라도 좋으니 얼굴 좀 보여주게. 난 둘째 치고 내 가족들이 워낙에 정이 깊어서·····.” “알겠습니다.” 이것도 쉬운 일이었다. 이제까지처럼 가족하고 연락이 없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가족하고 떨어져 지내게 할 일은 없었다. 두 번째까지 정운이 간단하게 허락을 하자 슬기의 아버지도 살짝 얼굴이 풀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말했다. “일단 자네가 한 말은 믿겠네. 마지막으로 하나. 자네 정도의 남자가 되면 아마도 사회적으로 위치도 있으니 접근하는 여자들이 많을 거야. 그 여자들 때문에 내 딸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말게.” “·············.” ‘이런, 마지막에 걸렸다.’ 정운은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정운을 보고 이상호는 눈에 불똥을 튀기면서 말했다. “왜 대답이 없나? 내 딸 하나만 바라보라는데 그게 자신이 없어!!?” “···그게 저···. 그러니까···.” 정운이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혹시 한 명만 더 안 될까요? 라고 말 했다가는 모든게 다 끝장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옆에서 슬기도 자기 아버지의 눈을 피했다. 그러자 이상호는 언성이 거칠어지면서 말했다. “혹시··. 이미 내 딸 말고 다른 여자가 있나? 심지어 슬기 넌 그걸 알면서도 옆에 있는 거고!!!?” “그게···.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정운과 슬기가 동시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둘 다 나가!!!!!!!!” 슬기 아버지의 불벼락이 뒤 따라서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왜 쓰면서 로마의 혁명 후반에 주인공이 딸 바보 되던 장면이 떠오르는 걸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86화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 거렸다. “이런···. 실수 해 버린거 같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우리 아빠가 워낙 성질이 격해서···. 그래도 세레나의 일을 숨길 수는 없잖아요?” 슬기 아버지에게 불벼락을 맞고 밖으로 나온 정운은 근처 호텔에 묵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몰래 만나러 슬기가 찾아온 것이다. 정운이 슬기 말고도 다른 여자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슬기 아버지는 정운을 당장 쫒아내 버렸다. 옆에서 슬기가 뭐라고 변호를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를 않았다. 결국 정운은 일시 후퇴를 결정한 것이다. 몰래 찾아온 슬기는 정운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아빠가 뭐라고 해도 난 당신 옆에 있을 거예요.” “그건 알아···. 그래도 네 아버지가 싫어하신다는 것 자체가 싫은 거지.” 정운은 가족에 대한 정이 무척 깊은 편이었다. 친아버지 쪽은 이미 버린 혈육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그쪽의 배다른 형제들이 살아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혀 상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애당초 정운이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의 포인트를써서 그 집안 자체를 폭삭 망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뭐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아버지 쪽은 그렇다 쳐도 친어머니에 대한 정 때문에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갔을 정도가 아닌가? 그런 성격이다 보니 슬기의 가족에게도 가능하면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안 그러면 정운의 성격상 그렇게 저자세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에 한 명을 돼지 도축 하듯이 패버리기도 했던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인간은 아마 슬기의 가족 정도뿐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있어요. 우리 아빠 말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정운씨가 좋데요.” “정말!!?” “예. 정말요.” 정운은 살짝 뜻밖이라는 듯이 놀랐다. 사실 정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슬기의 아버지가 보인 것이 정상적인 대응이었다. 비록 그 대상이 정운이라면 보통 막 소리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보통 자기 딸이 한 남자를 다른 여자와 공유해야 하는 광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다른 가족들이 그나마 정운은 곱게 보고 있다는 것은 어째서일까? 사실 그건 그동안 귀환자들의 사정이 세간에 많이 퍼진 것 때문이기도 했다. 귀환자들 중에서도 나름 고레벨이라는 유저들은 여자 두셋 정도는 거의 옵션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레벨 유저가 되면 자신의 보조 겸 애인으로 여성유저를 여럿 옆에 두는 경우는 상당히 흔했다. 그러다 보니 정운이 여자가 둘이 있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도 했었다. 아니, 그보다···. 한우리 연맹의 대표씩이나 되는 정운에게 여자가 둘 밖에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놀라기도 했다. 원하기만 하면 굳이 귀환자가 아니라도 가질 수 있는 여자가 세상에 널리고 널렸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슬기의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정운에게 있는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것을 봐서는 하나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럼 모 석유 재벌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난봉꾼인 것도 아니었다. 라고 약간의 자기 합리화 시킨 생각을 하면서 정운을 용서하는 슬기의 가족들이었다. 다만, 딸자식을 애지중지 키워온 슬기의 아버지에게는 그런 말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뭐···. 우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되지는 않겠지. 아버님한테는 천천히 내가 설득시켜 볼게.” “미안해요. 우리 아버지가 워낙···.” “아니야.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저게 제대로 된 아버지지···. 나라도 내 딸이 커서 나 같이 여자 두 명인 여자에게 간다고 하면 마음 아플거야.” 정운의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슬기의 아버지가 정운이 지니고 있는 막대한 권력과 이권을 보고 그냥 허허 웃으면서 ‘내 사위’라고 했으면 정운은 오히려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그 말은 자신의 딸 보다 딸이 데리고 온 남자의 권력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말이니 말이다. 하지만 슬기의 아버지는 오로지 슬기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정운에게 호통을 쳐서 쫒아냈다. 사실···. 어지간한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도 그러기는 어렵다. 만약 어느 대기업의 손녀딸이 정운의 첩으로라도 들어간다고 하면 그때는 그 기업에서는 경사로 여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떠오르는 태양이나 다름없는 정운의 아내로 보낼 수만 있다면 그게 집안에도 좋고 본인에게도 최고로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재벌가들이다. 정운이 그런 여자들이나 그런 집안들과의 연계를 원했다면 진작 하렘을 만들었을 것이다. “너희 아버지는 좋은 분이셔. 꾸준히 시간을 들여서 날 인정하게 할 테니···. 넌 걱정하지 마.” “···고마워요.”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아빠의 사이에 끼어 있는 여자는 항상 피곤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운이 슬기에게 한 말은 최고의 위로였다. 그리고 슬기는 정운에게 살며시 입술을 겹치면서 말했다. “몰래 빠져나오기 전에 우리 아빠 주무시는 것 확인하고 왔어요. 그러니···. 아침까지 같이 있어도 괜찮아요.” “그래. 그거 듣던 중 고마운 말인데?” 그렇게 정운은 슬기를 살며시 들어서 침대에 눕히고 둘은 그대로 몸을 겹쳐갔다. “크윽···. 크하악···. 으으···.” 야마모토 타쿠야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윽··. 멀리도 날라왔군. 간신히 속였으니 다행이지····.” 만신창이가 된 야마모토 타쿠야는 크게 다치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슬기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슬기의 공격은 80레벨 언저리의 유저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는데····. 그때 야마모토 타쿠야의 품안에서 뭔가가 툭 하고 덜어져 내렸다. 그것은 약간 투박한 장식의 브로치였다.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다행이야. 덕분에 살았어.” 이 투박한 브로치는 이래보여도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이탈의 브로치 공격력 : 0 마력 : 0 방어력 : 0 내구력 : 무한 [딱 한 번 착용자를 목숨의 위기에서 구해준다. 죽음의 위기가 닥쳤을 때 착용자를 안전한 장소로 도망 보낸다. 약간의 대미지는 입을 수 있지만 그래도 생명은 100% 확률로 구해준다.] 딱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아이템 자체는 엄청나게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이 있다는 것은 여분의 목숨을 하나 더 들고 다닌다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정작 쓸 일이 없었던 아이템이었지만··. 오늘 현실에 와서야 그 쓸모를 한 번 드러낸 것이다. 슬기는 완전히 적을 죽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야마모토 타쿠야는 이 아이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였다면 슬기는 알림창이나 경험치 창을 통해서 상대가 모종의 수단으로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이다. 더 이상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어떤 메시지도 없었고 슬기는 적에게 공격이 적중한 것으로 착각해 버린 것이다. “제길··. 살기는 살았는데··. 이제 어떻게 하지? 일본을 떠야 하나? 그런데, 어디로 가지? 한우리 연맹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디지?” 야마모토 타쿠야는 자기 한 몸을 건사하는 것에 능숙하고 분위기 파악을 잘했다. 슬기의 실력을 딱 봤을 때 알았다. 그녀가 한우리 연맹의 소속, 그것도 상당한 간부일 것이라고 말이다. 정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슬기의 실력도 이미 보통 귀환자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었고··. 그런 슬기가 한우리 연맹에서 그냥 그런 위치에 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나영이 그런 슬기의 언니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제길···.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한우리 연맹의 손이 닿지 않는 극빈국으로 가서 재기를 노려야 하나? 여기서 기껏 쌓아놓은 기반을 다 포기하고? ····빌어먹을.” 쿵!! 야마모토 타쿠야는 애꿎은 벽을 치면서 안타깝게 외쳤다. 이제까지 공든 탑이 모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고작해야 여자 하나 어떻게 해 보려고 했는데 그 여자의 가족이 한우리 연맹의 간부라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우연 때문에 말이다. 냉정하게 한 발 떨어져서 제 삼자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 쓰레기의 자업자득일 뿐이었지만···. 야마모토 타쿠야 본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함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지독하기 운이 없었다. 그게 지금 이 남자가 느끼고 있는 솔직한 감정이었다. 그런 야마모토 타쿠야의 눈 앞에 그림자가 일렁 거리는 듯 하더니 누군가가 나타났다. “대 일본제국의 무사가 꽁무니를 빼겠다고? 그것도 고작 조센징 계집 따위가 무서워서? 듣자듣자 하니 못 들어 주겠군?” “누구야!!?” 야마모토 타쿠야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를 보면서 소리쳤다.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한우리 연맹의 추격자는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가 나타난 것은 틀림없었다. “날 모르나? 일본 서버에서 활동했던 인간이라면 날 몰라 볼 리는 없는데?” “··········?” 야마모토 타쿠야는 아직도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냥 흐물 거리는 그림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상대였는데 그 정체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 혹시 내 모습이 이래서일지 모르지. 그럼 이렇게 하면 알수 있겠지?” 그리고 야마모토 타쿠야의 앞에서 천천히 그림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점점 뚜렷해지는 형체는 이윽고 완전히 살아있는 인간의 형체로 변했다. “자, 이러면 알아보겠나?” 야마모토 타쿠야는 크게 경악했다. 눈앞에 있는 그의 말대로 지금 나타난 이 인간이 누구인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자신의 눈 앞에 이렇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 당신은? 설마? 죽은 줄 알았는데?” “죽어? 대 일본 제국의 무사는 절대 죽지 않는다.” “············.” “너에게 기회를 주지. 내가 주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박정운을 죽여라. 이건 위대한 그 분의 의지다. 거절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 “·············.” ‘제길 X 됐다.’ 야마모토 타쿠야는 졸지에 고래 등 사이에 낀 새우처럼 변해 버렸다. 슬기에게 기반이 다 박살 난 거야 자업자득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정말 운이 나쁘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설마 그의 앞에 이런 망령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정운은 일본에 있으면서 그럭저럭 슬기의 가족의 비위를 맞춰갔다. 사실 슬기의 아버지 말고는 모든 가족들이 정운을 좋게 보고 있었다. 특히 슬기의 남동생인 이준기는 정운을 마치 우상 보듯이 하고 있었다. “그럼 매형. 그라운드 제로에서 싸웠던 상대 중에 가장 힘든 상대가 누구였어요?” “글쎄··. 내가 약할 때 싸운 상대도 있어서 말 하기고 애매한데?” “에이,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줘요.” 정운이 올 때마다 가장 편하게 구는 것은 매형이라고 부르면서 쫄랑쫄랑 따라오는 슬기의 남동생 이준기였다. 그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 했어야 했지만 최근에 가정 사정이 흉흉해서 입학을 미루고 있었다. 장녀인 이나영이 야쿠자 나부랭이 따위에게 찍혀 버렸기에 한가하게 대학에 진학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별 상관없어졌는데··. 그래도 대학에 가지를 않고 있다. 오히려 정운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귀환자에 관해서 날마다 질문을 하고 있었다. 매형, 레벨은 얼마에요? 보통 귀환자들 평균 레벨은 얼마에요? 그라운드 제로라는 곳은 어떤 곳이에요? 질문은 끝이 없었다. ‘별로 좋은 경험도 아니었는데 그게 뭐 그리 궁금하다고 이러는지···.’ 정운은 그런 이준기를 보고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정운이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귀환한 귀환자들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영웅 심리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동기야 어찌 되었든 인간으로서 인간을 뛰어넘은 초인의 능력을 지닌 자들이 아닌가? ============================ 작품 후기 ============================ 일본 편에서도 스토리 진도는 나간다고 했습니다. 야마모토 타쿠야의 앞에 나타난 상대가 누군지 짐작이 가시는 분들이 다소 계실 겁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스포일러는 자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87화 <의문의 강화> 솔직히 말해서 일반인들이 귀환자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부럽다’ 였다. 자신도 그런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싶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되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하지 않는가? 다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어린 시절의 추억 정도로 남겨 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공상 속의 존재라면 모를까? 실제 눈앞에 그런 존재들이 실존하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 그 존재와 같은 힘을 손에 넣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것이 솔직한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다만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진 지금에 와서는 실질적으로 그런 방법이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인간에게 동경을 낳고, 동경이라는 감정은 그 대상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법이다. 인터넷 상으로는 귀환자들에 대한 온갖 정보가 돌았고, 그 정보의 대부분은 한우리 연맹의 대표인 박정운에게 귀결되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 궁금증의 대상이 직접 눈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 같아서는 SNS로 ‘우리 누나 아이돌 이슬기인데 박정운하고 사귄다.’ 라고 알리고 싶은게 이준기의 심정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굴 정도로 철없지는 않다는 것과···. 과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믿을까? 라는 것 때문이었다. ‘매형하고 인증샷이라도 찍어서 올려 봐? 아니야. 그것도 합성 취급 받을지 몰라.’ 어쨌든 슬기의 남동생은 정운에게 엄청나게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사위 사랑 장모라고··. 슬기의 어머니 역시 정운에게 큰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대한 소문은 가지가지였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런 위험 속에서 슬기가 이렇게 멀쩡하고, 그리고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정운 덕분이었다. 그녀라고 해서 자기 딸을 데리고 살고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까지 같이 데리고 있다는게 영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척 봐도 이미 슬기는 정운이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푹 빠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반대해서 괜히 딸 속 썩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자신은 슬기의 편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한 수단으로 친아들 보다 더 정운을 예뻐하고 있었다. 정운은 자신이 계속 슬기의 집에 있다가는 슬기의 어머니가 해 주시는 요리 때문에 체중이 세 자리로 부는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아주 반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찬성도 아닌 사람이 슬기의 언니인 이나영이었다. 척 봤을 때 슬기의 언니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닯은 구석이 많은 자매였다. 하지만 그건 겉보기의 얘기고, 성격은 정 반대인 것 같았다. 슬기는 착하고 순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언니인 이 나영은 딱 부러진 성격에 약간 냉정할 정도로 쿨 한 성격이었다. 기본적으로 내 동생 일이기는 하지만 내 일은 아니네 뭐··. 잘 해봐. 정도가 그녀의 포지션이었다. 정운의 여자관계에 대한 생각도 상당히 냉정했다. 정운의 여자가 열 명이든, 혹은 스무 명이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슬기가 정운을 좋아한다면 그건 정운과 슬기의 일이지 자신이 나서서 뭐라고 말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은··. 아버님을 설득 시켜야 하는데 말이야.’ 정운이 그렇게 막중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슬기의 아버지는 정작 정운을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일상만 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했다가 집에 와서는 자기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정운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그러다가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출근. ‘무슨 기계인간인가?’ 슬기의 아버지를 며칠 동안 관찰한 결과 정운은 어떤 의미로는 질려 버렸다. 무슨 조선시대에 조정에 출근하는 관리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가정에는 무뚝뚝하고 기계적으로 정확한 삶을 살았다. 이런 사람이다 보니 뭔가 비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뭔가····. 뭔가 점수 딸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돈과 권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은 참 어려운 상대다. 만약 비싼 선물이나 돈이 잘 통하는 상대라면 참 쉬웠을 것이다. 실제 다른 가족들은 정운이 해준 작은(?) 선물을 받고 상당히 기뻐했다. 물론 작은 선물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정운의 입장에서 작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슬기의 어머니와 누님에게는 간단한 카드 한 장씩을 나눠줬다. 필요한 만큼 쓰세요. 라고 웃으면서 준 카드였다.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하는 슬기의 어머니였지만 정운은 거의 반 강제로 쥐어 줬다. “어차피 슬기도 자기 능력으로 가지고 있어요. 편의상 같은 여러개의 카드를 나눠 가지는 것일 뿐이지 따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받도록 하죠.” 말은 그렇개 했지만 사실 그 카드는 그렇게 막 뿌리고 다닐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100장이 넘게 발행 되지 않은 VVVVVIP 카드였다. 블랙 카드조차 훌쩍 뛰어 넘어서 한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마음먹으면 이지스함 한 대 정도는 결제 할 수 있다는 카드였다. 뭐, 누가 그걸 카드로 팔겠냐? 같은 디테일한 질문은 하지 말자. 그냥 자금력이 그 정도라는 카드다. 그리고 남동생에게도 원래 같은 카드를 주려고 했지만, 슬기가 동생은 아직 철이 없다고 해서 카드 대신에 다른 선물을 줬다. 최근에 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동생이 가장 가지고 싶은 물건. 바로 차였다. 20대 초반의 남자치고 마이카를 싫어하는 별종은 거의 없는 법이다. 정운은 이준기에게 페라리 카탈로그와 명함을 하나 주면서 말했다. “그쪽에 말하면 거기 있는 차는 달라는 대로 다 줄거야. 취향대로 가져.” “매형!!! 평생 매형을 따르겠습니다!!!!” 이 정도로 솔직하게 기뻐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단순해서 괜찮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뻐하는 이준기였다. “너무 비싼 것 주는 것 아니에요?” 슬기가 약간 걱정하기는 했지만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나이 때는 약간 호기를 부리고 싶은 법이야. 눈 감아 줘.” “··········.” 슬기는 동생에게 너무 튀는 선물을 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슬기는 몰랐다. 최근 정운이 카드를 준 이후로 언니의 옷장 안이 환골탈태 하고 있다는 것을···. 그 옷장을 다 정리하면 페라리 두 세대 값 정도는 간단하게 나올 정도로 환골탈래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가족에게 눈에 띠지 않게 하는 요령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언니는 슬기와 성격이 완전 달랐다. 다만··. 어떻게 해도 슬기의 아버지의 마음을 얻어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음···. 어쩔 수 없나?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슬기를 보쌈 해 가는 수밖에···.” 포기할 선택지는 애당초 생각도 하지 않은듯한 정운이었다. 가까운 일본이라고는 해도 언제까지나 게이트의 신도시를 비워두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이제 며칠만 더 시간을 들여 보고 그래도 슬기의 아버지가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후퇴를 할 생각이었다. 물론 슬기도 데리고 말이다. 그때 문득 TV를 보고 있는 정운에게 속보가 보였다. [갑작스런 속보입니다. XXXX빌딩이 테러리스트에 점거 당했습니다. 이 빌딩을 점거한 자는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이자 귀환자인 야마모토 타쿠야로 식별되었습니다. 그는 요구 사항으로 한우리 연맹의 대표가 직접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뉴스의 내용을 본 정운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야마모토 타쿠야? 그 놈은 틀림없이 죽은 인간 아니었나?” 정운이 알기로 슬기에게 죽은 인간으로 보이는 인간이 갑자기 테러리스트로 변해서 저기를 점거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문득 생각이 정리 되지를 않았다. 그런 정운에게 마치 옆에서 같은 뉴스를 보고 있던 슬기가 말했다. “틀림없이 끝장을 냈는데···. 거기서 살아남았다고? 불가능 할 텐데?” 슬기의 말에서 정운은 적어도 그녀가 사정을 두고 봐 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 특수한 아이템이나 스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라. 일회성 아이템 중에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구명을 해주는 아이템도 있으니까.” 정운은 자신이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사태를 짚어냈다. 그제야 슬기도 상황을 파악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완전히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제 실수에요.” 안타까워하는 슬기를 보면서 정운이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 그런 특수한 상황이라면 나라도 놓쳤을지 몰라.” “···········.” 대답 대신에 약간 풀이 죽은 슬기를 보면서 정운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빌딩 하나가 인질로 잡혀봤자 금방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그때·····. 띠리링!! 띠리링!! 핸드폰이 울리면서 대학에 있을 이준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뉴스 보고 전화했나? 지금 받을 시간 없는데···.”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단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매형!! 우리 아버지 좀 살려 주세요.] 갑자기 들려온 뜬금없는 말에 정운은 상황을 파악 할 수 없었다. “···아버지라니? 무슨 말이야?” [저 XXXX빌딩. 저기가 우리 아버지 회사 있는 곳이라고요.] “뭐!!!? 그럼 지금!!?” [예. 우리 아버지도 저 안에 있죠.] 이제야 왜 저 빌딩이 인질로 잡혔는지 알 것 같은 정운이었다. 일본의 국회나 도청도 아니고 그냥 빌딩 하나가 인질이라는 것이 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저 빌딩에 슬기의 아버지가 있다면 정운에게는 일본 수상 100명을 인질로 잡은 것 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 “망할 개 자식······.” 다만, 그 효과 라는게 정운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과연 테러리스트에게 좋은 결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정운은 흥분한 이준기에게 자신에게 맡기라는 말을 하고 서둘러 빌딩으로 향했다. 일본 정부에서는 정운인 일본에 있는 것을 모르고 한국으로 타진을 넣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락이 돌고 돌아서 정운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정운은 XXXX빌딩에 몰래 잠입했다. “슬기야. 탐색 할 수 있겠니?” “예. 잠시만요.” 정운은 옥상에서 함께 잠입한 슬기에게 빌딩 내부에 귀환자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슬기는 배대호의 제자이다. 그저 스킬로서 마법을 쓰는 다른 메이지들과 다르게 본격적으로 마법을 연구한 메이지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다른 유저의 몸 안에 있는 마력을 느끼는 것이 가능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잠시 정신을 집중하다가 말했다. “빌딩 내부에 귀환자는 한 명 밖에 없어요.” “한 명? 야마모토 타쿠야가 단독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예. 사실 부하들은 저한테 모두 날아갔거든요. 어쩌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런 놈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 “예. 종종 말이죠.” 정운도 슬기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르면서 가끔씩 무모한 도박을 하는 인간들을 봤다. 그런 타입들은 대부분 두 가지다. 눈 앞에 있는 아이템이나 보상에 눈이 멀어서 무모한 짓을 하거나, 혹은 분노로 눈에 보이는게 없는 상황이거나···. 아마 지금 야마모토 타쿠야라는 놈도 그런 타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정운과 슬기였다. “뭐, 단독범이라면 간단하지. 나 혼자 끝장낼게. 슬기 넌 혹시 모르니 인질의 안전 부탁해.” “알았어요.” 그리고 정운과 슬기는 빌딩의 안쪽으로 유유히 잠입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88화 “···제 정신이냐?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 할 것 같았나?” 슬기의 아버지인 이상호는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도 비굴함이 없었다. 다른 인질들과 달리 특히 중요 인물로 잡고 있는 이상호의 앞에서 야마모토 타쿠야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시끄러!!! 나도 너희들 때문에 인생 X 되기 일보 직전이라고!!! 넌 닥치고 있어!!!” 야마모토 타쿠야는 몹시 신경질 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놈의 표정은 마치 빚 독촉이라도 받고 있는 인간처럼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겉으로 봐서는 누가 인질이고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햇갈릴 정도로 둘의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 놈을 보고 슬기의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꼭 이불에 오줌 싸고 몰래 감추고 안절부절 하는 어린애 같군.” “닥쳐!! 닥치라고 이 망할 늙은이야!!!!” 야마모토 타무야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상호는 조금도 겁 먹지 않고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자기 깜냥을 훌쩍 넘은 상황에 겁이라도 나나 보지?” “·····닥치지 않으면 네놈부터 죽여 버리겠다.”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고작 목숨 아까워서 너 같은 놈한테 비굴하게 굴 것 같으냐!!!” “···········.” 야마모토 타쿠야는 어차피 지금 이상호를 죽일 수도 없었다. 다른 인질이라면 모를까? 이상호는 정운이 올때까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이상호처럼 깡 좋게 행동 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는 법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목숨 아깝지 않게 깡을 부리는 인간들은 종종 있다. 하지만 보통 그렇게 하는 인간들은 텐션이 올라서 지극히 흥분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냉정 침착한 보통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기 목숨이 아까운게 보통인 법이다. 그런데 슬기의 아버지인 이상호는 아주 담담하면서도 대범하게 자기 목숨을 걸고 있었다. 야마모토 타쿠야는 슬기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강한 고위 레벨의 귀환자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격은 슬기의 아버지가 훨씬 더 위였다. “망할 늙은이 같으니라고···. 이 일만 잘 풀리면 네 두 딸년을 몽땅 내 가랑이 사이에 깔아 놓을테다. 그 다음에는 내 부하들에게 돌리며 그 영상을 전 세계에 퍼트려 주지.” “···········.” 이상호는 야마모토 타쿠야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애당초 이런 소인배에게 고개를 숙일 바에는 그냥 죽는게 나을 정도로 자존심이 꼿꼿한 이상호였다. 그러니 천하의 박정운에게도 큰 소리를 뻥뻥 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놈의 협박으로 딸들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은 무슨 일을 겪어도 상관없었다. 목숨 보다 자존심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성격이기에 끝까지 당당하게 죽어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신에 관절 하나 없을 것 같이 꼿꼿한 남자라고 해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을 두 딸들에 대한 걱정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럴 때 그 놈은 뭘 하고 있는 건지····. 만약 내 딸을 지켜내지 못하면 죽어서 귀신이 되도 원망 할 테다.’ 이상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때···. 쾅!!! 갑자기 문이 폭발하면서 누군가가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왔다. “동작 그만, 움직이면 그 순간 죽는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미 전신에 뇌신강림을 가동 시키고 있는 정운이었다. 이상호의 입장에서는 가장 못 마땅하던 인간이 구세주로 나타난 것이다. ‘···이걸 기뻐해야 돼? 말아야 돼?’ 보통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할 때는 섬광탄이나 최루탄 같은 것을 이용해서 적을 당황하게 만드는게 우선이다. 그렇게 적을 당황하게 한 후에 단번에 돌입해서 적을 제압한다. 이게 보통 테러 진압의 정석이다. 하지만···. 정운은 그런 정석은 사뿐하게 씹어 버리고 그냥 문을 박살내고 당당하게 정면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한 것은 일단 눈앞에 적이 있는 이상 무슨 짓을 해도 사전에 제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정운의 눈앞에 나타난 이상···. 그 시점에서 게임은 끝이다. 야마모토 타쿠야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 보다 정운이 그의 목을 날려 버리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읏····.” 야마모토 타쿠야 역시 정운을 만난 순간 그것을 본능적으로 체감했다. 지금 자신이 이상호에게 1mm라도 다가가는 기색이 보이면 그 순간 목이 떨어져 나가 버릴 것이다. 정운은 야마모토 타쿠야를 슬쩍 바로봤다. ‘완전 겁 먹었군. 나중에 처리해도 되겠어.’ 그리고 정운은 야마모토 타쿠야는 완전 무시하고 이상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그래도 이번에는 누가 아버님인가? 라고 말하면서 버럭 소리 지르지 않았다. ‘이거 고마워해야 하나?’ 살짝 부드러워진 이상호의 태도를 보며 정운은 차라리 테러를 일으켜준 야마모토 타쿠야가 고마울 정도였다. “슬기야. 아버님 모시고 먼저 내려가.” “예. 정운씨는요?” “난 저 테러리스트 처리하고 갈 테니까··. 일단 인질의 안전부터 챙겨줘.” “····알았어요.” 슬기는 정운의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살짝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어떻게 해···. 정운씨가 저렇게 귀여워 보이는 것은 처음이야.’ 슬기는 알고 있었다. 정운이 마음만 먹으면 인질을 따로 대피시키느니 뭐니 할 것 없이 단 한순간에 모든 상황을 종료 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핵도 날려 버렸었는데 레벨 80언저리의 테러리스트 하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쇼를 하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슬기의 아버지인 이상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것 말고는 정운이 이렇게 쇼를 하고 있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슬기는 자기 아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저렇게 얕은 수까지 쓰는 정운을 보면서 고마움과 귀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알았어요. 여기서는 장단 맞춰 줄게요.’ 척하면 척이라고 슬기가 정운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슬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아빠. 따라오세요. 우리 먼저 피해요.” “···괜찮은 거냐? 네가 도와주지 않아도.” 딸의 심각한 표정에 낚인 이상호는 놀랍게도 스스로 정운을 걱정하는 말을 했다. 그러자 슬기는 잠시 정운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며···. “괜찮아요. 강한 상대이기는 하지만···. 정운씨라면 믿고 맡겨도 될 거에요.” “············.” “빨리 가요. 정운씨를 믿어요. 제가 선택한 남자라고요.” “···알았다.” 딸자식 키워 봐야 다 소용 없다는 말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 태어난 것일 것이다. 정운의 생각을 읽고 거기에 적극 협조해서 자기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서 열연을 하는 딸. 거기에 그만 그대로 속아 버린 이상호는 정말로 정운이 엄청나게 위험한 상대와 전투를 하려고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위험? 정운이 고작 레벨 80언저리의 야마모토 타쿠야하고 싸우면서 위험? 피카츄가 전기세 비싸다고 한숨 쉬는 소리다. 절대 위험할 리가 없다. 호랑이와 고양이, 아니 호이와 지렁이의 싸움이다. 이걸 과연 싸움이라고 불러도 되기는 되는 건지 민망할 정도의 싸움이다. 그런데 무슨 놈의 위험이라는 말인가? 사실 이상호도 냉정하게 생각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정운이 드래곤들을 다 쓸어버리는 장면은 유명해서 인터넷에서 약간만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장면이었고···. 무엇보다 슬기가 자신을 데리고 가는데도 인질을 빼앗기고 있는 야마모토 타쿠야는 얌전히 있지 않은가? 이건 그가 정운은 고사하고 슬기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비상식적인 상황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몇 명이나 테러리스트의 인질이 되어 보겠는가? 이제까지는 강단 있게 버텼지만 정운의 등장으로 중간에 맥이 탁 풀려버린 이상호였다. 지금에 와서는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기가 무리였다. 정운은 슬기가 자신의 아버지를 데리고 나가자 야마모토 타쿠야를 지그시 바라봤다. “···읏···.” 야마모토 타쿠야는 눈이 마주쳤을 뿐이진 심장이 철렁 주저앉는 것 같았다. 이건 이미 본능이었다. 명색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80레벨을 찍을 정도면 나름대로 수라장을 몇 번은 겪어 봤다는 것. 그리고 그런 수라장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본능의 감이 왱왱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튀어라. 절대 맞서지 말라고 말이다. 유감인 것은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정운은 야마모토 타쿠야를 바라보면서 먼저 말했다. “우선 한 마디만 하지.” “뭐··. 무슨 말을 하려고··.” “고맙다. 너 때문에 장인 어른한테 점수 땄다. 이걸 어떻게 갚아줄까?” “··········.” 정운의 진심 어린 말에 야마모토 타쿠야는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장난? 아니다 그런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정운은 진심으로 야마모토 타쿠야에게 몹시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가 없는 것도 한계를 넘으니 허탈할 정도였다. 야마모토 타쿠야는 순간 이대로 정운에게 살살 아부하면서 상황을 넘길까?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지금 내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니니···. 어쩔 도리가 없군.’ 애당초 야마모토 타쿠야에게는 정운과 싸운다. 라는 선택지 말고는 다른 선택 사항이 없었다. 그렇게 ‘강제’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길, 닥치고 나하고 싸우자. 박정운.” “응? 진심? 레알로?” 정운의 입장에서는 길 가다가 초등학생이 30cm자를 칼처럼 잡고···. [아저씨 나하고 맞짱 떠요.] 라는 도전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걸 어쩐다···. 기껏 기특한 짓을 해서 좀 봐줄까 싶었더니···. 죽고 싶다고 발악을 하네? 그냥 죽는게 소원이면 협조 할까?’ 정운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야마모토 타쿠야는 이를 악물고는 결심을 굳힌 얼굴을 하고 중얼 거렸다. 인질극이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간 이상···.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 뿐인 것이다. 도가 되든 모가 되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어차피 이제는 내게 퇴로가 없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박정운, 네놈을 데리고 가겠다!!!!” 점차 커진 목소리는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짐승의 괴성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놈의 몸은 서서히 변화를 해 갔다. 보통 인간의 체격이었던 놈의 몸이 점점 부풀더니 두꺼운 근육질이 생겨갔고, 옷을 찢어 버리고 팽창한 근육의 표면으로 거칠어 보이는 털이 돋아났다. 놈의 입은 사나운 사자의 것처럼 어금니가 튀어나오고 어느새 덩치는 건물을 부수고 나올 정도로 커져갔다. 촤아악!!!!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듯이 등 뒤에 돋아난 형체까지 더해서··. 사자와 고릴라를 섞어 놓은 것 같은 몸에 박쥐 날개까지 더해진 괴수가 되었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정운도 언 듯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갑작스런 변수가 생길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저건 뭐냐? 슬기야.” 이상호는 빌딩을 부수면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 괴수를 보고 놀란 토끼눈을 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슬기는 대답 대신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건 야마모토 타쿠야 정도의 레벨로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야.’ 분명 기질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힘의 크기가 훨씬 커지고 뭔지 모를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기운···. 이건 어디선가 느껴본 기운이야. 분명····. 설마?’ 슬기는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가설이 하나 있었다. “아빠, 지금 바로 집으로 가요. 난 정운씨한테···.” 콰아아앙!!!! “크워어어어어어!!!!!” 슬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는 뇌전의 폭음과 짐승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쩌렁쩌렁하게 공기를 진동 시켰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 작품 후기 ============================ 야마모토 타쿠야. 약 빨았습니다. 무슨약인지는 좀 더 후에 밝혀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89화 <반전> “크으···. 화끈하게 나오는 군.” “크오오오오!!!!” 콰아앙!! 정운은 자신을 으깨 버리기 위해서 날아오는 야마모토 타쿠야의 발톱을 피하면서 저린 팔을 털었다. 스킬도 아닌 그냥 평범한 공격이었지만 그런 공격을 정운이 무시하지 못하고 막아야 할 정도의 파워가 실려 있었다. ‘물리 공격력이 장난이 아닌 걸? 거기다 방어력도 제법 있는 수준이고··. 이건 월드 서버의 보스몹 수준이다.’ 정운은 생각했다. 이런 놈과 본격적으로 도쿄 상공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그때는 도쿄가 이 세상에서 지워 질 거라고 말이다. ‘아마 슬기와 몇몇 고 레벨 귀환자들 말고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슬기의 가족들까지 말이야.’ 그런 비참한 결과를 낼 수는 없었다. 정운은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일단 전투 지역을 옮기려고 했다. “이쪽이다 이 괴물아!!” 정운은 놈을 도발하면서 도쿄만 쪽으로 빠져 나갔다. 다행이도 도쿄는 약간만 나가면 바다다. 도시에 피해가 없게 하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피할 장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크르르르····.” 정운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유인을 하려고 했지만 야마모토 타쿠야는 전혀 추격을 하지 않았다. “저 새끼···. 어그로가 안 잡히네. 이성이 멀쩡하다는 건가?” 하는 꼬라지가 괴물 같아서 이성이 날아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놈은 도쿄에 있는 이상 정운이 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차라리 여기서 전투를 벌이고 싶었다. 자신은 도쿄가 다 부서지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쿄를 인질로 잡는다라····. 흥!!” 정운은 콧웃음 쳤다. “흑토!!” “히히힝!!!” 정운은 허공에서 흑토를 소환했다. 늠름한 화염의 갈기를 휘날리며 멋있게 등장한 흑토의 등에 올라탄 정운은 그래도 흑토의 등 위에서 한 자루의 창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 창에 뇌전의 기운을 불러 일으켜서 그 크기를 몇 배로 키웠다. 길이 3미터의 창은 어느새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뇌전의 창이 되었다. 파직··. 파지직···. 척!! 정운은 황금빛 뇌전의 창을 정면으로 세우고 괴수로 변한 야마모토 타쿠야를 정조준 했다. “오랜만에 밀어 붙여 볼까? 할 수 있겠지? 흑토.” “히히힝···.” 흑토는 맡겨주라는 것처럼 투레질을 치면서 허공에서 앞발을 투닥 거리며 돌진 준비를 했다. “우와···. 저건? 박정운? 한우리 연맹의 박정운인거야?” “언제 온 거지? 그럼 상대하고 있는게 테러리스트야?” “그렇겠지···. 그런데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 “저건··. 저건 괴물이네. 원래 괴물이었던 건가? 아니면 사람이었는데 변한 건가?” “글쎄···?” 도쿄의 사람들은 이 상황의 긴박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일까? 까딱하면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핵폭발에 버금가는 충격이 터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저 ‘지금의 쩌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라는 일념으로 열심히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발생한 현대인의 습성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정운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기마차지. 뇌광(雷光).” 피이잉!!!! 순간 피아노의 얇은 현이 튕기는 것 같은 아주 맑고 얇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정운과 거대 괴수로 변한 야마모토 타쿠야가 동시에 사라졌다. 구경을 하던 도쿄 시민들은 순간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순간 이동?” “드래곤X이냐? 이 멍청아!!” “뭐 어때? 있을 수도 있지. 귀환자들이라면···.” “병신. 차라리··. 응? 어 귀가···.” “아얏. 귀가 왜 이렇게 아프지? 이 이명은 뭐야?” 어리둥절해 하던 도쿄의 시민들은 순간 자신들의 귀가 조금씩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산지대에서 느끼는 기압차로 인한 통증과 비슷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이명은 환청이 아니었다. 조금씩이지만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는····. 후우우우우우우웅!!!!!! “우왓!!!” “깜짝이야!!!” “어멋!!!” 순간이지만 도쿄 전역에 엄청난 돌풍이 불었다. 정운이 쓴 기술은 기마차지에 자신의 고유 스킬인 뇌광을 혼합한 합성기였다. 애당초 뇌광 자체가 정운의 레벨이 200이 넘어가면서 창조의 방에서 생긴 유니크 스킬 중에서도 한층 더 특별한 스킬이었다. 뇌광(雷光) LV.MAX (몸에 전류를 방전시켜서 레일건과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서 속력과 활용성이 더 올라간다.) 현재 정운의 뇌광의 스킬 레벨은 MAX 그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운 자신도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정운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초고속으로···. 그것도 거대 괴수로 변한 야마모토 타쿠야까지 함께 데리고 고속으로 이동한 정운이었다. 그 여파로 인해서 공기의 흐름이 크게 변해서 기압이 일시적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시적으로 내려갔던 대기가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도쿄라는 거대 도시 전체에 엄청난 돌풍이 한차례 몰아친 것이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돌풍이었냐 하면 가만히 있던 차가 흔들리고 건물의 유리창에 금이 가고 여자들의 스커트가 단체로 위로 올라갈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 하나 덕분에 상당히 많은 남자들이 눈요기를 했다. 여담이지만···. 후일 이 현상을 질풍신뢰깨끼라고 해서 일본의 넷티즌들 사이에서 회자 되었다가 정운이 정식으로 항의하고 나서야 단속 되었다고 한다. 한편, 야마모토 타쿠야를 데리고 이동한 정운은 상대를 태평양 한가운데에 처박아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콰아아앙!!!! “크워어어어어!!!!” “크으윽··. 으으으····.” 정운은 상대를 바다에 쳐 박고 난 후에 지친 기색을 역력하게 보였다. “크르르····. 바보 같으니···. 네가 무슨 히어로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지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정운을 보면서 야마모토 타쿠야는 비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놈의 말에 정운은 비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는 넌 고질라냐? 응? 그런데 말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사람 말을 하네?” “크아아아아!!!” 콰아앙!!! 놈의 손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크게 떨어지면서 정운을 바닷물로 쳐 박아 버렸다. 그러자 수직으로 20미터는 넘게 될 것 같이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정운이 직접 받은 충격이 어느 정도일 지는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크으으···.” 정운은 간신히 다시 바닷물 위로 올라와서 몸을 움직여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느려. 느리다고!!!!!” 부웅!! 붕!! 붕붕!!! 야마모토 타쿠야는 거칠게 손톱을 휘두르면서 정운을 추격했다. 정운은 그 공격을 간신히 피하고 있었지만 이전과 같인 날카롭고 강력한 공격으로 받아치는 것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야마모토 타쿠야는 확신했다. 조금 전에 보인 기술로 인해서 정운은 모든 힘을 다 소모한 것이다. 그렇다면····. ‘승산은 충분해.’ 야마모토 타쿠야의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자신이 박정운을 죽인다는 생각에 흥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귀환자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 한우리 연맹의 대표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어도 이런 대어가 없었다. 대나무 낚싯대로 실개천에서 용을 낚은 기분 이었따. “크아아아아앙!!!!” 콰아앙!!! 결국 놈의 손톱을 피하지 못한 정운은 그대로 바다에 다시 한 번 처박혀 버렸다. 단, 이번에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바다에 표류하는 땟목처럼 둥둥 떠있는 정운에게 거대 괴수의 손아귀가 덥석 덮쳐왔다. “크르르···. 한우리 연맹의 장이라는 놈이 이러고 있는 꼴이라니····.” 야마모토 타쿠야의 비웃음에 정운은 도발로 응수했다. “입 냄새 나니까 좀 닥치지? 크윽···.” 도발을 하던 정운은 자신의 몸을 꽉 죄어오는 압박감을 느끼고 고통에 신음했다. 그런 정운의 모습을 보면서 야마모토 타쿠야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이다. 최강자의 목숨을 두손에 잡고 쥐락펴락 하고 있는 그 순간···. 야마모토 타쿠야는 문득 어린 시절에 곤충을 잡아서 손으로 구속하던 시절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뜻에 따라서 얼마든지 생사여탈을 할 수 있는 압도적인 강함의 우위. 그 대상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상대적으로 느끼는 우월감은 뭐라고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크크크···.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도 있나?” 야마모토 타쿠야의 말에 정운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분명 슬기한테도 졌다고 했지? 크윽!!” “누가 그따위 말을 지껄이라고 했나!!?” 정운이 야마모토 타쿠야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자 놈은 손으로 정운을 더욱더 강하게 압박했다. 정운은 잠시 고통스러워 하다가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놈에게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넌 이렇게 강해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정운은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이건 알고 죽어야 겠다는 식으로 물어봤다. “·········크르르····. 네가 알 바 아니다.” 정운의 물음에 한참 우월감에 도취 되어 있던 야마모토 타쿠야는 갑자기 어색해져 버렸다. 놈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고 얼버무렸다. 그 모습에 정운은 초췌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다 죽어가는 내 소원도 못 들어주나? 배포가 작군.” “크르르르····. 그만 죽어라.” 야마모토 타쿠야는 거대한 입을 쩍 벌려서 정운의 머리를 씹어 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놈의 거대한 이빨이 정운의 머리에 닿기 직전·····. “하아···. 내가 연기를 못하는 건가? 아니면 이 녀석이 너무 신중한 걸까?” 정운이 한숨을 푹 쉬면서 중얼 거렸다. 마치 이제까지의 대미지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태연자약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정운의 말이 끝난 순간···. 퍼어엉!!!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야마모토 타쿠야의 양 손이 박살이 나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 정운을 씹어 버리기 위해서 접근 중이던 얼굴에까지 타격을 입은 야마모토 타쿠야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날아간 자신의 양손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크르르···.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상대가 경악을 하든 말든 정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목을 좌우로 풀면서 말했다. 뚜둑···. 뚜두둑···. “으으···. 결려라···. 그런데 보통 영화 같은 경우를 보면 이런 상황에서 악역이 멋대로 자기 목적을 폭로하기 마련인데···. 표가 너무 많이 난건가?” 그렇다. 사실 모든게 연기였던 것이다. 바다까지 야마모토 타쿠야를 밀어 붙인 정운은 자신의 힘이 다한 것처럼 연기를 하면서 야마모토 타쿠야를 도취 시켰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놈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이제는 연기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크·. 크르르····.” 야마모토 타쿠야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면서 정운을 두려운 시선으로 보며 주춤주춤 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운은 자신의 기운을 서서히 개방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긱····. “괴···. 괴물···?” 자신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의 정운이었다. 하지만 야마모토 타쿠야는 그 작은 정운에게서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전에 슬기를 상대하면서도 확실한 격의 차이는 느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이미 진정한 절망이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다.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고 이 힘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었지만···. 어림없는 얘기였다. ============================ 작품 후기 ============================ 음... 비축분이 다 떨어져 갑니다. 며칠 후면 이사도 가야 하는데... 정말로 한 주 정도 휴재를 하든가? 아니면 연재 페이스를 바꿔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90화 <정운 VS 라파엘> 고양이가 아무리 발톱을 날카롭게 갈아봤자···. 고양이는 결국 고양이일 뿐이다. 지금 야마모토 타쿠야의 힘은 사실 슬기도 이길 수 없다. 정운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기껏 안 하는 연기까지 시도했는데···. 아무런 정보도 못 캐냈다니. 이건 굴욕인 걸? 좀··. 아주 조금·····. 화가 나.” 쿠르릉!!! 쿠릉!!! 지금 여기는 망망대해다. 도심도 아니고 주변에 거슬릴 것도 없다는 말이다. 즉, 전혀 거슬릴게 없는 정운으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힘 조절을 하지 않고 저력을 낼 수 있었다. 위협을 하기 위해서 힘을 끌어 올린 정운 때문에 기상 기후가 변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천둥이 울려 퍼지고 기압이 낮아지면서 바다와 대기가 요동쳤다. 기상위성은 이 장소에서 갑자기 태풍이 발생하는 것을 관측 했을 정도였다. “으으···. 으으으·····.” 야마모토 타쿠야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망망대해에서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갑자기 해일을 마주한 것 같은···. 그런 압도적인 절망감에 덜덜 떨었다. 정운은 거대한 뇌전의 검을 수백자루 허공에 소환하고 놈에게 말했다. “묻고 싶은 정보가 참 많은데····. 너처럼 고집 있는 녀석은 순순히 정보를 말해주지 않을 거야? 그렇지?” “················.” 야마모토 타쿠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능만 하다면 모든 정보를 말하고 목숨을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결국 야마모토 타쿠야에게 결정된 운명은 하나 뿐이었다. “죽어.” 정운의 선고가 떨어지고 무수한 뇌전의 거검들이 야마모토 타쿠야의 전신에 작렬했다. 콰콰콰콰콰콰!!!!!! 보는 사람의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강렬한 발광을 동반한 폭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빌어먹을!!!!!!!” 야마모토 타쿠야는 그대로 최후의 단발마와 함께 인생 최후의 순간을 마주했다. “흠···. 결국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대로 끝인가?”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푸념했다. 그런데 그때····. 폭발의 잔해 속에서 뭔가가 반짝이면서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이건 뭐지?” 정운은 재빨리 날아가서 그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아기 주먹만한 붉은색의 결정이었다. “으음···. 아무래도 이게 놈이 보인 수상한 파워업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게 수상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맞겠지? 그런데 어떻게 확신을 한다?” 정운이 그렇게 붉은 결정을 쥐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서광을 동반하고 정운에게 익숙한 누군가가 나타났다. “저 인간··? 아니 저 천사는?” 정운은 하늘에서 나타난 인간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박정운.” “그래. 그렇군. 라파엘.” 하늘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천계에 세 명 남은 치천사 중에 한 명인 라파엘인 것이다. 라파엘이 등장한 것을 보고서도 정운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만약 성직자라면 지금 이 순간 천사를 배알한 것만으로도 크게 영광이라 느끼며 감격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기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그냥 시큰둥할 뿐이었다. 천계에서 잠시 지낼 동안 천사라면 실컷 봤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라파엘은 정운하고 약간 까칠한 사이의 천사였다. 물론 파우스트와 정운의 관계처럼 아주 철천지 원수 같은 사이는 아니다. 일단은 같은 편이지 않는가? 하지만 절대 좋은 사이는 아니다. 딱 잘라 말해서 앙숙이었다. 보통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도 종종 있지 않은가? 어쩐지····, 별 이유는 없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리고 꼴 보기도 싫은 그런 사이. 한 마디로 말해서 서로 영 맞지 않는 사이가 말이다. 정운과 라파엘의 사이가 딱 그랬다. 천계에서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운과의 교섭은 가브리엘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운과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천계에서도 가능하면 그녀를 통해서 정운에게 일을 맡기고 정보를 교섭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라파엘이 직접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영상이나 아바타를 보내는게 아니라 본신이 직접 말이다. “흠····.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용케 지상에 강림하셨네? 무슨 용건이실까?” 정운이 다분히 삐뚤어진 태도로 말하자 라파엘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의 용건이 우선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그걸 나에게 넘겨라.” “그거? 그렇게 말해서 누가 아냐? 나한테 돈이라도 맡겼나?” “··········.” 천사가 울컥 하는 표정을 보고 싶은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 라파엘의 얼굴에는 성질대로 하고 싶은걸 필사적인 인내력으로 억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후우우우·······.” 그는 잠시 자신의 성질을 누르기 위해서 호흡을 정돈하고 다시 말했다. “네 손안에 있는 악마의 씨앗을 넘기라는 말이다.” 라파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운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악마의 씨앗이라고 부르는 거군. 그렇다면 이건 악마와 관련된 어떤 것이라는 말인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없을까?” 정운의 말에 라파엘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도 심문에 넘어가서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닥치고, 그걸 넘겨라. 박정운.” “아주 맡겨놨냐? 가져가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내 놔. 아니면···. 힘으로 해 볼 테야?” 정운이 온몸의 황금빛 뇌전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러자 라파엘도 이제 인내에 한계가 달한 걸까? “그래···.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펄럭!! 화르르륵!!!!! 라파엘의 등 뒤에 12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의 뒤편에서 성스러운 화염이 장엄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뜨거운 열기에 바다조차 증발되며 수증기가 자욱해지고 있었다. 그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이 화염은 평범한 불길이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사기를 태워서 정화 시켜버리는 성스러운 화염. 성염(聖炎)이었다. 천계의 천사들 중에서 이 성염을 주 능력으로 쓰는 천사들은 종종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이 라파엘이 것이다. “흠···. 해 보자 이거지?” 정운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좀 전에 싸운 야마모토 타쿠야하고는 격이 다른 상대다. 비록 서로 간에 살의가 없다고 해도 아까보다 훨씬 위험한 전투를 해야 할 것을 각오해야 했다. “············.” “············.” 둘 사이에 불꽃이 튀겼다. 일촉즉발의 순간···. 둘은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끊어지기 직전과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운은 서서히 라파엘의 주위를 돌면서 탐색하듯이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 딱 멈췄다. 그리고 그대로 옆으로 빠르게 빠져 나갔다. 그러자 라파엘의 눈에 석양의 빛이 그대로 들어왔다. ‘얕은 꾀를····.’ 정운이 저 자리에 있었던 것은 석양을 등지고 그 역광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정운과 라파엘 같은 수준에서 쓰기에는 얕은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고도의 수준이었기에 오히려 작은 차이로도 선수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콰아앙!!!!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라파엘의 눈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한 정운은 강력한 일격을 라파엘에게 가했다. 오른쪽 상단에서 머리를 노리고 떨어진 일격을 라파엘은 자신의 대검을 소환해서 막았다. 태고적부터 수많은 악마들을 베어 넘겼던 라파엘의 대검은 미카엘의 검이나 가브리엘의 창처럼 절대 부러지지 않는 영구적인 무기였다. 당연하게도 그 대검은 정운의 공격을 굳건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정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대로 거리를 벌이더니 무장을 검에서 활로 바꾸고 화살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먹어랏!!!!!” 콰콰콰쾅!!!!! “칫!!!” 별로 특별한 스킬을 쓰는게 아니라 그냥 화살 공격이었다. 하지만 정운이 날리는 화살 하나하나에 실린 파워는 좀 전에 괴수로 변한 야마모토 타쿠야 정도는 한 방에 절명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라파엘은 그런 정운의 화살 공격을 자신의 성염으로 만든 방어막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전진하며 정운은 강력하게 힘으로 밀어 붙였다. 콰아아앙!!!! 둘이 격돌한 순간 라파엘의 날개에서 성염이 더 거칠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칫, 무식하게 힘만 쎄 가지고····.” 마치 레이싱 카의 부스터처럼 성염을 뿜어내며 자신을 밀어 붙이는 라파엘을 보면서 정운은 혀를 깨물었다. 사실, 둘 사이에 있는 힘의 우열만 놓고 보면 정운은 라파엘보다 약간 약하다. 태초부터 수많은 악마들과의 전투를 벌인 경험치와 천계의 최고위 천사인 치천사의 위치에 어울리는 파워. 라파엘은 진정한 강자였다. 하지만 정운에게는 그걸 매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뇌광!!!!” 퍼어엉!!!‘ 바로 스킬이었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특수한 시스템에서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정운에게는 상황에 맞춰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스킬들이 있었다. 그런 스킬들을 요소요소에서 활용함으로서 전투의 국면을 풀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크···윽!!!” 라파엘은 정운이 뇌광을 이용해서 강한 돌진력으로 밀어붙이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흘려 버렸다. 정운의 돌진력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실로 능숙한 검놀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운은 뇌광의 기세를 이용해서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듯이 올라가 버렸다. “안 놓친다.” 그리고 라파엘은 그런 정운을 따라서 12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따라 올라갔다. “추격한다 이거지? 그럼 어디 이것도 받아 봐라.” 정운은 하늘로 올라가면서 활을 꺼냈다. 그리고···. “천뢰지망(天雷蜘網)!!!” 천뢰지망(天雷蜘網) LV. MAX (사방 1,000미터에 걸쳐서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쳐진다.) 원래는 광역기로 다수를 상대할 때 사용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제 정운은 스킬을 그대로 사용 하는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수정해서 사용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진 상태였다. 사방 1,000미터에 떨어져야 할 무수한 뇌전의 화살을 오직 한 점에 집중 시켰다. 자신을 따라오는 라파엘에게 말이다. 콰콰콰콰콰콰···. 뇌전의 폭포라고 해야 할까? 라파엘은 자신의 날개를 꺾어 버릴 것처럼 거칠게 떨어져 내리는 뇌전의 화살을 맞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 놈이····. 천계의 치천사를···. 우습게 보지 마라!!!!!!!” 콰아아아아앙!!!!! 라파엘의 12쌍의 날개가 동시에 크게 펼쳐졌다. 그러자 정운이 쏘아 보낸 화살들이 모두 터져 버렸다. “화력으로 한단 말이지? 저 괴물···.” “장난은 끝이다.” 라파엘은 자신의 모든 성염을 오로지 대검에 집중 시켰다. 붉은색과 푸른색을 넘어서 하얀 백광을 뿜어내는 초고열의 성염은 하늘을 찢어 버릴 것처럼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저 기술은····, 받아주지···. 뇌신강림.” 정운은 그 강력한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낼 준비를 했다. 저 기술을 보는 것은 두 번째였다. 이전에 천계에서 라파엘과 거듭되는 마찰 때문에 결국 한 번 크게 부딪혔을 때···. 그때 정운을 거의 반죽음으로 몰고 갔던 기술이었다. 더구나 그때 상대가 손에 사정을 두고 했던 일격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더 강한 패배감에 시달렸었다. 그리고 그 후···. 정운은 저 라파엘의 일격을 막아낼 수 있는 수단을 꾸준히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그것을 시험할 생각이었다. 정운의 오른손에 한 자루의 창이 들렸고 거기에 뇌전이 모였다. 키이이이이이이잉!!!!! 그냥 집중 되는게 아니라 그 뇌전은 마치 거대한 엔진이 돌아가는 것 같은 굉음을 내면서 나선 모양으로 회전을 더하기 시작했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라파엘은 중얼 거렸다. “피할 생각은 없다는 거군···. 좋다.” “와라!!!” 라파엘과 정운이 부딪히기 일보 직전······. 하늘에서 서광이 비치면서 둘의 사이에 또 한명의 천사가 끼어들었다. ============================ 작품 후기 ============================ 죽고 죽이는 전투는 아니지만... 정운하고 라파엘은 사이가 안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91화 <가브리엘의 중재> “자, 둘 다 그만.” 갑자기 끼어든 그 천사는 성스러운 창을 들고 둘의 공격의 여파를 옆에서 쳐냈다. “큭!!!” “으읏!!!!” 퍼어어엉!!! 부딪히기 지전의 두 사람은 급하게 자신의 공격을 거둬들였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공격의 여파가 각자 스스로에게 대미지를 주고 말았지만 일단 떨어진 두 사람이다. 이 둘을 말릴 수 있는 존재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존재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였다. “가브리엘.” “가브리엘님.” “둘 다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해요. 안 그러면 저도 화냅니다.” 가브리엘의 엄한 말에 정운도 라파엘도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쯧, 리벤지는 다음으로 해야겠네.’ 정운은 입맛만 다셨다. 가브리엘이 끼어든 이상 더 싸울 수는 없었다. 정운과 라파엘을 때어 낸 가브리엘은 일단 정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너무 흥분했더군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죠.” “실제로 좀 벼르고는 있었죠. 다행이 여기서 라면 힘 조절도 필요 없고 말이죠.” 정운의 말에 가브리엘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둘의 전투의 여파로 인해서 일어난 해일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덮치려고 해서 슬기양이 막아냈으니 말이죠.” “그랬나요?” 설마 전투의 여파가 그 정도일 줄은 정운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이 둘의 전투로 이 근처 심해의 생태계는 상당한 대미지를 입었다. 해저의 깊숙한 지층까지 끼친 파괴력 때문에 해진이 일어날 기미까지 보이고 있었다. 더 이상 그 피해를 막고 피해를 복구시키기 위해서 가브리엘은 이렇게 서둘러 온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중간계에 치천사가 둘이나 강림한 상황은 수천 년 만이었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나타난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정운 그 악마의 씨앗을 우리한테 넘겨주지 않겠나요? 인간에게는 위험한 것입니다.” 가브리엘의 말에 정운은 이전에 라파엘에게 했던 것하고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런 정운의 모습을 보고 가브리엘은 웃으면서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가 왔으면 좋았을 것을···.’ 지상에 악마의 씨앗이 발견된 순간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라파엘이 뛰쳐나가 버렸던 것이다. 항상 지상을 감시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는 그였기에 가장 먼저 정보를 파악 했었고, 실제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서야 할 역할에 있는 것도 라파엘이기는 했다. 하지만 정운의 경우에는 가브리엘이 나서는 것이 더 나았다. 정운과 라파엘이 부딪히면 항상 이런 꼴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정운이 아무리 가브리엘을 좋게 본다고 해도 손에 들어온 이것을 그냥 내주기는 싫었다. “도대체 악마의 씨앗이라는게 뭡니까?” “···········.” 정운의 말에 가브리엘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정운의 눈에 양보의 기색이 보이지 않자 결국 말하기 시작했다. “악마의 씨앗이란·····.” 악마의 씨앗. 그것은 마계의 악마들이 만든 마의 씨앗이다. 천계의 천사들도, 그리고 마계의 악마들도 중간계에 직접 관여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간접적인 수단을 총동원해서 중간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운이 천계에 달라고 했던 진리목 역시 그런 나무들 중에 하나였다. 진리목의 열매를 이용해서 중간계를 발전 시키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게 천계의 목적인 것이다. 그리고 악마들이 역시 중간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도 다양한데···. 악마의 씨앗은 그 중에서도 매우 위험한 것이다. 악마들이 중간계에 수작을 부리는 것에 관해서 천계에서는 랭크를 설정해 뒀다. D랭크부터 시작해서 단계별로 위험을 설정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악마의 씨앗은 AAA랭크에 설정되어 있다. 이건 상당히 높은 랭크로 설정 되어 있었다. 보통 가장 흔한 수법··. 그러니까 악마가 인간과 계약을 해서 그 대가로 영혼을 갈취하는 것이 D랭크이고, 그 위의 단계는 계약한 인간을 이용해서 더 큰일을 벌이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악마들이 어떤 인간과 계약을 해서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를 만들고 그 나라의 인간들을 가혹한 환경으로 밀어넣는 것에 성공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천계에서는 위험 레벨이 고작 A급에 지나지 않았다. 즉, AAA급이란 말은 사실상 악마가 실제 중간계에 나타나서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 이상 가장 위험한 단계의 위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럼, 그 악마의 씨앗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악마의 씨앗은 말 그대로 악마를 만들 수 있는 씨앗이다. 단, 평범한 씨앗처럼 땅에 심어서 싹을 틔우고 수확 하는게 아니다. 씨앗을 심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사악하고 욕망이 강한 인간일수록 성능이 좋은 악마가 탄생한다. 악마가 직접 인간계에 개입 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악마가 된다면 그 악마는 일종의 전생마와 같은 종류가 되는데···. 그 악마는 악마이면서도 마계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 인간계에서 마음껏 패악을 저지를 수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렇게 해서 인간들에게 무수한 해를 끼친 악마들이 많았다. 전설에 나오는 괴물들 중에 반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우연으로 생겨난 존재들이다. 자연의 음기가 뭉쳤다거나 오래 산 생물이 영적으로 진화를 이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주 우연히 인간이 악마화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대부분 악마의 씨앗이 배후에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악마의 씨앗이 나타난 시점에서 즉각적인 회수를 하는게 원칙입니다. 그러니 돌려 주시겠나요?” 가브리엘의 말에 정운은 곰곰이 생각했다. ‘인위적으로 악마를 만든다. 라···. 이거 혹시 잘만 하면·····.’ 정운은 이 순간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정운에게 가브리엘이 다시 말했다. “정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죠?” “가브리엘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의 부탁입니다. 당연히 들어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정운은 가브리엘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안 되겠습니다. 이건 저에게 필요한 겅에요.” “정운!! 설마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가브리엘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실망감이 뒤섞여 있었다. 설마하니 정운이 자신의 말을 거절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마주하고 나니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가브리엘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정운이 말했다. “가브리엘님. 하나만 물어 보겠습니다. 이 악마의 씨앗은 흔한 것입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죠.” ‘역시···. 그렇게 예상은 하고 있었지.’ 치천사가 부랴부랴 직접 강림할 정도의 물건이다. 잘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라고 정운은 예상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친절하게도 그런 정운의 예상을 뒷받침하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악마의 씨앗은 마계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게 아닙니다. 살아있는 악마. 그것도 상당한 고위 레벨의 악마를 희생 시켜서 만드는 것이죠. 만든 악마의 씨앗이 성공적인 성과를 만들어 낸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마계의 전력만 깎아내는 격이죠.” 가브리엘의 말대로 악마의 씨앗을 제작하는 것은 상당한 도박이었다. 그래서 마계에서도 함부로 만들지 않고 있었다. 정운은 그 설명을 듣고 나서 확신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 천계에서는 이걸 악마의 소행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좀 다릅니다.” 정운의 말에 가브리엘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악마의 씨앗은 악마들의 기술입니다. 그게 가능한 것은····. 아!!!” 말을 하던 가브리엘은 그새 깨달은 것 같았다.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기에 덧붙여서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악마의 기술을 재현 할 수 있는 인간은 그렇게 많지 않죠. 이건 파우스트 그 놈의 소행입니다.” “··············.” “··············.” 가브리엘도 라파엘도 그 말이 지당하다고 느꼈다. 마계에서 악마의 씨앗을 만든지 시간이 오래 되었다. 천계에서 악마의 씨앗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로는 그렇게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마계에서 새삼 스럽게 악마의 씨앗을 만들었다는 것은 좀 이상했다. 정운의 말대로 저 악마의 씨앗은 파우스트가 만든 것일 확률이 높았다. 정운은 두 치천사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파우스트, 그 놈의 일이라면 전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 없습니다. 이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사특한 의도로 쓰지는 않을 테니 이해하고 물러나 주십시오.” 정운의 말에 라파엘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누가 만들었든 간에 악마의 씨앗은 발견 즉시 회수 조치 대상이다. 특별대우 따위는 없어.” “그럼 어디 한 번 가져가 보지 그래? 난 순순히 넘길 생각 없으니 말이야.” “좋다. 지금 당장····.” 라파엘이 다시 나서려고 하자 그 사이에 가브리엘이 끼어들었다. “이제 싸움은 그만····.” 가브리엘은 일단 둘을 말리고 조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정운, 당신의 의견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브리엘···.” 라파엘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런 라파엘을 제지하면서 말했다. “파우스트에 관한 이른 정운에게 일임하기로 결정 했잖아요? 미카엘은 제가 설득하죠.” “····후우, 몇 번이고 하는 말이지만 당신은 인간에게 너무 무르다. 가브리엘.” “저도 알아요.” 가브리엘은 웃으면서 라파엘을 납득 시키고, 그리고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당신을 믿기에 큰 결정을 하는 겁니다. 믿어도 되겠죠?” “······예.” 정운은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 보면 천사는 천사야···.’ 순수하지만 엄중한 눈동자. 가브리엘의 눈동자는 거짓도 허세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대답은 각오가 깃든 장담뿐이었다. 정운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가브리엘은 웃음을 지으며 라파엘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런 가브리엘의 뒷모습을 보며서 정운은 중얼 거렸다. “무조건 적인 믿음이라····. 이건 이것대로 부담 되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건 양보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악마의 씨앗은 정운에게 있어서 지금 고민중이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일단 게이트 너머로 돌아가야 겠다.” 그리고 유유히 돌아가는 정운이었다. 좀 전까지 최강의 인간과 치천사가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바다에는 다시 짜디짠 바다 바람만 불었다. “제길···, 실패인가?” 어둠속에서 어떤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안타까워했다. 정운의 목숨을 노리고 악마의 씨앗을 한 개 사용하기까지 했는데···. 결국 실패한 것이었다. “망할, 뭐가 귀중한 물거닝야? 결국 박정운 그 놈을 죽이는 것도 실패하고서는····.” 손톱을 물어 뜯으면서 초조해 하는 놈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런 놈의 뒤편에서 어떤 여인이 나타나더니 말했다.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더군.” 나타난 여인은 전신을 부드러운 질감의 보라색 실크 로브로 감싸고 있었는데 그녀의 요염한 미모와 어울려서 무척이나 관능적인 느낌을 발했다. 하지만 그런 미인의 등장에도 상대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전혀 반갑지 않다는 듯한 티를 냈다. “·····으음, 나한테 일임하기로 했잖소?” 그렇게 남자가 사소한 반항을 하자 여자는 소매에서 작은 완드를 꺼내더니 남자를 향해서 겨누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으으···. 크아아아아아!!!!!” 남자는 머리를 쥐어싸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 스러워 했다.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는 상대를 보면서 여자는 너무나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통 스러워 하는 상대에게 말했다. “널 위해서 말해 주지. 개는 말이야. 주인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야 예쁨 받는 거야. 어설프게 자존심 챙기면서 콧대 세워 봤자 그런 개는 반갑지 않거든?”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음. 그런데 약간 죄송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 이사 준비를 겸해서 제가 여러가지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 20일까지 잠정 휴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퀄리티가 떨어지는걸 감수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집필을 하느니.. 일단 할 일을 다 하고 집필을 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의 이해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92화 <신세계의 변화> “크···. 끄으으으····.” 너무나 고통 스러워 이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가 말했다.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이해하도록 해. 개는 개 답게···. 알겠지?” “·············.”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야마모토 타쿠야가 지금 이 모습을 봤다면 경악을 넘어서 억울해 했을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두려워하던 이 도조 마사토가 이렇게 개 취급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 남자의 이름은 도조 마사토. 한때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월드 서버에까지 진출했던 일본 서버의 최강자였다. 비록 그 후에 정운과 동료들에게 박살이 나기는 했지만···. 그 후에는 파우스트에게 다시 한 번 영혼을 바치고 자신이 직접 보스몹이 되는 만렙의 찌질함까지 보였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파우스트로서는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 몰래 중간계에 밀어 넣어서 이용해 먹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다른 존재라면 모를까? 도조 마사토는 일단 귀환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귀환자 중에서 원념을 주체하지 못해서 파우스트에게 몹으로까지 거듭난 인간은 전세계의 서버를 다 뒤져도 이 인간 한명 뿐이었다. 그래도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메데이아를 감시 역으로 딸려 보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너 때문에 악마의 씨앗 하나가 적에게 넘어가 버렸어. 이제 다음에는 차부하게 지시를 기다려라. 알겠지?” “·····알겠습니다.” 결국 도조 마사토는 순순히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뿌리 끝까지 저당 잡힌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순종하는 것 밖에는····. 도조 마사토에게 자기 분수를 알게 한 후에 메데이아는 고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빼앗긴 악마의 씨앗은 하나···. 그걸로 할 수 있는 것은 별것 없겠지?” 적어도 이 시점에서 메데이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게이트 너머의 신도시로 돌아가기 전에···. 정운은 슬기의 가족들과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정운을 약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슬기의 아버지도 일단 슬기가 정운을 따라가는 것을 허락했다. “몸 조심 하거라.” “예.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전에 야마모토 타쿠야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구해준 것인 점수를 좀 딴 모양이다. 그리고 사실 슬기가 세레나에 관해서 열변을 토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정운이 그냥 바람둥이라서 그렇게 세레나와 자신을 양다리 걸친게 아니다. 그녀에게도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런 딸의 설명에 조금이지만 슬기의 아버지의 마음도 약간의 틈이 벌어졌다. 비록 금지옥엽 같은 자기 딸을 두고 다른 여자를 또 받아들이는 것은 몹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적어도 정운이 여자를 마냥 수집하듯이 이리저리 늘리는 난봉꾼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정운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간이 여자를 작정하고 늘리려고 했다면 공개적으로 하렘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둘이 정운에게 엄청나게 특별한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레나가 현재 자리에 없는 이상 현 단계에서 정운의 여자는 슬기 뿐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슬기의 꾸준한 설득에 결국 그녀의 아버지도 정운에게 있어서 세레나의 존재를 묵인한 것이다. 굉장히 보수적인 성격인 그에게 있어서는 아마 이게 최대한의 양보일 것이다. 정운도 이 이상은 실례라고 생각해서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정운은 슬기의 가족에게 배웅을 받으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갈 때는 비행기를 통하지 않고 그냥 흑토를 타고 날아갔다. 그게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었다. 정운은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꼭 처리하고 싶은게 있었다. 신도시에 도착한 정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배대호를 부르는 것이었다. “불렀냐?” “예. 형님 머리 좋죠. 그리고 마법에 관한 이해도도 높고.”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렇게 띄워줘서 얻으려는게 뭐냐?” “이번에 일본에서 얻은 전리품이 하나 있습니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악마의 씨앗을 꺼내서 배대호의 앞에 보여줬다. 그 붉은색의 결정을 보고 배대호는 살짝 안색을 바꿨다. ‘악마들의 마기가 느껴지는데····.’ “이게 뭐냐?”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천계에서 들은 정보를 토대로 설명을 해줬다. “········라는 물건이랍니다.” “과연···. 그렇단 말이지?” “예. 형님. 이거 다룰 수 있겠습니까?” “····뭘 노리는 거냐?” “질, 혹은 양.” “·············.” 정운의 짧은 말에 배대호는 모든걸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해 보기는 해 볼 테니···. 너무 기대하지 말고 기다려라.” “적어도 우리라는 룰 모델이 있지 않습니까? 전 형님의 두뇌가 파우스트에 비해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좀 오버인데···.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만큼 해 보마.” 그리고 배대호는 정운에게서 악마의 씨앗을 하나 받아서 집무실을 나갔다. 그런 배대호를 보면서 정운은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랬다. 잘만 하면 지금 고질적인 한우리 연맹의 약점을 해결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장소와 시간을 바꿔서···. 정운이 일본에서 한건을 올린 사이 한중겸은 이세계의 안정에 최선을 다했다. “슬슬 단계적으로 지폐를 도입해야 하나?” “잡음이 없게 하려면 은행을 먼저 도입해야 합니다.” “아! 그랬지? 뭐, 전문가들에게 맡겼으니 알아서 잘 하겠지 뭐···.” “그래도 나라꼴이 정말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게 모두 단장님의 용단 덕분입니다.” “용단은 무슨··. 그냥 귀찮아서 떠 맡긴건데···.” 부하의 아부에 한중겸은 그냥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실제 한중겸은 브로드 왕국을 되살리기 위해서 각 방면에 여러 가지 전문가를 초빙했다. 경제, 법률, 국토 개발 등등···. 세상에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었고 그들을 고액의 연봉을 주고 스카웃 해왔다. 그들에게 내린 공통의 과제는 한가지였다. 브로드 왕국의 생활수준을 최대한 현대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라는 것이었다. 보통 소설 같은걸 보면, 현대에서 평범한 남자 한 명이 중세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세계에 혁명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그런 스토리 있지 않은가? 그걸 여러 가지 전문가를 초빙해서 가능하면 빠르고 정밀하게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주로 대학의 교수들과 실무 경험이 풍부한 경험자들이 팀을 꾸려서 브로드 왕국의 성장을 돕고 있었다. 그들로서도 이번 일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기존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역사의 발전을 마치 FF로 감아서 빨리 전진 시키는 느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연구 성과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것들이었다. 이미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성한 논문을 발표한 교수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우리 연맹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들어갈 수도 없는 게이트의 안. 거기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작성한 논문이 아닌가? 전 세계의 유명한 학자들이 논문 발표회에 구름같이 몰려 들었다. 사실 국내 교수들 중에는 국내에서만 콧대 세우지 세계적인 영향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교수들이 상당수 있다. 그랬던 상황에서 해외의 학자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이 광경은 교수들에게 있어서는 감격적이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실제 논문을 발표한 교수는 발표를 끝내고 내려오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는 표정을 하고 내려왔고 말이다. 어쨌든···. 브로드 왕국은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었고 그 변화를 가장 실감하고 있는 것은 브로드 왕국의 국민들이었다.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확 변한 것이다. 브로드 왕국 자체에 들어온 의류 공장에서 싼값에 기성복들이 생기면서 옷값이 확 내려갔다. 원래 이 브로드 왕국의 국민들은 한 사람당 가지고 있는 옷이 얼마 없었다. 여름, 겨울, 그렇게 각각 두 벌 정도 해서 총 네벌을 가지고 있으면 평범한 수준이었다. 좀 가난한 사람은 한 벌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패션? 그런 개념은 귀족들 사이에서 밖에는 없었다. 평민들에게 있어서 옷이란 그냥 입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인당 옷을 다섯 벌에서 열 벌까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00% 손으로 만들던 수공업이 아니라 기계를 이용한 기성복이 나오면서 가격이 확 내려갔기 때문이다. 집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브로드 왕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해도 5층 정도가 한계였다. 기초 공사도 제대로 못하고 철근 콘크리트라는 개념도 없으면서 나무와 벽돌만을 건물을 올리는 것은 5층도 사실 불안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집에서 사는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나무집, 아니 그냥 판자로 만든 움막과 집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건물들이 태반이었다. 브로드 왕국의 국민들 중에 80% 정도는 모두 그런 나무 움막 속에서 살고 있었다. 잠은 고사하고 대소변도 따로 볼 곳이 없어서 길거리는 악취가 진동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브로드 왕국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었다. 빈민가를 싹 밀어 버리고 인구의 밀집도를 높이기 위해서 여기저기 아파트를 만들고 있었다. 일단 사람들이 살게 하기 위한 임시 건물로는 컨테이너 건물이 대량으로 동원 되었다. 사실 그 컨테이너만 해도 이전에 사람들이 살고 있던 움막에 비하면 궁궐이나 다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파트를 만들때도 가능하면 그냥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게 햇다. 최소한 아파트 단지 안에 쓸만한 공원 한 두 개 정도는 꼭 만들게 해서 사람들이 주거 환경에 만족을 하게 했다.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대부분의 아파트가 지구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들 보다는 훨씬 더 좋은 물건들이었다. 그러면서 집값 자체는 대한민국 수도권의 50분의 1도 단 되는데 말이다. 계획상으로는 나중에 천천히 단계적으로 지구 사람들의 이주도 받아야 하니 주택 사정에는 공을 많이 들였다. 아파트를 지으면서 주변에 들어온 대형마트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여러 가지 식료품과 생필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의식주 전원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확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처음에 제로 용병단의 정체가 게이트 너머에서 온 이계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생긴 혼돈은 이제 아주 미미한 잔재만 남겼을 뿐이다. 이제 브로드 왕국의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가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한중겸은 한우리 연맹에게서 받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장세워서 브로드 왕국을 조금씩 조금씩 훌륭하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린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정직하고 선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이 브로드 왕국은 대륙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범죄자들이 들끓는 왕국이었다. 특히 동쪽의 엘트란 왕국과 마주한 국경 지대에서는 아직도 이 종족을 노예로 잡아서 한 몫을 챙겨 보려는 나쁜 놈들이 즐비했다. 한중겸은 직접 제로 용병단에 지시를 해서 엄하게 단속을 하고 왕국 내에서 노예 제도를 완전히 철폐했지만···. 그래도 범죄 집단은 바퀴벌레처럼 끈질겨서 줄어들기는 해도 완전 박멸이 되기는 힘들었다. 그저 끈덕지게 최대한 단속에 단속을 거듭 하는게 한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중겸은 뜻밖의 보고를 받게 되었다. “단장님!!! 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벌컥!!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부하는 급박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급박한 것은 한중겸도 마찬가지였다. “새끼가···. 넌 노크도 못 하냐?” “·······죄송합니다.” 바지의 벨트를 채우는 한중겸, 그 옆에서 붉어진 얼굴로 옷깃을 여미고 있는 여비서···. 여기서 상황 파악을 못하면 바보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셋이나 있는데 저렇게 주기적으로 바람을 피우고 싶을까?’ 부하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직장 상사가 뭔 짓을 하던 부하는 그냥 눈을 감고 있을 뿐이어야 했다. “나중에 따로 보자.” 짝!! “예. 단장님.” 한중겸은 비서의 엉덩이를 살며시 두들겨 주면서 내보냈다. 그리고 비서는 살랑살랑 눈웃음을 치고는 방을 나갔다. 사실 지금 나간 비서는 그럭저럭 귀엽게 생기기는 했지만 한중겸의 본처들인 아테나, 메두사, 왕귀인들에 비하면 달과 촛불이다. 하지만 한중겸에게 있어서 아마도 이런 바람기는 그 자체로 거의 취미의 영역에 도달한 것인 것 같았다. 언제 정운이 이 일로 적당히 하라고 권고한 적이 있었다. 원래 정운은 연맹원이 여자를 강제로 덮친다거나 권력을 남용해서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만 아니라면 자기 자유니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중겸은 그 정도가 좀 심하다 싶어서 미리 자재를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한중겸은····. “오는 여자를 막지 않고 가는 여자는 적극 권장한다. 이게 브로도 12장 3절의····” “됐어요. 그냥 그렇게 살아요.” 이런 무의미한 대화가 오갔을 뿐이다. 아마 한중겸의 바람기는 이민지가 돌아오기 전에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현실 파트와 신세계의 파트를 동시에 병행하는게 제법 어렵습니다. 양쪽 파트를 모두 매력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93화 <비리 발견> 여자가 나가고 나서 한중겸은 다시 업무 모드로 돌아가서 부하에게 말했다. “큰일이 났다고? 무슨 일인데? 북쪽의 크롱크 왕국에서 또 침략이라도 있나? 내가 직접 나서야 해?” 브로드 왕국을 접수하고 가장 많은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북쪽의 크롱크 왕국이었다. 거기 오크족들은 무른 리젠되는 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일같이 국경을 침략해서 덤벼 들었다. 심지어 그건 크롱크 왕국의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침략도 아니라고 한다. 거의 인사 정도? 오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을 무슨 축체 정도로 생각하는 존재들이다. 그렇다 보니 크롱크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상 국지전 정도는 그냥 안부 인상 정도로 생각 하는게 좋다고 한다. 한중겸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크롱크 왕국에 단신으로 쳐들어가서 아주 박살을 내주고 싶었지만···. 일단 정운은 한중겸에게 브로드 왕국의 내정을 우선시 하라고 했으니 참았던 것이다. 어쨌든··. 문제가 일어났다면 그런 크롱크 왕국에 관한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답은 한중겸의 예상과 틀렸다. “저기···. 문제가 일어난 곳은 동쪽의 국경 지대입니다. 거기서 순찰대 두 개 소대가 당했습니다” “뭐? 어떻게 된 거야? 좀 더 자세히 설명 해 봐.” “아직 자세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박살난 순찰대의 대원중에 비교적 경상자가 있다고 하니 이리로 데리고 오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데리고 와 봐. 설마 순찰대 놈들 몰래 엘프들의 영역에 들어가려고 했다가 역으로 박살난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랬다면 내 손에 다 죽을 줄 알라 그래?”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신의 맹세로 단단히 일러 뒀는데···.” “하긴, 그건 그렇지.” 신의 맹세로 행동에 제한을 당하고 있는 연맹원들은 연맹의 방침에 절대 복종해야 했다. 한중겸이 엘프들의 영역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이상은 절대로 제 발로 들어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얼마 후··. 한중겸의 눈앞에 나타난 순찰대원이라는 놈은 마치 무서운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이 놈이 갖아 경상자라고?” “그렇다고 합니다.” “·············.” 한중겸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한중겸의 눈앞에 나타난 놈은 회복 스킬로 치유는 받았지만 보고서에 의하면 죽기 딱 죽음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걸칠 정도로 중상이었다고 한다. 지금 잔뜩 쫄아 있는 것도 어마어마한 고통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런 놈이 가장 경상이라니····?’ 사실 생존자가 있는것만 해도 다행이어다. 순찰대의 대원들 대부분이 사망했으니 말이다. 크롱크 왕국과 접경하고 있는 북쪽 국경도 아니고 동쪽 국경 지대에서 연맹에 사망자가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중겸은 고개를 저으면서 생존자에게 말했다. “너 이름이 뭐지?” “예···. 한우리 연맹 소속이 네이트 하퍼입니다. 뉴욕 출신입니다.” “그래. 그러다가 우리 연맹에 들어왔다는 거군···.” 사실 순찰대의 대원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저 네이트 하퍼라는 놈도 원래는 범죄자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신의 맹세에 절대 복종 상태이니 연맹의 지시에 철썩 같이 따르고 있지만 원래 그렇게 좋은 인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 상황 설명을 좀 해줄까? 최대한 자세하게 해 봐라. 만약 빠트리는 점이 있다면···.” 딱!! 한중겸이 손가락을 튕기자 소환수인 데몬 엠페러가 나타나서 날카로운 낫을 네이트에게 겨눴다. “예··. 물론··. 물론입니다.” 사실 신의 맹세에 구속을 당한 이상 어차피 상급자인 한중겸의 물음에 거짓을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중겸은 어째 눈앞에 있는 이 놈이게 믿음이 가지를 않았서 이렇게 협박을 곁들였다. 그렇게 한중겸에게 협박을 받은 네이트라는 놈은 설명을 시작했다. “최근에··. 저희들 순찰대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었습니다. 국경지대 부근에 있는 노예상인들이 모두 죽어가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모두 죽어간다고? 누가? 왜?” “그걸 잘 몰라서··. 저희도 순찰을 강화했습니다.” 네이트의 순찰조는 최근 국경지대에서 순찰대를 박살 내고 있다는 의문의 범인을 잡기 위해서 순찰을 강화했다. 처음에는 어느 소대인지 참 부지런히 움직인다.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발견 되었다. 노예상인들이 모두 현장에서 무참하게 참살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한우리 연맹은 범죄자라고 해도 가능하면 즉결 보다는 재판을 걸친 판결을 우선시했다. 그러니 현장에서 전원 죽음을 당한 노예상인들을 죽인 범인은 한우리 연맹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순찰대원들은 치밀하게 조사를 했다. 하지만 좀처럼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는 없었다. 워낙 신출귀몰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찾기가 어려웠다. 기껏 어디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포위망을 펼쳐도···. 범인은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신출귀몰하다고 해도 우연한 조우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는 법이었다. 네이트의 소대가 다른 소대와 연계를 해서 순찰을 돌던 어느날···. 그들은 멀리서 소음이 들리는 것을 확인했다. “저건? 전투음?” “빨리!! 달려!!!” 순찰대원들은 서둘러 현장으로 달렸 갔다. 귀환자들이라고 해도 모두 고레벨처럼 고속의 기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순찰대원들에게는 거친 황야를 달릴 수 있는 지프형 순찰차를 배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서는 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대원들은 먼저 움직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도착한 장소에 본 것은····. “여자?” “누구지? 누구 아는 사람 있어?” 그들이 현장에서 본 것은 무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노예상인들과 그 노예상인들을 처참하게 짓밟고 있는 한 명의 여자였다. “단 한 명의 여자라고?” 보고를 듣던 한중겸은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보고를 하던 네이트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저희가 찾지 못했던 이유도 단 한명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리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단독으로 치고 빠지고 있었기에 찾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해 봐.” 한중겸의 설명에 네이트는 계속해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순찰대원들의 평균 아이큐가 50이하가 아닌 이상··. 한 눈에 저 여자가 고레벨의 귀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를 처음으로 본 순간 순찰대의 대원들이 느낀 감정은 ‘아름답다.’ 였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를 뒤로 묵고 무장이라고 해 봐야 손에 끼고 있는 가죽 장갑 정도뿐이었다. 그렇게 노예상인들을 맨주먹으로 학살하고 있는 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거친 야생마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당당하고 도도하고 사납고···. 그 모든 것이 여성미를 거슬리게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배가 시키고 있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발키리. 그런 느낌이 드는 여성이었다. 일단 가장 “제로 용병단의 순찰대입니다. 정체를 밝혀 주십시오.” “지랄하고 있네.” 순간 순찰대원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이 나라에서 제로 용병단 소속이라는 것은 이전의 레드 스네이크 용병단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같은 지배자라도 제로 용병단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제로 용병단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 민중의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얼마나 큰 메리트로 작용하는지는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환영 받고··. 어디서 무슨 실수를 해도 제로 용병단 소속이라는 간판 하나만으로 대부분의 잘못이 넘어 갈 수 있었다. 그런 VIP취급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있어서 여자의 말은 단체로 벙 찌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자들은 순찰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죽어!! 이 개새끼들아!!!!” “큭··. 공격하라!!!” 순찰대 역시 자신들을 공격하는 적을 보면서 그냥 당하고 있을수만은 없었다. 그들은 반격했다. 마침 두 개 소대가 연계해서 순찰을 돌고 있었기 때문에 전력은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겠지?” 여기까지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던 한중겸이 끼어 들었다. 그러자 보고를 하던 네이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상대는··. 그 마녀는 정말로 강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덤벼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아··. 됐다. 아마 그 여자가 내가 생각하는 여자가 맞다면 너희들이 이기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일 테니···.” “··········?” 한중겸의 말에 보고를 올리던 네이트는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한중겸의 표정은 상당히 싸늘하게 변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여자한테 지는건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문제가 있다.” 한중겸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자 네이트는 순가 흠칫했다. “무슨···. 문제 말씀이십니까?” “그 여자가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이 맞다면···. 절대로 이유 없이 상대를 공격하는 여자는 아니야. 더구나 한우리 연맹 소속은 더욱더 말이야.” “··············.” “네놈들 무슨 짓을 했지?” 한중겸이 싸늘하게 내려다보자 네이트의 안색에 새 파랗게 질렸다. 사실 한중겸은 보고 중에 이상한 점을 몇 가지 느꼈다. 설명에 약간의 날림이 섞인 거야 그렇다 치고···. 한중겸 본인은 노예 상인들을 털고 다니는 의적이 있으니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거기다 두 개 소대가 동시에 연계를 해서? 누구 마음대로 두 개 소대가 연계를 해서 순찰을 한단 말인가? 인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한중겸은 절대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검은색 포니테일에 거친 말투, 그리고 맨주먹으로 한우리 연맹 순찰대 두 개 소대를 박살 낼 수 있는 인물? 한중겸의 머릿속에는 딱 한명 밖에는 짚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맞다면, 절대로 이유 없이 한우리 연맹을 공격할 여자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론은 한 가지지···. 네놈들이 뭔가 죽을 짓을 한 거야? 그렇지?” “···········.” 콰앙!!! 대답을 하지 않고 망설이는 네이트의 바로 앞의 지면이 폭발해 버리듯이 터져 나갔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말해라····. 네놈들 무슨 짓을 했지?” “····살···.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네이트는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실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네이트가 소속한 소대를 비롯해서 몇몇 소대는 현지의 노예상인들과 뒷거래를 하고 있었다. 제로 용병단의 순찰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라트란 왕국의 이종족을 대상으로 한 노예 상인들을 큰 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이런 위기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활로를 찾으려는 놈들도 있었다. 흔히 말하지 않는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라고··. 이 세상에 뇌물이 통하지 않는 인간은 있어도 뇌물이 통하지 않는 단체는 거의 없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 그 중에 몇 명 정도는 꼭 썩은 사과 같은 인간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특히 제로 용병단 소속은 그 상당수가 자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제로 용병단에 복무하면서 죄 값을 치르고 있는 범죄자들이었다. 신의 맹세로 행동에 제한을 두고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너무 철저한 제한은 오히려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허용 한계를 설정해 두고는 있었다. 그 빈틈을 노리고 몇몇 소대장들이 현지의 노예 상인들과 거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엘프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신의 맹세 때문에 불가능 했다. 하지만 눈감아 주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대가로 노예들을 써서 성상납을 받았다. 보통 여자들이라면 술집에서 제로 용병단이라는 간판만 있어도 거의 다 꼬실 수 있었다. 하지만 노예 상인들은 순찰대에 엘프를 받친 것이다. 미인계···라고 말 할 것도 없었다. 그건 그냥 성상납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이다. 지구든 신세계든 간에··. 남자들에게 여자는 항상 잘 먹히는 유혹의 수단이었다. 특히 상대는 인간도 아닌 엘프들이었다. 엘프는 정말로 아름답다. 그 하나하나가 지구로 가면 톱 모델들도 기가 죽을 정도로 완벽한 비율의 미인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몇몇 썩어 빠진 조장들을 주축으로 해서 노예 상인들에게 향응을 제공받고 대신 그들의 범죄를 묵인해 주는 쓰레기들의 커넥션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 멋대로 순찰을 강화한 것도 자신들과 한 편인 노예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아까 네이트의 설명에서도 틀린 점이 있었다. 사실 그 여자를 발견했을 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자신들이었다. 노예 상인들을 오히려 보호하기 위해서 그 여자를 몰래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상대를 잘못 보고 된통 당했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조직을 이루면 곪은 부분은 필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부분이 없는 조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죠. 대신 발견즉시 가차없이 신속하게 고름을 짜내는 것이 중요한 거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94화 <이보영을 발견한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부탁입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전 그냥 소대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네이트는 머리를 바닥에 대고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사죄했다. 한중겸은 그런 네이트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넌 쓰레기지만···. 딱 하나 기특하게 여길 점이 있다. 뒤 늦게라도 모든 진실을 다 실토했다는 점이지.” “아아····.” 한중겸의 말에 네이트의 얼굴에는 살짝 이지만 희망이 떠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네이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촤아악!!! ‘어··· 내 몸····?’ 자신의 몸이 붕 뜬다고 생각했던 네이트의 마지막 시선에 보인 것은 자신의 몸이 목에서 피를 뿜어내면서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도 없이 그저 의문에 찬 체로 죽어 버렸다. 그런 네이트의 시체를 보면서 한중겸은 말했다. “네놈에게 주는 유일한 상이다. 고통과 공포 없이 죽어라.” 한중겸은 그렇게 싸늘하게 말한 다음 자신의 부관을 불러서 지시했다. “변방의 소대장들부터 중대장까지··. 싹 다 조사해서 쓰레기들을 색출해 내. 그리고 신도시의 정운이에게 연락해라.” “연락 말입니까? 무슨 말을 전하면 될까요?” 부관의 말에 한중겸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보영이 찾았다고 그래.” “예?····. 예. 알겠습니다” 이보영이 누군지 모르는 부관은 그저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연락을 받은 정운은 곧장 날아왔다. 어지간한 일은 전부 한중겸에게 일임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은 어지간의 범주를 확실하게 넘어가 있었다. 도착한 정운은 바로 한중겸의 집무실로 찾아와서 말했다. “보영이 누님을 찾았다고요?” “그래. 동쪽 국경지대에서 쓰레기들 조지는 취미 활동에 바쁜 모양이더라.” “··········?”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정운에게 한중겸이 상황을 다 설명했다. 그리고 설명을 들은 정운이 말했다. “형님, 그 새끼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조져야지. 싹 다.” 정운의 물음에 한중겸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청소 할 때는 깔끔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생각이다. 아주 철저하게 말이야.” 정운이나 한중겸이나 처벌에 대한 잣대는 대한민국 헌법보다 훨씬 더 무겁다. 지금 브로드 왕국에서는 제로 용병단 소속이라고 하면 뭔가 선망어린 시선을 받으면서 영웅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제로 용병단은 귀환자들 중에서도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죄 값을 받기 위해서 강제적인 복무를 하고 있을 뿐이다. 즉, 일단 이들의 신분은 용병 겸 죄인인 것이다. 이미 죄인의 신분인 자들이 또 다시 죄를 지었다. 이것 이중 적으로 죄를 지은 것이다. 당연히 보통보다 훨씬 더 엄한 벌이 필요했다. 더구나 이번에 이왕 판을 벌린 이상은 일벌백계가 어떤 것인지 보여줘야 했다. 여기서 유약하게 나갔다가는 전체적인 기강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망자가 100단위로 나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정운이 경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쓸데 없는 기우였다. 정운이 말 할 것도 없이····, 애당초 한중겸 역시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럼···. 그 문제는 형님에게 맡기고, 보영이 누님 문제는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할 수 있겠냐? 그 녀석 나 이상으로 삐뚤어져 있는 상태라서···.”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이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걸 형님이 어떻게 알아요?” “예전에 한 번 만난 적 있거든.” “·····언제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깜짝 고백에 정운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시 한우리 연맹에 가입하기 전이지···. 아마 천계에서 해방된 직후라고 생각된다.” “생각된다. 라니 형님·····.” “왜? 나도 그때는 엉망이었다고, 이 여자 저 여자 막 꼬시고 허무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음, 요즘하고 별 다를바는 없군.” 이제 딱히 할 말도 없는 정운이었다. “·······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데요?” “별로···. 대화라고 할 것도 없었어. 다만····.” 말을 하던 한중겸은 혀를 차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그때를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는 듯이 말이다. “다만 뭡니까?” 넉살 좋은 한중겸이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정운은 생각보다 이보영의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 딱 한마디만 하더라. 지영이의 복수를 하겠다고.” 한중겸의 말을 들은 정운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지영이 누님의 복수? 과연···. 그래서 노예상인들을 작살내고 다녔던 거군요.” “아마 그랬겠지····.” 정운과 한중겸은 이보영 이지영 자매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악질 인신매매범에게 잡혀서 그 후에 인간 이하의 비참한 노예 생활을 지속했던 두 자매였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온 자들 중에 상당수는 무거운 과거를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비참하기로 따지면 그 자매들은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이보영이 웃으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지켜줘야 할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동생이 그라운드 제로의 최종전에서 자기 대신 죽어 버렸다. 그녀가 느낀 슬픔과 절망이 과연 어느 정도였을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보영이 누님이 계속 그렇게 혼자서 폭주하게 할 수는 없죠.” 정운의 말은 타당했다. 파우스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력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보영 정도의 실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었다. “잘 해봐라. 동쪽 국경지대를 다 뒤지려면 시간 좀 걸릴 거다.” “누가 다 뒤진다고 합니까? 우리가 불러오면 되죠.” “···········?”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한중겸을 보며 정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두고 봐요. 저 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가구라고는 침대 하나가 다인 좁은 방. 그 방의 침대 위에는 한 명의 여인이 공허한 눈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무수한 술병과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지독한 술 냄새로 보아하니 제정신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 둘러서 설명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이보영이었다. 원래 미모라면 어디 가도 그리 꿀릴일 없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라운드 제로에 있던 시절보다 한 층 더 아름다워 져 있었다. 검은 머리에 단아한 미모를 지닌 그녀는 뭔가 자포자기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오히려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최근 그녀는 브로드 왕국의 변방에 있는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으음·····.”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침대 옆에 있는 술병을 잡았다. 그리고 살짝 흔들어 봤다. 찰랑찰랑하게 흔들리는 약간의 무게감이 아직은 술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아···.” 그녀는 남은 술을 단 번에 들이키고 그대로 자리에서 약간 비틀 거리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일어나셨습니까? 언니.” “일어나셨습니까? 언니.” “일어나셨습니까? 언니.” 문 밖에는 몇 십 명의 여자들이 그녀를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 엘프, 그리고 페어리에 드문 수인족까지··. 여러 가지 종족의 여자들이 이보영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종족도 출신도 모두 다른 그녀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그녀들 모두가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범상치 않을 정도로 미인들이었다. 사실 그녀들은 이보영이 구해준 노예 출신의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을 구해준 이보영에게 큰 은혜를 느끼고 스스로 남아서 그녀를 돕겠다고 다짐한 여자들이었다. 이보영은 그런 그녀들을 무심하게 슬쩍 바라보다가 말했다. “·········술.” “여기 있습니다.” 엘프족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재빠르게 이보영에게 술을 가져다 줬다. 이보영은 그런 그녀가 주는 술을 말없이 받아서 그대로 들이켰다. 주변의 여자들이 그런 이보영을 보는 시선에는 공손함과 선망의 감정이 같이 모여 있었다. 이보영이 이 세계에서 족친 노예 상인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해방 시켜준 노예는 더욱더 많았다. 하지만 그 노예들 대부분이 이보영을 따르지는 않았다. 몇몇 감화된 자들만 이보영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여성들처럼 말이다. 그녀들은 언니라고 부르며 이보영을 실제 친 언니 이상으로 따르면서 그녀를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이보영은 그런 그녀들을 세상 남자들에게서 보호해주고 있었고 말이다. 물론 그녀들이라고 마냥 이보영에게 보호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이보영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녀들 대부분은 나름 능력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전쟁터에서 잡혀온 여기사도 있었고, 마법사도 있었다. 엘프나 수인족은 말 할 것도 없었다. 엘프 여성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정령술사에 궁수들이었고, 수인족들 역시 최고의 전사들이었다. 그녀들은 이보영의 행동을 보조하고 정보를 모아주고 있었다. 특히 엘프나 페어리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도청이나, 페어리들의 최면 마법은 정보 수집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녀들은 중요한 정보를 물어왔다. 엘프 여성 중에 한 명이 이보영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최근에 노예 상인들이 대규모로 숲을 침범 하려고 한다고 해요.” “····언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열흘 후 정도라고 해요.. 이번에는 열 개 이상의 노예 상단이 힘을 모아서 움직일 거라고 해요. 그러니 언니, 저희도 현장에···.” “너희는 필요 없어. 난 혼자 싸우는게 편해.” 이보영은 자신도 거들겠다고 말하는 엘프 여성의 말을 단번에 거절해 버렸다. 그녀에게 있어서 전투는 항상 단독 행위여야 했다. 어차피 그녀의 수준을 생각하면 노예 상인들 따위에 위험을 느낄 리는 없지만···. 설령 위험을 느끼게 된다고 해도 다시는 다른 사람과 전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게 날 언니라고 부르는 애들하고는 더욱더 말이야.’ 그건 그녀에게 있어서 심각한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키는 일이었다. 절대로···. 다시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 후···. “저 놈들인가?” 미리 얻은 정보를 토대로 노예상인들의 행동을 알아낸 이보영은 타깃들이 움직이는 망원경으로 바라봤다. 여러 노예상단이 동시에 뭉쳐서 함께 행동한다는 말은 들었다. 그리고 그 정보에 걸 맞게 놈들은 어디 군대라도 되는 것처럼 진지를 이루고 막사까지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보영은 이를 갈았다. “버러지들이·····.” 까드득···. 노예상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활화산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정운이 파우스트를 증오하는 것 처럼····. 이보영에게는 여자를 그냥 사냥감 취급하는 저 짐승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 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아픔을 남겼고···. 자신의 동생에게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던 놈들이다. 그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그녀에게는 다 똑같은 놈들로 보일 뿐이었다. “다 죽여 버리겠어.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망원경을 내린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작전이고 뭐고 없었다. 사실 그녀의 존재 그 자체가 모든 작전을 대신하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정운이나 한중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녀 역시 고 레벨의 귀환자였다.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질 당시 그녀의 레벨은 199. 딱 200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적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녀는 홀몸으로 대군의 앞에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발견한 노예 상인들은····. “어서 오십시오. 이보영님.” “어서 오십시오. 이보영님.” “어서 오십시오. 이보영님.” 90도로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 이보영의 입장에서는 순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를 못 할 지경이었다. 노예 상인들을 다 박살내기 위해서 다가왔는데 그런 자신이 오기 무섭게 노예 상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 한다? 거기다 이 치들이 자기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해 안 가는 것 투성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보영이라는 소재를 지금 사용하는 것은 좀 빠르지 않나 싶었지만... 스토리 늘어지게 시간만 끄는것 보다는 빨리 사용하는게 좋을것 같았습니다. 안티도 많지만 그래도 스토리상의 비중은 꽤 있는 캐릭터가 이보영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95화 “그래···. 너였구나.” “예. 접니다.” 이보영이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한 것은 노예상인이라고 생각한 자들의 안내를 받아서 정운의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정운은 잘 차려진 테이블 앞에서 잘 차려진 요리를 가득 채우고 이보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정이라니···. 많이 치사해 졌구나.” “함정? 그냥 식사 초대라고 볼 수는 없나요?”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대규모인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비싼 여자라서 말이죠.” “··········.” ‘느물느물해져 가지고···. 원래 순진한 구석이 많았는데 이제는 한 마디고 지지를 않네. 이것도 중겸이 오라버니 때문인가?’ 이보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정운이 말했다. “일단 앉죠. 안 그러면 안 내보낼 겁니다.” “난 술 없이는···.” 퐁!! 이보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운이 술병을 꺼내서 땄다. 정운 자신도 무슨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비싼 술이라고는 했다. 한 병에 고급 자동차 한 두대 정도는 사뿐하게 날아가는 술이라고 했다. 병을 딴 것만으로도 향긋한 주향이 막사 안에 가득 퍼지는 것을 봐서는 확실히 나쁜 술은 아닌 것 같았다. 정운은 그 술병의 술을 직접 잔에 따르면서 말했다. “제가 누님을 모릅니까? 앉으시죠.” “············.” 이보영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 둘의 술잔이 동시에 가득 채워졌지만, 비워지는 속도는 한쪽이 압도적으로 빨랐다. 당연하지만 빠른 쪽은 이보영이었다. 그녀는 천계에서 해방된 이후 술을 거의 입에 달고 살았다. 이제는 아무리 독한 술을 마셔도 이게 그냥 음료인지 술인지 구별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운도 약한 편은 아니지만 이보영이 마시는 속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더 취하기 전에 용건을 말하는게 좋을까?’ 정운은 술에 한 맺힌 것처럼 마시는 이보영을 보면서 용건을 꺼냈다. “누님.” “왜?” “우선 최근에 우리 연맹에 고름을 짜주신 것은 크게 감사드립니다.” “아···. 그거? 됐어. 내가 노리고 한 것도 아닌데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도움을 받은 것은 받은 것이다. 조직의 부패는 어느 조직이든 조금씩 생길 수밖에 없는 거지만···. 그 부패한 부분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조직 전체에 엄청난 대미지가 갈 수도 있었다. 정운으로서는 이보영에게 빚 하나를 졌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운은 그런 이보영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의 말을 해야 했다. “누님. 언제까지 혼자 활동하실 겁니까?” “왜? 시집 못 갈까봐 걱정이라도 되냐? 네가 나 데리고 살래?” “········저 슬기한테 죽어요. 그리고 세레나 한테도.” “말은 잘 한다····.” 이보영은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정운으로서는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이보영이 적이 되는 것 보다 그녀가 자기 아내가 되는 편이 3천배는 더 무서웠다. 어장관리 완전체인 그녀가 아내? ‘중세 시대의 아프리카 노예도 그것 보다는 덜 불쌍할 거야.’ 정운은 그렇게 무서운 상상을 떨쳐 버리고 다시 본래의 목적을 시도했다. “누님이 우리 연맹에 돌아오기를 원하는 겁니다.” “싫어.” 이보영은 생각 할 것도 없이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정운이 다시 말했다. “누님. 지금 누님이 하고 있는 일도 누님 혼자서 움직이는 것 보다는 저희 연맹의 힘을 빌리면 더 쉽고 원활하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필요 없어. 난 더 이상 남자들하고 일 하기 싫어.” “·······남자들?” 정운은 이보영의 말에 살짝 의외라는 듯이 되 물었다. 이보영이 남자들이라고 딱 짚어서 말한 것이 조금 이상한 것이었다. “누님···? 남자 싫어했었나요?” “글쎄···. 과거형으로 물으면 모르겠다. 그렇게 좋아한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 그녀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관리했던 그 방대한 어장을 기억하는 정운으로서는 뭐라고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정운을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보영이 말을 이었다. “적어도 현재 진행형으로 보면····. 그래. 사내 놈들은 딱 질색이네.” “·····저도 남자인데요?” “너도 싫어. 여자들을 성욕의 대상으로 보는 남자 놈들은 다 싫어. 남자 놈들이 여자에게 하는 생각이라고는 항상 보이는 대로 박아라. 정도 뿐이잖아?” “누님···. 그건 중겸이 형님 모토잖아요? 보통 남자들이 그 사람처럼 사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요?” “ “·············.” 이번에는 이보영이 할 말을 잃었다. 전 세계의 남자들이 한중겸처럼 산다? 인류는 세상에서 제일 문란한 종족으로 등극할 것이고, 이 세상에는 결혼과 정조라는 관념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누님은 유일하게 우리 연맹에서 중겸이 현님의 난봉삼매경에 뭐라고 말을 못할 사람이었잖아요? 오히려 배틀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그 정도 까지는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 정운은 그녀의 반문에 아무 대답없이 그저 지그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비록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정운이 보내는 무언의 추궁에 결국 양심선언을 하는 이보영이었다. “하아···. 뭐 내가 과거에 한 일을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는게 모순 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어쟀다는 거니? 난 내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야. 즉흥적으로 그게 나라고. 그리고 지금 내 마음가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난 지금 남자들이 딱 질색인데? 그게 나야? 모슨이니 뭐니 그딴 것 알게 뭐야?” “지영인 누님 때문입니까?” 정운은 결국 이보영이 피하고 있던 화제를 건드렸다. 어지간하면 그 일을 자극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화제를 피해서는 이보영의 진심을 허심탄회하게 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 조금 전의 허허로움과 장난기를 완전히 털어 버리고 난 이보영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동생은 떠 올리기만 해도 슬퍼지고··. 입에 이름을 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존재였다. 말 없는 그녀를 대신해서 정운이 계속 말했다. “누님. 저도 그 싸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중겸이 형님도요.” “···········.” “하지만, 우리가 포기 해 버리면 그때는 모든게 끝입니다.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그녀들의 영혼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때 살아남은 이유가 뭐죠?” “시끄러. 난 갈 거야.” 이보영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그런 이보영을 보고 정운이 자리에서 마주 일어나며 말했다. “어린애처럼 피한다고 답니까? 누님!!!” “누님!! 누님!! 좀 시끄러!!! 네 인생에 나 까지 강제로 끼워 넣지 마!!!! 날 좀 내버려 두라고!!!!!” “············.” 거의 히스테리를 부리는 이보영을 보며 정운은 더 이상의 추궁을 그만 뒀다. ‘이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군.’ 한중겸의 경우와는 좀 달랐다. 한중겸의 경우는 뭐랄까? 지금 손안에 있는 것을 잃기 싫어서 더 이상 파우스트에게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도 한 구석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 정운은 한중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일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평행을 이루고 있는 저울에 약간의 무게를 싫어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보영의 경우는 완전히 틀렸다. 지금 그녀는 현실을 파악하는 것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과 동생을 불행하게 했던 남자들에 대한 복수만 반복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노예 상인들 따위는 길가에 있는 벌레들을 눌러 죽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자신의 잃어버린 것을 상기 할 때마다 화풀이로 조진 것뿐이었다. 사람이 누구나 화가 날 때는 뭔가를 부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리고 이보영의 경우 그것이 보통 사람들 보다 좀 더 스케일이 컸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히스테리는 히스테리일 뿐이다. 목표를 눈앞에 두고 정조준해서 달려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이제 완전히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린 경우. 그게 지금의 이보영이었다. 그녀가 히스테리를 부리며 돌아가는 것을 보며 정운은 굳이 연맹원들을 보내서 배웅을 시켰다. 그녀가 취한 것 때문에 걱정이 된 것····. 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술 취한 그녀의 존재 자체가 걱정이라면 걱정이기는 했다. 술 취한 운전사가 폭탄을 트럭 한 가득 실고 운전하는 격이었다. 터지면 여럿 다치거나 죽을 것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사람을 딸려 보내서 그녀가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파악하고 싶기도 했다. 비록 정신적으로 상태가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중요한 전력이었다. 며칠 후··.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낸 정운은 다시 한 번 이보영을 찾아갔다. 다만, 만나는 것부터가 난항이었다. 이보영이 살고 있는 건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몇 십 명의 여자들이 정운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멈춰요. 여기는 남자 출입금지입니다.” 가장 선두에 있는 갈색 머리 여성은 정운에게 검을 겨누면서 말했다. 보통 남자가 정운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그때는 꽤 큰 트러블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운도 여자에게는 약간 물렁한 구석이 있었다. 더구나 눈앞에 있는 여자들은 일단 이보영의 부하들이 아닌가? “보영이 누님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니 비켜 주지 않겠습니까? ···아가씨들?” 화르륵!!! 정운이 말을 마치자마자 여자들의 살기가 확 치솟았다. ‘말 실수 한 건가?’ 정운은 쓰게 웃었다. 그런 정운의 모습을 보고 좀 전에 말했던 여자가 다시 말했다. “언니는, 남자 따위와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박정운이 왔다고 말하면 얘기가 좀 달라질 겁니다. 안에 전해 주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더럽고 비열하고 추악한 남자 따위가 고결하고 순결한 언니를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뭐라고요? 잠깐···. 보영이 누님 말하고 있는 것 맞죠?” 고결하고 순결이라는 대목에서 멘붕이 왔던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에게 그 여자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저희 언니에게 사적인 호칭은 삼가 주시죠. 저희는 언니께서 언제나 지금처럼 순결하고 고고한 한송이 꽃으로 남아 주기를 바랍니다.” “·············.” 정운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치 대학생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보영이 누님이 순결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정운은 정신을 똑바로 잡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죄송하지만, 아가씨들이 막는다면 강제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군요. 제가 누군지는 알고 있겠죠?” “·········.” “·········.” “·········.” 이번에는 여자들이 할 말을 잃었다. 브로드 왕국에 주거하고 있는 그녀들이 정운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제로 용병단의 단장인 한중겸 보다도 더 윗자리에 있는 한우리 연맹의 대표. 이 전에 브로드 왕국을 지배하고 있던 레드 스네이크의 단장 그레이 레드를 50만 대군과 함께 죽음으로 몰아간 남자. 그런 정운을 대상으로 해서 싸운다? 그녀들 중에는 익스퍼트 초급의 검사도 있었지만 정운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원래 그녀들은 이보영이 구해주기 전까지는 노예 상인들에게 당했을 정도였다. 솔직히 승산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운의 눈앞을 막고 있는 여성들 중에는 그 누구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저 말없이 각오를 다진 눈으로 하고 정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강제로 쳐 들어가면 저만 악당이 되는 군요.” 정운의 말에 여자들은 순간 안도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안도였다. “오랜만에 악역 한 번 하는 수밖에요.” 별로 악당이라도 상관없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396화 <파장하다> 지금 정운에게는 자신의 목적이 더 중요했다. 그래도 연약(?)한 여자들이라고 지금까지 봐준 것만 해도 충분했다. 정운은 여자들을 적당히 손 봐 주고서라도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를 악물고 정운을 노려봤다. 용케 비키지 않고 버티는 모습은 감탄할 만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무모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런 그녀들의 무모함을 말려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냥 올라오라고 그래.” “언니!!!” “언니, 하지만····.” 3층에서 창문을 열고 말하는 이보영의 말에 여자들은 맥이 탁 풀려 버렸다. 거의 죽을 각오를 하고 말리려고 했는데 이보영이 중간에 나서서 말린 것이다. 그녀는 창문으로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왔냐?” “예. 왔죠.” “술은?” “오늘은 없습니다.”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얼굴을 했다. “뭐 됐어. 우리 집에 아직 많아.” 그리고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잡아서 들이키기 시작했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3층에 있는 이보영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간 정운은 방의 광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과 술병의 비율이 9대1.’ 술병이 9고 바닥이 1이었다. 한걸음 걸을 때 마다 술병이 마치 가을의 가로수길 낙엽처럼 발에 걸렸다. ‘넘어지면 죽겠는데?’ 방인지 함정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누님. 제가 누님에게 이런 말 한 적은 없지만···. 혹시 알콜 중독이신가요?” “뭐? 알콜 중독? 내가? 말도 안 돼.” 이보영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냐는 듯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난 그냥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면 어쩐지 허전하고 피곤하고 손이 조금 떨리고·······. 나 알콜 중독일까?” “아마도요.” 말을 하다가 중간에 깨달은 모양이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중얼 거렸다. “····내가 알콜 중독이면····. 중독이면···. 뭐, 별 문제 없네.” 비록 그 심각함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운은 그런 이보영을 보면서 말했다. “일단, 오늘은 우리 연맹까지 누나를 데리고 가 볼까 합니다.” 정운의 말에 이보영이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왜에에에······? 왜 사람 귀찮게 어디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누님을 설득시키기 위해서죠.” “나 설득 안 당할 건데?” “거기에 관해서는 서로 간에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네요. 일단 갈까요? 안 가면?” “안 가면? 어쩔래? 힘으로 끌고 갈래? 연약한 여자를?” “연약? 누님이요?” “······강약의 기준은 상대적인 거잖아?” “···········그럴 듯 하긴 하네요.” 이번엔 이보영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냥 좀 가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비싼 술 왕창 사줄게요.”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진심으로 내가 술 따위에 낚여서 널 따라갈 여자로 보이니? 그렇게 보이니?” “······아니면 말고요.” “··········.” 잠시 후···. 정운은 흑토의 뒤편에 누군가를 태우고 신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흑토의 뒤편에서 내리자 마자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난 절대로 술에 낚여서 온게 아니야. 너도 알지?” “알아요. 누님.” “···그런데 술은?”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나중에 드릴 게요?” “주긴 주는 거지?” 정운이 말하기는 했지만 이보영은 확답을 원했다. “예. 줍니다.” 뭔가에 중독된 사람은 그 중독을 끊기 위해서 다른 충족 대상을 찾는 다고 하는데···. 아마 그녀는 그 대상을 술로 결정한 것 같았다. 정운은 그녀를 데리고 신도시를 돌아보게 하면서 얘기를 해 갔다. “일단, 연맹의 목적은 파우스트를 끌어 내리는 겁니다. 그건 알죠.” “아니 몰랐어. 하지만 이제 알겠네.”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피식 웃었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이보영이 말했다. “지겹지도 않아? 그라운드 제로에서 한 거면 충분하고도 넘치는 것 같은데?” “전혀요. 우리만 일방적으로 뺏기고 끝날 수는 없죠.” 정운은 싸늘한 눈을 하고서 스스로 다짐하듯이 중얼 거렸다. “절대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요.” 정운을 보는 이보영의 눈에는 씁쓸함이 서렸다. 이보영이 보기에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파우스트에게 도전하는 정운이 굉장한 한편 불쌍하기도 했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 같아····.’ 어쨌든 이보영은 정운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마냥 거절하려고 하니 그것도 어쩐지 아쉬웠다. ‘난 여기에 왜 온 걸까?’ 정운이 연맹 내부를 소개하는 것을 듣는 둥 마는둥 하면서 이보영은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술에 낚여서 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차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사실 오기 싫었다면 그냥 무조건 안 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여기에 왔다. 예전의 전우들이 있는 이 장소로···. 마치 집을 찾아가는 충견처럼 다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왜? 어째서?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지쳤는데 도대체 왜? 스스로 아무리 자문해 봐도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녀는 정운이 하는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그저 따라갈 뿐이었다. 그런 정운과 슬기를 반겨준 것은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언니···.” “슬기야. 너 아직 정운이하고 안 헤어졌구나.” “누님····.” 감격의 상봉을 하는 둘을 보면서 정운은 입맛이 섰다. ‘왜 나하고 슬기를 못 갈라놔서 안달인지···.’ 꽤 예전부터 저랬다. 가끔은 그녀가 슬기에게 마음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슬기를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이 이보영을 보러 왔다. 과거 그녀가 운영하던 메두사 길드의 간부 출신들이 모두 나타나서 이보영에게 인사를 올렸다. “길드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잘 지네셨습니까? 길드장님!!” “오랜만입니다. 길드장님!!!” 이보영을 모르는 다른 연맹원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사실 그녀는 메두사 길드를 운영하면서 제법 인덕이 있는 타입이었다. 특히 여성 유저들을 많이 보호해 왔었다. 반겨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박추성과 배대호도 오랜만에 자신들의 동생이나 다름 없는 이보영의 등장에 하던 일을 멈추고 나타났다. “오랜만이다. 보영아.” “그래. 온 거냐?” 둘은 이보영을 시집간 여동생을 반겨주는 것처럼 맞이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중겸도 등장했다. “보영아. 오랜만이다.” “오라비도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여자들 눈에서 눈물 흘리고 다녀요?” “딱, 네가 남자들 가슴에 멍들게 하는 만큼만.” “난 요즘 안 그래요?” “그럼 앞으로도 안 그럴 자신 있냐?” “···········좋은 지적입니다.” 별로 확신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함에 따라서 분위기는 조금이지만 풀어졌다. 그리고 이보영은 자신의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편안해 지는 것을 느겼다. ‘그래····. 이래서였나? 이래서 내가 순순히 온 것이었나?’ 지금 이보영은 스스로 이 분위기를 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마치 친정집에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충분히 편안해 지는 것 같은 이 느낌···. 그 힘들고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를 그라운드 제로에서 서로 지켜주고 살아남았던 것은 여기 전우들이 서로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예전에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다시 피부로 느껴지는 이보영이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디가서 천천히 얘기하자.” “그게 좋겠네요. 오늘 업무 있는 사람 없죠?” “제로 용병단은 테나에게 잠시 맡겨뒀어. 잘 할 거야.” “테나라···. 요즘 그렇게 불러요?” “따지지 마라.” “그만 싸워요. 이제 가죠.” 그렇게 오랜만에 전 월드 서버의 한우리 연맹원 전원이 뭉쳐서 어딘가로 이동했다. “파하···.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그러게 말이죠. 가끔 이렇게 모이죠. 매일 매일 익숙하지 않은 일만 하려고 하다 보니 아주 죽을 맛입니다.” “근무 태만의 표본 같은 중겸이 네가 그런 말을 하냐?” “오라버니 여전하네요.” “왜 나한테 만 그래.” 술집 하나를 통째로 빌린 일행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보영이 말했다. “그나저나···. 아직 짧은 시간에 용케 이 정도의 기틀을 잡았네? 신도시의 모습이 그냥 현대적인 대도시랑 별 차이가 없잖아?” 그녀의 말에 정운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예산이 풍부하니 공사 속도가 아주 초고속이더라고요. 사람들을 삼교대로 돌리면서 풀로 공사를 하는데···. 이제 약간만 더 하면 도시에 이름을 짓고 정식으로 여기를 수도로 하려고 합니다.”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수도? 뭐야? 나라라도 세우려고?” “예. 그럴려고 합니다.” 이보영은 그냥 농담 삼아서 한 말이었지만 정운은 순순히 긍정했다. “····정말로? 농담 아니고?” “예. 점차적으로 건국을 하려고 합니다.” 정운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한우리 연맹은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한우리 연맹이 자국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꿈보다 해몽이 3.000배는 더 좋은 경우일 뿐이었다. 한우리 연맹에 소속된 자들 중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비록 핵심 인원들 대부분이 한국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국가에 대한 소속감은 매우 적었다. 물론 한국 정부와 완전 손을 땔 생각은 아니었다. 박추성이나 한중겸의 경우 한국 정부와는 별개로 국가에 대한 소중한 감정은 무척 강했다.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는 박추성. 한국 전쟁에서 싸운 경험이 있는 한중겸. 이들은 한우리 연맹 속에서도 핵심 인원이었다. 그래서 정운이 생각한 것은 이중국적이었다. 한국에는 협력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신세계에서는 별개의 나라를 만들어서 자치 구역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과 별로 변하는 것은 없다. 다만, 정식으로 형태를 갖춰 놓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신세계에서는 따로 나라를 만들어 두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정운의 생각을 들은 이보영은 술잔을 홀짝이면서 정운을 옆으로 째려보며 말했다. “흠····. 나라 만들어서 뭐 하게? 왕이라도 하게?” “왕이라···. 글쎄요? 필요하다면 하긴 하겠지만···. 별로 제 취향은 아니죠.” 사실 이미 귀환자의 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정운이었다. 내일 당장 왕이다. 라고 해도 별로 말릴 사람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보영은 그런 정운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흐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정운이 생각에 동감하고 있는 거에요? 대호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어때요? 전 대호 오라버니는 다른 생각 없는 오라버니들하고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요?” “내가 뭐!!!?” “내가 뭐!!!?” 박추성하고 한중겸이 동시에 외쳤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경우는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배대호는 이보영의 말에 담담한 얼굴을 하고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그래. 난 정운이를 따를 생각이다.” “······따른다? 라고요? 뭐에요. 정운이 부하라도 할 생각이에요?” “생각이 아니라····. 일단 직책상으로는 난 정운이의 밑에 있는 부하가 맞다.” “·····와우····. 개가 되셨네요?” “!!!!!!” 이보영은 자기가 말을 하고도 순간 아차 싶었고,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한 순간 살기가 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살기의 근원지는 항상 냉철하고 침착하다고 평가 받고 있었던 배대호였다. 감정의 동요 자체를 거의 보이지 않아서 온화하고 쿨한 스타일이라고 생각되는 배대호였지만···. 모독을 받으면 참지를 않는다. 참지 못 하는게 아니라 참지를 않는 것이다. 자신이 모독을 받거나 도전을 받으면 주저없이 거기에 응한다. ============================ 작품 후기 ============================ 술자리에서 얼떨결에 말 실수하면 분위기 박살나는것 한 순간이죠. 그래서 술은 정신줄 잡고 먹어야 하는 법인가 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97화 <운명이 이끈 만남> 배대호. 십왕의 NO.2이자 현재 한우리 연맹의 실세중에 실세. 보통 그에게 먼저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배대호가 누군가가 시비를 걸었을 때는 순순히 참고 물러서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박추성이나 한중겸 이상으로 막 나갈 수도 있는 사람이 배대호인 것이다. 알고 지낸 사이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보영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뜻밖의 대답을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것이다. “대호야. 참아라.” “형님. 제 얼굴 봐서 참아 주십시오.” 화가 난 배대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이 세상에 두 명 정도 뿐이다. 박추성과 박정운. 이 두 명이 유일하게 배대호의 분노를 잠재 울 숭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액땜 한 번 빡세게 할 뻔 했군····.’ 이보영은 그럭저럭 안심했다. 이보영도 어디 가서 힘으로 꿀릴 인물은 아니다. 동생과 더불어서 오랜 세월 동안 한우리 연맹에서 선봉을 맡아 왔을 만큼의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힘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분노한 배대호 앞에서는 그녀도 그냥 연약한 보통 여자일 뿐이었다. “후우우·····.” 배대호가 다시 살기를 가라앉히자 그녀는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네 말대로···. 난 정운이의 밑으로 들어갔다.” 배대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전 별로 형님이 제 밑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데요?” 옆에서 정운이 만류했지만 배대호는 딱 잘라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네가 문제인 거고.” “·············?” 배대호가 워낙 딱 잘라서 말하니 오히려 정운이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배대호는 말을 다시 이었다. “파우스트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것은 정운이 너 만이 아니다. 하지만···.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놈에게 도전을 결심한 것은 너 뿐이었지.” “그거야···.” “나도 추성이도, 그리고 다른 연맹원들도 널 중심으로 뭉쳐있다. 그런데 그 대표라는 놈이 톱이라는 자각이 없으면 어쩌자는 거냐?” “··········.” 배대호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정운이 파우스트에게 도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원한과 세레나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즉, 복수심이 발로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운의 복수심에 많은 살이 붙어 버렸다. 예전 동료들이 모여 들었고, 그라운드 제로에서 해방된 이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귀환자들이 대거 모여 들었다. 이런 귀환자들을 보살피고 이끌어야 할 의무가 상겼고, 게이트 너머의 이계의 침략자를 막아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야 할 의무도 생겼다. 이제 정운은 그냥 자신의 복수심만으로 움직이기는 짊어져야 할 중요한 의무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런 정운의 중요성을 정운 본인보다 더 잘 이해하고 보필하고 있는게 배대호와 박추성이었다. 그 정도의 거물이 아닌 이상···, 배대호도 박처성도 남의 밑으로 들어갈 만큼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배대호는 이보영을 똑바로 보면서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싸우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게 정운이지.” “··············.” 대답없는 이보영을 보고 배대호가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마. 넌 그동안 뭘 하고 있었냐? 노예 상인들을 족치고 있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정말 네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거냐? 아니면 그냥 화 풀이냐?” “············.” 이보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예상인들을 족친 이유? 그건 새삼 말 할 것도 없다. 이미 배대호가 정곡을 찌른 대로···. 그냥 단순한 화풀이였을 뿐이다. 그 화풀이의 결과로 악당들이 피를 봤고 인생 자체를 구원받은 존재들은 틀림없이 다수 있었지만···. 이보영 본인에게 있어서 그 행위들은 그냥 화풀이였을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자신에 비해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틀렸다. 자포자기하고 무너진 패배자의 시선에 다시 일어나서 싸우고 있는 자들은 너무나 눈부시게만 보였다. 배대호의 한마디는 이보영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더 강력한 공격이 되어서 패배의 절망감을 맛보게 하고 있었다. 차라리 힘으로 짓눌린 채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혀서 진흙을 씹게 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굴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보영이 한 선택지는····. “·········나 갈래요.” 도피였다. 맞설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맞설 명분도 없었다. 부끄러움과 패배감을 한 가득 안고 그녀는 그대로 도망가 버리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뒤에서 정운이 그런 그녀를 불렀지만·····. 귀에 들리는 그 음성에 더 이상은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형님···. 너무 독하셨어요?” 이보영이 나가고 난 후에 정운이 배대호에게 말했다. 하지만 배대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정운이 네가 여자라면 너무 무른 거야? 어떻게 보면 네 녀석도 중겸이 놈하고 별 다를바 없어. 여기저기 여자들 마음만 흔들고 다니고····.”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심각하게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넌 항상 그랬거든?” “말 도 안돼····.”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억울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랬지.” “그렇고 말고···.” “100% 동감.” “망설이지 말고 브로도의 세계로 오라니까?” “····미안해요. 정운씨. 할 말이 없네요.” 심지어는 슬기까지 정운을 변호하제 못했다. “하아····. 술 맛 더럽게 쓰네.” 일행들과 헤어져서 이보영이 혼자 들어간 곳은···. 결국 다른 술집이었다. 마신다고 해서 딱히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 마시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허전했다. 그래서 무작정 들어온 술집에서 혼자 마시고 있었다. 성격이나 내면이 어떻든 간에···. 그녀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들이 술집에서 자포자기한 분위기로 술을 홀짝이고 있으면 남자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빨아들이고 있는 그녀를 두고 용기있는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아가씨, 괜찮으면 제가 한 잔 사 드려도 될까요?” 금발에 푸른 눈. 전형적인 서구적인 외무에 남성적인 선이 두드러지는 이목구비였다. 그럭저럭 자기 얼굴에 자신감 가지고 있을 법한 남자 하나가 이보영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이보영은 무심한 얼굴로 그런 남자를 바라봤다. 그라운드 제로를 나온 이후로 남자를 한 번도 품에 안은 적이 없는 그녀였다. 거의 남성 혐오증까지 걸릴 것 같은 상태였으니 남자와 살을 겹쳤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사람 살 냄새가 은근히 그리웠다. “·····뭐,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일단 이 정도로 참아 볼까?” 이보영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자기 술잔에 있는 술을 비워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남자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술은 됐어. 나가자.” “어···. 아. 예···.”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이보영의 태도에 남자는 오히려 얼떨떨해했다. 하지만 이내 봉 잡았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하면서 이보영을 에스코트하면서 술집으로 나갔다. 둘이 나간 후에는 ‘저렇게 쉬우면 내가 먼저 말 할걸?’ 이라고 후회하는 남자들의 푸념이 태반이었다. 어쩌겠는가? 이미 지난 버스인 것을···. 이보영은 괜히 뺄 것 없이 적당한 호텔로 들어가서 그냥 이 남자와 살이나 섞으려고 했다. 그런 이보영을 보면서 남자는 입이 귀에 걸렸다. ‘예쁘고, 화끈하기까지···. 이런 여자들이 뒤끝도 없고 개운하지. 연락처 얻어내서 엔조이 파트너로 할까?’ 이보영이 누군지 알면 오히려 부담 돼서라도 이런 생각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가 정말 모르는게 약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네. 가까운데 러브호텔은 어디 없어?” 이보영의 말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 길로 쭉 10분만 가면 돼.” 은근슬쩍 말을 놓았지만 이보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오른 하룻밤 즐기고 그 다음에 또 볼 일은 없는 남자였다. 그런데 말을 어떻게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냥 오늘 하룻밤 정도는 아무 남자나 품에 안고 그 체온에 잠시라도 잠을 청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인 걸까? 이보영에게 마침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넌···? 누구더라?” “·····반가운 인사 고맙네요. 이보영씨.” 이보영의 앞에 나타난 것은 부하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홍린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외국의 치안 유지에 대한 임무를 후임에게 맡기고 자신은 신도시로 돌아온 상태였다. 자기 측근, 겸 애인들을 이끌고 밤거리에서 흥겹게 파티를 즐기던 그녀는 4차에서 5차로 옮기는 와중에 딱 이보영과 마주쳐 버린 것이다. “···········.” “···········.” 파직··. 파지직····.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한중 최강의 어장 관리녀는 누구? 라는 타이틀이 둘 사이에 자막으로 뜨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만남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보영도 홍린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 때부터 자신하고 캐릭터가 겹친다고 해서 꺼리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헤에···. 오늘 사냥감은 그 남자인가 보죠?” 홍린은 이보영의 옆에 있는 남자를 위 아래로 품평하듯이 바라봤다. “어···. 저기···.” 좀 전 까지만 해도 희희낙락했던 남자는 이제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원래 이 남자는 프랑스 출신의 귀환자였고, 이보영의 얼굴과 이름은 몰라도 홍린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한우리 연맹에서도 간부급인 홍린이 이렇게 존대를 할 정도의 상대라면···. ‘나 오늘 뭐 잘못 건드린 것 아니야?’ 이제야 상황이 조금 파악되는 남자였다. 그리고 홍린은 그런 남자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이보영에게 말했다. “이제 보니 취향이 좀 많이 바뀌셨네요? 혹시 찌질이 컬렉션이라도 모으고 있나요? 제가 알고 있는 남자 몇 명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홍린의 말에 이보영은 울컥했다. ‘이 년이·····.’ 가뜩이나 기분도 우울한데 불에 휘발유를 소방 호수로 들이 붓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 오늘 하루 가지고 놀 일회용품이라서 말이야. 그보다 그쪽은? 흠····. 뭐야? 똑같은 남자들 투성이네? 혹시 꼬실 여력이 안 돼서 클론이라도 찍어 낸 거야? 매력 없는 여자는 참 불쌍도 하여라.” “호호호····. 지껄인다 이거죠?” “왜? 뜰래? 너라면 이 찌질이하고 섹스하는 것 보다는 좀 더 땀 흘리게 해 줄 것 같은데?” 이보영과 홍린의 대화가 부담되는 것일까? 오늘 이보영에게 달라붙었던···. 이름 모를 찌질이 프랑스 남자는 은근슬쩍 도망가 버렸다. 아마도 오늘은 그에게 엄청 재수 없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보영과 홍린의 사이에 살기로 인한 스파크가 파직 파직 튀었다. ‘건방진 것. 이제는 연맹 소속도 아닌게 여전히 박힌 돌 행세 하겠다 이거지?’ 홍린의 입장에서 이보영은 예전부터 눈엣 가시였다. 자신보다 별로 강한것도 아닌데 이미 한국팀에 쭉 소속되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없는 사이에 이 꽃 뱀이 여기서 물 흐리고 있었던 말이지? 이래서 잠깐만 자리 비워도 찝찝해 진다니까····.’ 이보영 역시 홍린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들어.’ 확실히 캐릭터가 겹치는 두 사람이기는 했다. “흥. 도시 한 가운데서 싸우지 말고 자리를 옮기죠? 버릇을 고쳐 드리죠.” “네 능력으로? 맞고 엉엉 울면서 정운이 한테 이르지나 마.” “언제까지 그렇게 지껄···. 응?” “대장님. 부탁 드립니다. 여기서 멈춰 주십시오.” “·····뭐라고?” 이보영과 홍린이 부딪히기 직전의 사태까지 흘러간 그 순간. 갑자기 끼어든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홍린을 대장이라고 부르는 남자는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이마에서 뺨까지 얼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흉터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홍린의 앞에 나서서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간청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홍린이라는 여자는 자신의 부하가 자기 의견에 반대를 내는 것을 허락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창? 네가 날 말리는 거야? 감히···.” “창!!!!! 창이라고!!!!?” 홍린의 말을 끊은 것은 이보영의 경악 서린 한 마디였다. 그리고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뒤를 돌아서 이보영과 마주했다. “····오랜만이야.” “·····창? 당신······.” 이보영, 오늘 그녀에게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창 등장입니다. 많이많이 아껴뒀던 캐릭터였습니다. 이보영의 안티가 폭발할때 마다.. 차라리 언니가 죽고 동생이 살아야 했다고 할 때 마다 언니를 남겼던 이유가 바로 이 남자 때문이었습니다. 이 남자의 등장에 관해서는 좀 더 설명을 진행 할 것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98화 <그녀와 그의 과거> 이보영의 인생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남자는 적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박추성, 배대호, 한중겸, 그리고 박정운까지···. 그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냥 남자가 아니라 아군이었고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라운드 제로의 전우들을 제외한 지구에서의 삶에서 남자라는 존재는 항상 그녀에게 고통과 폭력으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딱 한 명. 그녀에게 고통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이용을 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바로 창이었다. 이보영이 차이니즈 마피아의 성노리개로 팔려와서 지옥과 같은 시절···. 그 조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에게 푹 빠진 남자를 이용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남자였다. 당시 이보영은 차이니즈 마피아의 두목의 노리개중에 하나였다. 평소에는 그 돼지의 성욕을 채워주고···. 그리고 가끔씩은 그 돼지의 명령대로 간부들에게 안기는 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창과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했던 것 뿐이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킬러로서 활약하며 조직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창에게 그저 포상으로서 하룻밤 주어진 인연. 그게 이 둘의 삐뚤어진 인연의 시작이었다. 고작 그 하룻밤의 인연으로 창이라는 남자는 이보영에게 마음을···. 아니 영혼을 빼앗겨 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간부들은 이보영을 안으면서도 그저 자신들의 쾌락을 충족 시켜줄 노리개 정도로 밖에는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창이라는 남자는 달랐다. 단 하룻밤 살을 겹쳤을 뿐인데···. 아니 그 전에 이보영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순간 그는 이보영에게 사랑에 빠져 버렸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주인님을 모실 이보영이라고 합니다.” 속이 비칠 듯 비치지 않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살며시 고개를 숙이면 인사를 했었다. 그게 창이 처음으로 이보영을 만났던 순간이었고 그 순간 그는 사랑에 빠져 버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는 왜 그랬는지 모른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여자들이라면 질리도록 안아봤었다. 조직의 킬러로서 교육된 그는 여자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세뇌에 가까운 교육까지 받은 남자였다. 여자를 유혹하는 법. 여자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법. 여자를 역으로 이용하는 법까지···. 하지만 그런 세뇌에 가까운 교육들도 다 소용 없었다. 첫 눈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 버린 순간···. 창은 이미 이보영에게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저주에 걸린 것이었다. 다만, 그것은 창에게 있어서일 뿐. 이보영에게 있어서 창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지옥과 같은 상황을 타개 할 수 있는 유일한 도박패였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창은 더욱더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조직의 2인자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수도 없이 조직의 보스에게 이보영을 요구했지만···. 조직의 보스는 이보영을 창에게 주는 것 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다. 보스가 이보영을 아끼거나 애착을 가져서? 절대 아니었다. 이보영은 수시로 창 이외의 간부들에게 안기기도 해야 했다. 심지어는 연회장에서 창이 보는 앞에서 보스에게 안겨야 할 경우도 있었다. 모든 것은 의도된 결과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창이 이보영을 사랑한다는 것 정도는 다 알 수 있었다. 능력이 뛰어난 부하일수록 그 부하를 잡아둘 목줄은 더욱더 단단한 것이어야 했다. 보스는 이보영을 목줄 삼아서 창을 유능한 사냥개로 길들이려고 한 것이었다. 배부른 개는 사냥개로 쓸모가 없으니 항상 배고픈 상태로 만들고 아주 가끔씩만 먹이를 준다. 야만적이고 비열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길들이기에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다만···. 그 보스라는 자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목줄에도 의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보영은 다른 여자들처럼 지금의 신세에 체념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계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창이라는 남자를 통해서 잡은 것이다. 창이라는 남자에게 안길 때 마다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온전하 그만의 것이 되었으면 한다고 속삭였다. 사랑에 눈이 먼 남자에게 이보영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아픈 말들이었다. 그리고 이보영은 서서히 창의 충성심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창의 마음 안에서 자신의 사랑이 조직에 세뇌된 충성심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순간···. 이보영은 결정타를 날렸다. 평소처럼 그에게 안기고 나서 떠날 시간이 되자 이보영은 처연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보스가 있는 이상···. 전 영원히 당신의 것이 되지 못할 거예요.” “보영·····.” 눈물 짓는 이보영을 보는 창의 시선에는 안쓰러움이 절절이 묻어나고 있었다. “전, 언제나 당신의 품안에서 웃을 수 있죠? 아니면, 당신도 그저 절 가지고 놀았을 뿐인가요?” “보영. 절대 아니야. 난 정말로 널 사랑해.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내 진심이야.” 창은 이보영의 어깨를 잡고 절규하듯이 외쳤다. 하지만 이보영은 창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거짓말···. 결국 당신도 절 놀렸을 뿐이에요. 이런 더러운 여자····. 누가 원하겠어요?” “아니야. 그 누구도 내 앞에서 당신을 더럽다고 하면. 맹세코 그 놈과 나.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할 거야.” “왜요? 전 실제로 더러운 여자인데···. 지금만 해도 당신을 떠나면 전 다른 남자에게 안겨야 해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아나요? 사랑하는 당신을 두고 다른 남자들이 내 몸을·······.” 이보영은 차마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 이보영을 보며 창은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가슴을 누가 잡고 쥐어뜯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창이라고 좋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조직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창이 방심한 틈을 타서 이보영은 침대의 옆에 있는 날카로운 촛대를 집고는 자신의 목으로 향했다. “뭐 하는 거야!!!?” 창은 재빨리 이보영의 손을 잡아서 말렸다. 그녀의 자살을 말린 창은 이보영의 어깨를 잡고 화를 내며 외쳤다. “왜!!!? 왜? 죽으려고 하는 거야? 당신이 죽으면 난 어떻게 살라고!!!?” 창의 말을 들으면서 이보영도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하다못해···. 하다못해 죽지라도 못하면 제가 어떻게 당신 옆에 있죠?” “·············.” 창은 이를 악물었다. 어려서부터 조직에서 킬러로 자란 그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뼛속까지 심어진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 세뇌의 사슬의 일부가 끊어져 버렸다. “어디도 가지 마. 여기에 있어.” “···창·····.” “내일 아침까지만 기다려. 그럼···. 더 이상 너에게 고통은 없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당신···. 설마···?” “··········.” 창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전화를 들어서 자신의 직속 부하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날 따를 녀석들에게는 모두 연락해서 준비 시켜라. 그리고 간부들의 위치와 보스의 위치까지 모두 알아내라. ·····놈들은 내가 처리한다.” 창은 결국 조직에서 반란을 기획한 것이었다. 이미 전투 부대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그에게는 충분한 승산이 있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이보영에게 다가가서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 “하루만 기다려. 그럼. 네 인생을 바꿔 줄게.” “········예. 딱 하루만 더 당신을 믿어 볼게요.” 그리고 창은 이보영을 방에 놔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가 나가자마자 이보영의 눈은 날카롭게 변했다. “믿어는 보겠어. 당신이 네게 유용한 장기말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이야.” 결과적으로···, 창은 약속을 지켰다. 그는 조직의 반란에 성공했고 이보영을 온전히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다. 창의 반란이 성공했다는 것은 이보영의 도박이 성공했다는 말과 같았다. 온전히 창의 여자가 된 이보영은 배갯머리에서 창의 귓가에 속삭이면서 하나하나 자신의 목적을 이뤄갔다. 가장 먼저 자신의 동생인 이지영을 찾고···.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을 지옥으로 마들었던 자들을 하나하나 처리해갔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처리한 존재는 자신을 이 조직에 성노리개로 팔아 넘겼던 인신매매범이었다. 한때는 양부라고 부르면서 따랐던 존재였다. 비록 그 모든게 거짓이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에게 느끼고 있는 배신감은 이보영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깊은 상처 중에 하나였다. 그를 붙잡은 후 이보영은 창에게 부탁해서 그를 가장 잔인하게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창은 이보영의 부탁에 충실하게 응했다. 손수 놈의 이빨과 손톱 발톱을 모두 뽑고 눈과 혀를 뽑아서 출혈 부위를 불로 지졌다. 그 상태로 아슬아슬할 때까지 살려둔 다음 죽기 직전에는 전신의 피부를 벗기고 그대로 소금 단지에 던져 버렸다. 죽어가면서 이보영에게 잘못을 애원하는 그 남자를 보면서도 이보영은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나와 내 동생이 겪은 지옥을 똑같이 체험 시켜 줄 수 없는게 한이다.’ 동정의 여지는 없었다. 그 후··. 이보영은 결국 망가진 동생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절망에 빠졌고···. 결국은 악마와 거래를 한 후에 그라운드 제로로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이보영이 기억하는 창과의 기억의 전부였다. 그녀로서는 여기서 더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창이라는 남자의 집념은 이보영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이보영이 사라진 것을 안 순간···. 그는 절망에 빠졌다. 처음에는 찾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결국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실의에 빠진 창의 절망은 마치 세상을 잃은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악마가 나타났고···. 결국 그 역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보영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한 가지 소원을 품고서 말이다. 사실, 둘이 같은 나라의 인물이었다면 아마 같은 서버에서 활동하면서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둘은 서로 다른 서버에 들어갔고···. 이보영은 여러 가지 운에 노력이 더해져서 월드 서버에까지 진출하게 되었지만 창은 중국 서버에서도 레벨 60대 정도에 그쳤을 분이었다. 창의 경우 아이템이라던가 이벤트라던가? 운이 잘 따르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그라운드 제로에 이보영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수색 활동을 겸하다 보니 미처 레벨을 잘 올리지 못한 것이다. 현실에서 킬러 출신이었던 그의 경력을 생각하면 고레벨 유저가 될 자질은 충분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가 더 해져서 결국 둘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만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둘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서로 만나게 되어 버렸다. “············.” “············.” 장소를 옮긴 둘은 카페를 앞에 두고 서로 자리를 마주했다. 홍린은 이보영과 창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단 한 발 물러났다. 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라고 그녀의 본능이 충고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둘은 단 둘이서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둘의 표정은 상당히 상반되어 있었다. 창의 얼굴에는 감격과 희망이 서려 있는 것에 반해서····. 이보영은 창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자신을 앞에 두고 그저 감격스런 미소를 지으며 바라만 보고 있는 창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결국 짜증이 난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그래요?” “사랑해.” 순간 이보영은 자신의 안에서 뭔가가 울컥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 보라고 하니 바로 하는 말이 사랑해? 이 남자는 제정신인가? “당신···. 제가 당신을 이용했다는 것도 아직 모르겠어요.” “그건 알아. 하지만 상관없어.” “········미쳤군요.” 이보영은 어이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이 둘의 과거는 전에도 간략하게 소개 했었지만... 사실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다시 한 번의 자세한 묘사가 필요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399화 <절망적인 양자택일> 그라운드 제로의 NPC들 조차 어장관리하다 들키면 역정을 내고는 했다. 창은 이보영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이용당한 인물이다. 물론 그의 원래 인생 자체가 차이니즈 마피아의 암살자라는···. 그다지 좋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보영이 그를 이용하고 단물만 빼 먹고 떠났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창이 이보영을 사랑한 마음의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도 이보영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애당초···. 수많은 남자들을 사랑하는 척은 했지만, 단 한 번도 남자를 사랑해 본 적은 없는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그런데도 창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녀는 과연 이 남자의 머릿속에 뇌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지···. 생각은 하고 사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됐고, 원하는 것이나 말해요. 그걸로 우리 사이의 빚은 없는 것으로 하죠.” 그래도 양심이 있는 이보영은 창에게 한가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다. 어쩌면 그녀의 뿌리 깊은 남성혐오증이 남자에게 빚을 만들어두는 것을 찝찝하게 생각하기에 그런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보영의 말에 창은 주저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내가 천번을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야. 보영, 난 당신의 사랑을 원해.” 창의 말에 이보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그딴 것 말고 좀 쓸만한 걸로 말해요. 난 이 연맹에 말 발이 좀 통해요.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예전에 당신이 가지고 있던 조직보다 훨씬 더 거대한 세력을 당신에게 안겨 줄 수도 있어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적어도 정운이 이보영을 누님이라고 부르는 한은··. 그녀 역시 정운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연맹의 권력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과거에는 창이 이보영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서 반대가 되어 버렸다. 이보영은 가능하면 창이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원하기를 바랬다. 그래야 뒷맛이 개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창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 뿐이야.” “미안하지만···. 난 사랑 따위는 없어요. 당신, 내가 단 한 순간이라도 당신을 사랑한 적이 있다고 생각했나요?” “····보영. 난···.” “아아··. 미안하네요. 착각하게 만들어서. 여기서 제가 확실하게 말해 줄게요.” 이보영은 창의 눈을 사나운 시선으로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난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 내 처지 기억해? 난 그 돼지의 명령만 떨어지면 누구에게나 가서 안겨야 했어. 실제로 당신도 그런 내 위에서 재미 좀 봤잖아?” “·············.” “그냥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포기 해. 그렇게 생각 하는게 편할 거야.” 이보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은 그런 이보영의 손을 덥썩 잡아서 말렸다. “보영, 이렇게 보낼 수는···. 큭!!” 이보영은 창의 손을 잡아서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창을 보면서 말했다. “좀 놀랍지? 한때는 내가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서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했는데····. 이제는 형세가 역전되어 버렸어.” 이보영은 실제로 묘한 기분이었다. 예전과 완전히 바뀌어 버린 힘의 상관관계가 그녀를 묘한 기분에 젖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창의 비틀린 팔을 잡고 한쪽으로 휘둘렀다. 후웅!!! 콰앙!!! “크으윽·····.” 마치 인형처럼 날아간 창을 보면서 이보영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무슨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포기 해. 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그리고 그녀는 널부러진 창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떠났다. 하지만, 멀리서 그녀를 보고 있는 시선을 그런 그녀를 보며 반짝이고 있었다. “저 남자가 창이란 말이죠?” “예. 최근에 제 부하로 거둔 남자입니다.” 홍린의 보고를 받으면서 정운의 입가는 씨익 하면서 올라갔다. “보영이 누님을 끌어들일 으뜸패가 손에 들어온 것 같네.” 이보영은 짜증이 잔뜩 났다. “빌어먹을···. 뭐 이래? 이게 도대체 무슨 엿 같은 경우냐고?” 짜증을 내는 이보영을 보면서 그녀의 동생을 자처하는 여자들을 햄스터처럼 한쪽에 모여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언니께서 왜 저러시지?” “나도 몰라···. 한우리 연맹의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고 난 후에 저렇게 되었는데····.” “혹시···. 언니께서 뭔가 안 좋은 조건이라도 강요 당하고 계신 건가?” “·····역시, 그때 보내는게 아니었어.” 이보영을 따르는 여성들을 그녀의 고뇌의 원인을 박정운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 짚은 일이었다. 지금 이보영의 머릿속에 정운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끽해야 1% 정도? 천하의 한우리 연맹의 대표라는 박정운의 존재감도 지금 그녀의 안에서는 미미했다. 지금 그녀를 짜증나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창이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이보영을 설득하기 위해서 정운은 창을 직접 이보영이 살고 있는 도시쪽으로 보냈다. 정식 명칭은 도시 치안 순찰대의 조장에 임명해서 이보영과 같은 도시에 부임하게 했다. 한국으로 치면 경찰 서장 정도 되는 위치를 만들어서 보낸 것이다. 당연하게도 창은 그런 정운의 배려(?)를 몹시도 감사했다. 사실 정운이 보내주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갔을지 모른다. 물론 신의 맹세가 있는 이상 부대 이탈은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어떤 무모한 시도를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것 없이 정운은 창을 홍린의 부하에서 해방 시키고 스스로 이보영의 옆에 있도록 부임지도 바꿨다. 창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정운은 창을 보내면서 이보영을 설득 하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겠군.’ 직접 창이라는 남자를 만난 순간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필요가 없는게 아니라··. 말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일 것 같았다. 이 남자는 설령 정운의 말이라고 해도 이보영에게 해가 될 일은 절대 하지 않을 남자였다. 물론 정운이 이보영에게 뭔가 해꼬지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현 의지를 뒤집으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창의 입장에서는 그것조차 용납 할 수 없는 기준인 것이다. 정운이 슬기나 세레나를 사랑하는 것 처럼···. 창 역시 이보영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정운은 창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냥 곁에 있기만 해도 지금처럼 꽁꽁 틀어박힌 이보영의 마음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은 정운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보영을 찾아갔다. 비록 이보영은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지만 전혀 굴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같은 하늘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창은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이보영을 만나기 위해서 그녀의 집앞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언니는 만나지 않겠다고 전합니다.” 여전히 이보영의 동생들의 제지에 걸려서 사랑하는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편지와 꽃을 그녀들에게 전달하면서 말했다. “이거라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힘을 써서라도 강제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던 정운과 달리 창은 그냥 순순히 물러났다. 물론 창도 마음먹으면 상당한 수준의 강자였다. 레벨 60이라는 말은 과거 그라운드 제로로 치면 삼대길드의 중간 수준 간부는 된다는 말이었다. 이보영을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여자들과 싸운다면···, 적어도 1대1로는 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보영을 만나는 과정에서 힘을 쓸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물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이 되면 또 찾아온다. 그 다음날이 되면 또 찾아오고···. 또 다다음 날이 되어도···. 결코 거르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창의 태도는 이보영 본인은 몰라도 그녀를 따르는 동생들에게는 서서히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지극정성이긴 하네···.” “언니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대단하다.” “그러게····.” 남자들에게 큰 상처를 받은 그녀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창의 헌신적인 태도는 그녀들의 차가운 마음을 서서히 녹여가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창이 정조준 하고 있는 이보영의 마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버려.” “····정말요? 편지 정도는···.” “됐어. 다 버려. 태워 버려.” 창이 보낸 꽃다발과 편지를 받은 이보영은 주저없이 그것들을 폐기해 버렸다. 단 한 번도··. 편지의 문장 한 줄도 읽어준 적이 없었다. 그냥 그대로 버려 버렸다. 그런 이보영의 태도에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여동생들이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보영은 온갖 짜증을 다 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남자가 자존심도 없나? 이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되 먹은 남자야.” 이보영에게 있어서 창은 불편한 존재였다. 기본적을 자신이 빚을 진 존재이기도 했고···.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남자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하루하루를 짜증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안 되겠어····. 무슨 수를 써야겠어.” 결국 그녀는 이 만렙 스토커를 어떻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저녁···. 창은 이보영과 만났다. 연인처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만나는 그런 로맨틱한 만남은 아니었다. 이보영이 창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고 그리고 창은 부름을 받자 마자 쪼르르 왔을 뿐이다. “····보영·····.” 창은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도 이보영의 앞에서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떨어져 있던 어린애가 잃어버린 엄마를 찾은 것 처럼···. 그렇게 순수한 기쁨을 보이는 그를 보면서 이보영은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앉아.” 이보영이 앉으라고 말하자 창은 그대로 앉았다. 그리고 그런 창을 보면서 이보영이 말했다. “당신, 내가 원하는 것 하나는 들어주겠다고 했었지?” “그랬지. 하지만 보영···.” “아, 됐어.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닭살 돋게 사랑 운운하는 헛소리는 하지 마.” “·············.” 이보영은 창의 말문을 닫아 버리고 말했다. “결국, 날 원한다는 거지? 좋아. 그럼 가져 봐.” 그리고 자리에서 이보영이 일어났고 창의 앞에 서서 자신의 옷을 벗어가기 시작했다. “보영·····. 나··.” “시끄러. 닥치고 기다려.” 이보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옷을 다 벗고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나신은 달콤한 향이 풍기는 화이트 튤립을 연상시켰다. 창은 그런 그녀의 몸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전에 수도 없이 망막에 새긴 나신이었고··. 또 실제로 품에 안기도 했었던 나신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신 본 그녀의 나신은 창의 넋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만지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하얀 피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매혹적인 여성의 굴곡.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나신이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창의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 반대로 그런 창을 바라보는 이보영의 시선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자···. 여기 내가 있어.” “············.” “이제 하고 싶은대로 해 봐.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로 딱 결정 짓자고.” 이보영의 말에 창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보영···. 나는··.” “개 소리 하지 마.” 이보영은 날카로운 눈을 하고 창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 창을 마치 관통할 것 같은 강렬한 눈초리로 노려봤다. ============================ 작품 후기 ============================ 같은 남자로서 쓰면서도 창이 참 불쌍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00화 <잔인한 조건> “·············.” 창은 그런 이보영의 시선에 뭐라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권위는 옷 위에 걸치는 것이라서 인간은 알몸으로 있는 동안은 그 권위를 내려놓게 된다고···. 하지만 그 말은 이보영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신의 나신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했다. 오히려 당당함을 넘어서 오만함마저 옅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분위기가 아름다운 나신과 어울어져서 오히려 더 엄숙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이보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랑을 원한다느니···.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느니····. 그 따위 개소리 하지 마. 진심으로 구역질 나니까.” “············.” 창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보영을 바라봤다. ‘이 여자를···. 내가 사랑하는 이 여자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창은 이보영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서 생각하면···. 남자의 사랑을 순순히 믿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자라는 대상은 항상 성욕의 화신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창이 아무리 그녀에게 사랑을 준다고 해도 이보영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을 모르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을 준다고 해도 모르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사이의 사랑을 이해하기에는··. 그녀가 지나온 인생이 너무나 기구했다. 결국····. 아무리 갈구해도···. 아무리 애원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창의 사랑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안타까움과 허무함, 심지어는 서러움까지 느끼게 하는 이보영을 보는 창의 시선은 오만가지 감정이 다 섞여 있었다. 그런 창을 보며 이보영이 말했다. “여기가 마지막이야. 만약 여기서 날 안으면···. 그래, 당신 내킬 때마다 날 품게 해주지. 내가 당신여자가 되어 주겠다는 거야. 기쁘지? 당신이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거야.” “···········.” 기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몸을 안는다고 해도 그 사람의 몸일 뿐. 마음은 전혀 응하지 않는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 아닌가? 확실히··. 남자는 사랑 없이도 여자를 안고 거기서 쾌락, 혹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생물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하는 여자를 안을 때에는 그녀의 마음까지 함께 하지 않으면 전혀 행복할 수 없다. 오히려 지옥과 같은 고독감에 진저리를 치게 될 뿐이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네····.” 이보영은 창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마음에 안 든다면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기는 있지. 내 마음을 원한다면···. 날 반하게 만들어 봐.” “····그게 무슨 말이야?” 창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고 그런 창에게 이보영이 말했다. “기억 안 나? 내가 그래도 당신에게 반한 척이라고 할 수 있었던 시절? 그 시절의 당신은 위에 아무도 없었어. 조직의 톱이 되어서 나를 마음껏 취할 수 있었던 시절이지.” “···기억은··. 하고 있어.” 말을 하는 창의 얼굴을 혓바닥을 씹어 먹고 있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창에게 있어서 그 시절의 기억은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는 시절이었다. 확실히 그 시절은 행복했다. 드디어 사랑하는 여자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자신 뿐이라는 것을···. 이보영은 그저 자신을 이용했던 것 뿐이다. 자신은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타인에게는 그저 위선이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시절을 생각 할 때마다 고통에 심장이 아파왔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때가 창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을 얻었던 시기인 것은 사실이다. 창은 순간 이보영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설마···. 보영, 당신?” “그래. 난 최고의 남자를 원해. 그러니···.” 이보영은 창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정운이를 이겨 봐. 그럼, 적어도 겉으로나마 당신을 사랑하는 척 해 줄 수 있어. 당신도 알지? 나 연기 잘 하는 것.” “···········.” 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창이 정운에게 도전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불가능. 가타부타 말도 필요 없었다. 그냥 불가능이었다. 절대 불가능이었다.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상대였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해도 그것보다는 좀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자, 어쩔거야? 나랑 재미 볼 거야? 원한느게 몸 뿐이라면 난 상관없어. 마음껏 즐겨. 당신도 알지? 내 몸은 남자를 기분좋게 하는것에 아주 능숙하다고.” “···············.” 이보영이 노골적으로 유혹했지만···. 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이보영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체로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창에게 말했다. “아니면···. 무모한 도전이라도 해 볼거야? 장담하건데 그랬다간 죽을 걸? 정운이는 절대로 일부러 져주지 않아. 그 녀석에게도 한우리 연맹은 꼭 필요하거든.” 사실 그냥 져 달라는 것 정도라면 그냥 짜고 치기로 해 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보영이 단 조건은 창이 정운을 누르고 이 한우리 연맹의 톱으로 올라가라는 것이었다. 정운인 그걸 들어줄 리는 없다. 정운에게 있어서 이 한우리 연맹은 귀환자들을 구제하고 관리하자는 목적도 있지만····. 가장 큰 목적은 이 한우리 연맹의 힘을 모아서 파우스트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로 연맹의 대표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즉, 이건 무한 고문이었다. 그냥 절망만 준 것이 아니라 절망만큼 더 고통스러운 희망까지 안겨준 것이다. 여기서 이보영을 안는다는 선택지를 택한다면···. 적어도 그녀의 껍데기나마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마음은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다. 같이 한 이불 덥고 살을 비비며 살다 보면 어느새 정이 든다? 그런 결과는 바랄 수 없었다. 적어도 이보영에게는 절대 바랄 수 없었다. 이보영에게 있어서 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것은 어제 어디 식당에 가서 밥 먹었었지··. 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금방 잊어 버린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일 뿐인 것이다. 창이 아무리 그녀를 원한다고 해도···. 그녀에게 있어서 창은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남자중에 하나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이미 창은 이보영에게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조금 특별한 위치에 있다. 적어도 아주 조금의 죄책감과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를 안아 버리면 그때는 이제 창에게도 그 조금의 특별함 마저 사라져 버린다. 그렇다고 정운에게 도전을 한다면? 그건 무모한 자살행위일 뿐이다. 레벨 60대인 창이 정운을 이긴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 했다. 결국, 이보영이 제시한 것은 어디를 택해도 절망밖에 없는 잔인한 선택지인 것이다. “················.” 말 없이 침묵하고 있는 창에게 이보영은 한숨을 내쉬듯이 말했다. “어쩔거야? 빨리 선택 해.”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줘.” 창의 말에 이보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 이보영은 내심 생각했다. 이제 이 인간이 다시 얼굴을 내밀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창이 나가고 난 후에 이보영은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은 시원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제는 저 인간 얼굴 안 봐도 되겠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몇 주 후···. 이보영은 정운에게 연락을 받았다. “뭐라고···? 잘 안들려.” -잔말 말고 신도시로 와요. 안 그러면 제가 찾으러 갑니다. “····핸드폰 개통되고 나니 더 불편해 졌어.” 투덜 거리는 이보영의 목소리에 정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빨리 오기나 와요. 나도 이런 찰거머리는 처음 봤으니까····. 이제 짜증날 지경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운의 말에 이보영은 약간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설마···. 그 인간이 찾아갔다고? 아니, 하지만, 정운이하고 싸웠다면 초살이었을 텐데····.’ 의문스러워 하는 그녀에게 정운은 무조건 오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이보영 역시 찝찝한 마음에 결국 신도시 쪽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빨리 이동하려면 이제 막 다니기 시작한 시외 버스보다는 그녀 본인이 달리는 편이 훨씬 더 빨랐다. 그녀는 정말 바람처럼 달려서 신도시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해서 본 것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야.” “보면 모릅니까? 누님 남자 좀 말려봐요.” 만사가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정운과, 그런 정운에게 피떡이 되어 있는 창이었다. 창이 정운을 찾아온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날부터 정운과 쉬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듣고보니 이보영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마음 먹으면 1초만에 끝일 텐데···?” 이보영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시합전에 정한 바보같은 룰만 아니면 그랬겠죠?” “룰?” “예. 괜히 낚여 가지고····.” 투덜거리는 정운을 보면서 이보영은 다시 말했다. “무슨 룰을 정하고 싸운거야.” “저하고 싸우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을 달더라고요····.‘ 그리고 정운은 창과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투? 나하고?” “예. 그렇습니다. 부디 상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회담 신청을 하더니 뜬금없이 결투를 신청한다? 정운은 창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미친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일인거지?’ 결국 이해를 할 수 없는 정운은 순순히 창에게 사정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상황 좀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당신을 이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요? 저한테 뭐 감정이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뭐에요? 이유 없으면 결투 따위는 물 건너 가는 거예요. 이유라도 알고 싸웁시다.” 결국 정운의 거듭된 추궁에 창은 이보영과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다 들은 정운의 반응은····. “보영이 누나 완전 악녀 작렬일세···.” 라는 푸념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푸념을 들은 창은 바로 반박했다. “그녀는 악녀 따위가 아닙니다.” “············.” 악녀에게 당하고 있는 호구들을 항상 저런 말을 하는 법이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한다고 해도 창이 마음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지금 저한테 이기기 위해서 덤빈다는 겁니까?” “······그녀가 원하니까요?” “당신 미쳤군.” 이제까지 누님으로 부르는 이보영의 얼굴을 봐서 창에게 존댓말을 쓰던 정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혹시 져주기를 바라는 거라면··.” “그건 아닙니다. 그녀는 제가 당신을 이기기를 바라니까요.” 창은 정운의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정운은 그런 창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기 여자 앞에서 폼 잡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죽으면 다 소용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앞니다. 그러니···. 당신과 나의 격의 차이를 생각해서 딱 하나만 핸디캡을 달아줬으면 합니다.” “····핸디캡? 무슨 핸디를 말입니까?” ============================ 작품 후기 ============================ 이사 이후에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 겹치네요. 출판본 작업하고 E북 작업까지... 정말 면목 없지만 이달 중에 이틀 정도는 더 쉴지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될 수 있으면 휴재 없이 연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01화 사실 둘 사이의 차이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핸디캡은 별 의미가 없다. 스킬 봉인? 아이템 사용 금지? 한쪽 팔만 사용하기? 솔직히 이 정도로도 둘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창이 꺼낸 조건은 딱 하나였다. “제 목숨의 보전, 그리고 전투의 승패는 오로지 본인의 의지로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흠, 그거면 되겠습니까?” “예.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정운은 창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일단 죽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승패의 결정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 짓는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정운과 장기전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 정도의 핸디캡이라면 받아주죠.” 이때까지만 해도 정운은 솔직히 얕보고 있는 면이 있었다. 창이라는 남자의 의지를 말이다. “그날부터 열흘이 넘도록 나한테 수십 번이나 사지가 토막 나고 죽음의 직전까지 박살이 났습니다. 중간부터는 짜증이 나서 저도 아주 자근자근 밟았거든요.” 정운의 말대로 창의 전신은 엉망진창이었다. 이보영은 그런 창을 보고 정운에게 다시 말했다. “잠깐만···. 저 정도로 의식불명이 되면 본인의 의지가 어떻든 간에 일단 전투는 불가능하잖아? 그런데 왜···?” “저길 보십시오. 슬슬 시간이니까.” 정운이 그렇게 말하며 창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쪽에서 창의 몸에서 서서히 빛이 나더니 전신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저건?” “저 남자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유니크 스킬이라고 하더군요. 전투 중에 어떤 부상을 입어도 두 시간 간격으로 완벽하게 회복해 버립니다.” 무한회기(無限回期) LV.3 (죽음에 처한게 아니라면 두 시간 간격으로 모든 대미지를 회복 할 수 있다.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시간의 간격은 짧아진다.) “그래서··. 저 꼴이 되었다가 다시 박살났다가 하는 걸 무한 반복하고 있다고?” “설마 그런 스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정운도 창에게 저런 스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지구전 같은 전투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스킬 하나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정운의 손에 의해서 죽는 것 보다 더 고통 스러운 공격들을 엄청나게 받아 들였다. 보통의 멘탈 이었다면 포기를 해도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창은 승기가 없는 실날 같은 상황에서도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 정운의 인생에 있어서 자신보다 약한 상대하고 싸우면서 이렇게 질려버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그라운드 제로로 돌아가서 몹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이 무한좀비와의 의미 없는 사투를 그만두기 위해서 이보영을 직접 호출한 것이다. 더 이상 싸우다가는 정신적으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정운은 정색을 하고 이보영에게 말했다. “누님, 멋대로 날 내기의 대상으로 쓴것에 관해서 변명 하는게 편합니까? 아니면 저 좀비를 멈추는 것이 편합니까?” 정운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둘 다 불편한데····. 응?” 이보영은 머리를 긁적 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아직 자신과 대화중인데 창이 정운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공격이 정운을 향해서 날아갔다. 물론 정운은 그 공격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유유히 피했다. 손에 들고 있는 짧은 단창을 찔러서 정운을 공격한 창은 첫 공격이 빗나가자 그대로 무기를 중국식 대도로 변화 시켜서 정운을 맹렬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쯧···.” 정운은 익숙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창이라는 남자의 무기는 볼링공보다 약간 큰 크기의 은색의 구체였다. 그렇다고 그 구체를 직접 던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쇠구가 여러 가지 형태의 무기로 변했었다. 질량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형태 변화는 제한이 없는 것 같았다. “하도 오랫동안 같이 싸우다 보니 이제는 패턴이 다 외워 지네···.” 정운은 자신의 오른쪽에서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도를 피하며 상대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기를 잡은 손목을 잡고 그대로 뒤로 꺾어 버렸다. 뚜둑···. “읏····.” 후우웅!!! 창은 어깨 관절이 부러지는 고통에 본능적인 격통음을 냈지만··.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느새 반대편으로 바꿔진 무기로 포기하지 않고 정운에게 휘둘렀다. “진짜 짜증나게····.” 정운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쉐도우 스피어!!!” 파파파파팟!!! 정운의 특기인 그림자의 창날이 창의 발 밑에서 그의 전신을 꿰뚫었다. 팔과 다리. 그리고 복부까지··. 딱 죽지 않을 정도로 공격을 한 정운은 그대로 창을 한쪽에 던져 버리면서 말했다. “찝찝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시체에 칼질하는 기분이네. 진짜 이제는 지겹다.” 전투 자체는 순식간에 끝났다. 애당초 정운과 창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보영은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저 남자 왜 저래? 정신이····.” “아아···. 어제 쯤인가 부터 저래요. 말도 없고 그저 싸우고 회복하고 싸우고 회복하고···. 저것만 반복하고 있어요.” “············.” 정운의 말에 이보영도 눈살을 찌푸리며 창을 바라봤다. ‘요령 없는 남자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보영은 한숨을 내쉬며 창에게 다가가서 그 남자를 짊어졌다. “그럼, 데리고 간다.” “괜찮아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괜찮아. 어차피 안 괜찮으면 뭘 어쩌겠어?” 그렇게 말하며 창을 데리고 가는 이보영을 보며 정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보영이 누님이 남자 챙겨주는 것은 처음 보는데?’ 어쩌면 그녀의 안에서 작은 변화가 벌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정운이었다. “으으···. 으···.” 창은 고통에 신음하면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절벽을 향해서 계속해서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부딪히고 부딪혀서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절벽은 굳건하기만 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 따위는 한줌의 바람만큼도 가치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지독한 절망감과 좌절감 속에서 좌절하던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나···.” “으으····. 읏!!!” 너무나 익숙해서 설사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 목소리를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목소리에 창은 눈을 떴다. “일어··. 아! 이제 일어났네.” “····보영.” 창은 자신의 옆에 있는 이보영을 보면서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나는···. 진건가?” “그···· 뭐, 그렇다고 치는게 맞겠지.” “·············.” 엄밀히 말해서 진 것은 아니었다. 지독한 고통과 쇼크로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창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보영은 굳이 그런 정정을 해주지는 않았다. 여기서 아직 진게 아니라고 하면 또 정운에게 달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창의 얼굴은 비통함으로 일그러졌다. 사실 싸우는 중간부터 깨닫고 있었다. 혹시나, 어쩌면, 그래도. 그런 만에 하나를 기대하게 하는 단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전혀 없었다. 마치 답이 정해져 있는 하나의 진리와 같았다. 자신은 절대로 박정운에게 이길 수 없다. 그 잔인한 현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희망이 완전히 짓뭉게진 창을 보면서 이보영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지.” “···········.” “당신, 도대체 왜 나라는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보영의 말에 창은 스스로 자문했다. 왜? 자신은 이보영을 좋아할까? 창은 그렇게 어리석은 남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보영에 대한 자신의 집착은 좀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착의 이유를 생각한 결과····. “이유는 없어.” “····없다고?” “그래. 없어. 당신이 나를 속였다고 해도··. 당신이 나를 경멸한다고 해도···. 설사 당신이 내 목숨을 끊어버리는 그 순간까지 난 당신을 사랑할 거야.” “············.”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그냥 당신을 사랑해. 그렇게 밖에는 설명을 못하겠어.” 보통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남성혐오증을 가지고 있는 이보영은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하며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남자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건 진심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진심이라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었다. 다른 남자라면 모르겠지만 이 남자의 말에는 틀림없는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박정운을 상대로 도전한다? 비록 핸디캡을 달기는 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실 이보영도 정운과 싸운다면 10분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런데 자신 보다 훨씬 더 약한 창이 정운에게 도전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남자가 싫은 그녀라고 해도···. 이 정도의 진심을 받았다면 거기에는 진심으로 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난····. 난 남자가 싫어. 그리고, 당연하지만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아.” 이보영의 말에 창은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 할 것 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를 원하지는 않았었다. 그런 그에게 이보영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을···. 창 당신을 내 유일한 친구로 여길 수 있을지는 몰라.” “·····친구··? 라고?” “그래. 남자를 무척 싫어하는 나지만, 당신에게라면, 최소한의 마음을 열 수는 있어.” “··········.” “그렇게 얼빠진 표정으로 보지 마. 나도 이 나이 먹고 친구 운운하는 것 쪽팔리니까··. 차라리 섹스 프렌드가 더 쉽겠···.” “하겠어.” “···뭐? 정말? 나하고 섹스 못하는 건 알고 대답하는 거야?” 이보영의 말에 창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당신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설사 당신의 노예라도 상관없어.” “···멋대로 해.” 결국 이보영은 백기를 들었다. 그녀 인생에 처음으로 남자를 자신의 곁에 두고 마음을 열기로 한 것이다. 절대 철벽과 같은 장벽이···. 아주 조금이지만 문을 열었다. 그 틈을 어떻게 열어갈지는 앞으로 창이 할 일이었다. 파우스트 타도. 이건 정운과 목표이자 한우리 연맹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떻게 해야 파우스트를 이길 수···. 아니 어떻게 해야 파우스트와 싸울 수 있는지도 정보가 막막했다. 적어도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가시밭길이긴 했지만 길이라도 똑바로 나 있었다. 100층까지 돌파하면 거기서 파우스트를 상대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파우스트의 꼬리조차 안 잡히고 있었다. 유일하게 천계에서 제시한 길은 저쪽 세계에서 파우스트의 영향력을 없애는 것이었다. 저쪽 세계에서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파우스트였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서 신이라기 보다는 운영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저쪽 세계에서 파우스트의 영향력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파우스트의 힘은 약해진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디에선가는 파우스트의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운이 이렇게 생각했다. “세계 정복을 해야 겠군.” 이라고 말이다. 마치 중국집에 짜장면 시켜야겠군.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긴 신에게 도전하는 정운에게 있어서 세계 정복 정도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 브로드 왕국을 흡수하고, 신도시의 기반도 다져지기 시작했다. 정운은 이제 슬슬 나라의 건국을 선포하려고 했다. 물론 한국에서 완전히 독립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에 대한 소속감이 강한 박추성이나 한중겸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까지 그렇게 할 이유는 없었다. 자치정부 가우리. 이것이 정운이 택한 형태의 건국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보영 파트는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완전 결판이 난 것은 아니지만 더 끌면 스토리가 늘어지니 이 쯤에서 일단락 짓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02화 <건국 가우리>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나라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치 정부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지구의 나라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운이 신세계에서 개척하고 있는 영토와 자원은 엄연한 대한민국의 소유이다. 이것은 별로 변한게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안에 따로 자치정부를 만든 것. 그것이 바로 정운이 생각하고 있는 새로운 나라인 자치정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자치정부라는 모습은 신세계에서는 엄연히 다른 위치에 있다. 신세계에서는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엄연한 나라인 것이다. 지구에서의 모습과 이계에서의 모습. 양쪽에 서로 다른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라가 아니라 자치정부라는 모습을 취한 것이다. 정운이 이 계획을 발표하고··. 한국 정부에서는 며칠 후에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신세계의 특수한 환경과 게이트 방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자치정부 가우리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향후에도 국익에 이익이 되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다 할 것을 다짐합니다.] 말은 청산유수였지만···. 사실 한국 정부로서는 이런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신세계를 한국 정부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게 가능한 것은 오로지 정운과 한우리 연맹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치정부를 내세우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주변국가들 뿐이다. 한우리 연맹의 박정운에게 접근하고 싶어 하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었다. 한우리 연맹의 대표가 한국인이고 그로 인해서 그가 한국에 상당한 이익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그렇게까지 애국심이 깊은 인물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자신들이 더 좋은 조건으로 로비를 해서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국가는 널리고 널렸다. 물론 정운은 귀찮아서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노리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운이 하는 행동에 딴지를 걸 정도로 한국정부는 멍청하지 않았다. 사실 이익도 있었다. 자치정부를 순순히 허용해준 대가로 정운은 한국 정부에 소정의 세금을 내기로 했다. 이제까지 정부가 정운에게서 얻어낸 이익은 대부분 직접적인 이익이 아니라 간접적인 이익이었다. 자원을 수입한다거나, 혹은 한국의 기업을 신세계에 진출 시켜주고 거기서 수효와 수익을 동시에 창출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그것만 해도 충분히 큰 이익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한국 정부의 위상은 몇 단계나 상승했다. 하지만 정운이 직접적으로 정부에 세금을 내겠다고 한 것은 큰일이었다. 정운이 내는 세금의 양도 엄청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로서도 자치정부가 한국 산하에 있는 정부라는 것을 어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 정부를 완전히 납득시킨 정운은 게이트 너머에서도 본격적인 건국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슬슬 나라의 틀과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국가의 중심이 되는 수도를 정하는 것이었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아니 쉽다기 보다는 어차피 선택지가 하나 밖에 없다고 하는게 정확할 것이다. 신세계에서 수도로 정해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은 딱 하나 뿐이었다. 바로 게이트가 열려있는 신도시였다. 지구와 신세계를 오가고자 하면 꼭 거쳐야 하는 교통의 중심지였고, 반드시 지켜야 할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운은 우선 신도시를 수도로 정하기 위해서 도시의 이름을 정해야 했다. 이제까지 편의상 그냥 신도시라고 불렀지만, 도시의 이름이 언제까지 그래서야 격이 떨어졌다. 그래서 정운은 간부들을 불러서 회의를 소집했다. 도시 이름도 정하고 이것저것 세부적인 것도 결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보영은 정식으로 소속이 되지 않았기에 물러나 있었지만···. 외국에 나가있던 다이앤과 장 그레고리까지 포함해서 어지간한 간부들은 모두 보였다. “광개토대왕시 어때? 나라 이름도 가우리잖아?” “그거 그냥 세종시에서 따운 거죠?” “그럼 근초고왕시.” “왕 이름에서 좀 벗어나 봅시다.” 수도 이름을 정하기 위해서 회의를 열었지만 이렇다 할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자치정부의 이름을 가우리로 정한 것은 그냥 즉흥적으로 나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수도 이름은 좀처럼 멋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회의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별로 좋은 이름이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꼭 뭔가 이름으로 정해야 하나? 그냥 간단하게 숫자로 부르면 안 돼? 제 1도시, 제 2도시 같은 순으로 하면 편하잖아?” 박추성이 귀찮다는 듯이 말하자 옆에서 한중겸이 말했다. “형님. 자식 나으면 일식이 이순이 라고 지을 거유?” “그럼 안 되냐?” “자식 인생에 고난과 역경을 가득 심어주는 취미가 없다면 안 하는게 좋죠.” “····그런가?” 결혼 안 한게 다행일지 모를 박추성이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가는 와중에 이제까지 말문을 닫고 있던 배대호가 말했다. “차라리 한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따오는게 어때?” “····한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따오라고요?” “그래. 꼭 새로운 이름을 정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 하는 편이 소속감도 들고, 이 신도시를 개발하고 있는게 한국이라는 느낌도 들 거야.” “·········.”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 의견 같았다. 이미 있는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서 앞에 신이라는 글자 하나만 붙이면 그럴 듯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럼, 이 도시의 이름은 신서울이 되겠네요.” “그렇군··. 다른 도시의 이름도 그렇게 지으면 되겠어.” “마침 다른 지역에 개발하고 있는 주요 도시가 세 개가 있지. 그 도시를 광역시로 지정하면 되겠네.” “그렇군요. 그럼 신인천, 신부산, 신대구 정도로 정하면 되는 건가?” “그렇게 하죠. 그리고 도시간의 교통말인데···. 철도 건설은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나요?” 정운의 물음에 한중겸이 대답했다. “거의 다 되가. 귀환자들을 대폭 동원해서 기초 공사를 팍팍 다지고 있으니···. 그리고 공항 건설도 일단 활주로는 다 됐으니 어설픈 대로 운영은 할 수 있고.” 공항으로서의 기반 시설은 다 안갖춰져 있지만 일단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한중겸의 보고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서두르지 말고 이왕이면 제대로 형태를 갖춰서 운영하자고요.” “그렇게 하지 뭐···. 사실 비행기는 항로의 안전성도 검사해야하고··. 좀 더 시간을 들이고 싶었어.” 교통망의 연결은 지금 정운이 가장 신경쓰고 있는 문제였다. 나라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구석구석 편리하게 잘 통하는 교통망은 필수였다. 특히 브로드 왕국의 면적을 다 따지면 그 국토의 크기는 거의 러시아보다 더 넓었다. 당연하지만 그 만한 땅을 원활하게 다스리려면 교통망은 필수였다. 우선은 세 개의 광역시를 우선적으로 연결하고 차츰차츰 지역에 있는 도시들도 발전 속도에 맞춰서 교통망을 연결해 가야 했다. 워낙 넓은 국토이다 보니 시간은 좀 걸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귀환자들 중에 토목 공사에 쓸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팍팍 투입되고 있었다. “교통망은 그 정도면 됐고···. 기본적이 국가체재는 어때요? 미하엘, 당신이 준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에 준비해온 프리젠테이션이 있습니다.”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PT자료를 꺼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국가의 관리는 한국과 같이 공무원이라 부르게 했고, 급수에 따라서 다르게 직책을 부여했습니다. 특급부터 9급까지··. 총 10단계로 분류했습니다.” 정운은 미하엘의 설명을 들으면서 손에 들린 자료를 동시에 바라봤다. 거기에는 잘 정리도니 자료들이 이해하기 쉽게 나열되 있었다. “그렇군··. 특급은 얼마 없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응? 난 아애 등급 자체가 없는데?”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그렇습니다. 정운님은 구각 원수 직위에 있기에 아예 권외로 설정했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별 불만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안경을 슬쩍 올리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의 자세한 직책과 역할은 여기 정리해 왔으니 설명하겠습니다.”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들의 직책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정운. 직책 - 자치정부 수상 역할 ? 자치정부의 최고 책임자로 국가의 중요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함. 박추성 직책 ? 제1국방위원장(특급) 역할 ? 국가방위에 관한 최고 책임자, 자신의 판단으로 모든 국방력을 동원해서 공격, 혹은 방어에 나설 수 있다. 배대호 직책 ? 국가행정부장(특급) 역할 ? 국가내의 전반적인 행정관련 업무를 총괄함. 국가 예산의 지출과 수입에 관한 조절역시 관리 함. 한중겸 직책 ? 제2국방위원장(특급) 역할 ? 국가방위에 대한 협력을 함과 동시에 국가 내부의 치안을 동시에 관리함. 사법권과 감찰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 이슬기 직책 ? 수상부 비서실장(특급) 역할 ? 수상의 업무 보조 및 정보 취득. 전체적인 부서에 협력 공조를 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필요에 따라 사전예고 없이 감찰권을 행사함. 다이앤 원저 직책 ? 제1외교통상부장(특급) 역할 ? 해외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귀환자들의 활동 전반을 총괄함. 필요에 따라서 치안 유지를 위해 파견된 귀환자들의 거취 문제를 결정 할 수 있음. 장 그레고리 직책 ? 제2외교통상부장(특급) 역할 ?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된 귀환자들을 총 관리함.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귀환자들을 가우리 소속으로 만들고 그들의 임지를 결정함. 윤정철 직책 ? 특수정보관리부장(특급)역할 ? 수상부 직속 명령 이외에는 수행할 필요가 없는 독립된 부서. 임무 수행을 위해서 필요 부서에 협력을 청할 경우 절대적인 협조를 요구 함. 김수민 직책 ? 인사관리부장(특급) 역할 ? 특급 이하의 공무원의 직위에 대한 해체 및 이동을 결정 할 수 있음. 단, 수상부에서 적합한 판단이 아니라 판단될 시에는 보류로 처리 함. 홍린 직책 ? 국토자원관리부장(특급)역할 ? 국토내에서 생산되는 자원의 개발과 수출입을 총 관리함. 단 기업에 개발 하청을 주기 위해서는 국가행정부의 허가가 필요함. 미하엘은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말했다. “이상이 여러분의 직위와 간단한 역할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간단한 역할일 뿐입니다. 자세한 권한과 책임에 관해서는 제가 따로 배포한 자료를 참고해 주십시오.” 안경을 스윽 올리면서 말하는 미하엘에게 한중겸이 한숨을 내쉬며 자기 앞에 있는 우라지게 두꺼운 책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료? 혹시 이 종이 베개를 말하는 거야? 이걸 참고하라고?” 한중겸은 들어올린 것은 맞으면 엄청 아플 것 같이 두꺼운 자료책이었다. 이쯤 되면 책과 둔기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양다리 걸치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하엘은 얄짤 없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 필요한 사항만 간추린 것입니다.” “····간추린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관해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것 같아.” 한중겸은 계속 투덜거렸다.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전투가 전공이지 국가를 운영하는 일에는 생 초짜들이었다. 그 증거로 미하엘이 배치한 임무중에 배대호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주로 국방이나 치안유지, 혹은 첩보쪽에 인물을 배치하지 않았는가? 그나마 정운과 슬기 정도가 수상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지극히 예외로 돈 계산이 빠른 홍린이 국토자원관리부라는 곳에 소속되었을 뿐이다. 그 이외의 부서는 대부분 싸우고 죽이고 하는 것이 익숙한 자들의 부서이다. ============================ 작품 후기 ============================ 이제 자료가 많이 변했으니 설정란에 곧 업데이트 된 지도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03화 “미하엘, 그러고 보니 당신 직위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정운인 미하엘에 관해서 물었다. 그러자 미하엘은 안경을 올리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직위는 수상부 비서실 보좌관입니다. 급수는 1급으로 책정했으며 역할은 이제까지와 별 다를바 없습니다. 주로 정운님에 대한 충고와 조언 등이 될 것입니다.” 사실 급수는 특급에서 하나 내린 1급이었지만, 미하엘은 진정한 의미로 이 가우리의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정운이 대부분의 국가 대소사를 마하일에게 일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운이 직접 하는 것 보다 그게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천사인 미하엘이 비리를 저지른다거나 불공평하게 일을 처리할 리는 없었고, 실제 업무 능력도 엄청나게 유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전원의 부서와 역할을 정한 것도 그녀가 아닌가? “음····. 난 놀아도 되겠네.” 정운이 이렇게 중얼 거리자 옆에서 한중겸이 말했다. “정운이 너 이 자식···. 나랑 바꿔.” “미쳤어요.” “그럼 미하엘 나 줘.” “진짜 미쳤어요? 형님한테 미하엘을? 사흘 안에 사단 난다에 내 손모가지를 겁니다.” “야!!! 이 형님을 못 믿냐?” “못 믿어!!” “못 믿어!!” “못 믿어!!” 정운 뿐만 아니라 회의실 안에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중겸은 몹시 억울하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럴수가···. 어떻게 동료를 못 믿는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지? 내가 그럴리가·····················. 없어!!! 아마도···.” “그 기나긴 침묵에 설득력을 절절이 묻어날 거라고 생각합니까?” “젠장, 망할 내 양심!!!” “있긴 있어요?” 정운과 한중겸이 투덜 거리는 것을 보며 미하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업무의 전문성이 염려된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여러분들에게 배속할 전속 비서들이 있습니다.”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서 작은 천사들을 소환했다. “어머? 예뻐라.” “귀여워···.” 여자들은 미하엘이 소환한 천사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 여자들의 99.9%는 귀여운 것에 약한 법이다. 미하엘이 소환한 천사는 아기 손바닥 만한 작은 천사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남자들이 봐도 엄청 귀여웠다. “이건···? 뭐야?”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다시 한 번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것은 제가 만든 분신입니다.” ‘최근 들어 생각했는데 미하엘은 자기 성과를 자랑을 하고 싶을 때 안경을 쓸어올리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말했다. “분신이라··. 마하일. 당신 자체가 미카일의 분신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게 가능해?” “예. 제 경우 분신으로 온전한 천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힘은 둘째 치고 제 지성을 주입한 정령에 가까운 천사를 만드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과연···. 그럼 이 녀석들 하나하나가 당신하고 비슷한 지식과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정운은 상황을 바로 이해했다. 그리고 미하엘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아이들을 비서로 두고 업무를 수행하면 행정상에 큰 실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업무 처리 능력에 압도적인 자신감이 있는 미하엘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뭐, 사실이니까 별로 고깝다거나 하지는 않네···.’ 오히려 업무가 꼬일 일은 없을테니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곧 차등적으로 다른 자들에게도 자신의 직위에 관해서 전달할 것입니다. 그리고 건국시에는 타국에 연락을 보내서 정식 사절 파견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눈썹을 꿈틀 거리면서 말해다. “그게 될까?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신탁상 무슨 세계 멸망을 위한 악마쯤으로 취급 받고 있는데?” “무작정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면 사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고···. 다른 수단을 통해서 연락을 할 생각입니다. 일단 외교의 기본은 꾸준한 접촉의 시도죠.” “····뭐, 알아서 하라고. 그럼···. 빠르면 이 달 중으로 정식 건국을 선포할 겁니다. 그러니 모두들 정신 바짝 차려 주세요. 특히 크롱크 왕국하고 이웃하고 있는 북쪽 국경지대 쪽은 많이 신경 쓰셔야 합니다.” 정운의 말에 박추성과 한중겸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알았다. 걱정하지 마라.” “뭐···. 오크 사냥이야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실컷 해 봤던 거니까···.” 국방을 책임지기로 한 박추성과 한중겸의 대답은 무척 듬직했다. 내정을 맡으라고 했다면 틀림없이 저것과는 반대되는 목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방에 관한 일이라면 자신감이 넘칠만도 했다. 사실 저 둘이라면 크롱크 왕국 정도는 능숙하게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고 정운과 슬기만 회의실에 남았다. “건국이라····. 어쩌다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게 됐는지···.” 정운이 푸념을 하자 슬기가 뒤에서 정운을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많이 힘들죠?” “제법···. 아니 약간인가?” “내가 당신을 위로해 줄 수는 있나요?” 정운은 슬기의 손을 잡고 그녀를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네가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난 무너지지 않고 있는 거야. 그러니, 넌 꼭 내 곁에 있어줘.” 슬기는 그런 정운의 품안에서 그저 순종하듯이 가만히 몸을 맡겼다. ‘확실히··. 이 체온이 없었다면 나도 보영이 누님이나 중겸이 형님처럼 무너졌을지 모르지···.’ 그렇게 슬기의 소중함을 새삼 다시 깨닫는 정운이었다. 가우리의 건국은 대륙의 다른 나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원래 파우스트를 가장 강력하게 신봉하고 있는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이 게이트 너머의 인간들을 모두 악마 취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는 좀 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라가 건국 되었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브로드 왕국이 사라지고 새로운 나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컸다. 적어도 이 대륙에 새로운 세력이 완벽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력이 대륙의 균형을 어떻게 흔들지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일단 미하엘은 제국을 포함해서 모든 나라에 연락을 보냈다. 사실 사신을 보냈다가는 목을 베니 마니 할 것 같아서 사람이 아닌 영상을 보냈다. 친절하게 배터리와 재생 가능한 디스플레이 장치까지 준비해서 그 나라의 국민을 통해서 전달하게 했다. 크롱크 왕국의 경우 중간에 몇 번이나 박살났지만 그래도 여러 개를 보냈기에 일단 내용은 전달되었다. 사실 내용은 별것 아니었다. 언제 어디에 가우리라는 나라가 정식 건국이 되니 외교관계를 맺고 싶은 나라는 정식으로 찾아오라는 말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라들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대륙에서 공식적으로 가우리라는 나라가 생기는 순간이 아닌가? 왠지 가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정보전에서 뒤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관심 없는 나라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크롱크 왕국이라는 나라는 외교가 뭐야? 라는 나라였다. 이 나라에게 다른 나라들은 오로지 침략의 대상일 뿐이어서 외교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나라로는 다크니스 왕국. 이 나라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영상은 왕국에 잘 전달되었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제국은 말할 것도 없이 완전 무시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해상 왕국 엘라 역시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반응을 한 것은 네 개의 국가였다. 마도 왕국인 에리프릴. 신성 왕국인 성 세인트. 드워프들의 나라인 아이언. 그리고 가우리와 국경이 닿아있는 요정들의 나라 라트란이었다. 이들 나라들은 제국의 표명을 정면으로 거스를 생각은 없었기에 일단 비공식적으로 정찰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사절을 보냈다. 제국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제지는 하지 않았다. 사실 가우리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제국의 입장에서는 누가 먼저 진창을 밟아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해서···. 네 개의 나라들은 각각 가우리에 정찰을 보냈다. 드디어 이 신세계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가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온 것이다. “망할···. 이래서 대륙의 남쪽으로 오고 싶지 않았던 거야. 크롱크 왕국을 지나야 하니 말이야.” 에리프릴 왕국의 사신은 크롱크 왕국의 국경을 지나면서 투덜 거렸다. 그가 이렇게 투덜거리는 이유는 크롱크 왕국을 지나는 내내 이어진 노숙생활 때문이었다. 일국의 사신이 왜 노숙생활을 하면서 이동해야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크롱크 왕국이니까. 이게 답이었다. 일단 크롱크 왕국에서는 사신이라고 해서 딱히 대접해주고 하는 것이 없다. 설사 제국에서 공식적인 사신이 온다고 해도 밥 한끼 먹여 보낸 적이 없다. 그냥 할 말 다 했으면 꺼져라 정도였다. 사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엄청 희박한 나라인 것이다. 심지어는 몇몇 부족들은 사신을 습격하는 경우도 흔했다. 따져봐야 소용도 없다. 원래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도 안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따지는 사람 속만 터진다. 에리프릴 왕국이 가우리로 가기 해로로 이동하지 않는 이상 총 세 개의 나라를 지나쳐야 한다. 원래는 다크니스 왕국 하나만 지나쳐도 갈 수 있지만 다크니스 왕국은 사신이라고 해도 함부로 자국의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전쟁 중인 성 세인트 왕국에 정식 사절 요청을 하고 지나간다. 오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앙숙 국가였기에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별 불편 없이 지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제국의 영토에 들어간다. 여기서는 좀 편하게 이동 할 수 있었다. 사신으로서의 권리를 다 누리며 좋은 관저나 귀족의 저택에 초대되면서 연회에 참가하고 갈 때는 선물도 가지고 간다. 귀족들은 원래 체면을 중시하고 인맥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타국의 사신이 자신의 영지를 지나간다면 그냥 보내는 법은 없다. 물론 사신들 역시 어지간히 바쁜 일이 아닌 이상은 그들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는다. 콩고물이 왕창 떨어지는데 그걸 누가 사양하겠는가? 하지만 크롱크 왕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이제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다. 그야말로 웰컴 투 더 고생길이 열리는 것이다. 우선 사신이라고 말을 해도 크롱크 왕국의 오크들은 잘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나마 제국의 사신은 조금 말을 들어주지만 타국의 사신이라고 하면 일단 한 판 붙자고 엉겨 붙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무슨 모험가라도 된 것처럼 길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이제 가우리의 영토에 도착한 에리프릴 왕국의 사신이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백작님.” “쯧, 어쩔 도리가 있나? 오크 놈들에게 예의를 바라면 내가 미친놈이지.” 사신단의 최고 책임자인 사브레임 바라오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는 피곤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오크부족을 피해서 산길을 걸어야 했다. “후우···. 가까운 마을에 가서 일단 하루 쉬도록 하세. 어차피 이 쓰레기통 수준이야 뻔 하지만 그래도 맨땅에서 야숙보다는 낫겠지.” “예. 알겠습니다.” 바라오 백작은 사실 여기서도 그렇게 좋은 대접은 바라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 이 나라를 레드 용병단이 지배 할 때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별명은 대륙의 쓰레기통이었다. 새로운 나라가 섰다고 해도 그 문화 수준이야 뻔했다. 아마도 지저분한 건물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체로 묵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푸념을 하면서 그는 가장 가까운 마을을 발견했다는 부하의 보고를 받고 그쪽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04화 <사신단이 오는 길> 부하들이 발견한 마을에 도착한 바라오 백작은 살짝 놀랐다. 우선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눈앞에 있는 높이가 10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옹벽이었다. “····크롱크 왕국과 이웃한 이런 지역에 이 정도의 영지가 있었던가? 놀랍군.” 목책이 아닌 성벽과 정찰용 첨탑까지 갖추고 있는 커다란 마을을 보고 그는 살짝 놀랐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성벽은 돌을 쌓아서 올린 성벽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벽면이 매끈매끈하군? 어떻게 한 거지? 커다란 돌을 깎아서 만든 건가? 아니야··. 아무리 큰 돌이라도 저렇게는···.” 시멘트라는 개념이 없는 이 대륙에서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성벽이 이해가 가지 않을 법 했다. 이 세계의 성벽은 무조건 성벽을 돌로 사다리꼴 모양을 쌓고, 거기에 성문과 계단을 만들고 첨탑을 추가하는 모양새였다. 거기에 좀 더 중요한 성에는 마법사들이 공을 들여서 강화 마법진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워낙 비싼 돈이 들기 때문에 모든 성벽이 그렇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성벽은 그냥 돌무더기를 쌓아올리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방식은 성벽의 강도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공사중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약간만 실수해서 쌓던 돌이 무너지면 그 밑에서 작업하던 인간들이 깔려 죽는건 애사였다. 지구에서도 그렇지만 고대의 토목 공사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대량의 죽음을 각오하고 진행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거기에 비해서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해서 성벽을 쌓는 기술은 훨씬 더 빠르고 편하게 지을 수 있었다. 예전에 게이트를 침략했던 히어로급 오크들이 나온다면 일격에 무너져 버리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오크들의 공격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성벽이었다. 그런 성벽을 보고 감탄하는 바라오 백작이 성문에 도착하자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과 만났다. “에리프릴 왕국의 사브레임 바라오 백작이다.” 그는 오만하게 턱을 세우고 당당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가우리의 8급 병사 임병철입니다.” “·····음.” 보통 병사들에게 타국의 귀족이라는 것은 납작 업드려야 할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별 놀라움도 없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분을 증명할 물건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여기 있다.” 너무 태연한 병사의 대응에 살짝 놀란 바라오 백작이었다.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자신의 가문의 인장과 사신임을 인정하는 왕국의 인장이 들어간 문서를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병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서 뭔가 검은색의 얇은 사각형의 물체를 꺼내서 바라오 백작이 보여준 인장과 문서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찰칵이라는 소리와 잠깐 밝은 빛이 보였다. “···뭘 하려는 거냐?” 바라오 백작은 병사들의 수상한 행동이 신경 쓰인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귀족이 이렇게 인상을 쓰면 병사들은 비굴하게 허리를 굽히면서 연신 사과를 해야 한다. 목숨 부지하려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여전히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문서의 사본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록과 신분증 발급까지 30분 정도 걸릴 것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 바라오 백작은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말을 엄청 전중하게 하고 있지만 평민이 귀족을 대할 때 보이는 특유의 예의(비굴함)가 보이지 않았다. 뭔가 트집 잡을 구석은 없는데 마음에는 몹시 안 들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일단 뭔가 트집 잡아서 한 두 놈 베어 버릴까?’ 그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을 때 문지기 병사는 일행을 하나하나 세면서 말했다. “스물셋, 스물넷···. 총 인원 스물다섯 맞습니까?” “···그렇다. 보면 알 텐데?” “가져오신 물품은 조금 있다가 체크하면 될 테고···. 일단 전원의 신분증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 서류에 자신의 정보를 기록해 주십시오. 거짓 없이 쓰셔야 합니다. 잘못된 정보는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병사는 그렇게 말하며 일행에게 한 장씩 서류를 내밀었다. 그 서류에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출생지등을 묻는 칸이 적혀 있었다. 바라오 백작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다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냐” “예. 외국인이 들어오려면 임시 신분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 트집을 한 번 잡아보려고 했던 바라오 백작은 다시 할 말을 잃었다. 남들 다하는 절차라고 하는데 명색이 사신으로 찾아와서 하기 싫다고 땡깡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 후에도 이러저런 이해하지 못할 절차가 바라오 백작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사각형의 물체로 사진이라는 것을 찍는 것부터 시작해서 손가락을 어느 판에 가져다 대라는 등···. 바라오 백작은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길고 긴 과정이 다 끝나고 병사가 바라오 백작에게 말했다. “사진에 지문등록까지 올 클리어···.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병사는 바라오 백작의 일행을 다시 조금 기다리게 하고는 옆에 있는 초소로 들어갔다. 그 후에 사신단은 바라오 백작에게 와서 말했다 “백작님. 이건 혹시 우리를 견제하기 위한 음모가 아닐까요?” “음모라고?” “그렇습니다. 제가 젊어서 대륙 전역을 떠돌아 다녀 봤지만 이렇게 복잡한 입국절차는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왕국에 입궁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으음······.” 바라오 백작이 생각해 보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외교 전쟁은 사신들이 만나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기를 죽이기 위해서 쓸데없는 절차를 더해서 자신들의 진을 빼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런 술수에 놀아날 수는 없지. 아주 태연하게 받아주마.’ “모두에게 전해라. 여유 있는 얼굴을 하고 되도록 웃으라고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백작님.” 그렇게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바라오 백작 본인도 여유 있게 웃는 얼굴을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이런 초보적인 수법에 걸려 들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 병사는 일행을 찾아와서 작고 얇은 물체를 내밀었다. “이건···. 뭐냐?” “신분증입니다. 일단 항상 가지고 계십시오. 그리고 혹시 분실하게 되면 주변 관청에 분실 신고를 하시고 재발급 받으시면 됩니다.” “···············.” 신분증을 받은 바라오 백작은 살짝 감탄했다. 보통 이 세계의 신분증이라는 것은 가문의 문장을 뜻하는 것 말고는 별개 없었다. 그래서 문지기들은 귀족의 문장을 다 외우거나 그게 기록되어 있는 책자를 대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문장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문지기들이 어리버리해서 문장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간 큰 사기꾼 놈들이 자기 가문의 문장을 도용하기도 했다. 물론 귀족가의 문장을 도용하는 것은 큰 범죄다. 자신의 가문이 도용당하고 그걸 그냥 내버려 두면 도용을 당한 가문의 입장에서는 큰 오점이 된다. 그러니 발견 할 때마다 잡아서 족치고는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간 큰 놈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귀족가의 문장을 도용하는 범죄는 종종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어떤 귀족이나 왕족들은 마법적인 처리를 해서 인증을 할 수 있는 인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건 절대 복제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인증을 할 때 마다 마법사를 동원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역시 실용적이지 못했다. 그에 비해서 이 신분증은 본인의 이름과 출신지, 그리고 무엇보다 옆에 자신의 얼굴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즉, 이건 얼굴만 보면 이 신분증이 본인의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누가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생각이군. 그런데 이 그림은 어떻게 그린 거지? 마법적 처리를 한 건가?’ 사진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바라오 백작으로서는 마법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바라오 백작의 감탄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감탄하기 시작한 것은 마을의 내부로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여기가 브로드 왕국이었던 곳이라고?” 바라오 백작은 스스로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이전에도 브로드 왕국에 사절로 온 적이 있었다. 사실 이번에 사신으로 그가 온 것도 이 곳으로 오는 길이 초행길이 아닌 경험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과연 자신이 똑바로 찾아온 것이 맞기는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과거 이 거리에 왔을 때 눈에 보인 것은 지저분한 거리와 술에 취한 폭한들. 그리고 땟 국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치마를 들추며 유혹하는 거리의 창녀들과 길거리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거지 고아들이었다. 사실 브로드 왕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기는 했다. 다만 브로드 왕국은 그 정도가 심해서 정말 어디를 가도 그런 광경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통 나라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의 대부분이 빈민가나 다름 없는 나라였던 것이다. 달리 대륙의 쓰레기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과거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성문을 통해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깔끔하게 정돈된 메인 도로였다. 수도의 도로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된 메인 거리는 마차 두 대가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한 단 높은 작은 도로에는 사람들이 걷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인도가 따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돌 하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리의 양 옆에 새워져 있는 건물들은 최저 3층에서 5층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이런 고층 건물이 지방에까지 태연하게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전에 왔을 때에는 다 쓰러져 가는 목조 건물들이 태반이었는데····.’ 바라오 백작뿐만 아니라 그를 따라온 수행원들도 상당히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저건? 건물들의 일 층 대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잖아?” “옷에 가구, 구두까지···. 상당히 다양한 상품을 파는데?” “····여기가 정말 변방의 마을이라고?” “밖에 있는 성벽을 생각하면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이건 거의 상업 도시나 다름 없잖아?” 사신단은 거리를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더 놀라움이 더해갔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와 최근 들어 새롭게 지은 것으로 보이는 새 건물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크게 달랐다. 보통 이 세계에서 평민들의 모습이란 약간 헤진 셔츠에 여기저기 덧댄 바지를 입고 다닌다. 옷이 닳는다고 해서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고쳐 입는게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못하면 그냥 떨어진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완전히 달랐다. 입고 있는 옷에 덧댄 모습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입고 있는 옷이 깔끔했다. 덧댄 곳은 고사하고 마치 새 옷처럼 깔끔해서 얼룩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구나 여자들의 경우는 더했다. 옷의 다양성이 남자들 보다 화려한 것은 아주 당연했고 헤어스타일도 어딘지 색달랐다. 그리고 사소한 악세사리 한 두 개 정도는 기본이었다. “귀걸이에 목걸이···.” “저 여자는 팔찌를 몇 개나 차고 있는데? 혹시 오늘 축제날인가?” 사실 막 꾸민다는 개념을 베워가고 있는 이 대륙의 젊은 여자들은 악세사리를 좀 막 걸치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크게 만족하고 있으니 별 상관은 없었다. 서울의 길거리 가판대에서 몇 천원이면 주고 살 수 있는 악세사리가 이 세계의 평민들에게는 대인기인 것이다. 물론 바라오 백작은 여자들이 걸치고 있는 악세사리가 진품이 아닌 모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 보석에 비하면 광체가 거의 없는 것을 봐서는 아마 유리를 가공해서 만든 가짜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귀족도 아니고 평민 여성들이 저렇게 자신을 꾸미고 다닐 여유가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뭔가, 뭔가 크게 변한 모양이군.” ============================ 작품 후기 ============================ 그냥 변한 정도가 아니죠. 대륙의 쓰레기통을 정운이 어떻게 리폼했는지는 점차 소개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05화 바라오 백작은 예정을 바꿔서 이 마을, 아니 도시를 다스리는 영주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이 가우리라는 나라의 정찰의 의미도 있었다. 그렇다면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 두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라오 백작은 크게 난관에 봉착했다. 길에 지나가는 청년을 불러 세워서 영주성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뭐? 영주가 없어?” “예. 저희 마을에 영주는 없습니다. 라기 보다···. 저희 나라에는 영주가 없는데요?” 길 가던 인물 하나를 붙 잡아서 영주성이 어딘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 이거였다. [그런거 없는데요?] 라고 태연히 대꾸하는 평민의 표정에는 귀족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어디서 평민이 귀족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느냐!!?’ 라며 호통을 칠 바라오 백작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영주가 없다면····. 이 도시를 다스리는 사람은 있을 것 아니냐? 너희는 그를 뭐라고 부르지?” “아무도 안 다스리는데요?” “·····뭐라고?” 순간 바라오 백작은 눈앞에 있는 청년을 귀족 희롱 죄로 목을 쳐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모여서 나라를 어떤 조직을 이루면, 그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풍족한 도시를 다스리는 인물이 아무도 없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럼. 세금은 누가 걷고 법은 누가 집행하며, 이 도시를 지키는 군대는 누가 관리한단 말이냐?” 바라오 백작의 말에 청년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그게··. 저희도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건 각 관청에서 합니다.” “관청?” “예. 도시 경비와 치안 유지는 경비부가, 행정은 시청에서, 그리고 법 집행은 경비부가 체포하면 지방 법원에 가서 판결을 받죠.” “···뭐가 그렇게 복잡하단 말이냐!!?” 바라오 백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봉건주의가 평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대륙에서는 영지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영주가 처리한다. 세금을 걷고 치안을 관리하고 외적의 침입에서 적을 막아내고···.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을 영지의 영주가 알아서 해야 했다. 물론 영주 밑에 여러 가지 관리를 두고 그들에게 임무를 위임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영주의 이름하에 처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걸 다양한 부서를 만들어서 나눠 놨다고 하는 것이다. “음····. 그 셋 중에서 가장 높은 부서는 어디냐?” 바라오 백작의 말에 청년은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부서 중에 어디가 더 높은지는 잘 모르겠고··. 아!! 시청에 있는 시장님이 그래도 총 관리자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래. 시청이라···. 거기가 어디냐? 안내해라.” “전 바빠서 안 됩니다. 대신 저기 보이는 남색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순찰대니 저기에 가서 물어 보십시오.” “············.”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쪼르르 떠나 버리는 청년을 보며 바라오 백작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 기가 차서 화 낼 타이밍을 잃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바라오 백작이었다. 사실 귀족이 시키는데 지금 바빠서 못 한다는 평민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저···. 저 놈을···.” 여기가 자신의 영지이기만 했다면 가족을 다 싸잡아서 본보기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타국에 사신으로 와서 그렇게까지 난리를 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시장이라는 자를 만나서 한 마디를 하시죠. 그럼 될 겁니다.” 옆에서 수행원이 그렇게 기가 막혀하는 바라오 백작을 달래자 바라오 백작은 노기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시청이라는 곳으로 가자.”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바라오 백작은 청년이 가리켰던 대로 순찰대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2인1조로 순찰 중이던 순찰대는 바라오 백작을 향해서 말했다. “누구 십니까?” “크흠····. 난 에리프릴 왕국의 사브레임 바라오 백작인다. 가우리의 건국식의 사신으로 참가하기 위해서 왕명을 받들고 왔다.” “예. 그러시군요. 무슨 문제라도 발생하셨습니까?” 사실 시청으로 안내를 하라고 명령할 생각이었지만 마침 순찰대가 문제 발생을 묻자 바라오 백작은 여기서 바로 말했다. “좀 전에 심각한 귀족 모독죄를 범한 평민이 있었다. 당장 잡아서····.” “저희 나라에서는 귀족 모독죄라는 죄목은 없습니다. 개인에 대한 언어폭력이나 상해에 대한 처벌은 가능합니다만···. 혹시 그런 모독을 받으셨습니까?” “·······귀족모독죄가 없어!!!?” 이제까지 중에 가장 놀란 바라오 백작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그게 가장 놀라운 일인 것이다. 어찌어찌 되었든 간에···. 바라오 백작은 시청으로 가서 시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귀족 모독죄가 없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된단 말인가?” 사실 그 말을 했을 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순찰대의 대원들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귀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이다. 물론 이 말은 바라오 백작의 머릿속을 한 층 더 카오스 상태로 밀어 넣었지만····. 어쨌든 그는 순찰대원들의 안내를 받아 시청에 도착했다. ‘아랫것들 하고는 말이 안 통해. 위에 있는 놈들과 따로 대화를 해야지···.’ 혹시 이 모든게 타국에서 온 사신인 자신에게 신경전을 걸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바라오 백작이었다. 사실 시청에 들어오고 나서도 상당히 놀랐던 바라오 백작이었다. 그는 시청이 영주의 저택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상당히 큰 길이를 자랑하는 5층 건물을 보며 그의 생각은 옳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시청의 1층에 있는 민원실이라는 것을 지나면서 이상한 광경을 봤다. 테이블에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고 거기에 평범한 시민들이 이런저런 용무를 보고 가는 것이었다. 무슨 일을 보고 있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건물에 일반 시민들이 아무 주저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농민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려고? 아니 그보다 암살에 대한 대책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서 5층의 시장실이라는 곳에 들어간 다음에는 그래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니라 고급스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푹신한 쇼파에 앉은 바라오 백작은 이제야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를 찾았다는 듯이 편안하게 쿠션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런 바라오 백작에게 시장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장님은 지금 외부에 나가계십니다. 연락을 드렸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오실 겁니다.” 무슨 향수를 썼는지 좋은 향기가 나는 여자가 정중하게 안내하면서 바라오 백작에게 차를 대접했다. ‘흠····. 이제 좀 낫군.’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브로드 왕국 시절에는 이 동네에서 차를 대접 받는다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져도 너무 달랐다. 자신에게 차를 대접하는 여인 역시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었지만 행동거지에 기품과 정중함이 있는 것이 고등 교육을 받은 티가 났다. 사실 그녀는 귀환자도 뭣도 아닌 평범한 커리어 우먼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서 게이트 안쪽에는 귀환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지구인들의 진출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전에는 공장이나 공사장의 시설 관리와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출입했지만···. 미하엘이 실무 인원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대적인 모집 광고를 냈고 그렇게 해서 가우리에 취업을 한 젊은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장래가 유망하고 월급이 한국 보다 더 쎄다는 면도 있어서 유망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청년 실업 문제도 많이 해결 되었다고 정부에서는 반색을 표했다. 바라오 백작은 30분 정도 기다렸고 슬슬 지루해지려고 하는 찰나에 시장이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이 신강릉 시의 시청인 임호청이라고 합니다.” 도시나 마을의 지명을 새로 설명하기 귀찮은 정운은 모든 마을이나 도시를 한국의 지명과 같이 하고 거기에 ‘신’자 하나만 붙이게 했다. 사실 별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이 소식을 들은 한국 사람들은 자기 고장하고 자매 결연을 맺어야 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을 정도였다. 임호청 시장의 소개를 받은 바라오 백작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기 소개를 했다. “큼···. 사브레임 바라오 백작이오.” 악수를 청하는 임호청 시장에게 바라오 백작은 다소 거만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임호청 시장은 그런 바라오 백작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허어··. 이 세계에 중세 유럽의 귀족 같은 자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정말 이렇군.’ 임호청 시장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바라오 백작의 모습은 역사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반신에 짝 달라붙어 있는 하얀 레깅스에 어깨의 숄은 엄청 부풀어 있고, 깃털이 장식되어 있는 모자를 한쪽에 들고 있는 모습은 솔직히 봐서 전혀 멋있지 않았다. 다만 신기하기는 엄청 신기했다. 자신보고 저 꼴을 하고 다니라고 하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올 것 같은데 바라오 백작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 할 수 있었다. ‘쯧, 이런 촌놈 같으니라고····.’ 뭐, 그렇게 신기한 시선이 바라오 백작에게 뭔가 다른 오해를 낳기는 했지만 말이다. 둘은 자리에 마주 앉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사실 어디서 오실지는 모르지만 혹시 외국에서 건국식의 사신이 오거든 정중하게 모시라는 지침은 받았습니다. 다만 저희 시로 오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해합니다. 오크 놈들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하니까요.” 바라오 백작도 거기에 트집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가 트집을 잡고 싶은 것은 사실 다른 부분이었다. “도시가 무척 활기차고 세련되었더군요. 이 불모지를 이렇게 가꾸느라고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바라오 백작의 말에 임호청 시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저야 뭐 한게 있나요. 다른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겸손의 말씀이군요. 그런데, 사실 제가 오면서 믿기지 못할 광경을 봤습니다. 거기에 관해서 제가 말을 드려도 될까요?” “····어떤 광경을 말하는 것입니까?” 임호청 시장이 관심을 표하자 바라오 백작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겪었던 심각한 귀족모독(?)에 관해서 자질구래하게 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어서, 저 역시 크게 경악했습니다. 사실 제 영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즉시 목을 쳤겠지만···. 이 도시를 다스리는 것은 시장님이니 제가 나서는 것은 월권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바라오 백작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했다. 사실 그 표정의 의미는···. ‘네가 아무리 도시를 잘 꾸며봐야 영지민 관리를 똑 바로 못하는 팔푼이일 뿐이다.’ 라는 표정이었다. 다만 임호청 시장은 전혀 다른 의미로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건···. 병신?’ 임호청 시장이 보기에 바라오 백작은 땡깡 부리는 병신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40평생에 이런 병신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민주국가 대한민국. 가끔씩 유전무죄니 고위층 자제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말들은 심심하게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팩트가 깔려 있는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신분 제도 따위는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개 고양이하고 썸 타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잠깐··. 이해. 이해를 하자.’ 임호청 시장은 일단 마음에 혼란을 가라앉히고 진정했다. 환경적 차이로 인해서 사상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지구인들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시대가 다르고 세계가 다른 이계인들과는 오죽 하겠는가? 그는 조금씩 머리를 차분하게 정돈하고 차분하게 말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바라오 백작님이 겪으신 놀라움에 관해서는 이해를 합니다. 아마 백작님이 알고 계신 상식과는 많은 차이를 느끼셨을 겁니다.” “····마치, 제가 잘못 됐다는 말을 하는군요.” “적어도 저희 나라의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 ============================ 작품 후기 ============================ 가끔 생각합니다. 시대별로 인간이 가장 진화해 온 것은 문명이 아니라 의식 수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말이죠.... 살짝 슬럼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달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러면 곤란한데 말이죠. 아무래도 다음달 부터는 연재 페이스를 조금 늦추던가? 아니면 한 달에 한 닷새 정도는 연재 비축분을 비축하기 위한 휴일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둘중에 뭐가 좋을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06화 <홀릭> 이해를 전혀 할 수 없다는 듯한 바라오 백작에게 임창호 시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백작님. 기본적으로 그 순찰대원의 설명대로 우리 나라에는 귀족이 없습니다. 이렇게 백작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저도 물론 평민입니다.” “·····하지만 시장으로서 이 도시를 다스리고 있지 않소? 그렇다면.” “아니요. 전 이 도시를 다스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총 책임자가 아니란 말이오?” “글쎄요···. 그건 미묘한 문제라서···. 일단 제가 이 도시의 전체적인 업무를 대부분 보살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결코 ‘다스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걸 맞는 표현을 쓰자면 ‘관리’라는 단어가 적절하겠군요.” “··············?” 새삼스럽지만 정운이 천계에서 언어의 진리목을 얻어낸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아무리 말발이 좋아도 말 자체가 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인데···. 일단 말이 통하니 유감없이 말발을 발휘 할 수 있었다. 바라오 백작도 귀족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임창호 시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초, 중, 고 교육 과정에 그 지옥 같은 입시와 강남 부녀회 따라잡기 식의 사교육. 후에 대학 과정과 경쟁률 피 튀기는 공무원 시험까지···. 교육열에 관해서는 지구에서도 한국인들에게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나라가 몇 개 없다. 좀 산다하는 집이 되면 자식에게···. 당신은~♪ 공부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성적표 속에서~♪ 훗날 연봉 계산 할 수 있지요♪. 라는 식으로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연하지만 지적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선천적인 아이큐나 타고난 재치와 달리···. 지적 수준이라는 것은 주변 환경과 꾸준한 교육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임창호 시장은 논리 있게 바라오 백작은 납득시켜갔다. “백작님의 경우 외국에서 오셨지만 저희나라로 들어온 이상 그 나라의 법률을 준수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 그 점은 알고 계시겠죠.” “당연한 말이오.” 다소 불쾌하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바라오 백작이었다. 마치 내가 그런 당연한 것도 모르겠느냐? 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임창호 시장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신분제도 자체가 없는 저희 나라에서 어떻게 귀족 모독죄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건·····.” 바라오 백작은 할 말을 잃었다. 이 말을 부정하고 뭔가 따지고 들어가려면 이 전에 자신이 말했던 타국의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는 말을 어기게 되업 버린다. 논쟁에서 가장 확실한 패배패턴 중에 하나가 상대의 말로 상대의 주장을 엎어 버리는 것이었다. 바라오 백작 역시 지금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크흠. 실례 했소.” 결국 얼굴을 붉히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라오 백작이었다. 임창호 시장은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오늘 묵으실 숙소는 저희가 준비해 놨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이동하실 교통수단도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큼, 됐소.” 불쾌하다는 듯이 말을 하는 바라오 백작을 보며 임창호 시장은 어린애 달래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상부에서 저희에게 내려온 지시입니다. 사신단 분들에 대한 국가적 지침이니 가능하면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 결국 바라오 백작은 순순히 그렇게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국가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지침이 내려왔다는데 어쩌겠는가? 따르는 수밖에····. 바라오 백작은 시장이 맡긴 가이드를 통해서 정해진 숙소로 들어갔다. 호텔 하나를 사신단을 위해서 통째로 빌렸다는 말에 처음에는 시큰둥한 바라오 백작이었다. 하지만 호텔에 들어간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내 장식이···. 돈이 무척 많이 들었겠군요.”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여기는 변방이고 크롱크 왕국과의 소모전도 많아서··. 역시 그렇게 좋은 숙소는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편한 곳에서 모실 테니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참아 주십시오.” “············.” 가이드의 말에 바라오 백작은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 호텔의 외관을 봤을 때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건물이 깔끔하고 멋진 모양이기는 했지만··. 이 도시의 건물 대부분이 최근 개축된 건물로 보였으니 그걸로 놀랄 필요는 없었다. 놀란 것은 그 후에 방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이 호텔에서 가장 좋은 특급실을 빌렸다고는 했지만 설마 내부의 설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냥 깃털을 깐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탄력이 좋은 침대. 먼지 하나 없을 것처럼 깨끗한 청소 상태. 그리고 한쪽에 있는 냉장고에는 취향별로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욕실이었다. “이건··. 수도와 화장실도 수세식인 것이오?” “예. 그렇습니다. 아시는 군요.” “물론 알고는 있소. 하지만 돈이 정말로 많이 들었을 텐데?” “············?” 가이드는 바라오 백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수세식 화장실이나 수도 설비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놀라웠다. 이 도시를 처음 지을 때는 사람들이 그걸 이해 못해서 마을 광장에서 화장실 사용법에 관한 단체 강의를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강의명도 있었다. [그거 먹는 물 아니다.] 라는 강의명이었다. 좀 웃기기는 하지만 이 대륙의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라오 백작은 이게 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돈이 엄청 들었을 것이라는 대목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 대륙에서도 수세식 화장실이나 수도 설비는 있었다. 다만···. 물을 공급하고 오물을 배수하는 상하수도 시설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 어떻게 수도 시설을 만드느냐? 인데··. 당연하게도 마법으로 처리한다.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서 수도꼭지에서 나오게 하고 오물을 정화해서 없애 버린다. 어떻게 보면 지구의 상하수도 시설보다 더 좋은 것이었다. 다만, 돈이 무진장 많이 들어간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사실 귀족가들 중에서도 욕실과 화장실에 이런 마법적 설비를 해 놓는 곳은 얼마 없었다. 그냥 귀족이라고 다 하는게 아니라 그래도 좀 산다 하는 집에만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바라오 백작의 가문에만 해도 이 설비는 없었다. 몇 년 정도 더 돈을 모아서 만들 계획은 세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숙박 시설에 이런 설비가 되어 있을 지는 몰랐다. ‘과연···. 그래서 특실이라는 건가?’ 사실 방 마다 다 있지만··. 그것까지 알았다가는 기겁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바라오 백작이 이걸 알고 있는 듯하자 가이드는 그만 방을 비워주며 말했다. “내일 출발 시간 까지는 편하게 쉬시기 바랍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음. 수고했소.” 그렇게 가이드가 떠나고 백작은 안 그래도 뱃속에서 신호가 오는 것을 느꼈다. “흠···, 잘 됐군.” 그는 서둘러 변기를 시험해 봤다. 확실히 자기 집에도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편하고 청결한데 왜 안 만들겠나? “음···. 응? 이건 뭐지?” 그런데 문득 바라오 백작은 변기의 옆에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만지작 거리다가···. 삐!! “응? 무슨···. 우웃!! 이··. 이건 도대체·· 음···. 오오오오오오········.” 그는 새로운 신세계를 발견했다. “·····내가 비데는 설명 했던가?” 뒤늦게 가이드가 중얼거린 한 마디만 호텔 복도에 울렸다. 다음날. 바라오 백작은 가이드를 따라서 강릉시를 벗어나기로 했다. “그럼, 이 차량에 오르십시오.” “이건? 무슨 마차요? 앞에 끄는 말도 안 보이는데?” 특별하게 개조한 버스를 보면서 바라오 백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신단 분들을 모실 차량입니다. 귀빈용 버스라고 하는데···. 비포장 도로를 흔들림 없이 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약간 개조를 하기는 했습니다. 승차감은 그럭저럭 괜찮을 겁니다.” “차량이라···. 이거 혹시 마도전차와 비슷한 것이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끄는게 아니라 자체적인 동력으로 달리는 차라면··. 예 맞습니다.” “흠····. 알겠소.” 이 세계에도 차와 비슷한 것들은 있었다. 당연하지만 가솔린 엔진이 아니라 마법을 이용한 것으로 주로 왕족이나 아주 고위 귀족들이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아이언 왕국에서는 전쟁터에서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투용 전차를 만들기도 한다. 바라오 백작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사신단으로서 이런 대우를 받기도 했으니 익숙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말과 마차는 이 강릉시에 맡기고, 나중에 돌아가실 때 찾아가면 될 것입니다. 가지고 오신 짐은 마차의 짐칸에 실어 주십시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저 뒤에 있는 마차에 나눠 타 주시면 됩니다.” 가이드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사람들은 움직였다. 실을 짐을 싣고 사람들은 강릉시를 떠나서 가까운 신대구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같은 버스에 탄 가이드는 바라오 백작에게 말했다. “신대구 까지 걸리는 시간은 하루하고 좀 더 걸릴 겁니다.” “흠, 가까이 있는 가보군요.” “예. 강릉시에서는 제법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 가까운 거리가 실제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 번은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이지만 말이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이 행성의 크기 자체가 지구보다 다섯 배는 더 넓었고···. 지금 가우리의 영토 면적만 해도 러시아만큼은 되었다. 보니 ‘가깝다’ 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퍽 달라져 버려다. ‘빨리 공항이 서고 비행기가 다니던가 해야지····.’ 가이드는 그렇게 한숨을 내쉬었고 버스는 비포장 도로라고 해도 거침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이틀 후···. 바라오 백작은 신대구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신대구시에 도착한 바라오 백작의 일행은····. 진짜 촌놈이 되어 버렸다. “저건···. 저건 도대체 몇 층짜리 건물이오? 저게 가능은 하오? 혹시 환상 마법으로 만든 것 아니오?” 고층 건물을 보고 목이 부러져라 위로 올려다 보는 사람이나····. “마도전차가··. 마도 전차가 도대체 몇 대인 거야? 그리고 왜 저렇게 종류가 많습니까?” 차도에 다니는 자동차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 “저··. 저 아가씨는 혹시 어느 거리의 밤꽃이오? 무슨 다리를 저렇게 훤하게···. 보기는 좋다만···.” 그냥 핫팬츠를 입고 걸어가는 아가씨를 보면서 천박하다고 하는 주제에 눈은 못 때고 있는 사람···. 가이드는 그때마다 바라오 백작의 일행들을 진정 시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적당히 하자. 응!! 창피해 죽겠다. 저 아가씨 째려 보잖아?’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싶은 가이드였다. “신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신서울까지는 이제 이틀만 더 가면 됩니다?” 가이드의 말에 바라오 백작이 서둘러 끼어 들었다. “잠깐···. 건국식은 앞으로 40일 후가 아니오?” “예. 그렇습니다.” 사실 바라오 백작은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정도로 시간을 맞춰서 출발했었다. 그런데 기차라는 것을 타고 앞으로 이틀만 더 가면 도착한다고 하니 크게 놀란 것이다. 지구와 싸우기 위한 용도로 발전시켰기 때문일까? 이 세계의 기술의 대부분은 전쟁용으로 발전되어 있었다. 물론 전쟁에서 발견된 기술도 문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골고루 다 방면으로 발달되어 온 지구와 비교하면 이 세계의 문명은 다소 뒤떨어졌다. 여기서 수도까지 이제 이틀 거리 밖에 안 걸린다는 말을 들은 바라오 백작은 바로 이 도시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가능하면 이 신대구라는 도시에 좀 더 머물다가 갔으면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이드를 향해서 정중할 정도로 물어보는 바라오 백작의 말에 가이드는 되려 당황했다. “아니···. 뭐, 일정 조정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 가이드의 말에 바라오 백작은 어색하게 침묵하면서 뭔가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 작품 후기 ============================ 문화는 핵보다 더 강력한 무기 같습니다. 핵은 한 순간이지만 문화는 꾸준하게 이어지니까요.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07화 <비밀회의> ‘어쩌지? 뭐라고 말 하면 좋을까?’ 사실 본심을 정중하게 말하자면···. 이 도시가 너무 신기해서 좀 더 지켜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본심을 그대로 말하면 어쩐지 촌놈 가아 보이지 않겠는가? 뭐, 실제로 가이드가 보기에는 이미 막 상경한 촌놈 티가 팍팍 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바라오 백작은 나름 잘 숨기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따라온 수행원이 곤란한 바라오 백작을 대신해서 말했다. “백작님께서는 일정의 여유가 있는 이상 귀국을 최대한 천천히 둘러보고자 하십니다.” “···그건 정찰을 말하는 겁니까?” 가이드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당당하게 정찰을 한다는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수행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찰이라니···.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군사 시설이나 부대 규모를 염탐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생활 수준과 문화의 형태를 알고 그것을 본국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순탄한 국교의 성립은 타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말은 실로 청산유수였지만···. 어째 막 지어낸 입에 발린 말 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맞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도 이거였습니다.” 바라오 백작은 뒤 늦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가이드는 그들을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설마, 여자들 옷 차림 때문에 이런 것은 아니겠지?’ 그 설마가 정답이었다. 수도와 광역시에는 지구의 인간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입는 옷, 먹는 음식,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최신 유행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지금 유행하고 있는 것은 짧은 핫 팬츠와 짝 달라붙는 스키니 진이었다. 문화적 차이겠지만···. 이 세계의 여자들은 가슴골을 드러내는 드레스 같은 것은 별로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핫팬츠라던가 스키니 진은 상당한 문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약간만 걸어도 가슴이 다 보이는 헐렁한 상의가 훨씬 더 야해 보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건 둘째 치고···. 에리프릴 왕국의 사신단 일행의 눈동자는 사방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결국 가이드는 그들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럼, 일단 신대구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가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 하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했고···. 다음날부터 바라오 백작의 일행은 촌놈 도시 투어를 제대로 즐겼다. 시간이 흘러서···. 가우리의 건국식 날짜가 하루 앞으로 남았고, 다른 나라의 사신들도 모두 신서울에 도착했다. 에리프릴 왕국의 바라오 백작을 비롯해서 성 세인트 왕국의 라우 추기경. 아이언 왕국의 그리드 족장. 라트란 왕국의 사신 시글. 이들 모두가 가우리의 건국식을 하루 앞두고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에리프릴 왕국의 바라오 백작이오. 일단 제의에 응해 주셔서들 감사드리오.” “··············.” “··············.” “··············.” 바라오 백작의 말에 다른 세 명은 그저 무거운 침묵으로 대신 대답했다. 사실 이들 네 명은 국가적으로 봤을 때 하나하나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 뿐이다. 에리프릴 왕국과 오랜 기간동안 전쟁을 하고 있는 성 세인트 왕국은 말 할 것도 없고···. 라트란 왕국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들의 노예 사냥에 표적이 되어 왔다. 아이언 왕국의 드워프들과 호빗들 역시 인간과 우호적인 관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은 모든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직성이 풀렸고···. 이종족들에게 있어서 역사란 인류와의 투쟁의 행보로 직결 된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 에리프릴 왕국은 인간 중심의 나라로 이 종족을 향한 박해가 가장 심한 나라이기도 했다. 그런 나라의 인간이 인사를 한다고 재깍 받아줄 만큼 앙금의 골이 얕지 않았다. 보통은 부른다고 해서 올 일도 아니었다. 다만, 이번만큼은 각자가 겪은 충격이 워낙 컸기에 일단 만나서 의견의 교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만큼 이들이 가우리에서 느낀 충격은 거대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 가우리라는 나라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라오 백작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섣불리 대답하지를 못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말부터 풀어가야 할지를 걱정한 것이었다. “큼···. 기술력이 어마어마하더군. 이계의 공학 기술이 그렇게 엄청난 수준에 도달해 있을 줄은 몰랐다.” 아이언 왕국의 사신으로 온 그리드 족장은 드워프였다. 그가 가우리에서 가장 크게 쇼크를 받은 것은 기술력이었다. 드워프 하면 기술. 기술 하면 드워프. 인간 따위는 천 년이 천 번을 흐른다고 해도 드워프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 하다. 라는게 드워프들의 긍지였고 신념이었다. 그런데···. 가우리에 와서 그 긍지가 산산조각 났다. 처음에 자동차를 봤을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흠···. 저 정도의 마도전차라면 우리 쪽 에서도 만들 수 있지.” 외관에 세련된 멋을 부린 것 같아서 그 점은 칭찬해 줄 수 있었지만 자신이라면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도시에 도착해서 차가 길거리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크게 놀랐다. “···도대체 몇 대를 만든 거란 말인가? 돈이 남아돈단 말인가? 아니 돈을 둘째 치고··. 저걸 다 수작업으로 만들려면····.” 그의 머릿속이 카오스로 변한 것은 그때 부터였다. 자동차는 시작에 불과했다. 높은 고층빌딩과 길이가 수백 미터는 될 것 같은 터널과 교량. 다른 사신들은 그냥 크다. 혹은 멋지다. 하고 넘겼지만 드워프인 그는 잘 알 수 있었다. 저 토목 기술은 자신들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교량의 하중과 지지대의 균형을 본능적으로 판단하는 우리 드워프들도 저렇게까지 완벽한 다리를 만들 수는 없는데···.” 아마 그리드 족장이 한 말을 한국의 토목설계 업자들이 들었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교량의 하중과 지지대의 균형을 본능적으로 판단? 한국에서 그따위로 일을 했다면 교량은 족족 무너지고 설계자는 은팔찌를 차야 했을 것이다. 지구에서는 토목사업도 엄연한 학문의 영역에 있다. 역학, 지질학, 수문학, 측량학 등등···. 여러 가지 분야에 걸쳐서 모든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준비를 하고 고등 수학공식이 대거 들어가는 검증 과정을 거친 후에야 시공에 들어 갈 수 있다. 그 모든 과정을 그저 본능적인 감으로 하는 드워프들이 어떻게 보면 사기는 사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촉이 예리하다고 해도 결국 수치만큼 정밀하고 정확 할 수는 없다. 수많은 건축물과 기계공학이 만들어낸 기계 장치들을 보면서 그리드 족장은 결국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인정해야 했다. “이들···. 가우리의 기술력은 우리 아이언 왕국을 훨씬 초월하고 있소. 물론 전쟁에서 쓰는 기술에 관해서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언 왕국은 이렇게까지 기술이 일상생활에 녹아들도록 하지는 못했소.” 이건 사실상 패배 선언이었다. 이 세계가 생긴 이후 드워프가 인류에게 너희들 기술이 우리보다 낫다. 라고 인정하는 것은 이게 처음인 것이다. 그리드 족장의 말이 끝나고 나서 말을 연 것은 라우 추기경이었다. “큼····. 우리 성 세인트 왕국은 원래 주신의 신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 가우리에 왔습니다. 이들이 정녕 우리 세계를 위협할 존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말이오. 그리고 내가 놀란 것은··. 이 나라에 종교의 자유 라는게 있다는 것이었소.” 성 세인트 왕국. 이 나라는 원래 제국에서 살라져 나온 나라이다. 제국은 타국에 절대 침략 받지 않지만 그 대신 타국을 침략 할 수도 없다. 그것이 이 세계의 주신인 파우스트의 의지로 이뤄진 절대 법칙이었다. 이 법칙에서 벗어나 대륙에 적극적인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이들이 떨어져 나가서 건국한 나라. 그게 성 세인트 왕국이었다. 처음에는 제국에서 분리된 공국과 같은 느낌이 강했던 나라였지만···. 어느새 시간이 흐르면서 이 나라는 하나의 독립국과 같이 되었고 오히려 제국과는 사이가 나빠져 버렸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사이가 나빠진 이유가 뭘까? 그것은 미묘하게 변화를 거듭한 끝에 완전히 달라져 버린 종교적인 사상 때문이다. 원래 같은 이념이라고 해도 떨어트려놓고 다른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상당히 달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우스트의 신권에 의해서 보호 받고 있는 제국, 대륙에 나가서 자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성 세인트 왕국. 결국 두 나라의 종교관은 미묘한 구석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차이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양국가는 종교적 이념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옳다. 아니다 너희가 틀렸다. 우리가 원조다. 우리 말을 따라라. 웃기지 마라. 너희는 변질된 자들이다. 우리만이 신의 말씀은 오롯하게 지키고 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동안 계속해서 알력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원래 이런 종교적인 이념으로 인한 분리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지구에서의 역사를 봐서도 알듯이···. 인간에게 종교라는 것은 타협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뭔가 결착을 짓기 위해서는 한 바탕 피가 흘러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간신히 진정이 되고는 했다. 그런데 이 양국은 그 피 조차 흘릴 수 없다. 파우스트의 신권으로 인해서 제국이 절대 불가침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앙금만 쌓여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게이트가 열렸을 때도 성 세인트 왕국이 제국의 발표에 반박을 한 것도 제국과 사이가 나쁘기 때문인 탓이 컸다. 덕분에 정운으로서는 이득을 봤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한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사이가 나쁜 양국가였지만····. 그래도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제국이었다. 파우스트의 신권은 계속해서 제국을 보호하고 있었고, 저 야만적인 크롱크 왕국에서도 제국만큼은 조금 더 대접을 하고는 했다. 제국은 성 세인트 왕국을 부정 할 수 있었지만 성 세인트 왕국은 제국을 부정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부정을 할 수 없다면···. 하다 못해 자신들의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은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성 세인트 왕국이 줄기차게 외쳐온 주장중에 하나가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었다. 종교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제국의 정통성을 부정 할 수 없는 이상 남은 수단은 필연적으로 이것 뿐이었다. [인간은 신의 뜻을 자유롭게 따를 권리가 있다.] 라는 주장을 근거로 해서 오랜 세월동안 제국이 자국을 사도취급 하는 것을 부정해 왔다. 그런데 이 가우리에 와서 너무나 태연하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 받는 사람들을 보고는 쇼크에 빠졌다. “난···. 이 나라가 대륙에 위험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오히려 세계의 발전을 앞 앞 당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오.” 그렇게 성 세인트 왕국의 라우 추기경은 가우리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비록 그 호의가 마음에서 우러난 호의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호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말문을 연 것은 엘트란 왕국의 시글 이었다. 마치 헐리우드 영화의 미남 엘프 궁사가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미남자는 눈부신 금발에 조각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남자도 반할 것 같이 생긴 이 아름다운 청년 엘프는 라트란 왕국 내부에서도 가우리에 대해서 많은 호의를 가지고 있는 화친파였다. 그는 좌우를 한 번 훑어 본 다음에 말문을 열었다. “여기 있는 인간들 모두가 알겠지만···. 우리 요정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들의 이기심에 고난을 겪어 왔소.”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08화 “크흠·····.” “큼····.” 시글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바라오 백작과 라우 추기경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인간 중심주의 국가인 에리프릴 왕국의 바라오 백작은 사실 이 종족을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아래에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리고 성 세인트 왕국의 라우 추기경 역시 바라오 백작 만큼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종족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 성 세인트 왕국에서도 이종족 노예를 찾아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시글의 말에 반박을 해서 불편한 분위기를 더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둘의 침묵에 시글은 하던 말을 이었다. “우리 이종족을 노예 취급하는 것에 가장 앞장 섰던 나라는, 바로 이 영토에 있던 브로드 왕국이었소. 놈들은 툭하면 우리 국경 지대를 침범해서 동포를 납치해 갔었소.” 그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특히 브로드 왕국의 노예 시장의 최대 고객 중에 하나가 바로 에리프릴 왕국이었다. “그래서 브로드 왕국이 사라지고 가우리라는 나라가 태어났을 때 우리 전사들은 한 층 덩 경계를 강화하고 여차하면 국지전 규모의 전쟁도 각오한 상태였소. 그런데····. 우리들의 예상은 틀렸지. 좋은 쪽으로 말이오.” 가우리가 브로드 왕국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이종족 노예들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이들을 관리하던 한중겸은 2차적인 피해가 없도록 엄중히 보호하는 한 편 라트란 왕국 쪽으로 연락을 넣어서 이들을 데리고 갈 것을 요청했다. 라트란 왕국은 최초에는 함정이 아닌가? 의심 했었다. 인간의 간악함에 레파토리별로 다 당해본 이종족들이었다. 의심을 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동족들을 외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라트란 왕국에서는 함정일 가능성도 있으니 주의하며 대처하자. 라는 결정을 내리고 전사들을 동원해서 동포들을 구하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 당시 브로드 왕국의 동쪽 지대로 집결했다. 그리고····. 일은 너무나 싱겁게 끝났다. 한중겸은 직접 이종족 노예들을 이끌고 자리에 나가서 그들에게 인도를 하고는 말했다. “총 1만 3082명입니다. 여기 이름과 출신지가 적혀있는 서류가 있으니 같이 가져가시죠.” 그렇게 한중겸이 주는 서류를 받았던 것이 당시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서 각오를 다지고 나섰던 시글이었다. 너무나 산뜻한 한중겸의 대응에 시글은 오히려 넋을 잃었다. “···이게 끝인가? 뭔가 다른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은··. 거 사람 좀 믿고 삽시다. 속고만 살았소?” 한중겸의 말에 시글을 뭐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속고만 산 것은 아니지만···. 이종족들으 대부분 인간들에게 속으면서 산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시글이 본 한중겸은 보통 인간들과는 달라 보였다. “당시, 내가 본 한중겸이라는 남자는 가우리의 간부라고 하오. 서열로 따져도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자라고 했었소.” 시글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인간은 계급과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알고 있소. 그리고 그 사회의 톱에 있는 인물이 그 정도로 청렴(?)하고 고결(?)한 인간이라면···. 이나라는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첫 인상이 이래서 중요한 걸까? 시글의 안에서 한 중겸은 무척 좋은 인상으로 남은 모양이다. “그가 그렇게 훌륭한 남자였소.” 가우리의 간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바라오 백작이 되 멀었다. 그러자 시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제 인상으로는 그랬습니다. 그는 욕심과는 돌 떨어진 현자(?)와 같은 인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의 일상은 상당히 금욕(?????)적이겠죠.” 한중겸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시글이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한중겸도 정운과 같이 내일 있을 건국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 자리 여기. 난 꼭 여기 앉을 거야.” “여기는····. 라트란 왕국의 사신의 맞은 자리네요. 형님. 이번에 온 사람은 남자라고 했습니다.”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일부러 남자로 보내달라고 했었지.’ 그러나 그런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이상한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응? 남자? 무슨 말이야? 그 사람 여자야.” “·········예?” “전에 한 번 본적 있지. 여자라고. 왜 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고 마법으로 목소리를 바꾸고 있으면 목젓을 환상 마법으로 만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여자야. 내기할까?”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 데요?” “넌 이 형님이 이 나이 먹고 남자 여자 구별도 못 할 것 같냐?” “··············.”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한 마디였다. 한중겸이 여자를 몰라 볼 확률은·····. 아무리 생각해도 희박했다. “형님··. 설마 쓸데 없는 생각 하는 것 아니죠?”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넌 설마 내가 건국식에 사신으로 온 타국의 사신을 꼬실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내각 그렇게 분별없는 인간으로 보여.” “예.”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돌아온 대답이었다. “젠장, 넌 날 너무 잘 알아.” 그리고 굳이 부정하지 않는 한중겸이었고 말이다. “정운아. 제발···. 전에 일부러 퉁명 스럽게 대하면서 나쁜 남자 캐릭터로 복선도 깔아 놨단 말이야. 여기서 운명적인 만남과 반전 매력을···.” “내일 형님은 건국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국 정운이 특탄의 조치를 내리게 한느 한중겸이었다. 정운과 한중겸이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그 시간···. 다시 장소를 옮겨서 사국의 사신이 모여 있는 장소로 옮겨가보자. 이들의 은밀한 만남에서 아이언 왕국의 사신인 그리드 족장은 가우리의 기술력에 대한 감탄을 표했고···. 라우 추기경은 사실상 가우리를 인정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살짝 한 발작국 정도는 물러나는 신중함을 취했다. 그리고 라트란 왕국의 시글의 경우 절대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단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주장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과연 라트란 왕국 전체의 의견으로 봐도 될지는 조금 의문이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나오는 동안···. 정작 이 회담을 주도한 바라오 백작은 자신의 의견을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잠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역시 이 나라에 큰 감탄을 했소. 일반 시민들의 생활수준조차 우리나라의 귀족들 보다 더 나은 점을 심심치 않게 발견 할 수 있을 정도였소.” 처음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우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였다. 사실 바라오 백작은 이 가우리에 가장 큰 쇼크를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신대구 에서부터 이 가우리를 가장 깊숙하게 탐방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흥미 분야만 걸쳐서 봤다면 그는 이 국가의 모든 면모를 가장 깊숙하게 파악한 인물이다. 우선 신대구에서 관광을 시작한 바라오 백작은 삼일이 지나고 자서야 자신의 옷차림이 매우매우 쪽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지금 내 모습이 어색한가?’ 삼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원래 까마귀도 자기 무리 속에 있으면 자기가 검은줄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백조 사이에 끼어 있으면 검은색이 확 두드러지는 법. 그는 자신의 레깅스 패션이 무척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존경스런 시선인 줄 알았다. 실제 중세 유럽과 비슷한 패션을 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착 달라붙는 레깅스로 자신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두드러지게 표현 하는게 유행이었다. 그 정도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떨 때는 그 위에 있는 심볼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 심볼을 더욱더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격투기 선수들이 착용하는 파울컵과 같은 것을 착용해서 한 층 더 불룩하게 보이게 하기도 했다. 여자들이 상의 속옷에 보정 패드를 넣는 것처럼 가랑이 사이에 그것을 넣어서 더 크게 보이게 한 것이다. 왜 그런 패션이 유행했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게 몹시 남사스럽고 쪽 팔리다는 것이었다. 바라오 백작은 며칠 지나서 자신의 옷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비웃음이 서려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가이드를 통해서 말했다. “큼··. 곧 있을 건국식 행사에 입을 옷으로 귀국의 예복을 입으면 어떨까 하오. 뭔가 추천할 만 한 것이 있습니까?”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부끄러워서라고 말하기는 좀 뭐해서 굳이 건국식 핑계를 대는 바라오 백작이었다. “예. 있습니다.” 바라오 백작의 말에 가이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했다. 안 그래도 이 쫄쫄이 군단을 이끌고 도심을 누비는 것은 그에게도 매우 쪽팔린 일이었다. 그래서 가이드는 바로 사신단 일행을 데리고 양복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정장을 몇 벌씩 맞췄다. “흠·····. 호오···. 이거 참···.” 바라오 백작은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에 절도가 생긴 것 같은 멋이 있었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처럼 컬러플한 칼라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중후하고 은은한 멋이 있어서 더 품위가 있었다. 옷을 그렇게 바꾼 후에 바라오 백작은 가이드에게 말했다. “어떤소? 잘 어울리는 것 같소? “예. 뭐····.” 가이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옷은 잘 어울렸다. 원래 정장이라는 것이 서구적인 체형에 맞춰서 만들어진 옷이고 바라오 백작은 신장이 180은 넘는 장신이었기에 옷 빨은 잘 받았다. 그런데····. ‘저 깃털 달린 모자 좀 벗으면 안 되나.’ 밸런스 붕괴의 극치를 보여주는 모자가 문제였던 것이다. 어쨌든 바라오 백작은 패션까지 완전히 바꾼 후에 신대구의 관광에 푹 빠져 들었다. 거리를 걷기만 해도 볼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깔끔하게 정돈 된 거리와 높은 고층 건물들. 그리고 여기저기 조성되어 있는 광장과 공원 등등··. 모든게 너무나 훌륭했다. 드워프들이 공을 들여서 만든 아이언 왕국의 도시에도 가본 바라오 백작이었지만···. 그 도시는 너무 기술적인 면만 강조한 덕분에 약간 불편한 감이 있었다. 기술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 하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기술을 관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편리한 기술과 인간의 생활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특히 바라오 백작이 감명 받은 것은 백화점이었다. 귀족이라고 하면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치를 부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바라오 백작 역시 그런 전형적이 귀족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였다. 그래서일까? 백화점에 들어간 순간부터 다른 가게와는 차원이 다른 명품의 가치를 귀신같이 날아챘다. “호오····. 이거 멋지군. 디자인과 실용성이 아주 잘 녹아 들어있어.” 2,000만원 짜리 금장 롤렉스 시계를 손에 들고 몹시 만족스러워 하는 그를 보면서 사신단의 수행원이 말했다. “백작님. 이미 상당한 지출이 있었습니다만···. 이 이상 구입을 하려면 사신단 공적 자금에 지출을 해야 합니다.” “흠···. 어쩔 수 없군.” “예. 그럼···.” “그렇게 하게.” “예!?” 혀를 깨문 것 같은 수행원의 말에 백작은 웃으면서 말했다. “공적 자금으로 지출을 하란 말일세. 이건 말이지···. 이 나라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필수적인 지출이야. 내가 보고서에 알아서 올리지.” “············.” “············.” “············.” 사신단 일행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어지만 바라오 백작은 자신의 손목에 착 감겨 있는 롤렉스의 광채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옷과 장식구, 그 외 기타등등의 소비로 그가 오늘 사용한 돈만 해도 5억이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대만족이었다. 자국에 돌아가서 사교계에서 한 눈에 주목을 받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정도 지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런게 고위층이라고·····.’ 가이드는 옆에서 그런 바라오 백작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7월 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힘내서 페이스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09화 한국에서 공무원이나 정치가들이 공적 자금으로 쇼핑하다가 걸리면 직위 해체는 기본이고 잘못하면 횡령으로 형을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수행원들 몰래 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태연하게 하는 것을 보면 에리프릴 왕국에서 귀족이라는 위치가 가지는 역할이 어느 정도일지 대강 짐작이 갔다. 어쨌든 그 후로도 바라오 백작은 실컷 관광을 즐겼다. 귀족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그는 귀족적인 유희를 다 즐겨본 인물이었다. 사냥, 연회, 때로는 손짓 하나로 평면 여자를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우리에 와서 즐기고 있는 것들은 모두 자신이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것들이었다. 새로운 놀이감은 항상 신선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바라오 백작은 사신단의 공적 자금을 거의 다 사용하고 나서도 국가의 이름으로 자금을 빌려서 가우리의 문화를 즐겼다. 그리고 지금 바라오 백작이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은····. “이 가우리는 우리 대륙의 존재를 근간부터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나라입니다.” 탐욕이었다. 그는 이 가우리 라는 나라에 가장 크게 감탄했다. 하지만 그는 자국인 에리프릴 왕국을 이렇게 만들어야 겠다가 아니라. 이 풍요롭고 화려한 나라를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시글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예의바른 엘프 답게 타인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일단 바라오 백작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이 나라에서는 신분 제도가 일절 없습니다. 제가 듣자하니 이 나라의 왕···, 여기서는 수상이라고 하더군요. 그 수상이라고 해도 신분 자체가 높은 이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건···. 그렇게 들었소.” 가장 먼저 바라오 백작의 말에 동감을 한 것은 성 세인트 왕국의 라우 추기경이다. 사실 성 세인트 왕국도 다른 나라들과는 좀 다른 신분제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분의 격차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귀족의 신분을 사제들이 독차지 하고 있는 것일 뿐. 사회적으로 상하 신분간에 격차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바라오 백작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외교 경험이 풍부한 사신답게 혓바닥을 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가우리는 풍요롭소. 하지만, 이 나라는 정상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 있소.” 바라오 백작의 말에 아이언 왕국의 그리드 족장이 퉁명 스럽게 말했다. “정상에서 벗어났다니···? 뭘 말하는 거요?” 그리드 족장의 말에 바라오 백작은 진지한 눈을 하고 말했다. “바로 이 나라의 전반에 깔려있는 사상이오. 이 나라에서는 신분제도가 거의 전무하오.” 바라오 백작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신분 제도가 없다는 것이 뭘 뜻하는지 잘 생각해 보시오. 이제까지 우리가 이뤄온 질서가 붕괴 된다는 말이오. 아마 이 나라의 실상을 알면 수많은 평민들이 말하겠지. 자신들도 저렇게 살고 싶다. 라고 말이오. 그것이 귀족과 왕족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오.” 바라오 백작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록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부각 시켜 말한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가우리의 존재가 이 세상에 알려지면 기존의 지배계급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말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하고 있는 것은 라우 추기경이었다. “기존의 체제를 다 부수고 새로 만들자고 하면 쓸데 없는 피가 흐르는 법이죠. 그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소.”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이 오랜 시간동안 지속된 전쟁으로 불편한 사이임을 생각하면···. 방금 라우 추기경이 한 작은 동의도 최대한의 응원이라고 봐야 했다. 다만 인간 중심의 두 나라와 달리 아이언 왕국과 라트란 왕국의 이종족들은 별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바라오 백작의 말은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 아이언 왕국을 겨냥해서 말했다. “그리고 이들의 기술력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 알아봤는데···. 이 세계에는 특허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특허? 그게 뭐요?‘ 그리드 족장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바라오 백작의 말이 이어졌다. “이 세계에서 새로운 기술이라는 것은 특허라는 과정을 거쳐서 등록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사용을 금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바라오 백작의 말에 그리드 족장은 크게 고성을 질렀다. “잠깐····. 그 말은····.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그 기술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건가?” 바라오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애당초 자신들의 기술을 과시만 할 뿐. 다른 이들과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이런 나라가 대륙에 진출한다고 생각해 보시오. 결국 모든 나라가 이 나라의 기술을 구걸해야 할 것이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불이익을 당할지 생각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리드 족장은 분노로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드워프들은 장인의 종족이라고 부르며 화통하고 욕심 없는 종족으로 불리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드워프는 인간 만큼이나 욕심이 많다. 단, 그 분야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앞선 기술, 훌륭한 예술품. 그런것들이 드워프들이 간절하게 갈구하는 것들이다. 인간에게 드워프의 예술품이 흘러들어가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 대부분은 그냥 실패작이나 연습작들일 뿐이다. 진짜 걸작은 절대로 외부로 유출 시키지를 않는다. 자신이 만든 걸작 보석을 두고 드래곤과 승산 없는 사투를 한 드워프의 얘기는 대륙의 우스개 소리로 유명하다. 그런 드워프들이기에 기술의 공유는 당연한 것이었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기술을 공요하는 것은 장인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우리라는 나라에서는 특허라는 악법(?)을 만들어서 기술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바라오 백작의 다음 타깃은 라트란 왕국의 시글로 바뀌었다. “요정족의 사신분은 이 국가를 상당히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계시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시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애당초 엘프의 입장에서는 기술의 독점은 아무래도 좋았고 신분 제도는 더더욱 상관없는 일이었다. 엘프들도 신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그건 법적인 제도라기 보다는 일족의 율법과 같은 것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더 엄격한 것이었지만 인간들과 달리 엘프들은 자신의 신분에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출세욕이 없다고 해야 할까? 엘프들 사이에서 권력을 두고 정쟁이 벌어졌다는 애기는 이 대륙의 역사에서도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가우리에 신분 제도가 있든 없든 마음에 와 닿을 리가 없었다. 그 대신에 바라오 백작은 다른 부분을 찔렀다. “이건 제가 개관적으로 내린 평가입니다만··. 이 가우리를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당신들 라트란 왕국이 아닌가 싶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시글은 바라오 백작의 말에 한 마디의 부정도 없이 순순히 상대의 말에 말려서 다시 질문을 한다. 역시 엘프는 똑똑하기는 해도 논쟁에 강한 종족은 아니었다. 그런 시글에게 바라오 백작의 말이 이어졌다. “가우리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는 총 세 개. 그 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나라는 어디라고 생각하시오.” “·················.” 시글은 대답이 없었다. 다크니스 왕국과 크롱크 왕국, 그리고 라트란 왕국. 이 세 개의 나라 중에 가장 만만한 나라? 바보가 아니면 당연히 알 수 있었다. 라트란 왕국이 가장 만만하다. 다크니스 왕국의 강력함은 이미 말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신권으로 보호받고 있는 제국과 달리 다크니스 왕국은 오로지 자국의 힘만으로 이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켜온 나라였다. 역사상 다크니스 왕국에 도전한 나라는 지금까지 모두 똑같은 결과를 맞이했다. 바로 멸망이라는 결과를 말이다. 가우리가 어느 정도 강력함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크니스 왕국과 바로 전쟁을 벌일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크롱크 왕국은 어떨까? 사실 크롱크 왕국이나 라트란 왕국이나 국력은 거의 비슷비슷했다. 다만, 결정적으로 차이점은 크롱크 왕국은 개라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개가 아니라 광견병 걸린 도사견 정도는 되는 아주 만렙 미친개다. 그 나라와 전쟁을 하면 정말 끝장을 봐야 하는데 그러기도 쉽지가 않다. 크롱크 왕국을 끝장낸다는 것은 사실 오크라는 종족을 멸망 시켜야 하는 것인데···. 그게 되면 어느 국가가 해도 진작 했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전투력과 이따금씩 랜덤으로 태어나는 괴물 같은 히어로급 오크들. 이 대륙에서 유일하게 인간을 초월한 어마어만한 인구수. 험악한 대괴수들을 길들일 수 있는 능력까지···. 오크들은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또, 이 만만한 상대를 이겨서 얻을 수 있는게 좀 많다면 혹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지금은 멸망한 나라지만 오랜 역사 속에 크롱크 왕국을 정발 시도한 나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나라들은 대부분 끝이 안 좋았다. 기껏 점령한 크롱크 왕국에서 얻을게 없었고, 계속해서 바퀴벌레처럼 나타나는 오크들과의 국지전으로 소모되는 국력. 결국 그 나라는 제풀에 지쳐서 국력이 쇠퇴했고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오크들은 또 다시 무럭무럭 늘어나서 다시 크롱크 왕국이라는 틀을 갖췄고 말이다. 이 대륙에서 전쟁을 기피해야 되는 나라의 순위를 매기면···. 1순위는 제국이다. 전쟁 자체가 불가능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2순위는 다크니스 왕국이다. 이미 이 나라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의견이었고···. 중간에 항복 따위는 없다. 다크니스 왕국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나라의 명운을 걸고 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세 번째가 크롱크 왕국이었다. 침략은 가능하고, 영 못 이길 국가는 아니었지만···. 이겨도 얻을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가우리가 이런 대륙이 역사를 약간만 수집했다면 섣불리 크롱크 왕국과 전쟁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라트란 왕국 뿐인 것이다. 물론 라트란 왕국의 엘븐 레인저나 페어리들의 마법도 강력하고 까다로운 상대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나라를 이겼을 때에는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가우리가 힘에 자신이 있고 대륙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면···. 그 첫 제물의 물망에 올를 것은 라트란 왕국일 것이 뻔했다. 시글은 바라오 백작의 경고에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적어도. 이 가우리라는 나라가 브로드 왕국과 같은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흠····. 고결한 엘프 다운 생각이기는 하오. 하지만···.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당신들 엘프는 항상 탐나는 보석이오.” “·············.” 시글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바라오 백작은 손사레를 치면서 사과의 제스쳐를 취했다. “말이 좀 지나쳤소. 하지만 이 모든 말이 걱정과 배려에서 나왔다는 것을 믿어 주시오.” 절대 그렇지 않았지만 시글이 더 따지고 들어가기에는 무리였다. 바라오 백작은 자신의 혓바닥을 놀려서 가우리의 위협성을 최대한 강조했다. 그리고 다른 자들에게 경고를 하듯이 말을 하며 이 회담을 마무리 지었다. “지금 당장 뭘 하자는 것은 아니오. 다만, 각자 본국에 돌아가거든 지금 이 회의에서 얻은 정보를 최대한 공유해 주시오. 그리고 우리가 이제까지 지켜온 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뭘 필요로 해야 하는지 잘 생각들 해 주기 바라오.” 여기서 확답을 받아낸다고 해서 뭔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라오 백작은 일단 씨앗을 뿌린것에 만족했다. ‘어차피 변수가 많은 상황이기도 하니··. 여기서 내 혓바닥만 가지고 뭔가를 더 해보기에는 상황이 많이 미흡하다.’ 바라오 백작은 그렇게 생각하며 본국에 돌아갔을 때 행동해야 할 일을 치열하게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10화 <라트란 왕국으로> 다음날. 드디어 가우리의 건국식이 되었다. 사실 지구의 인물은 부르지 않고 오로지 이 대륙의 인물들만 부른 정운이었다. 지구 쪽에서도 자치정부 가우리의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서 외교 사절을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나라는 많았다. 사실은 정운에게 접촉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운은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이 신세계에서는 건국이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한국의 테두리 안에 자치정부가 생기는 것 뿐이었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훨씬·····. 그야말로 훨씬 더 크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너무 가우리에 이목이 집중되면 한국 정부의 체면도 썩 좋지만은 않고···.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사절이 신세계의 사신들과 접촉하는 것은 아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국식에는 정운을 비롯한 가우리의 인물들과, 그리고 신세계의 국가에서 온 사개국의 사신들만 참가한 것이다. 식은 스케일은 크지만 시간을 길지 않게 진행했다. 정운도 지루한 식은 짝 질색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영상을 생각해서 최소한의 형식은 갖췄지만 말이다. 사실 이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서 처음에 구상한 건국식은 사흘 동안 진행되는 장대한 일정이었다. 정운은 그걸 줄이고 또 줄여서 3시간으로 압축했다. 그 이상은 도저히 무리였다. 가우리의 국가 체제를 발표하고, 각 부서의 장관들도 정식으로 소개를 했다. 사실 지구의 국가들 입장에서는 이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정운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는 대부분 베일에 싸여져 있었다. 누가 정운의 측근이고, 그 측근은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이 절대비밀이었다. 보통은 말단부터 하나하나 로비해가면 어느정도 정보의 끈을 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정보의 누설 자체를 신의 맹세로 금지 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것도 실패였다. 그러니 이제 가우리의 건국식에서 정식으로 발표를 함으로서 박추성, 배대호, 한중겸 등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어···. 저거 이슬기 아니야?” “정말? 예전에 실종된 아이돌 이잖아?”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갔던 거야? 그리고 귀환자로 돌아왔고? 완전 쩐다.” “·····와아··. 나 팬이었는데···.”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슬기였다. 이제까지 슬기의 존재를 세상에 꽁꽁 숨기고 있었던 정운이었다. 혹시 슬기에 관한 얘기만 인터넷에 돌려고 해도 바로바로 틀어 막아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정식으로 공개를 해야 했다. 이제까지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슬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수수깨끼의 아이돌 이었다. 그런데 정운의 옆에 나타남으로 인해서 이제는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다 알려진 것이다. ‘앞으로 좀 피곤하겠어····.’ 그리고 모든 소개가 끝나고 가장 끝으로 정운이 수상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단상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박정운입니다. 우리 가우리의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여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짝짝짝짝····. 정운은 일부러 ‘국가’나 ‘자치정부’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냥 가우리라고 통일해 버렸다. 혹시나 모를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서 약간 두리뭉술하게 말을 흐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운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 가우리는 양 세계의 교류와 발전을 도모하며, 양 세계를 잇는 교류의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이 세계의 분들은 아마도 신탁의 곡해로 인해서 저희들에 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파우스트의 신탁. 그건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정운은 그 부분에서 굳이 파우스트에 대한 증오감을 드러내서 반감을 사지 않고 이전에 성 세인트 왕국이 발표했던 ‘신탁의 잘못된 해석’이라는 출구를 활용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 파우스트가 우리를 엿 먹이고 만든 세계가 이 세계다. 그러니 그 개자식과 끝장을 봐야겠다. 라고 말하고 싶은 정운이었지만···. 공식 석상에서 자기 고집대로 말해서 이득 볼 것은 하나도 없으니 참아야 했다. 그리고 정운은 순탄하게 미하엘이 준비해둔 연설문을 낭독해 갔다. 말 자체는 별것 아니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고 앞으로 타국과도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좋은 나라다. 그러니 너무 경계하지 마라··. 뭐 대강 그런 얘기들을 공식 석상에 걸맞게 돌리고 돌려서 30분 정도 줄기차게 얘기했다. “····이상으로 저의 말을 마칩니다. 들어주신 청중 여러분들에게 모두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짝짝짝짝짝·····. 그리고 정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건국식의 주요 행사가 모두 끝났다. 하지만····. 사신단을 비롯한 가우리 간부들에게는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행사였다. 건국식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이제 볼일 끝났으니 그냥 집으로 간다? 아니다. 절대 그럴리는 없었다. 여기까지 온 사신단 일행과 가우리의 간부들을 포함한 귀빈들의 연회가 열리는 것이다. 사실 이 연회가 오히려 더 알짜배기다. 공식석상과 달리 말을 크게 가릴 필요도 없고 약간의 술과 즐거운 분위기는 사람의 입에서 진실을 토해내기에 적합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외교전)를 하고 있었다. “흠···. 몇 번이고 감탄하지만 참 훌륭하고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바라오 백작은 어제 밀회에서는 가우리의 위험성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한 것과 달리 정운의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가우리에 대한 칭찬만 연달아 하고 있었다. 정운은 그런 바라오 백작의 말을 웃는 얼굴로 어느정도 들어주고 있었다. 물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뱀 같은 위선자가···.’ 바라오 백작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각국의 사신단에게는 도청기가 설치되어서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녹음되고 있었다. 당연히 어제 사개 국가의 사신단이 모여서 가진 비밀회의도 정운은 보고 받았다. 그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도 말이다. 이 세계에도 도청 장치는 있고···. 바라오 백작 역시 그것에 대한 대처는 했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도청 장치라는 것은 마법적인 물건이며 그 크기도 거의 멜론만 했다. 자기 슈트에 달려있는 작은 단추가 도청기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바라오 백작으로서는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운은 웃는 얼굴로 대화를 하고는 있었지만 바라오 백작을 이미 단단히 찍어 놓고 있는 상태였다. 오늘 사신단을 보내온 네 개의 국가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놈은 이 인간이었다. 욕심 많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주변을 이용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다. 원래 정운의 성격상으로 이런 인간하고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성격에 안 맞았다. 하지만 오늘 이 연회에 앞서서 미하엘이 가우리의 모든 간부들에게 단단히 당부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모두 웃고 계세요. 화도 내지 마시고 가능하면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요. 아!! 그래도 우리쪽 기밀은 절대 말 하시면 안 됩니다”] 라는 말을 신신당부했다. 어떻게 보면 가우리에서 실세 중에 실세는 미하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천계에서 정운과의 연락책 정도로 맡긴 천사였는데···. 이제는 천계에서 다시 돌려달라고 해도 못 돌려준다고 개겨야 할 판이었다. 그녀가 없으면 가우리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상 각하.” ‘이런, 안 들었는데?’ 정운은 바라오 백작의 말을 듣다가 지겨워서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이것도 고역이었다. 정치가들은 이 짓을 어떻게 계속해 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때 마침 정운의 뒤편에 있던 미하엘은 정운의 위기를 눈치 채고 자연스럽게 끼어 들었다. “백작님이 말씀하신 물건은 기꺼히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유용하게 사용해 주십시오.” 미하엘의 말에 바라오 백작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바라오 백작이 떨어져 나가고 나자 정운은 미하엘에게 슬쩍 물었다. “뭘 달라고 한 거야?” “비데요.” “··········.” “마음에 들었나 봐요.” 정우으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건국식이 무사히 끝나고···. 사개국의 사신단도 이제 자국으로 돌아갔다. 단.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 나라는 몰래 정운에게 접선을 해 왔다. “그러니까····. 우리 가우리에서도 그쪽으로 사신을 보내 달라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정운은 자신에게 몰래 이런 대화를 시도하는 상대를 보면서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쪽에서 먼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정운의 눈 앞에 있는 상대는 시글.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엘프였다. 정운은 그 엘프를 보면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흠·····.” 고심하는 정운의 고민의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과연 그녀가 무슨 의도로 사절의 파견을 요청하는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는···. ‘정말 여자인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니야. 엘프는 원래 얼굴 자체가 워낙 미형들이라서 얼굴로는 구별이 안돼.’ 그렇다. 한중겸의 말대로 시글이 정말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의심 스러운 것이다. 그런 정운의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지 시글은 자기가 먼저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씀 드려서···. 제가 귀국에 사절을 먼저 요청하는 이유는 전쟁을 완전히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쟁을 피한다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운은 시글의 말에 살짝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도청기로 비밀 회의에서의 대화를 들은 정운은 라트란 왕국이 가장 가우리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라트란 왕국에서 먼저 전쟁이라는 민감한 단어를 꺼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운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시글은 자신의 말이 살짝 일렀다고 자책했다. ‘너무 성급했어····.’ 하지만 이미 배를 띄웠는데 뒤로 후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능하면, 우리 나라의 사정은 차후에 말씀 드리고 싶었지만····. 사실 우리 라트란 왕국에서는 가우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일부 있습니다.” 시글의 말에 정운은 심각함 표정을 하고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 실은····.” 시글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 라트란 왕국은 양쪽 파벌로 나뉘어서 의견대립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쪽은 가우리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쪽과, 또 다른 한쪽은 이제까지의 노선대로 비전쟁을 주장하는 쪽이었다. 원래··. 엘프들은 전쟁을 싫어한다. 생명을 존중하는 엘프들은 필요 없는 살생을 싫어했고 그 필요 없는 살생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은 하나의 악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엘프들에게도 한계는 있다. 라트란 왕국 자체가 그런 한계를 넘었을 때 만들어진 나라였다. 원래 나라라는 개념이 없던 엘프들은 인간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표적이 되어왔다. 개체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엘프는 인간 보다 훨씬 더 우수한 종족이다. 긴 수명으로 인간보다 노력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시간이 길었고, 또 타고난 재능도 탁월했다. 엘프들의 정령술과 궁술은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것이었다. 또, 개중에는 인간들 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검술이나 마법을 지니고 있는 엘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개개인을 비교했을 때의 일이다. 인간은 집단으로 행동할 때 그 진정한 힘을 드러내는 종족이다. 10+10이 20이 되는 다른다른 종족과 달리 인간은 10+10이 100이 될 수도 있다. 상호 협조로 인한 극한의 상승효과. 이것만은 신세계에서도 인간을 따라 갈 수 있는 종족이 없었다. 그리고 인간들의 협조에 최종 형태라고 할 수 있는게 바로 ‘국가’라는 시스템이었다. 인간은 국가를 성립하고 그 안에서 사회적 시스템을 갖춤으로 인해서 이 대륙에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엘프들은 그런 인간들의 ‘국가’ 시스템에 철저하게 유린당해왔다. 수많은 엘프들이 죽고, 노예로 잡혀가는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인간들은 집단의 힘을 활용해서 대륙을 점차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당하면서도 엘프들은 소극적인 대처를 계속했다. 그런 엘프들의 사이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7월도 내일 하루만 하면 다 되네요. 내일은 슬슬 8월의 연재 페이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발표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닷새를 완전히 쉬는 것 보다는 열흘 정도는 하루에 한 편만 연재를 하는게 더 좋다는 의견이 많기는 한데요.... 아직 결정은 못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11화 원래 엘프라고 뭉그러트려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다. 보통의 하얀 피부에 금발을 하고 있는 엘프가 있고, 갈색의 피부에 은발을 하고 있는 다크 엘프가 있고, 그리고 그 엘프들 중에서도 하이 엘프와 하이 다크 엘프가 있다. 그리고 태초의 핏줄이라고 불리는 아주 몇 안 되는 고귀한 엘프가 있는데···. 그게 바로 고엘프라고 불리는 종족이다. 긴 수명이 아니라 영원의 수명을 가지고 있으면 중간계에서 가장 신에 가까운 종족이라고 불리는 종족. 그게 바로 고엘프인 것이다. 딱히 고엘프라고 다른 엘프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다거나 하며 왕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까지 고엘프는 그저 엘프드에게 있어서 하나의 상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상징이 되는 고엘프는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엘프들의 어머니였고, 모든 일족의 근원이라고 불리는 종족인 것이다. 그런 고엘프 중에 한 명이 인간에게 납치되었다. 납치한 이는 지금은 멸망한 나라의 왕족이었다. 그는 고엘프의 아름다움을 탐내서 납치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욕을 보일 위기에 처한 고엘프는 스스로 죽음을 택해 버렸다. 여기서 대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벌어진다. [엘프를 진정으로 분노를 하게 하지 마라.] 그 때부터 대륙에 쭉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다. 고엘프는 죽음을 빗겨가는 대신에 새로 태어나지도 않는다. 한 명의 죽음에 다른 고엘프들은 크게 분노했고 그들은 자신의 권능을 발현해서 이 세상 모든 엘프들을 집결 시켰다. 인간의 어떤 억압에도 무리를 이룰 줄 모르던 엘프들이 그 힘을 모은 것이다. 거기다 엘프들과 친했던 페어리들 까지 힘을 보태서 양종족은 인간을 향한 전쟁을 선포했다. 처음에 인간은 그 선포를 듣고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자신들의 사냥감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이종족들이 전쟁을 선포해 봤자 위기감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엄청났다. 수십만의 엘프들이 정령을 일시에 소환하자 수천만의 정령들이 인간들을 휩쓸었다. 그건 이미 전쟁이 아니라 학살···. 아니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천재(天災)라고 봐야 했다. 엘프들의 싸움이 끝났을 때··. 대륙의 나라 네 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엘프들은 그 네 개의 나라의 영토를 접수해서 영토 전체를 숲으로 바꿔 버렸다. 그것이 바로 대륙에 요정족의 나라인 라트란 왕국의 탄생 비화인 것이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힘을 모아서 생긴 나라가 바로 라트란이었다. 라트란 왕국의 건국 후···. 한동안 인간들을 엘프를 노예로 삼는 것에 학을 때었다. 하지만, 백년····. 이백년··.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결국 공포는 희석 되었고 다시 인간들은 이종족을 대상으로 노예사냥을 재개했다. 다만 한 가지 철칙은 정해졌다. 절대로 고엘프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엘프는 생각만큼 순하기만 한 종족은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 후에 라트란 왕국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최대한 종족을 지켜가면서 생존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까지 계속된 브로드 왕국의 꾸준한 납치와 노예매매는 서서히 엘프들의 인내심의 한계를 자극하고 있었다. 엘프들 사이에서는 제법 오래전부터 브로드 왕국과의 전쟁을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재기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브로드 왕국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생긴 가우리라는 신흥 각국이 생겼다. 그리고 가우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엘프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가우리가 등장 과정이 문제였다. 브로드 왕국을 일방적으로 박살냈던 것이 오히려 라트란 왕국을 자극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브로드 왕국은 라트란 왕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는 존재였다. 일단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를 워낙 꺼려하는 라트란 왕국이었기에 꾹꾹 참고는 있었지만···.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브로드 왕국 정도는 충분히 역사에서 지워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가우리는 다르다. 그 국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브로드 왕국 따위보다는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브로드 왕국이 해충이었다면 가우리는 라트란 왕국의 존립 자체를 위기로 몰 수 있는 맹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라트란 왕국에서는 지금 먼저 공격당하기 전에 반격을 해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전파와·····. 전쟁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주장하는 비주전파가 대립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해 주신다는 것은 시글 당신은 비주전파인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 거겠죠?” 정운의 말에 시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원래는 저 역시 주전파였습니다. 하지만···. 일전에 귀국에서 우리 동포를 대량으로 인도해 주셨을 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정운은 조금 뜸을 들였다가 시글에게 말했다. “귀국에 사절을 보내는 것은 제 독단이 아니라 회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일단 물러나서 하루만 더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시글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차분하게 결정해 주십시오.” 그리고 시글이 물러나고 나서 정운은 회의를 소집했다. 정운이 회의를 소집하고 간부들은 금방 모였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소집이라니?” “금방 말하겠지. 중겸이 넌 꼭 먼저 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냐?” “추성이 형님은 저만 보면 잔소립니까?” 티격태격 하면서 자리에 앉은 간부들을 보며 정운이 말했다. “모두 왔네요. 그럼 지금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운은 간부들에게 시글과의 대화에 관해서 설명했다. “거참···. 이사 왔는데 전 이웃이 잘못한 것을 우리가 덮어쓰는 기분인 걸?”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박추성은 이렇게 푸념했다. 사실 가우리의 간부들로서는 억울했다. 자신들은 라트란 왕국을 박해하고 노예사냥을 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 이미 라트란 왕국에서는 가우리를 위험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국가’라는 것 자체를 위험 대상으로 보고 있을지 몰랐다. 이 모든게 가우리 이전에 이 자리에 자리하면서 라트란 왕국을 괴롭혔던 브로드 왕국 때문이었다. 가우리 입장에서는 이사 한 번 제대로 잘못 온 것이다. “쯧, 어쩔 도리 없군. 일단 사절을 파견해서 우리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수밖에····.”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좀 답답하기는 하지만 정공법이네요. 그렇다면 누가 갈까요?” 정운의 말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대답한 것은 두 사람이었다. “훗, 제가 아름답게 가도록 하죠.” “아니. 내가 가겠다.” 동시에 대답한 두 사람은 허공에서 눈을 부딪치고 양보 할 수 없다는 스파크를 튀겼다. 두 남자의 이름은 장 그레고리와 한중겸이었다. 한중겸이 먼저 장 그레고리를 향해서 말했다. “장, 당신이 언제부터 사신으로서의 임무에 관심 있었지? 그냥 아름다운 엘프들 보며 눈요기 하러 가는 것 아니야?” 한중겸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아름답지 못한 오해를 하시다니···. 한중겸님 답지 않군요. 전 어디까지나 양국의 아름다운 우호를 다지기 위해서 아름다운 요정족의 나라로 가겠다는 아름다운 결의를 다졌을 뿐입니다.” “··············.” 아름다운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말의 골자를 이해하기가 살짝 어려웠다. 대답 없는 한중겸에게 장 그레고리가 다시 말했다. “그러는 한중겸님이야 말로 어떠십니까?” “내가 뭘?” “프랑스 남자인 저보다 더 화려한 여성 편력을 지니고 있는 당신이 요정족의 나라에? 그건 마치 굶주린 늑대를 양치기 개로 쓰는 격이죠.” 쾅!! 한중겸은 탁자를 크게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무슨 그런 말을, 내가 국가의 대소사에서 나의 개인사를 개입 시킬 인간으로 보이나? 이 한중겸이? 정말 그렇게 판단했나? 장!!” 한중겸은 누가 봐오 오버 액션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중겸의 옆에 앉아있던 홍린은 한중겸의 품속에서 작은 수첩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죠?” “어어··? 아니 그건···.”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한중겸을 뒤로하고 홍린은 그 수첩을 확인했다. 그 수첩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브로블(Borble)] [제1권. 십만애첩 양병설] “···············.” “···············.” “···············.” 무거운····. 정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자···. 다음으로 넘어가죠.” 정운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하자 사람들은 조금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회의를 해 갔다. “어? 무시? 무시냐? 뭐야. 모두들 그 못 볼걸 봤다. 라는 시선은? 차라리 뭐라고 욕을 해!!” 한중겸이 절규했지만 그 누구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결국 회의 끝에 결과는 정해졌다. “건국 이후 첫 사절입니다. 우리도 최대한 성의를 표시하는게 좋겠죠. 그러니···. 제가 직접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 라트란 왕국의 사신으로는 수상인 정운이 직접 가기로 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정운 말고 다른 사람들이 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 건국 이후의 첫 사절이니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게 낫다는 정운의 주장이 제대로 먹혔다. 단, 정운 혼자 가는게 아니라 수행원으로 슬기와 미하엘도 같이 따라가기로 했다. “괜찮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미하엘 당신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좀 그렇지 않아?” 가우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 바로 그녀였다. 그런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웃으면서 말했다. “제게 최우선 적으로 행해야 할 임무는 수상각하를 보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각 부서에 전문가들이 많이 자리해서 저 없어도 당장 엉망이 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정운이 외교에 관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뭔가 회담을 결정지어야 할 일이 있을때는 미하엘의 존재가 큰 힘이 될 것이다. “정운씨, 물론 전 따라가도 괜찮겠죠?” 슬기는 자기도 따라 갈 것이라고 말했고, 정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혹시 내가 바람 필까봐 따라오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약간은 그런 마음도 있는 슬기였다. 정운은 믿고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이 한 번 세레나라는 형태로 돌아온 적이 있지 않은가? 한 번은 어찌어찌 받아들였지만 두 번은 절대 없었다. 정운은 그런 슬기의 마음을 알면서도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럼, 시글에게 연락해서 정식으로 고지하죠. 사신으로는 우리 세 명과 다른 수행원들과···. 그리고 빈 손으로 가기는 좀 그런가? 미하엘··.” 정운이 말을 하자 미하엘은 척하면 척하듯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예. 제가 적당한 물건으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고마워.” 유능한 비서라는 것은 정말 편리하다. 정운에게 있어서 미하엘은 마치 자기 수족과 같았다. 있는게 당연하고 없으면 엄청 불편한 것이다. ‘진짜 천계에서 돌려달라고 하면 절대 안 돌려줘야지.’ 어쨌든 회의의 결과는 결정되었다. 정운이 직접 사절로 가서 라트란 왕국과의 우호를 다지고 이 대륙에서 최초로 아군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가우리의 첫 사절이 향하는 국가는 요정족의 나라. 라트란 왕국으로 결정되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12화 라트란 왕국까지의 거리는 상당했다. 하지만 정운이 마음 먹고 흑토를 타고 날아가면 금방인 거리이기도 했다. 다만···. 사절로 찾아가는 길에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정운이었다. 결국 정운은 국경지대까지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라트란 왕국에 접어들고 나서는 시글이 안내하는 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약 사흘이 걸려서 국경지대에 도착한 정운은 마침내 라트란 왕국의 국경 안으로 도착했다. 정운을 비롯한 사신단 50명도 같이 도착했다. “여기서 부터는 차이 실어놓은 짐을 따로 보관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글의 말에 정운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미하엘이 라트란 왕국을 위해서 준비해온 선물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간단하게 보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인벤토리에 넣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 때의 시스템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인벤토리는 남아 있었다. 단 예전처럼 게임창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그냥 아공간 같은 형태로 변해 버렸다. 사실 지구에서는 귀환자들의 인벤토리 때문에 약간 골치를 썩고 있었다. 밀수에 활용하면 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가우리의 경우야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철저하게 관리하면 별 문제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짐을 깔끔하게 챙긴 일행은 거대한 숲으로 보이는 라트란 왕국의 안으로 이동했다. “우선 여기서부터 첫 번째 마을까지는 인간들의 도보로는 이틀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조금 멀군요.” 정운의 말에 시글은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름 교통수단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시글은 품안에서 호루라기 같은 것을 꺼내서 불었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조금 기다리고 나자 멀리서 반짝이는 빛이 다가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안녕 시글? 오늘도 예쁘네.” 그리고 일행에게 다가온 것은···. 작은 체구에 전신에서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는 페어리였다. “넬, 오랜만이야. 지금 돌아왔어.” “응. 인간들도 잔뜩 데리고 왔네? 시글의 친구들?” “아니. 우리 나라를 찾아온 사신이야. 그래서 좀 빨리 이동했으면 해서 넬을 불렀어.” 시글의 말에 넬이라는 페어리는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내가 도와 줄게.” 그렇게 넬이라는 페어리는 정운들에게 다가오더니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빛의 가루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건? 뭡니까?” 정운의 물음에 시글이 대답했다. “페어리의 마법입니다. 무해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정운은 어느 순간부터 주변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내가 작아진 건가?” 어느새 자각하고 나니 정운은 자신의 몸이 페어리 만큼이나 작아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됐다. 시글 다 했어.” 넬이라는 페어리는 마치 힘든 일을 완수했다는 듯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고마워. 그럼 여러분 이제 이동하도록 하죠.” 정운들과 같이 작아진 시글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등 뒤에는 페어리의 것과 같은 하늘하늘한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이건···. 호오? 이런 방식이었군요.” 정운은 자신의 등에 돋아나 있는 날개를 보면서 어떻게 빠른 이동을 하겠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페어리들 중에서도 상당히 능숙한 페어리들만 쓸 수 있다는 마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 이동하도록 하죠.” 시글의 말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날개짓을 하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제까지 날개로 날아본 적은 없는 인간들이었지만 마치 손 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날개를 이용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복잡하고 우거진 숲속이었지만 작은 페어리로 변한 사람들에게는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처럼 편하게 날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는 동안 정운은 시글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 마법을 쓸 수 있는 페어리가 얼마 없다고 했었죠? 그렇다면 아까 그 넬이라는 페어리는 페어리 중에서도 고위급인 것입니까?” 정운의 말에 시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페어리들은 우리 엘프들 이상으로 계급에 차이가 없습니다. 페어리 퀸을 제외한 다른 페어리들은 모두 평등하죠.” “그렇군요. 그럼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 페어리들이 많은가 보죠?” “글쎄요···. 사실 페어리들은 마법을 배우는게 아니라 타고나고, 또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익혀가기 때문에···. 똑같은 세월을 살아온 페어리들이라고 해도 서로 사용하는 마법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종족이 아닌가 싶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종족그저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거기에 따라서 발전하는 요정. 그게 페어리인 것이다. 일행은 부지런히 날개짓을 해서 어느새 첫 번째 마을에 도착했다. “이제 본 모습으로 돌아가죠. 저기 보이는게 마을의 입구입니다.” 시글의 말대로 일행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여기가 라트란 왕국이 마을인가?” 정운은 주변을 돌아보고 살짝 감탄했다. 좀 전까지 페어리로 변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본 모습으로 돌아와서 숨을 쉬기 시작하자 한 번의 호흡에 알 수 있었다. 공기가 달랐다.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은 청량한 공기와 녹음에 부서지면서 적당하게 비워주는 햇살. 자연의 한 가운데서 이렇게 쾌적한 감각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리조트 지으면 대박이겠네.’ 정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마을의 다른 사람들은 낮선 인간 일행의 등장에 이목을 주목했다. 시글은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안심을 시켰다. “최근 옆 국가에 생긴 가우리의 사절입니다. 잠깐 지나는 와중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가 그렇게 한 마디를 하자 주변에서 경계의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금세 시선을 바꾸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려움도 없고, 의심도 없고, 심지어는 낮선 사람에 대한 신기함도 없었다. 같은 종족인 시글의 한 마디에 그저 담담하게 그러려니 하고 인정해 버린 것이다. ‘신기한 종족이야···.’ 어쨌든 마찰이 있는 것 보다는 백배 나았다. 정운은 시글의 안내에 따라서 오늘 하루 묵을 수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마을의 촌장인 비만이라고 합니다.” 언 듯 보기에는 젊은 청년으로 보이는 엘프의 인사에 정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비만 촌장님.” 이름은 비만인데 생긴 건 엄청 슬림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엘프의 마을은 원래 여행자를 위한 설비 따위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여관도 없고 식당도 없다. 그러니 보통 이럴 때는 엘프들이 자시의 집을 기꺼이 내주고는 했다. 손님 자체가 워낙 오지 않다보니 가끔 찾아오는 손님을 상대로는 그냥 자기 집을 빌려 주는게 편한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집 주인은 어떻게 하느냐? 간단하다. 그냥 노숙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안 자거나····. 엘프들은 원래 사 나흘 정도는 밤샘을 해도 끄떡도 없었고···. 숲속에서라면 몇 십년을 노숙해도 깔끔하게 지낼 수 있었다. 사실 집을 왜 지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 편하게 쉬십시오. 혹시 필요 하신게 있다면 저를 부르시면 됩니다.” 그렇게 비만 촌장은 정운과 슬기, 그리고 미하엘은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고 인사했다. 다른 사신단 일행들 역시 어딘가의 다른 집에서 몸을 편하게 눕혔다. “이런 것도 괜찮은데?” 정운은 소박한 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모든게 친환경 적이라고 해야 할까? 가우리의 시설처럼 편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랄까? 청정구역의 시골 집으로 온 것 같은 정겨움은 있었다. 여기서 살라고 하면 살짝 곤란하겠지만 가끔씩 놀러오는 정도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여기다 리조트 같은 것 지으면 딱일 것 같아.” 정운의 말에 슬기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숲을 베어야 한다고 하면 엘프들이 몹시 싫어할 걸요?” “역시 그럴까? 그럼 리조트는 포기하지 뭐.” 그리고 정운은 슬기를 살짝 뒤에서 안으면서 말했다. “그냥 작은 오두막이라도 짓고 우리 별장으로 사용하는건 괜찮을까?” 그런 정운의 말에 슬기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내심 그녀도 이런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의 느낌이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둘이 막 분위기를 타려는 순간···. “전 나갈까요?” “아!!” “아!!” 정운과 슬기가 깜빡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미하엘의 말에 둘은 피식 웃으며 떨어졌다. 우수한 비서답게 워낙 거슬림이 없는 그녀라서 정운도 슬기도 미하엘의 존재를 깜빡 한 것이다. “한 두 시간 정도 산책이나 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비우는 미하엘을 보면서 슬기가 나도 라고 하면서 따라가 버렸다. 그리고 졸지에 혼자 남은 정운은 방에 드러누워서 씁쓸하게 웃었다. “으음···. 오늘은 그냥 자야 하나?” 슬기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이런 일을 겪고 나면 한 동안 위축되기 마련이다. 결국 정운도 한동안은 그냥 라트란 왕국과의 외교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똑똑. “안에 계십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들어오시죠.” 정운이 말을 하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여기까지 정운의 일행을 안내해온 시글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까지 못 봤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흠····.” 정운은 시글의 변한 모습을 보고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남장을 하고 있던 그녀는 지금 남장을 풀고 완전히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환상 마법을 이용해서 군데군데 보정을 한 모습은 미남자로 보였지만··. 그런 보정을 싹 풀어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세상 남자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느낄 만큼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이었다. “당황하지 않으시는 군요?” “예. 뭐 그렇죠.” 시글이 여성이 된 모습을 보며 정운은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한중겸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당황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 그녀가 지금 상황에서 이런 모습을 하고 나타났는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일이었다. “용건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시글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선 제가 여자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제가 어째서 여자라는 것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설명해 드려야 한닥 생각했습니다. 우선···. 가우리를 우롱하고자 하는 뜻은 없었습니다. 다만 저희 엘프들의 입장 때문입니다.” “엘프들의 입장이라·····. 어떻게 보면 저희 인간들의 입장이기도 하겠군요.”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시글이 자질구래한 변명을 하기 전에 정운은 알아서 적당히 넘어가 줬다. 엘프들 중에서도 주로 표적이 되는 것은 여성 엘프들이었다. 남성 엘프들도 귀부인들이 종종 구입을 하고 다른 용도의 노예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은 여성 엘프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 지는 새삼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시글을 비롯해서 외국으로 갈 때는 여성 엘프들이 남장을 하는 경우가 심심하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일국의 사신으로 갔을 때 상대국을 믿지 못하고 정체를 숨긴 것은 자칫 꼬투리가 될 수도 있었다. 정운이 혹시나 이것을 두고 먼저 트집을 잡을까 걱정이 된 시글은 먼저 그 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정체를 밝히러 온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도 않다니···. 내 변장이 그렇게 어설펐던 건가?’ ============================ 작품 후기 ============================ 7월도 이제 오늘로 마지막이네요. 일단 7월은 연재 페이스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페이스대로 연재를 계속하면 다른 작품들의 페이스가 너무 느려집니다. 이것저것 작업할게 많아서 아무래도 페이스 조종은 불가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13화 <요정족의 나라> 시글은 정운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에 살짝 놀랐다. 사실 정운은 시글의 변장을 알아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한중겸이라는 희대의 여자 탐지 레이더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곁에 있었을 뿐이다. 한중겸에게 미리 언질을 받지 못했다면 정운도 여기서 제법 놀랐을지 모른다. “뭐, 용건은 대강 알겠습니다. 전 불쾌하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다른 용건은 없습니까?” 정운의 말에 시글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다가 말했다. “크흠···. 그게···.” 뭔가 용건이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서 정운은 다시 물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십시오. 가능하면 협조하도록 하죠.” 정운에게 있어서 라트란 왕국은 잘만 하면 힘을 들이지 않고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는 나라였다. 시글이 하는 부탁이 어중간한 것이라면 다 들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운의 그런 결심은 금방 흔들리게 된다. “음···. 일전에 한 번 만났습니다만···. 귀국에 한중겸이라는 분이 계시지 않나요?” “·····있···죠?” 몹시 불안한 느낌이 드는 정운이었다. 그리고 시글의 말이 이어졌다. “가능하면 그 분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전에 만났을 때 상당히 강직하고 청렴하신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 “그만둬요.” 정운은 시글의 양 손을 덥썩 잡고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정운은 마치 중2 짜리 시골 소녀가 가방에 옷가지 몇 개 들고 ‘나 서울 가서 연예인 할 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순진한 어린 양이 크게 잘못된 길을 향해서 가고 있다. 마치 반지에 발이 달려서 자기 혼자 화산의 분화구로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운은 필사적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좀 더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겨요. 알겠어요? 지금 당신은 인생에 있어서 큰 실수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요.” “········예?” 정운의 말에 시글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런 시글을 보며 정운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으음···. 자세한 사정은 말 못해요.”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러 와서 자국의 고위층에 있는 한중겸에 대한 악담을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속 시원하게 진실을 말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어린양이 늑대의 마수에 혼자 걸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저 필사적으로 시글을 설득할 뿐이었다. “어쨌든 안 되요. 안 되는 겁니다. 그건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자, 한 손을 가슴에 대고 날 따라해 봐요. 나 시글은···.” “····나 시글은····.” 멋도 모르고 일단 정운이 시키는 대로 하기는 하는 시글이었다. 그런 시글에게 정운은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절대로, 한중겸이라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가능하면 그의 반경 100미터 안에 접근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절대로, 한중겸이라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가능하면 그의 반경 100미터 안에 접근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꼭 이래야 하나요?” 일단 시키니 시키는 대로 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 시글을 보며 정운은 진지하게 말했다. “날 믿어요. 이 모든게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시글은 그대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녀가 물러나고 나서 정운은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무섭다··. 중겸이 형님의 브로도,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도대체 어떻게?” 정운으로서는 불가사이 할 뿐이었다. 하룻밤 휴식을 취한 가우리의 사절은 다음날도 페어리의 도움을 받아서 이동했다. 정운이 흑토를 타고 스스로 이동하는게 가장 빠르기는 하겠지만···. 타국에 사신으로 와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다른 사신단 일행들을 모두 흑토보고 태우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흑토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고 말하면서 파업해 버릴 것이다. 그러니, 조금 느리기는 하지만 이쪽의 이동 방법을 이용해서 천천히 이동했다. 그렇게 사흘을 더 이동하고 나니 드디어 라트란 왕국의 수도인 리온에 도착했다. “여기가 라트란 왕국의 수도·····.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군요.” 정운이 리온을 봤을 때 느낀 첫 감정은 고요하다 라는 것이었다. 고요함도 엄숙한 고요함이 아니라 무척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고요함이었다. 명화가가 그린 수채화의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랄까? 이제까지 정운이 알고 있는 수도라는 개념하고는 조금 달랐다. 원래 일국의 수도라고 하면 대부분 화려하고 북적거리는 느낌이 좀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수도로 인구가 밀집되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모이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 라트란 왕국의 수도인 리온은 달랐다. 굉장히 한산한 느낌이었다. 일국의 수도라기 보다는 동화속의 공주님이 난쟁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게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런 고요함과 평화가 있었다. 수도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높이가 30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였다. 수도 한 가운데에 무성한 신록의 잎사귀를 파릇파릇하게 뽐내고 있는 저 나무는 나무 자체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나무를 보며 정운이 시글에게 물었다. “저 나무는 뭐죠?” “저건····. 그냥 나무입니다만?” 시글의 대답에 정운은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뭔가 특별한 나무가 아니고요?” “예. 저희 엘프들에게 숲의 나무는 모두 우리들의 친구고 동반자이긴 하지만···. 딱히 특별한 나무는 아닙니다.” 시글의 말에 정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면, 어째서 저 나무는 저렇게 크고, 또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겁니까?” “아아··. 그건 저 나무의 안에 고엘프님들이 살고 계셔서 그렇습니다.” “·············.” ‘역시 특별한 나무 맞잖아····.’ 정운은 엘프들의 기준을 잠시 따라 갈 수 없었다. 엘프들에게는 저 고엘프들이 살고 있는 나무나 혹은 길가에 널려있는 나무나 똑같은 나무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하찮게 생각해서 그런게 아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수도의 한산한 분위기도 그런 요정족의 분위기가 한 몫을 해서 만든게 아닌가 싶었다. 보통 인간들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수도로 몰리는 이유는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도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꼭 더 나은 생활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구가 밀집되어있고 발전도 많이 되어 있으니 더 많은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엘프들의 수도인 리온은 전혀 달랐다. 수도라고 해서 이곳을 더 선호하는 엘프들은 없다. 그저 나라의 형체를 갖추기 위해서 이 수도를 관리하는 엘프들이 이 수도에 살고 있을 뿐이다. 어디를 간다고 해도 결국은 같은 나라 같은 숲 속. 그렇다면 굳이 수도에 와서 살아야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라는 것이 요정족들의 생각인 것이다. 덕분에 일국의 수도라고 해도 이렇게 한산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정운은 보면 볼수록 경치 하나는 예술이라고 감탄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싱그러운 녹음의 실록과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을 볼 수 있었다.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싱그러운 풀과 대지의 향기는 수만 쉬고 있어도 심신이 힐링되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비하면 서울 공기는 거의 독이군.’ 심지어 서울 시민들에게 여기 공기를 담아서 팔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싱그럽고 상쾌한 공기가 한 가득했다. 정운이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시글이 정운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시글은 정운을 데리고 어딘가로 안내했다. 정운은 다른 사람들은 일단 대기하게 하고 미하엘과 슬기만 데리고 일단 이동했다. 시글이 세 사람을 데리고 이동한 곳은 엘프들의 회의실이었다. 회의실이라고 하지만···. 밀폐된 실내가 아니라 외부에 커다란 원탁을 하나 두고 있을 뿐이었다. 정운이 거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십 명 정도 되는 엘프들이 정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님. 여기 이 분은 가우리의 대표로 오신 박정운 수상님입니다.” 시글이 소개를 하자 장로라는 자들은 별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언 듯 보면 무례 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경멸이나 무시는 없었다. 그냥 단순하고 순수한 인사일 뿐이었다. 그래서 정운도 별로 불쾌해하지 않고 말했다. “가우리의 박정운입니다. 오늘은 귀국과의 우호를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정운이 그렇게 말을 하자 엘프의 장로중에 한명이 말했다. “우리들의 수도에 온 것을 환영하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허례도 간보기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라트란 왕국의 스타일이 정운은 오히려 반가웠다. 일국의 수상을 맡고는 있지만 원래 정운이 정칙 스타일인 것도 아니고 혀끝으로 하는 싸움은 영 서툴렀다. “오면서 들었으면 알겠지만, 우리 라트란 왕국은 귀국을 위험대상으로 경계하고 있소. 먼저 거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장로 중에 한 명의 말에 정운은 태연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 해갔다. “우선 이제까지 인간들에게 많은 곤욕을 치른 요정족 여러분들의 마음은 크게 동감합니다.” 정운은 우선 라트란 왕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 가우리는 예전의 브로드 왕국처럼 여러분들의 동포를 잡아서 노예로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부분은 법으로 엄금하고 만에 하나 적발이 된다면 그때는 엄격한 심판을 하겠습니다.” 노예매매 절대금지. 이건 현대인인 정운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있으면 어떤 방면으로든 꼼수를 찾고 엇나가는 인간들이 나오기는 마련이다.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묶어 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노예상인들과 결탁해서 비리를 저지르던 놈들이 발견되었지 않은가? 그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비리에 관해서 관용을 보여봤자 기강만 무너질 뿐이다. 무엇보다 정운을 포함한 다른 가우리의 간부들도 그라운드 제로라는 엄격한 수라장에서 구른 세월이 많아서인지···. 일단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뒤로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다 처벌해 버리는 것이다. 정운은 이번에 자국에서 발생한 비리 관련자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설명하면서 라트란 왕국이 장로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정운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도 엘프들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단, 당신의 개인적인 신념이 옳고 바르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나라라는 것은 개개인의 신념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법이죠.” 장로들 중에서도 갈색 피부에 은발을 가지고 있는 다크엘프 장로가 말했다. 정운은 그를 보면서 말했다. “인간에 관해서 잘 아시는 군요?” 부정도 긍정도 아닌 감탄 섞인 정운의 말에 상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천년 쯤 전에 인간의 나라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소. 그때 알게 된 것이었소.” 지금 정운에게 말을 하고 있는 자는 가우리에 대한 위험성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엘프였다. 그는 정운을 비롯한 좌중을 모두 둘러보며 말했다. “아시는 분들도 알겠지만 전 젊은 시절 인간의 왕과 친분을 맺고 그와 함께 인간과 이종족이 화합을 위해서 노력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결과로 돌아왔는지 모르는 분은 여기 없을 겁니다.” 정운은 손을 들고 ‘난 모르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째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이도 정운이 옆에서 시글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마그네스 장로님은 예전에 인간의 나라에서 명예 공작으 작위를 수여 받고 그 나라에서 일족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어요.” “···정말입니까?” 다크엘프가 인간의 나라에서 작위를 받고 생활했다는 말에 정운은 살짝 놀랐다. 그런 정운에게 시글이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그게 어떻게 된거냐 하면····.” ============================ 작품 후기 ============================ 7월도 이렇게 다 완수했습니다. 일단, 연재 주기에 관해서는 휴재 보다는 가끔씩 연참을 안 하는 걸로 정했습니다. 사실 제가 '악마의 게임' 하나만 집필한다면 이 페이스대로 계속 연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출판본 작업에,E북 작업에, 그리고 다음 후속작 작업까지...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러분들이 응원을 팍팍 해주시면 저도 최대한 의욕이 나서 집필에 흥이 난다는 것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14화 마그네스 장로. 그가 젊은 시절 당시 라트란 왕국과 이웃하고 있던 나라에 내전이 벌어졌다. 엘프들은 보통 담담하고 타인의 일에는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로 담백한 성격을 하고 있지만···. 때때로 약간 별종이 나타나기도 하는 법이다. 마그네스 장로 역시 그런 케이스였다. 그는 엘프 치고는 호기심이 많았고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발전하는 것을 지향하는 특이한 엘프였다. 당연히 바로 이웃 국가에서 일어난 내전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그 나라의 내전은 왕위 다툼을 두고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 그 나라에는 원래 왕위 계승자였던 1왕자가 왕위계승 서열에서 제외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이유는 1왕자의 성품이 너무나 괴팍하고 잔인했기 때문이다. 왕족이 아니면 인간이 아니다. 라는 오만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던 그 1왕자는 10살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기행을 고자질한 시종을 직접 찔러 죽였을 정도로 괴팍한 성정을 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점점 도를 더해가는 그는 시종이나 평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신에게 거슬리는 귀족의 자제들도 서슴치 않고 죽이는 행동을 저질렀다. 특히 어느 백작가에 트집을 잡아서 그 가문을 멸문 시켰던 것이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명분상으로는 백작가에서 왕권에 대한 모독을 했다는 이유로 처리되었지만···. 사실은 그 백작의 부인을 탐내서 벌인 일일 뿐이었다. 백작 부인은 자신의 남편과 자식까지 죽인 1왕자를 저주하면 죽었다. 그리고, 그 백작 부인은 백작가의 안주인이기도 했지만 원래는 유력한 공작가의 딸이기도 했다. 그걸 계기로 왕가에는 1왕자를 폐위해야 한다는 귀족들의 주장이 매일 같이 올라왔다. 이쯤 되면 아무리 왕자라도 해도 그 위치가 위태로운게 당연했다. 국왕은 1왕자의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박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1왕자에게 나라를 물려줬다가는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폐위를 당한 1왕자는 주저 없이 구테타를 일으켰다. 순식간에 나라를 장악한 1왕자는 자신에게 거역하는 귀족들을 죽이고, 아버지와 형제들도 다 죽였다. 그런 1왕자의 마수에서 딱 하나 10살짜리 막내 왕자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1왕자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그 남은 막내 왕자를 중심으로 뭉쳐서 대항했고···. 결국은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마그네스 장로는 그 나라에서 1왕자가 왕이 된다면 틀림없이 이웃하고 있는 라트란 왕국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다크엘프 일족 중에서도 자신을 따르는 몇 개의 부족들을 이끌고 내전에 참여했다. 당연히 막내 왕자의 편에 참전해서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 대신에 마그네스 장로는 그 나라에서 이종족의 노예금지 법안과 인간과 요정족의 꾸준한 교류를 지속하도록 제안했다. 압도적인 불리함으로 내일을 장담 할 수 없었던 막내 왕자 쪽은 당연하게도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마그네스 장로는 자신의 동포들과 함께 전쟁에 끼어 들어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비록 그 과정에서 동포들의 죽음을 눈앞에 목격해야 했지만···. 이 모든게 요정족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그리고 전쟁은 마그네스 장로와 그 일족의 도움으로 인해서 막내 왕자 쪽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이 시작했을 때 10살이었던 막내 왕자는 어느새 20살의 청년이 되어서 왕관을 썼고 직접 마그네스 장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신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우리 왕가는 당신들의 희생과 우정을 영원히 잊지 않고 요정족과의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약속대로 요정족과 좋은 관계를 가져갔다. 청년이 된 왕은 마그네스 장로를 자문관 삼아서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리는 선왕이 되었고 그는 죽을 때 까지 마그네스 장로를 향한 우정이 변치 않았다. [“내가 죽은 후에도···. 부디 나라를 잘 부탁 드립니다. 마그네스····.”] 처음 만났을 때는 10살짜리 어린애였고, 왕위에 올랐을 때는 당당한 청년이었던 왕은 이제 앙상한 뼈만 남은 노인이 되어서 친구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마그네스 장로는 그런 친구의 유언에 따라서 충실하게 나라를 이끌어가며 인간과 이종족의 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서서히 노력해 갔다. 하지만···.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르고···. 이윽고 저점 더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들이 처음에 정했던 약속은 점점 흐려져갔다. 인간들은 결국 요정족을 친구가 아닌 탐욕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그네스 장로는 그런 인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몇 번이나 요정족에게 불행한 일이 생겨도 모든 인간이 아니라 일부 인간들의 폭주일 뿐이다. 라고 일족을 다독이면서 참고 또 참았다. 어쩌면 자신이 이제까지 공을 들인 탑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런 말을 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은 그도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한 선선대 왕의 손자이며 또 자신이 직접 제자처럼 키운 왕세자가 사고를 친 것이다. 당시 마그네스 장로는 명예공작의 직위와 함께 그 나라의 왕족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전을 이기고 왕위에 올랐던 선선대 왕에게 이종족과의 교류와 평등한 관계를 교육 시켰던 것도 그였다. 그의 아들 역시 마그네스 장로에게 제왕학을 교육 받고 왕위에 올랐고···. 그 아들의 아들 역시 마그네스 장로가 직접 가르쳤다. 그렇게 가장 가까이서 신경써서 가르치고 공들였던 왕세자가 몇몇 망나니 귀족들과 함께 불법적인 노예밀매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그네스 장로는 차라리 그게 거짓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목격한 시점에서 그는 더 이상 현실을 부정 할 수조차 없었다. 정보를 입수하고 단독으로 잠입한 장소에서 마그네스 장로는 참혹한 진실을 목격한 것이다. 거기서 그가 목격한 것은 인간들의 탐욕과 그 탐욕의 장난감으로 희롱당하고 있는 요정족들이었다. ‘이게···. 이게 내가 만들어낸 것이란 말인가?’ 마그네스 장로는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의 눈에는 자신이 몰래 잠입한 것도 모르고 부하들과 흥청망청 환락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왕세자가 보였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앞에서 보이던 예의바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왕자님. 이건 어떻습니까? 최근 새로 들어온 물건이데?” 함께 어울리는 망나니 귀족이 벌거벗고 약에 취한 여성 엘프의 머리칼을 잡아 올리며 진상품처럼 소개했다. “···········.” 그 엘프 여성은 이미 약물에 완전히 절여져 버렸는지 말도 못하고 입가로 침만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왕세자는 그런 엘프를 보더니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이건 흰둥이잖아? 난 까무잡잡한 엘프년들이 좋다니까?” “하하··. 정말 각별한 취향이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다크엘프만 좋아하십니까?” 부하의 말에 왕세자는 손에 들린 술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우리 왕궁에 가면 잔소리 많은 검둥개가 한 마리 있거든? 항상 시끄럽게 개소리를 왈왈 거리는데 여간 짜증이 나야지. 뭐가 이종족과의 조화고 발전이야? 병신 같이···. 안 그러냐?” “하하하하···. 맞습니다.” “원래 인간이 아니니까요. 종종 헛소리를 하죠.” 부하들의 맞장구에 왕세자는 기분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내개 왕이 되기 전에는 그 검둥개 앞에서 내숭을 좀 떨어야 하거든. 그래서 거기서 쌓인 스트레스를 다른 검둥이들 따 먹으면서 풀려고 말이야.”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왕자님 그럼 제가···.” 왕세자의 곁에서 아부를 하던 귀족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대로 날카로운 참격과 함께 목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망나니 귀족의 죽음을 시작으로···. 마그네스 장로의 분노가 그 일대를 거침없이 휩쓸어 버렸다. 자신이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과 지난 세월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에 대한 허망함····. 마그네스 장로는 몸서리를 치며 그 나라를 등졌다. 이제까지 나라를 음으로 양으로 지탱하고 있던 마그네스 장로와 그 일족들이 사라지자 결국 그 나라는 10년이 가지 못하고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후 마그네스 장로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인간은 개개인이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과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엘프중에 하나로서 그는 인간의 좋은 점도 그리고 추악한 점도 너무나 많이 봤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비슷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엘프들과 달리 인간들은 개개인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도 알아챘다. 그것을 인간들은 개성이라고 했다. 다른 종족들도 개개인의 개성이 있기는 했지만 인간들은 그 편차가 너무나 컸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족 전체가 결국은 어디로 튈지 모를 폭탄과 같이 만들고 있다. 마그네스 종족은 그렇게 판단했다. 결국 그는 그 후에 인간을 요정족의 친구로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철저한 배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 라트란 왕국에서 가우리의 위험성을 가장 크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흠····. 고생 많이 하신 분이군요.” 마그네스 장로의 일대기를 들은 정운은 그렇게 간단하게 평가를 했다. 일단 얘기를 들어보니 저렇게 열변을 토하고 있는 마그네스 장로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이라는 칼날이 그의 마음에 남긴 상처가 큰 것이다. “·····그러므로 가우리 쪽에서 주장하는 양국의 화친은, 오히려 우리 요정족 들에게 독이 될 것입니다. 당장 단맛이 난다고 몸에 해로운 독을 입에 대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마친 마그네스 장로는 할 말을 다하고는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의 주장에 장로들은 어느 정도 수긍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장로 중에 한 명이 정운에게 말했다. “가우리의 수상이라는 분은 뭔가 주장하실 의견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정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흔들림 없이 담담한 표정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부터 정운이 할 말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운이 전문적인 연설가도 아니고···. 이런 부처님 멘탈을 가지고 있는 요정족의 장로들을 설득 시킬 수 있는 언변은 없었다. 아니···. 설령 역사상 이름을 남긴 대 웅변가가 온다고 해도 지금 이들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정운은 선택했다. 직구 승부. 그것도 아주 초 정중앙 직구 승부를 하기로 말이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근간. 그것에 관한 설명부터 시작하죠.” “정운씨!!!” “정운님!!!” 슬기와 마하엘이 동시에 경악했지만···. 정운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라운드 제로와 파우스트를 비롯한 이 세계의 진실을 모두 담담하게 설명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시는 거지?’ 미하엘은 정운의 행동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 정보는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어떤 혼란을 가지고 올지 모를 중대한 정보였다. 그래서 이제까지 가우리의 간부들 역시 그 정보를 함부로 누설하지는 않은 것이다. 심지어 가우리의 소속이 아닌 이보영 역시 그것에 관해서 어디 가서 입을 나불 거리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걸 왜 지금 이 시점에서 말을 하는지 미하엘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녀는 중간에 끼어들어서 정운의 말을 자르려고 했다. 지금이라면, 아직은 자신이 수습을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하고 그녀가 끼어들려고 할 때···. 덥썩!! 미하엘의 손을 잡고 그녀를 말린 사람이 있었다. “···슬기···. 씨?” “기다려요.” ============================ 작품 후기 ============================ 8월 한 달도 잘 부탁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15화 <뜻밖의 만남> 슬기는 미하엘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으면서 잠자코 있으라고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미하엘은 어쩔 줄을 몰랐다. 무모한 남자들과 달리 슬기는 소심하기는 하지만 신중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슬기가 여기서 자신을 말릴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슬기가 막고 있는 사이에 이미 정운의 입은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의 영역까지 모두 도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정운의 설명이 다 끝나고 미하엘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걸··. 이걸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이 사태를 돌이킬 수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그 말은···.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주신인 파우스트가 다른 영혼들을 깎아내서 만들어냈단 말이오?” 어떤 장로의 말에 정운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가우리의 수상이라는 당신의 목적은 파우스트, 즉, 우리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의 목을 치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말 한 것이오?” “그것도 맞습니다.” 정운은 한 점의 부정도 없이 모든 진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정운의 앞에 있는 요정족의 장로들은 크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정족의 장로라고 하면···. 설령, 지금 당장 머리위에 운석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렇게 당황할 존재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어린애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정운이 한 말은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차라리 여기 있는 인물들이 인간이라면 허황된 거짓이라고 반박 했을 것이다. 자신이 감당 하지 못할 진실을 마주했을 때는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것. 고집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버릇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사상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엘프들은 다르다. 그들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하지만 일단 들었을 때는 그 얘기의 액면 자체는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고 난 후에야 그 얘기의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려고 하는 것이다. 보통 인간들은 그 순서가 반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요정족들의 경우가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정운님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 확실히 그 말은 충격이군요. 단···. 진실이라면 말입니다.” 그래도 인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마그네스 장로가 일단 정신을 먼저 차렸다. 그 역시 쇼크를 안 받은 것은 아니다. 세계의 창조에 관련된 근간을 알아 버렸으니 여기서 정신적으로 데미지를 안 받을리는 없다. 그런 마그네스 장로에서 정운이 말했다.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네요. 우리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습득한 능력과 아이템들이 굳이 말하면 증거이기는 한데····.” 정운의 말에 마그네스 장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마법이나 마도구는 우리 세계에도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증인은 어떨까요? 말씀만 하시면 우리쪽 천계의 천사들을 증인으로 내 세울 수도 있는데 말이죠.” “천계의 인물이라고 해도 저쪽 세계의 인물이죠. 저희들이 믿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쇼크에서 약간 벗어난 마그네스 장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정운에게 대꾸했다. 다른 장로들 마그네스 장로의 말에 조금은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잠깐만···. 내가 짚이는 게 있는데 말해도 돼?” 어디선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 큰 여성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는 청량한 은방울 소리를 연상케 했다. “누구십니까? 모습을 드러내 주시죠?” 정운이 그렇게 말하자 허공에서 작은 빛이 나타나더니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흥, 별로 네가 나타나라고 해서 나타난 것은 아니거든?” “·······츤데레?” 정운을 어이없게 만든 것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귀여운 페어리였다. 다른 페어리들과 달리 좀 더 화려한 자태를 하고 있는 것이 좀 특별했다. 그녀의 등장에 마그네스 장로가 직접 소개를 했다. “소개하겠습니다. 이 분은 우리 라트란 왕국의 국왕이신 페어리 퀸이십니다.” “···페어리 퀸? 그리고 라트란 왕국의 국왕이라고요?” 정운은 이 라트란 왕국의 주축이 되는 종족은 엘프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왕족 역시 엘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페어리 퀸이 이 라트란 왕국의 여왕이라는 것이다. “··큼··. 아름다운 여왕님이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금 당황한 정운이었지만 페어리 퀸은 얼굴을 옆으로 휙 돌리면서 말했다. “흥, 별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해도 기쁘지 않거든?” “···········.”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말은 안 했는데····.’ 아무래도 츤데레 말기인 페어리 퀸 같았다. 그런 페어리 퀸의 등장에 엘프족의 장로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여왕님. 가우리의 수상의 말에 짚히는 구석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 입니까?” “으음···. 그게 말이지?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좀 마음에 걸린다고 할까? 거기 가우리의 수상이라고 하는 애. 너 이름이 박정운이라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여왕님.” 보통 같은 국가의 원수들 끼리 한 쪽은 반말을 하고 한쪽은 존대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페어리 퀸의 천진함이 두드러져서일까? 정운은 별로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정운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으음···. 내 친구 중에 한 명인 고엘프가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있었거든···. 거기 너 한 번 만나볼래?” “고엘프님을 말입니까? 라트란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 대상인 분들이라고 들었는데요?” 정운의 말대로 고엘프는 라트란 왕국에서 가장 깊숙하게 숨겨두고 보호하는 대상이었다. 원래 건국의 이유가 고엘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런 고엘프를 인간과 만나게 한다는 것은···. 사실 라트란 왕국의 건국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한 번 만나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기꺼이 만나겠습니다.” “그래···. 아!! 착각하지 마. 별로 널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니까····.” “···········.” ‘조금 전에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말이 뚜렷하게 하지 않았나?’ 어쩐지 상당히 어설픈 츤데레라는 느낌이었다. 정운이 고엘프를 만난다는 말에 다른 엘프족의 장로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동의했다. 고엘프라고 하면 엘프족들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보호대상. 아무리 정식 사절로 온 정운이라고 해도 단 둘이서 독대를 하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았다. 정운도 별 상관이 없었기에 순순히 그들의 동행을 받아 들였다. “고엘프라···. 도대체 어떤 엘프를 말하는 거지?” 정운은 내심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고 신선 같은 풍모를 풍기는 엘프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장로들을 흘깃 보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신선 포스의 엘프가 나오지는 않겠다.’ 지금 장로라고 있는 저 엘프들 조차 겉 보기로는 20대 초반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엘프도 노화는 한다고 한다. 단, 그 노화는 자신의 수명 끝 자락의 10년 정도에 집중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인생은 젊은 나이로 살아간다고 한다. 주름살 좀 감춰 보겠다고 별의 별 공을 다 들이는 인간들이 보기에는 참 부러운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엘프들의 고엘프라고 해서 별로 나이든 영감님 포스의 엘프가 나올 확률은 적었다. “여기야. 이 안에 내 친구가 있어.” 페어리 퀸은 정운과 일행을 안내한 것은 높이가 10미터는 될 법한 나무였다. ‘고엘프가 나무 속에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운으로서는 이 안에서 어떻게 산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정운 말고 다른 엘프족의 장로들이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열리지 않는 나무? 여기에 고엘프님이 살고 계신다니···.” “들어 본 적도 없었는데···.” 수근 거리는 장로들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정운은 자신에게 가장 협조적인 엘프인 시글에게 물었다. “여기가 뭔데 그러죠? 아까 전에는 특별한 나무 같은 건 없다고 했잖습니까?” “예··. 나무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도 평범하게 고엘프님이 살고계신 나무일 뿐이죠.” ‘충분히 특별 한 것 같은데···.’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고 얌전히 시글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나무는 이때까지 단 한명의 엘프도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무속에 살고 계신 고엘프님도 저희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이시고 말이죠.” “····그렇단 말이죠.” 엘프족 중에서도 방구석 폐인이라는 말이었다. 과연 무슨 이유로 방구석에 처 박혀 있는 것일까? 정운은 의문은 곧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이제 들어가자.” 페어리 퀸이 나무에 손을 대자 포탈과 같은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정운을 비롯한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정운의 눈에 보인 것은 지극히 단출한 가구와 소박한 인테리어였다. ‘의자에 식탁, 그리고 흔들의자, 평범한 거실 같은걸? 여기는 뭐지?’ 고엘프라는 중요 인물이 살고 있는 방 치고는 참 소박하다는 느낌이었다. 작은 방의 한쪽에는 부엌이 딸려 있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아마 2층에는 사람이 묶는 침실이 있을 것 같았다. 정운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문득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능하면, 이럴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찾으러 와야 극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말이야.” “············.” 정운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목소리는···. 이 목소리는 정운이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2층에서 내려오는 인물을 봤을 때 정운은 이 라트란 왕국에 오고 나서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민지 누님!!!!!?” “오랜만이야. 그런데 그 인간 어디 있니?”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바로 한중겸의 연인이자 예전에 한우리 연맹의 십왕 서열 3위였던 이민지였다. 그녀가 고엘프로 환생해서 이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쪼르륵···. 찻잔에 차를 따르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차를 다 따르고 나자 다른 사람들의 숨 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만큼 모두가 지금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민지는 그런 고요한 분위기에 신경쓰지 않고 직접 차를 따르면서 손님 대접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손님이란 당연히 정운의 일행과 다른 엘프족의 장로들 까지 겸하는 말이었다. 엘프족의 장로들은 자신들도 이제까지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고엘프 중에 한 명이 정운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아 얼이 빠졌다. “자···. 우선, 오랜만에 만났지? 반가워.” 이민지는 명절에 만난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옆에서 슬기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했다. “오랜만에··· 정도가 아니잖아요? 언니····.” “이런이런···. 눈물은 여전히 많구나.” 이민지는 울먹이는 슬기의 눈가를 직접 닦아주면서 그녀를 달랬다. 사실 슬기를 비롯해서 한우리 연맹의 모든 여성 유저들은 이민지를 잘 따랐다. 여성 유저중에 그녀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고레벨의 유저였고···. 또 실제로 큰언니답게 다른 여성들을 잘 챙겨줬기 때문이다. 그런 이민지가 원래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만났다는 것에 슬기는 감격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게 그대로인 것은 아니었다. 정운의 눈은 이민지의 쫑긋하게 변한 귀를 주목했다. “뚫어지겠다. 그만 좀 봐라. 내가 엘프로 변한 것인 그렇게 신기하니?” 이민지의 핀잔에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 신기하다고 하면 좀 그런가요?” “그럴지도····. 그래. 묻고 싶은게 많겠지? 뭐부터 물어볼래?” ============================ 작품 후기 ============================ 이민지의 등장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예약 아이템 오류인가요? 제 시간에 올렸는데 올라가지를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작가분들도 그럴까요? 416화 이민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말을 한 것은 엘프족의 장로였다. “고엘프님. 정말···. 정말 여기 있는 가우리의 수상과 알고 있는 사이십니까?” 이민지에게 그렇게 묻고 있는 엘프족의 장로의 얼굴에는 경악과 절박함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런 장로에게 이민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긍정의 말을 했다. “예. 잘 알고 있는 사이죠. 어디서 알았는지도 설명해 줄까요? 좀 긴 얘기인데?” 그녀의 말에 장로는 자리에 털썩 앉고 이마에 손을 얹고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이미 그 긴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엘프족의 장로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정운의 주장은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말 자체가 거짓일지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운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다른 어디도 아닌 이 라트란 왕국의 안에 있었다. 이제는 부정을 할 여지가 없었다. 장로들 중에 가장 멘탈이 강했던 마그네스 장로조차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저쪽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군. 잘 됐다고 해야 하나?’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이민지쪽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여기서 이민지를 만난 것은 정운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수확이었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정말 한 가득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물을 말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이 말이었다. 정운이 천계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세레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이세계에서 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본래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적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민지는 천계에서의 분석과 다르게 뚜렷하게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건 몸만 전생한 것이지 실제로는 다른 인간이라고 해도 좋았다. 만약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민지처럼 뚜렷하게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기쁜 오산이다. 하지만 정운의 기대는 아쉽게 빗나가 버렸다.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상황인지는 나도 몰라. 내가 이렇게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건 나름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그라운드 제로에 죽은 이후 이민지는 이 세계에서 고엘프로 전생했다. 그녀 정도의 레벨이 되면 이미 영혼을 분열 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온전하게 하나의 영혼으로 전생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파우스트가 무리를 하면 못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운과 동료들 덕분에 가뜩이나 왕창 틀어진 계획에서 더 이상 힘을 낭비 할 수는 없었다. 파우스트로서는 이 세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에 한동안 모든 힘을 소모해야 했다. 그리고 고엘프로 전생한 이민지는··· 처음에는 이민지로서의 기억이 없었다. 다만, 고엘프의 경우 불로불사의 종족이다. 이 세계가 생기던 태초부터 함께해온 그녀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이 세계의 진실에 꺼림칙함을 느꼈다. 태초부터 함께 해온 존재였기 때문일까? 수만 년 동안 점점 변화해 가는 이 세계의 모습에서 어떤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역사의 전환점이랄까? 그런 중요한 순간마다 마치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세계가 변화해 갔다. 그런 세계에 이물감을 느낀 그녀는 철저하게 이 세계의 진실을 탐구해 갔다. 창조주인 파우스트를 비롯해서 이 세계의 진실을 탐구해가는 그녀는 같은 고엘프들 사이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 마치 안계가 자욱한 망망대해에서 육지를 찾아가는 것 같은 까마득함···. 그런 상황에서도 이민지는 집념으로 진실의 조각을 찾고자 하나하나 더듬어 갔다. 그리고 그녀의 연구는 영혼의 본질이라는 것에까지 도달했다.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 되는 혼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실험재료 삼아서 자신의 영혼이 되는 근간을 조사했다. 사실 그건 배대호 정도 되는 천재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연구 성과였다. 이민지의 경우 배대호 같은 천재는 아니었지만 대신에 고엘프로서의 영원한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 개미의 걸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느릿느릿한 속도였지만···. 그래도 결국 그녀는 해냈다. 자신의 영혼의 근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전생인 이민지라는 존재를 까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의 진실도 말이다. 거기서 그녀는 결정해야 했다. 자신 혼자서 파우스트에게 도전할지? 아니면 언젠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지···. 그녀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언젠가 파우스트가 저쪽 세계에도 손을 뻗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가 오면··. 그때가 오면 자신의 동료들도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기다리기로 했다. 언젠가 올 동료들을 기다리면서 파우스트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것이다. 십 만년이 넘는 세월을 말이다·····. “뭐···. 이렇게 된 거지? 더 물어볼 것 있니?” 이민지의 말에 슬기는 이제 펑펑 울면서 그녀의 품안에 안겼다. “언니··. 언니··. 많이 기다렸죠?” “뭐, 약간···. 그래도 고엘프로 변하니 시간관념이 인간하고는 완전히 달라져서 그럭저럭 견딜 만하더라.” 그녀의 말에 정운은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파우스트에 대한 집념은 자신인이 누구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한 정운이었다. 하지만··. 이민지의 집념에는 숙연해질 뿐이었다. 자신에게도 가능할까? 동료들 없이 홀로 진실을 조사하고 언제 올지 모를 때를 기다리면서 까마득한 시간을 숨죽이고 기다리는 것이? 정운은 고개를 흔들고 이민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민지누님···. 감사합니다.” “그래. 그 말 한마디면 됐어.” “아니요. 이 한마디로는 부족하죠. 반드시···. 파우스트 그 놈의 목을 쳐서 보답하겠습니다.” 정운의 말에 이민지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라면 그렇게 말 할 줄 알았지. 그래서 말인데···. 잠시 너만 좀 따라올래?” “···········?” 민지는 정운을 데리고 공간을 열더니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그리고 거기에 도착한 정운은 ‘그것’을 봤다. “누님··. 이건?” “십 만년 넘는 세월동안 허송세월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니? 겸사겸사 뭐····.” “··············.” 정운은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은 절대 그렇게 취미 생활 삼아서 겸사겸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넋이 나간 정운을 보며 이민지가 말했다. “어때? 파우스트를 향한 최후의 결정타가 될 수 있겠니?” “·····예. 틀림없이요.” 정운은 암흑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간 정운은 눈에서 불꽃을 튀기며 중얼 거렸다 “기다려라 파우스트···. 만 배로 갚아 줄테니····.” 정운이 당초 라트란 왕국에 온 목적은 가우리와 라트란 왕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들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공개했다. 상황은 혼란해 졌지만 이민지 라는 희대의 조커가 등장하면서 판은 정운에게 훨씬 더 유리하게 되었다. 다시 최초의 회의장에 모인 정운은 엘프족의 장로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하듯이 말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결정해 주실까요?” 정운의 말에 엘프족의 장로들은 자기들 끼리 시선을 교환하면서 어찌 대답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워낙 방대한 진실들이 많아서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이제는 요정족의 장래 정도는 오히려 작은 일에 들어갔다. 자칫 잘못 하면 이 세계의 근간 자체가 무너 질 수도 있지 않은가? ‘저 자를 적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신탁 대로···.’ ‘하지만 대의는 틀림없이 저들에게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하는 장로들 사이에서 한 명의 장로가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고 정운에게 말했다. “하나 물어보겠소. 박정운 수상.” “물어보시죠.” “이 세계를 만든 것이 파우스트라면···. 우리 엘프들 역시 그가 만든 것이 맞소?” “····그렇습니다.” 정운은 이채로운 눈으로 마그네스 장로를 바라봤다. 그는 지금 파우스트라는 자신의 조물주를 ‘그’라고 칭했다. 이게 본인이 자각하고 한 말인지? 아니면 그냥 무의식중에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운으로서는 좋은 기대를 품게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그네스 장로는 정운을 향해서 계속 말했다. “우리 엘프들이 이렇게 인간들에게 계속해서 당해왔던 고난의 세월도···, 그리고 우리 엘프들 대부분이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소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된 것도···. 모두 파우스트라는 원래 인간의 의도였다는 말입니까?” 말을 하는 마그네스 장로의 전신에서는 살기가 스멀스멀 흘러넘쳤다. “····그렇습니다.” 화아악!!!! 아슬아슬하게 넘칠 듯 말 듯 했던 마그네스 장로의 살기가 이 공간 전체를 압도했다. 그건 순간적이긴 하지만 정운조차 살짝 긴장하게 했을 정도로 강력한 살기였다. ‘이 사람 이 정도였나?’ 처음 봤을 때부터 장로들 중에서 가장 강해 보인다는 것을 알아봤다. 후에 시글에게 들은 그의 인생 얘기를 들었을 때는 실전 경험도 풍부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의 살기를 보일 인물인줄은 몰랐다. 정운이 생각하고 있던 것 보다 두 단계는 더 강해 보였다. 그레이 레드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판단했었는데 그건 오판이었던 모양이다. “상대의 역량을 잘 못 읽는 경우는 드문데···.” 정운이 그렇게 푸념하고 있는 것을 들었을까? 옆에서 이민지가 말했다. “아마 네가 잘못 읽은 것은 아닐 거야. 저 남자가 지금 한계를 넘은 거지.” “한계라고요?” “그래. 나도 오래전에 기억이 돌아오고 파우스트와 맞서겠다고 결심했을 때 저렇게 됐었거든.” “그거 혹시···?” “그래. 이 세계의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거다. 무슨 의미인지 대강 알겠니?” 대강 알 것 같은 정운이었다. 이 세계의 피조물은 모두 파우스트가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신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파우스트는 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메피스토라는 대악마의 어둠과 우리엘이라는 치천사의 빛을 이용하고 무엇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빨아들인 수많은 영혼들을 재료로 빗어서 만들었다. 그 말은··. 파우스트라는 조물주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그 순간 이들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주박에서 벗어나서 한 차원 다른 경지로 올라설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세계의 틀을 초월하다··. 인가?’ 정운은 변화하고 있는 마그네스 장로를 보면서 감탄했다. 이윽고 마그네스 장로는 전신에서 눈부신 섬광을 뿜어내더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20대 초반의 청년 같았던 마그네스 장로의 모습은 어느새 10살 정도의 어린애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도 전신에서 풍기고 있는 기운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대단하군···.” 정운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그라운드 제로로 치면 200레벨을 약간 넘어서는 기운 같았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의 강자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맙소, 그리고···. 감사하오.” 정운을 보며 마그네스 장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겉 모습은 어린애로 변해 버렸고, 몸이 줄어들면서 걸치고 있는 옷도 벗겨져서 그저 벌거벗은 소년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지금 마그네스 장로에게는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거대한 거인의 풍모가 보였다. “축하드립니다. 훨씬 더 강해지셨군요.” “길이 정해져서죠. 당신에게는, 정말 살아서 다 갚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17화 <미하일의 깨달음> 마그네스 장로의 정중한 감사의 표현을 들으면서 정운이 되물었다. “그 말은··. 우리 가우리와 이 라트란 왕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기대해도 되는 겁니까? 참고로 알고 있겠지만, 최종적인 적은 이 세계의 창조자인 파우스트입니다.” 정운의 말에 마그네스 장로는 굳건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트란 왕국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면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런 마그네스 장로의 말에 뒤편에 있는 장로들이 말했다. “적어도, 마그네스 자네 혼자만 가게 할 수는 없지. 우리들 일족을 묶어두고 있는 족쇄가 있다면··. 그게 못마땅한 것은 자네만이 아니네.” “인간과 조화하지 못하는 요정족, 그 최종적인 이유가 파우스트라는 인간의 저주였다면, 우리의 적은 명확하지.” “자네 혼자 다 짊어지기에는 짐이 무겁네.‘ 이제까지 마그네스 장로와 함께 전쟁을 주장하던 주전파 장로들이 하나 둘씩 마그네스 장로에게 동조했다. 그리고 다른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시 처음부터 가우리와의 협정을 바래왔습니다. 거기에 목적이 더해진 것은 좀 의외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일족 전체를 위해서라도.” “맞습니다. 저희 역시 함께 싸우도록 하죠.” 항상 미지근한 물과 같은 요정족의 장로들이 오랜만에 부글부글 뜨겁게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장로들에게 정운이 말했다. “이왕 하는 싸움이라면 이길 겁니다. 절 믿고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정운의 말에 엘프들은 모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실공히··. 가우리에 라트란 왕국이라는 우방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하루 정도 더 라트란 왕국에서 머물기로 한 정운은 엘프들이 빚은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기가 오랐다. “크으···. 민지 누님하고 너무 오랜만에 마셨더니···.” 마음 먹으면 술 기운 따위는 다 날려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 때 보다 더 강해진 민지는 그런 정운의 꼼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정운이 너 이 누님이 수 만년 동안 빚은 술을 그따위로 마셔야겠냐?” “········예. 죄송합니다.” 결국 정운은 얌전히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그윽한 향과 투명한 달빛과 같은 광채, 깔끔한 뒷맛. 명주는 틀림없는 명주였다. 이민지가 신경 써서 수 만년 동안 빚은 엘프주라는 것은 지구의 수많은 명주를 시궁창 구정물로 비교할 정도로 엄청난 술이긴 했다. 문제는···. “엄청 독하네··· 도수가 몇이었던 거야?” 결국 깡으로 마시던 정운이 취해서 곤드래 만드래 해질 정도로 독한 술들이었다. 슬기는 이민지와 좀 더 언니 동생 하면서 마시고 있었고 정운은 그 틈에 살짝 빠져 나왔다. 보통 슬기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비우는 정운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았다. 설마 엘프들이 슬기의 미모에 혹 해서 덮치는 일이야 생기겠는가? 정운이 그렇게 생각하며 미리 방의 안으로 들어왔을 때, 마침 정운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정운님.” “미하엘? ···혹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정운은 평소랑 다른 분위기의 그녀를 보고 뭔가 다른 점을 느꼈다. 그런 정운에게 미하엘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예.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운이 한쪽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말했다. “·····해 봐.” 정운의 허락이 떨어지고 미하엘은 자신이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엘프족의 장로들에게 이 세계의 진실을 밝힌 것에 관해서 묻고 싶습니다.” “그건가····?” “그건가? 라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큰 혼란이 생길 뻔 했습니다. 다행이도 이런저런 우연이 겹쳐서 잘 수습되기는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라트란을 다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하셨던 겁니까?” 미하엘은 정운에게 이것에 대해서 꼭 묻고 싶었다. 따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책망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어째서 정운이 거기서 그런 말을 했는지가 정말로 궁금한 것이다. 그런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머리를 긁적 거리면서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잘 풀렸잖아? 그럼 된 것 아니야?” “···처음부터 그런 결과를 예상하고 계셨다는 겁니까?” “아니.”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더욱더 혼란에 빠졌다. 그녀로서는 정말 의문이었다. 정운이 한 말이 결과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끌어내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저 우연에 우연이 겹쳤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정운은 태연하게 그런 도박에 가까운 발언을 했단 말인가? 차라리 정운이 모든 것을 예상한 결과였다고 한다면 그때는 이해가 갔을 테지만 그것도 아닌데 어째서····? 미하엘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흠, 굉장히 신기한 생물을 보는 눈길이네?” 살짝 취기가 오른 정운은 미하엘의 얼굴 바로 앞에 자기 얼굴을 가져가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와 달리 살짝 흐트러진 정운의 장난어린 행동에 미하엘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장난하지 마십시오. ····어쩔 생각이셨던 겁니까? 그 말을 꺼낼 당시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던 겁니까?” 미하엘의 정색한 질문에 정운은 허리를 쭉 펴고 당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흠···. 결과는 몰랐어. 그냥 엘프족의 장로들이 워낙 흔들림이 없기에 일단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봤잖아? 그때 그 장로들 분위기는 사실상 인간은 해롭다. 쪽으로 굳어가고 이었던 것?” “그건···. 예. 확실히 그건 봤습니다. 하지만 만약 정운님의 던진 폭탄 발언의 결과가 나쁜 방향으로 진행 되었다면 어쩌실 생각이었습니까?”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웃으면서 말했다. “수습해야지. 그리고. 최선의 결과로 진로 수정시키고.” “········어떻게? 그 상황에서 어떻게요?” 미하엘은 정말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운의 태연한 목소리는 미하엘의 머릿속을 혼란으로만 몰고 갔다. “그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수습한다는 말인가요? 일단 말해 버린 진실을 어떻게요? 설마 장로들을 다 죽이기라도··········.” “·············.” 말을 하던 미하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정운을 보고 미하엘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러실, 생각이었군요?” “필요하다면. 어디까지나 최악의 수단으로 말이지.”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살짝 현기증이 났다. 그녀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천사이다. 미카엘이 자신의 일부를 때어내서 분리한 천사로서 태어나자마자 필요한 지식만을 가지고 정운의 곁으로 배정 되었다. 어떻게 보면 순백의 도화지나 같은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박정운이라는 인간이었다. 이제까지 미하엘은 정운을 과격하기는 하지만 정의롭고 천계와 인간을 위해서 바른 결정을 하는 인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 정운이 여차하면 엘프족의 장로들을 전부 죽음으로 입막음 하려고 했다는 것은 쇼크였다. “·······제가, 당신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건가요?”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난 네가 날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몰라. 다른 사람 마음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 “하지만, 네가 나에게 실망 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어쩔 수 없다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겁니까!!?” 미하엘이 이제는 고성을 지르기 시작하자 정운은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서 말했다. “나를 비롯한 인간들에게는 말이야. 만사에 우선 순위라는 것이 있는 거야.” “····우선 순위.” “그래. 뭐, 아주 칼 같이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애매한 순위도 있지만, 그래도 소중한 것과 약간 덜 소중한 것에 차등을 두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지.” “··············.” “엘프족의 장로들이 진실을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숙청한다면 그건 확실히 나의 폭거지. 하지만, 그게 최종적으로 파우스트에게 내 칼날이 닿게 하고 내 동료와 연인을 구할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면···. 피할 수는 없어.” “············.” “나에게는 그게 더 소중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고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척 똑똑한 존재다. 정운이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너무나 잘 이해했다. 그리고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다는 것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갈 수 없다면 방해되는 짊은 덜어야 하는 법이다. 어떻게든 목적지까지 도착하고 싶다면 다 짊어지고 짓눌려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걸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도 그걸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 미하엘은 그때 자신을 말리던 슬기의 모습이 떠 올랐다. “슬기씨는요? 슬기씨도 그걸 알고 절 말렸던 건가요?”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야. 슬기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 거야.”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죠?” “슬기는 날 믿은 거야.” “·············.” 정운의 담담한 말에 미하엘은 할 말을 잃었다.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철통같은 믿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떤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정운을 믿고 사랑하는 슬기.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슬기가 자신을 믿고 사랑 할 거라고 믿는 정운. 이 둘의 사이에는 평생을 함께한 부부와 같은 끈적함이 있었다. ‘····두 손··. 들었네.’ 미하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여기까지 정운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자신 역시 천계에서 정운에게 배정된 비서 겸 수호천사다. 그녀 스스로 정운에게 가장 가까운 인물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슬기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괜한 질문 많이 했네요? 푹 쉬세요.” “그래. 알았어.” 미하엘은 그날 정운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하게 된 것은 슬기와 정운의 사이에는 아무도 못 끼어들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세레나라는 천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진심으로 그녀가 어떤 여자인지 한 번 보고 싶어지는 마하엘이었다. 가우리와 라트란 왕국의 동맹. 이것은 대륙에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가우리의 건국 소식에 촉각을 세우고 있던 다른 나라들로서는 굉장한 핫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대륙에서 가장 패쇄적이기로 유명한 라트란 왕국이 인간들의 나라와 동맹을 맺다니···. 역사에 마그네스 장로 같은 일부 특이한 엘프들이 인간의 사회에 끼어든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라트란 왕국 전체가 한 나라에 동맹을 선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콧대 높은 요정족의 나라에서 어떤 이유로 가우리와 동맹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라오 백작이 구상하고 있던 가우리 포위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다. 하긴, 어차피 대륙에서 따 당한다고 해도 지구에서 가우리에 협력 못해 안달이 나 있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니··. 애당초 허공에 삽질이나 다름없는 계획이기는 했다. 어쨌든 에리프릴 왕국은 이번 동맹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바라오 백작이 국내로 돌아간 후에 가우리에 대한 얘기를 엄청나게 떠들어댔고 그 나라를 점령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이익에 관해서도 매일같이 선전하고 있었다. 그는 국왕과 유력 귀족들에게 가우리에서 가지고 온 명품들을 선물하면서 특히 더 환심을 샀다. 정치적인 수완이 그렇게 나쁘지 않기 때문일까? 가우리에 대한 에리프릴 왕국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이었다. ============================ 작품 후기 ============================ 허리에 크리티컬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으으으.. 매일 앉아서 일하다 보니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서서 쓰고 있지만 역시 허리는 아픕니다. 병원에 가 보고 최악의 경우 디스크 판정을 받으면 그때는 휴재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그때는 양해 부탁 드립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18화 <이민지의 귀환> 에리프릴 왕국의 내부 여론은 바라오 백작이 의도하는 대로 차근차근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라트란 왕국이 가우리와 동맹을 맺었다는 말은 가우리 침공에 대한 여론을 살짝 흔들리게 했다. 라트란 왕국의 국력은 에리프릴 왕국보다 떨어진다고 평가 받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과거 브로드 왕국처럼 마냥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거기다 가우리의 힘까지 더해지니 전쟁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에리프릴 왕국 자체가 이미 성 세인트 왕국과의 오랜 전쟁을 진행하고 있었다. 양국의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상 에리프릴 왕국이 가우리에 전력을 집중 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라트란 왕국으로서는 성 세인트 왕국과의 전쟁을 먼저 종결 시키는게 우선이었다. 비록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루한 전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라트란 왕국과 동맹을 맺은 후에 가우리로 돌아오는 정운은 갈 때처럼 답답하게 이동하지 않고 흑토를 이용해서 초고속으로 이동했다. 사신단의 대부분은 천천히 돌아오도록 귀환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슬기와 미하엘을 데리고 먼저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가우리로 가는 일행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고엘프로 변한 이민지였다. “그래···. 그 인간이 나 없는 동안 그랬단 말이지···.” “예. 이제는 아애 신흥 종교를 만드는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라니까요.” 정운은 가는 동안 이민지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는데···. 그 설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중겸이다. 정운에게 그동안 한중겸이 하고 있었던 일을 들은 이민지는 주먹을 우두둑 풀면서 중얼 거렸다. “십만애첩 양병설? 이 인간인 주둥아리를 십만대 정도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렇게 맞는다고 해서 정신을 차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민지의 분노는 충만했다. 사실 이민지의 경우 바람기에 약간 너그러운 편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는 한중겸의 연인 노릇을 해 먹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다고 해도 너그러운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미 한중겸은 그 한계를 돌파한지 오래였다. “죽었어····.” 제대로 열 받은 이민지는 자신이 타고 있는 정령의 속도를 한 바탕 더 올렸다. 피이이잉!!!! “와우···. 흑토보다 더 빠르잖아?” “저건 뭐라고 불러야 될까요? 질투의 부스터?” “글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겸이 형님은 이제 죽었다는 거지.” 분노의 부스터로 가속하는 이민지의 뒷모습에서 정운은 피바람을 예감했다. “으음···. 머리야.” 한중겸은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중얼 거렸다. 그렇게 중얼 거리는 한중겸의 옆에는 자신의 애첩이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이 여자 누구더라?” 어제 자신이 꼬신 후에도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한중겸이었다. 숙취에 아픈 머리를 쥐어짜서 흐릿한 기억을 재생해본 결과····. “아아··. 그래. 어제 클럽에서 꼬신 여자였지.” 어제의 기억이 떠오르는 한중겸이었다. 클럽에 들어간 순간 한중겸은 자신의 예리한 레이더를 가동 시켜서 안의 여자들을 스캔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이 취하고, 가능하면 쉽게 넘어올 것 같은 여자를 물색했다. 한쪽 구석에서 이미 술에 취해서 목소리가 높아진 여자에게 다가간 한중겸은 그녀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했고···. 거기서 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식의 유혹에 여자는 넘어왔고···.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이름 모를 모텔의 침대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한중겸은 여자가 깨기 전에 일어나서 나가려고 했다. “브로도 6장 4절. 떠날 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 것. 단 매너로 쪽지 한 장은 남길 것.” 한중겸은 그렇게 말하고 미리 준비해둔 쪽지를 남겼다. [이름 모를 아가씨에게···. 아름다운 하룻밤의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저 역시 당신과 오랫 동안 마음을 교환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유감 스럽게도 저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습니다. 사실····, 전 시한부 인생으로 생명이 한 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마음 아픈 이별이 될까봐 이렇게 편지로 진실을 남깁니다. 그러니 절 찾지 말아 주십시오. 저승길 가는 길에 당신과 같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이 기억을 짧은 시간이나마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혹시 어디선가 우연히 저의 쌍둥이 형을 만나게 된다면 제가 행복하게 죽었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럼 이만····.] “으음, 완벽해.” 그렇게 되도 않은 쪽지를 남긴 한중겸은 그대로 모텔에서 나갔다. “으음····. 좀 출출한데···. 뭐라도 먹고 갈까? 아니면 집으로 가서 먹을까?” 한중겸이 그렇게 말하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뭔가 이상한 것은 느꼈다. “음·· 뭐지? 몸이 으슬으슬한게···. 어쩐지 오싹한 느낌인데?” 한중겸은 뭔지 모를 위기감에 전신을 전율했다. 그리고 그 위기감은 1초 후에 바로 다가왔다. “하아아아아아안 주우우우우우우우웅 겨어어어어어어엄!!!!!!!!!!” 뻐어어어억!!!! 아름다운 엘프 한 명이 날아와서 고함을 지르면서 한중겸은 안면에 날라차기를 넣었다. 한중겸은 그 발차기를 맞은 순간 100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가 버렸다. 안면이 얼얼해지는 고통에 한중겸은 깜짝 놀랐다. 좀 방심하고 있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이런 공격을 적중 시킬 수 있는 상대는 좀처럼 없었다. “누구야? 적이····.” 말을 하던 한중겸은 자신의 안면을 걷어찬 상대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너 말이야!!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된 먹은 거야? 내가 없다고 보이는 여자는 다 건드리고···. 네가 짐승이냐!!?” “················.” 격하게 따지는 이민지를 보면서 한중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넋이 나간 것 같은 그런 한중겸의 모습에서 이민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더 화를 냈다. 쾅쾅!!! “뭐라고 말 좀 하라니까!!!” 비록 그 동동 구르는 발에 아스팔트 바닥이 퍽퍽 파이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중겸의 눈에는····. “민지야.”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서 홀린 듯이 다가간 한중겸은 그대로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 안았다. “뭐··. 뭐야? 나 지금 화 풀린 것 아니야. 이게 놔!!!” “············.” 이민지가 놓으라고 했지만 한중겸은 어림없다는 듯이 그녀를 꽉 껴안고 절대 놓지 않았다. 한 번 잃어버린 그녀였고, 그리고 그녀를 다시는 이렇게 품에 앉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적적으로 자신의 품안에 돌아온 것이다. 한중겸은 이민지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고마워. 돌아와 줘서 고마워····.” “·····쯧, 한 번만 봐 준다····.” 사랑이 웬수라고···. 이민지 역시 결국은 한중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마주 안았다. 그리고 약간 떨어진 상황에서 그런 둘을 지켜본 정운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걸로 끝낸다고? 더 안 죽이고?” “그런가 봐요.” 슬기의 말을 들으면서 정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역시 저 커플은 이해를 할 수 없어···.” 아마 세상 모두가 이해 못할 세기의 커플일 것이다. 이민지가 돌아옴으로 인해서 가우리의 전력은 크게 뛰었다. 원래 그녀의 실력은 정운을 제외한 십왕들 중에서도 3위에 있었다. 박추성 배대호의 바로 다음인 것이다. 사실 4위인 한중겸과 크게 차이가 없기는 했지만 그녀가 강력한 실력자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세계에서 막대한 세월을 보내면서 더욱더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지금에 와서는 정운도 그녀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살짝 짐작이 가지 않았다. ‘추성이 형님이나 대호 형님보다 조금 더 강한 것 같은데···. 혹시 나 보다 강한가?’ 정운이 겉으로 봐서 그 힘을 잴 수 없다는 것은··. 그녀의 힘이 최소 정운과 거의 동등한 수준에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정운은 의문이 생겼다. “민지 누님. 지금 누님 정도의 힘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이 세계에서는 거의 무적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기다리고만 있었죠?” 정운의 말에 한창 한중겸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민지가 정운을 보며 말했다. “나도 단독으로 움직일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야. 하지만 걸리는게 앗!! 그만 좀 만져!!!” 빡!! “아파라····. 가슴 좀 만졌을 뿐인데.” “시끄러. 좀 떨어져. 내가 아기야?” 이민지는 자신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장난을 치고 있는 한중겸에게 팔꿈치를 한 대 먹이고 떨어졌다. ‘이제까지 자기도 거기 앉아 있었으면서···.’ ‘이제까지 자기도 거기 앉아 있었으면서···.’ ‘이제까지 자기도 거기 앉아 있었으면서···.’ 회의장의 다른 간부들이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입을 열어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민지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도 단독으로 움직일 생각은 해 봤어. 하지만 두 가지 정도 걸리는게 있더라고.” “두 가지요? 그게 뭡니까?” 정운의 말에 이민지는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첫째로는 제국의 신권. 파우스트가 이 세계를 창조하면서 만든 절대가호의 방어···. 그건 내 힘으로도 안 되더라고.” “누님 힘으로 무리라면···. 힘 자체로는 이빨이 안 들어간다고 봐야 겠군요.” “아마 그럴거야. 그 신권 자체가 이 세계의 룰 중에 하나니까, 파우스트의 힘이 약해지기 전에는 아마 무리겠지.” 정운은 과연 그렇다는 듯이 납득했다. 사실 정운의 향후 계획으로는 제국으로 간부들이 다 쳐들어가서 한바탕 휩쓸어 버리는 것도 있었다. 이 대륙에서 가우리에 가장 적대적인 것은 파우스트의 신탁을 절대신봉하고 있는 제국이니··. 그 제국을 박살내 버리면 다른 나라들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이민지의 말을 들어보니 그건 무리인 것 같았다. “제국 말고 또 하나 걸리는 거라면···. 역시 다크니스 왕국입니까?” “으음···. 그렇지 뭐.” 정운의 예상대로 이민지는 다크니스 왕국을 또 하나의 걸림돌이라고 대답했다. “···그 나라 그렇게 강한가요? 정보가 많이 취약하고 아직까지 꽁꽁 틀어박힌 나라라서 크게 정보가 없기는 한데···. 누님이 애 먹을 정도로 강하다고요?” 정운의 말에 이민지는 피식 웃어버렸다. “애 먹는다라·····. 정운아. 너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예. 뭐···. 라트란 왕국에 이었죠.” “그래. 그것도 다른 엘프들과 연락을 일절 끊고 오로지 페어리퀸 하고만 연락을 하면서 나무 속에 꽁꽁 숨어 있었지. 왜 그럴 것 같아?” “········설마 누님···.” 정운의 설마 라는 단어에 이민지는 쓰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숨어있던 거야. 혹시나 다크니스 왕국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려 있었던 거지.” “················.” 정운으로서는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놀란 말이었다. 파우스트를 끌어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마음을 파우스트게서 멀어지게 하는게 우선이다. 그러니 일단은 이 세계의 민중을 살살 구슬리며 이 대륙을 정복해 가자. 라는 목적 때문에 정운은 가우리라는 나라를 만들고 매우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만약 힘으로 전 세계를 쓸어버리는 편이 파우스트를 끌어내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진작에 썼을 것이다. 그 계획에는 걸림돌이 일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크니스 왕국이 이민지의 말대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정운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계획에는 다소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이제까지 정운은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것은 가우리. 라는 대전제 하에 계획을 세워 왔다. 하지만 다크니스 왕국의 힘이 이민지를 긴장 시킬 정도라면 정운도 생각을 다시 해 봐야 했다. “····누님. 정확하게 다크니스 왕국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내가 멋대로 들떠서 도전했다가 왕창 깨진 일인데··. 뭐, 알고 싶다면 말을 해 줄게.” 그리고 이민지는 자신이 과거에 묻어두고 있던 기억을 꺼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으.. 허리.. 허리가.... 서서 쓰는것 되게 불편 합니다.ㅠㅠ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19화 <문제점의 해결> 수 만년 전···. 아직 라트란 왕국이 생기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있던 나라중에 지금 남아있는 나라는 제구국과 다크니스 왕국 둘 뿐이었다. 대륙에서 무수한 나라가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굳건한 다크니스 왕국을 보며 이민지는 이 나라에 파우스트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 나라로 잠입해서 철저한 조사를 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다크니스 왕국은 이미 좀 이상했다. 어느 정도 세력 구도가 잡힌 지금과 달리 당시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다. 이 넓은 대륙에 수백개의 크고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다크니스 왕국은 그런 나라들을 다 정벌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영토만 고수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니스 왕국의 영토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륙에서 가장 넓기는 했지만···. 그래도 타국을 점령하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나라의 시민들의 분위기도 그랬다. 주 국민이 마족이나 악마들로 이루져 있다는 것과 상관없이 국내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잠입을 했던 이민지의는 덕분에 순조롭게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다크니스 왕국의 왕도라고 알려져 있는 바이움. 그곳을 목전에 둔 이민지는 어디부터 조사하면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홀연히 나타난 자들이 있었다. “그게···. 다크니스 왕국의 실질적인 실세라고 할 수 있는 7대 악마왕들이야.” “악마와? 그리고 그딴게 일곱이나 있어요?” “그래. 달리 악마들의 나라 겠냐? 이거 다른 나라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전무한 귀중한 정보다. 내가 왕창 피 흘리고 깨지면서 얻은 정보지.” 그렇게 말하는 이민지를 보면서 정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누님들은 그 일곱한테 다구리 맞고 당했다는 겁니까? 쯧, 골치 아프네요.” “아니. 그건 틀리다 정운아.” “틀리다뇨? 뭐가요?” “·············.” 정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이민지의 얼굴에는 패배의 굴욕감이 서려 있었다. “누님 설마···?” “다구리 아니다. 일곱 놈 중에서 한 놈하고 붙어서 제대로 깨진 거다.” “!!!!!!!!!!!” “!!!!!!!!!!!” “!!!!!!!!!!!” 이민지의 한 마디는 회의장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 이민지의 실력은 가우리의 누구와 비교해도 절대 아래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이민지가 일대일로 싸워서 패배? 더구나 그런 인간이 최소 일곱은 있다고? “상황이···. 꽤 심각해지네요.” “그렇지. 사실 그때 죽다 살았거든. 아니, 저쪽에서는 아애 내가 죽은걸로 알 걸?” 당시 이민지는 패배하기는 했지만 간신히 목숨은 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죽음을 위장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하나 알아낸 것이 있었다. “다크니스 왕국이 다른 나라에게 먼저 침공 받지 않는 이상 절대로 침공하지 않는 것 알지?”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그렇게 알고 있죠.” “그래. 하지만 조금 틀린게 있어.” “뭐가요?” “침공을 하지 않는게 아니야. 침공을 하지 못하는 거지.” “아!!!” 정운은 순간 머릿속에 꽉꽉 막혀 있던 어떤 것이 확 뚫리는 느낌이었다. 다크니스 왕국과 제국. 양 국가 모두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둘 중에 파우스트의 가호를 받은 것은 오로지 제국 뿐? 다크니스 왕국에 파우스트의 가호가 없으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강력한 힘을 대가로···. 어떠한 제약이 걸려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래. 즉, 가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은, 다크니스 왕국도 먼저 나서지는 않을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놈들은 라스트 보스로 남겨두라는 말이죠.” “그래. 말귀를 빨리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이민지에게 귀중한 정보를 얻은 정운은 그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수정해 갔다. 약간이긴 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했다. 그리고 이민지와 정운의 대화가 끝나고 정운이 다른 보고할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보자 배대호가 입을 열었다. “정운아. 일전에 네가 맡긴 그거···. 어떻게 될 것 같다.” “정말입니까?” “그래. 사실 나 혼자서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민지가 와서는 도움을 좀 줘서. 일이 잘 풀린 것 같다.”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배대호가 방금 말한 그것은 정운이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배대호는 그게 지금 결과가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요?” “그래. 지금 보러 갈래?” “예. 다 같이 가보죠.” 정운은 평소와 달리 엄청나게 고무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큰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뭔데 그러지?” “요즘 대호 형님이 뭔가 연구하고 있는게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건가?” “그게 뭔데” “저도 모르죠.“ “에라 말을 말아라 짜식아.” 딱!! “아!! 형님····.” 가는 길에 박추성과 한중겸의 대화는 박추성의 딱밤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평소라면 여기서 끝이었겠지만····. “추성이 오라버니. 내 남자 머리 좀 작작 때려요.” “읏···. 민지 너.” 이민지가 한중겸이 편을 들어주자 한중겸은 살짝 감동했다. 역시 사랑하는 여자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의 말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 그래도 나쁜 머리인데 어디까지 나쁘게 만들어야 겠어요. 오라버니가 안 데리고 산다고 막 망가트릴 거예요?” “민지야····.” 한중겸은 한숨을 푹 내쉬었고 박추성은 과연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이 이상 나쁘게 하면 안 되지.” “형님까지··. 이 이상은 뭡니까? 지금 제 머리의 현주소가 어디게 있는 건데요?” “인간 이하, 원숭이 이상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고 보는데····.” “대호 형님!! 누가 그렇게 분석까지 하랍디까?”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일행이 도착한 곳은 배대호의 연구실이었다. 원래 배대호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자신의 연구실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유저들처럼 스킬을 익히고 그 스킬을 그냥 사용만 하는 자들과 달리 배대호는 스스로 스킬을 연구하고 마법을 익혀가는 특별한 유저였다. 파우스트에 비하면 약간 빛이 바래기는 하지만 그 역시 충분히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인 것이다. 그리고 정운은 그런 배대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귀환자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가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한다면 제한된 인력이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간부들의 능력이 엄청나게 출중해서 강력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가우리의 인재 상황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결국은 숫적 으로도 질적으로도 한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귀환한 귀환자들의 숫자는 많았지만 그 숫자가 줄면 줄었지 더 늘어날 일은 없었다. 귀환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운은 그래서 진리목을 이용해서 귀환자와 비슷한 능력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천계의 보물인 진리목은 그만큼 엄청난 힘을 내재하고 있었다. 비록 한 그루는 언어의 진리목으로 결정 난 것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아직 백지였다. 처음에는 예술의 진리를 담은 진리목을 요구했고 그 요구가 묵살 당해서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더 잘됐다. 그것을 잘만 이용하면 인재의 꾸준한 수급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뜻밖의 전리품인 악마의 씨앗을 가지고 왔을 때 그 희망은 좀 더 구체화 되었다. 정운은 그 두 가지 물건을 가지고 배대호에게 연구를 맡겼었다. 천계의 보물과 마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악마의 씨앗. 이 두 가지 보물에 배대호라는 천재가 더해지면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았다. 막연한 기다림이긴 했지만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투자와 기다림이 이제야 꽃을 피운 것이다. “사실, 나 혼자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복귀한 민지가 도움을 주더니···. 일사천리고 싹 다 풀렸지.” 배대호의 말에 민지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일단 난 고엘프라고, 천계의 진리목이건 뭐건 간에 나무를 다루는 건 내가 전문이지.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그것’을 위해서 한 연구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고 말이야.”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건 그렇죠.” 다른 사람들은 정운과 이민지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극도의 기밀이었기에 이민지가 만들어 놓은 ‘그것’은 다른 간부들도 존재조차 존재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민지가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정운 뿐이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나무였다. 높이가 30미터에 둘레만 해도 장정 다섯 명 정도는 달라붙어야 감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나무는 녹색이 아니라 황금빛의 이파리를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새로운 전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나무라고?” 박추성의 말에 배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름은 제로트리라고 이름 붙였다.” “제로 트리라···. 그라운드 제로하고 비슷 하다는 의미입니까?” “천계에서는 진리목이 주인인 정운이 너의 영향을 받아서 열매를 맺는다고 했었지. 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뭐겠냐?” “하긴···. 말 할 것도 없죠.” 정운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간부들 전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름 아닌 그라운드 제로 그 자체였다. “뭐, 그런 말이다. 실질적으로 하는 기능은 별반 다르지 않더라.” 배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무에 열린 황금빛 열매를 따서 모두에게 하나씩 줬다. “일단 이걸 먹어라. 이게 이 나무를 이용하기 위한 조건이니까.” 배대호가 건내 준 열매는 사과보다 좀 작아서 자두 같은 크기의 열매였다. 정운을 비롯한 일행은 나무의 열매를 한입에 넣어서 씹었다. 나무는 몇 번 씹을 것도 없이 그대로 녹아서 없어져 버렸다. “뭔가 변한 느낌은 없는데?” “그러게. 파워 업 같은 느낌은 전혀 없어.” 일행은 나무 열매를 먹어도 전혀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그거 먹고 파워 업을 한다고 했냐?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영약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럼 뭔데?” “출입증이라니까···. 일단 따라와라.” 그렇게 말한 배대호는 나무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나무의 표면이 일렁거리면서 안으로 연결된 황금빛 포탈이 열렸다. “정운씨, 이건···.” “음, 라트란 왕국에서 본 그거네···.” 슬기와 정운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라트란 왕국에서 고엘프들이 나무속에 아공간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처럼, 이 나무 안에도 아공간이 생성된 것이다. “문 닫긴다. 열매 효력 떨어지기 전에 빨리 와.” 배대호는 그렇게 일행에게 재촉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배대호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안쪽에는···. “이건?” “허허···. 반갑다고 해야 하나?” “나 참····.” 가우리의 간부들이 어이없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안에 보이는 것은 푸딩 같은 몸을 하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는 그라운드 제로의 기초 몹인 슬라임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혹시···. 그라운드 제로를 완전히 재현 한 겁니까?”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직접 만들면서 알게 된 건데··. 파우스트 그 자식은 괴물이야.” 배대호는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이 공간에 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허리가.. 허리가.... 으으윽...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20화 원래의 목적은 파우스트와 같은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만큼 그곳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 했다. 뭐든지 그냥 보기만 할 때와 달리 직접 뛰어들어봐야 느끼는 점들이 있는 법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온 배대호였지만 그 공간을 완전히 재현 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라운드 제로를 게임으로 분류하면 그건 틀림없이 걸작이었다. 수많은 영혼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그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세계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계였다. 그래도 배대호 정도의 천재니 흉내나마 낼 수 있었지···. 보통은 그것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수많은 연구와 악전고투 끝에 그래도 최소한의 시스템 설정을 잡는 것만 해도 한계였다. 그리고 그 세계를 어떻게 진리목을 통해서 구현할까? 라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것은 이민지가 끼어들어서 해결을 해 줬다. 나무의 안에 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고엘프들의 고유한 기술이었다. 거기에 이민지가 독자적으로 연구한 기술이 더해지자 정운이 원하던 것을 모두 충족시키는 성과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운이 배대호에게 원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새로운 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또 하나는 기존의 전력을 꾸준히 강화해 갈 수 있을 것.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진 이상 더 이상 귀환자들의 레벨이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라기 보다 레벨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이미 그라운드 제로와 함께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여기 이 안에서도 레벨이라는 시스템은 없었다. 우선 이 제로 트리를 이용해서 강해 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제로 트리에서 열리는 나무 열매를 먹는다. 그렇게 하면 일단 나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단 그 효력은 몇 시간 가지 않는다. 일단 들어가면 그 안에서 제한 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 제로 트리의 열매를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안에 들어간 순간 사용자는 자신의 영혼을 강화할 수 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은 혼을 갈고 닦아서 이능력을 사용하는 존재들이다. 마력도, 기도, 그 이외의 이능력도 결국 근원은 혼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고 배대호는 연구 결과를 내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강해지기 위한 세 가지 필수 조건은 레벨, 아이템, 동료였다. 그런데 이 제로 트리에서는 레벨 시스템이 없고 아이템도 없다. 대신 소울 웨폰이라는 것이 생긴다. 사실 이게 아이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자기 심장 부근에서 무기를 꺼낸다고 생각하고 무리를 꺼내 봐.” 배대호의 설명에 일행은 각자 자기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가서 아공간 너머에서 무기를 꺼냈다. 그러자···. “이건, 그냥 우리가 쓰던 아이템이잖아요?” “많기도 많다····.” 우르르 쏟아진 아이템 때문에 잠시 일대가 시장바닥처럼 변해 버렸다. “음··. 역시 기존의 유저는 이렇게 되는 건가?” 배대호는 이럴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탈출한 자들에게 아이템은 이미 소울 웨폰이나 다름 없었다. 자신의 영혼에 각인된 힘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귀환자가 아닌 자들이 그렇게 소울 웨폰을 꺼내면 그때는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다른 무기들이 튀어 나왔다. 그 무장이 먼지는 모른다. 일단 꺼내보면 알지만 그걸 의지로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대신 싸움을 계속해 가면서 자신의 능력과 함께 소울 웨폰도 점점 강화되어 갔다. “과연, 이 제로 트리에서는 레벨 시스템은 없고, 새로운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그래도 소울 웨폰이라는 무기를 계속 개량해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거군요.” 누가 제자 아니랄까봐 슬기가 배대호의 말을 가장 먼저 이해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제 이해를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거라면 앞으로도 우리 가우리의 전력을 꾸준하게 상승 시킬 수 있어.” 정운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하지만 배대호는 서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아직 당장 사용하는 것은 일러. 이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아직 시험이 다 되지도 않았다. 최소한 우리가 최소한의 탐사를 하고 기존의 귀환자들을 시켜서 안정적인 가이드라인을 잡은 다음에 신병을 받아야지.” “손 볼게 많기는 하죠.” 확실히 이 공간안에 바로 초짜들을 밀어 넣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 주변에 뿅뿅 뛰어다니고 있는 슬라임들이야 일반 성인도 몽둥이 하나만 들면 잡을 수 있는 놈들이지만···. 어디에 어떤 괴물들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음···. 그 부분은 민지 누님이 맡아서 좀 해주실래요?” 정운의 말에 민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별 상관이야 없지만 왜 나야?” “누님 실력이면 안심도 되고···. 또 누님은 대외적인 활동은 하시면 안 되잖아요?” “아···. 그렇지?” 이민지는 오래전에 다크니스 왕국에 도전을 했다가 패배했었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이민지가 아직도 살아서 가우리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가우리와 다크니스 왕국의 전쟁을 앞당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미지는 최후의 최후까지 그 존재를 숨기고 있는게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지에게는 이 제로 트리의 관리 역할이 딱 좋았다. 이민지의 실력이라면 일단 믿을 수 있었고, 이 제로 트리의 시스템에 관해서도 배대호 다음으로 잘 아는 그녀니까 말이다. “그럼, 제로 트리에 관해서는 탐색이 끝나고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지는 대로 그대로 사람들을 밀어 넣길 하죠.” 정운의 결정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다만 박추성은 조금 염려되는 것이 있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그래···. 그런데 이미 귀환자라고 불리는 자들이야 레벨업을 위해서 온다고 해도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을까? 완전히 우리 가우리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글쎄요··. 일단 공고를 해 봐야 알겠죠.” 가우리에서는 대대적으로 모집 광고를 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박추성의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일 뿐이었다. 가우리에서 새로운 능력자를 만들기 위해서 도전자를 모집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전 세계에서 희망자가 쇄도했다. 시험적으로 1,000명을 뽑을 뿐인데 희망자는 3천만명이 넘었다. 솔직히 이 정도일 거라고는 가우리 측에서도 의외였다. 어지간한 국가의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자들이 응시한 것이다. 귀환자들의 능력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해 주는 일면이었다. “이걸 언제 다 가려서 뽑지···.”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지어는 슬기의 동생인 이준기 역시 잽싸게 전화해서 어떻게 안 되겠냐고 청탁을 넣었었다. 사실 정운의 입김으로 그 한 명 집어넣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만··. 슬기가 단호하게 잘랐다. “낙하산은 절대 안 되요. 그리고 난 내 동생이 이 바닥에 들어오는 것도 내키지 않고요.” “뭐, 좀 그렇지? 알았어.” 가우리의 능력자들이라고 하면 지구에서는 어디를 가도 선망 받고 있는 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좋은 직업인 것은 아니었다. 까딱 잘못하면 이계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슬기는 동생이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그런 직업에 몸을 던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슬기가 그렇게 말한 이상 정운의 대답도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슬기의 동생인 이준기의 꿈은 누나의 한 마디에 의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어쨌든···. 정운은 미하엘에게 일을 일임해서 당초의 천명 보다 더 많은 3,000명을 뽑게 했다. “일단 타국의 입김을 받은 스파이들이나 직업 군인들은 싹 골라내겠습니다.” “그렇게 해 줘. 아!! 한국 정부에서 들어온 요청으로 군인 200명 정도 자리는 만들어 줘.” “알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괜찮을 겁니다.” 지금 세계에서는 귀환자로 이뤄진 특수 부대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가우리의 간부 수준이 아니라도···. 한 레벨 60대 정도의 귀환자들만 되어도 그 존재 가치는 수백억대의 군사 무기를 대체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 정도 레벨의 귀환자들이 국가에 헌신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연맹이나 길드에 소속되어서 자유롭게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가우리에 신의 맹세를 받기 위해서 최소한의 구속을 받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귀환자라 불리는 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소원을 위해서 악마들과 거래를 할 정도로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국가를 위한 헌신이나 충성을 바라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군인들이 능력을 지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작은 시작이어도 된다. 언젠가는 귀환자들로 이루진 특수 부대를 운용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국에서는 수많은 특수부대를 이번 모집에 몰래 밀어 넣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가우리가 자국의 자치정부라는 것을 활용해서 몰래 밀어 넣는게 아니라 그냥 당당하게 요구했다. 딱 200명만 한국 정부의 군인들로 받아달라고 거의 빌다시피 간청을 했다. 가우리가 한국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귀환자의 힘이 필요하면 가우리에 요청을 해서 그만큼 인력을 빌려서 사용하면 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번거로운 수단 말고 한국 정부에서 직속으로 받아서 부릴 수 있는 병력이 간절했다. 정운은 그런 정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빚으로 달아두고 언젠가는 받아낼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내부의 사전 탐사는 어떻게 되었다고 했지?” 이민지를 중심으로 해서 몇몇 귀환자들이 제로 트리의 내부를 탐사 중이라고 했다. “지금 1층과 2층의 조사를 완전히 마치고 현재 3층을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1층과 2층의 수준은 전에 보고한 대로인가?” “예. 층의 넓이가 상당히 넓기는 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수준의 몹은 없다고 합니다.” 미하엘의 보고를 받으면서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안심은 하면 안 되지.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죽는 놈들 대부분은 20전에 자만하다 죽는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정운이 보고 받은 정보에 의하면 1층까지의 수준은 대략 레벨 20만 되어도 무난하게 돌파 할 수 있는 수준의 몹들이라고 했다. 몇몇 위험 지역의 몹들이 때거지로 나타나는게 좀 위험하기는 했지만 1대1로 위험한 몹들은 몇 종류 없다고 보고되었다. 2층으로 가면 조금 더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일단 가이드를 붙여서 안전하게 장기적인 레벨업을 노린다면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초보 시절이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특히 레벨 15에서 20사이 정도가 사망률이 높았다. 그 레벨에서는 방심만 하지 않고 무리만 하지 않으면 사망할 확률은 지극히 적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심과 무리를 하는 유저들이 태반이었다는 것이다. 보통 그 정도 되면 이제 자신이 사냥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하고 무리를 시도할 때였다. 이제 막 병아리가 삐약삐약 하려고 하는 수준에서 무리를 하다가는 십중팔구 사망하기 일쑤였다. 정운도 그 정도 수준에서 약간 실수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어쨌든 안 할 수는 없었다. 겁 먹고 시도도 하지 않으려면 이걸 뭐하러 만들었겠는가? “뭐···. 가이드를 붙여서 가능하면 안전하게 레벨업 시킬테니 괜찮겠지.”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세부적인 계획을 덧 붙이며 설득했다. “그렇습니다. 50인을 한 소대로 결성하고 그 소대당 소대장을 비롯해서 레벨 40대의 귀환자 다섯 명을 호위로 붙일 겁니다. 그렇게 하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을 거니다.” “음···. 알아서 잘 해줘. 그리고 내부에 마을이 없으니 캠프를 설치해서 활동해야 한다고 했지? 그 부분도 차질 없이 잘 준비해 두고.” “알겠습니다.” 새로운 전력을 만들기 위한 준비는 이렇게 착착 이뤄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여러가지 일의 겹침과 허리에 입은 크리티컬 대미지 때문에 연재 페이스가 약간 늦어질 것 같습니다. 부디 이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21화 <신참들의 도박> 제로 트리에 신입들을 밀어 넣고도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다. 제로 트리 내부의 아공간에서는 사냥의 열기가 한창 뜨거웠다. “그쪽으로 몰아!!!” “우두머리 놓치지 마!! 여기저기 흩어지면 그게 더 골치야!!!” 50여명의 사람들이 30마리 정도 되는 늑대 무리를 몰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상급자들은 무료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으으으으····. 처음에는 할 일 없어서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이제 슬슬 피곤해지는 걸?” “할 일이 너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인솔이 필요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소대장과 그 보좌로 따라 붙은 부관들의 대화에서는 무료함을 넘어 지겨움이 보이고 있었다. 제로 트리가 개방되고 신참들을 받아 들인지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정운의 명령으로 안전제일 주의로 사냥을 하게 했고,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라운드 제로의 수준으로 비췄을 때 10레벨 정도의 강함에 도달했다. 원래 초반에는 레벨이 빨리 오른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한 달에 걸려서 10레벨 정도면 상당히 느린 페이스였다. 물론 이 세계의 능력자들은 귀환자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강함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처음에 이들의 소울 웨폰은 그냥 검이나 창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수준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 무기는 더욱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단순한 검에서 검과 방패. 그리고 나중에는 상반신에 갑옷을 두르는 경우도 생겼다. 아이템을 추가로 구입 하는게 아니라 소울 웨폰이 점점 더 많아지고 강력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달에 걸쳐서 가우리에서는 신형 능력자들에 대한 카테고리를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었다. 대략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 할 수 있었다. 공격형, 방어형, 원거리형, 메이지형, 특질형. 이렇게 다섯 갈래로 나눴다. 공격형은 공격에 특화된 형태였다. 보통 소울 웨폰의 진화 척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주로 무기가 눈에 띄게 진화하면 공격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어형은 말 그대로 방어에 특화된 능력자다. 방패나 갑옷 같은 방어구가 주로 진화한다. 원거리형은 처음부터 티가 난다. 소울 웨폰 자체가 활이나 총 같은 무기로 나타나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메이지 형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소울 웨폰을 꺼낼 때 이미 마법에 관련된 물건이 나온다. 특질형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하지만 주로 염동력이나 짧은 근거리 텔레포트 같은 능력에 눈을 뜨고는 했다. 한 마디로 초능력자 같은 형태였다. 이렇게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추고 있는 능력자들이었지만 하나로 완전히 치우치는 자들은 의외로 적었다. 대부분 두 개에서 세 개 정도의 카테고리를 겸하고 있었다. 물론 가장 특별하게 두드러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봤을 때 신참 능력자들은 대부분 잡캐로 성장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잡캐들이 무리를 이뤄서 자신들 보다 숫자도 떨어지는 늑대 무리를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인솔자들이 나설 정도의 위험은 없었다. “소대장님. 늑대 무리 섬멸 끝났습니다.” 모든걸 다 끝내고 분대장들이 보고를 하러 왔다. “음, 수고했다. 오늘은 벌써 다섯 무리나 해치웠지? 이제 캠프로 돌아가자.” 소대장이 하품을 하며 늘어진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자 분대장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한 명이 총대를 매고 말했다. “저기 소대장님····.” “왜? 뭐 할 말 있어?” 까칠한 소대장의 말에 분대장은 살짝 쫄았다. 분대장이라고 해도 이번 신참 중에 조장으로 뽑혔을 뿐이다. 이미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고 가우리에서 7급의 신분을 받고 있는 소대장에게는 쉽게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대원들의 애타는 마음을 담아서 그는 용기있게 말했다. “저기·· 아직 대원들 모두가 체력이 충분히 남았습니다. 그러니 좀 더 사냥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 “응? 좀 더? 하지만 우리 구역은 이미 돌 만큼 돌았어. 늑대들을 더 잡으려면 리젠 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걸?” 3,000명이나 되는 인원을 50인씩 1개조로 해서 구역을 나눠서 열심히 사냥 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로 구역이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전에 영역을 딱 잘랐다. 그래서 하루에 사냥 할 수 있는 횟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봐야 했다. “음··. 그게 우리 구역이 아니라 저쪽 숲 안으로 들어가면 미개발 지역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가면?” “안 돼!!” 소대장은 딸 잘라서 거절했다. 숲 속에 출몰하는 몹은 고블린과 흡고불린 무리였다. 사실 몹의 수준은 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숲의 울창함 때문에 소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부하들에게 일일이 눈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숲속은 아직 위험 지대로 분류해서 초보들이 사냥을 가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정체기에 들어간 대원들은 조급증에 숲으로 가서 사냥을 하고 싶어 했다. 이제까지 너무 쉬운 사냥만 계속하다 보니 자만심이 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소대장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 된다면 안 돼!! 위험한 짓 하지 말고 캠프로 돌아간다. 다른 조들도 숲에는 안 들어가잖아? 규칙을 지켜라.” 고지식한 소대장의 말에 분대장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조 말고 다른 조들은 이미 숲 속으로 진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소대장은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그로서도 그건 처음 들어보는 정보였다. “캠프 내부에서는 이미 소문이 그렇게 났습니다. 조별로 경쟁을 해서 성과가 뛰어난 조에는 그 조에 포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설마 그래서?” 미하엘은 조별로 경쟁을 시켜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자들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포상을 내렸다. 그래서 몇몇 조장들은 그 포상에 눈이 멀어서 위험 지대고 뭐고 간에 부하들을 밀어 넣어서 빠른 전력 상승을 노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것들이····. 페어플레이 하려고 했는데 이따위로 뒤통수를 친다 이거지?’ 결국 소대장도 살짝 혈압이 올랐다. “좋다. 우리는 숲 지대가 아니라 그 너머의 사막 지대로 가서 데저트 맨들을 노린다.” “예? 데저트 맨을···. 그건 평가 레벨이 20은 넘는 놈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평가레벨. 제로 트리의 안에서는 레벨 시스템이 없다. 그렇다 보니 이미 탐색을 한 고수들이 각 몹에 이건 어느 정도 되겠다. 라고 평가 레벨을 내리는 것이다. 좀 전에 신참들이 몰이 사냥을 하고 있던 늑대는 한 마리당 평가 레벨이 7정도다 늑대 무리의 두목은 9정도고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평가 레벨이 20에 달하는 데저트 맨을 잡으로 간다는 것은 사실 약간 무리였다. 하지만 소대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레벨이 45다. 그거 하나 못 잡을까봐? 내가 지켜 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가자.”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 무리의 소대는 정해진 구역을 이탈해서 사막 지대로 이동했다. 제로 트리의 층의 공간은 상당히 광대했다. 거의 대한민국의 한 개 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캠프를 만들고 한 캠프당 열 개 이상의 조들이 머물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머물고 있는 캠프 근처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곳은 이 사막지대였다. 땅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데저트 맨들은 온몸에 비늘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고 손에 들려있는 펄션을 무기로 쓰는 놈들이었다. 그 놈들 하나하나가 제법 강해서 사실 신참들이 사냥하려면 한 마리 잡는데 다섯 명은 붙어야 사냥이 될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인솔자가 손 놓고 보고 있을 때의 일이고···. 소대장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꼼수를 사용했다. “키에에엑!!!” “시끄러!!”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데저트 맨의 한 쪽 팔을 잘라 버린 소대장은 그쯤에서 뒤로 물러나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병신 만들어 놨으니 이제 조져!!” “옛. 소대장님!!” “죽어랏!!!!” “받아라!!!” 일단 소대장이 나서서 데저트 맨을 어느 정도 주물러 놓으면 그 다음에 부하들이 나서서 놈을 죽인다. 소대장이 먼저 데미지를 입혀 두고 있는 만큼 부하들에게 돌아가는 경험치는 적었지만···. 그래도 익숙한 늑대들 잡는 것 보다는 성장속도가 눈에 띄었다. “앗!! 내 소울 웨폰이 진화했어.” “내 것도···. 오오··. 방패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누가 한 번 쳐봐.” 사막에서 사냥을 시작하고 자신들의 힘이 오르는 것을 느끼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부하들을 보면서 소대장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귀여운 자식들, 열심히 해서 내 출세에 힘좀 보태봐라.’ 소대장의 레벨은 45였다. 사실 가우리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게 높은 레벨은 아니고 삼대 길드 출신의 중간 간부들이 보기에도 그저 귀여운 레벨일 뿐이었다. 하지만 힘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라서···. 여기 신참들이 보기에는 45레벨의 소대장이 박정운 처럼 보이고 있었다. 자신들은 일대일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데저트 맨들을 그냥 어린애 손목 비틀 듯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존경어린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다. “흠···.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볼까? 이번에는 한 열 마리 정도 끌어내 보면 좋겠는데?” 소대장의 말에 보좌로 따라온 부관들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대장님. 열 마리는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뭐 어때, 내가 한 다섯 마리 맡고 너희들이 남은 다섯 마리 정도 맡으면 되지.” “그건 그렇지만···.” 보좌로 따라온 부관은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섯 명의 부관들의 레벨은 30대 초반 정도··. 데저트 맨들과 일대일로 하면 여유 있게 잡을 수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빡빡하게 사냥 하는게 아닌가?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 부관에게 소대장이 말했다. “시간 없다. 최대한 빨리 높은 효율을 보여야 다른 조들에게 뒤처진 것을 만회 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결국 포상에 눈이 먼 간부들은 이번에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데저트 맨들을 열 마리 이상 끌어오기로 했다. 이제까지 다섯 마리 정도씩만 끌어 왔지만 그 두 배를 노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만심은 결국 정운이 걱정하던 사태로 연결되고 말았다. “도망가!!!!!” 멀리서 어그로를 끌어오던 부관들이 동료들에게 외쳤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에는 자욱한 먼지와 함께 한 무리의 데저틈 맨들이 자욱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저···. 저저···.” 소대장은 그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척 봐도 50마리는 넘어 보였다. 저런 대부대를 끌고 올 줄은 차마 몰랐다. “이 새끼들아!! 무슨 실수를 한 거야!!!” 소대장의 말에 부관은 달려오면서 외쳤다. “보··. 보스몹이 있었습니다. 데저트 맨 족장이···. 큭!!!” 말을 하던 그는 뒤편에서 날아온 공격을 맞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제길!!! 공격!!! 모두 공격해라!!!” 소대장은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사실 여기서는 부관 하나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미친 듯이 튀는게 정답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운은 신의 맹세를 통해서 제로 트리의 인솔자들에게 여러 가지 제약을 걸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부하들을 버리지 말 것이었다. 혹시나 상관의 지휘를 악용해서 부하를 위험으로 몰고 버리는 쓰레기가 나올까 싶어서 건 금제였는데···. 그게 이런 상황에서는 한 소대의 전멸위기까지 몰고 가게 되었다. “크아악!!” “여기 좀 도와 줘!!!” “제길!!” 소대원들은 둥글게 원진을 만들고 포위 된 상황에서도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숫적으로는 비슷하고 질적으로는 적이 한수 위인 상황이다. 소대장과 부관들이 분전을 하고는 있었지만 좀처럼 열세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이 자식아 좀 죽어!!!!” 소대장은 데자트맨 족장을 상대로 일대일로 분투를 하고 있었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소대장이 놈보다는 더 강했다. 하지만 경정타를 날리려고만 하면 다른 데저트 매들이 끼어들어서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지쳐가는 자신과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부하들을 보면서 그는 머릿속으로 전멸을 예감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끝나나?’ 도박은 금물이라고 진작 알고 있었다. 그걸 몰랐다면 그라운드 제로에서 진작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세욕에 잠시 그걸 망각했고 결국은 이런 대가를 치루게 된 것이다. 다만. 그의 경우는 운이 좋다고 해야 했다. “다들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마라.” 하늘에서 구원자의 한 마디가 들렸으니 말이다.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벼락을 동반한 화살들이 다발로 떨어졌다. 무차별 적으로 떨어진 것 같은 화살들을 신기하게도 가우리의 인간들은 맞지 않고 오로지 데저트 맨들에게만 적중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본 소대장의 눈에 보인 것은···. “수··. 수상 각하.” 활을 들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정운이 보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22화 <안정되어 가는 가우리> “이빨들 악 물어라.” 뻑!! 빡!! 쩍!!! 다채로운 음향과 함께 소대장들의 안면이 휙휙 돌아가고 그들이 바닥으로 픽픽 쓰러졌다. 어지간하면 밑에 인간들에게 직접 손을 대는 것은 자제하는 정운이지만··. 이번에는 참지 않고 군기를 확실하게 잡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서 최대한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레벨업 하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그런데 인솔자라는 놈들이 먼저 경쟁심에 무리를 해서 신참들을 위기로 몬 것이다. 특히 그 중에 한 소대는 정운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사망자가 발생 할 뻔 했다. 정운은 한 푸닥거리하고 난 후에 소대장들을 모아놓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만약 한 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부하들 앞에서 쪽 팔리게 몇 대 쳐 맞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알겠냐?” “옛!!” “옛!!” “옛!!” 바싹 군기가 든 소대장들의 대답에서 정운은 한 번은 더 믿어 보기로 했다. 일단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한 번 실수를 경험해본 자들을 바로 교체해 봤자 새로 들어온 자들이 또 같은 실수를 반복 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군기를 잡았다면 같은 실패를 두 번 반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정운이 소대장들하고 한 푸닥거리를 하면 여기서 끝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군부대의 기본은 위에서 아래로 구르고 구르면서 더욱더 커진다는 것이다. 정운이 소대장들을 잡으면 소대장은 그 밑에 부관들을 조지고··. 그 부관들은 분대장들을 조지고···. 분대장들은 편대원들에게 꼬장을 부리기 시작한다. 결국 가끔 이렇게 푸닥거리를 해야 군의 기강이 잡히는 것이다. “정운님. 민지님과 마나실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미하엘이 정운에게 말했다. 정운은 그런 미하엘에게 알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 바로 갈게.” 정운이 지금 제로 트리에 들어온 것은 밑에 부하들 기강이나 잡자고 들어온게 아니었다. 그거라면 정운이 직접 오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보냈을 것이다. 지금 정운이 온 것은 이민지에게 들어온 연락 때문이었다. 현재 신참들을 위해서 제로 트리의 내부를 수색하고 있는 공간은 3층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신참들을 위한 수색이고, 고레벨을 위한 수색조는 자잘한 탐색을 하지 않고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민지가 현재 단독으로 탐색중인 층은 무려 51층이었다. 저레벨에서 늑대들 하고 티격태격하고 있는 자들하고는 격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고레벨 유저들도 더 강해지기 위한 수련층으로서 있을 공간을 찾고 있는 것이다. 다크니스 왕국의 강력함을 알게 된 이상 정운을 비롯한 가우리의 간부들에게도 레벨업은 필수였다. “일단 우리 수행에 도움이 될 정도의 층을 발견하면 부른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레벨일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민지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걸린 것들을 상대하면서 정운은 의외로 이 제로 트리의 내부에 있는 몹들도 그 수준이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이 공간에도 공이 많이 들어갔으니···.’ 천계의 보물인 진리목에 일전에 일본에서 구한 악마의 씨앗을 이용해서 몹들을 재생 시키고 있었다. 들어간 기본 재료가 그 정도에 배대호와 이민지가 공을 들여서 만든 세계였다. 몹의 강력함만 따지면 보스몹을 제외한 그라운드 제로에 뒤지지 않았다. 이게 몇 층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모두의 힘을 올리는 것에 효과는 있을 것 같았다. 정운과 미하엘이라는 콤비로도 이민지가 있는 51층까지 올라가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왔니?” “좀 마중이라도 오지 그랬어요?” 피곤한 기색의 정운에게 이민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이 정도는 혼자 올라 와야지. 그보다 어때? 수준은 쓸만하지?” “예···. 그런데 이왕이면 몇 층 더 위로 올라가는게 좋지 않아요? 보스몹도 없겠다. 그냥 올라가면 되잖아요?” “너나 나는 그렇지. 하지만 조금 약한 애들도 있고···. 이 쯤이면 적당한 것 같아서 말이야.” 확실히 이민지의 말대로 가우리의 간부들 사이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났다. 정운과 슬기만 해도 차이가 제법 났다. 300이 넘어가는 정운과 박추성 등에 비해서 한중겸만 해도 레벨이 280이었고, 윤정철은 217, 슬기는 205였다. 300레벨이 넘어가는 괴물 사인방들과는 차이가 좀 나는게 사실이었다. “그럼 유일한 문제는···. 여기까지 올라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인데? 어떻게 해결하실래요?” “대호 오라버니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해서 포탈을 만들었지. 여기 이거.” 이보영은 자신의 능력으로 허공에 황금빛 포탈을 열었다. 그러자 밖으로 바로 연결되는 직통 입구가 연결 되었다. “항시 한 명은 이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어차피 난 거의 이 안에 있을 거니까 별 상관없지?”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것이 있는데 왜 난 직접 올라 오라고 했어요?” “··············그건, 네가···. 이 제로 트리 내부의 수준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 때문이지. 초보들 말고 기존의 귀환자들도 슬슬 층 별로 배치하고 진출입을 허락해야 하잖아? 층 별로 수준은 알아야지. 안 그래?” “누가 봐도 이제 막 생각난 이유처럼 들리는데 그건 착각입니까?” “착각이고 말고. 나처럼 고결한 고엘프라는 종족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겠니?” “·············.” 실제 고엘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민지는 아마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정체성은 인간이니 말이다. ‘됐다. 그냥 따지지 말자. 귀찮다.’ “앞으로 저도 달에 열흘 정도는 이 안에서 지낼게요. 다른 사람들도 자주 안으로 들어올 겁니다.” “중겸이 좀 자주 보내.” “가능하면 이 안에서 살게 하고 싶습니다. 외부에서 할 일만 없으면 말이죠.” 정운의 진심이었다. 가우리는 점점 발전해 갔다. 지구에서는 이미 확고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위상의 가장 큰 장점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신세계에서 뽑아져 나오는 막대한 자원. 석유를 비롯한 수많은 자원들이 한국을 통해서 막대한 자원이 지구로 수출되고 있었다. 덕분에 세계의 석유값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그 체금 피부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있는 것은 한국이었다. 리터당 2,300원이 넘어가던 휘발유 값이 이제는 리터당 500원 이하로 떨어졌다. 사실 더 떨어트릴 수도 있었지만 물가의 기본이 되는 석유값이 갑자기 떨어지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서 철저하게 제한해서 조금씩 조금씩 낮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더 낮출 수도 있었다. 그 막대한 자원덕분에 여러 나라들은 가우리의 행동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속된 말로 정운의 안색 하나 헛기침 하나만 해도 바짝 얼어 버리는 나라들이 수두룩해 졌다. 이미 가우리의 석유 매장량은 지구 전체의 매장량을 훌쩍 웃돌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라고 해서 이게 욕심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감히 힘으로 어떻게 해 보겠따고 수작을 부리지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 이유가 바로 가우리의 위상 두 번째. 정운을 비롯한 가우리 간부들의 강력함이었다. 하나하나가 핵병기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즐비한게 가우리다. 정운의 힘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존재였다. 그리고 정운은 간부들 전원이 자신에 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공표 해 놓은 상황이었다. 사실 약간 뻥이 붙은 공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뻥은 아니었다. 실제로 간부들 하나하나가 마음 먹으면 일국에 준하는 군사력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군사 병기가 아니라 개개인이 몸에 지니고 있는 무력이 가우리의 힘인 것이다. 이래서는 막을 수단이 없었다. 막말로 정운이 어딘가로 가서 왕창 깽판을 치고 돌아와서 ‘난 모르는 일일세.’ 라고 우겨 버리면 뭐라고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세계 각국의 군사 고문들은 가우리의 존재에 관해서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였다. 대응 방법 전무.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의 군대와 군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단 한명의 초인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애당초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한우리 연맹 시절부터 건재한 신의 맹세의 발급. 앞의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당근이고 또 하나가 채찍이라면···. 이 신의 맹세의 발급은 당근과 채찍을 절묘하게 겸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귀환자들이 현실에 돌아오고 나서도 약간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되찾아지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다. 어떤 환경에 처한다고 해도 그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자들이다. 귀환자들이 막 귀환했을 때에 비하면 소란도 많이 줄어들었고 이제는 괜찮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귀환자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무수한 길드와 연맹들의 존재가 컸다. 그리고 신의 맹세가 없다면 실질적으로 길드나 연맹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만약 어느 국가에서 가우리와 척을 지고 정운이 그 나라에 소속된 귀환자들에게는 신의 맹세를 나눠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 나라의 치안은 다시 귀환자들이 등장했던 초창기로 돌아가 버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지구에서는 어느 나라도 감히 가우리와 척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덩달아서 한국도 상당부분 국가의 위상이 올라갔다. 가우리는 형식적으로 한국의 안에 있는 자치정부였고, 세계 각국이 가우리를 향해서 말을 할 때는 일단 한국을 거쳐서 말해야 했다. 국내의 저명한 역사학 교수들은 반만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 최고의 전성기라고 말하기도 할 정도였다. 이렇게 지구에서 완벽한 위상을 발휘하는 가우리였지만···. 아직 신세계에서는 그 위상이 지구만큼 미치지 못했다. 제국은 가우리를 여전히 악마들의 국가라도 보고 있었고 꾸준하게 적대적이었다. 단,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창기의 게이트가 열렸던 것에 비하면 그렇게 적극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다크니스 왕국의 전체 전력은 가우리를 상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있었다. 나머지 국가들도 대부분 가우리에 대한 경계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라트란 왕국만이 가우리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라트란 왕국은 가우리와 정식으로 국교를 체결하고 교류를 행하고 있었다. 우선 정운은 요정족들과 교류를 다지기에 앞서서 충분한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우리 내부에 강력하게 공고를 한 것이다. 요정족을 노예로 매매하거나 이유 없이 공격하는 자는 관련자 전원을 엄하게 처벌하겠다. 라고 말이다. 원래 브로드 왕국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이 나라에서는 요정족을 사냥하고 노예로 매매하는 것이 무척 성행했다. 사실 당시에는 그 나라에서 가장 돈이 되는 사업이 노예매매였었다. 지하 자원이 있어도 활용하지를 못했고 치안이 안 좋아서 상업이나 농업이 제대로 발전할 상황도 아니고···. 국가의 지배계급 자체가 거의 깡패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국가 산업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가우리가 이 땅을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직업이 많이 생겨서 일자리가 풍부해졌고, 지구에서 들어오는 물자들로 인해서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도 저렴한 가격에 사고 팔 수 있었다.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서 국민들의 생활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지금 가우리에서 이세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정도는 되고 있었다. 수도인 신서울과 다른 광역시에 살고 있는 자들에 비해서 지방의 생활 수준이 여전히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활수준의 평준화 같은 것을 하루 이틀 안에 되는 것이 아니다. 단, 정운은 법을 어기는 자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엄하게 처벌했다. 지구의 인권 변호사들이 보면 그렇게 종신형을 쉽게 남발하는 것은 인권 침해니 어쩌니 하겠지만 정운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게 엄중한 처벌을 하고 그 사실을 전역에 알렸다. 생활은 편해졌지만 만약 법을 어기면 그때는 그 편한 생활이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확실하게 틀을 잡고 나서야 이세계의 사람들에게도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준법 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국내의 치안의 안정화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사실 21세기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보통 중세 시절만 되어도 법이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걸리면 안 되는 것. 이라는 개념이 더 강했다. 오히려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개념 쪽에는 예절이나 명예 등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허리 때문에.. 허리 때문에... 으으.... 인터넷 뒤지면서 운동부터 잠자는 자세까지 허리에 좋다는 것은 일단 다 해보고 있습니다. 병원 가니 등짝에 등 근육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주사라고 하던가? 그걸 한 열방 정도 놓더군요. 그래도 아직 뻐근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23화 보통 어릴 때 기억이 있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어린 꼬마들을 모아놓고 ‘무단횡단 하면 안 되요.’ 라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가르치는 그런 기억들 말이다. 유치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게 괜히 하는게 아니다. 다 큰 어른과 달리 어린애들은 윤리의식을 바로바로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그리고 유년 시절에 각인된 작은 윤리 의식들은 무의식 중에 그 인간이 평생 달고 가는 경우가 많다. 작은 모래알 같은 일이지만 그런 일들 하나하나가 모이고 모여서 결국은 큰 산을 이루는 법이다. 국가의 치안은 법의 정비와 검경의 유능함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범죄의 해결에 큰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범죄의 발생 저지는 해당 국가의 국민 전체의 도덕심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걸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해서 정운은 최대한 법의 적용을 엄격하게 하고 그런 사실을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랬기에 정운은 요정족들이 국가 내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모든 지역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신서울을 비롯한 삼대 광역시에 한해서였다. 다른 곳들도 못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자재하도록 했다. 아무래도 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아직은 치안이 엄준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했었다. 어쨌든 라트란 왕국의 엘프들을 가우리의 길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보통 가우리와의 국교를 위해서 파견된 자들인데 정운은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들 하나하나에게 위치 추적기를 소지하게 했다. 가우리에 오면 요정족들을 손쉽게 발견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날벌레들이 몰려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시도가 몇 번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전에 방지 되었고 몇몇 납치에 성공한 자들 역시 발신기 때문에 바로 걸렸다. 그리고 일단 걸린 자들은 처절한 본보기가 되어야 했다. 덕분에 요정족들의 가우리 진출은 서서히 그 정도를 더해가고 이었다. 요정족들의 진출로 가우리에는 여러 가지 효과가 더해졌다. 우선 라트란 왕국의 특산품들이 있었다. 공산품이라고 하면 기계 공정을 도입한 가우리를 따라 갈 수 있는 물건은 요정족들에게 없었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에서 얻은 물건들 중에는 반대로 가우리에서는 절대 따라가지 못할 명품들이 있었다. 엘프들이 따서 말린 찻잎, 엘프들이 담근 미주. 이 두 가지는 이 세계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는 귀족들이 없어서 못 구하는 것이었다. 연회에 엘프주를 한 번 내 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 에 따라서 연회의 격이 바뀌기도 했다. 노예로 만든 엘프들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노예로 전락한 엘프들은 엘프주를 못 담군다. 오로지 숲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엘프들만이 담굴 수 있는 극상의 미주가 엘프주인 것이다. 가우리에서는 그것이 최근 상당량 풀리고 있었다. 정운은 이 중에 반 정도는 지구로 수출을 해 봤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냥 이계의 신기한 물건 취급 하는게 아니라 그 물건의 가치 자체가 엄청나다는 것을 안 것이다. 엘프들의 찻잎은 영국의 왕실에서도 한 번 사용하고 나니 영국의 왕비가 극찬을 했고 단번에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그냥 특산품의 수출만을 넘어서 엘프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전력이었다. 예전에 인간의 나라에서 일해 본 적이 있는 마그네스 장로는 자신을 따르는 다크엘프 일족을 이끌고 스스로 가우리에 파견부대를 운용했다. 오크족들과의 전선에서 그런 다크엘프 레인저들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오크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격퇴하기만 하는 것은 요령이 없는 행동입니다.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드리죠.” 마그네스 장로는 이렇게 말하고 스스로 레인저 부대를 운용했다. 그리고 그 레인저 부대는 국경 지대의 크롱크 왕국을 은밀하게 이동하면서 살짝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분탕질을 하기 시작하니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다. 오크들이 이번보다 훨씬 더 조용해 진 것이다. 가우리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크롱크 왕국에 섣불리 먼저 공격을 했다가는 오크족들이 개 때처럼 전쟁을 하로 튀어나오는 수가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 꾸준한 국지전을 반복하면서도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크엘프 레인저 부대가 하는 일은 그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소규모 부족을 급습해서 완전 전멸 시켜 버린다거나···. 아니면 크롱크 왕국의 원시림에 산재한 몬스터들을 몰아서 부족을 공격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오크족들을 흔들었다. 그렇게 하자 신기할 정도로 국경 지대가 조용했다. 이제까지 크롱크 왕국과의 국경 지대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쳐들어오는 오크들 때문에 늘상 골치였는데···. 그 공격 빈도가 거의 10% 이하로 확 줄어 버린 것이다. “역시 오랜 세월의 경험을 무시 못 하는 건가?” 이제까지 우직하게 대응하는 것 밖에 생각 못했던 한중겸과 박추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중얼 거렸다. 이렇게 가우리와 라트란 왕국의 사이가 돈독해지고 요정족들도 서서히 인간들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할 무렵···. 이게 무척이나 싫은 나라들이 있었다. 바로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이었다. 이들 양 국가는 오랫동안 다크니스 왕국을 제외하면 국력의 서열2위와 3위를 지키면서 대륙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오랫동안 전쟁과 휴전을 반복해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니스 왕국이 대륙에 나서지 않고, 제국도 사실 명목만 제국이지 그리 신경 쓸게 없는 이상 대륙에서 목소리를 크게 낸다고 해서 별로 거슬릴 것은 없었다. 그런데 가우리가 나서면서 라트란 왕국이 가우리와 힘을 합치고 자신들의 꼴이 우습게 되었다.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나라가 이제는 대륙 최고의 문명국이라도 불리게 되었고··. 심지어는 이제의 콧대만 높게 세우던 저 요정족들 조차 아군으로 만들었다. 에리프릴 왕국이나 성 세인트 왕국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게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양국의 외교 사절은 국경의 중립 지대에서 만났다. “여기, 우리쪽의 조건이오. 사전 협의한 대로이긴 하지만 읽어 보시겠소?” “물론이오. 당신들을 믿을 수는 없으니.” “흥!!” 외교 사절인긴 해도 서로 간에 악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양국의 사절이었다. 그만큼 양 국가의 앙금은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양 국의 사절이 모인 것은 휴전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다. 점점 세력이 커져가는 가우리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에리프릴 왕국이나 성 세인트 왕국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민심이 떠나는 것이었다. 가우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통제는 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 사이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같은 재력가들이 아니라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 가우리에 대한 환상감이 강하게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계에서 온 신기한 문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리한 생활을 영유 할 수 있고, 또 신분 제도가 없어서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 대강 그런 소문들이 살이 붙고 붙어서 더욱더 크게 번지고 있었다. 물론 약간 과장이 붙기는 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노력 없이 거저 주는 세상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막연한 환상감에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의 전쟁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전면전은 아니라고 해도 꾸준한 전쟁으로 인한 부담은 결국 국민들을 차츰차츰 지치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결국 오늘 양 국은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이대로 전쟁을 계속해서는 누구 좋은 일만 시킬 뿐이라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이런저런 세밀한 조종을 위해서 여러 번 의견이 오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양국의 앙숙 관계를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시일 안에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이다. 일단 양국 모두 적당히 체면을 세우는 정도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러기 위한 명분으로 에리프릴 왕국은 자국의 공주 한명을 성 세인트 왕국의 어떤 유력자에게 시집보내야 했다. 왕위 서열하고 까마득하게 먼 방계의 공주긴 하지만 나이가 40은 더 먹은 유력자의 부인으로 보내는 것은 체면이 제대로 구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성 세인트 왕국 역시 자국의 보물이라고 할 수 신전 두 개를 통째로 에리프릴 왕국으로 옮겨야 했다. 말은 포교를 위한 평화 사절이었지만···. 사실상 인질이다. 그것도 반쯤 버린 인질 말이다. 다시 양국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그 신전의 사제들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정전이 끝나고 또 하나의 협정 체결이 남아 있었다. 바로 대 가우리 동맹 협정이었다. 공개적으로 맺어지는 협정과 달리 이것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가우리를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것은 꺼려졌다. 가우리의 정확한 군사력을 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국은 일단 다른 나라들과 함께 군사력을 모아서 모든 국가의 국력을 총 동원 해서 가우리를 몰아칠 생각이었다. 이전처럼 크롱크 왕국과 브로드 왕국의 용병대만 동원 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대륙의 진정한 전력을 총 동원할 생각이었다. 양국의 임시적인 동맹으로 인해서 일단 대륙의 군사력 NO.2와 NO.3의 국가가 힘을 모으긴 한 것이다. 양국의 사신은 서로 협정서를 나누고 난 후에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제국과 엘란 왕국 쪽에는 우리나라가 말해 보겠소.” “그럼 우리는 크롱크 왕국과 아이언 왕국이군. 좋소. 그렇게 하지.” 양국의 사신은 그렇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떨어졌다. 가우리라는 뜨거운 감자를 먹기 위해서 힘을 합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은 나라들은 아니었다. 오래 얼굴 본다고 반가울 리가 없다. 싸움이나 안 나면 다행이지. 제로 트리의 안. 본격적으로 개방이 되고 난 후에 제로 트리는 이용 기간을 얻어내기 위해서 신청자가 쇄도했다. 그리고 이공간의 안에서는 가우리의 신참 능력자들을 포함해서 기존의 귀환자들까지 무수한 능력자들이 하루하루 수행에 힘 쓰고 있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진 이후 귀환자들 사이에서는 정체된 힘이 큰 고민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와 달리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정해진 힘의 격차는 이제 절대 뒤집을 도리가 없어져 버렸다. 힘의 성장 자체가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힘을 다시 성장 시킬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었다. 기존의 귀환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정운은 이용자가 너무 없으면 의무적으로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전혀 필요 없는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먼저 제로 트리에 들어오겠다고 한꺼번에 휴가를 신청하는 귀환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정도였다. 가우리에서 귀환자들의 출세 기준은 어디까지나 힘의 유무가 대부분의 평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 강한 힘을 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한꺼번에 들어오는 자들을 통제하고 층별로 출입증을 발부 하는게 더 문제였다. 일전에 신참들의 무리수 사건이 있었던 다음부터는 모든 능력자들에게 수준에 맞는 층 말고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단, 예외로 더 높은 상급자가 하급자를 이끌어 주기 위해서 상위 층으로 이동하는 것들은 가능했다. 신참들의 경우 대략 가우리의 기준으로 30레벨 정도가 되면 단체로 이동하는 것을 그만두고 개개인의 기준에 맞춰서 수련에 힘 쓸 수 있게 해 줬다. 팀플레이가 안전하기는 하지만 너무 팀플레이에만 힘쓰다 보면 결국 개개인의 전투력은 오르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힘은 다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정운도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아아아!!!!” “쿠워어어어어!!!!” 정운의 뇌전이 머리가 세 개 달리 거대한 늑대를 깔끔하게 태워 죽이고 있었다. “후우우···. 오늘은 이쯤 할까?” “이쯤···. 이 아니라고요. 도대체 몇 마리를 쓸어 버린 거예요?” 정운의 옆에서는 슬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정운이 잡은 몹들 이외에도 이 황야에는 정운이 쓸어버린 잡몹들이 수두룩 했다. 마치 인간 재해라고 해야 할까? 바닥에 쓰러진 몹들 하나하나가 그라운드 제로로 치면 레벨 100이상은 되는 몹들이었다. 그런 거물들을 대량으로 쓸어버리는 정운을 보면서 슬기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화력하면 보통 메이지가 최강 계열이어야 하는데····. 정운의 화력은 이미 메이지 중에서도 최고 계열인 슬기나 배대호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건 전위 후위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최강 잡캐? 그렇게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레벨 시스템이 없어지니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가 없네··. 이게 꽤 불편하단 말이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하지만 거기까지 바랄 수는 없잖아요? 수행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죠. 뭐.” 슬기의 말에 정운은 그건 그렇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제로 트리의 안에 들어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지. 슬슬 밖으로 나가자.” “예.” 가능하면 좀 더 수행에 집중하고 싶은 정운이었지만··. 가우리의 수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운이 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었다. 자잘한 업무는 미하엘이 전부 도 맡아서 처리하고는 있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타이밍도 참 환상의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정운이 제로 트리에서 나온 시점에서 딱 알맞은 건수가 터지고 말았다. “수상님. 전쟁이 터졌습니다.” 미하엘의 보고를 들은 정운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되물었다. “······어디서?” “오국 동맹입니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의 눈살이 찌푸려지기에는 충분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24화 <발발하는 전쟁.> 가우리에는 긴급하게 회의가 소집 되었다. 에리프릴, 성 세인트, 크롱크, 아이언, 엘라 이 다섯 개의 나라가 모두 전쟁은 선포한 것이다. “라트란 왕국에게 말이죠.” “라트란? 우리 가우리가 아니고?”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미하엘의 보고를 받은 가우리의 간부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섯 개의 나라가 동맹을 맺더니 갑자기 공격을 한 것이 가우리가 아니라 요정족의 나라인 라트란 왕국이라고 한다이게 뭘 뜻하는 것인지 그 진의를 곰곰하게 생각해 봐야 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라트란 왕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이상 라트란 왕국에 대한 공격은 우리 가우리에 대한 전쟁선포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번거롭게 돌아가는 수를 쓰는 걸까요?” 정운의 질문에 먼저 대답을 한 것은 홍린이었다. “대의명분 아닐까요? 자신들이 먼저 전쟁을 건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먼저 걸었다. 라는 명분을 가지고 싶은거 겠죠?” 홍린의 말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여전했다. “왜?” 정운이 간단하게 되 물었다. 그러자 말을 한 홍린이 되려 당황했다.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댄 것 같은데 정운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 왜라니요···. 그거야 명분이 있어야···.” “그건 일반적인 전쟁일 경우야. 사실상 다섯 나라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끝장을 보자는 식으로 전쟁을 선포한 거나 다름없어. 그런데 새삼 명분 따위는 왜 필요하겠어?” “············?” 정운의 말을 듣고 보니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전쟁의 명분이라는 것은 제 삼자의 개입을 방지하자는 목적이 가장 컸다. 이런이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참견하지 마라. 명분의 최대 목적인 제 삼의 세력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사실 다크니스 왕국과 제국을 제외한 나라들···. 그러니까 전쟁이 가능한 다른 나라들을 모두 끌어들여놓고 이제 와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라트란 왕국에 전쟁을 선포한 이유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야. 미하엘, 전쟁의 이유가 뭐라고 했지?” “사유재산의 지속적인 약탈이라고 합니다.” “미친놈들····.” 정운은 어이가 없었다. 라트란 왕국과 동매을 맺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라트란 왕국의 내부에는 구출대라는 부대가 따로 있다. 말 그대로 인간들의 노예로 잡혀간 동족들을 구해오는 구출대이다. 그런데 그 구출대들의 활동을 보고 에리프릴 왕국을 위주로 한 다른 나라들은 사유재산의 약탈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래 엘프든, 페어리든 요정족들 자체가 라트란 왕국의 국민인 이상 그들의 납치 자체가 중범죄였다. 그런데 이제는 납치해서 노예로 삼은 그들의 귀환을 시켰다는 이유로 사유재산의 약탈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칼만 안 들었을··. 아니 실제로 칼까지 든 리얼 강도 심보다. “우리가 끼어들 확률이 높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먼저 선전포고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우리가 전쟁에 먼저 끼어 듬으로 인해서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 라는 거겠지?” 정운은 순간 제국이나 다크니스 왕국이 먼저 머릿속에 걸렸다. 하지만 이내 아니라며 머리를 저었다. 제국은 타국을 침공 하는게 불가능 하고 다크니스 왕국 역시 타국에서 먼저 전쟁의 도발을 받지 않으면 공격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혹시 오국 동맹이 아니라 다크니스 왕국까지 여섯 개의 나라가 이름을 합쳤다면 곤란했겠지만···. 다크니스 왕국이 어딘가와 동맹을 맺고 행동했다는 기록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원점이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정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적의 노림수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때 박추성이 입을 열었다. “모두들 생각이 너무 많은 것 아니야?” “추성이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생각이 너무 많다니?” 한중겸이 되 묻자 박추성은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들 너무 겁만 늘었다는 말이다. 이 겁쟁이들아.” 울컥!!! 순간 박추성의 말에 간부들 전원이 울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추성의 말은 이어졌다.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 때부터···. 우리가 언제 시비 거는 상대를 보고 이것저것 재면서 싸운 적 있었냐?” “그거야·····.” “여기서도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하나 뿐이야. 적은 박살내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편으로 만든다. 전부 국가 건국하고 감투 좀 쓰다 보니 너무 얌전해 진 것 아니야?” “··············.” “··············.” “··············.” 나머지 간부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좀 단순 무식한 의견이긴 했지만···. 박추성의 말이 옳았다. 결국 무슨 수작을 부리던 간에 힘 대 힘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저 전력으로 받아줄 뿐이다. 다른 어떤 선택지가 있단 말인가? “좋아!!! 미하엘.” “예. 수상 각하!!” “오국 동맹이라는 것들에게 정식으로 경고 해. 라트란 왕국은 우리 동맹이다. 그러니 동맹국에 대한 침략은 자국의 침략과 동등하게 보고 엄중하게 대응하겠다. 라고··. 토씨 하나 안 고치고 그대로 전해.” “알겠습니다.” 사실상 가우리의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이로서 이 대륙에서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들이 전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가능하면 힘이 아니라 유화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결국 파우스트에게 도달하는 길에 피가 좀 더 많이 흐르게 되었다. 정운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가우리의 참전. 이 소식을 들은 연합군의 지휘부는 쾌재를 불렀다. “과연···. 놈들은 몰랐어.” “가우리의 간부들 전원은 이세계에서 온 놈들이죠. 그러니 우리 쪽의 사정은 모를 수밖에···.” “그럼 이로서 문제는 없는 것으로 봐도 되겠소? 칸다카 대족장.”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의 지휘관들이 말을 하는 곳에는 보통의 오크들 보다 두배는 더 큰 체구에 전신을 터질듯한 근육의 갑옷으로 중무장한 오크가 있었다. 전신에 검은 털과 피부로 뒤덮은 이 오크는 그냥 오크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오크족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 칸다카였다. “우리 오크족은 전쟁을 선포 받았다. 취익···. 이로서 우리는···. 취익. 피의 대축제를 벌인다.” 대족장인 칸다카의 눈에서는 붉은 핏발이 일어서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사실 이것이 바로 타국이 노린 것이었다. 크롱크 왕국의 적극적인 참전. 이 대륙에서 가우리로 쳐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크롱크 왕국을 거쳐서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크롱크 왕국을 지나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너무나 큰 소모를 동반한다. 군대를 움직이기에 적합한 도로 하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가장 큰 문제는 가는 길에 여기저기서 무차별 적으로 시비를 거는 오크 부족들 때문이다. 같은 동맹국이고 뭐고 설명해도 별 소용이 없다. 오크들의 부족은 그런 설명을 알아들을 생각 자체가 없다. 그저 자신들의 영역 근처에 타 종족이 있는 것 만으로도 호승심이 불끈불끈 솟구치는 종족이다. 결국 그런 오크들과 전투를 하면서 크롱크 왕국을 지나가는 것은 피곤해도 너무 피곤한 짓이었다. 과거 브로드 왕국이 대륙의 쓰레기통 취급 받으면서도 다른 나라의 침략에서 비교적 안전 했던 것오 그런 크롱크 왕국 때문이었다. 크롱크 왕국을 지나서 군대를 운용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해도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크롱크 왕국의 힘을 먼저 왕창 소진 시켜 놓으면 되는 것이다. 단 크롱크 왕국은 의외로 함부로 전쟁을 하지 안는다. 평소 국경 지대에서 수시로 타국을 침략하는 것은 크롱크 왕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전쟁이 아니다. 인간으로 치면 그냥 민속놀이에 가까운 개념이다. 목숨이 오가는 민속놀이기는 하지만···. 원래 오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들의 기준으로 명예롭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몹시 꺼려하는 행위였다. 막말로 마음 맞는 오크들 한 열 명이서 뭉치면 ‘우리 어디 쳐들어 가 볼까?’ 라고 말하는 종족인 것이다. 파우스트가 오크족의 정신 상태를 설정할 때 어떻게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호전적이라는 단어 정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게 오크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전쟁을 하기 전에는 항상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 가우리가 오국 동맹을 향해서 선전 포고를 했으니, 그 명분은 성립 된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억지이기는 했다. 먼저 오국 동맹이 가우리의 동맹인 라트란 왕국에 전쟁을 선포했고···. 가우리는 거기에 대응 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칸다카 대족장의 머릿속에서 그딴건 아무래도 좋았다. 원래 전쟁이라면 세끼 밥 먹는 것 보다 더 좋아하는게 오크다. 이제 벼르고 벼루던 건수를 잡은 것이다. “대축제다. 취익···. 이번에야 말로 우리 오크들의 진정한 힘을 보여 주겠다.” 전의에 불타는 칸다카 대족장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사신들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됐다. 이제 됐어.’ ‘오크도 쓰기 나름이라더니····. 딱 이 경우군.’ 이제 가우리가 크롱크 왕국과 미친 듯이 싸우면서 힘을 빼 놓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 후에 자신들 연합군이 밀고 들어가서 한 번에 끝장을 내 버릴 테니 말이다. “으으···. 피곤하다.” “좀 참아. 곧 근무교대 시간이야.” 가우리의 국경 기재의 요새 도시···. 그곳의 방벽 위에 있는 초소에서는 병사들의 지루한 대화가 옥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예전만큼 오크들도 안 쳐들어 오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경계할 필요 있는 거야?” 다크 엘프 레인저 부대가 활약한 이후에 오크족들의 침략은 확 줄었다.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도 예전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경우라서 그다지 심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벽 위에서 원거리 스킬을 지니고 있는 병사들이 대응만 해도 충분히 몰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초소병들의 사이에서 방심의 기운이 서서히 퍼져 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정신 차려? 위에서 공문 내려온 것 봤지? 오국동맹과의 전쟁이 선포 됐다고.” “그거야···. 그래도 조용하잖아?” “그래도 그렇지. 언제 터질지 모를··. 응?” 말을 하던 초소병은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국경의 너머에서 뭔가가 꿈틀 거리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황야지대일 뿐인데 거기서 뭔가가 꿈틀 거린다. ‘뭘 잘못 봤나? 아니··. 저건!!’ “경··. 경고 울려!!!!!” 병사의 눈에 보인 꿈틀 거리는 검은색 덩어리··. 그것은 때로 뭉쳐서 돌격해 오고 있는 오크족의 대군이었다. 이제 까지 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규모 병력이 몰아쳐 오고 있는 것이다. 신수원, 신성주, 신마산, 신해남 등등의 국경 도시에서는 갑자기 대규모의 오크 군단들이 해일처럼 쳐 들어왔다. 다행이도 가우리는 평소에도 국경 지대의 방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오크족들의 꾸준한 침략이 오히려 약이 되었다고 할까? 덕분에 국경의 도시들은 일반인들의 피해 없이 그 공격을 막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차적인 공격이었다. 오크족은 그 무수한 숫자를 2차, 3차의 파상 공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콰아앙!!!! 한중겸은 한방 거창하게 날려서 오크 무리를 날려 버린 후에 짜증석인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망할···. 이것들은 무슨 중공군인가?” 그런 한중겸에게 부관 한 명이 급하게 다가와서 말했다. “한중겸님. 신밀양에서 구원 요청이왔습니다.” “신밀양? 거기는 나 보다 장 그레고리가 더 가깝잖아?” “장 그레고리 님은 신목포 쪽으로 이동하셨다고 합니다.” “제길, 쉴 틈을 안 주는군. 신밀양에는 내가 직접 간다. 여기 현장은··· 메두사, 왕귀인, 여기 뒤처리 부탁해.”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요.” “개때도 이런 개때는 처음이네····.” 한중겸은 자기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일단 한중겸이나 박추성 등의 가우리 간부들이 투입된 현장에서 가우리 군이 밀리는 일은 절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우리의 약점 중에 하나가 드러났다. 국가의 국방 전력의 90%이상이 오로지 간부들에게 집중 되어 있다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25화 가우리의 간부들은 정말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들의 침공은 그 끝이 없었다. 한중겸과 박추성 이외에도 다른 간부들 까지 열심히 국경 지대를 커버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전선이 너무 넓었다. 가우리의 영토를 다 합하면 러시아의 영토 만큼은 된다. 그런 광활한 영토를 오로지 간부들만으로 커버하기에는 너무 벅찼던 것이다. 거기다 오크들의 공격은 지속되면 지속 될수록 질적으로도 점점 높아져갔다. 처음에는 그냥 오크족들만 쳐들어 오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오크족들이 부리는 괴수들을 동반해서 쳐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히어로급의 오크들도 종종 나오고 있었다. 이 히어로급 오크들은 가우리로서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히어로급 오크들은 그라운드 제로로 치면 레벨이 100이상인 놈들이었다. 그 놈들을 피해 없이 상대하려면 가우리의 간부들이 나서거나 과거 삼대 길드의 간부 출신들···. 그러니까 지금 가우리의 계급으로 치면 최소한 3급 이상의 중간급 관리자들이 세 네 명은 붙어야 했다. 그렇다 보니 가우리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전선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었다. 정운은 아직 전선에 투입되지 않고 가우리의 수도인 신서울에서 이런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해전술이라····. 차라리 한 곳에 다 뭉쳐서 온다면 편할텐데··. 여러곳으로 떨어져서 밀고 들어오니 골치 아프군.” 가우리의 지도를 보고 있는 정운의 눈에는 살짝 짜증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 정운에게 미하엘이 말했다. “정운님. 이렇게 된 것 조금 후퇴를 해서 전선을 축소 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이렇게 넓은 전선을 계속 유지한다면 간부 분들도 제 풀에 지칠 겁니다.” 미하엘의 말은 이전부터 나온 의견이었다. 하지만 정운이 거기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안 돼!! 밀리는 기색이 보이면 국민들이 동요 한다. 이 전쟁은 그냥 이기는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거의 부담을 주지 않고 압도적으로 이겨야 해.” “그건 알지만····.” 미하엘도 알고는 있었다. 정운의 최종 목적인 파우스트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이세계의 사람들의 민심을 확 끌어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이런 전쟁에서 가우리가 밀리는 기색이 보인다면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싹 틀 것이다. 가우리가 자국의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혁신 적으로 바꿔줬고 그들의 인생 자체를 확 탈바꿈 시켜주기는 했지만····. 결국 국가라는 것의 최대 존재의미는 그 국가에 소속된 국민들을 지켜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국민을 편하게 해주는 것과 국민을 지켜주는 것. 둘 다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굳이 우선 순위를 매기자면 당연히 지켜주는 것이 우선이다. 정운은 가능하면 이 전쟁을 국민들이 위기감을 느낄 틈도 없이 속전속결로 끝내 버리고 싶었다. 전쟁이 길어져 봐야 국내의 민심만 나빠지고 타국에서도 가우리에 대한 악감정만 깊어질 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전쟁의 승패가 중요하겠지만···. 정운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승패를 떠나서 이 전쟁이 지속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인 것이다. “국경 지대의 국민들을 광역시로 피신 시켰어. 이 이상으로 국민들에게 소란을 가중 시킬 수는 없어.” “그렇지만···. 현실 적으로 이런 광대한 전선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점점 간부들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전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곰곰이 고심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인해전술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운이 생각하는 것 보다 오크들의 한계는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남아 도는게 인구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올지는 몰랐다. 이미 대략적인 집계만으로 해도 크롱크 왕국에서 이번 전쟁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억이 넘어가고 있을 것이다. 1억. 무려 1억이다. 인구가 1억이라니···. 대한민국 천제 국민보다 더 많은 인구가 사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조금도 기세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정운은 턱에 손을 괴고 중얼 거렸다. “개 때에 치지기 전에 사태를 해결하려면···, 역시 드랍쉽을 타야 하나?” 정운의 중얼 거림을 들은 미하엘은 민감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수상각하. 그 드랍쉽은 누가 탈 겁니까? 설마 수상 각하께서 직접 시도하려는 것입니까?” “나 아니면 누가 해? 다른 간부들은 대부분 전선에 투입되어 있는데?” “차라리 수상 각하가 전선중에 하나를 맡아주시고 박추성님이 공격으로 나서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었다. “추성이 형님이나 대호 형님이 갑자기 전선에서 빠지면 적들이 뭔가 눈치챌 가능성이 있어. 은밀하게 치고 빠지려면 내가 직접 가는게 좋아.”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톱이 그렇게 가볍게 움직이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딴걸 두고 선입관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여기 죽치고 있는다고 뭐 좋은 일 있다고····.” 보통 미하엘이 하는 말은 새겨 들어주는 정운이었지만···. 이번에는 자기 고집을 끝까지 밀고 나아갈 생각이었다. 정운이 설득 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하엘은 한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슬기씨···.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미하엘의 말을 들은 슬기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정운씨가 한 번 고집 부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도 안 되요.” “·············.” 슬기가 하는 말을 들은 미하엘은 얼굴이 벌레 씹은 것처럼 변해 버렸다. ‘나만 정상인가? 여기 회의실에서 나만 정상이야?’ 결국 정운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었다. 생각하는 즉시 행동.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운의 결단력은 약간 극단적일 정도로 강력했다. 바로 미하엘에게 국가의 전반적인 결정 사항을 다 일임하고 자신은 흑토의 등에 올라탔다. 슬기가 혹시 모르니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정운은 슬기에게 신서울의 방위를 맡겼다. 보통은 슬기를 자신의 눈이 닿는 곳에 두는 것이 정운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살짝 달랐다. 재빠르게 치고 빠져야 하는 작전이니 만큼 단독으로 활동하는 편이 훨씬 더 편했다. 그리고 다른 간부들이 모두 서울에 간 이상 이 신서울이 텅텅비는 것도 약간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정말로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서 슬기 한 명 정도는 남겨 둬야 했다. 자신을 놔두고 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슬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가자!!” “히히힝!!” 정운은 흑토를 타고 그대로 신 서울에서 똑바로 북상했다. 흑토가 제대로 달리면 크롱크 왕국과의 국경지대까지는 하루 정도면 충분했다. 다만, 문제는 거기서 정운이 얼마 만큼의 성과를 내느냐? 라는 것이다. 그냥 무작정 인구가 많은 곳을 족친다고 해서 해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적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인구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전선에 전력을 투입하고 있다. 21세기의 국가들처럼 중요 산업 시설을 공격 할 수도 없고···. 결국 크롱크 왕국을 주춤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일격을 먹이려면 목표는 하나 밖에 없었다. 적의 머리.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이 있는 곳을 공격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일단은··. 닥치는 대로 찾아보는 수밖에.”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이상 그냥 끈기를 가지고 닥치는 대로 부셔보는 수밖에 없었다. 보스몹을 찾기 위해서 부하들부터 닥치는 대로 조진다. 그런 노가다 식의 사냥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질리도록 해본 정운이다. 단 이번에는 그 노가다에 시간의 제한이 걸려 있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최악의··.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미하엘에게 전선을 뒤로 물려서 방어라인을 축소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가능하면 그 전에 그 놈의 칸다카인지 뭔지 하는 오크족의 대족장을 박살내 버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반드시 이긴다.” 정운은 이를 악물고 흑토의 고삐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평화롭···던 오크 마을에서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졌다. “천뢰지망.” 퍼퍼퍼퍼퍼퍼펑!!! “쿠웨엑!!!” “악마··. 취익··.악마다!!!” “취익···. 악마를 죽·· 크어억!!!” 정운은 크롱크 왕국이 국경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닥치는 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크롱크 왕국의 오크들은 부족 단위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운은 일단 자잘한 부족은 집어 치우고 제법 굵직한 부락이다 싶으면 거기에 가서 닥치는 대로 박살을 내 버렸다. 크롱크 왕국에 돌입한지 닷새 만에 정운은 23개의 부락을 전멸 시켰다. 보통 국가에서 이 정도 분탕질을 치면 어떤 나라라고 해도 상당히 위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크롱크 왕국의 오크족들은 기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일까? 아무리 공격에 공격을 거듭해도 정운을 위축이 되지 않았다. 공격을 할 때마다 그 부족의 오크들은 정운을 향해서 용감하게 돌격했다. 정운으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걸리라는 대족장은 안 걸리고···. 이 놈들을 아무리 족쳐도 협조는 절대 안 하는데····.” 시간이 촉박한 정운으로서는 오크들의 격렬한 저항에 위협보다는 짜증이 느껴질 뿐이었다. “괴수들을 풀어라!!! 취익··. 저기 악마들을 죽여라!!!” “쿠워어어어어!!!” “크르르르····.” 정운은 한창 오크들을 학살하다가 오크 부족이 한쪽의 우리에 길들인 괴수들을 푸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은근히 오크들 보다 더 거슬린단 말이야.” 오크들의 나라인 크롱크 왕국에는 무수한 괴수들이 있다는 정보를 들어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다채로운 괴수들이 다양하게 있을 줄은 몰랐다. 오우거나 트롤을 부리는 것 정도는 예사였다. 와이번, 바실리스크, 싸이클롭스, 개중에는 거대한 드래곤을 사육하고 있는 부족들도 있었다. 한중겸의 테이밍과는 다른 의미로 괴수를 복종 시켜서 전투에 활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크롱크 왕국의 안으로 들어가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그냥 오크들을 상대로 하는 전투가 아니었다. 이 크롱크 왕국 내부의 모든 오크족들과 괴수들까지···. 그야말로 모든 생명체를 상대로 전투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크워어어어!!!” 날개가 없는 지룡 한 마리가 정운을 씹어 버리기 위해서 육중한 체구를 쿵쿵 거리면서 달려왔다. 정운은 그런 놈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 거렸다. “입 냄새 난다. 꺼져!!!” 콰아앙!!!! 정운의 강력한 일격 한 방에 거대한 지룡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전기 쇼크를 응용한 충격파로 적을 완전히 날려 버린 정운은 그대로 이를 악물고 중얼 거렸다. “순식간에 끝내주마. 뇌신강림.” 파지직!!! 정운의 전신에서 황금빛 뇌전이 방전되었다. 정운의 메인 스킬인 뇌신강림. 시전자를 그냥 뇌전의 기운을 두른 것이 아니라 정운의 신체 자체가 하나의 뇌전 덩어리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뇌신으로 변한 정운은 오크족들에게 재앙을 내리기 시작했다. “취··. 쿠웨엑!!!” “죽어···. 크르르···.” 온다 싶으면 어느새 지나가 있고 지나갔다 싶으면 이미 죽어 있다.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전투를 즐기는 오크들이라고 하지만 정운과의 전투는···. 과연 이걸 전투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부터가 의문이었다. 오크들은 아무리 강한 적이라고 해도 용감하게 도전하고 죽는 것을 명예롭게 여긴다. 그런데 정운에게는 도전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스치고 지나갔다 싶으면 그 자리에 있던 오크도 모두 고압의 외전으로 펑펑 터져 나갔다. ============================ 작품 후기 ============================ 허리가 아직도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주말 정도는 연참을 하고 싶습니다. 부지런히 비축분을 모아야 겠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26화 <오크족의 대족장 칸다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오크들이라고 해도 이렇게 허망한 죽음은 싫었다. 분통을 터트리며 거품을 물고 정운에게 어떻게 한 칼이라고 먹여 보기 위해서 이를 악물었지만···. 모두 허무한 헛일일 뿐이었다. ‘이 페이스대로 가면 1분 안에 다 끝나겠어?’ 정운은 최대한 발리 이 부족의 오크들을 쓸어버리면서 생각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부족을 박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힘겹다지 보다는 솔직히 지겹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오크들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겠지만 정운에게는 전투라기 보다는 그냥 허수아비를 상대로 칼질 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오크들의 저항이라는 것은 정운에게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오크족들과의 전투에서 그라운드 제로처럼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면 아마 경험치는 대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아지경으로 오크족을 유린하던 정운에게 뜻밖의 손맛이 느껴졌다. 카앙!!!!! 콰콰콰콰콰콰····. 누군가가 정운의 참격을 막아낸 것이다. 이건 정운으로서도 무척 뜻밖의 일이었다. 비록 막아낸 충격을 다 완화시키지 못하고 뒤로 무참하게 밀려나가긴 했지만 오크를 상대로 한 번의 칼질로 끝내보지 못한 것은 이 세계에서 처음인 정운이었다. “흠···.” 정운은 살짝 뒤로 물러나서 상대를 관찰했다. 정운의 공격을 막은 것은 히어로급의 오크였다. 다른 오크들보다 훌씬 더 크고 탄탄한 체구. 그리고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오크들 치고는 상당히 강력했다. 그라운드 제로로 치면 100레벨이 살짝 뛰어넘을 것 같은 강자였다. “히어로급 오크라···. 혹시 넌 너희들 대족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취익···. 그렇다.” “당연하지만 알려줄 생각은 없겠지?” 이미 여러 번 오크들을 추궁해 봤지만 그 누구도 적에게 협조를 하는 오크는 없었다. 오크들에게 죽는 것 보다 몇 천배는 더 굴욕적인 것이 바로 적에게 굴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운도 당연히 놈이 발광을 하며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에게서 나온 대답은 뜻밖의 일이었다. “취익··. 못 알려 줄 것도 없다.” “그래. 그렇겠··· 뭐라고?” 깜짝 놀라서 반문하는 정운에게 히어로급의 오크 전사는 자신의 무기인 글레이브를 굳게 쥐고 한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분이 바로 우리 오크족의 대족장인 칸다카 대족장님이시다. 악마의 인간!!!” “악마면 악마고 인간이면 인간이지··.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닌가?” 정운은 놈이 가리킨 끝 부분을 바라봤다. 그러자 거기에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정운을 내려다 보고 있는 오크를 볼 수 있었다. “그래··.· 저 놈이란 말이지?” 정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커다란 바위 위에서 다른 오크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감을 지닌 오크가 여러 부하들을 이끌고 오만하게 콧대를 세우고 있었다. 뭐, 오크의 두상 구조상 모든 오크는 돼지와 같은 들창코이고 콧대를 엄청나게 서 있지만 그건 따질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놈이 ‘나 대족장이다.’ 라는 듯이 오만하게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월리 찾았을 때 보다 더 기쁘네.” 정운의 입 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핫!!!” 퍼어엉!!! 정운은 단 번에 칸다카 대족장을 향해서 날아갔다. 눈앞에 자기 일격을 막아낸 히어로 급 오크 전사는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놈이 아니었다. 다른데 정신이 팔렸다가 이 대족장이라는 놈을 놓치는 것이 훨씬 더 짜증났다. 정운은 단 번에 승부를 보기 위해서 단 칼에 칸다카 대족장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끝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운의 예상과는 좀 다르게 흘러갔다. 콰아아앙!!! 화려한 뇌전의 충격파가 폭발하고 정운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깃들었다. “취익···. 오크 너무 우습게 보는군.” “···········.” 정운이 놀라 수밖에 없었다. 전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충 휘두른 공격도 아니었다. 그런데 상대는 거대한 투핸디 소드를 들고 정운의 공격을 간단하게 막아낸 것이다. 한 방에 작은 산도 무너트릴 수 있는 힘을 실은 공격이었지만 상대는 그걸 여유 있게 막아냈다. 그리고 다른 한손에 들려있는 무기로 정운에게 역공을 하기까지 했다. “흡!!!” 쾅!!!! 정운의 몸은 지금 강림으로 인해서 뇌전의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적의 공격에 범상치 않은 힘이 실려 있는 것을 느낀 정운은 팔을 들어서 그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현명 했다. 그저 무방비하게 몸을 때웠다가는 그대로 한 방에 골로 갈 수도 있는 공격이었다. 그대로 뒤로 물러난 정운은 저릿저릿한 팔을 털었다. ‘장난 아닌데? 이게 오크족의 대족장의 힘이란 말이지····.’ 한 번씩 주고받는 공격을 마친 정운은 상대의 힘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건 예전에 브로드 왕국에서 봤던 그레이 레드 따위보다는 훨씬 강했다. 어쩌면 이 힘은 레벨로 치면 200대 초반? 아니 200대 중반 정도에 필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라트란 왕국의 마그네스 장로를 제외하고 이세계의 존재 중에 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운인 상대를 신중하게 평가하는 것을 보며 칸다카 족장은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취익··. 내 공격을 막다니. 이제까지 도망만 다녔던 쥐새끼 치고는 제법이군. 취익···.” 그 말을 들은 정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헛소리 작렬 시키지 마라. 누가 누구한테서 도망을 다녔다는 거냐?” 정운의 말에 칸다카 족장은 진심으로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취익···. 네놈이 여기저기 날 피해서 도망가는 것 빼문에 취익···. 잡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런 거짓말을 하냐? 취익···.” “도망이 아니라·····. 젠장.” 정운은 순간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까지 정운은 크롱크 왕국 내부에서 동해번쩍 서해 번쩍을 반복하며 적의 대족장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칸다카 대족장 역시 자신의 영토를 어지럽히고 있는 정운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을 잡기 위해서 직속 전사들과 함께 열심히 정운의 뒤꽁무니를 쫒아 다니고 있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둘 다 서로를 찾기 위해서 엇갈린 만남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어쩐지···. 오크족의 호전성을 생각할 때 대족장이라는 놈이 일일이 도망만 간다는 것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한 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한 곳을 족치고 거기서 놈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 동안 놈을 찾아서 동분서주했던 시간들이 모두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다. ‘뭐, 지금이라도 찾았으니 됐어.’ 입술을 깨물면서 마음가짐을 다시 했다. 이제 허공에 삽질은 충분히 했다. 여기서 대족장이라는 놈을 잡고 이 지긋지긋한 크롱킁 왕국이 인해전술을 끝장내 버릴 것이다. “각오는 됐나? 돼지 머리?” “취익··. 네놈이야 말로 각오해라. 인간 머리. 취익···.” “·············.” “·············.” 둘 다 도발로 욕을 하기는 했는데 상대방이 욕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었다. 어쨌든 먼저 공격을 개시한 것은 정운이었다. 이전에 했던 기습과 달리 적은 인정한 정운은 제대로 된 공격을 날렸다 “죽엇!!!” 콰아아아앙!!! 화려한 뇌전의 폭발과 함께 정운의 공격을 막아낸 칸다카 대족장은 입가를 씰룩 거리며 말했다. “취익···. 할 줄 아는게 이것···. 읏!!!” 촤아악!!! 마을 하던 칸다카 대족장은 순간 허리를 뒤로 젖혀서 자신의 턱밑에서 올라온 공격을 피했다. 자신의 발밑의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송곳 같은 공격인 날아온 것이다. 정운의 특이인 쉐도우 스피어였다. 조금만 눈치 채는게 늦었다면 칸다카 대족장의 머리통을 통째로 관통하는 피어싱 구멍이 생길 뿐 했다. “할 줄 아는게 이것 뿐이냐고? 그럴 리가 있냐?” “···············.” 혼비백산한 칸다카 대족장을 향해서 정운이 미소를 띠고 말했다. “지금부터 많은걸 보여주마. 아주 많은걸 말이야!!!” ‘야’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운의 말대로 다채로운 공격들이 칸다카 대족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쾅!! 파지지직!!! “크윽····.” 쉐도우 스킬을 이용한 공격과 뇌신강림 상태로 이어지는 다채롭고 강력한 공격들의 퍼레이드에 칸다카 대족장은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그는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기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취익···. 이런 놈이 세상에 있었단 말인가? 이 놈은 나보다 강하다. 취익···.’ 칸다카 대족장은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전투 센스는 탁원했다. 대략 10합 정도 겨뤄 보자마자 좋든 싫든 견적이나온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리고··. 칸다카에게 있어서 자신보다 더 강한 자와의 결투라는 것은 미지으 영역이었다. 원래 오크는 단련을 모른다. 그냥 강한 오크 전사가 여러 부인들을 거느리고 부지런히 아기들을 낳기 시작하면 그 중에서 강한 오크는 살아남고 약한 오크는 죽어나 도태되는 것이다. 칸다카 같은 강력한 오크는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강자로서의 힘을 지니고 태어난 것 뿐이다. 인간이나 다른 이종족들 처럼 자신의 힘을 수련해서 강화 시키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오크들에게 있어서는 생존 그 자체가 수련인 것이다. 성인 오크들이 새끼를 돌봐 주는 기간이라고 배 봐야 보통 반년에서 길면 일년 정도··. 그 후에는 저마다 자신이 능력껏 살아남아야 한다. 칸다카 대족장 역시 그랬다. 어려서부터 혼자 사냥감을 사냥하며 살아왔고 자기보다 먼저 어른이 되었던 오크들과 결투를 해서 조금씩 조금씩 더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오크족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대족장의 자리에 오르게까지 된 것이다. 즉, 그는 이제까지 자신보다 약한 상대들을 상대로 싸움을 계속하며 군림하기만 했을 뿐.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마주한 것은 이게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인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났다면 그때는 이미 죽었을 태니 말이다. “크아아아아아아!!!!” 궁지에 몰리 짐승은 발악을 한다고 했던가? 정운의 맹공을 받아내던 칸다카 대족장은 양손에 들린 두 자루의 투핸디 소드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쾅!!! 육중한 검들이 얼마나 초고속으로 빈틈없이 휘둘러지는지··.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도 다 막아낼 것 같은 빈틈없는 검의 막이 형성될 정도였다. “칫···.” 한창 몰아 붙이고 있던 정운은 일단 뒤로 물러났다. 괜히 빨리 끝내려고 하다가 저런 발악적인 칼에 맞으면 그게 무슨 지뢰란 말인가? 대신 정운은 가쁘게 숨을 고르고 있는 칸다카 대족장을 보면서 말했다. “슬슬 감이 오냐?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 칸다카의 표정이 심각해 졌다. 이제까지 그의 인생은····. 마음에 드는 먹잇감이 있으면 힘으로 취했다. 마음에 드는 암컷이 이다면 힘으로 품었다. 마음에 드는 무기가 있으면 힘으로 뺐었다. 그야말로 인생 전반을 모두 힘으로 해결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힘으로 해결 안 된느 사태를 직면한 것이다.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상대에게는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취익···. 죽어랏!!” 정운의 옆에서 누군가가 공격을 했다. “너 또 뭐야!!” 퍼엉!!! 정운은 간단하게 손을 뻗어서 그 오크의 상반신을 증발 시켜 버렸다. 그 오크는 좀 전에 정운의 일격을 간신히 막아냈던 히어로급 오크였다. “눈치껏 도망갈 것이지···. 아니, 너희 오크들은 그걸 못한다고 했던가?” 정운은 하반신만 남아서 꿈틀 거리는 상대의 시신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그리고 이 상황은 칸다카에게 불리한 전황을 뒤집은 열쇠가 되었다. ‘저런 수가 있었지····.’ ============================ 작품 후기 ============================ 오랜만의 연참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겍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27화 오크들의 결투는 기본적으로 1대1이다. 더 강한 오크가 이겨야 그 부족이 강해지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칸다카가 상대하고 있는 상대는 같은 오크가 아니다. 그러니 굳이 1대1을 고집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취익·····. 전원 공격하라!!!” 합공.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취익··. 공격할!!!” “죽여라!!!! 취익···.” 사방에서 오크들이 정운을 향해서 공격해 왔다. “이 치사한 것들··. 어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다 싶더니··.” 정운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크족의 전사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오크들은 대략 200정도··. 사실 숫적 으로는 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질이었다. 이 놈들 전원이 히어로급 오크 전사들이라는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레벨로 따지면 전원이 100에서 120 정도는 되는 강함을 지니고 있는 놈들이다. 이런 놈들이 200마리 이상 몰려 있으면 정운도 마냥 방심 할 수는 없었다. 하이에나는 한 마리 한 마리는 사자에게 적이 아니지만 그 숫적 우세함을 앞세우면 종종 사자를 이기기도 하는 법이다. 거기다 다른 하이에나들과 다르게 명백하게 강력한 칸다카 역시 아직은 여력이 충분했다. ‘오랜만에···. 조금 위기인가?’ 정운의 눈이 가늘어졌고 이제까지의 여유는 싹 사라졌다. 동시에. 정운의 집중력도 최고로 올랐다. 오랜만의 위기 상황··. 하지만 위기 자체는 그라운드 제로부터 정운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와라.” “크아아아아아!!!” “죽여라!!!!!” 콰콰쾅!!! 정운과 오크 정예군단의 정면 격돌이 시작되었다. “취익···. 죽··.” “너나 죽어!!!” 콰아앙!!! 정운은 자신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서 공격하는 오크의 상반신을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전투가 시작하고 적의 숫자는 이제 5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 다만, 정운의 경우도 상당한 체력의 소모가 있었다. 이미 뇌신강림의 상태는 풀린 상황이었다. 장기전으로 가야 하는데 출력이 큰 뇌신 강림을 더 이상 지속 할 수는 없었다. 100마리 정도를 해치운 다음부터는 일반 상태로 상대하고 있었다. “후우···. 망할 오크 자식들. 보통 이정도 당하면 겁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정운은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죽음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게 오크라는 종족의 특성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몸소 실감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취익···. 인간 많이 지쳤다. “취익,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취익···.” “이길 수 있다. 취익····.” 오크들은 자신들의 동료들이 대량으로 죽은 것 보다는 정운이 지친 기색이 보이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보통 인간들이라면 이렇지 않다. 아무리 용감한 전사라고 해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크들은 그런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오로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승리만 맹목적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대로 가면···. 좀 위험하려나?’ 그라운드 제로에서 사냥을 하다 보면 하나의 기로가 있다. 여기서 물러나야 하나? 아니면 끝까지 가야 하나? 라는··. 이른바 전진이냐 후퇴냐를 결정해야 하는 미묘한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지금 정운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 시절에 다져진 감은 지금 정운에게 물러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남아있는 적의 전력과 지금까지 소비한 정운의 힘을 생각하면 대략적인 결론은 나온다. 여기서 칸다카의 목을 치는 것은 무리라고 말이다. “쯧, 어쩔 수 없지. 흑토!!” 정운은 지체 없이 흑토를 불렀다. “히히힝!!” “올라가!!!” 후우웅!!! 허공에서 나타난 흑토의 등에 올라탄 정운은 그래도 하늘로 비상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며 오크족의 전사들은 순간 닭 쫒던 개를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취익··. 도망간다.” “인간이 도망간다!! 취익··.” “잡아라. 취익···.” 오크들이 하는 꼴을 보면서 정운은 비웃었다. “너희들이 무슨 수로 날 잡겠냐?” 아무리 강한 오크라고 해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기껏해야 들고 있는 무기를 던지는 것 정도인데··. 그런 공격에 맞을 흑토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대로 유유히 도망가서 전력을 추스르고 다시 싸우기로 한 정운이다. 애당초 정운은 전사도 아니고 기사는 더더욱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헌터? 기사나 전사는 적을 물리치는 것에 자기 목숨과 명예를 걸지만 헌터는 그렇지 않다. 사냥감을 잡는데 목숨을 걸다니?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일단 물러나서 힘을 회복한 후에 다시 사냥에 나서면 될 일이다. 더구나 이번 일로 칸다카의 친위대들을 대폭적으로 갉아내지 않았는가? 이 다음에 걸린다면 100% 칸다카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물러 나는게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운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후우우우우우우·····.” 칸다카는 자신의 가슴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를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 마치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그의 입에서 터진 것이다. “큭···. 고막이야··.” “히힝···.” 머리 떨어져 있는 정운과 흑토도 그 굉음에 살짝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방금 이건···. 그냥 히스테리는 아니겠지?’ 정운은 살짝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느낌은 여지없이 적중했다. “크워어어어!!!” “크와아아앙!!!!” 칸다카의 포효에 반응하듯이 산의 여기저기서 수백마리의 드래곤들이 하늘로 비상했다. “제길. 이럴 줄 알았다.” 결국 정운의 상황은 한 층 더 나빠진 것이다. 크롱크 왕국은 오크들이 다스리는 국가였다. 그리고 그들은 왕을 대족장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이 대족장의 지휘는 그냥 있는게 아니다. 엄연히 그 위치에 어울리는 특수한 능력이 주어진다. 하나는 이 세상 모든 오크족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사실 그건 능력이라기보다는 그냥 동족중에 자신보다 더 강자에게 도전, 혹은 복종을 택하는 오크들의 당연한 습성이었다. 진짜 능력은 이 크롱크 왕국에 대대로 내려오는 SSS급 괴수인 드래곤들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 크롱크 왕국의 영토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오크족의 대족장에게 절대 복종을 하는 강력한 대괴수들이 존재한다. 다른 괴수들처럼 오크들에게 사로 잡혀서 길들여지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태어나면서부터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오크족의 대족장에게 절대 복종하라. 라고 말이다. 제국의 절대 불가침이나, 다크니스 왕국의 선공 불가처럼···. 이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에게 전해지는 하나의 신권인 것이다. 퍼어엉!!!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브레스를 피하면서 정운은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이 놈들·· 한 마리 한 마리가 여의도에서 봤던 놈들 보다 훨씬 더 강했다.” 정운이 여의도에서 단체로 쓸어 버렸던 드래곤은 보통 500살에서 1,000살 정도 먹은 어린(?) 드래곤들이었다. 괴수들의 급수로 치면 최상급과 S 클래스의 괴수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 있는 놈들은 그것들과는 격이 달랐다. 원래 이 세계에서도 괴수들을 가늠하는 기준이 있었다. 그 기준은 하급, 중급, 상급, 그리고 최상급이 있고, 그 위에 S클래스, SS클래스, SSS클래스가 있는 것이다. 그 위에 킹 이라고 불리는 이 세상 모든 괴수들의 왕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사실상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존재들이었다. 어쨌든 지금 여기에 있는 수 백 마리의 드래곤들은 두말 할 것 없이 SSS클래스, 혹은 SS클래스의 괴수들이었다. “너무 방심했어. 이런 능력을 끝까지 감추고 있을 정도로 꾀를 부릴 줄은····.” 정운의 얼굴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해 졌다. 히어로 오크 전사들 200과의 전투로 힘을 소진한 상태에서 그 히어로급 오크들 보다 훨씬 더 강한 괴수들이라니···. 이 놈들의 그라운드 제로의 레벨로 치면 거의 150에서 180 정도는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만전의 상태가 아닌 이상은 힘들었다. “완전히 함정에 빠진 건가? 오크 따위에게 이런 머리가 있을 줄은···.” 정운으로서는 실수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대족장. 취익··. 왜 이제야 권능을 슨 겁니까? 취익···.” 칸다카의 친위대 중에 한 명이 말했다. 그러자 칸다카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대답했다. “취익··. 잘 안 쓰다 보니 잊어버리고 있었다. 취익···.” “·············.” “·············.” “·············.” 오크들도 벙 찐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어쨌든, 함정 운운하는 것은 정운의 오해였지만 지금 이 상황이 정운이 이 세계에서 격고 있는 최대의 위기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콰콰쾅!!!! 정운의 강력한 공격에 검은 피부의 블랙 드래곤 한 마리가 그대로 산산조각 나서 땅에 떨어졌다. 그리로 그 기세를 살려서 흑토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정운은 일직선으로 돌격했다. “흑토, 기마차지!!!” “히힝!!!” 흑토의 전신에서 검은 화염이 일렁이더니 한 줄기의 광선처럼 직선으로 돌격했다. 퍼퍼펑!!! 그 직선의 궤도에 걸린 대괴수 세 마리가 그대로 관통 당해서 지면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만큼 강력한 공격이었다. ‘예전에 이 녀석을 사기를 정말 잘 했지···.’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과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것이 바로 이 흑토라는 존재였다. 지금 이 흑토를 괴수들로 분류하면 틀림없이 SSS클래스의 괴수들과 싸워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운을 등에 태웠을 때의 힘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그라운드 제로 최강 콤비로서도 지금의 상황은 너무 안 좋았다. 퍼어엉!! “큭!!!” 정운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거대한 브레스의 다발을 보며 재빨리 앞에 뇌전의 보호막을 쳐서 막았다. 쾅!!! 한 번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 공격을 막느라고 발이 멈춰 버린 정운과 흑토에게 사방에서 광선의 다발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퍼엉!! 펑펑펑!!!! “제길··. 흑토!!” “히힝!!!” 정운이 말 할 것도 없이 흑토 역시 자신의 흑염을 사방으로 뿌리며 적의 공격을 받아쳤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공격에 결국 몇 발인가가 정운과 흑토에게 정면로 적중했다. 콰쾅!!! “크윽···.” 결국 정운과 흑토는 추락한 전투기처럼 지면으로 떨어졌다. “히힝!!!” 흑토는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어떻게 몸을 다잡아서 정운이 대미지를 받는 것을 줄였다. 덕분에 지면에 안전하게 착지한 정운이기는 하지만···. “취익··. 찾았다.” “여기 있다. 취익···.” “악마 인간이 여기 떨어졌다. 취익···.” 그런 정운과 흑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칸다카와 그 친위대였다. 끈질기게 정운을 따라오고 있었는지 지면에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포위망를 펼치는 오크군단이었다. “제길··· 이거 정말 위험한데.” 목숨에 위험을 느끼는 죽음의 위기. 정운으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최고 고수로서 한우리 연맹의 리더로 있던 정운이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월드 서버의 강대한 보스몹이 아닌 이상은 거의 죽음의 위기감 따위는 겪을 일이 없어졌던 정운이었다. 그래서일까? 정운 본인은 몰랐겠지만 이제까지 약간의 자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민지에게 다크니스 왕국의 얘기를 들었고, 이 세계의 전투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크롱크 왕국이라는 일국의 톱의 목을 치기 위해서 단신으로 쳐들어온 것 자체가 자만했다는 증거였다. 문제는 그걸 지금 깨달아 봤자 한 발 늦었다는 거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28화 <되찾은 힘> ‘제길··. 어떻게 하지? 어떻게····.’ 그라운드 제로에서 무수한 수라장을 겪으며 쌓아온 경험치도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무수한 경험이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여기에 박추성이나 배대호 같은 동료 한 명만 같이 있어도 상황이 이렇게 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위기를 초래한 것은 결국 자신의 방심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최후까지 한 번 발버둥 쳐 주마!!!” 정운은 체력을 소진한 흑토를 돌려보내고 다시 한 번 전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때···. 정운으로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정운의 그림자가 아홉 개로 갈라지더니 마치 유령처럼 스르륵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저마다 다르지만 뚜렷한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주군!!! 불멸의 충성을 받치기 위해 신들이 일어낫습니다. -주군!!! 불멸의 충성을 받치기 위해 신들이 일어낫습니다. -주군!!! 불멸의 충성을 받치기 위해 신들이 일어낫습니다. “·······이건?” 정운으로서도 이건 너무 뜻밖의 상황이었다. 박정운. 귀환자들의 왕이자 가우리의 수상. 그리고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다. 하지만 한우리 연맹 시절부터 월드 서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정운은 그라운드 제로 시절의 정우보다 약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건 정운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핵심 스킬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보영 보다 약했지만 그런 정운을 단기간에 박추성 배대호 급으로 끌어올려준 유니크 아이템 그림자의 망토. 그리고 그림자의 망토에 깃들었던 최강의 친위대의 존재가 없어졌던 것이다. 관우, 여포, 조운, 장비, 전위, 황충, 마초, 손견, 태사자···. 정운이 사력을 다해서 시련의 탑에서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손에 넣은 최강의 가디언들. 그 실력은 하나하나가 정운에 필적할 지도 모를 최강의 소수정예 군단. 그것이 그라운드 제로가 없어지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 시절보다 약해진 가장 큰 이유였다. 후한 말 최강의 무장들로 이뤄진 그 가디언 군단의 부재는 정운의 힘이 실제 10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영혼이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 정운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이 이제 파우스트에게 농락당하지 않고 해방 되었다는 것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최강 군단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렸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그 최강의 군단이 다시 자신으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실 정운으로서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상황을 파악 할 수가 없었다. “너희들··. 어떻게 여기 나타난 거야!!?” 정운의 물음에 바로 옆에 있던 관우가 말했다. -신도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군가가 저희를 여기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게 누군데.” -신들도 이제야 정신을 차린 터라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옵니다. 다만···. 그것은 저희에게도 무척 익숙한 목소리였습니다. “············.” 수수깨끼 선문답도 아니고···. 관우의 말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정운이 ‘진짜’로 본 실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회포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일단 보면 알겠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은 모두 적이다.” 정운은 잠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오크들을 둘러봤다. 놈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정운은 그런 놈들을 보고 씨익 웃으며 그림자의 무장들에게 말했다. “모두 죽여라.” -충!! 명을 받듭니다. -충!! 명을 받듭니다. -충!!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진정한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정운 혼자서 날뛸 때와 그림자의 무장이 더해질 때는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정운이 쓸 수 있는 스킬은 모두 따라서 쓸 수 있는게 바로 그림자의 무장들이다. 처음에는 스킬을 쓰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과 함께 전투를 지속하면서 이제는 충분히 유용하게 스킬을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죽어라!!! -이 조운이 주군을 위협한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축생들아. -여포 봉선이 나가신다!!! 그림자의 무장들은 마치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울분을 터트리듯이 광적으로 싸워갔다. 천성이 무장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부재중인 틈을 타서 주군을 핍박하고 있던 이 오크들이 무척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취익··. 악마가 같은 편을 불렀다.” “싸워라!! 취익···.” “크아악!!!” 갑작스런 그림자의 무장들의 등장에 당황했던 오크들도 이를 악물고 싸웠다. 과연 죽음을 모르는 타고난 전사의 종족. 그들도 물러섬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정운 하나에게도 전력의 태반을 소모할 정도로 힘들었던 오크들이었다. 이제 정운과 거의 대등한 전투력을 지닌 가디언 아홉 기까지 추가된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용감함은 인정할 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이나 다름없었다. 아홉 기 중에 다섯 기는 하늘로 날아올라서 괴수들을 도륙했고, 나머지 네 기는 지상에서 오크들을 상대했다. 아무리 강력한 히어로급 오크들이라고 해도 그림자의 무장들이 보기에는 칼질 두 세 번 하면 목이 떨어지는 애송이들일 뿐이었다. 순식간에 친위대가 전멸하고 오크족의 대족장 칸다카는 홀몸이 되어 버렸다. “자, 특별히 네놈을 마지막에 남겼다. 어때? 나하고 일대일로 해볼까?” 정운은 칸다카를 보면서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 정운을 보는 칸다카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취익····.” 칸다카 역시 오크족의 대족장.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패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가 들었다. 사실 오크족의 결투에서 패배가 죽음인 이상 그 두 개를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크롱크 왕국의 제왕으로 군림한 칸다카에게는 패배라는 것이 생소한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공포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이상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었다. “취이이이익!!!!!!” 발악적으로 덤벼드는 칸다카는 두 자루의 거대한 투핸디 소드를 크게 휘둘렀다. 잔뜩 기운을 실은 투핸디 소드가 한 자루는 정운의 목을 날려 버리기 위해··. 또 하나는 정수리부터 몸을 반쪽으로 쪼개기 위해서 날아왔다. 하지만 그런 공격을 보면서도 정운은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그리고 칸다카의 공격이 정운의 몸을 갈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운의 잔상을 가른 것이다. 공격의 파괴력은 애꿎은 지면에서 폭발했을 뿐이다. 공격이 닿기 직전에 뇌신강림의 상태로 칸다카의 뒤로 돌아간 정운은 손을 칸다카의 뒤통수에 대고 중얼 거렸다. “공포에 지고 발작적으로 휘두른 공격이라니···. 네놈의 일신에 붙어있는 강함이 아깝다.” “크··· 죽···.” 퍼엉!!! 뒤로 돌아서 정운에게 반격을 하려던 칸다카였지만 그 전에 정운의 공격이 놈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머리 없이 몸뚱이만 남은 칸다카의 시체는 그대로 뒤쪽으로 서서히 넘어가서 지면에 육중한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끝까지 냉정하게 싸웠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지지는 않았을 텐데···. 아까운 놈.” 오크족의 최고 전사이자 대족장인 칸다카. 그는 이렇게 정운의 손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칸다카의 죽음 후에 크롱크 왕국에는 이변이 일어났다. 대족장이 죽음은 오크들의 머릿속에서 직접 경보를 울렸다. [왕이 죽었다.] [왕이 죽었다.] [왕이 죽었다.] 이 세상 모든 오크족의 머릿속에 동시에 우린 이 메시지는 가우리를 공격하던 오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친 듯이 공격하던 오크족의 전사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들리자 마자 그대로 썰물 빠지듯이 물러났다. 오크족은 대족장이 죽으면 일단 다음 대족장을 정하는 일에 주력해야 했다. 즉, 아무리 전쟁을 즐거운 축제처럼 여기는 오크들이라고 해도 일단 이때에는 그 축제를 접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오크들이 오로지 대족장을 정하는 것에만 주력해야 했다. 이건 이 세계의 오크들에게 정해진 절대법칙이었다. 아니 법칙이라기 보다는 오크라는 종족의 머릿속에 각인된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전 세계의 오크들이 오로지 다음 대족장이 되기 위해서 집중하고 경쟁하는데 그게 결코 일이년 안에 되는 일은 아니다. 즉, 오국 동맹 중에 크롱크 왕국과 가우리의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했다. “수고 하셨습니다. 수상각하.” “그래. 나 없는 동안 신서울 지켜 주느라 수고 많았어.” 신서울로 귀환한 정운을 미하엘이 마중나왔다. “나 없는 동안 보고 사항은?” “예. 다른 오크족들은 국경에서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대신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 그리고 아이언 왕국의 연합군이 진군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병력의 규모와 경로를 알아봐. 중간에 요격해 버리게.” “알겠습니다.” 이제 오크족의 무식한 인해 전술이 사라진 이상 남은 사 개국의 공격 루트를 알아내면 가우리도 거기에 간부들의 전력을 집중 시킬 수 있다. 이제 전쟁의 주도권을 가우리가 쥘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정운은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음···. 잠깐만, 엘라 왕국은 왜 말이 없지?”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한숨을 내쉬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엘라 왕국은···. 해로를 통해서 우리 가우리의 뒤쪽을 공격하기 위해서 오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왜···? 슬기 어디 있어!!?” 말을 하던 정운은 그제야 슬기가 눈에 띠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라면 자신이 왔을 때 누구보다 먼저 얼굴을 보여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면서 미하엘은 한숨을 깊게 쉬며 말했다. “전 말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길····.” 결국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정운이 크롱크 왕국을 막으로 가는 사이에 슬기는 엘라 왕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바다고 나간 것이다. 엘라 왕국. 이 나라는 대륙에 있는게 아니다. 아이언 왕국이 동쪽에 있는 바다로 나가면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있는 군도가 있다. 이 섬의 밀집 지역 전부가 엘라 왕국의 영토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대류에서 볼 때의 관점이고···. 엘라 왕국은 이 세상에서 모든 바다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군도들은 자신들의 영토의 극히 일부분일 뿐. 진정한 자신들의 영토는 바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엘라 왕국의 백성들 태반은 육지의 군도가 아니라 바다 속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인어와 머맨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 나라는 요정족의 나라 라트란이나 드워프와 호빗으로 이뤄진 아이언 왕국처럼 역시 이종족의 나라인 것이다. 다만, 어인족의 성품은 다른 이종족의 그것과 달리 매우 인간과 가까웠다. 담담한 성격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보다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조하기를 좋아하는 엘프족. 매사에 긍정적이고 고집이 강하고 악의는 없지만 장난을 좋아하는 페어리족. 기술의 연마와 계승, 그리고 예술품과 건축 양식의 진보를 숭배하는 드워프족. 농업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오로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에만 기쁨을 느끼는 선천적인 명량한 농사꾼인 호빗족. 이들은 겉 모습만이 아니라 그 정신세계에서부터 이미 인간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인족들은 달랐다. 외면상으로는 어인족들은 인간과 매우 달랐다. 여성은 인어족, 남성은 머맨족으로 부르는 어인족은 여자의 경우 물속에 들어가면 하반신이 물고기로 변해 버린다. 육지에 있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여자일 뿐이지만 물속에 있을 때는 외면에서 확 차이가 났다. 남자인 머맨은 더 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회색의 비늘로 덥혀있는 이들은 머리는 망둥어와 비슷했고 팔다리에는 물갈퀴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것은 겉모습일 뿐. 어인족의 정신세계는 인간과 몹시 흡사했다. 무엇이 가장 흡사한가 하면····. 사랑에 대해서 무척이나 탐욕적인 점이다. ============================ 작품 후기 ============================ 으으으으으 리이이이이이..... 를 지키기 위해서 돌아온 그림자 무장들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29화 <슬기의 출격> 다른 이종족들도 사랑을 하기는 하지만 어인족의 사랑은 셋에 하나는 질척질척한 수라장으로 빠져 버릴 정도로 격렬한 사랑을 한다. 아마 어인족의 사랑에 대한 탐욕은 인간들 이상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A라는 머맨이 B라는 인어를 사랑한다고 치자. 그들은 우선 망설임 없이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여기서 B라는 인어가 A머맨의 마음을 받아주면 별 일이 안 생기지만····. 만약 만음을 거절하면 그때부터는 트러블이 되는 것이다. 우선 A머맨은 어떻게든 B인어의 마음을 손에 넣기 위해서 갖은 시도를 다한다. 상대를 속이거나 납치하거나 강제로 취하거나···. 그야말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B인어가 만약 다른 머맨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때는 그 상대도 죽여 버린다. 혹시 그 상대가 B인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 속에 다른 존재가 있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망설임 없이 일방통행적인 사랑. 그리고 살행까지 주저 없이 행하게 하는 광적인 질투. 사실 인간 중에서도 이 정도 싸이코들은 흔하지 않다. 어쨌든 어인족은 인간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사랑에 목숨을 걸어보는 종족인 것이다. 한눈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그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랑에 격정적인 종족은 이 세상에 인간과 어인족 말고는 없었다. 자··. 그럼 여기서 이제 왜 이렇게 어인족의 사랑에 관해서 장황하게 떠들었는지를 말해야 겠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하지 않고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기!! 보영!! 그대들을 사랑한다. 나의 품안으로 오라!!!!” “···········어어····.” “쟤 미친 것 아니야?” 그렇다. 지금 망망대해에서 전쟁중인 것도 잊어 버리고 엘라 왕국의 국왕인 시저드리온이 슬기와 보영에게 열렬한 사랑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운이 크롱크 왕국으로 요격을 간 시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한다. 정운이 신서울을 비운 이후 슬기는 차분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내정에서는 미하엘이 모든걸 처리할 테고··. 자신이 할 일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여기에 대기를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라운드 제로가 사라질 시기에 슬기의 레벨은 205다. 그건 사실상 월드서버 진출 전의 배대호에 버금가는 실력인 것이다. 원래 정운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악덕 길드의 수작에 걸려서 비참하게 죽었을지도 모를 슬기였지만···. 이제는 귀환자들 중에서도 손 꼽히는 실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정운이 부재중이라고 해도 신서울의 방위를 맡기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정운으로서는 자신이 없는 동안 아무일도 안 생기는 것을 가장 바랬겠지만···. 그래도 결국 생길 일은 생기는 법이다. 육로를 통해서 들어오는 삼국과 달리 엘라 왕국은 해로를 통해서 가우리의 뒤편을 공격하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다. 다행히도 그 경로 자체는 라트란 왕국의 페어리들에게 발각 되었다. 엘라 왕국에서 해로를 이용해서 대군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페어리들이 빠르게 캐치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슬기는 바로 해로쪽으로 자신이 가서 막겠다고 했다. 물론 미하엘은 반대했다. “잠깐만요. 슬기씨···. 당신의 임무는 신서울의 방위잖아요?” 슬기가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미하엘은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슬기는 단호했다. “그렇다고 신서울까지 적이 오는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먼저 해로로 가서 막겠어요.” “아니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상대는 종족 부터가 해전에 특화된 종족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유리한 바다에서 싸워 줄 필요는 없잖아요? 육지로 올라오길 기다렸다고 요격하는 수도 있어요.” 미하엘의 말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듯 했다. 하지만 슬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그건 안 된다고 말했다. “정운씨는 가능하면 국내에 전쟁의 분위기가 감돌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전선을 물리는 것도 금비했어요. 그런데 제가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면 모든게 허사가 된다고요.” “·············.” 슬기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했다. 사실 가우리는 전선을 야간만 축소 시키면 이 전쟁은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었다. 다만 자국민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방대한 전선을 모두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음···. 그래도 당신이 직접 갈 필요는 없잖아요? 다른 사람이 가도···.” 여전히 걱정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미하엘을 보며 슬기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전 메이지에요. 다른 사람들 보다는 해전에서 유리한 카드가 많아요.” “그건 그렇지만··. 메이지니 만큼 전위를 지켜주는 사람이 없으면 제 실력을 발휘 할 수 없잖아요?” “그건 평범한 메이지들의 경우죠. 전 레벨이 200이 넘어요.” “아니 그건····.” 미하엘은 오랜만에 자신이 말발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슬기는 자기주장이 없는 편이었고 항상 정운을 뒤에서 받쳐만 주고 있었다. 그래서 미하엘도 슬기를 그냥 소극적인 헌신적인 내조자 정도로만 봤는데···. 이제 보니 고집도 보통은 아니었다. ‘수상각하 하고는 다른 의미로 다루기 힘든데···.’ 사실 슬기의 말이 맞기는 맞았다. 대부분의 메이지들은 자신의 앞에서 적을 막아주고 시간을 끌어줄 전위가 있어야 제 실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 100레벨이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캐스팅 시간이 극단적으로 짧아지고 파괴력이 좋은 마법을 연속으로 발사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전위 없어도 충분히 단독 전투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슬기처럼 200레벨이 넘은 최고위 메이지는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화력 덩어리라고 봐도 좋았다. 가우리의 간부들 중에서도 슬기의 화력은 6위 정도다. 정운과 배대호, 박추성, 그리고 이민지와 한중겸 정도만이 슬기보다 더 나은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일하게 비슷한 수준을 하다 더 찾는다면 궁수인 윤정철 정도? 하지만 순수한 화력으로 따지면 그도 슬기를 넘어서기는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고위 메이지라고 해도 전위가 갖춰져 이으면 더 강력한 공격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슬기 정도 되는 고위 메이지의 전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적어도 거기에 어울리는 수준의 레벨의 전위 어야한다. ‘그런 사람이···, 아! 있다.’ 생각을 하던 미하엘의 머릿속에 딱 한 명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의 간부들은 넓어진 전선을 커버하기 위해서 나가 있지만 딱 한명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직 정식으로 가우리에 소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미하엘은 슬기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녀가 잠시 후에 데리고 온 것은···. “정말이지···. 난 비싼 몸이야.” “보수는 충분히 드릴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정운이나 다른 남자들은 몰라도 귀여운 슬기 부탁이니···.” 미하엘이 부리나케 달려가서 구해온 것은 오늘도 술병 비우기에 여념이 없던 이보영이었다. “보영이 언니?” “슬기 너 무모한 짓 한다며? 내가 특별히 도와 줄게.” 이보영, 그라운드 제로를 나오던 시점에서의 레벨은 199. 그녀라면 슬기의 전위 역할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그 외에도 혹시 모를 서포트를 위해서 약간의 부대를 더 딸려 보냈다. 특히 삼대길드의 간부 출신중에 유니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유니크 아이템은 바다에서 상당히 쓸 만한 것이어서 그도 같이 동참 시켰다. 그렇게 해서 슬기와 이보영을 비롯한 일행은 해전을 위해서 출발했다. “그런데 슬기야. 우리는 날아간다고 쳐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바닷가에 다 와서 이보영이 말했다.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이 상황에서 무척 쓸 만하데요. 거기 당신···. 이름이 뭐라고 했죠?” 슬기의 부름을 받은 상대는 자세를 꼿꼿하게 하고 절도있게 인사했다. “예. 가우리 3급 대위. 강보고라고 합니다. 레벨은 70입니다.” 상대의 소개를 받은 슬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70에 3급? 이상하다? 4급이 아니고요?” “예. 제 유니크 아이템의 특수성을 인정 받아서 3급으로 분류 되었습니다.” “흠···. 그래요.” 가우리의 체계가 잡히고 국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전원 급수가 매겨져 있다. 그리고 그 급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그라운드 레벨이었다. 새롭게 들어온 능력자들은 레벨을 정확하게 평가 할 수 없었지만 약간의 테스트를 거쳐서 이 정도면 몇 레벨 정도 되겠다. 라는 식으로 급수를 매기고 있었다. 그 평가에 따른 급수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우선 모든 신참들은 9급으로 시작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장 바닥인 것이다. 그리고 레벨이 20정도 되면 이제 8급의 칭호를 받는다. 이건 한국으로 치면 경찰 순경 정도 되는 권위를 가지고 잇는 것이다. 그리고 레벨이 30정도 되면 7급이 된다. 이제는 경찰로 치면 경사에서 경감 정도 된다. 보통 파출소 소장 정도 되는 지위인 것이다. 그리고 6급 부터는 좀 더 본격적이다. 레벨이 40대 정도 되면 6급의 칭호를 준다. 이 정도 되면 이제는 본격적인 전투력으로 취급 할 수 있다. 주로 제로 트리에서 신참들을 안내하는 소대장들이 이정도 계급으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가우리에서도 여기서 부터는 전쟁에서 써 먹을 수 있는 본격적인 전력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5급은 레벨이 50에서 60대까지를 취급한다. 이들은 가우리 이전에 삼대 길드 간부 출신들도 조금 섞여 있다. 상당한 강함을 지니고 있어서 5급부터는 현장에서 자신의 판단으로 범죄자를 현행법으로 생포 혹은 처벌 할 수 있다. 4급은 70에서 80대까지다. 여기서 부터는 이제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고수 소리 좀 듣던 자들인 것이다. 보통 일반 서버 졸업이 90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일반 서버에서는 어디가도 꿀리지 않는 수준의 유저들이었던 자들이다. 당연하지만 가우리에서도 이들에 대한 우대는 상당했다. 이들의 연봉이 전원 10억이 넘었다. 그리고 가우리에서 주는 특수한 신분증으로 인해서 지구의 어느 나라에 가도 외교관과 같은 수준의 보호를 받았다. 3급은 80~100레벨이다. 이들은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적이 없는 고수들이었다. 개중에는 월드 서버에서 활동한 자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연봉이 없다. 원래 이들은 돈을 벌려고 하면 자력으로 어디를 가도 얼마든지 벌 수 있는 자들이었다. 가우리를 떠나서 자신의 이름으로 연맹이나 길드를 만들면 어지간한 도시 하나랑 치안 유지 계약을 해서 거금을 벌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설사 수십억대의 연봉을 준다고 해도 돈으로 만족할 이들은 아니었다. 대신 정운은 3급부터는 그저 카드 한 장을 지급했을 뿐이다. 총 한도가 100억이 넘는 카드였는데 이걸로 뭘 하든 정운은 별 상관하지 않았다.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뭘 하든지 프리였다. 이 카드는 가우리 블랙 카드라고 해서 3급 이상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공통으로 발급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지구의 몇몇 언론에서는 가우리의 고위 간부들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너무 많은 돈을 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견들도 제시했다. 하지만 정운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밀어 붙였다. 3급 이상의 요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가우리의 막대한 자금력을 생각하면 귀중한 인력에게는 그만큼 대우를 해주는 것은 당연했다. 사회적인 대우도 뛰어나서 외교관 신분증은 물론이고 부서를 막론하고 자신보다 급수가 낮은 공무원에 대한 감찰과 처벌도 할 수 있었다. 물론 부서에 따라서 못 하는 몇몇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수상 직속 관할부는 급수가 9급이라고 해도 손을 못 댄다. 하지만 그건 가우리에서 정운의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2급은 100레벨 이상, 그리고 150사이에 있는 자들이다. 사실 간부는 아니지만 이건 과거 월드 서버에 진출하기 이 전의 10왕 급의 전력이다. 이들은 3급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타국의 연맹이나 길드에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다. 타국의 길드나 연맹은 모두 가우리에서 신의 맹세를 지니고 있는데···. 그들에게 걸린 맹세의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가우리의 2급 이상의 요원에게는 적극적인 협조를 하라는 것이었다. 즉, 세계 어디를 가도 가우리에 연결된 길드나 연맹이라면 자기 수족 부리듯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렇다고 가우리에 정식으로 항의를 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었다. 간이 팅팅탱탱 붓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러겠는가? 1급은 레벨 150이상의 귀환자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간부들과 연결된 보좌관들이 대부분이다. 그 권한은 2급의 요원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다 가지고 이었고 거기에 추가로 간부들과 연관된 핫 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한 마디로 이들이 마음 먹으면 가우리의 실무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실세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가우리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특급의 관리들은 정운과 예전의 한우리 연맹 시절의 간부들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주어진 임무에 충실 할 뿐. 가우리의 실무에 관해서는 대부분 1급 요원들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그러니 1급의 요원들이 이런이런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보고서만 올리면 그게 어지간히 터무니 없는 계획이 아닌 이상 모두 통과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특급에 있는 간부들의 비위를 거스르니 않는 한도 내에서는 가우리의 실세라고 해도 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 대표적으로 수상부 비서실 보좌관의 역할을 하고 이는 미하엘. 그녀의 계급이 1급인 것이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분량 자르기가 너무 애매해서 조금 길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30화 이렇게 가우리의 레벨과 급수를 정리하자면···. 9급 - 평대원 8급 - LV. 20 7급 - LV. 30 6급 - LV. 40 5급 - LV. 50~60 4급 - LV. 70~80 3급 - LV. 80~100 2급 - LV. 100~150 1급 - LV. 150이상(간부 보좌관급)특급 ? 수상 박정운을 비롯한 가우리의 간부들. 대강 이렇게 정리 할 수 있는 것이다. 급수에 따라서 주어진 권한이나 대우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급수의 기준인 레벨 측정은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 몇몇 별종들은 레벨과 상관없이 높은 계급이 매겨지기도 했다. 이 강보고라는 남자도 레벨은 70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아이템의 유용함을 인정받아서 한 급수 높게 책정되어 3급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 아이템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와라. 메가스톰.” 쿠우웅!!!! 바로 이것이었다. 강보고가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한 눈에 다 들어오도 않는 거대한 전함이었다. “이건···. 갑자기 SF?” “그라운드 제로는 가능하면 판타지적 설정이었는데?” 슬기와 보영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마치 SF영화에 나올 것 같은 거대한 전함이었다. 지면에서 야간 두둥실 떠 있는 전함을 보고 이게 과연 판타지 기반의 세계였던 그라운드 제로에서 얻은 아이템이 맞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아···. 저기 일단 이것도 판타지 설정의 무기입니다. 여기 아이템 설정을 보시겠습니까?” 어이없어하는 슬기와 보영을 보고 강보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 설정을 보였다. 메가스톰 LV.X 공격력 : X 방어력 : X 내구력 : X 스킬 : 주포 (마력을 충전해서 강력한 공격을 가한다.) 다연장 미사일 (최소 50발에서 최대 2,000발까지 다연장 미사일을 공격한다.) 유인 드론 (일인 탑승용 드론에 사람을 태워서 주변 적을 공격한다.) 방어막 (함선 전체를 감싸서 방어한다. 방어력을 탑승자의 수준에 따라 변한다.) 장거리 워프 (최소1km부터 최대 20km까지 워프가 가능하다.) [초고대 마도 문명의 정수로 만들어진 육해공 전투가 가능한 전함. 탑승자의 마력에 따라서 그 힘이 달라진다. 대규모 전투에 유리하며 힘의 소모가 상당히 크다.] “초고대 마도 문명? 이런 설정으로 간 건가?” “거참···. 파우스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들었지?” 슬기와 보영은 어이가 없었다. 탑승자의 수준에 따라서 아이템의 능력이 완전히 바뀐다는 점이 역시 유니크 아이템 답기는 했다. “이거··. 아이템 자체는 제 주작의 스태프 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은데요?” “그러게···. 주인을 잘만 만났으면 월드 서버에서도 통할 법한 아이템이야.” 월드 서버의 보스몹들과의 전쟁에서는 사실상 전쟁터나 다름 없는 스테이지에서 싸워야 하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과 싸울 때 이런 거대 전함이 하나 있었다면 싸움의 양상이 참 달라졌을 텐데···. 많이 아쉬움이 남는 아이템이었다. 사실 슬기의 말대로 이 아이템의 성능 자체는 정운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망토에 뒤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발에 편자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레벨 70대의 유저가 가지고 있어봤자 이 아이템의 진가의 반도 발휘하지를 못했다. 실제 그라운드 제로에서 강보고는 자신을 장으로 한 작은 길드를 하나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길드원들을 모두 이 메가스톰에 태우고 몰이사냥을 해서 길드원들의 전체적인 레벨을 올리고는 했다. 그래도 하루에 두 타임도 못 뛸 정도로 힘의 소모가 극심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서 그라운드 제로는 아니지만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이 아이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강보고 함장님. 전원 탑승이 끝났습니다.” “음··. 좋아. 부상!! 출발한다!!!” “옜!!!!!” 우우우우우우웅!!!!! 크게 울리는 엔진의 소리와 함께 메가스톰은 서서히 부상해서 전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교에서 강보고가 승무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을 보며 이보영이 말했다. “저렇게 각자 배치를 안 하면 이 배 안 움직이는 건가?” “아니요. 단독으로도 움지일 수는 있는데···. 일종의 기분 내기래요.” “····남자들이란.” 함장 놀이에 여념이 없는 강보고를 보고 이보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강보고를 조금 부럽다는 듯이 보고 있던 창은 서둘러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아이템이 양도 가능하면 정운씨도 탐낼지도···.’ 세계와 시대를 불문하고 남자들은 탈것에 열광하는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슬기와 보영, 그리고 창와 강보고, 또 그 외에 500명에 달하는 전력은 서둘러 바다로 이동했다. 워프가 가능한 함선이긴 했지만 전력의 보존을 생각하면 함부로 쓰지 않는게 좋다는 강보고 함장의 말을 듣고 슬기는 느려도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가우리의 해역에 적이 들어오기 전에 적을 놓치지 않고 격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넘게 이동한 끝에 메가스톰은 적과 조우했다. “호오··. 이거 참? 바닷가 전체가 해물 잡탕처럼 변해 버렸네?” “말이 안 통하면 저대로 팔팔 끓여 버리죠. 뭐··.” 슬기와 이보영은 적의 모습을 확인하고도 서로 농담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 둘의 경우고····. 다른 사람들은 엘라 왕국의 전력과 마주한 순간 질려 버렸다. 크롱크 왕국의 오크들이 원시림의 괴수들과 드래곤들을 다룰 수 있듯이···. 엘라 왕국의 어인족들도 바닷속의 괴수들을 다를 수 있었다. 이 정보는 이미 가우리에서도 알고 있던 정보였다. 하지만 정보를 그냥 알고 있는 것과 그 정보를 직접 확인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직접 와서 본 엘라 왕국의 전력은 바다와 바다 생물의 비율이 5대5로 보일 정도였다. 해수면에 드러난 것이 저 정도면 바닷속에 있는 것은 훨씬 더 하다는 것이었다. 그 종류도 다양했다. 문어 모양을 하고 있는 크라켄, 거대한 바다뱀을 연상 시키는 씨 서펜트···. 거기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거대한 해양괴수는 겉보기만으로도 이미 질려 버릴 정도였다. 크기도 크기지만 이렇게 바글바글 몰려있으니 위압감이 사람을 저절로 위축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슬기와 보영은 그런 적의 대군단을 보면서도 담담했다. 질려버린 남자들과 달리 겉으로 봤을 때는 가녀린 두 여자가 오히려 담담한 것이다. 사실 월드 서버의 레이드를 하면서 볼 것 못볼 것 가리지 않고 다 봤던 것이 지금 득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 일단 회담이라도 해 볼까?” “그래야죠. 강보고씨. 갑판을 열어요.” “예. 알겠습니다.” 슬기의 명령에 강보고는 갑판을 열었다. 그리고 슬기는 보영과 함께 메가 스톱의 밖으로 나가서 그대로 해양 괴수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슬기가 말했다. “가우리의 대표로 온 이슬기 수상부 비서실장입니다. 이 군을 이끌고 이는 대표는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평소의 소극적인 슬기와는 달리 제법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해수면에 뚜렷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런 슬기의 모습을 보고 뒤편에 남아있는 부하들은 살짝 감탄했다. “와아··. 비서 실장님 배짱 쩌는데?” “예전에 아이돌 때 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야.” “그때 얘기 함부로 하지 마라. 싫어하신다.” “예? 왜 말입니까?” “우리가 이유까지야 알게 뭐냐? 그냥 하지 마라.” “예.” 부하들이 그렇게 뒤에서 수근 거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기는 그냥 담담한 눈으로 눈앞의 해양 괴수를 바라봤을 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촤아아악!!!! 바다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해수면으로 부상했다. 그것은 발이 있어야 할 부위에 거대한 지느러미가 있는 거대한 어룡이었다. 놈은 그 긴 목을 들어서 높게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머리 위에는 한 명의 머맨이 오만하게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황금색 트라이던트를 들고 있고 머리에는 금색의 산호로 만들어진 관을 쓰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머멘이 무척 높은 직위에 있는 자라는 것을 말이다. 어룡의 머리에 오만하게 서 있는 그는 슬기와 보영을 보고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을 부른게 그대들인가?” ‘짐이라·····.’ 슬기는 고개를 공손하게 숙이며 말했다. “나타나신 분의 직위와 성함이 뭐죠?” 상대의 정체가 대강 짐작이 가지만 일단 정중하게 물어는 보는 슬기였다. 그리고 그런 슬기에게 머맨이 말했다. “짐은 바다의 왕. 시저드리온이라고 한다.” 역시, 슬기의 예상대로 상대는 이 군의 총사령관을 넘어서 엘라 왕국의 국왕이기도 했던 것이다. 슬기는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소개드리겠습니다. 저는 가우리의 수상부 비서실장인 이슬기입니다.” “흠···. 인간들의 복잡한 직함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대가 가우리에서 어느 정도 직위에 있지?” “공식적으로는 수상 각하를 제외하고는 제 위로는 아무도 없습니다.” 옆으로는 많이 있지만 위에는 정운 한 명만 있는게 맞긴 맞았다. “그런가? 그대를 가우리의 이인자라고 봐도 된다는 거군.”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저를 가우리의 대표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슬기의 차분한 대응에 시저드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위아래로 슬기와 보영을 바라봤다. 가녀린 여자들이 대표로 나왔다는 것이 그에게는 신기한 것 같았다. “짐을 호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설마 아무 용무도 없이 나타난 것은 아닐 테고 말이야.” 시저드리온의 말에 슬기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말해갔다. “이제까지 우리 가우리와 엘라 왕국의 사이에는 아무런 분쟁의 요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본국을 향해서 군을 움직이시는 겁니까?” 슬기의 말에 시저드리온은 근엄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어리석군. 그대들은 우리 세계를 침략하기 위해서 이계에서 온 적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맞서 싸우는 것에 부조리함은 없을 것이다.” ‘파우스트의 신탁을 신봉하는 건가? 이러면 말로 풀어가기 어려워지는데···.’ 슬기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가능하면 말로 풀어보고 싶은 슬기는 계속해서 차분하게 말문을 열어갔다. “우리는 이 세계를 침략할 의도가 없습니다. 저희들이 전체적으로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세계의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좀 더 발전된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 발전의 뒤에 파우스트에 대한 신앙심을 약화 시켜서 놈을 지상으로 끌어내리고자 하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슬기가 사람이 좋아도 그걸 지금 나불거릴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았다. “흠····. 믿을 수 없군. 그건 그쪽의 말뿐이지 않는가?” “이 세계의 신탁 역시 말 뿐입니다. 도대체 언제적 말인지 그 근원도 알 수 없죠. 신탁이 왜곡 되지 않았다고 자신 할 수 있는 사료가 있습니까?” “언행의 기록이라···. 그건 주로 인간들의 특기라서···.” 시저드리온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슬기가 치고 들어갔다. “문헌이나 기록도 사실 왜곡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컨대 저희 가우리가 실제로 이 세계에 해를 끼치거나 침공을 한 적이 있습니까?” 슬기의 질문에 시저드리온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흠···. 브로드 왕국을 멸망시킨 것은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시저드리온의 말에 슬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했다. “브로드 왕국의 경우 이미 대륙의 모든 국가가 손을 놓고 있었던 무법지대였습니다. 실제 그 나라에 억류되어 있던 이종족 노예 중에는 엘라 왕국의 주민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경우 본국으로 송환 시켰는데 혹시 거기에 관해서 듣지 못하셨습니까?” “·············.”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31화 <킹 클래스의 대괴수> 시저드리온은 할 말을 잃었다. 엘프들이나 페어리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머맨과 인어족 역시 이종족 노예 사냥꾼들에게는 표적의 대상이었다. 강력한 완력과 타고난 투쟁심을 지니고 있는 머맨은 검투사 노예나 복종의 마법으로 경비로 삼으면 좋았다. 그리고 인어족 역시 지상으로 일단 올려만 놓으면 엘프들 못지 않게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노예상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인어족의 심장을 정제한 약은 만병에 듣는다고 해서 왕족이나 귀족들이 종종 찾는 것이기도 했다. 브로드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신병을 인수한 그들은 모두 정운의 온정에 의해서 바다로 풀려났다. 죽다 살아난 그들은 가우리에 크게 고마워했고 당연하지만 그들에 대한 소식은 엘라 왕국의 국왕인 시저드리온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시저드리온이 계속해서 브로드 왕국의 멸망을 가우리의 침공이라고 주장하려면 예전에 도움을 받은 동족의 은혜도 무시해야 한다. 왕의 체면 때문이라도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흠·····. 그렇다면 신탁의 건은 일단 보류로 하도록 하지.” 결국 시저드리온은 한 발 물러났다. 그런 시저드리온의 모습을 보며 이보영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슬기 얘기 이렇게 말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을 잘했나?’ 사실 이전에 미하엘의 입을 막은 것도 포함해서 보면 슬기도 제법 언변이 있었다. 어쩌면 논리 대마왕인 배대호를 스승으로 두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세치 혀만으로 엘라 왕국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역시 힘들었다. “설사 신탁의 건을 넘겨둔다고 해도, 이미 짐은 이 전쟁을 수행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니 군을 물릴 수는 없다.” 시저드리온은 결국 왕인 자신의 체면을 앞에 세우고 고집을 부렸다. 논리적으로 명분을 만들지 못하면 이제는 억지라도 부려야 하는 것이다. ‘피할 수는 없는 건가?’ 슬기 역시 이제 전쟁을 피하는 것은 무리라고 은근히 예감하고 있었다. 어인족의 왕에게 체면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타국의 사신을 눈앞에 두고 전면적으로 내세울 정도라면 간단하게 부정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대로 슬기는 굳이 미련을 버리지 않고 한 마디를 더 했다. “어떻게든···. 전쟁을 피할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쌍방에 무익한 피가 흐를 뿐입니다.” 슬기의 말에 시저드리온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짐은 이번 전쟁에서 에리프릴 왕국을 돕는 대가로 이미 그 나라의 17공주와 16공주를 짐의 아내로 받았다.” “전쟁의 대가로 공주를? 네가 무슨 한중···.” “언니···.” 이보영이 열폭 하려는 것을 보고 슬기가 일단 입을 다물게 했다. 다행이도 시저드리온은 그런 이보영의 막말에 분노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흠···. 한 명은 차분하고 현명하고, 또 한명은 화끈하고 거침이 없군. ····실로 마음에 들었다.” “···예?” 시저드리온의 말에 슬기는 순간 혀를 깨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어째 이 다음에 나올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저울의 평행은 같은 무게의 추를 반대편에 올리면 맞아가는 법이지. 그대들이 짐의 처로 온다면 가우리와의 전쟁을 그만 둘 수도 있다.” 울컥!!! 순간 슬기와 보영의 안에서 동시에 뭔가가 울컥하는 것은 느꼈다. 어인족이 사랑에 격정적이고 스트레이트한 성격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설마 전쟁의 대가로 여자를 요구 할 줄은 몰랐다. 슬기는 상당히 화가 났고 이보영은 폭발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둘에게 시저드리온이 말을 이었다. “자, 둘이서 짐의 1057번째 첩과 1058번째 첩이 되어 주게.” “안 해!!!!!!!” “안 해!!!!!!!” 결국 둘 다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어진 것이다. 전쟁을 피하고 어떻게든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했던 슬기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기 보다 상대의 정신 상태를 봐서는 애당초 쓸데없는 짓이었다. 사랑에 정렬적이다 못해 광적이라는 정보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결국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전투가 시작되자 슬기는 좀 전에 평화협정을 시도했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 스러울 정도로 격렬하게 적을 몰아 붙였다. “다연장 미사일 발사해요. 마력은 제가 서포트 합니다.” “옛!!!” 슬기의 명령을 받은 강보고는 메가스톰의 스킬인 다연장 미사일을 엘라 왕국의 대군을 향해서 발사했다. 슈슈슈슈슈슈슝!!!! 2,000발의 화살이 빼곡하게 하늘을 뒤덮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보고는 중얼 거렸다. “···마력이 이렇게 다른가···?” 강보고가 이제까지 메가 스톰을 사용할 때는 다연장 미사일을 발사해도 100발이 나갈까 말까였다. 하지만 200레벨의 슬기와 거기에 거의 접근한 이보영이 탑승한 상태로 발사하자 2,000발의 미사일이 한 번에 발사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미사일 연속 발사해요. 쉬지 말고 전 방위 적으로 퍼부어요.” 슬기의 말에 강보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슬기 실장님. 다연장 미사일은 한 번 발사하면 10분은 쿨타임을 가져야··· 응?” 말을 하던 강보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사용할 때는 100발정도 찔끔 쏘고 나서는 10여분 정도는 쉬어여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쿨 타임 따위는 없다는 듯이 바로 미사일이 충전된 것이다.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발사!!!!” 강보고는 다시 다연장 미사일의 포문을 열고 발사했다. 사실 아이템의 성능만 놓고 보면 강보고의 메가스톰은 슬기의 주작의 스테프를 뛰어넘는 강력한 아이템이다. 어쩌면 정운의 그림자의 망토나 박추성의 무한의 영사 만큼이나 강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을 잘못 만난게 죄라고···. 이제까지 제 성능의 10분의 1도 발휘하지 못했던 메가스톰은 내부에 슬기와 이보영이라는 고위 능력자를 탑재한 후에 드디어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펑!!! 퍼퍼퍼펑!!! 해수면에 작렬하는 미사일의 위력은 이제까지 강보고가 사용하던 것과 같은 공격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척 봐도 레벨이 100레벨이 넘어 보이는 괴수들도 한 방 한 방에 엄청난 대미지를 입고 있었다. 슬기는 함장실에서 그런 현장을 보면서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강보고씨!! 주포가 있다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 “저기 보이는 거대한 어룡을 조준하고 한 방 날려요.” “옛!!!” 슬기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나 강보고는 함장실에서 주포를 조준하는 조종간을 잡고 적을 조종했다. 그리고 주포의 차지를 시작해는데···. [10···9···8···7··6·····] “내가 이전에 쏠 때는 주포 충번만 해도 5분 넘게 걸렸는데···.” 5분이 고작 10초로 줄어 버렸다. 슬기와 이보영이라는 두 명의 고위 유저가 이만큼의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건 원주인인 강보고가 보기에는 거의 억울할 정도였다. 하긴, 강보고 보다 더 억울한 것은 어쩌면 이제까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 함선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약 이 함선이 강보고가 아니라 십왕중에 한명이 발견했었다면····. 그때는 그라운드 제로안의 역사가 크게 변했을지도 모르다. 한가지 예를 들어서 배대호가 이 함선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국팀은 세계의 누구보다 먼저 월드 서버로 진출했을지도 모른다. 이윽고 충전이 끝나고 강보고는 거대 어룡을 정조준 했다. “발사!!!!!” 투캉!!!!!! 이 일대의 공기를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 같은 굉음와 함께 지름이 20미터는 될 법한 굵은 주포의 관선이 발사 되었다. 그리고 그 광선은 빗나가는 일 없이 정통으로 어룡에게 작렬했다. “됐다!!!” “완전 관통했어!!!” 메가스톰의 주포 한 방에 그대로 절명해 버린 어룡을 보면서 함 내의 일원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아까 그 재수바리도 맞았을까?” “글쎄요····.” 이보영이 말하는 재수바리가 누군지는 새삼 물을 필요도 없었다. 슬기 역시 그 재수바리를 노리고 주포를 발사 시켰던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쟁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런···. 남의 귀중한 애완동물을 죽이다니? 이 대가를 어떻게 치르려고 그러나···.” 시저드리온은 자신이 귀여워하던 어룡이 한 방에 죽어 버리자 혀를 찼다. 슬기는 이 어룡이 시저드리온이 아끼는 주요 전력인줄 알았지만···. 사실 시저드리온에게 있어서 이 어룡은 그냥 애완동물일 뿐이다. 진짜 비장의 카드는 달리 있었다.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에게 SSS급 대괴수들이 다수 내려오듯이···. 엘라 왕국의 수장에게도 대대로 내려오는 권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엘라 왕국의 진정한 히든카드인 것이다. 시저드리온은 자신의 황금 삼지창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듯한 장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나와라. 바다의 수호신이여. 바다를 침범한 악의 무리를 물리쳐다오.” 그러자 황금 삼지창와 공명하듯이 해저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변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슬기였다. 원래 배대호의 제자이기도 한 슬기는 마력을 느끼는 것에 있어서는 무척 민감한 편이었다. 그녀는 바닷속 깊은 곳에서 위압감을 가득 풍기는 뭔가가 올라오는 것을 알았다. “···급부상!!! 하늘까지 최대한 부상해!!!!”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나타난다고 느낀 순간 슬기는 바로 강보고 함장에게 명령했다. 평소와 달리 완전 존칭이 빠진 슬기의 명령에 강보고는 서둘러 메가스톰을 하늘로 띄웠다. 그리고 메가 스톰이 하늘 높이 떠오른 순간 해저에서 푸른 광선이 솟구쳤다. “방어막 풀 가동!!!” 심상치 않은 파워를 느꼈는지 강보고는 재빨리 메가스톰의 방어막을 발동 시켰다. 당연 하지만 슬기와 이보영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는 메가스톰의 방어막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콰아아앙!!!!! [삐이!!! 삐이!!!! 본 함선의 내구도가 30% 떨어졌습니다.] “한 방에····? 방어막을 치고 있었는데도···?” 강보고는 넋이 나가 버릴뻔 했다. 메가스톰의 자체 내구도는 X, 즉 미지수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절대로 약한 편은 아니었다. 약하다기 보다 엄청 강력한 편이었다. 그런데 슬기나 이보영을 태워서 더욱더 강력해진 메가스톰의 방어력에 방어막까지 풀로 발동 시켜다. 그런데도 30%의 내구도가 한 방에 날아간 것이다. 방어막 없이 맞았다면 그때는 한 방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뭐야? 뭐가 우리를 공격한 거야!!?” 이보영의 궁금증은 곧 모니터에 드러난 거대한 괴수의 모습을 보고 밝혀졌다. “저건? 히드라?” “예···. 그런데 저렇게 큰 것은 처음 보네요.” 모니터에 비친 것은 수십개는 될 법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어룡이었다. 그 동체는 메가스톰 보다 거대해서 곁에 있는 다른 괴수들과 비교하면 강아지와 도사견을 옆에 두고 보는 것 같았다. 짙은 청색의 비늘이 전신을 빽빽하게 덮고 있으며 한 개의 몸에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는 머리가 수십 개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늪지대에 자주 출몰했던 히드라와 닮았다. 하지만···. 맹세코 그때의 히드라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흠···, 놀란 모양이군.” 하늘위로 급하게 부상한 메가스톰을 보면서 시저드리온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이것이야 말로 엘라 왕국이 존재하기 전부터 어인족 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진정한 최강의 힘. 이 세상에 몇 종류 없는 킹 클래스의 대괴수인 바다의 수호신. 폰토시오스라는 존재였다. 이것이 바로 엘라 왕국의 진정한 히든 카드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32화 “폰토시오스 라고요?” “그래. 내 동생들 중에 인어들이 있는데···. 걔들 한테 들은적 있어. 겉으로 드러난 킹 클래스의 대괴수 중에 하나가 바로 저 놈이라고 하더라.” 이보영의 소개를 들으며 슬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킹 클래스의 대괴수라····.” 이 세계에 킹 클래스의 대괴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힘에 관해서는 이민지가 한 가지 경험담을 전해 줬었다. 꽤 오래전에 킹 클래스의 대괴수중에 하나와 씨워 봤지만···. 그때는 무승부였다. 라고 말이다. 지금 이민지의 힘은 사실 박정운, 박추성, 배대호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니 이민지의 그 말이 뜻하는 것은···. “킹 클래스의 대괴수는···. 레벨이 300이상이라는 말이겠죠.” “그렇지···.” 이보영과 슬기의 말에 함내의 다른 사람들은 얼굴이 공포로 굳어졌다. 레벨 300이상의 강력한 대괴수? 이걸 어떻게 이긴다는 말인가? 슬기는 주변 요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것을 보고 살짝 안색이 굳어졌다. ‘이 상화에서 계속 싸우면 안 좋겠는 걸?’ 일단 물러나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슬기는 강보고에게 말했다. “다연장 미사일 발사!! 그 후에 바로 장거리 워프를 반복해서 후퇴 합니다.” “옛!! 알겠습니다.” 슬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보고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 다음에는 장거리 워프를 진행했다. 보통 그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도 할 때는 1km를 살짝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정도라서 제일 쓸모가 없는 기능 중에 하나가 바로 장거리 워프였다. 더구나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그날 안에는 다시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슬기와 이보영이 안에 타자 20km에 달하는 장거리 워프가 연속으로 일곱 번이 가능했다. 덕분에 큰 무리 없이 도망가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쳇···. 도망갔나? 그래도 상관없지. 나 시저드리온은 마음에 드는 여성을 놓친 적은 한 번도 없다.” 거대한 메가스톰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시저드리온은 안타깝게 말했다. 하지만 크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가우리를 점령하고 나면 저 두 명의 여성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택도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게 있을 줄이야. 좀 작전을 세워야 겠는걸요?” 슬기는 안전한 지역까지 후퇴를 결정한 후에 그렇게 중얼 거렸다. 그런 슬기의 말에 함내의 다른 사람들은 크게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강보고는 그들의 대표로 말했다. “저기 이슬기 실장님. 다시 우리만으로 그 킹 클래스의 괴물에게 도전할 생각이십니까?” 그의 말에 슬기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여기서 적을 막지 못하면 아군의 영해에서 싸워야 할 겁니다.” “아니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의 간청하다시피 애원하는 강보고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슬기였다. 그리고 그런 슬기보다 장보고의 행동이 더 거슬리는 사람이 있었다. “못난 남자군. 불알 두 쪽 달고 체면 떨어지는 소리 좀 작작하지 그래?” 바로 이보영이었다. “아니···. 그게···.” 강보고는 그저 쩔쩔맬 뿐이었다. 그도 한국 서버 출신의 귀환자였고, 십왕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던 이보영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 다른 외국 서버의 귀환자들 중에는 이보영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강보고는 그녀가 누군지 너무나 잘 알았다. 일반 서버에서 메두사 길드의 장을 맡으면서 삼대 길드의 한 축을 이뤘던 여걸이 아닌가? 그냥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한 성깔하는 성격과 더불어 남자들에게 특히 엄한 그녀의 전력을 생각하면···. 사실 슬기보다 이보영이 더 무섭고 어려운 강보고였다. 이보영은 겁을 먹은 함내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적이 강하면 강한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거야. 자기보다 약한 상대한테 이기는 걸 누가 못해!!?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100레벨도 못 찍은 거고.” 이보영의 말에 남자들은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초보 시절에 도박은 목숨을 버리는 지름길이었지만···. 어느 정도 레벨이 올랐을 때는 도박을 하지 않고는 고레벨로 올라 갈 수 없는 순간도 있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앞으로 나가느냐? 뒤로 도망가느냐? 라는 선택으로 인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났었다. “···하지만 이보영님. 현실적으로 전력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작전으로 매울 수 있는 전력이 아니지 않습니까?” 강보고가 다시 한 번 간절하게 말했다. 300레벨대의 대괴수가 상대라니···. 70대 레벨이 자신으로서는 생체기 하나나 낼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건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이 함내에 있는 사람들 중에 여장부 두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킹 클래스의 대괴수인 폰토시오스를 상대로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예외를 적용하지만 이보영 바라기인 창 정도일까? 그는 아마 죽는다고 해도 이보영을 지키며 그녀보다 0.1초라도 먼저 죽을 수 있다면 웃으며 죽어갈 수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승산의 유무에 관해서는 냉철하게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슬기와 이보영의 경우 이 상황이 어렵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코 불가능 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그라운드 제로의 월드 서버에서 겪었던 수많은 레이드들을 생각해 보라. 이것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조건은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 수두룩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일단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머릿속에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게 그라운드 제로의 최상층까지 올라간 경험이 있던 이 둘과 다른 귀환자들과의 차이였다. “확실히···. 정면으로 격돌하면 화력의 차이가 너무 커요. 그러니 이 메가스톰의 워프 기능을 본격적으로 활용할까 합니다.” “····슬기님? 그건 무슨 뜻입니까?” “철저한 게릴라전을 한다는 거죠.” 그리고 슬기와 이보영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콰아앙!!!! 해수면 위로 높게 물보라고 터졌다. 슬기의 공격 마법이 그대로 엘라 왕국의 해양괴수 군단을 덮친 것이다. “슬기야. 그 재수바리 올라온다.” “도망가죠. 메가스톰에 바로 워프 준비하라고 해요.” 슬기와 이보영은 재빨리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는 메가스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메가스톰에 들어간 순간 둘은 바로 장거리 워프로 거리를 벌리고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두 여자가 재수바리라고 부르는 시저드리온이 사랑하는(?) 여인들을 만나기 위해 바다위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이미 둘은 사라지고 난 후인 것이다. 이런식의 철저한 게릴라 전으로 엘라 왕국의 대군을 괴롭히기 시작한지도 벌써 이틀째··. 그동안 돌격 횟수는 이미 50이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슬기의 전략은 엘라 왕국의 약점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엘라 왕국의 대괴수들은 강력하지만 그 대부분의 진가는 바닷속에서 발휘하는 것이다. 해수면 위에서 마법으로 공격하는 슬기에게는 도리가 없었다. 슬기의 특기는 주로 화염계였지만 다른 마법을 아주 못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가장 잘 먹히는 뇌전계열의 마법은 엘라 왕국의 괴수군단에게 몇 배를 능가하는 상승효과를 발휘했다. 슬기의 기습에 대비해서 비행이 가능한 괴수들을 해수면에 배치하기도 했지만···. 그런 잔챙이들은 슬기의 캐스팅을 방해하기 전에 이보영에게 모두 박살났다.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규격외의 괴물인 폰토시오스였는데···. 슬기는 단 한 번의 만남에서 그 킹 클래스의 대괴수의 약점을 파악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정운의 바로 곁에서 월드 서버의 다채로운 보스몹들을 격파했던 것이 도움이 된 걸까? 슬기 역시 적의 약점을 발견하는 것에 상당히 능숙해진 것이다. 사실 슬기가 발견한 약점은 폰토시오스의 약점이라기 보다는 엘라 왕국군의 약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폰토시오스는 확실히 강력했다. 그 놈을 잡아내기에는 슬기와 이보영, 그리고 유니크 아이템인 메가스톰의 힘을 합친다고 해도 어려울 것이다. 창이나 강보고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전력으로 말하는 것도 우습고 말이다. 하지만 굳이 놈과 정면으로 격돌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슬기의 목적은 엘라 왕국군을 막아내는 것이지 킹 클래스의 대괴수와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전에 이민지에게 듣기란 킹 클래스의 대괴수라는 것은 이 세계에 몇 종류 없는 놈들이라고 했다. 고엘프와 같이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이 놈들을 이 세계에서는 태고종이라고 불렀는데···. 저마다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다. 사실 킹 클래스의 대괴수는 어딘가에 길들고 말고 할 수 있는 생물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나라에서는 킹 클래스의 대괴수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부담도 큰 행동이라고 했다. 사실 엘라 왕국과 폰토시오스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어인족의 왕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저 황금 삼지창. 저것은 폰토시오스가 어인족에게 선물로 준 물건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오랜 옛날, 폰토시오스의 새끼 한 마리가 바닷속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걸 보고 지나가던 인어 한 마리가 폰토시오스의 새끼를 수해줬는데···. 새끼를 구해준 보답으로 폰토시오스는 그 인어에게 자신의 보물인 황금 삼지창을 주며 바닷속에서 자신을 부르면 도움을 주겠다. 라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후일 그 인어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이 세상 모든 어인족을 통일한 초대 바다의 왕이다. 라고 하는···. 믿어도 그만이고 안 믿어도 그만인 전설이 있다. 뭐, 지구든 이 세상이든 전설이라고 하는게 대부분 근거는 없고 뜬구름 잡는 얘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저 황금 삼지창이 폰토시오스를 부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말은···. 폰토시오스는 항시 엘라 왕국군을 호위하고 있는게 아니라 적이 나타났을 때 시저드리온이 불러서 싸우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시저드리온이 항시 폰토시오스를 부르고 있을 수 있다면? 그때는 슬기로서도 기습 작전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시저드리온은 그만큼 당하면서도 폰토시오스를 항시 부르고 대기하지는 않았다. 아마 사용의 시간에 제한이 있거나? 혹은 부를 수 있는 상황에 어떤 조건이 붙어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슬기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엘라 왕국군의 군대는 이제 완전히 발이 멈춰 버렸다. 전진을 위해서 대열이 길어지면 어디선가 슬기와 이보영이 와서 치고 빠지면서 난장판을 쳐대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실 인간의 군대라면 지휘관이 다서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냥 진군을 시키거나, 아니면 아애 군을 물려서 후퇴를 시키겠지만···. 시저드리온은 그만큼 전쟁에 조예는 없는지 그냥 이도저도 아닌 뭉쳐서 기다린다는 최악의 선택지를 하고 말았다. 사실 이게 슬기의 작전에 더 가속도를 붙여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마 시저드리온은 이 고착 상황이 길어지면 유리한 것은 자신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가우리는 크롱크 왕국의 맹공을 감당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전력을 육지에 집중 시켜야 할 테고···. 자신이 여기서 시간만 끌어주면 크롱크 왕국의 대군과 나머지 나라. 에리프릴, 성 세인트, 아이언 왕국의 연합군이 가우리를 공격할테니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전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렇게 자기 예상대로 척척 돌아가는 전쟁은 전국시대를 살다간 대전략가라고 해도 평생에 한 두 번 만날까 말까다. 그러니 우수한 전략가일수록 한 가지 문제에 수십 가지 상황을 예측해고 준비해두는 것인데 말이다. 그가 세운 계획은 어디까지나 크롱크 왕국이 끈덕지게 가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다는 전제 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정운이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인 칸다카의 목을 치는 것에 성공했고··. 이제는 가우리의 전력이 엘라 왕국에 집중되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시저드리온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33화 <다이앤의 전투> “뭐? 천·· 몇 번째 첩?” “예. 그랬어요.” 정운은 다른 동료들 보다 한 발 앞서서 슬기에게 합류했다. 그리고 정운을 보자마자 슬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상황을 보고했다. 그리고 시저드리온이 자신과 이보영게에 무슨 망발을 했는지도 빠짐없이 말했다. “····그 생선자식 죽었어.” 정운이 이를 갈며 화를 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달라고 해도 열 받을 판에 지금은 아애 천단위의 첩질을 하겠다고 하니···. 정운으로서는 오랜만에 빡침의 극한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뇌전으로 바싹 구워서 생선 구이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정운이었지만···. 슬기가 보고를 올린 킹 클래스의 대괴수의 존재는 살짝 마음에 걸렸다. “폰토시오스라···. 이름도 괴상하네.” “그러게요. 하지만 , 이름과 달리 그 힘은 틀림없는 진짜였어요.” “그래···. 무모하게 정면 대결을 하지 않고 날 기다려 준 것은 고마워.” 이번에 크롱크 왕국에서 단독 전투를 하며 정운은 자신의 진짜 실력을 되찾았다. 약간 애는 먹을지 몰라도 폰토시오스인지 뭔지 하는 대괴수를 상대로도 단독으로 해 볼만 하다는 생각도 했다. 엄밀히 말해서 정운이 싸우면 단독이 아니라 아홉 기의 그림자 무장들을 동원한 다구리 전투가 될 테지만 말이다. “흠····. 킹 클래스의 대괴수라·····.” 정운은 곰곰하게 생각에 잠겼다. 당장이라도 엘라 왕국군으로 쳐들어가서 시저드리온의 비늘을 싹 다 벗겨버린 다음 꼬챙이에 꿰어서 노릇노릇하게 구우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일단 좀 더 전력이 도차하기를 기다려 보자.” “예. 알았어요.” 정운의 말에 슬기는 정운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려니 생각하고 그냥 순응했다. 가우리의 각지에서 오크의 대군단이 물러간 이후 가우리의 간부들을 이제야 조금 여유가 돌아왔다. 전선이 워나 넓었고 아직도 전시였기 때문에 모두를 소환 할 수는 없었지만 정운은 일단 순서가 비는 사람들을 몇 명 불렀다. 그 결과 온 것인···. 한중겸, 윤정철, 다이앤 여왕 이렇게 세 명이었다. 여기에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던 정운과 슬기 이보영까지 합하면 간부가 여섯 명이나 모였다. 아무리 폰토시오스가 강력한 대괴수라고 해도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정운 한 명만 해도 그라운드 제로가 사라질 시기에 레벨이 345였던 괴물이 아닌가? 메가스톰의 함내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격이 완전히 다른 간부들의 등장에 잔뜩 얼어 버렸다. “킹 클래스라····. 그거 꽤 강한가 보지?” 오랜만에 만난 윤정철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슬기랑 보영이 누님 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거기다 주변에 다른 괴수들도 제법 많고 말이죠.” “그래···. 알았다. 우리가 할 일은 일단 잔챙이 정리라고 보면 되는 거냐?” “이제까지 슬기랑 보영이 누님이 부지런히 깎아내기는 했지만···. 예 한참 남은 모양이에요.” 정운의 말에 윤정철은 다이앤 여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알았다. 그럼 잔챙이들 정리하고 미끼역 까지는 우리가 해 주마. 그 후에는 맡기겠다.” “예. 감사합니다.” 정운의 감사인사에 윤정철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그냥 웃어 버렸다. 그런 윤정철을 보며 오히려 이보영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정철이 오라버니, 독기가 완전히 빠졌네요?” “그런가?” 윤정철은 오히려 그러냐는 듯이 대꾸했다. 하지만 이보영이 기억하고 있는 윤정철은 십왕 중에서도 가장 신경질적인 인간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궁수라는 클래스 중에서는 최강의 직위에 있던 윤정철은 전투 중에는 더 없이 믿음직한 인물이었지만···. 그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십왕들 사이에서도 없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오로지 필요에 의한 최소한의 관계만 지속하던 윤정철이었다. 그래서 작전회의 중에도 그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에 관해서 하겠다. 못하겠다. 라는 말만 반복할 뿐.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회의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왕창 변한 윤정철을 보면서 이보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그 원인이 먼지는 알 수 있었다. 전투의 출발 전에 다이앤을 바라보는 윤정철의 눈에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애틋함이 나타나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 시절에 보였던 그 냉철하고 차가운 인간이 맞는지 의심 스러울 정도였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사람이 참···. 사랑 하나 때문에 저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그래도 한때는 세레나한테 마음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확실히, 예전에 윤정철은 세레나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정운과 결투까지 했었다. 비록 반쯤은 자기 미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했던 결투이긴 하지만···. 그래도 실력적인 열세를 알면서도 정운에게 도전을 했을 정도로 세레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윤정철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다이앤하고 상당히 잘 돼서 이제는 이빨이 싹 빠져 버린 것이다. 얼굴만 다르면 예전하고 같은 사람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보영은 문득 자신의 옆에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항상 자신을 아껴주고 자신을 절대 배신할 일이 없는 남자···. 아마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남자일 것이다. ‘사랑 따위로···. 그런 형체 없는 막연한 마음 하나로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도·····.’ 이보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자신이 이제와서 마음을 열고 한 남자만 사랑하는 헌신적인 여자가 되는 모습은···. 사실 스스로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기에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너무 컸다. 작전을 구상하면 바로 시행 하는게 정운의 스타일이었다. 윤정철과 다이앤은 바로 엘라 왕국의 군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날아왔다. “자···. 일단 시끄럽게 해서 끌어내야 하는데, 내가 먼저 나설까요?” 다이앤의 말에 윤정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조심해.” “걱정하지 마요. 저 믿죠?” “············.” 애교 있게 윙크하면서 말하는 다이앤을 보며 윤정철은 그냥 쓰게 웃었다. 이 숫기 없는 대응에 보통 여자들은 불만을 표할만도 한데···. 다이앤은 오히려 이런 반응이 귀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상호간에 콩깍지가 제대로 끼었다고 할까? 어쨌든 행복한 커플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이 커플은 행복한 염장 커플이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조합의 강력한 커플이기도 했다. “간다!!!” 촤아아악!!!!! 다이앤의 몸이 한줄기의 빗살처럼 날아갔다. 그런 그녀의 이동에 공기가 가라지고 해수면에 비행기가 지나간 것 같은 길이 생길 정도였다. 다이앤, 그녀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영국 서버의 톱이자 같은 나라의 사람들에겐 여왕님이라고 불렸다. 물론 실제 영국 왕실과 큰 접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영국에 많고 많은 방계 혈통 중에 하나를 이었을 뿐이다. 사실 그 정도는 영국에 엄청 흔하다. 다만 그녀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영국팀원들이 그녀를 여왕폐하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 가지 웃긴 것은···. 그라운드 제로가 해방되고 그녀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오히려 영국 왕실에서 그녀를 명예 왕손으로 칭호를 격상한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손 꼽히는 그녀였고 무엇보다 가우리 내부에서 간부 직위에 있을 정도다. 실제 영국 내부에서 그녀의 인기는 전성기의 엘리자베스 영왕의 재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길거리에서 그녀의 험담이라도 했다간 극성팬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는게 최근 런던 거리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인기 있는 그녀이기는 하지만 사실 여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국 사람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월드 서버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여왕이라고 부르기는 했다. 단 그 의미가 달랐다. 그들이 부르는 여왕이라는 칭호는····. 그라운드 제로 최고의 스피드 퀸을 칭하는 것이었다. “흡!!!!.” 콰아아앙!!!! 고속으로 날아온 다이앤 여왕이 그대로 목표물에 적중했다. 인간 포탄과 같은 기세로 돌격한 다이앤 여왕의 공격은 거대한 괴수 세 마리를 한 번에 관통했다. 다이앤의 주력 유니크 기술은 세 가지였다. 그녀도 200레벨 이상의 유저인 이상 가지고 있는 기술은 무수하게 많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자신있게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은 세가지 정도 뿐이었다. 사실 메이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저는 그런 타입이다. 이민지의 정령술이나 한중겸의 테이밍처럼···. 고수가 되면 될 수록 한 가지 기술을 주력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최강의 잡캐라고 불리는 정운 역시 최고 주력 기술은 뇌신강림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가? 오히려 세 가지라고 하는 다이앤의 경우 좀 많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세가지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전투스타일에 조화롭게 녹아들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정령의 수호라는 스킬이었다. 정령의 수호 LV.MAX : 정령의 수호를 검에 깃들게 해서 모든 공격을 가르고 막아낸다. 적에게 주는 대미지는 늘어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공격을 검으로 베어낼 수 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베어낸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공격력 자체는 변화가 없지만 일단 베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상대의 공격도, 방어막도, 모든 것을 벨수 있다. 그야말로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경우는 그녀의 이 스킬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파우스트의 절대 보호막 말고는 그녀가 이 스킬로 베어내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엑셀이라는 스킬이었다. 그녀를 그라운드 제로의 스피드 퀸이라고 불리게 만든 것도 이 스킬 덕분이었다. 엑셀 LV. MAX : 공격 속도를 단계별로 상승 시킨다. 총 10단계의 기어가 있으며 최종 기어가 되면 속도는 10배로 빨라진다. 단, 가속의 후유증은 유저의 몸에 그대로 남게 된다. 이 스킬로 인해서 그녀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최강 최속으로 이름을 날렸었다. 뭐, 나중에 정운이 뇌광을 개발하면서 역전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 중에 그녀를 스피드로 이길 수 있는 것은 박정운 한 명 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는 그녀가 그라운드 제로 NO.2의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해양 괴수들의 사이를 종홍무진 누비기 시작했다. 쾅!! 콰앙!!! 쾅쾅!!! 뭔가 온다 싶으면 이미 그때는 해양괴수의 몸통을 무언가가 관통해 있었다. 정령의 수호가 깃든 공격력을 초음속으로 돌파한다. 그저 단단한 것을 초고속으로 박아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단순한 전략이었지만··. 이런 단순한 전략이 극치에 이르면 그야말로 최강의 정공법이 되는 것이다. 다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정운이 월드 서버에 막 올라왔을 때 보다 훨씬 더 강력해 졌다. 왜냐하면 이전과 달리 엑셀을 왕창 쓰고 있어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원래 정운이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전투 스타일은 맹수로 치면 치타였다. 초고속으로 사냥감을 덮쳐서 단 번에 목뼈를 부러트리는 치타지만···. 지구력은 없다. 엑셀의 경우 기본 스팩에서 단계별로 엄청난 가속이 가능해 지기는 하지만···. 그 가속의 후유증이 사용자의 몸을 찢어발기다시피 한다. 그래서 과거 그녀의 전투 스타일은 부하들의 뒤편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단 한 번으 돌격으로 적을 꿰뚫어 버리는 일격필살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정운과 사냥을 하면서 패왕신공이라는 세 번째 유니크 스킬이 그녀의 전투 스타일을 한 방 스나이퍼에서 본격적인 전위 가능의 전사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초패왕 항우를 잡고 얻은 패왕신공. 이것은 다이앤 여왕에게 돌아갔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34화 패왕신공(?王神功) LV.MAX : 초패왕 항우의 힘의 근간이 되는 내공법. 사용자의 모든 능력을 10% 상승 시키고, 마르지 않는 체력을 주어 만 명을 베어도 지치지 않는다. 레벨이 MAX에 달하면 패왕천멸격을 쓸 수 있다. 이 패왕신공은 유니크 스킬치고 그렇게 대박인 스킬은 아니었다. 사실 패왕천멸격이라는 스킬의 위력은 광역 파괴의 스킬로서 상당히 쓸만 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렇게까지 강력한 스킬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이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최고의 효과를 가져오는 스킬임에 틀림없었다. 패왕신공의 소유자는 말 그대로 마르지 않는 체력을 가져온다. 체력의 소비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데 레벨이 MAX에 달하고 나서는 아애 체력의 소비가 제로였다. 말 그대로 한 시간을 싸우든 열흘을 싸우든 설령 천년을 싸운다고 해도··. 다이앤의 체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는 것이다. 적에게 입는 데미지는 별개지만 스스로 일으키는 근육의 피로, 관절의 마모, 호흡의 한계점 같은 것은 이제 다이앤에게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고속 전투를 지속 할 수 있다. 정운의 뇌신강림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힘의 배분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 얼마나 대단하고 유용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스테미너에 한계가 없는 그녀는 이미 이전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았다. 다만, 아직도 약점이 있다면 모든 공격이 너무 직선적이라는 것일까? 일점 돌격을 강행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그녀였기에 대량의 적을 상대할 때는 종종 주변의 몇 마리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커버하기 위해서 하늘에 윤정철이 떠 있는 것이다. “템페스트 샷!!”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수천개의 화살이 융단 폭격이라도 하는 듯이 지면으로 쏟아졌다. 다이앤이 놓친 적들을 상대하는 것은 윤정철의 몫이었다. 그라운드 최고의 궁사인 그는 다이앤과 다리 철저한 후방지원이 특기였다. 물론 정운과 결투를 했을 정도로 일대일 대인 결투에서 써 먹을 스킬들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는 동료의 서포트를 세워서 후방에서 적을 공격하는 것이 특기였다. 다이앤의 전위, 윤정철의 후위. 이 두 가지 콤비가 가져오는 상승효과는 수십 배를 능가할 정도였다. “전하!! 폰토시오스를 불러야 합니다.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시저드리온은 부하의 보고를 받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버텨라!!! 더 이상 폰토시오스를 불렀다가는 사고가 날 지도 모른다.” “적이 너무 강력합니다. 한 명은 그림자도 잡을수가 없고 다른 한명은 저희들이 닿지도 않는 곳에서 강력한 공격을 나려 댑니다.” “·············.” 시저드리온은 망설였다. 사실 슬기의 예상은 정확했다. 어인족이 왕이라고 해도 킹 클래스의 대괴수인 폰토시오스를 그냥 막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릴 수 있는 시간과 회복의 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넘겼을 때에는 킹 클래스의 대괴수가 폭주를 할 수도 있었다. 태고종인 킹 클래스의 대괴수가 폭주한다? 그것은 실로 대재앙이라고 불러야 했다. 하지만 위에 있는 이인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엘라 왕국으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슬기와 이보영의 전투로 인해서 많은 전력이 깎여나간 엘라 왕국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제는 처음 보는 이인조가 작정을 하고 쳐들어오니 솔직히 말해서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시저드리온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최대한 빨리 쫒아내 버린다면···. 그렇다면 아직은 여유가 있다.’ 이제까지 슬기와 보영은 폰토시오스가 등장만 하면 바로 후퇴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믿은 것은 시저드리온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왔군? 저건가?” 해수면에 수십 개는 되는 무수한 머리가 일제히 솟구치는 것을 보고 다이앤은 중얼 거렸다. 다른 잔챙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느낀 그녀의 표정은 살짝 날카로워졌다. 폰토시오스는 나오자마자 그 날카로운 눈으로 다이앤을 포착했다. “크르르·····.” 다이앤 여왕은 소금쟁이처럼 바다의 표면에 살짝 서 있으면서 폰토시오스를 날카로운 안광으로 바라봤다. 사실 폰토시오스가 출연한 이 시점에서 그녀의 역할은 끝이었다. 하지만··. 미끼역할만 하고 뒤로 물러나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크라라라라라!!!!” 폰토시오스의 수십개나 되는 머리가 한꺼번에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으로 다이앤 여왕을 노렸다. 그 거대한 체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다른 잔챙이들은 죽어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그 거대한 체구로 다이앤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느려.” 폰토시오스의 육중한 공격이 닿기 직전에 다이앤 여왕의 몸이 한줄기 빗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 빗살이 폰토시오스의 목 두 개를 관통해 버렸다. “크르르···.” 수십개나 되는 목 중에 두 개긴 하지만 목이 두 개 터져 나가 버리자 폰토시오스의 살기가 숨김없이 흉폭하게 터져 나왔다. 그 살기만으로 주변의 수많은 괴수들이 기절하고 숨이 멎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살기가 넓은 망망대해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다이앤 여왕은 그런 지독한 살기를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담담했다. “잘 하면 되겠는데···.” 오히려 그녀는 다른 사람 손을 빌릴 것 까지도 없이 자신의 선에서 모두 끝내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녀의 레벨은 200이 약간 넘는 전도로 슬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추정 레벨이 300대 중반으로 평가받고 있는 킹 클래스의 대괴수가 상대면 사실 승산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그녀는 전투란 상대적인 요소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압도적이 파워는 굉장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느리고 치고 빠지기에는 아무런 무리도 없다. 단순히 상성으로만 놓고 보면 자신에게 최고로 잘 맞는 상대로 보였다. “해 볼까?” 그리고 다이앤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엑셀, 기어 8.” 피이이잉!!!!! 그리고 다이앤 여왕의 몸이 사라졌다. 그녀가 통상적으로 쓸 수 있는 최대급의 속도인 기어8의 초고속의 검무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엑실 기어는 10단계까지 있지만··. 9단계 부터는 그녀도 속도의 컨트롤리 잘 되지 않아서 단순한 직선 공격이 될 뿐이었다. 공격의 강약도 조절되지 않았고 실패했을 시의 리스크도 너무 커서···. 가능하면 8단계 이상으로는 잘 올리지 않았다. “···할 생각인가? 무리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하늘에서 다이앤 여왕이 폰토시오스에 도전하는 것을 보고 있는 윤정철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연인인 윤정철은 알고 있었다. 다이앤의 승부욕이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그렇지 않고서야 영국이라는 한 서버의 대표로서 월드 서버에서 팀을 이끌 수 있을리 없다. 다이앤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자 종횡무진 누비면서 폰토시오스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펑!!! 퍼퍼퍼퍼펑!!!!! 그야말로 초음속의 세계. 다이앤이 한 번씩 격돌 할 때마다 어김없이 폰토시오스의 수십개의 목 중에 한 두 개가 떨어졌다. 폰토시오스는 그 거대한 거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유려했지만····. 다이앤의 그림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만큼 스피드의 차이가 압도적인 것이다. “크라라라라라라!!!!” 짜증이 극에 달한 폰토시오스는 크게 울부 짖었다. 작디작은 존재가 살짝 지나갔다 싶으면 목이 떨어져 나가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수가 없었다. 크기로 비하면 폰토시오스의 천분의 일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다이앤이다. 보통 이정도 질량 차이면 폰토시오스의 입장에서 다이앤 여왕은 그냥 귀찮은 날파리 정도로 여길 정도지만····. 그 날파리가 자기 몸을 푹푹 관통하고 다닌다면 애기가 달라진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모기가 따끔하게 무는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모기가 사람의 팔 다리를 마구 관통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 모기가 될 것이다. 지금 폰토시오스에게 다이앤은 그런 존재였다. 수십 개의 목들이 대다수 떨어져 나가고 이제 남은 목은 하나 뿐이었다. “잘하면 되겠는데?” 다이앤은 기세가 올랐다. 전체적인 강함은 놀라웠지만 월드 서버의 보스몹들 만큼 특이한 능력이나 지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힘만 강한 괴수라면····. 레벨이 300이 아니라 500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지.’ 다이앤은 그렇게 생각하며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이앤의 공격이 폰토시오스의 목을 날린 순간····. “큭····.” “전하!!!!” 바닷속의 심해에서는 폰토시오스를 컨트롤 하고 있던 시저드리온이 고통이 신음했다. “하··. 한계다. 모두 도망····.” 시저드리온은 차마 부하들에게 최후의 한 마디를 남기지 못했다. 폰토시오스를 컨트롤 하고 있던 황금의 삼지창이 부러지면서 강력한 파동이 그를 산산조각으로 찢어 버렸기 때문이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상황이 급변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이앤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일격은 폰토시오스의 족쇄를 풀어냈을 뿐이었다. 다이앤은 한눈에 적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그녀가 날렸던 목들이 모두 멀쩡하게 돋아났고 등에는 날개까지 생겼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변한 것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었다. 좀 전에도 얌전한 눈빛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눈빛에서 뚜렷한 광기와 흉폭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읏····.” 다이앤은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차원이 달라진 살기에 전신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짜릿함에 전율했다. 좀 전과는 정말로 차원이 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스피드로 유유히 유린했던 상대이건만···. 지금은 감히 돌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돌격 하는 순간 죽는다. 라고 그녀의 본능적인 감이 계속해서 경고를 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폰토시오스는 이제까지 자신과 싸우고 있던 다이앤이 아니라 자신의 아군이었던 어인족 군단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눈에는 숨김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폰토시오스는 하늘로 높이 비상했다. 완전히 드러난 놈의 몸은 하반신은 작은 섬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거대했다. 번쩍이는 푸른 비늘과 날카로운 발톱의 사이에는 물 속에서 움직이기 유리한 물갈퀴가 존재했고, 거대한 체형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길고 두꺼운 꼬리는 놈의 전체적인 체형을 유선형으로 잡아주고 있었다. 그러 놈의 몸이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떠오른 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리고 떠오른 놈은 수십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스파크를 발생 시켰다. 파직··. 파지직···. “저건? 뇌전? 아니야 그런게·····.” 다이앤은 지금 폰토시오스의 입에서 방전되고 있는 푸른 기운을 보고 전격 계열의 공격인가 싶었지만 이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건 그냥 순수한 기운이다. 태고종이라고 불리는 저 폰토시오스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기운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다음에 이어질 것은 드래곤의 브레스와 같은···. “피해!!!!” “앗!!” 생각중인 다이앤의 허리를 채서 전력으로 도주하고 있는 것은 이제까지 머리서 지켜보고 있던 윤정철이었다. 그는 순간적이 감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다디앤을 데리고 도주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택지는 진정으로 탁월했다. “쿠워어어어어어!!!!!” 수십개의 머리가 동시에 푸른 광선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광선은 중간 쯤에 합쳐지더니 더더욱 굵은 광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다에 작렬하는 순간····.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35화 ------------!!!!!!!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강렬한 빛의 폭발이 소리라는 감각을 거의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핵 폭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폰토시오스의 브레스의 위력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서둘러 도망가지 않았다면 윤정철과 다이앤도 그 범위 안에 휘말렸을지 몰랐다. 워낙 강력한 공격에 바닷물이 대향으로 증발하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수증기가 생겼다. “도대체 이건····.” “과연···. 민지 누님이 일대일로는 못 이긴 이유를 알겠군.” 수증기가 어느 정도 걷히고 둘에게 보인 것은 새까맣게 타버린 지면이었다. 그렇다. 틀림없이 망망대해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지금 둘의 눈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지면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폰토시오스의 강력한 특대 브레스는 자신 바닷물을 싹 날려 버리고 그 밑에 바닥이 보일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한 방에 어인족의 99%가 모두 죽어 버렸다. 과연 태고종, 과연 킹 클래스의 대괴수. 이제까지 다이앤이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 힘이 봉인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저런 괴물딱지가 이제야 힘을 되찾은 거지?” “저야 모르죠····.” 윤정철도, 다이앤도 당연하지만 사정은 몰랐다. 사실 이 둘이 모르는 사정을 설명하자면··. 시간을 좀 오래전으로 돌려봐야 한다. 어인족들이 퍼트린 폰토시오스의 전설은 사실 가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대량 각색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원래의 역사는 좀 다르다. 사실 킹 클래스의 대괴수들은 새끼를 만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어떤 종이던 번식을 위해서는 같은 종이 최소 암수 한 쌍이 있어야 번식이 가능하다. 단성생식이 가능한 생물도 세상에 있기는 하지만 킹 클래스의 대괴수들 사이에서는 그런 종류는 없었다. 태고 적 부터 존재했던 킹 클래스의 대괴수에게 그런 놈들이 있었다면 진작 세계를 뒤덮었을 것이다. 그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자유롭게 지낸다. 그게 태고종이자 킹 클래스의 대괴수라는 존재들의 존재의의였다. 사실 파우스트 역시 킹 클래스의 대괴수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이 세계의 모든 전력을 자기 통제하게 두어야 먼 미래에 있을 전쟁에 유리하다. 그러니 신탁이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에게 이계는 적이다. 라는 생각을 심어두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지성도 없는 대괴수를 만들어서 어디에 써 먹는단 말인가? 사실 킹 클래스라고 불리는 대괴수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희생된 수많은 괴수의 영혼들의 사념이었다.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단, 그라운드 제로라는 재료를 향해서 만들다 보니 필요한 것은 만들고 남은 것이 바로 이 괴수들이었다. 즉, 파우스트가 어쩔 수 없이 만든 이레귤러. 그것에 대괴수였다. 하지만··· 종종 피조물들은 창조자의 예상을 뛰어 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창조주인 파우스트는 그냥 대괴수를 강력하지만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창조했을 뿐인데··. 피조물이 어인족이 킹 클래스의 대괴수인 폰토시오스를 사로잡은 것이다. 비록 그 방법이 상당히 비열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분명히 말해서 폰토시우스에게 새끼는 없다. 단, 그건 어디까지나 생물학적으로의 얘기다. 가끔 야생에서는 이레귤러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자기 새끼가 아닌데도 다른 동물의 새끼를 자기 새끼로 착각해서 키우는 그런 경우가 말이다. 뻐꾸기의 탁란과 같은 경우긴 하지만 뻐꾸기가 아니라도 종종 그런 일이 벌어지고는 하는 법이다. 비록 그 대부분은 중간에 서로 다름을 알고 헤어지거나 어미가 새끼를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다. 폰토시오스에게 일어난 것도 그런 일과 같았다. 상처 입은 인어 한 명을 발견한 폰토시오스는 어째서인지 그 인어를 향해서 보호본능을 품게 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원래 야성이라는 것이 어디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니 설명을 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지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 킹콩의 실사판 같은 경우라고 할까? 어쨌든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상처입고 빈사 상태였던 인어는 정신을 차리고 나자 깜짝 놀랐다. 바다의 수호신이라고 알려졌던 폰토시오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당황했던 그 인어는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폰토시오스가 자신을 새끼처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 것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그 인어가 부상을 입었던 것은 사랑싸움 때문이었다. 사랑에 열정적인 어인족 답게 한 머맨을 두고 두명의 인어가 대립했다. 그리고 그녀는 상대 인어와 싸우다가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폰토시오스의 힘만 있다면 복수는 물론이고 사랑을 손에 넣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폰토시오스를 자신의 뜻대로 부리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그 인어는 차분하게 폰토시오스를 관찰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원래 오크족들과 어인족은 괴수들을 다루는 선천적인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강력한 괴수를 다룰 수 있느냐? 라는 것은 개개인에게 중요한 능력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어인족이라고 해도 파우스트조차 이레귤러로 여기는 폰토시오스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 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래대로라면····. 이라는 경우였다. 보통 폰토시오스의 곁에 가면 모두 잡아 먹히니 테이밍은 물론이고 관찰하는 것도 불가능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폰토시오스가 먼저 마음을 열고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충분한 기회가 있는 셈이다. 조바심 내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곁에서 폰토시오스를 관찰하던 그 인어는 결국 폰토시오스의 영혼의 일부를 채집하는 것에 성공했다. 어인족이 괴수를 컨트롤 하는 방법은 괴수의 영혼의 일부를 채집해서 그 영혼에 자신의 피와 살을 섞어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 도구를 이용해서 해양괴수를 다루는 것이 어인족의 비결이었다. 보통 인어의 경우 머리장식이나 팔찌 같은 장식품인 경우가 많았고···. 머맨의 경우 칼이나 창 같은 무기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인어의 경우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무기의 형태로 만들었다. 시저드리온이 가지고 있던 황금의 삼지창. 그것이 바로 폰토시오스를 다루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그 후 그 인어는 폰토시오스를 이용해서 원하던 머맨을 손에 넣었고 어인족 전체를 통합했다. 그리고 그 인어의 자식들은 대대로 황금의 삼지창을 물려 받으며 폰토시오스를 부려온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폰토시오스는 자신이 이용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혼의 일부가 잡히면서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하기는 했지만 폰토시오스의 안에는 어인족을 향한 분노가 천천히 그리고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새끼인 줄 착각했던 인어 때문에 애매했지만 그 인어가 죽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강제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시저드리온이 미처 한계가 넘었고 마침내 폰토시오스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제까지 자신을 부려먹었던 어인족들을 몰살 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폰토시오스는 브레스 한 방으로 엘라 왕국의 군대를 박살내 버렸다. 그리고 유유히 날아서 자신의 바다로 돌아가려고 했다. 좀 전에 싸웠던 다이앤은 이제 폰토시오스의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폰토시오스의 머릿속에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바다에서 어인족들을 싹 전멸 시켜 버려야 겠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렇게 유유히 날아서 어인족의 본거지인 엘라 왕국으로 날아가는 폰토시오스의 앞을 한 명의 남자가 가로 막았다. “좀 상황이 예상하고는 다르지만···.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는 법이지.” 폰토시오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눈앞의 인간따위는 마차를 가로 막는 사마귀만도 못한 벌레나 다름 없었다. 한입에 집어 삼키고 그냥 갈 길을 가려고 하는 그 순간····. 화아아아악!!!!!! 그 남자의 전신에 황금빛 뇌전이 은은하게 서렸고 동시에 엄청난 존재감이 사방을 뒤덮었다. “자···. 나하고 좀 놀아볼까?” 당연하지만 폰토시오스를 가로 막은 것은 가우리의 수상인 박정운이었다. 정운이 당초 생각했던 계획은 폰토시오스를 어인족들과 좀 떨어트린 다음 거기서 잡아내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폰토시오스와의 전투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그런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당초의 계획과는 크게 달라졌지만 지금 폰토시오스는 홀몸이다. 이 킹 클래스의 대괴수가 어째서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어인족을 싹 날려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 정운이 전력을 다해서 한 판 붙는 것에 걸림돌은 없었다. “크르르르····.” 폰토시오스는 정운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느끼고 이를 드러내며 경계했다. 그런 놈을 보며 정운도 어깨를 붕붕 돌리며 허공에서 자신의 분신인 그림자 무장들을 소환하며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이 세계에서 제 컨디션으로 전력을 다하는 것은 처음인가?” 이번에 크롱크 왕국에서 약간의 위기 상황이 이었기는 하지만 그건 그림자의 무장이 없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림자의 무장이 돌아온 후에는 정운의 컨디션이 그렇게 정상이 아니었으며··. 또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운의 컨디션은 절정이었고···. 그런 정운이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대가 눈앞에 있었다. “그럼···. 해 볼까?”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정운과 그림자의 무장들이 동시에 폰토시오스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폰토시오스 역시 그런 적을 향해서 빼지 않고 앞으로 전진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양측의 첫 격돌만으로도 이미 세상이 갈라지는 것 같은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시작했나 보군.” 한중겸은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폭발하는 굉음을 보며 중얼 거렸다. “예··. 우리는 정말 여기 있어도 될까요?” 슬기는 정운이 혼자 폰토시오스를 상대한다는 것이 몹시 불안한 듯 했다. 한중겸은 그런 슬기를 안정시키며 말했다. “다름 아닌 정운이니 걱정할 거야 없겠지.” “하지만 굳이 일대일로···.” 슬기는 여전히 정운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녀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기껏 전력에 여유가 생겼는데 굳이 정운이 일대일을 고집하는 이유를 말이다. 하지만 한중겸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런 슬기를 달래듯이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에 이유가 있는 거야. 기껏 전력의 비교를 해 볼 수 있는 대상이 나왔으니 정운이 놈도 최대한 정보를 모으고 싶을 테지.” 항상 가벼운 이미지의 한중겸이지만 그는 의외로 속이 깊었다. 정운이 폰토시오스와 일대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정운의 속셈을 알았다. 가우리가 이 신세계에 출범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 대륙의 세력들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알게 된 이 세계의 정보 중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은 아직도 수수깨끼 덩어리였다. 다만 최근에 이민지의 합류로 인해서 알게 된 것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다크니스 왕국에는 지금 이민지 보다 강한 적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다크니스 왕국에 박정운, 박추성, 배대호라는 가우리 최강의 삼인보다 더 강한 적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 이 정보는 확정이 아니다. 이민지가 강해진 것은 사실이고 그 힘은 아마도 정운과 거의 접근할 정도일 것이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감은 직감일 뿐이다. 본격적인 전력의 비교를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민지와 정운이 전력을 제대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타입이 다르기도 하지만 둘이 목숨을 걸고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운이나 이민지 정도의 고수가 되면 그 힘의 비교는 어지간한 간 보기식의 대련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정말로 목숨을 걸고 전력으로 싸워본 후에야 답이 나올 수 있는데···. 정운과 이민지가 정말 그렇게 격돌했다가는 십중팔구는 둘 중에 하나가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그러니 정운이 제대로 자신의 힘을 이 세계에 가늠해 보고 싶다면 그 상대는 두 가지 조건을 클리어해야 한다. 하나는 정운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을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죽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확고한 적일 것. 폰토시오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었다. 더구나 이민지가 과거 킹 클래스의 대괴수와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것 까지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은 비교 대상은 없었다. ‘유일한 문제점이라면 폰토시오스라는 대괴수가 너무 강해서 정운이 놈이 위기에 처했을 때인데···. 그때는 내가 막아내야겠지?’ 한중겸은 평소의 가벼운 모습일 때와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집중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가우리에 정운이 죽으면 모든게 끝이 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적으로 한중겸과 정운은 형제처럼 형님 동생 하는 사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한중겸은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정운을 살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전에 정운이 폰토시오스에게 이기면 그게 가장 좋기는 하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36화 <전투의 결과> 콰아아앙!!!! “크윽···. 지랄 맞게 단단하군.” 정운은 자신의 뇌신강림 상태에서 가한 기마 차지를 정면으로 맞고도 관통당하지 않은 폰토시오스외피를 보고 경악했다. 다이앤이 정령의 가호에 힘입어서 폰토시오스의 몸을 꿰뚫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폰토시오스가 어인족에게 부려지며 힘을 제약 당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지금처럼 완벽하게 자기 힘을 되찾은 상태라면 다이앤은 돌격하는 와중에 놈에게 걸릴 지도 몰랐다. “크라라라라라라!!!!” 퍼퍼퍼퍼퍼퍼퍼펑!!!! 잠시 물러난 정운에게 폰토시오스가 수십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브레스를 뿜었다. “제길···.” 정운은 흑토의 배를 차면서 화려하게 비상해서 적의 공격을 피했다. 전투를 시작한지 2시간 정도 지났지만 정운은 서서히 승패의 행방을 알아가고 있었다. 킹 클래스의 대괴수이자 태고종이라고 불리는 폰토시오스는 정말 강했다. 육중한 거구에서 나오는 파워와 정운의 뇌신강림 상태마저 어느 정도 따라오는 경이적인 스피드. 수십 개의 머리가 가져오는 다각도의 시야는 사각도 없었고 감각도 예민해서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림자의 무장들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빈틈을 만든 후에 간간히 한 방씩 먹이고는 있었지만··. 그래봤자 너무나 강력한 외피의 방어력에 큰 대미지는 없는 것 같았다. 무수한 전투를 경험했던 정운은 알 수 있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정타를 못 날리겠어.’ 문제는 이거였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보스몹은 어떤 보스몹이라고 해도 결국은 HP. 즉, 체력 게이지가 한정 되어 있었다. 설령 이쑤시개로 찌른다고 해도 맞기만 하면, 그 이쑤시개로 찌른 대미지 만큼은 대미지가 생성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니 동료들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갉아가는 듯한 전투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차츰차츰 죽여가는 사냥법은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정석이고 기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상대하고 있는 폰토시오스는 게임 시스템의 몹이 아니라 엄연히 살아있는 대괴수였다. 즉, 이 놈에게 아무리 깔짝깔짝 거린다고 해 봤자 대미지가 중첩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인간으로 치면···. 보통 안마의자에서 맞아 죽는 인간은 없지 않은가?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가뜩이나 히드라종인 폰토시오스는 체력과 재생력도 월등했다. 힘이 봉인 됐을 때 다이앤이 날려 놓은 목들이 이미 다 재생한 것을 보면 알겠지만···. 어설픈 대미지를 입혀서는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한데? 어떻게 할까?” 사실 어떻게 할까? 라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정운에게 있어서 최강의 일격이라고 하면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진정한 최강. 절대적인 최속. 빛을 초월하고 시간을 뒤로 하는 일격 필살의 일격. “뇌광을···. 쓸까?” 아마 폰토시오스의 막대한 방어력을 생각하면 그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레일건의 원리를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단계는 이미 진작에 지났다. 정운의 뇌광이 가져오는 속도는 실제 레일건 따위가 견줄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그게 들어가면 절대로 한 방에 끝날 것이다. 단, 문제는 그 기술을 사용 할 틈을 폰토시오스가 잘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투 중에 몇 번인가 사용하려고 했었지만 그때마다 폰토시오스가 정운에게 달려들어서 그 공격을 쓰지 못하게 했다. 뛰어난 지능이 있는 놈은 결코 아니었다. 정운이 조금 싸워보니 알았다. 상대는 말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성 자체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인간에는 못 미친다고 해야 할까? 폰토시오스의 지능은 아마 개보다 조금 좋고 침팬지 보다 약간 나쁜 수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큐가 높든 낮든 야생의 동물들은 본능적인 전투 센스를 타고 나는 법이다. 마치 사자가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어떻게 이용해야 아는지 감각적으로 아는 것처럼 말이다. 폰토시오스의 야생의 감은 정운이 뇌광을 쓰려고 할 때마다 격렬한 경계경보를 울렸다. 저건 막아라. 저건 위험하다. 정운이 뇌광을 쓰려고만 하면 폰토시오스의 머릿속에는 경계경보가 왱왱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미친 듯이 정운에게 브레스를 날려서 그 공격 자체를 못하게 했다. 그림자의 무장들이 대신 뇌광을 쓰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쯧, 머리가 수 십 개가 아니라 하나 였으면 어떻게 빈틈을 만들었을 텐데··. 이건 좀 어려운 걸?”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정운의 곁으로 조운이 다가왔다. -주군. 이대로 소모전을 계속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그걸 누가 몰라?” 약간 짜증 섞인 정운의 목소리에 조운은 충직하게 조언했다. -신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무슨 생각?” 답이 보이지 않는 수렁 속에서 조운에게 계책이 있다고 하자 정운은 어쩐지 그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조운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계획을 말했다. 그리고 조운의 충고를 모두 들은 정운은·····. “가능해···. 잘 만 하면 말이지.” -그렇습니다. “·····모두 들어!! 지금부터 조운이 세운 계획대로 간다.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정운이 외치자 그림자의 무장들이 일사분란하게 대답했다. 계획을 일일이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정운과 감각적으로 연결된 자들이 그림자의 무장들이자. 정운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 끝을 봐 보자. 폰토시오스.” 정운은 우선 그림자의 무장들을 모두 역 소환 했다. 그리고 정운의 주변에 수십 개의 뇌전의 거검들이 생겼다. “자···. 작전 스타트다.” “크르르르···.” 폰토시오스는 정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가랏!!!” 퍼퍼펑!!! 우선 황금의 거검이 다섯 자루 정도 폰토시오스에게 날아갔다황금빛 뇌전으로 이뤄진 20미터 짜리 거검은 한 자루 한 자루가 사실 작은 산도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이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공을 맞고도 폰토시오스는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크라라라라라라!!!!!!” 수십개의 머리로 정운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는 듯이 날아오는 폰토시오스를 보면서 정운은 이를 갈았다. “제길···. 하여튼 튼튼하다니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황금의 거검을 날렸다. 쾅!!! 퍼어엉!! 퍼펑!! 정운의 공격이 맞을 때마다 폰토시오스는 뒤로 살짝살짝 뒤로 밀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대미지를 입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맷집도 강하지만 무엇보다 외피의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강력하다는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이런 탄탄함을 보였다면 다이앤의 특공 공격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다이앤의 기술인 정령의 가호는 무엇이든 베어 낼 수는 있지만 공격력 자체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마법 실드나, 특수 장벽 같은 것들은 대부분 베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물질 자체가 단단한 것을 베어버리기 위해서는 결국 다이앤 본인의 공격이 그 물질의 강도를 추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이앤의 공격력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베어낼 수 없는 물질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 폰토시오스의 외피는 그 거의라는 영역 안에 들어가는 물질인 것이다. 쾅쾅!! 콰앙!!!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 정운의 반복적인 공격이 계속 이어지자 폰토시오스는 흉성을 터트리면서 정운을 거칠게 공격했다. 육탄적인 공격과 간간히 쏟아지는 브레스···. 엘라 왕국의 군단을 한 번에 날려버린 수십개의 머리가 한꺼번에 날린 브레스는 아니었다. 그냥 머리 하나하나가 따로 날리는 브레스였지만, 이것도 만만히 보고 그냥 몸으로 때울 수준의 공격은 아니었다. “크아아앙!!!!” “크윽!!!” 정운은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폰토시오스의 공격을 피하면서 위협을 느꼈다. 사이즈 때문이라도 저 무시무시한 이빨에 씹혀 버리면 좋게 빠져나오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놈의 이빨이 닿는 다는 것은 시나리오가 조운이 세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점점 내 공격은 신경쓰지 않고 오는군···.’ 결정적인 파괴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폰토시오스는 정운의 공격을 무시하고 무작정 돌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여기까지는 정운이 계획한 대로였다. ‘일 단계 클리어. 2단계로 진행해 볼까?’ 지금 정운에게 남은 황금의 거검은 20자루 남짓. 정운은 그걸 한꺼번에 날렸다. “크아앙!!!!!” 폰토시오스는 이미 그 공격이 자신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냥 무시하고 격돌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운이 노리고 있던 부분이었다. “확산!!!” 황금의 거검이 폰토시오스에게 격돌하기 직전에 정운은황금의 거검들을 터트려 버렸다. 그냥 터트려 버린게 아니라 강력한 섬광을 발하는 것처럼 터트려 버린 것이다. “크와아아앙!!!!!” 강력한 섬광에 폰토시오스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역시··. 제대로 먹혔구나.’ 정운은 섬광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운이 전투 중에 폰토시오스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것은 폰토시오스가 눈이 무척 좋다는 것이다. 바닷속에서 사는 생물은 시력이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이 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무척 좋은 시력을 지니고 있었다. 수십 개가 되는 머리로 사방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도 그 좋은 시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좋은 눈을 활용하기 위해서 근거리에서 섬광을 터트린 것이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정운은 그림자의 무장들을 다시 소환했다. “지금이다!!! 날려 버려!!!”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다시 나타난 그림자의 무장들을 폰토시오스를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콰앙!! 시야의 상실로 인해서 기민한 움직임이 사라진 폰토시오스를 그림자의 무장들의 공격에 고통스러워 했다. -먹어랏!!!! -터트려 버리겠다!!! 외피가 경악할 정도로 단단한 폰토시오스이긴 하지만 시각을 상실한 지금이라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눈이라던가? 벌리고 있는 입 안이라던가···. 안면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폰토시오스에게 대미지를 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으오오오오오!!!! -터져라!!!!! 그림자의 무장들 중에는 대담하게 폰토시오스의 입안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터트려 버린는 자들도 있었다. 여포가 자신의 방천화극으로 폰토시오스의 눈알을 뚫어 버렸고 관우의 청령언월도가 양 눈을 모두 도려내 버렸다. 아무리 히드라종이라서 재생력이 강한 폰토시오스지만···. 이런 고통 자체가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킹 클래스의 대괴수라는 절대강자로 태어난 폰토시오스는 그렇게 고통에 익숙하지 못했다. “크라라라라라라라!!!!” 결국 폰토시오스는 발광을 하듯이 수십개의 머리를 휘둘렀다. -읏!!!? -피해라!!! 발악적으로 허공을 씹어 버리는 폰토시오스의 어금니에 몇몇 그림자의 무장들이 걸렸다. 정운이 다시 소환하면 얼마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 큰일은 이제 폰토시오스에게 벌어질 참이었다. 파직···. 파지직···. “좋았어!!!” 정운은 전투의 현장에서 한참 멀어진 장소에서 뇌광을 준비하고 있었다. “갔다 박아버리겠다.” 피이이잉!!!! 피아노 현을 튕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온몸에 힘을 다 모은 정운은 그대로 한 줄기 빛살이 되었다. 공기의 거스름조차 없는 속도로 폰토시오스에게 격돌한 정운은 작은 빛살이 되어서 폰토시오스의 거체를 그대로 관통했다. 그리고 정운이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는···. “크···. 크르르르····.‘ 거대한 몸 뚱아리에 지름이 5미터는 될 법한 큰 구멍이 난 폰토시오스가 그대로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터어어어어엉!!!! 그 거대한 거체가 바다에 덜어지자 높은 물보라가 일어났다. 그리고 놈의 몸은 물 위에 둥둥 떠서 파도에 서서히 흔들릴 뿐이다. ============================ 작품 후기 ============================ 요즘 후기가 너무 조용하죠? 허리가 아프다 보니 본편 쓰기 바빠서...ㅠ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37화 <너무나 뜻 밖의 상황> -수고 하셨습니다. 주군. -승리를 축하합니다. 주군. 그림자의 무장들은 정운에게 와서 승리 축하의 인사를 올렸다. “됐어. 사실 이번에는 조운의 전략이 잘 먹힌 거지. 고맙다 조운.” -도움이 되셨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운은 겸손하게 감사를 했다. 그리고 아직도 미약하게 숨이 붙어있는 폰토시오스의 몸을 보면서 말했다. -주군, 직접 숨통을 끊으시겠습니까? “아니. 아직 살아있다면 죽이는 것 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지.”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때 정운의 옆으로 다른 가우리의 동료들이 다가왔다. 가장 먼저 한중겸이 정운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용케 이겼더구나.” “운도 좀 따랐고···. 이래저래 고생 좀 했습니다.” 정운의 말에 슬기는 원망 섞인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 왜 일대일을·····. 걱정 많이 했어요.” 그런 슬기의 책망에 정운은 변명하지 않고 그냥 쓰게 웃으면서 짧게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이보영은 새삼 놀랐다는 듯이 감탄 섞인 눈으로 정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운이 네가 전력으로 싸우는 건 오랜만에 보는데?” “가우리에 들어오면 자주 볼 걸요?” “됐다. 뭐 그리 좋은 구경거리라고····.” 궁시렁 거리는 이보영을 보고 정운은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슬기의 위기 상황일 때 조건 없이 도와준 그녀가 고마웠다. 아마 이번 일로 그녀도 조금 가우리에 가까워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거슨 포토시오스의 처우였다. 이제까지 한껏 어인족에게 이용당한 놈에게는 불행일지 모르겠지만···. 정운은 이 정도의 전력을 그냥 포기 할 생각은 없었다. “형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딱 알맞게 빈사상태로 만들어 놨구나.” 한중겸은 숨이 끊어 질랑 말랑 한 폰토시오스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한중겸의 유니크 스킬인 테이밍이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이다. 사실 어떤 의미로 보면 이 가우리에서 최강의 전력을 지닌건 한중겸일지도 모른다. 한중겸 본인의 실력은 박정운이나 연인인 이민지에게 당하지 못하지만···. 그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를 모두 다 합한다면 그 전력은 절대 무시 못할 수준이다. 거기에 지금 정운과 거의 호각을 다퉜던 폰토시오스까지 함께 한다면···. 한중겸의 자체 전력은 가우리 내부에서도 톱으로 쳐야 할 지도 모른다. 보통의 조직에서는 이렇게 밑에 있는 자에게 힘이 집중되는 것을 톱에 있는 지도자가 못마땅해 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정운과 한중겸은 피보다 더 진한 전우애와 브로도로 맺어진 사이다. 뭐···. 브로도의 경우 좀 일방통행적인 느낌의 커무니케이션이긴 하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정운은 한 점의 의심도 없이 한중겸이 폰토시오스를 가우리의 전력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중겸은 폰토시오스의 거체를 향해서 손을 내밀고 말했다. “테이밍.” 그리고 그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나와서 폰토시오스를 부드럽게 휘감았다. “····음?” 순조롭게 폰토시오르를 테이밍 하던 한중겸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형님, 왜 그래요?” “아니···. 평소하고는 좀 느낌이 다른데? 이건 꼭··. 내 힘이 빨려들어가는··· 큭!!!” 한중겸의 표정이 심각해 졌다. 테이밍 중에 이질감을 느끼고 스킬을 일단 멈추려고 했는데···. 그럴 틈도 없이 막대한 힘이 계속해서 빠져 나가는 것이다. “형님!!!!?” “오바버니!!!?” 동료들은 한중겸을 크게 부르며 깜짝 놀랐다. 이런 상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운은 이 상황을 가장 빨리 해결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이 놈!!!!” 한중겸에게 생긴 이상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폰토시오스를 테이밍 하다가 생긴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되는 폰토시오스를 죽여 버리면 되는 것이다. “흡!!!” 정운은 단 번에 폰토시오스를 끝장내려고 했지만 그보다 한 발 먼저 폰토시오스의 전신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폰토시오스의 거체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12살 정도 되어보이는 푸른 머리의 작은 소녀만이 존재했다. “·····어?” 이 순식간의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정운은 어떨결에 그만 멈춰 버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소녀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깊고 푸른 눈동자를 하고 정운을 빤히 바라봤다. “·············.” “·············.” 둘은 그렇게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 소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아빠!!!”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흘러내릴 것 같은 푸른 머리카락. 그리고 대조되는 하얀 피부와 여름의 태양을 연상하게 하는 천진하고 환한 미소는 헐리우드의 아역 배우들보다도 훨씬 더 사람을 끌어 들이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녀는 가우리의 간부들을 싹 혼란으로 몰아 넣었다. “아빠라····. 슬기야? 너 낳은 기억 있니?” 이보영의 장난기 섞인 질문에 슬기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있어 보이나요?” 이보영은 이 사태가 재미있는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금 더 신서울에 남아서 상황을 지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재미있어 하는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한중겸도 웃으면서 슬기를 놀렸다. “모르지···. 정운이 자식 혹시 숨겨둔 자식이라도···.” “정운이가 오라버니에요!!?” “아니··. 왜 나한테····. 미안. 입 다물게.” 한중겸의 장난에 슬기는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평소와 다르게 확실히 신경질 적인 슬기의 태도에 다른 간부들도 조금 조심스러워 졌다. 평소에는 착하고 순한 이미지였던 슬기였는데 지금의 슬기는 엄청나게 날카로웠다. 사실 다른 간부들도 알고 슬기도 알고 있다. 그 푸른 머리카락의 여자애는 사실 폰토시오스가 변한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상황을 따지고 보면 딱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왜 정운씨를 따르는 거죠? 테이밍 한 건 중겸이 오라버니잖아요?” 슬기의 말에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나도 몰라···. 사실 테이밍은 실패로 돌아간다 싶었거든. 그런 사태가 생긴 건 처음이야.” “··········.” 본인이 모른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슬기도 더 따지고 들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한중겸은 자신의 추론에 가까운 생각을 말해다. “아마 정운이를 따르는 것은 처음으로 본게 정운이기 때문이겠지. 야생의 각인이라는 건가?” 한중겸의 말에 옆에서 이보영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정운이가 타고난 로리콘이라고 그런건지도 모르죠.” “파하하하···. 그거 말··· 이 안 된다. 넌 왜 그렇게 말을 하니?” 동의하기 직전에 슬기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그냥 꼬리를 말아 버리는 한중겸이었다. 그렇게 간부들이 있는 회의실에 정운이 들어왔다. “저 놀리는게 참 재미있나 봅니다.” 힘이 잔뜩 빠진 목소리로 말하는 정운을 보고 한중겸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렇지 뭐···. 네 딸내미는 어떻게 됐냐?” “제 딸 아니거든요?” “널 아빠라고 하잖아? 뭐 그렇게 따지고 그래?” 정운은 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한중겸에게 말했다. “····자고 있습니다. 애 재우는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처음 알았네요.” 그 푸른 머리카락의 여자애는 정운이 약간만 떨어지려고 하면 앵앵 울어댔다. 그래서 정운이 계속 붙어 있어야 했고, 정운은 간신히 그 애를 재우고 나서야 이렇게 회의실에 합류한 것이다. “갑자기 애 아빠가 된 기분은 어때?” “시끄러워요.” 정운은 한중겸을 쏘아 붙인 다음 한 숨을 쉬면서 말했다. “자···. 일단 상황을 정리해 봅시다. 우선 저 애···. 아직 이름은 없지만 쟤는 틀림없이 폰토시오스가 인간화 된 거죠?” 정운의 말에 이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마 그럴걸? 상황으로 봐도 그렇게 밖에 생각 할 수밖에 없잖아?” “그렇군요···. 민지 누님. 혹시 이 세계의 역사상 킹 클래스의 대괴수가 어린애로 변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나요?” “아니, 없어.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없지.” 이민지는 이 세계에서 고엘프라는 종족으로 태어나서 수 만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킹 클래스의 대괴수와 싸워본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무승부였고 끝장을 보지 못했다. “역사상 킹 클래스의 대괴수가 죽는 모습은 몇 번 봤어. 주로 같은 킹 클래스의 대괴수끼리의 영역 다툼에서 벌어진 일이었지.” “주로? 그럼 다른 경우도 있나요?” “응. 다크니스 왕국의 영역에 들어갔을 때.” “그렇군요····.” 정운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다크니스 왕국의 힘은 지금의 가우리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가우리 역시 킹 클래스의 대괴수를 잡을 여력은 있다. 이번에는 정운이 일대일로 잡아내기도 했고, 좀 더 안정적으로 잡아내자면 간부들을 다수 동원하면 좀 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크니스 왕국에서 킹 클래스의 대괴수를 어떻게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우리와 더불어서 이 대륙에서 유일하게 킹 클래스의 대괴수를 잡을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한 나라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하긴···. 민지 누님을 일대일로 이긴 놈도 있다고 했으니까····.’ 정운은 일단 다크니스 왕국은 잠시 제껴두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크니스 왕국이 아니라 자신의 방에 누워 자고 있는 어린애였다. “원래 제 목적은 킹 클래스의 대괴수를 쓰러트리고 가능하면 중겸이 형님의 능력으로 길들여서 우리 전력으로 삼고자 하는 거였죠.” “그랬지. 그리고 길들이는 것은 성공했잖아?” 그렇다. 정운을 아빠 아빠 하면서 따르는 것을 보면 길은 확실하게 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 하면····. “저 대로는 전력이 안 되요. 그리고 왜 어린애로 변했는지도 마음에 걸리고요.” “음····. 그거야 그렇지····.” 의문이 너무 많았다. 테이밍 중에 갑자기 어린애로 변한 이유가 무너지는 테이밍을 한 한중겸 본인도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박추성이 입을 열었다. “혹시 대호가 연구를 해 보거나 천계쪽에 연락을 해 보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박추성의 말에 정운은 그럴 듯 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엘.” “예. 수상각하.” “천계쪽에 저 아이에 관해서 보고는 했어?” “예. 이미 했습니다.” “그래, 그럼 그쪽에서도 이 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혹시 연구차 필요하면 잠시 천계에 데리고 가서 연구해도 좋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칼 같이 단호한 정운의 태도에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너무 하는 것 아니야? 너하고 잠시만 떨어져서 빽빽 우는 애를?”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최악의 경우 이게 파우스트의 함정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음····.” “천계쪽에 넘기면 최소한 파우스트와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판별이 날 테죠. 그때까지는 좀 칼같이 선을 그어 두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 내 딸내미는 아니니 알아서 해라.” “예. 그럴 겁니다.” 정운은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겉보기에는 철없고 연약한 어린애로 보이지만 상대의 실체는 수 만년을 살아오면서 바다의 수호신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최강자였다. 일대일로 붙으면 정운 자신도 애 먹을지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이긴 것도 힘의 우위라기 보다는 전략을 잘 세워서 이겼다고 보는게 정확한 평가였다. ‘절대 방심은 할 수 없지····.’ 정운은 그렇게 결심을 다졌다. 비록 그 다음날에 그 소녀가 침대 시트에 지도를 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방심은 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이거 예상하신 분은 제 머리속에 뭔가 심어 뒀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38화 <백화점에 찾아간 모녀> 몇 주 후····. “아빠아아아아아아·····.”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정운에게 뛰어온 여자 아이는 그대로 테이크 다운이라도 할 심산인지 강렬하게 정운에게 안겼다. “아빠···. 아빠 나빠···. 잉잉·····. 아빠 나빠····.” “··········.” 누가 보면 생이별 한 부녀가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아버지 역인 정운이 몹시 어색하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결과는?” 정운은 그런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고 미하엘에게 말했다. 천계에 이 아이를 인계해서 혹시 모를 파우스트의 잔재가 남아있는지 철저하게 검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제 나왔을 것이다. “천계쪽의 판단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 이상이? 정말?” “예. 확실히 신체의 내부에 상당한 힘을 숨기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 12살짜리 정도의 어린애의 힘만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신 연령은 그 반인 여섯 살 정도에 불과하고요.” “힘세고 고집 센 어린애란 말인가·····.” 정운은 한 숨을 내쉬면서 손을 들어서 이 어린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쨌든 이제 경계할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정운은 아이를 때어내며 말했다. “자, 이제 좀 떨어지자.” “싫어!! 아빠 또 날개 달린 이상한 애들 잔뜩 있는데 보내려고 하지? 거기 가기 싫어!!!” 자는 중에 몰래 천계로 보냈더니 그게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단단히 틀어박힌 불신의 오로라를 보면서 정운은 한 숨을 내쉬며 미하엘에게 말했다. “미하엘. 얘 좀 어떻게····.” “이걸 보고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자신의 양 소매를 걷어서 팔을 보였다. 잡티하나 없이 하얀 대리석 같은 피부를 자랑하던 그녀의 양팔은···. 지금은 어린애가 문 것 같은 이빨 자국으로 가득했다. “·····중간부터 잡아먹히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문 건 아니잖아?” 정운이 몹시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미하엘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수상 각하의 ‘따님’이 물었죠. 자식 교육을 최소한으로 시키신 후에 저에게 보모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전 더 이상 물리기도 머리카락을 잡아 뽑히기도 싫습니다.” 미하엘이 드물게 정운에게 거절의 의미를 표했다. 만능 비서에 가우리라는 국가의 틀을 만들고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그녀지만···. 육아는 그것과는 좀 더 다른 재능이 필요한 모양이다. 결국 정운은 자신의 품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애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이대로 달고 있을 수는 없으니 애를 어딘가에 놔두고 행동해야 했다. 사실 정운의 방은 정운 혼자만 살고 있는 방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슬기도 같이 살고 있었다. 슬기는 정운이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어린애를 데리고 나타나자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계에서 얌전히 돌려준 것을 보니 일단 무해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죠?” “그래···. 그런데 너무 많이 달라 붙어서 조금 곤란한데? ···어디 도망 안 갈 테니 좀 떨어지지 않을래?” 이제 완전히 무해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겉보기에는 어린애 모습을 하고 있다 보니 약간은 말투가 부드러워진 정운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싫어!!! 놓으면 또 어디로 도망가고, 나 이상한데 보내려고 그러지? 싫어!!!” “·············.” 어째 굉장히 몹쓸 부모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정운이었다. 그때 한숨 쉬는 정운을 대신해서 슬기가 끼어들었다. 이제까지는 가능하면 저 애랑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던 슬기였다. 정운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무엇보다 파우스트의 함정이기라도 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그쪽의 혐의는 벗겨졌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이제는 조금 잘해줘야 겠다. 라는 생각도 드는 슬기였다. “저기, 아기야. 이름이 뭐니?” “이름? 그게 뭐야?” 슬기가 이름을 물어보자 상대는 그게 뭐냐? 라는 듯이 이상하게 바라봤다. 슬기는 정운을 보면서 살짝 나무라듯이 말했다. “생각해 보면 아직까지 이름도 안 물었었죠? 그렇다고 지어준 것도 아니고.” “이름은 있잖아? 폰토시오스.” “·····진짜 그렇게 부를 거예요?” “좀 아닌가?” “많이 아니죠. 오늘 애 이름 하나 지어줘요.” “그럼···. 수영.” 생각을 전혀 깊게 하지 않고 3초 만에 답이 나왔다. 그런 정운을 향해서 슬기가 말했다. “일단 왜 그렇게 지었는지 물어볼까요?” “애는 바다에서 왔잖아? 바다에서 살려면 수영을 잘해야 하고····. 그러니·······.” “··············.” 슬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정운을 바라봤다. 그리고 정운은 어깨를 슬쩍 올리면서 말했다. “너무 성의 없나?” “예. 다시 지어요. 척 봐도 이목구비가 한국인이 아니라 서구인 외모잖아요? 그러니 이름도 그쪽이 좋고.” “그럼 블···.” “파란 머리에 파란 눈동자니까 블루라고 지으면 저 삐질 거예요.” “············.” 정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슬기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난 애 데리고 잠깐 나갔다 올게요. 정운씨는 오늘 안에 애 이름 지어놔요. 성의 있는 것으로···.” “알았어. 그런데 애 데리고 어디 갈려고?” “앞으로 데리고 있으려면 필요한게 많다고요. 언제까지 원피스 한 벌만 입히고 있을 거예요.” 처음에 정운이 주웠을 때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지금은 미하엘이 어디서 구해온 원피스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옷과 생필품과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았다. 슬기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야. 언니하고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 “쇼핑? 그게 뭐야?” “필요한 물건을 사고··. 그리고 맛있는 것도 먹고···.” “맛있는 것?” 약간 경계하고 있던 아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세상 어디를 가도 애들은 먹을 것에 약한 법일까? 슬기는 아이에게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백화점에 가면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젤라또 지점이 있는데···. 같이 갈까? 차갑고 달콤하면서 무척 맛있단다.” 아이는 잠시 정운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아마도 먹을 것과 정운과 또 떨어져야하는 위험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갈래.” “그래. 그럼 지금 가자. 예쁜 옷 입고 오면 정운씨···. 아빠도 좋아할 거야.” “응. 그럼 꼭 갈래.” 이제 완전히 슬기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아이였다. 수 만년을 흉폭하게 살아온 대괴수가 이렇게 순진한 어린애로 변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아이가 슬기의 손을 잡고 나가고 난 후에 정운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중얼 거렸다. “이름···. 이름이라····.” 별로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정운이었다. 슬기가 애를 데리고 쇼핑을 간 곳은 신서울에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백화점 중에 하나였다. 사실 슬기는 여자치고는 그렇게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이돌을 했었고,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에서 나오고 나서는 가우리의 간부로서 쭉 활동하느라 바빴다. 얼굴이 워낙 유명한 그녀였기에 함부로 대중 앞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웠다. 사실 필요한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알아서 대부분 준비되는 그녀다. 지구의 어느 나라에 가도 그녀의 위치는 거의 여왕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그런 그녀가 직접 쇼핑을 오는 것은 가우리 건국 이후 처음이었다. ‘흠···. 굉장히 여러곳에서 물건이 들어오고 있는 걸?’ 슬기는 백화점의 매장들을 보면서 살짝 감탄하고 있었다. 가우리에 지점을 내고 싶어 하는 브랜드는 많았다. 얼마나 많으냐하면···. 좀 이름 있는 브랜드 전부라고 하면 될 것이다. 가우리에 지점을 내면 실질적인 이익의 상승 폭도 컸고 이계로 진출해서 신규 사업을 물색하기도 좋았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 중에 상당수가 가우리에서 구한 이계의 물품을 가공해서 파는 것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린 후 가우리에서 발견된 새로운 희토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었고 그 중에 몇 가지는 이미 지구에서 사용되고 있기도 했다. 그로 인해서 자원의 선점권을 가지고 있던 한국 기업들이 엄청난 이익을 본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지금 기업들이 가우리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들어와. 였고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가게 빼. 라는 말이라는 속설도 돌고 있었다. 약간 과장이 섞이기는 했지만 팩트 그 자체가 아무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슬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수상 관저에서 가장 가까운 백화점 하나를 찾은 것만 해도 지구 대부분의 브랜드는 다 찾아 볼 수 있었다. 지상 70층, 지하 15층의 이 대형 백화점은 현재 가우리에 있는 백화점 중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기도 했다. 슬기는 이 백화점에 들어오자 마자 우선 약속을 지켰다. “자. 이게 젤라또라는 거야.” “···이게?” 콘 위에 얹어져 있는 동그랗고 컬러플한 아이스크림은 아이의 눈에 마치 보석처럼 보였다. 실제 이탈리아의 젤라또 명인인 직접 상주하면서 맛의 체크를 한다는 가게에서 사온 젤라또는 절말 맛있었다. 원래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거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크게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양손에 젤라또를 두 개 쥐어준 순간부터 아이가 슬기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엄마!! 이거 정말 맛있어.” “····응. 그래. 그러니.” 아직 애도 낳아 본적 없는 처녀인 슬기는 엄마라는 호칭에 당황했다. 하지만 정운이 아빠라고 불리는 이상 자신이 엄마라고 불리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 아이스크림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들렴. 그런 위로 올라가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살펴보자.” “예~!” 아이는 천진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면서 슬기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 처음 간 백화점은 아이에게 거대한 놀이 동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 엄마. 이거 움직여.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 그냥 움직여서 위로 데려다 줘.” “에스컬레이터라는 거야.” 백화점에 간 어린애들의 필수코스인 에스컬레이터 신기해하기 부터 시작해서···. “엄마, 이거 뭐야?” 계산도 안 한 매장의 물건 막 집어오기····. “엄마, 심심해. 안아줘.” 오래 있으니 지루하다고 칭얼거리면서 안아달라고 조르기까지···. 첫 날부터 할 건 다하는 아이를 보면서 슬기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너무 오래 걸었지? 잠시 어디 가서 쉴까?” 슬기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의 벤치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 가자마자 아이는 슬기의 무릎을 베고 그대로 누워 버렸다. “많이 피곤했나?” 슬기는 피식 웃으면서 자기 무릎을 베고 누워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진한 푸른색의 머리카락. 빛의 각도에 따라서 가끔은 남색에 가까운 빛깔을 내기도 하는 머리카락은 슬기의 손가락 사이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마치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감각이 이럴까? 머릿결에 조금도 뻣뻣함이나 거치적거림이 없었다. ‘어떻게 관리하면 이렇게 되는 거지? 조금 부러운 걸?’ 슬기의 머릿결도 무척 좋은 편이지만 사실 이런 부드러움은 반칙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슬기가 부드러운 머릿결에 취해 있을 때 슬기를 향해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실례지만 혹시 시간 되신다면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다가온 누군가는 슬기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슬기는 상대를 흘깃 바라봤다. 제법 잘 생긴 얼굴에 몸에 걸친 옷은 척 봐도 명품이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어쩐지 너무 넘쳐서 살짝 오만함까지 치달은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무슨 일이시죠?” 슬기가 물어보자 남자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은 여동생의 선물을 사로 왔는데 제가 여자가 좋아하는 물건이 뭔지 잘 모르겠네요. 아가씨의 센스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 슬기가 별로 연애에 능숙한 타입은 아니지만···. 지금 이 남자가 자신에게 작업 걸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거절합니다. 매장에 가서 점원의 안내를 받으세요.” 슬기는 매정하게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러자 남자는 잠깐 당황했다. 하지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대신에 그냥 웃으면서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그저 첫눈에 보기에 너무 아름다우셔서 제 동생도···.” “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남자는 일단 물러났다. 슬기는 한숨을 쉬면서 속으로 중얼 거렸다. ‘그래도 선선히 물러는 가네. 너무 끈덕지면 얼굴 공개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지금 슬기는 선글라스와 모자로 간단한 변장을 하고 있었다. 슬기가 제 얼굴을 드러내고 가우리의 이슬기라는 것을 알린다면···. 그때도 과연 저 남에게 헌팅을 계속할 자신이 있을지 의문이긴 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39화 <헌팅은 상대를 보고해야 한다> 슬기와 떨어진 남자는 한쪽 구석까지 물러나서 중얼 거렸다. “쯧, 척 봤을 때부터 알아는 봤지만 한 도도 한다는 말이지. 좋지. 크큭···. 그래도 내가 포기 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 이럴 때를 대비한 매뉴얼도 다 적혀 있거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품안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책을 꺼내서 펼쳤다. 그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브로블] 그리고 지금 그가 살피고 있는 내용은····. [1권 12장. 세상에 유혹 못할 여자는 없다. 그저 유혹 하지 않은 여자가 있을 뿐이다. 세상의 수많은 브로들이여. 포기하지 말 지어다.] 이었다. 그렇다. 어느새 자비로 정식 출간까지 한 한중겸이었다. 아마 이게 슬기를 피곤하게 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함····.” 자고 일어난 소녀는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기지개를 피고는 슬기에게 말했다. “엄마. 배고파. 밥 줘.” “그래. 알았어.” 잠들기 전에 젤라또를 몇 개나 먹었는데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한다. 아무래도 먹성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한 슬기는 아이에게 식사를 사주기 위해서 최상층의 레스토랑 층으로 올라갔다. 보통 백화점의 최상층에 식당가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 백화점의 최상층에는 총 3층에 달하는 식당가가 있었다. 68층의 식당가는 가격대도 적당하고 일반 대중들이 즐기기에 적당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69층의 식당가는 약간 가격이 강하다. 하지만 연인이 프로포즈를 하거나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약간 분위기를 내자면 감당 못할 정도의 비싼 가격은 아닌··. 그냥 적당하게 고급스러운 식당가가 있다. 그리고 70층은···. 거기는 정말로 비싸다. 멋모르고 처음 찾아간 사람은 밥 한 끼에 이따위 가격을 받다니? 라는 한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비싸다. 당연하지만 슬기가 찾아간 곳은 70층 최상층이었다. 딱히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어린애와 같이 오니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70층에 올라온 슬기는 안내도를 살짝 보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원래 바다 출신이니 해산물 요리가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이다. “와··. 엄마 여기 뭐야?” “레스토랑이라고 식사 하는 곳이야. 메뉴를 보고 먹고 싶은게 있으면 시키면 된단다.” 슬기의 말에 아이는 신난다는 얼굴을 하고 메뉴판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 아이는 말은 할 줄 알았지만 글을 읽을 줄은 몰랐다. “엄마. 뭐가 뭔지 모르겠어.” “알았어. 이리 주렴.” 슬기는 웃으면서 메뉴판을 받아서 아이가 좋아할 법한 것들 몇 가지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들을 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음식이 도착했다. “와아···. 엄마. 이거 다 먹어도 돼?” “응. 먹고 싶은 만큼 먹으렴.” 셰프가 특히 공을 들여서 만든 해산물 피자와 연어 스테이크, 해산물 스파게티에 송아지 스테이크와 프로슈트 직송 생 햄이 얇게 썰어서 나왔다. 코스 요리도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린애가 좋아할 법한 요리를 잔뜩 시킨 것이다. “음···. 엄마. 이거 맛있어. 이것도 맛있고.” “그래.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으렴.” 아이는 테이블 매너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편하고 천진하게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연신 맛있다고 말하며 복스럽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미소 짓게 되었다. 척 봐도 악의가 없는 어린애가 너무나 천진하게 먹고 있으니 테이블 매너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흐뭇한 광경이었다. 과연 저 작은 몸에 저 많은게 어떻게 다 들어갈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는 먹성 좋게 잘 먹었다. 슬기는 중간부터 요리를 몇 가지 더 추가해 가면서 아이가 만족 할 때까지 요리를 먹게 했다. 그리고 중간에 웨이터가 슬기에게 공들여 만든 케익을 서빙하면서 말했다. “이건 셰프가 직접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일행분이 요리를 마음에 들어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고마워요. 저희도 잘 먹었다고 셰프님께 전해 주세요. 오늘 식사는 무척 만족 스러웠으니 꼭 보답하겠다는 말도요.” “감사합니다.” 웨이터는 몰랐겠지만 가우리의 간부쯤 되는 슬기가 보답을 하겠다고 하면 팁 얼마 정도로 끝나지는 않는다. ‘수상 관저 가까이 체인점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 줘야겠네. 애가 마음에 쏙 들어 하니···.’ 참고로 가우리 수상 관저 근처의 땅값은 서울 강남 땅값을 ‘헐값’ 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신 서울의 수상 관저를 중심으로 한 주변 1km정도의 땅값은 평당 가격이 전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동네다. 충분히 만족스런 식사가 끝나고 슬기는 계산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가씨. 가능하면 제가 계산해 드릴 수 없을까요?” 슬기의 앞에 재빨리 한 명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보면서 슬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 온 건가요?” 아까 슬기에게 작업을 걸었던 남자였다. 하지만 슬기의 말에 남자는 뻔뻔하게 얼굴에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설마요. 우연입니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아까 전에 제가 한 실례를 사과하는 의미에서 식사 한끼라도 대접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전 얻어먹을 이유가 없는데요?” “부탁드립니다. 당신 같이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식사 한 끼 대접했다는 영광을 제발 베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 순간 압도적인 느글거림에 조금 전에 먹은 파스타가 뱃속에서 한 바퀴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슬기였다. ‘자꾸 입 씨름 하기도 귀찮으니····.’ “그럼 그렇게 하세요.” 슬기는 그냥 그렇게 말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뒤에 남은 남자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말했다. “다소 무리를 해도 접점을 만드는게 중요한 법이지. 훗, 여기 계산 부탁합니다.” “예···. 총 천 팔백 삼십만원 되겠습니다.” “그래. 천 팔백···. 잠깐 뭐라고?” 카운터에서 점원의 말을 듣고 남자는 깜짝 놀랐다. 이 레스토랑의 가격이 비싼 것은 알고 있었다. 초일류 셰프가 최상급 재료를 썼고 스페셜 요리의 경우 가격이 이삼백이 사뿐하게 넘어가는 것도알았다. 하지만 천 팔백 어쩌고 하는 가격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 둘이서 먹었는데 그 가격이 나왔다고? 더구나 한 명은 애잖아?” 그 남자의 말에 점원은 정중하지만 속으로는 재미 있어 죽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실은, 그 애가 천오백 정도는 먹은 것 같습니다.” “···············.” 이제 와서 계산 안 하겠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남자였다. “자···. 필요한 것은 다 샀고 이제 집으로 가 볼까? 오늘 쇼핑 재미있었니?” “응. 엄마, 우리 또 와.” “그래··. 다음에 또 오자.” “그때는 아빠도 같이 오면 안 돼?” “음··. 아빠는 쇼핑을 싫어해서····” 정운이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 쇼핑에 따라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렇게 슬기가 백화점에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잠깐만요!!!!”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슬기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끈질기지····.’ 슬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거기에는 좀 전에 슬기를 상대로 만용을 부린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슬기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용건이시죠?” “아····. 그게···.” 남자는 문득 할 말을 잃었다. 레스토랑에서 어마어마하게 출혈을 했다. 어디서 단체 회식한 것도 아니고 여자 단 둘에게 식사 한끼에 이런 출혈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그 중에 한 명은 어린애가 아닌가? 정작 그 어린애가 다 먹었다고는 하지만 믿기지를 않았다. 어디 그게 사람이 먹을 양이란 말인가? 하긴, 실제로 사람이 먹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단 붙잡기는 붙잡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뭔가 용건 있는게 아니라면 가보겠습니다.” 슬기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이동하려고 했다. “잠시만요!!” 남자는 절대 슬기를 놓칠 수 없다는 심정에 자신도 모르게 슬기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슬기를 잡은 남자의 팔에서 파직 스파크가 생겼다. “아앗!!!!” 슬기는 아주 저 출력으로 약간 짜릿할 정도의 스파크를 발생 시켜서 남자를 때어냈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용건 없이 상대를 잡는 것은 실례입니다.” 그런 슬기의 말에 남자는 순간 울컥했지만 이내 얼굴에 미소를 가득하게 하고 말했다. “귀환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일반인에게 능력을 사용한 위협을 가하면 훨씬 더 심각한 위반이죠? 아마 신의 맹세에 어긋나는 조항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얼굴에 승리의 미소를 가득 띠우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슬기는 기가 차자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정운이 신의 맹세에 그런 조항을 넣기는 했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일반인에게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은 금지. 라고 말이다. 하지만 슬기는 가우리의 간부다. 신의 맹세로 인한 제약 같은 것은 일절 없다. 애당초 간부들은 그 누구도 정운에게 제약 따위는 당하지 않았다. 심지어 슬기가 정운에게 그런 재제를 당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 제가 자치경찰에 신고하기를 원하시나요? 아니면 저하고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천천히·······.” 말을 하던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는 제로 트리에서 새롭게 능력을 쌓은 것도 아니고, 그라운드 제로에서 귀환한 것도 아닌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런 둔한 일반인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슬기의 온 몸에서 무럭무럭 마력이 흘러 넘쳤다. ‘이···. 진상을 어떻게 할까····.’ 기분 좋게 쇼핑을 하고 귀여운 딸 아이도 예쁘게 꾸몄다. 그런데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를 진상 하나가 자신의 약점이라도 잡은 것처럼 착각해서 가당치 않은 요구를 하고 있다. 아무리 슬기가 순둥이라고 해도 이쯤 되면··. 아니 오히려 평소에 순한 성격의 슬기였기에 한 번 화가 나면 가우리의 간부들도 쉽게 감당이 되지 않는다. “어···. 어버····.” 남자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르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그저 말만 더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삑!!!! 삐이익!!! 저 멀리서 순찰을 돌던 가우리의 요원들이 끼어들어왔다. “정지!!! 양쪽 모두 정지!!! 경찰이다!!” 가우리의 경찰이라고 하면 최소한 8급, 혹은 7급 수준의 능력자들이다. 그들은 멀리서 순찰을 돌다가 어마어마한 기운이 발생한 것을 보고 부리나케 출동한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오고 나서 느꼈다. 저 아름다운 아가씨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자신들이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설마 코드 레드는 아니겠지?’ 경찰은 바싹 긴장하면서 얼마 전에 전국의 경찰들에게 내려온 공문을 생각했다. 코드 레드 이름 이보영. 성격 괴팍하고 지랄 맞음. 능력치 1급 이상의 인물이며 가우리에 비소속된 귀환자. 가능하면 소소한 잘못은 넘어가주고 절대 마찰을 일으키지 말 것. 이 공문은 이보영이 혹시 사고를 치거나 할 까봐 미하엘이 가우리 전국의 경찰들에게 내린 것이었다. 이보영이 실제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어차피 8급 7급 하는 경찰들이 뭔가 제재를 가하는 것은 무리다. 7급이라고 해 봤자 레벨30대가 아닌가? 그러니 괜히 다치지 말고 차라리 적당히 넘어가라고 공문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경찰들은 슬기를 이보영을 착각하고 있었다. “경··. 경찰씨, 여기 이 여자 좀 어떻게 해 줘요. 빨리!!!” 경찰이 오고 나자 슬기에게 수작을 부리던 남자는 서둘러 경찰에게 매달렸다. 그 남자를 바라보는 경찰은 눈살을 찌푸렸다. ‘병신···. 우리가 손 댈 수 있는 인간으로 보이냐?’ ‘진짜 코드 레드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에이···.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고민하는 경찰들에게 슬기가 살짝 손짓으로 그들을 불렀다. “이리로···.” “예?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슬기는 가까이 온 경찰의 앞에서 살짝 선글라스를 내려 얼굴을 보여줬다. ============================ 작품 후기 ============================ 아무리 기술이 좋고 배경이 빵빵해도 이빨이 안 들어가는 여자는 존재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40화 <누군가에게 찾아온 봄날> 슬기가 얼굴을 공개한 순간···. 상황은 종료였다. “엇···? 어어··· 그러니까···.” 슬기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상대는 엉거주춤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쉿.” 잔뜩 당황한 상대를 보면서 슬기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리며 말했다. “옛!!!” 슬기의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에 말단 경찰은 군기가 바싹 들어서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슬기가 말했다. “저 남자··. 추행에 진상에··. 뭐 알아서 적당히 처리해서 머리 좀 식히게 해요.” “예. 알겠습니다.” 경찰은 슬기에게 척 경례를 하고 남자에게 다가가서 체포했다. “어? 어어? 이봐? 왜 날 잡아가는 거야!!?” “시끄러!!! 넌 닥치고 있어?” “겁나 운 좋은 알아. 언젠가 우리한테 미친 듯이 고마워 할 때가 있을 거다.” 경찰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를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슬기의 옆에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아저씨들 왜 저래? 왜 우리 밥 사준 아저씨를 데리고 가?” “으응···. 서로 친해서 그래.” “그렇구나.” 슬기가 대강 지어낸 변명에도 아이는 그냥 그렇구나. 라는 듯이 납득했다. 슬기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정운이 한중겸과 함께 머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뭐 좋은 이름 없어요? 슬기 올 시간 다 됐는데?” “박슬기 Ver.2.0어때?” “죽을래요?” 슬기가 제시한 과제를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정운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운은 작명 감각이 별로였다. 그리고 그걸 자각해서 도우미로 누굴 부르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부름에 응한 것이 한중겸 뿐이었다. 사실 이 둘이 힘을 모아봐야 센스가 거기서 거기다. ‘그냥 내가 지을 걸 그랬나?’ 슬기는 두 남자가 고민 하는 것을 보고 깊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아빠아아아!!!” 슬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정운을 보자마자 기뻐서 도도도 달려가서 온 몸으로 부딪혔다. “아···. 왔니? 슬기야. 쇼핑은 잘 했어?” “예. 필요한 건 다 샀어요. 그런데 이름 아직 멀었죠?‘ “으음···. 이게 생각보다 어려네.” 결국 정운의 네이밍 센스에 맡겨서는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안 슬기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몇 개 후보 나온 건 있죠? 그것 중에 애가 직접 고르라고 하죠.” “······그건······. 좋은 생각이네.” 자신이 고른 이름이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름 적은 것 줘 봐요.” 슬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 남자가 적어놓은 몇가지 후보들을 살펴봤다. “이건 폐기··. 이것도 폐기···. 이건 폐기도 위험하네요. 뭐에요? 이···. 샤이닝 미라클 걸? 이거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 것 맞아요?” “중겸이 형님이 생각한 거야.” 정운이 냉큼 일러 바쳤고 한중겸은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훌륭한 마법 소녀가 되라는 바람을 담아서···.” “그따위 바람 필요 없어요!!!” 슬기는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한중겸은 정운에게 몰래 다가와서 말했다. “어째 은근히 요즘 슬기가 사나워지지 않았냐?” “민지 누님에 비하면 멀었죠.” “······민지를 변호해 줄 말이 없다.” 그렇게 두 남자가 몰래하는 대화는 안중에도 없이 슬기는 이름 후보 중에 몇 가지를 골라서 아이에게 말했다. “자···. 이 중에 하나를 골라볼래? 그게 네 이름이 될 거야.” “이름? 나 이름 생기는 거야?” “응. 하나 골라보렴.” “으으으으음·····.”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눈앞에 종이를 바라봤다. 사실 글을 못 읽기 때문에 어차피 찍기나 다름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이의 눈은 진지했다. “이거!! 이거 할래.” “그래···. 알았어. 앞으로 네 이름은, 아미, 박아미라고 한단다.” “아미···. 응. 엄마, 나 아미할래.” 그렇게 아이의 이름은 아미가 되었다. 슬기는 아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한중겸은···. “언제 슬기가 엄마가 됐지?” “글쎄요···. 쇼핑 한 번 갔다 오더니 엄청 친해졌네요.” 그렇게 정운과 슬기에게 아미라는 딸 아이가 생겼다. 크롱크 왕국과 엘라 왕국을 물리친 가우리는 내심 전쟁에서 한 숨을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한 쪽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라트란 왕국과 아이언 왕국의 국경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었다. “기가 라이트닝.” 콰르르릉!!!! 배대호의 마법이 아이언 왕국의 골렘 군단들을 모두 무효로 만들어 버렸다. 연쇄적으로 쿵쿵 쓰러지는 골렘 군단을 보면서 배대호는 혀를 차면서 중얼 거렸다. “쯧, 국경 지대에서 깔짝깔짝 시끄럽게···. 한 번에 몰아서 오면 편할 텐데 골치 아프게 하는군.” “배대호 부장님. 적은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그래··. 다른 국경 지대는?” “김수민 부장님과 홍린 부장님이 계신 곳도 적을 완전 격퇴 했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공세를 하지 않고 간만 보고 있군. 뭘 노리고 있는 건지···.” 배대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자신의 부관에게 명령했다. “적의 동태에 신경 쓰고 혹시 모를 일이 생기면 그때는 바로 보고 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 배대호는 일단 자신이 야영지로 돌아갔다. 크롱크 왕국이 전쟁에서 한발 빠진 시점에서 에리프릴, 성 세인트, 아이언 왕국은 삼국 연합을 결성해서 본격적으로 육군을 움직였다. 해로에서는 엘라 왕국이 움직여 주고 있으니 자신들은 군을 육로로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은 지리적으로 육로를 이용해서 가우리를 침공하려면 최단거리에 다크니스 왕국과 제국이 걸렸다. 다크니스 왕국은 물론이고 제국 역시 군이 지나 갈 수는 없었다. 그냥 사신이나 일반인이 지나가는 것은 괜찮았지만 일단 군을 이루면 제국의 땅을 침범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러니 두 나라는 필연적으로 아이언 왕국을 통해서 크롱크 왕국을 지나서 가우리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약간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삼국의 힘을 하나로 모아서 진격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이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운은 배대호에게 홍린과 김수민, 그리고 장 그레고리를 붙여서 막게 했다. 적이 이미 크롱크 왕국을 지나게 놔 두면 가우리의 국내를 전쟁터로 삼아야 했다. 그래서 배대호는 가능하면 크롱크 왕국의 국내에서 전쟁을 시작하고 거기서 끝내기를 바랬다. 그리고 아주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었다. 지금 크롱크 왕국은 새로운 대족장을 정하기 위해서 여념이 없기 때문에 일단 중립 상태였다. 배대호는 바로 라트란 왕국에 도움을 청해서 원군을 얻어냈다. 크롱크 왕국을 상대하면서도 분명해 졌지만 가우리의 약점은 전력의 90%이상이 오로지 간부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적이 전선을 넓게 확장해서 물량으로 나오면 좀처럼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배대호는 라트란 왕국에 도움을 얻어서 모자란 숫적 열세를 채워 넣으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크롱크 왕국의 영토는 그 대부분이 원시림이었고, 그런 자연 환경 속에서는 요정족의 도움은 상당했다. 전투적인 측면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정찰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페어리들은 그 작은 몸을 움직여서 부지런히 적을 정찰했고 자신들의 마술로 적을 교란 시켰다. 그것은 전선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페어리들 중에서는 배대호를 몹시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호···. 안에 있어?” 한명의 작은 페어리가 배대호의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배대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눈앞에 있잖아?” “흥!! 별로···. 그냥 인간의 예의에 한 번 따라 본 것 뿐인 걸?” 페어리퀀 라트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배대호가 마음에 쏙 든 것 같았다. 라트란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사실 라트란 왕국의 정식 왕은 그녀다. 그녀가 여왕으로서 라트란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대륙의 많은 이들은 라트란 왕국을 요정족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주축은 어디까지나 엘프들이라고 알고 있다. 실제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엘프족의 장로회가 거의 대부분의 사안을 결정하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라트란 왕국의 정식 국왕은 어디까지나 페어리 퀸인 라트란이 하고 있었다. 사실 페러이들은 그 종족의 특성상 장난을 좋아하고 천진한 성격이라서 권력 따위에는 미련이 없다. 하지만 요정족의 국가라는 것을 대륙에 내 세우는 이상 페어리들 역시 국가에 중요한 상징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엘프들의 장로회는 차라리 페어리퀸을 국왕으로 앉혀 버린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국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그녀는 라트란 왕국의 왕이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배대호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왔어?” 명색이 타국의 왕이지만 배대호는 별로 말을 높이지 않았다. 원래 프라이드가 높은 남자이기도 했지만 페어리퀸이 먼저 말을 놓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흥, 별로 뭔가 용무가 있어서 온게 아니거든?” “····용건이 없으면 돌아가.” 배대호가 돌아가라고 말하자 페어리퀸은 움찔 거리면서 말했다. “사실은 용건이 있어서 왔어.” “뭔데?” 츤데레를 이기는 것은 쿨 함인 것일까? 둘의 대화에서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배대호가 잡고 있었다. “으음···. 이거!!” 페어리퀸은 품안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서 배대호에게 말했다. “그게 뭔데?” “우리 페어리들이 담근 요정주.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술이야.” 페어리퀸의 말에 배대호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만약 요정주라는 것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크게 경악했을 것이다. 엘프들이 담구는 엘프주, 제국에서 신에게 바친다고 하는 신주, 그리고 페어리들이 담구는 요정주. 이 세 가지 술을 이 세상에서는 삼대 명주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 그나마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엘프들이 담근 엘프주다. 엘프들은 술을 담구기는 하지만 별로 술을 아끼지는 않는다. 그냥 손님이 오면 자연스럽게 대접하고 드물기는 하지만 인간과 교역을 할 때도 엘프주는 쉽게 물망에 올라가는 품목이다. 물론 비교적 쉽다는 것이지 엘프주도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술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두 개의 술 보다는 쉬운 편이다. 제국의 신주는 해마다 새해가 올 때마다 제국의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신년 행사에 사용되는 술이다. 제국의 황실에 내려오는 어떤 항아리에 맑은 물을 담아 놓으면 저절로 발효가 되어서 술이 되는 건데···. 최저 일 년은 숙성을 시켜야 하다 보니 일 년에 만들 수 있는 양이 항아리 하나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황실의 황제가 아니면 입에 대기도 힘들다. 역사상으로는 역대 황제가 가끔씩 신하들에게 하사한 경우가 있기는 한데···. 그건 제국의 귀족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예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엘프주처럼 쉽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술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페어리가 담군 요정주··. 이건 다른 의미로 손에 넣기 힘들다. 페어리의 요정주는 자신의 날개에서 나오는 인분을 이슬과 섞어서 발효시키는데···. 모든 페어리 들마다 담글 수 있는 술의 종류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요정주가 귀중한 것은 페어리들은 절댈 이 요정주를 아무에게나 주지 않기 때문이다. 페어리가 자신의 요정주를 주는 상대는 딱 하나. 자신이 반한 남자 뿐이다. 즉, 요정주를 가져다주는 것은 고백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배대호 형님이... 독수공방을 오래 하셨죠. 항상 응원해 주신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41화 페어리퀸은 두근 거리는 가슴을 안고 배대호에게 술을 권했다. 그녀의 길고 긴 인생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니 당연했다. “흠···. 술이라. 별로 생각 없는데?” 다만 배대호는 그런 것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뭐야? 내 술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페어리가 자신이 담근 요정주를 권하고 그것이 거절 당한다는 것은 즉 실현을 뜻한다. 페어리퀸의 말에 배대호는 그냥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전쟁 중인데 술 따위 마실 수 있겠냐? 돌아가.” “···············.” 페어리퀸은 입을 꾹 다물고 몹시 화난 얼굴을 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배대호는 그런 페어리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그냥 작전 지도만 살펴보고 있었다. 아직까지 삼국 연합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크롱크 왕국과 엘라 왕국의 실패에서 가우리의 힘을 어느 정도 실감한 것으로 보였다. ‘크롱크 왕국의 실패는 사실 그들에게도 예상의 범주였을 거야. 하지만 킹 클래스의 대괴수가 있는 엘라 왕국이 패한 것은 오산이겠지. 내가 지금 놈들이라면····.’ 배대호는 전쟁의 작전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런 배대호에게 크게 실망한 페어리퀸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씨이····. 나쁜 인간···.” 페어리퀸은 홀로 진형에서 떨어져서 밖으로 나갔다. 원래 담백한 엘프와 달리 페어리는 제법 사랑에 잘 빠지는 편이었다. 다만 이들은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어인족 처럼 극단적으로 치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인족들처럼 막 나가지는 않았다. 이들의 사랑은 오히려 인간으로 치면 아직 미성숙한 10대들의 마음과 같았다. 첫눈에 들어오는 인상에 쉽게 반하고··. 일단 접근은 조심스럽지만 한 번 끈을 잡으면 쉽게 놓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 페어리들이었다. 어이족들처럼 상대를 상처 입히지는 않지만···. 그 대신에 종종 자신을 상처 입히거나 후회할 행동을 하기는 했다. 지금 다이앤도 자신의 길고 긴 인생에 처음으로 한 고백이 실패한 쇼크를 풀기 위해서 자포자기하고 가우리의 진형을 빠져 나가 버렸다. 페어리가 아무리 은형에 뛰어난 종족이라고 해도 굳이 전쟁 중에 아군의 진형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크게 벗어난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운이 없다면 불행이 닥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운이 없었다. 퍼엉!!!! “앗!!?”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그녀는 재빨리 피했지만 날개를 그만 스치고 말았다. 그녀에게 활을 쏜 것은 에리프릴 왕국군 소속의 정찰병이었다. “놓치지 마라!! 우리가 발각된다.” “옛!!!” 정찰대는 서둘러 페어리 퀸을 잡아가기 위해서 달려갔다. 본대가 오기 전에 정찰을 위해서 찾아왔던 정규 정찰대는 우연히 상심해있는 페어리 퀸을 보고 공격한 것이다. “이런···. 위험해.” 페어리퀸은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 그녀는 페어리 퀸이라고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강력한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기 보다 원래 페어리들이 전투에 그렇게 강한 힘을 보이는 종족 자체가 아니었다. 그들의 특기는 독자적인 요술로 인한 서포트와 방어적인 환술 같은 기술들이었다. 단련된 정규 정찰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힘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도망치기 위해서 스스로 모습을 감출 수는 있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페어리퀸을 보고 정찰대의 대장이 말했다. “매직아이를 써라!!!” “옛!!!” “옛!!!” “옛!!!” 정찰대장의 명령이 덜어지자마자 부하들은 품안에서 선글라스 같은 안경을 꺼내서 썼다. 이것은 매직아이라고 해서 투명화 된 대상을 육안이 아니라 마나로 캐치하는 아이템이었다. 에리프릴 왕국은 마도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마법 도구가 풍부했다. 비록 그 도구들의 90%이상이 오로지 전쟁에서 써먹기 위한 장비이기는 했지만···. 그 대신에 에리프릴 왕국의 군인이라고 하면 마법 도구로 거의 도배를 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런 정규 정찰대가 가지고 있는 마법 도구는 일인당 열 개 이상이다. 이것도 그 중에 하나였다. 지금 이들의 눈에는 투명화 되어서 도망가고 있는 페어리퀸이 뻔히 보였다. “헤이스트 부츠 가동!!!!” 그들이 신고 있는 부츠에서 빛이 나더니 그들의 이동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다. ‘어떻게 해···. 잡히겠어.’ 페어리퀸은 자신에게 똑바로 다가오는 적들을 보고 불안감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사로 잡아라!!! 적의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옛!!!” 정찰대장의 명령에 부하 중에 한 명이 품안에서 작은 공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페어리퀸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그 공은 페어리퀸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그대로 터져 버렸다. 퍼엉!!! “꺄악!!!!” 페어리 퀸은 공이 터지면서 쏟아져 나온 거미줄 같은 실타래에 그대로 엮여 버렸다. “좋았어!! 잡았다!!” 정찰대원 중에 한 명이 실타래에 꽁꽁 묶인 페어리퀸을 들고 대롱대롱 들었다. “이이익···. 이거 놔!!!!” 페어리퀸은 앙칼지게 외쳤지만 전투능력이 전무한 그녀가 그런다고 해서 겁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 본대까지 물러난다. 거기서 심문해서 정보를 캐내도록 한다.” 대장의 말에 부하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은밀하게 움직여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어리퀸은 심장이 두근거려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지금 자신이 잡혀가면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었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지?’ 아직은 이들이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아마도 수많은 페어리들 중에 하나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심문 중에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기라도 하면 전쟁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나 때문이야····.’ 그녀는 자괴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요정족인 그녀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연의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하는 그녀들에게 자살은 할 수 없는 것인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이고 있을때···. “거기까지다 쥐새끼들.” 하늘에서 구원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페어리퀸이 갑자기 나간 후에 배대호는 이상함을 느꼈다. “술 좀 안 먹겠다고 했을 뿐인데··. 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배대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사실 이건 페러이퀸의 실수였다. 이계에서 온 배대호는 페어리가 직접 만든 요정주를 권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그걸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 막사에 라트란 왕국의 엘프 한 명이 보고를 하기 위해서 들어왔다. “배대호님. 보고 드릴게 있어서 왔습···. 니다만,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배대호의 얼굴 표정만 보고도 뭔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엘프족의 보좌관이 먼저 말했다. “별건 아니고 좀 전에 페어리퀸이 왔었지. 그리고····” 배대호는 혹시 자신이 실수 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을 다 들은 엘프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건···. 큰 실수군요.” “실수? 무슨 뜻이야?” “페어리에게 있어서 자신이 담근 요정주를 권한다는 것은····.” 부관으로 임명된 엘프는 침착하게 그 의미를 모두 설명해 줬다. 그리고 그 설명을 다 들은 배대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페어리가 인간에게 반하기도 하나?” “예. 원래 페어리족은 엘프족에게 반하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인간이나 드워프, 혹, 드물기는 하지만 오크족에게 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녀들은 외모를 가리지 않으니까요?” 배대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반려를 그렇게 다채롭게 정하면 아이는 어떻게 되는데? 아니 그보다···. 임신이 가능하긴 해?” “음···. 실례지만 배대호님은 페어리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군요.” “모를 수밖에 없지.” 배대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엘프는 선선히 페어리라는 종족에 관해서 설명했다. 원래 페어리는 요정족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종족으로 그 종족의 99%는 대부분 여성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여성으로 태어난 페어리들은 자유롭게 살다가 어느날 다른 종족의 남자에게 반한다고 한다. 같은 종족의 남성에게 반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자 페어리가 워낙 드물어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배대호는 임신과 출산에 관해서 지적했지만···. 사실 페어리는 다른 종족처럼 부모라는 개념이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부모라고 해도 아이를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는 페어리는 나면서부터 성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아기로 태어나는게 아니고 물론 유년기라는 것도 없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부모라고 해서 자식을 구속하지는 않는다. 서로 친근하게 지내는 경우는 있지만 딱히 부모 자식이라고 해서 특별한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굳이 말하면 페어리들은 온 종족을 통틀어서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도 또 하나는 페어리들의 출산과정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출산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영혼과 반려로 정하 남자의 영혼의 일부를 때어내서 자연에 방치할 뿐이니 말이다. 그렇게 방치한 영혼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태어난다. 즉, 뱃속에 품고 있다가 낳는 출산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 보면 난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태어난 페어리는 부모가 누군지 알고 있다. 영혼의 일부를 때어내서 만들어진 만큼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내 부모가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지 굳이 부모를 찾지는 않는다. 이미 세상에 태어나는 시점부터 성인이니 그냥 자유롭게 살아갈 뿐이다. “····그러니, 페어리들은 주로 다른 종족 중에서 반려를 정하고 그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다른 종족들처럼 성관계를 가져서 체내에서 아기를 수정해서 출산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습니다. 뭐···. 상대가 원하는 경우 성관계를 가지기도 한다고 하지만 그때는 상대를 작게 만들거나 자신이 커지거나 한다고 하더군요.” 설명을 다 들은 배대호는 그제야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은 고백을 받았던 것인데 그걸 너무나 담담하고 냉철하게 거절해 버렸다. 그래서 상대가 상처 받은 것이고 말이다. “그렇군····. 그래. 페어리의 생태계에 관해서는 잘 알았네. 그럼 지금 페어리퀸은 내가 자신을 거절했다고 생각해서 상심해서 뛰쳐나갔다는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쯧, 귀찮게 스리···.” 배대호는 결국 막사 밖으로 나가서 자신의 마력을 넓게 확장했다. 그가 마음먹으면 가우리의 간부들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고 정밀한 탐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 에리프릴 왕국의 정찰대에게 잡혀가고 있는 페어리퀸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큰일 날 뻔 했군. 구해야겠어.” “예? 그게 무슨···.” 엘프 보좌관이 뭐라고 물으려고 할 때는 이미 배대호가 사라진 후였다. 근거리 텔레포트를 반복해서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한 배대호는 정찰대원들의 사이를 유유히 내려오면서 차분하게 적들을 관찰했다. “····이제까지 놈들과 달리 장비가 충실한 걸? 드디어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이 본격적으로 합류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배대호의 중얼거림에 정찰대의 대장은 눈이 스산해졌다. 어차피 살려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는 절대 살려보내서는 안 될 상대가 되었다. 이제까지의 전쟁이 아이언 왕국의 시간 끌기였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삼국의 전력을 모은 총력전이 벌어질 시기였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상대방에게 먼저 밝혀져 버리면 좋지 못하다. ‘절대 살려 보낼 수는 없다····. 문제는 이거 상당한 거물로 보인다는 건데···.’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42화 에리프릴 왕국의 정규 정찰대의 대장이라면 가우리로 치면 5급 정도는 되는 직위이다. 직급 자체가 상당히 높은 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찰대를 이끌고 있을 만큼 훌륭한 안목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수십 명이 되는 자신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압도적인 여유로움. 언 듯 보면 전신이 허점투성이로 있는 상대였지만 본능적인 감각은 경계경보를 왱왱 울리고 있었다. 상대를 자극하는 순간 죽는다. 라고 말이다. 정찰대장은 부하들에게 몰래 수신호를 보냈다. [산개해서 도주,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라.] 정찰대의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정찰대원들 중에 한 명이 배대호의 앞에 연막탄을 던졌다. 퍼어어엉!!!! “연막이라···. 시야를 가린 다음에는 뭘 할 생각일까?” 배대호는 자신의 발치에서 터진 연막탄을 보고도 태연했다. 마치 길거리에서 하품하는 고양이라도 본 것처럼 태연한 목소리였다. 그런 배대호에게 사방에서 공격 마법들이 날아왔다. “집중사격!!!” “죽어라!!!” 퍼퍼퍼퍼펑!!!! 에리프릴 왕국군 특제 마도 병기인 매직건이 불을 뿜었다. 4클래스 이하의 마법들 밖에는 사용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군이라는 무력 집단에 적용 시켜서 대량으로 사용하면 그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훌륭한 화력을 발휘했다. 한바탕 강렬한 공격을 갈긴 후에 정찰대장은 배대호의 생존도 확인하지 않고 외쳤다. “산개!!!!!” 그리고 그 순간 정찰대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공격 마법으로 인해서 자욱한 연기와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와중에도 배대호는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훈련이 아주 칼 같은걸? 정규병이라는 티가 제대로 나.” 그렇게 말하는 배대호의 목소리에는 조급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독안에 든 쥐지····.” “헉···. 헉····.” 정찰대원들은 달렸다. 헤이스트 부츠로 전력을 다해서 달리는 그들은 험한 숲 속이라고 해도 준마가 평지를 달리는 것 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마법 도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이들이 정예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에리프릴 왕국의 정규 정찰대는 개개인이 혹독한 훈련을 거쳤고 10개 이상이 되는 마법 도구를 지니고 있는 정예들이다. 그 전투력은 한 명이 일반 병사 100명을 여유롭게 제압한다고 알려져 있는 정예군단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텅!!! “크윽···. 장벽?” “대장님. 이쪽에도 장벽이 있습니다” 도주하던 정찰대원들은 이미 어느 정도 가다가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투명한 마법 장벽을 보고 절망했다. “칫!!!!” 정찰대장은 자신의 귓가에 있는 귀걸이의 마보석을 꺼내서 장벽과 약간 떨어지더니 그대로 장벽을 향해서 집어 던졌다. 콩알만한 붉은 보석은 장벽에 날아서 부딪히더니····. 콰아아앙!!!!! 마치 다이나마이트라도 터진 것처럼 강력한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빌어먹을.” 하지만 폭발이 걷히고 나서 드러난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 장벽은 건재했고 전혀 무너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설마 상대는 7클래스 이상의 메이지란 말인가?” 지금 정찰대장이 던진 아이템은 6클래스의 트리플 익스플로전 마법이 담긴 마보석이다. 제작비가 상당히 많이 들고 일회용이라는 단점이 있어서 정찰대원들 중에서도 대장인 그에게만 지급된 비장의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템을 던져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은 적의 방어 마법은 최저 7클래스 이상의 마법방어력이라는 것을 뜻했다. “제길···. 대마도사급이라···. 통신에게 떨어져 있는 전원에게 연락해라. 적은 대마도사급이다. 척살명령 1번을 내려라.” “옛!!!!” 척살명령 1번이란 자살 공격을 해서라도 무조건 죽여라. 라는 명령이었다. 이 장벽을 깨기 위해서는 이제 장벽을 펼치고 있는 메이지 그 자체를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지극히 타당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2조, 2조 응답해라. 3조, 4조, ···어느 조든 통신에 응답하라!!!” 정찰대원이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대답하는 조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대신 다른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소용없어. 관찰하기 힘들어서 다른 놈들은 이미 다 죽였거든. 남은 건 너희들 뿐이다.” 배대호는 하늘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것처럼 천천히 내려오며 말했다. 그런 배대호를 발견한 남은 정찰대원들은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듯이 재빨리 전투 준비를 마쳤다. “흠···. 정말 훈련이 잘 되었는걸? 혹시 다른 보여줄 아이템이나 비장의 기술은 없나?” 배대호는 적에게 남은 수단이 있으면 기다려 줄 테니 해보라는 듯이 선선히 말했다그런 배대호의 모습에서 정찰대장은 이를 갈았다. ‘정보를 최대한 캐낼 생각인가? 애당초 자신이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않하는군.’ 방심한 사자는 여유에게도 목덜미를 물어뜯길 수 있다. 그게 이 정찰대장의 신념이었다. 실제로 그는 익스퍼트 하급의 실력이었지만 예전에 전쟁터에서는 방심하고 있는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의 목을 따본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남자와 자신들의 전력차는 여우와 사자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이미··. 사자와 개미? 아니 그렇게 비교할 대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도 이 상대에게 이길 수 있는 패턴이 머릿속에서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페어리를 죽여!!!” 하다못해 저 증오스런 적의 목적으로도 이루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부하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그것도 뜻을 이르지 못했다. 놈들이 페어리퀸을 죽이기 전에 먼저 배대호가 페어리퀸을 빼냈기 때문이다. “괜찮아? 별 이상은 없는 것 같기는 한데.” “어···. 으응···.” 구해진 페어리퀸 조차 자신이 언제 어떻게 구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대호의 손바닥 위에 있는 자신을 자각했을 뿐이다. 이 상황을 파악한 것은 한 명 뿐이었다. “····공간···. 조작····.”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을 한 것은 정찰대의 대장이었다. “어라? 눈썰미 좋은 녀석인 걸? 어떻게 눈치챘지?” “·············.” 눈치챈 것이 아니었다. 배대호의 공간 조작은 스킬의 일부를 응용한 것이라고 마나의 유동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정찰대의 대장이 알앝챈 것은 그것 말고는 방금전의 상황을 설명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캐스팅도 뭐도 없이 자연스럽게 손 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공간을 조작한다.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가 메이지로서 지고의 경지인 마나 엠페러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대륙에서는 존재도 불분명하고 그저 있었더라···. 라는 식으로 내려오는 마나 엠페러가 가우리에 있었다. 에리프릴 왕국은 마도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마법을 신봉하는 나라였고···. 그런 나라의 출신이었기에 정찰대장들이 겪은 절망감은 더욱더 컸다. 이건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 조차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뭐, 포기한 모양이군. 얌전히 있어라.” 배대호는 자신의 부하들이 오기까지 그냥 정찰대원들에게 얌전하게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배대호의 말에 정찰대원들은 정말 말 잘듣는 어린애처럼 얌전히 기다렸다. 마나 엠페러가 상대인 이상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뭐···. 배대호는 엄밀히 말해서 메이지는 메이지라도 이 세계와는 형태가 다른 메이지라서 이들이 말하는 마나 엠페러라는 것과는 무관했었지만 말이다. 일단 포로 문제를 확실하게 한 후에 배대호는 그때까지 자신의 손안에 있는 페어리퀸을 보면서 말했다. “아까 엘프들에게 페어리가 술을 주는게 어떤 의미인지 들었어.” 용건은 처음부터 지극히 스트레이트였다. “응? 응··응, 흥? 그게 뭐 어때서?” 처음엔 당황하다가 조금 지나니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그냥 당당하게 뭐 어때서라는 듯이 말했다. 배대호는 그런 페어리퀸을 보면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 어디가 좋은데?” “·····안 가르쳐 줘.”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면서 말하는 페어리퀸을 보고 배대호는 살짝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 배대호는 별로 여자에 관심이 없는 타입이었다. 이게 딱히 배대호만의 일은 아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백 년 동안 살다 보니 배대호도 박추성도 희로내락에 무덤덤해 진면이 있었다. 여성에 대한 갈구도 그런 면이 있었다. 틀림없이 저 레벨 때에는 거의 부부처럼 함께 살며 동거하던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 그 여자들이 먼저 죽고··. 결국 자신 혼자만 남으면서 여자를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랑했다고 생각한 여자와 죽음으로 헤어지면서도 담담한 자신을 발견하자 더 이상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배대호만이 아니라 그라운드 제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고레벨 유저들의 경우 대부분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거의 닳아 버렸다. 사귀는 여자라기보다는 그냥 이따금 살을 겹치는 여자나 곁에 두고 쓸쓸할 때 찾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중겸의 경우는 좀 특수한 케이스고 말이다. 배대호는 문득 예전에 자신하고 사귀었던 여자들이 몇 명 떠올랐다. 이제는 얼굴도 희미해졌지만 당시에 사귈 때는 비교적 진심이었던 것 같다. 동시에 양다리를 걸친 적도 없었고, 그녀들이 곁에 있을 때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행복과 충족감도 들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페어리퀸의 귀여운 모습을 보자 다시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뭐···. 나쁠 거야 없겠지?” “응? 뭐···가?” 조심스럽게 되 묻는 페어리퀸에게 배대호가 웃으면서 얼굴을 바싹 대고 말했다. “오늘부터 내꺼하자.” 나름 트렌드에 맞춘다고 맞춰서 한 말일까? 아니면 21세기의 대중문화가 레벨 300이상의 초인에게 끼친 영향력일까? 배대호의 말을 들은 페어리퀸은 얼굴을 사과처럼 붉히면서 말했다. “······ 내 날개가 다 오글거려.” 백 번 지당한 말이었다. 배대호와 페어리퀸의 축 커플 달성과는 별개로···. 지금 전선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배대호가 잡아온 정찰대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에리프릴, 성 세인트, 그리고 아이언 왕국으 모든 총력이 모아져 있다고 했다. “흠, 나 혼자서는 조금 어려우려나?” 배대호는 지도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대호 형님. 무슨 약한 말씀입니까? 형님 답지 않게 스리?” 김수민은 배대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레벨 300이 넘은 배대호, 거기다 김수민 자신의 레벨도 201에 달했고 홍린과 장 그레고리까지 여기 전선에 투입 되어 있었다. 이제까지는 적이 전선을 넓게 쓰고 있어서 이쪽도 전력을 집중 시키거나 한쪽을 뚫고 정면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 망설여 졌지만···. 그래도 적의 전력이 한 곳에 모여 있다면 이제는 자신들이 앞도적인 화력으로 적들을 몰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배대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적을 너무 만만히 봤어. 생각해 봐라. 크롱크 왕국의 인해전술이나 엘라 왕국의 킹 클래스의 대괴수. 이 두 가지 다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배대호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심은 금물이란 말이군요. 확실히 태만이 부르는 패배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죠.” 홍린 역시 거기에 동의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얻었던 정보에 의하면 대륙의 국가들 중에 국력의 순위가 크롱크 왕국은 5위, 엘라 왕국이 4위였죠. 그리고... 성 세인트 왕국이 2위, 에리프릴 왕국이 3위였습니다. 아이언 왕국은 7위였지만··· 뭐 방심은 금물이겠죠.” 홍린의 말을 들은 배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 말대로다. 에리프릴 왕국이나 성 세인트 왕국은 다크니스 왕국을 제외하고는 이 대륙에서 다음 가는 국력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 실제로 이번에 내가 상대한 정찰병 놈들···. 장비가 엄청 충실하더라. 고작 정찰대 수준이 아니었다.” 배대호의 말을 듣고 나니 김수민은 그제야 심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본국에 연락해서 지원군을 얻을까요?” “그건 이미 연락을 보냈다. 추성이가 온다고 하더라.” “과연····.” 배대호 박추성 콤비라고 하면 가우리의 전체 전력의 50%이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박정운까지 부르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대로는 정면 대결을 해도 충분히 할 만할 것이다. “추성이는 오늘 안에 올 거다. 그때 적과 전투를 시작하자. 문제는···. 이 놈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한 다음에 가능하면 도망가지 못하도록 정면 대결을 펼치는 것인데····.” 배대호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때 밖에서 전령이 급하게 들어와서 보고를 올렸다. “배대호님. 사신이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 작품 후기 ============================ 예약 시스템의 고장일까요? 또 예약 걸어놓은 작품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수동으로 올립니다. 업로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43화 <대회전> “사신? 지금 이 타이밍에?” “예. 그렇습니다.” 배대호는 잠시 동료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들어오라고 그래.” “옛!!” 잠시 후에 삼국 연합의 사신이라는 자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에리프릴 왕국의 메가드 남작이라고 합니다.” “배대호라고 합니다.” 둘은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 배대호는 바로 용건을 물었다. “사신으로 찾아온 이유는 뭐요?” 바로 용건부터 꺼냈지만 메가드 남작은 불쾌함 대신에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자기 용건을 말했다. “이번 전쟁을 상호간에 오래 끄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본 국은 귀국에 대회전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대회전을?” “그렇습니다.” “··········.” 배대호는 잠시 침묵하고 생각했다. 사실 대회전은 배대호가 바라는 바였다. 이런저런 전략이나 기교를 빼고 정면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가우리가 바라는 바였다. 사실 가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최악의 사태는 크롱크 왕국이 했던 것처럼 넓은 전선에 걸쳐서 일어나는 전방위 적인 압박이 골치 아픈 것이지···. 단 한 번의 전투에서 기량을 겨루는 대회전은 뺄 이유가 없었다. ‘함정인가? 아니면···. 저쪽도 자신이 있다는 걸까?’ 배대호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그때 옆에서 장 그레고리가 말했다. “귀국에게 전하게. 그대들의 청. 이 장 그레고리가 아름답게 받아들이겠다고.” “·····예?” “장소와 시간을 정하게 가급적이면 아름다운 시간과 아름다운 장소가 좋겠지. 기대하고 기다리겠네.” “···············.” 장 그레고리의 말을 들은 사신은 혀라도 깨문 표정을 했다. 가우리의 간부들은 익숙해 졌지만 장 그레고리의 느끼함 120%의 말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외계어로 들리기 십상이다. 다행이 상대는 경험이 많은 사신인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그대로 전하지는···. 됐어.” 옆에서 김수민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신이 물러나고 나자 그제야 김수민과 홍린이 장 그레고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장 그레고리님!!!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덥썩 받아들인 겁니까?” “어차피 당신이 한 일이니 또 뒤로 물러나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겠죠? 아··. 정말이지···.” 둘다 타국의 사신이 지켜보는 앞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한숨 섞어가며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배대호는 여전히 신중한 표정을 하고 생각하더니 중얼 거렸다. “아니··. 나쁘지 않아. 라기 보다는 어차피 이렇게 가는 수밖에 없었어.” 배대호의 중얼거림을 들은 김수민이 물었다. “형님. 무슨 말인지 우리도 좀 알아듣게 설명해 줄 수 없습니까?” 김수민의 말에 배대호는 모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차피 전력을 집중 시켜서 치르는 정면대결은 우리도 바라는 바였어. 다만 클리어 할 점은 두 가지.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 추성이가 합류할 것을 기다린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적도 우리와 정면 대결을 피하지 못할 상황을 만든다. 대회전을 받아들이면 이 두 가지 조건을 한 번에 클리어 할 수 있어.” 배대호의 말을 들은 홍린은 고운 눈썹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건 옳습니다. 하지만 적도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생각이 있어서 대회전을 먼저 청한게 아니겠습니까? 순진하게 적이 바라는 대로 끌려 가는건 좀 내키지 않는데요?” 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배대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대회전에 적들의 노림수가 있다고 해도···. 그냥 넓은 전선을 통째로 커버하는 것 보다는 나은걸? 이번에 내가 잡아온 정찰대 봤잖아? 저런 놈들이 전선 전체에 설치기 시작하면 정보전에서 우리가 너무 밀려.” “···········.” “···········.” 결과적으로 배대호가 하는 말은 모두 맞았다. 대회전에서 상대가 노리는게 있다고 해도 받아들일 가치는 있었다. 일단 가장 피하고 싶은 전선의 확대만큼은 피할 수 있었으니 나머지는 무슨 함정이 있더라고 자신들이 하기 나름인 것이다. “장, 당신도 그걸 다 알고 받아들인 건가요?” 홍린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장 그레고리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글쎄····. 과연 어떨까? 그런 속내를 여기서 밝히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군.” “·············.” “·············.” “·············.” 진짜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인간이다. 라고 간부들 전원이 생각했다. 대회전의 장소로 정해진 곳은 크롱크 왕국과 아이언 왕국의 국경지대 부근에 있는 넓은 평지지대였다. 사실 평지라고 해도 뒤편에는 산이 있고 정면에는 울창한 밀림이라서··. 한 번 힘 대결에서 밀리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면 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전열을 유지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그런 장소를 정한다는 것은 끝장을 보자는 반증이었다. “흠···. 저게 적국인가? 줄 한 번 멋지게 세우고 있는 걸??” “그러게 말이야···.” 배대호와 박추성은 적국의 전열을 보면서 살짝 감탄했다. 우선 가장 전열에 있는 것은 신장 5미터 정도가 되는 스톤 골렘이었다. 아이언 왕국의 골렘은 튼튼하기로 유명한 것이었는데 오늘은 그 골렘의 하나하나에 상당한 마력이 느껴졌다. 아마도 어떤 마법적인 처치를 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 뒤편의 열에 있는 것은 성 세인트 왕국의 정예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기사단이었다. 신성 기사단은 개개인의 기량도 뛰어나지만 그 이상으로 단체로 행동 할 때는 개개인의 기량을 훌쩍 뛰어넘은 진가를 발휘한다. 신성력을 하나로 모아서 전방에 방어막을 친다거나··. 혹은 진형을 쇄기 형태로 바꿔서 기사단 전체가 거대한 돌격형 파괴 무기가 된다거나··.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고 알려져 있다. 가우리의 평가로는 레벨 90대의 소드 마스터 100명이 모여 있는 것 보다 레벨 70~80대 정도의 신성 기사단 익스퍼트 상급 100명이 모여 있는게 훨씬 더 강력하다고 평가하고 이었다. 더구나 그 익스퍼트급의 사이에 구심점이 되는 마스터 한 명만 들어가면···. 그때는 전력의 상승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올라가고는 했다. 그리고 신성 기사단 뒤편으로는 삼국 연합에서 모으고 모은 일반 병력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미세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을 봐서는 아마 에리프릴 왕국의 마법 도구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하늘에는 에리프릴 왕국 출신이라고 보이는 마법사들이 둥둥 떠 있었다. 특히 그들 중에 몇 명은 하늘에 떠 있는 배에 탑승해 있었다. “저게 어제 엘프들에게 들은 에리프릴 왕국의 문 쉽 인가?” “그런가 봐. 마법사를 태우고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공방일체의 마도병기···. 저 나라 주력 중에 하나라더라.” “흠···. 과연 화력이 어느 정도 나올까····.” 사실 이 외에도 아직 숨겨진 전력이 더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 눈앞에 척 보이는 전력은 이 정도 뿐이었다. 대회전에 앞서서 양국의 대표가 앞으로 나왔다. “이런 귀찮은 절차를 꼭 해야 하는 거냐?” “예의래. 그냥 입 다물고 있어.” 투덜거리는 박추성을 두고 배대호는 일단 입을 다물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두 명의 인간과 한 명의 드워프가 나왔다. 드워프는 보통 드워프들 보다는 머리 하나 정도가 더 컸고 체격도 척 봐도 우람했다. 누가 보면 드워프가 아니라 좀 키가 작고 근육으로 땅땅하게 뭉친 인간으로 볼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간 두 명은 한명은 척 봐도 사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순백의 사제복을 걸치고 손에는 순금에 보석을 여러 개 박은 요란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은 남색의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마법사였는데 눈에 검은 눈동자가 안 보이고 오로지 흰 자위 뿐이었다. ‘맹인인가? 아니, 시선의 초점은 맞는 것 같은데?’ 배대호는 짧은 시간에 셋을 관찰한 후에 먼저 자기 소개를 했다. “가우리의 국가행정부장인 배대호라고 하오.” “성 세인트 왕국의 대주교. 미케란 브란다요.”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 바이로이드 할슈타트다.” “아이언 왕국의 루켄발데 족장이요.” 그렇게 상호간의 인사를 끝내고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타이밍을 재고 있던 성 세인트 왕국의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였다. “먼저 이런 무익한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은 크게 유감이오.” “그렇습니까?” 배대호는 그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는 웃는 얼굴을 유지 한 채로 청산유수로 말문을 터트렸다. “당연하지 않소. 우리는 그저 라트란 왕국과의 외교 문제를 제시했을 뿐인데 거기에 가우리가 끼어듬으로 인해서 이런 대전쟁이 발발하고 있었소. 이런 주신도 한탄할 무익한 전쟁이 벌어진 것인 심히 유감 스럽소.” “그렇습니까?” “···········.”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냥 배대호는 스루 패스라도 받듯이 흘려 버렸다. 그러자 이제까지 웃는 낮을 유지하고 있던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가 살짝 안색을 굳히면서 말했다. “진지하게 말 할 생각은 없는 것이오?” “예. 없습니다.” “·············.” 상대를 힐난하기 위한 한 마디가 그냥 단순한 긍정으로 돌아왔다. “쿡·····.” “크흠····.” 옆에서 같은 편인 두 사람도 당황한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를 두고 작은 조소를 보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배대호는 그냥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말이 필요합니까? 말 잘해서 물러갈 일이라면 진작 풀렸겠지.” “으음······.” 침음성을 내 뱉은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는 누가 봐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를 보고 배대호가 되로 돌아가며 말했다. “좀 있다 전쟁터에서나 봅시다. 여기서 오래 말해보야 의미도 없으니···.” 원래 대회전의 시작 전에 양군의 수뇌부가 나와서 서로 인사를 할 때는 서로 간에 이 전쟁에 정당성이 있음을 주장 하는게 보통이다. 그리고 너희는 정의가 없으니 물러가라. 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아군의 사기를 북돋는다. 그런데 이렇게 힘 빠지는 인사는 아마 이 대륙에 대회전이라는 룰이 생긴 이후 처음일 것이다. 양쪽의 수뇌부가 자기 진형으로 돌아간 후····. “전진!!!!!!” 삼국연합 쪽에서 먼저 전진 명령과 함께 먼저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전쟁의 피날레가 시작된 것이다. “오는군. 모두 사전에 예정된 대로 행동하라고 해.” “옛. 알겠습니다.” 배대호는 그렇게 아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라트란 왕국의 군단이 그대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프들은 정령들을 소환해서 모두 방어쪽으로 치중했다. 그리고 정면으로 나서는 것은···. 가우리의 간부들과 몇몇 측근들 뿐이었다. “정말 이렇게 해도 돼? 내가 도울까?” 앞으로 나가려는 배대호에게 걱정 된다는 듯이 말한 것은 이제까지 배대호의 품속에 숨어있었던 페러이퀸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배대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넌 싸울 수도 없잖아? 걱정 해 준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우니 그냥 물러나 있어.” 그런 배대호의 말에 페어리퀸은 고개를 훽 돌리면서 말했다. “흥!! 별로 걱정 같은 것 안 했는 걸?” “아니아니··. 걱정은 해야지. 나 네 애인이라고. 기억 안 나?” “·········.” 배대호의 말에 페어리퀸은 괜히 고개만 돌리고 배대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대호는 자신의 품안에서 페어리퀸을 엘프들의 보호막 쪽으로 보냈다. ‘오랜만에 여자하고 사귀니 좀 색다른 기분이네.’ 그리고 페어리퀸이 완전히 뒤쪽으로 빠지자 배대호는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작전은 설명한 대로다. 모두 정신 바싹 차리도록 해.” “작전이라···. 이런걸 작전이라고 부르는 건가? 보통?” “나도 몰라. 하여튼 하는데 까지 해 보지 뭐···.” 아군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배대호는 가장 먼저 김수민에게 말했다. “수민아!! 박살내 버려!!!” “옛!!!!!” 김수민의 타란툴라 웹이 길게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늘어났다. 그리고 김수민이 채찍을 크게 휘두르면서 외쳤다. “난무!!!!!!” 콰콰콰콰쾅!!!! 타란툴라 웹. 김수민의 유니크 아이템으로 무한하게 늘어나며 절대 끊어지지 않는 채찍이다. 채찍의 가닥이 하나하나 풀어져서 가는 실로 변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보면 박추성의 무한의 영사하고 비슷한 아이템이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는 최적인 것이다. “갑시다 추성이 형님!!” “이미 가고 있다.” 그리고 박추성과 김수민을 시작으로 홍린과 장 그레고리. 그리고 몇몇 간부들이 적들에게 정면으로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투의 첫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44화 퍼엉!!!! “제길·· 막아랏!!!” “이쪽으로 접근 시키지 마!!! 문 쉽은 뭐해!!! 요격하란 말이야!!!!” 삼국 연합은 상당하 아비규환이었다. 가우리의 간부들을 주축으로 10명이 약간 넘는 공격조가 들어올 때만 해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가우리의 간부들은 그 한계를 훌쩍 뛰어 넘고 있었다. 처음에 김수민의 채찍 공격 하나만으로도 이미 골렘 부대의 80%가 반파 되었다. 그 후엘 몰아치는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 성 세인트 왕국의 신성 기사단과 에리프릴 왕국의 마도부대가 최선을 다하고는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아직도 이 소수의 공격을 버티기에 급급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괴물들이란 말인가? 정말 주신께서 말씀 하신대로 저들은 악마인가?”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는 눈으로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삼국 연합의 정예들이 고작 10명 남짓한 인간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아이언 왕국의 특제 골렘들은 마치 찰흙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부서졌고 에리프릴 왕국의 마도 병기들도 적들에게 큰 대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성 세인트 왕국의 자랑인 신성기사단의 고전이었다. 신성기사단의 방어력은 대륙 최강. 이게 성 세인트 왕국군의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그 신성기사단이 적들의 공격 한 방 한 방이 먹힐 때마다 휘청 거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뚫리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이미 중간 중간에는 약간의 희생이 생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만들고 있는게 대군도 아니고 고작 10명 남짓한 인간들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넋을 놓고 있는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와 달리 마법사인 할슈타트 로드는 이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있었다. “적들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비장의 수단을 써야겠어.” “잠깐···. 봉인지정 무기들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소. 좀 더 지켜보면 적들도 힘이 빠질 거요.”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는 이 상황이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이 막연한 추측을 내놓았다. 그런 그를 보는 할슈타트 로드는 백안으로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군이 다 날아간 다음에야 그따위 망언을 지껄인 것을 후회할 텐가?” “·············.” “너희가 안 하면 우리가 한다. 단, 우리만 방패막이로 쓰면 너희가 무사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마라.” “큭···. 알았소. 봉인지정 무기를 사용하겠소. 대신 아이언 왕국도···.” “걱정하지 않아도··. 이미 거신병들의 준비는 끝났소.” “좋소···. 그럼 시작합시다.” 그리고 수뇌부들의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전선에는 또 한차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쿵!!! 쿠우웅!!! 쿵쿵!!!! “응? 저건···.” “뭐야? 중겸이 형님이 타이탄이라도 소환 한 줄 알았는데····.” 한창 적들을 유린하던 가우리의 간부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적 진형에 거대한 골렘들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골렘이 기존의 골렘들과는 좀 달랐다. 이제까지 만든 골렘은 쇠나 돌, 청동 따위로 만들었는데···. 저 골렘은 몸 전체가 눈부실 정도로 황금색을 띄고 있었다. 거기다 크기도 엄청나게 컸다. 척 봐도 높이가 40미터 정도는 될 법한 거대한 거구였다. 손에는 활과 창, 검 같은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었고 놈들의 몸에는 황금색 갑옷이 빈틈없이 둘러져 있었다. 그렇게 비까번쩍한 놈들이 50기 넘게 소환된 것이다. “설마··· 황금으로 만든 골렘이라는 말은 아니겠지?” “아니 저 크기는··. 아무래도 아니겠지? 무엇보다 황금으로 만들어서 뭐 하게?” “흠···. 일단 쳐 볼까?” 그렇게 말하면서 달려간 남자는 마자랭 콜페르. 원래 프랑스의 유저로서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레벨은 160이 넘는 고위 유저였다. 한우리 연맹 시절부터 꾸준하게 활동한 유저로서 커다란 할버드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압도적이었다. “비켜라. 비켜!!!!!” 콰콰쾅!!! 그는 자신이 황금의 골렘들에게 날아가는 와중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할버드로 쳐내면서 목표한 적에게 도착했다. “받아랏!!!!!” 후우우웅!!! 그의 할버드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적에게 적중했다. 콰아아앙!!!! “뭐야 별것···. 음!!!!?” 상대방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고 생각한 마자랭 콜페르는 그대로 황급하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콰지직!!! “크으윽····.” 자신의 공격에 머리가 날아갔다고 생각한 상대는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거검을 휘둘러서 자신을 후려친 것이다. 할버드로 가까스로 막기는 했지만 그 일격에 자신의 팔과 왼쪽의 갈비뼈가 몇 대는 박살난 것 같았다. 거기다 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추가타를 날리려 했다. 후웅!! 후우웅!!! 육중한 거구에 골렘 답지 않게 상당히 빠른 몸놀림. 마자랭 콜페르는 공격을 피하기만 급급했고, 결국 위기 상황에 빠졌다. “제길!!!” 어느새 뒤편에서 다가오는 공격을 보지 못한 그에게 뒤편에서 창이 찔러져 왔다. 말이 창이지 저기에 찔리면 그냥 짓 뭉게져 버릴게 뻔했다. 그런데 그때···. “낙천타!!!!!” 콰아아앙!!! 하늘에서 거대한 채찍의 공격이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그대로 적을 짓눌러 버렸다. 그것 덕분에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마자랑 콜페트가 살았다. “김수민님···. 감사합니다.” “됐으니까 빨리 이쪽으로 빠져!!!” 방금 날린 거대한 공격은 김수민의 단일 공격기중에 하나인 낙천타였다. 낙천타(落天打) (채찍을 거대화 시켜서 하늘에서 땅으로 강한 일격을 가한다.) 채찍이라는 무기의 특성상 일대일 보다는 여럿을 상대하는 것이 더 익숙한 김수민이지만··. 그렇다고 대인전 스킬이 아애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이 낙천타는 거인이나 대괴수 같은 덩치가 큰 적들에게 잘 먹히는 기술이었다. 거대화된 채찍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강하게 내려쳐지는 그 순간의 파괴력은 범위가 좁을 뿐. 거의 핵폭탄에 필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멀쩡하단 말이지···. 괴물이군.” 김수민은 자신의 낙천타를 맞고도 잠시 쓰러졌을 뿐. 다시 일어나는 적을 보고 이를 갈았다. “아마 저게 라트란 왕국에서 말한 봉인지정 무기 중에 하나인 모양입니다.” “과연···. 그렇단 말이지.” 봉인지정 무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지구의 핵과 같은 무기들이었다. 원래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강하고 효율적으로 적을 파괴하고 사살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지나쳐서 너무나 강대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무기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아이러니 하지만 세상에 너무 강력해서 사용이 금지된 무기. 그것을 봉인지정 무기라고 한다. 사실 엘라 왕국에서 부리든 킹 클래스의 대괴수 폰토시오스 역시 봉인지정의 대상이었다. 그 봉인지정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 시켜야 한다. 하나는 제국의 허락을 구할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전쟁 중인 상대국의 허락을 구할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봉인지정 무기를 사용했다가는 대륙의 공적으로 취급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제국은 둘째 치고 전쟁 중인 상대방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 라는 시점에서 사용이 거의 불가능한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지구로 치면····. 지금부터 우리가 너희 나라 수도로 핵 좀 떨어트릴게. 그러니 그걸 허락해 주지 않을래? 라고 하는 말이나 같은 것이다. 어지간히 정신 나간 상대가 아니라면 허락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상대이지 앟은가? 가우리를 악의 축으로 취급하는 제국의 허락은 이미 지작 구했다. 그리고··. 또 이미 이 대륙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 전쟁에 끼어 들었다. 한 명이 나쁜 짓을 하면 그 놈은 나쁜 놈이지만··. 만약 다 공범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이제 서로 잘잘못 따질 일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사용이 가능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넙죽 이용한 엘라 왕국과 달레 성 세인트 왕국과 에리프릴 왕국은 가능하면 끝까지 자신들은 깨끗한 몸으로 있으려고 노력은 했다. 그래야 이 전쟁이 끝났을 때 자신들이 외교적으로 우위를 찾을 건수를 마련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우리의 강력함은 상상 이상이었고 봉인지정 무기를 해제하지 않고는 도저히 상대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결국 가장 먼저 아이언 왕국이 자국의 봉인지정 무기인 거신병을 개봉한 것이다. 거신병. 이건 그냥 골렘이 아니라 생체 골렘이다. 바로 기간트족이라는 종족이 이 거신병의 재료였다. 오래전에 드워프들은 기간트족이라는 거인족의 노예였다. 기간트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종족이었고, 킹 클래스의 대괴수들 역시 이들이 단체로 몰려있으면 싸움을 피한다고 할 정도로 용맹한 전투 부족이었다. 하지만···.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족들이 이 기간트 족을 몰아내기 위해서 전쟁을 선포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렬하게 그 전쟁에 끼어든 자들이 바로 드워프족이었다. 타고난 전사족인 기간트족에게 최고의 보물은 뛰어난 무기였다. 그리고, 거대한 기간트 족이 쓸만한 무기를 고품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드워프들 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간트족들은 드워프족의 수집에 혈안이 났었다. 그들을 노예로 삼아서 자신이 사용할 우수한 무기를 잔뜩 사용하게 했다. 인간들 역시 드워프를 잡아서 노예로 부렸지만··.· 기간트 족은 드워프를 노예 이하로 대접했다. 거의 무기 만드는 기계? 그 정도의 취급이었던 것이다. 결국 드워프들은 오랜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다른 종족과 함께 기간트 족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이 기간트 족에게 이기기 위해서 만들어낸 생체 골렘. 그게 바로 거신병이었다. 기간트 족은 강했다. 얼마나 강했냐 하면 당시 다크니스 왕국과 제국을 제외하고는 어디도 이들의 폭주를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이 두 나라는 먼저 어딘가를 침공하지 않으니 나라들과 이 종족들은 고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기간트 족에게 이길 수 있는 것은 더 강한 기간트 족 뿐이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총력을 기울여서 기간트 족들 중에 몇 명을 죽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체를 이용해서 마법적 처리와 드워프들의 기술이 더해져서 생체 골렘을 만들었다. 골렘의 표면에 드워프들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하르콘을 코팅해서 모든 마법과 물리력에 경악할 정도의 내구성을 만들어낸 생체 골렘. 그것에 바로 거신병이었다. 처음에는 다섯 기 뿐이었이었던 거신병이었지만 그 거신병들이 서서히 기간트 족을 상대로 계속적인 재료를 만들어갔고 결국 거신병들은 점점 늘어났다. 물론 거신병들이라고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기간트 족들과 싸움에서 파손된 것도 있었고 모든 전쟁이 끝났을 때 남은 숫자는 50여기 남짓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거신병은 대륙에 의해서 봉인지정 무기로 분류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가우리를 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좀 골치겠는데···.” 김수민은 자신의 공격을 맞고도 크게 대미지를 입지 않은 놈들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김수민 역시 그라운드 제로에서 수많은 사선을 넘은 베테랑 전사였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대강 견적 이라는게 나왔다. ‘나 혼자 상대하려면 10기 정도가 한계인가?’ 거대한 덩치에 지랄 맞을 정도로 튼튼한 내구성. 그리고 공격력도 상당해 보였다. ‘제길···. 문명 수준이 떨어진다고 너무 만만히 봤나? 군사력만 놓고 보면 이 세계도 그렇게 만만하지 않단 말이야.’ 김수민은 입맛을 다셨다. 정보에 의하면 상대방은 이런 봉인지정 이라고 불리는 무기를 몇 개인가 더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 중에 하나가 막 개방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했다. 그때···. ============================ 작품 후기 ============================ 이 절단은 절대 고의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여기서 딱 잘려 버렸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45화 쿠우웅!!!!! 끼익····. 끼기긱····. 갑자기 두기의 거신병이 서로 찰싹 달라붙어서 마치 쇠가 일그러지는 듯한 불쾌하고 거북한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 저건···?” “어떻게 된 거지?” 몇몇 사람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김수민은 바로 상황을 파악 할 수 있었다. “추성이 형님.” 김수민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은 박추성이 보였다. “흠···. 경악할 만큼 튼튼한 놈들이긴 하군. 내 무한의 영사로 안 잘리는 것은 거의 드문데 말이야.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박추성은 무한의 영사로 두기의 거신병을 밀착 시켰다. 그리고 그 와중에 무한의 영사를 부분적으로 줄여서 둘을 꽉 밀착 시켰다. 차력에서도 종종 이용하는 속임수 중에 하나로 차돌 격파가 있다. 맨손으로 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야간 공간으 띄워서 돌에 돌을 부딪쳐서 깨트리는 눈속임인데···. 지금 박추성의 공격은 그것과 같은 원리였다.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같은 강도의 물건들 끼리 밀착 시켜서 압박을 가하면····. 우직··. 우지지직····. 쿠웅!!! 결국 금이 가고 깨지기 마련이다. 두기의 거신병이 부서진 깡통처럼 일그러지는 것을 보면서 뒤편에서 방어에 치중하고 있던 라트란 왕국군은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오오!!!” “거신병이 허물어 졌다!!!!” “저게 가우리 인가····.” 거신병의 무서움은 이 세계의 인물들인 요정족들이 더 잘 알았다. 그런데 그런 거신병들이 단 번에 허물어졌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대로 아이언 왕국 쪽에서는 악에 바쳤다. “큭 거신병을 전원 돌격 시켜라!!! 앞에 있는 놈들을 신경 쓰지 말고 뒤편의 요정족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그런 명령을 받은 거신족들은 남은 전원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체 치고는 상당히 빠른 진격속도를 자랑하는 놈들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가 나빴다. “안 돼지. 누구 허락 받고.” 휘리리리릭····. 박추성은 자신의 양손을 펼쳐서 모든 무한의 영사를 움직였다. 거대한 거신병들에게 무한의 영사는 거의 거미줄보다 더 가벼운 작은 줄이었다. 보고 피한다거나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한 것이다. 가능한 것은 힘으로 끊어 버려야 하는 것인데···. 무한의 영사는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박추성의 오랜 애병으로서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쿵!! 쿵쿵!! 쿠웅!!!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려서 부딪히는 자동차 처럼···. 무수한 거신병들이 하나로 다라 붙어서는 마치 거대한 공처럼 뭉쳐 버렸다. 가뜩이나 덩치가 큰 거신병들이 하나로 뭉쳐서 쇠똥구리가 굴리는 공처럼 되어 있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웃기기까지 했다. 끼긱···. 끼기기긱····. “흠··. 이 정도 무게가 되니 역시 좀 무거운 걸?” 박추성은 양손으로 무한의 영사를 힘껏 당기면서 중얼 거렸다. 거신병은 강한 병기다. 아마도 이정도 숫자가 모여 있는 이상 킹 클래스의 대괴수인 폰토시오스라고 해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빴다. 박추성. 정운에게 따라 잡히기 전만 해도 이 남자는 틀림없이 그라운드 제로 최강자였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김수민은 지금 정운이 있다고 해도 과연 이렇게 효율적으로 거신병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정운보다 강한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정운의 밑으로 들어갔기에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박추성이 누군가에게 진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끼기긱···. 끼이익···. 둥굴게 뭉쳐있는 거신병들을 무한의 영사는 전방위 적으로 압박했다. 그리고 이내 한계가 온 것을 느낀 박추성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깨져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콰직!!! 콰아아앙!!!! 한계까지 압축된 거신병 덩어리들은 결국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 그리고 거신병들이 전멸한 순간 드워프들은 망연자실했다. “우리들의 거신병이···.” “왕국 최고의 전력이···. 단 한명에게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금 아이언 왕국의 드워프들이 느끼는 감정은 절망적인 허무감이었다. 거신병은 인간들의 마법이 곁들여지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기술력이 총력을다해서 만들어진 최강의 병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최강의 병기가 사실상 단 한명에게 깨져 버린 것이다. 하늘에서 오연하게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박추성이 드워프들에게는 패배의 상징으로 보였다. 더 남은 전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신병이 박살난 이상 무슨 전력이 나와도 이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흠···. 드워프들의 거신병이 저렇게 허무하게 깨질 줄이야···.” 시종일관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가 눈썹을 찡그렸다. 기간트 족이 이 세상에 이제 없는 이상 거신병을 또 만들 수 있는 무기도 아니었다. 이제까지 봉인지정 무기를 하나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서 대륙에서 나름 존재감을 알렸던 아이언 왕국이었는데···. 그 봉인지정 무기가 이제 없어졌다. ‘이 전쟁이 끝나는 대로 아이언 왕국을 점령하고 드워프들을 노예로 만들어야겠군. 우수한 마법 도구를 만들기에는 훌륭한 장인의 솜씨도 큰 도움이 되지.’ 지극히 인간 제일주의인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다운 생각이었다. 어쨌든 적의 강함은 예상 이상이었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제 자신들도 힘을 아끼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직렬 나선 마법진을 발동 시켜라!!!” “옛!!!!” 그리고 에리프릴 왕국의 마도사들은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곳에 모여서 서로 잡고 나선 모양으로 진형을 이뤘다. 그리고 그 나선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로드가 있었다. “????? ??????? ???·····.” 그리고 그의 입에서 정체모를 영창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진형 안에 있는 마법사들의 모든 기운이 로드 한 명에게 집중 되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공기가 떨릴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 그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저게 뭐지?” “글쎄··. 저것도 봉인 지정 무기라는 걸까?” 가우리의 간부들은 그런 수상한 움직임을 보면서 경계했다. 그때 라트란 왕국의 페어리퀸이 자신의 텔레파시 능력을 통해서 가우리의 인간들에게 말했다. -막아!!! 저건 꼭 막아야 해!!! 지금 검은 재앙을 부르려고 하는 거라고!!! “···검은재앙? 작은 형수님. 그게 뭡니까?” 김수민이 그렇게 되물었다. -흥. 작··. 작은 형수님이라고 불러도 별로 기쁘거나 하지 않거든? “···············.” “···············.” “···············.”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지금 저건 마법사들이 힘을 모아서 검은 쟁앙을 부르려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라는게 가우리 간부들의 공통된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페어리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에리프릴 왕국의 마도사들이 보이는 것 자체는 봉인 지정 무기가 아니다. 직렬 나선 마법진이라는 것은 에리프릴 왕국의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서 만든 일종의 합동 마법진이다. 건전지를 직렬로 연결 시켜서 강한 전압을 얻어내는 것처럼··. 마법사들을 나선 모양으로 연결 시켜서 그 중심에 거대한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봉인 지정 무기는 지금 이들이 쓰려고 하는 것이었다. 속칭 검은 재앙. 정식 명칭은 블랙 썬이라고 하는 것이다. 검은 태양이 하늘에 떨어진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이 무기를 지구로 비유해서 한 번에 설명하지만···. 핵이다. 강한 마력의 덩어리를 압축 시켜서 떨어트리고 대폭발이 일어난다. 한방에 대규모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상 핵무기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지구의 핵 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무기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이냐 하면··. 과거 에리프릴 왕국과 엘라 왕국이 분쟁이 일어났을 때 에리프릴 왕국의 고위 마법사가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대외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으로 이 마법을 발동 시켰다. 그 결과···. 엘라 왕국의 군도에 있는 섬 중에 하나가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섬의 크기는 한국으로 치면 거의 제주도에 필적하는 크기였다. 그리고 블랙선은 사실 그대로 봉인지정 무기로 판정 받았다. 독자적으로 그 무기를 사용한 마법사는 에리프릴 왕국에서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대로 자국에서 사형 시켜 버렸고··. 그게 바로 검은 재앙이라고 불리는 저 마법에 관한 설명이었다. “아니 작은 형수님. 그럼···. 그렇게 강력한 마법이면 아군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나요?” -조절을 하는 방법이 있어. 워낙 범위가 넓기 때문에 사전에 아군에게는 영향이 가지 않도록 마법적인 조치를 한단 말이야. 페어리퀸의 말을 들은 김수민은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말했다. “적만 날려버리는 전술핵이라. 미치도록 골치 아픈걸 가지고 있었군.” 그리고 모든 설명을 다 듣고 나자 장 그레고리가 가장 먼저 분연하게 행동했다. “핵이라··. 그런 아름답지 못한 것은 바로 막아야지!!!!” “비켜 이 새끼들아!!!!” 콰콰콰콰!!!!! 장 그레고리와 김수민의 협공이 마침 한계에 도달한 신성기사단의 방어를 뚫었다. 이제 그 둘은 바로 에리프릴 왕국의 마법을 막기 위해서 달려갔다. 하지만···. 콰아앙!! 둘은 갑자기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고 그대로 뒤러 다시 밀려났다. “제길··. 오늘 스타일 여러 번 구기네.” “큭···. 누구냐? 아름답지 못하게 날 막은 것은!!!” 둘의 눈앞에 보인 것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천사였다. “천사? 천계에서 왜···? 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정신 차려. 이 세계에 진짜 천사가 있을 리가 없잖아? 파우스트가 만들어낸 짝퉁이겠지?” “질투? 나의 아름다움은 천계의 천사조차 질투로 타락하게 하는 건가?” “사람 말 좀 들으라고!!!!!!!!” 김수민은 장 그레고리의 헛소리에 혈압만 폭주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지금 둘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사실 성 세인트 왕국의 봉인지정 무기였다. 성 세인트 왕국이 어떤 모종의 수단으로 파우스트의 직속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세라핌이라는 전투 천사를 불러온다. 원래 지구에서 세라핌은 치천사를 뜻하는 것이지만··. 파우스트가 만든 이 세계에서는 전투적인 능력이 강하고 인간들의 소환에 응하는 이 천사를 치천사라고 했다. 등 뒤에 열 두 장의 날개를 펴고 머리에는 황금의 띄를 두르고 무표정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 천사는 오로지 전투적이 능력만이 집중적으로 발달한 천사였다. -오오오오오오!!!!! 천사는 입에서 소프라노 음을 내더니 한 손에 창을 앞세워서 김수민과 장 그레고리를 향해서 각각 돌격해 왔다. “온다!! 정신 차려!!” “아름다움을 건 도전이라면 언제든지 받아주마.” “····언···. 이익··. 됐어!! 그냥 그래 살아!!” 김수민은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정이었지만 지금 그걸 따질 시간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지금 눈앞의 상대가 너무나 강했다. 콰앙!!! “크윽···.” 가까스로 적의 공격을 막아낸 것과 동시에 김수민은 자신의 채찍을 사납게 휘둘렀다. 김수민과 장 그레고리만이 세라핌과의 전투로 고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나 둘씩 세라핌들이 붙었다. 이 세라핌이라는 것들의 전투력은 척 봐도 거신병에 뒤지지 않았다. 아니 체구가 작고 신성력을 쓴다는 점에서는 거신병 보다 훨씬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추성이 형님은··. 젠장, 난리도 아니군.” 자기 상대를 하면서 슬쩍 박추성 쪽을 바라본 김수민은 혀를 찼다. 자신과 장 그레고리가 두 명씩 세라핌을 상대하고 있고 홍린 역시 두 명을 상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가우리의 간부들 역시 최소 한 명씩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세라핌이라는게 적어도 100기 이상은 소환되었다. 그 중에 80기 이상을 오로지 박추성 혼자서 상대하고 있었다. 박추성이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이건 너무 버거웠다.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하지?’ 상황은 다시 가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46화 “과연, 성 세인트 왕국의 세라핌 군단이군? 좀 더 자주 자주 활용하지 그랬소?” “·············.”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의 말에 성 세인트 왕국의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만 깨물었다. 그런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를 바라보는 할슈타트 로드의 눈에는 명백한 조소가 서려 있었다. 사실 대륙의 봉인지정 무기라는 것은 대부분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 것을 금지한 무기들이다. 아무리 전쟁이라도 이건 너무 강력하니 사용하지 말자. 라는 이유로 타국에서 외교적인 압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세라핌은 좀 다른다. 이 세라핌 소환은 다른 나라에서 외교적 압력이 가해지기 전에 먼저 성 세인트 왕국이 자처해서 봉인지정 무기로 등록했다. 왜냐하면 이 봉인지정 무기는 사용하면 사용 할수록 성 세인트 왕국에 큰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세라핌 소환의 방식이 인신 공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아무나 산 재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 세인트 왕국의 성녀라고 불리는 고위 여성 사제만을 제물로 바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끔찍하다. 세라핌 소환의 과정은 이렇다. 우선 필요한 것은 성녀다. 성녀라고 하는 것은 1급 신관과 동등한 수준의 여성 사제를 칭하며 사실은 이 성녀 하나만으로도 일반 병사 천명에 비할 바 아닌 강력한 전력이다. 하지만 이 성녀를 바쳐서 세라핌을 소환하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대중에게 알려지면 큰 소란이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사실 실상은 이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우선 세라핌 소환에 제물로 바쳐질 성녀는 모든 행동을 봉인 당한체로 잔혹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잔인하게 성녀를 고문한다. 성녀라고 하면 성 세인트 왕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존경받고 떠받들어지는 존재지만···. 세라핌 소환을 위해서는 이 성녀에게 영문도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고 오로지 그녀를 고통스럽게 해서 믿음의 근간이 흔들리게 하고 한 번 타락 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왜 이런 의식이 필요하냐가 하면 그것이 파우스트의 힘을 빌리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보통 인신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의식의 주체가 뚜렷하다. 지구의 고대 잉카 문명에서는 산 제물을 바칠 때 심장을 파내서 바치는데 이것은 곳 생명력 그 자체를 바치는 것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이들이 바쳐야 할 것은 그릇이 큰 영혼과 그 영혼에게서 나오는 강력한 사념이다. 한 평생을 신을 섬기고 평온하게 사라온 영혼. 이것은 색깔로 치면 순백이다. 그리고 이런 순수한 영혼에게 고통을 주어서 검은색을 부여하는 순간 영혼에는 혼란과 함께 강력한 사념이 부여된다. 그리고 그 인간의 사념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야 말로 파우스트의 힘을 빌리기 위한 진정한 대가인 것이다. 가끔 너무나 청렴하고 믿음이 굳건해서 고문으로도 영혼의 색깔이 순백을 유지하는 성녀들도 있다. 그럴 때는 소환이 실패로 돌아갈 위험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그녀를 타락 시키려 한다. 명색이 성녀였던 여성을 난폭한 남자들에게 시켜서 성고문 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그 성녀의 가족을 잡아와서 눈앞에서 고문하고 죽이는 경우도 있고···. 그야말로 어떻게든····. 어떻게든 그 영혼을 타락 시켜야 세라핌 소환이 성공 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과정을 외부로 공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외부에서 세라핌은 성 세인트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신이 베푼 자비로운 천사로 알고 있다. 절대로 순수한 인간의 사념을 먹고 소환되는 괴물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진실이 영원히 숨겨질 수는 없는 법이다. 다른 나라의 고위층들은 세라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소환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은근히 외교 압박의 카드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에리프릴 왕국의 블랙선의 준비가 끝나려면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끌기 위해서 성 세인트 왕국이 세라핌을 소환하게 한 것이다. 현재 에리프릴 왕국의 첩보에 의하면 성 세인트 왕국에서 세라핌 소환의 제물이 되기에 적합한 성녀는 대략 150여명 정도···. 그런 성녀들 중에 100명 가까운 인원이 모두 희생 되었다. 에리프릴 왕국은 이미 가우리와의 전쟁이 끝난 이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크롱크 왕국은 대족장이 새롭게 정해질 때까지 침묵하고 있을 것이고, 엘라 왕국은 군대가 거의 괴멸 당하고 폰토시오스까지 잃었다. 그리고 아이언 왕국의 거신병 전멸에 이어서 성 세인트 왕국의 세라핌 소환까지 압박이 가능해 졌다. 이제 이 전쟁만 승리로 끝낸다면 이 대륙에 에리프릴 왕국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대륙과 다크니스 왕국이 불가침 영역이라는 것만 인정한다면 이 대륙에 에리프릴 왕국을 거스를 나라나 종족은 사라진다. 실질적으로 대륙의 패자가 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 ?? ??? ??!!!” 이윽고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가 영창을 끝냈다. 쿠쿠쿠쿠쿠쿠·····. 하늘에서 검은 태양이 구름을 가르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공포스러운 한편 장엄하기까지 했다. “···끝이다.” “큭··. 방어 결계!!!! 출력 최대로!!!” 라트란 왕국의 요정족 들은 정령을 이용한 방어마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하지만 그들은 한 편으로 과연 이걸 막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잊어버리고 있는게 한 명 있었다. “뜻밖이라고 해야 하나? 양쪽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말이야.” 배대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검은 태양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이제까지 그는 전투의 일선에서 살짝 물러나서 다른 동료에게 싸움을 맡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본인이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방에 적을 날려버릴 강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들을 한 번에 박살내는 한 편 아군의 피해를 없게 하는 공격···. 그 조건에 맞게 준비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열려라. 악마의 턱.” 우우우우우우우웅!!!!!! 배대호의 가슴 앞에서 검은색의 작은 블랙홀이 생겼다. 그리고 그 블랙홀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하늘을 다 덮어버릴 정도로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대호는 자신의 아군들을 챙겨서 그 앞에 하얀 역장을 펼쳤다. “대호 형님? 이건 뭡니까?” 김수민의 말에 배대호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가지 마. 내가 파장을 맞춰둔 화이트 홀로 만든 결계다. 이 밖으론 나가면 다 끌려 들어가 버려!!” 배대호의 말 대로였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검은 태양도···. 좀 전에 모두를 고전 시키고 있었던 세라핌들도···. 적들도···. 땅도···. 공기도··. 저 검은 블랙홀에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으아아아!!!” “사··. 사람 살려. 뭐든지 할 테니···. 으아아!!!” 이 공포 스런 마법에 적들은 어떻게든 발버둥 치면서 도망가기 위해서 필사적이었지만···. 그건 아무 소용없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성 세인트의 존귀하다는 대주교도, 대륙 패권을 꿈꾸던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도···. 이 순간 만큼은 그냥 공평하게 미력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럴수가···. 놈들은··. 놈들은 정말 악마란 말인가? 어떻게 이런···.” 최후까지 자신의 모든 마력을 동원해서 반항하던 로드 역시 결국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한탄했다. 애당초 이 가우리라는 존재는 자신들이 건드려서는 안되는 존재였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을 진작 인정하지 않은 대가가 이렇게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은 산전수전 다 겪은 가우리의 간부들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 마법의 위력은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대호 형님···. 도대체 이건 어떻게···. 형님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요? 그럼 왜? 예전에는····.” 말을 하던 김수민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김수민이 하려던 예전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벌어졌던 최종전. 한우리 연맹에서도 무수한 피해가 발생했고 결국 파우스트는 놓쳐 버렸던 그 전투···. 한우리 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졌던 전투 중에 가장 안타깝고 처참했던 전투였다. 그때에 관해서는 함부로 입에 담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말을 하다가 그것을 상기하고 입을 다문 김수민을 보고 배대호는 담담하게 만들었다. “이건 최근에 만든 마법이다. ·······놈을 위해서 준비한 특제품이지.” 여기서 배대호가 말하는 놈이 누구인지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모를 사람은 간부들 중에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최종전 이후 가장 많은 후회를 남긴 사람 중에 하나가 배대호였다. 박정운, 박추성, 배대호. 이 셋은 당시 유일한 300 레벨을 넘긴 유저로서 핵심 전력이었다. 하지만 배대호는 자신이 제대로 된 몫을 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메이지였기 때문이다. 메이지의 특징은 다른 클래스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이다. 아무리 튼튼한 적이라고 해도 메이지의 강력한 한 방이라면 그 적을 흔들 수 있어야 했다. 그게 바로 메이지의 존재의의였다. 사실 그 전투 전까지만 해도 배대호는 자신의 화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투 후에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300레벨이 넘어가는 메이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격력은 박정운이나 박추성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 말은 자신이 굳이 메이지로 있는 이유 자체가 없다는 말이었다. 박정운이나 박추성이 결정짓지 못할 강대한 적을 날려버릴 강력한 한방.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이상 자신이 메이지인 의미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 이후 배대호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리고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서 결국 이 악마의 턱이라는 마법을 만들어냈다. 파우스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을 만들 수 없다면···. 대신 놈을 영원히 어디론가 날려서 봉인 할 수 있는 마법을 만들자. 라는 일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파우스트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배대호 역시 그라운드 제로에서 독자적인 시스템 해석을 해냈을 정도로 독보적인 천재. 그런 천재가 자괴감과 패배감을 곱씹으면서 신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만들어낸 마법이었다. 삼국 연합으로서는 도저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깨끗해 졌네.” “그러게 말이야.” 배대호가 만들어낸 악마의 턱이 닫히고 지금 이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푹 파여 있는 폐허였다. 멀쩡한 것은 배대호가 펼친 결계 안쪽에 있는 자신들 뿐이었다. “전쟁은 끝났다. 우리의 승리야.” 배대호의 이 한마디가 끝나고 나서야···. 전쟁이 승리로 끝났다는 사실을 자각 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이겼다!!!!!” 에리프릴, 성 세인트, 크롱크, 엘라, 아이언. 이 다섯 개의 나라가 온 힘을 모아서 가우리 라는 이계에서 온 자들이 새운 나라를 침공했다. 결과는···. 오개국의 패배로 결정 났다. 크롱크 왕국은 원래 인구가 막대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대족장의 부재 때문에 한동안은 외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엘라 왕국은 자국의 최대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폰토시오스를 잃었고 국가의 군사력을 80% 이상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들 역시 군사력의 태반을 잃었고 봉인 지정 무기들까지 무위로 돌아가는 충격적인 패배를 겪었따. 가장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은 아이언 왕국이었다. 원래 아이언 왕국의 국력은 대륙에서 7위. 지금은 없어진 브로드 왕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약한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봉인지정 무기가 영원히 파괴당하고 그 밖의 군사력도 완전 파괴당했다. 사실 지금 아이언 왕국이 군사력은 예전에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브로드 왕국 이하다. 솔직히 나라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패배한 나라들에게는 승자의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전쟁씬 자체는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47화 <문화 진출> 전쟁의 시작은 명분이 중요하다. 하지만 시작이 어찌 되었든 간에 전쟁이 끝난 후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 할 수 있는 것은 승전국뿐이다. 가우리는 승전국으로서 다섯 개의 나라에 합당한 요구를 할 수 있었다. 가우리가 먼저 전쟁을 선포한 것도 아니고 선포 당한 입장이었기에 사실 좀 과한 요구를 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우선 전쟁에서 이겼을 때 가장 흔하게 요구하는 것은 전쟁배상금이었다. 가우리는 오개 국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요구····.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지 않은 것이다. 승전국의 행보로서는 엄청나게 비상식 적이었지만 사실 정운의 목적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갔다. 정운의 목적은 세계 정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파우스트에 대한 복수였다. 그러니 파우스트를 신의 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이 세계에서 파우스트의 존재감을 낮출 수만 있다면 사실 다른 이권 따위는 시시한 것이었다. 사실 이미 가우리의 경제력은 지구와 이계의 교역으로 얻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함을 넘어서 좀 지나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에서 돈으로 G30위권 밖의 나라 한 두 개 정도는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의 어떤 경제 평론가는 가우리의 존재에 관해서 인류사에 나타났던 그 어떤 왕이나 부호도 그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현재 지구에서 최고의 부자. 라는 시시한 타이틀이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그게 지금 가우리에 붙어 있는 타이틀이었다. 앞으로 인류사가 길고 길게 이어지겠지만 과연 이 기록이 깨지는 날이 올지는 의문이었다. 그런 가우리에서 굳이 전쟁 배상금을 받아도 별로 득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왜 해가 되냐 하면 가우리가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면 그 배상금은 결국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패한 나라가 국력이 한 바탕 크게 휘청 거리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만이 아니다. 승전국이 전쟁 배상금을 미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그것 때문에 나라가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나기 힘들어서 결국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실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 가우리가 패전국에게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린다면 그건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많은 원한을 사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가우리는 크롱크 왕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게 이런저런 제약을 걸고 이권에 대한 권리를 취득했다. 제약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군사력의 제한을 두는 것과, 노예제도 완전 폐지였다. 사실 처음에는 동맹국인 라트란 왕국을 생각해서 이종족 노예제도만 완전 폐지하려고 했다. 이제까지 이 대륙에서 당연히 되고 있었던 노예제도를 근본부터 파괴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미국 역시 노예제도를 철폐하는 와중에 전쟁을 겪지 않았는가? 가능하면 반발을 없애고 싶었던 가우리는 일단 이종족 노예들만 전부 해방 시키는 선에서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미하엘이 거기에 반대를 했다. “노예 제도를 없애려면 지금이 최적의 기회입니다. 오히려 지금이 지나면 곪고 곪아서 완전히 썩어 버리기 까지 기다려야 할 겁니다.” “정말? 지금이 최적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반발하지 않을까? 괜히 전쟁이 또 일어나는게 아닌가 걱정 되는데 말이야.”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다른 나라들에 그럴 여력이 있나요?” “과연····.” 그녀의 한 마디에 정운은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지금 가우리의 위상은 이계에서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오개국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면서 자국의 영토로는 단 한 반자국도 적이 들어오지 않게 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였다. 이런 가우리를 상대로 패전 이후 힘이 약해진 패전국들이 반발을 한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소 무리한 내정 간섭을 한다고 해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예제도를 완전 철폐하기에는 지금이 최적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노예 제도를 없애고 각 국의 군사력에 제한을 뒀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어느 정도 안전장치를 단 것이다. 당연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이런 개목걸이를 얌전히 달 생각은 없었다. 내정 간섭이니 뭐니 하면서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국제 관계라는 것은 힘이 진리고 법이다. 가우리는 단호하게 그들의 군사력을 제한하고 그 대신에 자신들의 군대를 파견해서 모자란 군사력을 보충해주겠다고 했다. 말은 군사를 보충해 준다고 했지만 사실상 감시의 의미가 주된 목적이었다. 그것 말고도 자잘한 제한을 많이 달기는 했지만 주된 제한은 이 두 가지였다. 단 이 모든 제한에서 하나의 나라는 제외 되었다. 바로 크롱크 왕국이었다. 이것만큼은 가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대족장이 뽑히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잠잠한 크롱크 왕국이지만 기본적으로 이 나라는 어떤 협정을 맺어서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멸망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차라리 적당하게 찍어 누르면서 억제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무식한 놈이 머리 좋은 놈보다 다루기 어렵다더니··. 딱 그 짝이네.” 천하의 박정운도 크롱크 왕국에는 이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시는 수밖에 없었다. 제한을 두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과 별개로 전쟁 배상금을 대신하기 위한 약간의 이권을 챙겼다. 다른 나라에 가우리의 대사관을 모두 설치하고 가우리 소속의 기업들이 진출해서 거의 관세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게 했다. 사실 각 나라들은 그 조건을 비교적 간단하게 허락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쟁 배상금을 내는 것 보다는 훨씬 싸게 먹힌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뭘 몰라서 한 말이다. 정운이 진짜고 노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이 이권 쪽이었다. “됐어··. 이제 민심은 모두 우리 쪽으로 끌어당긴다. 미하엘.” “옛!!” “확실히 해. 간신히 잡은 기회야. 다른 나라의 국민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파우스트를 지워 버리는 거야.” “예. 제게 맡겨 주십시오.” 미하엘은 지금 정운이 자신에게 맡긴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우리가 자국의 기업을 패전국에 진출 시킨 것은 그냥 이권에서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기업이 진출한 이상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이익은 얻어낼 것이다. 아직 미개발된 무수한 지하자원. 상대적으로 저 임금으로 얻을 수 있는 풍부한 인력 자원. 그리고 엄청나게 커지는 판매시장 등등···. 이미 브로드 왕국을 개발하던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어본 만큼 오히려 더 잘 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문화의 전파였다. 문화의 힘은 강력하다. 그리고 한 번 전파가 되기 시작하면 그 전염성은 세상 어떤 전염병도 감히 비교가 안 된다. 브로드 왕국의 사람들이야 워낙 힘든 환경에서 가우리가 나타나 자신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 줬으니 쉽게 감화가 되었다. 하지만 브로드 왕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도 가우리를 신탁대로 이계에서 온 악마로 취급하는 풍토가 강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인명적 피해가 발생한 이상 그런 풍토는 더 강했다. 딱히 침공 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침략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니 가우리를 악마 취급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냉철하게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가우리에 대한 반감은 상당했다. 특히 다른 어디보다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에서 더 강했다. 아이언 왕국과 엘라 왕국은 노예제도 해방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당근 작용을 해서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에리프릴 왕국이나 성 세인트 왕국의 경우 노예 해방으로 인해서 막대한 재산을 잃은 지배층들이 가우리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대 놓고는 아니지만 음으로 움직이면서 가우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자꾸만 조장하고 있었다. 그런 움직임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 정운은 기업을 진출 시키면서 문화를 동시에 수출 하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라. 막을 수 있나.” 문화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정운은 자신이 있었다. 가우리의 기업이 진출한 에리프릴 왕국의 수도. 그 곳에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커다란 빌딩이 하나 생겼다. 최고 레벨의 기술과 능력자들의 사기적인 능력까지 곁들여져서 증축한 120층짜리 빌딩.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고작 몇 달 만에 지어낸 가우리의 능력은 에리프릴 국민들에게 좋든 싫든 감탄을 내게 할 수밖에 없었다. “거 참···. 되게 높단 말이야.” “그러게···. 왕궁보다 훨씬 높은 거지?” “그래. 그리고 건물 외벽이 통째로 유리창이고··. 저 위에 전망대로 가면 왕궁이 다 내려다보인다고 하더라고.” “높은 양반들의 허영심이지 뭐···.” “아니 그게··. 그 전망대라는 곳은 출입료 10쿠퍼만 내면 아무나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던데?” “뭐? 달랑 10쿠퍼만 내면?” “그래. 그렇다고.” “···에이 됐어. 저 위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리면 그게 무슨 생고생이야.” “이 친구 정말 무식하구만. 엘리베이터도 몰라?” “엘리베이터? 그게 뭐야?” “저 건물의 최상층까지 사람을 데려다주는 상자라고 하더라고. 그런게 없으면 저 건물의 높은 사람들도 매일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흠··. 그런게 있었어? 그런데 자네 그걸 어떻게 잘 아나?” “······아들놈이 꼭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에이·· 어째 수상하더라니 자네 한 번 가봤군.” “쉬잇···. 욕 먹어. 욕····.” 펍에서 대화를 나누던 남자들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입 조심을 했다. 사실 술김에 말하기는 했지만 가우리가 세운 건물에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는 어디서 어떤 괴한들에게 몰매를 맞을지 모른다. 가우리의 기업들이 이 나라에 진출하고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이나 상점들을 세워서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전에 국가적을 합의가 된 합법적인 사업들이었다. 하지만···. 가우리에 대한 악감정을 지니고 있는 고위층들은 은밀하게 자기 기사나 사병들을 시켜서 가우리의 편의 시설을 이용하는 국민들을 찾아서 본보기로 폭행, 혹은 살인까지 했다. 그렇다 보니 가우리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한 번 편한길을 알아 버리면 다시 어려운 길로 가기는 어렵다. 가우리가 운영하는 마트나 상점에 가면 편리하고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던 기호품이었던 각종 향신료, 저렴한 식재료와 비누, 치약 등등····. 샴푸는 원래 이 세계에서는 귀족들도 안 쓰던 것이었다. 다만 귀족 여성들을 중심으로 요즘은 폭발적인 수효를 얻고 있었다. 그런 아내나 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귀족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은 가족에게 어떻게 매국노처럼 적국의 상품을 살 수 있느냐? 라고 호통을 쳤지만····. 가장의 권위 따위는 여성들의 미용의 욕구 앞에서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상품마다 예상대로 잘 나가는 층이 있었고 혹은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것도 있었다. 라면의 경우 예상대로 가난한 평민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게 한 끼 해결. 이 한가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라면은 거의 노벨상 감인 물건이었다. 물을 끓여서 넣고 잠시만 기다리면 배부르게 한끼 먹을 수 있으니 그들이 보기에는 어지간한 마법보다 더 신기했다. 심지어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생라면이라는 응용 시식법 까지 사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아마 이대로 놔두면 뽀글이라는 경지에 이르는 것도 금방일 것이다. 그리고 의외의 물건은 소주였다. 소주는 평민들에게 유행할 상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의외로 귀족, 그것도 여자들에게 유행이 되었다. 사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맛 보다는 외형이 먹힌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많이 봐서 익숙하지만 소주 병이라는게 잘 보면 녹색에 반투명해서 좀 예쁘게 보이지 않는가? 거기다 소주병의 라벨에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 놓은 것이 이상한 소문을 낳았다. 소주를 많이 마시면 그 여성처럼 아름다워 진다. 라는 루머가 귀족가에 돌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든 이 세계이든···. 여자들에게 예뻐지고자 하는 욕구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귀족가의 여성들이 소주를 짝으로 사 놓고 먹기 시작하는데···. 말려도 소용도 없었다. 잘못하면 이 세계의 귀족 여성들이 모두 알콜중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소주의 이상한 현상으로 인해서 기업들은 한 가지 팁을 얻었다. 몰래 라도 꾸준히 이용하는 평민들과 달리 남편의 눈치를 봐야하는 귀족가의 여성들을 잡을 상품의 아이콘. 그건 바로 미용상품이었다. ============================ 작품 후기 ============================ 문화를 무기로 삼으면 그 효과는 과연 어느정도일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김동현 선수가 졌습니다.ㅠㅠ하지만 더 강해진 모습으로 일어나실 거라고 믿습니다. 448화 가우리의 기업은 아애 그쪽으로 초점을 맞춘 상품을 수출했다. 아주 호화로운 미용관리 센터를 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용실에 마사지, 스파, 네일샵까지···. 그야말로 여성들이 원하는 드림랜드를 만들어 냈다. 그 미용관리 센터가 개방을 하고 귀족가의 여자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기 시작했고··. 한 번 찾아온 여성은 반드시 회원권을 끊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못 가게 말린다고 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가우리에서 운영하는 미용관리 센터의 회원이 아니면 사교계에서 뒤쳐진 여자 취급 받을 정도였다. “아·······. 여긴 천국이야····.” 숙련된 프로의 마사지를 받으면서 노골노골 녹아가는 백작가의 부인은 따사로운 햇살에 취한 아기 고양이 같았다. 평소 집에서도 안마는 받았다. 하지만 그냥 힘줘서 주무르는 것 밖에 모르는 시녀하고 제대로 된 프로의 손놀림과 미용 오일과 아로마 테라피와 잔잔한 힐링 계열 뮤직까지···. 그녀는 가능하면 여기서 평생 살고 싶을 정도로 이 미용센터에 푹 빠져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전속으로 지명하는 관리인까지 생길 정도였다. “백작 부인님. 피부가 아주 고우시네요. 꼭 10대 소녀 같으세요.” “어머··. 부끄러워라. 과찬은···.” “아니요. 제가 직업상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살결을 만져 보지만 백작 부인님 같은 분은 손에 꼽을 정도인 걸요?” “······정말?” “물론이죠.”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냥 립 서비스일 뿐이다. 관리사들은 이게 일이고 저마다 자신들의 손님을 관리하는 법이 다르다. 아주 디테일하게 상황을 지적하면서 어떤 트러블이 보이니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관리하자. 라고 하는 스타일 부터··. 이렇게 오로지 칭찬을 하면서 상대를 기쁘게 하는 타입까지 여러 타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칭찬 뒤에는 항상 그렇지만 은근슬쩍 비즈니스가 끼어드는 법이다. “이거 이번에 한정품으로 아주 소량만 나온 물건인데··. 역시 물건의 가치를 아시는 분에게 남겨드리고 싶어서 말이죠. 백작 부인에게 권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어머···. 그래?” “예.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하지만 그 가격의 가치는 충분한 물건이랍니다.” “그래···. 알았어 하나 줘 봐.” 오늘도 관리사는 백작 부인에게 한화로 치면 천만원이 훌쩍 넘는 화장품을 팔았다. 물론 싸구려는 아니니 사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진의 10%가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영업에 더 열심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 세계로 넘어오길 너무 잘했지····.’ 가우리의 모집 공고에 응해서 채용된 이후로 너무나 하루하루가 잘 풀리고 있어서 행복한 그녀였다. 어두운 밀실. 거기에 몇몇 귀족들이 담배를 뻑뻑 피워가면서 몰래 회의를 하고 있었다. “쯧····.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문제요.” “그러게 말입니다. 천한 것 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여자들 까지 난리니···. 백작의 부인은 괜찮으시오?” “말 도 마시오. 우리 집도 아주··. 미용센터라는 곳에 못 가게 하면 아애 하루 종일 온갖 히스테리는 다 부리니···.” “우리 집도 그럽디다. 딸이 다른 집의 영애들은 다 가는데 자신만 못 가게 한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부리는데····.” 여기 있는 귀족들은 원래 노예시장에 막대한 이권을 가지고 자신의 재산을 불려오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가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노예제도는 철폐한다. 라고 하자 이제는 장사 수단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보통 귀족들이라고 하면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는 산출품이 이익인 경우를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지방의 영주들의 얘기고 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귀족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몇 가지 사업에 끼어들어 있는게 보통이다. 그 중에서도 이들은 노예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대대로 축척한 자들이었고 말이다. 노예산업은 실로 막대한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그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가우리가 죽여 버렸으니 그들이 가우리에게 반감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평민들 중에 가우리의 상점이나 편의 시설을 이용한 자들을 골라서 무차별 적인 테러를 한것도 이들이었다. 사실 그렇게 해도 가우리에게 큰 피해가 갈 리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나름 소소하게 복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테러를 하고 악소문을 퍼트려도 별 소용이 없었다. 가우리의 기업이 운영하는 상점은 점점 더 장사가 잘 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아내와 딸들도 모두 가우리의 미용관리 센터와 미용 상품에 푹 빠져 있지 않은가? “음···. 뭔가 더 강한 수단을 사용해 보면 어떻소?” “어떻게 말이오?” “가우리의 기업이 파는 상품에 실제 독을 섞어서 평민들에게 먹이는 것이오.” “그거 쓸만 하군요. 그리고 민중에게 바람잡이를 섞어서 봉기라도 일으키면 더 좋겠군.” “우리 귀족들과는 상관없이 무지렁이들이 일으킨 봉기라고 우기면 가우리에서도 뭐라고 하지 못할 거요. 증거도 업지 않소.” “아니 그렇지 않은데? 증거는 여기 이렇게 있잖아?” “증거가 어디에···. 누구냐!!?” 말을 하던 귀족가의 남자들은 순간 깜짝 놀랐다. 이 비밀 회의장에 자신들 이외의 다른 목소리가 섞여 들리자 화들짝 놀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개를 돌려본 곳에는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자신들을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의 곁에는 척 봐도 무척 우직하게 보이는 남자가 보디가드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을 보고 잔뜩 얼어있는 귀족들을 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주 악랄 괴랄 지랄···· 3랄한 계획들을 펼치고 있구만?” “보영···. 당신도 여자니 조금은 말을 조심하는게···.” “그건 상대에 따라서 다른 거지. 이런 놈들 앞에서는 품위 따위 없어도 돼.” “·············.” 남자는 그냥 어깨를 으쓱하면서 물러났다. 처음에는 괜한 일을 시킨다고 투덜 거리더니··. 결국 이제는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변덕이 죽 끓듯 하기는 하지만 그대로 어쩔 수 없다. 이런 여자가 자신이 반한 여자니 말이다. 이보영은 역적 모이를 하다가 딱 걸린 대역죄인들을 보는 것처럼 말했다. “죽었다고 복창해.” 그리고 그 말이 끝이었다. 콰아아앙!!!!!! 변명의 여지도 없이 잔혹한 구타로 체포된 반 가우리 선동의 귀족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귀족들의 처형 중에서 가장 고통 스러워 하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공개처형이다. 그냥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 가문의 명예가 다 끝나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형까지 될 지는 몰랐다. 그래서 끝까지 격렬하게 항의했다. 신분제도에 익숙한 이들에게 있어서 귀족이 평민을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사형, 그것도 공개처형까지 집행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리프릴 왕국의 입장은 단호했다. [가우리의 상품을 이용했다는 이유 만으로 자국의 국민을 폭행하고 살해한 죄는 다시 한 번 대륙에 무익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대죄다. 본인들을 모두 광장에서 공개처형하고 가문의 일원은 그 신분을 모두 평민으로 되돌리며 재산을 몰수한 후 국외로 추방한다.] 공정함을 넘어서 약간 지나친 처벌이기도 했다. 노예제도가 철폐 되었으니 평민에 추방 정도로 끝났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되었을 때 그 귀족의 가족들은 모두 노예로 강등 시켰다. 특히 귀부인이나 귀족의 영애들은 백에 구십구는 사창굴로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족의 신분이었던 그녀들에게 있어서 창녀로까지 떨어진다는 것은 죽음 이상의 굴욕이었다. 그래서 반 정도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머지 반 정도만 차마 죽지 못해서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니 귀족들이 공개처형을 두려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기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가족들 까지 모든게 끝장 나는 것이니 말이다. 귀족에게 있어서 가문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냥 집안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명예, 부, 권력, 그야말로 존재 이유 그 자체인 것이다. 사형 판결을 받은 귀족들은 끝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연줄을 총 동원해서 어떻게든 살 길을 모색했지만···. 사실 모든 것은 그저 허무한 발버둥일 뿐이었다. 그들의 목은 결국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함께 떨어졌고···. 이 일은 그 동안 이들과 비슷한 짓을 하던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좀 강압적인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적당히 잘만 활용하면 확실한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다. 귀족들은 가우리의 기업을 잘못 건드리면 가문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경고가 되었고 에리프릴 왕국의 수도에서 반 가우리 성향의 목소리는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그 결과 이제는 평민들 중에는 가우리의 상점이나 시설을 이용할 때 서서히 당당한 태도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가우리가 운영하는 상점의 내부를 보면 가관이었다. 전부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서····. 겉으로 보면 무슨 복면강도들이 단체로 쳐 들어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두들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물건도 최대한 빠르게 고르고 그대로 품안에 숨기면서 나가는게 대부분이었다. 무슨 마트에서 장 보는 것을 밀수하는 분위기로 사가는 것이···. 점원들이 보기에는 좀 웃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는 좀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가우리의 물건을 사가고 있었다. 고객이 더 폭발적으로 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렇게 대강의 분위기가 다져지자 미하엘은 더욱더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우리는 에리프릴 왕국의 수도 인근에 매물로 나온 영지를 파격적인 가격으로 매입했다. 가우리가 구입한 곳은 원래 척박한 땅이었던 곳으로 영주 역시 농사는 포기하고 거의 상업도시처럼 관세만 받아 챙기던 영지였다. 겉 보기에는 수입이 많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수도로 들어오기 위해서 상단들이 거쳐야 하는 영지가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독점이 아니니 관세를 비싸게 받으면 상단들이 자신의 영지를 지나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주변 영지의 영주들과 섣불리 담합이라도 해서 관세를 올렸다가는 수도에 찍힐게 뻔했다. 결국 결론은 푼 돈 밖에 안 되던 영지라는 것이다. 그걸 가우리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자 얼씨구나 하고 팔았다. 그리고 미하엘은 현장에 직접 지시를 내려서 주변에 붙어 있는 영지 몇 개를 더 매입했다. 그렇게 해서 발판을 마련한 미하엘은 바로 거기에 여러개의 공장을 지었다. 수십 개의 공장을 여러 개 짓고 그 주변에 다시 주거 단지를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뚝딱뚝딱 하다 보니 몇 달 지나지 않아서 거기에 작은 공업도시가 생겼다. 아직 도시라고 하기에는 조금 규모가 작았지만··. 수십 개의 대규모 공장에서 배출하는 10만 단위의 일자리. 그리고 거기에 근무하는 자들을 위한 주거단지까지 조성하니 실로 그럴듯한 공업도시가 생겼다.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은 과연 가우리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지 은근히 주목하고 있었다. 공업도시가 먼저 형태를 갖추자마자 가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에리프릴 왕국의 수도에 있는 빈민가에 공고를 붙이는 것이었다. [공업단지 일자리 구함. 초보자 환영. 기본급 50실버. 시급 1실버. 일일 근무 시간 10시간, 초과 근무 시에는 별도로 시간당 1실버 추가 지급함. 숙식 제공 함. 4인 가족까지 포함. 단 이 경우 시급은 20% 삭감하여 80브론즈로 함. 근속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서 보수는 올라감.]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49화 과거 브로드 왕국을 개발할 때도 그랬지만··. 민심을 확실하기 부여잡는 것은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것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싸게 들어와도 기본 생활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단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마련해 주면 그게 가장 환영 받았다. 브로드 왕국에서 이미 한 번 해봤기에 두 번째인 이번은 더욱더 쉬웠다. “일자리라···. 우리들한테 말인가?” “아마 굉장히 힘든 일이겠지?” “당연히 그러니 우리 빈민가에 붙였겠지.” 수도의 빈민가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인생을 반쯤 포기해 버린 사람들이다. 일단 빈민가에 한 번 들어와서 낙인이 찍혀 버리면 다시 밖으로 나가기는 힘들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이들에게는 터무니없이 힘들거나 위험한 일자리 밖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들어오는 보수는 짜디짜고 말이다. 최저임금이니 인권이니 그런 개념 자체가 없는 세계이다. 절박한 사람들을 최대한 짜고 험하게 부리는 것에 그다지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일이라도 시켜주는걸 감지덕지로 여겨라. 라는 편이 압도적이었다. 어째서 그게 되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상대가 빈민가의 빈민들이니까. 그것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그것 하나면 이유는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수도의 사람들은 빈민가의 빈민들을 같은 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럽고 비열한 인간들 이라는 편견이 더 강했다. 그런 편견들이 빈민가에서 실제로 그런 인간들을 양산하고 있었으니···. 실로 악순환이라고 할 만 했다. 그런 와중에 빈민가에 대규모 공고가 달라붙자 빈민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상당한 사람들이 가우리의 공장으로 몰려가서 면접을 봤다. 공장을 20개 건설하고 공장 하나당 일차적으로 5,000명씩, 일단 10만 명이 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준비했다. 이걸 다 채우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채워진 것이다. 공장에서는 면접을 봐서 그 개인에게 심각한 범죄 이력이 없는 이상은 대부분 통과 시켰다. 어차피 빈민가에서 하루하루 굴러먹기 바쁘던 자들이다.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딱 하나. 한 번 바닥을 맛 봤던 자들이 기회를 잡았을 때 보이는 절박함에서 나오는 성실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절박함을 보이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당근을 눈앞에서 흔들어 보일 필요가 있었다. 취업에 성공한 자들에게 일단 가우리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집이었다. 일부러 수도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에 지은 공장들이다. 이들이 빈만가에서 계속 지내면서 일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대규모로 사원 아파트를 건설한 것이다. “이건··? 이게 우리 집이라고?” “무슨 군사 요새가 아니었나?” “이거 한 집에 도대체 몇 명이 사는 거야?” 아파트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파트의 외관만 보고 놀랐다. 그냥 사람이 주거한다는 목적만 가지고 이런 대규모 건물을 짓는 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은 거대한 건물 자체가 압권이었고, 그런 아파트 내부에 있는 공원 형식의 조성 공간도 이들이 보기에는 별천지였다. 사실 그냥 직원 아파트 치고는 공을 많이 들인 주거단지들이었다. 일단 이 아파트에는 주차장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이 세계에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차를 타고 다니는 자들은 있지만 빈민가 주민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그냥 주기적으로 다니는 셔틀 버스 몇 대를 위한 작은 주차장 하나만 지으면 되었다. 아파트에 주차장을 빼고 나니 정말 공간을 몇 배로 활용 가능해졌다. 그렇다 보니 공원에 작은 연못, 그리고 농구장이나 풋살구장, 테니스장 같은 운동 시설까지 도입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이들은 그게 뭔지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스포츠 역시 지구에서는 강력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구 브로드 왕국의 영토인 가우리에서는 프로 야구 팀을 만들어서 한국 리그에 참가 시키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런 문화를 차차 접근시키기 위해서 이런 준비를 한 것이기도 했다. 외관만으로 이미 압도당한 빈민가의 사람들은 각자 배정된 집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더 놀랐다. 집안에는 이미 간단한 가구들이 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가우리의 기준에서의 일이었다. 이제까지 빈민가 판자촌에서 사실 맨바닥에 누워 자는 것이나 다름없던 생활을 해 왔던 사람들에게는 이 기본적인 가재도구만 해도 마치 궁궐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침대나 식탁 같은 가구는 원래 이들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가전제품들은 척 봤을 때 이게 과연 뭔지 이해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가우리에서 많은 제품들이 수출되고 있었지만 그 많은 제품들 중에서 가전제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잘 팔릴 것이 확실한 물건이지만 여기서는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전기가 보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업도시에는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 발전소를 건설에서 전기를 공장과 각 가구에 공급하고 있었다. 그러니 수도의 귀족들도 못 누리는 여러 가지 가전제품들을 이 빈민가 출신의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 하게 된 것이다. 가전제품의 특징은 편리함과 신기함이다. 옷을 다려주는 다리미, 시간을 꼬박꼬박 알려주는 시계, 사람들은 소개되는 물건들 마다 감탄하고 신기해 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 특히 주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냉장고? 여기에 넣어두면 음식이 안 상한다고요?” “아니 아주 안 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좀 오래간다는 거죠. 냉동칸과 냉장실이 있는데····.” 가우리에서 파견된 직원들은 가전제품의 설명을 무어보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그는 전혀 불쾌하지 않다는 듯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도 저랬는데 뭐····.’ 지금 이들에게 아파트의 설비를 안내하고 있는 사람은 원래 브로드 왕국 출신의 사람이었다.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브로드 왕국에서 태어나서 약자로 살아온 그는 이 빈민들 보다 더 비참한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반신반의 하면서 가우리의 공장에 취직하고 거기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이제는 직급도 올라서 공장에서 팀장까지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이렇게 타국으로 진출해서 그 나라의 사람들을 자신과 같이 이끌 수도 있게 되었다. 사실 가우리는 이번 진출 정책이 순수 지구 출신 이외에 원래 이 세계의 출신이었던 사람들을 다수 포함 시켰다. 원래 브로드 왕국 출신이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가우리에 완전히 젖어 들어서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이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룰 모델이 될 수 있었기에 상당히 많은 인원을 집어넣었다. 여기 있는 남자도 그런 직원들 중에 한 명이었다. 특히 그가 많이 소개하는 가전제품 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 미하엘이 무조건 한 가구당 하나씩은 꼭 집어 넣으라고 한 것이 있었으니···. “이건 뭡니까?” “아! 그건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지만 곧 쓸수 있게 될 겁니다.” “·············?” “TV라는 거죠.” 이 세계의 지배계층들에게는 핵폭탄이 한 다스로 떨어지는 것 보다 더 위협적인 무기가 될 것이었다. TV가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기기의 보급과 전력의 보급,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송을 송출 할 방송국이 필요하다. 앞의 두 가지는 이미 가우리의 자금력으로 끝냈고,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방송국의 준비 뿐이었다. 전파의 송출 거리를 생각하면 위성 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중간에 기지국 없이는 제대로 작동 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가우리는 차라리 각국의 현지에 따로 방송국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처음은 기존에 했던 방송 콘텐츠들로 충분하다. 이미 완결된 드라마나 영화 등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재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방송국에서 제대로 활동 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인재를 섭외하기 위해서···. 다름 아닌 아이돌 출신인 슬기가 한국의 방송국으로 찾아갔다. “엄마, 엄마, 여기 이거 뭐야?” “헬리 캠이라는 거야. 망가뜨리면 안 된다.” “예.” 그리고 혼자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예쁜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왔다. 천방지축 여기저기 호기심 발동하면서 휘젖고 다니는데 슬기를 엄마라고 부르는 단계에서 이미 언터처블이었다. 그리고 이 기이한 현상은 순식간에 방송국의 사람들을 패닉에 들게 했다. ‘엄마? 잠깐? 쟤 나이가 얼마지? 잘 해봐야 10살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엄마 라는게 말이 돼? 아니지 잘 하면 아슬아슬한가?’ 슬기는 자신의 앞에 있는 방송국의 임원들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양녀입니다. 피부색깔도 머리도 완전 다르죠?” “아···. 예.” “죄송합니다. 이거 실례 했습니다.” 사실 방송국의 임원들은 슬기를 대하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예전이라면 방송국의 고위 간부들이 슬기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당시 슬기는 그냥 많고 많은 연예인들 중에 한 명일 뿐이었다. 솔직히 아무리 잘 나가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방송국의 중역들이 보기에는 한철일 뿐이었다. 누군가가 가면 누군가가 와서 메워준다. 대중들은 항상 새로운 누군가를 원했고, 아무리 콧대를 세워봤자 10년 정도 지나가면 길에서 누군지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평생을 스테이지에서 살아가는 연예인은 정말로 극소수 중에 극소수만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대부분 콧대를 세우고 잘난척하지는 않는다. 원만한 대인관계도 자신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몇몇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대여배우가 방송국 중역들에게 큰 소리를 땅땅 치거나 오만하게 콧대를 세우는 일은 사실상 현실에는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슬기의 경우 그런 규격을 아득하게 넘었다. 예전에 아이돌을 하고 있을 때하고는 위상이 달라도 완전히 다르다. 슬기가 가우리의 간부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박정운하고 연인 사이다. 공식적으로 공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연예인이 재벌가나 권력가의 며느리로 들어가거나 하면 인터넷에 시시한 루머 따위가 돌거나 넷티즌들이 근거 없는 악플을 남발하기 마련인데···. 슬기의 경우는 그런게 거의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슬기의 존재가 대외적으로 공표되고 나서 한 동안은 그런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다른건 몰라도 슬기가 욕먹는 것에 관해서는 엄청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정운이 폭발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하엘은 정운의 귀에 들어가지 전에 자신의 선에서 먼저 처리하기로 생각했다. 우선 그녀는 전속 감시팀을 만들어서 가우리에 대해서 안 좋은 여론이 있는 것을 관찰한다는 명목으로 24시간 각종 포털 사이트를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슬기에 관해서 가끔 개념 없는 얘기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야··. 여자는 그냥 다리 하나만 잘 벌리면 그게 갑이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가서 살려면 여자는 그냥 창녀 멘탈 해야 한다고 하던데?] [박정운이 BL취미만 있으면 내가 대주고 싶다.ㅋㅋ]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서 몇몇 개념 없는 인간들이 이런 헛소리를 했다. 그들 중에는 상당수가 미성년자였던 경우도 있고 어떨 때는 그냥 성인인데 부러움과 찌질한 질투심이 폭발해서 이런 소리를 적은 자들도 있었다. 보통 연예인이나 정치가들 같은 경우 어지간하면 이런 의견에 일일이 반응하지는 않는다. 설령 법적으로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의 이미지를 신경 쓰기 때문이다. 한 둘도 아니고 일일이 신경 쓰기도 어렵다는 것도 한 몫을 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지 때문이라는 이유가 컸다. 하지만 가우리의 경우 이미지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진정한 절대 갑은 이미지 하나로 좌지우지 되지 않는 법이다. 이미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데 뭐 하러 이미지 신경 쓴다고 욕을 먹고 있는다 말인가? ============================ 작품 후기 ============================ 으으으... 김동현 선수도 지고... 벤 핸더슨 선수도 지고.... 격투기라는게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격투 팬으로서 좀 암울한 주말이었습니다. 컨디션이 무너져서 연재 페이스도 무너질뻔 했네요. 그리고 아직 확정된것은 아니지만 차기작은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격투기물을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악마의 게임이 아직 한참 남았기는 하지만 소소히 비축분을 쌓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허리 아픈것은 의사가 항상 앉아만 있어서 체중이 늘어난 것도 원인의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취재 겸 운동으로 일석이조를 잡으려고... 동네에 있는 격투기 도장에 일반 관원으로 등록해서 한 번 해볼까 합니다. 한 번 견학을 가 보고 결정할까 하는데 격투기라는게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운동인지 좀 의문입니다. 사실 도장에 가서 뭔가를 배우는 것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어서.... 그 흔한 태권도 도장도 어렸을때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취재와 다이어트를 겸해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 싶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50화 아무 근거 없이 그냥 싸지르듯이 욕설을 하는 넷티즌들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돌아갔다. 미하엘은 정운이 신경 쓸 틈도 없이 바로 법률단을 조직해서 싹 다 뭉게 버렸다. 그냥 명예훼손으로 인한 고소 정도가 아니었다. 가우리라는 국가에 대한 반 활동 체제라고 확대 시켜서 철저하게 법적 대응을 했다. 그 결과··. 이제 넷티즌들도 알아서 조심을 했다. 대통령 쌍욕은 막 해도 가우리에 대한 사소한 비방 하나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했다. 그리고 익명성에 기대서 남 욕 하기를 취미 생활로 하는 넷티즌들이 그런데 방송국 중진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슬기의 앞에서 말 한마디 잘못 해서 인생 막장 트리를 타고 싶은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슬기는 양딸인 아미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서 진정 시키고 용건을 말했다. “그러니까···. 저쪽 세계에서 방송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원한다고요?” “예. 당분간은 지난 드라마나 영화를 자막을 붙여서 방송 할까 하는데··. 역시 뉴스나 현지에서 진행하려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프로가 필요하니까요.” 슬기의 말에 둘은 잠시 생각했다. 요즘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신세계로 진출할 줄이 눈앞에 보이거든 그게 썩었다고 해도 잡아라. 그 정도로 신세계에서 얻는 이권이 막대한 것이다. 더구나 방송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방송국 임원들이다. 이건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당장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바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아리야. 가자.” “으으····. 응. 엄마.” 아리는 슬기의 품안에 더 파고들어서 졸리다는 듯이 투정을 부렸다. 슬기는 이런 아리가 못 견디게 귀엽다는 듯이 아리를 품안에 안아 올려서 데리고 갔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아리를 부러워했다. 천하의 이슬기 품 안을 독차지 하고 있으니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았다. 슬기는 방송국을 나가서 차에 아리를 먼저 앉히고 자신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송국을 통해서 보면서 문득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처음에 저기 들어갈 때는 엄청 얼어 있었는데 말이야····.’ 막 데뷔한 아이돌에게 있어서 방송국이라는 곳은 별 천지였다. 이미 이름을 알리고 있는 스타들을 바로 지척 거리에서 보고 인사를 먼저 해야 하는데 말을 걸어도 될까? 실례는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로 가득하면서 긴장했던 자신이었다. 얼마 전에 슬기는 과거 자신들의 동료··. 그러니까 함께 그룹으로 데뷔 했었던 동료들에 대해서 알아봤다. 자신이 갑자기 사라지고 소속사도 사라지면서 남은 멤버들은 다른 소속사로 옮겨서 다시 신곡을 발표했지만···. 그다지 호응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후에도 드라마나 음반쪽으로 이런저런 시도는 했지만···. 결국 지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부분이 실패라는 말이다. 그리고 실패가 누적되는 연예인이라는 것은 대중의 관심에서 급격하게 시들어가기 마련이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슬기가 가우리의 간부로서의 힘을 써서 자세하게 알아보면 어떻게 지내는지 모두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이 발을 들이게 된 계기도 같은 동료가 성상납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원인이었으니··. 굳이 힘을 써가면서 다시 찾고 싶지는 않았다. ‘난 내 일에 집중하자······.’ 슬기는 과거 보다는 정운에게 도움이 되는 지금의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기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뜻하지 않게 슬기는 과거의 인연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좀 더 나중에 벌어질 일이다. 에리프릴 왕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 들어간 가우리의 기업들은 비슷한 구조의 전철을 밟아가면서 파고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한 상품을 최대한 저렴하게 해서 필요성. 이라는 부분을 어필했다. 사람은 처음부터 없다면 모를까? 있다가 없으면 그게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이라고 해도 못 견디게 불편한 법이다. 분명 타국의 국민들 중에서는 전쟁의 결과 때문에 가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누가 부추겨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일단 자기 나라를 전쟁에서 이긴 나라니까 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특히 증오심이 강한 것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었다. 당연이 이길 것이라고···. 공을 세우고 큰 돈을 벌어서 돌아오겠다고 했던 가족들 태반이 돌아오지 못했다. 마지막 전투에서 벌어진 배대호의 대마법은 적을 완전히 전멸 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 피해는 사실상 괴멸적이었다. 전쟁터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먼저 침략한 것이 가우리가 아닌 타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가우리를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아무리 반감정이 있다고 해도 가우리가 주는 물건은 너무 편리하고 저렴했다. 더구나 그 대부분의 물건들이 모두 의식주에 관여된 물건이 아닌가? 예전에는 일 년 내내 단벌로 생활 하는게 당연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가우리에서 저렴한 가격의 기성품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벌의 옷을 구입 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가우리의 옷은 쉽게 해지지 않고 떨어지지 않아서 그 기능성도 매우 우수했다. 옷뿐만 아니라 싼 가격에 들어오는 식료품, 그리고 비누나 치약, 샴푸 같은 생필품 등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필요성으로 일단 접근해간 가우리는 그 다음에 더 친근해지기 위해서 일자리를 직접 제공하기 시작했다. 브로드 왕국에서도 그랬지만 그냥 일자리만 제공하는게 아니다. 그 직원의 주거지와 가족들의 생활까지 모두 다 신경써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금까지 준다고 하니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빈민가의 사람들이 이제는 미친 듯이 열광하는 것도 당연했다. 생활비에 주거비 등등 이런저런 돈이 많이 들었기에 개개인당 임금을 많이 주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빈민가에서 생활하던 그들에게는 이미 충분히 많은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가우리가 주는 해택들을 생각하며 돈을 안 준다고 해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널렸다. 일단 자신들의 묵고 있는 아파트라는 집. 이 집은 자신들의 소유자가 아니지만 근속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서 그 집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거나, 혹은 그에 집의 가격에 준하는 몫돈을 받아서 다른 곳에 집을 살 수 있게 된다. 거기다 직원들에게는 가우리 기업의 소속이라는 신분증이 주어진다. 이 신분증이 있으면 가우리 소속의 기업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는 20%에서 최대 50%까지 직원 할인을 해 줬다. 가우리에서 파는 물건이 한 두 가지도 아니고···. 그야말로 안파는 물건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불편함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크게 감격시킨 것은 다름 아닌 학교라는 것의 존재였다. 학교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었고, 어른들이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별것 없었다. 빈민가의 아이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렇다 보니 10살 전후의 아이들이라고 해도 일단은 기본적인 산수와 글자 정도를 우선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글자는 이 세계에서 쓰는 글자도 가르쳤지만 한글도 가르치고 있었다. 나중에 저 아이들이 컷을 때는 이 세계의 인재가 역으로 지구로 진출하는 것도 아주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의 학교는 어른들을 위한 일종의 직업학교였다. 직업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인데 가우리의 직원으로 있기 위해서는 한 달에 48시간 이상은 꾸준하게 이수해야 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교육을 얼마나 잘 이수하느냐에 따라서 승진이 걸린다는 것을 알자 열성적으로 달라붙었다. 지금 공장에서 자신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들이 브로드 왕국의 출신이라는 것을 알자 모두들 승진욕구에 불이 붙은 것이다. 자신들이 아무리 빈민가의 빈민들이라고 해도 브로드 왕국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륙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면서 최악의 국가가 아니었던가?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위에서 팀장으로 일한다. 그러니 자신들의 의욕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빈민들이 완전히 가우리의 직업으로 자리 잡은 시점부터 수도의 사람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자신들이 구하지 못하거나 비싸서 사지 못하는 물건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사원증 하나만 들고 있으면 가우리의 시설에서도 우대 받으면서 사용 할 수 있었다. 수도 평민 여성들에게 신랑감 후보로 가장 으뜸으로 뽑히는 것은 가우리의 사원이 되었다. 오죽하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그 사원증을 위조하는 인간들까지 생겼을까? 과거에는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그것은 빈민가의 사람들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바닥에서 태어나서 평생 바닥에서 살다가 바닥으로 죽는다. 그게 빈민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자신들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을 받고 때로는 자신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해 오는 이성들까지 있었다. 그들은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발전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자신들의 인생이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몸으로 직접 체감한 것이다. 그런 일들이 지속되자 이제 가우리에 대한 반감은 점점 사그라 들었다.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가우리라는 이름 그 자체가 생활 전반에 깊숙하게 파고 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이제 TV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야··. 지금 몇 시지?” “지금이··. 어? 이런 벌써 다섯 시가 다 되 가잖아?” “빨리 가자. 이러다 못 볼라.” 요즘 저녁만 되면 사람들은 모두들 서둘러서 어디론가 이동 했다. 그들이 가려고 하는 곳은 집, 혹은 가우리가 운영하는 카페나 술집 등등··. 한 마디로 TV가 있는 장소였다. 아직 가우리에서 틀어주는 프로는 한정되어 있었다. 주로 드라마, 그것도 사극이나 고대 시대의 극화는 되도록 자제하고 현대의 얘기를 많이 틀어주고 있었다. 그 편이 지구에 대한 동경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에서도 남한의 드라마는 대인기였다. 심지어 그걸 관람할 때는 엄한 벌을 낼니다고 엄포를 놓아도 사람들을 기를 쓰고 어떻게든 보려고 했다. 그건 그냥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북한과 남한의 생활 수준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고 그들이 남한에게 강한 환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남한은 어떤 나라일까? 과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런 동경과 호기심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런 드라마들을 밀수해서까지 보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이 세계의 사람들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볼 필요도 없다. TV가 있는 장소라면 어디를 가도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인기가 있는 것은 드라마와, 음악프로였다. 이 세계에서도 연극이라는 것은 있지만 그 수준을 거짓말로라도 높다고는 하지 못했다. 연극을 하는 것은 주로 떠돌이 유랑단들인데··. 마을에 가서 연극이나 서커스를 보이는게 주 수입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인기도 없었고 연기 하는 배우들도 별로 프로 의식도 없었다. 오죽하면 관객들이 별로 모이지 않으면 여자 배우들은 그날 밤에 돈을 벌기 위해서 적당히 술을 따르고 몸을 팔면서 돈을 버는 것도 흔한 광경이었다. 아주 극히 귀족들이 보는 연극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도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TV의 드라마가 나오니 반응은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쟁쟁한 경쟁력을 물리치고 역을 따내는 프로들의 연기력과 전문가들의 연출효과, 그리고 드르마에 나오는 인간의 사랑, 증오, 질투 이런 감정들은 딱히 세계가 다르다고 해도 모두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드라마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지구, 아니 엄밀히 말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명에 관해서 조금씩 배워갔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51화 <미디어의 힘> “저 스마트 폰이라는 걸로 못 하는게 도대체 뭐래?” “나도 몰라. 아직 우리 세계에서는 못 쓴다고 하던데?” “난 가우리의 간부라는 분들이 몇 개 가지고 다니는 것은 봤어.” “전화기도 좋지만···. 난 저 자동차라는 것 한 번 타봤으면 좋겠다. 멋있잖아?” “야····. 저거 엄청 비싸다고 알고 있어.” “얼마나 비싼데?” “····네 전재산 다 갔다 바쳐도 못 살걸?” “빌어먹을·····. 한국에는 저렇게 많이 있는데·····.” “저기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의 문화를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호기심이, 그 다음에는 동경이··. 그리고 동경은 갈망으로 이어져갔다. 어디어디서 가우리의 직원하고 결혼한 여자가 한국으로 이민을 갔다. 더라····. 라는 카더라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수도의 콧대 높은 여자들이 가우리의 직원이라고 하면 정말 몸을 던지듯이 어필하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그 중에는 귀족가의 여성도 있었다. 드라마를 통해서 강한 환상감을 가진 여자들이 어떻게든 지구로 가서 드라마와 같은 로맨스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브로드 왕국 출신 이외에는 지구로 이주를 한 사람은 없었다. 구 브로드 왕국 출신 중에서도 원래 지구인인 가우리 사람들과 결혼을 한 사람들에 한해서, 비자를 받아서 지구로 갈 수 있었다. 참으로 험한 조건을 클리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못지않게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있는게 있다면···. 바로 음악이다. 지구에서도 이미 위세를 달리고 있는 K-POP이지만 신세계에서도 실로 파격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사실 이 세계에서 음악가는 딱히 대단한 직업이 아니다. 보통은 술집이나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전 한 푼 두 푼을 받아 먹는 음유시인들이 가장 많았는데···. 그냥 하프 하나 들고 거의 아카펠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도 그다지 매력은 없었다. 그리고 귀족들이나 왕족의 연회에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들···. 이게 이 세계에서는 음악가라는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독보적인 위치일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어디가서 밥을 굶지는 않는다. 귀족들의 연회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나름 괜찮은 보수를 받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먹고 살기 부족하지 않은 보수는 얻을 수 있지만 음악으로 인해서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절대 불간으 했다. 아무리 명곡을 작곡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연주를 해도 귀족들의 귀에는 그냥 다 똑같은 음악일 뿐이다. 그 외에는 몇몇 감수성 예민하고 독특한 취미를 가진 귀족들의 레슨을 해 주는 것 정도가 음악가로서 누릴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지구는 다르다. 라고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지구에서도 뮤지션의 99.9%가 자기 밥벌이도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진짜 0.01% 정도의 뮤지션들은 그냥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으면서 화려함을 뽐낸다. 그런 사람들을 대중들은 스타라고 부르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 당연하지만 대우가 다르면 전체적인 수준도 확 차이가 나는 법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지구의 프로 뮤지션들은 이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에 잡아 버렸다. 특히 인기가 많은 것은 아이돌들과 록밴드 타입들이었다. 이 두가지 타입은 이 세계에서는 정말 전혀 없는 스타일의 음악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무대를 압도하는 것 같은 강렬한 록 음악은 이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에 직구로 박혔다. 그리고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뮤직은 특히 젊은 층에게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다. 어떤 귀족가의 아가씨는 TV에 나온 아이돌을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자기 약혼자에게 파혼을 고하고 집안에서 의절 당한 일도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가우리의 직원 한 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빠순이가 한 번 폭주하면 답이 없지····.” 어쨌든 대단한 영향력임에 틀림없었다. 가뜩이나 가우리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는 와중에 TV의 힘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하자 이제는 가우리의 영향력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커졌다. 어디를 가도 가우리의 문물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인 사람이 현명하고 앞서나가는 사람 같은 대우를 받았다. 이건 이미 한차례 불어다가 사라지는 바람 같은 유행이 아니었다. 반드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새로운 대세인 것이다. 이런 새로운 문물에는 보통 평민들 보다 귀족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당연히 그들 역시 가우리의 영향을 생활 전반에 받아 들였다. 이제는 연회석의 기본 드레스 코드도 가우리에서 파는 정장으로 통일될 정도였다. 남자들은 이제까지 레깅스에 어깨 숄이 왕창 들어간 옷을 모두 버렸다. 대신 말끔한 정장을 입고 맵시를 뽐냈다. 처음에는 아주 소수만 시작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게 당연한 드레스 코드가 되었다. 여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코르셋으로 왕창 몸을 조이고 치마를 크게 부풀린 드레스가 유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드레스 대신 몸에 착 달라붙는 실크나 밸뱃 소재의 정장 스타일 드레스를 더 즐겼다. 여배우들이 시상식 같은 곳에서 즐겨 입는 그런 드레스가 유행하는 것이다. 가끔 시골의 귀족들이 유행에 뒤쳐저서 예전과 같은 옷을 입고 연회장에 등장하기는 했는데··. 그럴 때는 자신들을 두고 수근 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낮이 뜨거워서 연회석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빨리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개량 한복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우리의 전통 의복이라는 이유로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가우리의 기업에서 일하는 평민들에게도 TV가 있다는 것을 알자 귀족들은 자신들도 TV를 구입하겠다고 했다. 이제까지 귀족들은 가우리에서 운영하는 술집이나 카페에 들려서 TV를 관람했는데···. 정작 자신들보다 훨씬 지위가 낮은 평민들의 집에 일일이 TV가 있다는 것에 큰 질투심을 느꼈다. 하지만 가우리의 기업은 TV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기와 송신을 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무리라고 했다. 그러자 몇몇 자존심 강한 귀족들이 아애 가우리의 기업에 의뢰를 했다. 돈이 얼마를 들어도 좋으니 자신들의 집 자체를 전부 뜯어 고쳐 달라고 말이었다. TV만이 아니라 냉장고나 다른 가전제품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도 어차피 전기는 필수였다. 물론 귀족가의 저택에는 마법을 이용한 냉장고 비슷한 물건들이 이미 있었지만···. 그래도 저택 자체를 가우리의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님들의 대저택 같이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가우리의 기업에서는 이 오퍼를 받고 아주 제대로 작업을 했다. 드라마의 회장님들 저택이 아니라 더 크게 훌륭하게 지을 수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집의 평수를 최대 200평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잘 사는 대기업의 회장님이라고 해도 집의 평수는 200평을 넘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런 제한을 둘 필요 없었다. 그러니 공간과 예산만 받쳐 준다면 헐리우드의 대스타들이 사는 것 같은 멋진 집을 지을 수도 있었다. 집안의 내부에 수영장을 갖추고 온갖 편의시설을 동반한 최고의 집을 지어줬다. 그러자 그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서 좀 산다하는 집은 전부다 가우리에 맡겨서 자신의 집을 다시 증축하려고 했다. 그리고 귀족들은 자기 집안에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서 도시에 전기 배선 공사를 허락하는 법안까지 통과 시켰다. 결국 그것은 일반 평민들의 가구에도 전기를 공급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우리의 가전제품들이 시중에 더 잘 풀리는 환경이 조성 되어갔다. 아직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 제법 많은 집안에 TV나 냉장고, 전화기 등의 기본적인 가전제품들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계의 지배 계급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파멸을 가져오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정운은 미하엘에게 이 세계의 개발 정책에 관해서 보고를 받았다. “상황은 어때?” “좋습니다. 너무 좋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들의 뜻대로 모든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하엘의 보고를 받은 정운의 얼굴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모든게 뜻대로 흘러간다는 것은 좋아해야 할 일이었지만··. 결국 그 과정에 뭐가 있는지 뻔히 알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 잘 되고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 말은·····. 곧 피를 볼지도 모른다는 거지?” “볼지도 모른다. 가 아닙니다.” “·············.” 미하엘은 안경을 슬쩍 올리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는 반드시 흐를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눈을 감는다고 날아오는 화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쏘아진 화살이다. 그리고 이제 표적에 맞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도화선이 불은 붙었고 이제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터지기만 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정운은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가우리가 그 폭발의 중심에 있을 테니 말이다. 민주주의. 지구상에 수많은 강대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의 운영 시스템이다. 사실 이것도 그렇게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다. 사실상 단점도 많이 존재하고 가끔은 삐뚤어진 방향으로 잘못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다. 아무리 잘 만든 시스템이라고 해도 어디선가는 모순이 발견되고 불합리한 현실과 직면해서 버그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에서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많은 나라들이 별의 별 정치적 시스템을 다 시험해 봤지 않는가? 절대 왕권부터 봉건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혹은 종교적 교리를 앞세운 시대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가지 시험해 본 결과 그나마 가장 우수하다고 할 만한 시스템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국민들에게 정치적 선택권과 참여권을 주고, 왕권처럼 몇몇 독재자들의 독단으로 국가가 폭주 할 일도 없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좋은 시스템을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상당히 우수한 시스템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의 바람이 서서히 가우리에서 대륙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미 가우리의 본국에서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물론 정운이 군권과 상당수의 권환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이미 가우리의 의회에서 일하는 국회의원 200명은 투표로 뽑히는 인물이었다. 대한민국과 똑같이 가우리의 지역구를 인구별로 200분할해서 그들에게 의회의 일을 맡기고 있었다. 지금 가우리는 내정은 의회에서 처리하고 있는데 초대 의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압도적인 신뢰를 지니고 있는 미하엘이었다. 초기에 일어난 국가가 대부분 그렇듯이 건국 당시의 간부들은 국민들의 신임이 두터운 법이다. 가우리의 국민들 역시 그랬다. 특히 브로드 왕국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정운의 정권을 지지하는 지지율은 거의 신앙의 레벨이었다. 결국 국가의 시스템은 바뀌었지만 사공은 변하지 않았다고 할까? 여전히 가우리는 정운과 그의 동료들이 이끌어가고 있었다. 아마 정운이 살아있는 한은 정운에 대한 신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정운의 일신에 군사력과 신의 맹세 등등의 알짜배기들이 다수 깃들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가우리의 체제가 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틀림 없었다. 이렇게 형태를 바꾼 것은 정운이 앞으로 대륙에 불어올 바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터질 때가 되었는데·····.”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52화 에리프릴 왕국의 수도의 어느 술집. 거기에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을 모아두고 열띤 연설을 펼치고 있었다. “여러분. 인간은 모두 평등합니다. 귀족이라고 해서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 까지 고귀하고, 평민이라고 해서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 까지 천하다. 라는 지금의 세상은 틀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하나 깨어나서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자식들과 손자들 까지 모두 뒤틀린 세상에서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삐이익!!!! 한참 연설중인 술집의 안에 호루라기 소리가 길게 들렸다. 그리고 에리프릴 왕국의 기사들이 술집으로 쳐들어 왔다. “이 반역자 놈들!!!!” “모두 꼼짝하지 마라!!!!” 기사들은 들어오자마자 날이 퍼런 롱소드를 꺼내들고 사람들을 위협했다. “모두 벽에 손 짚어!!! 서툰 행동을 하는 놈들은 모두 베어 버리겠다!!!” 말을 하는 기사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는게 아무래도 많이 흥분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그런 기사에게 겁을 먹고 벽에 손을 짚어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좀 전부터 술집에서 연설을 하고 있던 사람은 이를 악물더니 기사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말 했을 뿐이오!!! 그런데 어째서 반역죄라는 명목을 뒤집어씌우는 거요!!?” “닥쳐!!! 요즘 너희 같은 것들 때문에 수도가 다 시끄럽다!!!” 기사는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시민들 사이에서 서서히 신분제도의 불신과 민주주의를 향한 동경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모든 것이 가우리의 TV를 통해서 알게된 신분제도가 없는 세상을 알았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지나가면 평민들은 고개를 조아린다. 귀족들이 명령하면 평민은 무조건 따른다. 귀족들이 부르면 이유가 뭐든 간에 일단 가야 한다. 귀족들이 평민을 매질해도 그건 합법이지만 평민이 귀족이 키우는 강아지라도 발로 차면 엄벌을 받는다.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다. 귀족은 세상을 이끌고 유지하는 존귀한 존재들이고 평민들은 그들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우리를 통해서 지구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소개 되면서 하나 둘 씩 사람들의 의식에서 의문이 싹을 틔었다.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이고, 왕족인데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평민이다. 똑같이 알몸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그 대우는 크게 변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이것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우리를 통해서 소개된 지구의 일상을 들어보니 그것은 시스템의 유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정체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닥에서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족들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정신 나간 소수자의 목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천한 것들이 가우리의 TV를 보고 헛된 꿈을 보고 있을 뿐이다.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방치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민중의 불씨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서서히 불이 붙어서 여기저기서 불길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수도의 여기저기에 대자보가 붙고 기습적으로 연설을 하며 신분제도의 철폐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쯤 되자 지배계층이 귀족들도 서서히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신분제도가 사라진다는 것은 귀족들에게 있어서 세상이 끝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귀족이 귀족인 이유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도···. 돈이 많아 서도 아니다. 말 그대로 고귀한 귀족이기 때문이다. 부나 명예 권력 등은 그런 귀족이라는 신분이 가지고 있는 어드밴티지를 활용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귀족이라는 신분 자체가 사라져야 성립하는 신분제도 철폐를 이들이 반길 리가 없었다. 그들은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을 반역도로 정의하고 강력하게 탄압했다. 귀족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기사단과 사병을 내놓고 수도를 순찰하게 했다. 그리고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와서 강제 노동에 처했다. 노예 제도는 사라졌지만 죄수들을 강제 노동 시키는 감옥 겸 광산은 아직도 존재했다. 이번에 술집을 덮친 기사단도 그런 순찰대였다. 기사 중에 한명은 연설하던 자의 멱살을 잡아서 바닥에 내팽겨 치면서 말했다. “너희 같은 천하 벌레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감히 자신의 본분을 잊어 버리고 달콤한 환상에 젖어서 세상을 부정하려고 해? 네놈에게 기사와 평민의 신분 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줘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귀족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 자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런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팔팔하게 외쳤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인간은···. 컥···.” “네놈이 드디어 돌았구나.” 기사는 자신의 성질을 건드리는 남자에게 제대로 화가 났다. 그리고 그 남자의 머리를 발로 짓밟으며 강하게 압박했다. “평등이라고? 내 발 밑에 깔려 있는 네놈과 내가 진정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 그거 이상하군. 난 네놈이 벌레하고 똑같이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언제든지 내가 밟아서 터트려 버릴 수 있는 벌레 말이다.” “인··. 인간은···. 으·····평··.” “됐다. 그냥 죽어라.” 기사의 눈에 분노를 넘어서 스산한 살기가 깃들었다. 콰지직!! 그리고 기사의 발길이 그대로 남자의 머리를 으깨 버렸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인간 한 명의 머리가 짓밟혀서 으깨져 버렸다. 그리고 기사는 주변 평민들을 보면서 엄포를 놓았다. “네놈들 모두 명심해라. 신분제도는 너희 같은 벌레들과 우리 고귀한 귀족들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당연한 법칙이다. 이걸 부정하는 놈은 신의 섭리를 부정하는 부정한 쓰레기들이라는 것을 알아라!!!” 기사는 그렇게 일장 연설을 하면서 평민들을 나무랬다. 하지만···. “지랄은····. 가우리는 신분제도 없이도 잘만 돌아가는 구만····.” 누군가가 중얼 거린 한 마디가 기사의 귀에 들어가고야 말았다. 차앙!!!! “누구냐!!!? 방금 지껄인 놈이!!!!!?” “···············.” “···············.” “···············.” 방금 사람 하나를 밟아서 죽인 기사가 검을 꺼내들고 엄포를 놓는다. 여기서 누가 나서겠는가? “안 나온다 이거지··. 좋다. 여기 있는 놈들 모두 반역도다. 다 체포해. 내가 직접 고문실에서 다 불게 하겠다.” “옛!!!” “옛!!!” “옛!!!” 상급기사의 명령을 받은 다른 기사들은 술집에 있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연행하기 시작했다. “난···. 난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꺄악··. 이거 놔 주세요.” “아이고 살려 주십시오. 나으리···. 전 정말 입도 벙끗 안 했습니다.” 기사들은 사람들이 뭐라고 변명을 하던 간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술집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잡아갔다. 그러나 이들이 모르는게 한 가지··. 아니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 술집은 정말 드물고 드물게도 술집의 안에 CCTV가 있는 술집이라는 것이다. 보통 지구나 가우리라면 모를까? 이 나라의 술집에 CCTV가 있는 술집은 정말 드물다. 그런데 이 술집이 바로 그 드문 술 집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좀 전에 연설하다가 기사의 발길질 아래 무참하게 죽어간 남자. 그 남자는 평민이긴 하지만 그냥 평민은 아니었다. 그는 가우리의 정직원이었다. 소문은 발보다 빠르다고 하던가? 초저녁의 술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금방 퍼졌다. 그리고 에리프릴 왕국에 진출한 가우리의 지부장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지부장님. 우리 회사의 정직원 중에 한 명이 노상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뭐? 그게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신분제도 철폐를 부르짖다가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기사들에게 당했답니다.” “뭐야!!!? 그렇다고 죽여!!?” “예.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기사가 일반 평민을 죽인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망할···. 하여튼 이 놈의 동네는·····.” “어떻게 할 까요?” “·············.” 보고를 받은 지부장은 고민했다. 사실 그는 에리프릴 왕국에 가우리 진출을 지시받은 미하엘 직속의 부하중에 한 명이다. 순수하게 끗발만 따지면 지금 당장 에리프릴 왕국의 국왕과 만나려고 해도 바로 국왕이 시간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파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자신의 독단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사안이 무거워 보였다. 자신들의 정직원이 살해당했다. 하지만 가 사원은 일단 이 나라의 국민이고 이 나라의 법적인 제도상으로는 평민이 기사에게 죽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감성과 이성의 대립이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런 사안은 어떻게 처리해도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혹시 증거나 증인은 있나?” “예. 그 술집에 마침 CCTV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단 영상을 입수해서 확인해 봤는데 화질도 선명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지부장은 일단 그 증거를 챙겨서 확실하게 보사까지 해 두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직속 상사인 미하엘에게 이 사안을 보고했다. 가우리의 수도인 신서울. 그리고 그 신서울의 안에서도 실질적으로 이 거대한 가우리를 움직인다고 할 수 있는 수상부의 과저. 거기서 미하엘은 한 통의 전화를 잡고 긴 대화를 하고 있었다. “·······과연, 그렇단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엄중하게 따져 물을까요? “···········저도 잠시 생각을 해봐야 겠군요. 1시간 안으로 답을 줄 테니 기다려 주세요.” 항상 바로바로 즉답을 주던 미하엘이 1시간이라는 틈을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부장은 잠시 당황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예.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미하엘은 전화를 끊고 잠시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무거운 입이 열리면서 혼자 중얼 거렸다. “····이제 시작해야 할 때인지도······.”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수상실에 있는 정운을 찾아갔다. 똑똑···. “수상각하. 들어가겠습니다.” “응. 들어와.” 그리고 미하엘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생각한다. 가우리의 수상이라는 사람이 집무를 보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누구는 전문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분당 계속해서 새로운 보고가 올라오는 프로페셔널한 공간을 상상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화려한 인테리어에서 푹신한 의자에 늘어져 있는 정운이 한 손에 와인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늘씬한 미녀의 허리를 손에 안고 있는 광경을 상상한다. 하지만 진실은 둘 다 다르다. 진실은····. “아빠. 나 이거 따 줘.” “자, 여기.” 진실은 어지럽혀진 방의 구석구석에 아미의 장난감이 늘어져 있고 복숭아 통조림을 가져와서 따 달라고 투정 부리는 아미가 정운에게 매달려서 보채는 광경이었다. 누가 이 난잡한 공간에서 이 초유의 강대국 가우리를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냥 애 키우는 보육원하고 같은 수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미하엘은 그런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이 무시하고 정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보고 드릴게 있습니다.” “지금? 한 30분만 있으면 슬기가 아미 데리러 올 텐데 그때 하면 안 돼?” “····급한 일입니다.” “알았어. 해 봐.” 결국 정운은 좀 난잡한 분위기 속에서 미하엘에게 보고를 받았다. 미하엘이 보고를 하는 동안 아미는 복숭아 통조림을 꺼내서 행복하다는 듯이 포크로 찍어서 먹기 시작했다. 일단 먹을 때는 조용하다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미하엘의 보고를 모두 들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예. 어떻게 할 까요? 일단 진행 할까요?” “······최대한 피가 적게 흐르는 방향으로 이끌어 봐.” “어차피 흐르긴 흐를 겁니다.” “알아. 그러니 적게 흐르는 방향이라고 한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운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자 미하엘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미는 어느새 복숭아 통조림을 다 먹고 정운에게 다시 달라 붙었다. “아빠. 놀아 줘.” “·····그래. 알았어. 뭐 하고 놀까?” “········아빠 화 났어? 아미 때문에?” 정운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느낀 아미가 정운에게 말했다. 그러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미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한건····. 글쎄? 누가 그런 걸까? 나도 잘 모르겠네.” 정운은 그냥 씁쓸하게 웃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53화 <아름다운(?) 외교관> 그날 에리프릴 왕국의 TV에는 속보가 나갔다. 속보의 내용은 다름 아닌 초저녁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에 관해서였다. [오늘 오후 5시 30분쯤에 천사의 목소리라는 솔집에서 참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피해자는 가우리 소속의 공장에서 일하는 OOO씨로 사상 투쟁을 하던 중에 기사에게 실해 당했습니다. 가우리는 현장의 CCTV에서 범행 현장의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입수했습니다. 그 영상을 지금부터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TV를 통해서 당시의 상황이 모두 공개 되었다. 처음에 신분철폐를 주장하던 장면부터 그 후에 기사들이 난입하고 기사 중에 한 명이 연설자의 머리를 밟아서 터트려 버리는 광경까지 모든게 다 드러났다. 그 잔인한 모습이 에리프릴 왕국의 수도 전역에 방송된 것이다. 보통 팩트를 중요하게 여기는 뉴스라고 해도 이런 영상은 함부로 내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미하엘은 일부러 그 모든 광경을 가감없이 보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래야 자신이 예상한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상에······.” “뭘 잘못 했다고···.” “아무리 기사라도 그렇지···.”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히 컸다. 솔직히 말해서··. 살아오면서 귀족에게 멸시당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귀족의 변덕으로 인해서 평민이 죽은 경우도 여러 번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대부분 누군가의 입를 통해서 듣거나, 혹은 그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을 때였다. 제 삼자를 통해서 들을 때는 별로 생동감이 없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현장에 직접 있을 때는···. 혹시나 자신에게도 그런 불똥이 튀길까 무서워서 감히 나서지를 못했다. 자기 신념을 위해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그런 폭거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별 논란거리로 번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라는 것이 생기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언론은 동시에 다수의 인간에게 대량으로 정보를 풀어 버린다. 보통 사람 100명에게 동시에 정보를 풀어 버리면 그 중에 한 명 정도는 크게 분개한다. 그리고 1,000명에게 동시에 정보를 풀어버리면 그때는 말 그대로 자기 일처럼 분노하고 그 분노에 맞서기 위해서 행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한 명들은 그냥 한 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망설이고 있던 다른 사람들과의 연계로 이어지면서 이윽고 어마어마한 파급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게 언론이라는 것의 영향력이다. 인류 최악의 독재자 중에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히틀러는 이 언론을 악용하는 것을 잘했다. 그냥 잘했다. 정도를 넘어서 도가 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히틀러는 매스 미디어를 종횡무진 활용하면서 그제까지 약소 세력이었던 나치당을 독일의 제일 정당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는 민중은 신문을 읽을 뿐. 해석하지는 않는다. 라는 말했다. 신문의 자극적인 머리말과 서두 몇 줄로 대중을 선동하고 결국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나치당의 불길을 일으켰다. 만약 언론이라는 기능이 없었다면 애초 약소 정당이었던 나치당은 독일 정치판 안에서 묻혀 버렸을 지도 모른다. 특히 TV같은 영상매체로 이뤄진 언론은 더욱더 강력하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상을 전하기 때문에 그 전파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결국 모든건 미하엘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분노한 민중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이내 에리프릴 왕국의 수도 광장을 가득 메웠다. “해당 기사를 끌고 나와라!!!” “우리는 벌레가 아니다!!!” “얼어 죽을 기사도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 “귀족들은 이번 사태를 해명해라!!!” 민중은 이미 브레이크가 끊어진 폭주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사실 역사상 반란은 있어도 시위라는 개념은 없는게 이 나라였다. 민중이 스스로 일어나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운다니···. 이제까지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귀족들은 생소한 광경에 극도로 경계심을 세웠다. 사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가우리의 영향이었다. 가우리에서 틀어준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맞서는 방법을 모르는 자는 불의를 보고도 대항하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방법을 알면? 그때는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단 시도를 해보는 자들이 생기는 법이가. 그리고 실제 하나로 뭉친 민중의 힘은 절대 작지 않았다. 귀족들이 봤을 때 민중 하나하나는 자신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개미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개미가 뭉치면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광장을 가득 메운 민중을 본 상당수의 귀족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귀족들 중에 몇몇은 병력을 동원해서 강제 해산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주장이 쏙 들어가게 한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가우리에서 파견된 한 명의 남자 때문이었다. “힘으로 찍어 누른다라···. 그런 아름답지 못한 행위는 달갑지 않군요.” “·············.” “·············.” “·············.” 장 그레고리. 말 안 통한다는 점에서 보면 가우리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인간이 온 것이다. 원래 가우리가 순수하게 이 대륙에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여기서 에리프릴 왕국 쪽이 강경 진압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 사실 강격책은 에리프릴 왕국으로서는 자충수일 뿐이다. 다소 피가 흐르기는 하겠지만 세상에 출혈 없는 혁명은 없는 법이다. 이제까지의 제도와 국가 전반의 시스템을 모두 바꾸는 과정에서 아무런 잡음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어차피 볼 피라면 차라리 빨리 보는 편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더 좋기도 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대로 가능하면 피가 적게 흐르는 쪽을 택하라고 명령했다. 미하엘은 그 명령에 따라서 에리프릴 왕국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 장 그레고리를 파견했다. 장 그레고리의 정식 직책은 제2외교통상부장이다. 즉, 원래 타국과의 교섭도 그의 업무 영역인 것이다. 다만 그의 주 무대는 자국인 프랑스다. 다른 나라들과 교섭을 볼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대로 대부분은 프랑스와 가우리의 외교 관계에 관해서 많은 활동을 했다. 현재 프랑스에서 장 그레고리의 인기는 전성기 시절의 나폴레옹을 능가할 정도로 대단하다. 영국의 다이앤과 프랑스의 장 그레고리. 이 두 명은 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귀환자들이고 가우리와 자국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두보였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는 자원 수입에 관해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모두 장 그레고리와 다이앤이 어느 정도 신경을 써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이 둘과의 끊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수많은 당근을 제시했다. 다이앤이 영국 왕실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장 그레고리 역시 프랑스에서는 정부에서 정식으로 영웅 칭호를 받으며 유공자로 받들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 그레고리가 뛰어난 외교관인 것은 절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뛰어난 외교관이라는 것은 큰 성과를 올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이익이라도 좋으니 어려운 난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외교관이야 말로 진정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하긴, 현실에서 이 두 가지가 따로 분리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가우리의 경우 그 간판이 워낙 휘황찬란하기 때문에 외교적인 교섭이라고 해 봐야 항상 절대적인 위치에서 이익을 취할 뿐이었다. 이런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사실상 거저먹는 외교나 다를게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지금 장 그레고리는 가우리에 취임한 이후로 처음으로 난이도가 좀 높은 건수를 받은 것이다. 에리프릴 왕국에 장 그레고리를 파견하면서 미하엘은 간단한 주의 사항을 말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에리프릴 왕국이 폭주하도록 놔두면 안 됩니다. 강경 진압이라던가? 시민들을 모두 폭도 취급하게 놔두면 안 됩니다.” “훗, 이 내가 그런 아름답지 못한 짓을 눈뜨고 용서 할리 없지. 그랬다간 나의 정의로운 검이 아름답게···.” “둘째, 이건 절대는 아니지만 가능하면 장 그레고리님이 집접 무력을 행사 하시면 안 됩니다.” 미하엘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얼굴에 울상을 짓고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왜? 아름답게 적을 물리쳐야 하는데 왜?” “·············.” 천하의 미하엘이라고 해도 역시 장 그레고리는 다루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남자를 에리프릴 왕국으로 보내는 의미가 있지.’ 미하엘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일단 절대라고는 안 했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력을 동원하셔도 괜찮습니다.” “흠····. 그 기준이 되는 선은?” “그건 장 그레고리님이 알아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름답····.” “하지만!!! 되도록 참아 주십시오.” “····지 않군. 음····.” 한마디 한마디에 일비일회 하는 장 그레고리를 보면서 미하엘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건 꼭 개를 훈련시키는 것 같군.’ 개에게 기다리게 하는 훈련을 시키려고 밥그릇을 눈앞에 두고 기다리게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빼 먹고 보낼 수는 없었다.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장 그레고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그대로 보내서 성질대로 하게 했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는 인간이 장 그레고리였다. “혹시 모르니 부관으로 페에르님을 보내겠습니다.” “피에르? 그 친구 바쁘지 않나? 바쁜 친구를 굳이 힘들게 하는 것은 별로 아름답지···.” “보낼 겁니다.” “············.” 미하엘의 단호한 말에 장 그레고리의 입술이 뾰족하게 내밀어졌다. 페이르 아르네제데. 그 역시 레벨이 191에 달하는 고위 귀환자이다. 그리고 월드 서버에 한국팀이 진출하기 전부터 프랑스 팀의 NO.2로서 확약한 장 그레고리의 오른팔이었다. 다소 감성적으로 막 나가는 장 그레고리가 팀을 이끌어도 프랑스 팀이 강팀으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남자의 존재가 컸다. 능력도 강했지만 그 이상으로 장 그레고리가 폭주하려고 하는 타이밍에 절묘하게 끼어들어서 말리며 그를 컨트롤 했다. 그래서 미하엘도 그 남자를 장 그레고리의 리미터로서 딸려 보내려는 것이다. “이미 피에르님과는 얘기를 끝냈습니다.” “쳇.” 결국 장 그레고리는 혀를 차면서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하엘은 피에르를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프랑스 쪽에 약간의 이권을 더해줬다. 자국의 이익에 크게 관심이 없는 장 그레고리와 달리 피에르 아르네제데는 약간 애국자였다. 자국에 이익을 주기 위해서 가우리 안에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가우리의 이익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선은 칼 같이 지켰지만 말이다. 그런 피에르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미하엘이었기에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상당한 수준의 이권을 프랑스에 넘겨줬다. ‘대강 유전 하나 정도에 해당하는 이권을 넘겨주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가우리 전체의 수준과 미하엘의 권한을 생각하면 유전 한 두개 정도는 정운에게 보고하지 않고도 자신의 뜻대로 처리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까? 부디 가서 사고치지 마세요. 장 그레고리님의 파견 목적은 에리프릴 왕국이 폭주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가우리 소속의 기업을 지키는 것입니다. 거기에 집중하세요.” “알았어. 별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아름답게 처리하도록 노력해 보지.” “···············.” ‘속 미어 터질거다. 에리프릴 왕국·····.’ 명색이 천사인 자신이 이런 심정인데 중세 귀족 마인드를 지닌 에리프릴 왕국의 지배층들은 오죽할까? 진심으로 동정이 가는 미하엘이었다. ============================ 작품 후기 ============================ 속 제대로 터질 겁니다. 정말 제대로....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54화 미하엘의 예상대로···. 장 그레고리는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의 속을 제대로 뒤집고 있었다. 가장 먼저 처음에 한 일은 에리프릴 왕국이 강경 진압을 하지 못하도록 한 일이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한창 시위가 극에 달했고 이제 에리프릴 왕국에서는 마도병력과 기사단을 동원해서 아주 제대로 된 피의 학살을 하려고 했다. 사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때는 에리프릴 왕국 전역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고, 기존의 체제를 무너트리려는 가우리로서는 오히려 더 좋은 일이었다. 전국에서 봉기가 일어나면 전면에 나서지 말고 뒤편에서 살짝 지원을 해주는 것만으로 에리프릴 왕국의 기존의 정권을 싹 붕궤 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피가 흘러야 했기에 정운은 그걸 막고 대신 다른 길을 제시했다. 그래서 장 그레고리는 일단 에리프릴 왕국이 무력진압을 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반발은 있었다. “이거 자국에서 일어난 일이오. 타국인 가우리가 나서서 말리기에는 너무나 지나친 내정 간섭이란 말이오.”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 중에 그래도 제법 강단 있는 남자 한 명이 따졌다. 다른 귀족들은 가우리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겁 먹고 찌그러져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름 배짱이 있는 남자였다. 사실 내정 간섭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일리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배짱 좋은 인간이 조리있게 말한다고 해도 이빨이 안 들어가는 존재들이 있는 법이다. 장 그레고리가 바로 그렇다. “훗, 강경진압이라니···. 그런 야만적이고 아름답지 못한 방식은 절대 허락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엄연한 내정 간섭이란 말입니다.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아름답지 못한 일을 묵과 할 수는 없는 법. 이것도 아름다움을 위한 시련이라면 본 국은 그 시련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정말로··. 비유도 뭣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말이 안 통했다. 소귀에 반야심경을 읽어줘도 이것보다는 좀 더 알아들을 것이다. ‘저 인간은 뭐지?’ ‘미친놈인가?’ ‘가우리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미친놈을 파견한 거지?’ ‘혹시 우리 복장이라도 뒤집으려는 걸까? ···아니야. 설마 그런 이유이기야 하려고···.’ 그런 이유도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장 그레고리의 쇠고집 때문이었다. 그라면 어떤 궤변으로도 절대 설득 당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궤변이건 정설이건 자기가 인정하는 상대에게서 나오는 말이 아니면 그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오른쪽 귀와 왼쪽 귀 사이에 하이패스, 아니 프리패스라도 달린 것 같은 미지의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장 그레고리였다. 이 남자를 설득 시키는 건 에리프릴 왕국의 깜냥으로는 절대 불가능 할 것이다. 미하엘은 그걸 확신하고 그를 보낸 것이다. 물론 명색이 외교 사절인데 그렇게 궁극으 마이 페이스 하나만 보내서는 일이 진행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피에르 아르네제데를 딸려 보낸 것이다. “큼···. 제2외교통상부장 보좌관 피에르 아르네제데입니다.” 일단 자기소개를 해서 좌중의 이목을 집중 시킨 피에르는 조리있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제2외교통상부장님인 하신 말씀은···. 저 시위대 사이에 있는 인물들 중에는 기업 가우리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이 다수 있으니 그들에 대한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가우리의 입장에서는 묵과 할 수 없다. 라는 말입니다.” “···············.” “···············.” “···············.” 과연 아까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번역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에리프릴 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나마 그 중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한 명이 따지듯이 물었다. “아무리 가우리의 소속된 직원이라고 해도 그 전에 우리 에리프릴 왕국의 백성이오. 그런데 자국의 백성에 관한 일로 관여하는 것은 지나친 내정 간섭이 아니란 말이오?” 그의 날카로운 추궁에 장 그레고리가 대답했다. “물론 아니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의도는 아름다운 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시도이기 때문이오.” 울컥!!! 에리프릴 왕국 귀족들이 단체로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장 그레고리가 가우리 소속만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결투를 신청했을 귀족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뭐, 어떤 결과가 나올지야 뻔하지만 말이다. 그런 귀족들을 위해서 피에르가 입을 열었다. “큼··. 지금 말을 번역하자면····, 가우리의 기업에 소속되는 정직원의 계약조항에는 기업에서 사원의 생명과 가족, 재산 그리고 생활수준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조항은 에리프릴 왕국의 법령 아래에서 시행된 것입니다. 실제로 에리프릴 왕국의 재상 각하의 인증이 붙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라는 의미입니다.” “············.” “············.” “············.” ‘그러니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번역하면 그렇게 되는데?’ ‘가우리에서 외교관을 뽑는 기준은 뭐지?’ ‘암호인가? 외교 테이블에서 상대에게 진의를 숨기고 자신들끼리 대화를 하기 위한 암호인가?’ 무거운 침묵과 수많은 의구심이 소용돌이 쳤다. 하지만 결국 결과는 같았다. 가우리는 에리프릴 왕국이 힘으로 인한 진압을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방해를 하고 있었다. 피에르가 말한 대로 에리프릴 왕국은 국내에서 가우리의 활동을 위해서 여러 가지 허가를 내주고 있었다. 저 조항도 마찬가지였다. 에리프릴 왕국의 법령 하에서 제대로 허가 받고 진행된 것이었다. 사실 내 주고 싶은 허가라기 보다는 가우리가 요구하니 일단 들어주고 본 것이긴 했다. 하지만, 설마 저런 애매한 조항이 이렇게 결정적인 국면에서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하긴, 사실 알았다고 해도 결국은 들어줘야 했겠지만 말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가우리는 절대적인 갑의 위치인 승전국이었고 에리프릴 왕국은 뭐든지 들어줘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우리는 전쟁 배상금은 한 푼도 요구하지 않고 가우리가 운영하는 기업이 진출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권들만 요구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수 백 가지 조항을 만들어서 에리프릴 왕국이 수용하게 했고 말이다. 사실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이 보기에는 조항들 대부분이 당연하거나 오히려 가우리가 손해 보는 조항들이라고 생각했다. 자국의 국민도 아니고 타국인일 뿐인데 고작 고용했다고 그 국민을 꼼꼼하게 챙겨준다? 사실 에리프릴 왕국으로서는 당시에 가우리가 하는 모습이 허공에 삽질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허공에 삽질하며 파 놓은 함정에 이제 자신들이 제대로 빠진 것이다. 이제는 가우리에 소속된 직원이라고 하면 설령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특권 계층이 된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특권 계층이 저 시위대에 다수 섞여 있다. 그리고 가우리는 우리 식구들 손 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두 눈을 번뜩이고 있고 말이다. 진퇴양난도 이런 진퇴양난이 또 있을까? 앞으로도 뒤로도 길이 꽉 막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피에르는 머리 위에서 무거운 철퇴까지 떨어트릴 한 마디를 했다. “오히려 우리가 따지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희생자 역시 우리 가우리의 정직원이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 “·············.” “·············.” 귀족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방금 전에는 내정 간섭이라고 부르짖던 자들 역시 이번에는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그들도 TV를 통해서 그 기사가 평민을 잔인하게 밟아 죽이는 것을 봤다. 사실 이들 중에는 그 기사보다 더한 짓을 한 인간들도 있었다. 길에서 뛰어놀던 평민 아이들이 귀족의 마차에 치여서 불구가 되거나 심하면 죽는 경우는 종종 일어났다. 평민 중에 얼굴이 좀 반반하다 싶은 여자들을 발견하면 거리낌 없이 취한 귀족들도 있었다. 그 여자가 처녀든 유부녀든 상관없었다.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번죄라는 인식 자체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천한 평민을 영광스럽게도 고귀한 귀족이 귀여워 해 준다. 라는 식으로 오히려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보통 남들 귀에 안 들어가게 해야 했다. 아니 들어가더라도 그냥 유유상종하는 친한 사이에서만 들어가야 했다. 설령 법적으로 처벌을 안 받는다고 해도 이미지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귀족은 고귀하고 유능하고 뛰어나며 국가에 충성하고 백성에게 헌신적이어야 한다. 실제 그렇고 안 그렇고를 떠나서 그런 이미지여야 한다는 말이다. 절대로 아이를 치어 죽이거나 아무 여자나 강제로 취하는 이미지여서는 안 된다.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도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보다 월등히 약한 상대를 검도 아니고 그냥 발길질로 벌레라고 말하며 밟아 죽인 것은 기사의 이미지가 아니다. 강도나 산적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이들 중에 그 누구도 그 기사를 함부로 감싸 줄 수는 없었다. 피에르는 입에 꿀이라도 바른 것 같은 귀족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일단 본국에서 처벌 수위를 논의 중입니다. 하지만···. 절대 유야무야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으음······.” “그런·····.” 피에르의 말에 몇몇 귀족들의 입에서는 침음성과 탄식이 흘러 나왔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의 효력이 확 올라가는 법이다. 전쟁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면서 오개국가를 모두 물리 친 가우리다. 그런 가우리의 외교관이라는 자의 입에서 ‘처벌 수위’ 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건 골치도 어지간한 골치가 아니었다. “부디 평화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피에르는 그렇게 말하고 일단 자리를 피했다. “응? 우리 이렇게 가도 되는 건가?” 옆에서 장 그레고리가 뭐라고 말했지만 피에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가면 됩니다.” ‘그래야 자중지란이 일어나지····.’ 은근히 사악한 피에르였다. 피에르의 예상대로···. 지금 에리프릴 왕국의 수뇌부는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빴다. “이런 내정 간섭을 허용 하다가는 끝이 없소!! 여기서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단 말이오?” “강경하게? 무슨 수로 강경하게 나가잔 말이오? 다시 전쟁이라도 해야 겠다는 거요?” “누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했소. 적어도 우리 나라의 내정에 가우리가 끼어들지 못하게 선을 그어야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어떻게!!? 결과만 얘기하지 말고 어떻게 그게 되는지 말해 보란 말이오!!!!” 시장판, 난장판, 깽판. 난리도 아니었다. 의견의 대립은 양쪽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가우리의 요구를 절대 수용 할 수 없다. 라는 쪽이었다. 우리 나라의 내정에 타국이 관섭할 빌미를 주게 되면 가우리는 앞으로 점점 더 심한 요구를 할 것이 뻔했다. 그러니 무조건 이번에 딱 잘라서 선을 그어야 한다. 라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견은 일단 가우리의 의견을 수용해서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우리에서 하고 있는 주장은 사실상 억지다. 그거야 누구나 알고 있다.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 중에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억지라고 해도 누가 말 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그냥 땡깡이 될 수 있고 무시할 수 없는 경고가 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가우리의 의견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힘든 점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일단 이번에는 한 발자국 물러나자는 의견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첫날 도장에 가니 생각보다 힘들긴 한데... 도장 분위기가 굉장히 밝고 건전하네요. 글만 쓰다 보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체중도 해결해야 하고.. 거기다 다음 작품의 취재도 될 수 있으니 저로서는 일석이조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55화 정치판이라는 곳은 항상 의견의 대립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다. 일단 의견의 충돌이 일어나고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충돌이 길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일단 자존심 문제로 붉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도대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애 나라를 팔아넘기지 그러냐? 이 매국노들아!!!!” “다 지껄였느냐!!? 현실도 모르고 나라를 말아 먹으려고 작정 한 것은 너희들이 아니냐!!?” “감히 누구한테···. 검을 뽑아라!! 결투다!!” “좋다. 어디 한 번 해보자!!!” 회의장은 이내 고성에 결투까지 이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가 정점에 이르렀을때···. “그만!!!!!!!!” 그제까지 가만히 있던 한 사람이 모든 귀족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와 몸에 걸치고 있는 붉은 로브는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잘 알게 해 주고 있었다. 바로 이 남자가 에리프릴 왕국의 단 하나 남은 로드인 노이비에트 마르부르크이다. 사실 지금은 에리프릴 왕국에 딱 하나 남은 로드이기도 하다. 에리프릴 왕국에서 로드란 최소 8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를 뜻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이 나라의 왕과 같다. 역사적으로 많을 때는 그 로드가 10명 이상 있을때도 이다고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단 두 명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인 바이로이드 할슈타트 로드는 이전에 가우리와의 전투에서 배대호의 극대 마법으로 인해서 사망했다. 그러니 지금 에리프릴 왕국에 남아있는 로드는 이 남자 한 명 뿐인 것이다. 여기서 로드라는 직위에 관해서 좀 짚고 넘어가자면····. 로드란 에리프릴 왕국의 왕이기도 하지만 사실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게 보통이다. 마도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에리프릴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은 두 말할 것 없이 마법사다전쟁터에서 실제로 싸우는 것은 물론이고 병사들이나 기사들의 힘을 몇 배로 늘려주는 마법사들은 에리프릴 왕국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전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마법사들은 사실 자신의 마법을 수행하고 클래스를 올리기 바쁘다. 그렇다 보니 나라의 지배계층으로서 정치를 한다거나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보는 것은 무리였다. 머리가 나쁜게 아니라 마법이라는 만만치 않은 한 분야를 수련하기 바빠서 도저히 다른 곳으로 머리를 굴릴 엄두가 나지 않는게 보통이었다. 로드라 불리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8클래스 정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천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재능의 소유자가 수십 년 동안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고, 거기에 깨달음을 얻을 정도의 행운이 따라야 이를 수 있는 경지다. 당연하지만 세상물정도 모르고, 나라를 운영하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에리프릴 왕국의 실질적인 시스템은 귀족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마법사들은 오로지 마법의 수련에만 힘 쓰는 것이 기본이었다. 마법사들이 개발한 마법이나 마법도구를 세상에 적용 시켜서 활용하는 것은 귀족들의 임무였다. 그리고 로드 역시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에리프릴 왕국의 왕이긴 하되 나라의 전반적인 사정에 관해서는 어지간하면 관여를 하지 않는다. 그저 나라의 상징이자 마법사들의 대표. 그게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라는 직위의 현 위치였다. 그런 로드가 이렇게 회의장에 직접 참석하고, 그리고 귀족들에게 의견을 말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 이 나라에 딱 하나 남은 로드인 노이비에트 마르부르크는 더 이상 이 사태를 좌시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일단 오늘은 모두 물러나게. 적어도 지금은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모두들 물러나서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오게.” “알겠습니다. 로드.” “알겠습니다. 로드.” “알겠습니다. 로드.” 귀족들은 일단 로드의 말에 따라서 물러났다. 로드라는 직책이 정치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 어렵고 어려움 마법을 수련해서 8클래스라는 지고의 경지까지 올라간 존재다. 머리가 아둔한 존재는 절대로 아닌 것이다. 그런 로드가 이만 물러나라고 한 것은 확실히 귀족들의 분위기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계속 맴돌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은 몰랐겠지만···. 지금 딱 하나 남아있는 로드인 노이비에트 로드는 그다지 세상 물정에 문외한인 편도 아니었다. 그는 원래 귀족가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는 귀족가문의 후계자로 수업을 받았던 존재였다. 어느 날 자신이 마법에 재능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자 동생인 차남에게 가문을 양보하고 자신은 마법사의 길을 걷기는 했지만···. 이따금씩 가문에 관해서 동생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세상 물정에 밝아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생각하기에 도무지 알 수 없는게 있었다. “가우리라····. 도대체 뭘 노리는 거지?” 바이로이드 로드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가우리의 목적이 뭔지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전쟁에서 승리하더니 자신들의 기업이라는 상회를 나라에 진출 시켰다. 그 후에는 야금야금 안으로 파고들어서 이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공생의 의지가 있는 조화로운 협력자 정도로 파악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중을 교육 시키더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바람을 물어넣고,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이런 불길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우리 나라를 무너트릴 것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번거로운 수단을 동원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설마 정말로 모든 인간이 평등한 세상을 이룩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바이로이드 로드는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세상? 그런 세상이 있다면 모든 인간이 게으르고 태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살아는 갈 수 있는··. 그런 글러먹은 세계뿐일 것이다. 사실 가우리의 목적은 딱히 이 대륙을 민주주의화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서 가우리의 목적은 민중의 지지를 끌어와서 자신들의 지지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기존의 지배계층을 갈아치우는 것은 단순히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 진행되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대중에게 가우리의 지지력만 얻어내는 것이야 말로 가우리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것은 곧 이 세계에어서 파우스트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정운의 칼날이 파우스트의 목전에 가까워 다는 얘기다. 사실 민주주의를 도입한다고 해도 이 세상이 잘 굴러갈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가 비교적 우수한 시스템이긴 해도 허점이 많은 것은 엄염한 사실이고···. 심지어 그 시스템이 에리프릴 왕국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대우 받는 세상. 말은 달콤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런 세상은 불가능 하다. 인간은 개개인이 성격도, 재능도, 주어진 환경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으로 인해서 어느 분야에서든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서로 다름으로 인해서 차이가 벌어지는 것. 그것은 인간의 본질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그런 본질을 무시하고 모든 인간에게 평등을 부여한다는 것은 노력을 거듭한 자들에 대한 역 차별일 뿐이다. 가뜩이나 이 세계에서 고위층이라고 하면 마법이나 신성력, 오러 소드 같은 특출 난 능력을 지닌 자들이 많다. 그런 자들은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바뀐다고 해도 결국은 우대 받기 마련이다. 자신의 능력 자체가 우수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가우리에 대한 강한 환상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런 평등이라는 달콤한 미끼에 눈이 멀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만 되면 자신들의 인생도 앞으로 가우리에서 보여주는 드라마와 같이 많은 기회와 성공의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말이다. 결국 바이로이드 로드의 눈에는 가우리의 진의가 보이지를 않았다. 에리프릴 왕국을 멸망시키거나 집어 삼키는게 목적이라면 이런 번거로운 뒷 수작을 부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정말 평등한 세상을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망상적인 발상이다. 그런 초강대국을 이룩한 자들이 그런 망상과 현실의 구분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사실 파우스트의 존재와 가우리의 진짜 목적을 모르는 이상 아무리 생각해도 가우리의 진의를 아는 것은 무리였다. 마치 조각이 몇 개 빠진 퍼즐처럼 절대 완성판의 그림이 나오지는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 번 만나봐야 겠군.” 결국 바이로이드 로드는 직접 움직여서 담판을 짓기로 했다. 기업 가우리의 에리프릴 왕국 총지부 빌딩. 그 빌딩의 최상층에서 장 그레고리는 와인을 기울이면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답군.” 그의 뜬금없는 말에 보좌관인 피에르가 한숨을 쉬면서 대꾸했다. “그렇습니까? 시위중인 도시의 풍경이 뭐 그리 아름답다고···.” “아니 창에 아련하게 비친 내 얼굴이 아름답다는 말일세. 넌 왜 이걸 이해 못하나?” “·················.” ‘누가 그걸 이해하겠냐?’ 상당히 오랫동안 곁에서 모시긴 했지만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 문득 둘은 동시에 뭔가를 느꼈다. “···손님이 왔군.” 장 그레고리의 말에 피에르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적의는 없는 것 같네요. 손님용으로 와인이라도 새로 딸까요?” 피에르의 말에 장 그레고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음··. 안주로는 간단하게 우리나라의 치즈와 견과류를 세팅해 주게. 그리고 와인은 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것으로 준비해 주게.” “·············.” 과연 아름다운 와인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선별하면 되는 걸까?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면서 따지고 싶은 피에르였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밖이 춥습니다. 들어오시죠.” 피에르가 그렇게 말하자 창 밖에서 한 명의 남자가 투명화 마법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런 방문에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것 아니오. 노이비에트 마르부르크 로드.” 그렇게 장 그레고리는 웃으면서 노이비에트 로드를 맞이했다. “드시죠? 우리나라의 와인과 치즈입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피에르는 직접 세팅한 와인과 치즈를 권하면서 노이비에트 로드의 맞은편에 앉았다. 노이비에트 로드는 둘을 차분하게 관찰했다. ‘···상당히 친근해 보이는군. 그냥 상사와 부하의 수직적인 관계를 떠나서 신뢰가 보여.’ 당연한 일이었다. 이 둘은 한때 월드 서버에서 프랑스 팀을 이끄는 양대 핵심이었다. 장 그레고리의 괴팍한 성격이 종종 애를 먹일 때도 있기는 했지만 피에르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를 따라줬다. 이 둘의 관계는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미하엘도 이 둘을 동시에 파견한 것이고 말이다. 노이비에트 로드는 우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불미스런 일에 귀국의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이 사망한 것은 유감입니다.” “과연··. 아름답지 못한 일이었소.” 장 그레고리의 말에 노이비에트 로드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다만, 아무리 가우리의 직원이라고 해도 우리 에리프릴 왕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나라의 국민이오. 그런데 에리프릴 왕국의 국민이기 이 전에 가우리의 직원이라는 평가는 다소 불공평 하지 않습니까?”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맞는 말을 순순히 인정하고 ‘예. 그렇군요. 저희 실수입니다.’ 라고 말하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속이 어디냐? 를 따지는 것 보다는 이번에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름답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오.” “연설 내용을 들었다면 알겠지만, 그는 현 국가의 체제를 모두 부정하고 뒤집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반역죄로서의 성립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사 계급의 의무에는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 역시 순고한 의무. 그렇다면 그의 실수는 업무상 과잉처벌 정도가 되겠죠. 그런데 이렇게 민중을 부추겨서 천하의 악당으로 만드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한 평생 기사도를 숭상한 기사에게 이런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글쎄요? 아름답지 않다고 보는데요?” 말을 하면서 노이비에트 로드는 과연 이런 말이 통하긴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헉!!!! 그···. 그건 확실히·····.” 통했다. ============================ 작품 후기 ============================ 살아온 세월이 녹록하지 않다는게 이런 것이겠죠. 연륜으로 약점을 찌른 로드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56화 ‘······이 인간 정체가 뭐지?’ 장 그레고리와 대화를 하고 나서 10분의 시간이 흘렀다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장 그레고리라는 남자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8클래스를 뛰어 넘어 9클래스에 도달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름답지 못하다는 노이비에트 로드의 말은 장 그레고리에게 제대로 먹혔다. “아름답지 못해··. 내가···. 아··. 이런···. 으읏·····.”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뇌하는 장 그레고리의 모습에 피에르는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 거렸다. ‘하여튼 멘탈이 강한건지 약한건지···. 종 잡을 수가 없다니까···.’ 어쨌든 눈앞에 있는 늙은 너구리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은 알았다. 우연인지 아니면 그냥 한 번 찔러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 그레고리를 제대로 격침 시켰다. 하지만, 피에르가 있는 것은 그냥 와인이나 따르고 안주나 세팅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럴때를 위한 보험책으로 있는 것이었다. “로드께서는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피에르는 일단 초수부터 강력하게 끼어 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피에르·····.” “피에르 아르네제데 제2외교통상부장 보좌관입니다.” “실례했습니다. 아직 가우리의 호칭이 익숙하지 않아서 벌어진 실수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편하신 대로 피에르씨라고 불러 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잠깐 얘기가 옆으로 새기는 했지만 피에르는 본론으로 바로 넘어갔다. “저 역시 이 사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해당 기사. 이름은 빌리언 맥스라고 하더군요.” “····조사를 하셨습니까?” “예. 했습니다.” 노이비에트 로드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에르는 사무적인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로드께서는 이 기사가 기사도에 충실해온 기사였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은····.” “방금 전에 직접 자신의 입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기억 나지 않는다고 말하실 생각입니까?” “·················.” 노이비에트 로드는 할 말이 없었다. 설마 상대가 해당 기사에 관해서 뒷 조사를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에르는 서류철 하나를 가져와서 설명을 지속했다. “빌리언 맥스, 에리프릴 수도 방위 기사단인 마운트 기사단의 1급 기사. 나이는 41세, 15세에 견습 기사로 입단, 그 후 18에 정식 기사로 승격. 상당히 고속 출세를 했더군요.” “···본인의 능력이 좋았겠죠.” “예. 그런데 그 능력이 기사로서의 능력인지 아니면 다른 능력인지는 좀 의문입니다.” “·············.” 노이비에트 로드는 침묵하고 피에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에리프릴 왕국의 기사들은 누구나 남쪽의 크롱크 왕국과의 국경 지대에서 국방의 의무와 실전의 경험을 치르게 하는 관례가 있더군요. 총 복무 기간은 3년이라고 하던가요?” “그렇습니다.” “신기하군요. 이 친구는 거기서 3개월 밖에 복무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조기제대의 이유는 잦은 근무지 이탈과 상습적인 순찰 임무 중 실종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도대체 그런 자료는 어떻게 구한 겁니까? 군사 기록은 엄연한 우리의 내부 기밀입니다!!!” 계속 궁지에 몰리자 결국 노이비에트 로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8클래스의 로드가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위암감은 일반 사람은 물론이고 설령 익스퍼트급의 기사라고 해도 찔끔 할만 했다. 하지만 피에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역시 그라운드 제로가 없어질 당시 레벨이 191이었던 고위 유저다. 가우리의 평가에 의하면 로드라고 불리는 8클래스의 실력은 레벨로 환산했을 때 150~180정도 사이라고 한다. 레벨 191의 피에르는 가뜩이나 그 클래스가 메이지였다. 이 세계의 기준으로 치면 마나 엠페러까지는 아니지만 9클래스의 마법사 수준인 것이다. 자기보다 확실하게 한 수 아래의 상대가 위압감을 뿜어내 봤자 콧 웃음만 날 뿐이다. ‘가사롭게·······.’ 피에르는 눈을 스산하게 뜨면서 상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기운을 그대로 개방해서 상대의 압박을 단번에 밀어내 버렸다. “읏····.” 피에르의 기운이 개방되자 노이비에트 로드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짓누르는 것 같은 중압감. 이건 명백하게 자신보다 훨씬 윗줄이라는 더 할 나위 없는 증거였다. ‘···그냥··. 외교 사절이 아니었단 말인가?’ 노이비에트는 이제야 피에르가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피에르 뿐만이 아니었다. 8클래스의 로드인 노이비에트와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는 피에르의 기운이 이 방안에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유유자적하게 와인을 비워 나가고 있는 장 그레고리야 말로···. 이 방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증거였다. “큭····.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결국 지속된 압박감에 노이비에이트 로드는 굴복했다. 그러자 피에르에게서 뻗어 나오고 있떤 압박감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좀 진정이 되셨습니까?” “····예. 덕분에.” 피에르의 말에 노이비에트 로드는 그저 이렇게 말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언변에서 너무 밀리다 보니 어떻게든 힘으로 압박해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었던 노이비에트 로드였지만···. 이제야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는 그냥 언변이 좋은 외교관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능력자가 둘이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막말로 이 둘이 여기서 작정하고 공격을 한다면···. 그렇다면 봉인지정 무기를 최소 두 개 이상은 꺼내지 않고는 진정 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 정도로 확실한 힘의 차이를 느낀 것이다. “그럼··. 계속해서 그 빌리언 맥스라는 기사에 관해서 말인데···. 수도방위 기사단으로 복무하면서도 상당한 부정을 저지른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으음····.” 이제 노이베이트 로드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언변에서도 그리고 힘에서도 모든게 밀린다. 섣불리 발버둥 쳐 봤자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이 거미줄이 더 칭칭 감길 뿐이었다. 피에르는 그걸 뻔히 알면서 잔인할 정도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말해가기 시작했다. 사실 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사람을 꽁꽁 묶어놓고 난도질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광경일 것이다. “우선 수도의 범죄 단체 중에서 제법 굵직한 세 곳에서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아왔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 대가로 그들의 범죄 행위를 묵과 해 줬더군요.” “····면목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평소에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많은 여성들을 농락하고 선량한 상인들에게서 따로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노이비에트 로드는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지금 피에르가 하고 있는 말은···. 사실 이 나라의 기사들 중에 70% 정도는 저지르는 범죄였다. 거의 관례로 굳어졌다고나 할까? 기사라는 직위를 활용해서 평민들을 갈취하는 기사들은 이번에 역인 빌리언 맥스라는 기사 말고도 널렸다. 70%를 제외한 나머지 기사들도 딱히 청렴해서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30%중 대부분은 부유한 귀족가문 출신의 기사들이고 그런 기사들의 경우 별로 평민을 갈취해가며 자신의 주머니를 채울 필요가 없을 뿐이다. 정말 청렴하고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숭상하는 기사들도 1% 정도는 있겠지만···. 낭만 소설도 아니고 현실에서 그런 기사들은 아주 극소수일 뿐이었다. 인간이란 권력이 주어지면 그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종속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피에르는 도대체 어떻게 조사했는지 모를 정도로 자세한 자료를 10여분에 걸쳐서 좔좔 읽어갔다. 그리고 노이비에트 로드는 그 모든 사실을 그냥 인정해야 했다. 고작 기사 하나 감싸 주자고 거스르기에는 상대가 너무나 강적이었다. “····이상이 밝혀진 사실입니다. 이래도 이 기사에게 명예를 얘기 할 수 있습니까?” “······모두 인정합니다. 해당 기사에 관해서는 강한 처벌을 내리겠습니다.” 실제로 지금 노이비에트 로드의 심정으로는 빌리언 맥스라는 기사를 흑마법의 실험재료로 삼아서 언데드화 시켜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조무래기는 별 생각 없이 사고를 쳤겠지만 그 사고로 인해서 국가에 일어난 손실은 너무나 컸다. 이걸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후우····. 겸허하게 저희 쪽의 잘못이 지나쳤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변명이 아니라 가르침을 청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노이비에트 로드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상세한 세부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말은 결국 항복 선언이었다. 시키는 대로 할 테니 가능하면 목숨만 좀 살려달라. 라고 하는 간청이었다.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그리고 피에르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광장의 시위대 앞으로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 중에 한 명은 가우리의 피에르 아르네제데였고, 또 다른 한명은 당연히 장 그레고리였다. 그리고 피에르는 확성기를 들고 민중을 향해서 말했다. “여러분, 전 가우리의 제2외교통상부장 보좌관 피에르 아르네제데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 이 분은 가우리의 제2외교통상부장인 장 그레고리님입니다.” 둘의 소개를 들은 민중들은 술렁 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가우리의 인물? 저런 사람들이 왜···?”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 아닐까? 전에 죽은 사람도 가우리의 인간이었다고 하잖아?” “그렇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 둘의 등장에 시위대는 기대감으로 술렁거렸다. 그리고 장 그레고리는 피에르의 확성기를 받아들고 말했다. “우선,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여기에 모여주신 모든 민중들에게 아름다운 찬사를 보냅니다.” “와아아아아아!!!!” “가우리 만세!!!!” “민주주의의 구원자!!!!” “신분 철폐 만세!!!” 피에르가 살짝 호의적인 인사를 한 것만으로도 민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만큼 이들이 가우리에 가지고 있는 환상감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들은 지금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이제 가우리가 자신들을 도와서 귀족들을 몰아내고 신분제도를 완전히 철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지. 그렇게 급속도로 체제가 변화하면 사람이 세상에 못 따라가.’ 피에르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런 민중들의 대환호를 들으면 꼭 거기에 부흥해야 ‘아름답다.’ 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이 장 그레고리 그 부흥에 아름답게 응해····. 읍!!!” 말을 하던 장 그레고리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옆에서 입을 틀어막는 피에르의 손길에 의해서 말을 그만해야 했다. 피에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장 그레고리의 귀에 속삭였다. “리허설 하고 다르게 폭주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아니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잖아?” “그딴 것 필요 없어요. 리허설대로 못 할 거면 그냥 내려가!!!!” 단상에서 가우리의 고위 간부라는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 달라붙어서 뭐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수근 거렸다. “저게 뭐지?” “글쎄···. 서로 뭐라고 수근 거리는 걸로 보이는데?” “아니 저 높은 사람들이 왜?” “·····글쎄? 그거야 내가 아나?‘ 그렇게 수근 거리는 사람들 중에 어떤 여성 한 명이 말했다. “저건 설마·····.” “설마 뭐지? 아가씨 짚이는 거라도 있는 거요?” “예. 저것은···. 가우리를 통해서 소개된 지구의 고전 문학 중에 하나인····.” “하나인?” “BL!!!!” 말을 하는 여성의 눈은 심상치 않게 썩은 빛을 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뜬금없는 스캔들? 한참 진지하게 나가다 막간에 살짝 튀어나온 개그인데 이거 예상하신 분들은 절 마인드 컨트롤 하고 계신게 틀림없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57화 <에리프릴 왕국의 1차적 작업 완료> 시선은 흥미진진했고, 눈은 반짝이고 있으며 콧김이 거센 증기 기관차처럼 뿜어져 나왔다. “설마 라이브로 시청 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전에 월급 모아서 캠코더를 사두는 건데····.” 여성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BL?” “BL··· 이란 말이지?” “과연···. 나도 들어본 적은 있지만····.” 피에르는 민중의 그런 변화도 모르고 장 그레고리와 바싹 밀착해서 속삭이고 있었따. 그리고 그런 광경은 둘의 BL설에 좀 더 신빙성을 실어주었다. 개중에 몇몇 여자들은 눈에 상상력의 필터를 끼워서 좀 더 상황을 자기 입맛대로 미화 하기도 했다. “어머어머·····.” “누가 공? 누가 수?” “하아···. 하아·····.”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 중에 몇몇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리고 나머지 몇몇은 기가 찬다는 눈빛으로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여성은 매우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단상을 지켜봤다. 이런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에르는 장 그레고리를 진정시키기 바빴다. 그리고 한참을 진정시킨 후에 결국은 자기가 확성기를 뺏어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음?” ‘이 사람들 왜 이러지?’ 대중들의 엄청나게 요상 야릇한 시선을 느낀 피에르였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큼···. 제가 말을 이어서 하겠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이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불의에 맞서서 투쟁한 것에 관해서 가우리를 대표해서 큰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무난하게 말문을 열어간 피에르는 대중을 향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되는 빌리언 맥스 기사는 그 가문에서 축출. 기사 작위를 박탈에 이어서 사형이 확정 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 “정의는 승리한다!!!!” “가우리 만세!!!!” 가해자인 기사의 사형이 확정 되었다는 소식에 민중은 환호했다. ‘보통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게 아니면 사람 죽는다는 소식에 이렇게 열광하기는 힘든데···. 군중심리라는게 이래서 무섭지.’ 피에르는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께서 대응책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그 로드님을 직접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피에르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집중을 받으면서 노이비에트 로드가 등장했다. “저 사람이 로드인가?” “처음 보는데?” “맞겠지? 그러니까 가우리에서 그렇게 소개 한 거겠지.” 보통 일반 평민들이 로드를 볼 일은 거의 없다. 귀족들 역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게 로드다. 고위 마법사가 될수록 위의 경지를 위한 갈망은 더욱더 커지는 법이고 로드쯤 되면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수련과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서 세상과는 별로 접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전쟁터에 직접 가서 싸우다 죽은 바이로이드 로드나, 가우리와 직접 접선을 할 정도로 정치에 적극적인 노이비에트 로드는 역대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에 비하면 약간 별종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별종이라고 해도 평민들 앞에서 이렇게 공식적으로 로드가 나타난 것은 매우 드문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노이비에트 로드가 말했다. “우선, 우리 에리프릴 왕국에 이런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서 국민들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에 관해서 일국의 대표로서 사과드리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민중은 크게 술렁 거렸다. “사과···?” “지금 사과 한 거지? 로드가 우리한테?” “····나도 그렇게 듣기는 했는데····.” 한국에서는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공약 못 지켰을 때, 본인이 말실수 했을 때, 혹은 자신이 한 실수는 아니지만 소속된 정당에서 잘못을 했을 때 등등···. 기본적으로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지배계층인 귀족이 평민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적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로드가 아닌가? 귀족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존재이다. 그런 존재가 자신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이 에리프릴 왕국의 민중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신분제도 철폐를 부르짖고는 있지만···. 이런 반응을 보면 역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몸에 베여있는 인식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게 당황한 민중에게 로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당국은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자세한 법령은 좀 더 회의를 거쳐서 정하겠지만, 우선 시민들이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할 것과, 기사계급의 업무상에 발생하는 과도한 강경 진압도 제한을 추가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물러나 주십시오. 저 노이비에트 마르부르크의 이름으로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노이비에트 로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보통 한국이라면 비록 거물급 정치가가 이렇게 사과를 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분노가 급속도로 냉각되지는 않는다. 일단 정치가들이 사과하는 일 자체가 그렇게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말만 가지고 사과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라고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 에리프릴 왕국의 국민들은 이런 상황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로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귀족보다 더 상위에 있는 진정한 지배자. 그게 로드다. 그런 존재가 자신들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걸 고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비록 구체적인 조항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에는 충분했다. “어떻게 하지···?” “일단, 우리 목적은 이룬 것 아닐까?” “그럼··. 그냥 해산하면 되나?” “····그런 것 아닐까?”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약간 찝찝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쾌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쾌감의 정체. 그것은 바로 승리감이었다. 여럿이 뭉쳐서 거대한 권력을 굴복 시켰다. 라는 결과에서 나오는 성취감과 승리감. 민중은 이내 그 결과에 환호했다. “만세!!!!” “이겼다!!!!!!” “와아아아아아아!!!!!” 하나 둘 씩 사람들이 서로 껴안고 기뻐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전염병처럼 번져서 광장의 모든 사람들이 기뻐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피에르는 남몰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참···. 정말 한참 멀었어.” 그리고 그런 피에르의 옆에서는 장 그레고리 역시 담담하게 동의했다. “그러게 말이야. 좀 아름답지 못한 걸?” 이 둘은 프랑스인이다. 대혁명이 일어났던 나라고 한 때는 유럽에서 대모와 시위가 가장 많이 일어난 나라의 주민들이기도 했다. 프랑스 인들의 경우 대모나 시위에 대한 인식이 다른 나라들과 상당히 다르다. 정치가 잘못되고 있을 때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과연 대혁명이 일어난 나라기 때문일까? 민중이 한 목소리를 내서 국가에 대항하는 것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당연하다. 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런 구체안도 없이 고작 로드가 사과 한 마디 했을 뿐인데 환호하는 에리프릴 왕국의 국민들이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았다. ‘박정운 수상님은 되도록 피가 적게 흐르기 위해서 체제변화를 천천히 하라고 했지? 하지만 지금 보면 그게 정답일지 몰라. 국민들의 인식 자체가 아직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려. 서둘러서 바꾸려 했다간 실패만 반복할 거야.’ 결과적으로는 정운이 좀 돌아가기로 한 결정이 최고의 결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에리프릴 왕국은 민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 몇 가지 법령을 개정했다. 그 과정에서 귀족들이 정말 엄청나게 반발하긴 했지만 노이비에트 로드는 그런 반발을 힘으로 억눌렀다. “인정하기 싫은 가문이 있거든 나에게 직접 따져 보라.” “············.” “············.” “············.” 로드가 그렇게 한 마디를 한 이상 함부로 나서는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귀족들이 정치적인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 놨다고 해도···. 결국 이 마도 왕국 에리프릴의 진정한 실세는 마법사들이다. 군사력부터 생산력까지 마법사들의 수고가 들어가지 않은 면이 없었다. 그런 나라에서 마법사들의 대표인 로드의 말에 정면으로 거절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로드의 결정은 사실상 뒤편에서 그를 조종하고 있는 가우리의 결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가우리에서는 에리프릴 왕국의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 여러 가지 법령을 제정했다. 일단 기존의 지배계급인 귀족들의 특권을 좀 약화 시켰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귀족이라고 해도 함부로 평민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세계에서 평민과 귀족의 간극을 가장 깊게 만들고 있는 것도 이것이었다. 평민이 귀족의 명령에 항명하면 죽인다. 평민이 귀족을 모독하면 죽인다. 평민이 귀족의 재산을 훼손하면 죽인다. 평민이 귀족의 명예를 훼손하면 죽인다. 어쨌든··. 여러 가지 꼬투리를 잡아서 귀족은 평민의 목숨을 언제든지 빼앗을 수 있는 조항들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법령을 개정하면서 귀족이라고 해도 평민을 함부로 죽일 수 없게 해 놓았다. 물론 귀족들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이건 귀족으로서의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럼 앞으로 평민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라는 겁니까?” “이건···. 이건 정말이지 너무 지나칩니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귀족으로 태어나서 쭉 귀족으로 자라온 이들에게는 이런 법령의 존재 자체가 마른하늘에 날 벼락이나 다름 없었다. 로드는 그런 귀족들에게 말했다. “만약 귀족으로서 평민들에게 모독이나 상해, 혹은 그에 준하는 위협을 받았다면 그때는 그의 죄를 나라에 고하고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하시오.” “고작 평민 나부랭이들을 벌하는 것에 재판이라니요? 지나칩니다.” “재판관들의 숫자를 지금의 100배로 늘린다고 해도 무리일 것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로드!!!!” 귀족들은 제발 참아달라고 성토했다. 이 세계에서 재판이란 것은 좀 중죄인 사람, 그것도 어느 정도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벌 할때나 쓰는 것이었다. 평민과 달리 고귀한 귀족을 벌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어울리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라는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이 세계의 재판인 것이다. 평민들에게는 눈앞에 있는 기사나 영주가 곧 재판관이고 또 사형집행수이기도 했다. 그런데 평민을 벌 할 때도 일일이 재판을 거쳐야 한다면 그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이비에트 로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까지 그대들이 너무나 무분별하게 귀족으로서의 권위를 휘둘러온 대가요. 받아들이시오.” 결국 로드의 강행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귀족들이었다. 앞으로 자신들의 권위가 약해져 갈 것은 눈에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눈앞에 폭풍은 피하고 봐야겠지.’ ‘지금 당장 막는 것은 무리다. 일단 받아 들였다가 시간을 들여서 없애버리면 된다.’ ‘다른 편법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지. 평민들을 위해서 따로 약식 재판 형식을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귀족들은 그렇게 못마땅한 상황 속에서도 나름 잔머리들을 굴렸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가우리가 로드를 통해서 강요한 조항들 중에 가장 큰 것은 고작해야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58화 귀족들이 투덜거리면서도 조금은 진정하는 기색을 보이자 노이비에트 로드는 이 미묘한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본격적인 폭탄을 던졌다. “앞으로, 평민들 중에 대표를 선출해서 그 대표에게 국민의원이라는 자격을 주고, 이 국민의원들이 모인 의회를 하의원이라고 명명해서. 국정 전반에 걸친 참여권을 주겠소. 이걸 국민참여 의회법이라고 하겠소.” “!!!!!!!” “!!!!!!!” “!!!!!!!” 노이베이트 로드의 말이 끝나자 귀족들은 머리위에서 철퇴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충격에서 깨어나자마자 한 목소리로 크게 항의했다. “아···· 아아···.” “아 안됩니다. 로드!!!!” “재고해 조십시오!!!!” “그것은 절대 안 됩니다. 어떻게 평민들에게 국정에 대한 참여권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재고해 주십시오. 나라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귀족들의 반발은 엄청나게 거셌다. 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귀족들의 반발은 폭풍과도 같았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귀족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핵심 권력은 군사력도 지휘도 아니다. 가장 궁극적인 핵심 권력은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법을 고칠 수 있는 사법권이었다. 이것이 있기에 군사도, 행정도, 그리고 귀족과 평민간의 신분제도도 계속해서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법권을 평민들에게도 나눠준다니? 절대로 양보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좋든 싫든 결과는 변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불만이라면 그 불만 있는 자가 가우리쪽을 납득 시켜봐라. 이 조항은 가우리에서 전쟁을 피하는 대가로 제시한 최저 라인이었다.” “··············.” “··············.” “··············.” 결국 모든 불만과 불평을 잠재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자신들의 위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대표를 뽑고 하의원을 만드는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가우리를 상대해야 했다. 이미 가우리와의 절대적인 힘의 차이를 절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의원 선거는 올해 안에 치러진다. 그리고 하의원들의 자세한 권한은 차차 정해질 것이다. 그리 알도록.” 노이비에트 로드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멍청한 놈들···. 어차피 시대는 변한다. 빠르던 늦던 둘 중에 하나이긴 이미 변화 자체는 막을 수 없는 것이거늘·····.“ 노이비에트 로드는 지나가는 세월을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하는 귀족들이 답답해 보일 뿐이었다. 어차피 시대가 변한다면, 이제는 그 시대에 따라가서 낙오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로드의 경지에까지 오를 정도로 마법을 깊게 수련한 노이비에트 로드였지만 그는 정치에 둔감하지 않았다. 평민들이 하의원을 만들면 귀족들이 상의원을 만들 것이다. 비록 하의원이라고 해도 가우리가 뒤에서 시민들의 편을 들어준다면 귀족들 역시 마냥 하의원을 무시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양쪽에 무게 추를 실어줄 수 있는 제 삼의 세력은 자신들 마법사가 될 것이다. “쯧····, 이제는 우리 마법사들도 한가롭게 연구실에서만 살 수는 없겠지.” 이 늙은 마법사은 젊은이들 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있었다. 가우리의 신서울. 거기서 정운은 미하엘을 통해서 에리프릴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모두 보고 받고 있었다. “·····이상이 현재까지의 보고 상황입니다.” “평민들로 이뤄진 하의원 발의라···. 이게 평민들 목소리 높이는 것에 도움이 될까?” “물론입니다. 적어도 정식으로 국가에 말을 할 수 있는 물꼬가 터졌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거죠.”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하의원이잖아? 귀족들이 상의원을 만든다고 하면 결국 하의원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상의원에서 다 짓눌러 버릴 수도 있지 않나?” “물론 그럴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에리프릴 왕국의 개조 계획도 본격화 될 수 있겠죠.”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그녀가 말하는 본격화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계획이 본격화 된다는 말은···. 본격적으로 피가 흐를 거라는 말이지?”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수상 각하의 말대로 최대한 적게 흐르는 쪽으로 수정은 했습니다. 하지만····. 안 흐를 수는 없을 겁니다.” “··············.” 정운도 알고 있었다. 개혁이라는 꽃이 피기 위해서는 무수한 피가 비료로 뿌려져야 하는 법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세력, 기존의 체제를 지키려고 하는 지배계층. 이 두 가지 세력이 부딪히면서 피가 흐르지 않을 만큼 인간은 욕심 없는 종족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정운이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 거리자 미하엘이 옆에서 말했다. “수상각하··.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자신의 비서이자 가우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하엘이었다. 슬기나 지금 곁에 없는 세레나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라면 미하엘은 가장 신뢰 할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정운에게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민감한 얘기를 꺼낸다는 것이다. 정운의 허락을 얻은 미하엘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실례지만···. 최근 들어서 수상 각하께서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내가?” 정운은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을 보고 미하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예전에 수상각하는 오로지 파우스트의 목을 친다. 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서 거칠게 달려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이 생기는 것도 개의치 않으셨죠. 예전 라트란 왕국과의 회담에서 수상각하의 행동은 저 마저도 경악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말이지?” 정운은 쓰게 웃으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엘프족의 장로들을 설득 시킬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정운은 그냥 파우스트와 관련된 이 세계의 근간을 말해 버렸다. 그렇게 말해서 엘프족의 장로들이 움직인다면 그걸로 좋았고···. 만약 거부 반응이 나온다면··. 그때는 엘프족의 장로들을 그 자리에서 전원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파우스트에게 도달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칠고 빠르게···. 그게 정운의 행동패턴이었다. 하지만 최근 에리프릴 왕국의 체제를 바꾸는 과정에서는 최대한 사람들의 피가 흐르지 않는 방향으로 길을 잡고 있었다. 미하엘은 처음에는 피가 너무나 대량으로 흐를 것을 염두한 정운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량의 피가 흐르고 분쟁이 지속되면 민중의 지지를 얻는다는 계획 자체가 실패 할 수 있으니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납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몰라볼 정도로 부드러워진 정운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혹시 정운의 생각 자체가 많이 부드럽게 변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운은 미하엘의 그런 평가에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로 가서 창밖으로 보이는 신서울의 광경을 바라봤다. 지평선 너머까지 보이는 무수한 건물들과 활기찬 거리····. 아직 생긴지 10년도 되지 않은 도시가 이렇게 거대 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적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파우스트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그 과정에서 만들어낸 도시라고 해도··. 이게 애착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보통 프라모델 하나도 자기가 정성들여 조립하면 거기에 애착이 생기는게 사람 마음이다. 사실은 그냥 플라스틱 덩어리일 뿐인데도 거기에 애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대 도시에 애착이 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인간은 아마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인간일 것이다. 그런 자들은 더 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저돌적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했을 때, 가진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저돌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 갈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생긴 만큼 일단 자신의 품안에 있는 것을 우선시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정운은 천계에서 막 해방 되었을 때에 비하면 짊어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사랑하는 여자,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료들, 지구와 신세계를 통틀어서 자신 하나만 믿고 따르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 이들 모두를 외면하는 것이 지금의 정운에게 가능할까? 정운은 스스로 그렇게 자문해 봤지만 대답은 섣불리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단호하게 그렇게 할 수 있다. 라는 대답이 안 나온다는 것은···. “이미, 내가 물렁해 졌다는 증거겠지?” 정운은 그렇게 씁쓸하게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이제까지 자각은 없었지만 미하엘에게 지적을 받고 보니 확실히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미하엘이 말했다. “사실 이 전의 수상 각하께서 너무 비정상이셨던 겁니다. 오히려 지금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럴지도···. 아마 아미의 존재가 결정적으로 작용 한건지도 모르지?” “···아미 말입니까?”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말은 안 했지만···. 나하고 슬기는 꽤 오래전부터 피임을 안 했어.” “···········.”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정운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알 것 같았다. “다른 귀환자들 사이에서는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가지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더군. 그런 것을 보면···. 역시 문제는 나나 슬기 둘 중에 하나, 혹은 둘 다라는 거겠지.” “·············.” 미하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사인 그녀는 감성적으로는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슬픔인지 말이다. 천사나 악마들 보다 수명이 짧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아이를 낳는다는 행위는 그냥 종족 보존을 넘어선 행위였다. 자신의 일부를 이 세상에 남긴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온갖 사랑을 다 퍼부어서 키우고 그 아이가 성장해서 훌륭하게 자립 했을때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성장시킨다는 것은 그 인간들에게 있어서 개개인의 출세나 명예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운과 슬기는 오래전부터 시도를 해도 아이가 생기질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둘에게 생긴 아미의 존재는 귀중 할만도 했다. 비록 피가 이어져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정체가 인간도 아니지만 그대로 아미는 정운과 슬기에게 더 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특히 슬기에게 아미의 존재는 너무나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뭐, 내가 물렁해 졌다면, 그건 받아들여야겠지. 하지만, 파우스트, 그 놈에 대한 복수는 절대로 포기 할 수 없어.” 예전보다 부드러워 진 정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목표 자체를 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정운을 보고 미하엘은 안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별도로 준비하고 있던 그 계획을 시도하는 것에 문제는 없겠습니까?” “그래. 다른 간부들도 모두 준비하라고 그래. 훗날 있을 다크니스 왕국이나 제국과의 전투를 위해서도 전력의 상승은 필수니까.” “예. 알겠습니다.”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소중한 것이라····.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차분하게 각오를 다졌다. 예전보다 부드러워 진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 의지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59화 <전력 강화의 필요성> 현재 가우리의 위상을 설명하자면···. 우선 지구에서는 확고한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가우리에서 파견하는 길드는 물론이고 자국에서 생긴 길드 역시 가우리에서 발급하는 일종의 라이센서인 신의 맹세가 없다면 원활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 거기다 신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자원과 그곳에 진출한 기업들을 통해서 챙기는 엄청난 이윤은 가우리의 경제력을 최고 수준으로 올려두고 있었다. 그냥 돈만 많은 국가도 아니었다. 실질적은 군사력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서 지구에 가우리가 이번에 다섯 개 국가의 연합을 상대로 전쟁을 한 것이 알려졌고··. 미하엘은 정운의 허락을 얻어서 적당한 수준에서 전쟁 중의 영상을 촬영한 것을 지구에 공개했다. 그리고 그 영상이 나간 후···. 전 세계의 군사고문들이 모두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들이 할 일은 자국의 군사력과 잠재적 적국의 군사력을 파악해서 승산과 전쟁이 벌어졌을 시에 작전을 짜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가우리와 전쟁이 벌어진다면····? 거기에 관해서 세계각국의 군사 고문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정운이 예전에 여의도 상공과 북한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무력을 한차례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지금처럼 절망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 것일까? 세계 각국의 군사 고문관들이 정치가들에게 막대한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침을 튀기며 말했다. [비록 이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적에게 피해를 입혀서 전략적인 국면에서 전쟁의 억제력을 가져 올 수 있는 작전을 입안 어쩌고 저쩌고 궁시렁 궁시렁····.] 말은 거창했지만·······, 결론은 나왔다. 다 개소리였다. 가우리는 못 이긴다. 그것도 그냥 못 이기는 정도가 아니다. 가우리가 그럴 마음만 먹으면 세계 최강의 국가였던 미국 역시 가우리와 단독으로 전쟁을 벌였다가는 멸망의 길을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런 가우리를 상대로 가상의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 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가우리와 마찰을 빗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재 지구의 국제 정세는 가우리라는 거대 제국과 그 제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는 다른 무수한 나라들이 가우리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워 져 보려고 노력하는 형국인 것이다. 그리고 지구에서의 확고한 위상과 더불어서 신세계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대제국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가우리였다. 우선 라트란 왕국. 이 나라와 가우리는 이제 단순한 동맹을 넘어서 맹우국이라고 해도 좋았다. 가우리의 간부인 배대호와 라트란 왕국의 여왕인 페어리퀸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공표했고, 미하엘은 아애 이 둘을 국혼으로 이어가려고 까지 했다. 물론 배대호는 거창한 결혼식은 취향이 아니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우리와 라트란 왕국의 사이가 긴밀해진 것은 틀림없었다. 가우리는 라트란 왕국에 각종 선진문물을 전파하면서도 오로지 비오염을 위주로 한 물건들만 전파했다. 예를 들어서 라트란 왕국에 대량으로 선물한 수송헬기. 숲을 벌목하고 도로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라트란 왕국의 특성을 고려하면 수송헬기는 최고의 운송 수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운송 수단이라고 해도 연료가 오염을 불러온다면 라트란 왕국에서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서 배대호는 자신이 개발한 신형 마나엔진을 헬기에 탑재해서 실었다. 사실 마나엔진이라는 것은 이 세계에 원래 있던 것이었다. 주로 마도전차나 이전에 전쟁에서 등장했던 문 쉽 같은 군사적인 용도로 자주 사용했지만···. 배대호는 이 마나엔진을 개량해서 마법사들 뿐만 아니라 정령력을 지닌 요정족들도 이용 가능하도록 개조하는 것에 성공했다. 엘프들 치고 정령력이 없는 존재는 없는 법. 엘프들에게 있어서 수송헬기는 타국을 오가며 이동할 때 무척 요긴한 물건이 되었다. 그 외에도 바닷가에 대량으로 건조한 조력 발전소와 정령들을 이용해서 항시 발전이 가능한 풍력 발전소 등등···. 여러 가지 비 오염 문물들을 수출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된 물건들이 라트란 왕국 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역수출 되면서 막대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라트란 왕국을 제외한 다섯 나라들···. 크롱크 왕국은 유일하게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변함이 가장 적은 나라였다. 아무리 가우리라고 해도 말이 안 통하는 존재들을 어떻게 통제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적당하게 견제하면서 계속해서 대족장이 태어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조절을 하는 방향으로 크롱크 왕국을 컨트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을 에리프릴 왕국이었다. 에리프릴 왕국은 다섯 나라들 중에 가우리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나라로···. 인간들이 위주로 지어진 나라였기에 그만큼 앞으로의 행동을 예상하기 쉬웠기 때문에 가장 적극적으로 손대고 있는 나라였다. 이미 기업 형태로 진출한 가우리는 에리프릴 왕국의 시장 경제의 70%이상을 장악한 상태였다. 하지만 에리프릴 왕국의 고위층은 그런 상황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최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하의원들과의 견제로 하루하루 끝없는 정쟁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민의 대변자로 뽑힌 하의원들은 계속해서 귀족들을 압박했고 귀족들은 그런 하의원들과 하루하루 얼굴 붉히며 싸우기 바빴다. 가우리가 에리프릴 왕국을 경제적으로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마치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삶아 죽이듯이···. 가우리는 에리프릴 왕국을 거의 손에 넣었다. 그리고 다른 패전국들 역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 절대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성 세인트 왕국과 아이언 왕국. 그리고 엘라 왕국 역시 이미 가우리의 기업이 진출해서 약간씩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미 에리프릴 왕국에서 가우리의 기업이 한 일들을 봤기에 타국에서는 상당한 경계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시민들에게 국산품 이용을 장려하면서 가우리의 기업이 최대한 이익을 보지 못하게 하자. 라는 계획 정도가 한계였다. 물론 그 조잡한 계획들은 실패였다. 가격이나 성능이나 필요성이나···. 뭐든지 최소한의 경쟁이 되어야 국산품 애용도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이다. 자국에 있지도 않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가져와서 파는 가우리의 기업들은 다른 나라들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에리프릴 왕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파고든 나라는 성 세인트 왕국이었고 그 다음이 아이언 왕국, 엘라 왕국 순서였다. 그 나라들은 그 나라 나름대로 천천히 순서를 밟아가고 있다. 하지만 한꺼번에 먹으면 체하는 법. 가우리가 에리프릴 왕국에 보격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관계로 지금은 그렇게 적극적인 변화가 없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지금 신세계에서도 가우리의 위상은 실질적으로 최강국이었다. 다만···, 지구와 다른 것은 이 가우리를 견제 할 있는 대항마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여전히 가우리를 세계의 적이자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는 제국. 이 제국은 파우스트의 신탁을 맹신하는 한편, 최근 가우리가 에리프릴 왕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강한 수위로 비방하면서 가우리의 위협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단, 제국은 결국 타국을 먼저 침공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다. 가우리로서도 신권으로 보호되는 절대불가침의 제국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사실 제국에 대한 가우리의 대응은 넌 짖어라, 난 내 갈 길을 가련다. 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런 제국과 달리 실질적으로 가우리에게 위협이 도리 여지가 있는 국가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오랜 세월동안 이 대륙의 최강국으로 존재해 왔던 다크니스 왕국이었다. 사실상 지구와 신세계를 통틀어서 가우리의 진정한 적이 될 만한 존재는 이 나라 하나 뿐일 것이다. 신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은 언젠가 가우리가 다크니스 왕국에 도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대륙의 역사상 지금의 가우리 정도 되는 위상을 지닌 나라는 몇 번인가 있었다. 물론 문화적인 위상을 예기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에서다.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를 복속시킨 제국은 신세계의 역사 속에서도 몇 번인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이 망한 이유는 대부분 다크니스 왕국때문이었다. 진정한 대륙 최강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다크니스 왕국에 도전을 했다가 그대로 망국의 길을 걸어갔다. 먼저 전쟁을 걸지는 않지만··. 한 번 전쟁이 벌어지면 상대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게 다크니스 왕국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런 다크니스 왕국이 절대로 먼저 공격을 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우리는 그 사이에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가우리가 힘을 키우기 위한 과정에서 일반적인 수단은 역시 제로 트리였다. 제로 트리를 이용해서 새로운 능력자를 야성하거나 기존의 귀환자들의 수준을 올리고 있었다. 비록 레벨 시스템이 사라져서 디테일하게 어느 정도 강해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음을 알 수는 있었다. 특히 새로운 능력자들의 성장도 최근에는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제로 트리를 이용해서 양성하는 새로운 능력자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새롭게 생긴 능력자들 중에서 특히 빠르게 성장한 자들 중에는 간간이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힘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제로 트리를 이용한 능력자들의 경우 그 성장 가능성을 가늠 하는 것은 역시 소울 웨폰과 본인의 궁합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소울 웨폰이라고 해서 모두 무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신생 능력자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남자는 박민재라는 능력자였다. 특이하게도 그의 소울 웨폰은 무기가 아니라 뇌전 그 자체였다. 정운이 사용하는 뇌전의 기운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뇌전의 기운 자체가 소울 웨폰이라는 것은 놀라웠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인 민시아와 함께 제로 트리 내부를 누비면서 상당한 수준의 능력자로 자리 매김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아직 가우리의 간부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제로 트리를 이용한 레벨업은 초보자들부터 가우리의 간부들까지 쭉 이용하고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좀 부족한 감이 있었다. 최근 복속시킨 다섯 나라들과 이전에 다크니스 왕국과 싸움을 해 본 이민지의 정보까지 취합해서 다크니스 왕국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있는 가우리였지만···. 모으면 모을수록 알 수 있는 것은 다크니스 왕국은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가장 큰 수확이 있었다면 다크니스 왕국의 핵심 강자들이 7대 악마왕의 존재들이었다. 마족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다크니스 왕국. 이 나라의 시스템에 관해서는 외부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국교를 거의 페쇄하고 있는 나라고 만에 하나 스파이라도 보냈다가는 그걸 빌미로 다크니스 왕국과 전쟁을 해야 할 일이 벌어질 수도있었다. 그렇다 보니 정보가 적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성 세인트 왕국의 왕궁 서고 깊숙한 곳에 오래전에 다크니스 왕국과의 전쟁으로 사라진 나라의 사료가 남아 있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중간에 훼손된 부분만 없다면 상당히 충실한 정보였다. 그 정보에 의하면 다크니스 왕국의 최고 전력이자 최고위 지도자라고 불리는 7대 악마왕들이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은 의외로 가우리의 간부들도 잘 아는 이름이었다. 1.그리트니(탐식) 2.그리드 (탐욕) 3.슬로트(나태) 4.앤비(시기) 5.라스(분노) 6.프라이드(교만) 7.러스트(색욕) ============================ 작품 후기 ============================ 9월 한 달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60화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이라는 존재들은 인간의 7대 죄악을 그대로 나타낸 인물들이었다. 파우스트가 원래 지구의 인간이었으니 지구쪽의 신화나 종교 등이 그에게 끼친 영향력이 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악역 필이 충만한 이름을 붙여둔 것은 약간 의외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정보는 신빙성이 있었다. 유일하게 다크니스 왕국에서 전투를 치러본 이민지의 의견에 의하면···. “맞아··. 지금은 좀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당시 내 앞에 나타났던 놈들의 숫자도 일곱 명이었던 것 같아.” “그때 싸운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겠어요?” “글쎄···. 그것까지는 좀····.” 이민지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쨌든, 민지 누님하고 거의 동등하거나 좀 더 강한 수준의 강자가 일곱이나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어쩔 거야? 이 정보대로라면 우리 가우리에서 이 놈들하고 정면으로 싸워 볼 만한 상대는 네 명 정도인데?” 이민지의 말대로였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악마왕이라는 존재들과 사울 수 있는 존재는 아마 박정운, 박추성, 배대호, 이민지 정도일 것이다. 잘해서 하나 더 넣으면 한중겸까지 아슬아슬하게 들어갈까? 한중겸 본인의 능력은 좀 부족하다고 해도 한중겸의 소환수인 아테나, 메두사, 왕귀인 등을 총 동원하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대일로 맡아준다고 해도 둘이 빈다. ‘다른 전력을 다 가져다 붙이면 둘 정도는 막을 수 있을가? 수민이 형님하고 장 그레고리, 그리고 다이앤하고 정철이 형님이 주축이 돼서 숫자로 밀어 붙이면·····.’ 생각을 하던 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해서 상대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다. 7인의 악마왕 만이 다크니스 왕국의 전부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밑에 만만치 않은 강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결국 지금 가우리와 다크니스 왕국이 전쟁을 한다면···. 아마 가우리의 패배로 이어질 확률이 높을 것이다. “제로 트리를 통해서 레벨을 힘을 키운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역시 전에 생각했던 계획들을 시행해야 겠어.” “그 계획이라면···. 그거 말이지?” 이민지는 이미 정운이 말하는 그 계획이라는 것이 뭔지 짐작이 가고 있었다. “예.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중겸이 형님 좀 빌려가겠습니다.” “데려가. 데려가서 실컷 부려 먹어.” 이민지의 쿨 한 태도에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좀 의외인데요? 애인 데려가는데 섭섭하지도 않아요?‘ “전혀, 오히려 네가 좀 쉴 틈 없이 시켜 먹고 있으면 바람기도 좀 잠잠해 지겠지.” “흠····. 하긴 그렇네요.” 이민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는 정운이었다. 정운이 생각한 계획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킹 클래스의 대괴수 대량 포획작전. 바로 이것이었다. 가우리의 편도 아니고 다크니스 왕국의 편도 아니지만 킹 클래스의 대괴수는 충분히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였다. 비록 아미의 경우는 이상하게도 어린 소녀화 되어 버렸지만 대괴수 형태 그대로 잘만 컨트롤 한다면 강력한 전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게 가능할지 불가능 할지였다. 아미가 왜 갑자기 거대한 대괴수에서 작은 소녀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미의 안에 거대한 힘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아미는 전혀 그 힘을 쓸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괴수로서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정작 쓸 줄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아미의 상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튼튼한 어린애일 뿐이었다. 얼마나 튼튼하냐 하면 자동차 트럭에 정면으로 치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전에 병원에서 예방 접종을 하러 갔는데··. “주사 싫어!!!!!!!!” 아미는 주사가 싫다고 난리를 쳤고 실제로 의사가 주사를 놓으려고 하니 아미의 팔이 단단하게 경화하면서 주사 바늘을 부러트려 버렸다. 결국 정운이 직접 주사 바늘 끝에 오러를 생성 시킨 다음에 찔러넣어야 했다. 사실 그렇게 튼튼한 애한테 예방 접중이 과연 필요는 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아미를 전투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그러니 가능하면 지금부터 상대할 대괴수들은 모두 대괴수인 상태로 테이밍 하고 싶은게 정운의 심정이었다. “만약 또 아마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하지?” “글쎄요···. 형님이 하나 키우실래요?” 정운의 말에 한중겸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브로도 19장 7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브로계를 은퇴하는 것과 같다. 넌 지금 나 보고 은퇴하라는 거니?” “·······브로계라는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정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한중겸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한참 투덜투덜 거렸다. 그러거나 정운과 그 일행들은 목적한 장소에 도착했다. 거대한 화산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지역에 도착한 정운은 옆에 있는 배대호에게 말했다. “여기 쯤이란 말이죠?” “그래. 정보에 의하면 여기에 킹 클래스의 대괴수인 메가브롱스라는 놈이 살고 있다더라.” “메가브롱스라··· 더 자세한 정보는 없어요?” “없어. 원래 킹 클래스의 대괴수라는 놈들에 대한 정보는 어디어디 있더라. 그러니 조심하자. 이 정도가 다더라고.”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럴 듯 하다는 듯이 납득했다. 폰토시오스, 지금은 아미로 변했지만 킹 클래스의 대괴수였던 폰토시오스와 싸워본 정운으로서는 킹 클래스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정면으로 1대1 대결을 한다면 정운이라고 해도 확실하게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괴수 포획이 목적이라면 별로 일대일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일대일로는 이기지 못하는 거대한 대괴수를 상대로 동료들과 함께 전략을 잘 세워서 공략한다. 이건 일종의 레이드다. 이 형태의 전투야 말로 정운과 그 동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아니고 정운과 비슷한 수준의 상대가 아닌가?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은 네 명이었다. 정운과 한중겸, 배대호, 그리고 김수민까지···. 이렇게 네 명이서 작전을 잘 짜면 킹 클래스의 대괴수 한 마리 정도는 여유 있게 포획 할 수 있었다. “자···. 저기 분화구에 사는 놈이다. 일단 한 방 먹여서 모습을 드러내게 해 볼까?” 배대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김수민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김수민은 씨익 웃으면서 채찍을 꺼내서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낙천타!!” 콰아아아아앙!!!!!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진 강대한 일격은 화산의 분화구를 작살내 버렸다. 용암이 몇 백 미터 떨어진 곳 까지 튀기고 산의 정상 부분이 깨진 그릇처럼 무너져서 부글부글 끓던 용암이 지면으로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 사람이라도 살고 있었으면 대 참사였겠는데?” 한중겸의 말에 배대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킹 클래스의 대괴수 근처에 살기는 누가 살겠냐? 아···. 온다.” 배대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산의 분화구 형태에서 한 마리의 용이 꿈틀 거리듯이 위로 올라왔따. “크오오오오오오오!!!!!!!” “용? 드래곤이 아니라 용이잖아?”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몸통이 너무 빨간데? 어쭈? 뚝뚝 흘러 내리기까지?” 일행의 눈앞에 정체를 드러낸 것은 동양의 상상에 나오는 용이었다. 뱀처럼 긴 몸 뚱아리에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머리에는 사슴의 뿔을 달고 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놈이 기본의 용과 다른 것은 그 모든 몸 뚱아리가 뚝뚝 흐르는 용암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었다. 용암을 몸에 두른 것이 아니다. 몸 자체가 용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음····. 저거 키우기 힘들겠는데? 이건 건너뛰고 다른 놈을 잡을까?”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미 우리를 봤는데요?” “크워어어어어어어!!!!!” 메가브롱스는 이미 정운과 그 동료들을 발견하고 크게 분노하며 날아올랐다 “자···. 일합시다. 일.” “음···. 중겸이 넌 뒤로 빠져 있어라.” “전위는 제가 하고 수민이 형님은 제 보조, 대호 형님은 원거리 딜 부탁합니다.” “알았다.” “오케이.” 바로 지척까지 날아오는 거대한 대괴수를 보면서도 일행은 여유만만했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이런 형태의 전투가 익숙하다는 것이었다. 콰콰쾅!!!!!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투기 시작되었다. 가우리의 간부 네 명과 킹 클래스의 대괴수인 메가브롱스의 전투. 이 전투의 결말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보이고 있었다. 메가브롱스에게는 애당초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일대일로 싸운다면 정운이나 배대호도 메가브롱스에게 아슬아슬하게 이기거나 비길 자신이 있는 강자들이었다. 그런 강자가 둘. 거기다 약간 떨어진 중거리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김수민의 채찍 공격 역시 메가브롱스를 쉬지 않고 공격했다. 무한대로 늘어나고 굵어지는 김수민의 채찍 공격은 일대일 대인전 보다는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유리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유리한 형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대형 괴수를 상대할 때 였다. 대충대충 휘둘러도 그 커다란 동체에 작렬하는 거대한 채찍을 연속으로 휘두르면 대형 괴수들에게는 상당한 대미지가 들어갔다. 정운이 전위로 나서서 메가브롱스의 움직임을 막고···. 허공에 움직임이 막힌 메가브롱스에게 김수민이 채찍으로 대미지를 가한다. 그리고 가끔 메가브롱스가 뿜어내는 용암의 브레스라던가? 혹은 사방으로 뻗어나오는 용암 분출 공격 따위는 배대호의 마법에 모두 막혔다. 약 세 시간 정도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전투으 결과는····. 쿠우웅!!!!“ 만신창이가 된 메가브롱스의 육중한 거구가 결국에는 지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크으으···. 맷집 쩌는 놈이었어.” “꽤 애 먹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전투의 결과는 정해진 대로였다. 역시 가우리의 간부들의 압승이었다. 가장 힘든 포지션에 있었던 정운이 약간 피곤한 기색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일단 다치거나 대미지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이 레이드(?)가 성공을 해는지 안 했는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가 필요했다. “그럼 중겸이 형님, 부탁드립니다.” “음··. 심심해 죽는 줄 알았네.” 한중겸은 어깨를 빙빙 돌리면서 메가브롱스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양손을 뻗어서 메가브롱스를 보면서 말했다. “테이밍!!!” 우우우우웅····. 그 거대한 동체가 은은한 빛에 휩싸이고 메가브롱스에게 테이밍이 먹히기 시작했다. “···음!!!” 순조롭게 테이밍이 되어가던 중 한중겸은 이를 악물었다. “제길···. 또 인가?” 이번에도 한중겸의 테이밍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그의 기운이 메가브롱스에게 무작정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쯧···. 또 인가?” “이런····.” 일행은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이 현상은 아미가 나타났을 때와 같았다. 그 말은····. 이번에도 테이밍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화아아아악!!!! 그리고 메가 브롱스의 온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자리에는 거대한 대괴수가 사라지고 붉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소녀 한 명만이 약간 멍한 시선을 하고 앉아 있었다. 아미하고 약간 닮은 것 같기는 하지만 좀 달랐다.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그리고 아미가 좀 밝은 성격이라면 이쪽은 약간 고집이 있어 보였다. “으으음····? 아!! 아빠다!!!” 그리고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휘적휘적 둘러보다가 정운을 보더니 바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아빠라고 하기 시작했다. “····왜 또 나지?” 정운으로서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61화 <전조> 임시 이름 화미. 라고 이름 지은 소녀는 처음 아미가 그랬던 것처럼 정운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정운은 그런 아이를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잠들었네요.” “너 애 보는데 익숙해 졌구나?” “예. 경험치가 쌓여서요.”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자기 허벅지를 베고 잠든 아이의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자···. 이제 상황을 좀 정리해 봅시다.” “음, 상황을 정리하자면 넌 로리콤이야.”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울컥 했지만 일단 넘어갔다. “전에 아미의 경우···.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것이 저였죠?” “그랬지. 로리콤 다운 캐치력이었다고 생각해.” “어차피 형님은 애 키울 생각도 없잖아요? 뭐 그리 불만 있다고 그럽니까?” “난 분명히 말해서 성숙한 여성이 좋고 20살 이하는 상대 안해.” “그런데요?” “하지만 브로도의 개척자로서 최근 이런 생각을 했지.” “····어떤 생각요?” 말을 한 순간 정운은 괜히 물었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한중겸의 성격을 생각하면 속 뒤집히는 얘기다 나올게 뻔했는데 왜 물었을까? 하지만 한 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나 이 사람이 이제는 그냥 사랑을 넘어서 아이를 키우는 육아에도 기쁨을 느끼려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정운의 의혹을 받으면서 한중겸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에는 키잡이라는 장르가····.” “확 경찰에 잡혀가라!!!!!!” 정운이 빡칠 만도 했다. 잠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기는 했지만···. 결국 결론은 이전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왜 그 거대한 대괴수가 이렇게 작은 어린애로 변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 아이가 정운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는 걸까? 이유는 여전히 의문속에 있었다. “···정말 파우스트는 관련 없는 걸까?” 한중겸이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정운이 대답했다. “없을 겁니다. 천계에서도 없다고 판단했었으니····. 그리고 만약 이제 와서 파우스트의 함정이라고 하면 엄청 곤란하죠?” “하긴···. 슬기가 거의 돌아 버릴 거다.” “·············.” 정운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슬기에게 아미는 거의 친 딸이나 다름없었다. 피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슴으로 낳았다는 것처럼 아미를 얼마나 살갑게 챙기는지 몰랐다. 정운도 그렇고 슬기도 그렇고···. 두 사람 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 커플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다. 슬기만 해도 어디 가서 명품하나 사지 않는다. 물론 절약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슬기가 마음 먹으면 이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냥 그런 쪽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실 보통 사람들이 명품이나 비싼 차, 비싼 시계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 비싸기 때문에 손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냥 물건의 성능이나 디자인만의 가격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고가의 물건이지만···. 손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 즉 고가의 명품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는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슬기나 정운이 딱히 사지 않아도 어지간한 명품회사에서는 이 둘에게 온갖 물건을 다 갔다 바친다. 만약 공식석상에서 이 둘이 한 번 이용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그때는 그 이상가는 광고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정운은 자기가 직접 이동 하는게 더 빠른데도 불구하고 지구의 오만가지 슈퍼카라는 슈퍼카는 다 가지고 있었다. 뭐···. 그래봐야 흑토를 타고 달리는 것이 가장 빠른 이상 별로 이용할 일은 없다. 어쨌든 그런 성격인 슬기였지만 아미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들어주고 있었다. 물론 그럴 능력이 되기에 해 주는 것이긴 하지만 정운이 옆에서 보기에는 조금 과보호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애가 먹는 걸 전부 유기농 무농약으로 먹이겠다고 전속 농장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고 봤는데 말이야····.’ 경영을 위해서 만든 농장이 아니라 그냥 아미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걸 먹이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 아미를 위한 농장을 사 들여서 공을 들여서 만들게 한 슬기였다. 그렇게 해서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최고의 식재료들을 슬기 본인이 직접 공을 들여서 만들어 주고는 했다. 아미가 환하게 웃으면서 ‘엄마가 해 준 밥이 제일 맛있어!!’ 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는 슬기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지금 슬기에게 그런 행복을 빼앗아 가려고 하면 그게 누구든지 슬기는 적으로 간주할지 모른다. 설령 정운이라고 해도 좋은 대접은 답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 와서 아미가 내 앞에서 사라지면 마음 아플 것 같고 말이야.’ 어쨌든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파우스트가 관련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이런 사태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파우스트 이외의 존재····. 파우스트 이외의 존재라·······.” 배대호는 턱을 괴고 조용히 중얼 거렸다.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정운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난 오히려 네가 없다고 생각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 정운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정운을 보고 배대호가 말했다. “네 그림자 장수들.” “아!!!” 정운은 그제야 배대호가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를 나가면서 그림자의 장수들의 영혼 역시 해방 되었다. 아니···. 적어도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얼마 전에 정운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그림자의 장수들은 정운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그림자의 장수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보냈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은·····. 이 세계에 파우스트 이외의 어떤 의지가 암약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그만!!!” “··········.” 정운은 배대호의 말을 끊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말로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정운은 약간 초조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자기 무릎을 탁탁 두드리면서 말했다. 지금 배대호가 말을 하면 지나친 기대를 해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운도, 그리고 배대호도···. 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레나.’ 제국. 이 신세계를 지배하지는 않지만 군림하고 있다고 평가해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리고, 가우리를 가장 적대시 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제국의 가우리에 대한견제는 그 대부분이 입으로만 떠들고 있을 뿐. 실제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었다. 초창기에 가우리를 향한 연합군을 결성해서 공격하게 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소극적인 대응이었다. 여전히 가우리를 비방하고 악의 축이라고 주장하며 파우스트가 남긴 신탁을 설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너무 소극적이었고··. 결국 대륙의 나라들은 실제로는 제국이 가우리에 대해서 손을 놓아 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제국의 황제는 파우스트에 대한 광신도라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런 황제가 이끄는 제국이 가우리를 그냥 내버려 둘리는 없었다. 다만, 지금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었다. “흠···. 가우리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황제는 누군가에게 다소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상대는 그냥 담담한 목소리로 그런 황제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기다려. 때는 올 테니.” “······알겠습니다. 기다리도록 하지요.” 제국의 지배자인 황제가 존대를 하고···. 그 상대는 하대를 한다. 하지만 황제는 조금도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저 상대는 누구라는 것일까? “또 보고할 일이 있거든 오도록.” “알겠습니다.” 황제는 상대에게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 상대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깊게 숨을 내쉬고 조금 생각하는 듯이 머리에 손을 짚었다. “····확실히, 그냥 손만 놓고 있는 것은 좀 재미가 없지. 세레나.” 정체불명의 남자의 입에서 놀라운 이름이 나왔다. “예. 주군.” 그리고···. 그 부름에 응답한 것은 눈부신 금발이 아름다운 여성···. 정운이 슬기와 더불어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성··. 세레나였다.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있고? 왜 저 남자를 주군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알 수 없는 것 투성 이었지만 그런 와중에 그 남자는 세레나를 가까이 오도록 하더니 그녀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알겠냐?”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세레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킹 클래스의 대괴수를 테이밍해서 강력한 전력으로 삼는다. 라는 정운의 작전은 시도는 좋았다. 성공만 했다면 레벨로 쳤을 때 거의 300레벨에 준하는 전력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국 그 작전은 실패했다. 뭐, 개인적으로 슬기는 좋아했다. 한꺼번에 다섯 명이나 되는 딸내미를 얻고 나니 매일매일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슬기였다. “엄마···. 유미가 내 인형 뺐었어···.” “아니야. 이거 원래 내가 먼저 가지고 놀던 거야!!! 주미가 나빠!!” “엄마, 책 읽어 줘.” “엄마···. 배고파.” 아미, 화미, 유미, 주미, 효미. 이 다섯 명의 아이들은 척 보기에는 다섯 살부터 열 살 정도 되는 평범한 아이들로 보인다. 머리카락이 좀 알록달록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자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이 아이들의 정체를 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아미, 본명은 폰토시오스. 바다의 지배자로 엘라 왕국의 봉인지정 무기로 물리던 킹 클래스의 대괴수였다. 화미, 본명은 메가브롱스. 화산지대에 살고 있던 킹 클래스의 대괴수로 과거 자신의 서식지 근처에서 전쟁을 했던 나라 두 개를 멸망까지 이끌었던 적이 있었다. 유미, 본명은 그라비우스. 지하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킹 클래스의 대괴수로 겉모습은 날개가 없는 거대한 지룡에 가까웠다. 수백 년에 한 번 지상으로 나타나서 배를 채우고 나면 다시 지하로 들어가서 수백 년간 나오지 않는다. 과거 이 대괴수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작은 나라 두 개가 박살난 적이 있어서 살아있는 천재지변이라고 불린다. 효미, 본명은 클레이우스. 깊은 산속의 원시림에 살고 있는 킹 클래스의 대괴수로 겉 습은 전신이 강철로 이뤄진 거대 늑대처럼 생겼다. 전신이 강철로 뒤덮여 있는 기 괴수는 과거 크롱크 왕국에서 오크들의 인구를 10분의 1이하고 줄인 전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미, 본명은 우라노수스. 정운과 가우리의 간부들을 가장 애먹인 상대로 원래는 하늘의 높은 곳. 구름 안에 숨어 살고 있는 거대한 괴조 형태의 대괴수다. 영역권이 겹치지 않아서 어지간해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에게는 위해를 끼친 적이 없다. 킹 클래스의 대괴수 치고는 무척 특이한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의 기록에 의하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다른 킹 클래스의 대괴수들과 두 번 싸워서 모두 죽여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 세계의 문헌에는 천공의 최강자라고 불리며 킹 클래스의 대괴수들 중에서도 최강이 아닌가?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싸우면서 정운도 엄청 애를 먹었다. 까딱 방심했다가는 김수민이 죽을뻔 하기도 했을 정도로 엄청난 대괴수였····지만!!! “엄마, 이거 끝났어.” “응. 그럼 오늘은 그만 봐.” “히이잉···. 한 편만 더·····.” 지금은 핸드폰으로 아동 애니메이션 관람에 여념없는 하늘색 머리의 꼬맹이일 뿐이다. 겉모습도 다섯 살 정도로 밖에 안 보여서 가장 어렸다. ============================ 작품 후기 ============================ 슬슬... 하나 둘 씩 복선을 공개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참고로 완결은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아직 완결까지 플롯도 다 나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62화 처음에 화미를 비롯한 다른 애들을 데리고 가우리에 돌아왔을 때 슬기의 반응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어린애 같은 표정이었다. 실제로 정운이 준 어떤 선물보다 더 기뻐했다. 이 아이들이 원래 어떤 형태였고, 그리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천계의 검사결과 파우스트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 되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결국 다 슬기와 정운의 딸이 되는 것이다. 다만 슬기가 한 가지 유감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흠···. 정운씨.” “왜? 슬기야.” “어째서 다 딸인거죠? 물론 예쁘고 귀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들은요?” 그렇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예쁜 딸들이 다섯이나 생기고 나니 이제는 아들 욕심까지 생기는 슬기였다. 하지만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대략적인 소재가 밝혀진 놈들은 다 잡았어. 다른 킹 클래스의 대괴수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하지만·····.” “애당초, 그렇게 해서 발견한 다음에 또 잡아도 역시 딸이면 어떻게 할 거야?” “············.” 정운의 말에 슬기는 아쉬워하면서도 결국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운은 다섯 명의 예쁘고 귀여운 딸을 손에 넣었지만···. 근본적인 원래의 목적인 전력 강화는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제로 트리를 이용한 전력 강화는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역시 이걸로 정운이나 박추성 정도의 능력자를 양성하려면 몇 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라운드 제로의 경우는 여러 가지 이벤트와 유니크 아이템이 있어서 정운처럼 경이적인 고속 성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로 트리의 경우는 그 정도의 행운의 요소가 자랑하지는 않았다. 본인의 재능이나 소울 웨폰의 종류가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내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까지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결국···. 지금 가우리의 전력을 다크니스 왕국을 압도하도록 바로 양성하는 것은 절대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뭐···. 어쩔 수 없는 건가? 지금은 참고 힘을 기르며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눈앞에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 정운은 아이들을 잠깐 피해서 수상 관저 긑처의 카페에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시도했던 계획이 실패한 이후 정운은 조금이지만 힘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근처 카페에 와서 그냥 적당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지구와 신세계를 통틀어서 가장 막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남자가 쉬는 방식 치고는 좀 소박하기가 그지없었다. 테라스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정운의 눈빛은 약간의 무료함과 안온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확실히···. 미하엘이 말한 대로지. 좀 물렁해 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어.’ 스스로 생각해도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부드러워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파우스트를 물리치고 세레나를 되 찾는다. 라는 절대 목표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우리를 만들고 이 가우리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원래는 복수의 도구로 봤을 뿐이었던 가우리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시작한 정운이었다. 그리고 최근 피는 통하지 않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생기면서···. 정운은 안온하고 평온한 분위기에 그대로 취해 버렸다. 누군가가 말하던가? 행복은 고문보다 더 손쉽게 인간을 굴복 시킨다고····. 지금 정운의 모습이 딱 그랬다. 그때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너무나도 뜬금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처럼····. 그것은 정운의 앞에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리고 담담하게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정운의 맞은편의 의자에 담담하게 인사를 건내면서 마주앉는 남자의 목소리에 정운은 화들짝 놀랐다. 자신에게 이 정도로 지척까지 아무 기척을 내지 않고 접근하다니···. 이민지나 박추성이라고 해도 이렇게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눈앞에 있는 상대를 확인한 순간 벼락과 같은 분노로 변했다. “파우스트!!!!!!!!” 정운은 벌떡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주 본 얼굴은 아니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기는 했다. 갑작스런 파우스트의 등장에 정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파우스트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교묘한 타이밍으로 정운의 오른손을 잡고 악수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정운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기서 소란 피울 거냐? 다름 아닌 여기서? 난 상관없다만 정말 할 거냐?” 파우스트의 말에 정운은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각했다. 여기는 가우리의 수도인 신서울 한복판. 여기서 정운과 파우스트가 전투를 벌인다면···. 정운이 단독으로 이기기도 힘들뿐더러 신서울은 확실하게 박살이 날 것이다. 아니 신서울만 박살 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위협이 닥치는 것은 이 괴물이 게이트를 타고 지구로 가는 것이다. 신서울의 최고 방위지역인 게이트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최고 방위구역이다. 그런데 거기로 다른 괴수나 이종족도 아니고 파우스트가 간다는 것은···. 양때가 가득한 울타리 안에 호랑이가 들어가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정운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한걸음 떨어지며 말했다. “얘기를 하러 왔다. 너하고 말이야.” “··············.” “동의한다면 자리에 앉지?” “··············.” 정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대답을 대신했다. “에스프레소, 설탕 없이.” “예····. 알겠습니다.” 점원은 파우스트에게 주문을 받으면서도 약간 떨리는 표정을 하고 돌아갔다. 지금 정운은 선그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정운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파우스트가 누구인지는 더더욱 모른다. 파우스트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양 쪽의 세계를 다 통틀어도 얼마 없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와 별개로 지금 파우스트와 정운의 사이에서 풍기고 있는 기운 자체가 너무나 살벌했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살벌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것은 정운 한 명 뿐이고 파우스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정운의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반 잔정도 비우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들은 원샷쪽과 투샷쪽이 있는 편인데···. 난 아무래도 투샷 쪽이 좋더군. 원샷으로는 풍미가 너무 강해서 즐길 수가 없어. 투 샷으로 나눠 마시면서 향과 바디감을 나눠서 느끼는 편이 더 좋더군.” “··············.” 갑작스럽게 커피에 관해서 이런저런 취향을 늘어놓는 파우스트의 말에 정운은 그저 무럭무럭 살기만 피워 올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파우스트는 남은 에스프레소 반을 다 비워 버리고 잔을 내리면서 말했다. “개중에는 설탕이나 레몬을 타서 먹는 인간들이 있다고 하던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군. 그냥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자판기에 동전이나 넣으면 될 것을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하지? 박정운.” 파우스트가 직접 질문을 하고 나서야 정운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엿이나 쳐 먹어. 개 자식아.” 절대 호의적인 대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어지간히 미운털이 박혔나 보군?”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건가? 네놈 머리 좋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음···. 내가 머리는 좋지. 하지만, 너한테 한 번 당하고 나서 배운게 있지.” “···············.” “머리 좋다고 해도 모든 상황에 다 대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 너한테서 그걸 배웠지. 감사하고 있어.” “··············.” 대답은 없었지만 정운은 살짝 놀랐다. 파우스트가, 이 불세출의 천재가 자신에게 ‘감사’라는 말을 하고 있다.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기는 했지만···. 지금 자세히 보면 예전에 봤을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운의 기억 속에 있는 파우스트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지극히 오만한 존재였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의 옥좌를 찬탈하려고 한 인간이니 오죽할까? 실제로 놈은 거의 이룩할 뻔 하기도 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안에서 정운이 방해만 하지 않았자면 놈은 지금쯤 천계와 마계를 모두 지배하고 신으로 군림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정운의 방해로 인해서 급하게 계획을 수정하고 지금의 신세계를 만들고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놈은 신의 옥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오만한 인간이···. 인류사에 다시없을 정도로 완벽한 천재라는 인간이 정운에게 감사를 표한다니? 이건 정운으로서도 상당한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놀랐나 보지?” 정운의 얼굴에 놀랐다고 써있기라도 한 걸까?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 정말 파우스트냐?” “그래. 왜 못 믿겠으면 증거로 이 신서울의 절반 정도를 폐허로 날려 볼까?” “················.” 아무래도 본인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하지만 본인이 맞다면···. 사람이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일까? 세상 만물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종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이 사라져있었다.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가 넘치고는 있었지만 그 여유로움에는 다른 사람을 깔보는 느낌이 없었다. 정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파우스트는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과거···. 너에게는 별로 오랜 과거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오래전의 과거지···.” 파우스트의 시선은 아련한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한우리 연맹과 유니버스 연맹이 그라운드 제로의 최정상까지 올라온 시점까지만 해도··. 파우스트의 계획은 모두 잘 풀리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를 통해서 꾸준하게 축적된 힘을 이용해서 자시이 세계의 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악마들이 그라운드 제로에 기어 들어와서 자신의 방해를 하려고 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애당초 파우스트의 손바닥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에 천계의 개입.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하게 재물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유저들의 반격. 결국 파우스트는 계획을 수정해서 일보 후퇴를 감행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파우스트의 길고 긴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굴욕이었다. 여러 번 말 할 것도 아니지만 한 번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파우스트는 천재다. 그것도 그냥 그런 천재가 아니라 정말 하늘이 내린 인재라는 범위를 아득하게 넘어서···. 하늘의 배려조차 넘어설 정도로 엄청난 천재였다. 신이 되겠다. 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걸 거의 이룩할 뻔한 인간이 아닌가? 가우리의 배대호 역시 천재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지만 파우스트에 비하면 솔직히 말해서 너무 부족했다. 그런 파우스트의 계획에 발목을 잡은 것은 천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었다. 바로 박정운이었다. 신세계를 창조하고 나서 파우스트는 정운에 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유저들의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파우스트였기에 정운을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파우스트는 정운의 존재에 관해서 연구를 했다. 파우스트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박정운은 그렇게 대단한 천재는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인간보다 약간 감이 좋고, 약간 근성이 더 좋고, 그리고 약간 운이 따랐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갑작스런 파우스트 등장입니다. 신권이 꽤나 무너졌기에 이제야 등장 할 수 있는 거죠.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463화 그저 평범한 인간이 조금 운이 따라줬을 뿐인데···. 그 평범한 인간이 차근차근 올라가더니 파우스트라는 천재가 오랜 세월동안 공을 들여서 준비한 완벽한 계획을 무위로 만들어 버렸다.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파우스트로서는 도무지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는 했지만 박정운이라는 인간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할 정도로 대단한 인간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범 하고는 완전히 동떨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투 센스를 지니고 있는 박추성이라던가···. 혹은 그라운드 제로의 세계 안에서 독자적인 마법체계를 만들어낼 정도의 천재성을 자랑한 배대호가 훨씬 더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박정운이었다. 왜? 어째서 그것이 가능했을까? 오랜 세월 동안 정운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고 또 살펴본 끝에 파우스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박정운이 자신을 방해 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운이 그러기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이유였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설명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정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 낸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 간단한 결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종전에서 유니버스 연맹은 파우스트라는 거대한 존재를 알고 나자 바로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복종하는 쪽을 택했다.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감에 대항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한우리 연맹은 달랐다. 한우리 연맹의 중심이었던 정운이 한 치도 망설임 없이 파우스트와 싸우기를 택했고···. 거기에 이끌려서 한우리 연맹이 파우스트에게 도전을 했던 것이다. 파우스트 역시 신이라는 막강한 존재를 향해서 홀로 반기를 든 존재. 자신과 정운의 격차를 생각하면···. 정운이나 자신이나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깨닫고 나니, 너라는 존재에게 동질감마저 들더군.” “나한테? 동질감?” 정운은 혀라도 깨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무모한 목표를 정하고 거기를 향해서 무작정 걸어간다. 물론 네 경우는 머리가 나빠서 나 보다 요령이 좀 없기는 하지만···. 그건 주변 인물로 충족하더군. 그런 차이만 뺴면·····.” 파우스트는 정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단언하듯이 말했다. “너와 나는 똑같아.” “그···. 헛소리를····. 쯧.” 정운은 뭔가 따져 들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럴 말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무엇보다 파우스트의 말을 듣고 보니 약간 맞는말 같기도 했다. 괜히 자기보다 머리 좋은 인간하고 말을 섞어봤자 별로 좋을 것은 없다. 정운은 파우스트와 논쟁을 벌이는 대신에 이 기회에 정보를 캐내는 것을 택했다.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뭐냐? 그것도 이제 와서야?”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천계에서 들어서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신이라는 존재도 그렇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거든?” “조물주의 의무라는 것이냐?” “그래.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한 신이라는 것은 이런 신이 아니었지만···. 네가 중간에 일을 망쳐 버려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지.” 조물주의 의무. 천계에서 정운에게 말했다.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에게는 그에 적합한 의묵 주어지고···. 피조물에게도 최소한의 자유가 주어져야 그것이 정상적인 세계라고 말이다. 조물주라는 위치는 자신의 세계에 관해서는 전지전능한 권능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 권능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의무. 즉 제약이 있는 것이다. 원래는 이렇게 한가롭게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 조차도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가능해 졌다는 것은···. “네놈에 대한 지지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거지.” “누구 덕분에 말이야.”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정운이 이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가면서 은연중에 파우스트에 대한 지지력도 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이세계의 인간, 즉 가우리를 악의 축이자 이 세계를 파멸로 몰아갈 악마들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런 가우리가 이 세계에 신기하고 편리한 문물을 가져다주고 점점 자신들의 생활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해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파우스트에 대한 신앙심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파우스트의 신으로서의 권능도 조금씩 약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모두 정운과 천계의 예상대로였다. 단, 신으로서의 권능이 약화된다는 것은···. 신으로서의 제약도 조금씩 약화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이제 와서 쭐래 쭐래 나타난 이유는 뭐지? 자살이 희망이라면 지금 당장 이뤄 줄 용의가 있다.” 정운의 말에 파우스트는 여전히 여유만만한 표정을 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글쎄···. 자살은 아직 생각이 없고, 오늘의 목적은 일종의 회담? 혹은 협상을 위해서일까?” “일까?··· 는 도대체 뭐냐?” “그럼 협상이라고 하지.” 파우스트의 여유만만한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네놈하고 나하고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 협상이 이뤄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상호간에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지. 네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야? 안 그래?” “네놈에게서 원하는 것이라면···. 네놈 목이라도 잘라 줄 거냐?” 정운의 도발 섞인 말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 목이라? 악취미군. 박제라도 하고 싶은 건가?” “아니 쓰레기장에 버려야지.” 정운이 아무리 도발을 해 봐도 파우스트의 얼굴에서는 여유만만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에 먼저 미소가 사라진 것은 정운이었다. “내가 제시하는 카드가 이것이라면···. 너에게 협상의 여자는 있을까?” 그렇게 파우스트가 말하는 순간 정운의 뒤편에서 한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여성을 바라본 순간···. 정운은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오랜만입니다. 정운씨.” “····세레나.” 그 시절 그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가 정운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세레나가 나타난 것을 보면서 정운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모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너무 갑작스러웠다. 너무나 갑자기 파우스트가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레나가 나타났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갑작스러움은 정운을 그저 당황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 정운의 귓가에 파우스트가 말했다. “내 조건은 한 가지. 앞으로 내 일에서 손을 때라. 네가 원하는 것은 애당초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행복뿐이지? 그렇다면 굳이 나하고 적대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그렇지 않나?” “················.” 정운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건 너무나 의외의 상황이었다. 당황한 정운에게 파우스트가 말을 이었다. “뭘 망설이지? 아니면···, 나하고 싸워서 승리한다는 것이 너의 사랑하는 여인보다 더 소중하다는 건가? 아니지? 넌 그런 성격은 아니었어. 안 그래?” “···············.” 정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파우스트에 대한 복수심은 틀림없이 존재했다. 그냥 존재하는 정도를 넘어서 거의 사무칠 정도였다.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온 수많은 존재들을 농락했다. 궁지에 몰린 자들에게 단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 라는 달콤한 미끼를 던져서 꿰어냈다. 그러나 애당초 소원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수많은 제물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어차피 악마에게 유혹당한 시점에서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간 것 자체는 개개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 유혹 자체가 거짓된 사기였다는 것에는 열이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갖은 고생을 겪었던 정운이 거기에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세레나를 무사히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자신의 복수심도 뒤로 물려두는 것은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갈등하는 정운에게 세레나가 다가왔다. 그리고···. 세레나의 자신의 가녀린 손을 정운의 뺨에 대고는 말했다. “정운씨····. 전, 더 이상 당신이 싸우기를 원하지 않아요.” “···········뭐냐? 이건?” 순간 정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리고 동시에 정운의 왼손에 애검인 월광멸마도가 소환되었다. 동시에 정운의 검격이 빛살이 되어서 세레나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카아앙!!!!! “꺄아아악!!!!!” 검격이 부딪히고 맑은 쇳소리와 함께 카페 점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까부터 심상이 않은 분위기를 풍기던 손님들이었긴 하지만 끝내 칼부림까지 한 것이다. 정운의 검격은 세레나의 목을 한치 앞에 두고 그녀의 검에 의해서 막혔다. 그리고 정운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파우스트····. 네놈이 감히····.” “역시 눈치 챈 건가?” 파우스트는 쓰게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세레나의 가짜를 만들어서 날 농락해? 죽고 싶은 거냐!!!!?” 화아아악!!!! 정운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풍겨 나왔다. 그리고 세레나, 혹은 세레나로 보이는 존재는 정운의 앞을 무표정하게 가로 막고 검을 꺼내서 막으면서 담담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정운의 기세에도 전혀 위축 되지 않고 여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억울한 걸?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인데 그걸 그냥 가짜라고 치부하면 말이야.” “바른대로 말해라. 여차하면 지금 당장 목을 쳐 버리는 수가 있다.” 으르렁 거리는 정운을 보면서 파우스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네가 누구보다 잘 알텐데?” “···············.” 정운과 파우스트가 일대일로 싸우면···. 아마 파우스트가 확실하게 이길 것이다. 비록 지금은 아직 조물주라는 위치가 가지고 있는 제한력이 있어서 함부로 싸울 수 없겠지만···. 만약 싸운다고 마음먹으면 그의 힘은 실질적으로 정운을 훨씬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을 노려보는 정운을 보면서 파우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레나의 뒤편에 서서 말했다. “뭐, 내 작품을 알아본 상이다. 대답은 해 주지.” 파우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표정하게 변한 세레나의 어깨에 손을 짚고 말했다. “그라운드 제로의 영혼을 매개로 해서 이 세계를 만들었을 때···. 일부 영혼들이 약간의 반란을 꿰했지. 내 통제력을 벗어나서 다른 형태로 태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더군.” “·············.” 파우스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정운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파우스트가 하는 말은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아마 모두 진심일 것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겠지만, 그래. 그 영혼들은 네 동료들과 네가 사랑하는 여자였다.” 파우스트의 말에 정운은 가슴의 두근거림이 더욱더 커졌다. 그림자의 장수들이 돌아왔을 때···. 그리고 아미나 화미 같은 다른 아이들의 존재를 파악했을 때···. 배대호의 가설로 인해서 이 세계에 파우스트 이외의 다른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지금 파우스트의 고백은 그 가설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천사라서 그럴까? 보통 인간의 영혼들과 다르게 엄청나게 의지가 강력하더군. 결국 세계를 창조해 감에 따라서 나 역시 조물주로서 점점 한계가 있었고····. 몇몇 영혼들을 놓쳐 버렸지.” “················.” “하지만, 그래도 날 이렇게 애 먹인 존재를 완전히 놓치는 건 아무래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 영혼을 잡아서 몇 조각으로 찢어 버리는 것에 성공했지.” “네놈·····.” “진정하지? 내 설명 끝까지 듣지 않을 생각이냐?” 파우스트는 이를 가는 정운을 진정 시키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존재는 세레나라는 영혼의 일부를 내 통제 하에 두고 있는 가디언이다. 뭐··. 영혼의 양으로 치면 전체의 10분의 1정도 될까?” ============================ 작품 후기 ============================ 추석때 연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비축분도 거의 없는데....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64화 “세레나의 영혼의 10분의 1을 네놈의 통제 하에 두고 있다고!!?” 정운은 있는대로 짜증이 났다. 파우스트의 말대로라면···. 지금 파우스트의 손에 세레나의 일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나 다른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놈의 손아귀 안에 세리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사실 잠깐이긴 했지만 정운이 저 세레나를 봤을 때 그녀를 진짜 세레나라고 착각했던 것은··. 그녀의 기반이 진짜로 세레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정운을 보고 파우스트가 말했다 “협상은 결렬 되었으니···. 이제 다음 단계인가? 게임을 제시하지?” 파우스트의 말에 정운은 눈을 스산하게 뜨면서 말했다. “네놈의 게임이라면 이제 지겨워.” “훗, 너무 그러지 마. 어차피 네놈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임인걸 알잖아?” “상품이 네놈의 목이니까 말이지.” “그래. 바로 그거야.” 파우스트는 싱긋 웃은 다음에 말을 이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어차피 네놈들 날 조물주으 권좌에서 완전히 끌어내릴 생각이지?” “알긴 아는군?” “그걸 계속해라. 나도 지금 이 시점에서 이쪽 세계의 조물주로서 계속 군림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지금 파우스트의 말을 이 세계의 사제들이 들었다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들이 신이라고 믿고 따르고 있는 존재가 정작 자신이 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가 차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우스트가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이 세계를 모두 접수하면 나의 신권은 완전히 사라질 거다. 다크니스 왕국과 제국까지 모두 말이야.” “아주 쉽게도 말하는 군. 그럼 직접 나서서 게임의 공략 난이도를 낮춰주지 그래?” 정운의 비꼬는 말에 파우스트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말했지? 조물주라는게 의외로 못하는 일이 참 많더라고? 다크니스 왕국의 힘을 어떻게 약화시키는 짓은 나도 못해. 그러니···. 알아서 잘 해봐라.” 사람 성질은 제대로 돋구는 파우스트였다. “그리고 조건을 하나 더 하지. 지금 여기 있는 세레나가 10분의 1정도의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면··. 이 세상에 나머지 9등분된 영혼이 어딘가에 있다는 거지. 최종전의 그날까지 그걸 모두 구해봐라. 그러면, 네 여자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최종전?” “아!!? 말 하지 않았나? 지금 내가 잠깐 빌렸기는 하지만 지금 이 여자의 현실에서의 직위는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 중에 하나. 슬로트(나태)다.” “············.” 빠득!!!! 정운으로서는 이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생전에는 성처녀로 불렸고, 죽어서는 천사로 추앙 받았던 그녀의 영혼을 악마왕 따위로···. 그것도 죄악의 칭호를 나타내는 악마왕으로 만들다니···. 그녀를 모독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이 이상의 방법은 없어 보였다. 정운이 분개하거나 말거나 파우스트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녀의 영혼을 찾아서 하나로 모아서 여기 이 그릇에 집어넣으면, 네가 생각하는 네 연인이 돌아오겠지.” “그걸 나한테 말해주는 이유가 뭐냐?” “글쎄···. 순수한 호의라고 하면 믿을 테냐?” “엿이나 먹어.” 파우스트가 혼신을 다해서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한 계획에 초를 친 것이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에게 파우스트가 호의라니···. 고양이 쥐 생각에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흠···. 그래 호의라고 하긴 좀 그렇군. 그렇다면 경의라고 해 두지.” “경의?” 정운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되물었다. 그러자 파우스트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넌 나를 이겼다.” “············.” “비록 그게 운이 따랐고 너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넌 나를 최초로 이긴 남자였다.” “············.” 정운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이겼다. 라기 보다는 파우스트의 계획을 망치는 것에 그쳤다. 라고 말 하는게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스스로의 입으로 정운이 자신을 이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운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날 이긴 남자에게는 그에 준하는 포상이 주어져야 하는 법이지. 이건 그 포상의 일부라고 해 두지.” “············.” 정운으로서는 파우스트의 본심을 다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파우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페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가 밖에 나가자 언제 왔는지 가우리의 간부들이 총 집합 해 있었다. 그들은 중간에 개방된 정운의 기운을 느끼고 부리나케 이 카페로 왔다가 밖에서 파우스트를 보고 그대로 카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상황을 일단 지켜보자는 배대호의 의견이었다. “파우스트······.” 박추성이 전의를 불태웠지만 배대호는 그런 박추성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만 둬.” “여기서 모두 함께 덤비면 승산은 있어.” 박추성의 말에 배대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렇게 선선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해?” “··············.” 박추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배대호에게 말했다. “정답이다. 배대호라고 했던가? 널 보면 젊은 시절의 내가 생각나는군.” “·····내 인생 사는 법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기 하는군.” 배대호의 푸념에 파우스트는 그저 웃으면서 배대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가우리의 간부들 전원에게 말했다. “내가 할 말은 박정운에게 모두 말했다. 그러니 그에게 묻도록.” 그리고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파우스트의 뒷 모습을 보면서도 그 누구도 공격을 하지 못했다. “쯧, 우리 안마당에 자기 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쩔 수 없지. 잊고 있나 본데 저 인간은 이 세계에서 신이다.” “····빌어먹을.” 가우리의 간부들과 파우스트의 조우는 그렇게 끝났다. 여러 가지 정보를 얻었음에도 어쩐지 개운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이상이 제가 파우스트에게 들은 정보입니다.” 정운은 자신이 파우스트에게 들은 정보를 가우리의 간부들과 전원 공유했다.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군. 하나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 세레나의 영혼을 손에 넣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꾸준히 파우스트의 신권을 약화 시키면서, 최종적으로 다크니스 왕국과 제국을 무너트릴 것.”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배대호는 파우스트의 정보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그러자 옆에서 박추성이 말했다. “잠깐만···. 그 놈의 말을 모두 믿는 거야?” “모두는 아니야. 하지만···. 80% 정도는 믿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80%나?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박추성의 물음에 배대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아마 놈도 노리는 것은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미끼를 던져야 하는 법이야.” “그래서?” “파우스트의 신권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우리가 이미 하기로 정한 계획의 일부지. 그걸 틀렸다. 라고 말하면 모를까? 계속 하는게 맞다. 라고 정보를 누설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른 미끼 하나는 세레나에 관한 것인데···. 정운이 네가 느끼기에는 어떻게 생각 하냐?” “····놈의 곁에 있던 세레나는 처음에 봤을 때 제가 착각을 할 정도로 똑 같았죠. 나중에야 영혼의 10분의 2정도 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짐작이 가더군요.” 거기서 잠시 말을 끊었던 정운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세레나에 관해서 놈이 하는 말은 사실일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어느 정도 짚이는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 “············.” “············.” 정운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최근 정운이 양녀로 들인 아이들. 만약 그 아이들이 세레나의 영혼의 일부라면? 그렇다면 유독 정운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른 킹 클래스의 대괴수들의 흔적을 찾아주세요.” “알겠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이미 죽은 것들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할 거냐?” “아마도, 영혼이 윤회 한다면 그에 준하는 어떤 존재로 다시 태어났겠죠. 세레나의 영혼은 가우리의 힘을 총 동원해서 어떻게든 수색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운의 말에 가우리의 간부들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사실 세레나는 정운의 연인이기도 했지만 가우리의 간부들에게 있어서도 오랫동안 함께 싸워 온 동료였다. 그녀를 구하는 것에 힘을 모으는 것에는 아무런 반대도 없었다. “파우스트가 무슨 목적이 있어서 우리를 이용하려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정운의 말에 가우리의 간부들 전원이 결의를 다졌다. 오개국의 안에서 가우리의 영향력 강화. 다크니스 왕국을 대비한 전력 강화. 그리고 세레나의 영혼의 수색까지···. 가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정말 많았다. 다크니스 왕국의 수도 바이움. 그 바이움의 궁전에는 이 나라의 모든 마족들을 지배하고 있는 악마왕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경호라는 임무를 마친 슬로트, 세레나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그녀도 귀환했다. “오셨습니까? 왕이시여.” “보고 사항은?” “앤비(시기)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무슨 용건이지?” “무슨 용건이냐고? 그거야 뻔 한 것 아니겠어?” 세레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쪽에서 다른 인물이 들어왔다. 앤비라는 이름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악마왕 중에 한 명이었다. 만약 가우리의 간부들이 이 상대의 얼굴을 봤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의 일각을 맞고 있는 앤비. 그리고···. 과거 인간이었던 시절의 이름은 알렉세이 찌모페이. 러시아 서버의 톱으로 군림했던 남자였다. 정운과의 싸움에서 죽었기는 하지만 당시 고위 유저였으며 정운에 대한 강력한 증오심을 가지고 그의 영혼은 파우스트에게 좋은 재료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영혼은 다크니스 왕국의 앤비로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세레나를 보면서 말했다. “어땠지? 오랜만에 본 연인의 소감은 말이야? 우리를 배신하고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던가?” 알렉세이의 말에 세레나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 슬로트다. 이 영혼의 그릇이 되는 세레나라는 존재와는 상관없다.” “하···. 과연 그럴까?” 알렉세이의 말에 세레나는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야 말로 어서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라. 앤비, 넌 더 이상 알렉세이 찌모페이가 아니다.” 세레나의 말에 알렉세이는 한참 동안 지그시 세레나를 노려봤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봐도 세레나의 얼굴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앤비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졌다. “흥!! 배신할게 뻔한 암캐 주제에 뻔뻔하기는···. 그냥 여기서 가면을 벗겨줄까!!?” 추궁을 해도 아무것도 나올게 없다고 생각한 걸까? 알렉세이는 전신에서 힘을 개방해서 세레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레나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이 거대한 성이 통째로 흔들흔들 거릴 정도로 엄청난 기세가 자신에게 집중 되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기세를 서서히 올리더니···. “할 테면 해 봐라.” 화아아악!!!!! 그대로 받아쳐 버리는 세레나였다. 결코 알렉세이에게 뒤지지 않는 강력한 기운이 세레나에게서 뻗어 나왔다. 그리고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이를 드러내면서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크큭···. 큭··. 좋다. 어디···.” “거기까지다 앤비.” 알렉세이와 세레나가 격돌하려는 그 순간. 둘의 사이에 제 삼자가 끼어들었다. 그 삼자 역시 정운과 가우리이 간부들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흥····? 똑같은 배신자년인가?” 알렉세이의 말에 등장한 제 삼자는 싸늘한 시선을 하고 말했다. “내 이름은 러스트(색욕)다. 이지영이 아니야.” “말 로는 뭘 못하겠어? 안 그래?” “입 다물어라. 아니면 여기서 2대1로 할 테냐?” “············.” 이지영의 날카로운 추궁에 알렉세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이 둘을 상대로 싸운다면 결과는 뻔했다. “····흥, 지켜보겠다. 망할 배신자 년들···.” 그렇게 알렉세이가 방을 나가고 나자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세레나 역시 기운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지영은 그런 세레나를 보면서 말했다. “····정운과 만났다고?” “그렇다.” “·····소감은? 조금은 예전의 느낌이 돌아왔어?” “아니.” “그래···. 그렇구나.” 마치 감정이 모자라는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하는 세레나를 보면서 이지영은 안타까워 했다. 다른 악마왕들의 경우 그 영혼의 대부분이 온전한 상태였지만···. 슬로트, 즉 세레나 만큼은 아니었다. 언젠가 이 세계에 올 것이라고 믿은 정운을 위한 이런저런 안배를 남기기 위해서 파우스트의 세계에서 혼자서 반항을 하며 움직인 결과···. 결국 지금은 그 영혼의 상당부분이 찢어져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지영으로서의 최소한의 의식을 유지 할 수 있는 것도 당신 덕분이야. 만약··. 이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온다면 망설이지는 않겠어.’ 이지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레나의 방을 나갔다. 아직은 자신이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아직은 말이다. ============================ 작품 후기 ============================ 떡밥 대량 방출은 일단 여기까지 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65화 <에리프릴 왕국에서의 작업 마무리> 가우리의 삼대 목표. 세레나의 영혼 수색, 파우스트의 신권 약화, 다크니스 왕국을 대비한 전력 강화. 이 세 가지 목표 중에서 가장 순조롭게 목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파우스트의 신권 약화였다. 이미 에리프릴 왕국의 내부 사정은 가우리의 의도대로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민들의 대표로 만들어진 하의원들은 귀족들로 이뤄진 상의원들을 상대로 열심히 평민의 권익을 위해서 힘쓰고 있었다. “평민들에게 너무 과도한 세금을 물리고 있습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는 세금을 물리지 않고 생존을 우선시 하게 해야 합니다.” “지방 영주들의 권력이 인권을 침해할 정도로 너무 큽니다. 아직도 몇몇 영주들은 초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귀족들이 직접 운영하는 상회가 세금에서 특혜를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올리고 있는데 세금은 적게 내고 있습니다” 평민들의 하의원들이 올리는 의견을 대부분이 기존의 귀족들의 특권을 줄이는 법령들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귀족들인 그냥 호락호락하게 허락 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그런 법령은 아직 시기상조요.” “흉년이라고 세금을 안 걷으면 국가에 지출이 너무 크단 말이오. 뭘 알고 말하시오.” 귀족들로 만들어진 상의원은 하의원들과 하루하루 목청이 터져라 싸웠다. 그들로서는 하의원의 존재 자체가 못 마땅했다. 하지만 마땅한 수가 없었다. 그저 우직하게 반대 반대 반대만 부르짖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평범한 정치적 정적이라면 이들은 여러 가지 뒷 공작들도 곁들였을 것이다. 매수, 협박, 암살 등등··. 이 세계의 귀족들에게 정치란 앞면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뒷면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활발한 법이었다. 하지만···. 하의원들을 상대로 그런 악수를 두다가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하의원들 대부분이 가우리의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많다기 보다는 하의원들 대부분이 가우리의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가우리의 직원을 건드렸다가는 다시 가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자신들에게 익숙한 뒷 공작은 하지 않고 오로지 우직하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반대를 거듭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여론이 나빠지는 것은 상의원쪽이었다. 하의원의 의원들이 하는 주장들은 하루하루 평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이제까지 당연하다 생각한 불합리한 법령들을 하의원에서는 잘못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고치려고 하고 있다. 가뜩이나 같은 평민이고 민중의 투표로 뽐힌 하의원들이었다. 그런 하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령 개정을 자꾸만 발표하니 지지를 안 할 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의견에 그럴듯한 근거도 없이 오로지 반대만 부르짖고 있으니 상의원의 이미지가 나날이 나빠 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귀족들 중에 몇몇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평민들에게 기습적으로 썩은 계란을 맞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그런 평민들은 기필코 찾아서 목을 쳐 버렸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했다가는 평민을 상해한 죄로 가문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귀족들의 불만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만 갔다. 세상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계속 변해가니 이 상황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몇몇 귀족들이 간 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의 전용 클럽의 깊숙한 밀실. 거기에 몇몇 귀족들이 서로 기밀을 위해서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이제 모두 온 것 같소.” “음····.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같은 마음을 먹은 것으로 봐도 되겠소? 빠지려면 지금이오.” 누군가의 말에 다른 한 명이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이제 와서 빠지긴 누가 빠지겠소? 만약 그런 이가 있다면 내가 가만 두지 않겠소!!!” 그렇게 말하는 그는 허리에 매달린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자자··. 진정 합시다. 지금 우리끼리 싸우려고 모인 것은 아니지 않소.” 잔뜩 흥분했던 귀족은 씩씩 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쯧, 그대로 하의원 놈들에게 쌓인게 많은 모양이오?” 잔뜩 흥분한 귀족의 말에 다른 귀족이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를 악 물면서 말했다. “하의원 놈들이 가우리를 등에 업고 나라를 아주 없애려고 하는 거요. 도대체 유서 깊은 우리 귀족들 뭐라고 생각하는지···. 어제만 해도 내 아들을 고소하겠다고 어떤 평민 계집이 난리를 치고 왔소.” “평민 계집이? 난리?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별 것 아닌 일이오. 그냥 그 천한 계집이 우리 아들한테 눈이 멀어서 자기가 유혹하고서는 이제 와서 강제로 당했느니 뭐니 지껄이는 거지····.” “쯧쯧···. 예전 같으면 그런 천한 것들 그 자리에서 목을 쳐 버렸을 것을···.” “아니죠. 예전 같으면 그런 놈들이 함부로 귀족에게 목청껏 소리 지른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죠. 이게 다 가우리와 하의원 때문입니다.” “음···. 사실 저도 얼마 전에 터무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어떤 일 말이오.” “내가 운영하는 의류 상점의 바로 앞에 가우리의 기업이 운영하는 쇼핑몰이 생긴 것이오.” “쇼핑물? 요즘 여자들이 자주가는 곳 말이오?” “그렇소. 마트라는 것 하고는 다르게 의류, 보석, 시계, 그리고 다른 사치품들을 주로 파는 곳이더군요.” “쯧쯧··. 장사가 잘 안되시겠소.” “그냥 장사만 안 되는 수준이 아니오. 거의 망할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소. 거기에 대고 하의원 중에 한 놈이 우리 상점이 지난 20년간 한 번도 세금을 낸 적이 없다는 모함을 하는 거요.” “이런이런···. 그 놈들은 이제까지 이 나라를 유지해 온 것이 누구 때문인지 알기는 아는지 원···.” 결국 여기 모여 있는 귀족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가우리와 하의원에 의해서 이제까지 자신들이 누리던 특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귀족들이다. 사실··. 이제까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들이 몇 대에 걸쳐서 이룩해 놓은 막대한 부와 기반을 생각하면 그렇게 심각한 위협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이 한 번 눕기 시작하면 앉는 것도 불편한 법이다. 이제까지 한 평생을 쭉 특권을 누리면서 살아온 이들에게 있어서 특권이 사라진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모여서 한 가지 계책을 꾸미기 시작했다. “음··. 모두의 생각이 확실하다니 다행이오. 그럼, 우리의 울분을 모두 풀어줄 물건을 보여 주겠소.” 이 모임을 주도한 귀족이 모두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 병의 와인을 꺼냈다. “···롱 코스트 1500년산. 좋은 와인이다만··. 이게 어쨌다는 거요?” “음, 그냐 와인이 아니오. 너무나 달콤해서 한 모금만 마시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와인이오.” “호오···. 그 말은?” “그렇소. 그런 뜻이오.” 굳이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술을 이용한 독살은 귀족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흠···. 이제 이걸 어떻게 먹이느냐? 라는 건데··.”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소.” “그게 뭡니까?” “하의원 놈들 중에 몇몇 놈들이 모여서 자기들 끼리 회의를 여는 일종의 모임이 있소. 주로 평민들이 자주가는 술집에서 자주 열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흠··. 과연 그렇게 말이군.” “좋소. 실행범은 내가 알아보겠소. 이게 평민놈들에게 좋은 경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군.” “그러게 마리오.” 추잡하고 치졸한 음모가 무르익는 공간이었다. 귀족들의 음모의 타깃이 된 것은 하의원들 중에서도 특히 중심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남을 지니면서 다음 회의 때 올릴 안건에 대해서 논의하고 했다. 보통 이렇게 정치가들끼리 모이는 모임은 나쁜쪽으로 타락하기가 쉬운데···. 아직은 정국의 초반이라서 그럴까? 순수한 정치적 토론회 수준을 벗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그 대신에 이 회의에 자신들의 하소연을 하거나 나름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다른 시민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여기서 하의원들의 모임에 한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큰 파급력을 가져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원님, 그러니까 저희 집에 태어난 아이는 이제 두 살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노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두 살 애가 뭘 하겠습니까?” “음···.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국가에 의무적으로 노역을 하는 대상의 나이를 올리거나, 아애 없애 버리는 것을 추진 중이긴 합니다.” “없애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일단 가우리를 통해서 소개된 지구의 상당수의 나라는 노역의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신 국방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를 다하긴 하겠죠.” “그럼 세금이 오른다거나···.” “그럴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추진할 생각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면서 연신 감사를 표하는 이름 모를 시민의 말을 들으면서 하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그들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살기 빠듯한 빈민가의 빈민들이었다. 오늘을 살아가기도 바빠서 내일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래 죽어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가우리의 일자리 모집에 응했고··. 거기서 새로운 세계를 알았다. 제대로 된 직업이라는 것을 얻었고 그로 인해서 이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들을 변화 시킨 것은 그냥 경제적인 안정만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이들을 다시 깨우친 것은 교육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겹도록 학교를 다니고 더 좋은 학교로 가기 위해서 수험경쟁에 청소년기의 태반을 투자하는 한국인들은 체감이 안 가겠지만···. 교육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과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평균 이상 수준의 인재가 대량으로 필요했다. 그런 어려운 조건을 다 클리어 했을 때야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학교라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학교라는 개념의 교육의 장은 없었다. 몇몇 귀족들이 일종의 사교회 처럼 하나의 교사를 초빙해서 단체로 자식들을 교육 시키는 모임은 있었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육은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일대일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럴 경우 가장 먼저 생기는 문제는 교육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직업에 필요한 기술만 가르치는 직장의 교육은 그렇다 쳐도···. 직접 가정교사를 초빙해서 가르치는 귀족들 역시 폭이 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러 개의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와 달리 초빙하는 교사들마다 자신들이 파고 든 분야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면 역사, 예절이면 예절, 정치면 정치. 그렇게 딱 분야를 정해서 가르치다 보니 폭 넓게 배우기가 어려웠다. 가끔 굉장히 교육열이 뛰어난 귀족가에서는 아직 철도 없는 애한테 수십 명은 될 법한 가정교사를 붙여서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 애 잡는 행위나 다름 없었다. 아주 천재가 아닌 이상 그 수많은 교사들의 집중 교육을 다 소화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각 전문분야의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다수의 학생에게 자신의 전문 지식을 가르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학교라는 시스템의 교육적 효과는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 보통 100여명 가르치면 아무리 수준이 떨어져도 그 중에서 10분의 1정도는 교육을 그럭저럭 따라오는 편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들은 가우리에서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가우리를 통해서 지구의 사회적 시스템과 역사에 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 하나하나가 치명적일 정도로 달콤하고 충격적인 독이었다. 지구라고 해도 과거에는 자신들처럼 노예가 있어고, 평민이 있었고 그 위에 귀족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역사적인 숙성을 거쳐서 이제는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정착하게 된 것이다. ============================ 작품 후기 ============================ 추석때 연참을 하고 싶었지만.... 조카들 등쌀과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다 보니 연재를 유지 하는것만 해도 빠듯하네요. 사실 연재 자체가 제대로 이어질지도 의문입니다.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염참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이해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66화 교육의 일환으로 지구의 역사를 간략하게 교육한 결과는 예상 이상이었다. 대폭 압축을 해서 아주 간략하게 지구의 역사를 표면적으로 배웠을 뿐이지만···. 이쪽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지구의 현 상황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가우리를 통해서 이들이 알게 된 것은 설령 자국의 귀족이나 왕족들이라고 해도 지구의 평범한 인간들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막대한 권력과 귀족이라는 위치에서 이뤄지는 여러 가지 특권은 있다. 하지만 문화적인 혜택이나 국가 전반에 걸쳐서 누리고 있는 사회적 보호 같은 것에서 차이가 너무 크게 났다. 어느 정도의 차이라면 질투심이 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지구와 이쪽의 세계의 사이에서는 문화적인 캡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그렇다 보니 질투심 보다는 동경심이 더 크게 들었다. 특히 신분제도가 없고 국민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우리의 압력에 의해서 하의원 체제가 발족되고··. 그들은 열광적인 선거 활동을 통해서 하의원으로 선출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의원으로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적극적으로 나라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기쁨이었다. 이들이 심취한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아마 그건 ‘보람’일 것이다. 예전에는 수도의 시민들 중에서도 특히 천대받고 차별 받았던 빈민가의 일원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시민의 대표가 되어서 나라를 더 좋게 바꾸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 보람을 느끼게 하는 법이다. 지구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자기 욕심이 충실한 것 같은 생물이 인간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을 때 보람을 느끼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였다. 난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훌륭한 일이다. 내가 이런 일을 함으로서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무조건 적인 헌신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보람을 느낀다. 경쟁심이나 향상심과는 별개로 이런 감정 역시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인간의 일면이었다. 실제로 이들을 응원하는 일반 시민들도 많이 생겼다. “저기 의원님들. 이건 별것 아니지만 저희들의 부잘 것 없는 선물입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어떤 일행이 가져온 것은 한 병의 와인병이었다. 의원들은 일단 난색을 표했다. “이런 물질적인 물건을 주시면 곤란합니다.” “정치 활동을 하는 의원이 시민에게 개인적으로 금품을 받으면 그건 법령에 의거해서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의원이 발족되고 초반에는 뇌물이 좀 성행했다. 갑자기 권력을 손에 넣고 나자 주변에서 알아서 받들어주고, 결국에는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하는 인간들도 종종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자들 중에 몇몇이 어떤 상회나 혹은 개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그게 가우리를 통해서 적발 되었다. 그리고는 하의원들 사이에서 한 바탕 칼 바람이 불었다. 이게 상의원인 귀족들에게 트집을 잡히면 하의원체제 그 자체에 금이 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가우리는 일부로 그들에게 강도 높은 처벌이 가해지도록 손을 썼다. 그런 일이 두 차례 정도 있고 나자 이제는 하의원들이 뇌물이라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집에 돌아가니 자기 마누라가 어디서 옷 한 벌 받아 왔다고만 해도 길길이 날뛰고 다음날 자진해서 사임한 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와인병을 가져온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물건을 드리는게 아닙니다. 그저 이 자리에서 마시는 것 정도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항상 저희 시민들을 보살펴 주시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대로 절대 안 되오.” “마음만 감사하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 권하지 말고 가져가 주십시오.” “···········음.” 하의원들이 워낙 완강하게 거절하자 와인을 원하던 남자가 조금 당황했다. ‘이런···. 이런 사태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 남자는 사실 어느 귀족가의 집사의 아들의 친구라는···. 약간 복잡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상당한 보수를 받고 하의원들에게 와인을 먹인다. 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냥 와인 한 병 먹이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일단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받아 들였다. 약간 수상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보수를 선금으로 받았기에 일단 돈에 눈이 먼 것이다. 그런데 하의원들이 완강하게 와인을 받지 않으니 이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보통 높은 놈들 특징이 주는 것은 다 받아 먹는다 인데····.’ 그는 당황하며 어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하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당황하면서 말했다. “잠시··. 잠시만요. 의원님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의원님들끼리만 마시는게 아니라 저도 마실 테니 그냥 같이 마시기만 하면 어떨까요? 이거면 아무 문제없지 않습니까?” 그 남자의 말에 하의원 중에 한 명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이상하군····.”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같이 마셨을 뿐인데 누가 그걸 뇌물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닐세.” “·············?” “어째서 우리한테 그 와인을 못 먹여서 안달인가?” “······음···. 그건····.” 남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마음속으로는 그제야 아차 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한 발만 떨어져서 생각하면 자신이 생각해도 엄청 수상하게 보일 일이었다. “자네가 먼저 그 와인을 먹어보게.” 하의원 중에 한 명이 그렇게 말하자 이 남자는 순간 당황했다. “예? 저···. 저요?” “그래. 자네가 먼저 마시면 나도 마시지.” “··········.” 남자는 순간 침묵했다. ‘그러고 보니···. 이 와인 혹시····.’ 머리가 나쁜 것일까? 아니면 돈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 혹은 둘 다일까? 이제야 와인에 독이 들었을 가능성이 머리에 스치는 남자였다. 그리고 와인에 독이 들었다는 것을 몰랐다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와인을 입에 댈 수 있을 정도로 근성이 넘치지는 않는 남자였다. “음··. 저기. 죄송하지만 다음 기회에···.” “그렇게는 안 되지.” “잡아!!!” 하의원들과 모여 있던 시민들은 그 남자를 순식간에 잡았다. 그리고 하의원 중에 한 명은 그 와인을 회수하면서 말했다. “가우리 쪽에 조사를 의뢰하면 와인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 남자의 신병도 확실하게 수습해 두도록 하죠.” 하의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잠시만!! 이렇게 사람을 무차별 적으로 잡아도 되는 거야!!? 증거 있냐고!!”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증거는 없었지만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구태여 증거를 찾을 필요가 있기는 할지 의심스러울 상황이었다. 증거 따위 없어도····. 애당초 상황은 뻔했다. 와인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상당한 독극물이 나타났다. 원래 독살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고, 그쪽 방면의 프로들도 있었지만···. 일을 도모한 귀족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서 전혀 상관없는 아마추어를 타깃으로 했다. 물론 아마추어라고 해도 연줄을 타고타고 계속 거슬러 가면 자신들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는 그냥 잡아 때면 그만이다. 프로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거치고 거쳐서 완전 상관없는 아마추어를 사용한 것은 만에 하나 걸렸을 때 잡아 땔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통할 상대가 있고 안 통할 상대가 있는 것이다. 하의원들 자체는 귀족들에게 만만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뒤에 있는 가우리에게는 그런 개수작이 통할 리가 없었다. 비록 증거가 없다고 해도 작은 연관성이 있는 이상 가우리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서 꾸준하게 의혹설을 제기하면서 배후에 있는 귀족들을 지목했다. 증거가 없는 이상 어디까지나 의혹설일 뿐이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논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왜냐하면 가우리에게는 언론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없는 진실도 만들어 낼 수 있는게 미디어의 힘이다. 이 정도로 정황 증거가 있으면 일은 더더욱 쉽다.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얇아지는 것은? 정답은 바로 귀다. 뭐뭐 했을 걸? 뭐뭐 했다는데? 뭐뭐 했다고? 뭐뭐 했다. 진실이란 두 가지 진실이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적인 진실 이건 보편적인 진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이 있으니···. 진위여부를 증명할 증거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믿고 있는 진실이다. 개개인으로서 냉철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사람들이 뭉치면 없는 진실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법이다. 가우리에서 심증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배후의 귀족들을 공략하기 시작하자 민중들은 다시 한 번 들끓기 시작했다. 이전에 이미 한 번 민중의 힘으로 권력을 이긴 적이 있던 사람들이 수도 광장에 다시 한 번 모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불길이 일어났다. 수도에서 더 많은 평민들이 열광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수도 이외의 지방에서도 민중들이 생업을 집어 치우고 저마다 시위를 일으켰다. “해당 귀족들은 독살의 시도를 인정하라!!!” “인정하라!!!! 인정하라!!!!” “우리 시민들의 대표인 하의원들의 안전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일반 시민들의 시위 참여도는 광적일 정도였다. 시민들의 대표로 뽑힌 하의원들이 귀족들에 의해서 암살의 위협을 당했다. 이것은 결국 귀족들이 자신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한 귀족들의 박해를 받아야 할 것이다. 라는 의견들이 퍼지면서 평민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수도의 시위는 가우리에서 지켜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지방의 시위는 그렇지 못했다. 지방의 영지라는 곳은 그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영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가우리가 개입하고 나서 이 영주의 권력도 점차 약화 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지방에서는 영주의 권력이 막강한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주에 반항하는 시위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으니···. 참사가 일어날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귀족들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하의원 암살 시도를 인정하고 벌을 받아라!!!” “벌을 받아라!!!! 벌을 받아라!!!!” 지방의 한 영지에서도 거칠게 반 귀족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미 평민들의 시위는 사건의 본질을 떠나서 귀족에 대한 무조건 적이 증오심까지 번져 있었다. 귀족들이 의외로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있는데··. 평민들 중에 귀족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평민은 백 명에 한 명. 아니 천 명에 한 명도 찾기 힘들다. 귀족을 두려워하는 평민이 많을 뿐인데 귀족들은 그 두려움을 존경심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두 가지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존경심과 달리 두려움은 일단 극복하고 나면 그 대상에게 증오심만 남을 뿐이다. 존경심은 사람이 변질되지 않는 이상 계속 지속되지만 두려움은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양탈의 칼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의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영지의 영주는 자신의 영지에서 평민들이 감히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을 용서할 정도로 아량이 넓지도 않았고, 이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할 정도로 현명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단호하게 칼을 든 것이다. 직접 시위 현장에 기사들을 대동하고 등장한 영주는 노기가 등등한 얼굴을 하고 기사와 병사들에게 말했다. “영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법의 위반. 즉 반역이다. 모두 죽여라!!!!” “옛. 주군!!!” “옛. 주군!!!” “옛. 주군!!!” ============================ 작품 후기 ============================ 추석때 연참을 못해서 그저 죄송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67화 일단 영주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기사들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그들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영주님의 명령이다. 반역자들을 모두 죽여라!!!” “예? 예····.” “하지만····.” 기사들의 명령에 병사들은 명령을 받으면서도 망설였다. 준 귀족 계급인 기사들과 달리 병사들은 평민이다. 심지어 이 시위대에는 자신들의 가족도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모진 칼날을 들이댈 수 있겠는가? 지구라면 여기서 병사들의 태도 때문에 어떤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익스퍼트 급의 기사 하나가 병사 백 명을 합한 것 보다 더한 무력을 발휘하는 세계였다. “이 놈들!!! 네놈들이 감히 기사의 명령을 어겨!!!” 촤아악!!! 기사 하나가 칼질 한 번으로 병사 다섯의 목을 동시에 날려 버렸다. 그리고 기사는 피 묻은 롱소드를 들고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어서 진압해라!! 망설이는 놈은 내가 모두 죽여 버리겠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결국 기사의 협박에 겁먹은 병사들은 기쉬대를 진압해갔다. “컥···. 롭··. 네가?” “잭. 너 이자식··· 커억···.” 이 작은 영지에서 서로 함께 살다 보면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웃해서 살던 자들에게 창을 찌르는 병사들도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망설이려고 하면 뒤에서 기사들이 오러가 넘실 걸는 검을 휘둘렀다. 결국 시위대외 병사들의 격돌은 일반적인 학살이 되었고 잠시 후에 시위대의 현장에는 죽거나 쓰러진 시위대들만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고 영주가 차갑게 말했다. “살아남은 놈들은 전원 영주성으로 옮겨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할 정도의 고통을 안겨 주겠다.” “예. 영주님.” 어쩌면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보다 훨씬 더 불행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서 죽을 때 까지 비참한 고문을 받을 테니 말이다. 지방의 영주들 중에서 강경 수단으로 시위대를 진압한 자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모두가 골머리를 앓던 중에 처음에 한 명이 총대를 메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씩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에리프릴 왕국의 지방에서는 여기저기서 피가 흘렀고, 하의원들은 이 사태에 관해서 상의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지금 추정된 사망자만 해도 1만 명이 넘었소. 그런데 해당 영주들이 모두 무죄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원래 영주에게는 자기 영지의 치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소. 폭동이 일어나면 그 폭동을 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요.” “폭동? 지금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일어난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단 말이냐? 이 개만도 못한 놈이!!!!” “감히···. 비천한 평민 주제에 뭐라고 지껄였느냐?” “너희들 귀족들의 고귀한 핏줄 운운하는 입버릇은 이제 신물이 난다!!! 이 나라를 좀 먹는 쓰레기들!!!!” “이 놈이···. 정녕 죽고 싶다는 거냐?” “어디 해 봐라!!!!” 상의원과 하의원들은 이제 서로를 거의 원수 보듯이 했다. 지방의 여기저기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은 이제 이들 간의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해 버렸다. 하의원들은 해당 영주들의 강력한 처벌을 원했지만 상의원인 귀족들은 영주가 영지민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영주의 권한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그런 주장을 원청 봉쇄했다. 사실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런 상식이 당연하기는 했다. 하지만 가우리를 통해서 새 바람이 불어온 지금 와서는 그 당연함이 통하지를 않고 있었다. 거듭된 사고방식의 충돌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가을 건너게 되었다. 그리고 미하엘은 이제까지 이런 상황을 모두 냉철하게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찰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의회는 무의미한 다툼만 계속했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미하엘은 에리프릴 왕국의 지부장의 보고를 다 들으면서 자신의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정운이 가능하면 피가 적게 흐르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라고는 했지만···. 결국 피를 완전히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 했다. 나라라는 그릇이 한 번 형태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의 그릇을 한 번 깨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상당한 피가 흘렀다. 미하엘이 판단하기에는 여기서 더 많은 피가 필요하냐? 그렇지 않느냐? 라는 것을 가늠하는 일이었다. ‘마법사나 기사 같은 특수 인력을 제외한 귀족들의 인구 비율은 평민들의 1,000분의 1이하였지? 그렇다면···. 이제 진행 시켜도 될지도 몰라.’ 가우리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가우리를 지지하는 자들이 절대 다수가 되어서 파우스트의 신권을 점점 약화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에리프릴 왕국의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 움직일 시기이기도 했다. 그녀는 전화기를 잡고 에리프릴 왕국의 가우리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짤막하게 말했따. “진행시켜.” -알겠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가 한 나라의 운명을 통째로 바꾸는 시발점이었다. “빌어먹을··. 오늘도 의회인가?” “하의원 놈들에게 소집 권한을 뺏어 버리든가 해야지···. 이거 피곤해서 못 살겠소.” “그러게 말이오. 한 번 진지하게 논의해 봅시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비천한 평민들이 부른다고 일일이 출석을 해야 했던 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귀족들은 오늘도 의회에 출석을 하기 위해서 저마다 모여 들었다. 사실 요즘 의회에 모여 봤자 주제라고는 뻔했다.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중지해야 한다. 시위대를 학살한 귀족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런 주장들을 하의원들이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하의원들이 아무리 주장해도 상의원인 귀족들이 모두 반대를 해 버리면 그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결국 지루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는 매일 매일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의회장에 출석을 해도 상의원인 귀족들만 모였을 뿐. 하의원들은 하나도 출석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상항군요. 매일매일 부지런히 얼굴을 보이던 놈들이···.” “흠··. 단체로 지각이라? 이 놈들 나름대로 시위의 방법일까요?” “차라리 잘 됐습니다. 이런 사소한 면 하나하나에서 놈들에게 정치적인 자질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철저하게 공격하죠.” “맞습니다. 어디 국가 중대사에 감히···.” “음···. 일리가 있소.” 귀족들 중에 몇몇은 이번 일로 하의원을 철저하게 공격하겠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공격 어쩌고 하는 자들은 이미 사고방식이 너무 물렁한 것이었다. 하의원들은 가우리와 손을 잡고 훨씬 더 과격한 공격 수단을 결심 했는데 말이다. 쾅!!! 의회의 문이 부서지면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부하들에게 외쳤다. “전원 제압해!!!” “옛!!!” “옛!!!” “옛!!!”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귀족들을 거칠게 제압해 갔다. “모두 고개 숙이고 양 손을 바닥에 대라!!!! 이건 명령이다. 따르지 않는 자들은 즉시 사살하겠다.” “잠··. 잠깐 이건··.” “숙이라고 이 새끼야!!!” 퍼억!!! 병사들은 당황한 귀족들을 거칠게 제압해 갔다. 인권이고 뭐고 없다. 마치 테러리스트를 제압해 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귀족들을 제압한 일들은 가우리에서 양성한 특수부대였다. 몇몇 귀족들은 나름 검을 수련했고 기사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는 귀족들도 있어서 격하게 반항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항은 오히려 더 화를 부를 뿐이었다. 쩌억!!! “커억···.” “얌전히 있어!!!!” 안면이 거의 돌아가다 시피 강력한 일격을 맞은 귀족은 그대로 바닥에 깔려서 양손과 양발에 모두 수갑을 차고 오러의 움직임을 막는 봉인구까지 덤으로 차야 했다. 이 부대원은 전원이 최소 레벨 40대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고 부대장의 경우 레벨 70대의 힘까지 가지고 있는 부대였다. 그런 전투원이 50명이 모여서 한 개의 소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마스터 클래스의 기사나 최소 6클래스 수준이 메이지가 아닌 이상 이 부대를 상대로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그런 소대가 이번 작업을 위해서 열 개 소대나 투입되었다. “큭··. 가우리의 군대라니? 이건 무슨 내정 간섭이오!!!?” “이럴 수는 없소. 아무리 가우리라고 해도 이게 무슨···.” 귀족들 중에 눈치빠른 몇몇은 이들이 가우리의 병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당황한 귀족들의 앞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우르를 몰려왔다. 그들은 이들의 눈에 익숙한 하의원들과 그 앞에는 에리프릴 왕국의 하나 뿐인 로드인 노이비에트 로드가 함께 있었다. “로드? 로드가 어째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귀족들의 물음에 노이비에트 로드가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시점을 기해서 우리 에리프릴 왕국에서는 귀족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전원 철폐한다.” “뭐··? 뭐라고?” “노이비에트 로드!!! 노망 나셨소!!?” “이게 무슨····. 무슨 개 같은 소리란 말이오!!?” 귀족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구 마음대로 귀족을 없앤다는 말인가? 멀쩡한 맑은 날에 길 가다가 날 벼락을 맞아도 이것보다 억울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이비에트 로드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울러 의회의 상의원 하의원의 구분을 없앤다. 또한 이제까지 국정 운영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 죄를 물어서 상의원들 전원을 구속하고 향후 재판을 거쳐서 그 죄를 묻겠다.” “이이···. 이게 무슨···.” “로드!! 로드 이럴 수는 없소!! 아무리 가우리가 무서워도 그렇지 어떻게 우리를 팔 수 있소!!?” “이제까지 이 나라를 이끌어 온 것은 다름 아닌 우리요!!!” 귀족들은 목이 터져라 노이비에트 로드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가우리의 병사들은 그 귀족들··. 아니 이제는 죄인이 된 일반인들을 모둥 연행해갔다. 그리고 노이비에트 로드는 하의원들에게 말했다. “이제 이 나라의 방향을 어디로 틀지는 그대들에게 달렸소. 난 로드의 직위에 있으며 군림하되 지배하지는 않겠소. 단, 우리 마법사들의 대한 권한 만큼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오.” “로드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협조와 결단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저 감사와 존경을 표할 따름입니다” 하의원들은 로드에게 저극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가우리,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하엘이 바라고 있던 그림대로 완성된 것이다. 에리프릴 왕국은 오랫동안 봉건주의가 지속되어 왔던 나라다. 이런 나라에 갑자기 민주주의를 주입 시키려고 하면 그건 맹독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처음에는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파고 드는 것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한 다음에 평민들이 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집단을 만들게 했다. 그게 바로 하의원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제 귀족들의 운명은 풍전등화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의원들이라고 해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정치적인 위치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자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숙성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 가우리는 일단 손을 때고 뭔가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사건이 안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 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미 하의원이 발족한 상황에서 사고가 안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권력에 대한 집념은 그렇게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미하엘의 예상대로 몇몇 귀족들이 하의원 암살이라는 악수를 두었다. 그리고 미하엘은 그 불씨를 차근차근 그리고 서서히 거대하게 키워서 결국 에리프릴 왕국을 태워갔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체재를 발족 시킬 때가 온 것이다. 무작정 귀족을 다 몰아내려고 해도 반발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하엘은 노이비에트 로드에게 접선해서 에리프릴 왕국의 메이지들 전원을 아군으로 삼았다. 마도 왕국이라고 부릴 정도로 메이지가 중요한 대우를 받는 나라가 바로 에리프릴 왕국이다. 가우리가 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외부의 국가. 에리프릴 왕국의 국민 전원을 납득 시키고 역사적인 잡음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강력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인 에리프릴 왕국의 마도사들이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에리프릴 왕국 파트는 거의 정리가 되어 가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68화 가우리만의 힘으로 일을 진행 하는 것도 가능은 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아무래도 두고두고 잡음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의 얘기는 아니다. 현 단계에서 가우리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굳건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먼 미래에는 가우리가 에리프릴 왕국의 혼란을 주도했다. 라는 평가가 붙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먼 미래를 봐서 가능하면 가우리는 힘만 빌려주고 전면에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현 로드가 직접 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의원들은 잡음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정국의 핵심으로 떠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의원들이 일단 정국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의 상의원들과 귀족들을 싹 정리하는 일이었다. 먼저 수도에 한 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귀족이라는 귀족은 일단 다 잡아서 신병을 구속했다. 여자든 어린애든 가리지 않고 일단 신병을 싹 구속하고 그들에 대한 평결을 시작했다. 사실 말만 평결이라고 약간 가려서 표현 했을 뿐이지 거의 재판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일방적인 재판 말이다. 재판의 내용은 그 귀족이 이제까지 불법적으로 재선을 축적했거나 평민들을 이유 없이 억압한 내용을 찾아서 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정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거의 가문의 시조 때까지 다 거슬러 가면서 귀족들을 잡아 족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걸리는게 있으면 그 귀족 가문은 풍지박산을 내 버렸다. 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귀족으로서의 직위는··. 해체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하의원들에 의해서 귀족이라는 직위 자체를 사라지게 해 버렸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지구의 말을 인용해서···.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 라는 표어를 내 걸고 귀족계급 철폐를 무작정 진행 시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결국 이 칼바람을 피해 갈 수 있는 귀족은 정말 거의 없었다. 귀족들의 권력을 생각하면 그 오랜 세월 동안 권력을 남용하지 않은 귀족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게 기적일 것이다. 지극히 예외적으로····. 이미 몰락해서 권력이고 뭐고 없이 평민이나 다를 바 없는 인생을 보내고 있던 귀족들만 이 풍파를 비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도의 귀족들을 정리한 다음 에리프릴 왕국의 의회는 지방의 영주들에게 칼날을 돌렸다. 귀족 계급의 철폐와 더불어서 영주에게 지급된 영지 역시 전부 국가에 환속한다. 그러니 잔 말 말고 모두 수도로 돌아와서 평결을 받아라. 라는 내용의 공문을 지방의 귀족들에게 발송했다. 지방의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죽어라. 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수도의 귀족들의 경우 자신들의 귀족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다양하다. 직급에서 나오는 권력. 주변 귀족들과의 끈끈한 인력. 자신이 운영하는 상회에서 나오는 재력. 이런 식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힘을 축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방 귀족의 경우는 대부분 자신의 힘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 뿐이었다. 바로 영지다. 영지에서 만큼은 영주가 왕이고 영주가 곧 법이다. 그 영주에서 얻는 소출과 특산물 그리고 인구수 자테가 지방 영주에게 있어서는 돈이고 병력이고 권력이었다. 그런데 그 영지를 없애 버린다니? 몇 백 년에 걸쳐서 가문 대대로 영지를 지켜온 가문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쉽게 납득이 갈 리가 없었다. 지방의 귀족들은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서 의회의 결정에 반항했다. 그들 중에서는 군대를 무장 시키면서 절대 항전을 부르짖는 자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더 큰 피해를 불러오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아무리 지방 귀족들이 뭉친다고 해 봐야 에리프릴 왕국의 핵심 전력은 수도에 상주중인 메이지들과 그 메이지들의 마법 도구로 중무장한 마도 군단이었다. 거기다 가우리까지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의회의 결정에 도움을 주며 힘을 빌려 주었다. 시골 귀족들이 아무리 똘똘 뭉쳐봐야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결국은 완벽한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만 부를 뿐이었다. 쾅쾅!!!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가우리의 특수부대원이 지방 영주의 집무실을 두드리며 말했다. “발라레스 백작!! 안에 있는 것 다 안다. 밖으로 나와!!! 10초 안에 안 나오면 강제로 돌입하겠다!!!” 의회의 결정에 반항하며 주변의 지방 영주들과 결탁해서 총 10만 단위의 반란군을 조직한 발라레스 백작이었다. 하지만 그 10만 대군은 불과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집무실까지 적이 쳐들어 온 것이다. 그런 최후의 최후까지 발라레스 백작을 보필해온 기사들이 그에게 말했다. “주군, 도망가십시오. 일단 후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후일을 도모하라는 기사의 말에 발라레스 백작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가긴 어디를 간단 말이냐!!? 여기는 내 영지다.” “주군···. 이미 여기는···.” 기사는 그저 안타까웠다. 이미 시대가 변해 버렸다. 이제는 기사도 귀족도 결국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이다. 아니 기사는 그대로 능력이 있으니 혹 다를지 모르나, 그저 핏줄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던 귀족들의 경우····. ‘후우···. 무리겠지. 우리 주군 같은 분이 어디를 가서 어떻게 살겠는가?’ 기사도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주군을 모신 사이였다. 뼛속까지 귀족인 자신의 주군은 귀족으로서의 삶이 아니면 단 하루도 똑바로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실 이렇게 둘이 실랑이를 하고 있을 시간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콰직!!! “돌입!!!” 결국 문이 부서지고 그 부서진 문 사이로 가우리의 병력이 물 밀 듯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큭··. 막아랏!!!!” “이 놈들!!!!” 못난 주인에 과분한 기사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순진한 시골 기사들이라서 자신이 한 평생 맹신해온 기사도를 져 버릴 수 없는 것일까? 기사들은 승산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우리의 병력을 향해서 덤볐다. 몰론 결과는 뻔했다. “큭···.” “버티기는···.” 마지막 기사 하나도 결국 검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쓰러져 버렸다. 불과 2분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쓰러진 기사들이었다. 그들 나름으로서는 필사적으로 분투했겠지만··. 가우리의 특수부대원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냥 귀찮은 발버둥일 뿐이었다. 그리고 쓰러진 기사들 사이로 발라레스 백작이 거칠게 끌려갔다. “이거 놔라!!! 감히 누구를···. 난 발라레스 펠트로 드라이언 백작이다. 여기는 나의 영지다. 난 영주란 말이··. 컥!!!” “아··. 새끼, 똥 오줌 못 가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돼게 시끄럽네.” 결국 시끄러운 발라레스 백작은 명치에 한 대 맞고는 의식을 잃고 질질 끌려갈 따름이었다. 결국 무모한 반란을 시도한 끝에 그는 반란죄로 형무소에서 사형에 처해졌고··. 그의 가족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당했다. 한 평생 귀족으로서 살아온 그의 식솔들로서는 빈손으로 외국으로 쫒겨 난다는 것은 사실상 죽어라는 말이나 다를바 없었다. 아니면 죽을 때 까지 비참하게 살던가···. 에리프릴 왕국에 단일 의회가 들어선 이후 반년 정도··. 귀족들. 아니 이제는 구 귀족 출신들에게 있어서 그 반년은 참으로 고난의 세월이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형무소에 들어갔고 그들의 가족은 귀족으로서의 권한을 모두 몰수당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다. 그런 인생에 적응하지 못한 귀족들도 많았다. 그런 귀족들의 인생은 대부분 비참하게 흘러갔다. 특히 여자들은 결국 자존심을 꺾고 가족을 위해서 어느 정도 부유한 재산이 있는 상인의 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귀족가의 여성들에게 상인들이란 자신들에게 아부하고 턱 끝으로 부리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살기 위해서 그들에게 간청하다 시피해서 첩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콧대 높은 귀족가들의 영애들이 자신들이 아랫것 취급하던 상인들에게 정식 부인도 아니고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쉽게 선택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콧대를 세우면 세울수록 기다리는 미래는 더 비참한 나날들일 뿐이었다. 그나마 처음에 자존심을 죽이고 상인들에게 첩으로라도 들어간 그녀들의 경우는 현명했다. 적어도 자신 한 명이 자존심을 죽이는 것으로 나머지 가족들의 생활이라도 어느 정도 건사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중으로 가면 갈수록 그런 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능력이 되는 상인이라고 해도 본처의 눈치가 있지 첩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가우리의 경제적 개입이 시작된 이후로 순수 에리프릴 왕국 출신 중에는 그렇게 거대한 재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인들도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겨울이 되고 본격적으로 추운 계절이 되자··. 이제 귀족가의 영애들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빈곤은 너무나 가혹했다. 뒤 늦게 자신에게 첩의 자리를 제안하던 상인들에게 연락을 해 봤자 콧웃음만 받을 뿐이었다. 어떤 귀족가의 여성은 그런 상인들에게 하룻밤 노리개 취급 받고 푼돈만 쥐어진 후 쫒겨난 일도 있었다. 그런 일들이 지속되자·· 결국 남은 귀족가의 여성들은 가장 바닥의 바닥까지 떨어져갔다. 살롱에서 술 상대를 하다가 손님이 원하면 그대로 침대로 같이 들어가는 일종의 고급 매춘부로 들어간 여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거기서 좀 더 나이가 들면 매음굴에서 싸구려 창녀로 전락하는 것도···. 그리고 거기서 몸이 망가지는 것도 뻔한 수순이었지만···. 이제는 선택권조차도 없었다. 고난은 남자인 귀족가의 공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몸이라도 팔 수 있는 여자들과 달리 그들은 정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귀족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교육 받은 그들에게 있어서 평민들과 같이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몇몇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교양으로 배운 검술을 이용해서 범죄자의 길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더 심한 경우에는 자기들 끼리 신정부를 비판하는 레지스탕스를 조직해서 활동하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뭐, 결국은 다 범죄 조직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겨냥하기라도 한 것처럼 강화된 에리프릴 왕국의 친안은 이들을 하나하나 잡아서 형무소에 가두었다. 결국···. 불과 반년 사이에 이 에리프릴 왕국에서는 귀족을 보기도 힘들어졌다. 혹, 남아있는 귀족들 역시 자신이 귀족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귀족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불이익을 볼 까봐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결국 에리프릴 왕국은 귀족들이 사라졌고, 그 지배계층에는 가우리의 입김이 닿는 하의원들이 들어갔다. 이제 사실상 나라만 에리프릴 왕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을 뿐. 가우리의 영토나 다름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하의원들을 통해서 서서히 법령을 개정해 가면 몇 십 년 후에는 차분하게 습수 합병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이상입니다. 이제 에리프릴 왕국에 대한 공작은 모두 완료 되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미하엘의 보고를 받으면서 정운은 어이없음에 피식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거참. 나라하나 뒤집는게 무슨 시뮬레이션 돌리듯이 척척 돌아가네.” “그만큼 문명적으로 차이가 컸기 때문이죠. 군사력도, 경제력도, 그리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까지··. 모든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게 처리 할 수 있었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너무 예상대로만 돌아가서일까? 약간 죄책감이 들 정도인 걸?”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죄책감이 드신다면··. 적어도 그 나라가 이전보다 훨씬 살기 좋게 만드시는 것으로 갚는 수밖에 없겠죠.” 미하엘의 말은 진부하지만 정답이긴 했다. 그냥 미안해만 한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확실히 정운은 상당한 피와 희생, 그리고 혼란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에리프릴 왕국에 민주화 프로젝트를 진행 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이 세계의 정체된 시스템을 진화 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저질러 버린 일에는 그저 최선을 다 할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69화 에리프릴 왕국의 정권 교체에 대한 보골르 다한 미하엘은 그것과는 별개의 사안으로 보고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정운님. 이번에 에리프릴 왕국의 로드로부터 이런 것을 받았습니다.” “뭔데? 선물이라면 별로 필요 없다고 하고 돌려줘.”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고개를 저으면서 한 장의 서류철을 내밀었다. “일단 보시죠.” “··········.” 정운은 미심쩍은 눈을 하고 그 서류철의 내용을 살폈다. 그리고 서서히 안색이 변하면서 페이지를 넘겨갔다. 그리고는···. “이거 정말이야?” “예. 원래 에리프릴 왕국의 봉인지정 무기였다고 하더군요. 잘만 사용하면 지금 고민하고 계셨던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게···. 좀 놀라운 걸? 우리하고 전쟁할 때 이런걸 썼다면····.” 정운은 솔직히 놀라웠다. 이 세계에서 흔히 말하는 봉인지정 무기라는 것이 제법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세계의 군사력만큼은 가우리도 가볍게 보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 비중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게 바로 이 봉인지정 무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그런 봉인지정 무기 중에서도 한 층 더 강력해 보였다. “쓰기에 따라서는····. 이거 정말··.” 말을 못 잊고 있는 정운에게 미하엘이 말했다. “원래는 에리프릴 왕국의 과거 로드 중에 한 명이 혹시나 있을지 모를 다크니스 왕국과의 전쟁을 대비해서 개발한 무기라고 하더군요.” “그렇군···. 확실히. 이런 무기라면 우리 가우리나 나크니스라도 우습게는 못 보겠지.”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그런 정운에게 미하엘이 말을 이었다. “분명 강력하기는 하지만 약간 성가신 제약이 있습니다.” “흠··. 그건 그렇네. 이런 제약은 조금··. 눈 딱 감고 쓰자면 못 쓸 것은 없지만, 꾸준한 전력의 일환으로 삼기에는 힘이 들겠는데?” “예. 그래서 이 봉인지정 무기를 완벽하게 살릴 수 있는 또 다른 봉인지정 무기가 있는 국가를 본격적으로 집어 삼킬까 합니다.” “그게 어디지?” “당초 애정대로였던 성 세인트 왕국입니다.” 미하엘의 말을 들은 정운은 바로 즉답했다. “진행시켜.” “예. 알겠습니다. 이미 물밑 작업은 끝났습니다.” 정운의 허락을 받은 미하엘은 성 세인트 왕국을 본격적으로 뒤집어엎을 준비를 마쳤다. 성 세인트 왕국. 오랜 세월 동안 에리프릴 왕국과 반목한 이 나라는 기본적으로 종교 국가다. 마도 왕국인 에리프릴 왕국과의 차이점은 뭐니 뭐니 해도 사제들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이다. 국가의 운영은 귀족들이··. 그리고 국가의 전력이 되는 마법 연구와 수련은 메이지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분업이 되어 있던 에리프릴 왕국과 달리 성 세인트 왕국은 사제가 곧 귀족이나 다름없었다. 신을 섬기는 사제들이 국민들을 이끌고 있었다. 신성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높은 사제가 되어서 큰 직위에 오를 수 있었으니···.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종교 국가의 모델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이 세상이든 지구든 모든 종교에는 공통적인 성질이 하나 있다. 신앙 + 정치 = ? 보통 이 공식에서 좋은 꼴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는 엄청나게 어렵다. 신앙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믿음이다. 신도가 신을 믿고 따르는 것에는 의문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믿고 따르고 순종할 따름이다. 그게 일반족인 종교의 형태이다. 그리고 정치란 국가의 운영 시스템이다. 몇몇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를 이렇게 하자. 혹은 아니다. 저렇게 하자. 라고 진행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한쪽 방향으로 무한 폭주를 하면 절대 좋은 꼴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정치라는 것이 제대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냉철한 현실 파악이 필요한 것이다. 절대적 믿음이 필요한 종교. 냉철한 현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정치. 이 두 가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합치면 그저 믿음에 의한 믿음을 위한 믿음으로만 가득한 나라가 되어 버린다. 이건 최악이다. 아무리 잘못된 방향으로 가도 아무도 브레이크를 안 걸고 그 방향으로 맹목적으로 쭉 직진해 버리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가 절벽으로 돌진하는 것하고 무엇 하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종교적인 폭주가···.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성 세인트 왕국이다. 그렇다 보니 이 나라에서는 사제들의 권리가 엄청나게 강하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사제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자신들을 위한 방향으로 국가의 시스템을 조금씩 조금씩 수정해 왔고···. 일반 국민들이 사제들의 말에 거의 노예나 다름 없는 절대복종을 하게 되었다. 그 일 예를 들어서··. 모든 사제들의 공통적인 권한. 파문을 들 수 있다. 지구에서도 과거 카톨릭의 교황이 가지고 있던 권한 중에 하나였던 파문. 이 성 세인트 왕국에서는 모든 사제들이 평민을 파문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파문이라는 것은 이 사람은 더 이상 신의 자식이 아니다. 즉,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존엄성이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것으로 일단 파문당한 사람은 설령 무슨 짓을 당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신분이 뭐든 간에 상관없다. 설령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살인을 당한다고 해도 어디에 하소연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인간이 인간을 죽였을 때야 살인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 대상자가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당해 버리면 살인도 범죄도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파문당한 사람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꺼려지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파문당한 가족을 계속 감싸다가는 그 가족도 같은 족속으로 취급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교적인 국가인 성 세인트 왕국의 파문이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종교적인 권한이 큰 시대에는 그렇게 드문 일도 안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구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을 들 수 있다. 일국의 왕이었던 하인리히4세 조차도 파문만큼은 거둬 달라며 맨발로 눈밭에 무릎을 꿇고 교황에게 간청해야 했다. 종교적인 권위가 강한 세계에서 파문이라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재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제들의 권한이 나라의 지배계층에 있는 이상 에리프릴 왕국과 같은 느낌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역시 어려웠다. 실제로 가우리는 성 세인트 왕국에서도 에리프릴 왕국과 같은 수순으로 기업을 진출 시켰고, 생활 전반에 걸쳐서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에도 성공은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에리프릴 왕국과 같이 큰 혼란을 조장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역시 종교적인 기반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까? 종교 국가인 성 세인트 왕국을 불러일으키려면 좀 더 확실한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정면에서 공격해도 버티는 적이라면 뒤에서 공격하는 것도 하나의 수였다. 미하엘은 성 세인트 왕국에 진출한 지부에 지시를 내려서 성 세인트 왕국을 지배하고 있는 신전의 비리에 관해서 캐내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녀의 예상 이상이었다. “····이게 정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명색의 신을 모시는 사제라는 자들이··. 아니 물론 이 세계의 신이라고 해도 파우스트를 뜻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보고서를 받은 미하엘은 분노를 넘어서 어이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 천계의 천사인 그녀의 입장에서는 이 세계의 사제들의 타락한 모습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인간이 조직을 이룬 이상 그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다 수행한다는 것은 이상이다. 적든 많든 차이는 있지만 조직의 구성원 중에서는 반드시 썩어 버리는 자들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성 세인트 왕국의 사제들은 그 비율도 썩어버린 정도도 너무나 심각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신전에 내는 기부금을 들 수 있었다. 기부금은 보통 자율적으로 내는 것이었지만, 그건 명복상의 일일 뿐이고 기부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신전에서 병을 치료해 준다거나 새로 태어난 아이를 축복해 주거나 하지 않았다. 병원이라는 개념이 거의 전무한 이 세계에서 신전은 사실상 병마에 걸린 자들에게 유일한 대항 수단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신전에서 치료를 해 주지 않으면 평민들이 겪는 불편함은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치료비를 생각하고 신전에 돈을 줘야 한다면 기부금도 아주 불합리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부금을 꼬박꼬박 낸다고 해서 바로 치료를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치료를 해 줄 때는 그에 준하는 사례금을 따로 내야 했다. 즉, 기부금은 신전을 이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금이고, 그 신전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또 따로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중으로 돈을 지불해야 하고, 심지어 사람의 건강을 담보로 잡고 돈을 요구하니 그건 거의 착취나 다를 바 없었다. 어린애가 태어났을 때 해 주는 축복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는 몸에 저항력이 약한 상태이고 온갖 병원균에 감염되기 쉽다. 그래서 지구에서도 애들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고 말이다. 당연하지만 이 세계의 의료 수준으로는 예방접중은 고사하고 주사기라는 의료기구 조차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사를 놓을 것 없이 그냥 신관이 와서 축복 한 번 해 버리면 어지간한 잔병은 싹 떨어져 나간다. 이런 편리한 기능이 있는데 여러 번에 나눠서 맞아야 하는 예방 접종의 필요성이 생길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편리한 축복의 기능은···. 상당한 거금이 들었다. 거금이라고 해도 서민들이 절대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거금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아슬아슬하게 감당 가능할 정도의 적정선을 찾아서 최대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적정선으로 조정해 둔 것이다. 그냥 평범한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가격을 형성한다고 해도 비판 받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세계의 열악한 위생 상태와 영양 상태를 생각하면···. 축복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에 따라서 10세 이전에 아이들의 생존률이 확 차이가 나 버린다. 가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 생존률의 차이는 무려 다섯 배. 촉복을 받지 못한 아이의 경우 받은 아이에 비해서 사망률이 다섯 배나 높은 것이다. 명색이 신을 모신다는 사제들이 어린애들의 목숨을 걸고 이런 돈 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한 마디로 비열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신전의 횡포는 단순한 금전적인 착취에만 그치지 않았다. 기부금이나 신전의 보수를 위한 노동력 차출. 그런 것들은 비록 비열한 수단을 동원하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겉으로도 드러내 놓고 진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음으로 움직이는 일들 중에는 훨씬 더 비열하고 더러운 일들이 있었다. 인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력을 이루게 되면 그 세력의 안에는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그 세력 자체를 썩게 만들어도 개의치 않는 쓰레기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순수하게 원래의 목적을 잊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해서 건전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기는 있었다. 신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썩어 빠진 신전이라고 해도 그런 신전의 일부에는 높은 신앙심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순수하게 호의로 병자를 치료해 준다거나 어린애를 축복해 준다거나 하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 자들은 자연스럽게 민중의 지지가 높았고, 사랑 받았다. ============================ 작품 후기 ============================ 으으... 추석지나고 나니 눈꼽 만큼 있떤 비축분이 완전히 고갈 되었습니다. 이일을 어찌할지...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0화 <쓰레기장의 성녀> 당연하지만···. 이런 소수자들의 호의가 튀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이제까지 가난한 평민들을 착취해온 신전의 다른 사제들 쪽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런 청결하고 순수한 사제들은 눈엣 가시였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더러운 수단으로 그런 순수한 사제들을 몰아내고 타락 시켰다. 타락하고 더러운 사제들이 기존에 큰 세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 사제들은 순수하고 청결한 사제들이 약간 튀어 오르려고 하면 바로 찍어 눌렀다. 사실 성 세인트 왕국의 신전이 깨끗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타락한 사제들이 기존의 권력을 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임이 컸다. 신전을 깨끗하게 정화하려는 사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 마다 그들은 이단이다. 뭐다 하는 모함을 받고 사라져 갔다. 오히려 그런 사제들이 훨씬 더 고고하고 청렴한 사제들인데 말이다. 그리고 미하엘의 보고서에는 그 중에서도 한 명의 인물이 핵심 인물로 떠 올라 있었다. “레이시안 성녀라····. 이건 아무래도 내가 직접 한 번 만나봐야 하겠는데?” 그녀에 대한 보고서를 읽은 미하엘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가우리의 간부로서가 아니라 천사로서의 감이었다. 레이시안 성녀. 그녀는 신전의 성녀들 중에서도 좀 특이한 전력을 지니고 있는 성녀였다. 원래 그녀는 평범한 농부의 딸이었다. 만약 평범하게 자라서 평범하게 성장했다면··. 절대로 신전과는 무관한 인생으로 자랐을 것이다. 보통 신전에서 신관이 되는 존재는 막대한 기부금을 받고 수련신관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힘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는 열 살 무렵이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멧돼지에게 받혀서 크게 다쳤다. 그녀는 아끼던 개가 아파서 속상한 마음에 하룻밤 품에 안고 같이 잠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개가 다시 멀쩡해 진 것이다. 어제만 해도 오늘 내일을 확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너무나 멀쩡하게 살아난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그녀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에게 이상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그냥 좋은 일로 알았다. 자신의 딸이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마을의 주변 사람들도 그녀의 소문을 듣고 종종 신세를 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중상을 입은 사람도···. 그리고 아무리 중병에 걸린 사람도 그녀가 일단 손을 대면 바로 회복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소문은 바로 신전에 알려졌다. 신전에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 보통 아이가 신성력을 발휘 한다는 소문을 들은 신전은 서둘러 성기사단을 파견해서 그녀를 불려 들였다. 그리고 확인한 결과는 놀라웠다. 고작 열 살 정도의 소녀가 어지간한 대신관들도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전은 잠시 고민했다. 이 소녀를 이용할 것인가? 혹은 이단으로 몰아서 없애 버릴 것인가? 고민한 결과 의견은 이용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소녀의 나이는 고작해야 10살 정도···. 이런 어린애를 잘만 이용하면 신전에 큰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레이시안은 최연소 성녀라는 직함과 함께 신전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성 세인트 왕국에서 신전에 들어간다는 것은 출셋길의 왕도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다만···. 이제까지 그녀를 보호해주던 부모님과 친절한 이웃들과는 떨어져서 갑갑한 신전 안에서 사제들과 같이 지내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지만 말이다. 신전에서 성녀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어지간한 사제들 보다 훨씬 고귀한 존재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수한 신성력을 비교 할 때는 성녀들이 신관들 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경우가 많았다. 그 대신에 육체적인 강함을 겸비해야 하는 성기사의 경우는 남자들이 99%이상 독식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성녀라는 이름을 받으면 다른 나라의 귀족으로 비유 했을 때 최소 백작, 혹은 후작에 준하는 직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더구나 레이시안의 신성력은 다른 성녀들보다도 훨씬 더 독보적이었다. 그러니 신전에서 애지중지 하면서 키워졌다. 하지만 문제가 붉어진 것은 그녀가 자라면서 점점 신전의 행동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다. 돈만 밝히고 온갖 이권이 눈이 멀어있는 신전의 행동을 비방하기 시작한 그녀는 서서히 고위 신관들에게 눈엣 가시로 취급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붉어진 것은 추기경급 신관이 자신의 아들을 다른 신전에 고위 신관으로 승격 시킨 사건이었다. 원래 신관이라는 직업은 결혼을 할 수 없었고 당연하지만 자식도 가질 수 없었다. 성기사들이나 뭉크의 경우는 결혼을 할 수 있었지만 순수 신관이나 성녀들은 오로지 한 평생 신만을 모시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고위 신관들은 그런 계율 따위는 묵인하고 말만 아내가 아니지 거의 아내나 다름없는 여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한 명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명씩이나 애인을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실제 이런 경우는 지구에서도 있었다. 카톨릭이 가장 권세를 누리고 그 권력으로 인해서 가장 썩어 버렸을 때에는 사제들이 몰래 사생아를 낳고 그 사생아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는 경우도 실제로 일어났다. 성 세인트 왕국에서의 신전의 권력이라는 것은 그 카톨릭의 암흑 시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고위 신관들에게 숨겨진 여자와 자식들이 있는 것은 거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레이시안이 이런 부분을 건드리자 고위 신관들이 한 마음으로 그녀를 쳐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그냥 그런 형태로 몰아낸 것이 아니었다. 중간에 무슨 과정이 있었는지는 미하엘도 알아내지 못했지만···. 지금 레이시안은 성녀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성 세인트 왕국의 근교에 있는 집창촌에 있었다. 거기서 타락한 성녀라는 멸시를 받으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창촌에 눈부신 금발이 아름다운 세련된 미인이 등장했다. “여기인가?” 미하엘은 지저분한 거리를 보면서 중얼 거렸다. 보통 타국의 정세를 조작하는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직접 찾아왔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이 장소에 찾아온 것이다. 단, 가우리의 간부라는 직위를 가지고 찾아오면 여러 가지로 시끄러울 수 있기에 그냥 은밀하게 찾아왔다. “····음···.” 집창촌의 안쪽으로 찾아 들어간 미하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해도 떨어지기 전이었기에 사람들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집창촌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가 가득차 있었다. ‘천사 치고는 나도 인간을 많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건 도저히 이해를 모 하겠어.’ 미하엘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실 매춘업 같은 경우 인간의 이중적인 모순의 일면이기는 하다. 여성에게 창녀라는 호칭은 직업을 뜻하는게 아니라 모독을 뜻하는 것이다. 즉, 매춘업이라는 직업은 합법 불법을 넘어서 굉장히 천시되는 직업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매춘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걸 꾸준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생산과 수효. 이 두 가지가 성립하는 이상 그 산업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매춘도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사라질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천시하고 경멸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이어진다.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보통 좋은 것은 발전 시키고 나쁜 것은 없애가면서 문명을 발전해 온 것을 보면···. 나쁘다고 취급하면서도 계속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는 매춘업은 확실히 모순적인 것이었다. 인간들도 이런 매춘업에 대한 정의를 확실하게 내리지 못하는데 천사인 미하엘이 그걸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 할 것이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집창촌에 들어오기에는 미하엘은 너무나 미인이고 눈에 띈다는 것이다. “헤에···. 이게 누구야?” “어디서 이런 예쁜이가 굴러 들어왔을까? 일자리 알아보러 왔니?” “우리가 테스트 해 줄까?” 미하엘에게 날벌레들이 달라붙은 것은 꿀에 개미들이 달라붙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었다. 집창촌이라는 곳은 음성적인 곳이고··. 이런 곳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법이다. 그렇다 보니 그저 주먹 하나 믿고 횡포를 부리는 쓰레기들이 즐비하기도 했다. 놈들에게 미하엘 처럼 아름다운 여성은 사냥감이었다. 눈앞에 미하엘 같이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난 시점에서 이미 사냥 본능이 발동하는 것은 이 놈들의 습관, 아니 거의 본능 같은 것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 “흠··. 마침 안내가 필요했던 참인데. 잘 됐군.” “응? 안내?” “하···. 이 년이 미쳤나?” “미친년한테는 뭐가 약인지 내가 잘 알지. 오빠한테 혼 나 볼래?” 미하엘은 허세를 눈을 부리면서 위협하는 놈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누님 잘 못 했습니다.” “으으···. 이제 그만 좀 때리세요.” “저희가 잠시 미쳤습니다. 한 번만 봐 주세요.”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미하엘 한테 애걸복걸하고 있는 놈들의 태도는 몇 십여 분 전하고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긴, 정말 살벌하게 맞았으니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천사라고 해도 태어나고 난 이후 쭉 정운과 함께 지낸 미하엘이었다. 워낙 과격한 가우리의 간부들하고 함께 지내다 보다 일까? 보통 천사들과는 전혀 다른 과격함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다. 이 쓰레기들을 본 순간 그녀가 한 생각은 일단 패고 보자였다.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인물도 패면 알아듣게 된다는 것이 정운에게서 배운 그녀의 상식이었다. 천사 하나를 버려 놓았다고 해야 할까? 뭐 효과는 확실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제 말 귀를 알아들을 준비가 된 놈들을 보고 미하엘이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다.” “예. 사람요?” “그래. 레이시안이라는 전직 성녀가 여기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미하엘의 말에 놈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 년은 저희 가게 상품입니다.” “상품이라·····.” “예. 그렇···. 습니다. 그런데 혹시··. 아는 사이인 것은···.” 미하엘의 눈치를 보는 놈들의 말에는 조금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미하엘이 무심한 눈으로 말했다. “아는 대로 말해라.” “예?” “아는 대로 다 말하라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두. 하나도 빼 놓지 말고.” “예? 예···. 예.” 미하엘의 말에 놈들은 허겁지겁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성녀라는 것은 신전의 얼굴이자 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하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떤 성녀들 보다 더 강력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레이시안이 이렇게 떨어진 경위에 관해서는 이들도 몰랐다. 다만,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어떤 남자들이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넘기면서 절대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경고를 남겼다고 했다. 그리고 도망가지만 않게 한다면 어떻게 해도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가능하면 최대한 나락에 나락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라고 했다. 이놈들은 그날 바로 돌아가면서 그녀를 범하고 폭력과 협박을 이용해서 그녀를 창녀로 만들었다. 고귀한 성녀가 집창촌의 창녀로까지 전락한 것은 금방 소문이 났다. 결국 이 근방에서는 그녀에 관해서 모르는 남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것이다. “저···. 저희가 아는 것은 이게 다인데요?” “········그래. 알았다.” 미하엘은 고개를 저으면서 중얼 거렸다. ‘아무래도 사전에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무리네. 본인을 직접 만나서 말해봐야겠어.’ 더 이상 정보를 수집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느낀 미하엘은 그냥 그녀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가능하면 본인을 직접 만나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저 레이시안이라는 성녀가 성 세인트 왕국 공략의 중요 인물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1화 잠시 후. 미하엘은 어느 판자집의 앞에 도착했다. 여기에 레이시안이라는 전직 성녀, 그리고 현직 창녀라는 독특한 경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하엘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존재가 마음에 강하게 걸렸다. 끼이익···. 삐걱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기에는 갈색 머리에 단아한 인상을 지닌 여자가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그냥 앉아 있는게 아니라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양 손을 모으고 뭔가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본 순간 미하엘은 한 눈에 알아봤다. ‘신성력? 그것도 진짜 신성력?’ 미하엘은 왜 자신의 감이 계속해서 경고를 한 이유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 레이시안이라는 여자의 몸에서 풍겨 나오고 있는 기운은 신성력이었다. 그것도 이 세계에서 파우스트가 나눠주는 왜곡된 신성력이 아니라 진짜 신성력이었다. 천사인 그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의 몸에서 나오고 있는 기운이 진짜 신성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혹시···. 아니야. 그럼 내가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미하엘은 순간 그녀가 세레나의 영혼을 소유한 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미를 비롯한 아이들을 천계에 가서 정밀하게 검사한 결과···. 그 아이들의 영혼 깊숙한 곳에 세레나의 영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전에도 아이들을 조사하기는 했었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워낙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작정하고 조사하지 않으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세레나의 영혼의 일부를 채집했고 그것을 미하엘이 가지고 있었다. 즉, 그녀는 세레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를 보면서 세레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눈앞에 있는 레이시안이라는 여성은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눈을 감고 있던 상대가 눈을 뜨더니 미하엘을 보면서 말했다. “고귀한 분으로 보이시는 군요.” “····그렇게 보입니까?” “예. 신의 사자로 보이시는데···. 저를 어째서 찾아오셨나요?” “·········.” 역시 범상치 않았다. 한 눈에 미하엘이 천사라는 것을 알아본 그녀의 눈동자는 청정한 호수를 보는 것처럼 맑았다. 누가 이 여자를 보고 창녀라고 할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고귀해서 감히 손대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귀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아무리 더럽힌다고 해도 절대로 더럽혀지지 않는 것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미하엘은 그녀를 더 이상 여기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말했다. “일단 나가시죠. 그리고 거기서 얘기 하도록 하죠.” “예. 알겠습니다.” 미하엘의 제안에 그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다만 그 후에 미하엘에게 한 마디를 덧 붙였다. “나가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만···. 조금 부탁이 있습니다.” “뭐죠?” “여기에 있는 다른 여성들 까지 함께 데리고 갈 수 있을까요?” “······상관 없습니다.” 미하엘은 조금 생각하다가 허락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레이시안은 수십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녀들 전원이 친구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어려울까요?” 레이시안의 말에 미하엘은 고개를 저으면서 ㅁ라했다. “아니요. 별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두 데리고 가도록 하죠.” 미하엘의 말에 다른 여자들은 잔뜩 긴장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레이시안 언니 말 대로였어····.” “내가 말했잖아? 언니 말은 믿을 수 있다고···.” “흑··. 흐아앙···.” 긴장이 풀린 여자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개중에는 울음을 터트린 여성들도 있었다. 원래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힘겹게 뒹굴고 있는 그녀들은 좀처럼 사람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예외였다. 처음에는 오히려 경계했다. 원래 고귀한 신분이었던 여자가 자신들과 같은 바닥으로 떨어진 것에 조소도 보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스스로 처지를 비관하며 목을 매달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달랐다. 살아남은 것은 물론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감싸고 있는 성스러운 분위기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신성력으로도 주변에 다른 창녀들의 상한 몸을 돌봐주기까지 했다. 열과 성을 다해서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은 다른 창녀들에게 큰 감동과 신뢰감을 주었다. 여기까지 떨어진 여자들은 대부분 기구한 팔자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선의를 받아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레이시안은 자신들에게 엄마나 누나처럼 헌신적인 선의를 보여주자 크게 감동한 것이다. 십년 넘게 이 바닥에서 뒹굴면서 눈물도 다 말라 버린 것 같은 여자도 그녀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를 따라서 따라 나오는 창녀들은 미하엘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레이시안이 괜찮다고 말을 하자 그녀의 말을 믿고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량으로 여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포주가 아니었다. 미하엘이 여자들을 이끌고 나가자마자 험상굳은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XX년들이!!! 대 낫에 어디를 튀려고 그래!!? 다 죽고 싶냐? 이 XXXXXX XXX·····.” 걸쭉하게 욕을 하는 포주와 험상궂은 폭력배들을 보자 여자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자신들을 항상 착취하고 폭력으로 굴복 시키던 공포의 대상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미하엘에게 말했다. “부탁 드려도 될까요?” “예. 그렇게 하죠.” 그리고 미하엘은 앞으로 나가서 손을 털면서 눈앞에 있는 쓰레기들에게 말했다. “목숨 아까운 놈들은 3초 줄 테니 비켜라.” 눈부신 금발에 세련된 이목구비. 가녀린 체격을 하고 있는 미하엘의 말에 상대들은 침묵했다. 지구와 달리 이 세계에서는 겉모습이 가녀리다고 해도 괴물 같이 강한 여성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존재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뒷골목 쥐새끼 신세인 자신들의 목숨은 풍전등화였다고 할 수 있었다. 저렇게 당당한 상대를 보고 있자 혹시 그런 부류의 괴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젠장 어떻게 하지? 똥 밟는 것 아니야? 하지만 여자들이 다 도망가면 당장 장사는 어떻게 하고···. 하지만 진짜 똥이면··. 하지만 장사는···.’ 갈등하는 포주의 고민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무한 연쇄를 끊어준 것은···. “그냥 맞아라.” 퍼억!!! 미하엘의 주먹이었다. 포주의 안면을 함몰시킨 한 방을 시작으로 미하엘은 천사답지 않은 누님 포스로 주먹을 풀면서 말했다. “3초는 진작 지났으니··. 너희들도 다 맞자.” 그리고 폭력배들이 뭐라고 대답도 할 틈 없이 구타의 향연이 펼쳐졌다. “아악!! 사·· 사람 살려!!!” “으악!! 내 팔···.” “악마다!! 이 년은 악마야!!!” “누구보고 악마래!!!?” 미하엘을 보고 악마라고 한 놈은 특히 더 맞았다. 그 놈은 자신의 양팔을 부러트리고 정강이 뼈를 짓뭉게 버리는 여자가 악마가 아니라 천사라는 것을 평생 모를 것이다. 성 세인트 왕국의 가우리 기업의 지부. 그곳의 귀빈실에는 한때의 여성들이 모여서 통쾌한 웃음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봤어? 그 새끼들이 벌벌 떨면서 애원 하는 거···.” “호호호··. 진짜 내가 살다 보니 그런 날도 다 있더라··. 내가 그 새끼들한테 5년 내내 맞고 살았는데···.” “나도 그랬어··. 그 개 같은 새끼들···.” “개 같은게 아니라 그냥 개새끼들이지 뭐.” “그래. 그런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하는 거지?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나도 몰라. 오면서 봤는데··. 여기가 말로만 듣던 가우리의 기업 본사 건물이라고 하던데?” “여기가? 진짜?” 집창촌에 틀어 박혀서 어지간하면 세상에 나올일이 없는 그녀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우리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나라.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로 발전된 나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하루 남자들에게 몸 팔며 살아가는 그녀들에게는 딴 세상의 일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말로만 듣던 가우리의 기업에 그것도 귀빈실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그제야 미하엘의 정체가 가우리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여기서 뭐라고 말해봐야 알 수 있는 진실은 거의 없었다. 진짜 진실을 알기 위한 대화는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미하엘과 레이시아는 따로 방에 가서 서로 간에 필요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말 해 주실 수 있나요?” 미하엘은 별다른 왜곡 없이 바로 직구를 날렸다. 이리저리 꼬아서 목적을 캐내기 위한 화술을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눈 앞의 상대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할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레이시아는 순순히 자신의 지나온 과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미하엘이 알던 부분은 그녀가 최연소 성녀로 귀한 대접을 받다가 결국 기존의 신전의 세력과 충돌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집창촌으로 팔려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과정의 얘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집단 성폭행? 그것도 성기사들이!!?” 미하엘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성기사들이라는 자들이····.’ 이 세계의 사제들이라고 해도 미하엘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이단일 뿐이었다. 신에게 반기를 든 파우스트가 만든 세계에서 파우스트를 섬기는 사제들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제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이상··. 성직자 나름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신전에서 성스러운 간판으로 내세우는 성녀를 마찬가지로 청렴하고 고고한 신전의 무력이자 정의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성기사들이 집단으로 성폭행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건···. 제가 봉사활동을 위해서 문둥병 환자들을 치료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레이시안도 그렇지만 성녀들이 봉사활동을 할 때는 상상 그에 걸 맞는 행렬이 갖춰지고는 했다. 성녀를 호위하는 성기사들, 따라오는 수련 기사들, 그리고 성녀의 시중을 들어주는 시종들까지··.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줄줄이 달고 이동하면서 각지에 들릴 때 마다 그 지역의 신전과 백성들에게 거창한 환영식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이건 굉장히 변질된 것이다. 원래 성녀의 봉사 수행은 최대한 간략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그냥 성녀 한 명에 성기사 한 명 혹은 두 명이서 호위로 달라붙어서 민중을 위해서 순수하게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도와주고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포교를 하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었다. 원래는 거창하게 진행하는 행사가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변질 되어서 이렇게 큰 행렬을 이루게 된 것이다. 변질된 것은 행렬의 규모만이 아니었다. 원래는 무료봉사로 민중을 위한 성직자의 자기 수행이 목적이었던 이 행렬은 어느새 돈 벌이를 목적으로 한 행사가 되어 버렸다. 원래 이 행사에서 성녀가 받는 보수는 다음 마을로 가기 위한 노잣돈 정도, 그리고 그때까지 끼니를 때울 정도의 양식이 다였다. 하지만 이제는 성녀의 행렬이 오기면 하면 이미 오기 전부터 해당 마을이나 도시의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성녀의 행렬에 바쳐야 했다. 강제적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돈을 내지 않으면 단단히 찍히기 때문에 사실 거의 강제나 다름없었다. 다만, 레이시안은 자신의 행렬에게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절대로 돈을 받지 말라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세레나의 영혼이 아니냐? 라는 말이 있는데 세레나하고는 무관... 아니 뭐 아주 무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관하다고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2화 당연하지만 호위하는 성기사들이나 수행 사제들은 그런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녀의 행렬에 따라간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울 수 있는 좋은 돈 벌이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레이시안 몰래 따로 돈을 걷었고 그런 그들의 행동은 레이시안에게 걸렸다. “제가 분명 돈은 걷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하지만 레이시안 성녀님. 성금은 신도들의 정성입니다.” “그 정성을 모으기 위해서 아이들이 굶어야 합니다. 그런 돈을 받으면서 진정 신을 모시는 사제라고 할 수 있습니까?” “···········.” 레이시안 성녀의 말에 수행을 따라온 성기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렇게 이상론만 늘어놓는 레이시안 성녀의 말은 그에게 있어서 무척 거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시안 성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돌려주십시오. 만약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는 신전에 보고하고 징벌을 내릴 것입니다.” “··········.” 레이시안 성녀의 말에 성기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척이나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멋대로 성녀의 앞을 나가 버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가자 다른 성기사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가리온 기사님. 어쩔 겁니까?” “뭘 말이냐?” “저렇게 멋대로 하게 놔두실 거냔 말입니다. 가리온 기사님의 위치를 생각하면 고작 성녀 하나한테 휘둘릴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음.” 가리온이라는 성기사는 고민했다. 사실 성녀의 직위는 신전에서도 독보적인 것이라서 추기경급의 고위 사제가 아닌 이상 성녀보다 높은 직위는 거의 없었다. 성기사의 경우 1급 팔라딘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성녀와 급수를 나란히 놓을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 성녀의 수행 행렬 중에 성녀인 레이시안 보다 높은 직위의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서이고, 이 가리온이라는 성기사는 사실 아버지가 추기경 중에 한 명이었다. 물론 대외적으로 당당하게 알릴 수 있는 부자지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직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고참 성기사들 역시 가리온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흠···. 좋다. 저 년에게 주제를 알게 해 주지.” 그렇게 말하는 가리온의 눈은 비열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날 밤. 레이시안은 병자들을 치료하고 피곤한 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후우·····.” 다른 수련 사제들이 모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문둥병 환자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사제에게 문둥병이 옮을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징그러운 그들의 외모와, 또 레이시안 성녀에 대한 일종의 반항의 의미였다. 결국 수백 명씩 몰려온 환자들을 레이시안 성녀가 혼자서 다 치료해야 했다. 아무리 그녀의 신성력이 광대하다고 해도 한 명 한 명을 정성껏 하루 종일 치료하다 보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몸을 누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꼼짝마라!!!” 한 무리의 복면을 뒤집어 쓴 남자들이 나타나서 그녀를 덮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팔 다리를 봉쇄하고 그녀를 제압한 남자들은 그녀의 옷을 찢어 버리기 시자했다. “누구 없나요!!? 여기···.읍!!!” 레이시안은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이 그녀의 목에 나이프를 들이대면서 말했다. “입 조심 하는게 좋아. 누군가가 온다면··. 그 놈도 목을 따버릴 뿐이니 말이야. 아니면 아무도 못 들어오게 이 여관의 인간들을 다 죽인 다음에 시작할까?” “·············.” 레이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섣불리 반항을 하면 이 여관의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반항하기를 그만두자 복면남은 본격적으로 레이시안 성녀에게 달려 들었다. 그녀의 옷을 찢어 빨기고 뽀얀 젖가슴이 들어나자 거기에 얼굴을 묻고 흥분한 개처럼 그녀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읍·······.” 레이시안은 이 상황에서 그저 이를 악물 뿐이었다. 신전에서 순결하고 고고하게만 자란 레이시안이다. 심지어 여성으로서의 최소한의 성에 대한 교육도 받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다. 성녀가 성교육을 받아서 어디 써 먹는단 말인가? 어차피 평생 신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하는 삶인데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젖가슴을 아프게 주무르며 다른 한쪽의 유두를 입으로 빨아 당기는 남자의 행위는 생리적인 혐오감을 주었다. 그리고 복면남 들의 행동은 거기서 멈추지도 않았다. 놈들은 레이시안의 사지를 꽉 고정 시킨 상태로 반항도 하지 못하게 했고, 레이시안의 가슴을 희롱하던 놈은 득이양양하게 레이시안의 다리 사이의 음부에 자기 흉물을 가져가더니 단 번에 밀어 넣었다. “윽·····.” 레이시안은 이를 악 물고 참았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고 성녀로서 꼭 지켜야 할 순결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 그녀를 절망감에 빠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시안을 범하는 놈은 음욕이 눈이 멀어 잔뜩 흥분해서 레이시안을 능욕해 갔다. “흐으읏···. 성녀를 범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일까? 흥분 되는데?” “···········.” 레이시안은 그저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저 참고 견디는 것 말고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읏··. 간닷···.” 이윽고 레이시안의 위에서 발정난 개처럼 흥분하던 놈은 이윽고 그녀의 안에 파정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놈이 몸을 일으키자 거기에는 무참하게 능욕당하고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만 보고 있는 레이시안이 있었다. 순결을 평생 지켜가야 하는 성녀가 결국 무참하게 자기 순결을 잃어버린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명이 끝나고 일어나자 다른 놈이 다시 레이시안의 배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놈들은 힘없이 출 늘어진 레이시안을 돌아가면서 계속해서 범했다. 짓밟히는 성스러운 성녀와···. 그 성녀를 짓밟으면서 자신의 육욕 밖에는 관심이 없는 짐승들···. 잔인함 밤이 그렇게 흘러갔다. “으··. 으으···.” 레이시안의 골반을 잡고 있는 힘껏 허리를 밀어 붙이는 놈은 절정의 쾌락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레이시안을 능욕한 놈은 레이시안의 엉덩이를 찰싹 치고는 마치 창녀를 대하는 것 같은 태도로 말했다. “후후··. 아주 타고났군. 좋았다.” 레이시안의 몸은 엉망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놈들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마다 강하게 뺨을 맞아서 입안이 터져서 피가 흘러 나왔다. 실제로 놈들이 아무리 협박을 해도 레이시안은 복종하지 않았다. 몸은 더럽혀져도 마음은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항도 놈들의 협박에는 어쩔수 없었다. “말을 안 들으면 이 여관이 다른 놈들을 네 년 눈앞에서 죽여 버리겠다.” 라는 협박에 레이시안은 자존심도 접어두고 놈들의 요구에 순순이 응할 수밖에 없었다. 고귀한 성녀였던 그녀가 업드려서 개처럼 엉덩이를 흔들는 추태를 보일때는 놈들 사이에서 뭐가 그리 좋은지 폭소가 터졌다. 그럴 때 마다 레이시안은 이를 악물고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으음···. 난 여기까지 할까? 파정을 하고도 뭐가 아쉬운지 레이시안의 몸의 여기저기를 주물럭 거리던 놈은 입맛을 다시면서 떨어졌다. 그리고 놈이 떨어져 나가자 레이시안은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서 미동도 못하고 숨만 쉬고 있었다. “어디 더 하고 싶은 사람 있어?” “하··. 이미 질리도록 했습니다.” “저도입니다. 이거야 허리 아파서 원···.” “그렇지? 그래도 흔하지 않은 기회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할까?” 사양하는 놈들 중에 한 놈이 다시 한 번 레이시안을 범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때···. “가리온 기사····.” 레이시안의 입에서 정확하게 상대를 지목하는 이름이 나왔다. 그러자 다가오던 복면남은 움찔했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의문이 확신으로 변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마법 도구로 목소리를 변조하고 피부 색깔까지 변조했지만···. 놈들으 말투에서 레이시안은 기사단 특유의 말 버릇을 눈치챈 것이다. “제 호위를···. 속이고 파고든게 아니라··. 호위 기사들이 직접 나를 ···· 범했군요?” 그녀의 말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다른 성기사들도 모두 움찔했다. 아무리 가리온의 아버지가 고위 신관인 추기경 중에 한 명이라고 해도 이런 스캔들은 들통 나서 좋을게 없었다. “흥, 누구하고 착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잘못 봤다. 우린 그냥 성녀로 위장하고 있는 더러운 마녀가 있다기에 벌을 내리기 위해서 온 것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놈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른 놈들도 모두 밖으로 나가고 레이시안은 그저 힘없이 쓰러졌다. 그 후···. 레이시안은 신전에 자신을 범한 성기사들을 고발했다. 보통 여자의 수치심고 성녀라는 지위를 생각하면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하려고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공개적인 고발을 한 것은 그녀의 고지식한 성품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고지식한 성품이 다시 한 번 그녀에게 화를 불렀다. 공개적으로 고발을 한 이상 누군가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일을 주동했던 가리온과 성기사들은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다른 성기사들이 대신 용의자에 올랐다. 그들은 자신이 레이시안을 범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냥 자신들의 죄만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레이시안 성녀는 고귀한 성녀의 신분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먼저 유혹 했습니다.” “맞습니다. 심지어 자신과의 관계를 거절하면 그때는 성녀로스의 직위를 이용해서 우리를 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입니다.” “저희들의 죄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부디 저 부도덕하고 문란한 레이시안 성녀에게도 벌을 내려 주십시오.” 레이시안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당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애당초 저들은 총대를 메고 대신 이 자리에 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레이시안에게 더 큰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 그 결과···. 레이시안은 자신의 성녀라는 지위를 남용해서 젊은 성기사들을 유혹하고 타락으로 이끈 마녀로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등에 신성력을 봉인 시키는 봉법진을 문신으로 새겨지고 결국 쫓겨난 것이다. 그냥 신전에서 쫓겨난 것에 그치지 않고 가리온은 그녀를 몰래 잡아서 집창촌으로 팔아 버렸다. 고귀한 성녀인 그녀를 바닥에 바닥까지 떨어트려 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는 비열한 생각에서였다. 그 후에는 미하엘이 알고 있는 대로였다. 그녀는 고귀한 성녀에서 천하고 멸시 받는 매춘부로서 오늘까지 살아와야 했다. 다만··. 신전에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녀의 등에 성력을 봉인하는 봉법진을 그렸다. 보통 그러면 신성력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신성력은 점점더 강해졌고, 최근에는 봉법진으로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력을 사용해서 회복마법을 거는 것이 가능해질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73화 <성녀 다시 태어나다> 레이시안의 설명을 모두 들은 미하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 이 세계의 신을 믿고 있는게 아닌 것 같군요?” 그런 그녀의 말에 레이시안은 별로 놀랍지도 불쾌하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저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레이시안은 신전에서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강한 배신감이 들었고···. 그로 인해서 이제까지 믿고 있던 파우스트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파우스트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버리자 자신의 신성력이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 더 강해졌다기 보다는 마치 이제까지 가로 막고 있던 댐이 사라져 버린 강줄기처럼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건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신성력이라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에 대한 믿음이 그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믿음이 사라져 버린 지금에 와서 더 강력한 힘을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서 레이시안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생각하면···. 애당초 이상한 일이었어. 어째서 난 아무런 수련도 하지 않았을 때부터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지? 오히려 지금 생각하면, 어렸을 때의 신성력은 훨씬 더 강했어.’ 어린 소녀일 때는 정말 죽음 직전의 중상자라고 해도 그녀가 손을 쓰면 바로 회복했다. 거의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신전에서 수행을 쌓으면서 그녀의 신성력은 조금씩 약해져갔다. 그때는 신전의 알력 싸움과 부패한 신전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타락한 신관들 중에서도 상당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의 존재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애당초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이 주신 파우스트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모든 해답이 되지 않을까? 이 세계에서 신이라는 것은 주신 파우스트 한 명만을 뜻했지만···. 그녀는 그 파우스트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오히려 더 강력한 신성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신성력을 베풀어주고 있는 또 다른 신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 가설을 세운 이후···. 레이시안은 매일매일 기도했다. 집창촌에서 창녀로서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마음을 정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몸이 더럽혀 진다고 해도 마음과 영혼만큼은 정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나날이 기도했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저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자신의 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그녀는 미하엘을 만났을 때 확신했다. 미하엘에게서 느껴지는 신성한 느낌은···. 틀림없이 자신의 신이었다. 레이시안의 소감을 모두 들은 미하엘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의 신은, 지구의 신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파우스트 역시 그분의 창조물 중에 하나일 뿐이니 이 세계에서도 그분은 신이겠죠.” 미하엘의 말에 레이시안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있었군요. 저의 신은···. 확실히 있었군요.” 믿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힘든 믿음이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존재를 자신의 믿음 하나만으로 따르고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고행이었다. 마치 끝없는 망망대해를 언제까지나 표류하며 언제 나올지 모를 육지를 찾아해메는 표류자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녀는 자신의 신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악!!! 레이시안의 몸에서 후광이 비치면서 막대한 성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등에 낙인처럼 새겨져 있던 봉법진이 산산조각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서 황금색 빛으로 이뤄진 날개가 펼쳐졌다. “음? 이건···?” 미하엘은 저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저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홀리 에볼루션. 신앙심이 극한에 도달했을 때 그 대상자가 인간과 전혀 다른 상위 존재로 진화하는 것이다. 천사와 같은 위치의 존재로 진화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천사와는 다르다. 세레나의 경우처럼 살아생전 훌륭한 신앙심과 희생정신을 보인 성인들이 천계에 박탈 되어서 천사가 되는 경우와는 다르다.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존재를 두고 천계에서는 홀리 엔젤이라고 부른다. 천사들 보다 오히려 더 희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힘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같은 최고위 치천사들에게 필적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현상이 지구에서도 아니고 파우스트가 만든 신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미하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과연, 신앙심은 오히려 박해 받을 때 진정한 빛을 발한다는 건가?” 미하엘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리고 후광 속에서 레이시안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지상으로 내려와서 서서히 눈을 뜨는 그녀는 입고 있던 옷이 모두 터져 나가고 태어난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설령 남자가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절대 음란하거나 무례한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왜일까? 레이시안 그녀가 아름답지 않아서?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홀리 엔젤로 거듭난 그녀는 훨씬 더 아름다워 졌다. 원래도 아름다웠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이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백옥 같은 피부. 우아한 이목구비. 너무나 유려한 여체의 곡선. 그런 것으로 설명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아득하게 넘어서 있었다. 다만, 굳이 비교를 하나 하자면 지금 이 방안에 있는 두 명의 여자 중에 한 명은 천사다. 그것도 그냥 그런 천사가 아니라 치천사 미카엘의 분신으로 만들어진 여성형 천사다. 당연한 얘기지만 순수하게 미모만 놓고 보면 세상 어디를 가도 꿀린다는 얘기를 들을 리가 없다. 오히려 고고하게 세련된 이미지와 더해진 미하엘은 이미 지구에서는 유명인이었다. 가우리의 수상인 정운의 개인 비서의 미하엘은 몇 장의 사진이 지구에 떠돌았고···. 화보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폰에 찍힌 사진 몇 장만으로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서. 지적인 아름다움의 극한. 세계를 움직이는 천상의 미모. 그런 수식어들이 따라다니면서 연예인도 아닌 미하엘에게 엄청난 팬클럽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그런 미하엘이···. 말 그대로 천사인 미하엘이····. 지금 눈앞에 있는 레이시안과 비교하면 약간 수수해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새롭게 진화한 레이시안의 미모는 눈이 부셨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성스러움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정녕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그녀에게 미하엘이 말했다. “기분은 어떠신가요?” 미하엘의 말에 레이시안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무척 좋습니다. 다시 태어난 것 같군요.”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은 다시 태어났죠.” “그렇군요···. 그래서일까요? 제 힘의 근원··. 아니 존재의 근원도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미하엘은 조금 조급하게 물었다. 혹시나 세레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레이시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는 영혼들은 대부분 악마들의 유혹에 넘어온 자들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이러스처럼 파고든 한 명의 엑소시스트 신부와 그 신부가 퇴치하려고 한 악마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둘이 어떻게 그 세계에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일종의 버그라고 해야 할까? 신부가 엑소시스트로서 악마를 퇴치하는 과정에서 악마가 마지막 발악을 했고···. 결국 그 악마의 발악이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라운드 제로로 이어졌다. 그 후 악마는 신부의 영혼에 침식해서 조금씩 조금씩 신부의 영혼을 더럽혀 갔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어린애의 영혼들을 먹어치우면서 조금씩 힘을 키워가던 그 악마의 행동이 멈춘 것은 우연히도 자신의 악행이 세레나에게 발각되면서였다. 세레나가 그 악마의 악행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악마는 결국 소멸 되었고 신부의 영혼은 마지막에나마 구원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신부는 세레나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신앙심을 담은 하나의 성유물을 남겼다. 그리고···. 그 성유물은 그라운드 제로의 마지막 전투에서 정운이 파우스트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에 가장 결정적인 조커가 되었다. 비록 엑소시스트 신부의 영혼은 이미 해방되었지만···. 그가 남긴 신앙심은 세레나라는 고위 천사에게 전이 되었고, 그 후에 다시 한 번 박정운이라는 그라운드 최강의 유저를 통해서 파우스트에게 깊숙하게 박혔다. 그리고 그것은 파우스트가 이 세계를 창조하면서 이 세계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작아서 거대한 산 속에 파묻힌 돌맹이 하나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존재감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가 만들어지고 수만년 동안 그 작은 신앙심은 점점 단련되고 단단해져갔다. 마치 그냥 탄소 덩어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다이아몬드로 변해가는 것처럼···. 그 신앙심은 더욱더 찬란하고 단단하게 변해갔고, 이윽고는 이 세계의 인물에게 깃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 신앙심에 선택받은 존재가 바로 레이시안이었던 것이다. “그런··. 우연도 정도가 있지···.” 설명을 다 들은 미하엘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또 열 번은 더 우연이 겹친 상황이었다. 기적이란 말은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쓰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기 힘들어하는 얼굴을 하는 미하엘을 보면서 레이시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지금은 제 힘의 근원을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이시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미하엘은 차분하게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은 가우리의 입장에서는 큰 해운이다. 아무리 파우스트라고 해도···. 레이시안의 존재는 아마 계산 밖일 것이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 순수한 신앙심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든 지웠을 것이다. 세레나의 경우 정운과의 관계가 있으니 이용 가치라도 있겠지만···. 이런 순수한 신앙심의 결정체를 그냥 남겨둬 봤자 그냥 위험 부담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레이시안이 자신의 눈앞에 있고, 심지어 홀리 엔젤로 진화까지 했다는 것은···. ‘비장의 카드가 될 거야.’ 이날, 가우리는 작게는 성 세인트 왕국을 무너트릴 카드를 손에 넣었고···. 크게는 파우스트의 계산을 무너트릴 수 있는 비장의 조커를 한 장 손에 넣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시안 성녀.”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정운님.” 정운은 레이시안을 직접 만났다. 순백색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레이시안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운 역시 그런 레이시안에게 일국의 수장을 대하는 것 보다 더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하엘에게 보고를 들은 정운은 그녀의 중요성을 한 번에 인식했다. 다 떠나서 우선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 자체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 세계에서 성녀라는 존재는 막대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전투력은 전무했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이제 그냥 성녀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엑소시스트인 신부에 관해서 많은 분들이 잊어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4화 <결의 남매> 홀리 엔젤로 진화한 그녀의 힘은 가우리의 최강자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정운이나 박추성, 배대호, 이민지와 더불어서 최강의 영역에 있었다. 다만 아직 전투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직접 싸우면 약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전투의 경험치는 가우리에서 충분히 키워 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앞으로 있을 성 세인트 왕국의 공략에서는 핵심 아이콘이 되어줄 그녀였고···. 무엇보다 파우스트를 향한 최고의 비수가 되어 줄 수 있었다. 정운으로서는 설령 미국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그녀보다 더 중요한 귀빈은 아니었다. “뭔가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말씀만 해 가능한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정운이 뭐든 다 들어준다는 말은···. 정말 불가능 한 일만 아니라면 뭐든지 다 들어준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평생 동안 써도써도 마르지 않는 부를 원한다고 해도···. 설사 일국의 왕이 되고 싶다고 해도··. 정운에게는 모두 들어줄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운의 말에 레이시안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해다. “제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운님이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서 들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없는 물욕의 레이시안과 달리···. 정운은 그렇게 담담하게 대답 할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정운에게는 실제로 원하는 것들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레이시안의 힘이 꼭 필요했다. 레이시안은 그런 정운의 심정을 알았기에 순수한 선의로 정운을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는 것이 간절한데 상대방은 아무런 도움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 정운은 조금 부담감을 느꼈다. 원래 어지간하면 타인에게 빚을 지지 않는 정운이었다. 그럴 일도 거의 없었지만 혹시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해도 그 빚을 몇 십 배로 갚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정운이었다. 그런 정운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레이시안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정 저에게 뭔가를 베풀고 싶으시다면···. 글쎄요? 저하고 같이 데이트라도 해 주실래요?” “예? 예? 에?” 정운은 깜짝 놀라서 혀를 깨물 정도였다. 천하의 박정운이 이렇게 놀라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레이시안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여자랍니다. 뭔가 이상한가요?” “아니··. 저기 그게 그러니까····.” 천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정운이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미하엘은 무척 신기한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레이시안은 살짝 새초롬한 표정을 하고 정운에게 말했다. 그녀가 그런 얼굴을 하는 것 만으로도 어지간한 남자라면 어쩔 줄을 몰라할 것이다. “뭐든 들어주신다고 하고서는···. 여자를 부끄럽게 하실 생각인가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놀랍게도 정운은 정말 쩔쩔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의 박정운이 말이다. ‘원래 이런 성격인가? 미하엘에게 보고로 들은 성격은 좀 달랐던 것 같은데?’ 보통 남자들이라면 레이시안 같은 천상의 미모를 지니고 있는 여자에게 먼저 데이트 신청을 받으면 0.1초만에 오케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정운의 경우는 사랑하는 사람은 슬기와 세레나, 딱 거기 까지만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원래는 슬기 한 명 뿐으로 정해놓고 있었지만 후에 슬기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세레나까지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사랑하는 여자를 늘릴 생각은 꿈에도 없는 정운이었다정운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여자라는 것은 오로지 그 둘만을 뜻했다. 실제로···. 정운에게 어프로치를 하려는 여자는 널리고 널렸다. 가끔 지구에 돌아갔을 때, 그리고 외교 문제로 타국에 방문했을 때 등등. 수많은 여성들이 정운에게 추파를 던졌다. 세계 최강국의 권력자. 세계 최고의 부를 거머쥔 재력가. 세계를 지킨다는 인류의 수호자라는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전 인류와 단신으로 전쟁을 한다고 해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강력함. 세계 최강의 남자라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여성들을 가슴 두근거리게 했다. 개중에는 이름만 대면 세계 누구나 아는 톱스타가 어떻게든 하룻밤만 안겨 본다고 해도 평생의 소원이라면서 안겨보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 누구에게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정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다른 권력자들의 경우는 그런 정운의 성격이 무척 안타까웠다. 여자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라고 해도 여자를 통한 계략이나 추문은 절대자의 위치에 있는 정운에게 유일한 약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덧없는 기대가 산산조각으로 깨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정운인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정운이 이렇게 여자 앞에서 난색을 표하는 것을 봤다면 고소해 할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흠···. 자기 말에 책임을 안 지실 생각인가요?” 레이시안의 말에 정운은 눈을 딱 감고 말했다. “예. 죄송합니다. 뭐라고 말씀 하셔도 좋지만 전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아프게 할 수는 없습니다.” “흠···. 그냥 데이트일 뿐인데? 그것도 안 되나요?” “예. 안 됩니다.” 정운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레이시안은 새초롬한 얼굴을 지우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녀가 표정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자리의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그럼 저도 깔끔하게 포기하도록 하죠. 대신, 박정운 수상님도 이제 저에게 빚을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죠. 어떤가요?” “···········.” 정운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그냥 씁쓸하게 웃으면서 순순히 한 마디 하는게 다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렇게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허둥 거려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인 정운이었다. 애당초 레이시안은 정운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런 요구를 했던 것이다. 정운이 어떻게든 빚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의 어깨를 좀 가볍게 해 주려고 말이다. 체념한 정운을 보며 레이시안은 미소를 유지한체로 말했다. “정운님. 왜 그렇게 빈틈 없이 사려고 하시나요?” “예? 어··· 저기···.” 정운은 뜻밖의 질문에 다시 당황했다. ‘아까부터 이 여자 앞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하겠네···. 왜 이러지?’ 사람간의 상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일까? 천하의 박정운을 이렇게 말 한마디로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아니 전무하다고 해도 좋았다. 잠시 당황했던 정운은 결국 머리 쓰지 말고 그냥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해 버렸다.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뭐든지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그런 스타일로?” “음···. 완벽하게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걸로 보이는군요. 고슴도치가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조금 생각해 보던 정운은 인정했다. 가우리의 수상이자 세게 최강자에 등극한 정운이었지만···. 그런 정운의 상대는 다름 아닌 신에 가장 가까운 천재인 파우스트였다.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냉철하고 빈틈없이 준비를 해야 한다. 적어도 정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저도 정운님의 목적이 뭔지는 알고, 또 그 목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뭡니까?” “조금 어깨에 힘을 빼시는게 어떨까요? 당신은 여유가 너무 없습니다.” 레이시안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저의 목표를 아신다면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파우스트를 이겨야 합니다. 그 놈은····.” “인간으로서 더 할 나위 없는 최고의 천재.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 이미 그 존재 자체가 세계의 버그와 같은 존재죠.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정운의 말을 자르고 끼어든 레이시안은 파우스트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홀리 엔젤이 되면서 그라운드 제로와 파우스트에 대한 진실도 대부분 접할 수 있었던 그녀였다. 오히려 파우스트에 대해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벌어진 최종전. 거기서 정운이 세레나로 인해서 증폭된 신성력을 파우스트에게 박아 넣었지 않은가? 그때의 신성력 그 자체가 레이시안의 근원이었다. 파우스트의 심장 바로 앞까지 파고 들어본 기억이 있는 그녀로서는 파우스트의 계획은 몰라도 당시 파우스트가 느꼈던 감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운님···. 파우스트는 두 말 할 나위가 없는 최고의 천재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지만!!!” 레이시안은 정운이 다른 말을 못하게 강하게 말해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 파우스트에게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고, 치욕적인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은 누구죠?” “···········.” 대답 못하는 정운에게 레이시안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신 정답을 말해 줬다. “그렇게 한 것은 당신입니다.” “··············.” “자신을 가지세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파우스트에 대한 열등감이 아니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그런 자신감만 있다면···. 당신은 이길 수 있습니다.” “아·····.” 레이시안의 말을 들은 순간 정운의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처음이다. 천계의 천사들에게서도, 그리고 가우리의 동료들 사이에서도, 지금과 같은 말은 들은적 없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작은 한 마디가 정운에게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냥 한마디일 뿐이지만···. 파우스트라는 괴물의 존재를 조금만 안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었다. 천계에서는 정운이 파우스트를 물리치도록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 한다고 했다. 가우리의 동료들은 정운의 뜻에 따라서 최후에 최후까지 파우스트와 싸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파우스트라는 괴물의 존재감이 너무나 강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의 한 마디에 정운은 이제까지 자신의 허벅지까지 차올라 있던 늪이 사라지는 것 같은 해방감이 들었다. ‘고작 그런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구원 받을 수 있는 건가?’ 정운으로서도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편안한 변화가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여성에게 진심으로 존경심이 들었고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친애의 감정이 들었다. 사랑은 아니다. 슬기나 세레나를 볼 때처럼 행복하지만 안타깝고, 충족되었지만 애절한···. 그런 감정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 정운이 그녀에게 든 감정을 말료 표현하자면·····. “에리시안 성녀님. 제가 누님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에리시안 성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부족하지만···. 그런 인연이 도움이 되신다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누님.” 그날, 가우리의 수상인 박정운에게 의남매로 누님이 한 명 생겼다. 성 세인트 왕국의 공략을 위한 계획은 미하엘이 몇 가지인가 세워 두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을 다 쓰레기통이 쳐 박고 대신에 레이시안을 중심으로 한 계획을 새롭게 입안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종교에는 종교지.” 미하엘의 중얼거림은 천사가 했다는 점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지구에서도 유럽에서 카톨릭의 힘이 절대적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종교라는 것이 권력을 가지면 정말 타락하기가 쉽다. 카톨릭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에 경종을 울린 것은 거기서 분리되어서 나온 기독교였다. 마르틴 루터를 필두로 해서 카톨릭의 타락을 꾸짖으면서 새롭게 태어난 기독교와 카톨릭은 한 바탕 유럽을 피로 물들일 정도로 강하게 충돌했다. 하지만··. 그런 피바람이 불고 나서야 카톨릭도 어느새 상당히 정화 되어서 다시 정상적인 종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기독교든 카톨릭이든 모시는 신은 같다. 다만 그 신을 모시는 교리가 다를 뿐. 하지만···. 그런 미묘한 차이만으로도 그렇게 커다란 충돌이 있었다. 태고적 부터 쭉 하나의 신만 믿어온 이 세계에 새로운 종교가 나타난다면···. 그 파급 효과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우리는 그 파급 효과를 일으킬 생각이었다. “우선···. 민심부터 얻어야겠지.” 미하엘은 본격적인 계획 착수를 위해서 디테일한 계획을 세워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우리 태어난 날은 달라도 한날 한시에..... 그런 필은 아니네요.^^;;;; 어쨌든 새로운 히로인을 기대하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히로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제까지의 패턴대로 한중겸에게 토스하는 패턴도 아닙니다. 히로인은 아니지만 정운을 다독이고 어깨에 힘을 좀 빼게 할 수 있는 치유계 누님 캐릭터가 한 명 추가된 것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5화 <결의 남매> 성 세인트 왕국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 가뭄이 2년 연속으로 겹침으로 인해서 마을의 대부분의 주민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피골이 상접해서 팔 다리의 관절이 툭 튀어나와 있을 정도였고, 눈은 퀭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어른들의 눈도 그냥 무심할 뿐이었다. 이미 체념했다고 해야 할까? 그건 절망의 극한에 도달해서 더 이상은 희망 자체를 원하지 않는 자들의 눈이었다. 이들이 마냥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저 가뭄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뭄 만이라면 어떻게든 힘을 모아서 헤쳐 나갈수 있을지 모른다. 원래 농사를 짓는 이상 항상 풍작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흉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가뜩이나 힘든 자신들을 더욱더 괴롭게 하는 신전이었다. 에리프릴 왕국의 경우 각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가 있었다면···. 성 세인트 왕국에서는 각 지역을 다스리는 신전이 있는 것이다. 사실 다스린다기 보다는 거의 착취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성금이다. 세금이다. 또 뭐뭐다 해서 다달이 이것저것 걷어가기 바쁘니 말이다. 그런 신전에서 흉년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수시로 세금을 거둬가니··. 이 지역의 농민들로서는 풍년이 들어야 간신히 먹고 살만하고···. 흉년이라도 들면 아사자가 속출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년 연속으로 흉년이 들자 이제 이 지역은 절망으로 가득차 버렸다. 이제 올해 겨울이 지나면 살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사한 사람의 사체를 뜯어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 정도로 망가진 마을에··. 한 무리의 인간이 나타났다. 공업용 트럭 수십 대를 가지고 그 뒤에 온갖 구호 물품을 다 가지고 온 일행은 가우리에서 보낸 구호대였다. “식량과 생필품을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 정오에 배급할 예정이니 모두 모여 주십시오.” 가우리의 직원들이 마을에 그렇게 선전을 하자 다 죽어가던 사람들의 눈빛이 범상치 않은 빛을 발했다. “먹··. 을걸 준다고?” “정말··. 이게 정말인가?” “먹을거··. 먹을····. 거···.”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먹을 것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아무리 풍족해도 더 많은 것을 바라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지 않는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어진다고···.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이 말을 역으로 되짚어 보면 극한 상황에서는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절박함만 해결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정도로 간절해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 마을의 사람들은 사람다운 음식을 입에 넣어본 것이 언제인지 분간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그저 죽을 때 죽더라도 그냥 빵 한조각 이라도 입에 넣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을 정도로 절박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우리의 구호대가 먹을걸 준다고 하니···. 마치 좀비 때가 모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우수수 몰렸다. 그렇게 몰린 사람들을 보면서 가우리의 봉사대는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들 몰골이 말이 아니네요···. 이거 유동식부터 먹이면서 천천히 돌보자면 시간 좀 들겠는데요?” “음···. 그건 그런데···. 상부에서는 건강 상태까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예? 정말요?” 질문을 했던 봉사대원은 깜짝 놀랐다. 사실 이런 기아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할 때는 의료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굶주림을 극한까지 겪어서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당장 먹을 걸주면 몸에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오랫동안 공복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소화기관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서 복통을 겪지 않는가? 좀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런 복통도 그렇게까지 큰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영양실조가 극한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내장에 가해지는 아주 사소한 대미지도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아주 묽은 유동식부터 시작해서 의료진이 몸에 쇼크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해가면서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이 진짜 구호 활동이다. 그냥 먹을 것만 퍼 주면 막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사정이 살짝 달랐다. 지구의 엘리트 의료진들을 통째로 대동하는 오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인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우리하고 같이 오신 분 있지? 그 분이 알아서 다 하신다고 하다.” “아··. 그 분요? 그런데 그 분은 누구시죠?” “나도 몰라. 몰라··. 다만 너도 봐서 알겠지만··. 엄청나게 아름다운 분이지.” “그건 저도 압니다. 정말····.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 분은 처음 봤죠.” 구호 물품을 정리하고 있던 둘의 눈이 몽롱해 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가끔씩 그녀를 몇 번인가 봤었다. 순백색의 정갈한 사제복을 말끔하게 입고 있는 그녀는 다른 여자들 처럼 몸을 꾸미기 위한 장신구는 일절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세상에 여신이 강림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의 아름다움. 그리고 가우리에서 고위급 간부들에게만 허락된다는 특급의 신분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천사 같은 마음씨···. 이미 이 구호단의 전원은 그녀를 지상에 강림한 여신처럼 따르고 있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여신은 레이시안이다. 그녀가 가우리의 구호단과 함께 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함께 온 이상 의료진의 대동은 일절 필요 없었다. “자··. 한 줄러 서서 받으십시오. 일단 여기서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그 다음에 저쪽에 가서 생필품들을 받아 가십시오.” 가우리의 직원들이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음식을 받아가기 시작했다. “아··. 조금만 더 주시면···.” “또 달라고 하면 더 줍니다. 줄이 밀리면 안 되니 먹고 떠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 스프와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빵···. 간단한 구호식이었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이 순간 세상 어떤 진수성찬 보다 더 훌륭한 만찬이었다. 가우리의 사람들은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도록 할 테니 걱정 말고 또 오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크게 감동했다. “흑···. 흑흑···.” 스프를 한입 먹은 순간··. 진짜 살았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입안에 들어온 한 모금의 온기가 전신을 향해서 쫙 퍼져가는 그 느낌···. 약간 묽은 스프 한 그릇에 사람들은 정말 구원 받았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것은 그냥 공복 상태에서 음식이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레이시안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음식에 자신의 신성력을 직접 주입했다. 음식을 먹은 순간 몸의 회복을 동시에 진행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신성력을 불어넣는 것은 가능했지만 음식에 신성력을 불어 넣는다니···. 보통의 사제들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홀리 엔젤로 진화한 그녀는 마음 먹으면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에도 신성력을 깃들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미 보통의 사제들과는 격이 달라진 존재인 그녀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 살았다.” “정말···. 이제 살 것 같아.” “머리속이 이렇게 맑은게 얼마만인지···.” 부자부터 가난뱅이까지··. 결국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먹어야 사는 법이다. 진짜 죽은 직전까지 몰렸던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원기를 회복하니 진짜로 죽음의 위기에서 부활한 느낌이었다.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다 죽어가는 아이들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사람들은 저마다 가우리의 구호단에 다가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가우리의 직원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미리 준비한 구호 물자 박스를 나눠 주면서 사람들을 위로했다.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입니다. 사람 수 대로 모두 나눠 드릴 테니 절대 싸우지 마십시오.” 가우리의 직원들은 마을 사람들이 혹시나 구호 물자를 가지고 싸울까봐 단단히 당부했다. 사실 이 세계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구호 박스는 정말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식량은 기본이었고 위생을 위한 비누와 타월, 치약, 칫솔, 그리고 신발과 겨울용 옷까지··. 지구에서는 전부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싸움이 날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수도나 대도시에는 가우리의 기업이 진출해서 마트나 백화점을 운영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생필품을 팔고 있어서 좀 나아졌지만···. 이런 시골 지방에서는 여전히 귀중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싸움이 나지 않을까봐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싸움이····. 안 날 리가 없지.’ 씁쓸하지만 모든 사람이 욕심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이 한 백 명만 모여도 그 중에 한 명 정도는 좀 악한 사람이 나오는 법이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해방된 직후는 오히려 사람의 욕심이 가장 물꼬를 틀고 나오기 쉬울 시기였다. 아마 가우리의 구호대가 자리를 비우고 난 후면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는 사람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그때···.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앞으로도 물자는 계속해서 주어질 겁니다.” 레이시안은 사람들의 앞에 나와서 사람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으면서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 저기···. 레이시안님.” 가우리의 직원은 서둘러서 그녀에게 갔다. 그녀는 이 구호단의 최고 중요한 인물이다. 만약 우발적으로라도 사고가 나면 큰일이었다. 그런데 레이시안이 사람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면서 위로를 하자 호위 역을 맡았던 사람들은 애가 탔다. ‘이런··.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나? 아니 하지만···.’ 사실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아직 전투 경험이 전무 하기는 하지만 레이시안의 힘은 정운과 필적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에게 능력자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뭘 어떻게 하겠는가? 사실 전투력만 따지고 보면 그녀들이 레이시안의 보호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레이시안은 유유하게 사람들을 위로하다가 문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 계신 분.” “예? 예··. 부르셨습니까?” 지명을 받은 남자는 자신이 지목을 받자 얼굴이 새빨개 졌다. 척 봐도 가우리의 엄청나게 높은 사람. 거기다 생전 한 번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미녀였다. 그렇다 보니 마치 10살짜리 애가 된 것처럼 시선을 받기만 해도 쑥쓰러워 졌다. 레이시안은 그런 남자에게 다가가서 상냥하게 말했다.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군요?” “예? 아··· 이건 저기··. 예전에 산에서 굴러서 그렇습니다.” “그런가요····.” 레이시안은 손을 뻗어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그 남자의 다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어···? 앗!!!” 남자는 깜짝 놀랐다. 이전에 신전의 신관에게 비싼 돈을 지불하고 진찰을 했을 때 이 다리는 이제 평생 낫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무릎의 관절이 완전히 비틀려 버려서 이제 회복을 시킨다고 해도 무리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한 번 쓰다음어 주자 자리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냥 통증만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한 번 걸어보시겠어요?” 레이시안의 말에 그 남자는 목발에서 손을 때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어어···. 어어···.” 그 남자의 다리는 정상이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통증도 전혀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나았으니 다행입니다. 혹시 또 몸이 불편한 분은 계신가요?” 레이시안의 말에 사람들은 앞 다퉈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 제가 허리 병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가 어린 시절 축복을 못 받아서 환절기만 되면 폐렴이···.·” “저·· 저는 눈이 흐립니다.” 이 세계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생각하면 신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일반 평민들의 건강 상태는 절대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40대만 되어도 몸의 여기저기에 불편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신전은 돈 없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그런 불편함을 그저 몸에 달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부드러운 손길로 모두 치료해 주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6화 눈이 흐린 사람의 눈을 맑게 해주고···. 지팡이 신세를 지는 노인을 두 다리로 서게 해주고··. 항상 골골 거리던 아이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 줬다. 마치 기적을 베푸는 것처럼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 마다 낫지 않는 상처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오오···. 성녀님···.” “성녀님···.” “성녀시여····.” 너무나도 커다란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저 엎드려서 그녀를 경배했다. 이런 변경 지방의 사람들도 실제 성녀를 본 적은 몇 번인가 있었다. 아니 실제로 얼굴을 봤다기 보다는 성녀라는 존재가 거창한 행렬을 꾸리고 지나갈 때 넙죽 엎드려서 환송 하는게 다였다. 실제로 성녀에게 직접 치료를 받으려면 이들로서는 평생 벌어도 마련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그런 거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니 성녀의 얼굴을 직접 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름밖에 본 적이 없는 성녀들 보다는 눈앞에서 자신들에게 상냥하게 미소 지어주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 치료해주는 레이시안이 진짜 성녀로 보였다. 사람들의 이런 감사를 받으면서 레이시안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주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작게 성호를 그으면서 말하는 그녀의 기도는 이 세계의 사제들과는 형태가 달랐다. 그리고···. 이 작은 다름이 불러올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 될 것이었다. 성세인트 왕국의 지방 지역에서 레이시안이 본격적으로 구호 활동을 시작한지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 그녀의 존재는 민중들을 통해서 엄청나게 유명해 졌다. “저번에 우리 옆 마을에 성녀님이 왔다 가셨다고?” “그래. 우리 마을에 들른 후에 그쪽으로 가셨다더군.” “으음··. 정말 너무 바쁘게 움직이시는 것 아닌가?” “왜? 그럼 좋은 것 아닌가?” “우리야 좋지만···. 그러다 그 분의 건강이라도 악화되면 어쩐단 말인가?” “아아··. 그건 그렇군.” “끙···. 신전의 더러운 것들이 좀 나서서 한 손 거들면 좀 나을 텐데··. 그 무능한 것들은 생전에 도움 되는 것을 못 봤어.” “쉿··. 이 친구야. 입 조심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흥, 어차피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하긴. 그건 그렇지···.” “말이 신전이고 성스러운 사제지···. 언제 그 새끼들이 우리들한테 뭐 베푼 적이 있었나? 매일같이 뺏어가기 바빴지.” “그러게 말이야.” 두 남자는 열심히 사제와 신전의 행태를 씹어댔다. 사실 요즘 들어서는 이런 일이 드문 일도 아니었다. 이전에는 신전이 단일한 존재였고 절대적인 위치를 독점하고 있었지만···. 지금 레이시안이 가우리와 함께 백성들을 보살피면서 새로운 존재로 급부상하자 드디어 신전에게도 비교의 대상이 생긴 것이다. 뭐든 뺏어가기 바쁘고 만사에 돈돈 거리는 신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주고 무료로 아픈 사람을 치료 해 주는 레이시안. 비교하기 시작하면 어느 쪽이 민중의 사랑을 받을지는 뻔했다. 그리고 이런 민심의 변화를 신전도 서서히 캐치해 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숙하고 신성해 보이는 신전의 어느 사제의 방에 지방의 신전을 주관하는 대신관들이 모두 모였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다름 아닌 레이시안의 행동으로 인해서 변화하기 시작한 민심이었다. “으음···. 어떻게 할지 고민이오.” “정말이지···. 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요? 그 망할 가짜 성녀.” 이들이 말하는 가짜 성녀가 누구인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백성들은 레이시안을 진정한 성녀라 부르며 오히려 그녀만을 성녀라고 부르지만···. 여기 있는 지방 신전의 대신관들에게는 가짜 성녀일 뿐이었다. 답답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쯧, 요망한 제주를 앞세워서··. 그냥 신성기사단을 통해서 잡아서 이단 재판을 해서 화형 시켜 버립시다.” 과격한 의견을 주장하는 그는 레이시안과 가우리의 구호 활동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자였다. 그러나 다른 대신관들은 그의 과격한 말에 동조하기 보다는 책망의 눈길을 보냈다. “쯧쯧···. 생각 얉은 것 하고는····.” “그게 되면 우리가 진작 안 했겠소?” “그 가짜 성녀의 뒤에는 가우리가 있단 말이오? 가우리. 세상 물정은 알고 그런 답답한 말을 하는 거요?” 말을 꺼낸 대신관은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원래 성 세인트 왕국 내부에서 신전의 견제 세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앙심을 악용해서 만들어낸 무수한 특권들로 인해서 그럴 여지도 없었고···. 만약 불만을 표하는 세력이 생긴다고 해도 그럴 때는 이단으로 몰아가서 짓밟으면 그만이었다. 유일한 외부의 적은 성 세인트 왕국과 사이가 안 좋은 에리프릴 왕국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성 세인트 왕국의 내부에 파고든 가우리는 신전에서 유일하게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미 에리프릴 왕국에서 가우리가 한 짓을 봤다. 작은 시비의 불씨를 키우고 키워서 커다란 불 길로 만들더니 에리프릴 왕국의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성 세인트 왕국의 지배층들이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은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힘으로 뭔가 제재를 가하거나 정치적인 경고를 할 수도 없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주장은 논리 이 전에 힘이 있어야 펼칠 수 있다. 연합군을 결성하고도 가우리에게 패했는데 성 세인트 왕국 단독으로 가우리에게 도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우리는 성 세인트 왕국의 입장에서는 내부에 파고든 꺼림칙한 독단지였다. 잘못 건드려서 단지가 깨지기라고 하면···. 그때는 에리프릴 왕국처럼 그 독이 나라를 다 집어 삼킬 것이다. “음··. 겉으로 당당하게 건드릴 수 없다면··. 암습은 어떻소?” 어떤 대신관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 비밀 회동이라고는 해도 명색이 신을 모신다는 사제들의 모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습이라는 말이 너무나 쉽게 나왔다. 그리고 그 말에 아무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신관들이 ‘그것 괜찮을지도···.’ 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성 세인트 왕국의 사제들의 타락이 극에 달해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암습이라····. 성공한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실패한다면 어떻게 하오?” “그거야··.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적어도 우리한테 위험이 돌아올 일이야 없지 않겠소?” 그 말에 어느 대신관이 깊은 한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만 두는게 좋겠소. 가우리가 에리프릴 왕국에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인 것도 하의원 암살 미수 사건이었소.” “그건·····.”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오? 에리프릴 왕국의 귀족들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증거는 심증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리프릴 왕국이 어떻게 되었소?” 물론 에리프릴 왕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끄응·····.” “이거야 원···. 우리나라에서 우리 좋을 대로 하지도 못하다니····.” “가우리라···. 정말 사사건건 방해군요.” 대신관들은 다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에리시안의 존재는 엄청나게 방해였다. 그녀의 구호 활동 때문에 실질적인 돈 벌이도 확 줄었고, 무엇보다 신전에 대한 민심이 떠나기 시작했다. 귀족들과 사제들의 차이점 중에 하나가 바로 민심이었다. 같은 지배 계층이고 역시 백성들 등골 빼먹고 사는 것도 비슷비슷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귀족과 달리 사제들의 경우 열렬한 신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백성들 중에 신전의 행태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그런 자들도 인정 하는 것이 있었다. 신전이란 신을 모시는 신성한 곳. 이라는 사실이었다. 원래 종교적 믿음이라는 것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쉽게 뒤집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전이 아무리 타락한다고 해도 결국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은 상당히 많았다. 더구나 이런 종교 국에서는 태어나고 자랄 때부터 쭉 접하는 것이 바로 종교였다. 그러니 더욱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민심이 떠난다고 해도 결국은 그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에리프릴 왕국에서처럼 민중들이 극도의 혐오감정을 드러내기는 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같은 종교적인 세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에리시안이 자기 스스로 성녀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녀가 딱히 그 부분에 관해서 의견을 말하고 있는것도 아니고···. 지금 민중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에리시안이야 말로 진정한 성녀이고 그녀야 말로 이 세상에 유일한 사제라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신전으로서는 독실한 신도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음···. 이러면 어떻소?” “뭘 말이오?” “저 가짜 성녀가 민중들에게 환호 받고 있는 이유는 구호활동 때문이오.” “그렇소. 설마 그걸 말리자는 거요?” “그건 어렵죠. 보통은 가능하지만··. 역시 가우리의 존재가 마음에 걸릴 수밖에····.” 마을 꺼낸 대신관은 많이 안타까워했다. 원래는 이 성 세인트 왕국의 내부에서 정식 봉사활동이나 포교 활동을 하려면 신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봉사 활동에서도 신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좀 웃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나라에서는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가우리가 뒤에 있는 이상 그걸로 시비를 걸을 수는 없었다. 보나마나 더 강력하게 항의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건 여기 있는 다른 대신관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기에 옹기종기 모인 것이 아니겠는가? “말리는 것이 불가능 하다면··. 두 가지 선택권이 있죠. 차라리 멍석을 깔아 줘서 그들에게 부담을 더 가하는 것과···.” “그건 무리죠. 가우리의 막강한 재력을 생각하면 놈들은 우리나라의 민중 전체를 먹여 살리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이오.” 가우리의 재력은 이미 성 세인트 왕국에서도 유명했다. 이쪽 신세계에서 얻어내는 막대한 지하자원과 이권들을 통해서 얻은 재력으로 저쪽 세계에서 저렴한 공산품을 대량으로 수입해 온다. 가우리의 경제력이 구멍이 나는 일은 양쪽 세계가 동시에 멸망하지라도 않는 이상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우리도 맞불을 놓으면 어떻겠소?” “맞불? 우리도 같이 구호 활동을 하자는 거요? 음···. 그럴 예산은 솔직히 없소.” 구호 활동은 돈이 많이 든다. 지방의 신전에서 많은 돈을 거둬들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위로 많이 바치기도 한다. 구호 활동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말을 꺼낸 사람의 의견은 그게 아니었다. “구호 활동을 해도 놈들이 하는 것처럼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자고 하는게 아니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리고 그의 의견을 들은 다른 대신관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했다. “과연··. 맞는 말이오.” “그럴 듯하군···. 돈도 얼마 안 들고···.” “준비만 잘 하면 되겠군. 마침 우리 지역에 적당한 인물이 있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 하도록 합시다.” 대신관들이 꾸민 음모가 무엇인지는 아직 가우리에서 모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우리의 구호대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으면서 구호 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 이 구호 활동은 성 세인트 왕국을 뒤집어엎기 위한 미하엘의 계획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들은 이미 그런 계획과는 상관없이 진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때로는 주어진 상황이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상부의 명령으로 온 구호활동이었지만···. 자신들로 인해서 다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아나고 어린애들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점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활동에도 점점 탄력이 받았다. 원래 같은 활동이라고 해도 얼마나 진심이냐? 그렇지 않느냐? 에 많은 차이가 발생하는 법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가우리의 구호단은 정말 헌신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현장에 사심이 가득한 일행들이 같이 들어왔다. “아픈 자들은 이리로 오시오.” “수도에서 모셔 오신 성녀님들이 직접 치료해 드립니다.” 바로 원래 있던 신전의 일행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77화 <수준이 다름을 보여주다> 가우리의 구호단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한 구호단을 꾸린 신전은 보란 듯이 가우리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가우리의 직원들이 보기에는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하자는 플레이지?” “글쎄? 우리한테 위기감이라도 느꼈나?” “그럼 다른 곳에 가면 왜 여기서 하는 거야?” “나도 몰라? 꼭 맛집 망하게 하려고 앞에 차려진 프렌차이즈를 보는 기분인데?” “누가 맛집이고 누가 프렌차이즈인데?” “····글쎄? 아무래도 우리가···.”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이 밥통들아!!!!” 부하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구호대의 조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한테 시비 걸고 있는 거잖아? 구호 활동을 하려면 다른데 가서 하지 왜 우리 쪽으로 와서 하고 지랄이야? 누군지 책임자 쌍판 좀 보고 와야겠다.” 저기 신전에서 나왔다는 놈들의 구호활동에 사심이 가득하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굳이 가우리의 구호대 앞에 나와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파워에서 꿀릴 것도 없는데 가서 한 마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냥 놔두세요.” “앗··. 레이시안 성녀님.” 그런 조장을 말린 것은 레이시안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천사같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좋은 일을 하러 왔지 않습니까? 말릴 이유는 없죠.” 레이시안의 입장에서 보면 신전은 개인적으로는 철천지 원수이고, 사제로서의 입장으로 봐도 파우스트를 숭배하는 이단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그녀의 자애심은 잔잔한 호수처럼 파문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의 그릇 자체가 보통 사람들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녀님. 이건 누가 봐도 저희에게 시비를 거는 겁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냥 놔두세요.” “····알겠습니다.” 레이시안의 말은 부드럽지만 거부 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그렇게 기묘하게도 한 곳에 신전과 가우리의 미묘한 대립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구호 활동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양쪽 모두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구호 물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한쪽에서만 받으라는 법도 없는데 가우리에서도 받고 신전쪽에서도 받고···. 양쪽 다 받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굳이 말하면 신전쪽의 물건을 받고 그 후에 가우리의 물건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유는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구호 물품인 식량이나 옷가지 등의 질은 가우리가 월등하게 좋았다. 물건의 품질에서는 신전이 절대 따라 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우리의 구호대는 나중에 떠날 것이지만 저 신전의 구호대는 앞으로도 이 지역에 쭉 있을 자들이었다. 그러니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수가 없었다. 실제로 가우리의 구호 물품이 담긴 박스를 품에 안고 신전에 물건을 받으러 간 사람은 수련 신관으니 좋지 않은 눈빛을 받기도 했다. 그에 비해서 가우리에서는 신전의 물건을 받고 온 사람들이라고 해도 절대 불쾌한 기색을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응대하면서 힘내라고 격려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신전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 가우리의 물건을 나중에 받는 것일 뿐. 실제로 더 감사하고 있는 것은 가우리 쪽이었다. 어쨌든 굳이 승부를 가늠하자면 구호 물자쪽은 무승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민심이 본격적으로 갈린 것은 치료 쪽이었다. 신전쪽에는 수도에서 초빙한 성녀들을 위시해서 수많은 사제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자의 90%이상은 모두 레이시안쪽으로 몰렸다. 그것은 레이시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성녀들은 원래 아름답다. 피부에 잡티 하나 없고 이목구비나 체형의 골격에서도 어떤 이그러짐이 나타나지 않고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런 성녀들도 지금은 태양 앞에 반딧불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시안의 아름다움은 이미 기존의 아름답다. 라는 이미지를 아득하게 초월해 버렸다. 완벽한 아름다움. 이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지만···. 지금 레이시안의 아름다움은 정말 완벽 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취향의 차이로 인해서 하나 둘 정도는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레이시안에게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그런 단점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심미안이 너무나 만족해서일까? 불만족이라는 감정 자체를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 아름다움에 레이시안이 홀리 엔젤로 진화하면서 생긴 성스러운 오로라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녀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가 하면 시비를 걸기 위해서 맞은편에 있는 존재들도 감히 그녀에게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억울하지만···. 아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레이시안쪽으로 몰려드는 것이 그들도 충분하게 이해가 갔다. 다만···. 마음으로 이해를 한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을 넙죽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했다. “····아차!!!” ‘이런, 이러면 안 되지···. 제길, 완전 넋을 잃어 버렸군.’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잇는 레이시안의 모습을 보고 있던 대신관이 정신을 차렸다. 가우리 쪽의 예상대로···. 그는 이 상황에 시비를 걸기 위해서 나타났다. 하지만 레이시안을 두 눈으로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차마 시선을 때지 못하고 그저 넋을 일어 버린 것이다. 사실 그는 대신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꽤 화려한 여성 편력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었다. 대신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성녀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반 평민들부터, 혹은 수련생 신분의 여사제들까지 그는 품에 안고는 했다. 하지만 평생을 다시 다 돌아봐도 눈앞에 있는 레이시안 같은 여자는 처음이었다. 보통 아름다운 여자를 봤을 때처럼 소유욕이나 정복욕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타락한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무한한 경외감이 생겨나려고만 했다. 주변에 보는 눈만 없다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발치에 입을 맞추면서 그녀의 미소 한 줌이라도 더 구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이 나가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막으면서 그는 옆에 있는 성기사에게 말했다. “계획을 시행하라. 지금 당장.” “예? 아···.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지금 당장 해라. 두 말 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대신관이 거의 윽박지르듯이 명령하자 성기사는 준비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젠장···. 저걸 그냥 놔두면 나까지 포로가 되어 버리겠어···. 저 분··. 아니 저 여자는 도대체 뭐냐? 설마··. 진짜 성녀? 아니면 마녀인가?’ 마음의 혼란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힌 대신관은 확신했다. 소문으로만 들을 때는 그냥 방해물 정도로만 느꼈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자는 그냥 내버려 둔다면 성 세인트 왕국에 뿌리 깊은 신권을 통째로 흔들지도 모를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 틀림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의 계획을 성공 시켜야 한다. “어? 저것들은!!?” “으아···. 저주 받은 것들이 여긴 왜 온 거야!!!?” “제길. 빨리 쫒아내. 저 더러운 것들이 왜····.” 구호물자를 받고 오랜만에 기쁜 기분에 들떴던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사람들에게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한 무리의 군집이었다. 대략 20~30명 정도 되는 무리의 인간들은 넝마를 머리까지 푹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받는 이유는 이들의 드러난 피부 부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손이나 얼굴의 일부 부분을 보면 이들의 피부에 오돌토돌한 종기들이 빼곡하게 돋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른바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고 하는 질환에 걸린 환자들이었다. 지구에서는 한센병이라고도 하는 병이다. 다만, 이 세계의 나병은 지구의 한센병 보다 훨씬 더 악질이다. 지구의 한센병은 그렇게 전염률이 높지가 않다. 한센병의 질환은 양성과 음성으로 분류되고, 음성은 전염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성 역시 약물을 꾸준하게 복용하면 음성으로 변한다. 오래전에 의료수준이 미흡할 때는 한센병을 천형의 하나로 분류하면 사회적으로 경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센병에 대한 오해도 많이 풀려서 많이 나아져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나병은 한층 더 악질이다. 일단, 치료는 절대 불가능 하다. 신성력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치료는 불가능 하다. 다만 약간의 고통을 완화 시키는 정도가 유일하게 가능했다. 그리고 치사율은 낮지만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그 고통이 어느 정도이냐 하면···. 온몸의 피부가 벗겨진 상태로 개미 때에 깨물리는 느낌 같다고 한다. 그 끔찍한 고통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나병 환자들은 거의 매일을 강력한 마약에 취해서 통각을 마취 시키고 있는게 보통이다. 그리고 음성 양성 같은 것 할 것 없이 상당히 높은 전염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병 환자들은 그들만의 부락을 이뤄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만약 함부로 밖으로 나왔다가는 사람들에게 죽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병은 옮기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하면 그들로서는 정당방위로 취급 받을 정도라고 하니··.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조건들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겠지만····. 골치 아파도 보통 아픈 병이 아닌 것이다. 사실 신전에서는 이런 나병 환자들의 고통을 약간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 꾸준하게 사제들을 파견했지만····. 그건 말 뿐인 파견으로 사제들을 나병촌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신성력을 지닌 사제들은 나병에 전염되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들이었지만···. 그런 나병 환자들의 끔직한 모습이 불쾌하고 더럽다고 해서 거의 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전에서 파견을 해도 나병촌의 근처 마을 몇 군데를 돌고 와서 거짓 보고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런 나병 환자들이 한 명도 아니고 갑자기 수십명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젠장··. 다 쫓아···. 아니 죽여!!” “잘못 하면 우리도 다 죽을 거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흉흉한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나병 환자 중에 한 명이 사람들의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자··. 잠깐, 우리는 성녀님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온 거요. 그러니···.” “닥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성녀님에게 너희 같은 저주 받은 것들에게 수고를 하라고? 이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여러분. 저 저주받은 것들이 성녀님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모두 죽여 버립시다.” “죽여라!! 죽여!!!” “죽이자!!!” 사람들의 눈빛은 흉흉하게 변했다. ‘이런···. 이러면 안 돼지.’ 사람들이 나병 환자 무리를 몰아내려고 하자 가장 먼저 그 사태에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은 신전의 신관이었다. 새삼 말 할 것도 없지만···. 저 나병 환자들은 신전에서 캐스팅(?)한 인간들이었다. 신전의 계획은 대강 이랬다. 나병 환자들을 레이시안에게 밀어 넣으면 레이시안으로서는 두 가지 선택권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치료를 하던가? 아니면 그냥 돌려 보내든가?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신전으로서는 성공이었다. 우선 치료를 하는 쪽을 선택하면 그때는 나병 환자들에게 미리 일러줬다. 치료에 만족을 못했다고 날뛰고 진상을 부리라고 말이다. 원래 이 세계의 나병은 치료가 불가능 한 것이다. 그저 신성력을 있는 대로 들이부어서 어느 정도 고통을 줄이는 것이 한계였다. 그러니 상대가 치료하는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때는 나병 환자들이 병이 낫지 않은 핑계를 대면서 날뛰라고 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8화 물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병은 낫지 않는 불치병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걸 알면서도 병에 걸린 환자들이 현실을 부정하면서 날뛰는 광경은 종종 있어왔다. 그렇게 나병 환자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때 자신들이 나병 환자들을 위엄 있게 달래면서 고통을 들어주고 신전의 위대함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만약 치료를 거부한다면? 그때는 더 좋은 일이다. 버림받은 나병 환자들을 자신들이 치료해 주며 고통을 덜어주는 한 편 레이시안을 엄하게 꾸짖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체면을 뭉게 버리고 민심을 떠나게 하면 그 후에는 가우리의 눈치를 적당히 보면서 이단 행위를 지목할 생각이었다. 가우리가 뒤에 있는 이상 이단 재판까지 몰고 가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자국에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의 제약을 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병촌의 환자들을 대량으로 이쪽으로 끌어 들인 것이다. 사실 나병 환자들도 여기 오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병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나병촌을 벗어나서 세상으로 나가면 어떤 모멸과 괄시를 받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전의 요구를 거절 할 수는 없었다. 신전에서는 만약 자신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나병촌을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렇게 나온 것이었다. 어쨌든···. 신전의 계획은 레이시안의 선택 운운하기 이 전에 이미 망가지기 시작했다. 민중들이 이렇게까지 분노해서 나병 환자들을 적대할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하지? 그냥 민중을 물릴까? 아니 하지만 그렇게 하면 계획이 좀 틀어질지도 모르는데···.’ 신관이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민중의 증오심은 쉽게 멈출 수 없는 수준까지 고양 되었다. 이 세계에서 나병은 상당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이 보기에는 나병 환자들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온 역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모두 무기를 들어!! 저 놈들을 때려죽이자.” “다 죽여 버리자!!” “한 마리도 남기지 마라!!!!” 그렇게 사람들이 나병 환자들을 막 공격 하려고 하는 그때···. “멈추세요!!!!” 위엄과 자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제까지 자애로운 미소를 잃지 않고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던 레이시안 성녀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뿐한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그녀의 표정은 지금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은은한 분노와 도저히 항거 할 수 없는 엄숙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나병 환자들을 향해서 걸어갔다. “성···. 성녀님.” “···위험합니다. 저 놈들은···.” “비키세요.” 몇몇 사람들이 자신을 막는 것을 보고 레이시안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남자들은 마치 엄마에게 야단이라도 맞은 꼬마들처럼 잽싸게 한쪽으로 찌그러졌다. 지금 그녀의 앞을 가로 막으면 세상에 다시 없는 악당이라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나서서 그녀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망설임 없이 나병 환자들에게 다가갔다. ‘됐다. 자기 무덤을 판 거야.’ 레이시안이 나병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신전의 신관은 쾌재를 불렀다. 민중이 너무나 크게 분노하는 듯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의 입장에서는 레이시안의 행동이 고맙기까지 했다. 이제 당초의 계획대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아마도 치료를 해 볼 생각인 모양인데···. 어림없는 일이지. 고통을 좀 덜어준다고 해도 혼자서는 고작 두 세 명이 다 일 테고···. 나머지 환자들은 모두 분노하면서 널 비판 할 거다.’ 신관은 속으로 레이시안을 조소했다. 사실 사제들이 나병 환자를 상대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또 한 가지 있었다. 나병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신성력이 필요하다. 보통 수준의 사제 한 명이 나병 환자를 한 번 치료해 주면 한 시간 정도는 쉬어야 다음 치료가 가능할 정도이다. 좀 수준이 높은 사제나 성녀쯤 되면 두 세 명 정도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역시 그 정도 치료하고 나면 한동안 쉬어야 한다. 즉, 나병촌에 가서 그들을 치료해 주자면 최소한 하루 종일···. 재수 없으면 며칠 동안 머물면서 치료해 주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제들이 신전에서 명령을 듣는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나병촌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레이시안의 경우 예전에 신전에 있을 때도 수도 없이 나병촌에 기거하면 그들을 치료해 줬지만···. 그런 사람은 신전에서 천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저 여자가 소문의 성녀인가?’ 나병 환자 중에 한 명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이시안을 보고 자신이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왜? 왜 이렇게····.’ 사실 그는 오기 전에도 레이시안의 소문은 들었지만 콧 웃음만 치고 있었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구호 활동을 하는 성녀? 그래봤자 자신들의 썩어 문드러져 가는 피부를 보면 징그러운 얼굴을 하고 경멸할 것이 뻔했다. 이미 나병 환자들의 마음은 상처의 위에 다시 상처를 입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인간도 싫고 세상도 싫고 심지어 자기 자신들 조차 싫었다. 그저 죽을 용기도 없고 어찌어찌 살아가기만 할 뿐인 그런 인생이었다. 그런데 레이시안을 보는 순간··. 그는 가슴이 뛰고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시안의 눈동자에는 경멸도, 혐오감도 없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레이시안의 눈동자에는 순수한 연민과 슬픔만이 담겨져 있었다. 이윽고 자신의 바로 앞에까지 도착한 레이시안은 스스로 허리를 살짝 숙여서 그와 눈 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제가 당신을 치료해도 될 까요?” “예··? 예? 예····. 예···.” 그는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세상 모두가 경멸하는 존재가 바로 자신들이었다. 나병촌에서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오면 돌 맞고, 매 맞고····. 심지어는 죽어도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고귀한 성녀라는 여자가 와서 치료를 해준다고 한다. 그것도 ‘당신을 치료해도 될까요?’ 라는 말로 허락을 구하고 있다. 세상 모두에게 천대받는 자신에게 세상 모두에게 고귀하다고 떠받들리는 성녀가 말이다. 너무나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은 그의 말에 레이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당신을 치료하겠습니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상대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대고 신성력을 발휘했다. 화아아아아···. 나병 환자인 남자가 환한 빛에 휩싸이더니 이제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인물은 기적의 목격자가 되었다. “오··. 오오!!!!” “이럴 수가··. 나병이 나았어?” “세상에·····. 어떻게··. 아니 어떻게···.”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병은 절대 낫지 않는 불치의 병. 신전의 사제들도 어쩔 수 없는 병이기 때문에 나병 환자들의 경우 신에게 버림받은 죄인들로 취급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나병 환자가 낫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과 전신을 빼곡하게 덮고 있던 고름이 꽉 찬 오돌토돌한 돌기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괴물 같은 기이한 형상은 사라지고 이제는 말끔하고 정상적인 인간의 얼굴이 드러났다.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남자의 얼굴은 제법 말끔하게 생긴 미남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크게 감격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치료 받은 본인이었다. “아···. 아아아······.” 눈에서 감격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멈추지 않고 마치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태어나면서부터 쭉 나병 환자로 살아온 이 남자는 자신이 태어난 것 자체를 쭉 저주하면서 살아왔다. 이 지긋지긋한 나병만 없어질 수 있다면 신이건 악마건 발바닥도 핥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잔혹한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았고 자신은 평생 이런 괴물과 같은 형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깨끗해진 자신의 피부를 보면서 그는 감격을 벅차서 오열하고 있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당신은 저의 신입니다.” 그는 레이시안의 발치에 엎드려서 그녀의 발치에 입을 맞추려 했다. 레이시안은 그런 그를 말리면서 웃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제가 신은 아닙니다. 그저 신께서 당신을 굽어 살폈을 뿐이죠.” “아아···. 아····.” 감정이 벅차서 감히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그를 위로하면서 레이시안은 다른 나병 환자들에게 말했다. “다른 분들도 모두 치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리 오시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나병 환자들은 모두 감격해서 그녀의 앞에 와서 넙죽 엎드렸다. “성··. 성녀님 부디 저도···.” “제발 부탁 드립니다. 제발 저도 치료해 주십시오.” “성녀님····.” 이미 이들의 머릿속에는 신전에서 사전에 지시했던 계획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오늘 나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내일 죽어도 소원이 없다고 생각하던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눈 앞에 실제로 나병이 낫는 것을 봤으니 신전의 협박 따위가 머릿속에 남을 리가 없었다. 레이시안은 미소를 잃지 않고 그런 나병 환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하나하나 성실하게 치료해 갈 뿐이었다. “····말····. 말도 안 돼····.” 레이시안의 기적을 보면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신관이었다. 나병이 낫다니···. 이런 기사는 듣도 보도 못했다. 나병은 절대로 낫지 않는 것이었다. 신전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한 끝에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그런데 그런 상식이 손바닥 뒤집듯이 가볍게 뒤집혔다. 레이시안의 치료를 받은 나병 환자들이 모두 말끔하게 낫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 회복된 환자들의 용모는 모두 준수한 미남 미녀들뿐이었다. 아마 레이시안의 신성력이 그들의 뒤틀린 골격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동시에 잡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병 환자들은 자신들의 용모가 이렇게 변하는 것을 은근히 느끼고 있었다. 나병 뿐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는 입장에서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레이시안은 다른 사람들을 속속들이 치료하고 이제 마지막 환자까지 모두 치료했다. “오오오···. 성녀님.” “진정··. 진정으로 저분이야 말로 성녀들이다.” “맞아!! 다른 성녀들과는 달라. 저 분이야 말로 진정한····.” “지금 뭐라고 했어!!!!” 감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마치 유리창이라도 깨지는 듯한 불쾌한 주파수로 소리친 것은 신전 쪽에 있는 성녀 중에 한 명이었다. 금발을 약간 롤 형태로 말았고 예쁘긴 하지나 눈꼬리를 날카롭게 세워서 인상을 비호감으로 주고 있는 어린 성녀였다. ‘아차!!! 저러면 안 되는데···.’ 신전 쪽의 구호대를 통괄하고 있던 신관은 순간 깜짝 놀랐다. 자꾸만 상황이 자신이 예상하고 있던 것과는 별개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너!! 거기 너!!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라면 넌 지금 신전의 권위를 모독하고 신성 모독을 저질렀다!!!” 앙칼진 목소리로 상대를 몰아붙여가는 성녀의 행동은 누가 봐도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사실 이 성녀는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마음에 안 들었다. 그녀는 성 세인트 왕국의 수도에서 만인의 우러음과 떠받들어짐을 받으면서 살아온 성녀였다. 한 마디로 콧대가 높아도 여간 높은 것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79화 ‘감히···. 감히···.’ 말을 꺼낸 성녀는 분노로 이성을 잃어 버릴것만 같았다. 사실 이번에 지방으로 구호 활동을 하는 곳에 가야 한다는 신전의 명령을 받고도 어째서 자신이 수도를 떠나서 그런 시골 까지 가야 하는지 납득을 못했다. 그래도 자신 말고도 다른 성녀들 까지 함께 가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따라갔다. 그 후에 실제로 구호 활동을 하면서도 상황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비롯해서 수도에서 고귀한 신성함 그 자체로 취급 받은 성녀가 몇 명이나 이런 시골에 행차했다. 그녀의 기준으로 이 정도면 거의 강림이라고 불러야 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을 놔두고 앞에 있는 이름 모를 가짜 성녀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여기서 그녀를 정말로 화나게 한 것은···. 자신의 앞에 있는 가짜 성녀가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원래 성직자답지 않게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였다. 같은 성녀들 중에서도 은근히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 라는 근거 없는 공주병에 걸려 있었다. 심지어는 세상에 자기보다 예쁜 여자는 없다. 라는 이상한 생각도 하고 있었다. 솔직히 개관적으로 봐서··. 그녀의 용모는 아름답다기 보다는 살짝 귀여운 편이다. 정도로 봐야 할 정도였다. 귀여움을 아름다움으로 승격시키기에는 몸매의 여기저기에 부족한 부분들이 좀 많이 보였다. 그나만 그 귀여운 외모도 개떡 같은 성질 머리가 다 깎아 먹고 있는게 냉정한 현실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공주병 말기라도 그렇지··. 지름 레이시안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이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공주병 말기의 콩깍지 필터조차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완벽한 미모의 소유자가 레이시안이었다. 레이시안의 이 미모는 홀리 엔젤로 진화하면서 생긴 것으로··. 이미 취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레벨을 아득하게 넘었다. 사실 살아있는 사람이 그녀보다 더 아름다워 진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래도 이 공주병 성녀는 나름 자기가 더 나은 구석이 있다고 우기고 있었다. ‘어디서 이상한 사기술을 배우고 온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진짜 성녀의 신성력이 있을 리 없지···.’ 물론 이 예상도 여지없이 깨졌다. 여유 있게 자신들의 몇 배나 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결정타는 나병 환자들의 치료였다. 징그러운 괴물 같았던 나병 환자들이 그녀의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말끔하게 치료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능력의 차이를 두고 우월감을 가질 수도 없었다. 정작 레이시안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데 자기 혼자 경쟁심을 불태우고 자기 혼자서 패배감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백성들 중에 한 명이 레이시안이야 말로 진정한 성녀라고 하는 말을 듣자··. 속된 말로 뚜껑이 날아간 것이다. 성직자치고는 참 얄팍한 인성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인성이 얄팍하건 두껍건 간에···. 성녀는 성녀다. 일반 백성 한 둘 정도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너!! 당장 앞으로 나오지 못해!!!” 앙칼지게 소리치는 성녀의 지명에 말을 꺼냈던 백성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신전의 인간들이 없는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신전의 권위에 모독을 한 죄로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이 성 세인트 왕국에서는 신전은 곧 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사제나 성녀를 모독하는 것도 당연히 사형의 이유가 되고도 남았다. 그때 지목 받은 남자의 앞을 레이시안이 가로 막으면서 말했다. “마릴라 성녀. 이제 그만하죠.” “응··? 당신···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마릴라 라는 자신의 이름을 상대가 알고 있자 그녀는 살짝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시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구호 활동을 하러 와서 백성들에게 권위를 내세우면서 행패를 부리다니···. 성녀로 제일의 믿음은 헌신적인 자애심이라고 배웠을 텐데? 수련이 한참 부족하군요.” 빠직!!!! 레이시안의 설교는 마릴라는 머릿속에서 인내의끈을 산산조각으로 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닥쳐!! 어디서 가짜 성녀 주제에 감히···. 신성 모독을 가한 인간은 모두 사형이다. 이건 나라의 법이야!! 병사들과 성기사들은 당장 저 놈과 저 가짜 성녀를 잡아서 내 앞에 데려와라!!!” 마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응한 것은 가우리의 구호대원들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감히 누굴 잡아간다고?” “음!!!!” 가우리의 대원들이 앞으로 나오자 마릴라 성녀는 크게 당황했다. 성급한 성격 때문에 잘못된 명령을 지르기는 했는데···. 이 명령이 가우리쪽의 일행을 움직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신관도 눈살을 찌푸렸다. ‘저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같은 철부지 년이···.’ 레이시안의 일행을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애당초 이런 복잡한 수작을 부리지 않고 진작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가우리. 저 최강국을 건드릴 깡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저 철부지가 꽥꽥 소리 지르며 발광을 하더니 기어코 잠자고 있는 사자의 콧 털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큼··. 마릴라 성녀님. 잠시 진정하시지요. 가우리쪽의 여러분들도 일단 진정해 주십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품계는 성녀보다 더 낮은 지방의 신관이지만, 더 이상은 이 사태를 그냥 지켜 볼 수 없었다. 애당초 이번 신전의 구호대를 이끌고 있는 것이 자신인데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면 자신의 목이 간당간당할 것이다. 그것도 직위의 파직을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실제 목이 간당간당한 것이다. 그러나 가우리 쪽의 사람들은 이미 제법 화가 났다. 그들은 처음에는 명령으로 따랐을 뿐이지만 점점 레이시안과 함께 하면서 그녀의 위엄과 매력에 젖어 들어갔다. 그래서 이제는 레이시안에 대한 마음이 정운에 대한 존경심을 넘어설 정도였다. 이들에게 박정운은 존경의 대상이자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훌륭한 리더였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이들에게 어머니였고 친 누님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훌륭한 리더라고 해도 결국 단출하게 풀이하면 직장 상사다. 자신의 가족보다 소중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레이시안을 모독하고 이제는 성기사들을 시켜서 잡아간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들 대부분은 상당한 고위 레벨이다. 국자 들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스프를 퍼주고 있던 사람도 사실은 레벨 60대의 귀환자였다. 마음 먹으면 시골 신전의 성기사단 따위···. ‘5초 만에 한 줌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지.’ 그런 것이다. 가우리의 직원들은 살기등등하게 상대를 노려봤다. 일대로 전투가 벌어지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신전의 무리를 인솔하고 있는 신관은 이 긴박한 상황에 진땀을 질질 흘렸다. ‘제길··. 저 철부지 계집애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이 상황에서 가우리에게 충돌의 빌미를 주면 그 여파는 자신 같은 지방의 신관 따위가 감당 할 수 있을리 없었다. 그런 신관의 고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우리의 직원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싸움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주지. 모두 준비해라.” “옛!!” “옛!!” “옛!!” 가우리의 직원들이 모두 무기를 꺼내들고 전의를 불태웠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력한지 아무 힘도 없는 일반인들은 가우리쪽 인물들의 기세 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저게··. 가우리인가?” “저 사람 아까 우리한테 물건 나눠주던 사람인데···.” “저 사람은 우리 배식해 주던 사람이야. 저런 사람들까지 저렇게 강하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가우리의 강력함에 크게 감탄할 뿐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현실과는 좀 다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우리에서는 주방 보조나 잔 심부름 하는 사람 조차 성기사들 보다 훨씬 강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 이들이 레이시안을 호위하기 위한 상당한 고위 능력자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상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최악의 상황에 일행을 통솔하던 신관은 입이 바싹 말랐다. ‘어떻게든 말려야 돼. 어떻게든····.’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세상에는 알아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종종 나타나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이 그에게는 딱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충돌 직전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만들 두세요. 이 자리에 싸우러 온 것은 아니지 않나요?” 통솔역인 신관에게는 천상에서 울리는 복음을 듣는 심정일 것이다. 레이시안이 가우리의 직원들을 알아서 말려 준 것이다. “레이시안님. 하지만 이 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것도 감히···.” 가우리의 직원들은 자신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레이시안을 모독하고 공격하려고 한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담담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별 것 아닌 일입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레이시안은 무조건 힘없는 일반 백성들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 그런 그녀가 이런 평범한 마을 한 복판에서 전투를 허락할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가우리의 조장도 레이시안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그녀의 결정에 무조건 수긍하라는 명령을 받기고 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의 말에 거역할 마음 자체가 들지를 않았다. 그리고 덩달아 신전 쪽에서도 구원 받은 기분이 들었지만···. 딱 한 명. 마릴라라는 철부지 성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신성 모독을 저지른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기껏 꺼진 불에 다시 기름을 붓는 마릴라 성녀의 행동에 신전 쪽의 인간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아 진짜·····.’ ‘머리 속에 뭐가 들었냐?’ ‘누구야? 저런 철부지한테 성녀 서품을 내린게··.’ 같은 편인 신전 쪽의 인간들이 이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마릴라라는 공주병 철부지 계집을 눈살을 찌푸리고 바라봤다. 그런 상황에 마릴라의 좁디 좁은 속은 폭발해 버렸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뒤로 물러날 판단을 할 정도로 현명하지도··.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 눈치를 볼 정도의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 “잡아와!!! 당장 잡아와!! 이건 명령이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성녀라는 계급은 상당한 고위 계급이다. 같은 성녀들이 말리지 않는 이상 이 자리에서 마릴라 성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 기사들이 쭈뼛 거리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가우리쪽은 몰라도 아까 철부지의 심기를 건드린 저 평민이라면···. 그걸로 저 철부지가 일단 인정해 주기만 한다면···.’ 인솔 신관은 그렇게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원만하게 수습하면 다시는 이런 임무는 맡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그때···. 레이시안은 작게 한 숨을 쉬더니 그대로 마릴라를 향해서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갔다. “뭐··. 뭐야!? 가짜 성녀 주제에····.” 레이시안이 그저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마릴라는 위축 되었다. 레이시안의 표정은 차분했고 화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릴라가 느끼고 있는 압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사자 앞에 토끼가 된 듯한 심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막연한 공포를 느낀 마릴라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그런 마릴라의 앞에 도착한 레이시안은···. 짝!!! 그대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 ============================ 작품 후기 ============================ 원 싸대기 쓰리 강냉이? 그럴리야 없겠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80화 휘둘러진 레이시안의 손바닥··. 그리고 휙 돌아간 마릴라의 얼굴···. 소위 말해서 싸대기를 날렸다. 라고 표현 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어··. 어버버····.” “어이··. 방금···?” “아··. 어쩌지? 이걸····.” 이 자리에 있던 일반 인들을 포함해서··. 가우리의 인간들을 제외하고 성 세인트 왕국 출신의 인간들은 모두 놀랐다. 성녀가 맞았다. 이런 상황은 그들의 상식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의 이 성녀의 행동은 누가 봐도 눈살을 찌푸릴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녀는 성녀다. 민중들에게 성녀라는 것은 신성한 존재였고 기본적으로 그런 성녀가 누군가에게 맞는 다는 일은 생각도 해 본적 없었다. 성 세인트 왕국의 봉인지정 무기인 세라핌 소환. 그 소환의 의식을 위해서는 성녀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생지옥을 떨어트리지만··. 그런 특수 상황은 당연히 절대 비밀인 것이었고, 성녀들 본인들조차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은 절대 모르고 있다. 성녀는 어디까지나 신전의 꽃이며 절대적인 보호화 숭배의 대상. 그게 성녀라는 존재에 대한 성 세인트 왕국의 상식이었다. 즉, 성녀가 노상에서 맞았다. 라는 것은 성 세인트 왕국의 국민들에겐 어마어마한 쇼크인 것이다. “너···. 너 감히···.” 잠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해 있던 마릴라는 한 박자 는게 레이시안에게 따지려고 했다. 짝!!! 하지만 다시 한 번 통쾌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이 반대로 돌아갈 뿐이었다. 양쪽 뺨이 모두 빨갛게 변한 마릴라는 눈물이 핑 돌았다. 성녀로서 신전에서 귀하게 받들어지기만 한 그녀가 언제 어디서 이런 고통을 겪어 봤겠는가? 그런 마릴라에게 레이시안이 훈계하는 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직자의 본분은 영혼은 신을 모시고 자신의 생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에 사용하는 것. 그런 당연한 것도 아직까지 몰랐나요?” 레이시안의 말에 마릴라는 눈을 부릅 뜨고 외쳤다. “감히 누구한테 훈계질이야. 정식 서품도 받지 않은 가짜 성녀 따위가 감히 나한테!! 지금 당장····.” 짝!!! 헛소리의 대가는 다시 싸대기로 돌아올 뿐이었다. 마릴라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호위로 따라온 성기사들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이 가짜 성녀를 체포. 아니 죽여 버려!! 이건 명령이다!!!” 그녀의 앙칼진 외침에도 성기사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디 할 테면 해 봐라.’ 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가우리의 인간들이 뒤에서 팔짱을 끼고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용감한 것도 뭣도 아니다. 그냥 무모한 짓일 뿐. “성녀님··. 이만 물러나시죠.” “상황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성기사들은 결국 마릴라를 말려서 데리고 가려고 했다. 마릴라는 그런 성기사단의 행동에 악을 쓰듯이 소리를 질렀다. “뭐야!! 너희들 내 호위면서 내 명령을 못 듣겠다는 거야!!? 이거 놔!!!” 빽빽 소리를 지르면서 악을 쓰고는 있었지만 그런 마릴라의 투정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철부지의 미친 짓 때문에 수십명의 인간들의 목숨이 살았다 죽었다 를 반복했다. 더 이상은 심장에 안 좋아서라도 이 철부지를 그냥 방치 할 수는 없었다. 마릴라는 자신의 호위 기사들에게 끌려 가면서 레이시안에게 소리쳤다. “이이··. 너, 이름을 밝혀!! 이대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테니 이름을 밝히라고!!!” 이제까지 가우리쪽의 인간들이 몇 번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 철부지는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가짜 성녀라고만 취급했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숨길 생각 없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레이시안입니다.” “레이시안? 어디···. 레이···. 레이시안!!?” 말을 하던 마릴라 성녀는 레이시안의 이름을 듣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아니 그러고 보니······.’ 이목구비가 상당히 변한 것 같기는 하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과 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너무나 고지식하고 규율을 최우선으로 지켜오던 답답한 성녀. 자신의 선배였기에 뭐라고 말은 못했었지만 속으로 수도 없이 험담했던 여자였다. 나중에 그녀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들었을때는 같은 성녀임에도 잘 됐다고 쾌재를 부르며 하루종일 입가가 귀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이제 다시는 만날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는데···. ‘어··. 어떻게 여기에····.’ 마릴라는 그저 바짝 얼어버릴 뿐이었다. 그냥 첫 눈에는 알 수 없지만 이름을 듣고 곰곰하게 생각해 보니 그제야 레이시안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레이시안임을 알 수 있었다. “어··.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당신은 분면 집창····.” 말을 하던 마릴라는 아차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비록 타락한 성녀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같은 성녀가 집창촌의 창녀로 팔려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니 비밀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이런 대중들 앞에서 함부로 밝힐 수 있을 정도의 사실은 아니었다. 일단 마릴라 성녀는 이대로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어째서 성력도 다 봉인당한 여자가 저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서 나병까지 낫게 할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으며? 과연 가우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이며? 묻고 싶은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냥 물러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릴라와 신전의 일행들이 모두 물러나고···. 가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해서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변한 점이 있다면 이전에 레이시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존경과 감사였다면···. 이제는 거의 진짜 여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경외감에 젖어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를 보면서 실제 신을 보는 것처럼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나병이 나은 전 나병 환자들은 레이시안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레이시안은 자신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도록 구원해준 여신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일파만파가 되어서 성 세인트 왕국의 전역에 퍼져 나갔다. 쾅!!! “이건···. 이건 말 도 안돼!!!” 한 장의 보고서를 받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인물은 격앙 되어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이름은 바추리 그라시아. 추기경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며 이 성세인트 왕국의 핵심 권력자이기도 하다. 일단 이 성 세인트 왕국에서 추기경이 어느 정도 자리에 있는지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이 나라도 종교 국가이긴 하지만 일단 왕국의 이름을 대고 있다. 그러니 당연하지만 왕위에 있는 왕이 한 명 있다. 소위 성왕이라고 하는 위치의 왕이 이 나라의 가장 톱에 군림하는 자이다. 그 다음으로 세 명의 대주교가 있다. 신분상으로는 왕 다음으로 높은 자리이며 거의 이 나라의 실권자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대주교의 바로 밑에 있는 20명의 직위가 바로 추기경이었다. 즉, 이 나라에 공식적으로 추기경보다 자리가 높은 인물은 세 명의 대주교와 그 위에 있는 한 명의 성왕 뿐. 즉, 네 명뿐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높은 직위가 추기경이었다. 비록 같은 급들이 19명이나 더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에서는 이 자들의 말이 곧 법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다. 그 위세가 얼마나 당찬가 하면···. 성실한 성녀를 자신의 숨겨진 아들이 겁탈했을 때도 죄를 숨겨주고 증거를 조작해서 오히려 그 성녀를 타락 시킬 수 있을 정도이다. 말을 더 해서 무엇 할까? 이 남자가 바로 레이시안을 신성한 성녀에서 집창촌의 창녀로까지 떨어트렸던 악당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읽은 보고서는 그 레이시안에 대해서였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병이 나아? 그리고 기적의 여신? 이···. 벌레 같은 민중들이 미쳐 가지고···.” 기적의 여신이라는 말은 최근 성 세인트 왕국의 백성들이 레이시안을 보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가면 안 나을 병이 없었다. 나병 환자 뿐만이 아니라 장님도 그녀가 손을 보면 눈을 뜨고, 벙어리도 말문을 열었다. 마치 이 세상에 못 고칠 병은 없다는 듯이 어떤 병이든 척척 고쳐 버리니 백성은 이제 그녀를 성녀가 아니라 기적의 여신이라고 불렀다. 물론 레이시안은 자신이 여신이라고 불리는 것은 절대 거부했다. 신을 모시는 사제인 자신이 여신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은 그녀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사양하고 겸양해도 백성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그 정도로 그녀의 위명은 하늘을 찔렀다. “····이 보고서를 쓴 마릴라 라는 성녀를 불러라.” “예. 알겠습니다.” 바추리 추기경은 금세 마릴라를 호출했다. 아무리 성녀라고 콧대를 높이 세운다고는 해도 추기경 앞에서도 그럴 수는 없는 법. 마릴라는 나타나자마자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추기경 각하.” “앉으세요. 마릴라 성녀.”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침착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성직자로 보이는 둘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못 말리는 공주병에 성질 못된 철부지 계집애와,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치 않는 악당의 만남일 뿐이었다. “보고서는 모두 읽었소. 여기에 거짓이나 과장은 없는 것이 확실하오?” 바추리 추기경의 말은 존댓말이었지만 다분히 추궁하는 느낌이 강했다. “예. ·····물론입니다.” 약간 언 목소리로 대답하는 마릴라의 얼굴은 공포로 약간 얼어 있었다. 바추리 추기경은 그런 마릴라의 얼굴을 차갑게 바라봤다. ‘뭐야··. 왜 너런 눈으로···.’ 마릴라는 그런 바추리 추기경의 시선에 뱀이 자신을 노려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둘은 도저히 좋은 성직자··, 아니 인간 자체로도 결고 좋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악인, 아니 그 보다는 인간쓰레기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쓰레기는 쓰레기 나름대로 격의 차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신전의 복잡한 정치 관계 속에서 추기경의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서 위에 있는 사람은 쳐내고 아랫 것들은 발판으로 무참하게 짓 밟으면서··. 그렇게 냉혹하고 잔인하게 이 자리에 올라온 바추리 추기경이었다. 사실 성직자라기 보다는 노련한 악덕 정치가 같은 인간이었다. 어쨌든 그냥 운 좋게 성녀로 태어나서 성녀로 자라난 마릴라에 비하면 성품은 둘째 치고 성능은 상당히 뛰어는 인간이었다.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군. 그렇다기 보다 이런 철부지가 그런 것을 꾸며낼 틈이 있을리 없지.’ 바추리 추기경은 거기까지 생각한 다음 자기 턱에 손을 가져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 창녀가 어째서 집창촌을 탈출했을까?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그가 이럴 때는 항상 음모를 꾸밀 때였다. 그리고 마릴라는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저기,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문을 열자 거기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성기사였다. 그리고 그 성기사는 문을 막고는 절대 비켜주지 않았다. “저기··. 추기경님. 여기 이 분이 길을 막고 비켜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만···.” 마릴라의 말을 들은 바추리 추기경은 잠시 마릴라를 흘깃 바라보더니 중얼 거렸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건 없지. 가리온.” “옛. 추기경 각하.” 이 성기사의 이름은 가리온. 추기경의 심복이자 사실은 숨겨진 아들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부하 기사들과 함께 레이시안을 겁탈했던 진범이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숨겨진 아들인 가리온에게 바추리 추기경이 말했다. “마릴라 성녀에게 세라핌 소환 의식을 치루게 해라.” 추기경의 말을 들은 가리온의 입가가 올라갔다. “예. 알겠습니다. 좋은 세라핌이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을대로 해라.” 그리고 허락을 받은 가리온은 마릴라 성녀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 잠깐만요.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거죠?” 당황한 마릴라에게 가리온은 웃으면서 말했다. “신성한 의식을 수행하려는 것입니다. 성녀님을 통해서 한 차원 높은 존재를 불러내는 거죠. 이리 따라 오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릴라는 일단 가리온을 따라서 스스로 발길을 움직였다. 세라핌 소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그리고 방에 홀로 남은 바추리 추기경은 이대로 레이시안이 국내에서 위세를 떨치게 놔둘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레이시안의 입에서 예전의 일이 나오기라도 하면 여간 곤란한게 아니다. 그러니 그 전에 그녀를 다시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훨씬 더 지독한 나락으로 떨어트려 주지.” 그렇게 중얼 거리는 바추리 추기경의 시선은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레이시안이 이전과 같이 순순히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81화 <파멸> “초청을 한다고요?” 레이시안은 살짝 눈을 치켜뜨고 의외라는 듯이 중얼 거렸다. “예. 신전에서는 최근 활발한 구호 활동을 하고 계시는 레이시안 성녀님의 활동을 드높이기 위해서 성녀님을 수도로 초청하려 합니다.” “·············.” 홀리 엔젤로 진화한 레이시안이지만 지금은 제법 놀랬다. 오늘 아침에 신전의 사신이라는 이름으로 성기사 한 명이 찾아왔을 때 이미 조금 놀랐었다. 하지만··. 그 후에 자신을 초청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훨씬 더 크게 놀랐다. 신전의 오만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초대라니? 레이시안은 지금 공개적으로 자신이 모시는 신이 파우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천명한 상태였다. 가우리라는 후광만 없다면 진작 이단 재판을 벌여서 화형 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봉사 활동을 칭찬 할 테니 수도로 와 달라?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 할 수가 없네.’ 레이시안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 신전에서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결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가겠다고 전하세요.” “예.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레이시안의 대답을 들은 성기사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에서 가우리에서 그녀의 호위로 파견해준 직원이 말했다. “레이시안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건 틀림없이···.” “함정이겠죠.” 레이시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알면서도 가신다는 것은···. 뭔가 복안이 있으신 겁니까?” “없습니다.” 레이시안의 담담한 목소리는 듣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럼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가우리의 직원을 보며 레이시안이 말했다. “그저 이 모든게 주께서 이끌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니, 전 거기에 따를 뿐이죠.” “··············.” 성직자에게 운명이란 것은 신의 안배와 같았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성직자들은 그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혹은 상황에 순응하는 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차피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뒤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따르면 그뿐인 것이니 말이다. ‘····아무래도 본국에 보고해야 겠군.’ 결국 이번 일에 관해서는 가우리의 직원이 따로 손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성직자에게는 미래란 신께서 정한 운명일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미래란 자기 스스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성 세인트 왕국의 수도 뮤니온. 성 세인트 왕국의 국민들은 이 도시를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라고 한다. 중앙의 광장은 대예배를 주관하기 위해서 적합하게 지어져 있었고 도시의 모든 건물은 얼룩 하나 없는 순백색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도시들처럼 동서남북 사방에 문을 만들어 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남쪽의 정면에만 딱 하나의 문을 만들어 두고 있으며 수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성왕궁은 거대한 성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미 이 도시 하나가 통째로 거대한 신전인 것이다. 실제로 수도의 모든 국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5급 수련사제라는 신분을 지닌다. 뭐··. 5급 사제라고 해 봐야 별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이름 자체에 사제를 붙여서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모두 신을 모시는 사제라는 형식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수도의 대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다. 그들은 수도의 국민들 뿐만 아니라 기적의 여신을 보기 위해서 성 세인트 왕국의 각지에서 몰려온 자들도 포함 되었다. “대단한 인기군요.” “흠···. 이거 참···. 성왕 전하의 예배가 있는 날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는 않는데····.” “흠··. 크흠··. 입을 조심합시다. 윗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것은 없지 않소.” “음····.” 환영식 행사를 준비 중이던 사제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하던 말들을 조심했다. 그러나 말조심은 말조심이고···. 확실히 백성들의 반응이 다르긴 달랐다. 성왕이 대광장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건 수도의 국민들 대다수를 반 강제로 집합시키기 때문에 그런 머릿수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강제성 없이 자율적으로 모이라고 하면··. 과연 10분의 1이나 모일까 의심스러웠다. 거기에 반해서 수도 국민들은 물론이고 각지에서 모여든 이 무수한 국민들의 숫자에···. 지금 수도 뮤니온은 대광장은 물론이고 광장에 연결된 골목 하나하나까지 사람이 꽉 들어찬 상태였다. 새삼스럽지만 기적의 여신이라는 이름의 알 수 있는 시기였다. “흠···. 사람이 무척 많이 모였군.” 바추리 추기경은 수도의 대광장에 까마득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옆에는 대주교중에 한 명인 브레임 사라도스가 다가와서 말했다. “바추리 추기경. 그대가 원하는 대로 무대는 만들었소. 이걸로 그 가짜 성녀를 확실하게 몰락 시킬 수 있는 것이오?”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 있는 브레임 대주교를 보며 바추리 추기경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바추리, 반드시 신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저 가짜 성녀를 신의 이름으로 처벌하겠습니다.” “일단 믿고 있겠소. 단 실패할 때에는 잘 알거라고 믿소.” 이번 일은 대부분 바추리 추기경의 주도하에 이뤄 졌다. 당연히 실패하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신, 이번 일이 잘 되었을 때에는···.” “걱정하지 마시오. 그 누구도 이견을 내지 못할 것이오. 그대도 이제 대주교의 자리에 오를 때가 되었지.” 브레임 대주교의 말에 바추리 추기경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주교. 추기경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그래도 위에는 위가 있는 법. 이 나라에 세 명 밖에 없는 대주교의 자리가 탐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만, 대주교의 자리는 좀처럼 공석이 생기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선임 대주교가 사망했을 때에만 기존의 추기경들 중에 대주교를 골라서 선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이전의 전쟁에서 미켈란 브란다 대주교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 남은 공석을 두고 여러 추기경의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 얼마나 치열한지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다음 대주교가 누구인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추리 추기경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다음 대주교로 오르기 위해서 큰 공적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도박을 무릅쓰지 않을 수는 없지····.’ “걱정 말고 그저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알겠네···. 그럼 일단 믿어보지.” 그리고 브레임 대주교는 자리를 비웠다. 그런 상대의 등 뒤를 바라보는 바추리 추기경의 눈동자는 출세를 위한 야망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네놈과 동급으로··. 아니 언젠가는 그 위로 올라가 주마.’ 과연 그렇게 될 지는 의문이었다. 바추리 추기경은 자신의 준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의 작전의 핵심 인물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간 곳에는···. “오셨습니까? 추기경님.” “어··· 음··. 예. 여기는 어쩐 일로····.” 바추리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곧 네놈들이 활약할 시간이다. 그런데 이꼴이 뭐냐!!!?”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과 방문을 열었을 때부터 확 올라오는 주향에 바추리 추기경은 호통을 쳤다. 그러자 눈앞에 있는 놈들은 감히 고개를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푹 숙였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뒷골목 인생. 소위 말하는 삼류 조직 폭력배들이었다. 바추리는 이들을 이용해서 레이시안을 가장 심각한 약점. 바로 과거 집창촌에서 창녀로 있었던 상처를 혜집으려는 것이다. ‘쯧쯧···. 이런 것들을 믿고 일을 시켜야 하다니··. 어쩔 수 없지. 이전에 있던 놈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 바추리 추기경은 자신이 이런 양아치들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좋은 계획은 없었다. 상대가 민심을 장악하고 있다면···. 그 민심을 한 번에 뒤집기 위해서 배신감 이상 가는 독약은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레이시안이 창녀로서 있었다는 것을 밝히면 그것만으로도 동요하는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레이시안은 반드시 사실을 부인 할 것이다. 기적의 여신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녀가 한때 집창촌에서 몸을 팔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것은 대 스캔들이다. 물론 진실을 돌아보면 피치 못할 사정··. 이랄까? 억울한 음모가 있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그런 것들이 제대로 귀에 들어올까? 성녀가 아니라고 해도 여성으로서 매춘을 했다는 것은 큰 수치심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레이시안이 부정을 할 것은 뻔 했다. 그럴 때 피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할 생각이었다. 가우리가 이 세계에 퍼지면서 좋은 것도 많이 들어갔지만···. 반대로 별로 좋지 못한 것도 들어갔다. 아니, 이번 경우는 알아서 생겼다고 해야 할까? 무슨 말이냐 하면·····. 가우리는 캠코더라는 영상매체를 팔았을 뿐이다. 캠코더, 영상을 기록해서 자작 영화를 만들거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물건들이 그렇지만 꼭 만들어진 용도로만 그 물건이 사용되지는 않는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캠코더를 이용해서 AV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건 뭐랄까? 사람들 생각하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창녀들을 안으면서 그녀와의 성관계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변태들이 이 세계에서도 종종 있었다. 그러라고 만든 물건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쓸 놈들은 쓰는 것을···. 그리고 레이시안이 집창촌의 창녀로 있을때도 그런 변태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영상도 확실하게 확인되었다. 이제 그녀가 진실을 부정하면 그때는 영상을 공개해서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배신감에 반신반의하던 민중도 자신들이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몸을 팔았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완벽하지.’ 바추리 추기경은 그렇게 일을 몰아가면 이제 공식적으로 저 가짜 성녀를 이단으로 몰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무리 가우리가 뒤에 있다고 해도 괜찮다. 지금까지의 가우리의 행동을 살펴 보면 민심을 거스르는 짓은 함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심을 예민하게 살피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살짝 유도하는 것을 즐겼다.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짓을 하지 않는 가우리의 성향을 생각하면 민중의 지탄을 받는 가짜 성녀를 감싸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들··. 준비는 확실하겠지?” “물론입니다. 추기경님. 준비한대로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그 더러운 창녀의 정체를 밝히는 것만 신경 써라. 알겠냐?” “예. 저기 추기경님···.” “왜 그러지?” 어려운 표정으로 말을 꺼낸 놈에게 바추리 추기경이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놈이 자신의 용건을 어렵사리 꺼냈다. “저, 이 일을 처리하면 저희들의 뒤는··.” “아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안전을 책임져 주지. 오히려 큰 상을 내려주마.” 바추리 추기경이 무척 가식적으로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놈들은 크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도 원래 그 년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저희 밑에서 다리나 벌리던 창녀가 어디서 성녀라고 사리를 치다니···.” “걱정 말고 저희한테 맡기십시오. 그 창녀의 정체를 철저하게 밝혀 내겠습니다.” 의욕적인 놈들을 보고 바추리 추기경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것만 잘 처리하면 너희들은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가서 준비해라.” “예.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방을 나가는 놈들의 등뒤를 보면서 바추리 추기경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걱정마라. 상은 진짜 줄 테니····. 자고로 신의 이름 아래에 순교 하는 것 이상의 상은 없는 법이지···. 후후··. 하하하하하····.” 애당초 상은 고사하고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저 쓰레기들이 어디가서 입이라도 놀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차피 벌레 같은 목숨이니 입을 막는 것에 수단방법을 가릴 생각은 없었다. 바추리 추기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진심으로 지은 마지막 웃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그는 몰랐다. ============================ 작품 후기 ============================ 쯧쯧쯧....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82화 “온다!!” “오오오···. 온다. 저기 저 분인가?‘ “안 보여!! 앞에 좀 앉아 봐!!!” 사람들의 눈앞에 화려한 비행선이 하늘을 날아서 오는 것이 보였다. 그 비행선은 강보고의 유니크 아이템이었던 메가스톰이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의 비행선이 지금 성 세인트 왕국의 상공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비행선은 지면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호버링 하듯이 정지했고, 이내 호위병들이 비행선에서 내려와서 양쪽으로 도열했다. 그리고 이내 해치의 문의 사이로 다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내려왔다. 척 봐도 위엄 있고 화려한 행렬을 보면서 민중은 레이시안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백 명을 이끌고 나타난 것은 레이시안이 아니었다.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행의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남자였다. “앗!! 당신은···.” “이런·· 박정운 수상 각하!!!” 성왕을 비롯해서 두 명의 대주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가우리의 수상인 박정운과 가우리의 간부들인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신을 보고 바짝 쫄아 버린 성 세인트 왕국의 성왕과 대주교들을 보면서 정운은 담담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같은 나라의 톱이라고 해도···. 가우리의 수상인 박정운과 성 세인트 왕국의 성왕 사이에서는 까마득한 차이가 났다. 경제력, 문화력, 군사력 등등··. 여러 가지 차이가 나겠지만 가장 큰 차이를 말하자면 일단 이 둘의 힘의 차이다. 성 세인트 왕국의 성왕도 사실 상당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힘을 이용해서 전투에 활용 할 수 있는 비술도 몇 가지나 가지고 있다. 가우리의 기준을 치면 소드 마스터 중급, 혹은 상급 정도는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레벨로 치면 100에서 110정도? 그렇지만 정운의 경우 레벨이 300이 넘는다. 제로 트리를 통해서 꾸준하게 전투력 향상까지 게을리 하지 않은 정운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성 세인트 왕국의 수도를 단신으로 황무지로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구로 치면 인간 핵폭탄. 혹은 이쪽 세계의 기준으로 치면 걸어 다니는 봉인지정 무기인 것이다. 아니 그것도 표현이 약할 정도다. 그런 인간이··. 아니 괴물이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니, 성 세인트 왕국 입장에서는 경기를 일으킬 법도 했다. “크흠···. 가우리의 수상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성왕의 말에 정운은 살짝 웃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별건 아니고, 성 세인트 왕국에서 제 누님을 초대 했다고 하시기에··. 저도 일단 어떤 일인가 싶어서 와 봤습니다.” “·····누님····? 이라뇨?‘ 정운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성 세인트 왕국의 성왕이었다. 그런 성왕에게 정운이 말했다. “모르셨습니까? 최근 이 나라에서 기근 지역의 빈민들을 위해서 구호 활동을 하고 계신 에리시안님이 제 누님입니다.” “저··. 저··. 혹시 친 누이이신 것은···.” 성왕의 당황한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결의남매입니다.” 정운의 그 말에 성왕의 얼굴은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정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제 친누이 같은 분이시죠. 제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윗사람으로 모시며 따르고 있습니다. 피붙이가 없는 저에게는 가족이나 다름 없는 분이시죠.” “·················.” 성왕은 무척이나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성왕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을 받고 있는 인간들이 둘 있었다. “바··. 바추리 추기경. 자네····. 이런 것도 알아보지 않았나?” 브레임 대주교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바추리 추기경에게 말했다. 바추리 추기경의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파랗다 못해서 아애 하얗게 질려 버린 바추리 추기경의 얼굴이 그 증거였다. “자··. 자네. 문제는 없겠지? 응? 없는 거지?” 브레임 대주교가 작은 목소리로 하는 추궁을 들은 바추리 추기경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막··. 막아야 돼. 잘못하면···.’ 바추리 추기경은 지금 당장이라도 계획을 막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가우리의 수상을 남동생으로 두고 있다고? 그런 일은 상상도 못 해봤다. 그걸 알았다면 이런 계획을 꾸몄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간이 팅팅 탱탱 부었다고 해도 절대 꾸미지 않았을 계획이다. 이제라도 좋으니 빨리 계획을 되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때····. “거기 계신 분? 얼굴이 좋지 않으시군요?” 정운이 바추리 추기경을 보고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아아···. 아아···. 아······.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 잠시 업무가 있어서 일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이 쉬운 말이 감히 입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 정도로 바추리 추기경은 엄청나게 긴장해 있었다. 심장이 쉬지 않고 쿵쾅쿵쾅 거리는 것이 그대로 몸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 같았다. “이런··. 정말 안 좋아 보이는데 저 사람 괜찮은 겁니까? 혹시 장애가 있으신 분인가요?” 정운의 말에 성왕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평소에 멀쩡한 사람인데 왜 오늘따라···.” “흠, 그래요?” 정운은 심드렁하게 말하면서 바추리 추기경을 바라봤다. 그 시선은 마치 바추리 추기경의 추악한 일면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리고 정운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바추리 추기경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안절 부절할 뿐이었다. ‘지··. 지금 이럴때가 아닌데···.’ 바추리 추기경이 울상을 짓고 있는 사이···. 결국 레이시안이 도착했다. 화려하게 비행선을 타고 도착한 정운들과 달리 레이시안은 그저 자신의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등장하고 있었다. 이미 저 멀리서부터 그녀를 보고 민중들이 술렁 거리고 있었다. “저 분이 기적의 여신···?” “아···. 아름답다.” “정말··. 굉장히 성스러운 아름다움이야.” “세상에 저런 분이 계시는 구나···.” 레이시안은 그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운 분위기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것은 바추리 추기경에게 더러운 지시를 받은 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워··. 원래 저랬나?” “원래 예쁜 편이긴 했지만 저건···. 내가 저분, 아니 저년한테 수십 번은 해 봤지만 저렇게는···.” “어··. 어쩌지? 해?” “해야··· 되나?” 레이시안의 성스러운 분위기는 굉장히 추잡한 인생을 살아온 쓰레기들조차 위축 시켰다. 결코 자신들 따위가 더럽혀서는 안 될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하지만····. “제길, 하는 수밖에 없어. 하지 않았다가는··.” “····어쩔 수 없지.” 결국 놈들은 계획을 실행했다. 놈들은 민중들의 앞으로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더러운 창녀 주제에 감히 어디서 사기 행각이냐!!?”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저 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창촌에서 돈 몇 푼에 다리나 벌리던 더러운 창녀요!!” “맞소!! 나도 저 년하고 배곱 맞춘 적이 몇 번이나 있지!!”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는 놈들은 순식간에 주목을 모았다. “뭐야··. 저 놈들은 도대체···.” “기적의 여신님에게 감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저런 쓰레기들·····.”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좀 그럴듯한 인간이 말한다면 혹시 모른다. 하지만 지금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놈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뒷골목 쥐새끼들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아닌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게 뻔한 놈들이 자신들이 존경하는 인물을 헐뜯으니 오히려 분위기가 험악해 졌다. 그리고···. 민중들 보다 훨씬 더 분위기가 험악해진 곳이 있었으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정운이 싸늘한 표정으로 한 마디 캐물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저, 그것이 아무래도····. 거리의 쓰레기들이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것 같습니다.” 성왕은 정운에게 고개 숙여 빌다시피 변명했다. 그리고 그런 성왕을 보면서 바추리 추기경은 순간 머리를 번뜩이며 지나가는 어떤 생각이 지나갔다. ‘그거다!! 내가 살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어.’ 바추리 추기경은 정운의 앞으로 나가서 황급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박정운님. 아무래도 거리의 쓰레기들 중에 몇몇 놈들이 기적의 여신님을 시기해서 일을 벌인 것 같습니다. 제가 당장 가서 놈들을 모두 처리해 버리겠습니다.” “···············.” 정운은 못 마땅한 얼굴로 허리숙인 바추리 추기경을 지그시 바라봤다. 뒤통수로 정운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있는 바추리 추기경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이렇게 못마땅해 하는 거지?’ 사실 잘못 한 것이야 한 두 가지겠냐? 만은····. 지금 정운의 입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이 놈이 레이시안을 기적의 여신이라고 칭했다는 것이었다. 정운의 입장에서는 파우스트가 적이지만··. 이 놈들의 입장에서 파우스트는 유일신이었다. 그런데 명색이 사제라는 놈이 레이시안을 주저 없이 기적의 ‘여신’이라고 칭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 버리는 사제라는 것은···.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엄청난 소인배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바추리 추기경은 정운에게 단단히 찍히기는 했다. ‘고작 이런 놈인가? 이런 놈이 누님의 인생을 그렇게 고통 스럽게 했다고?’ 이미 미하엘에게 조사 명령을 내려서 레이시안을 나락을 떨어트렸던 인물들에 관해서는 다 조사를 한 정운이었다. 당연하지만 바추리 추기경과 그의 숨겨진 아들인 가리온은 정운에게 있어서 단단히 찍힌 인물들이었다. 레이시안을 진짜 누님처럼 생각하는 정운에게 있어서 바추리 추기경과 그의 아들인 가리온은 이미 죽음이 확정된 살생부의 인간들이었다. 가뜩이나 거슬리는 놈들이 한 층 더 거슬리는 모습을 보이자 경멸을 넘어서 짜증이 확 솟구쳤다. ‘그냥 여기서 확 죽여 버릴까?’ 정운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냥 무작정 죽이는게 목적이라면 진작 죽였을 것이다. 오히려 정운은 이 놈을 죽이는 것 보다는 살리고싶었다. 정운의 기준으로 죽음은 반드시 벌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살리고 살려서 앞으로 있을 길고 긴 남은 인생 전부를 자신의 죄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좋도록 해 보시오.” 정운은 일단 짧은 목소리로 허락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힘 빠지도록 발버둥 치는 것을 구경하겠다는 심보나 마찬가지였다. 정운은 알고 있었다. 이미 이 상황에서 저 놈이 빠져나갈 길은 영영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제길!! 제길!! 제길!!!!” 명색이 신을 모시는 사제라는 인간의 입에서 쉬지 않고 욕이 튀어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바추리 추기경은 초조한 것이었다. ‘가우리의 수상이 누님? 누가 그걸 상상이나 했겠냐고!!?’ 바추리 추기경이 스스로 생각하기로는···. 절대로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레이시안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 뿐만이 아니라 신전 전체의 의견이었고··. 자신은 그 의견에 따라서 레이시안을 처리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설마하니 그 레이시안이 가우리의 수상인 박정운에게 누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일 줄은 그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결국, 바추리 추기경이 스스로 합리화 시킨 결과.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저 지독하게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나오는 길에 다른 추기경들의 질책과 비웃음 섞인 표정들을 보면서 바추리 추기경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정신줄을 놔 버리면 혈압으로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는 가는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일단 지금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최악의 결과를 수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좀 전에 성왕이 정운에게 한 변명을 듣고 바추리 추기경은 머릿속에서 실 날 같은 희망이 번뜩였다. ‘나하고 저 쓰레기들이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83화 그렇다. 사실 바추리 츄기경이 떠올린 생각은 그렇게 기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였다. 다행이도 지금 저 놈들의 말은 민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거부반응을 받고 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여기서 바추리 추기경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증거를 제시하고 대중에게 배신감과 실망감을 심어 주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오히려 저 쓰레기들을 쳐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목이 간당간당해 질 것이다. 문제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레이시안을 쳐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가우리의 수상인 박정운과 그렇게 긴밀한 사이라는 것을 안 이상···.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그녀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바추리 추기경은 어떻게든 레이시안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때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상대에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법이라는 것이 바추리 추기경의 생각이었다. 오히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는 레이시안 역시 자신과 같은 수준의 인간으로 보는 실수까지 범하고 있었다. ‘가우리의 수상과 누님. 동생하는 관계라···. 흥, 집창촌에서 아주 유용한 기술을 배웠나 보군 그래.’ 바추리 추기경의 추리, 혹은 망상에 의하면··. 레이시안이 몸으로 정운을 유혹해서 지금의 지위와 능력을 손에 넣었다. 라고 결론을 짓고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진 신성력과, 완벽하게 보정된 외모··. 그 모든 것이 가우리에서 뭔가 손을 썼다. 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모두 망상속에서 얻어진 결론일 뿐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을···. 그리고 바추리 추기경은 이런 생각도 했다. 그렇게 손익 계산이 빠른 여자라면 아직 협상의 여지는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스무스하게 넘기는 것에만 성공하면, 또 다른 기회는 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바추리 추기경은 소란스런 현장에 도착했다. “물러가!! 감히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이 어디라고··.” “썩 꺼지지 못해!!! 이 나쁜 놈들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여튼 미친놈들이··.” 바추리 추기경의 입장에서는 천만 다행이도··. 여론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고귀하고 성스러운 기적의 여신이 집창촌에서 몸을 팔던 창녀였다니? 민중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다. 레이시안의 과거를 들추고 있던 놈들은 민중의 예상 밖의 저항에 생각 이상으로 쫄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놈들 중에 한 명이 바추리 추기경을 발견했다. “추··. 추기경님. 이 놈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저 창녀의 정체에 관해서···.” “닥쳐라!!!!!” 바추리 추기경은 그대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놈들의 입에서 쓸데없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 큰일이었다. 바추리 추기경은 버럭 소리를 질러서 놈들이 일단 아무 말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놈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따라온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무례한 놈들을 모두 잡아··. 아니 즉결로 처리하라. 국빈에게 무례를 저지른 놈들이다.” “옛!!!” “옛!!!” “옛!!!” 부추리 추기경의 명령을 들은 성기사들은 검을 빼들고 놈들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런 상황에 이제까지 대중을 선동 하려고 했던 놈들은 크게 당황했다. 당초 계획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추··. 추기경님?” “이건 얘기가 다른···.” 놈들이 뭐라고 말을 꺼낼 것도 없이 바로 성기사들은 검을 빼들고 놈들의 목을 치려고 했다. “죽어라.” 냉혹한 시선으로 놈들의 목을 날려 버리려고 하는 성기사의 검날을 바라보면서 놈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고작해야 뒷골목에서 나이프나 상대하던 놈들에게 성기사의 칼날은 절대적인 죽음의 선고였다. 그런데 그때···. 깡!!! 성기사의 칼날이 놈의 목에 닿기 직전에 뭔가에 부딪히고는 그대로 튕겨 버렸다. 하얀 막 같은 것이 은은하게 놈들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누구냐!? 감히 신전의 행사를 방해하는 놈이!!!?” 성기사가 서슬이 퍼렇게 외쳤다. 그리고 거기에 대답한 것은 성스러움 속에 위엄과 상냥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제가 했습니다.” 말 할 것도 없이 상대는 레이시안이었다. “당···.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따지려고 들었던 성기사는 간신히 목소리를 조금 가라앉혔다. 그런 성기사들을 보며 레이시안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쉽게 사람을 죽이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뿐입니다.” “아니 하지만····.” 말을 하던 성기사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 놈들이 모독한 것은 당신이잖아?’ 사제를 향한 모독이 사형의 이유가 되는 것이 성 세인트 왕국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보호하는 레이시안의 태도가 성기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시안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매도했던 자들을 바라봤다. “음····.” “어···. 어어···.” “···아····.” 놈들은 자신을 꿰뚫어 보는듯한 레이시안의 얼굴을 보고 움찔했다. 엄밀히 말해서····. 이들이 한 말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비록 강제로 납치되어 팔려온 것이긴 하지만, 한때 레이시안이 집창촌에서 창녀로서 살았던 것은 사실이긴 했다. 여기 이 놈들은 레이시안을 직접 관리하던 놈들은 아니었다. 그 놈들은 모두 미하엘에게 박살이 났었다. 하지만 이 놈들도 무죄는 아니었다. 비슷한 구역에서 비슷한 일들을 하던 놈들이었고 실제로 이 중에서 레이시안을 범하지 않은 놈은 하나도 없었다. 레이시안이 집창촌에 강제로 팔려왔던 초창기에는 그 고통이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집창촌을 관리하는 폭력배들이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의 영업소를 지키는 일. 상품인 매춘부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강제로 잡혀온 여자들을 수단방법 거리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것도 이 놈들이 하는 이리었다. 강제로 잡혀온 여자들이 고분고분하게 매춘행위를 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런 여자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폭행이 이뤄진다. 성녀였던 레이시안에에게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로 짓 밝고,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어서 내동댕이치고, 그리고 수도 없이 그녀를 범하고 또 범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매도를 더해서 모멸감을 뼈 속까지 심어버린다. 조금이라도 자존심의 싹이 남아있으면 몸을 팔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현 상황을 체념하게 만드는 것도 이 놈들의 일이었다. 한 때 신전에서 왔다던 성녀라는 소문에 이 놈들은 레이시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레이시안의 행동은 이 놈들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저 레이시안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주다니···. 레이시안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산채로 난도질해서 죽이고 싶어야 정상이었다. 그런 장본인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주다니····. 뒷골목에서 시궁창 쥐새끼나 다름 없는 비열한 인생을 살아온 이 놈들은 절대로 레이시안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시안은 무심한 눈으로 이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의 안에서 과거의 기억이 하나하나 플래시 백 되듯이 연상 되었다. 처음 집장촌에 팔려 갔을때···. 어떤 남자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옷을 찢어 버리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서 비열한 욕심을 태웠다. 그리고 고통스러워 하는 자신이 그만하라고 애원하자 남자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XX년아!! 네가 아직도 성녀인 줄 알아!!? 그만 앙탈하고 다리나 벌려!!!” 너무나 분했고, 고통스러웠지만···. 당시 힘없는 여자일 뿐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힘껏 몸부림 쳐 봤자 자신의 위에서 헐떡이고 있는 짐승을 즐겁게 할 뿐이었다.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수많은 남자들이 레이시안의 몸을 범했고, 그럴때마다 레이시안은 계속 반항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네가 걔냐? 나도 어디 성녀님 다리 사이가 얼마나 성스러운지 한 번 보자” 결국 남자의 힘을 이기지 못한 레이시안은 늘 범해졌고 그녀의 고통만 계속 될 뿐이었다. 빈틈을 노려서 도망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은 놈들이 미리 레이시안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준비해둔 함저이라는 것을 말이다. 도망가다 잡힌 레이시안은 훨씬더 무참한 폭력에 짓 밟혔다. “이게 어디서 도망이야!!? 도망가면 어디 갈 때는 있을 줄 알아!! 우리한테 한 번 찍히면 아무대도 못가!!” 무참한 폭력과 짐승 같은 남자들의 능욕. 그리고 며칠 동안이나 그녀에게는 물 한모금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도 끊지 못한 레이시안은 결국 놈들이 다루기 쉬운 ‘상품’이 되고 말았다. 놈들이 원하면 어떤 요구라도 고분고분하게 들어줘야 했다. 반항하고 거부해도 결국 결과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절 수 없었다. “으음···. 이제 좀 고분고분해 졌네. 그러니까 그냥 다리 벌리고 몸이나 대주고 살아. 어차피 너도 별수 없는 거야. 알겠냐?” 뱃살 두둑하게 올라서 자기 발치도 보이지 않을남자는 자신의 성기를 입에 물고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레이시안을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표정이 반쯤 죽어 있는기는 했지만 한때 신전의 성녀였다는 고귀한 여자가 이제는 자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노리개가 되었다. 집창촌이 포주로서 세간의 경멸을 한 몸에 받아온 이 비열한 남자에게는 이런 상황에 승리감과 성적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으으···. 자, 됐어. 이제 엎드려서 엉덩이나 들어. 고귀한 성녀님이 암캐 처럼 애걸해 보란 말이야.” “···············.” 레이시안은 말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후우·····.” 기억을 모두 떠 올린 레이시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하나가 떠 올릴 때 마다 아픈 기억들뿐이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증오가 없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홀리 엔젤로 진화한 그녀에게 있어서 증오와 용서,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선택지는 이미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증오라면···. 그 증오를 정면으로 마주 할 수 있어야겠지.’ 레이시안은 감았던 눈을 지그시 뜨고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했던 말은 일부 사실입니다. 한때 저는 집창촌에서 매춘을 했습니다.” 폭탄도 이런 폭탄이 또 없었다. “·····어··? 이봐?” “아니··. 잠깐, 내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아.” “그··. 그렇겠지? 우리가 뭘 잘못 들었을 거야. 그렇지?” “·············.” 이렇게 수많은 인간들이 한꺼번에 현실을 부정하는 일은 정말 드물 것이다. 그만큼 이들에게 닥친 쇼크가 크다는 말일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큰 쇼크를 먹은 것은 바추리 추기경이었다. ‘···무···. 무슨 생각인 것이냐?’ 이제 바추리 추기경은 레이시안을 조금도 이해 할 수 없었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미지의 생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어둡고 괴로운 과거를 밝히는 것은 누구나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그게 지금 짊어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런데 기적의 여신이라고 칭송 받는 여자가 너무나 담담하게 자신의 더러운 과거를 인정해 버렸다. 성직자로서 거짓을 입에 담지 않고 증오도 자신의 과거도 모두 정면으로 마주하겠다. 라는 것이 레이시안의 각오이자 긍지였지만···. 그런 고고하고 순수한 마음가짐을 타락한 성직자인 바추리 추기경이 이해 할 리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도장에서 손가락을 좀 다쳐서 오늘은 글 쓰는게 조금 버겁네요. 그래도 다음 작품을 위한 소재는 충실하게 모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84화 레이시안의 폭탄 선언이 반향을 일으킨 곳은 대중들이 있는 광장 뿐만이 아니었다. 정운은 자신이 가지고 온 방송 장비를 이용해서 귀빈석에 있는 이들도 모두 레이시안의 언행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상태였다. 당연히 성왕을 비롯해서 두 명의 대주교, 그리고 나머지 추기경들도 이 폭탄 발언을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총 맞은 비둘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이들 중에는 레이시안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이들도 몇 명인가 있었다. 말만 성직자이지 노회한 정치가나 다름 없는 자들이 태반이었고····. 레이시안에 관한 사건은 신전 내부에서는 제법 큰 이슈였다. 타락한 성녀가 젊은 성기사를 유혹해서 같은 타락의 길로 이끌었다. 라는 사건으로 겉으로는 결론 지었지만···. 진정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자들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저절로 정운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 굳어진 정운의 표정을 보자 이들은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큰·· 큰일이다.’ ‘이건, 이건 더 이상 바추리 그 망할 자식 하나로 끝낼 일이 아니야.’ ‘잘못 하면 다시 가우리와 전쟁을 해야 할 수도 있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사태가 생길 수도···.’ 좀 전 까지만 해도 허둥거리는 바추리를 보고 정적 하나가 몰락한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던 인간들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칫하면 자신들이 올라탄 배가 통째로 무너져 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성왕은 정운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박정운 수상님. 이 일은····.” “너희들은 이제 입을 닥쳐라.” “··············.” 경어를 뺀 평대에 닥치라는 폭언까지···. 아무리 수상이라고 해도 한 나라의 왕에게 보일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자들 그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는 못했다. 그저 정운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레이시안의 담담한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누님이 택한 길입니까?’ 정운이 마음 먹으면 레이시안의 고통스런 과거를 밝히지도 않고 목적을 달성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시안은 굳이 정면 돌파를 택했다. 정운은 그런 레이시안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설령, 이 세계 전부가 적이 된다고 해도 누님 만큼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정운의 중얼거림을 들은 성 세인트 왕국의 수뇌부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상 전부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 보통 남자들이 호기롭게 자주 하기는 한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저런 터무니없는 말도 박정운이라는 남자의 입에서 나오면 더 이상 허세가 아니게 된다. 저 남자는···. 능력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게 될 지도 모르는 남자였다. 레이시안은 수근 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변명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설명하지 않고는 여러분들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기에 설명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리고 레이시안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를 모두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신전에 발견되어서 성녀로 키워진 것과 그 이후에 그녀에게 일어났던 파란만장한 사건들까지 모두···. 그녀의 목소리는 작지도 크지도 않았지만···. 모두의 귀에 뚜렷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때로는 들으면서 안타까움에 탄성을 지르고, 때로는 자기 일처럼 분노하면서 그녀의 애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얘기가 모두 끝났을 때····. 사람들은 심각한 감정의 기복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신전의 행동에 정이 떨어진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전은 신전.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상식이 사고방식의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건 그런 상식을 기둥뿌리채로 흔들어 버리고 있었다. 성녀를 성기사들이 겁탈하고 집창촌에 팔아넘기다니···. 신전의 부패야 어제 오늘이 아니었지만··. 설마 신전의 얼굴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성녀까지 그렇게 피해를 입었을 정도인 줄은 몰랐다. “우리는···.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지?” “신은···. 정말 신은 존재하는 건가?” “도대체 어째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특히 평소 신앙심이 독실한 사람일수록 그 혼란은 더욱더 컸다. 그런 혼란 속에서 한 명의 신도가 물었다. “레이시안님···. 당신은,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어째서 당신의 신앙심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까?” 인간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더 할 나위 없는 절망을 느낀 레이시안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신앙심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모두 그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말했다. “전 저의 신을 믿습니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저의 지표가 되어줄 저의 신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레이시안은 그렇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밝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황금색의 빛으로 이뤄진 광익(光翼)이 펼쳐졌다. 그것은 실로 장엄하고도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한 점의 티도 없는 순수한 신앙심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성스러운 오로라가 그녀에게서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 성스러운 후광속에서 그녀는 자애로운 표정을 하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눈물이 나게 했고 무릎이 바닥에 땅에 닿게 했으며 자신도 몰르게 양 손을 하나로 모았다. “오오····.” “신이시여····.”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레이시안을 보고 일제히 경배를 올렸다. 심지어는 과거에 레이시안을 능욕했던 폭력배 놈들 조차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바닥에 꿇어 엎드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레이시안은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지금 사람들의 믿음이 자신에게 모두 집결된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진실을 이들에게 알려야 할 때였다. “여러분. 세계의 진실을 알아 주십시오.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믿었던 파우스트는 신이 아닙니다. 아니 여러분들을 만들고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의미로는 신이라는 조건에 부합할지 모르죠. 하지만 그는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낸 것 뿐입니다.” 레이시안의 말은 민중들의 귀가 아니라 가슴에 박혔다. 지금 그녀와 민중의 교감력은···. 속된 말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성스러운 레이시안의 오로라에 악착 같이 반항하면서 자신의 사욕을 지키려는 자들도 있었다. 빠드득·····. ‘감히····.’ 레이시안의 말을 들은 바추리 추기경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닥쳐라!!! 감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바추리 추기경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해졌다. 이미 뒤로 물러날 구석은 없었다. 모든 계획은 틀어졌고 이제 자신의 미래는 끝장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설마 레이시안이 여자로서 수치스럽기 까지 한 자신의 과거를 모두 담담하게 말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약간만 조사하면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이 자신이라는 것이 들통 날 것이다. 뒤에 가우리가 있는 이상 숨길 수조차 없다. 노련한 정치 감각을 지니고 있는 그였기에 알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이 끝장났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자신 혼자 죽을 수는 없었다. 레이시안이 주신 파우스트를 부정하는 말을 한 순간 바추리 추기경은 결심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령 이 성 세인트 왕국이 가우리에 쑥대밭이 된다고 해도 증오스런 레이시안을 죽이겠다고 말이다. “감히 신을 부정한 자에게 엄중한 신벌이 있을 것이다. 주신이시여. 그대의 종에게 당신의 철퇴를 빌려 주소서. 저스티스 레퀴엠.” 바추리 추기경은 자신의 성구를 높이 올리면서 말했다. 전투력이 전무한 성녀들에 비해서 사제들은 약간의 전투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추기경급이 되면 상당히 강력한 공격 마법을 사용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바추리 추기경이 사용한 저스티스 레퀴엠이라는 공격 마법은 하늘에서 심판의 광선을 발사하는 징벌 마법이었다. 추기경급 이상의 신관들이 사용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추기경들이 가지고 있는 전용 성구의 능력이라고 봐야 했다. “위험합니다. 성녀님!!!” “성녀님!!!” 민중에서 상당수의 용감한 자들이 레이시안을 감싸기 위해서 일어났다. 그런데····. “음···?” “어? 왜 저러지?” “아무····일도 없잖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바추리 추기경이 틀림없이 공격 마법을 썼는데···. 그런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이익··. 홀리 이레이져!!!! 세인트 웨이브!!! 이···. 이게 도대체····.” 바추리 추기경은 몇 번이나 공격 마법을 쓰려고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냥 나이 많은 늙은이가 미쳐서 날뛰는 꼴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바추리 추기경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이변을 느끼며 경악하고 있었다. “신··. 신성력이···.” “이럴수가? 신성력이···? 내 신성력이···.” “····오오···. 오오오······.” 여기저기서 신관이나 성기사들이 절망의 눈물을 흘리며 주저 앉았다. 자신들의 몸속에 있던 신성력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바추리 추기경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내 신성력이····.” 얼마나 쇼크였는지 그는 순식간에 몇 십 년은 더 늙어 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단순히 쇼크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래 사제들은 고위 사제가 되면 될수록 신성력의 영향으로 노화가 다소 더디다. 원래 바추리 추기경은 40대 중반 정도의 외모였지만···. 이제는 폭삭 늙어서 80대 후반은 되어 보일 법한 초로의 노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레이신안은 이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계를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는 껍질 중에 하나가 깨진 것을 말이다. “이 세계를 이루고 있던 신워 권능. ·····파우스트의 신권이 붕궤 되었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파우스트의 신권은 확실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다급하게 파우스트를 찾아온 메데이아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그에게 외쳤다. 그런 메디이아의 물음에 파우스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드물게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신에서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 파우스트가 이렇게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정말 전무하다고 봐야 했다. “후우····. 과연, 조물주에게 신권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이런것이었나? 후후후후····.” 성 세인트 왕국에서 레이시안이 민중들을 감화 시킨 그 순간. 파우스트의 신권이 대폭적으로 떨어졌다. 그 고통은 마치 자신의 생살을 짐승이 잘근잘근 씹어 먹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러 고통을 겪는 파우스트를 보고 메데이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것들이 감히·····. 주인님. 제게 명령해 주신다면··.” “그만둬라.” 메데이아가 나서려는 것을 파우스트는 말렸다. 그리고 조금 호흡을 편안하게 가라앉히고 그녀에게 말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다. 좀 더 두고 보도록 하지.” 분명 신세계에서 파우스트의 신권이 무너졌다는 것은 그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 파우스트에게는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 작품 후기 ============================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이제 악마의 게임 2부의 완결이 플롯으로는 다 나왔습니다. 물론 작품으로 정리하자면 한참 걸리겠지만... 그래도 일단 완결까지의 내용의 큰 틀은 대강 정해졌습니다. 완결이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잘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 485화 <소소한 일상> 성 세인트 왕국은 극한의 혼란에 빠졌다. 왕국 안의···. 아니 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신관들의 신성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라안의 신관들의 힘이 약화 되어서 오히려 더 좋게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 세인트 왕국의 경우 나라 자체가 신전과 사제들이 지배를 하는 나라였다. 그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힘을 송두리째 없어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타락의 종말이라고 불렀다. 가짜 신의 허물이 벗겨지고, 그리고 그 가짜 신을 모시던 타락한 사제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이다. 가우리가 손을 대었던 에이프릴 왕국의 경우··. 대규모 혁명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피는 흐르지 않았다. 지배층이던 귀족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현실에 적응해서 살아남았고···. 무엇보다 나라의 핵심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위치는 여전히 공고했다. 표면적으로 신분 제도는 사라졌지만 마법사라는 직업군은 국가의 핵심적인 전력으로 포함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특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성 세인트 왕국의 경우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사제들이 존경 받았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성력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었던 덕이 컸다. 그런데, 그 신성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거기다 레이시안의 폭탄선언 때문에 주신 파우스트 자체가 가짜 신이라는 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직도 파우스트를 신봉하는 자들이 제법 있기는 있었다. 자신들이 평생 믿어온 종교를 바꾸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전의 비리들이 하나 둘씩 들어나면서 그런 자들 역시 결국은 자신의 신앙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청렴한 사제들이 신전의 헌금을 빼돌려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던가···. 성기사들이 자신들의 직위를 이용해서 수많은 여인들을 농락했다. 던가····. 성녀들 역시 오만한 특권 의식에 젖어서 실제 성녀들 중에 제대로 된 봉사 수행을 한 성녀는 거의 전무하다. 던가···. 그런 여러 가지 비리들이 하나하나 밝혀졌다. 그리고 봉인지정 무기중에 하나인 세라핌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신전 내부에서도 큰 내부 혼란이 벌어졌고, 민중들에게 신전은 죽일 놈 취급을 받게 되었다. 결국 신전은 붕궤 되었고 에리프릴 왕국과 달리 성 세인트 왕국은 정권 자체가 완전히 폭삭 무너져버렸다. 보통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럽고 취약해지면 외부에서 슬그머니 무슨 핑계를 대고 침략이 들어오는게 보통이지만···. 다행이 그런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성 세인트 왕국의 정국을 가우리가 장악하고 일사분란하게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우리는 행정, 치안, 법제, 등등의 분야에 전문적인 인력을 대량으로 파견했다. 사실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있던 미하엘이 이미 인력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충분히 준비를 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기존의 지배층인 사제나 성기사, 그리고 성녀들 까지 큰 봉변을 당했다. 특히 성녀들의 경우 그 봉변이 더욱더 심했다. 오직, 기적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레이시안 만이 진정한 성녀다. 라는 인식이 박히면서 그 이외의 성녀들은 모두 가증스러운 가짜 취급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한 번 분노한 민중은 그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무슨 핑계든 붙이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일단 광기에 물든 민중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한 짓을 태연하게 하기도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성녀들이 알몸으로 홀딱 벗겨진 상태로 치욕스럽게 광장에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가우리에서는 그런 무분별하고 야만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천하의 가우리도 이 민중의 광기를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동안 착취당하고 속아온 것에 대한 분노. 믿어 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느끼고 있는 분노 역시 어마어마했다. 가우리에서 만류하면 그때는 참는 듯 했지만 전 국민을 모두 구속하는 것은 가우리라고 해도 불가능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본보기를 보이자니···. 그것도 여론에 좋게 작용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가우리는 자업자득이려니 하면서 반쯤 방조해 버렸다. 사실 가우리의 간부들이 지금 이 사태에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도 한 몫을 하기는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금 따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두 가지나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숲 속에서 정운은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서 커다란 독수리를 타고 정운이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윤정철이었다. “형님. 결과는 어땠습니까?” “무리야. 여전히 제국을 보호하는 신권은 건재하게 존재하고 있어.” “그렇군요···.” 정운은 조금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파우스트의 신권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운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이었다. 이 두 나라는 기본적으로 불가침 국가다. 특히 선제 공격을 받았을 때 반격을 할 수 있는 다크니스 왕국과 달리 제국은 자국에서도 공격 할 수 없는 절대 불가침 국가였다. 그 덕분에 제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위상은 왕국 사이에서 그렇게 높지 않았다. 정운은 혹시 파우스트의 신권이 무너지면서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의 불가침 영역도 무너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확인해 본 결과···. “아니란 말이군요?” “그래.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활을 쏴 봤는데···. 모두 뭔가에 막힌 것처럼 튕겨져 버리더군.” 윤정철의 보고를 들은 정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 거렸다. “알겠습니다. 안심해야 될지 안타까워해야 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상황은 알겠네요.” “그래. 그럼 다크니스 왕국 쪽은 어떻게 할래?” 윤정철의 말에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함부로 시도해 보지는 말죠. 아직은 시기가 아닙니다.” “그래. 알았다.” 정운은 그렇게 말하고 윤정철과 함께 가우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정운은 흑토의 등 위에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파우스트의 신권이 어느 정도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 그러나 제국의 절대 보호가 건제한 것을 봐서는··. 역시 아직도 완전히 함락 된 것은 아니야.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더 손을 쓰는 것 보다는 그냥 시간을 좀 들이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정운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금 가우리는 에리프릴 왕국을 거의 속국으로 만들었고 성 세인트 왕국은 이제 합병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사실상 인간이 주축인 나라는 이 대륙에 네 개. 파우스트의 신권도 이 네 개의 나라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오고 있다. 이 종족들의 경우 신을 경배 한다기 보다는 그냥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정도에 그친다. 인간들처럼 신에게 매달리고 애원하는 감정이 없다 보니 그렇게 독실한 신앙심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네 개의 국가 중에···. 브로드 왕국은 가장 먼저 속공으로 뭉게 버렸고··. 그리고 에리프릴 왕국과 성 세인트 왕국에서도 이제 파우스트를 신봉하는 인간은 없었다. 아주 극소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제국 뿐인데···. 이 제국에서는 아직 파우스트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손 쓸 구석이 없는 이상···. 이제는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믿음이 점차점차 사라져 가면 언젠가는 제국의 보호도 사라질 것이다. 이것만큼은 섣불리 손을 쓰는 것 보다는 그냥 시간을 들이는 편이 낫다는 것이 가우리의 판단이었다. 정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흑토는 부지런히 하늘을 날아서 신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상 관저에 내린 정운은 바로 미하엘의 보고를 받았다. “나 없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성 세인트 왕국의 영토를 완전히 병합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중인데··.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어차피 그 부분은 내가 전문도 아니니까, 미하엘 당신이 전문가 양반들하고 잘 좀 부탁해. 가능하면 최대한 잡음 없도록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정운이 그렇게 말하고 곧 바로 어떤 장소로 향했다. 정운이 향한 곳은 수상 관저에 딸려 있는 일종의 별채인 곳이었는데 원래는 손님들을 접대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별채를 독점하고 외부로 두문불출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레이시안이었다. “누님의 상태는 어떤가?” 정운의 물음에 미하엘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여전합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천계에서도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지만···. 정확한 답이 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 쯧,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으니 많이 답답하네.” 정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답답해했다. 성 세인트 왕국의 사건으로 파우스트의 신권이 무너지고 얼마 후··. 갑자기 레이시안이 쓰러졌다. 그리고 고열과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몸 상태는 몹시 위중해 보였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홀리 엔젤로 진화한 그녀의 몸은 병하고는 이제 영영 인연이 없어야 했다.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이니 인간의 병이 걸릴 리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아파한다는 것은··. 지금 그녀의 증상이 보통 증상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천계에서도 여러 가지 해석을 내 놓고 있었지만···. 모든게 그냥 막연한 추론일 뿐. 실제로 어떤 의견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지금 레이시안은 이 세계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정운은 미하엘에게 말해서 레이시안을 천계로 데리고 가서 조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게이트를 통과하려는 순간 레이시안의 몸은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마치 이 세계가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하게 이동 할 수 있었는데 오직 그녀 하나만이 말이다. 결국 가우리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철저하게 격리하고 그저 안정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정운이 별채의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정운의 안색을 조금 밝게 하는 존재들이 나타났다. 아미를 비롯해서 다섯 명의 딸 아이들이 정운에게 작은 발걸음으로 도도도도 하면서 다가온 것이다. “애들아··. 앗!!” 정운은 자신에게 안기는 것인지 테이크 다운을 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아이들을 안으면서 웃었다. 아빠가 바쁘다 보니 아이들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는 것은 보통 아빠들이나 정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빠 놀아줘!! 놀아!!” “나도, 혹토 불러줘. 태워줘.” “난 반짝반짝 하는 것 해 줘.” “아빠, 난 산 부시는 것 보여 줘.” “난 바다 증발 시키는 거.” 아이들은 오랜만에 포획(?)한 아빠에게서 뽕을 뽑으려는 것처럼 달라붙어서 칭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뒤편에서 슬기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오셨어요. 정운씨.” “음···. 다녀왔어.”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있었지만 정운과 슬기의 관계는 이미 완숙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처음 연인이 만나면 말 그대로 불 같은 사랑을 한다. 서로가 행복하고 그 행복을 놓치기 싫어서 사소한 일고 다투기는 하지만 일단 그 마음 자체는 불 같이 활활 타오르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들이라고 해도 그런 불길들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그 불길이 꺼졌을 때 은은한 숯불처럼 계속해서 온기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격정적인 감정의 불길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도 식어 버리느냐? 이 두 가지의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보통 이 단계에서 깨지는 커플들이 많기는 하지만···. 슬기와 정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 둘의 경우는 오히려 서로 간에 완숙함이 더해졌다고 해야 할까? 작은 불안감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가우리의 간부들은 이 둘이 결혼식을 올리라는 주장들도 하고 있었지만···. 슬기도 정운도 지금 없는 세레나를 생각해서 식은 미루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완결까지의 플롯은 정해졌지만... 스토리의 진행을 급박하게 서두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쉬어가는 챕터입니다. 이런 것도 중간중간에 좀 섞여야 완급이 될것 같아서 말이죠.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86화 “애들 보느라고 수고 많았어.” “수고는요···. 그보다, 지금 당장 전쟁 걱정은 없는 건가요?” “응.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정운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국이 아직도 불가침에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은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여전히 가우리를 맹렬하게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나라였고···. 무엇보다 파우스트의 신권의 대부분이 그 나라에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제국의 불가침 영역이 멀쩡하다는 것은 다크니스 왕국 역시 선제공격을 허용하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 경우는 제국의 절대 불가침 영역과 달리 딱히 시험해볼 방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현 단계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당분간 다크니스 왕국과의 국경 지대의 경계를 높이고···. 나머지는 레이시안 누님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봐야지. 누님의 현 상태의 이상은 정말 이상해.” 정운의 말에 슬기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그렇게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는 둘이었지만··. 그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아빠!!! 놀아 줘. 놀아 줘.” “엄마, 아빠하고 같이 놀이공원 가!! 응?”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정운과 슬기에게 매달려서 애원하기 시작했다. 슬기는 자신에게 보채는 아이 한 명을 들어 올렸다. 갈색 머리의 유미라는 이름을 지난 아이였다. 겉 보기에는 귀엽게 생긴 어린 아이였지만···. 원래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살며 가끔 나타나는 것 만으로도 세상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무시무시한 킹 클래스의 대괴수였다. 뭐, 지금은 그냥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 달라고 때 쓰는 꼬마일 뿐이지만 말이다. “유미야. 놀이 공원은 나중에 가면 안 될까? 우리 유미는 착하니까 참을 수 있지? 그치?” “이이잉···. 싫어. 싫어···. 아빠 오면 가기로 했잖아····.” “했잖아····.” “엄마···. 히이잉····.” 한 명이 때를 쓰니 나머지 네 명도 번갈아 가면서 때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슬기는 난감해 했고 정운은 피식 웃으면서 미하엘에게 말했다. “미하엘. 내 스케줄에 시간은 좀 빌까?” “예. 뭐··. 이 신서울을 떠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애당초 행정 쪽으로는 정운이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정운의 존재 자체가 신서울의 방위에 엄청난 무게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자리를 비우는 것은 자제해야 했다. 그런 미하엘의 대답을 들은 정운은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내 시간은 괜찮으니까 같이 유원지에 데리고 가 주자.” “정운씨······.” 정운의 말에 슬기는 감격···. 한 표정이 아니라 왜 그렇게 사람이 눈치가 없어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무슨 실수라도···.” “아니요. 아니에요. 그런데 어쩌죠? 저 이번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시간이 안 되는데요?” “볼일? ···무슨 볼일이 있···.” “그런게 있어요.: 슬기는 냉큼 정운의 말을 짤랐다. 그리고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큼···. 그렇게 전 바쁘니····. 정운씨가 ‘혼자서’ 애들 ‘모두’ 데리고 가 보실래요?” 어째 말의 군데군데에 엑센트가 있었지만···. “응. 그러지 뭐.” 정운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칭얼 거리는 애들에게 가서 무척 겁 대가리 없는 대사를 남발했다. “애들아. 아빠하고 같이 유원지 가자.” “와아아아아!!!!” “만세!!” “아빠 최고!!!” 환호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정운의 뒷 모습을 보면서 슬기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눈치가 저렇게 없어서야···.” 그리고 옆에서 미하엘도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어차피 한 번은 직접 고생해 봐야 아는 거니까요.” 슬기와 미하엘에게는 정운이 화산에 반지 하나 집어 던지기 위해서 고난과 역경에 맞서는 인간으로 보였다. 하긴···, 정운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게 더 쉬울지 모른다. 신서울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라 자체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상태인데 그 나라의 수도에서 오랜 역사 따위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서울에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신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의 황도라고 해도 신서울 보다 더 많은 기반 시설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로 치면 뉴욕 같은 느낌이랄까? 뉴욕시 역시 역사라 오래된 도시는 아니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갖 문화들이 모두 들어와서 즐길 수 있지 않는가? 가우리는 그 뉴욕시 이상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예술, 건축, 패션, 음식 등등··. 그야말로 세계의 온갖 문화들이 진출했다. 가우리에 전 세계의 능력자들이 진출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각국의 문화가 신서울에 모여들어서 흡수되었고···. 결국 그러다 보니 가우리에 오면 지구 문화의 축소판··. 아니 압축판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의 환경 자체도 무척 훌륭했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능력자들의 능려을 전폭적으로 활용해서 모두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원래 신 서울의 터는 그냥 황량한 황야였다. 풀 한포기 나지 않을 정도로 황량한 황야에 수도를 세운 이유는 이 도시의 상공에 게이트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문득 말했다. 서울의 한강이나 런던의 템즈강 처럼 신서울에도 강이 하나 흐르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배대호가 즉석에서 바로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수맥을 만들어서 거대한 강과 호수를 만들었다. 지하수를 수원으로 삼은 호수를 마들고 그 호수에서 물줄기를 파서 강까지 흐르게 만들었다. 덕분에 바다까지 수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제법 넓은 강이 신서울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듯이 흐르고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주변에 등산 코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자 배대호가 말하길···. “산? 만들지 뭐. 지층 몇 번 흔들어서 융기 시키면 생기는 건데. 그게 뭐 어렵다고.” 그렇게 산이 생겼다. 산도 아주 상, 중, 하로 나눠서 등산 코스를 고려해서 만들었다. 가벼운 하이킹이 가능한 코스부터 암벽 등반과 스키코스까지 즐길 수 있도록···. 그야말로 산을 치밀하게 설계해서 만든 것이다. 심지어는 온천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니···. “분화 안하게 컨트롤 하면서 화산 하나 만들지 뭐. 그럼 온천도 자연스럽게 생길 거야.” 라고 하면서 온천 지맥을 만들었다. 원래 온천지역은 화산 폭발이라는 일종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가우리에 있는 화산 같은 경우는 배대호가 절대 분화를 하지 못하도록 컨트롤을 한 화산이었다. 덕분에 오히려 관광 코스로도 인기였다. 이렇게 가우리는 도시의 기반 시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환경 까지 완벽했다. 보통 자연적으로 입지를 본 후에 그곳에 도시를 건설 하는게 정상이지만···. 가우리의 경우 그냥 황무지에 도시를 지었는데 그 후에 거기에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별로 시간도 들이지 않고 뚝딱뚝딱 말이다. 덕분에 가우리에서는 육해공의 모든 레저스포츠를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인공 호수에서 낚시나 수상 스포츠를 즐기거나, 산에서 캠핑이나 등산을 즐기기도 했고, 대초원에서 몽골 초원에서나 즐길 법한 승마를 즐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인공 호수위에 만들어진 인공 섬 위에 만들어진 디즈니랜드. 이곳은 주말만 되면 항상 부모 손 잡고 찾아온 아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번에 정운이 거기에 다섯 명의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아빠, 저기 미키하고 미니···.” “피터팬 보러 갈래. 피터팬····.”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운은 흐뭇하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 ‘좋구나···. 이런 것도.’ 사실 여러 가지로 심각한 일이 있어서 아빠다운 일을 한 적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보통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슬기가 많이 했고 정운은 가우리의 수상으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했다. 보통 월급쟁이부터 세상을 움직이는 가우리의 수상까지···. 결국 애들한테 신경 쓸 시간이 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가끔 시간이 날 때나 애들한테 이렇게 신경 쓸 뿐이었다. 그래서··. 아빠들은 잘 모른다. 애들과 놀아준다. 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말이다. 정운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사라지고 얼굴에 찌듬의 감정이 생겨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빠. 피곤해. 안아줘.” “나도··. 나도···.” “아빠, 배고파.” “아빠 쉬····.” “배고파··. 히이이잉···. 배고파!!!” 한 두 명도 아니고 다섯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다. 하나하나 손이 안 갈수가 없는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니 초인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애들은 조금이라도 눈을 때면 어디서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여기는 어디고 난 누구지?’ 결국 정운은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한 명을 챙기면 다른 한 네 명이 칭얼 거린다. 배고프다고 해서 식당에 데리고 가니 아이들이 여기저기 뽈뽈 돌아다니느라고 그거 수습하기에 바빴다. 오늘 정운은 가우리 수상직에 취임하고 나서 가장 많은 사과를 하고 다녔다. 시끄럽게 떠들고 울고 때 쓰는 것 정도는 애교였고, 옆 테이블의 식탁보를 잡아 당겨서 음식을 엎어 버린 적도 있었다. 와장창!! “이봐욧!!” 음식을 엎어 버리자 당연히 당사자는 화를 낸다. 아무리 정운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애들이라서··. 음식값과 세탁비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나 참 조심하세요. 애들 좀 확실히 잡고요.” “예. 죄송합니다.” 정운은 연신 사과를 했다. 선글라스와 모자로 변장을 하고는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정운이 누구인지 몰랐다. 설마 천하의 박정운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주변에 사람들 역시 정운의 행동을 보면서 설마 저 허둥거리는 초보 아빠가 가우리의 수상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젊은 친구가 왜 저렇게 애가 많지?” “애들도 머리색깔이랑 눈동자 색깔이 다 제각각인데··. 염색했나?” “눈동자는?” “칼라 콘텍트 렌즈 아니야? 원래 저러 색깔은 흔하지 않잖아?”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보고 수근 거리고 있었지만 정운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누구 부를까?’ 오랜만에 아빠 노릇을 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현실을 알 것 같았다. 아이들 다섯을 혼자서 돌보는 것은 무리였다. 그라운드 제로를 클리어 했던 전설의 귀환자. 그런 정운이 처음으로 포기를 생각한 것이다. 정운의 정신이 피폐해져 갈 무렵····. “아!! 아빠. 웬디!! 웬디 볼래!!” 주미가 뭔가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주미의 행동에 동참했다. “웬디!! 피터팬!!!” “아빠 보러 갈래!! 갈래!!!” 아이들이 보채는 것은 디즈니랜드의 실내 뮤지컬이었다. ‘뮤지컬? 즉, 앉을 수 있다는 건가?’ 정운은 두 눈을 부릅 뜨면서 이거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실내에서 하는 뮤지컬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운은 이 공연이 마음에 들었다. “알았어. 가자.” “예!!!” “예!!!” “예!!!” 그렇게 정운은 아이들을 데리고 뮤지컬을 보러 갔다. 그리고 정운은 아이들 다섯을 데리고 뮤지컬을 보러 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쉬러 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87화 “웬디가 나쁜 후크 선장에게 잡혀 버렸어요. 자, 여러분 모두 불러 볼까요? 피터팬!!” “피터팬!!!!!!” “피터팬!!!!!!” “피터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라서일까? 평범한 뮤지컬과 다르게 사회자가 나와서 능숙하게 아이들을 이끌어가며 공연을 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운은 공연에 초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다가···. “쿨·····.”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일주일 내내 한 숨도 안자고 전투를 벌일 수도 있는 정운이었지만···. 아이들 다섯을 반나절만 돌보니 천하의 박정운도 지쳐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운이 잠들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공원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러분,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예에에에!!!!!” “예에에에!!!!!” “예에에에!!!!!” 아이들의 힘찬 대답과 함께 공원이 끝났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미들은···. “아··. 어? 아빠 잔다.” “정말? 아빠 자네.” “코··· 하고 있어. 쇼파도 아닌데?” 아이들은 정운이 잠든 것을 보고 자기들끼리 긴급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아빠 깨울까?”‘ “우웅···. 아빠 피곤해 보이는데····.” “우리끼리 놀까?” 애들끼리 서로 의견 조율을 하면 십중팔구는 틀림없이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 겉으로 보이기에는 7살 이하로만 보이는 꼬맹이들도 그런 쪽으로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놀자. 아빠 더 자라고 하고.” “응. 아빠 피곤해. 잔소리만 하고···.” “맞아. 우리끼리 놀자.” 그리고 애들은 자기들끼리 일어나서 뮤지컬 공연장 밖으로 나가서 자기들끼리 천방지축으로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공연장에는 정운 혼자만 노숙자 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슬기가 봤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한편, 아이들은··. “효미야···. 아이스크림 좀 줘···.·” “안 돼. 싫어··.” 자기들 끼리 잘 놀고 있었다. 앚기 키가 안 돼서 놀이기구는 못 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애들한테는 유원지 자체가 커다란 장난감이었다. 실컷 뛰어놀던 아이들은 조금 지쳤는지 근처의 벤치에 올라가서 쉬고 있었다. 그리고 화미는 효미가 할짝 거리고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보더니 욕심을 드러냈다. “좀 줘어어어·····.” “싫어!! 내 꺼야!!!” 은색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효미와 빨강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화미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가지고 싸우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 애들이 돈이 어디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을까? 정답은 각자 목에 걸려있는 작은 지갑이었다. 슬기는 애들한테 금전 감각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해서 각자의 지갑에 돈을 얼마가 넣어뒀다. 일 인당 만원. 애들한테 주는 용돈 치고는 많은 편이다. 심지어 떨어지면 또 채워 준다. 단 조건은 있었다. 떨어지면 엄마한테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알려주고 받아가기. 그게 슬기가 정한 규칙이었다. 그리고 너무 쓸데없는 것에 많은 돈을 썼다고 하면 슬기는 조목조목 아이들에게 뭘 잘못 했는지 가르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약속을 받아낸다. 그게 슬기식의 용돈 지급이었다. 그래서 애들은 도합 오만원이라는 용돈이 있었고 그걸로 군것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좀 주라니까···.” “싫어!! 너도 사 먹어!!” “이게···. 달란 말··. 앗!!” “아!!” 철퍼덕!! 결국 장렬한 몸싸움 끝에 아이스크림은 바닥에 추락해 버렸다. 그리고 뭉게진 아이스크림을 보던 아이 들은 침묵했다. “··············.” “··············.”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후··. 원래 자기 아이스크림이었던 효미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흑··. 흐윽···. 으아앙!! 엎었어·····. 으아아앙····. 내 아이스으으으!!!!” 애들은 용돈을 최대한 아끼려는 습관이 몸에 베여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먼저 산 아이한테 빈대 붙는 습관이 몸에 베여 있었다. 결국 몸싸움을 하다가 달콤하고 시원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푸석푸석한 콘만 손에 쥐고 있는 효미는 억울함에 대성통곡을 하고 옆에서 화미는 조금 미안한지 무안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한 아이가 다가와서 효미를 달랜다. “효미야. 울지 마. 착하지.” “히이이잉····. 내 아이스······.” “착하지? 울지 마. 뚝!!” 그나마 가장 큰 언니 축에 들어가는 아미가 효미를 품에 안고 다독거리면서 달래줬다. 애들이라는게 묘해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그냥 다 똑같은 애들이지만 자기들끼리 있으면 그래도 큰언니가 언니라는 자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결국 울음을 그치지 않는 효미를 위해서 아미가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퍼먹는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왔다. “자, 이걸로 같이 먹자. 알았지.” “훌쩍····. 응.” 효미는 아이스크림이 자기 앞에 대령되자 조금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붙어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 먹기 시작했다. ‘····내 용돈····.’ 아미는 정작 팍 줄어버린 자신의 용돈에 조금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동생들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이런 애들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컬러풀한 가지각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고 귀여운 미모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귀여운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원래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법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모두들 흐뭇한 표정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아이들을 날카로운 안광으로 쏘아보는 남자 둘이 있었다. “쟤들 어때? 부모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잠시 길 잃었나? 금방 작업하자.” 이 둘은 서로 눈동자를 마주보면서 모종의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 이 둘의 정체는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납치범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흉악한 납치범으로 아이들을 잡아서 부모를 협박해서 몸값을 받아내고 아이들은 해외로 팔아 벌이는 악질 범죄자들이었다. 원래는 이 둘도 귀환자들이었다. 그다지 대단한 능력은 없고 그라운드 제로에서의 레벨은 각각 21, 23이었다. 그라운드 제로가 붕궤되고 막 현실로 돌아왔을 때부터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어느 작은 범죄 조직의 간부로 들어갔다. 레벨이 고작 20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을 상대로는 충분히 강력했다. 거기서 나름 대접 받으면서 소소한 조직간의 항쟁에서 일반인 학살이나 하면서 잘(?) 지내고 있엇지만····. 그렇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운이 길드를 만들고 신의 맹세를 이용해서 귀환자들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하자 그들이 몸 담았던 조직은 박살이 났다. 그 과정에서 이들도 잡혀갈 위기에 처했지만···. 워낙 조무래기들이었고 조직 간의 항쟁 이외에는 거의 끼어든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잡힐 위기는 벗어났다. 그 후에 다른 소규모 길드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길을 찾아도 봤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결국 정직한 일은 영 취미에 맞지 않아서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유아 범죄라는 잘못 된 길까지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이들은 아미들을 목표물로 찍었다. 놈들은 아이들에게 스치듯이 다가가서 그대로 아이들의 목에 뭔가를 따끔하게 찔러 넣었다. 레벨은 저 레벨이었지만 그래도 신체 스펙 자체는 일반인들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에 즉효성 마취약을 주사한 결과···. “으응···. 졸려··.” “아하암···.” 아이들은 이내 졸리듯이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놈들 중에 한 놈은 천연덕스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하나씩 안아 올리기 시작했다. “애들이 왜 여기서 자는지 원···.” 마치 누가 들으면 가족이나 친척으로 보일 것 같은 대사였다. 혹시 가족이 이 타이밍에 끼어든다고 해도 그냥 아이들이 쓰러져서 근처에 좀 치워 두려고 했다. 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그런 대사였다. 하지만 주변에 끼어드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놈들은 둘이서 쓰러진 아이들 다섯을 데리고 유원지 밖으로 이동했다. 워낙 눈에 띄는 광경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제지당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놈들은 아이들을 미리 준비한 승합차의 뒤에 태우면서 말했다. “오늘 운이 좋은데? 애들이 예쁘장 한게 외국에 팔기만 해도 한 몫 잡겠어.” “그러게 말이야.” 과연···. 정말 운이 좋은 걸까? 정말? “으으응···. 어? 여기 어디야?” 아이들 중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붉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화미였다. 화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변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유원지에서 다른 애들과 같이 놀고 있었는데 어느새 모두 잠들어서 차 안에서 이동 중인 것이었다. 화미는 앞쪽에서 운전을 하는 아저씨를 보고 말했다. “우웅···. 아저씨, 우리 어디 가요?” “··············.” “··············.” 너무나 태연한 화미의 말에 두 납치범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아이들이 납치되었다가 정신을 차리면 빽빽 울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화미는 태연하게 하는 말이 어디로 가느냐? 였다. “···쟤 왜 저렇게 태연하지?” “글쎄··. 좀 이상한 애인가?” 납치범들은 몰랐겠지만 화미나 다른 애들에게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운전하고 있는 차안에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정운이나 슬기는 거의 운전을 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지 보통은 수상관저의 운전기사들이 돌아가면서 운전을 한다. 특히 슬기는 면허도 없다. 굳이 딸 필요성이 없어서 안 따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 운전을 하고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아이들도 정신을 차렸다. “우우웅···. 여기 어디야?” “유원지는? 나 더 놀고 싶은데···.” 깨어난 아이들은 하나 같이 태평했다. 유괴범들이 보기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둘까 싶기도 했지만 애들이 재잘재잘 거리는 것이 시끄럽다고 느꼈을까? 놈들 중에 한 명이 뒤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럿!!! 이 망할 꼬맹이들이 자꾸 시끄럽게 떠들고 지랄이야!! 다 닥치고 있어!!!” 보통 처음 보는 어른이 이렇게 험상 굳은 표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 애들은 겁을 먹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아미들도 그런 보통 애들과 멘탈은 다르지 않았다. “···흑··. 흐끅····.” “히이····잉···.” “으아아앙!!! 엄마!!! 아빠!!!!” 애들은 결국 울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유괴범들은 그제야 익숙한 상황이 되었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놈들은 차라리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응? 어이? 차가 좀 뜨거운데? 엔진에 문제 있나?” “아니··. 이건 오히려 좀 차가운 것 아니야. 응? 물이 왜 이렇게·····?” 놈들은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콰아아앙!!!!! 차의 뒤편이 통째로 폭발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괴범들이 타고 있는 차는 반토막이 나면서 박살이 나 버렸다. 그리고 인공섬과 신서울을 연결하는 대교의 위에서 아이들이 빽빽 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앙!!!!” “아빠!!!! 엄마!!!!” “앙앙앙!!!!” 애들이 그냥 울기만 하면 뭐가 그리 큰 문제겠냐만 서도···. 지금 이 순간 애들은 울면서 어마어마한 힘을 사방으로 퍼트리고 있었다. 아미를 중심으로 물의 채찍이 사방으로 폭주하고 있었고 화미를 중심으로 불꽃이 사방으로 튀기며 다리를 박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애들도 그에 못지 않게 자기 특성대로 힘이 폭주했다. 콰쾅!! 콰아앙!!! 사방으로 물이 튀고 충격파가 날뛰고, 강철의 창날이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킹 클래스의 대괴수급의 잠재력이 지금 이 순간 신서울에서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다섯이 한꺼번에 말이다. “괴··. 괴물이다.” “히익!!!” 이 일의 원흉이 되었던 유괴범들은 자신들이 뭔가를 크게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그리고 이 순간···. “애들아!!!” 정운이 한 걸음에 애들의 앞에 나타났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88화 세상 모르고 잠들었던 정운은 깜짝 놀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이건? 뭐지? 파우스트?” 잠에서 깨어난 정운은 순간 파우스트가 나타난 것이 아니가? 싶은 생각을 했다. 그만큼 커다란 힘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운은 만사 제쳐두고 그 힘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콰아앙!!! 실내 공연장의 뚜껑을 날려 버리고 날아간 정운의 눈에 보인 것은 대교 한 가운데에서 폭주하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이었다. “애들아!!!” 왜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왜 울고 있는지? 의문투성 이었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의문을 푸는 것이 아니라 애들의 폭주를 막아내는 것이었다. 정운은 바로 달려가서 애들을 진정 시켰다. “으아아앙···. 아빠!!!” “아빠아아아!!” “아빠 미워!! 어디 갔었어!!!” “으아아앙!!!!!” 한참 울고불고 하던 애들은 정운이 나타나자 달려가서 안겼다. 정운은 애들을 온몸에 쉐도우 아머를 두른 상태로 애들을 진정 시켰다. “자자···. 울지 말자. 뚝!!” 지금 애들을 말리는 것은 정운이나 되니까 말릴 수 있었다. 폭주하고 있는 애들의 힘은 보통 사람이라면 근처에 가기만 해도 박살나 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정운이 아무리 달래도 애들은 좀처럼 진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크게 놀랐고 무서운 것이었다. “몰라!! 아빠 미워!!!” “으아아앙!! 집에 갈래. 엄마!!!!” “아아아아아앙!!!!” 애들은 서럽다는 듯이 한 층 더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큭····.” 정운으로서는 이 상황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때때로는 애들을 달래는 것이 오히려 애들을 더 서럽게 만들어서 크게 울게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이때 가장 하면 안 되는 최악의 선택은··. “이 녀석들아!! 너희들이 아빠 옆에 없었던 거잖아!? 왜 너희들이 화를 내니!!?” 바로 이렇게 애들을 나무라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앙!!!!!!” “아빠 미워!!!!” “엄마!!!!! 엄마!!!!!!” 애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듯이 미친 듯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크으윽!!!!” 우지지직!!! 강철 뼈대로 만들어진 대교가 휘어지고 정운마자 뒤로 조금 밀려날 정도였다. 이제는 불이나 물이 아니라 순수한 힘 그 자체가 폭주하고 있었다. ‘제길, 이러다가 신서울이 날아가면 이게 무슨 개그야!?’ 파우스트와 싸우다가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애들 우는 것을 못 달래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농담이 농담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대로 계속가면 말이다. “정운아!! 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쟤들 왜 울고 있어!?” 뒤늦게 현장에 달려온 배대호와 한중겸 등은 상황을 보고 어이없어 했다. 그들도 파우스트라도 침공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각오를 하고 왔는데···. 정작 현장에는 울면서 폭주하는 애들이 있었다. 이건 싸울 수도 없고 어쩌란 말인가? 그때 둘을 발견한 정운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상황 설명할 틈이 없어요? 형님. 좀 도와주세요.” 후에 한중겸은 말한다. [“그 놈하고 알고 지낸지 제법 되었지만···. 그렇게 절박하게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은 처음 봤었지.”] 라고 말이다. 어쨌든 정운이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에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정운을 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 정운이라고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알면 내가 했죠?” “우리라고 하냐?” “형님 여자 잘 꼬시 잖아요? 애들도 좀 그치게 해 봐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애들은 왜 울고 있는데? 먼저 그걸 말해 봐.” “몰라요.” “너 아빠 맞냐!!?” 오랜만에 여지없이 깨지는 정운이었다. 오늘따라 평생 까일 까임을 하루에 다 듣고 있는 기분이 드는 정운이었다. 어쨌든··. 우는 애들 앞에서 삼촌 두 명과 아빠 한 명은 그저 무능력자일 뿐이었다. 이 셋이 힘을 합치면 나라 한 두 개 정도는 여유로 뒤집어엎을 수 있었지만····. 우는 애들 앞에서는 뽀통령 부리에 끼인 해초 찌꺼기만도 못한 존재들일 뿐이었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일단 기절 시키는 수밖에··.” “하지만 형님.” 배대호의 말에 정운이 애들을 공격하는 것을 꺼려하며 말리려 했다. 하지만 옆에서 한중겸이 정운을 잡고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신서울이 다 날아갈 수도 있어.” “··········.” 결국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배대호라면 힘조절을 확실하게 할 것이다. 꽤 아프고 약간 다칠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화아아악!! 하늘에서 갑자기 서광 같은 것이 비추더니 아이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서광과 함께 하늘에서 어떤 환영이 내려왔다. 난데없이 드러난 그 실루엣을 보고 정운은 중얼 거렸다. “····레이시안 누님?” 지금 몸져누워 있는 레이시안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자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대로 아이들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녀가 아이들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울지 마렴. 나하고 같이 가자.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의 몸에서 빛나는 작은 구슬 같은 것을 꺼내서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자 울던 애들은 울음을 뚝 그치고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리고 애들의 폭주하는 기운도 그대로 잠잠하게 잠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한중겸의 말에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글쎄요··. 일단 집에 가봐야겠네요?” “그래. 알았다. 그럼 난 이 상황 뒤처리 좀 하마.” 배대호가 뒷 처리를 해 주면 대부분은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정운은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애들이 왜 여기에 있었는지도 조사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애들 울린 놈들도 좀 찾아 주세요. 아니 죽여주세요.” “당연하지.” 누군지는 몰라도 그 개념 없는 쓰레기들 때문에 신서울이 날아가 버릴 뻔 했다. 배대호는 신서울의 거미줄 같은 CCTV망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겠다고 다짐했다. 레이시안에게 간 정운은 이상 현상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했다. 레이시안이 있는 별채가 마치 결계라도 쳐진 것처럼 뭔가에 보호 받고 있었다. 들어가려고 하면 부드럽게 밀어내는 힘에 정운은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힘으로 밀고 들어갈까?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어쩐지 이 결계에는 적대적인 느낌이 없어서 그만 두었다. 적을 배제 다기 보다는 지금은 들어오지 마라고 잠깐 양해를 구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정운은 일단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배대호는 아이들이 울었던 이유를 찾아왔다. “납치? 유괴범이라고요?” “그래. CCTV를 뒤져보니 의외로 금방 찾았다. 그런데 애들이 왜 자기들 끼리 놀고 있었던 거냐?”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잠깐 조는 틈에 말이죠·····.” “너····.” 배대호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하자 정운은 급하게 말했다. “형님. 슬기한테는 비밀로 해 주세요.” “안 돼.” 단호하게 잘라서 말하는 배대호의 말에 정운은 신신당부를 했다. “형님. 이러기 입니까?”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다니요? 왜요?” 정운의 말에 대답한 것은 뒤편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였다. 정운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미 나한테 말했거든요.” “슬기야····.” 그렇다. 이미 슬기는 다 들은 것이다. 그리고 정운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슬기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잤다고요?” “음···. 슬기야. 그게 말이지.” “그 복잡한 유원지에서 애들한테 눈을 때고 잤다는 말이죠?” “잤다기 보다는 엄밀하게 말해서 졸았다. 라는 표현이 맞을 거야. 아주 잠깐만 졸았는데 그게····.” “지금 잘했다고 꼬박꼬박 변명하는 거예요?” “··············.” 슬기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정운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슬기가 무섭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레나의 일에 관해서 털어 놓을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하고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하지만 분명하게 지금 정운은 슬기가 무섭다고 느끼고 있었다. “미안.” 결국 정운은 얌전하게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슬기가 이렇게 화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 화를 내면 정말 무서운 법이다. “애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냥 놀아만 주는게 아니라 하나하나 눈을 때지 말아야지. 그렇게 무책임하면 어떻게 해요?” “···미안.” 슬기의 연이은 설교에 정운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애들이 평범한 애들이었다면 꼼짝 없이 납치 당할 수도 있었다. 확실히 자신이 부주의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애들 다섯의 아빠가 되고 나니 많이 부족함을 느끼는 정운이었다. “정말 미안. 무조건 내가 잘 못 했어.” 정운의 말에 슬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정말 미안한 것 맞아요? 그냥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 아니에요?” “아니야. 나도 사실 화 났다고 그 자식들 어디에 있는지 아는 대로 박살을···.” “위치는 알아냈다. 위성으로 감시도 하고 있는 중이지.” 정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정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슬기가 그런 정운을 말렸다. “정운씨는 애들한테 가서 안심 시켜줘요. 좀 있다가 일어났을 때 아빠가 옆에 있는 것으로 안심 시켜 주세요.” 슬기의 말은 단호했다. 잃어버린 아빠의 점수를 확실하게 회복시키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 슬기가 배대호에게 말했다. “위치는 저에게 말해 주세요. ····죽여 버릴 거에요.” 슬기가 누굴 죽인다고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건 여자로서의 화가 아니라 엄마로서의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배대호는 그런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야 죽이면 안 된다. 이 놈을 한 두 번 한 솜씨가 아니야. 아마도 다른 피해자들도 있을 거다.” “그렇군요.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죠?” “되긴··. 되지만···.” “그럼 됐어요. 저한테 말 해 주세요.” “···········.” 이때 배대호는 생각했다. 슬기를 제자로 받아들인 이후로 이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이다. 슬기가 납치범들을 잡으러 간 사이에 정운은 애들의 옆에 있었다. 레이시안의 상태는 다른 사람들이 살펴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때까지는 애들의 옆에 있으라는 슬기의 엄명을 지켰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예쁜 딸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오늘 자신이 잘못 했다는 것을 알았다. 슬기가 화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 한 것이었다. ‘너무 만만히 봤지. 아빠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데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애들이 다섯이나 생겼다. 모두 귀엽고 해 맑은 아이들이라서 그럴까? 정운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더구나 슬기와 자신의 사이에서 애가 생기지 않고 있었기에 그 기쁨은 더구나 컸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이 애들이 세레나가 남겨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정말 친 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잠깐 피곤하다고 한눈을 팔아 버렸다. 다행이도 잘 풀렸으니 다행이지. 만약 애들이 평범한 애들이었다면 꼼짝없이 납치범들에게 애를 납치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운이 심각한 자기 반성을 하고 있을 때···. “우우웅···. 어? 아빠?” 가장 먼저 아미가 일어났다. 그리고 정운은 아미를 안아 주면서 말했다. “아미야. 일어났니?” “아빠? 으응···. 엄마는?” 대부분의 애들이 그렇지만 아미는 일어나자마자 아빠 말고 엄마를 찾았다. 정운은 그런 애한테 잠깐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 지은 죄가 있어서 그냥 아미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아미야. 오늘 아빠가 많이 못 놀아줬지?” “응.” 아미는 한점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운에게 말했다. “그런데 괜찮아.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는 할 일이 많아서 피곤한 거래.” 아미의 말에 정운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가 그랬어?” “응.” 평소에 정운이 애들한테 신경을 못 써줄때마다 슬기가 그렇게 변명을 한 모양이다. ============================ 작품 후기 ============================ 다음 작품인 격투기 소설을 위해서 도장을 다니기 시작한지도 한달이 다 되어 가네요. 좋은 점이라면 주짓수라는 운동이 확실히 재미있다는 것과, 격투기 도장에서 운동하는게 확실히 작품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나쁜 점은.... 몸이 아파요.ㅠㅠ 늑골이 휘었는지 엄청 아픕니다. 오늘은 스파링도 제대로 못했네요. 이번주 나머지는 조금 쉬어야 겠습니다. 작품을 쉰다는 얘기는 아니고 운동을 쉰다는 얘기입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89화 <세레나의 영혼을 찾아서> 아미의 말을 들은 정운은 씁쓸하지만 웃으면서 말했다. “앞으로 아빠가 아미하고 더 많이 놀아줄게.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아빠하고 나갈 때는 아빠가 잠깐 존다고 해도 동생들 데리고 따로 놀면 안 돼.” “왜에?” 아미의 영문을 모르겠따는 얼굴을 보면서 정운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애들끼리만 따로 놀면 위험하거든. 항상 어른이 곁에 있어야지.” “····왜에?” 원래 아이들의 왜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여기서 짜증을 내면 다시 아빠 실격일 뿐이다. 정운은 차근차근 설명을 계속했다. “이번에도 아빠가 없는 사이에 나쁜 아저씨들이 아미하고 동생들을 잡아 가려고 했지?” 정운의 말을 들은 아미는 생각해 보니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응. 아빠, 그 아저씨들 때찌때찌 해 줘.” “응. 꼭 때찌때찌 해 줄게.” 아마 인류 역사상 최대 최강의 때찌때찌가 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잔뜩 열 받은 슬기의 상태로 봐서는 정운이 때찌때찌 할 여유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쨌든 정운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게 아이들끼리만 있으면 나쁜 아저씨들이 아이들을 잡아 가려고 해요. 그러니 다음 부터는 꼭 아빠를 깨워야해. 알았지?” “응. 알았어.” 아미가 납득을 하자 정운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자, 아빠하고 약속.” “약속!!” 아미는 정운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해맑게 웃었다. 정운은 그런 아미를 품에 안아주면서 앞으로 애들한테 좀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유괴범들은····. “자···. 잠깐만. 제발··.” “크으윽··. 제발 그만 좀 해!! 우리가 잘못 했으니 제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놈들을 보면서도 슬기는 일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을 하고 놈들에게 말했다. “잘못한 거야 알지. 하지만 내가 너희들 봐 줄 이유는 조금도 없어.” 슬기는 냉혹한 얼굴을 하고 납치범들을 쥐 잡듯이····,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슬기의 성격상 어울리는 행위는 아니었지만 속된 말로 지금 슬기는 이 납치범들을 조지고 있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호러 영화의 악당처럼 만들어진 놈들은 진정으로 생지옥을 겪고 있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 불에 태웠다가 다시 깔끔하게 회복 시켰다가 다시 불에 태웠다가 또 깔금하게 회복 시켰다가····. 사람들이 상상으로만 생각하는 불 지옥이라는 곳에 떨어지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슬기가 이렇게 냉혹하게 사람을 반죽음으로 만드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이래서 여자와 엄마는 레벨이 다르다고 하는 법인가 보다. 참고로 이 놈들에겐 이 불지옥이 끝이 아니다. 정운이 아미와 약속한 때찌때찌를 지키기 위해서 굳게 다짐을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불쌍하다는 말도 부족할 것이다. 레이시안에게 벌어진 이상 현상은 꼬박 하루 이상 계속 되었다. 그리고 결계가 사라진 이후 결계가 없어졌고 정운은 레이시안을 볼 수 있었다. “누님.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그게···.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세계의 통제권의 일부가 저에게 넘어온 것 같군요.” 레이시안의 말에 정운은 턱을 손으로 만지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누님. 누님의 말씀은···?” “음. 파우스트가 신권을 잃으면서 공백지대가 된 이 세계의 통제권의 일부가 나에게 넘어왔으니, 제가 조금은 이 세계의 관리가 가능해 졌다. 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네요.” 파우스트의 신권의 일부가 레이시안에게 넘어갔다. 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건 가우리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누님, 혹시 지금 누님의 힘으로 제국의 절대 불가침 영역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정운의 말에 레이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렵네요. 대신, 다른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 손바닥 위로 다섯 개의 작은 구슬을 소환했다. “이건? 애들한테서 나온 건가요?” 정운의 말에 레이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맞아요. 세레나, 라는 분의 영혼이죠.” 정운은 그 작은 구슬을 안타깝고 아련한 눈을 하고 바라봤다. 세레나의 영혼을 찾는 것은 정운에게 있어서 파우스트를 쓰러트리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세레나의 영혼을 찾기는 어려웠다. 파우스트의 말이 옳다면···. 세레나의 영혼의 10분의 1 정도가 다크니스 왕국에 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아미들의 안에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영혼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서조차 없는 상황에서 세레나의 나머지 영혼을 찾으라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무리였다. 그런데 지금 레이시안이 작은 희망을 주고 있었다. “이것과 같은 색깔의 영혼을 찾으면 되는 거죠?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정말입니까? 누님?” “예. 잠시만 기다려 봐요.” 레이시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정운은 마치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레이시안의 눈이 떠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서서히 눈을 뜨더니 손바닥 위에 다섯 개의 구슬을 하나로 합쳤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접었다가 펴니 거기에는 작은 새가 한 마리 나타났다. “이 새를 따라가 봐요. 당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곁으로 안내해 줄 겁니다.” “누님···. 감사합니다.” 정운은 진심으로 레이시안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만큼 정운에게 절박한 일이었던 것이다. 며칠 후··. “그럼 최대한 빠르게 갔다 올게.” 정운은 모두의 배웅을 받으면서 흑토의 위로 올라 탔다. 정운의 전력을 생각하면 함부로 신서울을 비우는 것은 그렇게 권장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정운에게 세레나가 어떤 존재인지 모두들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제국이나 다크니스 왕국과 전쟁을 할 일은 없어 보이고··. 일단 정운은 세레나를 찾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대신 정운이 없는 공백을 매우기 위해서 국경 지대에 대기하고 있던 박추성과 이민지까지 모두 신서울로 불러왔다. 일단 게이트의 방비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그걸 우선시 한 것이다. “저도 따라갈까요? 혼자서 괜찮겠어요?” 슬기가 따라 오려고 했지만 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애들 울 걸?” “그거야·····. 그럼 다른 사람이라도 데리고 가지 그래요?” “아니 나 혼자 가고 싶어. 이 이상 전력을 비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기도 하고···.” “··············.” 정운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래서 슬기도 더 이상 반대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정운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빠, 올 때 선물 사와.” “난 뽀로로!!!” “난 쥬쥬!!” “나는····. 음···.” 애들은 정운이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올 때 선물 사오라고 천진난만할 뿐이었다. 정운은 애들의 부탁에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흑토를 타고 날아 올랐다. “가자!!” “히히힝!!!” 이제 세레나를 찾아오면, 정운의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 곁에 모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정운이었다. 정운이 흑토와 한참을 날아간 장소는 약간 의외의 장소였다. “이 방향으로 더 가면··. 엘라 왕국인데?” 엘라 왕국은 지금 상당히 치안이 안 좋은 나라였다. 원래 어인족들의 성격이 상당히 정렬적인 면이 있었고, 그런 어인족들을 하나로 규합하고 있던 왕과 폰토시오스 역시 전쟁 중에 사라졌다. 덕분에 여러 부족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떨치기 위해서 은밀한 경쟁을 벌이고, 이제는 거의 내전중이나 다름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워낙 중구난방이라서 지금 가우리에서도 어지간하면 손을 대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쯧, 그다지 발붙이고 싶지 않은 나라였지만···. 어쩔 수 없나?” 정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엘라 왕국의 군도를 향해서 날아서 날아서 이동했다. 엘라 왕국의 영토는 수천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군도였다. 그래서 영토가 좁다. 라는 이미지가 좁지만 엘라 왕국의 국민인 어인들은 그런 대륙인들의 생각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인족들이 국민의 대부분인 엘라 왕국에게 있어서 바다 위에 드러난 군도는 자신들의 영토의 이룹분일 뿐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영토는 바닷속에 있는 해저의 세계였다. 그렇게 따지면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영토가 이 세상에서 가장 넓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해저에는 어인족들이 살고 있는 해저 도시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정운을 안내하고 있는 빛의 새 역시 바닷속으로 퐁당하고 들어갔다. “하아···. 바닷속에 있는 건가? 가자 흑토야.” “히힝?” 흑토의 속성은 굳이 말하자면 바람과 불이다. 물속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흑토는 정운을 보면서 꼭 나 타고 가야겠냐? 라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 자식이 빠져 가지고···.· 됐다. 가기 싫으면 말아라. 나 혼자 가지 뭐.” 정운은 흑토를 아공간으로 돌려보내고 그냥 자신이 홀몸으로 들어갔다. 사실 흑토 군기 잡기에는 지금은 새를 쫒아가는 것이 더 급했다. 풍덩!!! 정운의 능력이라면 맨 몸으로 해저 깊숙한 곳 까지 들어간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수중 호흡이 가능한 스킬도 익혔고, 수압 따위에 뭉게질 정운도 아니었다. 그대로 빛의 새를 따라간 정운은 어두은 바닷 속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바닷 속 풍광이 계속 되었지만, 나중에는 그냥 검은 해저속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간 정운은 해저의 어떤 동굴의 앞에 도착했다. “여기··. 음!!?” 동굴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정운은 동굴 속에서 커다란 눈동자가 붉은 빛을 내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발견했다. ‘괴수인가?’ 촤아아악!!!! 정운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그 눈동자의 주인공은 동굴 밖으로 뛰쳐나와서 정운을 한 입에 삼켜 버리려고 했다. 당연하지만 정운은 여유있게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적의 정체를 파악 할 수 잇었다. “이건···. 곰치?” 적의 정체는 거대한 곰치처럼 생겼다. 사나운 인상에 긴 몸 뚱아리까지 영락없는 곰치였다. 단, 사이즈가 엄청났다. 몸통의 두께만 해도 족히 지금이 5미터는 될 법했고, 그 길이는 더 해서 150미터는 훌쩍 넘어 보였다. 놈이 한 번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근처의 해류가 일시적으로 변하는 정도였다. “튼튼해 보이는 놈일세. 킹 클래스의 대괴수는 아니지만 제법 강해 보이는 걸?” 몇 번 적의 공격을 피하고 정운은 대강 견적이 나왔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처리해 버릴까?” 정운은 그렇게 중얼 거린 다음에 그대로 손에 뇌전을 집중 시켰다. 엘라 왕국의 최강의 봉인지정 무기였던 폰토시오스 역시 정운을 상대로 이기지 못했다. 이런 듣보잡 괴수 하나 정도는···. “받아랏!!!” 콰콰콰콰쾅!!!!! 한 방에 끝이었다. 정운의 뇌전이 작렬한 순간 사방 5km안의 해양 생물들이 모두 대미지를 받고 해수면으로 둥둥 떠올라 갔다. 그리고 그 중에는 거대한 곰치 괴수 역시 바삭바삭하게 구워져 버렸다. “지상에서 구웠으면 먹기라도 하지···.” 정운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미련을 버리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빛의 새는 이미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간지 오래였다. 혹시 놓칠까봐 정운은 서둘러서 동굴의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다행이도 외길이었다. 가면 갈수록 좁아지던 동굴은 끝에 가니 산소가 있는 작은 동공이 나왔다. 그리고 동공은 제법 환하게 밝았다. 그 이유는 중앙에 있는 하얀 산호가 빛을 밝게 내고 있었다. 티 하나 없는 순백의 산호는 제법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레이시안이 준 빛의 새는 그 산호의 위에 사뿐하게 안착을 하고 있었다. 저 산호가 세레나의 영혼이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찾아도 되나?” 정운은 약간 얼떨떨 할 정도로 세레나의 영혼을 손쉽게 손에 넣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0화 어쨌든 찾은 것은 찾은 것이다. 정운은 세레나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순백의 산호초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때···. “음!!? 이건···.” 정운은 순백의 산호초와 자신의 손이 닿는 것을 동시에 자신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정운이 반항할 틈도 없었다. 어쩌면 세레나의 영혼을 손 쉽게 손에 넣은 것 때문에 약간 방심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운은 방심할 틈도 없이 그대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 작은 동공에는 다시 빛을 발하는 순백의 산호초 하나만 남았을 뿐이었다. 과연 정운은 어디로 간 것일까? “웃!!!” 정신을 차린 정운은 자신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내 몸을 똑바로 바로 잡은 정운은 그대로 떨어지는 몸을 바로 잡았다. 사실 정운의 방어력을 생각한다면 지상 5,000미터에서 아스팔트로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그냥 무작정 떨어지는 취미는 없었다. 몸을 바로 잡은 정운이 지금 자신이 있는 상황을 파악했다. “여기는 어디··. 어? 저건?” 정운은 자신의 발 밑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돌격!!!!” “성처녀의 병사들이여. 침략자를 몰아내라!!!” “오오오오오오!!!!!” 평야 지대를 두고 두 무리의 군대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적인 전쟁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신세계의 마법과 오러가 난무하는 전쟁터도 아니었다. 그저 피와 쇠가 부딪히는 치열한 전투일 뿐이었다. 부대의 차이는 명확했다. 한쪽은 다른 정예 군대 같았고 다른 한 쪽은 정예 군대도 있기는 했지만 그 압도적인 민병의 비율이 많았다. 갑옷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무기도 없어서 창 대신에 농기구인 갈퀴를 들고 온 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빈약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사기는 압도적으로 민병대쪽이 유리했다. 그렇게 전쟁터를 살피던 정운은 일단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했다. “이거 혹시····?” 정운은 무엇보다 민병대 쪽에서 들리는 성처녀라는 말에 주목했다. 세레나의 영혼을 회수하는 단계에서 갑자기 이동한 어딘가의 전쟁터. 그리고 민병대에게 들리는 성처녀라는 단어까지··. 이러고도 모른다면 그건 바보였다. “세레나, 아니 잔다르크의 생전의 인생인 건가?” 정운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민병대의 후방에서 흰색의 갑옷을 입은 소녀가 늠름하면서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나서 외쳤다. “승기는 우리에게 있다. 구국의 영웅들이여. 돌격하라!!!!!” “오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 순간 민병대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듯이 올랐고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어서 적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운은 민병대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 자신도 전신이 찌릿찌릿해 지는 것을 느꼈다. ‘놀랍군··. 저게 세레나의 아니 잔 다르크로서의 그녀의 능력인가?’ 잔 다르크. 그녀는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프랑스의 영웅이다. 하지만 역사상의 다른 전쟁영웅들과 그녀에게는 확실한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녀의 전략 전술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건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동양의 손자, 제갈량 서양의 알렉산더 대왕, 한니발 등등··. 인류 역사상 큰 공적을 세운 전략가들은 그들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이겼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특히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마지막 승부였던 자마 전투에 관해서는 양군의 전력과 포진 상황을 비롯해서 전투의 양상까지··. 상당히 상세한 기록이 남아서 후세의 수많은 전략가들에게 한니발과 스키피오라는 두 천재의 능력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잔 다르크의 경우 그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너무나 불리한 상황에서 기적과 같은 승리를 몇 번이나 일으켜서 나라를 구했지만 그녀가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는지에 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전무했다. 다만, 일부 기록에는 성처녀라고 불리던 잔 다르크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가 무척 고양되었고 그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라는 기록이 있기는 있었다. 정운이 지금 그녀의 전투를 직접 보고 있으니, 확실히 그 기록이 납득이 갔다. 그녀가 병사들의 등 뒤에서 호령을 한 번 한 것만으로도 민병들이 목숨을 걸고 전진했다. 거대한 군기가 하나로 합쳐진 그 순간의 박력에는 순간 정운도 움찔 할 정도였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도 조금 도와 줄까?”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늘에서 활을 당겼다. 사실 이건 거의 반칙이었다. 반칙도 상당한 악질 반칙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정운이 마음만 먹으면 중세의 영국군 정도는 혼자서 학살 할 수 있었다. 영국군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레나를 돕기 위해서라면 못 싸울 것도 없었다. “음, 다이앤에게 조금 미안하군.” 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활을 쐈다. “천뢰지망!!” 퍼퍼퍼퍼퍼퍼펑!!! 하늘 높이 솟구친 화살은 수도 없이 흩어져서 뇌전의 벼락이 되었다. 그리고 지면에 떨어지면서 화려하게 폭발···. “어?” 하지 않았다. 뇌전의 화살들은 그대로 지면에 스며든 것처럼 없어져 버릴 뿐이었다. “이건 설마···?” 정운은 자신의 특기인 뇌전의 거검을 만들어서 지면으로 집어 던졌다. 길이가 20미터는 될 법한 뇌전의 거검은 작은 산 정도는 날려 버릴수 있는 파괴력이 있었다. 하지만···. 쑤욱. 그대로 뇌전의 거검 역시 지면에 스며들 뿐. 어떤 파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런 이런···. 이거 타입 슬립 같은게 아니라 일종의 심상풍경이라고 여겨야 하나? 난 여기서 환영일 뿐이고? 그런 타입인 건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른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기 때문일까? 보통 이상으로 상황 파악이 빠른 정운이었다. 실제로 정운이 그렇게 화려한 공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상의 누구도 정운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모두는 아니었다. 딱, 한 명. 정운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지? 저 사람은 어째서 하늘에서····?” 세레나, 아니 잔 다르크 만은 정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 잔 다르크의 활약에 힘 입어서 전투가 프랑스군의 승리로 끝난 그날. 잔 다르크는 회의실에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오자 마자 사령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잔 다르크. 어째서 내 명령을 무시하고 군을 움직였나!!!?” 호통을 치는 사령관은 당시 오를레앙에서 프랑스 군을 이끌고 있던 지휘관인 장 도를레앙이었다. 그는 오를레앙에서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상태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딱 한 번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 시도 한 적은 있었지만 그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아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었다. 그래서일까? 너무나 처참한 패배와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에 짓눌린 그는 소극적인 전략만 구사하고 있었다. 이번만 해도 장 도를레앙은 전투를 피하기 위해서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라고 명령을 내렸었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그런 명령을 거부하고 성내의 주민들과 병사들을 직접 이끌고 성주에게 가서 문을 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장군 한 명의 도움을 받은 그녀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싸웠다. 그리고 생아구스탱 요새를 탈환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제까지 오를레앙에서 고립 되어서 말라 죽어가든 프랑스 군에게 있어서 이번 전투에서 얻은 것은 너무나 컸다. 하지만 그런 대승임에도 불구하고 장 도를레앙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박에 가까운 전투를 벌였던 잔 다르크를 질책했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이 몇 번이고 실패했던 전투를 너무나 간단하게 성공 시킨 잔 다르크에 대한 질투심도 한 몫 했을지 모른다. 더구나 그 상대는 여자, 그것도 아직 어린 소녀가 아닌가? 비록 샤를 왕세자의 명령을 받고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성처녀라는 이름을 내세우고는 있었지만···. 장 도를레앙은 성처녀 따위를 믿지 않았다. ‘뭐가 신의 계시냐? 전쟁이란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장 도를레앙에게 잔 다르크는 그저 철없는 철부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운 좋게 성공했으니 다행이지. 만약 실패 했다면 아군이 전멸당 할 수도 있는 심각한 전투였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전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신께서 함께 하시는 이상, 저에게 패배는 없습니다.” “끄으응······.” 장 도를레앙은 인상을 팍 쓰면서 침음성을 내 뱉었다. 그는 현실 주의자라서 전쟁은 인간과 인간의 싸움일 뿐. 신앙심은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을 그대로 말 할 수는 없었다. 함부로 신을 부정하는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이 시대의 유럽에서 크리스찬임을 부정한다는 것은 아군 적군을 넘어서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성처녀라고 칭송 받는 잔 다르크의 신앙심을 정면으로 부정 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한 숨을 내쉬면서 잔 다르크에게 말했다. “자네의 도박은 다행이 성공해서 생아구스탱 요새를 탈환은 했네. 이것은 자네의 공으로 보고하도록 하지. 하지만!!!” 장 도를레앙은 강하게 말을 끊은 다음 단호하게 말했다. “이 시간 이후로 자네에게 회의에서의 발언권을 일절 금지하네. 주사위 던지듯 운만 바라는 참모는 병사를 죽음으로 내몰 뿐이야.” “··············.” 장 도를레앙의 말에 잔 다르크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못 마땅했지만 더 이상 강하게 나갈 수도 없는 장 도를레앙이었다. 대신 그는 다른 참모들과 함께 회의에 집중했다. “이제 생아구스탱 요새를 탈환했으니, 시간은 더 이상 우리 적이 아닐세. 여기서 농성하면서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힘을 합쳐서 적을 몰아치도록 하세.” 장 도를레앙의 말에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방어를 단단히 하고 시간을 끈다면, 반드시 반격의 기회가 올 것입니다.” 참모들은 대부분 사령관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그저 눈살을 찌푸리면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날 밤. “후우····.” 잔 다르크는 자신의 방에서 갑옷의 후크를 풀었다. 무거운 갑옷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니 전쟁터하고는 무관한 가녀린 체형의 소녀가 드러날 뿐이었다. 이런 작은 소녀가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병사들을 지휘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어서 겉옷을 벗으려고 하다가 잠시 손을 멈칫했다. 그리고 검을 빼들고 아무도 없는 한쪽 벽을 겨누며 말했다. “여인이 옷 갈아입는 광경을 지켜보다니. 예의 바르다고는 못 하겠군.”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역시 내가 보이는 군.” “그렇소. 이상하지만 나만이 당신을 보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더군요.”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정운이었다. 정운은 오늘 하루 종일 그녀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운의 존재가 보이지 않았고 정운은 이 세계의 무엇보 만질 수 없었다. 그저 잔 다르크, 그녀만이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정운은 혹시나 해서 손을 뻗어서 그녀의 손을 잡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스르륵···. 마치 물속을 통과하는 것처럼 정운의 손길은 잔 다르크의 몸을 통과 할 뿐이었다. 바로 앞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를 만질 수도 없고, 심지어 그녀가 자신을 기억도 못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정운은 그저 씁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레나는 정운을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말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째서인지 당신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원래 로마의 혁명 이후에는 잔 다르크 시대의 얘기도 한 번 써볼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료가 그다지 남아있지 않았서 일단 유보 중이죠. 소설가로서 매력적인 시대라서 언젠가는 시도 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무리네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1화 세레나의 말을 들은 정운은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음··. 난 너의···. 아니 관두지. 지금 당장 말해도 믿지 않을 거야.” “···············?” 잔 다르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정운으로서는 그녀의 의문을 풀어 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설명한다 말인가? 난 네가 죽고 천사가 된 후에 그라운드 제로라는 세계에서 만나서 함께 하게 된 너의 연인이야. 라고 말했을 때 잔 다르크가 믿어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라도 안 믿겠다.’ 정운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난 그냥 당신의 조언자라고 해 두지.” “조언자라···. 당신은 신께서 보낸 것입니까?” “신은 만난 적 없고, 미카엘이나 가브리엘님은 만난 적 있지.”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잔 다르크는 정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대번에 그 사실을 믿어 줬다. “잘 믿네? 사기 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정운의 말에 잔 다르크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 역시 미카엘님을 통해서 계시를 듣고 전장에 나온 몸입니다. 당신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군.” 정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잔 다르크의 일화 중에는 진실을 가려내는 안목도 있었다. 잔 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고 도팽 샤를 왕세자와 첫만남을 가질 때의 일이었다. 도팽 샤를은 잔 다르크가 정말로 신의 계시를 받은 몸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한 가지 시험을 준비했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시종을 불러서 그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서 변장을 시켰다. 또한 자신은 기사 복장을 하고 주변의 기사 사이에 섞여서 자신이 왕세자임을 숨기게 했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왕세자를 배알하기 위해서 나타났을 때. 잔 다르크는 옥좌에 앉아있는 가짜 왕세자를 한 번 흘깃 보더니 무심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 그녀의 무례에 신하중에 한 명이 호통을 쳤다. “뭣 하는가!!? 당장 왕세자 전하에게 예를 표하지 못하겠는가?” 그런 신하의 호통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잔 다르크는 망설임 없이 한 명의 기사에게로 걸어갔다. 바로 진짜 도팽 샤를 왕세자의 앞이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그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프랑스의 딸 잔 다르크가 왕세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해서 도팽 샤를 왕세자는 잔 다르크에게 붕괴 직전이었던 프랑스 왕실을 구해줄 희망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진실을 가려내는 안목이 있는 그녀를 보자 정운은 그냥 전부 다 불어 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세레나로서의 기억이 없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그저 혼란만 가중 시킬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만 두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잔, 당신은 무엇을 망설이지?”‘ “망설인다고요? 제가요?”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여.” “················.” 정운의 말에 잔 다르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저는 조국의 평화를 위해서 신의 부름을 받고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지휘부에서는 저를 믿지 않고 있죠. 이래서는 제가 신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무리 신탁을 받은 성처녀라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까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애당초 프랑스의 지휘부에서는 잔 다르크를 그냥 민중을 고양시키기 위한 광고탑 정도로만 취급하는 자들이 상당수였다. 그들은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한 그녀에게 제대로 된 작전권을 부여 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미 그녀는 도팽 샤를 왕세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은 상태였는데 말이다. 그런 그녀의 고민을 들은 정운은 웃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겉으로 봤을 때···. 당신은 그저 어리고 아름다운 소녀로 보일 뿐이지. 그런 당신을 사람들이 믿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정운의 말은 지당했다. 하지만 잔 다르크의 입장에서는 억울했다. “하지만 제가 신탁을 받은 것은 진실입니다.” 그렇다. 그녀는 실제로 신탁을 받았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그걸 의심한다고 하면, 그저 억울할 뿐이었다. 정운은 조금 격앙된 그녀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당신은 신탁을 받았지. 하지만, 모두가 그걸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흔들림 없는 믿음과 정직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정운의 말에 잔 다르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제 임무를 수행 할 수 없다면 왜 신은 저 같은 어린 소녀를 택했다는 말인가요?” 그녀의 하소연에는 이제까지 지휘부에서 받아왔던 차별에 대한 감정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정운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믿기 원한다면···. 일단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하겠지.” 정운의 말을 들은 잔 다르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저 스스로를 믿으라니요? 전 이미 저 스스로의 사명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아직 제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인가요?” “그게 아니야. 오늘, 당신은 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전투를 벌였고 승리했지. 왜 그랬던 거지?” “그건··. 중요한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식량도 사기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농성을 선택해도 병사들의 불안만 가중 될 뿐이었죠. 지금 필요한 것은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령을 거부하면서도····. 아!!!” 말을 하던 잔 다르크는 스스로 깨달은 것 같았다. 비록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하긴 했지만, 그 결정에 의심이나 망설임은 없었다. 그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스스로에게 망설임이 없다면 더 이상 물러설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잔 다르크는 잠시 감았던 두 눈을 뜨고 정운에게 말했다. “당신의 충고를 감사히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제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정운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지.’ 비록 자신에 대한 기억은 없었지만, 순수한 마음과 강한 심지까지···. 지금 눈앞에 있는 잔 다르크는 틀림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인 세레나였다. 정운의 충고로 망설임을 버린 잔 다르크는 3일 후에 지휘부를 강력하게 설득해서 농성을 그만두게 했다. 이제까지처럼 온건한 태도가 아니라 강경하게 도팽 샤를 왕세자에게 받은 권한을 이용해서 말 안 듣는 지휘부를 복종 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영국군의 주요 요새인 르투렐르 요새를 공격해서 크게 승리한다. 이윽고 그녀가 오를레앙의 성처녀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활약 때문이었다. 기세가 오른 그녀는 샤를 왕세자의 대관식을 위해서 랭스를 탈환하고자 했다. 랭스의 대성당은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하는 것이었다. 이곳을 공략하는 것은 샤를 왕세자의 전통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를 왕위에 올리겠다는 그녀의 의지의 표명이었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작전이었다. 당시 영국군은 잔 다르크가 노르망디 지방의 탈환을 위해서 그쪽을 공격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랭스는 영국군의 영역 깊숙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단호하게 랭스로 진격했다. 그동안 그녀의 주변 환경도 많이 변했다. 한때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던 지휘부들이 이제는 그녀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것이다. 한때 그녀의 존재에 관해서 가장 부정적이었던 장 도를레앙 역시 그녀의 연이은 기적 같은 승리를 바로 곁에서 함께 하는 사이에 성처녀의 숭배자가 되었다. 그 전투에서 그녀의 활약은 눈부셨다. 순백의 갑주를 입고 병사들을 독려하는 그녀의 함성은 아군에게는 신의 복음이었고 적군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오랜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를 저울질 하던 도시들이 그녀의 진격 소리만 들으면 서둘러서 프랑스 동맹으로 귀환 하였다. 샤를 왕세자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려고 했던 조약의 체결 장소였던 트루아는 4일간 포위 되었는데 그 동안 잔 다르크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을 뿐이지만 결국 트루아는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이미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승리의 상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윽고 그녀의 파죽지세 같은 진군은 랭스에 도달했고 랭스는 성문을 열어 항복했다. 그리고 잔 다르크의 활약에 힘입어서 5년 동안이나 공석이었던 프랑스의 왕좌에 샤를 7세가 즉위했다. 그녀의 사명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잔 다르크는 왕관을 쓴 샤를 7세에게 무릎을 꿇고 경예를 표하며 말했다. “전하. 이제 진정한 프랑스의 왕위 되셨습니다.” “감사하오. 이 모든 것인 오를레앙의 성처녀의 공이오. 내 절대 그대의 공을 잊지 않겠소.” “과찬입니다.” 이런 둘의 모습에 수많은 귀족들과 평민들이 모두 격앙되어서 외쳤다. “샤를 7세 전하 만세!!!” “잔 다르크 만세!!!” “오를레앙의 성처녀 만세!!!!” “프랑스에 영광 있으라!!!!” 그렇게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샤를 7세는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정운은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이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딱 여기까지만 보고 싶은데·····.” 자세한 경위는 모르지만, 이 후의 그녀의 운명을 알고 있는 정운으로서는 더 이상의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정운은 잔 다르크의 앞에 나타났다. “당신은···. 저의 인도자시군요.” 잔 다르크는 정운을 인도자라고 생각하기로 한 모양이다. 아마 자신의 망설임을 걷어준 존재이니 그렇게 부르기로 한 모양인데··. 정운으로서는 그것 보다는 연인 관계가 더 좋았다. “스스로의 사명을 이룬 것 축하해.” “감사합니다. 당신이 그날 해 주신 충고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정운의 충고가 없었다고 해도 잔 다르크는 충분히 자기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다만 정운으로서는 이 후의 일이 더 걱정이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정운의 말에 잔 다르크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제 앞으로도 프랑스의 백성과 국왕 전하를 위해서 제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탁은 이뤘잖아? 이제 이쯤에서 성처녀는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당신이 없어도 왕위에 오른 샤를 7세를 중심으로 프랑스가 뭉친다면, 언젠가 영국군을 몰아내고 이 혼란을 종식 시킬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그만, 저를 시험에 빠트리지 마십시오.” 잔 다르크는 단호하게 정운의 말을 잘랐다. 정운은 그런 잔 다르크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신탁을 이룬 이상, 넌 더 이상 기적의 성처녀가 아니야. 그저 일개 소녀로 전쟁터를 누비겠다고?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는 알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고 따르는 부하들과 백성들, 그리고 저를 신뢰해 주시는 국왕 전하가 있는 이상 저는 뒤로 물러 날 수 없습니다.” “················.” 정운은 그저 안타까웠다. 그녀의 이 강철 같은 신념은 어떻게 해도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정운이 물리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그때는 힘으로라도 그녀를 납치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운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 작품 후기 ============================ 잔 다르크의 과거에 관해서는 자료가 많이 부족해서 사실 제 상상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실제 역사와 틀린 부분이 많을 테지만 양해 부탁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492화 1430년 5월. 잔인한 운명이 도래한 날이었다. 콩피에뉴가 적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잔 다르크는 아군을 구하기 위해서 진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애당초 잔 다르크를 잡기 위한 함정이었다.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적들은 6천의 병력을 추가로 더 보내서 가열 차게 그녀를 공격했다. “성처녀님. 도망가셔야 합니다. 이건 애당초 노리고 있던 협공입니다.” 잔 다르크의 충복이 질 드 레가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잔 다르크는 바로 후퇴하지 않고 말했다. “병사들이 우선입니다. 그대는 군을 이끌고 콩피에뉴 요새로 피신하도록 하세요.” “성처녀시여. 당신은···?” “전 남습니다. 적들이 노리는게 저라면, 제가 남지 않는 이상 미끼를 물어 줄 리 없습니다.” “아···. 안 됩니다. 어찌 당신이···.” “이건 명령입니다!! 어서 가세요!!!” 잔 다르크는 질 드 레에게 호통을 쳐서 명령을 하고 자신은 최소한의 군만을 이끌고 후방에서 적들을 막았다. 그녀의 예상대로 적들은 콩피에뉴로 후퇴하는 적의 본대가 아니라 잔 다르크가 있는 후방의 잔당을 철저하게 노렸다. 적들의 입장에서는 잔 다르크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안 밖으로 적을 흔들어서 간신히 다 이겨가는 전쟁이었는데···. 거기에 고작 10대 소녀가 등장해서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지 않은가? 이제 인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어렵게 되었지만 하다못해 잔 다르크 만큼은 반드시 잡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쏴라!! 저기에 마녀가 있다!!!” 피피피핑!!! 무수하게 날아온 화살이 잔다르크의 말과 그녀의다리에 맞았다. “앗!!” “히힝!!!” 결국 말이 쓰러지면서 잔 다르크도 함께 쓰러지며 그녀의 다리는 말에 깔려 버렸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온 병사들은 잔 다르크를 생포하는 것에 성공했다. 결국 그들은 잔 다르크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리고, 잔 다르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통 스런 시간들이 시작 되었다. 뿌드득···. 정운은 잔 다르크를 잡아서 거칠게 끌고 가는 병사들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힘을 쓸 수만 있다면···. ‘참자. 이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불과해. 지금은 참아야 해.’ 정운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어디까지 폭발 해 버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잔 다르크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세상에 퍼져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바랬다. 당시에는 포로로 잡힌 귀족에 관해서는 그 귀족의 국가나 가문에서 몸값을 주고 돌려받는 것이 관례였다. 잔 다르크는 원래 평범한 소작농의 딸이었지만 그 공을 인정받아서 샤를 7세에게 귀족 작위를 받았었다. 당연히 샤를 7세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적과 교섭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샤를 7세는 기억하고 있었다. 대관식의 순간 수많은 이들이 자신과 함께 잔 다르크를 칭송하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국왕에 즉위한 자신보다는 그런 자신을 즉위 시킨 잔 다르크에 대한 칭송이 더욱더 컸다. 국왕보다 더 칭송받는 영웅. 경계를 받기에는 충분했다. 한때는 간절하게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원했고···. 그 누군가로 나타난 것인 잔 다르크였다. 그녀에게 매료 되어서 전권을 위임한 적도 있었고 그녀를 무한하게 신뢰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왕위에 오른 샤를 7세에게 잔 다르크는 부담의 대상일 뿐이었다. 결국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되찾기 위한 포로 교섭을 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그녀를 버린 것이다. 이것은 훗날 수많은 역사가들이 샤를 7세를 비판하는 이유가 되었다. 샤를 7세에게 버림받은 잔 다르크에게는 고난이 주어졌다. 영국에서는 그녀를 마녀로 몰아서 이단 재판을 열었다. 신에게 신탁을 받았다는 거짓말을 해서 민중을 현혹 시키고 신을 모독했다. 라는 것이 그들이 잔 다르크에게 씌운 죄목이었다. 수감 생활을 처절했다. 보통 이단 재판의 죄수가 여성일 경우에는 수녀들이 감시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잔 다르크의 경우 일반 병사들이 감시를 했고,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또한 먹을 것으로 썩은 음식을 주어서 그녀가 나날이 피폐해 졌다. 심지어 이단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잔 다르크가 항소할 기회마저 막아 버렸다. 결국 벌어진 이단 재판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원래 잔 다르크는 귀족의 작위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소작농의 딸이었다. 전문적인 신학적 지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는 문맹으로 글도 몰랐다. 그런 문맹의 10대 소녀를 상대하기 위해서 영국쪽 에서는 무려70명의 전문 법률 자문단을 꾸리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잔 다르크의 이단성을 증명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저 소작농의 딸에 문맹이기까지 한 그녀를 상대로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갖은 유도심문을 해서 그녀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무엇하나 성공하지를 못했다. 결국 재판관들은 서기관들을 협박하고 매수해서 기록을 날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잔 다르크를 마녀로 몰아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에게는 이단재판의 극형인 화형이 결정 되었다. 마지막 날. 어두운 감옥 안에서 잔 다르크는 초췌해진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정운은 그런 그녀의 앞에 나타나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은 거야?” “·····당신인가요?” 정운의 목소리에 잔 다르크는 쓰러진 체로 미동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정운은 정말로 자신이 이 세계에 관여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금 정운이 이 세계에 관여만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인류의 역사가 바뀔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세계는 아마도 세레나, 아니 잔 다르크로서의 생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는 것 뿐이고, 정운은 여기에서 환영이나 다름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후회하지는 않아?” 정운의 말에 잔 다르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후회를 남기면 안 되겠죠.” 그녀의 말에 정운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당연한 도리를 묻는게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너에게 닥친 불행을 두고 하는 말이야. 어째서 네가····.” 정운은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를 못했다. 영국 입장에서 잔 다르크를 미워 하는 것은 이해가 갔다. 어쨌든 전쟁터의 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소녀에게 이런 가혹함은 너무 하지 않는가? 아마 영국의 입장에서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몰아세움으로 인해서 이번 전쟁의 패전의 책임을 최대한 가볍게 하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 이겨가는 전쟁이었지만 마녀가 끼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치졸하고 졸렬했지만···. 영국의 수뇌부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이런 길을 택했다. 하지만, 영국군 이상으로 납득이 안 가는 것은 프랑스와 샤를 7세의 결정이었다. 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해준 것이 잔 다르크였다. 그녀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샤를 7세는 결코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활약에 돌아온 대답은 토사구팽이었다. 그녀의 존재가 부담스러운 샤를 7세는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진 그녀를 버린 것이다. 정운은 질 드 레가 타락한 이유가 어느정도 납득이 갈 정도였다. 그렇게 안쓰러워하는 정운의 시선을 받으면서 잔 다르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정운을 향해서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시련은 주께서 내려 주시는 것이죠. 그렇다면···. 신의 종인 저는 그 시련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 결국 정운으로는 아무 말 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이렇게 잔 다르크의 인생을 살았기에 사후 성자의 칭호를 받았고, 천계에서 천사가 되었고,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운을 만났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인과율의 법칙이 있는 법. 정운이 알고 있는 세레나와의 만남을 위해서는 지금의 시련도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는 정운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정운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정운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난 이 세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대로 그녀가 화형 당하는 것을 지켜만 보기 위해서 이 세계에 왔다면··. 그건 정운에게도 잔 다르크에게도 너무나 가혹할 뿐이지 않은가? 정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 수수깨끼를 풀지 않으면, 그녀의 영혼을 구해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운명의 날이 되었다. 잔 다르크는 루앙의 비외 마르셰 광장에서 장대에 묶였다. 그녀의 발치에는 장작들이 쌓이고 수많은 군중들이 그녀를 지켜봤다. 사형을 집행하는 관리는 큰 소리로 잔 다르크의 날조된 죄명을 사람들에게 발표했지만···.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저 안타깝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초췌해진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정운은 이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금 그녀의 영혼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그 순간에도 형은 집행되고 있었다. “집행하라.” 화르륵!!! 이윽고 잔 다르크의 발치 쌓인 장작에 불이 붙었고 그녀의 몸은 뜨겁게 불 타 오르기 시작했다. 화형은 시체조차 제대로 남지 않고 그 고통도 가혹하기 짝이 없는 중형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살을 불태워 가는 고통 속에서도 잔 다르크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그저 불길에 타올라 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정운은 봤다. 잔 다르크의 머리 맡에 어두운 그림자가 감도는 것을 말이다. “저것은···? 혹시?” 정운은 두 말 하지 않고 그 어두운 그림자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에 손이 닿자마자 정운의 머릿속으로 사념이 물 밀 듯이 들어왔다. 분노, 배신감, 증오, 희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몰려오는 가운데 정운은 이 감정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세레나, 당신이?” 그제야 정운은 알았다. 이 세계의 존재 이유와 그녀가 어째서 잔 다르크로서의 생을 다시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잔 다르크. 구국의 영웅이며 오를레앙의 성처녀, 후에 성인으로까지 추앙 받았으며, 그 생은 청렴하고 검소했고 고고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인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성스럽고 순수한 성처녀이기를 바랬고, 그녀 역시 될 수 있는 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고작 10대의 소녀에게 이 가혹한 운명을 아무런 고뇌 없이 담담하게 감당하라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지 않은가? 이 어두운 감정은 잔 다르크의 안에 있는 어두운 감정 중에 일부였던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잔혹한 운명에 대한 원망.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가지는 그런 감정 조차 신앙심으로 억눌러야 했던 그녀였기에··. 이 감정은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정운은 이 어두운 사념에 저항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와라. 모두···.” 그리고 온 몸에 힘을 빼고 자신을 집어 삼킬 것 같은 증오의 감정을 모두 받아 들였다.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 이 어둡고 음습한 증오의 감정이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의 감저이라면··. 자신은 이것까지도 사랑하고 포용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정운이 이런 감정을 모두 받아들인 순간 주변의 세계가 변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3화 <돌아온 세레나> “여기는···. 잔?” 어두운 암흑의 공간 안에서 한 명의 소녀가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순백의 갑옷을 입고 성스럽기까지 한 모습의 소녀는 끊임없이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정운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무엇을 잘못했지? 왜 그렇게 용서를 구하는 거야?” 정운의 말에 잔 다르크가 말했다. “저는 죄를 범했습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뜻에 원망을 품었습니다.” “그게 당신의 죄라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잔 다르크의 말을 들으며 정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틀려. 당신은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삶을 살았어.” “그렇지 않습니다. 전 부끄럽고, 속물적인 인간입니다.” “그렇지 않은 인간은 누가 있지?” “저는 그래야 했습니다. 모두가 그러기를 바라고 저 역시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저는 증오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습니다.” 참회하듯이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몸은 마치 어둠에 빨려 들어가는 듯이 점차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정운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대로 가면 그녀는 또 다시 잔 다르크로서의 잔혹한 일생을 반복 할 것이다. 스스로의 자책감에 빠져서 되돌리지도 못할 인생을 영원히 무한하게 반복한다. 그걸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를까? 아니 그 전에 이미 얼마나 많은 반복을 거듭했을까? 정운은 사라지려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꼭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완벽하게 선 할 수만은 없어. 그건 아무리 악당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선함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정운의 말에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저는····.” “괜찮아. 그만해도 돼. 이제 스스로를 나무라는 것은 그만 둬.” “···············.” “네가 성처녀가 아니라고 해도···, 그저 평범한 소작농의 딸이라고 해도, 널 만난 시점에서 난 너를 사랑했을 거야. 그러니···. 이제 돌아와. 세레나.” 정운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 순간···. 이 세계는 무너졌고 정운은 어두운 해저에서 밝은 해수면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이 차렸을 때에는···. 정운의 품속에 너무나 사랑하고 익숙한 여자가 있었다. “세레나····.” “정운씨····. 고마워요.” “미안해.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정운은 세레나를 품에 안으면서 조용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품에 안은 그녀의 체온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음·····.” 정운이 세레나를 되찾은 그 순간···. 다크니스 왕국에서 슬로트가 자신의 감각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잠들어 있던 자신의 일부가 깨어난 것을 그녀도 느낀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 짐작은 갔지만, 그래도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은 다크니스 왕국의 슬로트. 그것만이 그녀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세레나!!!” “세레나 돌아왔다며? 앗!! 여기 있네?” 세레나의 귀환은 동료들에게 격하게 환영을 받았다. 그라운드 제로의 마지막 전투의 순간. 그녀가 희생해서 찬스를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모두가 패배했을 것이었다. 가우리의 간부들은 모두 그녀에게 빚을 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반겨 줬는데 그 중에는 까칠한 성격의 이보영까지 끼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가우리에 합류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신서울에 거주하면서 가끔 정운이 하는 부탁이나 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세레나의 귀환 소식을 들은 순간만큼은 평소의 심드렁함을 버리고 입가에 미소를 한가득 지었다. 정운은 동료들과 함께 있는 세레나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보인다?” 그런 정운에게 맥주캔을 가져다 주면서 한중겸이 말했다. 정운은 맥저캔을 받으면서 말했다. “예. 형님이 민지 누님 찾았을 때 만큼요.” “그래·····.” 한중겸은 정운의 옆에 자리 잡아서 같이 맥주캔을 부딪히고 들이켰다. “세레나의 상태는 어때?” “영혼의 90%를 모두 되찾았으니 일단 괜찮아요. 하지만, 남은 10%를 마저 채우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떤 부작용이 발생 할지 모르죠.” “그래. 그렇단 말이지.” 세레나의 영혼의 10분의 1은 파우스트에 의해서 다크니스 왕국에 있다. 그걸 어떻게든 되찾아서 그녀에게 돌려줘야 했다. 다만 그게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뭐, 파우스트도 일단 조용해 보이 당분간은 별 생각 없이 지금의 평화를 즐겨라.” “그럴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세레나가 돌아왔다. 정운으로서는 이 순간 시간이 멈춘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그날 밤.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정운을 슬기가 붙잡았다. “지금 뭐 해요?” “뭐하긴···.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그만 자려고 하는데?” 정운의 말에 슬기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하여튼 가끔씩 너무 무신경 한 것 알아요?” “···············?” 난데없이 갑자기 야단부터 맞고 있는 정운이었다. 요즘 들어서 슬기한테 혼나는 경우가 좀 많이 늘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이유도 모르고 혼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정운에게 슬기가 말했다. “우리가 방에서 자면, 세레나는 어디서 자죠?” “그거야 세레나도 우리 방에서··· 아!!” 정운은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그동안 슬기와 자연스럽게 한 방을 쓰다보니 세레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에 있을 때부터 정운은 슬기와 세레나를 한 침대에서 동시에 사랑한 적은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둘인 시점에서···. 이미 일편단심(一片丹心)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다만 정운의 경우 이편양심(二片兩心)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가우리의 수상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여자들이 정운에게 대시를 했었다. 그 중에는 세계 유수의 권력가의 딸도 있었고, 어디에 비교해도 절대 빠지지 않는 미모의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슬기와 세레나 이외의 여자는 정운의 마음에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유일하게 조금 예외로 친다면 레이시안 정도일까? 하지만 그녀에게 든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존경과 친애의 감정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누님으로 모시고 있는 정운이었던 것이다. 그 감정은 슬기나 세레나하고는 달랐다. 어쨌든, 오늘 세레나가 돌아온 날인데 슬기와 한 침대에서 자게 할 수는 없었다. “음··. 슬기야. 그럼···.” “전 애들 방에 가 있을게요. 그리고···. 세레나 많이 아껴주세요. 절 아끼는 것 만큼 아껴주지 않으면 제가 원망 할 거에요.” 슬기의 말에 정운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정운은 슬기를 품에 꼭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고마워···. 역시 네가 최고야.” “세레나하고 공동으로요?” “··········.” 거기에 관해서 굳이 대답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는 정운이었다. 하지만, 슬기에게 고마운 감정이 드는 것은 진심이었다. 처음에 정운과 세레나의 관계를 밝혔을 때는 크게 화를 내고 정운의 뺨을 날렸던 슬기였다. 사실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슬기도 세레나를 받아들이면서 정운을 함께 나눠 주었다. 사실 정운이 슬기의 입장이었다면 세레나를 죽였을지도 몰랐다. 슬기나 세레나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고 하면 정운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잔인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녀들에 대한 마음은 정운의 인생에 있어서 양보 할 수 없는 굳건한 일 부분이었다. 끼이익···. 슬기가 애들의 방으로 가고 정운은 자기 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방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긴장되기는 처음인 정운이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자 창 가에서 세레나가 신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운씨?” “응. 나 왔어. 컨디션은 어때?” “다른 사람들이 술을 좀 많이 따라주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렇게 말을 하는 그녀의 뺨은 복숭아 빛으로 살짝 익어 있었다. “정말? 괜찮아? 속 쓰리거나 하지는 않아?” 정운의 말에 세레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몇 만 년 만에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지 조금 알딸딸하긴 하지만 이정도는 끄덕도 없어요.” 그리고 그녀는 정운의 품안에 살며시 기대었다. 그리고 스대로 창 밖으로 보이는 신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감탄하듯이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잘도 이런 걸 만들었네요?” “응. 도와주는 사람들이 워낙 출중 했거든?” 정운은 세레나의 어깨를 품에 안으면서 그녀를 체온을 다시 느꼈다. 따듯하고 좋은 향기가 느껴질 때마다 정운은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다시는 이 온기를 느끼지 못 할 뻔 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정운은 좀 더 깊게, 그리고 농밀하게 세레나늘 느끼고 싶었다.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똑바로 돌려 세운 정운은 그대로 세레나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쳤다. 세레나는 조금 당황한 듯 하긴 했지만 정운의 키스를 받아주었다. 둘의 입술이 겹치고 떨어지고, 그리고 다시 겹치고 떨어지고를 몇 번인가 반복했다. 정운은 교묘할 정도로 세레나를 안아서 침대 쪽으로 이동 시켰다. 그리고 어느새 스스륵 하면서 그녀를 침대에 쓰러트리고 그 위에 자신이 올라왔다. 그리고 한 손을 뻗어서 세레나의 상의 아래쪽을 파고 들어갔다. “음····? 잠깐만요.” 세레나는 순간 살짝 당황한 것처럼 정운의 손길을 막았다. 하지만 정운은 그런 세레나의 손길을 무시하면서 더욱더 진하게 입술을 겹쳤다. 이제 자신의 혀를 그녀의 입안으로 밀어 넣어서 그녀의 부드러운 설육을 느꼈다. 그럴리는 없지만 그녀의 타액이 달작하게 느껴질 정도로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운의 손길이 익숙하게 세레나의 옷을 벗겨가기 시작했다. 세레나는 정운의 능숙한 손놀림에 어쩔 줄을 몰몰라 했다. 그녀는 정운의 손길에 당황스러워 하면서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정운은 능숙하게 그녀의 다른 부분을 공략해 갔다. 그리고 그녀가 잠시라도 말로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면···. “잠시··. 잠시만요··. 음!!” 정운이 자기 입으로 그녀의 입을 막아 버렸다. 예전에는 몇 번이고 서로 살을 겹쳤던 두 사람이지만···. 지금은 정말 오랜만에 세레나를 자신의 품안에 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세레나는 자꾸만 감질나게 작은 거부 반응을 보였다. 원래 같으면 정운은 이럴 경우 세레나의 의사를 존중하거나···. 혹은 설득할 노력 정도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녀를 품에 안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다고 생각했다가 간신히 되 찾았다.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정운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운은 여기서 세레나를 놓치기 싫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자신을 지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세레나가 하는 작은 반항들은 정운을 더욱더 감질나게 할 뿐이었다. “아!!!” 세레나의 상의가 위로 올라가고 뽀얀 젖가슴이 드러나자 정운은 손을 뻗어서 그 부드러운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살짝 아플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는 정운의 손길에 세레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파했다. 그냥 아픈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자신의 몸에 와 닿는 사랑하는 남자의 손길이 부끄러웠다. 마치 순결한 처녀로 돌아간 것처럼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정운의 입이 자신이의 유두를 물고 강하게 빨아 당길 때도 세레나는 자신의 입을 막고 자신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정운도 느끼고 있었다. 반항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워서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살짝살짝 보이는 세레나를 보면서 정운은 더욱더 그녀를 강하게 탐했다. 이제 와서 멈추기에는 그녀가 너무나 그리웠다. 정운은 능숙하게 세레나의 옷을 모두 벗기고 그녀를 완전히 나체로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세레나 이제 돌아왔습니다. 아직 영혼의 10분의 1이 다크니스 왕국에 있기는 하지만 일단 돌아왔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신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4화 “····예뻐, 아니 아름다워.” 정운은 희미한 조명에 보이는 세레나의 나신을 보면서 감탄하듯이 중얼 거렸다. 세레나는 부끄러움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정운을 바라봤다. 약간의 원망이 섞여 있는 그녀의 시선은 더 이상 부끄럽게 하지 말라는 무언의 항의였다. 세레나에게 이런 여자로서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남자는 전 세계를 다 뒤져 본다고 해도 정운 한 명 뿐일 것이다. 정운은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눈으로 세레나의 나신을 음미하듯이 감상했다. 마치 최고의 예술품을 관람하듯이 진지한 눈으로 지그시 그녀의 나신을 바라봤다.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 세레나의 아름다운 얼굴, 그 밑의 매끄러운 목선과 매력적으로 드러난 쇄골, 가녀린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매력적인 라인. 그 밑으로 봉긋하게 솟아나 있는 약간 글래머스한 가슴과 그 위에 얹어져 있는 연 분홍색의 유두. 그 밑으로 이어지는 잘록한 허리 라인과 유려하게 이어지는 골반의 라인. 그리고 정운에 의해서 약간 벌어져 있기는 하지만 길쭉하게 뻗어있는 날씬한 다리의 각선미. 정운은 마치 망막에 새기고 말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그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제발·······.” 결국 정운의 집요한 시선만으로도 세레나의 입에서는 애원이 나왔다. 정운은 웃으면서 세레나의 몸에 손을 뻗었다. 그녀가 애원하지 않아도 마침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을 실컷 감상한 정운은 손을 뻗어서 세레나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슬기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나오고 나서 처음 슬기를 안았을 때 슬기의 몸은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상태였다. 아마 세레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급하게 서두르면 세레나를 아프게 할 뿐이다. 아니 어떻게 해도 아프긴 아프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정운은 공을 들여서 그녀를 애무해갔다. “음·····. 아!!!” 정운의 손길이 세레나의 나신을 스칠 때 마다 세레나는 몸을 뒤틀고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비록 몸이 처녀의 것이라고 해도···. 정운과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여러번 살을 겹쳤던 사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운은 누구보다 세레나의 몸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해야 그녀를 자극 시킬 수 있는지, 정운이 모르는 약점은 하나도 없었다. “하아···. 아····. 읏····.” 세레나는 몸을 뒤틀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정운의 손길에 길들여져 갔다. 살짝 아프다가도 조금 간지러워 졌다 싶더니 이윽고는 다시 짜릿한 느낌에 몸을 비틀었다. 지금 자신이 누워 있는지 공중에 붕 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세레나의 전신은 노곤노곤하게 녹아내려갔다. 한 가지 확실한 감각은 자신을 품안에 안고 있는 사랑하는 남자의 손길과 체온이었다. “하아····. 하아·····.” 결국 정운의 집요한 애무에 세레나는 그대로 축 늘어져서 가쁘게 숨만 골랐다. 완전히 축 늘어진 그녀는 무방비하게 사지를 침대에 널부러트리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무방비하게 누워서 숨만 고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용맹하게 검을 휘두르던 전투시의 모습과는 무척 대조될 것이다. 세레나가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세상에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애무만으로 늘어진 그녀와 달리 정운은 이제 시작이었다. “세레나, 할게.” “아····.” 세레나는 자신의 몸 위에 체중을 싣는 정운은 느끼면서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지쳐서 이제는 힘들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정운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까? 아무리 봐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결국 정운은 세레나의 지친 몸을 끌어 안으면서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 으음·····.” 세레나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자신이 살을 가르고 들어온 정운을 끌어 안았다. 정운은 잠시 그대로 세레나와 살을 겹친 상태로 그녀의 호흡이 정돈되기를 기다렸다. “하아···. 하아····.” 세레나는 아프기는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이 그리웠던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 아니 더 컸다. 도대체 얼마 만에 안긴 사랑하는 사람의 품안이란 말인가? 세레나는 지친 팔로 정운의 목을 끌어안고 스스로 정운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술이 숨결과 타액이 격렬하게 석였다. “······파하···.” 세레나와 정운의 입술이 떨어지면서 둘의 입술 사이에 길게 타액이 늘어졌다. 그리고 세레나는 정운의 목에 여전히 팔을 감은 상태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이제 참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그럼···. 할게.” 정운은 그렇게 말한 후에 서서히 본 행위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안은 세레나의 몸은 불덩어리 같이 뜨겁고 마약처럼 달콤한 향기가 났다. 정운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그저 자기 품안에 있는 사랑하는 여자의 살결에 취해서 본능대로 움직였다. “아아····. 아·····.” 세레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정운에게 꼭 달라붙었다. 마치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땟목을 꼭 붙잡고 있는 것처럼 세레나는 정운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정운에게 그저 순종하듯이 몸을 맡겼다. “세레나!!!” “아아!!!!” 결국 정운의 행위가 절정에 달할 때까지 세레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 정운에게 달라 붙어있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둘의 만남은 그렇게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정운은 자신의 품안에 안겨있는 세레나의 두근 거리는 심장 고동을 느끼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이 체온을 놓치지 않겠다. 라고 말이다. 제국의 황실. 황제는 누군가와 함께 황성의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은 원래 황실의 보물 창고였지만, 최근에는 증축을 거듭하고 아무도 올 수 없는 기밀 구역으로 만들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황제와 그에게 정체불명의 조력을 하는 자들 뿐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이 지하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제야 모든 것인 완료 되었군요.” 황제의 말에 조력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이것이면, 가우리를 징벌하기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라면···. 가우리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것이라면 능히 가능하겠죠?” “그렇다. 이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도 가우리를 징벌하지 못한다면, 네놈이 무능한 것이겠지.” “절대 실망 시키지 않겠습니다. 신의 사자시여.” 황제는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이라는 직위에 있었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상대에게는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아무리 고귀하다고 해도 인간 중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일 뿐인데···.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신의 사자인 것이다. 황제는 그 동안 스스로를 메데이아라고 밝힌 이 여성의 도움으로 꾸준한 준비를 거듭했다. 주신 파우스트의 직속 사자로 나타난 그녀의 도움으로 제국이 준비한 카드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파우스트의 직속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성 세인트 왕국의 봉인지정 무기. 바로 세라핌이었다. 그 세라핌이 지하 보물 창고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숫자는 무려 일천기. 가우리의 최고 간부인 박추성 조차 고작 80여기 정도를 상대 하는게 고작이었던 세라핌이었다. 후에 박추성은 가우리의 보고서에 만약 무리를 한다고 해도 100기 이상은 어렵다고 보고서를 작성했었다. 그런 세라핌이 무려 무려 일천기다. 단순 계산으로 박추성 열 명이 있어야 간신히 수준이 맞을까? 말까인 것이다. 제국의 황제가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레나 엄마!! 놀아 줘.” “나도···. 나도 안아 줘.” 아이들은 세레나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살갑게 애교를 부렸다. “그래··. 이리 오렴.” 그리고 세레나는 그런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이 대해줬다. 세레나가 돌아온 이 후. 아이들은 세레나를 금방 엄마로 받아 들였다. 사실 정운은 아이들이 슬기를 워낙 좋아해서 세레나를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있지 않을까? 라는 염려를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운의 애들은 슬기 이외에는 정운에게 접근하는 여자를 무척이나 싫어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아미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의 전형적인 대상이 바로 홍린이었다. 홍린, 그녀는 원래 정운에게 제법 마음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정운에게 마음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능력있는 남자라면 그녀는 대부분 호감을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알고 있는 한 박정운 보다 능력 있는 남자는 없었다. 물론 그녀도 정운에게 자신의 유혹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부터 알았으니 정운과 알고 지낸 시간도 제법 되지 않는가? 몇 번이나 정운에게 유혹의 추파를 날렸었다. 그냥 질질 끌지 않을 테니 까짓것 한 번 안아만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건 말 뿐이고 정운이 한 번만 안으면 책임을 지라고 질질 달라붙을 생각이었지만···. 정운은 홍린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 슬기와 세레나라는 두 명의 골키퍼가 너무 강력해서 결국 이보영과 더불어서 그라운드 제로 양대 유혹녀(자칭)인 자신도 별 성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시도는 하고 있었다. 못 먹는 감 찔러는 본다는 생각으로 틈만 나면 쿡쿡 찔러 본 것이다. 그리고 정운에게 애들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홍린은 내심 찬스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정면이 막혔다면 돌아서 가는 것도 길이지.’ 애들하고 친해 짐. 애들에게 은근슬쩍 엄마 소리 들으면서 정운에게 어필 함. 결국 얼렁뚱땅 애들 엄마라는 포지션을 차지하면서 정운에게 안착 성공. 이라는 계획을 세운 그녀였다. 그리고 그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아이들이 좋아 할만한 선물을 잔뜩 사서 애들한테 접근했다. “안녕. 애들아~.” 애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접근한 홍린을 보고 애들은 멀뚱멀뚱한 눈을 했다. 홍린은 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선물을 주면서 말했다. “안녕, 언니는 너희들 아빠하고 친한 사이인데, 언니하고 친하게 지낼래?” 홍린의 접근에 애들은 슬쩍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아줌마 아빠하고 친해요?” “아줌마·····, 언니라고 불러줄래? 안 그러면 하다 못해 이모라도····.” 미혼 여성에게 아줌마라는 단어는 생각 이상으로 큰 상처가 되는 법이다. 그게 악의 없는 애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호칭을 고쳐보려는 홍린이었지만····.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한 목소리로 동시에 대답하는 애들을 보면서 홍린은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요 꼬맹이들이·····.’ 하지만 환심을 사러 와서 되려 혹 붙일 수는 없었다. 홍린은 어떻게든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지만···. 애들은 이상할 정도로 홍린을 싫어했다. 그리고 애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말했다. “저 아줌마 기분 나빠.” “응. 맞아. 기분나빠.” “아빠 좋아하는 것 같애.” “맞아. 우리 아빠는 엄마 건데 말이야.” “기분 나쁜 아줌마야.” “맞아. 맞아.” 자기들끼리 모여서 수근 거린다고는 하지만 홍린의 귀에 안 들어올 리가 없었다. ‘저 꼬맹이들····. 그냥 확····.’ 원래 애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홍린은 자기 뒷 담화를 하는 애들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씩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냥 애들도 아니고 정운의 애들이다. 홍린도 가우리의 중요 간부 중에 한 명이고 세상 어디에 가도 꿀리는 위치는 아니지만···. 아미들의 머리를 쥐어박을 용기는 차마 없었다. 결국 홍린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였다. 아이들의 반감만 잔뜩 사고 결국 홍린은 더 이상 애들 앞에는 나타나는 것도 자제했다. 그녀 말고도 정운을 목적으로 애들한테 접근한 여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애들은 그런 여자들의 경우 귀신처럼 알아내고 우리 아빠한테 오지 마. 라는 식으로 강력하게 베리어를 쳤다. 그래서 정운은 처음에 세레나를 어떻게 애들한테 소개 해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그런 정운의 걱정은 기우였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5화 <도쿄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 “····이쁜 언니 누구야?” “언니 되게 예쁘다.” “아빠, 이 언니 되게 예쁘다.” 낮을 가리는 애들이 세레나를 보자마자 연신 예쁜 언니라고 하면서 반기는 것이다. 세레나는 세레나대로 애들을 보자 너무나 예쁘다는 듯이 미소가 얼굴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나중에 레이시안이 설명하기를···. [“원래 저 애들은 세레나씨의 영혼에서 빚어낸 아이들이었으니 본질적으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죠.”] 라고 했었다. 한 마디로 슬기가 키워준 엄마라면 세레나는 낳아준 엄마인 것이다. 그래서 애들은 세레나하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래서일까? 상대적으로 슬기에게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도와주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애들은 틈만 나면 엄마를 찾았고, 결국 슬기는 항상 애들 다섯에게 거의 붙어 지내야 했다. 그런 부담이 이제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가끔은 세레나에게 애들을 맡기고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슬기도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애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좋지만···. 그렇다고 육아의 피로가 사랑만으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정운도 이전에 실수를 했던 것이 아닌가? 정운은 세레나하고 애들이 정원에서 사이좋게 공을 차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좀 남녀 역할이 반대 같기는 하지만 세레나는 추국나 야구 같은 운동으로 애들하고 놀아주는 것을 잘했다. 정운도 거기에 끼려고 해 보긴 했지만 애들은 세레나 엄마하고 노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오히려 정운을 밀어냈다. “자··. 이제 쉬자.” “예.” “예.” “예.” 세레나가 애들한테 말하자 애들은 말 잘 듣는 착한 아기들이 되어서 오리새끼처럼 세레나를 졸졸 따라왔다. 그리고 정운은 아이들 중에 가장 가까이 있던 유미를 안아서 품에 안고는 말했다. “유미야. 세레나 엄마가 좋아?” “응. 좋아.” 문득 이런 대답을 들으면 애들한테 순위를 알고 싶은게 어른들의 마음이다. “그럼 세레나 엄마가 좋아? 아니면 슬기 엄마가 좋아?” “우우우웅······.” “으으음····.” “끄으으으응····.” 애들은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아미가 대답을 냈다. “둘 다 똑같이 좋아.” “그래? 그랬어.” 정운은 귀엽다는 듯이 아미의 머리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럼 엄마들 하고 아빠하고 다 똑같이 제일 좋은 거야?” “아니 엄마가 더 좋아.” “나도, 나도 엄마가 더 좋아.” “유미도, 유미도.” 정운은 머리에 뭔가 띵 하고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다 잡았다. ‘원래, 애들은 엄마를 더 좋아하니까···.’ 그래. 그냥 거기까지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쇼크는 그 다음이었다. “엄마 두 명 다음으로는 누가 좋아?” 정운이 차라리 이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레이시안 고모.” “레이시안 고모.” “레이시안 고모.” 애들은 역시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운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역시 진정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쩔 수 없지. 누님이 원래 워낙에 호감이라서····.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럼, 레이시안 고모 다음으로는 누가 좋아?” 정운은 여기서는 제발 아빠가 나와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미하엘 언니.” “언니 아니야. 미하엘 이모야.” “언니야!!! 미하엘 언니라고.” “이게··. 이모라니까!!!” 언니인지? 아니면 이모인지? 그 정체성에 관해서는 큰 혼란이 있는 것 같았지만 기본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빠보다 미하엘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미하엘이 애들하고 많이 상대를 해 주니··. 함께 한 시간이 많으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 하면서도 정운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갈 때까지 가 보자.’ 더 이상 아빠로서 잃을게 없다는 생각을 하고 정운은 다시 질문했다. “그럼 미하엘 다음으로는 누가 좋아?” “으음····. 민지 이모 좋아.” “나도. 나도 민지 이모 좋아.” “맛있는 것 많이 만들어 줘.” “응. 엄청 맛있어.” 아이들은 민지의 이름을 말하는 것 만으로도 배고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윽···. 민지 누님. 먹을 것으로 꼬시다니··. 치사하다.’ 다크니스 왕국에 소재를 비밀로 해야 하는 이민지는 신서울에 꾸준히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원래 요리에 취미도 있었다. 정운도 그라운드 제로에 있던 시절에 몇 번이나 먹어본 적 있었다. 주로 한중겸하고 정운이 술판을 벌이면 안주를 만들어서 챙겨주는게 이민지였는데···. 그 맛은 확실히 대단했다. 1류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맛이었다. 그런 맛으로 애들을 꼬신다면 넘어가는 것도 당연했다. “하아···· 그럼 다음으로는 누가 좋니?” 정운은 이제 미련을 버렸다. 이제 자기 이름이 아무리 늦게 나온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이름이 나온 시점에서 정운은 결국 놀라게 된다. “음···. 중겸이 삼촌!!” “맞아. 제일 잘 놀아 줘.” “동화책도 많이 읽어주지? 그치?” 아이들의 입에서 한중겸의 이름이 나온 순간 정운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애··. 애들아. 중겸이 삼촌이 아빠보다 좋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설마 한중겸까지 자신보다 앞에 나올 줄은 몰랐다. 거기다 효미가 해 맑은 얼굴을 하고 정운에게 비수를 꽂았다. “응. 효미는 커서 중겸이 삼촌하고 결혼 할 꺼야.” 푸우욱!!!!! 정운은 순간 보이지 않는 비수가 날아와서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후···. 후후후·····. 그 인간이··. 그래. 그랬단 말이지·····.” 정운의 입에서 심상치 않은 미소가 흘러 나왔다. “아빠? 아빠 뭐 해?” “아빠?” 애들도 정운의 심상치 않은 태도에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정운은 그런 애들을 보면서 싱긋 웃더니···. “애들아. 잠시 너희들끼리 놀고 있으렴. 아빠는 잠시 중겸이 형님한테 좀 갔다 올게.” 그리고 정운은 흑토를 소환해서 어디론가 이를 갈면서 날아갔다. “이 인간이···. 감히 남의 집 딸내미한테 플래그를 세워? 오늘 인구 하나 줄일 테다.”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정운이 한중겸을 향한 증오의 불길을 활활 태워가고 있는 그때···. 지구의 일본에서는 한 명의 세련된 금발 미인이 자기 눈 앞에 있는 서류를 보고 있었다. “흠····. 이거 이상한 걸? 꾸준하게 아이들이 실종하고 있는데 흔적도 찾지 못했다고? 우리 애들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으음····. 일단 내가 직접 나서 보는게 좋겠군.” 금발의 세련된 미모의 여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아 브로스비르노바. 사실 그라운드 제로 시절에는 러시아 팀의 일원이었으며, 후일에는 한우리 연맹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여성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붕궤시의 레벨은 무려 140이상. 가우리에 가입하지 않은 귀환자들 중에서는 손 꼽히는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만의 연맹을 만들어서 따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연맹의 이름은 실버 나이프라고 하며 가우리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연맹이었다. 그녀는 그 연맹을 이끌고 있는 장이었고 말이다. 사실····. 그녀에게도 가우리에 영입 제안이 왔었다. 전력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이 가우리의 입장이었고 무엇보다 그런 가우리에서 나탈리아 정도의 고수를 그냥 놓칠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탈리아는 가우리에 들어가지 않고 그저 신의 맹세만 발급 받아서 자신의 연맹을 만드는 것을 택했다. 그녀가 이런 길을 택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용 꼬리 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의 레벨은 140이상. 이 정도면 전 세계의 귀환자들 중에서도 손 꼽히는 실력자이다. 하지만, 가우리에는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만약 가우리에 간다면 국제적인 위상은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다. 가우리의 간부라고 하면 이 세상 어디에 가도 왕족이나 대통령들도 안색을 살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우리에 소속된다는 것은 그녀가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탈리아가 자신의 능력 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귀환자는 많지만 100레벨이 넘어가는 귀환자는 지극히 드물었다. 그 중에서도 가우리에 소속되이 않은 100레벨 오버의 능력자는 더욱더 드물었다. 그 덕분에 그녀가 스스로 연맹을 만들었을 때. 그녀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위상을 발휘 할 수 있었다. 밑에 많은 능력자들이 모였고 그 중에는 50레벨대의 귀환자들도 제법 있었다. 덕분에 실버 나이프 연맹은 상당히 알짜배기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의 방위를 맡았다. 원래는 가우리에서 맡아서 해결하던 영역이었는데··. 그녀가 적당하게 수완을 발휘해서 가우리로부터 일을 받았다. 일종의 2차 하청이라고 해야 할까? 가우리에게 어느 정도 페이를 때주기는 해야 했지만 그래도 보수는 컸다. 원래 가우리는 어지간하면 이런 큰 시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때어주지는 않지만 나탈리아의 경우 한때 전우이기도 했도 끈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 보다는 일단 이어 놓고 있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도쿄를 맡긴 것이다. 그런데 나탈리아가 방위를 맡고 있는 도쿄에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10살 미만의 어린애들이 계속해서 납치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악질 유괴범들의 사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CCTV에 아이가 납치당하는 현장의 모습이 찍히고 이 사건이 능력자가 연류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멀쩡히 잘 놀고 있던 아이가 엄마가 눈을 때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CCTV에 범인의 모습은 찍히지도 않았다. 그 정도로 고속으로 움직이는 인간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능력자 밖에는 없었다. 나탈리아는 부하들에게 범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서 출몰이 의심스러운 지역에 함정 수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몇 번인가 꼬리를 잡았지만···. 번번히 현장에서 놓쳐 버리고 말았다. “흠···. 너희들이 놓쳤다는 얘기는 생각 보다 훨씬 더 고위 능력자라는 거군.” 나탈리아는 자신이 신뢰하는 부하들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자기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그녀가 직접 엉덩이를 들고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부하들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와아아아!!!! 집에 가자!!” “가는 길에 게임센터 들렸다 가자.” “돈 있어?” “응. 엄마한테 얻었어.” “음··. 그런데 요즘 집에 바로 가라고 선생님들이 했잖아?” 그리고, 이렇게 하교하는 애들을 최신형 포르셰에 앉아서 보고 있는 세련된 미인이 있었다. 주변의 남자들이 한 번 씩은 모두가 돌아보게 하는 이 미녀가 바로 나탈리아였다. 나탈리아는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빨아 당기면서 중얼 거렸다. “천방지축에 말 안 듣고 철없고 무서운 것도 없고····. 진짜 결혼해서 애 키우는 사람들은 뭔 정신으로 저러는지 몰라?” 연애는 해도 결혼은 안 하는 타입이 바로 나탈리아였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이렇게 바글바글 거리는 광경은 여러 가지로 신기했다. 그녀가 이런 초등학교 앞에 잠복하고 있는 것은 이제 까지하고 달리 범인들의 범행에 더욱더 가속도가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 명, 두 명씩 납치하던 범인들이 최근에는 더욱더 가속도가 붙어서 한 번에 수십명의 애들을 납치하기도 했다. 그래서 애들이 단체로 몰려있는 장소. 주로 초등학교나 유치원등을 범행 장소로 이용했다. 그래서 나탈리아가 이런 초등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탈리아 한 명만 이렇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쿄에 초등학교가 한 개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탈리아가 지키고 있는 학교 앞에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연맹원들은 물론이고 도쿄의 경찰들에게까지 협조를 얻어서 지금 도쿄의 모든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감시중이었다. ============================ 작품 후기 ============================ 나탈리아 기억하신 분이 계시긴 할지... 하도 오랜만에 출연이네요. 9월 한달도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가사드립니다. 10월도 잘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6화 <나탈리아의 실수> 그녀가 지키고 있는 곳이 걸리면 좋겠지만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디에 있든 범행의 낌새만 느껴지면 그녀가 바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침···. 띠리링···. 전화가 울렸고 나탈리아는 바로 전화를 받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어디야?” “아사쿠사의 XX 초등학교입니다. 아이들 한 무리를 어떤 희미한 그림자가 따라가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지금 간다. 감시 계속 해.” 그리고 나탈리아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포르쉐는 그냥 폼일 뿐이다. 그냥 그녀의 취향일 뿐이지 절대고 기동성을 고려해서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움직인다면 그녀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그녀는 부하가 보고를 올린 지역으로 빛살처럼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한 순간···. “회장님!!!” “넌 애들 데리고 떨어져 있어!!” 이미 거무스레한 그림자는 행동을 개시한 시점이었다. 부하는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나탈리아가 나타나자 그녀의 명령대로 즉시 뒤로 물러났다. 아이들은 그런 나탈리아의 뒤편에 숨어서 덜덜 떨면서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탈리아는 오랜만에 집중했다. 두 눈으로 본 순간 바로 알았다. 적의 수준이 부하들 가지고는 감당이 안 되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다. 나탈리아는 바로 검을 꺼내서 검은 그림자를 내리쳤다. 콰아앙!!! “피해? 건방지게···.” 나탈리아는 검은 그림자가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을 느꼈다. 스피드 하나 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상대는 그런 나탈리아의 일격을 피한 것이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도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 같아서 그대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탈리아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흡!!!” 짧은 호흡음과 함께 그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콰콰콰콰!!!!!! 나탈리아의 검격이 마치 폭풍처럼 몰아쳤다. 평화로운 일본의 주택가 거리도 그 검격의 폭풍에 휘말려서 박살이 나고 있었다. 담벼락도, 주차하고 있던 자동차도 종잇장처럼 박살이 났다. 원래 나탈리아는 이렇게 요란하게 전투를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일격필살을 선호하는 것이 그녀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연속으로 공격을 날리고 있는 것은 상대가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나탈리아는 속에서 뭔가가 울컥했다. 가우리만 아니면 세계 어디에 가도 절대로 꿀리는 레벨이 아닌 자신이 이렇게 헛 칼질을 여러 번 하다니 그녀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어디 이것도 피해 봐라. 템페스트!!!” 키이이이이이잉!!!!! 나탈리아의 검격이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마치 고속으로 엔진이 돌아가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그녀의 검격이 공기를 갈랐다. 초당 100회? 200회? 몇 회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무수한 검격이 초고속으로 일정 지역을 모두 지배했다. 파파파파팟!!! 결국 나탈리아는 자신이 검격에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간신히 잡았네.” 나탈리아는 오랜만에 격렬하게 움직여서 살짝 흐트러진 자신의 옷차림을 추스렸다. 깔끔하게 세련된 여성용 정장 차림이 약간 흐트러져서 남자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섹시해 보였지만···. 굳이 잘 보일 남자도 없는데 눈요기를 시켜줄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상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손에 걸린 맛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던 상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탈리아는 천천히 다가가서 검 끝으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봤다. 하지만····. “쯧, 이건····?” 나탈리아는 허탈하게 미소 지었다. 그 로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은색의 로브만 넝마가 되어서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알맹이는 쏙 빠진 체로 말이다. “도망간 기색은 없었는데····. 이건 도대체?” 나탈리아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범죄를 막아낸 것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결국은 진범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 것이다. 이래서야 해결 했다고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도망간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나탈리아가 느끼기에 적은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방금 전에 나탈리아가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 상대가 도망갔다면 설령 박정운이나 박추성 정도의 실력자라고 해도 그녀는 낌새 정도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낌새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손 맛 부터가 좀 이상했지. 꼭 두부나 젤리를 써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칼로 벤 느낌 자체가 이상했다. 그녀가 차분하게 생각한 결과···. 아마도 지금 자신이 싸운 상대는 능력자는 적어도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원격 조작능력. 로브를 원격 조작해서 아이들을 색적하는 능력. 그리고 이공간 조작능력. CCTV에서 아이를 납치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검은색 그림자가 슬쩍 스치고 지나가면 아이들이 사다졌다. 즉, 이 로브를 통해서 아이들을 덮은 다음 어딘가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은신 능력이다. 앞의 두 가지 능력에 비해서 그렇게 완숙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로브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능력자들이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어야 검은색 그리자가 어스름하게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라면 보통 상대는 아닐 것이다. 귀환자들 중에는 별의 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특수한 능력을 혼자서 다수 가지고 있는 경우는 어지간한 고레벨이 아니면 드물었다. “흠····. 이 정도 능력자라면 월드 서버에 진출한 수준인데····. 누구지?” 나탈리아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에서 월드 서버에서는 이런 인간은 없었다. 그녀는 이상함을 느끼고 이걸 가우리에 보고해야 할까? 싶었지만····. “아니. 그만두자.” 가능하면 가우리하고 역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우리의 목표는 파우스트. 신이 되고자 하는 괴물이었다. 나탈리아는 가능하면 그런 거물하고는 더 이상 맞서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우리와의 관련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다. “좀 더 꼼꼼하게 조사헤 보는 수밖에···.” 나탈리아는 일단 자신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해 보기로 했다. 다만, 그녀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태가 자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큰 사건이라는 것을 몰랐다. 똑똑하고 자기 처신이 똑 부러진 나탈리아였지만···. 이 사건을 자력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최대의 실수였다. “아·····. 이런 것 오랜만이네····.” 슬기는 오랜만에 육아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유 있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슬기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 거렸다. “그런데, 애들은 잘 있을까?” 기껏 애들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쉬러 왔는데 머릿속에서는 애들이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잘 먹고는 있는지? 엄마 없다고 칭얼거리지는 않을지?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애들 걱정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화해 볼까? 아니야 10분 전에 바로 전화 했었는데····.’ 또 걸면 오늘만 해도 일곱 번째 전화였다. 아무리 세레나가 사람이 좋다고 해도 더 이상 귀찮게 할 수는 없었다. 슬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반려자인 정운도 무척 사랑했지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녀도 사람인 이상 개인의 시간 자체는 필요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하니 애들 생각이 먼저 난 것이다. ‘이것도 병이지···. 좀 혼자 시간을 보내볼까?’ 슬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예전에 자신이 시간을 보내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 볼까 싶었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 역이기 전에 그녀의 취미라면···. 음악이었다. 가수가 되고 싶어서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문득 요즘 음악을 들어본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라이브 음악 들을 수 있는 카페라도 없을까?’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검색을 해 봤다. 워낙 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는 도시가 신서울이었다. 그래서 없는 것은 없었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면 검색하는게 편했다. 그리고 슬기는 문득 재미있는 정보를 찾았다. “라이브 콘테스트 광장? 이런 것도 있었나?” 슬기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정보는 신서울에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라이브 광장이었다. 축구장 다섯 개 정도는 되는 것 같은 큰 광장에는 작은 돔 형태의 방음 공연장이 수십개는 있다는 것이다. 이 돔 형태의 공연장에 인디밴드부터 아마추어 가수, 무명 아이돌까지···. 여러 형태의 뮤지션들이 음악을 공연하는 곳이라고 했다. 유명한 프로들의 음악이 아니라 아마추어의 음악 콘테스트 같은 광장이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여기서 유명세를 타고 프로 데뷔를 한 사람들도 다수 있다고 했다. 덕분에 많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이곳에 모여 든다고 했다. “이런데가 있었나? 한 번 가볼까?” 슬기는 오랜만에 음악을 실컷 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옮겼다. “메가비트 공연 몇 시 부터지?” “다섯 시 부터일걸? 그때까지 다른 공연 보면서 시간 때울까?” “티켓 가격 싼 공연장 하나 알아 보자.” “저기 아마추어 아이돌 공연 어때?” “저기? 으음···. 평가가 별로인데? 차라리 신인을 뚫어 보자.” 이미 확고한 매니아 층이 있는 것일까? 관객들 중에는 여러 뮤지션들을 나름대로 평가하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공연을 꼼꼼히 챙겨보는 골수팬들도 있었다. “헤에···. 잘 만들었는 걸?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슬기는 관장의 입구에서 받은 팜플랫을 보면서 감탄했다. 시스템은 대강 이랬다. 우선 이 광장에서 음악을 하려면 이 광장의 관리자들에게 간단한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이라고 해서 직접 보는 것은 아니고 인터넷으로 통해서 자신들이 음악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보낸다. 거기서 1차적인 통과를 하면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이 공연장에서 음악을 연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럼 이 음악광장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간단한 홍보 동영상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고 몇시에 몇 번 홀에서 공연을 한다. 라고 정보를 올린다. 그럼 팬들은 그 시간에 맞춰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러 온다. 광장에 들어와서 공연장인 돔에 들어가려면 표를 돈 주고 산다. 입장료는 공연하는 뮤지션들이 정하기 나름이었다. 그리고 그 수익은 뮤지션과 이 광장의 관리자와 나누게 된다. 일종의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음악을 해서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인 것이었다. “헤에···. 좋다. 이런거···.” 슬기는 놀이공원에 온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아마추어라고 해도 프로를 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진진한 자신만의 개성이 나타났다. 슬기는 몇몇 밴드와 솔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음···. 벌써 아홉시인가? 이제 돌아갈까?” 몇 개의 공연을 보다보니 이미 저녁이 훌쩍 넘었다. 애들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미 시간을 훌쩍 넘어 버린 것이다. 문득 이미 늦어 버렸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된 것 하나만 더 들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슬기는 한곳만 더 들어가 보려고 마음먹고 공연장들을 슬쩍 들어봤다. 어플을 받아서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있는 뮤지션들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으으···. 피곤하다. 진짜 이런걸 왜 들어야 하는지···.” “왜긴 왜야? 부장님이 불렀잖아. 사회생활 다 그렇지 뭐. 그런데 노래는 진짜 못 부르더라. 그냥 찍히든 말든 중간에 몰래 빠져나가는게 낫지.” “저래도 예전에는 프로였다고 하던데? 저 실력으로 도대체 어떻게 프로를 했다는 거지?” “낸들 아냐? 어쨌든 소음공해로 지친다. 지쳐. 가는 길에 한잔 꺾자.” ============================ 작품 후기 ============================ 10월 한 달도 잘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7화 <과거의 인연> 공연장을 나오면서 말 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슬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공연장에 들어와서 몇 개의 뮤지션들을 확인했지만 그렇게까지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마도 한정된 공연장의 안에서 여러 가지 뮤지션들이 경쟁을 하다 보니 수준이 떨어지는 뮤지션들은 금방 퇴출 되었다. 그래서 일정 이상의 수준은 어느 정도 유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마치 강제로 누군가가 시켜서 노래를 들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어째서? 왜?’ 슬기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공연장의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슬기는 깜짝 놀랐다. “·······지영이····. 언니?” 슬기가 여기서 말하는 지영은 예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싸웠던 전우인 이지영이 아니었다. 그 전에··. 훨씬 전에 슬기가 아이돌이었던 시절에 같은 팀의 멤버였던 지영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게 되는 것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사람이기도 했다. 설마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하나도 안 늘었네. 아니 그것 보다 더 못하는 것 같은데?” 슬기는 지영이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굴을 두꺼운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어서 변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혹시나 아는 사이였던 지영은 자신을 발견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슬기는 가장 후미진 좌석에 살짝 앉아서 과거 동료였던 지영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원래 아이돌 유닛의 경우 가창력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 가창력과는 별개로 댄스나 랩, 혹은 타고난 매력등으로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기는 했다. 과거에 슬기가 있던 밀키웨이의 경우 가창력을 담당하고 있던 것은 슬기와 지영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슬기는 알았다. 지영의 가창력의 경우 기계에 100% 의존한 가짜였다는 것을 말이다. 어째 카메라 앞에서 라이브를 죽어라고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중에야 그걸 눈치챘다. 사실 그것만이라면 슬기에게 그렇게 큰 쇼크를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부족한 실력을 커버하기 위해서 다른 방면으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속사 사장에게 성상납을 통해서 다수의 CF나 기회를 따내고 있었다. 슬기가 그걸 알게 됨으로 인해서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가게 되는 것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가 그 후에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모른다. 밀키웨이는 자연스럽게 해체했다고 들었고 다른 멤버들 중에 연예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슬기도 듣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영이 이렇게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노래 부르고 있을지는 전혀 몰랐다. ‘음악을 계속하고 있었나? 그때부터 쭉?’ 슬기는 씁쓸한 기분이었다. 음악에 관한 꿈을 환멸로 바뀌게 만든 것이 바로 그녀였다. 결국 자신은 이제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고, 거기에 불만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영이 계속 음악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뭐, 상관은 없었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선택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진짜 어떻게 저 실력으로····.’ 듣고 있는 슬기는 어이가 없었다. 음 이탈, 엇박자는 기본이었고 중간에 호흡이 가빠서 아애 한 소절 건너뛰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현역 시절에 어느 정도 기본이 되었던 댄스는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라이브 하면서 격렬한 댄스가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이미 성의가 없었다. 리듬하고 전혀 따로 노는 댄스 동작은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슬기는 문득 주변을 돌아봤다. 공연장의 좌석은 그럭저럭 차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 표정이 모두 지루함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었다. ‘설마 이 사람들 다 바람잡이인가? 강제로 끌려온?’ 슬기는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바람잡이로 관객수를 유지하고 있다면 퇴출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고 싶을까? 한때는 프로였다는 사람이 이렇게 아마추어들의 경연에서 바람잡이까지 대동하다니···. ‘아니 그보다 바람잡이는 어떻게····? 설마 저 언니 또?’ 슬기는 일단 상황을 계속 지켜 보기로 했다. 지영의 공연은 30분 정도 더 이어지더니 기어코 막을 내렸다. 그녀가 막을 내린 순간 가장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어째서 음악 콘서트 홀에서 학교 수업끝난 것 같은 분위기가 나오는 걸까? 앵콜의 ‘ㅇ’자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진정으로 공연이 끝난 것을 기뻐해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썰물 빠지듯이 빠지고···. 슬기는 투명 마법을 사용한 상태로 지영을 뒤 따라갔다. 지영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제발, 하다못해 내 일을 접어 두고, 자기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슬기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면서 지영을 미행했다. 지영이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신서울의 어느 호텔이었다. 그리고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익숙하다는 듯이 호텔의 어느 룸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들어가니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어떤 남자가 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 왔어? 오늘 공연은 어땠어?” “예. 좋았어요. 오빠가 다 잘 해주신 덕분이죠.” 지영은 좀 과할 정도로 애교 섞인 목소리를 하고 남자의 옆으로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다음 공연은 언제라고 했지? 몇 장이나 사 줄까?” 말을 하는 남자의 손길은 노골적으로 지영의 허리를 지나서 엉덩이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음···. 한 백장이면 될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괜찮아. 요즘은 회사 애들도 문화 생활을 좀 해야지. 티켓 값도 우리 회사 공금으로 사주는데 자기들이 공연장에 안 가고 배겨?” “고마워요. 제가 어떻게 보답하면 될까요?” “글쎄···. 우리 지영이가 항상 하던 보답이면 될 것 같은데?” 노골적으로 지영의 스커트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있는 남자의 행동은 마치 자기 마누라에게 하는 것처럼 능숙했다. 하지만 그때···. “음!!!” 막 흥분하는 것 같은 남자가 그대로 침음성을 내더니 기절해 버렸다. “응? 오빠? 오빠? 왜 그래요?” 지영은 갑자기 자신을 만지작 거리던 남자가 잠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자신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린 다음에는 훨신 더 크게 놀랐다. “제가 재운 거예요. 더 이상은 보기 힘들어서 말이죠.” “····너··. 너너····?”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만나기는 싫었는데.” 슬기와 지영. 악연의 두 사람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남자를 재운 상태에서 슬기는 지영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또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고, 그러다가 또 지그시 바라보고···. 이러기를 계속 반복했다. 뭔가 할 말은 많은데 워낙 기가 차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차마 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슬기와 반대로 지영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설마하니 슬기하고 이렇게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녀의 평생을 통틀어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슬기일 것이다. 결국 이 불편하고 기가 찬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슬기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어떻게 라니?” “나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요? 다른 멤버들은요? 설마 전부 언니처럼 지내는 것은 아니겠죠?” 슬기의 말에 지영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왜? 나 처럼이 어때서?” “어때서? 언니····.” 슬기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이지영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 따위가···. 세상만사 다 좋을 대로 풀리기만 한 너 따위가 내 심정을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고 내 처지를 비웃어?” “···············.” 이지영의 말에 슬기는 점점 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지영은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내 버리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네가 보다시피. 난 저기 보이는 내 아빠 뻘 되는 아저씨한테 다리 벌리고 몸도 대주고 있어. 왜? 경멸스러워? 내가 가수로 있기 위해서 다리 벌리는 거나. 네가 가우리의 수상에게 다리 벌리는 거나 뭐가 달라? 응? 네가 뭔데 날 경멸해!!!” 이지영의 말에 슬기는 할 말은 완전히 잃어 버렸다. 사람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진 사람일 줄은 몰랐다. 한때는 한 솥밥 먹은 사이로서 이제는 허탈함과 배신감까지 몰려왔다. “뭐가··. 도대체 뭐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거에요?” 슬기의 말에 이지영은 독한 눈을 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말 하다고 해서 너 따위가 알겠어? 재능도 운도 모두 타고난 너 따위가!!?” “···할 말이 없다면 됐어요.” “············.” “내가 강제로 듣도록··. 아니 보도록 하죠.” 그리고 슬기는 손을 들어서 이지영의 이마에 대고 말했다. “마인드 다이빙.” “읏···? 너···.” “프라이버시고 뭐고 간에···. 전 알아야 겠어요. 언니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말이죠.” 슬기가 사용한 마법은 배대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상대의 마음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서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냥 생각을 읽어내는 독심술 수준이 아니라 본인 조차 부정해서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깊은 심리까지 모두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슬기는 이지영의 마음으로 다이브 했다. 이지영은 기본적으로 슬기에게 강한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같은 팀의 멤버로 활동할 때부터 그랬다. 원래는 그녀도 순수하게 가수가 되고 싶었다. 10대 시절···.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 노래도 좀 부른다고 생각했고 외모에도 자신은 있었다. TV에 나오는 다른 아이돌들을 보면··.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어. 아니 오히려 쟤들 보다는 내가 더 낫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연예기획사에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으로 들어간 것 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연습생으로 들어가고 나서 현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자신은 노래도 좀 부르는 편이었고···. 댄스도 꽤 연습을 해서 그럭저럭 되었다. 그리고 나름 외모도 받쳐주는 편이었다. 이건 모두 사실이다. 틀림없었다. 하지만···. 더 잔혹한 현실이 한가지 더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 정도의 재능은 이 바닥에 널리고 널렸다는 것이다. 결국 프로는 고사하고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그녀보다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결국 이 바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웬만한 재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 웬만한 수준을 훌쭉 뛰어넘어서 특출 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이 프로가 되고, 그 프로가 된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만이 프로로서 살아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연습생 생활만 계속하던 그녀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데뷔를 위해서 준비해도 최종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기만 반복하는 동안···. 그녀는 점점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연습생들 중에서도 데뷔가 결정된 후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는데 자신만 계속 연습생을 전전해야 했다. 가족들도 이제 그만하고 다시 대학 준비하는게 낫지 않겠냐며 그녀를 말렸다. 가족들 입장에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꿈만 보고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딸이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어떻게든 가수가···. 아니 스타가 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그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꼭 가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의 가족들은 더 이상 원조를 해 주지 않겠다는 독한 수를 두었다. 현실을 모르고 있는 그녀에게 독한 수를 둬서도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가족의 의도는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서 준비한 사랑의 매와 같았다. 아마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선의 수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너무 한계까지 몰리면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 작품 후기 ============================ 이 파트는... 사실 쉬어가는 파트이기도 하지만 시험작의 의미도 있습니다. 예전에 한 번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 볼 생각이 있었는데.. 사실 이 스토리는 그떄 한 번 짜봤던 스토리입니다. 두 라이벌 중에 한 명은 실력으로 한 명은 편법으로... 그렇게 해서 경쟁하다가 결국에는 실력자만 남게 된다. 뭐 그런 스토리로 단편을 구성했었는데 과연 이게 재미있을까? 기승전결로 구성하기가 힘든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류했었죠. 그래서 이번 챕터는 악마의 게임의 안에서 쉬어가는 살짝 쉬어가는 파트이긴 하지만, 이제까지의 쉬어가는 파트처럼 개그나 연예 스토리로 쉬어가는게 아니라 좀 다른 분위기로 쉬어가며 완급을 주려고 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8화 “어떻게든 올해 안에 데뷔 해야 해. 어떻게든····.” 그녀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말했다. 정면으로 길을 찾지 못한 그녀는 삐뚤어진 길을 찾아갔다. 그게 바로 소속사 사장이 넌지시 운을 때었던 성상납이었다. 사실 이 전부터 은근한 제의는 있었다. 하지만 여성에게 몸을 판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선택일 리가 없었다. 그녀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그것 만큼은 할 수 없다. 라고 선을 긋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절박하지 그 선을 넘어 버렸다. 그녀는 결국 사장실의 문앞에 가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사장님. 계세요.” “응? 들어와.” 사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사장은 책상에서 눈을 때고는 이지영을 바라봤다. “응? 아아··. 넌···· 그래. 지영이라고 했지?” “·············.” ‘이름도 한 번에 기억 못할 정도로 내가····.’ 사장의 태도에 이지영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장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연습생 그만 두려고? 뭐, 네 나이쯤 되면 이제 그만둘 때도 됐지.” 알아서 운을 때면서 그만 둘 거면 그만 두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장의 앞에서 그녀는 양손을 꼭 쥐고 말했다. “사장님···. 저 꼭 데뷔하고 싶어요. 올해 안에···.” 그녀의 말에 사장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야. 그게 쉽냐? 데뷔 할려면 실력이 있어야지. 실력이. 네 실력으로 어떻게 데뷔 할 건데? 응?” 사장은 노골적으로 지영을 비웃고 있었다. 마치 너 따위는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데뷔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지영은 주먹을 꼭 쥐고 굴욕감을 참으면서 말했다. “어떻게든요. 뭐든지···. 시키면 다 할게요. 부탁 드립니다. 사장님. 저 데뷔 시켜 주세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렸다. 라는 간절한 심정을 굴욕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녀는 사장에게 애원했다. 사장은 그런 지영을 슬며시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이쪽으로 와 봐.” “예.” 사장은 이지영의 전신을 천천히 위 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한 바퀴 돌아봐.” “예.” 그녀는 마치 잘 훈련된 개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처럼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잘 복종했다. 그리고 사장은 품평을 마친후에 그녀에게 말했다. “아직 쓸 만은 하네. 확실히 나이 더 먹기 전에 써 먹으려면 지금이긴 하네.” “·············.” “이쪽으로 와 봐라.” “예.” 이지영은 사장에게 다가갔고 사장은 자신에게 다가온 이지영의 손을 잡고 끌어 당겨서 자기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한손은 그녀의 다리를 쓰다음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쪽을 쓰다듬었다. “어떻게든 데뷔는 하고 싶다····. 그래. 정말 어떻게든 이겠지? 나중에 못하겠다느니 한 번만 봐 달라느니 그런 개소리는 안 하겠지?” “··········.” 이지영은 아랫 입술을 꼭 깨물었다. 예상은 했고 각오도 했다. 하지만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선 듯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사장이 말했다. “대답 안 하냐? 하기 싫으면 나가. 나 너 별로 필요도 없어.” 그러자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요. 할게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흠····. 좋아. 그럼 한 번 시험 좀 해볼까?” “····예.” 그리고 사장의 손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던 손이 치마 속으로 파고 들어갔고, 어깨를 쓰다듬던 손도 상의 위로 들어가서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주물렀다. “잘 생각 한 거야. 너도 젊었을 때 벌어야지. 안 그래?” “·····예.” “나만 믿어. 그럼 적어도 너 가수로서 밥은 먹고 살게 해 주마. 대신 넌 내 말에 무조건 따르는 거다. 알겠냐?” “예.” “좋아. 그럼···. 일단 나부터 맛 좀 보자.” 그리고 사장은 본격적으로 그녀를 쇼파에 눕히고 옷을 벗겨가기 시작했다. 30분 후···. “으으음·····. 오랜만에 몸은 잘 풀었네.” 사장은 쇼파에서 일어나면서 만족한 듯한 얼굴로 이지영을 바라봤다. 이지영은 옷이 다 벗겨진 상태로 쇼파에 누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사장은 자기 욕심껏 마음대로 범한 이지영을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너 처녀였더라?” “·····예.” “뭐···. 좋게 생각핼. 어차피 다 이런거다. 알겠지?” “·····예.” “앞으로 이런 일 좀 많을 거다. 미리미리 적응해 두면 너도 좋은거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그래. 잘 했다. 이제 옷 입고 나가. 그리고 다음에 내가 부르면 또 오고.” 사장이 그렇게 턱짓으로 지시를 하자 지영은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혼자서 화상실에 틀어 박혀서 하염없이 계속 울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사장은 수시로 지영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지영은 마디 사장의 성욕 처리를 위해서 사용 되었다. 사장은 마치 지영을 자신의 도구 정도로 여기면서 점점 더 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느새 그녀의 몸을 거쳐간 남자는 사장 한 명만이 아니게 되었다. 회사의 다른 이사들이나 임원. 그리고 스폰서를 해주는 몇몇 기업의 광고주에게도 몸을 주어야 했다. 남자들은 그녀의 몸을 희롱하고 범하고 그저 성욕을 푸는 대상으로만 보고 범해갔다. 처음은 굴욕 적이었고 치욕적이었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그런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치욕감과 수치심은 점점 마비되어 갔다. 그 대신 그 자리에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만 자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나만 한 일도 아니다. 현실이 이런 것일 뿐, 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합리화를 통해서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을 버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소원 대로 밀키웨이라는 그룹으로 데뷔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자존심이나 여성으로서의 프라이드 따위는 다 버려 버리고 간신히 손에 넣은 자리였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멤버들 중에 가장 어린 나이였던 슬기를 만난다. 더러운 시궁창 속에서 기어 올라온 자신과 달리 슬기는 당당하게 자기 재능과 노력만으로 올라왔었다. 다른 멤버들은 그녀처럼 몸을 바쳐서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연줄과 돈을 써서 올라온 애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멤버들 사이에서도 슬기 하나 만큼은 당당하게 자기 실력으로 올라왔다. 어쨌든 한 명 정도는 제대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에 진짜 실력파를 물색했고,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인 아무것도 모르던 슬기였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언니들. 잘 부탁 드립니다.” 공손하게 다른 멤버들에게 고개를 숙이면 인사하는 슬기는 첫 인상 부터가 지영에게 마음에 안 들었다. 연습생기간까지 포함해서 나름 연예계의 일면에 오랫동안 있었던 그녀는 직감적으로 안 것이다. 눈앞에 있는 이 어린소녀는 자신과는 격이 다르다. 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데뷔를 한 밀키웨이는 제법 성공을 거뒀다. 음원 차트에서도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항상 상위권이었다. 이지영은 꿈에 그리던 가수로서의 위치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런 성공 속에서도 지영의 슬기에 대한 질투심은 더욱더 커졌다. 팬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룹이 성공하면 성공 할수록 그 그룹 내부에서도 명암이 진하게 갈렸다. 팬들 중에 상당수는 슬기의 가창력만을 칭찬했고, 다른 멤버들을 들러리 취급하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슬기가 가창력은 쩌는데? 음역 엄청 넓어. 근데 다른 애들이 못 바쳐 주네. -정말···. 다른 멤버가 발목 안 잡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특히 리더인 이지영. 걔 안 나오면 안 되나? -이지영이 코러스 넣는 것 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 걔는 그냥 립싱크만 하는게 좋을 텐데 말이야. -이슬기 솔로 데뷔 안 하나? -ㅋㅋㅋ. 밀키웨이 혼자 부양하잖아. 슬기 없으면 다 망하는 거지. 이지영은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팬들이 남긴 글을 읽어갔다. 그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가 지영의 가슴에 푹푹 와서 박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의 아픔 만큼 슬기에 대한 질투심이 더해져만 갔다. 사실 지영이 온전하게 자기 실력으로만 올라왔다면 이렇게 얼굴도 본 적 없는 팬들의 댓글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노력이라는 확고한 토대가 있다면 비판에도 당당 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니 말이다. 어차피 안티 팬이 없는 연예인은 무명 연예인 밖에는 없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 안티는 자석처럼 달라붙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아주 심하지만 않다면 대부분의 안티는 무시 하는게 보통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신경 쓰려면 21세기에서 연예인은 절대로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지영의 경우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실력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안티팬들이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할 때마다 그게 특히 더 가슴에 깊숙이 박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달리 온전히 실력으로 올라온 슬기에 대한 질투심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슬기가 실종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 자신의 소속사의 사장과 이사들도 의문의 사고로 죽어 버렸다. 결국 밀키웨이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고, 다른 멤버들은 모두들 자기 살길을 찾아서 헤어졌다. 다른 멤버들은 연기나 싱글 활동으로 연예계에서 자리를 잡아보려 했지만···. 이제까지 슬기의 존재감과 재능에 의지했던 바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결국 자립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지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가 그 앨범이 완전히 망했고··. 결국 어지간한 소속사에서도 그녀를 상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자기 몸을 미끼로 성로비를 시도해서 어떻게든 계속해서 앨범 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큰 수렁을 파 버렸다. ‘저번 앨범이 실패했던 이유는 곡이 나빠서야. 좀 더 제대로 된 곡만 있으면····. 그럼 충분히 성공 할 수 있어.’ 이제 자신은 완전 무명이 아니라 그래도 제법 잘 나가던 걸그룹 출신의 세컨드 보컬이었다. 그러니 곡만 달 받으면 금방 다시 뜰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제법 유명한 작곡가에게 곡을 받기 위해서 부탁을 했다. 그 작곡가는 수많은 히트곡을 제조하기도 했지만 곡을 함부로 주지 않기로도 유명한 남자였다. 자신이 납득할 만한 재능의 소유자에게만 내 곡을 준다. 라는 것이 그 작곡가의 좌우명이었다. 설령 아무리 인기 가수라고 해도 자신과 필이 맞지 않으면 곡을 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지영은 어떻게든 그 작곡가에게 곡을 받으려고 했다. 그래서, 단 둘이서 있을 때 은근슬쩍 몸을 밀착하고 성로비의 뉘양스를 풍겼다. “선생님···. 곡만 주시면, 제가 은혜는 꼭 갚을게요. 여차하면 지금 먼저 드려도 되요.” 살며시 눈 웃음을 치면서 자기 몸을 찰싹 달라 붙어서 끈적끈적하게 유혹하는 이지영이었다. 이제까지 그녀가 상대했던 소속사 사장이나 기업 광고주들에게는 이런게 통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순간의 쾌락보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을 더 우선시하는 진짜 예술가들도 있는 법이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정색을 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는 작곡가를 보면서 이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기··. 선생님. 저는 그러니까····.” 이지영은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작곡가는 그녀를 단호하게 밀어내고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내 눈앞에 띠지 마라.” “선····.” “나가라고 했다.” “·········.”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499화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 작곡가를 화나게 해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면서 이제 그녀를 상대해 주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이미 음반 하나 제대로 말아먹은 가수하고,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리는 작국가 선생. 업계의 사람들이 둘 중에 누구를 우선시 할 지는 불을 보듯이 뻔했다. 결국···. 이지영은 업계에서는 완전히 쫓겨났다. 그 후에 그녀가 선택한 길은 밤무대 업소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팬들이 아니고 술주정뱅이들 앞에서 분위기 띄우는 역할로···. 아이돌 출신이 떨어지기에는 꽤 바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이 성희롱하듯이 조롱하는 것은 보통이었고···. 제대로 된 무대도 아니라서 노래를 듣던 관객들이 스테이지로 올라와서 그녀를 만져 보려고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는 밀키웨이 시절 쌓아놓은 지명도가 통해서 일단 생계를 해결할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제 그녀가 노래로 돈을 벌 수 있는 장소 자체가 이런 곳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마저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처음 한 두 번은 제법 거금 까지는 아니어도 몫돈을 만질 수도 있었다. 일단 나이트나 클럽에서도 현역 아이돌이었던 여자를 부른다는 것에 어느 정도 납득 할 만 한 페이를 지불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몇 번이지···. 너무 흔하게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보수도 점차 점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 한때 아이돌이었다. 라는 것 만으로 영원히 통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일감도 없어지고, 이제 더 이상 가수로서의 프라이드도 완전히 닳아서 없어진 그때···. 귀환자들이 나타나고 또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 물 간 퇴물 가수에 불과한 지영에게 세상이 변하는 것이 그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꺼져가는 독기에 다시 불길을 확 지핀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슬기였다. 없어진 줄 알았던 슬기가 귀환자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그냥 그런 귀환자가 아니었다. 귀환자들 중에서도 엄청나게 높은 위치가 되어서 나타났다. 심지어 슬기의 남자로 알려진 박정운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기도 했다. 개인의 무력으로도,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도, 박정운을 넘어설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여자가 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이 슬기였다. 지영의 질투심은 다시 활활 불이 붙었다. 비참하게 전락한 자신과 다르게 너무나 화려하게 돌아온 슬기를 보자 자격지심이 생긴 것이다.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슬기를 보면서 그녀는 이제 한 가지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든 간에 가수로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슬기에게 최소한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재능으로 승부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자각하고 있는 그녀였기에···. 그녀는 다른 수단으로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귀환자의 애인으로서 신세계에 진출하는 것 까지 성공했다. 사실 신서울에서 평범한 월급쟁이 역할만 해도 이런저런 특혜가 많아서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가수가 되어서 슬기에 대한 자격지심을 떨쳐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아마추어 콘테스트 시스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 것이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명색에 자신이 프로였는데 아마추어 콘테스트 따위는 금방 치고 올라가서 다시 프로로 올라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못해 잔인했다. 연습생을 그만두고 제대로 된 연습도 한 적 없는 것이 이지영이었다. 진짜 진지하게 프로를 노리고 노래하는 아마추어들과 비교해도 퀄리티에서 확 차이가 났다. 결국 여기서도 실패할 위기에 처한 그녀는 자기 몸을 미끼로 매수한 남자들을 이용해서 최대한 바람잡이를 부르고···.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버티기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바람잡이 가지고는 그게 한계였다. 그렇게 살다가 슬기를 이제 만난 것이다. “···········.” 그녀의 인생을 다 돌아본 슬기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어이가 없었다. “자격지심? 나한테?” “···그래.”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속속들이 들킨 이지영은 이제 체념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 분한 듯이 입술을 꼭 깨물고 말했다. “나도 알아봤어. 그라운드 제로에서 여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야. 너도 결국은 운이 좋아서 박정운이라는 대어를 낚았을 뿐이잖아? 너하고 내 차이는 그게 다라고!!!” 그라운드 제로가 붕궤되고 수많은 귀환자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 중에 몇몇 머리가 돌아가는 자들은 자신들의 경험담을 인터뷰로 세상에 알리거나 혹은 자서전 형식으로 낸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는 너무 흔해서 별로 장사가 되지 않았지만 초반에 선수를 친 사람들의 경우에는 제법 쏠쏠한 돈 벌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에는 귀환자들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겪은 수많은 일화들에 관해서 제법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정운을 비롯해서 가우리의 간부들의 일화는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려고 까지 했다. 거기에는 그라운드 제로의 들어갔던 초보들이 겪게되는 어려움이라던가? 고레벨들과 저레벨들의 차이라던가? 사냥법과 길드에 관해서까지 여러 가지로 상세한 정보가 나돌았다. 그렇다 보니 귀환자들에 대한 몇가지 고정관념이 고착되었다. 일단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은 귀환자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서 PK. 즉, 살인이라는 행위를 해 보았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간 것 자체가 현실에서 간절하게 바라는 소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는 것. 그리고 여성 귀환자들의 경우 초보 때 살아남기 위해서 남성 유저들에게 달라 붙는게 보통이다. 라는 것. 정운이나 슬기의 경우처럼 약간의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보편적으로는 아주 틀린말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지영 역시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운을 이용했다고 생각하고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슬기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제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운씨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에요.” “·············.” “하지만, 우리가 연인 사이가 된 것은 동료가 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었어요.” “그걸 믿으라고?” “절 믿고 안 믿고는 상관 없어요. 하지만, 제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에요.” “·············.” 슬기의 말에 지영은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돌렸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슬기의 눈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눈이다···. 항상, 항상, 항상 저런 눈으로 날 바라봤어. 난 깨끗하다는 듯이, 난 당당하다는 듯이····.’ 슬기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지영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기고가 거짓을 말 할 성격은 아니다. 차라리 슬기가 그렇게 약은 성격이었다면 그녀도 슬기에게 심각한 자격지심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지영을 보면서 슬기는 마지막 마무리를 짓듯이 말했다. “더 이상 언니가 망가지는 것도, 그리고 나에게 얼매이는 것도 볼 수 없어요. 그러니, 기회를 드리죠.” 슬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영의 이마에 다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 으음!!!” 말을 하던 지영은 그대로 쓰러져서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지영을 보면서 슬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 어렵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슬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영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지영은 런던의 병원이었다. “····기억··. 상실이라고요? 제가요?” “예. 그렇습니다. 혹시 이제까지 자신에 관해서 기억 나는 것이 있나요?” “아니요···. 으음··.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다행이도··. 당신의 후견인이 당신의 신분을 보장했습니다. 주거지와 후원금도 모두 지불하고 있군요.” “예? 후원자요?” 자신에게 후원자가 있다는 얘기에 그녀는 혼란 스러워 했다. 하지만 자신을 상담하고 있는 병원 원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용건을 말해갔다. “예. 그 분이 당신에게 메모를 남겼습니다.” 의사가 준 메모를 받은 지영은 떨리는 손으로 메모를 읽었다. [지금 혼란 스러운 점이 많겠지만, 거기에 관해서는 설명해 드릴 수가 없네요. 요점만 말하면 앞으로 5년은 의식주가 보장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자신의 진로와 인생을 결정하세요. 직장을 잡고 평범하게 살아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도 좋아요.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진솔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당신의 과거를 돌려 드리겠습니다.] “·····이건? 이게 도대체··· 누가 남긴거죠? 도대체 누가?” 전후 사정을 모르는 그녀로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의사도 딱히 아는 것은 없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도 아주 높은 쪽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 밖에는····.” “그런·····.” 결국, 그녀로서는 자기 기억을 되찾고 싶다면 메모지에 적혀있는 말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진솔한 인생이라니···. 도대체 누가 이런 설교조의 메모를 남긴거지·····.’ 그 의문이 풀릴 날이 올지 안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정운씨, 고마워요.” 슬기는 자신의 부탁을 다 들어준 정운에게 커피를 챙겨 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뭐? 아아··. 얼마 전에 그거?” 정운은 슬기의 부탁으로 기억이 지워진 이지영을 런던으로 강제 이민 시켰다. 정운의 힘으로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그녀의 얼굴 역시 고쳐서 누구도 그녀가 전 아이돌이었던 이지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했다. 슬기가 부탁한 대로 그녀의 지긋지긋한 수렁 같은 인생을 리셋해 준 것이다. “나야 별로 상관없지. 미하엘이 다했는데···. 그보다 괜찮아? 어떻게 보면 너에게는····.” “그만, 됐어요.” 정운은 슬기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이지영이라는 것을 지적하려고 했다. 하지만 슬기는 그런 정운의 말을 제지하며 말했다. “그 일로 그녀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지만····.” 슬기는 정운에게 한 걸음 다가가서 자신이 먼저 수줍게 정운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최고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 모든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원망은 안 할래요.” 그것은 정운이 이제까지 본 슬기의 모든 미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 작품 후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500화 <제국의 침공> 평화는 전쟁을 위한 준비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좀 비정한 말이긴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가우리는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때때로 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 법이다. “저건····? 저건 도대체 뭐야?” “글쎄···? 철새 때?” 크롱크 왕국과의 구경 지대를 경비하고 있던 초소의 병사들은 하늘 저편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무언가가 하늘을 날아서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철새때나 메뚜기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원래 이 지역은 가우리 건국 초기만 해도 매일같이 놀러(?)오는 크롱크 왕국의 오크 부족들 때문에 엄청나게 피곤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크롱크 왕국의 대족장 부제와 꾸준한 관리를 통해서 크롱크 왕국이 적당하게 시끄럽도록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지역은 한때는 가장 피곤한 지역이었지만 요즘은 소위 말해서 꿀 빠는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더구나 오크들이 쳐들어온다면 저렇게 하늘을 날아서 쳐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저것의 정체가 적이라고 판단한 것은 놈들이 거의 지척에 다다른 후였다. “저건···? 세라핌!!?” “성 세인트 왕국의 봉인지정 무기? 공··. 공격이다!!!!!” 콰아아아앙!!!! 가우리의 국경 지대의 도시였던 신밀양으로 세라핌 일천기가 쳐들어왔다. 그 군세의 정면에는 건국 이후 한 번도 타국을 침략해 보지 않았던 제국의 군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제국의 침공!!!? 거기서 어떻게 먼저···?” 미하엘의 보고를 받은 정운은 깜짝 놀랐다. “이유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제길, 규모는? 그리고 현재 전선은?” “신밀양이 함락되고 궤멸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상주, 신원주, 신태백이···.” “말도 안 돼!!! 제국이 그렇게 강하다고!!?” 정운이 알기로 제국은 그렇게까지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파우스트의 신권에 의해서 강력한 보호를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기본적으로 제국은 전쟁의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그런데 막강한 군사력 따위를 갖춰서 뭐 하겠는가? 그저 자국의 치안과 위엄을 갖출 수 있는 수준의 능력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국가의 나머지 여력은 다른 부분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더 현명했다. 그런 제국이 타국을 침공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가우리를 상대로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갈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정보에 의하면 세라핌이 일천기 이상 올라오고 합니다.” “세라핌? 그 성 세인트 왕국의 봉인지정 무기? 그건 이미 제작이 불가능 할 텐데?” 세라핌은 성녀를 제물로 바쳐서 지상에 강림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파우스트의 사제들이 모두 신성력을 잃어버린 지금. 성녀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히 신성력을 잃어버린 성녀를 제물로 바쳐서 세라핌을 소환하는 것도 불가능 했다. 그런데 그런 세라핌이 대량으로 어떻게 나왔단 말인가? “수상각하!!!!” 혼란에 빠진 정운에게 미하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째서가 아닙니다. 적의 침공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미안해. 내가 흥분했어.” 너무나 뜻밖의 사태가 계속되자 정운은 그만 흥분해서 상황의 선후 처리를 잘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정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이 어째서 일어났는지 밝히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닥친 현실적인 위기를 타파하는 것이었다. “····세라핌 1,000기라···. 우리 가우리의 전력을 기울이나면 승산은 얼마나 될까?” “전력을 다 모은다면···. 승산은 60% 정도입니다.” “그래? 우리가 유리하다는 말이야?” “예. 비록 세라핌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우리 가우리가 전력을 다 모으면, 그 힘은 충분히 세라핌 1,000기를 상회한다고 생각합니다.” 미하엘의 분석에 의하면 박정운, 박추성, 배대호, 이민지, 한중겸, 세레나. 이 다섯 명 만으로도 각기 세라핌 100여기 정도는 감당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수치는 과거 박추성이 성 세인트 왕국에서의 전투 데이터를 상대로 평가 한 것. 즉, 일대 다수의 전투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가우리 간부들의 진정한 실력은 서로 팀워크를 맞춰서 싸울 때 드러난다. 거기다 다른 간부들의 합류와 이제까지 꾸준하게 힘을 키워 온 가우리의 전력이 총 동원 된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적은 지금 신서울로 바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우리의 전력을 다 모르려면 적어도 12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당장 소집 명령을···.” “이미 내렸습니다.” 미하엘은 정운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말했다. 그리고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수상 각하의 사전 허락이 없는 상황에서 월권행위이기는 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당연한 얘기지만 정운은 미하엘을 전혀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 촌각을 다투는 이 상황에서 그녀의 결정은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다. “적들이 신서울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정운의 질문에 미하엘은 드물게 암담한 목소리를 하고 말했다. “적은··. 앞으로 8시간 안에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8시간·····.” 정운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가우리의 전력을 신서울에 집경 시키는 것에 12시간이 걸리고, 적이 여기까지 침공하기까지 8시간이 걸린다. 단순 계산으로 4시간이 빈다는 얘기다. “당장 시간안에 모을 수 있는 전력으로 상대한다면···. 승산은 어떻게 되지?” 정운의 물음에 미하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승산은····. 패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미하엘은 말을 이었다. “하필이면 배대호님과 이민지님이 제로 트리의 깊숙한 곳에서 탐험 중입니다. 통신 수단이 일절 없기 때문에 인력으로 전령을 보내서 탐색을 한다고 하면····.” “빌어먹을····.” 정운은 이를 갈았다. 배대호와 이민지의 부재는 전력상의 로스로서 너무 컸다. 특히 이 둘은 마법과 정령이라는 수단을 동원해서 대량 섬멸이 특기였다. 팀 플레이를 한다고 가정하면 포대의 역할로서 꼭 필요한 포지션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둘이 동시에 없다니···. 어떤 의미로는 전위 포지션을 담당하는 정운과 박추성이 없는 것 이상으로 안 좋았다. 물론 정운이나 박추성의 수준이 되면 후면에서 막강한 화력을 발휘하면서 화력 포대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전위 역할에 너무나 큰 구멍이 생겨 버린다. 다른 멤버들이 있기도 하고 정운이나 박추성 중에 한 명이 후위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그래서는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버릴 뿐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제로 트리의 안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정운은 이를 악물고 머리를 쥐어싸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될까?’ 정운은 결정을 해야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미하엘이 계산한 시간은 아마도 정확할 것이다. 몇 번인가 제로 트리에 들어가 본 정운도 알고 있었다. 통신이 통하지 않는 제로 트리의 안에서 미개척 지역으로 탐사를 가면 그렇게 간단하게 찾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최근 개발 중인 미개척 지역이 어디인지 어느 정도 추정은 할 수 있기에 완전 오리무중은 아닌 것이 다행일 뿐이었다. “후우····. 미하엘. 신 서울의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려.” “알겠습니다.” 정운은 특단의 조치를 결정했다. 물론 신서울을 포기 할 생각은 아니었다. 게이트가 열려져 있는 신서울은 절대로 포기 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시민들을 대피하라고 하는 것은···. 정운이 신서울에서의 전투를 결심한 것이다. 그것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 할지 모르는 최대 규모의 전투를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울에서 싸우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진짜 목적은 서울에서 이겨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우리의 전력을 한 점에 총 집결 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무려 4시간이 모자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뿐이었다. 4시간의 로스를 메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적의 발목을 잡아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는 사람은··. 사실상 사석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었다. 가우리의 중요 사안 대부분은 정운의 독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정운의 명령을 듣고 거기에 따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운의 독단으로 해결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시간을 벌지 못하면 신서울이 끝장이 난다. 세라핌 대군이 게이트를 타고 지구로 넘어가는 것은 가우리에게 있어서 반드시 막아야 할 최악의 사태였다. 그러니, 누군가는 신서울에 전력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사망할 것이 틀림없었다. 가우리의 간부들이 모인 회의장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적막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내가 갈게!!! 그게 최고의 결정이야.” 윤정철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좌우를 향해서 말했다. “형님···.” 정운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윤정철이 흔들림 없는 단호한 눈을 하고 말했다. “적어도 간부 중에 한 명이 어느 정도 전력을 대동하고 가지 않으면 놈들의 진격은 막을 수 없을 거야. 그렇다고 너무 강한 핵심 전력인 너나 추성이 형님이 간다면··. 그때는 신서울에서의 전투가 힘들어지지. 결국 나 정도는 가야 한다는 말이야.” 윤정철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잠깐만, 당신이 가면 난 어떻게 해!!?” 다이앤이 간절하게 윤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윤정철은 그런 다이앤을 보며 달래듯이 말했다. “누군가는 가야 돼.” “하지만 위험해. 죽으러 가는거나 다를게 없잖아.” 다이앤의 말에 윤정철은 한숨을 깊게 쉬고 말했다.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가는게 전력적인 피해가 최소화 되는 일이야.” “나에게는 그렇지 않아. 나한테 당신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끝나는 것과 다르지가 않아.” “··············.” “정이 가려거든···. 날 데리고 가.” “··············.” 다이앤의 간절한 애원에 윤정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수님 울리지 말고 형님은 앉으십쇼. 차라리 내가 가죠.” 그 다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김수민이었다. “수민이 너···?” “한때 십왕이라고 불리던 우리도 참 많이 줄었죠? 저도 형님만큼은 아니지만 살 만큼은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야 형님처럼 딸린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서 죽어도 여한은 없수다.” 호쾌한 성격의 김수민은 담담한 어조로 자신이 죽으러 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김수민님. 목숨을 쉽게 버리지 마십시오. 여기서는 차라리 제가···.” 세레나는 김수민을 말리고 자신이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중겸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정운이하고 재회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헤어지겠다고?” “그건·····.” “작은 제수씨가 갈 바에는 내가 가지. 아마 여한이라면 내가 제일 없을 걸?” “형님!!!!” 평소에는 가볍고 까부는 성격의 한중겸이었지만 이렇게 위기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의지가 되는 남자였다. 그래서 정운도 어떤 의미로는 한중겸을 가장 믿고 의지했었다. 정운은 그런 한중겸에게 도저히 가서 죽어라. 라는 명령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연락을 받은 미하엘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연락이 왔는데···. 1시간만 기다려 주시면 프랑스에서 여기로 오고 있는 장 그레고리님이 말하기를 자기가 꼭 가겠다. 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가벼운 이미지이긴 하지만···. 장 그레고리 역시 이럴 때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인색한 남자는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기다려주신 분들을 위해서 찔끔찔끔 연재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3일. 짧고 굵게 해서 3일안에 연참해서 완결 시키겠습니다. 501화 “후우···········.” 정운은 고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이 사석 역할이 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가우리의 간부들의 전우애가 끈끈하다는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무한경쟁 지옥에서 서로 한 팀이 되어서 싸운 기억이 이들을 이렇게 끈끈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보다 더 진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였고, 서로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어 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굳이 예외를 따지자면 홍린은 약간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이여서 이 상황에서 몸을 빼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탈리아처럼 관계 되는 것 자체를 피하는 것이 아닌 것만 해도 나름 의리는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문제는···. 정운은 이들 중에 누구도 사석으로 보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그때 같은 더러운 기분을 맛 볼 수는 없어. 뭔가··.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예전 그라운드 제로의 최종전에서 다수의 아군을 잃었던 기억이 자꾸만 정운의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지금 정운의 행동을 점점 더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미하엘은 어디선가 연락을 받고 얼굴이 크게 변했다. “···그게 정말인가? ···그래, 알았다. 영상 파일을 이쪽으로 보내. 지금 당장!!!” 미하엘은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말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 살짝 한 숨을 쉬면서 말했다. “······먼저 행동에 옮긴 사람이 나왔습니다.” 미하엘의 말에 한중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뭐? 누가?” 가우리의 간부들은 모두 이 자리에 모여 있다. 그렇다면 간부 이외의 사람이 갔다는 건데···. 순간 한중겸의 머릿속에 한 명의 이름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미하엘의 입술에서 그 이름이 흘러 나왔다. “이보영씨입니다.” “보영이가····.” “영상을 보내 왔다고 합니다. 지금 재생하겠습니다.”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핸드폰과 모니터를 연결하더니 거기에 한 가지 영상을 재생했다. [모두 안녕.] 모니터에는 이보영의 영상이 리플레이 되기 시작했다. “보영이 누님···? 연락이 받고도 안 오더니 설마···?” 정운은 당연히 이보영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연락을 받고도 호출에 응하지 않았었다. [뭐, 대강 어떤 상황인지는 들었어. 딱 잘라 말해서 시간을 끌어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영상 속에 그녀가 하는 말에 회의장의 모두가 집중했다. 그리고 영상속의 이보영은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우유부단한 정운이는 결정 못하고 나머지 인간들은 닭살 스럽게 내가 가겠다고 우기고 있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비디오야.] 확실히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일까? 그녀도 가우리의 간부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지 뻔하게 알고 있었다. [아마 거기서 회의해서는 결론이 안 날 거야. 시간이 촉박하잖아? 그러니···. 내가 갈 거야. 그리고 날 따르는 애들도 함께 간다고 하고, 현지에서 가우리 병력이 있으면 걔들도 좀 빌릴게.] “보영이 언니····.” 슬기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영상 속의 이보영을 보고 중얼 거렸다. [시간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는 몰라. 하지만···. 내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기 싫다면, 괜히 나 구하러 오지 말고 확실하게 전력을 집중 시켜. 그리고····. 혹시 내 동생 만나거든, 언니가 못 지켜줘서 많이 미안했다고 좀 전해 줘.]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보영은 자신이 연락을 받은 시점에 이미 망설임 없이 스스로 전쟁터로 향한 것이다. 과거 그라운드 제로의 동료들 중에서···. 이보영은 한국팀 중에서 유일하게 가우리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 이런 빠른 결정을 할 수 있게 앞 당긴 것이다. “······미하엘. 전력을 최대한 빨리 집중 시켜.”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보낼 수 있는 전력을 최대한 보내서 보영이 누님을 돕게 해 줘. 그녀의 생존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운의 명령에 미하엘은 순종하고 움직였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보영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최대한 빨리 가우리의 모든 전력을 다 끌어 모아서 제국군을 막아내야 했다. 가우리의 명운이 이보영에게 달린 것이다. “내 영상 편지는 잘 도착 했을까?” 중얼 거리는 이보영의 옆에서 창이 말했다. “잘 도착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이보영은 자신의 옆에 있는 창을 흘깃 보더니 퉁명하게 말했다. “넌 싫으면 여기서 돌아가도 돼. 이렇게 재수 없는 여자하고 같이 죽으면 그냥 개죽음이라고.” 그녀의 말에 창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시니컬한 말투도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이 말투 뒤편에 그녀만의 배려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은 진지한 눈을 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널 위해서 죽는다면···. 내 목숨 따위는 백번이고 죽어 줄 수 있어.” “······흥, 난 몰라.” 이보영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녀도 알고는 있었다. 이런 남자···.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로 아깝다는 것을 말이다. 그걸 알기에 자신과 상관없이 그냥 살아 남아 주기를 바랬다. 그때 이보영을 따르는 여자 중에 한 명이 다가와서 보고했다. “언니, 가우리에서 근처에 있는 전력을 보내서 언니의 지휘 하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규모는?” “개개인의 수준은 잘 모르겠고···. 숫적으로는 1만 정도에요.” “급하게 보낸 것 치고는 신경 썼네. 알았어. 모두 대기하라고 해.” “예. 언니.” 1만이라는 숫자를 듣고 이보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1만이라···. 숫적으로는 충분하군. 하지만 급하게 이 근처의 병력을 모아서 1만이라는 숫자를 만들었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질까지 바랄 수는 없겠지’ 이보영은 눈을 지그시 감소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후우···. 결국 애당초 생각했던 작전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어.” 사실 이보영은 처음부터 나름 작전을 세워두고 있었다. 다만, 그 작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잠시 후···. 지평선 너머에서 하늘을 메우는 철새처럼 한 무리의 세라핌들이 다가왔다. “많기도 많군.” 이보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사실 박추성이 단신으로 상대 할 수 있는 세라핌의 숫자가 100기 정도라고 치면···. 이보영이 상대 할 수 있는 숫자는 아마도 30기 남짓이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면으로 대결을 했을 때의 일이고···. 지금 그녀의 목적은 저 세라핌 무리들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기는 것 보다는 길게 싸우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창, 당신은 여기서 남은 사람들의 지휘를 해.” “보영, 난 당신의 곁에···.” “걸리적 거려!!” 이보영은 자신을 따라 오려는 창에게 딱 잘라서 말했다. “···············.”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창에게 더욱더 냉혹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나하고 같이 싸우겠다고? 그 실력으로? 자기 주제를 알도록 해.” “···알았어. 여기서 기다릴게.” 결국 창은 이렇게 얘기 할 수밖에 없었다. 창은 이보영이 이렇게 냉혹하게 말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와 자신의 레벨 차이를 생각했을 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동안 제로 트리를 이용해서 최대한 전력을 상승 시키려고 힘써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와의 차이는 너무나도 깊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따라가고자 했던 것은···. 그만큼 지금부터 그녀가 하려는 행위가 무모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힘이 되어 줄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보영은 하늘로 올라가서 자신의 앞에 있는 세라핌 대군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시간을 벌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 그녀가 선택한 작전은 이른바 ‘미꾸라지 물 흐리기’였다. 만약 윤정철이 왔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무기인 활과 기동력을 살려서 최대한 밖으로 돌면서 적들을 교란 시키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궁사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도 어중간한 궁사가 아니라 활을 무기로 쓰는 귀환자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이른 윤정철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권사인 이보영에게 그런 작전은 무리다. 그녀라고 원거리 공격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전공은 권사. 근거리에서 진정한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폭풍의 외각지대로 도망 갈 수 없다면 차라리 폭풍의 눈으로 들어가 버리자. 라고 말이다. “후우····.” 이보영은 목을 좌우로 풀고 어깨를 돌리면서 몸을 풀었다. 사실 그녀 정도 수준의 능력자가 워밍업을 하든 안 하든 제 실력이 안 나올리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지금부터 그녀가 행하는 짓은···. 확실하게 미친 짓이니 말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 퍼어엉!!!! ‘까!!!’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몸이 정면의 세라핌 군단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가장 외각에 있는 세라핌의 복부에 커다란 타격음이 터졌다. 퍼어엉!!! 커다란 북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허공에 청명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으아아아아아!!!!!!” 퍼퍼퍼퍼퍼퍼퍼퍽!!!! 몸이 ‘ㄱ’자로 꺾여 있는 세라핌을 보고 이보영의 연타가 쉴 새 없이 작렬했다. 그녀도 마음먹으면 세라핌 한 기 정도는 확실하게 침묵 시킬 수 있었다. 그녀의 연타를 집중적으로 얻어맞은 세라핌이 점점 침몰해 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다만···. “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세라핌들이 끼어들지 않고 있다는 전제하에서였다. 동료가 당하자 동시에 이보영을 적으로 인식한 세라핌 대군들이 이보영에게 날아왔다. “좋아···. 이제 시작이다. 어디 잡아 봐라!!!” 그리고 이보영은 자신에게 몰려드는 세라핌 대군을 향해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격돌했다. “흠!? 저건 뭐지?” 하늘의 세라핌 군대에게 일어난 일단의 소란을 보면서 황제가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귀족이 잠시 상황을 살펴보더니 보고했다. “적이 공격해 온 모양입니다.” “적이? 세라핌 군단에? ······미쳤군.” 황제는 콧 웃음을 쳤다. 제국에서 최초로 정벌을 위해서 군을 이끌고 이동하는 이 전쟁에서 황제는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세라핌 대군의 위용을 똑똑히 봤다. 오면서 몇 개나 되는 도시를 함락하고 방위라인을 짓밟으면서 세라핌 대군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륙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우리 역시 세라핌 군단을 막아내지는 못한 것이다. “어리석은 지고····. 아직도 주신의 위엄에 반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서글플 뿐이구나.” 황제의 말에 주변 신하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쳤다. “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 진군하시지요.” “맞습니다. 가는 길에 돌멩이를 모두 신경 쓰면서 가실 수는 없습니다. 폐하.” 부하들의 말에 황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다. 군을 전진 시켜라. 세라핌 군단은 어차피 따라 올 것이다. “예. 폐하!!” 그리고 황제의 군단은 세라핌 군단을 따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502화 <이보영의 분투> “·····좋아. 일단 1차 목표는 성공이군.” 이보영은 치열한 전투 중에 아래를 흘깃 바라보고 중얼 거렸다. 후우웅!!! “칫!!!”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찔러오는 창을 가까스로 피한 이보영은 자신을 공격한 대상을 상대로 재빨리 손을 뻗었다. 퍼퍼퍽!!! 짧은 타격이 여러 번 작렬 했지만 상대에게 큰 대미지는 없었다. 그저 성질만 건드렸을 뿐이었다. “오오오오오오!!!!!” 세라핌군단은 이보영을 쫒아서 공격에 공격을 거듭했다. 이보영은 그런 세라핌들의 공격에 절대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자기 작전대로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간간히 가벼운 공격을 반복했다. ‘이러면 돼. 일단···. 이러면 되는 거야.’ 이보영은 이렇게 보여도 한때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삼대 길드라고 알려졌던 메두사 길드를 이끌던 여성이었다. 어느 정도 작전이나 머리를 굴릴 줄 안다는 말이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무모한 전투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이 무모한 전투야 말로 유일하게 활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1,000기의 세라핌 대군을 상대하는 그녀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일방적인 힘 싸움에 말려드는 것이었다. 하나하나라면···. 아니 다섯 기에서 열 기 정도라면 그녀도 힘 싸움을 받아 줄 수 있다. 하지만 1,000기가 되면 절대 무리였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전략은 철저한 히트 & 어웨이의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의 진짜 목적은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라. 적의 주목을 끄는 것이다. 즉, 그라운드 제로 시절로 설명하자면 이건 ‘어그로’인 것이다. 아군의 화력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혹은 아군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 목적은 많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필드에서 적을 사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략은 어그로였다. 한명의 탄탄한 탱커가 보스몹의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 시키는 것부터···. 기동력이 되는 유저가 다수의 몹을 살살 약올리면서 대량 섬멸을 위해 유인하는 것 까지···. 어그로의 역할은 다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보영은 1천기의 세라핌을 상대로 어그로를 끄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어그로 미션 난이도로는··. 최고 난이도인데?’ 아마 열 기 이상의 세라핌에게 공격이 포위 되어서 움직임이 멈추면 그녀는 순식간에 시체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릴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살기 위한 답은 오직 하나 뿐이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해도···. 수많은 공격이 자신에게 작렬해도····. 자신의 공격이 상대에게 대미지를 주지 못해도···.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그저 움직이고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상어가 조금이라도 헤엄을 그만두면 바로 죽어 버리는 것과 같은 신세였다. 하나하나가 무시 못할 강적들로 빼곡하게 메워져 있는 하늘을 그녀는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간간히 자신에게 꽂히는 공격에 이미 온 몸은 상처 투성 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움직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앙!!! 끈덕지게 배후를 점하고 있는 적의 세라핌 두 기를 향해서 그녀가 후면을 향해서 강력한 뒷차기를 날렸다. 보지도 않고 무작정 날린 공격이었지만 그 덕분에 자신의 등짝을 관통하려던 공격을 쳐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상태가 멀쩡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후우···. 후우····.” 이보영은 체력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걸 느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싸울 수 있을까? 작전을 제대로 수행 하는게 가능은 할 까? 혹시 너무 무모한 작전을 세운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불안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결의를 다졌다. ‘생각은 그만하자. 지금은 그저 전신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할 때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무수한 거짓 천사들이 가득매운 하늘 위에서 한 명의 여성이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싸웠다. 주먹을 날개 삼아서····. 동료들을 향한 마음을 원천으로 삼아서····. 지금까지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수많은 후회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해서 그녀는 싸웠다. 이보영, 지금 이 순간이 그녀의 인생에서 틀림없이 다시 오지 않을 최대의 절정이었다. 찬란하기까지 한 그녀의 투쟁의 불꽃은 눈부신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찬란한 광채도 결국은 한계가 도달하는 법이다. 1시간 후····. “헉·····. 헉······.” 전신은 피투성이에 체력은 방전 직전. 거기다 한쪽 팔은 분질러져서 덜렁 거리고 오른쪽 허벅지에 당한 관통상은 뼈까지 깔끔하게 꿰뚫린 것이었다. 정면대결을 피하고 오로지 시간 벌기만을 목적으로 한 전투였기는 하지만···. 천기의 세라핌을 상대로 꼬박 한 시간이 넘게 분투를 한 그녀의 전과는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우리에서 필요한 시간은 최소 4시간. 아직 이 상태로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것은 그녀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 혼자서 세라핌 대군을 상대로 4시간이나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런 무모한 돌격을 한 이유는···. 콰아앙!!!! 때 마침 멀리서 일어난 폭음과 관련되어 있었다. “시작했나 보군.” 이보영은 싱긋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세라핌의 대군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동요가 보였다. “잡아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언니가 최선을 다해서 벌어준 찬스야!! 무조건 여기서 섬멸시키는 거야!!!” “집중 포화시켜!!! 수뇌부는 한 명도 남기지 마라!!!” 세라핌 대군을 뒤에 남겨두고 본군을 이동 시키고 있던 황제의 제국군을 공격한 것은 이보영의 지휘 하에 들어온 가우리의 병력이었다. 창과 이보영의 의동생들이 그 병력을 이끌고 제국의 본대를 습격한 것이다. 세라핌 군과 제국군이 충분히 멀어지기를 기다렸던 그들은 불시에 제국군을 습격했다. “큭···.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지금 나더러 감히 후퇴를 하라는 것이냐!!!?” “폐하!! 지금은 위험···. 커억!!!” 황제에게 후퇴를 간언하던 남자는 등 뒤에서 쭉 뻗어온 긴 창에 심장이 꿰뚫려서 죽었다. 그 남자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이보영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인 창이었다. 그는 그대로 황제의 수뇌부에 착지하고는 냉혹한 눈빛을 하고 중얼 거렸다. “모두 죽어라.” 원래 지구에서도 그는 소문난 암살자였다. 일단 전투 모드로 들어가면 그 손속에는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제국군의 수뇌부를 죽여가기 시작했다. “막아··. 크악!!!” “폐하···. 아악!!!” 황제의 근위대를 포함한 제국군이 창을 막으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비록 가우리의 간부들에게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창 역시 상당한 능력자였다. 그리고 그 능력 이상으로 전투 센스가 무척이나 탁월했다. 레벨 60의 능력자라면 익스퍼트 중급, 혹은 4~5클래스 정도 되는 메이지다. 제국의 근위대에서 이 정도의 실력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분명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의 강자들도 창의 공격을 3합 이상 받아내는 자들이 없었다. 그것은 창의 탁원한 전투 센스도 한 몫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제국군이 너무 허술했다. ‘이 놈들···. 정말 전쟁하러 온 놈들인가?’ 창은 황제의 앞을 지키듯이 가로 막는 상대들을 하나하나 죽여 가면서 적의 수준에 어이가 없었다. 수련을 꾸준히 해서 제법 높은 수준에 이른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수준에 이른 무력을 가지고 있어도 잔뜩 긴장해서 얼어 있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건 마치 신병으로만 이뤄진 군대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창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국군의 병사부터 근위기사단까지···. 이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실전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제국의 신권이었던 파우스트의 절대 보호권. 이것 때문에 제국의 군이라는 것은 사실 모양만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병사들의 훈련의 90%가 위력 과시를 위한 제식 훈련일 정도였다. 전쟁의 위험이 없으니 병사들을 강인하게 무장 시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성실하게 수련하면 어느정도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능력치만 높아봐야 개발에 편자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창의 사나운 기세에 눌려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순간부터 이미 놈들에게 승기는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창은 순식간에 놈들을 헤치고 황제의 눈앞에 도달했다. “네놈이 감히···. 커억!!!” 황제는 자신의 앞에 도달한 창에게 두 눈을 부릅뜨고 고성을 지르려고 했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의 무기가 먼저 황제의 심장을 관통했다. “감···. 감히····. 네놈 따위가. 제국의 황제를····.” 황제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창은 무심한 눈으로 그런 황제를 내려다 봤지만 그 뿐이었다. 암살자였던 창에게는 황제건, 노예건, 죽으면 평등한 인간일 뿐이었다. 사실···, 황제의 심장에 칼을 박은 것은 창이었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이보영의 작전이었다. 이보영이 혼자서 닥돌을 해서 시간을 벌려고 했을 때··. 원래대로라면 황제의 군대를 향해서 돌격하는 편이 좀 더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인간들의 군대와 섞여 있다면 세라핌 대군들의 행동도 조금은 제약 될 것이고, 일단 군의 편제만 흐트러져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다 이보영 단독으로 돌격 하는게 아니라 다른 병력들도 동원해서 공격을 했다면···. 적어도 그들이 몸으로 때워주는 만큼은 시간은 벌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이보영이 선택한 것은 자신이 단독으로 하늘에 몰려있는 세라핌 대군을 향해서 돌격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처음부터 황제의 본군과 세라핌 대군의 분리를 노렸기 때문이다. 제국의 경험 부족은 군의 병력뿐만 아닐 수뇌부에게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역사상 이번이 첫 전투였고 대부분 탁상공론으로 전쟁을 공부했을 뿐인 자들이 참모랍시고 수뇌부에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런 자들은 처음에는 긴장해서 신중했을지 모르지만···. 세라핌 대군을 앞세워서 몇 번의 승리를 겪으면 슬슬 마음속에서 자만의 싹이 트기 마련이다. 결국 이보영이 세라핌의 발목만 잡아두면 그들은 자신들끼리 진군 속도를 높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확실하게 죽여라!!! 명령자가 없다면 세라핌 대군은 통제력을 잃는다!!!” 세라핌이 비록 파우스트의 직속 전력이긴 하지만··. 지상에 소환 되었을 때에는 소환자의 명령을 듣는게 기본이다. 그리고 그 소환자가 죽으면 그때는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기본적으로 세라핌의 의지라는 것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서 고작해야 이 주변에서 닥치는 대로 날뛰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어쨌든 이 경우는 황제가 죽은 시점에서 세라핌 대군의 진격은 막아낸 것이다. 최악의 경우 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가우리에 분탕질을 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신서울로 진격해서 게이트를 통해서 지구로 침범할 일은 사라진 것이다. 이보영의 과감하고 치밀한 전략이 이뤄낸 성과였다. 다만, 그 대가로 그녀는 세라핌 대군에게 완전히 포위 된 상태로 내 던져 졌지만 말이다. “보영···.” 창은 하늘 저 편을 보고는 서둘러 몸을 날렸다. 이제 그녀가 맡긴 임무는 수행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순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정하고 싶었다. 503화 “후우··. 잘 해낸 모양이군.” 이보영은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해진 세라핌 군단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원래···. 잘만 풀리면 이 상황에서 세라핌들 사이를 살짝 빠져 나가서 자신의 목숨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렇게 잘 풀릴 것 같지는 않군.” 이보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세라핌들은 하나로 통일된 통제력을 잃어 버렸지만 투쟁본능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놈들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보영에게 노골적이 전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 임무는 완수했고, 나도 살 만큼 살았으니 죽어주는 거야 별 상관없지만····.” 이보영은 자신의 왼쪽 주먹을 폈다 쥐었다. 를 반복하다가 다시 불끈 쥐고 허리에 장착하듯이 당겼다. “이대로 허무하게 가기는 조금 억울하단 말이지····.” 고오오오오오오오·····. 그녀의 주먹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응축되었다. 조금 전에만 해도 가벼운 공격을 거듭하면서 치고 빠지기만 반복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달랐다. 이미 목적을 완수한 이상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그저 혼신의 일격을 놈들에게 박아주고 싶을 뿐이었다. “후우····. 내 인생 마지막 일격이다.” 오오오오오·····. 공기가 떨리던 굉음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이보영의 작은 주먹에 모든 힘이 집중 되었다. 마치 폭풍전의 고요와 같은 상황에 의지가 희박한 세라핌들도 뭔가를 느꼈을까? 세라핌들은 저마다 방어 자세를 피하고 자기 몸을 아꼈다. 그리고 이보영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가했다. “패왕파천격(敗王破天擊)!!!!!” 그녀의 주먹이 뻗어나감에 따라서 어마어마한 기파가 정면을 향해서 부채꼴로 퍼져 나갔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세라핌들 중에 대부분이 크고 작은 대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십여 기는 그대로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세라핌들과 같이 지상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인간이 있었다. 바로 이보영이었다. 쾅!! “크윽····.” 지상으로 떨어진 이보영은 기본 방어력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만 모든 힘을 다했다. “하아····. 후우······.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겠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네····.” 이보영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제대로 한 방 때려 박아준 것은 마음에 들었다.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그녀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일단 임무는 완수했고···. 그럭저럭 체면은 세웠지. 이제 그만해도 될 거야.’ 두 세기의 세라핌들이 이보영을 향해서 창날을 내세우고 돌격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피할 힘도, 그리고 생각도 없었다. ‘····끝내자.’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푹!! 푸푹!! 세라핌의 창들이 잔혹하게 인간의 몸뚱어리를 꿰뚫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이보영에게 통각은 없었다. 눈을 뜬 그녀에게 보인 것은···. “보영····.” “창!!!” 자신을 감싸고 대신 세라핌들의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창의 모습이었다. 창은 그 상태로 이를 악 물었다. 이보영과 달리 창의 방어력으로는 세라핌에게 당한 일격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무한회기!!” 창의 유일한 유니크 스킬로 인해서 그의 몸이 급격하게 회복했다. 무한회기(無限回期) LV.3 (죽음에 처한게 아니라면 두 시간 간격으로 모든 대미지를 회복 할 수 있다.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시간의 간격은 짧아진다.) 비록 한 번 사용하면 두 시간은 쓰지 못하는 스킬이었지만 천하의 박정운의 공격조차 견딜 수 있었던 스킬이었다. 창은 몸을 회복하자마자 이보영을 데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잠···. 잠깐 창!!!” 이보영은 창의 품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창의 능력치로 세라핌 군단의 포위를 돌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뒤편에서는 창을 추적하는 세라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날 버리고 도망가!! 당신 혼자라면 그래도 생존 확률이 높아!!!” 이보영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헉···. 헉····.” 하지만 창은 그런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달렸다. 그리고 세라핌의 창이 자신의 등을 노리고 날아온 순간 급하게 몸을 날렸다. “흡!!!” 콰앙!!! 지면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기고 창의 몸은 직접 공격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격의 여파만으로도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날아가는 와중에도 창은 자신의 품안에 있는 이보영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크윽····. 큭···.” 멀리 날아간 창은 이미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세라핌 대군을 보고 이를 악물고 무기를 들었다. 자신의 뒤편에 있는 이보영을 흘깃 바라본 그는 결사의 각오를 다졌다. “도망가!!! 도망가라니까!! 사람 말 못 알아들어!!!? 이 빌어먹을 짱개 새끼야!!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이보영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창에게 도망가라고 했다. 하지만 창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있는 세라핌들을 강하게 노려봤다. 이보영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바보냐!!? 이 병신 짱개 새끼야!!!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1초도 못 버틴다고!! 그냥 꺼져!!!!” “1초라도 상관없어!!!” 창이 처음으로 이보영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보영을 보며 은은하게 마지막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 1초라도, 널 지켜 줄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좋아.” “·············.” 이보영은 아무 말도 못했다. 창이 지금 하는 말은 틀림없는 그의 진심이었다. “오오오오!!!!” “오오오오!!!!” 두기의 세라핌이 포효하듯이 소리 지르며 창을 공격했다. 창은 그런 세라핌들을 향해서 이를 악물고 공격을 쳐내려 했지만···. 파캉!!! 기분 나쁜 쇳소리와 함께 창의 무기가 부서져 버렸다. 앞도적인 공격력의 앞에 창의 무기가 파괴된 것이다. “큭···.” 퍼억!!! 두 번째 날아온 공격을 창은 자신의 몸으로 막았다. 세라핌이 찌른 창이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창은 그 창이 빠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꽉 잡았다. 정말로 단 1초라도 좋으니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도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녀를 지킬 수만 있다면 족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퍽!! 퍼퍽!! “크윽···.” 아무리 사력을 다한다고 해도···.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를 매울 수는 없는 법이다. 하나 둘 씩 자신의 몸에 박히는 적의 공격에 창은 점점 눈앞이 희미해져 갔다. 어설프게 강하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의 공격을 가중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세라핌은 무릎을 꿇고 있는 창에게 마지막 공격을 가하기 위해서 창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이보영은 이 순간 모든 것이 슬로우 화면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안 돼에에에에에!!!!!!!!!” 이보영은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알고 있었다. 창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자신 역시 창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녀로서는 꿈에서도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자신이 남자를 사랑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말이다. 기본적으로 그녀에게 있어서 남자란 증오의 대상이었다. 품안에 받아들인 남자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마음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동생처럼 여기는 정운이나 친 오라버니들처럼 생각하는 박추성, 배대호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호감이 갔지만···. 그것은 남녀로서의 교감이 아니라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전우에 대한 믿음에 가까웠다. 그녀가 남자를 다시 사랑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굳게 잠긴 마음을 창이 서서히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창을 사랑한다는 것을 자각하고서도 그녀는 그것을 숨겨야 했다.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자신의 과거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남자들과 뒹군 거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자신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서 노골적으로 창을 이용한 적도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마음을 이용하고 농락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를 사랑한다니···. 어지간히 뻔뻔한 그녀라고 해도 차마 그런 마음을 밖으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창이 곁에 있는 것이 괴롭고 부끄러웠다. 어떻게든 그를 밀어내기 위해서 심한 말과 행동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아무리 멸시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그가 뻔히 알고 있는데도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내기까지 했지만····. 창은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켰다. 정말 묵묵하게·····.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 남자가 자신의 곁을 떠날 위기에 처했다. 그것도 죽음이라는 가장 절망적인 형태로 말이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불행을 겪어야 한다는 건가? 세상만사 정도 라는게 있지 않는가? 신이건 운명이건 간에···. ‘더 이상 내게서 아무것도 뺏을 수 없어!!!!’ 그녀의 결의가 영혼에 닿은 순간·····. 화아아악!!!! 그녀의 안에서 뭔가가 변했다. 콰쾅!!!! 창에게 결정타를 날리려고 했던 세라핌 두 기는 그대로 강력한 충격을 받고 터져 버렸다. 그리고 창은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가녀리고 늠름한 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보영·····?” 창의 눈 앞에는 전신에서 순백색의 광체를 발하고 있는 보영이 보였다. 전신을 은은하게 덥고 있는 순백색의 오오라는 그녀의 상처를 고속으로 회복시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힘 자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거의 박정운이나 박추성에 필적할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거기에 접근하고 있어.’ 창은 이보영이 이제 까지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창을 보고 보영은 아무 말 없이 창에게 손을 가져가서 자신의 오로라를 전해 주었다. 그러자 거의 반죽음 상태였던 창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보영, 당신···?” “설명은 나중에 할게. 그것보다···.” 보영은 창의 턱을 들고 그의 얼굴을 살며시 들어서 자신의 입술을 그의 입술에 겹쳤다. 창은 두 눈을 부릅뜨고 이 뜻밖의 상황에 경악했다. 그리고 잠시 후···. 둘의 입술이 떨어지고 보영은 담백하고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창에게 말했다. “사랑해.” “········보영··?” “시간 없으니 요점만 말 한거야. 이제···. 다시 싸워야 할 때라서 말이야.” 이보영이 그렇게 말한 다음에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세라핌들을 보면서 자세를 잡았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갑작스런 파워업에 관해서는 그녀도 짐작 가는게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에게 싸울 힘이 있다는 것이다. “후우····. 흡!!!!” 호흡을 정돈한 다음 자신에게 날아오는 세라핌들을 향해서 날카롭게 돌격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팔다리가 적들을 난타했다. 퍼퍼펑!!! 그녀에게 맞은 타격부위마다 세라핌들의 몸체가 터져 나갔다. 이전의 그녀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력이었다. 사실 그녀 자신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갑작스런 파워업은 그녀가 그동안 노력했던 성과가 일시에 폭발한 것이었다.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질 당시 이보영의 레벨은 199였다. 보통 그라운드 제로의 유저는 200레벨이 되면 특별한 레벨업을 하기 마련이다. 정운이나 박추성 배대호까지 모든 유저가 그렇게 했었다. 그리고 이보영의 경우 그런 레벨업을 바로 목전이 둔 상태에서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 후에 그녀는 신세계에서도 무수한 실전을 겪고, 그리고 제로 트리에서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경험치를 올렸다. 만약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 안에서였다면 진작 200레벨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에서 해방된 그녀에게는 그런 레벨업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504화 <위기를 넘기다> 마치 증기기관의 뚜껑을 꽉 막아 놓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솔직히 아무리 수련을 계속해도 그 뚜껑을 열어 버리기 전에는 더 이상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계기였다. 그라운드 제로라는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한계를 돌파할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원래 이보영의 정신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위로 올라가는 자들은 선악을 불문하고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근성없이 운으로만 위로 올라 갈 수 있을 만큼 그라운드 제로는 만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동안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다시 한 번 파우스트의 목을 노리는 동료들에 비해서 포기해 버린 자신에 대한 열등감···. 그런 여러 가지 감정들이 그녀의 마음을 약하고 하고 있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도망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어 갔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이번에 창의 위기 속에서 드디어 움직였다. 힘을 필요로 하는 강력한 염원이 드디어 그녀의 성장을 막고 있던 뚜껑을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려온 성과들이 상승효과를 발휘하며 폭발적인 레벨업을 하게 한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의 시스템이 없어진 상황이라서 정확한 레벨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그녀의 현재 레벨은 270~280정도는 될 것이었다. “아아아아아!!!!” 퍼퍼퍼퍼퍼퍽!!!! 아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그녀의 공격에 세라핌 대군은 좀처럼 그녀를 몰아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20기의 세라핌들이 그녀에게 무모하게 돌격했다가 파괴당했다. 비록 의지는 빈약하지만 전투적인 본능에 관해서만큼은 상당히 고성능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세라핌들이었다. 애당초 천사라기보다는 파우스트가 자신의 전투 병력으로 만든 존재였으니 당연했다. 이보영이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자 거리를 벌리고 최대한 상대의 힘을 빼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쳇···. 약삭빠른 것들····.” 이보영은 아까처럼 무작정 돌격 하는게 아니라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포위망을 구성한 세라핌들을 보고 혀를 찼다. 놈들은 저 상태로 치고 빠지듯이 이보영을 살살 말려 죽이려는 것 같았다.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거 곤란한데?” 이보영은 폭발적인 레벨업을 하면서 대미지도 모두 회복했고, 또 기력도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대략 20~30기 정도의 세라핌을 파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세라핌의 숫자는 970기 이상이다. 창을 데리고 이 정도 숫자의 세라핌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상황을 파악한 이보영은 재빨리 밑으로 내려가서 창을 낚아챘다. “보영? 뭐 하려는 거야?” “도망가야지. 상황이 안 좋아.” 원래 세라핌들을 상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죽을 자리를 찾았다는 심정으로 자원한 보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삶에 대한 새로운 집착도 생겼다. 그래서 창을 데리고 있는 힘껏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다. “비켜!!!!” 콰앙!!! 포위망 한 쪽을 우격다짐으로 돌파한 이보영은 세라핌 군단을 뒤로 하고 도망가려고 했다. 물론 그냥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세라핌들은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적에게 반응하는 세라핌의 특성이 이보영에게 몰렸다. “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놈들은 일제히 날개를 펄럭이면서 이보영을 따라왔다. “끈덕진 것들····.” 보영은 이를 갈면서 힘을 다해서 도망갔다. 다만 그녀의 기동력보다는 세라핌 군단이 약간이지만 더 빨랐다. 또한 품안에 있는 창을 신경 써서 움직여야 하다 보니 좀처럼 적들을 뿌리치고 도망가기도 힘들었다. 결국 이보영의 등 뒤를 세라핌 한기가 포착했다. 그리고 놈은 힘껏 이보영의 등짝을 관통하기 위한 공격을 찔렀다. 콰직!!! “칫!!!” 이보영은 그 공격이 자신에게 닿기 직전에 몸을 비틀면서 놈의 창대를 주먹으로 쳐서 부러트려 버렸다. 하지만 이 짧은 동장을 취하기 위해서 속도가 떨어진 틈에 다른 세라핌이 위에서 공격을 찍어 눌렀다. 더구나 그 공격이 노리는 것은 보영이 아니라 그녀의 품안에 있는 창이었다. 아마도 보영이 창을 감싸면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창을 보영의 약점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쾅!! “아악!!!” 창을 피하게 할 틈이 없었던 보영은 그 공격을 순전히 자기 몸으로 때웠다. 그리고 지면에 떨어진 보영을 향해서 수많은 세라핌들의 동시 공격이 날아들었다. 콰콰콰콰콰콰쾅!!!! 마치 운석의 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세라핌들의 투창 공격이 이보영에게 집중 되었다. 아무리 보영이 레벨업을 했다고 해도 이런 공격을 받으면 막대한 대미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보영의 품안에 있는 창은 확실하게 죽을 것이 분명했다. 보영은 자신의 방어력을 최대한으로 올려서 창을 감싸고 버텼지만···. 점점 대미지가 중첩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한계···. 인가?’ 그때였다. 어느 순간부터 폭음은 울리고 있었지만 그 자신에게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이상한 상황에 살며시 고개를 든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정운아.” “수고 많으셨습니다. 누님.” 박정운이 나타나 있었다. 다른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 말이다. 이보영이 시간을 끌기 위해서 나갔다는 것을 알고 난 직후 정운은 초조한 마음으로 전력이 모이기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로 트리 안에 있는 배대호와 이민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초 1초가 그렇게 초조하게 느껴진 적은 없는 정운이었다. 이보영이 간 이상 시간은 확실하게 벌어줄 것이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이보영을 확실하게 믿고 있는 정운이었다. 한다면 하는 여자. 그게 정운이 알고 있는 이보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정운이 알고 있는 이보여의 성격이라면 틀림없이 이번 전투의 장소를 자기 묘자리로 정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최종전에서 누구보다 아끼던 동생을 잃은 후 그녀는 항상 그래왔다. 마치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이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옆에서 창이 어느 정도 잡아주고 있는 듯 보이긴 했지만 좀처럼 불안정한 분위기는 사라지지를 않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정운에게 말도 없이 무모한 전투를 하러 갔다면 그 목적은 뻔했다. ‘절대로···. 죽게 할 수는 없어.’ 전우의 죽음은 그라운드 제로의 최종전에서 겪었던 그 사건 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시는 그런 기분은 겪고 싶지 않은 정운이었다. “정운씨····.” “침착해요. 당신이 흔들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어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정운을 슬기와 세레나가 양쪽에서 잡아 주면서 위로했다. 정운은 둘의 말에 조금이지만 마음이 위로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수상 각하!! 제로 트리에서 두 분이 귀환 했습니다!!” 미하엘이 문을 벌떡 열고 들어와서 숨 가쁘게 말했다. 그리고 정운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전원 현장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기다리지 않고 요격한다!!!” “옛!!” 정운의 말에 미하엘은 바로 준비된 편제에 연락을 다했다. 정운과 간부들이 먼저 움직이고 거기에 좀 늦기는 하겠지만 다른 전력들도 순차적으로 투입할 생각이었다. 사실 간부들의 전투력이 가우리의 전체 전력의 90%를 넘는 상황이니 큰 의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확실하게 나았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날아와서 딱 이보영의 위기 상황에 도착한 것이다. 정운은 자신의 뒤편에 있는 보영이 창을 자기 새기처럼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보기 좋습니다.” 순간 이보영은 얼굴이 빨게 졌다. “····웃····? 쳇.” 뭔가 변명을 하려고 하는 그녀였지만 그냥 말았다. 이제 변명할 이유가 없었다. “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정운이 감사의 말을 하자 이보영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빨리 가기나 해.” “예.” 그리고 정운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거기에는 이미 가우리의 간부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박정운, 박추성, 배대호, 이민지, 한중겸, 세레나, 이슬기, 윤정철, 김수민, 장 그레고리, 다이앤, 그리고 그 외에도 월드서버 출신의 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실질적으로 가우리의 핵심 전력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라운드 제로가 무너진 이후 이렇게 모든 멤버가 다 모여서 화려하게 판을 벌이는 것은 처음인가?” 박추성이 어깨를 풀면서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배대호가 피식 웃으면서 화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그럼 오랜만에···.” “화려하게 가 보죠!!!” 콰아아아앙!!!!!!!! 정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백여개는 될 법한 뇌전의 거검이 적들에게 날아가서 폭발했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가우리의 간부 대 세라핌 군단 1,000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으아아아아아!!!!!” “다 죽어 이 새끼들아!!!!” “편타난무!!!!” 퍼퍼퍼퍼펑!! 콰아앙!!! 쿠르릉!!!! 가우리에서는 간부들을 먼저 보내고 그 후에 후속 병력으로 일반 병력을 딸려 보냈다. 하지만 그 병력들은 현장에 도착하고도 그저 입을 쩍 벌리고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가세···.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준간부쯤 되는 전투원이 말했다. “가세? ······저기에?” “·········예. 그러려고 왔지 않습니까?” “··········어떻게 가세 할 래?” “··············.” “··············.” “··············.”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질려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간부들의 전투력이 자신들과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가슴 한 구석에서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직접 가우리의 간부들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일반 능력자들은 열등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일격 일격에 고막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굉음이 터진다. 지면이 갈라지고 대기가 일그러진다. 공격의 간접적인 여파만으로도 산이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무너졌다. 틀림없이 이 일대의 지도는 나중에 다시 작성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전투가 벌어 진다기 보다는····. 마치 저 지역 일대만 세상의 종말이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게····. 이 정도로 차이가 났었을 줄은···.” 누군가의 중얼거림은 이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들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나름 노력을 해서 힘을 손에 넣은 자들이었다. 그 과정은 저들과 자신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과정이라고 해도 얼마나 높이 얼마나 가열차게 단련했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이들이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은 전체적인 전황이 점점 아군인 가우리의 간부들에게 더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 막아!! 대호가 영창 계속 하도록 해!!” “민지 누님 오른쪽 맡깁니다!!” “4시 방향 하늘에서 20마리 온다!!!” 쉴 틈 없이 계속해서 싸우는 와중에도 가우리의 간부들은 끝없이 서로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끝없이 계속되는 외침이야 말로 가우리의 간부들이 세라핌 군단을 조금씩 압도하고 있는 이유였다. 단체 사냥에 능숙한 이들은 시시때때 변화하는 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 하는 방법을 알았다. 설사 자신이 손이 닿지 않는 순간이라고 해도 동료들에게 말하면 누군가는 서로 응해줬다. 순수하게 전력으로만 본다면 세라핌 1,000기는 결코 작은 전력이 아니다. 하지만 작전이고 뭐고 없이 그저 전투본능으로만 싸우고 있는 세라핌 군단들과 달리 가우리의 인물들은 단체전이 되면 상승효과를 내면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공격과 방어의 분할. 너무나 완벽한 간부들의 팀워크는 이렇다 할 의지도 없는 전투 인형들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505화 <위기 후의 또 위기> 정운과 가우리 간부들의 치열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그 현장에 있는 자들만이 아니었다. “주인님. 점점 아군이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 역시 화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건가?” 메데이아와 함께 커다란 영상으로 전투 현장을 보고 있는 파우스트는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그런 파우스트를 향해서 메데이아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세라핌의 업그레이드에 실패해서 이런 결과가···.” “아니 상관없다.” 파우스트는 담담한 얼굴을 하고 메데이아에게 말했다. 사실 세라핌의 경우 파우스트의 신권으로 만든 존재이긴 하지만 그 존재를 설계하고 만들어낸 것은 메데이아였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세라핌들이 정운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담담한 얼굴을 했다. “어차피···. 세라핌 군단을 동원한다고 해서 이길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잊었느냐? 저 놈들은 나에게 패배의 굴욕을 안겼던 자들이다.” “그것은····.” 메데이아는 그것은 우연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감히 주인인 파우스트의 의견에 반대를 말 하는 것 자체를 망설인 것이다. “뭐, 상관없다. 하나의 계획이 실패 했을 때 제2, 제3의 계획을 계속 준비해 두는 것이야 말로 책사의 임무지.” “그 말씀은····.” “타이밍을 잘 맞춰서 터트려라. 놈들이 경악하는 얼굴을 보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주인님.” 메데이아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영상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박정운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이걸로 끝이다.” 과연 파우스트가 준비한 또 한수는 무엇이기에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콰르르르르릉!!! 정운이 강력한 뇌전으로 세라핌 두 기를 동시에 증발 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 두기를 끝으로 이 자리에 있는 멀쩡한 세라핌은 한 기도 없었다. “후우····. 이긴 건가?” “그런 것 같긴 하네.” “으아·····. 피곤해라····.”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겠네. 너무 무리했어.” 가우리의 간부들은 모두들 흐트러진 차림새를 가다듬을 틈도 없이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압도적인 팀워크와 능숙한 대처로 인해서 희생자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조금만 집중력을 떨어트리면 치명타를 먹을 수 있는 위험한 전투였다. 아무리 가우리의 간부들이 초인이었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가우리의 간부들이 ‘모두’ 지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하엘이 절망적인 소식을 가지고 왔다. “수상각하!!! 다크니스··· 왕국에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빌어먹을.” 그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 정운이었다. 다크니스 왕국의 공격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되었다. 더구나 가장 골치 아픈 형태로 말이다. 가우리의 간부들이 힘을 합치면 세라핌 1,000기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팀워크가 좋은 것이다. 그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다크니스 왕국의 침략은 일곱 방향으로 나눠서 공격해 오고 있었다. “아마도···. 악마왕이라는 것들이 여러 방향으로 나눠서 공격해 오고 있는 거겠지?” “예. 그것도 정규 군단은 뒤에서 따라오는 형식이고 일단 악마왕이라는 자들이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들의 무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우리 가우리나 쓸 법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운의 말 대로였다. 가우리의 경우 본격적인 침략 전쟁을 하려고 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전에 연합군과의 전쟁은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 나름 정석대로 진행했을 뿐. 정말 섬멸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가우리의 간부들만 가서 연쇄 테러를 하듯이 공격하는 것이 훨씬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이라는 것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망설일 시간조차 없는 건가?” 정운은 이를 갈았다. 선제공격이 불가능한 다크니스 왕국이 어째서 먼저 공격을 한 걸까? ‘쯧, 바보 같은 생각이지····. 이미 제국도 움직였는데.’ 정운의 생각 대로였다. 이미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법칙은 무너졌다고 생각 하는게 좋을 것이다. 아마 파우스트의 신권으로 보호되고 있는 나라들이 이렇게 일제히 공격하고 있다는 것은, 파우스트가 가우리를 끝장내기 위해서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좋다. 어디 한 번 와 봐라. 미하엘!!” “예. 수상각하!!” “놈들이 오는 길목에 여기 있는 인원을 나눠서 배치해. 이동까지 포함해서 여기 있는 주력 멤버들은 모두 조금이라도 더 회복시켜!!” “옛. 알겠습니다.” 정운은 동료들을 보면서 말했다. “상황은 들은 대로입니다. 알고 있겠지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지? 걱정마라.” 정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중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상황이 좋다니 안 좋니 라고 따질 여유는 없었다. 확실히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여기서 전투까지 회복에 힘쓴다고 해도 얼마나 회복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거기다 적들은 유일하게 가우리가 싸우기를 꺼려 할 정도로 강력했던 다크니스 왕국. 가우리의 간부들 중에 이민지조차 무승부가 고작이었을 인물들이 일곱이나 있는 곳이었다. “뭐··. 그래도 하는 수밖에 없지.” “이정 위기야 항상 있어왔으니까···.” “나도 회복 됐다. 가자.” 이보영까지 자리에 어느새 회복해서 여기에 끼어들었다. 이제는 승산이 어쩌니 저쩌니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무조건 싸우고 이기는 수밖에 없었다. 모여서 화력을 집중시켰던 제국과 달리 다크니스 왕국이 병력을 분산 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크니스 왕국의 핵심 전력인 7인의 악마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결국 이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가우리에서도 전력을 분산 시킬 수밖에 없었다. 정운을 비롯해서 가우리의 간부들은 저마다 미하엘이 정해준 지역으로 이동해서 거기서 적을 기다렸다. 적의 진격경로와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계산해서 조금이라도 더 늦게 적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미하엘은 최적의 경로로 아군을 배치했다. 그러나··. 아무리 늦게 만난다고 해도 결국은 시간 벌기일 뿐. 제대로 컨디션을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로 가우리의 간부들은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들과 조우해야 했다. 그리고····. “넌?” “네놈은···?” “이런····. 이건 말 도 안 돼!!!” 악마왕과 만난 가우리의 간부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민지는 오래전에 악마왕이라는 자들과 한 번 전투를 해 봤었다. 하지만, 그때는 상대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이렇다 할 대화도 없었기에 사실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끝장을 보기 위해서일까? 악마왕들도 가감 없이 자신들의 맨얼굴을 보이고 나타났다. 문제는···. 그 면면들이 모두 알고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정운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였다. “어째서 네놈이····?” “왜 놀랐나? 내가 여기에 있어서?” 경악하고 있는 정운의 얼굴을 보면서 그리티니의 이름을 부여 받은 악마왕인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통쾌하다는 듯이 이죽 거렸다. 프란체스코 갠돌피니. 원래는 그라운드 제로의 월드 서버에서 제법 강팀이었던 이탈리아팀을 이끌고 있던 강자였다. 그러다가 당시 한국팀과 전쟁을 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정운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때 죽었는 줄 알았는데 설마 여기서 이런 형태로 다신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설마··. 그렇다면 다른 악마왕들도 모두?” 정운의 말에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입술이 귀에 걸리도록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모두들 구면이지.” “···········.” “과연 어떤 얼굴들을 하고 있을까? 일일이 확인 할 수 없는게 조금 유감이군.” “칫····.” 정운은 이를 갈았다. 모두들 제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투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군이 절대적으로 앞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라운드 제로 시절부터 쌓아온 무수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접어 두는게 좋을 것 같았다. 상대들 역시 자신들과 같은 그라운드 제로 출신이라면···. 전투의 경험치에서 크게 우위를 차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예상대로···. 다른 가우리의 간부들도 모두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네놈은···? 미국팀의?” “그렇다. 블레인 허드슨이다.” 박추성이 면전에서 마주한 인물은 그리드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블레인 허드슨이었다. 한때는 미국팀의 리더로 한국팀이 월드 서버에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라운드 제로 최고의 세력으로 그 이름을 날렸었다. 그런 그가 박추성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배대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넌···? 배대호라고 했었지? 쳇, 박정운 그 놈이 걸리길 바랬는데 말이야.” “정운이는 바빠. 그리고 이미 한 번 눌러준 패배자를 상대로 놀아줄 만큼 우리 리더가 한가하지는 않아.” “말 다 지껄였느냐? 네놈?” “아니. 할 말은 아직도 많은데? 다 듣고 시작할 테냐?” “그냥 죽어라!!!!!!” 콰아앙!!!! 배대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알렉세이 찌모페이. 전 러시아 팀의 톱이었던 남자다. 그는 정운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깊었는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배대호라서 실망한 듯 했다. 이민지 역시 다시 악마왕과 맞섰다. 그녀는 좀 다른 의미로 구면이기도 했다. “넌···? 그때 나하고 싸웠던 놈 같지는 않군.” 정령을 소환하면서 말하는 이민지를 보며 상대는 웃으면서 가면을 벗었다. “그때 네가 싸웠던 상대는 러스트다. 그 년이 널 좀 봐준 덕분에 살아서 도망 갈 수 있었지.” “호오···. 그러셔?” 이민지는 살짝 열이 받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상대인 악마왕은 가면을 벗으면서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겠지? 오랜만이군.” “넌············. 누구?” 빠득!!! 진심으로 기억이 안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이민지를 보면서 상대는 이를 악 물었다. “라스의 칭호를 받은 베르너 프리치다.” “그게 누군데?” “이익···. 그라운드 제로에서 동독팀의 리더였고 너희 때문에 야망이 무너졌던 그 베르너 프리치다!!! 그래도 기억이 안 나냐?” “안 나. 너희 같은 조무래기들 기억하기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좀 길어야지.” “죽여주마···.” “어디 해 보렴.” 이민지가 여유 있게 손가락을 까딱 거렸고 둘은 본격적으로 격돌하기 직전이었다. “·············.” “·············.” 다른 만남들이 적의와 분노의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면 그저 조용하게 침묵만 흐르는 곳도 있었다. “후우···.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까? 아니면 미하엘이 신경을 써준 걸까?” 세레나는 눈 앞에 있는 상대를 보면서 검을 겨누고 말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에게 내 뒤치닥 거리를 맡기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군.” “·············.” 세레나가 검을 겨눈 상대는 무심한 표정과 생기가 없는 눈동자만 빼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상대였다. 바로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인 슬로트였다. “내 영혼의 나머지 일부. 모두 되찾고 말겠다.” “····와라.” 콰아앙!!!!! 두 명의 세레나가 화려하게 격돌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삼연참 들어갑니다. 506화 박정운부터 시작해서 박추성, 배대호, 이민지, 세레나까지는 일대일로 악마왕을 하나씩 배정했다. 사실 이렇게 한 것은 미하엘의 작전이었다. 만약 이 다섯 명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만 준다면··. 그렇다면 다른 곳에 모든 전력을 집중 시키면서 각개 격파를 진행해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중겸은 자신에게 따라 오려는 슬기와 김수민을 사양했다. “걱정하지 마. 나에게는 따로 아군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며 그는 아테나, 메두사, 왕귀인을 이끌고 한곳을 요격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만난 것은····.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인 걸?” “네놈은. 틀림없이 한국팀의 발정난 조련사!!?” “누가 발정난 조련사야!!? 자기 팀 관리도 못해서 다 망친 놈이!!!?” “다 지껄였느냐!!? 이 난봉꾼 놈아!!!” “아직 덜 지껄였다!! 어디 날 샐 때까지 들어 볼 텐냐!!!?” “죽어랏!!!!!” 콰아아아앙!!! 자기소개도 하기 전에 격렬하게 격돌하는 한중겸의 상대는 프라이드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중국팀의 리더였던 장한이었다. 사실 세레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한국팀에 강한 원한을 지니고 있을 존재들 뿐이었다. 이탈리아 팀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 미국 팀의 블레인 허드슨. 러시아 팀의 알렉세이 찌모페이. 동독 팀의 베르너 프리치. 중국 팀의 장한. 이들 모두는 그라운드 제로의 월드 서버에서 자기 자리를 잡았던 강팀의 리더들이었다. 한국 팀이 월드 서버에 진출하면서 팽팽하던 균형이 무너졌고 결국 이들은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거나 한국 팀에 먹혀 버렸었다. 이들이 한국팀, 정확하게 말하면 그 한국팀을 이끌었던 박정운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마치 일본팀의 도조 마사토처럼 말이다. 파우스트는 이들의 영혼을 이용해서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으로 만들고 수만년에 걸쳐서 천천히 그 원한과 힘을 숙성 시켜온 것이다. 원래 박정운과 한국팀원들에게 강력한 원한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수만년의 시간동안 복수의 칼을 달아온 자들이다. 아무리 가우리의 간부들이라고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자들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여섯 곳들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딱 한곳만은 전투를 치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만 치르지 않았을 뿐. 그곳의 분위기는 어느 곳 보다 훨씬 더 비통했다. “지영아····. 네가···. 네가 어떻게·····.” “미안해 언니.” 천하에 무서운 것 없는 여장부인 이보영이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존재인 동생이 있는 것이다. 이보영, 그녀가 삶을 살아가던 그 이유 자체가 눈 앞에 적으로 나타났다. 그녀에게는 이 이상 잔혹할 수는 없었다. “보영이 언니···. 여기는?” 망연자실한 그녀를 보고 옆에서 슬기가 말했다. “기다려. 나도 생각 좀 하게····.” 보영의 눈살은 잔뜩 찌푸려졌다. 보영이 슬쩍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슬기뿐만 아니라 다이앤과 윤정철, 김수민까지 있었다. 혹시 모를 예비 병력으로 남아있는 홍린을 비롯한 자잘한 전력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전력을 여기에 집중 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하엘의 작전은 이 부분에서 다수의 팀웍을 앞세워서 최대한 빨리 적을 압도하고··. 이 전력이 돌아가면서 팽팽한 전국을 유지하고 전선으로 가서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었다. 컨디션이 최상이라도 어려운 상대인 악마왕들을 상대로 지금 가우리의 간부들은 전체적으로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얼마나 빠르게 진격을 하느냐? 에 따라서 미하엘이 세운 이 작전의 성공 가능성이 크게 좌우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이보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영아. 너···. 여기에 네 의지로 싸우러 온 거니?” “아니요.” 러스트의 이름을 받고 있는 이지영은 고개를 저으면서 부정했다. 슬로트로 완전히 개조된 세레나와 달리 이지영의 경우 온전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로 온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싸우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전신에서는 서서히 힘이 차올랐다. “지영아·····.” 이보영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자기 동생을 바라봤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들은 싸워야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보영아···. 너도 알겠지만.” “알아요. 안다고요··········.” 윤정철의 말에 이보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각오가 된 얼굴을 하고 자신의 동생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중겸이 오라버니쪽으로 가!! 지영이는 내가 맡을게.” 이보영이 결정한 최선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이 사정 때문에 다른 동료들이 모두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동료들과 모두 힘을 합쳐서 자신의 동생을 몰매 놓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 혼자서 지영을 상대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보영씨? 당신 혼자서는 무리에요.” 다이앤이 보영의 결정에 반대했다. 사실 그녀가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앚기 악마왕 클래스를 혼자서 상대 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보영에게 중요한 것은 힘의 우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해야 해. ·····내가 하고 싶어.” 보영이 모두를 보면서 처연하게 말했다. 만약 정말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이지영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자신이어야 했다. 그리고 설령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눈앞에서 지영이의 손에 동료들이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가 않았다. 차라리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편이 속이 편하지···. 그래서 보영은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이지영을 상대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가장 먼저 이해한 것은 다름 아닌 윤정철이었다. “····어쩔 수 없지. 모두 가자.” “정철이 오라버니.” “어쩔 수 없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 윤정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소환수인 거대 독수리를 소환해서 그대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갈 수 없습니다.” “!!!!!!!!!!!!” “!!!!!!!!!!!!” “!!!!!!!!!!!!” 어느새 접근한 걸까? 일행의 한 가운데로 접근한 이지영은 윤정철의 가슴에 자신의 주먹을 가져가서 툭 하고 데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누구도 이지영의 기척을 잡아내거나 그녀의 동작을 따라 잡지 못했다. 아니, 한 박자 늦게 다이앤이 반응해서 이지영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퍼어엉!!! “크윽····.” 이지영의 공격이 터지는 것이 한 박자 먼저였다. 근거리 촌경.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윤정철의 입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이게!!!!” 다이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같은 한국팀과 달리 원래 영국팀이었던 그녀로서는 이지영에 대한 마음이 다른 사람들 보다는 조금 약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남자가 심각한 한 방을 먹는 광경을 바로 지척에서 봤다. 평소에는 약간의 내숭과 인내심으로 억누르고 있지만···. 원래 그녀는 상당히 한 성깔 하는 여성이었다. “죽엇!!!!” 파파파파팟!!!! 공기를 가르는 그녀의 검격이 공간을 자욱하게 미우고 이지영을 공격했다. 보는 사람들 모두가 이 공격이 이지영에게 적중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비록 이 공격으로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제법 대미지를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무디고 난잡해요.” 다이앤의 검격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이지영은 마치 신기루와 같은 움직임으로 그녀의 검격을 피해서 다이앤의 품안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손바닥을 가져다 데었다. 그 순간 다이앤은 심장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퍼엉!!!!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충격이 폭발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 다이앤은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이지영의 발경은 그녀의 몸이 아니라 허공에서 폭발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옆에서 등장한 손이 이지영의 팔을 밀어냈기 때문이었다. “·····지영아.” “역시, 언니 말고는 제 공격에 못 따라 오네요.” 이지영은 자신의 팔을 밀어낸 이보영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큭···.” 다이앤은 서둘러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이지영의 주변을 포위했다. 이보영 한 명한테 맡긴다? 절대 그럴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이전에 한국 팀에 있을 때의 이지영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다행이라는 것은, 이지영의 스피드에 유일하게 대응 할 수 있는 이보영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보영은 자신의 몸을 점점 휘감고 있는 검은색 오로라를 보면서 말했다. “언니, 알고 있죠? 언니가 전위를 맡아주지 않으면 절 상대 할 수 없다는 것?” “···············.” “다이앤 씨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정운이하고 나란히 투톱을 자랑하는 스피드의 주인공이지만···. 그녀의 속도는 정밀하게 근거리를 이동 하는게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고속으로 적을 덮치는 돌격 스타일이에요. 근거리에서 절 따라 올 수 있는 것은 언니 뿐 이에요.” 이지영은 차분하게 이보영을 향해서 설명했다. 그녀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이제 목 밑으로는 모두 검은새 오오라에 휩싸여 버린 이지영은 처연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언니···, 동료들과 함께 날 편하게 해 줘요. 이제는··. 나도···. 편해······.” 그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검은색 오로라가 드디어 그녀의 전신을 뒤덮어 버렸다. 그리고는·····.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녀의 전신을 휘감은 검은색 오로라가 소용돌이 형태로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소용돌이가 사라진 후 나타난 것은···. 그저 검은색 갑옷을 입은 여성형 전사 한 명 뿐이었다. 이보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눈에 눈물을 그렁 거리면서 말했다. “모두···. 도와 줘. 내 동생을 편하게 해 줘.” “··············.” “··············.” “··············.” 심장을 씹어 먹는 듯한 고통 속에서 뱉어내는 이보영의 말에 대답하는 동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큭···. 제길···.” 정운은 자신의 상대인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와 싸우면서 이를 갈았다. “뭐 하지? 고작 이 정도였나? 박정운?” 검은색의 뇌전을 전신에 휘감고 하늘 빼곡하게 검은색 뇌전의 거검을 가득 메우고 있는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얼굴에는 승리감과 도취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흥···. 네놈, 원래는 그런 전투 스타일이 아니었을 텐데?” 원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주 무기는 클로였고 그걸 이용한 근접전이 특기였다. 마치 한 마리의 짐승을 연상하게 하는 그 전투 스타일로 이탈리아 팀의 톱으로 군림하던 놈이었다. 하지만 지금 놈의 전투 스타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운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눈살을 찌푸리는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얼굴을 보면서 정운은 이죽 거렸다. “아니 그냥···. 부러우면 말 하지 그랬어?” “죽여 버리겠다!!!!!!” 콰아아아앙!!! 황금빛 뇌전과 칠흑의 뇌전이 다시 허공에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하지만 뒷심이 모자람일까? 결국은 황금빛 뇌전이 약간 밀리면서 정운은 뒤로 물러났다. 정운은 굳이 물리해서 힘 싸움으로 들어가지 않고 일단 뒤로 물러나면서 힘을 온전했다. ‘빌어먹을····.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천하의 박정운에게도 이번 전투는 상당히 힘든 난이도의 미션이었다. 그리고 정운 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인물들 역시 정운과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조금씩 시간을 끄는 것이 한계였고 도저히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숫적 우위를 자랑하는 한중겸 마저도 장한을 상대로 압도를 못했다. 결국 이 전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가우리의 전력이 집중되어 있는 전선. 이보영 VS 이지영의 결투에서 결정될 것이었다. 507화 “으아아아아아!!!!” 퍼어엉!!! 작은 산하나 정도는 날려 버릴 수 있는 이보영의 뒤돌려 차기가 이지영에게 작렬했다. 하지만 그런 묵직한 공격도 한쪽 팔을 세워서 막은 이지영은 반대쪽 발을 살짝 아래로 뻗어서 축이 되고 있는 이보영의 발을 무너트렸다. 비행 스킬을 가지고 있는 이보영이었지만 갑작 스런 하단 공격에는 순간 지면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큭···.” 그리고 쓰러진 그녀를 밟아 버리기 위해서 이지영의 정권이 그녀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퍼어엉!!! 극소 부위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준 슬기의 실드가 이지영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순간 동작이 멎은 것을 놓치지 않고 다이앤이 돌격했다. “엑셀!! 기어 맥스!!!” 퍼어어엉!!!! 정운의 뇌광을 제외하면 아마도 가우리에서 가장 빠른 돌격기일 것으로 추정되는 다이앤의 엑셀 스킬. 빛살이 번쩍이는 순간 다이앤이 이지영을 덮였다. 덮였지만····. 콰아앙!! “쳇!!!” 마치 빛이 수면에 닿고 굴절 되듯이 다이앤의 공격이 이지영에게 작렬하려는 순간 그녀의 공격은 살짝 꺾이면서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 후에 다이앤을 공격하려는 것을 막은 것은 김수민의 채찍공격이었다. 쾅!! 콰쾅!!! 사납게 날뛰는 거대한 용과 같은 채찍들의 공격에 이지영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그리고 김수민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 거렸다. “후우···. 이건 거의 무술의 달인을 상대하는 기분인 걸?” 그런 김수민의 말에 옆에 다가온 윤정철이 활을 겨누면서 말했다.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수만 년을 수련했다고 가정하면···. 달인도 보통 달인은 아니지.” “·····쳇. 그라운드 제로 상급 유저의 능력을 지닌 무술의 달인? 사기 캐릭도 정도가 있지···.” 김수민이 한숨을 내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악마왕이라는 존재들 자체가 파우스트에 의해서 상당한 힘을 얻은 존재들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순수한 무술의 달인수준의 기술까지 더해지니···. 이건 정말 사기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좀 전에 다이앤의 돌격···.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 내면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대미지를 안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지영은 자신과 다이앤이 격돌하기 직전,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완벽한 타이밍으로 파고 들어서 손등으로 부드럽게 밀어내는 것이다. 저력으로 격돌한 다이앤은 그대로 공격 궤도가 변하면서 다른 쪽으로 날아가서 처박혀 버린 것이다. 윤정철의 화살도, 슬기의 마법 공격도, 지금의 이지영에게는 큰 대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지금 지영에게 그나마 통할 공격을 할 수 있는건 같은 무투가 타입인 보영이니까.” “아까부터 계속 밀리고 있는데요?” “그나마 보영이니까 밀리는 정도로 끝나는 거다. 우리가 도와 주면서 빈틈을 찾을 수밖에 없어. 슬기야.” “예. 정철이 오라버니.” “네 방어마법이 핵심이다. 공방에 방해되지 않도록 보영의 치명상을 막아줘라.” “예. 알겠어요.” 이지영과 이보영이 근접 전투로 찰싹 달라붙어 있는 이상···. 슬기는 방어 쪽에 집중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후우······.” 보영은 머리에 피가 오르는 것을 참으면서 최대한 냉정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사실···, 그라운드 제로 시절만 해도 두 자매중에 더 강한 것은 보영이었다. 레벨은 비등비등했지만 둘이서 간단하게 대련이라도 하면 항상 이기는 것은 보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녀석 봐 주는 것 아니야?’ 지영이 어딘지 모르게 전력을 다하지 않고 언니인 자신의 체면을 세워 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지영이 전혀 봐주지 않고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악마왕으로서 파우스트에게 받은 힘도 한 몫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순수한 무술 능력만큼은 이지영 그녀의 것이었다. ‘후우···. 잡념을 버려야 돼.’ 동생과 동료들의 목숨을 저울질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했다. 순수한 투사의 마음이 그녀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집중해라. 이 순간에 모든걸 쏟아 부어라. 다른 여유는 없다. 라고 말이다. 다시 한 번 그녀가 이지영과 격돌했다. 날카롭고 빠르게 뻗어가는 그녀의 연타를 상대로 이지영의 손길은 마치 허공의 공기를 휘 젖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퍼퍼퍼퍼퍼퍼펑!!! 그리고 보영의 전신에서 뻗어 나오는 화려한 타격은 그 부드러운 방어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이지영의 방어는 마치 여기로 올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미 여유 있게 보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흡!!!!!!” 보영은 이 방어를 상대로 더욱더 가열차게 공격을 가했다. ‘묵직한 게 필요하지 않아.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해.’ 보영은 킥을 줄이고 양 주먹의 회전을 더욱더 빠르게 올렸다. 마치 기관총을 방불케 하는 그녀의 펀치가 보영의 방어를 난타했다. 스킬로 상대를 할 수 없다면···. 화력으로 압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영의 방어막이 아무리 탄탄하다고 해도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어딘가에서 빈틈이 생길 것이라고 믿고 두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퍼억!!! 드디어 보영의 주먹 하나가 이지영의 방어를 뚫고 그녀의 몸에 작렬했다. 체간에 정확하게 맞은 공격은 그녀에게 큰 대미지를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짧은 순간 상대를 뒤로 밀어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응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윤정철이었다. ‘지금이다!!!’ 수십 개의 화살이 동시에 시위에 걸렸다. 그리고 윤정철의 머리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화살들이 이지영을 향해서 날아갔다. 퍼퍼퍼퍼퍼펑!!!! 마치 융단폭격을 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퍼붓는 것 같은 느낌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지금의 이민지가 가지고 있는 방어력에 큰 대미지를 줄 수 없었다. 대신 윤정철이 노리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음!!!?” 공격을 견디고 다시 움직이려던 이지영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순간 자신의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밑을 내려다 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발목을 감고 있는 두 자루의 채찍이었다. “나이스 어시스트입니다. 형님!!” 김수민은 자신의 양손에 달려있는 채찍을 있는 힘껏 위로 잡아 당겼다. 그러자 이지영의 몸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 대고 다이앤이 검을 겨누고 전신의 힘을 모았다. “엑셀··. 기어 맥스!!!” 퍼어어어엉!!!!! 정운의 뇌광이 깔끔하고 완벽한 선과 같은 공격이라면···. 같은 돌진기라도 다이앤의 돌진기는 박력이 있었다. 마치 로켓을 발사하는 것처럼 지면에 커다란 충격을 남기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공격이 이지영을 향해서 작렬해 갔다. 최강의 속도와 거기에 더해진 한점 돌파의 절대 공격. 일단 적중하기만 하면 그녀의 공격은 틀림없는 치명타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찌지지지지지지직···. 놀랍게도 그녀의 공격은 이지영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에 바로 멈추었다. 경악스럽게도 이지영은 양손을 합장하듯이 겹쳐서 다이앤의 공격을 잡아낸 것이다. 그 초고속의 공격을···. 그야말로 찰나의 타이밍이 어긋나도 절대로 할 수 없는 묘기를 보인 것이다. 윤정철의 눈가림과 김수민의 구속으로 인해서 움직임이 제한된 상황에서 피하거나 흘려버리는 것은 확실히 무리다. 하지만 설마하니 그 초고속의 공격을 잡아낼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 “예상하고 있었지.” “예상하고 있었지.” 모두들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이지영이라면 그 정도의 방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예전의 동료들은 모두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바로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기에···. 지금 이지영의 배후에 이보영이 결정타를 먹일 찬스를 잡고 나타난 것이다. 양발이 김수민에게 잡히고 양팔은 다이앤의 공격을 막고 있다. 이 상황이라면 아무리 무도의 달인이라고 해도 절대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미안, 지영아.’ 아주 짧은 순간, 이보영은 서글픈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의 몸은 동료들이 만들어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패왕단공권(敗王斷孔拳)!!!” 피유우우웅!!!! 주먹을 내질렀다. 라기 보다는···. 소음기를 단 권총을 발사했다. 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런 작은 소리와 반대로 이보영의 주먹이 작렬한 순간은···. 퍼어어어엉!!!!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이지영은 마치 바람개비가 돌듯이 빙글빙글 돌면서 지면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다시 일어나기 전에 이제까지 후방에서 최소한의 방어만 하면서 대기하고 있던 슬기가 움직였다. “화극염(火克炎), 화염에 화염을 더하라. 세상을 멸할 원초의 화염이여. 나의 적에게 작렬하라. 주작멸천(朱雀滅天)!!!” 슬기 정도의 메이지는 어지간하면 캐스팅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고위 메이지가 캐스팅을 할 때는 그 나름대로 엄청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대륙의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싸우고 있는 가우리의 간부들과 악마왕들이 모두 볼 수 있었다. 하늘을 뚫고 어디까지인지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장엄하게 솟구친 거대한 불기둥을 말이다. “저건··? 슬기의 기술인데? 결정타를 먹인 건가?” 정운은 멀리 솟구친 불기둥을 보면서 중얼 거렸다. “어디 한 눈을 파나!!!!” “칫!!!” 콰아아아앙!!!! 비록 눈앞에 있는 프란체스코 갠돌피니 때문에 오래 볼 수는 없었지만 정운의 입가에는 빙긋 미소가 흘렀다. 슬기의 저 기술이 작렬했다면 일단 적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저것은 슬기가 쓸 수 있는 최강의 기술로···. 일단 작렬만 한다면 그 위력은 정운이라고 해도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나도 좀 더 힘내 볼까?” “뭐라고 중얼 거리는 거냐!!?” “알거 없다!! 죽어!!!!!!!” 콰아아아아앙!!!! 정운의 뇌광이 정면으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에게 작렬하면서 제법 큰 산맥 하나를 박살내 버렸다. 다른 곳들도 별 다를바 없지만···. 이 전투가 끝나는 대로 대륙의 지도는 다시 그려야 할 것이다. “크으···. 으윽····.” 이지영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오로라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상처 투성이의 이지영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상을 입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가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후우····. 역시 졌네.” 그라운드 제로에서 이지영은 차가온 포커 페이스로 유명했다. 그녀가 이렇게 허물없이 편안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동생을 보면서 이보영은 가슴이 쓰라렸다.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동생이었지만···. 동료들 전원과 그리고····. 이제 막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 자신의 사랑마저 모두 동생 때문에 희생 시킬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친 자매인 이보영은 알 수 있었다. 지영이 자신을 쓰러트려 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전투 자체는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파우스트의 의지에 조종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래도 그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지영의 의지는 전해져 왔다. “쿨럭···. 언니··. 잠시 이리로 손 좀···.” 지영은 보영을 부르면서 파르르 떨리는 한쪽 손을 내밀었다. 보영이 그 손을 잡자 점점 식어가는 동생의 체온이 자신의 손으로 전해져 갔다. “언니, 고마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할 틈은 없지만, 뒤를 잘 부탁할게. 다음에 만날때는 좀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건 잘 부탁해.”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해 하는 보영을 보면서 이지영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와 보영이 맞잡은 손에서 환한 빛이 나더니 그 빛은 이내 보영의 몸으로 흡수되어 갔다. “지영아····.” 보영은 자신의 안으로 지영의 영혼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따스하고, 그리고 그리운 느낌이었다. 보영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고는···. 지영의 시신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지영의 죽음과 함께 일행에게는 잠시간의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가장 먼저 독하게 정신을 차린 것은 윤정철이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을 보고 말했다. “슬퍼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다른 곳에 가세하러 가자!! 여기서 가장 가까운 장소는···.” “그럴 필요 없어요.” 윤정철의 말을 끊으면서 보영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필요 없다니? 어째서··?” “이미 끝났을 거에요. 지영이가····. 나한테 전해 줬어요.” “···········?” 윤정철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 순간 다른 전장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던 다크니스 왕국의 간부들은 크게 곤혹 스러워 했다. 508화 “큭··. 러스트 그 년이···?” 갑작스럽게 힘이 뚝 떨어진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를 보고 정운은 뭔가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이 바로 기회라는 것이다. “흑토!!” “히히힝!!!” 흑토를 소환한 정운은 등 뒤에 올라타서 길이가 100미터는 훌쩍 넘어갈 것 같은 뇌전의 거검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정운의 뇌전뿐만 아니라 흑토의 흑염까지 함께 뒤섞여서 강력한 출력을 내고 있었다. “한 방에 끝내주마····.” 이를 가는 정운을 보면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다급하게 말했다. “잠··. 잠깐, 비겁하다!!!!” “닥쳐!!!!” 비겁이고 나발이고···. 전쟁 중에 그런걸 따질 만큼 정운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뇌광!!!!” 피이이이잉!!!!! 정운과 흑토, 그리고 100미터가 훌적 넘을 것 같은 황금빛 거검까지···. 그 모든 것이 일순간 아주 얇은 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선이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를 관통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지평선에 도착했다. “후우·····.” 치이이이익···. 온 몸에서 마찰로 인한 연기를 뿜어내면서 정운은 호흡을 정돈했다. 지금이 찬스다. 라고 생각한 순간 뒤를 생각하지 않고 전신의 힘을 다 끌어내서 날린 최강의 일격이었다. “···········.” 적막 속에서 홀로 남은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허무한 표정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정운을 바라봤다. 어느새 황혼이 찾아온 걸까?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석양을 등지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운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내 영혼을 팔았는데······.” 스르르륵···. 말을 하기 시작하자 프란체스코 갠돌피니의 몸이 모래석처럼 허무하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결국은 똑같은 적수에게 목숨을 잃었는가? 나는·····. 왜·····.” 결국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그대로 프란체스코 갠돌피니는 한 줌의 먼지로 돌아갔다. 한 때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당당히 월드 서버의 강자로 군림했고···. 그리고 신세계에서도 수만년 동안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 중에 하나인 그리트니로 군림했던 프란체스코 갠돌피니. 결국 그는 박정운에게 두 번이나 죽어 버리면서 종말을 맞이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 죽어라!!!” 무한의 영사로 하늘을 빼곡하게 덮은 박추성이 블레인 허드슨의 전신을 잘게 난자해버렸다. “빌어먹을!!!!!” 블레인 허드슨은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의 최후에 저항했지만···. 결국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크윽···. 빌어먹을, 러스트 그 년이 배신만 하지 않았다면·····.” 배대호의 극대 마법을 정통으로 맞은 알렉세이 찌모페이는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갔다. 그리고 그가 바닥에 떨어져서 추락하는 순간 배대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못 믿을 동료끼리 뭉쳐봐야 고작 그게 한계인 거다. 믿을 만한 놈들을 만나야지.” 이민지와 베르너 프리치의 전투도 끝을 고했다. “배신이고 뭐고, 그건 너희 사정이지. 이프리트!!!” “큭··. 잠깐, 잠깐만 우리 거래를····.” 콰아아앙!!!! 아마 악마왕들 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은 것은 동독의 베르너 프리치일 것이다. 원래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다른 세력간의 눈치를 보며 저울질 하고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를 반복하던 남자였다. 박쥐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파우스트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긴 모양이지만···. 결국 그 마지막 결정을 후회하며 죽어 가는게 고작이었다. “갑자기 약해졌는데···? 어떻게 할까? 이대로 죽여!?” 아테나는 자신의 창 끝을 장한의 목에 겨누면서 한중겸에게 의사를 물었다. “내 꼴을 봐라. 살려 두라고 하겠냐?” 한중겸은 전신에 제법 굵직굵직한 상처를 입고 있었고, 그런 상처를 옆에서 왕귀인과 메두사가 알뜰살뜰하게 치료해 주고 있었다. 테이머의 특성상 본인 보다는 소환수의 강함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장한은 그 점을 집요하게 노려서 한중겸의 소환수가 아니라 한중겸 본인을 공격했었다. 결국 한중겸 자신은 아마 악마왕들과의 전투에서 가장 많은 대미지를 입은 간부가 된 것이다. “흥, 그 년의 배신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심해라. 이게 끝이 아님을!! 나는 반드시···.” “시끄러!” 콰직!!! 자기 할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장한은 아테나의 창날에 머리가 떨어졌다. 다 죽어가는 마당에 쓸데 없이 진부한 대사를 하려고 한 것이 그녀에게 좀 많이 거슬린 모양이다. “이제···. 온전한 나구나···.” 세레나의 입가에는 옅음 미소가 맺혔다. 그녀는 사실 가장 큰 고전을 하고 있었다. 같은 영혼을 가진 자들끼리 싸우고 있어서일까? 한 쪽이 다른 쪽을 공격하면 그 대미지가 실시간으로 링크 되어서 대미지를 공유하게 되었다. 다크니스 왕국의 슬로트 역을 맡고 있는 세레나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강력하게 공격을 거듭했지만··. 세레나는 거기에 어울려 줄 수 없었다. 예전이라면 사명을 위해서····. 주를 위해서···. 라는 명분으로 기꺼이 자기 몸을 바쳤을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물론 아직도 그녀에게 신앙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이 직접 낳은 것이나 다름없는 아이들 소중한 친구들까지···. 그녀는 이제 신앙만큼이나 자신이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랬기에 난해한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막 나가지 않고 차분하고 끈덕지게 견디면서 상황을 기다렸다. ‘분명, 정운씨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도와 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티고 버텼고···. 결국 어느 순간 상대편이었던 슬로트가 그대로 쓰러져서 없어지고, 그녀의 안에 있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그녀의 영혼이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온전한 자신이 된 것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었다. “말도 안 돼····. 그 상황에서 이긴다고? 이··이런 일이····.” 메데이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앉아 있는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의외로 대단하군. 박정운이나 다른 자들에 비하면 별것 아닌 영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짓을 해 둿었나?” 파우스트는 갑자기 악마왕들이 모두 쓰러진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챘다. 이지영은 오랜 세월동안 악마왕인 러스트로서 살아오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지영의 의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레나가 마지막에 파우스트에게 영혼의 조각이 잡히면서 부린 유일한 한수였다. 철통 같이 마크 당하고 있는 자신의 영혼보다는 차라리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미 잡혀 있었던 이지영의 영혼을 각성 시킨다면 그녀가 뭔가를 해 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에서 한 일이었다. 그리고 세레나의 기대대로 이지영은 최후의 한 순간을 기대하면서 한 수를 만들었다. 파우스트가 만든 악마왕이라는 존재들은 그 영혼의 원천이 같다. 그녀는 그 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영혼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다른 악마왕들과 동조시켜갔다. 다른 악마왕들이나 파우스트가 눈치챌 수 없도록 천천히··. 아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언젠가는 동료들이 나타나서 자신을 죽여줬을 때 다른 악마왕들의 목숨도 자신이 같이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수만 년에 걸친 안배가 이제야 이뤄진 것이었다. “주인님. 주인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너무나 태연한 파우스트를 보면서 메데이아는 혹시나 하는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그러자 파우스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나도 몰랐다. “·····그렇다면···. 무례하지만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태연하신 것입니까?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들까지···. 결국 우리들의 안배가 모두 멸망한 것이 아닙니까?” 메데이아의 말에 파우스트는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그렇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신세계에서 나는 더 이상 창조주가 아니게 되었다.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에 내려진 신권은 거두어 졌고, 세라핌 군단은 무너졌으며, 나의 권능을 대부분 투여했던 다크니스 왕국의 악마왕들 역시 무너졌다. 더 이상 내가 신세계에서 창조주를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 다소 흥분 한 듯한 파우스트의 말을 메데이아는 좀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이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가 아닌가?’ 그녀의 의문을 알아차렸을까? 파우스트는 희미한 미소를 띠우고 말했다. “모르겠느냐? 메데이아? 난 비록 이런 과정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바라고 있었다. 라고 해도 틀리지 않겠지.” “·····주인님. 주인님은···. 박정운을 비롯한 저 가우리의 놈들이 제국과 다크니스 왕국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난 저들을···, 그래. 이런 감정을 신뢰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난 저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 “설령 어떤 역경이 가로 막아도 저들은 포기하지 않고 넘을 것이다. 아무리 거친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저들은 결국 모두 돌파하고 목적을 이룰 것이다. 적당히는 없었다. 1,000기의 세라핌 군단도 그리고 악마왕들의 합공도, 나는 모두 진심으로 가우리를 뭉게 버리기 위해서 지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가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말이다. 난 이 파우스트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굴욕을 안겨준 저들을 신뢰한 것이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르겠느냐? 메데이아, 배신의 왕녀이자 희대의 마녀였던 너 조차도?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너 조차도 모르는 것이냐?” “·············.” 메데이아는 진심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훗···. 후후후···. 하하하하하하하하!!!! 파우스트는 그런 메데이아를 보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호쾌하게 광소를 터트렸다. 오랫동안 파우스트의 곁을 지켜온 메데이아였지만···. 그녀로서도 이런 파우스트는 처음이었다. 파우스트는 웃음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내 예상대로···. 저들은 이겼다. 나의 계산대로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승부였거늘···. 저들은 또 내 계산을 초월하고 이겨낸 것이다. 그러므로!!!!” 강하게 말을 끊어낸 파우스트의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희열의 감정이 번뜩였다. 그리고 동시에 파우스트는 선언하듯이 말을 이었다. “이제 나의 승리다.” 전투를 끝내고 난 후에 정운을 비롯한 가우리의 간부들은 모두 기진맥진이었다. 이제는 정말 전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상황이었다. 여기서 파우스트가 직접 나타난다고 해도 더 이상은 싸울 기력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미하엘이 가지고 온 청천벽력 같은 소리는 모두의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충격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수상각하····. 게이트가···. 신서울의 상공에 있는 게이트가···. 닫혀 버렸습니다.” “···뭐라고!!!!!?” “무슨 말도 안 돼는····.” “게이트가 닫히더니·····.” 정운을 비롯한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게이트가 닫혀 버렸다는 말은 큰 충격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509화 <파우스트의 책략> 정운을 비롯한 가우리의 간부들 전원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신서울로 날아왔다. 바닥가지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고 싶었지만 그럴때가 아니었다. 초조한 마음에 제대로 쇠지도 않고 바로 신서울로 달려들왔다. 그리고 도착했던 신서울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항상 신서울의 상공에 보이던 게이트가 갑자가 사라졌다. 신서울의 주민들이 혼란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신서울의 주민들은 90%이상이 지구 출신의 주민들이었다. 그들로서는 신서울 상공에 있는 게이트는 항상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와 같았다. 그런데 그 통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어떻게 된 상황이야?” 정운은 오자마자 미하엘에게 보고를 들었다. 정운에게 보고를 하는 미하엘의 얼굴은 이제까지 본적이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항상 침착하고 지적인 모습을 유지하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총 맞은 비둘기 같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그녀는 보고를 했다. “여러분들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그야말로 갑자기, 신기루처럼···. 게이트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전에 어떤 징후도 없었나?” “예. 항상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 내가 가르쳐 줄까?” 그때 정운과 미하엘의 사이에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모두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가면서 그 목소리의 발신지를 찾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보기만 해도 꼴 보기 싫은 인물이 있었다. “네놈은···. 틀림없이 일본팀의 리더였던?” “도조 마사토다. 이름도 기억 못하고 있었나!!!?” 정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도조 마사토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도조 마사토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야말로 혼을 팔아서까지 정운을 저주하고 증오하고 있었다. 원래 증오와 사랑은 비슷한 면이 있어서···. 자신이 아무리 상대를 마음 깊이 담고 있어도 상대가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짝사랑과 달리 짝증오(?)의 경우는 자기 혼자만 상대를 증오해 봤자 상대가 신경도 쓰지 않으면 그저 비참해질 뿐이다. 도조 마사토는 정운이 자신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에 큰 분노와 수치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흥분하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지금부터 모든 것을 갚아줄 생각이니 말이다. 자신이 겪었던 좌절과 분노를 몇 백배로···. 그럴 생각을 하고 그는 정운과 가우리의 간부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무슨 일인지 궁금한게 많겠지? 어디··. 뭐부터 알려줄까?” 도조 마사토의 거만한 말투에 머릿속에서 빠직 하고 뭔가가 끊어진 남자가 있었다. “알려줄까? 네가 감히····. 말을 잘못 한거겠지····.” 바로 박추성이었다. 원래 일본인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실로 귀환하고 나서는 그런 감정도 어느 정도는 정리를 했던 그였다. 어차피 자신은 과거의 인물이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크게 관여해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참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현실에 귀환하자마자 일본의 극우 정치가들부터 문답무용으로 싹 쓸어 버렸을 것이다. 뭐, 어차피 지금은 정운과 가우리의 위상 때문에 한국을 팔아서 어떻게든 정치 해 보려고 했던 일본의 극우 정치가들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재의 인물들에게는 크게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신과 동시대의 일본인. 거기다 골수까지 제국주의에 미쳐있는 도조 마사토가 상대라면 얘기는 많이 달라진다. 박추성은 있는 대로 열이 뻗혀서 도조 마사토를 향해서 말했다. “네놈이 알고 있는건 싹 다 불어라. 그렇지 않으면 이전보다 훨씬 더 비참하게 죽여주지.” 넘실거리는 박추성의 살기에 도조 마사토는 살짝 위축되었지만 이내 중요한 카드를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잠깐!! 게이트가 영원히 열리지 않아도 좋다는 거냐!!!?” “··············.” 도조 마사토의 이번 말에는 살기등등하던 박추성도 살짝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뒤편을 돌아보니 정운과 배대호가 고개를 미미하게 저으면서 일단은 참으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 새끼··. 일단은 봐 준다.’ 그리고 말 할 분위기가 되자 도조 마사토는 품 속에서 작은 크리스탈을 꺼냈다. 그러자 거기에서 허공에 어떤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 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파우스트였다. [지금 궁금한게 많겠군. 그렇지 박정운과 그 동료들이여.] 파우스트는 만면에 승리의 미소를 띠우고 가우리의 일행들을 보면서 말했다. [아마 이 영상이 보인다는 것은, 결국 그대들이 내가 신세계에 준비해둔 모든 안배를 물리쳤다는 거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내가 수 만년에 걸쳐서 그대들을 위해서 준비한 관문들을 모두 돌파했다면, 그대들은 나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네놈의 존경 따위, 기쁘지도 않은데 말이야.” 배대호의 중얼거림은 가우리의 간부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금 이들이 알고 싶은 것은 어째서 게이트가 사라졌느냐? 과연 파우트가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였다. 그리고 영상 속의 파우스트는 본격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걸 뭐라고 할까···. 체스로 치면, 난 시작하면서 이미 체크를 부른 상태였다. 그걸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안배를 더하기는 했지만, 가장 먼저 공격했던 최초의 지구 공습. 거기서 내 계획의 8할은 성공했던 거였지.] “그때···? 그때 뭐가 어쨌다는 거지?” 파우스트의 말에 박추성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문득 배대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 서울을 공격했던 병력····. 그 병력···. 아!! 빌어먹을···. 그랬구나!!!!” 배대호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었다. “형님, 뭐 생각나는 점이라도 있습니까?” 정운의 말에 배대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고립···. 시켜 버린거야. 우리를 이 세계에···. 자신은 이미 가장 처음의 공격 때 몰래 빠져 나가서 지구로 나가서 자리를 잡았던 거지.” 배대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을 쩍 벌렸다. 이 세계에서 최초로 나왔던 공격. 사실 그 점에는 한 가지 수상한 점이 있었다. 과연 그 병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신세계와 지구를 잇고 있는 게이트가 열렸을 때. 그 게이트의 출연이 갑작스러웠던 것은 지구뿐만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도 게이트는 갑작스럽게 열린 것이었다. 그 말은···. 최초의 공습은 어떤 왕국이나 제국의 공격이 아니라···. 온전히 파우스트가 보낸 병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배대호의 예상대로 파우스트가 진실을 설명했다. [최초의 공습···. 사실 거기서 내 병력의 대부분을 소진했었지. 세라핌이야. 내 신도들이 제물을 바치면 그때그때 생기는 거지만···. 그 이외로 내가 개인적으로 만든 전력은 그 순간 다 소진했었다. 그리고··. 난 지구에 뿌리를 내리는 것에 성공했지.] “빌어먹을·····.” “그때? 생각도 못했는데····.” 뒤통수도 이런 뒤통수가 없었다. 정운과 그 동료들이 이제 시작이다. 라고 전의를 다지고 있을 때, 이미 파우스트는 마무리 부분을 위한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너희들도 알고 있는 대로다. 난 너희들이 신세계에서 할 일을 착실하게 준비해 놓았지. 다른 왕국들의 정복. 내 신권을 무너트리기 위한 과제. 그리고 박정운. 네가 사랑하는 여자의 영혼을 위해서도 넌 신세계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정운은 목구멍에서 쓴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게이트가 열리고 지금까지 쭈욱 모든 것이 파우스트의 손바닥 위였던 것이다. 진한 패배감과 굴욕감이 머리를 어질어질 하게 할 정도로 맴돌았다. [너희들은 착실하게 잘 해줬다. 귀환자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전력을 신세계에 집중 시켰지. 거기다 신세계에서 나의 신권도 모두 끊어버렸기에 이제 나는 창조주라는 사슬에서 자유롭다. 그리고 지구에 내 적이라고 할 만한 존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지. 감사한다. 너희들 덕분에 난 진정으로 지구의 신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쪽의 세계는 너희에게 주지. 단, 창조주였던 내가 부재를 지속하는 이상, 그 세계는 앞으로 10년도 가지 않고 붕궤할 것이다. 그 남은 시간동안을 충실하게 즐겨라. 나의 숙적들이여.]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정운을 비롯한 가우리의 인물들은 진한 패배감에 휩싸였다. “·············.” “·············.” “·············.”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당하고 나면 이제 정말로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다. 게이트가 닫히고 분리된 서울의 상공. 거기서 한 명의 남자와 그 곁을 지키는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주인님···. 주인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한 못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메데이아는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파우스트에게 극도의 사죄를 표했다. “고개를 들어라. 난 화 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어차피 너에게 알려주지 않고 일을 진행 시킨 것은 나다. 더 이상 그 일로 널 탓하지는 마라.” “예. 주인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메데이아는 자신의 주인인 파우스트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신화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유명한 희대의 마녀였다. 그리고 마녀라는 존재는 원래 모략에 능한 법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파우스트의 계획에 관해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중간에 정운과 가우리의 간부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것. 그것은 정말 대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이미 지구쪽으로 넘어갔던 몸을 다시 한 번 신세계에 드러내서 자칫 잘못하면 공들인 계획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정운과 가우리의 간부들이 절대로 그 타이밍에서는 덤비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담하게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세레나의 영혼이라는 절대 거부 할 수 없는 미끼를 이용해서 그들을 더욱더 신세계에 집중 시켰다.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신경 쓰지 못하도록 말이다. 실제로···. 가우리가 지구의 행동에 신경을 썼다면 이상 현상을 발견 하고 날카롭게 대응 할 수도 있었다. 제국에서 소환된 세라핌 군단, 그 군단을 소환하기 위해서 바쳐진 제물은 다름 아니라 지구에서 바쳐진 아이들이었다. 파우스트의 명령으로 도조 마사토가 수많은 아이들을 납치하고 그 영혼을 이용해서 세라핌 군단을 만들었다. 원래 성녀의 영혼을 바쳐야 하지만····. 파우스트가 그 점을 수정해서 아이들의 영혼으로 대신 할 수 있도록 했다. 오로지 정운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미쳐있던 도조 마사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후손인 아이들을 잡아서 잔혹하게 제물로 바쳤다. 사실 나탈리아가 중간에 그런 흔적을 캐치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가우리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결국 파우스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간 것이다. 모든 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진행했던 파우스트는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지구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잔챙이들이 지구에 좀 남아있기는 하지만···. 결국 잔챙이일 뿐이지. 일단 일주일 안에 세계를 손에 넣도록 하지.” “예. 나의 주인님이시여.” 메데이아는 몽롱한 눈빛으로 자신의 주인인 파우스트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직!!! 콰직!! 콰지직!!! “커억·····.” 어디선가 황금으로 이뤄진 뇌전의 장검들이 수십자루 날아와서 메데이아의 몸에 박혔다. “주···. 주인님····.” 뜻밖의 공격을 완전히 무방비로 받은 메데이아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몸에 박힌 뇌전의 장검들이 강력하게 스파크를 발하더니 그대로 그녀의 몸을 증발 시켜 버렸다. 콰르르르릉!!!! 하늘에서 순간 황금빛 뇌전이 폭발했고, 메데이아는 그대로 최후의 단발마를 남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허공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세계를 손에 넣어?” “너····. 너····?” 파우스트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이 천재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아마 태어나서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공에서 나타난 남자는 날카롭게 두 눈을 뜨고 말했다. “놀고 있네. 엿이나 쳐 먹어. 이 개자식아!!!”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 남자는 박정운이었다. 510화 <마지막 레이드>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네가····?” 파우스트는 벙 찐 얼굴을 하고 있었따.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에게 도전하고,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며, 천사와 악마들 조차 최고 요주의 인물로 보는 걸출한 천재. 그런 파우스트가 살아온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당황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은 뜻밖인 것이었다. 자신이 게이트를 닫은 이상 이제 지구와 신세계를 연결할 수단은 절대 없다. 그런데 지금 신세계에 고립 시켰다고 생각한 박정운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수로 거기서 탈출 한 것이냐!!!?” 버럭 소리를 지르는 파우스트를 보면서 정운은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네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복장 뒤집어진다는 표정을 지으니 속이 후련한데?” “···············.” 파우스트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흐트러져서 이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 좋아. 네놈에게 주는 고별 선물이다. 들려주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그리고 정운은 파우스트에게 신세계가 고립된 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그래. 그 표정이다. 난 박정운 네놈이 그렇게 절망에 빠진 표정을 보고 싶었어. 거기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 광소를 터트리는 도조 마사토를 보면서 정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콰아앙!!!! 정운은 놈의 목을 잡고 그대로 지면에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 윽박지르듯이 외쳤다. “죽는게 소원이냐? 이 미친놈아!!!!” 으직···. 우지직···. 정운이 누르는 힘에 지면이 쩌적 갈라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조 마사토는 고통스러운 와중에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크으윽···. 나에게 이렇게 해도 될까?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영원히 이 세계에서 고립된다.” “·············.” 정운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제야 안 것이다. 이 놈이 여기에 남은 이유를····. ‘희망고문인가?’ 도조 마사토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난 파우스트님에게 딱 두 명만 저쪽 세계로 돌려 보낼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 “··············.” “··············.” 놈의 의기양양한 말에 가우리의 간부들은 전원 짜증이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저 미친놈이 여기에 남은 이유를 이제는 확신 할 수 있었다. “후후···. 흐하하하하····.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 한 것 같군. 앞으로 10년의 시간이 있다. 이 시간 동안 너희들 중에 딱 두 명만 구원해 주지. 꿇어라. 나에게 엎드려 빌어라. 나에게 가장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 놈들만 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도조 마사토는 자신이 절대적인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흥분을 금치 못했다. “어디··. 10년 동안 즐길 거리는 많겠군. 어디 박정운 내 손으로 동료를 죽이는 것은 어때? 아니면 저기 잘난 민족주의자인 박추성이 동포를 대량 학살하게 해 볼까?” 광소를 터트리며 잔뜩 흥분한 놈은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박정운. 너 여자가 둘이나 있었지? 어때? 네놈이 보는 앞에서 그 년들과 뒹굴어 볼까? 네놈이 의외의 성벽에 눈 뜰지도 모르지. 크하하하하!!!!” 그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청량하고 고귀한 느낌을 주는 여성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제까지 몸의 상태에 이변이 생겨서 숨죽이고 있던 인물. 바로 레이시안이었다. “넌···? 네년은 누구냐!!?” 뒤에서 갑자기 타나난 레이시안을 보고 도조 마사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레이시안은 그런 도조 마사토를 흘깃 바라봤다. 그러자 도조 마사토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뭐···. 뭐냐? 이 년은····?’ 레이시안의 전신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원래 홀리 엔젤로 다시 태어났을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그녀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성스러움이 마치 대자연의 장엄함을 보는 듯했다. “누님······.” 정운 역시 심상치 않게 변한 레이시안의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그리고 도조 마사토는 정운의 입에서 나온 누님이라는 말이 즉각 반응했다. “호오···? 박정운, 네놈이 세 번째로 들인 여자냐? 취향 한 번 좋은걸?” “네놈이 감히····.” 정운이 이를 갈면서 눈을 부릅떴다. “워워··. 진정하지 그래?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넌 좋든 싫든 나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거다. 10.년. 동.안. 말이다.” 비릿하게 웃으면서 선언하는 도조 마사토를 보고 정운은 순간 분기가 확 치밀러 올랐다. 사람이 너무 분에 넘쳐서 죽는 현상을 분사(憤死)라고 한다. 정운은 순간 자신이 진짜로 그런 경험을 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열이 뻗힌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정운의 앞으로 다가온 레이시안이 정운을 품에 안아서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타이르는 것처럼 자애롭게 타이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정운의 분노는 스르륵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도조 마사토는 자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욕심이 생겼다. ‘저 여자·····. 가지고 싶다.’ 원래 여자에 별 애착이 없는 도조 마사토였다. 여자는 그저 몸으로만 사랑하면 될 뿐. 마음을 주게 되면 성가시고 큰 일을 할 수 없다. 라는 엄청나게 낡고 남성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게 놈이었다. 뭐, 평번하게 생각하면 현대에서 말했다가는 미친놈 취급 받기에 충분한 말이지만 과거의 남자들에게는 종종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도조 마사토가 처음으로 여자에게 욕심이 생긴 것이다. “흠, 거기 너··. 이쪽으로···.” “머리가 높군.” “읍!!!” 말을 하던 도조 마사토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바닥에 대었다. 레이시안이 머리가 높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순종하듯이 스스로 무릎을 꿇어 버린 것이다. ‘이···. 이게 무슨···.’ 도조 마사토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이 사태에 당황 스러워 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도조 마사토에게 레이시안은 그녀답지 않을 정도로 도도한 시선을 하고 말을 이었다. “머리를 조아리도록.” 쿵!! “크으윽···.” 레이시안의 말에 도조 마사토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머리를 바닥이 깨질 정도로 박았다. 그리고 레이시안은 냉혹한 눈으로 도조 마사토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라는 인간은····. 사념이 너무 짙군. 증오와 원한의 덩어리 같아.” “크으···. 크으윽····. 넌 도대체 누구냐!!?” 도조 마사토는 자신을 압도적으로 굴복 시키는 레이시안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이런 인물이 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도조 마사토였다. 레이시안은 그런 도조 마사토에게 말했다. “넌 그걸 물을 자격도, 그리고 이제 이 세계에 존재할 자격도 없다. 그저 한줌 흙으로 돌아가라.” “잠···. 잠깐···. 내가 죽으면 게이트는 영원히 열 수 없어!!!” “그건 네가 죽지 않아도 마찬가지지.” “무···. 무슨?” 크게 당황한 도조 마사토에게 레이시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당초, 파우스트 입장에서도 넌 그저 쓰고 버리는 말일 뿐이야. 그런 중요한 권능, 나눠 줄 리가 없지. 실제로 너에게는 아무런 권능도 안 느껴진다.” “그, 그럴리가··?” 도조 마사토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순간 게이트를 열고 지구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게이트는 열리지 않았다. 절망한 도조 마사토에게 레이시안이 말했다. “이제 그만 눈을 감고 무로 돌아가라.” “크아아악!!!!” 레이시안의 말에 도조 마사토는 손끝부터 시작해서 전신이 허물어져 갔다. 마치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도조 마사토를 보면서 가우리의 인물들도 전율할 정도였다. ‘이게···. 레이시안?’ ‘다르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어.’ ‘누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가우리의 일행들이 보기에도 레이시안의 모습은 확실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성스러움에 이제는 범접하기 어려운 엄숙함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마치···. 천사가 아니라 여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신? 잠깐, 혹시···?’ 정운의 머릿속을 번뜩이며 어떤 가설이 스치고 지나갔다. “누님···. 혹시?” 정운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자 레이시안은 싱긋 웃으면서 정운에게 말했다. “생각한 대로입니다. 파우스트가 이 세계를 완전히 놔 버린 것과 동시에··. 제가 그 자리에 강제적으로 정착 되었네요.” “그런···. 누님·····.” 정운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정운의 여인인 세레나가 독실한 크리스찬,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천계의 천사여서인지 정운도 크리스찬들의 규범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크리스찬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유일신이고, 그 이외의 영들은 인정해도 신은 인정하지 않는다. 즉, 레이시안이 파우스트가 비운 신의 옥좌에 올느다는 것은 신을 향한 독실한 믿음은 가지고 있는 그녀로서는 절대 반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죄가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세레나는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레이시안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마음은 아직도 그 분의 충실한 종입니다. 저는 그저 이 세계의 관리자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네요.” 레이시안의 말에 세레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누님이 종교적 고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니 안심입니다. 하지만 누님···. 저희들 상황은 그렇게 좋지가 않습니다. 파우스트···. 그 놈에게 완전히 당해 버렸어요.” 정운의 말에 레이시안이 웃으면서 말했다. “방법은 있어요. 제가 이 세계의 완전한 관리자가 되어서,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를 다시 열면 됩니다.” “누님. 그건···? 하지마 그래서는···.” 정운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레이시안을 바라봤다. 그녀가 이 세계의 완전한 관리자가 된다면····. 그것은 이전에 파우스트에게 걸려있던 조물주로서의 제약이 그대로 걸린다는 것이다. 한 번 그 자리에 앉는 이상 누군가가 대신 채워주지 않으면 그녀는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이 세계의 관리자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레이시안이라는 개인의 존재에서 이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이다. “누님······.” “그 방법 밖에는 없잖아요?” “············.” 레이시안의 담담한 말에 정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그 방법 밖에는 없었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정운을 향해서 레이시안이 오더니 정운을 자신의 품안에 살며시 안아줬다. 보통 다른 여자가 정운을 품에 안으면 슬기나 세레나가 질투를 할 만도 한 대···. 이번 경우는 그 둘도 그냥 안타깝게 저 둘을 바라 볼 뿐이었다. 저 둘의 유대감은 자신들과 같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신뢰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래서 질투심은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레이시안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죠. 우리는 그게 조금 빠를 뿐입니다. 그래도 전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에요. 사랑스런 내 동생····.” “누님·······.” 정운의 뺨을 타고 한 방울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른 동료들 만큼 오랜 세월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레이시안은 정운에게 각별한 사람이었다. 레이시안은 마지막으로 정운의 이마에 부드럽게 자신의 입술을 맞추면서 말했다. “당신의 앞날에 이제는 시련이 그만하기를···.” 그리고 마치 이제까지 그녀가 없었던 것 처럼···. 신기루가 사라지듯이 그녀는 사라져 버렸다. 이제 완전히 이 세계에 동화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수상각하!! 게이트가 다시 열렸습니다.” 미하엘이 정운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정운은 눈물을 훔치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가자··. 이게 마지막이다.” ============================ 작품 후기 ============================ 오늘로서 이제 완결입니다. 자세한 후기는 다음화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511화 “········그런··. 레이시안이라고? 설마···. 그런 작은 버그가···.” 정운의 설명을 다 들은 파우스트는 허망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파우스트도 레이시안에 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작디 작은 버그였다. 이름 없는 엑소시스트가 우연히도 그라운드 제로에 흘러들어왔고, 그것이 세레나를 통해서 정운에게 결정 되었고, 그리고 정운이 그라운드 제로의 최종전에서 파우스트에게 꽂아 넣고, 그것이 신세계에서 레이시안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 시작은 작은 모래알이나 다름없는···. 정말 그런 작은 버그였다. 그런데 그 작은 버그가 차츰차츰 크기를 키워 가더니 결국 파우스트의 가장 결정적인 모략을 제로로 돌려 버렸다. “하···. 하하하하하·····.” 넋을 잃고 있는 파우스트는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정운을 향해서 박수를 치더니 말했다. “억세게 운이 좋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군.” “부정은 안 하겠다.” 정운이 담담하게 긍정하자 파우스트는 박수를 멈추고 정운에게 날카로운 눈을 향하며 말했다. “하지만 박정운. 네놈···. 잊은 건 아니겠지. 난 신이다.” 우우우우우우웅·····. 파우스트에게 어마어마한 힘이 퍼져 나왔다. 그야말로 정운을 압도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조물주의 족쇄에서도 해방 되었고, 이제 난 본격적으로 이 힘을 사용 할 수 있다. 그런데, 네가 내 눈앞에서 혼자 뭘 하겠다는 거지? 여기서도 운이 따라주기를 바라는가? 그건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응? 박정운.” 정운은 파우스트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았다. 무척 평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태연하게 말했다. “말이 너무 많군 파우스트.” “·············.” “내가 널 못 이긴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 것 치고는 자신 만만한 이유를 모르겠군. 뭘 믿고 그러는 거지?” “믿긴 뭘 믿어? 믿는 건 동료들 밖에 더 있겠어?” 파우스트의 말에 대답한 것은 파우스트의 뒤편에 나타난 한중겸이었다. 아니 한중겸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다른 가우리의 간부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 파우스트는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건···. 이 감정이 공포라는 건가?’ 파우스트로서는 이런 위기를 맞이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의 최종전 때 이상의 공포감이 그를 엄습했다. 그런 파우스트를 포위하면서 정운은 말했다. “이제 알겠나? 파우스트.” “·········.” “넌 실패했다.” 정운은 단언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기를 꺼내서 파우스트를 정면으로 조준하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자, 우리 인생의 마지막 레이드다. 어디 발악을 할 테면 해 봐라. 파우스트!!!” 콰아아아아앙!!!!! 정운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파우스트에게 정운의 뇌광이 작렬했다. 동시에 파우스트는 서해상까지 밀려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가우리의 모든 전력들이 한꺼번에 파우스트를 상대했다. “놓치지 마!!!” “무조건 여기서 끝내!!!!” “대호 형님!!! 추성이 형님하고 같이 호흡 맞춰요!!!!” 팀웍을 맞춘 대규모 레이드야 말로 가우리의 간부들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개개인으로 따지면 박정운이라고 해도 파우스에게 이길 수 없었다. 힘의 그릇에서 그 차이가 너무 났다. 하지만···. 정운과 그 동료들이 모두 힘을 합치면, 이 세상에 이길 수 없는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그라운드 제로의 바닥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도달한 것이다. 마치 운명이 이끈 것처럼······. 후일 파우스트 레이드라고 일컬어지는 전투는 꼬박 17일이 걸렸다. 사람이 없는 서해상으로 전투 장소를 이동하기는 했지만 그 힘의 여파로 인해서 서해상에는 수시로 해일이 몰아쳤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 쪽으로 몰아치는 해일을 막기 위해서 가우리의 일반 병력들은 그 전력을 다 소진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17일간의 전투가 끝나고···. 결국 승자가 결정되었다. “이제 그만 죽어랏!!!!!!” 콰르르르르르르릉!!!! 마치 하늘의 벼락을 모두 끌어 모은 것 같은 정운의 뇌전이 파우스트에게 정통으로 작렬했다. “크····. 크으으····.” 파우스트는 전신에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면서 결국 망망대해위로 떨어졌다. “큭····. 쿨럭···. 빌어먹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 전투 경험이 전무한 파우스트. 그는 전투 경험치라는 면에서 가우리의 간부들과의 차이가 너무 컸다. 힘만 강한 적을 팀 워크로 잡아내는 것이라면 가우리의 간부들에게는 특기중의 특기였다. 결국 버티고 버텼지만 그 힘을 다한 파우스트는 패배한 것이다. “크···. 크크···. 젠장···. 그래. 욕이 절로 나온다 는게 이런 심정이었군.” 파우스트는 망망대해에 둥둥 떠 있으면서 허무한 얼굴을 하고 중얼 거렸다. 그런 파우스트에게 정운이 다가갔다. “이제 끝니다. 파우스트.” 정우의 말에 파우스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이제 시작이야. 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그건 무리야.” 파우스트의 집념을 본 정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냉엄한 표정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그런 정운을 보면서 파우스트는 심장이 철렁 하는 것 같았다. 사실 파우스트는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자신의 영혼을 그대로 전생시킬 준비를 마친 후였다. 기억은 물론이고 힘도 가능한 그대로 가지고 전생을 할 수 있게 스페어 육체부터 모든 것을 안배해 두었다. 유비무환이라고 해야 할까? 실로 책략가 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정운은 그란 파우스트의 책략조차 완전히 짓밟을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민지 누님.” “음···.” 정운이 민지를 부르자 이민지는 파우스트에게 다가와서 그의 앞에서 뭔가를 소한했다. 그것은···. “이건···? 제로 트리?” 파우스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가우리에서 능력자를 만들기 위해서 만든 인공던전. 제로 트리였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용도가 완전히 달랐다. 이민지는 파우스트에게 말했다. “제로 트리는 애당초 이것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에 불과해. 이것은 그라운드 제로를 내가 흉내내서 만든 일종의 허무의 세계지.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저 영원한 시간이 흘러가는 암흑의 세계만 있을 뿐이지.” “····설마···?” 이민지의 설명을 들은 파우스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 설마다. 파우스트, 사실 너라는 괴물을 죽이면 죽이는 대로 무섭다. 무슨 짓을 해 놓았을지 모르니 말이야. 그래서 민지 누님이 이 때를 위해서 수만 년에 걸쳐서 준비했지. 널 봉인하기 위한 완벽한 세계를 말이다.” 정운의 말을 들은 파우스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저건 자신이 정운과 가우리를 신세계에 고립 시키려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이 아닌가?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세계에 홀로 고립된다면···. 파우스트는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앞에서 허무의 세계로 가기 위한 이공간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입에서 처음으로 애원의 말이 터져 나왔다. “····그···. 그만 둬!!!! 박정운!!!!!!” 애원하는 파우스트를 보며 정운은 처음으로 놈이 사람처럼 보였다. 신에게 도전했던 천재. 그라운드 제로의 창조자. 신세계의 절대신. 하지만 결국···. 그런 파우스트도 자신과 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잘 가라.” 그리고 정운이 놈을 향해서 손짓하는 것과 동시에 파우스트는 허무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박정우우우우운!!!!!!!!!” 놈의 원성이 메아리쳤지만···. 그것도 어느새 멎어 버릴 뿐이었다. “·····끝났다. 모든게····.?” “끝···. 난 거야.” “······흑····.” 처연하게 중얼 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여린 슬기가 정운의 품안에 와서 안겼다. 그리고 어느새 세레나 역시 살며시 정운에게 다가와서 그의 품안에 안겼다. 정운은 사랑하는 두 여성을 품에 안고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수고 많이 했어. 모두들····.” 그라운드 제로부터 시작했던 수많은 투쟁들이····. 이제야 그 끝을 고한 것이다. #에필로그# 띠리링···. 띠리링····. “으음···. 음···.” 잠결에 울리는 전화기 소리에 정운은 눈을 뜨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추성이 형님?” -자다 받냐? “예. 지금 몇 시죠?” -오후 10시다. 너 은퇴하더니 아주 늘어졌구나. “그럴 수도 있죠. 뭐···.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별건 아니고···. 너 오늘 시간있냐? “시간··. 예. 뭐···, 요즘은 남는게 시간이죠.” 가우리의 수상 직에서 반쯤 은퇴한 이후 얼굴 마담역할 말고는 별로 일이 없는 정운이었다. 덕분에 사랑하는 두 아내와 예쁜 두 딸을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정운이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만큼 시간은 많았다. -그래. 그럼 됐다. 그럼 오늘 1시까지 신세계의 신명동 XX빌딩으로 좀 와라. “····왜요?” -별건 아니고···. 나 결혼한다. 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 “예. 알았···. 뭐!!?” -반말 하냐? 어쨌든 와라. “잠깐 형님!!!” 뚜··· 뚜····. 정운이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옆에서 세레나가 일어나서 정운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추성이 형님이 결혼한데?” “············보이스 피싱 아니에요?” 신서울의 어느 웨딩 홀. 거기에는 전설적인 인물들이 하나하나 모이고 있었다. “오!? 정운이 너도 왔냐?” “중겸이 형님. 그리고···. 첫째 형수님 안녕하세요?” “예. 오랜만이네요.” “둘째 형수님도 안녕하시죠?” “예. 물론이죠.” “셋째 형수님도 안녕하시죠?” “예. 정운씨도 건강해 보이네요.” “넷째 형수님도······.”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서른 다섯 번째 형수님도 안녕하세요?” “····예. 오래 기다렸어요. 인사 한 번 받는게 왜 이렇게 힘든지.” “저도 이해합니다. 이게 누구 때문일까요?” 정운의 눈길이 옆에서 헛기침을 하고 있는 한중겸을 향했다. “크흠···. 장황한 인사 눈물 나도록 고맙다. 이 자식아!!!” 비꼼이 가득한 정운의 인사에 한중겸은 헤드락으로 보답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푼 두 사람은 이런저런 말을 계속했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그렇지? 전에 정철이하고 다이앤의 결혼식 이후 처음인가?” “아니죠. 그 후에 대호 형님네 애 돌잔치에 모였잖아요?” “아··. 그때 나 안 갔어?” “예? 왜요?” “나 라트란 왕국에 입국 금지 먹었거든.” “········원인은 안 물어보렵니다.” “진짜 억울하거든? 그 엘프 아가씨들이 먼저····.” “안 들려요. 안 들려.” “날 못 믿냐?” “믿음이 가기 행동을 해야죠. 형님 가족을 보면 그게 가족인지 부족인지 헷갈린다니까요.” 그렇게 정운과 한중겸이 투덜거리는 사이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회포를 풀고 있었다. “어머? 보영이 언니. 오셨어요?” 슬기의 말에 이보영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응. 오긴 왔는데···. 혹시 지영이 못 봤니?” “지영이요. 음···. 아!! 저기 있네요.” 슬기가 가리킨 곳에는 어디서 뒹굴고 왔는지 예쁜 드레스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예쁜 여자 아이가 아미들의 손을 잡고 오고 있었다. “지영아!!! 너 또 장난 쳤지? 옷 다 버렸잖아? 결혼식에 와서 이럴래? 아빠한테 혼 내라고 한다?” “히잉····. 언니들하고 놀다가 이렇게 됐는데···.” “언니들은 옷 깨끗 하잖아?” “히잉······.” 이보영에게 꾸지람을 받은 아이는 아미의 다리 뒤로 쏙 숨어 버렸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세레나가 아이를 안아올리면서 이보영에게 말했다. “너무 혼내지 마세요. 제가 근처 쇼핑몰에 가서 잠깐 애 옷 좀 봐주고 올게요.” “정말···. 부탁 좀 할게.” “예. 지영아. 이모하고 같이 새 옷 사러 갈까?” “응. 갈래.” 그렇게 세레나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면서 나가는 지영이를 보면서 보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쓰게 웃었다. “세레나 엄마, 나도 옷.” “난 신형 스마트 폰.” “난···.” 그리고 그 옆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소녀들이 세레나를 따라가며 기회는 이때다 라는 식으로 보챘다. 물론 세레나는 어림 없다는 듯이 철벽 방어로 응수했다. 슬기는 살짝 작은 목소리로 보영에게 말했다. “영혼은··. 잘 정착한 거예요?” “응. 과거의 기억은 없지만···. 지영이는 틀림없는 지영이야.” “그렇군요·····.” 과거 이지영은 악마왕 러스트로서 죽으면서 굳이 자신의 친언니의 손에 죽기를 원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언니의 안에 자신의 영혼을 남기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창과 결혼해서 처음으로 아이를 낳았을 때. 보영은 한눈에 자신의 딸이 죽은 동생의 영혼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한때 여동생이었는데 이제는 딸이라···. 뭐, 미묘한 관계긴 하지만 언니가 행복해 보이니 다행이에요.” “그래. 지금 행복해. 진심으로·····.” “·············.” 이보영과 창의 가족은 신분을 숨기고 중국의 시골에서 작은 농장을 하고 있다. 그녀가 원하기만 하면 세계 최고 레벨의 호화로운 왕족으로서의 생활도 가능하지만···. 그녀와 창은 그저 땅을 일구고 동물들을 키우며 사는 지금에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추성이 오라버니가 결혼이라···. 신부가 누구지?” “글쎄요? 신부방에 들어가 보려고 하니 접근 금지더라고요.” “그 목석을 꼬시려면 누구일까? 음····.” “좀 있다 보면 알겠죠.” 그리고 잠시 후. 결혼식이 진행 되었고, 신랑이 먼저 입장했다. “추성이 형님 잔뜩 얼었는데?” “크큭···. 이거 영상으로 찍어 올리면 대박이겠다. 박추성 결혼식이라고 말이야.” 기껏 언론도 세간의 이목도 모두 속였지만 동료들의 장난끼로 이 순간을 모두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 신부가 입장했다. 신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뭔가 굉장한 배경이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여성은 아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흠, 저 아가씨군. 추성이 자식 결국 넘어갔나?” “대호 형님. 신부에 관해서 알아요?” 정운의 물음에 배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일전에 추성이 녀석이 일본에 갔을 때 만난 일본인이야. 착한 아가씨더라.” “···일본인? 추성이 형님이요?” 정운은 크게 놀랐다. 일본에 관한 거부감이 누구보다 큰 박추성이었는데 설마 아내로 일본 여성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그래···. 나도 만나 본 적 있는데 착하고 좋은 여성이더라····. 둘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는 느꼈는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은····.” “하아·····.” 정운으로서는 정말 의외였다. 어쨌든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신랑 신부가 예물을 교환하고 키스를 하며 둘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그리고 결혼식 후. “자, 사진 찍습니다. 하객 여러분 모두 나와 주세요.” 그리고 박추성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온 자들이 모두 모였다. 비밀리에 고용된 사진사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침을 꿀꺽 삼켰다. ‘뭐 이런 초호화 하객들이·····.’ 긴장이 안 되려도 안 될 수 없었다. “자··. 찍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사가 셔터를 누르며··. 전설의 인물들이 한 플레임에 찍혔다. 이 사진은 결혼사진일 뿐이지만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전설의 인물들을 소개하는 사진으로도 사용되게 된다. 김수민 - 가우리의 간부로 꾸준히 활동하며 누구보다 오랫동안 가우리에 남아 있는 전설의 세대가 된다. 홍린 - 후일 가우리에서 은퇴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자치구를 만든다. 그 안에서 평온하게 살아갔지만 종종 가우리에 들렸다고 한다. 윤정철 - 다이앤과 결혼 후. 영국에서 생활 함. 그 존재를 귀중하게 여긴 영국 정부에서는 그에게 명예 기사직을 내리지만 본인이 고사함. 다이앤 - 윤정철과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엄마로서의 생활에만 집중함. 후일 장 그레고리와 모종의 이유로 한 번 전투를 했는데 그 이유는 불명. 장 그레고리 - 프랑스의 위인으로 남음. 오랫동안 홀로 생활하다가 꽤 늦은 나이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신부를 맞이함. 그 후 아름답게 은퇴 함. 배대호 - 아내를 따라 라트란 왕국에서 생활을 시작 함. 죽을 때 까지 마법의 연구에 힘썼고, 후일 제로 트리의 개량에 성공 함. 현대 마법의 아버지라고 불림. 한중겸 - bor도라는 신흥 종교를 설립 하려고 했지만 아내들에게 분쇄 당함. 희대의 바람둥이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실제 남긴 가족의 숫자가 정확한 집계가 안 된다고 함. 이민지 - Bro도에 대항하기 위해서 바가지 연대라는 신흥 여성단체를 만듬.‘남자 잘못 선택하면 X된다.’라는 책을 출간. 여성들의 깊은 공감대를 얻어 베스트셀러에 등극. 박추성 -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후. 일본과 한국의 역사 바로 잡기에 힘 씀. 극우 정치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희대의 원수로 자리 잡지만 결과적으로 한일관계의 우호의 상징으로 자리 잡음. 박정운, 이슬기, 세레나. 그리고 그 밑의 다섯 아이들에 관해서는 어느 날 행적이 묘연해져 버렸다. 정운은 한동안 가우리의 수상으로 계속 지구와 신세계의 최고 중요 인물로 군림했다. 그가 있음으로 인해서 양쪽 세계의 균형이 점점 맞춰지고 박정운이 가우리 수상으로 있는 80여년의 시간동안 지구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고속 발전을 거두었다. 그 후 수상직을 박민재라는 후임에게 맡기고 그 자신은 은거에 들어갔다. 동시에 박정운을 보필하던 슬기와 세레나 역시 같이 은퇴하고 행적이 묘연해 졌다. 그 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후일 오대 여신이라고 불리게 된 아미, 화미, 유미, 효미, 주미 등은 좀 더 오랫동안 양쪽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표면상에 나타났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들도 사라져 버렸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정운의 유일한 끈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들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그 행적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후일 인류의 구원자라는 이름으로 박정운이라는 이름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된다. ============================ 작품 후기 ============================ 마지막화가 분량이 좀 많죠? 2화로 나누기가 좀 그래서 그냥 몰아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악마의 게임이 1부와 2부로 완결이 되었습니다. 음, 제 작품 중에서도 가장 긴 작품이 되었네요. 여러분들의 응원과 사랑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연재하고 무사히 완결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감사합니다. 악마의 게임은 뭐랄까.... 여러가지 변수가 많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의 성격도 처음에는 냉혹했다가 그 후에 슬기나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점점 둥글어 지는 편이었고... 주인공 이외의 조연들의 설정도 사실 완전히 공개를 못했습니다. 사실 박추성과 배대호의 스토리도 있기는 한데... 이걸 공개할 타이밍을 못 잡아서 그냥 묻혀 버렸네요. 나중에 외전으로라도 소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다음 작품으로는 MMA를 배경으로 한 스포츠물을 연재할 생각입니다. 아직 분량이 모이지 않아서 당장 연재를 하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실제로 소설을 위해서 도장에 등록을 해서 주짓수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많이 알려진 타격부분과 달리 그라운드에서 디테일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 취재를 겸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도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11월 1일부터 신작 [더 파이터]가 연재 됩니다.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 드립니다.